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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잭캔필드&마크빅터한센-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by Casey,Riley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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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좀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많이 겪을 것이나
 상상 속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시간을, 하루하루를
 의미 있고 분별 있게 살아가는 사람의 일원이 되리라.
 아, 나는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러한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사실은 그러한 순간들 외에는 다른 의미 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이 순간만을 맞으면서 살아가리라.

 나는 지금까지 체온계와 보온물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 그런 무리 중의 하나였다.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장비를 간편하게 갖추고 여행길에 나서리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테이지 꽃도 많이 꺾으리라.
 나딘 스테어(85세, 미국 켄터키 주에 사는 노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차리면서
 삶에서 일어난 생동감 넘치는 일화들을 글로 옮겨 적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우리가 모은 이야기들은 그 감동과 의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적어도 
다섯 번 이상씩 고쳐 쓴 것들이다. 이 책을 읽을 때는 당신 역시 서둘러 처음부
터 끝까지 읽어 버리려고 하지 말기 바란다.
 여기 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는 우리 두 사람의 40년에 걸친 경험을 
바탕으로 선보이는 최상의 요리이다. 따라서 당신의 존재 깊은 곳까지 스며들도
록 천천히 음미하라는 것이 주방장인 우리의 권유 사항이다. 또한 이 수프는 많
은 영양가를 간직하고 있다. 야채 샐러드나 보리빵을 곁들이진 않았지만, 수프 
그 자체만으로도 당신의 마음을 열고 인생의 기운을 되찾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제목으로 정한 닭고기 수프는 미국에서 예로부터 전해 오는 민간요법
의 하나로, 몸살 감기에 걸렸을 때 할머니나 엄마가 끓여 주는 전통 음식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우리는 이 책이 삶에 지쳐 기운과 용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충분한 치료 음식이 되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 수프 속에 유명한 사람들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실제 일화들을 사랑
과 배움,꿈의 실현, 가르침, 부모 노릇하기 등의 재료들을 나눠 놓았다. 삶의 주
변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이야기, 눈물이 쏟아지게 만드는 감동적인 이야기, 지
혜가 담긴 일화 등을 우리 두 주방장은 주된 요리 재료로 삼았다.
 이 '닭고기 수프' 시리즈를 엮으면서 거듭 하는 말이지만, 이 책은 한 번에 
다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권하지 않는다. 시간을 갖고, 좋은 술
처럼 한 번에 한 모금씩 천천히 음미하기 바란다. 그러면 당신은 따뜻한 열기를 
느낄 것이고, 마음과 영혼이 오래 전에 잃었던 생기를 되찾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이야기들의 경우, 우리는 그 원작자를 찾아 그들 자신
의 목소리로 그것을 다시 써 달라고 부탁했다. 따라서 많은 이야기들이 그들 자
신의 목소리이며, 우리 두 편집자의 목소리는 가능한 한 섞지 않았다. 따라서 각
각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전적으로 그 이야기의 경험자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지 편집과 각색에 의한 것이 아님을 여기에 밝힌다.
 우리가 만든 이 특별한 수프는 미국뿐 아니라 이미 전세계 27개국의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 뉴욕 타임즈 19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른 최고
의 화제작이기도 하다.흥미 넘치는 스릴러물이나 애정 소설도 아닌 '영혼을 위
한 요리책'이 이만큼 화제를 끄는 것에 대해 우리 두 사람은 아직 인간의 가슴 
속에 희망과 감동과 눈물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이제 당신의 식탁 위에, 또는 잠자리 옆에 우리가 만든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차려 놓는다. 이 수프는 당신이 잠이 올 때 잠을 달아나게 할 것이고, 
잠이 들더라도 편안하고 평화로운 잠이 오도록 도와 줄 것이다. 우리가 이 수프
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즐겁게 한 스푼씩 음미하길 바란다.

 1. 사랑을 위한 수프
 바람과 물의 힘, 중력의 힘을 이용한 다음에 언젠가는 우리가 사랑의 힘을 이
용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날 우리 인류는 세계사에서 두번째로 불을 발명
하는 날이 될 것이다.
 떼이야르 드 샤르뎅

 사랑의 힘
 당신이 가는 곳마다 사랑을 전파하세요. 먼저 당신 자신의 집에서 그 일을 실
천하세요. 당신의 자녀를,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세요. 그리고 그 다음엔 옆집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세요... 어떤 사람이든지 당신을 만나고 나면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지게 하세요. 신의 사랑이 당신을 통해 표현되도록 하세요. 당신의 얼
굴에, 당신의 눈에, 당신의 미소 속에, 그리고 당신의 따뜻한 말 한 마디 속에 
신의 사랑을 표현하세요.
 마더 테레사

 어느 사회학과 교수가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과제물을 내었다. 그것
은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로 가서 그곳에 사는 청소년 2백 명의 생활 환경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조사를 마친 뒤 학생들은 그 청소년들 각자의 미래에 대한 
평가서를 써 냈다. 평가서의 내용은 모두 동일했다.
 "이 아이에겐 전혀 미래가 없다.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또 다른 사회학과 교수가 우연히 이 연구 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에게 그 2백 명의 청소년들이 25년이 지난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추적 조사하라는 과제를 내었다. 학생들의 조사 결
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사망을 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20면을 제외
하고는 나머지 180명 중에서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직업도 변호사와 의사와 사업가 등 상류층이 많았다. 교수는 놀라서 그 
조사를 더 진행시켰다. 다행히 그들 모두가 그 지역에 살고 있었고, 교수는 그들
을 한 사람씩 만나 직접 물어 볼 수 있었다.
 "당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모두 한결같았다.
 "여선생님 한 분이 계셨지요."
 그 여교사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교수는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가서 물었다. 도대체 어떤 기적적인 교육 방법으로 빈민가의 청소
년들을 이처럼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끌었는가? 늙었지만 아직도 빛나는 눈을 간
직한 그 여교사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었지요. 난 그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
 에릭 버터워드

 진실한 사랑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 모세 멘델스존은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체구도 작은데다가 기이한 모습의 꼽추였다.
 어느 날 모세 멘델스존은 함부르크에 있는 한 상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 집
의 아름다운 딸 프룸체를 알게 되었다. 첫눈에 그는 그녀를 향한 절망적인 사랑
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보기 흉한 그의 외모 때문에 프룸체는 그에게 눈길조
차 주려고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모세 멘델스존은 계단을 올라가 용기
를 내어 프룸체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녀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이었으나, 그녀가 눈길 한 번 주
지 않는 것에 대해 그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몇 차례 대화를 시도했지만 프룸체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마침내 모세 멘
델스존은 부끄러워하며 물었다.
 "당신은 결혼할 배우자를 하늘이 정해 준다는 말을 믿나요?"
 프룸체는 여전히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차갑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러는 당신도 그 말을 믿나요?"
 모세 멘델스존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한 남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신은 그에게 장차 그의 신
부가 될 여자를 정해 주지요. 내가 태어날 때에도 내게 미래의 신부가 정해졌습
니다. 그런데 신은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너의 아내는 곱사등이일 것이다.'
 나는 놀라서 신에게 소리쳤습니다.
 '안 됩니다, 신이여! 여인이 곱사등이가 되는 것은 비극입니다. 차라리 나를 
곱추로 만드시고 나의 신부에게는 아름다움을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나는 곱사등이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프룸체는 고개를 돌려 모세 멘델스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순수한 
눈빛을 통해 어떤 희미한 기억이 떠오르는 듯했다. 프룸체는 그에게로 다가가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았다. 훗날 그녀는 모세 멘델스존의 헌신적인 아내가 되었
다.
 베리 비셀/ 조이스 비셀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실 때마다 늘 이런 얘기로 시작하셨다.
 "내가 널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오늘 말했었니?"
 아버지는 늘 그런 사랑의 표현을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인생이 눈
에 띄게 황혼빛으로 물들어 갈 무렵 우리 두 사람은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
다.
 82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떠날 준비를 하셨다. 나 역시 더 이상 아버지가 
고통받지 않도록 아버지를 보내 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의 손을 잡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음을 우리 두 사람
은 알았다.
 난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 여길 떠나신 다음에 저에게 잘 계신다는 메시지를 보내 주셔야 해
요."
 아버지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면서 웃으셨다. 아버지는 영혼의 환생을 
믿지 않으셨다. 나는 그것을 믿는 편도, 믿지 않는 편도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죽음 너머의 세계로부터 메시지를 받는 일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
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깊은 애정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임종을 맞이
하는 순간 그 심장의 충격이 내게도 전해졌다. 영혼의 문제에 대해 무지한 병원 
의사들은 아버지가 돌아 가시는 순간에 내게 그 손을 잡는 것마저 허락하지 않
았다. 그것이 후회스러워 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 난 날마다 아버지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듣
게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꿈에서라도 아버
지를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잠들기 전에 기도하곤 했다. 그러나 반 년 가까이 
지나도록 아무 목소리도 듣지 못했으며, 아무런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아버지
를 잃은 슬픔만이 나를 채웠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보다 다섯 해 먼저 치매에 걸려 세상을 떠나셨다. 내게는 
이제 성장한 딸들이 있었지만, 난 내 자신이 부모 잃은 고아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 마사지를 받으러 가서 의자에 누워 차례를 기다리고 있
을 때였다. 실내는 조용하고 어두웠다. 문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게 밀
려왔다. 아버지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들으려고 그 동안 내가 너무 무리한 요구
를 해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난 긴장을 풀고 편안히 누워 있었다. 잠이 든 것은 아니었다. 그 어는 때보다 
의식이 맑고 뚜렷했다. 혹시 내가 잠이 들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확
인했지만 분명히 그런건 아니었다. 잔잔한 연못에 파문을 일으키는 물방울처럼 
생각들이 하나씩 머릿 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난 더없이 평화로웠다. 예기치 않
은 평화로움이 차라리 놀라울 정도였다. 문득 난 생각했다.
 '난 저쪽 세계로부터 메시지를 받기 위해 너무 노력을 했어. 이제부턴 그런 
노력을 중단해야겠어.'
 그때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나셨다. 치매에 걸려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잃으시기 전의 건강한 얼굴이었다. 체중도 건강하
실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름다운 은발 머리칼이 우아하게 어깨까지 물결치고 
있었다. 부드러운 얼굴이 너무도 생생하고 가깝게 느껴져서 손을 뻗으면 어머니
를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병에 걸려 초라해지기 전인 십 년 전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즐겨 사용하시던 향수 냄새까지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내 앞에 서서 무엇을 기다리고 계신 듯했으며,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난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
는 줄곧 아버지를 생각해 왔는데 어머니가 내 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그 동안 
어머니가 잘 계신지에 대해선 관심 갖지 않았던 것이 죄송스러웠다.
 내가 말했다.
 "아, 엄마! 엄마가 그 끔찍한 병으로 고통을 받으셔서 전 정말 마음이 아파요."
 어머니는 내가 무얼 말하는지 알아들으셨다는 듯 한쪽으로 가볍게 머리를 흔
드셨다. 그러고는 살아 계실 때처럼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씀하셨
다.
 "아니다. 마음 아파 할 필요가 없어.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은 오직 사랑에 
대한 것뿐이야."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사라지셨다.
 갑자기 텅 비어 버린 실내에선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난 알게 되
었다.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가 주
고받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고통은 사라지지만 사랑은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그때 어머니가 해 주신 말씀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으며, 그 
만남은 가슴 속에 영원히 새겨지게 되었다.
 아직 난 아버지를 만나거나 어버지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언
젠가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아버지가 내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
시리라는 걸 안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오늘 말했었니?"
 보비 프롭스타인

 마음의 노래
 자신이 꿈에 그리던 여성과 결혼한 멋진 남성이 있었다. 사랑 속에 두 사람은 
딸을 낳았다. 아이는 밝고 명랑한 어린 소녀로 자라났으며, 그 멋진 남자는 딸아
이를 무척 사랑했다.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 그는 그녀를 번쩍 안고서 방 주위를 돌며 춤을 추곤 
했다. 그러곤 그녀에게 말했다.
 "난 널 사랑한다. 어린 소녀야."
 어린 소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전 이제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니에요."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닌 어린 소녀는 곧이어 집을 떠나 세상 속으로 들어갔
다.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배울수록 그녀는 그 남자에 대해서도 더 많은 걸 
배웠다. 그녀는 그가 정말로 멋지고 강한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가진 힘
을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가진 훌륭한 힘 중의 하나는 가족들에게 자신
의 사랑을 표현하는 능력이었다. 그녀가 세상 어느 곳으로 가든 그 남자는 그녀
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곤 했다.
 "난 널 사랑한다, 어린 소녀야."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닌 그 어린 소녀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 
멋진 남자가 쓰러진 것이다.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언어 능력도 상실해 버
린 것이었다. 그는 이제 말도 할 수 없었으며, 의사들은 그가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 듣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미소지을 수도, 웃을 수도, 걸
을 수도 없었다. 껴안을 수도, 춤을 출 수도, 그리고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닌 
그 어린 소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당장에 그 멋진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병실로 들어 가면서 그녀는 그
를 보았다.
그는 매우 작아 보였으며, 예전처럼 강한 남자가 전혀 아니었다. 그녀를 바라보
는 순간 그는 뭔가 말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할 수가 없었다.
 어린 소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을 했다. 그녀는 그 멋진 남자의 
병상 옆으로 올라갔다. 두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버지의 
그 무력해진 어깨에 두 팔을 둘렀다.
 아버지의 가슴에 머리를 얹고서 그녀는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둘이 함께 했
던 소중한 순간들과, 그 멋진 남자가 그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보호해 주었
던가를 기억했다. 그녀가 힘들 때마다 큰 위안을 주었던 그 사랑의 말들을 이제
는 들을 수 없는 것이 그녀는 슬펐다.
 그 순간 그녀는 그 남자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노래와 사랑의 말들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던 그 가슴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신체의 나머지 부분은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만은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
다. 그녀가 가슴에 귀를 대고 누워 있는 동안 기적이 일어났다. 그녀는 그가 하
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입은 이제 말하는 능력을 상실했지만, 가슴 속의 심장이 그녀에게 말하
고 있었다.
 난 널 사랑한다.
 난 널 사랑한다.
 어린 소녀야.
 어린 소녀야.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니었지만, 난 그렇게 아버지의 가슴에 마냥 엎드려 오
랫동안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패티 한센
 
 다른 방식
 어느 나른한 봄날 오후, 전차는 덜컹거리면서 도쿄 근교를 통과하고 있었다. 
내가 타고 있는 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탄 몇 명의 가정주
부들과 쇼핑하러 가는 노인 몇 사람이 전부였다. 나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
는 단조로운 집들과 먼지를 뒤집어쓴 가로수들을 구경하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 역에 도착해 승강구 문이 열리면서, 돌연 이 오후의 평화로운 정적이 깨졌
다. 한 술 취한 남자가 이해할 수 없는 난폭한 욕설을 퍼부으면서 전차에 올라
탄 것이다.
 그 남자는 비틀거리며 내가 타고 있는 전차 칸 안으로 들어섰다. 막노동꾼 복
장에, 체구가 컸으며, 대낮부터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게다가 말할 수 없이 지
저분했다. 그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에게로 다가가더니 고함을 치면서 팔을 
휘둘렀다. 아기 엄마는 그것을 피하다가 늙은 부부의 무릎 위로 넘어졌다. 아기
가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공포에 질린 늙은 부부는 황급히 일어나 객차 뒤쪽으로 피신했다. 술주정꾼이 
늙은 부인을 향해 발길질을 했지만 다행히 빗나가 그녀는 허둥지둥 도망쳤다. 
더욱 화가 난 술주정꾼은 객차 중앙에 있는 금속 막대기를 잡아 뽑으려고 시도
했다. 그의 한쪽 손에선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전차는 덜컹거리며 다시 
출발하고, 승객들은 공포로 얼어붙었다.
 나는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시 나는 젊었고 체격 조건이 좋았다. 벌써 20년 전이었으니까. 그 무렵 나는 
3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8시간씩 합기도 수련에 열을 올리고 있던 터였
다. 업어치기와 꺾기가 내 주특기였다. 나는 스스로를 강하다고 생각했다. 문제
는 나의 무술을 실전에서 시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합기도 수련생에게
는 싸움이 허용되지 않았다.
 나의 스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렇게 강조하곤 했다. 
 "합기도는 화합의 무예이다. 싸우려는 마음을 가진 자는 우주와의 조화를 깨
는 사람이다. 만일 그대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시도한다면 그대는 이미 싸
움에서 패배한 것이다. 우리는 싸움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지, 싸움을 시
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스승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무한히 노력했다. 전차역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풋내기 펑크족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일부러 먼 길을 
우회해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 나의 인내심은 나를 더욱 우쭐하게 만들었다. 
난 내 스스로 자신을 강하고 거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악한 자
들의 손아귀에서 순진무구한 사람들을 구출해 낼 합법적인 기회를 은근히 바라
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당당히 일어섰다.
 '지금 사람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내가 신속히 행동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다칠지도 모른다.'
 내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그 술주정꾼의 분노의 표적을 발견한 듯 회심의 미
소를 지으며 으르렁거렸다.
 "아하! 외국 놈이 덤비겠단 건가! 일본인의 방식이 어떤가 한번 배워 보고 싶
단 말이지."
 나는 머리 위에 있는 가죽 손잡이를 가볍게 잡으면서 그에게 혐오와 경멸의 
시선을 던졌다. 난 그 비겁한 인간을 한 주먹에 박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먼저 덤벼들도록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의 화를 돋우기 위해 일부러 입술을 내
밀어 거만한 키스를 던졌다.
 그러자 그는 고함을 쳤다.
 "좋다! 내가 본때를 보여 주지!"
 그는 나를 덮치려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때였다. 그가 몸을 날리려는 찰나, 
누군가 "어이!"하고 그를 불렀다. 귀청을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이상할 
정도로 경쾌하고 쾌활한 그 목소리의 음색을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마치 자
기가 애타게 찾던 어떤 것과 우연히 맞닥뜨린 사람이 내지르는 탄성과도 같은 
경쾌한 목소리였다.
 "어이!"
 나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왼쪽으로 몸을 돌렸고, 술주정꾼은 오른쪽으로 돌
아섰다. 그렇게 해서 우리 두 사람은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키 작은 일본인 노인
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적어도 일흔 살이 넘었음직한 이 왜소한 신사는 일본 전
통 옷을 입고서 순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나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은 채 그 술주정꾼에게 마치 중요하고 신나는 비밀이라도 들려 주겠다는 
양 즐거운 시선을 던졌다.
 "이리 좀 오게."
 노인은 사투리가 섞인 친근한 말투로 술주정꾼을 불렀다.
 "이리 와서 나랑 얘기 좀 하세."
 그러면서 노인은 어서 오라고 가볍게 손짓까지 했다. 덩치 큰 술주정꾼은 마
치 끈에 묶인 사람처럼 그 손짓에 따라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늙은 신사 
앞에 호전적인 자세로 두 다리를 벌리고 우뚝 서더니, 덜컹거리는 전차의 소음
을 뚫고 이렇게 고함을 쳤다.
 "뭣 땜에 내가 당신하고 얘기를 해야 한단 말이오?"
 술주정꾼은 이제 내 쪽으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만일 그가 팔꿈치 하나만 
까딱해도 나는 순식간에 그에게 일격을 가할 작정이었다.
 노인은 여전히 즐거운 시선으로 막일꾼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 무슨 술을 마셨나?"
 노인의 눈은 흥미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자 술주정꾼이 큰 소리
로 되받아쳤다. 
 "정종을 마셨소. 내가 뭘 마셨건 당신이 알 바 아니잖소!"
 침 파편이 노인의 얼굴에 튀었다. 노인이 말했다.
 "아, 그거 좋은 일이지. 정말 좋은 일이야! 자네 이거 아는가? 나도 정종을 
무척 좋아한다네. 매일 저녁 나와 내 할멈은 정종 한 조끼를 데워 갖고 정원으
로 나가지. 내 할멈은 올해 일흔여섯 살이야. 우린 오래된 나무 의자에 앉곤 하
지. 해 지는 풍경도 바라보고. 우리 집 복숭아나무가 잘 살아 있는지도 살펴보면
서 말야. 그 나무는 우리 증조할머니가 심으신 거라네. 그래서 우린 그 나무가 
지난 겨울의 북풍한설을 잘 이겨내고 기운을 회복할지 염려하고 있다네. 하지만 
우리 집 나무는 언제나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잘 이겨 내곤 하지. 정원의 보
잘것없는 흙에 비하면 정말 대단한 나무야. 정종을 들고서 저녁 나절을 보내기 
위해 정원으로 나갈 때마다 그 나무를 바라보며 기쁜 마음에 잠기곤 하지. 비가 
올 땐 운치가 더하거든!"
 노인은 눈을 반짝이면서 술주정꾼을 올려다보았다. 노인의 말을 참고 들어 주
는 사이에 술주정꾼의 얼굴이 어느덧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주먹에 들어
가 있던 힘이 서서히 풀렸다.
 "그래요. 저도 복숭아나무를 좋아합니다."
 그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노인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겠지. 자네한테도 훌륭한 마누라가 있겠구먼."
 그러자 술주정꾼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 마누라는 죽었어요."
 전차의 흔들림과 함께 그 덩치 큰 사내가 나지막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난 마누라도 없고, 가정도 없고, 일자리도 없어요. 난 내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어요."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깊은 절망감이 엄습해와서 그의 몸을 떨
게 했다.
 이 세상의 정의와 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믿음과 순진한 젊은 혈기로 무장한 
채 그 자리에 서 있던 나는 내 자신이 그 사람보다 훨씬 더 추한 인간이라고 느
껴졌다.
 그러는 사이에 전차는 내가 내릴 역에 도착했다. 승강구 문이 열릴 때쯤 나는 
동정심으로 가득 찬 노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자, 자, 울지 말게. 정말 어려운 곤경에 처했구먼. 여기 앉아서 나한테 사연
을 말해 보게나."
 난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술주정꾼은 노인의 옆자리에 
주저앉아 노인의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끼고 있었으며, 노인은 그의 지저
분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전차가 떠나고, 나는 잠시 역의 벤치에 앉았다. 내가 주먹의 힘으로 해치우려
고 했던 일이 부드러운 말 몇 마디로 해결되었다. 방금 전에 나는 살아 있는 합
기도를 보았던 것이며, 그것의 본질은 사랑이었다. 나는 이제부터 완전히 다른 
정신으로 무예를 수련해야 함을 깨달았다. 내 스스로 정의와 평화를 논할 수 있
으려면 아직 한참의 세월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리 돕슨

 한번에 하나
 우리의 친구 하나가 황혼이 물들어 가는 시각에 멕시코의 한적한 해변을 거닐
고 있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도 어떤 노인이 혼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사람
은 멕시코 원주민이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우리의 친구
는 노인이 연신 몸을 숙여 모래밭에서 뭔가를 주워선 바닷속으로 던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노인은 그렇게 계속해서 뭔가를 바다로 되돌려 보내고 있었다.
 더 가까이 가서 보니 노인은 방금 파도에 휩쓸려 해변으로 올라온 불가사리들
을 한 마리씩 주워 물 속으로 되돌려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놀란 우리의 친구는 노인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안녕하시오. 노인장. 지금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멕시코 노인이 대답했다.
 "불가사리들을 바닷속으로 되돌려 보내고 있소. 지금은 썰물이라서, 해변으로 
쓸려 올라온 이 불가사리들을 바닷속으로 돌려 보내지 않으면 햇볕에 말라서 죽
고 말지요." 
 우리의 친구가 말했다.
 "그건 저도 압니다만, 이 해변엔 수천 마리가 넘는 불가사리들이 널려 있습
니다. 그것들을 저부 바다로 되돌려 보내겠다는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그건 불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미처 생각을 못 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멕시코 해
안에 있는 수백 개의 해변에서 날마다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소. 매일같이 수
많은 불가사리들이 파도에 휩쓸려 올라와 모래밭에서 말라 죽지요. 당신이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있겠소?"
 멕시코 원주민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몸을 굽혀 불가사리 한 마리를 집어올
렸다. 그는 그것을 멀리 바닷속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말했다.
 "지금 저 한 마리에게는 큰 차이가 있지요."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선물
 미국 남부 지방의 한적한 도로를 버스 한 대가 털털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창
가 자리에는 한 노인이 꽃다발을 들고 앉아 있었다. 처녀는 고개를 돌려 노인이 
들고 있는 아름다운 꽃다발에 자주 시선을 던졌다.
 마침내 노인이 버스에서 내릴 때가 되었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처녀
의 무릎 위에 불쑥 그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노인이 말했다.
 "아가씨가 꽃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주는 것이니 받구려. 내 아내도 아가씨
가 이 꽃을 갖는 걸 기뻐할 거요. 아가씨에게 꽃을 선물했다고 내가 아내에게 
말하겠소."
 처녀는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그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처
녀가 바라보는 사이에, 노인은 버스에서 내려 길가에 있는 작은 공원 묘지 안으
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베넷 커프

 소년 소방대원
 스물여섯 살의 엄마가 병상에 누운 어린 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녀는 마음을 굳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다른 부모들처럼 그녀 역시 자신의 아들이 잘 성장해서 인생의 모든 꿈을 이
루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백혈병이 모
든 소망을 다 앗아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들의 꿈이 한 가지
라도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물었다.
 "봅시야, 넌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니?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보고 싶다는 소원을 가진 적이 있니?
 아이가 대답했다.
 "엄마, 난 이 다음에 소방대원이 되고 싶었어요."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아들에게 말했다.
 "그럼 너의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엄마가 한번 알아봐 줄게."
 그날 늦게 그녀는 아리조나 주 피닉스 시에 있는 소방본부를 찾아가서 소방대
장을 만났다. 소방대장은 피닉스(불사조)처럼 넓은 가슴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
녀는 소방대장에게 아들의 마지막 소원을 설명하고, 여덟 살 난 아들을 소방차
에 태워 도시를 한 바퀴만 돌아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소방대장이 대답했다.
 "우린 그 이상의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수요일 아침 7시에 댁의 아들을 데리
러 가겠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 그 아이를 명예 소방대원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아이는 소방본부에 와서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고 화재 신고도 받고 할 것입니
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이의 신체 사이즈를 말씀해 주시면 아이를 위해 실제 소
방복과 소방모자, 그리고 고무장화를 준비하겠습니다. 모자에는 우리가 착용하는 
것과 똑같은 노란색으로 된 피닉스 소방본부 마크를 달아 주겠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이곳 피닉스에서 만들고 있기 때문에 금방 구할 수 있습니다."
 사흘 뒤 소방대장은 병원으로 와서 봅시에게 소방대원 복장으로 갈아입힌 뒤 
갈고리와 사다리가 설치된 소방차로 안내했다. 봅시는 소방차 뒷자리에 앉아서 
소방본부로 갈 때까지 다른 소방대원들을 거들었다. 봅시는 너무 기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날 피닉스에 세 건의 화재 신고가 들어왔다. 봅시는 그 세 군데의 화재 현
장에 모두 출동했다. 그리고 출동시마다 소방차와 구급차, 소방대장의 차를 바꿔 
탔다. 봅시는 또 그 지역 텔레비전 뉴스에도 방송이 되었다.
 소원을 이룬 봅시는 자신에게 쏟아진 주위의 사랑과 애정에 감동받아 의사가 
예측한 것보다 석 달을 더 살았다.
 어느 날 밤 봅시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심장 박동과 혈압 수치를 알려 
주는 모든 신호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구도 홀로 죽어선 안 된다는 호스피
스 이론을 믿고 있던 병원의 수간호사는 서둘러 봅시의 가족을 병원으로 불렀
다. 수간호사는 또 봅시가 소방대원으로 활약했던 일을 기억하고는 소방대장에
게 전화를 걸어 소방복장을 갖춘 대원을 한 명 보내 아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소방대장이 말했다.
 "우린 그 이상의 일도 할 수 있소. 5분 안에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리다. 당신
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소? 불자동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비상등이 깜
박이는 것이 보이면 병원의 환자들에게 화재가 난 것이 아님을 방송해 주시오. 
멋진 소방대원을 한 번 더 만나기 위해 소방본부에서 찾아온 것이라고 설명하시
오. 그리고 아이의 병실 창문을 열어 놔 주시오. 고맙소."
 5분 뒤 갈고리와 사다리를 설치한 불자동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에 
도착했다. 봅시가 입원해 있는 3층 병실까지 사다리가 올라가고, 소방복 차림을 
한 14명의 소방대원과 2명의 여자대원이 사다리를 타고서 봅시의 병실로 올라왔
다. 엄마의 허락을 받아 그들은 한 사람씩 봅시를 껴안으면서 그들이 얼마나 그
를 소중히 여기는지 말했다.
 마지막 숨을 내쉬며 봅시는 소방대장을 향해 물었다.
 "대장님, 나도 이젠 정식 소방대원인가요?"
 소방대장이 말했다.
 "물론이지, 봅시 대원."
 그 말을 듣자 봅시는 미소를 지으며 영원히 눈을 감았다.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강아지와 소년
 가게 주인이 문 앞에다 '강아지 팝니다' 라고 써 붙였다. 그런 광고는 흔히 
아이들의 시선을 끌게 마련이다.
 아닌게아니라 한 어린 소년이 가게 안을 기웃거렸다. 소년은 물었다.
 "강아지 한 마리에 얼마씩 팔아요?"
 가게 주인이 대답했다.
 "30달러에서 50달러 사이에 판다."
 어린 소년은 주머니를 뒤져 동전 몇 개를 꺼냈다.
 "지금 저한테는 2달러 37센트밖에 없거든요. 그래도 강아지 좀 구경하면 안 
될까요?"
 가게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가게 안쪽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털실 뭉치처럼 생긴 강아지 다섯마리를 가게로 내보냈다. 그런데 한 마
리만은 다른 강아지들 보다 눈에 띄게 뒤쳐저서 달려왔다. 소년은 얼른 그 절뚝
거리는 강아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강아지는 어디가 아픈가요?"
 가게 주인이 설명했다. 수의사가 진찰한 결과, 그 강아지는 선천적으로 엉덩이 
관절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절뚝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었다. 그 강아지는 평생동안 절름발이로 살아가야만 했다.
 설명을 듣고 소년은 흥분된 얼굴로 말했다.
 "전 이 강아지를 사고 싶어요."
 가게 주인이 말했다.
 "아니다. 불구가 된 강아지를 돈 받고 팔 순 없어. 너게 정말로 이 강아지를 
원한다면 그냥 가져가거라."
 소년은 매우 당황했다. 그는 가게 주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전 이 강아지를 공짜로 가져가고 싶지 않아요. 이 강아지도 다른 강아지들
처럼 똑같은 가치를 지닌 강아지예요. 그러니 값을 전부 내겠어요. 사실 지금은 
2달러 37센트밖에 없지만, 강아지 값을 다 치를 때까지 매달 5센트씩 갖다 드리
겠어요."
 가게 주인은 그래도 고개를 저었다.
 "이런 강아지를 너한테 돈 받고 팔 순 없어. 달리지도 못할 뿐 아니라 다른 
강아지들처럼 너와 장난을 치며 놀 수도 없단다."
 그 말을 듣자 소년은 몸을 숙여 자기가 입고 있는 바지 한쪽을 걷어 올리기 시
작했다. 그러고는 금속 교정기로 지탱되고 있는 왼쪽 다리를 가게 주인에게 보
여 주었다.
 소년이 말했다.
 "저도 한쪽 다리가 불구라서 다른 아이들처럼 달릴 수가 없어요. 그러니 이 
강아지에게는 자기를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댄 클라크

 나에게 특별한 사람
 뉴욕의 한 여고사가 자신이 담임을 맡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상을 주
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학생들을 한 명씩 교실 앞으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 그 
학생들 각자가 반에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를 설명했다. 그런 다음 여교사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파란색 리본을 하나씩 달아 주었다. 리본에는 황금색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신은 내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여교사는 한 가지 계획을 더 세웠다. 학생들 각자에게 세 
개의 파란색 리본을 더 준 다음, 그것들을 갖고 가서 주위 사람들에게 달아 주
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일주일 뒤에 그 결과를 써 내라는 것이 숙제였다.
 한 학생이 학교 근처에 있는 회사의 부사장을 찾아갔다. 그 학생의 진로 문제
에 대해 부사장이 친절하게 상담을 해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생은 부사
장의 옷깃에 파란 리본을 달아 준 다음 두 개의 리본을 더 주면서 말했다.
 "이건 저희 선생님이 생각해 내신 일인데, 이 리본을 부사장님께서 존경하는 
특별한 사람에게 달아 주세요.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 사람의 특별한 사람에
게 달아 주게 하세요. 그 결과를 일주일 뒤에 저에게 꼭 말씀해 주시구요."
 그날 늦게 부사장은 자신의 사장에게로 갔다. 사장은 직원들 모두에게 지독한 
인물로 정평이 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부사장은 사장 앞으로 다가가 사장이 가
진 천재성과 창조성에 대해 진심으로 존경을 표시했다. 사장은 무척 놀란 듯이 
보였다. 부사장은 파란 리본을 꺼내면서 그걸 감사의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말
했다. 사장은 당황하면서도 기쁘게 말했다.
 "아, 정말 고맙소."
 부사장은 파란 리본을 사장의 가슴에 달아 주고 나서 나머지 한 개의 리본을 
더 꺼냈다. 그러고는 말했다.
 "제 부탁을 한 가지 들어 주시겠습니까? 이 여분의 리본을 사장님께서 소중
히 여기는 특별한 사람에게 달아 주십시오. 사실은 한 학생이 이 리본들을 가지
고 와서 제게 건네 주면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간 사장은 열일곱 살 난 아들을 앉혀놓고 말했다.
 "오늘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나한테 일어났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부사
장이 들어오더니 내가 대단히 창조적이고 천재적인 인물이라면서 이 리본을 달
아 주더구나. 생각해 봐라. 내가 창조적이고 천재적이라는 거야. 그난 '당신은 
내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라고 적힌 이 리본을 내 가슴에 달아 주었다. 그러면
서 여분의 리본을 하나 더 건네 주면서, 내가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달아 주라는 거야. 오늘 저녁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누구에게 이 리
본을 달아 줄까 생각해 봤다. 그러고는 금방 널 생각했지. 난 너에게 이 리본을 
달아 주고 싶다."
 이어서 그는 말했다.
 "난 사업을 하느라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래서 집에 오면 너
한테 별로 신경을 쓸 수가 없었어. 이따끔 난 네가 성적이 떨어지고 방 안을 어
질러 놓는 것에 대해 고함을 지르곤 했지. 하지만 오늘밤 난 너와 이렇게 마주 
앉아서 네게 이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넌 내게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람이야. 네 
엄마와 마찬가지로 넌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지. 넌 훌륭한 아들이고, 
난 널 사랑한다."
 놀란 아들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들은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온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침내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본 아들은 울먹이며 
말했다.
 "아빠, 사실 저는 내일 아침에 자살을 할 결심이었어요. 아빠가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헬리스 브리지스
 
 나도 그런 형이 될 수 있었으면
 폴이라는 이름의 내 친구가 있는데, 그의 형이 큰 부자였다. 폴은 지난 해 크
리스마스 선물로 형으로부터 자동차 한 대를 선물받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폴
이 일을 마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와 보니, 개구쟁이 소년 하나가 폴의 새 차 주
위를 맴돌고 있었다.
 폴이 다가가자 소년은 부러운 눈으로 차를 바라보면서 폴에게 물었다.
 "아저씨가 이 차의 주인이세요?"
 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내 형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거지."
 그러자 소년의 놀라움이 더 커졌다.
 "아저씨의 형이 이 차를 사줬고, 아저씨는 돈 한푼 내지 않고 이 멋진 차를 
얻었단 말이에요?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당연히 폴은 소년이 멋진 차를 갖고 싶어하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년의 그 다음 말은 폴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년이 말했다.
 "나도 그런 형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폴은 놀라서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무심결에 소년에게 말했다.
 "너, 이 차 타 보고 싶니? 내가 한 번 태워 줄까?"
 소년은 기뻐서 소리쳤다.
 "정말이에요? 고맙습니다."
 폴은 소년을 차에 태우고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소년이 문득 폴을 
돌아보면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저씨, 미안하지만 저희 집 앞까지 좀 태워다 주실 수 있으세요?"
 폴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소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멋
진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자신의 모습을 이웃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었다.
 그러나 폴의 생각은 또다시 빗나가고 말았다. 집 앞에 도착한 소년은 폴에게 
부탁했다.
 "저기 층계 앞에 세워 주세요. 그리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소년은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잠시 후 폴은 소년이 집 밖으로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소년은 집 밖으로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이, 소년은 두 다리가 불구인 어린 동생을 데리고 나오는 중이었다. 소년은 동생
을 계단에 앉히고, 어깨를 껴안으면서 폴의 자동차를 가리켰다.
 "내가 방금 말한 게 저 차야, 버디. 저 아저씨의 형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
준 거래. 그래서 저 아저씨는 한푼도 낼 필요가 없었대. 버디, 나도 언젠가 너에
게 저런 차를 선물할 거야. 넌 한푼도 내지 않아도 돼. 그리고 넌 그 차를 타고 
가서 내가 너한테 설명해 준 세상의 멋진 것들을 모두 구경할 수 있게 될 거야.
"
 폴은 차에서 내려 층계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불구자 소년을 번쩍 안아 차의 
앞좌석에 앉혔다. 불구자 소년의 형도 눈을 반짝이며 그 옆에 올라탔다. 그런 다
음 그들 세 사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 드라이브를 떠났다.
 그날 크리스마스 이브에 폴은 성경에 적힌 예수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
었다. 
 "베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댄 클라크
 
 어떤 용기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내가 매우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무척 용기 있는 여성 입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것은 나한테 몇 명의 훌륭한 스승이 있
었기 때문이에요. 그 중 한 사람에 대해 말씀드리죠. 여러 해 전에 내가 스탠포
드 병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할 때였는데, 거기서 나는 리자라는 이름의 한 여
자 아이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 아이는 매우 희귀한 병으로 고통받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아이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똑같은 병에 걸렸다가 기
적적으로 살아나 혈액 속에 그병에 대한 면역체를 갖고 있는 다섯 살짜리 남동
생으로부터 혈액을 공급받는 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요. 그래서 의사는 어린 
남동생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누나에게 수혈을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요.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어린 소년은 한순간 망설이다가 깊이 숨을 들이쉬면
서 말하더군요.
 '네, 리자 누나를 구하는 일이라면 그렇게 할게요.'
 수혈이 진행되는 동안 소년은 누나 옆의 침대에 누워서 누나의 뺨에 혈색이 
돌아오는 걸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어요. 우리들도 모두 기뻐서 미소를 지었지요. 
그런데 차츰 소년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미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답니다. 그 아
이는 의사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요.
 '이제 난 금방 죽게 되나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소년은 의사 선생님의 말을 오해했던 것이지요. 약간의 
수혈만 필요한데도 자기 몸 속의 피를 전부 누나에게 줘야 한다고 잘못 이해했
던 겁니다. 아이는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누나를 살리기로 결심한 것이지요.
"
 그러고 나서 그녀는 덧붙였다.
 "그래요. 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가를 배웠어요. 나에게 그런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죠."
 댄 밀맨 

 작은 관심
 누구나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 대학을 가고 학위를 따야만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다. 
학식 있고 머리
가 좋아야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할 줄 아는 가슴만 있으면 된
다. 영혼은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것은 진실이니까.
 마틴 루터 킹 2세
 마크는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서 가던 한 학생
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걸 목격했다. 그 바람에 그 친구가 들고 있던 물건들
이 길바닥에 흩어졌다. 책과 두 벌의 스웨터, 야구 글로브와 방망이, 작은 카세
트 녹음기 등이 바닥에 떨어졌다.
 마크는 얼른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그 친구가 물건들을 줍는 걸 도와 주었다. 
마침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기 때문에 마크는 그 친구의 짐을 나눠 들었다. 
함께 걸어가면서 마크는 친구의 이름이 빌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빌이 비디
오 게임과 야구와 역사 과목을 좋아하며, 다른 과목들은 점수가 형편없다는 것
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여자 친구와 헤어져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먼저 빌의 집에 들렀다. 빌은 마크에게 음료수를 대접하고, 둘이 함
께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오후 시
간을 즐겁게 보낸 뒤, 마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 그들은 학교에서 곧잘 마주쳤다. 둘은 이따금 점심을 함께 먹으며 얘길 
나누기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두 사람은 우연히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 후에도 몇 차례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다.
 마침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었다. 졸업을 한 달 앞둔 어느날 빌이 마
크의 교실로 찾아왔다. 빌은 여러 해 전 그들이 처음 만났던 때를 상기시키면서 
마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날 내가 왜 그 많은 물건들을 집으로 갖고 갔는지 넌 궁금하지 않았니? 
그때 난 학교 사물함에 있는 내 물건들을 전부 갖고 갔던 거야. 내 잡동사니들
을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 두고 싶지 않았거든. 난 어머니가 복용하는 수면제를 
훔쳐 한움큼 모아 놓았었고,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 자살을 할 결심이었어. 그런
데 너와 함께 웃고 대화하는 사이에 생각이 달라졌어. 만일 자살을 했다면 이런 
소중한 순간을 갖지 못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다른 순간들을 갖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 마크, 그날 네가 길바닥에 떨어진 내 책들을 주 워 주었을 때 넌 
정말 큰 일을 한 거야. 넌 내 생명을 구했어."
 존 웨이 쉴레터

 미소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세요. 당신의 아내에게, 당신의 남편에게, 당신의 아이들
에게, 서로에게 미소를 지으세요. 그가 누구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미소는 
당신에게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사랑을 갖게 해 줍니다.
 마더 테레사

 어린왕자를 쓴 프랑스의 작가 생떽쥐베리에 대해선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그 
책은 아이들을 위한 작품일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는 
동화이다. 하지만 생떽쥐베리가 쓴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산문과 중단편 소설들
은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생떽쥐베리는 나치 독일에 대항해서 싸운 전투기 조종사였으며, 전투 참가중
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스
페인 내란에 참여해 파시스트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 생떽쥐베리는 그때의 체험
을 바탕으로 <미소>라는 제목의 아름다운 단편소설을 썼다. 오늘 내가 들려 주
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 소설의 내용이다. 이것이 실제 자신의 체험을 바탕
으로 한 것인지 허구의 이야기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작가 자
신의 진실한 체험일 것이라고 믿는다.
 <미소>에서 생떽쥐베리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전투중에 적에게 포
로가 되어 감방에 갇힌 적이 있었다. 간수들의 경멸어린 시선과 거친 태도로 보
아 그가 다음 날 처형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소설의 내용을 
여기에 기억나는 대로 옮겨 보겠다.

 나는 죽으리라는 것이 확실했다. 나는 극도로 신경이 곤두섰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담배를 찾아 호주머니를 뒤졌
다. 몸 수색 때 발각되지 않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다행히 한 
개비를 발견했다. 나는 손이 떨려서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는 데도 힘이 들었다. 
하지만 성냥이 없었다. 그들이 모두 빼앗아 가 버린 것이다.
 나는 창살 사이로 간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 눈과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
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자와 누가 눈을 마주치려고 하겠는가. 나는 그를 
불러서 물었다.
 "혹시 불이 있으면 좀 빌려 주겠소?"
 간수는 나를 쳐다보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기 위해 
걸어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성냥을 켜는 순간 무심결에 그의 시선이 내 시선과 마주쳤
다. 바로 그순간 나는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신경
이 곤두서서 그랬을 수도 있고, 어쩌면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까 어색
함을 피하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난 그 상황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의 가슴 속에, 우리들 두 인간 영혼 속에, 하나의 불꽃
이 점화되었다. 물론 나는 그가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
의 미소는 창살을 넘어가 그의 입술에도 미소가 피어나게 했다. 그는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고 나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그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그가 단순히 한 명의 간수가 아니라 살아 있
는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새로
운 차원이 깃들여 있었다.
 문득 그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에게도 자식이 있소?"
 "그럼요, 있구말구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얼른 지갑을 꺼내 허둥지둥 나의 가족사진을 보여 주
었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아이들 사진을 꺼내 보여 주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자식들에 대한 희망 등을 이야기했다. 
 내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다시는 내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될까 봐 난 두려
웠다. 난 그것을 간수에게 고백했다. 내 자식들이 성장해 가는 걸 지켜볼 수 없
는 것이 무엇보다 슬프다고. 이윽고 그의 눈에도 눈물이 어른거렸다. 
 갑자기 간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일어나더니 감옥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나
를 조용히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소리 없
이 감옥을 빠져나가 뒷길로 해서 마을 밖까지 나를 안내했다. 마을 끝에 이르러 
그는 나를 풀어 주었다. 그런 다음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뒤돌아서서 마을로 
걸어갔다. 그렇게 해서 한 번의 미소가 내 목숨을 구해 주었다.

 그렇다. 미소는 사람 사이에 꾸밈 없고 자연스런 관계를 맺어 준다. 나는 강연
을 할 때마다 청중들에게 생떽쥐베리의 이 이야기를 들려 주곤 한다. 우리가 비
록 자기 주위에 온갖 보호막을 둘러친 채로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누구나 그 
밑바닥 깊은 곳에는 진정한 인간이 살아 숨쉰다고 난 믿기 때문이다. 나는 감히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르고 싶다.
 당신의 영혼과 내 영혼이 서로를 알아본다면 우리는 결코 적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서로를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두려워할 수가 없다. 생떽쥐베리의 
<미소>는 두 영혼이 서로를 알아보는 기적의 순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끔씩 그런 순간들을 경험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한 예이다. 사랑을 하는 순간 우리는 모든 가식적인 껍질을 깨고 서로의 
영혼과 연결된다. 갓난아기를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기를 볼 때 우리는 
왜 미소를 짓는가? 아마도 그것은 아무런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지 않은 한 인
간을 우리가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며, 아무런 속임수 없이 순진무구함 그 자체
로 우리에게 미소를 짓는 한 인간을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 우리 안
에 있는 아기의 영혼이 그것을 알아보고 환하게 미소짓는 것이다. 
 하녹 맥카티

 발렌타인 데이에 생긴 일
 래리와 조 앤은 평범한 부부였다. 그들은 평범한 도시의 평범한 집에서 살았
다. 다른 평범한 부부들처럼 그들도 남에게 빚 안 지고 살고, 자식들을 잘 키우
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다.
 그들은 다른 면에 있어서도 평범한 부부였다. 그들도 여느 부부들처럼 가끔씩 
말다툼을 벌였다. 결혼한 걸 후회한다거나 속아서 살아왔다는 둥 언쟁을 벌이고, 
서로의 감정을 해치며 잘잘못을 따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우 특별한 사건이 그들 부부에게 일어났다. 남편 래리가 조 
앤에게 불쑥 말하는 것이었다. 
 "조 앤, 난 마술의 서랍장을 갖고 있어. 내가 서랍을 열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 안에 깨끗한 양말과 속옷들이 차곡차곡 챙겨져 있거든."
 그러면서 래리는 조 앤에게 말했다.
 "나와 함께 사는 동안 당신이 하루도 변함 없이 내 양말과 속옷들을 챙겨 줘
서 정말 고마워."
 조 앤은 안경 너머로 남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물
었다.
 "원하는 게 뭐죠, 래리?"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난 다만 우리 집에 있는 마술 서랍장에 대해 당신에
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뿐이야."
 래리가 엉뚱한 말을 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으므로 조 앤은 금방 그 사
건을 잊었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래리가 또 말했다.
 "조 앤, 이번 달에 지불할 가계수표를 작성하느라 수고가 많았어. 열여섯 장
이나 되는 것들 중에서 열다섯 장을 틀리지 않고 적었으니, 정말 기록적이야."
 조 앤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어서 바느질을 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래리를 
쳐다보았다.
 "래리, 당신은 내가 맨날 수표 번호를 잘못 적는다고 불평을 해왔잖아요. 그
런데 이제 칭찬을 하기로 마음을 바꾼 이유가 뭐죠?"
 래리가 말했다.
 "이유는 없어. 다만 당신이 노력해 주는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뿐
이야."
 조 앤은 머리를 흔들면서 다시 바느질감으로 옮겨 갔다. 그러고는 혼자서 중
얼거렸다.
 '도대체 저이가 무슨 마음을 먹은 걸까?'
 어쨌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조 앤은 식료품 가게에 가계수표를 지불하면서 
자기가 적은 수표번호가 틀리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그녀는 
혼자서 생각했다.
 '내가 왜 갑자기 이런 수표 번호 따위에 신경을 쓰게 됐지?'
 조 앤은 그 사건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래리의 이상한 행동은 갈수록 
강도가 심해졌다. 하루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래리가 말했다.
 "조 앤, 저녁을 정말 맛있게 먹었어. 당신의 모든 수고에 대해 정말로 고맙게 
생각해. 지난 15년 동안 당신은 나와 아이들을 위해 최소한 1만 4천 번의 식사
를 차려 주었어."
 래리는 또 이렇게 말했다.
 "조 앤, 집안이 정말 깨끗해. 이렇게 하느라고 당신은 쉬지 않고 쓸고 닦아야 
할 거야."
 또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었다.
 "고마워, 조 앤. 내 곁에 있어 줘서. 난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아."
 조 앤은 마음 속으로 의심이 더해 갔다.
 '정말로 날 칭찬하는 건가, 아니면 조롱하는 건가?'
 자신의 남편에게 뭔가 특이한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은 열여
섯 살 먹은 딸 셀리의 말을 듣고서 더욱 확실해졌다.
 "아빠가 머리가 이상해졌나 봐, 엄마. 자꾸만 나한테 멋있다고 그래. 이런 지
저분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멋있어 보인다는 거야. 옛
날의 아빠가 아니야, 엄마.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뭐가 잘못됐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래리는 중단하지 않았다. 밤이나 낮이나 
그는 긍정적인 시각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몇 주일이 지나자 조 앤은 남편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많이 익숙해졌
고, 때로는 마지못해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요."
 그녀는 남편의 이상한 행동에 자신이 잘 대처하는 것에 자부심까지 갖게 되었
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것이 무너졌다. 상상도 못 할 일이 일어나서 조 앤은 머리
가 혼란스러워졌다. 래리가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좀 쉬도록 해.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그 프라이팬은 이리 주고 
어서 부엌에서 나가요."
 조 앤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입을 열어 
남편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래리. 정말 고마워요!"
 이제 조 앤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녀는 삶의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이따금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토록 많았던 우울한 순간들이 말끔히 떠나갔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난 래리의 새로운 행동방식이 더 좋아.'
 이것으로 이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조 앤이 먼저 말했다.
 "래리, 당신이 그 동안 나와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하루도 빠짐없
이 일터에 나간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
하고 있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그 후에도 래리는 자신의 행동이 그토록 극
적으로 바뀌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조 앤이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래서 그것은 인생의 여러 수수께기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 수수께기
에 대해 나는 진심으로 고맙게 여긴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조 앤이니까.
 조 앤 라센
 
 카르페 디엠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혁명적인 학교 선생 존 키팅은 용기 있는 삶을 
산 대표적인 인물이다. 로빈 윌리암스가 열연한 이 감동적인 영화에서 키팅 선
생은 전통적인 기숙 학교에 다니는 잘 길들여진 부유층 학생들, 하지만 정신적
으로는 무감각한 학생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그들의 삶을 특별한 것으로 변화
시켰다.
 키팅 선생이 지적한 대로 사춘기의 이 학생들은 벌써부터 꿈과 야망을 잃어버
린 상태였다. 그들은 부모가 만든 계획표에 따라, 기계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 각자가 의사나 변호사나 은행가가 되려는 인생 설계를 갖고 있었
지만, 그것 역시 그들의 부모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 무
미 건조하고 삭막한 친구들은 자신들의 가슴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영화의 앞 장면에서 키팅 선생은 소년들을 데리고 학교의 로비로 내려가 트로
피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는 개교 초기의 졸업생들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 사진들을 봐라."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보고 있는 이 젊은이들은 한때 너희들과 똑같은 불길을 눈동자 속
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은 폭풍과 같은 힘으로 이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신의 인생을 멋진 드라마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70년 전
의 일이다. 이제 그들은 모두 죽었고 무덤에는 데이지 꽃만 자라고 있다. 그들 
중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을 진정으로 실현했을까?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세웠던 야망을 성취했을까?"
 그러고 나서 키팅 선생은 이 부유층 아이들에게 몸을 기울이면서 이렇게 큰 
소리로 속삭였다.
 "카르페 디엠! 이 순간을 붙잡아라!"
 처음에 학생들은 이 기이한 선생을 이해할 수 없어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그가 하는 말들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차츰 
키팅 선생을 숭배하게 되었다. 그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본래 갖고 있던 희망을 되찾게 해 준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건네 줄 생일 카드를 갖고 다닌다. 그 생일 카드는 
자신의 감정의 표현이며, 살아 있음의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꺼내서 
건네 주지 못하고, 소매 속에 감추고만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학생 중에 녹스 오버스트릿이 있는데, 그는 어느 날 멋진 여
학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문제는 그 여학생이 유명한 건달의 여자 친구
라는 것이었다. 녹스는 이 아름다운 소녀에게 반해 잠을 설치지만, 그녀에게 접
근할 용기가 부족했다. 이때 녹스는 키팅 선생의 충고를 기억했다.
 "카르페 디엠! 이 순간을 붙잡아라!"
 그 순간 녹스는 언제까지나 꿈만 꾸고 있을 순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를 
원한다면 뭔가 행동으로 옮겨야만 한다는 것을. 그리고 녹스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대담하고 시적인 말투로 그는 그 여학생에게 자신의 가장 비밀스런 감정
들을 전했다. 이 과정에서 녹스는 그녀에게 퇴짜를 맞고,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 
주먹으로 얻어맞는 등 창피한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녹스는 자신의 꿈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가슴
이 원하는 것을 추구했다. 마침내 그녀는 녹스의 진실한 마음을 알게 되고, 녹스
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녹스는 특별히 잘생기거나 인기 있는 학생이 아니
었다. 하지만 진실의 힘으로 여학생을 감동시킨 것이다. 녹스는 그렇게 해서 자
신의 삶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다.
 내게도 '지금 이순간'을 붙잡는 연습을 할 기회가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우
연히 애완동물 가게에서 한 귀여운 여성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어렸으며, 나와는 매우 다른 생활 방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다지 많
은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함
께 있는 것이 좋았고, 그녀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녀 역시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녀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고 나는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기
로 결심했다.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전화기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전화를 할 것
인지 말 것인지 망설였다.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렸다가도 신호가 가기 전에 
서둘러 끊어 버리곤 했다. 
 나는 흥분된 기대와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하
는 사춘기의 학생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용기로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려는 것이냐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마음 
한구석에서 강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강해서 어떤 두려움도 나를 막
지 못했다. 마침내 나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데이트 신
청을 해 줘서 고맙긴 하지만 이미 선약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전화를 걸지 말라고 충고했던 그 목소리가 
더 창피를 당하기 전에 어서 포기하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나는 왜 내 자신이 
그녀에게 이끌리는지 알고 싶었다. 내 내면에선 많은 것들이 표현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이 여성에게 어떤 느낌을 갖고 있었으며, 그 느낌들은 당연
히 표현될 권리를 갖고 있었다.
 나는 백화점으로 가서 그녀에게 줄 예쁜 생일 카드를 샀다. 그리고 그 위에다 
시적인 글을 적었다. 그런 다음 그녀가 일하는 애완동물 가게로 갔다. 입구까지 
걸어갔을 때 아까의 그 부정적인 목소리가 또다시 내게 경고를 보냈다.
 '그녀가 널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녀가 널 거부하면 어떡
할 거야?'
 난 그만 용기를 잃고 카드를 소매 속에 감추었다. 만일 그녀가 내게 조금이
라도 관심을 보이면 그것을 주겠지만, 냉정하게 굴라치면 카드를 그냥 숨겨 가
지고 나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면 모험을 할 필요도 없고, 거부당하는 
창피를 겪지 않아도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간 나는 잠시 그녀와 얘길 나누었다. 그녀가 날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불안해진 나는 출구 쪽으
로 걸어가지 시작했다.
 내가 문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내 안에서 또 다른 목소기가 말했다. 키팅 선생
의 목소리처럼 그것은 내 귀에 속삭이면서 용기를 불어넣었다.
 '녹스 오버스트릿을 기억하라. 카르페 디엠! 이 순간을 붙잡아야 해!'
 그 순간 나는 내 마음 속의 느낌을 표현해야 한다는 영감을 받았다. 내 자신
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두려움과 과감히 맞설 수 있어야 한다는 용기가 생겨났
다.
 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내 자신의 가슴에 따라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
에게 그들의 가슴에 따라 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최악의 결과가 일어난다
고 해도 그것이 어떤 것이겠는가? 어떤 여성이라도 시적인 글이 적힌 생일 카드
를 받으면 기뻐할 것이다. 나는 이 순간을 붙잡기로 결심했다. 그런 선택을 하고 
나자 용기가 일었다.

 난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난 가슴을 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어떤 결과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울 필요가.

 나는 소매 밑에서 카드를 꺼내 들고 돌아서서 카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
고 그것을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그것을 그녀에게 건네 주는 순간, 믿을 수 없
을 만큼 강한 희열과 흥분이 내 마음 속에 밀려왔다. 거기에 두려움까지 겹쳐서. 
프리츠 펄스는 두려움이란 '숨 막히는 흥분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난 해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아는가? 그녀는 특별히 감동을 받은 것 같진 않았
다. 그녀는 단순히 고맙다고 말하고는 카드를 열어 보지도 않은 채 옆에다 내려
놓았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무도 실망스러웠고, 거부당한 기분이었
다. 대놓고 거절하는 것보다 무반응이 더 비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중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가게를 걸어나왔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
어났다. 갑자기 내 마음이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큰 만족감이 내 온 
존재를 감싸안았다. 어쨌든 나는 내 가슴을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
명 흥분된 체험이었다. 나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무대 위로 올라갔던 것이다.
 그렇다. 난 약간 서투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을 해냈다. 에머트 폭스는 말했다. 
 "떨어야만 한다면 떨면서라도 그렇게 하라!"
 난 어떤 보상이나 결과도 요구하지 않고 그녀에게 내 가슴을 열어 보였다. 꼭 
어떤 걸 받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그녀에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인간 관계에 필요한 역학 한 가지는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일.

 그것은 이윽고 마음 속의 잔잔한 기쁨으로 이어졌다. 어느 때보다도 내 자신
에 대한 성취감과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난 가슴을 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
다. 어떤 결과도 요구하지 않고 사랑을 주는 법을.
 이 체험은 그녀와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자신과의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난 그것을 해냈다. 키팅 
선생도 자랑스러웠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난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 이후로 그 여성을 많이 만나진 못했다. 하지만 그 경험은 내 삶을 크게 변
화시켰다. 그 단순한 사건을 통해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관계에 필요한 역
학, 어쩌면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데 필요한 역학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곧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우리는 자신이 사랑을 받지 못할 때 상처 입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를 상
처 입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고통은 우리가 사랑을 주지 않을 때 찾아온다. 
우리는 사랑을 주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들이다. 신은 우리를 사랑을 주는 구조
물로 만들었다.
 사랑을 줄 때 우리는 더욱 강해진다. 다른 사람이 우리 자신을 얼마만큼 사랑
해 주느냐에 행복이 달려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런 잘못된 믿음 때문에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얼마나 사
랑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 얼마만큼 사랑을 받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사랑을 
주느냐 하는 것에.
 알란 코헨
 
 빅 에드
 '강력한 경영 마인드'를 주제로 한 세미나의 연사로 초청을 받아 어떤 도시
에 갔을 때였다. 강연 전날, 세미나 주최측의 몇 사람이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
했다. 그들은 다음 날 내 강연회에 참석할 청중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했다.
 굳이 소개받지 않아도 빅 에드라는 사람이 주최측의 리더임이 틀림없었다. 이
름에 걸맞게 거인 체구에다 목소리까지 쩡쩡 울렸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는 자
신이 세계적인 어느 대기업의 분쟁 해결 담당자라고 소개했다. 그가 하는 일은 
그룹 계열사에서 일어나는 각종 분쟁을 해결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서 자리를 바
꾸는 일이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조 배튼 씨, 난 정말 내일의 강연에 큰 기대를 걸고 있소. 모든 친구들이 당
신처럼 강력한 마인드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고 난 믿
소. 당신의 강연을 듣고 나면 다른 친구들도 내 방식이 잘못된 게 아니란 걸 깨
닫게 될거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네게 윙크를 던지기까지 했다.
 난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의 강연이 그가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가 
되리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이튿날, 세미나가 진행되는 동안 빅 에드는 무감동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내게 인사도 없이 떠나 버렸다.
 그로부터 3년 뒤, 나는 똑같은 도시로 비슷한 내용의 세미나 연사로 재초청을 
받았다. 청중들도 대부분 옛날의 그 사람들이었다. 빅 에드도 다시 만날 수 있었
다. 세미나가 시작되고 오전 10시쯤 됐을 때, 갑자기 빅 에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조 배튼 씨.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내 얘길 잠깐 해도 되겠습니까?"
 난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입니다. 당신 같은 거인이라면 어제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지요."
 빅 에드는 청중을 향해 말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또 몇 사람은 내게 일어난 
일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 여러분 모두에게 나의 경험담을 들려 주
고 싶습니다. 내 얘길 듣고 나면 조 배튼 씨도 좋아할 겁니다."
 3년 전 이 자리에서 배튼 씨는 우리들 각자가 진정으로 강한 마인드를 갖기 
위해선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
했습니다. 난 그때 그런 얘기 따윈 감상적인 친구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
니다. 그런 것이 강력한 경영 마인드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반발심까지 일
었습니다. 배튼 씨는 강한 것에는 가죽과 같은 강함과 화강암과 같은 강함이 있
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강한 마음은 가죽처럼 탄력적이고, 참을성 있
고, 자기 훈련이 된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난 사랑이 그런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해할 수 없더군요.
 그날 밤 거실에서 아내와 함께 마주 앉아 있는데 자꾸만 배튼 씨의 말이 마음
에 걸렸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 도대체 무슨 용기 따위가 
필요하단 말인가? 누구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가? 하지만 배튼 씨는 사랑한다는 
말을 침대 위에서가 아니라 밝은 대낮에 해야만 한다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난 목을 가다듬고 아내한테 사랑한단 말을 하려다가 도로 거두었습니다. 아내
가 날 쳐다보더니 방금 뭐라고 했느냐고 묻더군요. 난 얼른 얼버무렸습니다.
 '아, 아무것도 아냐.'
 그 순간 난 갑자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아내한테로 다가가, 아내가 보고 있
던 신문을 걷어 치워 버리고는 말했지요.
 '앨리스,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한 순간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가만히 있더군요. 그러더니 눈에서 눈물이 주
르륵 흘러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에드,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당신이 이런 식으로 내게 사랑을 고백
한 게 무려 25년 만이군요.'
 그날 우리 부부는 진정한 사랑이 얼마나 많은 종류의 긴장을 해소시켜 주며,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가에 대해 얘길 나눴습니다. 아내와의 대화 후에 나
는 순간적인 충동에 이끌려 뉴욕에 살고 있는 큰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린 터놓고 대화를 나눈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들이 
전화를 받자 난 불쑥 말했습니다.
 '얘야, 넌 내가 지금 술에 취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난 술 한 방울도 입데 
대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건 것은 너한테 사랑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전화기 속에선 잠시 아무 말이 없더군요. 이윽고 아들이 나자막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도 아버지가 절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직
접 들으니 정말 기분이 좋군요. 저도 아버질 얼마나 사랑하는 몰라요.'
 우린 웃음과 눈물 속에 많은 얘길 나눈 다음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난 
이어서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막내아들에게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막내아들과는 
보다 가까이 지낸 사이였지만, 난 그 아이에게도 똑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그 결
과 우린 지금까지는 전혀 불가능했던 애정 넘치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생각에 잠겨 잠자리에 누워 있는 동안, 난 그날 낮에 배튼 씨가 진정
한 기업 경영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했지만 그것들과는 별도로 내가 그 강연
을 통해 매우 중요한 걸 배웠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강한 마음 속에 
깃들인 사랑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고 연습한다면, 그것을 내 직장에서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조 배튼 씨, 그 이후 난 그런 주제를 다룬 여러 권의 책들을 읽었습니다. 훌륭
한 사람들이 쓴 귀담아들을 얘기들이 참으로 많더군요. 그 결과 난 차츰 가정에
서나 직장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 참석한 몇몇 친구들도 알다시피 난 이제 사람들과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난 전보다 더 많이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사람
들의 약점보다 장점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
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도 알게 되었구요.
 아마도 내게 찾아온 가장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신뢰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점이라고 할 수 있
겠지요.
 조 배튼 씨, 내가 이렇게 긴 얘길 늘어놓은 건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
고 싶어섭니다. 한마디 더 현실적인 변화를 말씀드리죠. 난 이제 우리 회사의 부
회장으로 승진했고, 사람들은 나를 회사의 가장 중요한 책임자로 여기고 있습니
다. 좋습니다. 여러분. 이것으로 내 얘긴 마치고, 이제 조 배튼 씨의 강연을 계속 
듣기로 합시다."
 조 배튼

 택시 운전사에게 사랑을
 뉴욕에서 지내던 어느 날 나는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탔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택시에서 내리는데, 친구가 운전사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태워줘서 고맙습니다. 정말 뛰어난 운전 솜씨를 가지셨군요. 아주 감탄했습
니다."
 택시 운전사는 잠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친구를 쳐다보다가 퉁명스럽게 물
었다.
 "당신 지금 날 비웃는 거요, 뭐요?"
 친구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전 절대로 당신을 비웃는 게 아닙니다. 이 심각한 교통 
체증 속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당신의 운전 태도에 감동을 받아서 드리는 말
씀입니다."
 그러자 운전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 그래요? 칭찬해 줘서 고맙소. 좋은 하루 되시오."
 택시가 떠난 뒤 내가 옆구릴 찌르며 물었다.
 '대체 무슨 엉뚱한 짓을 하는 거야?"
 그가 대답했다.
 "난 뉴욕에 사랑을 되찾아 주고 싶어. 이 도시를 구원할 수 있는길은 그것뿐
이라고 믿거든."
 난 어이가 없어 말했다.
 "어떻게 자네 혼자서 뉴욕을 구원하겠단 거야?"
 그러자 친구가 설명했다.
 "나 혼자가 아냐. 난 방금 저 택시 운전사를 기분 좋게 해줬어. 그가 하루에 
스무 명의 승객을 태운다고 생각해 봐. 그는 누군가 자기를 칭찬해 주었으니까 
스무 명의 승객들한테도 기분 좋게 해줄 거야. 이번에는 그 승객들이 자기회사 
직원이나 상점주인, 혹은 식당 종업원이나 집 식구들에게 친절을 베풀겠지. 결국
에 가면 적어도 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그 따뜻함이 전파될 거야. 어때 별로 
나쁘지 않지?"
 "하지만 저 택시 운전사가 자네의 친절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시키리라는 
걸 어떻게 
 믿지?"
 친구가 말했다.
 "난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아. 무슨 일에나 약간의 실패는 따르게 마련이니
까. 그래서 난 오늘 열 명의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 거야. 그 중에 
세 명 정도가 나 때문에 행복해져도 결국 나는 간접적으로 3천 명의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는 셈이 되거든."
 난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논리적으론 그럴 듯하지만, 실제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 의심이 가는군."
 친구가 말했다.
 "안 일어난다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 저 사람에게 운전 솜씨를 칭찬해 
준다고 해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것도 아니구 말야. 그에게 많든 적든 팁을 
준 것도 아니야. 들은 체도 안한다고 해도 뭐 어때? 내일이면 난 또 다른 택시 
운전사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시도할 텐데."
 "자넨 정말 괴짜군."
 "그 말은 자네가 얼마나 부정적이 되었는가를 보여 줄 뿐이야. 난 이 일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를 해 봤어. 자네도 알다시피 미국에선 우체국 직원들이 불
친절한 것으로 소문이 나있어. 우체국 직원들에게 부족한 것은 그들이 받는 월
급의 액수만이 아니라 아무도 우체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일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지 않는다는 거야."
 "하지만 미국의 우체국 직원들이 정말로 일을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아무도 그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기 때
문이야. 왜 누군가 그들에게 친절한 말을 해주면 안 되지?"
 그 무렵 우리는 건물을 짓고 있는 공사장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다섯 명의 
인부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친구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에게 말했다.
 "대단한 일들을 하고 계시는군요. 이건 정말이지 힘들고 위험한 일임에 틀림
없어요."
 인부들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내 친구를 쳐다보았다. 친구가 그들에게 물었다. 
 "건물이 언제 완성되죠?"
 한 인부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6월."
 친구는 신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래요? 정말 인상적인 건물이군요. 당신들 모두 대단히 자랑스럽겠어
요."
 우린 곧 그 자리를 떠났다. 내가 친구에게 물었다.
 "난 영화 (라만차에서 온 남자)의 주인공을 본 이후에 자네같은 친구는 처음
이야."
 친구가 말했다.
 "저 인부들이 내 말을 천천히 생각해 보면 기분이 한결 좋아질 거야. 그들이 
행복해하면 그만큼 이 도시는 살기 좋은 곳이 될 테고."
 난 친구에게 대들 듯이 말했다.
 "하지만 자네 혼자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이렇게 하는 건 자네 혼자뿐
이잖아."
 친구가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용기를 잃지 않는 일이야. 이 도시의 사람들을 다시 친절하
게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이 일에 뜻을 함께 하는 친구를 
한 사람만 끌어들일 수 있어도 한결 쉬워지지. 안 그런가?"
 그때 내가 물었다.
 "자넨 방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여성에게 윙크를 보내는군 그래."
 친구가 대답했다.
 "나도 알아. 하지만 만일 저 여성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그 반의 학생들에겐 
오늘 하루가 환성적인 날이 되지 않겠어?" 
 아트 버크왈드

 에이미 그레이험
 워싱턴 D. C. 에서 밤새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콜로
라도 주 덴버에 있는 마일 하이 교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세 차례의 강연회와 
자기 개발에 관한 세미나를 갖기로 되어 있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자 프레드 
벅트 박사가 다가와 물었다.
 "마크 한센 선생님, 혹시 '소원을 이루어 주는 단체'에 대해 알고 계십니
까?"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벅트 박사가 말했다.
 "에이미 그레이험이라는 소녀가 있는데, 백혈병 말기 환자로 살아날 가망이 
없답니다. 그 단체에서 이 소녀에게 사흘간의 자유 시간을 갖도록 주선했습니다. 
그런데 소녀의 마지막 소원이 당신의 강연회에 참석하는 일이라는군요."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론 감격스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이해
가 가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아이라면 당연히 디르니랜드엘 가고 싶어하거나 
여화 배우 실베스타 스탤론이나 아놀드 슈왈츠네네거 같은 스타들을 만나고 싶
어할 터였다. 인생에서 마지막 남은 소중한 몇 시간을 마크 빅터 한센의 얘길 
듣는 것으로 낭비하고 싶어할 아이는 분명히 없었다. 살 날이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소녀가 무엇 때문에 자기 개발 연사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겠는가? 따라서 
난 벅트 박사가 하는 말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벅트 박사가 한 소녀를 내 앞에 데려왔
다. 박사는 소녀의 연약한 손을 내 손에 쥐어 주면서 말했다. 
 "이 소녀가 바로 에이미 그레이험입니다."
 내 앞에는 밝은 오렌지색 터번을 머리에 감은 18세 소녀가 서 있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방사능 요법과 화학 치료로 인해 머리가 다 빠졌기 때문에 터번을 
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소녀의 허약한 몸은 쓰러질 듯 앞으로 굽어 있었으며, 말
할 수 없이 기운이 없어 보였다.
 에이미는 내게 말했다. 
 "저의 두 가지 목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과 선생님의 강연회에 참석하
는 일이었어요. 의사들은 제가 둘 다를 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어요. 제게 그럴 
만한 기운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전 부모님의 부축을 받으며 이곳까
지 왔어요. 이분들이 저의 엄마와 아빠세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렸다. 난 그만 목이 메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한 소녀가 날 감동시킨 것이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에이미에게 말했다.
 "너와 너의 부모님은 모두 나의 손님들이다. 이렇게 와 줘서 정말 고맙다."
 우리는서로 포옹을 하고, 손수건으로 눈 주위를 두드리면서 헤어졌다. 나는 그 
동안 미국과 캐나다, 말레이지사, 뉴질랜드, 호주 등지에서 열린 수많은 치료 세
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뛰어난 치료사들의 작업을 직접 목격한 적도 있으
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연구 조사하고 탐구해 왔다.
 그날 일요일 오후, 세미나에 에이미와 그녀의 부모가 참석했다. 배움과 성장을 
통해 진정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1천명이 넘는청중들이 교회를 꽉 메웠다.
 나는 그 청중에게 진지하게 질문했다. 혹시, 생명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영적 치료를 시도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내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청중들
의손이 일제히 올라갔다. 모두가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청중에게 두 손바닥을 힘껏 비벼서 5센티미터 정도 떨어지게 한 다음 생
명의 기를 
느끼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다음엔 두 사람씩 짝을 지어서 서로에게 생명의 
기를 전달하고 또 그것을 느끼게 했다.
 나는 연단에서 말했다.
 "병을 치료받길 원하는 사람은 바로 이 순간 다른 사람들로부터 생명의 기를 
전달받으십시오."
 청중들은 생명의 기운 속에서 일체감이 되었다. 그것은 실로 환희의 느낌이었
다. 나는 모든 사람이 몸 속에 기를 갖고 있고, 기 치료 능력을 갖고 있다고 설
명했다. 우리들 가운데 5퍼센트는 그 기를 손바닥을 통해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으며, 노력하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
 나는 마침내 청주에게 말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저는 에이미 그레이험이라는 18세의 소녀를 소개받았습
니다. 에이미는 백혈병에 걸려 살 날이 며칠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지
막 소원이 이 세미나에 참석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단상 위에 에이미
를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모두가 에이미에게 기를 보내 병이 치
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가 도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에이미는 
제게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전 다만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
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제 스스로 여러분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청중들은 일제히 합창을 했다.
 "좋아요. 찬성입니다. 어서 그렇게 하세요."
 에이미의 부친이 에이미를 단상위로 데리고 왔다. 에이미는 지나친 화학요법
과 병상생활, 그리고 절대적인 운동부족 때문에 몸이 허약할대로 허약해져 있었
다. 의사들은 그녀가 이 세미나에 오기 전 2주일동안 한 발짝도 걸어다니지 못
하게 했다.
 나는 청중들에게 손바닥을 문지른 다음 에이미에게 치료의 기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청중들은 두 팔을 들어올려 순수한 마음으로 에이미에게 기를 보내기 
시작했다. 에이미는 단상에 선 채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기를 보내는 의식이 
끝나자 청중들은 에이미에게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로부터 2주일 뒤, 에이미가 내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다. 담당의사가 그
녀를 병원에서 퇴원시켰다는 것이었다.
 2년뒤 에이미는 다시 내게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결혼소식을 알렸다.
 나는 에이미 그레이험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생명의 기를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선한 목적에 쓰여지기 위해서 언제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단지 그것의 존재를 깨닫고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마크 빅터 한센
 @ff
 난 당신을 알아요
 우리와 가까운 친구중에 스탄 데일이라는 사람이 있다. 스탄은 사랑에 대한 
세미나를 자주 열며, 성과 사랑을 주제로 한 인간관계 분야의 뛰어난 연사이다. 
몇 해 전, 스탄은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아보기 위해 스물아홉 명의 미국
인을 인솔하고 2주동안 러시아를 방문했다. 당시는 미국인이 러시아를 여행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스탄은 여행이 끝난 뒤 자신의 경험담을 어느 잡지에 발표
했다. 우리 모두는 그가 전하는 이야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여기에 그 경험담
을 옮겨 싣는다.

 카르코프의 공업 도시에 있는 공원을 산책하던 중에 나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가한 적이 있는 늙은 러시아 참전용사를 만났다. 그들은 아직도 옷깃에 훈장
과 메달을 자랑스럽게 매달고 있었기 때문에 참전용사라는 걸 쉽게 식별할 수 
있었다. 그들의 그런 행동을 유치하다고 판단해 버릴 순 없다. 그것은 조국 러시
아를 구하는 데 공헌을 세운 사람들에게 그들의 조국이 존경심을 표시한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나치 독일군에 의해서 무려 2천만명의 러시아인이 학살당한 것
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늙은 아내와 함께 벤치에 앉아 있는 그 노인에게로 다가가 난 다정하게 인사
를 건넸다.
 "드루즈바, 에미르!"
 그것은 '우정과 평화'라는 뜻의 러시아어였다. 그러자 러시아인 노인은 믿
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며 내가 내미는 뺏지를 받아들었다. 뺏지는 우리
가 이번 방문을 위해 특별히 제작해 간 것으로, 서로 맞잡은 두 손에 미국 지도
와 러시아 지도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러시아어로 '우정'이란 단어가 적혀 
있었다.
 노인은 뺏지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놀란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아메리칸스키?"
 내가 대답했다.
 "다, 아메리칸스키. 드루즈바, 에미르!"
 그러자 노인은 마치 우리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형제이기나 한 듯이 덥석 
내 손을 부둥켜 잡았다. 그리고는 또다시 외쳤다.
 "아메리칸스키!"
 이번에는 그의 목소리에 애정과 반가움이 가득 깃들여 있었다. 노인과 그의 
아내는 러시아어로 내게 말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모든 말을 알아
들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들이 다 이해하리라 믿고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린 서로의 언어로 몇 분 동안이나 얘길 나눴다. 그러나 사실
은 어땠는지 아는가? 우린 양쪽 다 상대방의 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
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언어의 소
통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린 껴안고, 웃고, 눈물을 흘리고, 그러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드루즈바, 에미르, 아메리칸스키!"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당신들의 나라에 온 것이 자랑스러워요. 우린 전쟁을 
원치 않아요. 난 당신들을 사랑해요!"
 마침내 5분에 걸쳐 우린 서로 작별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우리 
일행들과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15분쯤 뒤, 우리가 꽤 먼 거리까지 걸어갔을 
때 아까 공원에서 만난 그 늙은 참전용사가 우릴 쫓아왔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나를 불러 세우더니 자신의 앞가슴에 달고 있던 레닌 훈장을 떼어 내 웃옷 가슴
에 달아 주었다. 그것은 그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소중한 재산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내게 선물한 것이다.
 그런 다음 노인은 내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내가 여태껏 경험한 적이 없는 가
장 부드럽고 따뜻한 포옹의 손길로 나를 껴안았다. 우리 둘 다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우린 아주 오랫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본 다음에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
다. 
 "도스베다니야(잘 가시오)!"
 이 일화는 우리가 '시민사절단'으로 러시아를 여행하는 동안 일어난 숱한 
감동적인 일들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날마다 우리는 공식적인 자리든 비공식
적인 자리든 온갖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감동에 찬 포옹을 
했다. 한번 만나기만 하면 서로에 대한 편견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게 느껴졌다.
 우린 세 곳의 학교를 방문했다. 그래서 그곳에 다니는 수천명의 학생들은 이
제 우리가 그들에게 핵공격을 퍼부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는 다양한 연령측의 아이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게임을 즐겼다. 그런 다음 
서로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선물을 교환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꽃과 과자, 기
념 뺏지, 자신들이 그린 그림, 인형 등을 선물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선
물은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열어 보인 따뜻한 가슴이었다.
 우리는 두세 차례나 결혼식 파티에 초대되었다. 혈연 관계에 있는 어떤 가족
보다도 우리가 더 따뜻하고 정성어린 대접을 받았다. 우린 신랑 신부뿐만 아니
라 그들의 부모, 가족 전체와 포옹을 하고, 키스를 나누고, 함께 춤을 추면서 샴
페인과 보드카를 마셨다.
 쿨스크에서는 일곱 가구의 러시아 가정이 자발적으로 우리를 초대해 훌륭한 
저녁식사와 음료수를 대접했다. 4시간이 넘도록 얘길 나눴지만 누구도 헤어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이제 완전히 러시아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다음날 밤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가족'을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로 초대했
다. 자정이 넘을 무렵까지 악대는 음악을 연주했으며, 우린 또다시 먹고 마시고 
춤추고 얘길 나눴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하면서는 모두가 눈물을 쏟았다. 우린 
실제로 온갖 종류의 춤을 추었다. 마치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연인들 같았으며, 
사실이 또한 그러했다. 
 우리가 경험한 감동적인 사건들은 이밖에도 끝없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설
명해도 우리가 받은 실제적인 감동을 당신에게 다 전달하긴 어려울 것이다. 당
신이 모스코바의 호텔에 도착했는데 미하일 고르바초프로부터 주말에 당신을 만
나고자 했는데 일이 생겨 지방으로 출장을 가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게 도어 미
안하다는 쪽지와 함께, 그대신 러시아의 정부 관리들과 두 시간 동안 토론할 
기회를 마련했다고 전하는 전화메모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우
린 그들을 만나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대단히 솔직하게 대화를 나눴다. 심지어 
섹스에 대한 것까지 토론을 주고 받았다.
 바부슈카(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스카프)를 쓴 열 명 남짓한 나이든 여성들이 
아파트 계단을 내려와 당신을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춘다면 당신의 기분이 어떻겠
는가? 마침내 러시아를 떠날 때 우리들 서른 명은 모두가 눈물을 쏟아야만 했
다. 이 멋진 두 여성과 우리 모두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빠지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그런 경우라면 당신은 기분이 어떻겠는가? 아마도 
우리와 똑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들 각자가 자신만의 독특한 체험을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낀 한 가지 사실은 이것이다. 우리가 이 지구별에서 평화를 유지
하는 유일한 길은 전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을 '우리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서로를 껴안고, 입을 맞추는 일이다. 그리고 함께 앉아 얘길 나누고, 함
께 걷고,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모든 인간이 진정으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린 서로를 너무도 완벽하게 보완해 주고 있는 존재들이며, 
서로가 없으면 그만큼 가난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난 당신을 알아요. 당신은 나와 똑같은, 한 사람의 인간이에요!"
 이 말은 곧 이런 뜻이다.
 "당신은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예요. 어떤 일이 있어도 난 당신 곁에 있을 거
예요."
 스탄 데일 

 껴안는 판사
 리 사피로는 판사직에서 정년퇴직을 했다. 그는 또한 우리가 아는 가장 인정 
많은 사람이다. 판사 시절에 리 사피로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강한 힘이라는 사
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결과 리 사피로는 껴안는 판사가 되었다.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포옹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동료 판사들은 그에게 '교수형 내리는 판사(Hanging Judge)'대신 '
껴안는 판사(Hugging Judge)'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그는 자동차 범퍼에도 
다음과 같은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날 들이박지 말고, 날 껴안아 줘요!"
 여섯 해 전에 리 사피로는 특별한 작은 상자 하나를 만들었다. 상자 안에는 
서른 장의 하트 모양의 붉은색 스티커가 들어 있었다. 리 사피로는 이것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과 껴안을 때마다 하트 모양의 스티커를 한 장씩 옷깃에 붙여 
주었다.
 리 사피로는 이 일로 매우 유명해졌기 때문에 곧잘 세미나와 문화 센터의 특
별 강좌에 초대받았다. 그곳에서도 그는 조건 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정열을 바쳤다. 한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그 지역 뉴스 매체가 
리 사피로에게 도전장을 냈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말했다.
 "스스로 자청해서 문화 강좌나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을 껴안기란 쉬운 일
이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오."
 그들은 리 사피로에게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뽑아 
껴안아 보라고 요구했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뒤따르는 상황에서 리 사피로는 거
리로 나갔다. 맨 먼저 그는 앞에서 걸어오는 한 낯선 여성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시오. 난 껴안는 판사 리 사피로라고 합니다. 당신을 한번 껴안고 싶
소. 그리고 하트 스티커를 드리겠소."
 여성은 선뜻 받아들였다.
 "좋아요."
 방송 해설자가 놀라서 말했다.
 "너무 쉽군요."
 리 사피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 주차 위반을 단속하는 여성 경찰관이 
딱지를 받은 BMW 운전자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었다. 리 사피로는 그곳으
로 걸어갔다. 카메라가 드 뒤를 따랐다.
 리 사피로는 여경관에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당신도 껴안을 줄 아는 사람이오. 난 껴안는 판사인데 당신을 
한번 껴안고 싶소."
 여경관도 미소를 지으며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텔레비전 해설자는 마지막 요구를 했다.
 "저길 보시오. 버스 한 대가 오고 있소. 샌프란시스코 버스 운전사들은 이 도
시에서 가장 거칠고 심술궂고 성질이 고약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소. 당신이 저 
운전사를 껴안을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봅시다."
 리 사피로는 도전을 받아들였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자 다가가서 말했다.
 "안녕하시오. 난 리 사피로란 사람이오. 다들 껴안는 판사라고 부르지요. 당
신의 직업은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일 거요. 난 오
늘 사람들의 마음의 짐을 약간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 껴안는 일을 하고 있소. 
당신도 나와 한번 껴안아 보겠소?"
 키가 185센티미터에다가 체중이 1백 킬로그램이 넘는 그 운전사는 성큼 운전
석에서 내려오더니 리 사피로에게 말했다. 
 "못 할 거 없지요."
 리 사피로는 그를 껴안은 다음 그의 옷깃에도 하트 스티커 하나를 붙여 주었
다. 그러고는 떠나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방송국 직원들은 할 말을 잃
었다. 마침내 해설자가 말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친구인 낸시 존스턴이 리 사피로를 찾아왔다. 낸시는 삐에로 역을 하
는 직업적인 연극배우였다. 그날도 그녀는 삐에로 의상에다 분장까지 하고서 나
타났다.
 "리, 당신의 그 하트 스티커 상자를 들고 빨리 나와요. 신체 장애자들을 위한 
집으로 나와 함께 갑시다."
 신체 장애자 회관에 도착한 두 사람은 풍선 모자와 하트 스티커를 나눠 주면
서 환자들과 한 사람씩 포옹을 했다. 하지만 리 사피로는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까지 그는 한번도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나 극도의 정신박약아, 전신 
마비 환자들과 포옹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무척 긴장되는 일이었다. 그러
나 차츰 익숙해진 낸시와 리 사피로는 여러 명의 의사와 간호사, 보조수들을 수
행하고 병동에서 병동으로 옮겨 가며 환자들과 계속해서 껴안았다.
 두세 시간쯤 지나 그들은 마지막 병동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리 사피로가 
평생 동안 봐 온 환자들 중에 가장 최악의 환자들 34명이 수용되어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아서 리 사피로는 그들을 껴안을 마음이 사라졌
다. 그러나 사랑을 나눈다는 열의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리 사피로와 낸시는 의
료진들을 데리고 방 안을 돌며 한 사람씩 껴안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환자가 
옷깃에 하트 스티커를 붙이고 머리엔 풍선 모자를 썼다.
 마침내 리 사피로는 그 병동의 마지막 환자인 레오나드에게 다가갔다. 레오나
드는 침을 너무 많이 흘려서 커다란 턱받이를 하고 있었다. 리 사피로는 침이 
뚝뚝 떨어지는 레오나드를 바라보고 나서 낸시에게 말했다.
 "그만 갑시다, 낸시. 우린 아무리 해도 이 친구를 껴안을 수 없을 거 같소."
 낸시가 말했다.
 "어서 와요, 리. 저 친구도 사람이긴 마찬가지예요. 안 그래요, 리?"
 낸시는 재미있게 생긴 풍선 모자를 레오나드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리 사피로
는 붉은색 하트 스티커 한 장을 꺼내 레오나드의 턱받이에 붙여 주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에 몸을 기울여 레오나드를 껴안았다.
 갑자기 레오나드가 끽끽거리며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어어어어어! 어어어어어!"
 그러자 실내에 있던 환자들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물건들을 두드리기 시작했
다. 리 사피로는 영문을 몰라 의료진을 돌아 보았다. 그런데 의사와 간호사, 보
조수 모두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리 사피로가 수간호사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리 사피로는 수간호사가 해 준 말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레오나드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은 23년 만에 이번이 처음입니다."
 다름 사람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 준다는 것은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여기선 그것이 불가능하다구요?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하루에 네 번의 포옹이 필요하다. 계속 살아가기 위
해선 하루에 여덟 번의 포옹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장을 위해선 열두 번의 포옹
이 필요하다.
 버지니아 스테어

 우리는 우리가 여는 워크샵이나 세미나에서 사람들에게 늘 서로 껴안을 것을 
가르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하는 직장에서 서로를 껴안을 순 없잖아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여기 우리의 세미나에 참석했던 사람들로부터 
온 편지가 있다.

 잭 캔필드 선생님.
 난 오늘 약간 우울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인 로잘린드
가 다가오더니 사람들을 껴안아주고 있느냐고 묻더군요. 난 가뜩이나 우울한데 
그런 충고를 들으니 더 죽을 맛이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당신이 우리들에
게 나눠 준(세미나의 내용을 실천하는 법)이란 소책자를 가끔 읽어 보긴 했었지
요. 하지만 그때마다 일터에서 사람들과 포옹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상상이 안 
돼 용기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난 문득 오늘을 '껴안는 날'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 
카운터로 물건 계산을 하러 오는 손님들마다 한 번씩 껴안아 주기 시작했습니
다. 사람들이 얼마나 기분 좋아하는지 내 자신이 놀랄 정도였어요. 한 대학생은 
카운터 위로 뛰어올라와 춤까지 추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가다가 말고 
되돌아와 다시 한 번 껴안자고 청하기도 했습니다. 복사기 회사의 두 직원은 서
로에게 무관심한 채로 물건을 사러 왔다가 내 카운터를 통과한 다음에는 갑자기 
서로 웃으며 즐거운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난 하루 종일 그 동네 사람 모두를 껴안은 기분이 들었으며, 오늘 아침 무엇 
때문에 내 기분이 우울했는지 몰라도 신체적인 고통을 포함해 모든 우울증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편지가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너무 흥분이 되어서요.
 더욱 굉장했던 것은 내 카운터 앞에서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서로
를 껴안았던 일입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파멜라 로저스로부터 

 추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37가에서 만난 한 경찰관을 껴안아 주었습니
다. 그러자 그가 말하더군요. "와우! 아무도 경찰관을 껴안아 주지 않는데! 혹시 
내가 돌아서면 나한테 깡통 같은 걸 집어던지려는 건 아니겠죠?"

 또 다른 세미나 참석자도 다음과 같이 포옹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보내 주
었다.

 포옹은 건강한 것이다. 포옹은 신체의 면역 체계에 도움을 주고, 당신의 건강
을 지켜 주며, 우울증을 치료해 준다. 스트레스를 줄여 주며, 잠잘 때 숙면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생의 활기를 북돋아 준다. 또한 젊음을 회복해 준다. 불쾌한 부
작용이 전혀 없기 때문에 포옹은 기적의 약과도 같다.
 포옹은 또한 자연 그대로의 것이다. 그것은 자연농법과 같은 것이어서 농약이
나 방부제가 섞여 있지 않다. 인위적인 성분이 전혀 가미되지 않는 백 퍼센트 
건강 식품이다.
 포옹은 현실적으로도 완벽하다. 다른 부속품이 필요없으며, 건전지를 바꿔 넣
을 필요도 없고, 정기적인 점검도 불필요하다. 작은 에너지를 들여 큰 에너지 효
과를 얻을 수 있다. 인플레나 비만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월세를 낼 필요도 없
으며, 보험에 들거나 방범 장치를 할 필요도 없다. 세금 낼 필요도 없고, 공해 
걱정도 없다. 또한 당연히 언제나 교환이 가능하다.
 잭 캔필드

 랍비와 마부
 몹시 추운 날 저녁에, 랍비 울프는 축제일을 맞이해 마차를 타고 그를 초대한 
집으로 갔다. 손님들과 잠시 시간을 보낸 랍비는 마부가 기다리고 있는 바깥으
로 나와서 말했다.
 "여보시오, 마부 양반. 집 안으로 들어가서 몸을 좀 녹이시오."
 마부는 추워서 두 팔로 몸을 비비며 제자리뛰기를 하면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랍비님. 말들을 내버려 두고 혼자서 안에 들어갈 순 없지요."
 그러자 랍비 울프가 말했다.
 "말들은 내가 돌볼 테니 당신은 안으로 들어가서 몸을 녹인 다음에 나랑 교
대하면 되지 않소."
 마부는 몇 번이나 사양하다가 마침내 랍비에게 말들을 맡기고 집 안으로 들어
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았으며, 주인에게 초대받
은 여부에 상관없이 다들 즐겁게 음식을 나눠 먹고 술을 마셨다.
 술을 열 잔쯤 얻어 마신 마부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랍비와 말들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랍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급한 볼일이 있어서 떠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한참 뒤에 일단의 손님들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집 밖으로 나와 
보니 이미 어두운 밤중이 되었는데도, 그곳에 랍비 울프가 마차 앞에서 두 팔로 
몸을 비비며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마틴 부버

 2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수프 
 미국의 생리학자이며 시인이었던 올리버 웬델 홈즈가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 
참석자들 중에서 그가 가장 키다 작았다.
 한 손님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홈즈 박사님, 우리처럼 큰 친구들 사이에 있으니 자신이 더욱 작게 느껴지
겠군요."
 홈즈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많은 10원짜리들 사이에 있는 50원짜리 동전처럼 느껴지는군요.
"
 작자미상

 황금부처
 여기 나의 비밀이 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한 비밀이다. 즉 인간은 마음을 통해
서만 올바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
이다.
 생떽쥐베리

 1988년 가을, 나는 아내 조지아와 함께 홍콩에서 열리는 자기 개발 세미나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때까지 한번도 극동 지역을 여행할 기회가 없
었던 터라, 세미나를 마친 우리는 여행을 연장하기로 결정하고 태국으로 향했다.
 방콕에 도착해서 우리는 그 도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불교 사원들을 구경하
러 시내 관광길에 올랐다. 그날 조지아와 나는 통역자와 운저사를 대동하고 수
많은 사원들을 방문했지만 모두가 엇비슷한 모습이어서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
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한 군데의 사원은 우리의 가슴 속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
곳은 '황금 부처의 사원' 이라고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사원 자체는 아주 작아서 넓이가 사방 1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
나 막상 사원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높이가 4,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황금 불
상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그 무게만 해도 2, 5톤이 넘었고, 미국 화폐로 1억 9천
6백만달러에 해당하는 값어치를 지닌 불상이었다. 정말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불상이었다. 부드럽지만 위엄 있는 인상의 황금부처가 우리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불상에 대해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남들이 하듯이 이곳저
곳 사원 안을 구경했다.
 그때 나는 우연히 한 유리상자 안에 두께 20센티미터와 폭 30센티미터 정도의 
커다란 진흙 조각이 보관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유리상가 옆에는 타자 글씨로 
이 장엄한 예술품의 역사에 대한 설명문이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
다.

 1957년에 일단의 승려들이 자신들의 사원에 모셔진 점토로 만든 불상을 새로
운 장소로 옮기고자 했다. 방콕을 통과하는 고속도로 공사 때문에 사원의 위치
를 옮겨야 했던 것이다.
 크레인을 동원해서 그 거대한 불상을 들어올리는 순간, 엄청난 무게로 인해 
불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신성한 불상이 부
서질까 염려한 사원의 최고참 승려는 불상을 다시 바닥으로 내려놓으라고 지시
하고는 비에 젖지 않도록 큰 방수천을 씌워 놓았다.
 그날 저녁 늦게 승려는 불상을 점검하러 갔다. 그는 불상이 비에 젖지 않는지 
살피기 위해 방수천을 젖히고서 안에다 플래시를 비췄다. 그런데 플래시 불빛이 
불상의 금이 간 지점을 비추자 희미한 빛이 반사되어 나오는 것이었다. 이상하
게 여긴 주지승은 그 반사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불상내부에 무엇인
가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려는 사원에서 끌과 망치를 가져다가 점토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점토층을 
걷어 낼수록 안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더 밝아지고 더 강렬해졌다. 여러 시간의 
작업 끝에 마침내 그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불상 앞에 마주 서게 되었다.
 역사가들의 해석에 따르면 이 승려가 황금 불상을 발견하기 수백 년 전에 버
마(현재의 미얀마) 군대가 태국(당시에는 시암 왕조)을 침략한 적이 있었다. 시
암 왕조의 승려들은 나라가 위태로운 걸 깨닫고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는 황금 
불상에 진흙을 입히기 시작했다. 버마 군대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불행히
도 버마 군대는 그 시암 왕조의 승려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학살했으며, 
그 결과 황금 불상의 비밀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가 1957년에야 우연히 
세상에 밝혀지게 된 것이다.

 케세이 퍼시픽 항공사의 여객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혼자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리 모두는 진흙 불상과 같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온갖 딱딱한 점토로 
우리 자신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 각자의 내부에는 황금 부처, 황금 그리
스도, 즉 황금으로 만들어진 본질이 숨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들 자신의 진
정한 모습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어는 순간부턴가, 두 살과 아홉 살 사이의 그 
어느 순간부턴가 우리는 우리의 황금 본질, 우리의 본래 모습을 진흙으로 감추
기 시작한다. 끌과 망치로 그것을 걷어 낸 그 승려처럼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
시금 우리의 진덩한 본질을 되찾는 일이다. '
 잭 캔필드

 나 자신
 다음의 글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지하 묘지에 있는 한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무덤 앞에 적혀 있는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
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
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
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작자미상

 진실만을 말할 것
 <달라스 모닝 뉴스> 지의 편집국장 데이빗 캐스티븐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 1940년대 노틀담 미식 축구팀의 센터를 맡고 있던 프랭크 시만
스키가 사우스 벤드에서 열린 민사소송 법정에 참고인으로 불려 간 적이 있었
다.
 판사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올해에 노틀담 미식 축구팀의 선수로 출전했습니까? "
 프랭크 시만스키가 대답했다.
 "네, 재판관님. "
 판사가 다시 물었다.
 "포지션이 뭐였소? "
 "센터를 맡았습니다. 재판관님. "
 판사가 흥미를 나타내며 물었다.
 "그래, 당신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춘 센터라고 생각하시
오? "
 시만스키는 잠시 자기 자리에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분명한 어조로 답변했
다.
 "재판관님. 전 노틀담 팀의 역대 센터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센터입니다."
 법정에 나와 있던 프랭크 레히 감독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시만스키는 
언제나 겸손했으며, 잘난 체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입으로 역대 선수들 중 가장 뛰어난 센터라고 말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
었다.
 재판이 끝나자 감독은 시만스키를 한쪽으로 불러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물었
다. 시만스키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감독님. 하지만 진실만을 말하기로 선서를 
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마크 빅터 한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한 어린 꼬마가 야구 모자를 쓰고 야구공과 야구 방망이를 들고서 혼자 운동
장으로 걸어갔다. 꼬마는 자랑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야구 선수야. "
 그런 다음 꼬마는 볼을 공중으로 던져 올리고서 온 힘을 다해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런데 그만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기가 죽지 않고 꼬마는 또다시 공
중에 볼을 던져 올리며 소리쳤다.
 "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야! "
 불행히도 또다시 헛스윙이었다. 볼은 땅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꼬마는 잠시 동
작을 멈추고 서서 볼과 방망이를 자세히 살폈다. 그러고 나서 한 번 더 볼을 공
중에 던져 올리며 소리쳤다.
 "난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야! "
 꼬마는 힘껏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또다시 빗나가고 말았다.
 그러자 꼬마는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와우! 난 정말 대단한 투수야! "
 
 한 어린 소년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교사가 다가와 말했다.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구나. 그런데 뭘 그리고 있는지 말해 주겠니? "
 소년이 말했다.
 "하나님을 그리고 있는 중이에요. "
 교사가 놀라서 말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
 그러자 소년이 분명하게 말했다.
 "이제 내가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모두가 알게 될 거예요. "
 작자 미상 

 나는 나
 나는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이다. 내 스스로 나를 인정하기만 한다면.
 생떽쥐베리

 다음의 글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내 자신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 라는 어느 열다섯 살 소녀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쓴 글이다. 

 나는 나다.
 이 세상의 어디에도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다. 나와 어느 정도 닮은 사
람은 있어도 정확히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따라서 나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
은 진정한 나만의 것이다. 내 자신이 그걸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것은 내 소유이다. 나의 육체와 육체가 하는 모든 것이나의 것이다. 
마음과 마음 속에 담긴 생각, 사상 모두가 나의 것이다.
 내 눈과 눈에 비치는 모든 모습들이 나의 것이다. 내 감정은 모두 나의 것이
다. 분노,
슬픔, 기쁨, 좌절, 사랑, 실망, 흥분 모든 것이.
 내 입과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나의 것이다. 공손한 말, 부드럽고 거친 말, 
정확하고 부정확한 말 모두가. 그리고 나의 목소리도 나의 것이다. 큰 소리든 작
게 속삭이는 소리든. 나의 모든 행동, 그것이 남에게 하는 행동이든 나 자신에게
하는 행동이든 모두가 나의 것이다. 
 나의 환상, 나의 꿈, 나의 희망, 나의 두려움도 나의 것이다.
 나의 성공과 승리, 나의 실패와 실수도 나의 것이다.
 내 모든 것이 나의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과 친해질수 있다. 그리고 그
렇게 함으로써 나는 날 사랑하고, 또 나의 모든 부분과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럴 
때 나의 모든 부분은 나의 깊은 관심과 애정 속에서 활동할 수 있다.
 나의 어떤 부분은 날 당황시키고, 또 어떤 부분에 대해선 내가 모르는 것도 
있다는 걸 난 안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때, 난 용기와 희망을 갖고 
그 모르는 부분들을 해결 할 수 있다. 또한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발
견할 수 있다.
 이 순간에 내가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들리든, 내가 무엇을 말하고 행동하즌,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든, 모든 것은 나의 것이다. 그것이 이 순간 나의 진
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훗날에 가서 돌이켜 보면 과거의 나의 모습, 내가 한 행동, 내가 한 말과 생각 
등이 나한테 맞지 않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에 가서 나는 
그 맞지 않는 부분들을 버리고 맞는 부분들을 간직할 수 있다.
 나는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나는 생존하고, 타인과 가까워지고, 창조적인 일을 하고 외부의 사물과 사람들
의 세계를 이해해 나갈 수 있다.
 나는 나의 것이며, 그러므로 나의 주인은 나다.
 나는 나이며, 나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버지니아 스테어
 여자 넝마주이
 그 여자는 5번가에 있는 우체국 안에서 잠을 자곤 했다. 우체국의 회전문을 
열고, 그녀가 선 채로 잠들어 있는 공중전화박스 옆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겹겹
이 껴입은 그녀의 더러운 옷에서 나는 오줌 냄새와, 이가 거의 빠져 달아난 입
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를 맡을 수 있었다. 잠들어 있지 않을 때면 그녀는 뜻 모
를 말들을 쉴새없이 중얼거리곤 했다.
 우체국 관리인은 집 없는 걸인들이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여섯시면 문을 닫
았다. 그래서 그 여자는 우체국 계단 옆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서 계속해서 혼자
말을 지껄였다. 그녀의 입은 마치 돌쩌귀가 빠져나간 문처럼 쉴새없이 여닫히곤 
했으며, 그녀가 풍기는 냄새는 바람에 날려가 그나마 악취가 줄어들었다.
 어느 추수감사절 날에 우리 집에는 음식이 많이 남았다. 나는 집에 온 손님들
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남은 음식을 포장해 들고서 5번가로 차를 몰았다.
 몹시 추운 초겨울 밤이었다. 나무 이파리들이 길바닥에 흩날리고 있었다. 거리
에는 따뜻한 가정이나 안식처가 없는 불행한 걸인들을 제외하고는 행인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난 그 여자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항상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두꺼운 털실 옷이 
늙고 구부러진 그녀의 몸을 가려 주었다. 뼈만 앙상한 그녀의 두 손은 슈퍼마켓
에서 훔친, 물건 담는 손수레를 꽉 움켜잡고 있었다. 미국의 걸인들은 흔히 슈퍼
마켓에서 사용하는 바퀴 달린 손수레에 잡동사니들을 넣어 갖고 다닌다.
 내가 다가갔을 때 그녀는 우체국 옆 작은 공터의 철책에 기대어 웅크리고 앉
아 있었다. 난 생각했다.
 '왜 찬바람을 피할 수 있는 더 나은 장소로 가지 않고, 바람막이조차 없는 
저런 곳에 앉아 있는 걸까?
 바람을 덜 맞는 문간 쪽으로 자리를 옮길 만큼의 제정신도 갖지 못한 게 분명
했다. 나는 내 번쩍이는 차를 인도 옆에 세우고 유리문을 내린 뒤에 그녀를 소
리쳐 불렀다.
 "어머니, 내가 여기에 음식을 좀..."
 나는 엉겁결에 내 입에서 튀어나온 '어머니'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내게는 왠지 모르게 그녀가 어머니 처럼 느껴졌다. 난 다시 말했다.
 "어머니, 내가 여기에 먹을 걸 좀 가져왔어요. 칠면조 다진 고기와 사과 파이
를 좀 드시지 않겠어요?"
 그러자 그 늙은 여자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주 분명하
고 뚜렷한 목소리로,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아랫니를 움직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난 이미 많이 먹었다오. 그 음식을 정말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갖다 주구려."
 그녀의 말은 더없이 분명했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예상치 못
한 기품과 우아함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나는 곧 그곳을 떠났으며, 그녀는 다
시 넝마 같은 옷깃 속에 고개를 파묻었다.
 보비 프롭스타인

 예시 돈덴
 병원 현관의 게시판에 공고문이 나붙었다.
 '예시 돈덴이 7월 10일 오전 여섯시에 시범 진료를 실시합니다.'
 그 아래에 세부적인 사항들이 적혀 있고, 끝으로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예시 돈덴은 달라이 라마(티벳의 종교 및 정치 지도자)의 개인 주치의입니
다,'
 나는 히말라야의 신들이 보낸 명의를 고의적으로 무시할 만큼 대단한 회의론
자는 아니다. 그런 냉소적인 태도는 세속에서의 행복에도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영원에 관한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그래서 7월 10일 아침에 나는 시범 진료가 있기로 한 병동으로 갔다. 병동에 
딸린 작은 회의실에 병아리떼처럼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숨기고 있었지만, 속임수를 쓸지도 모르는 동양에서 온 수상쩍은 의사에 대한 
불신과 의혹으로 방 안 공기가 무거웠다.
 정확히 여섯시가 되자 그가 모습을 나타냈다. 키가 작고, 구릿빛 얼굴에다, 땅
딸막한 체구의 남자였다. 소매가 없는 노란색과 자주색 승복을 입고 있었다. 머
리는 삭발을 했으며, 얼굴에 난 털이라곤 두꺼운 눈꺼풀 위에 난 희미한 눈썹이 
전부였다.
 그와 동행한 젊은 통역자가 소개를 하는 동안 그는 두 손을 합장하고 인사를 
했다. 그러곤 설명이 이어졌다. 예시 돈덴은 우리 병원의 의료진들이 선정한 환
자 한 명을 진료하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미 그 환자의 증세와 병병을 알
고 있었지만 예시 돈덴에게는 그것이 비밀로 부쳐져 있었다. 환자에 대한 시범 
진료는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질 것이고, 진료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회
의실에 모여 예시 돈덴으로부터 환자의 증상에 대한 진단을 듣기로 되어 있었
다.
 또한 설명에 따르면, 예시 돈덴은 벙원에 오기 전 두 시간 동안 목욕재계와 
금식과 기도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정결히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침을 잘 먹
었을 뿐 아니라 늘 하던대로 허둥지둥 세수를 한 것이 고작이었으며, 내 영혼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나는 곁눈질로 동료 의사들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우리들 자신이 추하고 천한 꼴이 되어 버린셈이었다.
 환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었다. 외국인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
리라는 걸 미리 전달받은 상태였다. 그리고 소변검사를 할 수 있도록 소변을 받
아 놓으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그래서 우리가 병실로 들어갔을 때 그 여성 환자
는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만성병 환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순종
하고 포기하는 얼굴 표정을 터득한 지 이미 오래였다. 이번 역시 그녀에겐 끝없
이 계속되는 실험 진단과 검진의 하나에 불과했다.
 예시 돈덴은 환자의 침대 곁으로 다가가고, 나머지 우리는 조금 떨어져서 그
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말 없이 그 여성 환자를 응시했다. 
특별히 그녀의 신체 부위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반듯이 
누워 있는 환자 위쪽의 어느 공간에 시선을 고정시킨 듯했다. 나 역시 그녀를 
관찰했다. 그녀의 병명을 알려 줄 만한 어떤 신체적인 특징이나 명백한 증상 같
은 건 없었다.
 마침내 예시 돈덴은 환자의 한쪽 손을 잡아 자기 손 안으로 가져갔다. 이제 
그는 잔뜩 웅크린 듯한 자세로 침대 위에 몸을 구부렸다. 그의 머리는 승복의 
옷깃 속으로 쑥 움츠러들었다. 그런 자세로 그는 환자의 맥박을 짚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두 눈은 지그시 감겨져 있었다. 
 그는 한순간 만에 그녀의 맥박을 찾았으며, 그 후 30분 동안 그런 상태로 환
자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이국적인 황금빛 새가 날개를 접고 
환자 위에 웅크리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요람에 넣듯이 자기 
손안에 품고서 그녀의 맥박 위에 손가락을 얹고 있었다. 그의 모든 기가 그 한 
가지 목적에 집중되어 있었다. 맥을 짚는 행위가 하나의 종교의식처럼 느껴졌다. 
내가 서 있는 침대 발치에서 바라보니 그 순간 두 사람은 마치 어떤 특정한 장
소로 멀리 떠나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장소 주위에는 우리가 침범할 수 없는 
한없이 고요한 공간이 가로놓여 있었다.
 환자는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다. 이따금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기 위에 웅크
리고 있는 기이한 형체를 바라보고는 다시 베개 위로 몸을 눕혔다. 내 눈에는 
두 사람의 손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손은 두 사람만의 친밀한 교감 속에서 
하나로 묶여 있었으며, 그의 손가락 끝은 그녀의 손목에서 전해지는 심장 고동
과 리듬을 통해 그녀의 병든 신체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질투심이 일었다. 그에 대한 질투심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거룩
함을 지닌 예시 돈덴에 대한 질투심이 아니라, 그 여성 환자에 대한 질투심이었
다. 나도 그녀처럼 그 자리에 누워서 완전히 수용적인 자세로 그에게 맥을 짚어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난 알았다. 지금까지 나는 수만 번이나 환자의 맥을 짚어 
왔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맥박을 느껴 본 적이 없다는 걸.
 마침내 예시 돈덴은 몸을 일으키고 환자의 손을 부드럽게 침대 위에 내려놓았
다. 통역자가 작은 나무 주발과 젓가락 두짝을 꺼냈다. 예시 돈덴은 주발에다 환
자의 소변을 붓더니 두 젓가락으로 휘젓기 시작했다. 그는 이것을 소변에서 거
품이 일 때까지 수분 동안 계속했다. 그런 다음 주발에 얼굴을 묻고 세 차례에 
걸쳐 깊이 냄새를 맡았다. 그는 주발을 내려놓고 병실을 나서기 위해 몸을 돌렸
다. 그때까지 그는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병실 문 근처까지 갔을 때, 그 여성 환자가 고개를 쳐들더니 다급하지만 
평온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녀는 말했다.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예시 돈덴이 맥을 짚었던 손목을 어루만졌다. 마치 
그곳에 잠깐 머물렀던 어떤 소중한 것을 다시 붙잡으려는 듯이.
 예시 돈덴은 고개를 돌려 잠깐 동안 그녀를 응시하고는 복도로 걸어나갔다. 
그렇게 해서 시범 진료는 끝이 났다.
 우리는 다시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마침내 예시 돈덴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
다. 내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부드러운 티벳어였다. 그가 말을 시작하자 
뒤이어 젊은 통역자가 통역을 시작했다. 마치 두 마리의 말이 달리듯이 두 개의 
목소리가 나란히 달려나갔다. 한 목소리에 다른 목소리가 곧바로 이어지는 동시 
통역의 협주곡이었다. 그것은 마치 수도승들의 염불 소리와도 같았다.
 예시 돈덴은 그 여성 환자의 몸 속을 돌아다니고 있는 바람에 대해 말하기 시
작했다. 소용돌이치는 거센 바람이 신체 내의 각 부분에 있는 중요한 칸막이들
을 무너뜨리면서 환자의 몸 속을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이 회오리바람은 환자
의 혈관 속에 들어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맨 마지막으로 그것은 불완전한 심장
을 강타했다고 했다. 그녀가 태어나기 아주 오래 전에, 심장의 방들 속으로 바람
이 불어 들어가 꼭 닫혀 있어야 할 수문 하나를 열어젖혔다. 그 열린 문을 통해 
마치 봄철에 산의 계곡물이 폭포가 되어 넘쳐흘러 논밭을 덮치듯, 그녀의 몸 전
체에 강물이 범람해서는 호흡을 잠식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말을 마치자 예시 돈덴은 침묵에 잠겼다.
 교수 한 명이 질문을 했다.
 "그럼 이제 최종적으로 병명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시범 진료의 주인공이자 진정한 앎에 도달해 있는 예시 돈덴이 말했다.
 "선천성 심장병입니다. 심장 판막의 결손과, 그것으로 인해 생겨난 심장 쇠약
입니다."
 심장의 수문이라...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열려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것이 열
리는 바람에 그 수문을 통해 물이 범람해 들어가서 그녀의 호흡을 잠식해 버렸
다. 그랬구나! 이 동양 의사는 우리 모두가 귀머거리처럼 듣지 못하고 있는 신체
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는 의사가 아니라 성직자였다.

 나는 안다. 신들이 내려보낸 의사는 순결한 지식, 순결한 치료 그 자체라는 
걸. 하지만 인간이 만든 의사는 자꾸만 걸려 넘어지고, 자꾸만 상처를 입힌다. 
그가 죽어야 하듯이 그의 환자들도 죽을 수밖에 없다.
 그 이후 나는 환자들을 진료할 때마다 자주 예시 돈덴의 목소리를 듣곤 한다. 
오래 전에 그 의미는 잊어버렸지만, 고대 불교의 기도문처럼 그 음악만이 내 귀
에 남아 있다. 그러면 어떤 환희 같은 것이 나를 사로잡고, 내 자신이 어떤 신성
한 손길에 의해 어루만져지는 느낌이 든다.
 리처드 셀쩌

 한 문장의 답안지
 지금으로부터 1세기 전쯤에, 한 젊은 학생이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종교학 
과목의 중요한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그날의 시험 문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에 담긴 종교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시술하라는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각자 자신이 이해한 바에 따라 열심히 긴 논술문을 작성하고 
있는 동안 그 학생은 혼자서 두 시간이 넘도록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했다. 시
험 시간이 거의 끝나 가고 있었지만 이 학생은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시험 감독이 학생에게로 다가와, 답안지를 걷기 전에 어서 무슨 말인가를 쓰
라고 재촉했다.
 학생은 마침내 연필을 들어 답안지에 다음과 같은 한 줄의 문장을 썼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도다."
 이 학생이 바로 훗날 영국 최고 시인이 된 바이런이다.
 리처드 셀쩌

 인생이라는 게임
 우리가 하고 있는 게임은
 가장하고 있으면서
 가장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는 일

 우린 우리가 누구인가를 잊어버렸으며,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우린 정말 누구인가?
 
 우릴 지켜보고 있고
 이 연극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그 중심.

 그 나,
 우주를 거울처럼 완벽하게 비추고 있는
 무엇보다 강한 그 의식체

 그러나 일찍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린 수동적인 인생을 선택하거나
 그렇게 하도록 최면에 걸렸다.

 처벌이 두려워
 또는 사랑의 상처가 두려워
 우린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란 생각을 버렸다.
 그리고 마치 일들이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또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가장하게 되었다.

 우린 우리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고 있으며,
 이런 자기 학대적인 태도
 이런 나약함
 이런 무기력함에 길들여졌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이며
 우주 에너지의 중심이다.
 당신의 의지가
 곧 당신의 힘이다.

 당신이 그런 힘을 갖고 있지 않다고 가장하지 마라.
 정말로 그렇게 될 수가 있으니까.
 버나드 군터

 인간이 되기 위한 규칙
 1. 당신은 육체를 받을 것이다. 
 당신이 그 육체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은 이 생을 마칠때까지 당신의 것
이다.
 2. 당신은 교훈을 얻을 것이다.
 당신은 인생이라는 학교에 등록해 하루 종일 전과목을 배워나갈 것이다. 이 
학교에서의 하루하루가 당신에겐 교훈을 배우는 기회이다. 당신은 그 교훈을 좋
아할 수도 있고, 어리서은 것들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3. 실패란 없으며, 오직 교훈이 있을 뿐이다.
 성장은 고난과 실수에서 찾아온다. 실험과 시도가 곧 성장을 가져다 준다. 실
패한 시도는 성공한 시도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성장이라는 열매를 가져다 준다.
 4. 교훈은 당신이 그것을 얻을 때까지 계속 반복된다.
 당신이 교훈을 얻을 때까지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당신에게 찾아온다. 당신이 
그것을 배우면 당신은 그 다음의 교훈으로 나아갈 수 있다. 
 5. 배움의 과정은 끝이 없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중에 교훈을 담고 있지 않은 일이란 없다. 당신이 
살아 있는 한 매순간 교훈이 찾아온다.
 6. 이곳보다 더 나은 그곳은 없다.
 '그곳'이 '이곳'이 되었을 때, 당신은 또다시 '이곳'보다 더 나아 보이
는 '그곳' 을 쳐다보게 될 것이다.
 7. 타인은 당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단지 그가 당
신 속에 있는 좋은 부분과 싫은 부분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8. 당신 자신의 삶을 어떤 것으로 만드는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린 일이다.
 당신은 이미 필요한 모든 연장과 재료를 갖고 있다. 그것들을 갖고 무엇을 만
드는가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선택은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것이다.
 9. 당신이 찾는 해답은 이미 당신 속에 있다.
 인생의 질문에 대한 해답들은 당신 안에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그
것을 보고, 듣고, 신뢰하는 일이다. 
 10. 당신은 이 모든 사실들을 잊고 살아갈 것이다.
 11. 당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당신은 이 사실들을 기억할 수 있다.
 작자 미상

 인디언 로우
 나는 그를 인디언 로우라고 부른다. 그가 내게 가나뱅이 인디언 로우의 이야
기를 들려 주었기 때문이다.
 때는 2월,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보스톤의 전형적인 아침나절이었다. 차들이 
어찌나 밀리는지 운전사들은 짜증이 나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모두가 불행한 표
정들이었다. 그렇다.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불행해 보였다. 그 한 사람이
란 바로 내가 타고 있는 택시 운전사인 미스터 로우였다. 
 내가 물었다.
 "길이 이렇게 막히는데도 당신은 짜증을 내지 않는군요."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주차장처럼 변해 버린 도로의 차량 행
렬을 손짓해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우린 아무 곳으로도 갈 수 없어요. 그러니 흥분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피우고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선생도 골프를 치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칩니다만, 아직 초보자인걸요."
 "티(공을 치기 시작할 때 공을 올려놓는 자리)에 접근해서 보면 다른 경기자
가 페어웨이(티와 그린 중간의 잔디 구역)에서 기다리고 있지요. 그 다음 티에서
도 상황은 마찬가지 아닌가요?"
 나는 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하면서 그의 얘기에 맞중구를 
쳤다. 
 "많은 경우에 그렇지요."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요. 여기서도 똑같은 상황이오."
 그는 주변에 밀려 있는 차량을 가리켜 보이고는 다시 담배를 한 모금 빨아 들
였다.
 "그러니 흥분하거나 미치광이가 될 필요가 어디 있겠소? 누구도 이것에 대해
선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두가 화를 내면서 속을 태우지
요."
 "사람들 모두가 어딘가에 가야만 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나는 그렇게 반문하면서 나 역시 약속 시간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에
게 주지시키기 위해 짐짓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부연 설명을 
했다. 
 "사업 약속이 있거나 비행기를 타야 하거나 그밖의 여러 이유들이 있는 법이
니까요."
 그는 내 말에 동의를 표시했다. 
 "물론이지요. 그러니까 다들 택시에 타고 있겠지요. 모두가 어딘가에 도착해
야만 하니까요. 택시 운전사를 제외하고는 말이오. 택시 운전사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지요. 저 친구를 보시오."
 그는 정장을 한 채 차에서 내려 교통 경관에게 항의하고 있는 한 남자를 손짓
했다. 교통 경관은 뒤엉킨 차량 행렬 한가운데 무기력하게 서 있었다. 
 "저 친구는 사실상 교통 경관을 한 대 먹이고 싶은 겁니다."
 내가 그 친구를 옹호하고 나섰다. 
 "아마 출근 시간에 늦어서 저러겠지요."
 그러자 미스터 로우가 말했다.
 "난 출근시간에 늦는 법이 없다오. 내 택시에 올라타기만하면 그것이 곧바로 
출근이니까 말이오."
 우리는 뒤엉킨 차량들을 정리하느라 애를 먹는 교통 경관을 바라보며 않아 있
다가 겨우 그곳을 빠져나왔다.
 달리는 차 안에서 내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택시 운전이라는 직업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내가 그에게 슬쩍 물었다.
 "다른 직업을 가지려고 시도해 본 적이 있나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해 봤지요. 한때는 해군의 통신계 하사관 노릇도 했고, 사무실 근무도 
해 봤소. 한동안은 증권사에서 일한 적도 있지요.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일
은 나한테 어울리지 않소."
 내가 다시 물었다. 
 "다른 일을 하면 돈을 더 많이 벌게 되지 않겠어요?"
 그는 내 말에 동의했다. 
 "물론이지요. 내가 계속해서 증권사에 몸담고 일했다면 지금쯤 아마 백만장
자가 되었을 거요. 누가 압니까? 하지만 난 그런 야망을 버렸소."
 그의 말을 듣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야망을 가져야 하지요."
 그러자 그가 물었다. 
 "그건 왜죠?"
 나는 약간 당황했다. 전에는 아무도 나한테 그런 식으로 묻지 않았다. 모든 사
람이 야망의 필요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며, 그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법
칙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운전사가 나한테 그 이유를 묻고 있었다. 
 "왜냐구요?"
 나는 그의 질문을 따라한 다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야망을 갖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니까 그렇겠죠."
 그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요?"
 "그래서라니요? 그래야 좋은 집과 차와 옷을 사고, 가족들에게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인생의 발전 아닌가요?"
 이때 그가 내게 말했다.
 "난 결혼도 하지 않았고 가족도 없다오."
 난 그에게 말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건 필요하지요."
 그러자 그가 말했다. 
 "마치 인디언의 이야기처럼 들리는군요."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인디언이라구요? 무엇이 인디언 같다는 말인가요? 어떤 인디언?"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가난한 인디언 로우가 있었소. 내가 그 이야기를 당신한테 들려 주리다."
 그는 운전석에 몸을 기대고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강가에서 낚시를 하며 않자 있는 인디언이 있었다오. 그러데 날마다 그가 
그곳에 앉아 있는 걸 보고는 백인 친구 하나가 사람들에게 그를 손가락질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했소. '로우, 저 가나뱅이 인디언을 말야('로우'는 '저길 좀 
봐'라는 뜻)'
 하루는 그 백인이 인디언에게로 다가가서 물었소.
 '자네,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
 인디언이 시큰둥하게 대답했소.
 '보면 모르나. 낚시를 하고 있지.'
 백인 친구가 다시 물었소.
 '자넨 어떻게 맨날 낚시만 하고 있나?'
 인디언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소. 그러자 백인 친구가 말했소.
 '자네도 뭔가 직장을 갖고 일을 시작해야지.'
 그러자 인디언이 물었소.
 '왜?'
 백인 친구가 말했소.
 '왜냐구? 그래야 돈을 벌지.'
 인디언이 다시 물었소.
 '그래서?'
 백인 친구가 말했소.
 '그래야 그 돈을 투자해서 더 많은 돈을 벌지.'
 그러자 인디언이 뭐라고 말했겠소? 인디언은 다만 또다시 물었소.
 '그래서?'
 백인 친구는 화가 나서 소리쳤소.
 '그래야 부자가 돼서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 아냐.'
 그러자 인디언은 백인 친구를 흘끗 올려다보고는 다시 낚시찌로 시선을 돌렸
소.
 '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그것이 그 인디언이 마지막으로 백인 친구애게 한 말이었소."
 말을 마치고 택시 운전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차창 밖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로우, 가난뱅이 인디언! 그 인디언이 바로 나요."
 나는 그가 들려 준 이야기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물었다.
 "당신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물론이요."
 "그리고 만족합니까?"
 "물론이오. 다른 차에 탄 사람들을 보시오. 나를 제외하고는 그들 모두가 불
행한 표정을 짓고 있소. 그것은 그들이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
문이요. 그들은 지금 자기등이 원하는 장소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오. 그들은 시
간과 돈과 다른 어떤 걸 낭비하고 있소. 난 그렇지 않아요. 난 어느 곳으로도 가
고 있지 않소. 난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으니까 말이오. 난 시간을 낭비하고 있
는 것도 아니고 돈이나 어떤 다른 걸 낭비하고 있는 것도 아니오. 그들은 이 추
위 속으로 걸어나가 눈비를 맞거나 진창에 빠지기도 하지요. 나로 말할 것같으
면 이 따뜻하고 편안한 택시 안에 앉아 있지요. 내가 언제 이 택시에서 내리는
지 당신은 알겠소?"
 "아니오. 그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내가 내리고 싶을 때요.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거나 입이 심심할 때, 
아니면 어딘가 가서 누군가와 얘길 나누고 싶을 때가 바로 그때라오. 난 원할 
때면 언제라도 이 택시에서 내린다오. 어딘가에 도착했거나, 아니면 목적지에 도
착했으니 당연히 내려야 하기 때문에 내리는 게 아니오. 그런 거야 승객들의 해
당 사항이지 난 상관없는 것이오."
 난 그 말에 동의했다.
 "정말 그렇겠군요."
 그가 말을 계속했다.
 "날씨가 좋아졌을 때를 생각해 보시오. 봄이나 여름처럼, 혹은 가을이 되어 
낙엽들이 물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모두 주말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지요. 다들 
차를 몰고 떠나기를 원하지요. 안 그렇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야외로 떠나고 싶어하지요. 저의 숙모님도 주말마다 떠난 답니다."
 그가 말했다.
 "나무 이파리를들을 구경하고, 물가에도 내려가 보고, 국립공원에도 들르면서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 이겁니다. 어디 어른들만 그렇소? 아이들은 또 어떻고? 
십대들이나 심지어 열 살짜리 아이들까지도 도시를 벗어나 좀 돌아다니고 싶어
하지요."
 그는 옆에 흐르는 찰스 강을 손짓해 보였다.
 "여름이 되면 당신은 창문을 내리고 이 강가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거요. 게다가 난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돈까지 벌지요."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가 택시에서 내렸을 때 그가 다시 말했다.
 "난 당신이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사는지 모르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이 그 일을 좋아하기를 바라오.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서 빨리 백만장자가 
돼서 나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겠소. 난 백만장자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백만장자가 될 필요가 없는 사람이
요. 난 지금 그일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오."
 그가 택시를 몰고 떠난 뒤에소 나는 한참 동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난 
그곳에 있었지만 그곳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곧 건물 안으
로 들어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만나야만 했고,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
야만 했다.
 로우(저길 좀 봐), 저 가난뱅이 택시 운전사를.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
다. 그러고 나서 나는 총총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포스터 푸콜로

 3 배움과 가르침을 위한 수프
 배움은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행동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해 보이는 일이다.
 기르침은 당신뿐아니라 상대방도 그것을 알고 있음을 일깨우는 일이다.
 당신들은 모두 배우는 자들이고, 행동하는 자들이며, 가르치는 자들이다.
 리차드 바크

 사랑이 남긴 것
 알은 젊었을 때 화가아자 도예가였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명의 훌륭한 아들
이 있었다. 어느 날 밤, 그의 큰아들이 심한 복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배탈이 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알과 그의 아내는 그다지 심각한 상황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급성 맹장이었고, 아이는 그날 밤 갑자기 죽고 말았
다.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아이가 죽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안 알은 심한 죄책감 
때문에 극도로 정신이 쇠약해졌다. 불행이 겹치느라고 얼마 뒤 그의 아내마저 
여섯 살짜리 어린 아들을 남겨 둔 채 집을 나가고 말았다.
 알은 이 두가지 비극이 안겨다준 심한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이겨 낼 힘이 없
었다. 그는 차츰 술에 의지하게 되었다. 머지않아 그는 알콜중독자 신세가 되었
다.
 알콜중독이 심각해지자 알은 자신이 가졌던 모든 걸 하나둘 잃어 갔다. 가정
과 집, 자신이 만든 미술 작품을 비롯해 모든것을... 결국에 가서 알은 샌프란시
스코의 어느 허름한 여인숙에서 혼자 쓸쓸히 생을 마쳤다.
 알의 죽음을 전해 들은 나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허무하게 인생을 소비
한 사람에게 세상이 흔히 보내는 약간의 경멸감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얼마나 큰 손실인가! 그야말로 헛되이 낭비하고 만 인생이 아닌가!'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그 가혹한 평가를 수정하지않을 수 없게 되었
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은 알의 아들 어니가 어느덧 어른이 된 
것이다.
 어니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칠절하고, 선하고, 사랑이 넘치는 인물
이었다. 나는 자녀들과 함께 지내는 어니를 지켜보곤 했는데, 그들 사이에는 언
제나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사랑이 오가고 있었다. 그런 애정과 세심함이 어디
서 생겨난 걸까 나는 궁금했다.
 나는 어니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별로 듣지 못했다. 알콜중
독으로 생을 마친 사람을 변호하기란 쉬운이이 아니니까.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어니에게 물었다.
 "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네. 도대체 알콜중독자인 아버지가 어떤 방법
으로 자네를 이토록 특별한 인간으로 키웠는가?"
 내 질문을 받고 어니는 잠시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윽고 입
을 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집을 떠날때인 열아홉 살 때
까지,아버지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제게 키스를 하며 이렇게 말씀하
셨습니다.'얘야,난 널 사랑한다.'그것이 전부입니다."
 알의 인생을 완전한 실패작으로 평가했던 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어른거렸다. 물론 알은 아무런 물질적인 것도 뒤에 남기
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가슴 깊이 사랑을 간직한 아버지였으며, 그리하여 세상
에서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선한 인간을 뒤에 남긴 것이다.
 보비 기이

 난 이제 내 자신이 좋다
 어린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좋게 생각할수록 여러 분야에서 더 많은 
성취를 이뤄 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 스스로 인생을 더 즐거운 
것으로 생각하도록 이끌어 주는 일이다.
 웨인 디이어

 학생들에게는 학과 과목에 대한 공부보다 더 많은 다른것들이 필요하다는 사
실을 깨닫고 나서 큰 안도감을 느꼈다. 난 수학을 잘하고, 잘 가르친다. 난 그것
이 내가 할 일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난 수학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친
다. 내가 아무리 수학을 잘 가르친다 해도 전체 학생 중에서 몇 명만이 그것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난 받아들인다. 그리고 내가 모든 문제의 해답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할 때 오히려 난 내가 더 많은 해답을 알게 되는 
듯하다.
 이것을 내게 이해시켜 준 사람은 에디라는 이름의 어린 학생이었다. 하루는 
내가 에디에게 작년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된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에디는 나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대답을 했다.
 에디는 말했다.
 "왜냐하면 선생님한테 배우면서부터 제가 제 자신을 더 좋아하게 되었기 때
문이에요."
 어느 학교 교사
 에버렛 쇼스톰 제공
 모든 좋은 것들
 그는 내가 가르치던 미네소타 주의 모리스에 있는 성모 마리아 학교 3학년 학
생이었다.우리 반 학생 34명 모두 사랑스런 아이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마크 
에클런드는 매우 특별한 아이였다. 얼굴도 잘생겼으며, 특유의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 때문에 이따금 짓궂은 장난을 쳐도 미움을 받기보다는 모두를 즐겁게 만들
었다.
 마크는 수업중에 잘 떠들었다. 나는 내 허락 없이 말을 해선 안 된다고 마크
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주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잘못
을 지적할 때마다 마크는 매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 잘못을 바로잡아 주셔서 고맙습니다.수녀님!"처음에는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 말을 듣다 보니 머지않아 나
도 익숙해졌다.
 한번은 오전 수업중에 마크가 너무 심하게 떠들어 댔기 때문에 내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 그 당시 나는 신참내기 교사였기 때문에 모든 것에 한계가 있
었다. 나는 마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분명히 말하는데, 만일 한마디만 더 떠들면 너의 입을 테이프로 봉해 버리
고 말 테다."
 그런데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처크가 일러바쳤다.
 "선생님, 마크가 또 떠들었대요."
 물론 나는 다른 학생들에게 마크를 감시하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내가 
한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했다.
 그날의 일을 나는 마치 오늘 아침에 일어났던 것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교실 앞쪽에 있는 내 책상으로 걸어가 서랍에서 넓은 스카치 테이프를 꺼
냈다. 그리고 한마디 말도 없이 마크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 테이프를 크게 두 
조각으로 잘라서는 마크의 입에다 엑스(X)자로 붙였다. 그런 다음 나는 다시 교
탁 앞으로 돌아갔다.
 나는 마크가 어떻게 하고 있나 보려고 슬쩍 곁눈질을 해서 쳐다보았다. 그랬
더니 그 순간 마크가 내게 윙크를 던지는 것이었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난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화난 내 행동에 주눅이 들었던 반 아이들도 모두 박수
를 쳐대며 웃어 댔고, 나는 다시 마크에 책상 앞으로 걸어가 입에 붙인 테이프
를 떼어 냈다. 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마크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이것이
었다.
 "제 잘못을 바로잡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녀님."
 그 해가 다 지나갈 무렵쯤에 나는 중학교로 옮겨 가서 수학을 가르치게 되었
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크가 다시 내 수업을 듣고 있
었다. 마크는 훨씬 더 미남이 되어 있었고, 공손했다. 내가 가르치는 중3의 어려
운 수학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했기 때문에 마크는 전처럼 떠들수도 없었다.
 어느 금요일이었다. 수업 분위기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우리는 일주일 내
내 난해한 수학 공식에 매달려 씨름을 했으며, 학생들이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다는 걸 난 느꼈다. 그리고 학생들 모두 서로에게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나는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이 살벌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꿔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 모두에게 백지 두 장씩을 나눠 주며 적당
한 간격으로 급우들의 이름을 전부 적게 했다. 그런 다음 그 이름 옆에다 자기
가 생각하는 그 학생의 좋은 점과 멋지고 훌륭한 점 모두를 적으라고 말했다.
 그날의 수업은 그것을 작성하는 것으로 다 흘러갔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자기들이 작성한 용지를 나한테 제출하면서 교실을 나갔다. 처크는 미소를 지어 
보였고, 마크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들을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녀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토요일과 일요일 내내 나는 별도의 백지들을 가져다가 한장에 한 명씩 학생들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 학생에 대해 다른 학생들이 말한 내용을 전부 적어 
내려갔다. 월요일이 되었을 때 나는 그용지들을 학생들 각자에게 나눠 주었다. 
어떤 아이는 두 장이나 되는 경우도 있었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아이들의 입가에 순식간애 미소가 번졌다.
 "정말로 내가 그렇단 말야?"
 아이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이토록 멋있게 보일 줄은 몰랐는데!"
 "다른 아이들이 날 이렇게 좋게 생각하고 있는 줄 정말 몰랐어!"
 그러고 나서 수업이 시작되었고, 수업중에는 누구도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말
을 꺼내지 않았다. 그들이 방과후에 자기들끼리, 또는 부모에게 가서 그것에 대
해 얘기를 했는지는 모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내 시도는 성
공을 거두었다. 학생들은 다시금 서로에게 우정을 느끼게 되었으며, 수업 분위기
는 훨씬 좋아졌다.
 학생들은 차츰 나이를 먹고 상급학교로 진학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흘러
서 어느 해 여름인가 나는 방학을 맞아 여행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부모님이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 주셨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어머니는 늘상 하시는 대로 내 여행에 관
해 물으셨다. 날씨는 어떠했느냐, 어디어디를 들렀느냐, 재미는 있었느냐 등이었
다. 그러다가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곁눈질을 하며 
뭔가 눈치를 주셨다.
 그러자 아버지가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이렇게 입을 여셨다.
 "얘야,마크 에클런드네 집에서 어젯밤에 전화가 왔더구나."
 내가 놀라서 말했다.
 "그래요? 몇 년 동안 통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마크는 잘 지낸대요?"
 그러자 아버지가 나지막히 대답하셨다.
 "마크가 베트남에서 전사했단다. 장례식이 내일인데, 마크의 부모는 네가 꼭 
참석해 주길 바라더구나."
 오늘날까지도 나는 아버지가 차를 운전하고 가시면서 마크의 죽음을 전했던 
I- 494번지의 그 길목을 정확히 기억한다.
 나는 군대용 관 속에 누워 있는 병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때가 처음
이었다. 마크는 훨씬 더 미남이 되어 있었고, 어른스러웠다. 그 순간에 내가 생
각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이것뿐이었다.
 '마크,네가 다시 입을 열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세상에 있는 모든 스카치 
테이프들을 다 내던져 버릴텐데.'
 성당은 마크의 친구들로 만원이었다. 처크의 누이동생이 미합중국 병사의 노
래를 불렀다. 왜 장례식 날이면 늘 비가 내리는 걸까? 그날도 비가 줄기차게 퍼
부어서 무덤까지 걸어가는 데 애를 먹었다. 신부님이 통상적인 기도를 하셨고, 
나팔수는 영결 나팔을 불었다. 마크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한 사람씩 다가가 마
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관 위에 성수를 뿌렸다.
 관 위에 마지막으로 축복을 내린 사람은 나였다. 내가 관앞에 서자 관을 메는 
사람 중의 하나였던 군인 한 명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수녀님께서 마크의 수학 선생님이셨나요?"
 나는 관을 응시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이 말했다.
 "마크가 선생님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뒤 마크의 동창생 모두가 처크의 농장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
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니 마크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분
명 나를 기다린 눈치였다.
 "선생님께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마크의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면서 말했다.
 "마크가 죽었을 때 품 속에 이것이 있더랍니다. 저희는 선생님께서도 이것을 
기억하시리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마크의 아버지가 꺼낸 것은 노트 용지 크기만한, 접혀 있는 두 장의 종이였다. 
접힌 자리가 닳아서 여러 번 테이프로 붙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종이
에 적힌 내용을 보지 않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마크의 급우들이 마크의 
모든 좋은 점들을 적어낸 바로 그 종이였다.
 마크의 어머니가 말했다.
 "이런 일을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보시다시피 마크는 이것을 늘 보물처
럼 여겼답니다."
 마크의 옛 급우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왔다. 처크가 약간 수줍은 미소를 지으
며 말했다.
 "저도 아직까지 제 것을 갖고 있어요. 제 책상의 맨 윗서랍에 항상 간직하고 
있지요."
 존의 아내가 말했다.
 "제 것은 언제나 제 일기장 속에 들어 있어요."
 그러자 또 다른 급우였던 비키는 작은 손가방을 열어 지갑을 꺼내더니 그 안
에서 너덜너덜해진 그 종이를 꺼내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전 언제나 이것을 가지고 다녀요."
 비키는 반짝이는 눈으로 모두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것을 간직했군요."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나
는 마크를 위해, 그리고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할 그의 모든 친구들을 위해 울
고 또 울었다.
 헬렌 P. 므로슬라 수녀

 특별함
 인생의 매순간이 이 우주의 새롭고 특별한 순간들이다. 그 순간은 절대로 또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소중한 순간들은 한번으로 끝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둘 더하기 둘이 넷
이고, 프랑스의 수도가 파리라는 것을 가르친다.
 언제가 되어야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이 어떤 존재라는 걸 가르칠 것인
가?
 우리는 그들 각자에게 말해 줘야 한다.
 "넌 네가 어떤 존재인가를 아니? 넌 하나의 경이야. 넌 매우 특별한 사람이
야. 네가 나이를 먹은 지난 여러 해 동안 너와 같은 아이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었어. 너의 다리, 너의 팔, 너의 솜씨 있는 손가락, 네가 걷는 모습, 그 모든 것
이 특별해.
 넌 셰익스피어가 될 수도 있고, 미켈란젤로 같은 확나 베토벤 같은 음악가가 
될 수도 있어. 넌 무엇이든지 할 능력을 갖고 있지. 넌 정말 놀라워.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들 역시 놀라운 존재들이지. 넌 네
가 어른이 되었을 때, 너처럼 똑같이 놀라운 존재인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넌 그때 가서 이 세상을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살만한 가치가 있는 장소로 만들어야 해."
 그렇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을 그런 장소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파블로 카잘스

 배우는 방법
 내가 첼로 연주를 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
은 내가 ' 첼로 연주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말은 내 마음 속에 이상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그들은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과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듯했다. 다시 말해 첼로 연주하는 법을 배우
는 일과 첼로를 연주하는 일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첫 번째 과정을 끝마쳐야 비
로소 두번째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첼로를 연주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첼로 연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첼로를 연주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 두 가지의 과정은 사실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함으로써 그것에 대해 배울 수 있을 뿐이다. 그것말고 다른 길은 있지 않
다.
 존 홀트

 손
 추수감사절날, 초등학교 여교사가 1학년 학생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대상을 그려 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여교사는 미국에
서도 가장 가난한 빈민가에 사는 그 아이들이 과연 감사하게 여길 대상이 있을
까 의문을 가졌다. 아마도 식탁에 차려진 칠면조나 맛있는 음식들을 그릴 것이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데 더글라스가 내미는 그림을 보고 여교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엔 어린아이의 필체로 단순한 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누구의 손일까? 더글라스의 그림을 보고 아이들은 나름대로 상상을 하
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말했다.
 "그건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는 하나님의 손이 틀림없어요."
 다른 아이가 말했다.
 "그건 농부의 손이에요. 칠면조를 기르니까요."
 마침내 여교사는 더글라스의 책상으로 다가가 그것이 누구의 손을 그린 것인
가를 물었다.
 더글라스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이건 선생님의 손이에요."
 그러고 보니 여교사는 쉬는 시간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더글라스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곤 한 것이 기억났다. 그녀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종종 그렇게 했었
다. 하지만 더글라스에게는 그것이 매우 큰 의미를 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추수감사절의 의미이리라. 우리에게 주
어진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아무리 작은 방식이라도 누군가에게 
베풂을 주는 기회를 갖는 것이 참다운 감사인 것이다.
 작자 미상
@ff
 할렘가의 왕실 기사단
 뉴욕 맨하탄에는 멕시코인들이 사는 할렘가 지역이 있다. 내가 사는 맨하탄 
아파트에서 그곳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짧은 거리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곳은 수만 광년 떨어진 이질적인 세계이다.
 미국의 한 지역이면서도 여러 면에서 그곳은 제3세계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유아와 산모 사망률이 방글라데시와 비슷하고, 남성의 평균 수명은 방글라데시
보다 더 낮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사용하는 언어 때문에도 뉴욕 시의 다른 
행복한 지역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매스컴은 이 지역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무관심 속에 방치하고 있다. 이 제3
세계 국가에서 근무하는 경찰과 교사들조차 그 지역 안에서 생활하는 걸 생각조
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내용은 그들의 현실
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배우게 되는 것은 뻔하다. 아
이들은 자신들이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거리에 사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스트 101번가의, 철제 담장과 콘크리트 운동장을 가진 황폐한 작은 구획 안
에 한 중학교가 있었다. 그곳에서 빌 홀은 정규 영어 과목 외에도 푸에르토리코
와 중남미 지역, 그리고 심지어 파키스탄과 홍콩에서 이민 온 학생들의 제2외국
어에 대항하는 기초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갑자기 낯선 나라에 도착한 아이들은 당연히 새로운 문화와 이상한 규칙에 마
주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부모나 이웃들 역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미아가 된 
느낌을 갖고 있고, 거칠기 짝이 없었다. 아이들은 그 모든 환경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그리고 빌 홀은 이제 그 아이들과 날마다 마주하게 되었다.
 이 다양한 집단의 아이들에게 동질감을 심어 주고 동시에 영어도 가르칠 수 
있는 흥밋거리가 무엇일까 궁리하던 빌은 어느 날 이웃 사람 하나가 체스판을 
들고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자신도 체스의 실력자였던 빌은 그것이 문화를 
초월하는 게임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빌 홀은 몹시 미심쩍어하는 교장을 설득해 방과후에 체스 동아리를 시작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여학생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 여자가 체스를 두는 것을 본적이 없는 까닭에 
여학생들은 이 동아리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
에게 모델이 될 만한 여교사가 없었기 때문에 동아리를 찾아온 몇 명의 여학생
들마저 얼마 가지 않아서 떨어져 나갔다.
 남학생 역시 많은 수가 포기했다. 체스는 그 지역에서 있기있는 취미 생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열두 명 정도의 아이들은 계속 남아서 체스의 기본 정석을 배우기 시
작했다. 다른 학생들은 그 아이들이 방과후까지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을 놀려 댔
고, 어떤 부모는 체스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빈민가에서 체스를 두는 건 사
치일 뿐 아니라 먹고 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빌이 그들의 삶
에 특별한 어떤 것을 심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빌은 처음으로 그들을 신뢰해 
주고, 그들에게 진심어린 관심을 가져준 최초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체스 실력과 영어 실력이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실력
이 많이 나아지자 빌은 그들을 할렘가의 외부 지역에 있는 학교들로 데리고 다
니며 체스 시합을 주선했다. 빌리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지하철 요금을 대고 저
녁 식사로 피자를 사주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빌이 진심으로 자기들을 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사의 봉급으로는 그것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이 백인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좀더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빌은 외부에서 체스 시합이 열릴 때
마다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며 전체를 통솔 하도로 했다. 아이들은 돌아 가면서 
체스 시합에 따른 모든 여행 일정과 준비물들을 책임져야만 했다. 차츰 빌이 없
어도 이이들은 서로에 대한 책임을 떠맡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서로를 지도하고, 
개인적인 문제들을 상의하며, 서로의 부모에 게 체스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
라는 것을 설득시켰다. 이런 자심감은 수업 시간으로도 이어져 차츰 성적이 올
라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더 나은 학생이 되고 더 나은 체스 선수가 되자 아이들에 대한 빌 
홀의 꿈도 켜져 갔다. 그는 맨하탄 체스 클럽에서 받은 약간의 후원금으로 아이
들을 데리고 시라큐스(뉴욕 주 중부에 있는 도시)에서 열리는 주 결승전에 참가
했다.
 한때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고, 외톨이들이고, 수동적이며, 폐쇄적이기만 했던 
이 열두 명의 아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선택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왕실 기사
단'이 그것이었다. 주결승전에서 3위에 입상한 이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전미 중학교 체스 결승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따낼 수 있었다.
 그러나 빌의 동료 교사들은 빌에게, 무의미하게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한 교사가 말한 대로, 이 빈민 지역의 아이들은 
실제 생활에서는 평생동안 '뉴저지 주(뉴욕 주 바로 옆에 위치한 주)를 지나가 
보지도 모할 형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왜 쓸데없이 기금을 모아 그들을 
비행기에 태우고 나라 반대편까지 날아간단 말인가? 그것은 오히려 그들로 하여
금 현실 생활에 불만을 갖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은 캘리포니아행 비행기 티켓을 살 기금을 마련했다. 그
리고 전미 대회에서 109개 팀 중에서 17위를 차지했다. 
 이제 체스는 그 학교 학생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체스팀에 들어가면 적
어도 다른 도시로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뉴욕 체스 클럽을 방
문한 체스 부원들은 세계 여성 체스 챔피언인, 러시아에서 온 어린 소녀를 만나
게 되었다. 이것을 기회로 아이들은 빌조차도 깜짝 놀랄 기발한 생각을 내놓았
다. 이 소녀가 러시아에서 올 수 있었다면, 왜 왕실 기사단이라고 러시아에 갈 
수 없단 말인가? 어쨌든 러시아는 체스의 종주국이었으며, 곧 전세계 학생 체스 
친선대회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미국인으로서 그 연령의 체스 선수가 이 대회에 참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역 공무원들의 노력으로 계획은 통과되었다.
 빌은 여행 경비의 후원금을 받기 위해 몇 개의 대기업을 찾아갔다. 물론 이 
팀이 우승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여행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의 삶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되는 것이라고 빌은 역설
했다. 마침내 펩시콜라 회사에서 2만 달러짜리 수표를 건네주는 순간, 빌은 이 
허황된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들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을 외면했던 미국을 대표해서 공식
적인 경기 참가단의 자격으로 비행기에서 내려 러시아에 첫발을 내디뎠다. 동시
에 아이들은 뉴욕 할렘가의 유명인사들로서 자신들의 가난한 이웃을 대표한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그들이 입은 유님폼 등에는 'U.S.A' 가 아니라 '왕실 기
사단'이라고 큰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자신감을 잃었다. 상대편 러시아 선수
들은 그들이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특유의 심사숙고형 경기 스타일을 갖고 있
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사단의 한 선수가 30대의 러시아 체스 챔피언과의 시
범 경기에서 무승부를 이루는 기적을 낳았다. 러시아 선수들이라고해서 물리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사람이긴 마찬가지였다.
 그 이후 기사단은 러시아에서 벌어진 모든 경기의 절반 정도를 이겼으며, 스
피드 체스 경기에선 오히려 자신들의 이점을 살려서 전 경기를 석권할 수 있었
다. 천천히 심사숙고하면서 두는 것을 미덕으로 배워 온 러시아 선수들과는 달
리 기사단 선수들은 거리에서 익힌 빠른 속도로 경기를 해 나가면서도 정확성을 
잃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레닌그라드 시합에 참가해서는 아이들의 사기가 더 높아졌다. 영
어를 배우려는 목적에서 체스에 대한 아무런 재능도 없이 무작위로 모인 선수들
이었지만, 아이들은 한 경기에서 승이를 거두고 또 다른 경기에서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기사단의 아이들은 자기들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러한 자신감이었다.
 그로부터 몇 잘 뒤에 내가 그 중학교의 체스 특활반에 들렀을 때, 좀처럼 화
를 내지 않는 빌 홀 선생이 최근에 체스 부원인 푸에르토리코 학생과 백인 교사 
사이에 일어난 일 때문에 매우 화가 나 있었다. 내가 자초지종을 묻자 빌은 아
이에게 직접 설명하도록 했다. 그 학생이 시험 점수가 높게 나오자 교사는 아이
가 컨닝을 했다고 믿고는 재시험을 치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시험에서
도 높은 점수가 나오자 교사는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 나빠 하더라
는 것이었다.
 빌 홀은 말했다.
 "만일 이웃에 있는 다른 학교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아이들은 그런 식의 차별 대우를 수업 시간에 줄곧 받아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의식이 심어져 있었다. 
그 아이는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그 선생님은 질투가 나는 것이겠죠. 우리가 이 학교를 지도에 나오는 
학교로 만들었으니까요."
 사실이 그러했다. 이 거무칙칙한 중학교의 강당은 러시아 무용단의 뉴욕 순회 
공연 때 공연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각 학교의 교장들이 이 학교에 체스 지도법
을 문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텔레비젼과 라디오, 신문들이 왕실 기사단과의 인
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아이들의 중학교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수많은 고등학교들로부터 이 
'재능 있는'학생들을 스카우트하겠다는 제의가 쇄도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
이 원하는 고등학교를 선택해서 갈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도 한 학생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아이들은 서로 헤어지
게 되는 것이 가슴아팠지만, 제의를 받은 그 학생을 설득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는 그 아이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이라고 말했어요."
 또 다른 아이가 말했다.
 "우리가 매주 편지를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러자 세 번째 아이가 말했다.
 "사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변치 않고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그들은 이제 법률가, 회계사, 교사, 컴퓨터 과학자가 될 포부들을 갖고 있었다. 
전에는
상상도 못 할 미래의 꿈이었다. 그들이 그런 미래를 성취한 뒤에 다시 모이게 
되었을 때 어떤 놀라운 일이 더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들 삶 속으로 어느 날 빌 홀이라는 이름의 교사와 체스 경기가 들
어오기 전에는, 그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내 질문에 아이들은 오랫동
안 말이 없었다.
 이윽고 한 소년이 대답했다. 그 아이는 이제 법률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아이
였다.
 "거리를 배회하면서 인생이 개 같다고 느꼈죠."
 또 다른 아이는 고백했다.
 "꼬마애들한테서 점심값을 뜯거나 이따금 환각제를 즐겼어요."
 세 번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방 안에 누워 만화책을 보면서, 아빠한테서 게으름뱅이라는 욕설을 듣는 게 
고작이었죠."
 그렇다면 학교 교과서가 이들을 특별한 아이들로 변화시켰는가? 그러자 한 아
이가 말했다.
 "빌 홀 선생님이 우리를 뛰어난 아이들로 인정해 주시기 전까지는 전혀 그렇
지 않았어요. 실제로 우리는 뛰어난 아이들 이거든요."
 글로리아 스타이넴

 어린 소년
 어린 소년이 어느 날 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정말 어린 소년이었다.
 그리고 학교는 소년에 비해 무척 컸다.
 하지만 정문을 지나면 곧바로
 자기의 교실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어린 소년은 행복했다.
 학교는 이제 처음처럼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어린 소년이 수업을 받고 있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 오늘은 그림 공부를 하겠어요."

 '좋은데!'하고 어린 소년은 생각했다. 
 소년은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사자와 호랑이, 닭과 송아지, 기차와 배
 소년은 크레용 상자를 꺼내
 그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기다려요! 아직 시작하면 안 돼요."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게 했다.

 "자, 그럼 오늘은 꽃을 그리겠어요."
 이윽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좋은데!'하고 어린 소년은 생각했다.
 소년은 꽃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분홍색과 노란색과 파란색 크레용으로 
 아름다운 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기다려요! 내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그리는지 가르쳐 주겠어요."
 선생님은 칠판에다 꽃 한 송이를 그렸다.
 그것은 초록색 줄기를 가진 빨간색 꽃이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자, 이제 시작해도 좋아요."

 어린 소년은 선생님이 그린 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가 그린 꽃도 바라보았다.
 소년은 선생님이 그린 것보다 자기 것이 더 좋았다.

 그러나 어린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새 종이를 꺼내
 선생님이 시범을 보인 것과 똑같은 꽃을 그렸다.
 초록색 줄기를 가진 빨간색 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어린 소년이
 정문을 지나면 곧바로 나타나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 오늘은 찰흙으로 뭔가를 만들어 보겠어요."
 '좋은데!'하고 어린 소년은 생각했다.
 소년은 찰흙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소년은 찰흙으로 온갖 것을 만들 수 있었다.
 눈사람과 아프리카 뱀, 코끼리와 생쥐, 자동차와 덤프 트럭.
 소년은 찰흙을 공처럼 만들어 길게 잡아늘이기도 하고
 손바닥으로 둥글게 말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기다려요! 아직 시작할 때가 아니에요."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

 "자, 그럼 오늘은 접시를 만들어 보겠어요."
 이윽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좋은데!'하고 어린 소년은 생각했다.
 소년은 찰흙으로 접시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소년은 여러 가지 모양과 크기를 가진 
 접시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기다려요! 어떻게 만드는 건지 내가 보여 주겠어요."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모두에게
 바닥이 깊은 접시 하나를 만드는 법을 보여 주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자, 이제 시작해도 좋아요."

 어린 소년은 선생님이 만든 접시를 바라보고
 또 자신이 만든 접시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선생님이 만든 것보다 자기 접시들이 더 좋았다.
 그러나 어린 소년은 아무 말 없이
 찰흙을 다시 둥근 공처럼 뭉쳐서
 선생님 것과 똑같은 접시를 만들었다.
 그것은 바닥이 깊은 접시였다. 

 머지않아서 어린 소년은
 기다리는 법과
 지켜보는 법과
 선생님과 똑같은 것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머지않아서 소년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린 소년의 식구들은
 다른 도시에 있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래서 어린 소년은 다른 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이 학교는 전의 학교보다 
 훨씬 더 큰 학교였다.
 그리고 정문에서 곧장 교실을 향해 걸어갈 수도 없었다.
 어린 소년은 높은 계단들을 올라가서
 긴 복도를 한참 걸어가야
 자기의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첫째 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림을 그려 보겠어요."

 '좋은데!'하고 어린 소년은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소년은
 선생님이 어떻게 그리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으셨다.
 그냥 교실 안을 걸어다니기만 하셨다. 

 어린 소년이 앉아 있는 자리까지 오셨을 때 선생님이 물으셨다.
 "넌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니?"
 어린 소년은 말했다.
 "그리고 싶어요. 그런데 무슨 그림을 그릴 거죠?"
 그러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무슨 그림을 그리는가는 너한테 달렸지."
 "어떻게 그리죠?"하고 어린 소년은 물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렴."
 "무슨 색을 칠하죠?"
 "아무 색이나 칠하렴."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만일 모든 사람이 똑같은 그림을 그리고
 똑같은 색을 칠한다면
 그것이 누구의 그림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니?"
 "네, 알 수 없어요."하고 어린 소년은 대답했다.

 그래서 어린 소년은
 분홍색과 노란색과 파란색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린 소년은 새 학교가 좋았다.
 정문을 지나면 곧장 교실이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헨렌 버클리

 나는 교사이다
 나는 교사이다.
 아이의 입에서 질문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에 난 태어났다.
 난 여러 장소에서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
 난 질문을 이용해 아테네의 청년들에게 새로운 사상을 발견하도록 자극하던 
소크라테스이다.
 난 헬렌 켈러의 내민 손바닥에 우주의 비밀을 두들겨 주던 앤 셜리반이다.
 난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던 이솝이고, 한스 안데르센이다.
 난 모든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투쟁한 마르바 콜린스이다.
 난 오렌지 담는 상자로 책상을 만들어 위대한 대학을 설립한 메리 맥클라우드 
베튠이다.
 그리고 난 '내려가는 계단을 올라가려고'시도한 벨 카우프만이다.
 인류를 위한 명예의 전당에 명단이 올라간 사람들, 이를테면 붓다, 공자, 노자, 
장자, 에머슨, 레오 버스카글리아, 모세, 예수... 이들 모두가 나와 동일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또한 얼굴과 이름은 잊혀졌지만 그 가르침만큼은 제자들에게 전수되어 
세세토록 기억되는 사람들이다.
 난 나의 제자였던 학생들의 결혼식장에서 기쁩의 눈물을 흘렸으며, 그들의 아
이들이 태어날 때 함께 웃었고, 그들이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무덤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슬피 울었다.
 하루의 수업중에서 난 때로는 배우이고, 친구이고, 간호사이고, 의사이며, 운동 
경기의 감독이자, 분실물을 찾아 주는 사람이다. 돈을 꿔 주는 사람이기도 하며, 
택시 운전사이기도 하고, 정신과 의사, 대리 부모, 정치인, 신앙인이기도 하다.
 온갖 지도와 목록표와 공식, 명사와 동사 변화, 이야기와 책들을 갖고 있지만 
난 사실 가르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내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바
로 자기 자신이니까. 그리고 난 그들 자신이 누구인가를 가르치기 위해선 온 세
상이 다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난 하나의 역설이다. 난 가장 귀기울여 들어야 할 때 가장 큰 소리로 말한다. 
나의 가장 큰 선물은 내가 학생들로부터 감사하게 받는 것 속에 있다.
 물질적인 부는 나의 목표가 아니다. 난 하루 종일 보물찾기를 하는 사람과 같
다. 내 학생들이 각자의 재능을 이용해 새로운 기회를 붙잡을 수 있도록. 때로 
패배감 속에 파묻혀 있는 그들의 재능을 난 끝없이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난 모든 직업 중에서 가장 복된 직업을 갖고 있다.
 의사는 한순간에 마술적으로 한 생명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재능을 지녔다. 
난 새로운 질문과 사상, 그리고 우정 속에서 매순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걸 
지켜보도록 허락받았다.
 건축가는 공들여 건물을 세우면 그 건물이 수세기 동안 서있으리라는 걸 안
다. 교사는 사랑과 진리로 건물을 세우면, 그 건물이 영원히 서 있으리라는 걸 
안다.
 날마다 난 부정적인 시각, 두려움, 안주하려는 마음, 편견, 무지, 무관심과 싸우
는 전사이다. 하지만 내게는 훌륭한 동지들이 있다. 지성, 호기심, 학부모의 뒷받
침, 개성, 창조성, 신뢰, 사랑과 웃음이 그것이다. 그들이 끝없는 후원을 보내며 
내게로 깃발을 날리며 달려온다.
 내가 이런 행운을 누리면서 아름다운 인생을 보내게 해 주는 것은 바로 학부
모들이다. 난 그들에게 가장 감사드린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게 자신의 소중한 
아이들을 믿고 맡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온갖 추억들로 가득한 과거를 갖고 있다. 모험과 도전과 흥미로 가
득한 현재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난 하루하루를 미래와 함께 보내도록 허락받
았으니까.
 난 교사이다. 난 그 사실에 대해 날마다 신께 감사드린다. 
 존 웨인 쉴레터
 
 동물학교
 옛날에 동물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그들은 다가오는 '새로운 미래'의 문
제들에 대처할 수 있는 어떤 기념비적인 일을 시작해야만 한다고 결론을 내렸
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를 만들기로 계획했다.
 그들은 달리기, 나무오르기, 날기, 헤엄치기 등으로 짜여진 교과 과목들을 만
들었다. 편리한 교육 일정의 진행을 위해 모든 동물들이 예외없이 전 과목을 공
부해야만 했다.
 오리는 수영 과목에서 실로 눈부신 실력을 발휘했다. 사실 그 과목에 있어선 
가르치는 지도 교사보다 오리가 훨씬 뛰어났다. 그러나 오리는 날기 과목에선 
겨우 낙제점을 면했으며, 달리기 과목은 더 형편없었다.
 달리기 점수가 너무 낮았기 떼문에 오리는 방과후에도 혼자 남아 더 배워야 
했으며, 달리기 연습을 위해 수영 과목을 포기해야만 했다. 달리기 연습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오리는 발의 물갈퀴가 너덜너덜해졌고, 그 결과 수영 과목에서
조차 겨우 평균 점수밖에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평균 점수만 받아도 다음 학년으로 무난히 진급할 수 있었
기 때문에 오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
다.
 토끼는 달리기 과목에서 선두를 차지하며 당당하게 학교 수업을 시작했다. 그
러나 수영 과목의 기초를 배우느라 너무 많이 물 속에 들어간 나머지 토끼는 신
경 쇠약증에 걸리고 말았다.
 다람쥐는 나무오르기 과목에선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나 날기 과목에서 교사
가 땅바닥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 나무 꼭대기에서부터 날기를 시키는 바람에 
다람쥐는 좌절감만 커져 갔다. 그리고 무리한 날기 연습 때문에 근육에 자주 쥐
가 났으며, 그 결과 나무 오르기 과목에서조차 미, 달리기 과목에선 당연히 양을 
받았다.
 독수리는 문제아였다. 그래서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나무오르기 과목
에서 독수리는 꼭대기에 올라갈 때까지 큰 날개를 퍼덕여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
는 바람에 자주 지적을 받았다. 독수리는 교사에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해 달라고 주장했지만, 그 주장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
다. 그 결과 누구보다도 가장 높이 날고 탁월한 활공 능력을 가진 독수리였건만 
졸업할 때까지 끝끝내 문제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학년이 끝날 무렵, 수영도 곧잘 하고 달리기와 오르기와 날기까지 약간 할 줄 
아는 비정상적인 뱀장어가 가장 높은 점수를 얻어, 졸업식장에서 답사를 읽는 
학생으로 뽑혔다.
 한편 대초원에 사는 야생 개들은 학교에서 땅파기와 굴파기를 교과 과목에 포
함시키지 않는 바람에 남들처럼 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학교 밖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교육과 관련된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만 했다.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을 오소리에게 보내 개인지도를 받게 했으며, 훗날 땅돼지와 뒤쥐(굴을 파
서 땅 속에서 사는 북미산 쥐) 등과 힘을 합쳐 성공적인 사립학교를 시작했다.
 이 우화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조지 리비스

 잃어버린 짐
 인도를 여행하던 나는 북인도 사막지대인 자이푸르에서 조드푸르로 가는 특급 
열차의 일등 칸에 타고 있었다. 내가 탄 칸에는 매우 화목해 보이는 인도인 가
족이 타고 있었다. 나는 여행 가이드북에서 배운 대로 배낭에 자물쇠를 채워서 
수하물 선반에 설치된 쇠사슬에 묶어 놓았다.
 그리고 인도 여행 기간중 처음으로 지갑 벨트를 풀어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사막을 건너는 동안 그것을 허리에 차고 있으면 덥기도 하거니와 땀이 그 안으
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난 번 여행에서 번번이 땀에 흠뻑 젖은 
100루피짜리 지폐를 꺼내곤 했었다.
 인도의 방식답게 기차는 20분 간격으로 멈춰 섰으며, 그럴 때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와서는 창문을 통해 차나 시원한 음료, 과자 부스러기들을 
사라고 고함을 쳐댔다. 여행의 절반쯤 갔을 때 나는 나한테 미네랄 생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무더운 날씨에 탈수증에 걸릴 것이 걱정된 나는 다음 역에서 생수르르 더 사
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인도인 가족은 기차가 5분 내지 10분 정도 정차할 것
이라고 자신있게 설명했다. 나는 기차가 서자마자 생수를 사려고 뛰어갔다. 그런
데 불행히도 플랫홈에는 생수 파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역 바깥에 늘어서 
있는 가게들로 달려갔다. 생수 파는 곳을 물을 때마다 인도인들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시선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저기 수도꼭지가 있지 않은가? 왜 병에 든 물을 사 마시느라고 돈을 낭비하
지? 별 이상한 친구 다 보겠어.'
 영어도 잘 통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생수 사는 걸 포기하고 망고 주스를 
두 박스 샀다. 그러느라 4분 정도를 지체했기 때문에 돈을 치르자마자 나는 황
급히 역 안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내가 플랫홈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있는 것은 텅빈 선로뿐이었다. 기
차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없었다.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과 공포를 난 아마도 평
생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일이 영국에서 일어났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
이다. 그런데 그곳은 다름아니 인도였다! 최악의 악몽이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그 기차 안에 있었다. 배낭, 옷, 카메라, 필름, 의약품, 대
부분의 돈, 그리고 여궈니고 여행자 수표가 든 지갑 벨크까지. 내가 가진 것은 
지금 입고 있는 옷과 100루피(1루피는 30원 정도) 쯤 되는 잔돈, 그리고 열 개들
이 망고 주스 두 박스뿐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플랫홈을 뛰어다니며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면서 기차가 어디
로 갔는가 물었다. 선로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머리에 커번을 두
른 한 인도인이 느릿느릿 먼 방향을 손짓하는 걸로 보아 기차가 날 내려놓고 떠
나 버린 게 분명했다.
 나는 정신없이 역장 사무실로 달려가서 숨을 헐떡거리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
가를 설명했다. 그런데 영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역장은 종이를 꺼내더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 위에 적으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내 생애에서 가장 좌절스런 30분이었다. 내 짐이 기차에 실려 메마른 
사막지대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동안에 나는 볼펜과 종이를 들고 씨름을 해야
만 했다.
 나는 또다시 냉정을 잃기 시작했다. 인도인답게 역장은 모든 상황을 알고도 
전혀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았다. 나는 코미디언이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도, 욕을 하고 벽을 주먹으로 치고 가구들을 발로 차기도 하면서 역장실 안을 
우왕좌왕했다. 이미 근처에 있던 인도인들이 한 떼나 몰려와서 문짝에 기대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우스꽝스럽게도 영국 텔레비
전 코미디 프로에서 호켈 주인이 멕시칸 웨이터에게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까
무러치기 전에 제발 내 말 좀 이해해 다오!"하고 소리치던 대사였다.
 역장과 몇 장의 종이를 주고받은 끝에 내가 알게 된 사실은, 45킬로미터 떨어
진 다음 정거장이자 조드푸르 전 정거장인 데가나 역에 내 짐을 내려놓도록 시
도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 후 그 데가나 역이라는 이름은 영원히 내 기억 속
에 새겨지게 되었다.
 역장은 느릿느릿 데가나 역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그것
이 전혀 자신감 있는 시도로 보이지 않았다. 전화는 자꾸만 끊어졌다. 게다가 그
것은 손잡이를 돌리도록 된 수동식 전화였다. 고통스런 30분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데가나 역에서 연락이 왔다. 내 짐이 그곳에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짐의 안전을 믿지 못한 나는 다음 기차가 그것을 싣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
며 앉아 있기보다는, 자도차를 타고 데가나 역으로 가서 짐을 찾기로 결심했다. 
나는 가능한 한 빨리 그 곳까지 갈 수 있는 차를 물색하기 위해 기차역과 택시 
정류장 사이를 육상선수처럼 두 번이나 왕복했다.
 마침내 나는 두 시간 거리으 여행에 250루피의 택시비를 지불하기로 했다. 터
무니없는 바가지 요금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당황
했을 때 이미 사태를 알아차린 것이다.
 이 무렵 나는 한 무리의 팬클럽을 갖고 있었다. 서른 명이 넘는 그 지역 인도
인들이 이 괴상한 서양인 친구가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구경하기 위해 
내가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우르르 따라다녔다. 그들은 나보다 더 열심히 달리
고, 나보다 더 큰 소리로 외치며, 더 열심히 손을 흔들고, 더 세게 가구들을 쥐
어박았다. 그들은 내가 다시 상점으로 뛰어가서 사막을 통과하려면 망고 주스 
두 박스가 더 필요하다는 걸 셜명하자 까무러치도록 신나했다. 상점 주인은 입
이 벌어졌고, 인도인들은 서양인 여행자가 망고 주스로 가득한 두 개의 비닐백
을 들고 피날레를 장식하며 택시에 뛰어오르자 일제히 박수를 쳤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길은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데가나 역
에 도착했을때 정말로 내 짐이 그곳에 있었다. 그것도 손 하나 대지 않고! 
 그들은 선반의 쇠사슬을 절단해 배낭을 내렸을 뿐 아니라, 배낭의 잠겨 있지 
않은 주머니와 배낭 뚜껑 주머니에 들어 있던 내용물들을 꺼내 비닐 봉지에 넣
고 왁스로 봉해 놓았다. 아무도 그것들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걸 입증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내가 도착할때까지 그것들은 잘 정리되어 자물쇠가 달린 벽장에 보
관되어 있었다. 놀라운 조직력이었다. 
 나는 음식과 음료수를 대접받았다. 역장이 자기 집에서 직접 음식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들은 내게 자신들이 어떤 과정으로 짐을 내렸는가를 설명했다 그
런 다음 나는 다른 기차를 타고 조드푸르로 갈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새 기차
표가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기차차표를 사용해서.
 나는 다음 날 새벽 다섯시에 조드푸르에 도착하느 야간열차에 안전하게 승차
했다. 그곳에 도착해 잠에서 깨었을 때는 이 보든 일이 꿈만 같았다.
 나는 떠나면서 감사의 표시로 데가나 역의 직원들에게 약간의 돈을 지불하려
고 했지만 그들은 정중히 사양했다. 감사표시를 하고 싶다면 내가 가진 카메라
로 단체 사진을 찍어서 나중에 한 장 보내 달라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내가 무척 행운아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도둑과 소매치기로 가득하
다는 인도의 기차 여행은 사실과 달랐으며, 새벽에 조드푸르에 도착했을때 인도
와 인도인들은 더욱 새롭고 신비하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프란시스 베이커

 아름다운 세상
 인도 벵골오로 아름다운 시를 써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에 대해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의 부친은 매우 부유한 영주였다. 그의 
토지는 수십 개의 마을을 포함해서 수만 평에 이르렀다. 그 토지 한가운데로는 
강이 흘렀다.
 타고르는 지붕이 달린 작은 나룻배를 타고 몇 달씩 이 아름다운 강 위에서 지
내곤 했다. 그 강은 우거진 아열대의 숲으로 둘러싸인 더없이 고요하고 한적한 
곳이었다.
 어느 보름달이 뜬 밤에 이런 일이 있었다. 타고르는 다른날과 마찬가지로 나
룻배 안에 앉아 촛불을 켜 놓고 크로체가 쓴 유명한 미학 논문을 읽고 있었다. 
크로체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대표적인 저서를 남긴 철학자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면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크로체는 다
양한 각도에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사생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타고르 자신
도 미의 숭배자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미학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그는 아름다운 시를 지었을 뿐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아름다운 시였
다.
 보름달이 뜬 그날 밤, 타고르는 나룻배 안에 작은 촛불을 켜 놓고 크로체의 
미학 서적을 읽고 있었다. 밤이 깊어 크로체의 난해한 이론에 피곤해진 타고르
는 책을 덮고 촛불을 껏다. 그는 그만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다. 그 작은 촛불이 사라지는 순간, 나룻배으 창문으로부터 달빛이 
춤추며 흘러들어왔다. 달빛이 나룻배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한순간 타고르는 침묵에 빠졌다. 그것은 놀랍고도 신성한 경험이었다. 그는 밖
으로 걸어나가서 뱃전에 섰다. 고요한 바므교요한 숲에 떠오른 달은 너무도 아
름다웠고, 강물 역시 숨을 죽이고 천천히 흘러갔다. 타고르는 그날 밤 일기에 이
렇게 썼다.
 "아름다움이 나를 온통 둘러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외
면한 채 아름다움에 대한 책에 파묻혀 있었다. 아름다움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잇었다. 내가 켜 놓은 작은 촛불이 그 아름다움을 가로막고 
았었다. 촛불의 연약한 빛 때문에 달빛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오쇼 라즈니쉬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드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 지혜는 대학이라는 산
꼭대기에 있는 게 아니라 유치원의 모래 상자 속에 있었다. 
 내가 유치원에서 배운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무엇이든지 나눠 가져라.
 페어 플레이를 하라.
 남을 때리지 마라.
 사용한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갖다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제 스스로 치워라
 자기 것이 아닌 물건에는 손대지 마라.
 남에게 상처를 줬으면 반드시 미안하다고 말하라.
 밥 먹기 전엔 손을 씻어라
 화장실을 쓴 다음에는 꼭 물을 내려라.
 따뜻하게 데운 과자와 찬 우유는 몸에 좋다
 균형잡힌 생활을 하라, 배우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밖에 나가 놀기도 하고, 무엇이든지 날마다 조금씩 일을 하라.
 세상 밖으로 나갈때는 차조심 할 것이며, 서로 손을 잡고 의지하라,
 세상의 경이로움에 눈을 떠라.
 플라스틱 컵에 심은 작은 씨앗을 기억하라. 뿌리가 내리고 싹이 올라오지만, 
아무도 그것이 오떻게 ,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선 정말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 또한 그런 것과 같은 것이다.
 금붕어와 애완용 쥐와 흰 쥐. 그리고 플라스틱 컵안에 심은 작은 씨앗조차도 
모두 다 죽는다. 우리 역시 언젠가는 죽는다.
 그리고 동화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언제나 기억할 것이며, 네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가장 중요한 단어인 "이것 좀 봐!"를 잊지 마라.

 당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여기 이것들 속에 들어 있다. "무엇이든지 남에
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의 황금률과 사랑
과 기본적인 위생 관념이 이속에 있다. 그리고 환경 문제와 정치학과 건전한 생
활까지도.
 만일 우리 모두가, 아니 온 세상 사람이 매일 오후 세시쯤에 따뜻한 과자와 
우유를 먹고 나서 담요를 덮고 낮잠을 잔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또 모든 나라에서 자신이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게 갖다 두고, 자기
가 어지럽힌 것은 자기 스스로 치우는 것을 기본 정책으로 삼는다면 세상이 얼
마나 좋아지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나이를 얼마나 먹었든. 세상 밖으로 나갈때는 서로 손을 꼭 잡
고 의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로버트 풀검

 4. 가정과 가족을 위한 수프
 아이들은 삶 속에서 배운다.

 만일 아이가 비판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비난하는 걸 배운다.

 만일 아이가 적대감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싸우는 걸 배운다.

 만일 아이가 두려움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걱정부터 배운다.
 
 만일 아이가 동정을 받고 자라면
 그 아이는 자신에 대해 슬퍼하는 걸 배운다.

 만일 아이가 기이한 행동을 하는 부모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부끄러움을 배운다.

 만일 아이가 질투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시기심을 배운다.
 
 만일 아이가 수치심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죄책감부터 배운다.

 그러나 만일 아이가 참을성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인내심을 배운다.

 만일 아이가 격려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자신감을 배운다.
 
 만일 아이가 칭찬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감사하는 법을 배우다.

 만일 아이가 무엇이든지 허용되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만일 아이가 자신이 받아들여지는 환경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스스로 좋아하는 법을 배운다.

 만일 아이가 인정을 받으며 자라면
 그 아이는 분명한 삶의 목표를 배운다.

 만일 아이가 나누는 걸 보며 자라면
 그 아이는 자비로운 마을을 배울 것이다.

 또 만일 아이가 정직함과 공정함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진리와 정의가 무엇인가를 배운다.

 그리고 만일 아이가 평화로움 속에서 자라면
 그 아이는 마음의 평화를 배울 것이다.

 당신의 아이들은 지금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는가?
 도로시 L. 놀테

 내가 아버지를 선택한 이유
 나는 드넓게 펼쳐진 아이오아 주의 아름다운 농장 지대에서 성장했다. 나를 
키운 부모님은 흔히 말하듯 '지상의 소금이 되고 공동체의 중심 인물이 되는'
그런 분들이셨다. 두 분은 내가 알고 있는, 좋은 부모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걸 
갖추고 계셨다. 늘 사랑을 간직하셨고, 기대감과 자기를 존중하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자식들을 키우는 데 힘을 쏟으셨다. 
 두 분은 우리가 아침과 저녁에 할 일들을 미루지 않기를 바라셨으며, 제 시간
에 학교에 가고, 또한 일정 수준의 성적을 유지하며, 무엇보다도 선한 인간이 되
기를 기대하셨다.
 우리 자식들은 모두 여섯 남매였다. 세상에, 여섯 명이라니! 
 그토록 자식이 많은 집안에 태어나는 것은 내 본래 의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태어나기 전에 아무도 내 의견을 묻지 않았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설상가상
으로 나는 다른 지역도 아닌, 기후가 가장 거칠고 혹독하기로 유명한 미국 중심
부의 한 벌판에서 태어났다.다른 형제들과 마찬가리로, 나는 틀림없이 우주의 프
로그램에 대착오가 일어나서 내가 엉뚱한 가정에, 또한 결정적으로 잘못된 고장
에 태어나게 된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악조건들을 극복하면서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 싫었다. 아
이오와 주에선 겨울이면 그야말로 혹한이 닥쳐와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든다. 따
라서 한밤중에 일어나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얼어 죽지 않고 잘 살아 있는지 
날마다 순찰을 돌지 않으면 안 된다. 갓 태어난 새끼들은 곳간으로 옮겨 놓고, 
얼어 죽지 않도록 몸을 따뜻하게 녹여 줘야만 했다. 아이오와의 겨울은 그만큼 
춥다!
 아버지는 미남에다 건강하고, 카리스마적이며,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였다. 또
한 무척 활동적인 분이셨다. 우리 형제 자매들은 늘 경탄의 눈으로 아버지를 바
라보곤 했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를 무척 존경했으며 언제나 높은 점수를 주었다. 
 난 이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분의 삶에는 일치하지 않는 것이 드물었
다. 아버지는 고귀한 인격의 소유자셨고, 고결한 신조를 지닌 농부셨다. 자신이 
선택한 농사일에 아버지는 정열을 다 쏟으셨다. 그분은 농사일에 있어서 대가가 
되셨다. 특히 동물들을 키우고 돌보는 일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계셨다. 아버지
는 또 대지와 하나가 된 느낌을 종종 가지셨으며, 곡식을 심고 거두는 일에 큰 
자부심을 느끼셨다. 
 아버지는 제철이 아니면 사냥을 하지 않으셨다. 사슴과 꿩과 메추라기, 그리고 
다른 사냥감들이 떼를 지어 우리의 농장지대에서 어슬렁거려도 아버지는 절대로 
총을 잡지 않으셨다. 그리고 자연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땅에 인공 비료를 쓰거
나 가축들에게 인공적인 사료를 먹이는 걸 반대하셨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또 우리들 역시 같은 생각
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그 
당시 얼마나 양심적인 분이셨나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는 50년대 중반이
었고, 지구 차원의 환경 보호에 대해선 아무런 운동도 일어나기 전이었으니까. 
 아버진 참을성이 그다지 많은 분은 아니셨다. 하지만 한밤중에 일어나 가축들
을 순찰하는 일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으셨다. 이 시기에 맺어진 나와 아버지
의 관계는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남게 되었다. 그것은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
다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종종 사람들이 자신들의 아버지와 별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음을 고
백하는 걸 듣곤 한다. 사실 오늘날 많은 남성들의 가슴 속에는 자기들이 잘 알
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아버지의 내면세계에 대한 결핍감이 늘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난 아버지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자식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나머지 다섯 명의 자식들도 제각기 그런 은밀한 믿음을 갖고 있었겠지만, 
난 언제까지나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거기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었다. 나쁜 점이란, 아버지가 한밤중의 순
찰과 새벽녘의 마구간 점검의 동반자로 항상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따뜻한 잠자리를 떠나 혹한이 불어닥치는 바깥으로 나가야만 했다. 난 그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 아버지는 자신의 최선을 다하셨고 자
식들에 대한 애정에 변함이 없으셨다. 자식들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이해심 많고 
참을성이 있으셨으며, 부드러움을 잃지 않으셨다. 또한 우리들의 좋은 대화 상대
가 되어 주셨다. 목소리는 늘 다정했으며, 미소를 지을 때면 왜 엄마가 아버지에
게 반하셨는지 이해가 가곤 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훌륭한 교사가 되어 주신 것도 바로 이 시절의 일이다. 
아버지는 늘 사물이 왜 그러하며 그 원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셨다. 
순찰을 한 바퀴 다 도는 동안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이 넘도록 많은 얘기를 들
려 주셨다. 전쟁의 체험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참여한 전쟁이 왜 일어났으며, 
그 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떠했고, 전쟁의 결과와 여파가 무엇이었는지
도 설명해 주셨다. 또한 당신께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많이 들려 주셨다. 그 결과 
나는 학교에서 역사 과목에 가장 큰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아버지는 또 여행을 통해 자신이 얻은 것이 무엇이며, 세상을 두루 구경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버진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여
행의 필요성과 여행에 대한 애정을 심어 주신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서른 살도 
되기전에 30개가 넘는 나라에서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할 수가 있었다. 
 아버지는 배움에 대한 필요성도 일깨워 주셨다. 우리가 배우는 일을 사랑해야 
한다고 아버진 말씀하셨다. 학교 교육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그리고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성적이 향상되기를 무척 바라셨다. 
 "넌 할 수 있어."
 아버진 늘 그렇게 용기를 주셨다. 
 "넌 부레스 집안의 딸이야. 넌 재능이 있어. 게다가 넌 선한 마음을 갖고 있
다. 네가 부레스 집안의 자랑스런 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그러니 아버지를 실망시킬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떤 학과 과목이든지 항상 자
신감을 갖고 도전했다. 마침내 나는 박사학위를 딴 다음에 또다시 두 번째 학위
를 쉽게 따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아버지가 내 자신에게 심어 주신 호기심과 
탐구심의 결과였다. 
 아버지는 가치관과 가치 기준에 대해, 그리고 인격의 발달과 그것이 한 사람
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다. 나는 현재 그것과 비슷한 
주제의 책들을 쓰고 강의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는 또 인생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방법과 그것을 되돌아보는 법, 그
리고 어느 시점에서 그 결정을 포기해야 하며 때로는 역경이 닥쳐와도 끝까지 
그것을 밀고 나가는 법에 대해 설명하셨다. 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신 것은 소유
나 획득 에 대한 것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의 성장에 대한 것이었다. 난 아직도 
아버지가 해 주신 다음의 말을 곧잘 사용하곤 한다. 
 "절대로 너의 가슴만은 남에게 팔지 말아라."
 그분은 또 본능에 따른 직관을 지적하면서, 그것과 감정적인 판단을 구분하는 
법, 그리고 남에게 놀림감이 되지 않는 법을 얘기하셨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언제나 너의 본능적인 직관에 귀를 기울여라. 너에게 필요한 모든 해답이 
이미 네 안에 있음을 알아라.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갖도록 해라.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네 안에 있는 해답을 발견하고, 그것들에 귀를 기울여라. 네가 가장 
사랑하는 일을 찾도록 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삶을 살아라. 너의 목표는 네가 가
진 가치관에서 생겨나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네가 하는 일이 네 가슴이 바라는 
것과 일치하게 된다. 이것이 네 인생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방황으로부터 널 지
켜 줄 것이다. 너의 삶은 곧 너의 시간이다. 네게 주어진 시간만큼 넌 성장하게 
될 것이다."
 아버진 또 말씀하셨다. 
 "네 주위 사람들을 돌봐 줘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너의 어머니인 이 대지를 
존중해야 한다. 네가 어느 곳에서 살든지, 나무와 하늘과 흙이 바라보이는 장소
를 선택해라."
 나의 아버지!
 그분이 얼마나 자식들을 사랑하고 높이 평가했는가를 추억할 때면, 난 자신들
의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고 또한 한 인간 속에 깃들인 인격과 윤리와 감
수성의 힘을 결코 느끼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진심으로 연민을 느낀다. 나
의 아버지는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 그대로의 삶을 살으셨다. 그리고 난 아버지
가 늘 내게 진지하셨다는 걸 안다. 아버지는 나를 가치 있는 인간으로 대하셨으
며, 나 역시 그 가치를 알게 되기를 희망하셨다. 
 아버지가 전해 준 메시지들은 내겐 정말로 의미 있는 것들이 되었다. 왜냐하
면 난 그분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어떤 모순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
버진 자신의 삶에 대해 사색하셨고, 날마다 그 삶을 살으셨다. 몇 군데의 농장을 
구입해서는 그곳에 많은 시간을 쏟으셨다. 
 현재도 아버지는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활동적이시다. 아버지는 한 여자와 결
혼해서 평생 동안 그 여자만을 사랑하셨다. 이제 엄마와 아버지가 결혼하신 지 
5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변함없는 연인이시다. 두 분은 내가 지금까지 보
아 온 가장 아름다운 연인임에 틀림없다. 
 아버지는 또한 자신의 가정을 더없이 사랑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약간 지나치
게 자식들을 보호하고 소유하려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한 사람의 부
모가 된 나는 그것의 필요성과, 아버지의 심정이 어떤 것이었나를 이해한다. 아
버지는 자식들을 홍역으로부터 보호해 주셨고, 동시에 파괴적인 악행에 우리를 
잃는 것도 단호히 거부하셨다. 또한 우리를 책임감 있고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성인으로 만들기 위해 아버지가 얼마나 굳은 의지를 가지셨었는지 난 안
다. 
 현재까지도 아버지의 자식들 중의 다섯 명은 아버지와 불과 몇 마일밖에 떨어
지지 않은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모두가 그분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자식들 모두 헌신적인 배우자와 부모가 되었으며, 농사일을 천직으로 선택했다. 
또한 모두가 자기들의 속한 공동체의 중심 인물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다. 
 나 혼자만 삐딱한 자식이 되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아버지가 한밤중의 순찰
에 날마다 나만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나머지 다섯 명
의 자식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나는 현재 교육학자와 카운셀러의 길
을 걷고 있으며,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또한 내가 어린 시절에 배운 자기 
존중의 중요성을 나누기 위해 부모와 자녀들을 위한 몇 권의 책을 썼다. 내가 
내 딸에게 전하는 메시지들도 약간 다른 형식이긴 하지만 결국 내가 아버지로부
터 배운 가치관들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내 자신의 삶의 경험도 그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그것들은 그렇게 대를 이어전해져 내려갈 것이다. 
 내 딸에 대해 약간 소개할 것이 있다. 그 애는 매년 세 가지의 운동 종목에서 
상을 받아 오는, 키가 170센티미터인 말괄량이이며, 미스 틴에이지 캘리포니아 
콘테스트의 최종 선발전에 오르기도 했다. 성적도 항상 A학점을 오르내린다. 그
러나 그 애한테서 발견할 수 있는 나의 부모님의 유산은 외모나 성적만이 아니
다. 그 애를 아는 사람들은 그 애가 친절하고, 영적이고, 외부로 발산되는 특별
한 내면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나의 부모님이 가지신 특성이 그들의 
손녀딸 속에서 그대로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자식들을 존중하고, 그리고 헌신적인 부모가 되기 위한 두분의 노력은 우리 
자식들의 삶뿐 아니라 두 분의 삶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아버지는 미네소타 주로체스터의 마요 병원 근처에 계신다. 일주일 가까이 걸리
는 종합 건강 테스트를 받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12월이다. 혹한의 겨울이기 때
문에 아버지는 외래환자로서 병원 근처의 호텔에 묵고 계신다. 집안일 때문에 
어머니는 처음 며칠만 아버지와 함께 지내시다가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크
리스마스이브인데도 두 분이 떨어져 지내게 되셨다. 
 그날 밤 나는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려고 먼저 로체스터에 계신 아버지에게 전
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목소리에 기운이 없으시고 의기소침해 계셨다. 그 다음 
나는 아이오와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어머니 역시 슬프고 침울한 분위
기셨다. 
 "이것이 네 아빠와 내가 처음으로 떨어져서 보내는 명절날이란다. 네 아빠가 
안 계시니 전혀 크리스마스 같지가 않구나."
 어머니는 끝내 목이 메셨다. 
 나는 그때 이미 14명의 저녁 손님을 초대한 상태였고, 곧 저녁 파티가 시작될 
형편이었다. 나는 요리를 준비하러 부엌으로 돌아갔지만 부모님의 우울한 기분
을 쉽사리 떨쳐 버릴 수가 없어서 다시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큰언니는 다
시 오빠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전화를 통해 서로 회의를 했다. 그래서 결
론이 내려졌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부모님을 떨어져 계시게 해선 안 된다고 결
론을 내린 우리는, 남동생이 두 시간 떨어진 로체스터로 차를 몰고 가서 아버지
를 모시고 집까지 가기로 했다. 물론 어머니한테는 비밀이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우리의 계획을 말씀드렸다. 
 "아, 아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렇게 할 것 없다. 이런 밤중에 차를 몰고 여기까지 오는건 위험한 일이야."
 남동생이 로체스터에 도착해서 아버지의 호텔 방문을 두드렸다. 남동생은 나
한테 전화를 걸어서 아버지가 집으로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신다고 전했다.
 "누나가 잘 말씀드려. 누나 말이라면 아빠가 들으실 거야."
 나는 아버지에게 부드럽게 말씀드렸다.
 "집으로 가세요. 아빠"
 아버지는 그렇게 하셨다. 남동생 팀과 아버지는 아이오와를 향해 출발했다. 우
리들 자식들은 남동생의 카폰을 통해 그들이 지금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으며 
날씨는 어떤지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때쯤 우리 집에는 손님들이 모두 
도착했으며, 다들 이 일을 알게 되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우리는 스피커 폰
을 눌러 놓고서 대화를 주고 받았으며, 그래서 손님들 모두가 최종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9시가 조금 지나서 전화벨이 울렸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야, 내가 어떻게 네 엄마한테 줄 선물도 사지 않고 빈손으로 집에 들어갈 
수 있겠니? 크리스마스에 향수 선물을 하지 않는 것은 50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이때쯤 우리 집 저녁 파티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이 계획의 열성적인 응원 부
대가 되었다. 나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와 남동생이 어머니에게 줄 
선물을 살 수 있도록 집 근처에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쇼핑 센터가 있는지 확인
하도록 했다. 아버지가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머니에게 선물하시는 똑같
은 상표의 향수를 사기 위해서였다.
 그날 저녁 9시 52분에 남동생과 아버지는 미네소타의 작은 쇼핑 센터를 떠나 
집으로 출발했다. 11시 50분에 두 사람은 우리의 농장지대 안으로 들어섰다. 아
버지는 장난꾸러기 소년 처럼 킥킥거리셨으며, 집 앞에 이르러서는 어머니가 보
실 수 없도록 문 뒤에 숨으셨다.
 남동생이 자기가 들고 있던 가방을 어머니에게 건네 주면서 말했다.
 "엄마, 오늘 아빠한테 들렀더니 저더러 이 세탁물을 갖다주라고 해서 왔어요."
 "오냐, 그러냐. 어서 들어와라."
 어머니는 부드럽고 슬픈 어조로 말씀하셨다.
 "안 그래도 네 아빠가 무척 보고 싶었는데, 지금 그 빨래나 해야겠다."
 그러자 아버지가 문 뒤에서 걸어나오시면서 말씀하셨다.
 "오늘밤엔 빨래할 시간이 없을 텐데!"
 친구이자 연인인 두 분의 감동적인 해후 장면을 남동생으로부터 전해 들은 뒤
에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 사랑해요!"
 "오, 이 장난꾸러기들!"
 어머니는 목이 메어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하셨다, 우리 집 손님들은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비록 나는 두 분이 계신 곳으로부터 2천 마일이나 먼 곳에 떨어져 있었지만, 
그 어느해보다도 두 분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렇
게 해서 두 분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한 번도 떨어져서 보내지 않게 되셨다. 그
것은 부모님을 존경하는 자식들의 애정의 결과였고, 물론 두 분의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결혼 생활의 결과였다.
 조나스 소크는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좋은 부모란 자식의 자녀들에게 뿌리와 날개를 준다. 뿌리는 가정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기 위함이고, 날개는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가서 자신들이 배운 것
을 경험하기 위함이다."
 자녀들 각자에게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엮어 나가는 기술을 가르쳐 주고, 또
한 안전한 둥지를 만들어 언제나 자식을이 그 곳으로 돌아오면 환영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라면, 나는 내가 부모를 잘 선택한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크리스
만스 이후 나는 두 분이 나의 부모가 된 것은 정말 필요한 일이었다고 가슴 깊
이 느끼게 되었다. 비록 날개는 나로 하여금 지구여러 곳을 날아다니게 하지만, 
이곳 캘리포니아에 또 다른 아름다운 둥지를 만드는 데는 두 분이 내게 심어 준 
뿌리가 영원히 변치 않는 토대가 될 것이다.
 베티영즈

 척추 지압의 세계 일인자
 그 아이는 내 딸이고, 현재 열일곱 살이며, 사춘기의 열병을 앓고 있다. 최근
엔 한 차례 몸이 아프고 나더니, 그 다음에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곧 다른 도시
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학교 성적도 자신이 기대한 것만큼 썩 좋지 않았다. 물론 엄마와 내가 기대했
던 것만큼도 좋지 않았다. 아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하루 종일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있곤 했다.
 나는 딸아이에게로 가서 그 아이의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그
래서 그 애의 어린 영혼에 뿌리내린 슬픔의 잡초들을 다 뽑아 내고 싶었다. 그
러나 난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그 아이를 염
려하고, 그 아이의 불행을 걷어 주고 싶다 해도.
 가족 치료요법사인 나는 성희롱에 의해 인생이 망가진 환자들을 지켜보면서, 
아버지와 딸 사이의 부적절한 애정 표현이 때로는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염려와 친밀감의 표현이 쉽게 성적인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애정 표현을 성적인 유혹으로 받
아들이기 쉬운 사람들에겐 더욱 그랬다.
 딸아이가 두세 살일 때나 일곱 살 때까지만 해도 그 애를 안고 어루만지는 것
이 얼마나 쉬운 일이었던가. 그러나 이제 딸아이의 신체는 어엿한 한 여성의 신
체로 성장해 가는 중이었고, 이 사회는 남성인 내가 그 애의 몸을 어루만지는 
것을 의심스러 눈초리로 쳐다볼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는 아버지와 십대인 딸 사이에 필요한 경계선을 잘 지키면서 
그 애를 위호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딸아이에게 척축 지압을 제의했다. 
딸아이는 금방 내 제의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 애를 엎드리게 하고서 부드럽게 척추뼈와 뭉친 어깨 근육을 지압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애에게 최근에 내가 집을 비우고 여행을 떠나
야 했던 것에 대해 사과했다. 나는 내가 국제 척추 지압 결선 대회에 참가했다
가 4위의 성적을 올리고 방금 돌아온 길임을 설명했다.
 나는 또, 염려하는 마음을 지닌 아버지의 척추 지압 손길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을 것이라고 딸아이에게 말했다. 특히 그 염려하는 아버
지가 세계 수준의 척추 지압사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내 손과 손가락이 딸아이의 젊은 육체에 있는 뭉친 근육들과 긴장들을 하나씩 
풀어 나가는 동안 나는 그 지압 경연 대회의 내용과 경연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
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지압 경연에서 3위에 입상한, 주름 가득한 얼굴의 동양 노인이 있었다. 전생애
에 걸쳐 침술과 지압술을 연구해 온 그 노인은 자신의 모든 기를 손가락에 집중
시켜 지압을 하나의 예술 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노인은 마술사와도 같은 정확성으로 찔렀다가 누르고, 그런가 하면 또다시 
찔렀다가 누르곤 했지."
 나는 딸아이에게 노인에게 배운 것을 잠깐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아이는 감탄
사를 연발했다. 그것이 내 지압술에 대한 감탄사인지 아니면 내 시적인 설명에 
대한 것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그 다음에 나는 2위를 차지한 여성 지압사에 대해 설명했다. 그 여자는 터키 
출신인데 어려서부터 배꼽춤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몸의 근육을 물결처럼 움직
이게 할 수 있었다. 척추 지압을 하는 동안 그 여자의 손가락들은 모든 피로한 
근육들과 지친 신체 부위들을 일깨워 춤추듯이 떨게 하고 전율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역시 시범을 보이면서 내가 말했다.
 "그 여자의 손가락들이 신체 위를 걸어다니면, 마치 근육들이 그 뒤를 쫓아
다니며 춤추는 것과 같았지."
 딸아이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서 응얼거렸다.
 "섬뜩한 기분이 들어요."
 그것이 내 생생한 표현 때문에 나온 말일까, 아니면 내 지압술 때문일까?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딸아이의 등을 지압하는 일에 몰두했다. 잠시 후에 
아이가 물었다.
 "그래서 일등은 누가 했어요?"
 내가 말했다.
 "넌 말해도 믿지 않을 거다. 1위는 갓난아이가 했단다."
 그런 다음 나는 갓난아이의 부드러운 손길이 어떻게 피부의 세계를 탐색하고, 
느끼고, 어루만졌는가를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손길과도 같지 
않았다. 그것은 부드러움을 능가한 부드러움이었다. 예측할 수 없고, 한편으론 
감미로우면서도 또 한편으론 탐색적이었다. 두 개의 작은 손이 세상의 어떤 말
로 표한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소속감에 대해서, 신뢰에 
대해서, 그리고 순진무구한 사랑에 대해서.
 나는 그 갓난아이에게서 배운 대로 부드럽고 감미롭게 딸아이를 지압하기 시
작했다. 그 애를 껴안고, 요람에 넣고 흔들면서, 그 애가 자신의 세계를 향해 
더듬거리며 성장해 나가는 것을 내 눈으로 지켜보았었다. 사실 내게 최초로 갓
난아이의 손길을 가르쳐 준 것은 다름아닌 딸이었다.
 다시금 침묵 속에서 부드럽게 지압을 하고 나서 나는 딸아이에게 말했다. 세
계 정상급의 척추 지압사들로부터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무척 기뻤노라고. 그
래서 이제 난, 어른 세계로 고통스럽게 나아가고 있는 열일곱 살 먹은 딸을 위
해 전보다 더 훌륭하게 척추 지압을 해 줄 수 있게 되었노라고. 
 나는 그런 생명이 내 손에 주어진 것에 대해, 그리고 손길을 기적을 행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에 대해, 그리고 손길의 기적을 행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에 대
해 감사를 드렸다.
 말없이 엎드려 내 말을 듣고 있던 딸아이가 몸을 일으키더니 두 팔로 내 목을 
껴안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난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빠, 전 아빠를 사랑해요!"
 빅터 넬슨

 넌 내 사랑하는 아들이지
 아들 녀석을 학교까지 태워다 주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들아, 좋은 아침이구나. 보이 스카우트 복장을 하고 있으니 오늘따라 네가 
아주 날렵해보이는구나. 네 아버지가 보이 스카우트 단원이었을 때는 훨씬 뚱뚱
했었지.
 난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머리를 기를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 하지만 어쨌
든 난 너의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귀를 덮은 머리, 엄지
발톱에 든 멍, 무릎의 상처... 우린 그런 것들에 차츰 익숙해지게 되었지.
 이제 넌 열 살이 되었고, 어느 새 너에 대한 많은 것들을 내가 모르고 지내게 
되었다. 콜럼부스 데이(아메리카 대륙 발견 기념일)에 넌 아침 아홉시에 집을 
나갔지. 그리고 점심시간에 42초 동안만 널 볼 수 있었으며, 넌 다섯시나 돼서야 
저녁을 먹으로 나타났지. 난 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너에게
도 나름대로의 심각한 사업이 있는 것이겠지. 거리에 있는 컴퓨터 게임만큼 심
각한 사업이.
 넌 당연히 성장해야만 하고, 그것은 할인 쿠폰을 모으고 주식 시세를 파악했
다가 적절한 시기에 파는 일보다 훨씬 더 중효한 일이지. 넌 네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배워야만 한다. 그리고 어떻게 그 일들을 해
낼 것이지를 배워야 하지. 넌 또 사람들에 대해서도 배워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에 대해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도. 그들은 자전거를 걷어차거
나 어린애들을 못 살게 굴지. 넌 또 남에게 욕설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표
정을 짓는 법도 배워야 하겠지. 누가 욕을 하면 언제나 기분이 나쁘지. 하지만 
넌 당당히 고개를 쳐들고 다녀야 한다. 안 그러면 다음 번엔 그들이 더 심한 욕
을 퍼부을 테니까. 난 다만 네가 그때의 기분이 어땠는가를 기억하길 바란다. 
너보다 나이가 어린애를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내가 널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였지? 난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난 할 일이 많으니까 말야. 하지만 난 내가 너한테 마지막으로 
소릴 지른 게 언제였는가는 기억이 난다. 네가 꾸물거리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늦는다고 소릴 질렀었지. 닉슨 대통령이 말한 대로 난 네게 소릴 지르는 만큼 
널 다정하게 격려해 주지 못했다. 네가 이 글을 읽을 경우를 대비해 여기에 확
실히 밝혀 두지만, 난 진심으로 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난 너의 독립심을 
좋아하고, 내 자신이 약간 겁이 날 때조차도 넌 너 자신을 잘 돌보고 있어. 넌 
어떤 경우에도 심하게 떼를 쓰거나 징징거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겐 네가 최
고의 아이이지.
 왜 세상의 아버지들은 열 살짜리 아들도 네 살짜리 아들과 똑같이 많이 껴안
아 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도 깨닫지 못하는 걸까. 나조차도 널 껴안고 
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 대신 걸핏하면 "무슨 소릴 하는거니?"하면서 
널 쥐어박기 일쑤지. 애정을 감추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왜 열살짜리 아들
은 서른여덟 살 먹은 아버지도 네 살짜리 아이처럼 똑같이 많이 껴안아 줄 필요
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
 널 태워다 주는 학교까지의 거리가 너무 짧은 것이 아쉽구나. 난 어젯밤에 너
와 함께 대화를 하고 싶었다. 네 동생이 먼저 잠든 다음에도 넌 자지 않고 나와 
함께 뉴욕 양키스 팀의 야구 경기를 시청했지. 그런 시간들은 너무도 소중한 것
이다. 그건 계획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지. 우리가 어떤 걸 함께 계획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들은 맘먹은 만큼 따뜻하거나 보람 있기가 어렵지. 너무도 짧은 
시간 만에 넌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듯했고, 우린 별말 없이 앉아서 텔레비젼
을 보았다. "학교에선 잘 지내니?"하고도 난 묻지 않았어. 난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너의 수학 숙제를 점검해주었지. 계산기를 갖고서 말야. 
넌 나보다 숫자에 밝아. 난 아무리 해도 그렇게 될 수가 없지. 그러다가 우린 경
기에 대해 얘기했고, 넌 선수들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었어. 난 너한
테서 많은 걸 배웠다. 양키스 팀이 승리했을 때 우린 둘 다 좋아서 환성을 질렀
지.
 저기 교통 안전 지도원이 보이는구나. 저분은 아마도 우리 보다 더 오래 살 
거야. 네가 학교를 쉬는 날이라면 좋으련만.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구
나.
 넌 재빨리 내 차에서 내리지. 난 한순간이라도 더 너와 함께 있고 싶지만, 넌 
이미 친구들에게로 달려가고 있다. 
 난 다만 너한테 말가고 싶었다.
 "넌 내 사랑하는 아들이지".
 빅터 B.밀러

 당신이 무엇을 하는가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
 당신의 행동이 너무도 큰 소리로 말하기 때문에 난 당신이 입으로 말하는 걸 
들을 수가 없다.
 랄프 왈도 에머슨

 미국 오클라호마 시의 어는 햇빛 화창한 토요일 오후였다. 내친구이자 자부심
이 강한 아버지인 보비 루이스는 두 명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미니 골프장에 놀
러 갔다. 표 파는 곳으로 다가간 그는 매표원에게 물었다.
 "얼마입니까?"
 젊은 매표원이 말했다.
 "어른은 3달러이고, 여덟 살 이상의 아이도 3달러입니다. 여덟 살 이하으이 
어린이는 무료 입장이구요. 아드님들이 몇 살인가요?"
 보비가 대답했다.
 "변호사인 아이는 다섯 살이고, 의사인 아이는 아홉 살이오. 그러니 6달러만 
내면 되겠군요."
 그러자 매표원이 말했다. 
 "선생님, 혹시 복권에라도 당첨되셨나요? 큰애의 나이가 여덟 살이라고 말하
면 3달러를 버는 셈이 되는데 뭣하러 솔직하게 아홉 살이라고 말하죠? 여덟 살
이든 아홉 살이든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보비가 말했다.
 "당신 말도 일리가 있소, 하지만 이이들에겐 그것이 큰 차이가 있소." 
 랄프 왈도 에머슨은 "당신의 행동이 너무도 큰 소리로 말하기 때문에 난 당
신이 입으로 말하는 걸 들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많은 도전이 밀려오는 시기
엔 특히 그 어느 때보다 정직성이 필요하다. 당신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패트리샤 프립

 엄마의 일생
 네가 먹은 접시는 네가 싱크대에 갖다 놓아라. 제발 부탁이다.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그걸 좀 갖고 내려가렴.
 그걸 거기다 두면 어떡하니, 위층으로 가져가야지.
 그게 네 거니? 네 거야?
 너, 동생 때리지 마.
 내 말 안 들리니? 
 가만히 좀 있어라. 엄마가 딴 사람과 얘기하고 있는 거 안 보이니?
 엄마 방해하지 말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지!
 이 닦았니?
 너 여태껏 잠 안 자고 뭐하니?
 어서 잠자리에 가서 누워.
 아침부터 텔레비전 보는 거 아니다.
 그런 말이 어딨니? 할 일이 그렇게도 없다는 거야?
 밖에 좀 나가 놀아라.
 책 좀 읽어라. 책 좀!
 텔레비전 소리 좀 줄여라. 제발.
 전화 그만 끊어라.
 네 친구한테 네가 다음에 다시 건다고 그래, 어서!
 여보세요. 그 앤 지금 집에 없는데.
 그 애가 돌아오면 전화 걸라고 할게. 
 점퍼 입어야지, 넌 왜 스웨터를 안 입으려고 그렇게도 고집을 부리니?
 아무거나 좀 입어라.
 누가 여기다 신발을 벗어 놓았니?
 그 장난감 좀 거실에서 치워라. 그 장난감 좀 욕조 안에다 집어 넣지 마라. 그
장난감 좀 계단에다 어질러 놓지 말라.
 그러다가 딴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할래?
 열을 셀 때까지 안 나오면 너 떼어 놓고 우리끼리 간다. 정말이야. 하나, 둘...
 너 화장실 갔었니?
 화장실 안 가면 넌 이자리서 못 떠날 줄 알아.
 내 말 우습게 듣지 마.
 왜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 안 들렀니?
 참을 수 있겠어? 
 너희들 뒤에서 무슨 짓 하고 있니?
 그만 해.
 그만 좀 하라니까!
 더 이상 그 소리 듣고 싶지 않다. 넌 지겹지도 않니?
 입 다물어. 안 그러면 당장 집으로 돌아갈 테다.
 거짓말 아냐. 자, 집에 간다.
 엄마한테 뽀뽀 좀 안 해 줄래?
 엄마 한 번 껴안아 주라. 
 네 이불은 네가 개야지.
 네 방 청소 좀 해라.
 식탁 좀 차려라.
 네가 식탁 좀 차리면 얻디가 덧나니?
 네 차례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니?
 식탁에서 일어났으면 의자 좀 안으로 집어넣어라.
 똑바로 앉아서 먹어라.
 조금만 먹어 봐. 다 먹으라는 것도 아니잖니.
 그만 놀고 밥 먹어라.
 자기가 하는 행동을 잘 살펴야지. 
 유리컵 좀 안쪽으로 놔라.
 너무 식탁 가장자리에다 놓았잖니.
 조심! 그것 보라. 조심하라고 했잖니!
 뭘 더 달라는 거니?
 조금만 더 먹어라, 제발 부탁이다. 그래야 건강해지지.
 이 두부 한 입만 먹어 봐.
 네가 원하는 대로 다 가질 순 없는 거야. 그게 인생이라는 거다.
 나하고 입씨름하려고 하지 마라. 난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너하고 토론하고 싶
지 않다.
 어서 네 방으로 돌아가.
 넌 이 엄마가 아예 집을 나가 버렸으면 좋겠니?
 아냐. 아직 10분 안 됐어.
 1분만 더 기다려.
 내가 너한테 얼마나 많이 주의를 줬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얘가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지?
 옆집 애들 좀 봐라. 얼마나 말 잘 듣고 착하니.
 이 과자 누가 다먹어 치웠니?
 새로 사온 과자를 먹기 전에 옛날에 사온 것부터 먹어 치워야지. 너도 한번 
생각해 봐라.
 버섯을 먹으라는 게 아냐. 봐라. 버섯은 다 덜어 냈잖니.
 숙제 다 했니?
 그만 좀 징징거려라. 귀가 따가워 죽겠다.
 소리 좀 지르지 마라. 할 말이 있으면 이리 나와서 해야지.
 소리 지르지 말라니까! 할 말이 있으면 이리 나와서 해!
 나중에 생각해 볼게.
 지금은 말고.
 네 아버지한테 부탁해 보렴.
 기다려 봐야지.
 그렇게 바싹 다가가서 텔레비전을 보면 어떡하니. 눈 나빠진다.
 너 똑바로 앉아서 보지 않으면 텔레비전 꺼 버린다.
 흥분하지 좀 마라.
 흥분하지 말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해 봐.
 그 거짓말 정말이니?
 안전밸트 매야지.
 모두들 안전밸트 맸지?
 나도 내 인생이 지겹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미안해, 하지만 이건 규칙이야. 미안해, 하지만 이건 규칙이야. 미안해, 하지만 
이건 규칙이다.
 델리야 에프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가정
 완벽한 일요일 아침 10시 30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정은 완벽한 가정
이었다.
 아내는 일곱 살짜리 데리고 피아노 개인교사를 만나러 갔다. 열다섯 살 먹은 
큰아들 녀석은 아직까지 늦잠을 자는 중이었다. 다섯 살짜리 막내 아들은 다른 
방에서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선 인간처럼 묘사된 작은 동물들이 서로
를 절멱 아래로 집어던지고 있었다. 나는 부엌 식탁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마침내 만화영화의 대량학살 장면에 싫증도 나고 텔레비전 리모콘 작동에도 
시들해진 다섯 살짜리 아론 말라치가 내 공간 속으로 뛰어들어왔다.
 "나 배고파."
 내가 물었다.
 "시리얼 더 먹을래?"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다시 물었다.
 "요구르트 줄까?"
 "아니."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돼?"
 난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안 돼."
 나는 아이스크림이 가공처리한 시리얼이나 항생물질이 들어 있는 계란보다 훨
씬 영양가가 많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 문화적인 가치 기준에 따르면 일요일 
아침 10시 45분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잘못된 일이다.
 잠시 침묵. 4초가 지난 뒤 아이가 물었다.
 "아빠, 우린 앞으로 살날이 많이 남았지? 그렇지?"
 내가 말했다.
 "그럼, 아직 많이 남았지."
 "나도, 아빠도, 엄마도?"
 "그래."
 "아이삭 형도?"
 "응."
 "또 벤 형도?"
 "응. 너하고, 아빠하고, 엄마하고, 아이삭하고, 벤하고."
 "맞아, 아직 한참이나 남았어. 사람들이 다 죽으려면."
 아론은 식탁 위의 내 신문 한가운데에 부처님처럼 가부좌를 틀로 앉았다.
 내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니, 아론? 사람들이 다 죽다니?"
 아론이 말했다.
 "모두가 언젠가는 다 죽는다고 아빠가 그랬잖아. 모두 다 죽으면 공룡이 돌
아올거야. 원시인들이 공룡 동굴 속에서 살았는데, 그때 공룡들이 와서 원시인들
을 다 밟아 버렸어."
 아론은 다섯 살밖에 안 됐지만 이미 삶을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것으로 이
해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궤도의 종착역을 향해 이동하
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궤도가 언제 끝나 버릴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순간 나는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아이에게 신과 구원과 영원에 대해 설명해줘야 할 것인가? 아이에게 다음과 같
이 일장연설을 해 줘야 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너의 육체는 하나의 껍질에 불과한 것이고, 네가 죽은 다음에도 우리 모두
는 영적으로 영원히 함께 있을 거야."
 아니면 아이를 불확실하고 걱정스런 상태 속에 그냥 내버려 둬야 할까? 그것
이 어디까지나 사실이니까 말이다. 아이를 불안에 찬 실존주의자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더 기분 좋은 상태로 만들 것인가?
 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궁지에 부닥친 게 확실했다. 나는 말없
이 신문을 응시했다. 캘틱 팀은 금요일 밤 경기마다 연패를 당하고 있었다. 래리 
버드가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있는데,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건지 아론의 발이 가
리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지만, 예민한 성격 탓인지 지금이 매우 중
요한 순간이고 아론의 인생관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아니
면 정말로 나의 지나친 예민함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만일 
삶과 죽음이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 내가 신경 쓸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식탁 위에서 아론은 두 팔을 들고 떨리는 다리로 균형을 잡으면서 '군인흉태
'를 내고 있었다. 래리 버드가 화를 내고 있는 상대는 케빈 맥케일이었다. 아
니, 케빈 맥케일이 아니라 제리 시칭이었다. 하지만 제리 시칭은 이제 캘틱 팀의 
소속이 아니다. 제리 시칭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모든 것이 죽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언젠가는 끝난다. 제리 시칭은 새크라멘
토 팀이나 올란도 팀에서 활약하고 있든지, 아니면 영원히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아론이 어떻게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가에 대해 나는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
다. 나는 그 애가 확고한 세계관, 사물이 영속한다는 느낌을 갖기를 원했다. 그
리고 보니 수녀님과 신부님들은 나를 이해시키는 데 성공한 셈이다. 내가 믿기
에 인생은 축복 아니면 고통이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장거리 전화조차 연결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신의 팀에 소속되든지 아니면 펄펄 끓는 국물 속에 들
어가야 한다.
 난 아론이 뜨거운 가마솥 안에서 화상을 입는 걸 원치 않았으며, 그 애가 강
한 믿음을 갖기를 원했다. 신경과민이나 불가피한 불안감 같은 건 그 다음에 생
각할 문제였다.
 그것이 가능할까? 신, 영혼, 운명, 또는 그 무엇인가가 한 개인의 현존에 상관
없이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일이 가능할까? 존재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빵을 손상 
없이 그대로 간직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먹는 일이 가능할까? 아니면 그 예민한 
빵은 한 입 베어 무는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 금방 조각나게 될까?
 식탁이 더 심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봐서 아론이 군인 흉내에도 싫증이 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을 이용해 나는 연극 무대에 선 사람처럼 목청을 가다듬
고 전문가다운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아론, 죽음이라는 건 몇몇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그때 아론이 말했다.
 "아빠, 나랑 비디오 게임하면 안 돼? 폭력적인 게임이 절대 아냐."
 아론은 손짓까지 동원해서 설명을 했다. 
 "마구 죽이는 다른 게임들하곤 달라. 그냥 때려서 쓰러뜨리기만 한다니까."
 난 약간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좋다. 우리 비디오 게임 하자.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어요."
 "뭔데?"
 아론은 벌써 저만치 비디오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다 말고 돌아서서 물었다.
 내가 말했다.
 "먼저, 아이스크림 먹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또다시 완벽한 일요일 아침의, 완벽한 가정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이클 머피
 
 사랑한다는 말
 만일 당신이 다음 순간에 죽기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으로 전화 한 통화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다면 왜 
당신은 망설이고 있는가?
 스티븐 레바인

 어느 날 밤, 그 동안 읽어 온 '좋은 부모가 되는 길'에 관한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나는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그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부모
가 마땅히 해야 할 일 몇가지'를 내 자신이 그 동안 제대로 해 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부모는 자식에게 "난 널 사랑한다."는, 마술적인 힘을 가
진 세 단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식은 부모가 무조건적이고 
분명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고 그 책은 거듭해서 강조
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덮고, 아들 방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노크했다. 그러나 들
리는 거라곤 아들이 치는 드럼 소리뿐이었다. 아들이 방 안에 있는 게 분명했지
만 노크를 해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한 대로 아들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 테이프를 들으면서 사정없이 드럼을 쳐대고 있었다. 나는 그 애의 주
의를 끌기 위해 슬쩍 몸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팀, 잠깐 시간 좀 내주겠니?"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물론이죠, 아빠. 언제든지요."
 우리는 마주 앉아서 약간 어색하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나
는 그 애를 바라보며 말했다.
 "팀, 난 네가 드럼 치는 게 정말 좋다."
 아들은 말했다.
 "아, 그래요? 고마워요, 아빠."
 나는 문 쪽으로 걸어나가면서 말했다.
 "그럼 잘 자거라."
 아래층으로 걸어내려가다 말고, 나는 내가 어떤 말인가를 하려고 아들 방에 
올라갔던 것인데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올라가
서 기회를 포착해 그 마술적인 세 단어를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층계를 되올라가 문을 두드린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시간 좀 낼 수 있니, 팀?"
 아들이 말했다.
 "얘야, 내가 처음에 이 방에 올라왔을 때 난 너에게 어떤 할 말이 있어서 왔
는데 그만 딴 얘기만 하고 말았다. 그것들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어. 
팀, 넌 기억하니? 네가 처음으로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넌 나하고 많은 문
제를 일으켰었지. 그때 난 네 베개 밑에다 세 개의 단어를 적은 종이 쪽지를 넣
어 놓았었다. 그것이 우리의 갈등을 해결해 주리라고 희망하면서 말이다. 난 부
모로서 내 할 일을 했던 것이고, 또한 아들에 대한 내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야."
 잠시 더 얘기를 나눈 뒤, 마침내 나는 팀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널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말아 다오. 난 네가 그걸 알아 주길 바란다."
 아들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그래요? 고마워요, 아빠. 아빠와 엄마가 그렇다는 말씀이시죠? 
 나는 말했다.
 "그래, 우리 둘 다. 다만 우리가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아들이 말했다.
 "고마워요. 말씀 안 하셔도 두 분이 절 사랑하신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나는 다시 문을 닫고 아들 방을 나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정말 믿을 수 없군. 두 번씩이나 올라갔는데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어. 내 입에선 계속 엉뚱한 말만 나왔단 말야.'
 나는 다시 올라가서 팀이 내 마음을 정확히 알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
들에게 분명히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아들이 현재 키가 180센티미터라
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다시 올라가 노크를 했다. 그러자 아들이 안에
서 소리쳤다.
 "잠깐만요. 말씀 안 하셔도 누군지 알아요. 아빠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나는 문을 열면서 물었다.
 "어떻게 나라는 걸 알았지?"
 아들이 대답했다.
 "아빠의 아들이 된 다음부터 줄곧 아빠를 알아 왔잖아요."
 내가 다시 말했다.
 "그럼 잠깐 시간 좀 낼 수 있겠니?"
 "그럼요. 아빠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드릴 수 있다는 걸 아빠도 
아시잖아요. 어서 들어오세요. 제 생각에, 아빠는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을 아직도 
못 하신 거죠?"
 내가 물었다.
 "어떻게 그걸 알았지?"
 "기저귀 찬 뒤부터 줄곧 아빠를 알아 왔잖아요."
 난 말했다.
 "팀, 내가 계속해서 마음 속에 묻어 둔 것이 있다. 난 네가 우리 가정에서 얼
마나 특별한 존재인가를 너한테 말해 주고 싶구나. 네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지
금까지 무엇을 해 왔든, 또한 네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무슨 일을 한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넌 그냥 우리에게 한 사람의 인간이고 사랑스런 아들일 뿐이
야. 난 널 사랑하며,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네가 알아 주길 바란다. 이토록 중
요한 사실을 왜 자꾸 마음 속에만 묻어 두는지 내 자신도 모르겠구나."
 아들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저도 아빠가 절 사랑하신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아빠가 직접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기뻐요. 아빠가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의도도 고맙구요. 그
런 생각도 정말 고마워요."
 내가 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아들이 나를 불렀다.
 "잠깐만요, 아빠. 잠시 시간 좀 있으세요?"
 나는 멈칫거렸다. 이크! 저 애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난 얼른 말했다.
 "물론이지. 난 언제든지 시간을 낼 수 있잖니."
 아이들은 어디서 이런 재치를 배운 걸까? 분명 부모들한테서 배운 건 아닐 테
고, 아들은 내게 말했다.
 "아빠한테 한 가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그러니?"
 아들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최근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세미나나 그런 비슷한 종류의 모임에 
참석하신 적 있으세요?"
 나는 당황했다. 이크! 역시 열여덟 살짜리 녀석답게 나보다 한 수 위군!
 난 말했다.
 "아니야. 난 다만 어떤 책을 읽었다. 그 책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들의 느
낌을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아들이 말했다.
 "그랬군요.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그럼 다음에 또 얘기해요. 아빠, 편안히 주
무세요."
 나는 그날 밤 팀에게서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웠다. 사랑의 진정
한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일이라고. 
다시 말해, 상대방을 찾아가서 그것을 전하는 모험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는 것이다.
 진 베들리

 아이들에 대하여
 너희의 아이는 너희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 생명의 아들 딸이니
 저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을 뿐 너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또 저들이 너희와 함께 있기는 하나 너희의 소유는 아니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마라.
 저들은 저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너희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마
라.
 저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너희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 속에
서조차도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너희가 아이들같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너희같이 만들려고 
노력하진 마라.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머무르는 법이 없으므로.
 너희는 활이요, 그 활에서 너희의 아이들은 살아 있는 화살처럼 앞으로 날아
간다.
 그래서 활 쏘는 이가 영원의 길에 놓인 과녁을 겨누고 
 그 화살이 빠르고 멀리 나가도록 온 힘을 다하여 너희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
다.
 너희는 활 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이, 흔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기에.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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