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무라 오지로 지음
이 책은 10년간 국세 조사관으로 일해 온 저자가 소개하는 로마의 몰락부터 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까지 역사를 바꾼 세금부터 중세의 초야세와 러시아의 수염세, 중국의 독신세, 영국의 난로세
와 창문세 등 온갖 기이하고 놀라운 세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금에 대한 지식과 교양을 끌어올
려 줄 70가지 세금 이야기를 통해 세금에 대한 진면목을 알게 되고 그와 동시에 세계사에 대한 깊
은 통찰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될 것이다.
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 저자 오무라 오지로
일본 국세청에서 10년간 법인 담당 조사관으로 근무했다. 현재는 경제 경영 분야 전문 자유 기고가로
단행본 집필, 잡지 기고, 라디오 출연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 〈마루사!! 도쿄
국세국 감찰부〉의 감수를 맡기도 했다. 『비정하고 매혹적인 쩐의 세계사』가 역사 분야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이후 『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돈의 흐름으로 보는 전국시대』, 『모든 영수증은 경
비 처리가 가능하다』, 『세무서가 싫어하는 세금 0엔의 비결』 등 역사 및 세무 및 회계 분야의 저서
도 출간했다. 역사와 경제 경영 두 영역을 넘나들며 직장인들을 위한 쉽고 유용한 세금과 금융 상식을
알려 주는 비즈니스 분야 전문가이자 역사 평론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Short Summary
세금은 국가의 운용 자금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세금 정책은 경제와 정치, 산업, 교육, 미래를 면밀히
분석한 뒤 설계한다. 국민들도 나라 운영의 필수 요소임을 알기에 자신에게 부과된 금액은 반드시 납
부해야 하는 의무 사항으로 여긴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세금이 오로지 국민과 국가만을 위해 쓰
이진 않는다. 국가 지도자의 권력 유지,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 관리자의 사리사욕을 위해 세금이 멋
대로 운용되기도 했다.
세금을 부과하고 거두는 실무자나 재무관들은 예나 지금이나 부족한 재원을 보충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새로운 세금을 고안한다. 대표적인 예가 고대 로마의 공중화장실세와 18세기 러시아 제국의
수염세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치르던 일본은 게이샤와 음주 가무를 즐기는 행위에 ‘300%’라는 높은
세율의 세금을 매기기도 했다. 이 모든 상황이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면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희
극처럼 보인다.
세금 부과 방식은 국가의 방향성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가장 큰 틀의 원칙 하나는 부자에게 높은 세
금을 부과하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면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세금 제도를 마련하지 못하면
빈부 격차는 더욱 극심해진다. 여기에 더해 과세 대상에 따라 산업의 발전과 쇠퇴가 결정된다. 그러므
로 “세금 제도가 국가의 앞날을 좌우한다.”라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세금이 역사를 바꾼 사례는 많다. 미국이 영국 식민지였을 때는 ‘택스 헤이븐’으로 세금이 없었
다. 그러나 영국 본토의 경제가 어려워지자 미국으로 수출되는 차나 생필품에 높은 세금이 부과되었고
이는 독립 전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외에도 세금은 인류 역사에 다양한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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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지금 세계 각국은 커다란 경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은 경제 침체를 부르고 생
산과 소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업과 국민의 경제 활동이 위축되면 나라 경제가 타격을 입
게 되고 세수가 예산만큼 확보되지 않아 국가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금으로 운
영되는 국가는 대안을 마련하려 고심할 것이다. 새로운 세금을 창안해 내든지 기존의 세금을 인상하는
정책 등 국민의 반감을 부르지 않으면서 고정적으로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의 명분을 찾기에 나설 것
이다. 이는 세금의 역사가 보여 주고 증명하고 있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세금과 관련된 흥미로운 70가지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세금에 대해
이해하고 국민으로서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한편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금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차례
prologue_인류 역사의 이면에는 ‘세금’이 있다
PART 1 역사를 바꾼 ‘놀라운 세금’
고대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린 ‘전쟁세’ / 몽골 제국을 붕괴시킨 ‘소금세’
대항해 시대의 포문을 연 이슬람의 ‘관세’ / 영국을 번영시킨 ‘해적세’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독립의 주역 ‘소비세’ / 프랑스 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농민세’
미국으로 유럽인의 이주를 도운 ‘택스 헤이븐’ / 미국 독립 운동의 시발점은 ‘탈세’
미국 독립 운동의 불을 지핀 ‘신문세’ / 로스차일드 가문의 몰락을 주도한 ‘상속세’
망하는 지름길을 택한 귀족의 ‘면세’ / 오닌의 난을 부른 ‘대출세’
이 길을 가려거든 돈을 내시오 ‘통행세’ / 돈으로 직접 내지 않은 세금 ‘간접세’
달달함으로 군함과 무기를 사다 ‘설탕세’
PART 2 세계를 뒤흔든 ‘기막힌 세금’
영주와의 첫날밤 때문에 생긴 ‘초야세’ / 가슴을 가리고 싶거든 ‘유방세’
다른 종교를 믿는 벌 ‘이교도세’ / 이슬람의 포교 정책 ‘인두세’
아무나 멋진 수염을 기를 수 없다 ‘수염세’ /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면 ‘독신세’
철은 아무나 다룰 수 없다 ‘철세’ / 거센 반발을 초래한 중국의 ‘월병세’
분뇨는 국가 수익 ‘공중화장실세’ / 난로가 많을수록 부자 ‘난로세’
창문의 개수대로 부과된 ‘창문세’ / 코기의 꼬리는 유죄 ‘개 꼬리세’
PART 3 일본의 ‘황당한 세금’
전투에서 지켜 줄게 ‘전쟁 회피세’ / 대단한 성을 보여 줄게 입장세’
오두막도 건물이다 ‘동별전’ / 좁고 기다란 집을 짓자 ‘지구전’
배의 디자인을 바꾼 ‘출입국세’ / 분뇨까지 세금을 부과한 ‘분뇨세’
서양 서적을 독점하겠다는 발상 ‘양서세’ / 메이지 초기에 마련된 ‘토끼세’
자전거는 부자의 상징 ‘자전거세’ / 전시에도 음주가무를 즐기겠다면 ‘유흥음식세’
모든 표에 부과된 ‘운임세’ / 이발과 파마는 사치 행위 ‘특별행위세’
온천에 들어가려면 ‘입욕세’ / 도쿄에서 숙박하려면 ‘숙박세’
골프는 아무나 하나 ‘골프장 이용세’ / 절과 신사를 건드리면 안 되지 ‘고도 보존 협력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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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인구 좀 늘려 봅시다 ‘원룸세’ / 도시 거주민이 된 걸 환영해요 ‘도시계획세’
비상식적인 일본의 ‘소비세’
PART 4 인류를 위한 ‘괴상한 세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부유세’ / 쌀 대신 부과한 ‘지방특산물세’
사회보험의 기능을 담다 ‘조세’ / 국민이 잘 살아야 한다 ‘지조 개정’
일본의 쇠퇴가 한 눈에 보인다 ‘사치세’ / 이탈리아를 위기에서 구해 낸 ‘포르노세’
런던의 교통 체증을 없앤 ‘교통 체증세’ / 개를 키우는 사람에게 부과된 ‘견세’
상속세만큼 걷힌다 ‘담뱃세’ / 비만을 방지하는 ‘감자칩세’
맹렬한 반대에 부딪힌 ‘소다세’ / 덴마크에서 실패한 ‘비만세’
PART 5 알아 두면 약이 되는 ‘위대한 세금’
부자도 피해 갈 수 없는 ‘재산세’ / 일본의 회계 연도가 4월에 시작하는 이유
청일 전쟁 승리의 주역 ‘주세’ / 히틀러의 세금 개혁 ‘원천 징수’
탈세를 막아라 ‘국세국 사찰부’ / 맥주 업계는 세금 피할 길을 알고 있다
초고층 아파트가 절세 포인트다 / 사기로 번 돈에도 부과되는 세금
디지털로 전환되며 모습을 감춘 ‘인지세’ / 세금 내지 않고 쇼핑하는 방법
주민세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 부유층은 결코 세금을 많이 내지 않는다
epilogue_세금의 덫에 갇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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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PART 1 역사를 바꾼 ‘놀라운 세금’
고대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린 ‘전쟁세’
고대 로마는 기원전 8세기부터 1,000여 년에 걸쳐 번성한 대제국이다. 지중해 세계 전역을 지배했으
며 현재 유럽의 기반이 된 국가이기도 하다. 이탈리아반도의 도시 국가였던 고대 로마는 주변 국가를
차례차례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했다. 이때 전쟁에 필요한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도입한 세금 제도는
매우 훌륭했다.
공화정 시대(기원전 509년~기원전 27년)의 고대 로마에는 ‘전쟁세’가 있었다. 이는 재산세의 일종으로
시민이 신고한 전 재산에 대해 세금이 부과됐다. 전쟁세는 보유한 재산 종류에 따라 세율이 변동되는
구조였다. 보석이나 고가의 의상, 호화로운 마차와 같은 사치품에는 일반적인 세율부터 최대 10배에
달하는 세율이 적용되었다. 또 전쟁 중에는 부자에게 국가에 대한 융자 제공 의무도 부과했는데 이는
부유층의 세금 부담이 커지는 세금 제도였다.
로마 전쟁세의 특징은 환급제라는 점이다. 로마군이 전쟁에서 승리해 전리품을 손에 넣으면 납부한 세
금에 따라 환급해 주었다. 요즈음의 국채나 주식 투자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로마군이 잇달아 승리하며 영토가 확대되자 전쟁세는 차츰 폐지되기 시작했다. 도시 국가 로마(공화정
로마)의 탄생으로부터 350년이 지난 기원전 150년 무렵에는 전쟁세가 완전히 폐지됐다. 전쟁세를 부
과하지 않아도 전쟁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일단 정복한 토지를 자기 영토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식민지 주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각
지에서 세금으로 낸 귀금속과 수확물 등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스페인이 바친 금과 은은 특히나 로마의 국고를 풍족하게 만들었다. 기원전 206년부터 기
원전 197년까지 10년간 약 1.8톤의 금과 약 60톤의 은이 로마에 헌납됐다. 이 금과 은 덕분에 로마는
화폐 제도를 정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착취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는 식민지도 생겨났다. 로마에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튀
르키예(터키) 지역의 미트리다테스 대왕이 일으킨 반란이었다. 미트리다테스 대왕은 독립이 아니라 세
금의 경감을 바랐다. 기원전 88년 미트리다테스 대왕의 계략으로 대부분의 그리스 도시가 일제히 봉기
했다. 봉기 첫날에만 로마의 세금 징수인 8만 명과 로마 상인 2만 명이 살해되는 참극이 일어났다. 이
후 그리스 반란은 진압했지만 로마 정부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 타격으로 인해 공화정부는 혼란
에 빠졌고 로마의 체제는 제정으로 전환됐다. 만약 뛰어난 세금 제도였던 전쟁세를 유지하면서 식민지
에 세금을 조금만 부과했더라면 공화정 로마의 명맥은 보다 오래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영국을 번영시킨 ‘해적세’
영국은 근대 세계사의 주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이 처음부터 강대한 나라는 아니었다. 중세
무렵까지만 해도 유럽의 변방 국가에 불과했다. 그랬던 영국이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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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변화를 맞이했다. 이 변화의 원동력은 사실 해적이었다. 해적과의 관계는 영국의 흑역사다. 따라서 역
사에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근대 영국의 발전은 해적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엘리자베스 여왕 이전 시대의 영국은 독일 등에 모직물을 수출해서 재정을 꾸렸다. 하지만 대항해 시
대를 맞이하며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 계기는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에 있다. 아메리카 대륙
의 포토시 은산에서 은이 대량으로 생산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럽의 은 가격이 폭락했고 은 수출이
주요 산업이었던 독일은 큰 타격을 받았다. 독일이 부진해지자 영국도 결국에는 재정난을 겪게 됐다.
그러자 엘리자베스 여왕은 고육지책으로 ‘해적 행위’에 나섰던 것이다.
당시 영국이 이용한 해적선은 ‘사략선’이라 불렸다. 사략선이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적국의 선박을 노
획하는 배를 가리킨다. 영국은 해적선의 약탈 행위를 승인하는 대신 노획품의 5분의 1을 국고에 바치
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다시 말해 국가가 노획품의 5분의 1을 ‘해적세’로 납부한 이들의 약탈 행위를
눈감아 준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너나 할 거 없이 바다 사나이들은 모두 해적이 됐다. 영화 <캐리비안
의 해적>도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약탈 대상은 당시 영국과 관계가 복잡했던 스페인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각국 왕실 간에 혼인이 성
사되는 일이 매우 흔했는데 이는 친척 관계로 동맹을 맺어 국가 간의 결속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하지
만 “함께 잘 먹고 잘살자.”라는 말은 겉치레에 불과하고 경쟁 관계가 되면 왕실이 서로 적대하기도 했
다. 적대 관계일 때는 핏줄이 가까울수록 더욱 심하게 대립했다.
당시 강대국이던 스페인과 영국은 양국 간의 경쟁 외에도 또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가톨릭
과 프로테스탄트의 다툼’이었다. 스페인은 엄격한 가톨릭 국가였으며 ‘가톨릭의 요새’라는 자부심이 강
했다. 반면 영국에서는 프로테스탄트가 힘을 키우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프로테스탄트 신자였
다. 그렇다고 영국에서 가톨릭 신자들을 박해하지는 않았지만, 국정의 중심은 프로테스탄트였다. 이러
한 종교 문제로 두 나라는 표면상의 우호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뒤에서는 서로 반목했다. 그 영향으로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해적들이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선박을 자주 습격했다고 한다. 당시 국제 해운
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해적 행위가 이루어졌다. 16세기 중반의 영국 해협에는 약 400여 척의 해적선
이 있었다. 그중에는 프랑스를 비롯한 주변 국가의 해적선도 있었다. 영국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많든 적든 해적 행위에 가담했다는 뜻이다.
1587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주도로 진행됐던 드레이크의 해적 항해는 영국에 약 60만 파운드의 수익
을 가져다주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중 약 30만 파운드를 가져갔다고 한다. 이는 당시 영국의 1년
치 국가 재정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이렇듯 해적세가 가져다준 막대한 세수는 영국을 크게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미국으로 유럽인의 이주를 도운 ‘택스 헤이븐’
전 세계가 ‘택스 헤이븐(tax haven)’에 주목하고 있다. 택스 헤이븐이란 세금이 거의 부과되지 않는(혹
은 매우 저렴한) 국가나 지역을 뜻하는데 많은 기업과 부유층이 택스 헤이븐으로 이주해서 세금을 회
피하는 바람에 전 세계적인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택스 헤이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현재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으나 원래
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과거 영국은 전 세계에 식민지를 보유했지만 거의 모든 지역에서 경제 활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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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특정 무역 회사에 식민지의 독점적 권익을 제공했다. 이는 영국뿐 아
니라 당시 모든 유럽 국가들이 실시한 식민지 정책이었다.
대표적으로 ‘동인도 회사’가 있다. 동인도 회사는 동인도 식민지의 무역을 독점했던 회사로 영국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와 프랑스도 설립했다.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를 지배할 때 동인도 회사 같은 독점 기
업을 설립해 수입품에 고액의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는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인정했다. 원칙적으로 누구든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었으며 무역도 제한하지 않았다.
그럼 어째서 영국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는 독점 기업을 설립하지 않았을까? 사실 당시 북아메리카는
그다지 중요한 지역이 아니었다. 현재의 미국은 자원 부국, 농업 대국이라 불리며 번영하고 있지만, 과
거에는 금 등의 광맥도 거의 발견되지 않았고 향신료나 차도 재배할 수 없었다. 광대한 토지는 대부분
미개척지였다. 북아메리카의 골드러시나 석유 발견은 모두 독립 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북아메리카
는 거대 금은 광맥이 있는 남미나 귀중한 향신료를 재배할 수 있는 동아시아에 비해 중요도가 낮은 지
역이었다. 그렇기에 영국은 북아메리카의 세금을 없애 경제 활성화를 도모했던 것이다.
부족한 자원은 역설적으로 북아메리카에 많은 이주민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세금이 부과되지
않자 저렴한 물가 덕분에 북아메리카가 살기 좋은 지역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땅을 직접 개척하느라
고생을 해야 했지만 유럽에서 종종 발생하던 기근을 피해 많은 이주민이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 만약
북아메리카에서 일찍이 중요한 광산 등이 발견됐다면 어땠을까? 경제적인 자유는 주어지지 않고 다른
식민지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독점 기업이 지배했을지도 모른다.
PART 2 세계를 뒤흔든 ‘기막힌 세금’
영주와의 첫날밤 때문에 생긴 ‘초야세’
고대부터 중세에 걸쳐 유럽에는 ‘초야세’가 있었다. 황당하지만 영주는 영주민이 결혼하는 아내와 첫날
밤에 동침할 수 있는 ‘초야권’이라는 권리를 가졌다. 결혼하려는 영주민이 영주의 초야권을 거부하려면
세금을 내야 했는데 이 세금이 바로 초야세다. 그런데 초야권과 초야세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
지 않아서 그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다. “당시 모든 영주는 영주민을 가혹하게 대했다.”라는 인식
에서 생겨난 후세 사람들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초야세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보자. 이 곡의 내
용은 초야권의 부활을 노리는 백작과 영주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초야권이 오페라
로 만들어질 만큼 유럽에서는 보편적인 제도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말자 상속’ 관습이 초야
권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말자 상속이란 집안의 막내가 상속자가 되는 제도다. 첫째
아이는 초야권으로 생긴 아이라 아버지가 불확실하니 아예 확실한 핏줄인 막내를 상속자로 삼는 것이
다.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지만 이것도 초야권과 초야세의 정황 증거가 된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도 초야세와 비슷한 ‘결혼세’가 존재했다. 결혼세는 결혼하는 커플, 혹은 그 부모가
내는 세금이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함무라비 법전에 남아 있고, 중세 유럽에서도 각지에서 결혼세를
징수했다. 그 외에도 중세 영국에는 영주민의 딸이 결혼할 때 부모가 영주에게 양 한 마리를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다만 관습이 세금이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이러한 풍습은
아프리카 콩고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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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창문의 개수대로 부과된 ‘창문세’
유럽의 거리를 걷다 보면 고풍스럽고 멋진 건물들이 많다. 마치 유럽의 거리 전체가 ‘놀이동산’처럼 느
껴지는 듯하다. 100~300년 전에 지어진 건물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들
은 역사적인 경관을 소중히 여긴다. 무엇보다 건물 자체가 석조여서 매우 튼튼하다. 유럽의 거리가 낭
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는 이런 건물의 멋스러운 디자인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유럽의 오래된 건물들 중에는 창문이 메꿔진 건물들이 있다. 창문은 많아도 대부분이 벽과 같은 소재
로 막혀 있어 본연의 역할을 하는 창문은 일부에 불과하다. 왜 이런 건물이 남아 있을까? 여기에도 세
금이 깊게 관련되어 있다. 1696년, 영국에서는 ‘창문세’가 만들어졌다. 난로세에 대한 저항에 시달리던
정부 당국이 새로 창문세를 신설한 것이다. 이전에 징수 관리인이 집안에 들어가 난로를 조사하는 바
람에 거센 반발을 일으켰던 난로세의 대안이었다. 하지만 창문이라면 집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밖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창문 수는 건물 크기에 비례하니 큰 집에 사는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고 작
고 가난한 집은 그만큼 세금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 방식을 두고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도시의 비싼 집에 사는 사람보다 지방의 싸고 넓은
집에 사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만 하니 불공평하다.”라고 말했다. 영국인은 예로부터 “세금을
부과할 때는 가난한 자를 배려한다.”라는 방침을 중시하고 있었다.
창문세는 한 건물당 창문 6개까지는 면세됐다. 7~9개는 2실링, 10~19개는 6실링, 20개 이상은 8실링
을 냈다. 창문세는 150년 넘게 부과됐으며 1851년이 돼서야 폐지됐다. 따라서 17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에 세워진 건물은 창문이 막혀 있는 것이 많다. 창문을 줄여서 세금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
후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영국을 본떠 창문세를 도입했다.
PART 3 일본의 ‘황당한 세금’
전투에서 지켜 줄게 ‘전쟁 회피세’
전국 시대 패자 오다 노부나가는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전쟁 회피세’라는 세금을 부과했다. 당시
전투에서는 무사들이 사방에 진을 쳤기 때문에 근처 주민들은 피난을 가야 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무
사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거나 건물을 무너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역 주민들에게 전투는 굉장한
민폐였다. 이에 주민들은 전투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면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방어어례(防御御礼)’
라는 패를 받았다. 이 패가 있는 곳은 군대가 진을 칠 수 없고 행패를 부릴 수 없었다.
노부나가도 이 방어어례를 발행했다. 1568년,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옹립해 교토에 입성했
을 당시, 나라에서는 1천 관에 달하는 ‘판전’을 징수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도 “주요 사
원이나 사카이 같은 큰 동네에서는 ‘주인(朱印)’이라 불리는 노부나가의 윤허장이 없으면 안전이 보장
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판전’이란 방어어례를 얻기 위해 치르는 금전을 가리키고, ‘주인’은
방어어례의 별칭이라 추측된다.
노부나가의 ‘방어어례’는 다른 무장들과는 조금 달랐다. 동네 주민들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매우 유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다른 무장의 방어어례는 현장의 부대가 자유롭게 발행했기 때문에 정확한 발행
처를 알 수 없었다. 또 부대마다 방어어례가 필요했기 때문에 각 부대에서 이중 삼중으로 야센(전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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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을 징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부나가가 발행하는 ‘방어어례’는 한 번 받으면 현장 부대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 노부나가의 방어어례가 붙어 있는 장소에서는 부대가 야센을 걷는 행위가 엄격하게 금
지됐기 때문이다. 또한 노부나가는 병사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관리
했다.
이런 엄격한 군율 덕분에 지역 주민들도 ‘노부나가의 방어어례를 받으면 안심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
게 됐다. 노부나가는 이런 ‘친절한 태도’로 영지민들의 민심을 얻었고, 그 덕분에 천하를 두고 경쟁할
때 다른 무장들보다 앞설 수 있었다.
일본의 쇠퇴가 한눈에 보인다 ‘소비세’
소비세는 일본 세수의 기둥이다. 유럽 국가들은 일본보다 비싼 간접세를 부과하는 곳이 많아서 ‘일본
의 소비세는 저렴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또 ‘소비할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부과되
니 소비세는 좋은 세금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 세계를 돌아보면 일본의 소비세가
상당히 결함이 많은 비상식적인 세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비세는 누구에게도 같은 비율로 부과되기에 언뜻 보면 공평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득이 낮은
사람일수록 부담 비율이 증가하는 ‘역진세’다. 소비세 계산은 ‘지출×소비세율(현재 일본은 10%)=소비
세’이다. 소비세가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하면 같은 돈을 소비했을 때 소득이 많은 사람
일수록 소비세가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연봉이 1억 엔인 사람이 3천만
엔을 소비하고 남은 7천만 엔은 금융 자산으로 보관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의 수입에 대한 소비
세 부담 비율은 3%가 된다(3천만×10%=3백만, 1억 엔 중 3백만 엔이 차지하는 비율=3%). 한편 연봉
2백만 엔인 사람은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소비한다면 이 사람의 수입에 대한 소비세 부담 비율은
10%에 가까워진다(2백만×10%=2십만, 2백만 엔 중 2십만 엔이 차지하는 비율=10%).
즉, 수입에 대한 세금 부담 비율은 수입이 적은 사람일수록 높아진다. 그렇다면 이걸 소득세로 치환해
서 생각해 보자. 만약 연봉 1억 엔인 사람에게 3%의 소득세를 부과하고, 연봉 2백만 엔인 사람에게는
10%의 소득세를 부과하면 어떤가. 누구나 ‘이상하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전에 이런 세금은 국민에
게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소비세는 ‘간접세’라는 속임수에 속아서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분
명히 말하지만, 일본의 소비세는 빈곤한 사람일수록 부담이 증가하는 구조다.
간접세에는 ‘역진성’이라는 결함이 있다. 전 세계는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간접세가
높은 유럽 국가들은 생필품 세율을 매우 낮게 설정했다. 표준 간접세가 20%인 프랑스에서도 식료품은
5.5%, 의약품은 2.1%로 세율이 설정되어 있다. 식료품 등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예
를 들어 영국은 간접세가 20%지만 식료품이나 생필품은 세율이 0%이다. EU 가입국은 표준 간접세가
20% 전후지만 식료품에 부과되는 세율은 절반 이하다. 하지만 일본은 식료품 세율을 겨우 2%만 감액
한다.
또 유럽의 사회 보장 제도는 일본보다 훨씬 잘 정비되어 있으며 빈곤층에 대한 복지가 확실하다. 빈곤
층뿐만이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주택 보조금을 받고 있기에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다. 프랑스에
서는 전 세대의 23%가 국가로부터 주택 보조금을 받는다. 총액은 무려 18조 원가량이다. 영국에서도
전 세대의 18%가 주택 보조금을 받는데 총액은 무려 26조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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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유럽은 이처럼 빈곤층을 확실하게 보호하기 때문에 높은 간접세를 부과할 수 있다. 한편 일본의 주택
지원은 공영 주택에 불과하며 지원받는 이들도 전 세대의 4%뿐이다. 일본 정부는 소비세를 도입할 때
“사회 보장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한다.”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소비세가 도입되자마자 법인세와 고액
소득자의 소득세가 낮아졌고 그만큼 줄어든 세수를 소비세로 충당했다. 즉, 소비세는 실질적으로 부유
층과 기업 감세를 위해 도입된 제도다.
과거 일본에는 빈곤층이 거의 없어 ‘1억 인구 모두 중산층’이던 시기도 있었다. 양극화 현상이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소비세 도입 이후였다. 물론 양극화 현상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소비세가 그 원
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PART 4 인류를 위한 ‘괴상한 세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부유세’
역사에 이름을 남긴 강대국은 모두 훌륭한 세금 제도를 시행했다. 기원전 8세기 무렵에 형성된 고대
그리스도 예외는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시민이 부담하는 일상적인 세금이 거의 없었다. 부유층에는
부과되는 세금이 있었지만, 법적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기부금 형태였다. 전쟁 비용과
공적 비용 등이 발생하면 부유층의 ‘공공 봉사(자발적 납세)’로 충당했다.
이 공공 봉사와 관련하여 ‘안티도시스’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었다. 이는 재산을 보유한 자에게 공공 봉
사(기부)를 명령할 수 있는 제도였다. 애초에 사회가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공공 봉사는 강제에
가까웠지만, 안티도시스 제도로 법적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다. 이 제도의 특이한 점은 명령을 내리는
사람 역시 자산가였다는 점이다. 최근 ‘빈부 격차’가 전 인류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고대 그리스
에는 격차를 없애기 위한 구조가 이미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안티도시스 명령을 피할 수단도 존재했다는 것이다. 본인보다 자산이 많은데도 안
티도시스 명령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지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자산을 비교해
더 많은 자산을 가진 사람이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다.
A씨에게 안티도시스 명령이 내려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A씨는 ‘B씨가 나보다 재산이 더 많은데’
라고 생각하여 B씨를 지명한다. 지명받은 B씨는 안티도시스에 응하거나 A씨와 전 재산을 교환해야 한
다. 결과적으로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기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만약 B씨가 안티도시스에도, 재
산 교환에도 응하지 않는다면 재판을 진행한다. 안티도시스는 부유층에 세금을 부과하는 동시에 세금
을 부과해야 하는 부유층을 밀고하는 제도이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나 요령껏 자산을 숨겨서 세금을
회피하는 이들이 있는 법이다. 고대 그리스에도 그런 약은 사람들이 있어 자산가들끼리 고발하게 하여
밝혀내는 것이다. 합리성을 중시하는 실로 그리스인다운 제도이다.
이탈리아를 위기에서 구해 낸 ‘포르노세’
이탈리아에서는 포르노 영화, 비디오, 잡지 등 포르노 산업에 세금이 부과된다. 이는 2008년에 도입된
제도로 세율은 포르노 작품 수입에 일률적으로 25%가 부과된다.
이탈리아는 2000년대에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큰 타격을 입어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했다. 재정 적자
가 일정 수준을 넘어 EU가 시정 권고를 했을 정도였다. 이에 이탈리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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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세수를 늘려야 했다. 소득세와 간접세 세율을 올리고 새로운 세목을 만들었다. ‘포르노세’도 이러한 움
직임의 일환으로 도입된 세금이다. 이탈리아는 일찍부터 포르노 산업이 발달한 나라다. 1987년에는 포
르노 배우 치치올리나(일로나 스톨러)가 국회 의원이 되어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포르노세
가 도입됐을 당시의 이탈리아는 포르노 산업 총매출이 10억 유로(약 1조 3천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25%의 세금을 부과하면 꽤 많은 세수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포르노세의 공헌으로 재정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덴마크에서 실패한 ‘비만세’
과거 덴마크에는 ‘비만세’라는 세금이 있었다. 이는 감자칩세나 소다세처럼 건강을 고려한 세금으로 포
화지방산(콜레스테롤 수치를 올리는 지방)에 부과됐다. 국민의 건강을 지킨다는 목적과 세수 확보를
위해 2011년에 도입됐다. 비만세 부과 대상은 포화지방산이 2.3% 이상 포함되는 식품이다. 세율은 포
화지방산 1kg당 16크로네(약 2,200원)로 꽤 높은 편이다. 이 비만세로 인해 250g짜리 버터값이 2.2크
로네(약 300원) 이상 올랐다. 게다가 버터와 우유, 피자, 기름, 고기, 사이드 디시 등 포화지방산이 포
함된 모든 식품이 부과 대상이다.
비만세는 덴마크 시민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금 도입 직전에 식료품 대량 사재기가 발생한 것
이다. 도입 후에도 식료품 가격이 급등한 탓에 중산층 이하인 사람들이 타격을 입기도 했다. 한편에선
독일 국경과 근접한 지역의 주민들은 독일에서 물건을 사기도 했다. 덴마크는 EU 가입국으로 독일에
서 물건을 구매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 그 결과 자국의 식품 산업은 타격을 받았고 독일 식품업자의
주머니만 불려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세수 또한 정부의 예상보다 적었고 사람들의 평가도 나빴기 때
문에 덴마크의 비만세는 겨우 1년 만에 폐지됐다.
프랑스의 소다세처럼 한 캔당 10원 정도의 세금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250g짜리 버터가 300원이나
비싸지면 국민도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이런 종류의 세금은 세율이 너무 높으면 실패할 가능성
이 매우 크다.
PART 5 알아 두면 약이 되는 ‘위대한 세금’
청일 전쟁 승리의 주역 ‘주세’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급속하게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고 여러 번 전쟁을 치렀
다. 그런데 당시 막대한 군비 재원은 어떻게 마련이 되었을까? 의외로 재원의 큰 축은 ‘주세’였다. 물
론 주세만으로 재원을 충당할 수는 없었지만 주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일본 세수를 지탱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1875년 2월에 지조(地租) 이외의 세금이 정비됐다. 지조만으로는 재원을 충당할 수 없었고 세수가 불
안정해졌기 때문이다. 또 지조는 주로 농민들이 부담했기 때문에 불공평한 측면도 있었다. 따라서 정
부는 세금 제도의 주축을 지조에서 다른 세목으로 변경했다. 에도 시대에는 해마다 바치는 공물 외에
정식 세금이 존재하지 않았다. 단 운조묘가킨(에도 시대의 영업세)이라는 명목으로 다양한 물품에
1,500~1,600종류에 이르는 ‘유사 세금’이 부과됐었다. 메이지 신정부는 이 유사 세금을 정비해 근대
적인 세금 제도에 편입시키려 했다. 이때 세금 전반을 정비하며 주세, 담뱃세 등이 창설됐다. 이러한
새로운 세금이 1889년 이후 국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재원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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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특히 주세는 정부 입장에서 매우 편리한 세금이었다. 국민은 주세에 그다지 불만을 품지 않았다. 술은
국민의 삶에 필요한 물품이었지만 생필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주세는 술을 마실 기회가 많은 사
람(부자)일수록 거액의 세금을 부담하는 구조였다. 따라서 메이지 신정부는 재원이 부족할 때마다 주
세를 증세해서 충당했다. 청일 전쟁이 일어나기 12년 전인 1882년에 일본은 조선의 임오군란을 계기
로 군비를 증대했다. 이때도 주로 주세를 늘려서 충당했다.
1878년에는 주세가 1석 1엔이었지만 1880년에는 1석 2엔, 1882년에는 1석 4엔으로 올랐다. 1석은 한
되짜리 병 100병 분량에 해당한다. 1882년의 술 가격은 1석 20엔 전후였으니 술값의 20%가 세금이었
다. 1882년의 증세로 연간 600만 엔 이상 세수가 증가했다. 1882년부터 1895년까지의 육군 증강비는
연간 약 400만 엔, 해군 증강비는 약 300엔 정도였으며 증가한 군비는 대부분이 이 주세 증세로 충당
할 수 있었다. 청일 전쟁 중에도 주세 외에 별다른 증세는 없었다. 이는 일본이 주세만으로 청일 전쟁
을 치렀다고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일본은 청일 전쟁, 러일 전쟁이라는 큰 전쟁을 치르며 상당히 많은
군비를 지출했다. 그러나 군사 비용을 위해 지조나 소득세를 증세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직 주세만
증세해서 군사 비용을 충당했다. “일본군은 주세로 유지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후에도 일본군
은 주세로 운영됐다.
주세는 술을 살 때 부과되는 세금으로 서민이 일상적으로 반드시 내야 하는 세금이 아니었다. 술을 마
시지 않으면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 또 서민들 사이에서는 밀주를 만드는 관습이 있었으므로 주세
를 피할 길도 있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자연스럽게 술을 빚었다.
주조가 금지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다. 러일 전쟁을 앞둔 1898년, 세수 증가를 위해 일반 가정에서
술을 빚는 일이 금지됐다. 기존에는 술에 세금이 부과됐지만 가정에서 빚은 술도 주세만 내면 합법이
었다. 물론 가정에서 만든 술을 정직하게 신고할 리가 없으니 대부분은 세금을 피해 갔다. 따라서 주
세는 국민에게 그다지 큰 부담이 아니었다. 이렇게 느슨하게 징수한 세금으로 막대한 군비를 충당했으
니 1880년대의 메이지 신정부는 상당히 효율이 좋은 재정 운영 방식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결코 세금을 많이 내지 않는 ‘부유층’
일본의 부자는 전 세계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낸다는 말이 있다. 인터넷에도 “일본의 부유층은 세계에
서 가장 많은 소득세를 낸다.”라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그러나 이건 가짜 뉴스이다. 일본의 소득세 최
고 세율은 45%로 선진국 중에는 최고 수준이다. 이것만 보면 일본의 부자가 세금을 많이 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소득세에는 다양한 허점이 있다. 명목 세율은 높아도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세
율은 놀랄 만큼 낮은 것이다. 그러니 일본의 부유층은 오히려 선진국 중에서 가장 세금을 적게 낸다고
봐야 한다.
미국과 비교하면 일본의 부유층이 얼마나 세금을 적게 내는지 알 수 있다. 부유층의 최고 세율만 보면
일본은 45%, 미국은 37%로 일본이 8%나 높다. 그러나 실제로 납세하는 세액은 어떨까? 2021년도
예산에서 일본의 소득세 세수가 차지하는 금액은 18.7조 엔(약 187조 원)이다. 한편 미국의 소득세 세
수는 약 2,000조 원이다. 일본의 소득세 세수는 미국의 10분의 1 이하에 불과하다. 다른 선진국과 비
교해도 결과는 같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모두 소득세 세수가 GDP의 10% 전후다. 그러나 일본
은 6%가량에 그친다. 소득세 세수가 다른 선진국의 절반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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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선진국에서는 대부분의 소득세 세수를 부유층이 부담한다. 결국 소득세 세수가 적다는 말은 부유층의
세금 부담이 너무 적다는 뜻이다. 이 사실만으로 일본의 부유층이 부담하는 세금에 얼마나 허점이 많
은지 알 수 있다.
세율은 높은데 세액이 낮은 이유는 일본의 배당 소득(주식 배당금 등의 소득) 초우대 세금 제도 때문
이다. 배당 소득은 아무리 수입이 많아도 소득세, 주민세를 합해 일률적으로 약 20%가 부과된다. 20%
는 평균적인 회사원에게 부과되는 세율과 거의 같다. 이 제도는 배당 소득을 우대해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했던 고이즈미 내각 시절의 경제 정책이었다. 부유층 중에도 보유 주식의 배당금으로 수입
을 얻는 사람이 많다. 즉, 부유층 대다수가 이 우대 세금 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 배당 소득자만이 아니라 ‘경영자’, ‘개원의’, ‘지주’ 등 부유층의 주된 직업이 내는 세금에는 대부분
큰 허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명목대로 비싼 세금을 내는 부유층은 거의 없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실질 세금 부담률은 소득이 1억 엔(약 10억 원)이 될 때까지 세율이 오르지만 1억 엔을
넘으면 급격하게 세율이 내려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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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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