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치매 환자의 ‘감각’과 ‘관계’, ‘의사소통’, ‘환경’, ‘감정’, ‘태도’ 등 치매가 불러오는 인간 삶의 모
든 영역을 들여다본다. 치매 당사자인 저자는 치매는 병의 진행이 급속하지 않아서 시작과 중간과 끝
이 선명히 이어지는 질환이므로 그 과정을 이해한다면, 누구라도 설령 치매 환자가 되어도 지나치게
당황하지 않아도 되며, 치매가 있어도 좋은 삶을 나름대로 행복하게 누릴 수 있다고 역설한다.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웬디 미첼 지음
▣ 저자 웬디 미첼
20년 동안 영국국민의료보험(NHS)에서 비임상팀 팀장으로 일하던 중 2014년 7월, 58세에 조기 발병
치매를 진단받았다. 사회나 병원 모두 치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치매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진단 이후에도 ‘삶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을 헌신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알
츠하이머병협회의 홍보 대사이며, 2019년에는 치매 연구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브래드포드대학교에
서 건강학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두 딸이 있으며 요크셔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 Short Summary
우리 앞에 놓인 난관이 무엇이든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며, 공유하고 보살피며, 도움을 주기 위해 존
재하는 것이 삶이다. 그런데 치매로 인해서 왜 우리의 삶이 멈춰져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내게 없는 것에 집중하는 반면, 치매 환자는 지금 여기의 순간에만 집중할 뿐이다. 따라서 치
매가 있어도 ‘좋은 삶’은 존재하며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만큼 이룰 수 있다.
이 책은 치매 환자의 ‘감각’과 ‘관계’, ‘의사소통’, ‘환경’, ‘감정’, ‘태도’ 등 치매가 불러오는 인간 삶의 모
든 영역을 들여다본다. 치매 당사자인 저자는 치매는 병의 진행이 급속하지 않아서 시작과 중간과 끝
이 선명히 이어지는 질환이므로 그 과정을 이해한다면, 누구라도 설령 치매 환자가 되어도 지나치게
당황하지 않아도 되며, 치매가 있어도 좋은 삶을 나름대로 행복하게 누릴 수 있다고 역설한다.
아울러 치매 환자에게 좋은 소식은 매일 새로운 날이 시작되므로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또 사용하는
언어와 어조, 진행성 질병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꿀 기회를 얻게 되는데, 그 기회는 치매를 진단받은
당사자이든 가족이나 지역 사회, 의료계에서 환자를 지원하는 사람이든 모두에게 있으며, 지원해 주는
사람에게 특히 중요하며, 변화를 주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고 강조한다.
▣ 차례
프롤로그 모두에게 알리고 싶은 ‘치매’ 이야기
1장 왜곡되는 ‘감각’
식사 방법 / 음식 / 음식의 선택 / 요양원 식사 / 달걀 삶기 / 후각 / 후각 환각 / 청각 / 시각 / 꿈 /
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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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2장 새로 도전하게 될 ‘관계’
간병 / 간병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 / 딸로서 간병하기 / 혼자 생활하기 / 관계에 대한 욕구 / 간병인으
로서의 치매 환자
3장 여전히 소중한 ‘의사소통’
사람들의 비판 / 언어의 중요성 /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말 / 장애인 취급당하는 경우 / 치매에 대한 서
술 / 언어 없는 의사소통 / 소셜 미디어 / 기술
4장 치매 친화적인 ‘환경’
계절 / 걷기 / 치매 친화적인 환경 만들기 / 이웃 / 어찌할지 모를 때 / 자기 집에 거주하기 / 추억의
방 / 집과 요양원 / 치매 마을
5장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하는 ‘감정’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 / 슬픔 / 두려움 / 불안 / 분노 / 죄책감 / 행복
6장 긍정적이어야 할 ‘태도’
상태가 나쁜 날 / 진단 / 대처하기 / 전문가의 태도 / 가족의 태도 / 자아감 / 긍정적인 태도 / 동료
환자들의 지원
에필로그 - “도대체 왜 멈춰야 하는가”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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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웬디 미첼 지음
왜곡되는 ‘감각’
식사 방법
치매는 예전에 식사하며 느꼈던 즐거움을 서서히 좀먹으면서 우리와 음식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나는
음식이 주는 사교의 기회, 스토브 위에서 부글부글 끓는 커다란 카레 통, 물씬 풍기는 향신료 냄새, 식
탁에 둘러앉은 친구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식사하면서 사교를 나누는 것이 어려워졌는지, 식
탁에서 나누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졌는지, 냅킨을 무릎에 떨어뜨리고 뒤로 기대앉아 아
무 말 없이 듣기만 했는지 정확하게 꼽기가 어렵다. 또 접시 위에서 포크와 나이프가 부딪쳐서 나는
금속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마음이 불안하고 불안정해진 때가 언제인지도 말하기 힘들다.
식사는 단순히 맛과 냄새뿐만 아니라 촉각과 청각, 시각 면에서도 아주 감각적인 경험이다. 식탁보가
검은색이면 식탁이 다이닝룸 중앙에 생긴 커다란 싱크홀처럼 보여서 혼란스러웠다. 거기에 눈이 익숙
해지거나 머리가 상황을 파악하여 그것이 사실 식탁보임을 깨달은 후에도 그 아래에서 어디부터 어디
까지가 식탁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하얀 접시도 문제였다. 치매 환자에게 하얀 접시에
색이 흐릿한 매시드 포테이토나 얇고 납작한 생선 조각을 담아 주면, 환자는 접시에 음식이 있다는 것
을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환자의 눈은 예전처럼 음식을 갈망하지도 않는다. 음식과 접시
의 색깔 대조가 뚜렷해야 접시에 음식이 있는지 없는지 구별할 수 있다.
직장에서 이 증상이 치매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내 병을 숨기기 위해 노란색 접시를 구입했다. 일
반적으로 스크램블드에그 외에는 노란색 음식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접
시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음식이 접시 여기저기로 밀렸고 접
시 밖으로 떨어졌다. 이 문제는 상단이 접이식으로 된 그릇으로 해결했다. 테두리가 있어서 서툴러도
음식이 그릇 밖으로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노란색 접시를 중고 가게에 갖다주고 대신
에 큰 파스타 그릇을 샀다. 그렇게 하면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낮아질 테니까.
우리는 뇌 안에 복잡한 질병이 생기고서야 비로소 일상의 잡다한 일들이 실제로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알게 된다. 예를 들어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려면 한 손은 포크로 음식을 붙들고 다른 손은 나이프로
그것을 썰어야 한다. 이 일은 어린아이들이 양손으로 피아노 치는 법을 배울 때를 생각나게 하는데, 뇌
로서는 한 손이 다른 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따라서 양손이 따로따로 건반을 치는
법을 배우려면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치매 진단을 받은 후 늘 하던 방식대로 식사해 보려고 했지
만, 갑자기 음식이 내게서 달아났다. 마치 내 양손이 더 이상 협력하지 않는 것 같았다.
포크로 소시지를 찍으려고 했는데, 소시지가 통째로 접시 가장자리로 밀려가서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뜯어 먹어야 했다. 고기를 자르는 일은 어렵고 힘들었다. 수치심을 느끼며 식사해야 했기 때문에 나
자신이 멍청이 같았다. 그러나 나는 뇌에 여러 능력을 조금씩 갉아먹는 질병이 있다는 것이 왜 부끄러
운 일이냐고 스스로 다짐했다. 부끄러워하기보다 대처 방법을 찾는 편이 더 나았다. 다행히 해결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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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간단했다. 나이프를 숟가락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포크로 자르고 숟가락으로 퍼 올리면 되었다. 그렇
게 그 문제는 극복했지만, 고기는 여전히 삼키기 힘든 음식이었다. 고기를 먹을 때 얼마나 오래 씹었
는지 또는 얼마나 더 씹어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 결과 충분히 씹지 않은 상태에서 삼키려고 하다가 고기가 목에 걸려 캑캑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냥 먹는 일에만 집중하기도 힘든데 자르고 씹는 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고기는 포기
하고, 생선을 먹었다. 뜨거운 음식 역시 곤란하다. 최근 치과 의사가 내 입 안에 화상 자국이 많다는
소견을 말했는데, 뜨거운 감자를 입에 넣어 화상을 입고도 다음 한 입을 먹을 때에는 그 사실을 잊고
또 넣었기 때문이다.
내가 음식에 대해 무심해진 원인이 신경학적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치매 때문에 식사할 때 힘들어서
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음식, 심지어 요리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대체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뇌가 그냥 그 전체 과정에 신경을 꺼 버린 탓인지 모른다. 아니면 뇌 안의 어떤 회로가 사라져서 더
이상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식사하는 것은 연료를 얻기 위해서 먹어
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적게 먹고 있는지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올리자, 음식을 보내 주겠다
는 제안이 쇄도했다. 심지어 내가 기억 장애를 앓고 있는 것은 뇌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치매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치매가 우리의 먹는 방법은 물론 먹는 음식까지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요양원 식사
연구원인 린제이 콜린스는 치매를 진단받고 나서 환자의 먹고 마시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고 있
다. 콜린스는 박사 학위의 연구 주제를 그러한 변화가 요양원에서 나타나는 과정의 이해로 정했다.
2020년에 발표된 그 연구 보고서에서 콜린스는 요양원에서 제공하는 음식의 질과 종류, 먹는 음식이
나 식사 시간을 환자가 통제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다루면서, 정체성의 상실, 먹고 마시는 것이 교제
의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는 점 등 요양원에서 먹고 마시는 행위의 많은 다양한 면들을 고찰했다. 나
는 그 보고서의 결론을 읽은 뒤, 특히 제공되는 음식의 선택 부분에서 기분이 우울해졌다. 요양원 입
소자는 흔히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있는 사람이 아닌 ‘먹여야 하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 같았다. 하
지만 사실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음식에 대한 선호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보고서에는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경험은 이전에 자기 집에서 생활했을 때와
달랐다.”며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식사와 간식을 먹는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음식의 양과 질도 바뀌었다. 이로 인해 과거보다 더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고, 개인의 필요와 선
호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게 되었다. 삼킴 곤란 증세가 있는 치매 환자의 경우, 정체성 상실과 개인적
인 선호도에 대한 인지 부족이 훨씬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런 사람들은 그저 먹여야 하는 사람, 선택
을 할 수 없는 사람, 맛없고 천편일률적이라고 여겨지는 음식과 음료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의 성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서 좋아하는 음식을 빼앗
으면 그의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간병인이 개개인의 주문을 받아 주는 것이 불가능하
다는 점은 나도 안다. 또 나처럼 몇 달 동안 날마다 똑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면 눈살을 찌푸릴
거라는 점도 안다. 그렇지만 대안은 무엇이겠는가? 나라면 요양원에서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맛이 없
는 음식이 나온다면 식사를 거부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마 그냥 까다로운 환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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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그 음식을 먹지 못하는 진짜 이유(맛 때문일까? 음식이 담긴 접시가 문제인가? 아니면 음식을 자르는
데 필요한 운동 능력에 문제가 있어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기가 너무 어려운가?)를 알리지도 못하고
말이다. 게다가 치매의 여러 가지 형태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 삼키는 데 문제가
있는 환자는 식사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차라리 먹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실제
로 언어 치료사가 도움을 주거나 영양사가 삼키기 수월한 음식을 알려 줄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음식을
거부했다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요양원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 요양원 직원들은 치매 환자에게 색상과 대조가 중요하다는 점
을 기억할 것이다. 컵과 컵 받침을 머그잔으로 바꾸고, 음식이 접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접시는 테두
리가 있는 그릇으로 바꾸자. 그리고 환자가 두세 가지 음식 중에서 선택하게 해 주자. 뜨거운 음식을
제공하지 말거나 빨리 식도록 작게 잘라 주자. 식사에 방해가 되는 소음과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는 최
소한으로 줄이도록 하자. 그리고 치매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 환
자가 그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환자가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를 기반으로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치매 환자가 앞에 놓
인 음식에 손도 대지 않는 것은 그가 마주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러니 섣불리
그를 까다로운 사람으로 판단하지 말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보길 바란다.
새로 도전하게 될 ‘관계’
어린 시절의 젬마와 세라가 신발 끈 묶는 법을 익히려고 애쓰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첫 시도는
아마 대여섯 살 즈음에 했던 것 같다. 그 작은 손가락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려고 애쓰며 스
스로 묶어 보려고 했다. 그 전까지 나는 아이들이 신고 벗기 편하도록 버클이 있는 신발을 사 주었다.
하지만 끈으로 묶는 신발이 필요한 시기가 왔고 아이들은 친구들이 신은 것과 같은 신발을 원했는데,
그 친구들은 구멍에 끈을 꿰는 기술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딸아이들한테는 그 기술이 어른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므로, 꼭 해내기로 굳게 결심한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똑같은 운동화를 신었다. 그 운동화를 신고 끈을 묶고, 쓰리 픽스는 물론 다른
지역과 레이크랜드의 산책로를 수 킬로미터씩 오르내렸다. 내가 발을 내려다보면서 신발 끈을 묶지 못
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신발 끈은 각 신발짝의 양쪽에 매달려 있었고, 엉클어진
털실 뭉치처럼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인 상태였다. 무력감과 절망감이 느껴졌다.
이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신발 끈을 묶어 주는 일은 세라의 몫이었다. 예전에 내가 세라에게 해 주
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내가 상상했던 방식도, 원했던 방식도 아니었다. 그 작은 몸짓 하나에서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느꼈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딸들이 간병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금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대신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
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신발 끈을 묶지 않는 것이다. 세라는 내가 신던 신발을 돌려주었고, 두 손으로
세게 한 번 잡아당기자 내 낡은 신발은 예전처럼 꽉 조였다. 또 다른 문제가 나를 좌절시켰지만(다음
문제는 그렇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독립은 하루 더 유지되었다.
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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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치매 진단이 환자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치매 진단은 환자 한 사
람의 생활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생활을 바꾼다. 치매를 진단하는 과정은 외로울 수
있다. 나는 작성해야 하는 서류에 ‘치매’라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었을 때도 혼자
검사받으러 다녔다. 그러나 결국 최종 진단을 받고 충격 속에서 무슨 생각에서인지 컨설턴트에게 내
딸들과 직접 이야기하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고서는 아직도 어린애처럼 보이는 내 딸들이 컨설턴트
의 사무실에서 서류를 작성하게 하고 나는 나왔다. 그 아이들에게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 또는
아마 나를 너무 염려하여 내 앞에서는 묻지 못할 질문이 있을 테니까. 이제 막 진단받은 환자가 그렇
듯이 그 순간의 우리는 무슨 질문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앞으로 우리가 궁금해할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어쨌든 나는 내가 받은 이 진단이 나만큼이나
아이들에게도 중요하며, 이 진단으로 아이들의 생활도 바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 치매 진단은 지나치게 임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우리의 뇌를 들여다보고 뇌
세포 간의 연결이 느슨해졌거나 사라진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근본 원인이 진행성 질병이라는 사
실을 알아내고 나면, 우리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 추적 검사도 없고 나나 다른 사람을 위한 대처 전
략도 없다. 내가 암이나 뇌졸중, 당뇨병을 진단받았다면 컨설턴트가 나를 퇴원시켰을까? 그런데 왜 뇌
질환을 진단받은 후에는 사후 관리나 지속적인 지원이 없는 걸까?
하물며 조기 발병 치매 환자는 사회적 지원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간병
인’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하는 남편과 아내, 자녀가 아주 많다. 이들은 아무 준비나 계획, 경고
도 없이 인생을 바꾸는 이 질병을 진단받는 즉시 사회의 기대와 부담까지 떠안게 된다. 사람들은 치매
환자의 가족들 중에 67만 명에 달하는 이 간병인들 덕분에 매년 국민의료보험 예산 110억 파운드(약
17조 5천억 원)가 절약된다는 사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치매 환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의 부재와 이 병이 초래할 수 있는 모든 결과(그중 다수는 이 책에
대략적으로 설명되어 있다)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지 계속 이야기해 왔다. 이는
우리 친척과 가족,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안다면 또는 ‘이게 정상인가요?’
라고 쉽게 물어볼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대처 준비를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디아 파빈 박사가 나에게 자기 연구의 프로젝트 심사원단에 들어오겠냐고 요청했을 때, 나는
받아들였다. <돌봄 희망 연구>라는 이 프로젝트는 치매 진단이 환자를 돌볼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 가
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파빈 박사는 문화적으로 친척이나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
지만 별로 내키지는 않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간병할 마음은 있지만 사실상 필요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을 나란히 비교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이 두 사례 가운데 하나는 실패할 수밖에 없
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그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몇 년 동안 나는 노년 계획을 망쳐 버린 남편의 치매를 원망하는 아내나 엄마를 보살피고 싶지만 충분
하지 못한 지원 체제를 알아보느라 지쳐서 자기 건강을 잃은 딸까지, 이런 사례들을 많이 접했다. 양
자의 균형을 잘 맞춘 사람은 찾기 어렵지만,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기쁘다. 그런
여성 한 명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의 남편은 치매에 걸렸고 부부에게는 어린 자녀 두 명이 있었다. 하
지만 그녀는 일일 지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가족은 좀 더 균형 잡힌 생활을 할 수 있었
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도움이나 임시 간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는 예측하기가 아주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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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간병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
치매 환자를 돌보는 방법은 대부분 치매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환자의 유
형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격도 변하는데, 원만해질 수도 있고 더 고약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치매가 성격의 다양한 층위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러나 치매는 여전히 그 사람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볼 때처럼 병이 아니라 먼
저 그 사람 자체를 봐야 한다.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의 차이가 치매 환자와 간병인 모두의 삶을 바
꿀 수 있다. 파빈 박사의 보고서에 담긴 간병인들의 인터뷰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가장 준비하지 못한 2가지가 있
는데, 분노와 죄책감입니다. 그래도 알긴 했어요. 추상적으로 분노와 죄책감이 아주 크다는 것을 알았
지만, 그걸 실제로 느끼게 된 거죠. 가끔씩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는 아내에게 화가 나서 이렇게 말
하기도 했어요. ‘아, 그만 말해. 백번도 더 말했잖아.’ 그래도 아내는 이해도 못 하고, 자기가 말하는 걸
어쩌지 못해요. 그런데도 나는 말합니다. ‘그만 말해.’ 지금도 아주 많은 일들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다
르게 할 수도 있었는데 하고 말이에요. 그때 알았다면, 아내의 공격성에 좀 더 오래 대처할 수 있었을
겁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면 절대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았을 거예요. 절대 승낙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았을 거예요. 주변을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아요. 내
가 뭔가를 해야 했는데,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인간일 뿐이니까요.”
치매는 부부 사이의 관계를 영원히 변화시킨다. 때로는 관계가 더 나아지기도 한다. 내가 여행 중에
만난 한 여성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그녀의 남편은 결혼 생활 동안 종종 폭력을 행사했는데, 치매에
걸린 후 성격이 온화해져서 그녀가 늘 바랐던 성격의 남편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슬프게도 누군가
에게는 반대의 일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치매의 한 유형인 피크병 환자일 경우, 치매 때문에 환자가
더욱 예측할 수 없어지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사람들이 치매 진단을 받은 후 관계를 잘 유지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을 물어오면, 나는 대화를 계속하
는 것뿐이라고 말해 준다. 이것은 간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나도 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개인에게 달린 문제다. 나는 딸들과 함께 앉아 수다를 떨고 내 위임장에 대해 의논할 준
비를 하면서 빵을 굽고 케이크를 만들었다. 빵을 굽고 예쁘게 장식한 온갖 모양과 크기의 케이크 냄새
가 물씬 풍기는 내 주방의 공기를 지금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대화를 좀 더 기분 좋게 만드는 나만
의 방법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자기 가족에게 효과가 좋은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순진하게도 당시 나는 이 거북한 대화를 한 번만 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서류와 펜, 김이 모락모락 나
는 찻잔을 준비하여 함께 앉아서, 내가 위급 상태까지 갔을 때 원하는 간병 방식부터 소생술을 원하는
지 여부까지 모든 사항에 대하여 의논할 때는 가장 힘든 대화를 먼저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
다. 그때 두 딸이 같은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뚜렷하게 드러났다. 나는 그것을 이야
기 연습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듣기 연습이었다. 그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 대화를 계속 반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일상 대화를 하며 말이 얼마나 헷갈릴 수 있는지 잘 안다. 누군가에게 직접 이야기할 때조차
얼마나 많은 혼선이 야기되는가? 두 사람이 똑같은 것을 똑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했다고 생각할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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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여전히 큰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환자마다 기능 감퇴 속도가 달라 예측 불가능한 진행성 질병
을 안고 새로운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한다면, 잘 처리해야 하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이때 사람들은
모두 과실을 저지르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여서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경우 특히 그렇다. 바로 그런
이유로 자신에게 중요한 대화를 할 때는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치매를 앓는 사랑
하는 사람 돌보기’라는 간단한 표현도 사람마다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돌봄에 대한 해석이 아주 다양
하며, 그 단어 자체는 시간의 경과와 병의 진행에 따라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 내 경우, ‘돌봄’이 필요
한 때는 내가 더 이상 자신을 돌볼 수 없는 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혼자서 안전하게 생활할 방
법을 찾을 수 없는 때를 뜻한다. 나는 두 딸이 나를 돌봐 주기를 원하지 않고, 그들도 그 사실을 잘 안
다. 진단을 받은 이후로도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딸들이 나를 보러 와서 같이 차를 마시고, 함께 외출하여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힘들게 일한 후 나를 찾아와 세탁이나 청소를 하고, 나를 씻기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이 각자의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지 간병인이라는 명목하에 어떤 식으로든 자기 생활이 방
해받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엄마이고 싶다. 내 능력이 떨어졌어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쓸모 있다고 느끼고,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나한테는 중요하다.
치매는 역할 전환 과정을 촉진시킨다. 나는 그것을 피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딸
들이 빵을 굽는 문제든 장식 문제든 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요즘에는 그런 일이 점점 줄고 있지만, 그
래도 나는 여전히 아주 미미한 것이라도 엄마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 그것이 치매를 포함하여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나의 일이며,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지킬 것이다. 나는 무엇이든 아이들에게
부탁함으로써 바쁜 생활을 방해해야 한다는 것이 싫다. 지금은 운전하지 않지만, 버스나 기차로 갈 수
없는 곳이 아니면 아이들에게 태워다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요즘 아이들
과의 관계가 내 마음과는 달리 더 일방적인 것 같다.
치매 친화적인 ‘환경’
치매 친화적인 환경 만들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실시한 치매가 아닌 전반적인 노화에 관한 연구는 지역 사회의 일원임을 느
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지적했다. “사회 참여와 사회 지원은 평생 건강
및 웰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노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포용한 문화에서는 노인의 역량과 자존감이 강화된다.” 이 보고서는 계속해서 인근 환경을 노인 친화
적으로 만드는 실질적인 사항들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공공 좌석, 화장실 시설, 떨어진 연석, 건물 경
사로, 적절한 도로 표지, 보행자 횡단보도 신호등의 충분한 시간 등이 포함되었다.
이런 사항들 중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누군가가 동네를 즐기기 위한 외출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치매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환자에게 포용적인
환경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알츠하이머병 인터내셔널이 작성한 치매 친화적인 지역 사회에
대한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사람들이 치매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네덜란드에서 1997년부터 치매 카페가 등장하기 시작하여 현재 230개 이상이 있으며 순방문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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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는 3만 5,000명이다. 또한 네덜란드의 단체들은 ‘디멘탈렌트(DemenTalent)’를 창설했는데, 이 조직은
치매 환자들의 능력을 기반으로 지역 사회 내에서 그들에게 자발적 역할을 제공하면서 그들의 재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② 오스트리아에서는 ‘액션 디맨즈(Aktion Demenz)’가 ‘기억 경로(memory
parcours)’를 만들어 근린공원에서 보행자가 ‘이동 중에’ 치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했다.
③ 대만은 2013년에 상점 주인이 좀 더 치매 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도록 장려하여 치매 환자들이 계속
해서 직접 쇼핑할 수 있도록 치매 친화적 상점을 출발시켰다. 치매 친화적 쇼핑 환경에는 선불, 원하
지 않는 물건의 손쉬운 반품, 치매 환자가 상점에 있을 때 그 가족에게 그가 안전함을 알려 주는 알림
경보 등이 있다. ④ 한국은 젊은 층을 상대로 치매 환자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교육하기
위해 ‘치매 모의 체험’을 개발했다. 유치원 어린이들은 요양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학생들은 요양원 입
소자들에게 손 마사지를 해 주도록 훈련을 받는다.
⑤ 일본의 ‘키즈나야’는 빈 밭을 활용한 판매용 귤 재배 시작 등 조기 발병 치매 환자들에게 일할 기회
를 찾아 준다. ⑥ 중국에서는 치매 환자의 안전을 촉진하고 환자가 길을 잃는 일이 없도록 2012년에
‘노란 팔찌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현재 안전 팔찌가 출시되었는데, 이 팔찌에는 GPS 추적 장치가
내장되어 있고 이를 통해 거의 백 명의 환자가 다시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⑦ ‘알츠하이머병 호주’는
2014년에 지역 사회에서 물리적인 무언가를 바꾸어야 치매 환자들의 접근성과 상호 작용이 개선될지
를 알아보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가능한 한 소음 최소화하기, 유리 같은 반사면 줄이기, 보다 보
기 좋은 지도와 도로 표지, 방향 신호 등과 같이 개략적인 제안서를 내놓았다.
집과 요양원
치매에 걸린 사랑하는 가족이 집에서 생활할 때, 그 가족들이 환자가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고 느끼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갇혀서 생활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흔
히 치매 환자 가족들은 문을 이중으로 잠가서 환자가 갇힌 것처럼 느끼게 하는 조처를 할 수 있는데,
이런 조치는 대개 아주 좋은 의도로 이루어지지만, 사실 이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간병인뿐이다.
2020년에 보고된 리버풀대학교 보고서는 요양원의 적절한 물리적 구조가 입소자의 웰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눈에 보이는 보안 대책에 대하여 경고했다. 이에 대해 내가 여러
번 들었던 한 가지 해결책은 누군가가 집을 나가기 쉬운 경우 현관문 위에 커튼을 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커튼이 쳐진 문은 조사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게 하지만, 잠금장치가 많이 있으면 갇힌 느
낌이 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한 요양원의 멋진 야외 활동에 대한 접근에도 해당
된다. 같은 보고서는 이것이 정원과 다른 야외 구역에 갈 수 있는 치매 환자에게 아주 유익하며 그에
따라 “접근 제한… 의도치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기록했다.
한 친구가 최근에 거처를 요양원으로 옮겼는데, 직원이 동반할 때만 야외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갇히고 폐쇄된 느낌이 들어 아주 우울해졌다. 요양원에 정원이 있다면 당연히 입소자들
이 접근하기 쉽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건축가는 왜 이렇게 잘못된 설계를
했는지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추억 상자, 배회로, 향기 나는 꽃, 야생 동물을 볼 수 있는 전망대
가 있어서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정원을 특징으로 하는 거주 시설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입소자
의 동요와 우울증을 개선시킬 뿐만 아니라, 직원과 가족들의 스트레스를 낮춘다고 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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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물론 요양원은 입소자들에게 가장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들의 친구와
가족들도 잊으면 안 된다. 리버풀대학교 보고서는 이렇게 전했다. “규모가 작은 요양원에서는 가족들이
방문객이라기보다는 구성원 대우를 받으며 식사 시간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이런 방침은 가족
이 입소자를 더 자주 방문하도록 촉진시켰다.” 이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니 좋은 소식이다. 대개의 경
우 요양원에는 규칙이 너무 많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방문을 장려하기보다는 방해한다. 한 가족에게
들은 내용이 기억난다. “엄마는 지금 안전해요. 요양원에서 보살피고 있으니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엄마가 아프면 요양원에서 전화할 거예요.” 하지만 그들은 어머니가 요양원에 있는 것을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슬프다.
긍정적이어야 할 ‘태도’
긍정적인 태도
한나 스코트는 2020년 보고서에서 여성 치매 환자의 태도를 고찰했다. 연구 결과, 스코트는 환자의 주
변 사람들은 치매 진단을 받은 여성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며, 사회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수록 긍정적인 특징을 더 많이 되받을 수 있어서 자아 개념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높아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이 보고서는 여성 환자들이 폭넓은 활동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려고 결심하고 이를
통해 행복과 목적의식을 갖게 된다며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독립성 유지 역시 많은 여성 환자들에게
중요한데, 이것은 자기 삶의 양상과 결정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로 표현되었다. 이 욕구는 대처 전략을
통해 충족되었는데, 예로 혼자 생활하는 여성에게는 다이어리와 달력 사용이 중요했다.”
이 연구는 “긍정적인 자아 개념을 유지하는 것이 저항이라는 전체 주제의 중심 내용이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인식하고 능력을 키우면서 그에 따라 자존감을 보호할 수 있었
다.”라고 확인했다. 이런 대처 전략이 여성 환자의 태도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알 수 있지
만, 남성 환자에게는 작용하지 않는 이유는 특별히 없다. 나는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의 중요
성에 대하여 늘 말해 왔다. 그리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우리가 여전히 할 수 있는 것과 여전히
참여할 수 있는 활동, 그 실현을 위한 해결책(위에서 언급된 다이어리와 달력 등) 찾기에 초점을 맞추
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은 보다 긍정적인 태도에 영향을 준다.
이 보고서는 또한 여성 환자들이 가족에게서 받는 부정적인 태도, 그리고 그 태도와 환자 자신의 태도
와의 차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여성 환자들은 병의 악화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반면 가족들은 미래가 두려운 이유가 불확실성 때문이고 치
매가 ‘얼마나 나빠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참고로 내가 친구들에게 가족과 친구들로부
터 긍정적인 견해를 전해 들을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말들을 했다.
“내가 긍정적이고 이런 긍정적인 위험을 감수하려는 것을 본 이후 우리 가족의 태도가 바뀌었어요. 가
족은 치매가 나의 끝이 아니고 내가 가족의 짐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 긍정적이
되었어요. 어느 날 아들이 내가 아주 자랑스럽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동안 아들은 치매 진단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어요. 나는 아프니까 집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제는 이렇게 말하
더라고요. ‘엄마, 자랑스러워요. 엄마가 일을 진행하고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식이요.’ 사람의 인생은 태
어날 때부터 모험이지만, 나는 치매가 나를 규정하게 두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내가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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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매에 걸리기 전에 했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치매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동료 환자들의 지원
요크에 있는 ‘마음과 목소리’ 모임에 처음 참석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마음과 목소리’는 치매를
앓는 사람들을 지원해 주는 지역 모임이다. 사실 처음 가기 전에 망설였다. 어쨌든 나는 ‘단체형 인간’
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이런 모임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임에는 왠지 마음
이 끌렸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었다. 나는 WOW(세계 여성) 회의에 참석해서 동료들의 지원의 힘에 대한 아그네스
휴스턴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시험 삼아 참석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차분한 느낌, 내 자
리에 편안히 앉았을 때의 느낌, 마지막으로 친구들 사이에, 그리고 나와 같은 방식으로 나를 판단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떠오른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면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일찍이 ‘마음과 목소
리’와 관계를 맺은 이후 많은 우정의 꽃을 피운다. 우리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서
로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 조지는 나를 ‘누나’라고 부르고, 나는 그를 ‘동
생’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 정도로 친밀하게 느낀다. 치매라는 공통점이 없었다면 나와 친구들은 절
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중 다수는 자신의 오래되고 친숙한 우정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는 서로의 과거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어쨌든 자세한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
만 치매를 진단받은 사실을 공유하며, 당장의 유대감을 형성하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쩌면 앞으로 치매 진단에 대해 아무에게나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멋진 세상
이 될 때까지는 동료 환자들의 지원 단체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고, 편견 없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또 우리를 많이 웃게 해 준다. 우리는 치매로 인해 우리 앞에 놓인 난관이 무엇이든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고, 비판하지 않으며, 공유하고, 보살피고,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 아마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
게 상대가 누구이든 타인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처
럼 복잡한 뇌 질환을 앓는 사람들도 아는 것이라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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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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