이 책은 와인에 얽힌 재미있는 역사적, 문화적 내용을 소개하거나 와인을 경제학적 시각을 통해
풀어낸 인문학 책입니다. 1부-전쟁과 와인, 2부-와인에 취한 인류, 3부-와인의 경제학, 4부-궁금증
으로 풀어보는 와인 등 네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부는 ‘전쟁’, ‘인류’, ‘경제’처럼 전체
를 관통하는 테마를 가지고 각 장을 이끌며, 각 장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마치 소나타 악곡을
듣는 것처럼 도입부로 시작해 스토리가 전개되고 종결부를 통해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여러분들
이 와인을 마시는 자리에서 와인과 관련한 보다 다양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데 도움이 되기 바
랍니다.
와인 콘서트
▣ Short Summary
“와인을 왜 좋아하세요?” 뜬금없는 질문 같지만 한 번쯤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와인을 접할
때 안개가 짙게 드리워진 정원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속에는 아름다운 향을 내뿜
는 꽃도, 기분을 청량하게 만드는 허브도, 아름드리 침엽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원 속 꽃의 향도
나무의 모양도 늘 다릅니다. 와인 한 병 속에 사계절의 변화가 모두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어떤 정원이 날 기다릴까.” 와인 코르크를 열 때마다 마음을 들뜨게 하는 설렘은 엄청난 행복
감을 줍니다. 아마도 제가 와인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은 와인이 이처럼 변화무쌍하고, 직접 잔을 기울
이기 전에는 예측이 불가능한, 정말 다양한 개성을 가진 술이기 때문입니다. 와인은 같은 포도 품종을
사용해 만들어도 어느 지역에서, 어떤 와이너리가, 어느 해에 만들었는지에 따라 맛과 향이 완전히 다
릅니다. 심지어 같은 와이너리가 매년 똑같은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어도 해마다 와인의 풍미가 절대로
같지 않습니다. 같은 와인도 햇와인일 때와 숙성기에 접어들었을 때의 맛이 다르고, 정점에 이르렀을
때와 수명을 다하기 전의 맛과 향은 또 다릅니다. 그래서 와인을 ‘시간이 만드는 예술’이라고 표현하기
도 합니다.
제가 이렇게 와인에 푹 빠진 또 다른 이유는 와인이 음식과 같이 있을 때 더 맛있는 술이기 때문입니
다. 또 일반적인 증류수나 혼성주와 달리 알코올 도수가 그리 높지 않아 술을 못하거나 독주를 싫어하
는 사람도 함께 자리를 할 수 있어 좋고요. 특히, 이른바 ‘원샷’에 대한 부담이 없어 자신의 주량에 맞
춰 술을 마실 수 있고 모두가 자신의 주량에 맞춰 같은 속도로 취할 수 있다는 점도 와인이 갖는 큰
매력입니다. 이는 그만큼 술자리를 같이할 수 있는 대상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와인의 가장 좋은 점은 식사 자리나 술자리에서 오가는 대화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와인을 나누는 자리에서 그 와인에 대해 식사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짧게 소개하곤 합니다.
그러다 식사 중간중간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그 얘기와 함께 해당 와인에 대한 보다
깊은 역사적 배경이나 얽힌 에피소드 등을 하나둘 식탁에 꺼내놓습니다. 좋은 식사 자리에서 맛있는
음식을 마주할 때 그 음식에 얽힌 스토리가 더해지면 음식 맛이 더 좋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다 보면 고대와 중세, 근대, 현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얘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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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콘서트
특히, 아직 지적 성장기에 있거나, 사회초년생인 조카들에게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우리 인류가 걸어
온 발자취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얘기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정말 귀를 쫑긋 세웁니다.
이 책은 1부-전쟁과 와인, 2부-와인에 취한 인류, 3부-와인의 경제학, 4부-궁금증으로 풀어보는 와인
등 총 네 가지 테마로 구성됐습니다. 각 부는 ‘전쟁’, ‘인류’, ‘경제’처럼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를 가지고
각 장을 이끌며, 각 장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마치 소나타 악곡을 듣는 것처럼 도입부로 시작해 스
토리가 전개되고 종결부를 통해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이 책은 와인에 대한 맛의 특징이나 물리적인 모습에 대해 심도 있게 기술하기보다는 와인에 얽힌 재
미있는 역사적, 문화적 내용을 소개하거나 와인을 경제학적인 시각을 통해 풀어낸 인문학 책입니다.
여러분들이 와인을 마시는 자리에서 와인과 관련한 보다 다양하고 깊은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 차례
책을 열며
1부 전쟁과 와인
◆ 십자군 전쟁이 탄생시킨 부르고뉴 와인
◆ 영국과 프랑스 백년전쟁은 와인 전쟁
ㆍ미니박스 - 알리에노르와 사자심왕 리처드, 마그나 카르타
◆ 영국과 프랑스 갈등이 낳은 포트 와인
◆ 전쟁의 눈물로 빚은 와인, 보졸레 누보
ㆍ미니박스 - 유럽 ‘왕 중의 왕’ 샤를마뉴 가문
◆ 와인 마니아 나폴레옹, 와인으로 죽다
ㆍ미니박스 - 제노바가 헐값에 판 꼬르스섬,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 아군과 적군이 따로 없는 와인 전쟁
◆ 전쟁의 선봉에 선 그대, 맘껏 취하라
◆ 교황의 굴욕이 탄생시킨 프랑스 론 와인
ㆍ미니박스 - 해적 출신 교황과 메디치 가문, 그리고 르네상스
◆ 보르도 와인 라벨에 등장한 잉글랜드 장군
◆ 로췰드 가문의 백년전쟁
2부 와인에 취한 인류
◆ 노아부터 성직자까지…… 8,000년 전부터 와인에 취한 인류
ㆍ미니박스 - ‘레이디 퍼스트’는 배려 아닌 잔인한 에티켓
◆ 썩은 포도 ‘흐르는 황금’이 되다 - 귀부와인
◆ 악마의 장난이 가져다준 선물 - 샴페인
ㆍ미니박스 - 자본력이 품질을 가르는 명품 샴페인
◆ 얼음이 만드는 마법 - 아이스 와인
◆ 타협을 거부한 고집이 만든 명품 - 바롤로
ㆍ미니박스 - 점점 부르고뉴를 닮아가는 바롤로
◆ 틀을 깨니 새로운 세계가 열리다 - 수퍼 투스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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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콘서트
ㆍ미니박스 - 토스카나 와인의 역사가 된 안티노리
◆ 실수와 우연이 빚은 명품-아마로네
ㆍ미니박스 - 근대 사람들은 왜 단맛에 열광했을까
◆ 나무와 불이 만나 펼치는 오크통의 마법
◆ 와인 산업의 혁명적 사건, 유리병과 코르크
◆ 샤또의 병입, 와인 산업을 뿌리째 바꾸다
ㆍ미니박스 - 비싼 와인일수록 왜 라벨이 단순할까
◆ 척박한 환경일수록 좋은 포도를 맺는 포도나무
3부 와인의 경제학
◆ 언뜻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엉 프리뫼르’
◆ 보르도 그랑크뤼 클라세 과연 믿을 수 있나
◆ 가짜가 더 귀한 대접 받는 와인세계
◆ 부르고뉴 와인을 좋아하면 왜 가산을 탕진할까
◆ 영국을 닮은 보르도, 프랑스 농부 같은 부르고뉴
ㆍ미니박스 - 영국인들의 클라레 사랑
◆ 재벌의 취미수집장이 된 보르도 와이너리
◆ ‘밀당의 귀재’가 즐비한 최고가 와인의 세계
◆ 최고가 와인의 세계 - 프랑스(스토리텔링을 마신다)
◆ 최고가 와인의 세계 - 이탈리아, 스페인(고집스런 괴짜들의 향연)
◆ 최고가 와인의 세계 - 미국(고도의 마케팅이 숨어있는 컬트 와인)
◆ 행사 때면 절반값으로 뚝…… 와인 값 어느 게 진짜?
◆ 비행기 타고 온 와인, 배 타고 온 와인 왜 맛이 다를까
4부 궁금증으로 풀어보는 와인
◆ 와인 매너 너무 어려워요. 꼭 지켜야 할까요
◆ 와인, 어떻게 하면 맛있게 제대로 먹을까요
◆ ‘호로로~록’ ‘스~읍’ 와인 마실 때 꼭 이런 소리 내야 하나요
◆ 와인 잔의 볼을 쥐면 안 된다는데 정말 그럴까요
◆ 와인 라벨이 난수표 같아요
◆ 와인과 음식, 궁합이 있다는데
◆ 와인이 여러 병일 때 마시는 순서가 있다던데
◆ 와인, 꼭 온도까지 따져가면서 마셔야 할까요
◆ 먹다 남은 와인 어떻게 보관할까
◆ 와인 살 때 망빈은 절대 집지 말라고 하는데
◆ 그랑 뱅, 스공 뱅이 뭐야
◆ 와인은 무조건 묵혀야 좋다?
◆ 와인 처음 시작하는데 어떤 와인부터 먹을까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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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콘서트
와인 콘서트
김관웅 지음
1부 전쟁과 와인
영국과 프랑스 백년전쟁은 와인 전쟁
1340년 6월 23일 새벽 잉글랜드를 출발한 코그선 147척이 도버해협을 건너 제일란트 앞바다 슬라위
스에 들이닥칩니다. 슬라위스는 지금의 벨기에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당시 유럽에서 최강의 국력을 자
랑하는 프랑스가 제노바 등 인근 해상 국가와 연합 함대를 구성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연합
군이 보유한 갤리선은 속도가 빠른 데다 무시무시한 충각과 투석기까지 갖춘 첨단 군함이었습니다. 게
다가 선단 규모는 잉글랜드군의 2배가 넘었습니다. 반면 잉글랜드군이 타고 있는 코그선은 양모 등을
실어 나르는 상업용 배로 전투 장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형편없는 배였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전
투가 시작되면 승부가 순식간에 갈릴 게 뻔해 보였습니다.
잉글랜드군은 겁을 잔뜩 집어먹었는지 멀리서 프랑스 연합군을 지켜보기만 할 뿐 꼼짝도 하지 않았습
니다. 그런데 잉글랜드 코그선 군단이 갑자기 프랑스 연합군 함대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진격하기 시
작합니다. 아침이 되면서 바람의 방향이 뒷바람으로 바뀌자 이를 이용해 돌격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잉글랜드 코그선단이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오자 항구에 집결해 있던 프랑스 연합군 전함들이 우왕좌왕
합니다. 그러던 중 하늘에서 커다란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잉글랜드 장궁에서 발사된 화살이었
습니다. 순식간에 프랑스군 수백 명이 쓰러졌습니다. 장궁은 활대 길이가 2m가 넘는 큰 활로 200m
밖의 먼 거리에서도 기사가 입은 철갑옷을 관통해 죽음을 선사하는 정말로 엄청난 살상력을 자랑했습
니다. 강력한 맞바람을 등에 업고 밀려드는 잉글랜드의 충파 공격과 이어지는 근접전에 프랑스군은 큰
바다로 나오지도 못한 채 항구에서 전멸을 당합니다. 당시 해전을 기록한 역사서에 따르면 프랑스 연
합군은 단 한 척도 온전한 배가 없었다고 합니다.
백년전쟁은 이 전투를 기점으로 잉글랜드로 전세가 확 기웁니다. 잉글랜드는 이어 크레시 전투 등 잇
단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며 거의 100년 동안 프랑스 국토 전역을 유린하게 됩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6년 동안 벌인 백년전쟁은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놓고 벌인 전쟁
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보르도 와인을 차지하기 위한 ‘와인 전쟁’이었습니다.
1328년 프랑스 왕 샤를 4세가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죽자 그의 사촌인 필리프 백작이 프랑스
왕위에 올라 필리프 6세가 됩니다. 그러자 당시 잉글랜드의 왕이던 에드워드 3세가 자신은 죽은 샤를
4세의 여동생이 낳은 아들이었으므로 자신에게 프랑스 왕위 계승권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하여 잉
글랜드와 프랑스 간 갈등이 시작되고 마침내 백년전쟁으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내막은 조금 다릅니다. 백년전쟁은 프랑스가 자신들의 영토 내에 있지만 잉글랜드가 소유
하고 있는 가스코뉴 지방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와인 전쟁’이었습니다.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가스
코뉴 지방은 그 유명한 보르도와 당시 최대 와인 산지이던 까오르, 가이약이 속해 있는 곳입니다. 주
류에 붙은 세금은 당시에도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보르도는 이 일대 와인이 모이는 집산지로 이곳에서
유럽 곳곳으로 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와인 무역으로 거둬들이는 세금이 당시 프랑스 내 다른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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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나오는 세금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스코뉴의 소유권이 잉글랜드에 있어
그곳에서 나오는 막대한 세금을 잉글랜드가 다 가져가니 프랑스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반대로 잉글랜드에게 보르도는 정말 보물과도 같았습니다. 와인 수출로 거둬들이는 세금이 어마어마한
데다 자신들은 세금 한 푼 물지 않고 저렴한 가격으로 품질 좋은 와인을 맘껏 즐길 수 있었으니까요.
보르도에서 공급하는 포도주의 양이 얼마나 많았던지 잉글랜드에서는 극빈자 가정에서도 보르도 와인
을 충분히 마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가스코뉴 지방은 백년전쟁이 일어나기 187년 전까지만 해도 잉글랜드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1152년 프랑스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던 아키텐 공국의 공주이자, 프랑스 루이 7세의 왕후인
알리에노르가 결혼한 지 15년 만에 이혼하면서 양국 간에 전쟁의 씨앗이 뿌려집니다. 이혼녀가 된 알
리에노르는 나이가 서른 살이었지만 그녀가 결혼할 때 가져갔던 아키텐 공국의 땅을 루이 7세로부터
다시 돌려받았으므로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미모까지 뛰어났으니 유럽 귀족들에겐
최고의 신붓감으로 꼽혔습니다. 그런 알리에노르가 선택한 새로운 배우자는 9살 연하의 노르망디 공국
의 공작이자 앙주의 백작인 헨리 2세였습니다. 헨리 2세는 1154년 잉글랜드 왕에 오르면서 잉글랜드
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와 프랑스 남서부의 아키텐 지방까지 거대한 영토를 다
스리게 됩니다.
프랑스는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가스코뉴 지방의 소유권을 어떻게 가져올까 고민하다 프랑스 북
부 지역에 위치한 플랑드르 지방을 무력으로 점령하며 잉글랜드를 자극합니다. 플랑드르는 지금의 벨
기에 지역으로 오래전부터 모직물 산업이 발달한 곳으로, 사실상 프랑스 국왕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었지만 잉글랜드에서 양모를 수입해 모직물을 만들다 보니 상업적으로 잉글랜드와 더 친했습니다. 주
민들도 자신들이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기를 원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잉글랜드에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경제 공동체인 플랑드르가 봉쇄당했어도 에드워드 3세는 꾹 참았습
니다. 혹시나 프랑스가 가스코뉴 지방에 쳐들어 와 그 지역을 복속해버릴 것을 염려했던 것이죠. 당시
잉글랜드는 프랑스에 비해 인구나 군사력 등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열세인 데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와 내전을 치르고 있는 상황이어서 프랑스와 전쟁을 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왕 필리프 6세는 잉글랜드가 웅크린다고 쉽게 물러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1337
년 5월 24일 필리프 6세는 “잉글랜드 국왕이 프랑스와 짐에게 거역하고 불충을 저질렀기에 에드워드
에게서 아키덴을 몰수한다.”고 선언하고 가스코뉴 지방을 공격합니다. 프랑스는 3년간에 걸친 공세 끝
에 지롱드강 하구 북안의 블라예를 점령한 데 이어 1340년에는 도르도뉴강 어귀에 있는 부르마저 손
에 넣게 됩니다. 프랑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략선(해적선)을 이용해 영국의 양모선을 공격해 나포
하는가 하면 잉글랜드 본토까지 넘보며 공격을 계속합니다.
그러던 중 잉글랜드가 슬라위스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전쟁이 시작된 지 3년 만에 백년전쟁의 전세
를 역전시킨 것이었습니다. 잉글랜드는 이후 자그마치 100년에 가까운 시기 동안 프랑스 전역을 유린
합니다. 하지만 1429년 프랑스의 성녀 잔다르크가 등장하면서 반전이 일어났고 결국 1453년 프랑스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리고 가스코뉴 지방 소유권도 300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오게 됩니다.
두 나라 5명의 왕이 대를 이어 무려 116년 동안 벌인 백년전쟁은 와인 산업에도 큰 변화를 가져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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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으며 앞서 영국인들의 보르도 와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새롭게 꼬냑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와인 마니아 나폴레옹, 와인으로 죽다
“샹베르탱 와인 한 잔을 보는 것 이상으로 미래를 장밋빛으로 만드는 것은 없다.” ‘샹베르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입니다. 프랑스 육군사관학
교를 졸업한 후 불과 24살에 장군이 되고, 30살에 프랑스 정권을 장악한 후, 32살에 스스로 황제 자리
에 오른 나폴레옹은 유명한 와인 마니아입니다. 포탄이 오가는 전쟁터 막사에서도 지브리 샹베르탱 와
인을 즐기며 작전을 구상했다고 전해집니다.
샹베르탱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 꼬뜨 드 뉘 지역의 지브리 샹베르탱 마을에서 만드는 피노 누아 와
인입니다. 강력한 산도와 타닌이 특징으로 부르고뉴에서 가장 남성적인 와인으로 손꼽힙니다. 지브리
샹베르탱 마을에는 9개의 그랑크뤼 밭이 있습니다. 그중 나폴레옹이 좋아했던 와인은 샹베르탱 끌로
드 베제라는 밭에서 나는 와인이었습니다. 샹베르탱 끌로 드 베제는 샹베르탱과 더불어 9개의 그랑크
뤼 밭 중 최고 품질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지브리 샹베르탱 와인을 볼 때면 뿌연 포연이 자욱한 전장의 막사에서 향기로운 루비빛 샹베르탱 와인
잔에 코를 박고 세계 정복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나폴레옹의 미소 띤 얼굴이 연상됩니다. 사실 지브
리 샹베르탱 와인을 잔에 따라놓으면 잔에 코를 가까이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꽃향기부터 젖은 낙엽 향,
싱그러운 풀 향 등 온갖 향기가 주변을 휘감습니다. 입에 넣어보면 우아한 신맛과 함께 “피노 누아 와
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강한 타닌이 혀에 내려앉습니다. 미디엄 라이트 바디임에도 지브리 샹베르탱
이 남성적인 와인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와인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나폴레옹은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프랑스령인 지중해의 작은 섬 꼬르스, 이탈리아
명 코르시카에서 변호사이던 아버지의 8명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납니다. 어릴 적부터 수학과 지리, 역
사 등의 과목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불과 16살에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포병
장교가 된 그는 주변국과의 연이은 전쟁에서 뛰어난 작전 능력으로 승리를 거듭하며 일약 프랑스의 영
웅으로 떠오릅니다. 이후 유럽 국가 대부분을 정복하며 불과 32살에 황제에 오릅니다. 샤를마뉴 이후
800년 만에 처음입니다.
그러나 그의 앞날은 장밋빛만이 아니었습니다. 황제에 오른 후 대륙 봉쇄령을 어긴 러시아를 단죄하기
위해 45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떠난 러시아 원정은 나폴레옹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놨습니다. 러시아
국토를 거의 무혈 입성하듯 정복해 들어갔지만 러시아는 워낙 넓은 땅을 가지고 있어 결국 후방 보급
로 차단으로 큰 고난을 겪다 물러나고 맙니다. 러시아 원정 실패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반기로 이어져
나폴레옹은 위기에 몰리고 맙니다. 더구나 영국군과의 워털루 전투에서 예상을 뒤엎고 패하면서 나폴
레옹의 모진 시련이 시작됩니다.
나폴레옹은 영국군에 의해 대서양 오지인 세인트헬레나섬에 유폐됩니다. 아내조차 찾아오지 않는 그
섬에서 그의 유일한 낙은 와인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브리 샹베르탱 와인은 아니었습니다.
영국 정부에 프랑스 와인을 제공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그나마 나폴레옹의 와
인 관리인이던 몽톨롱 백작이 프랑스 와인 대신 가져오는 남아프리카 와인 뱅 드 콘스탄스를 마셨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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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 와인은 프랑스 와인과 비슷한 맛이 났다고 합니다.
“내 유골을 센 강변에 묻어 내가 그토록 사랑한 프랑스 국민 속에 있게 해 달라. 나는 영국과 영국에
고용된 암살자들 때문에 내 명을 다 못 살고 가노라.” 유배지에서도 절도 있는 생활과 규칙적인 습관
을 유지했던 그는 유폐 6년 만인 1821년 52살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공식적인 사인은 위암이었지만
일각에서는 비소 중독이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와인을 주기적으로 가져다주던 몽톨
롱 백작이 와인에 비소를 섞어 서서히 암살을 했다는 것인데요. 몽톨롱은 그의 부인 아르빈과 결혼하
려고 할 때 나폴레옹이 극심한 반대를 했고, 그가 결혼을 강행하자 그를 해임시켰다고 합니다. 이 때
문에 원한을 가진 몽톨롱이 나폴레옹에게 일부러 접근해 그가 마시는 와인에 수년간 비소를 섞어 죽음
에 이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프랑스, 군대, 조제핀” 단 세 마디였다고 합니다.
조제핀 드보아르네는 나폴레옹의 첫 번째 부인으로 그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습니다. 조제핀
은 결혼 전부터 강렬한 개성으로 프랑스 사교계를 주름잡던 스타였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과 결혼해
아이를 낳지 못해 그의 가문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나폴레옹은 이후 오스트리아 왕녀를 비롯해 많은
여자들을 만났지만 죽을 때까지 그리워한 여인은 바로 조제핀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썼던 편지 내용에는 “내 사랑, 조제핀, 오늘은 씻지 말고 나를 기다려주오.”라
는 문구가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조제핀에게서 늘 그가 좋아하는 샹베르탱 와인의 냄새를
느꼈다고 합니다. 조제핀은 나폴레옹이 1814년 엘바섬에서 첫 번째 유배 생활을 할 때 먼저 세상을
뜹니다. 나폴레옹은 조제핀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단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소.
단 하룻밤도 그대를 내 팔에 끌어안지 않은 적이 없소. 어떤 여인도 그대만큼 큰 헌신과 열정, 자상함
으로 사랑하지 않았소.”라며 크게 비통해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과 샹베르탱 그리고 조제핀……. 어떤가요. 공통점이 보이나요. 오늘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샹베르탱 와인 한번 열어보면 어떨까요.
2부 와인에 취한 인류
노아부터 성직자까지…… 8,000년 전부터 와인에 취한 인류
“형님, 아우님! 어서 와 보세요. 하하하. 아버지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자고 있어요.” 노아가 대홍수를
겪은 후 땅에 정착한 첫해, 기쁜 마음으로 포도를 수확해 만든 와인에 취해 그만 벌거벗은 채 잠들었
습니다. 그러자 그의 둘째 아들인 함이 아버지의 취한 모습을 보고 마치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럼 행동
합니다. 깜짝 놀란 첫째 아들 셈과 셋째 아들 야벳은 겉옷을 가져다가 자신들의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
질로 다가가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줍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들의 종들의 종이 될
것이다.” 술에서 깬 노아가 자초지종을 알고 둘째 아들 함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성경 속 창세기에서는 노아와 그의 세 아들, 그리고 와인이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와인은 이처럼 성경의 창세기에도 등장할 만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아가 대홍수를 겪은
후 방주에게 나와 처음 밟은 땅은 터키 남동부의 아라라트산 높은 계곡이었습니다. 이 땅에 정착해 처
음 심은 게 바로 포도나무입니다. 아라라트산은 터키 동부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고원 지대로 높은 봉우리는 해발 5,000m가 넘습니다. 여기에서 발원한 물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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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콘서트
을 만들게 되며 이곳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시작됩니다.
아라라트산이 있는 아르메니아 고원 북쪽에는 조지아가 위치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산지로 그 역사는 무려 8,500년에 달한다고 전해집니다. 조지아에서는 와인을 그비노라고 부릅니다.
이게 이탈리아로 넘어와 비노로, 프랑스에서는 뱅으로, 독일에서는 바인으로, 다시 영국으로 넘어가
와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조지아 와인은 사페라비라는 품종을 이용해 항아리처럼 생긴 크베브리에서 발효와 숙성을 진행합니다.
아직도 고대의 제조 방식 그대로를 따라서 만듭니다. 조지아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시원한 아열대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포도 생육에 최적화된 기후로 낮에는 뜨거운 햇살이 포도의 당분과 타
닌을 높여주고, 밤에는 해발 5,000m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산도를 높여줍니다. 덕분에 구조감
이 완벽한 아주 뛰어난 와인이 생산됩니다.
이처럼 방주에서 내린 노아를 취하게 만든 와인은 8,000년이 넘게 인류의 입맛을 사로잡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북방에서는 기원전 4,50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포도씨가 발견되기도 했고, 기원전
2,500년에 그려진 이집트 벽화에는 와인을 제조하는 모습이 실감 나게 담겨있습니다. 또 기원전
1,700년경 만들어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는 “술버릇이 나쁜 자에게는 와인을 팔지 말라.”는
규정이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에도 사람들이 와인을 많이 마셨으며 심지어 주정뱅이까지 있었다는 것
을 말해줍니다.
그래서인지 절제와 중용을 중시하던 그리스 로마 시대 사람들은 와인을 원액으로 즐기지 않고 물에 희
석해 마셨습니다. 와인을 원액으로 마시면 야만인 취급을 당했습니다. 고대 시대 와인은 암포라라고
하는 술 저장 용기에서 크라테르라고 하는 커다란 그릇에 옮겨 담아 물과 희석한 후 큐릭스라는 잔에
덜어서 마셨습니다. 비율은 와인 1에 물이 3 또는 4, 혹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물에 와인을 타서 먹었
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아주 옅게 마셨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친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 하나의 주제를 정해 토론하는 모임을
즐겼습니다. 소파처럼 생긴 카우치에 비스듬히 기댄 채 한 손에 와인 잔을 들고 각자의 생각을 쏟아내
고 학문적 소양과 문화적 소양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함께 마시다’라는 뜻을 가진 ‘심포지움’이 오늘날
에는 좌담회, 토론회의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는 술이 곁들여진 일종의 와인 파티였습니다. 참석자들은
시종들이 와인이 들어 있는 단지를 들고 다니며 손님들에게 와인을 따라주면 지체 없이 그 잔을 비워
야 했다고 합니다. 심포지움에는 와인과 함께 무희와 악사들이 등장해 공연을 벌였습니다. 취기가 오
른 참석자들은 직접 시 낭송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와인은 가톨릭 문명과 같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가톨릭에서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합니
다. 이 때문에 와인은 가톨릭 성찬 의식에 반드시 등장하는 첫 번째 물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수
도원 주변에는 포도밭이 위치하고 수도원 안에는 와인을 만드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제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수도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도사들은 늘 와인에 취해
있었습니다. 수도원에서 성찬 미사를 위한 와인을 만들었는데 수도사들이 엄청난 양의 와인을 소비했
습니다. 와인이 일상 음료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믿기지 않지만 중세 시대 수도사 한 명이
하루에 마시는 와인의 양이 평균 8ℓ에 달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와인병의 용량이 750㎖이니 지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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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콘서트
로 따지면 매일 10병 정도의 와인을 마신 것이죠. 특히, 가톨릭 종교 회의가 있는 날이면 그날은 엄청
난 수의 와인 통이 바닥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중세 시대에도 와인을 물에 섞어 마셨습니다. 언제부터 와인을 지금처럼 원액으로 마시기 시작했는지
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 부떼이예, 소믈리에, 에샹송 등의 전문 직업군이 사라지
는 것을 보면 이 당시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소믈리에는 우리가 많이 들어 알고 있지만 부떼이예, 에
샹송은 굉장히 낯섭니다. 왕궁이나 영주 등이 거주하는 곳에는 포도밭을 관리하는 전문가 부떼이예와
지하 동굴의 와인 까브를 총괄하며 와인을 골라주는 소믈리에, 식탁에는 와인을 서빙하는 에샹송 등
와인과 관련된 직업이 세분화돼 있었습니다.
요즘 시대 소믈리에는 와인 저장고를 관리하고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골라주는 식탁에서 서빙까지
도와주는 역할을 하지만 과거에는 맡은 임무가 상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와인 까브에 넣을 와인을 선
정하고 관리하며 식탁에 오를 와인을 골라 내어주는 역할만 했습니다.
지하 동굴을 벗어난 와인은 소믈리에가 아닌 에샹송이라는 별도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다뤘습니다. 이
들은 선택된 와인에 섞을 물의 비율을 맞추고 와인에 이상이 없는지를 먼저 맛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에샹송은 영향력이 막강한 중요한 보직이었습니다. 중세의 경우 와인을 이용해 정적을 독살하는 경우
가 잦았기 때문에 식탁에서 와인을 다루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신
임이 절대적인 귀족 출신이 맡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이 붕괴되면서 특권
층으로 군림하던 에샹송이란 직업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궁정이나 귀족 식문화가 호텔, 레스토랑 등에 본격적으로 스며들면서 소믈리에가 와
인과 관련된 모든 역할을 대신하고, 오늘날 전문 직업인 와인 소믈리에로 자리 잡게 됩니다.
3부 와인의 경제학
부르고뉴 와인을 좋아하면 왜 가산을 탕진할까
로마네 꽁띠 한 병에 55만 8,000달러(6억 6,900만 원)……. 2018년 10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열린
1945년산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로마네 꽁띠 한 병 가격입니다. 종전 기록 2억 6,000만 원을 훌쩍 뛰
어넘은 와인 경매 사상 최고가입니다. 와인에 있어서 1945년 빈티지는 지긋지긋하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여서 서양인에게 큰 의미가 있는 해입니다. 더구나 전쟁으로 로마네 꽁띠 생산량이 예년의 10
분의 1 수준인 600병에 그치면서 희소성도 한몫했습니다.
이는 상징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요즘 부르고뉴 와인 가격이 무섭게 오르고 있습니다. 부르고뉴 와인이
오르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한정 생산에 따른 희소성, 유명 평론가의 호들갑, 중국인의 묻지 마 소
비가 겹치면서 이제 일부 유명 생산자가 만드는 와인은 부르는 게 값이 됐습니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
장 비싼 와인 상위 10개 중 7개는 부르고뉴 와인입니다. 2017년 런던국제와인거래소가 전 세계 와인
을 대상으로 실거래 가격을 반영해 새롭게 등급을 매겼는데 부르고뉴 와인이 싹쓸이를 했습니다.
가장 비싼 와인은 역시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가 생산하는 로마네 꽁띠였습니다. 한 상자(750㎖ 12
병) 가격이 무려 9만 8,732파운드(1억 5,056만 원)였습니다. 한 병당 가격은 1,254만 원입니다. 시중
에서 팔리는 소매가격은 3,000만 원 안팎에 달합니다. 이어 DRC의 라 타슈가 2만 3,340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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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콘서트
(3,559만 원)로 한 병당 296만 원을 기록했습니다. 이외에도 DRC의 리쉬부르, DRC의 로마네 생 비방,
DRC의 그랑 에쎄조, 아르망 후소의 샹베르탱 클로 드 베제 등이 10위 안에 랭크됐습니다. 나머지는
미국을 대표하는 컬트 와인 스크리밍 이글이 2만 610파운드로 3위에 오른 것과 보르도 우안의 생떼밀
리옹 와인인 페트뤼스와 르 팽이 10위 안에 올랐습니다. 일반인에게 유명한 보르도의 특급 와인 라피
트 로췰드는 5,533파운드, 라뚜르가 4,964파운드, 마고가 4,299파운드를 기록해 부르고뉴 DRC 와인
앞에서는 명함조차 못 내밀 정도입니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부르고뉴 와인을 좋아하게 되면 가산을 탕진한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
니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 같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부르고뉴 와인 등급은 그랑크뤼, 프리미에
크뤼, 빌라주, 레지오날 이렇게 4개 등급으로 나뉩니다. 빌라주 등급 와인만 해도 한 병 가격이 10만
원을 쉽게 넘어갑니다. 프리미에 크뤼로 넘어가면 20만 원 안팎, 그랑크뤼로 올라가면 최소 50만 원에
달하며 유명 생산자일 경우는 100만 원도 넘깁니다. 반면, 보르도 와인의 경우 몇몇 1등급 와인을 제
외한 그랑크뤼 클라세 와인은 10만~50만 원 수준이니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부르고뉴 와인은 왜 이렇게 비쌀까요. 부르고뉴 와인 가격은 한정판이라는 개념, 즉 희소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1936년 제정한 부르고뉴 와인 등급은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아니라 포도밭
에 등급을 고정해놓았습니다. 즉, 아무리 찾는 사람이 많아도 생산량을 늘릴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반
면 보르도 와인은 와이너리에 등급이 매겨져 있어 해당 와이너리가 다른 땅을 사 와인을 만들어도 해
당 등급을 그대로 가져와 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르고뉴 와인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랑크뤼 포도밭은 부르고뉴에 있는 포도밭 수만 개 중 겨우 33개로 전체 생산량의 1.4%에 불과합니
다. 또 프리미에 크뤼 포도밭도 635개로 전체 생산량의 10.1% 수준입니다. 세계 최고가 와인을 생산
하는 DRC의 로마네 꽁띠 밭은 1.85㏊로 아주 작습니다. 축구장 2개가 채 안 되는 규모로 1년 생산량
이 500상자(6,000병)에 불과합니다. 이 포도밭은 1512년 경작 이래 단 한 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보르도는 1등급 와이너리 한 곳당 최소 수십 ㏊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연간 수십만 병의 와인을
생산합니다. 게다가 포도밭이 계속 확장되면서 생산량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결국 희소성이 가격의
차이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로마네 꽁띠는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와인이 아닙니다. DRC 와이너리 오너 오베르 드 빌렌은
매년 고객들로부터 구매 의향서를 받아 로마네 꽁띠를 마실 자격이 있는지를 엄격히 심사합니다. 생산
량이 워낙 한정적이다 보니 선택된 극소수 사람만이 와인을 받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
세계에서 돈이 많은 와인 애호가는 물론이고 이 와인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 사람들까지 가세해 가격이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유명 평론가들의 다소 호들갑스런 평론도 큰 역할을 합니다. 와인이 생산되면 “근래에 유례없는 최고
의 빈티지”라고 호들갑을 떨고 그다음 해에는 “그 전년도에 못지않은 작황”이라며 와인 애호가들을 계
속 자극합니다. 와인은 그해에 한번 생산되면 다시는 똑같은 와인이 나올 수 없는 데다 한 해에 생산
되는 양도 적어 서로가 앞다투어 웃돈을 주고 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중국인들이 가세하면서 가격은 더 오르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와인을 사 모으는 것은 와인을
마시기보다는 수집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큰손들이 많다
보니 프랑스산 고급 와인들을 싹쓸이하다시피 사들인다고 합니다. 한 중국인이 2007년 말 프랑스 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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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콘서트
를드골 공항 면세점에서 무려 6,000만 원어치 와인을 사 화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또 와인을 소재로 한 일본의 만화 작품 『신의 물방울』 이후 일본인들의 부르고뉴 사랑도 한몫하고 있
습니다. 아시아권 거부들 중 2000년, 2005년, 2009년, 2010년, 2015년, 2016년 등 그레이트 빈티지로
소문난 와인을 얻기 위해 유럽의 와인 상인들에게 백지 수표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
니 프랑스 와인, 특히 부르고뉴 와인의 콧대는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4부 궁금증으로 풀어보는 와인
와인 매너 너무 어려워요. 꼭 지켜야 할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와인을 불편하고 어려운 술로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와인 잔 때문입니다. 소
주나 막걸리 또는 맥주 등과 다르게 와인은 마시는 잔부터 다릅니다. 아주 얇고 볼이 넓은 큰 잔이 세
팅된 식사 테이블에 앉게 되면 일단 익숙하지 않은 도구에 가장 큰 불편을 느낍니다.
그런데 와인 잔은 왜 이리 큰 걸까요. 사람들은 와인을 눈으로, 코로, 입으로 이렇게 ‘세 번 마시는 술’
이라고 표현합니다. 레드 와인을 마실 경우 우선 잔에 따라서 고급스런 자줏빛을 감상한 후 와인 잔을
가까이해 와인의 복합적인 향기를 즐깁니다. 이어 잔을 기울여 혀로 흘러내리는 와인에서 눈과 코로
짐작했던 와인의 여러 가지 맛과 향을 느끼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또 입술과 치아 사이를
파고드는 뻑뻑한 타닌도 경험합니다. 와인 잔은 이 같은 과정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얇고 투명하게,
크고 넓게 만들어집니다. 테이블 매너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습니다.
와인을 따르는데 받는 사람이 잔을 들고 받는다면, 또 와인을 따르는 사람이 잔을 가득 채운다면 어떻
게 될까요. 일단 레드 와인 잔은 레스토랑에서 서빙되는 보르도 잔을 기준으로 용량이 최소 600㎖ 이
상입니다. 또 잔의 두께도 2㎜ 안팎으로 정말 얇습니다. 그런데 와인을 따를 때 잔을 들고 받으면 얇
은 와인 잔이 와인병에 부딪혀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와인 잔은 반드시 테이블에 놓은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와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와인잔을 받을 때도 두 손으로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와인 잔의 베이스에 한 손을 대고 받으면 됩니다. 다만 와인을 따라주는 사람이 아주 연장자이거나 직
위가 높아 도저히 한 손으로 받기 부담스럽다면 와인 잔의 베이스를 잡은 손에 다른 한 손을 포개놓는
것도 한국식 매너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와인을 따라주는 경우에도 와인을 너무 많이 따르면 안 됩니다. 와인 잔을 가득 채우면 와
인 한 병(750㎖)이 거의 다 들어갑니다. 밑에 볼이 큰 부르고뉴 잔의 경우 와인 한 병으로 부족해 추
가로 3분의 1병 정도를 더 따라야 가득 차는 잔도 있습니다. 그만큼 와인 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
다 훨씬 큽니다. 그런 와인 잔에 절반만 채워도 와인 반병이 들어가는 셈인데 상대방이 가느다란 목
(스템)으로 잔을 들고 건배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무겁고 아슬아슬할까요.
더구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의 경우는 더욱더 부담스럽겠지요. 자칫 건배를 위해 잔을 맞대는
과정에서 쏟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와인 잔의 목이 부러지면서 다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와인을 따
를 때는 보통 와인 잔의 4분의 1 정도만 채웁니다. 아무리 많이 따라도 3분의 1을 절대 넘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이는 용량으로 따지면 125㎖나 150㎖ 정도입니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
슨 말인지 정확하게 압니다. 와인 모임을 하다 보면 멤버를 구성할 때 5명 혹은 6명으로 제한합니다.
이는 와인 한 병을 6명이 나누면 125㎖, 5명이 나누면 150㎖ 가 되기 때문이죠. 이보다 사람이 더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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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콘서트
게 되면 매그넘 사이즈의 와인이나 아예 두 병을 준비하는 이유입니다.
와인과 음식, 궁합이 있다는데
와인과 음식은 식탁의 가장 친한 동반자입니다. 특히, 유럽의 가톨릭 국가에서는 음식에 반드시 와인
이 곁들여집니다. 와인은 기본적으로 신맛을 가지고 있는데 신맛이 음식의 풍미를 높여주기 때문입니
다. 셰프들이 요리를 완성한 후 마지막에 라임이나 레몬을 뿌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은 생선이나 해물과 잘 어울립니다. 레드 와인은 기름기가 많은 고기와 환상적
인 궁합을 보이며, 스위트 와인은 달콤한 디저트와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이는 아주 큰 틀에서 말하
는 것이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음식과 와인을 매치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래
에서 언급할 두세 가지 법칙만 알고 있으면 음식과 와인을 매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우선, 음식에 맞는 그 지역 와인을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면 그냥
이탈리아 와인을 고르는 게 아주 좋은 선택이 됩니다. 그다음에 기름기가 있는 음식이면 레드 와인을,
기름기가 없는 담백한 생선이나 해물 요리면 화이트를 고르면 됩니다. 실제로 쇠고기나 치즈를 활용한
요리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와인이나 피에몬테 와인을 매치시키면 거의 맞아떨어집니다. 반대로 해산
물이 가득한 파스타 등에는 그 지역에서 난 화이트 와인을 마시면 됩니다. 양고기 요리 역시 양고기를
즐겨 먹는 호주 사람들이 즐기는 쉬라즈 와인이나 육류가 주식인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주요 품종인 말
벡 와인을 올리면 아주 훌륭한 궁합을 이룹니다. 와인은 음식과 함께 발전해왔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
들이 식탁에 자주 올리는 와인이 그 지역 음식에 가장 잘 맞습니다.
두 번째, 식재료의 색깔에 따라 매치하는 방법입니다. 육류라 하더라도 고기의 색이 붉은색을 띠는 쇠
고기, 양고기 등은 레드 와인이 어울립니다. 반면 살이 흰색을 띠는 돼지고기, 닭고기 등은 다소 묵직
한 화이트 와인이나 라이트 바디의 레드 와인이 보다 잘 어울립니다.
세 번째, 음식이 해산물과 육류가 순차적으로 나오는 식사 자리라면 그냥 라이트 바디의 레드 와인을
선택하면 다 잘 어울립니다. 라이트 바디 와인이란 알코올 도수가 13%나 13.5% 정도로 강하지 않고
단맛이 없는 와인을 말합니다. 라이트 바디 레드 와인으로는 산지오베제, 뗌쁘라니요, 피노 누아 등이
좋으며 화이트 와인으로는 샤르도네, 리슬링 등이 해당됩니다. 그리고 샴페인도 샐러드부터 진한 육즙
의 스테이크까지 다 커버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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