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타치 고스케 지음 / 에이지21
이 책은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저자는 과거에서 현재, 미래를 향해 가는 한 방향의
흐름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에너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
는 인류 사회의 성립 과정부터 과학적 한계에 대한 이해 등 종합적이고도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면
서, 크게 양(量), 지식, 마음이라는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 에너지와 인류의 관계를 되짚어 본다.
에너지가 바꾼 세상
후루타치 고스케 지음
▣ 저자 후루타치 고스케
1994년 3월 게이오대학교 공학부 응용화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4월 일본석유(ENEOS 홀딩스의 전
신)에 입사해 석유 탐광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석유 산업의 전 부문을 아우르는 사업 영역에 종사했
다. 에너지 업계에 몸담은 것을 계기로 에너지와 인류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직장 생활
을 해 오면서 인류는 왜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가, 에너지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일생일대
의 과제로 여기며 살아왔다. 이 책은 그의 그런 질문에 대한 지금까지의 사색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취미는 독서, 요리, 달리기. 현재는 JX 석유 개발에서 기술관리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 Short Summary
최근 식료품 가격이 치솟고 있다. 그런데 불룸버그는 ‘최근 곡물 가격 상승은 바이오에탄올 혼합 의무
제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제도는 원유에 대한 의존을 낮출 목적으로 시행되어 미국은 10% 이상,
유럽 연합은 10%의 바이오 연료를 의무적으로 가솔린에 혼합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결과 미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와 콩의 40%가 바이오에탄올 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제도로 인해 수억
명의 저개발 국가 국민이 굶주리고, 에너지 효율 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참고로 에너지의 비용 대비 효과는 얻어진 에너지와 그것을 얻기 위해 투입된 에너지의 비율을 생각하
는 일이며, 이를 에너지 수지비(EPR, 얻어진 에너지와 그것을 얻기 위해 투입된 에너지의 비율)라고도
하는데, 옥수수로 만든 바이오에탄올은 EPR이 0.8 정도로 1에 못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즉 제조에
투입된 에너지가 얻어지는 에너지보다 크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이 책은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저자는 과거에서 현재, 미래를 향해 가는 한 방향의
흐름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에너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
는 인류 사회의 성립 과정부터 과학적 한계에 대한 이해 등 종합적이고도 거시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면
서, 크게 양(量), 지식, 마음이라는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 에너지와 인류의 관계를 되짚어 본다.
먼저 양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는 인류의 역사를 에너지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현대 문명의 성
립 과정과 그 과제를 찾아본다. 그리고 지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는 에너지란 무엇이고, 어떤 법칙
을 따르는지 여러 과학자의 노력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며 설명한다. 또 과학 지식이 보여 주는 기술
혁신의 가능성과 한계도 다룬다. 그리고 마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는 인류 사회를 형성하는 요소로
써 빠트릴 수 없는 종교와 경제, 사회를 에너지의 시각에서 고찰하고, 이러한 시도를 통해 우리의 의
사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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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 차례
한국어판을 내며
추천의 글
여행을 떠나기 전에
Part 1. 양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에너지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류사
1장 불 에너지
2장 농경 에너지
3장 삼림 에너지
4장 산업 혁명과 에너지
5장 전기의 이용
6장 비료와 에너지
7장 식량 생산의 공업화와 에너지
Part 2. 지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 과학이 밝혀낸 에너지의 본질
1장 에너지란 무엇인가
2장 에너지의 특징
3장 에너지 흐름이 만들어 내는 것
4장 이상적인 에너지원은 무엇일까
Part 3. 마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인간의 마음과 에너지
1장 불의 정신
2장 에너지와 경제
3장 에너지와 사회
Part 4. 여행의 목적지 에네르게이아의 부활
1장 해결해야 할 문제
2장 나아가야 할 미래
3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여행의 끝에서
감사의 말
참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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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에너지가 바꾼 세상
양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에너지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류사
불 에너지
불의 정체가 생물이라고?: 지구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일상적으로 불이 존재하는 환경은 비교적 최근에
야 가능해진 일이다. 불을 붙이려면 조건이 있다. 연료, 산소, 열인데, 보통 연소의 3요소라고 불리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6억 년 전에 탄생한 지구에 처음부터 풍부하게 존재했던 것은 의아하지만 열뿐
이었다. 땅에는 연료가 될 만한 재료가 거의 없었고 하늘에도 대기에 산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구상에 불이 탄생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 최초의 변화는 아직도 그 과정이 학문적으로 밝혀지지는 않
았으나, 40억 년 전 심해 밑바닥에 있는 열수 분출공 부근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바로 우리의
조상, 생명의 탄생이다. 생물은 탄소를 주된 구성 요소로 하는 유기 화합물로 잘 타는 성질이 있다. 오
늘날 지구에서 불을 피우는 연료를 따져 보면 장작이나 숯은 말할 것도 없고,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 연료도 전부 생물로부터 만들어진 유기 화합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에너지의 관점에
서 본다면 우리 생물은 모두 동등하게 ‘연료’라고 할 수 있다. 원시 지구에 최초로 존재했던 열과 더불
어 생명의 탄생이라는 기적으로 연소의 3요소 중 두 가지, 열과 연료가 갖춰졌다.
남은 한 가지 요소인 산소 역시 생물에 의해 공급되었다. 생명의 요람인 바닷속에서 진화를 위해 광합
성을 하는 박테리아가 탄생한 것이다. 36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박테리아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
소를 체내에 흡수해 탄소를 고정하는 한편 불필요한 산소를 배출했다. 결과적으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
소량이 서서히 줄어들고 산소량이 늘어났다. 이렇게 지구 탄생으로부터 10억 년이 흘러 드디어 연소의
3요소가 얼추 갖춰졌다. 하지만 지구에서 일상적으로 불을 볼 수 있게 되기까지는 더 많은 세월이 필
요했다. 끝없이 연소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산소와 잘 타는 연료의 확보, 다시 말해 바닷속에 사는
유기 화합물인 생물을 좀 더 건조한 육지로 유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하는 데는 대기 중 산소 공급량의 비약적인 증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산소는 발생 초기
물속에 대량으로 부유하던 철 이온과 결합해 대부분 산화철이 되었으나 25억 년 전부터 광합성을 하
는 박테리아가 대량 생성되면서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산소량이 비약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5억 년 전
부터는 대기 중에 충분히 공급된 산소가 성층권까지 다다라서 오존층을 형성했고 지상으로 내리쬐는
유해한 자외선을 차단해 주었다. 이렇게 마침내 생물이 육지로 올라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윽고 육지에 진출한 식물이 지표면을 뒤덮으면서 연료, 산소, 열이라는 제대로 된 연소의 3요소가
갖춰졌고 지구 곳곳에 불이 생겨났다. 지구 탄생으로부터 42억 년 후 지금으로부터 불과 4억 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지구에 불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탄소로 이루어진 일종의 생물인 우리
인류와 생물의 연소로 발생하는 불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인간의 뇌가 커진 데는 불의 역할이 컸다: 우리의 조상은 소화 기관이 해야 할 일의 일부를, 불을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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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용해서 음식을 ‘요리’함으로써 외주했고, 이렇게 얻은 잉여 에너지를 뇌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이것
이 우리 조상의 진화 방향을 결정지었다. 현생 인류가 고도화된 지능을 갖게 된 데는 인류의 조상이
불을 사용한 것과 연관이 깊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사 최초의 에너지 혁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
류 번영의 시작은 바로 이 순간부터였다. 이는 또한 백만여 년이 지나 전례 없는 문명사회를 건설한
인류가 에너지의 대량 소비로 전 지구적 난제인 기후 변화 문제를 떠안게 되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농경 에너지
인류는 농경으로 태양 에너지를 점유했다/인류에게 주어진 형벌이 가져온 혁명/농경이 초래한 어둠: 1
만 년 전 무렵에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농경은 생태계에 한층 더 큰 변화를 가져왔다. 농경, 즉 땅을 개
간해 밭을 정비하고 농작물을 기르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땅에 자생하는 식물을
전부 내쫓고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를 인간이 점유한다는 뜻이다. 농경을 통한 태양 에너지의 점유 효
과는 확실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활동으로 소비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보존 가능한 수
확물의 형태로 얻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잉여 에너지를 계획적으로 비축할 수 있었다. 농경 생활로의 이행은
불의 이용을 잇는 인류사에 두 번째로 찾아온 에너지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농경은 인류에
게 문명이라는 빛을 비춰 주었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이다. 농경 생활이 초래한 어둠, 그 첫
번째는 전쟁의 발발과 노예 제도의 시작이다.
삼림 에너지
문명의 기술적 발전을 지탱한 것은 숲이었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사회는 대규모의 삼림 벌채가 필요했
다. 건물이나 배를 만드는 재료, 도자기와 벽돌을 굽고 금속을 용출하는 가마의 연료 등으로 쓰기 위
해서다. 그런데 숲을 키우는 것은 태양 에너지다. 따라서 에너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삼림 자원의 이용
또한 농경에 이어 토지에 쏟아지는 태양 에너지를 인류가 점유하려는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런
데 삼림 자원이 까다로운 이유는 곡식과 달리 나무는 성장하려면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
이다. 아무튼 문명사회는 이렇듯 귀한 에너지원인 삼림 자원을 물 쓰듯 하며 이어져 왔다. 그리고 기
술의 발달은 베어 낸 삼림 자원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며 지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왜 삼림 자원을 파괴하는가: 이처럼 태양 에너지를 빨아들인 두 개의 에너지원이 문명의 발달을
견인했다. 한편 재생 속도를 넘어선 수준으로 삼림 자원을 소비한 탓에 삼림 자원의 공급은 에너지 수
지가 늘 마이너스를 그리는 지속 불가능한 활동이었다. 인간의 활동이 초래한 삼림 자원의 상실은 지구
환경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민둥산이 되어 버린 레바논 산맥의 봉우리들, 지중해 연안을 수놓은 올리브
나무 숲과 교토 미야마에 펼쳐진 소나무 숲. 이 모든 것은 인류가 삼림 자원이라는 귀중한 태양 에너지
저장고를 닥치는 대로 수탈한 탓에 반영구적으로 변해 버린 풍경이다. 농경 생활을 시작하고 문명이 탄
생한 이래 인류가 지구 환경에 미친 영향은 어떤 면에서는 혁명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산업 혁명과 에너지
에너지 형태를 바꾸는 기술의 탄생: 증기 기관의 발명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친 영국의 산업
혁명을 대표하는 사건이다. 에너지의 관점에서 증기 기관을 볼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 발명을 통해 석탄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는 사실 아닐까. 물론 이 역시 중요한 일이다. 그
러나 증기 기관의 발명이 진정 혁명적인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에너지의 형태를 바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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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점이다.
증기 기관이 발명되기 전 인류 사회가 활용해 온 에너지는 늘 처음에 얻은 에너지와 똑같은 형태였다.
불로 조리를 하고 가마에서 구리광을 가열해 구리를 분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우리는 장작이나
숯을 태워서 생긴 열에너지로 식재료와 구리광을 가열한다. 즉 장작이나 숯에서 얻어진 열에너지를 다
시 똑같이 열에너지로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에너지의 형태 변화가 없다. 반면 증기 기관은 석탄을
태워서 물을 가열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수증기의 열에너지로 피스톤을 움직여 운동 에너지를 얻는다.
이렇게 에너지 변환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야말로 지금껏 인류가 발명한 물레방아나 풍차와 같은 동
력 기계에는 없는, 증기 기관만이 가진 참신성과 혁신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증기 기관의 발명은 열원이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동력으로 바꿀 수 있음을 의미했다. 장작과 숯
은 물론 석탄, 석유, 천연가스부터 원자력까지도 열원이라는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 점이 연료 선
택지를 늘려 주었고, 그 결과 유례없는 규모의 에너지 소비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제3차 에너지 혁명
을 이끈 주역은 석탄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을 가능케 한 실용적인 증기 기관의 발명이었다.
증기 기관의 발명이 가져다준 깨달음: 증기 기관이라는 에너지 변환 장치의 발명은 인류에게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첫 번째 깨달음은 열에너지만 넉넉하게 공급받을 수 있다면 어디서건 운동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으므로 동력이 필요한 공장의 부지 선택이 좀 더 자유로워진다는 점이다. 두 번
째 깨달음은 투입한 열에너지가 크면 클수록, 또 에너지를 변환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큰 운동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깨달음은 에너지 형태를 변환하는 증
기 기관의 작동 원리를 관찰하는 일이 에너지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계기가 된
다는 점이다. 이렇듯 증기 기관을 둘러싼 세 가지 깨달음을 기반으로 여러 활동이 이뤄졌고, 그 성과
가 제3차 에너지 혁명이라고 부르기에 걸맞은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인류 사회를 안내했다.
전기의 이용
에너지의 이동과 변환을 자유롭게 한 것: 제4차 에너지 혁명의 막이 오른 것은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
었다. 합스부르크가가 통치하던 시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1873년에 개최된 만국
박람회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화려한 박람회장의 한구석에 자신이 개발한 발전기를 전시하려고 준비하
던 사람이 있었는데, 벨기에 출신의 제노브 테오필 그람이라는 인물이다. 그가 개발한 발전기는 전에
없이 강력하고 안정적인 출력을 보여 주는 그의 야심작이었다. 증기 기관을 동력원으로 삼아 전기자라
불리는 회전축을 돌리면 안정적으로 직류 전류가 출력되는 설계 방식의 발전기였다.
그가 발전기를 증기 기관 옆에 놓아두고 500m 떨어진 곳에서 구리선을 배선하고 있는데, 직원이 실수
로 구리선을 다른 발전기와 연결해 버렸다. 이를 모르고 증기 기관을 돌리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
졌다. 구리선으로 연결된 발전기의 전기자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천재 기술자 그람은
이 현상을 보고 순식간에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얼른 모터 대신에 회전하는 전기자를 펌프에 연
결하고 물을 끌어올려 박람회장에 작은 폭포를 만들어 보였다.
그람이 단숨에 깨달은 사실은 전기를 이용하면 에너지를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기 기관은
제3차 에너지 혁명을 낳은 대발명이었으나 열에너지를 얻는 곳과 열에너지를 변환해 운동 에너지로 소
비하는 곳이 같아야 했다. 하지만 전기의 이용은 에너지 변환의 자유뿐 아니라 장소의 제약까지 없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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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그람의 깨달음은 전기 시대를 여는 결정타가 된다. 제4차 에너지 혁명
의 막이 오른 순간이다.
전류 전쟁의 끝에: 빈 만국 박람회의 우연한 발견 이후 불과 20여 년 만에 전기는 이동과 변환이 쉽고
취급이 용이한 에너지로써 부동의 지위를 확립했다. 그리고 현재 전기는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발전소에서 시작되는 송배전망이 매일 우리가 사는 곳까지 전기 에너지를 운반해 준다. 운반된
전기 에너지는 모터를 통해 운동 에너지로, TV를 통해 빛 에너지로, 또 전기 포트로 물을 끓이는 열에
너지로 변환되기도 한다.
전기 제품은 생활 전반에 이용되고 있어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전기가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다. 그리고 이제 전기를 확보하는 일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 사람들은 전원을 찾아
화석 연료를 태우고, 구로베 협곡을 헤치고 들어가고, 결국은 원자력에까지 손을 뻗었다. 이 모든 것은
그람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해 에디슨의 사업화를 거쳐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전력 시스템
개발로 이어지는 제4차 에너지 혁명의 산물이다.
지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 과학이 밝혀낸 에너지의 본질
에너지란 무엇인가
에너지의 어원: 에너지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일’을 뜻하는 ergon(에르곤)에서 유래했다. ergon에 접두
어 en을 붙여 ‘활동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energos(에네르고스)라는 말이 생겨났고, 나아가 ‘활동’을 의
미하는 energeia(에네르게이아)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19세기 과학 용어로 영어
energy(에너지)라는 말이 탄생했다. 일본의 경우 energy는 과학 기술과 함께 과학 용어의 하나로 메이
지 시대 때 독일에서 들어왔다. 독일식 발음인 ‘에네르기’가 일본에 정착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디나미스와 에네르게이아: 고대 그리스에는 디나미스(dynamis)라는 말이 있었다. 잠
재력, 기량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 주목한 사람이 기원전 4세기에 활동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인데, 그의
사상적 뿌리에는 자연의 모든 운동과 변화의 체계적인 정리가 자리해 있었다. 먼저 그는 운동이나 변
화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특히 끝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끝이란 사물이 운동이
나 변화를 통해 목적을 달성한 상태라고 해석했다. 예를 들면 식물의 종자가 발아해 꽃을 피우는 변화
를 보고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종자가 내재한 힘을 발현하고 그 목적을 달성했구나.’ 아리스토텔레스
는 이렇듯 종자가 가진 잠재력을 디나미스, 또 목적을 달성해서 꽃이 된 모습을, 일하는 상태를 나타
내는 에네르고스(energos)에서 따 에네르게이아(energeia)라고 불렀다.
에네르게이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일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에네르고스에서 따 만든 철학 용어였지만
시대가 흘러 ‘활동’을 뜻하는 일반 용어로 정착했다. 그것이 나중에 만들어진 과학 용어인 에너지의 어
원이 되면서 현재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다. 사실 과학적 사고에서 확립된 표현인 에너지보다도 철
학적인 사고에서 탄생한 에네르게이아가 일반인에게는 훨씬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다. 왜냐하면 아리스
토텔레스의 에네르게이아는 자칫 과학계의 문제로 해결책을 논의해 버리기 쉬운 에너지 관련 논의를
보다 폭넓은 사회 문제로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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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누군가가 여행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물리학에서는 여행자가 사용한 에너지를 단순히 A지점에서 B지
점까지 이동했으므로 운동 에너지(물리학에서 말하는 일의 양)라고 본다. 그런데 이는 무미건조한 세
계관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네르게이아식 사고에 따르면 여행하는 목적이나 여행하게 되는
과정까지가 여행자가 쓴 에너지의 일부다. 즉 당사자가 가진 여행의 열정이나 의미까지도 에너지의 구
성 요소에 포함되는 것이다.
에너지의 특징
요절한 거성 사디 카르노: 19세기 초반 프랑스에 당시 산업 혁명을 바탕으로 빠르게 국력을 기른 영국
을 분석하고 프랑스와의 차이를 느낀 인물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사디 카르노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교한 카르노는 국력의 차이가 증기 기관의 효율적인 활용 여부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더
효율적인 증기 기관을 개발하면 산업과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음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아
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과학자의 안목을 발휘해 효율적인 증기 기관 개발이라는 목표 아래 증기 기관의
구조 분석에 돌입한다. 그리고 1824년 카르노는 「불의 동력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 연구 내용을
정리했는데, 그의 고찰은 당시 잘못된 지식이었던 열소설에 근거하긴 했지만, 증기 기관과 같은 열기
관의 구동 원리와 그 한계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했고 열역학의 완성에 크게 기여했다.
카르노는 단순하게 나눈 4가지 과정(① 등온 팽창, ② 단열 팽창, ③ 등온 압축, ④ 단열 압축)을 반복,
순환하는 운동을 열기관 운동이라고 정리했다. 등온 팽창 과정에서는 고열원과 접촉해 열에너지를 받
은 실린더로 인해 실린더 내부 기체가 온도를 유지한 상태로 팽창한다. 단열 팽창 과정에서는 고열원
과 분리된 상태에서 기체 팽창이 서서히 잦아들고 온도도 낮아진다. 등온 압축 과정에서는 저열원과
접촉해 열에너지를 외부에 방출하고 온도는 변하지 않은 상태로 기체가 수축한다. 단열 압축 과정에서
는 저열원과 분리된 상태로 기체 수축이 서서히 잦아드는 한편 온도가 상승해 초기 온도로 돌아간다.
이러한 순환을 반복하면서 피스톤이 운동하는 것이 열기관의 원리다.
카르노 순환이라 불리는 이 순환 운동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저열원의 필요성이다. 순환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열에너지를 반드시 외부로 내보내야 한다. 다시 말해 카르노 순환은 열에너지에서
운동 에너지를 얻으려면 반드시 열에너지 일부를 외부에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또 카르
노가 가장 많은 관심을 쏟은 열기관의 최대 효율은 고열원과 저열원의 온도 차로만 정해진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것이 오늘날 ‘카르노의 정리’라고 불리는 내용이다.
열역학 제1법칙 에너지는 줄지도 늘지도 않는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로 전환될 뿐 총량이 줄거나 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법칙은 무에서 유를 창조
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아무리 인류가 지혜를 짜 모아도 에너지를 창조할 순 없다. 기술 혁신을 통해
서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에너지원에서 인간이 사용 가능한 형태로 에너지를 얻는 일뿐이다. 이렇
게 무에서 에너지를 창조하는 영구 기관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이론적으로 증명되었다.
열역학 제2법칙 에너지는 자연에 산일된다: 열역학 제2법칙이란 누구나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현상
을 나타낸 법칙이다. 뜨거운 물이 점차 차가워질 수는 있어도 차가운 물이 자연스레 뜨거워지지 않는
현상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렇듯 당연한 일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깨달은 이가 클라우지우스다. 그는
열에너지에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비가역적인 방향성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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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강변을 산책하다가 발밑에 있는 돌멩이를 가볍게
찼다고 하자. 돌멩이는 힘차게 굴러가겠지만 얼마 안 가 멈추게 된다. 구르는 과정에서 지면이나 공기
와의 접촉으로 마찰이 일어나면서 서서히 추진력을 잃는 탓이다. 그런데 마찰은 열을 발생시킨다. 돌
멩이가 가다가 멈추는 이유는 가지고 있던 운동 에너지가 최종적으로 마찰을 통해 전부 열에너지로 전
환되었기 때문이다. 열역학 제1법칙에 근거해 에너지의 총량은 보존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운동 에너
지는 100% 낭비 없이 열에너지로 전환된다. 여기서 보존되지 않는 것이 바로 에너지의 질이다. 운동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형태가 바뀌면서 대기 중으로 널리 산일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찰이나 저항이 존재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안에서는 열에너지로의 전환을 막을 수 없다.
즉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에너지는 자연히 산일되어 가는 하나의 방향성을 지닌다는 뜻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이렇듯 보편적인 사실을 말해 준다. 열역학 제2법칙의 확립으로 인류는 활용 가능한 에너지
는 유한하다는 점을 과학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은 결국 열로 산일된다.
카르노의 정리를 이해하면 기술의 미래가 보인다: 카르노의 정리는 에너지 문제를 이야기할 때 알아
두면 무척 편리한 과학 개념이다. 왜냐하면 카르노의 정리만 알아도 열기관을 이용한 발전 방식의 미
래를 과학적인 시각에서 손쉽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기관의 효율 개선을 둘러싼 과제는 지금
도 변함이 없다. 카르노의 정리처럼 고열원과 저열원의 온도 차를 얼마만큼 크게 만드는가가 관건이
다.
화력 발전은 온도 차를 최대한 크게 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최신형 화력 발전소의 증기 터
빈과 같은 고열원은 600도의 증기를 가둘 수 있는 정도여서 저열원인 대기 온도와의 차이가 500도를
넘는다. 최고 열효율은 43%에 달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가스 터빈과 증기 터빈을 조합해서 열효율을
한층 더 높여 주는 복합 화력 발전이 등장했다. 복합 발전 방식을 사용하면 열효율이 최대 60% 이상
까지 늘어난다. 최신 가스 터빈을 가동하는 데는 1,600도를 넘는 열에 견딜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한데,
이를 가능케 하는 야금술이 실용화되면서 열효율이 크게 개선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 혁신의 역사에는 열기관 효율 개선의 한계도 존재한다. 야금술 발달의 역사에서도
보았듯이 양이 풍부하고 질도 좋아 널리 전 세계에 유통되고 있는 철은 1,538도에서 녹는다. 그래서
최신형 가스 터빈은 니켈을 베이스로 철뿐만 아니라 융점이 더 높은 크롬이나 몰리브덴 등의 귀금속을
배합해 내열성을 한층 강화한 합금을 개발해 사용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1,700도 가동을 목표로 기술
이 개발되고 있는데, 소재 개발의 관점에서 거의 한계에 다다랐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이기로 50%를 웃도는 수준까지 열효율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충분
히 위대한 일이다. 세계 첫 실용적인 증기 기관이라 불리는 뉴커먼의 증기 기관의 열효율은 0.5%였고,
산업 혁명을 견인한 와트의 증기 기관조차도 2~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디 카르노가 고열원의 고
온 유지가 중요함을 간파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열기관 기술 혁신의 길을 열어 준 요인이라 하겠
다.
다음으로 원자력 발전을 보자. 원자력 발전은 핵분열 반응으로 생긴 열을 이용해 증기 터빈을 돌려 전
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발전 원리 자체는 화력 발전과 같다. 하지만 핵 연료봉의 피복에 쓰이는 지르
코늄이 고온에 약한 탓에 고열원과 저열원의 온도 차를 화력 발전만큼 크게 만들 수 없다. 고열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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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온도는 280도 정도다. 따라서 열효율은 30%대로 화력 발전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다만 열효율만을
단순 비교해서 원자력 발전이 화력 발전보다 효율이 떨어진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열효율은 비교
해야 할 여러 조건 중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의 에너지원인 우라늄 광물과 화력 발전의 에너지원인 화석 연료를 채굴하고 수송하는 데
드는 에너지, 또 각각의 연료에서 얻어진 에너지 양의 크기 등도 포함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만 제대
로 비교했다고 할 수 있다. 에너지를 둘러싼 논의가 어려운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산화탄소
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최근 기대를 모으고 있는 지열 발전의 미래는 어떨까. 현재 가동 중인
지열 발전에서 사용되는 증기와 열수는 200도에서 350도 정도다. 화력에는 미치지 않지만 원자력과
동등한 수준의 고열원 온도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러한 고온 증기나 열수를 얻을 수 있는 지역은
상승한 마그마로 데워진 지하수 저류층이 있는 장소에 한정된다.
이상적인 에너지원은 무엇일까
20세기 말부터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 문제가 제기되면서 에너지원은 발전 과정에
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느냐 아니냐로 구별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 결과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
하는 석탄 화력이 가장 나쁜 에너지원으로 취급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의 존재가 다
시금 에너지원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큰 기대를 모았던 원전 복권 운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원자력 관리의 어려움이 새삼 인식되었기 때
문이다. 현재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기반 전원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수력과 더불어 태양
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의 보급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에너지원
의 분류 방법은 화력, 원자력, 재생 에너지(수력, 태양광, 풍력, 지열, 조력) 3가지다.
하지만 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만을 기준으로 해서는 에너지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한
다. 이산화탄소는 연소로 발생하는 산물이고, 연소란 에너지를 방출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그러
므로 인류가 축적한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내 나름의 시점으로 분류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에너지원을 분류하면 알 수 있는 것: 현대 물리학은 에너지가 4가지 인자로 구성되었다고 본다.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 ‘중력’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중력을 뺀 3가지 힘은 물체가 질량을 가지
는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힘으로 전부 물체의 질량이 줄어들면 에너지가 방출된다. 다시 말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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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슈타인의 E=mc 를 구성하는 세계다. 이들 3가지 힘은 힉스 입자라 불리는 존재가 2012년에 확인되
면서 이론적으로 통일되었다. 중력도 언젠가는 하나의 통일된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초끈 이론이라는 난해한 이론이 필요해서 좀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따라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에너지원을 물리학의 관점에서 분류하면 중력에서 오는 힘 하나와 그 외
3가지 힘인 질량에서 오는 힘으로 분류하는 것이 현시점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분류 방법이라 하겠다.
현재 실용화된 발전 방식을 중력에서 오는 힘과 질량에서 오는 힘으로 분류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른 분류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얻어진다. 중력에서 오는 힘에는 조력, 질량에서 오는 힘에는 화력,
원자력, 태양광, 풍력, 수력, 그리고 질량과 중력의 하이브리드 형태인 지열로 나누어진다.
실용적인 에너지원은 질량에서 오는 힘이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한다. 화력, 원자력, 태양광 발전은 전
부 질량 결손으로 생기는 에너지가 기원이 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형제와 같다. 질량이 줄어들면서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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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너지가 방출되는 것은 원자력 발전에 쓰이는 핵분열 반응만이 아니다. 태양이 빛나는 이유인 핵융합반
응도 질량이 감소하는 반응이다. 화력 발전에 쓰이는 화석 연료의 연소로 발생하는 에너지는 화학 반
응에 기반한 에너지 방출이므로 원자핵 자체가 반응을 일으켜 다른 원자로 변환되는 핵분열 반응이나
핵융합 반응과는 체계가 다르지만, 반응 결과 발생되는 에너지는 아주 소량의 질량 감소에 의한 것이
다. 수력 발전은 중력에 의한 물의 낙차를 이용한 발전 방식으로, 태양 에너지의 증발 작용이 떨어져
내린 물을 다시 산 위까지 끌어올려 중력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서 뿌리가 되는 에너
지는 태양의 핵융합 에너지라고 볼 수 있다. 풍력은 태양 에너지의 공기 대류 현상으로 발생하는 에너
지이므로 이 역시 태양의 핵융합 에너지에서 비롯된다.
다른 관점으로도 분류해 보자. 이들 에너지원을 태양 에너지에서 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는
것이다. 결과는 이렇다. 태양 에너지 기반이 태양광, 수력, 풍력, 화력, 그렇지 않은 것이 원자력, 조력,
지열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원자력이 태양광과는 다른 범주에 들어갔다. 한편 많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으로 미움을 받는 화력은 변함없이 태양광과 같은 범주에 속해 있다. 화력 발전에 쓰이는 화석 연료는
생물이 태고의 지구를 비추던 태양 에너지를 유기 화합물로 체내에 흡수해 오랜 세월을 거쳐 화석화한
것이다. 이렇게 보존된 과거의 태양 에너지를 산소와 결합하도록 화학 반응을 일으켜 현재 우리가 쓰
는 전기로 만드는 것이 화력 발전 방식이다. 따라서 화력과 태양광은 태양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같은 범주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화력과 태양광을 다른 범주로 분류하고자 시간적 차이를 고려해 태양 에너지를 그대로 활
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분류한다. 태양 에너지를 그대로 활용하는 방식이 태양광, 수력, 풍력,
그렇지 않은 것이 원자력, 화력, 조력, 지열이다. 이 분류는 원자력과 화력을 재생 에너지인 태양광,
수력, 풍력과 구별한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현재 세계가 지향하는 분류에 가장 가깝다
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원자력, 화력은 안전성이나 고수준의 방사성 폐기물 취급 문제, 이산화탄소 배
출 문제가 대두되기 전부터 이미 자원 고갈이라는 문제를 떠안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태양 에너지도
질량 결손으로 생기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자원 고갈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태양의 수명이 앞으로 50
억 년 정도라고 하니 인류의 예상 가능한 시간에 한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여행의 목적지 에네르게이아의 부활
해결해야 할 문제
에너지 문제의 가장 중요한 과제: 인류가 에너지를 사용하며 야기한 문제 중에서 무엇보다도 강한 문
제의식을 느끼고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나는 인위적인 기후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
의 존재야말로 뇌가 이끄는 대로 그저 에너지 소비를 확대해 온 지금까지의 방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인위적인 기후 변화가 가시화되기 전까지 우리 사회의 에너지 관련 최대
과제는 자원의 고갈이었다. 산업 혁명 이전에는 삼림 자원을 소비해 문명을 건설했고, 산업 혁명 이후
에는 화석 연료와 우라늄 광물을 대량 소비하는 구조로 거대 문명을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열
역학 제2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탓에 이런 낮은 엔트로피의 에너지 자원은 언젠가 고갈된다.
도시 근방의 삼림 자원이 소모될 때마다 중심지를 옮겨 가며 문제를 해결했던 고대 문명과 달리 현대
문명은 세계 깊숙이 개발의 손을 뻗고 글로벌 경제라는 이름 아래 전 세계가 단단히 결속해 하나로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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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영되어 왔기 때문에 도망칠 곳이 없다. 따라서 추진력의 원천인 에너지 자원이 고갈되면 세계의 경제
가 동시에 속도를 잃는다. 이러한 위기로 인한 여파는 마찬가지로 세계 전체에 두루 영향이 미치리라
예상되는 인위적인 기후 변화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기후 변화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기후 변화 문제에 답을 찾겠다는 이야기는 자본의 신에게 이끌
리는 대로 에너지 소비량을 늘려 산일 구조를 발전시킨 지금까지와는 다른 발상으로 에너지를 이용하
겠다는 말과 같다. 에너지 소비를 억제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언젠가 에너지원 고
갈이라는 폭탄이 터진다. 따라서 자본의 신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낮은 엔트로피 자원을 아껴 쓰는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변화를 목표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분명 우리에게 도전할 가치가 있다.
나아가야 할 미래
미래 사회를 움직이는 에너지: 기후 변화에 답을 찾고 에너지 자원 고갈 문제를 매듭지어 줄 지속 가
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대량 소비에도 실질적인, 고갈 걱정이
없는 자원을 미래의 인류 사회를 움직이는 주된 에너지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책임을 질 가능성을
내포한 에너지원이 두 가지 있다. 바로 태양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다. 다만 현재 실용화된 핵분열
반응에 의한 원자력 에너지를 미래 사회의 주된 에너지로 삼는 것은 아쉽게도 더 이상 현실적이지 못
하다. 초장기 관리가 필요한 고수준의 방사성 폐기물 처분 문제가 있는 데다가 핵연료 사이클(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이를 다시 원자력 발전에 이용하는 방식)을 통해 에너지 자
원량을 비약적으로 늘려 주리라 기대되었던 증식로 개발도 막다른 길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원자력 에너지에는 기대를 걸 만한 이유가 있다. 핵융합 반응을 통해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
하는 방법이 아직 남아 있어서다. 핵융합 반응이란 수소처럼 작은 두 개의 원자핵이 융합해서 하나의
원자핵이 되는 반응을 일컫는다. 핵융합 반응을 통한 원자력 발전은 핵분열 반응을 이용하는 기존의
발전 방식이 가진 과제를 모두 해결해 준다. 운전으로 발생하는 고수준의 방사성 폐기물이 없고 연쇄
반응도 일어나지 않아서 만일의 사고에도 반응이 즉각 멈추고 통제 불가능해지는 일도 없다.
그리고 연료가 되는 에너지원은 바닷속에 풍부하게 함유된 중수소다. 자연에 존재하는 수소 원자
7,000개 중 하나가 중수소이므로 거의 무한한 자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와 더불어 아인슈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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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한 E=mc 공식처럼 질량 결손으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단위 면적당 에너
지 양이 적은(에너지 밀도가 낮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는 경우와 다르게 광활한 토지도 불필요하다.
한편 핵융합 반응의 최대 과제는 단연 핵융합로 설계의 높은 난도다. 현재로서는 핵융합 반응 중에서
도 비교적 실현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진 중수소와 삼중수소(트라이튬)를 이용하는 방법에 과학적, 기
술적 실현성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수준이다. 따라서 아직은 앞으로 몇 십 년 안에 실용화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21세기 안에 이루어진다면 감지덕지한 수준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기후 변화가 중요
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고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유예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류
에게는 더 이상 핵융합로 개발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따라서 적어도 21세기까지의 미래에 한해서는
하나 남은 태양 에너지를 확대 이용하는 방법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태양 에너지는 실질적으로 에너지를 무한히 공급해 주고, 지구상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지
만 에너지 밀도가 낮아서 대규모 토지 확보와 대량 자재가 필요하고 날씨에 따른 출력량의 변동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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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대처해야 한다. 또 태양광 발전의 경우 추가로 하루의 절반을 차지하는 야간에는 가동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태양 에너지는 완벽한 에너지원이 아니다. 이런 특징을 가진 태양 에너지를 어떻
게든 잘 이용하려면 기술 혁신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태양 에너지의 특성
에 맞추려는 구조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태양 에너지에 미래를 맡기는 것은 에너지를 마음껏 대량
소비해 자연의 속박에서 벗어난 인류 사회가 다시금 자연의 굴레에 일정 부분 회귀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다다르고자 하는 목적지인 에네르게이아의 상태에 도달한 미래 사회는 태양 에너지와 매우 친
화적이어야 한다. 이를 출발점으로 미래 사회의 설계도를 그려 나가다 보면 현대 사회의 설계도 안에
서 수정이 필요한 구체적인 항목이 드러난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혼란으로 예상치 않게 드
러나기도 했는데, 바로 ‘집중과 분산’, ‘경제 활동과 환경 보호’다. 지금까지는 두 항목이 대립하는 개념
중 ‘집중’과 ‘경제 활동’ 쪽에 무게를 두었으나 미래 사회를 위해서는 이 점이 수정되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현재 우리가 목표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할 과제는 이제 거의 정
리된 상태고, 필요한 기술도 세계 각지에서 연구 중이거나 적용되고 있다. 유일하게 남은 과제이자불
안 요소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우수한 두뇌와 관련이 있다. 지속 가능한 사회는 에너지 소비량을
억제하고 낮은 엔트로피 자원을 아껴 쓰는 사회로 전환하지 않으면 실현 불가능하다. 그런 사회를 실
현하는 전제 조건은 재생 에너지 보급을 촉진하는 정책의 질이나 기후 변화 모델의 정확도가 아닌 모
두의 의지가 담긴 행동이다.
다가올 미래의 모습은 우리의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보다 많
은 에너지를 바라는 본성을 지닌 인간의 뇌와 결코 좋은 궁합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뇌
에는 조금 불리한 이 현실을 우리의 똑똑한 두뇌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
능한 미래는 오지 않는다.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해가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몸과 마음 전부
가 완벽히 이해하는, 더 정확하게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문제를 생각하는 일: 지속 가능한 사회를 실현하는 열쇠는 우리의 우수한 두뇌에 있음을 깨닫
고, 에너지 소비 감축을 목표로 의식을 개혁하기 위해 어떻게 현실을 ‘인정’하게 만들 것인가라는 관점
이 필요하다. 참고로 에너지 문제를 생각하는 일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을 생각하는
일이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시 한번 마음의 소리를 들어 보지
않겠는가. 어떤가. 여러분의 두뇌는 현실을 ‘인정’했는가.
돈을 매개하지 않는 기브 앤 테이크를 실천한다: 이제 뇌를 통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몸이 움직이는 실
천 가능한 일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각자의 삶 속에 돈을 매개하지 않는 기브 앤 테
이크 관계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보는 일이다. 여기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
서는 고도의 정보 통신 기술의 진보가 뒷받침된 금융 기술의 발달로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화폐 가치
로 활발하게 환산되고 있다. 그 덕분에 어떤 재화나 서비스도 간단히 화폐로 교환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수치화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무기질적이고 무한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에 우리의 우수한 두뇌의 무한한 에너지 욕구가 달라붙으면서 자본의 신의 폭주를 허용하는 밑바
탕이 만들어졌다. 극단적인 추상화가 만든 재앙이다. 그러므로 화폐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는 나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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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나 도움 등을 의식적으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본의 신이 개입하지 못하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삶에 변화와 생기를 부여하고 종국에는 자본의 신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요컨대
도시적 생활 방식에서 전원적 생활 방식으로의 전환을 권유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땅에서 난 것을 이웃과 나누고, 그 답례로 다른 무언가를 받거나 잡초 제거에 손을
보태는 식의 자발적인 기브 앤 테이크가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도시에서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장소에 상관없이 모두가 금전의 형태가 아닌 자발적인 ‘기브’를 해 보았
으면 좋겠다. 이렇게 시작되는 기브 앤 테이크 관계에는 금전적인 가치가 뒤따르지 않아 완전한 청산
은 불가능하다. 일단 관계가 시작되면 반드시 어느 한쪽이 빚을 지게 되고 따라서 오래 지속된다.
누구든 실천할 수 있는 효과가 확실한 방법: 두 번째는 절약이다. 사실 절약만큼 누구나 실천하기 쉽
고 에너지 소비량의 억제 효과가 큰 방법은 없다. 물건을 오래 아껴 쓰고, 사용하지 않는 방의 불이나
에어컨을 끄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면 된다. 이러한 낭비만 없애도 에너지 소비량 감축에 충분히 공
헌하는 일이다. 물론 절약한다고 해서 일이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과도한 절약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
도 있다. 그래도 절약이 앞으로의 시대를 사는 하나의 키워드라는 점은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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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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