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펜들턴의 킬러 제1권 마피아전
돈 펜들턴
1.프롤로그
맥 보란은 그의 전우들이나 상관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천부적인 살인자는 아니었다. 또한
그의 저격팀 동료들의 노골적인 비평처럼 기계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살인 로봇도, 어느
좌익계 기자의 주장처럼 냉혈한이거나 파괴주의자도 물론 아니었다. 맥 보란은 자신의 의지
력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사나이에 불과했다. 지원자 중에서 저격수를 뽑는 군대의 심리 담
당관이 말했던 것처럼 그는 저격수의 모든 요건을 갖춘 사람일 뿐이었다. "훌륭한 저격수란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력으로 적을 죽일 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 저격이란 단순
한 사격 경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의지력이 필요한 것이다. 망원 렌즈에 죽여야
할 상대의 얼굴이 비칠 때, 그절망적인 얼굴을 보았을 때 대부분의 훌륭한 군인들도 한 번
쯤은 그러한 임무를 수행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사람을 죽였다
는 생각이 그들의 양심을 뒤흔든다. 여기에서 군인과 저격수의 차이점은 분명해 진다. 저격
수의 살인은 양심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리들의 계획을 위해 미친 개들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계획을 위해 미친 개들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
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살인과 임무를 엄격히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임무에 따른 살인은
단순한 살인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잇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위험에 처했
을 때 냉정하게 임할 수 있어야 이상적인 저격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맥 보란 중사는
바로 그런 유형의 군인이었다. 모든 종류의 무기와 탄약의 사용이 능숙한 병기계 출신이며
특등 사수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껏 얼마나 많은 적들을 죽였는지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공식 기록에 올라 있는 숫자만 해도 월맹 정규군 고급 장교 32면, 베트콩 게릴라 지
도자 46명, 게릴라와 내통하고 있었던 월남의 고위 관리 17명으로 돼 있었다. 그 중에는 물
론 악명 높은 월맹군의 코안 장군도 포함된다. 보란 중사의 조수로 근무하고 있던 T.L. 미
네거스 하사는 그와의 마지막 작전에 출동했던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팀은 새벽 4시 35분 B지점에 도착했다. 정찰병 토머스와 얀세이가 정찰 후 4시 50분
에 돌아와 이상없음을 보고했다. 5시 화기 배치가 완료됐고, 6시 30분 적들의 움직임을 포착
했다. 6시 42분 베트콩 정찰대가 도착하여 마을을 점검했다. 6시 50분 트라 후옹과 호위병
들이 촌장집 입구에 나타나 자 촌장과 다른 한 사내가 환영을 나왔다. 그때 맥 보란 중사가
목표를 확이하고 즉시 사격에 들어갔다. 제1탄은 트라 후옹 대령의 목을 관통했고, 제2탄은
촌장의 우측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이어 제3탄은 호위병의 등을 관통시겼다. 그것으로 상황
은 간단히 끝났다. 6시 52분 철수하기 시작했고, 9시 40분 에이블 저격팀은 전원 사고 없이
베이스 캠프로 돌아왔다.
베트남은 미군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터였다.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은 잔인한 특기
들을 익혀야 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맥 보란만큼 철저히 숙달된 병사는 없었다. 보란은 30
세의 유능한 직업 군인으로 12년간의 군복무 기간 중 두 번이나 월남 근무를 했고, 그 때문
에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한 처지였다. 그의 어머니 엘자는, 47세의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폴란드계 미국인 2세로,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반드시 보란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은 위문품을 보내는 자상한 어머니였다. 그녀의 편지에는 언제나 따뜻한 애정이
깃들여 있었으며 그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편지에는 가끔 열일곱 살
의 귀여운 누이동생 신디와 열네 살의 조니, 아버지 샘 보란의 사진을 동봉하기도 했다. 그
의 아버지는 열여섯 살 때부터 강철 공장에서 일해온 직공이었다 보란은 언제나 그의 아버
지를 강철과 같이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여겨 왔었다. 한번은 어머니의 편지 속에 이런 것
이 적혀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동양 여성은 퍽 진실하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지 네
아빠가 퍽 궁금해 하신단다. 하!"라고. 그때 맥 보란은 답장하기를 아빠에게 동양 여성들은
정말 진실하다고 말해 주세요. 그리고 저는 그 중에서도 가장 진실된 여성을 찾고 있는 중
이라고……. 아하!" 신디 보란은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그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애띤 처녀였다. 신디는 맥을 무척 따랐으며 그를 가장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을 일주일에 한 번씩 오빠에게 보내곤 했다. 편지 속에서 그녀
는 가끔 혼자만의 불안과 괴로움을 토로해 오기도 했다. "오빠. 메리앤이 마리화나 파티에
함께 가자고 자꾸만 졸라대요. 오빠도 마리화나를 피원본 적이 있나요? 그곳에서는 모두 그
것을 피운다고 하던데요. 하지만 나는 무척 망설여져서 언제나 거절하고 있지만 거절하기도
정말 힘들어요." 또 언젠가는 이런 글이 보내져 왔다. "항상 고민하고 있는 문젠데 한계란
무엇인가요? 그티브와 함께 있을 땐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추크는 언제나 나를 고민하게 만
들어요. 내 말은요, 그의 손버릇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이미 넌 알고 있지? 그렇다면
그건 제 자신의 문제란다." 신디의 답장에는, "그런데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고
말았어요. 이제 추크와는 끝났으니까요!" 어느 늦은 봄날 그의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에 이
런 내용이 씌어 있었다. "이젠 어려운 고비를 넘겼으니 너에게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1월에 너의 아빠가 갑자기 심장 발작을 일으켜 쓰러졌는데 의사는 일을 쉬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어. 우리는 생활비를 줄이고 공장에서 나오는 휴직 수당으로 간신히
살아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네 아빠가 다시 직장에 나가게 됐으니 걱정은 없단다. 빚
이 얼마간 남아 있지만 곧 갚게 되겠지. 신디는 대학 진하보다는 취업을 하려는 새각인 것
같다. 네 아빠는 그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고. 교육을 더 시키고 싶으신 게지. 또
네 아빠는 너를 대학에 진학시키지 못한 것을 무척 미안하게 여기고 계셔. 하지만 이젠 모
든 것이 잘 돼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돈을 보내지는 말아라. 네가 만약 돈을
네 아빠는 또 심장 발작을 일으킬지도 모르잖니?" 그리고 몇 달 후인 8월 12일. 보란 중사
는 종군 목사 사무실로 불려갔다. 그 자리에서 그는 가족들의 비극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공식적인 통보에 의하면 남동생 조니는 중태이긴 해도 목숨을 구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신디는 모두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맥 보란은 특별 휴가를 얻어 가족의 장례식과
고아가 된 동생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엄청난 비극이었
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강력계 형사로부터 가족들의 죽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을
때 그의 가슴은 더욱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 순간 분명 제정신이 아니
었을 것이다. 이렇다 할 분명한 동기도 없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총을 쏘고 마지막으로 자신
의 심장에 총을 쏘았다고 했다. 남동생 조니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보란은 이틀을 더 기다
려야 했다. 그리고 조니의 입을 통해 이 비극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조니가 병상에
누운 채 경찰이 속기사에게 진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빠는 병으로 한동안 직장에
나갈 수가 없었어요. 아빠는 1년 전에 빌린 돈 때문에 늘 걱정이셨지요. 얼마 후 건강이 좋
아져서 직장엘 다시 나갔지만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부서로 옮겨야 했고 그 때문에 급료
는 종전보다 적었어요. 그래서 빚을 더 얻게 됐고 돈을 빌려준 사람이 못살게 굴기 시작했
답니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흡혈귀라고 흥분해 떠
드시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느 날 밤은 아빠가 팔을 다쳐 돌아오셨어요. 빚쟁이들에게 당했
다는 거였어요. 어머니가 경찰에 전화를 걸려 하자 아빠가 말리셨어요. 어머닌 그 일을 신디
에게 말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주일 전부터 갑자기 그들의 횡포가 멎었답니다. 그리
고 나서 사고가 일어난 것이었어요. 아빠가 갑자기 무척 화를 내시며 고함을 지르기 시자했
어요. 누나와 어머니는 아빠를 진정시키려 애썼죠. 그 다음에 기억 나는 것은 아빠가 오래된
권총을 꺼내 왔다는 거예요. 아빠는 우리에게 총을 쏘았어요. 그리고 건넌방으로 가셨고 또
한 방의 총소리가 들렸을 때 저는 정신을 잃었어요." 이것이 조니의 진술 내용 전부였고 그
래서 경찰은. 이 사건을 가족을 동반한 자살 사건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맥 보란 중사에게는
단순한 자살 사건으로 처리될 수 없는 일이었다. 형과 단둘이 있게 된 조니는 아버지를 괴
롭혔던 악당들과 신디가 관계했던 내용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누나가 그 사람들을 찾아갔
었어요. 아빠가 심장이 약하니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거죠. 우린 누나가 그들과 어
떤 내용으로 결말을 지었는지 전혀 몰랐어요. 처음에는 누나가 받고 있던 35달러의 주급으
로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가는 것 같았어요. 그 돈은 누나의 대학 진학을 위해 저축하기로 돼
있었던 거였어요. 그러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가 무슨 일을 하기 시작했는지 알게
됐어요. 어느 날 밤 나는 누나를 미행해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했어요. 누나가 무슨 문제
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서 미행했던 거였어요. 나는 모텔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리
고 얼마 후 그 남자가 나갔을 때 누나에게로 뛰어 들어갔어요. 누나는 벌거벗은 채 침대에
엎드려 울고 있다 나를 보자 절망적인 눈빛이 되었어요. 빨리 돈을 갚지 않으면 또 아빠를
괴롭힐 거라고 놈들이 말했대요. 한 달 안에 나머지 돈을 모두 갚아야 한다구요. 그리고 돈
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누나에게 가르쳐줬대요. 그 악당들이 누나에게 레오라는 사람을 보냈
고 그 사람이 누나를 설득했던 거였어요. 내가 그 현장을 목격했을 땐 누나가 그 사람을 세
번이나 만났을 때였어요. 나는 누나에게 그런 짓은 그만두라고 애원했어요. 아버지가 용서하
지 않을 거라구요. 그러나 누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을 하든 빚은 갚아야 할 것 아니겠
냐고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실수를 했어요.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말해 버렸거든요.
아빠는 그 이야기를 듣자 막무가내로 나를 두들겨 팼어요. 그리고 고함을 지르시며 내 주위
를 돌며 어쩔 줄을 몰라 했어요. 아빠에게 이상한 발작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아빠는 나를 일으키고는 두 빰을 번갈아 때리며"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말해!"라
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때 누나가 뛰어 들어와 말렸어요. 그리고 누나와 아빠의 말다툼이 시
작됐어요. 나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아빠가 "거짓말이지! 거
짓말!"하고 외치는 소리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뛰어들었어요. 어머니
는 침실에서 주무시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뛰어나왔던 거였어요. 그러자 아빠는 멍청히
한쪽에 서 있었고 어머니와 누나가 피투성이가 돼 있는 나를 치료해 주었어요. 아빠는 혼잣
말로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방으로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빌리 숙
부에게서 얻은 낡은 권총을 손에 들고 방에서 나오셨어요. 놀라 소리를 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어요. 내가 최초로 맞았어요. 아빠는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어요. 어머니와 누나가 쓰
러졌어요. 그래도 아빠는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어요. 총알이 떨어지자 아빠는 팔을 늘어뜨
리고 힘없이 나를 쳐다보았어요. 누나는 내 위에 쓰러져 있었어요. 나는 가만히 아빠를 노려
보았어요. 아빠는 우리들이 총에 맞은 것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아빠는 나를 내려다보시면
서 "조니, 입술을 다쳤구나. 미안하다"라고 말하시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아빠는 방으로 돌
아갔어요. 잠시 후 총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누군가 현관문을 막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어
요." 동새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듣고 있던 맥 보란은 동생의 이야기가 끝나자
목쉰 소리로 단 한마디만을 내뱉었을뿐이었다. "죽일놈들!" 8월 16일 일기장의 첫머리에 그
는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었다.
신디는 단지 자신이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을 뿐이고, 비록 복잡한 심경이었겠지만
아빠 역시 그랬다. 이제 나 자신도 어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8월 17일, 보란은 또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누가 나의 적인가를 잘못 알고 싸워
왔던 것 같다. 나의 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파멸로 몰아넣은 적을 두고 8000마
일이나 떨어진 남의 나라에서 무엇을 위해 싸웠단 말인가. 내가 알고 있는 전쟁의 법칙은
미국의 경찰에는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적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
족하다고 말한다. 물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전략상 빈
틈없는 계획과 그것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것뿐이다. 월남 전선에서 우리는 "섬멸"을 구
호로 외쳤다. 모조리 격멸시켜야 한다. 이제 나의 나라 안에서 적들을 향해 선전 포고를 해
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곳은 월남의 전쟁터보다 오히려 나에게는 훨씬 더 절신한 전쟁터
다. 8월 18일, 피츠필드의 사냥용 총을 파는 한 가게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주인의 말
에 따르면 고성능 사냥용 라이플과 고성능 스코프, 몇 장의 표적지와 몇 상자의 탄약이 없
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물건 값에 상당하는 충분한 액수의 현금이 들어 있는 봉투가
경리원의 책상에 놓여 있었다. "단지 점원이 없었을 뿐 한밤중에 판매를 한 셈이죠." 상점
주인이 경찰에게 말했다. "분명히 내게 아무런 손해도 끼치지 않았소. 내 입장에서 볼 때 이
건 범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소." 8월 19일, 피츠필드에서 몇 마일쯤 떨어진 채석장 뒤
쪽의 조용한 곳에서 총소리가 울리는 곳을 채석장의 경비원이 들었다. 경비원은 훨씬 후에
이렇게 진술했다. "나는 그곳까지 내려가 보진 않았어요. 그가 누구를 해치는 것도 아니었으
니까요. 그는 표적지를 100야드쯤의 거리에 두고 사격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고성능
의 라이플 소리였어요. 잠시 동안 지켜봤죠. 다섯 발을 쏘고 다시 조절하여 다섯 발을 쏘곤
했어요. 두어 시간 정도 사격 연습을 하더군요. 나는 그에게로 내려가 볼 필요가 없었어요.
그곳은 사격 연습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아무 것도 해치지 않았
으니까요. 나도 가끔 그곳에서 사격 연습을 하죠." 보란은 8월 19일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444구경은 처음 사용해 보지만 그 성능은 정말 놀랍다. 이 라이플 곰이라도 한 방에 쓰러
뜨릴 만큼 강력하다. 나의 적들에게는 과분할 정도다. 100,110,120야드 거리에서 시험 사격을
하면서 스코프의 눈금을 확인했다. 아주 정확했다. 내일은 현장으로 가서 스코프를 통해 거
리를 확인한다.
8월 21일의 일기는 또 이렇게 적고 있다. 이제 됐다. 최초의 목표물을 확인했고 준비는 끝
났다. 경감으로부터 TIF에 관한 정부를 얻을 수 있었다. TIF란 '트라이앵글 인더스트리얼
파이넌스'의 약자다. 겉으로는 버젓한 금융회사지만, 놈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엄청난
이자를 받아 챙기고 있다. 법은 이들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겠지만 맥 보란은 할 수 있다.
나의 준비는 완벽하고 목표물의 확인도 틀림없다. 주요 목표는 로렌티다. 이 악당이 이 일대
의 책임을 맡은 간부급이다. 매일 저녁 5시 50분에 놈의 승용차가 회사 앞에 나타난다. 운전
사는 미스터 어윈이란 녀석이다. 미스터라고 불리는 녀석들은 무기를 휴대하고 있는 놈들이
다. 세일즈맨같이 생긴 놈이 보로코란 놈이다. 그놈이 회사의 실무를 맡아 보는 것 같다. 대
학생 타입인 피트 로드리게스는 회계를 맡고 있는 지독한 악질이다. 이 다섯 악당들은 6시
쯤에 회사에 서 나와 각 지점을 돌면서 수금을 한다. 그리고 지불이 늦어지는 고객들에게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곤 한다. 그러나 내일밤은 너희들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맥 보란이
네 놈들의 그 허울좋은 금융 회사를 박살 내기 위해 델지 빌딩 4층에 나타날 테니, 어젯밤
삼각 측정으로 거리를 쟀다. 오늘도 다시 확인 했다. 이제 남은 일은 그들을 섬멸하는 일뿐
이다. 마치 나트랑에서 적을 습격하던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놈들이 도망칠 곳은 없
다. 먼저 두 명의 미스터를 없앤다. 그러면 반격당할 가능성은 없어진다. 로렌티를 쏘는 데
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첫 한 발을 쏘고 6초 안에 사방으로 흩어져 가는 나머지 놈들을 잡
으면 된다. 실제로는 더 빨리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총을 맞아본 적이 없는 놈일 테니 놀라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에 황천객이 되고 말겠지!
보란이 가족 장례를 치른 지 8일이 지난 8월 22일 금융회사의 간부 다섯 명이 피츠필드의
회사 앞 노상에서 사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목격자는 신문팔이였다. 그의 증언은 이러했
다. "다섯 명이 금융 회사에서 나왔어요. 그들은 회사 앞에 세워둔 승용차 옆에 멈췄습니다.
한 사람이 차의 반대편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 사람이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그의 눈까지 똑똑히 보였어요. 눈을 크게 뜨고 있
었는데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어요. 총소리를 듣는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총소리
는 굉장히 크게 울렸는데 길 건너편 어딘가에서 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너무나 순간적이라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 또 한 사람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는데,
피가 튀면서 머리가 부서져 버린 것 같았어요. 그 순간 나머지 사람들 중 한 사람은 자동차
속으로 들어가려 했고 나머지 두 명은 건물 쪽으로 피하려 했지만 총알이 더 빨랐어요. 그
저 탕, 탕. 탕이었죠. 모두 다섯 발에 다섯 명이 나뒹굴었어요. 분명 다섯 발이었어요. 모두
즉사했죠. 총알은 한결같이 그들의 목이나 머리에 관통했죠. 무서운 솜씨였어요." 한 사복
경찰은 신문 기자들과의 사담을 통해, "나는 갱들의 살인극에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아요. 그
건 뻔한 일이니까요. 그 금융회사가 마피아 조직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아니오? 저
희들끼리 서로 죽이거나 총격전을 한다 해도 선량한 시민들만 다치지 않는다면 신경 쓸 게
없는 거요. 암흑가의 살인 싸움에 오히여 경찰이 잘못 말려들면 골치만 아프게 될 테니까
그저 모른 척하고 있는 게 수죠." 이로써 맥 보란은 마피아를 향한 전쟁에 뛰어든 것이다.
2.운명의 여신
문의 우윳빛 유리창에는 금박으로 '플래스키 엔터프라이스'라고 새겨져 있었다. 군복을 입
은, 키가 큰 한 사내가 순간 멈칫거리고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그의 뒤에서 조용
히 닫혔다. 가무잡잡한 빛깔의 예쁜 여자가 칸막이 밖에 있는 접수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메모지에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부드러운 살결의 쭉 뻗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엉덩이만 겨우 가린 스커트 아래로 허벅지가 거의 다 드러나 보였다. 그녀는 몸을
비틀 듯 데스크에 기댄 채 얼굴만 들어 생긋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방문자의목소리는
명랑하면서도 위엄 있어 보였다. "아무도 안 계신데요." 그녀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해보이
려는 듯 흘끗 빈 사무실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였다. "기다리시겠어요?" 사나이는 스커트
아래로 뻗어 나온 그녀의 다리를 눈으로 훑으면서 말했다. "맥 보란입니다. 플래스키 씨가 9
시에 만나자고 해서 ." 그는 손목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정각 9시군요."
"아, 그러세요! 플래스키 씨는 아마 안에 계실 것 같군요." 그녀는 보란을 새삼스럽게 쳐다
보면서 수화기를 들고 전화기의 아랫부분 버튼을 눌렀다. "보란 씨가 찾아왔어요." 그녀는
수화기에다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수화기를 그대로 든 채 맥 보란에게, "들어가세요."라
고 말했다. 보란은 그녀를 한 번 더 돌아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우. 플래스키 씨!"라는 그
녀의 교태 어린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칸막이 방 안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은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회전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귀에 수화기를 대고 있었다. 그는 지금
접수 데스크의 여자와 농도 짙은 장난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맥 보란은 가죽 의자에 앉
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플래스키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음담을 끝맺고 다른 이야기를 시작
했다. 이야기의 내용을 보란에게 들려주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보란은 플래스키가 수화기에
다 대고 떠들고는 있지만 실은 자신을 관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플래스키는 몸집이
큰 편이었으나 비만하지는 않았다. 수화기를 쥔 손은 굵었으며 손톱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40전후의 나이에 머리는 금발에 가까운 갈색이었는데 잘 빗겨져 있었다. 혈색 좋은 미남형
이었다. 수화기에서 그녀가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플래스키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바뀌었
다. "남자들이란 하루 일과를 피곤하지 않게 하자면 이런 대화가 필요하답니다. 당신이 보란
씨요?" "맥 보란입니다. 이 마을에 오래 머물 시간이 없으므로 문제를 빨리 끝냈으면 좋겠
습니다." "선생께서 연락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물론 당신도 알고 있을 줄 믿습니다만 우리
는 당신도 알다시피 감사 회사입니다. 트라이앵글 인더스트리얼의 불행한 사건이…" "나는
곧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회사에서 트라이앵글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기에 이렇
게 찾아온 것입니다." "정말 끔찍한 사건이었죠?" 플래스키는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다
섯 명이나, 그것도 유능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해치워 버리다니, 그것도 순식간에…. 아, 당신
아버지의 장부가 보관돼 있습니다." 그는 서류철을 꺼내 뒤적였다. "솔직히 말씀드려 숫자가
상당히 불어나 있군요. 그 동안 계속 지불이 밀렸습니다." 보란은 조그만 노트를 꺼내 플래
스키의 책상 위고 던졌다. "이걸 보닌 그렇지도 않군요. 아버지께서 기입하신 장부입니다.
11개월 전에 400달러를 빌려서 지금까지 550달러를 갚은 것으로 돼 있습니다. 또 여기에 적
혀 있진 않지만 아버지 이외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장부가 틀린
거요." 플래스키는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린 채 보란이 던진 노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금융업은 자선 사업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 장부가 잘못될 수는 없답니다. 모든 장부가
한 해에 두 번씩 감사를 받고 있으니까요." "차용액은 400달러이고 갚은 것은 550달러요. 그
러니까 이자까지 다 갚은 거요." 플래스키는 억지 웃음을 띠면서 대꾸했다. "다시 말하지만
금융회사는 자선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라 돈을 빌려 주는 곳이오. 우리는 당신 아버지께
돈을 빌려 드렸습니다. 90일 안에 갚겠다는 조건이었죠. 그 기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다 갚
았다면 문제는 간단히 끝났을 것입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납입한 것은 이자와 연체료의 일
부일 뿐입니다. 원금은 한푼도 갚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400달러의 이자로 550달러란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연체 이자를 모르시는군요. 다른 은행의 이자보다 우리 회사의 이자가
비싼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 은행에서 망설이는 당신 아버지에게 우리는 위
험 부담을 안고 돈을 융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당신 아버지는 은행에서 돈을 차용
하지 않았죠? 우리는 그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해드렸지 않습니까? 이봐요. 군인 아저씨.
당신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준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높은 이자가 붙어 오
게 마련이잖소? 우리가 당신들에게 강제로 돈을 써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오. 자, 아시겠
소? 그러면 이제 결론을 내립시다. 당신 아버지의 빛을 갚아 주시겠소?" "그 부채는 다 갚
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봐요,
보란 씨. 계약은 당신 아버지가 한 것이니 당신 아버지를 오라 하시오." 플래스키는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것 참 잘 되었는데. 플래스키 씨. 아버지는 열흘 전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이 말에 말문이 막혔는지 플래스키는 서류철을 한동안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우리의 법률부로 넘기겠소. 당신도 잘 알겠지만 재산을 차압할
수도 있을 거요." "재산 같은 건 남아 있지도 않소. 하여튼 부채는 다 갚은 거요. 플래스키
씨. 400달러를 빌렸는데. 550달러를 갚았으니 그것으로 빚은 충분히 갚았단 말이오." 보란이
일어서자 플래스키가 그를 따라 일어서면서 말했다. "당신, 정말 겁없이 떠드는구먼!" 순간
실내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법률이 나를 월남까지 쫓아온다는 것가?"
보란은 빈정대면서 말했다. "월남이라구?" 플래스키가 소리쳤다. "나는 가족을 매장하기 위
해 긴급 휴가를 얻었소. 나는 며칠내로 다시 돌아가야 된단 말이오. 그리고…." 보란은 닷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뭐요?" 분노를 억누르느라고 혁색 좋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플래스
키가 소리쳤다. "나는 그 친그들을 해치우는 것을 봤소." "뭐라고? 그 친구들이라니?" 플래
스키의 눈이 둥그래졌다. "트라이앵글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봤단 말이오." "그래서?" 플
래스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놈 얼굴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갑자기 호화로운 사무
실 안에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플래스키는 손가락의 마디를 꺾어
뚝뚝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침묵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 "경찰에 신고했소?" 잠시 후 플래
스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그런 짓을 해서 귀찮은 일에 말려들 것이라고 생각했소?" 보란
은 그런 바보짓은 생각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음. 내 동료들이 당신의 이야기에 꽤
흥미를 느끼겠는데." 플래스키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난 며칠
내로 월남으로 돌아가야 하오." "빨리 만날 수 있게 해주겠소." "지긋지긋한 정글로 돌아가
기 전에 좀 재미있고 유쾌한 일을 하고 싶소." 키가 큰 사내는 싱긋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하는 건 딱 질색이오." "물론이지, 굉장히 재미있는 일을 즐기게 해주겠소." 플래
스키는 급히 대답하고는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아까 그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거
요?" 보란은 그를 제지하면서 말했다. "무엇 말이오?" "회사와 고객의 딱딱한 관계 말이오.
보란의 빚은 다 해결됐다는 건가요?" "물론이오. 물론 그것은 다 끝난 거요." "그럼 차용 증
서를 돌려 주시겠소?" 플래스키는 서류철을 열어 증서를 꺼내 보란에게 건네 주었다. 그리
고는 급히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보란, 당신은 운명이라는 걸 믿소?" 플래스키는 오늘 아
침 뜻밖의 상황 변화로 기분이 매우 좋아져서 물었다. "물론, 내가 얼마나 운명을 믿고 있는
지 아마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요. 플래스키." 키 큰 사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맥 보란은 미
소 지었다.
3.작전 계획
맥 보란은 자신의 임무에 대해서 결코 착각을 하고 있지는 았다. 그는 신념에 미친 십
자군의 병사도 아니었고. 더구나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도 아니었다. '성급히 덤비지 말라'
는
것이 그의 생활 모토였으며 어떤 동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아마 이것은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단지 그것이 잘못된 형태로 나타
난 것이었을 뿐 이었다. 그의 누이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아버지의 행동처럼 맥 보란에게 있
어서도 자신의 임무는 극히 뚜렷한 것이었다. 그는 거머리와 같은 마수가 아메리카의 목구
멍까지 뻗쳐 있는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어쩌지 못하는 아메리카의 무기력함을 보았다. 그
리고 그는 또 계속 팽창해 가는 흡혈귀들에게 자신이 조금이라도 타격을 줄 수 있는 입장에
있으며 힘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맥 보란과 같은 사나이에게 있어서 그것은
당연한 임무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착각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위
험하고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느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느 말할 것도 없이 법을 위반하여
다서 사람을 죽인 살인범인 것이다. 만약에 체포된다면 그는 법정에서 한치의 동정도 기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경찰은 혈안이 되어 그의 뒤를 쫓고 있을 것이며, 플래스키를 찾아
갔을 때의 상황으로 보아 '조직'도 트라이앵글 사건의 범인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
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가 플래스키 앤터프라이스를 찾아간 것은 어리석은 허세도 아니며,
풋내기의 무분별한 행동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려
는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냉정하고 조심스러운 전투 계획에 따랄 움직였다.
'찾아내 죽여 없애는 것' 이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발견, 확인, 그리고는 섬멸 - 그들이 재
정
비하거나 반격할 여지를 갖기 전에. 지금 그는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그는 트라이앵글
인더스트리얼의 배후에 연결된 끈을 찾아냈다. 그 끈을 통해 작전 계획은 잠입의 단계로 들
어가는 것이다. 잠입! 목표 발견! 확인! 섬멸! 이것이 그의 계획이다. 그 끈을 더듬어 가다
보면 언젠가는 레오라는 사나이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란은 그와 만나게 된다 해도
의무적인 냉정함 이상의 다른 감정은 갖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레오! 그도 역시
작전의 한 목표였다.
형사부장 알 웨더비는 그의 책상 한가운데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보고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긴 듯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200파운드가 넘는 육중한 몸집을
일으키더니 닫혀 있는 문 쪽으로 걸아갔다. 그러다가 다시 책상으로 되돌아와서는 보고서
중에서 서류 한 장을 끄집어내 그것을 읽어 보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문으로 걸어
가 문을 열고 바로 문 밖에 앉아 있던 피부 색깔이 검은 남자에게 말했다. "잭, 지금 그 군
인을 데려오게." 그는 문을 열어 놓은 채 책상 바로 뒤에 있는 그의 의자로 되돌아왔다. 그
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책상 위의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을 때 한 경관이 군복을 입은 사나
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웨더비는 키가 큰 사나이를 흘끗 보고는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부장님. 저는 여기 있을까요?" 경관이 그에게 물었다. 웨더비는 고개를 가로저은
뒤 육군 군복을 입고 있는 키가 큰 사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형사부장 웨더비요.
앉으시오. 보란 중사." 키가 큰 사나이는 악수를 하고는 책상 앞에 놓여 있는 평평한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형사부장을 바라보았다. 웨더비는 문이 닫히기를 기다린 다음 입가에 웃음
을 띠면서 말했다. "아! 그것들은 대단히 흥미 있는 과일 샐러드(훈장들을 뜻함)로군요." 그
는 군인의 가슴께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훈장들을 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퍼플
하트 훈장과 명사수 메달. 그리고 동성 훈장은 나도 알고 있소. 나머지 다른 것들은 내가 복
무할 당시엔 없었던 것 같군. 도대체 당신은 얼마나 많은 병기에서 명사수의 자격을 땄소?"
보란은 갑자기 상대방의 눈이 자신을 쏘아보고 있음을 느꼈다. "휴대용 무기는 거의 전부입
니다." "100야드 이상의 거리에서 5초 안에 다섯 발을 명중시킬 수 있소?" "총에 따라 다르
죠. 하지만 쏘아본 적은 있습니다." 보란은 가볍게 대답했다. "레버 액션의 총이었던가요?"
"군에서는 레버 액션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보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웨더비는 고개를 끄
덕이며 담배 연기를 힘껏 들이마시고는 다시 뿜었다. "나는 사이공에 있는 나의 친구와 몇
번 텔렉스로 통화를 했소. 혹시 해링턴 소령을 알고 있소?" 보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
이공에 있는 MP인데 옛날부터 잘 아는 사이요. 그가 당신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소. 중사." 형사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그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탐색하는 눈
빛으로 군인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부대 안에서 당신의 별명이 '킬러'이라고 하던데 왜 그
들이 당신을 그와 같이 부릅니까.중사." 보란은 몸을 바로하고는 형사부장의 얼굴을 잠깐 동
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저하고 게임을 하시겠다면 그 게임의 이름을 가르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게임의 이름은 살인 사건이오." 웨더비는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내가 월남에서 사람을 죽인 것은 어디까지나 임무였습니다." 보란이 조용히 대답했다. "여
기는 월남이 아니란 말이오. 저격병이 자기 맘대로 누가 죽고 누가 살 것인가를 결정하며
이 거리를 걸어다닐 수는 없어요." 웨더비가 소리치자 보란은 어깨를 움츠리면서 말했다.
"내가 사격의 명수라고 해서 어젯밤의 저격 사건과 나를 연결시킨다면…." "그것 때문만이
아니야!" 웨더비가 반말로 소리쳤다. "이것 봐. 보란! 자네는 지난번 하워드 경감을 찾아와서
트라이앵글의 사람들에 관해서 끈덕지게 물었어. 그리고 자네 아버지를 미치게 한 건 그들
이라고 소리쳤어. 자네는…." "수사 책임자는 당신이 아니었던가요?" 보란은 잠시 말을 끊었
다가. "우리 가족이 죽었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웨더비는 입을 열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
다. 보란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봤을 거요. 그리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도
당신은 알고 있을 거요. 아무도 그 고리 대금업자들을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았소. 어젯밤까
지도 말이오. 드디어 누군가가 행동한 거요. 하지만 어느 누가 불평할 수 있겠소? 신문에서
그것을 갱들의 세력 다툼이라고 말했소. 누구의 짓이냐는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있느냔 말
이오?" 웨더비 부장이 오랫동안 말없이 그를 노려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문제로
삼을 수밖에 없네. 보란. 이 나라에서 정의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러나 뭐라 해도 법 안에 있는 정의보다 더 좋은 정의는 없다고 생가하네. 우리는 한 사람이
제멋대로 판사도 되고 배심원도 되어 총을 들고 걸어 다니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어. 이봐.
여기는 월남이 아니란 말이야." "만약 내게 혐의가 있다면 밟아야 할 수속 절차가 있을 텐
데요?" 보란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은 혐의자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야. 그러나
나느 분명히 알고 있네. 보란. 이 사실을 잊지 말게. 어떤 자가 8월 18일 사냥 용품점에 들
어가서 444구경 머린 레버 액션 총과 고성능 스코프를 훔쳐갔어. 그리고 그 자는 이튿날 채
석장에서 사격 연습을 했고 정해진 순서대로 100. 110. 120야드에서 각각 다섯 발씩 쏘면서
스코프의 눈금을 조절했어. 채석장의 경비원은 어제 아침 신문을 보기까지는 대단찮게 생각
하고 있었지. 나는 그 경비원이 자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네. 자넨
는 바보가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자네와 게임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 주게. 중사."
보란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틀 전에 그 저격수는 델지 빌딩의 4층으로 올라가
비어 있는 방의 창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 거기서 그는 팔말 담배를 네 대나 피웠어. 지
금 자네가 피우고 있는 담배지. 그는 재떨이로 코라병을 사용했어. 6시경에 그는 아래에 있
는 거리를 향해 다섯 발을 발사했지. 곰이라도 잡을 수 있는 고성능 라이플이었어. 그리하여
트라이앵글사는 갑자기 기능이 마비되고…. 그리고 그는 '나는 복수했다!'라고 말했어." 키가
크고 마른 듯한 중사가 몸을 움직이자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잘 알고 있
으면서 대체 왜 나르 체포하지 않는 거죠?" 그가 조용히 물었다. "진술하겠나?" "나는 진술
할 게 없어요." 보란이 냉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봐. 중사! 자넨 그 머리로 무슨 바보
생각을 해고 있는 건가?" 보란은 두 소바닥을 위로 펴보이면서 말했다. "바보 같은 하지 않
습니다." "언제 월남으로 돌아가지?" "돌아가지 않습니다. 어제 전속 명려을 받았습니다. 군
당국의 인간적인 배려죠." 보란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속이라구? 어디로?" 웨더비가
다급히 물었다. "프랭클린 하이네 있는 ROTC 훈련단입니다. 바로 이 프츠필드에 있죠." 보
란은 능글맞게 답해 주었다. "오! 제기랄!" "어린 남동생 때문입니다." 보란이 조용히 덧붙였
다. "내가 그의 유일한 혈육입니다." 웨더비는 문과 책상 사이를 불안스레 왔다갔다 하고 있
었다. "그렇다면 이거 골치 아프게 됐는데. 난 자네가 정글 깊숙이 숨어 버리면 귀찮은 일도
없으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월남 전선이야말로 자네에겐 가
장 인간적인 배속이었던거야."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보란이 불안하
게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을 텐데. 나는 마피아에 관해 말하고 있는
거네. 절대로 용서하거나 잊어 잊어 주지 않는 마피아라느 조직 때문에 한 저격수를 걱정하
거 있는 거라구. 그 사나이는 마피아의 간부 다섯 명을 죽였지. 아니 죽이지 않았는지도 모
르지. 그러나 미피아의 율법은 법과는 다르네. 의심스러운 것은 벌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네.
결국 이 거리는 사격장으로 변하겠지. 그런데도 나는 법정에 제출할 물적 증거를 하나도 갖
고 있지 못하므로 방관할 수밖에 없거든. 내 말은 바로 그런 것을 말하고 있는 거야. 분명히
말해 두지만 자네가 범인이든 아니든간에 자네는 도저히 그들 손에서 달아날 수 없네. 자네
는 용의자로서 아주 불리해. 법정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마피아의 법은 자네를 절대로 용
서하지 않을 걸세. 오늘 무사했다고 내일도 또 무사할 수는 없어. 사실은 도와 주고 싶은데
도 말이야. 그렇다면 자네의 어린 동생은 어떻게 되지? 이 거리에서 자네가 피를 흘리고 쓰
러진다면 자네의 어린 동생은 어떻게 되는 건가. 보란?" "그럼 날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
죠?" 보란은 웨더비 부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진술을 해주게. 자백을 하란 말이야. 그것만
이 자네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네." 웨더비는 진지하게 말했다. "어떻게
보호해 준다는 거죠? 전기 의자에 앉기 전까지 말인가요? 그렇게 되면 제 동생은 어떻게
되죠. 웨더비 부장님?" 보란이 냉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법관
의 정상 참작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물론 그렇겠죠." 보란은 일어섰다. "형사부장님. 이건
역시 게임이었소. 이제 그만 가봐야겠는데요." "이봐.중사. 나는 자네를 기소하겠다는 것이
아니야." 형사부장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자네에게 솔직하게 말했네. 경관이 이 이
상 어떻게 더 솔직해질 수 있겠나? 나느 사소한 혐의로 전장의 영웅을 법정으로 끌고 가기
는 싫네. 물론 자네를 기소할 만한 충분한 증거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러나 나는 자네 같은
사람이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자넨 '저격수'이니
까 말이야. 하지만 언젠가는 놈들에게 당하고 말 거야. 놈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충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란은 이렇게 말하곤 미소 지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
겠죠?" 그는 문을 열고 나가다가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았다. 형사부장은 양손을 주머니에 깊
숙이 쑤셔 넣은 채 문가에 기대서서 보란의 뒷모습을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
다. 보란은 갑작스러운 냉기가 그의 등을 스치는 것을 느끼며 순간적으로 자신을 의심했다.
내가 너무 나의 힘을 과신하는 것은 아닐까? 경찰도 손을 댈 수 없는 조직과 나 혼자의 힘
으로 맞서겠다는 말인가?" 보란은 어깨를 움츠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차마 뒤돌아볼 수가
없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날 오후 맥 보란은 마피아 내부의 인물들과 만날 약속이
되어 있었다. 법에는 그 나름대로의 견해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4.기회 균등
그곳은 거물급의 실업가들이 모여 마치 아늑한 컨트리 클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네트 플래스키의 혈색 좋은 얼굴은, 털이 무성한 그의 몸뚱이를
둘로 나누고 있는 진홍빛 수영 팬츠보다는 덜 붉어 보였다. 그는 풀 사이드에 있는 텐트에
기대어 얼음 주스 잔을 든 채, 알몸이나 다름없는 비키니 차림의 늘씬한 금발 여인과 무엇
인가 속삭이고 있었다. 풀 사이드의 여기저기에는 미스 유니버스 정도의 미인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제각기 그들의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50세 정도의 온건하게 보이는 남자가 하
얀 리넨 바지에 폴로 셔츠를 입고는 점잖게 비치 파라솔 아래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
의 옆에는 스포츠 재킷 안에 얇은 스웨터를 입고 콤비 바지를 입은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
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몇 명의 사나이들이 각자 평사에 엎드려 일광욕을 즐기거나 탈의실
근처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보디가드로군!' 보란은 즉각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그들은 보
란
의 등장을 유심히 보고 있다가 눈짓을 교환했는지, 아니면 본능적인지 몰라도 걸어오는 보
란을 일제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플래스키가 금발의 여인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
고 보란에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미국 육군이 쳐들어 왔군요." 한 여인이 키가 큰 군인에게
반한 듯 속삭였다. "입 닥쳐!" 플래스키가 여인의 앞을 지나치면서 낮게 말했다. 그는 보란
을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데리고 갔다. "월트 시모어. 이사람이 맥 보란 중사야."
플래스키는 먼저 나이 많은 남자에게 보란을 소개했다. 그 남자는 형식적으로나마 보란을
정중히 대했다. 보란은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들의 세계에 한 걸음 더
접근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적인 관계에 불과하며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시모어와 인사가 끝나자 옆에 있던 젊은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레오
터린이오. 월남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다고 하던데…. 당신은 어느 부대에 있었소?" "제
9보병 사단에 있었습니다." 보란은 상대방의 이름을 들었을 때 자신의 안색이 변하지 않았
는지 걱정스러웠다. 그의 말투에는 전우를 맞는 듯한 친밀감이 스며 있었으나 그의 기억 속
에서는 동생 조니의 말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오라는 자가 누나를 설득시켰
어
요?' "나는 그린 베레에 있었소." 터린이 자랑삼아 말했다. "나도 중사였었소. 제5공수 특전
단이었소." 보란은 조직의 내부에 있는 사나이와 공통된 화제를 갖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린 베레에서 제일로 치는 특기라면 여자를 주선하는 것이라던
데요?" 이 말은 뜻밖으로 들어맞았다. 터린은 점잖게 앉아 있는 시모어를 흘끗 쳐다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요. 그 이야기는 하자면…." 소리치며 말하려다가 그는 시모어가 자
신을 차갑게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예비군 GI는 보란에
게 눈짖을 하고는 그의 자리로 가 앉았다. 이때 거의 암몸인 여자 하나가 보란에게 얼음이
든 컵을 건네 주었다. 보란은 잔을 받아들이면서 그녀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플래스키에게
말했다. "멋있는 여자군요." "전부가 다 일류급이지! 당신 마음에 든다면 가질 수도 있소. 우
리의 얘기가 끝난 다음에 말이오." 플래스키가 텐트 쪽으로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
보면서 말했다. 보란은 이제 보디가드들의 배치가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 이제 본
론을 얘기합시다." 보란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플래스키가 가볍게 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시모어와 터린. 그리고 나는 죽은 사람들 중의 하나인 조셉 로렌티와 동업자요. 물
론 우리는 그 다섯 명을 다 알고 있소. 모두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니까. 우리는 경찰이 범인
을 체포하는데 협력할 생각이오. 그런데 보란 중사. 경찰에는 갔었소?" 보란은 그들에게서
그런 질문인 나오리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소. 오늘 아침 당신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그들에게 끌려갔었소." "자네가 자진해서 경찰에 간 줄 알고 있는데." 시모어가 조
용히 말했다. "천만에." "왜 경찰에 안 갔었나?" 시모어가 다그쳐 물었다. "플래스키 씨에게
말한 대로 모처럼의 휴가를 귀찮은 일에 말려들어 망쳐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오." 보
란은 한 차례 크게 웃은 다음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정이 달라졌어요. 이제 월
남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소. 전속 명령을 받은 거요. 앞으로 당분간은 피츠필도에
있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지?" 시모어가 다시 물었다. "어린 동생 때문이오. 그는
겨우 열네 살이고 혈육이라곤 나밖에 없소." '군대도 그럴 땐 아주 인간적이군." 플래스키가
내뱉듯이 말했다. 그러나 시모어는 그것을 무시하는 듯 했다. "그래서 자네는 어리석게도 경
찰에 협력할 생각이었군. 오늘 아침 플래스키를 만나고 나온 후 행운의 소식을 받고는 훌륭
한 시민의 당연한 의무처럼 경찰에 연락했겠군." 보란은 계속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내
말을 잘못 알아들으셨군요. 나는 분명히 끌려갔었소. 오늘 아침 플래스키 씨를 만나고 나오
니까 밖에 경찰차가 서 있었고 형사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그랬소." "뭣 때문에?" 시모
어가 이상하다는 듯이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일종의 우연이었소." 보란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우리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 사건을 맡았던 형사가 또다시 트라이앵글 사
건을 맡게 되었던 거요. 그리고…." "자네 아버지도 피살되었나?" 시모어가 다급하게 물었
다. "아니오. 자살이었소. 잘은 모르지만 신경 쇠약 같은 거였어요. 늘 병을 앓아 왔는데 게
다가 빚 때문에 사달림을 받고 있었답니다. 담당 형사가 그 빚은 트라이앵글사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말해 주더군요. 그래서 그 두 사건을 연결시켜 내가 범인일거라고 생각하고는 나
를 연행해 갔던 거죠." 그는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정말 나는 총으로 빚을 없애는 짓 따위
는 하지 않아요." 보란은 플래스키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건 당신이 증명해 줄 수 있
겠죠? 아무튼 나는 경찰의 호기심을 풀어 주었고 그들도 알았다고 나에게 말했소. 그걸고
다 끝난 거요." "자네는 다 털어 놓지 않는군." 시모어가 여유 있는 말투로 말했다. "무슨 뜻
이오?" "샘 보란은 그의 아내와 딸도 총으로 쏘았지!" " 아! 진정하게. 월트." 터린이 부들
럽게 말했다. "괜찮소!" 보란이 시모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저리른 일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나는 철이들 나이가 되자 집을 떠났어요. 그러니 가족들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말아 주시오. 알겠소?" 시모어가 터린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것을 보
고 보란은 자신의 화난 말투가 그들에게 먹혀 들어갔음을 알았다. "알겠네. 중사." 시모어가
재빨리 대답했다. "기분 나쁘게 생각지 말게. 단지 자네를 시험해 봤을 뿐이야. 이해하겠
나?" 보란은 시모어를 응시했다. "왜 내가 당신을 도와 주어야만 하죠?" "에. 그것은…." 시
모어는 난처한 듯이 콧등을 몇 번 문지르고 나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먼저 그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자네 쪽이고. 그리고 자네는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을 텐데…. 그
렇지 않은가. 보란?" "아닙니다." "아니라구?" 시모어가 눈을 크게 뜨면서 플래스키를 쳐다
모았다. 보란은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고 난 다음 연기를 내뿜으면서 말했다.
"경찰에 갔을 때 생각이 달라져소." "그랬군." 시모어가 말했다. 그러나 그는 보란의 말뜻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저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곳에 있었어요. 델지 빌딩
에서 어떤 사람의 뛰어나오는 것을 보았어요. 하마터면 그 사람과 부딪칠 뻔했었소." "그래
서?" 플래스키가 다급히 물었다. "그러나 나는 경찰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만약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면 웨더비가 나를 더욱 의심할 테니까 말이오." " 웨더비가 누
구지?" 시모어가 물었다. "형사부장이오." 시모어가 한숨을 쉬고는 플래스키를 쳐다보고 웃
었다. "중사. 자네가 경찰에서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네. 우리도 자네의 정보를
경찰에 넘기지 않을 걸세." "그건 나도 알고 있소." " 자네가 알고 있다구?" 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변하지는 않습니다. 알다시피 나는 당신들에게 정보를 팔 생각
이었는데 경찰에서 당신들이 누구라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었소. 그래서 생각이 달라졌단
말이오." 시모어는 순간적으로 플래스키에게 눈을 돌렸다. "그래 .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
가?" "당신들은 마피아요." 갑자기 시모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플래스키 역시 당황
한 듯 헛기침을 했고 터린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우리가 마피아라구?"
"그거야 뻔하지 않소?" 보란이 갑자기 어투를 바꾸어 말했다. "경찰이 트라이앵글은 마피아
일 거라고 말했소.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서 무슨 게임을 하겠다는 건
가. 애송이 군인?" 플래스키가 거칠게 쏘아붙이며 벌떡 일어섰다. "앉아. 네트. 앉으라구!"
시모어가 플래스키를 말리면서 보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경찰의 말이 맞다고 하세. 그렇
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다는 건가?" "나의 값어치가 달라지게 되죠." 터린이 의자를 들썩
거리며 웃었다. 플래스키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입 속으로 중얼거렸고. 시모어는 긴 한숨
을 쉬고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자네는 대단한 수완가이거나 아니면 엄청난 바보일
걸세. 보란. 도대체 자네의 속셈은 뭔가?" "그것은 말이오…." 보란은 천천히 대답했다. "나
는 그들을 죽인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소. 그런데 당신들은 나의 정보를 조금도 원하지
않는 것 같단 말이오. 나는 당신들은 나의 정보를 조금도 원하지 않는 것 같단 말이오. 나는
당신들과 입씨름을 하러 온 게 아니오. 그런 이야기가 어떤 줄거리로 얽혀 있는지 나는 알
고 있단 말이오. 물론 당신들이 로렌티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당신들이 어떤 때에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알고 있소. 로렌티가 어떻게 되었든간에 내가 알 바 아니오. 나는 다
만 내가 함부로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당신들이 알아 주었으면 하는 거요. 경찰에
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내 값어치가 변했다는 거요. 값어치는 제로. 나는
목격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거요." 플래스키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시모어를 바라보며 화가 나서 말했다. "이 친구 생각은…." "저 친구 생각은 나도 알고 있
네." 시모어가 플래스키의 말을 가로막으며 미소 짓고 있는 군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
리들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거요." 시모어가 시선을 조용히 받으며 보란은 대답했다.
"시문이 아무리 떠들어 대도 로렌티 일행을 죽인 것은 절대로 조직 안의 사람이 아니야. 자
넨 쓸데 없는 잔소리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 만약 자네가 정말로…." "서로 속셈을
터놓고 게임을 하고 싶은데, 어떻소?" 보란이 제의했다. "자네 카드는 뭐지, 중사?" 시모어
가 플래스키를 바라보며 보란에게 물었다. "나는 일자릴 찾고 있소. 어제 당신네 사람들이
다섯 명이나 죽었으니 자리가 있지 않겠소?" 터린이 부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군인이
일자리를 어떻게 구한다는 거지?" 플래스키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나는 12년간 이 군복을
입어 왔소. 지금 내겐 1센트의 돈도 없단 말이오. 그리고 앞으로도 돈을 벌지는 못할 것이
오." 시모어는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보란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 총
에 관한 일이면 뭐든지!" "총이라구?" 시모어가 큰 소리로 웃었다. "자넨 우리가 총으로 일
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란이 그 말을 무시하며 말했다. "총에 관한 건 뭐든지 할 수
있소. 조립. 개조 , 수리. 실탄 제조. 그리고 사격까지도." 시모어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
가령 우리가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자넨 잘못 생각하고 있네.
여긴 1920년대의 시카고가 아니야. 70년대의 피츠필드란 말이야." 보란의 반응을 지켜보며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란은 풀 사이드의 텐트 그늘에 있는 사나이 쪽을 가리키며 말했
다. "저기 있는 녀석은 총을 갖고 있소. 또한 저쪽에 있는 녀석도 마찬가지요. 나는 여기 들
어서면서 총을 갖고 있는 자들을 다섯명이나 발견했소. 저들은 당신의 사설 군대겠죠? 당신
에겐 빈자리가 있고 나는 일자리가 필요하오." "군대에서는 탈영한 건가?"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터린이 끼여 들며 물었다. "ROTC란 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지 않소. 터린? 그곳
은 지루해서 잠이 오는 것이란 말이오." 군인이 조용히 말했다. "거기에 관해 자세히 말해
보게." 시모어가 흥미 있다는 듯이 말했다. "군에서 인간적인 배려로 나를 피츠필드의 프랭
클린 하이네 있는 ROTC 훈련단으로 전속시켜 주었소. 군인에게는 정말 한가한 곳이오. 학
교 선생처럼 숙소를 배정받고 정해진 시간에 근무를 하는 건데 민간인과 다를 게 없는 생활
이죠." "아무리 한가해도 규칙이 있을 텐데 어떻게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건가?" 보란이 싱
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정식으로 임명된 교관이 아니기 때문에 할 일이 거의 없을 것이
오. 게다가 교관이 남아돌고있는 형편이오. 말하자면 나는 임시 강사인 셈이니까 기껏해야
총기 취급법 같은 걸 몇 시간 정도 강의하면 될 거요. 그러니까 남는 시간은 많소." "도저히
군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터린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도 역시 그렇소. 그러나 그
것도 금년 말까지요. 그 후엔 또 전선으로 차출될 것이 분명하오. 그런데 난 동생을 돌봐 주
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동생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현역으로 돌아가든지 이니면 제대하는 수밖에 없을 거요." " 자네는 굉장히 운이 좋을
것 같군." 시모어가 보란의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말했다. "어쨌든 나에게는 어린 동생이 있
으니까…." 보란은 그 점을 강조했다. "게다가 아까도 말했지만 한푼도 저축한 게 없으니 연
말에는 제대를 해야 될 것 같소. 그러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사회 생활을 익혀 두는 게 좋지
않겠소?그리고 당신들에게는 빈자리가 있을테니까." "중사는 지독한 기회주의자로군." 이렇
게 중얼거리면서 시모어는 터린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겐 기회주의자가 필요하겠
는데. 그렇지 않은가?" 터린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런 자가 우리에겐 필요한 것
같군.그러면 우선 여자들을 불러 오게. 레오. 바도 이리로 옮겨 새로 온 친구를 위해서 환영
회를 열자구." 시모어는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이게 바로 자네에겐 황금의 기회하는 거
네. 중사. 황금을 고철로 만들지 말게." 보란은 싱긋 웃으면서 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단
숨에 술잔을 비웠다. 이제 그는 조직의 일원이 된 것이다. 일단은 부딪쳐 보는 거다. 누군가
가 아까 그녀의 이름이 마리라고 그에게 말해 줬다. 그녀의 역할은 뻔한 것이다. 그녀는 새
술잔을 그에게 건네 주면서 보란의 무릎에 올라앉아 거의 벗은 몸을 그에게 비비면서 교태
를 부리는 것이었다. 보란의 무릎은 여자가 앉기에 결코 불편하지 않았다.
5.완전한 술책
월트 시모어는 항상 불안을 느껴 왔다. 그가 조직에서 지금의 지위를 이루어 놓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손탄하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월트 시모어라는 이름
이 조반니니 스칼라빈니니 하는 식의 이탈리아 이름이었다면 성공의 길이 그리 험하지는 않
었을 것이다. 때로는 네트 플래스키라는 이름조차도 그를 불안스럽게 했다. 그것은 플래스키
라는 이름이 보스의 귀에 좋게 들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시모어가 출신과 혈통에 관계 없
이 로렌티를 앞질러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요컨데 로렌티가 결코 큰일을 할 수 없
는 소인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로렌티는 월급날에 빚이나 받으러 다니는 고리 대급업자난
하면 꼭 어룰릴 그런 사내였다. 시모어는 트라이앵글이 하는 일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트
히 그 중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로렌티가 지나치게 노골적이로 얘기하는 것이었다.
막대한 돈을 불법으로 끌어들이는 창구로서 트라이 앵글이 하는 일처럼 쉬운 장사는 없었
다. 그리고 시모어는 그것이 합법적으로 경영되고 있는 한 불만은 없었다. 그러난 로렌틱로
인하여 트라이앵글은 야비한 수법을 일삼는 폭력 회사가 되어 버렸다. 물론 대금업자의 머
리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로렌티와 조직의 관계는 몇 세대 전까지 거슬러 올라
각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시모어는 로렌티의 죽음을 은근히 기뻐하고 있었다. 그것은 결
코 개인적인 과점에서가 아니라 사업적인 전망에서 볼 때도 그렇다고 그는 생각했다. 로렌
티나 로렌티와 같은 류의 인간들으 조직에게 해가 된다. 그래서 동시에 그는 그들의 죽음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로렌티와 그의 일당을 죽였을까? 뭣 때문에? 시모
어는 사실주의자였다. 그는 피츠필드 조직의 보스가 자신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적이 결코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10년 동안이나 견습 대원으로 있어야 했던 이유를 충분
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보란이라는 사나이가 나타나 이번 사건은 조직 내부의 세력 싸움이
며 신문이나 경찰도 그렇게 믿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조직의 보스 역시 그렇게 생각
하고 있다면 그들은 시모어가 로렌티의 공공연한 반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사실 월
트 시모어는 불안을 느꼈다. 그는 몇 가지 불안의 요소를 갖고 있었다. 좀 전의 보란이라는
그 군인도 그를 불안하게 했다. 그에 대한 조사는 이미 충분히 되어 있었으며 놈이 진짜라
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시모어는 맥 보란을 절대적으로 신용하지는 않았다. 아니 적
어도 현재로서는 그를 너무 신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너무 많은 인간. 너무나도 말이 많은 인간들이 조직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있다. 연
방 정부의 위원회, 사법부, 재무부,등이 모두 혈안이 되어 조직을 감시하고 틈만 있으면 덮
치려고 하는 것이다. 월트 시모어는 맥 보란이 무슨 목적으로 조직에 나타났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느 여러 각도에서 맥 보란이 정체에 대해 조사를 해봤다. 관할 경찰이나
조직의 상부에서도 보란의 정체를 탐색하고 있었다. 다른 조직에서도 범인을 찾고 있었으나
범행 동기조차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월트 시모어는 맥 보란에 대해 상당한 불안을 느꼈
다. 무언가가 켕기는 것이 있어 그를 마음놓고 이용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남
은 유일한 방법은 그를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다. 놈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조직에 고용해 두
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놈의 정체가 드러나길 기다리는 것이다. 어쩌면 놈은
누군가의 첩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보스의 끄나풀인지도. 그러나 만약 놈이 첩자가 아니러
면 잘만 이용하면 그의 재산이 될지도 모른다고 시모어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레오 터린이
시모어에게는 문젯거리다. 터린은 머리가 영리하며 남에게 호감을 주는 야심가이다. 그러니
까 터린은 시모어에게 있어서는 위험 인물이었다. 보란과 터린을 함께 있게 하자. 만약 보란
이 첩자라면 그 불똥은 당연히 터린에게로 튈 것이 틀림없다. 이거야말로 완전한 술책이다!
"첫째로 자네가 명심해야 할 것은…" 터린이 보란에게 말했다. "사령관은 바로 나라는 점
이야. 자네 스스로 자네를 일등 상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유지만 내가 지휘관이
라는 것을 잊지 말게. 둘째로 우리는 '마피아'라는 말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아. 대신 '조직'
이
라고 부르지. 자네는 조직을 위해 일하고. 조직은 자네를 지켜 준다. 이것이 조직의 율법이
야. 그러나 자네는 멤버가 아니야. 앞으로도 멤버는 될 수 없다. 자네의 피는 멤버가 될 수
있는 혈통이 아니란 말이야. 사실 시모어도 멤버는 아니지." "무슨 차이가 있소?" 보란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들은 터린의 차에 타고 있었는데 연노랑색의 컨버터블이었다. "그거
야 대단한 차이지." 터린이 담배를 찾자 보란이 팔말을 내밀었다. "조직은 수세기 전에 시실
리에서 시작되었지. 바로 내가 태어난 곳이야. 로빈 후드와 비슷한 얘기지만 다른 점은 조직
은 옛날 이야기가 아닌 진짜라는 거지. 자넨 잘 모르겠지만 마파아는 아주 순수한 정신에서
생겨났어. 진실한 민주주의, 즉 약자를 위한 만주주의야. 그것은 분명히 로빈 후드보다 훨씬
높은 이상을 갖고 있는 대중을 위한 민주주의지." "그래. 그런 건 잘 몰랐는데." 보란이 고
개를 끄덕였다. "자넨 잘 모르겠지만 마피아란 말은 마태 복음의 마태에서 생긴 말이야. 마
태는 '용기'. '담력'을 뜻하지. 조직은 반체제를 주장했기 때문에 비밀 조직으로 움직일 수
밖
에 없었어. 당시는 전제 군주 제도라서 재산을 모두 귀족이나 관료들끼리만 나누어 가졌지.
그때의 법은 부자는 부자인 그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대로 살게 돼 있었어. 자네도 알다시
피 법이란 본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거라네, 어디나 다 그래. 이탈리아나 시실리만이 그런
게 아니라 어느 나라든 법은 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거야. 결국 용기 있는 사람들
이 모여 저항 운동을 시자했어. 그래서 조직된 것이 마피아야." "히피들처럼 말이오?" 보란
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뭐라구?" "옛날 이탈리아의 히피들." 보란이 싱글거리면 말했다. "그
들이 시위할 때 뭐라고 소리쳤는지 아시오? '모든 자에게 피자를 주라'고 했던가?" 터린
이
얼굴을 찌푸렸다. "난 자네의 유머 감각을 좋아하지 않네. 난 진지하게 말하는거야. 어쨌든
마피아는 매우 민주적인 이론을 갖고 있어." "좋소. 나도 진지하게 말하겠소. 그러면 그 도
덕이란 건 어떻게 되었소. 레오? 100년 전의 이탈리아건 시실리건. 어디건간에 도덕까지 타
락하지는 않았겠지? 그런 것은 나도 알고 있소. 그러나 이 나라에 민주주의라는 게 있소. 법
치 민주주의 말이오." 터린이 야비하게 웃었다. "잘난 체하지 말아. 그건 그렇게 쉽게 변하
는 게 아니야. 지금도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들은 점점 더 가나해지고 있네. 그
렇기 때문에 용기와 담력 있는 자들의 모임이 있는 거야." "내말을 오해하지 마시오. 나는
조직을 비난하는 게 아니오. 지금은 나도 조직의 일원이지 않소? 나는 다만 사실을 사실 그
대로 보려 했을 뿐이오." "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 보게. 자네는 자네 앞으로 단 한푼의 저축
도 없다고 말했네. 자네가 월남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것도 다 그 부자나리들을 지켜 주기
위한 것이었지. 그렇지 않은가. 중사? 시모어가 자네는 주급 250달러로부터 시작하자고 말했
잖은가? 어때. 이것이 가나한 사람이 더욱 가난해지는 것이라고 보나?" 중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르 보란이라고만 불러 주시오. 사령관." 터린이 다정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
다. "맹세코 자네와 난 잘해 나갈 것일세. 중사. 모든 것이 잘되거라구." "당신의 임무는 뭐
요. 레오?" "여자들이지."터린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여자들이라구?"보란의 그의 말을
되받아 소리쳤다. "여자들. 모든 종류의 여자들이지. 호스티스 걸. 파티 걸. 콜걸. 하우스 걸.
주문만 하면 남자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알맞는 여자들을 붙여 주는 거야." "그 여자들도
모두 용감하고 담력 있는 여자들이오?" 이렇게 물으면서 보란은 혀가 굳어지는 것을 느꼈
다. " 물론이지. 자네가 조직을 위해 일하고 조직이 자네를 지켜주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ㅡ
이 재산을 늘려 주지." 보란은 푹신한 소파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렇군. 그것도 일리가
있단 말이야."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또 하나의 다른 보란을 생각하고 있었
다. 그의 누이동생 신디는 그 용감한 자들 속에서 어떻게 용감했었을까?
6.감시자
보란은 터린이 말하는 <여자 감시>의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고급 양복과 32구경의 권
총. 그리고 권총의 소지 허가증 및 속사에 편리하게 만들어지 숄도 홀스터도 받았다. 양복이
나 무기의 대금은 앞으로 받을 그의 수입에서 지불하기로 했다. 권총의 소지 허가증은 보란
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밀 루트를 통해 그의 손에 들어왔다. "이것은 합법적인 거
야." 터린이 으쓱거리며 말했다. "입수한 경로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지만 그 자체는 합법
적이야. 그래서 만약 권총 소지에 관한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이 허가증이 해결해 주지. 정
식이로 등록도 되어 있는 것이니 걱정할 필요는 조금도 없어. 그런 것은 조직이 다 알아서
해주지.조직 안에 있으면 누구나 안전하거든." 터린의 표면상의 직업은 <에스코트 언리미티
드>라는 여성 알선 회사였다. 회사는 깨끗하였고 건물 자체가 매우 당당하였기에 사람들을
믿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건물의 사교장은 모든 면에서 취미의 고상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터린은 정규 훈련을 받은 프로그래머를 고용하여 컴퓨터를 이용한 여성 알선 서비스업을 하
고 있었다, "이 장사로 큰 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야." 그가 보란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보
란은 듣기만 했다. "종업원의 급료나 회사의 경비를 대는 정도지. 저기 저 컴퓨터는 저당이
돼 있어. 그리고 이 회사는 자유 기업의 위대한 기수인 트라이앵글 인더스트리얼 피이넌스
에서 융자를 받고 있다네." 보란의 공식적인 직위는 보안계장이었다. 그는 <에스코트 언리
미티드>의 정식 사원으로 등록되어 주급 250달러를 받게 되었으며 거기에서 보험료와 소득
세가 공제되었다. "원한다면 가불로 채권 저축을 해도 좋아. 국채라도 사보는 게 어때?" 잠
시 침묵이 흐른 후 터린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규정대로 공제되는 몫에 대해서는 걱정 말
게. 적당히 메꾸어줄 테니까. 그리고 돈이 궁하진 않을 거야. 어느 면으로 보나 우리는 합법
적인 장사를 하고 있으니까." 그의 말대로 외부에서 보면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
았다. 시내와 교외 일원의 매춘 조직은 모두 터린의 컴퓨터에 등록되어 있었다. 사소한 부주
의나 유도 수사에 의해 안전이 위협 받는 일이 없도록 매춘 조직은 모두 코드화되어 컴퓨터
에 등록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매춘업을 하고 있는 조직은 <예약이외에는 소개 불가
>라는 항목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특정 데이터를 위한 프로그램의 견출이나
분류의 지시. 데이터의 인출 같은 것에는 모두 비밀 부호가 사용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기
계화야." 터린이 보란에게 설명했다. "그렇지 않겠어? 기계는 틀림없거든. 자네는 이 회사의
영업 규모를 상상도 할 수 없을 걸세. 이 회사의 루트로 수백 명의 여자들이 일하고 있지.
그것을 전부 머릿속에 넣어둘 수 있겠나. 아니면 비밀 장부라도 만들어 놓겠나. 만을 수색을
당하게 되면 나는 다만 저 컴퓨터의 버튼만 누르면 되는 거야. 그러면 감쪽같이 위험한 기
록은 없어지고 합법적인 것만 남게 되거든. 이렇게 편리한 기계가 또 어디 있겠나. 중사? 이
것이 바로 진보라는 거네. 나와 내 프로그래머를 제외하고는 이무도 영업에 대해서 거는게
없네. 그 녀석들이 지혜도 이 기계와는 상대가 안 돼. 그들에게는 틀림없이 건실하고 좋은
직장이지. 가령 어느 남자가 전화를 걸어 나는 에이스 인더스트리스에 근무하는 존 스미스
라는 사람인데 아가씨가 필요하니 몇 명만 보내 주시오 하고 주문을 해왔다고 가정해 보세.
만일 그 남자가 확실한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야. 주문을 받은 담당 직원이 버
튼만 누르면 아가씨의 이름과 전화 번호가 타이핑되어 나오게 되지. 당당 직원은 그 리스트
에 따라 전화만 걸면 되는 거야. 설사 일이 잘못 되어 주문 받은 아가씨가 증언대에 서게
되더라도 성경에 대고 증언할 거야. 컴퓨의 자유 선택에 의해 소개되었을 뿐이라고 말이
야. 어떤가? 이것은 깨끗한 장사야. 또한 여자 쪽에서도 위험한 일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대비해 두고 있지. 만약 여자가 엉뚱한 짓을 하거나 재수없게 걸려들면 그 여자와 연
락을 끊어 버리면 되지." "그렇다면 여자들은 정말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잖소?" 보란이
물었다. "천만에. 어떤 여자가 감방에 갈 것 같으면 변호사를 사주는거야. 보석금을 전액이
나 일부분 빌려 주고 변호사의 비용도 대준다구. 조직을 배반하는 여자가 아닌 이상 조직은
여자들을 보호해 준다 이거야! 이건 여자에만 한한 것은 아니야. 조직의 일원은 모두 보호
받고 있다네. 여자가 풀려 나오면 장소를 바꾸어 다른 이름으로 컴퓨터에 등록해 주지. 자!
이것으로 내 이야기는 끝났어. 이제 자네도 우리의 조직이 얼마나 안전한지 알겠지? 다시
말하면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합법적이며 걸려 들어가는 일은 없다는 거야." 터린과 프
로그래머 이외에도 회사에는 조직의 사람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 그 다섯 사람은 영업부장
이라는 직함으로 외근을 하고 있었다. 직위는 그럴 듯했으나 실제의 임무는 뚜쟁이였다. 그
들이 접촉하는 상대는 대기업이나 각계의 명사. 정계의 거물과 같은 상류층 인사들이었다.
"그 녀석들은 머리가 잘 돌아간단 말이야. 거의 모두가 나보다 교육 수준이 높지. 그들은 어
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아. 실제로 높은 인간들과 교제하지 않으면 장사도 되지 않아. 그
녀석들은 직접 여자들과 얘기하는 법이 없어. 함께 있어도 심지어는 같이 잠을 자도 말이야.
그 녀석들은 얼굴을 알고 있는 여자는 하나도 없어. 그리고 외근을 하는 친구들은 수당제로
일하고 있어. 그래서 능률도 더 오르고 있지. 녀석들은 스트리트 걸이나 하우스걸과는 잘 접
촉하지 않아. 파티 걸이나 콜 걸과도 얼굴을 마주치지는 않지. 어느 모로 보아도 우리는 아
주 안전하다구." "그런 식으로 운용하고 있다면 당신도 그런 여자들과 만나지는 않겠군요."
보란이 말했다. 터린은 눈을 찡긋하며 알겠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말게. 중사. 자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여자는 얼마든지 있네" 터린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그럴 필
요를 느꼈을 때는 개인적인 접촉을 하지. 수입이 랭킹 상위인 여자들과는 잘 접촉하지 않지
만, 그러니까…." 그는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때로는 개인적인 접촉이 필요할 때도 있어.
새로 들어온 여자를 지도해 줘야 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아내와 새 아이가 있어. 그러니 매
일 창녀와 잘 수는 없지 않겠나?" 터린이 웃으며 말했다. 보란은 팔꿈치로 그슴을 찔렀다.
"아무리 그래도 당신의 수첩 속에는 좋은 여자가 한 다스는 들어 있을걸?" "아니. 나는…."
터린은 정색을 했다가 갑자기 싱글거리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의지를 잃게 되면 끝장이야.
사물을 올바로 평가할 수 없게 되거나 혹은 어떤 것에 빠지게 되면 정말 끝나 버리는거야.
내가 개인적으로 여자와 접촉하는 것은 말야. 예를 들면 다른 조직에서 맡겨지는 여자가 있
잖나? 그럴 때는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거든. 특별한 경우니까. 때때로 아직 햇병아리 여자
를 장사에 익숙해지도록 잘 봐주는 일도 있지. 무슨 뜻인지 알겠나?" 보란은 그의 말뜻을
잘 알고 있었다. " 다시 말하면 여자들과 감정적인 관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일세." 보
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번의 서비스로 50달러나 100달러씩 버는 여자들도 있지.
그들은 자신이 황금의 물건이라도 가진 것처럼 생가하고 있거든. 나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
지 않아. 여자와 자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내가 따로 갖고 있는 창녀집으로 가지." "그런 곳도
있소?" "오. 물론 있고말고. 실제로 나는 그곳에 더 신경을 쓰고 있네." 터린이 빙그레 웃으
며 말했다. "컴퓨터보다 훨씬 낫지. 나는 그곳을 더 좋아한다네. 거기는 장사하는 방법이 전
혀 다르지. 각각의 창녀집에 포주가 있어서 포주가 영업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조직은 포주
에게 여자를 맡기고 포주에게는 비율제로 돈을 주고 조직이 나머지 돈을 거둬 들이는 거
지." "굉장히 큰 사업 같은데요?" "얼마나 광범위한지는 곧 알게 돼. 사령관의 지시 사항을
잘 듣는다면 말이야. 우리는 새로운 여자를 찾아내는 것만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포주를 열
명도 더 갖고 있어. 그들이 어떤 곳에서 여자를 데려올 거라고 생각하나?" 그가 눈썹을 치
켜 올리며 말을 이었다. "대학 캠퍼스. 공장. 회사. 교외의 주택지… 지난 달에는 신혼 여행
에서 갓 돌아왔다는 신부도 데리고 왔었어. 모델. 여배우 - 일류가 아닌 여배우로서 시간제
로 돈을 버는 거야. 여자들에게는 반드시 얼마간의 창녀 기질이 있거든. 콜 걸은 시간제 예
약자가 밀리고 있는 정도니까. 그 중에는 양갓집 딸들도 들어 있어. 양갓집 딸이라고 해서
그 짓을 잠깐 해서 돈을 번 뒤 그만둘 정도로 순진하지만도 않아." 터린이 진지하게 이야기
했다. "우리의 이 사업이 얼마만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지 자네가 안다면 자네는 아마 놀
라서 기절할 걸세. 그런데 자네가 꼭 알아 두어야 할 일이 있네. 이 도시에서 우리의 경쟁
상대는 없어. 그 것은 여기뿐 아니라 어리라도 마찬가지야. 지금 자네가 있는 곳에서 50마일
쯤 떨어진 곳에서 한 여자가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할 때 그 여자는 조직을 위해서 일하고 있
는 거야. 알겠나. 보란?" "그 정도는 이해하고 있소." 맥 보란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마추어가 개인적으로 장사하는 것을 묵인하지 않아. 그들을 우리 편에 흡수시켜
장사를 하게 하는가 아니면 그 장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하는 거야. 왜냐하면 그런 아마
추어들 때문에 여론도 나쁘거니와 조직이 들러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절대로 묵인해 줄 수
는 없는 걸세. 그러나 아마추어들을 때려부수고 다니는 짓 같은 것은 아무도 하지 않아. 그
점을 잘 알아 두고 또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잘 알아 두게나. 나는 예일이나 하버드 같은
명문 출신은 아니야. 다만 사업가일 뿐이지. 장사는 내가 지시하겠어. 알겠나? 모든 면에서
말이야. 내 앞에서 누구라도 건방지게 구는 건 용서할 수 없어. 사람이 좋아 보인다 해서 그
것으로 나를 얕본다면 큰일날 걸세. 이 점을 잘 기억해 두게. 더군다나 내가 마음에 들어 한
다고 해서 자네가 건방지게 구는 것을 용서해 주리라고는 생각지 말게." "알겠소." "좋아.
그리고 또 하나. 아까도 말했듯이 아마추어의 장사를 없애거나 사기꾼 녀석들을 때려부수는
것보다는 세상의 요구에 따라 열심히 여자를 소개해 주는 것이 훨씬 이익이야. 컴퓨터에 등
록되어 있는 단골에는 일류 호텔이니 모텔, 고급 클럽, 레스토랑과 같은 곳의 이름이 줄지어
있으며 대체로 그런 주문은 컴퓨터로 처리하고 있어. 그밖에 우리는 프리랜서 여자들도 쓰
고 있지. 우리는 그런 여자들을 필드 것이라고 부르지. 이건 완전히 자유 계약을 의미하는데
그 중에는 자기의 아파트를 거점으로 해서 장사하는 여자들도 있네. 그네들은 매상을 속이
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대체로 믿고 있네. 가끔 불시에 조사를 하긴 하지
만 근본적으로 그들의 명예를 생각해서 자유롭게 놔두고 있다네. 하지만 자유 계약자라도
역시 조직의 여자들이야. 알겠나?" 보란이 힘있게 대꾸했다. "우리는 여자들을 잘 대해 주
지. 그들이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한 절대로 거칠게 다루지는 않아. 그들이 원하
기만 하면 나갈 수도 있어. 그러나 한번 나간 여자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지. 그들은 그걸
잘 알고 있어. 여자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거야. 그것 역시 그들은 잘 알고 있
지. 필드 걸은 자기가 직접 교제도 하지만 나머지 여자들은 소개에서 연락까지 모두 조직에
서 해준다네.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한 그들은 안전하고 보수도 충분히 받고 있거든. 아까
자네에게 말했듯이 우리는 대담하고 용감한 사람들을 위해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거라
네." "아. 기억하고 있소." 보란이 말했다. "좋아. 가자구! 여자들이 있는 집을 하나 보여줄
테니까." "나는 <여자 감시>라는 것이 언제 시작되는가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오." 라고 보
란이 말했다. "<여자 감시>가 어떤 것인가를 자넨 아직 모르고 있어. 자. 가볼까? 지금부터
가는 곳은 피츠필드에서는 최고의 여자들을 모아둔 곳이지. 말해 두겠는데 눈을 똑똑히 뜨
고 있게. 그러나 절대 손을 대면 안 되네. 명심하게. 눈은 뜨고 있되 손은 절대로 대지 말
것!" 피츠필드 일가의 간부는 유쾌한 듯이 말했다.
7.목석같은 사내
그곳은 교외에 있는 커다란 저택이었다. 밖에서 보아서는 아무런 특색도 없었고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 집은 가로수를 따라 제각기 마음대로 지은 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는
한산한 거리의 한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철문은 열려져 있었는데 그 안으로 아스팔트
길이 곧게 이어져 있었다. 앞뜰의 잔디가 깔린 화단에서 정원사가 꽃을 손질하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정원수가 뜰의 경치를 조화롭게 이루면서 건물을 둘러싸고 거리로부터의 시
야를 가리고 있었다. 6피트의 철책이 뜰 바깥 담을 높게 둘러싸고 있어 저택은 외부와 격리
되어 있었다. 정면에 자동차가 들어가는 입구 이외에 다른 문은 없었다. 보란은 고개를 뒤로
돌려 정원사를 유심히 보았다. 정원사치고는 나이가 젊었으며 지나칠 정도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게다가 저택의 입구에 너무 가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정원사를 가장한 경비원
이 분명했다. 터린은 아스팔트 길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노면의 불록 솟은 곳에 컨버터블의
앞바퀴를 얹고 약 5초간 멈춰선 후 크게 원을 그린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건물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우린 매사에 조심하고 있다네." 그가 작은 소리고 말했다. " 저 불록 솟
은 곳에 압력식 스위치가 묻혀 있어. 항상 그곳에서 5초 동안 멈춰 서기로 돼 있지. 그렇지
않으면 저 안에 있는 친구들이 당황하게 되지." 터린은 머리로 그의 눈앞에 우뚝 솟아 있는
흰 페인트 칠을 한 건물을 가리켰다. "우리는 여기를 파인 체스터라고 부르고 있어. 개인의
클럽이라는 명목으로 규정된 수속을 밟아 전세를 얻었지." "훌륭한데! 그런데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하군." 보란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직 일러. 낮에는 거의 장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여자들은 대개 오후 늦게까지 자고 있어. 혹은 일광욕이나 수영 따위를 하기도
하지만…." 터린은 보란이 눈썹을 치켜 올리는 것을 바라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아. 이 뒤
로 돌아가면 풀이 있는데 아주 훌륭해. 이곳은 창녀 집 중에서도 아주 고급에 속하지. 나는
여기가 아주 좋아. 여기 있는 여자들은 모두 내게 잘해 주며 그들도 모두 여기 있고 싶어
하네. 여기야말로 그들에게는 천국이지." 보란이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두 개
의 테니스 코트와 골프 연습용의 잔디밭을 지났다. "여자는 몇 명이나 있소?" 보란이 궁금
한 듯 물었다. " 침실의 수는 스물두 개야." 터린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때로는 여자가
그보다 많을 때도 있네. 그럴 땐 교대로 쉬게 하는 거야. 방은 최대한으로 활용하게 되는 거
라네. 자네도 알겠지만 난 장사에는 철저하니까 말야." 그는 보란을 흘끗 쳐다보았다. "여기
는 회원제로 되어 있어. 아까 말한 것처럼 여긴 명목상 클럽이거든. 장사도 클럽 식으로 하
는 거지. 멤버가 되어 회비를 내는 것은 침실에 들어가기 위한 거야. 풀을 사용하거나 그 주
위에서 노는 데는 별도로 돈을 받지 않아. 그리고 여기서 우린 가끔 파티를 여는데 초대장
을 받은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어. 초대장을 받기 위해서는 목돈이 필요해. 그러나 그 파티
의 초대를 기다리는 멤버들이 줄을 서 있지." 터린은 차고에다 자동차를 넣었다. 그리고는
엔진을 끄고 보란을 쳐다보며 여유 있게 웃었다. "초대 손님의 리스트에는 기네트시의 창시
회원이 반수는 올려져 있고 나머지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려고 아주 열심히야." 그는 유쾌
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두 사람은 건물의 옆으로 나 있는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넓은 홀로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아주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었다. "저쪽은 도서실이
야." 홀의 중앙으로 가면서 터린이 가볍게 벽을 두들기며 계속해서 말했다. "상당히 좋은 방
이지만 소용없는 장소야. 2000권이 넘는 책이 먼지만 뒤집어쓴 채 잠자고 있지." 그들은 돔
식 천장에 커다란 샹들리에가 두 개 달려 있고, 우아하고 세련된 가구가 있는 방으로 들어
갔다. 긴 의자와 푹신한 쿠션이 놓인 의자가 셋. 혹은 네 개가 한 세트로 여기저기 놓여 있
었다. 그리고 그것들에는 작은 사이드 테이블, 재떨이, 그리고 작은 액세서리들이 딸려 있었
다. "여기가 클럽 룸이야." 터린이 말했다. "이곳은 우리가 꽤 신경을 써서 꾸몄는데 워낙
넓은 방이라 쉽지 않았어." 이렇게 말하면서 터린은 곁에 늘어져 있는 곱게 엮은 끈을 잡아
당겼다. 그러자 조용한 저택의 어딘가에서 차임벨 소리가 은은히 울리더니 불타는 듯한 붉
은 머리를 여왕처럼 높게 빗어 올린. 얼굴 윤곽이 뚜렷한 여자가 큰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
다. 그녀는 다정히 웃고 있었다. "다링. 레오!" 그녀가 기뻐서 소리쳤다. 그녀는 그에게로 달
려가 그를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는 곧 몸을 떼내며 애정 어린 눈빛으로 터린을 바라보았다.
보란은 여자의 키가 터린보다 머리의 절반 정도는 더 큰 것을 보고는 그녀가 얼마나 높은
하이 힐을 신고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여자의 키는 터린과 같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자는 몸에 꼭 붙는 실크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실크 재킷의 늘어진 소매 속으론 보드라운 살결이 들
여다보였으며 그녀의 부푼 가슴에는 단 하나의 끈만이 느슨하게 매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여자의 터질 듯한 우윳빛 유방이 보란을 자극시켰다. 그는 시선을 똑바로 둘 수가
없었다. 빨간 머리의 여자는 터린이 보란을 소개할 때까지 보란의 존재를 완전히 묵살해 버
리고 있었다. "우리의 유능한 신입 사원을 소개하지. 리다." 터린이 말했다. "맥 보란이야.
이쪽은 리다 데비시." 빨간 머리의 여자는 그제서야 보란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 순간 그녀
의 눈 속에서 관심의 빛이 번득였다. 그녀는 잠시 그를 흘끗 쳐다보았을 뿐이었으나 보란은
자기의 뱃속까지 그녀에게 다 들여다보인 것처럼 몸이 굳어졌다. "안녕하세요. 맥! 공기가
어때요?" "따뜻한데." 보란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 저는 이곳의 분위기를 말하고 있는 거예
요." 여자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 당신이 낯익게 되면 좀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
요." 보란은 그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이 친절한 말
의 뜻을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아주 잠깐 동안 이 여자와 터린은 어떤 사이일까를 생각
해 보았다. "그렇게 되는 건 자네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됐을 때야." 터린은 보란의 상상을 단
절시키려는 듯 재빨리 그녀의 말에 응수했다. "매우 기다려지는데." 보란은 그녀의 보랏빛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는 등줄기가 근질근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여자가
오래 전부터 이런 직업을 갖고 있으리라는 것을 맥 보란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네." 터린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까 내가 한 말을 잊지 말게. 눈을
크게 뜨고 잇어. 손은 대지 말구." 그는 보란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알겠나.
중사? 리다와 나는 할 이야기가 있어. 자네는 이곳에 있게. 꼼짝 말고 여기 있으라구. 알겠
나? " 보란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꼼짝 않고 있겠소. 사령관!" 보란의 태도에 만족
했는지 터린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보란의 어깨를 툭툭 쳤다. " 우리가 자네를 알게
된 건 정말 행운이야. 중사!" 그는 이렇게 다정하게 말하고 빨간 머리의 여자와 아치형의 출
구로 나가 계단을 올라갔다. 그들은 서로 딱 붙어서서 얼굴을 맞대고 소곤댔다. 터린의 말을
듣고 여자는 못 참겠다는 듯이 깔깔거렸다. 보란은 그 두 사람이 사라지자 어깨를 한 번 으
쓱하고는 넓은 방 안을 어슬렁거리면서 벽에 걸린 그림들을 훑어보았다. 여기저기 걸려 있
는 누드 습작은 누구를 모델로 한 것일까? 모델이 역시 파인 체스터의 여자라면 창부의 세
계에도 자기가 여지꼇 생각해 보지 않았던 대단한 면이 있을 것이라고 보란은 생각했다. 지
금 보란이 서 있는 클럽의 방은 더없이 사치스러웠다. 동물적인 쾌락을 즐기기 위한 침실도
마찬가지로 사치스러울 것이다. 이 건물의 여러 곳에 놓여 있는 이렇게 고급스러운 가구들
로 보아 틀림없을 것이었다. 돈이 남아 돌아가는 미국 상류 사회의 남자가 이곳에서 하룻밤
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뿌려야 하는 것일까? 보란은 시실리의 <마태> 즉
대담하고 용감한 농민이 이처럼 웅장한 <여자들의 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까지 노력하여
뻗쳐 올라왔을 때의 만족감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실리안은 지기 재산
의 불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그 성을 깨끗이 다음 사람에게 양도하고, 그것을 양도받은
사나이는 지금에는 교외에 있는 저택에 들어앉아 백만 장자의 안락에 묻혀 살고 있는 것이
다. 보라은 생각에서 깨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했다. 터린은 건달이
다. 단순히 건달일 뿐이다. 띠끌만큼의 양심도 갖고 있지 않는 나쁜 놈인 것이다. 그는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창녀로 만들어 놓거나 열심히 일하여 검소하게 살아가는 사나이들을 거친
폭력의 무리 속으로 몰아넣는 악한인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금발의 여
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보란은 넋이 나간 듯이 보였다. 여자는 리다와 마
찬가지로 풍만한 몸매를 가졌으며, 온몸에서 넘치는 듯한 젊음과 정열을 발산하고 있었다.
금발 머리의 여인은 눈부시게 하얀 어깨와 희디흰 목덜미를 갖고 있었다. 크고 맑은 파란
눈, 오똑한 코, 계한 모양의 갸름한 턱, 그리고 길고 흰 목덜미를 미의 화신처럼 느껴졌다.
또한 젖어 있는 듯한 붉은 입술은 감각적이었으며 약간 열려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혀끝은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듯했다. "당신. 누구세요?" 여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터린을
기다리고 있어." 맥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것은 참으로 바보 같은 대답이었으나 지금 상황으
로서는 더 이상 적당한 대답은 없었다. 이 황금의 여인은 사실상 아무 것도 몸에 걸치지 않
은 것 겉았다. 망사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숄이 어깨에서 살짝 앞가슴을 흘러내려 히
프 근처에서 걸쳐져 허리에 느슨하게 매어져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그녀는 참으로 아무렇
지도 않게. 그리고 보란 듯이 사나이 앞에 눈부시게 서 있었다. 유방을 감싸고 있는 망사를
통해 내비치고 있는 핑크빛 젖꼭지는 한층 더 사나이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있었다. 비너
스 언덕의 가장 그윽한 부분은 그녀의 곡선을 나타내 주는 거들과 허리에 맨 끈으로 살짝
가리워져 있을 뿐으로 그 부분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듯했다. 종아리와 허벅지는 무릎을 경
계로 하여 미끈하게 뻗어 있었다. 보란은 난생 처음 스트립 쇼를 구경하는 애송이처럼 그만
침을 삼키고 말았다. 금발의 여인은 점수라도 매기는 것처럼 보란을 훑어보았다. 눈앞에 서
있는 사나이는 분명 그녀를 만족시킨 듯했다. 그녀가 숄의 앞자락을 걷어올리자 그 사이로
부풀어 터질 것 같은 하얀 유방이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그 풍만한 젖무덤 위에 붉게 상기
된 젖꼭지가 보란을 향해 퉁기듯이 흔들지자 의지가 강한 그도 도저히 거기에서 눈을 뗄 수
가 없었다. " 나와 함께 이층에서 기다려도 되지 않아요?" 금발의 여인이 말했다. 그녀는 보
란이 지금 어떠한 상태에 빠져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 괜찮아요. 레오는 언제든지 한 시
간은 걸리는 걸요. 우리 같이 이층으로 올라가서 뭐 좀 마시지 않겠어요?" 그녀가 낮은 목
소리로 되풀이해 말했다. "미안해…." 보란이 말했다. 그는 이것이 바로 밀회라는 것이 아닐
까 하고 생각했다. "여기서 기다려야만 해." 하지만 여인은 몸을 밀착시켜 왔다. 그러자 향
긋한 여인의 체취가 보란 속에 있는 남성을 강하게 자극시켰다. 그의 두 손은 자기도 모르
는 사이에 여인의 몸으로 뻗고 있었다. 그의 손은 여인의 부드러운 살결에 닿는 순간 감전
이라도 된 것처럼 당겨졌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는 허리를 높이 올리며 보란의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그는 언제나 적어도 한 시간은 걸려요. 우리는 5분이면 끝낼수
있지 않아요?" 보란은 정중히 말했다. "고맙긴 하지만 안 되겠어." 그녀는 보란의 눈 속에서
그 말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듯이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눈을 빛내며 이렇게
물었다. "당신. 뭘 생각하고 있죠?" 여인의 콧방울은 화가 난 듯이 부풀어 있었다. "거기에
화가 나 있는 괴물이 있잖아요? 당신은 그것을 내 몸속에 넣고 싶어 죽을 지경이면서." "당
신 말은 사실이야." 여인은 짧게 웃고는 엉덩이를 흔들면서 보란에게로 다가가 그를 두 팔
로 힘껏 껴안았다. "당신. 그 기분 알고 있어요?" "물론 알고 있지." 이렇게 말하고 보란은
힘없이 웃었다. "그렇게 화내지는 말아. 금발 아가씨. 지금은 다만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아
니란 말야. 나를 좀 풀어줘. 제발 나를 혼자 있게 해 달라구." 그러자 여인의 눈이 새로운
경의를 나타내며 보란을 쳐다보았다. 그때 어디선가 스위치 소리가 나고 스피커의 음향이
정적을 깨뜨리더니 곧 레오 터린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스피커는 방 안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이었다. " 좋아. 중사!" 터린의 목소리였다. " 또 한 점 올렸군. 도대체 자네는 어떻
게 된 사람인가? 감정도 없는 목석이란 말인가? 어때. 그 테스트는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터린은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보란. 이제 그 달아오른 금발 머리를 안아 주게. 그
녀의 풍만한 육체를 이층으로 운반해 마음껏 즐기라구! 들리나?" "잘 들리오. 레오." 보란이
조용히 말했다. 그는 스피커가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폐쇄 회로 텔레비젼이야. 나중에 자
네에게 보여 주지. 미치, 내 친구를 잘 대접해 주게. 듣고 있나?" 여인은 즐거운 듯이 웃으
며 대답했다. "물론 듣고 있어요. 레오!" "그리고 이것으로 너는 내게 이 집에서 또 하나 빚
을 진 거야." 터린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나서 스피커의 소리가 끊어 졌다. "그것 봐
요. 당신 덕분에 내가 빚을 졌잖아요?" 금발 머리의 여자는 원망스럽다는 듯이 보란을 보고
웃고는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자. 우리 같이 어디 좋은 장소를 찾아보기로 해요. 지금도
아직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아니라고 말하겠어요?" "아니야. 지금은 꼭 좋은 때야." 보란이
동의하자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카펫이 깔린 계단으로 올라갔다. 목석 보란은 다음 번의 어
떤 테스트도 잘 패스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금발의 유혹자를 따라 굽어진
계단을 올라갔다. 넓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 홀을 지나 커다란 침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매우 사치스러운 방이었다. 지붕 있는 침대가 놓여 있었으며 바닥에는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었고 우아한 가구들이 방을 장식하고 있었다. 보란은 조용히 휘파람을 불었다. "방이 어때
요. 마음에 들어요?" 금발의 여인이 그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보란의 허리 아
래를 훑고 있었다. "어떤 식을 원하세요?" 그녀가 보란에게로 다가서며 물었다. "뭐라구?"
보란이 여인의 부드러운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앉아서 하는 것. 서서 하는 것. 누워서
하는 것 중에서 당신은 어떤 것을 더 좋아해요?" 보란은 잠자코 싱긋 웃으면서 그녀의 허리
끈을 풀렀다. 그리고 엉덩이에 걸쳐져 있는 숄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받치고는 한 걸음 물러서면서 감상하듯이 여인의 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미소를 띠
며 우아하게 양팔을 벌리고 발끝으로 천천히 돌았다. 그리고는 아래층에서 해보인 것처럼
허리를 흔들며 몸을 꼬았다. "당신은 무대에 서본 적이 있지?" 보란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짧게 웃고는 팔을 내리고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마 벌거벗은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또 한 번 웃고는 침대로 다가가 조금 어색하게 보
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침대 커버를 걷어 내리고 비단으로 된 시트가 깔려 있는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보란은 천천히 옷을 벗었다. 여인은 누워서 사나이가 옷을 벗는 것을
만족스러운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보란은 벗은 옷을 조심스럽게 의자 등걸이에 걸고 침대
로 다가가 냉소를 띠며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침대 위의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그에
게 미소로 답하고 자기 곁의 침대를 두들겼다. 보란은 그녀의 손을 잡아 그녀를 침대에서
안아 일으켰다. "보이고 싶지? 일어서서 움직여 봐." "어머 아니에요. 나는 다만…." " 춤
을 춰봐." 그녀는 이류 무대의 여왕이라도 된 듯이 허리를 비비 꼬며 춤을 추었다. 보란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허리에 손을 얹고 그녀의 춤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당신. 이런 일을 시키지 않으면 실감이 나지 않아요? 아니면 공연히 나를 애먹이려
고 그러는 건가요?" 그녀는 춤을 멈추고는 숨을 거칠게 몰아 쉬었다. 그녀의 눈이 애타게
호소하는 듯 보란을 바라보았다. 그는 웃으며 억세게 그녀을 껴안았다. 두 사람의 살이 머리
에서 발끝까지 밀착되자 보란의 몸이 어쩔 수 없이 크게 떨렸다. "당신도 테스트에 합격한
것으로 치지." 그가 웃으면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자. 당신은 어떤 식을 원하지?"
그녀가 깔깔대면서 그에게 기대었다. "우선은 똑바로 누워서 천천히 숨을 쉬고 싶어요." "좋
아. 적어도 당신의 쇼윈도식 껍질은 떨어졌으니까." "뭐라구요?" 그녀는 침대에 몸을 던지듯
이 누우며 두 손으로 유방을 감싸고 날씬한 두 다리를 천천히 꼬았다. "그처럼 아양과 교태
를 부릴 필요는 없어!" 보란이 말했다. "당신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해보이나?" "아무도 싫다
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그녀가 분명히 말했다. 보란은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한쪽 팔
로 욕정에 불타는 여체를 안아 뜨거운 입술로 온몸을 핥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은 그녀의
터질 듯한 유방을 애무하다가 이윽고 목을 지나 뜨거운 입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기분이
좋아요?" 잠시 후 여인이 숨을 헐떡이기 시작하며 사나이의 등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내려
갔다. 보란은 그녀의 한쪽 다리를 굽히고는 두 손으로 허벅지를 애무하면서 무릎에 키스했
다. "당신. 다리를 좋아해요?" 그녀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당신 다리를 좋아하지.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틀려. 나는 당신이 잘 느끼는 곳을 찾고 있어." "어머. 나는
온몸의 어느 곳에서나 잘 느껴요." 그녀가 재빨리 말했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엉
덩이를 어루만졌다. 그의 손이 허벅지의 맨 위쪽에 닿자 그녀의 구부리고 있던 다리가 경련
을 일으키듯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쁜 숨을 몰아 쉬는 것이었다. 보란이
싱긋 웃었다. "정말로 더욱 민감한 곳도 있나 봐요." 그녀는 시인하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봐요. 당신 나와 함께 침대에 눕지 않을래요?" 대답 대신 그는 여인을 안아 엎드리게 한
후 그녀의 등을 따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예민한 부분을 더듬어 나가자
여자는 다시 숨을 몰아 쉬었다. "어서요…." 그녀가 못 참겠다는 듯이 그에게 말했다. "어
서!" 그녀는 갑자기 일어나서 보란의 목을 껴안기 무섭게 입술을 찾았다. 그들은 꼭 껴안은
채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서로의 다리를 휘감으면서 키스를 계속했다. 그녀는 율동적으로
엉덩이를 움직이면서 몸을 밀착시켰다. 뜨거운 입술에서 입을 떼며 보란이 말했다. "그래.
계속해! 침대 위에서는 아주 적당한 운동인 것 같군." "그래요. 교수님!" 그녀가 숨을 헐떡이
며 말했다. "빨리 강의로 들어가요." 그녀는 다시 그의 입술을 빨았다. 풍만한 유방이 그의
가슴에 물결처럼 밀어닥쳤다.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의 목을 껴안고 있던
손을 내려 두 사람의 몸 사이에 밀어 넣으며 보란의 그것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보란은 몸
을 피하며 말했다. "아직 부족한 것 같은데?" "뭐라구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된다는 거예
요? 지금 나는 미칠 지경이라구요." 그러자 그는 그녀의 옆에 누워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뜨거운 혀로 햝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욱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며 몸을 비틀면서 그에게로
밀어 붙였다. 이윽고 그는 여인을 다시 침대에 똑바로 누이고는 일어서서 그녀를 내려다보
았다. 그녀는 애원했다. "어서요. 제발 부탁이에요." 보란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여자
가 되었군." 이렇게 말하며 그는 그녀 위에 덮쳤다. 그녀는 허리를 높이 올리면서 그를 맞았
다. 그녀의 두 다리와 두 팔은 세찬 힘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좋아요. 좋아요." 하면 여자는
중얼거렸다. 그녀의 허리는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심하게 파도 쳤다. 잠시 후 그녀는 나른
한 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여자예요." "물론이지. 내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나?" 보란이 지
친 듯이 말했다. 테스트는 모두 오케이였다.
8. 두 번째 방문객
8월 31일 새벽녘에 리버티에 있는 맥 보란의 아파트에 생각지도 않았던 손님이 찾아왔다.
그 방문객은 다름 아닌 형사부장 알 웨더비였다. 철두 철미한 경관의 눈이 재빠르게 사치스
런 방 안의 구석구석을 살펴본 뒤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방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것
은 친구로서의 방문으로 생각해 주게" 경관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새벽 5시라는
건 친구의 방문치고는 너무 이르지 않소?" "진짜 우정은 시간 같은 걸 따지지 않아. 좀 흥
미 있는 정보가 있어서 들렀다네." 웨더비가 조용히 말했다. 보란은 형사부장을 거실 한가운
데 세워둔 채로 부엌으로 가서 물주전자를 불 위에 올려놓고 선반에서 컵 두 개와 커피병을
꺼냈다. 그리고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방을 향해 소리쳤다. "이리 오지 않겠소?" 형사의 거
대한 몸이 좁은 부엌으로 들어섰다. 보란은 테이블 옆에 있는 높고 둥근 의자에 앉아 있었
다. "조금 있으면 물이 끊을 거요. 무슨 정보가 있다는 거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보원으로터 입수한 거야." 웨더비는 둥근 의자의 끝에 걸터앉아 희끄무레하게 밝아 오는
새벽빛 속에서 보란의 얼굴을 지켜보며 말했다. "살인 청부업자가 고용되었어. 자네를 죽이
기 위해서 말이야. 보란." 보란은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살인 계약이지." 경관이 설명했다. "누군가가 자네를 죽이려 하고 있는 겨야. 이
제 알겠나?" "어째서 아침에는 물이 천천히 끓을까?" 못 알아듣겠나?" "아, 아니오." 보란
은 일어나 스토브 옆으로 가서 손가락을 주전자에 대보았다. 그리고는 이른 아침의 방문객
을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쏘아 보았다." "겁주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그가 조용히 물었
다. 웨더비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건 진짜란 말이야, 보란. 나는 자네를 감
시하고 있어. 자네가 그들한테 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그놈들도 벌써 알고 있어. 설마
자네는 그 녀석들이 그렇게 바보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보란은 커피 병에서 두 잔 분의
커피를 떠낸 후 병을 웨더비에게 내밀었다. "당신 지금 마태들 얘기를 하는 거요?" 보란이
물었다. 그는 끓는 주전자를 내려 자기 잔과 손님 잔에 물을 부었다. "그렇게 똑똑한 놈들
같지는 않던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 손에 죽었어. 그들도 처음에는 자네처럼 생
각했지." 웨더비가 말했다. 그는 커피를 저은 다음 맛을 즐기듯 천천히 마셨다. "보란, 놈들
은 자네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했어." 웨더비는 후후 커피를 불며 말했다. "그 녀석들은 이미
자네의 정체를 알고 있어. 그러니까 당연히 그들에게 접근한 이유도 알고 있단 말야. 그래서
살인 청부업자가 고용된 거야. 자네를 죽이기 위해서!" "그럼 날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요!"
보란이 소리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웨더비가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도망가게!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리고 아주 멀리! 동남아같은 곳으로 말이네." "나는 어느 곳으로도
도망 가지 않소. 그 살인 계약이 맺어진 것은 언제죠?" 보란이 단호하게 말했다. 웨더비는
그의 손목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내 정보 제공자의 이야기가 정확하다면 아마 네 시간 전
쯤일 거야." "살인업자는 어느 정도의 실력자들일까요?" 보란은 어께를 움츠리며 말했다.
"그들이 자네를 죽이는 일은 누워서 떡먹기일 거야. 내가 듣기로는 보수가 단 5000달러니까
말이네." 그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계속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보란. 나는 여기 오면
서 벌써 자네가 피살되지 않았나 걱정하고 있었네." "왜 그렇게 속단을 내렸죠?" 보란은 의
심스러운 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요즘 쭉 그 녀석들 코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소.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을텐데. 어째서 그런 숨박
꼭질 같은 짓을 하는 것일까요?" "자네 쪽은 어떤가?" "무슨 말이오?:" 웨더비가 싱긋 웃었
다. "자네는 왜 해치우지 않았지? 목적은 그들을 죽이는 일 아닌가? 거기에 대해서 부인이
나 변명 따윈 하지 말게. 자네로부터 그것을 듣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야. 문제는 방법인데
그것은 마피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야. 청부업자의 계약에 의한 살인. 그것이 그들의 방법
이지. 그는 콧소리를 내며 커피잔을 비웠다. "이 커피는 맛이 좋지 않은데? 물이 충분히 끓
지 않았군. 그런데......" 그는 둥근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뒷짐을 지고 단호하게 말했
다. 그는 둥근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뒷짐을 지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분명히 자
네에게 말했네. 이것이 나의 임무이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네. 만약 자네가 보
호 감시를 원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보란은 그런 제안은 말도 안 된다는 투로 말했다.
" 흥! 내가 그들을 먼저 죽인다면 법률상 내 입장은 어떻게 되죠?" "체포되면 일급 살인죄
로 기소되겠지." 웨더비는 조용히 대답하고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보란은 그를 배웅해 주려
고 문까지 따라나서며 물었다. "그것은 정당 방위가 아닌가요?" "자네가 법정에서 입증할
수 있어야 하네." 웨더비의 말투는 무거운 것이었다. 그는 문 앞에 이르자 보란을 돌아보며
말했다. "알겠나? 자네에게 이것이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자네를
동정하네. 그러나 그건 순전히 개인적인 감정이야. 자네가 앞으로도 이 거리에서 그 손가락
으로 방아쇠를 당긴다면 난 가만 있지 않겠네. 자넨 지금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거야. 나
는 무엇보다도 자네가 지난 8월 22일의 범행을 시인하고 경찰에 자네의 신병을 밭길 것을
권하네. 좋은 변호사라면 그것을 순간적인 정신 착란으로 돌려서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걸
세. 그게 싫다면 난 도망치라고 말하겠네. 오직 달아나는 길 뿐이야. 자네는 그들과 맞설 수
없어. 보란, 그들과 싸울 수는 없어."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때,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보란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고맙소, 웨더비." 그리고 그는 문을 닫았다.
곧장 욕실로 가서 면도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터린에게서 받았던 속사
용의 숄더 홀스터와 권총을 점검하여 몸에 건 다음 실탄 네 클립을 양쪽 주머니에 나눠 넣
었다. 그는 침실의 가구를 옮겨 놓고 침대의 머리 쪽을 동쪽 창문 쪽으로 붙이고 블라인드
를 열어 강한 햇빛이 들어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담요를 말아 침대 위에 놓은 뒤 그 위에
시트를 덮었다. 그리고는 거실로 나와 블라인드를 닫고 불을 꺼서 거실 안을 캄캄하게 해놓
았다. 그는 다시 침실로 가서 커다란 옷장 안에 의자를 놓고 안에 들어가 앉은 다음 작은
틈만을 남기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지구의 저쪽, 월남의 습지에서 익힌 인내와 침착성으
로 기다리기 시작했다. 7시 몇 분 전, 보란의 아파트에 두 번째 방문객이 나타났다 .이번의
방문객은 두 사람이었으며 그들은 벨을 누르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 동안 보란의 아파트 문
에 귀를 대보고는 주머니에서 잭나이프와 송곳을 꺼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은 쉽게 열렸
다. 두 사람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고 문은 소리없이 닫혔다. 그들은 잠시 동안 어둠에 익
숙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아직 자고 있군!" 한 사나이가 속삭였다. 키가 큰 사나이가 소음
기가 부착된 권총을 들어올렸다. 또 한 사나이가 흰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었다. "실
수 없도록 해. 굉장히 빠른 녀석이래." 키가 큰 사나이가 침실 문을 천천히 밀었다. 그리고
는 문을 활짝 열면서 안으로 뛰어들었고 그 뒤를 한 명이 바로 뒤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순
간적으로 창문에서 들어오는 강한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으나 키가 큰 사나이는 아랑곳 하
지 않고 침대의 머리부분을 향해 세 발을 쏘아 댔다. 소음기 때문에 둔탁한 소리가 났다. 바
로 그때 그들의 오른쪽에서 문이 밀리는 소리가 났다. "이쪽이다. 찰리!" 두 사나이가 동시
에 돌아보았다. 그 순간 주황색 빛줄기가 그들을 향해 날아왔고 이어 귀청이 떨어질 듯한
강한 총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권총을 들고 있던 사나이의 목에서 붉은 핏줄기가 치솟았
다. 다른 한 사나이는 그의 재킷 안쪽에 손을 댄 채 동작을 멈추고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가 바닥에 쓰러졌다. 또 한발이 키가 큰 사나이의 얼굴을 뚫고 나갔다. 사나이는 그의 동료
위에 쓰러졌다. 그의 손에는 쓸모 없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맥 보란은 옷장에서 나와 잠
깐 동안 차가운 눈빛으로 두 구의 시체를 확인하고는 재빨리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그는 엘
리베이터로 지하층까지 내려갔다. 그리고는 서둘러 비상구의 계단을 타고 좁은 복도를 지나
맞은편 건물로 뛰어가서는 열쇠로 비상구를 열고 그 안으로 사라졌다. 1분도 채 못 돼서 그
는 그 건물 안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스 레인지 위에 커피 물을 올려놓고
방 안의 긴 의자에 쿠션을 들어내고 장총을 꺼냈다. 총의 윗부분에는 차가운 느낌을 주는
고성능 스코프가 달려 있었다. 맥 보란은 익숙한 솜씨로 총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런 놈들에게 당할 수야 없지." 우수한 저격수 보란은 어떠한 공격 계획에도 반드시 퇴각의
길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건 후퇴가 아니야. 다만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이동 작전이지." 그는 창문으로 걸어가 밑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사이렌 소리가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들려 오고 있었다. 아직 계약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마태들이 안다면 실망
이 크겠지. 형사부장 웨더비가 이 소식을 듣는다면 그는 어떨까 하고 보란은 생각했다. 맥
보란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모두 그의 뒤를 뜻을 것이다. 경
찰, 마피아, 또 고용된 살인청부업자들, 아마 온 세계가 그를 쫓아올 것이다. 보란은 몸을 떨
었다. 공포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나는 극복할 수 있다>라고 그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그
는 전쟁터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마다 수없이 이 말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렇게 완전히 혼자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공포의 감정을 철저히
이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마태들을 공포의 밑바닥으로 몰아붙여야 한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
고 도망치게 만들어 내가 갖는 공포보다 더 큰 공포를 그들에게 안겨 줘야 한다. 그러나 경
찰은 어떻게 해야 되나? 경찰은 직접 상대를 해선 안 된다. 그들은 피해야만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들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길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란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마 길어야 며칠일 것이다. 그 며칠 내로 보란은 그가 해야 할 일들을 해내야
만 했다. 마피아를 공포 속으로 몰아 넣어 도망가게 만들고 경찰을 피해야만 하고, 자신을
공포로부터 지켜야 한다. 그 모든 일을 며칠 안에 해낼 수 있을까? 그는 말없이 444구경총
신을 어루만졌다. 하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그것은 당연한 거이다. 보란은 이렇게 자문 자
답을 하는 동안에 한 가지 진실을 깨달았다. 그는 단순한 복수심에서 이 일을 시작했었다.
그는 지금 그 진실을 정면에서 마주 볼 수가 있었다. 강한 의협심, 억제하기 싫은 분노, 혼
자 싸우려는 각오, 이 세 가지가 맥 보란을 복수로 몰아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복수
는 더 이상 목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기 방어도 아니다. 보란은 또 하나의 진실을 깨달
았다. 그는 더 이상 그들을 미워하고 있지 않았다. 터린이나, 플래스키, 시모어와 같은 마태
들을 그는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서 그들에 대한 증오도 달라졌다. 지금의 그는 월남
에서의 적을 대할 때와 같은 느낌으로 그들을 상대하려는 것이다. 보란과 적 사이에는 개인
적인 관련은 아무 것도 없었다. 미움도 이해 관계도 없는 것이다. 인생은 다만 카우보이와
인디언의 싸움의 유물인 것이다. 좋은 자도 있고 나쁜 자도 있으며 나쁜 자는 결국 죽어야
만 하는 것이다. 맥 보란은 자신이 성스러운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선은 악을 이긴다. 이것이 명제이고 또한 이것이 동기인 것이다. 맥 보란은 그것
이상으로 의지해야 할 더 좋은 동기를 찾지 못했다. 동기란 의지하는 바탕이 되어야 하며
그것 때문에 죽어서는 안된다. 죽음으로서 승리를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에게 있어
서 그것은 분명한 것이었다. 승리는 악의 멸망에 의해서만 얻어져야 한다. 맥 보란은 아무
감정도 없이 그 싸움에 몸을 던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피아는 악이다. 그러므로 마피
아는 섬멸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동기였다.
9. 협박.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 육중해 보이는 검은 세단이 교외에 있는 저택의 철문을 천천히
미끄러지듯 들어가 길을 가로질러 달리다가 길의 돌출 부분에 잠깐 앞바퀴를 세우고 멈추었
다. 그 세단을 운전하고 온 자는 정원에 있는 잡역부 차림의 젊은 사나이에게 가볍게 눈짓
을 하고는 파인 체스터의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는 차고 바로 옆에
다 차를 세우고는 건물의 옆문을 통해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 바로 클럽 룸으로
가서 그의 출현을 알리는 차임벨을 눌렀다. 조금 있다가 키가 크고 붉은 머리의 여인이 나
타났다. 그녀는 전과 마찬가지로 몸에 꼭 붙는 실크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그를 본 순간
그녀의 예쁜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주, 중사님.....당신이 어떻게.....?" 그녀는 그의 뒤에
서 또 다른 사람의 존재를 찾는 듯 겁에 질린 눈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어떻게 이곳에 나
타났느냐는 건가?" 보란이 웃으면서 말했다. 직업적인 미소가 곧 그녀의 얼굴에 나타났다.
그녀는 웃으면서 사나이에게 다가섰다. "당신을 악마라고 미치가 말하더군요." 그녀가 불안
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쨌든 당신은 나를 안으러 온 거죠? 좋아요!" 그녀는 팔을 앞으
로 뻗으며 그의 목에다 두 손을 감으려 했다. 그는 뒤로 물러서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넌 내가 나타난 이유를 잘 알고 있지!" "무얼 원하는 거죠?" 그녀가 두려움에 떨면서 물었
다. "집 안에 있는 여자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 그들이 통닭구이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면
말이야." 그녀는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집안에 불이 났
다는 건가요?" "지금부터 불이 나는 거니까 여자들을 밖으로 내보내. 어서!" 순간 여자의 눈
에 분노의 빛이 서렸으나 보란의 시선에 눌려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재빨리 문 옆에 있
는 작은 책상으로 달려가 서랍을 열고는 안의 것을 꺼내려 했다. 보란은 소리없이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그는 그녀를 거칠게 밀어젖혔다. 보란이 여자로부터 뺏은 권총의 실탄 클립
을 빼는 동안 그녀는 천천히 일어서서 벗겨진 손목을 실크 바지에 비비면서 보란을 노려보
았다. "서두르는 게 좋아." 보란이 부드럽게 말했다. "30초 뒤에 이곳에 불을 지를 테니까
여자들을 뒤에 있는 대피소로 데리고 나가!" 그는 자동 권총을 흔들며 나가라는 시늉을 해
보이고는 신문을 집어들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리다는 숨을 삼키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
다. 보란은 타고 있는 신문을 마루에 던지고 창문의 커튼 아래에 또다시 불을 붙였다. 일순
간에 클럽 룸은 불바다가 되었다. 보란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여유 있게 밖으로 나와
차를 타고 정문으로 차를 몰았다. "불이 났소!" 그가 정원사에게 말했다. 그 남자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고는 집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불타고 있는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낡
은 건물이라서 빨리 타겠군!" 보란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싱긋 웃었다. 그는 정문을 빠져
나와 담을 따라 나 있는 도로를 달렸다. 약 100야드쯤 달린 후 그는 차를 조심스럽게 담에
붙여 세우고는 엔진을 껐다. 그는 뒷좌석에서 444구경을 집어들고 훌쩍 담을 뛰어넘어 소리
없이 담 안쪽으로 내려섰다. 조용히 웃으면서 그는 뜰을 가로질러 집과 도로가 잘 내려다보
이는 약간 높은 동산으로 올라갔다. 꼭대기에 도착한 그는 땅바닥에 엎드려 그 집을 감시하
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의 대부분이 알몸이었다. 보
란은 한눈으로 리다의 화려한 녹색 옷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가 라이플의 스코프로 들여다
보니 리다가 화가 나 미쳐 날뛰는 모습이 보였다. 보란은 미소 지었다. 리다는 검거될 것이
다. 그 낡은 건물은 벌써 불타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정원사를 가장한 경비원들이 한 손에
커다란 리볼버를 끌어쥐고 고함을 지르면서 여자들 사이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멀리
서 들리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에 보란은 정신을 차렸다. 다음 순간 소방 주임의 차가 아
스팔트 위에 날 듯이 나타나 잔디밭을 한 바퀴 돌아 입구 바로 안쪽에 멈춰 섰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차에서 뛰어내려 바로 뒤에 달려온 사다리 차에 무엇인가 간단하 지시를 내렸
다. 그가 뒤로 한 결음 물러서자 사다리 차는 집 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보란은 또 한 번
싱긋 웃었다. 소화 작업 같은 것은 안 해도 된다고 말했겠지. 호스를 끌어내리기도 전에 이
집에 완전히 타버릴 것이다. 리다와 여자들은 트럭 주위에 모여 있었다.. 소방수들은 불타고
있는 집보다도 여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것 같았다. 소방 주임은 뒤에 달려온
또 한 대의 소방차를 돌려보내고는 그의 차에 올라타고 집 쪽으로 향했다. 보란은 미소를
띤 채 기다렸다. 순간 불 속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아무도 차고에서 차를 끌어내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란은 생각했다. 거의가 알몸인 여자들은 불안한 듯이 움직이기 시
작했다. 나이트 가운을 입은 젊은 여자 한 명이 맨발로 정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보란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젊은 여자들이 이곳에 이렇게 많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라는 질문이 쏟아질 것이 틀림없었다. 경찰차 한 대가 달아나려는 여자를
싣고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로 다가갔다. 보란은 리다가 형사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보
란은 스코프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리다와 그 형사는 분명히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형사는 리다의 와 그 형사는 분명히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형사는 리다와
무엇인가를 주고 받으면서 계속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소방수들은 다 타버린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 여자들의 대부분은 잔디밭에 앉아 있었으며, 리다와 다른 두 여
자는 경찰차에 타고 있었다. 소방 주임은 순찰차에 기대어 젊은 여자들을 정신없이 바라보
고 있었다. 이때 한 대의 리무진이 정문으로 들어오듯이 규칙대로 길 도중에 있는 돌출 부
분에 앞바퀴를 얹고 멈춰 섰다. 터린은 앞좌석 운전사 옆에 앉아 있었다. 운전하고 있는 남
자는 시모어의 저택에 있는 보디가드 중의 한 명이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얼
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보란은 차가 그 돌출 부분에 멈춰 섰을 때 차의 앞바귀 둘을 꿰뚫
어 놓았다. 그리고는 잇달아 앞좌석의 두 사나이들 사이에 다 한 발 쏘았다. 그리고 자동차
의 지붕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서 보란은 터린의 놀라움과 공포에 가득 찬 얼굴이 스코프
의 시야를 가로지르는 것을 보았다. 뒷좌석의 문이 활짝 열리고 몸집이 큰 사내가 나왔다.
그는 피가 흐르는 관자놀이 부근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보란은 혀를 찼다. 최초의 공격에
서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을 작정이었다. 요란한 라이플 소리는 잔디밭 위에서 멀
리까지 울려 퍼졌다. 놀란 경관이 그의 차에서 뛰어나와 불타고 있는 건물을 향해 뛰어갔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은 저택을 일순간에 삼켜 버린 치솟는 불길에 집중되었다. 보
란은 다시 정문 가까이에 있는 자동차로 총구를 돌렸다. 운전하던 사나이는 찌부러진 타이
어로 차를 움직여 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보란은 보닛 위의 표적을 겨낭하고는 재빨리 두
발을 쏘았다. 보닛 후드가 퉁겨 올랐다가 내려앉았다. 그 틈새에서 뱀의 혓바닥처럼 불길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자동차의 문이 일제히 열리면서 퉁겨 나오듯이 사나이들이 굴러 떨어
졌다. 그들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무 그늘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었다. 보란은 그것을 기다
리고 있었다. 그는 444구경의 총탄을 한 사나이의 다리에 쏘아 넣고는 재빨리 순찰차를 향
해 총구를 돌렸다. 이때 한 경관이 권총을 뽑아 들고 문 옆에서 불타고 있는 자동차를 향해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불이 난 곳의 혼란 때문에 보란은 유리했다. 아직까지는 총탄과 그가
있는 등성이를 연결지어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란은 혼란을 이용할 수 있는 만
큼 최대한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가 순찰차에 두 발을 쏘아 넣자 펑 소리를 내며 불이
붙었다. 그러자 여자들은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소방 주임의 자동차도 바퀴
가 납작하게 되어 버렸다. 보란은 라이플을 어깨에 메고 산등성이의 뒤쪽으로 미끄러져 내
려갔다. 그는 이것으로 충분히 위협의 효과를 올렸다고 생각했다. 그는 담을 넘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 자동차 지붕위로 뛰어내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집어 넣고 차를 회전시
켜 수라장이 된 그곳을 유유히 빠져 나갔다. 경관들이 한 손에 총을 들고 엉망이 된 리무진
을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리무진에 타고 있던 사나이들의 보습은 보이지 않
았다. 그리고 미리 대기시켰던 몇 대의 자동차가 길가에 줄지어 서 있었다. 호기심 많은 구
경꾼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보란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그곳에서
약8마일 가량 떨어진, 역시 교외에 있는 레오 터린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약 20분
후인 2시 정각에 보란은 터린의 집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다. 30세쯤 되어 보이는 검은 머리
의 아름다운 여인이 그의 벨소리를 듣고 나왔다. 보란이 자기 소개를 하자 그녀는 친절한
미소로 답하고는 그를 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문 밖에 서서 용무를 전달하는 것이
더 좋다며 사양했다. "그럼 내 이름은 알고 계시겠군요?" "물론이에요. 레오가 당신은 아주
우수한 분이라고 말했어요. 보란 씨. 잠깐 들어오시지 않겠어요? 남편이 어디 가셨는지 저
는....." "아닙니다. 레오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보란이 급히 말했다. "사실은 조금 전
에 그와 막 헤어져 오는 길입니다. 그에게 전할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기에 마침 이 근처를
지나는 길이고, 또 당신에게 전해야 되겠기에 들른 겁니다." "메모를 해야 합니까?" 그녀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간단한 것이기 때문에." 보란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에게 이렇게 전해 주십시오. 목석이 계약을 깨버렸다고요. 오늘 오후 불이 난 곳에서 그
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하루나 이틀 더 형편을 보기로 한다구요."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
니다만...." 그녀가 이상하다는 듯이 보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리고 부인이나 아
이들을 해치울 수도 있었다고 말해 주십시오, 이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절대로 잊지 마세
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어두워졌다. "보란 씨, 저는..." 그녀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보
란을 쳐다보았다. "일종의 암호입니다. 레오는 그 듯을 알 것입니다. " "아, 그러세요?" 그녀
가 대답했다. 보란은 뒤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뒤따라 오며 물었다. "저
어, 보란 씨, 대단히 실례지만 저의 남편과는 어떤 관계가 되시는지요?" 느는 유쾌한 듯이
웃으며 그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가 당신에게 얘기 안 하던가요? 당신은 남편이 무슨 사
업을 하는지 모르십니까, 터린 부인?"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의혹의 짙은 구름이 순
간적으로 그녀의 밝은 눈을 스쳤다. 보란은 지금까지 몇 번인가 그러한 의혹이 그녀의 눈을
흐리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여러 가지 일에 관계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
만..." "내가 그 중의 어느 관계라고 생각하십니까?" 보란이 그녀를 대신해서 질문을 끝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의문과 당혹이 뒤섞여 있었다. 보란은 그녀에게
그것을 말하기가 괴로웠다. 그녀는 매우 착한 여자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는 그의 호위병입니다." "무엇이라고요?" 보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의 재킷을 열고 홀스터에 달려 있는 32구경을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당신의 남편이
마피아의 간부라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그가 조용히 말했다. "뭐라고요?" 그녀는 거의 고
함을 지를 뻔했다. 그녀의 얼굴은 놀라움과 공포로 인하여 일그러졌다. "터린 부인, 당신에
게도 그것을 알 만한 라틴의 피가 흐르고 있을 텐데요?" 보란이 진심으로 말했다. 그는 뒤
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와 그의 차에 올랐다 그의 차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녀
는 아직 그 자리에 서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여자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고 비열한 무뢰한인 것처럼 여겨졌다. 가냘픈 여인을
협박이나 하는 비열한 인간... 보란은 한숨을 쉬고 검은 세단을 월트 시모어의 저택 쪽으로
돌렸다. 이것은 싸움인 것이다. 내일이면 저 아름다운 여인도 과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오
늘밤 그녀는 그녀의 손을 잡고 떨고 있는 그녀의 남편을 보게 될 것이다. 성스러운 전쟁에
는 도덕이라는 것이 없다. 다만 최선과 최악의 싸움뿐인 것이다. 전쟁이 한창일 때 선이 악
으로 변했다는 것은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투는 모든 것을 악으로 바꿔 놓는다. 삶,
그 자체가 전화 속에서는 사악한 것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에 그는 과거
의 생각 때문에 얼마나 많이 괴로워했는가? 선악의 신화 같은 개념에 몰두했던 자신을 책망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마피아는 악이다. 그러므로 마피아에 대항하는 모든 것은 선
인 것이다. 전선은 뚜렷하게 그어져 있다. 전장에서의 윤리란 잘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용
감히 일어서서 때가 오면 실수 없이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것이 병사의 도덕이다. 맥
보란은 최선의 병사였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만약에 길이 복잡하지 않다면 시모어의 집에
3시까지는 도착할 수 있다. 이 협박은 재미있게 될 것 같았다. 이번에는 죽는 사람이 나올지
도 모른다. 그리고 이 사건의 파문은 조직 내부의 구석구석까지 뒤흔들게 될 것이다. 대 간
부 이외에도 조직의 원로들까지 뒤흔들게 될 것이다.
10.성스러운 전쟁
보란은 시모어의 저택 뒤쪽에 있는 좁은 자갈길에 차를 세우고는 재킷을 벗고 녹색의 작
업복을 입었다. 그는 32구경을 권총집에서 뽑아 바지의 벨트 속에 꽂고 허리에는 배선공들
이 사용하는 도구를 넣은 가죽 벨트를 매었다. 그 속에는 잭나이프와 스패너, 드라이버 등
갖가지 도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작은 가방을 어깨어 메자 준비는 완료되었다. 보란은
차에 머린을 놓아 두고 숲을 가로질러 가서는 삼목으로된 울타리의 판자를 몇 개 떼어내고
쉽사리 시모어의 집 부지로 들어섰다. 시모어는 분명히 마지노 라인의 요새보다도 살아 있
는 인간을 배치한 방위책에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비원들의 대부분이 파인
체스터 소동에 동원되고 없을 것이다. 실제로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비치치 않았다. 그
는 대담하게 정원수를 지나 잔디밭을 걸어갔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는 풀까지 가서
마치 추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으로 수면을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그는 어깨에 멘 가방에서
무슨 봉투를 꺼내더니 그 속에 있던 덩어리를 꺼내어 물 속에 던져 넣었다. 짙은 염료가 금
방 풀의 물을 붉게 물들었다. 그는 풀 사이드의 천막 두 개를 발로 차 물 속에 처넣었다.
그때 하얀 바지에 붉은 재킷을 입은 한 사내가 정원의 끝에서 풀을 향해 뛰어왔다. 사내는
풀과 보란을 번갈아거며 쳐다보는 것이었다. "거기서 뭐하고 있소?" 사나이가 대들 듯이 말
했다. 그리고는 재킷 안쪽으로 손을 넣더니 권총을 꺼냈다. 보란은 권총을 무시하고 태연히
말했다. "당신네 풀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그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경비원에게 등
을 돌리고는 풀 속을 들여다보았다. "이리 와서 당신도 한 번 보라구." 사나이는 보란 옆으
로 다가와서 어리석게도 풀을 들여다보면서 권총으로 수면을 가리켰다. "이거, 아무래도......"
사나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피거품을 쏟았다. 권총은 힘없이 풀 속으로 가라앉았
다. 그 남자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깜짝 놀라 자기의 찢어진 목에다 손을 대고는 그대로 권
총의 뒤를 쫒듯이 물 속으로 떨어졌다. 이미 붉게 물들여지 물 속에서 피거품은 거의 보이
지 않았다. 보란은 한쪽 무릎을 꿇고 피묻은 나이프를 풀 속에서 씻어낸 뒤 심호흡을 하고
는 그것을 칼집에 넣었다. 사나이의 몸은 물 속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았다. 보란은 일어서
서 전화선과 전선을 찾으며 집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절단기를 꺼내 먼저 전선을 자른 후
이어 전화선을 절단해 버렸다. 갑자기 집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뒷문이 열리고
중년의 가정부가 예쁘게 장식된 앞치마에 신경질적으로 손을 닦으며 나왔다. 그녀는 당황한
눈으로 보란을 보고는 화가 나서 외쳤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잠깐 전선을 수리하
고 있는 중이오, 아주머니." 보란은 변명조로 웃으며 말했다. "하필이면 이런 시간에......." 그
녀는 정말로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지금 한창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란 말이에요.
앞으로 얼마나 걸리죠?" 보란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경비원 한 명이 흥분
해서 문 앞에 나타났다. "모조리 나갔군!" 그는 손에 권총을 들고서 화가 나서 말했다. "그
권총은 뭐요?" 보란이 물었다. "권총으로 나를 쏴버리면 전기는 어떻게 고칠 건가요?" 사나
이는 그를 노려보고는 권총을 다시 권총집에 넣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요?" 그가
노골적으로 불평을 하며 보란에게 물었다. "두 사람만 거들어 주면 곧 고칠 수 있을 거요."
사나이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도와 주겠소. 어떻게 하면 되지?" "두 사람이 있어야
되겠는데." 보란이 고집했다. "또 한 명이 밖에 있을 거요" "그에게는 다른 일을 부탁했소."
즉흥적으로 이렇게 대답한 후 보란은 사나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을 이
었다. "두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이 없는 걸 어떻게 해!" 사나이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지금 여기엔 아무도 없단 말야. 그러니 사람이 필요하면 당신이 데리고 오시오" "알았소."
보란은 사나이의 팔을 잡고 그를 풀 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가정부는 집 안으로 되돌
아갔다. "잘하면 우리끼리 할 수 있을 거요. 문제는 풀 쪽에 있소. 저기....." 경비원은 핏빛으
로 물든 풀장을 보자 얼굴빛이 새하얗게 변해서 소리쳤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오?" "전
자 바람으오. 알겠소?" "전자 바람이오. 알겠소?" 보란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풀에서 메인
케이블에 누전이 일어났단 말이오. 이쪽으로 오시오. 내가 보여 주겠소." 그는 풀의 가장자
리로 걸어가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경비원이 천천히 보란의 옆으로 다가왔다. 권총을 쥔
손을 늘어뜨리고 그는 맥 보란의 옆에 섰다. 한 손을 목에 얹고 그 사나이는 믿을 수 없다
는 표정으로 붉은 물과 떠 있는 천막을 바라보았다. "전자란 것은 무서운 작은 악마요." 보
란이 진지하게 덧붙였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원자의 힘이지!" "나는 잘 모르겠는걸." 경
비원이 중얼거렸다. 그의 손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 하였으나 보란의 손이 더 빨랐다.
잭나이프가 반원을 그리며 권총을 쥔 사나이의 손의 정맥과 동맥, 그리고 힘줄을 한꺼번에
끊어 버렸다. 사나이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으나 기다란 나이프는 이미 사나이의 배
에 깊숙이 꽂혀 있었다. 보란은 한 손으로 나이프를 뽑아 들고 다른 한 손을 사나이의 등에
대고 살짝 밀자 검붉은 물은 또 한 명의 손님을 삼켜 버렸다. 보란은 다시 한 번 나이프를
물에 씻으며 "성스러운 전쟁에 도덕이란 없다.!"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집 쪽으로 되돌아
갔다. 가정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왜 아직도 불이 안 들어오죠?" 그녀가 불평을 했다.
"이제 곧 들어올 겁니다. 실례지만 집 안도 좀 봐야 되겠군요. 괜찮겠죠?" 보란이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보란을 안으로 안내했다. 보란은 안으로 들어가 부엌을 들여다보
았다. "이게 무슨 냄새죠?" "냄비가 타고 있나 봐요!" 여인이 놀란 듯이 대답했다. "아니예
요.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군요. 아주머니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어요. 집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게 좋을 거요." 그녀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쪽으로
뛰어갔다. "집 안에 누가 또 있나요?"그녀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보
란은 재빨리 부엌을 빠져 나와 식당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잭나이프를 뽑아 들고
침실로 뛰어다니며 집 안에 있는 모든 매트리스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베어 버렸다. 그 일을
해치우는 데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거실을 지나면서 그는 벽에 걸려 있는 월트 시모어
의 커다란 초상화를 보았다. 그는 그것을 차갑게 바라보고는 32구경을 꺼내어 두 눈을 쏘아
꿰뚫었다. 그리고 탄환을 새로 장진하여 허리에 차고 나와 잔디밭에 서 있는 가정부에게로
갔다. "폭발 소리가 났어요!" 그녀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래요. 아주머니." 보란은 그 이
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옆을 지나갔다. 여자가 그의 뒤를 따라오며 숨이 찬 소리로
물었다. "소방서에 전화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아주머니." 보란이
반사적으로 그녀를 뒤돌아보고 말했다. "아주머니도 이 집 가족인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
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여기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일
자리를 찾는 게 좋을 겁니다. 되도록 빨리!" "왜요?" "왜냐하면 당신의 주인은 오래 살지 못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도 그렇게 전해 주시오!" 보란은 작은 가방의 밑바닥에서 무엇인가
금속으로 된 것을 꺼내더니 그것을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게 뭐죠?" 여인이 놀란 눈
으로 르를 보며 물었다. "그것을 시모어 씨에게 전해 주시오. 그리고 맥 보란이 주더라고
말하세요. 그리고 또 그의 차례가 되면 간단히 해치울 것이라는 말도 전해 주시오. 이것으
로 간단히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로부터 받은 물건을 잠시 살
펴보았다. "우리 아들도 이런 것을 하나 갖고 있어요." 그녀가 멍청히 말했다. "이것은 명사
수에게 주는 배지죠?" "맞아요. 그것을 시모어에게 전해 주고 내가 한 말도 전해 주세요."
"당신 전기 회사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지요?" 그녀는 이제야 뭔가 좀 알겠다는 듯이 말했
다. "네. 아주머니.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내 부탁 잊지 마십시오."
보란은 서 있는 그녀를 남겨 두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담을 뛰어넘어 차로 돌아왔다. 그는
도구와 작업복을 트렁크에 넣고 운전석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조용히 자기의 양손
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걱정 없다고 그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지금은 떨려도 괜찮을 때다. 그는 시동을 걸어 좁은 자갈길을 천천히 달렸다. 지금쯤은 분
명히 대소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제 곧 신문들이 떠들어댈 테고 그러면 경찰은 더욱 압력
을 가해올 것이다. 한 미치광이가 피츠필드의 거리를 휘젓고 다닌다고 신문은 써댈 것이다.
보란은 싱긋 웃음며 언덕을 올라가 포장된 고속도로로 나갔다. 미치광이는 동기를 찾고 있
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마피아의 내부가 지하실에서부터 지붕 꼭대기까지 뒤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약점투성이인가를 보란은 세상에 보여 주었다. 싸
움은 크게 펴져 나갈 . 그러나 싸움은 극히 개인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냉혹히 수행되는 한
편의 살인 계약의 문제가 아니다. 싸움은 감정의 싸움이며 공포와 끊임없는 죽음의 유희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보란의 특기이기도 했다. 그는 전문적으로 그러한 싸움을 해왔었다. 마
태들도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드디어 맥 보란은 마피아의 아성으로 뛰어든 것이
다.
11. 동업자
보란은 공중 전화로 중앙 경찰국에 전화를 걸었다. "웨더비 형사부장을 부탁합니다." 그가
교환수에게 말했다. 잠시 후 귀에 익은 형사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웨더비입니다."
"보란이오." "오. 자네 지금 어디서 전화 걸고 있는가. 보란?" "나를 찾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나는 단지 계약 상품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려 주고 싶었
소." "아, 알겠네. 그런데 자네 그 동안 무척 바빴더군. 그렇지 않았나?" "발칵 뒤집혔소?"
보란이 큰 소리로 웃으며 물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네. 그런데 자네에게 체포 영장이
나왔어. 방화, 폭행, 폭행을 위한 가택 침입, 살인......계속할까?" "아니오. 그것으로 충분하오.
오늘이 끝나기 전에 그것보다 죄목이 더 많아질 거요." 형사의 목소리는 매우 괴로운 듯 떨
려 나왔다. "자네 왜 나에게 전화했지?" "부탁이 하나 있어서요." "오. 자수라도 할 생각인
가? 내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뿐이야. 보호 감시를 해주겠네." 이 말
에 보란은 웃음을 터뜨렸다. "천만의 말씀이오. 내 동생을 병원에서 경찰로 옮겨 달라는 부
탁을 하기 위해서요." "자네 동생은 오늘 아침에 벌써 옮겨 놓았네." "그거 정말 고마운데
요?" 보란은 놀라 말했다. "그럼,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니까." 형사가 말했다. "자넨 이것으
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거네. 이제는 자네 혼자뿐이라구. 알겠나?" "아마 그럴 거요." "이
제 자네는 전세계와 싸우는 거야. 모든 사람이 자넬 뒤쫓고 있어. 군대까지도 말야. 지금까
지 연방 수사국에서 와 있다 갔네." "일찌감치 그들의 힘을 빌리겠단 말이군요?" "아니, 내
가 그들에게 알린 게 아니야. 아마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압력을 넣었겠지. 그들
은 지금 겁을 잔뜩 먹고 있다네." "당신은 왜 내게 전혀 화를 내지 않죠. 웨더비?" "무엇 때
문에 화를 내겠나? 나는 통쾌해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네. 물론 자네에게만 하는 소리지
만. 보란, 사실을 속으로는 자네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많네. 그렇다고 해서 동정
은 기대하지 말게. 법률상의 문제에 관한 한 자네는 그 친구들과 조금도 다를 게 없이 취급
될 테니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해 두지만 말야......아, 잠깐 기다려 주게." 보란은 웨더비가
누군가와 애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수화기를 들고는, "자네 조금
전에 포탈 지구에 갔었나?" 하고 물었다. 그 소리는 약간 냉랭하게 들렸다. "그런 것 같은
데요?" "월트 시모어의 집 근방이지?" "맞는 것 같소." "음, 그렇다면........" 그는 다시 옆사
람과 무슨 말인가를 주과받더니 다시 보란에게 말했다. "이것으로 자네는 일급 살인 두건을
추가하게 되었어. 보란, 이제 그만하고 자수하게. 이건 너무 지나치단 말야!" "아직 멀었어
요." "뭐라구?" "지나치다니, 천만의 말씀이오. 이제 비로소 전쟁의 시작일 뿐이오. 웨더비.
그것은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소? 그리고 사복 경찰 따위는 보내지 마시오. 절대로 안전하
다고 믿어지지 않는한 내게 덤비는 놈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쏴버릴 테니까 말이오." "경관
을 쏘거나 하진 않겠지?" "일부러 쏘진 않을 것이오. 시간이 없어서 이만 끊어야겠소." "보
란, 방금 들은 정보를 자네에게 알려 줘야겠네." "흥미있는 거라면." "이 정보가 자네 마음
에 들지 모르계네. 계약이 확대됐어. 자네의 목에 1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다네. 지금 동
부 지방의 살인업자들이 총동원되어 자네를 찾고 있다는 말이군요." " 이 멍청한 틴구야~
자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나? 동부 10개 주의 살인업자들이 이 도시로 모이고
있단 말야."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바요." 보란은 딱 잘라 말했다. "이젠 경찰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소?" "보란, 자네는 미쳤어!" "내가 놈들을 끄집어냈으니 이
젠 당신들이 그놈들을 좀 어떻게 하란 말이오!" "우린 자네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할 걸세."
형사의 화가 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 왔다. "그러니까 우린 서로 이해한다는 거군
요." 맥 보란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있지. 그러나 보란......" "듣고
있소." "경찰은 쏘지 말게." "나도 경찰을 쏘고 싶지는 않소." "그러는 게 좋아. 재가 말했듯
이 자네에게 동정을 보내는 사람도 많아. 우리 경찰 주에서도 말이야. 그러나....." "우린 서
로 이해하고 있지 않소" 보란은 차갑게 이한마디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싱긋 웃으
면서 차로 돌아왔다. 그의 시계는 4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가. 지금 출발하면 신간에 맡춰
플래스키 앤터프라이스로 갈수 있을 것이다. 그는 차를 운전하면서도 웨더비 생각을 하면서
웃었다. 진지하고 정직한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
라고 보란은 생각했다.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전쟁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그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리고 지금 보란은 마피아에 대한 이해-재정상의 이해-를 필
요로 하고 있다. 그는 차를 회전시켜 똑바로 금융 회사를 향해 달렸다.
12. 약탈
5시 5분 전에 보란은 문을 밀고 들어와 문을 잠근 다음 블라인드를 내렸다. 접수 데스크
의 여자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보란은 터린에게서 받았던 플라스틱으로 된 신분증
을 여자에게 보여 주었다. "오늘 업무는 끝났는데요." 그녀가 사무적으로 말했다. 보란은 상
담실 쪽을 바라모며 성급히 물었다. "안에 누가 있나?" "토머스 씨뿐입니다." 여자가 더듬거
리며 말했다. 이때 칸막이 뒤쪽에서 다른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보란은 시선을 곧 그 여
자에게로 돌렸다. "당신이 출납계원인가?" "네, 그렇습니다만....." 여자가 놀라서 대답했다.
"오늘 계산은 다 끝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지금 막 끝났습니다." 보란은 칸
막이 뒤로 들어섰다. "서류와 현금을 모두 토머스 씨 사무실로 가지고 들어와." 그는 접수
데스크의 여자를 잡아 일으켜 조용히 토머스의 사무실 쪽으로 등을 밀었다. "안에 들어가서
토머스에게 불시 감사니 장부를 전부 준비해 두라고 말해. 모두 책상 위에 꺼내 놓으라고
말야." 여자가 그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저, 당신의 이름을 잊었는데요...." "프래스키 사무
실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해." 그가 소리쳤다. "빨리 서둘러! 시간이 없어."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의 뛰듯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보란은 출납계의 여자가 금고에서 꺼내는 현금
을 나무 쟁반 위에 쌓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요란스럽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지배인인 토머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보란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이 누군지 잘 모르겠
는데요?" "몰라도 돼." 보란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생각해서 알 수 있을 정도로 당신은
여기서 오래 일하지 않았잖아."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커다란 강철문을 가리켰다. "금고를 열
어!" 덞은 남자의 얼굴에는 망설이는 빛이 역력히 나타났다. "당신의 신분증을 보여 주시겠
습니까?" 보란은 다시 한 번 플라스틱 카드를 꺼내어 아주 잠깐 동안 그의 눈앞에 내밀어
보이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보란은 갑자기 웃으며 친밀한 얼굴로, "이봐, 그렇게 긴장할 필
요는 없어." 하고 말했다. "불시에 감사를 나가면 당신들도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플래스키
는 생각하고 있어. 걱정할 것 없어. 자아, 빨리 끝내고 싶으니까 금고를 열어 주게." 토머스
는 주저하면서 금고의 번호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퍼다란 손잡이를 돌리자 금고의 문이
열렸다. "현금은 얼마나 되나?" 보란 이 급히 물었다. 출납계의 여자가 지배인에게 종이 테
이프를 건제 주자 그는 그것을 보면서 말했다. "4만 2698달러 40센트...." "잠깐, 그런 숫자를
묻고 있는 게 아냐. <비밀 자금>을 말하는거야, 토머스. 그런 잔돈 같은 건 아무래도 좋
아." 보란은 위엄 있게 말했다. 젊은 남자는 눈을 깜박이고는 금고 쪽으로 걸러가서 다시
그 안쪽의 문을 열고 커다란 가죽 가방을 꺼냈다.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
까?" 그가 불평하며 말했다. "열어!" 보란이 명령했다. 토머스는 금고 안의 어딘가에서 열쇠
를 꺼내어 열쇠 구멍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보란의 어깨 너머로 사무실 복도 중앙에 어
색하게 서 있는 두 여자에게 눈짓을 했다. 보란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아가씨들은
사무실 밖에서 기다리지." 두 여자는 서로 힐끔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토머스가 그의
책상 위로 가방을 운반해 놓고 보란을 쳐다보았다. "나는 당신이 이 돈을 세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그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말했다. "모두 얼마지?" "25만 달러요." "틀림
없겠지?" 지배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쌓여 있는 지폐 다발의 맨 위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보란에게 넘겨 주었다. 보란은 그것을 읽는 척하며 "흠 ! 흠! " 하고는 금고 쪽으로 다
가갔다. "당신이 찾고 있는 게 정확히 뭡니까?" 토머스가 물었다. "이리 와보게. 내가 보여
줄 테니까." 보란은 그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멱살을 잡아 금고의 쇠벽에 세차게 머
리를 밀어붙였다. 그는 무릎을 꺾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보란은 장부와 서류들을 사무실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금고 속의 서류들도 모두 바닥에 쏟아 놓고 현금만 책상 위에
있는 가바에 넣었다. 그는 금고 문을 닫은 후 라이터로 바닥에 널려 있는 서류에 불을 붙여
던지고는 가방을 들고 두 여자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나왔다. " 서류를 전부 꺼내어 바닥
에 펼쳐놔." 그가 큰 소리고 말했다. 여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떨리는 손으로 서랍
을 열고 서류를 카운터 위에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리할 필요는 없어." 보란은 거칠게
말했다. 그는 카운터 위의 서류들을 손으로 쓸어 내리고는 벽에 붙은 강철 캐비닛의 서랍을
차례로 뽑아 바닥에 내던졌다. 조금 있으면 불은 이쪽으로 타 들어올 것이다. 여자들은 비
로소 그가 누구인가를 안 것 같았다. 보란은 한 여자의 손에 저격수의 메달을 쥐어 주며 말
했다. "플래스키에게 말해. 맥 보란에게 이런 건 식은 죽 먹기라고 말야. 알겠지?" "뭐라구
요?" "그렇게만 전하면 돼. 그리고 여기가 불바다가 되기 전에 지배인을 금고에서 꺼내 주
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플래스키에게 돈을 잘 쓰겠다는 감사의 말도 꼭 전해." 그는 현금
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문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들은 금고가 있는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보란은 껄껄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범해의 현자에 다시 나타났으며 그
리고 그곳에서 또 하나의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마태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할 것
인가? 그들은 빼앗긴 돈 때문에 화가 나서 미친 듯 날뛸 것이다. 보란은 마피아를 화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보란은 유유히 걸어가 그의 차에 올라타고는 시동을 걸었다. 그
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13.종횡 무진
시모어는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자식을 어떻게 해치워야 되는 거야! 그놈은 미친 듯
이 날 뛰고 있어. 우리 지역을 파고들어 마구잡이로 불을 지르고, 죽이고, 그리고..... 어휴!"
"자넨 지금 누구한테 불평하는 거야!" 터린이 쏘아붙였다. "자네 때문이야! 그 자식은 자네
수하에 있었는데도 자넨 멍청하게 놈이 가짜라는 것도 몰랐잖아! 자네가 그 화냥년들과 드
러누워 시시덕거리고 있는 동안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 잘 알고 있겠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터린이 뛰어오르며 시모어에게 주먹을 날렸다. 시모어는 재빨리 몸을 피하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콜라병을 손에 들고 공격 태세를 취했다. 플래스키가 팔을 휘저으며 그들
의 싸움을 말렸다."그만. 그만해! 이렇게 되면 놈의 계략에 빠진다는 것을 모르냐? 놈이 우
리를 이간시키려고 그러는 거야. 자, 이제 그 정도로 해두라구!" 레오 터린의 입술은 본노로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곧 어깨를 움츠리며 자리에 앉았다. "미안해, 레오." 시모어가 가라앉
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집들 애기는 내 본심으로 한 것이 아니었어." 터린은 묵묵히 머리를
끄덕이며 불쾌한 듯이 구두 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25만 달러 때문에 그 분이 무척 화를
낼 텐데....." 플래스키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것을 다시 찾아내댜 해!" 시모어가 말했다.
"물론!" 터린도 맞장구를 쳤다. "난 그놈의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않아.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이니까..... 그것도 불과 몇 분간이었어. 놈은 우리 조직의 돈이 그금고 안에 있다는 걸 어
떻게 알았을까?" 플래스키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모르고 있었나? 그
놈은 유령이야! 유령이 아니고서야 그런것까지 어떻게 알아냈겠나?" 터린이 넋두리처럼 투
덜거렸다. "집어치워!" 시모어가 짜증스럽다는 듯 소리쳤다. 그리고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
제 곧 다른 멤버들이 나타나겠군." 터린은 말없이 일어나 버번 위스키를 잔에 따르고 얼음
을 넣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그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그것을 홀짝거리다 입을
열었다. "문제는..... 자네들은 그놈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야. 사실 난 점점 자신이
없어져. 소름이 끼쳐. 그놈은 군대에서도 살인 기계였어. 언젠가 놈과 꼭 닮은 중사를 만났
는데 그놈도 무서운 놈이었어. 보란은 꼭 그놈을 닮았어. 내가 보란에 대해 느끼는 것은...."
시모어가 끙끙거렸다. "그게 아니야. 명심해야 돼. 그놈에게 이기려면 그놈을 잘 알아야 돼.
놈은 불과 서너 시간 동안에 그 어려운 일을 모두 해치웠단 말이야. 마치 시한 폭탄과도 같
은 놈이라구. 순식간에 궁전을 불태웠고, 8000달러짜리 승용차를 박살냈고 나를 혼비 백산
하게 만들어 놓았고, 제이크의 다리를 뚫어 놓았어. 놈은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치우
고 있어." 그는 말을 멈추고 술을 한 모금 마신 후 말을 이었다. "그리고 도망쳤는가 싶었더
니 몇 분 후에 우리 집에 나타나 아내와 태연하게 지껄이고 갔어. 그놈은 아내에게 뭔가 이
야기를 한 것 같아. 그리고 그놈은 시모어의 저택으로 가 풀장을 새빨갛게 물들여 놓고 폴
과 토니의 몸뚱이를 풀장에 처박았어. 그리고 전화선과 전선까지 잘라 놓고 침대를 난도질
하고 갔어. 또 시모어가 애지중지하는 유화에다 총을 다섯발이나 쏘았어. 그러나 놈은 그것
으로 끝내지 않았어. 우리의 비밀자금 25만 달러를 갖고 유유히 잠적했어. 내가 알고 있는
그놈과 비슷한 중사는 싱가포르에 있는 모든 창녀들과 공짜로 자겠다도 떠벌이고는 실제
그렇게 했어. 그놈과 꼭 같은 놈이라구!" "이제 끝났나? 자네의 감탄이?" 시모어가 차갑게
내뱉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들이 잠시 이곳을 피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감부회의에서 제
안항 작정이네. 어쨌든 우리는 시간을 벌어야 해. 우리가 계약한 살인 천부업자들에게 이곳
을 맡겨 두고 잠잠해지면 그때 돌아오면 돼." 플래스키는 말도 안된다는 듯한 표정이었고
시모어도 차가운 눈빛으로 터린을 노려보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나이 많은 한 사나이이를
선두로 하여 네명의 보디가드가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것을 본 방안의 세 사람이 급히
일어섰다. 이어서 네명의 보디가드들이 적당한 위치에 서서 온화한 얼굴에 나이가 60 가까
이 되어 보이는 백발의 사나이는 방안에 있던 세사람과 악수를 하였다. 그의 부드러운 눈매
와 따뜻한 손은 세 사람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는 테이블의 맨 윗자리에 앉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백발의 사나이는 이렇게 말하면서 세 사라므이 얼굴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보란의 자의 짓입니다." 시모어가 흥분하여 말했다. "살인 지시는 실패 했습니
다. 필라델피아에서 온 살인 청부업자에 대한 정보가 샌 것 같슴니다. 오히려 우리쪽의 두명
이 당했습니다. "알고 있네." 백발의 사나이가 조용히 말했다. "놈은 완전히 미쳤습니다." 플
래스카가 끼여 들어 말했다. '놈은 시내를 돌아다니며 쑥밭은 만들어 놨어요. 내 사무실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는 25만 달러를 갖고 사라져 머렸어요." "놈은 제 궁전을 불태워 버렸
고 제 아내에게 협박을 했슴니다." 터린이 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 부하 두명도 죽었습
니다. 그리고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시모어도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난장판
이라구?" "풀에 붉은 물감을 풀어넣고 천막을 두 개나 부숴 버렸어요. 전선과 전화선도 끊
어 버렸고 게다가 집안의 침대란 침데는 모두 난도질해 버렸어요." 그가 어깨를 움찔하고는
말을 이었다. "정말 난장판을 벌인 겁니다." "그리고 그의 유화 수집푼에도 총알을 박아 놓
았죠." 터린이 빈정대는 투로 시모어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거실 벽에 걸려 있던 그의 초상
화에다 말입니다." "그게 한 사람의 짓인가? 아니면 1개 부대의 짓인가?" 백발의 사나이가
화가 난 듯 눈썹을 치켜 뜨며 말했다. "미침놈 혼자의 짓입니다." 시모어가 씩씩거리며 대답
했다. "세르지오님, 놈을 어떻게 해서든지 처치해야 합니다." "자네는 지금까지 어떻게 그의
행동에 대처해 왔나?" 세르지오라고 불리는 백발의 사나이가 말했다. 세 사람은 할 말을 잃
고 서로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겁이나서 숨어 있었겠지." 세르지오가 조용히 기침을 했다.
"조직이 이렇게 겁쟁이가 되어 버리다니. 단지 애송이 한놈이 조직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우리 조직이 무력해졌단 말인가?" "그놈은 보통이 아닙니다." 터린이 변명처럼 중얼
거렸다. "전에도 어떤 중사를 한 명 만났었는데....." "제발 자네의 창녀들이나 골려 먹는 중
사 얘기는 집어 치워!" 시모어가 소리쳤다. 터린이 그를 칠 듯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또 한번 나의 창녀들에 대해서 함부로 주둥아릴 놀리기만 해봐. 그땐 이 주먹을 네 아가리
에 쑤셔 넣어 버릴 테다." "잠자코 있어. 레오폴드!" 세르지오가 큰소리로 말했다. "왜 자네
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헐뜯곤 하지? 우리에겐 처치해야 할 공동의 적이 있지 않나?" 그
는 손가락으로 시모어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것을 결과적으로 자네의 책임이야. 월트. 알고
있나? 처음의 실수는 자네가 놈을 조직에 끌어들여 우리의 내박을 알게 했기 때문이야. 현
재는 놈이 유리해. 우리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놈을 찾아야 돼. 그렇게 하려면 돈도 많이
들거야." 세르지오가 이렇게 말하자 터린도 덧붙였다. "난 처음부터 놈이 수상하다고 생각했
었어. 플래스키가 놈을 끌고 왔을 때부터 수상하게 생각되어 놈의 꼬리가 드러나길 기다리
고 있었단 말야!" 시모어가 소리쳤다. "엉뚱한 소리 집어치워!" 터린이 시모어에게 덤벼들
듯이 소리쳤다. "그래. 놈에게 정체를 드러내게 한 건 누구야?" "시끄러워!" 백발의 사나이
가 말했다. "누가 실수를 했던간에 그건 끝난 얘기야. 앞으로 만약 실수하는 자가 있다면 가
족 총회에서 끝장을 내어 강물에 처넣어 버릴거야. 내 말 알아듣겠나?" "알겠습니다. 세르지
오님." 터린이 기가 죽어 말했다. '자네들은 왜 대답이 없나?" 세르지오가 노여움이 가득찬
눈으로 다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물론입니다. 세르지오님!" 시모어가 급히 대답했다. '알
겠습니다. 세르지오님!" 플래스키도 황망히 대답했다. "20년전 같았으면 너희들 같은 겁쟁이
하고는 테이블에 같이 앉지도 않았을 거야." 세르지오가 준엄하게 말했다. "모두 내 발을 명
심하게. 나는 보란을 죽이기 위해서 살인청부 업자들을 도처에 풀어 놓았어. 그렇다고 너희
들이 방심헤서는 안 돼. 너희들에게는 돈과 능력, 그리고 권력이 있어. 게다가 너희들은 우
리조직의 간부란 말이야. 그런데 어째서 내가 직접 손을 대야 하지? 보란이란 놈이 이 세르
지오의 목을 노리고 있기 때문 이라고 생각하나? 천만에. 놈이 노리는 것은 월트 시모어와
네트 플래스키와 레오폴드 터린이야. 그놈은 이 세르지오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어." 그
는 뒤에 서 있는 보디가드에게 마실 것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사나이는 급히 뛰어거 글라스
에 와인을 따라서 가져왔다. 세르지오는 그것을 한모금 마시고는 말을 계속했다. "이 세르지
오는 너희들의 목을 지켜주기 위해서 10만 달러의 거액을 내걸었어. 너희들의 안전을 위해
신경을 써주는 만큼 너희들도 열심히 일해야만 해. 알겠나?" 바로 그때, 방의 커다란 창문이
폭발소리와 함께 크게 부서져 나갔고 세르지오에게 술잔을 가져다 준 사나이가 앞으로 고꾸
라 졌다. 이어서 강력한 라이플의 폭발음이 테이블 주위의 사나이들을 공격했다. 네 사람을
공포에 떨면서 테이블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멀리서 날아오는 총알은 방바닥과 벽을 뚤었
다. 잠시후 총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터린은 고개를 들어 세르지오의 겁에 질린 눈을 바라보
았다. 옆에서 플래스키와 시모어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네명의 보디가드들은 넓은 방의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다. "놈은 벌써 당신도 알고 있군요. 파더 세르지오." 터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르지오는 얼굴을 찡그리며 흰 이빨을 드러낸 채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
치며 말했다. "놈을 죽여!" 짜내는 듯한 날카로운 그의 음성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놈을
죽여! 알겠나? 놈을 죽여 버리란 말이야!"
14.실패
보란은 다음 일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맥 보란은 어디를 가나 한곳에 오래 머물
러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야전용의 검은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32구경 대신 45구경 군
용 권총을 허리에 찼다. 그는 검은 스니커복에 검은 베레모를 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
춰 보고는 히죽 웃었다. 몸에 꼭 끼는 옷은 우스꽝스럽게까지 모였다. 누가 본다면 아마 가
면 무도회의 의상으로 생각할 것이 틀림없었다. 머린과 25만 달러는 이미 차에 실어 놓았다.
그는 아파트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는 사람이 살고 있던 흔적을 깨끗이 없애 버렸다. 그리
고는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 2시 20분이었다. 그는 곧 바로 레오 터린의 집으로
향했다. 그가 터린의 집에 도착한 것은 3시 조금 못 되어서였다. 터린의 집은 비교적 상류급
에 속하는 집들이 서 있는 깨끗한 주택가에 있었다. 보란은 터린의 집 뒤쪽에 차를 세우고
담을 뛰어 넘어 집 뒤곁에 살짝 내려섰다. 몇 야드 앞에서 갑자기 개가 짖기 시작했다. 보란
은 터린의 집 차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경사진 지붕에 엎드려 집안의 동정을 살폈다. 그리고
보란은 집의 내부구조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일층의 창문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
는 걸로 보아 욕실인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다른 불빛이 이층 창문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보란은 터린에게 세 아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침실의 배치를 생각해 봤다.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방은 갓난아기의 방이거나 아이들의 방일 것이다. 창문은 회전식 같았으
나 보란이 있는 데서 보이는 창문은 모두가 잠겨 있었다.
누군가가 나와서 개를 달래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보란은 잠시 상황을 살피다가 차고의
지붕에서 스페인제 기와를 때내어 앞뜰을 향해 던졌다. 기와는 정원의 석축에 요란한 소리
를 내며 떨어졌다. 보란은 눈을 크게 뜨고 모든 창문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이층 맨 끝에 있는 창의 커튼이 흔들렸다. 흔들렸다기 보다는 흔들리는 것 같았다.
보란은 또 한 장의 기와를 떼내어 아래로 힘껏 던졌다. 맨 끝 방의 불이 켜지더니 누군가가
커튼을 젖혔다. 레오 터린의 모습이 창가에 나타났다. 자시 커튼이 닫히더니 검은 머리의 여
인이 침대에서 일어나 스탠드에 손을 가져가는 것이 보였다. 불을 켰을 때 당황하는 터린의
꼴을 생각하니 보란은 웃음이 나왔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터린이 파자마 바람으로 나타나 천천히 그
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분명히 그는 문에서 나와 집 주위를 들며 보란이 있는 곳으로 다
가오고 있었다. 보란은 터린의 움직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터린은 벌써 뒷문으로 돌아가는 모퉁이에 이르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가만히 서 있었다. 무
기를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몇 분인가를 서로 찾고 있었다. 이윽고
무엇인가가 날아와 안뜰을 가로질러 차고의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 보란은 웃었다. 그것은
보란이 조금 전에 터린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썼던 수법이었다. 터린의 모습이 사라졌다.
보란은 계속 어둠 속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터린보다 높은 곳에 있는 그가 유리했다. 그리고
또 그에게는 유리한 점이 하나 더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집 안에 있는 아내와 세 아이
는 터린의 생명보다도 소중한 것이었다. 유사시에는 맨 먼저 총구를 겨눌 수 있는 좋은 목
표다. 보란은 터린이 반대쪽 모퉁이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분명히 그는 본해 왔던 방향으
로 되돌아가 상황을 살피면서 반대쪽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보란은 새삼스럽게 이 용감한 시실리인에게 감탄했다. 적어도 그는 도전에 응해서 용감히
밖으로 나와 서 있는 것이다. 여자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피하지도 않았다.
"보란인가?"
보란은 고개를 흔들며 소리를 내지 않고 웃었다. 터린은 차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
히 발을 옮기며 한 걸음마다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는 한 손에
는 총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회중 전등을 쥐고 있었다. 보란은 터린이 총과 회중 전등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이윽고 터린은 차고를 지나 반대편 뜰로 향하고 있
었다. 보란은 소리없이 비탈진 지붕을 미끄러져 내려와 훌쩍 땅으로 내려서더니 대담하게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보란인가?"
터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훨씬 안쪽의 뜰에서였다. 보란은 발소리를 내지 않고 벽
을 따라 돌아서 정면에 있는 입구의 계단을 올라갔다. 생각했던 대로 문은 조금 열려 있었
다. 터린이 밖으로 나오면서 열어 두고 나온 것이리라. 그는 안으로 들어가 문 뒤에 숨었다.
터린은 언제까지 보란을 찾아 뜰을 헤맬 작정인가?
보란은 터린을 등 뒤에서 쏘고 싶지는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우정 같은 것이
있었다. 적어도 보간은 터린을 죽일 때 정면에서 그의 눈을 보고 싶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전쟁 자체가 어차피 이치에 안 맞는 것이다. 잠시 후 터린이 숨을 크
게 쉬면서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는 잠갔다. 그 순간의 터린은 그를 노리는 사나이에게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보란은 자기 총탄의 표적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굼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는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란은 가만해 다가가서 45구
경의 총구를 터린의 목덜미에 갖다 대었다. "알고 있었네." 터린이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
다. "문을 닫는 순간에 자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 쏘지 말고 잠깐 기다려. 모란. 함
이야기가 있네." "여기서 해치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자네 부인이 청소하느라 애를 먹
겠지?" 모란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홀 안은 어두웠으나 보란은 상대방의 얼굴이 굳어지며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전
에도 그는 그런 얼굴을 보았고 보란 자신도 그렇게 얼굴을 경련시킨 적이 몇 번이나 있었
다. 그는 그것이 어떤 느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몸의 구석구석에 있는 모든 근육이
불쾌하게 떨리면서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그 기분을 보란은 더 이상 터린에게 맛보게 할
수는 없었다. "총을 이리 주게. 레오." 터린이 그의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마지 못해 보란에
게 건네 주자 보란은 그것을 자기 등 뒤로 던져 버렸다. 총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
다. "자네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터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네의 누이동생은 정말 좋은 아이였네. 보란." "그 따위 말은 집어쳐!"
보란은 차갑게 말하고 그의 45구경을 터린의 딱딱한 머리 부분에 밀어붙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디로 가는 거지?" 터린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의 부인과 아이들에게 베푸는 마지막 호의라고 생각해."
보란이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로 그때 천장의 불이 모두 켜지면서 홀 안이 갑자기 밝아졌다. 보란은 반사적으로 뒤돌
아보며 벽 쪽으로 뛰어갔다. 터린의 아내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공포에 질린 얼
굴로 한 쪽 손을 올린 채 서 있었다. 보란은 새로운 적을 향해 그의 45구경을 발사했지만
갑작스런 불빛 때문에 눈이 부셔 총알이 빗나가고 말았다. 계속해서 떠 한 방의 총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터린의 아내가 보란을 향해 쏜 것이었다. 보란은 불빛 때문에 안젤리
나 터린의 손에 쥐어진 작은 총을 보지 못했었다. 그는 그 총소리와 어깨의 통증이 연관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자기가 총에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터
린이 방바닥으로 몸을 날려 그의 아내 쪽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여인의 작은 총
에 쫓겨 달아나면서 보란은 굴러가는 터린을 향해 두 방 쏘았다. 그는 집의 모퉁이를 달려
나오면서 피가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뛰면서 45구경을 허리에 찼다. 어깨
가 타는 듯이 아팠으나 치명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담을 뛰어넘고 옆집 뜰을 빠져 나와
도로로 나가려다가 요란하게 들려 오는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그는 자동차를 자
고 달린다면 틀림없이 검문에 걸릴 것이다. 그는 적과 친하려 했던 것이다. 전쟁에 도덕 같
은 것은 통하지 않는다. 적은 죽일 수 있을 때 바로 죽어야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
는 것이다. 먼 이국땅 월남의 정글에서 수백 번도 더 체험하여 알고 있는 그것을 어째서 마
피아의 정글에서 잊었단 말인가? 그는 자신을 비난하면서 멀리 건물들이 밀접해 있는 곳으
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는 관자놀이의 상처를 베레모로 눌러 피가 흐르는 것을 막았다. 문득
전세계의 경찰차가 그를 잡기 위해 이리로 몰려들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경찰을 계속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경찰은 보란의 행동을 주목하여 그가 터린을 노리는 것을 팔짱을 끼
고 지켜보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여기서 또 한 번 맥 보란은 과오를 범했다.
그는 작전을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상대는 어리숙하고 무지한 베트콩이 아닌
빈틈없는 미국인인 것이다. 어깨의 심한 통증을 생각한다면 이 실패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총에 맞아 자신이 죽음의 구렁텅이에 서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그
에게는 멀리 도망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상처를 치료하여 다시
힘을 되찾을 때까지 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한 것이다. 만약 그런 곳이 없다면 죽음을 당하
는 쪽은 자신이 되고 만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였다. 맥 보란은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 것
이다.
15은신처
형사부장 웨더비는 무선차에서 내려 터린의 집 바로 위의 교차점으로 들어오는 순찰차로
걸어갔다. 그는 순찰차의문을 열고 내리는 경관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말했다.
"총소리가 나고 얼마 만에 도로를 폐쇄했나?" "30초도 걸리지 않았을 겁니다."
경관이 대답했다. "저는 두 구역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총성을 듣고는 곧 이리로 달려왔습
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도로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경찰과 이외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습
니다." 웨더비는 경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도로를 살펴보고는 그의 차로 돌아왔다. 핸
들을 잡고 있던 사복 경관이 미안한 듯한 얼굴로 그를 맞았다. "아무래도 그놈이 짜져 나
간 것 같죠. 안 그래요?"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웨더비는 그 말에 한숨을 쉬며 대답했
다. "그런 것 같아. 터린의 말로는 녀석은 특공대 같은 새까만 옷을 입고 있었다는 거야. 그
놈은 고양이처럼 소리를 내지 않고 민첩하게 뛰어 다니는 기술이 있는 것 같아. 한데 터린
이라는 사나이는 정말 운이 좋았어. 아마 본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걸세."
"당신은 보란이라는 사나이를 칭찬하는 거죠?" "나는 그럴 생각이 없으니 자네가 칭찬해 주
게." 웨더비가 볼맨 소리로 말했다. "오해하지 말게. 내 말은 단지......자네도 알고 있지만 그
는 터린의 부인에게 반격도 하지 않았잖은가? 그 여자를 쏘려면 얼마든지 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야. 그런데 그는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이 말이야." 웨더비가 심각하게 말을 이었
다. "그 여자의 말로는 탄환이 명중한 것 같다고 했어. 그런데 그 녀석은 핏자극도 남기지
않았단 말야. 상처를 입었다면 멀리는 못 갔을 텐데.... 이 지역에 12명 정도 더 배치하게. 어
떻게 해서든지 녀석을 체포해야 해." 그는 무전기의 마이크를 들고 특별 주파수로 명령을
내렸다. "자. 우리는 동쪽 끝까지 갔다가 거기에서 이쪽으로 되돌아와 보세."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복 경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동쪽을 향하여 운전하기 시작했
다. "발견하면 즉시 쏘는 겁니까?" "그래." 웨더비가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은 남쪽
으로 뻗어있는 주택가에서 동쪽으로 차를 돌리고 그곳에서부터 주위를 살피면서 천천히 달
리기 시작했다. 웨더비는 총신이 짧은 총을 꺼고 있던 경관도 리볼버를 총집에서 뽑아 무릎
옆에 놓았다. 이짓도 못해 먹을 짓이에요." 그는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이봐.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임무에 충실해야 하는 거야. 잠깐! 이봐. 저길
봐....." 그는 갑자기 긴장했다. 저쪽 아파트에서 누가 문을 여는 것이 보였다. "라이트를 끄
게."
한편 보란은 다리에 힘이 빠지고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지쳐 있었다. 그는 터린
의 집이 있는 곳보다는 지대가 약간 낮은 주택가에 도달했다. 어느 아파트 앞의 손질이 잘
된 넓은 잔디밭을 비틀거리며 건너가려는데 도로에 접하여 줄지어 서 있는 아파트 일층의
어떤 방에 불이 켜졌다. 보란은 땅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어깨의 상처에 대어 놓은 헝겊
을 살펴보았다. 이제 피는 더 이상 흘러나올 게 없는지 멈춰 있었다. 그는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가만히 상처 부위에 손을 대보았다. 총알이 그 속에 박혀 있는 것 같았지만 출혈
은 멈춰서 피가 굳어 있었다. 그러나 상처는 불 붙은 듯이 쑤셔 왔고 두통도 점점 더 심해
지는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눈앞의 모퉁이를 돌아 길을 비추었다. 그는 재빨리
땅바닥에 엎드려 옆에 있는 나무 그늘로 기어갔다. 그와 동시에 보란의 등 뒤에 조금 떨어
져 있는 아파트의 문이 열리자 헤드라이트는 곧 꺼졌다. 보란은 라이트를 끈 자동차가 그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이윽고 아파트의 정
면에서 불이 켜졌다. 불은 열린 문 위에 켜져 있었다. 안에서 잠옷을 입은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와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정신이 희미해져 가고 있는 보란의 귀에
는 여자가 "티티. 티티!"하고 속삭이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자동차는 천천히 보란의 앞을 지나 그 여자의 앞에 멈춰 섰다. 여자가 깜짝 놀라 문 쪽으
로 되돌아가려 하자 운전석에 앉아 있던 경관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찰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보란은 여자가 깜짝 놀란 뒤 약간 신경질적으로 웃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잔디밭으로
반쯤 걸어나왔으나 문 위의 불빛이 비치는 범위를 넘어서려 하지는 않았다. 이때 자동자의
반대쪽 문이 열리며 몸집이 큰 사나이가 자동차 지붕 너머로 여인을 보며 말했다.
"형사부장 웨더비입니다." 그의 말은 정중했다. "우리는 어떤 남자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실례지만 부인께서는 이 시간에 거기서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네에? 저는 남자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우습다는 듯이 말했다. "고양이가 울어서 잠이 깼는데 집 안에
들여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이 근처에는 고약한 수고양이가 한 마리 있거든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부인. 무서운 사나이가 이 근처에 숨어 있습니다. 주위를 살펴보고 싶
은데요." 웨더비는 자동차의 뒤를 돌아 보도에 서 있었다. 다른 한 경관도 자동차에서 내려
건물 좌우의 어둠을 비추며 근방을 살펴보았다. 세 사람은 보란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여
인의 불안스러운 숨소리가 보란의 귀에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웨더비가 여자에게
집 안을 살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쉽게 승낙했다. "이 젊은 부인과 함께 있어 주
게. 봅."
웨더비는 말을 끝내고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아 있는 경관은 자동차의 헤드
라이트로 건물 주위를 이리저리 비춰대고 있었다.
이때 무엇인가 보란의 짬을 비비는 것이 있었다. 그는 그것이 고양이라는 것을 알고는 상
처 입지 않은 발을 뻗어 다정하게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보란의 팔 밑에서
만족스러운 듯이 몸을 동그랗게 도사렸다.
그때 웨더비가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헤드라이트의 눈부신 빛을 피하며 피로한 모
습으로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고양이를 찾는 것은 단념하는 게 좋겠습니다. 부인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십시오. 당신이
안으로 들어감 때까지 우리가 여기서 보고 있겠습니다. 소란을 끼쳐 죄송합니다."
여인이 무슨 말인가를 했으나 보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가볍게 웃고는 문으로 가서 두 경관에게 손을 흔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곧 이어
문 위의 불이 꺼지자 경찰차도 불빛은 번쩍이며 멀어져 갔다.
보란은 고양이를 단단히 끌어안고 몸을 숙인 채로 아파트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고양이
를 덧문으로 밀어붙이고는 난폭하게 고양이의 등을 꼬집었다. 고양이는 소리를 지르며 보란
에게서 달아나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덧문을 할퀴었다. 그러자 곧 안의 문이 열렸다. 보란은
문을 밀고 안으로 뛰어 들어가 놀라 서 있는 여자의 가슴에 고양이를 안겨 주었다.
"고양이를 데리고 왔소."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몸으로 문을 닫고 문에 기대었다.
"큰 소리를 내지 말아요. 당신이 나가 달라고 하면 지금 나갈 테니까." 그녀는 믿을 수 없다
는 듯이 보란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보란의 이상한 차림새와 허리에 찬 권총과 피에 물든
어깨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처를 입었군요."
보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총을 맞았소. 잠시 동안만 여기 있게 해주겠소? 당신에
게 절대 피해는 입히지 않겠소." 그는 어깨의 심한 통증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경찰관이 당신은 위험 인물이라고 말했어요." 그녀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당신에게는 위험하지 않소." 고양이가 여인의 팔을 빠져 나가 안쪽의 방으로 달려갔다. 보
란은 절망적인 눈초리로 방에 놓여 있는 긴 의자를 펴다보았다. "어깨에 총알이 박혔소. 소
독약과 핀셋을 좀 갖다 주었으면 고맙겠소." "알겠어요" 여인은 재빨리 거실 건너편으로 걸
어갔다. 그녀의 뒤를 보란이 따라갔다. 여자가 경찰에 전화를 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녀가 욕실로 들어가자 보란은 안도의 숨을 쉬고는 방 안으로 돌아와 긴 의자에 누웠다.
"혼자서 살고 있소?" 그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물었다. 그녀가 욕실 입구에서 얼굴만 조
금 내밀고 대답했다. "아뇨, 타바사와 함께 있어요." 그녀가 코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내 고양이를 타바사라고 불러요. 나도 그녀도 올드 미스예요." 대답이 끝나자 그녀의 얼굴
이 다시 욕실 속으로 사라졌다. 보란은 셔츠를 벗기 시작했다. 그녀가 작은 쟁반은 들고 방
으로 돌아왔을 째 보란은 몸에 꼭 끼는 셔츠에서 겨우 한쪽 발과 머리를 빼낸 뒤 조심스럽
게 상처 입은 어깨에서 셔츠를 벗겨 내려던 참이었다. 그녀는 머리에 쓰고 있던 스카프를
벗고 둥근 머리를 풀어 어깨에 늘어뜨리고 있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여자라고 보란은 생
각했다. 작고 섬세한 몸매, 아름답게 빛나는 눈을 가진 그녀의 얼굴은 퍽 지적으로 보였다.
여자는 들고 있던 쟁반을 테이블 위에 놓고 보란이 셔츠를 벗을 수 있게 도와 주었다. 그녀
는 그의 어깨의 상처를 보며 말했다. "출혈이 아주 심해요. 총알이 아직 박혀 있어요?"
보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가 가지고 온 쟁반을 바라보았다.
눈썹 화장에 쓰이는 작은 핀셋이 투명한 액체 속에 담겨 있었고 거즈가 한 봉지, 붕대 한
개, 머큐로크롬병 등이 쟁반에 놓여 있었다. "핀셋을 알코올로 소독해 두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이것으로 충분할까요?" 보란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머큐로크롬
병으로 손을 뻗었다. "제가 총알을 뽑아 드릴까요?" "고맙소. 그러나 전에도 해본 적이 있
으니 내가 하겠소." 그녀는 보란을 긴 의자에 주이고 머리 밑에 베개를 대주었다.
"이것을 당신 혼자 힘으로 한다는 건 무리예요." 그녀가 단호히 말하고는 핀셋을 쥐었다.
"괜찮아요,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16.귀여운 도둑
보란은 호화로운 실크 커튼이 드리워진 라운지에서 웃옷을 벗은 채 자고 있었다. 터린 부
인이 몸에 꼭 달라붙는 선정적인 녹색 바지를 입고 그의 몸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새빨갛
게 달군 인두로 그의 어깨를 지져 대면서. "당신은 정말 목석 같군요. 중사님!"
부인의 녹을 듯한 목소리에 이어 뒤쪽 어디에선가 레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귀여운 여
인을 자네에게 주겠네." "그래? 고맙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죽일 거야!"
보란은 속삭이듯 말했다. "잠이 깨면 당장에 말이야." 순간,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햇빛이
눈부셨다. 어깨는 마치 악마가 춤을 추고 있는 듯 화끈거렸다. 젊은 여인이 침대 곁의 창가
에 사서 플라인드를 만지작거리며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물결치듯 어깨로 드리워진 검은
머리카락이 매혹적이었다. 여인은 거의 알몸에 가까웠다.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다 그
가 눈을 뜬 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자 얼굴이 새빨개졌다. "고양이의 주인이군!"
보란은 술에 취한 듯한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힌 채 그에게로 다가와
체온계를 그의 입에 밀어넣었다. "오늘 종일 잠만 잘 줄 알았는데....." 보란이 무슨 말인가
를 하려 하자 그녀는 체온계를 가리키며 제지시켰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체온계를 뽑아 눈금을 읽었다. "정말. 당
신은 강철 같은 사람인가 봐요. 열이 전혀 없어요." "열은 모두 어깨에 모여 있을 거요."
보란은 그렇게 말하면서 웃어 보였다. "저는 당신이 누군지 알아요." 그녀는 진지한 표정
이 됐다. "어떻게?"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떠들석하다구요. 신문에 당신 사진도 나왔어
요. 당신이 바로 그 저격수죠. 보란 씨?" "아, 당신은 분명 이국적인 이름을 갖고 있을 것
같은데, 카르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저는 발렌티나예요. 발렌티나 퀘렌테."
"발렌티나. 예쁜 이름이군! 그런데 지금 몇 시인가요?" "점심때가 다 되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났군. 당신이 경찰을 부를 시간은 충분했을 텐데. 왜 부르지 않았죠?"
"아예 그렇게 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그녀는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잖소? 왜 신고를 안 했죠?"
"당신이 저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유죄가 증명될 때까지 누구든 죄인은 아니
에요." "나는 분명히 죄를 지었잖소?"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은 어디까지 알고 있죠?"
"거의 모두 알고 있어요. 이 주일 동안 당신은 모두 11명의 마피아를 죽였죠? 당신은 살아
있는 비극, 그 자체예요. 그래서 전 경찰에 신고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의 동기에 동정이 갔기 때문이오?"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죽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요. 살인은 어떤 이유에 서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
잖아요?" 보란은 상체를 조금 움직여 보았다.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을 정당화시키지 않겠
소.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되는 거니까." 그녀는 또 하나의 베개를 그의 어깨 밑에
받쳐 주었다. "이건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전쟁 중의 하나일 뿐이오. 선과 악의 대
결이라고나 할까. 나는 선의 쪽이라는 생각으로 나를 정당화시키고 있소." "그런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겠어요. 지금은 당신에게 뭔가 먹을 걸 마련해 주는 게 좋을 것 같군
요. 달걀은 어떻게 한 것을 좋아하시죠?" "날것이 아니면 다 좋소." "정말이세요?" "정말이
오. 아무렇게나 만들어 주시오. 아, 그리고 내 옷은 어디 있소?" 당신 몰래 내가 훔쳤어요.
당신은 고약한 올드 미스에게 걸려 든 셈이에요. 보란. 나는 나의 침대에 들어온 남자를 그
대로 보내지는 않아요." 장난기가 가득한 그녀는 정색을 해보였다. "무서운 올드 미스로군!"
그는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스크램블!" "뭐요?" "나는 무엇을 잘 만들어 보
려고 애를 써도 스크램블밖에는 안 돼요. 스크램블이더라도 참아 주라구요."
그녀는 미소를 남기로 방을 나갔다. 보란은 곧 담요를 젖히고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그
는 완전히 알몸이었다. 그는 잠시 자신의 알몸을 내려다보다 담요를 끌어당겼다.
"내 옷은 어디 있소?" 그는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훔쳐 두었다고 말했잖아요!" 그녀
도 역시 큰 소리로 외쳤다. "그게 기분이 나쁘다면 다시 훔쳐 가세요. 욕실에 있는데 일어
설 수는 있어요?"
보란은 일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일어나 침대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어지러웠
지만 이를 악물고 비틀거리며 욕실로 갔다. 셔츠는 깨끗이 세탁해 커튼 줄에 걸려 있었고
팬티와 바지는 타월 걸이에 걸려 있었다. 그는 팬티를 입고 셔츠는 손에든 채 방으로 동아
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발렌티나가 방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붕대를 갈아야 하니까
아직 셔츠는 입지 나세요." "붕대를 감고 있으니 셔츠를 입지 않아도 되겠는걸."
"들어가도 좋아요?" 그녀는 방으로 들러와 똑바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바지는 내가
도와 주지 않으면 입기가 힘들걸요. 어쩌자고 그런 이상한 바지를 입었죠? 당신이 뭐 마벨
선장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세요?"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좁은 바지통 속에 그의 발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이 옷은 어둠 속에서 행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구!"
바지는 겨우 무릎 위까지 올라갔다.
"이 다음은 당신이 끌어올려 보세요. 달걀이 타겠어요."
"당신이 벗겼으니 당신이 입혀 줘야 되지 않겠소? 자. 위로 올려 주시오."
"달걀이 탄단 말예요. 그리고 저는 담요 밑에서 벗겼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보지 않았어요. 그
점은 오해하지 마시라구요."
그녀는 문을 나서면서 말했다. 보란이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이미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빙긋 웃으며 일어서서 다치니 않은 팔로 간신히 바지를 끌어올렸다.
17.살인 모의
세르지오 프랭키의 저택은 피츠필드에서도 가장 경관이 좋은 고급 주택지에 자리 잡고 있었
다. 프랭키는 그곳이 지중해 연안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으로 지었다. 석회칠한 동과 커다란
창문, 수많은 포치와 안뜰, 그리고 아래층은 언덕의 비탈 속에 가려지게 하여 자연 경관을
최대한 활용했다. 프랭키의 저택을 사진으로 본다면 사람들은 그것이 호젓한 곳의 별장 같
은 곳으로 여길 만했다. 사실 그 주변의 저택들도 대부분 그랬다. 프랭키의 집은 다른 저택
들보다 경관 좋은 곳에 가장 먼저 자리잡았다는 점반 달랐다. 프랭키는 중권으로 돈을 모
았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를 해운업계의 거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그가 돈을 번 것은 일종의 무역업 덕분이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마약 밀
매로 그는 돈을 벌었다. 물론 매춘조직에도 그의 영향력이 작용했고 술의 밀조, 밀매, 도박,
기타법을 어기는 모든 일이 그에게 치부를 하게 해주었다. 최근 들어 프랭키는 로버트 케네
디 법무 장관의 조직 범죄의 억압 정책에 대처하여 가능한 한 자기의 수입을 합법화시키려
고 했다. 그래서 그는 한 작은 해운 회사의 주인으로 행세했다. 그리고 그의 수입은 일련의
금융 회사들이나 기타 갖가지 사업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그러한 기업들은 모두 프랭키 엔터
프라이스와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세르지오 프랭키는 그의 생애를 통하여 줄곧 마피
아 가족을 위해 살아온 사나이였다. 가족이란 자의에 의해 나갈 수도, 또 들어올 수도 없는
조직이었다. 가족의 행세는 생명에의 맹세가 무엇보다 우선했다. 부부나 부자간의 인연보다
도 더욱 무서운 마피아 가족의 맹세 앞에서는 교회나 신(神)도 한 걸움 뒤로 물러나지 않으
면 안 되었다.
세르지오 프랭키는 41년간 단 한 여자만을 아내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의 피를 이어받아 그의 이름과 가업을 계승할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따뜻한 구
석이 있는 세르지오는 자기의 자식이 없는 대신 마음이 가는 사람들을 참으로 잘 보살펴 주
었다.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는 <세르지오 아저씨>였으며 극히 한정된 몇 사람에게는 <
파파 세르지오>였다.
레오폴드 터린도 그 한정된 몇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터린의 아이들은 그 넓은 지중
해식 세르지오 저택을 마치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다. 열 살 때 고아가 된 안델리나 터린도
어느 사이엔가 프랭키를 자기 아이들의 할아버지로 여기게끔 되었다. 세르지오의 아내는 최
근 10년간 거의 외국 여행만 했기 때문에 그녀를 그 저택에서 마주 대하기란 여간 힘든 일
이 아니였다.
그해 9월 초 어느 날 낮. 안텔리나에게는 그 저택이 별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주차
장에 여느 때보다도 더 많은 차들이 들어서 잇다는 점만 달랐을 뿐이었다.
터린의 아이들은 차에서 뛰어내리기가 무섭게 언제나 그랬듯 세르지오에게 인사를 하기 위
해 현관을 향해 힘껏 달려갔다. 레오도 걱정 말라는 듯 아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
는 자동차 옆에 서 있는 그녀를 남겨 두고 저택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다.
"사람들이 단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변해 버리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그녀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녀가 오랜 동안 그처럼 다정하게 느꼈던 이 저택이 왠지
불길한 예감으로 우뚝 솟아 있다니! 가을 햇살은 그녀의 살결에 따사로웠지만 오히려 그녀
는 으스스함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그녀는 아이들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그냐의 남편은 살인을 모의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는 범죄 조직의 간부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을 것이다. 그의 아이들은 저택 밖에서 가을 햇빛을 듬뿍 받으며 마냥 즐
거워하며 뛰놀고 있었다.
무서운 살인 계획이 검토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대상은 안델리나 자신이 하마터면
죽일 뻔했던 그 사내일 것이다.
그날의 사건은 안텔리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남편을 살리기 위한 본능
과도 같은 반응으로 저질러진 행동이었다. 아직도 그녀는 자신이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을
전혀 실감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공포에 질려서........그런데 저들은 머리를 맞3대고 그 사람
을 어떻게 죽일까를 의논하고 있다니........
그녀는 또 몸을 떨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어쩌면 갑작스런 반응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문제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저들이 느끼고 있는 공포감 역시 자신이 그날 밤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은 아니까?
그것은 목숨을 위한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저 사내들은 자기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암흑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남편 레오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
각했다.
아마 그녀는 세르지오의 아내처럼 목적도 없이 세계의 이곳저곳을 방황하며 비참하게 인
생의 황혼을 맞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살아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로 쫓아갔다.
그들은 그 동안의 사건을 검토해 보고 있었다. 회의는 블라인드를 내린 방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거기에 20명의 경비원이 배치돼 있었다. 그리고 밖에는 10여 명의 보디가드가 저
택 주위의 은밀한 곳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안델리나가 그 가냘픈 손으로 1개 소대나 되는
사내들이 못했던 일을 하마터면 해낼 뻔했단 말이지?" 세르지오는 잔뜩 비꼬는 투였다.
"조그만 장난감 총으로 빵빵 하고 쏘았다는 거지. 응?" 그는 너털웃움을 웃으며 체면이 말
이 아닌 듯한 레오 터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넨 정말 훌륭한 마누라를 얻었어. 레오폴
드, 주인을 소중히 모셔야겠어. 그녀 덕분에 자네는 살아난 거야!" "정말 마누라 덕택에...."
터린이 멋적은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 상황을 말
씀 드린다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나는 집 뒤를 한 바퀴 돌며 그놈을 찾았어
요. 완전포위 상태였는데 그놈이 어떻게 거길 빠져 나갔는지 정말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경
찰과 한패가 아니라면 도저히 그곳을 빠져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변명은 필요 없어.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겠나?" 노인은 좌중을 한번 쭉 훑으며 자신의 말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 "틀림없이 그놈은 경찰의 끄나풀이야. 녀석은 위장한 거야. 그놈은 FBI의 첩자
나 CIA의 요원일 수도 있어. 하여튼 살인 면허를 가진 미끼임에 틀림없어. 어때, 내 생각
이?" 테이블의 맨 끝에 앉아 있던 몸집이 작은 사내가 부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기침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아무래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저에게
도 그런 정보가 들어왔을 겁니다. 그리고 당국이 총출동하여 그놈을 잡으려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점은 제가 확신합니다." 세르지오는 무서운 눈빛으로 그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자네가 모르는 것은 없다. 이 말인가?" 사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정보가 틀렸던 적이 있습니까?" "하지만 저쪽에서 우리를 부숴
버리기 위해 극비리에 계획을 세울 수도 있잖은가?" 세르지오는 갑자기 울화가 치미는지 테
이블을 쾅쾅 두들기며 열을 올렸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묻겠는데, 경찰이 이씨를 사용하
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대봐! 대보란 말이야!" 그런 것은 아무래도 미국식 방법
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몸집이 작은 사내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꾸했다. "경찰은 절대 그런 방법은 쓰지 않습니다. 적어도 미국 시민에 대해서는."
"그러나 그는 우리들 중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우리들 가운데 누구 한 사람이라도 죽었나?
종에 맞은 일이 있어? 있을 리가 없지. 그러나 그놈은 내 손에 쥐고 있는 글라스를 맞추어
깨뜨리는 솜씨를 가진 놈이야. 죽일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들을 모두 죽일 수 있었어.
어떻게 생각하나, 그 점에 대해서는?" 세르지오 역시 조금도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놈을 어떤 방법으로 해치울 작정입니까, 세르지오님?" 플래스키가 물었다.
"이건 심리 작전이야. 그놈은 우리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갖고 놀고 있어. 그리고 아직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그 놈은 한 놈이 아냐!" 사나이들은 세르지오에게 시선을
집중시킨 채 오랫동안 누구한 사람 입을 열려는 사람이 없었다. 세르지오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구. 우리 조직의 하나인
트라이앵글 건물 앞에서 조직원 5명이 살해 됐어. 목격자는 아무도 없어. 거기에다 도 월남
에서 돌아왔다는 사내가 사무실에 나타났어. 그 녀석은 우리를 속이고 조직에 잠입했어. 그
리고 우리들의 정보원으로부터 연락이 왔지. 그 정보원은 그 군인이 바로 트라이앵글의 조
직원들을 죽인 범인이며 구리 모두를 죽일 작정이라고 했어. 그래서 우리는 살인 청부업자
와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런데 그놈은 그 청부업자들을 오히려 해치웠지. 물론 그때도
목격자는 없었어. 그리고 놈은 레오가 경영하는 매춘관에 나타나 순식간에 쑥밭을 만들었어.
거기에 불을 지른 사나이와 자동차에 사정 없이 탄환을 쏟아 놓은 사나이가 같은 놈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야. 월트의 집만 해도 그래. 가정부와 이야기를 나눈 사나이는
그 군인과 모습이 대제로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때 월트의 집에 그런 놈이 몇 놈이
왔었는지도 모를 일 아닌가? 그리고 그놈은 우리에게 극도에 달한 공포감을 심어주려고 하
고 있어. 그놈이 왜 그러고 다니는 줄 알겠나? 바로 그놈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서야. 우리들
속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대로 부수고 죽이고 신출 귀몰하는 공포의 이미지를
심으려고 하는 거야.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내 추측이 틀렸다고 생각하나?"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던 12면의 사나이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서로서로 귓속말을 하느라
고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다. 누군가가 담배에 불을 붙이자 너도나도 담배를 피
우기 시작했다.
세르지오는 자신의 현재 위치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한결 후련해진 기
분으로 거리낌 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제 무언가 감이 잡히지? 안 그런가? 우리 정보원은 이제까지 일급 정보를 가져오지는
못했어 그러니 마피아는 겁쟁이들이라는 말이 세상에 떠돌고 있지. 지나치게 안락한 생활만
해왔기 때문에 약해진 것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비웃고 있는 실정이야. 우리 가족의 새로운
세대는 바보 같은 녀석들뿐이야. 세상은 우리들을 비웃으면서 이때다 하고 떠들고 있어. 이
제 마피아를 한번 건드려 보자. 겁쟁이 마피아들은 혼비 백산해서 줄행랑을 칠 거다. 그래서
그놈을 미끼로 던진거야. 안 그런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시모어는 불쾌한 빛을 띠면서
좌중을 훑어봤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테죠?" "그놈이 유령이건 귀신이건 지나
치게 염려할 건 없습니다." "뭐라구? 걱정 없다구?" 세르지오가 벌컥 화를 냈다.
"넌 대학생처럼 느긋해진다는 건가? 그러나 이 세르지오는 그놈의 시체를 빨리 보고 싶단
말이야!" "하지만 당신은 보란이란 놈에 대해...." 시모어는 말을 하다 말고 우물거렸다.
"지금 내 말뜻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멍청이들만 모였군! 좀더 끈질긴 집념을 갖고 임하라는
말이야!" 노인은 다시 격분하기 시작했다. "그놈이 유령이니 귀신이니 하는 그 따위 소리들
은 집어치워! 그놈을 우리가 진짜 유령으로 만들어 줘야 해! 연방 정부에서 보내는 놈마다
모조리 유령으로 만들어 줘야 해. 모조리 말이야! 어떤가? 자네들 중 대담하고 용기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누구야? 어때, 레오폴드 자네는?" 터린은 노인의 시선을 피했다.
"그놈을 죽여야겠지? 어떻게 해치울 것인가, 이것이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이야. 우선 첫째
로...." 이렇게 해서 9월 초하루의 회의는 시작됐다. 안델리나 터린의 불길한 예감이 맥보란
에게도 이미 느껴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가 전투중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순
전해 안델리나의 덕이었다. 마피아는 또 그동안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물론 불안한 고요
였지만.
18. 연정과 욕심
맥 보란은 벌써 48시간 이상이나 발렌티나 퀘렌테의 아파트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그곳에 있으면서 치료받는 도안 바렌티나가 이곳 고등학교의 역사 선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연히도 그곳은 보란이 ROTC의 교관으로 배속된 학교였다. 그는 발렌티나가 26세의 독
신 여성이라는 것을 아고 나서는 그녀에게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보란은 그녀가 유머가
풍부한 반면 섬세한 감정을 가진 순질한 처녀라는 것도 알았다. 또한 그녀는 굉장히 수줍
음을 타기는 했으나 퍽 대담한 면도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그녀의 침대에서 각가 다
른 담요를 덮고 잤는데 보란은 알몸에 얇은 가운만을 걸쳤을 뿐이고 발렌티나 역시 잠옷 차
림이었다.
그녀는 보란이 상처 때문에 옷을 입고 벗는 것이 힘들자 그를 거들어 주며 예사로 그의
몸에 손을 대곤하였다. 또한 그녀는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채로 그의 앞에 나타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도 서로 키스를 하거나 손을 만져본 적도 없었다.
3일째 되는 날 아침, 보란이 눈을 뜨자 발렌티나가 침대 가에 걸터앉아 그의 자는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수줍은 듯 보란의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당신은 항상 제가
보고 있을 때 잠을 깨는군요." "이보다 더 기분 좃게 깨본 적은 없는걸." 그는 이렇게 말
하면서 발렌티나의 손을 잡았다. "아, 안 돼요. 이러시면 안 돼요." 그녀가 말을 더듬으면
서 손을 빼내려 했다. "왜 안 되지? 단신 손은 정말 EkjEmt하고 부드러운데. " 보란이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 손은 다친 쪽 손일 텐데요?" "이젠 괜찮아. 믿
기지 않는다면 단신을 껴안을 수도 있어." "다행이군요, 맥."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단시능 s여기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를 쫓아내겠다는 것가?"
"괜찮으시다면 말예요." "아직 완전히 낫진 않았잖아?" 보란은 짐짓 서운하다는 듯산 표정
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저를 안아 올릴 수 있을 만큼 나으셨잖아요?" "여기 누워봐, 발렌
티나. 시험적으로 당신을 안아볼 테니까."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
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내가 나가는 게 좋겠다는 거지?" "네, 그래요." 그녀
는 보란에게 잡혔던 손을 살며시 빼내며 어색하게 깍지를 꼈다. "발렌티나, 당신 연애해 본
적 있어?" 보란은 부드럽게 물었다. "아이, 그런 질문은 하지 마세요." "진심으로 묻는 것
야. 연애해 본 적이 있느냐구, 당신?" "그야 물론 몇 번 있었어요." "어떤 기분이었지?"
이 말에 그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보란을 바라보았다. 잠시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꼭
알고 싶으세요?" "그렇다니까." "실을 거짓말이에요. 연애를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저는 잘 몰라요. 저는 언제나 짝사랑이었거든요. 지금도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
각해요." 그녀의고백을 결코 뜻밖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 서른 살이야." 보란이 무
겁게 말했다. "알고 있어요." "옛날엔 나도 어떤 여자와 사랑에 빠질 것을 생각해 보곤 했
었지." "옛날이라면 언제죠?" "글세, 정확히 몇 년 전이라고 기억해 잴 수는 없지만 하여
튼 오래된 일이야. 그런데 갑자기 또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된거야. 왜일까, 발렌티나?" 그
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텨다보았다. 마치 그녀의 표정에서 답을 찾으려는 듯이. "맥, 제
발 이러지 마세요." 어즈새 보란의 팔이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떨며 속삭이
듯 말했다. "맥, 제발……저는 살인자와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아요." 갑자기 보란의 눈이
얼어붙은 듯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가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풀자 그녀는 옆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곧이어 발렌티나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다. 보란은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면
선 옷을 찾으려고 걸어갔다. "그래, 당신이 날 깨우쳐 줬어."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그의 옷은 첫날과 마찬가지로 욕실 안에 단정히 걸려 있었다. 그는 어깨
의 붕대를 풀고는 거울에 상처를 비추어 보았다. 상처는 거의 아물은 듯 했다. 그가 옷을
입고 부엌으로 갔을 때 식탁 위에는 아침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보란은 무표정하게 그것을
먹어 치웠다. 식사를 끝내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발렌티나가 들어왔다.
"당신의차를 옯겨 좋았어요." 그녀는 보란의 맞은편에 걸터앉으며 눈물에 젖은 눈으로 그
를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로 고마웠어, 발렌티나. 그래서 당신에게 사례로 돈을 주고 싶
어." "뭐라구요?" "내 자동차 트렁크 안에는 돈이 가득 들어 있어. 당신에게 1만달러를
주겠어." "돈 같은 건 필요없어요."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런데 그 돈은 어덯
게 해서 생긴 돈이죠?" "돈 말인가?" 그는 빙긋 웃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니까
나는 살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도 하지. 마피아가 몰래 숨겨 두었던 25만 달러를 내
가 뺐었지. 하지만 이 돈은 놈들이 도난 신고를 할 수도 없는 돈이야." "밖에 있는 차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 있단 말인가요?" 그녀가 놀라 소리쳤다. 보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돈은 소중한 것이야. 이 싸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는 없지만 싸운을 하는
데는 돈이 필요해. 그래서 난 놈들에게서 돈을 훔쳐 냈지. 발렌티나, 난 살인만이 아니라
훔치고 속이고 거짓말도 한다구." "아녜요, 맥. 난, 난…… 정말로 당신이 살이자라고 생각
하지 않아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니야, 당신 말이 옳았어. 당신은
내일부터 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는 싸움을 하러 나가야 돼. 각자가 가야 할 길
을 가는 거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는 그녀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아까는 미
안했어. 재 정신이 아니었지." "하지만 난 정말로 당신을 살인자라고 생가가지 않아요,
맥"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전 당신을 쫓아내지는 않을 거
예요. 당신이 있고 싶을때까지 여기 계세요. 하지만 앞으론 긴 의자 위에서 주무셔야 해
요.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보란이 눈썹을 치켜 뜨면서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할 수 없을 거예요. 전 제 침대에서 당신을 쫓아내진 못할 테니까요." 그녀가 갑자
기 밝은 목소기로 보란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스물여섯 살이 되도록 남자에게 키스를
받아본 적도 없으며 당신 이외에는 남자를 침대에 들어오게 한 적도 없단 말예요. 제가 그
렇게 쉽게 당신을 내보낼 것같아요?" "정말 때려 줘야겠군!" 그는 화가 난 듯 말하고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좋아요, 맥. 때릴 테면 때려 보세요." 눈물이 그녀의 양볼에
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보란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일찍이 느껴 보니 못했던 사라의 감
정을 느꼈다. "오! 발렌티나!"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안았다. 보란
은 어깨의 통증을 약간 느꼈으나 더욱 세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떨고 있는 그녀
의 입술에 자신의젖은 입술을 갖다 댔다. 그녀의 입술을 격렬하게 그의 입술을 빨아 들였
드며 그녀의 가냘픈 몸은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는 듯 그에게 완전히 기대어져 있었다. 보
란의손이 그녀의 허리 부분을 더듬자 그녀는 더욱더 그에게 몸을 밀착시키면서 그에게서 입
술을 떼고 말했다. "전 당신을 보낼 수 없어요, 맥. 어쩔 수 없어요." 그는 말없이 그녀를
안고 침대로 걸어갓다. 그녀는 그에게 안긴 채 뜨겁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는 그녀
를 침대 위에 누이고는 그녀의 옷을 하나씩 벗겨 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그녀의 조그만 어
깨에 입술을 갖대 대자 머리카락을 감싸쥔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보란의 입술이 벗
겨진 그녀의 상체를 따라 목을 타고 내려와 젖꼭지를 더듬었다. "아아……." 그녀의 입에
서 신음 소리가 가늘게 새어 나왔다. 보란은 그녀의 젖꼭지에 입술을 댄 채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그녀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보란의 옷을 벗기려
하자 그는 가만히 그녀의 손을 밀어내고는 스스로 옷을 벗었다. "맥, 당신을 사랑해요."
"고마워, 발렌티나." 그는 부드럽게 말하면서 그녀 옆에 누웠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그녀가 헐떡이면서 말했다. "당신은 너무 사랑스러운 여자야." "사랑해요, 맥!" "나도 당
신을 사랑해." "오, 맥 ……." "발렌티나……." 그리하여 맥 보란의 휴식은 끝이 났고 다
시 바빠지게 되었다.
19. 신 념
그녀는 그의 팔에 머리를 대고 그에게 안긴채로 지친 듯이 늘어져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맥, 전 말이에요....." "말해봐, 발렌티나."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럴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도 전 후회하지 않아요.
그리고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는 말했다.
"미안해, 발렌티나. 당신은 나보다 훨씬 높은 이상을 가진 남자의 사랑을 받아야 했었는데"
"저는 더 이상 바랄게 없어요" 그녀가 수줍은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에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나쁜 사람들과 싸우지 마세요" "뭐라구?" "이제 그런짓 그만둬요, 맥" 그
녀가 진지하게 말하면서 몸을 일으켜 그를 내려다 보았다. "그런 사람들의 일은 잊어버리고
우리 함께 멀리 도망가요. 그들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아주 먼 곳으로 말이에요. 당신이 원
한다면 어디라도 따라 가겠어요." "조금만 기다려 줘, 발렌티나" 그는 힘없이 말했다. "살인
은 옳지 않아요. 당신이 이겨서 그들을 모두 없앤다 해도 마지막에 패배하는건 결국 당싱
이에요. 악에 대한 해답이 결코 폭력은 아닐 거예요" 보란은 흥미 있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
보았다. "그러니까 당신말은 그들과 형테처럼 우애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건가? 다시 말해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도 내밀라는 것인가?"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벌거벗은 그녀의
등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졌다. "그만하세요, 간지러워요" 그녀가 숨이 차서 말했다. "전 당신
에게 진정으로 말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처럼 착하고 연약한 여자가 폭력이 무엇인지 알턱
이 없겠지. 악당들이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겠어, 발렌티나." 그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악이란 받아들여지는게 아니에요. 악에는 자비를 베푸는 것 이외에는 아
무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악은 자비를 베푸는 자를 결국 다치게 하겠죠." "그건 재미있는
이론인데. 당신은 유태인들이 히틀러의 악 때문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말하려는 건가?"
"히틀러는 결국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악 때문에 자신이 파멸한 거예요" "그래, 그러나 만일
전세계가 히틀러에게 다른 한쪽 뺨을 내밀었다면 지금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그
쪽마저 찢어 버렸을게 뻔하지 않을까?" "세계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것은....." 발렌티
나는 슬픈 듯이 말을 이었다. "악에는 악으로 대하는 것이죠. 그 결과 우리는 지금 모든 악
을 과거의 유산으로 이어받고 있는 거예요" 그는 그녀의 허리를 다정하게 두들기며 말했다.
"발렌티나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이봐, 세상에는 두 개의 기본적인 힘이 있어.
그게 바로 선과 악이라는 거지. 난 십자군의 전사는 아니야. 하지만 난 자꾸만 선쪽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방관만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돼. 선은 좀더 힘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
는 거야. 그리고 또 선이 최후에 이기려면 더운 적에 대하여 강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돼!"
그들은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발렌티나는 보란의 아랫입술에 자기 입을 가볍게 대
고서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을 지키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
들이 고의로 악을 행하려 했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이 예로든 히틀러의 경우를 든다 해도 최
종적으로 그가 선이라고 믿고 있는 행위를 하려 했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물론 그래. 하
지만 다른 사람들은 선이란 것에 데해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에게 저항
을 했던거지. 선이란 것은 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 본능적으로 구별지어지는 거야. 나도 본
증적으로 그것을 느낄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악한 전쟁이라고 말하는 바보같은
월남 전선에서도 나는 선쪽에 서 있다고 자부했어어. 내가 만일 참전하지 않았다면 나는 자
신을 아주 비겁한 인간으로 생각했을 거야. 내게 있어서 선과 악의 구별은 아주 개인적인
거지.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이 싸움 역시 마찬가지야. 맨 처음 이 전쟁을 시작한 것은 내가
아니야. 마피아는 너무 오랫동안 그들 마음대로 행동해 왔어. 어쩌다가 나는 마피아늬 악을
알게되었고 또한 놈들을 때려부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 이야기는 극히 개인적이고
단순한거야. 시덥지 않은 철학이나 신앙, 또는 평화 운동 따위를 한묶음에 놓아도 나의 개인
적이며 본증적인 감정 앞에서는 아무런 가칟 없게 돼. 마피아는 이 나라의 목구멍에까지 달
라붙어 생명의 즙을 빨아먹고 있어. 나는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한 그놈들을 쳐부술 작정
이야." "그렇게 명확하고 간단하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발렌티나가 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흔히 철학이니 평화니 운운하는 자들이 나중에 가서는 머리가 혼동되
어 뭐거 뭔지 모르게 되어 버리곤 하지. 이 나라엔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어. 비인도
적인 전쟁을 비판하느라고 종종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고 데모도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절실
히 느낀다면 어째서 그 친구들은 상대편에 가담해서 자기들의 진실을 위해 싸우지 않는거
지?" "당신은 폭력이나 유혈을 전적으로 긍정하는군요" 발렌티나가 진지하게 말했다. "아니
야, 발렌티나. 난 단지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어.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서 선과 악을 입으로
만 떠드는 동안에 적은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고 있는지도 몰라. 그렇게 돼서는 안 되지. 자
칫하면 달아날 수도 없게 돼. 내가 그들의 숨통을 막아버리고 이 나라의 모든 바보같ㅇ느
놈들이 나를 감옥에 집어 넣으려고 쫒아오는 상황이 되더라도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갈 수
밖에 없어. 내가 이 전쟁에 뛰어든 것은 마피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들이 악을 행
하는 암흑가의 조직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 대한 도전이야. 나는 그 도전에 응하려는 것뿐이
야. 그런 이유에서 나는 폭력이나 유혈도 불사하는 거지." "끝없는 전쟁이군요." 그녀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끝없는 싸움이지." 그는 손으로 그녀의 작교 탄력있는 엉덩이를
어루만졌다. "결코 물러설 수는 없어. 나는 이제 전세계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어. 당신이 알
다시피 나는 자유롭지 못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법은 나를 항상 쫒아다니고 있어. 군대에서
도 탈주병인 나를 쫒고 있어. 게다가 또 귀여운 이상주의자인 당신까지도 나를 붙잡으려 하
고 있으니 나는 정말로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셈이라구." "당신은 신병 모집은 안하세
요?"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뭐라구?" 그녀는 보란의 몸위에서 그의 목에다 두팔을 감고
는 힘을 주어 끌어안았다.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당신 편이 되고 싶어요.
모집 안해요?" 그는 대답 대신 발렌티나를 안아 몸을 옆으로 넘어뜨렸다. 그녀의 다리가 그
를 휘감았다. "왜 질것이 뻥한 쪽에 끼고 싶다는 거지?" "전 당신이 이길거라고 믿고 있어
요." 그녀는 분명하게 말했다. "당신이 그처럼 나를 신뢰하다니.....정말 감격했어." 그 말과
동시에 두 사람의 몸이 하나로 겹쳐졌다. 눈물이 고여있는 그녀의 눈에는 진실이 담겨 있었
다. "당신의 신념은 훌륭해요." 그녀가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20. 이별
해가 진지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맥 보란은 옷을 갈아입고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비하
고 있었다. 여인의 그의 팔에 매달려 작별 키스를 했다. 그녀는 홀스터의 45구경에 손이 닿
자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뺐다. "조심하세요, 맥"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꼭 돌라와
주세요." "꼭 돌아오겠어.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내일도 알 수 없어. 하지만 언젠가는 꼭 돌
아올거야." 그가 분명히 대답했다. "멋있는 신혼이었어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지만 너무 짧았어!" 그가 웃으며 말하자 발렌티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요, 정말로 짧았어요."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그의 왼쪽 관자놀이를 가볍게 어루 만지며 말
했다. "여기 털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귀가 없어지지 않은게 다행이야.' 그녀의 손이 그의
어깨로 내려갔다. '어깨는 정말 괜찮아요?" "오른쪽 어깨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어." "당신
은
뭐든지 다행이라고 말하는군요." 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커다란 라이플의 개머리판
으로얻어맞아 본 경험이 있다면 당신도 내 기분을 알꺼야."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맥, 당
신
은 피를 보고 싶어해요. 또 무슨 일을 저지르고 싶어서 어디가 근질근질 하신거죠?" '사실
대
로 말한다면 당신 말은 틀려." 그는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남에게 상처를 입힌뒤의 기
분은 괴로운 거야." 그녀는 틈을 주지 않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보란은 한 손
으로 그녀의 입을 막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 내가 만약 잘못되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더라도 어덯게든 당신에게 전화는 걸겠어. 그러나 연락이 없더라도 걱정
하지 말아. 전쟁중에는 아무 소식도 없는 쪽이 결국 승리하는 경우가 많으니ㄲ까. 알겠지?
잠자코 기다려줘, 발렌티나"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겠어요, 맥!" 그녀가 다짐하듯이 단호
히 말했다. 그는 불을 끄고 문을 열고 잠깐 뒤돌아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발렌티나는 그의
뒷모습이나마 보려고 뒤따라 나왔으나 이미 그의 모습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
는 문을 닫고 들어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채 얼마동안 소리없이 울었다. 그녀의 인생에
왜 이런 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일가? 그녀는 불을 켜고 그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듯 집안
을 돌아보았으나 그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흔적은 그와 합께 이미 사
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텔레비젼의 스위치를 넣었다. "그는 반드시 돌
아올거야."
21. 전력보강
보란은 공중전화로 웨더비 형사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상한 일이군요. 내가 전화할
때 항상 당신은 자리에 있으니 말이오. 당신은 당신의 직업하고 결혼한 거요?" "아, 보란인
가?" 웨더비가 말끝을 퉁겨 올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리비에라에서 휴가를 보내
고 방금 돌아왔소. 당신이 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할까봐 전화를 한거요." "뭐라구?" 보란의
말에 웨더비가 화를 내며 말했다. "겨우 자네의 일을 잊게 되었다고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
중이란 말야. 보란, 자네는 어째서 멕시코 같은 데로 꺼져 버리지 않았나?" "그쪽은 재미가
없지 않소? 그 동안 쭉 텔레비젼만 보고 지냈기 때문에 소식은 모두 알고 있소. 나는 멕시
코에도 남미에도 가지 않았소. 쭉 이거리에 숨어 있었다구요. 그런데 그 겁쟁이 친구들은 요
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고 싶소?" 보란이 여유있게 응수했다. "여기는 사설 탐정 사무
소가 아니야. 보란." 웨더비가 큰소리로 말했다. "겁도 없이 이리로 전화를 걸다니. 자네는
여러건의 살인 혐의로 수배되어 있어. 그 밖에도 여러가지 죄목이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지금 겁을 먹고 있소. 하지만 너무 걱정은 하지 말아요. 날이 밝을 때쯤에는 살인 건수가 더
늘어날 테니까 말이오, 웨더비." 보란이 웃으며 말했다. "보란, 더 이상 살인은 하지 말게.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시민들ㅇ느 지금 자네에게 많은 동정을 보내고 있다는 거야. 그 동안
텔레비젼을 보았더니 자네도 잘 알고 있겠군. 자수하게. 보란! 그것이 싫다면 지금 자네가
있는곳을 가르쳐 주게. 내가 마중을 나가겠어. 미국에서 제일로 알아주는 변호사 두 분이 자
네의 변호를 맡겠다고 나섰네. 아마....." "걱정 마시오, 부장." 보란이 웨더비의 말을 가로 막
았다. "ㅡ렇다고 아무도 가만 있지는 않을거요. 특히 마피아는 말이오, 그렇지 않소?"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자네가 그 놈들에게 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놈들은 완전히 원
상 복귀하여 지금 기다리고 있을 걸세." "물론 그럴거요. 그래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
소? 뭔가 좋은 정보가 없을까 해서 말이오." 웨더비의 한숨소리가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왔
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내가 왜 자네에게 정보를 주는지 알겠나?" "당신은 내가 당신네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자네와 장난하는 것이 아니네, 보란!" "나도 진정으로
하는 말이오. 나는 당신처럼 거북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으니 말이오. 나는 처음으로 그
놈들에게 혼을 내주고 벌벌 떨게 해줬소. 당신도 물론 그것은 인정하겠죠? 당신은 도대체
누구 편이오, 웨더비?" "지금 누구의 편이라는게 문제가 아니야. 이것은 즉...." "직업상의 문
제라는 거겠죠. 좋아요. 그렇다면 당신은 앞으오 직업적인 입장에 서서 행동하면 되는 거요.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놈들의 동태를 알고 싶소." "자네를 경찰의 앞잡이로 생각하고 있네."
웨더비는 거의 숨이 막힌 듯이 말했다. "그들은 특공대를 조직했어. 이번에도 자네가 놈들을
공격하려 한다면 그때는 분명히 놈들에게 당하고 말거야. 녀석들은 모든것을 준비했어. 없는
것은 원자폭탄 뿐일 걸세." "정말이오?" "물론이지. 이제 승산이 없네. 보란. 한번은 자네가
그 놈들을 마구 두들겨 주었지만 이제는 안 돼. 만약 자네가 공격을 재개해서 놈들에게 자
네의 위치를 알린다면 자네는 그걸로 마지막이야. 아마추어는 항상 그렇지만 자네는 정말
곤란한 일만 저지르고 있어. 자네 때문에 우리가 5년간이나 해온 비밀수사가 하마터면 물거
품이 될 뻔했어."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비밀 수사를 하고 있소?" "물론이지. 내가 자네
에게 말해준 여러가지 정보가 어떻게 입수된 것이라고 생각했나?" "5년 동안이나 말이오?
언제 까지 그런일을 계속할 작정이오?" "필요하다면 언제까지라도 계속할거야. 우리는 그들
에 관해서 확고한 증거를 잡아야 하네. 우리는 지금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5년 동안
이나? 그 5년 동안에 놈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당신은 알고 있지 않소, 웨더비?" 형사부장
은 초조함을 누르며 답답한 듯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
네." "나도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나는 그런 일을 위해 5년씩이나
한가히 기다릴수는 없소. 경찰들을 내게 접근 시키지 마시오. 웨더비. 오늘밤도 한바탕 벌일
참이니까 말이오." "그래? 그러나 무슨일이 있어도 자네가 그렇게 못하도록 막을 거야." "나
를 막으려 해도 소용 없소. 그것은 또한 나와 당신네들의 공동의 적인 놈들만 좋게 해주는
것일 뿐이오. 다시 말하지만 경찰을 접근시키지 마시오." 보란은 전화를 끊고 자동차로 돌아
와 시트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는 곰곰히 웨더비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말할 것도 없
이 웨더비의 말이 옳았다. 상황은 지금 그에게 극히 불리했다. 맥 보란은 사실주의적인 군인
이었다. 전통적인 정략 행동에서는 강대한 병력과 무기를 갖고 있는 쪽이 반드시 승리했다.
그러나 우위란 항상 수의 문제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한개 소대의 정예는 신병뿐인 한개
중대를 무난히 격파할 수 있다. 한대의 탱크는 보병 1개 여단을 무찌를 수 있다. 월남전에서
는 화기와 기동성이야 말로 전략적 우위성을 결정하는 요소였다. 싸움터에서 살아남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란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몽상가가 아니며 육탄적인 전법을 오히려 경멸하였
다. 만일 그가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면 자신을 적과 대등한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무엇
인가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제까지는 그의 작전대로 잘 되어 왔었다. 목적했던
바는 이루어졌다. 적어도 적의 정체를 백일하에 드러나게 한데는 성공한 것이었다. 상류사회
의 명사라는 사회적인 연막속에 숨어있는 적을 끌어낸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적은 사방
에서 모여들어 더욱 그 정체를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보란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결정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웨
더비의 상황분석은 정확했다. 이번엔 놈들도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놓고 보란을 죽이려 하
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마 무서운 함정을 파놓고 말이다. 보란은 그들과 맞설수 있는 특
별한 공격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단 한명의 저격수가 중대 병력의 적을 상대로
하여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단 말인가? 보란은 갑자기 미소를 짓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는 앞을 향해 곧 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세라는 것은 수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는
자신에게 다짐하고 또 했다. 그는 곧 바로 시가지 끝쪽에 있는 공업 지대로 향했다. 그곳에
이르러 그는 창고들이 늘어서 있는 고으로 들어갔다. 보란은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
수년 전에 그는 특별 임무로 몇 주일 동안 이곳 창고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그
창고만 찾을 수 있다면..... 다행히도 그 창고는 곧 찾을 수 있었다. 이상하게 지붕이 평평하
고 얕은 콜게이트의 철판으로 만들어진 창고 였다. 비바람에 의해 거의 바래고 지워진 표찰
은 서플러스 엑스포트 INC, 그 밑에 작게 불에 구운 글자로 씌여져 있는 MDI는 보란의 기
억으로는 뮤니션 디스트리뷰터스 인터내셔널의 머리 글자 였다. 유능한 병기계였던 보란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부에서 불하한 막대한 양의 잉여 병기와 탄약을 수출하는 이곳에서 병
기를 분류 기록하는 일을 맡아 본 적이 있었다. 보란은 그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에 그가 취
급한 병기의 대부분은 이제까지 한번도 사용한 일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 병기들은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시의 잉여 병기 였다. 미국 국내에서는 팔리지 않는 병기들을 무역회사들은
활발하게 해외로 팔아 넘겨 돈을 벌고 있었다. 보란이 그 임무를 명령받았을 무렵 그러한
무역은 눈부신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월남전 때문에 창고가 비어 있지 않
길 빌었다. 그는 그때에 이 창고를 통하여 흘러 나가고 있는 무기가 모두 잉여 병기만은 아
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란이 취급하고 있었던 것은 진짜로 구식 병기뿐이
었다. 하여튼 구식이라도 좋으니 몇 개의 무기만 손에 들어온다면 다행이었다. 보란은 출하
구의 그늘에 자동차를 세우고 창고의 뒤쪽으로 돌아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
리고 그는 오랜 기억을 더듬에 경보 장치가 어떻게 되어 있었던가를 생각해 내었다. 그는
자동차로 돌아가 연장 벨트를 허기에 차고 스페어타이어의 우묵한 곳에서 한 뭉치의 지폐를
꺼내었다. 보란은 침입하는 순서를 이미 머릿속에서 그려 놓고 있었다.
10분 후, 그는 창고의 통풍구를 타고 내려와 <특수 병기>가 있는 구획으로 걸어갔다. 그
는 전략적 우세를 가져올 수 있는 병기를 민첩하게 골랐다. 그는 그가 골라낸 병기의 전문
용어를 리스트에 작성하고 그 추정 가격도 적어 넣었다. 그는 완성된 리스트를 두 번이나
검토하여 계산한 뒤 10퍼센트의 오차를 감안하여 숫자를 더 올려 눈에 띄기 쉬운 장소에다
돈과 리스트를 남겨 놓았다. 그는 도둑이 아니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그러다가 그는 씁슬
한 쾌감을 맛보면서 생각했다. 적을 쳐부수기 위한 쇼핑을 적의 돈으로 한다는 것이 얼마
나 재미있는 일인가?
그는 경보 장치를 풀고 공공연하게 출하구의 문을 연 뒤 자동차에 무기를 싣고 다시 안으
로 들어가 경보 장치를 원상태로 해두고는 들어갔을 때와 같은 방법으로 창고 밖으로 나왔
다.
그의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창고들의 경비를 맡고있는 민간 경비원의 자동차가
천천히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보란은 빙긋 웃으며 고속도로로 차를 몰았다.
이렇게 하여 보란은 열세인 화력을 보충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적을 끌어내는 일이다!
22. 밤의 축제
보란은 아파트의 뒤쪽 입구에서 자동차를 멈췄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 발소리를 죽이고 511호실로 다가가 문에 귀를 대고 안의 기척을 살폈다. 잠시 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지금 곧 가겠어." 보란은 벨을 누르는 대신 다치지
않은 쪽의 어깨로 벨 근처에 기댔다. 안에서 열쇠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그는 방으로
뛰어 들어갓다. 안에 있던 사나이가 깝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 사나이가 더듬거리며 말햇다. "나를 알고 있군. 옷을 입어. 밖으로 나가야 하니
까." 보란이 차갑게 말했다. 사나이는 되돌려 아파트의 안쪽으로 뛰어가려 했으나 보란은
사나이의 뒤를 쫓아가 한 팔을 잡아 돌리면서 주먹으로 배를 한 방 후려쳤다. 사나이는 신
음 소리를 내며 맥없이 옆에 놓여 있는 작은 테이블레 쓰러지려 했다. 그러나 보란은 쓰러
지려는 사나이의 멱살을 잡고 침실로 끌고 갔다. 몇 분 뒤에 두 사람은 아파트의 뒤쪽으로
나와 보란의 자동차에 올라탔다.
아파트의 문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친 이후부터 두 사람은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앗다.
사나이는 자동차의 뒷좌석에 놓여 있는 덮개를 씌워 놓은 불룩한 것을 보고 물었다. "저것
은 뭐죠?" "누군가의 시체인지도 모르지." 보란은 조용히 대답했다. "쓸데없는 짓을 하면
너도 순식간에 저렇게 될지 모르니 조심하라구!" 사나이는 겁에 질려 몸을 떨며 똑바로 앞
을 쳐다보았다. 잠시후에 그들이 탄 자동차는 에스코트 언리미티드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
나이가 먼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란도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무슨 짓
을 하려는 거요?" 사나이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아, 아무 짓도 하지 않아. 다만 자네
에게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 보란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매출을 하고 있는 여자
의 병단을 저부 프린트해. 콜 걸, 하우스 걸, 스트리트 걸 등 모두 빠짐없이 말이야. 지금
당장!" "좋아요, 알았어요." 프로그래머인 그 사나이가 재빨리 대답했다. "이상한 버튼은
누르지 말게. 그런 짓을 하면 그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거야. 조심하게. 재가 시키는 것만
하면 돼. 만약 자네가 허튼 짓을 한다면 자네를 그냥 두지는 않을 거야. 알겠지?" "알고
있소." 사나이가 힘없이 대답했다. 얼마 후, 보란은 사나이를 거리에 남겨둔 채 자동차를
타고 급히 사라져 갔다. 프로그래머가 이 일에 대해 지껄인다 해도 그에게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의 일이 끝나면 그는 리스트를 웨더비 형사부장에게 보내줄 작정이었
다. 이 리스트는 경찰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보란은 그의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새벽 1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그의 얼굴에 차가운 웃음이 번져 나갔다. 이제부터 엄청난
밤이 시작되는 것이다.
보란은 어두운 홀을 지나 어떤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잠시 문에다 귀를 대고 안의
동정을 살폈다. 문을 밀치자 열려진 방 안의 풍경은 마치 포르노 사진과 같았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흐트러진 침대 발치에 알몸을 걸치고 두 다리를 한껏 벌리고 있었
다. 여자의 벌어진 다리 사이에 역시 벌거벗은 사나이가 서서 여자의 허리를 힘차게 껴안
고 있었다. 문 여는 소리에 그 여자와 사나이는 놀란 듯이 문에 서 있는 보란을 쳐다보았
다. 그러나 사나이는 허리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야릇하고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보
란은 거침없이 방을 가로질러 그들에게로 다가가 손등으로 사나이의 얼굴을 힘껏 내리쳤다.
사나이는 여자의 허리에서 손을 떼며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보란은 이들이 가엾게
도 생각되었으나 성전에 그런 동정은 소용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사나이를 혼내준 것을
생각했다. 사나이를 혼내준 것과같은 수법으로 여자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세게 때렸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가 퉁기듯이 몸을 일으키고는 천한말로 보란을 향해 쉴 새
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사나이는 땅에 흩어져 있는 옷을 주워 들고는 알몸인 채로 방에서
뛰쳐나갔다. 그러자 홀의 끝에 있는 문이 열리면서 25세 가량 되어 보이는 사나이가 예리
한 나이프를 손에 들고 달려가 보란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보란은 재빨리 사나이의 손을
나꿔채며 나이프를 바닥에 떨어뜨린 뒤 사나이의 머리를 힘껏 벽에다 밀어붙였다. 힘없이
방바닥에 쓰러지는 사나이를 보고는 여자가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보란은 여자 쪽을
돌아다보고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또 여기서 돈벌이 하고 있는 여자는 없나?" 여자가
지나칠 정도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래층에 ……바에 있어요." 그녀는 겁에 질려 보
란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래? 확인해 볼까?" 보란은 방에서 나와 홀에 접
한 문을 모조리 열며 지나갔다. 방은 모두 여섯 개가 있었는데 모두 비어 있었고 마지막
방에 수확물이 있었다.
두 여자가 알몸인 채로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얽혀 있었으며 머리
는 잘 보이지 않았다. "소란이 귀에 들리지 않나?" 보란은 큰 소리로 말하고 한 손을 뻗
어 엉켜 있는 두 여자를 단숨에 방바닥으로 끌어내였다. 40세가 훨씬 넘어 보이는 여자의
황홀한 표정이 갑자기 험악해졌다. "뭐예요? 당장 나가요!" 여자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돈을 벌고 있는 건 어느 쪽이야?" 보란이 웃으며 물었다. 아름답게 생긴 젊은 여인이 천
천히 일어서더니 겁에 질린 얼굴로 보란을 쳐다보았다. "나를 때리겠어요? 회초리는 가지
고 있나요?" 그녀는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와!" 보란은 여자를 잡아 끌어 손바
닥으로 여자의 엉덩이를 두둘겨주고는 다시 그녀를 침대로 떠밀었다. 그리고 옆의 의자에
걸쳐져 있는 나이 많은 여자의 옷을 집어 들고는 멍청히 서 있는 여자의 목에 감아준 뒤 밖
으로 내쫓았다. "싹 꺼져 버리는 게 좋을 거야!" 그는 여자에게 겁을 주면서 말했다. "곧
이곳을 날려 버릴 테니 말야!" 여자는 울상을 하고는 옷을 입을 생각도 못 하고 알몸인 그
대로 달아났다. 보란은 빙그레 웃으며 달아나는 여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방으로 되돌아왔
다. 젊은 여자는 당황해서 침대 커버로 허리 근처를 가렸다. "레오에게 전해! 나는 메인
스트리트의 창녀집의 마음에 들이 않았다고 말야." 보란은 그렇게 말하고 저격수의 메달을
침대위에 던졌다. "꼭 그렇게 말해!" 그는 방에서 나와 조용히 뒷계단을 내려와 자동차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10분 후 그는 시내 주택가에 있는 어느 저택의 뒤쪽에다 차를 세웠
다. 그는 파일에 적힌 리스트를 보고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차에서 내려 그 집의 뒷문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그는 자동차로 돌아와 트렁크에서 쇠지렛대를 꺼내 다시 뒷문쪽으로 갔
다. 그가 정확한 위치에 쇠지렛대를 대고 비틀자 문이 열렸다. 그는 곧 열려진 문으로 들
어갔다. 안은 좁은 홀이었으며 오른쪽 유리 창문을 통해 부엌이 보였다. 홀의 안쪽 벽에는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그리고 문의 저쪽에서는 무엇인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하
이파이 전축의 높은 볼륨과 남녀의 괴성으로 보아 방 안의 분위기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보란은 권총을 뽑아 들과 부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눈앞에 벌거벗은 여자가 술에 취
한 것 같은 모습으로 타일 위에 서서 냉장고의 얼음을 꺼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벗고 잇으면 얼어 버릴 텐데!" 그녀의 옆을 지나가면서 보란이 한마디 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녀가 중얼거렸으나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커
다란 방 안에는 값비싼 동양풍의 고급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많은 인간들이 취해서 서로 끌
어안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불빛은 어두웠고 아무도 움직이고 있지는 않았으나 이야기는
끊입없이 계속되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거기서 보란은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부엌으로 되돌아가 아직도 얼음을
꺼내기 못하고 있는 알몸의 여자를 위해 얼음을 꺼내 주고 그 답례로서 키스를 받았다. 그
는 현관으로 나와 세탁용 수도를 살펴보았다.
그는 들어올 때 정원에 살수용 호스가 있는 것을 봐두었었다. 그는 정원에서 호스를 가
지고 들어와 한쪽 끝을 세탁용 수도에 끼우고 반대쪽 끝을 클립으로 막은 후 수도 꼭지를
한껏 비틀어 찬 물이 나오게 했다. 그리고 그는 호스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엌 바닥에서 얼음을 줍고 있는 나체의 여자 엉덩이를 가볍게 두들기고는 방 안으로 갔
다. 벽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천장의 불이 모두 켜졌다. 여기저기서 투덜거리는 소
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왜 또 불을 켜는 거야!" 방에는 30명 가량의 남녀가 있
었는데 모두가 알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복잡하게 손발과 상반신이 엉켜 있었다.
방 가운데 있던 젊은 여자가 째지는 듯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보란이 예리한 눈으로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사방으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 상태로서는 소리를 지
르려면 째지는 듯한 소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 당연했다. 다른 쪽에서도 불이 켜졌다고 불
평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보란은 슬픈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이
쪽을 봐! 맥 보란이다!" 그러나 두세 사람이 꿈틀하고 몸을 돌렸을 뿐이었다. 보란은 45
구경의 안전 장치를 풀어 전축을 쏘아 구멍을 냈다. 음악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귀청을
울린 총소리에 방 안의 남녀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보란을 바라보았다. 보란은 호스 끝의
클립을 벗겨 내어 그들을 향해 찬 물을 마구 뿌려 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왜 이런 짓궂
은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와 불평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나
이들은 욕을 하면서 꾸물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여자들은 저마다 비명을 질러 댔다. 보
란은 호스를 방에다 그대로 버려 두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그 나체의 여자에게 키스의 답례
를 한 다음 여자의 부풀어 오른 우윳빛 유방 위에 저격수의 메달을 걸어 놓고 그곳을 나왔
다. 그는 또 마지막으로 성전을 장식하기 위해 꼭 가야 할 곳이 있었다. 그는 신중히 그 장
소를 선택하기 위해 교외를 향해 차를 달리기 시작했다. 정각 2시 30분. 보란은 시가의 동쪽
에 있는 인가도 드문 교외의 한 호화로운 저택에서 약 100야드 가량 떨어져 있는 숲속에 차
를 세웠다. 그는 자동차의 뒷좌석에서 커다란 통조림 크기의 연막탄 세 개를 꺼내어 주머니
에 넣고는 숲을 지나 저택 쪽으로 걸어갔다. 저택의 창에는 모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으나
불빛이 밖으로 흘러 나오고 있다. 요란한 음악 소리와 여자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보란
의 귀에 들렸다. 주차자에 있는 많은 자동차들로 보아 오늘의 파티는 꽤 요란한 것 같았다.
그는 몸을 숙이지도 않고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 쪽으로 다가가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
였다. 얼마 동안 그러고 있으려니까 바로 가까운데서 사나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이어 다
른 사나이가 소리를 죽이고 킥킥거리며 웃었다. 보란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가 목소리
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커다란 저택의 끝에서 15피트 정도 떨어진 곳에 두 사나이가 보란에
게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두 사나이는 각각 총신이 짧은 총을 느슨하게 안고 태평스럽게
농담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 오는 친구들은 머리가 돈 게 아닐까? 나 같으면 이런 파티
에 250달러를 지불하는 바보 같은 짓은 안 할 거야." "이봐. 저 친구들의 250달러는 자네나
나 같은 것의 25센트보다도 가치가 없는 거야." 다른 사나이가 부러운 듯이 말했다. "25센
트로 저렇게 즐길 수 있다면 나느 기꺼이 투자하겠네." "분명히 레오도 여기 올 것이라고
했지?" 키가 작은 사나이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면서 물었다. "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은데 자네 혹시 레오를 봤나?" " 아냐. 레오는 오늘도 여기 오지 않을
거야. 내기를 해도 좋다구. 검은 옷의 사나이가 날뛰고 있으니 그 친구들은 겁이 나서 꼼짝
않고 움츠리고 있을 거야." "난 쓸모없는 이 총으로 레오의 엉덩이를 후려갈기고 싶어. 이런
것을 들고 있으려니 무거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렇다면 그것을 땅에 내려놓게!"
갑자기 그들의 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가만히 내려놓으라구, 움직이거
나 소리를 내면 목숨은 없어." 두 사나이는 놀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키가 작은 사나이
는 총을 가진 팔을 똑바로 앞으로 뻗고 천천히 몸음 굽혀 총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키
가 큰 사나이는 잠자코 있지 않았다. "누구야, 당신은?" 사나이는 똑바로 앞을 보고 물었다.
"지금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잖은가?" 보란이 대답했다. "뭐라고? 그럼 당신이…." 사나이의
말은 커다란 45구경 권총이 그의 관자놀이를 뚫고 지나가자 딱 끊겼다. 사나이는 힘없이 푹
쓸러졌다. 그러자 검은 옷의 사나이는 땅바닥에 놓여 있는 총을 집어 들어 총신의 뒷부분을
벗겨 내고는 날카로운 나이프의 끝을 키가 작은 사나이의 목에 갖다 댔다. "너를 죽이고 싶
은 생각은 없어. 꼬마야." 보란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물어 보는 말에 순순히 대답만 해준
다면 지금 죽게 되는 비극은 없을 거야. 알겠지?" 사나이는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입술
을 떨며 헛기침을 하고 나서 겨우 입을 열었다. "무엇이든지 말하겠소." "감시원은 모두 몇
명이나 있나?" " 두 사람 더 있습니다." "그들도 총을 갖고 있나?" "물론이죠. 그리고 규칙
상 이렇게 모여 있으면 안 됩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모양이었다. " 내 위치는
정면이고 찰리는 이쪽이었죠. 매트는 뒤쪽이고 앤드가 그 반대쪽이에요. 그리고 집 안에 두
명이 더 있어요. 이층에 한 명이 있고. 다른 한 명은 정면 입구를 지키고 있어요. 그들은 이
것 대신에 숄더 홀스터로 총을 차고 있어요." "창녀집치고는 경비가 지나치게 삼엄한데?"
검은 옷의 사나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녀석들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었기 때문
이오." 사나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쉰 것처럼 들렸다. "녀석들은 지금
벌벌 떨고 있어요. 우리의 급료를 올려줄 정도 로 말입니다." "게다가 나를 죽이면 보너스까
지 준다고 했겠지?" "보너스 정도가 아니오. 자그마치 10만 달러요." "넌 보너스를 받을 생
각이 없나? 10만 달러가 무척 욕심이 날텐데…." "내가요?" 사나이의 쉰 듯한 목소리가 갑
자기 본래대로 돌아왔다. "내가 말이오? 천만에요.난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소. 또 난 당신
에게 원한도 없으니 말이오. 검은 옷차림 씨. 잠깐만 기다려요. 그리고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제발 그 나이프 좀 치워줘요, 조금만 더 밀어 대면 내 목이 잘라질 것 같아요." 사
나이가 겁에 질려 얼굴을 찡그리면서 애원하듯이 말했다. "얌전히 굴어! 서툰 짓 하면 당장
네 목을 잘라 버릴 테니까. 알았지? 이름이 뭐야? " "내 이름은 해리요." "말해봐. 해리 .저
기 커다란 창문이 있는 방은 무엇을 하는 곳이지?" " 아아. 저건 바 같은 곳이오. 방 한가운
데를 터서 만든 아주 킅 클럽 룸 같은 거죠. 지금은 마침 파티중이오. 한창 열이 올라 있을
거요." "무슨 파티지. 해리?" "섹스 파티예요." "이층은?" "모두가 침실이에요. 그리고 참. 홀
끝에 거실 비슷한 방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곳에 이층의 감시원이 있어요." "파티를 하고
있는 방의 저쪽에는 무엇이 있나?" " 아까 말했잖아요? 벽의 문들을 옆으로 붙여 버리면 거
기는 커다란 하나의 방이 되는 거라구요. 끝에서 끝까지 말이오." "지금 안에는 몇 사람이나
있지?" "확실히는 잘 모르지만 32명까지는 내가 세어 보았소. 아마 그보다 많은 게 분명하
지만 32명은 틀림없이 저 안에 있을 거요." "여자는?" "물론 여자도 있죠. 정식이 25명. 그
리고 스폐셜 15명쯤 되거요." "스폐셜이라면 어떤 여자를 말하는 건가?" "섹스의 묘기 같은
특기를 갖고 있는 여자를 말하는 거죠." "과연 그렇겠군! 좋아, 해리 많은 참고가 되었어. 만
약 네가 말한 것이 거짓말일 때에는 나는 여기로 다시 돌아와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거
야. 알겠지?" "나는 거짓말 같은 것은 하지 않아요." "그럼 가볼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사나이의 목에 대고 있던 나이프를 떼자마자 사나이의 뒤통수를 45구경의 손잡이로 한 대
후려쳤다. 말 많은 제보자는 소리도 없이 쓰러졌다 .보란은 사나이의 총을 집어 들고 언제든
지 쏠 수 있는 상태로 장탄한 뒤 저택의 커다란 창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허리에
매단 주머니에서 연막탄을 한 개 꺼내어 땅 위에 놓고 총으로 유리창을 두들겨 깨고는 유리
파편을 피하기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커다란 창문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순간 그는 날아오는 파편을 피하면서 커튼 너머로 보이는 천장을 향해 총의 두 방아쇠를 한
꺼번에 당겼다. 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굉음은 안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는 이세상의 종말
을 알리는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두꺼운 커튼에는 수박만한 크기의 구멍이 뻥
뚫려져 있었다. 보란은 연막탄의 고리를 잡아당긴 뒤 커튼의 구멍을 통해 뿜어져 나와 순식
간에 커튼과 창틀 사이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보란은 쓰러져 있는 감시원 쪽으로 달려갔
다. 보란의 등 뒤에서는 수많은 남녀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땅에서 총을 주워 들
고 다시 조립한 뒤 발포에 대비했다. 바로 그때 저택의 반대쪽에 있던 감시원이 모퉁이를
돌아 뛰어나오고 있었다. 보란은 그쪽으로 총을 돌려 방아쇠를 당겼다. 맨 앞에 달려오던 사
나이가 가슴에 총알을 맞고는 부서진 인형처럼 허공을 한 바퀴돌아 땅바닥에 쓰러졌다. 곧
이어 같은 방향에서 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보란이 다시 총의 방아쇠를 당기자 사나이는
찢어지는 듯한 고함을 지르명 총알 맞은 배를 부둥켜안고 쓰러졌다. 보란은 탄환이 다 떨어
진 총을 땅바닥에 집어 던지고 지신의 45구경을 뽑아 들었다. 이때 이층의 창문이 활짝 열
리면서 손에 총을 쥔 한 사나이가 어리석게도 밝은 불빛 속에서 몸을 내밀었다. 맥 보란은
45구경이 이층 창문을 향해 불을 뿜자마자 사나이는 뒤로 몸을 젖히듯 창문 안으로 쓰러지
며 사라졌다. 보란은 재빨리 정면의 입구로 달려갔다. 그러자 또 한 사나이가 총을 겨누며
현관 쪽에서 뛰어나와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던 사나이는 허수
아비처럼 사격을 멈추더니 땅바닥에 쓰러졌다. 보란은 다시 저택의 옆쪽으로 돌아가 연막탄
을 이층 창문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는 자동차로 돌아와 급히 사우스힐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성전의 전초전은 끝났다. 이제 곧 대살육의 막이 오를 것이다. 보란은 서곡의 연
주가 너무 길지 않았는지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23.비상사태
"그 미친 놈이 날뛰는 바람에 간신히 도망쳐 왔어요!" 플래스키가 세르지오의 침실로 뛰
어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레오도 지금 이리로 오고 있어요. 그리고 ." "잠깐 진정
하게." 노인이 그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것 봐.좀 조용히 하라구!"
그는 옆에 서 있는 보디가드에게 고갯짓으로 무엇인가를 지시했다. 보디가드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로 가서 책상 위의 전화를 집어 들었다. 세르지오가 침대 끝에
나와 앉으며 말했다. "네트,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건가?" "제 말은 보란이라는 놈이 또 날
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플래스키는 잠시 숨을 가다듭더니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을 계속
했다. "놈은 한 시간도 안 되는 동안 레오의 창녀집을 세 곳이나 부숴 버렸어요. 그리고 메
도스에서는 경비원을 네 명이나 죽였어요. 지금 레오가 월트와 함께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되었군. 안 그런가?" 세르지오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말
했다. "그래요. 하지만 영감님은 놈이 하는 짓을 그냥 보고 있기만 할 건가요?" "그럼 자넨
더 좋은 방법이 있단 말인가?" "네. 세르지오님. 우선 경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원 소집을 ." "그런 건 지금 테리가 진행하고 있네." 세르지오는 거실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사나이를 보면서 말했다. "우선 내가 지시하는 대로만 해. 지금 곧 회의실에 가서
무대가 잘 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게. 알겠나?" "알겠습니다. 세르지오님. 곧 가서 확인하겠
습니다." 그는 급히 방을 나와 이층에 있는 큰 회의실로 갔다. 회의실에는 모든 게 잘 준비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의자마다 사람들이 모두 앉아 있었다. 플래스키는 의자에 앉아 있는 마
네킹의 자세를 고쳐 주고 테이블 위의 술병들을 마네킹 가까이에 옮겨 놓았다. 그리고는 자
동으로 된 전자 장치 버튼을 눌렀다. 전자 장치는 곧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면서 커튼에
비치는 그림자에 움직임을 주는 것이었다. 플래스키는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밖으로
나가 이층의 창문을 올려다보았다.밖에서 보기에 그것은 완전했다. 방 안에서는 열기를 띤
집회가 진행되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플래스키는 세기의 이단자를 맞이하는 가족의 전략적
환영회에 기대를 걸며 천천히 사방을 훑어보았다.
월트 시모어는 벌써부터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겠는지 들뜬 모습이었다. "그런데 레오, 오
늘밤 놈이 사우스힐스를 공격해 오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그는 터린을 쳐다보면서 초
조한 듯 물었다. 터린은 기분 나쁘게 웃으며 프리웨이의 갈림길을 내려와 호화로운 저택들
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고급 주택가의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놈의 수법은 뻔한
거야. 놈은 우리의 매춘 영업을 못 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야. 놈이 진짜로 노리는 것은 우리
를 마구 짓밟아 버리는 거라고. 한 번은 그것이 들어맞았지. 그래서 놈은 또 같은 수법으로
우리에게 겁을 줘서는 우리 가족들이 한곳으로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지. 우리가 모두
모였을 때 독 안의 쥐를 잡듯이 한꺼번에 쳐부수려는 것이 놈의 계획이겠지. 우린 바로 그
것을 기다리고 있는 거라네, 월트." "그런데 놈은 어디에 숨어 있다 나타나는 것일까?"
시모어의 얼굴에 경외의 빛이 떠올랐다. "글쎄 .나도 놈이 상처가 나을 동아 도대체
어디에 숭어 있었는지 궁금해. 지난번에 놈이 우리 집에 쳐들어 왔을 때 내 마누라가 틀림
없이 놈을 명중시켰는데 말이야."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오늘밤에 놈이 저진른 짓을 보면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아낳아. 하여튼 대단한 놈
이야." "놈은 반드시 또 쳐들어 올 거야. 어딘가 가까운 곳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몰라. 망원경 같은 것으로 말야." 터린이 몸을 떨며 말했다. "아니면 저격병들이 쓰는
적외선 망원 렌즈 같은 걸로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거야. 레오, 자네 군대에 있을 때 적외선
망원 렌즈를 사용해 보았나?" "그래, 그런 굉장한 거였지. 2500야드 정도의 거리에서 파리의
입이 보일 정도라네." "파리의 입이 보일 정도라구?" 시모어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터린을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리자 터린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또 한 번 놈이 우리에게 미친 짓
을 해온다면 그땐 놈의 숨통을 끊어 버려야 돼." 그러나 세르지오 프랭키의 저택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비가 오기 전의 하늘만큼이나 어두워져 있었다.
보란은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고 천천히 다이얼을 돌렸다. 처음의 신호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여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여보세요?" "나는 침실의 유령이야."
보란이 유쾌하게 말했다. "오! 맥! 당신 무사했군요." "물론이지, 발렌티나! 그런데 나의 불
타는 정열이 당신을 그리워한단 말이야. 당신이 걱정할까 봐 전화했어. 당신, 내 전화를 기
다리고 있었나 보군." "맥, 당신과 함께가 아니라면 이젠 혼자서는 침대에 들어가지 않을 거
예요. 저는 지금까지 긴 의자에 앉아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발 무사히 돌아와 줘
요, 맥. 제발 ."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유산이라 생각하고 당신이 맡아줘. 그
돈은 누구의 돈도 아닌 내 돈이니까 말이야. 알겠지, 발렌티나?" "맥,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요. 당신이 돌아오는 것만이 제 소원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은 꼭 제게로 돌아와야
해요. 전 당신만이 필요해요!" "그런 소릴 해서 미안해. 하지만 내게 어린 동생이 있다는 것
을 당신도 알고 있지? 동생은 돈이 필요해. 그래서 하는 말이니 ." "맥, 참을 수가 없어
요." 그녀의 울음소리가 전화기 저쪽에서 들려 왔다. "울지 말아요, 발렌티나.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난 그저 당신에게 돈 얘기를 해두고 싶었을 뿐이야." "제게 필요한 건 오직 당신뿐
이에요. 맥, 당장 전화를 끊고 네게로 돌아와 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그녀가 훌쩍거리며
말했다. "당신은 나를 무척 곤란하게 만드는군. 이 일은 내가 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 그가 달래듯이 말했으나 그녀는 말없이 울고만 있었다. 한참후에
야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침착하게 말했다. "알겠어요. 용기를 내겠어. 맥." "그래야지. 나의
귀여운 아가씨. 이젠 침대로 들어가서 편안히 자요. 내가 집에 돌아가면 졸리지 않는 얼굴로
나를 반겨 줘야지." "그러겠어요.맥" "사랑해, 발렌티나!" "오! 맥, 사랑해요! 사랑해요!" "이
런 연애도 멋있군. 그렇게 생각 안 해, 발렌티나?" 보란이 유쾌하게 웃으며 발했다. "그래
요, 정말 멋있어요." "자, 그럼 일을 시작할 때가 되었군. 당신은 걱정하지 말고 나를 기다리
고 있어야 해." "약속하겠어요, 맥. 조용히 기다릴게요. 그리고 또 ." "또 뭐지?" "전 당
신이 누구를 죽이든 몇 사람을 죽이든 상관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꼭 돌아와 주세요." "꼭
돌아가지."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지금까지 웃고 있던 그의 얼굴은 어느새
차가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지금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생의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그
러나 그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위험한 순간을 맞이해야만 한다. "발렌티나, 난 꼭 돌
아간다.!" 그는 수화기에 가볍게 입술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적들의 긴급 회의를 부숴 버리
기 위해 그는 그 자리를 떠났다.
메트로폴리탄 경찰국의 형사부장 알 웨더비는 보온병과 샌드위치를 들고 젊은 부하인 존
파파스 경사와 함께 차고로 내려갔다. "오늘밤에 놈들이 운영하는 창녀집이 세 곳이나 당했
다면서요?" 파파스 경사가 싱글거리면서 말했다. "그래, 하지만 그렇게 신나는 얼굴은 하지
말게. 그 녀석은 우리까지도 바보로 만들고 있단 말이야." 조금 후 그들은 자동차의 문을 열
었다. 파파스가 먼저 차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웨더비가 내미는 짐을 받았다. "아니 이
많은 걸 오늘밤에 다 먹어 치울 생각입니까?" "나 혼자 먹을 건 아니야. 우리 두 사람의 몫
이지. 오늘밤은 상당히 길 테니까 이정도는 먹어야 할 거야." 웨더비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겨우 3시가 넘었는데, 전 2시에 식사를 했으니 뭐 별로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요?" "아침 식사는 아마 늦어질 거야. 그러니 든든히 먹어둘 게 있어야 해." 웨더비가 신호
를 보내자 자동차는 가볍게 비탈길을 올라갔다. "출동한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파파스 경사가 큰 소리로 물었다. "현장 주위에 모두 12대의 차가 배치돼 있어. 사건이 발
생하면 그중 8대는 직접 행동에 돌입할 게고 나머지 4대는 증원이 필요할 때 투입될 지원반
이야. 물론 보안관도 협력하고 있어. 보안관은 골짜기 쪽에 최소한 12명 이상 투입하기로 돼
있네." "기마대인가요?" "가능하면 기마애를 배치하겠다고 했는데 잘 모르겠어." "그를 잡을
수 있을까요?" "아마 이번엔 빠져 나가지 못할 거야. 하지만 ." 웨더비 부장은 잠시 생각
에 잠기는 듯했다. 그리고 파파스 경사에게 얼굴을 돌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신문
쟁이들 말처럼 그놈이 유령이라면 잡히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그들이 탄 차는 점점 더 속
력을 내고 있었다. "조니! 그렇게 서둘러 달리지 않아도 돼." 웨더비가 과속이 염려되는 운
전석에 앉은 파파스에게 말했다. "늦으면 안 되잖아요!" 파파스가 웃으며 웨더비에게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전 이 멋진 구경거리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요." 형사부장은 아무 말 없이
두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잠시 후 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마침내 그는 아마겟돈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그들을 모이게 했으니 ." "네? 무슨 얘기죠?" 파파스 경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요한 계시록의 한 구절이야. 그 구절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 같
다구." 파파스는 무의식중에 몸을 한 번 떨더니 마치 핸들을 덮듯 상체ㅐ를 앞으로 잔뜩숙
였다. "아마겟돈이라는 곳으로 ." 그는 부장의 말을 그대로 받아 외어 보았다. 그리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말하자면 지옥과 같은 곳이란 말씀이시죠?" "아니야. 지옥은 아니라구!
아마겟돈이라 두 세력이 최후의 결전을 치렀던 장소란 말이야. 이봐! 조심해!"
파파스 경사는 느릿느릿 달리고 있던 두 대의 자동차 사이를 마치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
게 빠져 나갔다. 그때 웨더비의 몸은 한쪽으로 처박히듯 했다. 부장은 화가 난 듯 뭐라고 혼
잣말로 투덜거렸다. "두 세력이라구요?" 파파스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그의 투덕거림을
완전히 무시한 채 다시 물었다. "선과 악, 두 개의 세력을 말하는 거야. 이봐, 파파스! 정말
이렇게 속력을 내다간 바로 이고속도로 위가 아마겟돈이 되고 말거야! 명령이야! 당장 속력
을 늦춰!" 파파스는 하는 수 없이 엑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던 발에서 힘을 뺐다. 그리고 염려
스럽다는 듯 말했다. "늦지는 않아아죠. 정말이지 저는 아마겟돈의 결전을 놓치고 싶진 않다
구요." "자네의 그 말, 꼭실감이 나도록 해줄테니 걱정 말게!" 웨더비 부장이 느긋하게 말했
다.
24.처형의 언덕
맥 보란은 세밀하게 지형 정찰을 해두었던 숲속 으슥한 곳에 차를 세웠다. 그곳은 세르지
오 프랭키의 사우스힐스 저택의 정면에 있는 언덕으로 숲이 우거진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얼마간 나무 사이를 헤치고 나가 언덕의 움푹패인 곳의 진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할 때 역시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는 자동차에 실려 있는 병기들을 그곳까지 운반하느라 여러차례 그 진지와 자동차 사이
를 왕래했다. 그는 그 언덕을 <처형의 언덕>이라 부르기로 작정했다. 근처에는 인가가 전혀
없었으며 그 진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얼마간의 택지가 조성돼 있긴 했으나 아직
들어선 저택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동차와 진지 사이를 왕래하는 동안 몇 번이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보란이 잔뜩 긴장한 채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자 멀리서 웅성
거리는 소리가 느껴졌다. 한 번은 욕지거리를 늘어놓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에 드디어 3,40야드 전방에서 사람을 태운 말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경사가 많이 진 곳이
라 말은 비끄러지듯 내려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 비친 말 위의 사람은 순찰 보안관인 듯했
다.
맥 보란은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은밀
히 일을 진행해 갔다. 그에게는 운반해야 할 병기가 많았다. 그가 전투를 시작하려는 그 전
장터에 뜻밖에도 훼방꾼이 경찰과 보안관이 순찰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전
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가 자리를 잡은 진지는 경사진 언덕에 우뚝 솟은 암벽에 가려
진 오목한 곳이었다. 그곳은 프랭키의 저택에서 동쪽으로 약 30도, 양각 10도인 곳으로 상록
수가 낮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가 먼저 그 장소를 답사했을 때 목표물까지의 거리는 눈
대중으로 500야드쯤이었다. 그는 이제 군용 거리계를 이용해 거리를 정확히 재고 있었다. 신
기하리만큼 눈대중은 거의 정확했다. 실제 거리 530야드. 그는 머린의 탄도를 계산해 놓은
그래프를 꺼내 살펴보았다. 이 정도의 거리면 목표물보다 15인치 위를 겨냥하면 된다는 것
을 알아냈다. 그는 몇 시간 전에 병기고에서 갖고 나온 다른 병기들의 거리도 맞추었다. 모
든 병기를 다시 한 번 점검한 뒤 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 불빛이 새지 않게 세심한
주의를 해야 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그는 오랜 습관대로 검은 가죽 표지의 수첩에 전투를 앞두고 있는 자
신의 심경을 적었고, 그것이 끝나자 그는 일어서서 크게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심호흡을 했
다. 그리고 몸에 지닌 것 중 필요 없는 것들을 제거했다. 45구결 권총과 나이프만 남기고 허
리 근처에 감고 있던 벨트와 도구들을 모두 풀어 놓았다. 정리가 끝나자 그는 조용히 그곳
에서 걸어나와 주위를 정찰했다.
웨더비 부장의 말에 따르면 마피아 일당들은 그의 공격을 예상하고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
다고 했다. 그렇다면 보란이 공격을 시작하면 저쪽에서도 반격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일 것
이다. 그리고 그들은 효과적인 반격을 위해서 집중적인 사격을 해올 것이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 보란은 별로 염려하지 않고 있었다. 현대전에서 전투 경험을 쌓은 노
련한 군인들이 마피아의 휘하에 있다면 물로 사정은 다를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전혀 전투
경험이 없는 악당들일 뿐이다. 길거리에서 총질이나 해대는 불량배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본격적인 전투에 임하게 된다면 연속적인 총성만 듣고도 좌충우돌할 것이 틀림없다.
보란은 노출된 부위에 검은 칠을 했다. 하늘도 보란의 편을 들어 주려는 듯 짙은 구름을
드리우고 있었다. 구름의 갈라진 틈이 그의 머리 위를 지나고 처형의 언덕에 희미한 달빛이
비치자 보란은 커다란 나무둥치에 몸을 기대고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숨을 죽인 채 희미한 빛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보란의 눈에 성냥 불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
였다. 불과 몇 야드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보란이 귀를 세우자 담배 연기를 내뿜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 구름이 다시 머리 위를 가리고 주위는 깊은 어둠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와 동시에 보란은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그는 발소리를 죽인채 반원을 그리며 경사진 곳을 빙 돌아 올라가 빨간 빛을 내고 있는 담
뱃불을 향해 숨을 죽이고 다가갔다.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다가감에 따라 담배를 피우고 있
는 사나이의 윤곽이 점차 뚜렷해졌다. 보란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사나이는 몸을 약간 앞으
로 숙인 채 바위 위에 혼자 걸터앉아 있었다.
보란은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썩은 나뭇가지를 주워 그 사나이 앞쪽으로 던졌다.
그것은 그 사나이의 몇 야드 앞 나무에 맞았다. 그러자 사나이는 총을 들며 방위 태세를 취
했다. "누구야! 헝크?" 그는 긴장된 목소리로 나직이 외쳤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보란이 그의 등 뒤에 다가온 뒤였다. 보란의 한쪽팔이 그 사나이의 목
을 조르는 동안 나이프는 그의 가슴 깊숙이 박히고 있었다. 사내는 곧 축 늘어졌고 총은 아
래로 굴러 떨어졌다. 보란은 이미 죽어가고 있는 그 사나이의 몸을 가만히 바닥에 뉘었다.
그는 다시 발소리를 죽이고 유격 작전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언덕을 내려갔다. 언덕의
훨씬 아래쪽에서 오가고 있는 기마 보안관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극러나 처형의 언덕까지
순찰대가 올라온다면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 경우 마피아의 단 반 번의 반격만으
로도 그는 기동성을 잃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공격에 앞서 부근 일대를
완전히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다.
<처형의 언덕에서>라는 제목을 붙인 일기의 한 부분은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었
다.
내게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내 인생에 도전하는 것을 나에게 주어진 임무로
여기고 이행해 간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해야 하는 살인이나 전투를 남이 대신 해주길 바
라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 대신 이 일을 한 사람이 법정에 선다는 것은 나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필연적인 싸움이라면 꼭 싸워야 한다. 피를 흘려야 한다면 나 스스로가 흘릴
것이다. 반드시 누군가가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스스로 법정에 나갈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참다운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물론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을 살
아가고 있는 무명 사회의 인간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과는 다른 시대, 다른 종족
그리고 다른 이상을 갖고 살고 있는 다른 유형의 동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내게 용납될 수 있는 악이란 결코 있을 수 없
다는 것을! 투쟁이 생존의 수단이 되는 한, 폭력이야말로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법칙이다.
폭력이 없는 곳에 평화란 있을 수 없다. 어떤 하나가 살아나는 순간, 다른 하나는 죽어가게
마련이다.
나는 건전하지 못한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나 자신을 책망하지는 않는다.
인생이란 그 본질부터가 건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결국 산처럼 쌓여 가는 시
체 위에서 이룩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육체는 살아 있는 죽음의 기념비에 지나지 않는다.
움직이는 묘비인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문명 사회라고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문명 사회에는 살인을 명령받은 킬러가 있다. 보다 위대한 선을 위해 사형 집행을
명령받은 사람도 있으며 보다 큰 악을 위해 사령 집행을 감행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
는 누구로부터 명령받은 일은 결코 아니다. 내 스스로 부과한 임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이야 어쨌든 내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발렌티나에게 행복이 가득하길 빈다. 그녀는 어쩌면 내가 황소의 두개골을 박살내지 못한
다면 스스로 죽음을 택할지도 모른다. 마음이 착하고, 귀엽고, 또 애처로운 그 여자는 송아
지 스테이크를 좋아한다고 한다. 아! 나는 사랑하는 발렌티나를 위해서라고 송아지를 자바
야 한다. 수송아지를 잡아 피가 뚝뚝 흐르는 신선한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를 착한 발렌티나
의 식탁에 올려놓기 위해 송아지를 잡아야 한다.
신이여! 발렌티나에게 축복을 주옵소서! 나는 발란테나를 위해, 아니 이 세상의 모든 발렌
티나를 위해 악인들과의 투쟁을 스스로 택했다. 그 선택은 우리의 문명 사회를 위한 것이라
믿으며 나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투쟁이며, 나는 투사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다. 피를 흘리고, 그 피가 내
몸을 붉게 물들일 때까지 한 점의 두려움도 없이 맞설 것이다. 싸우다 지쳐 패배하면 나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그것보다 더 비참한 최후는 없을 것이다.
아, 잔악한 마피아들아, 각오하라! 여기 맥 보란이 네 놈들을 처형하러 가고 있다!
25.응원단
세르지오 프랭키는 생긴 그대로 호전적인 사나이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지만 그의
눈은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빛나고 있었고 그의 정열은 그곳에 모인 모든 사나이들
을 압도할 정도였다.
그의 세력 범위 안에 있는 가족들은 빠짐 없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이름과 직업을 나열한
다면 상공 회의소 명부를 열람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였다. 각 분야에 걸친 명사들
이 그곳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은행가, 변호사, 의사, 회계사, 보험회사 간부, 명망 높은
교육자, 도박계의 보스, 풋내기 대의원, 그 밖의 갖가지 직업을 가진 암흑가의 사나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지역 내의 모든 가족들이 모이는 회의에 참석이 허용된 것을 터린에
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출석한 사람들의 숫자와 직위에 압도되고 있었다.
터린은 조용히 네트 플래스키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지? 한밤중에 왜 모두 모인
거지?" 그의 의문에 답한 것은 세르지오였다. 신호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엄 그는 손을 들
어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어느 한 가족에게라도 귀찮은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
것은 곧 가족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고."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대부분 정말 끔찍한 일을 지금까지는 당해본 적이 없고. 다시 말해 바
로 여러분들은 겁쟁이란 말이오. 자, 여러분들 자신의 손을 한 번 살펴보시오! 한 개의 2달
러씩이나 하는 시거를 물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여러분들은 그 동안 너무나 태평스럽게
살아 왔고. 이렇게 안락한 생활을 해온 것은 누구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여러분들이
오늘날 이렇게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손톱 손질할 틈도 없
이, 또 2달러짜리 시거를 만져볼 틈도 없이 싸우고 싸워 기반을 다져 놓았기 때문이오. 그
결과 여러분들은 지나치게 아닐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고?" 그의 연설 도중 시모
어가 나직이 속삭였다. "교육을 하겠다는 건가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세르지오는 다
시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들은 공격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니 전혀 모르고 있을 뿐만 아
니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요." 플래스키가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들의 조직을 세상 사람들이 깔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 말의 요점을 말하자면 합
법적으로 위장한 돈벌이 덕분에 우리들 가족들은 아제 멍청이가 되었다는 것이요.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출신 성분에 대해 한순간이라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내 말, 모두 알아듣
겠고?" 그는 잠시 말을 중단하고 좌중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계속했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며 가족들 가운데는 여기 있는 다른 가족을 경멸하고 있다고도 하오.
레오폴드나 그가 경영하고 있는 여자 장사를 말이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레오의 사업이
지금껏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렸는지 알고나 있고? 그 내막을 알게 되는 날이며 지금 이 자
리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여러분들 자신이 한결같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말 것이오. 레
오의 돈벌이에 비교한다면 당신들은 풋내기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오." 그는 테이블의 왼쪽
끝에 앉아 있는 말쑥한 옷차림의 한 사내를 가리켰다. "스카리, 자네의 보석금 500만 달러가
어디서 나온 줄 알고나 있나?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나?" 세르지오는 보험 회사 간부
에게 주먹을 흔들어 보이고 무서운 눈빛을 잠시 그에게 던져 보였다.
"여러분, 바로 그 돈도 레오의 매춘관에서 나온 돈이오. 우리가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그
여자들에게 장사를 시키고 있는지 도대체 알고 있기나 하오? 여러분들에게 나는 이 점을 분
명히 말해 두겠고. 여러분들은 자신의 안락한 생활 속에 안주할 줄만 아는 속좁은 겁쟁이들
이오!" "영감님이 저렇게 흥분하는 것은 최근 15년 이후 처음인 것 같은데?"
시모어가 속삭였다. "저렇게 흥분하면 몸에 해로울 텐데…." 터린이 걱정스럽게 대구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테이블 저쪽 긑에 위엄 있게 서 있는 왕년의 전사에게 고정돼 있었다.
"젊은 시절엔 굉장했겠어!" 시모어가 나직이 말했다. "하긴 전쟁 속에서만 살아왔으니 오죽
했겠어?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도 살아 남을지는 모르겠어." 플래스키가 가만히 끼어 들어
소곤거렸다. "자, 여러분.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저쪽 문 앞에 총이 걸려 있고. 여
러분들은 한 발도 쏘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각자 총을 소지하도록 하시오. 총성
이 들리면 어설프게 밖으로 뛰쳐나가지 말고 몸을 낮추고 가만히 기다리시오. 이 회의실의
밖에서 보면 마치 이 곳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특수장치를 해두었소. 저쪽
에서 사격을 해올 때까지 우리들은 이곳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요. 만약 공격을 받더
라고 상대편이 분명히 노출될 때까지는 절대로 발사해서는 안되오. 알겠소? 정신이 나가 우
리 가족들끼리 서로 쏘아 대는 바보 같은 하지 마시오. 그리고…." 그는 5분 정도 방어와 공
격의 요령을 설명하고 나서 회의를 끝냈다. 사내들은 삼삼 오오 짝을 지어 그 방을 나갔다.
총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가 홀 쪽에서 들려 왔다.
터린은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세르지오와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플래스키와 시모어는 웅성거리는 사나이들 틈에 끼여 있었다. 시모어는 어서 오라는
듯 터린을 바라보았으나 곧 단념하고 사나이들 사이에 섞여 들었다. 세르지오는 가만히 앉
아 있는 터린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왜, 조용히 앉아 있나? 레오폴드." "좀 염려되는 일이
있습니다. 계곡 저쪽의 언덕에도 사람을 배치했습니까?" "아니, 저 언덕 쪽에는 아무도 없
네. 그러나 자넨 걱정할 필요가 없어. 싸움에 관한 문제는 이 세르지오에게 맡겨 두게나.'
노인은 자신에 넘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물론입니다만, 상대는 군인이라 모든 생각도
군대식일 겁니다. 그래서 좀 염려스러운데…" 터린도 물러서지 않았다.
세르지오는 염려해 줘서 고맙다는 듯한 표정으로 터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군인이라고 해서 별난 점은 없다네. 나 역시 전쟁터에 두어번 나가 보았네."
"아무래도 저쪽언덕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제가 가서 살펴보고 올까
요?" "호오!" 노인은 감탄한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나제 혼자 정찰을 갔다 오겠다구? 저
어두운 곳엘?" "저 언덕이 도주로로서 안성맞춤인 것 같아요. 저는 저쪽 언덕으로 가서 적
당한 곳에 자리잡고 놈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째서 자네는 저쪽
언덕을 중요시 하지?" "제가 미리 말씀 드렸듯이 그놈의 전투 방법은 군대식일 것으로 추측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곳을 공격한다 해도 저 언덕을 이용할 겁니다. 거리가 다소 먼감이
없진 않지만, 바로 그 점이 좋은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자네도 우수한 군인이었지? 레오
폴드. 좋아. 그렇다면 자네 생각대로 한 번 해보게. 누구 한 사람쯤 데려가겠나?"
노인은 웃고 있었다. "아닙니다. 혼자 가는게 행동하기에 더 좋습니다." "그렇게 하게."
터린은 노인이 어디가지 자신을 믿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아무튼 그의 말을 명령으로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곧 그는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혼잡한 주차장에서 차를 끌어내기란 결
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그는 가까스로 저택을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멀어져 가는 자동차를 보며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레오가 어딜 가는 거지?"
세르지오는 팔짜을 낀 채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터린은 자신의 몸으로 적을 막을 각
오로 나갔다네. 잘 됐으면 좋겠는데…."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무전기의 스피커에서 찍찍거리는 잡음과 함께 한 대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프랭키의 저택에서 자동차 한 대가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웨더비 부자은 마이크에 대
고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둬. 나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모두 현위치를 지키고 있어!"
파파스 경사가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듯 두리번거리며 물어봤다. "아, 놈들이라고 할 일이
없겠어?" 웨더비가 내뱉듯이 말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보면
될 텐데…. 틀림없이 생가지도 못했던 인물들이 끼여 있겠죠?"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 봐."
"보란은 어느 쪽에서 공격할 것 같습니까?" "그런 좋은 질문이야. 미식 축구 시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 3다운에서 어떻게 쿼터백을 속여 전진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은 상황이지.
솔직히 말해 저 마피아 놈들도 불쌍하단 말이야. 저놈들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
으니 우선 그 점부터 열세란 말이야. 보란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으면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
야 좋을 지 전혀 모르고 있단 말이야. 상대가 보란 같은 놈이고 보면 피해를 상상할 만하잖
아?" "마피아에게는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어요?" 파파스 경사는 고소하다는 듯 싱글벙글이
었다. "그렇지도 모르지. 지금 몇 시지?" "3시 40분입니다." "그것 보게. 오늘밤은 긴 밤이
된다고 내가 말했었지? 샌드위치 생각나나?" 파파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발리
춤을 추는 아가씨의 배꼽도 먹을 생각이 나지 않는걸요." "왜, 긴장 때문에?" "틀린 말씀은
아닌 것 같군요. 오늘 이때까지 현장 근무를 많이 해왔지만 오늘처럼…." "이봐, 자넨 범법
자에게 성원을 보내고 있어. 마치 좋아하는 축구팀을 응원하는 기분인 것 같은데…." 파파스
는 거북한 듯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렇지 않은가?" "아마 그런 것 같
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다는 겁니까? 솔직히 말해 저는 그치 편입니다." "그럴 수 있을
테지. 나도 사실 그런 기분이니까. 나는 단지 그 녀석이 경비망을 뚫고 달아나려 하지 않았
으면 해. 죽음을 자초하는 셈이 될 테니…." "그렇다면 왜 저를 비난하는 거죠?" 파파스가
웃으며 말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도정은 금물이야, 조니!"
웨더비 부장도 역시 웃으며 대꾸했다. "물로 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손가락이 말을 들어
줄지는 의문이지만…." 파파스는 빈정거리는 듯한 어조로 바뀌었다. "동정하면 자네 목숨이
위태롭다구!' 웨더비가 잘라 말했다. "물론이죠!' 파파스도 만만치 않게 응수했다.
"죽일 생각을 하고 쏘아! 이건 명령이야!" 웨더비 부장은 은근히 화가 치미는 듯했다.
"잘 알아보실 테니 , 염려하지 마시라구요." 웨더비는 씁쓰레한 미소를 띠었다.
"어쨌든 그점만은 명심하라구!"
26.최후의 공격
맥 보란은 다시 한 번 병기를 점검하면서 앞으로의 행동 계획을 머릿속에 떠올린 다음 스
코프를 통해 저택 안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커다란 창문에 비치는 사람들의 그림자는 벌써
30분이 넘게 똑같은 동작마늘 되풀이하고 있었다. "혹시 예배라도 보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그는 거리계의 파인더를 들여다본 후 방 안에 있는 사나이들의 움직임을 손목
시계로 재기 시작했다.
시작… 테이블 끝에 앉아 있는 사나이가 팔을 올린다. 그것과 동시에 세 번째의 사나이가
몸을 앞으로 내민다. 2초 후 , 한 사나이가 저쪽에서 창문 쪽으로 걸어온다. 5초 후, 끝에 있
던 사나이가 팔을 내리고 세 번째의 사나이가 몸을 일으킨다. 3초 후, 창문 쪽에서 한 사나
이가 일어나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5초 후에 처음부터 똑같은 동작의
반복이었다.
보란은 그들의 움직임을 5분 도안 자세히 관찰하였다. 그리고는 싱긋 웃고 다른 쪽으로 관
찰의 눈길을 돌렸다. 저말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었다. 참으로 잘 짜여진 연극이었다. 그렇다
면 진짜 녀석들은 도대체 어디에 모여 있는 것일까? 불빛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희미한 불
빛이 새어 나오는 이층 큰 홀의 창문을 제외하고는 아래쪽에 몇 개의 작은 불빛이 보일 뿐
이었다.
그는 주차장 쪽으로 렌즈를 돌렸다. 렌즈의 시야 족을 한 대의 자동차가 스피드를 내며 가
로질러 갔다. 그는 자동차를 쫓아 렌즈를 움직였다. 한순간 차의 불빛이 보란을 비추더니 방
향을 바꾸어 저택 밖으로 달려 나갔다. 보란은 아주 잠깐 동안 그 자동차를 이상하게 생각
했으나 곧 저택의 관찰에 주의를 돌렸다. 지붕 위에는 아무 것도 눈길을 끄는 것이 없었다.
주위는 또다시 조용해졌다.
그는 일층으로 눈을 돌렸다. 잠시 후 한 사나이가 안뜰의 허리 높이쯤 되는 담 옆에 조용
히 나타났다. 그는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무엇인가를 자기 어깨에 비벼댔다. 총이었다. 사
나이는 총신으로 어깨를 긁어 대고 있었다. 안에서 녀석들은 도대체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
걸까? 거리계의 렌즈를 돌려 가며 보란은 눈을 크게 뜨고 여기저기를 살펴 보았다.이때 문
이 열리면서 순간적으로 밝은 빛이 돌계단 위로 새어 나왔다. 그러나 문은 곧 닫혀졌다. 보
란은 숨을 훅 들이쉬고는 그곳을 조용히 지켜보았다.잠시 후에 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안의 불이 꺼져 있었다.두 사나이가 안에서 뛰어나오더니 계단을 올라가 저택의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보란은 싱긋 웃었다. 조금씩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담 쪽을 보
았으나 그곳에 서 있던 사나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란은 어둠 속의 지붕 그터에 무
언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란은 다시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는 기다렸다. 그는 시간에 맞춰 세밀히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계획에 따라 정확한 시간에 공격을 개시할 생각이었다.
공격 개시 1분전.
그는 발렌티나와의 일을 생각하고 양친과 조니, 그리고 불쌍한 누이동생 신디의 일을 생
각했다. 발렌티나에게는 꼭 돌아간다고 약속했었다.그것은 지켜질 수 없는 허무한 약속이었
다.
보란은 군인이다. 군인은 전쟁에서 살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언덕에서 살아서 빠져 나갈 희망은 없다. 지금쯤 경찰이 벌써 언덕을 포위하고 있을 것이다.
경찰견가지 동원했을 것이 분며했다. 설혹 마피아가 그를 놓친다 하더라고 경찰은 그를 놓
치지 않을 것이다.
귀여운 발렌티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발렌티나. 그녀는 좋은 아가씨였다. 평생 동안 지켜
온 순결과 사랑을, 죽어야 할 운명의 사나이에게 바쳐준 발렌티나. 그는 어떤 슬픔을 느꼈
다.그것은 확실히 슬픔이었다.
보란은 모든 생각을 뿌리치고 거리계 옆에 놓여 있는 긴 통 모양의 화기로 다가가서 다시
한 번 조준각을 확인한 다음 열까지 헤아렸다. 이윽고 포신이 떨리고 탄환은 쇳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았다. 드디어 대살육전이 시작되었다.
"저걸 봐요!"파파스가 소리쳤다. "저건 뭡니까? 어디서 날아오는 겁니까?"
"로켓의 일종이군!" 웨더비도 하늘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하얀 꼬리를 길게 끈 포탄
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어둠을 뚫고 나라가더니 저택의 한 모퉁이에 세
게 부딪히며 큰 소리를 내면서 폭발했다. 그러자 저택의 모든 불빛이 일시에 꺼지고 모퉁이
에는 뱀의 혓바닥과 같이 타오르는 불꽃만이 저택을 비추고 있었다. 사나이들은 허둥거리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화가 났는지 서로 떠들어 대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려 왔다.
웨더비와 파파스는 세르지오의 저택에서 100미터쯤 떨여져 있는 언덕에 무선차를 세우고는
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날아온 겁니까?" 파파스가 흥분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맞은편 언덕이야." "웨더비가 딱 잘라 말했다. "쌍안경을 이리 주게."
"가서 도와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자네 정신이 있나? 우리가 나간다면 저놈들은 보란
을 쏘는 것과 감정으로 우릴 쏠 거야. 그리고 보란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한
거야. 잘보고 있게, 조니."
"아이구, 어찌된 일이여?" 플래스키가 고함을 질렀다. "녀석은 여기를 폭파할 생각이군.'
"조용히 해! 잠자코 엎드려 있으라구." 시모어가 소리쳤다. "정신차려, 이제 한 방 얻어맞았
을 뿐이야." "한 방이라구? 저게 한 방이란 말이냐? 영감님은 어디 있지.세르지오는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모두 몸을 엎드린 채 조용히 하고 있어. 잠자코 있으란 말이야."
위층에서 세르지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디서 쏜 것인지 본 사람은 없나?""하늘에서
쏜 겁니다." 누군가가 흥분되 목소리고 대답했다. "아니오. 남쪽에서 날아왔습니다." 다른 목
소리가 똑똑하게 말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달에서 날아온 것이 아닐까?" 시모어 옆에 있
는 누군가가 말했다. "뭐라구, 어느 놈이냐?" 화가 난 세르지오는 크게 소리쳤다. "모두 눈
을 크게 뜨고서 섬광이나 연기라도 좋으니 무엇이든지 찾아내. 알겠나? 누늘 크게 뜨고 있
는 거야." "머리를 들고 보란 말입니까? 어지간히 해두시죠, 영감님." 시모어는 혼자 중얼거
렸다.
맥 보란은 두 번째의 카운트 다운을 끝내고 있었다. 제로! 조명탄의 발사와 함께 그는 싱
긋 웃으며 머린을 들어올린 다음 눈을 갖다 댔다. 몇 초 후 조명탄은 프랭키의 저택 바로
위에서 터지더니 그 일대를 마치 대낮처럼 밝게 비추면서 천천히 지면을 향해 내려오기 시
작했다.조명탄이 터졌을 때 이미 보란의 스코프는 프랭키 저택의 옥상을 포착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해 하며 밝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나이들의 얼굴이 스코프에 들어왔다.
곧 보란의 재빠른 손가락은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라이플의 굉음과 함께 그의 어깨에
반동이 전해졌다. 보란은 그 반동으로 조준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스코프에 바짝 눈을 갖다
대고 목표의 사나이가 배를 춤켜쥐며 쓰러지는 순간을 확인했다.
보란은 자신의 정확한 계산에 만족한 욱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거렸다.보통 사람들은 턱과
배 사이가 15인치쯤 된다. 그는 다시 머린의 총수를 왼쪽으로 조금 옮겼다.
다음 사나이가 또 시야에 들어왔다. 방아쇠를 당기자 사나이는 어김없이 쓰러졌다. 그 왼쪽
의 다음 목표, 방아쇠, 또 다음, 이어서 또 한 명, 다섯 명을 쓰러뜨리는데 5초도 걸리지 않
았다.
그는 머린을 옆에 내려놀고 스코프보다 훨씬 시야가 넓은 거리계의 파인더를 들여다보았
다. 옥상에는 아직도 많은 사내들이 허둥대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공포와 놀라움에 몸
이 굳어진 듯한 사나이들도 눈에 띄었다.피에 젖은 동료의 주검을 안아 일으키는 놈도 있었
다.그들 대부분은 옥상 가장자리에 둘러쳐진 낮은 담에 간신히 몸을 숨긴 상태였다.라이플의
섬광을 보지 못했는지 아직 반격은 없었다. 보란은 슬픈 듯이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려다.
"벌써 네 명이 죽었고 한 명은 중상이에요." 위층에서 누군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 왔
다. "세르지오. 세르지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놈의 불은 언제까지 타고 있을 건가?
엎드려. 모두 엎드리란 말이야. 몸을 숙이고 놈이 어디 있는지 잘 찾아봐." 세르지오는 격분
하여 소리쳤다. "피트! 바니!저쪽이다. 맞은편 언덕에 놈이 있다. 마구 쏴버려!" 곧 이어
죽음 의장막을 깨뜨리고 맹렬한 기관총 소리가 들려왔다. 겨냥해야 할 목표가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편 진영에서 반격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사나이들에게는 힘을 주었다.
그러나 어둠을 뚫고 저쪽에서 다시 하얀 연기의 꼬리가 달린 포탄이 날아왔다. "저런!또 날
아온다." 포탄은 꺼져 가는 조명탄의 마지막 빛 속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저택 옥
상 위에 떨어졌다.지붕의 파편들이 우박차럼 땅으로 쏟아져 내리고 사나이들의 고함 소리와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놀란 사나이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 부딪치면서 허둥대고 있었다.
비명과 신음 소리, 공포와 고통의 고함 소리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그러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폭발음이 연달아 일어났고 저택이 크게 흔들렸다. 사
나이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맹렬히 들려 오던 기관총 소리도 멎었고 저
택은 수라장이 되었다.
"보란이 곡사포를 쏘고 있군.' 웨더비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맙소나. 조금도 남아나
지 않겠는걸." "어디서 저걸 손에 넣었을까요?" 파파스가 두려우면서도 존경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저걸 어떻게 손에 넣었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문제는 놈이 사용법을 알고 있다는
거야. 이거야말로 완전히 일방적인 싸움이군. 더욱이 내가 불쌍히 여기고 있는 쪽이 이기고
있으니…." 폭발의 진동은 그들이 서 있는 곳까지 미쳤다. 파편 하나가 그들이 타고 온 무선
차의 문에 떨어졌다. "빌어먹을. 여기까지 날아오다니." 파파스는 파편을 주우려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지금 또 발사한 것 같군. 저쪽 언덕 꼭대기야. 자네는 저쪽을 눈여겨보고 있게
나." 그러나 파파스 경사의 시선은 반대쪼. 그러니까 공포와 화염속데 쌓여 있는 저택 쪽으
로 쏠렸다.새로운 조명탄이 공중에서 터졌다. 그는 눈이 부신 듯 눈썸을 찌푸리면서 웨더비
가 지시한 반대편 언덕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무서운 놈이군!" 그는 기가 질린 듯 구개
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27.운명의 신
보란은 다음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예상 외로 너무 쉽게 무너져 달아나고 있다.
그에게 반격도 한 번 제대로 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적을 넘 과대 평가했건 게 아닐까?그
는 머린의 스코프를 들여다보면서 달아나려는 자동차에 계속해서 총을 쏘았다.차는 제멋대
로 구르다가 한 번 튀어오르고는 불을 뿜었다. 뒤따라오던 차가 불 속으로 뛰어들어 폭발하
면서 그곳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저택은 와전히 무너져 양옆의 벽만이 시커먼 연기
속에 앙상하게 서 있었다.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자동차들이 포탄에 맞아 박살이 나 있었고,
그 근처에는 시체들이 여기저기 흩처져 나뒹굴고 있었다. "분명히 어딘가에 다른 놈들이 숨
어 있을 게 틀림없어."
보란은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etkl 조명탄을 쏘아올려 거리계의 파인더를 통해 저택 근처를
훑어보았다. 바로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월남 전선
에서 수천 번도 더 들었던 헬리콥터 소리였다. 그 지긋지긋한 헬리콥터가 가까이에서 그를
찾고 있었다. 경찰? 아니면 마피아?
보란은 급히 폭발이 빠른 조명탄을 골라 넣어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쏘아올렸다. 조명탄
이 터지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헬리콥터가 보였다. 조종석에 앉은 사나이가 눈이 부신
듯 한 손을 들어 눈을 가리는 것이 보였다.그 옆에는 백발의 사나이가 겁에 질린 얼구로 앉
아 있었다.헬리콥터는 바로 그의 머리 위에 와 있었고 조명탄은 보란 자신도 비춰 주고 있
었다. 헬리콥터는 급히 불빛 밖으로 빠져 나갔다.보란은 머린을 앞으로 끌어당겼다.다시 조
명탄의 불빛 속으로 들어온 헬리콥터의 후미에서 자동 기관총의 철갑탄이 보란을 향해 쏟아
져 내렸다. 총탄에 맞은 거리계가 퉁겨 날아갔다.보란은 머리를 끌어안은 채 언덕 아래로 굴
렀다.보란은 언덕 아래에 몸을 숨기고 헬리콥터가 다시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보란은 스
코프의 눈금으로 목표를 겨냥하면서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었다. 백발의 사나이의 얼굴이 스
포크의 십자선 안에 들어왔다. 보란은 그의 두 눈이 흥분으로 이글거리는 것을 보면서 방아
쇠를 당겼다. 큰 총의 반동으로 어깨에 충격이 왔다.백발의 사나이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
이 보이고 응사하는 기관총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 왔다.
"저기다!"파파스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놈들도 보란을 발견했나 봐요.헬리콥터에서 마구
총을 쏘고 있어요. " "쌍안경을 이리 줘." 웨더비가 소리쳤다. "여기 있어요. 하지만 쌍안경
없이도 잘 보이는데요.이거야말로 월남전을 TV로 보는 것 같은데." "여긴 월남이 아니야."
"다를게 없잖아요?" "놈은 어디있지?" 머린의 육중한 총성이 헬리콥터의 툴툴대는 소리를
제압하듯 울리고 곧 이어 격렬한 기관총 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다시 기관총 소리에 응답
하듯 머린의 총성이 들려 왔다. 그러자 헬리콥터의 회전음이 이상하게 들리더니 곧 이어 헬
리콥터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서 크게 한 바퀴 구르면서 땅 위로 떨어졌다. "야. 대단하
데! 결국 격추시켰군!" 웨더비가 감탄하듯이 소리쳤다. "맞았어요.헬리콥터가 추락하고 있어
요." "보란 결국은 살아 남았군." 웨더비가 안도의 한숨의 쉬며 말했다.
그러나 맥 보란은 웨더비가 예견한 대로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어깨의 상처는 쑤셔 왔고
옆구리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헬리콥터가 떨어지면서 내는 폭발음을 들으며 그
는 다리를 질질 끌고서 총좌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구급 상자의 뚜껑을 열고 마지막
사격전 때 다친 발목을 치료하고 있을 때 언덕 위쪽에서 무슨 고리가 들려 왔다. 그는 거즈
를 어깨에 뭉쳐 넣고 다리를 절면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조명탄이 아직도 꺼지지 않고
언덕을 내려오고 있는 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공만한 돌이 구러 떨어져 보란이 숨어
있는 나무 근처에 맞았다. 곧 이어 터린의 모습이 보였다. "보란, 어디 있나?모란." 터린이
낮은 소리로 불렀다. "자네는 끝내 뉘우치지 못하고 나를 찾아다니나, 레오?" 보란이 권총을
들고서 나무 뒤에서 나타났다. "아, 무사했군. 헬리콥터의 기습에 대해서 알려 주려고 했는
데 자네를 찾을 수가 업었네." 터린이 반가운 듯이 말했다. "누구에게 수작을 부리는 건가?"
보란이 그의 말을 비웃으며 말했다. 터린은 양손은 앞으로 뻗으며 조심스럽게 땅바닥에 주
저앉았다. "담배를 잃어버렸군. 아, 숨이 차." "곧 담배보다 더한 걸 잃게 될 걸." 보란이 차
갑게 웃으며 말했다. "구두를 멋어도 되겠나?" "그게 자네의 마지막 소원인가?" 보란이 성
금히 물었다. "그래. 마지막 소원이라 생각하고 구두를 좀 벗게 해주게." 조명탄의 불빛이
숲 저쪽 너머로 가라앉고 있었다. 보란은 터린에게로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는 총구를
그의 머리에 갖다 댔다. "시간을 벌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 난 지금 곧 자네를 죽여
버릴 생각이니까 말이야." 터린은 보란의 말을 무시하였다. 구두를 멋더니 그 바닥 속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고 네모진 것을 꺼내어 보란의 눈앞에 내밀었다. "날 죽이기 전에 우
선 이걸 봐주겠나?" 보란은 터린에게 총을 겨눈채 희미하게 꺼져 가는 조명탄의 불빛 아래
그 카드를 살펴본 뒤 그것을 되돌려 주었다. 그것은 경찰의 신분증이었다. "하마터면 자네는
위장 첩자인 대 죽을 뻔했군." "제길, 난 수십 번 기도를 드렸네." 터린이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를 체포하고 싶지 않나?" 보란은 장난조로 물었다. "지금 내게는 그럴 권한이 없
네."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게다가 자넨 악당들을 모조리 쳐부수지 않았
나? 그런데 내가 왜 자네를 체포하겠나?" "그건 그렇고 한 가지 자네에게 물어 보고 싶은
게 있네." 보란의 머릿속에 갑자가 한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내 누이동생의 일인데.레
오…." "그 일은 내가 나빴어." 터린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나를 가리는 방편이었으니까.. 자네 여동생과 같은 또래의 어린
아가씨들 일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아프네. 그렇지만 비말 임부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한 아가씨하고는 바꿀 수 없는 더 중요한 일이 있
네, 보란. 이해해 주게." "알아들었네." 보란이 진지하게 말했다. "이젠 산을 내려가게. 가거
든 자네 부인에게 내 안부를 전해주게. 그리고 웨더비에게서 들은 정보는 자네에게서 나온
것인가?" 터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자넨 항상 나를 노렸거든." "한마디만 해주었
어도 좋았을 텐데." 보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갑자기 터린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런데 화가 나는 일이 하나 있네, 중사. 내 마누라를 위협한 것은 용서할 수 없어.
자네 덕분에 걱정 많은 마누라에게 날마다 혼이 나고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정말 미안한
일인데." 보란이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머리에 또 다른 걱정 많은 여인이 떠올랐다.
"자, 이제 산을 내려가게.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터린은 구두를 신은 뒤 군대식으
로 차려 자세로 목례를 하고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보란은 상처의 피를 닦아낸 다음 무기들
을 들고 다음 계속을 햐애 내려갔다.계곡 위쪽에서는 자동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보
란은 경창이 이미 이 근처를 봉쇄하고 그를 체포하기 위해 수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말 우는 소리가 들렸다. 보란이 그 쪽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여기
야!" 그리고는 낮은 덤불 속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잠시 후 말을 끌고 오는 사람의 모습
이 보였다. 보란은 45구경으로 기마 보안관의 머리를 후려쳐서 쓰러뜨리고는 말에 올라탔다.
조금 있으며 날이 훤히 밝아올 것이다. 아침이 오기 전에 그를 기다리는 여닝에게로 돌아
갈 수 는 없을 것 같았다. 또한 계속해서 말을 타고 빠져 나갈 수도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좀더 많은 시간과 거리가 필요했다. 잡히고 안 잡히는 것은 운명에 맡
겨 버렸다.만약 운명의 신이 그의 편이라면 이번에도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맥 보란에게 있어서 승리란 달콤한 것이 아니다.그것은 불타는 듯이 쑤시는 상처와 견디기
어려운 고통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여인의 아픈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붙잡히지
는 않았다.
28.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
보란이 눈을 뜨자 바로 눈앞에 발렌티나의 맑은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
당신은 언제나 내가 보고 있을 때 잠을 깨는군요." 그녀가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보란은 눈
을 깜박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가?" 그의 어깨는 깨끗한 붕대로 감겨져 있었고 맨살에 닿
는 시트의 감촉이 꿈이 아님을 깨우쳐 주었다. 그는 알몸이었다. "아, 맞아! 전에도 이런 일
이 있었지." 발렌티나가 몸을 숙이고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문 앞에서 저를 부르고
는 정신을 잃었어요. 생각 안 나세요?" "난 힘이 빠지고 상처의 고통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어." 그가 중얼거렸다. "네,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리허게 쉬고 있으니 다행이에
요."
그녀는 무릎 위에 놓여 있는 신문을 펼쳐 들었다. "신문에는 당신이 어젯밤 23명을 죽이고
51명에게 중산을 입혔다고 씌어 있어요." "그래?" "네, 당신 이 제목 보이죠?" 발렌티나가
신문을 그의 눈앞에 펼쳐 주었다. 신문의 상단에 큰 활자로 씌어진 제목이 눈에 들어 왔다.
<맥 보란, 마피아를 몰살시키다.> 그는 그것을 소리내어 읽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손
을 뻗어 발렌티나의 부드럽고 따듯한 손을 잡았다. 갑자기 가슴이 저려 왔다. "발렌티나, 난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 그가 눈을 뜨고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그의 다친 어깨를 건드
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의 옆에 누워 자신의 얼굴을 그의 얼굴에 대고는 조용히 속삭였
다. "만약 당신이 해내지 못했다면 난 당신을 용서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것으로 아젠 안
심이군." 그가 부드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전쟁은 끝났고 당신은 이
긴 거예요." "전쟁이 아니야, 그건 단지 전투야. 발렌티나, 당신은 그것을 알아야 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 순간 그녀는 가볍게 몸서리를 치며 그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잠
결에 승리는 없다고 소리쳤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글세, 모르겠는데." 보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럼, 당신은 승리의 기쁨을 느끼지 않으세요?" 보란은 비소를 지으며 다치지 않
은 팔로 그녀의 몸을 세게 끌어 안았다. 그것으로 그는 승리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남자란 어떤 관념을 위해 싸우는 것이지 어떤 관념에 반대해서 싸우는 것은 아니야." 그녀
가 몸을 일으키며 그를 똑바로 응시하였다. "당신의 그 말은 상당히 의미 심장하군요. 그 말
은 무슨 뜻이죠?" 그는 어깨의 아픔을 잊어버린 듯이 큰 고리로 웃었다.
"하하하, 그런 말하자면 부드럽고 귀여운 발렌티나를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게 바로 승리라는 건가요?" 그녀의 눈동자가 타올랐다. "사나이에 있어서 승리란 그런거
여." 그가 확싱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그의 팔에서 살며시 빠져 나와 입고 있던 나이
트 가운을 벗어 버렸다. 알몸이 된 그녀는 시트를 걷고 그의 옆으로 파고들면서 그를 끌어
안았다. "이제 곧 당신이 완쾌되면 저는 당신의 승리에 도전할 거예요." "좋아, 나의 건강에
는 아무 이상이 없어. 정력은 어깨에 있는게 아니라구 , 이 바보야." 그기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알고 있어요, 맥." 그녀가 속삭였다. "허니문이 그렇게 짧은 것은 아니래요. 어쨌
든 우리의 허니문도 아직 끝난 것은 아니죠?" "전쟁과 사랑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도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 안았다. "그럼 당신은 그 중 어느 것에
승리한 거죠?" 그녀가 모을 흔들면서 물었다. "양쪽 모두의 승리야!" 그녀가 숨을 삼키면서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조용히 속삭였다. "승리란 정말 달콤하군요."
피츠필드의 전투는 끝났다. 그러나 맥 보란에게 있어서의 전토란 한 대의 승리로 일단락
지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아득히 멀어진 과거 속의 한 점에 불과한 것이었고,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보란은 하나의 사상도, 하나의 조직도 완전히
파멸시키지는 못했다.그는 다만 사상 최강을 자랑하는 범죄 조직의 표면에 파문을 일으켰을
뿐이다.이제 그 조직은 그들의 앞 정강이를 물고 늘어진 한 마리의 개미를 없애기 위해 대
책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마피아 조직의 역사 속에서도 이토록 주목받은 인물이 없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아메리카의 전설적 인물이 되었고 법을 집
행하는 자들의 욕심 나는 추적 대상이 되었다. 온 나라 안의 살인 청부업자들에게 보란의
목은 곧 거액의 현금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전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마피아 가족
한사람,한사람이 갚아야 할 빚이었다.
맥 보란에게는 죽음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사형 언도를 바은 어떤 사람보다도 더 확실한
죽음 판결을 받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그는 오직 그에게 남겨진 길지 않은 시
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생을 단축시키려는 놈들의 장벽을 뜯어 먹으면서라도 최후의 숨을 내쉴대까지 싸
울 결심이었다.
보란은 위험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대책을 세웠다. 그는 머리를 염색하고, 입가에 수
염을 기르고, 도수 없는 굵은 테의 안경을 끼었다. 이러한 위장으로 적어도 웨스트 코스트까
지는 안전하게 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곳에는 그를 좀더 완전하게 변장시켜 줄 사람이 기
다리고 있었다.그는 월남전에서 보란이 목숨을 구해줬던 군의관으로 지금은 세계적인 명성
을 얻고 있는 성형 외과 의사로서 보란은 웨스트 코스트에 도착하는 대로 얼굴을 성형할 생
각이었다.
그는 고아가 된 동생과 거액의 돈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맡겨 두고 피츠필드를 떠났다. 그
리고 한 사나이의 존재까지도-----아마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피츠필드에 남겨 놓
고 떠난 것이다.
9월 12일 저녁, 보란은 새로 구입한 차를 몰고 피츠필드의 서쪽에 있는 고속도로로 들어
섰다.러시 아워의 붐비는 차들에 섞여, 발렌티나와의 눈물 어린 작별이 그의 마음에 되살아
놨다.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뒤로 두고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쫓아 떠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다정한 발렌티나의 모습까지도 남겨두고 그는 지는 태양의 작열하는 빛 속
으로 사라져 갔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일 뿐이다. 보란은 지옥에 부딪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
다. 맥보란의 마지막 길은 피에 물든 길일 것이다.
25.응원단
세르지오 프랭키는 생긴 그대로 호전적인 사나이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지만 그의
눈은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빛나고 있었고 그의 정열은 그곳에 모인 모든 사나이들
을 압도할 정도였다.
그의 세력 범위 안에 있는 가족들은 빠짐 없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이름과 직업을 나열한
다면 상공 회의소 명부를 열람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였다. 각 분야에 걸친 명사들
이 그곳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은행가, 변호사, 의사, 회계사, 보험회사 간부, 명망 높은
교육자, 도박계의 보스, 풋내기 대의원, 그 밖의 갖가지 직업을 가진 암흑가의 사나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지역 내의 모든 가족들이 모이는 회의에 참석이 허용된 것을 터린에
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출석한 사람들의 숫자와 직위에 압도되고 있었다.
터린은 조용히 네트 플래스키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지? 한밤중에 왜 모두 모인
거지?" 그의 의문에 답한 것은 세르지오였다. 신호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엄 그는 손을 들
어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어느 한 가족에게라도 귀찮은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
것은 곧 가족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고."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대부분 정말 끔찍한 일을 지금까지는 당해본 적이 없고. 다시 말해 바
로 여러분들은 겁쟁이란 말이오. 자, 여러분들 자신의 손을 한 번 살펴보시오! 한 개의 2달
러씩이나 하는 시거를 물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여러분들은 그 동안 너무나 태평스럽게
살아 왔고. 이렇게 안락한 생활을 해온 것은 누구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여러분들이
오늘날 이렇게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손톱 손질할 틈도 없
이, 또 2달러짜리 시거를 만져볼 틈도 없이 싸우고 싸워 기반을 다져 놓았기 때문이오. 그
결과 여러분들은 지나치게 아닐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고?" 그의 연설 도중 시모
어가 나직이 속삭였다. "교육을 하겠다는 건가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세르지오는 다
시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들은 공격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니 전혀 모르고 있을 뿐만 아
니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요." 플래스키가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들의 조직을 세상 사람들이 깔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 말의 요점을 말하자면 합
법적으로 위장한 돈벌이 덕분에 우리들 가족들은 아제 멍청이가 되었다는 것이요.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출신 성분에 대해 한순간이라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내 말, 모두 알아듣
겠고?" 그는 잠시 말을 중단하고 좌중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계속했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며 가족들 가운데는 여기 있는 다른 가족을 경멸하고 있다고도 하오.
레오폴드나 그가 경영하고 있는 여자 장사를 말이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레오의 사업이
지금껏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렸는지 알고나 있고? 그 내막을 알게 되는 날이며 지금 이 자
리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여러분들 자신이 한결같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말 것이오. 레
오의 돈벌이에 비교한다면 당신들은 풋내기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오." 그는 테이블의 왼쪽
끝에 앉아 있는 말쑥한 옷차림의 한 사내를 가리켰다. "스카리, 자네의 보석금 500만 달러가
어디서 나온 줄 알고나 있나?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나?" 세르지오는 보험 회사 간부
에게 주먹을 흔들어 보이고 무서운 눈빛을 잠시 그에게 던져 보였다.
"여러분, 바로 그 돈도 레오의 매춘관에서 나온 돈이오. 우리가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그
여자들에게 장사를 시키고 있는지 도대체 알고 있기나 하오? 여러분들에게 나는 이 점을 분
명히 말해 두겠고. 여러분들은 자신의 안락한 생활 속에 안주할 줄만 아는 속좁은 겁쟁이들
이오!" "영감님이 저렇게 흥분하는 것은 최근 15년 이후 처음인 것 같은데?"
시모어가 속삭였다. "저렇게 흥분하면 몸에 해로울 텐데…." 터린이 걱정스럽게 대구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테이블 저쪽 긑에 위엄 있게 서 있는 왕년의 전사에게 고정돼 있었다.
"젊은 시절엔 굉장했겠어!" 시모어가 나직이 말했다. "하긴 전쟁 속에서만 살아왔으니 오죽
했겠어?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도 살아 남을지는 모르겠어." 플래스키가 가만히 끼어 들어
소곤거렸다. "자, 여러분.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저쪽 문 앞에 총이 걸려 있고. 여
러분들은 한 발도 쏘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각자 총을 소지하도록 하시오. 총성
이 들리면 어설프게 밖으로 뛰쳐나가지 말고 몸을 낮추고 가만히 기다리시오. 이 회의실의
밖에서 보면 마치 이 곳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특수장치를 해두었소. 저쪽
에서 사격을 해올 때까지 우리들은 이곳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요. 만약 공격을 받더
라고 상대편이 분명히 노출될 때까지는 절대로 발사해서는 안되오. 알겠소? 정신이 나가 우
리 가족들끼리 서로 쏘아 대는 바보 같은 하지 마시오. 그리고…." 그는 5분 정도 방어와 공
격의 요령을 설명하고 나서 회의를 끝냈다. 사내들은 삼삼 오오 짝을 지어 그 방을 나갔다.
총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가 홀 쪽에서 들려 왔다.
터린은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세르지오와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플래스키와 시모어는 웅성거리는 사나이들 틈에 끼여 있었다. 시모어는 어서 오라는
듯 터린을 바라보았으나 곧 단념하고 사나이들 사이에 섞여 들었다. 세르지오는 가만히 앉
아 있는 터린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왜, 조용히 앉아 있나? 레오폴드." "좀 염려되는 일이
있습니다. 계곡 저쪽의 언덕에도 사람을 배치했습니까?" "아니, 저 언덕 쪽에는 아무도 없
네. 그러나 자넨 걱정할 필요가 없어. 싸움에 관한 문제는 이 세르지오에게 맡겨 두게나.'
노인은 자신에 넘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물론입니다만, 상대는 군인이라 모든 생각도
군대식일 겁니다. 그래서 좀 염려스러운데…" 터린도 물러서지 않았다.
세르지오는 염려해 줘서 고맙다는 듯한 표정으로 터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군인이라고 해서 별난 점은 없다네. 나 역시 전쟁터에 두어번 나가 보았네."
"아무래도 저쪽언덕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제가 가서 살펴보고 올까
요?" "호오!" 노인은 감탄한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나제 혼자 정찰을 갔다 오겠다구? 저
어두운 곳엘?" "저 언덕이 도주로로서 안성맞춤인 것 같아요. 저는 저쪽 언덕으로 가서 적
당한 곳에 자리잡고 놈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째서 자네는 저쪽
언덕을 중요시 하지?" "제가 미리 말씀 드렸듯이 그놈의 전투 방법은 군대식일 것으로 추측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곳을 공격한다 해도 저 언덕을 이용할 겁니다. 거리가 다소 먼감이
없진 않지만, 바로 그 점이 좋은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자네도 우수한 군인이었지? 레오
폴드. 좋아. 그렇다면 자네 생각대로 한 번 해보게. 누구 한 사람쯤 데려가겠나?"
노인은 웃고 있었다. "아닙니다. 혼자 가는게 행동하기에 더 좋습니다." "그렇게 하게."
터린은 노인이 어디가지 자신을 믿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아무튼 그의 말을 명령으로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곧 그는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혼잡한 주차장에서 차를 끌어내기란 결
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그는 가까스로 저택을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멀어져 가는 자동차를 보며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레오가 어딜 가는 거지?"
세르지오는 팔짜을 낀 채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터린은 자신의 몸으로 적을 막을 각
오로 나갔다네. 잘 됐으면 좋겠는데…."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무전기의 스피커에서 찍찍거리는 잡음과 함께 한 대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프랭키의 저택에서 자동차 한 대가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웨더비 부자은 마이크에 대
고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둬. 나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모두 현위치를 지키고 있어!"
파파스 경사가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듯 두리번거리며 물어봤다. "아, 놈들이라고 할 일이
없겠어?" 웨더비가 내뱉듯이 말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보면
될 텐데…. 틀림없이 생가지도 못했던 인물들이 끼여 있겠죠?"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 봐."
"보란은 어느 쪽에서 공격할 것 같습니까?" "그런 좋은 질문이야. 미식 축구 시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제 3다운에서 어떻게 쿼터백을 속여 전진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은 상황이지.
솔직히 말해 저 마피아 놈들도 불쌍하단 말이야. 저놈들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
으니 우선 그 점부터 열세란 말이야. 보란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으면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
야 좋을 지 전혀 모르고 있단 말이야. 상대가 보란 같은 놈이고 보면 피해를 상상할 만하잖
아?" "마피아에게는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어요?" 파파스 경사는 고소하다는 듯 싱글벙글이
었다. "그렇지도 모르지. 지금 몇 시지?" "3시 40분입니다." "그것 보게. 오늘밤은 긴 밤이
된다고 내가 말했었지? 샌드위치 생각나나?" 파파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발리
춤을 추는 아가씨의 배꼽도 먹을 생각이 나지 않는걸요." "왜, 긴장 때문에?" "틀린 말씀은
아닌 것 같군요. 오늘 이때까지 현장 근무를 많이 해왔지만 오늘처럼…." "이봐, 자넨 범법
자에게 성원을 보내고 있어. 마치 좋아하는 축구팀을 응원하는 기분인 것 같은데…." 파파스
는 거북한 듯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렇지 않은가?" "아마 그런 것 같
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다는 겁니까? 솔직히 말해 저는 그치 편입니다." "그럴 수 있을
테지. 나도 사실 그런 기분이니까. 나는 단지 그 녀석이 경비망을 뚫고 달아나려 하지 않았
으면 해. 죽음을 자초하는 셈이 될 테니…." "그렇다면 왜 저를 비난하는 거죠?" 파파스가
웃으며 말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도정은 금물이야, 조니!"
웨더비 부장도 역시 웃으며 대꾸했다. "물로 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손가락이 말을 들어
줄지는 의문이지만…." 파파스는 빈정거리는 듯한 어조로 바뀌었다. "동정하면 자네 목숨이
위태롭다구!' 웨더비가 잘라 말했다. "물론이죠!' 파파스도 만만치 않게 응수했다.
"죽일 생각을 하고 쏘아! 이건 명령이야!" 웨더비 부장은 은근히 화가 치미는 듯했다.
"잘 알아보실 테니 , 염려하지 마시라구요." 웨더비는 씁쓰레한 미소를 띠었다.
"어쨌든 그점만은 명심하라구!"
26.최후의 공격
맥 보란은 다시 한 번 병기를 점검하면서 앞으로의 행동 계획을 머릿속에 떠올린 다음 스
코프를 통해 저택 안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커다란 창문에 비치는 사람들의 그림자는 벌써
30분이 넘게 똑같은 동작마늘 되풀이하고 있었다. "혹시 예배라도 보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그는 거리계의 파인더를 들여다본 후 방 안에 있는 사나이들의 움직임을 손목
시계로 재기 시작했다.
시작… 테이블 끝에 앉아 있는 사나이가 팔을 올린다. 그것과 동시에 세 번째의 사나이가
몸을 앞으로 내민다. 2초 후 , 한 사나이가 저쪽에서 창문 쪽으로 걸어온다. 5초 후, 끝에 있
던 사나이가 팔을 내리고 세 번째의 사나이가 몸을 일으킨다. 3초 후, 창문 쪽에서 한 사나
이가 일어나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5초 후에 처음부터 똑같은 동작의
반복이었다.
보란은 그들의 움직임을 5분 도안 자세히 관찰하였다. 그리고는 싱긋 웃고 다른 쪽으로 관
찰의 눈길을 돌렸다. 저말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었다. 참으로 잘 짜여진 연극이었다. 그렇다
면 진짜 녀석들은 도대체 어디에 모여 있는 것일까? 불빛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희미한 불
빛이 새어 나오는 이층 큰 홀의 창문을 제외하고는 아래쪽에 몇 개의 작은 불빛이 보일 뿐
이었다.
그는 주차장 쪽으로 렌즈를 돌렸다. 렌즈의 시야 족을 한 대의 자동차가 스피드를 내며 가
로질러 갔다. 그는 자동차를 쫓아 렌즈를 움직였다. 한순간 차의 불빛이 보란을 비추더니 방
향을 바꾸어 저택 밖으로 달려 나갔다. 보란은 아주 잠깐 동안 그 자동차를 이상하게 생각
했으나 곧 저택의 관찰에 주의를 돌렸다. 지붕 위에는 아무 것도 눈길을 끄는 것이 없었다.
주위는 또다시 조용해졌다.
그는 일층으로 눈을 돌렸다. 잠시 후 한 사나이가 안뜰의 허리 높이쯤 되는 담 옆에 조용
히 나타났다. 그는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무엇인가를 자기 어깨에 비벼댔다. 총이었다. 사
나이는 총신으로 어깨를 긁어 대고 있었다. 안에서 녀석들은 도대체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
걸까? 거리계의 렌즈를 돌려 가며 보란은 눈을 크게 뜨고 여기저기를 살펴 보았다.이때 문
이 열리면서 순간적으로 밝은 빛이 돌계단 위로 새어 나왔다. 그러나 문은 곧 닫혀졌다. 보
란은 숨을 훅 들이쉬고는 그곳을 조용히 지켜보았다.잠시 후에 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안의 불이 꺼져 있었다.두 사나이가 안에서 뛰어나오더니 계단을 올라가 저택의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보란은 싱긋 웃었다. 조금씩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담 쪽을 보
았으나 그곳에 서 있던 사나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란은 어둠 속의 지붕 그터에 무
언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란은 다시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는 기다렸다. 그는 시간에 맞춰 세밀히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계획에 따라 정확한 시간에 공격을 개시할 생각이었다.
공격 개시 1분전.
그는 발렌티나와의 일을 생각하고 양친과 조니, 그리고 불쌍한 누이동생 신디의 일을 생
각했다. 발렌티나에게는 꼭 돌아간다고 약속했었다.그것은 지켜질 수 없는 허무한 약속이었
다.
보란은 군인이다. 군인은 전쟁에서 살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언덕에서 살아서 빠져 나갈 희망은 없다. 지금쯤 경찰이 벌써 언덕을 포위하고 있을 것이다.
경찰견가지 동원했을 것이 분며했다. 설혹 마피아가 그를 놓친다 하더라고 경찰은 그를 놓
치지 않을 것이다.
귀여운 발렌티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발렌티나. 그녀는 좋은 아가씨였다. 평생 동안 지켜
온 순결과 사랑을, 죽어야 할 운명의 사나이에게 바쳐준 발렌티나. 그는 어떤 슬픔을 느꼈
다.그것은 확실히 슬픔이었다.
보란은 모든 생각을 뿌리치고 거리계 옆에 놓여 있는 긴 통 모양의 화기로 다가가서 다시
한 번 조준각을 확인한 다음 열까지 헤아렸다. 이윽고 포신이 떨리고 탄환은 쇳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았다. 드디어 대살육전이 시작되었다.
"저걸 봐요!"파파스가 소리쳤다. "저건 뭡니까? 어디서 날아오는 겁니까?"
"로켓의 일종이군!" 웨더비도 하늘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하얀 꼬리를 길게 끈 포탄
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어둠을 뚫고 나라가더니 저택의 한 모퉁이에 세
게 부딪히며 큰 소리를 내면서 폭발했다. 그러자 저택의 모든 불빛이 일시에 꺼지고 모퉁이
에는 뱀의 혓바닥과 같이 타오르는 불꽃만이 저택을 비추고 있었다. 사나이들은 허둥거리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화가 났는지 서로 떠들어 대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려 왔다.
웨더비와 파파스는 세르지오의 저택에서 100미터쯤 떨여져 있는 언덕에 무선차를 세우고는
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날아온 겁니까?" 파파스가 흥분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맞은편 언덕이야." "웨더비가 딱 잘라 말했다. "쌍안경을 이리 주게."
"가서 도와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자네 정신이 있나? 우리가 나간다면 저놈들은 보란
을 쏘는 것과 감정으로 우릴 쏠 거야. 그리고 보란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한
거야. 잘보고 있게, 조니."
"아이구, 어찌된 일이여?" 플래스키가 고함을 질렀다. "녀석은 여기를 폭파할 생각이군.'
"조용히 해! 잠자코 엎드려 있으라구." 시모어가 소리쳤다. "정신차려, 이제 한 방 얻어맞았
을 뿐이야." "한 방이라구? 저게 한 방이란 말이냐? 영감님은 어디 있지.세르지오는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모두 몸을 엎드린 채 조용히 하고 있어. 잠자코 있으란 말이야."
위층에서 세르지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디서 쏜 것인지 본 사람은 없나?""하늘에서
쏜 겁니다." 누군가가 흥분되 목소리고 대답했다. "아니오. 남쪽에서 날아왔습니다." 다른 목
소리가 똑똑하게 말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달에서 날아온 것이 아닐까?" 시모어 옆에 있
는 누군가가 말했다. "뭐라구, 어느 놈이냐?" 화가 난 세르지오는 크게 소리쳤다. "모두 눈
을 크게 뜨고서 섬광이나 연기라도 좋으니 무엇이든지 찾아내. 알겠나? 누늘 크게 뜨고 있
는 거야." "머리를 들고 보란 말입니까? 어지간히 해두시죠, 영감님." 시모어는 혼자 중얼거
렸다.
맥 보란은 두 번째의 카운트 다운을 끝내고 있었다. 제로! 조명탄의 발사와 함께 그는 싱
긋 웃으며 머린을 들어올린 다음 눈을 갖다 댔다. 몇 초 후 조명탄은 프랭키의 저택 바로
위에서 터지더니 그 일대를 마치 대낮처럼 밝게 비추면서 천천히 지면을 향해 내려오기 시
작했다.조명탄이 터졌을 때 이미 보란의 스코프는 프랭키 저택의 옥상을 포착하고 있었다.
어리둥절해 하며 밝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나이들의 얼굴이 스코프에 들어왔다.
곧 보란의 재빠른 손가락은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라이플의 굉음과 함께 그의 어깨에
반동이 전해졌다. 보란은 그 반동으로 조준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스코프에 바짝 눈을 갖다
대고 목표의 사나이가 배를 춤켜쥐며 쓰러지는 순간을 확인했다.
보란은 자신의 정확한 계산에 만족한 욱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거렸다.보통 사람들은 턱과
배 사이가 15인치쯤 된다. 그는 다시 머린의 총수를 왼쪽으로 조금 옮겼다.
다음 사나이가 또 시야에 들어왔다. 방아쇠를 당기자 사나이는 어김없이 쓰러졌다. 그 왼쪽
의 다음 목표, 방아쇠, 또 다음, 이어서 또 한 명, 다섯 명을 쓰러뜨리는데 5초도 걸리지 않
았다.
그는 머린을 옆에 내려놀고 스코프보다 훨씬 시야가 넓은 거리계의 파인더를 들여다보았
다. 옥상에는 아직도 많은 사내들이 허둥대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공포와 놀라움에 몸
이 굳어진 듯한 사나이들도 눈에 띄었다.피에 젖은 동료의 주검을 안아 일으키는 놈도 있었
다.그들 대부분은 옥상 가장자리에 둘러쳐진 낮은 담에 간신히 몸을 숨긴 상태였다.라이플의
섬광을 보지 못했는지 아직 반격은 없었다. 보란은 슬픈 듯이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려다.
"벌써 네 명이 죽었고 한 명은 중상이에요." 위층에서 누군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 왔
다. "세르지오. 세르지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놈의 불은 언제까지 타고 있을 건가?
엎드려. 모두 엎드리란 말이야. 몸을 숙이고 놈이 어디 있는지 잘 찾아봐." 세르지오는 격분
하여 소리쳤다. "피트! 바니!저쪽이다. 맞은편 언덕에 놈이 있다. 마구 쏴버려!" 곧 이어
죽음 의장막을 깨뜨리고 맹렬한 기관총 소리가 들려왔다. 겨냥해야 할 목표가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편 진영에서 반격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사나이들에게는 힘을 주었다.
그러나 어둠을 뚫고 저쪽에서 다시 하얀 연기의 꼬리가 달린 포탄이 날아왔다. "저런!또 날
아온다." 포탄은 꺼져 가는 조명탄의 마지막 빛 속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저택 옥
상 위에 떨어졌다.지붕의 파편들이 우박차럼 땅으로 쏟아져 내리고 사나이들의 고함 소리와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놀란 사나이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 부딪치면서 허둥대고 있었다.
비명과 신음 소리, 공포와 고통의 고함 소리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그러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폭발음이 연달아 일어났고 저택이 크게 흔들렸다. 사
나이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맹렬히 들려 오던 기관총 소리도 멎었고 저
택은 수라장이 되었다.
"보란이 곡사포를 쏘고 있군.' 웨더비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맙소나. 조금도 남아나
지 않겠는걸." "어디서 저걸 손에 넣었을까요?" 파파스가 두려우면서도 존경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저걸 어떻게 손에 넣었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문제는 놈이 사용법을 알고 있다는
거야. 이거야말로 완전히 일방적인 싸움이군. 더욱이 내가 불쌍히 여기고 있는 쪽이 이기고
있으니…." 폭발의 진동은 그들이 서 있는 곳까지 미쳤다. 파편 하나가 그들이 타고 온 무선
차의 문에 떨어졌다. "빌어먹을. 여기까지 날아오다니." 파파스는 파편을 주우려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지금 또 발사한 것 같군. 저쪽 언덕 꼭대기야. 자네는 저쪽을 눈여겨보고 있게
나." 그러나 파파스 경사의 시선은 반대쪼. 그러니까 공포와 화염속데 쌓여 있는 저택 쪽으
로 쏠렸다.새로운 조명탄이 공중에서 터졌다. 그는 눈이 부신 듯 눈썸을 찌푸리면서 웨더비
가 지시한 반대편 언덕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무서운 놈이군!" 그는 기가 질린 듯 구개
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27.운명의 신
보란은 다음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예상 외로 너무 쉽게 무너져 달아나고 있다.
그에게 반격도 한 번 제대로 해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적을 넘 과대 평가했건 게 아닐까?그
는 머린의 스코프를 들여다보면서 달아나려는 자동차에 계속해서 총을 쏘았다.차는 제멋대
로 구르다가 한 번 튀어오르고는 불을 뿜었다. 뒤따라오던 차가 불 속으로 뛰어들어 폭발하
면서 그곳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저택은 와전히 무너져 양옆의 벽만이 시커먼 연기
속에 앙상하게 서 있었다.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자동차들이 포탄에 맞아 박살이 나 있었고,
그 근처에는 시체들이 여기저기 흩처져 나뒹굴고 있었다. "분명히 어딘가에 다른 놈들이 숨
어 있을 게 틀림없어."
보란은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etkl 조명탄을 쏘아올려 거리계의 파인더를 통해 저택 근처를
훑어보았다. 바로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월남 전선
에서 수천 번도 더 들었던 헬리콥터 소리였다. 그 지긋지긋한 헬리콥터가 가까이에서 그를
찾고 있었다. 경찰? 아니면 마피아?
보란은 급히 폭발이 빠른 조명탄을 골라 넣어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쏘아올렸다. 조명탄
이 터지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헬리콥터가 보였다. 조종석에 앉은 사나이가 눈이 부신
듯 한 손을 들어 눈을 가리는 것이 보였다.그 옆에는 백발의 사나이가 겁에 질린 얼구로 앉
아 있었다.헬리콥터는 바로 그의 머리 위에 와 있었고 조명탄은 보란 자신도 비춰 주고 있
었다. 헬리콥터는 급히 불빛 밖으로 빠져 나갔다.보란은 머린을 앞으로 끌어당겼다.다시 조
명탄의 불빛 속으로 들어온 헬리콥터의 후미에서 자동 기관총의 철갑탄이 보란을 향해 쏟아
져 내렸다. 총탄에 맞은 거리계가 퉁겨 날아갔다.보란은 머리를 끌어안은 채 언덕 아래로 굴
렀다.보란은 언덕 아래에 몸을 숨기고 헬리콥터가 다시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보란은 스
코프의 눈금으로 목표를 겨냥하면서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었다. 백발의 사나이의 얼굴이 스
포크의 십자선 안에 들어왔다. 보란은 그의 두 눈이 흥분으로 이글거리는 것을 보면서 방아
쇠를 당겼다. 큰 총의 반동으로 어깨에 충격이 왔다.백발의 사나이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
이 보이고 응사하는 기관총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 왔다.
"저기다!"파파스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놈들도 보란을 발견했나 봐요.헬리콥터에서 마구
총을 쏘고 있어요. " "쌍안경을 이리 줘." 웨더비가 소리쳤다. "여기 있어요. 하지만 쌍안경
없이도 잘 보이는데요.이거야말로 월남전을 TV로 보는 것 같은데." "여긴 월남이 아니야."
"다를게 없잖아요?" "놈은 어디있지?" 머린의 육중한 총성이 헬리콥터의 툴툴대는 소리를
제압하듯 울리고 곧 이어 격렬한 기관총 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다시 기관총 소리에 응답
하듯 머린의 총성이 들려 왔다. 그러자 헬리콥터의 회전음이 이상하게 들리더니 곧 이어 헬
리콥터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서 크게 한 바퀴 구르면서 땅 위로 떨어졌다. "야. 대단하
데! 결국 격추시켰군!" 웨더비가 감탄하듯이 소리쳤다. "맞았어요.헬리콥터가 추락하고 있어
요." "보란 결국은 살아 남았군." 웨더비가 안도의 한숨의 쉬며 말했다.
그러나 맥 보란은 웨더비가 예견한 대로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어깨의 상처는 쑤셔 왔고
옆구리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헬리콥터가 떨어지면서 내는 폭발음을 들으며 그
는 다리를 질질 끌고서 총좌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구급 상자의 뚜껑을 열고 마지막
사격전 때 다친 발목을 치료하고 있을 때 언덕 위쪽에서 무슨 고리가 들려 왔다. 그는 거즈
를 어깨에 뭉쳐 넣고 다리를 절면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조명탄이 아직도 꺼지지 않고
언덕을 내려오고 있는 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공만한 돌이 구러 떨어져 보란이 숨어
있는 나무 근처에 맞았다. 곧 이어 터린의 모습이 보였다. "보란, 어디 있나?모란." 터린이
낮은 소리로 불렀다. "자네는 끝내 뉘우치지 못하고 나를 찾아다니나, 레오?" 보란이 권총을
들고서 나무 뒤에서 나타났다. "아, 무사했군. 헬리콥터의 기습에 대해서 알려 주려고 했는
데 자네를 찾을 수가 업었네." 터린이 반가운 듯이 말했다. "누구에게 수작을 부리는 건가?"
보란이 그의 말을 비웃으며 말했다. 터린은 양손은 앞으로 뻗으며 조심스럽게 땅바닥에 주
저앉았다. "담배를 잃어버렸군. 아, 숨이 차." "곧 담배보다 더한 걸 잃게 될 걸." 보란이 차
갑게 웃으며 말했다. "구두를 멋어도 되겠나?" "그게 자네의 마지막 소원인가?" 보란이 성
금히 물었다. "그래. 마지막 소원이라 생각하고 구두를 좀 벗게 해주게." 조명탄의 불빛이
숲 저쪽 너머로 가라앉고 있었다. 보란은 터린에게로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는 총구를
그의 머리에 갖다 댔다. "시간을 벌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 난 지금 곧 자네를 죽여
버릴 생각이니까 말이야." 터린은 보란의 말을 무시하였다. 구두를 멋더니 그 바닥 속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고 네모진 것을 꺼내어 보란의 눈앞에 내밀었다. "날 죽이기 전에 우
선 이걸 봐주겠나?" 보란은 터린에게 총을 겨눈채 희미하게 꺼져 가는 조명탄의 불빛 아래
그 카드를 살펴본 뒤 그것을 되돌려 주었다. 그것은 경찰의 신분증이었다. "하마터면 자네는
위장 첩자인 대 죽을 뻔했군." "제길, 난 수십 번 기도를 드렸네." 터린이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를 체포하고 싶지 않나?" 보란은 장난조로 물었다. "지금 내게는 그럴 권한이 없
네."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계속했다. "게다가 자넨 악당들을 모조리 쳐부수지 않았
나? 그런데 내가 왜 자네를 체포하겠나?" "그건 그렇고 한 가지 자네에게 물어 보고 싶은
게 있네." 보란의 머릿속에 갑자가 한 얼굴이 떠올랐던 것이다. "내 누이동생의 일인데.레
오…." "그 일은 내가 나빴어." 터린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나를 가리는 방편이었으니까.. 자네 여동생과 같은 또래의 어린
아가씨들 일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아프네. 그렇지만 비말 임부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한 아가씨하고는 바꿀 수 없는 더 중요한 일이 있
네, 보란. 이해해 주게." "알아들었네." 보란이 진지하게 말했다. "이젠 산을 내려가게. 가거
든 자네 부인에게 내 안부를 전해주게. 그리고 웨더비에게서 들은 정보는 자네에게서 나온
것인가?" 터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자넨 항상 나를 노렸거든." "한마디만 해주었
어도 좋았을 텐데." 보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갑자기 터린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런데 화가 나는 일이 하나 있네, 중사. 내 마누라를 위협한 것은 용서할 수 없어.
자네 덕분에 걱정 많은 마누라에게 날마다 혼이 나고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정말 미안한
일인데." 보란이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머리에 또 다른 걱정 많은 여인이 떠올랐다.
"자, 이제 산을 내려가게.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터린은 구두를 신은 뒤 군대식으
로 차려 자세로 목례를 하고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보란은 상처의 피를 닦아낸 다음 무기들
을 들고 다음 계속을 햐애 내려갔다.계곡 위쪽에서는 자동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보
란은 경창이 이미 이 근처를 봉쇄하고 그를 체포하기 위해 수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말 우는 소리가 들렸다. 보란이 그 쪽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여기
야!" 그리고는 낮은 덤불 속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잠시 후 말을 끌고 오는 사람의 모습
이 보였다. 보란은 45구경으로 기마 보안관의 머리를 후려쳐서 쓰러뜨리고는 말에 올라탔다.
조금 있으며 날이 훤히 밝아올 것이다. 아침이 오기 전에 그를 기다리는 여닝에게로 돌아
갈 수 는 없을 것 같았다. 또한 계속해서 말을 타고 빠져 나갈 수도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좀더 많은 시간과 거리가 필요했다. 잡히고 안 잡히는 것은 운명에 맡
겨 버렸다.만약 운명의 신이 그의 편이라면 이번에도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맥 보란에게 있어서 승리란 달콤한 것이 아니다.그것은 불타는 듯이 쑤시는 상처와 견디기
어려운 고통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여인의 아픈 마음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붙잡히지
는 않았다.
28.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
보란이 눈을 뜨자 바로 눈앞에 발렌티나의 맑은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
당신은 언제나 내가 보고 있을 때 잠을 깨는군요." 그녀가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보란은 눈
을 깜박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가?" 그의 어깨는 깨끗한 붕대로 감겨져 있었고 맨살에 닿
는 시트의 감촉이 꿈이 아님을 깨우쳐 주었다. 그는 알몸이었다. "아, 맞아! 전에도 이런 일
이 있었지." 발렌티나가 몸을 숙이고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문 앞에서 저를 부르고
는 정신을 잃었어요. 생각 안 나세요?" "난 힘이 빠지고 상처의 고통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어." 그가 중얼거렸다. "네,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리허게 쉬고 있으니 다행이에
요."
그녀는 무릎 위에 놓여 있는 신문을 펼쳐 들었다. "신문에는 당신이 어젯밤 23명을 죽이고
51명에게 중산을 입혔다고 씌어 있어요." "그래?" "네, 당신 이 제목 보이죠?" 발렌티나가
신문을 그의 눈앞에 펼쳐 주었다. 신문의 상단에 큰 활자로 씌어진 제목이 눈에 들어 왔다.
<맥 보란, 마피아를 몰살시키다.> 그는 그것을 소리내어 읽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손
을 뻗어 발렌티나의 부드럽고 따듯한 손을 잡았다. 갑자기 가슴이 저려 왔다. "발렌티나, 난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 그가 눈을 뜨고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그의 다친 어깨를 건드
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의 옆에 누워 자신의 얼굴을 그의 얼굴에 대고는 조용히 속삭였
다. "만약 당신이 해내지 못했다면 난 당신을 용서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것으로 아젠 안
심이군." 그가 부드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전쟁은 끝났고 당신은 이
긴 거예요." "전쟁이 아니야, 그건 단지 전투야. 발렌티나, 당신은 그것을 알아야 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 순간 그녀는 가볍게 몸서리를 치며 그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잠
결에 승리는 없다고 소리쳤어요. 그게 무슨 뜻이죠?" "글세, 모르겠는데." 보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럼, 당신은 승리의 기쁨을 느끼지 않으세요?" 보란은 비소를 지으며 다치지 않
은 팔로 그녀의 몸을 세게 끌어 안았다. 그것으로 그는 승리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남자란 어떤 관념을 위해 싸우는 것이지 어떤 관념에 반대해서 싸우는 것은 아니야." 그녀
가 몸을 일으키며 그를 똑바로 응시하였다. "당신의 그 말은 상당히 의미 심장하군요. 그 말
은 무슨 뜻이죠?" 그는 어깨의 아픔을 잊어버린 듯이 큰 고리로 웃었다.
"하하하, 그런 말하자면 부드럽고 귀여운 발렌티나를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게 바로 승리라는 건가요?" 그녀의 눈동자가 타올랐다. "사나이에 있어서 승리란 그런거
여." 그가 확싱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그의 팔에서 살며시 빠져 나와 입고 있던 나이
트 가운을 벗어 버렸다. 알몸이 된 그녀는 시트를 걷고 그의 옆으로 파고들면서 그를 끌어
안았다. "이제 곧 당신이 완쾌되면 저는 당신의 승리에 도전할 거예요." "좋아, 나의 건강에
는 아무 이상이 없어. 정력은 어깨에 있는게 아니라구 , 이 바보야." 그기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알고 있어요, 맥." 그녀가 속삭였다. "허니문이 그렇게 짧은 것은 아니래요. 어쨌
든 우리의 허니문도 아직 끝난 것은 아니죠?" "전쟁과 사랑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도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그녀를 더욱 세게 끌어 안았다. "그럼 당신은 그 중 어느 것에
승리한 거죠?" 그녀가 모을 흔들면서 물었다. "양쪽 모두의 승리야!" 그녀가 숨을 삼키면서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조용히 속삭였다. "승리란 정말 달콤하군요."
피츠필드의 전투는 끝났다. 그러나 맥 보란에게 있어서의 전토란 한 대의 승리로 일단락
지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아득히 멀어진 과거 속의 한 점에 불과한 것이었고,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보란은 하나의 사상도, 하나의 조직도 완전히
파멸시키지는 못했다.그는 다만 사상 최강을 자랑하는 범죄 조직의 표면에 파문을 일으켰을
뿐이다.이제 그 조직은 그들의 앞 정강이를 물고 늘어진 한 마리의 개미를 없애기 위해 대
책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마피아 조직의 역사 속에서도 이토록 주목받은 인물이 없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아메리카의 전설적 인물이 되었고 법을 집
행하는 자들의 욕심 나는 추적 대상이 되었다. 온 나라 안의 살인 청부업자들에게 보란의
목은 곧 거액의 현금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전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마피아 가족
한사람,한사람이 갚아야 할 빚이었다.
맥 보란에게는 죽음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사형 언도를 바은 어떤 사람보다도 더 확실한
죽음 판결을 받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그는 오직 그에게 남겨진 길지 않은 시
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생을 단축시키려는 놈들의 장벽을 뜯어 먹으면서라도 최후의 숨을 내쉴대까지 싸
울 결심이었다.
보란은 위험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대책을 세웠다. 그는 머리를 염색하고, 입가에 수
염을 기르고, 도수 없는 굵은 테의 안경을 끼었다. 이러한 위장으로 적어도 웨스트 코스트까
지는 안전하게 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곳에는 그를 좀더 완전하게 변장시켜 줄 사람이 기
다리고 있었다.그는 월남전에서 보란이 목숨을 구해줬던 군의관으로 지금은 세계적인 명성
을 얻고 있는 성형 외과 의사로서 보란은 웨스트 코스트에 도착하는 대로 얼굴을 성형할 생
각이었다.
그는 고아가 된 동생과 거액의 돈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맡겨 두고 피츠필드를 떠났다. 그
리고 한 사나이의 존재까지도-----아마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피츠필드에 남겨 놓
고 떠난 것이다.
9월 12일 저녁, 보란은 새로 구입한 차를 몰고 피츠필드의 서쪽에 있는 고속도로로 들어
섰다.러시 아워의 붐비는 차들에 섞여, 발렌티나와의 눈물 어린 작별이 그의 마음에 되살아
놨다.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뒤로 두고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쫓아 떠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다정한 발렌티나의 모습까지도 남겨두고 그는 지는 태양의 작열하는 빛 속
으로 사라져 갔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일 뿐이다. 보란은 지옥에 부딪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
다. 맥보란의 마지막 길은 피에 물든 길일 것이다.
돈펜들턴의 킬러 제2권 로스앤젤레스
돈펜들턴
1.도박
맥 보란이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것은 9월 20일 해질 무렵이었다.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안내방송으로 공항은 무척 시끄러웠고 그 소음 때문에 조금은 쓸쓸하였다. 그는 곧 라
스 베이거스로 접어들며 시가를 가로 지르는 고가도로위를 한참 달리다가 샌타모니카에 들
어섰다. 그후 그는 해안 고속도로를 몇 분쯤 달리다 차를 멈추었다. 그는 주유소의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전화 번호부를 뒤적여 번호를 확인한 후 다이얼을 돌렸다. 제대한 군대 동료
이자 베트남 전쟁의 노련한 전투병이었던 조지 지트카에게 거는 전화였다. 변하지 않은 지
트카의 음성이 우선은 반가웠다. 보란은 싱긋 웃으며 송화기에 대고 활발하게 지껄였다.
"촐싹쟁이 참샌가? 난 소방수다. 거기 재미가 어때?"
상대방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잠깐 멈칫하더니 조심TM러운 음성으로 차갑게 대답했다.
"그저 그렇다. 소방수. 내 생각엔 여길 피하여 곧장 쿠앙 트리로 가는게 좋을 것 같은데?"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
보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틈에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난 R과 R을 위해서 참새에게 가려고 한다. "
"R과 R을 위해서 쿠앙 트리로 가는게 좋다니까!"
"그럴수는 없어!"
보란이 잘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잠시 동안 전화통을 뚫어져라 노려 보았다. 이내
차로 돌아온 그는 주유소 뒤로 차를 빼내 다시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핸들을 잡은 채 그는
코트를 벗어 시트위에 올려 놓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 32구경 리볼버와 어깨 고정 벨트
를 끄집어내서 어깨에 둘렀다. 그러고 몇 차례에 걸쳐 그것을 뽑는 연습을 했다.
"쿠앙 트리라고 ? 빌어먹을!"
그는 코트를 다시 입으며 투덜거렸다.
그로부터 20분 뒤, 한 대의 스포츠 타가 고속도로 톨게이트 아치속으로 스르르 빠져 들어
가 호화로운 해안 아파트 단지를 끼고 달리더니 타원형으로 닥 트인 풀장 반대쪽에 멈춰섰
다. 검은 안경을 쓴 몸이 좋은 사내하나가 그 날씬한 스포츠 카로 부터 나왔다. 그는 벌거벗
은 것에 가까운 사람들로 붐비는 풀장 곁을 지나갔다. 불빛이 어둠의 구석구석을 눈부시게
밝히고 있었고 몇 개의 하이파이 스테레오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시끄러운 볼륨으로 풀
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실오라기 같은 비키니를 입은 풍만한 블론디의 여자가 물속에서 나오더니 청동빛으로 그
을은 몸을 보기 좋게 흔들며 서서히 테이불로 다가갔다. 일행인 듯한 여자가 깔깔거리며 그
녀에게 커다란 유리잔을 내밀었다.
보란은 미소 지으며 그 미치광이 놀이터같은 풀장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는 건물 바
깥 아파트 계단에 있는 문패들을 잠시 훑어 보았다. 산뜻한 색의 비키니를 입은 여인이 계
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녀는 술잔을 받친 쟁반의 균형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다. 보란은
그녀를 지나가게 하려고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러나 그녀는 쟁반으로 그를 슬쩍 밀었다 그
의 손이 본능적으로 코트의 앞섶으로 들어갔다. 그는 거의 벌거벗은 그 여자가 키들거리며
말했을 때에야 비로소 긴장을 풀고 웃었다.
"방 번호를 알려줘요. 미남아저씨!"
"고마운 말이지만 난 파티에 온 사람이 아니오."
"이건 파티가 아니에요. 그저 즐기기 위한 모임일 뿐이라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회복되기 어려운 알코올 중독자처럼 흐느적거렸다.
"좀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오세요."
그녀는 다시 한번 키들거리며 지나갔다. 자신의 육체가 훌륭한 감식력을 가진 사람에 의
해 관찰되고 있음을 의식한 듯 그녀의 엉덩이는 더욱 요염하게 흔들 거렸다.
보란은 계단을 올라가다 아래의 미친듯한 광경을 다시 한 번 바라보기 위해 잠시 멈춰섰
다. 그러고는 3층까지 천천히 올라갔다.
3층의 베란다는 쓸쓸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문은 모두 열려있었다. 마치 건물 전체
가 하나의 대가족을 위해 지어진 듯 했다. 주민들의 대부분이 풀장에 몰려 있다고 생각한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았다. 풀장에서 나는 소리들은 계단을 올라갈수록 점점 더 시끄럽게
들려 왔다. 보란은 다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저런 소음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일까.
잠시 후 그는 찾던 방 번호를 발견했다. 문은 닫혀있었다. 모든 문이 열려 있는데 반해 굳
게 닫힌 그 문은 남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가 초인종을 누르자 감시구가 거의 동시에
열렸다. 누군가가 그를 노려 보았다.
"누구요?"
하고 무겁게 물었다.
"조지 지트카를 만나려 왔소. 여기 사는 것으로 아는데......"
"그의 이름이 문에 붙에 있는걸 못 봤소?"
" 난 원래 눈에 보이도록 기록 되어 있는거라곤 믿지 않는다오."
보란은 색안경을 벗어 코트주머니속에 넣었다. 그의 손은 코트의 앞섶에서 서성거리고 잇
었다.
"네가 지타카지?"
"그래!"
감시구가 닫히고 문이 조금 열렸다. 보란은 좌우를 재빨리 살핀다음 200 파운드나 되는
몸을 날려 조금 열린 문을 힘껏 걷어 찼다. 순간 그의 몸은 캄캄한 아파트 내부를 몇 바퀴
굴렀다. 총성이 아파트 내부를 뒤흔들었다. 몇 발인지 알수 없는 권총은 계속 불을 뿜으면서
그가 들어선 아파트입구를 벌집처럼 만들어 버렸다.
보란은 이쪽저쪽으로 몸을 굴려 탄환을 피하면서 권총을 꺼냈다. 새로운 총성이 조금 전
의 총성을 대신하더니 비명과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활짝 열려진 현관 근처에서 들렸다. 첫
번째 응사의 결과였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응사에 대한 결과도 나타났다.
고요함이 뒤를 이었다. 그 고요함을 깨뜨리는 것은 방의 한 구석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뿐이었다.
"지트!"
보란이 낮은 소리로 불렀다.
"여기 있어!"
"괜찮아? 지트!"
"괜찮아. 모두 세놈이었는데 , 세놈다 해치운거야?"
"셋? 그럴거야. 확인해 보지."
보란이 대꾸했다. 그는 몸을 털며 일어서서 문을 닫은 다음 불을 켰다 . 세 사나이가 좁은
방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다. 지트카는 허리와 발목을 밧줄로 꽁꽁 묶인 채 방구석에 처
박혀 있었다. 보란은 호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능숙하게 밧줄을 끊었다.
"네 전우한테 귀띔이라도 해줬어야지. 이 자식!"
웃으며 그가 말했다.
"지옥으로나 가라지, 우라질 놈의 전우!"
"그런데 네 머리색이 왜 그 모양이야?"
그는 손목과 발목을 주무르면서 보란을 바라보았다.
"표백을 했네. 어때. 이상해 보여? 콧수염도 표백하려다가 음탕하게 보일까봐 참았지. 그
놈들이 네 팔다리를 꽁꽁 묶는 동안 넌 뭘 했어?"
지트카는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탁자에서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피부가
검고 건장한 체격인 그는 놀랄 만큼 세련된 태도로 움직였다. 그는 수영복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보란은 익숙하게 시체의 주머니를 뒤져 소지품들을 꺼내 놓고 조사하기에 바빴다.
"이놈들이 경찰관이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알았나?"
보란은 손을 털며 물었다.
"경찰이라면 함부로 두들기지도 않고 사람을 짐승마냥 꽁꽁 얽어매지도 않잖아."
지트카가 다시 중얼거렸다. 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들은 마피아야."
보란이 말했다.
"빌어먹을! 이럴줄 알고 오지 말라고 했잖아."
보란은 웃으며 다음 시체로 옮겼다.
"나도 눈치 챘었네. 그렇지만 이 정도는 그 지긋지긋한 쿠앙트리 매복 작전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안 그래?"
"이 자식들이 장난을 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아둬, 맥."
보란은 여전히 입가에 장난 스런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밀림에서 옛날에 같이 싸우던 전우들과는 자주 만나나? 나한테 슬쩍 말을 건넨 것처럼
그렇게 엉뚱한 식으로 말이다. 지트카. 뭐? R과 R을 위해서 쿠앙트리로 가라고? 하나님 맙
소사!"
"그렇게라도 얘기하지 않았으면 네 목이 지금까지 온전할 것 같아?"
지트카는 뚱해서 대꾸했다. 그는 아직도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놈들이 얼마 동안이나 여기 죽치고 있었어. 지트?"
"덩치 큰 녀석은 벌써 이틀 동안이나 이 근처에서 서성거렸어. 틀림없이 정찰을 한 거겠
지. 그 놈들이 내 전화를 도청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네.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온통
네가 마피아를 상대로 벌인 영웅적인 싸움 얘기더군. 결국 내 생각이 옳았다는게 확인된 셈
이야. 전화가 도청되고 있었어. 너하고의 통화를 끝내자 마자 이놈들이 여기로 밀려 들어왔
어. 빌어먹을! 우리 전우들 중에서 그래도 너 하나만은 깨끗이 살거라고 기대 했는데......넌
정말 깨끗이 살았어야 했다고! 말썽없이 살았어야 할 놈은 바로 너였어. 맥!"
보란의 웃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졌다.
"깨끗이 있을 수가 없었네. 지트. 그 빌어먹을 놈들은 내 삶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어. 내가 가는 곳마다 그들은 나를 노리고 있어. 그놈들은 어디에서나 나를 기다리고 있
었단 말이야. 오마하에서도, 덴버에서도, 에버그린의 고든네 가게에서도, 베이거스에서도, 그
리고 여기에서까지도...... 정말 지긋지긋하게 달라붙고 있다고. 나한테 필요한건......"
그의 흥분됐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그는 지그시 그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너에게 필요한 건, 기적뿐이야!"
라고 지트카는 단언했다. 그러고 그는 밑을 내려다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건 이놈의 쓰레기들을 여기에서 끌어내는 일이고."
보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을 불러. 지트. 그들에세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두 얘기해. 그동안 난 여기에서 사라
져 버릴 테니까."
"참 별난 소릴 다 듣겠군! 나보고 네 엉덩이를 걷어차서 쫓아내 버리기라도 하라는 말이
야?"
지트카는 분통을 터트렸다.
"이것은 너의 싸움이 아니니까 너까지 끼여들 필요는 없어."
보란은 조용히 말했다.
"닥쳐! 풍 둑에서 네가 내 더러운 몸뚱이를 끌러내 주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여기서 너하
고 말다툼도 할수 없었을것야."
지트카가 소리쳤다.
"나는 단순히 네가......."
"정신차려. 이 친구야! 싫다는 일을 억지로 시키지는 않을테니까. 넌 여기에 왔어. 그리고
지금 여기 서 있어. 중요한건 라로 그 점이야 . 내가 나팔을 불어 eof 놈처럼 보여? 그렇게
여겼다면 나한테 오지도 않았을걸? 자. 쓸데없는 얘긴 집어치우고 우선 이놈들을 아파트 밖
으로 끌어내자고. 그다음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하는거야. 알겠지? 제발 그 어디론가 사라진다
는 둥 없어진다는 둥 하는 소리는 집어치워. 이자식아!"
그는 보란의 손을 쥐었다. 보란도 지트카의 손을 힘껏 마주 쥐었다. 지트카가 다시 한 번
다짐을 했다.
"네가 날 무시하지 않는 거라면 그런 소린 집어치우라고!"
그들은 손과 손을 마주잡은 채 서로의 우정을 확인했다. 그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
졌다.
"아직 아무도 총 쏘는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군. 대체 여긴 왜 이렇게 소란 스럽지? 항
상 이런 소동이 계속되나?"
보란이 먼저 손을 놓고 시체 쪽으로 다가가 그중 하나를 가볍게 걷어차며 말했다.
"대충 그런 셈이지. 여긴 자유 분방한 독신자들을 위한 일종의 특수 지역이야. '레지던스
클럽'이라고 하지. 이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 난 거짓말까지 했어. 내가 벌써 구세대라나.
원!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보란은 혀를 찼다.
"우리는 망각된 존재였어.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모르는 채 낯선 땅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동안 세월은 우리를 앞서간 거야. 비극이지. 그건 그렇고 난 코르베트를 몰고 왔는데
폐차 직전의 고물이야. 겉은 번지르르하지. 네 차는 어때? 쓸 만해?"
"구형 다치인데 아직은 새것이나 다름없어. 문제는 차가 아니라 차가 있는 곳까지 어떻게
시체를 운반하느냐야. 주차장까지 가려면 반드시 정원을 통과해야 하거든. 좋은 방법이 없을
까?"
"내 생각엔 시체를 둘러메고 정원으로 나가도 별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 같진 않은데?
일단 한번 부딪쳐 보자고. 달리 방법이 없으니가 말이야."
보란은 잠시 시끄러운 풀장의 스피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말했다.
지트카는 구석에 놓인 탁자에서 열쇠 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시체 한구를 가볍
게 들쳐 업고 먼저 방을 나섰다. 보란도 어깨에 시체를 둘러메고 그 뒤를 따랐다. 풀장 주변
은 여전히 그와는 관계없이 흥청거리고 있었다. 블론디의 여자도 마찬가지로 다른 패거리들
과 함께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어떤 경연대회 비슷한 것을 벌이고 있
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지트카에게 큰 소리로 인사말을 건넸다. 장난꾸러기 어느 한쌍이 보
란과 그가 둘러멘 시체를 하마터면 풀장에 빠뜨릴 뻔하기도 했다. 그런 점들을 제외하고는
그들도, 그들의 행동도 완전히 서로를 무시하고 있었다.
보란은 그의 짐을 어깨위에 다시 잘 올려 놓기 위해 잠시 숨을 돌렸다. 옆에는 어깨선이
고운 여자가 젖가슴을 기술적으로 노출시킨 수영복을 입고 서 있었다. 그는 그녀가 들고 있
는 잔을 슬쩍 빼앗아 장난스레 한 모금 마시고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
고 돌아 보았을 때는 이미 보란이 몇 걸음 옮기고 난 뒤였다. 지트카가 구형 다치 뒷좌석에
시체를 쑤셔 넣는 것을 보고 그도 어깨에 둘러멨던 시체를 그위에 포갰다.
지트카는 서둘러 정원을 가로 질러 갔다. 보란은 자신이 몰고 왔던 코르베트로 다가가 탄
환 한줌을 꺼내 코트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곧 그는 다치로 되돌아와 그의 권총에 탄환을
장진했다. 그 일이 끝나자 담배를 불 붙여 물고 지트카가 오길 기다렸다 그가 그 담배를 비
벼 끌 때쯤 지트카가 나타났다. 그느 진과 니트셔츠를 입고 단단해 보이는 신발을 신고 있
었다.어깨 위에는 세 번째의 시체가 둘러메여 있었다.
그때 한 대의 승용차가 소리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차에서 내리 쏟는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그물을 만들어 지트카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다음 순간 그차는 튀어오르며 정지했다.
마치 운전하는 사람이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뭉개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양쪽
문이 활짝 열리더니 덩치 좋은 사내들이 쏟아져 나왔다. 밀림에서의 본능으로 보란이 다치
승용차를 가로질러 날 듯이 몸을 굴린 순간 밤의 어둠을 찢어 발기며 자동 소총이 포효했
다.
보란은 주위를 재빨리 살펴 보았다. 지트카의 어깨에 있어야 할 세번째 시체가 그들이 차
고옹 차의 트렁크위에 길게 가로질러 뉘어져 있었다. 지트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
나 지트카의 안부를 걱정할 만큼 그는 한가하지 않았다. 보란은 그제야 32구경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소나기처럼 퍼부어 지고 있는 기관총 세례앞에서 너무나 무력한 존
재였다. 그는 주차된 차들을 엄폐물로 삼아 구르기도 하고 엉금엉금 기기도 하면서 조금씩
나아갔다. 마침내 그는 공격자들의 승용차와는 정 반대쪽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총알은 아직도 지트카의 다치 승용차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자동 소총과는 약간 다
른 총성이 한번 울리더니 공격자들의 승용차 헤드라이트가 박살났다. 적들 가운데 하나가
조심하라고 큰 소리로 경고 했다. 자동 소총은 다시 불을 뿜기 시작했고 지트카가 시체를
내던진 차위로 탄환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졌다.
보란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지트카가 행동을 개시한 것이었다. 그는 보란의 다음 행동
을 예상하며 적에게 엄호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마지막 표적이었던 가스 탱크가 폭발하면
서 화염이 눈부시게 솟아올랐다. 낯선 목소리가 울부짖었다.
"빌어먹을! 저걸 좀 봐!"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사나이가 차들을 따라 뛰어가는 것을 발견하자 보란은 발을 뻗어
몸을 고정시켰다. 다음 순간 그의 32구경 리볼버가 불을 뿜었다. 그 사나이는 한 바퀴 빙글
돌더니 도로위에 쓰러졌다.
총격전에서 다음 행동을 미리 예상하고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전투에서의 행동은 머리에
서부터가 아니라 본능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다. 보란은 첫 번째 사격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사걱을 가했다. 혹은 몸을 옆으로 굴리면서, 혹은 뛰쳐나가면서 사격했다. 그러나 그의
눈만은 적에게 고정된채 움직이지 않았다. 전투에 있어서 적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세
번째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적의 자동 소총하나가 침묵했다. 적들은 보란의 의치를 가늠
해서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보란은 교묘하게 위치를 옮겨가며 적절하게 응사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 그의 다섯 번째 총알은 사격중인 적의 팔을 여섯 번째 총알은 적의 콧잔등을
관통시켜버렸다. 철거덕 철거덕, 적의 손에 있던 자동 소총이 연속적으로 땅에 떨어졌다.
이제 남은 놈은 하나. 그는 차바퀴의 흙받이 부근에 숨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다. 총
알이 음산하고 날카로운 노래를 부르며 보란의 귓가를 스쳤다. 그는 총알이 떨어진 32구경
리볼버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질풍같이 달려나가 숨어 있는 적의 가슴을 두 발로 걷어 붙였
다.
침묵이 요란한 총성을 몰아내고 잠시 주차장을 엄습했다. 그 소란스럽던 풀장까지도 조용
해졌다. 불 붙은 자동차에서 불꽃의 탁탁 튀는 소리들이 그 침묵을 더욱더 적막하게 만들었
다.
지트카는 다치 승용차로 달려들어 시체들을 포장도로 위로 내던졌다. 보란은 그의 코르베
트로 가서 시동을 걸자마자 다치 숭용차 곁으로 달렸다. 문을 활짝 열러 젖히자 지트카가
재빨리 뛰어올랐다. 그들은 풀장을 지나 곧 고속도로에 이르렀다. 지트카는 시트에 몸을 기
댔다.
"그놈의 쓰레기들을 차밖으로 끌어내 버렸어."
"경찰들이 알아서 할거야!"
보란은 잘라 말했다. 그들은 서쪽으로 얼마간 달리다가 해안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남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보란 회사에서 지불을 해줄지 모르겠는데"
지트카는 걱정이 대단했다.
"뭐라고?"
보란은 이제 한가하게 차를 몰고 있었다. 긴장되었던 그의 신경 조직이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온 것이다.
"내 차 말이야! 못 봤어? 구멍투성이잖아. 다 망가졌어. 그런데도 그 더러운 자식들은 보
험금을 주지 않으려고 할 게 뻔하다고."
"전우로 되돌아오게 된걸 축하한다. 지트카!"
보란은 슬쩍 화제를 바꿨다.
"내가 그 지긋지긋한 싸움을 이렇게까지 그리워 하고 있었을줄은 정말 몰랐어."
"정말이야?"
보란이 물었다.
"그래 .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야. 베트남 전쟁이 끝난뒤로 오늘같은 스릴을 느낀적은 없었
네."
그들은 잠시 침묵하면서 몇 분 동안 더 달려갔다. 지트카는 담배에 불을 붙여 보란에게 건
네고는 자신의 입에도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보란이 정겹게 말했다.
"넌 참 좋은 친구야. 지트카!"
"앞으로 더 좋아질게다!"
"뭐?"
"더 좋아지게 될 거라고 그랬어 . 네 목에는 수십만 달러의 현상금이 달려 있다는 걸 알고
있나? 어떤 멍청한 녀석이 나더러 솜씨를 한번 보이지 않겠느냐고 유혹하더군."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보란은 갑자기 목이 말랐다.
"정말이라고 . 수십만 달러! 그놈들. 아마 널 사랑하나 봐."
"지트카. 만일 네가 날 마피아한테 밀고 한다면 말이야...... 아마 돈에 연연해서가 아닐 테
고..... 재미 때문이겠지?"
"내가 만일 그 수십만 달러를 챙겨 넣기로 작정을 한다면 우리 둘중에 누가 죽게 될까?"
"너야."
보란은 감정을 조금도 나타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럴까?"
"분명해! 지트카. 난 널 죽이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죽이게 될 거야. 만일 그래야 한다면."
"내 생각에는 넌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그것 참 . 정말 끔찍한 노릇이군!"
하고 지트카가 말했다.
"정말 거창한 노름이야. 야 . 맥! 내 얘기 깊게 생각하지마."
"만일 네가 무슨 재미있는 소일거리로 나를 고발한다면 난 승산이 거의없어. 난 재미로 일
을 시작한 건 아니기 때문이야. 그리고 아편쟁이들이나 하찮은 떨거지들. 얼간이 건달 같은
녀석들. 거기다가 아마추어건 프로간 간에 총잡이들은 모두 나를 노리고있지. 아니 나에게
붙은 현상금을 노리고 있지. 또 큰돈이 라면 기갈을 하고 덤벼드는 녀석들도 빼놓을 수 없
지. 그 놈들 뒤에는 세계에서 제일 조직망이 탄탄한 범죄 신디케이트 마피아가 있을 테니까.
재미는 거기 있어. 노림을 당하는 재미! 지트. 만일 네가 찾고자 하는게 재미라면......"
"내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잖아 . 젠장! 그 놈들한테 휩쓸려 들어갈 건더
기는 얼마든지 있었다고 . 그렇지만 내쪽에서 거부 했지."
"우린 훌륭하게 일을 해냈어. 지트카."
지트카는 좀 갑갑했다.
"우리 어디가서 한잔 할까?"
"미안해 .술집이 내게는 출입금지 구역이야. 지트카. 아무리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난 술집
엔 들어가지 않아. 커피는 어때?"
"생각없어. 그냥 달리면서 말장난이나하자. 서로 얘기할 것도 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좋아."
"네 계획은 뭐야?"
"짐 브랜슨을 찾을 작정이야."
"브랜슨 박사 말은가?"
"그래. 그녀석도 제대를 해서 민간인 생활을 하고 있다더군. 병원을 차렸다고 하던데. 성형
수술이 전문이라든가? 닥토에서의 그 기습작전 생각나? 그녀석은 그것 때문에 항상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만일 그놈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아주 잘된
일이지."
"갑자기 은혜를 베푼 자의 뻔뻔함으로 나타나시겠다는 건가?"
보란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기는 싫지만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야. 내가 지나는 길목마다 숨어서 기
다리는 그림자들 속으로 더 이상 혼자 뛰어드는 일은 계속해 낼 수 없기 때문이야."
"마피아로부터 달아나겠다는건가?"
지트카가 물었다.
"난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건 아냐, 단지 위장 전술이 필요하다는 것뿐이지. 그게 다야. 싸움
을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어."
지트카는 다시 한 번 갑갑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징병 모집은 아직 안 끝났다는 얘기지?"
보란은 지트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고 말겠다는 듯이 굳은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
다보았다.
"너도 끼고 싶어?"
"난 벌써 끼여 든 것 같은데..........."
"그래. 그런 것 같군. 너도 아마 지금쯤은 그놈들의 리스트에 올라 있을 게 분명해."
"나도 그 생각을 하는 중이야."
"무슨 생각?"
"내가 너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보란이 웃음을 터뜨렸다.
"죽음의 신과 사랑을 속삭이는 지트카라? 이봐.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것 생각나? 쿠앙 쏘에
서도, 푸아 트링에서도, 착동에서도 너는 나에게 필요했어."
"널 지원해 줄 병력이 더 필요하잖아, 맥?"
"그래, 사실이야."
"근데 넌 베트남에서 귀환한 많은 사람들이 민간인 생활의 그 복잡함과 단순함에 쉽게 적응
하질 못하고 얼마나 애를 먹고 있는지 알아? 나나 붐붐 하파워처럼 말이야."
보란은 눈을 치켜뜨고 지트카를 똑바로 바로보았다.
"붐붐하고도 만났단 말이지?"
"그래, 로럴 계곡에 따을 좀 갖고 있는데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라더군. 그 친구 마누라는 어
떤 삼류 배우하고 눈이 맞아 달아나 버렸어. 그런데도 그 친군 조금도 개의치 않더군.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탁월한 폭탄 전문가가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일 텐데도 그저 우두커니 앉아
허송 세월만 하니...."
"지금 내 개인적인 싸움에 가담할 사람을 더 확보할수 있다는 얘기야?"
보란이 조용히 물었다.
"그들에게 어떤 조건을내거느냐에 달렸지. 왜냐하면 너에겐 그것이 절실한 싸움일지라도 다
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보수 말이군."
"물론이야. 왜 안 되겠나? 넌 돈뭉치를 놓고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총에는 총으로! 내 생각에 넌 얼마든지 돈을 만져 가면서 이 싸움을 할 수 있
을 것 같은데..."
지트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란의 반응을 기다렸다.
"돈이라...... 그래 돈을 벌 수도 있겠지. 마피아들이 있는 곳엔 언제나 엄청난 현금이 있게
마련이니까."
"바로 그거야. 돈은 모든 놀이의 흥미를 배가시켜 주거든. 설사 지더라도 재미는 만끽할 수
있단 말이야. 자신 있게 얘기하겠는데 돈만 준다면 직업적인 싸움군들은........"
"알았어. 생각해 보겠네."
보란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잘 생각해 봐!"
지트카도 퉁명스레 말을 받았다.
보란은 미소 띤 얼굴로 조용히 차를 몰았다. 그들은 해변을 따라 한가롭게 계속 나아갔다.
지트카는 몇 차례 심호흡을 하였고 보란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담배 연기를 뱉어
냈다.
"좋아!"
"정말이야?"
지트카가 재빨리 되물었다.
"필요한 인원은 10명! 그 정도면 충분해. 기동성과 단결력이 생명이니까 그 이상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야. 단,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일 것. 사격수가 두 명,
또 너처럼 능란한 척후병이 두 명 필요해. 붐붐 같은 수준의 폭탄 전문가도 두 명 있어야
하고 중화기를 다룰 사람도 있어야겠어. 멋있잖아? 뛰어난 전쟁 기술자들로 구성된 작은 군
대!"
"적들은 수천 아니 수만 명일지도 몰라."
지트카는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걸로 충분하다니까. 난 대규모의 군대를 바라는게 아니야. 특공대야. 죽음의 5분 대기조,
바로 그거야. 너무 규모가 크면 다루기 힘들어. 지휘는 물론 내가 하겠어. 내가 팥으로 메주
를 쑤라고 명령해도 그들은 팥을 삶으면서 어떤 모양의 메주를 원하느냐고 물어 와야 해.
언제 공격할 것인지. 어떤 방법을 쓸 것인지도 모두 내가 결정할 거야. 그들은 단지 내 지시
에 따르기만 하면 돼."
"아, 물론 그렇게 해야겠지!"
지트카가 보란의 말에 동의했다. 이제 어느 정도 갑갑함이 가라앉은 듯했다.
"명령에 불복종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살할 거야. 이 점은 전 대원이 항상 명심해야 돼.
이런 일에는 엄격한 규율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법이니까."
"잘돼 나갈 거야. 모두들 그걸 받아들일 거고."
"물론 받아들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도박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 모
두가 알아 둬야 할게 있어. 이것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쟁이라는 것. 우리가 꿈꾸는 승
리는 실현되지 못할지도 몰라. 죽음을 항상 앞세운 도박이니까. 지트카."
"바로 그런 점이 해볼 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하는 놈들만 끌어들이는 것이 포인트야, 안 그
래? 너나 나처럼 말이야."
지트카의 미소에 보란은 고개를 몇 번 끄덕여 주고 조용히 외쳤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에 돌입한다. 우리의 적은 전 세계의 마피아들이야. 우리는 그놈들
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공격한다. 나의 저주가 어떻다는 걸 보여 줄
작정이야. 그리고 무너지는 그 조직의 최후와 나의 죽음을 함께 하겠어."
지트카는 좀 멍한 얼굴로 보란을 바라보았다. 용기와 복수에 불타 그의 뺨은 붉게 상기되
어 있었고, 눈가에는 미세한 경련까지 일었다. 그것은 참으로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그 모
습을 보면서 지트카는 자기도 모르게 마피아에 대한 일종의 연민을 느꼈다. 그는 베트남의
무성한 밀림 속에서 여러 차례 보란과 함께 일했었다. 이제 그 밀림은 마피아의 영토로 옮
겨진 것이다.
"맥, 차를 돌려! 로럴 계곡으로 가는 길을 안내할 테니까."
보란은 길가의 빈터로 일단 차를 몰았다가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고속도로로 되돌아갔다.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그의 발에 점점 힘이 가해졌다.
"주사위는 또 던져졌어!"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2. 죽음의 특공대
빌(붐붐) 하파워. 대형 폭탄 전문가인 그는 닷새 동안 계속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술에서
깨어난 지 겨우 2분 만에 보란의 '죽음의 특공대'에 입대하기로 결심했다. 나이는 스물여섯.
펜실베니아 출신의 그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녔고 키는 6피트였다.
그는 보란의 제의를 듣자마자 그것에 매료당하고 말았다. 그는 베트남에서는 보란과 겨우
얼굴정도만 알고 지냈다. 그리고 최근 동부에서 보란이 행한 큰 싸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
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제까지 마피아란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환상일 따름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아니, 그럼 마피아라는게 정말로 있단 말이오?"
이것은 보란의 제안을 받고 그가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그가 죽음의 특공대에 입대하
기로 결심한 것은 우정때문도, 이상주의자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최근까지 해저 탐사를
주된 업무로 하는 석유 회사에 다녔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아내가 그를 버리고 달아낫
다. 그 후 그는 매사에 의욕을 잃고 직업도 버린 채 거의 두달동안 술이나 마시며 세월을
보냈다. 그 무력감이 그가 죽음의 특공대에 입대한 동기라면 동기였다.
하파워는 폭탄을 다루는 그의 탁월한 솜씨를 보란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또한 그 동안
자신을 지배해 온 무력감을 때려 부수기위해 자기의 집을 제물로 내놓았다.
채권자들이 이 집을 빼앗으려고 화요일에 오기로 돼 있어. 그 놈들의 더러운 낯짝 앞에서
멋지게 폭파시키려고 미리 준비해 두었었지.
보란은 하파워의 기술에 깊은 경의를 표했다. 그는 대형 폭탄 전문가로서의 하파워의 명성
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었다. 하파워는 폭발물에 관한 한 '황금의 손을 가진 사나이'란 별명
으로 불리고 있었으며 월남 전투에서도 그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죽음의 특공대에 입대하는 대가로 하파워는 수천 달러를 받았다. 그리고 개인적인 여거 가
지 일들을 정리할 시간으로 40시간이 주어졌다. 그는 그 동안에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
고 다짐했다.
톰(블러드 브라더: 피의 형제) 루데크는 몬태나의 블랙루트 보호구역에서 전화로 보란의
제의를 들었다. 베트남 저쟁 때 그는 여러 가지 군 업무로 보란과는 물론이요 지트카와도
여러차례 함께 일했었다. 그는 이야기를 채 다 듣기도 전에 이미 동의 했다. 그것은 죽음의
특공대 입대 상여금이 수천달러에 이른다는 얘기도 물론 듣기 전이었다. 그는 황소 세 마리
를 팔아 치우는 대로 . 또 육체 노동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곧장 로스앤젤레스로 날아오
겠다고 약속했다. 보란이 기억하기로 루데크는 가장 믿음직스럽고 능력 있는 병사였다. 비정
한 면에서는 지트카를 능가할 정도였다. 베트남에서 루데크는 총 한 방 쏘지 않고 적을 67
명이나 살해했다. 또한 칼 쓰는 데에는 그야말로 귀신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맨손으로 사
람의 목을 쳐서 부러뜨리는 기술을 완벽하게 터득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은 안젤로 (차퍼:도끼) 폰테넬리를 샌타모니카의 한 술집에서 찾아냈다. 그
들은 그 술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젖가슴을 거의 드러낸 여자들이 술과 안주 접시를 들
고 바쁘게 오가는 모습을 제일 먼저 볼 수 있었다. 안젤로는 그곳에서 지배인 겸 경비원 일
을 맡아 보고 있었다. 뉴저지 토박이인 그는 스물네 살에 5피트 반밖에 안되는 조그만 사내
였지만 주무래기 건달패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의 육체는 온통 근육으로 덮여있어 찔러
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가 도끼라고 불리는 이유는 중화
기를 다루는 그의 전문적인 노련함 때문이었다.
1년전, 보란의 저격 임무가 철회되어 작전 지역으로부터 철수할때의 일이었다. 적의 우수
한 대 부대가 추격해 와TEk. 그때 그는 지원 사격할 헬리콥터가 도착할때까지 거의 한 시
간 동안이나 혼자서 기관총을 쏘아대며 그 막강한 적의 추적을 막아 냈다.
그는 주의 깊게 죽음의 특공대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마피아라는 말이 나올때마다
그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보란이 2만 달러를 내 놓으며
이야기를 마치자 그는 그 돈을 움켜쥐며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닌게 아니라 나도 이 생활이 지겨워 미칠 지경이었다고!"
폰테넬리는 자신의 무기를 챙겨 들고 즉시 죽음의 특공대에 입대했다. 그의 무기란 수냉
식 기관단총인 캐리버 50이었는데 그것은 새로운 개틀링식 중화기 모델이었다. 그는 개인
병기고에 베트남 전투에서 사용되었던 각종 화기들을 거의 다 구비하고 있었다. 그 무기들
을 어떻게 구하였으며 어떤 경로로 미국으로 수송해 왔는지는 폰테넬리 혼자만의 비밀이었
다. 그는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병기고를 죽음의
특공대에 기꺼이 헌납했다.
주앙(플라워 차일드) 안드로메다는 노스 할리우드 힐스에서 프라 주니아톨라는 이름의 배
우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불과 11개월 전에는 '탄 빈의 학살자'라고 불렸던 그였다. 중무
기 사수인 안드로메다는 야전 박격포를 사용하여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사살하는 전문가
였다. 그느 또한 여러 가지 종류의 화기를 다루는 것에도 능하며 독자적으로 탄착을 관측하
는 능력이나 다른 화기 제어 기술 역시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비 정상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그 푸에르 토리코인은 보란의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승낙의 뜻을 표했다.
"죽은 자만이 천국을 즐길수 있어. 지옥은 산 자들의 것이거든. 선금을 준단 말이지? 좋아.
천국을 받아들이기로 하겠어."
안드로메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한 용모의 젊은이였다. 나이는 스물셋. 그는 여성
들에게는 모성애를 불러일으키게하고 중년 남자들에게는 그를 <내 아들아!> 라고 부르고
싶은 감정을 일어나게 할 만큼 준수했다. 그는 입으로는 폭력을 개탄했으며 평화의 표지가
붙은 옷을 밤낮으로 입고 다녔다. 사람을 살해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그 질문마
저도 불쾌해 했다.
"난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소 , 그들은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었을 뿐이지. 죽음이란 온갖 것
들로부터 해방을 의미하니까......"
베트남에서 그는 수백명의 영혼을 해방시켜 주었다.
헤르만(기계 장치 혹은 부속품) 슈바르츠는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에 로스앤젤레스의 이스
트 사이드에 있는 공업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무선 통신 분야에서 FCC(연방 통신 위원회)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였다. 슈바르츠는 실제 경험으로 교사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
는 희귀한 학생 중 하나였다. 그러나 '면허가 없으면 직업도 없다'는 규범이 통용되는 사회
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교실에서의 형식적인 수업에 참가하는 모욕을 참아내야 했다.
그는 언제나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현실 세계란 천부적
인 능력보다는 학문적인 이론에 더 감명을 받는 곳이었다. 입학한지 다섯달만에 '비교적인
엉터리' 수업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그 전자 공학의 천재는 보란의 특공대에
참가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그는 정보 부대 요원이었으며 한때는 보
란과 지트카의 저격 작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베트콩 지휘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적
도 있었다. 그때 보란은 슈바르츠의 침착하고 정확하고 성실한 태도와 뛰어난 기술에 깊이
매혹당했었다. 그리서 그는 슈바르츠를 특별히 죽음의 특공대 후보로 지목했던 것이다.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슈바르츠는 베트콩의 거점 근처 풀밭에 6일 동안 잠복해 있기도 했
었다고 한다. 물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그가 사용한 것은 유선 마이크와 소형
녹음기였다 . 보란은 마피아와 전투에 있어서 슈바르츠가 놀랄 만한 위력을 발휘하리라 믿
어 의심치 않았다.
짐 해링턴은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있는 한 공원에서 보란의 전투원으로 채용되었다. 보란
의 기억으로는 개인 소유의 무기를 베트남 전투에 사용하도록 허락받은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해링턴이었다. 그는 베트남의 포연 속에서 두 자루의 6연발 권총을 재빨리 뽑
아드는 옛 서부인의 모습ㅇ르 재현 했었다. 아니 모습만이 아니었다. 그의 콜트 권총에는 특
별히 제작된 촉발 방아쇠가 장치되어 있어 그는 보통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재
빠르게 총을 뽑아 발사할 수도 있었다. 그 옛날에 태어났다면 황야를 주름잡고도 남을 만한
솜씨였다. 저격 작전 수행에 있어서 그는 보란과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적지 깊숙이 스며
들어가는 침투공격 작전에서는 으레 일어나게 마련인 갑작스러운 적과의 대면에서 그는 자
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라이플과 각종 자동 화기, 그리
고 가벼운 반자동 카빈 소총을 다루는데 있어서도 대단한 솜씨를 과시했다. 그의 특기는 속
사와달리면서 사격하는 것이었다. 지난 14개월 동안 그는 1주일에 6일, 하루에 열여섯 차례
씩이나 사격 시범을 보이며 살아왔다고 털어놓았다. 공원의 오락실 무대에서였다. 보란이 그
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보란의 피츠필드에서의 활약을 열심히 지켜보아 왔던 그는 보란에게
죽음의 특공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표백한 머리와 어두운 색안경
으로 변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눈에 보란을 알아보았으며 이렇게 외쳤던 것이었다.
"이렇게 반가울데가 있나! 자네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는 했지만 진짜로 내눈앞에 나타
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내 총 솜씨가 필요한 모양이군 , 그렇지? 오랜만에 살맛나는군
, 당장 가자고, 시시한 장난만으로 가득 한 이곳은 당장 떠나는 게 좋겠어 . 14개월 동안이
나 빈 종이에다 총을 쏴대고 있었으니. 원 ! 난 참 복도 많은 놈이야. 복도 많은 놈이라고!"
마크(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보란ㄴ이 아는 한 가장 순수한 혈통의 흑인이었다. 그보다 더
시커먼 피부를 가진 흑인은 매우 드물 정도였다. 그리고 아마 그보다 더 위험한 흑인 역시
드물것이다. 그의 장기는 20배의 조준 망원경이 부착된 라이플 사격이었다. 그는 장거리용
고성능 화약으로 만든 탄환을 사용하였다. 보란은 단 한번 워싱턴의 솜씨를 목격했을 뿐이
었다. 500야드 밖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3개의 펴적이 목표였다. 백발백중이었다. 그것만으로
도 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자신의 사격술을 유감없이 증명했다. 또 그것으로 근느 보란의 주
목을 받게 되었다. 그는 미시시피만 해변가의 엉성한 방 세개짜리 판잣집에서 태어났다. 열
여덟번째 생일이 돌아왔을때 그는 군에 입대했다. 음울하고 작은 흑인 고등학교에서의 졸업
식을 몇주일 앞둔 때였다. 그는 결코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졸업장
마저도 찾아오지 않았다. 의무적인 군복무 기간을 두 차례나 연장 신청하여 33개월 동안이
나 전투에 참가한후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흑인 민권 운동에 대해 살
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보란이 그를 찾아온것이다. 그가 귀향한지 5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보란은 워츠라는 호텔로 그를 불러냈다. 그에게도 역시 긴 얘기는 필요
하지 않았다. 마크 워싱턴은 흑인 민권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블랙파
워란 곧 남성다움이었다. 그리고 그 남성다움의 가장 차원 높은 표현 형태는 기다란 라이플
과 20배 조준 망원경에서 발견되는 것이었다.
로자리오 블랭카날레스는 베트남에서의 근무를 특수 공격대의 일원으로 시작했다. 그는
베트남 사람들을 잘 이해했다. 그것은 그가 그들을 알고 싶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그
들의 언어와 풍습을 익혔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남보다 뛰어난 수와가라는 사실
ㅇ르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침내 그는 베트남 전역에서 '정치가' 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
다.f보란은 몇 차례의 침투작전에서 그가 길 안내 역할ㅇ르 훌륭하게 수행했던 것을 기억하
고 있었다. 또한 그는 유능한 의사이기도 했고 대단한 기계수리공이기도 했다.게다가 총격
전에서 최소한 자기의 몫은 수행해 낼수 있었다. 보란은 블랭카날레스를 누구보다도 탐냈다.
어떤 환경에나 잘 파고들어 훌륭하게 적응해나가는 그의 카멜레온적인 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른 살인 이사람의 조직과 관리에 대한 천부적인 재질을 존경했다. 언젠
가는 블랭카날레스가 미국의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수소문
끝에 보란은 그가 병원 잡역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적절할 때 날 찾아냈군. 기다리고 있었어!"
블랭카날레스가 말했다. 그도 보란의 활약을 이미 알고 있다는 투였다. 수완가인 그로서도
병원 잡역부란 적응해 내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는 보란의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받아들였다. 보란의 지갑속에 있던 고액권 몇장이 그에게 건네졌다.
이제 남은 일은 기지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보란은 샌타모니카의 북쪽에 위치한 넓고 한산
한 해변 별장을 임대했다. 그러고는 약간의 식료품과 생활 필수품을 비축했다. 마침내 9월
24일 오후, 죽음의 특공대는 닻을 올리고 마피아와의 전쟁이라는 험난한 바다를 향해 출항
했다. 해변가의 기초 기지에는 모든 대원들이 모여 갖자의 특수한 임무에 착수함으로써 새
로운 정쟁의 문이 열린것이다. 슈바르츠는 벌써 안전 장치를 만들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하
파워는 지형 조사를 맡겠다고 나서서 참호와 기타 시설물의 위치 선정에 주걱했다. 지트카
와 루테크는 전진 기지 건설에 합당한 지점을 물색하기 위해 지역 전체의 완벽한 파악을 서
둘렀다. 폰테넬리와 워싱턴은 벼랑의 그늘에다 사격연습에 필요한 기구들을 설치하기 위해
서 해변을 순질했다. 보란과 플랭카날레스는 산 베르나디오로 나갔다. 화기와 탄약을 확보하
기 위해서였다.
3. 또하나의 지옥
9월 27일 새벽. 고급 주택가인 벨에어 지역의 전화선이 절단되엇다. 그것은 정확하게 오전
6시 10분의 일이었다고 인근 주민들은 주장했다. 그는 잉글우드 공항의 타켓팅 담당 직원과
통화중이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불통되었다고 말했다.
한 노인도 그 시각이 오전 6시 10분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지오르다노 저택의 정원
사인 그 노인은 바로 그 시각에 초대하지도 않은 사내가 집 뒷문을 통해 들어왔다고 했다.
그 노인의 말에 따르면 그 불청객은 청동빛 피부를 가진 단단한 몸집의 사내였는데 마치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그 정원사를 나일론 밧줄로 꽁꽁 묶고. 입은 반창고로 막아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번쩍 들어올려 침대 위에 사뿐히 내려놓았다고 한다. 침입자는
색 바랜 청바지와 두꺼운 면으로 만든 작업복을 입고 인디언의 사슴 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
다. 그는 이마에 띠를 두르고 있었고 탄환 주머니가 붙어 있는 군용 혁대를 차고 있었다. 봉
투처럼 생긴 주머니에는 캘리버 45구경 자동 소총이 들어 있었다. 또 한쪽 엉덩이에는 긴
대검이 매달려 있었다. 그 사내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은 침실 창문을 통해 그 사
내의 다음 행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 몸에 꼭 끼이는 옷을 입은 그 사내는 본관 건물을 둘
러싸고 있는 담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다음 순간 그는 담장을 넘어 본관 안으로 모
습을 감추었고 제 2의 사내가 그 뒤를 따랐는데 그의 어깨에는 대단히 무거워 보이는 짐꾸
러미가 얹혀 있었다.
거의 같은 시각에 지오르다노 저택의 북쪽에 사는 자가용 운전수는 차고 옆 아파트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육군 작업복을 입은 한 사내가-"분명히 6천발 권총을 차고 있
었어요. 맹세해도 좋아요"-지오르다노의 저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경차에 전화
를 하려고 했으나 그의 전화는 불행하게도 불통이었다.
역시 같은 날 오전 6시 10분쯤에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있는 한 가정부가 지오르다노 저택
앞 오솔길을 따라 그녀의 귀염둥이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군
용 지프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놀라서 재빨리 옆으로 비켜섰다.
"차 안에는 군인 두 명이 타고 있었어요. 그들은 두 명 다 커다란 총을 메고 있었어요"
그 지프는 지오르다노 저택으로 가는 차도에서 멈추더니 곧 되돌아서 옆길을 가로질러 갔
다. 그때 그 커다란 기관총은 지오르다노 저택 정면을 겨누고 있었다. 그 여자는 너무나 놀
라 기절할 뻔했다. 그 남자들 중 하나가 그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엇다.
"이봐. 아가씨! 다른 길을 택해 가시지. 그놈의 개새끼랑 빨리 빨리 말이야!"
오전 6시 13분에 한 침착한 이웃 사람은 땅을 울리는 폭발과 일제 사격되는 총소리에 경악
하고 말았다. 그는 집안일을 하기 위해 지오르다노에게 고용된 사람들 몇 명이 저택 앞으로
끄려 나오는 것을 보았다. 총소리가 들린 직후였다.
물론 육군 작업복을 입은 사나이들에 의해서였다. 그 고용원들 중 몇몇은 아직도 잠옷 속
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들은 길가로 끌려나와 공포에 떨며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
었다. 그들을 몰고 온 사내는 서둘러 지프에 오르더니 운전사에게 문가를 지시하는 것 같았
다. 지프는 곧 그 저택을 향해 달렸다. 지프가 속력을 높이면서 연막탄을 터트려 검은 연기
가 쏟아져 나왔다. 지오르다노 저택은 서서히 연막 속에 휩싸였고 지프의 모습 역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검은 연기는 여전히 뭉게뭉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부근 전체가 완전히 어두운 연막에 의해 가려졌다. 목격자들은 단지 그 저택 안으로부
터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총소리와 자동 소총의 요란스러운 사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
었다.
정확하게 오전 6시 16분에는 정적이 모든 것을 포용했다. 그 시각은 여러 목격자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정원사 노인은 색 바랜 청바지를 입은 사내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분명히 보았
다. 그 사내는 정원사의 결박을 풀어 주고 겁에 질린 그의 머리를 툭툭치더니 조용히 문을
빠져 나갔다.
첫 번째 순찰차는 6시 22분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소방차도 그 때서야 도착했다. 연막이 서
서히 걷히고 있었다. 목격자들은 순찰차로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숨가쁘게 자기들의
목격담을 경찰관들에게 보고했다. 순찰 경찰관은 무선 연락을 취해 지원을 요청했고 소방대
원들에게는 그 건물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시켰다. 두 대의 지원 순찰차가 몇 분 후에
도착했다. 경찰관들은 그제야 조심스럽게 그 건물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총탄으로 벌집
이 된 파자마 차림의 시체가 아래층 복도에서 발견되었다. 뒤틀린 몸뚱이 근처에서 발사된
흔적이 없는 권총이 발견되었다. 그 저택의 식당은 분명히 기관총인 것으로 추측되는 것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기구는 모두 산산 조각나 있었다. 도자기들과 다른 장식품들
도 무질서하게 나뒹굴엇다.
또 하나의 시체가 2층 응접실에서 발견되었다. 완전히 옷을 갖춰 입고 권총 케이스까지 걸
친 남자였다. 그의 두 개골은 피에 절은 종잇조각 같았다. 수많은 탄환들로 산산조각이 난
그 저택은 더 이상은 부서질 게 없을 정도였다. 침실과 응접실 사이에 있는 벽은 폭발로 완
전히 허물어져 앙상한 잔해만 드러나 있었다. 바닥에 흩어진 작은 돌조각들은 조금 전의 파
괴가 몰고 온 그 엄청난 결과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오전 6시 30분에 경찰관들은 그 저택의 소유자인 에밀리오 지오르다노를 찾아냈다. 정원사
인 맥 마츠무라가 멍청히 서서 주인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서 있었다.
지오르다노는 분명히 살아 있었고 상처도 입지 않은 듯했다. 그렇지만 순찰 경찰관 해럴드
칼브가 그 상황을 묘사한 것을 인용하자면 '하나의 지옥'이 거기에 응고되어 있었다. 그 억
만 장자는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상태로 허리와 발목이 나무 말뚝에 묶인 채 화단 구석에
있는 비료 더미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은 얽히고 설킨 전선으로 휘감겨 있었는데
그 전선 끝에는 두 개의 수류탄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두 손 사이에 나머지 하나는 두 무릎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수류탄의 안전
핀은 언제라도 뽑혀져 나갈 듯이 팽팽하게 전선줄에 묶여 있었고, 그의 등에는 커다란 검은
손이 그려져 있었다.
칼브는 폭탄 제거 작업을 도와 줄 전문가를 요청하기 위해 순찰 경찰관에게 무선 연락을
취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오르다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피해자를 안심
시키기 위한 제스처까지 써야 했다. 지오르다노는 지극히 조심스럽게 호흡하고 있었다. 그는
말을 함으로서 일어날 수 있는 근육의 이완으로 인한 폭발 위험까지도 알고 있는 듯했다.
참으로 기묘하고 긴장된 20분이 지났다. 그제야 폭탄 제거반이 도착했다.
폭탄 제거반의 고통스럽고도 신경질적이며 주의를 요하는 작업이 몇 분 동안 진행되었다.
그들의 이마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작업 결과 그 두 개의 수류탄은 연습용 모조품임이
밝혀졌다. 이 사실을 전해듣는 순간 지오르다노는 무섭게 격분하다. 제풀에 곧 기절해 버리
고 말았다. 경찰관들이 50세의 그 억만 장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8시가
훨씬 지난 후였다. 그 역시 이 사건의 배경과 범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오르다노는 금발의 키가 큰 사내에 의해서 잠에서 깨어났었다. 그 사내는 특공대원들이
나 입을 범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군용 45구경 자동 소총의 총구로 지오르다노의 콧
등을 눌렀다. 그러고는 지오르다노에게 침대에서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그는 평소의 습관대
로 벌거벗고 잠자리에 들었으므로 옷을 챙겨입기 위해 손을 뻗쳤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내
가 옷을 한 가지도 걸치지 못하게 하고 복도로 내팽개쳤다.
또 한 명의 사내가 그들을 뒤따라 서둘러 방에서 뛰쳐나왔다. 곧 이어 일제 사격소리가 귓
전을 때렸다. 그 키가 큰 사내는 지오르다노를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동안에도 몇몇 다른
사내들은 집안 곳곳에서 마구 총질을 해대고 있었다. 지오르다노는 뒤뜰로 끌려나왔다. 그때
또 한 명의 사내가 그들 사이에 끼여들었다.
".....그놈은 인디언인 것 같았습니다. 그 놈들은 나를 비료 더미 위에다 내팽개쳤습니다."
지오르다노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꼼짝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있는 한 얼마든지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을 거라고요. 도대체 그놈의 수류탄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
겠습니까?"
지오르다노는 죽은 두 사내가 자신의 개인 경호원임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그 침입자들이
누군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분통이 터질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수사를 맡은 담당 경사는
지오르다노의 등에 그려져 있는 검은 손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지오르
다노에게 검은 손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지오르다노는 자신을 그런 식으로 모욕한 자들이
왜 그따위 우스운 짓으로 일을 끝냈는지 알 수 없노라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그
자들이 이런 조잡한 일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단 하나의 그럴듯한 동기는 강도질을 하기 위
해서였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도둑 맞은 현금이나 물품이 있는지 조사해 보겠다
는 경찰의 제의를 거절해 버렸다.
경찰관들은 그 지역 일대에 걸친 일반적인 탐문 수사에서 몇가지 단서를 찾아내긴 했다.
즉 사건 발생 장소로부터 불과 두블럭 떨어진 곳에 있던 어느 경비원이 두 남자와 중화기를
실은 군용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것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뒤 몇 분 지
나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간선 도로의 교차로에 있는 주유소에 일하는 두 종업원은 그런
차가 지나가는 것을 전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주유소는 경비원이 군용차량을 보았다는
지점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역시 폭발소리는 들었을 것이고 그래
서 어떤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었을 텐데도 그들의 대답은
하나 같았다. 또 그들은 전화가 불통이었기 때문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고 g말했다.
수사관들은 아침나절 내내 벨에어 지역에서의 탐문 수사를 계속했다. 10시 정각에 긴급을
요하는 전문이 피츠필드로부터 로스엔젤레스로 타전되었다. 11시 30분에는 로스엔젤레스 치
안국에서 긴급 경찰 간부 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에서 공표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문제의 남자는 맥 보란으로 추정된다. 그는 일명<사형 집행인>이라고도 불리는 자로서
이곳으로 잠입해 들어온 것 같다. 확실한 것은 그는 혼자가 아니란 점이다. 그는 자신과 뜻
을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몇 명과 함께 행동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맡은 바 임무를 신
속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이 도시의 치안은 참혹할 지경으로 마비되고 무력화
될 우려가 크다. 전 경찰은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의 병력과 모든 능력을 경주하여 그를 체포
해야만 한다.
그 즈음에 경찰들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그 일단의 사내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회의를
개최하고 있었다. 샌타모니카에서 북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조용한 해변에 연한 별장에서였
다. <냉혹한 열명이 사나이들>은 정원에 모여 있었다. 분위기는 자유로운 어떤 가정처럼 평
화로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지폐 뭉치가 탁자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투명한 크리스털 술
잔 속에서 얼음이 맞부딪치는 맑은 소리도 들렸다. 맥 보란은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그
는 의자를 조금 뒤로 물러앉아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약간의 말썽이 있었지만 점점 나아지겠지. 우리는 장족의 발전을 해야 한다. 이번과 같이
간단한 일일 경우에는 정확히 시간을 맞추는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
나....."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블랭카날레스를 쏘아보았다.
'" 정치가 선생, 자넨 그 연막으로 뿌리는 데 있어 40초나 빨랐다. 연막이 우리들을 뒤엎었
을 때 블러드 브라더는 그때까지도 수류탄에 전선을 연결하고 있었어. 그게 진짜 수류탄이
었다면...."
"난 걱정이 되었던 걸세"
하고 블랭카날레스는 말을 꺼냈다.
"목격자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네. 어떤 녀석이든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까 봐 두려웠
어.'
보란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것으로 블랭카날레스의 변명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전하고는 폰테넬리에게로 시선을 돌
렸다.
"지프를 멋지게 몰라 줬어. 차퍼, 훌륭하게 해냈어. 내 추측으로는 경찰관 나리들이 아직도
그 지프를 찾느라고 이 잡듯이 뒤지고 있겠지?'
폰테넬리는 미소를 지었다. 보란으로부터 칭찬을 듣자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녀석들은 단단히 혼이 났을 거야!"
보란은 하파워를 향해 돌아서며 생각에 잠겨 말했다.
"붐 넌 화약을 얼마나 썼지?"
"금고를 털기에 충분할 만큼 쓰라고 했잖아? 난 금고를 털어왔어"
보란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아 너도 잘 해냈어. 하지만 나는 더 적은 화약으로도 해낼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 그
목발소리는 시청에서도 똑똑히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단 말이야."
"그래. 조금은 과용한 셈이야. 처음에는 금고를 못 빼냈어. 그래서 조금 더 화약을 넣었지
그렇게 된거야."
하파워는 웃으며 말했다.
보란은 지폐 뭉치 위로 담배 연기를 훅 뿜어냈다. 그는 지폐한 묶음을 집어 들더니 그것을
하파워에게 던졌다.
" 그게 깨뜨린 금고 안에서 나온 거다. 녹색 새종이 묶음을 상상해 보라고. 잘못 깨뜨린 금
고 속에서 꺼낸 돈은 그 모양 그 꼴이 되고 말아. 명심해 둬."
하파워는 싱긋 웃으며 지폐 뭉치를 탁자 위에 던져 놓았다.
"유념해 두겠네"
지트카는 크게 재채기를 하고는 헛기침을 몇 차례 해서 목을가다듬었다.
" 그건 그렇고 내가 어느 정도 늦게 그 집에서 나왔는지 말해줘"
" 1분이 거의 다 지난 뒤에야 나왔지. 아마, 아래층에 있던 그 늙은 놈은 집중 사격이 만들
어 낸 포연 속에 갇혀 버렸어. 그 포연이 그놈을 식품 창고로 몰아붙이지 않았더라면.... 무
엇이 널 그렇게 지체시켰나?"
보란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2층의 하녀가 화장실에 처박혀 있었어. 최대한으로 서둘러 끌고 내려온 게 그 모양이었
어."
지트카는 진지한 얼굴로 보고했다.
특공대원들은 서로 마주보고 키들거렸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화장지 좀 갖다 주시겠어요?"
누군가가 익살을 떨었다. 지트카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좌중의 웃음이 걷히기를 기다려 보란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배웠어. 앞으로 계획을 세울 때는 그때마다 인간적인
요소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것을 마음에 새겨 두기로 하자고."
"단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궁리해 낼수는 없는 거야."
지트카가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모든 대원들 각자가 앞장서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거야."
이렇게 말하며 보란은 슈바르츠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슨 곤란한 문제라도 있다. 갯지트?"
하고 그는 조용히 물었다.
슈바르츠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시간을 맞추는 문제가 힘들었다. 그 PT와 T지점의 하수도 위로 내가 올라선 것은
정확시 6시 5분이었으니까."
그는 하파워에게 슬쩍 윙크를 보냈다.
"전화선 절단은 절묘했어! 언제 다시 한 번 데려가 주게. 붐. 그런 기발한 재주를 나도 좀
배우 둬야겠어. 계획대로 나는 6시 10분에 하수도에서 플라워하고 헤어져 그 집을 가로질러
갔었지. 도착한 것은 6시 19분에 다시 합류해서 여기 도착한 거야."
"전화선에선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
안드로메다가 말문을 열었다.
"6시10분에 정확히 끊어 버렸으니까. 시간표대로 된 거지. 간단했어. 그렇지만 떨리던 걸
생각하면..."
마크 워싱턴은 나즈막히 소리내어 웃었다.
"자네가 그 하수도 구멍에서 나와 일을 벌이는 걸 난 다봤다고"
그는 안드로메다에게 말했다.
"그래?"
"정말이야. 바로 내 코앞에서 일을 하던걸. 폭발소리 때문에 깜짝 놀란 새 한 마리가 똥
을 찍 갈겼어. 그 작은 폭약을 다룰 때 말야. 자네가 나처럼 시커먼 피부였다면 아마 새하얗
게 됐을 거야"
"그렇게 내가 또렷이 보였나?
안드로메다는 믿어지지 않는 다는 듯 반문했다.
" 물론이지! 자네의 얼굴 쪽에다 20배짜리 망원 렌즈를 고정시켜 두면 자네의 그 눈 밑에
있는 실핏줄까지도 다 보인다니까!"
" 그 집을 향한 위치는 어땠나?"
보란이 물었다.
" 잘 보였어. 북쪽과 뒤쪽은 잘 보였는데 앞쪽은 나무가 너무 많아서 좀 애를 먹었지. 그래
도 전체적인 조망에는 문제가 없었어. 뒤쪽에서 누군가가 포위망을 뚫으려는 걸 본 것 같아.
순전히 추측에 불과하지만."
워싱턴이 웃으면서 덧붙였다.
" 동쪽 언덕 아래에선 말이야. 어떤 여자가 홀딱벗은 채 수영을 하고 있었다고!"
"그래?"
해링턴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워싱턴은 아직도 웃고 있었다.
"그랬다니까. 젊은 여자가 뒤뜰에 있는 조그맣고 둥근 풀장에서 말이야."
"20배짜리로 들여다본 젖가슴은 어땠어? 크고 뚱뚱해 보였나?"
" 크고 뚱뚱? 그 여자는 뚱뚱하지 않았어. 날씬하고 삼삼했지.'
"나도 널 봤어. 데드 아이스"
킬킬거리고 있던 루데크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워싱턴은 올빼미같이 무
표정한 눈으로 인디언을 주시했다.
"자네 망원 렌즈에서 반사되는 빛을 내가 몇 번 발견했거든."
루데크는 계속 얘기를 했다.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떠오르는 해나. 지는 해의 방향으로 렌즈를 향했을 때는 렌즈
의 반사광을 없애기 위한 무슨조치를 위해야 햔단 말이야."
"다음에는 폴라로이드를 써야겠구먼! 고맙네."
워싱턴은 겸손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보란이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달아나는 걸 볼 수 있었나. 데드 아이스? 내 말뜻은 무슨 추적자 같은 건 없었느
냔 말이야"
"물론 봤지. 그러나 지프는 못 봤어. 내가 아까 얘기한 대로 그쪽으로 나무가 너무 많았어.
그저 가끔 무언가가 슬쩍슬쩍 나타나는 걸 봤을 뿐이야. 자네도 알잖아? 20배짜리 망원경이
잡을 수 있는 시야의 한계 말이야. 경찰관들이 오는 건 봤어. 그 녀석들의 관심을 내가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릴 수도 있었어. 그놈들이 거기 도착하기도 전에 말이야.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어. 그자들보다 자네들이 3분 정도 앞서고 있었으니까. 그런 정도까지는 멋지게 다 살펴
볼 수 있었어. 그놈의 엉덩이가 펑퍼짐한 경찰 녀석들 눈앞을 밭 갈 듯이 총탄으로 다 쟁기
질 해줄 수도 있었을 거야. 자네들을 쫓아올 수 없게 말이야. 그러나 그 녀석들은 숨도 크게
안 쉬었다고."
보란은 희미하게 웃었다 .
"그놈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됐을 거야."
"물론이지."
워싱턴은 자기 코끝을 잡아 당기며 말을 이었다.
"보란.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
"뭔가?"
"그만하면 공격은 정말 훌륭했어. 기가 막힐 지경이었어. 시쳇말로 끝내 주더군! 내가 보기
엔 시간 맞추는 데에도 잘못된 점은 없었어. 자네가 지시했던 대로 움직였으니까. 경찰관들
까지도 자네가 예상했던 대로였어."
"그거야 당연하지. 특별히 경찰관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어떤대가를 치르더라도 충돌은 피
해야 하니까. "
보란은 대가를 치르더라도?
폰테넬 리가 신음하듯 물었다.
"물론!"
"난. 그놈의 경찰 녀석들과 사랑놀이를 하기는 싫은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밀고 나갈
일이란 사랑뿐인 것 같아서 말이야."
폰테넬 리가 투덜거렸다.
"차퍼. 넌 스스로 무덤을 파고 싶은 거야?"
보란이 조용히 물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만일 내가 그런 경우에 처하게 되면 그때는..."
폰테넬리는 재빨리 주위의 얼굴들을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그때는 내가 그놈들을 해치지 않고 빠져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들을 피해서 달아나야 해. 도끼!"
보란은 다리를 떡 벌리고 서서 팔짱을 긴 채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모두들 이걸 알아 두기 바란다. 우리들이 경찰에게 총질을 하면 우리들의 불쌍한 엉덩이
는 끝장나는 거야. 잘 들어 끝장이라고! 오늘의 작전에 관해서 아까 데드 아이스가 얘기한
그런 우발적이고도 충동적인 계획 따위를 나는 좋아하지 않아. 경찰관에게 총알을 명중시키
는 것과 하들의 차이가 없어. 경찰관들의 관점에서는 더욱 그렇지. 이 사실을 명백히 알아
두도록 해. 우리가 하수도를 청소해 내는 동안만은 사람들은 우리를 응원할 거야. 공식적으
로는 욕을 하고 외면하겠지만 분명히 마음속 깊이 성원을 보내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한 사람의 경찰관이라도 죽인다면, 또 평범한 놈팽이나 다른 죄 없는 구경꾼들을 상상
한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끝장이야. 경찰관들이 우리들을 특별히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신문
쟁이들도 우리 기사를 낭만적으로 쓰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하수도의
허섭쓰레기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무리로 전락하고 말겠지? 그리고 그때부터 20세기의 로
빈 훗이라는 우리의 자부심은 지옥의 밑바닥을 헤매게 될거야. 모두 명심해!"
" 물론 그래야지"
폰텐렐 리가 동의했다.
보란은 팔짱을 풀고 그의 전우들을 찬찬히 드려다 보았다.
"내가 자네들에게 비난을 퍼부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지금까지 내가 한 얘기는 우
리의 처지를 분명히 밝힌 것에 불과해. 우리특공대를 들쥐 떼로 전락시키려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내가 사살하겠다. 이런 원칙이 싫다면, 특공대를 떠나는 게 좋겠지? 선택할 시간은
아직도 충분해."
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10명의 사나이들을 감싸기 시작하면서 긴장된 분위기가 서서히
퍼져 나갔다. 보란은 그들 하나하나의 마음속에 자신의 강렬한 의지가 충분히 먹혀들었다고
생각되자 비로소 미소를 띠었다.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여 주의를 집중시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 모두 우리의 입장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 이제 우리들의 사업에 대해 얘
기하기로 하겠다. 오늘의 가벼운 탐색전은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어. 마피아의 서부 지역
간부들과 연결되어 있는 분파 중에는 지오르다노가 가장 막강한 편이었다. 어제의 일로써
마피아는 우리들이 이 도시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지오르다노의 졸개 두
명을 살해했고. 집을 파괴했으며, 그놈으로부터 돈을 강탈했어. 그리고 그놈에게 치욕을 안
겨 줬어. 우리가 그 정도로 그쳤기 때문에 그 녀석이 지금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
었는 사실을 우리는 마피아들에게 똑똑히 보여 준 셈이야."
폭소가 터져 나왔다.
"마피아의 두목으로서는 쉽게 잊지 못할 만큼 쓰디쓴 맛을 보았을 것이다. 앞으로 며칠 동
안은 조용히 엎드려 있겠지. 그들은 경찰이 이것저것 냄새를 맡으며 헤매고 다니는 동안에
는 움직이지 않을 거야. 경찰이 떠나고 나면 그때서야 지오르다노는 양철깡통을 두드리는
것처럼 분노를 터뜨리기 시작하겠지? 그는 주변을 모조리 들쑤셔 가며 수색을 시작할 게고.
자기분에 못 이겨 발을 동동 구르다가 끝내는 마피아 본부에 우리들의 목줄을 따달라고 강
력히 요구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고 있는 바야."
보란은 지트카를 다정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반 둑에서의 작전을 기억하고 있나. 지트카?"
지트카는 웃음을 터뜨리며 기억하고 있다고 보란에게 대답했다. 지트카는 둥그렇게 모여
있는 얼굴들을 훑어보았다.
"닌드는 오랫동안 베트콩의 점령하에 있던 요새에 대한 습격작전을 지휘하고 있었지. 그러
나 그는 적을 만날 수가 없었어. 도대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야. 베트콩들이 분명히 그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것도 아는데. 매번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거든. 닌드가 10일 동안이나
기세를 올려 가며 감행한 습격의 성과란 고작 마을 원주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것뿐이었
지. 그래서 우리들을 파견하기로 결정한 거였어"
그는 얼굴을 들어 보란을 잠시 쳐다 보았다. 이내 그는 낄낄거리며 하던 말을 계속했다.
"맥과 나였어. 우리는 둘뿐이었지만 단짝에다가 전문가였거든. 우리는 사흘 동안 계속 걷기
만 했어. 어디로 가야 하는 지도 잘 알고 있었어. 게다가 베트콩 식으로 게임을 한 거야. 공
격하고 사라지고, 또 공격하고 사라지고. 그때쯤에는 벌써 반 둑을 통과한 후였어. 베트콩들
은 피에 굶주린 두 살인귀들 때문에 비명을 지러댔지. 우리가 이미 그놈들의장군 하나를 처
형해 버렸거든. 반 다스 정도의 야전군 장교들과 그들의 지방 정치국원들도 여러 명 처치했
고, 결국에는 그 베트콩 녀석들이 자기들의 구멍으로부터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어.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설쳐대는 6인조 분대였어. 반 둑에서 그놈들이 우리들한테 올가미를 씌
우려고 덤벼들지 않겠어? 그런데. 두말 하면 잔소리지만. 바로 그게 우리둘이 언제나 노려온
것이었지. 그놈들을 정면으로 밀어붙였어. 그랬더니 곡창 지대를 가로질러 달아나더군. 바로
거기에서 그놈들은 우리 공군기들과 마주쳤어."
하고 해링턴이 끼여 들었다.
"공중에서. 갓 태어난 아이가 헬리콥터 안에서 사흘 동안이나 살았던 게 바로 그때였잖
아?"
"그래 반 둑에서였지. 그놈들을 깡그리 불태워 버렸어. 공군기들이 해치우지 못한 놈들은
닌드가 해치웠지 "
지트카가 머리를 천천히 끄덕였다.
"우린 바로 이곳에서 반 둑의 활약을 재현하려고 했다. 다른 점이라면 공군의 화력이 없고
우리들이 넓은 지역으로 유도해낸 적들을 섬멸해 줄 지원 부대도 없다는 점이야. 우리는 완
전히 우리의 힘만으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우리는 마피아를 공격하는 것이다. 공격하고
공격하고, 또 공격해야 한다. 그놈들이 각자 자신들의 무릎 속에다 대가리를 감출 때까지 줄
곧 공격을 계속하는 거야. 그래서 놈들이 어떤 녀석들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면,
그때는 일거에 완전히 섬멸해 버리도록 해야해. 이것이 계획의 전부야. 자세한 계획은 은밀
하게 세우게 되겠지? 갯지트가 지오르다노의 집안 구석구석에다 도청 장치를 설치해 두었
고. 전화에는 소형 녹음기를 장치해 두고 왔어. 두 시간안에 지트카와 블러드 브라더는 자신
들의 감시 위치에 배치될 것이다. 플라워. 너는 지트카를 따라가라. 건 스모크, 넌 불러드 브
라더를 수행해. 방법은 잘 알고 있겠지?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고 행동해야해! 아차
하면 머리가 날아가 버릴 거야. 붐, 갯지트와 교대로 전자 경보를 감시하도록 해, 정치가와
데드 아이스는 나를 따라와, 그러나 너무 바짝 붙지는 마. 왜냐하면 내가 지휘하는 것을 모
두가 볼 수 있도록 간격은 둬야 하니까. 차펴, 너는 기초 기지를 보호해, 아, 그리고 붐, 그
충격 수류탄을 한 다스쯤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파괴용을 원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 섬광과 진동이 강한 것이면 좋겠는데............"
"20분이면 돼!"
"좋아! 당장 시작해, 완성되면 그것들을 뒷주머니에 넣어둬,"
보란은 미소를 머금고 서성대기 시작했다.
"피츠필드보다도 훨씬 훌륭한 작전이 되겠어. 자네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나를 대단히 즐
겁게 만드는군."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지. 돈은 정치가가 분배해 줄 거야. 열하나로 나누면 한 사람 앞에 4750달러씩이다.
열한 번째의 몫은 저축한다. 각자 자기몫을 받고 나면 쉬도록 해. 오늘 밤에는 별로 잘 시간
이 없을 거니까."
보란은 돌아서더니 뜰을 가로질러 해변을 향해 뛰어갔다.
"저축은 뭣 때문에 한다는 거야?"
안드로메다가 입을 뗐다.
"전투 기금이야. 그는 자신의 몫까지 저축에 포함시키라고 했어"
블랭카날레스가 말했다.
"누구 나한테 300달러만 빌려 주지 않겠어? 5000달러를 한꺼번에 손에 쥐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데...."
이미 탁자로 다가가서 지폐를 한 뭉치 들고 열심히 돈을 세면서 폰테넬 리가 익살을 떨었
다.
"그런데 보란은 어디로 가는 걸까?"
멀어져 가는 보란을 눈으로 좇으며 하파워가 말했다.
"작전이 끝난 뒤에는 그는 항상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길 원해.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댜."
지트카가 탁자 위에서 자신의 몫을 집어들며 대꾸했다.
"그가 원하는 게 돈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야?"
하파워가 시선을 계속 해변 쪽에 둔 채 물었다.
"원한에 사무쳤지! 마피아란 놈들이 그의 가족들을 몰살시켜 버렸어. "
해링턴이 대답했다.
" 성스러운 싸움이군? 인과응보라 이 말이지? 지상에서 천국으로! 결국엔 지옥으로 굴러 떨
어지겠지만."
안드로메다가 중얼거렸다.
하파워는 자기 몫의 지폐 뭉치를 주의 깊게 세더니 그 중 한 묶음을 믈랭카날레스에게 내
밀었다.
"이건 그가 내게 선불로 줬던 거야. 저축에 포함시켜!"
"그건 선금이 아니라 상여금이었어!"
블랭카날레스가 조금 놀란 눈빛으로 말했다.
"어쨌든 저축에 두라니까!"
하파워는 굽히지 않았다.
블랭카날레스는 전투 기금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1000달러를 그 위에 얹었다. 폰테넬리도
아깝다는 표정이긴 했지만 1000달러를 내놓았다.
그즈음 보란은 해변을 향해 계속 뛰어가고 있었다. 워싱턴은 바람을 가르며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저 친구가 바로 심판관이라고.!"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탁자로 다가가 지폐 뭉치를 전투기금 위에 놓았다.
"가벼운 탐색전이라고 그랬던가? 이렇게 하면 나도 이기는 쪽에 투표하는 셈이 되나?"
루데크는 엷게 미소 지으며 미처 세보지도 않은 자신의 몫을 점점 쌓여 가고 있는 전투 기
금 위에 던져 놓았다.
신뢰의 투표는 만장 일치의 의견으로 압축되어 갔다. 전투 기금은 급속히 불어났고- 이점
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10명의 사나이가 일심 동체가 되어 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프라워 차일드 안드로메다는 정원 긑까지 걸어가더니 동료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표정
은 엄숙했다
"반 둑, 반둑, 피와 쓰레기에 뒤엎인 땅!"
"저 녀석이 뭐라고 지껄여대는 거야?"
워싱턴이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가 알아 ? 우리도 그에 대해서는 알고 있잖아. 이 흑인 녀석아?"
루데크의 음성이었다.
"그래, 이 흰둥이 녀석아!. 우린 다 알고 있지. 그게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인가?"
워싱턴은 다시 목소리를 높여 안드로메다에게 외쳤다.
"이봐, 종군 목사! 이리 좀 오지 않겠어? 내가 행한 죄악들을 고백할 테니까"
"너의 죄는 네 자신이 다뤄야 해. 나는 내 죄를 다룰 뿐이고, 지금 나는 죽음의 전당을 건
설할 작정인데 한 다리 끼시지 않겠나? 잔잔한 물가에서 함께 명상에 잠겨 보는 것도 나쁘
지 않을 걸."
안드로메다가 농담조로 말했다.
"반 둑에서였다면 너와 합세했겠지?"
워싱턴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때는 한계 상황이었지!"
안드로메다가 이렇게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렸다. 죽은,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유일한 한계 상황이었다.
4. 궤도
에밀리오 지오르다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들의 웃음 거리가 된 적이라곤 없었다.
하기야 단 한 번, 그가 서른 살 무렵에 어떤 녀석이 그를 멍청이라고 놀린 적이 있었다. 그
러나 그후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녀석은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지난 15년동안 그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았던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단 두경우의 예외가 있긴 했다. 범죄 위원회의 한 멍청
한 상원의원이 그랬고, 흔히 검찰총장으로 불리는 그 무식한 새크라멘토의 얼간이가 그랬다.
그 자들은 모두 지금은 정치적으로 매장되어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만일 그 빌어먹을 놈
의 우둔한 중사-그 귀환병 말이다- 그 천하의 날강도 같은 총잡이가 에밀리오 지오르다노
를 깔아뭉개고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십자가에 맹세하건대 그 중사놈은 지
오르다노가 엉덩이에 매달아 준 포도송이(속어로 조롱걸. 놀림감이 된다는 뜻)를 깔아뭉개며
죽어가게 될 것이다. 지오르다노가 총에 마지막으로 손을 댄 것은 15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
나 그는 아직 총기 사용법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잊을래도 잊을 수 없는 일이
다. 지금 지오르다노는 다시 권총의 싸늘한 촉감을 반갑게 느끼며 번쩍번쩍 광이 나는 38구
경 권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얼마간의 친근감이 되살아났다. 그
는 탄환을 장진하고는 곧 엉덩이 뒤쪽에 있는 가죽으로 만든 권총집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다음에 그는 권총집을 다시 끌러 놓고 여러 가지 서류들이 빽빽한 상자를 뒤적여 마침내 총
기 면허증을 찾아냈다. 그는 만기일을 살펴보고는 지갑 속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그러
고는 다시 권총집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는 그 면허증 없이는 아무리 위급한 때라도 결코 행동을 개시하지 않았다. 언제나 흥분
해선 안된다고 자신에게 충고하곤 했다. 그날 오후 지오르다노는 봐로네의 전화를 받았다.
" 그 녀석을 자네가 그놈의 도박 속으로 말려 들어오기를 바라는 거야.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나? 그 녀석은 자네가 흥분해서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 주기를 바라
고 있단 말일세. 그 녀석 수작에 말려 들어가지 마라. 말려 들어가면 당하는 거야. 에밀리오,
알겠나?"
봐로네는 충고했다.
물론이지. 흥분해서는 안되는 일이지. 그런데 그런 조롱을 받고도 말인가? 그 더러운 미치
광이가 나를 거름 더미 속에 매달아 놓았는데도 나의 재산을 모두 약탈해 갔는데도 나를 지
근지근 짓밟고 다녔는데도 마치 내가 에밀리오 지오르다노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란 말인가?
일 포르투나토의 피는 마피아 가문의 네 세대에 걸쳐 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흥분하지
말라니! 진정을 하라니! 에밀리오 지오르다노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좋다. 그렇다면 나 에밀리오는 그 수작을 받아줄 것이다. 그 녀석의 수작에 말려 들어가 줄
것이다. 그러나 나도 놀림거리 취급에 대한 답례는 꼭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자에게
새로운 도박의 방법을 알려 주리라.
지오르다노는 책상으로 돌아가서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간드러질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즉시 대답해 왔다.
"돈 갖고 있나. 제리?"
"네, 사장님 . 2만 5000달러입니다. 20달러짜리와 50달러짜리입니다.."
"좋아. 지금 곧 갖고 올라와! 아니 밖에서 만나기로 하지. 지금 즉시 말야"
지오르다노는 다른 번호의 버튼을 눌렀다.
"이봐! 거기서 도대체 뭣들 하고 있는거야?"
그는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 사장님 대기하고 있습니다"
"차는 준비돼 있나?"
네 사장님, 준비 완료입니다."
"좋았어 지금 내려가겠네 눈을 똑바로 뜨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습니다 사장님!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지오르다노는 벌떡 일어서서 그의 서재를 나섰다. 그는 집 뒤로 돌아갔다. 지오르다노는 그
의 침실에서 일하고 있는 목수들의 떠들썩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래층에서도 마찬가
지였다. 그 소리들이 <놀림거리>에 대한 그의 짜증을 되풀이하게 했다. 그는 꽝! 소리가 나
게 문을 걷어찬 다음 손을 펴서 계단의 난간을 붙들고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쫓기는
사람처럼 그는 서둘러 뒤뜰로 나왔다.
번쩍이는 검은 색 콘티넨털 승용차가 도로 위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가장 뛰어난 다섯
명의 부하들이 그 자동차 안에 편안히 앉아 낮은 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사나이는 지오르다노가 바삐 스쳐가자 손을 흔들어 보였고. 지오르다노는 응답으로 윙
크를 보냈다.
지오르다노는 눈부시게 번쩍이는 새하얀 롤스로이스 승용차의 문을 열고 한 젊은 남자의
옆에 자리잡고 앉았다. 그 젊은이는 무릎 위에 장방형의 검은 서류 가방을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두 사나이는 검은 제복 차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쓴 모자는 흰색이었고
황금색의 사슬이 가로질러 있었다. 지로르다노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 말했다.
"대니! 돌아가서 브루노가 2분이라는 것을 알아들었는지를 확인하고 와"
운전석에 앉아 있던 제복을 입은 사나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롤스로이스에서 미끄러져 나
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닦고 차고로 뛰어갔다. 콘티넴털 승용차에는 다섯 명의 경호원
이 타고 있었다 사장님이 떠난 다음 2분 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셨는지 확인해
보랍니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솔직히 밝혔다.
앞 좌석에 앉아 상체를 구부리고 있던 젊은 사내가 머리를 재빨리 끄덕였다.
"그래 알아들었어"
그는 지긋지긋 하다는 표정이었다.
대니는 웃으며 롤스로이스로 돌아왔다.
그는 롤스로이스의 앞좌석에 올라앉아 뒷좌석과 차단된 두터운 유리창에다 대고 한참 떠들
다가 순간 인터폰을 생각해 내고는 버튼을 눌렀다.
"그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장님"
"그들이 2분 동안 여기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건가?"
지오르다노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사장님 그들은 그게 2분이라는 걸 알아들었답니다"
돌대가리들이 어쩌면 길도 알지 못할 거야."
"압니다. 사장님. 산타야나 고속도로에서 짜르고 들어가서 리버사이드로 그러고는 뒷문으로
그들고 잘 알고 있습니다"
지오르다노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농장의 과일들을 확인하러 가는 거야. 출발해!"
운전수는 가볍게 클랙슨을 울렸다. 앞장선 콘티넬털은 도로를 따라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
갔고 롤스로이스도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지오르다노는 방탄판과 방탄 유리 뒤의 안전한
자리로 깊숙이 눌러 앉았다. 말려들지 말라고? 응?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예를 걸고 에밀리
오는 도박을 시작하고 있어. 그 중사놈이 그대가의 전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풀이 잔뜩 뒤덮인 언덕을 서둘러 내려왔다. 커다란 쌍안경이 그의
목 뒤에 걸쳐져 있었다.
"됐어! 그놈들이 지금 떠났어! 차 두 대! 크고 검은 것이 앞에 섰어. 링컨 승용차거나 뭐
그런 종류. 또 하나는 크고 하얀 리무진이야."
보란은 순간 웃음을 띠며 말쑥하게 다듬은 베레모를 머리 위로 눌러썼다.
"두 대 정도라면 간단해."
그는 코르베트 승용차 안에서 뭔가를 들고 나왔다.
"추적자 나오라! 여기는 독수리 .그들이 출발했다. 하나는 디트로이트 산 검은 차고 또 하
나는 하얀 억만 장자 용인데 바짝 뒤따르고 있다. 2번 표적이다"
루데크의 부드러운 음성이 즉시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다.
" 잘 알았다. 2번 표적이다. 됐다...... 지금이다! 2번 표적은 이제 사냥감이다. 지금 세어 보
겠다. 디트로이트 검은 차에는 다섯 명이 있다. 영국산 하얀 탱크에는 네 명이다. 반복한다.
탱크다. 2번 도로는 표적에 잡혔다. 그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지트카의 억눌린 음성도 비집고 들어왔다.
"좋다 좋다! 표적 1번은 델타 지점을 포착하기 위해 서성거리고 있다. "
'표적으로 떠나라!"
하고 보란은 명령했다.
"냄새가 난다. 반복하겠다. 냄새가 난다!"
희미하게 알았다는 대꾸가 르데크로부터 날아왔다. 지트카가 잇달아 외쳤다.
"푸른 차가 온다."
잠시 후 그는 또다시 외쳤다.
"표적 2번이 진입한다. 주의하라. 주의하라!"
"알았다. 2번 감시자는 신중하다."
인디언의 음성이 주의 깊게 대꾸했다.
"신호대로만 행동하라!"
그는 코르베트의 좌석 위에 무전기를 내려놓고 바퀴 뒤로 재빨리 다가갔다. 그는 워싱턴에
게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고는 덜컹덜컹 흔들리는 그 작은 차를 몰았다. 차가 포장도로를
박차며 속력을 내어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워싱턴은 도로에서 몇 야드 안 떨어진 나무 가지 아래에 주차되어 있는 무스탕 승용차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차 안에 있던 블랭카날레스를 향해 내뱉었다.
"됐어! 거기서 눈을 떼지 마!"
무스탕도 앞으로 달려나갔다. 워싱턴은 두 다리를 벌려서 몸을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고 쌍
안경을 뒷자리로 던져 놓았다. 그러고는 시트 끝을 들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블러드 브라더가 그러는데. 그놈들은 장갑차도 갖고 있다는 군!"
블랭카날레스는 길이 꺾어지는 곳으로 무스탕을 몰고 갔다. 그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
다.
"뭐라고?"
" 그놈들은 차에다 방탄 장치를 한 게 틀림없어. 커다랗고 하얀 리무진일 거야. 유리창을
통해 본 것 같다"
"그거 참 고약하게 돼 가는군!"
"자네는 아직 아무 것도 몰라! 보란의 말에 의하며, 복병이 있는 듯한 냄새가 난다고 했어.
또 지트카는 경찰이 합세했다고도 하고"
"우리가 너무 질질 끌어 온 거 같다니까!"
블랭카날레스가 말했다. 그의 오른손이 무전기를 잡기 위해 좌석 위를 더듬거렸다. 그는 무
전기를 워싱턴에게 넘겨 주었다.
"우리가 맞게 가고 있는 건지 한번 알아봐!"
그때 무전기에서는 보란이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측면 나와라. 측면 나와라."
"측면 2호 여기있다"
건 스모크 해링턴이 점잔을 빼며 대답했다. "
측면 1호도 여기 있다. 우리는 동행이다. 종마를 타고 도박판을 쫓아가는 중이다."
블랭카날레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란의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는데 . 어디 있나?"
"우리는 표적을 향해 우측을 달리고 있다. 직선 도로에서 합세할 것이다."
"꼭 딕시의 경마 대회 같은데!"
"그 종마는 여기선 눈에 너무 잘 띄어."
블랭카날레스가 중얼거렸다.
보란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좋아, 측면 잘 생각했다. 1번 추적자. 위치 보고하라!"
" 추적자 1번은 푸른 차에 바로 당도하는 중이다"
지트카가 소리쳤다.
"거기에 다른 이상한 차량은 없나?"
" 없어! 프레인제인과 밤색의 폰티악 승용차뿐이다. 걱정할 것은 없다. 우리는 정면으로 보
고 있다. "
"하지만 곧 다른 차들이 바로 네 코앞에 갈 것이다. 그리고 이상 있는 사람 있나?"
그들은 지트카의 음성이 들려오기 전에 잠깐 동안 차가 붕붕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
다.
"모르겠다. 커다란 검은 차가 하나 온다. 다섯이 타고 있다"
"아아, 잘 됐어!"
하고 보란은 말했다.
" 그건 아까 조금 지체한 후방의 경호대일 것이다. 좋아! 추적자 1번을 들어가라 . 조심하
라! 그리고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라"
"좋다. 지금 곧장 접근하겠다. 거기에서 만나자"
"추적자2번은 정위치에 있다. 명령을 바란다.!"
루데크가 보고했다.
"거리를 유지하라!"
하고 보란이 지시했다.
블랭카날레스와 워싱턴은 잠시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은 이제 코르베트가 먼지를
일으킴 달려오는 것을 잘 볼수 있었다. 고속도로를 향하여 뻗어오른 비탈길과 그위로 쌩쌩
나는듯한 하얀 색 리무진도 볼 수 있었다. 워싱턴은 다른 것은 더 없나를 조사하기 위해 목
을 길게 늘였다. 그러고는 무전기의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뒤쪽은 아무 것도 없다"
"알았다.! 측면 이제 너희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고 생각된다. 푸른 차를 알아볼 수 있겠
나?"
"밤색 폰티악 말인가? 물론이다. 하나, 둘..... 아. 셋이 타고 있다. 젠장! 길에 점점 더 차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가! 음..... 그들을 지금과 같이 붙들어 둘 수 있겠나?"
"나 자신도 붙들려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자들을 없애 버리지 않는 한은 !"
"빌어먹을 안돼! 안된다. 다치게 해서는 안돼!"
보란이 대답했다.
"방해하라! 반복한다. 방해하라! 그래서 지체시켜라! 알았나?"
"그렇게 하겠다! 당장 착수하겠다. 누군가 우리가 길을 막는걸 도와 줄 수 있나?"
해링턴이 말했다.
그때 지트카의 목소리가 끼여 들었다.
"내가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잠깐 동안은 좋은가?"
"물론 좋아! 냉정하게 해라. 아무런 의심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보란이 대답했다.
"알았다"
무스탕은 이제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블랭카날레스는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려가는 차
량들 사이로 진입하기 위하여 온몸을 긴장시켰다. 코르베트는 최고의 속도로 2차선을 가로
질러 돌진해 들어갔다. 순식간에 블랭카날레스도 차들 사이로 섞여 버렸다. 그는 주의 깊게
뒤쪽의 차량들과 차선 안쪽을 살폈다. 그러고는 보란의 뒤를 지키기 위해 속력을 높이며 다
시 차선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들이 커브길에 이르렀을 때 워싱턴이 중얼거렸다.
" 저 앞에 종마가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저쪽 모퉁이 중간쯤 말이야 . 그게 아닌가? 바깥쪽
차선에...."
블랭카날레스는 달리는 차들사이로 끼어들려 바람막이 유리너머로 흘낏거리며 말했다.
"종마처럼보여? 그들이 어떻게 앞장설 수 있었지?"
"우리들을 앞질러 벌니거야. 어떻게 그랬을까?"
워싱턴은 추측했다. 바로 그때 해링턴이 보내는 무전을 들을수 있었다.
"우리가 행렬의 제일 앞에 서 있다. 그들이 보인다. 중간 차선의 바로 내 차 뒤에 있다. 커
다란 디트로이트 산 검은 차다. 그리고 브 바로 뒤를 영국산의 흰 차가 따르고 있다. 길을
차단해야 겠다."
"내가 가겠다.아직 길은 막지 마라! 내가 지나갈 때까지는 안된다. 뒤쪽 너희들은 도대체 어
디에 있는거야?"
보란이 말했다.
"바로 자네 뒤야! 잘 안 보이는 곳이지만....."
워싱턴이 보고 했다.
"좋다. 추적자 2번을 제외하곤 다 모였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궤짝형을 만드는데 합세한 것
이다. 그래서 거창한 도박을 한 번 벌여 보자고! 잘 들어라 .이번 한번의 시도밖에는 허용되
지 않느다. 단 한번에 해치워야 한다. 차산을 왼편에서 오른편까지 1,2,3,4번이라고 번호를
붙이기로 하자 . 인터체인지는 3번 거리에 있다. 4 번 차선은 거리에서 우리를 떠날 것이다.
궤짝은 2번 차선에서 견고하게 짜여져야한다. 아마도 산타야나. 또는 산 베르두로 향하는 차
선일 것이다. 좋다. 위치는 그곳이다. 모두들 자기의 임무를 다시 생각하라......"
워싱턴은 막연한 기분을 느끼며 보란의 침착한 지시를 듣고 있었다. 1분에 1마일 이상이나
질주해 가는 자동차의 행렬들이 할리우드 고속도로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상 그들의 차는 범퍼와 범퍼를 맞대고 4개의 행렬을 따라 끝이 없는 긴 선을 이루며
비탈길을 오르고 비탈길을 내려서며 달리고 있었다. 단조롭기 이를데 없었으나 똫나 위험하
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가운데 보란은 두 마리의 사냥감을 잡기 위해 올가미를 씌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저으며 블랭카날레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트너는 보란의 지시
를 온몸이 귀가 된 듯 열중하여 듣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졔속하여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 앞쪽으로, 백미러로 다시 왼편으로 오른편으로......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워싱턴
의 기분을 조금은덜어 주었다.
"좋아! 움직이기 시작해. 50으로 속도를 떨어뜨려! 좋아...... 1분이면 인터체인지다......"
붉은 코르베트가 두 개의 차선을 가로 지르며 뚫고 나갔다가 얼마쯤 앞쪽으로 다시 그들의
차선 속으로 되돌아 들어가는 것을 워싱턴은 보았다. 선두 주자였던 거대한 세미 트레일러
(트렉터와 트레일러로 분리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대형 화물자동차)-바로 그것이 <종마>라
고 불리던 차였다-가 약간 앞쪽의오른편 차선에서 일을 벌이고 있었다. 그 종마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바깥쪽의 두 번째 차선으로 위치를 이동하며 사라지는 바람에 당황하고 있었
다. 두 차선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 이때란 듯이 그곳으로 다가들고 있는 한 대의 차를
워싱턴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보란의 코르베트였다. 그는 낄낄거렸다. 보란과 블랭
카날레스의 차 사이에는 이제 두 대의 차가 있었다. 그들이 노리는 차들이었다. 콘티넨털의
운전사는 이제야 비로소 상황을 깨달은든 걱정스런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
다. 그의 눈에 다음 번에 벌어질 일들이 훤이 보이는 듯했다.
"모두 정위치!"
블랭카날레스는 힘껏 가속 페달을 밟으며 3번 차선으로 밀고 들어가서는 자기의 위치를 지
켰다.
"좋아! 다음은 지트카!"
지트카가 운전하는 메르쿠리 웨거능ㄴ 제일 안쪽 차선으로 밀고 들어갔다. 마침내 그들 넷
-지트카, 블랭카날레스, 보란, 그리고 디젤의 종마-은 시속 50 마일의 속력으로 인터체인지
로 들어갔다.
그 후 잠시 동안은 긴박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종마 바로 뒤에 차 두 대쯤의사이를 유지해
낼 만한 또 하나의 공간이 있기만 했다면, 조금은 덜 아슬아슬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
다. 어째든 그들응 1초를 100으로 분할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숨이 가빴다. 그들
은 완전히 덫 모양을 형성한 가운데 달려나갔다. 보란과 종마 사이의 콘티넨털은 지오르다
노의 차가 갑자기 인터체인지 쪽으로 사라져 버리자 갑자기 종마 뒤편으로 파고 들어왔다.
폰티악이 기어를 바꾸자 한쌍의 배기 구멍으로부터 가스가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폰
티악은 보란의 옆쪽으로 비스듬히 방향을 바꿔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지오르다노의 뒤에 있던 경호 차랴은 폰티악이 지나간 자리로 밀고 들어왔다. 뒤를 따르려
는 의도임이 분면했다. 그러니 그 의도는 아무 소용이 없는, 참으로 무의미한 행위였다. 왜
냐하면 보란이 속력을 높여 그의 앞 범퍼를 종마의 뒷바퀴와 나란히 가져다 맞췄기때문이었
다. 타이어들이 급정거 때문에 요란한 소리를 냈다. 화물차 하나가 방향을 잡지 못해 비척거
리더니 종마의 뒤로 뛰어들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 순찰차가 급작스레 브레이크를 밟아
속력을 한껏 낮추었으나 타이어가 도로와의 마찰 때문에 요란한 소리를 냈다. 워싱턴은 분
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경관을 바라볼 수 이었다. 결국 콘티넬털은 경찰차의 뒷바퀴와 충돌
했다. 시끄러은 소리는 들었지만 보란을 그 광경을 목격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가벼운 충돌
이었다. 단지 타이어가 펑크났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동반되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하여 특공대원들은 뒤쪽 경호 차량을 간단히 따돌릴 수가 있었다.
종마는 이제는 우아하게 클로버 잎새(인터체인지에서 방향을 전환하기위해 둥근 원을 그리
며 돌아가는 도로)위에서 천천히 방향을 전환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죽음의 특
공대 차량들이 속도를 높여 재빨리 종마에 접근하고 있었다.
보란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훌륭해. 정말 잘 해냈어!"
"너의 부들부들 떨리는 엉덩이가 그걸 해냈지?"
지트카가 떠벌였다.
"정말 힘드는데? 이봐. 도대체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거지?"
해링턴이 끼어들었다.
"클로버 잎새를 따라가는거야!"
보란이 다시 나타났다.
"신호를 따라오면 된다. 우리가 가는 곳은...... 좋다. 산타야 나다! 가능한 최대 속력으로
달려 다시 모이자!"
해링턴이 무전기에 대고 투덜대고 있었다.
"그 놈들은 떨어져 나가 버렸어. 깨진 범퍼하며...... 미친 짓이었어."
우리가 계획했던 것 보다 더 잘 됐어. 멋진 구경거리 였다. 서로의 위치를 잘 확인해가며
신나게 달려가자."
보란이 말했다.
워싱턴은 낄낄거리며 블랭카날래스에게 머리를 흔들어 보이며 한마디했다.
"제기랄, 이건 정말 못 해먹을 노릇이구먼! 안 그래?"
블랭카날래스는 코르베트 앞 유리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킨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트카의
메르쿠리는 루데크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담배 하나 주게."
블랭카날래스가 청했다.
"이 놈의 운전대에서 손을 떼기가 무서워. 당장 곤두박질이라도 쳐버릴 것 같거든."
워싱턴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담뱃불을 붙여서 파트너의 입에 물려 주었다.
"이 특공대에 끼여든게 정말 자랑스럽구나! 이봐.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좀 기다려. 우리가 20만 달러치나 되는 차들을 한 꺼번에 박살을 낼 뻔 했다는 걸 아나?"
블랭카날래스는 중얼거렸다. 커다란 검둥이는 즐겁게 킬킬거렸다.
"무얼 기다리지? 그 때까지 내가 살아남기만 한다면, 그 때는..... 그렇지, 좋아. 나도 끼여
든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겠네."
블랭카날래스는 그의 동료에게 갑자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자네가 옳아. 우리는 지옥의 특공대니까."
5. 복병
"저놈의 스테이션 웨건이 계속해서 우리 뒤에 따라붙고 있었습니까?"
젊은이가 서류 가방을 주물럭거리며 물었다.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했어. 자넨 이제야 그 사실을 발견한 건가?"
하고 지오르다노는 점잔을 빼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아니죠. 한참 동안은 포드 세단이 뒤를 쫓아오더니, 지금은 또 스
테이션 웨건이 뒤에 있잖아요?"
지오르다노는 낄낄거리다가 만족스럽다는 듯 좌석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붙였다.
"도박이야! 그놈들은 놀기를 좋아하거든. 그놈들 마음대로 놀도록 내버려두는 거야!"
그들은 몇 분전에 그 소란스런 도로를 벗어 나왔다. 이제 그들은 아스팔트가 깔린 매끄러
운 도로 위에서 시골의 경치를 내다보며 달리고 있었다. 차는 시속 80마일의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곧 그들은 도시와 인접한 사막과도 같은 평지에 이를 것이며 그 후 그들은
로키의 뷰트(미국의 서쪽과 캐나다에 있는 외따로 솟아 있는 산)을 향하여 북쪽으로 달려나
가게 될 것이다. 이윽고 지오르다노의 눈앞에 웅장한 숲이 나타났다. 날카로운 바위 사이에
있는 은폐된 계곡 안쪽이었다. 크레이프 열매, 레몬, 탄지르 오렌지, 아모카도 등이 거기에서
재배되었다. 그러나 부유한 지오르다노의 욕심을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양은 되지못했다. 사
실 그 농장에 대한 엄청난 세금이 매년 그를 따라다녔다. 그의 합법적 사업체 가운데 농장
은 그렇게 재미있는 사업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더욱 비밀스러운 사업에 긴밀
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의 불법적인 사업을 위한 어떤 특수한 일을 행해 나가는 데 있어
서 그곳은 없어서는 안 될 만큼 긴요한 곳이었다.
롤스로이스는 농장에 접근하는 도로로 들어서기 위하여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지오르다
노는 몸을 일으켜 인터폰의 단추를 눌렀다.
"뒤따라오는 차에 무슨 일이 생겼나?"
"그들은 계속 뒤떨어지기만 하는데요. 저는 벌써 1마일 전쯤에서부터 그들의 모습을 볼 수
가 없었습니다."
운전사가 보고했다.
"옆으로 빠져 차를 세워!"
그들은 방향을 바꿨다. 그 무거운 차가 매끄럽게 멈춰섰다. 검은 콘티넨털 승용차 역시 몇
백 피트쯤 더 나아가서 멈춰섰다. 그다음 롤스로이스는 지오르다노의 차로부터 몇 야드 떨
어진 곳으로 딧걸음질쳐 다가왔다.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어. 돌대가리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그들이 오는 것을 발견
하는 즉시 다시 출발해. 그렇지만 천천히, 나는 그들이 우리를 놓치길 원치 않으니까."
지오르다노가 명령했다.
운전사는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앞에 서 있는 차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그들은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기다렸다. 지오르다노는 짜증이 났다. 그는 시가에 불을 붙여 물었
다. 다시 몇 분이 지났다.
"도대체 어떻게 시골길 위에서 우리를 놓칠 수가 있나?"
"아마 차가 고장났는지도 모르죠"
"뭐야? 그렇다면 브루노는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브루노는 어디로 가버렸어?"
그는 인터폰의 단추를 다시 눌렀다.
"그래, 그 천재적인 브루노는 어디 있다는 건가?"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운전사가 외쳤다. 지오르다노는 머리를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조금 전에 달려온 길을 그는
훑어보았다.
"트럭이다! 저놈의 빌어먹을 트럭!"
거대한, 흑백으로 도색된 디젤 화물차가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화물차
꼭대기에 있는 배기 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오르다노는 트럭이 다가오
는 것을 지켜보면서 점점 더 지긋지긋한 기분에 휩싸였다. 두 남자가 거기에 타고 있었다.
그들이 지오르다노를 스쳐갈 때 운전사는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빌어먹을......."
지오르다노는 투덜거렸다.
"두 돌대가리들! 하난 술래잡기도 제대로 못 하고, 또 하나는 도로 가운데서 길을 잊다니."
그는 인터폰의 단추를 두드렸다.
"좋아, 가자! 가자고 가!"
고속도로 벗어나자마자 곧 보란은 시속 40마일로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달려나갔다. 블랭
카날레스는 종마를 기다리기 위해 지름길에 남아 있었다. 종마는 몇 분 뒤에 도로 끝에 나
타났다.
"내가 살던 곳 같은 시골로 접어드는데! 공격하기에는 더없는 장소야."
루데크가 말했다.
"냉정해야 해. 차선을 바꿔!"
보란이 충고했다.
"좋아. 나는 뒤로 처지기로 하지. 앞장서, 지트카!"
"좋았어! 저놈들은 아마 90킬로쯤에서 달아나고 있을 거야. 이 낡은 웨건으로 무리겠지?"
"80킬로쯤이야. 넌 90킬로까지 높여서 달려야 돼. 아니면 그놈들을 놓칠꺼야. 지트카!"
루데크가 말했다.
"그래? 그럼 달려 보자!"
보란은 빙긋 웃으며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안녕, 친구?"
루데크는 잠시 뒤에 속삭이듯 말했다.
"이야, 거창해 보이는데. 잘해 봐, 친구!"
"좋아!"
하는 지트카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놈들이 보여, 벌써! 너무 뒤로 많이 움직이고 있어!"
"좋았어. 저기 왼쪽에 있는 게 뭐야? 뷰트 산인가?"
"그래. 거기 갈림길이 있어. 그놈들은 북쪽으로 달아나고 있다고! 뷰트 산 쪽이야!"
그 때 보란이 대화 속으로 끼여 들었다.
"위치를 정확히 얘기해 줘! 언제 어디로 들어갈 것인지. 우리도 뒤따라가야 하니까."
"좋았어."
루데크의 침착한 대답이 울려 왔다.
"그럼 누군가가 곧 날 뒤따르게 좋을 거야. 이놈의 늙어 빠진 엔진으로는 더는 못 쫓겠는
데."
지트카가 말했다.
"가고 있어!"
보란은 속력을 최대로 높이며 말했다.
그때 해링턴과 워싱턴이 동시에 리버사이드의 지름길에 도착했음을 보고해 왔다. 보란은
무전기를 뽑아 들었다.
"빨리 와! 전 속력을 다해 나에게 접근해!"
"그러겠다!"
해링턴이 대꾸했다.
"고속도로에서 많이 지체했나?"
"별로!"
"이 지역을 잘 아나, 건 스모크?"
"내가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 상자처럼 잘 안다."
"이 뷰트 산 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나?"
"별것 없다. 감귤 농장들이 있다. 가축을 기르는 곳도 좀 있고."
"좋아! 계속 가까이 다가오라. 추적자, 이제 네가 보인다. 혹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알 수 없어. 뒤쪽으로 먼지가 풀썩거리고 있을 뿐이다."
"추적자 2호, 보고해!"
하고 보란은 명령했다.
"블러드 브러더!"
그는 다시 불렀다.
고통스러운 침묵이 뒤따랐다. 이제 보란은 뷰트 산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는 눈을
번득이며 길 양쪽으로 펼쳐진 지세를 이쪽저쪽으로 열심히 살폈다. 코르베트는 화살처럼 달
렸다. 달리면서도 그는 지트카의 모습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갑자기 루데크의 부드러운
바리톤이 크고 깨끗하게 들려왔다.
"독수리가 정위치했다. 상황은 훌륭하다. 지시 바란다!"
"시야에 목표가 보이나?"
보란이 물었다.
"완벽해! 로스앤젤레스와 리버사이드 사이 중간쯤의 위치야."
"지형을 살펴보고 보고하라!"
"비포장 도로가 동쪽으로 뻗어 있어. 목표는 현재 위치로부터 약 3마일쯤 떨어져 있다. 길
끝에는 나무들이 서 있고, 푸른 잎들이 무성하다.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 그곳에 멈춰!"
하고 보란은 즉각 명령했다. 그러고 그는 월코를 불렀다.
"월코다. 딱 좋은 위치다."
보란은 차의 속도를 줄였다.
"현재의 내 위치로터 어느 지점에 있는가. 독수리?"
"1분쯤 전에 현재 내가 있는 지점을 자네가 지났어,"
" 알았어. 독수리처럼 시야를 똑똑히 유지하되 상황의 변화를 그때그때 보고하라. 그리고 종
마는 포장도로를 박차고 달려서 가능한 빨리 이곳에 당도하라."
"알았다."
지트카는 메르쿠리를 길가에 세워놓고 그 옆에 서 있었다. 보란이 차를 세웠다. 지트카는 재
빨리 그 차에 올랐다. 그들은 다시 한가롭게 앞으로 달려갔다. 보란은 무전기를 들고 말했
다.
"종마. 거기 승차한 사람 중에 하나가 메르쿠리 웨건으로 가라. 그것은 너회들 바로 앞의 길
가에 세워져 있다."
" 알았다. 내가 가겠다."
워싱턴이 말했다.
" 종마 .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 따라 붙어라."
"알았다."
"보란, 아주 잘하는데? 그놈들은 조금 전 비포장 도로를 기어 올라가서 멈춰섰어. 우리를 기
다리고 있는 것 같다."
루데크가 끼여 들었다.
보란은 낄낄 거리며 속력을 줄이고 루데크에게 말했다.
"훌륭한 경치군. 계속 감시하라! 그 차가 연기를 뿜어 내는 것이 보인다. 종마! 계속 달려가!
목표는 3분거리 전방에 있다. 그들 어머로 나아가라! 그래서 맨 처음 눈에 띄는 편리한 지
점에 세워라. 종마 . 길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되돌아가라. 두 차를 모두 갖고 가되 그들에게
는 상관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라. 그 도로 위를 지나가는 모든 차량을 보고하라."
"종마다. 알았다."
"이제"
하고 보란은 지트카에게 말했다.
"우리는 사냥개들로부터 여우들을 떼어 놓아야 해."
에밀리오 지오르다노는 대단히 불쾌했다. 이런 날에는 농장일도 제대로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그는 고속도로 위에서 벌어졌던 즐거웠던 차량 싸움에 관련된 두 운전사를 해고 했
다. 그 다음에 그는 농장 지배인을 불러 호통을 쳤다. 지배인은 저장 창고의 재고품 명세서
를 제 시간에 작성해 놓지 않았던 것이다. 몇분뒤에는 그가 브루노에게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지 떠벌였다.
"만일 그녀석이 여기로 오는 길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당도하는 즉시!"
뒤쪽 경호를 맡았던 콘티넨털 승용차에 탔던 브루노와 네 사나이는 지오르다노가 도착한 지
2분이 아니라 30분 뒤에야 도착했다. 그 차는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헤
드라이트의 유리는 깨져 나가고 없었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브루노는 보고 했다. 지오르다노의 형용할수 없는 분노앞에서 그의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는
듯했다.
"사고를 당했어?"
하고 지오르다노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멍청한 놈! 널 죽여 버리겠다.널 죽여 버리겠어.!"
"사장님.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발생할수 있는 것 아닙니까?"
"너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는 건 상상 조차 할수 없어!"
지오르다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돌대가리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면 무슨 꼴이 됐겠어. 응 ? 그녀석들이 이 에밀리오에
게 덤벼들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냐고? 응?"
그는 앞으로 걸어가더니 재빨리 브루노의 따귀를 한 대 갈겼다. 그러고는 다른 경호원들에
게도 주먹을 날렸다. 경호원들은 말할 수 없는 치욕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우리가 경찰차의 뒷범퍼를 들이받았어요."
"경찰차? 경찰이라고 했나?"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지체된 겁니다. 홍기에 대한 면허증을 제시해야 했고 . 또 사
고에 댛나 완전한 보고서 작성 때문에..... 또 , 그렇죠. 경찰관들도 화가 나 있었으니까요 .
저는 생각하기를......"
" 잔소리 a라고 차에 올라타! 빌어먹을. 다시 돌아가는 거야.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해야
겠어."
그는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사내를 불렀다. 그가 다가오자 거칠게 차안으로 밀어넣었다. 농
장 지배인은 얼굴 근육이 뻣뻣해질 정도로 긴장한 채 근처에 있었다.
"이리 와!"
지오르다노는 이제 머리까지 아픈지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계획한대로 일을 처리해야해. 2만 5ooo달러 경리담당 까지 데리고 왔어. 왠지 알아?
경찰관들이 보기에 . 내 무장ㅎ나 경호원들을 좀더 합법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그랬던거야.
무엇을 위해서? 브루노가 경찰차와 부딪쳐 범퍼를 부수라고 그랬는 줄 알아?"
그의 분노는 좀처럼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7만 정돕니다. 그걸 가지고 기시려굽쇼?"
지배인은 기어드는 목소리로 답했다. 지오르다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는 이 중사놈이 내가 떠난 뒤 한 시간쯤후에 나타나 이 주위를 헤맬거야. 이집을
박살내려 할거야."
그는 손을 흔들어 브루노를 불렀다.
"가서 돈ㅇ르 가져오도록 해!"
브루노는 차에서 내려 지배인ㅇ르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오르다노가 그의 등뒤에다 대
고 야유를 퍼부었다.
"사고 없이 차까지 운반하도록 해보라고. 이 멍청아!"
몇분 뒤 몇대의 자동차가 그 지저분한 도로를 향해 달려 나왔다. 하얀 롤스 로이스는 두 대
의 검은 콘티넨털 사이에 끼여 있었다.이번에는 브루노의 차가 앞장을 서고 있었다. 서류상
자를 무릎위에. 작은 금속상자를 두 다리사이에 올려 놓은 경리담당은 지오르다노의 바로
옆에 조용히 않아 있었다.
"이봐. 내가 너무 흥분했었나?"
"괜찮습니다.이해 합니다."
"누구나 재수없는 날이라는게 있다고는 해도 오늘 보다더 운이 나쁜 날은 없을거야."
지로으다노는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사장님!"
그러나 그런 일은 또 생기고 말았다. 그것도 몇분이 지나지 않아서,
"자동차 행렬을 추적중이다."
루데크가 조용히 보고했다.
"그래? 우리 뒤에 뭐가 있나?"
보란이 응답했다.
"없어!"
하고 루데크는 말했다. 그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교차로를 마지막으로 지나간 것은 망가진 디트로이트산 검은 승용차였어. "
워싱턴이 보고했다.
"알았다. 종마는 어때?"
"종마. 이상 없다."
해링턴이 보고했다.
"그럼굴려 보라고!"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길가의 커다란 동덩이가 차의
진동으로 들썩이기 시작했고 떼굴떼굴 구르다가는 튀어오르고 끝내는 길 위에까지 튀어나왔
다. 잠시 주위가 잠잠해 졌다. 지트카와 안드로메다가 그 돌동이들을 높은 뷰트산의 그늘 속
으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죽음의 특공대가 잠복하기 위해서 그보다 더 좋으 s장소는 없었
다. 그곳은 감귤 농장으로 가는 도로와 다른 주로 이어지는 도로의 중간으로 ,. 개인 점유의
지저분한 도로로 꺾어져 들어가는 곳이었다. 바리케이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세워졌다. 90도
로 꺾어드는 도로의 바로 너머였다. 지프는 종마에서 끌어내려졌다. 그러고는 바리케이드
조금 너머의 뷰트 산 그늘속에 놓여졌다. 그 지프에 설치된 커다란 캘리버 50이 어떤 긴박
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안드로메다가 그것을 맡았다.
지트카는 왼편을, 보란은 오른편을 맡았다. 두 사람모두 가벼운 자동 화기를 보유하고 고
지라는 훌륭한 이점도 안고 있었다. 세대의 화기로 그 지점을 완벽하게 장악해야만 했다.그
들은 그 일이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건 스모크 해링턴은 그 지점의 정면을 담당했다. 바리케
이드의 방향을 향해서 였다. 그의 6연발 총은 낮게 조준되어 있었고 가벼운 자동화기가 그
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디.그는 모든 은신처나 퇴각로를 봉쇄하기로 되어있었다.
"1마일 전방이다!"
루데크가 보고했다.
"알았다. 종마 . 움직여라 . 지저분한 비포장 도로의 교차점을 장악하라."
보란이 말을 받았다. 그는 블랭카날레스와 워싱턴으로부터 응답을 받고 무전기를 한 쪽으로
치우고는 기다렸다.
자동차의 행렬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앞선 차량들 때문에 먼지가 일었다.
그 먼지는 세 번째의 차를대열로부터 조금 이탈하게 했다. 브루노는 커다란 콘티넨털을 능
란하게 몰아갔다. 그는 이 도로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져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그는 생각
지고 못했던 장애물 때문에 급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 했다. 보란은 영화구경을 하듯 브
루노의 질겁하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어 브루노의 몸뚱이가 뻣뻣해지더니 . 그의 긴장
된 손이 핸들을 꽉 움켜쥐는 것도 볼수 있었다.그것은 단 몇초 동안의 일이었다. 그러나 길
고 긴 몇 초였다. 콘티넨털 승용차는 바리케이드위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실패했
다. 3톤짜리 콘티넨털이 16톤 정도의 완고한 바위덩이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콘티넨털은 그
러나 쉬지않고 붕붕거렸다.차의 앞 노닛이 튀어올랐다. 깨져 없어진 앞 유리 때문에 사내들
은 머리를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차가 앞쪽으로 진행하다가 멈출때마다 차를 탄 사내들은
심하게 흔들렸다. 그들은 운전석에 앉은 사내에게 뭐라고 투덜거렸다. 곧이어서 내부가 장갑
차와같은 롤스로이스가 뒤쪽으로 부딪쳐 왔다. 멋진 충돌이 었다.브레이크가 부서져 나가고
경적소리가 시골 하늘을 맴돌았다. 곧 뒤를 이어 세 번째의 충돌이 있었다. 뒤에 따라오던
콘티넨털이 롤스로이스를 들이 받은 것이다.
이 소란함에 캘리버 50의 스타카토가 뛰어올랐다. 안드로메다는 총알들을 분수처럼 그들
의 머리위로 쏟아 부었다. 세 번째의 차로부터 피사적으로 기어나온 한 사나이가 앞이 안보
이는지 바위에다 대고 사격을 해댔다. 그러자 한 사나이에게도 총격이 가해 졌다. 순간 사나
이의 몸이 뒤로 펄쩍 튀어오르더니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심한 반격이 롤스로이스로부터 시
작되었다. 그 무거운 차는 앞뒤로 차체를 흔들어대면서 쉴새없이 총탄을 퍼부어댔다. 운전사
는 충돌사고로 가운데에 끼이게 된 롤스로이스를 뽑아내 탈출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었다.
그 강력한 엔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힘 좋군. 좋아!"
보란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는 무전기를 집어들었다.
"건 스모크. '거대한 몸뚱이'를 가져오라!"
특공대 세 사람모두가 이제는 롤스로이스에 집중적으로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아직도 롤스
로이스는 늪에 빠진 코뿔소처럼 몸을 뒤채며 웅웅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반격의
총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때 보란은 커브길을 따라 해링턴이 잽싸게 뛰어올라가가는
것을 보았다.그는 바누카포를 어깨에 둘러 메고 있었다. 보란은 그가 롤스로이스로부터 100
피트 지점까지 접근하는 것을 보았다.그의 한쪽 무릎이 땅위에 닿자마자 바로 그는 바주카
포를 조준하였다. 다음 순간에 이미 요란한 굉음과불꽃과 연기가 뷰트산을 뒤덮었다. 장갑차
를 꿰뚫는 로켓포가 발사된 것이었다. 좌충우돌하던 롤스로이스는거대한 폭발속에 두동강이
났고 따라서 무든 항쟁도 즉시 중단되었다.
한 사나이가 재빨리 차와 포연으로부터 빠져 나왔다. 그는 콜록거리며 넓은 지역으로 나
와 멈춰섰다. 보란은 바위꼭대리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아래쪽을 향해 외쳤다.
"계산을 끝내야 할 때가 됐어! 지오르다노."
"돌대가리!"
지오르다노의 팔이 움직이고 동시에 그의 38구경이 세 번 불을 뿜었다. 그러나 그뿐 그는
힘없이 쓰러졌다. 보란은 확인이라도 하듯 그 널브러진 시체에 대고 총알을 난사했다. 이렇
게 하여 싸움은 몇분 지나지 않아서 다 끝났다.조각난 롤스로이스로부터 지트카는 시커멓게
변색된 서류가방과 금속 상자를 꺼냈다. 중무기들과 전리품들은 지프안으로 옮겨졌다. 안드
로메다은 차 뒤로 뛰어내려서 바리케이드의 뒤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지트카가 보란에게
말했다.
"롤스로이스에 아직도 살아남은 놈이 있어."
보란은 지트카와 해링턴을 지프로 올려 보내고 지트카의 보고를 확인 하기위해 앞으로 걸어
갔다. 아직도 연기가 일고 있는 롤스로이스의 바닥에서 그는 공포로 하얗게 질린 한 젊은이
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
"나는....난...단지....경리 직원일 뿐입니다."
보란은 그의 45구경 권총을 꺼내 젊은이의 양미간에 겨누고 말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 마무것도 보지 못한 거야! 아무것도 말하지 마라! 대신 너를 살려
주겠다."
소름 끼치는 공포속에서도 그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란은 그를 버려두고 달느 대원
들과 합세했다. 지프는 벌써 종마위에 올려져 있었다. 해링턴은 경사진 언덕을 따라 신경을
곤두세운 채 걸어가고 있었다.
"종마에 실을 것이 또 있나?"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보란이 그에게 다가오는 것ㅇ르 보고는 그에게 다시 한 번 같
은 말을 물었다.
" 아직은 없네.웨건을 몰고 가다가 어딘가에 내버려 .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자. 먼길이니까
서두르도록,"
보란이 응답했다.
"알았어."
해링턴은 이미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안드로메다가 그를 돕기위해 급히 뛰어갔다. 보란과
지트카는 코르베트의 곁으로 뛰어갔다. 보란이 그 차를 한바퀴 돌아보는 동안 지트카는 무
전기를 집어들었다.
"독수리. 상황이 어떤가?"
"깨끗해. 친구들! 깨끗하다고 . 나는 재미있는 일에 손하나 대지 못하고 말았어."
루데크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좋아. 내려오라!"
지트카가 말했다.
"알았다. 내려가겠다."
그때 보란이 다가왔다.
"데드 아이스에게 웨건에 대해서 얘기해 주게."
지트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웨건은 종마를 타고 간다."
"알았다. 그런데 대장에게 무슨일이 생겼다?"
지극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아니야. 나는 소총을 손보고 있다. 무전기를 잠시 그에게 맡겼을 뿐이다. 작전은 대성공이
었다. 모두 훌륭했다. 아마 우리는 돈을 좀 번 것 같다."
"알았다. 잘 끝나서 기쁘다. 다음 번에는 내가 최 전선을 맡겠다."
워싱턴이 대답했다. 보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좋다 고려해 보겠어. 너희들 덕분에 작전이 성공했다. 축하한다. 그러나 집에 도착할 때까
지는 침착을 잃지 마라. 무전기 사용은 일단 중지한다. 단 . 긴급할때는 제외다. 알았나?"
"알았어"
데드아이스 워싱턴이 대꾸했다.
"좋다."
해링턴이었다.
"그러겠다."
블러드 브라더의 대꾸였다.
"알겠다"
블랭카날레스의 응답했다.
6 트로이의 목마
수사본부의 브래독 주임은 혼란에 빠졌다. 그보다도 더 고약한 것은 이제는 그 자신에
대해 더 이상 확신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사무실 벽에 걸린 커다란
지도로부터 멀찌감치 물러서서 <불치의 죄인> 작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들여다 보았다.
두명의 경장과 네명의 형사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까지 이 기록들을 주의
깊게 분류 정리,선택해온 담당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탁월한 경찰관들이었으며, 경찰 근무
기록에도 사소한 오점 하나 남기고 있지 않은 이들이었다.
"무엇이 잘못 됐나?"
브래독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앤디 포스터 경감은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올리고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그와 브래독은 경찰 학교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우리는 그 자를 과소 평가 했습니다."
하고 그는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자는 너무나 손쉽게 그 일을 해치워 버렸습니다. 저는 그자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사건후 여러 가지 점들을 종합해 보기 전까지는 속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젊은 경위인 칼 라이온스가 얘기 했다.
포스터는 라이온스의 실수를 변명해 주려고 말을 꺼냈다.
"좀 혼란스러운 요인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 지오르다노는 두 대의 차를 끌고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적당한 위치에 그는 또 한 대의 차를 감춰 두었던 겁니다. 칼이
어떻게 그것을 알수 있었겠습니까? 차들은 고속도로를 향해 달려들어갔습니다.
지오르다노가 그 싸움을 도발하려 했다는 것은 상당히 근거 있는 사실로 보입니다. 우리는
그 차들 가운데 어떤 것이 보란의 차인지 구별해낼수 있는 방법도 물론 없었고요 또 어떤
차들이 그들을 동반한 차들인지도 밝혀 낼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칼에게 그냥 지오르다노가
탄 차를 뒤따라가다가 변화가 생기면 보고하라고 명령했을 뿐이었습니다."
라이온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어떤 돌발 사태에 줄곧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보란이 추적을 하리라고는 예상도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지오르다노의 뒤에 매달려 가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고속도로로
들어섰을 때, 저는 좀더 바짝 붙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충돌이 일어난 겁니다. 저는
인터체인지의 클로버잎 속으로 처박혀 버렸습니다.그게 함정이었습니다. 또 다른 차 하나가
내가 탄 차의 뒷범퍼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래서 즉각 그런 명청한 상황을 보고 했었나?"
브래독은 힐난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포스터 경감님과 연락하고 있었습니다.
지오르다노를 놓쳤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포스터가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때가 3시 반쯤이었습니다. 고속도로가 막히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우리는 너무 수가
부족했습니다. 주임님 , 만일 우리의 병력이 지금의 세배 였다고 해도 아마 그 사태에 대한
적절한 조치는 취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일반적인 민첩성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저 혼자서 골든 스테이트와 산 베르나디노 게다가 산타야나까지를 다 커버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는 적극적으로 손도 대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겠지!"
브래독은 웅얼거렸다. 그는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또 하나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특별한 때에 ,그런 상황에서 보란이
지오르다노에게 관심을 가지리라고는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제가
긴급 비상 단추를 눌러서 모든 <불치의 죄인>에 소속된 차량들을 불러 모아 지오르다노를
미행하게 했다 하더라도, 보란이 그에게 올가미를 씌울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주임님께서도 그가 탁월한 전술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저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브래독이 불쑥 끼여 들었다.
"물론이네. 앤디 자네는 적절하게 행동했어. 비난하자는 게 아닐세."
"저는 안전하게 처리하려고 했습니다만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작전 지역에
무선으로 지오르다노의 차를 발견하는 즉시 연락해 줄 것을 당부 했습니다. 그러고는 발을
동동 구르고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그들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기를 기다렸습니다."
포스터는 중얼거렸다.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찰리 리케트 경감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는 <스물네 시간
근무하는 경찰관>이라고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범한 가장 커다란 실책은 브르노 스카렐리를 추적하는 데에 실패한 거요 . 그게
멍청이 노름이었소. 그놈이야말로 또하나의 확실한 길이었습니다. 지오르다노의 위치를
찾아내는데 있어서는 말이오."
칼라이온스는 충혈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고 마침내 결정을 내린것입니다."
"나는 내능력이 미치는 한에서 끝까지 스카렐리를 지체 시켰던 겁니다. 그러나 그놈의 차가
내 차의 뒤쪽을 들이받고 나자빠졌는데 도대체 어떻게 글르 추적할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당신도 그때는 내 마음을 알게 될 거요."
그는 목뒤를 문지르면서 리케트를 쏘아보았다.
"제가 브루노 스카렐리를 지키도록 차 한 대를 보냈습니다.30초쯤 늦게 그곳에 도착했는데,
바로 그 우라질 놈의 인터체인지에서 그를 놓쳐 버렸답니다."
포스터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아직도 생각하기를 ......"
리케트가 포스터를 건드리는 듯한 아슬아슬한 말대꾸는 갑자기 나타난 경관에 의해
중단되었다.
"리버사이드 실험실에서 보고서를 보내 왔습니다. 주임님."
"무슨 보곤가?"
브래독은 말끝을 삼켰다.
"그것은 장갑차를 정통으로 꿰뚫는 성능을 가진 포탄이었습니다. 아마도 바주카포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롤스로이스 승용차의 뒤쪽이 날아가고 유탄이 차안으로 뚫고
들어갔습니다.앞쪽의 두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다른 탄흔들은 캘리버 50으로
발사된 철갑탄들이었습니다. 차들은 하나같이 모두 그 캘리버 50으로 완전히 박살이 난
상태였습니다."
"고맙네. 아트"
브래독이 대답했다. 그경관은 보고를 끝내자 곧 밖으로 나갔다.
"완벽하게 준비된 준투 장비였군!"
"또 제 짐작으로는 흔적이 없는 매복 작전......"
말을 얼버무린 포스터는 이내 깊은 침묵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버렸다. 리케트는 그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긴 금속성의 물체를 꺼내 브래독의 책상위로 던졌다.
"뷰트 산 맞은 편에 있던 바위산이 캘리버 50으로 산산조각 났습니다. "
브래독은 그 탄피를 집어들었다. 그는 그것을 그의 큰손으로 무의미하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자들은 캘리버 50이 설치된 지프를 거기에 세워 좋고 있었던거야. 자 , 이제 누군가
얘기좀 해보게 . 그놈들은 무장한 지프를 타고 돌아다녔는데 어떻게 사람들의 눈에
띄이지않을수 있었을까? 그놈들은 어디에서 그 중장비를 얻을 수 있었을까?
바주카포로부터 캘리버 50이 탑재된 지프는 또 어디서? 도대체 무슨 귀신같은 놈들이기에
그놈들은 백주에 도로를 통해 그런 것들은 이동시킬수 있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리케트 경감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상의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들고 말했다.
"내가 보고할 것이 좀 있을 것 같소이다. 지난 3시간 동안 여러 가지 보고들을 종합해서
면밀히 검토해 보았소. 그래서. 에 그러나까 좀 들어보시오 <벨 에어>사태에 대한
보고서부터 시작하겠소. 지프가 마지막으로 관찰된 지점은 스카이 레인 도데 바로 다음
지역의 두 목격자는 맹세코 그지프가 그곳을 지나가는 것을 본적이 없다는 거였소. 경찰
순찰차와 소방서 차량들을 제외하면 그 시각에 지나간 자동차라고는 커다란 세미
트레일러뿐이었다고 보고 되었답니다. 목격자는 그 트레일러에 대해서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차의 특징은 물론 색깔마저도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
리케트는 라이온스 경위를 정시하며 말을 이었다.
"다음에는 칼의 보고서에서 인용하겠소. < ...... 그리하여 나는 천천히 달리고 있는 세미
트레일러를 따라 클로버잎속으로 진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 자네는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더군. 칼. 그레 화물차 모양으로 생긴 트레일러였던가. 뭐던가?"
화물차 모양이었습니다.
라이온스 경감의 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물차였다고? 계획이 아주 대단했어. 놈들은 , 자, 이제는 지오르다노씨 고용인의
증언에서 인용해 보기로 합시다. 그는 그 총격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라오.
<지오르다노씨는 우리가 계속해서 미행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
미행자들이 우리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기다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그 자들을 올가미
속에 빠뜨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뒤따라온 것이라고는 그저 거대한 대젤
트럭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청동빛의 화물차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 , 물론 이것은
어쩌면 우연한 일이랄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그안에 어떤 해답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브래독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 교활한 녀석!"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개연성이 높군요."
포스터가 브래독을 바라보며 말했다. 브래독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나는 어떤 것도 우연이라고 무시해 버리지 않는다. 보란이 그 우연 안에 없을지라도
말이야."
그는 책상으로 재빨리 돌아가서 서류 뭉치를 뒤적였다. 그 중에서 한 장을 끄집어 내
타이핑된 내용을 입속으로 부지런히 훑어 내려갔다.
"여기 있군. 제럴드 영이라는 , 살아남았다는 바로 그 자야. 이게 지오르다노의
고용인이라는 그자의 진술 조서 사본이야. 왜 지오르다노는 그들이 미행당하고 있다고
느꼈는가 하는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어. < 글쎄요. 나 자신은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같은 차 두 대가 우리 뒤를 계속 따르고 있었습니다.하나는 푸른색의 포드
세단이었고 구형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낡은 스테이션 웨건이었는데 커다란 차였습니다.
아마 뷔크나 메르쿠리였을 것입니다.> 아직도 모르겠나. 경위?"
젊은 경관의 두 눈이 뜻밖의 새 사실에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푸른 색의 포드 승용차가 우리의 행렬에 끼여 들었답니다. 웨건은 간선 도로에서 바로 내
뒤로 끼여 들었다고요. 우리가 오르막길로 올라갈때는 이런 순서였습니다. 거대한 콘티넨털
승용차. 다음이 롤스로이스. 포드 승용차. 스테이션 웨건 . 그리고는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모든 차들이 앞을 다투어 달려나갔었죠. 나는 롤스로이스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리케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놈들이 계속해서 자네를 가둬 둔걸세 . 이봐. 라이온스 그놈들은 자넬 조롱가리로
만들고 . 자네를 꽁꽁 묶어서 끌고 다닌거야."
"지오르다노의 차와 다른 차들이 고속도로에서 뒤섞여 있는데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할 수
있었다는 겁니까? 나는 잠깐 동안도 다른 차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 세미 트레일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가 그런데까지 신경을 쓰겠습니까?"
"칼의 말이 옳아."
브래독은 담배를 피워 물고 말을이었다.
"누구나가 다 눈을 번쩍 뜨고 놀란입을 다물지 못했겠지. 만일 그 엄청난 기관총을 탑재한
군용 지프가 자동차의 행렬에 끼여 들었다면 말이야 . 그러나 그 교활한 놈은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어. 그놈은 트로이의 목마를 이용했던 거야 . 그 세미 트레일러속에
작은 지프를 감출수가 있었겠지?"
"그 빌어먹을 녀석들이 그 안에 탱그를 한 대 감춰 뒀다 해도 난 놀라지 않아요!"
포스터는 투덜거렸다.
브래독은 칼이 무엇인가 기억해 내기를 바라며 물었다.
"칼. 다시 주의 깊게 생각해 보게 .어떤 차가 자네한테 올가미를 씌우던가? 포드였나,
콘티넨털이었다. 아니면 웨건이었나?"
"둘다 아니었습니다."
라이온스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에 저는 너무 당황해서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 차는 그다지도 느린지를 말입니다. 그러고는... 그렇습니다.
그건 분명히 스포츠 카였어요! 붉은 스포츠카 . 맞아요. 확실해요!"
"어디 제품이었나?"
"그게...... 외국산 자동차였을 겁니다. 그래요! 이제 기억이 조금씩 납니다. 저는 그 차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도로 사정이 좋은 곳에서도 그 정도의 속력이라면 다 된
차라고요. 이젠 폐차 처분할때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
"그것은 계획에 따른 시간 맞추기 계략이었습니다. 다른 차들을 지체 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랬겠지요. 그런데 그런 일은 계획만으로는 성공시킬수 없는 법입니다. 그 녀석들은 분명히
차안에 무전 시설을 갖추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포스터가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빌어먹을!"
브래독은 낮게 중얼겨렸다.
리케트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 사실이 이 사건을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 놓을 것 같군."
"왜 아니겠나? 보란이라는 자가 무선 전신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어? 그놈들은
이미 군용 장비로 완전히 무장되어 있어 . 바주카포도 갖고 있다는 게 확인 되잖아? 그리고
더욱 기막힌 노릇은 돈만 내면 총같은 건 어디에서라도 구할수 있다는 거야 . 요즘
세상에서는 말일세."
브래독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주의 깊게 덧붙였다.
"우리 전략을 완전히 수정해야겠어. 그 놈들의 무전 연락을 도청할 수 있는 방법을 한 번
연구해 보기로 하세 앤디, 그 일을 자네에게 맡기겠네. 자자 정보를 다룬다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과학 분야와 관계된 일이므로 지원을 받아야 할 걸세. 연방 통신 위원회 도움을
얻어보게 . 육군이나 해군 , 중앙 정보국의 도움까지도 요구해 봐. 필요한 경우에는 말야.
하여튼 모두 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일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세. 우리의 적수인 그
녀석은 기름을 잔뜩 친 기계처럼 원활히 작동하고 있네 . 우리가....아니 그놈들은 우리들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말지도 몰라."
그는 중도에서 말을 끊고 리케트레게로 걱정스러운 시선을 옮겼다.
"자네가 이번 사건을 이런식으로 만들고 만 것 같군.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차량들에
대해서 우리는 세밀하게 조사해 두어야 겠어 .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모든 단위 수사
요원들에게도 이 정보를 보내주게 . 그 트로이의 세미 트레일러에 대해선 가능한 한 빨리
정보를 입수하도록 하게. 그런 물건은 사용하고 있지 않거나 터미널에 주차되어 있지 않는
한은 은폐시키기 어려운 법이야 . 화물 트럭형의 세미 트레일러로 간주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무엇이든지 모두 철저히 수색 . 조사해 주게 .칼.
자네는 화기 등속의 장비들을 추적해 주게 . 바주카포나 기관총 같은 중무기들은 인근에
있는 무기 가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지 말게 . 또한 무선 송수신기 기재들도 최근에
수집된 정보에 입각하여 철저히 추적하게. 그러니까 내가 요구하는 바는......."
"이제 거의 자정입니다. 주임님."
하고 리케트가 상기 시켰다.
"우리들 대부분은 18시간 동안 계속 뛰었습니다."
포스터가 피곤하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에게 몇사람 더 지원하겼네 . 어떻게 해서든 그놈들이 우리 손아귀에서 벗아나지
못하게 해야해 "
그때 아까 그 경관이 문을 열고 뛰어들어와 급하게 소리쳤다.
"조금전에 버뱅크의 <트리 해변 레코드>를 공격했습니다."
"레코드 회사라고?"
브래독은 얼이 빠진 듯했다.
"왜 자네는 그게 보란 패거리의 짓일거라고 단정하지? 아무런 연관성이 없을 수도....."
"그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고 경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건은 < 스튜디오 웨이 >건물의 바깥쪽에 있는 창고에서 일어 났다고 합니다. 보고에
의하면 놈들이 소이탄을 터뜨리며 습격하는 동안에 공중에서는 헬리콥터로부터 총알이
빗발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단지 그들이 <불치의 죄인>으로 추측돼서......."
브래독은 이미 사무실을 나서고 있었다. 그 뒤를 한떼의 수사진들이 뒤따랐다. 그들은
<불치의 죄인> 특별 통제실로 들어섰다. 브래독은 몸을 홱 돌리며 발악하듯 외쳤다.
"나가 봐 ! 일이 있으면 무전기로 연락하겼어!"
수사관들은 재빨리 뒤로 돌아서더니 복도를 달려나가 차고로 향했다. 통제실 인터폰앞에 선
브래독은 재빨리 버튼을 하나 누르고 큰 소리로 지시 사항을 말했다.
"급전이다. <불치의 죄인.> 비상이다. 모든 단위수사대는 들으라. 코드 7 -10 .복수화하라!
글렌데일의 샌타모니카 시. 버뱅크 스튜디오다. 알파 지점으로 집결하라! 알파 4가 사건
발생지점이다. 알파지점으로 집결하라! 근처에서 집결 대기하라!"
그는 중앙 지급 송신소에서 전문 내용을 제대로 인지 했는지의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또
다른 스위치를 올리고 앉은 뱅이 마이크를 통해 <불치의 죄인> 특별 네트워크에 대고
지시사항을 퍼부어 대기 시작 했다.
칼라이온스 경위는 포스터 경감과 함께 나란히 차고를 향해 뻗은 긴 복드를 뛰어 내겨가고
있었다.
"그자들이 맞을 까요? 하루사이에 벌써 세 차례의 공격을 감행하다니!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인데요."
포스터는 점차 숨이 가빠 왔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왜 이기지 못했는지 점점 알 수 없게 만드는 구먼!"
그는 혼잣말을 하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또 재수 없게 일너 생각이 드는군 그래 . 이번에도 또 그놈들에게 당했다는....."
라이온스는 외쳤다.
"우린 그놈을 잡아야 합니다. 놈을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잡고 말겠아요!"
"내 생각으로는 우리는 포병대와 공군의 지원을 받아야 할 것 같네 . 이건 도무지
경찰관들의 임무 밖의 일들이야. 그 놈들은 어쩌면 어디엔가에 진짜 탱크를 숨겨
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B52 폭격기까지 동원할지 모르고 . 어쨌든 난 이제 더 이상
놀라지는 않겠어. 모든 걸 예상하고 있으니까."
라이온스가 조용히 웃었다. 그들은 차고에 도착했다. 그는 이미 그의 파트너가 자리잡고
앉은 차 안으로 뛰어 올랐다. 라이온스는 오늘 이 기회에 보란이 경찰관들의 그물 속에
사로 잡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그 영리한 놈의 얼굴을 대하고 싶었다. 경찰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고 유능한 자신을 형편없는 멍텅구리로 전락시켜 버린 행위에 대해 그는 그
자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그 자의 이마에 탄환을 쏘아 붙임으로써 심심한
감사를 표시하고 싶었다.
"오케이! 끝내자!"
보란은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저장 창고는 맹렬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거대한 화염이 하늘 끝까지 치 솟아서 주위 100야드 까지는 밤의 도시를 훤한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다. 창고를 둘러싸고 있느 거대한 울타리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알았어. 대장! 저 지글거리는 소릴 들어봐.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레코드를 만들기에
저렇지?"
폰테넬 리가 대꾸해 왔다. 보란은 그의 차에 뛰어 올랐다. 차는 창고 뒤의 담장 밖 조금
떨어진 것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는 무전기를 윗주머니에 쑤셔 넣고 전속력을 내어 자갈로
뒤덮인 뒷길로 후진했다. 저쪽 코너에 있는 저장 창고의 사무실을 향해서 였다. 거기에서
그는 붐붐 하파워를 만났다. 그는 방화직전에 저장 창고의 종업원들을 불러모아 이번
사고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하파워는 재빨리 무표정한 보란의 옆자리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아차! 매시맬로를 가져오는걸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어!"
보란은 기어를 바꾸고 조금 더 스피드를 내 머캐덤의 자갈길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거리로 미끄러져 들어섰다. 그들은 먼 거리에 늘어선 언덕을 행해 전속력으로 곧장 달렸다.
그들을 방해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보란은 바퀴의 진동을 조금 줄이더니 무전
송수신기의 단추를 눌렀다.
"차퍼 . 어디에 있나?"
그가 외쳤다.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보란은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하파워는
안절부절 못하더니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보란의 귀에 비탄에 찬 폰테넬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굉장히 당황해 하고 있었다.
"대장 . 사냥개들이 쫙 깔렸어!"
보란은 입속으로 뭐라고 웅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손과 발은 침착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손은 무전기를 주이 고 발은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다. 코르베트가 멈춰서기를
위해 비명소리를 냈다 . 보란은 무전기에다 이렇게 외쳤다.
"상황을 설명하라. 차퍼!"
폰테넬리의 격앙된 음성이 즉시 튀어 나왔다.
"내 주유 탱크가 터져 버렸다. 차들이 타고 있어! 나는 부상당했고 사냥개들이 벌떼같이
몰려 들고 있어!"
코르베트는 U자로 급커브를 틀더니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갔다. 보란은 한손으로는 운전대를
거머쥐고 , 다른 한손으로는 무전기를 조종하고 있었다.
"북서쪽 구석 담장 밑으로 가! 거기 몸을 깔고 낮게 엎드리고 있어 . 곧 가겠다!"
"알았어."
"침착해! 침착하라고! 차퍼!"
칼 라이온스는 거대한 불꽃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볼수 있었다.
잇달은 사이렌 소리와 중장비로 무잔된 소방 트럭이 밤의 도로를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은 마치 영와 세트장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 그의 운전사는
액셀러레이터의 페달을 힘껏 밟고 저장 창고로 향하는 모퉁이길로 쏜살같이 내달아 갔다.
그때 무전기가 빽빽 거리며 브래독의 흥분된 음성이 그의 귀를 파고 들어왔다.
"<불치의 죄인> 단위 수사대 1,3,5,7 은 들으라. <불치의 죄인> 비상이다. 지급이다.멀찍이
떨어져 대기하며 견제하라!"
"맙소사 . 그놈들은 할리우드에서처럼 공격을 해오는구먼!"
에버스 경사는 라이온스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의 발은 액셀러레이터 위에 얹힌 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잊어버려! 여긴 현장이야!"
라이온스는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늘어서 있는 순찰차의 긴 행렬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흰 헬멧과 빨간 진입용화기를 휴대하고 정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창고 구내에서 신중한
태도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소방 대장이 라이온스의 차 옆으로 총알같이 뛰쳐 나가
진입로를 정리하고 있었다. 소방수들은 호스와 다른 소방 장비들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엄청난 불기둥속으로 물을 뿜어대고 있었다. 브래독의 음성이 무전기 사이로 다시
울려 나왔다.
"2번 지역 . 완전 봉쇄하라! 킹 5번과 킹 9번사이도 차단하라! 폐쇄하고, 감시하라! 3번
단위대 보고하라!"
에버스는 라이온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고 않 하실 겁니까? "
하고 그는 급히 재촉했다. 경위는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그러나 그는 문쪽으로 다시
되돌아와 고개를 디밀고 말했다.
"자네가 보고해 . 보고하고 싶거든 말이야 . 주임한테 말해. 나는 현장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저라도 보고하는게 낫지요?"
그는 마이클르 향햐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라이온스는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수라장
속으로 재빨리 사라지고 말았다.
조지 지트카는 어깨에 캔버스 가방을 둘러메고 좁은 뒷골목을 맹렬히 달리고 있었다. 데드
아이스 워싱턴이 그의 뒤를 바짝 뒤따르고 있었다. 어깨에는 자동 화기를 둘러 멨고 그의
커다란 손에는 작은 가방이 매달려 흔들리고있었다. 그는 힘도 들이지 않고 그 긴다리로
성큼성큼 앞으로 내딛어 갔다. 그들은 주차장 시설이 있는 텅 빈 공간을 가로질러 바인
거리를 날 듯이 빠르게 지나갔다. 한 대의 포드 세단이 천천히 모퉁이에 멈춰서는 것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오자 그들은 더욱 속력을 내서 달렸다. 차 있는 곳에 이르자 그들은
들고 있던 장비와 화기. 가방등을 창문으로 던져 넣었다. 문이 열리고 지티카와 워싱턴은
훌쩍 차안으로 몸을 날렸다. 차는 즉시 그 자리를 떠났다. 운전대 앞에 앉아 있던 해링텅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 다 무사한 거야?"
워싱턴은 낄낄 거리며 대답했다.
"바로 네 녀석은 놀라서 뒤집어지려고 하더군 . 그놈은 우리가 돈을 가져 갔다고 소릴
지르고 있어. 우리도 인정했지."
지트카는 흥분하여 헐떨거리고 있었다.
"어떤 멋진 금발머리와 놀아나고 있는걸 붙잡았지."
"그래에?"
하고 해링턴은 놀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나 즉시 그는 도로쪽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는 길옆으로 차를 붙였다가 네거리로 나가 할리우드 고속도로의 진입로를 향해 그대로
달렸다.
"젠장! 내가 여쩌다 그 재미를 몽땅 놓쳐 버리게 됐을까?"
그는 불평했다.
"빌어먹을 ! 재미는 그놈 혼자 보고 있었어!"
워싱턴이 대꾸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우리의 출현을 반가워하는 눈치였다고. 그녀석이 아마 자기들의 행위를
녹음하자고 보채고 있었던 모양이지? 그들의 얘기를 내가 잠깐 들었거든."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 한 대가 그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광폭하게 스쳐 지나갔다.
"어디로들 가는지 모르겠군?"
해링턴은 유쾌하다는 듯 키들거렸다.
"저놈은 틀림없이 레코드 스튜디오로 달려 가고 있을 거야."
지트카가 말했다.
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흐뭇한 표정이 되었다.
"나한테는 그 놈의 공장이 그대로 지옥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소리갗니 들리더구먼 . 나는
누가 그런 짓을 하고 싶어했는지 모르겠어."
포드 세단은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언덕으로 올라서서 질주하는 차량의 홍수속으로 미려
들어갔다. 해링턴은 잠시 뻣뻣해져서 그들 곁을 금방 로켓처럼 달려가 버린 차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저기 블러드 브라도가 가잖아! 우리의 시간 맞추기가 완벽하군!"
해링턴의 포드는 차량들의 홍수 속으로 섞여 들었다.
"대장은 어떻게 그런 공격 방법을 생각해 냈을까?"
"자네는 그 사람에 대해서 눈꼽만큼도 모르고 있어. 그의 공격에 대해선 당할 자가 없다고."
워싱턴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땀이 칼 라이온스의 두 팔뚝을 따라 흐르더니 그의 손가락 끝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는
권총의 손잡이를 꽉 움켜 잡았다. 그는 조금 전에 자신이 이 뜰의 구석으로 들어선 것이
맹렬한 열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만 어리석은 경찰관의 본능 때문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활활 타오르고 있는 구석 쪽의 울타리가 갑자기 그에게 그의 운명이 거기에
있음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어떤 형태의 것이든 상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점점 자신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다. 울타리 근처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잔뜩 긴장한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드디어는 이를 악물고 경기관총을 든
사내를 찾아 냈다. 그는 군용 작업복과 검은 베레모를 쓰고 있었으며 트랜지스터 소자의
송수신 겸용 무전기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라이온스가
나타나자 이를 악다문 얼굴로 웃어 보였다. 라이온스의 눈에 사내의 무기가 뚜렷하게
들어왔다. 자동 기관총이었다.
"버려!"
라이온스가 소리쳤다.
"허어. 그러지!"
하고 그 사내는 말했다. 그는 아직도 이를 악다문 채 웃고 있었다. 100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로부터 들려오던 소음과 화염에 싸인 아수라장이 갑자기 드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춤추듯 일렁이며 주위를 태우고 있는 불길은 이 순간의 기묘함을 더 짙게 채색하고
있었다.
"여기는 베트남이 아니야. 보란!"
라이온스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 때문에 가볍게 떨리고 있어TEk.
"나는 경찰이야 . 무기를 버려라."
"난 보란이 아니다. 마음대로 해라 .쏘든 말든 ! 그러나 너는 나보다 먼저 지옥을 방문하게
될 테니까."
라이온스는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껴야 했다. 또 다른 목소리가 그들의
대화에서 끼여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더할수 없이 침착하고 유유자적한 목소리였다.
"일어서라 차퍼. 그만 떠나자."
키가 큰 한 사나이가 쇠사슬로 얽힌 담장 밖에 우뚝 서 있었다 . 라이온스는 이제야 자신의
주의 력을 몽땅 빼앗아 버렸던 그 불길의 정체가 이해 되었다. 그 담벼락 중간 지점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로 반 쯤 가려져 있었다. 그 연기는 기괴한 모습으로
뒤틀리며 하늘로 뻗쳐 올랐다. 쇠사슬은 보기 흉하게 넘어진 울타리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들은 울타리를 폭파했던 것이었다.
냉정한 목소리의 그 키가 큰 사나이는 군용 45구경을 들고 있었다. 그는 그 총구 끝으로
이를 악다문 사나이를 가리켰다.
"대장, 나는 꽁무니를 빼는 법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
사나이는 불평을 토했다.
"죽거나 살거나 , 둘중에 하나야 ! 차퍼."
침착한 목소리가 충고했다.
라이온스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키가 큰 사나이가 그가 해야 할 일을 가로 채어 하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 아무도 달아날 수는 없다. "
"어서 일어나라. 차퍼."
키 큰 사나이는 라이온스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러나 명령받은 그
사나이는 여전히 킬킬거렸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가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글이글 타고 있는 눈을 들어 라이온스를 쏘아보고
있었다. 라이온스는 당혹감을 느꼈다. 그의 두 귀가 멍멍해지고 있었다. 경찰용 특수
38구경은 라이온스 자신의 뜻으로서가 아니라, 총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손에 불쑥 나타나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도 그는 방아쇠 위에 걸린 자신의 손가락 힘이 차츰 강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사나이는 천천히 한 걸음, 또 한 걸음 뒷걸음 질 치기 시작 했다. 그는
울퉁불퉁한 땅 위를 주의 깊게 골라 딛으며 발을 옮겼다. 라이온스는 키 큰 사나이에게
눈의 초점을 맞췄다.
"네가 보란이로군!"
그 사나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하고는 싸우고 싶지 않다. 경위!"
"언제부터냐?"
라이온스가 물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마저도 들을 수 없을 만큼 흥분해 있었다. 보란은
대꾸하지 않았다. 보란은 이제 천천히 사나이를 따라 걸음을 옮긷고 있었다. 그는
라이온스와 느리게 뒷걸음질하고 있는 사나이 사이로 조금씩 다가갔다.
"객기 부리지 마!"
그는 짤막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의 눈은 타오르고 있는 저장 창고로 옮겨졌다. 느리게
걷던 사나이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라이온스는 왜 자신이 거기에 서 있는 것인지 조차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보란의 45구경은 천천히 총구가 내려지더니 , 어느 사이엔가 보이지
않았다.
"자 , 이제 나는 가겠다."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라이온스는 키 큰 사나이를 향해 권총을 들어올려 사격 자세를
취했다.
"너를 체포한다. 보란!"
"나는 가겠다."
하고 보란은 반복했다. 그는 침착하게 한 걸음 떼어 놓았다. 이윽고 소리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라이온스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보란이 서 있던 자리를 응시하고 잇었다.
그는 리볼버를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 화가 난 듯이 그것을 케이스에 쑤셔 넣었다.
달려오는 발소리들이 그의 등뒤오부터 가까둬지고 있었다. 잠시후 두 명의 정복
경찰관이그가 서 있는 주변으로 달려 왔다.
"폭발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지점일 거야!"
한 정복 경관이 말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않아서 넘어자니 담장의 일부분을 손으로
더듬거렸다. 잠깐 뒤어 그는 머뭇거리며 손을 거둬 들였다.
"아직도 뜨거운데 . 뭐 보신 것있습니까? 경위님?"
"틀림없이 시한 폭탄이었을 게다. 그 우라질 놈의 것이 내 눈앞에서 터졌어."
라이온스는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셨습니까.경위님?"
"못 보았어!"
라이온스는 담장 너머의 어둠 속을 응시한 채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는 소원대로 그
영리한 불한당과 얼굴을 맞대고 만났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자는 그를 무시하며 그냥 제
발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
그는 조용히 다짐하듯 말했다.
7 새로운 전술
새벽 3시에서 채 몇 분이 못 미치는 시각이었다. 제노 봐로네는 상황으로 보아 이제 잠을
자기는 이미 글렀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의 10분 동안을 그의 사치스러운 사무실 안에서
오락가락 서성거렸다. 경찰관들이 조사를 끝내고 돌아간 뒤에도 그는 계속 나름대로 수사를
진행시키느라고 주변을 헤맸다. 그의 목구멍 속에는 거대한 분노의 덩어리가 이글거리고
있어서 숨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그는 그 덩어리를 자신의 목구멍에 채워 놓은, 그
미치광이 놈의 목구멍 속에 도로 그것을 처넣어 주기 전에는 모든 것을 참아 내리라고
다짐했다. 별안간 그는 사무실 한가운데 우뚝 멈춰섰다. 그러고는 처음으로 가죽을 입힌
의자에 털썩 기대앉았다.
"그 여우 같은 놈들이 도대체 어떻게 나를 알아냈을까?"
그는 회전의자를 돌려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던 한 사내의 엉덩이를 집게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자네가 찾아내! 그 문제에 관한 한 자네가 모든 책임을 져야해. 알겠어?"
그 사내는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담배를 피워 물더니 천장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어 올렸다.
"재 잘못을 자꾸만 상기시킬 건 없어. 봐로네! 너무 소란 피울 것도 없고....... 머잖아 놈들을
잡아내 얼음통 속에 쑤셔 박아 놓을 테니까."
그는 가볍게 받아넘겼다.
"머잖아? 지금 당장이 아니면 안 돼! 그 자식들이 2만 달러를 훔쳐 달아났단 말이야!
그것도 빳빳한 현찰로만 2만 달러라고! 그건 내 돈이 아니고 우리 가문의 돈이야. 얘기하지
마! 그놈들이 아래층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빌어먹을! 보험회사가 이번 사고에 대한
변상이나 해줄지 모르겠군. 그놈들은 아마 이 사건을 크게 떠벌리고 다닐 게 틀림없어. 아,
나는 끝장난 거야. 이놈의 것들을 모두 원상 복구시키지 못한다면 나는 조직에서 쫓겨나고
말 거야!"
봐로네는 으르릉하였다. 다른 한 사내는 여전히 무관심한 태도였다. 그는 팔을 뻗어 담배를
눌러 껐다.
"자네의 동업자 스트레치오가 이번 손실을 어떤 식으로 받아 들이게 될지 궁금하군.
노발대발하겠지?"
"스트레치오가? 트리 해변에는 단돈 5센트도 그의 돈이 투자돼 있지 않아. 모두 조직의
돈이야! 1센트도 그의 돈은 없어. 그가 비명을 지를 이유가 어디 있어? 디스크들은 모두 내
거야. 그 사람 게 아니야!"
그 사내는 마루 위에 버티고 섰다가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호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네는 욕심이 많더군!"
"무슨 욕심이 많아?"
"그래. 우리는 항상 자네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도록 주의해 왔어. 자넨 우리의 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아. 검찰 총장의 <요주의 인물>명단에도 없어.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신은
자네의 이름을 보란의 명단에 올리게 되었던 거야. 그러니까 이제 자네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 속에, 모든 사람들의 리스트에 올라 있는 셈이 된거지."
"개자식들!"
"그 생각은 아직 못 해봤겠지?"
"넌 네 할 일이나 잘 해! 알아들었어? 우리가 한 달에 2000달러씩이나 주는 게 괜히......"
"집어 치워!"
하고 그 사내는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내 임무가 무엇이든 그 입으로 말하지 말란 말이야. 제노. 내 임무는 내가 만드는 거야. 또,
나한테 자네가 뭘 해주었다고도 결코 얘기하지 마. 그리고...미친 짓 하지 말란 말야. 자,
이제 우리는 그 녀석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어. 그놈이 어떤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또 주로 이용하는 차들이 무엇인지도 알았단 말이야. 그러니까 머지않아 그 보란이라는
녀석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오게 될 거야. 그때까지 잠자코 기다려!"
"가문에 들러 봐야겠어."
"도대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야! 그놈들이 왜 자네를 살려 줬는지 생각해 봤나, 제노?
그놈들은 자네가 그렇게 해주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단 말야."
"경찰 녀석들, 그놈들 이번엔 모두 꽤나 한다는 놈들이라면서, 응? 그들이 이 도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면서?"
봐로네는 갑자기 신경질적인 폭소를 터뜨렸다. 그는 선반에서 술병을 꺼내 위스키와 물을
아무렇게나 뒤섞은 다음 그것을 반쯤 삼켰다. 다른 사내는 화가 난 얼굴로 봐로네를
노려보고 있었다. 봐로네는 손등으로 입술 주위를 훔쳤다.
"바로 그건 내가 에밀리오에게 얘기했던 그대로야. 그런데 그 불쌍한 에밀리오는 지금
어떻게 됐나, 응? 경찰 녀석들은 모두 썩었어. 그걸 알아? 그놈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난 진짜 솜씨 있는 대원들을 투입할 계획이야. 가만히 앉아서 그 녀석이 신나게 털고
죽이고, 내 엉덩이를 걷어차고, 내 사업체를 깨부수고, 내 재산을 불태우는 걸 두고볼 수는
없어. 그럴 수는 없다고!"
"자네는 지금 에밀리오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려 하고 있어. 그 경악스러운 실수를 말이야!
자넨 그 미치광이의 계략에 휘말리고 있는 거야"
"아니, 아니지. 천만에! 그의 계략에 따라서가 아니야, 찰리. 우리는 같은 계산을 따라서
싸우는 거지. 들어봐. 내가 그런 곤경을 훨씬 많이 경험한 사람이라는 게 단 하나 다른 점일
뿐이지. 또 더 솜씨 있는 부하들을 가졌다는 것도."
"솜씨 있는 부하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제노? 이제보니 자네는 어렸을 때보다 조금도
나아진 게 없군, 그래?"
"여기서 꺼져, 이 자식아!"
잔을 쥔 봐로네의 손에 불끈 힘이 가해졌다.
"그게 진심인가?"
"물론!"
"좋아 기꺼이 그렇게 해주지!"
사내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찰리 리케트-24시간 근무하는 그 사내는 사실은
마피아의 단원이었다-는 조용히 문으로 걸어가서 밖으로 나갔다.
"이봐, 이제 어떤 R과R을 위한 준비가 되었어."
안드로메다는 카우치(잠자리로 쓰이기도 하는 소파)위에 엎드리며 말했다.
"어느 날 그는 부자가 될 것이고, 다음에는 망하겠지?"
폰테넬리는 그렇게 말하며 블랭카날레스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런데.... 아, 정말 피곤하군."
안드로메다는 둔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블랭카날레스는 폰테넬리의 상처 입은 어깨에
근심스럽게 화상 연고제를 발라 주고 있었다.
"어깨에까지 털이 난 사람은 드물지. 그다지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구먼, 차퍼."
폰테넬리는 그저 조금 웃었다.
"이런 우라질, 벌써 3시야. 이제 눈 좀 붙이기로 하지, 모두."
안드로메다가 투덜거렸다.
"우리는 그들을 공격하고, 또 공격하고, 쉴 새 없이 공격해야해! 안드로메다가 그만 자자고
애원할 때까지."
폰테넬리는 보란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선언했다.
"닥쳐, 이 친구야!"
안드로메다가 외쳤다. 그제서야 보란은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어깨 좀 살펴봤나?"
상처는 깊지 않은데 고통이 심하겠어."
블랭카날레스는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렇지만 그의 정신을 잃게 만들 만큼의 고통은 아니야."
안드로메다가 덧붙였다.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다가 곧 다시 주저앉았다. 그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보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란은 앞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가서 그 위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쟁반을 끌어당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우린 운이 좋았어!"
폰테넬리는 그의 경직된 어깨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보란에게 은근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대장이 오늘 밤 내 목숨을 구해 줬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커다란 안락 의자에 파묻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낄낄거리며 대꾸했다.
"자기 입으로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정말 운이 좋았던 셈이군."
"그렇다니까!"
폰테넬리는 워싱턴의 비양거림을 가볍게 일축해 버렸다.
"모두 다 들어보게. 그는 한 발을 지옥에다 내딛고 있는 나를 끌어내 줬어. 그는 아주
당당했고 자유롭게 행동했어. 그는 나를 구출해 내기 위해서 돌아왔던 거였어. 난 그 일을
결코 잊지 않겠어. 대장."
보란은 샌드위치를 한 입 가득 우물거리다가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너도 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올 것이라고 믿고 있어, 차퍼."
폰테넬리의 청동빛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나의 지난 실수를 잊어 주게. 맹세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거야."
보란은 그에게 윙크를 보내고는 시선을 갯지트 슈바르츠에게로 돌렸다.
"봐로네의 사무실을 철저하게 손봐 두었나?"
슈바르츠는 침착하게 보란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 혼란스러운 집은 볼 만했지. 나는 그렇게 호화로운 방은 처음 봤어. 그 협잡꾼
녀석 아주 대단하게 한몫 잡은 모양이었어. 그건 그렇고 사람의 목소리에 감응되어 작동이
시작되는 녹음기에 12시간짜리 테이프를 넣어 그 집 천장에다 감춰 두고 왔지. 블러드
브라더가 많이 도와 줬어. 하루에 두 번씩은 테이프를 바꿔 넣기 위해 그 집에 숨어
들어가야 하지만 그것쯤이야 감수해야지. 그렇게 해서 그 사무실에 대한 우리의 감시는
스물네 시간 동안 계속되는 셈이지."
"잘했어!"
마지막 한 조각의 샌드위치를 커피와 함께 삼킨 보란은 손목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오늘 아침 10시 전에 그 첫 테이프를 받아 보고 싶다. 블러드 브라더를 데리고 가. 아, 또
있다. 지오르다노의 집에 설치해 놓은 장비들은 누군가 발견해 내기 전에 일찌감치 없애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가 먼저 공격하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우리의 머리카락도
건드릴 수 없게 해야 하니까."
"그건 벌써 내가 제거했어."
보란의 눈썹이 치켜 올려졌다.
"그런 일들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냐. 하지만 죽은 녀석 옆에다가 그걸 내버려두기는
싫었어."
"어이구, 머리야!"
하고 안드로메다는 말했다.
"나는 네가 하는 일이 님프들의 젖가슴이나 주무르는 일일 줄은 까맣게 몰랐는데?"
슈바르츠는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난 그걸 즐기고 있었어."
보란은 그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 된 채 폰테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경찰 말인데..."
"무슨 경찰?"
슈바르츠가 물었다.
"차퍼와 나는 오늘 밤, 트리 해변에서 사복 경찰관을 만났어."
보란이 설명했다.
"그래. 우리도 그에 대해 들은 게 있어."
안드로메다가 얼른 대꾸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군. 생각해 볼 만한 일이야. 은근히 두려워 지는데? 오늘 오후에
고속도로에서 우리와 맞닥뜨린 경찰관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 아무도 없나?"
사내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얼마 동안의 침묵 끝에 보란이
말했다.
"내가 알아. 그들의 차가 그 고속도로에서 몇 분 동안 나와 나란히 달리고 있었어. 뒷거울을
통해 나는 그들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어."
실내는 더욱 조용해졌다. 보란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지트카가 물었다.
"그래서?"
"그런데 트리 해변에서 차퍼와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던 그자가 바로 순찰차 속의 그
경찰이었어."
"그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지트카는 궁금했다.
"자, 잘 들어 봐. 경찰들이란 군대와 같아. 도그 회사 주위를 순찰하는 경관이 찰리 회사의
총격전에 모습을 나타낼 수는 없다는 거야. 순찰 경관도 지역별로 배당되어 있기 때문이지.
오후 3시에 지오르다노의 차를 미행하고 있던 경관이 같은 날 자정에 버뱅크의 외곽에서 뚝
떨어진 지역으로 수사를 위해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야. 그들이 그런 식의
근무를 항상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 녀석이 아주 똑똑한 녀석이 아닌 한은...."
지트카는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리고 경찰의 반격도 지나치게 재빨랐다. 경찰들은 일이 진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으니까."
"마치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태가 그들을 부른 것처럼 말이야."
블랭카날레스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란은 그에게 희미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그 경관은 나를 보란이라고 불렀어!"
"빌어먹을! 그는 나에게도 보란이라고 부르더라니까!"
콘테넬리도 한마디했다.
"이상한 것은 그가 나를 알아보았다는 것이 아니야.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야.
거기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리라고 예상을 하고 달려왔던 거야."
"대장은 명사가 됐군, 그래."
해링턴이 키들거리며 말했다.
"그것보다도 사태는 더욱 심각해."
보란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경찰에서 특수 기동대 같은 종류의 단위 수사대를 별도로 설치된 것 같아. 바로 우리를
잡아들이기 위해 조직된 특별 수사대 말이야."
"엿먹으라고 그래! 그놈들은 아직 우리들에게 실력을 조금도 발휘하지 못했어."
폰테넬리는 일소에 붙였다.
"그렇게 쉽게 생각해 버릴 일이 아니다.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해. 만일 그들이 이미 모종의
조치를 취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물론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 돼. 나도 그게 싫지만 어쩔 수 없어. 지금까지 우리의 성공은 서로 보조를 정확히
맞추어 행동했기에 가능했어. 우리에게는 우리들대로의 질서가 있어. 우리가 살인이나
폭행을 일삼는 테러단이 아님은 시민들도 모두 다 잘 알고 있어. 그러나 이제 경찰측에서
우리 특공대를 마치 범죄 단체인 양 취급하려 들고 있으니 우리도 그에 따른 새로운 각오가
필요한 거야."
안드로메다가 끼여 들었다.
"대장 말이 옳아! 우리에게도 정보원이 필요해. 누구, 우리측 정보 장교가 될 사람 없어?"
그의 시선은 똑바로 갯지트 슈바르츠에게 날아갔다. 슈바르츠는 그저 웃으며 양 어깨를
움찔거릴 뿐이었다. 잠깐 동안의 정적을 마침내 루데크가 깼다.
"지금까지 내가 안 해본 일이라곤 없어. 내가 한번 경찰 깊숙이 잠입해 보겠네."
보란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문제는 우리 모두가 좀더 신중히 검토해 본 뒤에 결정하도록 하자. 죽음이 뒤따르는
임무가 될 수도 있으니까."
"데드 아이스를 몽고메리에게로 보내는 것과 똑같은데? K 삼각 지역에 침투하라고 말야."
지트카가 껄껄거렸다. 데드 아이스도 따라웃었다.
"갯지트와 내가 방법을 궁리해 낼 수 있을 거야."
루데크는 완강하게 고집을 부렸다. 시선은 보란에게 두었으나 그는 슈바르츠에게 동의를
구하려 하고 있었다.
"너와 내가 적진에 뛰어들면 무슨 묘안이 떠오를 것 같지 않아?"
안드로메다가 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노래를 응얼거리기 시작했다.
"사냥개에게 쫓기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가진 것 모두를 다 줘버리리라. 푸른
죄수복을 걸치기 위하여...."
"그 지저분한 노래 좀 제발 좀 그만둬!"
폰테넬 리가 벌컥 화를 냈다. 보란은 루데크가 쏘아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 역시
루데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갯지트?"
슈바르츠 역시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몇 가지 방법이 없지는 않아. 우리가 그들의 교신 내용을 알아내는 거지. 그게 가장
안전하고 손쉬운 방법일 것 같아. 그런데...."
"그런데?"
보란이 재촉했다.
"그 일을 위해서는 그들의 무전 주파수를 포착할 수 있는 모니터가 꼭 필요해. 그러니까
그들 내부로 누군가가 잠입해 들러가야 해."
"좋아! 고려해 보기로 하자. 우리는 그들의 무전 주파수를 알아낸다. 우선은 손쉬운
목표부터 손을 쓰도록 하는 거야. 본론으로 들어가서 주파수를 잡는 정도라면 아마추어
무선 기사에게도 맡길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보통이 넘는 특수 무선 송신 설비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우리는 그것을 잡아내야만 한다. 계속해, 갯지트."
보란이 말했다.
"좋아. 그것은 별게 아니야. 그들이 무전기에다 대고 자기들의 비밀을 떠벌릴 리가 없거든.
내기를 해도 좋아.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전화 통화 내용, 그들의 공식적 회합, 수사회의
모두를 우리는 도청해야 할 필요가 있어. 즉, 우리가 그 안으로 잠입해 들어가거나 또는...."
"또는 뭐야?"
"만일 그 특수 수사대의..... 뭐 그들도 그건 꼭 필요하니까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
우두머리 말야. 모든 일에 책임져야 할 직책에 있는 사람. 우리는 그가 누구이며, 그의 총
지휘 본부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해."
로스앤젤레스 경찰서는 치안국 안에 있지 않아?"
해링턴이 참견했다.
"그 건물을 얘기하는 게 아냐. 나는 특정한 방이나 사무실을 말하는 거야."
슈바르츠는 짜증을 냈다.
"진정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경찰서 건물 안으로 직접 뛰어들어가서 도청 장치를
매달아 놓고 오겠다니."
폰테넬리는 의아해서 물었다.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을지도 몰라. 지향성 마이크를 사용할 수만 있게 된다면."
슈바르츠가 대답했다. 보란과 지트카는 의미심장한 눈길을 교환했다. 슈바르츠가 그들에게
설명했다.
"나는 4분의 1마일 거리에서 한번 그런 지향성 마이크를 사용해 본 적이 있어. 물론 조용한
시골이긴 했지만.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에서는 소음 공해가 훨씬 더 심하지. 음파의
확산 정도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너무 심한 확산 현상만 일어나지 않는 다면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 내에서는 어떤 소리라도 다 들을 수는 있어."
보란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한번 해봐, 갯지트.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행동을 개시해. 그리고 블러드 브라더, 그를
도와줘. 궁리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생각해 보도록 해. 그렇지만 행동으로 들어가기 전에
내게 다시 한 번 조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잊지 마. 우리는 이 계획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겠다. 또 우리의 정보 체제가 기능을 발휘할 때까지는 더 이상의 싸움은 없을
것이다. 쉬는 동안 봐로네의 사무실에 설치된 녹음 테이프들을 가져와서 철저히 분석,
보고하고, 오늘의 공격에 대한 그의 반응을 신속히 알려 주게. 너의 머리에 달려 있다.
블러드 브라더. 이 게임을 우리의 승리로 장식하기 위해서 말이야. 그러나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 계획은 깨끗이 포기하기로 한다. 어때?"
루데크가 미소를 띠며 답했다.
"좋아!"
"내가 마이크를 만들겠어."
슈바르츠가 덧붙였다.
"필요한 재료는 갖고 있나?"
"대충 있어. 새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전자 제품 상점에서 사면 돼."
보란은 블랭카날레스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우리 차들은 이제 이용 가치가 없어졌어. 그것들은 폐차 처분시켜 버리고 다른 것들을 좀
구해 와. 내 코르베트도 끌고 가도록. 포쉐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는 상쾌한 기분이 되어 말했다.
"종마까지 바꾸자는 것은 아닐 테지. 설마?"
블랭카날레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물론 아니야. 그렇지만 페인팅을 다시 한다거나 형태를 좀 바꾼다거나 해야 할거야. 면허증
때문에 문제는 없을까?"
"그건 걱정 마. 이 친구들은 그저 자네가 새로운 종마를 마련할까 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거야."
보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종마도 조만 간에 완전히 내버려야 할 거야. 한 두 번 더 일이 진행되면 경찰들이 그걸
찾기 위해 혈안이 됐을 테니까. 그 때에는 그 거대한 임산부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아.
새로운 전술을 생각하고 있어."
블랭카날레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눈에 뭐가 끼었나봐."
그 표정은 다른 9명의 사내들에게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말았다. 안드로메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한 손을 블랭카날레스의 어깨에 올려놓고 커다랗게 소리쳤다.
"아이구. 머리야, 친구여! 나는 그대의 일을 대신 맡지는 않겠노라."
블랭카날레스가 무사태평하게 대꾸했다.
"어련하려고! 나는 님프의 젖꼭지 사이나 헤매고 다니는 사람이니까."
"전에는 그랬지. 그러나 이제는 유치장의 취조실 안이나 헤메고 다녀야 할거야."
그들은 모두 유쾌하게 웃어 젖혔다. 실내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려 안드로메다가 덧붙였다.
"나는 그 R과 R을 위한 준비가 다 되어 있다네"
보란은 그의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는 4시가 되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벌써 4시로군. 이제는 좀 쉬어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모두 가서 눈 좀 붙이도록. 기상
시간은 8시!"
"4시간이라니! 이러다간 쓰러지고 말겠어!"
안드로메다가 아우성을 쳐댔다.
"요 며칠 내로 그 잘난 시인 흉내를 내는 네놈의 엉덩이 사이를 진흙으로 틀어막아 버리고
말겠다."
폰테넬리가 으르릉거렸다.
"힘이나 있어?"
안드로메다는 폰테넬리를 향해 장난스럽게 주먹을 날렸다. 폰테넬리가 재빨리 그것을 피해
버리자 그는 무용수처럼 솟아오르더니 그림자와 복싱을 하는 흉내를 내며 온 방안을
돌아다녔다. 그것도 시들해지자 그는 곧 잠자리를 찾아갔다.
보란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다시 이 죽음의 톡공대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9명의 사나이들의 생명을 맡은 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그의 양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가 그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번민에 빠뜨렸다.
보란 자신이 마피아와의 전쟁을 일으켰지만 그에게는 그럴 만한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줄다리기에 그들을 포함시킬 권리가 과연
나에게 있을까?
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보란과 나란히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침실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꺽었다. 그는 보란의 기분을 눈치 챈 것 같았다.
"이 친구들은 단지 달리 갈 데라고는 없기 때문에 여기에 머물러 있는 거라고."
"아마 네 말이 옳겠지"
보란은 중얼거렸다.
"물론이지. 내 말이 옳다니까"
"너는 이미 죽은 몸인가. 데드 아이스?"
보란은 약간 놀라며 자기 옆에 서서 걷고 있는 커다란 검둥이를 바라보았다.
"물론이네. 대장. 나는 죽어서 태어났거든. 그리고 나는 아직도 태어나는 중이란 말이야"
그러나 보란은 그 후 4신간 동안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8. 작은 인디언
"알았어. 보란은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일면의 마피아를 우리에게 보여준 셈이로군."
브래독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세부 계획을 맡은 젊은 형사 칼 라이온스를 바라보며 브래독은 또다시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도대체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그의 목에 훈장이라도 걸어줘야 한다는
건가?"
라이온스는 참담한 기분으로 말했다.
"보란의 행동이 완전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라이온스의 시선은 브래독 주임에게서 리케트 경감에게로 옮겨졌다. 그는 그의 눈빛에서
어떤 위안을 얻으려 했다.
"보란이 경위를 개종시킨 것 같은데 그래?"
경감은 야유조로 입을 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잘 듣게 경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네. 보란과 그의 특공대원들은 이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가 되고 있어. 공연히 낭만적인 생각에 젖지 말게."
"그가 누구에게나 위험한 요소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제까지의
피해자들이란 아무리 잘 봐 줘도 피해를 입는 게 당연한 놈들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만해! 맥 보란으로 인한 이해득실에 대해 대차 대조료를 작성하자는 것은 아니니 그런
이야기는 집어치우게. 자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경위, 지금 즉시 자네를 <불치의 죄인>
팀에서 전임시켜 주겠네!"
브래독은 화난 얼굴로 말했다.
"원하지 않습니다."
라이온스는 잘라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결국 그는 내 손에 잡히고야 말 것입니다. 내기를 걸어도 좋습니다."
"좋아. 걸지! 자네도 끼지 않겠나. 찰리?"
리케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경관으로서의 임무를 다할 뿐이고........"
그는 조금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미래를 예견하는 어떤 예견서 따위도 믿고 싶지 않소. 그러나 주임님, 그 내가라면
당신이 이길 것 같소. 경위, 잘 듣게. 보란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하는 건 위험해. 내 정보에
의하면 보란은 이미 죽은 목숨이야!"
"그게 무슨 소린가, 찰리?"
브래독이 말을 가로막았다.
리케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마피아 보스들이 행동을 시작했다는 거요. 정보원이 그렇게 보고해 왔소."
"무슨 소린지 난 아직도 모르겠는데?"
"마피아들은 보란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거요. 보란의 목에 그들은 10만
달러의 돈을 걸어 놓고는 그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기로 했답니다. 살인 청부 계약이라는 게
뭔지 아십니까?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돈이 10만 달러란 얘깁니다. 보란의 목을 가져오는
자라면 누구든지 상관없다는 거죠. 그러니 많은 총잡이들이 군침을 흘리지 낳겠습니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보란을 처치하겠다는 거지요?"
"요 지금에야 보고하는가?"
브래독이 리케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리케트.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지금 보고하는가? 이것은 전쟁이란 말이야! 갱들끼리 전쟁이
벌어지는거야. 어디서 그 정보를 빼냈나? 왜 빨리 보고하지 않았어?"
리케트는 브래독의 호통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내가 올린 보고서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주인님, 바로 당신 책상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고요!"
주임의 불꽃 튀는 시선이 그의 책상 위로 옮겨갔다.
"여기 있군! 잠깐 기다려 주게."
그는 서류를 들고 읽기 시작했다.
"편하신 대로 하시죠!"
리케트는 싱긋 웃으며 라이온스를 바라보았다.
"나는 당장 보란이 잡힐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러나 만일 72시간내에 그자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땐 나도 자네와 내기를 걸겠네. 어떤가, 경위?"
"저는 제 생사를 걸고 내기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라이온스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나 역시 그렇네!"
리케트도 라이온스의 음성을 흉내내며 말했다.
브래독 주임은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라이온스가 차려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거리가 조용해진 것 같군요. 저는 6시에 다시 순찰을 돌기로 되어 있어 그만 집에 돌아가
좀 쉬어야겠습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브래독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직도 리케트가 제공한 정보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라이온스는 주임을 향해 경례를 붙이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리케트는 서류 뭉치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유망한 형사야. 꽤 쓸만한 경관이 되겠는걸."
브래독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 찰리"
"나도 알고 있소"
"어제 이맘때와 비교해 보란에게 조금도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야."
브래독은 그의 이마를 탁탁 두드리다가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갱들의 전쟁이라..."
"그보다 더 큰일이지요. 제 2의 작은 베트남 사태라고나 할까요?"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해, 두고볼 수만은 없어!"
리케트가 부드럽게 웃으며 반문했다.
"물론이오. 그러나 어떻게 말이죠?"
"총장에게 일단 보고해야겠네."
"무엇을요?"
브래독은 목이 탔다.
"보란과 마피아간의 싸움을 말려야 한다면 어느 한쪽을 먼저 체포하는 게 좋지 않을까?
보란은 당장 어렵고. 그렇지 않은가, 찰리?"
"아니 주임님....."
리케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피아를 체포하겠다는 거요?"
"그래야겠어!"
브래독은 곧 인터폰의 단추를 눌렀다.
"총장 있나 알아보고 총장이 있으면 면회 신청해 줘. <불치의 죄인>사태에 대해 긴급히
의논할 일이 생겼다고 말이야. 가능한 빨리!"
여자의 목소리가 짧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리케트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쓸데없는 짓이오. 주임!"
그는 무언가 생각하다 다시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자들을 체포할 만한 근거가 우리에게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당신도 잘 알잖소? 우리가
철창문을 닫아 걸기도 전에 그들의 변호사가 보석금을 들고 달려올 거요"
"그럼 또 구속하면 돼. 보란이 체포될 때까지. 그들은 철장 속에 있어야 돼! 최소한
그들간의 무장 난동행위는 막아야 할 테니까!"
리케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렇게 되면 보란은 더욱 날뛰어 이 도시를 더 더럽힐 텐데요?'
"참 못 해먹을 노릇이군! 찰리. 내가 보란을 사모하는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는 줄 아나?
천만에! 또 내가 마피아의 보호자요, 대부라는 환상이라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결국
보란은 그들 중 몇을 해치울 걸세. 그러니 지금 형편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이거야. 그래도 아직 모르겠나?"
"내 생각에는 바로 큰 실수가 될 것 같은데요, 주임!"
리케트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브래독의 날카로운 시선이 리케트를 향했다. 상대의 속셈까지도 모두 포착해 내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리케트 경감은 이미 방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리케트를 스쳐 들어오는 삶이 있었다. 피부가 검은 그 남자는 광대뼈가 뚜렷이 솟은
얼굴에 목이 없는 흰 셔츠와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누구요?"
"당신이 브래독 주임이십니까?"
그 남자가 물었다.
브래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층에서 저를 여기로 보냈습니다요. 저는 어젯밤에 할리우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래독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중앙 홀 바로 밑입니다. 선생. 왼편으로 첫 번째 문입니다."
"뭐라고요?"
"트리 해변 스튜디오에서 발생했던 사건에 대한 증언을 하시려는 거 아닙니까?"
"아, 그렇습니다."
"홀 바로 밑에 있는 방으로 가시오. 당신의 증언은 거기 있는 사람들이 잘 들어줄 겁니다."
"그래요?"
그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제 얘기를 알아듣지 못하겠소?"
브래독은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지금 그 방을 지나서 왔습니다. 무전기들이 있고, 여기 저기 기계들이 많더군요. 나는
내가 본 것을...."
"바로 그곳이오. 곧장 들어가서 당신이 여기 온 이유를 말하면 됩니다."
그 남자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그것도 모르고...."
"안녕히 가십시오."
주임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 남자는 곧 홀을 내려갔다. 리케트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주임은 아무에게나 선생이라고 합니까?"
"그렇다네."
주임은 긴 한숨을 들이쉬었다.
"시민은 어디까지나 시민이야. 어떤 계층이냐를 막론하고 그들은 이 건물에서 선생이라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네. 그들이 감금되기 전까지는. 또 그 사내는 불청객이 아닌 것
같았어."
리케트가 볼멘 소리로 말했다.
"이런 사건 속에서 주임이 얼마 동안이나 그 의연한 봉사 태도를 견지할지 한번
두고보겠소."
탁상용 재떨이에 담배를 눌러 끄고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만약 아까 그 사내가 보란이 보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직접 가서 물어보게."
브래독은 웃으며 말했다.
"주임이나 가서 물어 보쇼. 당신이 지휘자 아뇨?"
리케트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브래독 주임에게 그는
오늘 너무 지나치게 대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마피아의 비밀 간부인 동시에 경찰관인 자기의 입장으로선 마피아의 검거를 주장하는
주임에게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홀 아래에서는 광대뼈가 불거진 검은 피부의 사나이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었다. 그의 사건 현장 목격담은 한 장의 타이프라이트 용지에 가득 채워졌다.
그러나 그러한 것에 그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머리 속에 넣어
두기에 바빴다.
통제실의 장비들은 모조리 그의 머리 속에 설계 도면화해 버렸다.
보란의 충성스러운 사내는, 자기들을 체포하기 위해 특별히 설치된 <불치의 죄인> 수사
본부에서 성실히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9. 가면
"지향성 마이크의 설치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냐"
슈바르츠는 우울하게 내뱉었다.
"그들의 보안상황은 구멍투성이였어."
루데크가 보란에게 보고했다.
그는 보란의 무릎 위의 작은 노트를 던졌다.
"그들은 이번 작전을 <불치의 죄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어. 세부 계획을 맡은
지휘자와 그들의 담당 지역은 그 노트에 적혀있는 그대로야. 통제실에 있는 게시판에
핀으로 꽂혀 있는 근무 담당표를 보고 베껴 왔어."
이어 그는 호주머니에서 한 뭉치의 카드를 꺼내더니 보란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이게 뭔지 알겠어? 전화 번호와 부전 주파수가 적힌 카드야. 호출 부호까지 몽땅!"
그것 역시 보란의 무릎 위로 던져졌다. 보란에게서 만족스런 미소가 피어 올랐다.
"블러드 브라더, 넌 정말 대단해. 명인이야!"
"기분 나쁘지 않은데..... 통제실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어. 나는 그저 걸어 들어가서 집어
왔을 뿐이라고. 브래독이 바로 책임자였는데. 경찰관들로부터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각 층의 사무실 배치도도 그 노트 안에 있어. 그들은 우리를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더라고!"
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미소가 남아 있는 눈으로 카드에 적힌 주파수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이 주파수들을 잡아 낼 수 있겠나, 갯지트?"
"물론이지. 그렇지만 여러 가지 장비가 좀더 필요해. 돈도 좀 있어야 하겠고..... 적어도
2000달러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계획대로 되려면 말야."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아. 마피아의 달러들을 이 이상 더 어떻게 훌륭하게 사용할 수
있겠나? 블랭카날레스에게 필요한 만큼 달라고 해. 또 필요한 건?"
보란은 그렇게 말하며 슈바르츠를 쳐다보았다. 슈바르츠는 더 필요한 게 없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직접 물건들을 사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는 모두를 둘러보았다.
"좋아. 어디서든 조심스럽게 행동하도록! 누구에게도 의심을 불러일으켜선 안 돼. 브라더.
네가 그를 뒤에서 보살펴 주게. SOP(부대 예규를 뜻하는 약자) 알지? 이 순간부터 혼자서
이 기지를 벗어나선 안돼!"
"알았어. 그런데 배가 고픈걸."
루데크가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슈바르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주방으로 가기 위해 그 방을 나섰다.
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슈바르츠는 다시 보란을 향해 돌아섰다.
"내가 찾아온 테이프에서 뭔가 쓸 만한 걸 발견했나?"
"물론!"
하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보란이 말했다.
"차퍼와 건 스모크가 몇 가지 알아볼 일이 있어 나갔어."
그러고 그는 슈바르츠에게 다가가 그의 어께에 팔을 올려 놓고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를 약간 가지고 있었어.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해야 좋을지
몰랐는데......그러나 이제는 루데크가 가져온 정보가 그 사용처를 알려준 셈이 됐네. 그래서
이야긴데 가능한 한 빨리 이 무선장치를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줘."
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돌아와서 몇 마디 덧붙였다.
"또 해줘야 할 게 있어.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으니 차안에서도 쓸 수 있는 도청장비를
설치해 줘. 아마도 우리는 종마를 기동 지휘 본부로 사용하게 될거야.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겠나?"
슈바르츠는 이 키 큰 사나이에게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네. 도청장치를 하루 안에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번 해보기로 하지."
보란이 그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철썩 두드리며 말했다.
"물론 넌 할 수 있어. 자넨 무슨 일이든 해 낼수 있잖아."
슈바르츠는 기분 좋게 주방을 행해 걸어갔다. 보란은 뜰로 나왔다. 데드 아이스 워싱턴도
거기에 나와 있었다. 그는 작업복차림으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밥은 먹었나?"
워싱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스레 말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쯤 요리사가 해주는 음식을 먹어 보게 되나?"
보란은 싱긋 웃었다.
"해야 할 일이 있어. 나처럼 가벼운 차림이면 돼. 10분 후 집 앞에서 만나자."
"그건 좋지만......"
워싱톤은 그러나 싫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좀 한가하게 하면 안 되는건가?"
칼 라이온스는 적당한 품위와 따스함이 배어 있는 그의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라이온스는 옆자리에 쌓아 놓은 식료품 봉투들을 주위 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니가
그에게 사다 달라고 부탁한 목록들과 비교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식료품을 사는 동안에
이발소에 들러서 머리를 손질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텔레비전의 재방송 프로 <램스> 게임에 잠시나마 정신을 빼앗겼던 탓으로
그가 사야 할 식품들 중 몇 가지를 빠뜨린 것도 몰랐다.
그는 저녁식사가 끝나는 대로 즉시 순찰 임무로 되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또한 번
슈퍼마켓을 오락가락 하느라고 그의 귀중한 휴식 시간을 소모해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라이온스는 식료품 봉투들을 안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 집을 향해 걸어갔다. 아들의 세발
자전거가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제니는 열어 젖힌 냉장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텅 빈 냉장고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이런 모습이야말로 라이온스가 가장 좋아하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꾸밈이 없고 있는
그대로 자기를 보여 주는, 더구나 남편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자기
생각에만 열중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남편 앞에서 의도적으로 매혹적인 태도를 취해 보이는 일이란 없었다. 그녀의
매력이 밖으로 드러나는 때란 그녀가 혼자 있을 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녀는
그때에야 남편이 사랑스런 눈빛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두
손을 벌리고 활짝 웃었다.
"당신이 실종되었거나, 무슨 사고가 난 줄 알았어요."
그녀는 그에게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당신이 나가신 지가 벌써 한 시간 반이나 됐잖아요?"
"머리를 깎았어."
그는 아내에게 둘러대고, 싱크대 위에 식료품 봉투를 올려 놓았다.
"뭐 빠뜨린 게 있는 것 같은데요?"
제니는 냉장고 앞에서 말했다.
"내가 분명히 세븐 업 한 병이 필요하다고 했을 텐데......"
"그건 목록에 없었잖아?"
라이온스는 난처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녀는 미소지었다.
"저기 있는 당신 친구한테 그렇게 말씀드리세요. 세븐 업 없이 어떻게 그분에게 술 한
잔인들 대접하겠어요. 안 그래요? 미스터 경위?"
"친구?"
라이온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미스터 맥......뭐라 그러던데......그 사람의 말로는 당신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냉장고 문을 닫고 돌아선 그녀는 남편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세일즈맨이었나? 그 사람들은 문안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거든요. 가서 그 사람에게 말해요. 우리한테는 아무 것도 필요한 게 없다고요. 돈나무를
팔러 왔다면 모르지만요."
라이온스는 재빨리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거실로 들어서는 아치형 복도에서 그는 키가 큰 사내가 등을 돌린 자세로 창가에서 서 잇는
것을 보았다. 그 사내는 유행이 지난 양복을 입고 있었다.
금발의 머리칼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였다. 라이온스의 네 살
먹은 아들 타미는 그 사내와 손을 맞잡고 뒤들에 있는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사내는 라이온스가 다가오자 천천히 돌아섰다.
그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군. 자넨 똑똑한 아들을 두어 좋겠어."
그는 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 귀여운 꼬마에게 진딧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던 참이야. 어떻게 생각하나? 머잖아
누군가가 진딧물 박멸제를 개발해 낼 것 같지 않나?"
라이온스의 귀는 갑자기 멍멍해졌다.
그의 아들은 아직 그 사내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엄마가 주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티미!"
그는 쉰 목소리로 외쳤다.
아이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뭐라고 종알종알 입을 놀렸다. 그러나 곧 행진하듯 걸어 나갔다.
키가 큰 사내는 천천히 라이온스를 향하여 두 팔을 벌려 보였다.
그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손이 둘 다 비었으며 또 위험한 것은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이는 듯한
태도였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 나타난 거야, 보란?"
그는 냉정해지자고 자신을 타이르면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짧은 만남일 뿐이야. 어젯밤과 같은."
"어제 일은 요행이야! 너는 다시는 나로부터 달아날 수 없어."
"그렇게 화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보란은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했다.
"당신 집에서까지 싸울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그리고 그는 시선을 주방 쪽으로 돌리면서 말을 계속했다.
"저곳에서 행복에 겨운 두 사람이 있어. 우리가 그들의 행복을 지켜 주어야 하지 않겠나?"
라이온스는 그의 얼굴에 침이라도 뺕고 싶었다.
"정말 철면피 같은 사람이군 그래! 내 집까지 찾아오다니. 좋아, 보란. 무슨 일인지 한번
들어보기로 하지. 빨리 얘기해 보게."
보란은 탁자 위에 놓인 플라스틱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녹음기를 가져왔어. 할리우드의 봐로네 아파트에서 녹음된거지. 자네에게 그걸 들려주려는
것뿐이야."
"녹음기라고?"
이제까지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라이온스는 어떤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여기에 한 경찰관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어. 물론 그의 이름도 언급되어 있지. 자네가
아는 경관인지 그걸 알고 싶을 뿐이야!"
"무슨 얘긴가?"
"그는 경찰관인 동시에 마피아의 가족이기도 하니까."
잠깐 동안 고요함이 물결쳤다.
"근데 왜 이것을 나에게 가져왔나? 내가 한번 놓쳤다는 이유로 너의 동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왜 가져왔나?"
"경찰관이라면 경찰의 이름을 더럽히는 자의 가면을 벗기는데 주저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은가?"
보란의 시선이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라이온스 경위! 자네를 훌륭한 경찰이라고 믿고 있네."
라이온스의 입술은 격앙된 흥분을 감추기 위한 애처로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좋아, 들어보기로 하겠네. 거기 앉고 싶으면 앉게."
"고마워. 그러나 난 서 있어야 해."
보란은 선 채로 손을 뻗어 녹음기를 꺼내 놓았다.
"난 창문에 이렇게 서 있어야 해. 저 밖에 있는 내 친구의 시야로부터 내가 벗어나면 그의
신경이 곤두설 테니까. 좋은 친구지."
보란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정에 호소하는 듯한 짓은 집어 치워! 보란 , 왜 이 피비린내 나는 놀이를 스스로
시작했나?"
"왜 그렇게 화를 내지? 나는 그저 이런 식으로 남의 집을 방문 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는
것뿐이네."
"그럼 사과를 받아들이기로 하겠네."
보란은 녹음기의 볼륨을 조절하는 스위치를 매만지고 있었다.
"가장 효과적인 부분만을 복사시켰네."
그는 녹음기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가까이 와서 귀를 곤두세우고 들어야 할거야. 갖가지 잡음이 섞여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 작은 녹음기는 뜻밖에도 훌륭한 소리를 쏟아 놓기 시작했다.
<....그 여우같은 놈들이 도대체 어떻게 나를 알아낼 수 있었을까? 정말? 자네가 찾아내! 그
문제에 관한 한 자네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해. 알겠어?>
짧은 침묵 뒤에 조롱하는 듯한 음성이 이어졌다.
<....내 잘못을 자꾸만 상기시킬 건 없어. 봐로네. 너무 소란 피울 것도 없고. 이제 곧 놈들을
잡아서 얼음통 속에 쑤셔 박아 버릴 테니까.>
라이온스의 눈이 뻔쩍였다. 그는 긴장한 듯 바짝 녹음기에 다가앉았다. 숨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그의 온몸은 귀가 뒤는 것 같았다.
녹음기를 계속 들을수록 그의 입술은 증오심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네에게 한 달에 2000달러씩이나 주는 게 괜히 주는지 아나?....>
거기서 녹음기 소리는 멈추었다.
라이온스는 녹음기에서 떨어져 보란의 맞은편 의자에 무너지듯 앉았다.
그는 지금 그가 들은 것들로 어떤 사실을 확인이라도 했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고 또
끄덕였다. 그는 한숨이라도 토하듯 보란에게 말했다.
"내 머리 속이 오물덩어리로 꽉찬 기분이야!"
"이 작자를 아나?"
라이온스는 그렇게 말하는 보란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보란은 조용히 담뱃갑을 꺼내더니 한 개비를 라이온스에게 권했다. 라이온스는 차갑게
거절했다. 그러나 보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천히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찰리 리케트 경감이지?"
"뭐라고? 자네가 어떻게 알았나?"
라이온스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며 다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러나 그는 침착을 되찾았다. 그는 아주 느릿느릿 보란에게 말했다.
"정보를 얻자는 게 아니야, 보란."
그는 바람 빠진 고무 풍선 같은 모습으로 다시 덧붙였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또 나타나게 되면 그때는 정말 용서하지 않겠네. 빨리
나가게!"
"나한테 화풀이할 건 없어."
보란의 침착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녹음 테이프를 들려주었을 뿐이야."
그는 문을 향해 돌아섰다.
"녹음기를 여기에 놔두고 가겠어. 너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해주기 바란다."
"그럴 필요는 없어, 그리고....."
"좋아, 좋아. 저놈의 진딧물 좀 보게! 자네 무슨 조치를 취해 보지 그러나? 그놈들이
잔디밭을 다 망쳐 놓고 있지 않은가?"
그는 가까운 친구에게 하듯 라이온스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 이내 문을 빠져 나갔다.
라이온스의 등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재빨리 일어서서 창문으로 다가갔다.
벌써 보란은 골목 끝을 벗어나 그의 시야로부터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바싹바싹
탔다. 바로 그때 제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을 내쫓았군요!" "글세, 오래 걸리진 않았지?"
그는 목 뒤로 손을 돌려 뻣뻣해진 그 부근의 근육을 주물렀다. "그 사람에게서 설마 무엇을
사지는 않았을 테죠?" 아내는 다짐이라도 받으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글세..... 샀을 수도 있고, 안 샀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산 것 같은데? 그것도 상당히
비싼 걸로 말야!"
10. 누설
보란과 워싱턴이 기지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종마는 위장 그물로 가려져 있었다. 그 안에
서 하파워와 루데크는 화물칸에 속성 건조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고 폰테넬리는 전기 드릴을
들고 차의 지붕 위를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있었다. 블랭카날레스와 지트카는 기다란 목재
선반틀을 가지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슈바르츠는 보란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자 차에서 내
려서며 보란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거의 다 돼 가고 있어. 고체 소자도 다 마련되었고, 자가 발전 기어도 완성됐어. 이제 남은
일이라고는 선반에 기재들을 올려놓는 일뿐이야. 사소한 일이 좀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곧
종마는 다시 뛰어다닐 수 있게 된다고."
"안테나가 걱정인데?"
보란이 슈바르츠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안테나를 높이 달고 다니면 누가 봐도 의심스러울 게 뻔하잖아?"
"걱정할 것 없어. 긴 줄 하나만 지붕으로 올릴 작정이니까. 수평으로 해두면 보이지 않을 거
야. 차퍼가 그걸 위해 구멍을 몇 개 뚫는 중이야."
슈바르츠가 활달하게 말했다. 보란은 그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좋아! 수고했어. 얼마나 더 걸리겠나?"
"두 시간쯤. 두고봐, 기막힌 작품이 될 거야."
보란은 그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고는 뜰을 향해 걸어갔다. 해링턴과 워싱턴이 뜰 안에
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워싱턴은 보란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목소리를 높여 보란도 들을 수 있게 말했다.
"이봐, 우리는 오늘 오후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더군."
보란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보게."
보란은 대단히 흥미로운 듯 재촉했다.
해링턴도 의자를 끌어당겨 보란과 마주앉았다.
"먼저 그 녹음 기재들이 대개 조금씩은 낡은 것이라는 데 놀랐어. 그리고 레코드 용어로 <
커버>한다는 게 무언지 알아?"
보란은 고개를 저었다.
"들어 봐, 레코드 업자들이 디스크 쟈키한테 미리 기름을 쳐두는 거야. 판매량이 계속 불어
나게 말이야. 히트한다는 거 알지? 그거야. 그리고 다른 회사에서 내놓았던 레코드를 어떤
방법으로든 사들여서, 신곡으로 다시 내놓을 수도 있다는 거야. 알겠어? 판권을 송두리째 사
들이는 거라고. 이런 것들을 그들은 <커버>한다고 하지. 그것이 합법적인 경쟁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그게 아니야. 트리 해변에서는 새 판을 내지 않고 다만 <커
버>만 할 따름이라고. 그들은 <커버>한다고 하지만 그게 바로 훔치는 거야. 고약한 놈들이
지. 그들은 할리우드에서 노래를 가지고 한번 출세해 보려고 애쓰는 자들 말야. 그들에게 돈
몇 푼을 집어 주고 그 노래를 사들이는 거야. 그렇게 되면 그 노래가 아무리 히트해도 노래
를 부른 사람은 돈을 벌 수사 없고. 봐로네 혼자 몽땅 차지하는 거지. 그놈은 그런 놈들 가
운데에서도 가장 고약한 놈이야. 보란, 그놈들은 착취자야. 로크 그룹들과 포크송 가수들의
등을 쳐먹고 있는 거라고. 그들에게 빵 한 조각을 던져 주고 대신 그 자식은 배가 터지도록
쳐먹는 거지."
"그러나 그게 불법적인 거래는 아니잖아?"
보란은 조용히 말했다.
"아냐, 그렇지 않아. 놈의 비서가 하나 있는데 그자가 디스크 자키들이나 레코드 가게 주인
들에게 상당히 밀착되어 있어. 디스크 자키들한테는 뇌물을 바치고 레코드 가게에는 그들이
파는 물량만큼의 할당금을 주기도 하고…. 맥, 그래도 모르겠어?"
"다른 것은 없던가?"
해링턴은 보일 듯 말 듯 웃어 보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아주 더러운 놈을 만난 모양이야. 그가 돈 생기지 않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 여자와 잠을 자는 것뿐이야. 그래서 매춘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는지 모
르겠지만."
"어떻게 알았어 그건?"
해링턴이 킬킬거렸다.
"그 녀석과 함께 뒹굴었던 여자를 만났어."
보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어떤 여자였나?"
"얼간이에다 엉덩이만 큰 계집이었어. 얼굴은 예쁜데 머리는 텅 빈 여자 같았어."
"그 여자가 봐로네의 사업에 대해 뭘 좀 알고 있었나?"
해링턴은 두 손을 벌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여자는 석 달 전에 레코딩 문제로 봐로네를 처음 만났다고 했어. 그리고 쭉 거기 머물
렀다더군. 그의 침대를 따뜻하게 데워주면서 말야. 그러다가 몇 주일이 지나자 쫓겨났다는
거야."
해링턴의 얼굴에 의미 있는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여자 자신이 꼭 그놈의 레코드 같았다더군. 이용 당할 대로 당하고는 쫓겨났어.
그 여자는 정말 그 자식의 테이프 레코드 같더라니까!"
"그 여자를 다시 찾아낼 수 있겠나, 해링턴?"
"물론이지! 만나 보겠나?"
"그래야겠네."
보란은 그의 손 끝을 바라보며 잠시 후 다시 말했다.
"오늘 봐로네는 어떻든가?"
"바빠, 몹시 바빴어."
해링턴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차퍼와 헤어진 게 두시 였어. 내가 다른 부분을 조사하는 동안 그는 거기에 머물러 있었어.
자세한 건 그가 알 거야."
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덤덤하기만 했다.
"그러지, 자세한 건 차퍼에게 듣기로 하지. 자네는 어땠나? 건 스모크?"
"봐로네는 동분서주하고 있었어. 어제 그는 외출하여 여섯 군데나 들렀어. 그 가운데 한 곳
은 베벌리힐스의 주택가였어. 거기에서 약 20분 동안 머물렀지. 그러고는 산페드로로 달려가
더구먼."
"거기에서 누구를 만났나?"
해링턴은 다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차퍼 얘기로는 녀석이 강가에 있는 저장 창고로 들어갔다고 했어. 5분쯤 머물다가 곧장 집
으로 갔다더군."
보란은 벌떡 일어섰다.
"차퍼하고 좀더 얘기해 봐야겠어. 일이 잘 되어 갈 것 같군. 데드 아이스?"
"여기 있수다!"
워싱턴은 그들의 대화를 줄곧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보란에게 다가왔다.
"공격 준비를 갖춰!100야드까지 사정거리를 맞추기 위해서는 망원 렌즈도 필요하겠지?"
워싱턴은 무엇이 좋은지 싱글벙글 거렸다.
"좋습죠."
"이번에는 나도 끼는 건가?"
해링턴이 물었다.
"물론이지! 기쁜가?"
"공격 지점은 어디야?"
"먼저 차퍼와 얘기한 뒤 확실히 결정하겠어. 그러나 네 얘기를 들어보거나 갯지트의 녹음
테이프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베벌리힐스가 될 것 같아."
"거긴 주택 밀집 지구 아냐?"
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주택 지구에서 봐로네는 회의를 소집하려 하고 있어. 지트카와 블러드 브라더와 내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우선 그곳을 답사해야겠어."
보란은 차퍼의 얘기를 듣기 위해 종마로 향했다.
해링턴이 워싱턴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대체 대장은 앉아서 쉰다는 게 뭔지를 모르는 사나이 같아."
"저 쉴 줄 모르는 사내가 오늘 오후에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줄까?"
워싱턴은 무슨 음모라도 꾸미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말을 계속했다.
"잘 들으라고! 그는 라이온스 경위의 집을 찾아 곧장 걸어갔어. 그러고는 거기에서 조그만
꼬마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더군. 이윽고 경위가 거실로 들어갔는데 그들은 창문가에 서서
마치 형제라도 되는 것처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더라니까. 보란은 아주 당당했다고."
워싱턴과 또 그의 이야기를 들은 그들의 눈빛에는 보란에 대한 깊은 신뢰가 뭉게뭉게 피어
오르고 있었다.
칼 라이온스는 수사 본부에 도착하자마자 곧 바로 브래독 주임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브래독 주임은 마침 책상 위에 커피와 샌드위치를 올려놓고 있었다.
"뭔가, 칼?"
라이온스는 그의 앞에 우뚝 섰다.
"식사 방해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게시판에 리케트의 이름이 있던데 그가 오늘 근무 당번
입니까?"
"그는 특수 근무를 맡았어."
브래독은 그렇게 말하면서 식사를 계속했다. 그리고 라이온스를 한번 힐끗 쳐다보았다.
순간 불쾌한 빛이 라이온스의 얼굴에 잠시 나타났다.
"중요한 임무입니까?"
그는 긴장돼 있었다.
브래독은 마치 어떤 풍경을 그려 보는 듯 커피잔 너머로 조용히 눈을 깜박거렸다.
"아,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고, 무슨 새로운 정보라도 있습니까?"
브래독은 웃음 띤 얼굴로 라이온스를 바라보았다.
"가까이 오게, 경위. 바쁘지 않지?"
라이온스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브래독에게 다가갔다. 그는 브래독 옆의 의자에 앉았다.
"이 이야긴 결코 다른 사람에게 해선 안 돼. 우리는 마피아를 대량으로 검거할 계획을 세우
고 있네. 내일 그 첫 행동이 시작 될 거야? 자네도 알다시피 이 작전의 목적은 단 하나 보
란의 위협에 대처하려는 마피아의 결속을 방해하자는 것뿐이야. 물론 우리는 <불치의 죄인
>작전도 계속해야 하네. 자네의 순찰 근무도 변함 없어야 하고...... 보란에 대한 뭐 좋은 소
식이라도 있는가?"
라이온스는 브래독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눈을 크게 뜬 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무슨.....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리케트를 만나려고 하는 건가?"
"그도 마피아의 검거 계획을 알고 있습니까?"
"자네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왜 질문만 하지?"
라이온스는 표정을 고치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놈이 오늘 내 집에 왔었습니다."
"누구 말인가?"
"보란 말씀입니다."
갑자기 실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브래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이제야 그 이야기를 하나?"
"먼저 리케트를 만나 보고 싶습니다."
"무엇 때문에?"
"주임님, 그는 곧장 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내 아들이 거실에서 그와 같이 놀고 있었어요.
그동안 제니는 그에게 대접할 것을 마련하느라고 주방에 있었고요."
"이런 빌어먹을! 더 자세히 얘기해 봐!"
라이온스는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이해하겠네. 자네 집에 경비원을 배치해 주겠어, 다음 번에 그가 또......."
"그는 이제 온지 않을 겁니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그가 할 일을 하고 떠난 겁
니다."
"그가 할 일이라니?"
라이온스는 무뚝뚝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총을 쓰는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니와 타미가 겨우 15피트 안에 있었
기 때문입니다."
"그건 어쨌든 좋아. 그가 왜 무엇을 하기 위해 자네에게 갔었지?"
라이언스는 브래독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말없이 브래독의 집무실을 나갔다.
그는 곧 되돌아왔다.
"여기에 있는 녹음기를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결론을 내리십시오. 이미 제 결정은 내려졌습
니다만......"
제노 봐로네가 전화에다 대고 소리를 빽빽 지르고 있었다.
"하나님 맙소사! 찰리.자네가 맡은 일이 뭔지나 알고 하는 소린가? 아니면 내가 또 일러 줄
까?"
"쓸데없는 소리 집어 치워!"
리케트의 노여움에 찬 목소리가 계속해서 봐로네를 향하고 있었다.
"내 맘대로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야, 이렇게 귀뜸해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
아!"
"우리가 더욱 곤경에 빠지기를 원하고 있는 거야 뭐야?찰리!"
리케트의 비아냥거리는 투의 음성이 계속됐다.
"그래.자네들은 잡혀 들면 독방에 들어갈 테지. 마지막으로 얘기하겠네. 내일 아침 8시부터
검거가 시작될 거야. 그러니 알아서 처신하게!"
보란은 루데크와 눈짓을 교환하며 녹음기의 스위치를 껐다.
"우리가 이 순간을 녹음기에 포착할 수 있었던 건 정말 대단한행운이야."
보란은 만족한 웃음을 띠고 다시 말했다.
"다음 공중 전화 부스에 차를 좀 세워 주게. 전화할 일이 있어"
루데크는 눈을 찡긋 감아 보이고는 질주하는 차들의 바깥쪽으로 차를 몰고 나갔다.
다음 교차로에서 차를 주유소로 빼더니 공중 전화 부스 옆에 다 차를 세웠다.
보란은 주머니를 뒤져 10센트 주화를 동전 투입구에 넣고 다이얼을 돌렸다.
"지급이야! 찰리 리케트 경감 바꿔. 빨리!"
교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통화중이니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그럼 <불치의 죄인>본부로 돌려 줘.
보란은 공중 전화 부스의 유리창을 통해 루데크에게 미소를 보냈다.
곧이어 걸쭉한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따라 흘러나왔다.
"찰리 리케트를 부탁하오. 급한 일이오."
"잠깐 기다리십시오. 그는 특별 부서에 있습니다. 그 번호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보란은 루데크에게 윙크를 보냈다.
거의 동시에 전화 저쪽에서 다시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기다리세요.교환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곧 교환이 나왔다.
"이 전화를 3711번으로 돌려 주세요."
보란은 잠시 더 기다려야 했다. 전화 속에서 리케트를 찾는 소
리가 어지럽게 들려 왔다.
"리케트요."
보란은 순간 말을 잃었다.
"리케트? 맥 보란이요."
"그래? 여기는 화장터야. 바쁜데 무슨......."
"닥치고 잠자코 들어, 난 보란이야. 네 동료들을 오늘 밤 해치울 작정이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다시 리케트가 말했다.
"뭐, 당신 정말 보란이야?
"나도 장난할 시간은 없어. 리케트."
보란이 쌀쌀맞게 말했다.
"좋아. 그러면 얘기해 보게 .언제 어디를 공격할 예정인가? 그래야 그 근처엔 아무도 얼씬거
리지 못하게 할 것 아니겠나? 자넨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녹음 테이프를 좀 들려주려는 것 뿐이야, 리케트. 내일 아침에는 브래독
의 책상 위에서도 발견될 것이지만. 그러나 우선 너에게 살짝 엿듣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 듣고 있나?"
"듣고 있어."
보란은 녹음기의 단추를 눌렀다. 그러고는 송화기를 녹음기의
스피커에 바짝 갖다 댔다.
그는 정확히 30초 동안 녹음기를 작동시켰다. 그동안 줄곧 루데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녹음기를 끄고 전화기를 다시 잡았다.
"이봐. 엿들어 본 감상이 어때?"
그는 상냥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상당히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이 아닌가?"
전화기 저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보란은 몇 차례 전화기를 두드려 보다가
교환을 불렀다. 교환이 다시 나왔다.
"선생님 전화는 끊겼습니다. 다시 연결해 드릴까요?"
"아니 됐어!"
보란은 짓궂게 웃었다.
"고맙소 교환!"
그는 공중 전화 부스를 나와 차로 돌아왔다.
"그 자식이 뭐라고 그래?"
루데크가 궁금한 듯 물었다.
"대단히 놀라더군. 아마 어디론가 달아나야 하겠지?"
11.죽음의 축복
"잘 들어! 계획은 이렇다."
보란은 그의 앞에 모여 있는 9명의 특공대원들을 향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격 목표는 건물이다 강력하고 신속한 공격을 진행시킨다. 그들은 한 곳에 모여 우리가
나타나면 박살 내겠다고 이를 갈며 기다리고 있어.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안 돼. 문제가 된다
면 경찰이라는 새로운 장애물이 나타났다는 사실이야. 따라서 우리는 신중히 처신하지 않으
면 안 돼. 좀 어려워진 것만은 사실이야. 이제까지의 경찰은 마피아를 건드리지 않았어. 그
러나 지금은 달라. 그들은 평화로운 이 도시가 피로 물들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하나의 대응
책을 마련했어. 마피아 단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계획이 바로 그거야. 그리하여 우리와
의 충돌을 미리 막아 보겠다는 것이지. 그런데 이런 정보가 마피아 측에 누설되어 버린 거
야. 그들은 내일 아침 자신들이 검거될 줄 이미 알고 있어."
"그 일이 우리 계획에 어떤 악영향을 준다는 거지?"
지트카가 물었다.
"나 역시 정확히는 알 수 없어."
보란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해. 일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우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계획된
작업을 해치우고 이 지역을 벗어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야. 현재 로스앤젤레스 경찰력
은 막강해. 그러니 그들이 나타난 낌새가 느껴지면 모든 활동을 즉각 중지하도록! 따라서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두었어. 하나는 경찰의 개입을 피해 우리의 계획을 연기 또는
포기하는 것. 또 하나는 마피아 조직이 지하로 완전히 잠적하거나 이번 싸움을 피하기를 기
다리는 것. 그러나 그것이 어떤 쪽이건 그런 경우를 기다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또 그
렇게 되면 우리 특공대도 별 의미가 없게 돼."
"숨어서 마피아를 때려부술 수는 없을까?"
안드로메다가 입을 열었다.
"이 도시에서는 불가능해."
보란이 재빨리 말했다.
"경찰에 제공하여 경찰이 그들을 일망타진하게 할 만한 범죄에 대한 정보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아. 그리고 경찰의 정보는 정확해 만약 충분한 시간과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들은 우
리도 찾아내고 말 거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속히 행동해야 해. 나는 이 로스앤젤레스에
서의 작전은 닷새 동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벌써 이틀이 지났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야. 보란?"
지트카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러니까"
보란은 이마를 몇 번 두드리고 말을 이었다.
"오늘 밤이야말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24시간밖에 없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는 더 많은 방해를 받게 될 테니까."
"그러면 오늘 밤, 반 둑 작전을 시작하는 건가?"
보란은 침착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 아니면 무기한 연기, 둘 중 하나야!"
"무기한 연기라니. 무슨소리야?"
폰테넬리가 기분 나쁘다는 듯 중얼거렸다. 보란의 눈이 블랭 카날레스에게로 향했다.
"모두 얼마 있어?"
블랭카날레스는 큰 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대답했다.
"모두 14만 7000달러. 정확할 거야."
"좋아!"
보란은 흡족한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모두 독립해서 부유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의 액수는 못 되지만, 하여튼 48시간 전에 너희들
이 가졌던 것보다는 많은 돈이다. 만일 너희들이 바란다면. 죽음의 특공대를 해체하는 일 말
이다. 만일 헤어지기를 바란다면 저 돈을 분배해주겠다. 당장"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가! 조직을 해체한다고? 누가 조직이 해체되기를 바라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안드로메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방법이 제일 나을지도 몰라."
블랭카날레스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야!"
폰테넬리가 뛰어들었다.
모두가 소리들을 질러댔기 때문에 현황 보고는 고사하고 난장판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보란
이 소리쳐서 그들을 긴장시켰다.
"조용해! 모든 걸 말해 주겠어"
그는 목청을 높였다.
"자. 나는 너희들 대부분이 이 특공대에 참여했던 이유가 돈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
어. 그러나 그것이 돈 때문이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 아무튼 난 너희들에게 정말 고마움
을 느끼고 있어. 그러나 너희들이 분명히 알아 둬야 할 점이 있어. 경찰이 차츰 우리를 압박
하고 또 우리의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야.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결과야. 그
래서 나는 너희들에게 각자의 몫을 나누어주어 이 특공대를 떠날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그러면 자네는?"
워싱턴이 따지듯 물었다.
보란이 빙그레 웃어 보였다.
"나는 남아 있어야 해. 이 작전은 나 혼자서라도 끝마쳐야 하니까."
"혼자서"
안드로메다가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어!"
워싱턴이 보란을 외면하며 재빨리 말했다.
"우리의 먹이를 혼자서만 맛보게 할 수는 없잖아?
"맞아!"
해링턴도 말했다.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어."
"좋아, 그러면 너희들의 결정에 따르도록 하겠네. 30분 동안 시간을 줄테니 각자 결정을 내
려. 그리고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만약 이곳을 떠나는 자가 있다 해도 난 조금도 원망하지
않아. 오히려 그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빌겠어. 후회 없는 결정을 내려주길 바래."
보란은 그 자리를 떠나 바닷가를 향해 혼자 걸어갔다.
"무슨 결정이 필요해!"
폰테넬리는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중얼거렸다.
"몇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좀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포스터 경감은 브래독 주임에게 말했다.
"그 검은 사내는 우리가 짐작했던 대로 토머스 루데크가 틀림없습니다. 블랙 푸드(북미 인
디언의 한 종족)의 순수한 혈통을 받은 자로 몬태나의 보호구역 출신이지요. 그는 베트남에
서 처음 보란을 만났어요. 그리고 지난주 보란을 다시 만났던 것 같습니다. 지난주 그에게
송금된 1000달러가 그걸 증명합니다. 그는 그 돈을 찾기 위해 뷰테로 갔습니다. 워스터 유니
온 은행 본점에서 발송되었는데, 송금자의 이름은 B 매키로 되어 있었습니다. "
브래독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럼 확실하군. 그리고 그에 관한 또 다른 정보는 없나?"
포스터는 머리를 저었다.
"그밖에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조사하고 있어요. 다만 한가지 t아주 색다른 인물이 하
나 있는데. 베트남에서 건 스모크라고 불렸던 잡니다. 그는 옛날 서부 스타일의 6연방 쌍권
총을 차고 다니기를 즐기는데 좀 우스운 얘기지만 사람들 얘기로는 베트콩들이 정말 그를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제대한 뒤에는 와일드 웨스트 공원에서 총질하는 걸 보여 주는 일을
했답니다. 그 역시 별다른 이유도 없이 지난주에 그곳을 떠났습니다."
경감은 주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의 사장은 그가 자주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해고시켜 버렸다고 하지만 믿을 수가 없어
요.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이 주위의 평입니다. 게다가 그는 잘생긴 덕분에 항상 여자들
이 그의 주의를 맴돌았다더군요. 이름은 제임스 해링턴. 그의 아버지는 아이다호 근처의 녹
초지에서 양을 키우고 있는데 그곳에서도 볼 수 없었어요. 또 그의 아버지는 그가 무슨 일
을 하고 있는 지 전혀 모르고 잇더군요."
"역시 보란의 한 패인가?"
포스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나하임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가 그곳 아파트에서 이사간 날이 바로 그 직업을 그만
둔 날이더군요."
"역시 믿을 수밖에 없군. 다음은 누군가?"
"음 지트카입니다. 사이공에서 온 텔렉스 전문에 의하면 그는 보란과 가장 절친한 잡니다.
베트남에서 그들은 1년 이상 이나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지트카는 지원 입대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거의 보란과 함께 군작전을 수행해 왔어요."
"다시 한 번 살펴보세."
"여기 이 사람은 로자리오 블랭카날레스입니다. 특수 부대의 중사였죠. 자기 고향처럼 베트
남을 잘 알고 있었답니다. 의술뿐 아니라 여러 가지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입니다. 이를테면
잡기에 능한 거죠. 기계, 총포, 악기 등을 다룰 줄 알고 심지어 비평정 구역에서 작은 규모
의 야구팀을 만들어 리그전을 벌일 정도로 조직과 관리에도 능하답니다. 그는 두 번이나 사
관 후보 학교에 추천되었는데 두 번 다 필기 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
했다는 좋은 증거죠."
"그는 어떻게 보란과 맺어졌나?"
포스터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대답했다.
"그의 관련 여부는 추측일 뿐이고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롱비치에 있는 예비군 병원에
서 보란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일하고 있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그리고 그는 군에 재
지원 하는 문제를 놓고 굉장히 고민을 했다는 주위의 설명도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
는 그곳에서 떠나 버렸습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러나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군에 재지원한 사람의 명단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지 않았어요."
"지금까지의 경우완 맞지 않는구먼."
브래독이 생각에 잠겨 한마디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것도 지트카의 아파트 근처에서 총격전이
있었던 직후에 말입니다."
"좋아. 계속 수색해봐. 또 다른 그럴듯한 인물은 누군가?"
"안젤로 폰테넬리. 일명 차퍼라고 알려져 있어요. 베트남에서 중화기를 다루었는데 보란과
자주 어울렸답니다. 그는 결혼했는데 뉴 저지에 아내와 두 아이가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의
아내는 2년 동안이나 그의 소식을 모르고 있어요. 정부가 군인 가족부양비 보조를 중단할
때까지 그가 제대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어떻게 그는 보란과 연결되었나?"
"과거의 다시 말해 베트남에서의 그들의 관계 외에는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다만 가능성을
가지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죠."
"좋아. 그자도 계속 추적하도록. 자동차에 대해서는 뭐 좀더 알아낸 거 없나?"
"없어요. 좀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 좋아. 라이온스의 단위 수사대가 오늘 아침에 UHF무선 기재를 팔았다는 도매상을 알
아냈는데, 구매자는 무슨 기술학교에서 나왔다고 말했다더군. 학생들이 실습교재 구입을 위
해서 말이야."
"별로 이상할 건 없잖습니까?"
포스터는 흥미 없다는 듯한 투였다. 물론이야. 그런데 이 구매자가 말한 학교는 어디에도 없
어. 게다가 그는 수천 달러 상당의 물품을 구입하면서 모두 현찰로 계산했다는 거야. 그게
이상하지 않나? 학교에서 현찰로 물건을 구입하는 일은 극히 드물잖아?"
"물론이야. 라이온스가 지금 그 물품들의 목록들을 작성하고 있어."
포스터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리케트를 마지막 본 게 언제입니까?"
"그만두게!"
"그가 눈치를 채고 있었을까요?"
"그래.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그걸 알 수 없단 말야. 베티 얘기로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그의 얼굴이 유령처럼 하얗게 지리더라는 거야. 그는 급히 그곳을 떠났는데 그게 우리가 그
를 붙잡으로 가기 바로 5분 전이었지. 도대체 알 수 없단 말이야. 그가."
브래독의 책상 위의 전화 벨소리가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그는 수화기를 움켜쥐고 말했다.
"브래독이오."
순간 그는 놀란 듯이 눈을 번쩍 치켜뜨면서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좋아, 알았어! 계속 추적해. 그리고 수시로 연락해. 좋아. 오케이!"
브래독은 천천히 수화기를 놓았다.
"이제 그들의 꼬리가 잡히기 시작하는군."
브래독은 경감에게 말했다.
"중고 자동차 구매업자가 오늘 한 사람에게서 많은 차를 사들였다는 거야. 붉은 1968년형
코르베트, 푸른 색 1967년형 포드, 회색의 1967년형 무스창에다 1968년형 스테이션 웨건까지
말이세."
브래독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운 좋게도 판 사람의 이름까지 알
아냈다는군."
"뭐라고요?"
"로잘리오 블랭카날레스였어!크르베들르 제외라고는 전부 그자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군. 그자는 그 차들을 다시 되팡아 이익을 남기려고 샀던 건데, 틀어지는 바람에 본전이나
뽑으려고 일 주일 만에 팔아 치운다고 말했다는군. 코르베트에는 네바다 주의 등록증이 붙
어 있었는데 빌 매키라는 이름이라는군."
"좋은 정본데요!"
포스터는 브래독을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우리으 추측을 좀더 확실하게 해주는
정보인 셈이야."
브래독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계속해서 말했다.
"이제 그 특정한 차들을 찾느라고 기를 쓸 필요는 없게 됐어. 그런데 이봐, 혹시 보란이 이
도시를 떠나 버리려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만일 말입니다. 무선 설비 기재들을 사간 자들이 그들이라면 그는 떠나지 않습니다."
"그럼, 그걸 산 사람이 일단 보란의 패거리들이라 가정한다면..... 그러니까 그는 이 도시를
떠날 생각이 없다. 대신 차를 바꾸려 한다, 그 차들이 너무 노출되어 버렸으니까 위험 부담
이 크다, 그러니까 그가 훔치지 않을 경우 다시 구입해야 한다고 추측 할 수 있겠군. 알았
어. 차를 구입...."
이때 라이온스가 들어왔다. 그는 무엇 때문에 흥분했는지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야. 칼?"
브래독은 놀라서 물었다.
라이온스는 숨을 몰아쉬며 브래독의 책상으로 다가가서느,s 양파 껍질 같은 종이 다발을 주
임 앞에 쏟아 놓았다.
"무전기 부품들의 목록을 보십시오. 그 페이지 중간쯤입니다."
"뭘 보라는 건가?"
"모르시겠어요? 그는 우리들의<불치의 죄인> 주파수를 모두 포착해 낸 거라고요!"
브래독의 입술이 바싹 탔다.
포스터는 그 목록을 보기 위해 의자로부터 반쯤 일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 주파수를 탐지해 냈을까요?"
라이온스는 화가 나서 외쳤다. 브래독은 굳은 표정으로 책상위의 목록을 물끄러미 바라보더
니 목록 한 장을 재빨리 집어 냈다. 가진이었다. 군대에서 신분 증명용으로 사용한 증명 사
진 크기의 사진이었다.
검은 사내.... 숱이 많은 머리칼,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의 사내였다.
"누군지 아시겠어요?"
라이온스가 감을 잡은 듯이 물었다.
"그자야!"
브래독의 음성이 계속 놈아졌다.
"틀림없어, 그자야! 오늘 아침 이곳에 왔었어! 어젯밤 할리우드의 사건을 목격했다고 하면서
말이야! 내가 그를 아래에 있는 통제실의 증언 담당에게 보냈어. 아, 바로 내가 그자를, 그
스파이를 통제실로 보내다니!"브래독은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라이온스의 안면에는 심한 경
련이 일어났다.
"교활한 놈들! 어떻게 하시겠어요, 주임님?"
브래독은 한숨을 쉬며 루데크의 사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큰 실수야! 어떻게 하지? 나 자신이 그 놈을...."
"대단한 놈들업니다."
포스터가 끼여 들었다.
"그 훌륭한 머리와 대담성으로 얼마나 또 우리를 괴롭히겠습니까? 만일 그놈들이..."
라이온스가 조용히 포스터의 말을 중단시켰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좋은 머리도, 대답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자랐고 그리고 지금에 이른 것뿐입니다."
브래독은 문을 감았다. 떴다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이윽고 그는 결심한 듯 인터폰을 눌렀다.
"지름 즉시 모두 <불치의 죄인> 직원들은 근무지로 복귀하라. 작전 지휘자들은 30분 이내
에 통제실로 집합하라. 또한 지금 즉시 모두 통신 시설을 이곳으로 연결하가. 그리고 샌디에
이고로부터 들어온 보고는 없나?"
"해군이 우리를 도우러 오로 있는 중입니다."
인터폰이 잠시 끊겼다가 다시 대답했다.
"잠시 후 도착할 예정입니다."
"전 속력을 내고 있게지?"
"그렇습니다. 전 속력으로!"
브래독은 인터폰에서 손을 떼고 신념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들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그들을 때려부숴야 해!"
줄리앙 디조르쥬는 도무지 보란을 대하는 그들 가족들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꼭 옛
날처럼 총으로만 해결하려는 방식이 그는 싫었다.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면, 지난 생활을 되돌아보며 좀 여유 있는 시간들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그렇게 한가한 생활과 여유를 가질 만한
형편이 못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초기 카포네 시대의 총잡이였다. 그리고 결국은 연방 교도
소에서 죽고 말았다. 그래서 디스는 일찍부터 마피아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마피아
의 사업에서는 육체 노동과 연결된 일이라고는 별로 없다. 마약이라거나, 매춘 또는 조작된
도박 등에 육체 노동이라는 것을 사실 필요없는 일이었다.
디스에게 있엉서 육체 노동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총을 잡는 일이었다. 그것은 곧 경찰과
대치하는 일이거나 다른 적들과의 싸움을 의미했으며 또한 조직내의 보이지 않는 경쟁을 의
미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걱정과 불안을 동반했다. 그 때문에 그는 지난날의 대부분을 경찰들의
의심과 심한 경계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는 이제 겨우 자기의 생활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거의 한 다스에 가까운 영화관들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3개의 고급 나이트클럽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몇 개의 은행도 지배할 수 있을 만큼 부를 키웠다.
그 때문에 디스는 보란의 출현이 몹시 거슬렸다.
요즘 사람들은, 특히 새롭게 성장해 가고 있는 세대들은 마피아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
이었다.
그들은 마피아를 전설적인 얘기거나 일종의 모험담 정도로 받아들였다.
텔리비전이나 나이트클럽의 쇼 무대에서 마피아가 가끔 세태를 꼬집는 풍자적인 뜻으로 사
용되고 있을 때에도 그는 품위 있는 태도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보란으로 인해 얼마나 흥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만한
일이었다.
그렇다. 생애의 끝부분을 평화롭게 장식하려는 디스의 계획이 결정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디스는 이제 그가 편안하게 지내 온 그 합법적인 껍질로부터 기어 나와야 할 형편
이었다.
디스에게는 타인들의 눈앞에 공개되어서는 안 될 많은 일들이 이었다.
예를 들면 로스앤젤레스 항구를 통한, 합법을 가장한 수입 업무가 그러했으며, 또한 그러한
상품들로 가득 찬 저장 창고도 마찬가지였다.
SS 퍼시픽 팰리스도 그랬고, 그곳에 있는 여자와 도박 기구들도 역시 그랬다. 트리 해변 레
코드 회사에 대한 그의 부분적 출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보란 때문에 마피
아의 자금이 투입된 회사라는 게 밝혀진다는 것은 용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 그러한 사업들은 대부분 복잡하게 정치 문제와도 얽혀 있었다.
이제 그런 것들이 보란이라는 수천 와트짜리 조명을 받아 폭로되려 하고 있었다.
디스는 보란과의 대결을 될 수 있는 한 피해 보려고 애썼다.
그래서 그는 이런 제안까지도 한 적이 있었다. 보란을 사들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디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불가피한 사태를 이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결코 보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그 녀석은 우리 조직에 대해 얼음같이 차가운 반감을 갖고 있다. 벌써 그를 짓밟아 버렸어
야 했는데, 아직까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지 못했다.
조직에 대해 그처럼 냉혹한 칼을 휘두르고 있는 그놈을 때려 부수는 길이란 단 한 가지 방
법뿐이다. 총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벌써 그의 아내와 딸을, 그리고 손자들을 모두 팜스프링스로 피신 보냈다. 이제 디스는 잠깐
동안이나마 지난날의 생활 속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오늘 밤 조직의 모든 가족들이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일 것이다.
그것은 그놈의 죽음을 의미하는 회의가 될 것이다.
보란의 죽음- 그 죽음에 조그만 축복을 내려 주기 위하여!
12. 폭풍전야
보란이 산책을 마치고 해변에서 돌아왔을 때 특공대원들은 모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떠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말을 시작했을 때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으며 그의 눈은 어떤 각오로 불
타오르고 있었다.
"좋아, 얘기를 계속하기로 하지."그는 스냅 사진을 한 묶음 꺼내 놓았다. 그는 그것을 지트
카에게 넘겨 주었다.
" 이 사진들을 잘 살펴봐. 본 후에는 옆 사람에게 넘겨. 블러드 브라더와 나는 이미 1차 답
사를 하고 돌아왔다. 모든 것들이 사진에 담으려고 노력했어. 그 사진들을 주의 깊게 보고
각자 연구해봐. 우리는 어둠의 보호를 받으며 잠입해야 해. 저택은 서쪽을 향하고 있고, 거
리로부터 좀 떨어져 있는데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을 내려다보고 있어. 안뜰에는 자갈이 깔
려 있고. 문은 프랑스 식이야. 그 문은 시멘트 블록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지. 그 문 너머엔
테라스식으로 3잔디가 넓게 깔려 있다."
보란은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었다.
"풀장은 안뜰 아래에 있고. 테니스 코트는 집의 암쪽에 있어. 거리로부터 집까지는 약 200야
드야. 지형은 완전히 평평하지는 않으나 거의 수평에 가까워. 꽃으로 가득 찬 정원과 여러
개의 작은 연못이 뒤똑에 있지. 거리를 향해서는 단 하나의 담장만이 있을 뿐이야. 어마어마
하지. 높이는 8피트, 집 끝의 구석까지 담장이 뻗어 있어. 문을 향해서 자갈이 깔려 있다. 항
상 개방 상태인 것 같아. 두 대의 차가 한꺼번에 통과할 수 있을 만큼 넓어. 북쪽과 남쪽 끝
을 따라 설치된 담은 대단히 견고해 보이는데 단 한쪽 구석, 문에 면한 부분은 그다지 견고
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만일 그 길을 택하기로 결정한다면, 그곳을 통과하긴 쉬울 것이
다. 공격하기 쉽고 깨뜨릴 수도 있다. 디스는 그곳에서 보안 상태에 신경을 쓰지 않을 만큼
주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어."
보란은 자시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어. 총격전이 시작되면 그들은 그곳을 빠져 나
와 달아날 거야.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견고한 요새로 우리들을 유인하기 위하여 달아날 것
이 분명해. 그들은 어딘가에 견고한 요새를 또 하나 갖고 있을 거야. 틀림없어."
지트카가 입을 열었다.
"그 집의 내부에 무슨 장치 같은 건 없나?"
보란은 머리를 흔들었다.
"없어. 있다 해도 관계없는 일이지. 브러드 브라더와 내가 추축하기로는 그들은 집 밖에서
회의를 개회할 것 같아. 안뜰 어딘가에서."
"이탈이아인들은 모이면 쇠고기와 포도주 등을 즐겨 먹는 편이지."
안드로메다가 웃으면서 한마디했다.
폰테넬리는 쉬지 않고 손바닥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안드로메다가 다시 중얼거렸다.
"내 친구들 중 이탈리아 사람이 몇 명 있거든."
위싱턴이 큰 소리로 웃었다.
"젠장, 왕년에 이탈리아 친구 한두 놈 없는 사람이 있는 줄 아나?"
위싱턴이 또 한 번 호탕하게 웃었다.
"좋아. 그 예기들은 그만둬라."
보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것은 승부를 위한 싸움이 아니야, 또한 이탈리아 사람과의 싸움도 아니야."
"그러면 마피아가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자네는?"
안드로메다가 킬킬거렸다.
"아무튼 그건 이탈리아 세력이야."
위싱턴도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폰테넬리를 제외하고 모두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마피아가 곧 이탈리아 사람을 뜻하는 건 아니야, 이 친구들아!"
하고 폰테넬 리가 소리쳤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그놈들을 좋아하지 않아. 또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마피
아를 좋아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어."
"진정해!"
안드로메다가 다정히 말했다.
"우린 그저 농담을 한 것뿐이야."
"좌우지간 놈들이 싫어!"
폰테넬리가 계속 혼잣말로 지껄였다.
"놈들은 이탈리아 민족에게 오명을 뒤집어씌우고 있으니까"
"아, 아, 나는 기막히게 이탈리아인들을 사랑한다고!"
안드로메다가 장난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히 여자들을! 후후후...... 내가 너한테 언젠가 얘기하지 않았었나? 나하고 같이 뉴저지
로 가자고 말야."
"좋아.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폰테넬리는 우울하게 말했다. 그러나 곧 워싱턴을 바라보며 웃었다.
워싱턴도 그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놈들은 흑인도 마피아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나?"
폰테넬리가 웃었다.
"허락하고 말고. 그놈들을 검은 손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잖아!"
모두 유쾌하게 웃었다.
보란은 그들의 격의 없는 대화를 느긋하게 듣고 있었다.
그런 대화는 긴장을 해소하기에는 뭣보다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점점 압박해 오
고 있었다.
"좋았어!"
그는 입을 뗐다.
"우선 지트카의 생각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디스의 집 내부에 어떤 장치가 설치되어 있느냐
하는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들이 집안으로 후퇴해 들어간다 해도 우리는 따라 들어가지
않을 거니까. 우리는 다만 그들이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사격을 해대고는 곧 그곳을 떠
나야 해. 왜냐하면 경찰들이 재빨리 그곳으로 몰려들 게 뻔하기 때문이야."
해링턴이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의 작전이군. 공격과 함께 즉각 때려부수고 도주한다는 것...."
보란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또 주의할 것은....그놈들은 내일 아침, 자신들에 대한 전격적인 검거 작전이 시작된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야. 그들의 오늘 모임의 목적은 아마 첫 번째로 우리들에게 대항하는 전략
을 세울 것이고, 두 번째로 경찰의 위험에 대하여 그들의 사업이나 조직을 보호하려는 것일
거야. 일반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자신들의 모든 것이 경찰에 공개되는 것을 싫어
할 건 뻔하잖아? 따라서 그들이 결정하게 될 행동이란 다음과 같을 거야. 그들은 우선 우리
들에 대항하는 세력을 형성할 것이고, 그리고 이 도시를 잠깐 떠나기로 결정할 거야. 이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장소가 그들의 견고한 요새겠지? 그들의 그런 요새가 그
들 구역 어디엔가 있을 거야. 틀림없어. 오늘 녹음된 3분 동안의 대화에서 봐로네는 <조직
의 고향>이라는 말을 분명히 했어. 그들은 요새를 가지고 있어. 우리는 그들이 그곳으로 가
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의 작전 목표야!"
"상당히 합리적이군!"
지트카가 말했다.
"좋다."
보란은 이동식 칠판을 향해 몇 걸음 다가섰다. 거기에는 디스의 저택 주변이 스케치되어 있
었다.
"먼저 각자의 위치를 얘기하겠다. 다음에 임무를 부여한다. 데드 아이스와 나는 장거리용 라
이플을 가지고 왼편의 이 언덕에 위치할 것이다. 블러드 브라더는 우리들 왼쪽 언덕의 가장
자리, 여기.... 그래 여기야. 무기는 자동 소총이고. 지트카와 붐붐은 이곳에서 관측할 것. 만
일 사태가 곤란하게 되면, 너희들을 불러들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화염 공격에 대한 준비도
갖춰 두도록. 플라워 차일드는 남쪽이다. 수류탄 발사기 <일명 유탄 발사기>를 준비해. 또
정확히 사격할 수도 있는 지점을 확보해."
안드로메다가 낄낄거렸다.
"네가 수류탄 공격을 시작하게 되면 차퍼가 너를 엄호할 것이다. 이제 갯지트, 너는 종마 안
에 승차하고 있어야 해. 그들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아야 한다. 나는 너희들이 나의 무선 통신
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활짝 열어 놓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좀 생각해 본 게 있는데...."
갯지트가 보란의 말을 가로채며 입을 열었다.
"걱정이 돼!"
"무엇이?"
보란이 의아한 듯 물었다.
"경찰이 우리들을 ECM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만일 그들이 그걸 해내기
만 하면 종마의 반대 의미로 트로이의 목마가 되지."
"ECM이라는 게 뭔가?"
"역전자 측정. 다른 말로는 전자 스파이라고도 하지. 바로 간첩선과 첩보 위성들과 똑같은
거야."
"레이더를 말하는 건가?"
지트가가 물었다.
"아니 이 번화한 곳에서 레이더를 어떻게 사용하겠나?"
""아닌가?"
갯지트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말을 계속했다.
"내가 얘기하는 뜻을 모르겠나?"
"무선 방향 탐지기?"
보란이 중얼거렸다.
갯지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그게 좀 복잡하기 하지만, 그런 장비들만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샅샅이 뒤져
서 결국 우리의 위치를 포착할 수 있어. 멍청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보란이 의심이 가득 찬 눈으로 물었다.
"만일 경찰이 어떤 주파수로 송신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에도 가능한가?"
"내가 그랬잖아. 샅샅이 뒤진다고."
갯지트가 급히 대답했다.
"그들은 우리 주파수를 알 필요가 없어. 우리가 쓰는 주파수를 발견해 내는 거야. 스캐너(전
자를 주사시키는 기기)를 사용해서 주변에 있는 몇 개의 지점을 축으로 하여 삼각 측량을
해보면 우리들의 위치는 순식간에 노출되고 말아."
"네가 움직이고 있는데도?"
"그러면 그들도 우리들이 송신할 때마다 ECM을 하는 거지. 그러면서 우리를 추적하는 거
야."
"그것 참 대단한 기계로군, 갯지트."
"그래. 그러나 경찰들이 그런 기재들을 가지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어."
"그들은 가지고 있을 거야"
보란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에 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갯지트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우리가 가진 기재들만으로는 안 돼. 우리가 그것을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최대한
으로 조용히, 그리고 송신을 짧게 하는 방법 뿐이야."
"얼마나 짧게?"
"3초나 4초."
"알았어."
보란은 말을 계속했다.
"그럼 이렇게 하기로 하자. 무전기는 극히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거야. 짧게, 그리고 우
리들의 위치나 진로를 알려 주게될 어떠한 말도 하지마."
보란의 얼굴이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모두 얼굴에 숯검정을 칠해. 또 될 수 있는 대로 가벼운 복장을 하도록 하고. 엄호
하고 공격하기 위해서만 화기를 사용해."
그들은 숨을 죽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이 싸움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인식하고있었다.
또 이 싸움이 생명을 건 도박의 마지막 의식임을 그들의 표정은 잘 말해 주고 있었다.
디스는 봐로네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전투원들을 곳곳에 배치하게. 앞에도, 뒤에도, 거리에도, 이 일대에 우글우글하게 말이야.
알았나? 만일 그놈들이 우리를 훔쳐보고 있다면 이 장소에서는 공격이 어렵다는 걸 스스로
느끼게 해주고 싶어. 증원해!"
"그놈들이 우리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디스?"
봐로네는 불안한 듯이 물었다.
"만일 그 녀석이 소문대로 머리가 좋은 놈이라면..... 물론이지, 놈들은 우리를 보고 있어."
디스는 먼 거리의 언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언덕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향해 어두운
윤곽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저기 어딘가에 숨어서 망원경으로 본다면 주방의 싱크대까지 훤히 내려다볼 수 있을 거
야."
"아마 녀석은 저 위쪽으로부터 공격할 겁니다."
봐로네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말했다.
"이것 보게... 만일 그 녀석이 그렇게까지 훌륭하다면 우리는 그를 죽일 필요가 없어. 오히려
우리는 그놈을 우리편으로 만들어야 해. 안 그런가? 시집 못 간 노처녀같이 노심초사하지
마.
봐로네, 침착해! 보란도 사람일 뿐이야."
봐로네는 아직도 언덕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러니깐 전투원들을 모두 배치해. 그놈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이 근처에서
는 한 방울의 피도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 것을 보는 건 이제 딱 질색이야. 알겠나?"
"지오르다노가 도착했군요."
봐로네는 집을 향해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그렇군. 내가 전투원들이 노출되기를 바란다는 걸 그자에게도 인식시켜 주게나. 전투원들이
들끓어야 해!"
봐로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시늉을 했다.
디스는 천천히 뜰로 걸어갔다. 그의 시선은 어둠 속을 뚫고 구석구석까지 꽂혔다. 어쩐지 마
음이 놓이지 않음을 숨길 수 없는 듯했다.
그는 보란이라는 미치광이가 얼마나 많은 죽음의 그림자를 그의 소매 속에 감춰 놓고 있는
지 못내 궁금했으며 그만큼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는 그의 조직의 가족들이 뜰의 중앙에 있
는 한 커다란 테이블 주의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앉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일단 보란이
라는 미치광이를 그의 생각 밖으로 밀어내버리고 얼굴에 밝은 미소를 떠올리며 활달한 걸음
걸이로 회의용 탁자로 걸어갔다.
데드 아이스 워신텅는 얇게 깔린 풀밭 속에 엎드려 있었다. 그의 아래쪽으로 우산처럼 펼쳐
진 전나무 가지가 나 있었다. 긴 라이플을 작은 삼각대에 받쳐 놓고서 그는 오른쪽 눈을 커
다란 조준 망원경 안대에 꼭 맞붙였다. 그이 바로 옆에서 보란이 성능 좋은 20배짜리 망원
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킬킬거리고 있었다.
"입술 모양만으로도 무슨 소리들을 지껄이고 있는지 알겠는데!"
보란이 감탄했다.
"그럴 거야, 보란. 그건 기막힌 망원경이니까. 저기 오른편에 있는 녀석이 봐로네야. 조그만
놈이지. 저 백발의 사내가 두목 같지 않아?"
"그런 모양이야, 아직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들이 자기 자리들을 찾아 앉으면 알게 되겠
지."
"거리에 대해서는 자신 있나?"
보란은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나를 못 믿겠다는 거냐, 데드 아이스? 집의 뒤쪽 벽이 보이지? 그 시멘트 벽돌들의 이음
부분은 각각 8인치, 그러니까 일곱 번째의 벽돌 맨 위가 분명히 5피트가 되는 거지. 땅바닥
으로부터 말이야."
"그렇겠는데...."
데드 아이스는 한숨을 길게 토해 내더니 말을 계속했다.
"좋아. 내가 조준하기는..."
그는 조준 망원경으로부터 눈을 떼더니 라이플의 눈금을 기록한 부분에 붙여 두었던 테이프
를 떼어 냈다. 그러고는 세밀하게 눈금과 거리를 측정해 보았다.
"맞아. 600미터가 맞는데?"
데드 아이스는 다시 한 번 숨을 쉬고 망원경에 다시 눈을 갖다 붙였다.
"정말 꼭 맞는 거리야!"
"총탄이 목표까지 날아가 도달하기까지는 약 1초가 걸릴 거야."
"그럴 거야. 걸음 빠른 사람이 저 뜰을 잠깐 움직여 갈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이지. 이 총으로
나도 그쯤은 잡아 낼 수 있어. 자네가 가진 망원경이 내 것보다야 좀 정확하기 하지만 나는
이 거리를 20인치씩 딱딱 조절해 뒀거든."
"어항 속에 갇힌 붕어 잡듯 할 수 있다, 이 말이지? 가만 있어봐. 저 탁자의 길이가 얼마쯤
될 것 같은가, 데드 아이스?"
"내가 보기에는 약 15피트 가량 되겠는데? 저기 좀 봐! 저 아래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
는데? 그 백발의 사내는 어디로 갔나?"
"탁자의 오른편이야. 그게 자네가 말한 두목 자리지. 그 망원경을 이리 줘 보게, 데드 아이
스. 내 것으로는 시야가..."
"이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데드 아이스는 조준을 끝마쳤다. 그는 조준을 끝낸 라이플을 건드리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망원경을 건네주었다. 보란은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그의 라이플을 조금 더 들어올렸다.
"이게 더 났군!"
그는 새 망원경에 의해 여유가 생긴 좀 더 넓은 시야 속으로 디조르쥬의 윤곽을 포착하고는
말했다.
"자네가 옳았어. 그들은 전투원들을 배치하고 있어. 똑똑하게 보이는군. 그런데 도대체 무
슨..?"
"몇 명인가, 대장?"
보란은 천천히 망원경을 움직여 회의용 탁자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눈에 보이는 곳은 몽땅 전투원들로 가득 차 있어. 구석구석엔 불이란 불은 모두
켜놓았고...."
"아마 전투 태세를 좀더 강화하려는 모양이지?"
보란은 킬킬거렸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내 생각으로는 ....자기들의 전투 병력이 이 정도다 하는 걸 우리들에
게 과시하려는 수작인 것 같아."
"아, 그러니까 공작이 꼬리를 펼쳐 보이는 것 같이?"
"그렇지!"
보란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고개를 왼편 어깨 쪽으로 숙여 무전기의 단추를 눌렸다. 그
러고는 짧고 명확하게 말했다.
"종마, 이상은?"
5초가 지났다. 그때에야 슈바르츠의 음성이 튀어나왔다.
"없다. 깨끗하다!"
보란은 열을 세고는 다시 단추를 눌렀다.
"플라워 차일드. ........4가 가능하다. ......신호로 다섯을 발사한다. .....차퍼, 엄호! 이상."
"그 명령은 플라워 차일드를 대단히 행복하게 만들겠어. 그 친구는 그 수류탄 발사기를 꽤
나 사랑하거든."
워싱턴이 나지막이 말했다.
보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무전기를 두드렸다.
"경고! 경고!"
그는 10초를 기다렸다가 계속했다.
"적은 강력하다. 주의하라."
"대장이 그놈의 경찰들에게 너무나 약을 올리는 것 같은데, 안 그래?"
워싱턴은 소리내어 웃었다. 보란도 그를 향해 웃어 보이고는 눈을 조준 렌즈에 갖다 댔다.
"갯지트가 나를 겁쟁이로 만든 모양이야. 이 로스앤젤레스 경찰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나는
아무 일도 함부로 덤벼 들 수가 없어. 그들에게 어떤 사소한 단서도 넘겨주고 싶지 않으니
까."
"저 아래에 있는 녀석들은 분명히 우리에게 단서를 제공해 주고 싶은가 본데? 탁자를 바로
우리 코앞에다 내다놓았으니 말이야."
워신턴이 주의 깊게 대꾸했다.
보란의 중화기가 삼각 받침대 위에서 좌우로 움직였다. 그는 회의용 탁자 주위에 모인 얼굴
들을 추적해 가고 있었다.
"잊지마. 탄환은 1초 뒤에 적에게 도달한다."
그는 자신의 파트네에게 상기시켰다.
"디조르쥬의 왼편 옆으로 첫째 남자. 뚱뚱한 놈 말이야. 등을 너에게 보이고 있는 자가 시야
에 잡히나?"
"물론 잡히고 말고! 그놈의 의자 뒷받침이 좀 방해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 녀석의 어깨 위
로 잡으면 별 문제가 없겠어."
"데드 아이스, 그는 네 것이야. 그들이 흩어진 뒤에는 겨냥되는 대로 사살한다. 나는 디조르
쥬의 오른쪽 놈을 맡겠다."
"겨냥을 위한 보조 물체는 무엇으로 정했나?"
"뒤쪽에 보이는 커다란 유리문의 꼭대기!"
워싱턴은 코로만 킁킁거리며 웃어댔다.
"좋수다! 나는 대장 옆으로 1인치 떨어진 곳을 택하기로 하지. 바람은 어떤 영향을 미치겠
나?"
"바람은 무시해!"
"그게 좋겠군! 준비 완료! 시작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좋아."
"다섯을 세고...."
보란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숫자 하나를 셀 때마다 호흡을 짧게 끊었다. 그의 손가락은
라이플의 촉발 방아쇠에 서서히 감겨 들고 있었다.
"하나, 둘, 셋...."
13.지옥의 베벌리힐스
플라워 차일드 안드로메다는 자동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그는 바쁘게 수류탄 발사기를 묶
었던 끈을 헤치고 라이플의 총 끝에 그것을 부착시켰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그것들은 서로
맞물렸다. 그는 트렁크를 닫고 6피트 높이의 벽을 따라 달렸다. 벽은 디조르쥬 저택에 바로
인접한 건물의 정면에 있었다. 디조르쥬의 소유임을 알게 하는 굵은 생나무 울타리의 저택
앞으로부터 안드로메다는 약 50피트 전방에서 그 벽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배
를 벽에 바짝 붙인 채 약 20피트 가량을 미끄러져 전진해 나갔다. 나뭇가지로 안전하게 감
추어진 돌출 부분을 발견하자 그는 잠시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다.
그 위치에서는 디조르쥬 저택의 뒤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뿐만 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웃
고 떠들며 익살맞은 농담을 주고받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불빛은 그곳 전체를 환하
게 비추고 있었다. 테니스 코트의 야간 조명등 불빛 아래서 두 명의 암자가 공을 주고받으
며 테니스를 즐기고 잇는 모습도 보였다. 역시 보란의 생각이 옳았던 것이다. 안드로메다는
이 저택을 한눈으로 조망할 수 있는 위치를 지적해 준 그에게 감사했다. 그는 미소를 띠며
발사기에다 수류탄을 삽입시켰다. 어둠에 묻혀 편안히 잠을 이루려는 사람들에게 오늘밤은
상당히 시끄러운 <해방의 밤>이 될 것이다. 그러한 조짐은 조심스럽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
다.
그는 어떤 식으로 공격을 시작할 것인지 주의 깊게 계산해 보았다. 그 자신이 가장 적절한
순간에 벽을 따라가며 재빨리 성공적으로 수류탄을 발사한 다음 다시 재 삽입시킬 수 있는
짧은 여유를 마련해 둬야 하는 것이다. 그는 계산이 끝나자 조용히 신호가 오기를 기다렸다.
차퍼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그것이 제일 궁금했다. 생울타리가 드리운 긴 그림자가 그
의 바로 앞 지점까지 뻗어 있었다.
그는 순간 폰테넬리의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해 냈다. 작은 소리로 헛기침을 하여 자신
의 위치를 알리자 폰테넬리는 벽의 그림자 속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조심스럽게 전진했
다.
"거기선 아래가 잘 보이나?"
폰테넬리가 조용히 물었다.
"완전해! 난 오른편에서 왼편 끝까지 몽땅 두들겨 부숴 놓을 작정이야. 아마 저 놈들 중에는
바지에다 오줌을 싸는 놈들도 생길 거라고."
안드로메다가 말했다.
"보란이 우리처럼 이 광경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저놈의 집은 분명 쓸모 없이 천장만
앙상하게 남은 꼴이 되고 말겠지?"
"조용히 해! 저놈들 가운데 네 명이 바로 몇 분 전가지 이 생울타리 주위를 걸어다녔단 말
이야."
안드로메다가 주의를 주었다.
"얘기해 둘 게 있어."
폰테넬리가 정색을 하며 안드로메다를 바라보았다.
"빨리 끝내"
"내가 전에 마누라 얘기를 하면서 베트남에 있는 동안 그녀가 외롭게 보냈다는 얘기를 해준
적이 있을 거야."
"그래, 알고 있어."
"뉴저지에 애가 둘 있어."
"그래서?"
"내가 살아 돌아가지 못하면 내 몫은 아이들한테 보내줘. 미스 핫팬츠한테가 아니라 아이들
한테야."
"넌 살아 돌아갈 거야. 차퍼."
"그래, 그렇지만 내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면........"
"알았어. 걱정마. 내가 알아서 다 해줄게."
"너도 살아 남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무전기로 보란에게 이 얘기를 전해 줘."
"너 자신이 해."
"무전기를 잃어버렸어."
"뭐야? 무전기를 잃어버렸다고?"
"그래. 생울타리 저 뒤쪽 어딘가에서 그 빌어먹을 놈의 걸 잃어버렸어."
"그럼 내게 바싹 붙어 다녀."
"알았어. 보란한테 얘기해 줘야 해. 알았니?"
"좋아. 이제 입 다물어."
폰테넬리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움직여 갔다. 안드로메다는 그가 땅위에 내려서서 생울타
리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그는 사라져 갔다.
차퍼의 얘기는 잠사나마 작은 푸에르토리코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도대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들은 모두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
이다. 바로 그런 면이야말로 이 도박의 도 다른 얼굴이 아닌가? 죽을 때까지 산다는 것. 적
이 너를 없애기 전에 네가 먼저 적을 없애라. 바로 그것만이 이 도박의 확고한 의미가 아닌
가. 안드로메다는 몸서리를 쳤다. 그의 모든 허세와 자만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도박을
끝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그 자신의 모든 헤세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란 그것이 남에게 덮치는 경우에는 이야기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안드로메다는 이 모든
비현실적인 문제로부터 헤쳐 나오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는 보란으로부터 지시를 받기
위해 두 귀를 곤두세웠다.
그때 멀리서 두 자루의 고성능 조준 라이플로부터 동시에 발사된 두발의 총성이 정적을 갈
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 총성은 또한 안드로메다의 두 뇌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저택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총성은 바람을 가르고 연속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허둥
지둥 몰려다니다가는 뒤뜰로 사라졌다. 그들은 심한 욕설을 퍼부면서 서로의 이름을 목청껏
불러대고 있었다.
안드로메다는 음산한 미소를 흘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귀는 무전기에 바짝 밀착되어
있었다. 죽음은 가까이서 모든 사람을 을러대기 시작했다.
줄리앙 디조르쥬는 그의 가족들 중 몇 사람의 태도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가족 전체에 닥쳐오고 있는 위협에 대해서보다는 대중 앞에서의 자신
들의 입장에 대해서 오히려 더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눈앞에 닥친 경
찰들의 대대적인 검거 소식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어했다. 맥 보란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
해 이미 수립해 놓은 계획에 대해서 얘기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최고 학부를 졸업한, 예절 바른 신사인 레오나르도 가치는 디조르쥬의 오른편에 앉아 있었
다. 그는 세 개의 지방은행 중역이었으며 그 지역 사회에서는 꽤 알려진 세력가였다. 그는
대단히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총을 들고 싸우는 일은 지금까지의 그의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킬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상아처럼 깨끗한 가치의 웃음은 그의 의회 선거구에서 여성 투표자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디조르쥬는 가끔 그의 웃음을 씻어 없애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토록 매혹적인 상앗빛 미소는 금전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는데 그 돈줄은 바로 디조르
쥬가 지하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가치는 디조르쥬의 4촌이었다. 그러한 관계는 공공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참으로 편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사람의 명성을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써 구축해
나간다는 것은 좀 생각해 볼 문제였다. 레오나르도가 깨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계속 끌어다
쓰는 가족의 돈줄이 끊어진다면 얼마쯤이나 지탱해 나갈 수 있을지 디조르쥬는 의심하지 않
을 수 없었다.
그리고 조니 트리에스테도 와 있었다. 그는 장대하고 돼지처럼 살이 찐, 뚱뚱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으로서 디조르쥬의 왼편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그는 항상 디조르쥬의 뒤를 따
라다녔다. 디조르쥬가 기억하고 있는 한은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머리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 뚱뚱한 허리도 물론 그대로였다. 그는 나이트클럽에
서 일하는 코미디언과도 같은 서툰 영어 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영어를 쓰는 일도 읽는 일
도 결코 배우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미국 돈을 셀 줄은 알았다. 그가 미국 달러를 셀
줄 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었다.
조니는 이제까지 외판원 이상의 직업을 가졌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사업체내에서는
제일 가는 외판원이었다. 어느 곳에서건 최고가 된 사람에게 불평을 늘어놓을 이유는 없다.
더구나 본인이 그러한 것을 원하고 있는 바라면 더더욱.
가끔 조니는 그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때가 있었다. 그는 환
경이 바뀌는 것을 싫어했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 속에서
도 어느 한계 이상은 섞이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말하자면 충성스러운, 핵심적인 골수
마피아였다. 그 이유만으로 그는 가족 회의에 영항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의 현재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그는 갑작스러운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조니는 30년 동안이나 살인죄에 대한 유죄 판결을 머리 속에, 가슴속에, 심
지어는 손가락 사이에까지 달고 다녔다. 그는 뉴욕의 법정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에
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서부로 도주했으며 근래 몇 년 동안 가족의 보호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도 경찰
과의 마찰 사건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그는 공포와 전율 속에 파묻혔다. 디조르쥬는 이 늙은
마피아에게 동정을 느꼈다. 그러나 사업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조니 트리에스테는 탁자 위에 놓인 술잔을 들여다보며 둥글게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레오
나르도 가치는 그 특유의 상앗빛 웃음을 띠고 앉아 있었다. 디조르쥬가 입을 열였다.
"들어보게. 잘 들어봐. 제일 먼저 끝내야 할 문제는..."
그 순간, 조니는 뒷머리에 무엇인가 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피가 분수처럼 솟
아 올랐다. 레오나르도의 상앗빛 미소는 그 피의 분출을 보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조니의
조각난 뼈가 튀어올라 그의 벌어진 입속으로 날아갔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조니의 거대
한 몸뚱이는 디조르쥬의 마음속에 30년 전에 집행되었어야 할 사형이 이제 막 끝난 것이라
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추호도 그 집행 의식에 대해, 자신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았다. 갑자기 레오나르도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더니 다음 순간
의자와 함께 땅바닥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겨우 그제서야 한 쌍의 <티아아아쉬쉬이이
->하는 소리의 목표물이 무엇인지가 드러났다.
탁자 주의의 다른 사내들은 가치와 트리에스테의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얼어붙
은 듯이 멍청히 낮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 다시 그 중 두 사람이 쓰러졌다. 비로소 거기 모
여 앉은 사람들의 귀에 첫 번째의 총성이 들려 왔다.
디조르쥬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의 본능은 그에게 이 사태에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충동질하고 있었다. 고성능 조준 렌즈가 부착된 라이플로부터 발사되는 먼 총성
는 그칠 사이 없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세워! 세우란 말야! 그 탁자를 세워서 막아!"
디조르쥬는 비명처럼 외치며 무거운 오크 목제품의 가구에 붙은 다리를 있는 힘을 다해 잡
아 챘다. 탁자는 대리석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는 그 탁자 뒤로 몸을 숨기고 배를 바닥에
깐 채 엉금엉금 기어갔다. 현기증이 일었다. 그의 다리 쪽에서 누군가의 몸뚱이가 발에 걸렸
다. 사람들의 우왕좌왕하는 발걸음 소리가 더욱 요란해졌다. 그는 그들 중 두 사람이 갑작스
런 발작이라도 일으킨 듯 졸지에 비틀거리더니 곧 땅 위로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 맙소사! 이건 학살이야, 학살!"
그는 울부짖었다. 호흡은 잔뜩 위축되어 버린 갈비뼈 사이로 고통스럽게 조금씩 새어 나왔
다. 죽음은 참으로 정확하게 줄리앙 디조르쥬를 찾아 날아왔던 것이다. 자신에게 언제 그러
한 것이 닥쳐 왔는지 그는 하나도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됐어. 바로 그거야! 곧장 날아가라고!"
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촉발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이미 다음 표적을 향해 재빨리 총구를 옮
겨 놓고 있었다. 그 거대한 총에서 총알이 발사됨과 동시에 어깨로 전달되는 반동의 감각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좋아! 세어 봐!"
보란이 소리쳤다. 바로 그때 그의 파드너의 무기가 굉음을 쏟아 놓았다.
워싱턴이 안대로부터 눈을 떼니 보란은 다리를 꼬고 앉아 한 손으로는 어깨를 주무르면서
다른 손으로는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잘했어! 탁자가 산산조각났는데!"
보란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럴거야. 그 밑에서 그놈들은 뭘 하고 있나?"
"불에 덴 병아리들처럼 폴짝거리고 있어. 놈들은 우리의 위치를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을
거야. 몇 방 더 쏘아 붙여, 데드 아이스! 네가 얼마나 손전등을 정확히 비추는지 한번 보기
로 할까?"
워싱턴은 낄낄거리며 안대에 눈을 다시 밀착시켰다. 그는 저택 정면의 거대한 유리문을 향
해 재빨리 두 방을 쐈다.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던 보란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아마 열 명은 쓰러졌겠어! 멋졌어!"
"나는 창문을 쏘았을 뿐이야."
워싱턴은 낄낄대며 대꾸했다.
"그래서 열 명의 심장이 또 멈췄을 테지. 이제 그들이 우리를 발견했어. 한 녀석이 톰슨을
휘두르며 달려오고 있군. 잘 달리는데. 그놈들은 낮은 벽을 끼고 달리고 있어. 저자들이 정
말 응사할 작정일까?"
보란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폭발소리와 그에 이은 총소리가 저택으로부터 들려 왔다. 워싱턴은 보란을 향해 돌아서며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쉬 - 잇!"
보란은 망원경을 워싱턴에게 넘겨 주었다.
"이제 재미있는 구경이나 좀 할까? 지금이다. 플라워 차일드! 가라!"
그는 무전기의 단추를 누르고 말했다.
먼 곳에서 폭발음이 보란의 명령에 즉각 대답해 왔다. 그는 워싱턴을 향해 웃음을 날렸다.
"제기랄, 그 친구 점잔 빼고 있는데, 안 그래? 무슨 대답이 저렇지?"
뒤를 이은 폭발음이 들려 왔다.
"밑에서부터 모두들 달려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두커니 서서 서로를 멍청히 지켜보고
있군요. 지금 막 돌아섰어요."
워싱턴은 마치 중계방송이라도 하듯 보고 했다.
"그놈들 계속해서 시소를 즐기도록 해줄까?"
보란은 계속 총질을 해댔다. 수류탄도 10초 간격으로 계속 터졌다. 디조르쥬의 뜰은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서 불꽃이 타오르고 시커먼 연기가 떼를 지어 흘러 다녔
으며 사람들은 방향을 잃고 울ㄹ부짖고 있었다. 보란은 목표물마다 명중시켰으며 워싱턴도
그에 합세했다.
몇 분이 지나자 보란의 라이플 총구의 열기는 그의 피부가 견뎌 내지 못할 정도로 뜨거워
졌다. 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사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이건 베트남에서보다 더 심한데? 대장!"
보란은 달아오른 라이플을 들어올렸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번들거렸다.
"전지전능의 마피아들아!"
하고 그는 장난스레 외쳤다.
"데드 아이스, 화기를 분해하도록 하자. 이제 여기를 떠날 시간이다. 이상없나?"
그는 무전기를 집어들고 말했다.
"없어! 일반 회선으로 한 통의 전화 연락이 있었을 뿐, 아무 것도 없었어. <불치의 죄인>
은 고요하다."
즉각적인 회답이었다.
"됐어! 통로에서 기다려!"
"빌어먹을! 내가 ECM 당했다!"
슈바르츠가 갑자기 울부짖었다.
"뭐라고?"
"이제야 알게 됐어."
"그 위치를 떠나라!"
보란이 명령했다.
"이동하라! 모든 대원들은 현재 위치에서 벗어나도록 하라. 즉시!"
"불가능해! 나는 못 박혀 버렸다."
지트카가 차갑게 말했다.
"경찰들이야. 남쪽 방향으로 올라오고 있어!"
루데크의 낮은 목소리였다.
워싱턴은 두 팔로 라이플을 들어올렸다. 그의 두 눈은 흥분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보
란은 고개를 들어 언덕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워싱턴은 즉시 몸을 날려 앞쪽으로 뛰어나갔
다.
"경찰들이 증원되었어. 서쪽이다!"
하고 루데크가 외쳤다.
"당분간 연락을 준단해!"
보란은 비탈길을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만큼 앞에 워싱턴의 모습이 보였다. 지트카의
목소리가 무전기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와싿.
"3번 위치, 통화 포기다! 더럽게 되어 가고 있어. 통화를 중단하라. 내 위치를 수정하겠다!"
"가능하다면 전부."
하고 보란이 덧붙였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경찰들을 피하라."
"차퍼를 찾을 수가 없어."
안드로메다가 걱정스레 말했다.
"닥쳐, 플라워 차일드! 빨리 빠져 나오라!"
보란은 도로에 도착하자 자동차를 향해 달려갔다.
"차퍼는 응답할 수 없어. 그에겐 무전기 없다고!"
안드로메다가 말했다.
"뭐야? 너 혼자라도 나와!"
"빌어먹을!"
디조르쥬는 바쁘게 손을 놀려 주의 깊게 시체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가족들 중 여덟 명이
쓰러져 있었다.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태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열 두 명 가운데 넷만이 살아 남은 것이다. 아직도 탄환들이 날아와서 대리석 위로 쏟아지
고 있었다. 탁자가 부서지고 뒷벽의 시멘트 블록이 주저앉고 유리창은 모두 박살나고...... 이
제는 수류탄과 요란스럽게 직어대는 기관총들도 가세한 것 같았다. 무수한 탄환들이 머리
위로 계속 날아왔다.
"여기에서 나가!"
디조르쥬는 소리를 질렀다. 네 명의 생존자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바라보았다.
"집을 빠져 나가! 가서 너희들의 전투 요원들을 불러 모아! 빨리, 빨리 가라고!"
"어디로 말인가요. 디스?"
제노 봐로네가 물었다.
"벨로아로 가라! 거기서 만나자. 어서 떠나! 어서!"
봐로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원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그는 총격으로 팔을 다쳐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으나 그런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세 명도 재빨리 그
의 뒤를 따랐다.
"벨보아로 가라! 이 머저리들아!"
그들이 뜰을 빠져 나갈 때까지 그는 기다렷다. 모두 사라지자 그는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
어 시멘트 벽이 방패가 될 수 있는 곳까지 와서 멈췄다. 그는 다시 지그재그로 기어갔다. 산
산조각이 나버린 유리창 안으로 들어선 그는 곧장 집 뒤쪽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주방에서
그의 개인 경호원인 루 페나를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어!"
디조르쥬가 추궁했다. 추궁당한 루페나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입을 열었다.
"저 밖에 기관총을 들고 왔다갔다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플래시를 찾으려고 들어왔습니
다."
루페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디조르쥬는 루테나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 들었다. 그는 경호원을 밀치고 뒷문 밖으로 걸
음을 옮겼다. 그는 다시 엎드린 자세로 차고를 향하여 빠르게 움직여 갔다. 얼마쯤 가다 보
니 불빛이 모두 꺼져 버렸다. 디조르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가까운 곳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날려 땅바닥에 납짝 엎드렸다. 화약 연기가 그 주의를 덮쳐왔다.
연기속을 헤치며 검은 옷을 입은 한 사나이가 기관총을 거머쥐고 한 발 또 한 발 다가오고
있는 것을 그는 볼 수 있었다. 디조르쥬는 루페나의 리볼버를 들어올려 세 번을 쏘았다.
그의 앞에서 한 사나이가 소리 없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손에든 그 거대한 무기의 총구에
서는 신경질적으로 불꽃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나 이제는 땅바닥을 파헤칠 따름이었다. 그
는 총을 들어올리려고 애를 쓰는 거 같았으나 계속 밑으로 밑으로 쳐질 뿐이었다. 결국 그
것은 땅위로 쳐박혔다. 곧 이어 그 사나이도 쓰러졌다. 말없이 그는 앞만을 노려보고 있었
다.
디조르쥬는 다시 차고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뒤로 돌
려 등 뒤쪽을 살펴보았다. 검은 옷의 사나이는 아직 그곳에 쓰러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커
다란 얼룩처럼 보였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무기를 들어올리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로 있
었다.
디조르쥬는 급하게 온몸을 부딪쳐 차고의 문을 열었다. 디조르쥬는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사나이가 그이 소유지내를 저 사나이처럼 엄청난 총을 들고 방황하고 있는 것인가? 베벌리
힐스는 이제 디조르쥬를 위해서는 안전한 장소가 되지 못했다. 더 완벽한 장소를 찾아서 그
는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었다.
안드로메다가 수류탄 발사기를 사용한 것은 보란의 신호가 채 끝나기도 저닝었다. 차퍼의
기관총이 아우성치는 소리를 들은 것은 그가 세번째 수류탄을 장탄하고 있을 때였다.
마피아 패거리들이 디조르쥬의 뜰을 미친 듯이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악을
썼고 욕설을 퍼붓곤 했다.
"벽으로!"
그들중 하나가 발악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차퍼는 그리로 달려 들어간 것이었다.
안드로메다는 차퍼의 무기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연속적인 불빛들을 볼 수 있었다. 생울타
리 너머로부터 들려 오는 비명소리와 발악이 그의 사격의 결과를 그때그때 설명해 주고 있
었다. 푸에르토리코인은 그때 막 다섯 번째의 수류탄 사격을 꿑낸 참이었다. 그때 차퍼는 계
속 총을 쏘아대면서 생울타리를 넘어서서 전진하고 있었다.
"차퍼! 돌아와! 차퍼!"
안드로메다가 외쳤다. 그러나 그에게까지 그 말이 가 닿기에는 디조르쥬의 뜰위에서 벌어
지고 있는 폭발과 그에 따른 소음이 훨씬 컸다. 할 수 없이 그는 여섯 번째 수류탄을 삽탄
하여 작은 바위에 발을 딛고 훌쩍 뛰어올라 벽끝으로 달려갔다. 그의 시야에 차퍼가 들어왔
다. 그 정신 나간 이탈리아인은 천천히 걸어 가면서 계속하여 총질을 해댔다. 그 폭발음과
그의 으르릉거리는 고함소리는 적들의 심장을 공포로 졸아 들게 하기에 족했다. 안드로메다
의 시야 속에 집으로 뛰어 달아나는 열두 명의 남자가 잡혔다. 그들의 등 NL에 폰테넬리가
있었다. 그는 선자세 그대로 마구 쏘아댔다. 안드로메다는 환호성과 함께 적들의 머리너머로
수류탄을 발사하며 그를 도왔다. 그 불꽃과 연기가 얼마 동안 폰테넬리를 감추어 버렸다.
"돌아와!"
안드로메다가 외쳤다. 그는 팔을 높이 쳐들어 다급하게 흔들었다.
폰테넬리는 안드로메다가 서 있는 방햐응로 허공을 향해 일곱 발의 굉음을 날렸다. 그러고
는 연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드로메다는 그이 무기를 둘러메고 그이 뒤를 따랏다. 그들
이 생울타리를 지나 뜰로 다가섰을 때 모든 불빛이 꺼져 버렸다. 안드로메다는 보란의 지시
사항을 상기해 내고는 잠시 멈춰 섰다가 그새 사라져 버린 폰테넬리의 뒤를 따라 몇 걸음을
옮겼다. 그는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무전기에 귀를 갖다 댔다. 보란과 슈바르츠 사이에 교
환되고 있는 대화를 들었다.
"그만 끝내고 가자!"
라는 보란의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섰다. 그 다음 사항에 대해서
는 전혀 언급이 없어싿. 한 대의 차가 총알같이 도로로 달려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타이어와
도로가 마찰을 일으켜 불꽃이 일 듯 했다. 차퍼의 무기가 내뱉는 총성이 연기로 뒤덮인 어
둠 앞쪽 어딘가로부터 들려 왔다. 그는 자시느이 파트너의 이름을 부르며 계속 전진해 갔다.
"경찰들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하라!"
보란의 목소리가 그의 귓바퀴에서 맴돌고 있었다. 안드로메다는 그의 무전기를 움켜잡으며
울부짖었다.
"차퍼를 찾을 수 가 없어!"
"닥쳐. 플아워 차일드! 어서 빠져 나와!"
보란이 날카롭게 명령했다.
"차퍼한테는 무전기가 없다고! 그는 연락을 받지 못해!"
안드로메다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빨리 나와!"
"빌어먹을! 이게 무슨...... "
그는 절망적으로 내뱉었다. 그러고는 무전기의 단추에서 손을 떼고는 외쳐댔다.
"차퍼! 끝이다. 빌어먹을! 나와! 도망가야 해!"
그 차는 이제는 도로를 멀리 벗어나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안드로메다는 주저하
다가 연기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는 폰테넬리가 도로와 저택 사이의 중간쯤 위치에 고꾸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차퍼는
무기를 손에 움켜쥔 채 땅속에 처박혀 버린 총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 옷 앞자락
은 피에 절어 아직 따뜻했으나 조금씩 뻣뻣해져 가고 있었다. 안드로메다는 폰테넬리의 가
슴에서 세 개의 구멍을 발견했다. 그는 친구의 몸뚱이를 그이 무기옆에 나란히 누이고는 허
옇게 치켜 뜨고 있는 눈을 감겨주었다. 그리고 곧 자리를 떠났다.
14.대학살의 현장
포쉐는 언덕을 급하게 굴러 내려갔다.
워싱턴이 운저대 앞에 앉아 있었고 보란은 무전기를 손에 들고 반대편 문에 기대고 있었
다.
"저기 브럴드 브라더가 있어!"
보란은 위싱턴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내버려둬."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무전기를 지비어 들었다.
"종마! 차를 버리고 탈출해! 더 이상 속일 수 는 없어!"
"우리들에게 그럴싸한 작전이 있다. 우리는 D와 D를 시도해 볼 작정이다."
블랭카날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가능한 일이야. 버리고 탈출하라! 버려!"
보란은 잘라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워싱턴이 보란에게로 눈을 돌리며 물었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차를 모는 일에 열중해야
했다. 포쉐가 막 90도 각도로 방향을 꺾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모조품(Dummy)과 전환(Disert)이야."
하고 보란이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은 경찰을 유인해서 따돌리려는 속셈이야."
"그들이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보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몰라. 자신들을 지나치게 괴신하고 있다가 제 꾀에 넘어갈지도. 우리의 도주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경찰의 주의를 집중적으로 유도하겠다는 생각이겠지."
그는 다시 한 번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어디로 가는가, 종마?"
"2번 궤도로! 갯지트가 그들의 새로운 전파망을 발견했다. 보고할 테니 기다려라."
"3번 도로는 통제되고 있다."
지트카가 충고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네거리에서 문제가 생겼다."
"뭐야, 지트?"
"도로가 차단되었다! 빌어먹을, 저쪽을 봐! 그들이 차단하고 있어!"
"빌어먹을"
잠시 침묵이 흘렀다.
"3번 도로다. 교차로 2번. 나는 다시 돌아가려 한다."
보란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는 거의 헐떡거리거 있었다. 워싱턴은 낄낄거리며 또 한차례
의 바퀴들이 비명을 올려야 하는 급커브를 돌았다.
갯지트 슈바르츠의 음성이 무전기를 통해 흘러 나왔다. 그는 억양이 없는 목소리로 숨 가
쁘게 말하고 있었다.
"됐다. 이쪽에 길이 보인다. 주변을 경계하라. 4번 도로에 구멍이 있는 것 같다. 2번과 3번
도로의 모든 출입고는 봉쇄되었다. 4번 도로는 신나게 달려도 좋다. 이상!"
"좋아, 대단한군! 이제 탈출이다!"
보란은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잠깐!"
하고 슈바르츠가 대꾸했다.
"D와 D가 열매를 맺으려 하고 있다. 임의로 결행해 보겠다."
"모두들 보고하라! 어디 있는가?"
"독수리는 빠져 나가서 4번 도로 위를 신나게 달릭고 있어."
블러드 브라더 루테크였다.
"산을 따라 접근하는 중이다."
붐붐 하파워가 보고했다.
"4번 도로를 찾아 달려가려는 참이다."
건 스모크 해링턴은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종마가 보이낟. 모두들 다 무산한가?"
플라워 차일드 안드로메다가 말했다.
짧은 침묵이 뒤를 이었다. 보란이 워싱턴을 돌아보았다. 그는 무전기의 단추를 누르고 차퍼
를 호출했다.
"어디에 있나? 보고하라!"
"그는 베벌리힐스 위에 누워 있다."
하고 안드로메다는 가능한 한 침착하려고 애쓰면서 보고했다.
"그는 자기 몫을 뉴저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 달라고 했어."
"알았어!"
보란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는 이제 자유롭다, 친구들. 그는 자가기 원했던 죽음을 성취했어. 그건 사실이다."
"골든 스테이트에 뚫린 그 구멍을 봉쇄해! 그놈들이 신나게 달려가는 4번 도로다."
방송계 담당 직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브래독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또 다른 총격전입니다. 퍼시픽 해변과 베벌리의 주택지 사이. 도로 차단. 두 대 이상의 차
가 손상당했습니다. 그것들을 대체할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브래독은 재빨리 책상 위에 유리를 덮어 끼워 놓은 지도를 보며 한 지역을 가리켰다.
"이것들을 보내."
그의 집게 손가락이 지도 위에다 계속해서 원을 그리고 있엇다. 그는 인터폰을 사용하기
위하여 자리를 옮겼다.
"앤디, 뭐 특별한 것 없나?"
앤디 포스터 경감은 미국 해군서으로부터 날아온 특수 정보요원들과 같이 지붕 위에 올라
가 있었다. 그는 즉시 응답을 보내왔다.
"그들은 폭탄 파편처럼 빠르게 달아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불치의 죄인>지역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래, 알았어. 나도 듣고 있었네. 그 종마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물건인가?"
"이동 통제 본부입니다. 아마도 화물차 같습니다."
"계속 그놈들을 추적하라. 그들의 탈출 경로가 명백해지거든 나한테도 알려 주게."
브래독은 긴 한숨을 쉬고는 방송 계원에게 명령했다.
"남쪽으로 출발시켜!"
방송계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기 앞으로 돌아앉았다.
"4번 지역, 5번 지역, 6번 지역의 모든 단위 수사 대원은 ....."
브래독은 무거운 마음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커피라도 한잔
마셔야 정신이 날 것 같앗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지금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가 보란 패거리를 잡기 위해 설치한 수사망은 결국 마피아를 도주하게 만들었다. 이제
로스앤젤레스의 거리는 붉은 피로 물들 것이다. 주임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커
피잔을 반쯤 비웠다. 아, 오늘 밤이야말로 보란 사태의 절정인 것이다. 오늘 밤의 로스앤젤
레스는 피의 도시가 될지언정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에 비치는 거리는 깨끗이 청소되어 있을
것이다.
해군 정보 요원의 한 사람인 소위는 앤디 포스터에게 웃음을띤 채 말했다.
"바로 이 작자가 사람들이 사형 집행인이라고 부르는 잡니까?"
"바로 그 자요."
하고 포스터는 진지하게 답변했다.
"더 좋은 성능의 기재는 없소?"
"이건 무선 방향 탐지기일 뿐입니다. 아시겠지만 레이더가 아닙니다."
소위는 계속 말을 이었다.
"발신음이 전해질 때마다 자동적으로 삼각 포착은 가능한데 이놈의 수신기가 파장을 포착
하면서 서로 오가는 각각 다른 목소리들을 구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 가능
한 유일한 길은 궤도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5분 전에 그들은 베벌리힐스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었지만 지금쯤은 아마도 그 남쪽 어딘가로 달아나고 있을 겁니다. 여하간
에 본부는 거기에 있어요, 경감님, 그게 바로 그들이 종마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싶군요, 포
착되는 목소리로 보아 한 명은 아닌 것 같고 둘이나 셋쯤이 함께 행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
다. 그들은 양동 작전의 형식으로 달아나고 있으며 서로 계속해서 교신하고 있습니다. 그렇
지만 우리에게는 그걸 이용할 방도가 없으니 문젭니다. 어쨌든 사태의 주요 부분의 명확한
경로를 위해서는 아마 적어도 5분 이상이 소요될 것입니다. 게다가 그 종마라는 것이 확실
히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답답한 일이 있습니까?"
또 한 사람의 소위가 움직이는 기기들 곁에 가까이 앉아 있다가 얘기에 끼여 들었다.
"이것 봐라! 그들의 <불치의 죄인> 주파수를 잡아낸 것 같은데. 이자들은 정말 일을 복잡
하게 만드는구먼! 이걸 들어 보십시오."
그는 수위치를 누르고 수신기를 귀에서 벗어 내 그것을 마이크 위에 올려놓았다.
"5번 지역 단위 수사대! 이동 명령을 취소한다. 멀리 떨어져 대기하라!"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가 <불치의 죄인> 특설 네트워크를 통해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저건 당신네 방송 계원의 목소리가 아니잖소?"
해군 본부에서 나온 사내가 지적했다.
흥분한 다른 목소리가 즉각적으로 조금 전의 취소명령을 또 부정하느라고 악을 써대고 있
었다. 끔찍스런 비명소리가 즉시 그 통신을 방해했다. 그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지워 버리는
데에는 충분한, 효과적인 소음이었다. 해군 정보 요원들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
고 있었다.
"그들은 당신네 무선 통신까지 방해하고 있소!"
해군 지휘자가 포스터에게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의 적당한 대응책은 없소?"
포스터는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비상 계획을 세워야 할 거요."
"6번 지역! 6번 지역! 그 비명소리를 무시하고, 알파 3번 지역으로 접근하라. 알파 3번이다.
그곳에서 다음 명령에 대기하라. "
"저건 아니야!"
포스터는 그때야 조금 전의 그 끔찍한 비명소리으 주인공이 브래독이었다는 시실을 깨닫게
되었다.
해군 정보 요원들은 소리내어 웃고 있었다. 포스터 경감은 인터폰을 끌어당겨 놓고 악을
썼다.
"그놈의 종마을 꼭 잡아야 해!"
줄리앙 디조르쥬의 날씬한 캐딜락은 골든 스테이트 고속도로를 맹렬히 질주하고 있엇다.
그는 핸들 위로 몸을 잔뜩 굽혔다.
가슴은 심하게 두 방망이질 쳐대고 있었고 눈앞은 팽이처럼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차의
다이어로부터 들려 오는 공기와의 마찰소리가 마치 그를 질타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패
배했던 것이다. 그걸 자인하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은 일이었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이
제 그가 막 도약해 나온 '옛날'로 돌아가야 하다니! 그러나 그 <엣날의 방식>으로 돌아간다
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예날이란 이미 죽고 없어진 무엇이다. 그것들로 되돌
아갈 수 있는 길이란 아무 데도 없다. 그런데 그가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으로 그곳을
벗어난 기쁨에 들떠 있을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도 않아 벌써 그는 죽어 버린 옛날의 방식들
이라는 무덤에 한발을 내디딜 뻔했던 것이었다. 이게 대체 웬 일이란 말인가!
시간은 변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논리다. 시간과 함께 사람도 변한다. 물론이다. 그른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엇다. 옛 세계 대전 때의 낡은 무기로 현재의 전쟁을 치르려 하다
니. 그것이 바보 디스가 패배한 가장 뼈아픈 원인이었다. 시간이 변했으니 전쟁의 양상도 따
라 변한 것이다. 그는 구식의 방법으로 적을 맞으려 했었다. 자신의 강한 힘을 상대에게 보
이는 것만으로도 보란을 경악시켜 그를 몰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영리한 보란을 훌륭한 힘의 쇼를 연출한 디스에게 당당하게 도전장을 던져 왔다.
자, 이제는 모든 것을 다 잃어TEk. 법적 지위도, 존경도, 사회와의 평화로운 관계도- 그래,
그런 것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경찰관들도, 신문들도, 단골 식당의 주인도, 이웃집 주부도
이제는 디조르쥬 제국을 들먹이며 욕을 퍼부어댈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정체는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 것이다. 줄리앙 디조르뷰, 엣날의 줄리오 디게오르지오는 협박 공갈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의명단에 오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가 관계하는 은행을 수사선상에 올릴 것이며, 그의 선박을 조사할 것이다. 또 그
는 그를 살피려는 모든 거대한 의혹의 눈 아래에서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디
스는 지난 날의 암흑 속으로 다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그 어
둠 속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좋다. 디스는 항상 자신이 사회적 존경이니 뭐니 하는 구역질 나는 것들에 연연해
하니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맹세코 신의 이름에 걸고 디스는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길
원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자신의 소망을 결코 부끄러원한 적이 없었다. 베벌리힐스라고?
이제 다 필요없어! 상앗빛 미소를 흘리고 다니는 놈들은 개미의 엉덩이나 핥으라고 해! 근
질근질한 엉덩이를 휘젓고 다니는 그 갈보년들도 지옥으로나 떨어져 버려라! 모두다 지옥으
로 굴러 떨어져 버려라!
지금 디스는 벨보아에 있는 성채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가족의 고향이었다. 그곳은 그
가 기세 좋게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콧대 높은 경찰관들을 얼마
든지 조롱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구역질 나는 사회적 존경이니 뭐니 떠드는 자들도, 그 보
란이라는 놈과 같이 미치광이들도 다 비웃어 줄 수 있는 곳이었다. 디스는 보란을 벨보아에
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그 불쌍한 녀석이 벨보아로 기어들기를 간절히 원
했다. 그리하여 분노와 그 분노로서 이루어지는 싸움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알려 주
고 싶었다.
"여기는 종마, 송신을 중지한다! 마지막 교신이다! 행원을 빈다. 대장. 당신의 승리를 바란
다. 마지막 교신이다."
"갯지트"
플라워 차일드 안드로메다의 낮은 음성은 보란의 외침소리와는 대조적이었다.
"이젠 자네의 말도 들을 수 없게 됐어. 젠장! 곧 당할 것 같다. 기회가 없다. 왜 이렇게 됐
지? 떠나야 한다. 저항(전기 부품의 일종)의 대가(大家)를 명단에서 지워라."
"항복이란 말인가?"
보란은 화가 나서 부르짖었다.
"바로 그거다. 조용한 항복. 그러나 나는 자네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영원히......"
보란은 서글픔과 비탄으로 신음소리를 냈다.
"그래 ...... 우리는 참된 진실을 향해 달리고 있지. 선택은 자유다. 플라워 차일드! 어디있
나?"
"우리는 자네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자네를 찾겠다."
"나도 가까워지고 있다."
하고 지트카가 끼어 들었다.
"듣고 있는가?"
"듣고 있다."
보란이 그에게 확인시켰다.
"건 스모크, 얼마쯤 떨어져 있는가?"
"궤도와 평행선으로 달리고 있다."
해링턴이 보고해 왔다.
"훌륭하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 계속 달려라!"
"종마로부터도 플라워 차일드로부터도 전혀 연락이 없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지트카느 투덜댔다.
"경찰이 결국 종마를 사로잡았다. 플라워 차일드는 곧 재합류 할 것이다. 모두가 상당히 가
까운 거리에서 달리고 있다."
"이제 무전을 중지하도록 하자."
지트카가 엄숙하게 제안했다.
"잠깐만 기다려라, 잠깐만."
"알았다."
"어디에 있나, 붐붐!"
"지금 건 스모크가 보인다."
하파워는 낮게 말했다.
"좋다. 좀더 가까이 가라!"
"나는 빅터 4번으로 가고 있다!"
지트카가 말했다.
"이후 2분이 지나면 교신을 중지한다!"
"내 뒤쪽에서 자네가 보인다. 대장!"
루데크였다.
"알았다. 같이 달려가자. 모두 모여!"
"나는 지금 날아가는 중이다. 친구!"
안드로메다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낙오자가 한둘쯤 되는 것 같군. 그들은 골든스테이트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는 그들을 바짝 추적하고 있습니다. "
포스터의 흥분한 음성이었다.
" 생각해 보게. 우리가 보유한 차량의 약 반 가량이 이 일에 투입되었어. 어떻게 그들을 놓
칠 수가 있겠나?"
브래독은 안달을 했다. 모자를 집어 든 그는 무전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내 차를 준비시켜! 비상 지역을 해안에 이르는 모든 도로까지 확장한다. 리버사이드는 고
려중이다. 레드랜드도, 배낭도, 산캐킨스도 고려해 보겠다. 그 주위에 있는 대원들은 보두 비
상망에 합류해라. 해안 도로를 완전 봉쇄하기 위해서 고속도로 순찰차를 이용해도 무방하다.
완전하게 봉쇄하라! 알았나?"
" 언제까지 이 녀석들을 추적할 생각이오, 주임? "
제복 차림의 사내가 물었다.
" 그 놈들이 붙잡힐 때까지! 해야 한다면 티주아나까지도 따라 가겠다 !"
브래독은 이를 갈며 대꾸했다.
벨보아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 무리의 자동차 행렬이 있었다. 몇 분 전에 고속도로를 막
벗어난 그들은 캘리포니아 해안의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외곽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제 벨보아는 몇 마일밖에 남지 않았다. 도로는 로키 산맥의 융기 부분에 올라앉아 작은
만을 에워싸고 수백 피트나 뻗어 있었다.
보란은 루데크의 차 뒤에서 잠깐 동안 멈춰섰다. 지트카의 작은 MG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
러나, 지트카는 길 아래쪽에서 특공대의 꼬리를 향해 조용히 달려오고 있었다. 보란은 루데
크가 지트카와 합류하기 위해 미끄러져 나가는 것을 보며 차에서 내렸다. 그 두 사람은 보
란의 포쉐로 나란히 걸어왔다. 그들은 킬킬거리고 있는 건 스모크 옆에서 합류되었다. 워싱
턴도 차 밖으로 나와 섰다. 그는 포쉐의 지붕 너머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 위로 몇
점의 구름이 낮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별빛들이 푸르게 빛났다.
지트카는 강한 바닷바람을 등으로 막으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힘껏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토해 내면서 말했다.
" 이제 다 모인 것 같군."
보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이 방금 지나온 도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 속으로
도로의 높이와 길이. 도로 폭 따위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 끝머리에 커다란 집이 한 채 있었
다. 수평선을 향하여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그 건물의 3층으로부터 불빛이 새어 나
왔다.
" 저 길은 막혀 있나?"
보란은 지트카를 돌아보며 물었다.
" 그런 것 같아. 돌을 쌓은 벼, 10피트 높이에 100야드 넓이로, 중앙에 커다란 철문이 있고
그 안에는 벽돌로 쌓아 올린 대문이 또 하나. 네 명의 경비원이 보이는군. 대문으로부터 현
관까지는 대략 1000야드 떨어져 있고, 권총을 든 사내가 벽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 그럼....."
보란은 긴장하며 물었다.
" 저건 요새란 말인가?"
" 그런 것 같아. 이게 바로 그들의 견고한 성채인 모양이다. "
" 18세기 양식이군."
해링턴이 한마디 거들었다.
" 이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자. "
루데크는 철책 끝으로 걸어가서 바닷물이 출렁대는 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는 나직
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나는 바다에 빠져 죽고 싶지 않다. 아무 것도 없어. 바위와 돌조각들뿐이야. "
보란은 해링턴을 향하여 시선을 옮겼다.
" 붐붐은 어디 있나?"
" 그는 교차로를 살피러 갔어. 플라워 차일드가 길을 잃은 건 아닌가 확인할 겸 말이야. "
해링턴이 대답했다.
" 정치가다운 생각이군. 현명해. "
보란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을 이었다.
" 우리에겐 꼭 필요한 사람이야."
" 저기로 들어가겠다는 건가?"
해링턴이 웃으며 물었다.
" 맞아!"
보란이 대답했다. 그는 지트카와 루데크를 향해 걸어갔다.
" 저 건물을 세밀히 살펴봐. 틈이 나 있는 곳이나 돌출부를 특히 잘 살피도록 해. 몸을 지탱
할 만한 것을 찾아. 구멍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트카와 루데크는 서로 의미 있는 시선을 교환하고는 돌아섰다. 보란은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 붐붐, 상황을 보고하라!"
" 플라워 차일드가 지금 막 도착했다. 우리도 합류하겠다."
보란은 포쉐의 지붕 위에 무전기를 내려놓고 말했다.
" 각자 무기를 점검해!"
워싱턴은 차 뒤로 돌아가서 트렁크를 열었다 .해링턴은 6연발 권총이 들어 있는 권총집을
이리저리 흔들며 그의 차를 향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에 자동 화기들과 또 다른 폭
발물들이 포쉐의 지붕 위에 모아졌다.
하파워는 작은 트럭으로 달려가더니 트레일러를 끌고 왔다. 그것을 포쉐 가까이로 옮겨 놓
고는 즉시 모터를 껐다. 안드로메다는 그의 차를 바로 그 뒤에다 붙여 세웠다.
보란은 짤막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 이제 자네들도 나의 진드기가 필요하겠는데!"
하파워가 낄낄거렸다.
보란은 고개를 돌려 짧게 끄덕였다.
" 내 앞으로 글어와 봐. 그리고 그걸 풀어 놓도록. 플라워 차일드. 그를 도와줘. 그 장비의
작동이 가능하도록 완벽하게 준비해 둬. 그것을 풀어 놓은 다음, 붐붐, 폭발물들을 준비해
줘. 멜빵 달린 화약은 몇 개나 있나?"
" 여섯."
하파워가 대꾸했다.
" 필요하다면, 지금 즉시 몇 개쯤은 더 만들 수 있어."
보란은 머리를 저었다.
" 여섯이면 충분해. 모두에게 수류탄을 4개씩 나눠주도록. 우리들은 이제 모두 일곱 명이 남
았어. 스물여덟 개의 수류탄이다. 붐붐."
하파워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곧 그의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는 도로를 박차고 달려나
갔다. 안드로메다는 견인용 차를 향해 걸었다. 그는 아직도 천막이 드리워져 있는 그 트레일
러에 다가가서 천막과 연결된 밧줄을 칼로 잘랐다. 워싱턴이 천막을 벗기는 일을 돕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은 지프도 그 옆에 꺼내 놓았다. 하파워는 렌치를 들고 두 차 사이
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안드로메다는 캘리버 50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는 병기 상자를 정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손발을 놀리고 있었다.
지트카와 루데크가 도로를 따라 모습을 나타냈다. 앞장서 오던 지트카가 보란에게 보고했
다.
" 구멍 같은 건 없어. 맥. 하나도 없어."
보란이 그런 대답에 대비하여 어떤 방책을 마련해 두었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
이었다. 그는 두 팔을 들어 어깨 높이로 활짝 펼치고 손을 흔들어댔다.
" 모두 같이 발을 맞춰라. 참, 지금이 몇 시인가?"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 됐어! 지금이다! 붐붐, 지트카의 차 지붕에 그 폭약들을 걸쳐 놓았나? 정확히 1시 15분에,
붐붐, 너는 저 차를 타고 정물은 향해 돌진하라. 적당한 시기에 차에서 굴러 떨어진다. 그걸
염두에 두도록. 플라워 차일드, 너는 캘리버 50을 들었나? 운전은 데드 아이스가 한다. 50
피트 전방에서 천막을 젖힌다. 나머지는 벽을 따라 각자 공격하라. 너희들의 위치가 노출되
지 않는 한도내에서 수류탄을 투척하거나 기타 공격을 감행하라. 나는 멜빵 달린 폭약을 네
개 들고 가겠다..... 아무도 나를 따라 들어오지 마라. 너희들은 유인 사격, 엄호 사격만 한다.
나는 너희들 모두가....."
" 잠깐만 기다려! 대장 혼자서 그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건가? 그건 절대 안 돼!"
지트카가 발작적으로 외쳤다.
"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지트! 만일네가 모두를 데리고 정면에서 그들의 주의를 끌어 주기
만 한다면 나는 안전하게 벽을 넘을 수 있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말이야."
보란은 굽히려 들지 않았다.
" 고작 그 멜빵 화약을 가지고!"
해링턴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
" 혼자 무덤 속으로 기어들게 할 수는 없다, 맥. 우리는 그걸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겠어.
봐, 우리도 그 차퍼에 대해서나 정치가, 갯지트에 대하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우리 모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다한 거야."
지트카가 말했다.
" 이건 우리들 모두의 전쟁이다, 대장!"
데드 아이스 워싱턴도 끼여 들었다.
" 붐분은?"
보란은 웃는 눈으로 물었다.
"빌어먹을, 말하면 잔소리 아냐?"
하파워는 조용히 대꾸했다.
" 그런 걸 갖고 싸울 때가 아니라고!"
" 특공대로서 우리는 모두 함께 행동해야 한다."
플라워 차일드는 그답지 않게 음성을 낮추었다.
보란은 시신을 떨구었다. 그가 다시 얼굴을 들었을 때 그는 웃고 있었다.
" 알겠다. 우리는 아직도 공포의 10인이다. 아마 차퍼도 우리와 함께 이 전투에 참가하고 있
을 것이다. 정치가와 갯지트는 경찰들을 유인, 우리들은 여기에 서도록 도와 주었다.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안드로메다가 끼어들었다.
" 이제 저 도둑 고양이들에게 전투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마음껏 보여 주자!"
" 다시 임무를 부여하라. 대장!"
해링턴이 요구했다.
" 좋다! MG차에 멜빵 화약을 매달아 사용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운전은 지트카가
맡는다. 그것은 탱크와 같은 파괴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대문은 쉽게 파괴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플라워 차일드, 데드 아이스, 그리고 건 스모크는 지프에 탄다. 너희들은 우리가
대문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적들을 모두 밀어낼 때까지 엄호 사격하라. 붐붐, MG차를
안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겠나? 아직 네가 운전대를 붙들고 있다면 그렇게 시도해 봐. 아닌
경우에는 그 차를 버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차로 합류하라. 데드 아이스는 지프를 붐붐의
트럭 바로 뒤에 갖다 붙여라. 그러나 길이 트일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한다. 플라워 차일드,
대문을 통과한 뒤에는 길 왼편에다 계속해서 사격을 가하라. 무엇이든지 보이기만 하면 총
격을 가해 기선을 제압하도록. 건 스모크, 네가 앞장서라. 데드 아이스 옆이다. 네 거대한 기
관총이 필요하다. 너는 길 오른편과 앞쪽을 책임지게 된다. 블러드 브라더, 너는 지프 뒤로
가서 지트카를 태우고 즉시 공격을 개시하라. 나는 포쉐를 몰아 공격하겠다. 붐붐, 너는 곧
트럭을 떠나 나와 합세한다. 내 뒤쪽을 담당할 사수가 필요하다. 이상으로 공격진의 편성이
끝났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적을 살려 둘 것인가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마라. 우리는 순식간
에 일을 끝내고 곧바로 이곳을 탈출한다. 또다시 경찰과 마주치게 되면 우리는 더더욱 난처
한 지경에 몰리게 된다. 그러니까 재빨리 해치워라. 우리는 빨리 움직일수록 좋다. 트럭에
있는 것들을 모두 끌어내 차로 옮겨 싣자. 빨리 시작하라. 가자. 공격 개시! 공격이다."
칼 라이온스 경위는 차의 속도를 줄였다. 그는 차내 무전기를 들었다.
" 고속도로 순찰대는 벨보아로 가는 어떤 차량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임님. 저는 그 벼
랑 끝에 이르는 도로를 조금 전에 지나왔습니다. 다시 한 번 조사해 볼까 합니다."
" 몇 분만 더 기다려라. 내가 그곳으로 가겠다."
브래독의 낮은 목소리가 응답했다.
라이온스는 무전기를 내려놓고 도로의 중앙선을 가로질러 즉시 낚싯바늘 모양 같은 커브를
돌아 북쪽을 향하는 도로로 달려 나왔다.
잠깐 뒤에 그는 다시 U자 회전으로, 해변으로 향하는 쾌적한 도로를 달려 고속도로 아래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수평선 뒤로 점차 부각되어 오르는 어둠에 잠긴 땅덩이를 바라보았
다.
그는 브레이크를 힘껏 밟아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도로 사정을
살폈다. 특별히 눈에 뛰는 게 없자 다시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 고속도로가 끝나는 부분으로부터 언덕으로 조금 꺾여 드는 안쪽입니다. 오른쪽으로 아주
작은 만이 하나 있고 좁은 아스팔트 도로가 밑으로 뻗어 있습니다."
" 알았다."
브래독이 짧게 대꾸했다.
라이온스는 주의 깊게 다시 한 번 주의를 둘러보았다. 뻗어 오른 땅의 맨끝 부분에서 희미
한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순간 번쩍거리는 불빛과 요란한 총성이 대기를 가르며 울려 왔다.
산맥의 융기가 시작되는 부분에서였다. 뒤를 이어 거대한 폭발음이 라이온스의 귀를 때렸
다. 그는 재빨리 차에 올라타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브래독에게 외쳐댔다.
" 굉장합니다! 이걸 놓치면 안 됩니다.! 빨리 불꽃을 따라오십시오!"
지트카는 속도를 내고 있는 MG차로부터 뛰어내려 땅을 차고 급히 굴렀다. 한 사내가 대문
으로부터 뛰쳐나왔다. 달려가는 차가 강철 대문에 부딪치면서 곧 굉음과 불꽃들이 주위의
모든 것들을 휘감아 버렸다. 지트카가 몸을 낮춰 길 위로 뛰어내리려 했을 때 지프가 바로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MG차의 주유 탱크가 폭발하는 소리에 뒤이어 캘리버 50이 쏟아
내는 탄환과 불꽃이 튀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불꽃 너머로부터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해링턴은 벽을 따라 몸을 숨기며 달려나오는 사내 하나를 겨냥하여 그를 명중시켰다. 짤막
한 총성과 연기뿐이었다. 그 사나이는 벽 너머로 사라져 가더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트럭이 커브를 돌며 미끄러져 돌아와서 대문 앞에서 불타고있는 잔해 가까이로 조심스레
접근하고 있었다. 잠시 멈추어 선 트럭은 기어를 바꿔 넣었다. 그러고는 진행을 방해하고 있
는 MG를 밀어 붙이며 대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해링턴이 지프로부터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벽을 등지고 멈춰섰다. 그는 마구 총질을 해대
면서, 바닥에 흩어져 있는 파편 부스러기들을 짓밟으며 나아가는 트럭의 꽁무니를 주시했다.
금속 조각들이 귀를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앞뒤로 튀어 날았다. 지프는 원을 그리며
주춤 뒤쪽으로 물러섰다. 해링턴은 펄쩍 뛰어올라 아래층 앞의 마당에 우뚝 섰다. 그의 기관
총은 현관문을 향해 연속적으로 불을 뿜어 냈다. 울부짖는 소리와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
렸다. 그의 뒤에서 지프의 앞 바람막이 유리창이 산산조각나서 부서져 내렸다. 해링턴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다.
현관 뒤에 서 있던 두 사나이가 리볼버로 트럭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그들은 캘리버 50의
묵직한 스타카토가 숨을 토해 내기 시작하자 즉시 땅 위로 나뒹굴고 말았다.
불꽃이 트럭의 지붕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하파워가 그 속에서 뛰쳐나왔다. 지프는 좁은 길
을 따라 재빠르게 움직였다. 루데크의 세단은 대문을 휙 스쳐 들어오더니 지프에 가까이 달
라붙었다. 그때 보란의 포쉐가 비호같이 밀려 들어왔다.
하파워는 찻길을 가로질러 몸을 굴렸고 다음 순간에는 풀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45구경은 벽을 향해 불꽃을 발사했다. 포쉐는 이내 속력을 줄이더니 문이 열렸고 하파워가
그 안으로 뛰어들자 곧 굳게 닫혔다. 뒷바퀴의 먼지를 뒤로 하며 차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지프는 불을 토하듯 달려 길을 열었다. 플라워 차일드의 자동화기로부터는 쉬지 않고 탄환
이 날아왔다. 추적자들은 거대한 캘리버 50앞에서 짐승들처럼 무너져 갔다. 총격이 가해질
때마다 그 총격에 대답하는 것은 억눌린 비명과 외침과 저주의 신음 소리들뿐이었다.
보란의 머리 바로 뒤에 있던 유리창이 박살나 버렸다. 하파워가 즉시 나섰다.
" 내가 맡겠다!"
그는 창 밖으로 45구경을 삐죽이 내밀고는 쏴대기 시작했다. 보란은 그의 파트너를 흥분된
눈길로 바라보았다. 붉은 선이 그의 얼굴의 한쪽에 그어졌다. 조금씩 피가 스며나오고 있었
다.
" 스쳤을 뿐이야!"
하파워는 비어 버린 탄창을 내던지고 새 탄창을 끼워 넣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지프는 앞을 향해 마구 달려가고 있었다. 보란의 앞길에는 이제 별다른 장애물이란
없었다. 그의 왼편 측면을 캘리버 50이 청소해 내고 있었다. 그들은 집 앞까지 계속 나아갔
다. 보란은 세단 뒤로 날 듯이 차를 몰았다. 그때 루데크와 지트카가 그들의 차로부터 재빨
리 뛰어내렸다. 아래층의 유리창으로부터 불꽃들이 빗발치듯 쏟아져 왔다. 해링턴의 기관총
이 그에 답했다.
순간 죽음의 특공대는 교차 사격의 함정 속에 갇혀 버렸다. 적들은 양쪽에서 공격하고 있
었다.
" 집을 잡아!"
보란이 외쳤다. 루데크와 지트카는 집의 반대편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들의 손에는 수류탄이
굳게 쥐어져 있었다. 보란은 한 손에 기관총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멜빵 달린 폭약을 들고
는 땅바닥을 기어갔다. 그는 머리 위로 폭약 더미를 빙빙 돌리다가 휙던졌다. 그것은 현관문
에 부딪쳐 묵직한 소리를 냈다. 다음 순간 커다란 불꽃이 터져 나오면서 근처의 풍경을 훤
히 밝혀 주었다. 보란은 2층의 프랑스 식으로 꾸며진 문을 향하여 또 하나의 멜빵 폭약을
날렸다. 건물을 온통 뒤흔드는 듯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해링턴은 2층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적의 화력에 맞서고 있었다. 안드로메다는 거대한 캘
리버 50으로 그들의 뒤쪽에 남겨진 적들을 남김없이 처리하고 있었다. 데드 아이스 워싱턴
은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앞문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2층 창문으로 터져 나온 굉장한 폭
발이 그를 더욱 광분케 했다. 커다란 덩치의 사나이가 그의 기관총과 함께 땅바닥으로 떨어
져 버렸다. 총구로부터는 아직도 불꽂이 아무렇게나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때 문을 향해 달
려가고 있던 보란은 워싱턴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지만 그대로 질주해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도 뒤꿈치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고 있었으나 그는 자신이 저격당했다는 사실보다
도 정면에 있는 현관문을 뚤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더욱 흥분하고 있었다. 보란은 앉아서 사
격을 가했다. 그때 경찰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그의 뇌리를 뒤흔들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보란은 천천히 땅바닥에서 일어섰다. 그 건물은 이제 완전히 화염에 휩싸인 채 불꽃으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무감각해진 자신에 놀라며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대학살의 현장을
비틀거리며 걸었다. 사방에 조각난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한때는 데드아이스 워싱턴이었던,
이제는 흉악하게 일그러져 버린 피투성이의 물체를 그는 내려다보았다. 몇 걸음 저쪽에는
붐붐 하파워가 누워 있었다. 플라쳐 차일드 안드로메다도 캘리버 50을 꽉 움켜쥐고 눈을 부
릅뜬채 쓰러져 있었다.
보란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지트 대원들 재집합이다."
사이렌 소리는 점점 가까이서 들려오고 있었다. 거의 대문 앞까지 다가온 모양이다. 드는
건물의 한쪽 구석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지트카를 발견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기관총을 거머쥐고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블러드 브라더루테크가 있었다. 그의
얼굴 반쪽은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다. 그러나 표정은 대단히 평화로워 보였다. 살아 있을
때처럼...
보란은 자신의 포쉐로 되돌아 갔다. 그의 모든 적들은 어다로 숨어버렸는지 보이지 않았
다. 그는 기관총을 차의 뒷자리로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의자 깊숙이 몸을 누였다. 그는 이
제 혼자 남았다. 그는 이곳에 버려진 것이었다!
사이렌 소리는 이제는 대문을 통하여 아주 가까이 들려 오고 있었다. 거의 도로를 벗어났
음이 분명하다. 보란을 포쉐에 시동을 걸고 풀들이 자라고 있는 곳까지 빠져 나왔다. 발뒤꿈
치가 몹시도 쑤셔 왔다. 그는 비로소 온 몸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상처들을 발견해 낼 수
가 있었다. 그는 사이렌 소리에 주의를 집중하며 차를 몰았다. 그는 차를 세우고는 도로 포
지판 뒤로 낮게 몸을 숙인 채 발 아래에서 출렁거리고 있는 태평양의 물결을 내려다 보았
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물결과 바위와 돌조각뿐이었다. 그냥 그대로 바다 속으로 뛰어내릴
수는 없었다.
보란은 다시 포쉐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주의 깊게 안전 벨트른 맨 다음 차를 후진 시켰다.
그는 이제 경찰차의 꼭대기로부터 붉은 빛을 연속적으로 뿜어내고 있는 경보등을 볼 수 있
었다.
"퍼레이드와도 같군!"
하고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죽음의 특공대는 이제 죽어 버린 특공대가 되었는데 그만이 살
아 남아 있었다. 그는 대원들에게 돈과 그에 따른 영광을 약속하고서도 끝내는 죽음만을 안
겨 준 것이었다. 베트남과 하나도 다를게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안전 벨트를 점검해 보았다. 그러고는 차를 돌려 방향을 바꾸고 최대의 속
력으로 목재 표시판을 향해 곧장 달려나갔다. 차의 바퀴들이 축축한 풀들 때문에 조금 미끄
러졌다. 그러나 속도계의 바늘은 계속 정확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백미러
를 통해 뒤쪽을 살펴보았다. 경찰차들은 이미 집앞에 도착되어 있었다. 푸른 제복을 입은 경
관들이 폭동진압용 권총을 들고 건물로 흩어져 들어가고 있었다. 차 한 대가 홀로 떨어져
나와 그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속도계의 바늘은 120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 포쉐는 철책을 뛰어넘어 솟아
오르더니 푸른 바다를 향하여 멋진 곡선을 그리며 떨어져 나갔다. 보란을 제외한 나머지 아
홉명의 특공대원들이 거기 그와 함께 앉아 있었다. 보란은 그들을 그곳으로 불러모았던
것이다. 그들 각각을, 하늘을 찌를 듯한 나팔소리로 말이다. 그렇다. 삶이라고 불리는 이놈의
지옥을 통과하는 마지막의 호화스러운 돌격속에 그들은 모두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15. 탈출
칼 라이온스는 벼랑위에 차를 세우고 해변가로 걸어 내려갔다. 발 끝에 몸무게를 모아 삳고
두 손은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그는 생각에 잠겼다. 시선은 바다에 고정되 있었다.
만일 보란이 바다로 쳐박혀 벌린 차에 타고 있었다면, 그리고 만일 차가 떨어져 처박힌 뒤
에도 아직 살아 남아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 차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아아, 만일 그에게 바다를 헤엄쳐 나올 힘이 남아 있다면... 그러나 보란이 살아 있을 가능성
은 희박했다.
해안 경비정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벌써 잠수할 준비까지 끝낸 상태였다. 만일 글
들의 손에 시체 하나가 끌려 올라 온다면... 보란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라이온스는 얼마간 착찹한 심정으로 그러한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그의 등 뒤로부터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때에야
그 젊은 경위는 자신이 경찰용 권총인 38구경 A형의 주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몹시 놀랐다. 총은 찰리 리케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권총을 쥐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두 눈은 희미한 밤의 불빛 속에서도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음이 뚜렷이 보였다.
"여기서 뭘 하는 거요.리케트?"
라이온스가 조용히 물었다.
"너와 보란이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닐테지.응?"
하고 리케트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그렇게 쉽게 무너져 버릴 줄 알았던가? 넌 그런 일을 그처럼 손쉽게 해치울 수 있으
리라고 생각지는 않았겠지?"
"무슨 얘길 하는 거요?"
"머리 뒤로 손을 올려! 무슨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거야?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네가
더 절 알잖아? 너와 보란이 그 일을 궁리해 냈으니까 말이야. 그런 지경을 당하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줄로 생각했나, 라이온스?"
리케트는 씩씩거리며 웃어댔다.
"너는 찰리 리케트라는 인간을 이 세상에서는 다시 못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겠지? 이 젖비
린내 나는 애송이야. 네가 아직 엄마젖꼭지를 빨고 있을 때부터 나는 벌써 훌륭한 경찰관
나으리였단 말이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요, 리케트?"
라이온스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가며 말했다. 그의 적을 좀더 빛 안으로 유인해 내기 위해
서였다.
"움직이지 마!"
리케트가 거품을 물었다.
"당신은 언제부터 더러운 경찰관을 겸한 거요? 도대체!"
"널 죽여야 겠어! 너도 그 이유를 알테지?"
"왜 날 죽이려는 거요?"
라이온스는 리케트의 등 뒤 어둠속에서 또하나의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라이
온스는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다가서면서 계속해서 지껄여댔다.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거요, 리케트? 부래독의 손에는 이미 당신에 대한 모든 증거
가 쥐어져있소. 당신의 범죄에 대한 세밀한 조사가 내일부터 시작될 거요."
"아니, 아니, 그것은 몽땅 조작된 거야. 그들이 나를 중상모략하려는 짓이지. 일급 살인자와
그의 경관 공범자에 의해 완전히 조작된 거라고. "
"내가 보란과 공모했다는 생각을 갖게 됐소, 리케트?"
"찰리 리케트는 그의 길을 간다. 나는 또 모든걸 다 알고 있다. 내가 어떻게 알아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쓰지 마! 너는 악질적이고 무능한 경찰이다, 라이온스. 자신이 미행당
하고 있는 사실 조차 간파해내지 못하다니! 나는 이밤 내내 너를 미행하고 있었단 말이다."
"이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오, 리케트?"
"바로 그렇다. 바로 이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이런.......기회를......만들기 위해서!"
리케트는 총구를 라이온스의 가슴께로 향하도록 조준한 뒤 손가락을 방아쇠에 가져다 댔다.
바로 그 때였다. 경감의 등 뒤에 멈춰 서 있던 그림자가 재빨리 몸을 움직이는 듯 싶더니
리케트의 38구경이 들려 있는 팔을 쳤다. 팔꿈치가 리케트의 가슴을 가격했을 때 이미 그의
총은 땅위를 구르고 있었다. 다음 순간 몸을 회전시킨 그림자는 리케트의 얼굴을 향해 한
방을 먹이는 것과 동시에 발은 상대의 가슴에 날아가 꽂혔다. 리케트는 소리 하나 내지 못
하고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림자는 재빨리 팔을 뻗어 38구경을 집어 들었다. 곧 라이온스의 귀에 익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또 만나게 됐군."
라이온스는 검은 옷을 입은 키가 크고 날씬한 체격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바위 뒤에 언제부터 숨어 있었나, 보란?"
"숨을 돌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보란은 아직도 숨을 몰아쉬면서 능청을 떨었다.
"그럼, 나와 리케트 사이에 오고 갔던 얘기들을 다 들었겠군."
"들었지."
"그가 나를 살해하려고 했던 것도 알고 있겠군. 왜 좀더 기다리지 않았나? 그가 날 죽인 뒤
에 그를 쓰러뜨리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보란은 어깨를 으쓱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몰래 달아나는 일도 좋지만, 사실은 타미한테 그 문제를 몽땅 떠맡겨 놓고 떠나기가 좀 뭐
해서."
"그 문제라니?"
"알잖나? 진딧물 말이야."
라이온스는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리고 입을 열었다.
"전에 잔디 해충에 관한 책을 좀 읽었지. 그놈들도 참 지독하더군. 그러나 그것들도 그들 나
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법이라고 그책에 씌어 있었어. 그래서 나는 생각했지. 지금 당장
그 진딧물의 씨를 말릴 필요는 없다고 말이야. 그놈들도 우리와 평화로운 공존관계를 유지
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지 않나?"
"나를 지체시키려는 건가, 라이온스? 리케트에게 했던 방식대로?"
"전혀 그렇지 않아. 아, 보란. 어떤 돌대가리 경관이 그의 차를 저기 길 위레 세워 뒀어. 열
쇠는 그안에 있을테고, 필요한건 뭐든지 갖추어진 차더군."
"정말인가?"
"물론!"
라이온스는 널브러져 있는 리케트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이 사람은 잠깐 이대로 내버려 두기로 하고, 이제부터 이 돌대가리 경관은 바위 사이로 산
보나 해볼까 하네. 벼랑 위에서 떨어진 차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도 찾게 될지 누가 알겠
나? 그러니 보란, 이 얼마나 재미있는 공존인가. 이번에는 내가 먼저 사라지겠네."
라이온스는 돌아서더니 어둠 속으로 멍어져 갔다.
보란은 짤막하게 웃었다. 곧 그는 바삐 도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허전했다. 언제나 그
렇지만 싸움이 끝난 다음의 허전함은, 더구나 오늘은 더욱 견딜 수 없이 자신을 사로잡았다.
싸움은 어떤 의미에서도 추방되어야 한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
움을 주지 못하는 절대 불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제 그는 결코 또 하나의 죽음의 특공대는
갖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가 지금 잃어버린 그 같이 훌륭한 특공대는...... 그는 라이온스
차의 운전석으로 기어 들어갔다. 차의 시동을 건 그는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
이 무전기 위에 떨어졌다.
"신나게 달리는 거야"
그는 중얼 거렸다. 블러드 브라더. 지트카. 건 스모크. 데드아이스.붐붐. 플라워 차일드. 차퍼.
개5 트 그리고 정치가의 얼굴들이 떵로랐다가 사라져 갔다. 그들은 모두 보란의 마음속에
서 그이 어깨위에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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