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7인> 문제
<황야의 7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의 <7인의 사무라이>를 존 스터지스가
각색하고, 율 브린너와 스티브 맥킨 등이 출연한 유명한 영화니까,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 영화 중에서는 제임스 코번의 냉철함과 로버트 본의
서투른 연기를 비교적 좋아하는데, 그건 이번 이야기의 핵심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이 글에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내가 문제로 삼고 싶은 것은 이 영화의 맨 처음 시작 부분이다.
영화는 우선 멕시코의 한 시골 마을을 멕시코인 산적이 덮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건 전혀 문제될 게 없는데, 요는 그 멕시코인들이
서로 영어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참으로 뒤죽박죽인
멕시코 사투리 영어로서
'나와 너, 친구다.'
'너희들 수확 가져간다. 마을 굶주린다.' 하는 식이다.
그런 엉터리 영어를 할 바에 차라리 번 듯한 스페인어로 얘기를 하면
좋을텐데, 하고 생각하지만, 미국인들의 자막 혐오증은 몹시 철저한
것이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그 주제에 '아디오스'나
'바이야 콘비오스' 같은 인사만은 어김없이 스페인어이다. 하긴 나처럼
그 바보스러움이 마음에 들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황야의 7인>을
거듭해 보는 유별난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러나 최근에는 헐리웃의 사정도 크게 변하여, 영화에 등장하는
독인인은 독일어로, 불란서인은 불란서어로 얘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피의 선택> 같은 영화도, 영화 속에서 제법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아우슈비츠 장면이 모두 독일어이다.
근자에 재일 미국인과 <소피의 선택>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그는
'난 독일어도 모르고, 일본어 자막도 못 읽으니까, 그 아우슈비츠 장면을
전혀 알 수 없었어.'
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안된 얘기다.
리얼리즘이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불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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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자와 아키라 : 일본이 자랑하는 국제적 영화 감독.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보면 <황야의 7인>이 실은 <7인의 사무라이>를
헐리우드식으로 개작한 영화라는 걸 감쪽같이 몰랐다는 얘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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