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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벳시 헤인즈] 7학년들의 비밀

by Casey,Riley 202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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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들의 비밀
벳시 헤인즈

       ----- 차 례 -----

       ⊙ 작가 소개
       I. 장화 상자 속의 이야기
       1. 장화 상자 속의 편지와 태피 반대 클럽
       2. '밀로의 비너스'를 위하여
       3. 내가 좋아하는 닐 선생님
       4. 나는 우체통 앞에서 여름 방학을 보냈다!
       5. '작은 건포도'의 초콜릿 판매 계획
       6. 내 작문은 완전히 거짓말이야!
       7. 록우드 선생님의 발소리
       8. 그 애가 뭔가를 준비 중이야!
       9. 태피가 주운 '태피 반대 클럽 노트'
       10.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
       11. '태피는 생리를 한다!'
       12. 아빠가 보내 주신 초콜릿 선물
       13.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어!
       II. '환상의 5인조'
       1. 환상의 5인조, 다시 만나다
       2. 우리는 언제나 새로워야만 해!
       3. 우리는 왕관을 손에 쥔 채 사로잡혔어!
       4. 어느 누구도 진실한 나를 볼 수 없어!
       5. 멋진 재채기, 우린 서로가 놀라지 않았어요
       6. 모두가 아는 것은 비밀이 아냐!
       7. 원한다면 몸짓으로 말할 수 있어
       8. 사람들은 항상 단점만을 보려고 해
       9. 그 애가 나를 보면 내 심장이 멈춰요
       10. 누군가에게 몸짓으로 말한다는 것은
       11. 그는 분명히 나를 좋아하고 있어.
       12. '환상의 4인조'가 된 '환상의 5인조'
       13. 나는 진정한 내 모습을 보이고 싶어.
       14. 즐거운 녹색 거인, 친구를 되찾다



        ⊙ 작가 소개 

       벳시 헤인즈(Betsy Haynes)

       글자를 배우면서부터 시와 짧은 소설을 썼다.
       그러나 정작 작가 생활은 아이를 둘이나 가진
       후부터 시작하여 첫번째 소설은 3개월 만에
       출판된다. 청소년들을 위한 짧은 소설과 성장
       소설을 많이 쓰며 특히 이번에 소개되는
       9권의 책은 유럽에서도 재미있고 좋은
       책으로 오랫동안 꾸즌히 소개되는 책이다.


        I. 장화 상자 속의 이야기 

       소나기가 퍼붓던 날, 공책으로 머리를
       가리고 나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갔다.
       교문 앞, 우산 속에 함박 미소로 서 있는
       내 친구. "널 기다렸단다."

       더없이 아름다운 외모의 태피. 그의 맞수인 제너는
       '태피 반대 클럽'을 만들고,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랜디를 서로 '남자 친구'로 만들기 위해......
       귀엽고 재미있게, 배꼽 잡을 시기와 질투, 중상 모략이
       펼쳐지는데.......


        1. 장화 상자 속의 편지와 태피 반대 클럽 

       금요일은 쓰레기를 치우는 날이다. 내가 방 청소를 하는 날인 
     것이다. 엄마는 가끔씩 주말에 손님이 오면 깨끗해 보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금요일을 청소하는 날로 선택했다. 대체로 나는 
     방문을 닫아 두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가 있지만, 방문이 열리면 손님이 앉는 거실 소파에서 내 
     쓰레기 더미가 죄다 보인다.
       이 특별한 쓰레기를 치우는 날, 엄마는 몹시 화를 냈다. 
     엄마가 화를 낸 건 지불 기한이 지난 청구서 독촉을 받은 데다가 
     아빠가 양육비를 보내지 않은 탓인 것 같았다. 어쨌든 엄마는 
     출근하기 전 집안을 정신없이 뛰어 다니면서 침대 밑에서 그 
     잡동사니들을 몽땅 치워 버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엄마가 그 물건들을 잡동사니라고 한 데 대해 정말 
     분개했다. 그건 모두 훌륭한 물건들이다. 난 단지 그 물건들을 
     둘 만한 장소가 없었을 뿐이다.
       처음엔 침대 밑이 깨끗해 지는 것이 기뻤다. 나는 거기서 한 
     동안 찾고 있었던 물건들을 발견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도서관에 반납하는 것을 잊어 버려서 기한이 지나 버린 책, 
     친구 멜러니가 티쥬아나에서 사다 준 멕시코 모자, 지난 봄 
     4학급 중에서 제일 철자법이 정확한 사람으로 뽑혀서 받은 
     파란색 리본, 그뿐 아니라 빨강색 운동화 한 짝, 무릎까지 
     올라오는 초록색 양말 한 짝, 걸 스카우트 휴대용 식기, 갈색과 
     황금색 체크 무늬 치마도 있었다.
       그 중엔 내가 회장으로 있는 태피 반대 클럽의 노트도 있었다. 
     태피와 나는 지독하게 미워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내가 이 
     클럽에 든 이유이다.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 네 명이 이 클럽에 
     들어 있다. 남자 아이들 앞에서 속눈썹을 깜빡거린다든지, 
     뭔가를 자꾸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몸을 굽혀 자신의 속옷을 
     보이게 한다든지 등등 태피가 얼마나 분별없는 짓을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 클럽에서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직전, 우리는 매주 5센트씩 회비를 
     거두기 시작해서 다음과 같은 글이 쓰인 카드를 태피에게 
     보냈다.
       '넌 틀림없이 예쁜 아기였을 거야. 그렇지만 아가야, 지금 네 
     꼴을 보렴!'
       그리고 카드 안에 킹콩 사진을 넣어 두었다.
       한 번은 새로 나온 생리대의 무료 샘플을 주문해서 태피에게 
     보낸 적이 있는데, 그녀가 그것을 받았는지는 잘 모른다.
       태피는 아무 클럽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도 별로 
     많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도도하고 건방지며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도 모나는 
     예외겠지만. 모나는 커다란 코와 뻐드렁니를 가졌으며, 태피가 
     예쁜 것만큼이나 못 생긴 아이다. 모나는 친구가 몇 명 있지만, 
     마치 태피의 아름다운 생김새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종종 
     태피의 주위를 며칠씩 맴돌곤 했다. 그렇지만, 태피가 다른 
     사람에게와 마찬가지로 모나에게도 건방지게 대했기 때문에 결코 
     오래 가진 못했다.
       태피가 하는 짓을 보면, 그녀가 정말 지독한 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방학 날 그녀가 한 짓을 보자. 나는 
     거의 숨이 넘어갈 뻔했다.
       내가 4학급 교실에 들어 갔을 때, 칠판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제너는 암내를 풍긴다.'
       나는 누구 짓인지 알고 있었다. 그건 태피가 틀림없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난 침대 밑에서 그 물건들을 찾은 일이 
     정말 기뻤다. 이 쓰레기 치우는 날을 특별히 비참하게 만든 건, 
     마지막으로 끄집어 낸 물건이었다. 무심코 보면, 그것은 평범한 
     구두 상자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구두 상자는 정말 아니었다. 
     그것은 장화 상자였다. 내 구두 상자 중 그것이 가장 컸기 
     때문에 나는 그 상자를 골랐던 것이다. 그 안에는 내가 세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아빠로부터 받은 편지가 모두 들어 있었다. 
     편지는 네 통뿐이었는데, 내가 살아온 시간에 비한다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물론 아빠가 편지를 좀 더 자주 보내지 
     못한 것이 아빠의 잘못만은 아니다. 아빠는 직업을 바꾸며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기 때문에 정말 늘 바쁘다.
       엄마는 내가 편지를 모아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엄마가 
     싫어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쨌든 엄만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난 날 밤 어떻게 아빠가 
     춤을 청했고 그리고 밤늦게까지 춤을 추었는지 같은 일들을 항상 
     이야기해 주었으니까. 그렇지만 난 엄마에게 장화 상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나 혼자서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자 안에 넣어 둔 건 편지만이 아니었다. 다른 것들은 아마 
     기념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지도 않았고, 더구나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양육비 목록이 들어 있는 
     봉투가 한 묶음 있었다. 그 봉투들은 쓰레기 속에서 찾아낸 
     것이기 때문에 두세 개 정도는 커피 찌꺼기와 음식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전부 비슷비슷했으므로, 난 그 
     봉투를 수집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또 다른 것은 사진이다. 그 사진은 작년 크리스마스 때 다른 
     선물들과 같이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 있었다. 아빠가 보내 준 
     인형을 안고 있는 내 사진이었다. 아빠는 언제나 내게 진짜 
     선물을 보내 주지 않는다.
       대부분 그 달 양육비에 돈을 조금 얹어서 보낸다. 엄만 그 
     인형을 남자와 데이트할 때까지 갖고 놀다가, 언젠가 태어날 태 
     딸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잘 싸 두라고 하셨다. 그 때 나는 열 
     살이었고 데이트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런 이야긴 
     정말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인형 놀이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어쨌든 난 한참 동안 그 상자를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상자를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서는 안 되는 줄 알면 
     알 수록 더욱 하지 않곤 못 배기니 참말이지 야릇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손이 떨려서 뚜껑을 
     제대로 열지 못할 정도였지만 가까스로 뚜껑을 열었고, 맨 위에 
     그 편지가 있었다. 그 여름을 몽땅 망쳐 버리게 만든 그 편지가 
     말이다.
       나는 편지를 집어 들고 마치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봉투를 열었다. 봉투 안에는 분홍색 벙어리 오리가 
     그려져 있는 부활절 카드가 들어 있었다. 분홍색 오리는 얼굴에 
     바보스런 웃음을 띠고 기묘하게 생긴 달걀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오리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카드 안에 
     들어 있던 종이 쪽지가 무릎 위로 떨어졌다. 그건 아주 작은 
     쪽지여서 편지라고 한다면 정말이지 지나친 친절이었다.
       나는 그 쪽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내용을 죄다 외우고 있었다. 그 쪽지에는 '사랑하는 제너, 이번 
     여름에 2주일간 휴가를 얻어 서부로 갈 작정이다. 같이 가겠지? 
     그랬으면 정말 좋겠구나. 사랑하는 아빠가'라고 씌어 있는 것이 
     전부였다.
       막 울음이 터지려 할 때, 고맙게도 전화 벨이 울렸다. 울음을 
     터뜨렸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분홍색 오리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거실로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내 친구 베스였다.
       "제너!"
       그녀는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이 크게 소리쳤다.
       "그녀가 돌아왔어!"
       "누가 돌아왔단 말이야?"
       "태피지, 누구겠어?"
       "뭐가 이상하니? 다음 주면 개학이잖아."
       하고 나는 말했다.
       베스는 이따금씩 좀 정신이 나갈 때가 있었다. 태피는 여름 
     방학 내내 떠나 있었지만, 개학 때에 맞춰 돌아 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를 볼 때까지 기다려. 넌 아마 믿지 못할 거야. 내 
     생각엔 긴급 회의를 소집하는 것이 좋겠어."
       "그녀가 갑자기 추녀가 됐지?"
       나는 희망에 가득차서 물었다.
       "탐스러운 검은 머리가 모두 빠져 버렸니? 아니면 커다란 눈이 
     부풀어 올랐니?......."
       "그만 해. 바보같이. 말하고 싶진 않지만, 그런 게 아니야. 
     사실은 정반대야."
       우리 둘 다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태피가 더 예뻐진 걸 
     상상할 수가 없었지만, 알아야만 했다.
       "말해 봐."
       나는 말했다.
       "앉아."
       베스가 말했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어서 말해 봐."
       나는 다시 말했다.
       "좋아, 말할게. 태피가 저, 그것이 나왔어!"
       "오, 맙소사!"
       나는 신음 소리를 냈다.
       너무도 견디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난 무려 5분 동안이나 신음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긴급 회의를 열어서 무얼 할 수 있겠니?"
       "계획이 있어."
       "어떤 계획인데?"
       "전화론 말할 수 없어."
       베스는 연극을 하듯이 속삭였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들 본 것 중에 가장 멋진 계획일 거야."
       "그럴까?"
       나는 킥킥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뭐든 해 볼 가치는 있어. 모두에게 전화해서 45분 
     뒤에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해."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친구들이 오기 전에 잡동사니들을 
     마저 치우려고 급히 방으로 돌아왔다. 장화 상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편지를 집어 다시 
     상자 안에 던져 넣었다. 그런 다음 뚜껑을 탁 닫아 침대 밑에 
     밀어 넣었다. 지금은 편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나는 화장대로 가서 내 앞가슴을 바라 보았다. 천천히 옆으로 
     돌아서서 될 수 있는 대로 자세히 바라 보았지만, 그것이 나온 
     기미는 조금도 없었다. 우리 선생님은 바른 자세를 가지라고 
     항상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주 똑바른 자세로 서 있었지만, 그 
     역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나오면 어떨까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똑바로 서서 신발을 내려다 볼 수 있을까? 나는 내 신발을 
     내려다 보았다. 이런! 볼 수 있지 않은가! 어떻게 엎드려서 잘 
     수 있을까? 난 항상 엎드려서 잠을 잔다. 난 엎드려 자는 걸 
     포기하고 싶지 않다. 태피도 아직 엎드려 자는지 궁금했다. 
     그렇지 않다 해도 당연하겠지만.



        2. '밀로의 비너스'를 위하여 

       30분 후 베스가 도착했다. 나는 아직 내 잡동사니들을 다 
     치우지 못하고 있었다. 베스는 그녀의 태피 반대 클럽 노트를 
     마치 시한폭탄이라도 되는 듯 들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노트 
     안에 잡지 한 권이 끼워져 있는 것을 알아 차리고 어떤 잡지인지 
     보려고 했지만 베스가 노트를 집어 던지고는 그 위에 주저 
     않았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스파이나 뭐 그런 것이 
     된 것처럼 보였다.
       멜러니가 그 다음으로 도착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멜러니는 
     초콜릿을 한 봉지 가져왔다. 멜러니의 엄마는 24시간 내내 
     초콜릿을 만드는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멜러니도 분명 24시간 
     내내 초콜릿을 먹을 것이다. 엄만 멜러니가 열 살이 넘어야 살이 
     좀 빠질 거라고 하신다. 정말 그러길 바란다. 왜냐하면 지금은 
     남자 아이들이 그녀에게 별로 말을 걸지 않기 때문이다.
       1, 2분 후 크리스티가 도착했다. 크리스티는 수학의 천재인데, 
     난 항상 그것이 그녀의 엄마가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이라는 
     사실과 뭔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왔다. 캐티만 
     빼고는 모두 모였다. 캐티는 집에 남아서 엄마가 모임을 
     준비하는 것을 거들어야 했다. 캐티는 급진적인 여성 
     해방론자였다. 오해하지 마라. 우린 모두 여성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데, 캐티가 더 깊이 빠져 있다는 뜻이다.
       내 방에는 의자가 책상 앞에 있는 것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나는 다른 사람ㄷ르의 
     앞가슴을 보려고 했다. 내가 무얼 보고 있는지 알아 차리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결국 
     나는 실수를 했다. 나는 베스의 앞가슴을 펴다 보고 베스는 내 
     앞가슴을 쳐다 보고 있었다. 우린 아주 정확하게 동시에 눈길이 
     마주쳤고, 나는 귀가 빨갛게 달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앞가슴을 가리려고 팔짱을 꼈다. 베스도 그렇게 했지만, 난 이내 
     베스 역시 그것이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우울해지기 전에 모임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주의를 집중하기 위해 엄마의 망치로 라디에이터를 두어 번 탕탕 
     내리쳤다. 진짜 사회봉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피 반대 클럽의 긴급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이야기를 멈추고, 멜러니를 빼고는 전부 조용히 제자리에 
     앉았다. 멜러니는 방 안을 천천히 돌아 다니면서 초콜릿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태피가 여름 방학 휴가를 마치고 돌아 왔어. 베스가 그녀를 
     보았는데, 우리가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는군."
       "어떤 위기지?"
       멜러니가 물었다.
       "태피가 그것이 나왔대!"
       모두의 얼굴에 놀란 빛이 떠 올랐지만,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대신 모두 동시에 몸을 앞으로 숙였다. 
     블라우스를 헐렁하게 해서 가슴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보다 더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추긴 어려울 것이다.
       "이젠 남자 애들이 진짜 좋아하겠군."
       하고 크리스티가 말했다.
       모두들 킬킬 웃었다. 다소 긴장이 풀리자, 다들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럽게 서로의 앞가슴을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망치를 두들겼다.
       "베스가 좋은 계획이 있대."
       하고 나는 소리쳤다.
       그 말에 모두들 주의를 집중했다.
       베스는 목청을 가다듬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안엔 
     우리 넷뿐이었고, 모두들 그녀를 잘 볼 수 있었으므로 정말이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모두 오른 손을 들고, 앞으로 하려는 일을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외엔 아무도 모르게 하겠다고 엄숙히 맹세하자."
       베스는 목쉰 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크리스티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하자, 크리스티도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다음 크리스티와 
     나는 천천히 오른 손을 들었다. 멜러니도 손을 들었다.
       "비밀 결사를 만드는 거야. 태피 반대 클럽의 보조 조직 같은 
     거지."
       "무엇 때문에 그래야 하지?"
       하고 내가 물었다.
       비밀 결사를 만드는 것이 태피와 그녀의 그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밀 결사의 목적은,"
       베스는 가만 있으라는 뜻으로 내게 눈쌀을 찌푸려 보이면서 
     말을 계속했다.
       "태피보다 빨리 가슴을 키우는 일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크리스티가 물었다.
       "네가 마술사라도 된다는 거니? 게다가 태피는 이미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어."
       "난 마술사가 아냐. 하지만 '밀로의 비너스'는 마술사거든!"
       베스가 말했다.
       "'밀로의 비너스'가 누군데?"
       내가 물었다.
       베스는 태피 반대 클럽 노트에서 그 잡지를 휙 뽑아냈다. 그건 
     우리 엄마도 보는 '레드북'이란 잡지였다. 난 항상 그 잡지를 
     훑어 보았지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마술사에 대해서는 전혀 
     본 기억이 없었다.
       "바로 여기 102-3페이지에 있어."
       하고 베스는 대답했다.
       몸매가 아주 좋은 탐스러운 검은 머리 여자의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고, 사용 이전과 이후의 사진들이 덧붙여져 있는 전면 
     광고를 베스는 의기양양하게 가리켰다.
       "'밀로의 비너스'는 최신의 가슴 키우는 기구입니다 라고 씌어 
     있잖니."
       "와! 이 여자 좀 봐."
       멜러니가 감탄했다.
       "나는 '밀로의 비너스'로 단 5주일 만에 36인치에서 40인치로 
     가슴을 키웠어요."
       하고 멜러니가 읽었다.
       "어떻게 하는 거지?"
       크리스티가 물었다.
       "잘 모르지만, 여기 이렇게 씌어 있어. '안전하고 효과적인 
     특별한 기술을 사용합니다' 기타 등등. 그렇지만 2주일 동안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면 돈을 돌려준대."
       베스가 말했다.
       "돈이라구?"
       나는 말했다.
       "우린 돈이 한 푼도 없어. 도대체 얼마나 들지?"
       "19달러 하고도 95센트라구!"
       멜러니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많은 돈은 아냐."
       베스가 말했다.
       "매주 돈을 모으면 되잖니."
       "우린 벌써 5센트씩 내고 있잖아."
       내가 말했다.
       "그래. 거기다 각자 5센트씩 더 내서 비밀 결사 기금으로 
     만들면, 일주일에 50센트를 모을 수 있어."
       베스가 말했다.
       크리스티는 노트에 뭔가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다면......., 음......., 그 돈을 모으는 데 40주가 
     걸려."
       크리스티가 말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순 없어."
       "개를 산보시킨다든지, 차를 닦는다든지, 뭔가 할 수 있잖아."
       베스가 말했다.
       "지금부터 다음 금요일까지 각자 열심히 생각해 보자. 다음 
     금요일에 다시 모이는 거야."
       "좋아. 그런데 우리 비밀 결사를 뭐라고 부르지?"
       내가 물었다.
       "난 벌써 생각해 뒀어."
       하고 베스가 말했다.
       "우린 암호로 된 이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면 
     우리끼리 의사 소통을 할 수 있고, 태피는 무슨 뜻인지 알아 
     내려다가 화를 내게 될 거야."
       "훌륭해."
       나는 말했다.
       "그런데 어떤 암호 이름을 쓰지?"
       "람다 로."
       하고 베스가 말했다.
       "람다, 뭐라구?"
       크리스티가 얼굴을 찡그리며 베스에게 물었다.
       "람다 로.'
       베스가 되풀이했다.
       "그리스어로 엘(L)과 알(R)이란 뜻이야. 우리 언니가 대학에서 
     여학생 클럽에 있는데, 거기선 실제로 모든 것을 그리스어로 
     부른대. 정말 굉장한 일이지."
       "굉장하구나."
       멜러니가 말했다.
       "그런데 엘과 알이 무얼 뜻하는 거니?"
       베스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당황해 했다.
       "작은 건포도란 뜻이야."
       그녀는 조그맣게 말했다.
       다들 킬킬거리며 어색해 했지만, 마침내 람다 로가 멋진 
     이름이고 태피는 그 뜻을 알아 내려다 궁지에 빠질 거라는 데 
     동의했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간 뒤에 전화벨이 울렸다. 캐티였다.
       "참석 못해서 미안해. 베스가 아주 중요한 모임이라고 했는데, 
     일종의 위기라고 했어."
       "태피가 돌아 왔어. 그런데 그녀가 저, 그것이 나왔대."
       "뭐라구?"
       "태피가 돌아 왔는데 그것이 나왔다구."
       "가슴을 말하는 거니?"
       캐티는 몹시 혐오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
       나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럼 가슴이라고 말해야지!"
       캐티는 아주 날카롭게 말했다.
       "현대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야. 현실을 똑바로 
     드러내지 못하잖니. '저 그거 말이야'가 아니라 바로 
     '가슴'이라구."
       "알았어, 알았다구. 태피가......, 가슴이 나왔어. 이제 
     됐니?"
       "그런데 그걸 원하는 사람이 누구지? 남자들은 그걸 우리 
     여성이 열등하다는 느끼는 시대라면 좀 별난 시대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입 밖에 내어 말하진 않았다. 캐티를 더욱 
     흥분시킬 뿐일 테니까 말이다.
       "글로리아조차도 가슴이 나왔다구."
       나는 희망을 갖고 말했다.
       캐티는 코방귀를 세게 뀌고는 침묵을 지켰다.
       될 수 있는 한 오래 기다렸다가, 나는 다시 말을 꺼냈다.
       "자, 이렇게 생각해 보자꾸나. 진짜 여성 해방론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야. 내 말은, 브래지어를 태워 없애기 위해선 우선 
     브래지어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지. 내 말 알겠니?"
       캐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 15분 동안이나 그녀는 
     계획에 동참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지만, 난 그녀가 따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화 끝에 마침내 그녀는 보통 계획은 
     아니구나 하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다음, 나는 옷장 서랍에서 양말을 두 켤레 똘똘 
     뭉쳐서 블라우스 아래로 집어 넣었다. 그런 다음 천천히 거울 
     앞으로 걸어가 옆으로 돌아서서 내 모습을 관찰했다.
       "2주일 이내에 효과를 보지 못하면 돈을 다시 돌려 드립니다."
       나를 응시하고 있는 몸매 좋은 여자에게 살며시 속삭였다.



        3. 내가 좋아하는 닐 선생님 

       개학 날은 재난의 날이었다. 눈을 떠서 엄마가 내 벽장을 
     뒤적거리는 것을 본 순간 그럴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난 엄마가 
     무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엄만 개학 날 입으라고 사 준 
     자줏빛 옷을 찾는 중이었다. 난 그 옷을 본 순간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얀 칼라가 달리고 타이츠처럼 몸에 꼭 끼는 
     옷이었는데, 마치 1학급짜리가 입는 옷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윗부분에 온통 주름이 잡혀 있고 
     탄탄하게 바느질도니 탄력 있는 천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건 내 앞가슴에 너무 꼭 맞아서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옷을 입으면, 온 세상 사람들일 흘깃 보자마자 내 
     가슴이 얼마나 납작한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엄마가 그 옷을 잊어 버리길 바라면서 벽장 뒤에 숨겨 
     놨지만, 물론 엄만 잊지 않았다. 난 친구들은 모두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고 계속 이야기했으며, 엄만 개성이 있어야 
     돼 하고 게다가 그 옷은 아주 비싼 거라고 말했다. 엄마가 속은 
     것 같다고 하자, 드디어 머리 끝까지 화를 냈다.
       학교로 가는 동안 내내 나는 노트를 앞가슴에 껴안고 걸었다. 
     아무도 내게 그 자줏빛 옷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 
     친구들은 모두 퍽 예의바른 사람들이니까. 그렇지만, 그들도 내 
     옷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학이 되어 여름 방학 내내 못 만난 친구들을 본다는 건 
     굉장한 일이었다. 샐리는 유럽에 갔었고, 클레런스는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클레런스는 정말 따분한 아이다. 그는 
     언제나 이상한 짓을 한다. 아무에게나 물총을 쏘는 것 같은 짓 
     말이다. 난 그를 싫어했지만, 팔을 부러뜨린 건 안 되었다.
       나는 태피를 찾았다. 벨이 울릴 시간이 다 되었는데, 그녀는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멋진 등장을 하기 위해 일부러 
     지각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녀를 발견했다. 나는 거의 숨이 넘어갈 뻔했다. 그녀는 
     나와 똑같은 자줏빛 옷을 입고 길을 건너 학교로 걸어오고 
     있었다. 똑같은 하얀 칼라와 똑같은 타이츠, 그리고 앞부분도 
     똑같이 몸에 꼭 끼고 주름이 잡혀 있었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그녀가 가슴이 나왔다는 것이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낙심천만이었다. 다시 노트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한참 
     동안 그렇게 있었기 때문에 두 팔이 이미 무감각 상태였지만, 
     상관없었다. 팔이 썩어 버린 다음에나 노트를 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쳐다보기만 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태피가 날 발견한 
     순간 나는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어쨌든,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자줏빛 옷이 아무리 비싸다해도 다시는 그 옷을 입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하루에 일어날 일로는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어쨌든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벨이 울리고 5학급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베스, 멜러니, 크리스티, 캐티, 그리고 나는 교실 오른쪽 
     구석에 모여 앉아 열심히 이야기하느라고 선생님이 들어오신 
     것도 몰랐다.
       선생님의 이름은 닐이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본 중에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 물결치는 검은 머리칼과 갈색 눈을 갖고 
     있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맑은 눈일 것이다. 다정한 눈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친절하고 감수성 풍부하며, 언제든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친구들 역시 나처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 차렸다. 
     멜러니는 입을 벌린 채로 멍하니 선생님을 쳐다 보고 있었다. 
     그녀를 쿡 찔러서 입을 다물라고 말해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있는 걸 선생님이 보신다면, 나 같으면 아마 
     죽어 버렸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태피는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손을 뻗어 선생님 책상을 만질 수도 
     있었다. 그녀는 계속 어깨 너머로 나를 돌아 보았다. 흡족한 
     듯이. 전보다 훨씬 더 그녀가 증오스러웠다.
       그때 선생님은 한 해 동안 우리가 공부할 내용과 성취해야 할 
     것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사람과 한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단 말인가? 나를 지명하거나 칠판에 나가 
     해 보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어머나! 화장실에 가야 할 땐 
     어쩌지? 손을 들고 잠깐 나가겠다고 할 수 있을까? 어딜 가는지 
     알 텐데. 난 너무 부끄러워서 죽고 싶을 거야.
       다음에는,학생과 선생님이 서로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곤란하거나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자신을 찾아오라고 하셨다.
       나는 항상 역사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역사는 내가 제일 
     못하는 과목이었다. 그 바보같은 연대를 전혀 외울 수가 없었다. 
     하여튼 그 연대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 
     나는 역사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아니지. 그러면 날 우둔하고 수줍은 아이로 여길 거야.
       그때 좋은 생각이 떠 올랐다. 수학은 내가 가장 잘하는 
     과목이다. 어떤 문제를 잘 모르는 것처럼 꾸미자. 그러면 
     선생님은 학교 앞에 있는 커다란 구릿빛 너도밤나무 밑에서 내 
     옆에 앉아 가르쳐 주실 것이고, 모두들 선생님이 차근차근 내게 
     설명해 주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난 선생님을 쳐다보며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이젠 잘 알겠다고 해야지. 
     그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문제를 모두 풀어 버리면, 선생님은 
     내가 몹시 자랑스럽고 내가 선생님 반에 있는 것이 무척 
     기쁘다고 하시겠지.
       "이 봐, 제너. 네 차례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반 전체와 닐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했다. 선생님과 함께 
     구릿빛 너도밤나무 아래 앉아 있는 꿈을 꾸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뭐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내 차례인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일어나서 이름을 말해 봐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약간 화가 난 기색이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아주 천천히 일어섰다. 두 귀가 아주 뜨겁게 달아올라 
     어느 순간 어깨 위로 녹아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제너입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평소보다 세 옥타브쯤 높게 말했다.
       그 때 나는 노트로 앞을 가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두들 아직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내 납작한 가슴을 
     말이다. 나는 발 밑이 꺼진 듯이 재빨리 주저 앉았다.
       이후의 일과는 꽤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드디어 하교를 알리는 
     벨이 울리자, 베스, 멜러니, 캐티, 크리스티와 나는 떼를 지어 
     문으로 향했다. 닐 선생님이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계셨다. 태피가 바로 앞에 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모두 
     의미 있는 눈짓을 주고 받았다.
       "선생님이 부축하게끔 기절하지 않는지 잘 봐."
       하고 캐티가 말했다.
       태피는 북적거리는 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한 발자국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태피는 닐 선생님이 서 계신 쪽으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드디어 바로 선생님 옆에 있게 되었다. 그녀가 
     한 손을 엉덩이에 대는 것을 보고 처음엔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팔꿈치를 내밀기 위해서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팔꿈치로 선생님의 소매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그녀는 돌아서서 나를 바라 보았다. '나는 선생님을 
     만졌다.'하고 네온사인이라도 켜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그런 짓을 하고 그녕 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난 다음 람다 로 모임까지 기다릴 수 없어."
       하고 불쑥 말을 꺼냈다.
       태피가 멈칫했다. 누군가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지만 무시하고 
     태피의 표정을 감상했다. 그녀의 표정을 봤다면, 내가 미스 
     아메리카로 당선되고 그녀가 차점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태피는 몸을 돌려 또박또박 걸어 나갔다.
       "제너, 너 미쳤니?"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베스가 소리를 질렀다.
       "닐 선생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선생님은 무슨 뜻인지 몰라."
       "그렇지만 선생님은 대학을 다녔어."
       베스가 내게 말했다.
       "아마 그리스어를 알고 있을 거야."
       "좋아, 좋아. 그렇지만 람다 로가 '작은 건포도'라는 뜻인줄 
     어떻게 알겠니?"
       나는 자신만만하게 들리도록 애쓰면서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줄곧 베스가 옳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이렇게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닐 선생님에게 좋은 인상을 주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특히 내 이름을 말할 때를 알지 못한 실수를 저지른 뒤에는 
     말이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도록 했어야 했다. 만약 
     람다 로가 무슨 뜻인지 알았다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난 너무 
     부끄러워서 죽고만 싶었다.


        4. 나는 우체통 앞에서 여름 방학을 보냈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몹시 걱정이 되어 머리가 이상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닐 선생님은 람다 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해도 드러내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만큼이나 유감스런 
     일을 하셨다. 선생님은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냈나'란 제목으로 
     500단어의 작문을 해 오라고 하셨다.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냈나는, 세상 그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샐리는 아마 유럽 여행에 대해 500페이지는 쓸 수 있을 
     것이다. 태피의 부모님은 케이프 코드에 여름 별장을 갖고 있고, 
     멜러니는 멕시코에 갔다 왔다. 따분하고 늙은 클레런스조차도 왜 
     팔을 부러뜨렸는지에 대해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아무에게도 내 여름 방학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닐 선생님에겐 
     특히.
       여름 방학을 이토록 끔찍하게 만든 건 내가 무슨 짓을 해서가 
     아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대문이었다. 난 아빠와 
     2주일에 걸친 서부 여행을 가지 못했으면, 무엇보다 나쁜 것은 
     그 이유를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함께 가자는 그 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너무너무 행복했다. 난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 후 아빠를 본 적이 없다. 아빠를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마침내 엄마가 가도 좋다고 허락할 때까지, 그 
     편지를 오천 번은 읽었을 것이다. 엄만 아빠에게 내가 가도록 
     허락한다는 편지를 썼고, 나는 기다렸다.
       난 아빠가 곧 답장을 보낼 거라고 믿었다. 언제 나를 데리러 
     올지 알아야 했다. 얼마 후, 답장이 오지 않자 엄마는 아마 
     아빠의 휴가 날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나 보다고 말했다. 엄마 
     말이 맞을 거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마음 속으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빠가 청했다는 
     사실뿐이었다. 어쨌든 그건 약속이었으니까.
       나는 매일 아침 11시 15분에 우체통 앞에 서 있곤 했다.
       우체부 아저씨가 오는 시간이 11시 15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 작문 제목을 '나는 우체통 앞에서 여름 방학을 
     보냈다'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월 중순이 되자, 엄마는 내가 직접 편지를 써서 언제 올 
     예정인지 물어 보고, 떠날 준비를 해 두려면 언제 올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엄마 말이 
     옳았지만, 난 일주일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편지지를 꺼냈다. 
     그리고 하루를 더 보냈다. 아빠를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빨 곤란하게 하는 일일 테니까.
       편지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첫머리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였다. '친애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아빠'라고 해 봤지만 어느 것도 적당한 것 같지 
     않았다. 그건 너무 사사로운 이름이었고, 특히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을 부르기엔 더욱 그랬다. 아무에게나 거리낌없이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가톨릭 신자라면 
     별문제지만 말이다.
       그래서 난 '빌 아빠'라고 썼는데, 그렇게 하면 훨씬 더 
     아저씨같이 느껴졌다. 난 누구든지 '아저씨'라고 부를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사사로운 이름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빌 아빠'는 2주일의 서부 여행에 초대받은 5학급 학생으로서는 
     너무 유치했다.
       아빠는 편지에다 '너의 아빠'라고 서명을 했다. 분명히 
     '사랑하는 나의 아빠'로 내 편지를 시작할 순 없었다. 결국, 그 
     부분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햇다. 편지를 봉하기 전에 언제든지 
     써 넣을 수 있을 테니까.
       본문도 쉽지는 않았다. 그것 역시 나중으로 미루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도록 내 
     이름만 쓴 쪽지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틀 동안 
     꼬박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아빤 나를 좀 바보같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아빠에게 진짜 물어 보고 싶은 것은 이혼에 대해서였다.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엄마를 보자. 그 누구도 엄마보다 더 훌륭할 수는 없을 
     것이다.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에 집에 와서도 할 일이 
     많은데도, 엄마는 내가 친구들을 데려오는 걸 기뻐했다.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이야기도 했다. 내 방을 제외하고 
     불평하는 일도 없다. 엄만 정말 최고였다.
       그럼 아빠를 보자. 엄만 아빠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늘 
     이야기한다. 친절하고 점잖고 모임의 활력소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이미 말했듯이 그런 두 사람이 이혼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난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이혼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안 
     된 일은 그 당시 있었던 유일한 다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아빠가 내게 편지를 거의 쓰지 않은 이유임에 
     틀림없었다. 두 사람을 헤어지게 했다고 아빠는 나를 미워했던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은 몹시 두려운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대개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였는데, 가슴이 뛰고 
     귀가 빨갛게 달아 올랐다. 한번은 토할 것 같았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나는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서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을까 하고 몇 번이고 자문해 보았다. 매우 무자비한 짓을 
     햇던 것이 분명했다.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애를 썼다. 
     엄마는 내가 아주 많이 울었다고 했다. 사실, 한 동안은 줄곧 
     울기만 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운다는 이유로 어린 아기를 
     미워할 순 없지 않은가.
       아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그 일은 내가 세 
     살 때 일어났을 것이다.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이 바로 내가 세 살 
     때니까. 나는 세 살 때에 대해 들은 이야기를 생각해 내려고 
     애를 썼다. 단서가 될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건 폐렴에 
     걸렸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렇지만 병에 걸린 아기에게 등을 
     돌릴 순 없지 않은가.
       엄마에게 이혼에 대해 여러 번 물었지만, 엄만 항상 내가 좀 
     더 자라면 설명해 주겠다고만 대답했다. 나는 매일 자라고 있고 
     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던 일들을 죄다 이해하고 있는데도, 엄만 
     아직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아빠가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그런 편지를 쓸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아빤 벌써 날 용서했을지도 모르며, 그래서 2주일의 서부 
     여행에 초대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세 문장으로 된 편지를 
     쓰고 말았다.

       빨리 답장을 받고 싶어요. 언제 데리러 오실지 알아야 짐을 쌀 
     수가 있습니다. 기다릴 수가 없군요.

       사랑하는 제너 올림.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나서야 비로소 '친애하는' 부분이 
     생각났다. 앞으로 되돌아 가는 것을 깜빡 잊어 버린 채 편지를 
     부치고 만 것이다. 난 그만 죽어 버리고 싶었다.
       어쨌든, 여름 내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아빠로부터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다. 2주일의 서부 여행은 가지 못햇다. 
     그리고 부모님을 이혼하도록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끔찍한 여름이었다. 어떻게 그것을 닐 선생님께 써 낼 
     수 있단 말인가? 내 친구들에게조차도 말할 수가 
     없었는데.......
       그 때 좋은 생각이 떠 올랐다. 닐 선생님은 내가 여름 방학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신다 안다 해도, 내가 정말 서부에 
     갔었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여러 권 
     빌렸다. 그랜드 캐년이며 파익스피크며 페인티드 사막 같은 곳을 
     죄다 읽었다. 그 때 전에 읽었던 다른 책이 생각났다. 목장에서 
     여름을 보낸 어떤 소녀에 대한 책이었다. 그 소녀는 산악 여행을 
     하다가 길을 잃고 혼자 헤매던 중,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부러뜨렸는데 무서운 폭풍이 몰아닥쳐 흙사태가 그녀를 덮치기 
     직전에 구출되는 등 흥미진진한 모험을 아주 많이 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책이었다. 난 그 이야기를 내가 겪은 
     것처럼 쓸 작정이었다. 그건 아마 5학급 전체에서 가장 훌륭한 
     작문이 될 것이다.
       난 작문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열심히 
     뭔가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약간 바꾸었다. 
     예를 ㄷ면, 말에서 떨어져 발목을 삐었다고 했다. 뼈가 부러지면 
     낫는 데 오래 걸리므로 닐 선생님이 깁스가 어디로 갔는지 혹은 
     왜 절뚝거리지 않는지 의아해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작문은 금요일까지였다. 목요일 방과 후, 나는 집으로 곧장 
     가서 작문을 마치고 싶었지만, 람다 로 모임 때문에 멜러니네 
     집으로 가야 했다
       내가 개회를 했고, 회계인 크리스티가 전년도에서 넘어 온 
     돈이 17센트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10센트씩 회비를 걷자, 모두 
     67센트가 되었다.
       "19달라 95센트가 되려면 아직 멀었구나."
       캐티가 고개를 흔들었다.
       "돈을 벌 계획을 생각해 본 사람 있니?"
       나는 기대에 부풀어서 물었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베스가 다음 모임까지 더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 다음 나는 태피에 대한 보고를 듣자고 했다.
       "한 가지 보고할 게 있어."
       멜러니가 말했다.
       멜러니는 일어서서 자신의 태피 반대 클럽 노트를 펼쳤다.
       "9월 15일, 오후 1시 7분, 수학 시간. 태피가 닐 선생님의 
     책상으로 가서 문제를 풀어 달라고 했음. 눈을 깜박거리고 
     구역질 나는 미소를 지었음. 닐 선생님이 웃었음."
       나는 목구멍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수학이라니! 수학 문제를 
     가지고 선생님에게 가는 상상을 했었는데, 이제 태피가 바로 그 
     방법을 써 먹은 것이다.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19달러 95센트를 모을 멋진 방법을 생각해 내야겠다. 그래서 
     그녀에게 보란 듯이 해 주겠다.
       태피에 관한 다른 보고가 없자, 베스가 발언권을 청했다.
       "우리에게 지금 당장 19달러 95센트가 있다 해도 '밀로의 
     비너스'를 주문해서 소포로 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야."
       하고 베스는 말했다.
       "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태피가 점점 더 우리를 
     앞서 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들 했고, 베스는 다시 한 번 
     얼굴에 야릇한 표정을 떠 올렸다.
       "계획이 또 하나 있어."
       베스는 매우 기쁜 듯이 낮게 속삭였다.
       그런 다음 책가방에서 엄마의 바느질 상자에 들어 있는 것과 
     비슷한 파랑색 길다란 줄자를 꺼냈다.
       "이것과......,"
       베스는 줄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손으로 태피 반대 클럽의 노트를 휘둘렀다.
       "'밀로의 비너스'가 도착할 때까지 그 역할을 해 줄 거야."
       우리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베스는 재빨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각자 노트 뒷면에 표를 만드는 거야. 그리고 가슴 
     둘레를 재서 현재의 기록란에 치수를 적어. 그런 다음 내가 
     우연히 알게 된 가슴 키우는 체조를 시작하는 거야. 매일 체조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가슴 둘레를 재. 그것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길이야. 자, 그럼 누가 제일 먼저 가슴 둘레를 재겠어?"
       아무도 내가 자원하리라고 생각지 못하도록 나는 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내 가슴 둘레는 3학급 평균치 정도였으며, 
     3학급이나 4학급이라면 괜찮았지만 5학급으로서는 비참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내 가슴 둘레를 아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자원자는 아무도 없었다.
       "자, 사람들 앞에서 할 필요는 없어."
       마침내 베스가 유감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화장실에 가서 하도록 해. 제너, 네가 먼저 해. 네가 
     회장이니까."
       마지못해 나는 줄자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문을 잠갔다. 줄자를 가슴에 두르고 후 
     하고 깊은 숨을 내쉰 다음, 눈금을 보았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34인치라니!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줄자가 꼬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를 바로 편 다음 다시 재 보았다 지독하게도 
     26인치였다.
       각자 가슴 둘레를 재고 노트에 기록하는 것이 끝나자, 베스가 
     체조 시범을 보였다. 먼저, 손가락을 쭉 펴고 할 수 있는 만큼 
     세게 양손 끝을 눌러 준다. 하나, 둘, 셋, 넷, 쉬고 하나, 둘, 
     셋, 넷, 쉬고. 다음엔 두 손을 깍지끼고 줄다리기 하는 것처럼 
     잡아 당긴다. 하나, 둘, 셋, 넷. 쉬고 하나, 둘, 셋, 넷, 쉬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누르고 당겼다. 이 체조가 근육을 적절히 
     사용하게 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 정도는 나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썩 효과가 있으리라곤 도무지 믿어 지지 않았다.
       어ㅉ든, 그날 밤 작문을 마치고 제출할 준비를 끝낸 뒤, 스무 
     번씩 더 체조를 했다. 다시 한 번 가슴 둘레를 재 보았다. 아직 
     26인치였다. 효과를 기대하기엔 좀 일렀다. 결국 나는 침대로 
     들어갔고, 19달러 95센트를 모을 방법을 열심히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5. '작은 건포도'의 초콜릿 판매 계획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은 다음날 학교 식당에서였다. 아주 
     멋지고도 간단한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지금껏 아무도 생각지 
     못한 것이 이상했다.
       난 젤리를 바른 크림 치즈 샌드위치와 삶은 달걀 한 개, 감자 
     칩 한 봉지, 콜라, 그리고 사과 한 개를 먹어 치우고 나서도 
     아직 배가 고팠다. 멜러니는 맞은 편에 앉아서 그 훌륭한 
     초콜릿을 입 속에 틀어 넣는 중이었다. 나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자동 판매기로 갔지만, 거기 있는 것은 모두 
     20센트짜리였고 나는 15센트밖에 없었다.
       바로 그 때 이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식당에서 
     초콜릿을 팔자! 쉬운 일이다. 멜러니 엄마의 조리법을 알아내면 
     된다. 그리고 용돈을 모아 필요한 재료를 사는 것이다. 학교가 
     파한 뒤 바로 우리 집으로 가면,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초콜릿을 
     다 만들 수가 있다. 그것이 부모님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해서, 번 돈으로 무얼 사려는지에 대해 곤란한 질문을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초콜릿을 나누어 각자 집으로 가져가면 훨씬 
     숨기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학교에 가져다 파는 것이다. 
     이보다 더 간단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들 하나씩 사 먹을 거라고 장담하겠어."
       내가 그 계획에 대해 설명을 마치자, 베스가 말했다.
       "우린 부자가 될 거야!"
       캐티만 빼고는 다들 내 아이디어에 찬성이었다. 캐티는 그것이 
     판에 박힌 역할의 한 예에 불과하며, 우린 여자들의 일이라고 
     사회적으로 낙인 찍히지 않은 일, 예를 들면 잔디 깎기라든가 
     세차 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어쨌든 우린 초콜릿을 
     만들기로 했고, 오늘은 금요일이며 대부분 토요일에 용돈을 
     타므로 월요일 방과 후에 상점에 가기로 했다. 멜러니는 엄마의 
     조리법을 알아 내는 데 주말을 모두 바쳐야 할 것이다. 화요일에 
     초콜릿을 만들면, 수요일은 아주 근사한 날이 된다.
       토요일 오후, 전화 벨이 울렸다. 멜러니였다. 멜러니는 우는 
     소리를 했다.
       "엄마가 초콜릿을 만들고 있어."
       훌쩍거리면서 멜러니가 말했다.
       "그런데 어떤지 아니?"
       난 알 수가 없었다.
       "엄만 조리법을 사용하지 않아!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하도 
     자주 만들기 때문에 재료를 얼마만큼 사용해야 하는지 외우고 
     있다는 거야. 어떻게 하지?"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조리법이 없으면 초콜릿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멜러니가 다시 울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걱정 마, 멜러니. 뭔가 좋은 수가 있을 거야."
       나는 말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부엌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갔다. 
     엄마는 오븐에 고기를 구우면서 혼자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는 초콜릿을 만들지 않는다. 매일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내게 특별 요리를 해 주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나를 위해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주지만, 그 중에 
     초콜릿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뿐이다. 나는 부엌을 나오려 
     했다. 그때 스토브 위에 있는 요리책이 눈에 띄었다. 왜 진작 
     저것을 생각지 못했을까! 저기엔 틀림없이 초콜릿 조리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물을 한 잔 마시며 요리책을 곁눈질해 보았다. 요리책을 
     읽는다는 건 내가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 책을 붙잡고 
     넘겨 보면, 엄만 이상하게 생각하고 질문을 해 대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곰곰 생각하면서 물을 한 잔 더 마셨다. 엄마가 
     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외엔 별 도리가 없었다.
       엄만 주말 내내 집에 있었다. 저렇게 오래 집에 있었던 기억은 
     없었다. 무엇보다 나쁜건 거의 언제나 부엌에 있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엄만 심지어 찬장까지 청소했는데, 평소엔, 좀처럼 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뭐가 하려는 것을 엄마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일요일 밤이 되자,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킬 순 없었다. 어ㅉ든 나는 클럽의 회장이고, 초콜릿을 
     팔자는 것도 내 아이디어였으니까. 그렇지만 엄마 모르게 
     요리책을 빼 올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 옆에 앉아 
     텔레비젼을 보려 했지만, 너무 걱정이 되어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때 핑크 씨가 왔다. 핑크는 월레이스 핑커튼의 애칭이며, 
     엄마와 핑크 씨는 이따금씩 함께 외출하곤 한다. 두 사람은 
     신문사에서 같이 일하고 있다. 엄마는 신문 광고 매니저이고, 
     핑크 씨는 출판인이다. 핑크 "씨는 키가 크고 검은 머리이며 
     아주 잘 생긴 남자이다. 나는 그를 꽤 좋아했지만, 핑크 씨에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는 몹시 심한 입내를 풍겼다. 엄마는 
     일전에 두 사람의 관계가 순수하게 정신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숨을 훅하고 내뿜는 걸 본 뒤로 난 엄마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간에 엄마의 후각은 지쳐 떨어져 
     버렸을 테니까 말이다.
       하여튼 핑크 씨가 옴으로 해서 나는 내 방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난 재빨리 인사를 하고, 그가 내게 숨을 내뿜기 전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일단 방으로 돌아온 나는 미친 듯이 왔다 
     갔다하기 시작했다. 뭔가 생각해 내야 했다. 그리고 서둘러야 
     했다.
       엄마와 핑크 씨가 무얼 하고 있는지 보려고 자주 방문을 열어 
     보았다. 두 사람은 줄곧 똑같은 일, 요리 책이 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 텔레비젼에서 하는 공포 영화를 보고 있었다. 핑크 
     씨가 엄마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일을 해 준다면, 키스를 
     한다든지 해서 말이다. 그러면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요리책을 
     가져와도 엄만 전혀 알아 차리지 못할 텐데. 그러나 핑크 씨의 
     입내를 떠올리고는 그러긴 틀렸다고 생각했다. 방 안을 왔다갔다 
     하는데, 한 번은 영화에서 어떤 여자가 피가 얼어붙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난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이래서야 어떻게 
     영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될 턱이 없었다. 마침내 나는 
     자명종을 맞춰 놓고, 체조를 하고, 가슴 둘레를 기록한 다음 
     절망감에 싸여 잠자리에 들었다.
       그 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자명종은 아침 7시에 울리도록 
     맞춰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한밤중으로 돌려 놓았다. 그때면 
     엄만 잠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어나서 부엌으로 살짝 
     들어가 요리책을 꺼내는 것이다. 책을 내 방으로 갖고 와서 
     초컬릿 조리법을 베낀 다음 엄마 몰래 다시 갖다 두면 된다.
       시계를 되돌릴 때,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이었다. 난 지금껏 한두 번밖에 한밤중까지 깨어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집안은 아주 깜깜하겠지만, 무섭진 않을 
     것이다. 너무 흥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어둠 
     속에 누워서 핑크 씨가 돌아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밤새도록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드디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았다. 10시 45분이었다. 자정까지는 1시간 15분이 남아 
     있었다.
       그 후 난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서 0.5인치쯤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결국은 깜빡 졸았는지 자명종이 
     울렸을 땐 깜짝 놀라 하마터면 천장까지 뛰어오를 뻔했다. 
     아침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리지 않았는데, 엄마가 들었으면 
     어떡하나? 자명종을 끄고 잠시 누워서 무슨 소리가 나나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는 깊이 잠든 것이 
     분명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맨 먼저 한 일은 넘어지는 것이었다.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바닥 한 가운데 놓아둔 운동화에 발이 걸린 
     것이다. 쿵 하고 집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기 때문에, 잠시 동안 
     그 자리에 누워서 엄마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어둠 속에서 
     눈을 커다랗게 뜨고 다른 것이 있는지 한 손으로 바닥을 더듬어 
     보았다.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자, '아무것도 없다'고 작은 
     소리로 다섯 차례 되뇌인 다음, 일어나서 문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거실을 살짝 가로질러 부엌으로 가면서 밤 도둑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싹한 기분이었지만 재미도 있었다. 눈이 
     점차로 어둠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으므로, 몽유병자처럼 두 팔을 
     앞으로 내밀지 않고도 그냥 걸을 수가 있었다. 책을 선반에서 
     꺼내 막 돌아서려고 하는데,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깨어 있다!
       나는 의자 뒤에 숨어 귀를 기울였다. 거리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있었고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엄마가 잠결에 뒤척이다가 무심결에 
     벽 같은 데를 발로 찬 모양이었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소리나지 않게 문을 닫고, 책상 위의 등을 
     켰다. 손에 들려 있는 요리책을 보았다. '중국 요리.'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중국 요리책에는 초콜릿 조리법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찾아 보았다. 역시 그랬다. 
     다른 책을 가져오는 도리밖에 없었다.
       불을 끄자 전보다 더 깜깜해 보였다. 나는 거실에 
     잡동사니들이 떨어져 있지 않기를 빌면서, 달팽이처럼 조금씩 
     조금씩 움직였다. 부엌으로 살짝 들어간 다음,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초콜릿 조리법이 씌어 있는 책을 찾을 동안 
     불을 켜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밤새도록 어둠 속에서 요리책을 
     들고 왔다 갔다해야 할 판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불을 켜는 건 위험했지만,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는 한숨을 훅 내쉬고 스위치를 켰다. 불빛이 너무 환해서 
     눈을 가늘게 떠야 했다. 왼쪽에서 세번째 꽂혀 있는 책이 바로 
     그 책이었다. 나는 확신했다. '새로운 가정 요리'라고 씌어 
     있었다. 그 책을 팔에 끼고 불을 끈 다음, 더듬어 방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가정 요리'가 맞았다. 그 책엔 지피, 너티, 리마커블 
     세 종류의 초콜릿 조리법이 실려 있었다. 리마커블이 가장 듣기 
     좋은 이름이었으므로, 그것을 고르고 싶었지만, 지피로 하기로 
     했다. 가장 쉬웠기 때문이다.
       조리법을 베끼고 요리책을 제자리에 갖다 둔 다음 시계를 
     보았다. 12시 36분이었다. 난 조금도 졸립지 않았으므로 
     자명종을 다시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슴 키우는 
     체조를 스무 번 더 했다.
       자명종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깨웠다. 난 
     아침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깨어 있었던 것만 
     같았다.
       학교에서 책상 앞에 앉아 있기는 정말 지겨웠다. 그 멋진 닐 
     선생님조차도 잠기는 내 눈꺼풀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난 물을 
     마시고 세수를 좀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교실을 나가겠다고 
     손을 들면, 선생님은 화장실에 간다고 생각하실 것이다. 그래서 
     손을 드는 대신, 팔짱을 끼고 더 이상 졸음이 오지 않을 때까지 
     옆구리를 꼬집으면서 앉아 있었다.
       오후에 나는 친구들에게 조리법을 보여 주었다. 크리스티가 
     재료를 4배로 쓰고 초콜릿 하나에 15센트씩 받으면, 21달러 
     5센트를 벌 수 있다고 계산해 냈다. 그 돈이면 가슴 키우는 
     기구를 사는데 충분했다.
       너무 기뻐서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가 흥분해서 마구 
     떠들어대자 식당 관리인이 좀 조용히 하라고 했다. 우린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이틀만 있으면 '밀로의 비너스'는 우리 것이 
     되는 셈이었다.



        6. 내 작문은 완전히 거짓말이야! 

       나는 거짓말에 대해 이런 의견을 갖고 있다. 아주 커다란 
     거짓말을 하면 사람들은 믿는다. 누구든지 조금씩은 거짓말을 
     한다. 그런 거짓말은 전혀 대우받지 못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허풍을 쉽게 곧이 듣는다. 그 허풍을 
     만들어 낸 머리가 그 사람에겐 없는 데다가 허풍을 떨 용기도 
     없다고 생각하지 때문이다.
       내 작문을 예로 들어보자. 그건 터무니없는 허풍이었다. 난 
     할머니가 살고 계신 뉴저지 주 모리스 타운 서쪽으로는 가 본 
     적이 없으며, 말타기 비슷한 것으로는 댄버리 페어에서 조랑말을 
     한 번 타 보았을 뿐이다.
       닐 선생님은 내 작문을 그대로 믿으셨다. 그래서 A 마이너스를 
     주셨다. 마이너스를 준 이유는 '지역(terrain)'의 철자를 잘못 
     썼기 때문이었다. '지층(terrane)'이라고 썼던 것이다. 선생님은 
     내 작문이 몹시 잘 되었다고 학급 전체에 말씀하셨다. 5학급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글이라고 하셨다.
       그건 분명 유감스런 일이었다. 형편없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선생님이 다른 살마에게처럼 나에게도 작문을 되돌려 
     주었다면, 아무도 읽지 못하도록 태워 버리거나 조각조각 찢어서 
     삼켜 버렸을 텐데. 그러는 대신 선생님은 학교 신문 담당 교사인 
     록우드 선생님에게 내 글을 주었고, 이제 학교 전체 학생들이 
     읽도록 1면에 실릴 거라고 말씀하셨다. 난 그만 죽고 싶었다. 
     친구들은 모두 내가 여름 방학을 서부에서 보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태피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닐 
     선생님께 고해 바칠지도 모른다! 더욱 곤란한 일은, 신문은 
     수요일에 나오는데 그 날이 바로 우리가 초콜릿을 팔기로 한 
     날이라는 사실이다.
       학교가 파한 후 베스, 크리스티, 멜러니, 캐티와 나는 
     운동장에서 초콜릿 재료를 사기 위한 돈을 모았다. 가장 두려운 
     건, 온 학교가 내가 거짓말쟁이임을 안 바로 그 날, 초콜릿을 
     팔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죄인처럼 살금살금 식당을 돌아 다니는 
     내 꼴이 떠올랐다.
       "다음 주로 연기하면 어떻겠니?"
       아무렇지 않은 듯, 나는 말했다.
       "이번 주는 다들 시험 공부에 바빠서 초콜릿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아."
       "농담하는 거니?"
       멜러니가 소리 질렀다.
       "학교에 불이 났다고 해도 초콜릿을 먹으려고 멈춰 설 텐데."
       "저어, 허가없이 음식을 팔면 법을 위반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나는 말했다.
       "아니야."
       캐티가 얼굴을 찡그렸다.
       "작년에 걸스카우트에서 빵을 팔았을 때 기억하지? 그땐 
     허가를 받지 않았어. 그런데 요번에 왜 허가를 받아야 하지?"
       내가 진 것 같았다. 난 청바지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를 
     꺼냈다.
       "여기 있어."
       하고 크리스티에게 돈을 건네 주었다. 크리스티는 부지런히 
     노트에 기록을 했다.
       "드디어 됐다."
       크리스티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람다 로 동지들이여, 임무가 거의 완수되었다."
       모두들 박수를 치고 낄낄거리며 기뻐 날뛰었다. 나도 끼어 
     들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다들 이상하다는 눈길로 
     나를 쳐다 보았다. 내가 어째서 그렇게 조용한지 의아해 하고 
     있었다. 그들이 아는 한, 내 삶은 완벽에 가까웠다. 내가 쓴 
     글이 학교 신문 1면에 실릴 예정이었다. 우린 초콜릿을 팔아 
     돈을 벌 것이다. '밀로의 비너스'는 우리 것이나 다름없다. 
     명성과 재산과 아름다움. 아마 내가 길거리에서 춤이라도 춰야 
     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고민을 털어 놓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가장 친한 
     친구들일지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난 귀가 아프다고 
     양해를 구하고 집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어쨌든 그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캐티와 크리스티가 상점에 가겠다고 
     자원을 했다.
       어느새 화요일이 되었다. 적어도 수요일은 아니라고 스스로 
     타일렀지만 별반 위로는 되지 못했다. 학교는 수학 시간을 
     제외하면 꽤 순조로웠다. 닐 선생님은 세 번이나 나를 
     지명했는데, 단 한 번도 대답하지 못했다. 지명을 받고 대답하지 
     못 한 건 올해 들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교가 파한 후, 모두들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우리 집으로 
     달려갔다. 베스가 지휘자였다. 도착하자마자 베스는 '레드북' 
     잡지를 꺼내 '밀로의 비너스' 광고를 찾아서 조리대 위에 기대어 
     놓았다.
       "영감을 얻기 위해!"
       하고 베스는 말했다.
       "좋아, 조리법과 재료, 그리고 주전자와 프라이팬이 어딨지? 
     시작하자구"
       "어머나!"
       책가방을 뒤적이던 캐티가 소리쳤다.
       "모르고 사회 노트를 크림 치즈 위에 놓아서 죄다 이지러졌어. 
     하지만 쓸 순 있을 거야."
       두 손가락으로 으스러진 크림 치즈를 끄집어내어 조리대에 
     던졌다. 그런 다음 설탕, 밀가루, 호두, 초콜릿용 설탕을 
     꺼냈다.
       "제너, 너의 집에 바닐라가 있으면 좋겠는데. 바닐라를 사지 
     않았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목구멍으로 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삼켜 버리려고 애썼다. 우린 정말로 초콜릿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오고야 말 것이며, 내 작문은 모든 사람이 읽도록 
     학교 신문 1면에 실릴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나는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몽땅 내어 주고 구석에 물러서 
     있었다.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베스가 조리법을 
     큰 소리로 읽는 걸 들으며 그대로 서 있었다. 저렇게 읽는다면 
     오스카상이라도 받겠는 걸. 조리법을 저런 식으로 읽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은 것 같았다.
       모두들 재료의 양을 재고, 휘젓고, 낄낄거렸다. 난 그대로 서 
     있었다.
       "녹은 초콜릿을 빨리 저어."
       베스가 말했다.
       갑자기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숨을 한 번 훅 
     내쉬고 될 수 있는 대로 크게 소리쳤다.
       "내일 학교 신문 1면에 실릴 내 작문은 완전히 거짓말이야!"
       물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재고, 휘젓고, 낄낄거리던 모든 
     일들이 멈춰졌다. 내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말한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드물고 치명적인 전염병 말이다.
       "거짓말이라구?"
       베스가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멜러니만 빼고는, 입을 벌린 채 서 있는 그들이 모두 바보처럼 
     보였다. 멜러니는 숟가락에 묻은 초콜릿을 핥아 먹으면서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차분해졌다.
       "학교가 발칵 뒤집어질 거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뭐."
       크리스티가 혐오스런 시선을 던졌다.
       "정말 어쩔 셈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의자에 앉았다.
       "닐 선생님이 알게 되면?"
       "그런 일로 쫓겨나게 될까?"
       "난 네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우린 초콜릿을 팔아야만 해. 이미 만들기 시작한 거니까."
       "격려해 줘서 고마워."
       나는 말했다.
       당황해 하면서 네 사람 모두 돌아서서 아무 말 ㅇ벗이 
     초콜릿을 만들기 시작했다. 뭔가를 기다릴 땐 시간이 영원히 
     흐를 것 같지 않다가도, 뭔가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할 때는 
     하루가 단 30초 만에 다 가 버리는 것 같은 건 웬일일까? 어느새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고 구구단을 외고, 
     날 깨어 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면서 가능한 한 
     오래 누워 있었다. 눈을 감자마자 아침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판의 날 말이다.
       정말로 그랬다. 나는 최후의 식탁을 마주한 사형수처럼 아침 
     식사 식탁에 앉아 있었다. 접시 위에 놓인 두 개의 달걀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달걀조차도 내가 
     여름 방학을 서부에서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진짜 하고 싶은 
     건 도망치는 일이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돈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호텔에 들 순 없었고, 할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걱정이 많은 분이었기 때문에 그리로 갈 수도 없었다. 할머니는 
     분명 나를 되돌려 보내실 것이다.
       아빠가 계신 포킵 시까지 도보 여행을 할까 하고도 생각했다. 
     그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 계획이었지만, 바로 아빠에게 뛰어 
     들어갈까 아니면 아빨 좀 더 잘 알게 될 때까지 며칠 동안 따라 
     다니며 훔쳐 볼까를 결정할 수가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 난 아빠에 대해 이야기를 꾸미곤 했다. 
     알다시피 어떤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를 땐 그렇게 할 수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꾸밀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난 아빠를 
     스파이로 꾸몄다. 항상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고, 엄마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에게조차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스파이 
     말이다. 그래서 편지를 자주 쓰지 못하고 나를 보러 오지도 
     못한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늘 끝맺음이 좋았다. 
     아빠가 은퇴하고 돌아 와 우리와 함게 살면서, 겪었던 모험을 
     전부 들려주고 기념품들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마음 속으로 도망가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포킵 시에도.
       아침을 먹는 동안 줄곧 엄마는 정말 상쾌한 아침이라면서, 
     빨리 빨리 서둘러 학교까지 즐겁게 산책하듯 가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늑장을 
     부리다가 출발했다. 가방에 책을 넣고, 하마터면 침대 밑에 
     숨겨둔 내 몫의 초콜릿을 잊어 버릴 뻔했다.
       학교로 가면서 내내 록우드 선생님이 우리 반에 신문을 나눠 
     주어, 모두들 내 글을 읽으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했다. 옆길로 
     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언제 신문을 가져 올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온다는 것을 항상 알아 차릴 
     수는 있었다. 선생님은 소리나는 구두를 신고 깡충거리며 뛰듯이 
     걷기 때문에 텝댄스를 추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1마일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화장실로 쑥 들어갔다. 아무도, 내 
     친구들까지도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 토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화장실 한 칸에 들어가 문에 기대 섰다. 금속으로 
     만든 문이었으므로, 블라우스를 통해 차가운 기운이 스며 
     들었다.
       얼마 안 있어 첫번째 벨이 울렸다. 도망친다든지 뭔가를 
     하려면 5분밖엔 간이 남지 않은 것이다. 5분 후면 너무 늦어 
     버린다.
       눈을 감았다. 그러자 태피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태피는 
     학교 신문을 들고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크게 
     웃는 일이란 좀처럼 없었다. 덧니가 한 개 있는데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가 덧니도 모두 잊고 깔깔 웃고 
     있었다.
       시작 벨이 울리자 나는 그만 놀라 펄쩍 뛰어 오를 뻔했다. 
     흥분해 있지만, 정말이지 빨리 지나간 5분이었다. 내 운명은 
     이제 결정되었고, 나는 교실로 가야 했다.
       홀에서는 모두들 정신없이 뛰고 문을 콰당거리면서 교실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를 뺀 모두가 말이다. 나는 천천히 
     움직였다. 마침내 5학급 교실에 도착했을 때는 홀이 조용해져 
     있었고, 닐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고 계셨다.
       난 눈에 띄지 않도록 애쓰면서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계속 출석을 부르고 계셨다. 당연히 5학급 전체가 
     출석이었다.
       잊지 않고 초콜릿을 가져 왔느냐고 멜러니가 쪽지를 보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친구들이 모두 동정 어린 눈길을 
     보냈다. 날 동정하고 있는 줄은 알지만 조금도 도움이 되진 
     못했다.
       첫 시간은 항상 역사였다. 평소에 역사가 첫 시간인 것을 
     좋아했다. 몹시 지루하고 재미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만북 전쟁 때의 프레드릭스 
     전투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었다. 난 프레드릭스 전투라도 좋으니 
     그때 살았더라면 하고 생각하면서 앉아 있었다. 지금 죽어 
     있다면 사람들이 내 작문을 읽을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역사 시간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생각되었다. 한 번은 록우드 선생님의 구두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마침내 10시, 역사책을 덮을 
     시간이 되었다.
       다음 시간은 독서였다. 선생님께서 오늘은 자유록게 책을 
     읽으라고 하시자, 모두들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열심히 책을 
     읽는 체 하면서 조심하기만 하면 편지 같은 것을 쓸 수 잇기 
     때문에 다들 자유로운 독서 시간을 좋아했다. 나는 뒤쪽 
     책꽂이로 가서 '카우슬립'이란 책을 뽑아냈다. 그 책을 고른 
     이유는 이미 세 번이나 읽어서 내용을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선생님이 가끔 하시듯, 읽은 책에 대해 
     질문을 던지더라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가 있었다.
       나는 몸을 축 늘어 뜨리고 앉아, 선생님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책을 앞에 세웠다. 그러면 정말 책을 읽는 것처럼 눈을 
     앞 뒤로 굴릴 필요가 없었다. 이따금 한 번씩 페이지 넘기는 걸 
     잊지만 않으면 되었다.
       나는 눈을 감고 록우드 선생님의 구두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난 눈을 감으면,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인해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기 때문에 더 잘 듣게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 내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고 졸고 있다고 생각한 4학급 선생님께 한 번 이 
     이론을 설명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선생님을 납득시키진 
     못했다. 그 때 이후로는 내 이론을 실행에 옮기는데 신중을 
     기했다. 그래서 몇 분마다 한쪽 눈을 뜨고 닐 선생님이 내 책상 
     앞에 서서 내려다 보고 있지 않나 확인을 해야 했다.
       한 시간 내내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아이들이 책상 밑에서 
     발을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필 깎는 소리도 들렸다. 베스가 
     코 푸는 소리도 들렸다. 책장 넘기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러나 
     록우드 선생님의 구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월, 수, 금요일 11시엔 음악실로 간다. 음악 선생님은 
     크록커인데, 300파운드는 나갈 게 틀림없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빠른 곡을 칠 때면, 팔 아래쪽의 비곗살이 마구 흔들렸다. 그건 
     정말 볼 만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등을 돌리고 피아노 앞에 
     앉아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며 건반을 눌러댄다. 때로는 너무 
     열중한 나머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대신 빈둥거리며 돌아 
     다니는 것도 알아 차리지 못했다. 한 번은 죠이란 남자 아이가 
     음악실을 몰래 빠져 나가서 학교 길 건너 상점에 갔다 온 적이 
     있었다. 그 애는 치즈 팝콘 한 봉지를 사 갖고 와서 반 전체에 
     나누어 주었다. 크록커 선생님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계속 
     '성자가 오실 때'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고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팝콘 냄새는 맡았을 텐데도 말이다. 음악실에 있으면 
     가장 나쁜 점은, 그런 소동 때문에 바깥 홀에서 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좀 더 잘 들리도록 문 옆에 
     자리를 잡으려 했지만, 한 패거리의 남자 아이들이 나를 밀어내 
     버렸다. 그 애들은 항상 문 옆에 앉곤 했는데, 그건 음악 시간이 
     바로 점심 시간 전이기 때문에 벨이 울리자마자 뛰어나가 제일 
     먼저 식당에 줄을 서기 위해서였다. 난 가능한 한 문에서 가까운 
     자리를 찾아 앉았으며, 친구들이 앞 쪽에 자리를 잡아두고 
     오라는 손짓을 해대는 것을 못 본 체했다.
       주위가 조용한 한 차분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크록커 선생님이 
     '노인(This Old Man)'을 연주하자마자,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록우드 선생님은 언제라도 불쑥 나타날 수 있었고, 난 마음의 
     준비를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네 번째 합창이 시작되자,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갔다. 문에다 귀를 갖다 댔지만 들리는 건 노래 
     소리뿐이었다. 그래서 문을 조금 열었다. 고맙게도 홀은 텅 비어 
     있었다. 록우드 선생님은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자리로 
     살그머니 돌아오자 노래가 끝났고 크록커 선생님이 돌아 보았다. 
     아직까지는 행운이 계속되고 있었다.












        7. 록우드 선생님의 발소리 

       점심 시간 벨이 울리자 모두들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갓 만든 식사를 하려는 아이들이 쟁반을 들고 줄을 서 
     있었다. 엄마는 매일 젤리 바른 크림 치즈 샌드위치를 먹지 
     말고, 뜨거운 것을 먹어야 한다고 늘 야단을 친다. 식당 음식을 
     한 번이라도 먹어 보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알포가 나왔다. 그건 우리들이 콘비프라고 부르는 요리다. 
     크리스티는 개를 한 마리 기르고 있어서 알포를 먹어 본 적이 
     있다. 크리스티는 그것이 학교에서 주는 콘비프보다 훨씬 
     맛있다고 한다.
       어쨌든, 난 친구들보다 먼저 음악실을 나왔기 대문에 식당에도 
     먼저 도착했으며 창문 옆 한 구석에 있는 커다란 식탁을 잡았다. 
     자리에 앉자 퍽 마음이 놓였다. 록우드 선생님은 적어도 
     초콜릿을 팔기 전까진 신문을 돌리진 않았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 태피가 식당에 들어 와 줄에 기어 
     들었다. 모나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드디어 크리스티, 멜러니, 
     베스가 들어왔고, 식탁 위에 점심 도시락 가방을 털썩 내려 
     놓았다.
       "캐티는 어디 갔니?"
       내가 물었다.
       "교실로 되돌아 갔어."
       멜러니가 대답했다.
       "뭔가 두고 온 모양이야."
       "캐티가 뭔가를 잊어 버렸다구? 농담이겠지."
       나는 말했다.
       일 분 후, 캐티가 식당 안에 들어섰다. 캐티는 정말 짐이 많아 
     보였다. 도시락 외에도 책가방과 한 쪽을 스카치 테이프로 붙인 
     갈색 봉투에 싼 커다란 마분지를 들고 있었다. 문 옆의 식탁에 
     짐을 내려 놓고 우리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얼굴을 찡그리면서 그리로 오라고 마구 손짓을 했다.
       우린 모두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 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문 옆의 식탁은 식당에서 제일 나쁜 짓이었고, 
     언제나 마지막으로 온 사람이 앉는 자리였다. 그 이유는 바로 
     옆에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어서, 아이들이 나가면서 휴지와 우유 
     통, 반쯤 먹다 남은 샌드위치들을 버리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야구 선수나 되는 것처럼 식당 한 가운데서 던지지만 않는다면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다. 절반 정도만이 쓰레기통에 들어가고, 
     대개 몇 개는 그 식탁에 떨어지게 마련이었다. 그 자리에 앉고 
     싶어하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우리가 꼼짝하려 들지 않자, 캐티는 화가 나서 식탁 위에 
     놓아둔 짐을 들고 다가왔다.
       "이 구석에서 뭘 하고 있는 거니?"
       캐티는 말했다.
       "초콜릿을 팔려면 문 옆에 있어야 돼. 모두들 볼 수 있는 곳에 
     상품을 늘어 놔야 하고, 이 식당을 나가려면 그 식탁을 지나가야 
     하잖아."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캐티가 옳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면서 우린 샌드위치와 종이 봉지, 
     잡동사니들을 거두어 들고 캐티를 따라 문 옆의 식탁으로 갔다. 
     마치 전투에 끌려가는 병사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자리에 앉기 
     전, 캐티는 명령을 내렸다.
       "아무도 먹어선 안 돼."
       캐티는 말했다.
       "벌써 점심을 다 먹은 사람도 있어. 상품을 늘어 놓으려면 
     서둘러야 해."
       나는 가슴이 벅차 올랐다. 약간 시장기가 느껴졌고 뱃 속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지만, 내가 가져 온 '상품'을 모두 꺼내 
     캐티에게 건네 주었다.
       모두들 그렇게 했다. 그러나 캐티는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커다란 마분지를 싼 봉투를 벗겨 내고 있었다. 간판이었다. 빨간 
     글씨로 커다랗게 '집에서 만든 초콜릿을 팝니다. 
     ------15센트'라고 씌어 있었다. 글씨 밑에는 갈색의 둥근 것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마도 초콜릿을 그린 것 같았다. 그림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간판을 건다는 건 몹시 훌륭한 
     생각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캐티는 간판을 식탁에 기대어 세워 놓은 다음 우릴 또 놀라게 
     했다.
       "거스름돈 갖고 왔니?"
       "거스름돈?"
       베스가 물었다.
       "얘, 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멜러니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구말구."
       정말 유감스럽다는 듯 캐티가 대답했다.
       그녀는 책가방을 열고 빈 달걀 상자와 잔돈 지갑을 꺼내 1센트 
     짜리, 5센트 짜리, 10센트 짜리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내 저금통에서 58센트를 가져 왔어."
       우린 겁 먹은 얼굴로 서로를 쳐다 보았다. 난 캐티가 언젠가 
     사람이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마 한 손으로도 모든 
     일을 처리할 것이다. 물론 그녀의 회사에선 초콜릿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정유소를 차려 휘발유 같은 것을 만들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캐티는 우리 클럽의 실제적인 두뇌였다. 그녀가 
     다시 말을 꺼냈을 때 난 그렇게 얘기할 작정이었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정당한 지위를 차지하려면, 좀 더 
     조직화되고 좀 더 능률적인 접근 방법을 택해야 해. 여성들은 
     배워야 하고......."
       바로 그 때, 클레런스가 간판을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이 봐, 저 것 좀 봐! 초콜릿이야! 저 애들이 초콜릿을 팔고 
     있어!"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민트 회사의 무료 샘플이라고 말한 것만 
     같았다. 갑자기 우린 정신 못 차리게 바빠졌다. 사람들은 떼를 
     지어 모여 들어서 식탁 위에 돈을 던지고 재빨리 초콜릿을 움켜 
     쥐었다. 어떤 6학급 남학생은 심지어 내 샌드위치까지 사려고 
     했다. 그가 5달러를 준다고 했어도 팔지 않았을 것이다. 난 정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모나는 두 개를 샀다. 한 개를 태피에게 주는 것을 옆 눈으로 
     흘끗 보았다. 태피는 독이라도 든 것처럼 잠시 초콜릿을 쳐다 
     보더니,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는 싱긋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돈이 어떻게 쓰일지 알면, 태피는 죽으려 들 것이었다.
       30분 만에, 적어도 그 정도로 빨리 초콜릿이 다 팔렸다. 두 
     배만큼 더 있었더라도 다 팔았을 것이다. 하나도 사지 못한 
     아이들이 길길이 날뛰었다. 우린 신경쓰지 않았다. 달걀 상자에 
     쌓인 돈만 해도 '밀로의 비너스'를 사는 데는 충분했다. 너무 
     기뻐서 킬킬거리고 팔짝팔짝 뛰며 소동을 피웠기 때문에 식당 
     관리인이 조용히 앉아 있으라고 야단을 쳤다. 우리는 부스러기를 
     깨끗이 치우고 간판을 쓰레기통에 처넣은 다음, 마침내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젤리를 바른 크림 치즈 샌드위치를 맛있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캐티가 비명을 질렀다. 캐티의 소시지 샌드위치 위에 다 
     먹고 버린 커다란 사과씨가 얹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멈칫했다. 
     누군가가 쓰레기통을 못 맞춘 모양이었다. 캐티를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쳐다 보면, '내가 뭐랬니.'하는 표정이 내 얼굴에 써 
     있을 것 같아서였다. 멜러니, 베스, 크리스티를 슬쩍 쳐다 
     보았다. 그들도 캐티를 쳐다 보지 않고 있었다.
       가까스로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벨이 울렸다. 나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초콜릿 파는 데 정신이 팔려서 작문과 학교 
     신문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수학 
     시간이고, 다시 록우드 선생님의 구두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쩌면 오후 늦게 집에 가기 직전에 신문을 돌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사람들이 신문을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이다. 
     기대하긴 어렵지만,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랬다. 5학급 교실로 
     돌아 가면서 줄곧 그렇게 되길 바랬다.
       막 수학 공부에 재미를 붙여 가고 있을 때였다. 난 긴장이 
     풀어져 있었다. 그 소리가 들렸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소리였다. 록우드 선생님으 구두 소리였다. 아직은 멀리 
     떨어진 1층 다른 쪽 복도에서 들렸다. 그렇지만 다가오고 
     있었다. 틀림없었다.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몸이 마비된 것 같았다. 팔과 다리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코를 만져 보았다. 적어도 코에는 감각이 
     살아 있었다. 구두 소리가 멈췄다. 다른 교실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거기서 잠시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문이 열리지 않아 나올 수가 없어서 고쳐 달라고 관리인을 
     불렀지만, 관리인이 자리에 없어 하루 종일 걸릴지도 모른다.
       그런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구두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미쳐 가고 있는 걸까? 이번엔 두 쌍의 구두 
     소리다! 아니, 그런 게 아니었다. 닐 선생님이 칠판에 문제를 
     쓰는 소리였다. 록우드 선생님은 다른 교실에 들어갔다. 오래 
     머물러 있진 않을 것이다. 문 안에 던져 넣고 도망치듯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구두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오늘은 
     탭댄스를 추는 소리같이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기관총 소리 
     같았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칠판에 씌어진 문제에 주의를 집중하려 
     했다. 닐 선생님이 설명을 하고 계셨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렸고 조금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 때 문이 열리고 록우드 선생님이 불쑥 나타났다. 선생님은 
     신문을 한 아름 안고 계셨으며, 신문을 건네면서 내게 환한 
     미소를 보냈다. 신문을 기울여 1면에 실린 내 이름을 가리켰다.
       내 위장이 퍼덕거리기 시작했고 구역질이 났다. 손을 들어 
     잠깐 나가겠다고 하려 했다. 닐 선생님이 내가 화장실에 간다고 
     생각하리라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점심 먹은 것이 올라오고 
     있었다. 손을 들 시간조차 없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전속력으로 문으로 달려갔다. 점심 먹은 것도 전속력으로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문은 아직도 멀리 있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불쾌한 맛이 입 안에 가득했다. 나는 멈춰 서서 내 신발에다 
     토하고 말았다.


        8. 그 애가 뭔가를 준비 중이야! 

       양호 선생님은 나를 침대에 누워 있게 하고 신문사로 엄마에게 
     데려 가라는 연락을 했다. 그런 다음 혼자 있어도 괜찮다면 다른 
     일을 봐도 되겠느냐고 했다. 그녀가 정말 할 일이 있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 운동화에서 풍기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 누워 있는 동안 닐 선생님, 록우드 선생님, 
     그리고 학급 전체 앞에서 토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건 냅킨말고는 지금까지 기록을 깨거나 
     이름을 떨쳐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1년 낸 도시락 
     가방에 똑같은 냅킨을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도 얼룩을 묻히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일 것이라고 하신다 그렇지만 그건 
     엄마와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양호실에 누워 있는 건 기쁘게 생각되었다. 바로 이 
     순간, 모두들 내 작문을 읽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곳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엄마가 '근심 많은 엄마'의 
     표정을 하고 들어오자, 나는 다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양호 선생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내 이마와 뺨을 2초 걸러 
     한 번씩 만져 보았다.
       집에 돌아 왔을 때 나는 완전히 나아 있었다. 그렇지만 입 
     밖에 내진 않았다. 엄마는 날 다시 학교에 되돌려 보낼지도 
     모른다. 난 기분이 좋지 않은 체하고 잠옷을 입고는 재빨리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엄마는 체온계와 약을 꺼냈다. 엄마가 
     으례껏 하는 치료를 끝내자, 나는 즐겁다고 했다. 엄마는 자는 
     것이 무엇보다 좋을 거라고 하면서 젤리를 만들어 두겠다고 
     하셨다. 엄만 내가 아프면 항상 젤리를 만들어 준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학교에서 토하다니, 일을 더 악화시켰을 뿐이다. 
     어쩌다가 그런 꼴이 되고 말았을까?
       그런 질문을 하다니! 대답은 너무도 끔찍했다. 아빠가 나를 
     2주일 간의 서부 여행에 초대하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러면 그따위 어리석은 작문은 쓰지 
     않았을 것이도, 신경 과민이 돼서 사람들 앞에서 토하지도 
     않았을 텐데.
       내 가슴이 납작한 것도 아마 아빠의 잘못 때문일 것이다. 
     틀림없이 옛날부터 아빠 가문의 여자들은 모두 가슴이 밋밋했을 
     것이다. 엄마는 납작한 가슴이 아니었다. 불쌍한 엄마. 부엌에서 
     나를 위해 젤리를 만들고, 혼자서 나를 돌봐야 하는 엄마를 
     생각하며 난 눈물을 흘릴 뻔했다.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이 누구 
     때문인지 이젠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아빤 훌륭한 사람이라고 늘 
     이야기하는 까닭을 몰랐었다. 아마 내가 끔찍한 진실을 알기를 
     엄만 원치 않았던가 보다.
       뭔가 해야 했다., 아빠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아빤 날 영원히 바보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뭘 하면 좋을까?
       그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난 편지를 아주 잘 쓰는 
     사람이다. 5학급 전체에서 작문을 가장 잘 하지 않았던가? 
     아빠에게 편지를 쓰자, 그래서 아빠가 만들어낸 굴욕과 비참함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자. 작문보다 훨씬 잘 된 작품이 될 것이다. 
     아빤 편지를 읽고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았고 나와 엄마에게 보상을 하고 싶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발끝으로 가만가만 책상에 다가가 편지지와 펜을 갖고 
     침대로 재빨리 돌아왔다. 전에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쓸 때, 
     첫머리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에 대해 얼마나 고심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가 '친애하는' 부분을 써 
     넣는 것을 잊어 버리고 그냥 부쳤던 일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미 머리 
     속에 떠올라 있었으므로, 종이에 옮겨 적기 전에 잊어 버리지 
     않도록 될 수 있는 한 빨리 써 내려갔다.
       "저는 이 편지를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게 아버지가 되어 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빠가 일으킨 문제들을 보고, 조금도 
     사랑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엄마는 언제나 아빠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해 
     왔지만, 이젠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썼다. 아빠가 나를 
     2주일간의 서부 여행에 초대한 후 가지 못해서 얼마나 
     실망했었는지, 그리고 작문고 신발에 토한 일도 썼다. 편지는 세 
     장이나 되었다. 이젠 자신이 한 짓에 대해 분명히 알았으리라!
       나는 편지를 봉한 다음 베개 위에 던져 놓았다. 지쳐 
     있었지만,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엄마에게 이야기해야 
     했다. 아빠에 대해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걸 밝히면, 엄만 
     기분이 더 나아질 것이다. 나는 자리에 누워서 할 이야기를 
     연습해 보았다. 머리 속에서 아주 잘 정리되었다.
       잠시 후, 엄마가 나를 보러 왔지만 아직 자고 있는 체했다. 
     아직 연습이 끝나지 않았다. 시간을 허비할 틈이 없었다.
       마침내 배가 고파서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게 되자, 젤리가 
     다 되었는지 보러 부엌으로 나갔다.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엄마는 차와 크래커도 위장에 좋으니 먹으라고 했다.
       차와 크래커는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젤리가 다 되었는지 
     보러 냉장고를 열었을 때, 스파게티가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았었다. 차가워도 그 스파게티를 한 순간에 꿀꺽 삼켜 버리고 
     싶었지만, 내가 맡은 역할을 끝까지 해야 했다.
       엄마는 다시 나를 살펴 보면서 차를 끓이기 시작했고, 나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엄마,"
       나는 말을 꺼냈다.
       "응?"
       엄마는 하고 있는 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건성으로 듣고 있을 때 버릇처럼 하는 대답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할 이야기를 기억해 내려 했다. 한 
     시간도 더 혼자 중얼거렸었는데, 머리 속이 텅 비어 있었다. 
     웬일일까? 첫 마디조차도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를 쳐다 보았다. 
     엄마는 이 세상에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듯이 차를 
     젓고 있었다.
       "고마워요."
       엄마가 컵을 건네 주었을 때도 이 말 밖엔 하지 못했다. 
     생각나는 유일한 말이었다.
       엄마는 미소를 짓고 냉장고로 가서, 내 눈 앞에 바로 그 
     스파게티를 꺼냈다.
       "난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단다. 이걸 데워 먹어야 겠다."
       엄마가 말했다.
       "이 냄새가 네 위장을 다시 뒤집어 놓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거기 앉아서 엄마가 스파게티 먹는 것을 보는 건 고문과 
     같았기 때문에 나는 크래커를 한 움쿰 움켜 쥐었다.
       "그럼 내 방으로 돌아 가겠어요."
       나는 말했다.
       방문을 닫자마자, 해야 할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시 또 잊어 
     버리기 전에 부엌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스파게티를 생각하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그 대신 책상으로 가서 재빨리 써 내려갔다. 
     그리고 쪽지를 접어 잠옷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오늘 밤이야, 하고 나는 혼자 맹세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말해야지.
       저녁을 먹으러 부엌으로 가기 전까지 호주머니를 열 여섯 번은 
     점검해 보았을 것이다. 쪽지는 그대로 거기 있었다. 엄마는 
     뱃속이 편안할 거라면서 마카로니 치즈를 만들어 주셨다. 엄마가 
     의심하지 않도록 너무 빨리 먹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아주 
     맛있었다. 젤리까지도 맛있었다.
       엄마가 보지 않을 때, 나는 호주머니에서 쪽지를 살짝 꺼내 
     무릎 위의 냅킨 위에다 놓았다. 쪽지를 펴서 두어 번 읽어 
     보았다. 이번엔 잊어 버려도 상관없었다. 바로 내 눈앞에 
     있으니까.
       엄마는 보통 저녁 식사 후 커피를 마시곤 했었다. 그 때가 
     제일 이야기하기 좋은 때라고 생각했다. 그 때면 엄만 긴장을 
     풀고 느긋해져 있었다.
       엄마가 밤새도록 먹을 작정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그처럼 천천히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침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엄마가 일어섰다. 바로 그 때 전화 벨리 울렸고, 
     엄마는 거실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제너, 네 전화다. 베스 같구나."
       하필이면 이런 때 전화를 하다니! 베스는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기 때문에, 전화를 끊기 전에 벌써 엄마가 잠자리에 드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나는 쪽지를 냅킨으로 둘둘 말아 
     의자에 놓았다.
       "여보세요."
       나는 힘없이 전화를 받았다.
       정말 아픈 것 같으면 그렇게 오래 말하진 않을 것 같아서였다.
       "제너, 아무리 구역질 나더라도 그저 아무 말 말고 듣기만 
     해."
       또 다른 위기였다. 나는 눈을 감고 수화기를 꼭 쥔 채 
     기다렸다.
       "태피가 뭔가를 준비 중이야."
       "뭔데?"
       나는 물었다.
       "몰라. 하지만 뭔가 하려 한다는 건 분명해."
       "어떻게 했는데?"
       "아직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럼 뭔가 하려 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저, 그건 설명하기 어려워."
       "해 봐."
       나는 조금씩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오후 내내 우리를 볼 때마다 재밌다는 표정을 짓곤 했어. 
     뭔가 비밀스런 계획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야."
       "내 글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 닐 
     선생님께 일러 바치려는 거지!"
       나는 소리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 내 생각도 바로 그거야."
       베스가 말했다.
       비밀이 폭로되려 하고 있었다. 부엌문으로 엄마가 식탁을 
     치우는 것이 보였다. 엄마는 내 의자에서 냅킨을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쪽지도 버려졌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잠시 미룰 수 있었다. 지금 더 중요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떻게 할 셈이니?"
       베스가 신음 소리를 냈다.
       "모르겠어."
       나는 대답했다.
       "선생님께 벌써 이야기한 것 같니?"
       "아니, 기다리는 중이야. 얼굴 표정으로 알 수가 있어. 그녀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어."
       등줄기가 오싹했다.
       "내가 다시 학교에 오길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녀가 기다리는 
     게 바로 그거야. 내가 학교에 가면, 손을 들고 학급 전체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할 생각이지."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 내 생각 역시 그래."
       베스가 말했다.
       "한 가지는 확실해.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내일 아침까지는 
     생각해 내야 한다는 거야. 엄만 나를 하루 더 쉬게 하진 않을 
     테니까."
       "그런데 도대체 넌 어떻게 된 거니?"
       베스가 내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작문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을 
     뿐이야. 하지만 엄만 모르셔. 내가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해."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전화할게."
       베스가 말했다.
       "고마워. 다른 사람들은 내 작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니?"
       "아냐, 모두들 너무 근사하다고 했어. 이 봐. 잊어 버릴 
     뻔했네. 우울한 소식만 있는 건 아냐. 초콜릿 판 돈은 '밀로의 
     비너스'를 주문하고 캐티의 돈 58센트를 돌려 주고도 남았어."
       "굉장하구나."
       나는 마지못해 말했다.
       이제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문서를 썼어. 내일 아침 학교 가는 길에 
     부칠 생각이야. 그런데 한 가지 일이 남아 있어."
       "뭔데?"
       나는 주저하며 물었다.
       "네 이름으로 주문을 했어. 네 엄만 집에 계시지 않으니까, 
     네가 소포를 받을 수 있잖아. 부모님들이 알아 차리게 하면 안 
     돼."
       "좋은 생각이야."
       나는 대답했다.
       적어도 기다릴 무언가가 생긴 것이다. 전화를 끊고 침대에 
     들자마자 엄마가 들어왔다. 또 체온계와 약을 들고 있었다. 나는 
     하루 더 쉬어야 겠다고 엄마가 생각하게끔 될 수 있는 한 
     기운없고 아픈 체 했다. 자신이 엄마를 속이고 걱정하게 하는 
     비열한 사람으로 느껴졌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는 체온계를 들여다 보고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내 마음을 
     알아 차린 것처럼,
       "내일은 학교에 갈 수 있겠다. 체온이 계속 정상이야."
       하고 말했다.
       엄마는 잘 자라는 키스를 해 주고 뭐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르라고 하셨다. 그런 다음 발소리를 죽이고 방을 나가서 문을 
     닫았다.
       그다지 졸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태피를 막을 방법이 떠오를 
     때까지는 밤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깨어 있어야 했다. 머리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발가락을 여섯 번 
     만졌다. 머리로 신선한 피가 올라 온다면, 그렇게 한 덕분일 
     것이다.
       잠시 동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효과가 없는가 보다고 
     생각할 무렵,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직접 닐 선생님께 가서 
     고백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거댜. 선생님은 
     매우 다정한 눈을 하고 계셨다. 분명히 동정심 많은 분일 
     것이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휴가를 갈 수 없으며 엄마가 
     생활비를 위해 일하는 동안 아파트에 혼자 있으면서, 여름 방학 
     내내 얼마나 외롭게 보냈는지 모른다고 말해야겠다. 아빠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 그저 2주일간의 서부 여행을 항상 꿈꿔 
     왔으며,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쓴 거라고만 말할 것이다.
       선생님은 이해해 주실 것이다. 그러리라고 믿는다. 선생님은 
     나를 가엾게 여기고, 태피가 고자질하면 그녀를 천박하고 짓궂은 
     사람으로 생각하실 것이다. 실제로 그렇듯이.
       아주 쉬운 일이었으므로 연습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나는 
     이불을 바짝 끌어 당기고 잠에 빠져 들었다.


        9. 태피가 주운 '태피 반대 클럽 노트'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내가 수요일 날 아파서 수업에 빠졌다는 
     편지를 닐 선생님께 써 주셨다. 나는 규칙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내가 아파서 
     결석한 것을 알고 계셨다. 토하는 것도 보셨다. 그렇지만 규칙은 
     규칙이다. 전 날,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책가방을 학교에 두고 
     왔기 때문에, 재킷 호주머니에다 노트와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넣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기다리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곧장 5학급 교실로 가서 벨이 
     울리기 전에 닐 선생님께 모든 것을 고백하리라고 마음먹었다. 
     태피도 이젠 운이 다한 것이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서둘렀다. 딱 한 번 걸음을 멈췄는데, 
     그건 편지를 부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 두 블럭을 남겨 놓곤 
     뛰다시피 했다. 헐떡거리며 운동장까지 거의 다 와서야 교문 
     옆에 누가 서 있는 것을 알아 차렸다. 태피였다.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기다린다! 베스가 그렇게 
     말했었다. 태피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안녕, 제너."
       태피가 말했다.
       닐 선생님께 말할 때처럼 상냥한 목소리였다.
       "안녕."
       나도 대답했다.
       말하고 싶은 게 대체 무얼까? 한 가지밖엔 없었다. 닐 
     선생님께 내 작문에 대해 벌써 이야기했다고 말하려는 것일 
     게다. 난 귀가 달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정말 굉장한 작문을 썼더구나. 네가 그렇게 멋진 여름을 보낸 
     줄 미처 몰랐어."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폭탄이었다.
       "고맙구나."
       나는 우물우물했다.
       그리고 교문을 지나가려 했다. 거기를 떠나야만 했다. 
     태피에게 내 자신이 한 짓을 말하는 만족감을 줄 수 없었다.
       "아, 그런데 말이지. 네 물건을 발견했어."
       하고 태피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돌아섰다. 누군가가 심장을 쥐어 짜는 것만 
     같았다.
       "뭐라구?"
       나는 물었다.
       태피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내게 말했다.
       "아, 그냥 노트일 뿐이야."
       나는 죽고만 싶었다. 태피가 가치를 둘 만한 노트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었다. 앞쪽엔 그녀에 대해서, 그리고 뒤쪽엔 내 가슴 
     둘레를 적어 놓은 태피 반대 클럽 노트를 발견한 것이다. 아마 
     내가 없는 사이에 책가방을 뒤져 훔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좋지 않은 건 다음이었다.
       "어제 네가 아파서 집으로 간 뒤에 발견했지. 언제 학교에 
     올지 몰라서, 잘 보관해 달라고 닐 선생님께 드렸단다."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그런 짓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태피조차도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바로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내 고통을 즐기고 있다. 
     태피는 웃으며 서 있었다. 입을 키게 벌리고 웃고 있었기 때문에 
     덧니가 다 보일 정도였다.
       무릎이 휘청거렸다. 태피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면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이다.
       "고맙구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에 바보 같은 웃음을 띠고 문 옆에 서 있는 그녀를 남겨 
     두고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현관에서 나는 멈춰 섰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지금 들어가 닐 선생님께 고백할 수는 
     없었다. 선생님이 태피 반대 클럽 노트를 본 지금은 말이다. 
     태피가 그걸 본 것만도 충분한데 닐 선생님까지라니! 어떻게 
     선생님을 마주 대한단 말인가?
       선생님이 노트를 들여다 보는 상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계속 떠올랐다. 사려 깊은 행동이라고 태피를 칭찬한 다음, 수학 
     문제 같은 것이 씌어 있기를 기대하면서 무심코 표지를 연다. 
     물론 씌어 있는 것을 읽는다. 그리고는 얼굴을 찡그린다. 평소엔 
     그런 적이 없지만. 그리고 나를 아주 지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태피가 예쁘기 때문에 내가 질투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며, 내가 그녀를 괴롭히고 짓궂게 군다고 여길 
     것이다.
       태피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는 백 년 후에나 알게 될 것이다. 
     선생님은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에 눈이 먼 것이다. 상상은 
     영화처럼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선생님이 내 가슴 
     둘레가 적혀 있는 마지막 페이지를 보았을 때, 나는 숨을 
     죽였다. 선생님은 틀림없이 웃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오, 제너. 여기 있었구나. 내내 너를 찾고 있었다."
       베스였다. 그녀의 말은 영화 감독이 '컷!' 하고 소리친 것 
     같이 내 상상을 멈추게 했다.
       "무슨 일이야? 유령을 본 것 같은 얼굴이구나!"
       "태피를 만났어."
       "저런, 그래서?"
       "생각보다 훨씬 나빠. 그녀가 내 태피 반대 클럽 노트를 
     발견했어....... 아니면 훔쳤던지......."
       "뭐라구!"
       베스가 비명을 질렀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높은 목소리로 태피를 흉내냈다.
       "네가 언제 올지 몰라서 잘 보관해 달라고 닐 선생님께 
     드렸어."
       베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그런 적은 거의 
     없었다. 사실 단 한 번도 그랬던 기억이 없다. 베스는 입을 벌린 
     채로 2분 동안이나 나를 멍하니 쳐다 보았다.
       "태피가 뭐라구?"
       "말했잖니.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선생님 얼굴을 본단 
     말이니?"
       "어떻게 선생님을 보느냐고? 나는 어떻게 선생님을 보지? 우린 
     모두 어떻게 선생님을 보지? 그 노트엔 우리 모두의 이름이 적혀 
     있어!"
       그 점은 생각지 못했다. 우ㄹ르 이름이 그 노트에 죄다 적혀 
     있었다. 내 이름은 다 적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 안심이 
     되었지만, 베스에겐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가슴 
     둘레만 유일하게 적혀 있었으므로, 그것이 무엇보다 
     당혹스러웠다.
       "적어도 닐 선생님 앞에서 토하진 않았잖니."
       내가 말했다.
       베스는 어느 정도 동정하는 시선을 던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때, 첫 시간 벨이 울렸다. 교실로 들어가자, 닐 
     선생님은 책상 맨 윗서랍을 뒤적이고 계셨으며 학생들에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후 하고 한 번 숨을 내쉰 
     다음, 엄마가 준 편지를 선생님 책상 모서리에 놓고 재빨리 내 
     자리로 돌아왔다.
       선생님은 쳐다보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나는 용수철 
     달린 노트 한 장을 찢어 태피 반대 클럽 노트에 대해 재빨리 
     휘갈겨 썼다. 그것을 통로 건너편의 멜러니에게 건네 주었다. 
     멜러니는 읽고 나서 얼굴이 창백해지며 몸을 떨었다. 크리스티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캐티만이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그런 다음 클레런스 뒤에 있는 그녀의 자리에 축 
     늘어진 채로 주저 앉았다.
       나는 닐 선생님을 쳐다 볼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선생님을 
     쳐다 보지 않고 어떻게 지낼 수 있을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에 대해 그렇게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들을 알고 있으니, 이제 다시는 선생님을 쳐다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 후 목이 뻣뻣해져 왔다. 네 명의 친구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만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들도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오전은 매우 잘 보냈다. 선생님은 역사 시간에 나를 지명하지 
     않았다. 태피를 지명했다. 왜 그랬는지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태피를 가엾게 여기고 나와 친구들 앞에서 좋게 보일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나는 태피가 대답 못하기를 바라면서 숨을 
     죽였다. 그런 행운은 오지 않았다. 정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점심 시간을 기다리면서 똑바로 앉아 있는 것만큼이나 
     또한 점심 시간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우리가 괴로운 
     처지에 빠진 것은 모두 내 탓임을 알고 있었다. 결국 내가 
     토하고 학교를 떠나지만 않았더라도 태피가 그 노트를 가졌을 
     리는 없었던 것이다. 모두들 내게 화를 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다들 모였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몇 번이고 
     똑같은 질문을 할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지? 어쩌면 좋아?"
       "어쩌면 우린 괜히 걱정하고 있는지도 몰라."
       자신감 있게 들리도록 애쓰면서 내가 말했다.
       "노트를 읽어 보지 않았는지도 모르잖아."
       "농담하는 거니?"
       캐티가 말했다.
       "선생님은 물론 읽었어. 선생님이란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세상에서 가장 참견 잘하는 사람들이니까. 손에 넣은 건 뭐든지 
     본다구. 사랑스런 작은 아가들이 뭘 하려는지 항상 알고 
     싶어한단 말야."
       "읽을 시간이 없었거나. 깜빡 잊어버릴 수도 있잖니."
       멜러니가 말했다.
       "네가 직접 가서 달라고 하면, 안에 뭐가 씌어 있는지 전혀 
     모르게 될 거야."
       "달라고 한다구?"
       나는 비명을 지르며 의자에서 펄떡 뛰어 올랐다.
       "백 년이 지난 후에라도 달라고 할 수는 없어. 난 부끄러워서 
     죽어 버리고 말 거야."
       "선생님이 그 노트를 그냥 갖고 있게 해선 안 돼. 학교 
     선생님들 모두에게 돌려 읽힐 지도 몰라."
       베스가 말했다.
       "우리 엄마한테도 보일 거야!"
       크리스티가 크게 소리쳤다.
       그녀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크리스티의 엄마는 결국 교장 
     선생님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더 
     좋은 계획이 떠오를 때까지 지연 작전을 써야 했다.
       "내 생각엔, 뭔가 하는 건 잠시 미루고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봤으면 해."
       나는 말했다.
       "오늘 오후에 태피 반대 클럽 모임이 있지. 그때까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모두들 부루퉁한 표정을 하고 투덜거렸지만, 결국 시간을 갖고 
     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내가 아는 
     건 점점 더 사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10.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 

       "내일 점심 시간에 제너가 몰래 교실로 들어가 노트를 
     가져오는 것이 어떨까?"
       모임이 시작되자마자 캐티가 말을 꺼냈다.
       "그렇게 하면 선생님께 달라고 할 필요도 없이 노트를 되찾게 
     되지."
       "미쳤니?"
       내가 말했다.
       "그런 방법으로 되ㅊ다니, 그건 도둑질이야."
       "제너 말이 맞아."
       크리스티가 말했다.
       "이젠 노트 안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 알았을 거야. 그런데 
     게다가 잡히기라도 해 봐."
       나는 죽어 버렸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런데 베스가 마치 미친 침팬지처럼 펄쩍펄쩍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바로 그거야!"
       크리스티를 똑바로 가리키며 베스가 외쳤다.
       "무슨 소리야?"
       크리스티가 물었다.
       "노트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 이젠 다 알 거라고 했지? 그게 
     문제인 거야. 선생님이 노트를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그 안에 씌어 있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문제란 
     말이야. 그렇지?"
       난 아무래도 그것이 무슨 상관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겠니?"
       특유의 연극조의 몸짓으로 방을 빙빙 돌며 베스가 말했다.
       "닐 선생님에게 그 노트가 가짜라는 걸 믿게 하는 거야. 태피 
     반대 클럽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거야."
       "오, 맙소사, 베스."
       멜러니가 말했다.
       "연극은 집어치워.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베스는 기쁜 듯이 씩 웃었다 그런 다음 간신히 들릴 만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태피에게 특별히 다정하게 하면 돼."
       방 안은 먼지 가라앉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모두 
     베스를 바라 보았다. 그녀는 머리가 돈 것이 틀림없었다.
       "차라리 노트를 훔치는 편이 낫겠군."
       하고 나는 말했다.
       곧 그렇게 말한 데 대해 후회했지만, 다들 아직 베스를 쳐다 
     보고 있었으며 아무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우리는 잠시 동안 토의한 다음, 더 좋은 생각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다음날인 금요일을 '태피에게 친절히 대하는 
     날'로 정했다. 친절하게 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주 다정하게 
     대함으로써 태피를 압도하기로 했다. 바로 닐 선생님 앞에서 
     그렇게 할 작정이었다.
       베스는 그 괴로운 체험으로부터 회복될 주말이 있지 않으냐고 
     하면서 기운을 북돋워 주려고 애썼다. 나는 또 다시 신발에 
     토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학교 갈 준비를 
     했다. 태피에게 아첨을 떨려면, 동등한 수준이 되어야 했다. 
     머리를 빗고, 청바지와 티셔츠 대신 노란 바지와 여러 빛깔이 
     섞인 스웨터를 입었다. 그런 다음 마지막 손질을 했다. 브래지어 
     안에 솜뭉치를 집어 넣었다.
       거울 앞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가슴을 내밀어 보았다. 
     킬킬거리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라켈 웰치 같지는 않지만, 
     태피야 조심해라.
       우리는 학교에서 한 블럭 떨어진 길모퉁이에서 만나 될 수 
     있는 대로 하루 종일 함께 다니기로 했다. 가혹한 일이었지만, 
     적어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혼자서 태피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모험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줄곧 나는 내 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평상시에 늘 그러는 것처럼 했기 대문에, 길 가는 사람 중, 그 
     누구도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직도 신발을 내려다 볼 
     수 있긴 했지만, 얼마나 다른 기분이 드는지 몰랐다. 친구들이 
     뭐라고 할 지 몹시 기다려졌다.
       모퉁이에 도착했을 때, 다른 친구들은 벌써 와 있었다. 처음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러자 
     캐티가 침묵을 깼다.
       "오, 안 돼!"
       그녀는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짓이니? 밤새 그걸 키웠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녀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신음 소리를 냈다.
       캐티를 잘 알기 때문에, 그녀가 기뻐 날뛰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정말 지나친 반응이었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특별한 것을 썼니?"
       베스가 물었다.
       흥미 있어 하는 눈치여서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해 줄까 하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기억하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아니, 그런 건 아냐. 하지만, 내일 보여 줄게."
       나는 대답했다.
       베스는 풀이 죽어 보였다 내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 할 때, 
     멜러니가 태피를 발견했다.
       "저기 온다."
       멜러니는 초콜릿이 든 가방을 거머 쥐며 소리쳤다.
       베스는 금방 잊어 버린 듯이 우리를 모아 놓고 지시를 내렸다.
       "아직은 친절하게 대할 필요 없어. 닐 선생님이 여기 안 
     계시잖니."
       나는 주장했다.
       "아냐, 그래야 돼."
       베스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진지했다.
       "이건 쉽지 않은 일이야. 연습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해 
     보는 거야."
       태피는 우리 쪽으로 걸어 오고 있었으며 혼자였다. 우리들이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ㄱ산 태피는 잠깐 망설였으나 
     다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은 사격 부대와 맞닥뜨린 
     사람 같았다. 꼴 좋다.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혼이 났다.
       태피가 가까이 오자, 베스는 조금 앞으로 나섰다.
       "안녕, 태피."
       베스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무 크게 우성ㅆ기 때문에 그녀가 바보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나머지도 마지못해서 조그만 소리로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난 웃으려고 했지만 입가가 움직여 주질 
     않았다. 베스가 옳았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태피는 발걸음을 멈추고 의심스럽게 우리를 쳐다 보았다.
       "안녕."
       하고 그녀도 대답했다.
       뜨거운 용암을 얼어붙게 할 만큼 몹시 차가운 목소리였다.
       "우리와 함께 가지 않겠니?"
       베스가 말했다.
       아까처럼 자신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아직도 그 바보 
     같은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있었다.
       태피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몸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젓고는, 백치들처럼 쳐다보고 있는 우리를 남겨 둔 채 가 
     버렸다.
       "와, 아무도 보지 않게 정말 다행이야."
       태피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갔을 때, 크리스티가 
     투덜대듯 말했다.
       "하루 정일 저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가 태피의 친구라는 걸 
     어떻게 선생님께 믿게 한담?"
       베스가 재빨리 우리들을 둘러 보았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봤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우리 손에 달려 있어. 선생님은 그녀가 얼마나 사납고 
     짓궂은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친절하고 다정한지 아시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릴 나쁘게 보이기 위해 태피가 노트를 가짜로 
     만들었다고 믿게 될 걸."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지만, 베스가 또 옆으로 빗나가고 
     있구나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재난이 일어날 조짐이 
     느껴졌다.
       학교에 도착하자 저만치 태피가 가는 것이 보였다. 베스는 
     우리를 불러서 마지막 주의를 했다.
       "모두들 잊지 말아. 태피가 아무리 거낭지게 굴어도, 완벽하게 
     천사같이 행동하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닐 선생님 앞에서 
     그래야 한다는 점이야."
       "좋은 생각이 있어."
       크리스티가 말했다.
       "태피는 항상 일찍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이 벌써 와 계시니까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자신을 돋보이려는 거지. 태피를 따라가자. 
     그녀가 책상 앞에 앉자마자 한 사람씩 들어가서 아주 다정하게 
     대하는 거야. 닐 선생님이 알 수밖에 없도록 말이지."
       우린 모두 그 생각에 찬성했다. 유일한 문제는 아무도 맨 
     처음으로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베스는 내가 
     회장이니까 내가 제일 먼저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크리스티의 아이디어니까 크리스티가 맨 먼저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크리스티는 가장 뛰어난 배우인 베스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우린 투표를 했다. 4대 1로 내가 당선되었다.
       5학급 교실에 도착하자, 닐 선생님은 이미 와 계셨다. 태피도 
     앉아 있었다. 태피는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까처럼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나는 열려진 문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귀가 빨개지고 손이 
     떨렸다. 차라리 사자굴로 걸어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만 같았다.
       "어서 가."
       베스가 속삭였다.
       팔꿈치로 나를 세게 찔렀기 때문에 난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교실에 들어서자 도저히 돌아설 수가 없었다. 
     나는 목구멍이 아프도록 침을 꿀꺽 삼키고는 걸어 들어갔다. 
     곧장 태피의 책상으로 가서 멈춰 섰다.
       "안녕, 태피."
       온 힘을 다해서 입을 열었다.
       닐 선생님이 내 얼굴의 다정한 미소를 볼 수 있도록 일부러 
     몸을 돌렸다.
       태피는 화가 난 듯이 나를 쳐다 보았다. 심장이 마구 뛰었지만 
     그대로 서 있었다. 아주 커다랗고 다정한 미소가 내 얼굴에 남아 
     있었다. 나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의 본색이 드러나게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태피가 미소 짓기 
     시작한 것이었다. 순간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다. 미소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크게 웃고 
     있었다. 덧니가 다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내 가슴을 바라 보면서 
     말이다.
       닐 선생님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보려고 이쪽을 쳐다보는 
     것을 흘끗 보았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끔찍한 악몽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왼쪽 가슴에 넣었던 솜뭉치가 미끄러 떨어져서 바로 
     벨트 위에 종기처럼 삐죽이 솟아나 있었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그만 죽고 싶었다.










        11. '태피는 생리를 한다!' 

       내 인생은 네 글자의 단어로 변해 버렸다. 입 밖에 내고 싶진 
     않았지만, 15초마다 내 마음을 콕콕 찔러댔다. 그날 하루 종일 
     나는 가만가만 걸어 다니며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친구들도 
     쳐다보지 않았다. 태피도 쳐다보지 않았다. 닐 선생님은 특히 
     쳐다보지 않았다. 선생님은 틀림없이 나를 비웃으며 몹시 어린애 
     같고, 태피에 비해 너무 볼품없고 못 생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받은 창피만큼 그녀에게 갚아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것 같았다.
       학교가 파하자, 나는 제일 먼저 교실을 빠져 나왔다. 옆 
     문으로 살짝 나와 혼자 있을 수 있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태피에게 뭔가 해 줄 일을 생각해야 했다. 그녀가 죽고 싶을 
     만큼 나를 질투하게끔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못 되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쯤 아빠는 내가 보낸 편지를 
     받았을 것이다. 편지를 읽고 자신이 일으킨 모든 문제들과 내가 
     얼마나 비참해졌는가를 알면, 틀림없이 멀리서 사과 전화를 할 
     것이다. 내가 보답을 바란다면 무엇이든 해 주겠다고 할 지 
     모른다. 그러면, 아빠에게 세상에서 제일 멋진 선물을 달라고 
     하자. 그래서 태피의 낯빛이 창백하게 변하는 걸 지켜 봐야겠다.
       한 가지 문제는 무엇을 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실이었다. 자동차를 갖기엔 아직 어렸고, 개는 많은 아이들이 
     갖고 있었다. 그건 굉장한 일이 못 되었다. 그렇다면 말은 
     어떨까? 생각해 보면 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난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말을 갖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난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말을 키울 수는 
     없지만, 그 말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나면 아빠는 
     가까운 곳에 울타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어쨌든 기분이 훨씬 나아졌고, 엄마가 돌아와 오늘이 청소하는 
     날인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을 
     때까진 정말 즐거운 기분이었다.
       저녁 식사 후, 전화 벨이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펄쩍 뛰어 
     오를 뻔했다. 아빠가 이렇게 빨리 전화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빠가 아니었다. 태피와 있었던 일을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베스의 전화였다. 그리고 태피 반대 클럽 노트를 
     찾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봤느냐고 물었다. 난 어쨌든 
     며칠 동안은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베스는 이해한다고 말했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전화 벨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까지도 전화가 오지 않자, 나는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빠는 심한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아파서 내 편지를 읽지 못한 건 
     물론이고, 전화는 더더욱 걸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편지를 아예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편 배달 트럭이 사고가 
     나서, 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채 운전 기사의 시체와 함게 
     골짜기에 누워 있는지도 모른다. 사고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니까. 신문에는 그런 끔찍한 일이 항상 실린다. 난 
     아빠에게든 우편 배달 트럭 운전 기사에게든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바랬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정말 그런 사고가 났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점심을 먹은 후, 엄마는 함게 쇼핑을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핑크 씨와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새 옷이 좀 필요하다고 
     했다. 난 엄마와 쇼핑 가는 것을 좋아했고, 새 운동화가 몹시 
     갖고 싶었지만 감히 전화 곁을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가 나가 버리자, 아파트는 무덤처럼 고요해졌다. 전에도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전화기도 평소보다 갑절로 커 보였다. 내게 곧 덤벼들 것 같은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오는 괴물을 연상케 했다. 전화로부터 
     관심을 딴 데로 돌리려고 가슴 키우는 체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흔여섯 번을 셌을 때 전화 벨이 울렸다. 눈 깜짝할 순간에 
     달려들어 전화를 받았으나, 잘못 걸려 온 전화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체조를 하기 시작했다. 점차 팔이 아파오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다른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백 사십 
     오, 이백 사십 육, 전화 벨이 또 울렸다. 이번엔 두 번 울릴 
     때까지 기다리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
       "여보세요."
       어른스럽게 말하려고 무진장 애를 써서 대답했다. 그러나 곧 
     어른 흉내를 낸 것을 후회했다. 상대방이 나를 엄마로 알고, 
     미처 한 마디도 꺼내기 전에 뉴 햄프셔에 있는 휴양지를 
     사라면서 5분이나 떠들어댔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집에 돌아와서 내 저녁 식사로 베이컨과 양상추, 
     토마토를 넣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다. 우린 함게 콜라를 
     마시면서 새로 산 옷을 구경했다. 난 엄마가 새 옷을 입고, 비록 
     순수하게 정신적인 사이일 지라도 핑크 씨와 함께 외출하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나는 자주 거실로 가 보았다. 벨이 울리기를 바라며 정신을 
     집중해서 뚫어져라 전화를 쳐다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혹시 고장이 난 건 아닌가 하고도 생각해 
     봤지만, 수화기를 들자 낯익은 신호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핑크 씨와 외출하는 밤이면 항상 위층에 사는 에이미가 
     와서 나와 함께 있어 준다. 에이미는 고등학생이었는데, 그다지 
     유쾌한 사람은 아니었다. 엄마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에이미는 
     여기 있는 동안 남자 친구와 전화를 하곤 했다. 어쨌든, 그녀는 
     일찌감치 내려 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텔레비전 앞에 
     털썩 주저 앉았다.
       엄마는 준비하는 데 몹시 시간이 걸렸다. 난 엄마가 나가기를 
     기다리면서 유령처럼 집 안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거기 있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마늘이 든 
     살라미 소세지를 먹고 있었다. 나를 보자 엄만 당황해 하는 것 
     같았는데,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엄마가 만약 양파나 마늘을 먹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면 
     자신도 양파나 마늘을 먹어야 그 사람의 입냄새를 모르게 된다고 
     이야기한 기억이 났다. 나는 혼자 속으로 웃었다. 엄마와 핑크 
     씨는 이제 더 이상 순수한 사이가 아닌 모양이었다.
       이윽코 현관 벨이 울렸다. 나는 핑크 씨라는 것을 알고 문을 
     연 다음 그가 입냄새를 풍기기 전에 얼른 뒤로 물러섰다. 그런 
     행동을 하기란 몹시 미안했으므로 그가 알아 차리지 못했으면 
     했다. 핑크 씨는 친절한 사람이다. 그는 내게 '열광'이라는 
     잡지를 두 권 갖다 주었다. 그 잡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엄마와 핑크 씨가 나간 뒤, 나는 에이미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려 했지만, 에이미는 말이 없었고 난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9시쯤 나는 양해를 구하고 잡지를 들고서 내 방으로 
     왔다. 방문을 닫자마자 그녀가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붙잡고 있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아빠가 전화를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물론 아빤 저노하하지 않았다. 내 머리 속엔 오직 말없이 
     어떻게 월요일에 학교를 가서 닐 선생님과 태피를 대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빠가 바로 이 순간 전화를 한다 해도, 
     월요일까지는 말을 가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말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 그건 학교로 말을 타고 가는 
     것만큼이나 멋진 일이다. 나는 비참함을 느끼면서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아빠가 내 유일한 희망이었다. 나를 또 한 번 
     실망시키면 어떻게 하나?
       그 일요일은 내 생애에서 가장 긴 날이었다. 3초마다 한 번씩 
     시계를 쳐다 보았던 것 같다. 오후 내내 몹시 초조해서 가만히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창문을 내다 보고 팔찌를 잘랑거리며 
     계속 집 안을 왔다갔다하자, 엄마는 정신없으니 제발 좀 
     앉으라고 했다. 그런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엄마는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엄중히 취조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30분에 
     걸친 심문 끝에, 확실히 나는 태피에게 빠져 있지 않고 태피 
     역시 내게 빠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대신 독약이라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앤 아주 다정한 아이야. 난 네가 왜 그 앨 싫어하는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말했다.
       "그저 싫을 뿐이에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같이 예민한 사람도 때론 아이들에 대해서 둔한 감각을 
     갖고 있다. 엄마는 심지어 따분한 클레런스까지도 좋아했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 엄마는 그 차이를 전혀 모르는 것이다.
       "태피가 네게 무슨 짓을 했니?"
       나는 얼굴이 불같이 빨갛게 달아 올랐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아뇨."
       나는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 애가 학교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셔야 
     해요."
       "그럼 실제로 그애에게 말을 걸거나, 친구가 되려고 해 본 
     적은 있니?"
       엄마의 목소리는 어느새 엄격해져 있었다.
       "그럴 사람이 어디 있어요!"
       "솔직히 말해 보렴, 제너. 태피에게 기회만 주었더라면 그 
     애가 그렇게 나쁜 애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거야. 학교에서 제일 
     예쁜 소녀라는 건 몹시 외로운 일이란다. 봐라, 인정하든 안 
     하든간에 너희들은 모두 태피를 질투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 
     애가 또 수줍음을 타는 아이라면....... 아마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하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 앤 친구 사귀는 방법을 
     모르는 것을 숨기려고 애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난 네가 
     태피에게 부당하게 대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연달은 불행이었다. 엄마마저 태피의 편을 들어 내가 
     질투하는 거라고 하다니. 나는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아파트를 뛰쳐 나와 꽝 하고 문을 닫았다. 전화가 와도 
     관계없었다. 그 자리에서 나와야 했다. 그 뿐 아니라, 마음 속 
     깊은 속에서 난 아빠가 전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마음을 정하려고 몇 분 동안 아파트 건물 계단에 앉아 
     있었다. 언제든 친구들 집으로 갈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진짜 하고 싶은 건 태피에게 앙갚음을 하는 
     일이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 봄 태피가 칠판에다가 
     '제너는 암내를 풍긴다.'고 썼던 기억이 났다. 그래, 더 심한 
     짓을 해 주겠다.
       아파트에 세 든 사람들은 각각 지하실에 물건 쌓아 두는 
     공간을 갖고 있었다. 나는 우리 집 물건을 쌓아 둔 곳으로 
     내려가 찾아 헤맨 끝에 빨간 페인트 통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면서 학교로 달려갔다.
       고맙게도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현관 계단까지 뻗어 
     있는 커다란 콘크리트 보도를 향해 곧장 걸어 갔다. 날이 
     어두워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통을 
     흔들어 본 다음 써 내려갔다.

       '태피는 생리를 한다!'

       마지막의 '다'를 쓰자마자 두려운 생각이 밀어닥쳤다. 잠시 
     생각해 보았다. 만약 태피의 이름 대신 내 이름이 거기 씌어 
     있다면? 난 창피해서 죽고 싶을 것이다.
       나는 깜깜해져서 글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오직 
     내 머리 속으로만 글자를 볼 수 있었다. 페인트가 아니라 분필로 
     썼더라면 어떻게 해 볼 텐데. 그랬더라면 지워 버릴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페인트는 겉보기와는 달리 지워지지가 않는다. 
     이젠 어쩔 수가 없다. 아침이 되면 모두가, 태피, 닐 선생님, 
     그리고 학교 전체가 내가 한 짓을 보게 될 것이다.












        12. 아빠가 보내 주신 초콜릿 선물 

       보도에 쓴 낙서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밤새도록 뒤척였다. 
     비록 태피에게였지만, 그런 짓을 한 것이 후회되었다. 내가 
     얼마나 나쁜 아이인지 전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난 
     언제나 조금은 착한 아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이젠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내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태피가 
     나를 증오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에게 보낸 편지에 쓴 끔찍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아빠는 내가 얼마나 나쁜 아이인지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것이 2주일간의 서부 여행에 나를 데려가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아빤 내 옆에 있는 것조차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빠를 나무랄 수가 없다. 내가 바로 부모님이 이혼한 
     이유인 것이다. 불쌍한 엄마, 엄마는 몇 년 동안이나 혼자서 
     나를 다뤄야 했다.
       난 다시는 학교에 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피는 
     누구 짓인지 알아 차리고 닐 선생님께 말할 것이다. 닐 선생님은 
     윈첼 교장 선생님께 말할 것이고, 교장 선생님은 엄마를 부를 
     것이다. 난 다시는 학교에 갈 수 없을 것이다. 확실히 그랬다.
       바로 그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깡통엔 아직 페인트가 
     조금 남아 있었다. 낙서를 지워 버릴 수는 없을지 몰라도 안 
     보이게 덮어 버릴 수는 있었다. 빨갛게 칠해 버리면 아무도 
     글씨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 알고 있었다. 동트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나는 옷을 입고 
     발소리를 죽여 가만가만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를 깨울 여유가 
     없었다. 엄마는 질문을 퍼 부어 댈 것이고, 난 대답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즉석 식품으로 아침 식사를 하면서, 숙제 때문에 
     특별히 일찍 가야 했다는 내용의 쪽지를 썼다. 아마도 엄마는 
     믿지 않겠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아파트 문을 닫자마자 나는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 지하실로 
     향했다. 순식간에 그 페인트 통을 찾아내어 쏜살같이 학교로 
     달려갔다. 세 블럭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점심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이제 다시 되돌아 갈 시간은 
     없었다. 그 끔찍한 단어들을 덮어 버릴 수만 있다면, 나는 굶어 
     죽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학교가 있는 블럭까지 오자,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빨리 
     갈 수는 없었다. 그런데 교문 앞에 이르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깜박거렸다.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관리인이 엎드려서 보도를 마구 문지르고 있었다. 벌써 
     낙서의 일부분이 지워져 있는 걸로 보아 테레빈 유 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가 나를 발견하기 전에 얼른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나와, 내막을 폭로해 주는 빨간 페인트 통을 보기 전에 말이다. 
     그는 교문을 열기 위해 아침 일찍 도착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낙서를 보고는 다른 살마들이 보기 전에 지워 버려야 
     겠다고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난 너무 기뻐 죽을 지경이었다. 그 
     관리인이 미치도록 좋았다. 그가 원한다면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주겠다. 할 수만 있다면, 
     뭔든지 해 주겠다!
       나무에 기대자,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렸다. 
     내가 해야 할 일이 꼭 하나 남아 있었다. 마음을 고쳐먹는 
     일이었다. 다시는 못된 아이가 되지 않으리라. 세상 사람 
     모두가, 태피나 아빠까지도 사랑할 만큼 착한 사람이 되자. 
     오늘부터 시작하는 거다. 하지만 우선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 
     놓고 온 점심을 가져와야 한다.
       나는 아파트 건물 바깥쪽 보도에 있는 쓰레기통에 페인트 통을 
     던져 버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소리나지 않게 살짝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 문 앞에 도착해서는 열쇠를 가만히 넣고 
     소리나지 않게 돌렸다. 거기까지는 아무 일 없었다. 문을 조금 
     열고 귀를 기울였다. 내 행운이 믿어지지 않았다. 착한 사람이 
     되는 보답이 벌써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화장실에서 
     칫솔질을 하고 있었다. 그건 아직 부엌에 나가지 않았으며 내 
     쪽지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뜻했다. 내가 할 일은 단지 그 
     쪽지를 갖고 몰래 내 방으로 돌아가는 일뿐이었다.
       그건 쉬운 일이었다. 몇 분 후, 나는 계속 집에 있었던 것처럼 
     어슬렁 어슬렁 걸어 나왔다.
       그날 오전은 아주 잘 흘러갔다. 점심 시간 벨이 울릴 무렵, 
     나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캐티, 베스, 
     크리스티, 멜러니, 그리고 나는 식당 한 구석에 있는 식탁을 
     차지했다. 여덟 명이 앉는 자리였지만, 물건을 잔뜩 늘어 놓아 
     다른 사람들이 앉지 못하게 했다.
       "자, 태피 반대 클럽의 회장이신 제너 양."
       하고 베스가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노트를 되찾을 수 있는 멋진 계획을 생각해 보셨는지요?"
       잠시 닐 선생님 앞에서 태피가 나를 모욕했을 때의 기분이 
     떠올랐고, 그러자 태피가 다시금 미워졌다. 그때 내가 그녀에게 
     할 뻔한 짓이 생각났다. 그보다 더 지독한 짓은 없었다. 그래서 
     난 단지 어깨를 으쓱하고는 젤리 바른 크림 치즈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뿐이었다. 내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할 수가 없었다.
       학교가 파한 후, 나는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착한 사람이 되는 건 계획이 필요했다. 그건 청바지를 
     걸쳐 입는 것과 같은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와 같은 경력을 
     가진 사람에겐 말이다.
       나는 책상 위에 책들을 던져 버리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한참 
     동안 누워 천장을 바라 보면서 어떻게 할 것인갈글 생각했다. 
     첫번째로 할 일은 아빠에게 다시 편지를 써서 내가 얼마나 착한 
     사람이 되었는지 보여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빨리 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태피에겐 어떻게 한담? 난 태피와 친구가 될 수가 
     없다. 그건 정말 너무 어려운 요구였다. 편지지를 꺼낸 순간, 
     현관 벨이 울렸다. 집주인인 로슨 부인이었다. 부인은 무릎이 
     아파서 좀처럼 계단을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난 부인을 보고 
     정말 깜짝 놀다. 너무 놀라서 부인이 소포를 들고 있는 것도 한 
     동안 알아 차리지 못했다.
       "옜다."
       소포를 건네주며 부인이 말했다.
       "네게 온 거야.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우체부가 갖고 
     왔더구나."
       바로 내게 온 소포였다. 그러나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했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네 생일인가 보구나?"
       로슨 부인이 물었다.
       "아뇨."
       나는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아빠가 보내 주신 선물이에요."
       로슨 부인은 미소 지으며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고는 
     돌아갔다. 나는 문을 닫고 소포를 소파 위에 올려 놓았다. 자, 
     분명히 말은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반지이기엔 상자가 너무 
     컸고, 밍크 코트이기엔 너무 작았다. 그렇지만 뭔가 가치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아빠는 결국 날 미워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포장지를 벗기는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안에는 분홍색 
     비단으로 싼 상자가 들어 있었다. 뚜껑을 열려고 살짝 들여다 
     보았다. 초콜릿이었다. 나는 잠시 그대로 있다가 뚜껑을 닫았다. 
     편지를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리본 밑에 '사랑하는 
     아빠가'라고 쓴 카드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직접 쓴 것도 
     아니었다. 제과점 점원에게 써 달라고 부탁한 게 틀림없었다.
       나는 초콜릿을 식탁 위에 올려 놓고 내 방으로 돌아 왔다. 
     이젠 더 이상 편지를 쓰고 싶지 않았으므로, 침대에 가만히 
     드러누워 엄마가 돌아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초콜릿을 보고, 엄마는 믿을 수 없어 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그가 선물을 보내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하고 말했다.
       엄마에게 사실대로 털어놓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엄마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엄만 몹시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깜짝 놀란체 하고 말았다.
       초콜릿 상자는 손대지 않은 채로 며칠 동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와 나는 둘 다 몹시 
     초콜릿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초콜릿은 먼지 투성이가 
     되었고, 엄만 마침내 그걸 버리고 말았다.
       초콜릿이 사라져 버리자 나는 기뻤다. 그 초콜릿이 거기 있는 
     동안, 누군가가 나를 지켜 보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엄마가 초콜릿을 버린 날 밤, 나는 잠들기가 어려웠다. 
     초콜릿 상자와 아빠에 대해 생각하면서 아빠도 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의아해 했다. 마침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 속에서 그 상자를 꺼내어, '사랑하는 아빠가'라고 씌어진 
     카드를 떼어 냈다. 그리고 그 카드를 장화 상자에 집어 넣었다. 
     그런 다음 잠이 들었다.

       태피 반대 클럽의 모임이 열렸을 때, 나는 태피에 대한 보고를 
     요구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그 대신 꺼내었다. '밀로의 비너스'에 
     대한 것이었다.
       "이제 곧 받게 될 거야."
       내가 말했다.
       "'밀로의 비너스'가 도착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두어야 
     해."
       "제너, 네가 먼저 시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
       멜러니가 말했다.
       "네가 회장이니까 말야."
       "게다가 너한테 배달되잖니."
       크리스티가 말했다.
       "네가 맨 먼저 사용하는 것이 당연해."
       "하지만, 베스의 아이디어였어."
       나는 희망을 갖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 맨 처음 사용하는 사람은 정말 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우린 그 기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으니까. 
     고통스러우면 어쩌나? 위험하면? 어쩌면 우린 모두 암에 걸려 
     죽을 지도 모른다. 베스가 내 이름으로 주문한 것도 유감이었다. 
     높이가 6피트나 되면 어쩌나? 그렇다면 엄마가 못 보도록 숨길 
     수가 없었다.
       "투표를 하자."
       베스가 말했다.
       그녀의 말로 미루어 보아, 베스 역시 첫 번째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투표를 하면 내가 결정되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 생각이 들어 맞았다. 내가 4대 1로 
     당선되었다.
       그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가슴 키우는 체조를 두 배로 
     하는 거다. 세 배로 해도 좋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으면 
     시간이 날 때마다 하도록 하자. 그때 친구들은 기구를 사용하기 
     시작할 것이고, 나는 가슴 키우는 기구 덕분이라고 말하면 된다. 
     내가 실제로 기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마음 속으로는 체조가 별 효과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아파올 때까지 체조를 
     했지만, 내 가슴 둘레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옳았다. '밀로의 비너스'를 주문한 지 꼭 3주일 되던 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우체통에서 로슨 부인의 메모를 발견했다. 
     소포가 또 하나 와 있다고 했다. 내 생각에 부인이 또 한 번 
     계단을 올라 올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쪽지를 남긴 것 같았다.
       문을 열었을 때 소포 꾸러미를 들고 있는 걸로 보아, 나라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었다. 소포는 적어도 6피트 정도는 아니었다.
       "저런, 넌 요즘 인기가 있구나."
       하고 부인이 내게 말했다.
       부인은 활짝 미소를 지었고, 나도 따라 웃으려 했지만 입술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 소포를 받아 들고 위층으로 
     올라왔다. 그것은 바로 가슴 키우는 기구였다. 보내는 사람 
     주소가 '밀로의 비너스 주식회사'로 되어 있었다.
       나는 소포를 방으로 갖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 뱀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포를 침대 위에 던졌다. 그리고 나서 잠시 서서 바라 
     보았다. 저걸 쓰레기통에 집어 넣은 다음 친구들에겐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달러 95센트를 
     낭비한다는 점이 조금 나를 괴롭혔지만, 생각하고 할수록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엄마가 올 시간이 거의 다 되었지만, 그것을 쓰레기통에 집어 
     넣기 전에 적어도 어떻게 생겼는지는 봐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종이를 벗기고 상자를 열었다.
       크림이 든 튜브 하나와 안내서가 들어 있었고, 상자를 채우고 
     있는 건 우스꽝스럽게 생긴 원뿔 모양의 기구였다.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기로 마음먹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난 그런 
     모양의 기구는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때, 엄마가 돌아오는 소리가 났다.
       "제너."
       엄마가 소리쳤다.
       "집에 있니?"
       "네, 엄마."
       나는 대답했다.
       "조금 있다 나갈게요."
       방문을 닫아 두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마가 보기 
     전에 숨겨 둘 장소를 찾아야 했다. 바로 그 때 장화 상자가 
     생각났다. 상자는 '밀로의 비너스'가 들어갈 만큼 충분히 거의 
     비어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엄마가 그 상자가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영리한 나 자신이 몹시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저녁 식사 후, 거실에 앉아서 저 기구를 어떻게 처분할까 하고 
     계획을 짜고 있을 때, 현관 벨이 울렸다. 엄마는 핑크 씨와 
     전화를 하고 있었기 대문에 내가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나는 거의 심장이 멎을 뻔했다. 프랑켄슈타인이 서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심한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프랑켄슈타인이었더라면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태피의 엄마 싱클레어 부인이었다. 그 옆에 태피가 얼굴이 
     빨개져서 자만에 찬 눈을 하고 서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설상가상으로 싱클레어 부인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성을 내며 나의 태피 반대 클럽 노트를 움켜쥐고 있는 것이었다.


        13.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싱클레어 부인은 태피의 팔을 잡아 끌고 돌격대처럼 안으로 
     들어왔다. 부인은 씨근거리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가 이제 막 
     전화를 끊은 엄마 옆 자리에 그 노트를 내던졌다.
       "이건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혐오스런 일이에요!"
       싱클레어 부인은 소리쳤다.
       "당신 딸이 즉시 사과하지 않으면 안 돼요!"
       태피는 두려운 시선을 내게 던졌으며 순간 나는 나 자신보다 
     그녀가 더 불쌍하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고릴라를 엄마로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일 것이다.
       "앉으시지요, 싱클레어 부인."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노트를 집어 한 두 페이지를 넘겨 
     보았다. 그때까지도 그냥 서 있는 싱클레어 부인을 다시 바라 
     보았을 때, 엄마의 얼굴엔 한 마디라도 입 밖에 내기 전에 미리 
     생각해 보려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앉지 않겠어요."
       싱클레어 부인이 으르렁거렸다.
       "더욱이, 난 이 문제를 교장 선생님께 상의할 생각이에요. 
     순진한 아이를 괴롭히기 위해 만든 클럽이란 그냥 넘어가선 안 
     되는 일이에요."
       나는 거실 한 가운데 움츠리고 서 있었다. 너무 심하게 움츠린 
     나머지 내 몸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5분만 더 이렇게 있다면 
     2인치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고 말 것 같았다. 더욱 안 된 일은, 
     움츠리고 있는 동안 내 지나온 생이 눈 앞을 스쳐 가는 
     것이었다. 모두 끝났다. 그렇다. 내 인생은 이제 끝이 났고, 두 
     달만 더 있으면 열한 살이 될 수조차 없는 것이다.
       "물론, 따님은 당연히 사과받아야 합니다."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믿을 수 없으리만큼 차분했다.
       "저 역시 이번 일이 우리가 앉아서 서로 이야기하며 아이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보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내가 숨을 크게 내쉬었기 때문에 모두들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엄마가 저런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어떻게 나더러 고릴라와 이야기를 하란 말인가?
       "이야기할 것 없어요. 당신 딸은 인신 공격을 한 거예요."
       싱클레어 부인은 이 말을 하면서 나를 노려 보았고, 나는 1, 2 
     인치쯤 더 줄어든 것 같았다.
       "저렇게 행실 나쁜 아이는 태피처럼 수줍고 민감한 아이에게 
     영원한 상처를 입혀요."
       내가 지하 감옥 어딘가에 갇혀 있는 모습이 문득 떠올랐을 때, 
     엄마가 벌떡 일어섰다.
       "잠깐만, 싱클레어 부인."
       엄마가 말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심각한 어조였다. 난 엄마가 나 
     대신 싱클레어 부인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기뻤다. 엄마가 
     그런 어조를 띨 때는 아무도 엄마를 거역하지 못한다.
       "제 생각엔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나누며 어른답게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요."
       엄마가 말했다.
       싱클레어 부인은 다시 한 번 나를 노려 보고는, 짐작한 대로 
     엄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으로 가면서 엄마가, 
     '사과하는 편이 좋을 거야.' 하는 시선을 내게 던지지만 
     않았다면 나는 안심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방을 나간 뒤, 나는 소파의 한쪽 끝에 앉았다. 
     태피는 다른 쪽 끝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방 안은 갑자기 무덤처럼 조용해졌고, 시한 폭탄같이 
     똑딱거리는 내 심장 소리만 들렸다. 나는 한참 동안 바닥을 
     내려다보며 어떻게 말을 꺼낼가를 생각해 보려고 애썼다. 사과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특히 백 퍼센트 진심이 아닌 경우엔 
     말이다.
       할 말을 찾고 있다가, 나는 일생 일대의 충격을 받았다. 
     태피가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난 엄마가 그 노트를 보리라곤 생각지 못했어."
       하고 태피는 말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네가 써 놓은 그 끔찍한 내용들을 보길 
     원치 않았어. 절대로 말야. 자기 자신에 대한 그런 글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드는지 넌 아니?"
       슬프게도, 나는 화가 났다. 여기에 세상에서 가장 자만심에 차 
     있고, 내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는 일류 악당이 있다. 그러나 
     진실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나는 태피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넌 내 노트를 발견한 게 
     아니었지? 내가 아파서 집으로 돌아간 뒤 책상에서 훔친 거야. 
     그리고 보관해 달라고 닐 선생님께 드리지도 않았어!'라고.
       그런데 갑자기 모든 일이 우스꽝스러워졌다. 태피와 나는 
     서로서로 미워하며 건방지고 딱딱하게 대하기 시작했었다. 한 
     가지가 또 다른 것을 낳았으며 그녀가 칠판에 나에 대해 지독한 
     낙서를 했다. 닐 선생님 앞에서 창피를 주기까지 했다. 그러자 
     이번엔 내가 보도에 그녀에 대한 끔찍한 낙서를 했다. 이젠 
     엄마들까지도 서로 고함을 지르고 있다. 다음엔 아마 상대방의 
     집을 날려 버리게 될 것이다.
       갑자기 몹시 어리석고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태피를 미워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어져 버렸다. 태피는 태피였고 
     나는 나였으며, 그녀를 미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내가 정말 좋아할 그런 사람은 아니었지만, 또한 
     이제는 정말 미워할 필요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
       나는 대답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부엌 쪽을 바라 
     보았다. 엄마와 싱클레어 부인은 커피를 들이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특별히 친근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젠 
     소리치지는 않고 있었다. 난 전에는 싱클레어 부인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부인은 키가 크고 태피처럼 검은 머리였는데 좀 
     더 진한 빛깔이었다. 웃으면 무척 예쁜 얼굴이라고 생각되었다.
       태피는 내가 자기 엄마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았던지,
       "엄마는 미용 수술을 받았단다."
       하고 말했다.
       다소 변명하듯 말한 것이지만, 난 미용 수술 같은 것이 우리 
     엄마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아, 그래."
       하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방 안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엄마가 한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학교에서 가장 예쁜 소녀라는 건 외로운 일일지 
     모르며,태피는 수줍어서 친구 사귈 줄을 모르는 모양이라고. 
     그래서 난 나중에 한 번 와서 레코드를 듣지 않겠느냐고 할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기엔 아직 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윽코 엄마와 싱클레어 부인이 거실로 돌아왔다.
       "자, 너희들은 화해를 했니?"
       엄마가 물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다정했으며, 우린 둘 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구나."
       엄마가 말했다.
       "싱클레어 부인과 난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너희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자고 결정했단다."
       엄마의 이야기로 미루어 보아, 그 결정을 내리는데 엄마가 
     커다란 역할을 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싱클레어 부인은 태피에게 나가자는 시늉을 했다.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을 막 느끼려 할 때, 부인은 돌아서서 다시 
     한 번 나를 노려 보았다.
       "좋아, 꼬마 아가씨. 이번 일로 잘 배워 두길 바래!"
       그런 다음 부인은 태피를 끌고 나가 버렸다.
       그들이 가 버리자마자 나는 내 방으로 급히 도망을 쳤다. 
     엄마는 나를 싱클레어 부인의 손아귀에서 구해 주었고, 내가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날 변호해 주었다. 대신 
     엄마에게 설명을 해 주고 감사하다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엄마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금 후, 
     엄마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제너."
       엄마는 말했다.
       "들어가도 되겠니?"
       최후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좋아요."
       나는 대답했다.
       엄마는 나의 태피 반대 클럽 노트를 들고 있었다.
       "이건 네 거니까 돌려 주겠다."
       엄마는 말했다.
       조금도 화가 나지 않은 목소리였다. 나는 고맙다고 
     중얼거리면서 손을 내밀어 노트를 받았다. 몹시 떨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 노트를 떨어 뜨렸고, 침대 위로 떨어진 노트는 가슴 
     둘레를 기록한 페이지가 펼쳐졌다. 엄마는 흘깃 내려다 보았다. 
     엄마가 정말 당황해 하는 것을 표정으로 알 수가 있었다.
       갑자기 나는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다. 하루 동안 너무 짧은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의 내부 어디에선가 댐이 무너져 그 
     동안 이야기하지 못했던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나는 엄마에게 모든 일을 털어 놓았다. 태피 반대 
     클럽과 초콜릿을 판 일, 그리고 '밀로의 비너스'에 대해서. 내 
     작문과 왜 토했는지, 그리고 아빠에게 쓴 편지에 대해서. 또한 
     장화 상자와 모아 둔 물건들, 그리고 부모님이 이혼한 것이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알게 되었다는 일까지도 말이다.
       이야기를 마친 후, 나는 장화 상자를 끄집어내어 '밀로의 
     비너스'를 비롯한 모든 것들을 침대 위에 쏟아 놓고, 땀에 젖어 
     축 늘어진 채로 그 옆에 앉았다. 마음 속으로는 세상의 종말이 
     온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괴로워하거나 병이 났을 때처럼 나를 껴안아 
     주었다. 내 머리칼을 쓰다듬고 얼굴을 마주 비볐다.
       "많이 컸구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속삭였다.
       아마 적어도 네 번은 같은 말을 똑같이 되풀이했을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물론이죠. 엄만 내가 어떻게 되기를 기대했어요?"
       하고 대꾸했을 텐데.
       그렇지만 이번엔 눈을 꼭 감고 엄마를 껴안고만 있었다. 한 
     동안 그러고 난 뒤, 엄마는 부엌으로 가서 초콜릿 밀크 셰이크를 
     만들어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를 따라 부엌으로 가서, 엄마가 
     아이스크림, 우유, 초콜릿 시럽을 넣고 밀크 셰이크를 만드는 걸 
     지켜 보았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초콜릿 밀크 셰이크를 
     좋아했지만, 목구멍으로 잘 넘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태피는 정말 예쁘더구나, 그렇지?"
       엄마는 길쭉한 유리컵에 밀크 셰이크를 따르면서 무심코 
     말했다.
       그 말은 나를 확 달아오르게 했다. 사실, 목구멍으로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엄만 내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만 그 앤 덧니가 하나 있고, 또 그 애 엄만 
     고릴라예요!"
       난 내가 뱉은 말을 즉시 후회했지만, 엄마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어깨를 조금 으쓱하고는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을 
     뿐이었다.
       "아무도 완벽하지 않지."
       그 말엔 내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나는 엄마가 밀크 셰이크를 마시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기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나쁜 점만 가진 사람도 없어. 제너, 내 생각엔 아마 
     그것이 바로 네 고민의 해답일 것 같구나. 넌 모든 책임을 져 줄 
     누군가를 찾고 있어.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아. 결혼이든 친구 
     사이에서든 말야."
       나는 천천히 초콜릿 밀크 셰이크를 마시면서 태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엄마가 정곡을 찔렀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엄마와 아빠가 왜 이혼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직 되지 못했다.
       "아빤 어땠는데요?"
       나는 도전하듯 물었다.
       "엄마는 항상 아빠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아빤 훌륭한 사람이야!"
       엄마는 대답했다.
       "그렇지만 내가 말했듯이, 사람은 모두 단점을 갖고 있어. 
     그래서 결혼을 할 땐, 자신과 함께 살 수 있는 단점을 가진 
     사람을 원하게 되지."
       엄마는 잠시 말을 끊었고, 우린 각자 밀크 셰이크를 한 모금씩 
     마셨다. 엄마가 말을 계속했다.
       "네 아빤 친절하고 점잖지. 유쾌하고 잘 생겼어. 그런데 
     책임감이 부족하고, 바로 그것이 나와 함께 살 수 없는 
     단점이야. 특히 너와 같이 특별한 존재에게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을 땐 더욱 그렇지."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았으며,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난 네 아빠가 네게 편지를 쓰고, 매달 양육비를 보내려 
     한다고 생각해. 너를 2주일간의 서부 여행에 데려가려 
     했었다고도 생각하지."
       뜨거운 덩어리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럼 전엔 왜 이런 예길 해 주지 않았어요?"
       엄마는 눈을 깜박거렸으며 조금 서글퍼 보였다. 그러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 역시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든."
       밀크 셰이크를 다 마시고 컵을 깨끗이 씻은 다음, 엄마는 내 
     어깨를 감싸 안고 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나는 '밀로의 비너스'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서 
     전등 스위치를 켜자, 마치 침대 한 복판에서 내게 덤벼들 것처럼 
     보였다. 엄마도 그랬던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곧장 다가가서 
     그것을 집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물건을 갖고 있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는 귀가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이걸 도로 싸서 내일 돌려 보내고 돈을 되돌려 받아야 겠다."
       엄마는 말했다.
       나는 마지못해 좋다고 했지만, 엄마를 쳐다 보지는 못했다. 
     엄마는 나를 좀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신, 나는 편지와 
     잡동사니들을 도로 장화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엄마를 쳐다봐야 
     할 일이 생기기 전에 방에서 나가 주었으면 하고 바랬지만, 
     엄마는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제너, 여자 아이들이 모두 똑같은 시간에 동시에 신체 발달을 
     시작하는 건 아니란다. 각자에게 특별히 맞춰진 시계를 각각 
     갖고 있는 셈이지. 때가 되면 몸은 변하기 시작한단다. 광고가 
     아무리 요란하게 선전을 해도, 그 특별한 때가 오기 전에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구란 없는 거야."
       마음 속으로 그 말이 사실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으니 정말 좋았다. 나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으므로, 고개를 들어 엄마를 쳐다보며 커다랗게 미소 
     지었다.
       "넌 근심 많은 새로구나!"
       야단치듯이 말했지만, 그저 그런 체할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넌 언젠가 멋진 몸매를 갖게 될 거야."
       엄마 말이 맞기를 바랬다. 나는 공해와 오염 물질에 대해 많이 
     읽어 보았으며, 그런 것들이 사람의 신체 발달을 지연시키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지만 다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에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으므로, 키스를 하고 잘 자라는 인사를 
     했다.
       잠자리를 누워서 한참 동안 엄마가 설명해 준 사실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죽고 싶을 
     정도였다.

       다음 날, 나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다른 사람을 반대하기 
     위한 클럽을 만드는 건 정말 어린애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밀로의 비너스'는 시간 
     낭비이며, 돈을 되돌려 받을 작정이라고도 했다. 놀랍게도, 
     모두들 진정으로 행복해 하는 것같이 보였다.
       모임은 이제 중단한다고 막 말하려 할 때, 캐티가 발언권을 
     달라는 신호를 했다. 캐티는 얼굴에 담뿍 미소를 담고 있었으며 
     나는 한숨을 지었다. 다음에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알아 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클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캐티는 점잔을 빼면서 말했다.
       "그래야 오늘날의 변화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젊은 여성들로 
     발전할 수가 있거든. 초콜릿을 더 팔아서 돈을 모아 여성 
     운동이나 우릴 기다리고 있을 직업에 관한 책을 사 보자."
       캐티가 말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 그건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 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캐티가 마침내 투표를 하자고 하면 아마 제일 먼저 내가 
     찬성 표를 던질 것이 틀림없었다.


        II. '환상의 5인조' 

       어제는 빨간색, 오늘은 파란색,
       옷 색깔은 날마다 변하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가득한 보랏빛 우정.

       태피를 증오하며 미워하기 위해 만든 '태피
       반대 클럽'을 '환상의 5인조'로 이름을 바꾸고
       서로서로 결점을 지적해 주는 자기 개선 클럽으로
       만든다. 그러나 막상, 서로에게 결점을 말해
       주기로 한 모임날 자신의 결점이 적힌 쪽지를
       보고는 모두가 분노에 떨며 헤어지는데.......

        1. 환상의 5인조, 다시 만나다 

       "이제 그만 물러나시지, 태피, 우리가 왔다."
       나는 가장 친한 네 명의 친구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자기 개선 클럽을 만들어 그 첫 모임을 토요일 오후 내 
     방에서 열고 있었다. 그 클럽의 회원은 베스, 캐티, 멜러니, 
     크리스티, 그리고 나, 제너이다. 그 클럽을 통해서 우리는 마크 
     트웨인 중학교의 6학급 중에서 가장 멋있고 인기 있는 
     여학생들이 되기 위해 최대한 힘써 나가기로 다짐했다.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 일을 
     해내기로 결심했다. 약 일 년 전 우리는 학교에서 가장 예쁘고 
     거만한 아이인 태피보다 우리가 먼저 가슴을 크게 만들기 우해 
     다른 클럽을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클럽에서 우리는 
     계획했던 만큼 이루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노련해지고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
       "태피한테 우리 모임에 들어 오라고 하자. 그 애도 고칠 점이 
     많기 때문에 들어오면 크게 도움이 될 걸."
       크리스티가 빈정대며 말했다.
       "맞아."
       멜러니는 손을 비벼 대며 마치 그녀 앞에 5층으로 된 초콜릿 
     케이크가 놓여 있는 것처럼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우선 그 애의 자만심부터 고치도록 하지?"
       "그 잘난 매------ 애------력적인 개성은 어떻고. 그치 
     얘들아?"
       베스가 덧붙였다.
       "정말 그 애에게 우리와 합칠 것인가를 물어보는 게 어떨까. 
     이제는 더 이상 그 애와 대결하지 않으니까."
       나는 오히려 진지하게 말했다.
       "그 애한테 친절하게 대한다면 우리가 고쳐야 될 점을 가르쳐 
     줄지도 모르지."
       네 명의 친구는 나를 내던져 버릴 듯 쳐다 보았다. 나는 그 
     즉시 그들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태피는 너무 멋졌다. 그녀는 
     긴 검은 머리에 크고 멋진 갈색 눈을 가졌다. 브룩 실즈조차도 
     그녀에 비한다면 평범해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그녀의 충고를 
     받는다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그래, 내 생각이 잘못됐다."
       나는 시인했다.
       "어쨌든 우리가 이 클럽에서 해야 할 일이 정확히 무엇이지?"
       "응, 한 가지 예로서 우리의 몸매도 가꾸고 마음도 개선시키는 
     거야."
       캐티가 소리를 높였다.
       다음에 그녀는 여권 신장에 대한 얘기를 또다시 시작했다.
       "우리는 단순한 성적 대상물이 되지 말고 인격을 성장시켜야 
     해. 음, 그래서 우리가 아주 능력이 있고 멋있게 되면 학교 
     전체에 음, 음, 오, 그래! '환상의 5인조'로 잘 알려지도록 하는 
     거야."
       비록 그녀는 즉석에서 그 명칭을 생각했지만 정말 좋은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환상의 5인조!' 나는 다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우리 클럽의 명칭과 일부이지만 우리의 
     목표가 정해진 셈이었다. 그러나 캐티가 언급했든 안 했든 
     몸매를 가꾸는 것은 소홀히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난 
     그 점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는데 남학생들이 처음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몸매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몸매를 잘 
     가꾸고 거기에 훌륭한 지성과 인격을 덧붙여야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대했던 만큼의 큰 성과는 없었지만 모임을 끝냈다. 
     우리는 클럽의 회장도 뽑지 않았다. 그것은 캐티가 지적한 대로 
     우리 모두는 클럽에서 동등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임에서 나눈 
     의견을 기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왜냐면 기록한 것을 잃어버린 
     후 걱정하고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기록해 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오래 전의 경험에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다음 모임까지 우리 
     자신을 분석하고 우리의 모든 결점을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정말로 자기 개선을 하려면, 과학적으로 하는 것이 
     좋을 거야. 우선 우리를 분석하고 그 다음 행동으로 옮기는 
     거지."
       그 말에 우리는 의기 소침해졌다. 나에게 많은 잘못이 있었고 
     그 하나 하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 개선 클럽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고쳐야 할 점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은 매우 논리적인 방법 같아 보이긴 했다.
       핑크 씨가 왔을 때 내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다. 
     핑크는 윌레이스 핑커튼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그와 엄마는 
     함께 외출하곤 한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고 핑크 씨는 엄마가 
     안내 광고 담당자로 일하는 같은 신문사의 출판인이다. 그들은 
     매우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핑크 씨는 키가 크고 검은 
     머리이며 엄마는 중키에 나와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졌다. 
     핑크 씨와 나는 매우 좋은 친구였고 나는 특히 매주 토요일 
     밤마다 저녁을 먹고 볼링을 하기 위해서 그가 엄마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핑크 씨는 지독한 볼링광이었다. 그는 
     저녁 시간을 엄마와 함께 지낸다. 또한 엄마를 데리러 오기 위해 
     아파트로 오는 도중에 그는 나에게 운두가 높은 접시에 구운 
     페페로니와 녹색 후추가 발라진 버섯 피자를 사다 주곤 했다. 
     나는 일요일에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영양가는 많지만 싫증 
     나는 음식 대신 그가 사다 주는 간이 음식물을 그런대로 맛있게 
     먹곤 한다.
       핑크 씨와 엄마가 떠난 뒤 나는 피자를 맛있게 먹으면서 거실 
     소파에 앉아서 TV를 본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할 일이 따로 있었다. 나는 TV를 
     켜는 대신에 비밀스런 것을 감추어 두는 침대 밑 상자에서 '태피 
     반대 클럽'이라는 오래된 공책을 꺼냈다. 그 상자 안에는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든 것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매직을 꺼내서 '태피 반대 클럽'이라고 쓴 것을 
     지우고 그 밑에 '환상의 5인조'라고 썼다. 내가 새 클럽에 대한 
     것들을 기록한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면 몹시 화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특히 그것은 
     전에 한 번 적의 손으로 들어가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사람도 이 사실에 관해 알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될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나는 우선 빈 페이지에 '제너'라고 큰 제목을 붙이고 작은 
     제목으로 '나의 모든 결점들'이라고 썼다. 그리고 양쪽 페이지를 
     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25까지 세고 멈추었다. 한 
     페이지에는 25줄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만일 내가 25가지 이상의 
     결점이 있다면 나는 평생을 이 클럽의 일원으로 남아 있어야 될 
     것이다.
       나는 피자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팔이 닿을 수 있도록 내 
     앞으로 치즈를 매달아 놓고 혀로 감아 끌어 당기면서 내 결점에 
     대해 생각했다.
       첫번째는 쉬웠다. 나는 굉장한 얼간이였다. 나는 모든 일에 
     서투른 바보였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헤매지 않은 일이 
     없었고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어렵지 않은 것은 없었다. 나는 
     어떤 일이든 닥치면 실수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나는 눈을 감고 
     상상했다. 최소한 백 명이 넘는 6학급 여학생들에 둘러싸여 나는 
     무대 위에 서 있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자 다른 여학생들이 
     박수 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울기까지 했다. 나는 
     급히 서둘러 앞으로 나가다가 드레스 끝에 거려 넘어질 뻔했다. 
     그러다 키가 크고 검은 머리칼을 한 남자가 나를 잡았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웃으면서 잔뜩 긴장되어 상을 찌푸린 청중들을 
     가리키며 통로를 향해 나를 인도해 줬다. 그리고 그는 소리치기 
     시작했다.
       "미스 얼간이 미국."
       나는 눈을 뜨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번째 
     결점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오랜 시간 동안 그 곳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TV를 켰다. 내게 다른 결점이 없다는 게 
     아니었다. 단지 내가 생각하면 할수록 내 친구들의 결점과 
     비교하면, 내 결점은 매우 하찮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캐티는 항상 격렬한 여권 신장 설교로 우리를 미치게 
     했다. 그 설교를 듣고 싶어하는 남학생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그리고 멜러니, 그녀는 초콜릿과 사탕을 미친 듯 먹어대서 마치 
     다이어트 광고의 살 빼기 전과 후의 사진 중에서 살 빼기 전의 
     사진에 나오는 여자같이 보였다. 그녀의 몸무게는 저울 눈금을 
     초과해 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뚱뚱한 모습을 보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남학생들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베스처럼 사소한 것들을 
     항상 과장하고 흥분하는 여자들도 남자들은 싫어했다. 베스는 
     오랫동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때때로 그녀는 내 신경을 
     건드렸다. 그리고 불쌍한 크리스티. 그녀는 굉장한 천재였는데 
     남학생들은 열등 의식을 느끼게 하는 상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에게 말해 줘야만 한다.
       '누군가 그녀에게 말해 저야 한다.' 이 말이 내 마음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다. 내 친구 중 아무도 그들, 
     최대의 결점을 알지 못한다. 그 점은 확실했다. 벌써 오래 
     전부터 그들은 그 결점에 대해 무엇인가를 했어야 했다. 그들이 
     나와 친하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는 결점을 
     생각하고 또한 서로에게 솔직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정직하자. 우리는 그렇게 진정으로 서로를 도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사람의 감정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왜 우리가 
     그래야만 하는가? 우리는 성숙해 있고 우리 모두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클럽의 회장은 아니었어도 다음 날 특별 모임을 
     소집로 했다. 내가 그러한 것을 요구한다고 해서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나를 '작은 두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작은 제목의 2번 옆에 '두목'이라고 
     작게 써 넣었다.

       나는 잠자기 전 매일 밤마다 특별히 하는 일이 있었다. 나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것을 
     비밀스런 의식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침대 옆 벽 
     위에는 압핀으로 고정시킨 미스 피기의 포스터가 있다. 매일 밤 
     밤 인사를 마치고 엄마가 다시는 내 방에 들어 오시지 않을 때 
     나는 포스터를 떼어 내린다. 그러면 바로 뒤에는 전체 6학급 
     학생 중에서 가장 멋진 소년인 랜디의 아주 작은 포스터가 있다. 
     검은 곱슬머리인 그는 활짝 웃고 있다. 그는 '브리지드포트 리틀 
     리그전'에서 최고의 야구 선수였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랜디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네 명의 친구는 내가 그의 포스터를 
     가졌다는 것과 여성 잡지 뒷면에 나오는 광고 회사들 중 한 
     회사로 4달러 95센트를 보내 보통의 사진 크기를 포스터 크기로 
     확대한 것을 구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단지 친구들이 
     모르는 사실은 랜디의 사진을 벽에 붙여 놓고 잠들려 하는 동안 
     그것을 바라볼 수 있도록 포스터 바로 밑으로 전등을 켜 
     놓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다른 멋진 남학생들의 사진도 몇 장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 중 몇 장도 포스터 크기로 확대하려고 
     생각했다. 비록 사진 한 장에 4달러 95센트라는 큰 돈이 들지만 
     그 점을 떠나서 랜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나는 자기 전에 침대 밑 상자 안으로 5인조 공책을 
     감춰 두고 비밀스런 포스터 의식을 마쳤다. 그리고 기분 좋게 
     침대에 누워 랜디를 응시하며 우리의 새로운 클럽을 통해서 
     매력적으로 변해 갈 내 모습을 생각했다.




        2. 우리는 언제나 새로워야만 해! 

       그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다. 엄마와 나는 평상시처럼 교회로 
     갔다. 나는 빨리 집으로 돌아와서 5인조 특별 모임 건에 대해서 
     친구들과 전화로 상의하고 싶었으나 우리가 교회를 나가는 도중 
     엄마는 신도 협회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서서 얘기했다.
       우리가 아파트 문을 열었을 때 전화 벨이 울렸다. 엄마는 항상 
     내가 통화에 열중하도록 방해가 되지 않게 비켜 주었다. 전화 
     벨이 울리면 즉시 녹음이 되도록 해 놓았는데 엄마는 이것까지도 
     존중해 주셨다.
       베스였다. 그녀는 몹시 흥분된 상태로 크게 외치고 있었다.
       "오, 제너니? 집에 있다니 다행이야! 우리 클럽에 관한 좋은 
     생각이 있어. 그래서 오늘 오후 우리 집에서 특별 모임을 갖기 
     위해 소집하고 있는 중이야. 너는 나올 수 있니?"
       베스는 다시 나를 앞서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풀이 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도 그녀의 단점에 대해 말해 줄 것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물론 갈 수 있어."
       그리고 나는 짓궂게 덧붙였다.
       "실은 나도 놀라운 생각이 있어서 특별 모임을 소집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몇 시에 갈까?"
       "2시 경에 와."
       나는 캐티와 크리스티 그리고 멜러니와 함께 2시에 그곳에 
     도착했다. 베리 부인은 문을 열어 주면서 베스가 방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왜냐면 베스는 차양 달린 그녀의 침대 위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험상궂은 얼굴로 양쪽 귀에 종이 컵을 매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딸꾹질."
       그녀는 심술이 나서 말하며 딸꾹질을 했다.
       나는 베스만큼 딸꾹질을 많이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었다. 
     모든 사람이 웃었을 때 그녀는 딸꾹질로 화가 나 있었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럴수록 웃음은 더욱 더 터져 나왔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그러했다. 그러나 우리는 베스가 모임을 
     시작하도록 진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너희를 모이라고 한 이유는,"
       그녀는 말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아주 굉장한, 딸꾹!"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킬킬거리자 베스와 캐티가 눈쌀을 
     찌푸리며 한꺼번에 공격을 해 왔다. 나는 재빨리 웃음을 그쳤다. 
     그러나 베스가 굉장한 딸꾹질을 했었다는 것이 자꾸 생각났다. 
     얼핏 보니 크리스티와 멜러니 역시 웃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베스는 헛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고 나서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클럽에 관한 좋은 생각이 있다고 말하고 있잖아. 너희 
     모두 집중 좀 해 줘, 딸꾹! 내 생각엔 우리가 내일 학교 끝나고, 
     딸꾹! 옷 가게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애. 우리 각자에게 잘 
     어울리는 티셔츠에 '환상의 5인조'라는 글자를 박는 거야, 
     딸꾹!"
       이번엔 그녀가 딸꾹질을 했을 땐 아무도 웃지 않았다. 베스의 
     생각이 정말 굉장한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화요일 
     아침에 우리 모두가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갔을 때 마크 트웨인 
     중학교에 있는 모든 남학생들은 모두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생각이야, 베스."
       나는 말했다.
       "난 어제 용돈을 탔어. 그것을 아직 하나도 쓰지 않았거든."
       "나도 그래."
       크리스티와 캐티가 동시에 말했다.
       "내가 생각한 게 바로 그거야."
       멜러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상한 빵을 먹은 
     얼굴로 그저 앉아 있있다. 우리는 그녀를 바라 보았다. 어쩌면 
     그녀는 우리 계획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어젯밤에 영화 보러 갔었어."
       그녀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고백했다.
       "그리고 그게 전부는 아니고 버터 바른 큰 팝콘과 콜라 큰 것 
     그리고 쭈쭈바 한 통을 샀었어."
       "얼마나, 딸꾹! 남았니?"
       베스가 말했다.
       "75센트."
       멜러니는 몹시 겁먹은 표정이었다. 우리는 곧 우울해졌다. 네 
     명만 티셔츠를 입고 화용일 아침에 나타나기만 하면 모든 일은 
     망치는 것이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함께 행동을 하는 
     것 같지 않게 보일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생각해 주길 
     바라는 우리의 뜻과는 정반대가 될 것이다.
       "부모님께 다음 주 용돈을 미리 달라고 하면 안 되겠니?"
       "날 놀리는 거야? 엄마 아빠는 내가 용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불평하시고, 용돈을 벌기 위해서 집안 일을 더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가끔 생각해 보면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노예이지 
     딸이 아닌 것 같애."
       "무슨 뜻인지 알겠다."
       크리스티가 말하며 진지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잠시 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베스는 딸꾹질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티셔츠를 사고 난 나머지로 어떻게 
     멜러니 것도 살 수 없는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멜러니의 최대의 결점인 먹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그녀의 몸매를 변화시키는지 모른다면 
     그녀는 분명 뚱뚱하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 클럽에 미치는 영향도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빨리 그 점에 대해 그녀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그 때 갑자기 나는 침대 밑 상자 안에 감추어 두었던 3달러 
     15센트를 생각했다. 나는 멋진 남학생들 사진을 포스터 크기로 
     더 많이 확대해 가지려고 생각했을 때부터 돈을 조금씩 모아 
     그곳에 감추어 오고 있었다. 왜 그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던가?
       "다음 용돈 탈 ㄸ까지 3달러 15센트 빌려 줄게."
       나는 말했다.
       "나도 지난 목요일 오후에 집 보며 아기 보고 남은 돈 1달러 
     50센트가 있어."
       크리스티도 제안했다.
       곧 우리는 감추어 뒀던 돈을 내놓기로 했다. 멜러니의 
     티셔츠를 사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그녀는 다음 주 용돈으로 
     우리에게 진 빚을 갚기로 했고, 결국 우리는 클럽의 유니폼을 
     입고 화요일 날 6학급 교실로 들어갈 것을 다짐했다.
       우리는 다음으로 모든 면에서 똑같이 보이려고 티셔츠 색깔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논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베스는 자기의 
     눈 색깔과 어울린다며 푸른 색이 좋다고 말했고 크리스티와 
     멜러니도 푸른 눈이기 때문에 동의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색깔을 
     쉽게 정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갈색 눈이었고 캐티는 녹색 
     눈에 붉은 머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3:2의 투표로 푸른 색으로 
     결정했다.
       "다음 토요일 정기 모임까지 기다릴 수 없니?"
       크리스티가 물었다.
       "네 시까지 집에 가야 하는데."
       "기다려."
       나는 화가 나서 말했다.
       "물론 기다릴 수는 있어. 그렇지만 자기 개선 클럽이 잘 
     운영돼 가려면 우리는 당장 시작해서 우리를 개선시킬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해."
       크리스티를 포함해 모든 친구들이 내 말에 동의하자 나는 
     계속했다.
       "우리 자신들의 결점을 적고 스스로 그 결점들을 고쳐 나가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아. 우리는 클럽없이도 혼자서 할 수 있어.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서로 돕는 일이야."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멜러니는 화가 나서 얼굴이 찡그러져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나는 깊게 숨을 쉬었다. 바로 그 순간을 나는 기다렸던 
     것이다.
       "친구들에게 정직하고 진실해지는 것."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나쁜 결점이 무엇인지를 서로에게 말하는 
     것이야."
       침묵이 흘렀다. 크리스티의 눈은 마치 컴퓨터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처럼 반짝거렸다. 베스는 곁눈질로 멜러니를 쳐다 
     보았고 나는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았다.
       "좋은 생각이야."
       캐티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동의할 줄 몰랐었다. 그녀는 '쓰잘 데 없이 
     진부'하다고 말할 줄 알았었다. 나는 결점을 적어 두는 곳에 
     '쓸데없이 진부한 생각'이라고 덧붙이기로 했다.
       "좋아."
       나는 누군가 반대하기 전에 빨리 말했다.
       "우리 회원의 명단을 각자가 만들어서 그들의 결점을 두세 개 
     정도 적어서 다음 토요일 모임에 가지고 오기로 하자."
       모든 아이들은 조용했다. 그들은 각자의 결점으로 무엇을 
     적을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캐티와 크리스티가 나를 보는 
     것을 곁눈길로 보았으나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내 결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우리 클럽의 
     회원들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들이었다.


        3. 우리는 왕관을 손에 쥔 채 사로잡혔어! 

       화요일 아침 나와 네 명의 친구들은 학교에서 한 구역 떨어진 
     곳에서 만났다. 그 날은 첫째 시간에 티셔츠를 입고 들어가는 
     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모여 교실로 들어가기로 했었다.
       "우리는 가슴 크기를 똑같이 해서 나타나도록 해야 해."
       어제 티셔츠 가게를 나설 때 캐티가 말했었다.
       모든 아이들은 그 소리에 킬킬거리며 웃었었다. 나는 계속해서 
     몰래 가슴을 크게 하는 운동을 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여태껏 
     그 운동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멜러니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녀는 큰 덩치에 어울리게 가슴도 
     컸다.
       "티셔츠 대신 스웨터로 할 걸 그랬어."
       우리가 학교 운동장 쪽으로 가고 있을 때 크리스티가 말했다.
       "매일 조금씩 추워져."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매년 10월 달엔 추워진다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을 깨닫고 재킷의 지퍼를 잠갔다. 다른 아이들 
     역시 지퍼를 올렸다. 나는 떨고 있는 이유가 추워서 그런지 
     흥분해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내가 5인조 중 한 사람인 것을 
     랜디가 알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아마도 전에는 나를 
     멋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는 내가 마치 어떤 중요한 위원회에 
     의해 뽑혔고 노벨상을 탄 것처럼, 5인조 중의 한 사람인 것이 
     굉장히 명예스런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마 나를 특별 
     대우하기 시작할 거다. 문을 열어 준다든지, 언덕까지 책을 들어 
     준다든지 등등! 멋진 나학생들도 나를 특별히 대우해 주기 
     시작할 거야. 나는 다시 한 번 떨렸다. 그리고 내가 왜 떨고 
     있는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삶은 막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내 옆구리를 날카롭게 찌르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공상에서 깨어났다. 우리는 벌써 학교 운동장에 와 있었고, 나는 
     누가 나를 찔렀는지 보려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건 베스였다. 
     그녀도 흥분되어 코를 씩씩거리고 있었다.
       "저걸 봐."
       그녀는 날카롭게, 그러나 재빨리 말했다.
       "정말 밥맛 없어."
       나는 그녀가 바라보는 쪽을 힐끗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태피가 엉덩이 위에 한 손을 얹은 채 다른 손으로 긴 
     검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서 있었다. 그리고는 큰 갈색 눈을 
     미친 듯이 껌벅이며 덧니를 가리려고 입을 쌜쭉이고 웃으며 
     랜디의 얼굴을 쳐다 보고 있었다. 그 광경은 아주 정떨어지는 
     것이었으나 더 보기 싫은 꼴은 랜디였다. 그는 마치 상사병에나 
     걸린 듯이 넋을 잃은 채 태피를 바라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내 친구들 모두는 동정 어린 눈길로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지 보기 위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5인조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것과 우리 클럽의 목표가 학교에서 
     가장 멋있고 가장 인기있는 소녀들이 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태피가 멋진 청바지를 입고 가장 예쁜 여자인들 
     어떻단 말인가? 그녀는 5인조 클럽의 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재킷의 지퍼를 열었고 가슴을 다른 사람의 눈에 띄게 
     내밀었다.
       "우리가 지금 태피한테 이 근방에서 누가 가장 잘난 애인지 
     알게 해 줄 테야."
       내가 말했다.
       "바로 그거야."
       캐티는 갑자기 주먹을 높이 흔들어 보였다.
       갑자기 모든 아이들이 자신들의 재킷을 열고 가슴을 내밀었다.
       "봐라 태피. 우리가 여기 왔다."
       나는 속으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코를 높이 쳐들고 학교 건물을 향해 그녀를 곧장 
     지나쳐 행진해 갔다. 그러나 한 가지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가 
     콧대를 세우고 그들 앞으로 지나갈 때 내가 랜디까지 냉대하고 
     누구하고도 상대하지 않고 오직 5인조 친구들하고만 얘기한다고 
     그가 생각할 것만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를 원했다. 단지 내가 얼마나 진실한 사람인지를 그가 알아 
     주기만을 바랐을 뿐이었다.
       "계속해서 가, 뒤돌아 보지 말고."
       캐티가 소리쳤다.
       우리가 건물 문에 도착했을 때 나는 랜디가 보고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뒤를 돌아다 보고 싶었으나 만일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을 망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들도 쫓기듯 안으로 들어왔다.
       "너 태피의 얼굴 봤니?"
       우리가 사물함 쪽으로 갈 때 캐티가 승리감에 차서 물었다.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고 했지? 우리한테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잖아."
       내가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속일 때가 제일 미웠다.
       "뒤돌아 보지 않았어."
       캐티가 주장했다.
       "곁눈질로 봤을 뿐이야."
       캐티와 싸워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보지 않을 때 
     내 사물함의 다이얼 자물쇠를 맞추며 캐티를 향해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재킷을 사물함 안으로 밀어 넣고 선반 위의 
     책들과 종이 무더기 속에서 수학책을 찾아냈다. 내가 다시 
     돌아섰을 때 멜러니를 제외한 다른 애들도 재킷을 벗은 뒤였다. 
     멜러니는 굳은 표정으로 열려진 사물함 앞에 서 있었다.
       "멜러니 왜 그래?"
       크리스티가 물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늦을 거야."
       아무 말 없이 멜러니는 턱까지 지퍼를 올렸다. 그녀의 눈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나와 다른 세 명의 친구들은 마주 보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마침내 멜러니가 말했다. 그녀는 한 마디만 말했을 뿐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알아 차렸다.
       "위긴스 선생님."
       위긴스는 미스 위니프레드 위긴스의 줄인 말이다. 그녀는 
     6학급 선생님일 뿐 아니라 마크 트웨인 중학교의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녀는 키가 컸고 불타는 듯ㅎ나 빨간 머리에 
     바싹 말라 있었다. 그녀는 우리 부모님들을 가르쳤을 만큼 
     나이가 들어 있었고, 교실을 마치 간수처럼 돌아 다니곤 했다. 
     그녀는 다른 선생님들같이 많이 꾸짖거나 방과 후에 남게 하는 
     벌을 주지 않았고 나의 5학급 선생님이었던 미스터 닐같이 
     차분하지도 않았다. 위긴스. 그녀는 아주 노련했다. 그녀가 
     5인조 티셔츠를 보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며 여어분 모두의 의견이 다를 것이 분명하다. 우리들 다섯 
     명도 그녀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우선 그녀는 환상의 5인조가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는지 
     우리들에게서 알아 낼지도 모른다. 난 모든 것을 즉시 예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녀와 전 교실 학생들에게 '자기 개선 
     클럽'이라고 시인할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가슴을 크게 하는 
     운동에 대해서까지 잘못 얘기하면 어떻게 할까? 우리는 사물함을 
     다시 열기 위해 허둥대기 시작했고 재킷을 다시 꺼내 입고 
     지퍼를 올렸다. 그때 첫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 날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옳았다. 우리가 어떻게 
     티셔츠를 입고 당당하게 입장하려고 생각했는지 기가 막혔다. 
     그러기는 커녕 우리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서 선생님이 그날 
     숙제를 칠판에 쓰고 돌아서기 전에 우리의 자리로 가려고 했다. 
     물론,우리는 그러질 못했다. 갑자기 똘똘 말린 빨간 코르크 마개 
     뽑이가 불쑥 나타나 그녀의 머리 위에 떨어져 그녀가 휙 돌아 
     보았을 ㄸ 우리는 거의 그녀의 책상 있는 데까지 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 얼어 붙었다. 여러분은 우리가 훔친 
     왕관을 손에 쥔 채 잡힌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안녕, 숙녀들."
       위긴스 선생님은 씨근거리며 말했다.
       "재킷을 교실에서 입고 있구나. 수업이 끝나기 전에 어디 갈 
     계획이라도 있니?"
       학생들이 수근대던 것을 멈추고 일제히 우리들을 응시했을 때 
     나는 귀가 점점 달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 친구들도 겁먹고 
     있었으며 그들의 귀 역시 빨개지고 있었다. 그러나 재킷을 지금 
     벗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재킷 밑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서 
     어떻게 할 건지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선생님과 태피 사이에 서 있었다. 그녀는 항상 앞줄에 앉았다. 
     그래서 그녀는 선생님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그녀는 
     고개를 들어 우리들 하나 하나를 바라보고 싱글싱글 웃었다. 
     그녀는 마치 우리가 재킷을 입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리 나와."
       위긴스 선생님이 말했다.
       "어떤 것도 비밀이 될 수 없어. 너희들 중 누가 무슨 일을 할 
     건지 얘기해 줄래?"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느라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제너야, 네가 말해 볼래?"
       내 귀는 전보다 더욱 뜨거워졌다. 사실 내 귀는 로마의 
     촛불같이 내 머리를 발사해 버릴 만큼 달아 올라 있었다.
       "아무 일도 안 해요."
       나는 바르고 결백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날씨가 의외로 서늘해서 단지 재킷을 입기로 한 
     거예요."
       선생님은 의심스럽게 우리를 쳐다 보았고 자리로 돌아 가라고 
     손짓했다. 내 자리로 가려면 랜디를 지나쳐 가야 했다. 나는 
     기진맥진해져 죽고 싶었다.
       선생님은 더 이상 우리의 재킷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우리가 
     하루 종일 그것을 입고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교실 분위기는 그녀가 출석을 부른 직후에 밝아졌다.
       "여러분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알릴 
     것이 있어요. 파티를 할 수 있도록 할로윈 밤에 사용할 학교 
     강당을 예약했어요."
       학생들은 고함치며 미친 듯 박수를 쳤다. 그러자 위긴스 
     선생님은 손을 들어 조용히 하라고 지시했다.
       "자 축제가 가까이 다가오면 그때 파티 계획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겠어요. 자, 수학책 42페이지를 펴세요."
       여러분은 그 발표로 우리 다섯 명도 훨씬 기분이 좋아졌으리라 
     생각했을지 모르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나일론으로 된 
     방수 재킷의 지퍼를 턱까지 올렸기 ㄸ문에 너무나 더워서 
     마침내는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다른 네 명의 친구도 비참해 보였다. 내 얼굴은 둘째 시간에 
     거의 홍당무같이 빨개졌고 등에서는 땀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학교의 오래된 스팀 파이프에서 쨍그랑거리며 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학교 관리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결코 스팀을 많이 트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그는 에너지 위기에 대해서 전혀 
     모른단 말인가?
       더워질수록 더욱 더 졸렸고 점심 시간 다음 언어 기능 
     시간에는 눈을 억지로 뜨려다 나는 사팔뜨기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물을 마시러 가도 되는지 물어 보려고 했다. 나가서 얼굴에 
     찬물을 뿌리면 잠이 깰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물어보고 
     싶었지만 손이 어찌나 무거운지 들어올릴 수 없었다. 내 맞은 
     평에서 멜러니의 머리도 끄덕거리고 있는 걸 봐서 그녀 역시 
     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이 너무 더워 다른 학생들도 졸고 
     있었고, 또한 미친 듯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단 태피만 전혀 
     땀을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땀 분비선도 없나 보다. 
     이따금 태피는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어깨너머로 유심히 쳐다 보곤 하였다.
       몇 분 후에 위긴스 선생님이 소리쳤다.
       "좋아요. 여러분 서서 주목하세요."
       그 소리에 내 눈은 저절로 번쩍 뜨였다. 그러나 나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래도 서야 했다. 위긴스 선생님을 거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난 여러분을 정신차리게 하려고 하는데 우선 주목을 
     시켜야 겠습니다. 여러분을 깨워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녀는 얘기하던 것을 멈추고 오래된 금속 테 안경 너머로 
     우리를 쳐다 보면서 목소리를 가라 앉혔다. 모든 학생들은 
     위긴스 선생님이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 근심스러워했다.
       "그래서어어."
       그녀는 소리쳤다.
       "신선한 공기가 있는 교실에서 시작할까 합니다."
       선생님은 그 건물 2층 동남쪽 모퉁이에 있는 교실을 택했다. 
     교실 양쪽을 따라 8개, 뒤로는 6개, 합해서 14개의 창문들이 그 
     작은 교실에 있었다.
       위긴스는 꼭대기에 있는 창문에까지 보란 듯 의기양양하게 
     매달려 창문 하나 하나를 1인치나 2인치도 안 되게 열었다.
       그러자 이번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찬 바람이 모든 
     학생들의 입술을 푸르게 칠해 놓을 듯 세차게 불고 지나갔다. 
     온도는 섭씨 10도로 떨어졌음이 분명했다. 재킷 안의 땀은 
     얼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긴스는 수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자, 여러분."
       그녀가 팔을 올리며 승리감에 차서 말했다.
       "지치고 졸린 머리 끝까지 피를 올라가게 해야 해요. 팔을 
     들고 나를 따라서 해요. 발가락을 열 번 친다! 하나 둘......."
       한 편에선 투덜대는 아이도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킬킬거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모든 아이들은 발가락을 열 번 쳤다.
       어떻게 하면 따뜻해질까? 멜러니를 제외하곤------멜러니가 
     자신의 발가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모든 
     학생들은 이번엔 발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 운동으로 나는 잠이 
     ㄲ다. 나는 떨면서도 동상이 머리까지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 때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나는 다시 활기가 났으나 
     김빠진 음식같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멋진 5인조 중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 굉장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4. 어느 누구도 진실한 나를 볼 수 없어! 

       토요일 오후는 우리가 모임을 갖기로 한 때였다. 나는 벌써 네 
     명의 명단을 작성해 친구들 개개인의 결점을 적어 놓았었다. 
     그때까지 나는 5인조 티셔츠 사건의 대 실패에 대해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러나 잊지 않았던 유일한 것은 랜디가 태피를 바라 
     보았던 모습이었다. 나는 빨리 내 결점들을 일람표에 작성해서 
     나를 개선시켜 나가고 싶었다 그래야만 머지않아 랜디가 태피를 
     바라 보았듯이 나를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은 나는 벌써 
     개선되어 가기 시작했었다. 왜냐하면 일주일 내내 나는 
     얼간이같이 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었기 때문이었다.
       모임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나는 5인조 공책을 꺼내서 
     친구들에게 건네줄 항목들을 베꼈다. 나는 그 동안 결점들을 
     열심히 명단에 적어 놓았었고 내가 생각했던 대로 그 결점들이 
     친구들로부터 표면상 드러나게 될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첫째번 사항은 캐티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엔 1번 옆에 '여권 
     신장론자'라고 썼었으나 줄을 그어 지웠다. 왜냐면 여성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것에는 아무 잘못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여성으로 존재하고 있잖은가. 나는 여성들이 
     데모에 참가하기도 하고 소란을 피운다는 소위 '급진적 여권 
     신장론자'라고 불리우는 ERA에 대한 기사를 언젠가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급진적'이라는 말을 첫째번 줄에 기입했었는데 
     그것 역시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급진적'이란 단어를 들을 
     때마다 TV에서 본, 머리는 길고 샌들을 신은 채 길에서 
     항의하다가 교통을 마비시킨다는 이유롤 감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캐티는 확실히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또한 그녀는 머리도 
     길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과격한 여권 신장론자'라는 말도 
     삭제해야 했던 것이었다. 결국 나는 말을 좀더 늘여서 써야 
     했다. '여성 운동에 관한 너무 많은 강의로 넋을 잃게 함'이라고 
     썼다.
       다음은 크리스티였다. 내가 틀림없는 바보이듯이 그녀는 
     틀림없이 명석한 사람이었다.
       똑똑함은 우리가 태어날 때 타고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없는 결점을 억지로 만들어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내 결점들을 
     다른 사람이 작성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녀 역시 그러리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그녀는 항상 너무 많이 자랑을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크리스틴의 잘못된 점을 나는 이렇게 썼다.
       '아주 사소한 일도 과장하며 모든 사람에게 곧잘 화를 냄.'
       내가 이 점을 지적해 준 것에 대해 그녀는 분명 내게 
     고마워하리라고 확신했다. 오히려 왜 좀 더 빨리 얘기해 주지 
     않았냐고 따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베스가 가장 쉬웠다면 멜러니는 가장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여러분은 뚱뚱하다는 것을 그녀의 맘을 상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것 때문에 나는 2, 3일 동안을 고민했었다. 나는 내 
     친구 중 어느 누구도 내게 화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말할 것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했었지만, 그것들 중 어느 
     것도 마땅한 것이 없었다. '뚱뚱함'이라는 표현은 정말 쓰면 안 
     되는 표현이었다. '무게가 너무 나감', '약간 무게가 나감', 
     '여자답지 않음' 이런 표현도 그녀의 감정만 상하게 할 것이 
     분명했다. 마침내 '먹는 것을 그만 둘 때를 알지 못함'이라고 
     정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이해해 주길 바라며 집게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교차시켜 행운을 빌었다. 나는 5인조 공책을 
     밀어 넣기 전에 겸점을 적어 두는 페이지를 폈다. 1번 '바보', 
     2번 '거만함', 나는 웃었다. 그리고 3번에다 쓰려고 기억해 
     두었던 '쓸데없이 진부한 생각'이라고 썼다. 나는 친구들이 내 
     결점을 작성해 주는 항목들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현관 벨이 울렸다. 나는 공책을 상자 안에 던져, 다시 
     그 상자를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방문을 열었을 때 엄마는 
     가게에 가시면서 친구들을 아파트로 들어오게 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여느 살마처럼 엄마에게도 결점이 
     있다. 만일 내가 엄마한테 그 결점들을 말해 준다면 엄마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그 때 나에게 굉장한 생각이 떠올랐다.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결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어떨까? 그래서 
     자신을 개선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된다면 더 이상의 
     죄도 전쟁도 없을 텐데. 난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세계는 
     굉장히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그것은 모두 5인조 클럽 
     덕분이며 우리는 지금 그날을 위해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왜 어느 누구도 이런 생각을 전에는 하지 못한 것일까? 
     그 때 친구들이 우르르 방으로 몰려와 내 공상은 깨지고 말았다.
       "제너, 무슨 일 있니?"
       크리스티가 물었다.
       "이상야릇한 얼굴을 하고선."
       나는 그 엄청난 생각에 너무 흥분이 되어서 그 생각을 
     말하려다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이 잘 돼 
     나가는 것을 친구들이 볼 때야만 그 가능성에 대해 찬성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 일도 아냐."
       나는 말했다.
       그 때 책상 공책에서 베꼈던 결점의 항목들을 적은 쪽지가 
     글씨가 보이게끔 그대로 놔 두어다는 사실을 깨닫고 누군가 
     그것을 보기 전에 재빨리 집어 세 번씩 각 장을 접었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앉았다. 친구들도 마루 위에 털썩 주저 
     앉아서 편안한 자세를 취하려 하고 있었다. 전축 옆에 서서 
     발가락을 두드리는 캐티를 제외하곤 모두 앉았다.
       "우리는 모임을 이끌 대장이 없기 때문에 순서를 위해서 
     '환상의 5인조 자아 개선 모임'이라고 먼저 부르겠어."
       캐티가 말했다.
       친구들은 옴지작거리던 것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나와 같이 
     그들 모두도 쪽지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걱정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 클럽이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날이 왔어. 
     오늘이 바로 우리가 마크 트웨인 중학교에서 가장 멋진 
     여학생들이 되기 시작하는 날이야."
       베스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킬킬거렸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결점들을 꼭 크게 읽어야 하니?"
       하고 베스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좀 떨리고 있어서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베스는 항상 자신만만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결점을 
     쪽지에 적을 때 그녀는 마치 아카데미 상을 받는 것같이 항상 
     너무 당당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 어때? 우린 친구야. 기억 나니? 우리는 서로를 도와야 
     해. 결점을 말하는 것은 5인조 모두에 관계된 일 아니겠니?"
       나는 말했다.
       베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든 아이들도 끄덕였다. 몇 분 후에 
     우리는 손 위와 무릎 위로 결점을 적은 쪽지들을 나누어 
     주느라고 허둥대고 있었다. 나는 점점 흥분되면서 내 앞에 
     접혀진 종이 무더기들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어느 것부터 
     봐야 할지 몰랐다. 그것은 마치 6학급의 멋진 남학생에게서 온 
     발렌타인 날의 카드 뭉치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크리스티는 소리를 질렀고 눈은 
     휘둥그래져 마치 말벌을 삼킨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뭐라구!"
       날카롭게 외쳤다.
       "누가 나보고 자랑이 심하다고 그랬어. 누가 그렇게 지독한 
     말을 했냔 말이야?"
       나는 감정을 누르고 쪽지를 보느라 바쁜 체하며 그 중 하나를 
     재빨리 잡았다. 크리스티가 읽었던 것은 내가 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그녀를 도우려 했을 뿐인데 그녀는 상당히 
     오해했던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도 소리를 지르며 투덜거렸다. 
     뭐라고 쓰인 걸까? 나는 펴 보기가 두려웠다. 그러나 천천히 
     종이를 폈다.
       '얼간이, 거만함' 나는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쪽지를 폈을 때 나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남자에게 미친 자', '애숭이'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누가 이렇게 지독한 말을 썼을까? 
     어느 누구도 진정한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내 친구, 어느 
     누구도 모른다. 마치 거대한 손이 내 가슴을 쥐어짜는 것 같이 
     느껴졌다.
       갑자기 모든 애들이 고함치기 시작했다.
       "거만."
       "과장."
       "너는 어떻고?"
       "너무 무거워!"
       "자랑."
       "거만!"
       "아주 잘 났어, 정말!"
       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만일 내 쪽지에 그렇게 씌어 
     있었다면 나는 울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쪽지를 폈다. 또 믿을 
     수 없었다. 그것도 같은 내용이었다. '남자들에게 미쳤다', 
     '철부지', '남자광이' 내 친구 어느 누구도 정말 진실한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때 캐티가 벌떡 일어나 문으로 급히 가서 문을 발로 휙 
     걷어차고는 뛰어 나갔다.
       "모임은 끝장이야!"
       그녀는 어깨너머로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옛친구들 역시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화가 나서 서로를 보고 혀를 내밀었다. 베스는 내게조차 
     혀를 내밀었다. 나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는 너무 비참했고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몇 분 후에 모든 아이들이 다 가 버렸다. 종이들이 찢어진 채 
     흩어져 있는 방 안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엄마가 집에 없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엄마는 집에 와서는 당황해 하며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을 지도 모른다. 나는 말할 수 없다. 난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믿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인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나의 결점을 거짓으로 꾸며 썼다는 사실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이 마침 엄마와 핑크 씨가 외출하는 토요일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저녁 식탁에서 말을 하려고 노력하겠으나 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나는 혼자 있고 싶을 뿐이었다. 나의 전 
     생애는 물거품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누구와도 슬픔을 
     나눌 수가 없었다. 엄마조차도.
       엄마는 매우 흥분해 가지고 시장에서 돌아와서 내게 얘기하고 
     싶어했다. 엄마는 할로윈 복장에 대해서 좋은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가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짐차를 밀고 냉동 음식 센터를 지나칠 때 그것을 생각했지."
       엄마는 냉장고 속에 시장에서 사 온 식품들을 넣으며 말했다.
       "내 의상 말이야?"
       나는 엄마가 냉동 식품 가방 같은 것으로 내 옷을 만들려고 
     하는 건지 궁금했다. 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냐, 바보야. 재료가 아니라 아이디어 말이야. '즐거운 녹색 
     거인'은 어떠니?"
       엄마는 내가 거인이 된다면 얼마나 우스워 보일지 모른다며 
     웃으며 말했기 때문에 나는 난처해졌다. 실제로 나는 6학급 
     중에서 가장 키가 작은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녹색 펠트 천으로 옷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구상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얘기하는데 지칠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가 
     멋진 생각이라고 엄마한테 말해 주고는 내 방으로 건너왔다. 
     나는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핑크 씨는 엄마를 태우러 오는 
     시간에 정확히 왔다. 나는 그들이 떠날 때까지 내 방에 있으려 
     했으나 핑크 씨는 피자와 함께, 경기에서 이겨서 새로 탄 
     트로피를 엄마와 내게 보여 주려고 가져왔다. 나는 웃으면서 
     그에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볼링 트로피 같은 것에 신경 쓸 수 있겠는가?
       그들은 마침내 떠났다. 그러자 나는 전보다 더 진한 외로움을 
     느꼈다. 나는 한번도 혼자임을 느껴 본적이 없었다. 엄마에겐 
     핑크 씨가 있지만 내겐 누가 있는가? 이젠 아무도 없었다. 아니 
     우리 집에는 개조차 없었다. 나는 피자를 먹어 보려고 했으나 
     그것은 식었을 뿐 아니라 목구멍에서 넘어가질 않았다. 나는 
     그것을 냉장고에 넣었다. 엄마는 그것을 보고 내가 아픈 줄로 
     생각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방으로 가서 문을 닫았다. 
     미스 피기는 여전히 벽 위 그 자리에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내 친구들이 미스 피기 사진 뒤에 랜디의 포스터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어느 때보다 더 기뻤다.
       그 때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했다. 나는 미스 피기의 사진을 
     내리고 랜디를 보았다. 내가 그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은 내가 
     남자한테 미쳤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낭만적일 따름이었다. 
     그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나는 내 옛친구들에게 한 
     두어 가지 보여 줄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남학생한테 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한테 반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쉬운 일ㅇ리 것이었다. 남학생들이 항상 쫓아 
     다니는 태피를, 그녀가 행동하는 것을 관찰할 것이다. 물론 나는 
     그녀와 친하게 지낼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한다고 비난받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그녀를 관찰해서 본받을 것만 본따서 밤에 내 
     거울 앞에서 연습해 볼 것이다. 나는 그녀같이 머리를 기를 
     것이고 같은 색깔의 매니큐어를 칠할 것이다.
       내가 그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생각은 정말 굉장해 보였다. 
     오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멋지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옛친구들은 배 아파 죽을 
     것이다.


        5. 멋진 재채기, 우린 서로가 놀라지 않았어요 

       일요일 오후에 핑크 씨가 왔다. 엄마와 그는 TV 경기인 '볼링 
     벅스전'을 보았다. 핑크 씨는 항상 언젠가는 꼭 TV프로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엄마는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상금으로 많은 돈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다른 때보다 더 그들을 관심을 가지고 바라 보았다. 그들은 정말 
     서로 좋아하고 있었다. 엄마는 버터 바른 팝콘을 많이 만들었고 
     그의 소다수를 담은 유리잔에 남은 얼음을 두 번 넣었다. 내 
     옛친구들은 엄마의 이런 행동을 보고 엄마를 남자한테 미친 
     여자라고 할지 궁금했다.
       핑크 씨 역시 엄마한테 친절했다. 그는 녹은 버터를 엄마가 
     팝콘 그릇 안에 붓는 동안 팝콘을 휘저었다. 그리고 그는 엄마의 
     머리카락이 멋있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정말 슬퍼지기 시작했고 
     다시 외로웠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도 랜디와 그 밖에 다른 멋진 
     남학생과 저렇게 다정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 때 태피를 
     관찰하려는 새 계획을 생각하고 좀 기분이 나아졌다.
       나는 새 계획을 실천하고 싶어서 빨리 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내가 처음 적으로 상대하게 된 
     문제의 사람을 발견했다. 내가 처음으로 본 사람은 캐티였다. 
     그녀는 정문에 기대어 몸을 구부린 채 서 있었는데 감옥 
     경비원같이 그 문을 통과해 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냈다. 내가 그녀를 과격하다고 판단했던 것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코를 높이 들고 그녀를 똑바로 지나쳐 갔다. 
     확실히 그녀는 친구로서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뒤돌아섰다. 베스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놀려대 사람들이 몰려들게 했다.
       "이거 랜디의 애인 아닌가!"
       그녀는 나를 놀렸다.
       나는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만일 랜디가 가까이서 그 
     소리를 들었으면 어떻게 될까? 만일 그렇다면 랜디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베스가 얄미워 미칠 것만 같았다.
       "잘 알면서 그러니?"
       나는 비명을 질렀다.
       "유치하게 놀고 있어!"
       나는 방향을 바꾸어 뛰려다 하마터면 태피와 부딪칠 뻔했다. 
     그녀는 여지껏 그 곳에서 엿듣고 있었다. 아마 그녀는 베스가 
     말했던 것을 전 학생들에게 얘기할지도 몰랐다. 나는 눈이 
     씰룩거리며 눈물이 나와 급히 학교 건물을 향해 뛰었다. 그때는 
     마치 벌판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달리는 쪽으로 크리스티는 
     눈을 반짝이며 기대어 서 있었다. 그리고 멜러니가 선 채로 내 
     쪽을 두꺼비같이 크고 튀어나온 눈으로 쳐다 보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내 뒤로 문이 닫혔다.
       나는 막 전쟁터에서 빠져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옛친구 모두를 미워했다. 그들 역시 나를 미워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돌아서 큰 유리문을 통해 학교 운동장을 보고서 기뻤다. 
     베스는 내가 들을 수는 없지만 무어라 소리치고 있는 
     크리스티에게 혀를 내밀고 있었다. 그 광경은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캐티가 내가 떠나오고 바로 뒤에 온 것이 
     틀림없는 멜러니와 거의 얼굴을 맞댈 정도로 나란히 서서 
     서로에게 고함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싸우는 것은 그들에 대한 당연한 응보였다. 6학급 교실로 
     향해 가면서 그들에게는 그런 행동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태피가 모든 것을 지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녀는 기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카나리아를 막 잡아먹은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확실히 
     우리들에게 일어난 문제점들을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그런 태도가 좋은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머지 아침 시간은 재미있었다. 우리는 서로 냉대했다. 우리는 
     코를 너무 높이 쳐들고 다녔기 때문에 만일 물뿌리개 차가 
     온다면 우리 모두는 익사했을 것이었다.
       점심 시간은 힘이 들었다. 왜냐면 나와 옛친구들은 점심 시간 
     대부분을 카페에서 함께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손에서 다른 쪽 손으로 부자연스럽게 도시락 가방을 옮기면서 
     식당 문 바로 안에 서 있었다. 그리곤 함께 앉을 사람이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지난 주 체육 시간에 하키팀 수비로 
     나를 두 번째로 선택했던 메리가 있었지만 그녀는 가장 친한 
     글로리아와 함께 앉아 있었다. 그들은 둘이서만 마주보고 서로 
     속삭이며 킬킬대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쳐다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 커티스가 뜨거운 점심이 든 쟁반을 들고 옆으로 걸어 
     왔다. 그는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안녕, 제너."
       그가 말했다.
       "오늘 오후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들었니?"
       "아니."
       나는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다.
       커티스는 엄청난 얼간이였다. 나는 그와 얘기하는 것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위긴스 선생님을 놀려 주려고 해."
       그는 말했다. 그는 다시 웃으며 말했는데 전보다 이가 더 튀어 
     나오고 크게 보였다.
       "저기 책상 위에 있는 시계를 봐. 정확히 1시 15분에 모두 
     재채기를 하기로 했어. 굉장하지?"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선생님에게 장난을 치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다. 학생들 모두가 재채기를 하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였고 나는 그녀가 그것을 어찌 받아 들일지 궁금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커티스를 보고 웃었고 내가 그를 좋아하는 
     줄 그가 느낄지 모를 별난 행동을 했었음이 틀림없었다. 왜냐면 
     내게 비굴함을 느끼도록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누구하고 점심을 같이 먹니? 함께 먹을래?"
       "미안? 음."
       나는 더듬거렸다.
       "저기 내 친구와 같이 먹을 거야."
       나는 그가 들어 가려는 정반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면서 
     함께 앉을 사람이 있기를 바라며 서둘러 둘러 보았다.
       "저기 내 자리가 있는데."
       그는 나를 따라오며 내게 말했다.
       나는 상대방이 그를 원치 않을 때를 모르는 머리가 텅 빈 
     커티스 같은 애가 쫓아오든 말든 내버려 두려고 했다. 그러나 
     실은 그도 크리스티와 마찬가지로 굉장한 천재였다. 단, 다른 
     행성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너무 급하게 서둘러 갔기 때문에 멜러니와 부딪칠 
     뻔했다. 그녀도 문으로 들어 오면서 함께 앉을 사람을 찾으려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보자마자 코를 재빨리 치켜 
     올렸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광경을 보고 마치 누군가 위에서 
     코를 줄로 끌어 올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친구가 
     하나도 없고 오직 커티스만이 유일한 상대라는 것을 그녀가 
     느끼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한 번 더 카페를 두리번거리다가 나는 완전한 장소를 
     발견했다. 내가 왜 일찍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던가. 모퉁이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태피였던 것이다. 그 카페 
     안에는 최소한 한 식탁에 8명의 아이들이 앉을 수 있는데 하급생 
     중에서도 작은 아이들은 10명에서 12명까지도 앉았고 모나조차도 
     그녀와 함께 앉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왜냐면 
     모나는 절대적인 태피 수호자였고 그녀 주위를 애완용 개같이 
     항상 쫓아 다녔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 자리에는 많은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주의해야 할 일은 커티스와 너무 가까이 앉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분명 그 상황에서는 일이 잘 되었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태피가 있는 식탁을 향해 천천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앉아야 할 위치가 어디인지 재빨리 
     살피고 있었다. 만일 너무 태피와 가까이 앉으면 그녀는 화를 
     내고 정말 건방지게 굴지도 모른다. 왜냐면 우린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커티스하고도 너무 가까이 앉으면 안 
     되었다. 다른 한편으론 내가 너무 태피와 멀리 떨어져 앉으면 
     옛친구들은 우리가 함게 앉은 것이 아니고 내겐 전혀 친구도 
     없다는 사실을 알지도 모른다. 절충안으로 나는 그녀의 반대편 
     중앙에 앉기로 결정했다.
       태피는 샌드위치를 8조각으로 나누느라 바빴다. 어린애들은 
     그가 입을 작게 벌리고 조그맣게 나눈 샌드위치를 조금씩 베어 
     먹는 모습이 예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모습이 꽤 
     이상해 보였고 정상적인 행동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안녕, 제너."
       그녀는 덧니를 드러내 보이며 나를 향해 씩 웃었다.
       "응? 오, 안녕, 태피."
       그녀의 웃음은 나를 놀라게 했고 갑작스레 말이 나오게 했던 
     것이었다.
       "안녕 태피."
       커티스가 그녀 옆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곁눈질로 그녀가 아주 조금씩 커티스로부터 떨어져 앉는 
     것을 보았다.
       나는 크림과 치즈, 그리고 젤리를 바른 샌드위치를 도시락 
     가방에서 꺼내 식탁에 털썩 하고 내려 놓았다. 그리고 먹기 
     시작하면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옛친구들이 나와 태피가 좋은 사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태피는 그 상황에서 즉시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빨리 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했다. 그때 나는 유리 깨지는 소리에 놀라 돌아다 
     보았다. 어떤 작은 아이가 뜨거운 점심 쟁반을 떨어 뜨렸을 
     뿐이었다. 그ㄸ 식탁이 3개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크리스티와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노려보았다. 나 역시 그녀를 
     노려 보았다. 그녀는 새로운 여학생인 알렉시스와 앉아 있었는데 
     함께 앉아 있다는 승리감에 차 있었다. 나도 우리가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즉시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즉시 말해야 했기 때문에 돌아서서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뭘 생각하니?"
       그러자 태피는 크고도 검은 눈으로 쳐다보며 다시 웃었다. 
     나는 그 이상 취할 행동이 생각나지 않았다.
       "응?"
       잠시 동안 할 말을 생각하며 그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 몇 분 전에 커티스에게서 들은 
     굉장한 소식을 생각해 냈다.
       "커티스가 그러는데 오늘 오후 위긴스를 놀려 주기로 했대, 
     그렇지 커티스?"
       "확실해."
       그는 다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많은 이를 보니 나는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태피의 눈은 
     빛났다. 나는 이 광경을 옛친구들이 봤으면 했다. 나는 그들이 
     볼 경우를 생각하여 식탁 끝, 그녀가 있는 곳으로 더 가까이 
     갔다.
       "정확히 1시 15분에 전 교실에 있는 학생들이 재채기를 하기로 
     했어."
       태피는 웃었고 커티스도 웃었다. 나, 역시 웃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따라 웃었다. 우리 셋은 그 곳에 앉아 얼간이들같이 
     웃었다.
       "재미있겠는데."
       태피가 말했다.
       "빨리 왔으면."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내 웃는 모습이 얼마나 바로 같아 보일까 생각했다. 그 때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랜디가 우리 식탁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벌써 
     식사를 끝내고 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그를 쳐다 보았다. 그도 나를 보고 
     웃었다. 난 좋아 죽을 것만 같았다.

       모든 학생들은 점심 후에 교실에서 재채기 장난 건에 대해 
     속삭이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들어 왔을 때 우리는 
     조용했고 그녀는 아무 일도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1시 
     10분에 종합 문장에 대한 문제지를 넘겨 주었을 때 나는 얼굴을 
     똑바로 들 수 없었다. 5분 전에 아마 난 재채기를 먼저 할지도 
     모른다.
       태피가 왜 카페에서 그렇게 기분 좋은 표정을 내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는 정말 그녀답지 않았었다. 아마 감기 같은 
     것이라도 걸린 것은 아닐까? 위긴스는 그녀의 책상으로 돌아가 
     앉았고 공책에 무어라고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거의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계속해서 앉아 있질 못하고 
     문제도 풀 맘이 없었다. 우리들이 하는 일을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1시 13분, 나는 초바늘이 시계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을 바라 보면서 졸기 시작했다. 1시 14분 나는 
     마지막 초 단위로 세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40초, 30초, 20초, 
     10초 입을 벌리고 준비했다. 1시 15분.
       "에에------ 에 ------ 취 ------ 이 ------ 이."
       우리는 해냈다. 1시 15분에 모두 기침을 했다. 위긴스 
     선생님은 몹시 놀란 듯했지만 두 눈은 악마같이 빛나고 있었다.
       "몸조심 하세요."
       그녀는 말했다.
       긴장이 깨지고 모든 아이들은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몸조심 해."
       하고 서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그녀가 서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러분."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는 조용해졌다. 그녀가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했다.
       "모두 감기가 들다니 안 됐구나."
       그녀는 책상 모서리에서 휴지 상자를 꺼내서 아이들의 무릎 
     위에 그것을 한 장씩 떨어 뜨리며 다녔다. 그녀는 너무 빨리 
     움직여서 나를 지나칠 때는 마치 스키를 타는 것 같아 보였다. 
     모든 학생들에게 휴지를 나누어 주었을 때 그녀는 다른 한 장을 
     꺼내더니 그것을 그녀의 코에 갖다 대었다.
       "좋아요. 여러분 휴지를 코에 대세요."
       그녀는 우리를 둘러보며 명령했다.
       우리가 명령대로 하자 그녀는 길고 앙상한 손가락을 높이 
     올렸다.
       "셋을 셀 때 일제히 푼다. 하나 둘 셋."
       모든 학생들은 코를 풀었다. 그 소리는 마치 소떼들이 마크 
     트웨인 중학교에 쳐들어 오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녀가 손을 
     올려 조용히 하라고 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낄낄거렸고 코를 
     풀었다.
       "자, 훨씬 좋아졌죠. 빨리 문제를 다시 풀도록 하세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아주 노련한 위긴스! 여러분은 항상 그녀가 생각날지도 
     모른다. 그녀는 전혀 화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역시 그녀를 
     놀린 것은 아니었다. 위긴스, 그녀는 역시 영리했다.


        6. 모두가 아는 것은 비밀이 아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나는 태피를 관찰하는 완전한 
     기회를 잡았었다. 나는 그 동안 옛친구들한테 나 혼자서 집으로 
     가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다른 길을 택해 다니고 있었다. 
     내가 막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녀는 내게서 약 반 구역쯤 떨어진 
     곳에서 스콧, 마크와 함께 걷고 있었다. 두 남학생도 내가 
     사진을 포스터 크기로 확대해 가지려고 생각했던 멋진 남학생들 
     중에 속해 있었다. 태피를 가운데 두고 그들 셋은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런데 두 남학생은 태피에게 너무 신경 쓰는 것 
     같아 어떤 행렬이 옆으로 지나 갔어도 아마 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 광경에 나는 짜증이 났지만 얼마 안 있어 나 
     때문에 곧 남학생들이 서로 나와 함게 걸으려고 경쟁할 생각을 
     하니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내가 관찰할 첫번째 것은 그녀가 한 남학생을 보다가 다른 
     남학생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긴 검은 머리를 휙 쳐서 그녀의 
     어깨너머로 넘기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따라 하기 쉬워 보였으나 
     내 머리가 너무 짧아서 뒤로 넘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태피의 머리같이 기르려고 마음먹고는 여러 번 내 머리를 
     흔들어 그대로 따라 했다.
       다음으로는 걷는 방법을 보았는데 그녀는 천천히 걸었고 
     오른쪽 발을 떼어 놓을 때마다 엉덩이가 같은 방향으로 쏠렸다. 
     그리고 왼쪽 발을 떼어 놓을 때는 그 반대로 움직였다. 나는 
     잠시 동안 자세히 관찰했다. 앞으로 걸어가는 폭보다 양 옆으로 
     차지하는 폭을 더 차지하고 걸으며 엉덩이를 흔들어댔다. 나는 
     내가 어떻게 걷는지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핑크 씨는, 오래된 
     영화에서 필름이 빨리 돌아갈 때 나오는 사람이 걷는 것 같다고 
     내 걸음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었다.
       멋진 남학생들이 왜 나와 함께 걸으려고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이제 알 수 있었다.
       나는 엄마가 핑크 씨와 있을 때 어떻게 걸었는지 생각하려 
     했으나 기억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전에는 이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음 번에는 엄마가 어떻게 
     걷는지 관찰하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내려갔고 태피가 걷는 대로 따라 걸었다. 
     처음엔 엉덩이를 어떻게 돌리는지 보려고 아주 열심히 걷는 
     모습을 관찰했다. 또 어떻게 그녀는 엉덩이를 내밀며 머리까지 
     칠 수 있는 걸까? 그것도 여러 분들이 가슴을 긁으며 동시에 
     자기 머리를 때리는 오래된 놀이를 하는 것과 흡사했다. 나는 
     여러 번 노력한 끝에 엉덩이를 흔들게 됐다.
       태피와 스콧 그리고 마크 뒤를 따라서 걸으면서 나는 정신없이 
     엉덩이를 흔들고 머리를 치며 걸을 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나는 그들이 어느새 신호등이 있는 모퉁이까지 가서 신호등이 
     빨간 색으로 변하자 갑자기 멈춰선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스콧이 어깨너머로 나를 똑바로 쳐다 보았을 때 나는 오른쪽 
     엉덩이를 내밀고 오른쪽 어깨로 상상의 긴 머리를 친 상태로 그 
     자리에 얼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귀는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었다.
       "안녕, 제너."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안녕."
       나도 인사했다.
       내가 똑바로 서기 전에 태피와 마크도 뒤돌아 보았다. 그들은 
     오후에 있었던 재채기 건이 무척 재미있었다고 서로 얘기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태피는 빨갛게 달아오른 나사못이 
     얼어붙은 듯이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마침내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고, 
     그들은 계속해 걸어갔다.
       태피가 카페에서는 그렇게 쾌활하더니 지금은 냉정하게 나를 
     보았다는 것이 약오르기만 했다. 아마도 그녀는 나에게 스콧이 
     많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시기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만일 
     그가 나오 함께 집으로 걸어 간다고 한다면 그녀를 더 약오르게 
     하는 일일 것이다.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엄마도 역시 회사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침대 위에 책들을 던져 둔 채 엄마의 침실로 
     급히 들어가 전신 거울 앞에서 태피가 걷는 것 같이 걸어 
     보았다. 분명 거리에서 꽤 웃기게 보였음이 분명했다. 나는 
     손가락을 꼬았다 풀었다 세 번 함으로써 스콧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엉덩이를 자연스럽게 돌리며 걸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러나 걷는 것은 무척 재미있었다. 
     나는 머리도 쳐 보기 시작했다. 머리는 너무 짧아 어색하게 
     보였다. 그래서 머리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연습을 마치고 내 방으로 가서 숙제를 시작했다. 그러나 
     집중할 수가 없었다. 머지 않아 옛친구들이 나를 시기할 것이고 
     그들이 내게 지독한 말을 했던 것을 후회하고 사과할 것이다. 
     그리고 내 주위를 애원하는 표정으로 따라 다닐 것이다. 나는 
     물론 그들에게 상냥할 것이고 사과하는 것도 받아 들일 것이다. 
     그러나 멋진 남학생들과 얘기하느라 바빠서 더 이상 그들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없을 것이다.
       그 때 엄마가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꽤 좋은 하루를 보냈던 
     것 같았다. 왜냐면 코트를 벗으면서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최근에 기분이 굉장히 좋아 있었다. 나는 
     그런 사실이 기뻤다. 엄마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땐 굉장히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제너, 집에 있니?"
       "네, 엄마."
       나는 소리쳤다.
       숙제하는 걸 중단할 변명이 생겨서 기뻤다. 그래서 공책을 
     덮고 엄마가 계시는 거실로 들어갔다. 엄마는 쿠션에 몸을 바로 
     세워 앉은 채 천천히 신문을 뒤적이고 계셨다.
       "무슨 일이에요?"
       나는 물었다.
       엄마는 집에 오시면 신문을 보지 않았었다. 항상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별 일 아닌데, 핑크 씨를 저녁에 초대할까?"
       하고 엄마는 말했다.
       "주말 밤에요? 그는 항상 주말 밤에만 집에 왔었잖아요."
       엄마는 얼굴을 붉혔다.
       "그가 여느 때와는 달리 정상적인 식사를 했으면 해. 그는 
     핫도그와 깡통에 든 스프를 좋아하거든. 가게 좀 다녀 올련? 
     필요한 게 두서너 가지 될 텐데."
       두서너 가지는 분명 음식물이 가득 찬 큰 짐수레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게에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가면서 
     태피가 걷는 걸음을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돌아 왔을 때 핑크 씨는 아파트에 벌써 와 있었다. 그는 
     얼굴 가득 웃으며 부엌용 의자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것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핑크 씨가 옆에 있을 때 엄마는 어떻게 
     걷는지 보려고 했으나 우리 부엌은 너무 작아서 엄마는 한 
     발자국도 떼지 않고 닭을 튀기고 야채를 요리하고 샐러드를 
     만들었다. 나는 저녁 내내 엄마가 머리를 어깨 너머로 치는 것을 
     보기 위해 열심히 엄마를 바라 보았다. 엄마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니 엄마가 그런 행동을 했더라도 핑크 씨는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먹는 것을 보면 여러분은 핑크 씨가 무척 오랫 동안 
     굶주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그는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나는 저녁 내내 엄마가 걷는 것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들은 
     나머지 시간을 TV 앞에 앉아 보냈다. 그들이 전에도 오랜 시간을 
     TV 주위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먼저 실례한다고 
     말하고는 내 방으로 건너왔다.
       나는 숙제를 끝내고 잠자리를 정돈하고 미스 피기의 사진을 
     떼어 내렸다. 나는 방 안을 두서너 번 거닐고는 태피가 웃는 
     모습같이 나도 그림에 있는 랜디에게 웃어 버렸다. 그리고는 
     침대 위에 편안히 누웠다. 모든 것은 흥미롭게 되어 갈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그 전 날 왔던 길로 학교까지 걸어 가기로 
     했다. 그래야만 옛날 친구들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첫번째 모퉁이에 도착했을 때 태피가 거기 서 있었다. 나는 정말 
     놀랐다. 게다가 내가 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기 
     때문에 내 뒤에 누군가에게 그러는 줄 알고 뒤돌아 보려 할 때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제너. 함께 걸어가지 않을래?"
       "괜찮아."
       나는 말했다.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서로 항상 
     미워할 때 취하는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가 
     친구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오래 전에 엄마는 태피가 
     친구를 사귈 줄 모른다고 나한테 말했었다. 그래서 이런 일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마 나와 함께 학교까지 걸어 
     가면서 그 전 날 있었던 재채기 건에 대해 얘기하려 하는 것 
     같았다.
       "뭘 생각하니?"
       신호등이 바뀌어 걸어갈 때 그녀가 물었다.
       "응?"
       태피가 뭣 때문에 내게 관심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난 왜 여학생들이 너에게 화를 내며 남자한테 미친 여자라고 
     말하는지 이유를 알지."
       태피가 말했다.
       나는 교차로의 중앙에 똑바로 섰다. 옛날 친구들이 태피에게 
     예전의 '자기 개선 클럽'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얘기한 것일까? 
     그레이 하운드 버스가 나를 살짝 치고 지나갔는데도 나는 
     몰랐었다. 그들이 내게 집단 공격을 가하고 나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것일까? 무슨 일이 분명 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태피는 그 이유를 안다는 것일까?
       "왜 그런데?"
       나는 소리쳤지만 그녀는 막 모퉁이를 돌아섰기 때문에 내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서 말해 봐."
       태피는 나를 보았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난 말할 수 없어. 그건 비밀이야. 많은 사람ㄷ르이 알고 있는 
     것을 빼 놓고는......."
       "만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안다면 그건 비밀이 아니야. 말해야 
     돼. 어서, 태피."
       "한 가지는, 그들은 시기하고 있는 거야."
       "시기?"
       그때까지 나는 거의 광포해 있었다. 내 친구들이 나를 
     시기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태피는 계속해서 곧장 앞만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게."
       난 말했다.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나는 애원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알아야 
     한다.
       "내 생각인데, 네가 사실을 알면 그들은 약이 오를 거야."
       그녀는 말했다.
       난 조금 안심이 되었다.
       "너에게 반한 남학생이 있는데 네 친구들은 모두 그가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그들은 시기해서 그가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허튼 소리를 하고 다닌 다니까."
       난 그제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나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며 돌아다닌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멋진 
     남학생이 나에게 반했기 때문에 그들은 시기해서 나에게 
     남자한테 미쳤다고 했고, 뿐만 아니라 멋진 남학생이 전보다 더 
     반해 있자 나를 계속해서 놀리려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누가 나를 좋아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 애가 누군데?"
       나는 매일 그러한 소리를 듣는 것처럼 태연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말할 수 없어."
       "왜 못해?"
       "난 말하지 않겠다고 그와 약속했거든."
       나는 숨이 막혔다.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정말 너에게 말했니?"
       "물론이야."
       태피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의 긴 눈썹을 깜박였다.
       "그런데 너한테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내 생각엔 
     그 애가 직접 너한테 말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너도 그가 정말 멋진 남학생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물었다.
       "물론, 그는 6학급 중에서 가장 멋진 학생 중 한 사람이야."
       학교에 가는 동안 내 가슴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나는 
     최근에 태피와 얘기했던 멋진 남학생들을 떠올리려고 했다. 물론 
     어제 학교가 끝나고 그녀가 마크, 스콧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지만 또한 랜디와도 며칠 전에 얘기 하는 것을 보았었다. 
     그는 은밀히 그녀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아마 나에게 반했다는 
     것을 그녀에게 얘기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태피를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즉 그녀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오해했었다. 나는 이제야 진실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다음 2, 3일 동안 나는 그가 내게 고백할 시간을 주기 위해 
     랜디를 관찰했다. 물론 교실 밖에서도 나는 기회를 포착하려고 
     그를 응시했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연필을 일부러 떨어 뜨려서 
     그것을 줍기 위해 뒤돌아 보고는 랜디를 힐끗 쳐다 보기까지 
     했다. 나는 많은 시간을 태피와 함께 보냈다. 우리는 함께 
     걸어서 학교에 다녔고 카페에 함께 앉아 있었다. 내 친구들은 
     화가 나 있었다. 난 개의치 않았다. 랜디는 나를 좋아했고 
     언젠가 그는 내게 역시 고백할 것이다.
       "넌 친구들이 오랫 동안 네 등 뒤에서 욕한 것을 몰랐을 
     거야."
       목요일 점심 시간에 우리가 점심을 먹는 동안 태피가 말했다.
       "그들은 이제 내 친구가 아니야. 내 옛날 친구지. 어쨌든 뭘 
     얘기했는데?"
       태피는 양 어깨를 으쓱 올렸다.
       "유치한 얘기야. 너도 알잖아."
       나는 정말 알았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돌아다니면서 내가 
     남자한테 미쳤으며 풋내기라고 말하고 다닐 것이다.
       "어서 가자."
       나는 말했다.
       정말 더 이상 옛날 친구에 대해 듣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도시락 가방을 불어서 부풀게 하고는 사과와 냅킨을 넣어 가방을 
     채우곤 일어섰다. 우리가 카페를 나서려면 크리스티를 곧장 
     지나쳐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콧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녀 식탁에 갔을 때,
       "허풍쟁이!"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남자광."
       그녀도 외쳤다.
       태피와 나는 웃으며 똑바로 지나쳐 왔다.


        7. 원한다면 몸짓으로 말할 수 있어 

       카페 안의 그 주일의 메뉴가 붙어 있는 게시판에는 공 놀이 
     계획표, 스카웃의 모임, 클럽의 보고 사항 등이 부착돼 있었다. 
     금요일 점심 시간에 나와 태피가 카페로 걸어 들어갔을 때 
     게시판 주위에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무엇이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아이들이 소근대며 킬킬거리고 있어 꽤 
     우스운 것인줄 알았다.
       나는 팔꿈치로 태피를 살짝 쳤다.
       "왜 그런지 보러 가지."
       나는 말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따라왔다. 우리가 모여 있는 
     곳으로 갔을 때, 5학급 학생인 샤나라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찌르며 우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모든 아이들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우리를 펴다 보았다. 그 즉시 나는 태피와 나에 대해 
     어떤 지독한 것이 씌어 있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난폭하게 무리들 속을 뚫고 들어갔다. 그 곳에는 압핀으로 
     고정시킨 촌스런 두 여학생의 그림이 있었다. 한 명은 검은 
     머리였고 다른 한 명은 갈색 머리였는데 크레용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내가 전에 보지 못한 가 장 추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거대한 코는 하늘로 치켜 올라가 있었다. 태피의 이름은 
     검은 머리의 그림 밑에 씌어 있었고, 갈색 그림 밑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림 밑으로는 다음과 같은 한 편의 시가 
     씌어 있었다.

       장미는 붉고
       바이올렛은 푸르고
       태피와 제너
       그들만큼 건방진 자도 없나니!

       나는 화가 나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그림을 떼어 내려 
     조각조각 갈갈이 찢어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발로 짓밟았다. 
     태피는 그저 거기에 서 있었다. 그러나 내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빨개졌다. 누가 그런 그림을 붙였을까. 옛날 친구들만이 
     그런 비열한 짓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때 나는 게시판에 
     모여 있던 애들이 어느새 식탁에 가 앉았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 
     조용했다. 그리고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가자, 제너. 점심이나 먹자."
       태피가 말했다.
       그녀는 전혀 화나 보이지 않았다. 난 그녀의 그런 모습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처음 몇 분 동안은 얼굴이 붉었지만 지금은 
     천사의 모습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서 빈 식탁으로 향했을 
     때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 보고 있는 데서 혼자 그곳에 서 있고 싶지 
     않아 그녀를 따라갔다. 식탁으로 가서 난 어느 누구도 보지 
     않으려고 내 도시락 가방으로 받침대를 대기 시작했다.
       "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니?"
       우리가 앉고 나서 난 물었다.
       "그 애들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걸 보여 주면 안 돼. 만일 
     이런 일로 네가 화났다는 것을 애들이 알면 또 다른 일을 할 
     거야. 넌 그런 유치하고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 알도록 해 줘야 해. 그러한 뜻을 알게 하는 방법은 
     몸짓으로 하는 수밖에 없어."
       나는 몸짓으로 말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무엇인지 설명할 때는 멍청히 바라만 보았다.
       "몸짓으로 말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몸짓으로 상대방에게 자기 
     뜻을 말하는 것이야. 예를 들면, 누구를 냉대하기 위해 코를 
     치켜 올리는 경우와 같은 것이지. 그것 말고도 많이 있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너는 상대방에게 네 뜻을 전할 수 있지."
       전체적으로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참 재미있었다.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았니?"
       "엄마가 가르쳐 줬어. 전에 엄마는 배우였는데 그들은 항상 
     그것을 사용해서 연기를 한대."
       "네 말은 몸짓만으로 무엇이든 얘기할 수 있다는 거야?"
       "그렇고 말고.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옛날 친구들한테 거만한 
     모습을 전할 수 있어. 재미있지?"
       "정말 그래. 난 그렇게 할 거야."
       나는 말했다.
       나는 그들이 밉고 적의가 있다는 생각을 손가락 하나 까닥 
     않고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그게 전부는 아냐."
       태피는 말했다.
       "그것으로 또 할 수 있는게 있어."
       그녀는 속삭이기 전에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주위를 둘러 보았다.
       "무엇보다도 남자들에게 내 의도를 전할 수 있어."
       "굉장하구나!"
       나는 소리쳤다.
       그러나 곧 후회했다. 왜냐면 학생들이 우리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난 입 주위를 손으로 막고서 가만히 속삭였다.
       "정말이니? 확실해?"
       "그렇다니까."
       그녀는 말했다.
       "난 항상 그것으로 내 뜻을 전했어."
       그녀는 잠시 주저하더니 다시 말했다.
       "내가 그렇게 해 보길 원한다면 어떻게 하는지 보여 줄 수 
     있어."
       "좋아, 내일 아침 우리 집에 올래?"
       나는 말했다.
       태피는 승낙했다. 나는 그 동안 그녀가 어떻게 몸짓을 해 
     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전에 그녀가 엉덩이를 내밀고 어깨너머로 
     머리를 치며 걸었던 것도 바로 그 방법이었던 것임을 알았다. 
     나는 모든 것을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도 곧 그 방법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옛친구들을 꾸짖을 수 있을 것이고 
     랜디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그에게 말할 
     것이다. 내 입은 전혀 열지 않고서. 그런 다음 난 엄마한테도 
     적용할 것인데 엄마가 내게 엄마가 내게 허락한 것보다 나는 더 
     많은 자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내 생활이 거의 완전해져 간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모두 
     나의 가장 친한 친구 태피 덕분이었다.

       그 다음 날 내가 엄마한테 태피가 집에 온다고 말하자 엄마는 
     놀랐고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몇 마디 하셨다.
       "태피도 클럽에 들어와 점점 클럽이 커 간다니 기쁘구나. 결국 
     너희 여학생들의 문제점은 곧 고쳐질 거야. 그것이 바로 네가 
     저점 더 성숙해 간다는 의미일 테고."
       나는 웃음이 나오는 것도 억지로 참았다. 엄마가 사실을 알면 
     어떠실까? 엄마는 친구들과 내가 이제는 함께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태피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몸짓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목록에 적어 봤다. 물론, 배우고 싶은 첫번째 것은 멋진 
     남학생, 특히 랜디에게 내 뜻을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태피가 기다려졌다.
       잠시 후에 엄마가 태피에게 들어 오라고 하는 소리가 났다. 
     내가 방문을 열었을 때 태피는 엄마한테 천사같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그러자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정말 
     노련한 몸짓이었다. 난 정말로 많이 배워야 했다. 태피는 내 
     방으로 들어왔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엄마가 듣지 못하도록 
     방문을 닫았다.
       태피는 하얀 털로 장식한 화려하고도 엷은 푸른색 재킷을 
     벗어서 내 침대 위에 놓았다. 그러고는 잠시 내 방을 둘러 
     보았다. 나도 따라 둘러 보았다. 푸른 색과 금빛의 격자 무늬 
     커튼과 침대보로 된 평범한 방이었다. 태피의 방은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흰 여우털 침대보로 덮인 침대가 있고, 마루에는 
     분홍색 카펫이 깔려 있을 것이다. 나는 갑자기 한 주일 전 옛 
     친구들과 서로의 결점을 말하기 위해 바로 이 방에 모였었던 
     것을 기억했다.
       태피도 나의 옛친구들을 생각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네가 베스라고 하고 내가 너라고 가정하자."
       그녀는 말했다.
       "좋아."
       나는 등뼈를 타고 올라오는 작은 흥분을 느꼈다. 벌써 
     재미있어지고 있었다.
       태피는 깊은 한숨을 쉬었고 내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서서 어깨너머로 나를 쳐다 보았다. 그녀의 눈은 한 쌍의 
     독화살 같았고 두 눈은 똑바로 나를 직시했다. 나는 숨이 막히고 
     얼굴이 달아 올랐다. 그녀는 더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전에도 저런 표정을 내게 보냈었다. 돌이켜 보면 '태피 반대 
     클럽'의 회장이었을 때부터 최소한 백 번은 그런 표정을 내게 
     보냈을 것이다. 그때도 태피는 이미 그 몸짓 언어에 대해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녀는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은 아까와 
     같진 않았지만 친절한 눈빛 역시 아니었다. 나는 물러섰다 
     그녀는 다시 서서히 다가왔다. 나도 다시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그녀가 뒤로 물러서며 웃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고 개인적 공간을 침입한다고 하는 것야.'
       그녀는 말했다.
       "그렇게 해야 사람을 주위로 밀어낼 수가 있어."
       "그래, 나도 밀려났어."
       나는 말했다.
       나는 그녀가 바로 전에 내게 보여 주었던 것을 생각했다.
       "왜 엄마가 너에게 이런 것을 가르쳐 주었니?"
       태피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눈을 밑으로 내리떴다.
       "내가 학교에서 모든 애들하고 문제가 있을 때 가르쳐 
     주셨어."
       나는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면 '모든 사람'이란 
     말에는 나도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태피와 친구가 된 게 
     기뻤다. 왜냐면 그녀는 정말 외로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를 정말 중요한 사람같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서고 걷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멋진 
     남학생들에게 내 뜻을 전하는 비밀스런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그녀의 엄마는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 혼자 
     그것을 터득했다고 했다.
       연습을 마친 후 우리는 잠시 동안 전축을 틀어 음악을 들었고 
     할로윈 축제 때 무엇으로 변장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가 '이빨 요정'이 될 것이라고 말해서 나는 '즐거운 녹색 
     거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곧 미리 말한 것을 후회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 뒤 나는 오후 내내 거울 앞에서 
     태피에게서 배운 몸짓을 여러 번 해 보았다. 때론 옛날 
     친구들이나 랜디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연습을 했다. 나는 그 
     효과를 시험해 보기 위해 빨리 월요일이 돌아와서 학교에 가고 
     싶었다.


        8. 사람들은 항상 단점만을 보려고 해 

       "네 운동화 사러 시장에 갈까?"
       오후 늦게 엄마가 물었다.
       나는 그러자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새 운동화가 갖고 
     싶어 못 견뎌 했었다. 나는 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 
     안에는 금붕어가 놀고 있는 큰 풀장이 있었고 나무와 꽃들이 그 
     주위에서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때때로 나와 옛날 친구들은 
     55센트짜리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있는 이 산뜻한 가게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을 허락받곤 했었다. 그 가게 안에 있는 
     아이스크림 중 자주색 줄무늬가 있는 갈색 아이스크림만이 
     변변치 않을 뿐 대부분 맛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나는 바블 
     껌과 땅콩 버터 그리고 젤리 향을 가장 좋아했다.
       우리는 '시장행'이라고 쓰인 버스를 타기 위해 길모퉁이에서 
     기다렸다. 버스는 시장의 바로 문 앞까지 갔다. 엄마는 말없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혼자만 얘기하고 싶지 않아 
     엄마를 그냥 내버려 두었지만 엄마와 핑크 씨가 싸움 같은 것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 또한 계속해서 아침에 태피에게서 배운 
     것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진열장에 놓인 운동화를 보고 신발 가게로 들어갔다. 
     우리를 시중들었던 판매원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주 멋진 청년이었다. 나는 몸짓을 통해 그에게 내 뜻을 전하려 
     했으나 아직 그만큼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같은 하찮은 일에 
     관심 두는 것을 태피는 원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가 내 헌 
     구두를 상자 안에 넣는 동안 나는 그저 조용히 서 있었다. 신발 
     가게를 나온 우리는 천 가게에 들러 '즐거운 녹색 거인'을 
     만들기 위한 녹색 펠트 천을 샀다.
       "집에 가기 전에 아이스크림 콘 먹을래?"
       시장에서 나와 걸어갈 때 엄마가 말했다.
       "그래요, 엄마."
       나는 전에도 결코 그와 가ㅌ 제의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코코넛 아몬드 모카를 하나씩 주문했고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향기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할까 망설이다가 땅콩 버터와 
     젤리를 하나씩 주문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눈을 감고 
     먹었는데 엄마는 그것이 조잡해 보였는지 나를 칸막이가 
     둘러쳐진 자리로 데리고 갔다.
       "제너야."
       내가 아이스크림 윗부분을 혀로 핥고 있을 때 엄마가 말하기 
     시작했다.
       "태피가 오늘 아침 온 이후로 계속 생각해 봤는데."
       나는 눈을 뜨고 엄마를 보았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전에 너희들은 전혀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 애에 대항하는 
     클럽까지 만들었었지 않니. 다른 친구들과는 지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어떻니? 며칠 동안 그 
     아이들은 오지도 않았고 전화도 없었지 않니. 잔소리하는 건 
     아닌데 너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거니?"
       나는 눈을 감고 다시 아이스크림을 핥기 시작했다. 엄마는 
     결국 알아 차렸다. 난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옛날 
     친굴들과의 관계는 끝난 일이라는 것을 엄마한테 말할 순 
     없었다. 난 어쩔 줄 몰라 죽고 싶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아이스크림을 핥으면서 한 동안 거기에 앉아 있었다. 내가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엄마는 더 이상 내게 묻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엄마는 항상 그런 일을 잘 했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계속해서 보고 있는지 궁금했고 어색했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목구멍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덩어리는 점점 
     커져 더 이상 삼킬 수 없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엄마를 
     바라 보았다.
       "엄마, 만일 누가 엄마에 대해, 음, 엄마의 결점이라든가 그런 
     것 말이야, 사실이 아닌데도 누군가에게 그 점을 말한다면 
     엄마는 어떻게 할 거야?"
       엄마는 한숨을 쉬다가 동정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제너, 그것은 아무 문젯거리도 안 돼! 미안하구나."
       하고 말하며 엄마는 식탁 맞은 편으로 와서 내 손을 꽉 쥐어 
     주었다.
       "자, 만일 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했다면 난 그 사람이 
     잘못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려고 아주 바쁘게 뛰어 
     다닐 거야. 너도 알다시피 때때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기도 하지. 그 때 그들의 눈에 띄는 것은 
     결점투성이뿐인 거야! 심지어 그들은 있지도 않은 결점을 
     보거든. 그래서 사람들이 가진 많은 장점들을 놓치곤 하지."
       "고마워요, 엄마."
       나는 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나는 결국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남자에 미친 애가 아니고 남학생들이 
     나에게 반했다는 것을 옛친구들에게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조차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나는 옛친구들이 언제쯤 나의 장점에 대해 생각해 줄 
     것인지 궁금했다. 그들은 항상 단점만 찾기 때문에 결코 어느 
     누구의 장점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뒤 우리는 올 때 타고 왔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좀 있으니 핑크 씨가 운두 높은 접시로 구운 
     페페로니와 녹색 후추가 뿌려진 버섯 피자를 갖고 엄마를 데리러 
     왔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몸짓 언어를 익히며 온 저녁을 
     보냈다.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나는 옛친구들에게 보낼 몸짓 
     언어를 연습했다 나는 내 눈 모양을 순식간에 독기 어리게 바꿀 
     수 있었는데도 학교 가는 도중 내내 연습을 계속 했다. 또한 
     멋쟁이 남학생들을 아찔하게 할 태피의 특별한 미소도 연습해 
     봤다. 한 번은 독기 어린 눈으로 다른 한 번은 미소 띈 눈으로 
     계속해서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나는 멋진 남학생에게 주려고 
     했던 미소는 옛친구들에게 보내고 랜디에게는 독기 어린 눈으로 
     쳐다 보는 그런 혼동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태피와 내가 학교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멈추어 서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는 랜디나 다른 멋진 남학생들을 
     찾았지만 태피는 나의 옛친구들을 찾았음이 분명했다. 왜냐면 
     그녀가 언덕진 곳을 가리키며,
       "저기 있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베스가 넋잃은 표정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가 친구없이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은 웬지 몹시 측은해 보였다.
       우리는 행진 대원들처럼 발로 박자를 맞추며 곧장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 가까이에 가서 우리는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려 
     독기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는 콧대를 빳빳이 
     세우고 다시 행진해 나갔다. 크리스티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멜러니는 우리가 그녀를 지나쳐 갈 때 혀를 쑥 내밀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캐티였다. 우리는 똑같은 행동을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불행하게도 랜디는 없었지만 그 날은 옛친구들에게 내 마음의 
     표시를 전할 여러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한 번은 카페에서 멜러니와 캐티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그들은 
     나에게 뒤처지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만일 그들이 뒤처진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장점 대신 결점만을 보려 했던 데 대한 당연한 보답일 것이다. 
     그들이 허둥대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 본다는 것은 쉽게 잊을 
     수 없는 재미있는 일이었다.


        9. 그 애가 나를 보면 내 심장이 멈춰요 

       "이 때가 멋있는 남학생들에게 몸짓으로 말하는 좋은 기회야."
       화요일 아침 학교에 갔을 때 태피가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나를 보고 깊은 뜻이 있는 듯 웃고는 랜디와 마크 
     그리고 스콧이 함께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야구장의 뒷그물 
     쪽을 힐끗 쳐다 보았다.
       나는 그들이 거기 있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다. 우리가 그 
     곳으로부터 반 구역 떨어진 곳에 있었을 때 그들을 보았던 
     것이다. 대부분으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크 트웨인 중학교 
     운동장에 있는 마크와 스콧 그리고 랜디에게 내가 몸짓으로 
     말해야 한다니, 태피는 전혀 이 점을 생각지 못했던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충분히 연습하지 않아 준비가 
     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일 내가 실패한다면 어쩔 줄 몰라 
     죽고 싶을 것이다.
       "난 사물함에 가 봐야 해."
       나는 머리를 숙이고 우물거리다가 교실 쪽으로 몸을 휙 
     돌렸다.
       태피는 내 팔을 거머잡고 나를 뒤로 돌렸다.
       "야, 그러면 안 돼!"
       그녀가 말했다.
       "너, 겁쟁이니? 지금이 바로 멋진 세 학생에게 몸짓으로 네 
     뜻을 전할 완전한 기회란 말야. 그리고 넌,"
       그녀는 마치 누가 엿듣기라도 하는 듯이 목소리를 낮췄다.
       "옛친구들 앞에서도 잘 할 수 있어. 어서 해!"
       나는 어디서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바로 내가 내는 
     소리였다. 태피는 뒷그물 쪽으로 나를 밀어 주었다. 나는 숨을 
     쉬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내 가슴은 떨리는 다리와 함게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질식해 죽어 간다면 어떻게 그 
     뜻을 전할 수 있을까? 만일 내가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간다면 그것은 그녀의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때 랜디가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웃었다.
       "안녕, 제너."
       랜디가 인사했다.
       그는 계속해서 웃고 있었는데 그 웃음은 내 침대 옆의 
     포스터에 있는 바로 그 웃음이었다. 그 순간 나는 방에서 그에게 
     전할 몸짓 언어를 연습하면서 얼마나 많이 그 미소를 보았던가를 
     떠올렸다. 내 방 안, 그의 사진 앞에서 웃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녕, 랜디."
       태피가 가르쳐 준 대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아주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아주 효력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왜냐면 그 
     다음에 그가 말한 것은 거의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이리 올래? 물어 볼 게 있는데."
       내 가슴은 그 말을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그는 내 뜻을 받아 들여 나와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걸음을 걸을 때 엉덩이를 내밀려 관능적이게 걷는 
     것이 중요했다. 돌리고, 걷고, 돌리고, 걷고, 나는 천천히 
     내려갔다. 내가 떨고 있는 것을 그가 알아채지 못했으면 했다. 
     나는 긴 머리를 가진 것처럼 고개를 돌려 머리를 위로 쳤다. 
     그리고 그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그에게 갔을 때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난 어젯밤 수학 숙제하는 것을 깜박 잊었어."
       그가 말했다.
       "답 좀 베껴도 되겠니?"
       "얘, 나도."
       마크도 말했다.
       "나도 그래."
       스콧도 말했다.
       나는 꿈꾸고 있는 것 같았다. 6학급 전체에서 가장 멋진 세 
     명의 남학생들이 내 숙제를 베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크리스티와 커티스, 그 두 사람은 묻지 않았는데 그들은 
     뛰어난 천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내게 물은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모짓으로 그들에게 내 
     뜻을 전했던 것이다.
       첫번째 벨이 울렸을 때, 우리는 사물함이 있는 데로 갔다. 
     랜디와 마크, 스콧도 여전히 함께 걸었다. 우리가 크리스티를 
     지나쳐 갈 때 그녀는 코트를 벗으며 그녀의 사물함 옆에 서 
     있었다. 나는 독기 어린 눈을 하고, 어깨너머로 그녀를 바라 
     보았다. 그녀가 혀를 불쑥 내미는 것으로 보아 내 뜻을 알아 
     챘다는 것이 확실했다.
       우리가 교실에 도착한 뒤에 나는 세 명의 옛친구들에게 적의에 
     찬 눈길을 보냈고 위긴스 선생님이 지루한 아침수업을 다시 
     시작하는 동안 나는 랜디에 관한 공상에 빠졌다. 그녀는 그날의 
     숙제를 칠판에 쓰고 그녀의 책상으로 되돌아와 앉았다. 갑자기 
     그녀가 다시 일어섰을 때는 어찌나 빨랐던지 재킷을 공중에 
     발사하는 것 같이 보였다.
       "껌을 씹다니!"
       그녀가 천둥 치듯 고함을 쳤다.
       "모두 서서 집중."
       선생님은 누가 껌을 씹을 때는 이렇게 했다. 그녀는 껌 씹는 
     것을 몹시 싫어했고 반 구역 떨어진 거리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자연히, 어떤 아이들은 가끔씩 그녀의 코를 
     시험해 보려고 했다. 나도 일어섰다. 이번에는 누가 그랬는지 
     궁금했다. 항상 껌 씹는 사람을 찾으려면 판에 박힌 듯한 순서가 
     있었다. 선생님은 복도를 오르락 내리락했고 껌을 씹은 사람이 
     누군지 발견할 때까지 탐색견같이 끙끙거렸다. 그리고 죄진 
     학생을 끌어내어 껌을 종이에 싸게 한 다음 그것을 휴지통에 
     던지게 하는 것으로 이 큰 의식을 끝냈던 것이다. 이 과정은 
     항상 같았고 그녀는 그것을 빼먹는 일이 없었다.
       모든 사람은 처음 2, 3분 동안은 부지깽이같이 꼿꼿이 서 
     있었다. 나는 멜러니를 곁눈질로 보면서 입 안에 껌을 갖고 있는 
     애가 옛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이 두번째 줄 복도로 갔을 때 학생들은 가만히 있질 
     못했다. 애들은 킬킬거리며 말없이 표정으로만 서로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나는 태피가 선생님의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멋진 남학생들에게 엉덩이를 내밀어 몸짓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굉장한 생각을 했다. 위긴스 
     선생님은 껌을 씹은 사람을 찾으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것은 몸짓 언어를 연습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나는 그것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던 
     것이다. 연습할수록 더 잘할 수 있다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태피를 지켜보고 그녀가 하는 대로 따라 했다.
       나는 힘을 주어 오른쪽 엉덩이를 내밀었고 태피가 하고 있는 
     대로 그 위에 손을 얹었다. 그녀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 보고는 
     그녀를 쳐다 보는 모든 남학생들에게 웃어 보였다. 그것은 내가 
     랜디에게 웃어 보였던 것과 같은 종류의 웃음이었다. 나는 다시 
     시도했다.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고 뒤돌아 보는 모든 남학생에게 
     웃어 보였다. 전에는 6학급에 그렇게 멋진 학생들이 많이 있는 
     줄 몰랐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물론 나는 몸짓으로 말하는 것을 몇 번이나 실패했다. 한 번은 
     내가 샐리에게 웃고 있다고 생각햇는데 그는 선생님의 코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없이 손짓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 한 
     번은 내가 마크를 향해 웃어 주었는데 도중에 그 웃음은 
     칼렌스에게 떨어졌던 것이다. 랜디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았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벌써 한 번 내 
     뜻을 알아 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뒤에 앉아 있는 멋진 
     남학생에게 엉덩이를 내밀고 왼쪽 어깨너머로 쳐다보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막 시작하려고 고개를 뒤로 
     돌렸을 때 교실 뒤에서 복도를 뛰어 내려 오고 있는 위긴스 
     선생님과 거의 동시에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제너, 무슨 문제라도 있나?"
       선생님이 말하자 교실 안의 모든 학생들이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오."
       나는 말하면서 재빠르게 똑바로 섰다.
       물론 멜러니는 내게 통쾌하다는 표정을 보냈고 나도 그녀에게 
     기분 나쁜 표정을 보냈다. 다행스럽게 몇 분 뒤 선생님은 껌을 
     씹고 있는 학생을 찾아냈다. 그래서 모든 학생들은 선생님이 
     내게 말했던 것을 잊어 버렸던 것이다. 모든 학생들은 그녀가 
     앤디라는 소년을 쓰레기통까지 행진하게 하는 것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나머지 아침 시간도 꽤 지루했다. 나는 위긴스 선생님 앞에서 
     더 이상 멋진 남학생들에게 몸짓으로 내 뜻을 전할 수 없었다.
       오후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태피와 카페 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서둘러 사물함에서 도시락 가방을 꺼냈다. 태피는 
     우유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엉덩이를 꼬면서 웃었다. 
     나는 그녀가 꿈 속에서도 그러는지 궁금했다. 나는 크림과 
     치즈와 젤리가 묻은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물고는 태피가 빵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있는 것을 관찰하면서 그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그때 랜디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의 
     심장은 거의 멈출 것 같았다. 그는 나의 식탁으로 곧바로 
     향했는데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빵을 씹고 
     있었는데 그가 오기 전에 그것을 삼키려고 했다. 그가 앉았을 
     때쯤이면 나는 그런대로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나는 또 다른 어떤 사람이 내 뒤에 나타나는 소리를 들으면서 
     랜디가 나를 향해 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뜨거운 정식 쟁반이 
     탁 하고 식탁 위에 놓였다.
       "안녕, 제너. 앉아도 될까?"
       난 죽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그것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굉장한 멍청이 커티스였던 것이다.
       그는 내 바로 오른쪽에 앉았다. 그가 멋지다고는 꿈에도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랜디, 그는 '매드'잡지에 
     나오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그는 조금 전 내가 보낸 몸짓 
     언어의 뜻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태피 옆에 있는 
     다른 쪽 식탁에 앉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너무 표내지 않고 나를 바라볼 수 있도록 다른 쪽 
     식탁에 앉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아마 그는 나를 좋아한다고 말할 기회가 올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나는 올려다 보거나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물었고, 그것을 힘들게 씹고 있었다. 
     나는 나의 식탁 앞에 놓여 있는 점심을 흘끗 보고 놀랐으나 
     태연한 척하려 했다. 그것은 밀빵으로 만든 볼로냐 샌드위치와 
     콘칩 꾸러미, 초콜릿 케이크 조각들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평생 동안 밀빵으로 만든 볼로냐 샌드위치를 
     제외하곤 어느 것도 점심으로 먹지 않으리라. 나는 볼로냐 
     샌드위치를 만드는 챔피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초콜릿 
     케이크도! 그러면 랜디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만든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를 자랑할 것이다.
       "굉장한 소식 듣지 않을래?"
       커티스가 나에게 말했다. 사실 그는 내 귀에 대고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초대한 그를 무시하고 샌드위치를 먹는 데 몰두하려 
     했다. 나는 커티스에게, 그리고 그가 말하려고 하는 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랜디에게 알리고 싶었다.
       "얘, 너 졸고 있니?"
       커티스는 팔꿈치로 나를 찌르며 물었다.
       "말했잖아, 굉장한 소식이라고."
       "들었어."
       나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은 채 말하려고 했다.
       만일 내가 그와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랜디가 본다면 나는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인데?"
       랜디가 물었다.
       나는 힐끗 올려다 보았고 랜디는 그가 얘기한 것에 정말 
     관심이 있는 듯이 커티스를 쳐다 보았다. 나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랜디는 정말 친절하고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말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그제서야 나는 재채기 사건에 대해서 
     얘기했던 사람도 바로 커티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한 
     번만은 그와 얘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위긴스는 할로윈 축제에서 최고의 의상 상을 주기로 했대."
       그가 말했다.
       여러분은 아마 그가 그 사실을 꽤 중요하게 새각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어떻게 알았니?"
       나는 물었다.
       "내가 교장실 옆 분수에서 물을 먹고 있을 때 위긴스가 윈첼 
     선생님에게 얘기하는 것을 들었어. 그녀는 그것을 모든 
     학생들에게 말할 거야. 근데 상이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어."
       "야, 굉장하구나!"
       태피가 소리쳤다.
       "나는 벌써 할로윈을 위해 무엇으로 변장할지 생각해 놨어."
       나는 랜디가 어떤 의상을 입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만일 그가 
     나를 좋아한다며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특별한 복장을 함께 해 
     입자고 말한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엄마는 
     벌써 '즐거운 녹색 거인' 복장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로미오와 
     쾌활한 녹색 거인? 나는 그것이 몹시도 어울리지 않아 몹시 속이 
     상했다.
       그때 커티스가 내게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다. 
     나느 허둥대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의자 끝에 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더 그에게서 달아난다면 나는 의자에서 떨어질 
     것이다. 만일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커티스는 정말 내게 다가 
     올 것이고, 랜디는 커티스를 좋아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때 나는 킬킬거리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리고는 곧 뒤돌아본 것을 후회했다. 그것은 너무도 엄청난 
     일이어서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내 옛친구들이 두세 개 떨어진 
     식탁에 앉아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이 아주 크게 
     킬킬거려서 사람들이 하나 둘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나와 
     커티스를 똑바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10. 누군가에게 몸짓으로 말한다는 것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알았고, 그것을 즉시 해야 
     했다. 랜디는 지구상에서 마지막 음식을 먹는 듯 점심을 재빨리 
     다 먹어 치웠다. 그리고 카페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에도, 
     심지어 나에게조차 조금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일단 나는 
     기뻤다. 아니 실제로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 있다가 그가 고개를 들어 
     커티스가 나에게 바싹 다가앉고, 내 옛친구들이 미친 듯이 
     킬킬거리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곳을 나오기로 마음먹었다. 태피는 여전히 조금씩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고 한 입 먹은 뒤마다 분홍색 종이 
     냅킨으로 자신의 입을 가볍게 두드리곤 했다. 내가 반밖에 먹지 
     않은 도시락을 가방에 넣고 일어섰을 때만 그녀는 나를 쳐다 
     보았다.
       "운동장에서 보자."
       나는 그녀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문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홀 안에 들어선 즉시 내가 식당을 나온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를 보았다. 그러나 그대는 너무 늦어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를 놀린 것이었다. 네 명의 옛친구들은 
     서로에게 화 내었던 것을 그만두고 지금은 나를 집단적으로 
     공격하고 놀려서 나를 달아나게 했으며 랜디 앞에서 나를 바보로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이 다시 함께 다니는 것을 벌써 
     눈치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들이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랜디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시기했고 우리 사이를 떼어 
     놓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 
     커티스를 시켜서 내 옆에 앉게 하고 점점 더 가까이 좁혀 앉아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장면에 랜디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그들 모두가 소란을 
     피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계략은 효과가 없었다. 나는 만족했다. 랜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계속해서 점심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들의 계교를 보고 누가 옳은지를 알았을 것이고 
     일부러 그들을 무시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바로 그거였다! 
     그렇게 했음이 틀림없다. 랜디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너는 아직도 너를 좋아하는 멋진 남학생이 있다고 내가 
     말했던 것을 믿을 수 없니?"
       태피였다. 내 신발이 밟힐 정도로 그녀는 내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내가 말했다.
       나는 태연한 척하려 했으나 내 귀가 달아 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그녀는 내가 랜디와 스콧 그리고 마크에게 아침 
     수업 전에 몸짓 언어로 내 뜻을 표현하는 것을 보았고 내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또한 살펴 보았었다. 그녀는 랜디가 나를 
     불렀던 것조차 알고 있을 것이다.
       "난 그가 나에 대한 생각을 말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양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는 그에게 모든 기회를 주고 있어."
       태피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곤 마치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린 듯 얼굴을 들었다.
       "아마 그는 너무 부끄러워서 네 앞에서 직접 말하진 못할 
     거야. 전화해 보지 그래?"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전화하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질렀다.
       나는 그렇게 크게 얘기하려고 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럴 수 없어."
       "왜 못 하니? 다른 여학생들은 늘 남학생들한테 전화하던데."
       "그러나 무슨 말을 해?"
       "그가 너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만 물어 보면 돼. 그는 
     너에게 말하고 싶어 안달할 거야. 내가 대신 전화할까? 그는 
     벌써 너ㄹ 좋아한다고 전에 나에게 말했어. 내가 다시 물으면 
     그는 아마 나를 이상한 애라고 할 거야."
       내가 랜디에게 전화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나는 태피가 그것을 생각해 낸 것이 
     기뻤다.
       오후 수업 시간 내내 나는 전화로 무엇을 말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자마자 나는 그에게 전화할 
     것이다. 그때면 엄마는 여전히 일터에 있을 것이고 나는 통화할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번호를 돌릴 
     것이고 첫번째 벨이 울리면 그가 받을 것이다.
       "여보세요!"
       그는 말할 것이고,
       "안녕."
       나는 대답할 것이다.
       "나, 제너야."
       "오, 제너. 전화해 줘서 기뻐."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낭만적일 것이다.
       "너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어."
       "여러분 딴 데 정신 두지 마세요!"
       위긴스 선생님이 소리치는 바람에 내 공상은 깨어졌다. 그녀는 
     교실 앞에 서서 키를 한 2피트 정도로 보이게 하려고 몸을 
     꼿꼿이 세웠다. 그녀의 얼굴엔 폭풍을 동반한 무서운 구름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자, 한 번 더 이것을 살펴 봅시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으려 했다. 그녀는 동명사에 관한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동사 끝에 'ing'가 붙으며, 명사처럼 
     사용된다고 했다. 어떤 동사가 명사처럼 쓰인다면 많은 학생들이 
     언어를 배울 때 덜 고생하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아주 열심히 집중하려 했으나 내 마음은 랜디에게서 떠날 수 
     없었다. 나는 수업이 끝난 뒤 전화하기로 결심했다.
       "여보세요."
       그는 말할 것이다.
       "안녕, 제너야."
       나는 대답할 것이다.
       "오, 제너. 나는, 전화해 줘서 정말 기뻐."
       그는 부끄러워서 말도 잘 못하고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만 기다릴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부드러울 것이고 로맨틱해서 나를 아주 
     편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말할 것이다.
       "나에 대한 느낌을 네가 말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서......."
       그러나 그가 대답하기 전에 선생니은 나에게 문제를 풀게 
     했다.
       "제너, 그만 깨고 일어나 동명사가 들어간 문장을 만들어 
     볼래?"
       그녀의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확성 장치에서 울려 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동명사, 동명사. 나는 일어 서려고 하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 귀는 머리 양쪽에 붙은 발갛게 달구어진 포크 같았다.
       동사 끝에 ing가 붙고 명사 역할을 하는 것. 나는 기억했다.
       갑자기 나는 한 문장을 생각해 냈다.
       "누군가에게 전화한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야."
       나는 무심코 이렇게 내뱉었고 곧 그 문장을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나는 재빨리 앉으며 랜디가 여전히 나를 보고 있는 것을 
     곁눈질로 살펴 보았다. 나는 너무 당황해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남은 오후 동안 나는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전부 
     들었다. 그 밖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루 동안 줄곧 
     바보짓만 했었다. 그러나 만일 내 뇌 속의 작은 주름들을 
     빼낸다면 하나만이 진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난 뒤 랜디에게 전화하는 것, 그것이었다.
       끝나는 종이 울렸을 때 위긴스 선생님이 말했다.
       "잠시만 자리에 남아 있어요. 여러분. 나는 할로윈 파티에 
     관한 중요한 것을 결정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도와야 하는데, 
     나는 그 일을 이끌 위원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 
     지원자 없어요?"
       "저요, 위긴스 선생님."
       "좋아요, 커티스. 그러면 위원회에서 같이 일할 사람 있어요?"
       모두들 벙어리가 된 듯 깊은 침묵이 흘렀다. 파티는 
     재미있지만 위원회에서 일하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위긴스 
     선생님과 커티스가 있는 위원회에는.
       나는 옛친구들과 함께 참여했던 지난해 파티를 생각했다. 
     지난해는 베스가 제안한 의상으로 했었다. 우리 5인조는 해골 
     복장을 사 달라고 부모를 졸라 흰 뼈가 그려진 검은 옷에 고무로 
     된 해골 마스크를 쓰고 등장했었다. 우리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해 주려고 했었고,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멜러니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 차린 것을 제외하면 실제로 큰 효과가 있었다. 해골 
     복장을 하여서도 그녀는 뚱뚱해 보였고 웃기기조차 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자, 여러분."
       위긴스 선생님이 말했다.
       "다른 지원자가 없다면 위원장인 커티스가 위원들을 뽑도록 할 
     거예요. 커티스 누구와 같이 위원회에서 일하고 싶지?"
       나는 연필을 움켜 쥐고는 책상 밑으로 몸을 수그려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다. 지금이야 말로 그렇게 할 
     때다. 나는 연필을 따라 등을 굽혔다. 그것은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었겠지만 주목을 덜 받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제너."
       커티스는 차라리 사망자 명단을 부르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는 마크 트웨인 중학교에서의 내 죽음을 경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시는 그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랜디가 
     뭐라 생각할까?
       "태피."
       당연히 그는 태피를 뽑았다. 어떤 남학생이라도 다 그랬을 
     것이다. 그것은 내게 가물거리는 희망이라도 주었다. 그녀는 
     위원회에서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될 것이다.
       "베스."
       그 희미한 희망은 반딧불의 꼬리에서 불이 꺼져가듯 사라져 
     버렸다. 커티스, 태피, 베스 그리고 나 우리 모두는 같은 
     위원이었다. 그가 좀 더 철이 들었더라면 그런 식으로 짜지는 
     않았을 텐데.
       "음, 샐리와 랜디도 좋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위원회에 속한다는 것이 나쁘지는 않게 생각되었다.
       랜디와 나는 여태까지 학교에서 볼 수 없었던 가장 멋진 
     할로윈 파티를 짤 것이다. 그것은 학교 역사에 남을 것이고, 
     윈첼 교장 선생님은 우리에게 특별히 상을 줄지도 모른다. 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기뻤다.
       "내 생각엔 충분해요. 커티스."
       선생님이 말했다.
       "장식하는 것과 다과에 대한 것을 우원들과 만나 의논하고 
     정리하는 게 어때? 그리고 계획을 짠 것을 내게 알리도록 해요. 
     해산!"
       나는 서둘러 사물함 있는 데로 갔다. 물론 바보 커티스는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너, 할로윈 위원으로 우리가 같이 일하는 게 굉장하지 
     않니?"
       "그래, 굉장해."
       나는 중얼거렸다.
       그때 나는 옛친구 네 명이 언덕을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아직 나를 보지 못했다. 그들이 보기 전에 나는 커티스를 
     떼어 놓아야 했다.
       "자, 커티스."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5조까지 세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세어 보시는 게 어때?"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서 여러분은 그가 힌트라도 얻었는 줄로 
     생각했을지도 모르나 그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할로윈 축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맙소사! 하필이면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옛친구들은 벌써 그의 바로 옆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뒤돌아 
     보고는 웃었다. 나는 그때 사람은 몸짓으로 말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짓으로 말하는 것은 정말 
     굉장한 힘이었고 효과도 좋았다. 지금 커티스와 랜디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내가 
     처음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했을 뿐이었다. 
     옛친구들은 막 그것을 알게 된 것이다.


        11. 그는 분명히 나를 좋아하고 있어. 

       한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았다. 나는 결국 커티스를 따돌리고 
     집으로 왔다. 엄마는 머리를 자르느라 늦을 거라는 말을 쓴 
     쪽지를 냉장고 위에 남겨 놓았다. 나는 기뻤다. 그것은 랜디가 
     학교에서 늦게 돌아 오거나 통화 중일 경우 전화하는 데 많은 
     시간적 여유를 갖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곧장 내 방으로 가서 침대 위에 책을 던져 놓고는 재킷을 
     벗고 거울을 쳐다 보았다. 나는 무시무시해 보였다. 머리는 
     엉망진창이었고 선명한 빨간 여드름은 코 옆에 불쑥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엉망인 모습으로 어떻게 랜디에게 전화할 수 
     있을까? 나는 목욕탕으로 뛰어 들어가 세수를 했다. 그러자 
     여드름은 더욱 더 빨갛게 드러나 보였다. 그래서 엄마의 베이지 
     색 화장품을 얼룩덜룩하게 바르고 여드름 위에 진 화장품 얼룩을 
     가볍게 두드렸다. 나는 만족하게 웃어 보였고 머리를 빗었다. 
     준비가 다 됐다. 지금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하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급히 거실로 들어가서 전화기 앞에 똑바로 섰다. 갑자기 
     수천 마리의 거미가 내 등뼈를 기어 오르는 것처럼 몸이 
     오싹해졌다. 랜디가 내가 전화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학교에서 공상했던 대로 될까? 그가 태피에게 얘기한 뒤로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이 변했다면 어떡할까? 누가 전화하는지 
     그가 알았을 때 갑자기 전화를 끊으면 어떻게 할까? 나는 힘이 
     쭉 빠졌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우리 아파트의 지하실에 숨어서 지낼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 랜디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다시 
     처음부터 6학급을 시작할 것이다.
       갑자기 내게 굉장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랜디에게 전화할 
     때 목소리를 바꿀 것이다. 나는 제너의 친구라고 말할 것이고 
     내가 누구인지를 전혀 모르도록 내 목소리와는 아주 다르게 
     얘기할 것이다. 그 방법은 그가 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아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또한 그가 나에 대해 
     지독한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직접 그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모를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바꿔 전화했던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려고 했다. 그들은 대부분 송화기 위에 수건 같은 것을 
     올려 놓곤 했었다. 나는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손수건이 
     아니라 무릎까지 오는 양말이 최소한 한 타스는 마루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깨끗한 것으로 하나를 골라 서둘러 전화기 
     쪽으로 갔다. 그리고 발가락 있는 데가 전화기 위에 오도록 
     양말을 씌었다. 나는 뚜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신호음을 
     그고 목소리를 꾸며 연습했다.
       "여보세요, 랜디 좀 바꿔 주시겠어요?"
       내 목소리는 평상시 목소리와 똑같이 높고 짹짹 거리게 
     들렸다. 나는 전화기 위에 씌운 양말의 효과가 없음을 알았다. 
     거실 안에는 그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부엌에도 목욕탕에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여드름 위에 
     화장품을 좀 더 덧바르기 위해 목욕탕에 들어 가서야 나는 내가 
     찾는 것을 구할 수 있었다. 솜으로 만든 공. 엄마는 그것을 
     얼굴에 크림을 바를 때 쓰기 위해 화장품 곽 위 작은 그릇에 
     얹어 두었었다. 나는 한 손 가득 그것을 쥐어서 입 안에 채우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는 확실히 변화되어 들렸다.
       "야호."
       그러나 그것은 목구멍으로 넘어가려 했고 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혀 뱉아 버리고 말았다. 입 안을 채울 구역질 
     나지 않는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까의 그것을 다시 써야 될 모양이었다. 
     랜디에게 전화한다는 것은 너무도 중요했다. 지금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속이 좀 괜 찮아진 것 같아 나는 그 솜뭉치들을 
     하나씩 볼 안으로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내 모습을 보기 위해 
     뒤돌아 섰다. 나는 TV 수상기가 달린 전화가 지금 나오지 않고 
     미래에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내 얼굴은 
     마치 단핵 세포증에 걸린 것처럼 부풀어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킬킬거렸다. 학생들은 단핵 세포증을 키스해서 난 병이라고 
     했다.
       나는 랜디의 전화 번호를 외고 있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기 
     시작할 때부터 외워 두었던 것이다. 나는 그에 관한 다른 것들도 
     알고 있었다. 내가 그에 대해 새롭게 아는 것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나는 그의 완전한 이름도 알고 있었다. 
     렌달 스펜서 커윈. 그리고 생일은 1월 31일. 그의 아버지 이름은 
     로버트고 전기 기사였다. 엄마는 헬렌으로 부동산업을 했다. 
     누나 캐시는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개, 하이디라고 부르는 
     네델란드산 작은 개도 있었다. 나는 심지어 차 안에 있던 그의 
     아버지도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면허 고유 번호가 RK 
     4097이라는 것을 포함하며 차에 대한 것들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내가 그의 번호를 돌리는 동안 내 입이 
     양말의 발가락 있는 곳에 정확히 있게 하기 위해 수화기를 바로 
     잡았다. 번호를 돌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손이 몹시 떨렸고 
     가슴은 폭발해 버릴 듯이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호음이 떨어지자 나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나는 전화하기에 좋지 않은 시간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아마 
     랜디도 바쁠 것이다. 아니 그의 가족 모두가 바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화 받기가 힘이 들지도 모른다.
       신호음이 다시 울렸다.
       나는 목구멍으로 침을 삼켰다. 그러나 침이 솜으로 흡수되어 
     입술이 메말라 보였다. 그들은 너무 바쁠 것이고 전화를 
     받더라도 화를 낼지도 모른다.
       세번째 신호음이 떨어졌다.
       아마 그들이 전화를 받고서 화를 내기 전에 전화를 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여보세요."
       랜디였다! 그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나는 '여보세요'라고 
     대답하려 했으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공기뿐이었다.
       "여보세요."
       그가 되물었다.
       "누구세요?"
       내가 옳았다. 그는 너무 바빠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화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지 말아야 될 모양이었다. 아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일을 끝내야 했다.
       "여부세이유."
       내가 말했다.
       나는 아차 했다. 입 안에 솜뭉치를 넣은 채 연습하는 걸 깜박 
     잊었던 것이었다.
       내 혀는 내가 뜻하는 곳으로 가지 못했다. 입술은 마주치지 
     않았고 혀를 뒤로 뺄 수도 없었다.
       "윈디니?"
       "그래요, 근데 누구세요?"
       내 목소리는 다른 사람 목소리로 꾸며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 제너는 실지로 랜디와 전화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깊게 숨을 쉬고 계속했다.
       "나은 제너의 칭구야. 나는 너가 그녀를 어떻게 니끼는지 물어 
     보려고 전화하는 거야."
       "누구 친구? 어쨌든 왜 그렇게 이상한 목소리로 말하는 거야?"
       나는 부어오른 얼굴로 말을 하는 자신이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그는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자하 모가."
       나는 명확하게 말하려 했다.
       "나는 가기가 걸려써. 그리고 코가 마켜서."
       "음."
       그는 의심스러운 듯 말했다.
       "좋아, 네 이름은 뭐니? 마크 트웨인 중학교에 다니니?"
       "넌 궁금할 거야. 난 다만 너가 자하를 어떠케 니끼는지 알기 
     원해."
       "이 봐."
       그는 심술궂게 말했다.
       "내가 제너에 대해 어떻게 느끼든 상관하지 마. 내가 누구에 
     대해 어떻게 느끼든 개인적인 문제야. 내가 말하고 싶을 때 내가 
     얘기할 거야."
       그리고 그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흥분이 되어 미칠 것 같았다. 수화기를 귀에 댄 채 그저 
     서 있었다. 신호음 소리가 마치 음악같이 들렸다.
       그는 말했었다. 그가 원할 때 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말할 
     것이라고. 딱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태피가 말해 주었듯이 
     랜디, 그는 분명히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었다.


        12. '환상의 4인조'가 된 '환상의 5인조' 

       다음 날 학교에 가면서 랜디와의 통화에 대해 태피에게 빨리 
     말하고 싶어졌다.
       "네가 정말 해 냈어?"
       그녀는 물었다.
       나는 정말 힘주어 말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자부심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래, 그가 뭐라고 했니?"
       나는 내가 어떤 방법으로 목소리를 꾸몄고 그가 나에 대해 
     느끼는 것을 직접 말하겠다고 한 대목을 태피에게 해 주고는 
     그녀가 내게 몸짓으로 말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까지 말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그녀는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어쨌든 나는 학교에 가면서 내 생활이 거의 완전해 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손가락을 세 번 꼬았다 풀었다 하면서 랜디가 
     내게 말할 날을 위해 행운을 빌었다.
       나는 학교 운동장에서 그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교실로 들어 갔을 때 그는 벌써 와 있었다. 나는 책상에 
     앉으면서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그에게 몸짓으로 
     말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곧 종소리가 마지막으로 울렸다. 
     그때 베스가 교실에 들어 왔는데 그녀 뒤를 멜러니, 캐티, 
     크리스티가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자리를 갖고 
     있는 듯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들은 '환상의 4인조'라고 쓴 푸른 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죽고 싶었다. 내 얼굴은 빨갛게 타오르고 귀는 너무 
     뜨거워 책상 위로 떨어져 녹아 버릴 것 같았다. 내 옛친구들은 
     나를 집단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환상의 4인조!', 
     그들은 나를 미워했고 그것을 전교생이 보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들은 내가 너무 미웠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 사실을 아는 
     것조차 개의치 않았다.
       그 때 위긴스 선생님이 나타났다. 물론 즉각 그녀의 눈길은 
     티셔츠에 가서 멈추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녀는 어떻게 
     할까?
       그녀는 잠시 동안 깊게 생각하듯이 그 모습을 바라 보았다.
       "음, 이제 네 명뿐이구나. 너희들은 농구팀은 안 되겠다, 
     그렇지?"
       "아니오, 선생님."
       크리스티가 말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는 빨리 대답했다.
       "우리는 개인적인 모임으로 만들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우리들은 4인조라고 불려요."
       크리스티가 그것을 말하는 투로 보아서 그녀가 그 말을 얼마나 
     연습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들 네 명은 아마 선생님에게 해야 
     할 말을 고르기 위해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모임의 
     목적을 사실대로 말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연습을 했을 것이다. 나는 선생님에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음에 무슨 일을 할지 듣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위긴스 
     선생님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이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내게 이상한 표정을 던지고 그들에게 
     자리로 가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나를 지나치면서 나를 바라 
     보았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거만한 표정을 
     지어줄 수 없었다.
       그 때, 오늘만은 더 이상 나쁜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는데 그것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점심 시간이 지나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위긴스 선생님이 일을 만들었다.
       "할로윈 파티 위원들은 오후 휴식 시간에 장식과 다과에 대한 
     계획을 짜기 바랍니다. 할로윈은 일주일도 안 남았으니까."
       우리는 선생님이 제안한 것의 의미를 알았다. 쉬는 시간의 
     종이 울렸을 때 학생들은 선생님과 함께 코트를 집어 우르르 
     밖으로 몰려 나갔고 우리 여섯 명은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커티스는 뚜껑을 열면 튀어 나오는 인형처럼 벌떡 일어나 
     책장이 있는 모퉁이의 독서대까지 행진하듯 걸어갔다.
       "여기서 모이자."
       그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샐리가 첫번째로 그 뒤를 따랐고 그 다음이 랜디와 태피였다. 
     나도 그 곳에 가야 했지만 발이 콘크리트 바닥에 붙어 버린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정말 베스의 맞은편 책상에 앉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베스 역시 그 곳에 가지 않고 있었다.
       "야, 너."
       커티스가 불렀다.
       "시간이 없어."
       갑자기 베스가 뛰어서 책상으로 달려갔다. 그녀와 커티스 
     사이에 빈 의자가 하나만 남게 되었을 때 그녀가 왜 늦게 뛰어가 
     앉았는지 이해가 갔다. 그녀는 일부러 그랬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얼간이와 베스 사이에 앉아야 했다.
       모두 앉았을 때 커티스는 회의를 시작했다. 랜디는 오렌지와 
     검은 색 바탕의 오글오글한 천으로 강당을 꾸미자고 제안했다. 
     태피는 감자 스낵과 사이다로 다과를 차리자고 제안했다. 샐리는 
     자기 엄마가 케이크를 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베스 역시 그랬다.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며 
     거기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때 나는 누군가 나를 바라 보고 있다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곁눈질로 그가 누구인지를 알았을 때 내 심장은 멈추어 
     버리는 듯했다. 그건 랜디였다. 그는 바라보는 것이 이상으로 
     아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 전화한 것 때문에 
     그럴까?' '누가 전화했는지 아직도 궁금한 걸까?'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을 알까?' 그는 화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마 그는 누군가가 전화해 준 것을 고마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 곳에 똑바로 앉아 온 신경을 써서 내게 
     말하려고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갑자기 베스의 발이 내 발을 미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의자를 내 옆으로 당겨 나를 밀어낼 수 있을 때까지 가까이 
     오려고 했다.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 보았다. 나는 적의 있는 
     표정을 지어 보내며 내 의자를 그녀에게서 끌어 당겼다. 그러자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를 알았다. 
     그녀는 내 의자를 커티스에게 가까이 가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하는 대로 그냥 놔 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주 
     멋진 4인조 티셔츠를 입고 랜디의 바로 앞에 있는 커티스의 무릎 
     쪽으로 나를 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독기 어린 눈을 그녀에게 던졌다.
       "잠깐 기다려."
       나는 중얼거렸다.
       "난 너에 대해 들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부 얘기할 거야."
       나는 실은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베스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베스의 눈은 커졌고 그녀는 무엇을 되받아 말할 듯 입을 
     벌렸다.
       그 때 위긴스가 교실로 들어왔다.
       "자, 위원들. 뭘 짰지?"
       커티스는 그의 생각처럼 들리는 계획들을 그녀에게 얘기했다. 
     나머지 학생들의 휴식이 끝나고 들어올 때 우리는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곧장 내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밑에서 상자를 끌어내고 5인조 공책과 검은 매직을 꺼내서 
     미리 생각했던 하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나는 5인조에 관한 모든 
     페이지를 찢어서 그것을 휴지통에 처 넣었다. 그것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빈 페이지 위쪽으로 '환상의 4인조'라고 쓰고 
     그 맞은편 아래에는 옛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썼다. 그 동안 
     생각했던 것을 지금 쓰려고 하고 있는 중이었다. 첫째 줄, 
     각자의 이름 밑으로 나는 '시기'라고 썼고 다음 두 번째 줄에는 
     '건방진' '건방진' '건방진' '건방진'이라고 역시 네 번 썼다. 
     세 번째 줄에도 네 번이나 '상스럽다'고 썼고 네 번째 줄에는 
     '얼간이'라고 썼다. 아마 얼간이 커티스도 그들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엄마가 집에 돌아 왔을 때까지 계속 덧붙여 옆줄까지 써 
     내려갔다. '바보' '우둔함' '비열' '자만' '추잡' 난 그제서야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나도 엄마가 결점 대신 장점을 찾으라고 
     했던 말에는 마음쓰지 않았다. 이 세상의 결점이란 결점은 모두 
     그 친구들이 갖고 있었다.
       "핑크 씨가 우리와 함께 저녁을 먹어도 괜찮겠지?"
       내가 공책을 상자 안에 감춘 뒤에 엄마가 들어와서 말하고는 
     부엌으로 갔다.
       "네."
       나는 약간 멍청하게 말했다.
       그 때 나는 핑크 씨가 집에 와 있든 달나라에 가 있든 전혀 
     마음쓸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치즈를 만들자. 자르는 걸 도와 줄래?"
       "네."
       나는 다시 대답했다.
       엄마는 샐러리와 양파, 버섯, 도마와 칼을 내게 갖다 주고는 
     닭가슴의 뼈를 발라내고 고기를 작게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음식 재료를 자르고 중국 냄비에 그것을 볶으려고 젓는 것으로 
     엄마를 돕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엄마가 항상 그러듯이 내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묻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는 묻지 
     않았으나 대신 나의 즐거운 녹색 거인 복장 이야기를 했다.
       "녹색 스웨터를 샀다. 내가 만들고 있는 작은 점퍼 밑에 
     입으면 몸에 꼭 맞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아직도 서른 겹을 잘라야 해. 오늘 밤 핑크 씨가 온 뒤에도 
     꺾쇠 바늘로 그것을 고정시켜야 해. 너도 알다시피 지붕의 
     차양같이 겹쳐 바느질하는 거 말이야. 아마 귀여워 보일 거야."
       그 때 나는 내 친구의 목록에 덧붙일 또 다른 결점을 생각해 
     냈다.
       "그래요, 엄마."
       나는 말했다.
       "곧 돌아 올게요."
       나는 손을 닦고 급히 내 방으로 가서 공책을 다시 꺼내서 
     열번째 줄에 '꼬마'라고 쓴 뒤 그 페이지를 봤다. 기분은 더 
     좋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응석쟁이'라고 네 번 썼다. 
     결점들은 더 많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버릇없음' '버릇없음' 
     '버릇없음' '버릇없음'. 나는 줄곧 페이지 중간까지 써 
     내려갔다.
       핑크 씨가 도착하기 전부터 나는 배가 고팠다. 엄마와 나는 
     항상 6시 15분쯤에 저녁을 먹었다. 그러나 그가 막 문을 
     노크했을 때 내 시계를 보니 벌써 7시 8분 35초였다.
       핑크 씨는 식사하는 동안 얘기했고, 나와 잘 지내는 것도 
     얘기했다. 엄마와 내가 식탁을 치울 때 나는 목록에 기록할 다른 
     결점을 또 생각해 내었다.
       "잠시만 실례할게요."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공책을 꺼내면서 
     웃었다. 사실 나는 '가슴이 빈약함'이라고 네 번이나 쓴다는 
     것이 우습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멜러니 이름 밑에는 
     그것을 쓰지 않으려 했으나 어쨌든 썼다. 그녀도 그렇게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던 것이다. 더 이상 다른 결점을 생각해 낼 수 
     없었을 때 마침 전화가 와서 나는 공책을 다시 밀쳐 두었다. 
     벨이 두 번 울릴 때까지도 다른 결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전화 내용은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좀 있다가 엄마가 내 방문을 두들겼다.
       "제너, 전화 왔어."
       "나한테?"
       나는 큰 소리로 물었다.
       도대체 누가 나한테 전화를 했을까? 태피는 아닐 것이다. 
     그녀의 집에서는 저녁을 먹은 뒤에는 절대로 전화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온 몸이 흥분으로 들먹이기 시작했다. 랜디일 것이다. 
     그가 분명했다. 그는 마침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려고 전화한 
     것일 것이다.


        13. 나는 진정한 내 모습을 보이고 싶어. 

       내가 재빠르게 전화기 쪽으로 달려 갔을 때 엄마는 얼굴 가득 
     환하게 웃고 있었다.
       "베스야."
       엄마가 말했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베스! 나는 왜 베스가 내게 전화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수화기가 무슨 뱀이라도 되는 듯 전화기를 
     향해 갔다. 그리고 그들의 '환상의 4인조'라고 씌어 있는 지독한 
     티셔츠와 할로윈 파티 때문에 위원회 모임이 있었을 때 베스가 
     내게 얼마나 건방지게 굴었던가를 생각했다. 나는 전화기를 
     책상에서 나꿔채듯 딱딱거리며 말했다.
       "여보세요."
       "제너, 너 태피가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 말해라!"
       베스는 아예 내 귀에 대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가 
     지나치게 과장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했던 것은 그녀에게 그리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었던 것이 분명했다.
       "만일 네가 무슨 말을 들었다면 그것은 분명 태피에게서 나온 
     것일 거야. 그 애는 너의 유일한 친구니깐."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난 정말 화가 났다.
       "난 네게 말할 것이 하나도 없어. 게다가 태피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야. 만일 그 애가 나한테 말하지 않았다면 네가 나를 
     얼마나 시기하고 있으며 그 앙갚음으로 사람들에게 내가 
     남자한테 미친 사람이라고 떠벌이고 다니는지 몰랐을 거야."
       나는 혼자 웃었고 한 두 가지 더 그녀에게 말하려 했다.
       "이 봐, 자부심 강한 아가씨. 태피가 너에 대해 말한 것도 
     사실일 걸."
       "나에 대해?"
       나는 의심스럽게 물었지만 동시에 서늘한 느낌이 내 가슴을 
     찌르기도 했다.
       "너에 대해서."
       베스가 말했다.
       "오늘 수업이 끝나고 태피가 화장실에 있는 걸 봤어. 그 앤 
     미친 듯이 웃고 있었는데 내가 뭐가 그리 우습냐고 물으니까 
     '제너가 남학생들에게 몸짓만 가지고 말하려고 하는데 그 애가 
     하는 꼴을 꼭 아기가 이야기하는 것 같애.' 그러더라."
       내 가슴은 얼어 붙으며 철렁 내려 앉았다.
       "그 앤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 그건 네가 꾸며댄 것이지?"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야, 그 애가 다 얘기한 거야. 랜디가 너를 좋아 한다고 
     네가 착각하고 있다고 말하던데. 랜디는 너를 좋아하지 않아. 
     너를 좋아하는 남학생은 커티스뿐인 걸."
       나는 탕 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고 내 방으로 돌아 갔다. 그 때 
     엄마와 핑크 씨가 나를 보고 있었고 모든 걸 듣고 있었다. 나는 
     미끄러지듯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었다. 어두운 
     것이 다행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베스가 한 말이 내 가슴에서 메아리쳤다. '너는 랜디가 너를 
     좋아하고 있는 줄로 네가 착각하고 있다고 그 애가 말하던데, 
     그러나 그는 널 안 좋아해. 너를 좋아하는 유일한 남학생은 
     커티스뿐이야.' 사실일 리가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있었다. 태피는 예전에 우리가 그녀에 
     대항해서 클럽을 만들었을 때처럼 아직도 나를 미워했다. 그녀는 
     내 친구와 랜디, 그리고 나머지 6학급 학생들 앞에서 나를 
     바보로 만들 기회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가 서로의 결점을 얘기하며 5인조 모임이 깨진 뒤 
     학교에서의 첫번째 아침을 기억했다. 그 날은 베스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운동장에서 나를 랜디의 애인이라고 불렀었다.
       바로 그 다음 날 태피는 나에게 걷자고 했고, 내 친구들이 내 
     등 뒤에서 나를 비방했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또한 랜디가 나를 
     좋아한다고 내게 말했던 날도 바로 그 날 아침이었다.
       그녀가 거짓말을 했었다니. 그러나 나는 우리가 그에 대해 
     얘기했었던 것을 되짚어 생각하면서 그녀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말한 적이 
     없으며 그녀가 말한 것은 전부 '나를 좋아하는 멋진 
     남학생'이라고만 표현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랜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물어보기 위해 그에게 전화도 했었다. 목소리를 
     꾸몄던 일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는 정말로 태피가 외롭고 
     친구 사귈 줄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내 옛친구들은 나를 
     풋내기라고 말했지만 나는 내가 어리석었음을 알았다. 나는 
     어리석음과 풋내기가 같은 뜻인지 아닌지 궁금했다.
       잠시 뒤 나는 일어나서 불을 켰다. 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던 다른 하나는 태피가 내가 몸짓으로 말하는 것이 어린애가 
     이야기하는 것같이 보인다고 말했던 것 때문이었다. 그 사실은 
     그 애가 건방진 애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울 
     앞에서 걸었다. 물론 나는 태피가 걷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보다 잘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할 일을 말해 준 
     것은 다 해 내었고 매일 그것을 연습했었다.
       그녀도 나를 시기했고 점점 좋아지는 나와 경쟁할 것을 두려워 
     했는지 모른다.
       나는 엉덩이를 내밀고 머리를 치는 내 모습을 곁눈질로 보면서 
     좀 기분이 좋아졌다. 예전의 내 모습이 애기가 얘기하는 것 같이 
     어색해 보였을지 모르나 이번에는 분명히 그렇지 않았다. 나는 
     엉덩이를 흔들고 머리를 치면서 껑충껑충 내 방을 돌아 다녔다. 
     나는 이제 태피가 필요치 않았다. 옛친구도 필요치 않았다.
       그 때 나는 거울에서 다른 얼굴을 보았다. 엄마가 문 안에서 
     나를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미안, 제너."
       엄마는 더듬거렸다.
       엄마는 내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하려고 했다.
       "네가 너무 화를 내서. 핑크 씨는 막 떠났어. 그래서, 응, 
     문이 좀 열려 있어서."
       나는 태연한 척하려 했으나, 침이 목구멍에서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괜찮아요, 엄마 . 특별하게 할 게 없어서 그저 
     빈둥거렸어요."
       엄마는 내가 화내지 않은 것을 보고 안심하는 것 같았다.
       "만일 남학생이 이 방에 있었다면 분명 꼬리친다고 했을 
     거야."
       엄마는 말했다.
       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꼬리친 게 아니에요."
       나는 재빨리 말했다.
       "그건 몸짓 언어에요. 학교에서 배웠어요."
       "꼬리치는 것 같던데."
       엄마는 말했다.
       "만일 학교에서 배웠다면, 위긴스 선생님한테서는 배우지 
     않았을 거야."
       그녀는 돌아서 나가려다가 다시 뒤로 돌아섰다.
       "제너, 꼬리를 치든 몸짓 언어라고 하든 네가 무어라 
     부르든지, 잘못된 것은 아니야."
       엄마는 나를 바라 보며 재빨리 말했다.
       나는 따분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엄마를 보고 나도 알고 
     있다고 말하려 했으나 엄마는 계속 얘기하고 있었다.
       "꼬리 치는 것이 좋은 점은 한 가지 있지."
       "뭔데요?"
       나는 물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 그 말은 사람들이 너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야."
       그 말은 마치 무거운 벽돌이 나를 때리는 것 같았다.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돌아다 보았다. 엄마가 방을 나간지도 모르고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거기에 서 있었다.
       나는 엄마가 말한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진실한 나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문젯거리였다. 나는 엄마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엄마가 핑크 
     씨에게 얘기할 때, 몸짓으로 말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관찰하려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엄마는 그러지 
     않았었다. 엄마는 벌써 그의 관심을 끌었었고 지금 그가 엄마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잠옷을 입고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가슴을 크게 하는 훈련과 또한 나의 비밀스러운 의식을 치르지 
     않았다. 나는 그저 거기에 누워 천장을 바라 보았다. 내 삶을 
     생각하면 나도 잠이 오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나의 장점을 
     생각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나의 결점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깊게 생각해 보면 친구들 각자의 결점을 서로에게 말하자고 
     내가 제안한 때부터 나도 결점만을 찾으려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그렇게 흥분할 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언젠가는 
     태피와 내가 멋진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늘 다니는 것을 
     옛친구들이 보고 배가 아파 죽게끔, 시기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얼마나 잘못했었고 그들 역시 잘못됐었다는 
     것을 알려 줄 것이다. 만일 내가 그들이 생각한 대로 남자에게 
     미친 사람이면 얼간이 커티스에게도 미쳤을 것이다. 그들이 내게 
     잘못했던 것 만큼 나도 그들에게 잘못했다.
       나는 옛친구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들이 다시 합쳐 함께 
     돌아 다니는 것을 볼 때는 정말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들이 
     이제는 더 이상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었다. 그들이 다시 친구가 되고 나와 태피에게 합세하여 
     공격할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전화로 서로 얘기했는지도 모른다. 한참 
     동안 나에 대한 그들의 마음이 변할 수 있는, 진정한 내 모습을 
     보게 하는 방법에 대 생각했다.
       나는 머리를 베개 속에 묻고 얼마나 그들이 그리운지를 
     생각했다. 나는 전에 엄마가 얘기해 주었던 것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사과하기를 원할 때 항상 한 사람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햇다. 그러나 난 그럴 수 없었다. 내 옛친구들은 나와 
     함께 다시 다니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내가 
     지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어나 책상의 
     불을 켜고 상자에서 5인조 공책을 꺼내 빈 페이지를 펼치고는 
     먼저 '제너'라고 큰 제목을 써 넣었다. 그리고 작은 제목으로 
     '내 장점들'이라 쓰고 25까지 세어 내려 갔다. 나는 25가지의 
     장점을 생각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12가지라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잠시 동안 빈 종이를 응시하면서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자 차라리 결점을 생각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나는 '동물을 사랑함'이라고 1번 옆에 썼다. 아파트에서는 
     애완 동물을 기르는 것을 어느 누구도 허락치 않았다. 동물들과 
     있었던 많은 경험은 없지만 나는 정말 개와 말을 좋아했다. 내가 
     크리스티 집에 놀러 갔을 때 나는 그 집의 털 많은 개를 항상 
     귀여워 했다.
       나는 잠시 생각한 후 '건강'이라고 2번 옆에 썼다. 엄마는 
     항상 내가 아프지 않아 다행한 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의 제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 '친절'을 3번째 줄에 
     썼다.
       옛날 친구들의 장점도 생각했다. 정말 오랫 동안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 장점을 생각하지 않는데 
     내가 그들의 장점을 생각한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난 공책을 밀어 넣고 침대로 다시 기어 들어갔다. 내 맘은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정말 혼자였다. 내겐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었다. 옛 네 
     명의 친구도, 태피조차도. 지금은 모두 친구가 아니었다.


        14. 즐거운 녹색 거인, 친구를 되찾다 

       나는 할로윈 축제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할로윈 
     축제는 그 해 중에서 가장 조용한 휴일이라는 사실이었으며, 
     사람들이 다른 모습으로 변장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진실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나와 '즐거운 녹색 거인'을 예로 들면,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야채는 콩과 옥수수인데 내가 '즐거운 녹색 거인' 옷을 입고 
     나타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꽃양배추와 싹양배추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생각이 내게 스치자 나는 큰 결심을 했다. 지금은 의기 
     소침해서 돌아 다니는 것을 그만두고 나의 이 상황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때였다. 그래서 우선 태피와 함께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콧대를 세웠지만 그녀는 
     전혀 놀라지도 않고 모나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나도 개의치 
     않았다. 나는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벌써 오래 전부터 했어야 
     할 일들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엄마였다. 할로윈 축제의 밤이 다시 돌아왔을 
     때 엄마는 나의 복장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엄마는 그 일로 
     너무 흥분했기 때문에 '즐거운 녹색 거인' 의상을 입으면 나쁜 
     효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내 느낌을 엄마한테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어쨌든 엄마는 의상을 잘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인정했다. 저녁을 먹은 후 엄마는 의상을 입는 나를 도와 
     주셨다. 그러곤 어느 곳 하나 느슨해지지 않도록 곳곳을 두 번씩 
     점검했다.
       "아마 틀림없이 네가 의상 부문에서 1등상을 탈 거다."
       엄마는 내 머리카락 속으로 펠트 천으로 만든 잎사귀들을 
     꽂으며 말했다.
       타피장으로 떠나는 시간이 가까워 질수록 나는 더욱 더 흥분이 
     되었다.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 두었는지 확인하려고 세 
     번이나 나의 근사한 백을 점검했다. 마침내 가야 할 시간이 
     왔다. 엄마는 파티가 밤에 있을 때는 항상 학교 행사장까지 
     걸어서 나를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코트를 입고 함께 아파트를 
     떠났다.
       "옷에다 뭘 엎지르지 마라."
       우리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9시, 파티가 끝날 때 여기서 기다리마. 재미있게 놀아라."
       "네, 그럼 9시에 뵈요."
       강당을 향하면서 나는 옷을 더럽히지 않을 것을 쉽게 
     장담했다.
       몇몇의 다른 아이들도 나와 같은 시간에 도착하고 있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며 그들의 부모에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내가 강당 안으로 들어 갔을 때 잠시 동안 큰 결심에 대해 
     잊었다. 강당은 전에 보았던 어느 것보다 훨씬 예쁘게 장식돼 
     있었다. 학생들은 색종이 테이프를 매달아 장식하려고 오후 휴식 
     시간 내내 강당 안에 있었다. 그리고 밤에는 전등빛 모퉁이에 
     있는 그림자를 이용해 유령같이 보이도록 했다. 간식 식탁의 
     중간에는 불꽃이 어른거리며 감자 스낵 사발과 사이다가 들은 
     종이 컵 초콜릿 케익이 든 사각 접시를 비추고 있었다.
       "어서 와. 작은 도깨비, 미귀들. 코트를 벗고 뭐 좀 먹지?"
       위긴스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마녀가 타는 빗자루 위에서 방 안을 휙 지나갔다. 
     그러나 실제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길고 검은 치마를 붙잡고 
     미끄러지듯 움직였으므로 마치 그녀가 날아 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그녀는 마녀같이 보였다.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애들이 다과를 차려 놓은 식탁으로 
     갔다. 나는 그림자로 얼룩진 강당 가자리 주위를 돌아 다녔다. 
     나는 학생들이 들어 왔을 때 그들이 입은 옷을 다 쳐다 봤다. 
     그리고 엄마가 말했던, '내가 상을 탈 것'이라는 말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침대 시트를 쓴 유령도 아버지의 옛날 옷을 입은 
     망나니도 많았다. 두 명의 집시와 알루미늄 호일로 싼 로봇도 
     있었다.
       태피가 들어 왔을 때 나는 거의 숨이 막혔다. 그녀의 의상이 
     나의 유일한 경쟁자가 될 수 있음은 당연했다. 그녀가 '이빨 
     요정'의 옷을 입는다고 말해듯이 몸에 꼭 맞는 흰색 원피스와 
     발레리나가 입는 주름이 많은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판지로 만든 왕관 끝에는 금빛으로 덮은 빛나는 이빨 요정이 
     있었다.
       내 가슴은 철렁 내려 앉았다. 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겨뤄 보지도 않고 태피같이 건방진 애에게 상을 넘겨줄 수는 
     없었다. 나는 '즐거운 녹색 거인' 의상을 내려다 보았다. 엄마는 
     그것을 만들기 위해 아주 열심이셨다. 만일 내가 상을 탄다면 
     엄마는 나를 자랑할 것이다.
       남학생 셋이 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흉측한 괴물같이 
     보이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다리를 절며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추한 것은 등에 큰 덩어리가 달린 사람으로 셔츠 안에 베개를 
     넣은 것 같았다. 그들이 살짝 아이들 뒤로 가서 귀신 소리를 
     내자 애들은 깜짝 놀라곤 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소리 내 
     웃었다.
       "안녕, 제너? 너 혼자 여기서 뭘 하니?"
       내 옆에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작고 우습게 생긴 사람이 
     누군지 보려고 옆을 쳐다 보았다. 그는 검게 턱수염을 칠하고 
     있었는데 모자를 살짝 들고 인사하는 걸로 봐서 찰리 채플린 
     같아 보였다. 그러나 즉시 그가 커티스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의상은 꽤 괜찮았다.
       "오, 안녕, 커티스."
       나는 인사했다.
       "여기 서서 잠시 모든 사람들을 보고 있는 중이야."
       "너무 오래 여기 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음식이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어. 코트 벗고 옷 좀 보자. 넌 뭐니? 
     '청개구리?'"
       나는 내려다 보고 웃었다. 알고 보니 그가 내 옷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곤 내 치마 밑으로 빠져 나온 녹색 스타킹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말했다.
       "백 년이 지나도 넌 모를 걸."
       "자, 서둘러."
       커티스는 다시 떠났고, 찰리 채플린같이 아주 작은 걸음으로 
     종종거리며 모든 사람에게 그의 모자를 살짝 들어 인사하며 돌아 
     다녔다.
       "아아아흥!"
       나는 몸서리를 쳤다. 내 뒤에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거 
     곱추였다. 그는 무서운 괴물 소리를 내고 마치 나를 잡아 먹을 
     듯이 했다. 그는 나를 에워싸고 노인같이 걸으며 내 주위를 돌아 
     다녔다. 내가 비명을 지르고 기절이라도 하길 바랐던 것 같았다.
       갑자기 나는 내 코트를 벗어 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멋있어 보이는지 알 수 있도록 다과 식탁으로 달려 가고 
     싶었다. 내 의상이 전 6학급 중에서 최고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코트의 맨 위 단추부터 풀기 시작하고 있을 때 옛친구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내 가슴은 철컹 내려 앉았다. 그들 모두는 
     얼굴에 우습게 칠을 했고 지푸라기들을 걸쳐 마치 허수아비 같아 
     보였다. 지푸라기 때문에 매우 가려울 것이었지만 그들은 노는 
     데 정신을 집중해 그런 데는 아무렇지 앉은 것 같았다.
       그들은 법석을 떨며 곳곳을 돌아 다녔어도 나를 보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그들은 내가 지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태피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 친구들의 
     장점을 생각했고 내 장점 역시 생각했다. 그 장점들은 내 의지를 
     확고히 해 줬다. 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나는 내 가방을 거머쥐고 급히 문을 향해 갔다. 그 때 곱추가 
     다시 나를 따라왔다. '오, 안 돼.' 나는 생각했다. 그를 
     무시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킹콩같이 그의 가슴을 쳐대면서 내 주위를 돌아 다녔다. 
     그는 꽤 훌륭한 괴물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에게 전혀 관심도 
     없었다. 마침내 그가 가 버렸을 때에야 나는 강당 밖으로 살짝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화장실이 비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즐거운 녹색 거인' 
     의상을 재빨리 파티의 끝무렵에 입으려고 준비했던 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 위에 코트를 다시 입고 강당으로 향해 갔다. 내가 그 
     곳으로 다시 갔을 때, 위긴스 선생님은 행진하려고 학생들을 
     정렬시키고 있었다.
       "좋아요, 도깨비, 마귀들. 내 뒤로 한 줄로 쭉 서세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의상을 볼 수 있도록 강당 둘레를 한 바퀴 행진할 
     거예요. 그리고 섰을 때 내가 한 사람씩 뒤에 가서 서면 
     여러분은 그 때 박수를 쳐서 최고의 의상상을 결정하기로 
     하겠어요."
       아이들은 고함을 지르며 줄을 서려고 해서 강당이 떠내려갈 것 
     같았다. 물론, 태피는 위긴스 바로 뒤에 서 있었고 나는 네 명의 
     허수아비들을 볼 수 있게 줄 중간쯤에 서 있어야 했다. 내 
     진실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게 하려면 나는 코트를 벗고 줄에 가 
     서야 했다. 단추를 풀고 코트를 벗을 때 내 손이 미친 듯이 떨려 
     왔다.
       나는 잠시 동안 청바지와 푸른 색의 '환상의 5인조'라고 찍힌 
     티셔츠를 내려다 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빨리 
     줄까지 돌격해 갔다.
       나는 어느 누구도 보지 않고 빠르게 뛰어 갔지만, 모든 
     사람들은 벌써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내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옳았다. 잘 안 
     되면 어쩔까? 내 친구들이 6학급 전체 앞에서 웃으면 어쩌지? 
     나는 정말로 미칠 것 같았다.
       "좋아요. 여러분, 원을 만드세요."
       위긴스 선생님은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심사하기 시작하겠어요."
       원을 한 번 돌았을 때 나는 친구들의 바로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들은 나를 쳐다 보기 시작했다. 내 귀는 달아 오르고 
     있었다. 나는 마루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선생님이 이리저리 
     다니면서 박수가 사라질 때까지 어린이들 머리 위로 손수건을 
     흔드는 것을 곁눈질로 보았다.
       그녀가 내게 왔을 때 갑자기 강당은 벙어리같이 조용해졌다. 
     나는 죽고 싶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의식을 잃고 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박수치기 
     시작했다. 나는 놀라 올려다 보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의 네 친구들이 미친 듯이 박수를 치며 나를 보고 웃고 있지 
     않은가? 비록 그들만 박수를 쳤지만 그것은 하나도 문제가 안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마침내 내가 그들의 친구라는 것을 
     안 사실이었다.
       "일등 상은 태피의 '이빨 요정' 의상으로 하겠습니다."
       몇 분 후에 위긴스 선생님이 말했다.
       태피는 독기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고 나는 혀를 내밀어 
     보였다.
       '이기게 내버려 두자.'
       난 생각했다.
       "이등 상은 찰리 채플린으로 가장한 커티스에게 돌아 갑니다."
       우리는 박수를 치고 다과 식탁으로 다시 돌아갔다. 선생님은 
     벌써 와서 가방 안에서 포장된 사탕을 꺼내 놓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다과 식탁으로 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서 기뻐했다. 그러자 베스가 달려와 큰 포옹을 했다.
       "제너야, 다시 친구가 되어 정말 기뻐."
       "나도 그래."
       나도 그녀를 껴 안으며 말했다.
       그러자 멜러니와 크리스티, 그리고 캐티가 나를 둘러쌌다.
       "어떻게 태피와 친구가 되어 참고 견뎌냈니?"
       멜러니가 코를 흔들어 대며 말했다.
       "그 애가 꼬리칠 때마다 미치겠더라."
       크리스티가 말했다.
       "걱정 마."
       나는 말했다.
       "꼬리치는 것은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이니까."
       그 때 나는 할로윈 파티에 보이지 않았던 한 사람을 기억했다.
       "랜디, 여기 있니?"
       나는 돌아 보면서 물었다.
       "그래."
       크리스티가 말했다.
       "그는 곱추야. 마크랑 스콧과 함께 왔어."
       나는 웃었다.
       난 전에 그와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 복장을 할 것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제너, 너도 알다시피 넌 정말 남자한테 미쳤어."
       크리스티가 말했다.
       그녀는 굉장히 진지한 표정이었다. 내 가슴은 다시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건 이제 문제가 안 돼. 우리 모두는 너를 좋아해."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고 다시 웃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웃었다.

       파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 오는 도중 나는 엄마한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엄마는 곧 이해해 줬다. 
     엄마는 내가 원한다면 내년에 그 의상을 다시 입을 수 있게 
     하고, 친구들에게도 그와 똑같은 의상을 하나씩 만들어 
     주시겠다고 말했다.
       집에 도착해서 밤인사를 하고는 나는 곧장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미스 피기의 사진을 내려 놓고 오랫 동안 랜디의 
     사진을 바라 보았다. 나는 그가 나를 좋아하했다. 그는 학교 
     운동장에서 내게 웃어 주었고 말을 걸기도 했다. 식당에서는 내 
     식탁에 앉기도 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랜디는 진짜 좋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전부다. 내가 그를 굉장히 좋아하는 이유도 
     아마 그것일 것이다.
       내 친구들이 옳았다. 나는 남자한테 미친 애인지도 모른다. 
     물론 랜디를 제일 좋아했지만 다른 멋진 남학생들도 좋아한다. 
     사실은 커티스도 조금은 좋아했다. 그는 여전히 멍청이지만 그도 
     내 친구였다.
       태피는 아직도 몸짓으로 말하고 있지만 나는 더 이상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새 계획을 세웠다. 결국 랜디는 할로윈 
     파티에서 괴물 소리를 내며 강당 주위에서 나를 따라 다니지 
     않았던가? 그는 아마도 진정한 내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 조금은 반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진 속에 있는 
     랜디에게 윙크했다.
       "나는 아직도 너를 좋아해."
       라고 말하고 침대 속에 편안하게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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