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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찰스램 매리램] 세익스피어 이야기1

by Casey,Riley 202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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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이야기

찰스 램, 메리 램



      (저자 및 역자 약력)

    * 지은이 찰스 램(1775--1834), 메리 램(1764--1847)
  찰스 램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빈민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섰다. 그리고 낮에는 회사에 근무하면서 밤에는 시인들과 친분을 맺고 시를
발표했다. 그는 누나인 메리가 정신병을 앓게 되자, 자신에게도 정신병의 유전이
있음을 알고는 평생 동안 누나를 돌보며 독신으로 살았다. 이들 남매는 어린이들을
위해 1807년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이야기', 1808년에는 '율리시즈의 모험'을
발표하여 오늘날까지도 많은 어린이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
    * 옮긴이 김찬식
  KBS기자, 뉴스 앵커, 전문위원 지냄. 현재 교통방송국에서 '교통시대'를 진행하고
있음.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색동회 이사. 칼럼집 '오늘을 생각한다', 수필집 '빛과
사랑과 용서를', 시집 '이 타는 가슴을' 등의 저서가 있음. 
      (셰익스피어 약력)

    * 셰익스피어(1564--1616)
  영국의 시인이며 극작가. 37 편의 시집을 남겼다. 
      (셰익스피어가 들려주는 이야기)

  1807년에 영국의 수필가인 찰스 햄과 그의 누나인 메리 램이, 어린이들이 고전에
친근해지도록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서 20편을 골라 동화 형식으로 쓴 작품. 이
중에서 희극은 메리가, 비극은 햄이 썼는데 (여기에서는 1) 편만 수록하였다 
      템페스트(폭풍)

  한 외딴 섬에 프로스페로라고 불리는 노인이 그의 예쁘고 귀여운 딸 미란다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었다. 딸은 어렸을 적에 이 섬에 왔기 때문에 아버지 말고는 그 누구도
몰랐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작은 바위 동굴에는 조그만 방이 몇 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서재에는 마술책이 많이 꽂혀 있었다. 아버지는 대단한 학자에다 뛰어난 마술사이기도
했다.
  이 섬은 원래 시코락스라고 하는 요술쟁이 노파가 지배했었는데, 그녀는 자기가
명령하는 것을 듣지 않는 요정들을 모조리 나뭇가지에 묶어 놓았다. 그러나
프로스페로가 처음 이 섬에 와서 그 요정들을 모두 구출했을 때부터 그들은
프로스페로의 요정으로 되어버렸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생기발랄하고 귀여우며
자그마한 꼬마 아리엘은 진심으로 프로스페로를 잘 따르고 있었다.
  꼬마 아리엘은 심술궂은 장난은 하지 않았지만, 다만 요술쟁이 노파의 아들인
칼리반을 놀려 주는 걸 큰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칼리반은 정말 심술궂고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그런 아이였지만, 프로스페로는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 주며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려고 했다.
그래도 칼리반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나쁜 성격 때문에, 좋은 일이라든가 자기에게
유익한 충고들은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장작 나르는 일 같은 힘든
일만 하게 되었다.
  칼리반이 일을 게을리하고 있으면 감독인 아리엘은 살짝 다가가서 꼬집어 준다.
그러면 칼리반은 시궁창 속에서 뒹굴거나 원숭이처럼 얼굴을 찡그린다. 또한, 재빨리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서 떼굴떼굴 구르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리엘의 모습은
프로스페로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요정들을 이용해서 프로스페로는 자기 마음대로 바람을 일으키거나 거센
파도를 일으켰다.
  오늘 부는 태풍도 프로스페로가 요정들에게 요술을 부려서 일으킨 것으로서,
바다에서는 거친 파도가 휘몰아쳐 그림과 같은 배 한 척이 침몰할 것만 같았다.
프로스페로는 미란다를 불러서, 그 배에는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타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미란다는 슬프게 말했다.
  "아버지, 그렇다면 저 사람들이 불쌍하잖아요. 보세요, 배가 마구 흔들려요.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 버리겠어요."
  "걱정할 것 없다, 미란다. 괜찮아. 누구 하나 다치지 않도록 요술을 부리고 있단다.
내가 이런 요술을 부리는 것도 모두 너를 위해서야. 너는 네 신분에 대해서나, 또
어디에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때는 세 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너는 아마 기억하지 못할 테지."
  "아뇨, 기억하고 있어요."
  "어떻게 기억하니?"
  "뿌옇게 안개 같은 모습만 떠오르지만, 여자 네다섯 명이 항상 제 주변에서
보호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 맞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단다. 용케 기억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이곳에 왔을 때의 일도 기억하고 있니?"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그러자 프로스페로가 계속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밀라노의 성주였단다. 너는 공주로서 나를 계승할 몸이었지. 나에게는
안토니오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성의 살림을 모두 그에게 맡겨놨었지.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일과는 등지고 항상 책 속에서만 살고 싶었거든. 그런데 나의 동생이자 너의
삼촌인 그 안토니오가 내 성을 빼앗으려는 음모를 세웠단다. 그리고 나의 적수였던
나폴리 왕까지 그를 도와주어, 그는 마침내 자기 야심을 성취할 수 있었지."
  "그렇다면 그 삼촌이라는 분은 왜 우리들을 죽이지 않았나요?"
  "그것은 일반 백성들이 나를 섬기고 따랐기 때문에 죽일 수 없었던 것이지.
안토니오는 우리들을 배에 태워서 파도가 심하게 몰아치는 깊은 바다로 내보냈단다.
깃발이나 배의 장비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아주 작은 나룻배에 태워 내보내서 배가
파도에 뒤집혀 죽게 할 작정이었지. 그런데 나의 심복이었던 부하 한 명이 물과
음식과 옷가지, 그리고 나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책들을 살짝 배에 던져 넣어 주었지."
  "아버지, 그렇다면 제가 아주 거추장스러웠을 텐데요?"
  "아니다. 오히려 너는 나에게 있어서는 천사와 같았단다. 너의 티없이 밝은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 고통을 참고 이 섬까지 올 수 있었거든. 이 외딴 섬에 배가 닿았을
때부터 너를 기르는 것이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단다."
  "하지만, 아버지, 왜 오늘은 갑자기 저렇게 엄청난 폭풍을 일으키시는 건가요?"
  "그것은 말이다, 그 적수였던 나폴리 왕과, 또한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찬 내 동생놈이
이 성에 오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말하면서 프로스페로가 마술 지팡이를 살짝 딸의 이마에 대자마자 미란다는
금세 잠들어 버렸다. 왜냐면 꼬마 요정인 아리엘이 나타나서, "모든 것이 주인님
명령대로 되었어요."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리엘의 모습이 미란다에게는 보이지 않아서, 프로스페로가
아리엘과 얘기할 때에는 아무도 없는 하늘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프로스페로는 그런 모습을 딸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리엘, 일이 어느 정도나 되었느냐?" 하고 프로스페로는 아리엘에게 물었다.
  아리엘은 폭풍이 휘몰아쳐서 흔들리는 파도와, 선원들이 공포에 떠는 모습들을
얘기했다. 또한, 나폴리 왕의 아들인 페르디난드가 제일 먼저 거친 파도에 휩쓸렸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이제 왕자를 잃어버렸다며 슬픔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왕자는 이 섬의 저쪽 한 귀퉁이에 무사하게 살아 남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왕자는 자기 아버지가 거친 파도에 휩쓸려 빠져 죽으면 어쩌나 하고 슬픔에
잠겨 있다는 것이다.
  "너는 정말로 귀신같이 잘 알고 있구나. 그럼, 빨리 이곳으로 그 왕자를 데리고
오너라. 내 딸과 만나게 해야 되겠다. 한데, 나폴리 왕과 내 동생은 어떻게 되었느냐?"
  "두 사람은 왕자를 찾아 헤매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죽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계속 찾아다니고 있답니다. 배는 텅텅 비어 물결에 찰랑찰랑 흔들거리고
있지요."
  "아리엘, 너는 정말 훌륭하게 일을 잘 해냈다. 하지만, 아직 또 일이 남아 있다."
  고개를 갸웃하며 아리엘이 물었다.
  "또 할 일이 남아 있다고요? 부디 저하고 약속한 것을 잊지 마세요. 당신은 앞으로
나를 자유롭게 해준다고 약속하셨잖아요. 물론 그 동안 나를 보살펴 주신 은혜는 잘
알고 있어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느냐? 내가 너를 처음에 얼마나 힘들게 구해 냈는지
알아? 네가 그 못된 요술쟁이 노파 시코락스에게 붙들려서 나뭇가지에 묶여 있을 때
금방 숨이 넘어 갈 듯이 헐떡거리고 있는 것을 구해 준 거야. 이 배은망덕한 녀석
같으니라고."
  "제발 절 좀 자유롭게 해주세요." 하고 아리엘은 손바닥으로 빌며 애걸했다.
  "좋아, 그렇다면 허락해 주지. 약속대로 자유롭게 해주겠다."
  그러자 아리엘은 너무나 기뻤다. 퐁퐁 샘솟듯이 뛰어올라 여기저기 날아다니다가
페르디난드 왕자가 커다란 슬픔 속에 빠져 있는 바닷가 풀숲에까지 가게 되었다.
  아리엘은 왕자를 보고서 다음과 같은 노래했다.

  사랑하는 왕자님,
  왕자님은 산호와 같으며
  그 눈은 진주와 같아요.
  사랑하는 왕자님,
  이 바닷가에 아름다운 종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딩동댕' 이 종소리가!

  슬픔과 지친 몸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왕자는 하늘에서 들리는 이상야릇한
노랫소리에 이끌려 자기도 모르게 그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었다. 그러다가
프로스페로와 미란다가 앉아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쪽으로 다가가게 되었다.
  바로 그때 프로스페로가 말했다.
  "미란다, 저쪽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지금까지 아버지밖에 사람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미란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아버지, 저것은 틀림없는 천사예요. 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엇인가를 쳐다보고
있네. 아. 정말로 아름다운 모습^5,5,5^ 틀림없이 저것은 천사일 거야! 그렇죠,
아버지?"
  "아니란다. 저것은 음식도 먹고 잠도 자는, 우리들과 똑같은 사람이란다. 저 젊은
남자는 배를 타고 가다가 태풍을 만나서 이 섬에까지 밀려온 것이지. 슬픔과 지친
몸으로 인해 조금은 초라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멋진 청년이란다. 뿔뿔이 흩어진 자기
동료들을 찾으려고 저렇게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미란다는 지금까지 모든 사람이 아버지처럼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한 표정의
얼굴에 새하얀 머리칼, 흰 수염, 목부터 발끝까지 기다란 흰색 옷을 입고 있을 거라고
굳게 믿어 왔던 것이다. 미란다는 젊고 훌륭한 이 왕자를 보고서 가슴이 두근
두근거리며 뛸 듯이 기뻤다.
  페르디난드도 어떻게 이런 곳에 저토록 진주와 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있을까 하고
가슴 설레이며 쳐다보았다. 이곳은 아마도 마법의 섬이며, 저 여인은 이 섬의 여신이
아닐까 생각하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미란다는 자기는 단순히 이 어른의 딸이지 여신이 아니라고 대답을 하고
나서 자신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프로스페로가 가로막았다. 그는 젊은 두
사람이 소곤소곤 얘기 나누는 것을 보고서 한편으로 좋게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페르디난드의 진심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잖은
태도로 왕자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이 섬의 주인인 나를 공격하고 땅을 빼앗으러 온 것이 틀림없구나! 나를
따라오너라. 네 몸을 단단히 묶어놓겠다. 너는 이제 짠 바닷물, 썩은 조개, 말라
비틀어진 나무 뿌리와 썩은 나무 열매 같은 것만 먹어야 한다."
  그러자 페르디난드는, "당신보다도 더 강한 적수를 만날 때까지 그런 대접은
사양하겠소이다."하고 말하며 칼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프로스페로는 마술 지팡이로
마술을 부려서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보자 미란다는 안타까웠다.
  "아버지, 너무 심하세요. 저는 지금까지 사람이라고는 아버지와 이분밖에 본 적이
없지만, 이분은 훌륭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고 웬지 모르게 좋은 감정이 느껴져요."
  "잔소리 말아라." 하며 아버지는 미란다를 꾸짖었다. "너는 이 남자 말고는 그 바보
멍텅구리 칼리반밖에 모르니 이 남자가 최고인 줄 알고 있지만, 세상에는 얼마든지
훌륭하고 멋진 남자가 많이 있다."
  "아버지, 저는 이분보다 더 훌륭하고 멋있는 사람을 찾고 싶진 않아요. 이런
분이라면 족해요."
  그러자 프로스페로는 못 들은 척하고 왕자에게 말을 했다. "너는 이제부터 나와
대항할 수 없게 되었다. 어디 한번 덤벼 봐라!"
  페르디난드는 자신이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은 프로스페로의 마술 지팡이 때문에
그렇게 된 줄은 모르고, 그의 뒤를 힘없이 따라가는 자신이 이상하게 생각될 뿐이었다.
그는 미란다를 몇 번이고 뒤돌아보면서 프로스페로의 바위 소굴로 따라 들어갔다.
  "마치 꿈과 같이 순식간에 쇠사슬로 온몸이 묶여 버렸구나. 그렇지만 이런 속에서도
하루에 한번만이라도 저 진주처럼 아름다운 소녀를 볼 수 있게만 된다면 이런 것쯤은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
  프로스페로는 페르디난드를 방구석에 가만히 묶어 놓지만은 않았다. 곧 밖으로 끌고
나와 여러 가지 힘든 일을 시켜 놓고, 자신은 서재에 들어가 책을 보고 있었다.
페르디난드가 해야 할 일은 무거운 장작들을 쌓아올리는 것이었다. 왕자로 태어난
그는 맛있는 것을 먹고 아름다운 옷을 입으며 편안하게 살아 왔기 때문에, 그런
일에는 서툴러서 금방 숨을 헉헉대며 지쳐 버리고 말았다.
  미란다는 그것을 보고서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버지는 지금 서재에서 독서에 열중하고
계시니까, 앞으로 세 시간 정도는 밖에 안 나오셔요. 그러니 마음 편히 좀 쉬도록
하세요."
  "아가씨, 나는 쉴 수가 없습니다. 쉬기 전에 우선 이 일을 해 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당신이 좀 쉬고 있으면 그 동안에 내가 장작을 모두 쌓아 놓겠어요."
  페르디난드는 미란다에게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미란다가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방해될 뿐이었다.
  프로스페로가 페르디난드에게 그런 일을 시킨 것도 실은 젊은 왕자의 자기 딸에
대한 사랑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서재에서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술을 부려
자기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하고 다가가서 어떤 얘기를 주고받는지 엿듣고 있는
것이었다.
  미란다는 페르디난드가 이름을 물어 보자 공손하고 상냥하게 대답해 주었다. 왕자는
미란다의 대답에 고마워하며, 온 세계를 다 찾아봐도 당신같이 아름답고 마음씨 고운
여인은 처음 봤다고 했다.
  미란다는 왕자에게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지금까지 여자 얼굴은 본 적이 없으며, 남자도 아버지와, 방금 친구가 된
당신밖에는 아무도 몰라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또한, 관심도 없고요 나는 오직 당신과 사귀고 싶을 뿐이에요."
  그것을 가만히 엿듣던 프로스페로는, "옳지, 됐다. 내가 바라는 대로다." 하고
생각하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페르디난드는 자기가 나폴리 왕의 계승자라는 것을 미란다에게 알려주고, 그녀에게
왕비가 되어줄 것을 간청했다.
  "아아! 나는 정말로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아요. 솔직히
대답하겠어요. 당신의 청혼을 받아들여서 나는 기꺼이 신부가 되어 드리겠어요."
  그 말에 대해서 페르디난드가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하려 했을 때 프로스페로가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지금까지 너희들의 말을 모두 엿들었단다. 페르디난드, 내가 자네에게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을 시킨 것은, 미란다를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하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야. 자네는 용케도 잘 참았네. 정말로 자네의 진실한 사랑을 이제
알았으니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겠어."
  이렇게 말하고 프로스페로는 그곳을 떠나 아리엘을 불렀다. 그리고는 난파선을 타고
이 섬의 어느 한 모퉁이에 정착해 있을, 마음이 능구렁이 같은 동생과 나폴리 왕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아리엘의 말에 따르면, 그 두 사람은 보는 것이나 듣는 것이 모두 이상하고
괴상해서 겁에 질려 제정신을 잃고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가, 결국에는 기진맥진하여
움직이지도 못하고 당장 먹을 것조차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 그곳으로 아리엘은
일부러 맛있는 음식을 잔뜩 가지고 가서, 주지는 않고 보여 주기만 하여 약올렸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한 쓰라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프로스페로와 죄가 없는 어린
미란다를 죽이려고 한 그 대가라고 말했다.
  나폴리 왕과 그 능구렁이 같은 동생 안토니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리엘의 말을
듣고서, 그 동안 자신들이 한 행동이 얼마나 나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아리엘은 두 사람이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고, 정말 불쌍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을 여기로 데리고 오너라, 아리엘." 프로스페로가 말했다. "너까지
불쌍하다고 생각할 정도라면 같은 사람으로서 어찌 가엾지 않겠느냐."
  아리엘은 금방 나폴리 왕과 안토니오를 데리고 왔다. 난파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데리고 왔는데, 그들은 하늘에서 연주하는 아름다운 요정의 음악에 이끌려 왔다고
했다. 그 사람들 중에는 태풍으로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 프로스페로가
버려졌을 때 몰래 책과 음식을 넣어 주었던 곤잘로라는 사람도 함께 있었다.
  지친 몸으로 기진맥진해 있던 그들은 처음엔 자신들 앞에서 있는, 온통 새하얀
노인이 누군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 노인이 곤잘로를 생명의 은인이라며
정중히 대접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악독한 짓을 저지른 동생 안토니오는 눈물로 형에게 용서를 빌었고, 나폴리 왕도 잘
모르고 안토니오라는 사람을 도와주었던 잘못을 사죄했다.
  프로스페로는 나폴리 왕에게, "나 역시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소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문을 활짝 열어서 나폴리의 왕의 아들인 페르디난드와 자신의 딸
미란다가 사이좋게 체스(서양식 장기 게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폴리 왕과 그 아들은 서로 아무런 이상 없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서 뛸 듯이
기뻐하며 부둥켜 안았다.
  나폴리 왕은 아들 곁에 서 있는 미란다의 우아하고 아리따운 모습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이 자그맣고 귀여운 아가씨는 누구입니까? 우리들을 떼어 놓기도 하고, 또
만나게도 한 이 섬의 여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왕자인 페르디난드는 자기가 미란다를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이 아버지도 착각하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아가씨는 사람입니다^5,5,5^. 인간은 알 수 없는 신의 오묘한 계획으로 우리들은
만났고, 결혼도 약속했지요. 아버님, 저는 아버님이 무사히 살아 계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허락도 받지 않고 제 뜻대로 선택하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5,5,5^ 이 분은 밀라노의 이름 높은 성주인 프로스페로님이십니다. 제가
이분의 따님을 얻었으니 이분은 제 아버님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이 말을 듣자 나폴리 왕이 말했다.
  "그렇다면^5,5,5^ 나도 이 아름다운 아가씨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셈이구나!"
  "모든 일들이 참 잘되었습니다. 이제 지난 일들은 깨끗하게 잊읍시다."
  프로스페로는 이렇게 말하고 동생을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자기가 밀라노 땅에서
쫓겨난 것과 이런 외딴섬에서 자식인 미란다를 나폴리 왕자에게 아내로 보내게 된
것도 모두 페르디난드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려는 신의 뜻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프로스페로는 배가 있고 배를 저어 갈 선원들도 있으니 내일 아침 일찍
모두가 함께 돌아가자면서, 동굴로 식사초대를 하고는 칼리반을 불러서 급히 잔치
준비를 시켰다. 사람들은 그 바보스럽고 도깨비같이 생긴 하인 요정들이 재빨리 여러
가지 음식물을 만들고 방들을 깨끗하게 치우는 데에 놀랐다.
  한편, 또랑또랑하고 상냥한 요정 아리엘은 자유로운 몸이 되어서 너무나 기뻤다. 이
꼬마 요정은 날아다니는 새처럼 창공이나 숲속, 그리고 향기로운 꽃 사이를 마음대로
폴폴 날아다니고 싶다고 늘 말해 왔었다.
  "꼬마 귀염둥이 아리엘, 나는 지금부터 너를 완전히 속박에서 풀어 자유롭게
해주겠노라."
  "고마워요, 프로스페로 주인님. 제가 끝까지 성실하게 주인님이 타고 가시는 배를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어요!"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벌들이 달콤한 꿀을 빨아들이듯
  나도 달콤한 꿀을 맛보고 싶어라.
  머물 곳이 그 어딘지는 몰라도
  올빼미가 울어댈 즈음, 잠이 스르르 오네.
  한여름을 향해
  박쥐의 배를 타고 가네.
  가지마다 피어오르는 꽃과 같이
  기쁘고 상큼하게 살아가려네.

  마침내 출발하는 아침에 프로스페로는 더 이상 요술을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요술책과 요술 지팡이를 땅속에 파묻어 버렸다. 프로스페로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
땅도 되찾고 딸 미란다와 페르디난드가 경사스럽게 결혼식을 올리게 될 것을 기쁜
마음으로 그려 보았다.
  그런 흥겨움 속에서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요정인 아리엘의 보호를 받으며 즐거운
항해를 계속해서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여름밤의 꿈

  옛날 아테네에 엄격한 법률이 있었는데, 딸이 자기 아버지가 선택해 준 남자와
결혼하지 않으면 그 딸을 사형시켜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 법률에
따라 자기 딸을 처형하는 그런 아버지는 없었다.
  그런데 에게우스라는 한 노인이 자기 딸 헤르미아에게 그 마을의 명문 집 아들인
데메트리우스와 결혼하라고 했다. 하지만, 헤르미아는 라이산더라는 다른 청년을 깊이
사랑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해서, 결국 사형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아테네 왕에게까지 보고되었다.
  헤르미아는 자기가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는 이유는 데메트리우스가 헬레나와 서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테네 왕은 동정심이 꽤 많았지만 법률을 바꿀 힘은 없었기에, 헤르미아에게
나흘간의 여유를 주었다. 그 뒤에도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면 사형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헤르미아는 풀려 나자마자 곧장 사랑하는 라이산더에게 달려가 자신에게 닥친
위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한참 동안 궁리한 끝에 자기의 친척 한 사람이
아테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산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그곳이라면 법률의 영향을
받지 않을 테니 오늘밤 아버지 집에서 도망쳐 함께 그곳에 가서 결혼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을에서 2--3km 떨어진 그 조용한 숲속에서 만나기로 하지."
  헤르미아는 그렇게 약속한 뒤에 그 비밀을 친구인 헬레나에게만 털어놨다. 그러자
헬레나는 자기를 사랑하기보다 은근히 헤르미아를 좋아하는 데메트리우스에게 달려가
그 비밀을 속삭였다. 왜냐면, 데메트리우스는 반드시 헤르미아를 쫓아갈 것이
틀림없으니 자기도 살며시 한번 따라가 보려 했기 때문이다.
  헤르미아와 라이산더가 만나기로 한 숲이 마침 요정들이 살기에 아주 쾌적한
곳이었다. 거기서는 오베론이라는 요정의 왕과, 티타니아라는 요정의 여왕이 하인들을
거느리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이 요정의 왕과 여왕이 한창 싸우고 있었다. 왜냐면, 여왕이 유괴해
와서 소중히 키우던 남자 아이를 왕이 키우겠다고 했는데 여왕이 거절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이 숲속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그날 밤에 요정 여왕이 자기
하인을 데리고 산책하다가, 공교롭게 원수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듯 우연히 요정
왕과 마주쳤다.
  "달밤에 우연히 만났군. 이 욕심쟁이 여왕 같으니라고." 하고 요정 왕이 말하자,
"뭐라고, 당신이야말로 심술 덩어리지. 정말 상대하지 못할 만큼 지독한 왕이야." 하고
여왕도 대꾸했다.
  "성질이 괴팍한 할망구야. 그래도 내가 한수 위야. 뭐라고 자꾸 떠들어대는 거야?
잔소리 말고 그 아이나 어서 내놔!"
  "뭐야? 당신 왕국을 다 준다 하더라도 나는 절대로 줄 수 없어."
  "좋아, 어디 한번 멋대로 해보시지. 날이 밝기 전에 복수를 해줄 테다." 하고 요정
왕은 잔뜩 화를 내며, 자기의 부하 요정 푸크를 불렀다.
  푸크는 마을에 내려가서 요술로 온갖 심술을 부리는 요정이다. 그 족제비같이 날쌤
몸으로 식탁의 음식 속에 들어가 음식을 순식간에 다 먹어치우거나, 혹은 아기에게
젖주는 엄마의 젖을 모두 없애서 젖이 안 나오게 하며,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으면 술잔의 술을 잉크로 바꿔 골탕먹이는 것이었다. 할머니 혼자서 술을 마시면
입술에 술잔을 부딪히게 해서 주름진 할머니의 턱과 목으로 술이 줄줄 흘러내리게
했고, 젊은 사람들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때는 그 반대로 만들어 버려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게 했다. 이 모든 소동이 푸크의 심술궂은 장난 때문에
일어났다.
  "이것 봐, 푸크!" 하고 요정 왕은 말했다. "사랑풀이라는 꽃을 꺾어 오너라. 그
자주색 꽃잎을 짜서 잠자는 사람 눈꺼풀에 바르면, 눈뜬 뒤 가장 먼저 보는 것을
뭐든지, 예를 들면 사자, 호랑이, 곰, 원숭이, 그 무엇이든지간에 사랑하게 되지.
그러니까 요정 여왕이 자는 사이에 그 즙을 발라 보는 거야. 그리고는 내가 다른
주문을 외면 그 꼬마 아이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이야."
  못된 장난만 골라 하는 푸크는 그 생각에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는 그 꽃을 꺾으러
폴싹폴싹 날아갔다.
  요정 왕이 푸크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데메트리우스와 헬레나가 숲속에 왔다.
  데메트리우스는 왜 따라오냐면서 헬레나를 꾸짖었으나, 그녀는 예전에 자기를
죽도록 쫓아다니던 그를 원망했다. 그러나 데메트리우스는 못 들은 척하며 서둘러
달려갔고, 그녀는 계속 그를 따라갔다.
  요정 왕은 이것을 엿듣고 헬레나가 불쌍하게 생각됐다. 그래서 푸크가 그 꽃을 꺾어
오자 왕은 이렇게 말했다.
  "이리 오너라, 푸크. 저기에 변심한 애인을 사랑하는 불쌍한 여인이 있다. 만일에
남자가 그 여인 가까이에서 자는 것을 보거든 이 꽃즙을 눈꺼풀에 발라 놓아라.
그렇게 하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그 여인이 아니겠느냐. 그 젊은
여인은 아테네풍 옷을 입고 있으니 빨리 가 보거라!"
  푸크는, "염려 마세요. 제가 감쪽같이 해놓고 오겠습니다." 하며 또 폴싹폴싹
날아갔다.
  요정 왕은 여왕이 사는 해변가에 가서 여왕이 잠잘 준비를 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 예쁘장한 집은 참 잘 만들어져 있었다. 지붕은 인동덩굴로 단장했고, 집안에는 사향
냄새가 가득 했으며, 방안의 이불은 오색을 아로새긴 뱀 가죽이었다.
  가만히 보니 요정 여왕은 여러 가지 할 일을 하인들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바퀴벌레를 보면 쏜살같이 달려가 죽여야 한다^5,5,5^. 그리고 어린
요정들의 옷을 만들어 주고 싶으니 너는 박쥐 날개를 가져오너라. 또 시끄러운
부엉이가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쫓아야 하고, 그밖에도 내가 자는 걸 방해하면 안된다.
자^5,5,5^. 지금부터 내가 편히 잘 수 있도록 자장가를 불러 보렴."
  요정들은 노래하기 시작했다.

  혀가 두 개 달린 알록달록한 뱀과,
  가시돋힌 고슴도치도 이쪽으로 오고.
  이무기와 도마뱀은 나쁜 장난을 하지 말도록.
  여왕 곁에 다가가면 안된다.
  노래하는 꾀꼬리는
  자장가를 잘도 부른다.
  꾀꼴 꾀꼴 꾀꼬꼴.
  꾀꼴 꾀꼴 꾀꼬꼴.
  어린아이에게 심술부리지 않고
  못살게 굴지도 않고
  요술도 부리지 않는,
  사랑스런 우리 여왕님!
  편안히 주무세요, 꾀꼴 꾀꼴 꾀꼬꼴!

  이런 아름다운 자장가를 불러 여왕이 잠들자, 요정들은 각자 맡겨진 일들을 하기
위해 모두 나갔다. 요정 왕은 살짝 요정 여왕 곁으로 다가가서, 아무나 사랑하게 되는
자주색 꽃즙을 바르며 말했다.
  "눈을 떴을 때 처음 보이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히히!"
  한편, 헤르미아는 그날 밤 사랑하는 라이산더와 함께 길을 떠났다. 숲속을 채 빠져
나가지 못했는데 헤르미아가 기진맥진해 버려서, 라이산더는 잔디가 푸릇푸릇하게
돋아난 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라이산더는 헤르미아와 조금 떨어진 곳에 누울
자리를 정하여 두 사람 모두 금방 잠들어 버렸다.
  그때 심술궂은 요정 푸크가 촐싹대며 와서 아테네풍의 옷을 입은 남녀가 자는 것을
보고는, 즉시 남자의 눈꺼풀에 사랑의 약인 자주색 꽃즙을 발랐다.
  마침 헬레나가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때 라이산더가 눈을 떠서,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이 헬레나였다.
  그러나^5,5,5^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무조건 사랑하게 되는 그 약
때문에 라이산더는 헬레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당신은 헤르미아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군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불 속에서라도
뛰어들 수 있어요."
  헬레나는 자신이 조롱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아아! 정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는거야. 데메트리우스에게
버림받은 것만도 분한데, 또 이런 식으로 놀림당하다니. 라이산더, 당신만은 정말
진실한사람이라고 믿었어요."
  헬레나는 이렇게 말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라이산더는 잠자고 있는 헤르미아도 까맣게 잊고서 무작정 쫓아갔다.
  헤르미아는 깨어나 불안한 마음으로 라이산더를 찾아 숲속을 헤매었다.
  한편, 요정 왕은 데메트리우스가 라이산더와 헤르미아를 못찾고 깊이 잠든 모습을
발견했다.
  요정 왕은 요정 푸크가 착각한 것을 알았다. 그래서 데메트리우스를 보고서 그의
눈꺼풀에 자주색 꽃즙을 발라 주었다.
  데메트리우스는 눈을 떴을 때, 헬레나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기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 다정스레 말을 걸었다.
  결국 헬레나는 데메트리우스와 라이산더 양쪽에게 구애를 받고 모두가 자기를
조롱한다고 생각했다. 헤르미아도 헬레나 못지않게 놀랐다. 지금까지 자기만을
사랑하던 라이산더와 데메트리우스가 어째서 헬레나만을 쫓아다니는지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사이가 좋았던 네 사람은 언성을 높이며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정말 너무해, 헤르미아. 라이산더를 어떻게 할 거니? 그리고 데메트리우스까지
나를 희롱하게 하고 말이야. 남자들과 짜고 불쌍한 나를 이렇게 바보 취급해도 되는
거니? 너무해! 우리는 한 의자에 앉아 짝꿍이 되어 같이 공부하고, 노래부르며, 밥
먹고, 뭐든지 같이 하지 않았니?"
  "뭐라고? 너야말로 너무하는구나. 너무 잘난 척하지 마."
  "언제까지 사람을 놀릴 거니?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나를 조롱하고 있어. 이래도
되는 거야, 정말?"
  헬레나와 헤르미아가 이렇게 말다툼을 벌인 뒤, 데메트리우스와 라이산더는
헬레나를 서로 차지하려는 욕심으로 숲속에서 결투를 벌였다. 두 여인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모두 가 버리자,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요정 왕은 푸크에게 말했다.
  "푸크, 네가 큰 실수를 저질렀거나, 아니면 일부러 이렇게 장난친 게야. 어느
쪽이냐?"
  "제가 큰 실수를 했어요. 주인님께서 아테네풍의 옷을 입은 남자를 찾아내어 꽃즙을
발라 주라고 하셨죠? 이 싸움은 거기에서 시작이 된 거예요. 싸움이 재미있게
되어가는군요."
  "너도 보고 들은 대로 저 남자들은 결투할 태세다. 어서 내가 시키는 대로 짙은
안개를 불러와서 서로 싸우고 있는 여인들이 제각기 흩어지도록 해라. 그렇게 한참
동안 빙빙 돌려 놓으면 모두 지쳐서 잠들어 버릴 게다. 그때 특수 꽃집을 라이산더의
눈꺼풀에 바르는 거야. 그렇게 하면 이전과 같이 다시 헤르미아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 아름다운 저 여인들은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모두 괴로운 꿈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자, 빨리 그렇게 해라. 푸크, 나는 요정 여왕이 어떤 사람을
상대하는가 보러 가야겠구나!"
  요정 여왕은 아직도 쿨쿨 자고 있었다.
  요정 왕은 길가에서 자고 있는 광대를 보자, '이놈을 여왕의 애인으로 만들어 주자.'
하며 광대에게 당나귀 탈을 씌웠다.
  광대는 눈을 뜬 뒤 아무것도 모르고 요정 여왕이 자는 곳으로 갔다.
  그때 요정 여왕이 눈을 뜨자 그 약이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여왕은 당나귀
머리를 한 광대를 보고 마음이 설레어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어머나! 임금님같이 훌륭하시고 영리하신 분이시네!"
  "천만의 말씀입니다, 마님. 다만 제게 이 숲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을 좀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니, 숲에서 나가 버리다니 당치도 않은 말씀을^5,5,5^ 나는 이 숲의 요정
여왕이에요. 나는 당신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내가 하인 요정도 부리게
해드리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땅콩 깍지와 뭉게구름, 나방, 멧돼지라고 불리는 네 요정들을
불러냈다.
  "이 점잖은 신사를 모셔라. 맛있는 포도와 살구를 대접하고 어서 벌집에서 꿀을
따와서 이분께 드려라!" 여왕은 이렇게 명령하면서 광대에게 말했다.
  "당신의 그 얼굴에 매끈매끈하고 곱게 돋아난 털을 어루만지게 해주세요, 귀여운
당나귀님?"
  당나귀 탈을 쓴 광대는 여왕에게 귀여움받는 것은 별로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지만,
네 명의 하인이 생겼기 때문에 우쭐대며 명령했다.
  "이봐, 땅콩 깍지야, 내 머리를 좀 긁어라! 뭉게구름아, 벌집에 가서 꿀을 따오너라!
멧돼지야, 너도 내 머리를 긁어다오. 정말로 얼굴에 털이 더부룩하게 난 것 같구나. 또
잠이 오니까 가만히 살살 긁어주어야 한다."
  여왕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 광대를 안아 살며시 재웠다.
  그때 막 요정 왕이 여왕 앞으로 나가서, 당나귀 탈을 쓴 광대에게 너무 열중한 것을
꾸짖으면서 훔쳐 온 그 남자 아이를 달라고 했다. 여왕은 새로운 그 광대에게 너무나
열중한 자기 모습을 들키자, 부끄러워 안 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왕은 벼르던 그 남자 아이를 얻자 여왕이 가련하게 여겨져서 다른
특수한 꽃가루를 그녀의 누에 조금 발라 주었다. 그러자 요정 여왕은 순식간에
제정신으로 돌아와 광대에게 몰두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과 여왕은 사이좋게 화해했다. 왕은 여왕에게 아테네풍 옷을
입은 두 남자와 두 여자의 싸움이야기를 모두 들려주고 난 뒤 함께 살펴보러 갔다.
  푸크가 모두를 한 장소에 모아서 풀밭 여기저기에 재워 놓았다. 그리고 푸크는
새로운 약을 라이산더의 눈에 발라서 이전에 작용했던 약을 제거해 버렸다.
  헤르미아가 먼저 눈을 떴고 라이산더도 눈을 떠서 헤르미아를 보고, 두 사람은 그날
밤 일어난 일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엉터리 꿈을 꾼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헬레나와 데메트리우스도 깨어났다. 푹 자고 일어나 침착해진 헬레나는
데메트리우스의 사랑이 진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대단히 기뻐했다.
  어젯밤 그렇게 언성을 높여 가며 말다툼을 벌였던 연인들은 화해를 해서 다시
사이가 좋아졌고, 당장 부딪친 헤르미아의 결혼 문제에 대해 지혜와 마음을 모아
의논했다. 결국 데메트리우스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그런 사실을 모두 얘기하여 사형을
취소하도록 간청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그때 그곳으로 헤르미아의 아버지 에게우스가
도망친 딸을 쫓아왔다.
  에게우스는 데메트리우스가 이제 헤르미아와 결혼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딸과
라이산더의 결혼을 허락했다. 그리고는 그날부터 나흘 뒤, 헤르미아를 사형시키기로 한
날에 식을 올리기로 했고, 또 같은 날에 헬레나와 데메트리우스도 함께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요정 왕과 여왕은 함께 노력한 보람을
느끼며 대단히 기뻐했다. 그리고 이 요정 왕국을 네 여인들에게 주어 결혼을
축하하자고 의논했다.
  이렇게 기묘한 요정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 모든 얘기가 단지
한여름밤의 꿈일 뿐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겨울 이야기

  시실리의 왕 레온테스는 마음씨 착하고 아름다운 왕비 헤르미오네와 무척이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왕은 자기 생활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만이라고는
없었지만, 단지 옛친구인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를 한번 자기 왕궁으로 초청해서
헤르미오네와 만나게 해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레온테스와 폴릭세네스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으나, 지금은 모두 한 나라의 왕이 되어 편지나 선물, 또는 외교관을
통해서만 소식을 주고받고 있을 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번이나 초대를 받은 끝에 마침내 폴릭세네스는 아득히 먼 보헤미아에서 시실리의
궁정으로 오게 되었다.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난 레온테스는 너무나 기뻐서 왕비 헤르미오네에게 친구를
융숭하게 대접해 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은 옛날 이야기로 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어렸을 때 남들을 골탕먹였던 추억들을 되새기면서 헤르미오네에게도
들려주었다.
  오랫동안 머무른 뒤 폴릭세네스가 출발 준비를 서두르자, 헤르미오네 왕비는
레온테스 왕이 간곡하게 부탁하니 좀더 머물러다 가라고 그에게 상냥하고도 끈질기게
부탁했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지도 않았던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레온테스 왕이
직접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았던 폴릭세네스가 왕비의 간청에 못 이겨 2--3주 정도
출발을 늦추자, 레온테스는 기분이 몹시 언짢아졌다. 공공연히 죄도 없는 친구와 아내
사이를 의심하게 된 그의 마음은 점점 더 비뚤어져서, 그만 어리석게도 질투 때문에
눈이 멀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그다지도 그 두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던 레온테스 왕은 완전히 사람이 바뀌어
신하인 카밀로에게 폴릭세네스를 독살하라고 명령했다.
  카밀로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왕의 질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헤미아 왕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빨리 도망가라고 일러 주었다.
폴릭세네스는 친절한 카밀로와 함께 몰래 도망쳐 자기 나라로 무사히 돌아갔다.
그리고 카밀로를 자기의 심복으로 삼았다.
  폴릭세네스가 도망친 것을 알고 레온테스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그가 왕비 방에 가
보니 어린 아들 마밀리우스가 엄마 앞에서 재롱을 떨고 있었다. 질투로 인해 눈이 먼
왕은 어머니에게서 아들을 빼앗고 사랑하는 아내 헤르미오네를 감옥에 집어넣고
말았다.
  마밀리우스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감옥에 들어간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몇 날 며칠을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못하는 바람에 몸은 쇠약해지고 바싹 말랐다.
  왕은 왕비를 감옥에 처넣으면서 두 신하에게 시켜, 왕비가 자신에게 불성실했으니
아폴로 신이 모셔져 있는 신전으로 가서 신의 계시를 듣고 오라고 명령했다.
  헤르미오네는 감옥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되어 예쁜 딸을 낳았다. 왕비는 귀여운 딸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나의 귀엽고 사랑스런 죄수야! 네게 죄가 없는 것처럼 나도 죄가 없단다."
  한편, 헤르미오네에게는 폴리나라고 하는 마음씨 곱고 친절한 친구가 있었다. 폴리나
부인이 아기의 탄생 소식을 듣고는 감옥에 와서 아기를 시중들고 있는 시녀에게
말했다.
  "왕비님께 이렇게 전해 주세요. 만일, 왕비님이 나에게 공주님을 맡겨 주시면 왕께
보여 드리겠다고 말이에요. 왕도 죄가 없는 어린 공주를 보시게 되면 마음이 풀어지실
거예요."
  시녀의 말을 들은 헤르미오네 왕비는 기꺼이 공주를 폴리나에게 맡겼다.
  폴리나의 남편 안티고누스는 그런 짓을 하면 왕의 노여움을 더하게 할 뿐이라고
아내를 극구 말렸다. 그것을 뿌리치고 폴리나는 왕 앞에 나아가 갓 태어난 공주를 그
발 밑에 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왕을 향해 헤르미오네를 변호해 주고 왕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지적하면서, 죄없는 왕비와 공주를 자유롭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러나 레온테스는 더욱더 화를 내면서 폴리나를 내쫓아 버렸다.
  그녀는 물러날 때에 공주를 슬그머니 놓고 나와 버렸다. 아무리 혹독한 왕일지라도
죄가 없는 어린 공주를 보면 측은히 여겨 생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자비한 왕은 폴리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그는 안티고누스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를 바다로 데리고 가서 물속에 던져 넣으라고 말했다.
안티고누스는 마음씨 고왔던 카밀로와는 달리 왕의 명령을 그대로 따라 즉시 아이를
파도가 거칠게 일렁이는 바다로 데리고 나갔다.
  왕은 왕비의 부정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의 계시를 들으러 간
신하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공주를 잃고 슬픔에 빠져 있는 왕비를 아폴로 공정의 모든
귀족들 앞에서 재판 하기로 했다.
  불쌍한 왕비가 죄인의 몸으로 나와 막 재판을 받으려 하는데 아폴로 신전에 갔던
신하 두 사람이 돌아왔다. 레온테스는 가지고 온 상자의 뚜껑을 뜯고 큰소리로
또렷또렷하게 읽으라고 신하에게 명령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헤르미오네에게는 죄가 없다. 폴릭세네스 또한 죄가 없다. 카밀로는 성실한
사람이며, 레온테스는 질투로 가득 찬 폭군이다. 만일, 잃은 아이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왕은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나 왕은 신의 계시도 믿지 않고, 그것은 다 왕비가 꾸며 낸 수작이라고 하며
재판을 계속하려고 했다. 이때 그곳에 갑자기 어떤 남자가 뛰어들어와 마밀리우스
왕자가 어머니가 재판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헤르미오네는 불쌍한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만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레온테스는 그 모습을 보고 왕비를 불쌍히 여겨, 폴리나와 그 하인들에게
왕비를 풀어 주고 데리고 가서 치료해 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폴리나는 금새
돌아와서 헤르미오네가 죽었다고 말했다.
  레온테스는 왕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금까지 자기가 너무나 가혹한 행동을
했다고 후회하면서 비로소 아내에게는 죄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신의
계시에서, '만일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내지 못한다면'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딸을
가리켜 하는 말이며, 왕자가 죽은 것은 곧 왕위 계승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잃어버린 딸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도 좋다고 생각하며 비탄에 빠졌다.
  한편, 어린 공주를 바다에 버리러 갔던 안티고누스의 배는 거친 풍랑 때문에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보헤미아 왕국의 해안에 다다랐다. 안티고누스는 배를 바닷가로
끌어올린 뒤 아기를 버렸다. 그러고 난 뒤 다시 배에 오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숲속에서 곰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그는 곰에게 습격을 받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버렸다. 그가 천벌을 받은 바람에 시실리로 돌아가 공주를 어디에 버렸는지, 언제
버렸는지에 대해서 왕에게 보고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왕은 자기가 명령한 대로 안티고누스가 딸을 죽여 버렸겠구나 하며 낙심하여
오랜 세월을 흘려 보냈다.
  불쌍한 공주는 외로운 양치기에게 발견되었다. 그는 마음씨가 착한 사람이었으므로,
버려진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아내와 함께 소중하게 키웠다. 공주는 버려졌을 때
좋은 옷과 보석으로 싸여 있었기 때문에, 양치기는 아무도 모르는 땅에 가서 그
보석을 팔아 양떼를 사들여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
  공주는 페르디타라고 불렸다. 그것은 그녀가 버려졌을 때 겉옷에 꽂힌 종이쪽지에
고귀한 가문이라는 말과 함께 쓰여 있었던 이름이었다. 어린 페르디타는 자신이
정말로 양치기의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자라감에 따라 점점 더 헤르미오네를
꼭 빼닮아, 아름답고 성품이 고운 처녀가 되었다.
  보헤미아의 왕 폴릭세네스에게는 플로리젤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이 젊은
왕자는 양치기 집 근처에서 사냥을 하다가 마치 여왕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런
페르디타를 보고서 금방 반해 버렸다. 그는 귀족의 옷을 벗고 평민의 옷으로
갈아입고는 도리클레스라는 이름을 사용해서 양치기 집을 드나들게 되었다.
  왕자 플로리젤이 이따금씩 궁정에서 없어지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아버지
폴릭세네스가 아들의 행방을 추적해 본 결과, 아들이 양치기의 딸을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폴릭세네스는 착실한 카밀로와 상의하고는 함께 몰래 양치기 집에 가 보기로 했다.
  왕과 카밀로는 변장을 하고 양치기 집으로 갔다. 그날은 마침 양털을 깎는
날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와도 쾌히 들여보내 주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쉽게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상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이 나오고, 잔디밭에서는 춤을 추고, 장사꾼들이 와서
리본을 파는 등, 아주 즐겁고 명랑한 분위기였다. 이런 시끌벅적한 가운데 플로리젤과
페르디타는 구석에 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누고 있었다.
  왕은 완전히 변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플로리젤도 자기 아버지를 몰라보았다.
그들 곁에 좀더 가까이 가서 살펴본 폴릭세네스는 페르디타의 청순하고 해맑은 모습을
보고서 카밀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예쁜 양치기의 딸은 예전엔 본 적이 없네. 아무리 봐도 이런 곳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구먼."
  "정말 양치기의 여왕 같습니다." 카밀로도 맞장구쳤다.
  왕은 양치기에게 슬그머니 다가가서 물었다.
  "잠깐 물어 보겠습니다만, 따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젊은이는 누구입니까?"
  "도리클레스라는 사람인데, 제 딸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있답니다. 딸도 저 청년을
매우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일, 두 사람이 결혼한다면 딸은 도리클레스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물건을 혼수로 갖고 가게 될 겁니다." 라고 양치기는 대답했다.
양치기는 대답했다.
  양치기는 페르디타의 보석을 조금만 팔고 나머지는 간직해 두었던 것이다.
  폴릭세네스는 이번에는 살며시 아들 곁으로 가서 넌지시 말을 걸었다.
  "이봐, 젊은이 자네는 이 잔치에 너무 들떠 있어서 그런지 그 외의 일들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구먼. 옆에 있는 아가씨에게 선물 한 가지는 사줘야 하지
않겠는가?"
  젊은 왕자는 그 사람이 자기 아버지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 보시오, 노인! 나는 그런 시시한 선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습니다.
페르디타가 진심으로 받고 싶어하는 선물은 이 가슴속에 있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뿐입니다. 마침 노인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5,5,5^ 잘됐습니다. 이 기회에
당신이 저와 페르디타 사이에 굳게 맺은 결혼 약속의 증인이 되어 주십시오."
  "결혼 약속의 증인? 웃기는군. 너희들의 파혼의 증인이 되어주마."
  이렇게 말하고 왕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리고는 이렇게 천한 여자와 결혼하려
했다면서 아들을 꾸짖었다. 더군다나 페르디타에게는, "이 몹쓸 것 같으니라고!" 하는
둥 심한 욕설을 퍼붓고 다시 한번 내 아들을 불러내기만 하면 너와 네 아버지를
사형에 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카밀로에게는 왕자를 끌고 오라는
명령하고는, 잔뜩 화를 내면서 궁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왕이 돌아가고 나자 페르디타는 모욕받은 데 대해 화가 났지만 차분하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서로 남남이 되고 말았군요. 하지만, 내게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어요.
당신 아버지의 궁전을 내리쬐고 있는 햇님은 우리가 사는 작은 오두막집에도 비치고
있답니다."
  그리고는 슬픈 듯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 다행스럽게도 꿈에서 깨어났으니 앞으로는 여왕 흉내는 내지
않겠어요. 나는 저쪽에 가서 양젖이나 짜야겠어요."
  마음씨 착한 카밀로는 페르디타의 꿋꿋하면서도 정숙한 태도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는 다시 한번 고국으로 돌아가서 국왕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밀로는
플로리젤과 페르디타에게 자신과 함께 시실리 궁정으로 가자고 권했다. 그렇게 되면
레온테스는 반드시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고, 폴릭세네스 왕도 마음을 풀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두 연인은 기꺼이 그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양치기는 페르디타의 보석과 어렸을 때
입었던 옷, 겉옷에 꽂혀 있던 종이쪽지 등을 갖고 집을 떠났다.
  플로리젤과 페르디타와 양치기, 그리고 카밀로는 항해를 무사히 끝내고서
레온테스의 궁정에 도착했다. 레온테스는 이들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정중하게 대접해
주었다. 플로리젤이 데리고 온 페르디타의 모습 속에서 사랑하던 왕비의 모습을
발견한 왕은 한층 더 슬픔에 잠겨, 자신이 옛날 그렇게 어리석고도 혹독한 짓을
저지르지만 않았더라면 공주는 이렇게 아름다운 처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나는 자네의 훌륭한 아버지, 다정했던 내 친구 폴릭세네스의 우정까지도
저버렸네. 지금에 와서는 내가 죽기 전에 꼭 한번이라도 만나고 싶네."
  한편, 옆에 서 있던 양치기는 왕이 페르디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자기 딸을 아주
어렸을 적에 내다버렸다는 말을 듣자, 자기가 페르디타를 발견했을 때의 일을 생각해
냈다. 그는 혹시 페르디타가 바로 그 버려졌다는 공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양치기는 모든 사람을 향해서 자기가 페르디타를 바닷가에서 주웠을 때의
일로부터 시작해서 곰에게 습격받아 죽은 안티고누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안티고누스의 상냥하고 착실한 부인 폴리나는 아직도 궁정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양치기가 가져온 겉옷이 왕비가 아기에게 입혀 준 것이며, 보석은 그 목에 걸어준
것이고, 종이쪽지에 쓰인 글은 남편의 글씨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페르디타는 레온테스의 딸임이 분명해졌다.
  레온테스는 자기 딸을 찾고 나서는 헤르미오네의 죽음을 더욱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만, "페르디타, 네 어머니는^5,5,5^ 네 어머니는^5,5,5^" 하면서
한탄할 뿐이었다.
  그러자 폴리나가 앞으로 나와 자기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조각가가 만든 최근의 조각
작품을 하나 갖고 있는데, 그것이 돌아가신 왕비님과 무척이나 닮았기 때문에 꼭 한번
보아 주십사고 말했다. 게다가 꼭 자기 집에 가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즉시 폴리나의 집으로 갔다.
  폴리나가 조각을 가리고 있던 휘장을 걷자 왕은 그 조각을 보고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 조각은 헤르미오네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생생하게 거기 서
있었던 것이다. 조금 뒤에 왕은 말을 시작했다.
  "오! 진정 훌륭한 작품이로다. 내가 처음에 결혼을 신청했을 때도 이렇게
아름다웠었지. 하지만, 폴리나, 헤르미오네는 이 조각품처럼 늙지는 않았었소."
  "그게 바로 조각가의 천재성입니다. 조각가는 왕비님이 지금 살아 계시면 이럴
것이라고 상상해서 이렇게 만든 것이니까요. 그러면, 폐하, 다시 커튼을 치겠습니다.
만든 지 얼마 안되어서요."
  "마치 이 조각품은 살아 움직이는 듯하구먼."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커튼을 치지 마시오. 나는 저 조각품이 살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먼. 누가
보면 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저 조각의 입술에 키스를 해야겠소."
  "아니, 안됩니다. 저 조각상의 입술은 그림물감이 아직 마르지 않아 폐하의 입술만
더러워지십니다. 그럼, 이제 커튼을 치겠습니다."
  "안되오. 그만두오." 레온테스는 한사코 폴리나를 말렸다.
  페르디타는 어머니의 조각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렇게 말했다.
  "보고 싶었던 어머니, 저는 이 자리에 죽 앉아서 계속 어머니만을 바라보고
있겠어요."
  폴리나는 왕에게 말했다.
  "부디 커튼을 치게 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더욱더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사실 저는 저 조각상을 움직여서 발판에서 내려오게 하여 폐하와 손을 잡게
할 수도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마법의 힘으로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신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해보시오."
  그래서 폴리나는 미리 준비해 둔 고상한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그러자 조각상은
발판을 뚜벅뚜벅 걸어 내려와 레온테스의 목에 매달려 남편과 아이의 행복을 비는
것이 아닌가! 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착한 폴리나는 왕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왕비가 죽었다고 왕에게 거짓말을
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왕비는 폴리나의 집에 살면서 페르디타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몸을 숨기고
살아왔다.
  레온테스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왕비가 이렇게 살아 있고, 게다가 잃어버렸던 딸까지 다시
찾게 되어 레온테스는 더없이 행복했다. 행복에 넘친 왕과 왕비는 버려진 딸을 소중히
길러 준 양치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후하게 보답했다. 폴리나는 자신의 고생이
저런 즐거운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리하여 행복이 흘러넘치는 시실리의 궁정으로 아들과 카밀로의 뒤를 쫓아
폴릭세네스 왕이 찾아왔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도 한마음으로 이 경사를 축하해
주었다.
  레온테스는 그 동안 폴릭세네스에 대해 나쁘게 굴었던 것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예전처럼 다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폴릭세네스는 아들과
페르디타의 결혼을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페르디타는 이제 한낱 양치기의 딸이 아니라 왕위 계승자가 된 것이다. 
        헛소동

  메시나의 총독 레오나토에게는 헤로라는 딸과 베아트리체라는 조카딸이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성격이 매우 쾌활하여 항상 재미있는 농담을 하면서 고지식한 헤로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이 두 딸이 성장하여 마침내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무렵, 대여섯 명의 젊은이가 이
궁정을 방문했다. 그 중에는 장군으로서 이름이 드높은 아라곤의 공작 돈 페드로와 그
친구인 플로렌스의 귀족 클로디오가 끼어 있었다. 또 재주 있는 재담가로서 널리
알려진 베네딕도 그들과 함께 왔다.
  그들은 전에도 메시나 궁정에 온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과 사귀기를 좋아하는
총독은 딸과 조카딸에게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라고 분부했다.
  베네딕은 그들이 다같이 모인 방에 들어가자마자 금방 총독이나 공작들과 사이좋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말괄량이 베아트리체는 원래 어떤 대화에도 재치 있게 잘
끼여드는 편이었기에 베네딕의 말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장황하게 늘어놓고 계신 건가요, 베네딕? 누구 한 사람
듣고 있지 않잖아요?"
  베네딕도 베아트리체에게 지지 않을 만큼 말을 잘했지만, 이렇게 번번이 그녀의
재치 있는 공격을 당하게 되자 은근히 화가 났다. 이처럼 사려없는 말을 하는 것은
훌륭하고 예의바른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베네딕이 지난번에
메시나에 왔을 때도 이 두 사람은 얼굴만 마주하면 서로를 조롱하고 입씨름을
벌였었다.
  베네딕은 베아트리체의 트집에 지지 않으려고 재빨리 말을 되받았다.
  "아니, 아가씨, 아직도 무사히 살아 있었군요?"
  이렇게 비꼬는 말로써 둘은 오랫동안 언쟁을 벌이곤 했다. 이번 만남에서도
베아트리체는 베네딕에게 시비를 걸었다. 요즘 들어 사람들이 베네딕에 대해 전쟁에서
대단히 용감하게 싸운 사람이라고 말들 하지만, 그 용기란 것은 사실 알고 보면 별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베네딕은 자신이 남들보다 용기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그런 비방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를 가리켜 '공작의 아첨꾼' 운운했을 때는 더
이상 참고 들을 수만은 없었다. '평소에 공작의 마음에 들도록 조금 신경을 썼을
뿐인데 겨우 그런 이유로 그런 심한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그런 말을 듣고는 제대로 행동할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베아트리체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
  공작은 베네딕과 베아트리체의 이렇게 장난기 심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고는
재미있어하면서 귓속말로 총독에게 속삭였다.
  "오, 정말 재치 있는 아가씨로군요. 베네딕에게 꼭 어울리는 배필인 것 같소."
  총독은 만일 그들이 결혼해서 부부가 되면 매일같이 싸움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작은 으르렁대는 두 사람을 결혼시켜 놓으면 아주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작은 자기가 계획하고 있는 이 결혼 외에도 또 한 쌍의 보기 좋은 부부가 생길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클로디오가 정숙하고 아름다운 총독의 딸 헤로를 은근히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는 클로디오에게 말했다.
  "자네는 헤로를 좋아하고 있지?"
  "오, 그렇습니다. 전쟁에 나가기 전부터 그녀를 무척 훌륭한 아가씨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평화를 되찾은 뒤 그녀를 다시 만나니 어여쁜 헤로에 대한 사랑만이
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전쟁의 처참한 기억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공작은 클로디오의 진실한 마음에 감동을 받아 즉시 총독에게 클로디오를 사위로
맞이해 달라고 부탁했다. 총독은 그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여 두 사람의 결혼을
서둘렀다.
  이제 몇 밤만 지나면 결혼식인데도 젊은 클로디오는 그 나날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래서 공작은 기다리는 동안 항상 으르렁대는 두 사람을 맺어 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클로디오뿐만 아니라 총독과 헤로까지 그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적극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 계획이란 다름이 아니라 베네딕과 베아트리체에게 서로를 각각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공작과 총독, 그리고 클로디오는 즉시 그 계획을 시행했다. 그들 세 사람은
베네딕이 넓은 정원의 조그마한 정자 안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바로 뒤의 나무 숲에
숨어서 일부러 베네딕에게 들리도록 큰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작이 먼저 말을
꺼냈다.
  "총독님, 언젠가 총독님이 말씀하셨던 것이 어떤 내용이었죠? 조카따님이 베네딕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참말로 남자를 남자같이 여기지 않던
베아트리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묘한 것은, 남들 앞에서는 싫어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그 사람을 보고
마음을 졸이고 있는 그 심정입니다."
  그러나 클로디오도 한마디 거들었다.
  "헤로가 그러는데, 베아트리체는 베네딕을 죽도록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만일
베네딕이 똑같은 정도로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너무 속이 상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공작은 이 말에 맞장구를 쳐 가며 얘기했다.
  "그 이야기를 베네딕에게 해보면 어떨까요?"
  하지만, 클로디오는 반대했다.
  "그렇게 하면 베네딕은 그 말을 트집잡아 가련한 베아트리체를 더욱더 괴롭힐
겁니다."
  "그런 짓을 한다면 목졸려 죽어도 싸지. 베아트리체는 참으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고 총명한 아가씨니까 말이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베네딕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설마 그런 일이 있으려고."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들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었고, 헤로가 말했다는 것만 들어 보더라도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만큼 사랑해 주지 않으면 안되겠군. 아직
결혼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하지만, 그 여자는 품행도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총명하기까지 하다고 모두들 그러잖아. 확실히 내 마음도 끌려. 아! 저기
베아트리체가 오고 있군. 오늘은 더욱 예뻐 보이는걸. 그렇게 생각하니 웬지 모르게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네."
  베네딕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베아트리체가 다가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시큰둥하게 말했다.
  "절대로 오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지만, 식사하러 오시라고 하기에 왔어요."
  이에 대해 베네딕은 지금까지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었던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베아트리체, 수고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변함없는 태도로 듣기 싫은 말을 두어 마디 하고는 가버렸다. 완전히 공작의
계략에 넘어간 베네딕은 베아트리체가 겉으로 보이는 오만한 태도와는 달리 속으로는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 아가씨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나쁜 놈이야. 베아트리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사람이 아니지."
  다음은 베아트리체의 차례였다. 이 일을 맡은 헤로는 우선 어슐라와 마가렛이라는
두 시녀를 불러 먼저 마가렛에게 명령했다.
  "급히 내 사촌 베아트리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헤로와 어슐라가 정자 뒤에 있는
과수원에서 베아트리체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있다고 살짝 얘기해 줘. 그리고
그애를 은근히 이쪽으로 유인해 오도록 해."
  베네딕이 공작과 클로디오가 하는 얘기를 엿들었던 정자로 베아트리체를 데리고
오려고 마가렛이 떠난 뒤 헤로는 어슐라를 데리고 과수원으로 들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자, 어슐라, 베아트리체가 오면 우리는 이쪽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베네딕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거야. 너는 그 사람을 잔뜩 추켜세우고, 나는 베네딕이 얼마나
베아트리체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하는 거야. 자, 시작하자꾸나.
베아트리체가 벌써 와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곧 헤로는 어슐라에게 무슨 대답이라도 하는 듯이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 어슐라. 베아트리체는 너무나 교만해. 어떤 이야기를 해줘도
베아트리체의 마음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거야."
  "그럼, 베네딕님이 베아트리체 아가씨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
정말인가요?"
  "공작님이나 클로디오도 그렇게 말했고, 다들 베아트리체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라고 내게 부탁하셨어. 하지만,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베네딕을 위한다면 결코
베아트리체에게 그 이야기를 알려서는 안된다고 나는 주장했지."
  "그렇고말고요. 베아트리체 아가씨가 그런 말을 듣고 나면, 단번에 그분을
놀림감으로 만들고 말 거예요."
  "아무리 총명하고, 신분이 높고,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라 할 지라도 베아트리체에게
조롱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어."
  "옳으신 말씀이에요. 그렇게 남을 놀려대는 것은 좋지 않아요."
  "맞아, 내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그앤 나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거든."
  "그래도 베네딕님 같은 훌륭한 신사분을 거절할 만큼 무분별하지는 않겠지요."
  "베네딕 그분은 정말 평판이 좋아. 완전히 이탈리아의 일등 신사지. 내가 사랑하는
클로디오는 빼놓고 하는 말이지만."
  이쯤에서 화제를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헤로는 결혼식이 내일로 다가왔기
때문에 옷을 한번 입어 봐야겠다면서 시녀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지금까지
숨을 죽이고 듣고 있던 베아트리체는 그들이 가버리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네. 베네딕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니 정말일까?
나도 지금까지와는 생각을 달리해야겠어. 이제 더 이상 그를 비웃거나 경멸하지
말아야지. 황량하고 쓸쓸했던 내 마음을 그 사람의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묻어
버려야겠어."
  이렇게 되어 두 사람을 사랑하게 하려는 공작의 계획은 뜻대로 술술 풀려 나갔다.
그런데 헤로와 클로디오의 결혼식 앞에는 뜻하지 않았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라곤의 공작 돈 페드로에게는 돈 존이라는 배다른 동생이 있었는데, 그는 남을
괴롭히고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는 심술궂은 사람이었다. 그는
형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형의 친구인 클로디오도 몹시 싫어했다.
  돈 존은 클로디오와 헤로의 결혼을 방해할 목적으로 헤로의 시녀인 마가렛과 친한
보라키오라는 마음씨 나쁜 악당에게 돈을 주어 무서운 음모를 꾸몄다. 그날 밤 헤로가
잠들면 보라키오가 그 방의 창가에 서서 헤로로 변장한 마가렛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끈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멀리서 클로디오가 보게만 된다면 그들의 약혼은
헤로가 품행이 정숙지 못한 여자라고 오인을 받게 됨에 따라 깨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계획을 짜고 나서 돈 존은 공작에게 가서 헤로를 비난했다. 헤로는 겉으로는
얌전한 척하지만, 사실은 밤마다 몰래 자기 약혼자가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슬쩍 믿지 못하겠으면 오늘밤 숨어서 지켜보고 확인해보자고
말했다. 클로디오는 그 말에 찬성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헤로가 나쁜 짓을 하는 것을 오늘밤 보게 된다면 내일 결혼식장에서
그녀에게 창피를 주고 말겠소."
  공작도 그 계획에는 찬성이었다.
  그날 밤 돈 존이 클로디오와 공작을 헤로의 방 근처로 데리고 갔을 때, 정말로
헤로의 창가에서 한 여인이 어떤 남자와 이야기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는
실제로는 마가렛이었지만 헤로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 이 광경을
본 공작은 클로디오는 그 여자가 헤로라고 굳게 믿고 말았다. 아무튼 클로디오는
헤로가 자기를 배신했다는 생각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고, 여태까지 갖고
있던 불 같은 사랑도 증오로 변해 버리는 느낌이었다.
  클로디오도 이 부끄러운 사실을 내일 결혼식장에서 모든 사람이 모인 가운데
폭로하여 망신을 주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공작도 저런 여자는 그런 벌을 받아도
싸다고 하며 그 말을 찬성했다.
  다음날,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손님들이 모이고, 클로디오와 헤로는 주례를 서는
신부 앞에 섰다. 그리고 신부가 막 결혼식을 시작하려는 순간에 클로디오는 몹시
흥분해서는 헤로에게 품행이 올바르지 못한 더러운 여자라며 욕을 퍼부었다. 눈처럼
깨끗한 헤로는 너무나 놀라서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입을 떼었다.
  "당신, 제정신이세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거예요?"
  총독 역시 너무나 당황해서 공작에게 말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오?"
  그러자 공작은 이렇게 말했다.
  "총독님, 제 명예를 걸고 말씀드립니다만, 댁의 따님이 어젯밤에 몰래 딴 남자를
만나고 있는 것을 나와 클로디오, 그리고 내 동생 존이 보았다는 것을 알려 드리지
않으면 안되겠군요. 분명히 그 여자는 헤로였습니다. 그럼, 이만."
  헤로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로 충격을 받아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공작과
클로디오는 기절한 헤로와 망연해 하고 있는 총독을 남겨두고 냉정하게 결혼식장을
떠나 버렸다.
  베네딕과 베아트리체는 어떻게 해서든 헤로의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애를 썼다.
베아트리체는 사촌이 얼마나 깨끗하고 착한 처녀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든 아버지마저 헤로를 의심했다. 헤로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어젯밤 몰래 어떤 남자를 만난 것이 사실이라면, 부디 저를 죽이거나
내쫓아 버리세요."
  그때 이 상황을 죽 지켜보고 있던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공작님과 클로디오가 무슨 큰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좋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내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신부의 생각은 다름이 아니라, 헤로를 죽은 것처럼 가장해서 장례식을 치르자는
것이었다.
  "헤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클로디오는 금세 헤로를 불쌍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끼리만 알고 지내기로 합시다. 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믿고 있어요. 클로디오도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가 죽었다는 것을 알면 지금까지 지내
왔던 일들이 그리워지겠지요."
  베네딕도 신부의 말을 거들었다.
  "총독님, 그렇게 하세요. 저는 그 사람들과 친한 친구 사이이지만, 헤로를 위해 꼭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총독은 서글픈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은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아서 그렇게
하자고 승낙했다.
  총독이 신부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나자 베네딕은 혼자 남아 있던 베아트리체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더 이상 농담이나 비방을 하지 않고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아트리체 양, 계속해서 울고만 있었습니까?"
  "예, 지금까지도 슬픔 때문에 눈물이 그치지를 않아요."
  "틀림없이 헤로 양은 오해를 받은 것입니다."
  "아! 정말로 그애의 오해를 풀어 줄 사람이 나타난다면 나는 그 사람을 평생
은인으로 알겠어요."
  "두 분이 그렇게도 사이좋은 자매였던가요^5,5,5^ 그건 그렇고, 베아트리체, 내가
당신만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정말로 사랑합니다."
  "나도 당신보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어요. 하지만,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이 부끄럽군요. 지금은 다만 헤로가 불쌍하고 딱한 생각이 들 뿐이에요."
  "하늘에 맹세하겠습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나 또한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 당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
말씀만 해주십시오."
  "클로디오를 죽여 주세요."
  "예? 그것만은^5,5,5^ 나는 그 친구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로디오는 나쁜 사람이에요. 헤로를 비방하고 망신을 주었잖아요. 헤로가
창 너머로 다른 남자와 얘기를 했다는 것도 다 그 사람이 꾸며낸 얘기라고요. 마음씨
착한 헤로는 죽고 말 거예요. 아, 만일, 내가 남자라면!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나를
위해 남자가 되어줄 친구가 있다면!"
  "기다려 주시오, 베아트리체.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클로디오가 분명히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까?"
  "그럼요. 틀림없을 거예요."
  "좋습니다. 그러면 약속하지요. 나는 클로디오와 결투를 벌이기로 하겠습니다.
틀림없이 끝장내 버리겠습니다. 당신은 저쪽에 가서 사촌을 위로해 주세요."
  베네딕은 클로디오에게 결투를 신청하기 위해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는 총독까지 한몫 거들어, 헤로에게 창피를 준 나쁜 놈에게 자기까지도 결투를
신청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클로디오는 백발이 성성한 총독의 결투 신청은 차마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나, 베네딕의 신청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곳으로 동네 야경꾼이 보라키오를 끌고 왔다. 보라키오가 뱃속 검은 돈
존에게 돈을 받고 아무 잘못도 없는 헤로에게 누명을 씌우기로 한 약속을 그 야경꾼이
우연히 엿들었던 것이다.
  보라키오는 공작과 클로디오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 그들이 헤로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시녀 마가렛이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헤로의 결백에 대해서는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돈 존은 자기 죄가 탄로난 것을 알아 재빨리 메시나에서 도망을 치고
말았다.
  클로디오는 헤로를 비난했던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하면서 그녀를 찾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자기의 가혹한 태도 때문에 사랑하는 헤로가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총독에게 잘못을 빌면서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총독이 내린 벌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성격이나 외모가 헤로를 꼭 빼닮은 조카딸
한 명이 있으니, 그애와 결혼하여 조카사위나 되어 달라고 한 것이다. 클로디오는 한번
약속한 이상 상대가 누구이든지, 예를 들어 살빛이 암흑처럼 검은 흑인 여자든 생판
낯선 사람이든간에 상관하지 않고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서약했다. 그렇지만 너무도
마음이 아팠으므로, 헤로의 무덤에서 밤을 지새며 후회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침이 되어 공작이 클로디오와 함께 성당에 갔더니 벌써 모든 사람이 결혼의
증인이 되려고 와 있었다. 소개를 받은 그 조카딸이라는 사람은 얼굴에 하얀 면사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곧 클로디오는 그 여자에게 말했다.
  "이 신성한 성당과 신부님 앞에서 내게 손을 주십시오. 당신이 결혼을 승낙하신다면
오늘 이후로 나는 당신의 진실한 남편이 되겠습니다."
  "나도 죽기 전에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였지요. 그리고 지금도 당신만을 살아하고
있답니다." 하면서 베일을 벗는 그 여인은 다름아닌 헤로였다! 그녀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클로디오는 너무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꿈인가 생시인가 하여
자기 얼굴을 꼬집어 보기까지 했다.
  공작도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죽었다던 헤로가 살아 있었다니!"
  이렇게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베네딕은 자기도 베아트리체와 이
자리에서 당장 결혼하자고 말했다. 베아트리체가 조금 머뭇거리면서 반대를 하자,
베네딕은 헤로에게서 들었다면서 자기를 사랑하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사람들이 자기를 맺어 주기 위해 일을 꾸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결코 속았다고 만은 생각할 수가 없었던 것이, 이미 두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도 서로에게 푹 빠져 있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사랑을 깨뜨릴 수가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베네딕은 예전처럼 약간 비꼬는 투로 자기가 그녀와 결혼하는 것은, 그녀가 자기를
죽도록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거절하면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큰소리를 쳤다. 베아트리체도 이에 지지 않고 베네딕이 자기에게 너무
끈질기게 사랑을 고백한데다가, 그가 폐병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으므로 하도 딱해서
결혼해 주려는 것이라고 재빨리 되받아쳤다.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축복 아래
행복하게 결혼을 하게 되자 말다툼을 멈췄다.
  두 쌍의 행복한 연인들은 공연한 헛소동을 겪고 나서 더 굳은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다. 
       당신 좋으실 대로

  옛날 프랑스가 공작의 영지들로 나뉘어 있을 무렵, 정식으로 작위를 이어받은
공작인 친형을 추방하고 자신이 그 영토를 차지하게 된 한 공작이 있었다.
  자신의 영토를 빼앗긴 형은 몇 명의 충직한 신하들과 함께 아르덴 숲으로 들어가
살았다.
  그들은 공작을 위해 자신들의 땅과 재산을 버리고 지위를 잃은 공작을 모셨다.
궁정에서 보내는 형식적이고도 딱딱한 생활에 비한다면 그들의 생활은 어떻게 보면
오히려 태평스럽고 한가로운 것이어서, 유쾌하고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기에서 그들은 영국의 로빈후드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 숲으로 많은 신분
높은 사람들이 궁정을 떠나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황금시대(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가장 살기 좋은 시대를 말함)에 살고 있는 양, 걱정 없는 세월을
보내는 것이었다.
  여름철에 그들은 울창한 숲의 시원한 그늘에 누워 야생 사슴들이 노니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 숲의 원주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얼룩배기 짐승들이, 나중에 들어온
이주민들인 자신들의 식량이 되기 위해 잡혀 죽게 되는 것을 그들은 마음 아프게
생각했다. 겨울이 되어 싸늘한 바람이 불어닥치게 되면 공작은 자신의 불운함을 가슴
깊이 느꼈지만, 그는 꾹 참아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몸에 불어닥치는 이 차디찬 바람은, 궁정에서 알랑거리는 간신들과는 달리
어떻게 내가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참된 것을 가르쳐 준다. 바늘로 몸을 콕콕
쑤시는 듯이 차갑게 몸을 물어뜯지만, 그 이빨은 비열하고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불행에 대해서 불평을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조차
유익한 것을 찾아낸다. 마치 메스꺼운 두꺼비의 독오른 머리에서도 약을 만들 수 있는
보배를 찾아낼 수 있듯이."
  이런 태도를 가지고 공작은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으로부터 유익한 교훈을
발견했다.
  이러한 관점 덕분에, 그는 겉은 사람의 탈을 썼지만 속은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이
우글대는 곳을 떠나 나무들에게서도 이야기를 듣고, 흐르는 시냇물을 책으로 삼으며,
돌멩이에게서 설교를 듣고, 모든 것에서 선함을 찾아냈다.
  추방당한 공작에게는 로잘린드라고 하는 외동딸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를 쫓아낸
숙부 프레드릭 공작은 로잘린드를 궁정에 붙들어 두고 자기 딸인 실리아의 말동무가
되도록 했다.
  아버지들의 사이는 좋지 못했지만, 두 처녀 사이에는 아주 굳은 우정이 오가고
있었다. 실리아는 자기 아버지가 로잘린드의 아버지에게 못할 짓을 했다고 생각하여
로잘린드를 극진히 위해 주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달리 마음씨가 상냥하고 고와서,
로잘린드가 추방당한 아버지와 홀로 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우울해 하고 있을
때면 늘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기운을 북돋아 주곤 했다.
  어느 날 실리아는 언제나 그랬듯이 로잘린드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제발 부탁이야, 사랑스런 로잘린드 언니, 기운을 내."
  이때 공작이 보낸 사람이 들어왔다. 씨름 경기가 벌어질 예정이니, 만일 보고 싶거든
궁전 앞뜰로 나오라는 전갈이었다. 실리아는 씨름 구경을 하면 로잘린드의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 당시 씨름은 궁정의 신분 높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은 경기였다.
  실리아와 로잘린드가 마침 경기장에 나타났을 때는 처참한 싸움판이 벌어질
참이었다. 선수 중 한 명은 아주 노련한 씨름꾼으로서 많은 선수를 때려눕힌
사람이었는데, 여기에 맞서 싸울 젊은이는 새파랗게 젊은데다 기술도 없으므로, 장내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 청년이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작은 딸과 로잘린드가 오자 이렇게 말했다.
  "아, 너희들도 보러 왔구나. 하지만, 너희들은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게다. 저
선수들의 실력 차이가 너무 심해서 말이야. 젊은이를 설득해서 씨름을 포기하게
했으면 하는데^5,5,5^ 얘들아, 저 젊은이에게 가서 그만두라고 좀 말려 보아라."
  처녀들은 그 말을 받아들여 젊은 선수에게 다가갔다. 먼저 실리아가 그를 만류했고,
그 다음에는 로잘린드가 부드러운 말로 그가 당하게 될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경기를 단념하게 하려고 애를 섰다. 그러나 청년은 오히려 이 상냥한 말을 듣고는
싸움을 포기할 생각을 하기는커녕, 이 사랑스런 처녀의 눈을 바라보며 용기를 얻고서
결의를 다지는 것이었다. 그는 실리아와 로잘린드의 간곡한 만류를 거절했다. 그래도
두 처녀가 계속 말리자, 그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말하면서 확실하게 굳혔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귀한 아가씨들의 청을 거절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예쁜 눈과
상냥한 마음으로 이 승부에 나가는 저를 지켜보십시오. 이 승부에서 진다 해도
하잘것없는 녀석 하나가 죽을 뿐이고, 죽는다 해도 그것을 원한 인간이 죽는
것뿐입니다. 친구에게 피해도 주지 못하는 저입니다. 제가 죽는 걸 슬퍼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하다 못해 세상에 해가 되지도 못 합니다. 가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걸요.
이 세상에서 자리 하나 채우고 있는 사람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 자리를 비우게 되면
더 좋은 사람으로 메워질 수 있을 게 아닙니까?"
  이렇게 되어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었다. 실리아는 낯선 청년이 다치지 않기를
빌었다. 그러나 로잘린드는 그 청년에게 깊이 마음이 끌렸다. 그가 말했던, 그가
살아가고 있는 냉혹한 세상과, 죽기를 바라고 있는 모습을 보고 로잘린드는 그의
처지가 그녀처럼 불운하다고 생각하고 동정해서 시름하고 있는 그의 위험에 마음을
졸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사랑에 빠져들고 말았다.
  뜻하지 않게 아름답고 고귀한 아가씨로부터 격려를 받은 청년은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어, 결국 기운센 상대를 당당히 때려눕혔다.
  프레드릭 공작은 그 젊은이의 용기와 실력을 보고 퍽 흐뭇해 했다. 공작은 젊은이를
부하로 삼고 싶어서 이름과 가문에 대해서 물었다.
  낯선 젊은이는 자신의 이름은 오를란도이며, 롤란드 드 보이스 경의 막내아들이라고
말했다.
  오를란도의 아버지 롤란드 드 보이스 경은 몇 해 전에 세상을 떴으나, 살아 있을
당시에는 전 공작의 충실한 신하였다. 프레드릭 공작은 오를란도가 자기가 추방한
형의 친구의 아들임을 알게 되자, 이 용감한 청년에게 가졌던 호감이 싹 가시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형의 친구들의 이름만 들어도 싫었으나, 이 젊은이의 용맹에
아직 감탄하고 있었던 터이므로 그는, "오를란도가 다른 사람의 아들이라면 좋았을
텐데." 하며 경기장을 떠나 버렸다.
  로잘린드는 은근히 좋아하게 된 이 청년이 자기 아버지의 옛 친구의 아들임을 알고
기뻐하며 실리아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롤란드 드 보이스 경을 무척 좋아하셨어. 저 청년이 그분의 아들이라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아까 저분이 모험을 하려 했을 때 결사적으로 말리는 건데."
  그들은 프레드릭 공작이 갑자기 기분나빠 하며 자리를 떠난 것을 보고 당황해 하고
있는 오를란도에게 갔다. 로잘린드는 자기가 걸고 있던 목걸이를 풀어서 오를란도에게
주며 말했다.
  "저를 위해 부디 이 목걸이를 받아 주세요. 좀더 멋지고 예쁜 것을 선물할 수도
있으련만, 지금 제 처지가 불운하니 어쩔 수가 없네요."
  두 사촌이 단둘이만 있게 되면 로잘린드는 언제나 오를란도 얘기를 끄집어내곤
했다. 실리아는 사촌언니가 잘생긴 젊은 씨름 선수에게 반해 버렸음을 알고
로잘린드에게 말했다. "어떻게 저렇게도 갑작스레 사랑에 빠져 버릴 수가 있지?"
  로잘린드는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는 그분의 아버지를 무척 아끼셨어."
  "그렇지만," 하고 실리아는 대꾸했다.                         "언니는 그런 이유로
해서 그 아들을 좋아한다는 거야?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해야 되겠네. 우리
아버지는 그분의 아버지를 미워하니까. 하지만, 나는 오를란도를 미워하지 않을 테야."
  프레드릭은 롤란드 드 보이스 경의 아들을 만난 일로 해서 아직도 수많은 귀족들이
추방당한 형을 따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조카딸에 대한 그의 불쾌함을
부채질하게 했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조카딸의 미덕을 칭찬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당한 일로 해서 그녀를 동정했기 때문이다. 그의 심술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했다.
  실리아와 로잘린드가 방에서 오를란도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는데 프레드릭이
들어왔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로잘린드에게 궁전을 떠나라, 아버지를 따라
나가라고 호령했다.
  로잘린드를 궁정에 남겨둔 것도 오로지 실리아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실리아는
이렇게 애원했다.
  "전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언니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고, 그래서 언니를 여기
머무르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언니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요. 우리는 생각하는 것도 같고, 오랫동안 같이 배우고, 같이 먹고, 같이 잤어요.
전 언니와 함께가 아니면 살 수가 없어요."
  프레드릭은 대꾸했다.
  "그애는 너에 비해 너무 약아빠졌어. 부드럽고 온순하며 과묵한 것 때문에, 또 그
참을성 많은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동정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딱하게 여기도록
만들고 있어. 넌 바보스럽게도 그애를 두둔하고 있지만, 그애가 떠나고 나면 네 용모며
행실이 더욱 돋보이게 될 테니 잠자코 있거라. 나는 한번 마음먹은 것은 돌이키지
않는다."
  실리아는 아버지가 로잘린드를 더 이상 그녀의 곁에 머무르게 하지 않을 것임을
알아차렸다.
  실리아는 로잘린드와 함께 궁정에서 도망치기로 결심하고, 사촌언니와 함께 밤을
틈타 몰래 빠져 나와 로잘린드의 아버지가 추방되어 살고 있는 아르덴 숲으로 가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 실리아는 젊은 여자들이 값진 옷을 입고 여행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시골 처녀처럼 변장하자고 말했다. 로잘린드는 두 사람 중 하나가 남자로
변장하면 더 안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빨리 의논을 한 끝에 키가 큰 로잘린드가
시골 젊은이의 옷을, 실리아가 시골 소녀의 옷을 입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오빠
동생이라 부르기로 하고, 로잘린드는 자기를 가니미드라고 부르라고 했다. 실리아는
알리에나라는 이름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여행 비용에 필요한 금과 보석을 보따리에 챙겨 넣고 두 명의 어여쁜
공주들은 긴 여행을 시작했다. 추방당한 공작이 사는 아르덴 숲은 궁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로잘린드는 차려 입은 옷에 걸맞게 용기를 내었다. 실리아의 굳은 우정에 감격한
로잘린드는 지루한 여행길을 꿋꿋이 버텨가면서 자기를 따라 고생하는 실리아를 진짜
오빠가 하듯이 보살펴 주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씩씩하게 얌전한 시골 처녀
알리에나의 오빠 가니미드 역할을 해냈다.
  그들은 마침내 아르덴 숲에 이르렀다. 그러나 거기에는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묵었던
편안한 여인숙도, 먹을 것도 없었다. 너무나 허기지고 피곤하여, 동생을 데리고 종일
명랑하게 이야기하면서 길을 걸어온 가니미드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알리에나까지도 가니미드가 겉으로는 남장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여자처럼
울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지경이었다. 그들은 공작이 있는 곳을 오랫동안
찾아다녔지만, 숲이 워낙 넓어 찾지를 못하고 피곤에 지쳐 풀 위에 누웠다.
  그때 운좋게도 어떤 마을 사람 한 명이 그들 앞으로 지나갔다. 가니미드는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여보시오, 목동, 사랑이나 돈이 이 황무지에서 우리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제발
우리를 쉴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오. 내 어린 여동생이 너무 오랫동안 여행을 해서
지쳐 있는데다가 먹지를 못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요."
  그 남자는 자신은 그저 양치기의 머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주인 집을 팔려고
내놓았으므로 대접을 잘 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자기와 같이 가면 조촐하나마 대접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몹시 기뻐하면서 힘을 내어 그 남자를
따라갔다.
  두 남매는 갖고 온 보석을 팔아 양치기의 집을 샀다. 그리고 그 머슴도 자기들의
하인으로 고용하고 양떼를 치게 했다. 먹을 것과 잠잘 곳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된 두
사람은 공작이 사는 곳을 알아낼 때까지 이 집에 머물러 살기로 했다.
  두 사람은 곧 이 새로운 생활을 좋아하게 되었고, 양치는 일을 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가니미드는 때때로 궁전에 살 때 만나 사랑하게 된 용감한 오를란도를
그리워하면서, 그를 만나고 싶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사실은 오를란도도 이 숲에 와 있었다. 이 기묘한 일은 다음과 같은 까닭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었다.
  오를란도가 매우 어렸을 때, 롤란드 드 보이스 경은 숨을 거두기 직전 맏아들인
올리버에게 동생을 잘 키워 줄 것을 부탁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잘 교육시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고 아버지는 유언했다. 그러나 심술궂은 올리버는 아버지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교육을 시키기는커녕 동생에게 제대로 옷 한 벌 해 입히지 않고
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오를란도는 태어날 때부터 고귀하고 인자한 아버지의 성품을 이어받아
훌륭한 청년으로 자랐다. 올리버는 이런 동생을 미워하여 똑똑하고 늠름한 동생을
죽여 버리겠다고 별렀다. 그래서 그는 씨름판에서 많은 선수들을 죽인 이름난
씨름꾼과 동생을 맞붙게 한 것이다. 이 잔인한 형의 냉대로 말미암아 오를란도는
자기가 외토리라고 느끼고, 쓸쓸해서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다고 말한 것이었다.
  첫번째 계략에 실패한 사악한 올리버는 동생이 자고 있는 방에 불을 질러 살해할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드 보이스 경의 충실한 하인 한 명이 이 사실을 알고는, 공작의
궁정에서 돌아오는 오를란도에게 살짝 귀띔해 주었다.
  "제가 주인님의 심복으로 지낼 때 틈틈이 모은 500크라운을 갖고 있습니다. 이걸
모두 드릴 테니 받아 주시고, 저를 도련님의 하인으로 써 주십시오. 비록 나이는
먹었지만 무슨 일에든지 충성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오, 친절하고 정이 많은 아담! 정말 할아범은 충성스러워요. 우리 함께 떠나기로
합시다. 할아범이 젊었을 때 모아 놓은 돈을 다 써버리기 전에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찾아봅시다."
  오를란도와 아담은 정처 없이 길을 떠났다. 여기저기 헤매던 끝에 아르덴 숲에
다다른 두 사람은 배도 고프고 몸도 지쳐서 꼼짝못하고 누워 버렸다. 나이먹은 하인이,
"도련님, 이젠 한 발자국도 못 걷겠습니다. 너무 굶어서 죽을 지경입니다." 하며
쓰러졌다. 오를란도는 아담을 안고 나무 그늘에 옮겨 뉘어 놓고는 격려했다.
  "정신차려요, 아담! 잠시 여기 누워 쉬어요. 죽겠다는 말은 하지 말고."
  오를란도는 곧장 먹을 것을 찾아나섰다. 그의 우연히 공작이 살고 있는 곳에 이르러,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공작은 풀 위에 앉아 있었다.
  오를란도는 너무나 배가 고파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칼을 빼어들고
달려들었다.
  "이제 그만 먹고 나한테 그 음식을 내놓으시지!"
  공작이 물었다.
  "자네는 굶주려서 이러는 건가, 아니면 원래 예의범절이란 걸 모르는 강도인가?"
  오를란도는, "배고파 죽을 것만 같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공작은 오를란도에게 앉아서 먹으라고 했다. 이렇게 친절한 말을 듣고
오를란도는 칼을 제자리에 꽂고는 자신이 한 행동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마을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니 다들 야만스러울
것이라고 여기고, 거칠게 요구하지 않으면 안될 거라고 생각해서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제가 보니 유복한 생활을 하셨던 분들 같은데, 어째서 이런 외딴 곳에서
지내십니까? 아무튼 당신들이 누구건간에, 예전에 교회에 나가 자선을 베푸셨든,
흐르는 눈물을 닦으셨든간에 동정심이 무엇인지 안다면 나를 좀 도와 주십시오!"
  공작이 대답했다. "방금 말한 그대로일세. 우리는 아주 화려한 나날을 보냈었지.
교회에 나가서 자선을 베풀기도 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네.
그러니 어서 앉아서 실컷 먹게나."
  오를란도가 말했다.
  "저쪽에 한 노인이 있습니다. 저를 지극하게 사랑해 주는 사람인데, 너무 배가 고파
쓰러졌습니다. 그 사람에게 뭘 먹이기 전까지는 저도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데리고 오게. 자네들이 올 때까지 우리도 식사를 하지 않을 테니."
  오를란도는 충실한 아담을 부축해서 자리로 돌아왔다.
  공작은, "노인을 잘 앉히게. 두 사람 다 내게 잘 찾아왔네."하면서 먹을 것을 듬뿍
주었다.
  공작은 오를란도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그가 자기의 옛친구 롤란드 드 보이스
경의 아들임을 알고 대단히 기뻐했다. 그리하여 오를란도와 그 하인은 공작 옆에
머물러 살게 되었다. 이것은 로잘린드와 실리아가 아르덴 숲으로 와 자리잡은 지 얼마
안되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양치기 남매로 변장하고 평화롭게 지내던 두 아가씨가 어느 날 숲속을 거닐 때였다.
두 사람은 숲에 자라고 있는 여러 나무의 껍질에 '로잘린드'라는 이름을 새겨져 있고,
숲속 이곳저곳에 사랑의 시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오를란도가 걸어왔다. 오를란도는 씨름판이
벌어졌을 때 로잘린드에게서 받은 목걸이를 아직도 목에 걸고 있었다.
  오를란도 앞에 있는 양치기 총각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있는 로잘린드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로잘린드는 자신이 가니미드라고 소개했다. 오를란도는 잘생긴 양치기
총각이 마음에 들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가니미드는 일부러 장난꾸러기처럼
버릇없이 굴면서 사랑에 빠진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어떤 남자가 말이지요, 이 숲속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나무를 망쳐 놓고 있어요.
아직 여린 나무에 로잘린드라는 이름을 새겨서 망가뜨리지를 않나, 나뭇가지에 그
여자를 사모하는 시를 매달아 놓지를 않나. 내가 그 사랑에 눈먼 남자를 만나면
상사병을 치료할 좋은 처방을 알려 줄 텐데!"
  오를란도는 그가 바로 자기라고 고백하고, 그 훌륭한 처방이라는 것을 알려 주지
않겠느냐고 가니미드에게 부탁했다. 가니미드는 오를란도에게 상사병을 치료하려거든
날마다 자기 집을 찾아와서, 자기를 로잘린드로 여기고 말을 걸어 보라고 말했다.
  "오를란도, 내가 로잘린드 흉내를 내면 당신은 나를 로잘린드라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맺혀 있는 사랑의 말을 여러 가지로 속삭여 보세요. 그러면 아픈 마음이 좀
나을 거예요."
  오를란도는 가니미드의 말을 곧이듣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일 양치기 남매의
집으로 찾아가 양치기 총각을 로잘린드라고 부르며 애인을 대하듯 상냥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오를란도는 가니미드가 로잘린드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장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속에 맺혀 있던 생각들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어
내심 기뻐했다.
  또한 가니미드도 오를란도가 속삭이는 사랑의 말이 실제로 자기 자신인
로잘린드에게 향한 것이었으므로 무척 즐거웠다.
  이렇게 해서 젊은 두 사람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한번은 오를란도에게서 공작이
살고 있는 곳을 들어 알게 되었지만, 가니미드는 자신이 로잘린드라는 것을 아직은
밝힐 수 없었다.
  이럭저럭 시간이 흘러 로잘린드는 아버지인 공작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공작은
허름한 차림새를 한 양치기가 자기 딸 로잘린드와 꼭 닮았다고 생각하고 반가운
마음에 신분을 물었다.
  가니미드는 공작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신분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공작은
그가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웃었다.
  가니미드는 아버지가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는 것을 보고 며칠 내로 사실을
말씀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 아침, 오를란도가 가니미드를 찾아가던 도중에 그는 길바닥에 쓰러져 자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의 목에는 독사가 휘감겨 있었으나, 오를란도가
다가가자 잽싸게 달아나 버렸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이, 이번에는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나 누워 있는 사람을 노리는 것이었다.
  오를란도가 멀리서 잠이 든 그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니, 그는 다름 아니라 자기를
곤경에 빠뜨리고 불태워 죽이려고까지 한 형 올리버였다. 오를란도는 문득 형을
이대로 내버려두어 사자밥이 되게 할까 하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본디 착한 성품을
가진지라, 생각을 바꿔 칼을 빼어들고 사자에게 덤벼들었다. 오를란도는 사자를 죽이고
형의 목숨을 구해 낼 수 있었지만, 사자의 날카로운 발톱에 찍혀 어깨에 큰 상처를
입었다.
  올리버는 동생이 사자와 맞붙어 싸우는 동안 눈을 떴다. 그리고 그 동안 자기가
그다지도 못살게 굴었던 동생이 목숨을 걸고 맹수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것을 보고 자신의 못된 행동을 진심으로 뉘우쳤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동생에게 용서를 빌었다. 오를란도도 후회하고 있는 형을 보고 가까이 가서
끌어안았다.
  올리버는 사실 이 숲에 동생을 없애버릴 생각을 하고 왔지만, 이제는 정말로 동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오를란도는 상처가 너무 심해 가니미드를 찾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형에게 가니미드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올리버는 양치기의 집을 찾아가서 가니미드와 알리에나를 만났다. 그는 그들에게
오를란도가 자기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자기야말로 그를 심한 곤경에
빠뜨린 오를란도의 형인데, 이제 두 사람은 화해했다고 말했다.
  올리버가 자신의 나쁜 짓을 후회하는 것을 보고 알리에나는 깊이 감동을 받아 그
자리에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또한, 올리버도 자기 얘기를 듣고 상냥하게 대해 주는
알리에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가슴에 사랑이 싹트고 있는 중에
가니미드는 오를란도가 사자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만 기절해 버렸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는 아마 로잘린드라면 이렇게 정신을 잃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흉내를 내보았다고 둘러대면서 말했다.
  "오를란도에게 가서 내가 기절하는 시늉을 아주 잘하더라고 말해 줘요."
  그러나 올리버는 가니미드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 것을 보고는 굉장히 마음 약한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당신이 흉내를 낸다면 마음을 꿋꿋이 먹고 남자답게 행동해 보시오."
  "그렇게 할 수 있고말고요. 하지만, 난 사실은 여자인가 봐요!" 하고 가니미드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 버리고 말았다.
  올리버는 오랫동안 그 집에 머무르다가 많은 얘깃거리를 가지고 동생에게 돌아갔다.
 가니미드가, 오를란도가 사자에게 다쳤다는 얘기를 듣고 기절했다는 것, 자신이
예쁘고 상냥한 양치기 처녀 알리에나를 사랑하게 된 것, 그리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지만 알리에나가 자기의 청혼을 승낙한 것 등을 올리버는 이야기했다.
  올리버는 알리에나와 결혼해서 이곳에서 양을 치며 살고 싶으며, 고향에 있는 땅과
집을 모두 네게 주마고 오를란도에게 말했다. 오를란도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내일이라도 당장 결혼하세요. 그러면 제가 공작님과 그 친구분들을 초대하겠습니다.
형님은 형수님 되실 분에게로 가서 빨리 승낙을 받으세요."
  그래서 올리버는 서둘러 알리에나에게 달려갔다.
  가니미드는 오를란도를 문병하러 찾아왔다. 두 사람이 올리버와 알리에나 사이에
일어난 갑작스런 사랑에 대해 얘기하게 되자, 오를란도는 내일이라도 당장 결혼하라고
형에게 권했다는 말을 하고, 자기도 로잘린드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니미드는 이 얘기를 듣고, 오를란도가 만일 로잘린드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숲에 사는 어떤 마법사의 도움으로 내일
결혼식장에 로잘린드를 데려올 수 있다고 하면서.
  오를란도는 도저히 그 말을 곧이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가니미드는, "내 목숨을
걸고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나를 믿고 예복을 입고서 공작과 친구들을
결혼식장에 초대하십시오. 로잘린드는 당신과 결혼하려고 꼭 올 테니까요."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올리버는 알리에나와 함께 공작에게 갔다. 오를란도도 그들과 함께
갔지만, 로잘린드는 보이지 않았다. 오를란도는 가니미드가 자기를 놀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작은 오를란도에게 과연 마법의 힘으로 로잘린드와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오를란도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때 가니미드가 들어와 공작에게 물었다.
  "만일 제가 로잘린드를 데리고 온다면 오를란도와 결혼하게 해주시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지. 내 영토를 전부 준다 하더라도."
  다음에 가니미드는 오를란도에게 말했다.
  "내가 만일 그 여자를 데리고 오면 그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지요?"
  오를란도는 기꺼이 대답했다.
  "그건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요."
  그래서 가니미드와 알리에나는 그곳을 물러나와 예전에 입었던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자 두 아가씨는 금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로잘린드와 실리아가 모두가 모인 곳에 나타나자, 거기 모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로잘린드는 놀라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가 추방된 것과 양치기 남매로
변장하고 이 숲에서 살아온 것을 이야기하며 결코 마법의 힘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공작은 다시 한번 결혼을 승낙했다. 그리하여 올리버와 실리아, 오를란도와
로잘린드는 동시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식은 쓸쓸한 숲속에서 행해졌지만, 그
이상 더 즐거운 결혼식은 지금까지 없었다.
  결혼식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하인이 달려와서 뜻하지 않은 소식을 들려주었다.
프레드릭 공작은 실리아와 로잘린드가 몰래 도망친 것과, 덕망 있는 신하들이 모두
자기 형에게 가버리는 것이 화가 나고 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제정신을 잃은
프레드릭은 군대를 이끌고 형을 잡아들이려고 아르덴 숲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중에
한 노인을 만나 그 노인의 훈계를 듣고 지금까지의 나빴던 행동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자신의 남은 생애를 수도원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프레드릭은 하인을 형에게
보내어 자기 잘못을 빌고,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던 토지와 재산을 모두 돌려
드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뜻밖의 소식은 결혼식을 한층 더 즐겁게 했다. 실리아는 큰아버지께 마음에서
우러나는 축하 인사를 드렸고, 이 영토의 계승자 자리가 자기가 아니라 로잘린드에게
돌아갔다는 것까지도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렇게 해서 공작은 추방된 동안에도 변함없이 자기를 섬긴 신하와 하인들에게
마침내 보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외롭고 쓸쓸한 숲에서 다시 궁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뻤다. 
      베니스의 상인

  유태인 샤일록은 베니스에 사는 고리대금업자로서 기독교도인 상인들에게 비싼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어 재산을 늘리고 있었다. 샤일록은 빌려 준 돈을 다시 받을
때 인정사정없이 행동했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는데, 그 중에서도 베니스의
젊은 상인 안토니오는 제일 그를 싫어했다.
  샤일록도 안토니오가 곤란한 사람들에게 항상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 주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했다. 활달하고 시원 시원한 성격의 안토니오는 금전거래소에서
욕심 많은 샤일록을 만나면 언제나 그 지독한 짓에 대해 욕하며 나무라곤 했다.
그러면 샤일록은 꾹 참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언젠가 복수를 하리라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신분이 높은 안토니오는 친절하게 남을 위해서 무엇이든 있는 힘을 다했기에 누구든
그를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바사니오라는 귀족 청년은 안토니오와 매우 친한
친구였다. 그는 신분만 높고 재산은 없었는데도, 생활만은 신분에 걸맞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돈에 쪼들려 집안 형편이 어렵고 초라했으며, 돈이
필요할 때마다 안토니오에게 빌려오곤 했다.
  어느 날 바사니오는 안토니오에게 와서 자신은 어떤 부자 상속녀를 사랑하는데 곧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많은 유산을 남기고 돌아가셨는데, 살아 있을 때 가끔 자기를
찾아와 만났고, 그녀 역시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부자에게 구혼하는 데 필요한 3천 두카트가 없으니 항상 신세져서 미안하지만 좀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안토니오는 마침 그때 그만한 돈이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배들이 화물을 싣고 곧
돌아오니, 그때까지만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빌리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3천 두카트를 빌리러 샤일록의 집으로 갔다. 안토니오는 이자는
얼마라도 좋으니 배가 입항할 때까지만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까지 돈이
마련되지 못하면 배에 실린 화물이라도 주겠다고 그는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샤일록은 마음속으로, "좋다! 이 기회에 저 녀석들의 약점을 잡고
전부터 노려 왔던 분풀이를 실컷 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샤일록은 이렇게 말했다.
  "안토니오 씨, 당신은 금전거래소에서 항상 나를 더러운 고리대금업자라느니, 못
믿을 사람이라느니 하고 욕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 옷에 침을 뱉거나, 미친개로
취급해서 발길질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난 꾹 참아 왔습니다. 유태인은 모두
참을성이 강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당신이 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군요. 나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하시지만, 개에게 3천 두카트라는 큰 돈이 있을 리가 있겠소? 내가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씀드릴까요? '나으리께선 지난번 나에게 침을 뱉으셨으니, 그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라고요!"
  "지금도 나는 당신이 한 일들을 나쁜 짓이라고 말해 주고 싶소. 이번 돈도 원수에게
빌려 준다는 심정으로 빌려 주는 것이 좋겠소. 그래야만 마음놓고 큰소리치면서 받을
수 있으니 말이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만일 내가 약속을 어겼을 때는 배상금을
얼마든지 요구해도 좋소!"
  "아니, 그렇게 흥분해서 덤비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습니다.
지난날의 부끄러운 일들은 잊어버리고 돈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이자는 한푼도
필요없습니다."
  이렇게 겉으로는 자못 친절하게 제의해 오자 안토니오는 아주 놀랐다. 샤일록은
더욱 친절한 척하면서, 이것도 모두 안토니오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만일 안토니오가 돈을 갚기로 약속한 날에 갚을 수 없을 때를 대비해서
차용증서를 쓰고 서명했으면 좋겠다고 농담 섞인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차용증서에는,
만일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안토니오의 몸에서 1파운드(약 0.5kg)의 살을 떼어낼 것을
약속하라는 것이었다.
  안토니오는 그 말을 승낙했다. "좋소, 그 증서에 서명하겠소. 유태인에게도 이런
친절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주도록 하지."
  바사니오는 그런 비열한 증서에 서명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지만, 안토니오는 돈을
갚아야 할 날짜 이전에 자신의 배가 그 돈의 몇 배나 되는 짐을 싣고 돌아올 테니까
괜찮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대담성에 매우 놀랐다.
그러면서도 바사니오를 슬쩍 보면서 태연하게, "오!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은 모두
의심이 많군요? 자신들이 지독한 짓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는 일까지 의심하는
거겠지요! 설령 안토니오가 약속한 기일을 지키지 못해서 안토니오의 살점을 내 손에
쥐었다고 해서 내게 무슨 이익이 되겠소? 나는 다만 당신들과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오. 그래도 싫다면 이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
  바사니오는 만일 안토니오가 자기 때문에 그런 무서운 일을 당하게 된다면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만두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샤일록이 시키는 대로 그 증서에 서명했다.

  바사니오가 결혼하려는 부자 상속녀는 베니스에서 가까운 벨몬트라는 곳에 있는
궁전 같은 집에 살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포르시아이며, 매우 아름답고 마음씨도 고운
여자였다.
  바사니오는 친구인 안토니오가 목숨을 걸면서까지 친절하게 돈을 마련해 줬기
때문에 친구 그라시아노와 함께 훌륭하게 차려입고 벨몬트로 갔다.
  바사니오는 포르시아의 결혼 승낙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기에, 곧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바사니오는 자기에게는 아무런 재산이 없으며, 자랑할 것은 오직 전통 깊은
가문뿐이라는 것을 포르시아에게 숨김없이 이야기했다.
  그녀는 그가 훌륭한 인격을 갖췄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또한,
자신은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더욱더 노력해야겠다고, 그에게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더욱 아름다워져야겠다고 상냥하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리고 바사니오가
남편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이끌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저 자신이나 제
것이었던 모든 것은 지금부터는 모두 당신 것입니다. 어제까지는 제가 이 저택의
여주인이었지만, 오늘부터는 이 집, 이 집의 하인들, 그리고 저까지도 당신 것입니다.
이 반지와 함께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사랑의 징표로 소중한 반지 하나를 바사니오에게 주었다.
  바사니오는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부유한 포르시아가 자신과 같이 무일푼인 남자를
받아 줬기 때문에 너무나 기뻐 사랑과 감사의 표현을 더듬더듬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포르시아가 준 반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소중히 간직하겠다고 맹세했다.
  심복인 그라시아노는 두 사람의 약혼을 축하하며 자신도 결혼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그라시아노. 애인만 있다면 말이야." 하고 바사니오가
말했다.
  그라시아노는 포르시아 아가씨의 아름다운 하녀 네리사를 사랑하는데, 그녀도
포르시아 아가씨와 바사니오가 결혼하면 자신과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었다.
  포르시아가 사실이냐고 네리사에게 묻자 그녀는, "예, 아가씨만 허락해 주신다면."
하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포르시아는 결혼을 기꺼이 승낙했고, 바사니오도 유쾌하게
말했다.
  "그라시아노, 우리 결혼이 자네들의 결혼으로 더욱 빛나게 되겠는걸."
  이때 갑자기 불쑥 들어온 한 하인 때문에 이 연인들의 행복으로 가득 찬 분위기는
사라져 버렸다.
  하인이 가지고 온 안토니오의 편지를 읽고 나서 바사니오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할말을 잃었다. 포르시아가 걱정이 되어 무슨 소식이냐고 묻자 그제서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 다정한 포르시아! 이 편지에는 불길한 소식이 실려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재산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재산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부담스런 빚까지 있습니다."
  그는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린 일이라든가, 만일 안토니오가 그 빚을 유태인
샤일록에게 기일내에 갚지 못하면 살점 1파운드를 베어줘야 한다는 것을 포르시아에게
털어놓았다.
  '보고 싶은 바사니오, 내 배들은 모두 난파당했다네. 유태인에게 차용증서를 써
주었으니 보증한 대로 지불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을 것 같군. 죽기 전에 자네를
꼭 한 번 보고 싶으나 자네 형편이 어떤지 모르겠군. 다만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오지 않아도 좋다네.'
  "부디 용무를 빨리 마치고 가 보세요. 이렇게 진정한 친구가 내 사랑 당신의 과오로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기 전에 빌린 돈의 몇 배라도 지불할 수 있도록 어서 서둘러 가
보세요."
  포르시아는 바사니오에게 자신의 돈을 쓸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바사니오가 출발하기 전에 결혼해야 하고, 그러면 바사니오가 자기 돈을 남편의
자격으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두 사람은 결혼했고, 그라시아노와 네리사도 곧 결혼했다.
  그 다음 바사니오와 그라시아노는 곧장 베니스로 가서 감옥에 갇혀 있는 안토니오를
만났다.
  잔혹한 유태인은 빌린 돈의 지불 기일이 지났다면서 빌린 돈은 받으려 하지도 않고,
다만 안토니오의 살점 1파운드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베니스의 공작
앞에서 재판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사니오는 걱정을 하면서도 그 재판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포르시아는 남편과 헤어질 때 남편을 격려해 주고
싶어, 돌아올 때는 그 친구를 같이 모시고 오라고 부탁했다.
  포르시아는 변호사인 친척 벨라리오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변호사로 가장해서 재판에 나간다면 어떻겠냐고 의논했다. 벨라리오는 그 말에
찬성하고,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빌려 줬기 때문에 그녀는 하인을 시켜 그것을
가지고 오도록 했다.
  포르시아는 곧 변호사로 변장하고, 하녀인 네리사도 변호사 서기로 남장을 해서
같이 베니스로 떠났다. 그래서 둘은 베니스의 공작 앞에서 재판이 열리려고 하는
순간에 도착했다.
  포르시아는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편지를 공작에게 전했다. 그 편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변호사 벨라리오는 안토니오를 위해 변호하고 싶은데 몸이 좋지
않아 갈 수 없으니, 학식 있고 젊은 박사를 대신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편지를 가지고 간 사람을 자기 대신에 변호사로 허락해 달라고 그는 부탁했다.
  공작은 긴 외투와 가발로 잘 변장한 포르시아를 변호사치고는 너무 젊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이 재판에서 변호를 담당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드디어 중대한 재판이 시작되었다.
  포르시아가 주위를 둘러보니 무자비한 유태인이 눈에 띄었다. 방청석에는 남편
바사니오가 있었지만, 포르시아가 변장했기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사니오는 단지
친구가 걱정이 되어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포르시아는 우선 샤일록에게, 베니스의 법률에 의해 차용증서에 기재되어 있는 것을
당연히 안토니오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동시에 포르시아는 무감각한
샤일록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자비의 고귀함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자비라는 것은 마치 마른 대지 위에 조용하게 내리는 비처럼 베푸는 자나 받는 자
모두를 축복합니다. 왕에게는 그의 왕관보다도 더 좋은 것이지요. 자비가 이 세상을
깨끗하게 변화시켜, 사람들은 하나님과 더 가까운 성품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샤일록의 대답은 오로지 차용증서에 쓰여 있는 대로 배상을 해달라는
말뿐이었다.
  "그럼, 돈을 몇 배로 갚아 드리면 안되겠소?" 하고 포르시아는 물었다.
  바사니오는 3천 두카트의 몇 배일지라도 샤일록이 원하는 대로 몽땅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샤일록은 이것조차 거절하고 막무가내로 안토니오의 살점 1파운드를 베어
달라고 말했다. 바사니오는 안토니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법률을 조금 신축성 있게
적용해 줄 것을 젊은 변호사에게 부탁했다.
  이에 대해 포르시아는, "법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것이며, 일단 정해진 법률을
결코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할 수는 없소!" 하고 엄한 말투로 대답했다.
  샤일록은 이 말을 듣고 자기 편을 들어 준다고 생각하며 기뻐서 이렇게 말했다.
  "호오! 다니엘 같은 명판사님이시군! 젊은 판사님! 나이답지 않게 훌륭한
판사님이시네."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포르시아는 샤일록에게 차용증서를 보여 달라고 해서
그것을 보고 난 뒤 말했다.
  "정말로, 그러한 내용이 적혀 있으니 유태인의 요구대로 안토니오의 가슴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살 1파운드를 베어내도 법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군요. 그러나,
샤일록 씨! 다시 한번 더 생각해서 자비를 베푸는 것이 어떻습니까? 당신은 돈을
받고, 이 차용증서는 내가 찢어 버리면 어떨까요?"
  그렇지만 잔혹한 유태인은 조금도 변함없이 말했다.
  "안되지요. 어디까지나 맹세한 대로 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나의 뜻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안토니오 씨, 당신의 가슴을 열고 샤일록의 칼을 받아야만
하겠습니다." 하고 포르시아는 말했다.
  결국 샤일록은 안토니오의 살을 베어내려고 긴 칼을 천천히 스^6,3^윽싹 갈았다.
  포르시아는 안토니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안토니오는 이미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에 침착하게, "할말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그는 친구 바사니오에게 말했다.
  "악수나 하세, 바사니오. 잘 있게나. 자네 때문에 내가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다고
슬퍼하지 말게. 나중에 자네의 어여쁜 아내에게 내 대신 인사해 주게. 내가 얼마나
자네를 아끼고 있었는지를 전해 줬으면 좋겠어."
  바사니오는 괴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안토니오, 나는 내 생명같이 소중한 아내와 결혼했어. 그러나 내 생명도 아내도 온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자네 목숨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자네를 구할 수만
있다면, 여기 있는 악마 같은 샤일록에게라도 기꺼이 희생당하겠어.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다네."
  포르시아는 이 말을 들으면서 남편이 친구에 대한 우정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부인이 여기에 계셔서 그 말을 들으신다면
그다지 기뻐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고 말하며 속으로 슬그머니 웃었다.
  포르시아 곁에서 서기 복장을 입고 글을 쓰던 시녀 네리사도 이 말을 듣고 말했다.
  "그런 말은 부인이 안 계신 곳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가정
불화가 일어날 테니까요."
  그러자 바사니오의 흉내를 잘 내는 그라시아노도 한마디했다. "나에게도 매우
사랑스런 아내가 있습니다. 그녀가 저 세상에 가서라도 이런 짐승 같은 유태인의
지독한 근성을 고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샤일록은 이런 대화를 들으며 한참 기다리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시간 낭비하지 맙시다. 자,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드디어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자 법정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안토니오 때문에
슬퍼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포르시아는 침착하게 살점의 무게를 달 저울이 준비되어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녀는 유태인을 향해서 말했다.
  "샤일록 씨! 출혈로 안토니오 씨가 죽지 않도록 의사를 불러오게 하시오."
  샤일록은 안토니오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은 차용증서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증서에는 쓰여 있지 않지만, 그런 조치는 취해 주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런 조항은 없소. 증서에는 쓰여 있지 않으니까."
  "그렇군요. 당연히 안토니오의 살점 1파운드는 당신 것이지요. 법률에 의해 그렇게
판결합니다. 당신은 안토니오의 가슴에서 살점 1파운드를 잘라내도 좋습니다."
  "오, 현명하고 훌륭하신 재판관님! 정말로 다니엘과 같은 명재판관이로다!"
  샤일록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긴 칼을 날카롭게 세우고 안토니오를 계속
바라보면서 말했다.
  "자, 준비됐소이다."
  "좀 기다리시오, 샤일록 씨." 포르시아는 샤일록을 가로막았다. "아직 분명히 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당신 말대로 증서를 따져 보면, 피 한 방울이라도 당신에게
준다고 쓰여 있지 않소. 이 증서에는 분명히 살점 1파운드라고만 쓰여 있군요. 만일,
살을 베어 낼 때 안토니오 씨의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게 하면 법률에 의해 당신의
모든 재산은 베니스 국가에 몰수당하게 됩니다."
  "^5,5,5^"
  그런데 살점을 베어 낼 때 사람의 능력으로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현명한 포르시아는 차용증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살점뿐이지 피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해 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생각해 낸 젊은 변호사의 현명함을 칭찬하고 박수 갈채를
보내며 기뻐했다. 그라시아노는 샤일록이 사용했던 말을 그대로 흉내내며 말했다. "오!
현명하고 훌륭한 재판관님! 잘 들어라! 유태인 놈아! 다니엘과 같이 훌륭한 재판관이
오셨다."
  샤일록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자 실망한 표정으로 돈을 받겠다고
말했다.
  바사니오는 뜻밖에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하게 되자 매우 기뻐하며 얼른 돈을
건네주려 했다. 그때 포르시아는 그를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조용히들 해주십시오.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유태인은 차용증서에 적혀 있는 것
이외에는 받을 수 없습니다. 자, 샤일록 씨! 살점을 자를 준비를 하세요. 다만, 피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됩니다. 또한, 살점 1파운드보다 많거나 적어서도 안됩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틀리면 베니스의 법률에 의해 사형당하게 되며, 당신의 전재산은
몰수됩니다."
  샤일록은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내 돈을 받아 돌아가도록
해주십시오." 라고 말하면서 바사니오에게 돈을 요구했다. 그러자 다시 포르시아가
가로막으며 말했다.
  "잠깐만요. 아직 당신에게 할 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베니스의 법률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려 했을 때 살해하려던 자의 재산은 국가에 몰수당하며,
공작님의 뜻에 따라 그의 생사 여부를 결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공작은 샤일록을 향해 말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정신이 당신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두말할 것 없이
목숨만은 살려 주겠으나, 재산의 반은 안토니오에게 주고, 반은 국가 재산으로
몰수하겠노라!"
  관대한 안토니오는 자기에게 그 재산을 줄 필요는 없으며, 다만 샤일록이 죽은 뒤에
그의 딸과 사위에게 안토니오에게 주기로 한 재산을 물려준다는 서명을 해달라고
말했다. 샤일록의 외동딸이 최근에 아버지의 허락 없이 안토니오의 친구인 어느 젊은
기독교인과 결혼했다는 것을 안토니오는 알고 있었다. 샤일록은 너무 화가 나서
외동딸을 자기 딸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유태인은 안토니오의 요구를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어 샤일록의 잔인한 복수극은 실패하고 재산마저 몰수당했기 때문에, 그는
힘없이 터덜터덜 법정을 나가 버렸다. 공작은 안토니오를 자유롭게 해주고 재판을
모두 끝마쳤다. 그리고 나서 그는 젊은 변호사의 재능을 칭찬하면서 식사에 초대했다.
그러나 변호사는(사실은 포르시아였으므로) 남편보다 먼저 벨몬트로 돌아가기 위해서
곧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안된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그 뒤에 공작과 다른 사람들이 법정에서 나가자 바사니오는 젊은 변호사로 변장한
포르시아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내 친구인 안토니오를 당신의 총명한 지혜로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디 유태인에게 갚으려 한 3천 두카트를 대신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꼭
갚겠습니다." 하고 안토니오도 덧붙여 말했다.
  젊은 변호사는 아무리 부탁해도 돈을 받지 않았다. 다만, 바사니오가 그렇게까지
사례를 하고 싶으면 끼고 있는 장갑을 달라고 했다. 바사니오가 장갑을 벗자, 그
손가락에는 포르시아가 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젊은 변호사는 그것을 보고는
장갑보다는 그 반지를 갖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바사니오를 놀려 주려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변호사가 바사니오의 반지를 갖고 싶어하자 바사니오는 매우 곤란해 했다.
바사니오는 이 반지는 약혼 반지이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줄 수 없다고 말하고, 그
대신 베니스에서 가장 비싼 반지를 새로 사 주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포르시아는 일부러 화를 내며 법정을 나가 버렸다. "잘 알았습니다.
나를 거지 취급하시는군요."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에게 부탁했다. "이보게, 반지를 변호사에게 드리게. 이 정도도
신세진 것을 생각하면 자네 집사람에게 책망을 듣는 정도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바사니오는 친구 안토니오를 구해 준 은혜를 되새기며 승낙했고, 그라시아노에게
반지를 가지고 변호사를 따라가 드리라고 했다. 그러자 서기로 변장한 네리사도
그라시아노 반지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라시아노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네리사에게 주어야만 했다.
  변호사와 서기 복장을 한 두 여인은 집에 돌아가면서 반지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책망하며 어떤 여자에게 선물했느냐고 따져 보려는 생각을 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포르시아와 네리사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곧 본래의 옷으로 갈아입고 남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바사니오와 안토니오, 그리고 그라시아노는 포르시아의 집에 도착했다.
  바사니오는 친구를 포르시아에게 소개했고, 포르시아가 축하와 환영의 말을 하는
사이에 한쪽에서 네리사와 그녀의 남편인 그라시아노는 벌써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벌써 싸움이야! 어떻게 된 거지?"
  그라시아노는 대답했다.
  "네리사가 나에게 준 그 하찮은 반지 때문입니다."
  네리사는 화를 내며 대들었다.
  "하찮은 반지라고요? 뭐가 하찮다는 건가요? 내가 당신에게 드릴 때 그것을 죽을
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해놓고는 변호사 서기에게 줘
버렸다고요? 다 알아요, 다른 여자에게 준 거지요?"
  "아니오, 이 손이 그것을 증명하오. 나는 그 젊은 서기에게 주었다고. 키가 당신만한
조그만 사람인데, 아주 총명한 지혜로 안토니오의 생명을 구했단 말이오. 바로 그
서기가 그것을 선물로 달라고 하기에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오."
  이 말을 듣고 있던 포르시아는 말했다. "그건, 그라시아노, 당신이 잘못했군요.
그라시아노 씨! 부인에게 약혼 기념으로 처음 받은 것을 주다니요. 나도 남편에게
반지를 드렸습니다만, 온 세상이 다 변한다 해도 그이는 그것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예요."
  그라시아노는 자신의 실수를 변명할 생각으로 말했다.
  "주인님이 그 젊은 변호사에게 반지를 먼저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 서기가
나에게도 반지를 달라고 요구하더군요."
  포르시아는 이 말을 듣고 매우 화난 듯 자기 반지를 준 바사니오를 나무랐다.
바사니오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화나게 했기 때문에 열심히 해명했다.
  "아니오, 명예를 걸고 진실을 말하겠소. 어떤 다른 여자에게 준 것이 아니오. 그
사람이 우리가 사례로 주려는 3천 두카트를 받으려 하지 않고 대신 그 반지를 달라고
하는 거요. 그것을 거절하자 화를 내며 가 버리니 할 수 없지 않겠소. 포르시아, 나는
사실 친구에게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서 결국 주고 말았소.
용서하시오. 그 상황에서는 당신이었다 하더라도 반지를 주었을 것이오."
  안토니오는 걱정이 되어 포르시아에게 말했다.
  "나 때문에 이런 싸움이 일어났군요. 하지만, 포르시아, 나는 당신 남편을 위해서 내
몸을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남편이 반지를 준 그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내 목숨을 담보로 약속하기로
합시다. 당신 남편이 다시는 당신과 그런 약속을 어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포르시아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 증인이 되어 주시지요. 자, 이 반지를 남편에게 돌려
드리겠어요. 그리고 예전보다 더욱 소중하게 보관하시라고 말씀드려주세요."
  바사니오는 그 반지를 받고 나서 변호사에게 준 반지와 똑같은 것이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포르시아는 그런 남편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으며, 그때 그 젊은 변호사가 바로
자기이고, 서기는 네리사였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그제서야 바사니오는 아내가 담대한
용기와 훌륭한 지혜로 안토니오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을 알고 놀랐으며, 동시에 매우
기뻐했다.
  포르시아는 다시 한번 새롭게 남편의 친구 안토니오에게 인사하면서, 재판이 열리기
바로 전에 받은 어떤 편지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 편지에 난파당했다고 믿었던 안토니오의 배가 '무사히 입항했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이렇게 잇달아 일어난 뜻밖의 행운에 모든 사람은 다 함께 기뻐했다.



        리어왕

  고대 브리튼의 리어 왕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그들은 앨버니 공작의 아내가 된
고네릴, 콘월 공작의 아내 리건, 그리고 아직 어린 막내딸 코딜리아였다.
  그 즈음 브리튼 궁정에는 프랑스 왕과 버건디 공작 두 사람이 동시에 구혼하러 와서
코딜리아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궁전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제 리어 왕의 나이는 80세가 넘어서 몸이 쇠약해졌기에, 왕은 통치권을 젊은
사람에게 물려주려고 결심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은퇴해서 언제 죽어도 후한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왕은 세 딸을 불러서 누가 가장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각자 표현해
보라고 했다. 그 사랑의 정도에 따라 왕국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였다.
  맏딸 고네릴은 아버지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지만, 말로는 번드르하게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님은 자신의 눈빛보다 소중하며, 목숨이나 그
어떤 자유보다도 중요하다는 둥 하며 아부하는 말을 늘어 놓았다.
  그러나 왕은 큰딸이 진심으로 그러리라 믿고 매우 기뻐하며 왕국의 넓은 땅 중에서
3분의 1을 고네릴과 그 남편에게 나누어 주었다.
  둘째 딸인 리건도 언니처럼 불성실한 성품이었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리건은 언니가 말씀드린 것보다 아버님을 훨씬 더 사랑할 뿐 아니라,
아버님으로부터 사랑받는 기쁨에 비하면 다른 기쁨은 모두 죽음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리어 왕은 이 거짓말도 사실로 믿고 리건과 그 남편에게도 언니와 같이 왕국의
3분의 1을 주었다. 이렇게 기특한 딸들에게 모든 것을 나누어 줌으로써 자신은 축복을
받을 것이며, 행복할 것이라고 늙은 왕은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막내딸 코딜리아의 차례가 되자, 왕은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코딜리아가
틀림없이 언니들 이상으로 열정적인 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리라고 생각했다. 왕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가장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코딜리아는 언니들이 아첨하는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버지를 속여 남편과 함께 땅을 차지하려고 마음에도 없는 그런
달콤한 말을 늘어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코딜리아는 이렇게 짧은 한 마디의
대답만 했을 뿐이었다.
  "저는 아버지의 딸로서 아버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왕은 가장 귀여워하던 딸이 이렇게 말하자 깜짝 놀랐다. 왕은 그녀에게 지금 말한
것을 다시 생각해서 고쳐 말해 보라고 소리질렀다. 그렇지 않으면 크게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코딜리아는 사실 아버지를 무척 사랑하지만, 언니들이 교활한 아첨으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 진심으로 사랑하더라도 그것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그것을 쉽게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왕께서는 제 아버님으로서 저를 키워 주시고 가르쳐 주시며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아버님께 복종하고 존경하겠어요. 그렇지만 언니들처럼 이
세상에서 아버님 외에 그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결혼한다면 그 남편은 반드시 제 사랑의 반 정도를 요구하겠지요? 제 사랑을
모두 아버님께 드려야 한다면 결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니들도 결혼하지
말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들리는 말을 한 이유는 그녀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대가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왕은 막내딸이 거만하게 말한다고 여기고 매우 화가 났다.
  리어 왕은 평소에도 화를 잘 내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나이탓으로 더욱 심했다. 왕은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크게 노하여 코딜리아의 몫으로 남겨 둔 3분의 1의
땅을 언니들에게 나눠 주고 말았다.
  리어 왕은 신하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두 자매와 사위들에게 모든 권력과 재산,
통치권을 물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다만 왕이라는 이름만 간직하기로 했다. 또한, 백
명의 기사를 부하로 두고 한 달씩 교대로 두 딸의 궁전에 머무르기로 하는 것
이외에는 왕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두 딸에게 넘겨준 것이다.
  신하들은 국왕의 이런 결정을 듣고 놀라고 걱정스러워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도
일어서서 왕에게 다시 생각하라고 용기있게 말하지 못했다.
  다만, 켄트 백작만이 코딜리아를 위해서 정직하게 충고하려 했는데, 리어 왕은 그의
말을 가로막고 사형시켜 버리겠다고 소리쳤다.
  진심으로 왕을 존경하던 충성스런 켄트 백작은 리어 왕이 올바르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켄트 백작은 충성스레 왕에게 다시
말씀드렸다. 그는 제발 왕이 화를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도록 간청했다.
그러면서 자기 생각으로는 코딜리아는 왕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코딜리아를 오해한 왕은 켄트 백작의 용기 있는 태도에 더욱 화가 날 뿐이었다.
왕은 충실한 그를 추방하기로 하고 5일간의 여유를 주었다.
  "만일 6일째 되는 날에 이 밉살스런 놈이 발견되면 당장 죽여 버려라."하고 왕은
명령했다.
  그래서 켄트 백작은 왕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한
코딜리아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고 나서, 그녀의 언니들에게 왕을 진심으로 잘
모시고 사랑해 드릴 것을 부탁하며 떠나갔다.
  한편, 왕은 코딜리아에게 구혼하러 왔던 프랑스 왕과 버건디 공작을 불렀다. 그는 이
막내딸에 대한 자신의 결심을 말해 주고 나서, 어떤 재산도 주지 않기로 했는데도
계속 구혼할 것인지 물었다.
  버건디 공작은 그녀에게 한푼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즉시 떠나 버렸다.
그러나 프랑스 왕은 달랐다. 코딜리아가 왕에게 오해받은 것은 언니들처럼 아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오히려 그녀의 솔직하고 진실한 성품은
땅덩어리 이상의 지참금이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코딜리아가 괴로워할 것을 안타까이 여기며 아버님과 언니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하고서 프랑스로 데리고 가서 왕비로 삼기로 했다.
  코딜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언니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언니들이 아버님께
말씀드린 대로 아버님을 사랑하고 잘 모셔 드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언니들은
누구를 가르치려 드느냐면서 자신들은 의무를 잘 알고 있다고 화를 냈다. 코딜리아는
언니들이 교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님을 걱정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코딜리아가 떠나자마자 언니들은 곧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리어 왕은 큰딸인
고네릴의 궁전에 머무른 지 채 한 달도 되기 전에 큰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파렴치한 큰딸은 아버지 주변에 남아 있는 백 명의 신하가 돈만 낭비한다고
주장하고, 나이 많은 아버지가 함께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면서 만날 때마다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나 바쁜 일이 있다며 왕에게 함께 얘기 나눌 시간도
주지 않았다.
  또한, 고네릴은 왕의 하인들을 시켜서 왕을 소홀히 모시게 했고, 또 그들은 왕의
명령에 따르려 들지도 않았다. 심지어 왕이 말을 해도 귀머거리처럼 일부러 들리지
않는 척하는 것이었다.
  리어 왕은 딸의 행동이 변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지만, 자신의 결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꾹 참았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음씨 깨끗하고 충성을 다한 단 한 사람은 변함없이 부왕을
정성스레 섬겼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켄트 백작이었다.
  그는 리어 왕에게서 추방당한 뒤 브리튼에서 발견되면 목숨을 잃게 되겠지만,
나중에 쓸모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국내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원래 높은 신분이었지만 초라한 차림새로 변장하고 왕에게 가서,
케이어스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하인으로 섬기게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큰딸의 거짓 아첨에 슬퍼하고 있던 왕은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나자 기뻐했다. 왕은
그가 켄트라는 사실을 모른 채 케이어스를 하인으로 삼았다. 그의 겸손한 말과 태도는
매우 왕의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고네릴의 집사가 자기 주인을 믿고 리어 왕에게 무례하게 대했다.
케이어스는 왕이 이처럼 모욕받자 울분을 참지 못해 자기도 모르게 그 집사를
걷어차서 물 웅덩이에 빠뜨리고 말았다. 이렇게 진심에서 나오는 태도를 보고 리어
왕은 그를 점점 신뢰하게 되었다.
  이처럼 리어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케이어스만이 아니었다. 또 한 사람은
왕의 기분전환을 위해 궁에서 채용한 어릿광대였다. 이 초라한 어릿광대는 왕이
왕위에 물러난 뒤에도 늘 따라다니며 기발한 익살로 왕을 즐겁게 해주었다.
  가끔 광대는 깊은 생각 없이 왕관과 모든 것을 딸들에게 주어 버린 리어 왕의
실수를 탓하기도 했다.
  어릿광대는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딸들은 뜻밖의 횡재에 기쁜 눈물을 흘리지만,
  나는 슬퍼서 노래부르네!
  임금님처럼 귀하신 분이 숨바꼭질하시려나?
  어릿광대들 사이에 들어오시네!

  갑자기 아무렇게나 내뱉는 노래로 이 유쾌한 광대는 큰딸인 고네릴 앞에서조차 리어
왕을 빈정대거나 조롱하고 비꼬았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야 하는 두 딸들이 아버지보다 높은 지위가 된 것을 다음과 같은
얘기로 비꼬았다. "두견새의 새끼가 완전히 자라면 길러 준 휘파람새의 머리를 쪼아서
죽여 버린답니다!" 어떤 때는, "마차가 말을 끌어당기기도 한답니다." 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리어 왕은 이제는 왕이 아니라 왕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둥 말하고
싶은 대로 실컷 말을 하면서 나름대로 울분을 달래고 있었다.
  리어 왕은 단순히 존경받지 못한다든지, 차디찬 대접을 받는 것만이 아니었다.
  고네릴은 날마다 아버지에게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으려면 자기네 궁전에
머무르는 것이 곤란하다고 트집을 잡았다. 기사들은 빈둥빈둥 놀고 먹느라 식량만
축내고 있으니, 그 수를 줄여 몇 명의 하인만 놔두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했다.
  리어 왕은, 믿고 왕관을 물려준 딸이 이렇게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 품행이 올바른
하인들을 비난하며 너무 괘씸한 요구를 하기에 노왕은 매우 화가 났다. 아버지는
하인들을 데리고 둘째 딸인 리건의 궁으로 가겠노라고 말했다. 왕은 고네릴이 들으면
참지 못할 정도로 욕을 퍼부으며 성을 출발했다.
  "저애에게 결코 자식이 생기지 않겠지만, 만일 자식을 갖게 된다면 부모를 모욕하고
복수하려는 녀석일 게야. 그때가 되면 불효자를 둔다는 것은 독사에게 물리는 것보다
더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될 테지." 라고 그는 말했다.
  터벅터벅 말발굽 소리를 들으면서 왕은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막내딸인 코딜리아의
말이 맘에 안 들었다 해도 큰딸의 지독한 불효에 비하면 정말로 사소한 것이라고
비로소 뉘우쳤다. 왕은 쓸쓸히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리어 왕은 둘째 딸의 궁전에 하인 케이어스를 보내 편지를 전해서 자신과 부하들이
도착하기 전에 맞이할 준비를 해놓으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고네릴은 벌써 동생인 리건에게 편지를 보내어, 아버지가 멋대로 기분나빠
한다고 비난하고, 아버지가 데리고 가는 많은 신하들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충고해
놓았다.
  그때 동시에 왕의 편지를 가진 케이어스가 그곳에 도착했다. 그가 보니, 이전에 리어
왕에 대해 무례한 짓을 하기에 넘어뜨렸던 집사가 와 있었다. 케이어스는 그 집사에게
어떤 용무로 왔는지 물어 보자, 집사가 욕을 하며 그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에
케이어스는 그를 한참 때려 주었다.
  그 사건이 리건과 그의 남편에게 알려져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케이어스는 자신이
부왕의 사자이니 그에 알맞은 대우를 해달라고 했는데도, 리건은 그의 다리에 족쇄를
채워 버렸다.
  잠시 뒤 부왕이 궁전에 들어서자 케이어스가 부끄럽게 앉아 있는 모습이 제일 먼저
보였다. 이것은 부왕이 앞으로 받을 나쁜 대접을 예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리어 왕이 둘째 딸을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리건 부부는 피곤하다는 핑계를 댔다.
노왕이 잔뜩 화를 내자 그때서야 둘은 뒤늦게 인사하러 왔다. 그때 부왕은 큰딸
고네릴도 함께 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네릴은 사자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믿을
수가 없어 직접 동생을 만나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말도록 설득하기 위해 왔던 것이다.
  노왕은 참을 수가 없어서 고네릴에게 나이든 노인이 이렇게 왔다갔다하는 것을
보고도 부끄럽지 않느냐고 소리질렀다.
  둘째 딸 리건은 아버지에게 신하를 반으로 줄여서 언니의 궁전으로 돌아가시라고
권했다. 아버지가 언니에게 용서를 비는 것이 좋겠다고 리건은 말했다.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서 분별 능력이 부족하니,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듣고서 리어 왕은, "신세를 지겠다고 딸에게 머리 숙여 사정하는 짓은 못해!
고네릴과 함께 돌아가는 것은 더더욱 싫으니 난 이곳에 있을 테다!" 하고 말했다.
"리건은 고네릴처럼 배은망덕하지 않고 온화하고 상냥할 게야!"
  또 왕은 신하들을 반으로 줄여 고네릴의 궁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참금도
없는 막내딸과 결혼한 프랑스 왕으로부터 하찮은 도움이라도 받는 것이 낫겠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리건은 언니인 고네릴보다 더했다. 50 명의 신하는 너무 많으니 25 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리어 왕은 가슴이 미어 터질 것 같아, 고네릴을 향해
차라리 그녀와 함께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고네릴은 말을 가로막으며, "25 명도 필요없어요. 세 명이나 다섯 명쯤이면
충분할 텐데요?" 하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두 딸들은 아버지에게 지독한 짓을 해서 부왕 주위에 남아 있던 사소한
것들까지도 모두 없애버리려 했다.
  백만 군사를 호령하던 한 나라의 왕이 한 명의 하인조차 없게 되었다. 리어 왕이
괴로웠던 것은, 그런 것들을 잃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배은망덕한 딸들이 자신의
일거일동을 못마땅해 하고 막으려 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형편없는 대접을 받자
왕은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다. 그는 자신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지독한 마녀들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욕을 퍼붓기도 했다.
  이러는 사이에 밤이 되고 무서운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딸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리어 왕의 신하들을 궁 밖에 세워두었다. 리어
왕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배은망덕한 딸들과 한 지붕 밑에 있기 보다는 오히려
밖에서 폭풍우를 맞는 편이 속편하겠다고 말했다.
  딸들은 아버지가 고집이 세기 때문에 스스로 고생하는 것이니 마음대로 하라며 문을
닫아 버렸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폭풍우가 더 무섭게 몰아쳤지만, 노왕은 딸들의 태도를 참을 수
없어 밖으로 달려나갔다. 리어 왕은 어두운 밤에 휘몰아치는 폭풍우는 맞으며 나무 한
그루 거친 들판을 걸었다. 바람과 천둥에게 도전이라도 하듯이 당당하게 걸었다. 그는
비바람을 향해, 인간이라는 배은망덕한 동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가서 이 대지를
바다로 덮어 버리라고 울부짖었다. 늙은 왕의 곁에는 초라하고 애처로운 어릿광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편, 케이어스로 행세하고 있는 충신 켄트는 초라한 리어 왕과 익살꾼 광대가 있는
곳으로 간신히 찾아왔다.
  "아! 여기 계셨습니까? 이처럼 지독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는 짐승조차도 숨을
곳으로 몸을 피합니다. 어째서 이런 밤에 왕께서는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어서
들어가시지요."
  그 말을 듣고 리어 왕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서
그를 매우 야단쳤다. 그의 마음속에는 몸 밖에 불어 닥치는 비바람보다도 더 심한
폭풍우가 몰아치기에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불효자는 먹을 것을 입에 넣어
주려던 손을 물어뜯는다고 중얼거렸다. 선량한 케이어스는 쉴 새없이 어서 비바람을
피하시라면서 황야에 초라하게 세워진 한 오두막으로 들어가기를 눈물로 청했다.
  그 속에 들어가 보니 미친 거지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허리만 빼고는
발가벗은 참혹한 몰골이었다. 왕은 딸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어 버린 자신도 이런
비참한 꼴일 거라고 생각했다. 배은망덕한 딸들만 아니라면 이렇게 까지 참담한
모습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리어 왕이 쉬지 않고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 리어 왕이 딸들의 비인간적인 대우로
인해 큰 충격을 받고 미친 거라고 케이어스는 생각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케이어스는 신하들 중에서 충직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새벽녘에야 비로소
미친 왕을 모시고 도버 성까지 갔다. 그곳 도버성에는 켄트 백작의 친구들도 있었고,
또 그가 백작으로서의 세력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 그는 리어 왕의 막내딸 코딜리아가 있는 프랑스로 갔다. 그가 왕의 딱한
사정을 알리고 언니들의 몰인정한 처사를 눈으로 보듯 자세히 설명하자 코딜리아는
눈물을 흘렸다.
  코딜리아는 남편인 프랑스 왕에게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잔혹한
언니들과 형부들을 몰아내고 부왕을 다시 왕위에 복귀시킬 수 있도록 충분한 군대를
수행해서 브리튼으로 가게 허락해 달라고 코딜리아는 부탁했다. 왕의 허락을 받은
그녀는 곧 출발했다.
  리어 왕은 곁에서 시중을 들고 보호하던 하인의 눈을 피해 오두막에서 빠져 나왔다.
도버 근처의 들판을 초라한 모습으로 방황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코딜리아의 병사들이
발견했을 때, 왕은 이미 완전히 미쳐 버린 뒤였다. 머리 위에는 짚이나 쐐기 풀 같은
잡초로 만든 왕관을 쓰고 혼자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 대고 있었던 것이다.
  코딜리아는 한시 바삐 아버님을 만나고 싶었지만, 의사의 충고를 어길 수 없었다.
왕은 몸과 마음이 너무나 쇠약해졌으니 자고 나서 침착함을 되찾을 때까지는 만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코딜리아는 의사들에게 아버님의 병을 낫게 해주기만 하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주겠다며,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치료해야 된다고 엄하게 명령했다. 의사들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노력한 끝에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왕의 상태는 많이 회복되었다.
  왕과 그의 사랑하는 딸이 만나는 광경은 보기에도 눈물겨웠다. 왕은 사랑스러운
막내딸을 다시 만나자 감격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사소한 일로 오해를 하여 딸을
쫓아냈던 자신의 잘못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 왕은 완전히 낫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 신하들에게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또 자신에게 상냥하게 키스해 주기도 하고 얘기해 주기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리고 막내딸 코딜리아 같은 그 아가씨가 누구냐고 횡설수설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코딜리아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도 했다.
  코딜리아는 자식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이니 제발 무릎을 꿇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도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그녀는
언니들의 불효를 대신 갚아 드리겠다면서 아버지에게 키스했다.
  아버지가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게 된 코딜리아는 아무리 성실치 못한
언니들이지만 아버님에 대한 대우는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비록 자신을
물어뜯은 적의 개일지라도 지독하게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라면 내쫓지는 않을 텐데,
백발이 성성한 아버님을 썰렁한 밖으로 내쫓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코딜리아는 언니들이 아버님께 대한 태도를 듣고 나서 아버님을 구해 드리기
위해 프랑스에서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도 하나하나 차분히 설명했다.
  리어 왕은 모든 것을 잊고 용서해 달라며, 코딜리아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코딜리아는 딸이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조금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해서 딸들의 무정한 태도로 잠시
정신병을 앓게 되었던 리어 왕은 코딜리아의 정성스런 가호로 완전히 회복되었다.
  한편, 그렇게 잔혹한 짓을 했던 고네릴과 리건은 어찌되었을까?
  아버지에게 배은망덕했던 두 사람은 남편에게도 불성실했다. 남편 외의 다른 남자를
좋아했는데, 공교롭게도 둘이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에드먼드라는
남자인데, 형인 글로스터 백작을 쫓아내고 자신이 백작이 된 음흉한 사람이었다. 그때
마침 리건의 남편인 콘월 공작이 죽자 리건은 즉시 글로스터 백작과 결혼하려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언니 고네릴은 질투에 눈이 멀어 여동생에게 독을 먹여 죽여 버렸다.
  고네릴은 동생을 독살한 사실이 탄로나서 감옥에 갇힌 뒤 실망과 후회의 날들을
보내다가 홧병으로 발작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악독한 두 자매는 벌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반드시 나쁜
사람만 먼저 죽는 것은 아니었다. 사악한 마음이 없는 코딜리아에게도 슬픈 운명이
닥쳐왔던 것이다.
  사악한 글로스터 백작은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 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이때
코딜리아는 글로스터 백작의 군대에게 사로잡혔다. 글로스터 백작은 그녀를 이용하여
왕권을 차지할 마음을 먹고 감옥에 가두었는데, 코딜리아는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훌륭한 효행의 본보기를 후대에 남긴 코딜리아는 젊은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리어 왕도 이렇게 상냥한 딸이 죽고 난 뒤 더 오래 살지는 못했다.
  리어 왕이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해 섬겼던 켄트 백작은 케이어스라는 하인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왕에게 알리려 했다. 그러나 이미 리어 왕은 죽음에 이르러서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켄트 백작은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이 충신도 리어
왕이 죽고 나서 머지않아 주인을 잃은 슬픔을 참지 못하고 뒤따라 죽었다.
  또한, 글로스터는 코딜리아를 죽인 것이 발각되고 나서 원래의 백작인 형과 결투를
벌이다가 살해되었다. 고네릴의 남편인 앨버니 공작은 코딜리아의 죽음에 대해서 별로
관계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내가 아버지에 대해 지독한 일을 한 것도 그가 시킨 것이
결코 아니었으므로, 리어 왕과 세 딸이 죽은 뒤에 브리튼의 왕이 되었다. 
        맥베스

  던컨 왕이 스코틀랜드를 통치하던 무렵, 맥베스라는 귀족이 큰 세력을 쥐고 있었다.
맥베스는 전투에 나갈 때마다 탁월한 지혜로 용맹스럽게 싸워 이겼고, 게다가 왕의
가까운 친척이었기에 왕과 신하들은 그를 매우 신임했다.
  최근에도 그는 노르웨이 대군에게 도움을 받는 반란군을 무찌르는 공적을 세웠다.
  맥베스가 동료 장군 뱅코와 함께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도중, 바람부는 황야에
다다랐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 괴상하게 생긴 세 마녀가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이들은 여자인 듯하면서도 뾰족뾰족 수염이 나 있는데다, 쪼글쪼글한 주름투성이
살갗을 갖고 있었다. 맥베스가 먼저 말을 걸자 세 마녀는 화난 투로 잠자코
있으라면서 주름투성이이며 거칠게 갈라진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었다. 그러더니 맨
앞에서 있던 마녀가 외쳤다.
  "맥베스, 글래미스의 성주가 되실 분!"
  맥베스는 이 마녀가 자신에 관한 일을 미리 알아내고 말하자 매우 놀랐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어서 두 번째 마녀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아직은 아니지만, 장래의 코더 영주이신 맥베스님!"
  이 말을 듣고 맥베스는 더더욱 놀랐다. 코더의 영주란 왕이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세 번째 마녀도, "만세! 장차 임금님이 되실 분, 맥베스 장군 만세!" 라고
인사했다. 맥베스나 뱅코는 예언 같은 축하 인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왕자들이
존재하는 한 다른 누구도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 다음에 마녀들은 뱅코 장군에게, "맥베스보다 크지는 않지만, 그보다
훌륭하십니다! 맥베스보다 행복하지 않더라도 행운아이십니다." 하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다. 그들은 뱅코가 왕이 될 수는 없지만, 그 뒤를 이을 손자는 스코틀랜드의
왕이 된다고 예언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세 마녀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두 장군은 어리둥절하여 가던 길을 멈춰선 채 기이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왕이
보낸 사자가 달려왔다. 사자가 갖고 온 전갈은 다름 아니라 왕이 맥베스 장군에게
코더의 귀족 지위를 부여한다는 소식이었다. 놀랍게도 그 소식이 마녀의 예언과 딱
들어맞자 맥베스는 크게 놀라 뭐라고 대답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세 마녀의 예언이 적중할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세 번째 마녀의
말대로 언젠가는 자기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는 뱅코 장군에게 말했다.
  "조금 전에 마녀들이 예언한 일이 실현되는 것을 보니 자네 손자가 왕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겠지?"
  그러나 뱅코 장군은 이렇게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 나는 그렇게 불손한 생각은 하지 않네. 하지만, 자네는 조심하게. 첫
마녀의 예언대로 왕위를 노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어둠의 마녀들은 시시한 일을 사실처럼 이뤄지게 하고 나서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약속을 뒤집어 배신해 버린다네. 부디 정신차리게. 그렇지만 코더의 귀족이 된 것은
사실이니 아무튼 축하하네."
  그렇지만 맥베스의 가슴속에는 마녀가 한 예언이 이미 깊이 파고들어, 정직한
뱅코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때부터 어떻게 하면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하는 것만 생각하게 되었다.
  맥베스는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에게 마녀들이 이상한 예언을 한 것과, 그 중의
일부가 꼭 들어맞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대담하면서도 야심이 무척 강한
여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녀는 피
흘리는 것이 두려워 망설이는 남편을 여러 가지 말로 설득했다. 그녀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헛되게 하지 말고, 마녀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왕을
암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던컨 왕은 나라를 위해서 애쓰는 충신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직접 그 공을
치하해 주곤 했다.
  맥베스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기에 마침 왕은 맬컴 왕자와 도널베인 왕자, 그
밖에 많은 신하들과 시종들을 수행하고 맥베스의 성에 왔다. 맥베스가 사는 성은
경치가 매우 좋으며 공기가 맑고 쾌적한 곳이었다. 왕은 성에 들어서자 성의 분위기가
좋고, 맥베스를 비롯해서 그의 부인에게 빈틈없고 예의바르게 대접받자 매우 흡족해
했다.
  그런데 이 맥베스 부인은 마음속에 사악한 계획을 숨기고 독사와 같은 독을 감추고
있으면서 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왕은 자기 전에 맥베스의 극진한 환대에 매우 만족해 하면서 많은 하사품과
하사금을 하인들에게까지도 나누어 주었다. 그 중에서도 맥베스 부인에게는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주면서 참으로 친절한 국내 최고의 여인이라고 칭찬했다.
  왕은 먼 길을 오느라고 피곤해서 곧 잠자리에 들었다. 그 당시의 관습대로 침실을
지키는 두 시종이 바로 옆방에서 잤다.
  어느덧 한밤중이 되어 지구 반쪽의 모든 사물이 죽은 듯 잠들었다. 악몽으로 잠 못
이루는 사람들 외에는 주인을 죽이려고 밖에 나와 있는 사람만이 깨어 있었다.
  맥베스 부인은 눈을 비비며 살며시 일어나 왕을 암살하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남편이 야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또한 왕을 죽이겠다고 맹세했으면서도 다시 마음이
약해져서 이런 큰일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녀는 이
일을 자신에게 어울리는 적합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암살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단검을 가지고 왕의 침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잠들기 전에 침실을 지키는
시종들에게는 술을 많이 먹여 깊은 잠에 빠지게 해놓았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잠꼬대를 하면서 자고 있었다.
  침실에 들어가니 던컨 왕이 곤히 자고 있었다. 잠자는 얼굴을 가만히 보니 어쩐지
자기 아버지와 닮은 데가 많아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맥베스 부인은 용기가 없어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맥베스 부인이 그런 짓을 할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맥베스는 단지 신하일 뿐만 아니라 왕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만일, 왕의 신변에
무슨 일이 발생한다면 왕을 구해 내야 하는 신분으로서, 왕을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던컨 왕은 모든 일에 정당했고, 자비심이 많으며, 신하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며, 귀족들을 사랑했다. 모든 백성들이 흠모하는 왕을 암살한다면 두
배의 복수를 당할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맥베스는 왕의 신하로서 모두에게 존경받고
있는데, 암살자라는 수치스런 이름이 붙는 것은 무엇보다도 싫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를 생각한 뒤 맥베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잠시 선량한 마음이
되어 사악한 마음을 버리려 했다. 그러나 맥베스 부인은 자신의 음흉한 계획을 쉽게
버릴 여자가 아니었다.
  마음이 약해지는 남편을 격려하고 북돋아 주면서, 한번 맹세했으니 망설이지 말라고
설득했다. 그녀는 자손 대대로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막상 시도해
보면 짧은 순간에 해치울 수 있는 간단한 일이라고 재촉했다.
  젖먹이 어린애도 어머니 젖에서 떼어놓으면 어찌할까 궁리하는 법이라는 것이었다.
살인 누명은 자고 있는 시종들에게 덮어씌우면 되니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변덕스럽고 겁이 많다는 남편을 책망하면서, 한번 맹세한 이상 빨리
해치우자고 했다. 이처럼 빈틈없이 격려를 받고 설득당하자 맥베스는 다시 한번
참혹한 일을 저지를 용기가 솟았다.
  마침내 그는 손에 단검을 쥐고 던컨 왕이 자는 캄캄한 방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피묻은 단검 한 자루가 그에게 두둥실 떠서
다가왔다. 맥베스가 놀라서 손잡이를 잡으려 하자 단검은 휙하니 피 묻은 칼날을 뒤로
하고 사라져 버렸다.
  앞으로 하려는 일 때문에 순간적으로 보인 환상이었다. 겨우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서 다시 천천히 왕이 자고 있는 곳으로 접근한 다음에 순간적으로 해치워
버렸다. 막 살인을 하고 난 순간, 옆에서 자던 시종 한 사람이 잠꼬대로 웃기 시작하자
곧 다른 사람이, "살인이다!" 하고 큰소리를 질러 두 사람은 모두 눈을 떴다. 그러나
그들은 나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며 짧게 기도했다.
  "하나님, 도와 주십시오!" 라고 하자 또 한 사람은, "아^6,3^멘!" 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더니 다시 둘은 잠이 들었다. 이것을 듣고 있던 맥베스는 시종이 하나님에게 도와
달라고 기도할 때 자신도, "아멘." 이라고 할 뻔했다. 그렇지만 그 말이 목에 걸려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그때 하늘에서 무서운 소리가 들려왔다.
  "졸지 말라.
  맥베스는 그 졸음을 죽여 버렸다.
  생명을 기르는 죄없는 잠을 죽여 버렸다.
  그러므로 맥베스는 앞으로 다시 잘 수 없느니라."
  맥베스는 무서운 환상에 괴로워하며, 계획대로 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아내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마치 미치광이처럼 되어서 돌아온 맥베스를 보고 맥베스 부인은 깨끗하게
마무리하지 않은 것을 책망했다. 부인은 남편에게 손에 묻은 피를 씻도록 하고, 아직
피가 묻어 있는 단검을 들고 시종이 자는 방으로 가서 그들의 뺨에 피를 칠하고 방을
나왔다.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무서운 사건이 드러났다.
  맥베스 부부는 슬퍼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종들은 피묻은 얼굴을 하고 단검을 갖고
있었기에 분명히 범인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맥베스를 의심했다. 왜냐하면 그런 시종들에게는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를 만한 담력이 없었거니와, 왕이 죽었을 때 가장 형편이 좋아지는 것은
맥베스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한 두 왕자는 우선 그곳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던컨 왕의 두 아들은 위험을 느끼고 형 맬컴은 영국 궁정으로,
동생 도널베인은 아일랜드로 도망쳤다.
  왕위를 계승해야 할 왕자들이 다른 나라로 몸을 피하자 왕위를 이을 사람은
맥베스뿐이었으므로 마녀들의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드디어 왕이 된 것이다.
  이렇게 고귀한 신분이 된 다음 맥베스 왕과 그의 아내 왕비는 마녀들이, "맥베스는
왕이 되겠지만, 그의 후계는 그 자식이 아니고 뱅코의 손자가 되리라!" 하고 예언한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을 피로 더럽히며 큰 죄를 범한 것이 겨우 뱅코의
자손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서였나 하고 그들은 후회했다. 그는 뱅코와 그의
자식들까지 없애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야만 마녀들이 한 예언을 뒤집어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새롭게 왕이 된 맥베스와 왕비는 이 목적을 위해 성대한 만찬회를 개최하여, 뱅코와
그의 아들은 물론 주요한 귀족들을 모두 초대했다.
  뱅코는 그날 밤 만찬회에 참석하려고 궁으로 가는 도중에 맥베스의 명령을 받은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의 아들은 용케 도망쳤다. 이때 몸을 피한
뱅코의 아들의 자손이 나중에 대대로 스코틀랜드의 왕위를 오른 것은 물론이다.
  그날 밤 왕비는 만찬회에서 여주인으로서 아주 상냥한 태도로 훌륭하게 대접했다.
맥베스 왕도 귀족들과 허물없이 이야기하며, "내 친구 뱅코만 와 준다면, 이 나라의
훌륭한 사람들이 모두 이 집에 모이는 성황을 이룰 텐데. 왜 이리 늦지?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하고 말했다.
  마침 이렇게 말하고 있는 곳으로 죽은 뱅코의 유령이 들어와 맥베스가 앉으려던
의자에 먼저 앉아 버렸다. 맥베스는 악마와 만나도 벌벌 떨지 않는 대담한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무서운 광경을 보고 공포로 얼굴이 창백해져서 가만히 유령을
바라보면서 다만 멍하니 서 있었다. 왕비와 귀족들의 눈에는 유령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맥베스가 텅 빈 의자를 응시하고 멍청히 서 있는 것을 보고 웬일인가 하고
궁금해 했다.
  왕비는 맥베스가 무슨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를 나무라며, 그것은
던컨 왕을 죽이려고 했을 때 단검이 공중에 떠 있었던 환상과 똑같은 것이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맥베스에게는 아직도 유령이 보였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로, 때로는 의미가 있는 듯한 말로 유령에게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비는 그러다가는 무서운 비밀이 탄로날까 봐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다가 왕비는 요즘 맥베스 왕은 심신이 피로해서 가끔 저렇게 이상해진다고
말하면서 귀족들에겐 이젠 그만 돌아가라고 말했다.
  맥베스 왕과 왕비는 이와 같이 자신들이 범한 나쁜 짓의 결과로 무서운 환상에
시달렸고, 밤에는 악몽으로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뱅코의 망령처럼 마음에 걸린 것은, 그의 아들을 암살하는데 실패해서 국외로
도망치게 한 것이었다. 그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자손들을 왕위에서 물리치고
스코틀랜드의 왕통을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맥베스는 다시 한번 마녀들을 만나서 앞으로의 운세를 점쳐 보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 보기로 결심했다.
  맥베스는 전에 마녀를 만났던 황야를 헤매다가 마녀들이 그 황야의 돌집에 있는
것을 찾아냈다. 마녀들은 맥베스가 오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녀들은 여러 가지 주문을 외우면서 저승에 있는 죽은 영혼들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우선 펄펄 끓어오르는 큰 가마솥 속에 두꺼비, 박쥐, 뱀
도룡뇽의 눈, 개의 혀, 도마뱀 다리, 올빼미 날개, 용의 비늘, 위대한 신의 이빨, 식인
상어의 위, 마녀의 미이라, 독이 든 당근, 산양의 쓸개, 유태인의 간장, 무덤 속에서
자란 주독나무의 작은 가지, 죽은 아이의 손가락 등을 넣어 삶다가는 너무 뜨겁게
되면 깨끗한 피로 식혔다. 그리고 그 속에 새끼를 먹은 돼지 피를 쏟고 사람 죽이는
교수대에서 떨어진 기름을 뿌리기도 했다.
  이렇게 소름끼치는 의식을 보면서도 맥베스는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하게 말했다.
  "어디에 유령이 있느냐? 제발 한번 만나게 해다오."
  그래서 마녀들은 유령을 불러냈다. 세 유령을 불러냈는데, 첫번째 유령은 투구를 쓴
모습으로 나타나서 맥베스의 이름을 부르며 파이프의 귀족들을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 경고에 맥베스는 감사했다. 맥베스는 파이프의 귀족인 맥더프가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유령은 피투성이가 된 어린아이 모습으로 나타나서, 당신에게 무엇이든
두려운 것은 없으며,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은 당신에게 대항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힘은 무시해 버려도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감하고 대담하고 망설이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것을 듣고 맥베스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면 그렇지. 맥더프 정도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완전무결한 게 좋기
때문에 그놈을 살려두지는 않겠다. 그렇게 하면 두려운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두 다리
뻗고 푹 잘 수 있게 되었지."
  세 번째 유령은 왕관을 쓴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나타나서
말했다.
  "모반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버넘에 있는 숲이 네 궁전
앞에 있는 던시네인 산까지 오지 않는 한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맥베스는 또 외쳤다.
  "고마운 예언이다! 누구든지 숲을 끌어당겨서 땅에 묻혀 있는 뿌리를 움직이게 할
사람은 없다. 천지개벽이 다시없는 한 넘버의 숲이 어찌 움직이랴! 이로서 나는 내
생명이 있는 날까지 왕좌에 있을 것이고, 뜻밖의 죽음은 상상할 필요가 없겠지. 그런데
다시 한 가지 알고 싶은 것은 뱅코의 자손이 이 왕국을 언젠가 통치하는 날이 올지
하는 것이다."
  그러자 큰 가마솥이 땅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가 들리면서 왕과 같은 모습을 한 여덟
명의 허깨비가 한꺼번에 맥베스가 서 있는 곁을 지나갔다. 맨 마지막이 뱅코였다.
그는 많은 모습들이 비치는 거울을 손에 들고 피투성이가 된 채 맥베스에게 웃으면서
거울 속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맥베스는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를 뱅코의 자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서 마녀들은 조용한 음악 소리와 함께 춤추면서 사라져 버렸다. 이때부터
맥베스의 생각은 완전히 피로 물들여졌다.
  마녀의 돌집에서 돌아온 그가 처음 들은 것은 파이프의 귀족 맥더프가 영국으로
도망쳐서 죽은 던컨 왕의 장남 맬컴과 손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맬컴을
선봉장으로 해서 맥베스에게 항거하는 군대를 모아, 맥베스를 물리치고 정통성이 있는
후계자인 맬컴을 즉위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맥베스는 화가나서 맥더프의 성으로
군사를 보내어 거기에 있던 맥더프의 아내와 아이들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그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여 버렸다.
  이러한 만행을 보고 대부분의 귀족들은 모두 맥베스 세력하에서 도망쳤고, 많은
사람들이 영국에서 반기를 든 맬컴과 맥더프의 군대에 합세하게 되었다. 맥베스를
두려워해서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도 몰래 그 군대의 승리를 빌고 있었다.
  그에 반해서 맥베스의 군사들은 모두 그 폭군을 증오하며, 사랑이 없으면 존경도
없어진다면서 모든 것을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맥베스는 여러 가지로 고민했다. 자신이 살해한 던컨 왕조차도
지금은 무덤 속에서 편히 자고 있다는 것이 조금 부럽기도 했다. 이러는 동안에
악몽으로 시달리던 그의 아내가 죽었다. 흉칙한 꿈에 시달릴 때도 서로 위로해 주곤
했던 왕비였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두려움과, 모두에게 미움받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자살한 것 같았다.
  이 때문에 맥베스는 홀로 남아 사랑해 줄 사람도, 돌보아 줄 사람도, 나쁜 일을
의논할 상대도 모두 없어진 채 외토리가 되었다.
  맥베스는 이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맬컴 군대가
가까이 왔다는 보고를 듣고는 옛날 싸울 때 입던 갑옷을 입고 용기를 내어 싸우다가
죽으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마녀들이 불러낸 유령들의 말을 굳게 믿고,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자는 누구든지 자기를 죽일 수 없으며 버넘 숲이 이 던시네인 궁전까지 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난공불락이라는 성안에 틀어박혀서 맬컴의 군대가 가까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파수병이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버넘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숲 전체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보고했다.
  이 말을 들을 맥베스는 호되게 야단쳤다.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을 하면 나무에 매달아서 말려 죽여 버리겠다. 만일,
사실이라면 있는 그대로 다시 한번 말해 봐라."
  그러나 정말로 버넘 숲은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숲이 던시네인 궁전까지
밀어닥칠 때까지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 유령들의 예언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믿을 수가 없어. 그렇지만 저 녀석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무기를 갖고 나가 보자.
여기에서 도망칠 수 없다면 남아 있을 필요도 없다. 태양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피곤해지고 죽고 싶은 심정이야."
   맥베스는 계속해서 절망적인 말을 되풀이하면서 성벽을 포위한 적진 속으로
돌진했다.
  사실은 숲이 움직여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적군이 버넘 숲을 빠져
나갈 때 맬컴의 지혜로 적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병사들에게 각자
나뭇가지를 잘라 그것으로 위장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에, 이 나뭇가지로 위장한 군대의
진군이 멀리서 본 파수병을 놀라게 한 것이다. 이렇게 예언이 맥베스가 상상도 못했던
형태로 실현되었기 때문에 그의 신념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맥베스의 병사들은 겉으로는 맥베스의 편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폭군을 증오하며 맬컴과 맥더프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싸우고 있었다. 그래도 맥베스는 화를 내면서 있는 힘을 다해 덤벼드는 적을
쓰러뜨리며 결국 맥더프가 싸우고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맥더프를 보자 맥베스는 유령들의 경고에서 누구보다도 맥더프를 조심하라고 한
것을 생각하고 후퇴하려고 했다. 그러나 맥더프는 처음부터 그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후퇴하려는 맥베스의 앞을 가로막고 격렬하게 싸웠다.
  맥더프는, "이 원수놈아! 내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 녀석아! 내 칼을 받아라!" 하고
소리쳤다. 맥베스는 이미 죄없는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한 약점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맥더프는 더욱더 그가 한
짓을 욕하며, "폭군, 살인자, 지옥갈 녀석!" 하고 욕을 해댔다.
  그때 맥베스는 여자의 뱃속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지지 않는다고 한 유령의 말을
떠올리고 자신을 갖고 말했다.
  "헛수고다, 맥더프! 나에게 덤비려느냐! 쓸데없는 무모한짓이다! 내 목숨은 유령들이
준 부적을 달고 있기 때문에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에겐 패하지 않는다."
  "부적을 달았다고? 이 미친 녀석아, 이 맥더프는 보통 사람처럼 여자가 낳지
않았어. 나는 산기가 없을 때 엄마의 배를 가르고 나온 몸이다."
  이러한 맥더프의 대답을 듣고 맥베스는 조금 남아 있었던 신념마저 잃고는 벌벌
떨면서 말했다.
  "그렇게 거짓말하는 혀는 신에게 저주받을 것이다. 나는 마녀와 유령들의 말에
의하면 잔꾀에 속지 않는다고 했다, 이 녀석아. 아무튼 나는 너 같은 애숭이와는
싸우기 싫다."
  "그렇다면 살아 있어라. 사실은 심심하던 참에 잘되었다. 대신 너를 우리 병사들에게
구경거리로 만들어 주마. 그리고 간판에는 희대의 폭군이라고 써 주마!"
  이렇게 경멸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맥베스는 잠시 절망했지만 곧 용기를
되찾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젊은 맬컴 밑에 무릎을 꿇거나 시시한 인간들처럼 욕된
삶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설령 버넘의 숲이 밀려 온다 해도, 또 나에게 대항할 네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자랑스럽게 최후의 일전을 벌이겠다."
  이 미치광이 같은 말과 함께 그는 맥더프에게 덤벼들었다. 치열한 격투 끝에 결국
맥더프는 맥베스를 쓰러뜨렸다. 그는 맥베스의 머리를 베어 맬컴 왕에게 갖다 주었다.
  이리하여 젊은 맬컴은 던컨 왕의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리는 왕좌를 되찾을 수
있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말괄량이 캐서린은 패두아의 갑부 뱁티스타의 맏딸이었다. 그녀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사나운 성질을 가진데다가 시끄럽게 욕을 해대곤 했으므로,
패두아에서는 말괄량이 캐서린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이 캐서린과 결혼할 엄두를
내기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어떤 신사도 그녀에게 청혼하려 하지 않았다.
반면에 여동생인 비앙카에게는 훌륭한 사람들이 청혼을 많이 해왔다. 그러나 아버지
뱁티스타는 큰딸이 먼저 결혼한 다음에야 둘째 딸에게 청혼하라고 하면서 이를
승낙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페트루치오라는 신사가 신부감을 구하려고 패두아로 찾아왔다. 그는
동네방네 소문난 캐서린의 나쁜 성격에도 개의치 않고, 그녀가 부자이면서 예쁘다는
말을 듣고는 이 유명한 말괄량이와 결혼하여 잘 길들인 다음에 부드럽고 점잖은
마누라로 바꿔 놓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페트루치오는 이런 어려운 일을 해내는 데는 적합한 사람이었다. 그는 캐서린에게
지지 않을 만큼 지독한 성질을 가진데다, 매우 영리하고 쾌활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예리하게 판단하고, 기분이 좋을 때도 일부러 화난 시늉을 할
수 있거니와, 그 자체를 즐기며 웃을 줄 아는 재능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뛰어난
분별력이 있었으므로, 그는 미치광이처럼 행동하는 캐서린을 이기기 위해서는 일부러
모든 행동을 그녀와 똑같이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페트루치오는 말괄량이 캐서린의 집으로 가서 우선 아버지 뱁티스타에게
큰딸 캐서린에게 구혼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녀의 성격이
내성적이고 정숙하며 점잖다고 들었기 때문에 멀리 베로나에서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일부러 찾아왔다며 일부러 여러 가지를 반대로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맏딸을 결혼시키고 싶지만, 딸의 성질로는 그게 어렵다고 막
고백하려 하는 참에, 마침 캐서린의 음악 가정교사가 방으로 황급히 뛰어들어왔다.
기타 치는 법이 틀렸다고 지적했다가 캐서린에게 기타로 머리를 얻어맞았다는
것이었다. 이 일로 해서 그 '얌전한 캐서린'이 어느 정도로 심한 말괄량이인지 곧
알려지고 말았다.
  그러자 페트루치오는 말했다.
  "용감한 아가씨로군요. 더욱더 호감이 갑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이렇게 말하고는 노인의 허락을 재촉했다.
  "저는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뱁티스타 씨! 매일 구혼하러 올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제 아버님을 알고 계시지요?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토지와 재산을 저에게 모두
물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따님에게 어느 정도의 지참금을 딸려 보내실
작정이십니까?"
  뱁티스타는 페트루치오가 구혼을 하는 사람치고는 태도가 좀 당돌하고 노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말괄량이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겠다는 것은 여간 기쁜 소식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맏딸에게 지참금 2만 크라운과, 자신이 죽은 다음에는 토지를
반 정도 줄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이 괴상한 혼담은 곧 결정되었다. 아버지는 말괄량이 큰딸에게 그 말을
전하고, 페트루치오를 만나보도록 하라고 말했다.
  페트루치오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어떻게 구혼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녀가 오면 자신을 가지고 기세등등하게 설득해야겠다. 만일, 욕을 하면
휘파람새처럼 아름답게 노래하는구려 하고 말해 줘야지. 찌푸린 얼굴을 하면 이슬에
막 씻긴 장미처럼 싱싱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해야겠다. 만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훌륭한 웅변이라고 해주고, 나가 달라고 하면 일주일간 같이 있어 달라는 말을
들은 것과 같다고 감사하는 말을 해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캐서린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들어왔기 때문에
페트루치오는 우선 이렇게 불렀다. "안녕, 케이트! 다른 이들이 그러는데 당신 이름이
바로 케이트라지요?"
  캐서린은 이 무례한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경멸하듯이 말했다. "나에게 말을
거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캐서린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러나 페트루치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거짓말하지 마시오. 당신은 틀림없는 케이트요. 똑똑한 케이트, 사랑스런 케이트,
때로는 말괄량이 케이트라고 불리기도 하지. 그러나, 케이트, 당신은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예쁜 케이트요.
  그러니까, 케이트, 당신이 상냥하다는 소문이 어느 마을에서나 자자한 것이고,
그래서 나도 당신을 아내로 맞으려고 온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구혼 작전이었다. 그녀가 말괄량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큰소리로 마구
욕을 해대자 그는 매우 상냥하고 공손한 말이라고 칭찬하며, 빨리 이야기를
매듭지으려고 이렇게 말했다.
  "상냥한 캐서린!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둡시다. 아버님은 당신이 내
아내가 되는 것을 승낙하셨소. 지참금까지 결정했으니까, 당신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난
당신과 결혼할 것이오."
  그러고 있는데 아버지 뱁티스타가 들어왔다. 페트루치오는 그에게 따님이
친절하게도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였으며, 다음 일요일에 결혼할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캐서린은 이 말을 부인하면서, 다음 일요일에는 결혼이 아니라 그가 교수대에
목이라도 매달리는 꼴을 보고 싶다고 말하고, 아버지가 자기를 이런 미치광이 같은
난폭한 사람과 결혼시키려 한다면서 원망했다. 그러나 페트루치오는 그녀가 화를 내는
것을 무시하고, 아버님 앞이라 반대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두 사람이
결혼하기로 한 사이가 되었으므로, 둘이만 있게 되면 그녀는 기분이 좋아지고
사랑스러워진다고 능청을 떨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에게도 말했다.
  "악수합니다, 케이트. 나는 베니스에 가서 당신이 결혼식날 입을 옷을 사오겠소.
아버님께서 피로연 준비를 하시고, 손님들도 초청해 주십시오. 저는 반지와 예쁜
장신구, 그리고 멋진 옷들을 사올 테니까요. 그러면 당신은 아주 아름다워 보일거야.
  자, 이제 키스해 줘요, 케이트. 우리는 일요일에 결혼할 거니까."
  이윽고 일요일이 되어 초대받은 손님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페트루치오는 오지 않았다. 캐서린은 그가 자신을 조롱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너무
화가 나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침내 페트루치오는 나타났다. 그런데 오긴 했지만, 캐서린에게 사다 주마고
약속했던 옷이며 장신구는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새신랑다운 차림새가 아니라 누구든지 바보스럽게 여길 만큼 이상하고 초라한 모습을
하고 왔다. 게다가 그가 데리고 온 하인들이나 타고 온 말까지도 하나같이 모두
초라한 몰골이어서, 행색이 도무지 말이 아니었다.
  페트루치오는 아무리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해도 그 괴상망칙한 옷을
갈아입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캐서린은 나와 결혼하는 것이지, 내 옷과 결혼하는
것이 아닌데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캐서린은 아무리 해도
소용없음을 알고 교회로 식을 올리러 갔다.
  그는 교회에 가서도 전과 같이 미치광이 같은 행동을 계속했다. 목사님이 캐서린을
신부로 맞아들이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고는 끝까지 사랑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너무
큰소리로 그렇다고 맹세했기 때문에 그 소리에 놀란 목사님은 성경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목사님이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으려하는 순간, 이 미치광이
신랑이 주먹으로 내리쳤기 때문에 목사님은 땅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는 동안 그는 끊임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기도 하고
떠들어대기도 했기 때문에, 대단한 성질을 가진 캐서린이 오히려 무서워서 부들부들
떨 지경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다들 교회 안에 머물러 있을 때였다. 페트루치오는 교회 안으로
포도주를 가져오게 해서는 큰소리로 모든 이의 건강을 위하여 건배한 뒤, 마시다 남은
것을 목사님 얼굴에 뿌렸다. 이런 미치광이 같은 결혼식은 있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페트루치오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말괄량이 신부를 훌륭하게 훈련시키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캐서린의 아버지 뱁티스타는 호화스런 결혼 피로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에서 돌아온 페트루치오는 곧장 캐서린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장인이 된 뱁티스타의 항의와 신부인 캐서린의 성난 욕설에도 불구하고, 페트루치오는
아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남편의 권리라고 큰소리로 떠들어대면서
캐서린을 데리고 출발해 버렸다. 그 태도가 꽤나 힘차고 단호했기 때문에 누구 한
사람 그를 말리려들지 않았다.
  페트루치오는 일부러 고른, 빼빼 마르고 초라한 말에 신부를 태우고, 자신도 하인과
함께 마찬가지로 비실비실한 말을 타고 지독하게 질척거리는 길을 걸어갔다. 캐서린이
탄 말이 비틀거리기라도 되는 양 큰소리로 말을 야단치기도 하고 하인들을 야단치기도
했다.
  캐서린은 지루하고 진저리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그의 고함소리만 들으면서
겨우 그의 집에 도착했다. 페트루치오는 겉으로는 친절하게 그녀를 맞이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날 밤은 재우지도 않겠거니와 먹을 것도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곧 저녁식사가 차려졌다. 그렇지만 페트루치오는 어느 요리든지 다 일부러 트집을
잡아 이렇게 맛없는 고기를 사랑하는 아내에게 줄 수 없다면서 마루에 던져 버리고
나서 하인들을 꾸짖었다. 캐서린은 몹시 배가 고팠지만 피곤해서 방으로 들어가
자려고 했다. 그러자 페트루치오가 또 침대에 트집을 잡고 베개랑 이불을 던져
버렸으므로 그녀는 할 수 없어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깜박 잠이 들려 할 때마다
이번에는 그가 침대를 손보는 법이 서툴다고 하인들을 큰소리로 야단쳤기 때문에 잠을
깨고 말았다.
  다음날도 페트루치오는 계속 같은 방법으로 캐서린에게는 상냥한 말을 하면서도
그녀가 음식을 먹으려 하면 저녁식사 때처럼 트집을 잡고서 식사를 모두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남에게 머리를 숙인 적이 없었던 캐서린도 하인들에게
몰래 먹을 것을 갖다 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하지만, 하인들은
주인님의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갖다 드릴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한심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저 사람은 나를 말려 죽이려고 결혼했나 봐. 우리집 앞에 기웃거리던 거지도
먹을 것은 잘 얻어먹었는데. 지금껏 누가 먹으라고 애원을 해도 먹지 않았고, 먹는
것의 중요함을 몰랐던 내가 먹을 것이 없어서 정신이 없고, 잘 수도 없고, 게다가 욕만
먹고 있으니 현기증이 나네. 그보다도 더 진절머리나는 것은 이런 모든 것이 내가
사랑스럽기 때문이라면서, 먹고 자려고만 하면 금방 죽기라도 할 듯이 떠들어대는
거야."
  이 혼잣말은 페트루치오가 들어오는 동시에 뚝 그쳐 버렸다.
  페트루치오는 정말로 굶겨 죽일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에 고기를 조금 가지고 와서
말했다.
  "내 사랑스런 예쁜이! 이리 와요, 여보. 내가 얼마나 부지런한지 보라고. 이렇게
당신에게 주려고 내가 직접 고기 요리를 만들어 왔다오. 이런 친절에는 감사의 인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라? 한마디 말도 없군? 당신은 고기 요리를 싫어하는 모양이지? 만드느라고
고생한 것이 헛일이로군."
  그리고 그는 하인들에게 명령해서 접시를 가져가게 했다.
  캐서린은 마음속으로는 화가 치밀었지만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제발 그것을
갖다 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그렇지만 페트루치오는 아직 조금 더 골려 주려는 마음을 먹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감사하는 말은 해야 되는 법이오. 그러니까 먹을 것에
손을 대기 전에 나에게 말해 봐요."
  그래서 캐서린도 마지못해서, "고맙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고기를 조금 주면서 말했다.
  "당신의 상냥한 마음에 대한 보답이오, 케이트! 어서 서둘러 먹어요. 이 사랑스런
귀염둥이 아가씨! 이제부터 친정으로 다시 가서 비단옷과 모자, 황금 반지, 목둘레 깃,
스카프, 부채, 그리고 보석이 잔뜩 달린 화려한 외출복을 입고 임금님 같은 성대한
피로연을 엽시다."
  페트루치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런 사치스런 물건들을 정말로 살 생각이라고 믿게
하기 위해서 양장점 주인과 잡화상 주인에게 미리 주문해 둔 것들을 가지고 오게
했다. 그리고 그녀가 아직 음식을 반도 먹지 않았는데 음식 그릇을 가져가라고
하인에게 명령하면서, "어때, 진수성찬이었지?" 하고 말했다.
  금방 도착한 잡화상인은 모자를 내놓으면서 말했다.
  "주문하신 모자입니다."
  그러자 페트루치오는 또 화를 내면서 이것은 접시 모양 같은데다 새조개나
호두껍질만큼 작다며, 다시 더 크게 만들라고 했다.
  그러나 캐서린은 그 모자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전 이게 좋아요. 점잖은 젊은이들은 요즘 모두 이런 모자를 쓰고 있어요."
  "당신이 점잖아지면 그때는 하나 사 주겠소. 그때까지는 안돼."
  캐서린은 고기를 조금 먹었기 때문에 다소 힘이 생겨서 지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말할 자유는 내게도 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해야겠어요. 나는
어린애가 아녜요. 갓난애도 아니고. 당신보다 더 훌륭한 분이라도 내가 하는 말은
들어 줘야 할 거예요. 들어 줄 수 없다면 차라리 귀를 막고 계시지요."
  페트루치오는 그녀와 시끄럽게 말다툼을 하기보다는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웃으면서 대답했다.
  "뭐든 모두 당신 말대로요. 그건 역시 시시한 모자요. 당신이 그런 것은 싫다고 하는
점이 내 마음에 드는구려."
  "당신이 날 좋아하든 싫어하든 나는 이 모자가 마음에 들어요. 내 마음에 드니까 이
모자를 가지겠어요. 이것이 아니면 필요없어요."
  "드레스를 좀 봤으면 좋겠는데." 하고 말하면서 페트루치오는 일부러 캐서린이 하는
말을 못 들은 척했다.
  그러자 양장점 주인이 앞으로 나서며, 페트루치오가 그녀를 위해서 주문한 예쁜
드레스를 내밀었다. 페트루치오는 모자든 드레스든, 캐서린에게 보여 주기만 하고 사
주지는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또 트집을 잡았다.
  "야, 지독하군! 맙소사, 이게 뭐야, 이 소매 말이야. 사과 파이처럼 위아래를 둥글게
해서 이거 마치 대포 같잖아!"
  양장점 주인은, "지금 유행하는 대로 만들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캐서린은 이렇게 멋진 드레스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페트루치오는 양잠점 주인과 잡화상 주인에게 미리 몰래 물품 대금을 지불해 두었기
때문에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귓속말을 하고 나서 일부러 큰소리로 그들을
방에서 내쫓았다.
  그리고 나서 그, "자, 이리 와요, 캐서린! 지금 입고 있는 조잡한 옷이라도 좋으니까
친정집으로 갑시다." 라고 말하며 말안장을 하인들에게 준비시켰다. 그리고 또 지금이
이른 아침이니까 점심때까지는 도착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인들에게 명령하는
것이었다.
  이때는 이미 아침이 아니고 낮이었다. 그러므로 남편의 맹렬한 태도에 기가 죽어
있던 캐서린도 공손할 수만은 없어서 잘라 말했다.
  "내가 감히 말한다면 말이죠, 이미 2시가 지났으니까 거기에 닿으려면 저녁식사를
끝낸 뒤에나 도착할 거예요."
  그렇지만 그는 아내를 완전히 억눌러서 처가에 갈 때까지는 자신이 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고분고분 따르도록 하게 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태양에게도
명령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처럼 말했다.
  "내가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한다든지 행동을 하면 당신이
사사건건 방해를 하기 때문이오. 오늘은 하는 수 없어. 갈 때는 내가 몇 시라고 하면
바로 그때가 반드시 그 시간이 되는 거야."
  그는 며칠이 걸릴지라도 캐서린의 거만한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서 어떤 일에나
복종하도록 하게 하고 나서 친정집으로 가게 하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가는 도중에
그가 대낮에 달이 비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캐서린이 달이 아니고 해라고 반대하는
것만 가지고도 다시 데리고 돌아와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친정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달이든 별이든 그 밖에 뭐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당신이 따르지 않으면 안돼." 라고 하면서 되돌아가려 했다.
  그렇지만 캐서린은 이미 말괄량이가 아니라 고분고분하고 얌전한 아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계속해서 가도록 해요. 이미 이렇게 멀리까지 왔잖아요?
  태양이든 달이든 당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하기로 해요. 하늘에 떠 있는 것이
촛불이라고 말씀하시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 할 테니까요."
  "좋아! 저것은 달이오."
  "달이고말고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저것은 해요. 달이 아니고 해란 말이오."
  "그렇다면 해예요. 하지만, 당신이 또 해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 해가 아닌
셈이지요. 뭐든지 당신이 이름을 붙이시면 그렇게 되기도 하려니와, 나에게도 역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이 말을 듣고 페트루치오는 그대로 친정집으로 향해서 가기로 했다.
  그래도 그는 이러한 마음이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지 캐서린의 마음속을 한번 더
시험해 보기 위해서, 길가에서 만난 나이먹은 신사에게 마치 그 사람이 젊은 여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가씨?"
  그리고 페트루치오는 캐서린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는,
분홍빛 뺨을 예쁘다고 칭찬하기도하고 두 눈은 샛별처럼 빛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노인에게, "사랑스럽고 예쁜 아가씨, 오늘 하루 즐거우시기를!" 하고
말한 다음 캐서린에게, "상냥한 케이트! 이 아름다운 처녀에게 당신의 마음을 전하는
키스를 해줘야지."
  무엇이든 완전히 순종하게 된 캐서린은 곧 남편의 의견에 따라 노인에게 말했다.
  "젊고 꽃봉오리 같은 아가씨! 당신은 예쁘고 상냥하시군요.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이렇게 예쁜 아가씨를 기다리시는 부모님은 또 얼마나 행복하실까?"
  페트루치오는 캐서린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당신 미쳤군. 이렇게 쪼글쪼글한 주름투성이
노인인데. 당신이 말하는 아가씨가 아니잖아."
  그러자 캐서린은 재빨리 이렇게 말했다.
  "용서하세요, 영감님.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모든 게 다 싱싱하게 보였나 봐요.
당신이 품위 있는 노인이라는 말씀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엉뚱한 실수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페트루치오는 노신사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만일, 저희들과 같은 길이라면 같이 가시지요."
  "쾌활한 주인 양반, 명랑한 부인, 당신들 말씀은 아주 재미있으시군요. 내 이름은
빈센시오라고 하며 패두아에 살고 있는 아들을 만나러 찾아가는 길입니다."
  노신사가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이분이 바로 캐서린의 여동생,
그러니까 처제인 비앙카와 결혼할 루센시오의 아버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페트루치오는, "당신의 아드님은 매우 훌륭한 결혼을 할 겁니다." 하고
말했기 때문에 그 노인은 매우 기뻐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같이 유쾌한 길동무가 되어 처가집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이미
처제인 비앙카와 노인의 아들인 루센시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많은 축하객이
모여 있었다. 캐서린의 아버지는 큰딸의 결혼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비앙카의
결혼을 마침내 승낙했던 것이다.
  그들이 들어갔을 때는 비앙카 부부 이외에 또 한 쌍의 신혼 부부가 와 있었다.
그들은 호텐시오라는 신사와 그의 신부였다.
  그들은 둘 다 자신들의 신부가 상냥하고 얌전한 마음씨를 가진 것에 만족해 하면서,
페트루치오가 운나쁘게 말괄량이 신부를 맞이하게 된 것을 비웃고 있었다.
  페트루치오는 그들의 심술궂은 농담에는 신경쓰지 않고 있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 손님들이 다 빠져나가 버리자 장인 뱁티스타까지도 함께 그를 보고 웃으며
재미있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부인들도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려고 다른 방으로
가 버렸다.
  이때 페트루치오가 자기 아내인 캐서린이 다른 신부들보다 훨씬 더 남편에게
순종하며 얌전하게 된 것을 보여 줄 수 있다고 장담하자 장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미안한 얘기지만, 페트루치오, 자네가 가장 상대하기 곤란하고 힘든 상대를
고른 것 같네."
  페트루치오는 그 말에 곧 반대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기를 한번 해보지요. 제 각기 자기 신부를
여기로 부르도록 합시다. 가장 먼저 온 신부가 가장 남편에게 순종 잘하는 신부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 남편이 내깃돈을 모두 갖기로 합시다. 모두들 어떻습니까?"
  다른 두 사람은 자신들의 상냥한 아내가 말괄량이인 캐서린보다는 온순한 성격이기
때문에 남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종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으므로 기꺼이
동의했다.
  그래서 그들은 20크라운을 걸고 내기를 하자고 했다. 그러자 페트루치오는 개를
걸고 내기를 할 때도 그 정도는 걸고 하니까, 20배 정도를 더 갈자고 큰소리쳤다.
  결국 루센시오와 호텐시오는 100크라운으로 내깃돈을 올렸고, 루센시오가 우선
하인을 시켜서 비앙카에게 와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인은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주인님, 마님께서는 바쁘셔서 오실 수 없다고 하십니다."
  페트루치오는, "뭐라고? 바빠서 올 수 없다고? 들으셨지요? 바빠서 올 수
없답니다." 하고 말했다.
  두 사람은, "캐서린이 더 나쁜 대답을 하지 않으면 좋겠소." 하면서 웃었다.
  다음은 호텐시오가 하인에게 지시했다.
  "오! 부디 와 주십사고? 그런 말을 들으면 오지 않을 수 없겠는데."
  호텐시오는, "자네 아내라면 그런 말을 들어도 오지 않을 거야." 라면서 웃었다.
  그런데 그때 하인이 호텐시오의 아내를 모셔 오지 않고 혼자 돌아왔기 때문에,
호텐시오는 기가 막혀서 말했다.
  "무엇을 하고 있나? 어디 있어?"
  "주인님, 마님은 주인님께서 장난을 치고 계시는 거니까 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마님께서는 주인님더러 어서 와달라는 부탁을 하실
뿐이었습니다." 하고 하인은 대답했다.
  이번에는 페트루치오가 하인에게 말했다.
  "이봐, 마님께 가서 내가 오라고 했다고 전해라."
  이 말을 들으면서 모두들 그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뱁티스타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아니, 이런 놀라운 일이! 캐서린이 정말로 왔어!"
  캐서린은 방안으로 들어와서 상냥하게 남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웬일로 부르셨어요?"
  "처제와 호텐시오 부인은 어디 있소?"
  "응접실 난로 곁에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가서 두 사람을 이리 데리고 나와요."
  캐서린은 남편이 하는 말을 빨리 들어 주려고 대답도 하지 않고 재빨리 나갔다.
  루센시오와 호텐시오는 깜짝 놀라서 저마다, "이상한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페트루치오가 말했다.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이게 다 평화의 전조지.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즐거운 생활의 시작이란 말일세."
  캐서린의 아버지는 말괄량이 딸이 정숙하고 얌전한 여자로 변한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뻐서 말했다.
  "이것으로 자네가 내기에 이겼네. 나도 지참금을 2만 크라운 더 올려 주겠네. 내
딸이 다른 사람처럼 변했으니 말일세."
  "아닙니다. 저는 지참금보다 더 좋은 것을 얻었습니다. 아내가 새로 익힌 변함없는
굳은 정조와 순종을 더 보여 드리겠습니다."
  페트루치오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방으로 캐서린이 여동생들과 같이 들어왔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보게나, 데리고 왔잖은가. 자네들의 버릇없는 아내들을 설득시켜 데리고 왔어.
  캐서린, 당신 모자는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아. 그런 시시한 것은 내던져 버려요."
  캐서린은 곧 쓰고 있던 모자를 내팽개쳐 버렸다.
  이것을 보고 있던 비앙카와 호텐시오 부인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어머, 기가 막혀. 이런 엉터리 같은 짓을 보여 주려고 일부러 불러냈어요?
미련하고 바보 같은 짓이에요."
  비앙카의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도 언니처럼 미련했으면 좋았을걸. 당신이 너무 똑똑해서 100크라운이나
손해봤어."
  비앙카는 지지 않고 다시 말했다.
  "나를 걸고 내기를 하다니, 당신이야말로 어리석군요."
  그러자 페트루치오는 자신 있게 다시 말했다.
  "여보, 캐서린, 당신에게 부탁하겠소. 이 말괄량이들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어떠한
의무를 다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시오."
  그러자 모두가 놀란 것은, 전에는 말괄량이였던 캐서린이 아내로서 해야 할 복종의
의무에 대해서 끝없이 설명하며 칭송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캐서린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말괄량이가 아니라 패두아에서 가장
점잖고 정숙하고 현명한 부인으로서 다시 한번 유명해졌다. 
      열두 번째 밤

  오빠인 세바스찬과 여동생인 비올라는 메살린에 사는 젊은이들이었다. 두 남매는
쌍둥이였는데 너무나 생김새가 비슷해서 옷이 다르지 않으면 구별해 내기 힘들
정도였다.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났는데, 마찬가지로 남매가 한꺼번에 죽을 뻔한
일이 일어났다. 같이 배를 타고 여행하고 있을 때에 일리리아 해안에서 배가
난파당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타고 있던 배는 폭풍우 속에서 암초에 부딪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기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은 몇 명뿐이었다. 선장은 두세 명의
선원과 함께 조그만 예비선을 타고 고생 끝에 겨우 육지에 닿았다. 쌍둥이 남매의
여동생인 비올라도 그 배를 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사하게 살아남은 것에 대해 기뻐하기보다는 오빠 세바스찬을
걱정하느라 슬퍼할 뿐이었다.
  선장은 그녀를 위로하면서 오빠는 배가 부서졌을 때 튼튼한 돛대에 몸을 묶고
있었으니 아마도 무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바스찬이 그 돛대에 실려 돌고래 등에
업힌 것처럼 파도에 떠내려가는 것을 멀리서 봤는데, 운이 좋으면 살아 있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비올라는 이 말을 듣고 다소 마음을 놓았으나, 앞으로 이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선장에게
일리리아라는 곳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다.
  "이곳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 바로 여기서
세 시간도 안되는 곳에 있으니까요."
  "이곳은 어떤 분이 다스리는 땅인가요?"
  "오르시노라는 가문의 인품이 뛰어난 공작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오르시노 공작? 아버지한테서 그분의 존귀한 이름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독신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예, 지금도 역시 독신이지요. 소문에 의하면 오르시노 공작은 올리비아라는
아름다운 아가씨한테 청혼했다고 하더군요. 그 올리비아라는 아가씨는 재주와 고운
성품을 모두 갖춘 아주 어여쁜 아가씨랍니다. 1년 전에 돌아가신 백작의 딸로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오빠가 그분을 보살펴 왔었는데 오빠마저 죽어 버렸지요.
그래서 그 아가씨는 아버지와 오빠만을 생각하면서 다른 남자들과는 절대로 만나거나
사귀지 않기로 했다는 겁니다."
  오빠를 잃고 나서 슬픔에 젖어 있던 비올라는 그만큼 애절하게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올리비아라는 아가씨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비올라는 선장에게 자기는 올리비아 아가씨의 시중을 들며 살고 싶으니
소개해 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다.
  그러나 올리비아 아가씨는 누구든 집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지체
높은 공작님의 간청조차도 거절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올라는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자기가 남장을 해서 오르시노 공작의 시중을 드는 하인이 되려는 것이었다.
  이 계획을 선장에게 의논하자 친절한 선장은 곧 그 계획을 도와 주기로 했다.
비올라는 그에게 돈을 주면서 남자 옷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는데, 오빠인 세바스찬이
항상 입고 있던 색상과 스타일로 만들어 오도록 했다. 그 옷을 차려 입고 나서자
비올라는 오빠와 똑같아 보였다. (나중에 알겠지만, 오빠인 세바스찬도 바다에서
구조되어 살아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착각하여 우스꽝스런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이렇게 청년으로 변장한 비올라는 선장과 함께 공작을 찾아뵙고 세자리오라는
가명으로 자기를 소개했다.
  공작은 이 예쁘장한 청년의 말씨나 우아한 행동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세자리오를
곧 하인으로 고용하기로 했다. 비올라는 항상 정직하고 성실하게 모든 일들을
처리했기 때문에 공작은 그를 가장 아끼게 되었다.
  오르시노 공작은 올리비아 아가씨를 사모하는 자기 감정까지도 세자리오에게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오랫동안 진심으로 있는 힘과 지혜를 다 모아서 구혼을
하는데도 그녀는 한마디로 거절하며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고귀한 공작은 그렇게나 몰인정한 상대를 사모하는 정 때문에 남자답게 야외에서
활동하는 것을 모두 잊고 지냈다. 그 대신 차분한 음악이나 온화한 사랑의 노래 같은
것에 푹 빠져서 하릴없이 세월만 흘려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까지
사귀어 왔던 귀족들과의 교제까지도 완전히 끊고 하루 종일 젊은 세자리오만을 상대로
하소연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오르시노가 이렇게 마음을 털어놓는 동안에 비올라는 비록 지금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원래는 젊은 아가씨인지라, 이렇게 늠름하고 젊은 공작에게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입 밖에 낼 수도 없고, 보답받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랑이었다.
  누가 보아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멋있고 훌륭한 이 오르시노를 올리비아
아가씨가 상대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세자리오는
사람을 못 알아보는 그런 여인을 사모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넌지시 부드럽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만일, 공작님께서 올리비아 아가씨를 사랑하듯 어떤 아가씨가 공작님을 사랑한다
하더라고 공작님은 그 아가씨에게 올리비아 아가씨에 대한 사랑을 하소연하시겠지요?
그래도 그 아가씨는 공작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오르시노는 그 무엇도 올리비아에 대한 자기의 사랑과 비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비올라는 자기가 품고 있는 사랑은 그가 올리비아에게 바치는 애정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부족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므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주인님."
  "무엇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세자리오?"
  "여자가 남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랑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환하게 알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에게도 어떤 남자를 무척 사랑하는 딸이 하나 있었지요.
만일^5,5,5^ 제가 여자였다면 주인님을 그만큼 깊이 사랑했을 겁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랑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는가?"
  "가엾게도 그애는 사랑을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고, 다만 마음속으로만 사랑하고
있었지요. 마치 바윗돌처럼 강한 인내심을 갖고, 슬픔 속에서도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 여자는 사랑 때문에 결국 죽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공작은 물었지만,
비올라는 불분명한 대답을 할 뿐이었다.
  오르시노 공작에 대한 자기의 비밀스런 사랑을 어떤 방법으로든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올리비아 아가씨 집에 보냈던 하인이
돌아와서 말했다.
  "부끄럽게도 올리비아 아가씨를 뵙지도 못했습니다, 주인님. 공작님의 심부름이라고
했는데도 하인들이 막무가내로 거절하면서 문 안에 들여 놓지도 않았습니다. 올리비아
아가씨께선 앞으로 7년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수녀처럼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돌아가신 오빠 생각만을 하시며 근신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녀는 죽은 오빠에게조차 그러한 애정을 바칠 정도로 자상하고 고운 마음씨를
갖고 있구나! 만일, 사랑의 화살을 그녀 가슴에 맞추더라도 내가 그녀를 얼마만큼이나
사랑하는지 모를 거야^5,5,5^ 그렇지, 세자리오? 내 마음속에 있는 비밀을 이미 몽땅
너에게 털어놨으니, 넌 지금 곧바로 올리비아 아가씨 댁으로 가서 내 마음을 전해
다오. 가서 거절당하든 어쨌든 문 앞에 버티고 서서 만나기 전에는 발이 붙어서
한걸음도 꼼짝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꼭 만나고 오너라!"
  "그런데 만일 만나뵐 수 있다면 그땐 어떻게 할까요, 주인님?"
  "그때엔 내 열정적인 사랑을 완전히 이해하도록 말해야 한다. 내 괴로움을
아가씨에게 숨김없이 털어놓기에는 네가 안성맞춤이다. 너는 내 마음속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어색하게 점잔을 빼는 하인들보다는 고상한 말씨를 갖춘
젊은이의 말을 더 잘 들어줄 거다."
  그래서 비올라는 올리비아 아가씨 댁을 향해서 출발했다. 비올라는 자기가 사랑하는
공작의 부탁이긴 하지만, 공작이 다른 여자에게 청혼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기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기는 공작의 하인인 이상 주인의 지시를 충실히 순종하기로
마음먹었다.
  올리비아 아가씨는 어떤 청년이 문 앞에 서서 그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조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올리비아 아가씨 댁 하인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가씨가 편찮으시다고 말했습니다만, 그것을 다 알고 왔으니 꼭 만나뵈어야만
돌아가겠다고 우겨대고 있습니다.
  지금 주무시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그것도 다 알고 왔다며 무조건
만나뵈어야 한다고 고집부립니다. 기가 막혀서^5,5,5^ 뭐라고 말해도 막무가내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올리비아는 그렇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들어오게 하라고 허락했다. 그렇게 소란피우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공작이 보낸
하인이 분명하다면서 올리비아는 얼굴을 베일로 가렸다.
  비올라는 들어서자마자 가능한 한 남자다운 태도를 갖추고 점잖고 공손하게 말했다.
  "이 이상 더 훌륭하고 아름다울 수 없는 아가씨! 당신이 이 저택의 주인이신지
아닌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아가씨를 한번도 뵌 적이 없기 때문에, 만일 다른 분에게 말씀드리게 된다면
아주 곤란합니다. 제가 외운 대사를 주인 아가씨가 아닌 다른 분에게 헛되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려야 할 내용은 아름답게 만든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다
외우는 데 아주 고생했기 때문이지요."
  "어디에서 오셨나요?"
  "저는 외운 것 이외에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 질문은 제가 맡은 역할과는
상관없는 듯합니다."
  "당신은 희극 배우인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서 비올라는 다시 한번 아가씨가 이 댁의 주인인지 아닌지 물었고,
올리비아는 주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비올라는 아가씨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부디 얼굴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올리비아는 이 청년 세자리오를 본 순간 한눈에 반해 버렸기에 그 당돌한
요구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7년 동안을 베일을 가리고 있겠다던 결심도
잊어버리고 베일을 걷어올리면서 말했다."
  "자! 이제 당신이 준비해 왔다는 그 연극을 보여 주시지요. 잘할 수 있겠어요?"
  "'자연'이라는 화가가 아가씨의 얼굴을 더욱 아름답게 그렸군요. 어쨌든 대단한
미인이십니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움을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고 자기 혼자만 숨기고
계시다니 아주 잔인한 분이십니다."
  "아니에요. 저는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 아니랍니다. 도대체 왜 당신은 저를
칭찬하시는 건가요?"
  "당신이 어떤 분인지 이제 알겠습니다. 당신은 거만하시지만 동시에 매우
아름다우시군요. 저의 주인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아름다운
여왕님이더라도 그만큼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르시노 공작님의 당신에
대한 사랑은 사랑이라고 보다 차라리 숭배이며, 비오는 듯한 눈물이며, 불붙는 듯한
탄식이라 할 수 있답니다."
  "당신 주인이신 공작님께서는 이미 내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나는 그분을
사랑할 수 없어요. 물론 그분이 고귀하고 훌륭한 신분에 높은 덕을 쌓으신, 흠잡을 데
없는 분이시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학식이 높고
겸손하며 용기 있는 젊은이라고 칭찬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그렇지만 나는
그분을 사랑할 수 없다고 훨씬 전에 이미 대답해 드렸습니다."
  "만일 제가 당신을 저의 주인님만큼만 사랑한다면 이 문 앞에 버드나무 가지로
오두막을 지어 놓고 매일 당신에게 호소할 것입니다. 당신을 소재로 비탄에 젖은
노랫말을 지어서 깊은 밤에도 큰소리로 노래할지도 모르죠. 당신의 이름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메아리가 되어 오면 당신은 잠도 못 잘 것이고, 또한 저를
측은하게 생각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이야말로 저를 측은하게 생각해 주셔서 고맙군요. 그런데 당신 부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아가씨가 생각하시는 제 신분보다는 높은 분들이십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주인에게 돌아가서 말씀드려 주십시요. 저는 그분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다시는 사람을 보내지 마시라고도 해주세요. 다만, 저의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를 알려 주러 당신이 다시 오신다면 예외로 하겠어요."
  그래서 비올라는, "참 무정한 분이군요." 하고 말하고 돌아갔다.
  비올라가 가버리자 올리비아는 세자리오가 공작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높은 신분이라고? 그 이야기하는투며 표정이며 그
체격이나 거동 등 모두가 완전한 신사가 틀림없어."
  그 뒤로 올리비아 아가씨는 갑자기 세자리오에 대한 사랑이 싹트는 것을 알고서
상대가 천한 신분의 하인이라는 것도 잊고 그의 사랑을 얻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래서
하인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지고 세자리오의 뒤를 쫓아가서 오르시노 공작의
선물을 허락도 없이 건방지게 놓고 갔으나 받을 수 없다고 호통치면서 전해 주고
오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반지를 선물해서 자기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세자리오에게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비올라는 곧 쫓아온 하인의 엉뚱한 말을 듣고 올리비아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오르시노 공작이 반지를 주지 않았을 뿐더러, 가만 생각해 보니 올리비아의 표정이나
태도에게 자기에 대한 호감이 엿보였기 때문에 아가씨가 자기의 남장한 모습에 반한
것이라고 곧 눈치챘다.
  "딱한 아가씨, 차라리 허망한 꿈을 사랑하시는 게 나아요. 남장한 나를 사랑하다니.
그래도 남장을 해서 착각하게 한 내가 나쁘지. 오르시노 공작님에 대한 나의 부질없는
생각을 올리비아 아가씨에게도 폼게 한 것이 잘못이고 나쁜 짓이야."
  비올라는 오르시노 궁으로 돌아와서 청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주인에게
전했다. 그래도 공작은 올리비아를 다시 한번 더 설득해서 자기를 이해하도록 해주면
좋겠다면서 세자리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공작은 세자리오에게 다음날에도 또
올리비아 아가씨 댁에 다녀오라면서,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을 달래도록 노래를 좀
불러달라고 했다.
  "어젯밤 그 노래를 들으니 괴로운 생각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었어. 기억해 둬,
세자리오. 그것은 오래 된 노래지만 평범하고 순박한 노래야. 젊은 아가씨들이 햇볕에
앉아서 뜨개질을 할 때 부르는 노래지. 시시한 노래 같지만 순수하게 천진난만한
사랑을 표현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곡이거든."
  그래서 세자리오는 노래를 불렀다.

  오너라, 오려무나, 죽음의 신이여!
  편백나무 관 속에 나를 눕혀 다오.
  날아라, 날아가려무나, 내 한숨아.
  매정한 이 아가씨에게 이 목숨 다하는구나.
  하얀 수의에 주목나무 장식을 마련해 다오.
  죽어 이슬이 되어도 어찌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꽃은 필요없소, 예쁜 꽃은 더욱 그렇소.
  편백나무 관 하나면 만족한다오.
  친구 한 사람도 찾지 마오, 조문은 더욱 그렇소.
  죽은 몸을 관 속에 그대로 놔두오.
  천 가지 만 가지 근심 걱정 할 것 없이
  그대로 흙 속에 묻어 주오.
  울먹이는 내 사랑이
  내 무덤 모르도록 조용히 묻어 주오!

  이 사랑의 고뇌를 노래한 옛 노랫말은 비올라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연히 슬픔 표정을 띠었다. 이것을 보고 오르시노는 말했다.
  "세자리오, 웬일이냐? 너는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사랑으로 고뇌해 본 표정이구나.
무슨 고민이냐? 너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눈길을 준 경험이 있느냐?"
  "죄송합니다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어떤 사람이었느냐? 몇 살쯤 되었지?"
  "공작님과 같은 나이였으며, 외모도 비슷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작은 이 아름답고 젊은 청년이 자기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남자처럼
생긴 여인을 사랑했구나 하며 미소지었다. 그렇지만 사실 비올라는 오르시노 공작과
은근히 비유해서 말한 것이지, 남자처럼 생긴 여인을 뜻한 것은 아니었다.
  비올라가 다시 올리비아의 저택을 방문했을 때는 전과 달리 금세 정중하게 올리비아
아가씨의 방으로 안내받았다. 비올라가 다시 한번 주인님을 위해 설득해 보려고
왔다고 말하자 올리비아 아가씨는 자기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분의 일이라면 두 번 다시 말씀하지 마시오. 하지만, 만일^5,5,5^ 다른 구혼을
하신다면^5,5,5^ 하늘에 별들이 노래하는 것보다 더 즐기어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 올리비아는 계속해서 아름다운 청년 하인에 대한 사랑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비올라의 곤란하고 불유쾌한 안색을 보고서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리 당신이 화를 내도, 또 경멸을 받아도 그것이 도리어 제겐 아름답게
여겨지는군요. 세자리오! 당신이 그렇게나 거만한데도 저는 당신을 사랑하다니, 열정을
감출 이성도 없어져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말도 소용이 없었다.
  비올라는, "저는 어떤 여자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두 번
다시 오르시노 공작의 부탁을 전하러 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 방을 나가 버렸다.
  비올라가 올리비아의 저택을 나오자, 올리비아에게 거절당한 어떤 구혼자가
올리비아가 공작의 하인 따위를 사랑한다면서 격분하고는 달려들었다. 결투를
신청받은 비올라는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원래 상냥한 여자였기 때문에
불쌍하게도 칼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워할 정도였다. 그녀는 무서운 남자가 칼을
빼어들고 공격해 오는 것을 봤을 때 자기는 원래 여자라고 소리지를 뻔했다. 그렇지만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이 그 가엾은 젊은이를 구해 주었다. 그 사람은 마치
그녀와는 오랜 친구였던 것처럼 그녀를 보호하며 상대에게 말했다.
  "만일, 이 신사가 당신에게 실례를 범했다면 그 실수를 내가 책임질 것이며, 당신이
이 사람에게 실례를 범했다면 이 사람을 위해서 내가 대신 도전하겠소이다."
  비올라는 위험에 빠진 자기를 구해 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알지도
못하는 자기를 왜 목숨을 걸고 도와 주는지를 물어 보려 했는데, 그때 경찰이
다가왔다. 그들은 오르시노 공작이 고소한 5년 전의 죄값이라면서 그 낯선 행인을
체포해 버렸다. 그러자 그 사람은 황급히 비올라를 향해서 말했다.
  "이것이 모두 자네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된 것이네. 이제 이렇게까지 곤란한
입장이 되었으니 내가 맡긴 지갑이나 어서 돌려 주게. 내가 이렇게 된 것보다도
자네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한 것이 유감이네. 대단히 놀란 모양인데, 그렇게까지 걱정할
것은 없네!"
  그 사람의 말은 비올라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모르는 사람에게
지갑을 받은 일이 없다며 항의했다. 그렇지만 자기를 위험에서 구해 준 대가로 갖고
있던 돈을 조금 주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배은망덕하다면서 그녀에게 지독하게
욕을 해대는 것이었다.
  "여기에 있는 이 젊은이는 물에 빠져서 사경을 헤맬 때 내가 건져 준 작자입니다.
바로 이 사람 때문에 나는 일리리아에까지 와서 이런 꼴을 당하는 것입니다."
  경찰관은 이 남자가 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런것은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오."
  하면서 서둘러 끌고 가려했다. 그는 끌려가면서 비올라를 세바스찬이라고 부르며,
친구를 죽게 내버려둔다면서 욕을 퍼부었다.
  비올라는 자기를 세바스찬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도 그 낯선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볼 여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곧 그 사람이 자기를 오빠로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친구가 오빠였으면^5,5,5^
비올라는 오빠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모르는 사람이 말한 그대로였다.
  그 사람은 안토니오라는 선장으로서, 세바스찬이 폭풍우 속에서 돛대에 몸을 붙들어
매고 목숨이 끊어질 듯 바다 위에 표류하고 있을 때 그를 배로 건져 올렸던 것이다.
  안토니오는 세바스찬을 매우 좋아하게 되어서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함께
가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 세바스찬이 오르시노의 저택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자,
안토니오는 전에 어떤 해전에서 공작의 조카에게 중상을 입힌 일이 있었기 때문에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기까지 함께 온 것이다. 지금 그가 죄인이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안토니오와 세바스찬이 육지에 상륙했을 때는 배가 난파당한 뒤 비올라가 육지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이었다. 안토니오는 세바스찬에게 지갑을 주면서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사도 좋다며, 세바스찬이 마을을 구경하는 동안에 자기는 여관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세바스찬이 약속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자 그는 생각
끝에 위험을 무릅쓰고 세바스찬을 찾아나섰다. 비올라가 세바스찬과 같은 옷을 입고
얼굴도 똑같았기 때문에 그녀를 오빠 세바스찬으로 착각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간신히 만난 세바스찬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구해준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딱 잡아떼다니^5,5,5^ 게다가 지갑을 받은 적도 없다고 했으니
배은망덕하다고 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비올라는 안토니오가 가 버리자, 결투 신청을 한 사람이 다시 덤벼들까 두려워서
얼른 빠져 나왔다.
  마침 뒤이어 세바스찬이 올리비아의 저택을 구경하러 그곳에 왔다. 그때
올리비아에게 결투를 신청한 사람도 곧 따라와서는, "자, 또 만났구나. 이 배은망덕한
겁쟁이 졸장부야, 각오해라!" 하면서 세바스찬에게 싸움을 걸어 왔다. 상대가
막무가내로 달려들자 세바스찬은 어쩔 수도 없이 칼을 빼어들고 반격했다.
  그때 올리비아가 집에서 뛰어나와 그 결투를 말렸다. 그녀는 세바스찬을 공작님 댁
하인인 세자리오로 착각하고서 상처난데는 없느냐고 하면서 미안해 했다. 세바스찬은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공격당하기도 하고, 처음 만난 여자에게 아주 정중한 대접을
받기도 해서 그저 놀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매우 기뻐하며 올리비아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이 공작의 하인 청년이 화를 낸다든지 경멸한다든지 하지
않고 자기의 고백을 기쁘게 들어 주는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세바스찬은 이 아가씨가 처음 대하는 자기에게 너무 지나친 애정을 쏟아 주기
때문에 혹시 정신이 이상한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훌륭한 저택의
여주인으로서 신중하고 차분하게 집안일을 돌보며, 하인들을 부리고, 사무 일체를
처리해 가는 것을 보고는 이 뜻밖의 애정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올리비아는 세자리오가 전혀 거부하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마음이 변하기 전에
근처에 성당에 가서 곧 결혼식을 올리자고 했다. 세바스찬은 자기를 세자리오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 청혼을 쾌히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세바스찬은 친구인 안토니오에게 자기의 행운을
이야기해 주려고 집을 나섰다.
  한편, 그 뒤 오르시노는 세자리오를 데리고 올리비아를 만나러 왔다. 마침 그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경찰이 죄수인 안토니오를 공작에게 데려왔다.
  안토니오는 여전히 하인 세자리오를 세바스찬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공작에게
그 청년은 자신이 바다에서 목숨을 구해 주었으며, 지난 3개월이나 같이 지냈는데도
자신을 모른다고 하는 배은망덕한 녀석이라고 투덜거리며 하소연했다. 그렇지만
공작은 마침 그곳을 올리비아가 나왔기 때문에 안토니오가 하는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백작의 따님이 계시는 곳이다. 천사가 땅 위를 걷는 듯하고나. 너에게 말해
두겠지만, 네가 말하는 것은 미치광이 헛소리야. 이 젊은이는 3개월 전부터 내 시중을
들고 있었어."
  그리고 나서 그는 경찰들에게 안토니오를 데려가도록 지시했다. 올리비아 아가씨는
세자리오를 자기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한결 상냥하게 대했다. 공작은 자기의 하인이
그렇게까지 사랑받는 것을 보자 질투를 느껴 화를 내면서 그를 데리고 돌아가려 했다.
  "여봐라, 세자리오! 돌아가자. 네가 이렇게까지 대접받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곧
죽여 버려야겠다!"
  청년 하인 세자리오의 모습을 한 비올라는 마음속으로 공작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인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올리비아는 자기의 남편인 세자리오를 그런 식으로 잃고 싶지는
않아서 외쳤다.
  "나의 사랑 세자리오! 어디로 가시렵니까?"
  비올라는 대답했다.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우리 주인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리도 올리비아는 그들이 가는 길을 가로막고 큰소리로 세자리오는 자기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며, 신부님을 불러오게 해서 신부님의 말을 들어 보자고 했다.
  신부님은 올리비아 아가씨와 이 청년이 결혼한지 아직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세자리오가 아무리 자기는 올리비아와 결혼한 적이 없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르시노 공작은 자기 하인에게 목숨보다도 소중한 애인을 도둑맞았다며
한탄했다. 그가 세자리오에게 두 번 다시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호통을 치는
바로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세자리오가 한 사람 더 나타나서 올리비아를 자기 아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이
새로운 세자리오야말로 올리비아의 진정한 남편인 세바스찬이었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두 사람이 같은 생김새, 같은 목소리, 같은 옷차림인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잠시 뒤 모두가 침착해지자 남매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비올라는 오빠가 무사할 줄은 몰랐고, 세바스찬도 물에 빠져죽었다고만 생각하던
여동생이 젊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랐다. 비올라는 공작의 하인이
되기 위해 남자로 변장했다는 것을 고백했다.
  쌍둥이인 오빠와 여동생이 너무나 생김새가 닮았기 때문에 일어난 모든 오해들이
말끔히 해결되었다. 사람들은 올리비아 아가씨가 여자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깨닫고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올리비아는 결국 여동생 대신에 그 오빠인 세바스찬과
결혼한 것을 알고서도 기뻐했다.
  오르시노의 희망은 올리비아의 결혼으로 영원히 끝난 셈이어서, 그는 짝사랑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아름다운 아가씨로 밝혀진 세자리오의 예쁘장하던 남장 모습을
상상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렸다. 그는 세자리오를 매우 예쁘다고 생각하며
세자리오에게 여자 옷을 입힌다면 얼마나 예쁠까를 생각해 보았다.
  충실한 하인이 가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말한 것은 다만 충절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외의 수수께끼 같은 말들도 이제는 확실하게 알았다. 그래서 그는 비올라와
결혼하려고 결심하고, 그녀에게 세자리오라고 부르며 말했다.
  "세자리오, 너는 몇 번이나 내게 말했었지,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못할 것이라고! 게다가 나를 위해서 그 약한 몸으로 충실하게 온 힘을
다 쏟아 주었어. 오랫동안 나를 주인이라고 불러 왔으나, 앞으로는 내가 너를 주인의
아내, 오르시노 공작 부인이라고 부르겠다!"
  올리비아는 공작이 비올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두 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아침에 자기 결혼에 주례를 서 주었던 신부님에게 다시
오르시노와 비올라의 결혼식을 올려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두 쌍둥이 남매는
같은 날에 한꺼번에 결혼식을 치렀다.
  두 사람을 잠시 헤어지게 했던 폭풍우와 난파선은 결국 큰 행운을 가져다 준 고마운
자연의 심술이었던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옛날 베로나라는 마을에는 카풀렛과 몬타규라고 하는 이름난 두 가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양쪽 집안은 옛날부터 원수처럼 사이가 나빠서, 쌍방의 먼 친척들은 물론
하인들조차 서로를 미워하여 마을에서 만날 때마다 으르렁댈 뿐만 아니라, 심하게
말다툼을 벌이다가 때로는 피를 흘리며 싸우기까지 했다. 이러한 싸움으로 인해
베로나 마을은 하루도 평화스럽지 못했다.
  나이가 제법 든 카풀렛 경이 성대한 만찬회를 베풀 때에 몬타규 집안 사람만
아니라면 그 누가 가더라도 환영받았다.
  그런데 이번 카풀렛 가문의 만찬회에는 많은 신사와 숙녀들이 참석했는데, 몬타규
경의 아들 로미오도 살그머니 참석했다. 몬타규 집안 사람으로서 이 만찬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지만, 거기에 참석하면 카풀렛 집안의 로잘린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로미오의 친구 벤볼리오가 가면을 쓰고 나가면
안전하게 로잘린을 만날 수 있다고 하며 로미오를 꾀었던 것이다. 로미오는
로잘린이라는 여인을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는데, 로잘린은 로미오를 좋아하기는커녕
깔보며 업신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인 벤볼리오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로미오를 데리고 나가서 일방적인 짝사랑에서 그를 구해 주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젊은 로미오는 벤볼리오와 또 한 친구 머큐시오와 함께 가면으로 가장하고 카풀렛
경이 베푸는 만찬회장으로 갔다. 카풀렛 경은 그 세 젊은이가 몬타규 집안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매우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마침내 흥겨운 댄스 파티가 시작되었다. 거기에는 로미오는 사뿐히 춤추고 있는
어떤 한 아가씨의 아름다움에 깊이 감동했다. 화려한 샹들리에도 오직 그 여인만을
위해 더 한층 밝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마치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보석과
같았다. 로미오는 이 세상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그 아름다움을 보고, 마치 까마귀
무리에 섞여 있는 흰 백로와 같이 아름답다며 혼잣말로 칭찬했다.
  그런 말을 카풀렛의 조카인 티볼트가 우연히 듣고서 가면을 쓴 사람이 로미오라는
것을 눈치챘다. 원래 성격이 괴팍한 티볼트는 몬타규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자기
가문의 만찬회를 방해하기 위해 왔다며 물어뜯을 듯이 화를 내며 로미오에게
덤벼들었다.
  그때 티볼트의 아저씨인 카풀렛 경이 다른 손님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또한
로미오가 이 마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신사로 존경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티볼트의 난폭한 행동을 멈추게 했다. 티볼트는 하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댄스 파티가 끝나자, 로미오는 아까 그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는
그녀에게 점잖고 예의바르게 인사한 뒤 그녀와 소곤소곤 얘기했다.
  상냥하고 아리따운 그녀의 손을 잡고서 그녀를 여신이라고 부르며, 자기를 그
여신에게 예배드리는 신자로 비유해서 말했다. 그는 신자가 죄를 지어서 그 죄를
용서받고자 하니 그 용서로써 키스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아가씨는 대답했다. "순례자님, 당신의 태도는 너무나도 공손하고, 그 생각하는
것도 고귀합니다만, 키스만은 안되겠군요."
  "여신이라 해도 입술은 있는 것이니, 그 입술로 키스해 주시면 되지 않겠소?"
  "입술이 있기는 하지만, 그 입술은 기도할 때나 사용하는 것이랍니다!"
  "오오! 그렇다면^5,5,5^ 나의 소중한 여신이여! 나의 기도를 받아들여 부디 키스를
허락해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절망해서 기절해 버릴 거라오."
  두 사람이 이렇게 짧은 동안에 불꽃 같은 사랑의 대화를 나눌 때 그녀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 뒤 로미오가 그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몬타규 집안의 최대 적수인 카풀렛 경의 외동딸 줄리엣이라는 것이었다.
  뜻하지 않게 원수 집안의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줄리엣 또한 사랑하게 된 청년이 몬타규 집안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상한 사랑의
씨앗이 싹트게 된 것을 깨닫고 두려워했다.
  밤이 깊어지자 로미오는 두 친구와 함께 카풀렛 경의 저택을 나왔지만,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서 저택 뒤편에 있는 담벽을 타고
정원에 들어갔다. 그때 마침 줄리엣이 창가에 나타나자 꼭 동쪽의 캄캄한 하늘에
태양이 솟아올라 환하게 비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는 창가에 턱을 괴고 밤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미오는, "차라리 저 손가락에 낀 장갑이 되었으면. 그렇게되면 그녀의 얼굴에 닿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에 그녀는 혼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아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로미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
너무나 기뻐, 그녀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오오, 나의 아름다운 천사여! 저 위로 당신이 나타난다면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숙여 당신을 우러러보게 될 것이며, 당신을 하늘의 천사처럼 생각하게 될 것이오."
  로미오가 서서 엿듣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그녀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오! 사랑하는 로미오, 당신은 어째서 로미오인가요? 나를 위해서 아버지를 버려
주세요. 당신의 신분을 버려 주세요. 그것이 싫으시다면 하다못해 나의 약혼자라고
고백이라도 해주세요. 그렇게 한다면 나도 카풀렛이라는 이름을 버리겠어요." 하면서
몸과 모든 마음이 그의 것이 되어버린 자기를 받아달라고 중얼거렸다.
  이 사랑의 고백을 엿들은 로미오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어서 나무 그늘 아래
숨은 채 속삭였다. 자기를 약혼자로 생각하든지 않든지간에 그녀가 원한다면 이름을
바꾸고 싶으니 로미오라는 이름을 과감히 버리겠다고 말했다.
  줄리엣은 정원의 어둠 속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리자 놀랐다. 자기의 비밀을 모두
엿들은 사람이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곧 그가 다시 한번 속삭이자
줄리엣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예민한 귀로써 그가 로미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기집안 사람 누군가에게 발각되면 몬타규 집안의 사람은 죽게 될지도 모르니,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고 줄리엣은 안타깝게 얘기했다.
  그러자 로미오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아! 나에겐 당신의 눈이야말로 카풀렛 사람들의 칼보다 훨씬 예리하답니다.
당신에게 사랑받을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미움을 산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면, 오히려 적에게 목숨을 빼앗기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
  "어떻게 알고 이쪽으로 오셨죠? 누구의 안내를 받고서?"
  "사랑이 길잡이가 되어 주었답니다. 나는 뱃길의 길잡이는 아니지만, 파도가
휘몰아치는 머나먼 바다에 있다 하더라도, 당신이라는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 아무리
험난한 바다라도 헤치며 건너갈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줄리엣의 얼굴은 완전히 홍당무로 변해 버렸다. 그녀는 로미오에게
자기 맘을 엿보인 것을 부끄러워했다. 분별 있는 여자들이 하는 행동처럼,
사랑하더라도 일부러 냉담한 체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미오가 은밀히 듣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해버렸으므로,
그녀의 솔직한 마음을 내보이게 된 것이다.
  줄리엣은 로미오를 '사랑스런 몬타규'라고 부르며 경박하게 사랑을 고백한 것은
밤의 어둠에 휩싸여 자기의 생각을 흘려버린 것이라고 변명했다. 또한, 자기의 행동은
뛰어나게 얌전하고 예의바르다고는 할 수 없으나, 겉으로만 얌전한 체하며 일부러
사랑하는 사람을 애태우게 만들고 초조하게 만드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진실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로미오는 그 말을 듣고 하늘에 사랑을 맹세하자고 했지만, 줄리엣은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고 신중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의 고백을 벌써 들었으니
벌써 서약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 때 줄리엣을 유모가 불렀다. 유모는 원래 그녀와 같은 방에
잠자는데, 날이 새기 전에 빨리 자라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줄리엣은 금방 돌아와서 또 로미오와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의 사랑이 정말
고결한 것이라면 두 사람의 결혼 날짜를 정해서 알려 달라면서, 또한 그때에는 자기
운명의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고 그를 자기 남편으로 여기고 이 세상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줄리엣은 몇 차례나 유모한테 불려갔다.
그러나 가서는 돌아오고, 다시 가서는 또 돌아와서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연인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음악은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의 대화가 될
테니까. 그렇지만 조금은 자기도 하고 쉬기도 해야 했기에 두 사람은 결국
아쉬워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두 사람이 헤어졌을 때에는 이미 먼동이 트고 있었는데, 흥분한 로미오는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돌아가지 않고 근처의 수도원에 있는 로렌스 신부를 만나러
갔다. 착하고 선량한 신부는, 젊은 로미오가 이른 새벽에 찾아온 것을 보고 분명히
상사병으로 인해 밤을 지새우고 온 것이라고 꿰뚫어 보았다. 잠시 신부는 로미오가
로잘린에 대한 사랑의 고민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고백을 듣고 줄리엣에
대한 새로운 정열적인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신부는 젊은 사람들이 마음 깊이 사랑하지 않고 외모만 보고 사랑에 빠진다며
충고를 해주었다. 하지만, 로미오는 로잘린은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 어떤 반응도
없었으나, 줄리엣은 자기와 진정으로 사랑을 주고받았다면서 결혼을 승낙해 줄 것을
부탁했다. 신부는 원래 카풀렛과 몬타규 양가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래서 줄리엣과
로미오, 젊고 순수한 이 사람들의 결합이 양쪽 집안이 화해하는 데 큰 디딤돌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두 사람을 도와 결혼시키기로 했다.
  로미오는 정말 행복했다. 줄리엣도 하인에게 그 소식을 듣고 로렌스 신부에게로
달려왔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마주잡고 신성한 결혼식을 치렀다. 착하고
선량한 신부는 두 사람 앞에 하나님의 자비가 있기를 기원하면서 젊은 몬타규와 젊은
카풀렛의 결합으로써 양가의 오랜 미움과 긴 불화를 없애주시도록 하나님에게
기원했다.
  식이 끝나자, 줄리엣은 집에 돌아온 뒤 밤이 되어 로미오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마치 축제 전날 밤 아이들이 안타깝게 축제를 고대하는 것처럼.
  한편, 로미오의 친구들인 벤볼리오와 머큐시오가 베로나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카풀렛 일가의 한패거리들이 만찬 때에 로미오에게 대들었던 티볼트를 앞세우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는 머큐시오를 향해 몬타규의 로미오 같은 인물과 어울린다며
심하게 나무랐다. 머큐시오도 성질이 괴팍했기 때문에 지지않고 날카로운 말로
쏘아댔다. 결국에는 벤볼리오가 말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판 싸움이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그곳에 마침 로미오가 지나가게 되었는데, 성격이 괴팍한 티볼트는 머큐시오와
싸우다가 이번엔 로미오한테 욕을 하면서 싸움을 걸어 왔다. 로미오는 티볼트가
줄리엣의 친척이기도 했고, 또한 그녀를 대단히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싸움은 피하려
했다. 로미오는 원래 현명하고, 신사답고, 점잖았기 때문에 한번도 싸움에 가담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젠 카풀렛이라는 가문은 예전과는 달리 사랑하는 아내의 가문이기
때문에, 증오하기는커녕 오히려 친근하게 생각하여 훌륭한 나의 카풀렛이라고
부드럽게 부르며 티볼트를 달래려고 했다.
  그렇지만 티볼트는 지옥을 증오하듯 몬타규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미워하고
있었기에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칼을 빼들었다. 그러자 머큐시오는 어째서
로미오가 티볼트와 사이좋게 지내려 하는지 모르고, 다만 비겁하게 굴복한다고
생각하여 티볼트에게 계속 싸움을 걸었다.
  결국, 티볼트와 머큐시오가 칼부림을 하며 싸우기까지 하여 로미오와 벤볼리오가
애쓴 보람도 없이 머큐시오는 쓰러져 죽고 말았다. 친구가 당한 것을 보고 로미오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티볼트를 향해 칼을 뽑아들었다. 이번에는 티볼트가
로미오의 단칼에 끝장이 났다.
  이 무시무시한 사건은 대낮에 베로나의 시가지에서 즉각 소문이 퍼져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그곳으로 벌떼같이 몰려들 문이 퍼져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그곳으로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카풀렛과 몬타규 양쪽 가문의 가장들도 부인을 동반하고
나타났다. 심지어 공작까지 도착하여 몬타규와 카풀렛 일가의 오랜 싸움으로 인해
언제나 마을의 평화가 깨진다며 이번에야말로 죄인으로 판명된 자는 극형에
처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로미오의 친구인 벤볼리오는 이 끔찍한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증인이었기에 공작으로부터 모든 사실들을 증언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는
사실대로 말하면서, 가능하면 로미오가 누명을 덮어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신중히
변호했다.
  카풀렛 부인은 자기 조카 티볼트를 잃고 비탄에 빠져, 공작에게 이 재판을 엄중히
다루어 줄 것을 부탁하면서, 벤볼리오의 증언이 편파적이라고 비난했다. 카풀렛 부인은
로미오가 자기 딸 줄리엣의 남편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자기 사위를 곤궁에
빠뜨리게 되었다. 로미오의 어머니 몬타규 부인은, 티볼트가 먼저 머큐시오를
죽였으니, 이미 죄를 저지른 티볼트를 죽인 것이므로 로미오는 무죄라고 항의했다.
공작은 부인들의 싸움에 동요하지 않고 주의 깊게 사실을 조사한 다음에, 결국
로미오를 베로나에게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소식을 들은 줄리엣에게 그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새색시가 된 지 겨우
한두 시간 지났는데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로미오와 영원히 이별하게 되다니^5,5,5^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엔 가까운 사촌오빠가 죽었다는 것을 슬퍼했지만, 곧
티볼트에게 죽음당할 뻔한 남편이 무사한 것을 한없이 기뻐했다. 동시에, 억울하게
추방되는 남편의 쓰라림을 생각하며 그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슬픔보다도 오히려 두려움이 앞섰다.
  로미오는 그 사건을 벌이고 나서 로렌스 신부가 있는 수도원으로 숨어 들어가
그곳에서 추방 사실을 전해 듣고는, 죽음보다도 훨씬 더 큰 고통에 휩싸였다. 그는
줄리엣이 없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있는
곳이라면 이 세상 어느 곳이든 천국이지만, 그렇지 않을 땐 모두가 지옥이었다. 착하고
선량한 신부는 그의 아픔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미쳐 버릴 만큼 괴로운 로미오는
아무런 말도 귀담아듣지 않고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슬퍼했다. 그곳으로
마침 사랑하는 줄리엣의 하인이 왔기에 그는 다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신부는
조용히 로미오를 타일렀다.
  "자네는 티볼트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젠 아예 자신까지도 죽어서 자네를 태양처럼
믿고 따르는 아내까지도 죽게 할 셈인가? 높고 고귀한 신분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괴로움을 만났을 때 훌륭하게 참고 견디어 나갈 만한 용기와 덕이 없다면 천한 사람과
뭐가 다르겠는가. 사형을 당하는 대신 추방 선고만으로 그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게. 그래도 자네가 사랑하는 줄리엣이 무사하고, 또한 티볼트와의 싸움에서도
자네가 죽지 않고 살았으며, 이미 줄리엣은 분명히 자네의 아내가 아닌가!"
  이처럼 신부는 여러 말로 그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나, 로미오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신부는 그에게 힘을 내게 하려고 여러 가지로 몹시 애를 썼다.
  마침내 로미오가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에, 신부는 그날 밤
줄리엣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은밀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 즉시 추방된 곳으로 떠나라고
권했다. 그리고는 덧붙여서, 작당한 기회를 보아 자기가 그들의 결혼을 다시 주선하여
양 가문이 화해하게 되면 공작도 로미오를 용서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로미오는
신부의 분별 있는 충고에 따라 그날 줄리엣과 함께 지내고 새벽에 혼자 만투아로 떠날
결심을 했다.
  그날 밤, 로미오는 전날 밤 사랑의 고백을 들었던 그 정원에서 그녀의 방으로 숨어
들어가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아쉬운 하룻밤을 지새웠다. 그것은 완전히 환희에
넘친 밤이었다. 그렇지만 머지않아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그 기쁨도 사라져 버렸다.
  정말 반갑지 않게도 너무나 빨리 먼동이 터 오기 시작하더니, 동쪽 하늘에 찌르는
듯한 태양빛이 이 연인들에게 작별 시간을 알려 주었다. 로미오는 무겁고 착잡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아내에게 편지 쓸 것을 약속하며 이별을 고하고 추방지인 만투아로
떠났다. 그는 떠나기 전에 창문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혼자 남은 그녀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외로이 땅에 서서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마치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로미오도 그런 불길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는 서둘러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날이 훤하게 밝아서 베로나 사람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분명히 사형에
처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불쌍한 이 연인들에게 몰아칠 비극을 예고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로미오가 떠나가고 나서 얼마 안되어, 카풀렛 경은 줄리엣에게 파리스 백작이라는
아주 젊고 멋진 청년과 결혼하라고 말했다.
  깜짝 놀란 줄리엣은, 자기는 너무 어린데다가 티볼트의 장례식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며 청혼을 거절했다. 물론 자기가 이미
결혼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인 카풀렛 경은
그녀의 변명에 귀기울이지 않고 다음 목요일에 파리스와 결혼하라고 명령했다.
  아버지는 이렇게 좋은 혼담을 딸이 무조건 거절하는 것은 아마도 수줍음 때문일
것이라고 오해했다. 어쩔 줄 몰라 안타까워하던 줄리엣은, 언제나 어려움을 의논하던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로렌스 신부는 한숨을 쉬며 깊이 생각한 뒤 줄리엣에게 그
결혼을 피하기 위해선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물론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이 살아 있으니 절대로 파리스와 결혼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어쩔 수 없이 신부는 그녀에게 결혼을 피할 하나의 어려운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집에 돌아가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할 것을 약속한 뒤, 결혼 전날 밤에 신부가
전해 주는 약병에 든 약을 마시라는 것이었다. 그 약을 마시면 42시간 동안 몸이
싸늘해져서 생명이 끊어진 듯이 되어 결혼식을 치르기 전에 죽은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그래서 그 나라의 관습대로 영구차에 실려 카풀렛 일가의 묘지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42시간만 지나면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그녀가 깨어나기 전에 로미오가 밤중에 묘지로 와서 그녀를 만투아로 데리고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줄리엣은 로미오에 대한 사랑을 방해하는 파리스와 결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 위험스런 모험까지도 해볼 결심을 하고 신부의 계획을
받아들였다.
  결혼식을 다음날로 앞둔 수요일 밤, 줄리엣은 약을 몽땅 마셔 버렸다. 줄리엣은 혹시
신부가 그녀를 로미오와 결혼시킨 것에 대해 비난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자기를
독살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도 해보았다. 또한, 얼마 전에 죽은 티볼트의 시체가
썩어가고 있는 무덤 속에서 덩그렇게 혼자 두 눈을 뜨고 있으면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로지 로미오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
약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셔 버리고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젊은 파리스가 콧노래를 부르며 신부를 깨우러 들어왔을 때,
그녀는 방에 쓰러진 차디찬 시체로 변해있었다. 온 집안에 큰소동이 일어났다. 젊은
파리스는 두 사람이 서로 손도 잡아 보기 전에 죽음이 새색시를 불러간 것에 대해
대단히 슬퍼했다.
  카풀렛 부부의 슬픔은 더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을 훌륭하게 짝지워
출가시키려 했는데, 잔인하게도 죽음이 앞장서 버린 것이다. 축하 잔치를 벌이기
위해서 준비한 모든 것들이 비참하게도 장례식의 준비물로 변해 버렸다. 결혼식에
사용할 맛있는 음식들은 장례식의 손님 대접 음식으로 바뀌고, 혼례식의 축하 노래는
쓸쓸한 장송곡으로 바뀌었으며, 신부가 걸어가는 길에 뿌리려던 꽃들은 이제 묘지로
옮겨가는 시신 위에 뿌려지게 되었다.
  나쁜 소식은 항상 좋은 소식보다도 빠르게 마련이다. 만투아에 있던 로미오가 있는
곳에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문이 가장 먼저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그전에 그는 이상한
꿈을 꾸기도 했다. 자기가 죽자 줄리엣이 와서 자기 입술에 키스를 해주어 다시
되살아나는 꿈이었다. 그러나 베로나에서 온 소식을 듣고 현실은 꿈과 정반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 신부의 심부름꾼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는 신부의 비밀스런 계획을
모르는 채 너무도 놀라, 곧 그날 밤에 말을 타고서 베로나의 무덤속에 있는 그녀에게
떠났다. 그와 함께 그는 어떤 약사에게 많은 돈을 주고 독약을 손에 넣었다. 무덤속에
들어가 줄리엣을 한번 만나보고는 그 독약을 마시고 자기도 그녀 곁에서 죽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로미오는 한밤중에 베로나에 도착해서 카풀렛 일가의 오래된 공동묘지로 갔다. 그가
횃불을 들고 삽과 렌치로 무덤 문을 막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 못된 몬타규가
감히!"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다름아닌 자기의 새색시 줄리엣의 무덤에 꽃을
들고 슬픔에 빠져 한밤중에 찾아온 파리스 백작이었다. 그는 물론 로미오가 줄리엣과
어떤 관계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원수 집안인 몬타규가 무덤을 파헤치러 온
것이라고 오해하여 화를 내며 덤벼들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발각되면 사형에
처해진다는 베로나의 법률로 위협하며 로미오를 체포하려 했다.
  로미오는 지난번처럼 끔찍한 싸움을 피하려 했지만, 두 사람은 결국 싸움판을
벌이게 되었고, 파리스는 성난 파도처럼 제 정신이 아닌 로미오의 단칼에 쓰러졌다.
로미오는 파리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불행하게 죽은 젊은 파리스를 무덤에
넣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덤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줄리엣이 곱게 누워 있었다. 죽었다고는
하지만, 어느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전과 똑같이 아리땁고 어여쁜 얼굴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생기에 찬 모습으로 신부에게서 받은 마취제를 먹고 잠들었을 때와
똑같이 누워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피투성이가 된 티볼트가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로미오는 그
시체에게 용서를 빌고서 줄리엣을 위해서 그를 사촌이라 부르며, 자기가 자살하여 그
대가를 치르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로미오는 사랑하는 줄리엣의 입술에
마지막 이별의 키스를 하고 나서 약사에게서 산 독약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것은
신부가 건네 준 마취제와는 다른 진짜 독약이었기 때문에, 효과는 순식간에 나타나서
그는 즉시 쓰러져버렸다.
  그곳으로 마침 신부가 곡괭이와 등불을 가지고 허둥지둥 나타났다. 신부는 만투아로
보낸 편지가 로미오에게 도착하지 않은 것을 알고는 서둘러 무덤으로 찾아온 것이다.
신부가 주위를 둘러보니 카풀렛 일가의 무덤 속은 이미 횃불이 훤하게 빛나고 있었고,
칼과 핏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으며, 로미오와 파리스가 이미 숨이 끊어져
땅바닥에 쓰러져 잇는 것을 보고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러한 사건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생각할 틈도 없는데, 마침 줄리엣이 마취약
효과가 다되어 깨어났다. 그녀는 곁에 신부가 있는 것을 보고 자기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또 로미오는 어떻게 되었는지 여러 가지 질문을 퍼부었다. 그때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이 그곳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신부는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줄리엣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얘기한 뒤, 서둘러
도망쳐 버렸다. 혼자남은 줄리엣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의 손에 약병이 쥐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그가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 것을 깨닫고 몇 방울이라도 남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아직 따스한 그의 입술에 마지막 키스를 했다.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기 때문에, 줄리엣은 얼른 거기 떨어져 있던 칼을 들어 자기 몸을
찔러 사랑하는 로미오를 따라 자살해 버렸다.
  그 뒤 그곳으로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파리스 백작과 함께 왔던 하인이
묘지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사람들에게 알렸던 것이다. 베로나가 온통 떠들썩해져서,
몬타규 경과 카풀렛 경을 비롯하여 공작도 함께 그곳에 모였다.
  신부는 잔뜩 긴장하여 부들부들 떨며 숨어 있던 묘지 뒤편에서 붙잡혀, 마침내
공작의 명령에 따라 젊은 두 남녀의 숨은 사랑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와 함께
로미오의 자살에 대한 모든 내용은 로미오의 하인이 갖고 온 유서를 통해 명백히
밝혀졌다.
  공작은 몬타규와 카풀렛의 대표자를 향해 그들의 양쪽 집안의 서로에 대한 증오심을
질책하며, 하늘에서 그들의 자식의 사랑을 통해 이와 같은 무서운 천벌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문의 가장들은 앞으로는 원수 관계를 버리고
자식들의 무덤에 지금까지 갖고 있던 서로에 대한 질투심과 증오심을 파묻어 버리기로
했다.
  젊은 카풀렛과 몬타규의 남녀가 결혼했듯 두 가문의 대표자들도 이제는 서로
형제라고 부르며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몬타규 경이 줄리엣의 모습을 새긴 순금
동상을 세우고 정조를 지킨 정숙한 그녀의 덕을 높이 기리고 싶다고 하자, 카풀렛
경도 로미오의 동상을 세워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이미 비극이 저질러졌지만, 두 가문은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고 대했다.
그 동안 그들의 적대 관계가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그렇게 자기 자식들이 희생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두 가문의 뿌리깊은 증오심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익스피어 이야기2
        로미오와 줄리엣
찰스 램 . 매리 램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
  루지용의 백작 버트램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최근에 작위와 영지를 
물려받았습니다. 프랑스 왕은 버트램의 아버지를 총애하였으므로,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 버트램을 빠리에 있는 궁전으로 데리고 오도록 했습니다. 죽은 
백작에 대한 우정을 생각하여 젊은 버트램에게 특별한 배려와 보호를 
베푸시려는 것이었지요.
  버트램은 홀로 된 백작 부인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라페라는 
프랑스 궁정의 늙은 궁신이 그를 왕에게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프랑스 왕은 
절대적인 군주였고, 궁전으로 오라는 초청은 왕의 엄한 명령과 같았으므로 
아무리 높은 위엄을 지닌 신하라 하더라도 어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잃어버린 슬픔이 아직도 생생한 백작 부인으로서는 사랑하는 
아들과 헤어지는 것이 남편을 두 번째로 장사지내는 것과도 같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아들을 감히 하루라도 더 붙잡아 둘 수 없어 당장 떠나도록 
하였습니다. 버트램을 데리러 온 라페는 백작 부인에게 남편을 잃은 것과 
아들과의 갑작스런 이별을 위로해 주려고 궁신들이 하는 상냥한 태도로, 
임금님은 대단히 온후한 군주여서 백작 부인에게는 남편 같고 버트램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 될 것이고 말했습니다. 훌륭한 왕이 버트램의 앞날을 도와 줄 
것이라는 뜻이었어요. 라페는 백작 부인에게 임금님은 의사들이 고칠 수 없다고 
하는 슬픈 병환에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임금님이 병환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몹시 슬퍼하며 헬레나(백작 부인의 시중을 들며 함께 있던)의 
아버지가 살아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면 임금님의 
병환을 고칠 수 있었으리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리고 백작 부인은 라페에게 
헬레나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유명한 의사 제라르드 나르봉의 
외딸이라는 것, 또 그가 죽을 때 딸을 백작부인에게 맡겼으므로 그후로 자기가 
데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리고 헬레나의 덕성스러운 성품과 뛰어난 
자질을 칭찬하며 훌륭한 아버지에게서 이런 미덕을 물려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백작 부인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헬레나는 슬픔에 잠겨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백작 부인은 아버지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것이었어요.
  이제 버트램이 어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했습니다. 백작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많은 축복을 하고 아들과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라페에게 아들을 잘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하며 "아들을 잘 이끌어 주십시오. 그는 궁정에 익숙하지 
못하니까요."하고 말했습니다.
  버트램은 헬레나에게 마지막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예의를 
차리는 말로 행복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마님을 잘 위로해 
드리시오. 그리고 어머니를 소중히 여겨 주시오."라고 짤막한 인사말을 
끝맺었습니다.
  헬레나는 오랫동안 버트램을 사랑해 왔으며, 슬픔에 잠겨 말없이 울었을 때 
그 눈물은 제라르 드 나르봉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헬레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였지만 지금은 더욱 깊은 사랑 때문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은 다 
잊어버리고 마음속에는 오직 버트램의 모습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버트램을 
이제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헬레나는 오랫동안 버트램을 사랑해 왔지만 그가 프랑스의 가장 오래 된 
가문의 후예인 루지용의 백작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평민 출신으로 그녀의 부모는 아무런 명성도 없었어요. 버트램의 조상은 모두 
귀족이었지요. 그러므로 높은 신분의 버트램을 주인으로, 사모하는 상전으로 
우러러보며 그의 하녀로서 살다 그의 충복으로 죽는 것밖에는 어떤 희망도 감히 
가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는 그의 높은 위엄과 자신의 비천한 신세가 
너무나 멀게 느껴져서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어느 빛나는 별을 
사랑하고 별과 결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꼭 같은 일이야. 버트램은 
그렇게 멀리 높은 곳에 있어."
  버트램이 가버리자 헬레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슴에는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희망이 없는 사랑이기는 했지만 항상 그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위안이었으니까요. 헬레나는 마치 마음의 판 위에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처럼 
그의 검은 눈과 둥근 이마 그리고 곱슬거리는 아름다운 머리를 바라보며 앉아 
있곤 하였습니다. 그 마음은 물론이고, 그 사랑스러운 얼굴 모습의 선 
하나하나까지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제라르 드 나르봉은 죽을 때 다른 아무런 재산도 남겨 주지 않았지만 
희귀하고 효력이 좋은 몇 가지 처방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약에 대한 깊은 
연구와 오랜 경험으로 거의 틀림이 없는 영약으로 그가 모아 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라페가 말한 임금님의 병 증세가 맞는 약이라고 적힌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임금님의 병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여태까지는 
그렇게나 겸손하고 절망에 차 있던 헬레나는, 자신이 빠리로 가서 임금님을 
치료해 보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마음속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헬레나가 이 
훌륭한 처방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임금님과 의사들이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헬레나가 병을 고쳐 드리겠다고 하여도 학식도 없는 
가련한 처녀를 믿어 줄 성싶지는 않았습니다. 치료를 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헬레나의 개대는, 생전에 가장 유명한 의사였던 아버지의 의술이 
보증되었던 것 이상으로 확고부동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헬레나는 이 
영약이, 하늘의 모든 행운의 별들에 의해 그녀의 운명을 루지용 백작의 
부인이라는 높은 지위에까지 이끌어 줄 수 있는 유산으로 점지된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버트램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백작 부인은 집사로부터 헬레나가 혼자 
말하는 것을 무심코 들었는데, 헬레나는 버트램을 사랑하고 있으며, 그를 따라서 
빠리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백작 부인은 집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헬레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헬레나에 
간해서 방금 들은 이야기는 백작 부인에게 옛날의 일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아마도 버트램의 아버지를 처음 사랑하게 되었던 시절을 말입니다. 백작 부인은 
이렇게 혼자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내가 젊었을 때의 일이지. 사랑은 젊음의 장미나무에 
있는 가시와도 같아. 젊은 시절에는 자연의 아이들인 우리는 이러한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는 법이야. 그때는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백작 부인이 이와 같이 자신의 젊은 날의 사랑의 실수를 생각하고 있을 때 
헬레나가 들어왔습니다. 백작 부인은 헬레나에게 말했습니다.
  "헬레나, 내가 너에게 어머니라는 것을 알겠지."
  헬레나는 대답하였습니다.
  "마님께서는 존경하옵는 마님이십니다."
  "너는 나의 딸이야."
  백작 부인은 다시 말했습니다.
  "말하지만, 내가 너의 어머니다. 내 말에 왜 놀라 눈빛이 변하는 거냐?"
  놀란 표정과 어지러운 생각으로 헬레나는 백작 부인이 자기의 사랑을 
눈치채지나 않았나 두려워하며 다시 대답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마님. 마님께서는 저의 어머니가 아니십니다. 루지용 백작께서 
저의 오라버니가 되실 수는 없습니다. 제가 마님의 따님일 수도 없고요."
  "그러나 헬레나야," 백작 부인이 말했습니다.
  "너는 나의 며느리가 될 수도 있겠지. 어머니니 딸이니 하는 말에 네가 그렇게 
놀라는 걸 보니 아마도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나 보구나. 헬레나야, 내 
아들을 사랑하고 있느냐?"
  "훌륭하신 마님, 용서하십시오."
  깜짝 놀란 헬레나가 대답하였습니다. 백작 부인은 같은 말을 다시 물었습니다.
  "내 아들을 사랑하느냐?"
  "마님께서는 그분을 사랑하지 않으시나요?"
  헬레나가 말했습니다. 백작 부인은 "그렇게 말을 피하지 말아라. 자, 자, 너의 
마음을 털어놓아 보아라. 네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드러났으니." 하고 
말했습니다.
  헬레나는 무릎을 꿇고 버트램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가지고 고귀하신 여주인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분의 차이를 잘 알고 있으며, 버트램은 헬레나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 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겸손하고 희망이 없는 사랑을 태양을 사랑하는 
가엾은 인디언에 비유했습니다. 태양은 그 숭배자를 내려다보지만 그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백작 부인은 헬레나에게 빠리에 
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헬레나는 라페가 임금님의 병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마음속에 계획했던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그것이 네가 빠리로 가고자 한 까닭이었구나."
  백작 부인이 말했습니다.
  "그러냐? 솔직히 말해 다오."
  헬레나는 정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드님이신 그분께서 제게 이런 생각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빠리며 약이며 임금님에 제 생각속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백작 부인은 이러한 모든 고백을 찬성이나 비난의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이 임금님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캐어물었습니다. 백작 부인은 그것이 제라르 드 나르봉이 가지고 있던 모든 
처방 중에서 그가 가장 귀중히 여기던 것이며, 그가 임종시에 딸에게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시각에 이 젊은 처녀에 관해 자신이 
하였던 엄숙한 약속을 생각하고, 이 처녀의 운명과 임금님의 생명이 그 계획에 
달려 있는 것 같아서, 헬레나에게 원하는 대로 떠나라는 허락을 내리고 
관대하게도 넉넉한 여비와 적당한 시종까지 딸려 주었습니다. (계획은 비록 
사랑을 하는 처녀의 어리석은 생각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백작 부인은 
임금님의 건강 회복과 제라르 드 나르봉의 딸의 행운의 시작을 알리는 보이지 
않는 섭리의 작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헬레나는 백작 부인의 축복과 
성공을 바란다는 친절한 기원을 들으며 빠리로 떠났습니다.
  헬레나는 빠리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늙은 궁신 라페의 도움으로 
임금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어려움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이 아름다운 젊은 의사가 권하는 약을 쉽게 써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헬레나는 자기가 제라르 드 나르봉의 딸이며 (임금님도 그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약이 아버지의 오랜 경험과 기술의 정수를 담고 
있는 귀중한 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이틀 동안에 임금님의 
건강을 완전하게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임금님은 드디어 약을 써보라고 승낙하였습니다. 만일 임금님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이틀 후에 헬레나는 목숨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치료에 성공을 하면, 임금님은 온 프랑스의 어떤 남자라도 (왕자들만 
제외하고는) 헬레나가 원하는 사람을 남편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임금님의 병환을 낫게 했을 때 헬레나가 받겠다고 한 상은 
남편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헬레나의 아버지가 처방한 약은 그녀가 믿었던 대로 곧 효능을 보였습니다. 
약속했던 이틀이 채 다 가기도 전에 임금님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고, 이 
아름다운 의사에게 약속한 대로 남편 감을 고를 수 있도록 궁정에 있는 모든 
젊은 귀족 청년들을 모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헬레나에게 이 젊은 귀족 
청년들을 둘러보고 남편을 고르라고 하였습니다. 헬레나가 선택을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젊은 귀족들 중에서 루지용 백작을 
보았으니까요. 헬레나가 버트램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이분입니다. 제가 감히 당신을 선택한다고 말씀드리지 않겠어요. 저를 당신께 
드리고 당신의 그늘에서 살면서 늘 섬기겠어요."
  "그렇다면," 하고 임금이 명했습니다.
  "젊은 버트램이여, 헬레나와 결혼하라. 헬레나는 그대의 아내이다."
  버트램은 서슴지 않고 임금님이 하사하신 헬레나라는 선물이 싫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의사의 딸이며 그의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자라 
지금은 그의 어머니에 얹혀 살고 있는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헬레나는 버트램의 거절과 경멸의 말을 듣고 임금님에게 말했습니다.
  "전하께서 건강하시니 저는 기쁘옵니다. 나머지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주십시오."
  그러나 임금님은 자신의 명령이 그렇게 무시되도록 하지는 않았습니다. 
귀족들의 결혼을 정해 주는 것은 프랑스 임금의 특권 중 하나였으니까요. 바로 
그날 버트램은 헬레나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버트램에게는 억지로 한 불편한 
결혼이었고, 가련한 헬레나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는 결혼이었습니다. 그 고귀한 
남편을 얻기 위하여 목숨까지 걸었지만 헬레나가 얻은 것은 화려한 껍데기일 
뿐, 남편의 사랑만은 프랑스 임금의 권한으로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혼을 하자마자 버트램은 헬레나에게, 임금님께 말씀드려 궁정을 떠나도록 
허락을 받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헬레나가 임금님의 허락을 받아 오자, 
버트램은 이 갑작스런 결혼에 대하여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 일로 
마음이 몹시 불편하니 자기가 어떤 길을 가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헬레나는 버트램이 떠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몹시 
슬펐습니다. 그는 헬레나에게 집으로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쌀쌀한 명령을 
듣고 헬레나는 "제가 당신의 가장 충실한 하인이라는 것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의 운명이 이 커다란 행운과 걸맞지 않게 저에게 지워 준 사막과도 
같은 삶을 충실히 이어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헬레나의 이와 
같은 겸손한 말도 오만한 버트램을 감동시켜 착한 아내를 가엾이 여기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친절한 인사말 한마디 없이 떠나 버렸습니다.
  헬레나는 백작 부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헬레나는 여행의 목적을 이루어 
임금님의 목숨을 구하고 마음속에서 그리던 루지용 백작과 결혼을 하였으나 
버림받은 아내가 되어 시어머니에게로 돌아온 것입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헬레나는 버트램에게서 온 편지를 받았는데, 그것은 가슴을 찢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마음 착한 백작 부인은 헬레나를, 아들이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고 높은 
신분의 귀부인인 것처럼 반겨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결혼한 그날로 신부를 
혼자 보낸 버트램의 불친절을 친절한 말로 위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중한 
환영도 헬레나의 슬픈 마음을 즐겁게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헬레나는 "마님, 
그분은 가셨습니다. 영원히 가셨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버트램의 
편지에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읽었습니다.
  "그대가 내 손가락에 낀 반지를 갖게 되었을 때, 그때에는 나를 남편이라 
부르시오. 그러나 그때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오."
  "무서운 선고예요!"하고 헬레나가 말했습니다. 백작 부인은 헬레나를 달래며, 
이제 버트램이 가버렸으니 헬레나가 자기의 자식이며 헬레나는 버트램과 같은 
무례한 청년 스무 명이 시중을 들어야 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훌륭한 시어머니의 친절한 위로와 칭찬의 말도 며느리의 슬픔을 달래 
주지는 못하였습니다.
  헬레나는 아직도 편지에 눈을 둔 채 슬픔과 고통에 가득 차서 외쳤습니다.
  "내게서 아내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프랑스에 머물지 않겠소."
  백작 부인은 편지 속에 그런 말이 씌어져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 마님."이라고밖에 헬레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헬레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헬레나는 자기가 떠난 후에 백작 
부인에게 전해지도록 갑작스럽게 떠나가는 까닭을 설명한 편지를 남겨 
두었습니다. 편지의 사연은, 버트램을 집과 고국으로부터 쫓아낸 데 대하여 몹시 
마음 아프게 생각하여, 그 잘못을 갚기 위하여 성 자끄 르 그랑을 모신 
사원으로 순례를 떠난다는 것이며, 그렇게 싫어하던 아내가 그의 집을 아주 
떠나갔다는 것을 아들에게 알려 달라고 백작 부인에게 부탁하는 말로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버트램은 빠리를 떠나 플로렌스로 가 플로렌스 공작의 군대에 들어가 장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많은 용감한 행동으로 공을 세우고 돌아왔을 때, 
헬레나가 이제는 그를 성가시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담은 
어머니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헬레나는 순례자의 옷을 입고 플로렌스에 도착하였습니다.
  플로렌스는, 순례자들이 성 쟈끄 르 그랑의 사원으로 가는 도중에 지나가는 
도시였습니다. 헬레나가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어느 자비심 많은 과부가 살고 
있어 성인의 사원으로 가는 여자 순례자들을 맞아들여 숙소를 제공하고 친절한 
대접을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헬레나도 이 착한 부인을 찾아갔습니다. 
과부는 헬레나를 공손히 맞아들이고 그 유명한 도시에서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구경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공작의 군대가 보고 
싶다면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곳에선 당신의 나라 사람을 볼 수 있을 거예요."하고 과부가 말했습니다. 
"이름은 루지용 백작이에요. 공작의 전쟁에서 공을 세웠답니다."
  헬레나는 버트램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에 당장 보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헬레나는 안주인을 따라갔습니다. 다시 한 번 사랑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것은 슬프디슬픈 즐거움이었습니다.
  "잘생긴 남자이지요?" 하고 과부가 물었습니다.
  "마음에 듭니다."라고 헬레나는 사실대로 대답했습니다. 말이 많은 과부는 
걸어오는 동안 내내 버트램의 이야기만 했습니다. 버트램의 결혼 이야기며 
가엾은 아내를 버리고 아내와 함께 살지 않으려고 공작의 군대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신의 불행에 관한 이야기를 헬레나는 참을 성 있게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만으로 버트램에 관한 이야기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의 한마디 
한마디는 헬레나의 가슴을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버트램이 바로 과부의 
딸을 사랑한다는 것이었으니까요.
  임금님이 억지로 시킨 결혼을 싫어하기는 했지만, 버트램에게 사랑의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어서, 군대와 함께 플로렌스에 배치되고부터 그는 이 
과부의 딸인 아름다운 다이아나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밥마다 
다이아나의 창 밑에 와서 온갖 종류의 음악과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노래로써 사랑을 애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버트램의 간청은, 밤늦게 식구들이 
자러 간 뒤에 남몰래 다이아나를 방문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다이아나는 그가 결혼을 한 남자라는 것을 알고 이런 온당하지 못한 청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다이아나는 지금은 몰락하였지만 훌륭한 
가문인 카퓰레트라는 귀족 집안의 자손인 어머니로부터 분별 있는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마음 착한 부인은 이 모든 것을 헬레나에게 이야기하며 자기 딸의 신중한 
처신을 칭찬하고 그것은 모두 자기의 훌륭한 교육과 좋은 충고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버트램은 내일 아침 일찍 플로렌스를 떠날 것이기 때 오늘 
밤에는 다이아나를 만나려고 더욱 추근댄다는 것이었습니다.
  버트램이 과부의 딸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슬프기는 하였지만, 그 이야기는 
헬레나에게 한눈 파는 남편을 되찾기 위한 한 가지 계획을 세우게 하였습니다. 
(지난번에 실패했다고 낙심하지는 않았습니다.) 헬레나는 과부에게 자기가 
버트램의 버림 받은 아내 헬레나라고 말하고 과부와 딸에게, 버트램의 방문을 
허락하고 자기를 다이아나인 줄 알도록 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남편과 그렇게 
남몰래 만나려고 하는 것은 남편의 반지를 얻기 위한 것이며, 그것을 갖게 되면 
버트램이 그녀를 자기의 아내로 인정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과부와 과부의 딸은 헬레나의 일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버림받은 불행한 아내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서, 또 한편으로는 헬레나가 돈이 
든 지갑을 주며 약속한 보수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중으로 헬레나는 자기가 
죽었다는 소식이 버트램에게 전해지도록 하였습니다. 버트램이 아내가 죽었으니 
자유롭게 다시 결혼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면 다이아나인 줄 알고 자기에게 
구혼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지와 결혼 약속까지 
얻어낸다면 앞으로 일이 잘되라고 믿었습니다.
  저녁때 어두워진 뒤에 버트램은 다이아나의 방으로 안내되었고 헬레나가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그곳에 있었습니다. 헬레나는 다정한 칭찬의 말과 사랑의 
속삭임이 모두 다이아나를 향한 것인 줄 알았지만, 그래도 그녀에게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버트램은 이 이야기 상대를 썩 좋아하게 되어서 그녀의 남편이 
되어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엄숙히 맹세를 하였습니다. 헬레나는 자기의 
이야기가 그를 그렇게 즐겁게 한 것을 알면, 버트램도 경멸했던 아내 헬레나를 
정말로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버트램은 헬레나가 얼마나 현명한 아가씨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헬레나에게 그렇게 무관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날마다 보며 지냈으므로 헬레나의 아름다움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늘 보는 얼굴에서는 처음 볼 때 알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추함을 느낄 
수 없는 법이니까요. 또 헬레나가 똑똑하다는 것을 버트램은 알 수가 없었는데, 
그것은 헬레나가 버트램을 사랑하면서 몹시 존경하였기 때문에 그가 있는 
곳에서는 늘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제 헬레나의 장래의 
운명과 이 사랑의 계획에 좋은 결말이 오는 것은 모두 다 오늘 밤 버트램을 
만난 자리에서 좋은 인상을 주는 데에 달려 있는 것 같았으므로, 헬레나는 있는 
지혜를 다하여 그를 즐겁게 해주려고 하였습니다. 헬레나의 명랑한 대화의 
아름다움과 상냥한 태도에 매혹되어 버트램은 꼭 자기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했습니다. 헬레나는 사랑의 표시로 버트램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에게 그렇게도 소중한 반지를 받고 나서 헬레나는 그 대신 
임금님에게 선물로 받았던 또 하나의 반지를 그에게 주었습니다. 아침이 밝아 
오기 전에 헬레나는 버트램을 보냈습니다. 버트램은 곧 어머니의 집을 향해 
떠났습니다.
  헬레나는 과부와 다이아나를 설득하여 같이 빠리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헬레나의 계획을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빠리에 도착하여 보니 마침 임금님은 루지용 백작 부인을 방문하러 갔다는 
것입니다. 헬레나는 급히 임금님을 뒤쫓아갔습니다.
  임금님은 아주 건강하였습니다. 그리고 임금님은 자신의 건강을 회복시켜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아직도 마음속에 생생하여 루지용 백작 부인을 보자마자 
헬레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값진 보석을 버트램의 어리석음 때문에 
잃어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작 부인이 헬레나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을 보고는 "훌륭하신 부인,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잊어버렸소."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마음 착한 늙은 라페는 
헬레나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가볍게 지나쳐 버릴 수가 없어서 "이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젊은  백작께서는 임금님과 어머님과 부인께 큰 잘못을 
저지르셨습니다. 그러나 백작님 자신에게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르셨습니다. 
아름다움이 온 세상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고, 말씀은 모든 귀를 기울이게 
하였으며, 그 깊은 완전함에 모든 사람들이 시중을 들어 드리고 싶어했던 
부인을 잃어버리셨으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은 "잃어버린 것을 
칭찬하면 기억을 더욱 소중하게 만드는 법. 자, 그를 이리 부르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버트램이 임금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버트램 자신이 헬레나에게 한 
잘못에 대하여 몹시 후회하는 것을 보고, 임금님은 죽은 버트램의 아버지와 
훌륭한 어머니를 생각하여 그를 용서해 주고 다시 총애하였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의 다정하던 안색이 곧 달라졌습니다. 임금님이 헬레나에게 준 바로 그 
반지를 버트램이 끼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임금님은 헬레나가, 하늘의 
모든 성인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면서 커다란 재앙이 몸에 닥쳐 반지를 
임금님께 되돌려보내는 경우 외에는 절대 손에서 반지를 빼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어떻게 하여 그 반지를 갖게 되었느냐고 임금님이 
묻자, 버트램은 어느 귀부인이 창문에서 던져 주었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며 
결혼한 날 이후로 헬레나를 본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임금님은 버트램이 
아내를 싫어한 것을 알므로 그가 헬레나를 죽인 것이나 아닌가 의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근위병들에게 버트램을 체포하라고 명령하며 " 무서운 생각이 나를 
사로잡는구나.  헬레나가 목숨을 그릇되게 잃은 것이 아닌지 두렵다."하고 
말했습니다. 이때 다이아나와 다이아나의 어머니가 들어와 임금님께 버트램이 
다이아나와 결혼할 것을 엄숙히 맹세하였으니 임금님의 힘으로 그들을 결혼시켜 
줄 것을 간청하는 탄원서를 냈습니다. 버트램은 임금님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그런 약속을 한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이아나는 반지를 (헬레나가 
그에게 맡긴 것이지요) 내보이며 자기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버트램이 끼고 있는 반지는 그가 결혼을 하겠다고 맹세했을 때 이 반지와 바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임금님은 다이아나도 역시 체포하라고 
하였습니다. 반지에 대한 이야기가 버트램과 다르므로 임금님의 의심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임금님은 헬레나의 이 반지를 어떻게 하여 얻게 되었는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두 사람을 사형에 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이아나는 
그 반지를 산 보석상을 불러올 수 있게 어머니를 보내 달라고 하여, 허락을 
받고 과부는 나가서 곧 헬레나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마음 착한 백작 부인은 슬픔에 잠겨 아들이 위험하게 된 것을 말없이 
바라보며 그가 아내를 죽였다는 의심이 사실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고 있다가 
사랑하는 헬레나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또한 임금님은 기쁜 나머지 그녀가 헬레나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서 "내가 
보는 것이 진실로 버트램의 아내란 말인가?" 하고 말했습니다. 헬레나는 아직 
아내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고 느끼고 있었으므로 "아니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보시는 것은 아내의 그림자일 뿐, 이름만 그러하지 실체는 그렇지 
않사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버트램은 "이름과 실체 둘 다요, 둘 
다! 오, 용서하시오." 하고 외쳤습니다. 헬레나는 "제가 이 아름다운 처녀를 
대신했을 때 당신께서는 정말 친절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편지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한때는 그렇게도 슬픔에 잠겨 읽었던 편지를 즐거운 
목소리로 읽었습니다.
  "나의 손가락에 낀 이 반지를 갖게 되거든...  그렇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반지를 주신 것은 저였습니다. 이제 두 번째로 당신을 얻었으니 제 것이 되어 
주시겠어요?" 
  버트램이 말했습니다.
  "그날 밤 나와 이야기한 것이 당신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과부와 다이아나가 그 사실을 증명하려고 
헬레나와 함께 왔으니까요. 임금님은 자신이 그렇게나 소중하게 여기는 이 
귀부인을 친절하게 도와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여 다이아나에게도 귀족 남편을 
정해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헬레나의 일로 암시를 얻은 임금님은 아름다운 
귀부인이 훌륭한 일을 했을 때 고귀한 남편 감을 정해 주는 것이 임금님이 
내리는 적당한 보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헬레나는 결국 아버지의 유산이 정말로 행운의 별들에 의해 점지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헬레나는 사랑하는 버트램의 사랑 받는 
아내이고 고귀한 부인의 며느리이자 루지용의 백작 부인이 되었으니까요.


      말괄량이 길들이기

  말괄량이 캐서린은 파두아의 돈 많은 신사 뱁티스타의 맏딸이었습니다. 
성질은 불같이 사납고 광장한 잔소리꾼이어서 파두아에서는 '말괄량이 
캐서린'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였습니다. 이 아가씨와 결혼을 하려고 하는 
신사를 찾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거의 불가능한 것같이 보였으므로, 얌전한 
동생 비앵카에게 들어오는 많은 훌륭한 결혼 신청을 맏딸을 결혼시킨 후에 라야 
된다고 미루는 것에 대하여 뱁티스타를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페트루치오라는 신사가 아내를 구하려는 목적으로 일부러 파두아에 
왔다가, 캐서린이 부자이고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는 성질이 사납다는 데는 
상관하지 않고 이 유명한 아가씨와 결혼하여 순하고 말을 잘 듣는 아내로 길을 
들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내기에 페트루치오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캐서린 못지 않게 성격도 거센데다가 재치도 
있고 명랑한 익살꾼이며 또한 현명하고 사물을 잘 판단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몹시 화가가 난 체할 줄도 알았으며, 본래 걱정이 없고 
편안한 성품이었으므로 자기가 거짓으로 화를 낸 데 대하여 당장 유쾌하게 웃을 
줄도 알았습니다. 그가 나중에 캐서린의 남편이 되는데, 그때 한 난폭한 행동은 
장난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더 적절히 말한다면 그는 뛰어난 분별력으로 
캐서린의 거친 태도를 누르기 위해서는 캐서린과 같은 식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말괄량이 캐서린에게 청혼을 하러 가서는 우선 아버지인 
뱁티스타에게 얌전한 따님 캐서린에게 구혼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일부러 능글맞게도 캐서린이 얌전하고 싹싹하다는 소문을 
듣고 베로나에서 일부러 구혼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시집보내고 싶기는 하였으나, 사실은 캐서린이 그렇지가 못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캐서린이 얌전하다는 것이 어떤 식인지는 금방 
드러났으니까요. 음악 선생이 달려 들어와, 기타를 연주하는데 흠을 잡는다고 
캐서린이 기타로 그의 머리를 부서져라 때렸다고 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그 말을 듣고는 "용감한 아가씨로군, 더욱더 마음에 드는데요. 
함께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나서 아버지에게 빨리 허락을 하여 
달라고 서두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뱁티스타씨. 저는 바쁩니다. 구혼을 하려고 매일 올 수는 없어요. 제 부친을 
아시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토지와 재산을 모두 물려주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해주십시오. 제가 따님의 사랑을 얻는다면 지참금은 얼마나 
주시려는지요."
  뱁티스타는 구혼을 하는 사람치고는 좀 엉뚱하다고 생각했으나 캐서린을 
결혼시키는 것이 기뻐서, 지참금으로 2만 크라운을 주고, 자기가 죽은 후에는 
토지의 절반을 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 이상한 혼담은 빨리 
결정이 되었습니다. 뱁티스타는 말괄량이 딸에게 그 소식을 전해 주고 
페트루치오의 구혼을 들어보라고 딸을 들여보냈습니다.
  그 동안 페트루치오는 어떤 식으로 구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오면 활기 있게 말을 해야지. 나에게 소리를 치면 나이팅게일처럼 
아름답게 말을 한다고 할 테야. 얼굴을 찡그리면 아침 이슬에 씻긴 장미꽃처럼 
해맑게 보인다고 하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어쩌면 그렇게 말을 잘하느냐고 
칭찬을 하고, 나가라고 하면 일주일이나 함께 있어 달라고 말한 것처럼 
고맙다고 해야지.'
  마침 캐서린이 당당하게 들어왔습니다. 페트루치오가  먼저 말을 하였습니다.
  "안녕하시오 케이트. 당신 이름이 케이트라지요?"
  캐서린은 이런 멋없는 인사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경멸하듯이 "제게 말을 
거는 사람은 누구나 캐서린이라고 불러요."라고 말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군요."하고 페트루치오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못난이 케이트, 건강한 케이트, 또 때로는 말괄량이 케이트라고 
불리는 걸요. 그렇지만 케이트,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어여쁘군요. 당신이 
상냥하다는 소문을 듣고 아내가 되어 달라고 왔습니다."
  구혼의 장면치고는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캐서린은 화를 내고 큰소리로 욕을 
하여 말괄량이라는 이름을 들을 만하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 주는데, 
페트루치오는 아름답고 공손한 말씨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아버지가 
오는 소리를 듣고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이야기를 끝내려고) "사랑스러운 
캐서린,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둡시다. 당신의 아버님께서 당신을 내 
아내로 허락하셨고 당신의 지참금도 결정하셨으니까요. 당신이 좋든 싫든 나는 
당신과 결혼하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뱁티스타가 들어오자 페트루치오는 캐서린이 자기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으며 
다음 일요일에 결혼을 하자고 약속했다고 말했습니다. 캐서린은 당치도 않은 
말이라고 펄펄 뛰면서, 오는 일요일에 페트루치오가 목매달아 죽는 꼴이나 
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아버지에게 페트루치오와 같은 불한당에게 결혼을 
시키려 한다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아버지에게 캐서린의 말에 
신경 쓰시지 말라고 하면서, 아버지 앞에서는 내키지 않는 척 하기로 했으나 
자기들끼리만 있을 때에는 아주 사랑스럽고 정답게 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캐서린에게 "손을 주시오, 케이트. 나는 베니스로 가서 결혼식에 당신이 입을 
좋은 옷을 사겠소. 잔치를 준비하십시오, 아버님. 손님도 청하시고요. 나의 
캐서린이 훌륭하게 보이도록 반지며 좋은 옷이며 모두 가져오겠어요. 자, 
케이트, 키스해 줘요. 일요일에는 결혼을 하게 될 테니까." 라고 말하였습니다.
  일요일이 되자 결혼식의 손님들은 모두 모였는데 페트루치오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캐서린은 자기를 놀림감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속이 상해 
울었습니다. 결국 한참 뒤에 그가 오기는 했지만 케서린에게 약속했던 신부를 
위한 예물은커녕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며, 자기 자신도 신랑답게 차려 입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 중대한 일을 장난으로 생각하는 듯 이상한 차림을 하였고 
하인들이나 그들이 타고 온 말마저도 천하고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옷을 갈아입으라고 아무리 권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와 
결혼을 하는 것이지 자기의 옷과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다투어 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식을 올리러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서도 마찬가지여서 목사가 그에게 캐서린을 아내로 
맞이하겠느냐고 묻자, 물론 그러겠다고 큰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모두 놀라고 
목사는 그만 성경책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목사가 그것을 집으려고 몸을 
굽히자 이 미치광이 같은 신랑이 한 대 때리는 바람에 목사는 그만 넘어져 
버렸습니다. 결혼식을 올리는 동안 페트루치오는 줄곧 발을 구르고 욕을 하여 
성격이 거세다는 캐서린조차도 무서워 벌벌 떨었습니다. 식이 끝나자 교회에서 
나가기도 전에 술을 청해 모두의 건강을 빈다고 외치면서 마시고, 잔에 남은 
술은 교회 머슴의 얼굴에 끼얹어 버렸습니다. 그 이상한 행동에 대해서 교회 
머슴의 수염이 성글어서 술찌꺼기라도 끼얹어 주어야겠더라고 이유를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미치광이짓 같은 결혼식은 세상에 다시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페트루치오는 말괄량이 아내를 길들이기 위해 짜놓은 계획을 
더 잘 이루기 위해 이런 터무니없는 행동을 계속하였습니다.
  뱁티스타는 호화로운 결혼 잔치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돌아오자마자 페트루치오는 캐서린을 붙잡고, 아내를 데리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장인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항의하고, 캐서린이 화를 
내며 야단을 하여도 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남편에게는 
아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캐서린을 서두르게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대담하게 제 마음대로 하므로 아무도 감히 그를 멈추게 
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일부러 골라 온 빼빼 마른 가냘픈 말에 아내를 태우고 자신과 
하인들도 마차가지로 형편없는 말에 탔습니다. 그리고는 울퉁불퉁하고 
꾸불꾸불한 길로 여행을 하였는데, 캐서린을 태우고 간신히 기어가고 있던 말이 
비틀거리기라도 하면 페트루치오는 마치 이 세상에서 제일 성급한 사람인 
것처럼 고함을 지르며 이 가련한 말에게 욕을 했습니다.
  지루한 여행 끝에 드디어 페트루치오의 집에 도착하였는데, 가는 동안 
캐서린은 페트루치오가 화를 내며 고함치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캐서린을 친절하게 집으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는 음식도 주지 않고 쉬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었습니다. 식탁이 
준비되고 곧 저녁 식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페트루치오는 음식마다 트집을 
잡아 고기를 마루에 집어던지고 하인들에게 치우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이 캐서린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잘 요리된 음식이 아니고는 
그녀에게 먹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캐서린은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지쳐서 
쉬려고 하자 , 그는 침대를 가지고 트집을 잡아 베개며 홑이불을 방안에 마구 
집어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캐서린은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자에서 
간신히 잠이 들자마자 곧 페트루치오가 아내의 침대 준비를 잘못했다고 
하인들에게 호통치는 소리에 그만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다음날도 페트루치오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캐서린에게는 친절하게 말을 
하면서도, 식사를 하려고 하면 가져오는 음식마다 흠을 잡아 아침 식사도 어제 
저녁과 마찬가지로 마루에 던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오만한 캐서린이 
이제는 하인들에게 음식을 조금만 몰래 갖다 달라고 사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미리 페트루치오의 말을 듣고 있는 터라, 주인님 모르게는 
감히 아무것도 드릴 수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아, 그는 나를 굶겨 죽이려고 나와 결혼을 했단 말인가? 친정집 문간에 온 
거지에게도 음식을 주곤 했는데, 아쉬운 것이라곤 없었던 내가 먹지 못해 
허기지고 야단치는 소리 때문에 잠도 자지 못해 현기증이 나다니, 게다가 기가 
막히는 것은 이게 모두 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나, 내가 잠을 자거나 
음식을 먹으면 당장 죽기라도 할 것 같이 구는군."
  이때 페트루치오가 들어오는 바람에 캐서린은 말을 멈추었습니다. 그는 
캐서린이 정말 굶어 죽도록 할 생각은 아니었던지 고기를 조금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지내고 있소. 사랑스런 케이트? 내가 얼마나 
부지런한가 좀 봐요. 당신이 먹을 고기를 직접 요리를 했소. 이런 친절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쯤은 들을 만하지. 아니, 아무 말도 않는 거요? 그렇다면 이 
고기가 싫은 모양이군, 내가 한 수고는 모두 헛일이었군." 하면서 하인에게 
접시를 내어가라고 하였습니다.
  캐서린은 속으로 화가 끓어올랐지만, 너무나 배가 고파 자존심을 꺾고 
말했습니다.
  "제발 그대로 두셔요."
  그러나 페트루치오는 이 정도로 그칠 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선심에도 감사를 하는 법이오. 당신이 고기를 먹겠다면 나도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되겠소." 하였습니다.
  캐서린은 내키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그제야 그것이나마 먹도록 허락을 하고는  "그것이 당신의 
부드러운 마음씨에 도움이 되길 바라오. 케이트, 천천히 먹어요. 그러고는 당신 
아버님 댁으로 돌아갑시다. 가서 최고로 흥겹게 마시고 놉시다. 비단옷과 모자와 
금반지, 목도리며 스카프, 부채 등으로 차리고 옷도 두 벌씩 가지고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정말로 캐서린에게 그런 화려한 물건들을 줄 
생각이었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그는 재단사와 잡화상을 불러들였습니다.
  재단사가 주문했던 옷을 가지고 오자 페트루치오는 캐서린이 아직 허기를 
절반도 채우기 전에 접시를 하인에게 내어주며 "아니, 그만 먹으려고?" 하고 
말했습니다.
  잡화상은 모자를 내놓으며 "나으리께서 주문하신 모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페트루치오는 또다시 마구 화를 내며 모자가 죽사발로 찍어낸 것 
같다느니 조개 껍데기나 호도 껍데기만밖에 하지 않다느니 하며 가져가서 더 
크게 만들어 오라고 하였습니다. 캐서린이 "저는 이걸로 하겠어요. 점잖은 
부인들은 모두 이런 모자를 써요."라고 말하자 "당신이 점잖아지거든 그때 
하시오. 아직은 안 되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캐서린은 고기를 먹어서 다소 기운을 되찾았으므로 "보셔요, 저도 말을 좀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저는 아이가 아니에요. 아기가 아니란 말예요. 당신보다 
나은 사람들도 내 말을 참고 들었어요. 못 듣겠다면 귀라도 막지 그래요. "라고 
말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다루기 위해서 마주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래 당신 말이 옳아요. 이건 정말 천한 모자요. 당신이 그걸 싫어하니 난 
당신을 사랑해."하고 대답했습니다.
  캐서린이 말했습니다.
  "저를 사랑하건 말건, 저는 이 모자가 좋아요. 이 모자가 아니면 갖지 
않겠어요."
  "옷을 보고 싶단 말이지."하고 페트루치오는 그녀의 말을 잘못 들은 
척하였습니다. 재단사가 앞으로 나서며 캐서린을 위하여 만든 훌륭한 옷을 보여 
주었습니다. 캐서린에게 모자도 옷도 주지 않을 작정인 페트루치오는 옷에서도 
똑같이 트집을 잡았습니다.
  "아이구, 맙소사."하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 물건이 도대체 뭐야! 아니, 이걸 소매라고 할 참인가? 반쪽짜리 대포를 
사과 파이 자르듯이 이리저리 베어낸 꼴이군 그래."
  재단사가 말했습니다.
  "요즈음 유행에 따라 만들라고 하셨쟎습니까?"
  그러자 캐서린은 이보다 더 멋지게 만든 옷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페트루치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 물건값을 치러 
주고 그가 그들에게 한 이상스런 행동에 대하여 해명을 해주도록 몰래 
일러두고는, 몹시 심한 말과 거친 행동으로 재단사와 잡화상을 쫓아내어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캐서린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자, 이리 와요, 나의 케이트. 입고 있는 이 초라한 옷을 입은 채로라도 아버님 
댁으로 갑시다."
  그러고는 말을 준비하라고 이르며, 지금 일곱 시밖에 안 되었으니 
점심때까지는 뱁티스타의 집에 도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페트루치오가 이 말을 
했을 때는 이른 아침이 아니라 한낮이었습니다.
  그래서 캐서린은 남편의 격렬한 행동에 겁을 먹고 조용한 말로 "감히 
말씀드립니다만, 지금은 두시예요.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저녁때가 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페트루치오는 캐서린이 완전히 복종을 하고, 
그가 하는 말이면 무엇이든 옳다고 인정하게 만들어 가지고 장인의 집으로 갈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자기가 태양의 주인이고 시간조차 마음대로 명령할 
수 있는 것처럼 자기가 원하는 시간이 되어야만 $떠나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당신은 무엇이든 반대를 한단 말이야. 난 오늘 가지 
않겠어. 내가 말하는 시각이 바로 그 시각이 되어야만 가겠단 말야."
  캐서린은 또 하루 동안 새로 배운 복종을 연습해야 되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캐서린이 반대라는 말이 있다는 것을 감히 기억하려 하지도 않을 만큼 완전히 
복종을 해야만 장인의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길을 떠나 장인 집으로 
가다가 페트루치오가 대낮에 달이 밝게 빛난다고 말하는 것을 캐서린이 그것은 
달이 아니라 해라고 말했습니다가 되돌아올 뻔했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아들에게 맹세하고 말하지만, 그건 바로 난데, 저건 달이어야 
해. 아니면 별이든 뭐든 내가 말하는 대로라야 한단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장인 
댁엔 가지 않겠어."
  그리고 그는 돌아가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괄량이 캐서린아 
아니라 순종하는 아내가 된 캐서린이 말했습니다.
  "벌써 여기까지 왔으니 제발 계속 가기로 해요. 저것은 태양이건 달이건 
당신이 말하시는 대로예요. 당신이 이제부터 골풀 양초라고 부르시겠다면 
맹세코 저에게도 그건 골풀 양초예요."
  그는 그것을 증명하려고 다시 "저건 달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에, 달이에요." 하고 캐서린이 대답했습니다.
  "당신 거짓말을 하는군. 저건 신성한 태양이야."
  페트루치오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건 신성한 태양이지요."하고 캐서린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아니라고 하시면 저건 태양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당신이 이름 
붙이시는 것이 바로 그것이에요. 캐서린에게는 항상 그럴 것입니다."
  그러자 페트루치오는 그냥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복종하는 태도가 
계속될 지 시험해 보려고 페트루치오는 길에서 만난 늙은 신사에게 마치 젊은 
여자에게 하듯이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셔요. 점잖은 아가씨."
  그러고는 뺨은 어쩌면 저렇게 불고 살빛은 어쩌면 저렇게 희냐고 칭찬을 하고 
눈은 두 개의 반짝이는 별과도 같다고 말하며 캐서린에게, 저렇게 아름다운 
아가씨를 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그 늙은이를 향하여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가씨, 다시 한 번 인사를 드립니다."하고는 자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케이트, 저렇게 아름다운 아가씨를 한 번 껴안아 주구려."
  이제 완전히 순종을 하게 된 캐서린은 얼른 남편의 뜻을 받아들여 노신사에게 
비슷한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와도 같은 아가씨, 당신은 아름답고 신선하고 
사랑스럽군요. 어디로 가는 길이며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요? 당신처럼 아름다운 
따님을 둔 부모님은 행복하시겠어요."
  "아나, 어떻게 된 거요, 케이트."하고 페트루치오가 말했습니다.
  "당신 미친 것은 아니겠지. 이 사람은 남자요. 늙고 주름지고 시들어 빠졌구려. 
당신 말처럼 처녀가 아니라고."
  이 말에 캐서린은 "용서하셔요, 노인 어른. 햇빛에 눈이 너무 부셔서 보이는 
것이 모두 초록으로 컴컴하게 보여서요. 이제 보니 연만하신 어른이시군요. 저의 
실수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사과의 말을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노인 어른."하고 페트루치오도 말했습니다.  "어디로 가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혹시 가시는 길이 저희와 같아 함께 가시면 기쁘겠습니다."
  그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당신과 재미있는 부인께서 괴상한 인사를 해주셔서 아주 놀랐습니다. 내 
이름은 빈센시오요, 파두아에 살고 있는 아들을 찾아가는 길이요."
  페트루치오는 그 노인이 젊은 신사 루센시오의 아버지라는 것을 았았습니다. 
그는 뱁티스타의 작은딸 비앵카와 결혼할 예정이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빈센시오에게 아들이 부유한 결혼을 할 예정이라는 말을
하여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즐거운 여행 끝에 뱁티스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비앵카와 
루센시오의 결혼을 축하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뱁티스타는 
캐서린을 결혼시키고 나자 기꺼이 비앵카의 결혼을 승낙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들어서자 뱁티스타는 그들을 반가이 결혼 잔치에 맞아들였는데, 
그곳에는 또 한 쌍의 갓 결혼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비앵카의 남편 루센시오와 또 한 사람의 새 신랑 호텐쇼는 페트루치오의 
아내가 제일 말괄량이라는 것에 대하여 농담을 걸고 싶어 안달인 듯했습니다. 
이 두 신랑들은 자기들이 선택한 아가씨들은 온순한 성격인 것에 아주 
만족해하며, 페트루치오가 아내 선택을 잘못했고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식사가 끝나고 여자들이 물러갈 때까지 그들의 농담을 못 들은 
체하고 있었는데, 뱁티스타까지도 한몫 끼여서 자기를 비웃는 것을 알았습니다.
  페트루치오가 자기의 아내가 그들의 아내보다 더 순종을 잘한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말하자 캐서린의 아버지는 "안된 말이지만 페트루치오, 자네가 정말 제일 
말괄량이를 얻었지."하고 말했습니다.
  페트루치오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제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도록 우리 아내들을 부르러 보냅시다. 맨 먼저 순순히 오는 사람의 
남편이 내기에 이기는 것이니 돈을 걸도록 하지요."하였습니다. 이 말에 다른 
두명의 신랑들은 자기들의 얌전한 아내가 고집센 캐서린보다 더 순종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으므로 그렇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20크라운을 걸자고 
하자, 페트루치오는 매나 사냥개에게라면 몰라도 아내에게는 그 스무 배는 
걸겠다고 유쾌하게 말했습니다. 루센시오와 호텐쇼는 내기 돈을 백 크라운으로 
올리고 나서, 루센시오가 먼저 하인을 시켜 비앵카를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인이 돌아와서 "바빠서 못 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트루치오가 "바빠서 못 오겠다는 말을 하다니, 그것이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대답인가?"라고 말하자 그들은 캐서린이 더 심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말하며 그를 비웃었습니다.. 이번에는 호텐쇼가 하인에게 "가서 내 
아내에게 와달라고 부탁을 하게."라고 말했습니다.
  "오호! 부탁을 하라고!"하고 페트루치오가 말했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안 올 
수가 없겠지."
  호텐쇼는 "자네 아내라면 부탁을 해도 소용없을까 봐 걱정일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공손한 남편은 하인이 혼자 돌아오는 걸 보고는 멍청한 얼굴이 
되어서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내 아내는 어디 있지?"하고 물었습니다.
  "아씨 말씀이 주인님께서 무슨 장난을 하시는 것이라고 그러시던데요. 그래서 
오시지 않겠답니다. 주인님께서 그리고 오시라고 하시던데요."
  "점점 나빠지는군."하고 페트루치오가 말하며 하인에게 "이봐. 아씨께 가서 
내가 오라고 명령한다고 해."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캐서린이 이 명령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곧 뱁티스타가 깜짝 놀라서 외쳤습니다. 
  "아니, 웬일이야?" 캐서린이 오는군!"
  캐서린이 들어와서 케이트에게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저를 부르셨다지요?"
  "당신 동생과 호텐쇼의 아내는 어디 있지?"
  "응접실 난롯가에서 얘기를 하고 있어요."
  "가서 그들을 데리고 오구려!"
  페트루치오가 말하자 캐서린은 말없이 남편의 명령을 따르러 나갔습니다.
  "기적이 있다면 이게 바로 기적이로군."하고 루센시오가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소. 이게 무슨 징조일까요?" 하고 호텐쇼가 말했습니다.
  "그야 평화의 징조이지."하고 페트루치오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조용한 생활과 올바른 주권과, 한마디로 아름답고 행복한 모든 것의 징조이지."
  캐서린의 아버지는 딸이 그렇게 달라진 것을 보고 기쁨에 넘쳐서 "페트루치오, 
그대에게 행운이 있기를 자네가 내기에 이겼네. 나는 캐서린의 지참금에 얹어서 
2만 크라운을 더 주겠어. 캐서린이 딴 아이처럼 달라졌으니 다른 딸에게 
지참금을 주는 셈으로 말일세." 하였습니다.
  페트루치오는 "저는 내기에 더 크게 이길 참입니다. 아내의 새로운 미덕과 
복종의 증거를 더 보여 드릴 테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마침 캐서린이 
루센시오와 호텐쇼의 아내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말했습니다.
  "보시오, 자네들의 고집 센 아내를 여자다운 설득의 포로로 만들어 데리고 
오지 않나. 캐서린, 당신이 쓴 모자는 어울리지가 않는군. 그 싸구려 같은 건 
벗어서 발밑에 던져 버려요."
  캐서린은 곧 모자를 벗어 던져 버렸습니다.
  "맙소사. 저런 바보 같은 장난에 불려오다니 한숨이 절로 나오네."하고 
호텐쇼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비앵카도 역시 "쳇,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의무란 말예요?"라고 하자 비앵카의 
남편은 "당신도 그런 바보 같은 의무를 지켰더라면 좋을 걸 그랬어. 어여쁜 
비앵카, 당신이 현명한 덕분에 나는 식사 후에 백 크라운을 잃었다고."하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더 바보지 뭐예요. 저의 의무를 걸어 내기를 하다니."하고 비앵카가 
말했습니다.
  "캐서린, 이 고집 센 여자들에게 주인이신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가르쳐 주구려."
  페트루치오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제는 달라진 말괄량이가, 자기가 페트루치오의 뜻대로 
기꺼이 복종하여 말없이 실천한 그대로 아내다운 복종의 임무를 찬양하는 말을 
웅변적으로 했습니다.
  이제 캐서린은 다시 한 번 파두아에서 유명하게 되었는데,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말괄량이 캐서린으로서가 아니라 파두아에서 가장 순종 잘하고 본분을 
지킬 줄 아는 아내로서 유명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실수의 희극

  시라큐즈와 에페서스라는 나라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에페서스에서는 시라큐즈의 상인 에페서스의 도시에서 붙들리면 1천 마르크를 
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사형을 당한다는 무서운 법을 만들었습니다.
  시라큐즈의 늙은 상인 이지온은 에페서스의 거리에서 잡혀서 그 큰 벌금을 
내거나, 그렇지 못하면 사형 선고를 받게 되어 그곳을 다스리는 공작 앞에 
불리어 나왔습니다.
  이지온에게는 벌금을 낼 돈이 없었습니다. 공작은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기 
전에, 그가 살아온 내력을 이야기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슨 까닭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죽음을 당하게 되는 이 에페서스에 왔는지 말하라고 했습니다.
  이지온은 슬픔 때문에 살고 싶은 마음도 없어 죽는 것이 두렵지는 않으나, 
자기의 불행한 생애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시라큐즈에서 태어나 자라 상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결혼을 하여 아내와 
함께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에피담넘에 볼일이 있어 그곳에 가 
여섯달동안 있게 되었는데, 더 머물러 있어야만 되겠기에 아내를 데리러 
보냈습니다. 아내는 오자마자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상하게도 둘이 너무나 
꼭 닮아서 서로를 구별하기에 불가능했습니다. 아내가 쌍둥이 아들을 낳은 같은 
시각에 아내가 묵고 있던 여인숙에서 어느 가난한 여인이 역시 쌍둥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들도 저의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꼭 닮았습니다. 이 
아이들의 부모는 몹시 가난했으므로 제가 두 아이를 사서 제 아들들의 시중을 
들도록 길렀습니다.
  저의 아들들은 잘 생긴 아이들이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여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날마다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라서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러기로 하고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에피담넘에서 
몇 마일도 채 가기 전에 무서운 폭풍이 일어나 대단한 기세로 불어닥쳤기 
때문에 뱃사람들은 배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기들의 목숨을 건지려고 
보트에 타고는 우리들만 배에 남겨 두었습니다. 배는 날뛰는 폭풍 속에서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형편이었습니다.
  아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귀여운 아기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저희들 
어미가 우는 걸보고 따라서 울어대는 걸 보니, 저 자신은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만 참 기가 막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살릴 방도가 없을까 
하고 생각을 짜냈습니다. 저는 뱃사람들이 폭풍에 대비하여 준비해 두는 작은 
돛대 한 끝에 저의 작은 아들을 붙들어매고 다른 한 끝에는 시종 아이 중 
동생을 붙들어매었습니다. 아내에게도 다른 돛대에 큰아이 둘을 같은 방법으로 
붙들어매게 하였다.. 그렇게 하여 아내는 큰아이 둘을, 저는 작은아이 둘을 
돌보기로 하고 우리는 몸을 각각 돛대에 붙들어매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저희들은 모두 죽고 말았을 겁니다. 배가 파선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으니까요. 저희들은 이 가냘픈 돛대에 매달려 물에 떠오르게 되었는데, 저는 
두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므로 아내를 도와 줄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곧 
저로부터 멀어져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수 있는 거리에서 그들은 
어부의 배에 구조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코린스의 어부인 것 같았다만.) 
그들이 안전하게 된 것을 알고 저는 저의 작은 아들과 어린 시종의 안전을 
위하여 파도와 싸우기만 하면 되었다. 이윽고 우리도 배에 구조되었는데, 
선원들이 저를 알아보고 친절히 돌봐 주고 시라큐즈에 안전하게 내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아내와 큰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작은 아들은 - 이제 저에겐 그놈뿐입니다만 - 열 여덟 살이 되자 어미와 형에 
대하여 묻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시 제 형을 잃어버린 자기의 시종아이를 
데리고 그들을 찾으러 가겠다고 자주 저를 졸라댔습니다. 결국 저는 하는 수 
없이 승낙을 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물론 아내와 큰 아들의 소식을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지만 그들을 찾으러 작은아들을 보냈다가 그 아들마저 잃어버릴 
위험이 있었으니까요.
  아들이 저를 떠나간 지도 일곱 해가 됩니다. 5년 동안 저는 그 아이를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며 지냈습니다. 그리스의 끝까지도 갔었고, 머리 아시아의 
접경까지 돌아다녔습니다. 이제 돌아가는 길에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라도 
빠뜨리기 실어서 이곳 에페서스에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 생애의 이야기가 
끝나게 되겠군요. 아내와 아들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면, 저는 
죽어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운수 나쁜 이지온은 자기의 불행한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공작은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렇게 큰 위험에 처하게 된 불행한 
아버지를 동정하여, 공작의 위엄으로 절대 바꾸지 않겠다고 서약한 법률을 
어기는 것만 아니라면 그를 용서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법률에 씌어 있는 
대로 그를 당장 사형하지는 않고 하루의 여유를 주어 벌금을 지불할 돈을 구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연기하여 준 것이 이지온에게는 그리 큰 은혜인 것 같지 
않았습니다. 에페서스에 아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으므로, 어떤 낯선 사람이 
벌금을 내라고 1천 마르크나 되는 돈을 그에게 주거나 빌려 줄 가능성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는 간수의 감독 아래 공작 앞에서 물러 
나왔습니다.
  이지온은 에페서스에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가 
작은아들을 찾아다니다가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게 된 바로 그때에 그의 
작은아들과 큰아들도 에페서스에 있었습니다.
  이지온의 아들들은 모습이 똑같을 뿐만 아니라 둘이 다 안티폴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었고, 쌍둥이 시종도 역시 둘 다 이름이 드로미오였습니다.
  이지온의 작은아들, 시라큐즈의 안티폴러스는 이지온과 같은 날 드로미오를 
데리고 에페서스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도 역시 시라큐즈의 상인이었으므로 그의 
아버지와 똑같은 위험에 빠지게 될 뻔했는데, 운이 좋게도 어느 친구가 
시라큐즈의 늙은 상인이 그런 위험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에피담넘의 상인으로 행세하라고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안티폴러스는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 사람이 그렇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겼으나 그 
늙은 상인이 바로 자기 아버지인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지온의 큰아들은 (동생과 구별하기 위하여 에페서스 안티폴러스라고 불러야 
되겠습니다만) 20년 동안 에페서스에서 살았고 또 부자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몸값을 넉넉히 지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함께 바다에서 
구출되었을 때는 너무나 어렸기 때문에, 자기가 그렇게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을 구하였던 
어부가 두 아이를 팔 생각으로 어머니로부터 떼어놓았던 것입니다. (그 불행한 
어머니는 몹시 슬퍼했지요.)
  에페서스의 안티폴러스와 드로미오는 유명한 무사인 미나폰 공작에게 
팔렸습니다. 그는 에페서스를 다스리는 공작의 숙부로서 조카인 공작을 
방문했을 때 두 아이를 데리고 에페서스에 왔습니다.
  에페서스의 공작은 어린 안티폴러스를 좋아하여 그가 자라나자 자기 군대의 
장교로 삼았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워 이름을 떨치고 자기를 돌보아 
주는 공작의 목숨도 구하였으므로, 공작은 상으로 그를 에페서스의 돈 많은 
귀부인 아드리아나와 결혼시켜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에페서스에 왔을 때에 
그는 아내와 함께 그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시종인 드로미오도 아직 그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시라큐즈의 안티폴러스는 에피담넘에서 온 것처럼 하라고 일러준 친구와 
헤어진 뒤, 시종 드로미오에게 돈을 주어 그들이 식사를 할 예정인 여인숙으로 
보냈습니다. 그 동안 자기는 산책을 하며 시가지 구경을 하며 사람들이 사는 
모양도 살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드로미오는 유쾌한 친구였습니다. 안티폴러스는 따분하고 울적할 때면 자기 
시종의 이상한 우스갯소리나 유쾌한 장난으로 기분 전환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드로미오에게 허용한 언론의 자유는 주인과 하인 사이에 보통 있는 
것보다 큰 것이었습니다.
  시라큐즈의 안티폴러스는 드로미오를 보내고 나서, 어머니와 형을 찾아다니는 
자신의 외로운 나그네길을 생각하며 한동안 서 있었습니다. 그가 찾아가 본 
어디에서도 소식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슬픔에 잠겨 혼자 말을 
했습니다.
  "나는 바다에 떨어진 한 개의 물방울과도 같구나. 함께 떨어진 다른 물방울을 
찾으려다가 넓은 바닷속에서 자신마저 잃어버리게 되지. 나도 어머니와 형을 
찾으려다 나 자신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나 아닌지."
  여태까지 아무런 보람도 없었던 자신의 쓸쓸한 여행을 이와 같이 생각하고 
있을 때 드로미오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돌아왔습니다. 안티폴러스는 
드로미오가 너무 빨리 돌아온 것이 이상하여 돈을 어디에 두고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을 건 사람은 자기의 시종 드로미오가 아니라 
에페서스의 안티폴러스와 함께 살고 있는 쌍둥이 형 드로미오였습니다. 두 
사람의 드로미오와 두 사람의 안티폴러스는, 이지온이 그들이 어릴 때 꼭 같이 
생겼다고 말한 것처럼, 지금도 똑같이 서로 닮았습니다. 그러니 안티폴러스가 
자기의 시종인 줄 알고 왜 그렇게 빨리 돌아왔느냐고 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마님께서 점심 드시러 오시라고 저를 보내셨어요. 빨리 오시지 않으면 
닭고기는 다 타버리고 돼지고기는 꼬챙이에서 떨어져 나가고 쇠고기는 다 식어 
버리겠다고요."
  "그런 쓸데없는 농담을 할 때가 아니다."하고 안티폴러스는 말했습니다.
  "돈은 어디다 두었느냐?"
  드로미오는 여전히 마님께서 모셔오라고 보냈다고만 대답을 하였습니다.
  "마님은 무슨 마님이란 말이냐?"
  "무슨 마님이라니요, 주인님 부인 말이지요."
  드로미오가 대답했습니다. 아내가 없는 안티폴러스는 몹시 화가 나서 
드로미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때때로 너와 무관하게 얘기를 한다고 해서 이따위 버릇없는 장난을 
하는 거냐? 나는 지금 장난이나 할 기분이 아니야. 이곳은 생판 모르는 곳인데 
그렇게 큰돈을 네가 갖고 있지 않고 어디에 맡겼단 말이냐?"
  드로미오는 주인이 모르는 곳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고 유쾌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제발, 주인님. 농담은 식탁에서 하시지요. 저는 마님과 마님의 동생과 함께 
식사를 하시도록 주인님을 모셔오라는 책임밖엔 맡은 것이 없습니다."
  
  이제 안티폴러스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드로미오를 때려 주었습니다. 
드로미오는 집으로 달려가 마님에게, 주인님께서 자기에게는 아내가 없다고 
말씀하시며 식사하러 오지지 않겠다고 하시더라고 말했습니다.
  에페서스의 안티폴러스의 아내 아드리아나는 남편이 자기에게는 아내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을 듣자 몹시 화가 났습니다. 질투심이 많은 여자여서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더 좋아한다는 뜻으로 생각하고는 조바심을 치며 남편을 
원망하고 비난하는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함께 살고 있던 그녀의 여동생 
루시아나는 그런 근거 없는 의심을 하지 않도록 설득하려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시라큐즈의 안티폴러스는 여인숙을 가 드로미오가 안전하게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드로미오에게 버릇없이 장난을 했다고 다시 
야단을 치려고 하는데, 아드리아나가 와서는 그를 자기의 남편이라고만 
생각하고, 자기를 낯선 사람 보듯 바라본다고 나무라는 것이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이 성난 귀부인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결혼을 
하기 전에는 자기를 그토록 사랑했는데, 이제 와서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여보. 아니, 어떻게 해서 제가 당신의 사랑을 
잃어버렸나요?"
  "아름다우신 부인께서 저에게 하소연을 하시는 건가요?" 하고 놀란 
안티폴러스가 말했습니다. 자기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며 에페서스에 온 지도 
이제 두 시간밖에 안 된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이, 아드라아는 함께 집에 
가자고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티폴러스는 빠져나갈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형의 집으로 가서 아드리아나와 그녀의 동생과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를 남편이라 부르고 또 한 사람은 형부라고 부르니 안티폴러스는 
어리둥절하여 꿈속에서 이 여자와 결혼을 했거나 아니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을 따라온 드로미오도 사실은 자기의 
형수가 되는 이 집의 하녀가 자기를 남편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여간 놀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라큐즈의 안티폴러스가 형수와 같이 점심을 먹고 있는 동안, 진짜 남편인 
형이 그의 시종 드로미오를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안주인이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하인들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문을 자꾸 두들기면서 주인인 안티폴러스와 드로미오라고 해도 
하인들은, 주인께서는 마님과 식사를 하고 계시며 드로미오도 부엌에 있다고 
말하며 그들을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문이 부서져라고 두들겨대도 그들은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안티폴러스는 몹시 화가 나서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자기의 아내와 같이 식사를 하고 있다는 말에 
몹시 놀랐습니다.
  시라큐즈의 안티폴러스는 점심 식사를 끝내고 나서, 부인이 여전히 그를 
남편이라고 부르고 하녀도 드로미오를 남편이라고 부르는 것에 당황하여 
빠져나갈 핑계를 찾자마자 그 집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는 동생인 루시아나는 
썩 마음에 들었으나 질투심이 많은 아드리아나는 아주 싫었습니다. 드로미오도 
부엌에 있는 예쁜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인과 하인은 
자기들의 새 아내들에게서 가능한 한 빨리 빠져 나온 것이 기뻤습니다.
  시라큐즈의 안티폴러스는 집을 나오는 순간 금 세공장이를 만났습니다. 금 
세공장이는 아드리아나가 그랬던 것처럼 그를 에페서스의 안티폴러스인 줄로 
알고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와 금사슬을 주었습니다. 안티폴러스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받지 않으려 하자, 금 세공장이는 직접 주문을 받고 만든 
것이라고 말하며 사슬을 안티폴러스의 손에 남겨 둔 채 가버렸습니다. 
안티폴러스는 아무래도 자기가 마술에 걸렸다고 생각할 만큼 이렇게 이상한 
일에만 부닥치는 그곳에 더 머무를 생각이 없어져, 드로미오에게 자기 짐을 
배에 실으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안티폴러스에게 사슬을 준 금 세공장이는 바로 그후에 어떤 빚진 돈 
때문에 체포되었습니다. 에페서스의 안티폴러스는 우연히 금 세공장이가 
체포되는 장소로 가게 되었습니다. 금 세공장이는 안티폴러스를 보자 그에게 
사슬을 주었다고 생각했으므로, 방금 갖다 준 사슬의 값을 치러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슬의 값이 자기가 빚지고 있는 돈과 거의 같은 액수라는 
것이었습니다. 안티폴러스가 사슬을 받은 일이 없다고 하고, 금 세공장이는 불과 
몇 분전에 주었다고 우기고 하며 그들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한참을 
싸웠습니다. 안티폴러스는 금 세공장이한테 사슬을 받은 적이 없었고, 
금세공장이는 사슬을 꼭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경관은 금 세공장이를 체포해서 감옥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때 금 세공장이가 
사슬 값을 치르지 않는다고 안티폴러스를 고발하여 그도 역시 체포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다 감옥에 끌려가는 것으로 그들의 언쟁은 끝이 났습니다.
  안티폴러스는 감옥으로 가는 도중에 동생의 시종인 시라큐즈의 드로미오를 
만났습니다. 그는 자기의 시종인 줄 알고 아내인 아드리아나에게 가서 돈을 
보내라고 말하라고 시켰습니다. 드로미오는 배 떠날 준비가 다 되었다고 말하러 
왔는데, 주인이 자기들의 점심을 먹고 그렇게 급히 빠져 나온 이상한 집으로 
다시 보내는 것을 의아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감히 말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보기에도 안티폴러스는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아드리아나의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 가면 도사벨이 나를 보고 남편이라고 할 텐데, 그래도 갈 수밖에 없지. 
시종이란 주인의 명령을 따라야 하니까."
  아드리아나가 그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드로미오는 되돌아오다가 시라큐즈의 
안티폴러스를 만났는데, 그는 자꾸만 일어나는 이상한 일에 아직도 어리둥절한 
채로였습니다. 그의 형은 에페서스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므로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잘 아는 사람처럼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빌려 갔던 것이라 하며 돈을 주고 어떤 사람은 친절을 베풀어 주어서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모두들 그를 형으로 잘못 본 것입니다. 어느 양복점 주인은 그를 
위하여 산 것이라고 말하면서 비단을 보여 주며 옷을 만들게 치수를 재자고 
졸랐습니다.
  안티폴러스는 자기가 마술사와 요술쟁이들의 나라에 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드로미오마저도 그를 보더니 감옥으로 데려가던 
경관에게서 어떻게 풀려 나왔느냐고 묻고 나서 아드리아나가 빚을 갚으라고 
보낸 돈지갑을 그에게 주니 안티폴러스는 더욱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체포니, 감옥이니, 아드리아나에게서 가져온 돈이니 하는 이야기에 안티폴러스는 
완전히 기가 막혀 "드로미오 녀석이 분명히 머리가 돈 모양이야. 우리가 헛것을 
보며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고는 자기의 생각마저 혼란스러운 데 덜컥 
겁이 나서 "아이구, 하느님 제발 이 이상한 곳에서 빠져나가게 해 
주십시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웬 처음 보는 여자가 다가와서 그날 같이 점심 식사를 
했다고 말하며 아까 주겠다고 약속한 금사슬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티폴러스는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어서, 당신과 함께 점심을 먹은 일이나 
사슬을 주겠다고 한 일도 없으며 도대체 본 적도 없다고 하면서 마녀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여자는 분명히 함께 점심을 먹었으며 사슬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우기고, 안티플러스는 여전히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그러면 
아까 자기가 값진 반지를 주었으니 금사슬을 주지 않으려거든 자기의 반지나 
돌려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안티폴러스는 그만 머리가 돌 지경이 
되어 그 여자를 다시 마녀니, 요술쟁이니 하고 부르며, 자기는 그 여지도 반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여자는 그의 말과 사나운 표정에 몹시 
놀랐습니다. 분명히 그가 자기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금사슬을 주겠다고 하기에, 
자기도 그에게 반지를 주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여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형으로 잘못 알고 실수를 한 것이지요. 기혼자인 안티폴러스는 
그 여자가 말한 대로 했던 것입니다.
  기혼자 안티폴러스는 집에서 문을 열어 주지 않았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이미 와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몹시 화가 나, 아내가 자주 그랬듯이 또 
질투심이 발작이 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연히 다른 여자를 
만난다고 나무라던 생각이 나서, 아내가 문을 열러 주지 않은 데 대한 복수로 
이 여자를 찾아가 점심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 여자는 아주 친절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아내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던 안티폴러스는 아내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던 금사슬을 그 여자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금 
세공장이가 모르고 동생에게 준 그 사슬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훌륭한 금사슬을 
갖게 되는 것이 너무 좋아서 기혼자인 안티폴러스에게 반지를 준 것인데, 그가 
(동생을 형인 줄 알고) 자기를 알지도 못한다고 하며 그렇게 화를 내고 가 
버리는 것을 보고는 확실히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곧 
아드리아나에게 가서 그녀의 남편이 미쳤다고 말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 여자가 
아드리아나에게 와서 그 말을 하고 있을 때, 안티폴러스가 간수와 함께 (돈을 
가지러 집에 올 수 있는 허락을 받았으므로) 돈지갑을 가지러 왔다. 그 지갑은 
이미 아드라아나가 드로미오 편에 보냈고, 드로미오는 시라큐즈의 
안티폴러스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아드리아나는 남편이 아까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것을 듣고는, 
이 여자가 남편이 미쳤다고 하는 말이 사실임에 틀림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점심때 내내 그가 자기의 남편이 아니라고 우기며 그날 처음으로 에페서스에 
왔다고 말하던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간수에게 돈을 주어 보내고 나서, 
하인들에게 남편을 밧줄로 묶어 어두운 방에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치료하도록 의사를 부르러 보냈습니다. 안티폴러스는 쌍둥이 동생 
때문에 일어난 소동인 줄은 모르고, 자기는 미치지 않았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보고, 3다른 사람들은 더욱더 그가 미쳤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드로미오도 같은 소리를 하므로 그도 묶어서 주인과 함께 가두어 
버렸습니다. 
  아드리아나가 남편을 가둔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하인이 와서 안티폴러스와 
두로미오가 감시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빠져나간 게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저쪽 길을 태연히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드리아나는 남편을 붙잡아 집으로 데리고 오려고 사람들을 데리고 
달려나갔다. 동생도 따라갔습니다. 수녀원 문 앞까지 왔을 때 안티폴러스와 
드로미오가 그곳에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또 다시 쌍둥이들이 꼭 닮은 데에 
속은 것이지요.
  시라큐즈의 안티폴러스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일을 당하고 이었습니다. 금 
세공장이가 준 사슬을 그는 목에 걸고 있는데, 금 세공장이는 그가 사슬을 
받지도 않았다고 말하며 값을 치르지 않으려고 하더니 이제 그 사슬을 목에 
걸고 있다고 나무라는 것이었고, 안티폴러스는 사슬을 가져다 맡기다시피 
하고는 그후로 만난 일도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대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아드리아나가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정신이 이상해진 자기 
남편인데 감시인 몰래 달아났다고 말하고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안티폴러스와 
드로미오를 묶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수녀원 안으로 달려들어가 
수녀원장에게 자기들을 좀 보호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 소란이 일어난 까닭을 알려고 수녀원장이 몸소 나왔습니다. 
수녀원장은 침착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사물을 현명하게 판단할 줄을 알아, 
자기에게 보호를 청해 온 사람들을 쉽사리 내어줄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미쳤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찬찬히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의 남편이 이렇게 갑자기 미치게 된 까닭이 무엇입니까? 바다에서 
파선을 당하여 재산을 잃었습니까? 아니면 친한 친구가 죽어서 상심을 한 
까닭인가요?"
  아드리아나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아마도 아내인 당신 외에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아드리아나는 오래 전부터 남편이 자주 집을 비우는 것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안티폴러스가 자주 집을 
비우는 것은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아내가 질투심으로 그를 들볶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녀원장은 (아드리아나의 격한 태도에서 그런 사실을 짐작하고) 확실히 알기 
위하여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남편을 나무라지 않으셨나요?"
  "물론 나무랐지요."
   아드리아나가 대답했습니다.
  "좀더 나무라셔야 될 걸 그랬나 보군요."
  수녀원장의 이 말에 아드리아나는 자기가 남편을 충분히 나무랐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문제로 다투었지요. 잠자리에서는 잠도 못 자게 하고, 
밥상에 낮아서도 밥을 못 먹을 만큼 들볶았어요. 우리 둘이 있을 때에는 그 
얘기만 했고, 남들이 있을 때에도 자주 그런 암시를 했습니다. 나를 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다니 그런 몹쓸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늘 말했어요."
  수녀원장은 질투심 많은 아드리아나에게서 이 같은 자백을 끄러낸 뒤에 
말했습니다.
  "그러니 남편이 미치게 된 거지요. 질투심 많은 여자가 떠들어대는 소리는 
미친개의 이빨보다도 더 지독한 것이랍니다. 당신이 들볶는 소리에 잠도 잘 
자지 못했을 테니 머리가 이상해 질 만도 하지요. 몸은 당신이 바가지 긁는 
소리에 질려 있고,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없으니 소화도 잘 안되어 이런 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당신의 잔소리 때문에 오락도 즐기지 못했다고 하니, 
사람들과 교제도 하지 못하고 즐겁게 지내지도 못하면 우울해지고 불안하여 
절망하게 되고 맙니다. 결국 당신의 질투심이 남편을 미치게 한 거예요."
  루시아나는 언니를 두둔하려고, 언니가 형부를 나무라기는 했지만 그렇게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면서 언니에게 "언니는 왜 그런 비난을 들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수녀원장의 말로 자신의 잘못을 깊이 깨달은 아드리아나는 다만 
"저분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얼마나 나빴는지 알겠어."라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아드리아나는 자신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기는 했으나 그래도 남편을 내보내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나 수녀원장은 아무도 그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불행한 남자를 질투심 많은 아내에게 보내 줄 생각은 없으며 
자신이 온당한 방법으로 그를 회복시키겠다고 말하며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는 
문을 모두 꼭꼭 잠그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꼭 닮은 이 쌍둥이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썽 많은 일이 생겨나는 동안, 
늙은 이지온이 혜택받은 하루는 점점 지나가 어느덧 석양이 가까워졌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돈을 내지 못하면 그는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를 처형할 장소는 수녀원 가까운 곳이어서 수녀원장이 안으로 들어간 뒤에 
곧 그가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공작도 누구든지 돈을 낼 사람이 있으면 
이지온을 용서하여 주려고 몸소 나와 있었습니다.
  아드리아나는 이 음울한 행렬을 가로막고 서서 공작에게 올바르게 처리해 
달라고 외쳤습니다. 수녀원장이 정신이 이상해진 자기의 남편을 돌려보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드리아나가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진짜 남편인 
안티폴러스와 드로미오가 공작 앞에 와서, 아내가 멀쩡한 자기를 미쳤다고 
가두었으니 공정하게 처리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떻게 해서 
밧줄을 끊고 감시인들을 피해 나왔는지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수녀원 
안에 있다고 믿고 있던 아드리아나는 남편을 보자 깜짝 놀랐다.
  이지온은 아들을 보자, 그가 어머니와 형을 찾아 나간 작은아들이라고 믿고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기의 몸값을 당장 치러 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안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곧 석방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뻐하며, 안티폴러스에게 
아버지다운 사랑에 넘치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놀랍게도 아버지를 
모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안티폴러스는 
갓난아기일 적에 폭풍 속에서 헤어진 후로 아버지를 다시 만난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가련한 이지온은 그 동안 겪은 슬픔과 고통 때문에 자기 
모습이 너무나 변해 버려 아들이 자기를 몰라보는 것인가, 아니면 이렇게 
비참한 지경에 있는 자기를 보고 아버지라고 하기가 창피해서 그러는가 하고 
생각하며, 아들이 자기를 알아볼 수 있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수녀원장과 다른 안티폴러스와 드로미오가 나와, 어리둥절한 
아드리아나는 두 사람의 남편과 두 명의 드로미오가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그들 모두를 그렇게 어리둥절하게 한 수수께끼가 모두 풀렸습니다. 
공작은 서로 꼭 닮은 두 명의 안티폴러스와 두 명의 드로미오를 보고 어떻게 된 
일인지를 곧 짐작하였습니다. 그는 아침에 이지온에게서 들이 이야기를 
생각하고, 이 사람들이 이지온의 두 아들과 두 쌍둥이 시종에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생각지도 않았던 기쁨이 이지온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아침 죽음의 선고를 받고 슬픔에 잠겨서 했던 이야기가 
석양이 채 지기도 전에 행복한 결말을 가져왔으니, 그것은 덕망 높은 
수녀원장이 자기가 이지온의 아내이며 두 명의 안티폴러스의 어머니라고 밝혔던 
것입니다.
  어부들이 안티폴러스와 드로미오를 빼앗아 가자, 어머니는 수녀원에 들어가 
현명하고 덕 있는 행동으로 나주에는 이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다는 것이며, 
낯선 젊은이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 모르는 중에 자기의 아들을 보호해 준 
셈입니다.
  오래 헤어졌던 부모와 자식들이 만나 기쁨에 넘친 축하와 반가운 인사를 
하느라고 그들은 잠시 동안 이지온이 사형 선고를 받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흥분이 조금 가라앉자 에페서스의 안티폴러스는 아버지의 
몸값을 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작은 이지온을 사면해 주기로 하고, 
벌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공작은 수녀원장과 새로 찾은 남편과 아들들을 
데리고 수녀원으로 들어가 이 행복한 가족이 서로 다른 운명을 겪은 끝에 좋은 
결말을 만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 명의 드로미오도 기뻐한 것은 물론이지요. 
그들도 축하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두 사람은 자기의 모습이 (거울에서 보듯이) 
상대편에게서 썩 미남으로 보이는 것에 기분이 좋아 서로서로 잘생겼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드리아나는 시어머니의 좋은 충고를 받아들여 그후로는 부당한 의심을 
하거나 질투로 남편을 괴롭히는 일도 없었습니다.
  시라큐즈의 안티폴러스는 형의 처제인 아름다운 루시아나와 결혼하고, 늙은 
이지온은 아내와 아들들과 할게 에페서스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이렇게 
이상스러운 일은 다 해명되었으나, 사람들이 이 쌍둥이들을 혼동하는 일은 
아직도 종종 있어, 지난 일을 생각나게 하는 우스운 실수가 생겨 재미있는 
웃음거리를 만들곤 하였습니다.


      되받아 치기

  비엔나 시는 한때 성품이 몹시 부드럽고 점잖은 공작이 다스리고 있어서, 
백성들이 법률을 어기고도 벌을 받지 않게 내버려두었습니다. 특히 어떤 법률은 
그것이 있다는 것조차 거의 잊혀져서, 공작이 그곳을 다스리는 동안 한 번도 
시행된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아내가 아닌 여자와 같이 사는 남자는 누구나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작이 자비로워서 이 법률이 아예 
무시되었기 때 결혼이라는 신성한 제도가 소홀히 되고, 젊은 딸을 가진 
비엔나의 부모들은 늘 공작에게 불평을 하였습니다. 딸들이 꾐에 빠져 부모의 
보호를 받지 않고 혼자 사는 남자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었어요.
  마음 좋은 공작은 자기의 백성들 사이에서 이런 나쁜 일이 많아지는 것을 
알고 걱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쁜 일을 막기 위하여 여태까지 관대하던 
태도에서 갑자기 엄격하고 가혹하게 변한다면 (지금까지는 공작을 사랑하던) 
사람들이 그를 폭군으로 생각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공작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모든 권한을 행사하도록 대리를 두어, 자기 자신이 가혹한 행동으로 
원망을 사지는 않으면서 그런 명예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연인들을 다스리도록 
하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엄격하고 강직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비엔나의 성자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안젤로라는 사람이 이 중요한 책임을 맡기기에 적당하다고 생각되어, 공작은 
그를 선택하였습니다. 공작이 자기의 계획을 그의 으뜸가는 의논 상대인 
에스칼러스경에게 말하자 그도 "비엔나에서 그런 큰 명예를 감당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안젤로경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공작은 자신이 
없는 동안 안젤로가 공작을 대신하도록 하고, 폴란드로 여행을 한다는 핑계로 
비엔나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사실 공작은 떠나지 않고 남몰래 비엔나로 돌아와 
수도승 차림을 하고 성자와도 같은 안젤로의 행동을 몰래 지켜 볼 
셈이었습니다.
  안젤로가 새로운 권위를 부여받게 되었을 그 즈음, 클로오디오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한 아가씨를 꾀어낸 죄 때문에 새로운 공작 대리의 명령으로 잡혀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무시되어 왔던 옛 법에 따라 
안젤로는 클로오디오를 교수형에 처하라고 선고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 
클로오디오를 구하려고 하였습니다. 에스칼러스경도 그를 위하여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구하고자 하는 이 젊은이에게는 존경할 만한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 
아버지를 생각하셔서 이 젊은이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안젤로는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법률을 허수아비로 만들어서는 안 되오. 새들을 놀라게 하려고 
허수아비를 세워 놓지만 새들이 그것에 익숙해지면 아무런 해가 없는 것을 알고 
겁을 내기는커녕 올라앉아 놀게 되는 것이요. 그는 사형을 받아야 하오."
  클로오디오의 친구인 루시오가 감옥으로 클로오디오를 찾아갔다. 
클로오디오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루시오, 부탁이야. 나를 좀 도와 주게. 내 동생 이자벨에게 가주게. 오늘 
세인트 클레어 수녀원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어. 내가 위험한 처지에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엄격한 공작 대리와 좀 사귀어 보라고 부탁해 줘. 안젤로를 만나 
보라고 말이야. 나는 거기에 큰 희망을 걸고 있네. 동생은 말을 아주 잘하니까 
잘 설득시킬 수 있을 거야. 또 젊은 여자가 슬퍼하는 모습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거든."
  클로오디오의 동생 이자벨은 오빠의 말대로 그날 수녀원에 견습 수녀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견습 기간이 끝나면 정식으로 수녀가 될 생각으로 
수녀원의 규칙에 대하여 한 수녀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그때 루시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수녀원에 들어서면서 "이곳에 평화가 있기를!" 하고 
말했습니다.
  "누가 말을 하나요?"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군요."
  수녀가 대답했습니다.
  "이자벨,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셔요. 당신은 그래도 됩니다. 나는 안 돼요. 
당신도 베일을 쓰고 수녀가 되고 나면 수녀원장이 있는 곳에서만 남자와 말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을 할 때 남자에게 얼굴을 보여선 안되고, 일단 얼굴을 
보이고 나면 말을 해서는 안 돼요."
  "수녀님들에겐 그것밖에 허용이 안 되나요?"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수녀가 대답했습니다.
  "정말 그래요. 저는 더 많은 것을 원해서가 아니라 세인트 클레어의 수녀원에 
더 엄격한 규정이 있었으면 해서요."
  또다시 루시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수녀가 "또 부르는군요. 대답을 
좀 해주셔요."하였습니다.
  이자벨은 루시오에게 다가가, 그의 인사에 대한 대답으로 "평화와 번영이 
있기를! 누구신지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루시오는 존경하는 태도로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뺨 위의 장미빛을 보니 젊은 아가씨인 것은 
분명하군요. 이곳에 견습 수녀로 있는 이자벨을 만나게 해주실 수 없으신가요? 
불행한 클로오디오의 누이 되는 사람인데요."
  "왜 불행한 클로오디오라고 하시나요? 제가 그 누이 되는 이자벨인데요."
  "아름답고 얌전하신 아가씨, 오빠께서 저를 보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어요."
  "저를 어쩌나! 왜 갇혔나요?"
  이자벨이 물었습니다. 루시오는 클로오디오가 젊은 처녀를 꾀어내어 감옥에 
갇혔다고 말했습니다.
  "아, 내 사촌 줄리엣인 모양이군요."
  줄리엣과 이자벨은 친척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같이 다니며 
친했으므로 서로 사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자벨은 줄리엣이 클로오디오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클로오디오에 대한 사랑이 그런 잘못된 일을 
저지르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루시오가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빠가 줄리엣과 결혼하면 되잖아요?"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루시오는 클로오디오가 가까이 줄리엣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데도 공작 대리는, 그가 이미 저지른 잘못 때문에 사형을 
선고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간청하여 안젤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않으면 그렇게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엾은 오빠의 부탁을 받고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아, 내게 무슨 힘이 있어 오빠를 돕나요? 저는 안젤로를 움직일 힘이 없는 것 
같아요."
  "의심은 배신자와도 같아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좋은 일도 겁을 내고 
해보지도 않아 그만 잃어버리게 만들지요. 안젤로에게 가보시오. 처녀들이 빌며 
무릎을 꿇고 울면 남자들이란 청을 들어주는 법입니다."
  "힘껏 해보겠어요."하고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수녀원장님께 이 일을 말씀드리고 곧 안젤로에게 가겠어요. 오빠에게 안부 
전해 주셔요. 밤이 되면 어떻게 되었는지 전하겠어요."
  이자벨은 안젤로의 저택으로 달려가 안젤로 앞에 무릎을 꿇고 "전하, 저의 
슬픈 간청을 들어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그대의 청은 무엇인가?"
  안젤로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자벨은 오빠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러나 안젤로는 "아가씨, 방법이 없소. 당신의 오빠는 이미 선고를 
받았으니 죽게 될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오, 올바르지만 가혹한 법률이여."하고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제게 오빠가 
있다는 건 지나간 일이 되겠군요. 하느님께서 전하를 지켜 주시기를!"
  그리고 이자벨은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같이 왔던 루시오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단념하지 마시오. 애걸을 하시오. 무릎을 꿇고 옷자락을 잡고 매달려 
봐요. 당신은 너무나 냉정하군요. 핀을 하나 얻으려 해도 그 정도로 말해서는 안 
될 거요."
  그래서 이자벨은 다시 무릎을 꿇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빌었습니다.
  "이미 선고는 내렸소. 너무 늦었어요."하고 안젤로가 말했습니다.
  "너무 늦다니요."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 말씀을 들어보시고 취소하여 주십시오. 전하, 믿어 
주셔요. 위대한 분들께 자비심만큼 훌륭하게 어울리는 것은 없습니다. 어떠한 
위엄도, 임금님의 왕관이나 대리 전하의 칼도, 장군의 지휘봉이나 판사의 법의도 
자비심의 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만 가시오."
  안젤로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자벨은 계속하여 청을 하였습니다.
  "저의 오빠가 전하와 같고 전하께서 저의 오빠와 같은 처지였다면, 전하께서도 
오빠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셨을 겁니다. 그러나 오빠라면 전하와 같이 그렇게 
냉혹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가 전하의 권세를 갖고 있고 전하께서 
이자벨이시라면 이와 같았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전하께 재판관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이고, 죄인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만두시오. 아름다운 아가씨!"
  안젤로가 말했습니다.
  "그대의 오빠를 처형하는 것은 법률이지 내가 아니오. 그가 나의 친척이거나 
형제거나, 아니면 나의 아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요. 그는 내일 죽어야 
하오."
  "내일이라고요?"
  이자벨이 되물었습니다.
  "그건 너무나 갑작스럽군요. 여유를 주셔요. 오빠에게 여유를 주셔요. 오빠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요. 부엌에서 닭을 잡을 때도 때를 맞춰 하는데, 
하물며 하는 섬기는 일을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만큼의 관심도 없이 
하시려고요? 훌륭하신 대리 전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오빠와 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많지만 아무도 그 죄로 죽은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사형 선고를 
내리신 것도 전하께서 처음이고, 선고를 받은 것도 오빠가 처음입니다. 전하, 
마음에 대고 물어 보십시오. 제 오빠가 한 것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신 지. 누구나 범할 만한 그런 생각이 전하께도 있으실 테니 오빠의 목숨을 
살려 주셔요."
  이자벨이 마지막에 한 말은 앞서 한 다른 말들보다도 더 안젤로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이자벨의 아름다움이 안젤로의 마음속에 옳지 못한 정열을 
불러일으켜 클로오디오가 그렇게 한 것처럼 수치스러운 사랑의 생각을 마음에 
품게 된 것입니다. 마음의 갈등이 생기자 그는 이자벨에게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이자벨은 그를 부르며 말했습니다. 
  "관대하신 전하, 돌아서십시오. 제가 어떤 뇌물을 드릴지 들어 주셔요. 전하, 
부디 돌아서 주셔요."
  "아니, 내게 뇌물을 준다고!"
  이자벨이 뇌물을 줄 생각을 한다는 데에 놀란 안젤로가 말했습니다.
  "예. 전하께서 하늘과 함께 받으실 선물을 드리겠어요. 금으로 만든 보물이나 
빛나는 보석들은 사람의 허영심이 값을 매기는 데 따라 비싸기도 하고 싸기도 
하지요. 그런 것이 아니라 해 뜨기 전 하늘에 올리는 진실한 기도를 드리겠어요. 
깨끗한 영혼의 기도, 영원한 것에 마음을 바치고 금식하는 처녀의 기도를 
드리겠어요."
  "그럼 내일 나에게 오시오."
  안젤로가 말했습니다. 오빠의 목숨을 그만큼 연장해 준 것과 자기의 말을 
다시 들어 주겠노라 는 허락을 듣고 이자벨은 안젤로의 엄격한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는 즐거운 희망을 가지고 물러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이자벨은 
"하느님께서 전하를 지켜 주시기를 ! 하느님께서 전하를 구해 주시기를 !" 하고 
말했습니다.
  안젤로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아멘, 그대와 그대의 미덕으로부터 구함을 
받아야 되겠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나쁜 생각에 겁이 나서 "이게 
웬일인가? 이게 무슨 일이야? 내가 이자벨을 사랑하는 것인가? 그녀의 말을 
다시 듣고 싶어하고 그녀의 아름다운 눈을 보고 싶어하니. 내가 꿈꾸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의 교활한 적이 성인을 잡기 위하여 성인으로 미끼를 삼는 
것인가? 얌전하지 못한 여자가 내 마음을 움직인 일이 없는데 이 정숙한 여인이 
나를 아주 사로잡는구나. 지금까지만 해도 남자가 사랑에 빠지면 나는 비웃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하고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그날 밤 안젤로는 마음속의 갈등 때 그가 가혹한 선고를 내린 죄수보다도 더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감옥의 클로오디오에게는 수도승 차림을 한 공작이 
찾아가, 참회와 평화의 말을 설교하고 하늘에 이르는 길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안젤로는 이자벨을 순결하고 명예로운 길로부터 꾀어내고 싶은 욕망과 자기가 
저지르려 하는 범죄에 대한 가책과 두려움으로 갈팡질팡하며 고통 속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쁜 생각이 우세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전만 해도 
뇌물을 주겠다는 말에도 깜짝 놀랐던 그가, 이자벨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오빠의 
목숨이라는 값비싼 뇌물을 주고서라도 이 처녀를 유혹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자벨이 오자, 안젤로는 혼자서만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줄리엣이 클로오디오에게 한 것처럼 이자벨이 그에게 처녀성을 
바친다면 오빠의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요, 이자벨."
  오빠도 그렇게 줄리엣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오빠는 죽어야 한다고 
하시면서요."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클로오디오는 죽지 않을 것이요. 줄리엣이 밤에 부모님 집을 빠져 
나와 클로오디오에게 갔듯이 당신이 밤중에 남몰래 나를 찾아오겠다고 
허락한다면."
  이자벨은 오빠에게 사형을 선고한 까닭인 바로 그 잘못을 자기에게 
저지르라고 하는 말에 놀라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엾은 오빠를 위해서라면, 저 자신이 기꺼이 고통을 받겠습니다. 만일 제가 
사형 선고를 받았다면, 날카로운 채찍 자국을 보석을 달 듯이 즐겁게 지니고 
죽음을 향하여 마치 바라고 바라던 잠자리를 찾아가듯 반갑게 가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수치스런 행동은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자벨은 안젤로의 그 말은 그저 자기의 덕성을 시험해 보느라고 한 
말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안젤로는 "내 말을 믿으시오. 명예를 걸고 
그건 진정이요."하고 말했습니다.
  이자벨은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목적으로 명예라는 말을 쓰는 데에 화가 나서 
"하, 그 잘난 명예를 들추시는군요. 더러운 진정도 다 있네요. 안젤로, 당신에게 
선언하겠어요. 오빠를 사면한다고 서명을 해주셔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떠들어대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그대의 말을 믿을까, 이자벨?" 하고 안젤로가 말했습니다. "흠 없는 
나의 이름과 엄격한 나의 생활을 봐서라도 내가 그렇지 않다는데, 그대의 
비난을 들을 사람이 있을까. 내 뜻에 따라서 오빠를 구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빠는 내일 죽을 거요. 그대는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나의 거짓이 그대의 
진실을 이길 테니까. 내일 대답을 하도록 하시오."
  "누구에게 하소연을 하나? 내가 이 말을 한들 누가 믿어 줄까?"
  이자벨은 오빠가 갇혀 있는 쓸쓸한 감옥으로 가면서 말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오빠는 공작과 함께 경건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작은 
수도승 차림으로 줄리엣에게도 찾아가서 죄지은 그 두 연인들이 잘못을 
깨닫도록 하였습니다. 불행한 줄리엣은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뉘우치고, 
클로오디오의 옳지 못한 유혹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니, 클로오디오보다도 자기가 
더 잘못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자벨은 클로오디오가 갇혀 있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했습니다.
  "이곳에 평화가 있기를, 은총과 좋은 동반자가 있기를!"
  "누구요?"하고 변장을 한 공작이 말했습니다.
  "들어오시오. 그런 기원을 하는 걸 보니 환영할 만한 사람인가 보오."
  "클로오디오와 잠깐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하고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공작은 두 사람만 남겨 놓고 나가서 감옥을 책임지고 있는 간수장에게 그들의 
말을 엿들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이자벨, 위안이 될 만한 것이라도 있니?"
  클로오디오가 말했습니다. 이자벨은 다음날 아침에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런 방법이 없단 말이냐?"
  클로오디오가 물었습니다.
  "방법은 있지요. 오빠."
  이자벨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응하면 명예는 떨어지고 수치스런 
몸만 남게 돼요."
  "요점을 말해 줘."
  클로오디오가 말했습니다.
  "아, 오빠가 무서워요!"
  동생이 대답했습니다.
  "오빠가 살고 싶어할까 보, 그리고 영원한 명예보다도 몇 년 간 하찮은 목숨을 
더 연장하는 걸 더 원할까 봐. 몸이 떨려요! 오빠, 죽을 용기가 있어요? 죽음의 
고통이란 그 공포 속에 있는 거예요. 조그만 풍뎅이가 발에 밟혀 죽을 때나 
거인이 죽을 때나 그 아픔은 같은 거예요."
  "왜 이렇게 나를 창피하게 만드는 거냐? 야단스러운 말장난으로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니? 죽어야만 한다면 신부를 만난 듯이 죽음을 맞이하여 
두 팔에 껴안아야지."
  클로오디오가 말했습니다.
  "나의 오빠다운 말이에요."하고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그래요, 오빠는 죽어야 
해요. 오빠, 생각을 좀 해보셔요. 겉으로는 성인인 체하는 그 대리가 자기에게 
나의 처녀성을 바치면 오빠를 살려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아, 차라리 내 목숨을 
달라고 했다면 오빠를 구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내버렸을 텐데!"
  "고맙다. 귀여운 이자벨."하고 클로오디오가 말했습니다.
  "내일 죽을 준비를 해요."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죽음은 무서운 거야."
  클로오디오가 대답했습니다.
  "수치스럽게 사는 것도 끔찍한 일이에요."
  누이동생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생각이 클로오디오의 변함없는 
성품을 압도하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죄지은 사람만이 죽음을 앞두고 알게 되는 
그런 공포가 엄습해 와서 그는 "착한 누이야, 나를 살게 해줘! 오라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죄를 짓는다면 자연이 그런 행동을 무효로 만들고 그것이 바로 
미덕이 될 거야."하고 외쳤습니다.
  "오, 믿음도 없는 비겁자! 정직하지 못한 가련한 오빠!"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동생에게 욕을 당하게 하고 목숨을 부지할 생각이에요? 오, 그만둬요, 
그만둬요! 나는 오빠가 명예를 아는 마음을 가지고서 동생에게 그런 수치를 
당하게 하느니, 스무 개의 목이 있다면 스무 개를 다 교수대에 내놓기라도 할 
줄 알았어요."
  "아니야. 내 말을 들어 봐, 이자벨."하고 클로오디오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숙한 동생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여 자기가 살기를 바란 그 허약한 마음에 
대하여 변명하려 했던 말은 공작이 들어오는 바람에 중단되었습니다. 공작이 
말했습니다.
  "클로오디오, 자네와 동생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네.  안젤로는 자네 동생을 
망치려는 게 아니야. 그런 말을 한 것은 동생이 얼마나 정숙한 여자인지 시험해 
보려고 한 것일세. 동생이 진정한 명예를 알고 있어서 훌륭하게 거절을 했으니 
그도 듣고 기뻐했을걸세. 그가 사면을 해줄 희망은 없으니 남은 시간 동안 
기도를 하며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게."
  그러자 클로오디오는 자신의 약한 마음을 뉘우치며 말했습니다.
  "동생에게 용서를 구하도록 해주시오. 살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고 죽여 달라고 
빌고 싶습니다."
  그리고 클로오디오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수치와 슬픔 때문에 그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공작은 이자벨과 둘만 있게 되자, 이자벨의 정숙한 결심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대를 아름답게 만든 손은 또한 그대를 착하게 만들기도 하였구려."
  "오, 훌륭하신 공작님께서는 안젤로에게 얼마나 속으셨을까!  공작님께서 
돌아오시고 그분을 뵐 수만 있다면 안젤로가 한 짓을 폭로하겠어요."
  이자벨은 자기가 바로 지금 그 사실을 폭로하고 있는 줄 알지 못했습니다. 
공작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잘못하는 일은 아닐 것이오. 그러나 지금으로 봐서는 안젤로가 그대의 
말을 반박할 거요. 그러니 내가 권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그대가 가련한 한 
여자에게 좋은 일을 하고, 오빠를 무서운 법률로부터 구하고, 그대 자신에게는 
아무런 흠도 남기지 않으면서 공작이 돌아와 이 일을 알게 된다면 공작도 
기뻐할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이자벨은 옳지 못한 일만 아니라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할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덕이 있는 자는 용감한 법이요. 겁낼 것 업소."
  공작이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바다에 빠져 죽은 훌륭한 군인 프레드릭과 그 
누이인 마리아나에 대하여 들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들은 일이 있습니다."하고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훌륭한 분이라고 들었어요."
  "그 부인이 안젤로의 아내요. 그런데 부인의 지참금이 오빠가 타고 있던 배에 
실려 있었다오. 그러니 이 가엾은 여자가 얼마나 큰 슬픔을 겪었을지 생각해 
보시오.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아껴 주던 그 훌륭한 오빠를 잃은데다, 
재산을 잃어버린 바람에 겉으로는 훌륭한 채 하는 안젤로의 사랑마저 
잃어버렸으니. (정말은 지참금을 잃어버린 까닭이지만) 안젤로는 이 훌륭한 
여자에게 무슨 수치스러운 일이 있는 걸 알았다 하면서, 아내를 눈물 속에 
내버려두고 한마디 위안도 해주지 않는다 하오. 그의 이런 옳지 못한 불친절은 
그 여자의 사랑을 꺼버려야 마땅하지만, 마치 흐름을 거스르면 물결이 더 
격렬해지듯 마리아나는 그 잔인한 남편을 처음과 마찬가지로 사랑한다오."
  그러고 나서 공작은 자기의 계획을 알기 쉽게 털어놓았습니다. 즉 이자벨이 
안젤로에게 가서 그가 원하는 대로 밤중에 가겠다고 말하여 약속한 오빠의 
사면을 얻어냅니다. 그러고는 이자벨 대신 마리아나가 안젤로에게 가, 어둠 
속에서 이자벨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변장한 수도승이 말했습니다.
  "착한 아가씨, 이 일을 하는 걸 겁내지 마시오. 안젤로는 그녀의 남편이오. 
그들을 그렇게 만나게 하는 것은 죄가 아니오."
  이자벨은 그 계획이 마음에 들어 그대로 하려고 떠났습니다. 공작도 
마리아나에게 알려 주러 갔습니다. 공작은 이전에 수도승 차림으로 이 불행한 
여자를 만나 종교의 가르침도 알려 주고 친절하게 위안도 해준 일이 있는데, 
그때 그 여자에게서 그녀의 슬픈 이야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나는 그를 
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당장 승낙을 
했습니다.
  이자벨이 안젤로를 만나고 나서, 공작과 만나기로 한 마리아나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공작이 말했습니다.
  "잘 왔소. 때도 마침 좋고, 그 훌륭한 대리가 뭐라고 하던가요?"
  이자벨은 약속된 내용을 말했습니다.
  "안젤로의 정원은 벽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서쪽에 포도밭이 있고 그 
포도밭으로 문이 나 있답니다."
  그리고 안젤로가 준 두 개의 열쇠를 공작과 마리아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이 큰 열쇠는 포도밭 문을 여는 것이고, 이 작은 것은 포도밭에서 정원으로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한밤중에 정원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그리고 오빠를 살려 
준다는 약속을 받아 냈습니다. 그 장소에 대하여서는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아주 열심히 두 번씩이나 설명해 주었어요."
  "마리아나가 알고 있어야 할 무슨 암호 같은 걸 정하지는 않았소?"
  공작이 물었습니다.
  "아니요, 없어요. 다만 어두워진 다음에 간다는 것뿐이에요. 오래 있을 수는 
없다고 했어요. 제가 하인을 데리고 갈 거라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빠 일로 온다는 것을 이 하인이 안다고 했으니까요."
  공작은 이자벨의 신중한 행동을 칭찬하고 이자벨은 마리아나를 향하여 
"안젤로에게 해야 할 말은 별로 없어요. 나올 때 작은 목소리로 '제 오빠를 
기억하셔요!'라고만 하면 돼요.,"하고 말했습니다.
  이자벨은 그날 밤 마리아나를 약속된 장소로 데려다 주고, 그렇게 하여 
오빠의 목숨도 구하고 자신의 명예도 지키게 되었음을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공작은 클로오디오의 목숨에 대하여 안심을 할 수 없었으므로 자정이 
되어 다시 감옥으로 가보았습니다. 그것은 클로오디오에게는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그날 밤에 목이 잘리고 말았을 테니까요. 
공작이 감옥에 들어서자 곧 잔인한 공작 대리로부터 클로오디오를 교수형에 
처하고 아침 다섯 시까지 그의 목을 보내라는 명령이 왔던 것입니다. 공작은 
간수장을 설득하여 클로오디오의 사형을 연기하고 안젤로에게는 그날 아침 
감옥에서 죽은 다른 죄수의 머리를 보내도록 하였습니다. 간수장은 공작을 그저 
한낱 수도승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공작은 공작의 도장으로 봉인한 
공작의 친필 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간수장은 이 수도승이 여행중인 
공작으로부터 비밀리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여 클로오디오를 살려 
두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그는 공작이 시키는 대로 죽은 사람의 목을 잘라 
안젤로 에게 가져갔다. 
  그러고 나서 공작은 안젤로에게 편지를 써, 어떤 사고로 여행이 중단되어 
다음날 아침에 비엔나 시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안젤로에게 
도시의 입구에 나와 자기의 권한을 반환하라고 하였습니다. 공작은 또 누구든 
부당한 일을 탄원할 사람이 있으며, 그가 도시로 들어올 때 거리에서 탄원서를 
내라고 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이자벨은 감옥으로 갔습니다. 공작은 속셈이 따로 있어서 일단 
이자벨에게는 클로오디오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자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자벨이, 안젤로로가 사면 명령을 보냈는가를 
묻자 그는 "안젤로로는 클로오디오를 이 세상으로부터 해방시켰소. 그의 목은 
잘리어 공작 대리에게 보내졌소."라고 말했습니다. 기가 막힌 밸이 소리쳤습니다.
  "오 불쌍한 오빠, 가련한 이자벨. 나쁜 세상이여, 악독 안젤로!"
  변장한 수도승은 이자벨을 위로하여 좀 진정이 되자, 공작이 곧 돌아올 
것임을 알려 주고 안젤로를 고발할 때 어떻게 하라는 것까지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자벨에게 불리하게 되어 가는 것 같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이자벨에게 충분히 일러 놓고 나서 공작은 마리아나에게 가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공작은 수도승의 옷을 벗고 본래의 옷으로 차려 입었습니다. 그리고 공작의 
도착을 환영하러 모여든 시민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비에나 시로 들어왔다.  
안젤로가 마중을 나와서 적절한 예를 갖추어 공작의 권한을 되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자벨이 앞으로 나와서 탄원을 하며 말했습니다.
  "정의를 베풀어 주십시오, 공작님! 저는 클로오디오라는 사람의 동생이온데, 
오빠는 처녀를 꾀어낸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저는 안젤로경에게 오빠를 
사면하여 달라고 빌었습니다. 제가 무릎을 꿇고 빌고 공작 대리께서 거절을 
하시고, 또 제가 다시 애걸을 한 장황한 이야기는 다 말씀드릴 필요가 없을 
겁니다. 슬프고 수치스러운 그 끔찍한 결말을 이제 말씀드리겠습니다. 
안젤로경은 제가 그의 수치스러운 사랑에 응해야만 오빠를 사면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혼자서 몹시 망설였으나 오빠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저의 정조를 
버리고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찍 안젤로는 
자기의 약속을 저버리고 오빠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공작은 이자벨의 말을 믿지 않는 척했습니다. 안젤로는 이자벨의 오빠가 법에 
의해 처형을 당했는데 이자벨이 그 때문에 슬퍼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 탄원을 하러 왔다. 그 사람은 
마리아나였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훌륭하신 공작님, 빛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숨결에서 진실된 말이 나온다면, 
그리고 진실 속에 뜻이 있고 미덕 속에 진실이 있다며, 저는 바로 이 사람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이자벨의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자벨이 안젤로와 함께 
보냈다는 그 밤에 제가 그의 정원 누각에서 그와 함께 있었으니까요.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벌을 받아 풀이 되어 버려도 좋습니다."
  그러자 이자벨은 자기가 한 말이 사실이며, 로도윅이라는 수도승이 그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공작이 변장을 하고 쓰던 이름이었습니다. 
이자벨과 마리아나는 둘 다 공작이 시킨 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자벨이 
결백하다는 것을 비엔나의 모든 시민들 앞에서 분명히 밝히려는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안젤로는 그런 까닭이 있는 줄은 모르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말을 하니, 빠져 나갈 길이 생겼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모함을 
받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웃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작님, 더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보니 정신이 이상한 이 두 여자는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짓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일을 밝혀 내도록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하고 공작이 말했습니다.
  "경이 원하는 대로 벌을 주도록 하시오. 에스칼러스경, 당신도 안젤로경과 
함께 이 모함을 밝혀 내도록 수로를 해주시오. 저 사람들에게 시켰다는 
수도승을 부르러 보냈으니, 그대에게 해를 입힌 만큼 벌을 주도록 하시오. 나는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으니. 안젤로경, 이 모함이 완전히 밝혀질 때까지 동요하지 
마시오."
  그리고 자신에 관한 일을 자기 자신이 심판할 수 있게 되어 기뻐하는 
안젤로를 남겨 둔 채 공작은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공작이 자리를 비운 
것은 옷을 바꿔 입는 동안뿐이었습니다. 그는 수도승 차림을 하고 다시 
안젤로와 에스칼러스 앞에 나왔습니다. 훌륭한 에스칼러스는 안젤로가 거짓된 
모함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 가짜 수도승에게 말했습니다.
  "공작님은 어디 계십니까? 제 말을 들어야 할 분은 공작님이십니다."
  에스칼러스가 "우리가 공작님을 대신하고 있소. 우리가 당신의 말을 들을 
것이니 사실을 말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과감하게 말하겠소."
  수도승이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자벨이 탄원한 일을, 바로 탄원의 
대상인 안젤로의 손에 맡겼다고 공작을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비엔나 
시를 돌아보았더니 너무나도 부패한 일이 많더라고 마구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에스칼러스는 나라의 일에 반대하고 공작님을 비방한 죄로 그를 고문하겠다고 
위협하며 잡아다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고 안젤로가 어쩔 줄 모르게 될 일이 일어났으니, 그 수도승이 
변장을 벗고 바로 공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공작은 처음에 이자벨에게 발했습니다.
  "이리 오시오, 이자벨. 그대의 수도승이 바로 그대의 공작이 되었소. 그러나 
옷을 바꿔 입은 것처럼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니오. 여전히 당신을 돕겠소."
  "오, 용서하여 주십시오."하고 이자벨이 말했습니다.
  "한낱 미천한 백성인 제가 공작님을 몰라 뵙고 수고와 괴로움을 끼쳐 
드렸으니."
  공작은 오빠의 죽음을 막지 못했으니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라고 
대답했습니다. - 공작은 아직은 클로오디오가 살아 있다는 걸 알릴 생각이 
아니었어요. 이자벨이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더 알아볼 셈이었습니다. - 이제 
안젤로는, 공작이 자신의 나쁜 행실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말했습니다.
  "존경하는 공작님, 공작님께서 하느님과도 같이 저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신 
것을 모르고 자신의 죄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저의 죄가 더욱 커졌다. 
훌륭하신 자백으로 심판을 대신하게 해주십시오. 당장 선고받고 죽는 것이 제가 
바라는 은총의 전부입니다."
  공작이 말했습니다.
  "안젤로, 그대의 죄는 드러났다. 그대를 클로오디오의 목을 자른 바로 그 
교수대로 보내니 클로오디오와 마찬가지로 서둘러 처형하도록 하라. 그리고 
마리아나, 그의 재산은 그대에게 줄 터이니, 보다 나은 남편을 얻는 데 
지참금으로 쓰도록 하라."
  "아, 공작님, 저는 다른 사람도, 더 나은 사람도 원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나는 이렇게 말하며 무릎을 꿇고, 이자벨이 안젤로에게 오빠를 살려 
달라고 빌었던 것처럼, 자기에게 불성실한 남편 안젤로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어진 군주이신 훌륭하신 공작님! 착한 이자벨, 나를 도와 줘요. 나와 함께 
무릎을 꿇고 빌어 줘요. 남은 일생 동안 목숨을 바쳐 당신을 도와 드리겠어요!"
  공작이 말했습니다.
  "이자벨에게 그런 청을 하다니 정신이 있소? 이자벨이 무릎을 꿇고 안젤로를 
살려 주라고 빈다면 클로오디오의 유령이 무덤을 뚫고 나와 괴롭힐 게 아니오?"
  그래도 마리아나는 계속하여 "이자벨, 아름다운 이자벨, 부디 내 옆에 무릎을 
꿇어 줘요.  아무 말 않아도 좋으니 손만이라도 들어 줘요. 말은 내가 하겠어요. 
흔히들 가장 착한 사람이라도 잘못은 있다고 합니다. 또 나쁜 일을 조금 했던 
사람이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도 하지요. 제 남편이 그러할 것입니다. 오 
이자벨, 나와 함께 빌어 주지 않겠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공작이 
말했습니다.
  "그는 클로오디오를 죽인 죄로 죽는 것이오."
  공작은 이자벨이 착하고 명예롭게 행동하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자벨이 정말 무릎을 꿇고 "자비로우신 공작님, 저의 오빠가 살아 있는 것으로 
생각하시고 이 사람을 살려 주십시오. 그가 저를 보기 전까지는 진실되게 
행동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를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저의 오빠는 
지은 죄가 있었으니 부당하게 죽은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했을 때 공작은 몹시 
기뻤습니다. 공작은 감옥에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있는 
클로오디오를 데리러 보냈습니다. 그리고 원수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비는 이 
훌륭한 탄원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보답으로 살아 있는 오빠를 
내주었습니다. 공작은 이자벨에게 말했습니다.
  "그대의 손을 주시오, 이자벨. 사랑스러운 당신을 보아 클로오디오를 사면하오. 
그대가 나의 것이 되고, 그대의 오빠가 나의 형제가 되겠다고 말해 주시오."
  이제 안젤로는 자기가 살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안색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공작이 말했습니다.
  "자, 안젤로, 그대의 아내를 사랑하도록 하시오. 아내를 보아 그대를 사면하는 
것이니. 마리아나 기뻐하시오. 안젤로, 아내를 아껴 주시오. 내가 그녀의 고해를 
들어서 그녀의 정숙함을 알고 있소."
  안젤로는 잠시 동안 권력을 가졌던 때에 자기가 얼마나 냉혹했던가를 깨닫고, 
자비심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를 느꼈습니다.
  공작은 클로오디오에게 줄리엣과 결혼하라고 명령하고, 다시 이자벨에게 
  청혼을 하였습니다. 이자벨의 정숙하고 고귀한 행동이 공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습니다. 이자벨은 아직
수녀가 되지 않았으므로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공작이 수도승으로 변장하고
친절히도와준것을 생각하고 이자벨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자벨이 비엔나의 공작 부인이 되어 정숙한 몸가짐의 모범을 보이자 
  비엔나시의 젊은 여자들이 
모두 그 본을 따랐기 때문에, 그때부터 아무도 줄리엣과 같은 실수슬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비심 많은 공작은 사랑하는 이자벨과 함께 가장 행복한 남편으로서 
  오래오래 비엔나 시를 다스렸습니다.

      열두 번째 밤
  세바스찬과 그의 누이 바이올라는 메살린에 사는 젊은 신사와 숙녀인데 
쌍둥이였다. 그들은 신기하게도 태어날 때부터 서로 너무나 꼭 닮아서 옷차림을 
달리 하지 않는다면 구별해 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같은 시각에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시각에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둘이 함께 바다 여행을 하다가 
일리리아의 해변에서 파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타고 있던 배는 심한 
폭풍을 만나 암초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 배에 타고 있던 사람 중에서 겨우 
몇 명만이 목숨을 건졌다. 선장은 목숨을 구한 몇 명의 선원과 함께 안전하게 
해안에 오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가엾은 누이는 목숨을 건진 것을 
기뻐하기보다 오빠를 잃은 것을 더 슬퍼했다. 그러나 선장은 배가 부서질 때 
오빠가 튼튼한 돛대에 모을 붙들어 매고 파도 위로 떠 올라온 것을, 나중에 
멀어져서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분명히 보다고 하며 바이올라를 
안심시켰습니다. 바이올라는 그 이야기에 기대를 걸고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이제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 낯선 곳에서 어떻게 지낼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이올라는 선장에게 일리리아에 관해 아는 게 
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예, 잘 압니다, 아가씨."라고 선장이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세 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서 태어났는걸요."
  "누가 이곳을 다스리나요?" 하고 바이올라가 물었습니다. 선장은 오시노라는 
고상한 인품과 위엄을 갖춘 공작이 다스리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바이올라는 
아버지가 오시노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에는 결혼을 하지 
않았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그럴 겁니다."하고 선장이 말했습니다.
  "겨우 한 달 전에 제가 이곳에서 떠났는데 그때 사람들의 말이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 하는 일을 떠들어대는 법이니까요) 오시노 공작이 
아름다운 올리비아에게 구애를 한다더군요. 올리비아는 일 년 전에 죽은 백작의 
딸인데 오빠의 손에 맡겨졌다가 그 오빠도 얼마 되지 않아 죽어 버려서, 오빠를 
잃은 슬픔 때문에 사람들을 보기도 싫어하고 사람들과 같이 있기도 싫어한다고 
하더군요."
  바이올라는 자기도 오빠를 잃은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터이라 오빠의 죽음을 
그렇게 애도하는 이 여자와 같이 살고 싶어졌습니다. 바이올라는 선장에게, 
기꺼이 그 여자의 하녀가 되겠으니 자기를 올리비아에게 소개시켜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선장은, 올리비아가 오빠가 죽은 뒤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심지어는 
공작조차도 집안에 들이지 않으므로 몹시 어려운 일일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바이올라는 마음속에 다른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남장을 하고 
오시노 공작의 시종이 되겠다는 속셈이었습니다. 젊은 여자로서 남장을 하고 
남자 노릇을 하겠다는 것은 엉뚱한 생각인 것 같으나, 낯선 곳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게다가 젊고 남달리 아름다운 여자 혼자 몸인 바이올라의 
처지이고 보면 충분히 변명이 될 것입니다.
  바이올라는 선장의 행동이 점잖고 자기의 처지에 친절한 관심을 보여 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당장 바이올라를 도와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바이올라는 선장에게 돈을 주고 적당한 옷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며, 옷의 모양이나 빛깔을 오빠인 세바스찬이 입던 것과 똑같이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바이올라가 남자의 옷을 입자 오빠와 너무도 똑같아 
사람들이 그들을 혼동하여 이상한 실수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세바스찬도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바이올라의 좋은 친구인 선장은 이 아름다운 아가씨를 신사로 만들고서는, 
궁정에 아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오시노에게 세자리오라는 가명으로 
소개하였습니다. 공작은 이 잘생긴 젊은이의 말씨와 훌륭한 태도에 아주 
만족하여 세자리오를 자기의 시종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이올라가 
원했던 일이었지요. 바이올라는 자기가 새로 맡은 일을 아주 잘해 내고 주인을 
충실히 섬겼으므로 곧 공작의 가장 아끼는 시종이 되었습니다. 오시노 공작은 
세자리오에게, 올리비아에 대한 그의 사랑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오랫동안 구애를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고 그의 오랜 봉사도 거절하고, 그의 
모습도 보기 싫어하여 만나는 것조차 거절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토록 
냉담한 그 여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오시노는 전에 그렇게 즐기던 사냥이나 
남자다운 운동도 그만 두고, 부드러운 음악과 고상한 노래, 정열적인 연가 
따위의 여성적인 노래나 들으면서 게으르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에 
사귀던 현명하고 학식 많은 귀족들과의 교제도 소홀히 하고 온종일 젊은 
세자리오와 이야기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근엄한 신하들은, 한때는 고귀했던 
그들의 주인인 오시노 공작에게 세자리오가 부적합한 상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처녀가, 잘생긴 젊은 공작이 마음을 털어놓는 상대역을 맡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바이올라는 슬프게도 오시노가 올리비아 때문에 겪고 
있다는 사랑의 고통을, 바이올라 자신이 오시노 때문에 겪게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깊이 찬양할 만한 이 훌륭한 공작에게 
올리비아가 그렇게나 무관심한 것이 바이올라에게는 몹시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바이올라는 오시노에게, 그의 훌륭한 자질을 알아보지 못하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따한 일이라고 넌지시 말하였습니다.
  "만일 어떤 여자가, 공작님이 올리비아를 사랑하듯 공작님을 사랑한다면 (그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공작님은 그 여자를 사랑하실 수 없다면, 
공작님은 그 여자에게 사실대로 말씀하시고 그 여자는 그 대답에 만족해야만 
되는 걸까요?"
  그러나 오시노는 이런 논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여자라도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사랑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여자의 
마음도 그토록 많은 사랑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으므로, 올리비아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자기에 대한 어떤 여자의 사랑과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바이올라는 공작의 의견을 대단히 존중하였지만,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마음도 오시노의 마음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이올라는 "아, 그러나 저는 압니다. 주인님."하고 말했습니다.
  "네가 뭘 아느냐, 세자리오?" 하고 오시노가 물었습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여자들이 남자들을 얼마나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지를요. 여자들도 우리 남자와 마찬가지로 진실된 마음을 갖고 있지요. 저의 
아버지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제가 여자였다면 공작님을 사랑했을 그만큼 
어떤 남자를 사랑했답니다."하고 바이올라가 말했습니다.
  "그래 어떻게 되었지?"하고 오시노가 물었습니다.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라고 바이올라가 대답했습니다.
  "사랑을 말하지 않고 감추다 보니 마치 벌레가 새싹을 갉아먹듯 장미빛 
얼굴이 상하게 되었지요. 마음속으로만 애태우다가 어둡고 침울한 우울에 
빠져서 인내의 여신처럼 슬픔의 여신에게 미소나 짓고 앉아 있었습니다."
  공작은 그 여자가 사랑 때문에 죽었느냐고 물었으나 이 물음에 대해서 
바이올라는 대답을 피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는, 자기가 오시노를 남몰래 
사랑하여 겪는 말없는 슬픔을 이야기로 꾸며서 말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공작이 올리비아에게 보냈던 사람이 돌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을 만나 뵙지도 못했습니다. 하녀가 나와서 대답의 말씀을 공작님께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칠 년 동안 하늘과 땅도 아씨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요, 아씨는 수녀처럼 베일을 쓰고 다니며 죽은 오빠에 대한 슬픈 
추억의 눈물로 온 방을 적실 것이랍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작이 외쳤습니다.
  "오, 죽은 오빠에 대한 애정이 그토록 깊다니. 만일 풍요한 금빛 사랑의 
화살이 그녀의 심장을 건드린다면, 얼마나 열렬히 사랑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는 바이올라에게 말했습니다.
  "세자리오, 너도 알다시피 내 마음의 비밀은 모두 네게 털어놓았다. 그러니 
젊은 네가 올리비아의 집에 가거라. 만나 주지 않겠다는 말을 듣지 말고, 문간에 
서서 만나 줄 때까지는 발에서 뿌리가 내리는 한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여라."
  "만일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바이올라가 물었습니다.
  "아, 그때는 내 열렬한 사랑을 털어놓고 나의 진실한 마음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게. 나의 괴로움을 전하는 데는 자네가 꼭 알맞아. 근엄한 모습을 지닌 
사람보다는 자네의 말을 더 잘 들을 거야."
  그래서 바이올라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구애를 하러 떠났습니다. 자기가 
공작의 아내가 되고 싶은데, 다른 사람에게 공작의 아내가 되어 달라는 청을 
하러 가는 길이니 마음이 내킬 리가 없겠지요. 그러나 일을 맡은 이상 성실히 
해내었습니다. 잠시 후 올리비아는 한 젊은이가 와서 꼭 만나야겠다고 조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인이 말했습니다.
  "아씨께서 편찮으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런 줄 알고서 말씀을 드리러 
왔다는 겁니다. 다시 아씨께서 주무신다고 했더니, 그것도 역시 미리 알고 
있다는 듯 그러니까 만나 뵈어야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뭐라고 해야 되지요, 
아씨?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아씨야 만나고 싶으시든 말든 자기는 
꼭 만나야겠다고 하는데요."
  올리비아는 이 대단한 심부름꾼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하여 들여보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나서, 오시노의 심부름꾼을 한 번 더 
만나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추근거리는 걸 보니 공작에게서 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바이올라는 할 수 있는 한 남자다운 태도로 들어와서, 신분이 
높은 사람의 시종답게 훌륭한 말씨로 베일 쓴 숙녀에게 말했습니다.
  "찬란하고 섬세하며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우신 분이여, 당신께서 이 댁의 주인 
아씨이신지 아니신지 말슴해 주십시오. 제가 준비해 온 말을 다른 분에게 전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드릴 말씀은 훌륭한 내용일뿐더러 제가 외느라고 몹시 
힘이 든 것입니다."
  "어디서 오셨나요?"하고 올리비아가 물었습니다.
  "제가 준비해 온 말밖에는 별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물음에 대답하는 
일은 제가 맡은 역할이 아닙니다."라고 바이올라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희극 배우인가요?"
  올리비아가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바이올라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맡은 역할이 바로 제 자시의 역도 아니고요."
  자기가 여자이면서 남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이올라는 올리비아에게, 이 집의 안주인이냐고 물었습니다. 올리비아가 
그렇다고 하자, 주인의 말을 전하기가 바빠서라기보다 자기의 경쟁상대의 
모습을 보고 싶은 호기심에서 "훌륭하신 아가씨, 얼굴을 뵙게 해주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이 대담한 요청에 올리비아는 싫어하지 않고 따랐습니다. 오시노가 
그렇게 오랫동안 사모해 온 이 오만한 미인은 신분이 낮은 세자리오를 처음 
보자마자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바이올라가 얼굴을 보여 달라고 하자 올리비아는 "그대의 주인으로부터 내 
얼굴과 무슨 교섭을 하라는 임무를 받고 왔나요?"하면서 칠 년 동안이나 베일을 
쓴 채 지내겠다던 결심을 잊고 배일을 걷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휘장을 걷고 그림을 보여 드리지요. 잘 그려지지 않았나요?"
  바이올라가 대답하였습니다.
  "잘 조화된 아름다움입니다. 뺨 위의 붉은빛과 흰빛은 대자연의 교묘한 손으로 
그려진 것이군요.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이 세상에 사본도 남겨 두지 
않으시고 무덤으로 가져가 버리신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분이 될 
거예요."
  "아, 나는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내 미모의 목록을 남겨 
둘 테니까요. 예를 들면 두 입술, 평범한 붉은 빛, 두 개의 회색빛 눈, 눈꺼풀이 
있음, 목 하나 턱 하나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런데 나를 칭송하라고 당신을 
이곳에 보낸 건가요?"
  바이올라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이제 알겠습니다. 당신은 자존심이 너무나 강하지만 
아름다우십니다. 저의 주인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아, 당신이 미의 여왕이 
되신다 해도 그분의 사랑을 다 갚으실 수 없을 겁니다. 오시노 공작께서는 
당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눈물로 당신을 찬양하고, 천둥과 같이 신음하며 
불과도 같은 한숨을 쉬십니다."
  "그대의 주인은 나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나는 그 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훌륭하시다는 것을 의심하진 않아요. 고귀하시고 신분도 
훌륭하시며 흠 잡을 데 없는 젊은이라는 것을 압니다. 모두들 그 분을 학식 
있고 예절 바르고 용감한 분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그분을 사랑할 수 
없어요. 벌써 오래 전에 대답을 드린 거나 같아요."
  "만일 저의 주인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듯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의 문 
앞에 버들로 움막을 짓고 살며 당신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올리비아에게 
드리는 사랑의 시를 지어 한밤중에 노래로 부르겠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산속에서 외쳐 불러, 공중의 수다쟁이인 메아리가 올리비아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오, 당신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쉬지 못하고 저를 동정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실컷 해보시구려. 그런데 그대는 어떤 가문의 자손인가요?"라고 올리비아가 
물었습니다.
  "제 지금의 처지보다 위입니다만, 현재도 나쁘진 않아요. 근본은 신사입니다."
  올리비아는 보내고 싶지는 않았으나 바이올라를 보내면서 "당신의 주인에게 
가서 내가 그분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해요. 이제 심부름을 보내지 말라고 
하셔요. 혹시 그가 내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려 주러 당신이 온다면 
모르지만,"하고 말했습니다. 바이올라는 "아름답지만 잔인한 분이여."라고 
올리비아를 부르면서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바이올라가 가고 나자 올리비아는 "제 지금의 처지보다 위입니다만 현재도 
나쁘진 않아요. 근본은 신사입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해 보고는 큰 소리로 
"분명히 그럴거야. 그의 말씨나 얼굴, 손발이며 행동이며 기백이 그가 신사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는걸."하였습니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세자리오가 공작이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그를 
매우 사랑하게 된 것을 깨닫고는 갑작스레 사랑에 빠진 자신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하는 가벼운 비난은 뿌리가 깊지 못한 
법입니다. 곧 이 고귀한 아가씨 올리비아는 자기와 시종 노릇을 하는 사람의 
신분의 차이도, 여성의 최고의 미덕인 처녀다운 수줍음도 잊어버리고 이 젊은 
세자리오에게 구애하기로 마음먹고, 하인을 시켜 그를 뒤쫓아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라고 하였습니다. 오시노의 선물인데, 세자리오가 그것을 두고 갔다는 
핑계를 붙여서 말입니다. 이렇게 교묘한 방법으로 세자리오에게 반지를 
선사하면 자기의 마음을 알아채리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사실 바이올라도 
그러한 눈치를 챘습니다. 오시노가 자기편에 반지를 보내지 않은 줄을 아는 
바이올라는, 올리비아의 표정과 태도가 자기를 찬양하는 눈치이던 것을 
생각하고 곧, 자기 주인이 사모하는 여자가 바로 자기를 사랑하게 된 것을 
짐작했습니다.
  "아하, 그 가엾은 여자는 꿈을 사랑하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었구나. 변장을 
하는 것이 나쁜 일인 줄 알겠다. 올리비아는 나 때문에 쓸데없이 한숨을 쉬게 
되고, 나는 또 오시노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게 되었으니."
  바이올라는 오시노의 궁전으로 돌아와서 교섭에 실패했음을 말하고, 이제는 
자기를 귀찮게 하지 말아 달라고 한 올리비아의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나 
공작은 세자리오라면 결국 올리비아를 설득하여 동정을 보이도록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음날 또 올리비아에게 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동안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려고 그가 즐겨 듣는 
노래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내 착한 세자리오, 지난밤에 그 노래를 들었을 때, 그 노래가 나의 마음을 
많이 가라앉혀 주는 것 같았어. 들어 봐, 세자리오. 오래 된 평범한 노래야. 베 
짜는 여자나 뜨개질하는 여자들이 햇볕에 앉아서, 또 어린 처녀들이 바늘로 
실을 놀리면서 이 노래를 불렀지. 어리석은 노래지만 마음에 들어. 옛날 사랑의 
순결함을 얘기하는 노래니까."
  오너라, 오너라 죽음이여, 슬픈 사이프러스 관속에 나를 눕혀 다오. 
날아가거라, 날아가거라 숨결이여, 아름답고 잔인한 아가씨 손에 나는 죽었네. 
준비해 다오, 주목나무 장식이 달린 흰 수의를 나의 죽음을 그처럼 진정으로 
함께 한 이는 없으니. 꽃 한 송이도, 향기로운 꽃 한 송이도 내 검은 관위에 
던지지 말라. 친구도, 한사람의 친구라도 뼈만이 던져져 있을 내 주검을 
찾아오지 말라. 수없이 많은 한숨을 쉬지 않도록, 오 나를 묻어 다오. 슬프고 
참된 연인이 찾아와 울 수 없는 곳에!
  바이올라는 보상받지 못하는 사랑의 고뇌를 그렇게 단순하고 진실되게 표현한 
노래를 듣자, 노래가 표현한 감정을 그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오시노는 바이올라의 슬픈 표정을 보고 "아니, 세자리오. 너는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사랑을 해본 적이 있구나. 그렇지 않으냐?"하고 물었습니다.
  "예, 조금요."
  바이올라가 대답했습니다.
  "어떤 여자이냐, 나이는 얼마이고?"
  오시노가 물었습니다.
  "공작님만한 나이이고, 얼굴도 공작님과 비슷합니다."
  바이올라의 이 대답을 듣고 공작은, 이 아름다운 젊은이가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남자처럼 낯빛이 검은 여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러나 바이올라는 속으로 다름아닌 오시노를 가리킨 것이지 그를 닮은 
여자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로 올리비아를 찾아갔을 때, 바이올라는 어렵지 않게 올리비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인들은 언제 주인 아씨들이 젊고 잘생긴 심부름꾼과 얘기하고 
싶어하는지를 곧 알아채는 법입니다. 바이올라가 도착하자마자 문이 활짝 
열리고, 공작의 시종은 정중하게 올리비아의 방으로 안내되었습니다. 바이올라가 
자기 주인의 심부름으로 다시 한 번 간청을 하러 왔다고 하자, 이 아가씨는 
"그분 말씀은 제발 다시 하지 말라고 말했잖아요. 다른 사람의 구애를 하겠다면 
천상의 음악보다도 더 즐겨 듣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아주 솔직한 
말이었는데, 올리비아는 곧 더욱 솔직하게 자기의 마음을 설명하며 드러내 놓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이올라의 얼굴에서 당황하고 난처한 기색을 
보고 올리비아는 "아, 그의 입술에 나타난 경멸과 노여움의 표정은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 세자리오, 봄에 피는 장미꽃, 처녀의 순결, 명예 그리고 
진실에 맹세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오만하게 저를 거절하셔도 
저의 사랑을 감출 만한 지혜도 분별력도 제겐 없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올리비아가 한 사랑의 고백은 헛일이었습니다. 바이올라는 다시는 
오시노의 사랑을 간청하러 오지 않겠다고 하며 서둘러서 떠나 버렸습니다. 
올리비아의 간절한 사랑의 고백에 대해서는 "자기는 어떤 여자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이 대답이었습니다.
  바이올라는 올리비아의 집을 나서기 무섭게 그의 용기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올리비아에게 구애했다가 거절을 당한 적이 있는 어떤 신사가, 
올리비아가 공작의 심부름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결투를 신청한 
것이었습니다. 가엾은 바이올라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바이올라는 비록 남자 
차림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여자의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차고 
있는 칼을 보기만 해도 겁이 났으니까요.
  무시무시한 상대가 칼을 뽑아 들고 다가오자 바이올라는 자기가 여자라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곧 바이올라는 두려움과 진실을 
드러내는 창피함을 함께 면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던 낯선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와서, 바이올라를 오래 전부터 잘 알며 가장 절친한 친구인 듯한 태도로 
상대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젊은이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내가 책임을 지겠소. 그러나 당신이 이 
사람에게 잘못했다면 내가 대신 싸우겠소."
  바이올라가 고맙다는 인사며 친절하게 해준 까닭을 묻기도 전에 그 낯선 
친구는 다른 적을 만났는데, 이번에는 그의 용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낯선 사람이 몇 년 전에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를 체포하러 온 것이니까요. 
그는 바이올라에게 말했습니다.
  "자네를 찾으려다 이렇게 되었네."
  그러고는 지갑을 달라고 하면서 "이제 내 지갑이 필요하게 되었어.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것보다 자네를 도와 줄 수 없게 된 것이 더 마음 아픈 일이야.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군. 안심하게."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은 바이올라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이올라는 그를 알지 
못하며, 그에게서 지갑을 받은 일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방금 자기에게 
보여 준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많지는 않으나 자기가 갖고 있던 돈 전부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낯선 사람은 바이올라를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당신들 눈앞에 있는 이 젊은이를 죽음의 아가리로부터 내가 
구해 냈습니다. 그리고 오직 이 사람 때문에 일리리아에 와서 지금 이러한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순경들은 죄인의 불평을 들을 생각이 없었기 때 빨리 가자고 
재촉하면서 "그러니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고 말했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도 
바이올라를 세바스찬이라고 부르며 멀어져서 들리지 않을 때까지 친구를 모른 
체한다고 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이올라는 자기를 세바스찬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그 낯선 사람이 너무나 급히 끌려가 버려서 설명을 해달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이 이상한 듯한 일이 자기를 오빠로 잘못 보아 생겨난 일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구해 주었다고 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의 
오빠일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이 정말 그러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름이 안토니오이며 배의 선장이었습니다. 그는 세바스찬이 폭풍 속에서 몸을 
돛대에 묶고 그 위에 얹힌 채 떠다니며 지쳐서 기진맥진한 것을 자기의 배에 
끌어올렸습니다. 안토니오는 세바스찬을 아주 좋아하게 되어 그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함께 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바스찬이 오시노의 궁전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자, 일리리아에 가서 자기의 신분이 드러나면 위험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세바스찬과 헤어지기 싫어서 같이 온 것입니다. 전쟁 때 
안토니오는 오시노 공작의 조카에게 크게 부상을 입힌 적이 있었는데, 지금 
그가 잡혀가는 까닭은 바로 그 일 때문이었습니다.
  안토니오가 바이올라를 만나기 불과 한두 시간 전에 안토니오와 세바스찬은 
일리리아에 닿았습니다. 그는 세바스찬에게 자기의 지갑을 주며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마음대로 쓰라고 하고, 세바스찬이 거리를 돌아보는 동안 자기는 
여인숙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바스찬이 약속한 시각에 
돌아오지 않자, 안토니오는 그를 찾으러 나왔다가 바이올라가 똑같은 옷에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므로, 자기가 구한 젊은이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요)를 
보호하기 위하여 칼을 뽑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바스찬(그는 그렇게 
생각했지요)이 그를 모른다고 하며 자기의 지갑을 돌려주지 않으니 
배은망덕이라고 욕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요.
  바이올라는 안토니오가 가고 나자, 다시 결투를 하자고 할까 봐 겁이 나서 
재빨리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바이올라가 간 지 얼마 안 되어 결투를 청했던 
사람은 그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히 그곳에 
오게 된 세바스찬이었습니다. 결투를 신청한 사람은 "자, 이제 다시 만났군. 한 
대 받아라."하면서 세바스찬을 쳤습니다. 세바스찬은 비겁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자기가 맞은 데에 이자를 붙여서 때려 주고는 칼을 뽑았습니다.
  한 여자가 나타나 이 결투를 중단시켰습니다. 세바스찬을 세자리오라고 
생각한 올리비아가 집 밖으로 나와서, 그런 무례한 공격을 받게 한 것을 
미안해하며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 것입니다. 세바스찬은 어떤 사람이 
난데없이 싸움을 걸어 온 것에도 놀랐지만, 이 여자가 친절하게 해주는 데에도 
몹시 놀랐습니다. 그러나 기꺼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올리비아는 세자리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가 자기의 정성을 어느 정도 받아 준다고 
생각하여 기뻤습니다. 모습은 똑같은데 자기가 세자리오에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 보였던 노여움과 경멸의 표정은 없었으니까요.
  세바스찬은 이 여자가 자기에게 베푸는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단히 기분 좋게 받아들였으나 어찌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올리비아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가 보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올리비아가 훌륭한 저택의 주인이고 일을 지시하고 집안을 잘 다스리는 것을 
보니, 자기를 갑자기 사랑하게 된 점만 빼고는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그 구애를 받아 주었습니다. 올리비아는 세자리오가 기분이 좋은 것을 
보고 마음이 변할까 두려워서 집안에 신부 한 분이 있으니 당장 결혼을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세바스찬도 그렇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결혼식이 끝나자 그는 
아내를 잠시 남겨 두고 친구인 안토니오에게 가서 자기가 만난 행운을 말해 
주려고 했습니다. 그 동안에 오시노는 올리비아를 찾아왔습니다. 공작이 
올리비아의 집 앞에 왔을 때, 순경들이 죄수로 잡은 안토니오를 데리고 
왔습니다. 바이올라는 공작과 같이 있었습니다. 안토니오는 바이올라를 보자 
아직도 세바스찬인줄 알고, 공작에게 그가 이 젊은이를 어떻게 바다에서 
구했는지를 말했습니다. 자기가 세바스찬에게 베푼 친절을 다 이야기하고, 그는 
석 달 동안 밤낮으로 이 은혜를 모르는 젊은이와 함께 지냈다는 말로 이야기를 
끝마쳤습니다.
  그때 올리비아가 집에서 나오자, 공작은 안토니오의 말을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백작 아가씨께서 나오신다. 선녀가 땅 위를 걷고 있구나! 
그런데 자네 말일세, 자네의 말은 터무니없는 소리야. 석 달 동안 이 젊은이는 
내 시중을 들고 있었어."라고 말하고, 안토니오를 데리고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선녀와도 같은 백작 아가씨로 말미암아 공작은 안토니오가 그랬던 
것처럼 세자리오를 배은망덕 하다고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공작이 올리비아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은 모두 세자리오를 사랑한다는 
말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공작은 자기의 시종이 올리비아에게 이렇게 높이 
호감을 산 것을 보고 무서운 복수를 하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공작은 그 곳을 
떠나며 바이올라에게 따라오라고 하며 "나를 따라요. 혼을 내줄 테니."라고 
말했습니다. 질투심 때문에 분이 난 공작은 바이올라를 당장 죽일 듯했으나, 
바이올라는 공작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어, 주인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면 즐겁게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올리비아는 자기의 남편을 그렇게 잃어버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나의 세자리오. 어디로 가시나요?"하고 외쳤습니다. 바이올라가 대답했습니다.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분을 따라가오."
  그러나 올리비아는 큰소리로 세자리오가 자기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이 
떠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리고 신부를 모셔오니, 신부는 올리비아 아가씨와 
이 젊은이를 결혼시킨 것이 두 시간도 안 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이올라가 
올리비아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우겨도 헛일이어서, 올리비아와 신부의 
증언을 듣고 오시노는 자기의 시종이 자기가 목숨보다도 더 아끼는 보물을 훔쳐 
가버렸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생각하고 
공작은 잃어버린 애인과 그 남편인 '젊은 위선자'에게 작별을 하고, 
바이올라에게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또 한 명의 
세자리오가 나타나서 올리비아에게 아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새로 
나타난 세자리오는 올리비아의 진짜 남편인 세바스찬이었습니다. 같은 모습에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 같은 옷차림을 한 두 사람을 보고 어리둥절한 것이 좀 
가라앉자, 오빠와 누이동생을 서로 묻기 시작했습니다. 바이올라는 오빠가 정말 
살아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세바스찬은 물에 빠져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남자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바이올라는 곧, 자기는 사실 그의 누이동생인 바이올라이며, 남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쌍둥이 남매가 서로 닮은 것 때문에 생겨난 모든 실수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올리비아가 여자에게 반해 버린 것이 우습다고 모두 웃었습니다. 
올리비아는 누이동생 대신 그 오빠와 결혼한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상대가 
바뀐 것을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올리비아의 이 결혼으로 오시노의 모든 희망은 영원히 끝나고 말았습니다. 
희망과 함께 헛된 사랑도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젊은 세자리오가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하는 데 마음이 쏠려 
바이올라를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공작은 늘 세자리오가 아주 잘 생겼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여자의 차림을 하면 대단히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는 바이올라가 자주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때는 
충실한 시종이 주인을 섬기는 말이거니 생각했으나 이제 보니 다른 뜻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여태까지는 수수께끼 같던 사랑스러운 말들이 마음에 떠올라서 
그는 곧 바이올라를 아내로 삼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세자리오니, 
젊은이니 하고 부르던 것이 버릇이 되어서) "너는 나를 사랑하듯이 다른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고 수없이 말했지. 연약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몸으로 내게 
충성스럽게 많은 일을 해주었다. 나를 오랫동안 주인이라 불렀으니 이제 네 
주인의 아내가 되어서 오시노 공작의 부인이 되거라."하고 말했습니다.
  올리비아는, 오시노가 자기가 그렇게 매정하게 거절했던 사랑을 
바이올라에게로 돌리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집안으로 청해 들여, 그날 아침 
세바스찬과 올리비아를 결혼시킨 신부에게 오시노와 바이올라에게도 같은 
의식을 베풀어주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쌍둥이 남매는 같은 날 결혼을 
하게 되고, 그들을 떼어놓았던 폭풍과 파선이 오히려 그들에게 고귀한 운명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이올라는 일리리아의 공작인 오시노의 아내가 
되었고, 세바스찬은 돈 많고 고귀한 백작의 딸인 올리비아의 남편이 
되었으니까요.


      아테네의 타이몬
  
  굉장한 재산가인 아테네의 귀족 타이몬은 마음씨가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거의 한이 없다시피 막대한 그의 재산은 물론 하루아침에 
벌어들인 게 아니고 오랜 세월을 통하여 꾸준히 이룩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부류,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자기의 재산을 들어오는 것보다 더 
빨리 물 쓰듯 쓰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만이 그의 자선의 혜택을 본 
것이 아니라, 내노라 하는 귀족들까지도 타이몬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 스스로가 그에게 기대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를 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식탁에는 온갖 사치스러운 미식가들이 몰려들었고, 그의 집은 아테네의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많은 재산과 자유분방하고 
인색하지 않은 성격에 반하여, 모든 사람들은 그의 너그러운 사랑에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별의별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모두 타이몬을 섬기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주인이 웃으면 자기도 웃고, 주인이 시무룩하면 똑같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때그때 주인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을 거울처럼 자기 얼굴에 
나타내 보이는 아첨꾼들도 있었고, 또 거칠고 굽힐 줄 모른다는 독설가도 
있었습니다. 사람의 인격을 경멸하고 세속적인 것에 초연한 체하는 이 독설가도 
타이몬의 친절한 태도와 너그러운 마음만은 외면할 수가 없어서 (진짜 
독설가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데도) 그의 잔치에 찾아오고 타이몬의 
고갯짓이나 인사를 받으면 몹시 우쭐해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시인이 작품을 써서 추천하는 말을 받고 싶다면, 그는 다만 그 시집을 
타이몬에게 바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시는 잘 팔리고 이 후원자로부터 
돈지갑을 선사 받을 뿐 아니라, 날마다 그 집에 찾아가 식사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화가가 팔고 싶은 그림이 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타이몬에게 사달라고 졸라댈 필요 없이 그 그림이 좋은지 
나쁜지 좀 감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척하기만 하면 이 마음씨 좋은 귀족은 두말 
않고 사주는 것이었습니다. 값진 보석을 가진 보석상이나 비싼 물건을 가진 
비단 장수가 값이 비싸서 물건을 잘 팔지 못할 때도, 타이몬의 집은 마치 항상 
열려 있는 경매장과도 같아서 그곳에서는 어떤 값으로라도 물건을 처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마음 좋은 귀족은, 그렇게 귀한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준 것이, 
상인들이 그에게 특별한 대접이나 해준 것처럼 오히려 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 
치레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그의 집에는 필요 없는 물건들, 거북하고 
야단스럽게 화려한 겉치레를 자랑하는 데밖에는 아무 쓸모 없는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모여들었습니다. 타이몬 자신도 하릴없는 방문객들, 거짓말쟁이 
시인들, 화가들, 속임수 쓰는 장사꾼, 귀족들, 귀부인들, 가난한 관리들, 뭔가 
없을까 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어중이떠중이들에 둘러싸여 여러 모로 불편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응접실을 가득 채우고 천한 아첨을 그의 귀에 속살거리고, 
신에게 재물을 바치듯이 그에게 찬사의 말을 바치면서 그가 말을 탈 때 쓰는 
등자도 거룩하다고 말하고, 자기들이 숨을 쉬는 것까지도 그의 허락과 자선에 
의해서 하는 것처럼 굴었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와서 붙어사는 사람들 중에는 신분이 높은 젊은이들도 더러 
끼여 있었는데, (자기들의 낭비를 당해 낼 재산이 없어서) 타이몬이 
빚쟁이들에게 몰리어 감옥에 갈 것을 구해 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후로 이 
젊은 방탕아들은, 마치 타이몬도 자기들처럼 쓰임새가 헤프고 생활이 헐거운 
사람이니까 자기네 처지를 당연히 동정해 주리라는 뻔뻔스러운 생각에서 이렇게 
타이몬에게 붙어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가진 재산으로는 도무지 타이몬을 따를 
수 없는 빈털터리인 주제에 엄청난 씀씀이나 통이 큰 것은 쉽게 타이몬을 
흉내냈습니다.
  이 쉬파리들 중에 벤티어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빚을 계약대로 갚지 못해 
곤경에 처한 것을 타이몬이 바로 얼마 전에 돈 5탈렌트를 갚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수많은 떼거리, 홍수같이 몰려드는 손님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소위 선물이랍시고 바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타이몬이, 그들에 바친 개나 
말 또는 값싼 가구를 보고 마음에 들어하기만 하면 그들의 그날 운수는 
대통하게 마련이었습니다. 타이몬이 물건이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가 보이기만 
하면 그들은 지체 없이, 변변치 못하여 죄송하오나 타이몬경께서 받아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다음날 아침에 당장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타이몬은 이런 
선물들을 받으면 예외 없이 선심을 베풀어 개나 말이라면 한 마리에 대해서 
스무 마리 값에 해당되는, 어쨌든 훨씬 값진 선물을 주어 보내었습니다. 선물을 
바치는 척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거짓된 
마음으로 선물을 보내는 일은, 그만큼의 돈을 짧은 기간에 높은 이자로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교활한 귀족 루시어스는 타이몬이 우연히 
칭찬하는 것을 듣고 자기의 우유빛 말 네 마리를 은으로 장식하여 선사하였고 
또 다른 귀족 루컬러스는 타이몬이 잘생기고 빠르다고 칭찬하더라는 말을 듣고 
그레이하운드 한 쌍을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보내었습니다. 마음 좋은 타이몬은 
이 선물들을 보내는 사람들의 정직하지 못한 의도는 조금도 모르고 그것을 
받고는 그들에게, 그 거짓된 선물의 스무 배나 값이 나가는 다이아몬드나 
보석을 대신 보내 주었습니다.
  때때로 이 사람들은 더 직접적인 방법을 썼는데, 야비하고 뻔한 술책으로 
타이몬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칭찬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 마음 약한 귀족은 
그저 값싼 몇 마디 아첨에 대한 대가로 그 물건을 그냥 내주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타이몬은 며칠 전에만 해도 자기가 타고 다니던 밤색 말을, 어느 
야비한 귀족이 잘생기고 잘 달린다고 칭찬하자 그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누구라도 자기가 진정 갖고 싶은 것에 대해서만 정당한 칭찬을 하는 것이라고 
타이몬은 생각하였습니다. 타이몬은 자신의 우정으로 친구의 우정을 헤아리고, 
남들도 자기와 마음이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나눠주기를 몹시 
좋아하였는데, 친구인 척하는 이런 자들에게 왕국을 나누어 준다 해도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타이몬의 재산이 모두 이런 못된 아첨꾼들에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상하고 가치 있는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의 
하인이 돈 많은 아테네 사람의 딸을 사랑하였는데, 재산이나 지위가 너무나 
떨어져 그 여자와 결혼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타이몬이 3탈렌트를 주어, 그 
처녀의 아버지가 사위가 될 사람에게 요구하는 금액을 충당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는 무뢰한이나 기생충 같은 자들이 그의 재산을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그는 이 거짓된 친구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이 자기에게 
모여드니까 그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그들이 미소를 띠고 아첨을 하니까, 현명하고 착한 사람들이 모두 그의 행동을 
옳게 여기고 있다고 타이몬은 믿었습니다. 그는 이 아첨꾼들과 거짓 친구들에 
둘러싸여 잔치를 벌이면서 그들이 그의 재산을 먹어 치우고, 그의 번영과 
건강을 축복한다고 하면서 값비싼 포도주를 마셔대 그의 재산을 다 말려 버릴 
때까지도 친구와 아첨꾼을 구별할 줄 몰랐습니다. 그런 광경에 우쭐해 있는 
그의 눈에는, 그렇게나 많은 형제 같은 사람들이 서로의 재산을 마음대로 쓰는 
것이 (사실 값을 치르는 것은 모두 그의 재산이었지만) 값진 위안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뻐하며 그 진정으로 즐겁고 우애에 넘치는 모임을 
(그에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둘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황금의 신 플루터스가 바로 자기의 하인이기라도 한 듯 모든 
친절을 다 베풀며 선심을 쏟아 내는 동안 - 걱정을 하거나 멈추는 일도 없이 - 
또 자기의 지출을 어떻게 계속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 
야단스러운 잔치를 끊임없이 계속하는 동안, 그의 재산도 한정이 있는 것이어서 
끝이 없는 방탕을 당하지 못하고 스러져 없어지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렇다고 말을 해주겠습니까? 그의 아첨꾼들일까요? 그들은 그를 일깨우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정직한 집사 플래비어스만이 그에게 상황이 어떠한지를 
알려 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는 장부를 앞에 가져다 놓고 보라고 애걸을 하고 
빌며, 다른 경우라면 하인으로서 버릇없다고 할 정도로 눈물을 흘리면서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타이몬은 그를 제쳐놓고 이야기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입니다. 부자에게 가난해졌다고 하는 말만큼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요. 자기의 형편을 믿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실제 상태를 의심하고 
불운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법입니다. 이 착한 집사는 타이몬의 큰 저택 방마다 
주인의 재산을 축내어 먹는 떠들썩한 손님들이 가득 차고, 마루에는 흘러 넘친 
술이 질펀하고, 온 집안에 불빛이 휘황하고 음악과 흥청거리는 소리가 울려 
나올 때, 혼자서 자주 조용한 곳을 찾아가 술이 술통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보다 
더 빠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인이 미친 듯이 흥청거리는 것을 보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불러오던 그 재산이 없어지면 칭찬의 말을 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빨리 사라져 버릴 것인가를 생각하였습니다. 잔치를 베풀며 얻은 찬양의 
말은 굶주리게 되면 잃어버릴 것이고, 겨울비를 몰고 올 구름 한 장이면 이 
파리 떼들이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을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타이몬이 이 충실한 집사의 말을 더 이상 못 들은 체할 수 없는 
때가 왔습니다.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가 플래비어스에게 땅을 좀 팔아 돈을 
마련하라고 하자, 전부터 여러 번 귀기울이게 하려고 애썼던 사실을 타이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즉 그의 땅은 이미 팔렸거나 저당이 잡혀 있으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합해도 그가 진 빚의 절반도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요. 이 말에 
놀란 타이몬은 급히 말했습니다.
  "내 토지는 아테네에서 라세데몬까지 뻗어 있는걸."
  "오, 주인 어른, 세상은 단 하나이고 끝이 있는 것입니다. 모두 주인님의 
것이라 해도 단숨에 주어 버리면 순식간에 없어져 버리지요!"
  타이몬은 자기가 재산을 나쁘게 쓰지는 않았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였습니다. 
자기의 재산을 지혜롭게 쓰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친구들에게 잘해 주느라고 
썼으므로 나쁜 짓을 하는 데 들어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친절한 
마음씨를 가진 집사에게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훌륭한 친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돈에 궁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습니다. 이 정신 빠진 
귀족은, 사람들에게 심부름을 보내어 돈을 꾸어 오기만 하면 된다고 자신을 
타일렀습니다. 그렇게 하면 형편이 딱한 지금 (자기의 선심을 맛본 사람이면) 
누구의 돈이든 자기 것처럼 쓸 수 있을 터이니까요. 그리고는 해보나마나 
자신만만하여 유쾌한 얼굴로, 자기가 과거에 아낌없이 선물을 보내곤 했던 
루시어스, 루컬러스, 셈프로니우스 등에게 각각 사람을 보내었습니다. 또 최근에 
빚을 대신 갚아 주고 감옥에서 구해 내준 벤티디어스도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아서 타이몬의 친절을 갚을 만했으므로, 
그들에게도 사람을 보내어 타이몬이 갚아 준 6탈렌트를 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귀족들에게는 각각 50탈렌트씩 빌려 달라고 했는데, 그들이 자기를 고맙게 여길 
테니 자기가 필요하다고 하면 50탈렌트의 5백 배라도 빌려 줄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심부름꾼이 간 곳은 루컬러스의 집이었습니다.  이 야비한 귀족은 지난 
밤 꿈에 은그릇과 은잔을 보았는데 타이몬의 하인이 왔다고 하자 그의 더러운 
마음에는 꿈이 실현되어 타이몬이 선물을 보냈나 보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타이몬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의 빈약한 우정의 정체가 
드러나 버렸습니다. 그는 하인 앞에서, 타이몬이 망할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야단스럽게 말하면서, 여러 차례 점심때에 그 말을 하러 갔었고 또 
저녁때도 좀 덜 쓰라고 말해 주러 갔었지만 타이몬은 자기의 충고나 경고를 
듣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타이몬의 잔치에 늘 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도 그렇다고 했지만) 돈을 아껴 쓰라고 말해 주러 갔다거나 좋은 충고를 
해주었다는 것은 비열한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는 곧 하인에게 약간의 뇌물을 
주고 집에 가서 주인에게는 루컬러스가 집에 없더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루시어스에게 보낸 하인도 마찬가지로 실패였습니다. 타이몬의 고기를 먹고 
살찌고 타이몬의 값비싼 선물로 터질 지경으로 부유해진 이 거짓말쟁이 귀족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샘물처럼 흘러나오던 선심이 끊어진 것을 알고 처음에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인 것을 알고는 타이몬경을 도와 드릴 힘이 
없어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불행히도 전날 물건을 많이 
샀는데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수중에 당장 돈이 없어 
그렇게 훌륭한 친구를 도와 드리지 못하니, 자기 자신이 짐승과도 같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명예로운 신사를 즐겁게 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자기의 가장 큰 괴로움이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그릇의 음식을 나눠 먹는다고 그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모든 아첨꾼들의 본성은 이러한 것입니다. 누가 돌이켜 생각해 
보더라도 타이몬은 루시어스에게 아버지와 같았습니다. 루시어스의 빚을 자기 
지갑에서 갚아 주었고, 루시어스의 하인에게 주는 봉급도 타이몬이 주었습니다. 
루시어스가 그의 자만심 때문에 꼭 가져야만 했던 훌륭한 집을 지었을 때는 
일꾼의 노임도 모두 타이몬의 돈으로 지불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 감사를 
모르는 인간은 괴물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이 루시어스는 타이몬이 그에게 
베풀어 준 것에 비하면, 자비심 많은 사람이 거지에게 주는 돈보다도 작은 
금액을 타이몬에게 거절하였습니다.
  셈프로니우스도, 돈만 아는 다른 귀족들도 모두 타이몬이 돈을 청하자, 
슬그머니 피하는 대답을 하거나 바로 대놓고 거절을 하였습니다. 타이몬에게 
구원을 받고 이제는 부자가 된 벤티디어스조차도, 타이몬이 그에게 빌려 준 
것도 아니고 관대하게 그냥 주었던 돈인 5탈렌트를 꾸어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타이몬이 부자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들끓었던 것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가 가난해지자 그를 피했습니다. 타이몬은 마음이 너그럽고 통이 크며 
후하다고 소리 높이 칭찬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 
너그러움이 어리석음이며 그 통 큰 것이 헤픈 것이라고 흉을 보았습니다. 사실 
타이몬의 어리석음은 바로 자기네들 같은 가치 없는 인간들을 너그러움의 
대상으로 고른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제 타이몬의 굉장한 저택은 텅 비고 
사람들이 싫어하고 피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누구나 반드시 들어가서 
그의 술과 환대를 받았으나, 이제는 문간을 지나쳐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떠들썩한 잔치 손님들 대신에 소란스럽게 졸라대는 빚쟁이며 고리대금업자들로 
가득 차, 차용증서를 쓰라느니 이자를 내라느니 저당을 잡히라고 요구하면서 
쇠로 된 심장이라도 갖고 있는 듯 거절은커녕 연기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타이몬의 집은 이제 그에게 감옥처럼 되어서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5천 크라운의 청구서를 가져오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50탈렌트를 갚으라고 요구하니, 타이몬의 피를 방울방울 짜내어 돈 
대신 지불한다고 해도 다 갚을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절망적이고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 사람들은 
이 지는 해가 새롭게 내뿜는 빛을 보고 모두들 자기 눈을 의심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타이몬이 잔치를 벌이고 늘 오던 손님들, 귀족이며 귀부인들, 아테네에 
사는 모든 지체 높은 상류 사회 사람들을 초대한 것입니다. 루시어스와 
루컬러스가 오고 벤티어스, 셈프로니우스, 또 다른 사람들도 왔습니다. 이 
아첨하는 무리들은 타이몬이 궁하다고 한 것이, (그들 생각에는) 공연히 그런 
척해서 자기들의 마음을 떠보려고 한 것으로 알고 그것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잘해 주지 못한 것을 얼마나 후회했겠습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고귀한 
자선의 샘물이 이제 다 말라 버린 줄 알았더니 아직도 맑게 흘러 넘치는 것을 
보고 그들은 또 얼마나 기뻤는지요? 그들은 타이몬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 불행히도 수중에 가진 것이 없어서 이렇게 훌륭한 친구의 청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정말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타이몬은, 자기는 모두 다 잊어버린 일이니 그런 사소한 일에 마음 쓸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들 야비한 아첨꾼 귀족들은 타이몬이 어려울 때 돈을 
주기를 거절하였지만, 타이몬에게 번영이 돌아와 새로운 불꽃을 피우는 데는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위 높은 사람의 재산을 
따라가기를 제비가 여름을 따라가는 것보다 더 즐겨하고, 운이 다한 것을 보고 
떠나가기를 제비가 겨울을 피하는 것보다도 더 빨리 하는 법입니다. 사람이란 
이런 철새와 같은 것이지요.
  이제 음악과 함께 김이 오르는 그릇들이 위엄 있게 들어왔습니다. 손님들은 
파산한 타이몬이 이런 값진 음식을 차릴 돈이 어디서 나왔을까 감탄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눈을 믿을 수 없어서 이것이 헛것이 아니고 사실인가 
의심하고 있는 차에, 신호에 따라 그릇의 뚜껑들이 열리고 그리고 타이몬의 
뜻이 무엇이었는지가 드러났습니다. 전날 타이몬의 식탁에 그렇게나 푸짐하게 
나오곤 했던 산해진미 대신에 이제 타이몬의 가난에 더 어울리는 음식이 뚜껑 
밑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약간의 김과 미지근한 물뿐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입으로만 친구라고 떠드는 그들에게 적당한 음식인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김과도 같이 헛된 것이고, 그들의 마음도 타이몬이 대접한 물과도 
같이 미지근하고 미끈거렸으니까요. 깜짝 놀란 손님들에게 타이몬은 "개들아, 
핥아먹어라."하고 소리치고 그들이 놀란 정신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실컷 
먹으라고 얼굴에 물을 끼얹고, 허둥지둥 달아나는 그들에게 접시고 무엇이고 
마구 집어 던졌습니다. 귀족이며 귀부인들은 급히 모자를 움켜쥐고 달아나고 
타이몬은 욕을 하며 뒤쫓고, 볼 만한 소동이었습니다.
  "번지르르 웃음띤 기생충들, 친절의 가면을 쓰고 사람을 망치는 놈들, 상냥한 
늑대들, 순한 곰들, 재산밖에 모르는 바보들, 잔치나 찾아다니는 작가들, 기회만 
노리는 파리 같은 놈들아!"
  그들은 타이몬을 피해 달아나면서 들어올 때보다 더 빨리 떠나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겉옷과 모자를 잃어버리고, 어떤 사람은 서두르다가 보석을 잃어버리고, 
모두들 미친 듯한 타이몬을 피해서 또 그의 거짓 잔치의 조롱으로부터 
달아나느라 바빴습니다.
  이것이 타이몬이 베푼 마지막 잔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아테네는 물론 
인간 사회와도 작별을 하였습니다. 그후에 타이몬은 그 증오의 도시와 모든 
인간에게 등을 돌리고 숲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 가증스러운 도시의 
모든 벽들이 무너지고 집들이 사람들 위에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재앙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달려들기를 원하면서, 정의의 신들이 노소와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아테네 사람들에게 천벌을 내리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숲으로 들어가면서 그곳의 무시무시한 짐승들이 인간보다 훨씬 더 친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타이몬은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으려고 굴을 파고 
그 속에서 벌거벗고 살면서 야생의 뿌리를 먹고 물을 마시며 짐승처럼 쓸쓸히 
살았습니다. 자기와 같은 사람의 얼굴로부터 달아나서, 사람보다는 훨씬 덜 
해롭고 정다운 짐승들과 어울리려 하였습니다.
  부자이던 타이몬, 인류의 기쁨이던 타이몬으로부터 벌거벗은 타이몬, 인류를 
증오하는 타이몬이 되다니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그에게 아첨하던 자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의 수행원이며 시종들은 어디 있나요? 그 황량한 대기가 
시종이 되어서 따뜻하게 옷을 입혀 줄까요? 독수리의 발 밑에서 살아 남은 
뻣뻣한 나무들이 어리고 싹싹한 하인으로 변해 그가 명령하면 심부름을 하려 
달려갈까요? 지난밤의 폭음으로 속이 아플 때, 겨울바람으로 차가워진 시냇물이 
그에게 따뜻한 국물과 계란 을 풀어 넣은 마실 것을 마련해 줄까요? 아니면 그 
지친 숲속에 사는 짐승들이 와서 그의 손을 핥으며 아양을 부릴까요?
  그런데 하루는 그가 그의 빈약한 음식인 나무 뿌리를 캐다가 삽에 무엇인지 
묵직한 것에 부딪쳤는데, 꺼내 보니 그것은 금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떤 구두쇠가 
무슨 일에 놀라서 가져다 묻고 나중에 와서 가져가려고 생각했다가 아무에게도 
그것을 알리지 않은 채 죽은 모양인지, 그 금덩이는 마치 처음부터 땅속에서 
꺼내지지 않은 양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긴 채 있다가 타이몬의 삽에 부딪쳐 
다시 빛을 본 것입니다.
  그것은 상당한 재산이어서, 타이몬이 과거의 그의 마음을 다시 가졌더라면 
또다시 친구들과 아첨꾼들을 끌어 모으기에 넉넉하였습니다. 그러나 타이몬은 
거짓된 세상이 구역질나고 금덩이를 보기만 해도 눈이 시릴 지경이어서 그것을 
다시 땅속에 묻어 두려 했습니다. 그러나 금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생겨나는 
끝없는 재앙을 생각하고, 황금에 대한 탐욕이 도둑질과 억압과 부정과 뇌물과 
폭력과 살인을 가져오는 것을 생각하고, 자기가 파낸 이 금덩이 때문에 인류를 
괴롭힐 재난이 일어날 것을 상상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인류에게 그토록 
뿌리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군인들 몇 명이 숲속 그의 동굴 
가까이로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들은 알고 보니 아테네의 대장 알시비아데스 
부대에 속한 군인들이었습니다. 알시비아데스는 아테네의 원로원 의원들에게 
불만을 품고, (아테네 사람들은 감사를 모르고 배은망덕하기로 유명해서 
장군들이나 가장 좋은 친구들에게도 미움을 사는 일이 많았습니다.) 전에는 
그들을 지켜 주었던 바로 그 군대를 이끌고 그들과 전쟁을 하러 달려가는 
길이었습니다. 타이몬은 그들이 하려는 일이 썩 마음에 길이었습니다. 타이몬은 
그들이 하려는 일이 썩 마음에 들어, 금을 주며 병정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였습니다. 그 대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다만 그 용맹한 군대를 
이끌고 아테네 시를 싹 쓸어버리고 불태워서 주민들을 모두 다 학살해 
버리기만을 청했습니다. 수염이 허옇다고 해서 늙은이들을 살려 주지도 말고, 
순진해 보이는 미소를 띠고 있다고 해서 어린아이들도 살려 두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늙은이들은 모두 고리대금업자이며 어린아이들을 살려 두면 
자라나서 반역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모습이나 소리도 느끼지 못하도록 눈도 귀도 무감각해지기를 
바라고, 처녀나 아기나 어머니들의 울부짖음도 온 도시를 학살하고 정복하여 
쑥밭을 만들어 버리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기를 바랐습니다. 도시를 정복하고 
나면 하느님이 이 정복자에게도 역시 저주를 내리기를 기도할 만큼 타이몬은 
아테네며 아테네 사람들 그리고 온 인류를 그토록 철저히 미워하였습니다.
  타이몬이 그렇게 삭막하게, 사람보다는 짐승에 더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그는 사람의 모습이 동굴의 문간에 공손한 자세로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플래비어스였습니다. 이 충직한 집사는 주인에 대한 
사랑과 근심 때 이 누추한 거처로 그를 찾아와 시중을 들겠다고 하였습니다. 
한때는 고귀한 신분이었던 타이몬이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채 짐승 
중의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몰락을 그대로 보여 주는 멸망의 
기념비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착한 하인은 처음에 너무나 
놀라서 당황하고 공포에 싸여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겨우 말문이 
열렸으나 눈물로 목이 메어 알아들을 수도 없을 지경이어서, 타이몬은 이렇게 
궁지에 처한 자기를 찾아와 섬기겠다고 하는 것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데에 힘이 
들었습니다. (타이몬이 사람에 대하여 겪었던 일과는 너무나 다른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의 형태와 모습을 하고 있었으므로 타이몬은 그도 
반역자가 아닌가, 그 눈물도 거짓이 아닌가 의심하였습니다. 이 착한 하인은 
자기의 충성이 진실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로 증명해 보이고 오직 주인에 대한 
사랑과 염려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설명하였으므로, 타이몬은 이 세상에 한 
사람의 정직한 인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타이몬은 그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역겹고 그의 
말소리를 듣기만 하여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유일하게 
정직한 사람도 마음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부드럽고 착하였지만, 타이몬이 
보기 싫어하는 인간의 외양을 갖고 있는 까닭에 그로부터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사보다 훨씬 대단한 손님들이 타이몬의 야만스럽고 외로운 
생활을 방해하러 올 참이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아테네의 귀족들이 고귀한 
타이몬에게 저지른 부당한 일을 깊이 후회할 날이 온 것입니다.  
알시비아데스가 성난 산돼지처럼 아테네의 성벽에 나타나서 맹렬한 공격으로 
아테네 시민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위험하였습니다. 이제 지난날의 타이몬의 
용맹과 전투력이 잊어버리기 잘하는 그들의 마음에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타이몬은 과거에 그들의 장군이었고 용감하고 훌륭한 군인이어서, 지금 
아테네를 위협하는 알시비아데스군의 침략에 맞싸우거나 그들을 몰아낼 수 있는 
사람은 온 아테네에 오직 타이몬밖에는 없다고 생각된 것입니다. 이 위기를 
당해서 원로원에서는 대표를 뽑아 타이몬에게 청을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타이몬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은 관심도 보이지 않더니, 자기들이 위기에 
처하자 찾아온 것입니다. 자기들은 아무것도 베풀지 않았으면서 그에게서 
감사를 받으려 하고, 자기들이 한 무례하고 냉혹한 대접에 대해 타이몬이 
친절을 베풀어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타이몬에게, 바로 얼마 전에 그를 내쫓은 그 도시로 돌아와서 
도시를 구해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걸복걸하였습니다. 그가 돌아와서 그들을 
구해 주기만 하면 돈과 권력, 위엄, 자기들의 지난 잘못에 대한 보상, 명예, 존경, 
모든 것을 다 주고 자기들의 재산과 목숨까지도 마음대로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벌거벗은 타이몬, 사람을 미워하는 타이몬은 이미 
지난날의 귀족 타이몬, 선심을 물쓰듯하고 용맹의 꽃이며 전쟁의 방패이고 
평화의 장식이던 그가 아니었습니다. 알시비아데스가 동족을 죽인다 해도 
타이몬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테네를 약탈하고 노소를 가리지 않고 
베어 죽인다면 타이몬은 기뻐할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반란군의 
진영에 있는 단 하나의 칼도 아테네의 가장 존경받는 사람의 목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이것이 낙심하여 울고불고 하는 원로원 의원들에게 해준 대답이었습니다. 
그들이 떠날 때, 타이몬은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슬픔과 
근심을 덜고 무서운 알시비아데스의 분노를 피할 방법이 아직 있으니, 그것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자기의 동족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으므로 죽기 전에 그들에게 한 가지 친절을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원로원 의원들에게 약간의 생기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아테네에 대한 그의 
사랑이 되돌아온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타이몬은 자기의 동굴 가까이 있는 
나무를 곧 잘라낼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테네에 있는 친구들 
누구라도,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으면 와서 그가 
나무를 잘라 버리기 전에 그 맛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곳에 와서 나무에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베푼 
많은 자선 중에6서 사람들에게 보여 준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가난한 병정이 타이몬이 늘 다니던 숲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를 지나다가 바로 물가에 무덤이 하나 있는 것을 보았는데 사람을 싫어한 
타이몬의 무덤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을 미워하였고, 죽으면서는 역병이 남은 비겁자들을 모두 
없애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아니면 삶에 대한 혐오와 인간에 대하여 품고 
있던 증오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그 비문의 적절함과 그가 끝까지 변함없이, 살아서나 죽으면서나 사람을 
미워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타이몬이 바닷가를 자기의 
무덤으로 정한 데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위선적이고 속이기 
잘하는 사람들의 변하기 쉽고 깊이 없는 눈물을 경멸하는 듯, 거대한 바다가 
영원히 그의 무덤가에서 울어 주는 곳이니까요.


      로미오와 줄리엣
 
  베로나의 이름 있는 두 집안은 부유한 카퓰렛가와 몬태규가였습니다. 이 두 
집안간에는 오래 전에 싸운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점점 커지고 서로 미워하는 
정도가 대단히 심해져서 아주 먼 친척이나 이 두집안을 따르고 드나드는 
사람들까지도 서로 미워하였고, 심지어 하인들도 서로 마주치면 싸웠습니다. 카 
집안 사람과 몬태규 집안 사람이 우연히 길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서로 심한 
말을 하거나 때로는 피를 흘리는 일까지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나서 
일어나는 잦은 말다툼이 베로나 거리의 행복한 고요를 깨곤 했습니다.
  나이 든 카 집안 주인이 큰 만찬회를 열고 귀부인과 귀족 손님들을 많이 
초대하였습니다. 베로나의 이름 난 미인들이 모두 참석하고, 몬 집안 사람만 
아니면 누구나 다 환영을 받았습니다.
  카 집안의 이 잔치에, 나이 든 몬 의 아들 로미오가 사랑하는 로잘린이 
왔습니다. 몬 집안 사람이 그곳에 나타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로미오의 
친구인 벤볼리오는 로미오에게, 가면으로 변장을 하고 그 잔치에 가서 로잘린을 
만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로잘린을 베로나의 뛰어난 미인들과 비교해 
보면, 백조인 줄 알았던 로잘린이 까마귀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거라고 
하였습니다. 로미오는 벤볼리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잘린이 보고 
싶어서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로미오는 진정으로 열렬히 로잘린을 생각하며 
혼자 있고 싶어서 사람들도 피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로잘린은 그를 
업신여기고 그의 사랑에 친절이나 애정을 조금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벤볼리오는, 로미오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러 아가씨들을 보게끔 하여 사랑에 
병든 친구를 치료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카퓰렛집안 잔치에 젊은 로미오와 벤볼리오, 그들의 친구 머큐쇼가 
가면을 쓰고 갔습니다. 늙은 카퓰렛은 그들을 환영하며 발가락에 굳은살이 
박히지 않은 아가씨들이 그들과 춤을 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유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기도 젊었을 때는 가면을 쓰고 아름다운 아가씨의 귀에 
이야기를 속삭여 주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미오는 갑자기 그곳에서 춤을 추고 있는 한 아가씨의 뛰어난 아름다움에 
깜짝 놀랐습니다. 로미오에게는 그 여자가 마치 횃불에게 밝게 타는 법을 
가르치는 것 같고, 밤을 배경으로 한 그 여자의 아름다움은 흑인이 걸고 있는 
훌륭한 보석처럼 보였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너무나 은근해서 결코 싫증나게 할 
수 없고, 또 너무나 고귀하여 땅 위에 사는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없을 만 한 
것이었습니다. 마치 까마귀 때에 섞여 있는 하얀 비둘기처럼 그 여자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이 같이 있는 다른 아가씨들 중에서 눈에 띄게 빛났습니다.
  로미오가 이렇게 칭찬의 말을 하고 있는데, 카의 조카인 티볼트가 그 
목소리를 듣고는 로미오인 줄 알았습니다. 티볼트는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어서 
콘 집안 사람이 가면을 쓰고 와서 자기들의 잔치를 비웃고 조롱하는 것을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몹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젊은 로미오를 때려죽일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저씨 늙은 
카퓰렛은, 그가 당장 로미오에게 해를 입히도록 그냥 두지는 않았습니다. 
손님들에 대한 예의와 로미오가 신사답게 행동을 한 ㄸ문이었습니다. 베로나 
사람들은 모두 로미오가 덕이 있고 행실이 좋은 청년이라고 칭찬을 
하였으니까요. 티볼트는 자신을 눌러 억지로 참으면서 이 못된 모가 다시 한 번 
들어오면 그때는 비싼 값을 치러야 될 것이라고 별렀습니다.
  춤이 끝나고 로미오는 그 아가씨가 서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가면을 
썼을 때는 조름 지나친 행동도 용서가 되는 법이므로, 그는 공손하게 아가씨의 
손을 잡고 그 손은 신전이요, 자기는 신전을 찾아가는 순례자이니 신전에 손을 
대어 모독하였다면 입을 맞추어 속죄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훌륭하신 순례자님, 당신은 너무나 예절 바르시군요. 성자들도 손이 있으니 
순례자가 손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입을 맞추는 일은 없어요."라고 
아가씨가 대답했습니다.
  "성자들도 순례자도 입술이 있지 않습니까?"
  로미오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입술은 기도들 때 써야 되지요."
  "아, 그러면 사랑스런 성자님,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절망하지 않도록."
  그와 같은 비유로 그들은 사랑의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아가씨를 불렀습니다. 로미오는 그녀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물어 보고 나서야, 
그토록 흠잡을 데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아가씨가 몬태규 집안의 원수 카퓰렛의 
딸이며 상속자인 젊은 줄리엣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원수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는 당황하였으나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줄리엣도 자기와 이야기하던 사람이 몬 집안의 로미오라는 
것을 알고는 불안해졌습니다. 줄리엣도 로미오와 마찬가지로 성급하고 경솔하게 
사랑에 빠져 버렸으니까요. 집안에서 모두 미워하라고 한 원수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줄리엣에게는 정말 이상스러운 사랑의 시작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정이 되어 로미오는 친구들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내 로미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마음을 남겨 둔 그 집을 떠날 수가 없어서 
줄리엣의 집 뒤 과수원 담을 넘어 들어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자기의 새로운 
사랑을 생각하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위쪽의 한 창문에 줄리엣이 
나타났습니다. 줄리엣의 아름다움은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햇빛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흐린 빛으로 과수원을 비추고 있던 달은 이 새로운 
태양의 더 밝은 빛 때문에 슬픔에 잠겨 창백하게 병든 것처럼 로미오에게는 
보였습니다. 줄리엣은 뺨을 손에 괴고 있었습니다. 로미오는 '차라리 자기가 저 
손에 끼어져 있는 장갑이라면 줄리엣의 얼굴을 만질 수 있을 텐데.'하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줄리엣은 자기 혼자만 있는 줄 알고 깊은 한숨을 쉬며 "아, 나는 
어쩌면 좋아!" 하고 말했습니다.
  로미오는 줄리엣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작은 목소리로 "오, 한 번 더 말해 주오, 
아름다운 천사여. 내 머리 위에 모습을 나타낸 당신은 사람들이 우러러 
바라보는 날개 달린 천사와도 같구려."라고 혼자 말을 하였습니다.
  줄리엣은 듣는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정열에 가득 차서 그날 밤에 사랑하게 
된 사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곳에 없는 줄 알았지요.)
  "오 로미오, 로미오, 어째서 당신은 로미오인가요? 저를 위해서 당신의 
아버지도, 당신의 이름도 버리셔요. 그러지 않으시겠다면 저에게 사랑을 맹세해 
주기만 하셔요. 그러면 저는 이제부터 카퓰렛집 사람이 아닐 테니까요."
  로미오는 이 말을 듣자 말을 하고 싶었으나 더 들어 보려고 참았습니다. 
줄리엣은 혼자서 로미오가 로미오이고 몬 집안 사람인 것을 나무라고, 그가 
어떤 다른 이름이거나 아니면 몸에 붙은 것도 아닌 그 증오스러운 이름을 
떼어버리고, 그 대신 줄리엣을 모두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랑의 말을 듣고 로미오는 더 참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줄리엣이 혼자 말한 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에게 말을 한 것처럼 줄리엣에게, 
로미오라는 이름이 싫다면 자기는 이제 로미오가 아니니 차라리 사랑이라고 
부르거나 다른 어떤 이름이라도 좋을 대로 부르라고 말했습니다.
  줄리엣은 정원에서 남자 목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밤의 어둠 때문에 그렇게 
자기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 누구인지 모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로미오가 다시 말을 하자, 줄리엣은 아직 로미오가 하는 말을 백 마디도 듣지 
못했는데도 연인의 기는 그렇게도 잘 알아듣는 법인지, 그것이 로미오인 줄 
금방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집안 사람에게 들키기만 하면 몬태규인 그는 
죽음을 당할 테니 과수원 담을 넘은 것은 몹시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스무 개의 칼보다도 당신의 눈빛이 더 두렵습니다. 당신이 친절하게 
바라보아만 주시면 그들의 원한도 겁나지 않습니다. 당신의 사랑 없이 사는 그 
혐오스런 삶보다는 그들의 칼에 죽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하고 로미오가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이곳에 오셨어요? 누가 가르쳐 주었나요?" 하고 줄리엣이 물었습니다.
  "사랑이 길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저는 선원이 아니지만 당신이 가장 먼바다 
저쪽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곳을 찾아가겠습니다." 하고 로미오가 
대답했습니다.
  줄리엣은 그런 줄도 모르고 로미오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해 버린 것을 알고 
부끄러워 낯을 붉혔으나, 밤이어서 로미오에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줄리엣은 
자기의 말을 도로 주워담고 싶었으나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격식을 차려서 
연인을 좀 멀리하고 처음에는 심한 거절도 했더라면 싶었습니다. 얌전한 
숙녀들이 으레 그렇게 하는 것처럼 물러서서 수줍은 척, 관심이 없는 척하여, 
연인들이 아주 쉽게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얻는 
데 힘이 들어야 얻은 물건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줄리엣의 경우에는 거절을 하고 미루거나 흔히 구애를 하는 데 밀고 
당기고 하는 여러 가지 기교를 부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로미오가 가까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녀가 혼자서 하는 사랑의 고백을 로미오가 듣고 말았던 
것이니까요. 그래서 줄리엣은 그녀가 처한 신기한 상황 때문에 솔직한 심정이 
되어 로미오가 이미 들은 말이 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로미오를 
아름다운 몬태규라고 부르면서 (사랑은 고약한 이름이라도 달콤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자기가 그렇게 쉽게 사랑을 허락하였다고 경박하거나 값없는 
사람이라고 탓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그 잘못은 (그것이 잘못이라면) 
이상하게 그의 마음을 드러내고 만 밤의 탓이라고 생각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자기의 행동이 여자로서 신중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흔히 조심스러운 척하면서 속이고 얌전한 척하는 교활한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진실할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로미오가 줄리엣처럼 정숙한 아가씨에게는 조금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고 
하늘에 걸고 맹세를 하려고 하자, 줄리엣은 제발 맹세는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로미오를 만난 것은 기쁘지만 이렇게 밤에 맹세를 주고받는 것은 
즐겁지 않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무모하고 경솔하고 갑작스럽다는 것입니다. 
로미오는 그날 밤 당장 서로 사랑의 맹세를 하자고 조르자, 줄리엣은 로미오가 
요구하기 전에 이미 자기는 사랑의 맹세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줄리엣의 혼자 
말을 로미오가 이미 엿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줄리엣은 사랑의 맹세를 한 
번 더 하고 싶어서 먼저 한 말을 취소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자기의 마음은 
바다와 같이 넓고 자기의 사랑은 바다와 같이 깊으니까요.
  이렇게 사랑의 말을 주고받다가 줄리엣은 같은 방에서 함께 자는 유모가 
불러서 들어갔습니다. 벌써 새벽이 가까웠으니 자야 될 시간이라는 거였어요. 
그러나 그녀는 급히 되돌아와서, 로미오의 사랑이 진실이고 결혼을 할 
생각이라면 내일 사람을 보내어 결혼할 날짜를 정하도록 하겠으며, 그러고 나면 
자기의 모든 운명을 그의 발아래 던지고 이 세상 어디까지라도 따라가겠다는 
뜻의 말을 몇 마디 하였습니다. 이 문제를 의논하는 동안에도 줄리엣은 몇 
번이나 유모에게 불리어 들어갔다가는 다시 나오고, 들어갔다가는 다시 나오곤 
하였습니다. 줄리엣은 마치 어린 여자아이가 비단실로 새를 붙잡아매어 조금 
보냈다가는 다시 끌어오고 하는 것처럼 로미오를 보내기가 싫었습니다. 서로의 
목소리가 연인들의 귀에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렸으니까요. 그러다가 
그들은 마침내 서로 잘 자라고 하며 헤어졌습니다.
  그들이 헤어질 때는 벌써 날이 밝아 오고 있었습니다. 로미오는 줄리엣과 
그날 밤 만나 즐거웠던 생각 때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집으로 가는 대신 
가까이 있는 수도원으로 로렌스 신부를 찾아갔습니다. 그 착한 신부는 벌써 
일어나 아침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로미오가 이렇게 일찍 나온 
것을 보고는, 젊은이가 사랑병 때문에 지난밤을 새웠나 보다고 짐작했습니다. 
그가 로미오가 잠들지 못한 것이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 한 것은 옳았으나, 그 
대상에 대하여서는 잘못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로잘린에 대한 사랑 때 로미오가 
잠들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였으니까요. 그러나 로미오가 줄리엣에 대한 사랑을 
털어놓고 그날 결혼을 하도록 도와 달라고 하자, 신부는 로미오의 애정이 
갑자기 변한 것에 놀라서 손을 쳐들고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로잘린에 
대한 로미오의 사랑을 모두 알고 있었고, 로잘린이 냉담하다고 로미오가 
하소연하는 것도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신부는 젊은이의 사랑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만 있다고 말했습니다. 로미오는 자기를 사랑해 주지도 
않는 로잘린을 사랑한다고 신부가 자신을 나무라지 않았었느냐고 하면서, 
줄리엣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도 줄리엣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신부는 
로미오의 말에 옳은 점이 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결혼으로 맺어진다면 카퓰렛과 몬태규 집안의 오래 된 불화도 화해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여 반은 그 때문에, 또 반은 로미오를 귀여워한 나머지 그의 
청을 도저히 거절할 수 가 없어서 그들을 결혼시켜 주겠다고 승낙하였습니다. 
신부는 두 집안과 다 친하게 지내면서 두 집안의 불화를 가장 슬퍼하던 
사람이었으며, 보람은 없었으나 두 집안의 싸움을 끝내 보려고 여러 번 
중재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로미오는 정말 기뻤습니다. 줄리엣은 그녀가 약속한 대로 보냈던 
심부름꾼에게서 이 말을 듣고 곧 로렌스 신부의 방으로 달려왔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신성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착한 신부는 하늘이 이 결혼식을 축복해 
주고, 젊은 몬태규와 젊은 카퓰렛의 결합으로 두 집안의 오래 된 싸움과 불화가 
다 사라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자 줄리엣은 급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전날 바머에 
그들이 만났던 과수원에서 로미오와 약속한 밤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 동안의 시간이 줄리엣에게는 마치 내일 큰 잔치에 입을 새 옷을 두고 날이 
새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지루하였습니다.
  바로 그날 오정때쯤, 로미오의 친구 벤볼리오와 머큐쇼가 베로나의 거리를 
걷다가 성질 급한 티볼트를 앞세우고 오는 카퓰렛 집안 사람 한 때와 
마주쳤습니다. 카퓰렛의 잔치에서 로미오와 싸우려고 했던 바로 그 
티볼트였습니다. 그는 머큐쇼를 보고 퉁명스럽게, 몬태규의 로미오와 같이 
어울려 다닌다고 나무랐습니다. 머큐쇼도 티볼트 못지 않게 성질이 급하고 젊은 
혈기가 있는지라, 그 말을 듣고 역시 날카로운 말대꾸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벤볼리오가 그들을 말리려고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싸움은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마침 로미오가 그쪽으로 지나갔습니다. 화가 난 티볼트는 이번에는 
로미오를 향하여 악당이라고 부르며 모욕을 주었습니다. 로미오는 다른 
누구보다도 티볼트와의 싸움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줄리엣의 친척이며 줄리엣이 
몹시 따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젊은 몬태규는 성격이 부드럽고 
지혜로워서 집안 싸움에 별로 끼여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애인의 이름인 
카퓰렛이라는 이름이 화를 돋우기는커녕 화를 달래는 주문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몬태규이지만 카퓰렛이라는 이름을 말하는 것이 남모르는 
기쁨이기라도 한 것처럼, 훌륭한 카퓰렛이라고 부르며 점잖게 인사하면서 
티볼트에게 이치에 닿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몬태규라고 하면 지옥보다도 더 싫어하는 티볼트는 말을 들으려고도 
낳고 칼을 뽑았습니다. 머큐쇼는 로미오가 티볼트와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 
속마음은 모르고, 로미오의 참는 태도가 수치스러운 항복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티볼트에게 자기와 싸우던 것을 계속하자고 욕을 하며 약을 올렸습니다. 
벤볼리오와 로미오가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도 없이 
티볼트와 머큐쇼는 칼싸움을 하다가 머큐쇼가 칼에 맞고 쓰러졌습니다. 
머큐쇼가 죽는 것을 보고 로미오는 더 이상 화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티볼트가 아까 자기를 악당이라고 부른 것처럼 그를 악당이라고 부르며 칼을 
뽑아 싸우다가, 로미오의 칼에 티볼트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끔찍한 소동이 한낮에 베로나의 거리에서 일어나자 그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당장 모여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늙은 카퓰렛과 몬태규 부부도 
있었습니다. 곧 베로나의 영주도 도착하였는데, 그는 티볼트에게 죽은 머큐쇼의 
친척이기도 하고, 이 두 집안의 싸움 때문에 자기가 다스리는 베로나의 질서가 
자주 파괴되어 왔으므로 누구의 잘못인지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벤볼리오가 영주의 명령으로 이 소동의 발단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미오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그가 관계된 부분은 좀 부드럽게 하면서 
가능한 한 사실에 가깝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조카 티볼트의 죽음에 몹시 마음을 상한 카퓰렛 부인은 영주에게, 티볼트를 
죽인 사람을 엄하게 다스려 달라고 졸라대면서, 벤볼리오는 로미오의 친구이며 
몬태규 집안 사람이므로 편을 들어 말하는 것이니 그의 말을 듣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려는 그렇게 로미오를 처벌하라고 간청하면서도 로미오가 
자기의 사위이며 줄리엣의 남편인 줄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또 몬태규 부인은 아들의 목숨을 구하려고, 로미오가 티볼트를 죽인 것은 
그가 머큐쇼를 죽인 값을 치른 셈이니 벌받을 일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영주는 두 여자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사실을 자세히 조사한 뒤에 선고를 
내렸는데, 그것은 로미오를 베로나로부터 추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줄리엣에게는 기가 막힌 소식이었습니다. 신부가 된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로미오가 추방을 당하면 영원히 이혼을 하게 된 것과 같았으니까요. 처음 
소식을 듣고 그녀는 사촌을 죽인 로미오에게 화를 내며 아름다운 폭군인, 천사 
같은 악마니, 아귀 같은 비둘기니, 늑대의 마음을 가진 양이니 꽃 같은 얼굴에 
뱀과 같은 심장을 가졌다느니 하며 마음 속의 사랑과 미움의 갈등 때문에 
그렇게 서로 반대되는 말로 로미오를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랑의 
마음이 우세하여 오빠의 죽음에 대하여 흘리던 슬픔의 눈물은, 티볼트에게 죽을 
뻔하였다가 로미오가 살아 남은 것에 대한 기쁨의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또 새로운 눈물이 쏟아졌는데 그것은 로미오가 추방을 당한 데 대한 슬픔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말은 티볼트가 여러 명 죽었다고 하는 말보다도 
줄리엣에게는 더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로미오는 그 소동을 벌인 뒤에 로렌스 신부의 방에 숨어 있다가 그곳에서 
영주의 추방령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로미오에게 사형보다도 훨씬 더 심한 
것이었습니다. 로미오에게는 베로나의 성벽 밖에는 세상도 없고, 줄리엣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살 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줄리엣이 사는 곳이 곧 
천국이요, 그 밖에는 연옥이며 고통이고 지옥이었습니다. 착한 신부가 그의 
슬픔을 달래 주려고 하였으나 로미오는 들으려 하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기 무덤의 치수를 재야 한다며 땅에 몸을 던지고 뒹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전갈을 받고서야 그는 조금 생각을 
되찾았습니다. 그 기회를 틈타 신부는 로미오가 남자답지 못한 허약한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하여 타일렀습니다. 신부는 로미오에게, 티볼트를 죽이고 이제는 
자신마저 죽여서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사랑하는 아내마저 죽일 셈이냐고 
말했습니다. 고귀한 사나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단단히 지킬 
용기도 없다면 밀랍으로 만든 인형과 다를 게 무어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였는데도 사형이 아닌 추방을 당했으니 법률이 그에게 관대한 편이며, 그가 
비록 티볼트를 죽였지만 자칫하였으면 티볼트에게 죽음을 당했을지도 모르니 
사실 다행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줄리엣이 살아 있고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되었으니, 그 점에서 로미오는 아주 행복한 것이라고 신부는 말했습니다. 신부가 
로미오에게 베풀어 준 이 모든 즐거운 일을, 로미오는 심술난 버릇없는 
계집아이처럼 내던져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신부는 절망하는 자는 비참하게 
죽는 법이니 정신을 차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로미오가 좀 진정이 되자 신부는 로미오에게 그날 밤 남몰래 줄리엣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곧바로 맨투어로 가 거기서 지내고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신부가 적당한 때에 그들의 결혼을 발표하면 그것이 두 집안이 화해를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영주가 로미오를 사면하여 줄 것이 
분명하니 지금은 슬퍼하면서 떠나가지만 스무 배나 더 기뻐하면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부의 이와 같은 현명한 충고에 수긍한 로미오는 그날 
밤을 아내와 함께 지내고 새벽에 혼자 맨투어로 갈 생각으로 나섰습니다. 
훌륭한 신부는 때때로 로미오에게 편지를 보내어 베로나의 형편을 알려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로미오는 전날 밤 사랑의 고백을 들었던 과수원을 통해서 로미오의 방으로 
남몰래 들어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황홀한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밤의 즐거움과 연인들이 함께 있을 때 
갖는 기쁨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과 어제 있었던 무서운 사건 때문에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반갑지 않은 새벽은 너무나 빨리 오는 것 같았습니다. 줄리엣은 
종달새의 아침 노래를 듣고 그것이 밤에 우는 나이팅게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노래부르는 것은 분명 종달새여서 그 소리는 듣기도 싫고 
불쾌하기만 했습니다. 동쪽에서 밝아 오는 빛도 연인들이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로미오는 무거운 마음으로 아내와 작별을 하고, 맨투어로 가면 매일 매시간 
편지를 쓰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가 줄리엣의 침실 창문으로 내러가 땅에 서 
있는 모습이, 줄리엣의 슬프고 걱정스러운 마음에는 마치 죽어서 무덤 바닥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로미오의 마음도 마찬가지로 불안하였습니다. 그러나 
날이 밝은 뒤에 베로나의 성벽 안에서 잡히면 죽게 되므로 로미오는 급히 
떠나야 했습니다.
  이 두 연인의 비극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로미오가 떠나고 며칠 
되지도 않아서 늙은 카퓰렛은 줄리엣에게 짝을 맞추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줄리엣이 이미 결혼한 줄은 꿈에도 모르고 줄리엣의 신랑감으로 고른 사람은, 
파리스 백작이라는 용감하고 젊은 귀족 청년이었습니다. 줄리엣이 로미오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조금도 손색없는 구혼자였습니다.
  줄리엣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줄리엣은 
자기는 아직 결혼하기에 너무 어리며, 티볼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즐거운 얼굴을 한 남편을 만날 기분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또 카퓰렛 
집안으로 보아도 장례식이 겨우 끝나자마자 결혼 잔치를 한다는 것은 체모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줄리엣은 자기가 이미 결혼을 하였다는 진짜 
이유만 빼고는 온갖 이유를 다 대면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카퓰렛은 줄리엣의 온갖 핑계도 듣지 않고 다음 목요일에 파리스와 
결혼을 하여야 할 테니 준비를 하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였습니다. 베로나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한 여자라도 기뻐하며 받아들일 만큼 부자이며 젊고 고귀한 
그런 신랑감을 찾아 놓았는데도, 수줍은 척하면서 자신의 행운에 스스로 방해를 
놓는 줄리엣을 카퓰렛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줄리엣의 태도를 그렇게 
해석한 것입니다.
  이처럼 궁지에 빠지게 되자 줄리엣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의논 상대가 
되어 주는 친절한 신부에게 달려갔습니다. 신부는 줄리엣에게 마지막 
수단이라도 쓸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줄리엣은 사랑하는 남편이 
살아 있는데 파리스와 결혼을 하느니 산채로 무덤에 들어가기라도 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신부는 줄리엣에게, 집에 돌아가서 기쁜 모습을 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파리스와 결혼을 하겠다고 승낙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혼 
전날인 내일 밤에 지금 주는 약병에 든 것을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그 약을 
마시고 나면 마흔 두시간 동안 죽은 듯한 상태로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에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면 줄리엣은 죽은 것처럼 보일 것이며, 그 
나라의 풍속대로 덮지 않은 채 관대에 얹혀 가족 묘지로 되어 있는 지하실로 
옮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줄리엣이 무서움을 참고 이 끔찍한 시련을 
견디어낸다면, 약을 마신 지 마흔두 시간이 지나면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이 
반드시 끼어난다는 것입니다. 줄리엣이 깨어나기 전에 신부가 로미오에게 
전갈을 보내어, 그가 밤에 와서 줄리엣을 데리고 맨투어로 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로미오에 대한 사랑과 파리스와의 결혼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줄리엣에게 이 무시뭇할 모험을 감행할 힘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신부가 주는 
약병을 받고, 그의 지시를 따르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줄리엣은 수도원에서 나오다가 젊은 백작 파리스를 만나게 되어 어물어물 
그의 아내가 되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카퓰렛 부부는 
기뻐하였습니다. 늙은 사람에게 젊음을 불어넣어 준 것 같았습니다. 파리스 
백작을 싫다고 하여 아버지를 노엽게 했던 줄리엣이 이제 말을 듣겠다고 하여 
다시 귀염둥이가 되었습니다. 집안은 온통 다가오는 결혼 준비로 
법석하였습니다. 베로나에 일찍이 없었던 그런 잔치를 준비하느라고 돈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줄리엣은 수요일 밤에 약을 마셨습니다. 혹시나 신부가 줄리엣과 로미오를 
결혼시킨 데 대한 비난을 듣지 않으려고 독약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생겼으나, 신부는 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또 로미오가 오기 
전에 깨어난다면 죽은 카퓰렛 집안 사람들의 해골이 가득 차 있고 피투성이 
티볼트의 시체가 수의에 싸여 썩고 있을 그 지하실의 공포 때문에 미쳐 
버리지나 않을까 겁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영혼이 자기의 시체가 있는 곳을 
떠돌아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로미오에 대한 
사랑과 파리스에 대한 싫은 마음이 떠올라 줄리엣은 약을 꿀꺽 삼켜 버리고 
의식을 잃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파리스가 음악 소리로 신부를 깨우겠다고 악대를 데리고 
왔을 때, 그 방에는 살아 있는 줄리엣 대신 유령과도 같은 시체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의 희망이 얼마나 무참히 깨어졌을까! 온 집안은 벌컥 뒤집혀 
버렸습니다. 가엾은 파리스는, 끔찍한 죽음이 그에게서 빼앗아 가버려 결혼으로 
미처 맺어지기도 전에 이혼을 하고 만 그의 신부를 애도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딱한 것은 그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늙은 카퓰렛 부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바라보며 기쁨과 위안을 받던 사랑스러운 자식을, 좋은 짝을 
만나 잘되는 것을 보려고 하는 차에 잔인한 죽음이 그들에게서 낚아채 가버린 
것입니다. 잔치를 하려고 마련했던 것들이 모두 음울한 장례식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위해 마련한 음식은 슬픈 만가로 변하고,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려던 악기는 우울한 종으로 바뀌고, 신부가 밟고 가도록 뿌리려던 꽃은 
시체 위에 뿌려지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주재할 사제 대신에 장례를 주재할 
사제가 필요하게 되었고, 삶의 즐거운 희망을 키우러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서글픈 숫자를 늘리러 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보다 늘 빨리 전해지는 법이어서, 로렌스 신부가 
로미오에게 그것은 가짜 장례식일 뿐이고 다만 겉으로만 죽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며, 사랑하는 아내는 잠시 무덤 속에 누워 있다가 로미오가 그 무시무시한 
곳으로부터 데려가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 주려고 보낸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이 맨투어에 전해졌습니다. 바로 그 
전에 로미오는 아주 유쾌하고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죽었는데 
(꿈도 이상한 꿈이어서 죽은 뒤에도 생각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와서 
죽은 것을 보고는 입을 맞추며 생명을 불어넣어, 자기가 살아나서 황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로나에서 사람이 오자, 그는 꿈이 알려 준 것처럼 
좋은 소식이 온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분 좋던 환상과는 
반대로 일이 일어나 정말로 죽은 것이 자기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말을 
준비하라고 시켜 그날 밤으로 베로나로 가 무덤 속의 아내를 만나 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의 마음에는 나쁜 생각이 잘 드는 법이어서, 그의 마음에는 
최근에 지나치다 보았던 맨투어의 초라한 약방이 떠올랐습니다. 약방의 주인은 
몹시 굶주렸는지 거지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고, 더러운 선반위의 빈 상자들 
따위가 몹시 너절한 모습이었습니다. 로미오는 그때 어쩌면 "독약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맨투어에서는 독약을 파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이 가난한 
사람에게서라면 살 수 있겠지."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아마도 자기의 불행한 
삶이 절망적인 종말을 지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기가 
했던 그 말이 생각나 로미오는 그 약방을 찾아내어 금을 주면서 독약을 팔라고 
하였습니다. 워낙 가난하여 거절할 수 없는 주인은 좀 망설인 끝에 독약을 
팔면서, 먹기만 하면 스무 명의 기운을 가진 사람이라도 당장 죽고 만다고 
말했습니다.
  이 독약을 가지고 로미오는 베로나로 떠났습니다. 무덤 속의 사랑하는 아내를 
실컷 바라보고 나서 독약을 먹고 아내 곁에 묻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자정에 베로나에 도착하여 카퓰렛 집안의 가족 묘지가 있는 교회 묘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횃불과 삽을 준비하여 쇠를 비틀고 묘지의 문을 열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어떤 목소리가 악당 몬태규라고 부르면서 불법적인 행동을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젊은 파리스 백작이었는데, 
한밤중에 자기의 신부가 되었을 사람의 무덤에 꽃을 뿌리고 눈물을 흘리러 왔던 
것입니다. 그는 로미오가 죽은 사람과 어떤 사이인지를 모르고, 그가 몬태규이며 
카퓰렛 집안의 원수이니 (그는 그런 줄 알았지요) 밤에 와서 시체에다 어떤 
고약한 짓을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화난 목소리로 멈추라고 한 
것입니다. 또 로미오가 베로나 시에서 붙들리면 사형을 받게 되어 있는 
죄인이니 붙잡을 생각이었습니다. 로미오는 파리스에게 자기를 가만히 내버려둬 
달라고 하면서, 자기를 화나게 만들면 그곳에 묻혀 있는 티볼트와 같은 운명을 
당하게 될 테니 자기가 사람을 또 죽이는 죄를 짓도록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백작은 코웃음을 치며 로미오를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로미오가 반항을 
하자, 두 사람은 서로 싸우다가 파리스가 쓰러져 죽었습니다. 로미오는 자기가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려고 불을 가까이 가져갔습니다. 그것이 줄리엣과 
결혼을 할 뻔했던 파리스라는 것을 알고 (맨투어에서 오는 길에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로미오는 자기와 똑같은 불행을 당한 죽은 청년의 손을 잡고 
승리의 무덤에 묻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지금 막 문을 연 줄리엣의 
무덤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곳에 그의 아내가, 죽음도 그 모습이나 안색을 
변하게 할 수 없는 듯 비길 데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어쩌면 죽음의 신이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하여, 그 여위고 징그러운 괴물같은 
놈이 줄리엣을 그곳에 두고 보며 기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줄리엣은 
약을 마시고 잠이 들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싱싱하게 피어나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티볼트가 피에 젖은 수의에 싸여 누워 있었는데 
로미오는 그것을 보고 그 생명 없는 시체한테 용서를 빌고 줄리엣을 생각하여 
사촌이라고 부르면서 티볼트를 죽인 자기 자신을 죽여 원수를 갚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로미오는 아내의 입술에 입맞추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약방에서 산 독약을 삼켜 기구한 운명의 짐을 지친 몸에서 털어 내 버렸습니다. 
그 독약은 줄리엣이 마신 약과는 달라서 사실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줄리엣의 
약은 이제 그 효력을 다해서 그녀가 깨어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줄리엣은 
로미오가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고, 또는 너무 일찍 왔다고 불평을 하게 
되겠지요.
  줄리엣이 깨어날 시간이 되자 로렌스 신부는 맨투어로 보낸 편지가, 가지고 
간 사람이 늦어져 로미오에게 전해지지 않은 것을 알고, 곡괭이와 등불을 들고 
줄리엣을 데리러 왔습니다. 그러나 와보니 놀랍게도 이미 카퓰렛의 묘지 속에 
횃불이 타고 있고, 그 옆에 칼과 피가 있고 로미오와 파리스가 묘석 옆에 숨이 
끊어져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추측해 보기도 전에 
줄리엣이 깨어났습니다. 그녀는 신부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 자기가 어디 
있는지를, 또 그 곳에 있게 된 까닭을 생각해 내고 로미오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줄리엣에게, 그들이 거스를 수 없는 큰 힘이 그들의 계획을 망쳐 버렸으니 어서 
이 죽음과 부자연스러운 잠의 장소에서 나가자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는 소리에 놀라서 그는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줄리엣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약병이 들려 있는 것을 보고 독약을 마시고 죽은 것이라고 
짐작하고, 남은 것이 있으면 마시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도 따뜻한 
로미오의 입술에 독약이 묻어 있는가 하여 입을 맞추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얼른 가지고 있던 단검을 빼어 자신을 찔러 
사랑하는 로미오 곁에서 죽었습니다.
  그때 경비원이 그곳에 다가왔습니다. 파리스 백작의 시종 하나가 자기의 
주인과 로미오의 싸움을 보고 소리를 질러, 시민들이 이를 알고 베로나 시를 
돌아다니면서 파리스니, 로미오니, 줄리엣이니 하며 자세한 것도 알지 못한 채 
떠들어댔습니다. 결국 몬태규와 카퓰렛이 이 소동에 잠을 깨어 영주와 함께 
소란의 원인을 캐어묻게 되었습니다. 로렌스 신부는 묘지에서 오면서 벌벌 떨며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는 수상한 태도를 보여 야경꾼에게 붙들렸습니다. 
카퓰렛네 묘지에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영주는 신부에게 이 이상하고 비참한 
일에 대하여 아는 것을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늙은 몬태규와 카퓰렛이 있는 자리에서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얘기하고, 자기가 두 집안의 해묵은 싸움을 끝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 
그들의 결혼을 추진시킨 것을 성실하게 모두 고백했습니다. 그곳에 죽어 있는 
로미오가 줄리엣의 남편이며 거기 죽어 있는 줄리엣이 로미오의 성실한 
아내라는 것, 자기가 그들의 결혼을 발표할 적당한 때를 찾기 전에 다른 혼담이 
생겨나 줄리엣은 두 번 결혼하는 죄를 피하려고 (자기가 권한대로) 잠자는 약을 
마셔서 모두들 줄리엣이 죽은 줄 알았다는 것, 그 동안 자기가 로미오에게 
편지를 써서 약효가 사라지면 줄리엣을 데리고 가도록 알렸다는 것, 그런데 
어떤 불상사가 생겼는지 편지는 로미오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그 이상의 일은 
자기도 알지 못한다는 것, 자기가 줄리엣을 묘지에서 데리고 가려고 와보니 
파리스와 로미오가 죽어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머지는 파리스와 
로미오가 싸우는 것을 본 시종과 로미오와 함께 온 하인의 말로 
보충되었습니다. 충실한 연인 로미오는 자기 하인에게 자기가 죽게 되면 
아버지에게 전하라는 편지를 주었습니다. 그 편지는 신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 편지에서 로미오는 줄리엣과의 결혼을 고백하고 
부모님께 용서를 빌며, 그 가난한 약방에서 독약을 샀다는 것과 무덤에 와서 
죽어 줄리엣 곁에 있겠다는 뜻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으로, 뜻은 
좋았으나 너무나 복잡하고 교묘한 계획에 뜻밖의 결과가 온 것밖에는, 이처럼 
얽히고 설킨 여러 죽음에 신부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영주는 몬태규와 카퓰렛을 향하여 그들의 잔인하고 터무니없는 원한을 
나무라며, 그런 잘못에 대하여 하늘이 내린 벌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서로 미워하기 때문에 자녀의 사랑을 통해서까지 벌을 내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서로 화해를 한 이 두 사람은 오래 된 싸움을 아이들의 무덤 속에 묻어 
버리자고 하였습니다. 카퓰렛은 줄리엣과 로미오의 결혼으로 자기들의 집안이 
서로 맺어진 것을 인정하는 듯이 몬태규를 형제라고 부르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딸을 시집보내면서 자기가 요구하는 것은 (화해의 표시로서의) 
몬태규경의 손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몬태규는 그 이상의 것을 주겠다고 
말하면서 순금으로 된 줄리엣의 조각을 만들어, 베로나가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한은 값이나 솜씨로 그보다 떠한 것이 없을 만큼 칭찬을 듣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두 늙은 귀족은 때가 너무 늦은 뒤에 서로 더 호의를 
베풀려고 애썼습니다. 지난날 그들의 노여움과 원한이 너무나 심해서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고는 두 집안의 그 뿌리 깊은 미움과 시기심을 없애 버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햄릿, 덴마크의 왕자

  덴마크의 왕비 거트루드는 햄릿 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과부가 되었는데, 
남편이 죽은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서 시동생인 클로디어스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일은 행실 바르지 못한 이상한 짓이라거나 무정한 짓, 또는 
그보다 더 나쁜 짓이라고 당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클로디어스라는 
사람은 죽은 햄릿 왕과는 사람됨이나 마음이 전혀 닮지 않아서 외모도 
보잘것없을 뿐만 아니라 성격조차 야비하여 값어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의 마음에는 클로디어스가 형수와 결혼하여 죽은 왕의 아들이며 법에 
따른 후계자인 햄릿 왕자를 쫓아내고 덴마크의 왕위에 오를 생각으로 형을 몰래 
처치한 것이라는 의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비의 이러한 지각없는 행동에 이 젊은 왕자만큼 충격을 받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거의 우상처럼 섬길 정도로 사랑하고 
공경하였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명예심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그 자신이 
훌륭하게 처신하는 사람이므로, 어머니 거트루드의 좋지 못한 행동이 몹시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어머니의 결혼에 대한 
수치심으로 이 젊은 왕자는 깊은 우울에 빠져 그의 모든 즐거움과 좋은 안색을 
잃게 되었습니다. 책을 즐겨 읽던 습관도 그만두고, 그의 젊음에 맞는 운동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일이 그에게는 모두 시들해져 버렸습니다. 그에게 
세상은 마치 좋은 꽃들은 숨이 막혀 죽어 버리고 잡초만이 무성한 그런 돌보지 
않은 정원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이 이어받아야 할 왕위를 빼앗긴 일은, 이상이 
높은 젊은 왕자로서 쓰라린 상처이며 가슴 아픈 모욕이긴 하였으나, 그것이 
그의 마음을 그렇게 괴롭힌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그를 괴롭히고 즐거운 
마음을 모두 빼앗아 가버린 것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그토록 쉽사리 
잊어버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처럼 훌륭한 아버지였는데! 어머니를 그토록 
사랑하던 부드러운 남편이었는데! 어머니도 늘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로 보였으며, 아버지에 대한 애정도 점점 깊어져 아버지만 따를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 겨우 두 달만에, 아니 젊은 햄릿의 기분에는 두 달도 
되지 않아서 다시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것도 햄릿의 숙부, 죽은 남편의 동생과 
결혼을 하였으니 친척 관계로 보더라도 몹시 부당하고 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서둘러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옥좌와 침대의 반려자로 어머니가 
선택한 사람이 옹답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 더욱 나쁜 점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명예를 귀하에 여기는 젊은 왕자에게는 열 개의 왕국을 잃은 것보다도 더 
기운을 껌고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 거트루드와 왕이 햄릿의 기분을 돌리려고 하였으나 모두 
허사였습니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뜻으로 아직도 짙은 
검은빛 옷을 입고 궁전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늘 그런 옷을 입고 다녔는데, 
어머니가 결혼을 한 날에도 그런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수치스러운 날의 
(햄릿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었습니다.) 잔치나 축하연에도 전혀 끼지 않았습니다.
  햄릿의 마음에 가장 괴로운 일은, 아버지의 죽음에 미심쩍은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미심쩍은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클로디어스는 
뱀에게 물렸다고 발표를 하였으나, 젊은 햄릿의 생각에는 클로디어스가 바로 
뱀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클로디어스가 왕위를 탐내어 
아버지를 죽였고 아버지를 죽인 그 뱀이 바로 지금 왕위에 앉아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추측이 얼마나 옳은 것인지,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 
어머니는 이 살인에 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어머니도 알면서 승낙하고 
이루어진 일인지 아닌지 거투르트 이런 의심이 끊임없이 햄릿을 괴롭히고 
정신을 어지럽혔습니다.
  궁전 앞 성벽의 망루를 지키고 있던 병정들이 이삼 일간 계속하여 한밤에 
유령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에 죽은 햄릿 왕과 꼭 닮았더라는 
소문이 젊은 햄릿에게 들려 왔습니다.  그 유령은 죽은 왕이 늘 입던 것과 
똑같은 갑옷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걸치고 있었다는데, 그것을 본 사람들이 
말하는 (햄릿의 절친한 친구 호레이쇼도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령이 
나타난 시각이나 모습이 모두 다 같았습니다. 시계가 바로 열두 시를 칠 때 
나타났고 창백한 안색으로 화가 났다기보다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살았을 
때와 같은 은빛 나는 검은 무시무시한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한 번은 고개를 들고 말을 하려는 듯한 몸짓을 
하다가 바로 그때 닭이 울어서 급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젊은 왕자는 그들의 말을 듣고 몹시 놀랐으나, 사람들의 말이 한결같아서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아버지의 유령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그 날밤 병정들과 함께 망을 보며 자기가 직접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햄릿의 생각에는 유령이 까닭 없이 나타날 리가 없으니 
무엇인가 할말이 있을 것이고, 아직까지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나 자기에게는 
말을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초조하게 밤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밤이 되자 햄릿은 호레이쇼와 파수병인 마셀러스와 함께 유령이 나온다는 
망루에 서 있었습니다. 추운 밤이어서 바람이 몹시 거칠고 살을 에는 듯하여 
그들은 밤이 춥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레이쇼가 유령이 온다고 
말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유령을 보고 햄릿은 놀랍고 무서운 생각이 왈칵 들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그것이 좋은 유령인지 악한 유령인지 알지 못하여 하늘의 천사를 부르며 
자기를 지켜 달라고 하였으나, 차차 조금씩 용기가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정말 
그렇게 보였습니다.) 다정하게 그를 바라다보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이 
보였고, 또 생시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으므로 햄릿은 유령에게 말을 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햄릿 왕이신 아버님! 하고 부르면서 무슨 까닭으로 
조용히 누워 계시던 무덤을 떠나 밤중에 땅 위에 나타나셨는지, 아버님 영혼의 
평화를 위하여 할 일이 있으면 알려 주십사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유령은 
햄릿에게 단둘이서만 있을 수 있는 좀 떨어진 곳으로 가자고 손짓하는 것 
같았습니다. 호레이쇼와 마셀러스는 그것이 나쁜 유령이어서 왕자를 꾀어 
가까이 있는 바다에 빠뜨리거나, 위험한 낭떠러지로 데리고 가서 무서운 
모습으로 변하여 왕자를 미치게 하지나 않을까 겁이 나 왕자를 말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햄릿은 이미 마음을 작정한 터이고, 목숨에 아무런 미련이 
없으니 죽는 것이 두렵지 않으며 영혼이란 본래 불멸의 것인데 유령이 무슨 
해를 끼칠 수 있겠느냐고 말하였습니다. 햄릿은 사자처럼 대담한 마음이 되어 
만류하는 호레이쇼와 마셀러스를 뿌리치고 유령이 이끄는 데로 따라나셨습니다.
  둘만 있게 되자 유령은 침묵을 깨뜨리고 자기는 죽은 햄릿 왕의 유령이며 
잔인하게 살해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유령은 자세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햄릿이 
이미 너무나 많이 의심하였던 그대로, 햄릿의 숙부인 그의 친동생 클로디어스가 
자신의 아내와 왕위를 차지할 목적으로 그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오후에 
늘 하던 버릇대로 정원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그 못된 동생이 다가와서 독이 
있는 사리 풀 즙을 귓속에 쏟아 넣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에 몹시 해로운 
것이어서 수은처럼 재빠르게 온몸의 핏줄을 돌아서 피를 말리고, 살갗에 
문둥병의 부스럼 딱지를 돋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잠을 
자다가 동생의 손에 왕위도 아내도 생명도 모두 빼앗긴 것입니다. 유령은 
햄릿에게,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사랑했다면 자기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령은 왕비가 덕을 저버린 채 처음 남편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그를 죽인 자와 결혼한 것을 슬퍼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쁜 숙부에게 
복수를 하더라도 어머니에게는 절대로 폭력을 가하지 말고 하늘의 심판과 
양심의 고통에 맡겨 두라고 주의를 시켰습니다. 햄릿이 그 지시를 모두 
따르겠다고 약속하자, 유령은 사라졌습니다.
  햄릿은 혼자 남게 되자, 자기의 모든 기억과 책에서 읽거나 보아서 알던 모든 
것을 당장 잊어버리고, 머릿속에는 유령이 말한 것과 유령이 하라고 시킨 것만 
남겨두겠다고 엄숙하게 맹세하였습니다. 햄릿은 유령이 이야기한 것을 친구인 
호레이쇼에게만 말하고, 그와 마셀러스에게 그날 밤 본 것을 절대로 비밀로 
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허약하고 마음이 상해 있던 햄릿에게 유령의 모습이 남겨 준 
공포는 거의 얼을 빼다시피 하여 그를 미치게 만들 것 같았습니다. 햄릿은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고, 숙부가 햄릿이 자기에게 반감을 
품고 있는 점이나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햄릿 
자기에 대하여 경계를 할 것이므로, 그것이 두려워서 한 가지 결심을 
하였습니다. 즉 그때부터 정말로 미친 것처럼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햄릿이 
신중한 계획을 세울 능력이 없다고 숙부가 믿게 되면 의심도 받지 않을 것이고, 
실제로 그가 겪고 있는 마음의 혼란도 미친 척하고 있으면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햄릿은 외모며 말하는 태도를 이상하고 난폭하게 하면서 미친 사람 
노릇을 썩 잘해 내, 왕과 왕비가 모두 속았습니다. 그리고 유령이 나타난 줄 
모르는 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데 대한 슬픔만으로도 그런 병이 생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것은 필경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울증에 빠지기 전에 햄릿은 오필리아라는 아름다운 처녀를 몹시 
사랑하였습니다. 오필리아는 왕이 나랏일을 의논하는 상대인 폴로니어스의 
딸이었습니다. 햄릿은 오필리아에게 편지며 반지를 보내고 사랑의 선물도 
자꾸만 보냈으므로, 오필리아도 그 사랑의 맹세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울증에 빠지자 햄릿은 오필리아에게 소홀히 하게 되었고, 미친 척하기로 한 
다음부터는 불친절하고 무례한 태도까지 보였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숙녀인 
오필리아는 그를 비난하지 않고, 자기에게 정말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병이 들어서 전처럼 잘해 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햄릿의 
고귀한 마음과 뛰어난 이해력이 깊은 우울증으로 손상된 것은, 마치 정교한 
음악을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종들이 가락을 맞추지 못하거나 거칠게 다룰 때 
시끄럽고 불쾌한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햄릿이 마음먹고 있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힘든 일이 구애를 하는 
즐거운 마음과는 맞지도 않을뿐더러, 그는 사랑이라는 그렇게 한가한 일을 
받아들일 마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오필리아에 대한 부드러운 마음이 
때때로 찾아 들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이 얌전한 아가씨에게 너무 심하게 
하였다 싶은 생각이 들어 햄릿은 갑작스러운 정열에 가득 차서 오필리아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거짓 미치광이짓에 어울리도록 야단스러운 말로, 그러나 
마음속에는 깊은 사랑이 숨어 있음을 알릴 수 있도록 부드러운 사랑의 말을 
섞어서 써보냈습니다. 그는 오필리아에게, 별들을 불이라고 의심하고 태양이 
움직인다고 의심하며 진실이 거짓이라고 의심하더라도 자기의 사랑은 의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얌전한 오필리아는 이 편지를 아버지에게 보였고, 그는 또 
왕과 왕비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왕비는 
햄릿이 미치게 된 정말 이유는 사랑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왕비는 오필리아의 
아름다움이 햄릿의 미친 원인이니, 오필리아의 덕성으로 해서 다행히도 그가 
예전과 같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햄릿의 병은 왕비가 생각한 것보다 깊었으며, 그런 식으로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유령이 늘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고, 원수를 
갚으라는 신성한 명령이 이루어지기까지는 그에게 조금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한 시간 지체하는 것이 죄악이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는 
일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늘 호위병에 둘러싸여 있는 왕을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그 일이 쉽다 하더라도, 늘 왕과 같이 있는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가 그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 큰 장애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위를 빼앗은 자기 어머니의 남편이라는 점이 가책이 되었습니다. 또 햄릿처럼 
부드러운 성품을 타고난 사람에게는 같은 인간을 죽인다는 일이 무섭고 
끔찍하게 여겨졌습니다. 우울증과 그토록 오랫동안 빠져 있던 의기소침한 
상태로 말미암아 햄릿은 결단력이 없이 우물쭈물하게 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자기가 본 유령이 정말 자기의 아버지인지, 
혹시 제 마음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 악마가 아닌지, 그래서 허약하고 
우울증에 빠져 있는 자기를 이용하여 살인이라는 엄청난 일을 시키려 드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혹시 속임수일지도 
모르는 환상이나 유령보다 더 확실한 근거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햄릿이 이렇게 우유부단한 상태로 있을 때, 어떤 배우들이 궁전에 왔습니다. 
전에 햄릿은 그들의 연극을 좋아하였고, 특히 그 중 한 배우가 트로이 왕 
프라이암의 죽음과 그 왕비 헤큐바의 슬픔을 묘사하는 비극적인 독백을 듣기 
좋아하였습니다. 햄릿은 옛 친구들을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독백이 
전에 즐거웠던 것을 기억하고, 그 배우에게 그것을 다시 해보라고 청하였습니다. 
배우는 약하고 늙은 왕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것과 함께 백성과 도시가 불로 
파괴되는 모습을 묘사해 보여주었습니다. 또 왕관을 썼던 머리에는 베 조각이 
얹히고, 고귀한 옷을 입었던 몸에는 급히 두른 담요밖에 걸치지 않은 채 맨발로 
궁전을 뛰어 다니는, 슬픔에 미친 왕비의 모습도 생생하게 그려 보여 
주었습니다. 배우의 묘사가 어떻게나 생생한 실감을 주는지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실제의 장면을 보는 듯이 눈물을 흘렸으며, 배우 자신도 정말로 눈물을 
흘리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하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햄릿은 
생각하였습니다. 그저 만들어 낸 독백에 감동하여 수백 년 전에 죽어 한 번 본 
일도 없는 헤큐바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인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고 
진짜 왕인 아버지가 살해당했는데 자신은 이렇게 무감각하게 복수심을 
진흙투성이 망각 속에 잠재우고 있다니! 이렇게 배우와 연극에 대하여, 또 
훌륭한 연극이 공연될 때 그것을 보는 관객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가를 
생각하다가 햄릿은, 어떤 살인자가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살인극을 보다가 
장면의 효과와 비슷한 상황에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자기가 저지른 살인을 
고백한 일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숙부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과 비슷한 장면을 숙부 앞에서 상연하게 하여, 그것이 숙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려고 작정하였습니다. 그러면 숙부가 살인자인지 
아니지를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목적으로 햄릿은 연극을 하나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그 공연에 왕과 왕비를 초대하였습니다. 연극의 줄거리는 
비엔나의 공작을 살해한 내용입니다. 공작의 이름은 곤자고이고 그 아내는 
뱁티스타였습니다. 연극은 공작의 가까운 친척인 루시아너스가 공작의 영지를 
탐내어 정원에서 공작을 독살하고, 그 살인자가 곧 곤자고의 아내의 사랑을 
차지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연극의 공연에 자기를 노린 덫이 놓여 있음을 모르는 왕은 왕비와 
신하들을 거느리고 참석하였습니다. 햄릿은 그의 표정을 살피려고 가까이 
앉아서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연극은 곤자고와 그의 아내 사이의 
대화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내는 사랑의 맹세를 여러 번 하며 자기가 곤자고보다 
오래 살게 된다면 결코 다시 결혼을 하지 않겠노라고 하고, 자기가 다시 결혼을 
한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첫남편을 죽이는 간악한 아내가 
아니라면 아무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햄릿은 이 말을 듣고 
숙부인 왕의 얼굴빛이 변하는 것을 보았고, 또 왕과 마찬가지로 왕비에게도 그 
장면이 몹시 쓰디쓴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연극의 줄거리에 따라 
루시아너스가 정원에서 자고 있는 곤자고를 독살하러 왔을 때, 정원에서 형님인 
선왕을 죽인 자기의 악독한 행동과 너무도 닮은 점이 이 찬탈자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그는 연극을 계속 볼 수가 없어서 침실까지 불을 밝히라고 하며, 
갑자기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극장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왕이 떠나자 
연극은 그만 중단되었습니다. 이제 햄릿은 유령의 말이 사실이라는 확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의심이나 걱정이 해결된 사람이 갖는 유쾌한 태도로 
호레이쇼에게, 자기는 유령의 말을 천 냥을 주고라도 사겠다고 외쳤습니다. 이제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숙부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복수를 하는 데 어떤 방법을 
쓸 것인가를 정하기도 전에, 어머니인 왕비에게서 조용히 할 얘기가 있으니 
오라는 기별이 왔습니다.
  왕비가 햄릿을 부른 것은 왕의 뜻이었는데, 최근의 햄릿의 행동으로 왕과 
왕비가 얼마나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지 알려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아들을 
두둔하는 법이므로, 왕으로서는 꼭 알아야 할 햄릿의 말을 좀 빠뜨릴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폴로니어스에게 휘장 뒤에 숨어 있다가 모든 이야기를 엿듣고 
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런 술책은 특히 폴로니어스의 기질에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비뚤어진 처세법과 정치 술로 늙어 온 사람이며, 간접적이고 
교활한 방법으로 일을 알아내기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햄릿이 오자 왕비는 아주 부드러운 말로 그의 행동을 나무라면서, 햄릿이 
아버님을 몹시 노엽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숙부인 왕이 어머니와 결혼을 
했으므로 햄릿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햄릿은 그토록 정답고 존경스러운 
아버지라는 이름을, 아버지를 죽인 나쁜 인간에게 가져다 붙이는 것에 몹시 
화가 나서 좀 비꼬는 투로 "어머니, 어머니께서 저의 아버님을 노엽게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왕비가 버릇없는 소리라고 하자, 햄릿은 "어머니 말씀에 그 정도 대답이면 
됐지요." 했습니다. 왕비는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지 잊어버렸냐고 물었습니다. 
"아, 잊어버릴 수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왕비이시고, 당신 남편의 동생의 
아내이고, 또 나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좋겠군요"하고 햄릿이 
대답하였습니다.
  왕비는 "아니, 그래 나에게 이렇게 버릇없이 굴겠다면 네게 버릇을 가르쳐 줄 
만한 사람을 보내 주마."라고 하면서, 왕이나 폴로니어스를 부르러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햄릿은 이제 어머니와 단둘이 만났으니, 어머니의 그릇된 
생각을 깨우쳐 줄 말을 좀 하려고 어머니를 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손목을 단단히 잡고 억지로 앉혔습니다. 왕비는 햄릿의 이런 행동에 
놀라, 그의 미친 증세가 나타나 자기에게 해를 끼칠까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휘장 뒤에서 "사람 살려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햄릿은 
그 소리를 듣고 바로 왕 자신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여 칼을 뽑아 소리가 나던 
곳을 찔렀습니다. 소리가 그치자 죽었다고 생각하고 시체를 찾아보니, 휘장 
뒤에서 염탐꾼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은 왕이 아니라 참견하기 좋아하는 
폴로니어스였습니다.
  "맙소사! 이런 경솔하고 참혹한 짓을 저지르다니!"하고 왕비가 외쳤습니다.
  "참혹한 짓이라고요, 어머니?"하고 햄릿이 대답하였습니다. "어머니가 하신 
짓보다야 낫지요. 어머니는 국왕을 죽이고 그 동생과 결혼을 하셨습니다."
  이제 햄릿은 내친 김에 어머니에게 혹독하게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부모가 
잘못한 일을 그 자녀가 심하게 나무라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만, 그것이 워낙 큰 
범죄일 경우에는 아들이 자기의 어머니에게라도 좀 심한 말을 해도 되는 
법입니다. 그 심한 말이 어머니를 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를 위해서 
옳지 못한 길로부터 돌아서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덕성스러운 왕자는 
왕비에게, 돌아가신 아버지 즉 선왕을 그토록 쉬 잊어버리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 동생이며 살인범으로 생각되는 사람과 결혼을 하다니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고 말했습니다. 처음 남편에게 사랑의 맹세를 하였으면서도 그런 행동을 
한다면 여자의 맹세는 누가 믿겠느냐고 묻고, 미덕이란 위선에 불과하고 결혼의 
서약이 노름꾼의 맹세보다 나을 것도 없으며, 종교도 웃음거리요 말의 장난 일 
뿐이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햄릿은, 어머니가 한 행동은 하늘도 수치스러워 
낯을 붉히고 땅도 진저리칠 그런 짓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처음 남편인 
돌아가신 왕의 초상화와 현재 왕의 초상화를 가리켜 보이며 어떻게 다른가 잘 
보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이마에 서리어 있는 기품, 신과도 같은 모습! 
머리카락은 아폴로와 같고 주피터의 이마에 마아스의 눈과, 방금 드높은 
산꼭대기에 내려선 머큐리와도 같은 자태, 이 사람이 어머니의 남편이었다고. 
그러고는 대신 맞은 새 남편을 가리키면서 형님을 죽인 병균 같은, 곰팡이 같은 
놈이라고 하였습니다. 왕비는 햄릿의 말을 듣고 시커멓게 이지러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몹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햄릿은 어머니에게, 어떻게 처음 
남편을 죽이고 도둑처럼 왕관을 가로챈 자와 함께 살며 아내 노릇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햄릿이 말을 하고 있는데 선왕의 유령이 생시와 
마찬가지로, 또 얼마 전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 방에 들어왔습니다. 햄릿은 몹시 
놀라서 웬일이시냐고 물었습니다. 유령은 햄릿이 잊어버린 것 같아서 약속한 
대로 복수를 하라고 일깨워 주러 왔다고 말하였습니다. 유령은 햄릿에게, 
어머니가 슬픔과 공포심 때문에 그냥 두면 죽을지도 모르니 어머니에게 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유령이 사라졌는데, 햄릿에게만 보였으므로 서 
있던 곳을 가리키고 모습을 설명해도 어머니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동안 햄릿이 허공에 대고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몹시 놀라서 햄릿이 정신이 
이상해져 그렇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햄릿은 어머니의 잘못 때문에 
유령이 다시 땅 위를 찾아왔다는 것을 말하고, 자기가 미쳐서 그런 거라고, 
그렇게 좋을 대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자기의 
맥박이 미친 사람 같은지 한 번 짚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또 눈물을 흘리며 
지나간 일을 하늘에 속죄하고 앞으로는 왕을 피하고 그의 아내 노릇을 하지 
말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어머니답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존중한다면, 
자기는 아들로서 어머니의 축복을 달게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그의 
말대로 하겠다고 하여 그 만남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 햄릿은 자기가 조급한 마음으로 죽인 것이 누구인가 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오필리아의 아버지인 것을 알자, 
이제 마음도 좀 진정이 된 터라 자기가 한 일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폴로니어스의 불행한 죽음으로 왕은 햄릿을 나라 밖으로 쫓아낼 구실이 
생겼습니다. 클로디어스 햄릿을 위험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라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백성들이 햄릿을 사랑하므로 겁이 났고, 또 왕비도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는데도 아들인 왕자를 끼고 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교활한 왕은 
햄릿이 폴로니어스를 죽인 책임을 져야 할 테니 영국으로 가는 것이 햄릿에게 
안전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명의 호송원에게, 거짓 이유를 붙여서 햄릿이 
영국에 닿는 즉시 햄릿을 죽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영국 왕에게 전하게 
하였습니다. 영국은 그때 덴마크의 속국이었습니다. 햄릿은 무슨 음모가 
있으리라고 의심하여 밤에 슬쩍 편지를 꺼내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이름을 교묘하게 지우고 그 대신 두 호송원의 이름을 써넣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봉하여 원래의 자리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가 탄 
배는 해적의 습격을 받아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햄릿은 용맹을 보여 주려고 
칼을 뽑아 들고 혼자서 적의 배에 뛰어들었습니다. 햄릿이 타고 있던 배는 
비겁하게도 햄릿을 남겨 두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두 명의 호송원은 햄릿이 
내용을 바꾼 편지를 가지고 급히 영국을 향해 갔습니다.
  왕자를 잡게 된 해적들은 그다지 난폭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이 잡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자 왕자에게 잘해 주면 나중에 저희들에게 좋은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햄릿을 가까운 덴마크의 항구에 내려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햄릿은 왕에게 편지를 써 자기가 다시 돌아오게 된 이상한 사연을 
알리고, 다음날 왕을 뵙겠다고 하였습니다. 햄릿이 고향에 돌아와서 처음 보게 
된 것은 슬픈 광경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한때 몹시 사랑하던 젊고 아름다운 오필리아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가엾은 아버지가 죽자 이 아가씨는 정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참혹하게 죽고, 그것도 사랑하는 왕자의 손에 
죽었다는 것이 이 연약한 처녀에게 큰 충격이 되어 곧 완전히 미치고 
말았습니다. 궁정의 귀부인들에게 꽃을 나눠주며 돌아다니면서 아버지의 장례식 
꽃이라고 하고, 사랑과 죽음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어떤 때는 자기에게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 못하는지 아무런 뜻이 없는 노래를 하고 다녔습니다. 냇물 위로 
비스듬히 자라서 물위에 잎사귀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는 버드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이 냇물에 와서 데이지꽃과 
쐐기풀을 뒤섞어서 만든 꽃다발을 나뭇가지에 걸겠다고 그 나무에 
기어올라갔습니다. 가지가 부러지고 이 예쁜 처녀는 꽃다발과 함께 물에 
떨어졌습니다. 옷 때문에 잠시 떠 있는 동안, 위험도 모르는지 아니면 자기가 
물속에 사는 동물이기나 한 듯이 옛날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다가 곧 옷이 흠뻑 
젖어 물 속에 빠져 진흙투성이가 되어 죽었습니다. 햄릿이 도착하였을 때 바로 
이 처녀의 장례식을, 오빠인 레어티스와 왕과 왕비 그리고 모든 신하들이 
참석하여 지내고 있었습니다. 햄릿은 웬일인지 모르고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쪽 
옆에 비켜서 있었습니다. 그는 처녀의 장례식에 하는 풍속대로 왕비가 무덤에 
꽃을 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비는 "아름다운 사람에게 아름다운 꽃을! 너의 
신방을 꽃으로 꾸며 주려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덤에 뿌려 주게 됐구나. 우리 
햄릿의 아내가 되었어야 했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햄릿은 오필리아의 오빠가 
그 무덤에서 제비꽃이 피어나라고 비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빠는 슬픔 때문에 
미친 듯이 무덤 속에 뛰어들어 동생과 같이 묻힐 테니 자기 위에 산더미 같은 
흙을 쌓아 올리라고 하였습니다. 햄릿에게 오필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필리아에 대한 자기 사랑이 오빠 4만 명의 사랑을 합한 것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는 햄릿은, 오빠가 그렇게 야단스럽게 구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햄릿은 비켜서 있던 곳에서 나오, 레어티스보다 더 야단스럽게 
무덤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레어티스가, 아버지와 동생을 죽게 한 햄릿임을 알고 
원수라고 멱살을 잡고 달려드는 것을 수행원들이 떼어놓았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 햄릿은 마치 레어티스를 무시하듯이 그렇게 무덤에 뛰어든 행동을 
사과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오필리아를 무척 사랑했으므로, 누구라도 
아름다운 오필리아의 죽음에 자기보다 더 슬퍼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이 두 청년이 화해를 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레어티스가 아버지와 오필리아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며 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왕은 햄릿을 없애 버릴 계획을 꾸몄습니다. 왕은 
레어티스에게 평화와 화해의 표시로 햄릿과 칼싸움 시합을 해보라고 
권하였습니다. 햄릿이 좋다고 하여 시합 날이 정해졌습니다. 이 시합에는 궁전의 
모든 사람들이 참석하였으며, 레어티스는 왕이 시키는 대로 독이 묻은 칼을 
준비했습니다. 햄릿과 레어티스 모두 칼싸움의 명수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이 시합에 큰 내기를 걸었습니다. 햄릿은 레어티스를 의심하거나 
레어티스의 칼을 조사해 보지도 않고, 연습용 칼을 하나 집었습니다. 레어티스는 
칼싸움 시합의 규칙대로 연습용 칼이나 끝이 무딘 칼을 쓰지 않고 끝이 뾰족한 
독 묻은 칼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처음에 레어티스는 장난 삼아 햄릿이 좀 
우세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왕은 햄릿을 몹시 칭찬하고, 
햄릿의 성공을 위하여 축배를 들면서 큰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곧 
레어티스는 몸이 달아서 독 묻은 칼로 햄릿을 맹렬히 공격하여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햄릿은 독이 있는 것까지는 몰랐으나 칼이 다른 것에 화가 치밀어 
격투 끝에 칼을 바꾸고 레어티스의 칼로 레어키스를 찔렀습니다. 그렇게 하여 
레어티스는 자기의 모략에 자기가 걸려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왕비가 독약을 
마셨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햄릿이 칼싸움을 하다가 목이 말라 마실 것을 
찾으면 주려고 왕이 준비해 놓은 것을 모르고 왕비가 마셨던 것입니다. 왕은 
레어티스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여 그 속에 독약을 타놓았습니다. 왕은 
잊어버리고 왕비에게 주의를 시키지 않은 것입니다. 왕비는 그 잔을 비우자 
독약을 마셨다고 간신히 외치고는 죽어 버렸습니다. 햄릿은 무슨 음모가 있음을 
짐작하고 그것을 찾아낼 때까지 문을 모두 닫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레어티스는 배반자는 자기이니 더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햄릿이 
자기에게 입힌 상처로 생명이 다해 가는 것을 느끼고 그는 자기가 꾸민 계략을 
이야기하고, 자기 자신도 거기에 걸려들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칼끝에 독이 묻어 
있으며 그 독은 어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으니 그것으로 상처를 입은 햄릿도 
반시간밖에는 더 살 수 없다고 말하고, 햄릿에게 용서를 빌면서 레어티스는 
죽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음모를 꾸민 것이 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햄릿은 자기의 목숨이 다해 가는 것을 알고는 아직 독이 남아 있는 칼끝으로 
악한 왕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버지의 
유령에게 했던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 유령의 명령이 실현되어 살인자에게 
죽음이 돌아간 것입니다. 햄릿은 숨이 가빠지고 생명이 끊어져 가는 것을 
느끼고, 이 끔찍한 비극을 지켜 본 친구 호레이쇼에게 살아 남아서 이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호레이쇼는 왕자와 함께 
죽으려고 자살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호레이쇼는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으니 
사실대로 전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고귀한 마음을 가졌던 
햄릿은 죽었습니다. 호레이쇼와 옆에 있던 사람들은 많은 눈물을 흘리며, 이 
착한 왕자의 영혼을 천사들이 지켜 줄 것을 빌었습니다. 햄릿은 착하고 인자한 
왕자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훌륭한 자질을 사랑하였습니다. 그가 
살았더라면 틀림없이 덴마크의 가장 훌륭한 국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셀로
  베니스의 돈 많은 원로원 의원 브라반시오에게는 데스데모나라는 예쁘고 
얌전한 딸이 있었습니다. 데스데모나가 훌륭한 아가씨인데다가 또 큰 재산을 
물려받을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구혼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데스데모나는 
자기와 같은 얼굴빛을 한 같은 나라 사람 중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정신을 외모보다 높이 평가하고,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존경할만한 
독특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좋아한 이 아가씨는, 아버지가 좋아하여 집에 자주 
초대를 하는 한 흑인 무어인 오셀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데스데모나가 연인으로 선택한 사람이 적당하지 않다고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셀로가 흑인이라는 점만 뺀다면, 이 무어인 귀족에게 그 지체 
높은 아가씨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한 점은 없었습니다. 그는 군인으로서 
용감하였고, 터키와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공을 세워 베니스의 장군으로 
승격하였으며, 베니스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신뢰를 받았습니다.
  오셀로는 여행을 많이 하였고, 데스데모나는 (아가씨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가 
어렸을 때부터 겪은 갖가지 모험담 듣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자기가 겪은 전투 
이야기, 성을 공격한 이야기, 백병전을 한 이야기, 육지에서나 바다에서 위험을 
만났던 이야기, 싸움에 끼여들거나 대포의 아가리를 향해 걸어나갔다가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 이야기, 적에게 포로로 잡혀 노예로 팔렸던 일이며 
노예로 온갖 천대를 받다가 도망친 이야기, 그뿐만 아니라 그가 외국에서 본 
낯선 동물들, 광대한 황무지며 낭만적인 동굴들, 돌산과 바위와 구름 위에까지 
솟아오른 봉우리, 야만인의 나라, 식인종, 또 어깨 아래에 머리가 달린 
아프리카의 어떤 종족의 이야기, 이런 여행담들에 데스데모나는 홀딱 빠져서 
집안일 때문에 불리어갈 때가 있으면 막 서둘러서 그 일을 해치우고는 돌아와 
오셀로의 이야기를 정신없이 듣곤 하였습니다. 한 번은 적당한 때를 이용하여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을 전체적으로 한 번 이야기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여태까지 많이 듣기는 하였지만 부분적이었으니까요. 
오셀로는 승낙을 하고, 젊은 시절의 비참한 경험을 이야기하여 아가씨가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데스데모나는 오셀로가 겪은 고난에 충격 받아 수없이 
한숨을 쉬며, 정말 이상하고 가엾은 일이며 신기할 정도로 딱한 일이라고 
말하면서 차라리 듣지 않았더라면 좋았었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하늘이 자기를 그런 남자로 만들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오셀로에게 이야기를 해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혹시 
그의 친구 중에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친구에게, 오셀로와 같은 
이야기를 하도록 가르쳐 주면 곧 그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솔직하면서도 수줍게 말하는 이 암시와 그녀의 어여쁜 자태, 또 
낯을 붉히는 모습을 보고 오셀로는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자기의 사랑을 
털어놓아, 이 황금 같은 기회에 마음 좋은 데스데모나에게서 남몰래 결혼을 
하겠다는 승낙을 얻어냈습니다.
  오셀로의 피부색으로나 그의 재산을 보더라도 브라반시오가 그를 사위로 
맞아들이려고 할 정도는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딸을 자유롭게 놓아두었으나, 
베니스의 귀족 아가씨들처럼 머지않아 원로원급이거나 장차 원로원 의원이 될 
유망한 남편을 선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점에서는 
그가 속은 것이지요. 데스데모나는 무어인을, 비록 흑인이지만 사랑하여 그의 
용감한 자질에 마음과 운명을 모두 바쳤습니다. 그녀는 남편으로 고른 사람에게 
마음을 온통 바쳤으므로, 이 분별력 있는 아가씨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되었을 피부색을, 자기에게 구혼을 하던 젊은 베니스 귀족들의 
흰 피부와 깨끗한 안색보다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비밀로 한 그들의 결혼이지만 결국은 부라반시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원로원 의회에서 무어인 오셀로가 평소에 후대를 받던 것도 
아랑곳없이, 마법과 요술을 써서 데스데모나를 아버지의 허락도 없이 
결혼하도록 꾀어냈다고 비난했습니다.
  바로 이때 베니스에는 오셀로의 도움이 당장 필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터키인들이 막대한 장비를 갖춘 함대를 출격시켜 베니스인들로부터 저 튼튼한 
요새를 되찾을 목적으로 사이프러스 섬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소식이 온 
것입니다. 이 위를 맞아 베니스 정부는 터키 군으로부터 사이프러스를 지키는 
데엔 오셀로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오셀로가 
원로원에 불리어오게 되었는데, 한편으로는 나라의 큰 임무를 받은 몸으로, 또 
한편으로는 베니스의 법률로 보아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죄인으로서 의원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나이로 보나 원로원 의원으로서의 자격으로 보나 브라반시오는 이 엄숙한 
모임에서 참을성 있게 이야기를 들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로서의 노여움을 참지 못해 가능성이나 심증을 증거라고 내세우며 마구 
오셀로를 비난했습니다. 오셀로가 변호를 할 차례가 되자, 그는 자기의 사랑이 
이루어진 과정을 소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위에서 우리가 말한 모든 
이야기를 아무런 꾸밈도 없이 너무나 순박하게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진실의 증거입니다) 재판장으로 있던 공작은 그런 식으로 한 이야기라면 
자기의 딸도 역시 사랑에 빠지고 말겠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오셀로가 사용했다는 주문이란 사랑하는 남자의 정직한 기교일 뿐이고, 그가 
썼다는 요술도 아가씨가 듣기 좋아할  부드러운 이야기를 하는 능력일 
뿐이었습니다.
  오셀로의 이러한 이야기는 데스데모나의 증언으로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데스데모나는 법정에 나와,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아버님께 효도를 다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지만 남편을 섬기는 도리가 그보다 더 크다는 것을 말하고 
나서, 어머니도 그 아버지인 외할아버지보다 아버지 브라반시오를 더 중히 
여기시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브라반시오는 탄원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오셀로를 불러 사과의 말을 하고, 
할 수 없이 그에게 딸을 준다고 허락하였습니다.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딸을 
그에게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자식이 없는 것이 
다행이지 더 있었더라면 데스데모나의 행동을 교훈 삼아 폭군과도 같이 그 
자식들을 꼼짝 못하게 붙들어 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난관이 지나가자, 군인 생활의 고난이 다른 사람들이 먹고 쉬는 것과 
같이 몸에 익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오셀로는 당장 사이프러스 전쟁의 임무를 
떠맡게 되었습니다. 데스데모나는 신혼 부부들이 흔히 시간을 보내는 한가한 
즐거움보다는 (위험하기는 하여도) 남편이 큰 책임을 맡은 명예를 더 소중히 
여겨, 흔쾌하게 그가 떠나는 것을 찬성하였습니다.
 오셀로가 아내와 함께 사이프러스에 도착하자마자 심한 폭풍이 터키의 함대를 
쫓아 버려 당장 공격을 받을 걱정은 없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그러나 
오셀로가 겪어야 할 전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장군의 주위에는 카시오만큼 오셀로의 신임을 받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이클 카시오는 젊은 군인이데 플로렌스 사람으로 명랑하고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훌륭한 말재주를 가졌는데다가 
미남이기도 하여 (오셀로처럼)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가진 나이 든 남자라면 
질투를 느끼게 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셀로는 성품이 고상하여 
질투라는 것을 모르고, 자신이 비열한 행동을 하지 않을 만큼 그런 의심을 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는 데스데모나와 연애를 할 때에도 카시오에게 심부름을 
시키곤 하여, 그가 그들의 중매쟁이 같은 역할을 했었습니다. 오셀로는 여자를 
즐겁게 하는 부드러운 말재주가 없었으므로, 카시오에게 대신 가서 말을 
해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순진한 단순함은, 이 용감한 무어인에게는 
흠이라기보다 명예라고 할 만한 점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결혼이 마이클 
카시오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달라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집에 
자주 놀러 왔으며, 그의 수다스러운 말은 좀 진중한 편인 오셀로에게는 유쾌한 
기분 전환이 되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과 반대되는 성격에 기분이 
전환되어 즐거움을 느끼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데스데모나와 카시오는 전에 
오셀로의 심부름을 다닐 때나 마찬가지로 함께 웃고 얘기하곤 하였습니다.
  오셀로는 최근에 카시오를 장군과 가장 가깝고 신임 받는 자리인 부관으로 
승진을 시켰습니다. 이 승진은 그보다 나이 많은 장교인 이아고를 몹시 
불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더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카시오는 
여자 상대로나 알맞은 녀석이며 전쟁의 기술이나 군대를 배치하는 방법은 
계집아이 보다도 더 모른다고 조롱하곤 하였습니다. 이아고는 카시오를 
미워하였고, 오셀로가 카시오를 좋아한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또 자기 아내 
에밀리아도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부당한 의심을 품고 오셀로도 미워하였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에서 이아고는 카시오와 무어인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를 
한꺼번에 파멸시킬 무서운 복수를 꾸몄습니다.
  이아고는 꾀가 많고 사람의 본성을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괴롭히는 고통 중에서(마음의 고통이 육체의 고통보다 훨씬 큰 것인데) 
질투가 가장 쓰라리고 참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셀로가 
카시오를 질투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훌륭한 복수가 되어, 카시오가 
죽거나 오셀로가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둘이 다 죽게 되어도 
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장군과 그의 아내가 섬에 도착하고 적의 함대가 모두 흩어져 버렸다는 소식을 
듣자 섬사람들은 축재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모두들 잔치를 벌이며 유쾌하게 
지냈습니다. 술이 흘러 넘치고 사람들은 축제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모두들 
잔치를 벌이며 유쾌하게 지냈습니다. 술이 흘러 넘치고 사람들은 흑인 오셀로와 
아름다운 데스데모나의 건강을 빌며 축배를 들었습니다.
  그날 밤 카시오는 오셀로로부터, 병정들이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소동을 부려 
주민들을 놀라게 하거나, 새로운 군대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게 되는 일이 
없도록 잘 단속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날 밤 이아고는 치밀하게 짜놓은 
음모를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군에 대한 충성과 사랑의 술이라는 핑계로, 
그는 카시오가 술을 많이 마시도록 꾀었습니다. (경비를 맡은 장교로서 커다란 
잘못이지요.) 카시오는 한동안 사양을 하였으나 이아고가 열성으로 권하는 데에 
견디지 못해, 한 잔 한 잔 자구만 마시고는 (이아고는 권주가까지 불러 가며 
자꾸만 마시게 하였습니다) 데스데모나를 칭찬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데스데모나를 위하여 축배를 거듭 들며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여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윽고 입속으로 쏟아 넣은 술에 정신을 빼앗겨 카시오는 
이아고가 데려다 놓은 한 친구에게 화를 내며 칼을 뽑았습니다. 싸움을 
말리려던 장교 몬타노가 그 소동으로 상처를 입었습니다. 소동은 점점 커지고 
처음 장난을 시작했던 이아고는 앞장서서 소문을 퍼뜨리며 성의 종을 울리게 
하였습니다. (술 취한 싸움이 아니고 무슨 큰 반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종소리에 잠이 깬 오셀로는 서둘러 옷을 입고 현장에 나와 
카시오에게 까닭을 물었습니다. 카시오는 술기운이 조금 가시어 제정신을 
차렸으나 창피하여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아고는 카시오를 비난하기는 
싫지만 오셀로가 진상을 알아야겠다고 하므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모든 일을 
(카시오도 너무 취하여 잊어버리고 있으므로 이아고 자신이 한 역할은 슬쩍 
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아고는 카시오를 두둔하는 척하여 카시오의 잘못을 
사실보다 더 크게 보이게 하였습니다. 오셀로는 규율을 엄하게 지키는 
사람이어서 소동의 대가로 카시오에게서 부관의 자격을 빼앗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이아고의 첫 번째 계교는 완전히 성공하여 미워하던 경쟁자를 
거꾸러뜨려 부관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재난의 밤에 
계획된 계략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이 불행으로 완전히 술에서 깨어난 카시오는 친구인 척하는 이아고에게, 
자기가 어리석게도 짐승 같은 짓을 하였다고 탄식하였습니다. 이제 자기를 
주정꾼이라고 할 터이니 장군에게 다시 부관으로 써달라고 청을 할 면목도 없고 
자기는 끝장이 나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경멸하였습니다. 이아고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이 누구라도 때에 따라서는 위하는 일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남은 일이 어떻게 수습을 잘하느냐인데, 장군의 아내는 
장군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데스데모나에게 잘 말해 달라고 청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데스데모나는 솔직하고 남을 잘 도와 주는 성격이므로 
이런 일을 잘해 줄 것이고, 당장 장군이 카시오를 다시 신임하게 만들어 죽 
것이며 그리고 이렇게 금이 간 그들의 우정을 한층 더 튼튼하게 하여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차차 드러나겠지만, 나쁜 목적으로 한 것만 아니라면 
훌륭한 충고였습니다.
  카시오는 이아고가 충고한 대로 정직한 간청에 쉽게 마음이 움직이는 
데스데모나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데스데모나는 남편에게 청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며 죽는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데스데모나는 
당장 오셀로에게 카시오를 용서해 달라고 열심히 또 어여쁜 태도로 
간청했습니다. 카시오에 대하여 몹시 화가 났던 오셀로도 아내의 청을 물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오셀로가 그런 큰 잘못을 너무 빨리 용서해 줄 수는 없으니 
좀 두고 보자고 하니까, 데스데모나는 지지 않고 내일 밤 아니면 모레 아침, 
그것도 안 되면 늦어도 그 다음날 아침까지는 용서해 줘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가엾은 카시오가 얼마나 후회하며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 주고, 그의 잘못에 비해 벌이 너무 심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오셀로가 주저하자 데스데모나는 "아니, 카시오를 위해서 이렇게 간청해도 
안된단 말씀입니까? 당신 대신 제게 구애를 하러 왔었고 또 제가 당신 흉이라도 
보면 늘 당신을 두둔하던 마이클 카시오가 아니에요? 큰 부탁도 아니지 않아요. 
당신의 사랑을 시험해 보려면 훨씬 큰일을 부탁하겠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같은 간청에 오셀로는 거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카시오를 다시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고 언제가 될 지 그 시간만은 자기에게 
맡겨 두라고 하였습니다. 
  오셀로와 이아고가 데스데모나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데, 우연히 카시오가 
데스데모나에게 청을 하고 나서 저쪽 문으로 막 나가고 있었습니다. 나쁜 꾀가 
많은 이아고는 마치 혼잣말처럼 낮은 소리로 "무슨 꼴이야." 하고 말했습니다. 
오셀로는 무심코 들어 넘겼습니다. 사실 그는 아내와 이야기하느라고 곧 그것을 
잊어버렸는데 나중에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데스데모나가 자리를 비우고 없을 
때, 이아고는 그저 생각이 나서 물어 본다는 듯이 오셀로에게,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구애를 했을 때 카시오도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장군은 
그렇다고 대답을 하고, 카시오가 두사람 사이에서 심부름으로 왔다갔다한 일이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아고는 어떤 끔찍한 일을 새로 알았다는 듯이 이마를 
찡그리며 "그랬었군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 말을 듣자 오셀로의 마음에는, 방에 
들어올 때 데스데모나와 카시오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이아고가 슬쩍 하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오셀로는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아고가 정직하고 충성스러우며 올바른 사람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셀로는 악당의 이 속임수를, 마치 그가 너무나 엄청나 말을 할 수도 
없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의 정직한 마음에서 저절로 튀어나온 말인 듯이 
생각하였습니다. 오셀로는 이아고에게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해 달라고, 가장 
나쁜 이야기라도 들려 달라고 청했습니다. 
  "제 마음속에 몹시 고약한 생각이 침입했다면 어떻게 합니까? 궁전 안에라도 
나쁜 것이 들어가지 못하란 법은 없으니까요."
  이아고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만일 잘 살피지를 못해서 오셀로에게 나쁜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딱한 일이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안다면 장군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며, 가벼운 의심 때문에 사람들을 잘못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암시와 몇 마디 말로 오셀로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거의 정신이 혼란해지도록 만들어 놓고 나서, 이아고는 오셀로를 가장 
걱정해주는 척하며 부디 질투심을 경계하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이 
악당은 교묘하게도 의심을 하지 말라고 일부러 주의를 주는 척하며, 바로 그 
주의 때문에 무심코 있던 오셀로가 의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내 아내가 아름답고 사람들을 만나 음식을 대접하기 좋아하며, 노래난 연주를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줄 알고 있네. 그러나 덕이 있으면 그런 것들도 다 미덕이 
되지. 아내를 의심하기 전에 증거가 있어야만 해."
  오셀로가 이렇게 말하자 이아고는 아내를 믿어서 기쁘다는 듯이 자기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니 카시오가 옆에 있을 때 
데스데모나의 행동을 잘 살피라고 하며 질투를 하지도 말고 너무 안심을 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는 이탈리아 사람이므로 오셀로보다 이탈리아 여자들을 
잘 아는데, 베니스의 아낙네들은 남편들에게 감히 보이지 못할 장난을 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교묘하게도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와 결혼할 때 아버지를 
감쪽같이 속여서, 그 가련한 늙은이는 마술에 걸린 것이라고까지 생각했다는 
말을 비쳤습니다. 오셀로는 그 말에 몹시 동요하여 아버지를 속인 여자가 
남편인들 속이지 말란 법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아고는 마음을 어지럽혀서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셀로는 속으로는 
몹시 마음이 상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아고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 자기 친구인 카시오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기 싫은 척하며 이야기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데스데모나가 많은 
이탈리아 사람 구혼자들을 거절하고 무어인인 오셀로와 결혼한 것은 어딘가 좀 
부자연스러운 일이며, 데스데모나에게 고집스러운 성격이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생각이 달라진다면, 그녀는 오셀로를 젊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희고 깨끗한 안색과 섬세한 모습에 비교해 볼 것은 뻔하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이아고는 카시오를 용서해 주는 것을 좀 미루고 데스데모나가 
카시오를 위하여 얼마나 열성을 보이는지 한번 살펴보라는 충고를 하며 말을 
끝냈습니다. 그 정도면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이 교활한 
악당은 순결한 부인을 파멸시킬 계획을 짜, 그 여자의 착한 마음씨가 그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도록 그물을 쳐놓았습니다. 먼저 카시오가 데스데모나에게 
부탁을 하게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데스데모나를 파멸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아고는 오셀로에게 더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까지는 아내의 결백을 믿어양 
한다고 말하고, 오셀로는 참고 살펴보겠다고 약속하는 것으로 화합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오셀로는 마음의 평화를 잃고 말았습니다. 
어제만 해도 잘 자던 잠을 이제는 세상에 있는 어떤 약을 먹어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무기를 보아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의 모습이나 깃발, 전투 
대열만 보아도 가슴이 부풀고 북이나 나팔 소리 또는 말이 우는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뛰던 것이, 이제는 군인의 미덕인 자부심과 야망도 다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군대에 대한 열성과 그가 즐기던 것들이 모두 그를 버린 것 
같았습니다. 어떤 때는 아내가 정직하다고 생각했다가, 어떤 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때로는 이아고의 말이 옳은 것 같고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는 아내가 카시오를 사랑한다고해도 자기가 모르면 아무 
상관없으니, 차라리 아무 것도 몰랐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번민에 시달리다가 한번은 이아고의 목을 움켜쥐고, 데스데모나가 
부정하다는 증거를 대라,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을 한 죄로 당장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아고는 자기의 정직한 말을 믿어주지 않아서 속이 
상하는 척하며, 데스데모나가 딸기 무늬가 있는 손수건을 가진 것을 보지 
않았느냐고 오셀로에게 물었습니다. 오셀로는 그 손수건은 바로 자기가 
주었으며 그것이 아내에게 처음으로 준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 손수건으로 마이클 카시오가 얼굴을 닦는 것을 보았는데요."하고 
이아고가 말했습니다. 
  "자네 말대로라면 당장 그들에게 복수를 하겠다. 자네 충성에 대한 표시로서 
카시오는 사흘 안에 죽게 될 것이며, 그 아름다운 악마)아내를 말하는 
것입니다)도 곧 죽여버리고 말 테야."하고 오셀로가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일도 질투심에 가득찬 사람에게는 대단한 증거로 
생각되는 법입니다. 질투로 눈이 어두워진 오셀로는, 아내의 손수건을 카시오가 
가지고 있더라는 말만 듣고도,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보지도 않은 채 
당장에 두 사람을 죽이겠다고 할 만했습니다. 데스데모나는 카시오에게 그런 
선물을 한 일이 없습니다. 또 이 정숙한 부인이 남편이 준 선물을 다른 
남자에게 주는 뻔뻔스러운 행동을 할 리도 없었습니다. 카시오와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에게 잘못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잠시도 쉬지 않고 악한 일을 
꾸며대는 이아고가(착하기는 하나 마음 약한 여자인) 그의 아내에게 그 
손수건을 본뜨게 데스데모나로부터 훔쳐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그것을 카시오의 눈에 띄도록 그가 지나갈 만한 곳에 떨어뜨려 놓아 
데스데모나가 선물로 주었다고 암시를 할 구실을 만든 것입니다.
  오셀로는 아내를 만나자 곧 머리가 아픈 척하며 (사실 머리가 아프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마를 좀 동여매게 손수건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내가 손수건을 
주니까 오셀로는 "이것 말고, 내가 당신에게 준 것 말이오."하였습니다. 
  데스데모나는 그걸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도둑을 
맞았으니까요.) 오셀로가 말했습니다. 
  "어찌된 거요? 그런 잘못을 하다니. 그 손수건은 이집트 여자가 내 어머니께 
드린 거요. 그 여자는 사람의 마음을 잃을 줄 아는 요술쟁이였소. 그것을 
주면서, 어머니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아버님의 사랑을 받게 되지만, 
잃어버리거나 남에게 주어 버리면 아버님의 마음이 변하여 어머니를 미워하게 
된다고 말했다오.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내게 주시며 결혼을 하게 되면 
아내에게 주라고 하셨소.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준 거요. 조심하시오. 눈을 
아끼듯이 소중히 해야 하오."
  "그럴 수가 있을까요?" 하고 놀란 아내가 말했습니다. 오셀로가 계속 
말했습니다.
  "사실이오. 그건 신기한 손수건이오. 이백 년 전에 살았던 무녀가 신이 들려서 
짠 것이오. 명주실을 낸 누에도 신성한 것이었고, 물감도 미이라가 된 처녀의 
심장에서 뽑아 낸 것이라오."
  오셀로의 이 말을 듣자 데스데모나는 겁에 질려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손수건을 잃어버린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 때문에 남편의 사랑도 잃어버리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오셀로는 깜짝 놀라며 무슨 성급한 행동을 
할 것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그 손수건을 내놓으라고 하였습니다. 
데스데모나는 손수건을 내어놓지 못하게 되자 남편의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려보려고 유쾌한 태도로, 이제 보니 자기가 마이클 카시오의 일을 졸라댈까 
봐 그걸 막느라고 손수건 얘기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아고가 미리 
말한 대로) 카시오를 칭찬하였습니다. 오셀로는 그만 미친 듯이 방에서 뛰어나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데스데모나는 그렇게 생각하기 싫었지만 남편이 질투를 
하는가 보다 하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데스데모나는 무슨 까닭으로 남편이 질투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데스데모나는 훌륭한 오셀로를 나쁘게 생각한 자신을 나무랐습니다. 그리고 
베니스에서 좋지 않은 소식이 왔거나, 나라의 무슨 일이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하여 전과 다르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신이 
아닌데 결혼하던 날 우리에게 해준것처럼 늘 그렇게 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지."라고 하였습니다. 데스데모나는 남편이 조금 불친절하였다고 해서 남편을 
비판하려고 했던 자신을 책망하였습니다. 
  오셀로는 다시 데스데모나에게 와서, 데스데모나가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고 야단을 치면서 그가 누구인지 이름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셀로가 울자 데스데모나는   "아, 슬픈 날이군요. 여보, 왜 우셔요?" 
하고 물었습니다. 
  오셀로는 가난이나 병이나 치욕 등 모든 고난은 꿋꿋이 견딜 수 있었지만, 
아내의 부정에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를 잡초라고 
부르며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향기로와서 감각이 고통을 느낄 지경이라고 
하며, 차라리 그녀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오셀로가 
나가 버리자, 이 순결한 부인은 남편의 터무니없는 의심에 너무 놀라 온몸에 
기운이 빠지며 무거운 잠이 덮쳐 왔습니다. 데스데모나는 하녀에게 신방에 
깔았던 이부자리를 펴달라고 하고, 사람들이 아기를 가르칠 때는 부드러운 
방법과 쉬운 일로 가르치는 법인데, 오셀로도 그런 식으로 자기를 꾸짖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도 야단을 맞을 때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얌전한 부인의 불평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데스데모나는 남편이 곧 돌아오겠거니 생각하고 자리에 눕자, 마음이 
어지러웠던 다음이라 곧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그때 오셀로는 아내를 죽여 
버릴 생각에 가득차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내가 잠이 든 것을 
보고, 눈꽃이나 석고보다 더 흰 아내의 살갗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꼭 죽일 결심이었습니다. 살려 두면 
자기를 속인것처럼 다른 남자들을 또 속일 터이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키스를 하였습니다. 그 입맞춤이 너무나 
달콤하여 그는 또 다시 키스를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은 
잔인한 눈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데스데모나는 그가 키스를 하는 바람에 잠이 깨었습니다. 오셀로를 바라보니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을 희번덕거렸습니다. 데스데모나는 남편이 그런 
표정을 할 때는 언제나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데스데모나에게 영혼마저 죽이고 싶지는 않으니 죽을 준비를 하고 기도를 
올리라고 말했습니다. 이 죄없는 아내는 동정을 베풀어 달라고 빌며 자기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오셀로는 카시오의 이름을 대고 
아내가 그에게 준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 손수건 얘기를 하였습니다. 
부인이 변명을 하려하자 오셀로는 갑자기 더 듣지 않겠다고 하며 홑이불로 
아내를 덮어씌워 목을 졸라 죽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는 카시오가 들것에 실려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아고가 사람을 시켜서 카시오를 죽이려고 하였는데, 그만 
카시오를 죽이지 못하자 (심하지는 않게 상처만 입혔습니다.) 이아고는 비밀이 
드러날까 봐 그 사람을 죽여버렸습니다. 죽은 사람의 주머니에서 편지가 
나왔는데, 그것이 이아고의 죄상과 카시오의 결백함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습니다. 이제 카시오는 오셀로에게 용서를 빌며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였길래 이아고를 시켜 죽이려고 했는지 물으러 온 것입니다.
  이 사실의 발견은 오셀로에게 벼락과도 같았습니다. 이제 자신은 한낱 
살인자일 뿐이고, 아내는(그 가련하고 순결한 부인은) 자기에게 언제나 
충실하였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되자 엄청남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오셀로는 자기의 칼 위에 쓰러져 사랑하는 아내의 시체 위에 
몸을 던지고 숨을 끊었습니다. 
  이런 성급한 행동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셀로는 훌륭한 명성을 지니고 있었고 악한의 꾀에 속아넘어가기까지는 아내를 
위하며 사랑하는 남편이었으니까요. 오셀로의 고상한 성품은 이아고와 같은 
악한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셀로는 현명하게 
사랑하지는 않았으나 너무나 깊이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나이다운 
눈은 작은 일에는 우는 일이 없었으나 (자신의 잘못을 알고는) 아라비아 
고목나무가 수액을 흘리듯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가 죽자 그의 훌륭한 점과 
용감했던 행동들이 모두 떠올랐습니다. 남은 일은 그의 후계자가 이아고에게 
혹독한 벌을 내리는 일과 유명한 장군의 슬픈 죽음을 베니스에 보고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아고는 가혹한 고문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페리클레스, 타이어의 왕
 
  타이어의 왕 페리클레스는 자진하여 자기가 다스리던 영토를 떠나 망명객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 황제 안티오커스가 남몰래 저지른 엄청난 일을 
알아냈는데 그 보복으로 안티오커스가 타이어 시와 그 시민들에게 큰 재앙을 
내리겠다고 위협해 그것을 피하려고 한 것입니다. 커다란 권세를 쥔 사람들의 
숨겨진 죄악을 엿보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정직하고 유능한 
헬리케이너스라는 신하에게 백성을 다스리도록 위임하고, 페리클레스는 
안티오커스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피해 있을 생각으로 배를 타고 타이어를 
떠났습니다.
  그가 처음 찾아간 곳은 타서스였습니다. 타서스 시가 그때 심한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을 도와주려고 식량을 싣고 갔습니다. 
도착하여 보니 도시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가 마치 하늘에서 온 
천사처럼 뜻밖의 양식을 가지고 가자 타서스의 통치자 클리언은 감지덕지하며 
환영을 하였습니다. 페리클레스가 그곳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충실한 
신하로부터 타서스에 있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경고가 날아왔습니다. 
안티오커스가 그의 거처를 알아내 그를 죽이라고 자객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고 페리클레스는, 그가 먹여 살려 준 모든 사람들의 축복과 기도를 
들으며 다시 바다로 나섰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는 무서운 폭풍을 만났습니다. 배에 탔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고 페리클레스만이 살아서 벌거벗은 채 파도에 밀려 낯선 해안에 
던져졌습니다. 그곳을 돌아다니다가 그는 가난한 어부들을 만났는데, 어부들은 
그에게 먹을 것과 옷을 주며 자기들의 집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어부들은 
페리클레스에게 그 나라의 이름은 펜타폴리스이며 왕은 사이머니데스인데 
훌륭한 정치로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려 '착하신 사이머니데스'라고 부른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또 사이머니데스에게는 아름다운 젊은 딸이 있는데, 
내일이 공주의 생일이어서 기념으로 무술시합이 궁중에서 열린다고 말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공주 타이사의 사랑을 차지하려고 사방에서 왕자들과 기사들이 
무술을 겨루려 온다는 것입디다. 페리클레스가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의 훌륭한 
갑옷을 잃어버려 그 용감한 기사들 중에 끼일 수 없는 것을 속으로 슬퍼하고 
있을 때, 다른 어부가 갑옷 한 벌이 그물에 걸렸다고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페리클레스가 잃어버린 갑옷이었습니다. 
  그 갑옷을 보고 페리클레스는 "감사합니다. 운명이여, 여태까지 나에게 준 
고통 대신에 이런 보상을 해주시니, 이 갑옷은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물려준 
것이어서 제가 무척 아끼던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꼭 가지고 다녔는데 
풍랑속에서 그만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바다가 잠잠해지니 되돌아왔군요. 
아버님의 선물을 다시 찾았으니 조난을 당한 것도 불행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페리클레스는 용감했던 자기 아버지의 갑옷을 입고 사이머니데스의 
궁전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놀라운 무술을 발휘하여, 타이사의 사랑을 
얻기위해 실력을 겨루던 모든 왕자들과 기사들을 쉽게 물리쳤습니다. 공주의 
사랑을 걸고 무술 시합을 하여 한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물리치고 
승리자가 되면, 공주는 그 승리자에게 모든 경의를 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타이사도 이 관례에 따라 페리클레스가 무찌른 왕자며 기사들을 다 보내고 
나서, 그날의 행운을 독차지한 완자인 그에게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 주며 
특별한 호의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페리클레스는 이 아름다운 공주를 
바라보는 첫 순간부터 그녀를 매우 정열적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선량한 사이머니데스 왕은 페리클레스의 용맹과 고결한 품위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 사실 페리클레스는 대단히 훌륭한 신사이며 갖가지 학식과 재능에도 
뛰어났습니다. - 이 낯선 사람의 지위는 알지 못했지만 (페리클레스는 
안티오커스가 두려워 자기를 그냥 타이어의 한 신사라고만 말했습니다) 공주가 
이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이 미지의 용사를 사위로 
받아들이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페리클레스가 타이사와 결혼한 지 채 여러 달이 지나지 않아 안티오커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타이어의 신하들이 왕이 너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반역을 일으켜, 헬리케이너스를 비어 있는 왕좌에 앉히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은 바로 헬리케이너스 자신으로부터 온 것인데, 그는 
충성스러운 신하였으므로 왕위에 오르라는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페리클레스에게 사정을 알려, 빨리 고국으로 돌아와 그의 합법적인 권리를 
되ㅊ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사위가 (이름 없는 기사인 줄 알았다가) 유명한 타이어의 왕임을 알게 
되자 사이머니데스는 매우 놀랍고 기뻤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운 사위와 딸과 이제 해어져야만 하게 되었으니, 이전에 그렇게 알고 
있던 데로 사위가 그저 이름 없는 신사가 아닌 것이 섭섭하기도 하였습니다. 
더욱이 타이사는 아기를 가진 몸이어서 험한 뱃길에 떠나 보내기가 
걱정스러웠던 것입니다. 페리클레스도 아내가 해산하기까지는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타이사가 꼭 남편과 함께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녀가 몸을 풀기 전에 타이어에 도착하기를 희망하면서 그렇게 하기를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페리클레스에게 친절하지는 않았습니다. 타이어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또 무서운 폭풍이 일어나 타이사는 놀라 병이 났습니다. 그리고 곧 
유모인 리코리다가 갓난아기를 안고 페리클레스에게 와서, 아내가 아기를 낳는 
순간 죽어 버렸다는 슬픈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런 곳에 계시기에는 너무나 어린 분입니다. 돌아가신 왕비 님의 
아기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리코리다는 아기를 페리클레스 쪽으로 내밀었습니다.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페리클레스의 무서운 고통은 아무도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간신히 말문이 열리자 그는 "오 신들이시여, 어째서 훌륭한 
선물을 주시어 그것을 사랑하게 만들고는 그 선물을 빼앗아 가버리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참으십시오. 돌아가신 왕비님께서 남기신 것은 이 어린 공주님뿐입니다. 
아기를 생각하셔서 더 남자다우셔야 합니다. 이 소중한 아기를 위해서라도 
참으십시오."라고 리코리다가 말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품에 받아 들고 그 아기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생애는 평온하기를 빈다. 이보다 더 비통스럽게 태어난 아기는 없을 테니 
! 왕의 아기로는 가장 거친 환영을 받았으니 너는 평화롭고 순조롭게 
살아가기를 빈다. 너의 탄생을 알리느라고 불과 공기, 물과 땅과 하늘이 미친 듯 
날뛰었으니 앞으로는 행복하기를 바란다. 애초에 네가 잃은 것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뜻입니다) 네가 찾아온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기쁨으로도 
갚을 수 없을 만큼 크구나."
  폭풍은 여전히 미친 듯이 계속되었고, 뱃사람들은 시체가 배위에 있는 동안은 
폭풍이 멈추지 않는다는 미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페리클레스에게 와서 
왕비의 시신을 바다에 던져야겠다고 하였습니다. 
  "용기를 잃지는 않으셨겠지요? 하느님께서 전하를 구해 주시옵기를 !"
  "용기는 있다. 폭풍이 무섭지는 않다. 견딜 만큼 견디어 보았으니까. 그러나 이 
어린 것, 이 새로운 손님을 위해 폭풍이 그쳤으면 좋겠구나."
  슬픔에 잠긴 왕이 대답하였습니다.
  "전하, 왕비님을 바다에 던져야 합니다. 파도는 높고 바람이 심한데, 배에 
시신을 두면 폭풍이 그치지 않습니다."
  선원이 말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그것이 근거 없고 약한 마음에서 나온 
미신인줄 알고 있었으나, 꾹 참고 그들의 말을 따르며 말했습니다.   
  "생각대로 하시오. 그러자면 가엾은 왕비를 바다에 던져야만 되겠군."
  이 불행한 왕은 이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보러 갔습니다. 그는 
타이사를 돌아보면서    "여보 정말 무서운 해산을 치렀구려. 빛도 없고 불도 
없이, 불친절한 자연은 그대를 아주 잊어버렸고 나는 당신을 무덤에 고이 
장사지낼 시간도 없소. 겨우 관에만 넣어 바다에 던져야만 되겠으니 
조개껍데기들 사이에 누운 당신의 몸을, 묘석대신 출렁이는 물결이 덮어 주겠지. 
오 리코리다. 네스터에게 향료와 잉크, 종이, 내 상자와 보석을 가져오라고 해. 
그리고 니칸도에게 윤을 낸 관을 가져오게 해. 아기는 베개 위에 눕히고 이별의 
기도를 올려야겠으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선원들은 페리클레스에게 커다란 상자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그 속에 왕비를 
넣고 (공단 수의로 싸서) 향기로운 향료를 뿌려 훌륭한 보석들과 함께, 이 
사람이 누구라는 것과 누구라도 아내의 시신이 든 상자를 발견하게 되면 장사를 
지내달라고 부탁하는 글을 쓴 종이를 넣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손수 관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폭풍이 그치자 페리클레스는 선원들에게 타서스로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아기가 타이어에 닿을 때까지 견딜 수 없을 거요. 
타서스에서 잘 보살펴지도록 남겨 두어야겠소."라고 말하였습니다.
  타이사를 바다에 던진 그 폭풍의 밤이 지나고 아직 이른 아침에, 에페서스의 
훌륭한 신사이며 솜씨 좋은 의사인 세리몬이 바닷가에 서 있는데 하인들이 
상자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물결에 떠밀려 해안에 올라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중 한사람이 말했습니다.
  "이것을 해변에 밀어 올릴 만한 그렇게 큰 물결을 본 일이 없습니다."
세리몬은 그것을 자기 집으로 운반하도록 했습니다. 뚜껑을 열어 보니 놀랍게도, 
젊고 아름다운 부인이 누워 있었습니다. 좋은 향료와 값진 보석 상자까지 넣어 
이렇듯 화려하게 장사된 것을 보아 지체가 높은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다 
찾아보니 종이가 나왔는데, 그것을 보고는 자기 앞에 누워 있는 시체가 
왕비이며, 타이어의 왕 페리클레스의 아내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아내를 잃은 남편을 동정하며 
"페리클레스, 만일 당신이 살아 있다면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지고 
말았겠군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타이사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싱싱한 모습이 전혀 죽은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타이사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너무나 성급하게 당신을 바위에 던졌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불을 피우게 하고 적당한 강심제를 가져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타이사가 깨어났을 때 놀란 정신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게 부드러운 
음악을 연주하게 했습니다.
  그는 그 이상한 광경을 보고 둘러서 있는 사람들에게 "좀 물러나 주시오. 이 
사람에게 공기를 충분히 주어야 합니다. 이 왕비는 살아날 것입니다. 의식을 
잃은 지 다섯 시간동안 지나지 않았어요. 보시오,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살았어요. 눈까풀이 움직이는 걸 봐요. 이 아름다운 사람이 살아나서 자기 
운명을 이야기하여 우리를 울릴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타이사는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기를 낳고 기절해 버렸는데, 그것을 보고 모두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친절한 신사의 도움으로 다시 빛과 생명의 
세계로 깨어난 것입니다. 타이사는 눈을 뜨고 말했습니다.
  "여기가 어딥니까? 제 남편은 어디 계시나요? 여기는 어느 세상입니까?"
조금씩 천천히 세리몬은 타이사에게 그 동안 일어난 일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충분히 정신이 들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그는 그녀의 남편이 쓴 글과 보석들을 
타이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타이사는 종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제 주인의 글씨입니다. 바다에서 배를 타고 있었던 것은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아기를 낳았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이제 다시는 주인을 볼 수 
없을 테니 저는 수녀복을 입을 것이며, 더 이상 기쁨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부인, 말씀하신 데로 하고 싶으시다면 다이아나 수도원이 이곳에서 멀지 
않으니, 그곳에서 수녀로 지내실 수 있습니다. 또 괜찮으시다면 제 질녀가 
그곳에서 시중을 들어 드릴 것입니다."
  세리몬의 이 말에 타이사는 감사하며, 그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타이사가 
완전히 회복되자 세리몬은 그녀를 다이아나 수도원에 들어가게 하였으며, 
타이사는 그곳에서 다이아나 여신을 섬기는 수녀가 되어 남편을 잃어버린 슬픔 
속에서, 또 그 시절의 가장 경건한 수련생활속에서 나날을 지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어린 딸을 (바다에서 태어났으므로 마리나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데리고 타서스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영주인 클리언과 디오니시아 
부부에게 아기를 맡길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자기가 도와 
주었으므로, 이 어미 없는 어린 것을 친절히 돌봐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클리언은 페리클레스를 만나 그 불행한 이야기를 듣고는 "아, 아름다운 왕비님! 
하늘이 허락하셨다면 이곳에 오셔서 저에게도 뵙는 영광을 주셨을 것을!"하고 
말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하늘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타이사가 누워 있을 
바다와 같이 소리를 지르고 미쳐 날뛴다고 해도 결과는 지금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있는 애 아기 마리나를 당신에게 맡겨야만 하겠소. 이 어린 것을 당신에게 
맡기니 훌륭하게 길러 주시기 간청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클리언의 아내 디오니시아를 향하여 "착하신 부인, 저의 아기를 
길러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하였습니다.
디오니시아는 "저에게도 아기가 있으니 저의 아이와 다름없이 소중하게 
키우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클리언도 "전하, 전하의 곡식으로 저의 백성을 먹여주신 그 은혜를 (백성들은 
날마다 전하를 생각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전하의 아기를 보며 생각하겠습니다. 
제가 전하의 아기를 소홀히 한다면, 전하께 구원을 받은 백성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견책을 받아야 할 일이 생긴다면 
신들이 저와 저의 자손대대로 천벌을 내릴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약속을 
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아기가 보살핌을 잘 받으리라는 약속을 듣고 나서 
클리언과 디오니시아에게 마리나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리코리다도 함께 남겨 
두었습니다. 그가 떠나가자 마리나는 아무 곳도 모르고 있었지만, 리코리다는 
섬기던 주인과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 울었습니다.
  "눈물을 흘리지 마라, 리코리다. 너의 어린 여주인을 보살펴 주어라. 앞으로는 
마리나를 섬기며 의지해야 할 테니." 페리클레스가 말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안전하게 타이어에 도착하여 다시금 왕위를 찾아 안정을 
되찾았으나, 죽은 줄 알고 있는 왕비는 에페서스에 남아 있었습니다. 타이사가 
한 번 본 일도 없는 아기 마리나는 클리언에게서 높은 신분에 알맞게 잘 
자랐습니다. 클리언이 아주 세심하게 교육을 시켜 마리나가 열 네 살이 되자 
박식하다는 사람도 마리나보다 더 유식하지는 않았습니다. 천사처럼 노래를 
부르고, 여신처럼 춤을 추었으며, 바느질 솜씨도 뛰어나서 새나 열매나 꽃이나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 내는 것 같았습니다. 마리나가 비단으로 수를 
놓은 장미꽃이 진짜 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리나가 교육을 
받아 이런 훌륭한 재주를 지니게 되어 사람들이 모두 놀라자, 클리언의 아내 
디오니시아는 질투심 때문에 마리나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따리 
총명하지 못하여 마리나의 재주에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이도 같고 
마리나와 똑같이 교육을 박았건만 그만한 성과가 없어 모든 칭찬이 
마리나에게만 돌아가고 자기 딸은 무시되는 것을 보고, 그녀는 마리나를 아주 
없애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마리나가 보이지 않으면 자기의 시원찮은 딸이 더 
칭찬을 들을 것이라는 헛된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일을 성사시키려고 
디오니시아는 사람을 시켜 마리나를 죽이도록 하였습니다. 충실한 유모 
리코리다의 죽음에 때를 맞추어 이 흉계를 꾸민 것입니다. 디오니시아가 
마리나를 죽이는 일을 시킬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어린 마리나는 
리코리다가 죽은 것을 슬퍼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리오닌이라는 사람은 몹시 
나쁜 사람이었지만 선뜻 마리나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마리나는 
그처럼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마리나는 훌륭한 아가씨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신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낫지."라고 무자비한 디오니시아가 
말했습니다. "유모 리코리다가 죽어 울면서 오는군. 내 말을 따를 결심이 섰나?"
  리오닌은 디오니시아의 명령을 거스르기가 겁이 나서 "결심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짧은 말 한마디로 마리나는 때 아닌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리나는 착한 리코리다의 무덤에 날마다 뿌려 주겠다고 한 꽃바구니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여름날이 계속되는 동안 리코리다의 무덤에 보랏빛 제비꽃과 
금잔화가 양탄자처럼 덮여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아, 슬픈 내 신세! 폭풍 속에서 태어나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 세상은 
계속되는 폭풍처럼 친근한 사람들에게서 나를 몰아내는구나."하고 마리나가 
말했습니다.
마음씨 나쁜 디오니시아는 "웬일이에요, 마리나. 혼자서 울고 있으니? 왜 내 
딸과 같이 있지 않지요? 리코리다가 죽었다고 슬퍼하지 말아요. 내가 유모가 
되어 줄 테니. 소용없는 슬픔 때문에 얼굴이 많이 상했군요. 자, 그 꽃을 나에게 
줘요. 바닷바람이 꽃을 상하게 할거야. 리오닌과 함께 산책을 해요. 공기가 
맑아서 기분이 좇아질 거예요. 리오닌, 마리나의 팔을 붙들고 같이 산책을 
하도록 해."하고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아주머님 하인을 제가 빼앗아야 되나요." 하고 마리나가 
말했습니다. 리오닌은 디오니시아의 시종이었으니까요. "자, 자."하고 이 교활한 
여자는 마리나와 리오닌만 남겨 둘 핑계를 만들려고 말했습니다.
  "나는 아가씨의 아버님이신 페리클레스 전하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아가씨도 
좋아해요. 전하께서 오실 까하고 날마다 기다리고 있는데, 오셔서 슬픔으로 상한 
아가씨의 얼굴을 보시면 우리가 아가씨를 잘 돌보지 않았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말을 했었는데. 가셔요. 산책을 하고 다시 
명랑해지셔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는 그 뛰어난 얼굴을 조심하셔야 
해요."
  이렇게까지 말하자 마리나는 "그럼 가겠어요. 그러나 별로 가고 싶지는 
않군요."하였습니다. 디오니시아는 가면서 리오님에게 "내가 한 말을 
기억해!"라고 말했습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마리나를 죽일 것을 기억하고 
있으라는 뜻이니까요.
마리나는 자기가 태어난 곳인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지금 부는 바람이 서풍인가?"
  "남서풍입니다."라고 리오닌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는 북풍이 불었대." 마리나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폭풍과 
아버지의 슬픔,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가슴에 가득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리코리다 말이, 아버님은 겁내지 않으시고 선원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하셨대. 
돛대를 움켜쥐고 밧줄에 손을 쓸리면서 갑판을 쪼개 버릴 듯한 바다와 
싸우셨대."라고 말했습니다.
  "언제 말입니까?" 리오닌이 물었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 말이야. 바다와 물결이 그보다 더 거센 적은 없었대."
  마리나는 계속하여 폭풍과 선원들의 행동, 수부장의 호각 소리 그리고 선장의 
고함소리로 배위의 소동이 굉장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리코리다가 
마리나가 태어날 때의 얘기를 자주 해주었기 때문에, 그 일들이 마리나의 생각 
속에 늘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때 리오린은 말을 멈추게 
하고, 기도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마리나는 왠지 겁이 나서 물었습니다.
  "잠시 기도를 드리기겠다면 허락해 드리겠어요. 그러나 오래 끌지는 말아요. 
하느님은 금방 알아들으시니 까요. 나는 빨리 해치우겠다고 맹세를 했어요." 
리로닌이 말했습니다.
  "나를 죽일 셈이야? 아니, 왜?"
  마리나가 물었습니다.
  "주인마님이 시키시니까요."
  "왜 아주머니가 나를 죽이라고 하시지? 한 번도 나쁘게 해드린 일이 없는데. 
나쁘게 말한 일도 없고 살아있는 생물에게 해를 끼친 일도 없어. 내 말을 믿어 
줘. 나는 쥐 한 마리도 죽인 일이 없고, 파리도 잡아보지 않았어. 한 번 모르고 
벌레를 밟은 일이 있지만, 가엾어서 울었어. 내가 뭘 잘못했지?" 살인자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 할 뿐, 설명은 제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막 죽이려고 하는데 어떤 해적들이 바로 그곳에 배를 대고 상륙하여 
마리나를 잡아 배로 데려가 버렸습니다.
  마리나를 잡아간 해적들은 미틸린으로 가서 그녀를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곳에서 마리나는 천한 노예 신세인데도 아름다운 용모와 훌륭한 미덕으로 온 
도시에 유명하게 되었으며, 마리나의 주인은 마리나가 벌어 주는 돈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마리나는 노래와 춤, 자수 등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에게서 받은 돈을 
모두 주인에게 준 것입니다. 마리나가 학식이 깊고 부지런하다는 소문은 
미틸린의 영주이며 젊은 귀족 청년인 리시마커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리시마커스는 온 도시가 그렇게나 칭찬을 하는 이 뛰어난 아가씨를 보려고 몸소 
마리나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마리나와 이야기를 해보고 
리시마커스는 몹시 기뻤습니다. 이 청년에 대한 칭찬을 많이  듣기는 하였지만, 
이렇게나 똑똑하고 덕이 있고도 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는 
마리나에게 부지런하고 착한 생활을 계속하라고 말하고, 자기에게서 다시 
소식이 있으면 그것은 마리나에게 좋은 일일 것이라고 말하며 떠나갔습니다. 
리시마커스는, 마리나가 외모가 아름답고 훌륭할 뿐만 아니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지혜롭고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녀와 
결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비천한 신분이지만 태생은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 관하여 물어 보기만 하면, 마리나는 
가만히 앉아서 울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타서스에서는, 디오니시아의 노여움이 두려워 리오닌은 자기가 마리나를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그 악독한 여자는 마리나가 죽었다고 발표하고 거짓 
장례식을 지내고 굉장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페리클레스는 충실한 신하 헬리케이너스를 데리고 타이어에서 타서스로 여행을 
하였습니다. 딸을 만나보고 집으로 데려가려는 것이었습니다. 갓난아기일 때 
클리언과 그 아내에게 맡긴 이후로 한번도 딸을 만난 적이 없는 이 훌륭한 왕은 
죽은 왕비의 소생인 사랑스런 딸을 만날 생각에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그러나 
마리나가 죽었다고 말하며 마리나를 위하여 세웠다는 기념비를 보여 주었을 때 
이 가련한 아버지의 슬픔은 너무나 컸습니다. 그의 마지막 희망이며 사랑하는 
타이사의 단 하나의 추억이던 딸이 묻힌 땅을 보고 견딜 수가 없어서 그는 배를 
타고 급히 타서스를 떠났습니다. 그가 배를 탄 날부터 무서운 우울증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위에 있는 어떤 것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타서스에서 타이어로 가는 도중에 배는 마리나가 살고 있는 미틸린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영주 리시마커스는 해변에서 이 배를 보고 누가 
타고 있는지 알고 싶어 거룻배를 타고 그 옆으로 갔습니다. 헬리케이너스는 
정중하게 그를 맞이하여 그 배는 타이어에서 왔는데 지금 그들의 왕 
페리클레스를 모시고 그곳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지난 석달동안 아무와도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음식도 들지 않으시고 
슬퍼만 하십니다. 슬퍼하시는 까닭을 모두 말씀드리기는 장황하지만 사랑하시는 
따님과 왕비님을 잃으신 때문입니다.”라고 헬리케이너스가 말했습니다. 
리시마커스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왕을 뵙겠다고 하였습니다. 페리클레스를 
보자 곧 한때는 훌륭한 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페리클레스에게 “전하, 반갑습니다. 신들이 전하를 지켜주시기를! 
인사드립니다, 전하!”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페리클레스는 대답도 하지 않고 
낯선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리시마커스는 훌륭한 처녀 마리나를 생각하고, 그 처녀라면 다정한 말로 이 
왕이 말을 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헬리케이너스의 
허락을 받고 그는 마리나를 부르러 보냈습니다. 마리나가 자기 아버지가 슬픔에 
잠겨 꼼짝 않고 앉아 있는 배에 오르자 사람들은 마치 자기네 공주인 줄 알고 
있는 것처럼 환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아가씨다.”라고 외쳤습니다.
  리시마커스는 그들이 칭찬하는 소릴 듣고 좋아하며 “저 아가씨가 태생이 
훌륭하다는 것만 확실히 알 수만 있다면 그보다 나은 신붓감은 없다고 신붓감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되면 저는 드물게 훌륭한 아내를 맞게 
되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아름다운 마리나'라고 부르며 
신분이 천한 처녀가 아니라 지체 높은 아가씨에게 하듯 공손하게 이 배에 타고 
있는 위대한 왕이 슬픔 때문에 말을 잃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마리나에게 건강과 행복을 주는 능력이라도 있다는 듯이, 그 분의 우울증을 
고쳐달라고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주님, 저와 하녀만 남겨두고 모두 자리를 피해 주시겠다면 회복이 
되시도록 힘껏 애써 보겠습니다.” 마리나가 말했습니다.
  미틸린에서 마리나는 왕의 자손이 지금은 노예의 신세라고 말하는 것이 
창피하여 자기의 신분을 조심스레 감추고 있었는데, 페리클레스에게는 자기가 
어떻게 높은 지위에서 이렇게 떨어졌는지 그 기구한 운명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자기의 아버지인줄 알고 있다는 
듯이 마리나는 자기의 슬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불행한 
사람에게는 자기들의 불행과 비슷한 다른 불행의 이야기가 가장 관심을 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리나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우울증으로 나른해진 
왕의 귀를 울렸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멍하니 한곳만 바라보고 있던 눈을 
들었습니다. 죽은 어머니와 꼭 닮은 마리나가 놀란 그의 눈에 왕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말이 없던 페리클레스가 이제 입을 열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이 처녀와 같은 모습이었다. 내 딸도 이런 모습이었을 
테지. 반듯한 이마며 꼿꼿한 자태, 은방울 같은 목소리며 보석과도 같은 눈, 
한치도 틀림없이 아내를 닮았구나. 너는 어디서 사느냐? 부모는 누구지? 네가 
겪은 온갖 고생을 털어놓고 이야기한다면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 못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이 그러하리라고 생각되어 말씀드린 
것입니다.” 마리나가 대답하였습니다.
 “너의 이야기를 해 보아라. 네가 내가 겪은 것의 천분의 일이라도 겪었다면 
너는 사내처럼 슬픔을 잘 견디었고, 나는 계집아이처럼 슬퍼한 것이다. 그런데 
너는 왕들의 무덤을 바라보며 어떤 재난이라도 미소를 짓는 인내의 여신처럼 
보이는구나. 이름은 무엇이지? 너의 이야기를 해다오. 자, 내 옆에 앉아서.” 
페리클레스가 말했습니다. 이름이 마리나라고 하였을 때 페리클레스는 얼마나 
놀랐는지요! 그것은 흔한 이름이 아니고, 바다에서 태어났다는 뜻으로 그가 자기 
아이에게 지어준 이름이었으니까요.
 “아, 나를 놀리는구나. 어느 심술궂은 신이 나를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너를 여기에 보냈구나. 페리클레스가 말했습니다.
 “참으십시오, 전하. 그러지 않으시면 이야기를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참을 테니 너는 마리나라는 이름이 나를 얼마나 놀라게 하는지 
모른다.”
 “그 이름은 권세 있으시던 왕인 저의 아버님께서 지어 주신 것입니다.” 
마리나가 말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뭐라고, 왕의 딸이라고! 그런데 이름이 
마리나란 말이지! 너는 살아 있는 사람이냐? 요정은 아니겠지? 계속해라. 
어디에서 태어났지? 왜 마리나란 이름을 붙였지?”라고 물었습니다.
  마리나가 대답했습니다. “제가 바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마리나라고 
하였답니다. 저의 어머니도 왕의 따님이었는데 제가 태어날 때 돌아가셨습니다. 
착한 유모 리코리다가 자주 울면서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저의 아버지인 
왕께서는 저를 타서스에 남겨두셨는데 잔인한 클리언의 아내가 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해적들이 와서 저를 납치해 이곳 미틸린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전하, 왜 우십니까? 제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생각되시지요? 그러나 사실 
저는 페리클레스 왕의 딸입니다. 페리클레스왕께서 살아 계시다면---”
  그러자 페리클레스는 자신의 갑작스런 기쁨에 겁이 나는 듯이, 또 이것이 
사실인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큰 소리로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왕의 
목소리를 듣고 기뻐하였습니다. 페리클레스는 헬리케이너스에게 “오, 
헬리케이너스, 나를 한 대 치시오. 나에게 좀 상처를 입혀서 당장 고통을 느끼게 
해주오. 나에게 달려드는 이 기쁨의 물결이 나를 생명의 해안 너머로 떠밀어 
버릴 것만 같구려. 자, 이리 오너라. 바다에서 나서 타서스에 묻혔다가 바다에서 
다시 찾은 내 딸아. 오, 헬리케이너스, 무릎을 꿇고 신들께 감사를 드리시오! 
여기 마리나가 있소. 자, 너에게 축복을 빈다, 내 딸아. 헬리케이너스, 내 새 
옷을 주시오! 짐승같은 디오니시아에게 죽을뻔 하였지만 죽지는 않았소. 무릎을 
꿇고 공주님이라고 부르면 다 얘기해 줄거요. 이 사람은 누구요?”(처음으로 
리시마커스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분은 미틸린의 영주이신데 전하께서 우울증에 걸리셨다는 말을 듣고 뵈러 
오셨습니다.” 헬리케이너스가 말했습니다.
 “환영하오.”라고 페리클레스가 말했습니다.
 “내 예복을 가져오너라. 아, 하늘이여, 내 딸에게 축복을 내려 주소서! 그런데 
이게 무슨 음악이냐?”
  어느 친절한 신이 음악을 보낸 것인지, 기쁨에 넘쳐서 그렇게 착각을 한 
것인지 나직한 음악 소리가 들리는 모양이었습니다.
 “전하, 저는 들리지 않습니다.” 헬리케이너스가 말했습니다.
 “들리지 않는다고? 아니, 이건 천체의 음악이다.”
  사실 음악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므로 리시마커스는 갑작스런 기쁨이 왕의 
머리를 어지럽힌 거라고 생각하고 “전하를 거스르는것은좋지 않습니다. 
말씀대로라고 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도 음악이 들린다고 
했습니다. 페리클레스가 나른한 졸음이 덮쳐 온다고 하자 리시마커스는 침상에 
누우시라고 하며 머리 밑에 베개를 받쳐 주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너무나 
엄청난 기쁨에 지쳐서 깊은 잠에 빠지고 마리나는 침상 옆에서 잠든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잠이 든 동안 페리클레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그가 에페서스에 가기로 
결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꿈속에서 에페서스 사람들이 섬기는 다이아나 여신이 나타나 그에게 
에페서스의 자기 신전으로 가 제단 앞에서 그의 생애와 그가 겪은 불행을 
이야기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신은 은빛 활에 걸고 말하는 것이니 이 
지시를 따르면 큰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는 잠이 
깨더니 신기할 정도로 상쾌해져서 꿈 이야기를 하고 여신의 지시에 따를 
결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리시마커스는 페리클레스에게 육지에 오르시어 미틸린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즐거움을 맛보시라고 청하였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이 정중한 초대를 
받아들여 하루 이틀 지체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동안 리시마커스가 사랑하는 
마리나의 아버지인 왕을 대접하려고 어떤 잔치를 베풀고, 얼마나 값비싼 
연극이며 구경거리를 마련했는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마리나의 신분이 미천할 때도 그녀를 높이 생각했었습니다. 페리클레스도 
리시마커스가 마리나를 도와주었다는 것을 알고 그의 구혼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마리나도 리시마커스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페리클레스는 결혼을 하기 전에 함께 에페서스의 다이아나 신전을 찾아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곧 다이아나 신전을 향해 여행을 떠나 여신의 가호로 두어 주일 후에 
안전하게 에페서스에 도착하였습니다.
  페리클레스가 데리고 온 사람들을 거느리고 여신의 신전에 들어갔을 때 제단 
옆에는 타이사를 살려 주었던 세리몬이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렀는데)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수녀가 된 타이사가 제단 위에 서 있었습니다. 슬픔 
속에서 보낸 긴 세월이 페리클레스의 모습을 많이 변하게 하였지만 타이사는 
남편의 모습을 알아본 것 같았고 그가 제단에 다가와서 말을 하기 시작하자 
남편의 말을 기억하고 놀라움과 기쁨에 차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페리클레스가 
제단 앞에서 한 말은 이러했습니다.
 “다이아나의 여신이여! 여신의 명령에 따라 여기 타이어의 왕이 왔습니다. 
저는 두려움 때문에 나라를 떠났다가 펜타폴리스에서 아름다운 타이사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내는 바다에서 아기를 낳다가 죽었으나 마리나라는 딸아이를 
남겼습니다. 딸은 타서스에서 디오니시아의 손에 자랐는데 열네살이 되자 
디오니시아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가호로 미틸린에 가서 그 
해안을 지나가던 저의 배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 아이가 저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타이사는 그의 말이 불러일으킨 미칠 듯한 기쁨을 견디지 못하여 “당신은, 
당신은, 오 페리클레스 왕이시군요.”라고 외치고나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이 여인이 웬일인가? 죽어간다! 여보시오, 좀 
도와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세라몬이 “전하, 다이아나의 제단에서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면 이 사람은 
전하의 아내이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바로 이 손으로 아내를 바다에 
던졌는데요.”라고 페리클레스가 말하자, 세리몬은 어느 폭풍이 불던 새벽에 이 
부인이 에페서스 해안에 밀려왔으며 관을 열어 보니 훌륭한 보석들과 종이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다행이 그 여자를 소생시켜서 이곳 다이아나 
신전에 있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때야 타이사가 기절했다 깨어나 말했습니다.
 “오, 당신은 페리클레스가 아니십니까? 말씀도 모습도 닮으셨습니다. 폭풍이며 
해산이며 죽음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페리클레스가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죽은 타이사의 목소리다!”“제가 바로 그 타이사입니다. 죽어서 바다에 
던져진 타이사입니다.” 타이사가 대답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경건해지고 놀라움에 가득차서 “오, 참되신 다이아나 
여신이여!” 하고 외쳤습니다.
  타이사가 “이제 당신을 분명히 알아보겠습니다. 끼고 계신 그 반지는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펜타폴리스를 떠날 때 아버님께서 당신께 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신들이시여, 그만하면 되었습니다! 지금 베풀어주신 은혜가 
지나간 모든 불행을 장난이었던 것처럼 생각되게 합니다. 타이사, 이리 다가와 
이번에는 이 가슴에 묻히도록 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마리나는 “저의 가슴도 어머님께 안기고 싶어 뛰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운 내 딸아!”하며 타이사가 기쁨에 넘쳐 마리나를 안고 있는 동안 
페리클레스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순결하신 다이아나, 당시의 예지에 
축복이 있으시기를! 이 일에 감사하여 밤마다 당신께 예물을 
올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장 그곳에서 타이사의 동의를 얻어 
엄숙하게 딸 마리나를 리시마커스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페리클레스와 왕비와 딸로부터 미덕이 재난을 만났다가 
끝내 그것을 이겨내고 온갖 어려움 끝에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하늘은 인간에게 고통을 통하여 인내와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헬리케이너스에게서 우리는 진실과 신념과 충성의 표본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를 수도 있었지만, 옳지 못하게 권세를 잡기보다는 
올바른 주인에게 왕위를 찾아 주었습니다. 타이사를 소생 시켜준 훌륭한 
세라몬을 보고 우리는 지식을 가지고 인간에게 이익을 베푸는 착한 마음씨가 
신들의 행동과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이야기는 클리언의 
악독한 아내 디오니시아가 그 처신에 어울리는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뿐입니다. 
디오니시아가 마리나에게 한 잔인한 행동을 알게된 타서스의 시민들은 
자기들에게 은혜를 베푼 분의 딸을 위한 앙갚음으로 들고일어나 클리언의 집에 
불을 질러 클리언과 아내 그리고 온 가족이 타 죽었습니다. 간악한 살인이란 
다만 계획된 것이었을 뿐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지않았다해도 거기에 맞는 
벌을 받아야 되는 법이니, 신들도 이 일을 기뻐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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