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1권
제인 오스틴
저자 소개
* 저자의 삶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은 1775년 영국 햄프셔주의 스트븐튼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으며,
생애의 절반이 넘는 26세까지 그곳에서 평원한 전원생활을 했다. 1801년 아버지가 목사를
그만두자, 가족은 당시 향락장이며 사교장의 중심이었던 바스(Bath)로 이사하여 그 후 5년동안
화려한 도시에서 살았다. 1805년 아버지가 죽자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사우스 앰프으로튼(South ampton)으로 이사하여 거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1871년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어 그녀의 의사 가까이 윈체스터(Winchester)로 이사했으나, 마침내
42세의 일기로 그곳에서 죽었다.
그녀의 생애는 결코 엄숙하고 고독한 예술적 생애는 아니었으며, 또한 그녀는 전문 직업
작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들이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끊임없이
애독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비길 데 없이 예리한 관찰력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그녀의 사실주의적 수법 때문이리라.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약점과 결점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녀 자신이 호의와 애정을 쏟고 있는 인물에 대해서조차
그녀는 결코 완전한 인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다운 우행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인간의 약점에 대해 결코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서 포용한다.
그녀가 묘사한 인간 세계에 특유한 빛과 조화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풍자적인 시각과
기지의 빛인 것이다.
* 작가 연보
1775년 12월 16일 스티븐튼에서 태어나다.
1796년(21세) <첫 인상> 집필하다. 후에 <오만과 편견>으로 개제하다.
1797년(22세) 11월 <첫 인상>의 출판 거절당하다. <분별과 감수성> 집필하다.
1798년(23세) 8월 <노오생거 사원> 집필하다.
1801년(26세) 5월 스티븐튼을 떠나 바아스로 이사하다.
1803년(28세) <노오생거 사원>을 <수잔>이라는 이름으로 런던의 크로스비에 팔다.
1805년(30세) 1월, 아버지 조지 오스틴 세상을 떠나다.
1806년(31세) 바아스를 떠나 사우샘프튼으로 이사하다.
1809년(34세) 4월 <수잔>의 판권을 되사다. 사우샘프튼을 떠나다. 7월 초튼으로 옮기다.
1811년(36세) 10월 <분별과 감수성> 출판다.
1813년(39세) 1월 <오만과 편견> 출판하다.
1814년(39세) 1월 <엠마> 완성하다. 12월 <엠마> 출판하다.
1816년(41세) 7월 <설복> 완성하다. 8월 <설복>의 일부 다시 고치다.
1817년(42세) 1월 <샌디튼>를 쓰기 시작하다. 5월 윈체스터로 이사하다. 7월 18일 숨을
거두다. 7월 20일 윈체스터 사원에 잠들다.
(역자 소개)
이 책에 대하여
그의 생애는 18세기 말엽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있으며 이 시대는 영문학사상 소위 의고전주의문학
(Pseudo-classicism)에서 로만주의적인 경향으로
옮겨가는 가장 활발한 과도기이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참신한 문학으로서 출세하려는 야심가들은
정도와 종류의 차는 있을지언정 또는 자연을
찬양하고 또는 감상적인 탐미주의에 흐르고 또는
중세에의 동경을 묘사하여 현실의 사회생활의 불안을
잊어버리려는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이와 같이 현실을
떠나서 꿈과 관념의 세계를 갈망하는 요구가
밑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문학적 경향을 후세의 역사가는
로만주의 운동이라고 불렀다. 원래 이 경향은
서정시에 가장 많이 그 흔적을 남겨 놓았으나 소설면에
있어서도 18세기 중엽부터 공상을 만족시키는
작품과 사람의 공포본능을 자극하여 격정을 선동하는
소설이 유행했다. 이 경향은 로만주의 운동이
통속화됨에 따라 더욱 뚜렷해졌다. 그러면 이 시대의
조류와 제인 오스틴과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확실히 제인은 자연의 초목과 경치를 사랑했지만 그것을
문학적으로 다룰 때는, 자연은 주로
작중인물의 움직임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고 오히려
일종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제인의
자연묘사에는 거의 감정이 들어 있지 않다. 제인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야기 줄거리나 풍경이 목표가
아니라, 늘 작중인물의 정밀하고도 정확한 성격묘사가
주안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인은 대중 없이
중세의 세계를 동경한다든지, 병적인 감정에 흐르기
쉬울 당시의 젊은 여성들의 유행적 심리를 비웃고
있다. 그의 전작품에 흐르고 있는 독특한 정서는 절대로
생경하게 또는 무절제하게 방산되는 법이
있다. 이 점은 로만파 아류와는 정반대이다.
이와 같은 관찰에서 제인 오스틴을 고전파 작가라고
보는 이들이 많은데 영문학사를 저술한 까자미앙
씨도 제인을 로만파 이전의 고전적 부류에 넣고 있다.
그러나 그들 새 시대와 호흡을 맞추지 않는
작가라고 단정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면 제인
오스틴은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초월했기
때문에 오늘날 역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고 볼
것인가? 이러한 생각도 많은 오스틴 찬미자들의
취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라는
극시인도 그 시대 정신과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인 오스틴도 그 시대와 호흡이
일치되는 데서 그의 특색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로만적은 아니지만 역시 19세기 초엽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곧 평범 속에서 인간적
흥미를 발견하고 정적인 활력을 자아내는 방법인
것이다.
우리는 이따금 선동적인 흥분, 영웅적 모험, 또는
파란중첩한 사건을 좋아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꿈의 세계이며 그 작의를 알게 되는 순간 권태를 느끼게
되는 법이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 주변의 것,
일상적인 인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그 속에서 다른
데서는 느끼지 못하던 의의를 발견하는 것이다.
거기에 리얼한 무엇이 싹트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은 화려한 도시의 사교계를 멀리하고 (그의
일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시끄러운 문단 생활도
몰랐지만 극히 좁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사회로부터
소재를 발견하면서 일견 평범한 성격의 언행을 진지하게
묘사해 가는 가운데서 그의 독특한 상념이
발전해 간 것이었다. 그의 소설을 응접실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가정의, 즉 응접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는 데서 생긴 말이지만, 당시의
중상층 계급의 일상생활이라는 것이 소음악회와
우인 친척간의 파티 또는 소풍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제인의 소설도 그러한 환경의 요구에서 씌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는 플롯이 있기는 하나 플롯 대신에
작중인물이 끌려다니는 것 같은 무리는 없다. 오히려
인물의 움직임에 따라 어떠한 결말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결말은 대개의 경우
결혼이다. 일생을 결혼이라는 체험을 해보지 못한
그에게는 결혼이야말로 가장 운명적인 조건이며, 인생의
모든 방향은 조만간 결혼의 목표를 향하여
집중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
결혼이라는 종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리얼한
생활을 발견했다. 소위 리얼한 생활이라는 것은 과학적
내지 철학적으로 규정한 심각한 것을 의미하는
아니다. 우리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어 가는 동안에
평온한 분위기에 휩쓸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곧 일종의 서명의 실감인 것이다. 즉 우리
체험 가운데 살아 있는 생명의 흐름이 그의
작품의 흐름과 합류하여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필시 영국 사람이 좋아하는 휴머라는
것은 이러한 심경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오만과 편견"은 "첫 인상"이라는 제명으로 1796년에
집필을 시작했으나 다음해 모 출판사가 그
출판을 거부하자 이를 개정하여 1813년에 출판했다.
성격묘사의 날카로운 예지, 인간 희극을
묘사하는 작가적 기능의 탁월함을 이 작품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여주인공 엘리자베드야말로 작가
자신의 변신이며 이상이며 따라서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사랑의 테마인 것이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자에게 아내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이다.'
이 진리에 가장 민감한 것이 베네트 부인이었다.
롱본이라는 벽촌에 자리잡은 베네트 가에는 베네트
씨 부부와 딸 다섯 자매가 있다. 베네트씨는 상당한
연배로서 이따금 농을 섞어가며 곧잘 비꼬는
성질이나 바탕은 온화한 사람이다. 맏딸 제인과 둘째딸
엘리자베드는 시집갈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그들의 혼인만을 생각한다. 마침 근처의
네더필드라는 저택에 독신 청년 빙리가 들게
된다. 그의 매년 수입은 4, 5천 파운드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솔깃한다.
이윽고 빙리 씨를 환영하는 무도회가 이 마을에서
열린다. 마을의 처녀들이 총출동하고 빙리는
런던에서 한패를 데리고 참석한다. 그의 일행은 빙리
이외에 그의 자매, 손위 매부, 그리고 빙리의
친구 다아시 모두 다섯 명이었다. 빙리는 의젓하고
인상이 좋은 청년이며, 그의 누이동생도 미인이다.
매부인 허어스트 씨는 평범한 신사로서 마을 여자들의
화제에도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다.
키가 크고 당당한 미남자로서 일 년 수입 1만
파운드라는 것까지 알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그의
태도는 거만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깔보는 것
같다는 평판이 나돈다.
특히 베네트 부인과 그의 둘째딸 엘리자베드는 그의
거만한 태도에 화를 낸다. 그러나 제인은 빙리의
눈에 띄어서 여러번 춤을 같이 춘다. 그러자 이
무도회가 끝나고 얼마 안되어 네더필드에서 제인에게
놀러 오라는 초대장이 온다. 본인보다도 어머니가 더
기뻐서 날뛴다. 그리고 제인이 네더필드로 간 뒤
비가 와서 하룻밤이라도 묵게 되기를 바란다. 사실로
제인은 비를 맞아 감기가 들었다는 소식이 온다.
엘리자베드는 걱정이 되어 빙리 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 집 사람들은 엘리자베드의 용감을 오히려
냉소하는 편이었다. 거만한 다아시는 엘리자베드의
기질에 놀라기도 하고 통쾌한 감정도 품는다.
그런데 다아시에게 호의를 갖고 있던 빙리의 누이동생
캐럴라인은 다아시의 누이동생을 올케로
삼으려는 심산이다.
그래서 두 남자가 베네트 집 딸들과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와 같이 다아시가 차츰
엘리자베드의 아름다움에 끌려가는 것을 방해하는
캐럴라인에 대해서 언제나 냉정한 다아시의 태도,
조금도 굽히지 않는 엘리자베드의 반격 등 통쾌한
희극적 장면이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그런데 이
다아시라는 청년은 런던의 재산가의 아들로서
귀족적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오만한 태도가 남아 있다.
그래서 그는 엘리자베드나 제인에게는 호의를 가질 수
있었으나 그들의 부모의 속됨을 싫어한다.
이즈음 먼 친척이 되는 콜린즈라는 젊은 목사가
찾아온다. 그는 아들이 없는 베네트 가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이다. 그는 레이디 캐더린 버그라는
파트론의 알선으로 조그만 목사의 녹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이 청년은 몹시 경박한 사람이라 큰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이 집 딸 중의 한 명과 결혼해
주겠다는 것이다. 베네트 부인은 그 제의에 맞장구를
치고 엘리자베드를 설득시키려고 한다.
콜린즈는 엘리자베드와 단 둘이 있게 되자 용감하게
결혼 신청을 한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일축해
버린다. 콜린즈는 예기했던 것이 틀려지자 샬로트
루커스라는 처녀와 결혼해 버린다. 샬로트는
엘리자베드의 친구로서 결혼에는 이렇다 할 의견이 없는
여자이다.
한편 엘리자베드의 동생들은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오가고 있었는데 그 군인 중에
위컴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위컴은 명랑한 성격인 데다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해서
엘리자베드도 다소 호의를 품게 된다. 그러자 위컴은
다아시와 가까운 사이며 다아시의 냉대로
불행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위컴 자신으로부터 듣게
된다. 원래 의협심이 있는 엘리자베드는 더욱
다아시를 미워하게 되고 위컴을 동정한다. 그런데
콜린즈의 아내가 된 샬로트로부터 자기들의 새살림을
와서 보라는 청을 받아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엘리자베드는 그들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레이디 캐더린도 만나게 되고 그의 딸을 조카인
다아시의 아내로 만들려는 계획도 알게 된다. 그런
관계로 다아시도 이곳을 방문하게 되어 어느날
엘리자베드는 우연히 다아시를 만나게 된다. 그러자
제인에게서 빙리를 만나지 못하는 쓸쓸함을 적은 편지가
왔기 때문에 더욱 다아시를 미워한다. 사실은
빙리와 제인의 사이를 떼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다아시는 엘리자베드에게 결혼 신청을 한다.
남자 쪽에서는 자기의 자존심이 꺾이는 것은 억울하지만
사랑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며 당연히
엘리자베드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태도였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통쾌하게 이를 거절한다. 동시에 제인으로부터 빙리를
떼어놓은 것, 위컴을 냉대한 것을 들어 다아시를
비난한다. 그후에 위컴은 엘리자베드의 동생 리디어와
도망을 친다.
다아시는 위컴의 모든 비행을 편지로 자세히 설명하고
오해를 풀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도망친
것까지 알게 되자 그들을 찾아가서 모든 뒷처리를
해준다. 이와 같이 다아시의 타고난 거만스럼도
참된 사랑에 굴복하여 엘리자베드에게 성의를 보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비로소 사랑을 맺게 된다.
그리고 제인도 빙리와 결혼하게 된다.
대체로 이 작품에는 제각기 특색 있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의 성격이 간결하고
대담하게 묘사돼 있다.
1
많은 재산을 모은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리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진리이다.
이런 남자가 처음으로 이웃에 옮겨오게 되면,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떻고 생각이 어떠한가를 동리
사람들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더라도, 이 진리는 주위
사람들 마음 속에 꽉 자리잡고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되어, 자기네 딸 중의 누군가가 그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어느 날 베네트 부인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여보, 네더필드 저택에 결국 사람을 들이기로 한 것
같은데 그 얘기 들으셨어요?"
베네트 씨는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틀림없다는가 봐요, 롱 부인께서 방금
다녀가셨는데 그 말을 하시더군요."
부인도 맞받아 말했다.
베네트 씨는 대꾸는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들게 되었는지 당신은 궁금하지도 않으세요?"
아내는 더 조바심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들려 주겠다는데, 왜 난들 듣지 않겠소?"
이 정도면 충분히 구미가 당긴 말이었다.
"글쎄 들어 보세요, 당신도 알아두셔야 하니까요. 롱
부인 말로는, 네더필드에 들게 된 사람은 북 잉글랜드
출신의 청년으로 꽤 부자라나 봐요. 월요일에 사두마차를
타고 와서 집을 둘러보고서는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모리스 씨와 결정을 보았다는 거예요.
미가엘제(9월29일) 전에 들 예정이고, 하인 몇 사람은
내주 말까진 오게 돼 있나 보죠"
"이름이 뭐랍디까?"
"빙리래요."
"결혼을 한 사람인가, 그렇지 아니면 독신인가?"
"독신이에요. 여보! 재산이 많은 독신인데다가, 일 년에
4, 5천 파운드. 우리 애들에겐 꼭 어울리는 사람이란 말예요!"
"어떻게 해서 그렇다는 거지? 그게 우리 애들에게 어쨌다는 거요?"
"정말 딱하신 분이세요,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있어요!
그 사람하고 우리 집 애하고 연분을 맺게 했으면 하는 제 생각을 당신은 알아
주셔야 하는 거예요."
"그런 속셈으로 이사를 온답디까?"
"속셈이라뇨! 그런 말씀 마세요.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실까. 그렇지만 우리 애들 중의 누구 하나를
사랑하게 될 공산도 없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오는 대로 당신이 방문해 주셨으면 해요."
"그렇게 할 필요가 어디 있소. 가려면 애들 데리고
당신이나 가보도록 해요. 아니면 애들만 보내면
될 게 아니오. 그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소.
당신은 애들만큼이나 예쁜 사람이니까. 혹시 빙리란
청년이 당신을 제일 좋아하게 될지 누가 알겠소."
"아이구 망측해라. 이래도 저도 한때는 누구 못지
않은 미인이었지만, 이제는 잘난 체할 입장이
못되거든요. 다 자란 딸자식을 다섯씩이나 거느린
여자가 예쁘니 뭐니 하는 생각은 다 그만둬야지요."
"그런 경우에 예쁘고 어쩌고 할 게 뭐 있소?"
"하지만 여보, 그 청년이 이웃에 오면 당신이 꼭
방문해서 인사를 나눠야 해요."
"약속은 못하겠는데"
"그렇지만 우리 애들 생각을 하셔야죠. 그 애들 중
누구하고 인연이 맺어진다고 생각해 보란 말이에요.
정말 윌리엄 루커스 경과 부인께선 그런 이유로 방문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에요. 아시다시피 그분들은 새로 왔다고 해서 찾아가는 그런
분들이 아니거든요. 정말 당신이 가셔야 하는 거예요. 당신이
안가신다면 제가 그 애들하고 간다는 건 정말 엄두도 못 낼 일이니까요."
"당신은 지나치게 겸손하군 그래. 내 생각 같아선,
빙리 씨는 여자들끼리 오는 것을 더 좋아할 것 같은데. 내 편지 한 장을
써서, 우리 애들 중에서 누구든 선택해서 결혼하게 되면 아무 이의 없이
승낙하리라는 내 뜻을 정확히 전하도록 할 테니까. 리지(엘리자베드)에
대한 칭찬을 꼭 한마디 써넣어야겠어."
"제발 그런 짓은 그만두세요. 리지가 다른 애들보다 어디가
괜찮아요, 글쎄. 사실 제인의 반만큼도 예쁘지가 못하고 리디어의
반만큼도 상냥하지가 못해요. 그런데도 당신은 리지만 내세우시니까 말이에요."
"원 애들이라고 하나같이 이렇다 할 점이 있어야지."
"우리 애들이 어느 계집애들처럼 한결같이 못나고 무식하단 말야.
그런데 리지만은 형제들 중에서 제일 예민하거든"
"여보, 어쩌면 당신은 제 자식들 흉을 그렇게
하시기예요! 재미가 있어서 절 놀리시는 모양인데요. 저의 약한 신경을 손톱
만큼도 생각 안해 주시는군요."
"그건 오해야, 당신 신경을 굉장히 아끼고 있단 말요.
나에겐 옛 친구나 다를 바가 없으니까. 적어도
20년 동안 당신이 신경 얘길 할 때마다 각별히 고려를
해가며 말하는 것을 들었소."
"아, 제 고통이 어떤가는 당신이 잘 모르실 거예요."
"그러나 당신이 그 고통을 극복해서 매년 4천 파운드의 청년들이
이웃에 많이 와서 살아 줬으면 좋겠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께선 그들을 찾아가실
분이 아니시니까, 스무 명이 와 산대도 아무 소용 없겠어요."
"그때 돼 봐야 알게 되는 거요. 스무 명이 와 보시오,
난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찾아가고 말 테니까."
베네트 씨는 워낙 기민한 재주와 풍자적인 기질과
신중함과 변덕장이의 혼합체였었기 때문에 23년을
함께 살아온 부인으로서도 그의 성격을 이해하기란
힘든 처지였다.
반면에 부인의 마음을 알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의 성격은 이해력이 부족하고 지식이
많지 못한데다가 변덕이 심한 여인이었다. 무슨 불만이
생기게 되면 그것 때문에 고통스럽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평생에서 중요한 사업은 딸들을
출가시키는 일이며, 낙이 있다고 한다면 남의 집을
방문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나누며 지내는
것이었다.
2
베네트 씨는 빙리 씨를 맨 처음 방문한 사람들 중에
끼여 있었다. 베네트 씨는 빙리 씨를 찾아가겠다고 항상
마음먹고 있었지만, 부인에게만은 끝까지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그리하여 방문한 그날
저녁때까지도 부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
그때서야 다음과 같은 식으로 해서 그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때마침 둘째딸이 모자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그는 느닷없이 말을 걸었다.
"리지, 그 장식이 빙리 씨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어떤 것이 그분의 마음에 들게 될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군요, 어디 한번이라도 찾아간 적이 있어야 말이죠"
어머니가 원망스럽게 말했다.
"그분하고 무도회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요. 게다가 롱
부인께서 소개해 주기로 돼 있는 사실을 엄마는 잊고 계시나 봐"
그렇게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롱 부인은 그런 일을 해주실 분 같지가 않구나.
당신의 조카딸도 둘씩이나 있으니까 말이다. 이기적인데다가
겉치레를 좋아하는 분이시니까, 난 그분을 안 믿기로 했다."
"나 역시 그래. 임자가 그분의 폐를 안 끼치겠다니, 정말 기쁜 일이군"
베네트 부인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으나 참다못해 딸 아이를 꾸짖기 시작했다.
"얘 키티야, 제발 기침 좀 하지 마라! 내 신경을 건드리지
말아 다오. 갈기갈기 찢어 놓는 기분이구나"
"키티는 기침할 때 분별이 없구나, 꼭 중요한 시간에 하니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말했다.
"누구는 심심해서 기침하나요, 뭐"
키티는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다음 무도회는 언제지, 리지 언니?"
"2주일 후야."
"아 그랬어, 그러니까 롱 부인께서는 그 전날까지 못
돌아오시게 되니까, 당신께서도 모르고 지내는 처지고 보면
더욱 소개를 시켜 줄 입장이 못되시겠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다.
"그렇다면 당신이 술수를 써서라도 빙리 씨를 그분에게 소개하도록 해요."
"안될 말씀이에요, 여보.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인데.
왜 사람을 자꾸 놀리시기만 하세요?"
"당신의 신중함에는 그저 머리가 숙여지는구료. 하긴
2주일 정도의 교제로는 좀 부족하지. 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기엔 2주일 정도로는 안되는 법이니까. 그러나 우리
쪽에서 먼저 손쓰지 않으면 딴 사람이 손댈 것이 아니겠느냐
그 말이요. 그리고 롱 부인과 조카가 그런 기회를 엿보게 되거든, 그럴
경우 롱 부인은 얼마나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겠소. 그러니까
당신이 나서지 않겠다면 내가 나서야 할 형편이란 말요."
딸들은 아버지를 주시했다.
"당치 않은 일이야, 당치 않은 일이야!"
베네트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떡하자는 거요, 그렇게 큰소리만 치고 있으니!
그래 당신 생각엔 사람을 소개하는 절차라든가
형식의 중요성이 별것 아니란 말요? 그 점에 있어선
찬성을 못하겠소. 메어리, 네 생각은 어떠냐?
넌 본래부터 생각이 깊은데다 좋은 책도 많이 읽고
때때로 필요한 부분은 적어 두기도 하는 애니까."
메어리는 아주 재치 있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메어리가 생각을 가다듬고 있는 동안, 본론에
돌아와서 빙리 씨 애기나 하자꾸나"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사람 이름만 들어도 욕지기가 날 지경이에요."
이번에는 부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건 유감인데, 진작 그런 말을 했어야 옳은 일인데.
오늘 아침에 그런걸 알기나 했던들 절대로
그를 찾지 않았을 것이야. 공교럽게도 그를 찾아간
이상은 지금 와서 교재를 끊을 수도 없게 됐구먼"
여자들의 놀라움은 그가 바라던 대로 들어맞았다. 그
중에서도 베네트 부인의 놀라움이 더 컸다.
흥분이 가라앉게 되자, 부인은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언명하기에 이르렀다.
"여보, 당신 참으로 좋은 일을 하셨구료. 언젠가는
당신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애들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분이 이런 교제를 무시하지 않으실
줄 알았어요. 전 정말 기뻐요! 더우기 아침에
다녀오셨는데도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하시다니
너무하셨지 않아요."
"키티야, 이젠 너 편할 대로 기침을 하도록 해라."
베네트 씨가 말했다. 그러나 좋아 날뛰는 부인 눈꼴이
사나왔던지 말을 하면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문이 닫히자 부인이 입을 열었다.
"얼마나 훌륭하신 아버지시냐, 애들아! 아버지의
호의를 너희들이 어떻게 다 갚을 수 있느냐. 나도
그렇지만 우리 나이가 되면 매일 새 사람을 사귄다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이 못되느니라. 그러나
너희들 때문이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 얘,
리디어, 넌 제일 어리지만, 이번 무도회 땐 빙리
씨가 너랑 춤을 추게 될 거다."
"어머! 난 조금도 두렵지가 않단 말예요! 나이는 제일
어려도 그 대신 키는 제일 크니까 말예요."
그날 밤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가 얼마나 빨리
베네트 씨의 방문에 대한 답례차 그들을 찾아올
것인가 예측도 해보고, 언제쯤 그를 만찬회에 초청할
것인가를 결정해 가면서 시간을 보냈다.
3
베네트 부인은 다섯 딸들의 도움을 받아 그 문제에
대해 여러 형태로 물어 보았으나, 빙리 씨에 대한
흡족한 설명을 남편에게서 끄집어낼 수가 없었다.
노골적인 질문을 비롯해서 교묘한 가정과 나아가
몇 살인가 예측 등, 여러 가지 공세를 펴보았으나,
이러한 많은 술법들을 그는 재치 있게 받아 넘기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그들 이웃에 사는 루커스 부인의
간접적인 조언을 받아들일 수박에 방법이 없었다.
정작 루커스 부인의 조언은 좋은 편이었다. 윌리엄
경은 그가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새파랗게 젊은
데다가 매우 미남이요, 게다가 상냥스럽기 그지없고,
뿐만 아니라 이번 무도회 때는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나온다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무도회를 좋아한다는 것은 한 걸음 나아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뜻이므로, 빙리 씨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는 강한 희망을 품었다.
"어떤 애건 네더필드에서 행복하게 사는 걸 볼 수만
있다면, 다른 애들도 그와 같이 시집을 잘 가게
될 수 있을 테니까, 그 이상 무엇을 바랄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베네트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2, 3일 후, 빙리 씨가 베네트 씨의 방문 답례차
찾아와 서재에서 십 분 가량 머물렀다. 그는 일찌기
들어서 알고 있던 미인인 딸들을 만나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찾아왔었지만, 정작 만난 사람은
그들의 아버지였다. 여자들 편이 더 운이 좋았다.
왜냐하면 2층 창문에서 그가 푸른색 코트를 입고
검은 말을 타고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이점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곧 파티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보냈으며, 베네트 부인은 벌써부터 자기 살림 솜씨를
보여 줄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을 때 공교럽게도
연기한다는 답장이 날아들었다. 빙리 씨는 다음날
런던으로 가야 하므로 따라서 모처럼 초대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운운하는 내용이었다.
베네트 부인은 크게 당황했다. 허어퍼드셔에
당도하자마자 곧바로 런던에 볼 일이 생기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고, 여기저기 쏘다니기만 하는 것으로
미루어 정작 머물러 있어야 할 네더필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닌가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런던으로 가는 일은 결국 이번 파티에 참석시킬 많은
사람을 초청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러주는
루커스 부인의 말로 다소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빙리 씨는 열두 명의 숙녀와 일곱 명의
남자들을 데리고 온다는 것이었다. 딸들은 그렇게 많은
여자를 데리고 온다는 것을 한탄했으나,
무도회 그 전날, 열두 명이 아니라 자매 다섯 명과 사촌
한 명 모두 합해 여섯 명만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을 듣고 우선 위안이 되었다. 막상 그들이 회장에
들어섰을 때는 전부 다섯 명 뿐으로 빙리 씨,
그의 두 자매, 큰매부,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청년 뿐이었다.
빙리 씨는 호남아이며 신사다왔다. 그는 명랑하고
여유 있고 자연스러운 태도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의 자매는 세련된 여성들로서, 나무랄 데가 없는 상류
계급의 사람들이었다. 그의 매부 허어스트
씨는 그저 신사다와 보였지만, 그의 친구 다아시 씨는
큰 체구와 수려한 용모, 품위 있는 태도와
더불어 일 년에 1만 파운드란 소문이 그가 들어서서
5분이 못되어서 좌중에 퍼져 나가 주목을 끌게
되었다. 남자들은 입을 모아 그를 위풍당당한 멎진
사나이라 칭찬했고, 여자들은 빙리 씨보다 휠씬 더
멋지다고 말했다.
그날 밤중까지는 대단한 찬미의 대상이 되었으나,
얼마 안가서 그의 불쾌한 태도가 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비쳐서 이내 그의 인기는 떨어지고 말았다.
거만한데다 남과 어울려 즐기기를 싫어하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더비셔에 막대한 토지가 있다고
하지만, 가까이하기가 꽤나 어렵고 불쾌한 용모를
가졌기 때문에 그의 친구와는 상대가 못된다는 이유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빙리 씨는 이윽고 회장의 주된 인물들과 가까와졌다.
그는 발랄하고 가식이 없으며, 매회마다 춤을
추었고, 무도회가 너무 빨리 끝났다고 화도 내고,
자기도 네더필드에서 무도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그런 온화한 성격은 남의 눈에 꼭 띄게 마련이다. 그
친구와는 너무나도 대조가 된다! 다아시 씨는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과 꼭 한 번씩 춤을 추었을 뿐
끝내 다른 여자에게 소개받기를 싫어하고, 그날
밤 방안에 돌아다니며 이따금 동료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넬 정도였다. 그의 성격은 금방 드러나 버렸다.
세상에서 둘도 없이 거만한 존재요 불유쾌한 인물이어서
두 번 다시는 와 주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모든 이의 공통된 희망이었다. 그 중에서 반발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은 베네트 부인으로, 그의 모든
행동도 싫은데다가 딸 중의 한 사람을 무시한 것이 더욱
더 그녀를 분노케 했다.
엘리자베드는 남자 수가 적어서 두 번이나 춤을
못 추고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 다아시 씨가
그녀 옆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와 빙리 씨가 나눈
대화를 엿들을 수가 있었다. 빙리 씨는 춤을 멈추고
친구에게 춤을 추도록 권하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서, 다아시. 자네 춤 솜씨를 내 눈으로 봐야겠어.
이렇게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하는 자네를 난
못보겠단 말야. 신나게 춤추는 게 좋아"
그렇게 빙리가 말했다.
"그만두겠네. 파트너가 누군지도 모르고 춤추는 걸
싫어하는 내 성미 자네는 알 텐데 그래. 이런
무도회에서 춤춘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거든. 자네 누님들은 선약이 있겄다, 다른
여자들하고 춘다는 건 나에게 벌주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 되네"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굴지 말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오늘밤만큼 유쾌한 여자들을 만난 적도 별로
없었다니까. 아주 예쁜 여자들도 몇 사람 있는데 그래"
"자넨 이 방안에서 제일 예쁜 여자하고만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냐"
다아시 씨는 맏딸 베네트 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저런 미인은 보기 드물 거야! 하지만 자네 바로
뒤에 그 여동생이 한 사람 앉아 있네. 얼마나
예쁘다고 그래. 상냥하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거든. 내 파트너한테 소개를 부탁해 보겠네"
"누구 말인가?"
그는 잠시 동안 엘리자베드를 보다가 시선이 부딪치자
시선을 돌리고 냉랭하게 말했다.
"그만하면 됐군. 하지만 내 마음을 끌 정도로
예쁘지가 않은데. 지금은 난 다른 남자들에게 딱지
맞은 여자들을 관심 갖고 싶은 생각은 없네. 내 걱정
말고 자네나 파트너한테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갖게나. 나하고 같이 있으면 시간만 손해 보게 된다구"
빙리 씨는 그의 충고대로 따랐다. 다아시 씨는 걸어가
버렸다. 그리고 엘리자베드는 그에 대해
유쾌한 기분을 안가진 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들과 짐짓 명랑하게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발랄하고
장난기 기질이 있어서 우스꽝스런 일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은 가족 전체가 즐거운 밤이 되었다. 베네트
부인은 자기 맏딸이 네더필드 사람에게서 칭찬을
듣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빙리 씨는 두 번씩이나 그녀와
춤을 추었고 빙리 씨 자매들이 잘 위해 주고 있었다.
제인은 온화한 편이긴 했어도 어머니나 다름없이
만족했다. 엘리자베드는 제인의 기쁜 모습을
알아차렸다. 메어리는 자기가 이 근처에서 제일 교양
있는 여자라고 누군가가 빙리 양에게 말하는
소리를 직접 들었다. 캐더린과 리디어는 다행스럽게도
파트너가 부족하지 않았으나 아직까지는
무도회에서 그런 일을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명랑한 기분으로 자기들이 살고 있는
롱본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이 마을의 필요한
주민이었다. 집에 와 보니 베네트 씨가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손에 책만 쥐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위인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그토록 기대를 걸었던
밤이었던만큼 그 결과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즉 새로 이사온 그 사람에 대한 자기
아내의 기대가 어긋나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 그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베네트 부인이 방에 들어서며 말했다.
"아, 여보, 이렇게 즐거운 밤이 또 어디 있겠어요,
무도회도 썩 훌륭했구요. 당신도 가셨으면 좋을
뻔했어요. 우리 제인은 너무너무 인기였지요. 모두들
너무나 예쁘다고 야단들이었어요. 빙리 씨도
예쁘게 보았던지 두 번이나 춤을 췄거든요. 생각해
보시구료. 정말 그애하고 두 번이나 춤을
췄다니까요. 그분이 두 번이나 춤을 청한 사람은 우리
애뿐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루커스 양에게
청하더군요. 그 여자하고 서 있는 걸 보고서 마음이
안좋았지만 결국 그 여자가 아니었어요.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을 리 없었죠. 제인이 차례차례 교대해
가며 추는 것을 보고 그분은 매우 놀란 것
같습디다. 우리 애를 누구냐고 묻더니 소개받게 되자
두 번이나 춤을 추었던 거예요. 다음에는 킹 양 하고
추고, 또 이어서 마리아 루커스양, 다시 그애
차례가 됐어요. 그리고 리지, 불랑제 춤은...."
남편은 짜증이 난듯 끼여든다.
"그 친구 나한테 동정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절반도 추지 않았어야 했었는데 말요! 제발
파트너 얘긴 그만두도록 해요. 차라리 처음 출 때
복사뼈라도 삐었으면 좋을 뻔했거든!"
베테트 부인이 계속 말했다.
"무슨 그런 말씀을 제 마음에도 꼭 들었거든요.
얼마나 잘생겼다구요! 그분 자매들도 매력이
있읍디다. 그분들의 의상만큼 우아한 것을 여태까지
저는 보질 못했다니까요. 그런데 허어스트
부인의 가운 레이스야말로...."
여기서 그녀는 또다시 저지를 당했다. 베네트 씨는
어떤 의상에 대한 이야기도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래서 화제를 다른 데서 찾아야 했으므로
다아시 씨의 좋지 못한 점을 못마땅하다는 듯
과장되게 말했다.
"그렇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을 성싶어요. 리지가 그
사람 마음에 안들었다 해서 별로 손해 볼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유쾌하고 지겨운 존재인데다가 반갑지
않은 인물이란 말예요. 어찌나 콧대가 세고 잘난
체하는지 어디 눈뜨고 봐줄 수가 있어야조! 혼자서
우쭐해 가지고 왔다가 갔다가 하면서 말예요! 춤
상대가 될 만큼 잘생긴 남자도 못되면서! 당신이
거기에 계셨던들 당신 방법으로 한 번 멋지게 콧대를
꺾어 주실 수 있었는데. 나는 그런 사람은 꼴도 보기 싫어."
그녀는 덧붙여서 말했다.
4
제인과 엘리자베드만 단 둘이 남게 되자, 그때까지
빙리 씨 칭찬을 조심해 오던 제인이 자기가
얼마나 빙리 씨를 사모하고 있는지를 동생에게 말했다.
제인이 말했다.
"정말 그분은 청년으로선 전형적인 분이셨어.
똑똑하고 명랑하고 쾌활하신 분야. 나는 그렇게 훌륭한
분을 아직껏 보지 못했단 말야.... 그토록 부드럽고
나무랄 데 없는 품격을 지녔거든!"
"게다가 미남자가 아니우"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젊은 사람이면 이왕에 그 정도 미남자는 돼야지.
그분의 성격은 만점인 편이구"
"두 번째 춤을 추자고 청했을 땐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어. 그런 영광이 나에게 올 줄은 기대를 않했거든"
"그래? 나는 언니를 위해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데. 바로 그 점이 우리 두 사람의 다른 점예요.
언니가 그런 반가운 말을 들으면 놀라겠지만 나는
꼼짝도 않거든요. 두 번 청한 것쯤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수? 그 방에 있던 여자들에 비하면
언니는 그분 눈에는 다섯 배나 예쁘게 보였을
거예요. 그 정도의 공대를 받고 뭘 그러세요. 그러나
어쨌든 그분은 상냥스럽기는 해요. 언니가
그분을 좋아하게끔 허락을 내리지. 좀 모자라는
사람들을 언니는 좋아했었지, 언니는...."
"얘는!"
"정말 언니는 너무나 쉽게 좋아한다니까. 남의 결점이
전혀 눈에 띄질 않는 모양이야. 온 세상이
착하고 기분 좋게만 보여지는가 봐. 언니가 남을
욕하는 것을 여지껏 들어본 일이 없거든요."
"난 서둘러 남의 욕을 않길 원해. 그렇지만 난 언제나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야."
"그건 나도 알아. 바로 그 점이 이상하거든. 언니같이
분별 있는 사람이 남의 어리석은 점이나 못난
짓을 그렇게 어수룩하게 몰라보다니! 솔직함을
가장하는 건 흔해빠진 짓이구(그런 건 어딜 가나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겉치레나 속셈이 없는 솔직함) 다시
말해 남의 성격의 좋은 점을 취해서 더욱
좋게만 말하고 나쁜 점은 아예 눈을 감아 버리는 그런
짓은 언니나 할 짓이에요. 그래서 언니는
그분의 누님들까지 좋아졌다 그거죠? 누님들 태도는
그분만큼은 못했단 말예요."
"하긴 그랬어.... 처음엔. 하지만 말을 건네보면 매우
상냥스럽다는 걸 알게 돼. 빙리 양은 오빠를
모시고 생활하고 있나 보더라. 그런 사람이 좋은
이웃이 되는 걸 모른다면 이쪽의 잘못이야."
엘리자베드는 잠자코 듣고 있었지만,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무도회에서의 빙리 자매의 말과
행동은 대체로 마음에 드는 편은 못되었기 때문이다.
언니보다 관찰이 예민하고 좀처럼 꺾일 줄 모르는
기질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추켜세운다고
해서 판단을 그르치거나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로선 도저히 그들을 칭찬할 계제가 못되었다.
사실 그들은 훌륭한 여자들이었다. 기분이 좋을 땐
아주 싹싹해지고, 마음만 먹으면 상냥스러워질
수도 없지 않으나, 거만하고 잘난 체하는 편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미인축에 들며 런던의 일류
사숙에서 교육을 받았고, 2만 파운드 가량의 재산도
있으며, 지나치게 돈을 써 가며 지체 높은
사람들과 교재를 한다. 그런 결과로 자기네들이 더
잘났다고 생각하고 남을 얕보는 것이 있다고나
할까. 원래 영국 북부의 좋은 가문 출신으로 그러한
환경이 그들의 뇌리 깊숙이 박혀 있었다. 실은
그들 동기간의 재산은 상업으로 얻어진 것이다.
빙리 씨는 아버지한테 거의 10만 파운드 가량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토지를 살
생각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빙리 씨도 같은 뜻을 품고 때때로 장소
물색을 해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집에 살고 있고
장원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형편이므로, 그의
안이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네더필드에서 여생을 보내고 토지 구입은 다음 세대에
미룰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자매들은 그가 자신의 토지를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가 비록 세들어 사는 것이라 하더라도
빙리 양은 그의 살림을 돌봐 주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재산가라기보다는 상류층 사람에게 결혼한
허어스트부인까지도 자신에게 편리하다면 친정 동생
집을 자기 집으로 생각하는 점에서는 누이동생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빙리 씨가 우연한 기회에 권유를 받아서 네더필드
집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그가 성년이 되어
2년이 채 못되었을 때였다. 반 시간쯤 그 집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그 환경이나 주요한 방들이 마음에
들었고, 소유자가 집 자랑을 하는 바람에 당장 빌은
것이다.
그와 다아시 사이는 성격이 정반대인데도 굳은
우정으로 맺어져 있었다. 빙리는 그의 태연함과
솔직한 점, 그리고 유순한 점 등으로 해서 다아시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고 다아시 자신의 기질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었고, 더우기 다아시는 자신의
기질에 대해 크게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빙리는 다이시의 강한 우정에 그를 한껏 믿었고, 그이
판단력을 최고로 존중하고 있었다. 이해력
면에서는 다아시가 앞서고 있었다. 빙리도 이해력이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다아시는 예민한 편이었다.
동시에 그는 도도하고 말 수가 적고 까다롭고 교양 있게
자라기는 했으나 사람을 끄는 데가 없었다.
이점에 있어서는 그의 친구가 훨씬 나았다.
빙리는 어딜 가나 환영을 받았고, 그 반면에 다이시는
항상 남의 기분만 상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메리튼의 파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들의 특징을 소상하게 알아볼 수가 있었다.
빙리 쪽은 그토록 쾌활한 사람들과 예쁜 여자들을
본적이 없다 했고, 누구에게나 격식을 차리지도 않고
전혀 딱딱하지 않게 대해 주었기 때문에 좌중의
사람들하고는 금방 친해질 수가 있었고, 베네트 양에
관해서는 그렇게 아름다운 천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다아시에게는 정반대로
아름다운 것은 찾아보기 힘들고 품위도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 누구에게도 흥미를 갖지 못했고, 대접이나
즐거움을 받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베네트 양이 예쁜
것은 사실이나 웃음이 헤퍼 보였다.
허어스트 부인과 그의 동생도 그렇다고 인정했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 더욱 가까이해서 알고 지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베네트 양은 귀염둥이로
통하게 되었고 빙리는 그러한 추천을 받게 된 이상은
앞으로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도 괜찮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5
롱본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베네트 가족들과 특히
가까이 지내는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윌리엄
루커스 경은 한때 메리튼에서 상업에 종사했다가 상당한
재산을 모아서 시장까지 지내다가 국왕에게
청원해서 기사의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그 영예가 어떻게 크게 작용했던지 상업을 계속하면서
작은 도시에서 사는 게 싫어서 툭툭
털어버리고 메리튼에서 일 마일쯤 떨어져 있는 루커스
집으로 가족과 함께 옮겨갔으며, 거기서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마음껏 즐기고 상업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많은 사람들에게 정중히 대했던
것이다. 지위가 있어서 도도하게 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사람들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정중했다. 선천적으로 되바라지지가 않고
정이 깊으며 남을 잘 돌봐 주기도 했는데, 세인트
제임즈 궁전에서 배알을 한 후부터는 더욱 정중한 이가 되었다.
루커스 부인은 매우 선량한 부인으로서 지나치게
약삭빠르지 않은 것이 오히려 메네트 부인의 소중한
이웃이 될 수 있는 점이었다. 루커스 경 부부 사이에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스물 일곱 살쯤 되는
맏딸은 분별 있고 총명하며 엘리자베드의 친구였다.
루커스 집안의 딸들과 베네트 집안의 딸들이 만나서
무도회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절대로
필요했다. 모임 있는 다음날 아침 루커스 집안의 딸들은
소식도 듣고 말도 전할 겸 해서 롱본으로 향했다.
"참, 그날 밤 시작이 참으로 좋았지, 샬로트. 빙리
씨가 제일 먼저 골라잡은 사람이 바로 나였거든"
베네트 부인은 흥분을 억제해 가며 말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분은 두 번째 상대가 더 좋은
것같이 보이던 걸요, 뭐"
"응, 제인 말이로구나.... 두 번씩이나 춤을 추었지.
그러고 보니 그분은 그애가 매우 마음에
들었나 보더라....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그런 얘길 좀 듣기는 했지.... 그렇지만
모를 일이야.... 뭔가 로빈슨 씨에 관한 얘기 같던데"
"제가 그분하고 로빈슨 씨가 나눈 얘기를 엿들었다는
말씀이죠. 안 드렸던가요? 로빈슨 씨께서 메리튼
파티가 마음에 들었느냐, 또는 예쁜 여자들이 많이
모이지 않았느냐, 그 중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
하고 물으시더군요. 그랬더니 그분께선 마지막 질문에
금방 대답하는 거예요.... 아, 그야 베네트 댁
큰따님이 제일이죠, 그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죠.
그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어머나! 그래요.... 그렇다면 벌써 결정난 거나
다름없겠지.... 그렇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닌지 누가 알겠어."
"아무래도 내가 엿들은 것이 네가 들은 것보다 낫겠다 엘리자"
"다아시 씨의 말은 빙리 씨 말보다 들을 만하지
못하거든, 안그래? 엘리자... 안됐구나.... 겨우
그만하면 쓸만하다니"
"그런 소리를 리지에게 알려서 그분의 냉대로 해서
상심시켜서는 안되는 거야. 그분은 너무나도
불쾌한 사람이고 보면, 그런 사람 맘에 든다는 건
달갑지가 않은 일이거든. 간밤이 롱 부인한테 들은
얘기지만, 30분 동안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않더라는 거야."
제인이 말했다.
"그거 정말이에요, 어머니? 조금 잘못된 일이
아니에요? 전 틀림없이 그분이 롱 부인에게 말하는
걸 봤거든요."
"아, 그건, 롱 부인이 참다못해 네더필드가 맘에
드느냐고 물어서 할 수 없이 대답을 한 거야. 그런데
말을 건네니까 화내더라던데"
"빙리 양 말로는 구분 성격은 친한 사이가 아니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들과 함께
있을 땐 꽤나 상냥스럽다는 거죠"
"어째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제인. 만일 상냥한
사람이라면 롱 부인께서 말을 걸었을 게 아니냐.
나도 짐작이 간다. 그 사람 자존심이 너무 강하다고들
하던데. 롱 부인이 마차를 안가져서 무도회에
세를 내어 타고 온 사실을 들었기에 그렇게
거들거리는 거야."
"그 사람이 롱 부인과 말을 안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엘리자하고 춤을 추기나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루커스 부인이 말했다.
"리지야, 이 다음에 나 같으면 그런 사람이라면 춤 안추겠다."
모친이 그렇게 말했다.
"약속해도 좋지만요, 전 그 사람하고는 절대로 춤 안추겠어요. 어머니"
"그분의 자존심은 저한테는 자주 있는 경우처럼
그렇게 불쾌하질 않더군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니까요. 명문 출신으로 재산이 있고, 뭣 하나
아쉬울 것이 없는 멋진 남자가 자기를 높인다고
해서 크게 잘못은 아닌 거죠. 이렇게 말할 수만
있다면 그분은 자존심을 가져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루커스 양이 말했다.
"정말 그래요, 그분의 자존심이 제 자존심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쉽게 용서해 줄 수가 있어요."
그러자 메어리는 자기 의견에 대해 자신만만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존심이란 건, 누구나가 갖고 있어요. 책에서 본
바로는 너무나도 보편적인 거예요. 인간성은
거기에 빠지기 쉽고 그리고 실제적이든
상상적이든간에 자기에게 갖추어진 일에 대해 자기만족의
감정을 갖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는 법이에요.
허영심과 자존심은 말로는 유사하게 쓰이지만, 별개의
일이거든요. 허영심이 없이도 자존심을 갖는 사람도
있어요. 자존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견과 깊은
관계가 있고, 허영심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데 관계가 잇는 거죠"
"내가 만약 다아시 씨만큼이나 부자라면 나에 자존심
정도는 어떻단 말이에요. 포크스하운드 종류의
사냥개나 기르고 매일같이 포도주를 마시겠어요."
자매와 함께 온 루커스 댁 아들이 말했다.
"그렇게 마시면 도가 지나치다니까요."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마시는 것을 보는 즉시 병을 뺏어 버리고 말겠어요."
젊은이는 그럴 수가 없다고 하고, 그녀는 뺏어 버리고
말겠다고 계속 우겨대는 바람에 그 토론은 돌아갈 무렵에서야 끝났다.
6
롱본의 여자들은 곧 네더필드의 여자들을 찾아갔다.
그 방문에 대해 곧 답례가 있었다. 베네트 양의
다정다감한 태도는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의 호의를
더 크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견딜 수 없을
정도고 동생들은 이야기 상대가 없었지만, 위로부터 두
사람에 대해서는 더 가까와지고 싶다는 희망이
표현되었다.
제인은 이 배려를 더할나위없이 기쁘게 받아들였다.
엘리자베드는 누구를 대할 때마다 거만하게
대하고, 더우기 언니에게마저 예외가 아니어서 그들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제인에 대한 그들의 친밀한 사랑도 그
정도였지만 제인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빙리 씨의
영향에 힘입은 것이고 보면, 그런대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날 때는 언제나 그가 진정으로 제인을
사모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제인 역시 어느새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는 사실은 엘리자베드에게는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이 주위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인은 매우 강한
감정을 지닌 반면 주제넘은 사람들의 의혹에서 자신을
막아 줄 침착한 기질과 한결같은 명랑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사실을 친구인 루커스
양에게 알렸다.
"그런 경우에 세상 사람들의 눈을 살짝 속인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긴 해요. 그렇지만 감쪽같이 남의
눈을 속이고만 있으면 불리해질 때도 있어. 만약에
여자가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 자기 애정을
상대방에게 감추고 있다면 끝내 그 사람 마음을 끌
기회를 잃고 말 거야. 그때 가서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 봤자 조금도 위안이 되진 않지.
본래 애정엔 감사니 허영심이니 하는 따위가
많이 붙어다니기 마련이니까, 그냥 내버려두면
아무짝에도 못쓰게 되는 거야. 사랑을 시작하는 건 퍽
자유로운거야.... 그리고 마음이 조금 끌려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지. 그렇지만 이렇다 할 자극
없이 진정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이상의 애정을 보여
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애. 빙리 씬 틀림없이 당신
언니를 진정 좋아하고 있어. 그렇지만 언니가 손을
뻗쳐 주지 않나 봐. 그 이상의 진전을 바라기란
어려울 테니까 말야."
그렇게 샬로트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제인 언닌 자신의 성질이 허용하는 데까진
그분에게 손을 뻗쳐 줄 거야. 그분에 대한 언니의 생각은
내가 다 느낄 수 있는 정돈데, 그걸 몰라
준다면 그분은 정말 바보천치일 거야."
"알아둬요, 엘리자. 그분은 당신만큼 제인 언니
성질을 모르고 있단 말야."
"그렇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마음을 두고서 그걸
감추려 들지 않을 것 같으면 상대방 남자가 그걸
모를 리 없지."
"자주 만나면 알 수 있겠지. 하지만 빙리 씨와 제인
언니는 꽤 자주 만나는 편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몇 시간씩 만나는 일은 별로 없거든. 게다가 언제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만나게 되니까,
둘이서만 다정하게 얘길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러니까 제인은 그분의 주의를 끌 수 있는 30분
향상 최대한으로 이용해야 하는 거야. 상대방을 꼭
손아귀에 잡아 두기만 하면, 마음껏 연애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는 법이거든"
"행복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욕심만을 문제삼는다면
그것이 썩 좋은 방법이 되겠지만...."
엘리자베드는 그렇게 대답했다.
"만일 돈이 있는 어떤 남자를 찾아보겠다는 결심만
가진다면 나도 그런 방법을 택하겠어. 그렇지만
제인의 기분은 그렇지가 않단 말야. 어떤 계획이
있어서 행동하고 있는 게 아냐, 지금 당장은 자기
애정의 정도며, 나아가 그 정당성마저도 모르고 있는
게 사실이야. 알게 된 것이 두 주일 밖에
안됐지. 메리튼에서 네 번쯤 춤을 같이 췄고, 어느 날
아침 그분 집에서 만나, 그 후로 네 번 정도
식사를 했을 뿐이거든. 이것으로는 상대방 인간 됨을
알아내기가 어려워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그렇겠지. 그저 식사만 함께
했다면 고작해야 상대방 식욕이 왕성한가 하는
정도나 알아냈겠지. 그러나 알아둬야 할 일은 나흘
밤을 함께 있었다는 점.... 나흘 밤이면 무슨
수확이 있을 법도 한 일이거든"
"그래요, 나흘 밤이나 함께 지내고서 확인한 것이라곤
고작 두 사람이 다같이 코머스(카드 놀이의
일종)보다 벵텅(카드 놀이의 일종)을 더 좋아하는 걸
알았대. 그 밖의 중요한 특질 같은 건 별로
드러나지 못한 것 같애"
"진정으로 제인의 성공을 빌고 싶어. 그분하고 내일
당장 결혼하게 된다고 해도 그분의 성격을 일 년
동안 연구한 거나 다름없는 좋은 행복의 기회를
얻었다고 보고 싶어요. 결혼의 행복이란 전적으로
운인 게예요. 쌍방의 기질을 서로가 잘 알고, 서로가
또 닮았다는 걸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두
사람의 행복을 더해 주지는 않는 법이에요. 나중에
차츰 어긋나서 곤란한 일이 생기게 되거든.
그러니까 평생을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면 흠 같은 건
되도록 모르는 게 좋아"
"웃기지 말아요, 샬로트. 그렇지만 건전한 생각이
못돼요. 건전하지 못하다는 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그래. 더우기 자기 자신의 일 같으면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언니에 대한 빙리 씨의 애정을 저울질하는 나머지
엘리자베드는 자신이 그 친구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아시 씨는 처음에는
그녀를 예쁘다고 하지 않았고, 무도회에서도
감탄해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 그저 비판하기 위해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그녀의 검은 눈의 아름다운 표정에 의해 용모가
이상할이만큼 총명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발견에 이어 이에 못지 않게 그를 흥분하게 만드는
사실도 있었다. 비판적인 눈으로 그녀의 몸매
균형이 안잡힌 점을 한두 가지 아니게 찾아냈지만,
그녀의 자태는 어디까지나 경쾌하고 기분 좋은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의범절은 결코 상류사회에 속하지 못한다고
단정을 내렸지만, 그 자연스런 명랑성에 마음이 끌리고 말았다.
이 사실을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남자는
자기에게 어디까지나 유쾌한 사람이 못되며 자기를
춤 상대가 될 만큼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더 알기 위해서 그녀와 대화하는
첫단계로서, 그녀가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쯤
접근해 갔다. 그러한 행위가 그녀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윌리엄 루커스 경 댁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였다.
"다아시 씨는 어쩌시려고 그러는지 몰라. 내가 포스터
대령하고 얘길 하는데 엿들으니 말야."
그녀는 샬로트에게 말했다.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은 다아시 씨만이 할 수 있는 거야."
"그렇지만 자꾸 그러시면 어떡할 작정이신지 내가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해 주고 말 테야. 꼭
빈정대는 투거든. 그러니까 이쪽에서 다소 무례하게
나가지 않으면 결국 그분은 무서운 존재가 될 것 같아"
별로 할 말이 없는데도 금방 다아시가 가까이
다가오자, 루커스 양은 친구에게 그 문제를 끄집어내어
말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했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즉시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다아시 씨, 조금 아까 제가 포스터 대령님께
메리튼에서 무도회를 열어 달라고 했을 때, 말솜씨가
근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기세가 대단하시던데요. 그렇지만 그 화제 자체가
결국은 부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는 걸요."
"여자들에 대해 매우 엄격하시군요."
"이번엔 엘리자베드가 귀찮게 될 판이다."
루커스 양이 말했다.
"내가 피아노를 열께, 엘리자. 그 뒤엔 어떻게 되는가 알겠지?"
"당신은, 친구로선 좀 괴상한 사람야! 누구 앞에서나
피아노를 치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니 말야.
만일 내 허영심이 음악분야로 바뀌게 된다면 당신은
더할나위없이 고마운 분이긴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니까 최고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던 분들
앞에 앉을 엄두가 안나요."
그러나 루커스 양이 계속 권하자 근ㄴ는 덧붙여 말했다.
"좋아요, 꼭 해야 한다면 할 수 없지."
다아시 씨 쪽을 근엄한 얼굴로 한 번 슬쩍 바라보고
나서 말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시는 속담이
있지요.(죽을 식히기 위해 숨을 몰아쉬어라) 그러니까
저도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숨을
몰아쉬도록 하겠어요."
그녀의 노래는 결코 우수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한두 곡 부르고 나자,
한곡 더 청하는 몇 사람의 간청에 답례하기도 전에
그녀의 뒤를 이어 동생 메어리가 잽싸게 피아노
앞에 앉았다. 메어리는 용모가 평범한 편이다. 그 대신
학식과 재능을 가져보겠다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언제고 그것을 내보이고 싶어했다.
메어리는 재능이나 취미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심한
허영심은 없지만 그 허영심은 아는 체와
잘난 체하는 태도를 동시에 취하게 했는데, 그러한
것들은 그녀보다 훨씬 우수한 사람도 결함이 되고
말 것이다. 한결 소박하고 덜 잘난 체하는 엘리자베드는
동생의 반 정도도 잘치지 못했지만 듣는
이들로 하여금 훨씬 더 즐겁게 해주었다.
메어리는 긴 협주곡이 끝나자, 동생들의 부탁으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곡으로 칭찬을 받고
기뻐했으나 동생들은 루커스 집안 사람 몇 사람과 두세
명의 장교들과 방 한끝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다아시는 그들 옆에 서서 대화가 없는 이런 모음은
처음이라고 화가나 있었으며, 너무나 자기
생각에만 골몰해 있었던 나머지 윌리엄 루커스 경이
다음과 같은 말을 끄집어낼 때까지 그가 바로 옆에
있는 줄도 몰랐다.
"이거 정말 젊은이들한테 얼마나 매력 있는
오락입니까, 다아시 씨! 춤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거야. 난
이거야말로 사회에서 제일 좋은 풍류라 생각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사회에서도 유행하고 있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습니다.
야만인도 춤출 줄 아니까요."
윌리엄 경은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친구분께선 즐겁게 춤추시는군요."
빙리가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한몫 끼는 것을 보고 계속했다.
"틀림없이 선생 자신도, 그 재능엔 남다르게 능하실
줄 믿습니다, 다아시 씨."
"메리튼에서 제가 춤추는 걸 선생님께서 보셨던 게죠"
"여부가 있소, 적잖이 즐겁게 해주셨소. 세인트
제임즈(영국의 왕궁)에서 더러 추시는가요?"
"아뇨, 전혀"
"그곳은 무도만이 적합한 의례가 아니겠소."
"전 그런 의례는 되도록이면 안가기로 마음 먹고 있습니다."
"런던에 저택을 소유하시는 걸로 알고 있소만"
다아시 씨는 고개를 숙였다.
"나도 한때, 런던에 정착해서 살고 싶었지요.
상류사회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고 해서요. 그러나 런던
공기가 우리 집사람한테 맞을지 확실치가 않아요."
그는 대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을 잠시
멈추었지만, 상대방은 그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엘리자베드가 바로 그때 두 사람 있는 데로
다가왔기에 숙녀에게 매우 친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에 떠올라서 큰 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엘리자 양, 왜 춤을 안추십니까? 다아시 씨! 이 젊은
숙녀를 잘 어울리는 파트너로 당신에게
소개해도 좋겠소, 이런 미인을 바로 앞에 두고 춤을
마다시지는 않겠지요."
그녀의 손을 잡고서 몹시 당황하긴 했으나 그리
싫지만은 않은 것 같은 다아시 씨에게 건네주려
하자, 그녀는 별안간 몸을 사리고 약간 마음의 불안을
감추지 못한 채 윌리엄 경에게 말했다.
"선생님, 전 정말 춤출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파트너를 구하러 이쪽으로 걸어왔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다아시 씨는 엄숙할이만큼 정중히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영광을 받겠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윌리엄 경이 설득하려
들었으나 그녀의 결의를 번복할 수는 없었다.
"엘리자 양은 춤의 명수이신데, 그렇게 아름다운 춤
구경을 안시켜 주신다는 건 너무하신 일이요.
게다가 이 신사양반은 오락을 대체적으로 싫어하시는
분이지만 반 시간쯤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시는
데 이의가 없으시겠지요, 틀림없이"
"다아시 씨는 예절이 밝으신 분이세요."
엘리자베드가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그렇소. 그러나 마음을 유혹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엘리자양, 다아시 씨가 친절하게
대해 주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지요.
이런 파트너를 두고 누가 싫다 하겠소?"
엘리자베드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외면했다. 엘리제베드가 거절했다고 해서 그의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그가 자못 만족스런 기분으로
그녀를 생각하고 있을 때 빙리 양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선생님,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전 알아요."
"그렇지가 않을 텐데요."
"이런 식으로 이런 사회에서 몇 밤이고 지내신다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계시겠죠.
저도 똑같은 의견이에요. 이렇게 성가신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멋없고 시끄럽고 전부 보잘것없는데도 위세만
부리고요! 선생님의 좋은 평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잘못 추측인데요. 전 지금 조금 더 기분 좋은 일을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은 어떤 미인의
얼굴에 아름다운 눈이 보여 줄 수 있는 아주 큰
기쁨을 마음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빙리 양은 얼른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그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숙녀가 대체 누구인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아시 씨가 대담하게 대답했다.
"엘리자베드 베네트 양입니다."
"엘리자베드 베네트 양이라고요!"
빙리 양이 되물었다.
"정말 놀랐어요. 언제부터 그분을 좋아하시게 되신
거지요. 그리고 언제쯤 축하 인사를 드릴 수가 있겠어요?"
"빙리 양이 그렇게 물어 오실 줄 알았습니다. 여자의
상상력이란 무척 빠른가 보죠. 관심에서 연애로,
연애에서 결혼으로, 한꺼번에 날아가 버리니까요.
그런 말씀을 저에게 하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생각하고 계시다면 그 문제는 다
결정난 거나 다름없게 생각하겠어요. 그리고
장모님 되실 분도 여간 좋은 분이 아니시구요. 물론
그분께선 펨벌리에서 함께 사시게 되는 거겠죠"
그녀가 이런 식으로 흥겨워하고 있는 동안에 그는
전혀 무관심하게 듣고만 있었다. 그의 침착한
태도로 미루어 보아, 모든 일이 틀림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녀의 재치 있는 말이 한참 동안 흘러나갔다.
7
베네트 씨의 재산은 거의가 토지로서 일 년에 2천
파운드에 불과했으나, 그나마 딸들에게 불행하게도
남자 상속인이 없어서 먼 친척 한 사람에게 상속하기로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재산은 자신만으로는
충분한 것이었으나, 남편의 재산 부족을 메꾸기에는
불충분했다. 친정아버지는 메리튼에서 변호사를
지냈고 딸에게 4천 파운드 정도를 남겼다.
그녀에게는 필립스라는 사람과 결혼한 여동생 하나가
있었다. 필립스는 아버지 밑에서 서기 노릇을
하면서 그 일을 잇기로 정해져 있었는데, 런던에서
상당한 방면의 상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생이 있었다.
롱본 마을은 메리튼에서 1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보통 한 주일에 서너 번
메리튼에 드나들며 이모를 방문하고, 길 건너 편에 있는
부인 양품점에 나들이를 안하고는 못 베기는
여자들에겐 안성마춤의 거리였다. 가족 중에서 제일
어린 캐더린과 리디어는 곧잘 이런 용무로 해서
자주 드나들었다. 언니들보다는 마음이 공허하고 달리
좋은 일도 없고 해서 아침 나절을 이럭저럭
보내고, 저녁 이야깃거리를 들을 겸해서 메리튼의
산책을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본래 시골이라는 데는 이렇다 할 새 소식이 없다고는
말하지만, 그들은 늘 그들 이모로부터 이야기를
접하곤 했다.
지금 현재는 근처에 의용군 연대가 도착해 왔기
때문에 그네들에게는 새소식과 즐거움을 갖다 주는
데 부족하지가 않았다. 연대는 겨울 내내 주둔하기로
되어 있었고 메리튼에 사령부가 있었다.
그네들에게 이모 뻘인 필립스 부인을 방문하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다시없이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날이면 날마다 장교의 이름이나 연고관계에
대한 그들의 지식에 무엇인가 덧붙여지고 있었다.
군대의 숙소는 비밀이 오래 가지 못해서 그녀들은
마침내 그들과 알게 되었다.
이모부 필립스 씨는 군인들을 다 찾아다니는 사이여서
조카딸들에게는 지금껏 알지 못했던 행복의
원천이 되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이젠 자나깨나 장교들
이야기뿐이었다.
빙리 씨의 재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머니는
활기를 띠었지만, 그것도 기수의 군복에 비할 때,
그들 눈에는 무가치한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 일에 대해 한참 수다를 늘어놓고
있는 것을 듣고서, 베네트 씨는 냉담하게 말했다.
"너희들 말버릇을 보아하니, 우리 고장에 제일가는
바보 애들 같구나. 오랫동안 그렇지 않을까 하고
의아스럽게 여겨 왔었는데, 이젠 그것이 확실해졌구나"
캐더린은 당황해서 대답도 제대로 못했지만, 그 반면
리디어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여전히 카터
대위를 칭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내일이면 런던으로
가게 되어 있으니까 오늘 안으로 만나야 한다는 식이었다.
"너무하시군요, 제 자식들을 당신은 그렇게 바보
취급만 하시다니. 저 같으면 남의 자식은 욕하게
될지 몰라도 내 자식은 어림도 없어요."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만일 내 자식이 바보 같으면, 그걸 언제나 알아둬야 하는 거요."
"그래요. 그렇지만, 우리 집 애들은 하나같이
똑똑하기만 하거든요."
"이 점만 우리 내외 의견이 맞지 않는 거요. 그래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이 사소한 데까지 일치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끝의 아이 둘이 바보란 점에 있어서는
당신 생각하고는 크게 달라."
"저런 철부지들에게 분별을 바라는 게 잘못이죠.
그애들도 우리 나이가 돼보구료, 장교 얘긴 하래도
않을 테니까요. 저도 한땐 붉은 군복이 못견디게 좋은
때가 있었거든요.... 제 마음 속에서는 지금도 좋지만서두요.
일 년에 5, 6천 파운드 수입이 있는
장교가 만일 우리 애들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전 거절 않겠어요. 전말 밤 윌리엄 경 저택에서 본
포스터 대령의 군복은 정말 잘 어울리던데요."
"엄마, 이모 말씀엔, 포스터 대령과 카터 대위는 처음
왔을 때처럼 그렇게 자주 워트슨 양 집엘
드나들지 않는다는군요. 그런데 요즘은 클리아크 댁
서재에 서 있는 걸 이모가 자주 보신대요."
베네트 부인의 대답은 하인이 마침 베네트 양 앞으로
온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에 대답하려다
중단했다. 네더필드에서 온 회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네트 부인의 눈은 기쁨으로 빛났고, 딸이 읽고
있는 동안에 숨가쁘게 소리를 질렀다.
"얘야, 어디서 온 거니? 무슨 사연이니? 뭐라고 씌어
있니? 제인아, 어서 끝내고 우리들에게 말해 다오, 어서"
"빙리 양한테서 온 편지예요, 어머니"
제인이 말하고서 소리내어 읽었다.
친애하는 친구에게.
만일 그대가 오늘 루이저와 나하고 식사를 함께 하는
데 대해 동정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면 우리
자매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서로가 미워하며 살아야
할 위험이 있는 거예요. 여잘 둘이 하루 종일
함께 있게 되면 결국 싸움도 하게 마련이거든요. 이
편지 받는 즉시 되도록 발리 오도록 해요. 오빠와
남자분들은 장교들과 식사를 하기로 돼 있어요. 총총.
샬로트 빙리
"장교들하고 말이야!"
"이모는 그런 말씀을 우리에겐 안하시던데"
"그분은 딴 데서 식사를 하시는 모양이다. 정말 운이 나쁘구나"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마차로 가도 좋겠어요?"
"아냐, 말을 타고 가는 게 좋을 거다. 비가 올 것
같으니까. 그렇게 되면 그 댁에서 묵게 되지."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요, 저편에서 돌려보내려고
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면요."
엘리자베드가 끼여들었다.
"아, 그렇지만 남자분들은 메리튼으로 가는 데 빙리 씨
댁 마차를 이용하게 될 테고 허어스터 댁엔 말이 없으니까."
"전 그래도 마차로 가고 싶어요."
"그렇지만, 너희 아버지께선 말을 빌려 주시지 않을
것 같다. 말은 농장에서 필요하거든. 여보?"
"사실은 내가 사용하는 것보다는 농장에서가 더
필요한 거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오늘 일에 쓰신다면 어머니의
소원은 성취되시는 게구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마침내 엘리제베드는 말을 남에게 빌려 주었다는
사실을 아버지로 하여금 인정하게 만들고 말았다.
제인은 할 수 없이 말을 타고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날씨가 불순할 것이라고 되뇌면서
문간까지 배웅해 주었다.
마침내 어머니의 희망이 이루어진 셈이다. 제인이
출발한 지 얼마 안되어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생들은 언니 걱정을 했지만, 어머니는
기뻐하셨다. 비는 밤새도록 줄기차게 내렸다.
확실히 제인은 돌아 올 수가 없었다.
"내 생각이 맞아들어가는구나!"
베네트 부인은 비가 온 것이 자기의 공로인 것처럼
몇 번이나 말했다. 다음날 아침에 가서야 자기의
계획이 자아내는 행운이 있는 줄 알게 되었다.
아침 식사가 끝났을 까 했을 때, 네더필드의 하인이
엘리자베드 앞으로 이런 내용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사랑하는 리지!
어제 비에 흠뻑 젖은 탓인지 오늘 아침 기분이
좋지가 못한 것 같아. 이곳의 여러분들께서는 내가
좋아질 때까지는 돌려보내 주지 않겠다고들 하셔.
그리고 존스 선생님께 진찰을 받아 보라고들
하셔(그러니까 내가 혹시 진찰받았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놀라지 말도록 해) 목이 좀 아프고
두통이 있는 것 외엔 별로 걱정될 것이라곤 없어.
언니 씀
"그러니까 당신은 딸이 무서운 병을 앓게
되어도... 죽는다 하더라도... 빙리 씨를 따라다니다가
생긴 병이라고 한다면 마음이 편하겠지. 더우기
당신의 명령에 따른 것이니까 말야."
베네트 씨는 엘리자베드가 소리내어 편지를 읽고 난
후 말했다.
"그애가 죽긴 왜 죽어요. 감기 좀 앓는다고 다
죽는답디까. 잘들 봐줄 텐데요. 거기에 있는 동안은
문제 없어요. 마차 준비만 되면 내가 당장 가서
만나봐야겠어요."
엘리자베드가 너무 걱정이 되어서, 그냥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말을 탈 줄 몰라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기의 결심을 말했다.
"넌 어쩌면 그렇게도 바보냐, 진흙탕인데도 가겠다고
하니, 도착했을 때 네 꼴은 정말 못봐 줄 거다."
어머니는 그렇게 외쳤다.
"언니를 만나는데 뭐 어때서요.... 목적이 그건데요."
"그건 이 아버지에게 슬쩍 넘겨치는구나, 말을 보내 달라구"
"그렇지 않아요. 걷는 걸 싫어하진 않아요. 목적만
있으면 거리 같은 건 문제가 안돼요. 그까짓
3마일 정도는 저녁 식사 때까진 돌아올 수 있어요."
"언니의 자비심엔 그저 감탄할 뿐이야. 그렇지만 모든
감정은 이성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 거예요.
내 생각엔 모든 노력은 그 필요성에 따른 것이어야 해요."
메어리가 그렇게 말했다.
"저희들이 메리튼까지 같이 가도록 하겠어요."
캐더린과 리디어가 말했다. 엘리자베드는 그들의
동행을 받아들여서, 딸 셋이 같이 출발했다.
"빨리 가기만 하면 카터 대윈가 하는 사람을 출발
전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들이 걷고 있을 때 리디어가 말했다.
메리튼에서 그들은 헤어졌다. 두 동생은 어느 장교
부인의 숙소로 갔고 엘리자베드는 혼자서 계속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들판을 한 곳 한 곳 질러서,
울타리의 층계를 뛰어넘고, 조급한 행동으로
빗물이 괸 웅덩이를 넘고서 마침내 저택이 보이는
곳까지 당도했을 때, 발목은 지치고 양말은 젖고
얼굴은 운동의 열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엘리자베드는 조반실로 안내받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제인을 빼놓고 모두 모여 있었는데, 그녀가
나타나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날씨가 그렇게도
불순한데다가 그렇도록 이른 시각에 그것도 혼자서
3마일을 걸어왔다니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으로서는
조금은 믿기 어려웠다. 그리고 엘리자베드는
그 일로 해서 이 집안 사람들이 자기를 경멸하고 있는
줄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매우 정중하게 그녀를 맞아들였다.
그리고 빙리 씨의 태도는 정중한 것 이상이
깃들여 있었다. 상냥함과 친절함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아시 씨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고, 허어스트
씨는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다아시는 엘리자베드의
얼굴이 운동을 했기 때문에 빛이 난다고
칭찬하는가 하면 혼자 이렇게 먼 곳까지 걸어오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어스트씨는 아침 식사만 생각하고 있었다.
언니의 병세를 물어보았으나 대답은 썩 만족스런 것이
못되었다. 베네트 양은 간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지금은 일어나 있으나 열이 많아서 방 밖으로
나올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즉시
언니에게로 안내를 받아 매우 기뻤다.
더우기 제인은 이렇게 찾아 주기를 몹시 아쉬워하는
내용의 편지를 쓰려다가 집안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불편을 줄까 봐 그만두었던 참이라 동생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긴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워서 빙리 양이 두 자매만 남겨 놓고 나가
버리자, 다시없이 친절하게 대해 준다는 감사의
말 이외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잠자코
간호를 맡아보았다.
아침 식시가 끝나자 빙리 자매가 자리를 함께 했다.
엘리자베드는 자매가 제인에게 보여 주는 깊은
애정과 염려를 보고서, 자신도 그들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약사가 와서 환자를 진찰해 보더니 예상했던
대로 심함 감기이므로 잘 낫게 간호해 주도록
부탁한다고 말하고 환자더러는 침대로 돌아가도록
지시하고 물약을 주겠다고 말했다. 곧 지시대로
따르기로 했다. 열의 증세가 더해지고 두통이 몹시
심해져 갔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드는 한시도 방을
떠나지 않았고 자매들도 그러했다. 남자들이
외출을 하고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에게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키자, 엘리자베드는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그렇게
말했다. 빙리 양이 마차를 내어 주겠다고 제안했고,
약간 옥신각신한 끝에 엘리자베드가 응하게 되었을
때, 제인이 동생과 헤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빙리 양은 마차의 제공을 변경하고 당분간
네더필드에 머물도록 권유했다. 엘리자베드는 감사하며
그 제안에 동의하고, 그곳에 머물게 된 사연을
알리는 동시에 옷을 가지고 오도록 롱본으로 하인을 보냈다.
8
다섯 시에 두 여자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물러났고, 여섯 시 반에 엘리자베드는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그때 근심스레 안부를 여러 사람들이
물어왔는데, 그 중에서도 빙리 씨의 걱정이 유난히
좋게 느껴졌지만 그녀는 그러한 질문에 대해 그럴 듯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제인의 경과는 결코
좋지가 못했다.
자매는 그 사실을 접하자, 정말 가엾다고도 했고
지독한 감기에 든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일이라고
되뇌었다. 제인이 눈앞에서 없어 자매가
냉담해지는 것을 보자 엘리자베드는 일찍 그들에게 품어
왔던 혐오의 정을 품게 했다.
빙리 씨만이 그들 중에서 엘리자베드에게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다. 제인에 대한 그의 근심은
명백했고, 그녀 자신에게까지 친절한 사실은 다시없이
기쁜 일이었다. 그리하여 딴 사람들이
엘리자베드를 방해자 취급을 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그러한 의식을 강하게 지니지 않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빙리 이외의 사람들은 별로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있었다. 빙리 양은 다아시 씨 생각에 골몰해
있었고, 동생 역시 그런 상태였다. 엘리자베드 바로
옆에 자리잡은 허어스트 씨라는 사람은 워낙
게으른 사람으로서 그저 먹고 마시고 카드 놀이를 하기
위해 사는 사람 같았고, 엘리자베드가 스튜
요리보다 신선한 요리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입을 꽉 다물어 버렸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엘리자베드는 곧 제인에게로
돌아갔다. 빙리 양은 그녀가 방을 나가자마자 이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녀의 행동은 몹시 좋지가
못하며 교만과 자존심이 뒤섞였다고 했다.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고, 품위도 없으며, 취미 또한
없는데다 예쁘지도 않다고 했다. 허어스트
부인도 같은 생각이라 덧붙여 말했다.
"걸음걸이만 빼놓으면 별로 볼 점이 없는 여자야.
오늘 아침의 그 모양은 평생 잊지 못하겠다. 그
정도면 영락없는 야만인일 테지."
"정말이야, 루이저, 안웃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 첫째는 그 사실부터가 말이 아니란 말야!
언니가 감기 들었다고 자기가 뛰어다닐 필요까진
없거든, 그 머리 꼴을 보라지, 단정치 못하게
산발이라니!"
"그래, 그리고 그 속치마 꼬락서니라니. 속치마까지
흙에 빠지고 말았어. 그걸 감추느라 가운을 내려
입었는데, 그게 감춰졌어야 말이지."
"그래, 네 그림은 그만하면 정확하다, 루이저"
빙리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내 눈엔 하나도 안보이던데. 엘리자베드 양이
오늘 아침 방에 들어왔을 때, 매우 훌륭하고
괜찮게 보이던데. 그녀의 흙투성이 속치만 난 못봤어."
빙리 양이 말했다.
"선생님은 틀림없이 보셨죠, 다아시 씨. 선생님 누이
같으면 그렇게 수치스럽게 내버려두지는
않으실 줄 생각해요."
"여부가 없는 일이겠죠"
"3마일 아니라 4마일, 5마일, 몇 마일이든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발목까지 진흙에 빠지면서 그나마
혼자서 걸어오다니! 그래가지고 뭘 하겠다는 건지?
매우 건방진 독립심, 어딘가 촌스러운 행동은
아예 담을 쌓아 버리고 말야."
"언니에 대한 우애를 잘 나타내니 얼마나 기특한 일이야."
빙리가 그렇게 말했다.
"다아시 씨. 이런 모험이 그 여자의 예쁜 눈을
칭찬하신 선생님께 영향을 주었을까 걱정이에요."
빙리 양이 반 속삭이듯 말했다.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그분의 눈은 운동으로 더
빛나기만 하던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허어스트 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제인 베네트에 대해선 좋은 호의를 가지고
있어요. 그 여자는 정말 상냥하지요. 행복하게
결혼해서 잘 살 수 있기를 난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그러나 그런 아버지 어머니, 친척들이
그래서야 우선 그런 기회가 있을 것 같지가 않네요."
"숙부되시는 분이 메리튼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이요. 또 한 분이 계시는데, 치이프사이드(런던의 상업지구)
근처에 살고 계신 모양이에요."
"그저 참 훌륭하신데"
누이동생이 덧붙여 말하자 둘이 마구 웃어댔다.
"치이프사이드를 메울 만큼 많은 숙부가 있다 해도
그들 자매의 상냥함을 덜하게 하지는 않을 거요."
빙리가 외쳤다.
"그러나 지체 있는 사람하고 결혼하게 될 기회는 사실
줄어들게 되는 거지."
다아시가 말했다.
이 말에 대해 빙리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매는 열심히 그 말에 동의하며, 한참 동안
친구의 저속한 친척을 놀림감으로 해서 한바탕 웃고 있었다.
그러나 차분한 감정이 되자, 그들은 식당을 나와 곧장
제인 방으로 가서 커피가 될 때까지 거기에
앉아 있었다. 제인의 병세는 아주 나빴다.
엘리자베드는 언니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으려 했고,
이윽고 밤이 늦어져서 언니가 잠들고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자,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이 달갑지가
않았지만 내려가는 것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응접실로 들어서자 모두가 루우라고 하는 카드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또 같이 하자는 말도
들었으나, 돈을 너무 많이 걸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거절해 버리고 언니를 구실 삼아서 잠시
아래층에서 책을 읽기로 했다. 허어스트 씨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카드 놀이보다 책 읽는 것이 더 좋은가요? 아주
신기한 일인데요."
그가 말했다.
"엘리자 양께선 카드 놀이가 싫으시대요. 대단한
독서가이시라 딴 데는 재미가 없다나 봐요."
빙리 양이 그렇게 말했다.
"언니 간호에도 틀림없이 재미가 있으시겠죠"
빙리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곧 완쾌되는 걸 보시면 기쁨이 더하실 테죠"
엘리자베드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하고 책 몇 권이
놓여 있는 테이블 있는 데로 걸어나갔다. 그는
곧 서재에서 다른 책들을 다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베네트 양께서 읽어 주시거나 제 명예를 위해서도
책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전 꽤 태만스런
사람이라서 많지도 않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죠"
엘리자베드는 이 방에 있는 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어이가 없어요. 아버지께서 이 정도 책만
남기시다니. 펨벌리의 선생님 서재는 썩 훌륭하시겠지요. 다아시 씨!"
빙리 양이 말했다.
"당연한 일이죠, 몇 대에 걸쳐서 모은 것이니까요."
그가 대답했다.
"그건 또 선생님께서 모으신 거죠. 언제나 책을 사시는 분이시니까요."
"요즘은 각 가정에서 서재의 소홀히 하는 것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일입니다."
"소홀히 하시다니요! 선생님을 그렇게 훌륭한 저택을
더 아름답게 구밀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으시겠지요. 오빠, 다음 집을 지으실
땐 펨벌리의 반만큼이라도 지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나 됐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그 부근 땅을 매수해서 펨벌리를 하나의
모델로 삼도록 권하고 싶어요. 더비셔보다 더 좋은
곳은 영국에선 찾지 못해요."
"그렇게 하마. 다아시가 팔겠다면 펨벌리를 몽땅
사들이기로 하자"
"전 가능한 일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오빠"
"정말야, 캐롤라인. 흉내내기보다는 차라리 사들이는
편이 펨벌리적인 것을 내 것으로 할 수가 있지."
엘리자베드는 이런 식으로 나누는 대화에 마음이
끌려서 책에는 전혀 눈이 가지를 않았고, 이어 읽던
책을 접어두고 카드 놀이용 테이블에 가까이 가서,
빙리 씨와 그의 제일 손위 누이 사이에 끼여들 듯
자리를 잡고서 놀이를 지켜볼 참이었다.
"다아시 양은 올봄에 많이 자란 것 아녜요?"
빙리 양이 말했다.
"내 키만큼이나 자란 것 같아"
"그럴까요, 이젠 엘리자베드 베네트 양과 거의 키가
같을까 아니면 조금 클지 모르겠어요."
"다시 한 번 꼭 만나보고 싶네요! 만나서 그렇게 좋은
사람은 여태껏 못봤으니까요. 그 용모에 그
예절 그리고 그 나이에 그렇게 재능이 뛰어나다니!
피아노 연주는 아주 일품이었구요."
"놀라운 일이야, 젊은 여성들이 그렇게 꾹 참고 그런
걸 다 배우다니"
빙리가 그렇게 말했다.
"젊은 여성들이 그런 걸 다 배운다고요! 오빠는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이시죠!"
"그야, 전부한테 하는 말이다. 모두들 화판에다 칠을
하고, 병풍에 표지를 씌우고 지갑을 짜기도
하지. 그런걸 못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 처음으로
어떤 숙녀에 대한 소문이 나돌 때, 으례껏 뭐든지
잘한다는 말을 안들을 때가 없다니까."
"흔해빠진 재능에 대한 자네의 목록에선 그럴 테지."
다아시가 말했다.
"그리고 지능이란 말이 고작해야 지갑이나 자고
병풍에다 표지를 씌우는 일을 하는 부인들에게
적용되니까 말야. 그러나 난 모든 부인에 대한 자네
의견에는 반대야. 내가 알고 있는 한 부인들이
재능을 잘 갖추고 있는 사람은 반 정도도 못된다고 생각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빙리 양이 말했다.
"그렇다면 재능 있는 여자란 선생님의 관념 속에서는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게로군요."
엘리자베드가 끼여들었다.
"과연 그렇소, 많은 뜻이 들어 있죠"
"아무렴, 그렇구말구요! 흔히 보는 일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재능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 말에 적합하기 위해서는 기악, 노래, 그림,
무용 그리고 현대어 같은 걸 완전히 내 것으로
하고 있어야 하는거고요. 어디 그뿐이겠어요, 용모,
걸음걸이, 억양, 말과 표현 등에 있어 뭔가를
지니고 있어야죠. 그렇지 않으면 재능이란 말은
절반밖에 가치가 없을 거예요."
그의 충실한 조수가 덧붙였다.
"그런 것들을 다 가져야 해요. 첨가해서, 광범한
독서로 정신의 향상을 위해, 더욱 본질적인 뭔가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다아시가 덧붙여 말했다.
"재능 있는 여자를 여섯 명 밖에 모르신다고 하셔도 전
조금도 놀라지 않아요. 한 사람이라도 알고
계시다는 말이 지금으로선 오히려 다행스러울 정도니까요."
"이러한 모든 가능성을 의심하신다는 건 동성간에
대해서 좀 가혹한 짓이 아닐는지요?"
"전 여지껏 그런 여성을 본 적이 없어요. 더우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정도로 능력과 취미, 근면과
우아함을 한몸에 갖춘 사람은 말예요."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은 엘리자베드가 은연중에
비친 의혹은 부당한거라고 같이 반대의 뜻을
말했고 방금 말한 자격을 갖춘 부인은 얼마든지 알고
있다고 항의하기 사작하자, 허어스트 씨는
진행중인 게임을 내버려둔다고 심하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그들에게 주의를 주게끔 되었다. 그래서
얘기가 중단되자, 엘리자베드는 곧 방을 나가 버렸다.
"엘리자 베네트 양은"
빙리 양은 문이 닫히자 말을 꺼냈다.
"동성을 과소평가함으로써, 이성의 환심을 사려는
젊은 여자의 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많은 남성에
대해서 그것이 성공할지는 몰라도 제 생각 같아선
부질없고 비열한 수단일 거예요."
"정말 그대롭니다. 여자가 남자를 사로잡기 위해
불사하는 기교엔, 언제나 비열함이 깃들여
있습니다. 교활에 가까운 것은 어떤 것이든 경멸 받아
마땅한 겁니다."
곧 다아시가 대답했다.
빙리 양은 그 대답이 흡족한 것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엘리자베드는 언니의 병이 나빠져서 곁을 떠날 수가
없다는 말을 전해 주기 위해 되돌아왔다.
빙리는 즉시 존즈 씨를 불러 오도록 사람을 보내라고
채근했다. 한편 자매들은 시골 의사의 손이 닿지
않으니까 런던으로 급히 보내어 명의 한 사람을
모셔 오도록 제안했다. 그녀는 이 제안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지만, 빙리 씨의 제안은 마다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튿날 아침까지 베네트
양이 확실히 좋아지지 않을 경우엔, 아침 일찍 존즈
씨를 부르도록 의견을 모았다.
빙리는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다. 자매는 몹시
괴롭다고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저녁 식사 후에
이중창으로 울적한 마음을 달래었으나, 그는 병석에
누운 여자와 그 동생을 잘 돌보도록 가정부한테
지시하는 일 외엔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힐 다른 방법이 없었다.
9
엘리자베드는 그날 밤 대부분을 언니 방에서 보냈고,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찌기 빙리 씨는 하녀를
시켜 제인의 안부를 물어왔고, 곧 자매의 시중드는
시녀들이 들어와서 병세를 물었을 때 흡족한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이리하여 병세는 좋아져갔지만, 롱본에 편지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가 제인을 찾아와서
병세를 직접 판단해 주었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편지는
즉시 도착되었고, 편지 내용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베네트 부인이 두 딸을 데리고 네더필드에
도착한 것은 아침 식사가 막 끝난 후였다.
제인이 눈에 띄게 좋지 않은 상태였더라면 베네트
부인은 매우 가슴 아파했으리라, 그러나 염려할
정도의 상태가 아닌 것을 보고 만족해 했으며, 건강이
회복되면 네더필드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좋아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집으로 보내 달라는
딸의 간청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게다가 거의
같은 시각에 온 의사마저 집으로 가는 게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딸 셋은 잠시 제인과 함께 있은 후에 빙리
양이 나타나서 초대를 하자, 그녀를 따라
식당으로 갔다. 빙리는 그들을 맞으면서 베네트 양의
상태가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좋지가 않더군요."
이것이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그앤 몸이 아주 불편하니까 움직일 수가 없어요.
존즈 선생님께서도 움직일 생각 말라고
말씀하시구요. 그래서 조금 더 폐를 끼쳤으면 합니다."
"옮기다뇨?"
빙리가 외쳤다.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제 누이도 말을 안들을 것입니다."
"염려하실 것까진 없습니다. 베네트 양이 저희 집에
있는 동안은 할 수 있는 한 다 해드리겠으니까요."
빙리 양이 자못 냉담할이만큼 정중하게 말했다.
베네트 부인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정말 이렇게 친절하신 친구분들이 안계셨더라면
그애가 어떻게 됐을지 누가 알겠읍니까. 우리앤
지독히 몸이 불편해서 고통을 심히 받고 있지만,
그렇게 잘 참아내니 장하지요. 언제나 상냥스런
그애 같은 기질은 좀 찾아보기 힘들답니다. 전 자주
다른 애들에게 말하지만 언니하고는 상대가 되질
않는다구요. 빙리 씨 이 방은 썩 훌륭하네요. 게다가
자갈 깐 보도를 잘 내다볼 수도 있구요. 이
고장에선 네더필드만한 곳은 찾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까 급히 여길 떠나실 생각은 않고 계시겠지요.
계약 기간은 짧을지 모르겠으나"
베네트 부인이 덧붙여 말했다.
"어떤 일이든, 전 몹시 성질이 급한 편이죠"
빙리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만약 네더필드를 떠나려고 마음만 먹게
되면 5분 이내에 빨리 떠나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여기에 뿌리를 박아 볼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생각한 바로 그대로군요?"
그녀 쪽을 향해 그가 말했다.
"아, 그래요. 완전무결하게 말예요."
"그 말씀 영광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속속들이 아시게 되면 제가 가엾지 않겠읍니까."
"저절로 그렇게 된 건데요. 복잡한 성격이 선생님과
같은 성격보다 더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는 전
보고 싶지가 않아요."
"리지야, 장소를 가려야 하느니라. 집에서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지껄여 대선 못 쓰는 법이다."
어머니가 소리쳤다.
"지금껏 전 몰랐습니다만, 따님께선 성격의
연구가이시군요. 퍽 재미나는 연구겠습니다."
빙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럼요, 복잡한 성격 편이 흥미가 더 있죠, 최소한
그런 점에선 우세하다고 볼 수가 있거든요."
"이 고장에선 일반적으로 그러한 연구 대상은 별로
제공되지가 못할 겁니다. 이 지방의 이웃에선
극히 제한되고 변화 없는 사회를 돌아다녀야 하니까요."
다아시가 끼여들었다.
"그렇지만, 사람들 자체가 매우 변화무상하니까,
언제나 새로운 것을 관찰해 낼 수가 있지요."
"그렇고말고요."
이 지방의 이웃 운운하는 그의 말에 화가 난
모양인지, 베네트 부인이 소리를 높였다.
"시골이건 도회지건 재미있는 일에는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에요."
좌중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다아시는 잠시 그녀를
바라다보고는 잠자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베네트 부인은 그를 완전히 때려 눕힌 줄 알고서
의기양양해 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생각 같아선 상점이나 구경할 곳을 제외하고는
런던이 시골보다 낫다고 보지는 않아요. 오히려
시골이 재미있고 좋아요. 안그래요, 빙리씨?"
"전 시골에 있으면 좀처럼 떠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도회지에 있어도 역시 똑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니까 저마다 다른 장단점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즐거움도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아, 그건 어디까지나 선생님의 성품이 훌륭하셔서
그런 겁니다. 그러나 저 신사분은 시골은 전혀
눈에 안차시는 모양이에요."
다아시를 바라다보면서 말했다.
"어머나, 엄만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어머니 때문에 얼굴을 붉히면서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엄만 다아시 씨 말씀을 잘못 아시고 계신 거예요.
그분은 지방에선 도회지만큼 여러 사람을 못
만난다고 말씀하신 것뿐이에요. 엄만 그걸 인정하셔야 해요."
"그건 그래, 얘야, 그렇지만 누가 그렇지 않다고
그러니. 그러나 이 근처에서 사람을 많이 못
만난다고 하신다면 이 근처만큼 교제가 더 많은 곳도
없을 게다. 우린 스물 네 가구하고 식사를 함께
하고 있는 처지인데"
빙리가 웃음보를 터뜨리지 않은 것은 오로지
엘리자베드의 기분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누이동생은 덜 세심한 편이어서 다아시 씨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자못 의미 있는 미소를 머금었다.
엘리자베드는 어머니 생각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자기가 여기에 온 후에 샬로트 루커스가 롱본을
방문했는가 물어보았다.
"그래 어저께 아버님과 함께 왔었단다. 윌리엄 경은
무척 좋으신 분이세요, 빙리 씨... 안그렇수?
상류층 청년의 귀감이시구, 점잖으시고
부드러우시구요! 누구와도 말을 잘 하시니 말예요.
그분이야말로 내가 말할 수 있는 이상형이죠.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해서 무표정한 양반은 뭔가 잘못된 거예요."
"샬로트와 식사를 같이 했수?"
"아냐, 자꾸 집에 가려고 해서, 아마 민스파이 때문에
일이 있었나 보더라. 빙리 씨, 나로선 자기네
일을 제대로 할 줄 아는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거예요. 우리 집 들은 좀 다르게 키우고
있지만서도요.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입장에서 판단해 줘야 하는 것이니까. 루커스댁의
따님들도 다들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예쁘지 않은
점이 가엾을 뿐이죠! 그렇다고 샬로트를 아주
못생겼다고는 보지 않지만, 아뭏든 그 사람은
우리하곤 너무나 친한 사이죠"
"그분은 정말 좋은 분인 것 같던데요."
빙리가 그렇게 말했다.
"아, 그래요.... 그렇지만 별로 인물이 좋지
못하다는 걸 아셔야 해요. 루커스 부인께서도 그렇다고
늘 말씀하시며 우리 제인이 예쁘다고 부러워하고
있지요. 내가 내 자식을 자랑할 순 없는 일이지만,
확실히 우리 제인은... 그만한 인물을 보기도
힘드는 일이에요.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나혼자 생각만 어디 믿을 수가 있겠어요. 그애가 열
다섯 나던 해에 런던에 있는 친정 동생 가디너
집에 들른 한 신사가 어떻게 그애한테 반했는지 올케
말로는 바로 그분이 우리가 떠나오기 전에
청혼을 할 것이라고 했던 일이 있었죠. 그러나
그 정도는 되지 못했어요.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죠. 그 대신 그분이 그애에 관한 시를 썼다는데,
어찌나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그래서 그분의 사랑이 식어 버리게 되었다는 거예요."
엘리자베드는 초조한 듯 말했다.
"제 생각엔 그런 식으로 사랑을 극복한 사람이
허다하지요. 사랑을 쫓는데 시의 효력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요!"
"전 시란 사랑의 음식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다아시가 말했다.
"그건 훌륭하고 억세고 건강한 사랑의 경우겠죠. 원래
강한 것에는 뭐든 양분이 될 수 있는 법이죠.
그러나 가령 훌쭉하고 말라깽이 사랑 같아 보세요,
뛰어난 소네트 하나를 가지고서도 사랑을 굶겨
죽이기에 안성마춤일 테니까요."
다아시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전체가
침묵이 흐르자 엘리자베드는 어머니가 또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까 근심스러웠다. 그래서 입막음을 하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으나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 베네트
부인이 빙리 씨에게 제인에게 베풀어 준 친절과
리지로 해서 폐를 끼치게 된 데 대해 사과의 말을 했다.
빙리 씨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대답을 했고,
그 때문에 그의 누이동생 역시 얌전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어 필요한 말을 했다.
물론 그녀는 상냥스럽게 자기 역할을 다 해내지는
못했으나, 베네트 부인은 그런대로 만족하고서
곧 마차를 존비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막내딸이
앞으로 다가왔다.
이 집에 와 있는 동안 두 딸은 사뭇 서로 이야기를
나눈게 있었는데, 그 결과는 막내딸이 빙리
씨에게, 이 고장으로 옮겨오는 즉시 네더필드에서
무도회를 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하고 한바탕
몰아붙이자는 것이었다.
리디어는 썩 체격이 좋은 15세 소녀로 안색이 훤하고
명랑한 용모의 소유자였다. 어머니는 리디어가
마음에 들어 어릴 때부터 남 앞에 나서게 했다.
원기발랄하고 선천적으로 자신만만한 데가 있었고
더우기 장교들은 그녀의 숙부 집에서 베푸는 훌륭한
만찬과 그녀의 명랑한 태도로 해서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무도회에 관한 이야기를 빙리
씨에게 하고 또 아울러 약속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수치일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 갑작스런 공격에
그의 대답은, 딸들의 어머니의 귓전에는 즐거운
일로만 들렸다.
"확실하게 말씀드리지만, 전 약속만은 절대 지킵니다.
언니께서 회복되시거든, 제발 무도회의 날짜를
정해 주십시오. 그러나 언니가 아픈 동안은 춤을 추고
싶지가 않으시겠지요."
리디어는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아, 그래요.... 언니 병이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때면 카터 대위님께서도
돌아오실 테고요. 선생님께서 먼저 무도회를 열어
주신다면 제가 그분들에게도 부탁해서 열도록
해보겠어요. 만일 그분들이 안 열면 제가 포스터
대령님께 일러바치고 말 테니까요."
베네트 부인과 딸들은 곧 출발하였고 엘리자베드는 그
길로 제인 곁으로 돌아가서 자신과 식구들의
행동에 관한 것은 두 숙녀와 다아시 씨의 비판에
맡겼다. 그러나 다아시 씨는 빙리 양이 엘리자베드
양의 아름다운 눈에 대해 많은 평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비난하는 쪽에는 같이 할 수가 없었다.
10
그날도 그 전날처럼 지나갔다.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은 오전 몇 시간을 환자와 함께 지냈고,
환자는 완만하기는 했으나 나아지고 있었다. 저녁에
엘리자베드는 응접실로 가서 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러나 루우 놀이는 이번에는 선을 보이지
않았다. 다아시 씨는 편지를 쓰고 있었고, 빙리 양은
옆에 앉아서 편지의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의 누이동생에게 전하는 말을 함으로써 몇
번이고 편지 내용에서는 그의 주의를 따돌리고 있었다.
허어스트 씨와 빙리 씨는 카드 놀이를 하고
있었고, 허어스트 부인은 그 승부를 구경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고, 다아시 씨와
그의 상대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자못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숙녀는 그의 필적이 어떻고 행이
고르고 편지의 길이가 어떻다고 하면서 사뭇
그를 칭찬했고, 칭찬을 받고도 그가 무관심했기 때문에
기묘한 대화가 되었고 그것이 쌍방에 대해
그녀가 생각해 왔던 바와 일치했던 것이다.
"이 편지를 받으면 다아시 양이 퍽 좋아하겠네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참으로 빨리 쓰시네요."
"그렇지가 못합니다. 오히려 늦은 편이죠"
"일 년에 퍽 많은 편지를 쓰시게 되겠네요! 사업상의
것도 말예요! 저 같으면 싫증이 나고 말겠어요!"
"그렇다면 그 운명이 귀양이 아니고 저에게 떨어진
것이 오히려 행운이 되겠습니다."
"제발 누이를 한 번 뵙고 싶다고 전해 주세요."
"그런 소원이셔서 그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펜이 맘에 안드시는 것 같애요. 제가 고쳐드리지요.
제 솜씨가 보통이 아니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전 제 손으로 고치고 있죠"
"어떻게 그렇게 고르게 쓰시죠?"
그는 이 말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누이께 하프 솜씨가 많이 느셨다니 반가운 일이라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또 테이블의 예쁜 장식이
선생 절 황홀케 했다고 전해 주시고 그랜틀리 양
것보다 훨씬 낫더라고 쓰는 걸 잊지 마세요."
"황홀한 내용은 다음 편지 쓸 때까지 연기시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로 다 쓸 여유가 없습니다."
"아! 괜찮아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1월엔 만나 뵐
수가 있어요. 언제나 누이께 그렇게 훌륭한
편지를 길게 쓰시나요, 다아시 씨!"
"거의 긴 편이죠. 훌륭한지에 대해서는 저로선
결정지을 수가 없는 문제죠"
"저에겐 그렇게 생각돼요, 긴 편지를 손쉽게 쓸 수
있는 분은 절대로 서투른 글을 안쓰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게 말한다고 칭찬이 되는 건 아냐, 캐롤라인,
쉽게 쓰는 편도 못되는데 말야. 사음절의 낱말을
쓰려고 무척 애쓰고 있지, 안그래, 다아시?"
그녀의 오빠가 외쳤다.
"내 문체는 자네 것과는 다르단 말야."
"아, 그래요. 오빠는 상상 외로 아무렇게나 쓰는
편이죠. 내용도 반쯤 빼먹고, 나머지 반은 지워
버리곤 하죠"
빙리 양이 외쳤다.
"내 사상은 너무나도 빨리 흐르고 마니까, 그걸
표현해 낼 겨를이 없어. 그래서 이따금 내 생각이
상대방에게 전해지지 않을 때가 있어."
"겸손이 지나치세요, 비난할 수도 없구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겸손한 체하는 것보다 사람을 더 속이는 건 없을
거야. 그건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에 불과하고
때로는 간접적인 자만이 될 수도 있는 법이죠"
다아시가 말했다.
"지금의 내 겸손은 그 중의 어느 편이란 말인가?"
"물론 간접적인 자만이지. 자넨 사실상 글을 쓸 때의
결함을 내세우고 있으니까 말야. 그리고 그
결함은 머리의 회전이 빠른 것과 쓰는 법이 태평스런
데서 오는 것이니까, 그건 존중은 못할망정
최소한 흥미 있는 일이라고 자네는 생각하고 있어.
무슨 일이든 민첩하게 할 수 있는 힘은 그
소유자에게 언제고 너무나 크게 평가되고, 그 일의
불완전성에 대해선 눈을 돌리지 않는 법이거든.
자네가 오늘 아침에 베네트 부인에게 네더필드를
떠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5분 내에 떠나 버린다고
말했을 때, 그것을 자기에 대한 찬사 또는 칭찬의
말처럼 말했지만 매우 중요한 사실을 미완성인
채로 남겨 두고서, 자신이나 남에게까지 아무 소용
없는 일을 급하게 서둘러봤댔자, 뭐 그리 장한
일이냐 말야?"
"아냐, 아침에 말해 버린 바보 같은 일을 밤에 가서
회상한다는 건 지나친 짓이야. 그러나 내 명예를
걸고 하는 말이지만, 자신에 대해 거짓 없는 말을
했다고 생각하고, 이 순간에도 그렇게 믿고 있어.
그러니까 적어도 다만 부인들 앞에서 자신을 내세울
마음으로 느닷없이 일을 서두르는 남자로
자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말이야."
빙리가 이어서 말했다.
"자넨 그렇게 믿고 있는지 몰라도 난 자네가 그렇게
빨리 가리라고는 도저히 믿질 않으니, 자네의
행위 자체도 내가 알고 있는 누구누구에 못지 않게
우연이라는 것에 영향받기 쉬워. 만일 자네가
말을 타려고 하고 있을 때 친구가 자네더러 빙리 군,
자네 내주까지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네 하고
말했을 때 자넨 틀림없이 머물고 말 것이야, 그리고
가지 않을 걸세... 또 한 번 말을 듣게 되면
한 달이라도 있을 사람인 거야."
"그 말씀으로 확실해진 것은 다만 빙리 선생님께서
자신의 기질을 정당히 평가하시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선생님께선 이분 자신이 하신 것보다도
과장되게 보이신 거예요."
엘리자베드가 외쳤다.
"정말 감사합니다. 친구가 한 말을 저의 기질의
부드러운 것에 대한 찬사로 바꾸어 주셨으니까요.
그러나 귀양께서 혹시 이 친구가 생각지도 않는
의미를 말씀하신 게 아닌지 두렵습니다. 그
이유로서는 그러한 상황 아래선 제가 깨끗이 거절해서
되도록 빨리 말을 달리게 했더라면 이 친구는
오히려 저를 좋게 생각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처음에 하시겠다고 마음먹은
점을 끝까지 끌고 나가겠다는 완고한 점으로써
보상이 되는 줄로 다아시 선생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걸까요?"
"그 점에 대해선 정직하게 말해서 명확히 설명을 할
수가 없는데요.... 다아시 군에게 직접 말을
시켜보는 것이 좋을 성싶습니다."
"자넨 내 의견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정해 버려 놓고서
나더러 설명하라는 것 같은데, 난 그걸 내
의견이라고 하지 않았네. 그러나 베네트 양, 가령
이것만은 잊어선 안되겠습니다. 이 사람이 말을
집으로 돌려보내서 계획을 연기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가정하는 그 친구란 사람은 그저 그렇게
하기를 소원해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지, 그렇게 하는
편이 적당하다는 이유 같은 건 하나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친구의 설득에 순순히 따른다는 건 당신 눈엔 쉬운
일처럼 보여지겠지요."
"확신이 없는데도 따른다는 건 서로간의 사려분별에
대해 명예롭지가 못합니다."
"다아시 씨께선 우정이나 애정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군요. 청하는 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면 토론 형식으로 설복 당하기 이전에
자진해서 그 요청에 응하는 경우가 많죠. 전
선생님께서 빙리 씨에 대해 가정하고 계시는 경우를
특별히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들은
차라리 그러한 행위를 논할 때에 그 상황이 야기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친구 사이에선 한쪽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결정을 바꾸어 달라고 부탁해 왔을 때,
그것에 응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해야겠어요?"
"이 문제를 계속해 나가기 이전에 당사자 사이의 친밀
정도뿐만 아니라, 그 부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좀더
정확하게 결정짓는 게 현명하지 않겠읍니까?"
"어디 꼭 해보게"
빙리가 그렇게 말했다.
"어디 상세한 것을 들어보기로 할까. 두 사람의 키와
몸집도 잊지 말고 말일세. 왜냐하면 베네트 양,
그 문제가 당신이 알고 있는 이상으로 토론에 있어
주요성을 띠고 있으니까 말예요. 가령 다아시가
저하고 비교할 때, 그토록 당당하고 큰 사람이 못될
바엔, 전 그 반만큼 경의도 그에게 표하고 싶지가
않으니까요. 때와 장소에 따라선 그 사람만큼이나
무서운 존재가 또 있을는지 전 모르겠어요. 특히
자기 집에서 별로 할 일이 없는 일요일 저녁 같은 때 말입니다."
다아시는 살며시 웃음을 지었으나, 엘리자베드는 그가
조금 화나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웃음을
참았다. 빙리 양은 오빠가 그런 소리를 한 것을
나무라면서 다아시가 받은 모욕에 대해서 격분했다.
"자네 속셈을 알겠구먼, 빙리"
그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자넨 토론을 안좋아하는 거야. 그만두도록 하세"
"그러는 게 좋을 걸세. 작은 시비가 큰 시비가 되기
쉬우니까 말일세. 내가 방에서 나갈 때까지
자네와 베네트 양이 토론을 멈춰 주었으면 매우
고맙겠네. 그 다음에 가서 자네 마음내키는 대로
내 얘길 하게나"
"선생님 소원은 저에겐 아무것도 아녜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다아시 씨께서도 쓰시던 편지를 끝내셔야 하니까요."
다아시 씨는 그녀의 충고에 따라 편지를 끝냈다.
그 용무가 끝나자, 그는 빙리 양과 엘리자베드 양에게
무슨 음악이라도 들었으면 하고 청했다. 빙리
양이 곧바로 피아노 있는 데로 가서 엘리자베드에게
먼저 쳐보라고 정중히 청하자, 엘리자베드도 정중히
거절을 했기 때문에 빙리 양이 피아노에 앉았다.
허어스트 부인이 동생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네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엘리자베드는
피아노 위에 있는 악보를 넘기면서 다아시 씨의 눈길이
자신한테 줄곧 있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와 같은 훌륭한 사람의 칭찬의
대상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으나, 그렇다고
자기를 미워해 보리라는 것은 더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그 주의를 끌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올바른 생각에 의할 것 같으면 그녀
자신에게 좌중의 그 누구보다도 잘못되고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이 있는 줄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 닿아도 상심은 안되었다. 그에게 잘못
보인다 해서 마음이 아플 정도로 그녀는 그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이탈리아 노래 몇 곡을 치고 나서, 빙리 양은 경쾌한
스코틀랜드 곡으로 흥을 불어넣었다. 이어서
다아시 씨가 엘리자베드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베네트 양, 이 기회에 경쾌한 춤을 추고 싶으시지가 않습니까?"
엘리자베드는 미소를 머금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에 조금은 당황했던지 그는 질문을 되풀이했다.
"어머나! 아까도 그러셨는데, 지금 당장 무슨 대답을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께선 저의
취미를 경멸하는 기쁨을 누리려고 저더러 예하고
대답을 시키고 싶으셨겠지만 저는 그런 종류의
속셈을 지닌 사람한테서 벗어나는 게 다시없는
즐거움이죠. 그러니까 전 그 춤 같은 건 안추기로
정해 버렸어요.... 그럼 경멸하시고 싶거든 해보세요."
"그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면박을 당해서 노발대발할 줄만
알았기 때문에 그의 은근한 태도를 보고 적이 놀랐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에는 귀염성과 장난기가 있기에
좀처럼 상대방을 화나게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다아시에게는 이 여자만큼이나 자기의 마음을 끄는 이는
없을 성싶었다.
그녀는 집안이 나쁘지만 않았던들 자신은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빙리 양은 질투심이 날 정도로 보기도 하였고
느끼기도 하였다. 친우인 제인의 회복을 바라는 열망은
엘리자베드를 제거해 버리겠다는 염원의 힘을 입어 더
강한 것이 되어 버렸다.
빙리 양은 여러 차례 두 사람이 결혼한 경우를
가정해서 말하기도 하고, 그러한 결합으로 그의
행복이 어떠한 것이 될 것인지 그려가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의 마음 속에다 엘리자베드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려 애를 썼다.
다음날 관목 숲속을 함께 거닐었을 때 그녀 쪽에서
이렇게 말을 꺼냈다.
"만약 연분이 맺어지게 되시거든 선생님의 장모님께
좀 말수를 줄여 주셨으면 하고 넌지시 말씀드려
주세요. 그리고 그것이 성공되시거든 그 다음엔
막내따님들일랑 제발 좀 장교님들 꽁무니를 못
따라 다니게 일러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건 좀 복잡한 일이 될지 모르겠으나, 장차
사모님이 되실 분은 자기 잘난 체하는 점이라든가,
예의 없는 점 같은 건 좀 억제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예, 있어요.... 처이모부 되시는 필립스
내외분들의 초상화를 펨벌리의 복도에 내걸면 좋겠구요.
판사를 지내신 종조부 바로 옆자리에 말예요. 다소
다르긴 해도 같은 계통에 종사하는 분들이니까요.
게다가 엘리자베드 사모님의 초상화에 관해선,
그리기조차 힘들 거예요, 그렇게 예쁜 눈을 어떤 화가가 그려내겠어요."
"과연 그 눈의 표정을 잡기란 쉽지 않겠지만, 색과
형, 그리고 그렇게도 아름답고 섬세한 속눈썹은
묘사해 낼 수 가 있겠지요."
바로 그 순간 두 사람은 다른 곳에서 걸어나온
허어스트 부인과 엘리자베드와 마주치게 되었다.
"두 분께서 산책을 나오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빙리 양은 자기가 한 얘기를 그들이 듣지 않았나 싶어
당황해 하며 말했다.
"너무하셨어요. 바깥으로 나온다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니 말예요."
허어스트 부인이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는 다아시 씨의 다른 한 팔을 잡고서
엘리자베드를 혼자 걷게 해버렸다. 그 길은 세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다아시 씨는
그들이 무례한 짓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곧 이렇게 말했다.
"이 길은 우리들에겐 너무 좁은 것 같군요. 가로수길로
빠지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그들과 함께 남아 있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그러실 것까지 없어요. 그대로 계세요. 세 분의
군상이 여간 잘 어울리지가 않거든요. 드물게
볼 수 있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어요. 넷이 되면 그
아름다운 장면이 망가지고 마니까요. 그럼 안녕"
그리고는 명랑하게 뛰어가 버렸다. 하루 이틀 후면
집으로 간다는 희망에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날 밤에는 두 시간 정도 밖으로 나갈 만큼 제인의
용태는 꽤나 좋아졌다.
11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부인들이 식당을 나가자,
엘리자베드는 2층에 있는 언니에게 달려가서 춥지
않게 옷차림을 한 것을 보고서, 언니를 부축해 응접실로 내려왔다.
거기에서 언니는 두 친구한테 여러 가지 기쁜 말로
환영받았다. 엘리자베드는 남자들이 나타나기 전에
여자들끼리 그렇게 다정스럽게 지내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들의 입심은 대단했다. 어느 파티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었고, 유머를 섞어 가며 어떤
일화를 말하고 있었고, 활기차게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줄기차게 웃어 가며 얘기해 나갔다.
그러나 남자들이 들어서자, 제인은 더 이상 주요
인물이 되지 못했다. 빙리 양의 눈초리는 금세
다아시 씨를 향하게 되어, 그가 몇 걸음 채 오기도 전에
무엇인가 말을 안하고는 못 배길 지경이었다.
그는 먼저 베네트 양에게 말을 건네고 정중하게 축하했다.
허어스트 씨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참 잘된
일이올시다.' 하고 뇌었다. 그러나 정작
넘쳐흐르는 열의는 빙리의 인사말에서 알 수가 있었다.
그의 말에는 기쁨과 걱정이 넘쳐 흘렀다. 처음
반 시간 동안은 방 안이 변한 것이 행여 그녀의 몸에
지장을 줄까 불을 지피는 데 보내졌다. 그리고
그의 희망으로 그녀가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도록
난로 옆으로 옮겨져 갔다. 그는 그 옆에
자리잡고서, 다른 사람들과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엘리자베드는 반대쪽 모퉁이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매우 흐뭇하게 건너다보고 있었다.
티이가 끝나자, 허어스트 씨는 처제에게 카드 놀이
테이블 이야기를 슬쩍 비쳤으나 헛수고였다.
그녀는 다아시 씨가 카드 놀이를 덜 좋아한다는 비밀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곧 허어스트
씨는 까놓고 청해 보았지만, 깨끗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녀 말로는 아무도 카드 놀이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그 일에 대해 전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허어스트 씨는 소파 중 하나에 큰대 자로 누워
잠을 청할 수밖에 방도가 없었다.
다아시는 책을 들었다. 빙리 양도 같이 책을 들었다.
허어스트 부인은 주로 팔찌와 반지를 매만지고
있었는데, 때때로 베네트 양과 동생 사이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빙리 양은 자신이 읽는 책과 간간이 다아시 씨가 읽고
있는 책으로 눈을 돌리는 일에 주의를 쏟고
있었다. 끊임없이 무슨 질문을 하든가, 아니면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고,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그녀는 그의 두 번째 책이란 이유만으로 택한 자기
책을 재미있게 보려다가 하품을 한바탕 하며
말했다.
"이렇게 밤을 보내는 건 퍽 재미있는 일이에요!
독서만큼 좋은 즐거움은 없는 거예요! 책을 빼놓고는
뭐든 곧 싫증이 나게 되거든요! 나 자신의 집을 갖게
될 때, 훌륭한 도서실이 없으면 정말 비참할 거예요."
이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한 번
하품을 하고 나서, 책을 제쳐놓고 무슨
흥미거리나 없을까 하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바로 그때 오빠가 베네트 양에게 무도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되자, 느닷없이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오빠 정말 네더필드에서 무도회를 가지실
계획이세요? 결정하시기 전에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의 의향을 확인해 두시도록 권하고 싶어요.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 중에는
무도회를 즐거움이라기보다는 형벌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분도 계시거든요."
"다아시 말이라면 시작하기 전에 뭣하다면 자면 될 거
아냐, 그렇지만, 이미 정해진 일인데.
니콜즈가 흰 수프를 충분하게 준비만 한다면, 곧
초대장을 띄우기로 하겠다."
오빠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저도 무도회가 훨씬 좋거든요. 조금 색다르게 진행이
된다면 말예요. 그러나 그런 모임이 판에 박은
듯 진행된다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일이죠. 춤 대신에
대화가 모임의 중심이 된다면 더욱 합리적인
것이 되겠지만"
그녀가 대답했다.
"더욱 합리적이라 캐롤라인, 그러나 그렇게 되는
날이면 무도회 같지가 못해질걸"
빙리 양은 대답 않고, 잇달아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
안을 돌아다녔다. 그녀의 자태는 우아했고,
걸음걸이도 여간 좋지가 않았지만... 그것을 보아
주기를 바랐던 다아시는 한눈을 팔지 않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절망적인 기분으로 그녀는
다시 한 번 애를 써 보려고 마음먹고, 엘리자베드
쪽을 향하며 말했다.
"엘리자 베네트 양, 저 하는 대로 제 뒤를 따라서 방
안을 돌아보시지 않으시려우....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다가 걷게 되면 한결 기분이 새로아질
테니 말예요."
앨리자베드는 짐짓 놀랐으나, 즉시 그 제안에
동의했다. 빙리 양의 정중한 태도는 목표로 삼았던
상대편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다아시 씨가 고개를
추켜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빙리 양의 보기 드문
정중함을 엘리자베드 못지 않게 깨닫고서, 무의식중에
책을 덮고 말았다.
그도 함께 걷지 않겠느냐고 권유를 받았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들이 둘이서 방 안을 여기저기
걸어다니는 동기는 두 가지 밖에 상상이 안되지만,
자신이 가담하면 그 동기의 어느 것에도 방해가
된다는 게 그의 거절의 이유였다.
"저분 말씀은 뭣일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 죽겠어."
엘리자베드에게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전혀 모르겠어요."
이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틀림없이 우리들을 엄하게 다루시려나 봐요.
그러니까 그분을 실망시키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빙리 양은 어떤 일에서든지 다아시 씨를
실망시킬 수 없어서, 그의 두 가지 동기에 대한
설명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걸 설명하는 데 조금도 이의가 없습니다."
그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자 그는 곧 그렇게 말했다.
"두 분께서 그런 식으로 밤을 보내시겠다는 것은 첫째
서로가 믿는 사이로 어떤 비밀 얘기가 하고
싶든가, 아니면 두 분의 자태가 걷는 데 큰 이점이
있음을 의식해서겠지요.... 만일 첫째
동기시라면 전 두 분에게 완전한 방해가 될 것이고,
둘째 동기시라도 난로 옆에 앉아 있는 편이
두 분의 미를 훨씬 더 잘 바라볼 수가 있으니까요."
"어머나! 정말 놀랐어요!"
빙리 양이 말했다.
"전 이렇게 분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런
말씀하신 데 대해 어떤 벌을 드려야 할까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쉬운 일이겠어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우린 서로가 괴롭게 해주고 벌도 줄 수가 있는
거예요. 그분을 놀려 줘야 해요.... 웃어 주는
거예요. 서로가 친한 사이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아셔야죠"
"정말 모르고 있어요. 친하긴 해도, 그런 일까진
모르고 있어요. 냉정하고 침착한 마음씨를 지닌 분을
놀리다니요! 전 못하겠어요.... 그런 짓을 했댔자
상대도 안해 줄 것 같구요. 웃음이란 것도
그래요, 웃을 상대도 없는데 웃는다는 건 오히려
수치만 당하게 되는 거예요! 다아시 씨를 기쁘게
해주는 결과가 되고 말거든요."
"다아시 씬 남에게서 조롱을 당할 분이 못되신다구요!"
엘리자베드가 소리쳤다.
"그건 정말 보기 드문 우월성이군요. 언제까지나
지속됐으면 좋겠네요.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저에겐 손해가 크겠지요. 전 웃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성미니까요."
"빙리 양은 절 사실 이상으로 높이 봐주시는데요.
가장 현명하고 선한 사람, 아니 가장 현명하고
선한 행위일지라도, 농담을 인생의 제일 목적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겁니다."
"옳은 말씀이세요."
엘리자베드가 대꾸했다.
"그런 사람이 있긴 하지만, 전 그런 사람은 못되는
거예요. 현명하고 선한 것을 절대 웃고 싶지는
않아요. 정직하게 말해서 바보스런 일이나 변덕과
무분별은 확실히 절 웃기지만서도요.... 제
생각엔 선생님께선 그런 것들은 안 가지고 계시거든요."
"그런 일은 쉽게 이뤄지지가 않을 겁니다. 자칫
뛰어난 지성을 지난 사람까지도 웃음거리로 삼으려는
저의 결점을 피하려고 사뭇 마음 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허영심이라든가 자존심 같은"
"그렇습니다. 허영심도 틀림없는 결점이지요. 그러나
자존심은(진정으로 우월한 정신이 깃들여
있다면) 자존심은 잘 조절이 될 줄로 압니다."
엘리자베드는 웃음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렸다.
"다아시 시에 대한 검토는 이미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결과를 제발 알려 주세요."
빙리 양이 말했다.
"다아시 씨에겐 결점이 손톱만큼도 없다는 걸
확신합니다. 본인께서도 감추지 않고 인정하시니까 말예요."
"아닙니다, 그런 주장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다아시가 말했다.
"저에겐 결점이 많습니다만, 다만 이해력의 결점이
아니길 원합니다. 저의 기질은 저도 보증하지
못하거든요. 유순하지가 못해서 세상살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확실하죠. 전 다른 사람의 어리석은
짓과 악은 당연히 잊어버려야 할 때도 빨리 잊지를
못합니다. 게다가 저의 감정은 그것을
움직이려는 어떤 시도에도 쉽사리 휩쓸려 들지를
않지요. 저의 기질은 어느 쪽이냐 하면 골을 잘
내는 편이 되겠고, 한 번 남에게 호의를 잃게 되면
영원히 그렇게 되고 말지요."
"그건 정말 결점이군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달래기 힘든 노여움이란 확실히 성격의 결함이죠.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결점을 선택하셨어요.
그것만은 정말 웃을 수 없어요. 안심하셔도 좋아요."
"제가 알기로는 어떤 기질에도 독특한 악의 경향이
있죠.... 타고난 결점 말예요, 그건 제 아무리
훌륭한 교육으로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선생님의 결점은 모든 사람을 미워하는
성격이세요."
그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음악이나 좀 들어보실까요."
자기가 끼여들지 않은 이야기에 진력이 나서 빙리 양이 말했다.
"언니, 허어스트 씨를 깨워도 괜찮을까요?"
그녀의 언니가 조금도 반대의 빛을 띄자 않자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다아시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엘리자베드에게
지나치게 기울고 있는 위험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12
언니하고 의논한 결과 엘리자베드는 다음날 아침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그날 중으로 곧 마차를
보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베네트 부인은 제인이
네더필드에 묵기 시작한 지 꼭 일주일이 되는
다음 화요일까지는 두 딸이 그대로 거기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전에 두 딸을 기꺼이
맞아들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어머니의 회답이 탐탁한 것이 못되어서
적어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엘리자베드의 소원에 답하는 것이 못되었다. 베네트
부인은 두 딸이 화요일 전에는 마차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 말을 전하고, 추신에다 만일 빙리 씨와 그의
누이가 좀더 있으라고 권하면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고 첨가해서 말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그 이상 체류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바 있었고, 더 머물러 달라는 청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쓸데없이 오래 머물러 있어
폐만 끼치고 있다고 그 집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이지 않나 걱정스러워서 제인 보고 당장 빙리 씨의
마차를 빌도록 재촉했고, 그래서 결국 그날 아침
네더필드를 출발한다는 애당초 계획을 끄집어내고 마차
부탁을 하도록 합의를 보았다.
이 말을 전하자 주인측에서는 여러 번 염려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다음 날까지만이라도 체류해
주도록 제인을 움직이게 할 만큼 여러 차례 말을 했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까지 출발이 연기되었다.
빙리 양은 곧 자기가 더 있어 달라고 청한 것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엘리자베드를 질투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그녀의 언니에 대한 애정보다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이 집 주인은 두 사람이 그렇게 빨리 출발한다는 말을
듣고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했고, 그래서
여러 번 베네트 양에게 아직 완전하지가 못하다는 점과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설득하려
들었으나, 제인은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았다.
다아시 씨에게는 그것은 반가운 소식이었다.(엘리자베드의
네더필드 체류는 그만하면 충분했다.
그녀는 다아시가 좋아하는 이상으로 마음을
끌었다.) 빙리 양이 엘리자베드에 대해서는 버릇이
없었으며 다아시 자신에게도 유달리 짓궂게 굴었다.
이제 찬미하는 표시, 즉 남자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여
여자를 우쭐하게 하는 일은 일체 내색하지
않겠다고 그는 현명하게 결심했다.
만일 그러한 생각이 그녀의 마음에 비치게 되는
날이면 최종일의 그의 행동은 그런 생각을
확인하거나 아니면 분쇄해 버리는데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띠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목적을 고수하느라고 토요일 하루 종일 그녀에게
열 마디도 말을 붙이지 않았으며, 30분 정도 단
둘이 있을 때도 그는 애써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일요일 날 예배가 끝난 후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즐겁게 여겨지는 작별이 있었다. 끝내 빙리 양의
엘리자베드에게 대한 정중함은 제인에 대한 애정 못지
않게 더해 가기만 했다. 그들이 작별을 했을 때,
제인을 향해 롱본이나 네더필드에서 만나게 되면 더
반가울 것이라고 말하고 그녀를 아주 부드럽게
포옹하고 엘리자베드와는 악수까지 나누었다.
엘리자베드는 다시없이 명랑하게 그들과 작별했다.
어머니는 딸들이 귀가하는 것을 반갑게 맞지 않았다.
베네트 부인은 그들이 돌아온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으며, 그렇게 말썽을 일으키는 딸들을 못마땅하게
여겨 틀림없이 제인이 감기에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로 아버지는 즐거움의 표현이
간결하기는 했지만, 딸들의 얼굴을 보자 매우 기뻐했다.
그는 가족의 모임에서 딸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저녁에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가질 때 제인과 엘리자베드가 끼지 않으면 어쩐지
활기가 없어지고 거의 의미마저 상실한다는 식이었다.
메어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저음부와 인간성 연구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인용구에
감탄해야 했으며, 케케묵은 도덕론에 관한 새로운
관찰을 듣게 되었다. 캐더린과 리디어는 다른 종류의
정보를 그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전 주 수요일 이래, 연대에서 여러 가지 일이
행해졌으며 화제도 많았다는 것이다. 장교 몇 사람이
최근 이모부 댁에서 식사를 함께 했고 졸병 한 사람이
매를 맞았으며, 포스터 대령이 근간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도 틀림없을 것이라 했다.
13
"여보, 오늘은 맛있는 음식 준비를 하도록 직접
일러두도록 하시오. 우리 식구 외에 또 한 사람이
오게 되어 있으니까 말요."
다음날 아침 모두가 아침 식사 하러 모였을 때 베네트
씨가 부인에게 말했다.
"누구 말예요, 여보? 혹시 샬로트 루커스가 올지는
몰라도요. 그 밖엔 올 사람이라곤 없을 텐데요.
그리고 샬로트에겐 제 음식 솜씨면 충분하지요. 자기
집에서 이런 정도의 음식을 먹기가 그리 쉽지
않을 테니까 말예요."
"내가 말하는 사람은 남자인데다 우리 집엔 처음 오는 사람이요."
베네트 부인의 눈이 빛났다.
"남자 분에다 처음 오시게 되는 분이라뇨! 틀림없이
빙리 씨일 거예요. 아니 제인아(넌 이런 말을
한마다도 하지 않았지, 앙큼스런 것 같으니! 그런데
나도 빙리 씨를 만나게 되면 반갑지 뭐냐.
그렇지만) 어떡하나! 큰일났구나! 오늘은 생선 한
토막도 없으니 말이다. 리디어, 너 벨을 울리도록
해라. 지금 당장 힐에게 얘기해야겠다."
"빙리 씨가 아니래두"
남편이 그렇게 말했다.
"내 생전에 처음 보게 되는 사람이란 말요."
이 말을 듣자 가족 전체가 다 놀랐다. 그리하여 그는
부인과 다섯 딸들로부터 열심히 질문 받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한참 동안 그들의 호기심을 즐겁게 맛보고 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약 한 달 전에 이 편지를 받았어. 그리고 두 주일
후쯤 회답을 보냈지. 좀 까다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일찌감치 주의를 기울여 본 거지. 내 친척
콜린즈한테서 온 편진데, 이 사내는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날, 언제라도 자기가 뜻하는
때에 너희들을 이 집에서 몰아낼 수가 있는 거야."
"아니, 여보"
아내가 말했다.
"그 말은 참고 들을 수만 없군요. 그런 지긋지긋한
사람의 얘긴 그만 듣겠어요. 당신의 재산이 한정
상속이 돼서 친자식들에게 넘어가지 못한다니 이토록
아픈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제가 만일
당신이라면 먼 옛날 이렇게 저렇게 그 일을 끝맺었을 거예요."
제인과 엘리자베드는 한정 상속의 성질을 어머니에게
설명하려 들었다. 그들은 그 전에도 여러 차례
설명한 적이 있었으나, 이성으로는 베네트 부인을
설득하기가 불가능했고 부인은 끊임없이 누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나이에게 다섯 명의 딸의 재산을
빼앗아서 넘겨 주는 일은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심하게 비난했다.
"그건 확실히 도리에 어긋난 일이야."
베네트 씨가 받아 말했다.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콜린즈군이 롱본을 상속하는
죄를 씻을 수가 없겠지. 그러나 그의 편지를 읽게
되면 그의 마음을 털어놓은 태도에 약간은 마음이 누그러지겠지."
"아뇨, 저의 마음은 절대 누그러지지 않을 거예요.
도대체 당신에게 편지를 내는 그 자체가 무례하고
위선적이란 말예요. 전 그렇게 속이 검은 사람을
싫어한단 말예요. 그 사내가 왜 자기 아버지가 한
것처럼 당신하고 싸움질을 계속 않는지 모르겠거든요."
"그거야, 그 점에 대해서는 자식으로서 신중을 기하기
때문이겠지. 들어보구료"
켄트 주 웨스터램 근교 헌스퍼드
10월 15일
선친과 족숙님 사이에 개재한 불화는 항상 저의
불안거리였습니다. 그러던 중 불행하게 부친상을 당
하고 나서 여러 번 두 분 사이를 고쳐 보려고 마음먹어
왔습니다만, 생전에 사이가 좋지 못했던 분하고
어떻든 화해를 한다는 것은 영혼에 대한 불경죄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한동안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오고 가지 못했던 것이올시다. ('이것 봐요,
당신') 그러나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하여
결심한 바가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부활절 때
안수식을 받게 되어 다행스럽게도 루이스 드 버그
경의 미망인 라이트 어너러블(백작 이하의 귀족에게
붙이는 경칭) 캐더린 드 버그의 애호를 받아
그분의 너그러우신 은혜에 힘입어 이곳 교구의 막중한
목사직에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 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처신하여 언제나 영국 국교가 제정해
놓은 제전과 의식을 거행해 나가도록 진지하게
노력하려고 합니다. 나아가 목사로서의 저의 힘이
미치는 범위 내의 가정에 평화와 축복을 조성
확립시키는 것은 저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해서 이렇게 화해의 제의를 하게 됨은
상찬할 만한 일이겠으며, 그리고 제가 롱본의 재산을
한정 상속하게 되는 권리를 가진 점을 너그러이
보아 주시고 평화의 표시인 이 감람의 가지를
거절하시지 않으시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제 자신이
귀여운 영애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입장에 서게 되는
점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보상을 해 드릴 각오가 있음을 약속드리는 동시에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 건에
대해서는 후일 말씀드리고자 하옵니다. 귀댁에서 저를
맞아 주시는 데 이의가 없으시다면, 11월 18일
월요일 네 시가지 여러분을 가 뵙고 일주일 후의 토요일
까지만 폐를 끼치고자 하옵니다. 저에게는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누군가 딴목사가 일요일의
예배를 대신해 주기만 한다면 캐더린 부인은 제가
가끔 일요일에 빠지더라도 별 이의가 없으실 줄 알고
있습니다. 부인과 영애들에게 안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윌리엄 콜린즈
"그러니까 네 시까지는 이 화해의 신사가 오기로 되어
있단 말요."
편지를 접으면서 베네트 씨가 말했다.
"아니 확실히 양심적이고 정중한 청년 같아. 그리고
틀림없이 가까이할 만한 사람일 거야. 특히
캐더린 부인께서 너그러이 봐주셔서, 그 사람을 다시
우리 집에 보내 주시기만 한다면야."
"우리 애들에 대해선 분별이 있어 보이네요. 그리고
만약 애들에게 어떤 보상이라도 해줄 의사가
있다면 그분의 의사를 막고 싶지는 않아요."
"어떻게 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만큼 보상을
해줄 것인가를 추측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겠다는 행위 그 자체는 훌륭하다고 봐요."
제인이 말했다.
엘리자베드는 특히 캐더린 부인에 대한 그의 비상한
경의와 필요하다면 어제고 교구 사람의 세례며
결혼과 나아가 매장 같은 일을 맡아보겠다는 그 친절한
의향에 매우 놀랐다.
"괴짜임에 틀림없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분이예요. 문체에도 점잔을
빼고 있구요. 다음의 한정 상속자가 된 데
대해 사과해서 어떻하자는 건지요? 되도록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는 상상도 안되거든요.
상식 있는 사람인가요, 아버지?"
"그렇지는 않을 거야. 만나 보면 정반대의 인물이길
바란다. 편지엔 비굴한 점과 점잔을 빼는 점이
뒤섞여 있어 가망이 있기는 하다만, 빨리 만나 봤으면 좋겠구나"
"문장으로 볼 땐, 그분의 편지는 결점이 없어 보여요.
평화의 감람나무 가지 같은 대목은 생판
새롭지는 못해도 잘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메어리가 말했다.
캐더린과 리디어에게는 그 편지도 그 편지를 쓴
당사자도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들의 친척이 빨간
웃옷을 입고 오리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며 딴
빛깔의 사람을 맞아들이는 재미를 누린 지는
이미 몇 주일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머니로 말하자면, 콜린즈의 편지에 의해
그녀가 지녔던 악의는 많이 가셨고 남편이나
딸들이 놀랄 만큼 침착성을 가지고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콜린즈 씨는 정확히 시간을 지켰고, 가족들이
정중하게 그를 맞아들였다. 베네트 씨는 말수가
적었으나 여인들은 곧 그의 말상대가 되어 버렸다.
콜린즈 씨는 자극을 줄 필요가 없을 뿐더러 짐짓
침묵을 지키려 드는 편도 아니었다. 키가 헌칠하고
둔중하게 생긴 스물 다섯 살 난 청년이었다.
얼핏 보아 엄숙하며 위엄이 있었고 태도는 극히
형식적이었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베네트
부인에게 훌륭한 따님들을 두었다고 칭찬을 하고
아름답다는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으나 이 경우에
있어서는 명성이 사실만 못한다고 말하고, 언젠가는
제각기 훌륭히 성혼되는 것을 보고 말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딸들에 대한 이 은근한 말은 듣는 쪽의 어떤 사람들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으나 베네트 부인은
칭찬하는 말에 대해 화를 낼 줄을 모르는 사람으로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참 친절도 하셔라. 그렇게 돼 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가 못하다면 얼마나 옹색하게
되겠어요. 세상일이란 묘하게 되는 법이니까요."
"아! 바로 그 얘기예요. 가엾은 우리 딸애들에게는
가엾은 일이 되고 말겠어요. 그건 당신도
인정하셔야 해요. 그렇다고 댁의 잘못으로 돌리는 건
아녜요. 이런 일은 세상엔 흔히 있는
일이니까 말예요. 재산이 일단 한정 상속돼 버리고
나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선 알 길이 없는 노릇이죠"
"아름다운 따님들한테는 고생이 될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이 많지만
경솔하게 너무 서두르면 안될 것 같아서 조심하는
것뿐이죠. 다만 따님들에게 대해서는 제가 경의를
표하고 있다는 점을 확언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에는 이 이상 것을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좀더
사귀고 난 후라면 몰라도."
식사를 알려옴으로써 그의 말이 중단되고 말았다.
딸들은 서로 마주보고 미소를 지었다. 콜린즈 씨가
칭찬하는 것은 비단 딸들뿐이 아니었다. 그는 홀, 식당,
가구점들을 돌아보고 칭찬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장차 자기 재산이 된다고 보고 있다는 화나는
상상만 없었던들 그가 마구 칭찬하는 일이 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 차례로 식사도
대단한 칭찬을 받았다. 예쁜 딸 중 누구의 요리
솜씨가 이렇게 훌륭한가를 가르쳐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점에 관해서는 베네트 부인한테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훌륭한 요리사를 두고 있을
만했으며, 딸들에게는 부엌일을 일체 상관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분을 상하게 해준 데
대해 사과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어조로 조금도 화나
있지 않다고 말했는데도 그는 줄곧 사과를 했다.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2권
제인 오스틴
14
식사하는 동안 베네트 씨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하인이 물러서자 손님과 말을 주고받을
때라고 생각해, 상대가 내세울 만한 화제부터
시작하기로 해서 좋은 후원자를 얻게 돼 행운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의 그의 희망에
대한 배려라든지 안락에 대한 고려는 두드러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베네트 씨로서는 이 이상 더
좋은 화제를 고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콜린즈 씨는 부인을 칭찬했다. 문제가 여기에 이르자
그는 여느 때보다 훨씬 엄숙해지고, 자못
의젓해진 표정으로 자기로서는 지금 이날까지 캐더린
부인에게서 경험한 바로는 상류사회 사람치고
그토록 정중하고 겸손한 태도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자가가 그녀 앞에서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설교 때도 두 번씩이나 고마운 인사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 자기를 두 번이나
로징즈로 식사 초대를 해주었으며, 바로 그 전
토요일에는 쿼드릴(네 사람이 하는 카드 놀이)을 하다가
사람이 부족하다고 사람을 시켜 자기를 불렀다는 것이다.
캐더린 부인은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만하다고 생각되었으나, 자기로서는 친밀한
사랑의 정만을 느낄 뿐이라고 했다. 그녀는 항상
자기에게 대해서 여느 신사에게 대할 때나 다름없이
말을 건네준다고 했다. 자기가 인접 교구의 사교계에
참석하거나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한두 주쯤
교구를 비게 될 때도 한마디 반대를 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신중하게 선택을 한다면 되도록 빨리 결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할이만큼 친절을 베풀어
주기까지 했으며, 한번은 누추한 자기 목사관을 찾아
주어서 마침 자기가 작업 중이던 것을 고쳤더니
아주 좋다고 인정해 주었고, 황공하게도 그녀가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이다. 2층 다락의
선반 등에 제시하기도 했다.
"너무나도 친절하시고 적절하신 일이에요."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말할 것도 없이 퍽 기분 좋은 부인이시군요. 어디
세상 여성들이 다 그럴 수야 있겠어요. 댁 근처에
살고 계신가요?"
"저의 집 마당은 부인이 거주하시는 로징즈
장원하고는 길 하나 사이죠"
미망인이라고 말씀하셨던가요? 가족 관계는?
"영애 한 사람뿐이지요. 로징즈 장원과 막대한 재산의
상속자이시죠"
"아!"
베네트 부인이 머리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세상 어떤 여성들보다도 유복하시겠죠.
어떤 분이신가요? 예쁘신 분?"
"정말 매력 있는 영애이시죠. 캐더린 부인 말을
빌린다면 진정한 미라는 점에서는 루이스 드 버그
양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미인들보다도 예쁘다는
겁니다. 첫째 그녀의 용모에는 고귀한 출생의
젊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신체가 병약한 편이라
여러 가지 재능과 솜씨에 숙달할 수가
없었지만, 그렇지가 않았으면 훌륭했으리라고, 교육을
맡아 보았고 지금도 함께 살고 있는 부인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뭏든 그녀는 상냥스러운
분이며, 조랑말이 끄는 경사륜마차를 타시고 저의
집 옆을 곧잘 지나시곤 하죠"
"벌써 국왕 배알을 마치셨던가요? 궁전에 출입하는
분들 사이에서 아직 그런 분의 이름을 보지 못했어요."
"워낙 몸이 허약하셔서 런던엔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제가 부인께 말씀드렸습니다.
영국 궁전은 가장 찬란한 장식을 빼앗기고
말았다구요. 부인께서도 사뭇 이 생각이 마음에 드셨던 것
같았어요. 상상이 되시겠지만 전 때를 가리지 않고
부인들이 꼭 기뻐할 자그마한 칭찬의 말을 하기
좋아하죠. 제가 여러 차례 캐더린 부인께
말씀드렸지만, 이 아름다운 영애야말로 공작 부인으로
태어나신 분이시며, 이 최고의 지위마저 영애에게
무게를 더해 줄 수는 없고 오히려 영애에 의해서
빛이 날 정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사소한
일들은 부인께서 좋아하실 일이겠지만, 저로서는
부인에게 특별히 이런 배려를 해 드려야 옳은 일로 생각됩니다."
"옳은 판단이시오, 그렇도록 교묘하게 아름다운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올시다. 실례 말씀 같습니다만,
그러한 기분 좋은 배려는 그 당장에서 나오는
충동이신지 아니면 미리 연구해 두신 결과이신지요?"
"그건 주로 그때 상황에서 오게 됩니다. 하기야 저도
때로는 흔히 있는 경우에 적합될 수 있는
조촐하고 아담한 미사 같은 걸 생각해 내고 정리해
가며 즐기는 일도 있긴 합니다만, 되도록
계획적인 것이 되지 않게 말하려고 합니다."
베네트 씨의 기대는 흡족히 이루어졌다. 그의 친척은
그가 바랐던 것처럼 어리석은 위인이었다.
그래서 더할나위없이 기쁨을 느끼면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절대로 안색을
그대로 유지해 가며, 이따금 엘리자베드를 힐금 바라보는
일 외는 그 즐거움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상대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시간까지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으므로 베네트 씨는 손님을 다시 응접실로
데리고 가서 차를 마신 후 여자들에게 책을 읽은 다음
들려 달라고 그에게 간청했다.
콜린즈 씨는 쾌히 응하고 책 한 권을 꺼내었다.
그것을 보게 되자(모든 것이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흠칫해서 용서를 구하며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키티가
그를 응시하고, 리디어는 소리를 질렀다. 다른 책이 몇
권 나오게 되자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포다이스(18세기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젊은 여성을
위한 설교집이 있음)의 설교집을 택했다. 그 책을
펼치자, 리디어는 커다랗게 하품을 했고 그가 단조롭고
힘들게 세 페이지도 읽기 전에 가로막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필립스 이모부가 리처드를 내쫓겠다고
하시던 걸 알고 계세요? 그렇게 되면 포스터 대령이
채용하게 될걸요. 토요일에 이모께서 저에게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내일 메리튼까지 걸어가서
그 얘길 마저 들어야지, 그리고 데니 씨가 언제
런던에서 돌아오는지 그것도 여쭤 봐야지."
리디어는 두 언니들한테서 잠자코 있으라는 주의를
받았지만 콜린즈 씨는 몹시 화가 나서 책을
내려놓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은 전적으로 자기네를 위해 씌어진
진지한 내용의 책에 흥미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저는 정말 어안이벙벙해질
지경입니다. 확실히 젊은 여성들에겐 교훈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리디어에게 더
이상 부탁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베네트 씨를 향해, 주사위 놀이의 상대가
되어 주겠다고 말했다. 베네트 씨는 딸들로
하여금 시시한 놀이를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면서 그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베네트
부인과 딸들은 리디어가 방해한 점에 대해 매우
정중하게 사과하고 나서,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을
것을 약속하니 계속해서 책을 읽어 줄 것을 신신
당부했다. 그러나 콜린즈 씨는 리디어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갖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 베네트 씨와 딴
테이블에 자리잡고 주사위 놀이 준비를 시작했다.
15
콜린즈 씨는 똑똑한 사람이 못되었고, 타고난 결함도
교육이나 교제에 의해 고쳐지지도 못한
형편이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을 무식하고 인색한 아버지
밑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는 대학이라고
다니긴 했어도 이렇다 할 유익한 지식을 얻지 못했고
그저 필요한 학기 정도만 채우는 데 그쳤다.
복종이라는 굴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원래 매우
비굴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으나, 세상
세상 사람들 하고는 동떨어져 살아온 박약한 두뇌의
사람이 지닌 자만심과 젊어서 뜻하지 않게 일찍
성공을 거둔 데서 오는 거만함 때문에 적지 않게
반작용을 받았다. 헌스퍼드의 목사 자리가 있었을 때
운좋게도 캐더린 드 버그 부인에게 추천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고귀한 지위에 대한 숭배의 마음과
후원자로서의 그녀에 대한 존경심이 목사로서의
자기 자신의 권위와 교구장으로서의 권리 따위와 한데
어울려서 결국 그를 오만과 추종, 자존과 비굴을
혼합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훌륭한 집과 넉넉한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을 할 생각이었다. 롱본의 가족과 화해를
꾀한 것은 결국 아내를 얻자는 생각에서였다.
만일 이 집 딸들이 세상 소문과 같이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한다면 그 중 한 사람을 고를 작정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하게 되는
보상책이요. (일종의 속죄의)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적절함과 타당성이 넘치는 훌륭한
것, 즉 자기 쪽에서 볼 때 지나치게 관대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계획은 딸들의 얼굴을 보아도 변하질 않았다.
제인 베네트 양의 귀여운 얼굴을 보자 그러한
그의 생각은 더욱 굳어져 갔고, 재산은 당연히 장녀의
것으로 해야 한다는 그의 의견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첫날밤에 선택된 사람은 제인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는 변경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침 식사 전에 15분간 부인과 마주 앉아 목사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그 목사관의 여주인이 될
사람을 롱본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자연스럽게
그의 희망을 표명하자 부인은 은근히 미소를
짓고 격려를 하면서도 그가 이미 점을 찍어 놓은 제인은
안된다는 경고를 했던 것이다.
"딸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확고하게 말할 수는 없겠으나) 이렇다 할
선약이 없는 줄은 알지만(맏딸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슬쩍 알리는 것이 내 책임이라 생각하지만
얼마 안가서 약혼하게 되어 있는 줄로 알고 있어요."
콜린즈 씨로서는 제인에게서 엘리자베드로 옮겨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곧 이루어지고
말았다.) 베네트 부인이 불을 지피고 있는 동안에
이루어졌다. 엘리자베드는 나이나 아름다움에 있어서
당연히 제인을 이을 수 있는 존재였다.
베네트 부인은 그 암시를 대견스럽게 마음 속에
간직하고 얼마 안가 두 딸을 다 치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전날까지만도 부인이 말도 하기 싫었던 그 남자가
이제 자기의 마음에 꼭 들게 되었다.
메리튼으로 걸어가자는 리디어의 계획은 잊어버려지지
않았다. 메어리를 제외한 자매는 다같이 가는
것을 찬성했다. 콜린즈 씨를 쫓아 버리고 혼자 서재에
남아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내용인 즉 아침 식사 후 콜린즈 씨는 그의 뒤를 따라
서재에 들어와서 거기에 눌러앉아서
명목상으로는 책 중에서 제일 큰 이 절판 책 한 권에
마음이 끌린다고 했지만, 사실상은 베네트 씨에게
헌스퍼드의 자기 집과 정원에 대한 것을 쉴 사이 없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베네트
씨로서는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이다.
서재에서는 그 언제나 안락한 시간을 갖기로 되어
있었다. 그가 엘리자베드에게 말한 바 있듯이, 집
안 어느 곳을 가게 되나 어리석음이나 자만심과
마주치지 일쑤이나 서재에 있는 동안은 그러한
일들로부터 해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딸들하고 같이 가 달라고 아주 정중하게
콜린즈 씨에게 권했던 것이다. 그러자 사실
독서가라기보다는 산책인이 적격이었던 콜린즈 씨는 대단히
만족해서 책을 덮고 따라나서기로 했다.
그의 편에서는 시시한 내용을 점잔을 빼가며
이야기하면 이 집 딸들은 정중하게 맞장구를 쳐가면서
메리튼에 닿을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손아래 딸들의
주의는 벌써 그의 손에서 멀어졌다. 그들의
시선은 즉시 장교들을 찾느라 거리를 헤매고 있었고,
그리고 상점 진열장 안에 있는 멋있는 모자와
새로 나온 모슬린이라면 몰라도 그 밖의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곧 한 청년한테로 쏠리게
되었는데, 그 청년은 여지껏 보지 못한 사람으로
신사 티가 뚜렷했고, 장교 한 사람과 길 저쪽 편을 걷고 있었다.
그 장교는 런던에서 돌아왔는가를 리디어가 물어 보러
온 당사자인 데니 씨였는데, 그들이 지나갔을
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낯선 사람의 거동에 짐짓
놀라면서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 모두 궁금해했다.
키티와 리디어는 되도록 누구인가를 알아낼 마음으로
길 건너 가게에 소용되는 물건이라도 있는
체하면서 길을 건너 마침 보도까지 왔을 때
다행스럽게도 두 신사가 이곳까지 다가왔다. 데니 씨는
곧바로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친구 한 사람을 소개해도
괜찮느냐고 의사를 묻었다. 그 친구 위컴 씨는
그 전날 런던에서 그와 함께 돌아왔고, 다행스럽게도
자기 부대에서 장교 임명을 받게 되어 있다고
했다. 이것은 그럴 법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청년이
군복을 입기만 하면 더 멋을 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풍채와 용모가 훌륭하고 자태가 맵시
있고 태도 또한 매우 좋아 모든 미를 한 몸에
지닌 사람이었다. 소개가 끝나자 그는 기꺼이 대화를
하려 들었으며 쉬 대화에 응하는 태도가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으며, 극히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모두가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말들이
가까이 오는 소리가 들려 와서 돌아보자 다아시 씨와
빙리 씨가 거리를 내려오고 있었다. 일단 여성들을
보게 되자 두 사람은 곧바로 그들을 향해 다가와서 여느
때나 다름없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주로
빙리가 대변자 노릇을 하고 베네트 양이 주요한
대상자였다. 빙리의 말로는 마침 제인을 문병하기 위해
롱본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다아시 씨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으며, 엘리자베드를
안 보려고 마음먹기 시작하자 그의 시선은 돌연 낯선
사람 쪽으로 옮겨갔다. 엘리자베드는 문득 그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대면함으로써
생긴 효과를 보자 크게 놀랐다. 두 사람의
얼굴빛이 똑같이 변했는데, 한 사람은 창백해지고 한
사람은 빨개졌다. 위컴 씨가 한참만에 모자에
손을 대자 그 인사에 다아시 씨는 겨우 건성으로 답례할
정도였다. 이것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반면에 궁금한
생각을 벌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1분쯤 지나자 빙리 씨는 방금 일어난 일을
눈치채지 못했던지 작별 인사를 하고 나서
친구와 함께 말을 타고 가 버렸다.
데니 씨와 위컴 씨는 여자들과 함께 필립스 씨 댁
현관까지 걸어가서 리디어가 간곡하게 들어가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우기 필립스 부인이 거실 창을
열고서 큰 소리로 들어오라고 다시 말했으나
고개를 숙여 보이면서 떠나가고 말았다.
필립스 부인은 늘 조카딸들을 만나는 것이 기뻤고,
손위의 두 조카딸들은 요즘 오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환영을 받았다. 부인은 둘이 갑작스럽게 귀가한 데
매우 놀랐다고 말했으며, 자기네 마차가
마중을 간 것이 아니니까 만일 우연히 거리에서 존즈
상점의 점원을 만나게 되어 베네트 댁 따님들이
귀가했으므로 이제는 네더필드까지 물약을 보내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듣지 못했던들 아무것도 모르고
지날 뻔했다고 말했을 무렵에, 제인이 콜린즈 씨를
소개했기 때문에 부인은 그에 대해 수인사를 치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인은 그를 대단히 정중하게
맞아들였으며, 콜린즈 씨 역시 부인 못지 않게 예의를
갖추었다.
일면식도 없는 터에 돌연 실례를 하게 되었다고
사과부터 하고 나서 자기를 소개해 준 젊은
여성들과의 인척 관계를 생각할 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필립스
부인은 그의 깍듯한 예의가 송구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부인의 신참자 한 사람에 대한 명상은, 또
한사람의 신참자에 관해 큰 소리로 질문하는 바람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해 부인이 조카딸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서
데니 씨가 그들 런던에서 데리고 왔으며, ㅇㅇ주 연대에서
중위로 임관되게 되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부인은 그가 거리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위컴 씨가 나타났다면 키티와
리디어는 그러한 작업을 계속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공교럽게도 창바깥에는 장교 몇 사람 외에는
통행인이라고는 없었으며, 그들은 신참자인이 사람에
비할 때 '얼빠지고 불유쾌한 인간들'이 되고 말았다.
그 중 몇 사람은 다음날 필립스 댁에 식사하러 오게
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이모는 만일 롱본의
가족들이 저녁에 와 주기만 한다면 남편에게 위컴 씨를
방문케 하여 그를 꼭 초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에 대해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러자 부인은
복권놀이라도 한바탕 벌이고 나서 따뜻한 저녁
식사나 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즐거움을 예상해 가며 모두가 들뜬 가운데
기분 좋게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콜린즈 씨는 방을 나올 때 연신 사과의 말을
되뇌었으나 주인은 그러한 사과의 말이 불필요하다고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엘리자베드는 두 신사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본대로 제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신사들이 잘못된 점이라도 있었더라면 제인은
어느 한쪽이나 아니면 두 사람을 다 변호해
주려 했으나 동생도 그러했듯이 자기로서도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콜린즈 씨는 돌아와서 필립스 부인의 예절과 공손함을
찬양함으로써 베네트 부인을 매우 만족시켰다.
캐더린 부인과 그녀의 딸을 제외하고는 그처럼 우아한
여인을 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실 부인은 그를 더할나위없이 정중하게 맞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전에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도 다음날 저녁 초대에 특별히 넣기까지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야 서로간의 인척 관계가
있어서 그러려니 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 생애를
통해 그만큼 고마운 배려를 받아 본 일이 없다고 했다.
16
젊은 사람들이 이모와 약속한 일에 대해 반대해 나설
수도 없었고, 콜린즈 씨는 자기가 체재하고
있는 동안 하루 저녁이라도 베네트 부부를 남겨 두고
나가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강경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어 마차는 적절한 시각에
그와 다섯 사람의 친척 딸들을 태워 메리튼으로
갔다. 응접실에 들어서자 달들은 이모부와 초대에
응해서 위컴 씨가 집에 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자 기뻤다.
이 소식이 알려지고 모두 자리에 앉자 콜린즈 씨는
주위를 휘 돌아보고 칭찬할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방 크기와 가구에 몹시 감동되었기 때문에
사뭇 로징즈의 자그마한 여름 조반 식당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한 비교는
처음에는 그다지 만족을 주지 못했으나, 필립스
부인은 그의 말을 통해서 로징즈가 어떤 곳이며 그
소유자가 누구인가를 이해하게 되고, 캐더린
부인의 응접실 묘사 하나만 듣고 벽난로만으로는 8백
파운드나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의 칭찬에
압도되다시피 하여 그 집의 가정부 방과 비교된다 하더라도
그리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콜린즈 씨는 캐더린 부인과 저택의 웅장함을 부인에게
자세히 설명했고, 가금 객쩍은 말로 수수한
자신의 집과 개축공사에 대해 자랑해 가며 남자들이 올
때까지 들려주었다. 그는 필립스 부인이 자기
말을 유심히 듣고 있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며, 그녀는
듣고 있는 동안 사뭇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여겼으며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되도록 빨리 이웃
사람들에게 건네줄 결심이 섰던 것이다.
딸들 입장에서 그들은 친척 콜린즈 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가 않았고, 악기도 있었으면 좋겠다느니
하면서 선반 위에 놓여 있는 그들이 손수 만든 도자기의
모조품을 바라다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무한히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지루한 시간도 마침내 끝났다. 남자들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위컴 씨가 방안으로 들어섰을 때
엘리자베드는 그를 먼저 보았을 때나 그 후에도
사뭇 그를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안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ㅇㅇ주 연대의 장교들은 일반적으로
신용할 수 있는 신사다운 인물들로서 그 중에서도
빼어난 사람들이 이 모임에 나와 있었다.
그러나 위컴 씨는 풍채, 용모, 동작, 등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 있었다. 그것은 얼굴이 넓적하고
포도주 내음이나 풍기는 답답한 필립스 이모부와
비교하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모부는 그들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섰다.
위컴 씨는 거의 모든 여성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행운의 사나이였는데, 엘리자베드는 마침내 그가
옆에 앉게 되는 행복한 여성이 되고 말았다.
그가 곧바로 싹싹한 말투로 말을 건네 왔는데, 상냥한
태도는 설사 오늘 저녁은 비가 올 것이고
얼마안가 장마가 될 것 같다는 정도에 그쳤으나 말하는
사람의 기교에 따라서는 제아무리 평범하며
진부한 내용도 마음을 끌게 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여성들의 시선을 돌리게 할 수 있는 위컴 씨나
장교들과 같은 적수가 나타나자 콜린즈 씨는 미미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같이 보이고, 특히 젊은 여성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필립스 부인이
친절히 말상대를 해주었으며 자상한 배려로 커피나
머핀(작고 둥근 빵)을 많이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
카드 테이블이 놓이자 그는 휘스트(보통 네 사람 정도가
하는 카드 놀이)에 끼여들게 되어 부인에게
보답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이 게임을 잘 모릅니다만 곧 익숙해질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저와 같은 입장에서는...."
필립스 부인은 그가 응해 준 데 대해서 매우 고맙지가
않았으나 그 이유를 물을 수는 없었다.
위컴 씨는 휘스트 놀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자베드와 리디어가 기꺼이 딴 테이블에서 두 사람
사이로 그를 맞아들였다. 처음에는 리디어가 워낙
수다장이여서 그를 독점할 것만 같은 위험이
감돌았다. 그러나 운수보는 놀이도 그에 못지 않게
좋아했던 터라 얼마 안가 그녀는 그 승부에도 흥미가
끌려 돈을 거는 일과 또 땄을 때는 고함치며 열을
올리느라고 유독 어떤 한 사람에게만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위컴 씨는 보통 놀이가 요구하는
바를 참작하는 여유를 보여 가면서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건넬 수가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진심으로 듣고 싶어도 제대로 듣지 못했던 일,
즉 그와 다아시 씨와의 교제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감히 입밖에 내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호기심은 뜻밖에
충족되었다. 위컴 씨 스스로가 그 화제를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그가 네더필드가 메리튼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이냐고 묻고 대답을 듣고 나자, 주저하는
태도로 다아시 씨가 그곳에 머무른 지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다.
"한 달쯤 됐어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그리고서 그것만으로 화제를
끝내고 싶지가 않아서 덧붙여 말했다.
"그분은 더비셔에 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위컴 씨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곳의 토지는 썩 훌륭하지요. 일 년
수입이 꼭 1만 파운드가 되니까요. 거기 관해서는
나만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그 집안과 특별한
관계가 있었으니까요."
엘리자베드는 놀란 표정을 나타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 우리가 만났을 때의 아주 냉랭한 태도를 보셨을
테니까 이런 말씀드리는 걸 들으신다면 놀라실
것도 무리가 아니죠.... 다아시 군하고는 잘 아시는
사이이십니까?"
엘리자베드는 힘주어 말했다.
"그분하고 한 집에서 나흘씩이나 지냈어요. 아주 기분
나쁜 분 같았어요."
"나에겐 내 의견을 말씀드릴 권리는 없습니다. 그의
인품이 좋고 하찮고 간에"
위컴이 말했다.
"그런 판단을 내릴 자격이 나한텐 없습니다. 너무
오래 사귀어 온 관계로 공정한 판정인이 될 수
없으니까요. 공정하기가 나에겐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듣게 되면
대개 놀랄 겁니다.... 더우기 다른 곳에선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시진 않으시겠죠. 여기는 어디까지나
가족들끼리니까요."
"잘라 말씀드리지만, 여기서나 근처 어떤 집에서나
네더필드를 빼놓고는 똑같은 말을 하겠어요.
그분은 허어퍼드셔에선 환영을 못 받고 있어요.
그분의 자존심엔 모두 진저리를 내게 되죠. 저만큼
호의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나로선 야속할 처지도 못됩니다. 다아시 군 자신이건
누구이든 간에 자신의 가치 이상으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그러나 그의 경우만은 그대로 들어맞지가 않는군요.
세상 사람들은 그의 재산이나 재위 때문에 눈이
어두워졌는지 아니면 도도하고 압도할 것 같은 태도가
두려워서 그런지 그 사람이 바라는 대로 그를
보게 되는구먼요."
"전 그분하고는 잠깐 알게 된 것뿐인데도 심술궂은
분같이 느껴져요."
그 말을 듣자 위컴은 고개를 좌우로 저어 보였다.
"그 사람이 혹시 이 지방에 더 오래 머물러 있게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다음 말할 기회를 포착하여 말했다.
"전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제가 네더필드에 있었을
때만도 어디엘 가신다는 말을 듣지 못했어요.
그분이 근처에 계시다고 해서 선생님이 ㅇㅇ연대에
호의를 가지시고 세우신 계획이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천만의 말씀을... 적어도 다아시 군에게
쫓겨날 사람은 아닙니다. 그가 만일 나를 만나기를
피한다면 그 사람이 이곳을 떠나야 마땅한 일이죠.
우린 서로가 좋은 사이가 못되어서 그를 만나는
것이 언제나 나에겐 고통을 주게 되죠. 그러나 나에겐
그를 피할 이유는 온 세상에다 공언할 수 있는
것 외엔 없습니다.... 심히 냉대를 받은 생각,
그리고 현재 그의 사람됨이 몹시 유감스러울
따름입니다. 베네트 양, 돌아가신 그 사람의 아버지
다아시 선생께선 지금까지 살아온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신 인격자의 한 분이며 언제나 저에겐 충실한
편이 돼 주셨죠. 그래서 난 그 다아시란 사람하고
함께 있을 때면 지난날의 많은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마음 속 깊이 슬퍼지곤 합니다. 나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는 언어도단이었지요. 그러나 나는 그
사람 선친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그분의 기억을
흐리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 무슨 일이든 용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자베드는 그 문제에 흥미가 점점 더해 가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으나 워낙 문제가 미묘해서 그 이상
물어 보지 않기로 했다.
위컴 씨는 좀더 일반적인 화제, 즉 메리튼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그 근방의 일, 그리고 사교계에 관한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보아온 모든
일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으로 특히 사교계에 대한
것은 점잖으면서도 눈에 띠게 조용조용히 말했다.
"저를 ㅇㅇ주 연대에 들어서게 한 동기는 끊임없이
그리고 훌륭한 사교계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더없이 기분 좋은 부대라는 걸 알고 있었지요.
더우기 친구인 데니까 현재 주문지의 사정을
설명하고 메리튼에선 소중히 대우를 받게 되면 훌륭한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을 해서 저를
끌어들이게 된 겁니다. 저한테는 사교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실의에 찬 사람이라 고독을
이겨낼 사람은 못됩니다. 그래서 저는 일과 사교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군대 생활은 제가
원했던 바가 아니었습니다만 지금의 처지로는
어울리는 것이 돼버렸습니다. 성직자를 직업으로
택해야 했겠지요.... 성직자가 되도록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앞서 말한 신사의 마음에
들게 되었더라면 지금쯤은 대단히 높은 녹을 누리는
위치에 섰을 겁니다."
"어쩌면!"
"그렇고 말고요.... 돌아가신 다아시 씨께선 그분의
증여권내에 있는 제일 훌륭한 성직록이 나는
대로 저에게 남겨 주시겠다고 하셨지요. 그분은 저의
교부이셨고 저를 지나치실이만큼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친절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충분한 생활을 시켜 주시려
하셨고 또 그렇게 하셨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직록 기한이 끝나게 되자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어머나!"
엘리자베드가 외쳤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되고 말았을까요? 어떻게 해서
그분의 유언을 저버리게 됐단 말이에요? 왜
선생님은 법률상의 보상을 청구하지 않으셨지요?"
"유언장의 문구에 형식상으로 미비한 점이 있어서
법에 호소해 봤자 승산이 없었습니다. 명에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같으면 고인의 뜻을 의심하지
않겠지만, 다아시 군은 의심하려
했거든요.... 그뿐이겠읍니까, 그걸 단순한 조건부의
추천서 정도로 취급했고, 낭비, 불근신...
제가 그 요구권을 상실했다고 마구 우겨댔습니다.
정확히 2년 전에 성직록 자리가 비었고 저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이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딴 사람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확실히 제가 그것을 놓칠 만한
짓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도저히 저를
책망할 수가 없습니다. 본시 저는 격한 데가 있고
앞뒤를 생각 않는 성품이 돼서 때로는 그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남 앞에서 말한 적도 있었겠지요. 그
이상으로 잘못한 일을 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서로 성격이 너무 틀려서 그 사람이 절
미워하는 겁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그런 사람은 당연히 사람들
앞에서 수모를 당해야 할 분이에요."
"아무 때고 그렇게 되고 말겠죠.... 그러나 제 손에
의해서 그렇게는 안되겠죠. 그 사람의 선친을
완전히 잊을 때까지는 그 사람에게 도전으로 맞서거나
폭로는 할 수가 없겠지요."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감정을 지닌 그를 존경하고
싶었으며 그러한 말을 뇌었을 때 그를 한결
아름다운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무엇이 그러한 동기를 만들었을까요? 무슨
일로 그렇게 잔인한 행동을 하게 했을까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그건 철두철미하게 제가 미워서 그랬을 겁니다....
그렇게 저를 싫어하는 감정은 어느 만큼
질투의 탓으로 돌리고 싶고요. 돌아가신 다아시
씨께서 절 그토록 사랑하시지 않으셨던들 그 친구도
저를 좀더 좋게 대해 줬을 테지만요, 자기 부친이
무던히 저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그가 어렸을 때부터
화가 난 게지요. 그는 또 우리들 입장과 같이
경쟁의 상대가 된 일을... 그리고 제가 자주
편애를 받게 되는 것을 참을 만한 성품이 아니었지요."
"다아시 씨가 그렇게 나쁜 분인지는 몰랐어요....
절대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일반적으로
친구분들을 경멸한다고 생각했지만, 그토록 악의에
찬 복수, 그런식의 불법으로 몰인정한 짓을 해치우는
사람으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계속했다.
"언젠가 그분이 네더필드에서 자기는 생전의 남은
원한을 잊지 못한다든가 앙갚음을 꼭 하고
만다든가, 사람을 좀처럼 용서할 줄 모르는 기질을
지녔다고 자랑하던 일을 기억하고 있어요. 무서운
기질을 지니고 있는 분에 틀림없어요."
"그 문제에 대해선 자신이 없습니다. 전 그 사람에
대해서는 도저히 공정을 기할 수 없습니다."
위컴이 대답했다.
엘리자베드는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한참
후에 소리내어 말했다.
"자기 아버지께서 손수 아들로 삼으셨고 아끼셨던
자기 친구를 그런 식으로 대접하다니!"
그녀는 이렇게 덧붙여서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우기 선생님 같이 한눈으로 보아서 사람의 마음을
끌게 되실 분을"
그러나 그녀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선생님 말씀대로시라면, 어릴 적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인 분을 말예요!"
"우리들은 같은 교구, 같은 저택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한께 보냈지요. 한집에
살았으며 같은 놀이를 즐겼고, 똑같이 부모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선 댁의 필립스
아저씨가 대단한 성공을 하신 그 직업을 저버리고,
생애를 바쳐 가며 펨벌리의 소유지 관리를
맡아보시게 된 겁니다. 저희 아버지는 다아시
선생한테서 대단한 평가를 받게 되었고, 극히 더
친하며 신뢰받는 사이였습니다. 다아시 선생은
입버릇처럼 저희 선친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다아시 선생께서 자진해서 저를 부양하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그건 바로 저에 대한 애정임과 동시에
선친에 대한 감사의 빚 정도로 느끼셨을 것이라 전
확신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군요! ... 정말 미운 짓이에요! 다아시
선생님은 자존심 그 자체를 위해서라도 선생님께
공평했어야 할 텐데! 더 나은 동기를 못 가질망정
자존심 때문에 불성실해지진 말았어야 했을
텐데... 왜냐하면, 전 그걸 불성실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거든요."
"신기한 일이죠"
위컴이 대답했다.
"그 친구의 모든 행위는 자존심으로 낙착시킬 수가
있고요, 동시에 자존심만이 그의 둘도 없는
벗이니까 말입니다. 그가 미덕에 가까이 간다고 해도
결국은 자존심의 감정에서 하는 짓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네는 모순이 있는 법이죠. 저에 대한 그의
행위 속에는 자존심보다 더 강한 충동이 있었지요."
"그분의 그와 같은 지긋지긋한 자존심이 도대체
본인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있고 말고요. 자존심 때문에 그 친구는 아끼지 않고
너그러워져서 돈을 물쓰듯 해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소작인을 원조해 주기도 하고 빈민을
구원해 주기도 하죠. 가문의 자존심. 말하자면
자식 된 도리로서의 자존심이 그렇게 시킨 거죠. 그
친구는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그런 일을 행한 것에 대해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가문을 더럽힌다든가
좋은 평판을 떨어뜨린다든가 또는 펨벌리 가문의
세력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라 보는 편이
유력하죠. 그 친구에겐 또 오빠로서의 자존심이
있지요. 그것이 오빠로서의 애정까지 곁들이게 되어
후견인으로서 매씨를 친절하게 돌보고 있는 거죠.
두고 보십시오. 그 친구는 동기간 우애가 극진하고
다시없는 오빠라고 세상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게
될 겁니다."
"그분의 동생은 어떤 분이시죠?"
그는 머리를 저었다.
"귀엽다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만, 다아시 집안
사람들을 나쁘게 얘기하는 건 저로선
고통스럽습니다. 다만 그분은 오빠하고 너무나
닮았지요.... 콧대가 센 점에 있어서 말입니다.
어렸을 때는 상냥하고 사람을 잘 따랐지요. 날 얼마나
좋아했다고요. 난 그녀를 즐겁게 해주려고 몇
시간이고 시간을 내곤 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아무 소용도 없게 돼 버렸지요. 나이는 열
대여섯 되었을 것으로 압니다만, 그저 예쁘고 재능도
어느 만큼 갖춘 아가씨라 봅니다. 부친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는 거의 런던에서 거주해 왔고,
그곳에 있는 부인 한 분이 붙어 있어 그녀의
교육을 맡았습니다."
몇 차례 대화를 중단시키고, 변경시키곤 해보았으나
엘리자베드는 결국 거의 처음 대화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분이 빙리 선생님하고 친하게 지내시는 건 전 정말
모를 일이에요. 쾌활하시고 무척 상냥하시기만
한 분이신데 어떻게 그런 분하고 친하게 지내실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서로가 맞을 수가 있을까
이상하기만 해요.... 선생님께선 빙리 선생님을
알고 계시는가요?"
"전연"
"양순하고 상냥스럽고 매력 있는 분이시지요.
그분께선 다아시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가 잘 모르실 거예요."
"아마 모를 겁니다. 하지만 다아시 군은 남의 마음에
들고 싶어할 땐 그렇게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은 재주가 많거든요. 그렇게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땐 재미있는 말동무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과 동지 위의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땐 자신보다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전연 딴 사람이 되고 마니까요. 자존심이
없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나 돈많은
사람 축에 끼게 되면 시원시원하고 공정하고 진실되고
지각이 있고 고귀하고 상냥스럽겠죠....
재산과 풍채를 다소 감안한다면 말입니다."
휘스트 조가 얼마 안가서 해산해 버리고 나자 모두들
곧 딴 테이블에 모여들고, 콜린즈 씨는
엘리자베드와 필립스 부인 사이에 자리잡았다. 부인은
그의 승부 결과가 어떠했느냐고 평범한 질문을
했다. 결과는 좋은 편이 못되어서 그는 단 한 점도
얻지를 못했다.
그러나 필립스 부인이 그 결과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하자, 콜린즈 씨는 그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며, 돈 같은 것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고 자못
정중한 어조로 걱정 말라고 부탁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카드 테이블에 앉게 되면
누구나가 다 한결같이 따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 5실링 정도쯤은 그렇게 대단하게 여길
만한 환경에 놓여 있질 않습니다. 반드시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사람들로 상당히 있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겠지만, 캐더린 드 버그 부인 덕분으로 전
사소한 일에 대해 신경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바로 그때 위컴 씨의 주의가 그쪽으로 끌렸다. 잠시
동안 콜린즈 씨를 보다가 그는 엘리자베드에게
콜린즈 씨가 드 버그 일가와 가까운 사이냐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캐더린 드 버그 부인께서 최근에 그분에게 성직록을
주신 거예요. 콜린즈 씨가 어떤 연유로 부인을
아시게 된 건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만, 그다지
오래된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아시겠지만, 캐더린 드 버그 부인과 앤 다아시
부인은 자매간이시거든요. 그러니까 그분은
바로 다아시 군의 이모이신 거예요."
"아니, 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요. 캐더린 부인의
인척 관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부인의 존재에 관한 것도 그저께에 비로소 알게 된 걸요."
"따님이신 드 버그 양은 적잖은 재산을 갖게 될
테지만, 그분과 사촌 다아시 군이 합치는 경우 두
개의 재산이 하나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 정보에 접하게 되자 엘리자베드는 빙리 양에게는
가엾다고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만일
다른 결합될 경우 사람하고 그녀의 관심도 다아시의
누이에게 보내던 애정도 다아시 본인에게 칭찬하는
말도 모두 소용이 없게 될 것이 아닌가.
"콜린즈 씨는 캐더린 부인과 그분의 따님을 여간 좋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가 부인에 대해
말한 몇 가지 일로 제가 눈치챈 것은 그가 감사한
나머지 오히려 본인을 그르치고 부인은 콜린즈 씨의
후원자이지만 오만하기 그지없고 잘난 체하는 것 같아요."
"두 면이 다 대단한 걸로 알고 있어요."
위컴이 대답했다.
"여러 해 못 만났습니다. 그런데 난 부인을 과히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그 태도부터가
독단적인데다가 불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요.
분별심이 대단하고 현명하다는 평판은 있지만,
그분의 재능은 한편에서는 지위와 재산에서 또
한편에서는 권위가 있는 듯한 태도에서, 나머지는
조카 다아시 군의 자랑에서 오는 것으로 보는데,
장본인은 자신과 인척 관계가 있는 사람은 모조리
많은 이해력을 갖고 있다고 제멋대로 정하는 위인이거든요."
엘리자베드는 위컴이 매우 합리적으로 설명을 한
것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가
만족해하면서 말을 이어나갔으나, 이내 저녁 식사가
나와 카드 게임이 그치게 되자 좌중의 다른
여성들도 위컴 씨의 친절을 고루 받았다.
필립스 부인의 저녁 식사 모임이 소란해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으나 그의 몸가짐이 좋은 점은
모두의 마음에 든 바 있었다. 그가 말하고자 한 일은
제대로 해냈고 그가 하는 일은 모두 다 우아하게
보였다. 엘리자베드는 그의 일로 머리가 가득 찬 채
집을 나왔다. 집으로 오는 동안 사뭇 위컴 씨의
일, 그리고 그가 자기에게 말한 것들만 머리에
떠올랐지만, 이름 한번 입밖에 내서 말할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리디어도 콜린즈 씨도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디어는 끊임없이 복권 이야기며, 놓친 고기와 잡은
고기 이야기를 했고, 콜린즈 씨는 그 나름대로
필립스 부부의 환대를 말하는가 하면, 휘스트 게임에 진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고 저녁 식사 접시
수를 헤아리기도 하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자기
때문에 비좁지 않으냐 걱정해 가면서 마차가 롱본
하우스에 멈출 때까지도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17
엘리자베드는 다음날 제인에게 위컴 씨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제인은 놀라고
근심하면서 귀를 귀울였다. 다아시란 사람이 그렇도록
빙리 씨의 존경을 받을 가치가 없는지 그 자체가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그렇다고 위컴과 같은 상냥한
용모의 청년이 말하는 진실을 의심한다는 것은
그녀의 성격으로는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가 그런
불친절을 용케 견디어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녀의 부드러운 마음에도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똑같이 좋게 여기고,
그들의 행동을 변호해 주고 그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우연이나 착오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제인은 그렇게 말했다.
"두 분이 어쩌다 피차에 오해를 하고 계신 거야, 그
이유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두 분 사이에 이간을 붙여 놓은 거야.
어느 한 분을 탓하지 않고서는 두 분 사이를
멀게 한 원인이나 사정 같은 것을 추측할 수가 없지."
"사실 그래.... 그런데 언니, 혹시 이 일에 관련
있는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위해서 언니 의견은
없수? 그들에 대해서도 흑백을 가려내야조.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을 나쁘게 생각해야 하니까 말예요."
"웃고 싶으면 웃어도 좋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의견은 변하지 않는다. 얘 리지야, 다아시 씨를
얼마나 불명예스럽게 만드는지 생각해 보렴. 자기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던 사람을 그렇게
다루다니... 부양해 주시겠다고 아버지께서
약속까지 하신 분을 말야. 안될 말이지. 보통 인정이
있고, 자기의 명성을 조금이라도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가 없는 거야. 그분하고 아주 친한
친구분들이 그런 식으로 그분을 속이겠느냐 말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위컴 씨가 간밤에 나한테 얘기한 내력을 이름이나
사실을 소상하게 말하는 것으로 봐선,
꾸며냈다기보다는 빙리 씨가 속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편할 거야.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다아시 씨에게
반박하라면 돼. 그뿐 아니라 그분의 얼굴에는
진실성이 나타났어."
"정말 어렵게 됐어.... 곤란한 일이지.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미안한 말씀이지만... 사람이 생각하는 건 뻔하지."
그러나 제인으로서는 다음 한 가지는 명백하게 생각할
수가 있었다.... 즉 빙리 씨가 만약에 속은
것이라면 진상이 세상에 드러날 때는 몹시 괴로워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관목 길에서 두 젊은 여인은
그대까지 말하던 당사자들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아 호출을 당했다.
빙리 씨와 자매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던
네더필드의 무도회에 초청하기 위해 손수 오게 된
것인데 날짜는 다음 화요일로 확정이 되었다. 두 여인은
가까운 친구 제인을 다시 만나게 되어 기뻐했다.
전번 만난 것이 옛날 같다고 말하면서 헤어진 후에
어떻게 지냈느냐고 몇 번이고 되뇌어 물었다.
그들은 다른 식구들에게는 거의 아랑곳하지 않았고,
되도록 베네트 부인을 피했고, 엘리자베드에게도
말을 많이 건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빙리를 놀라게 할이만큼 날렵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치 베네트 부인의 환대를 벗어나려는 것처럼
황급히 자리를 뜨고 말았다.
네더필드의 무도회에 대한 예측은 가족 중의 어느
여인들에게도 적이 기쁜 일이었다. 베네트 부인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맏딸에 대한 인사조로 개최되는
것이라 해석하고, 형식적인 초대장이 아니라 직접
빙리 씨로부터 초대해 주었기 때문에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웠다.
제인은 두 사람의 친구들과 그들의 오빠 빙리
씨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게 될 하룻밤을 마음 속으로
그려보았다. 엘리자베드는 위컴 씨와 춤을 추며, 다아시
씨의 표정에서나 행동에서 확실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캐더린과 리디어가 예상하는 행복이라는 것은 어느 한
사건이라든가, 누구라고 정해진 특수한 인물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역시
엘리자베드처럼 그날 밤은 위컴 씨와 춤을 출
작정이었으나, 자기들을 만족시켜 줄 상대는 반드시
그만이 아니고, 그러나 무도회는 역시 무도회였던
것이다. 그리고 메어리까지도 무도회에 나가는 것이
싫지 않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오전만 내 마음대로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도 족하단 말예요. 이따금 저녁 모임에
어울리는 것도 별로 희생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우리는 사회에 대해서 의무가 있는 법이에요. 난
휴식과 오락은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에요."
엘리자베드는 그때 마침 명랑해져 있었기 때문에 여느
때 같아서는 필요없이 콜린즈 씨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 드물었으나, 빙리 씨는 초대에 응할
것인가, 응한다면 그날 밤 오락에 참가하는 일이
적절하다고 보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오히려 더 놀랐다. 그 점에
관해서는 콜린즈 씨는 조금도 주저하는 빛이 없었고
춤춘다고 해서 대주교나 캐더린 드 버그
부인한테서 책망이나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었다.
"내 의견으로는...."
콜린즈가 입을 열었다.
"인격 있는 청년이 존경할 만한 사람들에게 베풀게
되는 무도회는 조금도 나쁜 경향은 없는 법이죠.
나 자신으로서도 춤추는 데는 전혀 이의가 없고 그날
밤에는 친척 여러분에게 손을 잡히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어서 말씀드리지만, 엘리자베드
양께선 특히 처음 두 번은 춤을 춰 주셔야
합니다. 이러한 선택을 제인 양께선 정당한 이유가
있어 한 일이라 생각하실 것이고, 그분에 대해
실례가 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엘리자베드는 꼼짝없이 걸려든 느낌이었다. 바로 그
두 번은 위컴 씨에 의해 프로포즈를 받을 것만
같았었다. 그런데 콜린즈 씨가 먼저 프로포즈하게
되다니! 그녀의 발랄함이 왜 이렇게도 때를 가리지
못했던 것일까.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위컴 씨와 자기와의 행복은 어쩔 수 없이 조금 뒤로
미루고, 콜린즈 씨의 프로포즈를 되도록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는 이토록 대담한 그의
행위에 그 이상의 어떤 뜻이 들어 있다는 낌새는
알아차렸지만, 그렇다고 썩 유쾌한 일은 못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떠오른 일이지만, 헌스퍼드 목사관의
주부가 되고, 로징즈 부인 댁에서 특별히 적당한
내객이 없을 경우엔 카드릴의 상대로선 안성마춤의
여성으로, 자매들 중에서 자기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더우기 자기에 대한 그의 은근한 태도가 더해
가는 것을 보고, 또 자기의 기지나 쾌활함에
대해 공연한 찬사를 보내려 드는 점으로 보아서 그녀의
생각은 얼마 안가 확신으로 변했다.
자신의 매력의 이러한 효과에 대해 만족했다기보다는
놀라움이 앞섰지만, 두 사람이 결혼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어머니 입장으로서는 반가운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어떤 형식이든 답을 하게 되면 그 결과가
심각한 토론거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암시를 모근 체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콜린즈 씨는 어떤 제안을 안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사전에 그 사람의 일에 대해
논쟁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네더필드의 무도회 준비를 하고, 그 이야기라도 하지
않았던들 막내동이 베네트 자매는 그때쯤은
비참한 꼴이 되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초대받은 날부터 무도회가 있는 그날까지 계속 비가
내려서 메리튼에는 한번도 발걸음을 옮겨 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모와 장교들과 그리고
새소식까지도 끊겨 버렸다. 네더필드에서 쓸 구두
장식까지도 시켜서 사들였다.
엘리자베드까지도 위컴 씨와의 친교를 돈독히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기후로 하여 인내심의 시련을 받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화요일에 무도회라도
없었던들 이와 같은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을 키티나 리디어에게 견디어낼 수가 없게 되었을 것이다.
18
엘리자베드가 네더필드의 응접실로 들어서서 거기
모여 있는 붉은 군복의 무리 사이에서 위컴 씨의
자태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그가 오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마침내 그녀의 마음 속에 떠올랐다.
당연히 그녀를 놀라게 할 어떠한 회상들도 반드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약화시켜 놓지는 못했다.
그녀는 평상시보다 더욱 조심해서 화장을 했고, 위컴
씨의 아직 정복되지 않은 마음 한 구석을 전부
정복할 것, 그것마저 그날 밤 안으로 가볍게 해치울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의기양양하게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불현듯 빙리가 장교들을 초대하는 데 있어,
다아시를 꺼린 나머지 위컴 씨를 일부러 제외하지나
않았느냐 하는 무서운 의혹이 일어났다.
그 진상은 정확치가 않았지만, 그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친구 데니 씨가 알려주었다.
리디어가 그에게 열심히 말을 건네자, 위컴은 어제
볼일이 있어서 런던으로 꼭 올라가야 했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을 말하고, 뜻있는 미소를 머금으면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이 자리에 오신 신사들을 피할 생각이 없었더라면,
바로 이때에 용무로 해서 떠날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요."
이 부분을 리디어는 듣지를 못했으나 엘리자베드는
들었다. 위컴이 참석하지 못한 사실에 있어서는
그녀의 애당초 억측이 옳았던 경우에 못지 않게
다아시에게도 책임 있다고 확신이 가자, 그에게 품었던
불쾌한 감정 하나 하나가 바로 이 순간의 실망에 의해
더욱 격해져서 곧장 그가 접근해 오며 정중하게
말을 거는데도 참을성 있는 예의로서 대답할 수 없는 정도였다.
다아시에게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고 관대하고
인내심을 갖는 것은 곧 바로 위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그와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외면했으나 이러한 태도는 빙리 씨에게 말을 건넬
때도 고치지 못했다. 빙리의 맹목적인 편애가
엘리자베드를 화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있을
성질이 아니었다. 그날 밤 그녀의 기대는 하나같이
망가지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끝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지는 못했다.
일주일 동안 만나지 못했던 샬로트 루커스에게 자기의
슬픈 가슴속을 깨끗이 털어놓고 나서 스스로
콜린즈의 괴팍스런 성미로 화제를 옮기고 특히 그녀의
주의를 그에게로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처음 두 번의 춤 자체가 고통거리였고
고행의 그것이 되고 말았다. 콜린즈 씨는 서투르고
격식에 얽매어서 정신을 차리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는가
하면, 가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멋대로 움직여 두 번씩이나 재미없는 춤
상대로 수치와 비참함을 있는 대로 맛보게 하고
말았다. 그에게서 해방되자마자 하늘로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춤 상대는 어떤 장교였다. 위컴에 대한 이야기와
누구한테서나 호감을 갖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어 힘이 솟아났다.
그 춤이 끝나자 샬로트 루커스에게 되돌아가서 그녀와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아시 씨가 말을 걸어
왔던 것이다. 그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춤을 청해 왔기
때문에 얼떨결에 승낙하고 말았다.
그가 그 길로 다른 곳으로 걸어나가 버리자 그녀는
자신의 방심한 상태가 짜증이 났다.
샬로트는 그녀를 위로하느라 애썼다.
"지금 보니 저분은 정말 호감이 가는 분이셔"
"어림없어! 바로 그게 크나큰 불행이란 거야!
미워하려고 맘먹고 있는 그런 남자에게 호감이 가다니!
날 위해서라도 그런 말을 안해 줬으면 해"
그러나 다시 춤이 시작되어 다아시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 가까이 올 때 샬로트는 숙맥처럼 굴지 말고
위컴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섣불리 그의 열 배나
유력한 남성의 눈에 불쾌하게 비치지 않도록 하라는
충고를 귀엣말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대꾸도 않고 춤 사이로 끼여들었는데,
다아시 씨와 맞서는 입장이 되어 버려서 자신에
게 어울리자 않는 위엄을 지닌 점에 놀랐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자기의 딱딱한 위엄을 보고 똑같이
노라고 있음을 그들의 표정에서 엿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서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침묵이 두 번째 춤을 추는 동안
사뭇 계속되지나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 한참은
자기 스스로 그것을 깨뜨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이윽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입을 떼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하는 편이 더 한층
상대방을 괴롭게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들자, 춤에
대한 의견을 가볍게 말해 보기로 했다. 그가
대답을 했으나 또다시 침묵 속에 빠지고 말았다. 몇
분이 지나자 다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엔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차례예요, 다아시
선생님. 제가 춤에 대한 얘길 드렸으니까 선생님은
방 크기라든가 몇 쌍이 모였는가 하는 말씀을 하셔야죠"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에게 시키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든 도맡아 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했다.
"좋아요. 우선 그렇게 대답하시면 돼요. 멀지 않아서
사적 무도회가 공적인 경우보다 훨씬 즐거울
것이라고 말씀드리게 될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잠자코 있는 편이 나을 거예요."
"그러시다면, 원칙적으로 춤출 때만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때론 그렇게 하죠. 약간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예요.
반 시간 동안 전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대서야
우습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뭔가 얘기해야 하는
수고를 덜어 주는 편이 괜찮을 때도 있겠지요."
"지금 현재로 자기 자신의 감정을 생각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저의 감정을 만족시켜 주시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쪽 다죠"
엘리자베드는 익살스럽게 대답했다.
"선생님하고 저하고는 퍽 닮은 데가 많은 것을 봐
왔어요. 둘 다 비사교적이고 말수가 적은 편으로
방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격언을 써서
후세의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는
가망이라도 있기 전에는 입을 뗄 생각은 안하거든요."
"그 점은 확실히 당신 자신의 성격하고는 닮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요. 그리고 저의 성격과 얼마나
가까운가 그것조차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것을 충실한
초상화처럼 생각하시겠지만"
"자기 작품의 성공 여부는 자기가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는 대답을 안했다. 다시 두 사람은 침묵을 지키다가
춤을 추러 나갔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는
그녀와 자매들이 자주 메리튼으로 걸어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주 간다고 대답하고,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어 말을 이어나갔다.
"일전에 선생님이 저희들을 만나셨을 때, 저희들은
마침 새 친구를 사귀고 있던 참이었어요."
효과는 즉석에서 나타났다. 오만의 그림자가 금세
그의 얼굴 위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한마디
없었고, 엘리자베드도 자신의 약점을 나무라면서도 말을
계속해 나갈 수가 없었다. 이윽고 다아시가 거북스럽게 말했다.
"위컴 군은 명랑한 태도를 타고났으니까 친구 사귀는
일만은 보장하지요.... 그 같은 식으로 오랫동안 잘
지속될는지 그 점은 확실하지가 않습니다만"
"그분은 어쩌다 불운하게 선생님의 우정을 읽고 말았더군요."
엘리자베드는 힘주어 대답했다.
"더우기 평생을 두고 괴로와할 정도로 말예요."
다아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은연중 대화를
바꾸고 싶은 눈치였다. 바로 그 순간 윌리엄
쿠커스 경이 그들 옆을 지나 방 저쪽으로 갈 참으로,
그들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다아시를 보자
발걸음을 멈추고 자못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 그의
춤과 그의 파트너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이었다.
"저는 정말 유쾌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훌륭한 춤을
그리 자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일류 사교계에 속하시는 분이란 걸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선생님의 아름다운
파트너께선 선생님을 조금도 불명예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음은 자주 베푸시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엘리자 양,(제인과 빙리 쪽을 힐끗
바라보면서) 어떤 희망적인 일이라도 생겼을
때는 더 좋겠어요. 경축의 말씀이 쇄도해 올 것이
아니겠읍니까? 다아시 선생께 잘 부탁을
해놓겠지만... 그러나 방해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젊으신 숙녀하고 나누시는 황홀한
대화를 지체시켜 드려서야 선생님은 물론 덜 좋아하실
테지만, 그 여성의 아름다운 눈도 저를
나무라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이 말의 끝부분을 다아시는 듣지 못했지만, 윌리엄
루커스 경이 빙리를 은연중에 지목한 사실이 크게
마음에 감동을 주게 되었던지 그의 시선은 진지한
표정으로 함께 춤추고 있던 빙리와 제인에게
향했다. 그러나 그는 곧 정신차려 자기의 파트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윌리엄 경이 방해가 돼버려서, 그만 우리가 하던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말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윌리엄 경께서도 이
안에서 할 말이 제일 적은 우리들을 방해하시려 해도
못했을 거예요. 두세 차례 화제를 끌어내 봤지만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뭣이 있었어야죠. 이젠
다음에 어떤 화제를 끌어내야 좋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게 됐군요."
"책으로 돌려보면 어떨까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책이라니.... 그건 안돼요. 우리들 사이는 같은
책을 읽지 않았든가 같은 기분으로 읽지 않았든가
둘 중의 하나일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다니 유감입니다만, 상태가
그러하다면 조금도 대화의 부족은 없는 셈이죠. 제각기
상반된 의견을 비교할 수가 있게 되니까 말입니다."
"천만에요.... 무도회장에서 무슨 책 이야기를 해요.
저의 머릿속은 딴 일로 가득 차 있거든요."
"이런 곳에서는 눈앞의 일만이 마음에 가득 차
계시겠죠.... 안그러세요?"
그는 의아스런 어조로 말했다.
"전 언제나 그래요."
그녀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대답했다. 그녀의 생각은 대화에서 멀리 떨어져
헤매고 있었는데, 그 사실은 곧 이어 그녀가 돌연 이런
발언을 한 것으로 미루어서 알 수가 있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거든요, 다아시 선생님. 선생님 말씀이,
선생님은 사람을 용서 못하는 성질인데다 한 번
화나게 되면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가 않는다고
했죠. 아마 선생님은 화내지 않으려고 매우 애를 쓰고
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는 짐짓 정확한 어조로 말했다.
"편견 때문에 맹목적이 안되게 하시려는 거겠죠"
"그렇게 안됐으면 합니다."
"절대로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으려 드는 분에게는
첫째로 적당한 판단을 굳혀 놓는 것이 의무적일는지도 모르죠"
"실례 같습니다만, 무슨 생각에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요?"
"그저, 선생님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녀가 되도록 엄숙함을 떨쳐 내려 하면서 말했다.
"전 꼭 그것이 알고 싶어서요."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전혀 성공을 못했어요. 하나같이 다른 의견을 듣게
돼서 점점 모르게 돼버렸어요."
"아마 그러시겠죠"
그는 자못 엄숙한 투로 말했다.
"저에 관해선 의견들이 분분한가 봅니다, 베네트 양.
지금 당장 저의 성격을 묘사하지 않으시기를 빕니다.
만들어 낸 결과가 귀양에게나 저에게도 하등 명예로운
것이 되지 못할 우려가 있기 언니 때문입니다."
"지금 선생님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게 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말예요."
"귀양의 즐거움을 중단시키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습니다."
그는 냉랭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춤을 추고
나서는 그대로 헤어지고 말았다. 쌍방이 다
불만스러웠지만 상호간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왜냐하면 다아시의 가슴에는 그녀에 대한 적잖은 강한
감정이 있었으며, 그녀에 대해서는 곧 용서할 수가
있었으나 또 한 사람에게 그의 모든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헤어진 지 얼마 안되어서 미스 빙리가
그녀에게로 와서 새침하게 경멸의 빛을 보이며
이렇게 말을 건네 왔다.
"저 미스 엘리자, 내가 듣기로는 조지 위컴을 매우
좋아하신다면서요? 언니께서 그분에 관한 일을
말하면서 여러 모로 질문을 하시던데요. 그래서 알게
됐지만, 그 청년은 자기 신상 얘기 중에서
자신이 선대 다아시 씨의 집사를 지낸 위컴 씨의
아들이란 사실을 잊고 만 것이겠죠. 그러나
친지로서 말씀드리지만, 그분의 말을 사실 그대로
믿지 말아 주세요. 왜냐하면 다아시 씨가 그분을
곯려 줬다는 건 멀쩡한 거짓말이고, 반대로 조지 위컴
쪽에서 다아시 씨를 못살게 굴었는데도 다아시
씨는 그에게 늘 친절하게 대해 준 거예요. 전 상세한
일은 모르지만, 다아시 씨가 조금도 나쁜
사람이 아니고, 그분은 조지 위컴이란 이름조차
듣기가 역겹고, 저의 오빠께서 장교들을 초대하는 데
그를 제외하는 건 좋지 않게 생각했지만, 자기 스스로
사퇴했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매우
기뻐하셨다는 일은 잘 알고 있어요. 그분이 이
지방으로 온 것 자체가 뻔뻔스런 일이에요. 어떻게
그런 일을 감히 할 수가 있겠어요. 매우 죄송해요,
미스 엘리자, 마음에 드시는 분의 좌상이 이렇게
명백해지다니 말이에요. 그러나 그분의 본바탕을
생각할 때 훌륭한 일만을 바랄 수야 없지요."
"설명을 듣고 보니까 그분의 좌상과 바탕을
동일시하시는 말씀이시네요."
엘리자베드는 화를 내며 말했다.
"그분이 다만 다아시 가문의 집사였었다는 그
사실만으로 책망하고 계시는 모양이지만, 그 일에
대해선 그분 입에서 직접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렇다면 미안해요."
미스 빙리가 조소의 빛을 띠면서 대답했다.
"방해가 되어서 미안해요. 어디까지나 호의에서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뻔뻔스런 여자로구먼!"
엘리자베드는 혼잣말로 지껄였다.
"이런 비열한 공격으로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야. 그건 네가 모르는
체하고 있는 것과 다아시 씨의 악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밖엔 보지 않아"
그녀는 언니를 찾았다. 마침 언니는 바로 그 문제에
관해 빙리에게 묻고 있던 참이었다. 제인은
즐거운 듯한 미소를 띠면서 자못 행복한 듯한 표정으로
동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언니의 표정으로 보아
그녀가 그날 밤 일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를
충분히 알아볼 수가 있었다.
앨리자베드는 언니의 마음을 금방 알아냈다. 그와
동시에 위컴에 대한 염려와 그의 적들에 대한
분함. 그 밖의 여러 일들이 언니의 행복을 위해 매우
순조롭게 되어 가기를 바라는 희망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엘리자베드는 언니 못지 않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언니, 위컴 씨에 대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말해
줘요. 그러나 아마도 언닌 재미를 너무 보느라
제3자 같은 건 미처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재미보신
게로군요. 그렇다면 내가 용서해 주겠지마는"
"너도 참, 내가 왜 그분을 잊었겠니, 그러나 시원한
얘길 해줄 것이 없구나. 빙리 씨는 그분의
이력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를 못하고, 특히 다아시
씨를 노엽게 만든 사정은 전혀 알고 있지
못하던데. 그렇지만 친구분의 올바른 행동이라든가,
청렴결백하며 명예를 중히 여기는 점에서는
보증을 설 수 있다고까지 말씀하셨어. 그리고 위컴
씨는 다아시 씨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음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빙리 선생이나 구분의 누이동생
말로 볼 때 위컴 씨도 결코 우러러볼 만한 청년은
못돼. 뭔가 경망스런 짓이라도 저지르게 돼서
다아시 씨의 호의를 못 받게 된 것도 당연한 거야."
제인이 대답했다.
"빙리 씨는 위컴 씨를 직접 모르지 않아요?"
"응 그래, 요 전날 아침 메리튼에서 만난 게
처음이니까 말야."
"그럼 이 얘기는 다아시 씨한테서 들으신 거죠.
그만하면 잘 알았어요. 그런데 성직록에 대해선
뭐라고 그래요?"
"다아시 씨로부터 여러 차례 듣기는 했지만, 상황을
잘 기억 못하겠다고 해. 어쨌든 조건부로 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엘리자베드는 열심히 말했다.
"빙리 씨의 성의를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보증한다고 해서 그걸 곧이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죠. 빙리 씨가 친구를 변호하고 나서는 것은 참
잘한 일이죠. 그러나 그분은 이 일에 대해선
모르는 점도 많고 그나마 나머지를 그 친구한테서
들은 것이니까 암만해도 두 분에 대해서는
그전같이 생각해야 되겠어요."
그녀는 그리고 나서 서로가 더욱 즐거울 수 있고
감정상의 차이가 없는 화제를 끌어내었다. 제인이
빙리의 호감에 대해 품고 있는 겸손하면서도 즐거운
희망을 엘리자베드는 귀담아들었으며, 자기도
언니의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 힘닿는 범위
내에서 모든 것을 말했다.
바로 그때 장본인 빙리가 모임에 들어왔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루커스 양 쪽으로 피해 갔다.
아까까지의 파트너와의 춤을 즐거웠느냐고 묻는
루커스 양에게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콜린즈 씨가
두 사람한테 접근해 와서는 자기는 지금 운좋게도 매우
중대한 발견을 했다고 뛸 듯이 기뻐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전 정말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겁니다만 바로 이 방
안에 저의 후원자의 가까운 친척 한 분이 계신
겁니다. 그 신사분께서 직접 이 댁의 주부 역할을 하고
계시는 젊은 부인에게 자기 누이동생 드 버그
양과 그녀의 모친 되시는 캐더린 부인의 성함을
말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된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누군들 상상조차 했겠읍니까!
아마도 이 모임 속에서 제가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의
조카 되시는 분하고 만날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분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말씀을 드릴 기회를 놓치기
전에 바로 발견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경의를 표할 참입니다마는
좀더 빨리 하지 않았던 것을 용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인척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씀으로
사과가 될 줄 압니다."
"다아시 선생한테 인사하시려는 게 아닙니까!"
"정말 해야죠. 좀더 일찍 인사드리지 못한 점을 사과
드려야겠습니다. 그분이 바로 캐더린 부인의
조카가 되시는 분이실 테니까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부인께서 퍽 건강하셨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은 저로서는 문제없죠"
엘리자베드는 이러한 콜린즈의 계획을 단념시키느라
여간 애쓰지 않았다. 다아시 씨는 소개도 없이
자기 소개를 하는 것은 자기 숙모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무례한 짓이라고 생각할 것과
피차에 아는 체 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설령
있다하더라도 인사를 청하게 되는 편은 지체가 높은
다아시 씨가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콜린즈 씨는
자기의 생각대로 따라야 한다는 확고한 태도로 듣고
있다가 그녀가 말을 마치고 나자 이렇게 대답했다.
"엘리자베드 양, 나는 당신의 이해가 가능한 데까지는
어떤 일이든 당신의 뛰어난 판단력을 이
세상에서 제일로 알고 있습니다만, 세속적으로
제정되어 있는 예식과 성직을 규정짓고 있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말씀 드려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직을 위엄이란 점에서
우리 왕국의 최고의 위계와도 비견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동시에 그것에 어울릴
만큼 겸허한 행동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겠죠만.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내 양심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의무라고 믿는 바를 행동에 옮길 수가 있게
되는 거죠. 당신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됨을
용서해 주십시오. 딴 일 같으면 당신의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만, 당장으로선 당신과 같은
젊은 여성보다는 교육과 평소의 연구에 의해
내 쪽이, 뭣이 옳은가를 결정짓는 데는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훨씬 몸을 굽혀 절하고 그는 다아시 씨와
맞설 심산으로 그녀 쪽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가갔을 때 상대방인 다아시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말을 건네자 그가
놀라는 것을 역력히 볼 수가 있었다.
그녀의 친척은 장중한 태도로 절을 하고 나서 말을
꺼냈는데, 그녀에게 들리진 않았지만 들리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의 입술 움직임에서는 '사과'니
'헌스퍼드'니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이니 하는 말
들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그가 자신을
내맡기다시피 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상했다.
다아시 씨는 자못 의아스런 태도로 그를 보았다.
이윽고 그는 콜린즈 씨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자,
서먹서먹함을 지니 채 대답을 했다. 그러나 콜린즈 씨는
실망의 빛은 조금도 없이 다시 말을 계속해
나갔고, 그의 두 번째 이야기가 길어지자 다아시 씨의
경멸의 도는 점점 더해 가는 듯이 보였다.
그는 이야기가 끝나자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을 뿐
곧 딴 곳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나서 콜린즈 씨는 엘리자베드한테로
되돌아왔다.
"사실 인사하는 걸 불만스러워 할 이유는 없거든요.
다아시 씨께선 내가 경의를 표하게 된 점을 무척
좋아하고 계신 것 같았어요. 아주 정중하게 대답을
해주시던데요. 그리고 캐더린 부인께선 사람을
식별하는 안목을 가지고 계시다는 걸 알고 있으며
값어치가 없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고까지 말씀해 주셨어요. 썩 훌륭한
생각이었어요. 결국 나는 그분이 퍽 좋아지게 된 셈이죠"
엘리자베드는 더 이상 자기 마음을 끌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언니와 빙리 씨에게로 마음이
쏠려 갔다. 그러자 그 관찰에서 생겨난 일련의 즐거운
생각들이 그녀에게 제인에 못지 않은 행복을
안겨다 주었다.
진정한 애정이 깃들인 결혼만이 부여할 수 있는 온갖
행복으로 가득 차서 바로 이 집에서 살게 될
제인을 마음 속에서 그려보았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빙리의 두 누이들까지도 좋아질 수 있게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 느꼈다.
어머니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확실했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을 많이 듣지
않게끔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저녁상에 앉게 되었을 때 서로의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가고 있다는 것은 미상불
심술궂은 운명의 장난이라 생각했고, 어머니가 바로 그
사람(루커스 부인)에게 거침없고 공공연히
제인이 곧 빙리 씨와 결혼할 가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몹시 화가 났다.
워낙 마음을 들뜨게 하는 화제라 베네트 부인은 그
결혼의 좋은 점만을 나열해 가면서 지칠 줄
모르게 얘기했다.
상대가 그토록 매력 있는 청년이고, 재산도 있고,
거리도 3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은 자기 만족의 초점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두
누이들이 제인을 매우 좋아하고 있거니와,
그녀들이 짐짓 자기에 못지 않게 이 연분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더우기 제인이 이렇게 멋진 결혼을 하게 될 경우 제인의
동생들도 또다른 부자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니만큼 그들에게도 대단히 운이 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자기 생전에 출가 전의
딸들을 그들의 언니에게 맡길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렇게 되면 마음에 내키지 않는 무리들 틈엔 끼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하긴 그러한 환경이 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이므로 베네트 부인으로서는
그러한 환경을 재미로 말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연령 때나 베네트 부인만큼 집에
있는 것을 즐거운 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루커스 부인에게도 똑같은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고
못내 소원을 되풀이해서 말했지만, 좀처럼 그런
기회는 없을 것으로 명백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어머니가 하는 말의 골자가 그들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다아시의 귀에까지 들리는 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까와서 어머니의 빠른 말을
중단하려 했고 행복감을 좀더 작은 소리로 말하도록
설득해 보려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
쪽에서는 오히려 쓸데없는 짓이라고 꾸중만 하게 되었다.
"다아시 씨가 뭐길래 내가 겁을 내야 하니? 그분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해서는 안될 만큼 우리가
그분에게 예절을 지킬 의무는 없는 거다."
"제발 어머니, 좀더 낮은 소리로 말씀하세요, 다아시
씨를 화나게 해서 우리가 무슨 덕을 보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시단 그분 친구분께도 좋은
인상을 못 주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효과는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알아듣기 쉬운 말로 자기
생각을 털어놓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몇
차례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그녀는 자주
다아시 씨 쪽을 훔쳐보지 않을 수 없었지만 볼 때마다
그녀가 두려워하고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그는 줄곧 어머니 쪽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주의는 끊임없이 어머니에게로
향해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 표정은
분노와 경멸에서 점차 침착하고 차분한 상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베네트 부인은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어지고 자신의 몫이 돌아올 것 같지도 않은
기쁨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동안 하품을 해 가며 듣고만
있던 루커스 부인은 그제서야 겨우 찬 햄과
닭고기를 맛을 보고 칭찬할 수가 있었다.
마침내 엘리자베드는 되살아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안한 시간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를
못했다. 저녁 식사 후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 메어리가
별로 청하는 입장이 아닌데도 노래를 불러
모두를 즐겁게 해주려는 것을 보았을 때 몹시 마음이
쓰렸다. 엘리자베드는 몇 차례 눈으로 마음을
전할 양으로 무언의 간청을 해 가며 메어리가 그러한
자기만족에 빠져들지 않게끔 막아 보려 애썼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메어리는 그런 뜻을 이해하려 들지를 않았다.
이렇게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세라 들뜬
기분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드의 양쪽
눈은 고통의 감정을 담은 채 메어리에게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메어리가 노래 몇 절을 불러 나가는 것을
그녀는 초조한 마음으로 뒤쫓고 있었는데, 그 초조한
심정은 노래가 그ㅌ난 뒤도 별로 마음이 편하지가
못했다. 왜냐하면 메어리는 테이블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의 감사의 말 속에서 다시 한 번 불러
주었으면 하는 빛을 보자 30초 간격을 두고 다시 한 곡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메어리의 힘은
이러한 연출에는 결코 어울리는 편이 못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해 빠지고 태도는 꾸미는 데가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바야흐로 고통의 상태였다.
제인이 어떻게 그러한 것을 견디어 내고 있는가를 보려고
그쪽을 보았더니 제인은 자못 침착한 태도로
빙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빙리의 두 자매 쪽을
바라보았더니 서로가 멸시하는 눈짓을 하고 있었다.
다아시 쪽을 보았더니 그는 계속해서 둔감할이만큼
묵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메어리가 밤새
노래를 계속하지 않도록 어떻게 해 달라는 눈초리를
아버지에게 보냈다. 아버지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메어리가 두 번째 노래를 끝내자 큰 소리로 외쳤다.
"그만하면 됐다, 메어리. 우리들을 아주 즐겁게
해주었다. 딴 여성들에게도 발표할 기회를 주자"
메어리는 애써 못 들은 체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리벙벙한 태도였다. 엘리자베드는 어쩐지
메어리에게 미안스러웠고 그런 말을 아버지에게 시키게
된 것을 또한 미안스럽게 여겼지만, 자신의
그런 걱정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편의 사람들이 노래를
불러 달라고 청해 왔기 때문이다.
"제가 만일"
콜린즈 씨가 허두를 떼며 말했다.
"다행히 노래를 부를 수가 있어서 여러분을 즐겁게
해드렸으면 오죽 좋겠읍니까마는 저는 원래
음악을 순수한 오락이라고 보며 목사직하고는 절대로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에다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을 옳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딴 일에도 마음을 쏟아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교구 목사에게는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첫째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며 동시에 후원자들에게도
불리하지 않게끔 교구세협약을 체결하는 겁니다.
자기 설교 문장을 쓸 필요도 있겠고, 남은 시간은
교구의 여러 가지 의무에 써야 하는데 결코 많지가
못하고, 그리고 또 목사관을 돌보고 수리해서 될 수
있는 한 쾌적한 곳을 만들어 놓는 데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저는 어떤
사람에게도, 특히 저를 추천해 주신
분들에게는 소중히 대해 드려야 하는 동시에 마음에
들도록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목사는 그런 의무에서 면책 될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나아가서 그러한 가족과 관계 있는 분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는 기회를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는
호의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는 다아시 씨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는데 그에
말소리는 크게 들릴 만큼 컸다. (좌중의 많은
사람들이 한편 놀라고) 한편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베네트 씨만큼 재미있어 하는 사람은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얼마나 자상스러운 말을
했느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으며, 반
속삭이듯 한 어조로 루커스 부인에게 얼마나 머리가
좋고 선량한 청년이냐고 말했다.
엘리자베드 생각에는 설사 자기 가족들이 오늘 저녁에
힘닿는 한 자신들을 폭로해 버리기로 약속을
했다하더라도 이토록 원기 있고 효과 만점으로
서로서로가 역할을 연출해 낼 줄은 미처 몰랐다.
이러한 우행을 빙리가 보지 못하고 놓치게 되고,
더우기 그의 기분이 그가 목격한 일로 해서 그다지
괴로와하지 않는 사실은 그에게나 제인에게서는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두 자매와 다아시 씨가 그녀의 육친들을
우롱하게 되는 이러한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일이었다. 더우기 다아시의
무언의 경멸과 빙리 자매들의 무례한 미소,
그 어느 것이 더 감내 하기 힘든가를 결정짓기란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날 밤은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줄곧
그녀 곁을 따라다니며 치근대는 콜린즈 씨
때문에 화가 났다. 그는 다시 한 번 춤 상대가 되어
달라는 설득에 실패했지만 그녀로 하여금 딴
사람과 상대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녀 쪽에서
그에게 딴 사람하고 춤추도록 간청하고 방안에 있는
어떤 여성이라도 그에게 소개해 주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의 끈덕진 주장은 자기는 춤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자기의 목적은 마음을 다해서
그녀와 사귀고 싶고 잘 보였으면 하는 일념뿐이므로
밤새 그녀 옆에 있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계획에 대해서는 맞서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인 루커스 양의 크나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종종 두 사람에게로 와서
상냥스럽게 콜린즈 씨의 이야기 상대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적어도 다아시 씨로부터 그 이상 주목받는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는 이따금 전혀
상대가 없이 그녀 옆에 서 있기는 했지만, 말을 건넬
수 있을 만큼 접근해 오지는 못했다. 그녀는
그것이 아마 위컴 씨에 대한 언급이 가져다 준 결과려니
생각하니 무척이나 기뻤다.
롱본 일가는 자리를 뜨는 데 제일 늦었고, 베네트
부인의 계략으로 일행이 다 가 버리고 난 후 15분간
마차를 기다려야 했지만, 그간에 그들은 이 집안 몇
사람들이 자기들의 출발을 지겹게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허어스트 부인과 동생은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는 말을 제외하곤 별로 입을 떼지
않았고, 곁에서 보기에도 그들은 자기네끼리만 있고
싶어하는 것이 너무나도 드러났다.
그들은 베네트 부인이 말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을
거절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일동의 기분을 더욱
울적하게 만들어 놓고 말았다. 콜린즈 씨가 빙리 씨와
그의 자매에 대해 그들의 접대가 너무나 우아하며
그리고 손님들에 대한 그들의 행동 속에 나타난 따뜻한
마음과 예의범절이 올바른 점 등을 칭찬해 가며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그들의 기분을 녹여 줄
수는 없었다. 다아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베네트 씨는 똑같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그 정경을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빙리 씨와 제인은
딴 사람들한테서 다소 거리를 두고서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허어스트 부인이나
빙리 양에 못지 않게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리디어까지도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에 이따금 '아,
정말 피곤해!' 하고 외치곤 크게 하품을 하는 것 외는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마침내 일행이 작별을 하려고 일어섰을 때 베네트
부인은 집요할이만큼 정정하게 가까운 장래에
롱본에서 여러분과 다시 뵙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특히 빙리 씨에게 인사를 하면서 정식 초대 같은
격식은 생략해 버리고 어느 때나 부담 없는 식사에 응해
주신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빙리는 기꺼이 감사하고 내일 런던에 가서 잠시 머물게
되지만, 돌아오게 되면 기회 봐서 꼭
방문하겠다고 쾌히 약속했다.
베네트 부인은 매우 흡족해 하고, 결혼을 위한
재산분여라든가 새 마차며 결혼 의상 등의 준비에
필요한 기간을 감안하더라도 3, 4개월이 지나면 딸이
틀림없이 네더필드에 자리잡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품어 가면서 그 집을 물러났다. 또 딸
하나를 콜린즈 씨에게 출가시키는 것을 같은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생각하고, 똑같은 기쁨은
못된다 하더라도 상당히 기뻐했다. 엘리자베드는 자기
애들 중에서 제일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방 남자나 연분으로 보아서 그녀에게는
다시없이 좋은 편이었으나 그 값어치로 따지자면 빙리
씨나 네더필드에 비할 때 희미한 점이 없지 않았다.
19
다음날 롱본에는 새로운 장면이 전개되었다. 콜린즈
씨가 정식으로 신청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휴가는 다음 토요일까지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시도 지체 않고 신청하리라 결심하고, 당장 그
일이 자기에게 어떤 슬픈 결과를 가지고 오리라고
머뭇거리는 감정이 조금도 없었기에 자못 정정당당한
태도로 이 일에 대해서 정식 규정으로 보여지는 관습에
따라 착수했던 것이다. 아침 식사 후 즉시
베네트 부인과 엘리자베드와 손아래 동생 한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나서 그는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서두를 떼었다.
"오늘 아침 나절까지 아름다운 따님 엘리자베드 양과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부인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진정으로 부탁드립니다."
엘리자베드가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 모를 때
베네트 부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 좋구말구요. 아마 리지도 무척 좋아할
거예요. 그 애도 별로 이의가 없을 줄로 알아요. 키티야,
어서 2층으로 가도록 하여라."
그리고 나서 뜨개질감을 모아서 급히 자리를 뜨려고
했을 때 엘리자베드가 불러 세웠다.
"어머니, 가지 마세요. 가지 말아 주세요. 콜린즈
씨도 용서해 주실 거예요. 딴 사람이 들어서
곤란한 얘기는 저에게 하실 리 만무죠. 차라리 제가
나가도록 하지요."
"안될 말이다, 리지야. 넌 그 자리에 앉아 있도록 하여라."
그리고 엘리자베드가 당황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거의
도망칠 듯한 상태에 있는 것을 보고 나서 덧붙여 말했다.
"리지야, 난 네가 꼭 이 자리에 남아 있다가 콜린즈
씨의 말을 들어보았으면 좋겠구나"
엘리자베드도 그렇게 명령을 받고 나니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 본 결과 되도록
빨리 되도록 조용한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너무도 뻔한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아 계속 뜨개질에 바쁜 손을 움직이면서
곤혹스러운지 우스운지를 분간 못할 감정을 애써
감추려 했다. 베네트 부인과 키티가 걸어나가 두 사람이
사라져 버리자 콜린즈 씬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엘리자베드 양, 당신의 겸허한 점은
당신에게 해를 끼치기는 커녕 오히려 당신의 딴
아름다운 점을 더해 가기만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믿어 주십시오. 만약 이와 같이 약간
수줍어하는 데가 없었던들 내 눈에는 그와 같이
귀엽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존경해
마지않는 당신 어머니의 허가를 얻어서 이렇게
신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두는 바입니다.
당신의 타고난 고상함으로 해서 제아무리 모르는
체하시더라도 나의 취지를 의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의 은근한 의도는 너무나도 명백한
것이기 때문에 오해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귀댁에 들어서자마자 난 당신을 내 장래의 배우자로
삼기로 결정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나 자신의 감정에 휘쓸려 가기 전에 나의
결혼의 이유(더우기 배우자를 선택할 목적으로
허어퍼드셔에 오게 된 것이지만)를 설명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엄숙할이만큼 침착한 감정에 휩쓸려 간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엘리자베드는 웃음을 터뜨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가 잠깐 쉬는 사이에 그의 이야기를
멈추게 할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더니
그는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내가 결혼하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로 안락한
생활환경(나의 경우처럼)에 처해 있는 목사는 누구든
자기의 구역에서 결혼생활을 보여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결혼함으로써 내
행복이 더하기 때문이지요. 세째로, 이건 좀더
일찌기 말해 두었어야 할 일이지만, 내가 감히
후원자라고 부르고 있는 고귀한 부인의 각별하신
충고와 권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두 번씩이나 부인께선 황송하게도 자신의
의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청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내가 헌스퍼드를 떠나기 전날 밤 토요일
밤인 줄 알고 있습니다만(쿼드릴 게임의
계산을 하고 있는 사이에 젠킨슨 부인이 드 버그 양의
족대를 정리하고 있었을 무렵)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콜린즈 씨는 결혼을 해야 합니다.
당신 같은 목사는 결혼을 꼭 해야 합니다-적당한
인물을 선택하도록 하시오. 날 위해서는
점잖은 부인을, 그리고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일
잘하고 소용되는 여성으로 교육 정도는 높지 않더라도
얼마 안되는 수입을 잘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을
선택하도록 하겠소.' 그런데 더 말씀드려 두지만,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의 관심과 친절은 내 힘으로
제공할 수 있는 이점 가운데서 작은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부인의 훌륭한 예절은 나로서는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을 아시게 되겠죠. 한데
당신의 기지와 쾌활함은 내가 아는 바로는 부인의
기분에 썩 들게 될 것입니다. 특히 부인과 같은 지체
높으신 분 앞에서는 어절 수 없이 말수가
줄어들고 경의를 표하는 중용을 취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내가 결혼할 생각을 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이 정도로 해두었으면 합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왜 내가 근처에 젊은
여성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목적을 롱본으로
향하게 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기인하는 겁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이 아버지께서 별세하실 경우(하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사시게 되겠지만) 이곳의 토지를 계승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 따님들 중에서 아내를
선택하지 않으며 직성이 풀릴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경우-하기야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요 몇 해 동안은 그런 일이
없겠지만-따님들에게는 손실이 가능한 한 적게
될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나의 동기이고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당신 눈에 비친 내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은근히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은 일은
가장 힘있는 말로 나의 결렬한 애정을 표하는
일뿐입니다. 재산 같은 건 난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그리고 아버님께 그러한 요구도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러한 요구에 응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도 그리고 당시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라야 차지하게 될 4퍼센트 공채의 1천 파운드만이
당신의 권리에 속할 것이라는 사실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난 늘 침묵을 지키겠습니다. 우리가
결혼하고 나서는 결코 비열한 비난 같은 것은 입에
담지 않을 테니 안심하셔도 괜찮겠습니다."
바야흐로 그의 말을 가로막는 일이 절실할 때가 되었다.
"선생님은 너무 성급하세요."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답을 안하고 있는 사실을 잊으셨군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시려면 저에게 대답을
하게 해주세요. 저를 칭찬해 주신 말씀은 감사합니다.
선생님한테서 결혼신청을 받게 된 영광은 잘
알겠습니다만 우선은 거절할 수밖에 도리가 없어요."
"지금 알게 된 일은 아닙니다."
그는 자못 의젓하게 손을 내저어 가면서 대답했다.
"처음으로 남성에게서 구혼 받게 되면 속에서는 남몰래
응하고 싶지만, 일단 거절하는 것이 젊은
여성에게는 흔히 있는 일로서, 때로는 그 거절이 두
번씩이나 아니 세번까지도 되풀이 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까 당신이 말한 사실에 대해 나는
조금도 낙담 않겠으며, 언젠가는 당신을 제단으로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려 둡니다만"
엘리자베드는 힘주어 말했다.
"정확히 말씀드렸는데도 희망하시다니 매우
이상하시네요. 보증까지 해서 말씀드려 두지만, 저라는
여자는 자신의 행복을 두 번째의 신청에 걸어 버리는
대담한 여성(만일 그런 젊은 여성이 있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중의 한 사람은 못됩니다. 저는 지금
진심으로 거절하고 있는 것이에요. 선생님이
저를 행복하게 해주실 수 있다고는 정확히 모르겠고,
저는 또 선생님을 가장 행복하게 해드릴 수
없는 여자라고 믿고 있는 거예요. 그래요, 선생님의
후원자이신 캐더린 부인께서 만일 절 알고
계시다면 저라는 사람이 어느 면으로 보나 어울리지
못하는 점을 알고 계시리라 믿고 있어요."
"캐더린 영부인께서 설령 그런 생각을 하신다 하더라도"
콜린즈 씨는 자못 엄숙하게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캐더린 영부인께서 전혀 당신을 인정
않으시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영부인을 만날 영광을
갖게 된다면 당신의 겸손함과 경제적인 점, 나아가서
마음에 드는 자질을 입이 닳도록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정말 콜린즈 선생님, 절 칭찬해 주시는 일은 필요
없어요. 저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
내버려두시고, 제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믿어
주세요. 전 선생님께서 다시없이 행복하시고 부를
다하시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실패로 돌아가지 안토록 이렇게 신청을
거절하고 있는 거예요. 저에게 구혼하시는 일로 해서
저의 가족에 대한 좋은 감정을
만끽하셨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롱본의 토지가
선생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 언제고 자책을 갖지
마시고 소유하시도록 하십시요. 그러니까 이 문제는
결정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생각해도 좋겠어요."
그녀는 이 말과 함께 그 방에서 나가려 했을 때
콜린즈 씨는 이렇게 말을 건넸다.
"내가 다시 한 번 당신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광을 갖게 될 때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회답을 얻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당장 나는 당신을
결코 잔인하시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처음
신청 받게 되는 경우 거절하는 것이 여성의 정해진
습관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만 해도 당신은 여성의 참되고 섬세한 감정을
저버리지 않는 범위에서 나의 구혼을 격려해
주시는 말씀을 해주셨으니까요."
"어머나, 콜린즈 씨."
엘리자베드는 사뭇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절 어리둥절하게 만드세요.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이 선생님께 격려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저의 거절을 어떻게 표현해야 그 뜻이 그대로
통하게 될지 전 잘 모르겠어요."
"엘리자베드 양, 당신이 나의 신청을 거절하신 것은
물론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영광을 갖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믿는 이유는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습니다-내 청혼을 당신이 받기에 값어치가
없다고는 보지 않으며, 내가 제공해 낼 수 있는
가정생활이 매우 바람직하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내 지위라든가, 드 버그
집안과의 관계라든가 당신 집안과의
연관관계 등은 나에게는 매우 유리한 상황이지요.
더우기 당신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실 일이지만,
당신에게 숱한 매력이 있다 하더라도 다시 한 번
결혼신청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반드시 명백한
일만은 아닙니다. 당신의 재산 분배는 불행히도
너무나 적기 때문에 당신의 아름다움이나 귀염성
있는 당신의 자질 능력도 결국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난 당신이 진정 나를 거절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겠으며, 또 나는 이토록
우아한 여성이 정해진 수법에 의해서 나의 애정을
잠시 정체시킴으로써 더욱 강화시키려는 당신의 소망
탓이라고 그 거절의 이유를 삼고 싶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려 두지만, 훌륭하신 남자분을 괴롭힐
만큼 우아하다는 건 저한테는 맞지 않은
일이에요. 그것보담 제가 성실하다고 믿어 주시는 게
고맙겠어요. 구혼을 해주신 영광에 대해선
무한히 감사드리지만, 받아들인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저의 기분이 여러 점에서 허용치
않습니다. 좀더 쉽게 말해서 제가 선생님을 괴롭히려
드는 우아한 여성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이성적이 사람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당신은 한결같이 매력적입니다."
그는 어색할이만큼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믿고 있습니다만, 나의 신청이 당신의 훌륭하신
양친의 확실한 권위에 의해 승인되게 되면
그때 가선 안받아들일 수 없게 될 겁니다."
고집스런 자기기만을 이와 같이 강하게 내세우게 되자
엘리자베드는 그것에 응답해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아 그 길로 말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거절한 것을 그가 끝까지 기분 좋은
격려로밖에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그 일을 아버지에게
부탁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아버지의 거절은 결정적인 강력한 힘으로 선언될
것이고, 그 태도는 적어도 우아한 여성의 꾸밈이나
아양을 떠는 것 등과 동일시되는 걱정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콜린즈 씨만 남게 되자, 성취한 사랑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현관 언저리를 배회하면서 회담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베네트 부인이 엘리자베드가 문을 열고서
총총걸음으로 자기 앞을 통과해서 계단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자마자, 조찬실로 뛰어들면서 두 사람
사이가 더 한층 긴밀해지리라는 행복한 전망이 보인다며
콜린즈 씨나 자신에게도 축하해 마지않는
바라고 열띤 어조로 말했기 때문이다.
콜린즈 씨는 이러한 축하의 말을 똑같은 기쁨으로
받아넘기고 나서 회답의 내용을 소상하게 말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에 대해 만족해도 좋은 이유는
충분하다고 믿는다고 말하고 엘리자베드가 한사코 거절
한 것은 그녀의 수줍음이 깃들인 신중함과 자못 섬세한
신경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나온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통고에 놀란 사람은 베네트
부인이었다. 자기 딸이 그의 구혼을 거절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를 격려하려는 것이려니 하고 똑같이
납득이 되었으면 다시없는 기쁜 일이겠건만,
아무래도 그것을 믿을 만한 용기가 나지를 않아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괜찮아요, 리지를 타일러 보도록 할 테니까요."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내가 직접 얘기하도록 하지요. 그 애는 원래 고집이
센데다가 바보스러운 데가 있고요, 자기에게 이롭다는
걸 모르지만, 내가 꼭 알게 해주고 말겠어요."
"말씀 중에 죄송스럽습니다만, 부인"
콜린즈 씨가 말했다.
"따님께서 진정으로 고집이 세시고 바보스럽다면
결혼 생활의 행복을 당연히 희구하고 있는 저와 같은
지위 신분의 남성에게는 바람직한 처가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니까 따님께서 실제로
완강하게 저의 구혼을 거부하신다면 무리해서까지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게 덜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결점에 쉽사리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면 저의
행복에 하등 공헌할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베네트 부인은 허둥대며 말했다.
"리지란 애는 이런 문제에만 고집통인 거예요. 딴
일에 대해서는 그만큼 상냥할 수가 없어요. 곧장
주인한테 가서 곧 결말을 짓도록 해보겠어요."
그에게 답할 여유도 주지 않으려는 듯이 그 길로
남편에게 가서 서재에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여보 당신이 꼭 필요해요. 큰 낭패가 생겼어요.
자아, 어서 가셔서 리지에게 말씀해서 콜린즈 씨와
결혼하도록 하세요. 그 애가 시집 안가겠다고 말을 한
거예요. 급히 안 가시면 콜린즈 씨의 마음이
변해서 그앨 안 데리고 가게 되는 거예요."
"헌데 이런 경우 난 어떻게 하면 좋소? 아무래도
희망이 없어 뵈는 일 같은데"
"당신이 몸소 리지에게 말씀해 보세요. 그리고 당신은
리지를 꼭 그 사람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씀하세요."
"그앨 이리 오게 하시오. 내 의견을 들려 줄 테니까."
베네트 부인이 초인종을 울려서 엘리자베드를 서재로
오게 했다.
"어서 이리 온"
그는 딸이 나타나자 말을 건넸다.
"중요한 일로 너를 오라고 했다. 콜린즈 군이 너에게
구혼을 했다는데 사실이냐?"
엘리자베드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좋아, 그래 네 쪽에서 그 구혼을 거절했겠다?"
"그래요."
"자아 우린 요점에 도달한 거다. 네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지 승낙을 받겠다는 거다. 안 그렇소, 여보?"
"그렇구말구요, 내 말을 어겼다간 두 번 다시는
리지를 안 보렵니다."
"불행한 선택이 네 앞에 있다, 엘리자베드야. 넌 오늘
이날부터 너의 양친 중의 한 사람과 인연을
끊어야 할 판이다. 네가 콜린즈 군과 결혼 안하게
되면 너의 엄마가 널 두 번 다시는 안 보게 될
것이고, 네가 또 그 사람하고 결혼하게 된다면 내가
이번엔 널 안 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엘리자베드는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가 그런 결말로
끝나게 된 것을 미소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베네트 부인은 남편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실망하고 말았다.
"여보, 어떡하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 사람하고
결혼시키겠다는 말씀을 하시기로 약속하였잖아요."
"당신 내가 두 가지쯤 부탁을 하고 싶소. 첫째로 현재
처하고 있는 내 사려 분별을 자유로이 해달라는
것과 둘째 내 방도 역시 자유롭게 해주었으면 하오.
되도록 빨리 서재에서 나 혼자 있게 해주었으면
매우 고맙겠소."
그녀의 남편이 대답했다.
그러나 베네트 부인은 남편에게는 실망했으나 아직 이
문제를 단념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몇 번이고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건네고 한편 달래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위협해 보기도 했다. 마침내 그녀는
제인을 자기편으로 끌어넣어 보려 했으나 제인은
되도록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 채 개입하기를
거절했다. 그래서 엘리자베드는 때로는 본심을
토로하기도 하고 때로는 장난기 있는 쾌활함으로
어머니의 공격에 응했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변하기는 했지만, 결의는 좀처럼 변할 줄 몰랐다.
콜린즈 씨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에 대해 혼자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너무나 잘 보고
있던 터라 엘리자베드가 어떤 동기로 자기를 거절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존심은 상하게
되었지만, 그 밖의 일로 해서 그는 고통을 받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너무나도 상상적인
것이어서, 그녀가 어머니가 비난하는 대로의 여자려니
생각하니 그에게는 조금도 후회스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다.
집안이 온통 혼란해 있는 중에 샬로트 루커스가
하루를 그들과 지내기 위해 찾아왔다. 리디어가
현관에서 그녀를 영접하고 그녀에게로 뛰어가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정말 잘 오셨어요. 마침 집안이 야단법석이거든요! 오늘
아침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콜린즈 씨가
리지에게 결혼 신청을 했는데, 리지가 싫다지 뭐예요."
샬로트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키티가 같은
정보를 알려 줄 양으로 옆으로 다가섰다. 베네트
부인 혼자 있는 식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부인도 역시
같은 문제를 루커스 양에게 동정을 구하는 투로
말하고, 제발 친구 리지가 가족 모두의 희망에 따르도록
타일러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제발 부탁이에요, 루커스 양"
그녀는 짐짓 슬픈 투로 덧붙여 말했다.
"집안에서는 아무도 내 편을 들어서 말해 주는 사람이
없어요. 너무들 해요. 아무도 내 신경이
약하다는 걸 동정 안해 주지요."
제인과 엘리자베드가 들어왔기 때문에 샬로트는
대답하지 않아도 됐다.
"어머, 바로 그 애가 오는군"
베네트 부인이 계속했다.
"시치미를 떼고 자기 뜻대로만 된다면 우리들이야
산수갑산을 간들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태도거든(그렇지만
리지야, 내 말 좀 들어보아라. 만일 네가 이런 식으로 결혼
신청을 모조리 거절하고 말다가는 끝내 넌 남편을 얻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기라도 해보지, 누가 널
밥먹여 주겠냐 말이다.(그러니까 지금 말해
둔다만) 오늘로써 너하고는 인연을 끊고 말겠다.
서재에서도 너에게 말해 두었다, 너하고는 두 번 다시
말을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언젠가는 내
말을 알아들을 날이 오게 될 거다. 나로서도 부모에게
따르지 않는 아이하고 이야기하는 건 재미도
없거든 누구하고 얘기한다 해도 이렇다 할 재미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처럼 신경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말하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법이다.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가는 아무도 모를 거다!
그렇지만 언제나 이렇다. 불평을 늘어놓지 않으면
남의 동정은 사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녀의 딸들은 이치를 캐고 들거나 달래 보려 하면
할수록 도리어 어머니를 초조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구 쏟아져 나오는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누구한테도
방해를 받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는데 마침내
어느 때보다 의젓한 태도로 콜린즈 씨가 들어와서
그녀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를 보자 그녀는 딸들에게 말했다.
"자, 어서들 들어 두도록 하여라. 너희들은 모두가
입을 다물어라. 콜린즈 씨와 내가 잠깐 얘기할 테니까."
엘리자베드가 살짝 방 밖으로 나갔다. 제인과 키티가
뒤를 따랐지만 리디어는 되도록 들어볼 참으로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샬로트는 처음 한참 동안은 자기
자신과 지가 가족들에 대한 안부를 묻는
콜린즈 씨의 정중함에 끌려 남게 되었고 나중에는 다소
호기심에 끌리기도 해서 창가로 걸어 나가서
안 듣는 체하고 귀를 기울였다. 수심에 찬 목소리로
베네트 부인은 사전에 준비한 대화를 이런 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 콜린즈 씨!"
"예 부인"
그가 대답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영원히 침묵을 지키도록
하십시다. 저는 절대로"
그는 간격을 두고 불쾌함을 표시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따님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올시다. 피치 못할
재화를 단념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입니다. 저의
경우처럼 다행스럽게도 일찍이 승진한 청년의 특별한
의무입니다. 저 자신 단념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설령 아름다운 따님께서 승낙을 해주신다
하더라도 제가 과연 행복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아스럽게 된 점도 이 단념에 힘입은 바
있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제가 지금껏 자주
관찰해 왔지만, 거부당한 행복이 그것을 우리가
평가해 보는 가운데 어느 만큼 그 가치를 상실하기
시작할 때만큼 깨끗한 단념이 가능할 때가 없기
때문이죠. 부인이나 베네트 선생님께 저를 위해 두
분의 힘을 불어 넣어 주십사 부탁 말씀도 안해 본
채로 이렇게 따님에게 했던 저의 신청을
취소하더라도 부인에게나 가족 여러분에게 결례가
된다고는 생각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부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따님을 통해서 거절을 당한
것은 저의 행위의 못마땅한 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들은 모두가 오류를 범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저는 시종 이 문제에 대해서
선의를 지속해 왔습니다. 저의 목적은 귀댁의 가족
전체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한 위에서 저에게
다시없이 귀여운 배우자를 얻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행동거지에 혹시 비난하실 만한 데가
있으시다면 이 자리에서 미리 사과를 드립니다."
21
콜린즈 씨의 결혼 신청에 대한 논의는 이제는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일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불유쾌한 감정이 때때로
어머니의 암시 같은 것으로 해서 괴로움을 당할
뿐이었다. 장본인인 신사 자신의 감정은 차라리
당황함이나 실의 또는 그녀를 회피하려는 그런 식으로
표현되지를 않고, 엄격한 태도나 시무룩한 침묵 등으로 나타났다.
그녀에게는 거의 입을 열지 않고 자의식에 찬
주도면밀한 관심은 그날이 다할 때까지 루커스
양에게로 향하게 되었고, 그녀가 예절 바르게 그 말에
귀 기울여 준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는 때가
때인 만큼 다시없는 구원이었고 특히 그녀의 친구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다음날에도 베네트 부인의 심상과 병의 호소는 조금
덜하질 않았다. 콜린즈 씨도 똑같이 노기 품은
거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이 노여움으로 해서 그의 체재 기간이
짧아지기를 바랐으나, 그의 계획은 그 일로 해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원래 토요일에 떠날 예정으로 있었는데, 역시
토요일까지 체류할 생각이었다.
아침 식사 후 딸들은 메리튼까지 걸어가서 위컴 씨가
돌아왔는지를 물어 보고, 그가 네더필드
무도회에 오지 못한 것이 유감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그녀들이 시내로 들어섰을 때 마침
그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는 그녀들을 이모 집까지
바래다 주고 그곳에 그가 없어 유감스럽고
속상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모두가 무척 마음에
걸리더라는 이야기를 충분히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엘리자베드에게 고의로 하는 수 없이
부재했다고 스스로 털어놓았다.
"난 알아차렸지요.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서 다아시
군하고는 만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같은 방에서 그 사나이하고 몇 시간씩
같이 있는다는 건 정말 나로선 할 일이 못
되었고요. 나뿐만 아니라 뭔가 딴 사람들에게까지
불유쾌한 일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지요."
그녀는 그가 용케도 자신을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 그리고 위컴과 또 한 사람의
장교가 그들과 롱본까지 같이 걸어가기로 해서, 그는
사뭇 그녀에게만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취했던
인내에 관해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간 마음껏
칭찬할 여유를 가질 수가 있었다.
그의 동반은 그 중의 행운이었다. 그녀로서는 배웅을
받게 된 일로 그의 호의가 사무치게 느껴지는
반면 그를 아버지 어머니에게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돌아오자 곧 한 통의 편지가 제인 베네트 양
앞으로 배달되어 왔다. 발신지가 네더필드로 되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뜯게 되었다. 봉투 속에는 한
장의 우아하고 작은 가열 프레스 한 광택 있는 종이
위에 깨끗하게 써 나간 필적으로 뒤덮여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그것을 읽는 언니의 안색이 변하고 어떤
특정한 대목에 시선이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았다. 제인은 곧 제정신이 들면서 언제나 다름없이
쾌활하게 여러 사람의 대화에 끼여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그 일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위컴 씨한테도 주의를 돌릴 상황이었다.
그와 그의 동료가 떠나가자 곧 제인의 눈짓으로
뒤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제인이 그 편지를 끄집어내면서 말했다.
"이 편지는 캐롤라인 빙리한테서 온 거야. 씌어 있는
내용이 너무나 날 놀라게 한 거지. 지금쯤은
모두가 네더필드에서 런던으로 가는 도중일 거야.
더우기 두 번 다시는 돌아올 의사가 없는 것 같아.
그 사람이 한 말을 들려 줄께"
그녀는 그리고 나서 첫부분을 소리 높여 읽어 나갔는데
그 대목은 오빠 뒤를 따라 곧 런던으로 가기로
결정지었으며 오늘은 그로스브너에 있는 허어스트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는 그런 내용인
것이었다.
그 다음 부분은 이렇게 씌어 있었다.
친애하는 벗이여, 나는 당신과 사귄 일 이외는
허어퍼드셔에 아무것도 후회할 만한 일이 없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들이 맛보았던 그 즐거웠던
교제를 하염없이 되새겨 보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그날이 올 때까지는 서로 자주 마음을
털어놓는 편지로 이별의 괴로움을 경감시킬 수도
있을 것이에요. 당신은 꼭 그렇게 해주실 거예요.
이러한 글귀를 엘리자베드는 불신의 생각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은 채로 듣고 있었다. 그들이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사실에는 매우 놀랐으나 진심으로
슬퍼할 일은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네더필드를 떠난다 해서 빙리 씨가 반드시 그곳에 오지
않는다고는 보지 않았다.
설령 그들과 교제를 못하게 된다 해도 제인은 그와
교제하는 기쁨만 갖는다면 언젠가는 그런 일을
마음에 두지 않게 될 게 너무나도 뻔한 일이라고
엘리자베드는 믿었다.
"불운한 거야."
그녀는 잠시 간격을 두고서 말했다.
"친구가 그 고장을 하직하기 전에 못 만나게 되다니
말요. 그렇지만 빙리 양이 고대하고 있다는 장래
기쁨은 그녀가 알아차리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빨리
도달하게 될 것이고, 언니가 친구로서 경험한
즐거웠던 서로간의 교제가 이번에는 시누이 올케
관계라는 더 큰 기쁨이 됨으로써 새롭게 될 것이
아녜요? 빙리 씨는 구분들이 만류한다 해서 런던에
붙어 있을 분이 아닐 테니까 말예요."
"캐롤라인은 분명히 그 댁의 누구도 올 겨울에는
허어퍼드셔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읽어볼까...."
어제 오빠께서 떠나시면서 런던으로 올라가는
용무는 3, 4일이면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럴 턱이 없으리라는 것은 우리들은 잘 알고
있었구요, 게다가 오빠가 일단 런던으로 올라가게 되면
서둘러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동시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빠가 용무 없는 시간에
부자유스런 호텔 신세를 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들이 오빠의 뒤를 쫓기로 결정한 거예요. 우리의
친지들 중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겨울을 지내기
위해 그곳에 와 있어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당신이 그 중의 한 사람이 될 의향이 있으시다는
편지를 보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 일만은
단념해 버렸어요. 나는 충정에서 허어퍼드셔의
크리스마스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쁨으로 가득 차고
우리와 함께 떠나버린 세 사람이 없더라도 그 손실을
못 느낄 정도로 여러분의 말을 타는 무사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이걸 봐서 그분께서 올 겨울에는 안 오시게 된다는
것이 확실해진 거야."
"확실한 것은, 빙리 양이 그분께선 돌아오셔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일뿐이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해? 그건 어디까지나 그분이 알아서
하시는 일일 텐데. 자기 뜻대로 하는 거야.
그리고 넌 모든 걸 다 알지 못하고 있어. 특히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대목을 읽어 줄께. 너한테
감추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단다."
다아시 씨께선 누이가 무척 보고 싶었던 거예요.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들도 그분 못잖게 누님을
만나 보고 싶었지요. 미모라든가 그 우아함, 나아가선
재능이란 점에서 조지아나 다아시에 버금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분이 루이저
언니와 나의 마음에 깃들이게 하는 애정은,
그분이 멀잖아 우리들과 시누이 올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는 마음을 품게 만드는 희망 때문에 더욱
감동적인 것으로 밀어 올리고 있는 거예요.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내 자신의 기분을 전에
말씀드렸어야 했을지는 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기분을 털어놓지 않은 채 이 고장을 떠나고
싶지가 않으며 이 기분을 불합리한 일이라 생각하시지
않으리라 믿어요. 오빠께선 그분을 매우
칭찬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더욱 친밀한 형태로
끊임없이 그분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될 거예요. 그분의
친척들도 오빠의 친척 못잖게 이 연분을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오빠가 어떠한 여성의 마음도
끌어당길 수 있다 하더라도 누이인 나의 편애에 의해
잘못 판단되었다고는 보지 않아요. 이와 같이
이 한 애정의 결부에는 호의적인 사정뿐이어서 그것을
방해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형편이고
보면 사랑하는 제인 양, 이렇도록 많은 사람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이 어찌 내 잘못만이겠어요?
"이 문장 어떠니, 리지?"
제인은 다 읽고 난 후 말했다.
"이만하면 명확하잖니? 캐롤라인은 내가 그녀의
올케가 된다는 건 예상조차 않고 있으며, 바라지도
않는 점, 오빠도 무관심하다고 완전히 믿고 있고
그분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있더라도(매우 친절하게) 나를 경계하려는 점 등이
여기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지 않겠어? 이 문제를
달리 생각할 방도가 있을까?"
"그럼 있겠지, 내 의견은 전연 다르니까 말예요. 들어보겠수?"
"듣구말구?"
"두세 마디로 말해 두겠어요. 빙리 양은 자기 오빠가
언니를 사랑하고 잇는 것을 알면서 다아시 양과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오빠를 런던에
머물러 있도록 하고 그의 뒤를 쫓아가서
설복시키려는 거예요."
제인은 머리를 저었다.
"정말이에요, 언니. 언니는 날 꼭 믿어야 해요.
언니하고 그분이 함께 있는 것을 본 사람이면 그분의
애정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빙리
양일지라도 의심을 못할 거예요. 그 여자가 그렇게
멍청할 리는 없어요. 그 여자가 다아시 씨로부터 그
반만큼이라도 사랑을 받았다면 결혼 의상을
주문했을 거예요. 그러나 결국 이런 일이에요. 우리들은
그분들에게 어울릴 만큼 부자도 못되고
지체도 그렇지가 못한 터라 자기 오빠를 다아시 양과
연분을 맺게 하고 싶은 거예요. 혼인 관계
하나가 성립되면 또 하나를 성취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겠죠. 그 점은 확실히 재간이 있는
생각이 되겠죠. 드 버그 양만 방해가 안되면 성공하고
말 거예요. 그렇지만 나에겐 둘도 없는 언니,
들어봐요, 빙리 양이 그녀의 오빠가 다아시 양을
찬미하고 있다고 해서 화요일에 언니와 헤어졌을
때보다 그분께서 언니의 좋은 점을 조금이라도 덜
인정한다든가 또 그녀 오빠를 설득해서 언니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 친구인 다아시 양을 더
사랑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 믿어서는 안되는 거예요."
"만일 빙리 양에 대한 우리들 생각이 일치한다면 네
해석으로 난 사뭇 안심이 된다만. 그러나 근본이
올바르다고 보지는 못해. 캐롤라인이란 여자는
계획적으로 사람을 속이는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말야. 그래서 이 번 경우에 내가 오직 바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녀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 뿐이야."
제인이 대답했다.
"옳은 말이요. 내가 말하는 것으로 해서 안심이
안된다면 그 이상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가 않을
거구요. 그녀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도록
해요. 이젠 그녀에 대한 의무는 다했으니까
더 이상 애태울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너 말야, 설령 제일 좋게만 상상한다 해도
자매 되는 사람이나 친구들이 모두 딴 사람하고
결혼시키고 싶은 사람에게 시집간다 해서 과연 내가
행복하게 될 수 있을까?"
"그 점은 언니 스스로가 정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깊이 생각해 보고 나서 그분 두 자매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슬픔 쪽이 그분의 처가 되는 행복보다
더 크다고 생각된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거절해 버리라고 충고하고 싶어요."
"넌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하니?"
제인이 다소곳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자매가 반대한다는 건 슬픈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난 주저할 수는 없다."
"언니가 주저하리라는 생각은 안했어요. 그리고
사실이 그렇다면 난 언니의 입장을 동정 해가면서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분이 이번 겨울에 못 돌아오시게 된다면 내 결심
같은 건 아무 소용도 없게 되는 거야. 6개월이
지나면 오만 가지 일이 다 생길 테니까 말야!"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엘리자베드는 사뭇
가볍게 다루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캐롤라인의
제멋대로 소원을 암시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소원은 제아무리 명백하고 기교 있게
표현된다 하더라도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청년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엘리자베드는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소감을 되도록
강하게 언니에게 설명했지만, 얼마 안가 좋은
결과를 보게 된 것이 매우 기뻤다.
제인의 기분은 침울함을 벗어나고 점차 희망을 바라는
마음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때로는 애정에
대한 머뭇거림이 그녀를 엄습해 왔지만, 언젠가는
빙리가 네더필드로 돌아와서 자기의 충정을 풀어 줄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에 마음이 부풀었다.
베네트 부인에게는 다만 가족이 출발했다는 말만
하기로 합의하고 빙리 씨의 행동의 자초지종을
말함으로써 경악을 불러일으켜서는 안될 일이라고 뜻을
모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분적인
통고만으로도 베네트 부인은 심히 근심스러웠고, 이토록
잘 되어 가는 차에 그 귀부인들이 떠나가
버렸으니 이 이상 더 불운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며
한탄을 했다.
그러나 한참 슬픔에 잠겼다가 빙리 씨가 곧
되돌아와서 곧바로 롱본에서 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는 끝내 가족적인 식사 초대에
그친다 해도 요리는 이품으로 푸짐하게 내놓도록
마음을 즐겁게 먹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22
베네트 일가는 루커스 일가와 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지만, 그날 역시 대부분 시간을
루커스 양은 친절하게도 콜린즈 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기회를 포착해서
그녀에게 사의를 표했다.
"덕분에 그분의 기분이 여간 좋지가 않았어요. 정말
말로는 다할 수 없이 폐를 끼쳤어요."
그녀는 말했다. 샬로트는 도움이 된 데 대해
만족스러워 하면서 시간을 잠깐 냈을 뿐인데도 충분히
보상이 되었다고 했다. 다시없이 상냥스런 말이었다.
그러나 샬로트의 친절은 엘리자베드로서는 미처
짐작도 못할 데까지 뻗어 나갔다. 이 친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콜린즈 씨의 결혼 신청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여 그것이 두 번 다시는 엘리자베드에게
되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데 지나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루커스 양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형편이
매우 호전되어 나가서 밤이 되어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가 만약 그렇게 빨리 허어퍼드셔를 떠나지
않았다면 성공은 거의 의심할 여기가 없을
정도로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 그녀는
그의 불같은 면과 독립심에 찬 그의 성격을
올바르게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성격은 그로
하여금 다음날 아침 날쌔게 롱본 가를 빠져나가
루커스 가로 달려가서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기 대문이다. 그는 친척들의 눈에 띄고 싶지가
않았는데, 그 사연인즉 자기가 떠나는 것을 보게 되면
자신의 계획을 알게 될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성공을 보여 줄 때까지는 계획을 알리고
싶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샬로트는 상당히 고무적이라
대체적으로 일이 잘 풀려져 가리라고 생각할 이유도
있었지만, 워낙 수요일의 일도 있고 해서 어쩐지 자신이
없는 심정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럼에도 다시없이 유망하다고 여겨지는 환영을 받았다.
루커스 양은 자기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그를
2층 창문에서 보게 되자, 그 길로 바깥으로 나가서
좁은 길에서 사뭇 우연히 만나게 된 것처럼
꾸미기로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만한 애정과 웅변이
거기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콜린즈 씨의 장광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쌍방이 다
만족할 만큼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두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자신을 가장 행복한 남성으로
만들 날을 정해 달라고 열심히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그의 소원은 성급하다는 감이 없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행복을 경시할 생각은 없었다.
그의 타고난 우둔함은 그 결혼 신청이 계속되기를
여자가 바랄 만한 매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루커스
양은 그저 가정을 갖고 싶다는 순수한 소원에서 그와의
결혼을 승낙하고 말았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빨리 이루어지느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윌리엄 루커스 경 부부는 재빨리 동의하도록
요청 받았는데, 즉석에서 기꺼이 응하고 말았다. 콜린즈
씨의 현재 환경은 별로 재산을 나누어 줄 수 없는
그들의 딸에겐 둘도 없이 좋은 연분이고, 게다가
장차 그에게 재산이 들어오리라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일이었다. 루커스 부인은 불현듯 지금까지
그러한 문제에 대해 느껴 보지 못했던 흥미를 가지고
베네트 씨가 앞으로 몇 해를 더 살게 될 것일까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윌리엄 경은 콜린즈 시가 롱본의 토지를 소유하는
날이 오면 그 즉시 딸 부부가 세인트 제임즈
궁전에 배알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자신의
의견인 양 말했다. 요컨데 집안이 온통 기뻐
날뛴다는 것은 조금도 무리가 아니었다.
막내딸들은 그렇게 되는 날이면 사교계에 나갈 수
있는 것이 1, 2년이 빨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아들들은 샬로트가 노처녀로 늙어 버릴 것이라는
걱정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샬로트 자신은
상당히 침착해 있었다.
목적이 달성된 터라 그 일을 생각해 볼 여우를
보였다. 그녀의 감상은 대체적으로 흡족스러웠다.
바른 말로 콜린즈 씨는 현명하다거나 기분 좋은 사람은
못되었다. 함께 있으면 금방 싫증이 나고
자기에 대한 그의 애정도 상상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자기의 남편이 될 사람이다.
남성이라든가 부부관계 등은 그다지 문제삼지 않은 채
결혼만이 늘 그녀의 목적이었다. 높은 교육받고 재산 적은
젊은 여성에게는 결혼은 유일한 영광된 희망이며,
행복을 얻는 일이 아무리 불확실해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인 것이다. 이 길을
그녀는 겨우 손에 넣은 것이다. 더우기 나이 스물
일곱에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자기에게는 분에 넘치는
행운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에서 가정 꺼림칙한 일은
자기가 누구하고의 우정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 엘리자베드 베네트를 놀라게 할 일이었다.
엘리자베드는 의아해 하며 아마도 자기를 나무라게
될 것이다.
자기의 결의는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지만 그런
면에서는 비난은 자기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 너무나
뻔했다. 그녀는 마침내 자기 입으로 그것을 알리려고
결심해서 콜린즈 씨에게 만일 롱본에 식사차
돌아가더라도 가족 누구 앞에서도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을 얘기해서는 안된다고 일렀다. 그는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했지만 그것을 지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을 오랫동안 비워 두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호기심이 돌아오자마자 직접 터져 나오는
질문으로 폭발해 버려서, 그것을 회피하기에는
너무나 기교가 필요했고, 그와 동시에 자기의 멋있는
연애를 알리고 싶은 데 자신을 억제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은 가족 중의 누구하고도 만날 수 없을
만큼 일찍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잠자리에 들어갈 무렵에 작별 인사를 나눴다.
베네트 부인은 대단히 정중하게, 딴 볼일로 다시
롱본에 올 수 있으면 언제고 반갑게 그를 맞겠다고 말했다.
"부인, 이번 초대는 특히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바라고 싶었던 초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되도록 단시일 내에 하신 말씀대로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일동은 어안이벙벙했다. 그토록 빠른 응답을 바라지
않았던 베네트 씨가 금방 말했다.
"이봐요, 혹시 캐더린 부인이 마다 하실 걱정은 없는
거요? 후원자를 화나게 할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친척들을 등한시하는 편이 나을 거요."
"선생님, 친절하신 주의 말씀은 특히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만, 영부인의 동의를 얻지 않고서는
그러한 중대한 일에는 한 걸음도 들어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 주십시오"
콜린즈 씨가 대답했다.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칠 수는 없어요. 영부인의
불쾌감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단 모험을
해보시지. 두 번 다시 우리 집안을 찾아오다가 영부인의
노여움을 사는 일이 있게 된다면 아무 그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댁에
가만히 있는 편이 좋을 것 같고 우리 집안 사람들은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정말 이러한 애정어린 호의에 마음 뿌듯함을
느낍니다. 허어퍼드셔에 체재 중에 저에게 베풀어 주는
여러 가지 호의와 지금 말씀에 대한 감사 편지를
틀림없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저의 친척
여러분들에게는 제가 근간 다시 돌아오게 되므로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엘리자베드 양도
포함시켜 말입니다."
여자들도 제각기 적절한 인사말을 하고서는
물러 나갔지만, 그가 곧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는 한 사람 빠짐없이 놀라고 말았다. 베네트
부인은 그가 돌아오는 것은 다음 딸 중의 한
사람에게 구혼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메어리 같으면 설득해서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메어리는 그의 재능을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의 의견에는 종종 그녀를 감복시킬 만한
견실함이 있었다. 자기만큼은 현명하지 못하지만 자신과
같은 모범을 따르게 함으로써 독서를 시켜
향상하도록 북돋아 주면 매우 어울리는 배우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러한 희망은 무산되어 버렸다.
아침 식사 후 루커스 양이 찾아와서는
엘리자베드와 단 둘이서 전날에 일어났던 일을 말했다.
콜린즈 씨 자신이 그녀의 친구와의 연애를 꿈꿀
가능성이 요 며칠 사이에 엘리자베드의 머리에 한 번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샬로트가 그것을 격려할
만한 용기가 있으리라는 것은 자기의 경우와
다름없이 도저히 있을 성싶지가 않았다.
따라서 그녀의 놀라움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처음에는
예의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콜린즈 씨와 약혼했다구요, 샬로트 양, 있을 수
없는 일예요!"
전후 사정을 말하면서 루커스 양이 지금껏 지켜 오던
침착한 표정은 이렇게 정면으로 쏘아붙이는 말을
듣게 되자 순간 당황하는 빛을 띄었다. 하기에 전연
예기치 못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내 침착성을
되찾아서 예사롭게 대답했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엘리자 양? 콜린즈 씨가
불행히도 당신과의 관계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여성의 호감을 받은 게 그렇게 안 믿어지세요?"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이제는 마음의 편안함을 되찾게
되었고 또 몹시 노력함으로써 사뭇 확고한
태도로 당신네가 결혼한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진심으로
기뻐할 일이며 가능한 모든 행복이 있길 빈다고
통고해 낼 수가 있었다.
"당신이 느끼고 있는 점은 나로서도 이해가 가요."
그렇게 샬로트가 대답했다.
"아마 놀랐을 거예요, 매우 놀랐을 거예요.... 극히
최근까지만 해도 콜린즈 씨가 당신과 결혼하길
원했으니까요. 그러나 나중에 시간을 둬서
생각하신다면 내 일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아시다시피 난 낭만적인 사람이 못돼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어요. 난 단지 안락한 가정이
필요할 뿐이에요. 콜린즈 씨의 성격과 연고관계나
지위를 생각할 때, 그분하고 들어서면서 자랑하게
되는 것만큼이나 확신할 수 있어요."
엘리자베드는 조용히 대답했다.
"틀림없겠지요."
한참 동안 어색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그들은 딴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샬로트는
그다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엘리자베드는 들은 이야기를 곰곰 되새겨 보았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두 번이나 결혼 신청을 한 콜린즈
씨에 대한 묘한 기분도 지금 와서 그 신청이
받아들여진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혼에 대한 샬로트의 의견이 자기하고는 같지
않다는 것을 평소에 느껴 왔던 터이지만, 세속적인
이익을 위해 보다 고상한 감정을 다
희생하면서까지 행동에 옳기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콜린즈 씨의 처로서의 샬로트는
너무나 굴욕적인 양 상태 외에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친구 스스로가 망신살이 뻗치고 이 편의 눈에
낮게 비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고통에
더하여, 그 친구가 스스로 선택한 환경 속에서는
거의 행복해질 수가 없을 것이라는 슬픈 확신이 서는 것이었다.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3권
제인 오스틴
23
엘리자베드가 어머니와 자매들과 함께 앉아서 자기가
들은 이야기에 대해 생각에 잠겨서 그 이야기를
해야 될까 망설이고 있을 무렵, 윌리엄 루커스 경이
딸의 부탁을 받고 결혼 약속을 알리러 직접
들어섰다. 집안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인사를 나누면서
양가가 멀지 않아 연고 관계를 맺게 될 것에
대해서 만족의 뜻을 표하면서 그는 그 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듣는 쪽에서는 놀라는 반면
그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베네트 부인은 예의가
바르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집 세게, 뭔가
대단히 오해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했으며, 항상
경솔하고 때로는 버릇없는 리디어는 소란스럽게
소리쳤다.
"어머나! 윌리엄 선생님, 어찌 그런 말씀을 다
하세요? 콜린즈 씨가 리지 언니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사실을 모르시고 계세요?"
궁정에서 일하는 사람의 공손함이 없었던들 이러한
대접에 대해서 화를 내지 않고 참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윌리엄 경은 워낙 교양이 있는 터라
끝까지 참아 낼 수가 있었다. 자신의 통고의
진실성을 제발 믿어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들의 무례한
말을 인내성 깊고 정중하게 듣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불유쾌한 입장에서 그를 구해
내는 일이 자신의 의무라고 느껴, 샬로트 양한테
들어서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자진해서 그의 이야기를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나 동생들이
고함치지 못하게 막아 볼 양으로 열심히 윌리엄 경에게
축하의 말을 하게 되자 제인도 이에 합세하고,
이번 결혼에서 예견되는 행복이라든가 콜린즈 씨의
뛰어난 성품이라든가 헌스퍼드가 런던에서는
편리하고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는 등 여러 사실에
대해서 말했다.
사실 베네트 부인은 그동안 너무나 억눌려 있었기
대문에 윌리엄 경이 남아 있는 동안은 마음놓고
편하게 말할 수가 없었지만, 그가 자리를 뜨자마자
그녀의 감정은 급격스럽게 배출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이 말을 전혀 믿을 수가 없다고 그녀는
계속해서 주장했다. 두 번째로 콜린즈 씨는
속임수를 당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그
두 사람이 합쳐진다 해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 확실하며, 네 번째로는 이 혼담이 깨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전체에서 명확히 두
개의 결론을 끌어낼 수가 있었다.
하나는 엘리자베드가 모든 문제의 근원을
만들어 냈다는 것, 또 하나는 모든 사람이 죄다 자기를
학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하루 종일 그 일만을
되뇌고 있었다. 그녀를 위로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날만은 그녀의 분개가 줄어들지
않았다. 엘리자베드의 얼굴을 보고 화를 내지
않기까지는 한 주일이 걸렸고 윌리엄 경이나 그의
부인과 말할 때 실례된 말을 하지 않기까지는 한달,
그 딸을 얼마간 용서할 때까지는 몇 달이 걸렸다.
이때의 베네트 씨의 감정은 매우 평정을 유지했고,
지금껏 경험한 감정은 다시없이 유쾌한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왜냐하면 평소 상당한
분별심을 가진 걸로 알고 있던 샬로트 루커스가 자기
아내만큼이나 바보스럽고 또 자기 딸보다도 어리석다는
것을 알아냈으니 어찌 만족스럽지 않겠느냐고 했다.
제인은 이 연분에 대해서 다소 놀라기는 했다고
고백했지만 자기가 놀랐다는 것보다는 두 사람의
행복을 지심으로 기원하는 기분으로 말할 때가
많아졌으며, 엘리자베드가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설득하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키티와 리디어는 루커스
양을 부러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콜린즈
씨는 일개 목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그
일은 메리튼에서 퍼뜨릴 소문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루커스 부인은 딸한테 좋은 혼처 자리가 생기게 된
기쁨을 베네트 부인한테 이것 보아라는 듯이 갚을
수 있는 승리감에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여느 때보다 자주 롱본을 방문해서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말했다. 실은 베네트
부인의 부루퉁한 얼굴과 심술궂은 대꾸가 그녀의 행복을
쫓아내기에 충분했지만....
엘리자베드와 샬로트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기분이
감돌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가 입을
다무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엘리자베드는 두 사람
사이가 두 번 다시는 믿을 처지가 못될 것이라고
느꼈다. 샬로트에 대한 그녀의 실망은 자기 언니에 대한
더 한층 깊은 애정을 갖게끔 만들었다.
언니의 정직함과 우아함에 대한 자기 의견은 흔들릴
리가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빙리 씨가 떠난 지
벌써 한 주일이 되었는데도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혀
없어서 언니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제인은 캐롤라인에게 곧 회답을 써 보냈고, 다시
소식이 올 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콜린즈
씨가 아버지에게 약속했던 감사 편지는 화요일에
도착했는데 일 년이나 체재 않고서는 쓰지 못할
만큼이나 장중함을 다한 감사의 말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문제에 대해 자기 회포를 풀고 나서, 그들의
상냥스러운 이웃 루커스 양의 사랑을 받게 된 자신의
행복을 글로 알리면서 롱본에 다시 와 달라는
댁내의 바람에 기꺼이 응한 것은 다만 루커스 양과의
교제를 즐길 목적이었으며 2주일 후인 월요일에는
다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사연인 즉, 캐더린 영부인도 이 결혼에 찬성해서
되도록 빨리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그것은
한시바삐 자기를 남성 중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날을 정해 버리는 데 있어서 귀여운 샬로트
양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콜린즈 씨가 다시 허어퍼드셔에 오게 된다는 사실은
베네트 부인에게는 더 이상 즐거운 일이
못되었다. 반면에 그녀는 자기 남편 못지 않게 불평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가 루커스 가로
오지 않고 롱본으로 오는 것부터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더우기 불편할 뿐더러 매우 귀찮은 일이기도
했다. 건강이 좋지 못할 대 손님을 맞는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며 연애하고 있는 남녀만큼이나
비위 거슬리는 일도 없다.
대충 이러한 일들이 베네트 부인의 군색한
불평거리였는데, 그것들은 빙리 씨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는 큰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인도 엘리자베드도 이 문제만은 불안한 심정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지나도 그 사람은 올
겨울에는 네더필드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얼마
안가 메리튼에 쫙 퍼져 버린 소문 외에는 그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이 소문에 베네트
부인은 크게 화를 내면서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허위가 또 어디 있는가고 부정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까지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빙리가
냉담해지지나 않았는가 하는 걱정은
아니었지만... 혹시 자매가 그를 묶어 놓는 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하고. 제인의 행복이 깨어지고
그 연인의 견실함을 부끄럽게 할 만한 추측을 내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주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의 무정한 두
자매나 그 압도적인 친구 다아시가 힘을 합치고
그것에 다아시 양의 매력과 런던의 포근함까지 거들게
되면 그의 애정의 힘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몹시 마음에 걸렸다.
제인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그녀의
고뇌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엘리자베드의
그것보다도 훨씬 고통스런 것이었다.
그러나 재인은 아무 일이든 자신이 느끼는 일은
감추려 했기에 그녀와 엘리자베드 사이에는 이
문제가 화제로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러한 다소곳한 데가 없었기 때문에 한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러한 다소곳한 데가 없었기
때문에 한 시간이 멀다고 빙리 이야기를 하고,
그가 돌아오는 것이 몹시 초조해진다고 했고,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이 안 돌아오는 걸 보니 이쪽이
골탕먹은 걸로 여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제인의
입을 빌어 시키려 드는 기세였다. 제인에게는
몸에 밴 온화한 성품이 있어서 이러한 일에도 제법
평정하게 견디어 낼 수가 있었다.
콜린즈 씨는 정확하게 두 주일 후 월요일에
되돌아왔는데, 롱본에서 대접은 처음 때만큼 따뜻한
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행복했기에 그다지 많은
환대가 필요치 않았다. 한참 연애에 몰두해
있는 참이라 고맙게도 주위 사람들하고 어울릴 필요가
없었다. 매일같이 루커스 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가족들이 자기 전에 롱본으로 돌아오는 형편이었다.
베네트 부인은 가엾은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 혼담에
관한 말이 조금이라도 비치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서 매우 불쾌하게 되어 버리기 일쑤였는데, 가는
곳마다 어김없이 그 말을 듣게 되었다.
이제는 루커스 양을 보기조차 싫어했다. 자기 뒤를
이어 이 집 주부가 된다고 생각만 해도 질투 어린
혐오의 눈으로 그녀를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샬로트가 그들을 만나러 올 때마다 그녀가 이
집을 소유하게 될 날을 가슴속에서 기대하고 있다고
결론짓는 것이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콜린즈 씨와 이야기할 때도
언제나 두 사람은 롱본의 토지에 관한 말을 하게
돼 있으며 베네트 씨가 세상을 떠나는 즉시 자가와
딸들을 몰아내려 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일에 대해서 남편에게 심한 불평을 하게 되었다.
"정말 여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샬로트 루커스인가 하는 애가 이 집 주부가 되고
그래 그 애에게 자리를 물려 줘서 그 애가 이 집에서
내 자리를 대신하여 들어서는 꼴을 보게 될 생각을
하니 얼마나 기막힌지."
"여보, 그런 침울한 생각에 젖어서는 못 쓰오. 좀더
나은 일을 바라보도록 합시다. 살아남는 사람은
바로 이 몸이라고 낙관하고 삽시다."
이 말도 베네트 부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는 큰 힘이
되지 않았던지 그녀는 대꾸도 않고서 혼잣말로 말을 이었다.
"이 재산이 깡그리 그 사람한테 넘어간다니 생각만
해도 미치겠어요. 한사상속인가 하는 것만 없어도
전 괜찮을 텐데요."
"뭣이면 괜찮겠오?"
"뭐든지 괜찮아요."
"당신이 그러한 무감각 상태에 빠져들지 않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하기로 합시다."
"그렇지만 여보, 날더러 한사상속을 고맙게
생각하라니 안될 말씀이에요. 한사상속을 가지고 남의
딸들에게서 재산을 뺏어 가다니 양심 있는 사람을 못할
짓이에요. 도저히 이해가 안가네요. 그것마저
콜린즈 씨를 위해서... 숱한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그 사람이 재산을 가지게 된단 말예요?"
"당신 스스로가 결론을 내리도록 하시오"
베네트 씨가 말했다.
24
빙리 양의 편지가 도착함으로써 일이 명백해졌다.
편지의 첫 귀절에서 그들이 올 겨울을 런던에서
정착하게 되는 사실이 확실해지고 그리고 끝맺음의
귀절에서는 오빠가 시골을 떠나오기 전에
허어퍼드셔의 친지들에게 인사할 겨를이 없었던 점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은 사라지고 말았다. 제인은 가까스로 나머지
부분에 눈을 돌렸으나 거기에는 편지 쓴 사람의
애정적 표현 이외에는 그녀를 위로해 줄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다아시 양을 칭찬하는 것이
그 편지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녀의 여러 가지 매력을 아주 소상히 말하면
캐롤라인은 그녀와 더욱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을
기쁨 자랑으로 말하고, 전번 편지에서 살짝 비친 소원이
성취될 것 같다고 예고를 사양하지 않았다.
그녀는 또 오빠가 다아시 집에 동거하고 있는 것을 자못
기쁜 듯이 말하고, 바로 그 다아시 씨가
새 가구를 마련할 계획을 하고 있다고 황홀하게 적혀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제인으로부터 그 자리에서 이런 사연을
전달받으면서 듣고 있으려니 화가 치밀어서
입을 제대로 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언니를 걱정하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분개하는 것이었다.
오빠의 마음이 다아시 양에게 기울어졌다는
캐롤라인의 단언이 그녀에게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가
정말 제인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그전과 다름없이
지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에게
적잖이 호의를 가져 왔지만, 바로 그 사람이 친구들의
음모의 노예가 되어서 그들의 손에서 놀아난
나머지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고 있는 그 안이한 기질과
올바른 결단력의 결여를 생각할 때 분노를
느껴서, 경멸하고 싶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사람 자신의 행복만 희생되는 것이라면
그가 자기 좋을 대로 그 행복을 가지고 논다고
해도 상관이야 없겠지만, 언니의 행복이 그 속에
휘말려 들고 있음을 그가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이 문제는 생각하면 끝이 없는 일이겠으나
그렇다고 생각한들 무슨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밖의 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빙리 쪽의 애정이 정말 사라지고 말았는지,
주위 사람들이 간섭에 의해 억제 당하고 말았는지, 또는
제인의 애정을 알아차렸든 그것을 모르고
지나쳐 버렸든가, 그 어느 경우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그 차이에 의해
두드러지게 변할 것이 뻔하지만, 언니 입장은 그 어느
경우라도 여전히 똑같을 것이며, 마음의 평화는
한결같이 상처를 입을 것이 아니겠는가.
제인이 용기를 내어 엘리자베드에게 자기의 기분을
말하기까지에는 하루 이틀이 더 걸렸다. 그러나
마침내 베네트 부인이 네더필드와 그곳의 주인 문제로
평소보다 오랫동안 초조한 끝에 두 사람을 두고
나가 버리자 이윽고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어머니는 좀더 자신을 억제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끊임없이 그분에 대한 일만 생각하고
계시니까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신단 말이야.
그렇다고 불평하지는 않겠어. 그다지 오래 가지는
않을 테니까. 그분 일은 잊어버리고 원래의 우리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말이야."
엘리자베드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던지 수심에 차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날 의심하고 있나"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제인이 말했다.
"의심할 필요까진 없어. 그분은 내가 알고 지낸
중에서 제일 마음이 상냥스런 분으로 내 기억에 살고
있겠지만 그저 그뿐이야. 나로선 바라는 것도 없고
두려워할 아무것도 없고 또 그분을 책망할
아무것도 없단 말야. 고맙게도 그런 고민은 나에게는
없어. 그러니까 좀더 시간이 흐르게 되면...
틀림없이 다 잊어버리려는 힘이 솟아날 거야."
더 큰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난 지금 바로 이 순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마음의
흐트러짐이지 나 외의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평화스런 마음을 가질 수가 있어."
"어머 언니! 언닌 사람이 너무 선량해요. 언니의
상냥함과 공정함은 정말로 찬사에 버금가는 거야.
난 언니한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수. 나는
꼭 언니의 훌륭함을 몰랐던가 아니면 그렇게
훌륭한 언니에 대해 사랑이 부족했던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언닌 세상 사람들을 다 훌륭하다고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령 누구를 덜 좋게라도 말하면
금방 기분이 나빠지거든요. 난 말야, 언니를 완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언닌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죠. 내가 극단적인 말을 한다
해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선으로만 대하는 언니의 특권을 내가 나무란다 해서
날 두려워할 것까진 없어요. 그럴 필요가
없어요.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그리 흔치 않고, 선하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더욱 그 수가 적은 것 같아요. 세상을 알면 알수록
세상에 싫증이 나는 법예요. 사람들의 성격은
죄다 모순된 것들뿐이고 또 미덕이나 총명 같은
외적인 것에 신뢰를 둘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가
못하다는 내 신념은 날이 갈수록 강해져 가기만 해요.
나는 최근 두 개의 일에 부딪치고 말았어요.
한 가지는 말하고 싶지 않고, 또 한가지는 샬로트의
결혼이에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아요!"
"얘 리자, 그런 감정에 휩쓸려 버려서는 못 쓴다.
그렇게 되면 너는 불행하게 되고 마는 거야. 넌
지금 입장이라든가 기질이라든가 하는 것의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는 거야. 콜린즈 씨의
명성과 인망이 샬로트 양의 신중하고 착실한 성격을
생각해 보렴. 그녀는 첫째 대가족의 한 사람이고
재산이란 점에서도 천생연분이란 걸 잊지 말도록 해.
그리고 그녀가 우리 친척을 높게 평가하고
존중하고 있는 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믿어 다오"
"언니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믿고 싶지만 그런
것을 믿는대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거든요. 왜냐하면 샬로트가 그분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내가 믿어야 한다면, 지금 내가 그녀의
애정을 의심하고 있는 이상으로 이번엔 그녀의 지식을
더욱 의심하게 되거든요. 언니, 콜린즈 씨는
자만심이 강하고 잘난 체하며 마음이 좁고 아둔한
사람이에요. 언니도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알고
있을 게 아녜요. 나와 꼭 같이 느끼고 있는
일이겠지만 그런 남자와 결혼하는 여성은 올바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일 거예요. 그 사람이 바로 샬로트
루커스라 해서 변호해서는 안돼요. 한 개인을
위해서 지조와 성실의 뜻을 변경해서는 안되는
일이며, 이기주의가 곧 신중성이라든가, 위험에 대해
무감각한 것이 곧 행복을 보장한다든가 하는 것을
자기뿐만 아니라 나에게까지 억지로 믿게 해서는
못 쓰는 거예요."
"넌 두 사람 일을 말하는 데 너무 강한 말을 지나치게
쓰고 있다고 생각해야 될 것 같아"
제인이 그렇게 대답했다.
"두 사람이 행복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될 때 그것을
깨우쳤으면 좋겠어. 이젠 이 일은 그만해 뒀으면
해. 너 아까 뭔가 딴 것을 비친 것 같더니. 두 개의
예라고 말했었지. 난 널 오해할 수야 없지만
제발 부탁이니 리자, 그분이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네가 신용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날 괴롭히지
말아줘. 우리들은 남에게서 고의로 상처를 입게 되는
거라고 쉽게 생각해선 안되는 거야. 쾌활한
청년에게 언제나 조심성 있고 경제적인 것을
기대하기란 무리한 일이야. 우리들은 자기의 허영심
때문에 기만당하는 수가 너무나 많거든. 여자란 높이
평가받게 되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마련이야."
"그리고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도록 의도하는 거예요."
"계획적으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일이
못돼는 거야. 그러나 난 이 세상에는 어떤 사람들이
상상하고 있는 것만큼의 음모로 가득 차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요."
"내 생각엔 빙리 씨의 행동 어디에도 계획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그러나 고의가 아니라도 잘못을 저질렀거나 남을
불행하게 했을 때도 잘못은 일어날 수 있으며
슬픔도 생겨나게 되는 거예요. 사려의 결핍, 타인의
기분에 대한 주의 부족과 결단력의 결여로 그런
일이 생기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넌 그 둘 중의 어느 하나의 탓으로 돌릴 작정이냐?"
"그래요, 나중의 것으로 말예요. 그러나 이대로 내가
계속해 나간다면 언니가 존경하는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명확히 말함으로써
언닐 불유쾌하게 만들어 버리게 되는 거죠. 할 수
있을 때 나를 중지시켜 주세요."
"그렇다면 넌 끝까지 두 분 자매들의 힘이 그분을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래요, 그분의 친구하고 합세해서 말예요."
"난 믿을 수 없구나. 왜 그 사람들이 그분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누? 그들도 그분의 행복을 바랄
뿐일 텐데. 만약에 그분이 날 사랑하고 계시다면 달리
그분의 행복을 굳혀 줄 여자는 없을 테지."
"언니의 제일 명제가 틀렸어요. 그 사람들은 그분의
행복 외에 다른 많은 것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예요. 재산이 불어나고 지위가 높아지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돈 그리고
훌륭한 연고 관계와 자부심 같은 그런 것들을 고루
갖춘 규수하고 그분을 결혼시키고 싶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물론 그 사람들은 다아시 양을 고르고 싶은 거야."
제인은 대답했다.
"그러나 이것은 네가 상상하고 있는 이상으로 더 좋은
생각에서 나왔을 지도 몰라. 그 사람들은
나보다도 다아시 양을 훨씬 전부터 알고 있는
것이니까 다아시 양을 더 좋아한다 해서 조금도 이상한
일은 아냐. 그 사람들로서 어떠한 것을 바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빙리 씨의 소원에 반대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아. 정말 반대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거라면
자기들 마음대로 해야 좋다고 생각하는
자매들이 어디 있겠니? 그분께서 날 생각하고
계시다면 그들은 굳이 우리들을 떼어놓으며 들지 않을
거야. 만일 애정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까 네 생각엔 그런
애정이 있다고 가정해서 그 사람들이 죄다 부자연스런
일을 했으며, 잘못을 저질러 놓고 있다고
정해 버림으로써 날 이렇게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만 거야. 그런 생각으로 날 괴롭히지 마.
난 그분을 잘못 봤다 해서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아. 아니, 적어도 내가 그분이나 자매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감정에 비한다면야 비교도 안되는
일이지. 그러니까 이 문제를 제일 좋은 견지에서,
다시 말해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견지에서
생각하는 것을 용서해 줘"
엘리자베드는 이러한 소원에 반대할 수도 없어,
이때부터 두 자매 사이에는 빙리 씨의 이름조차 입에
담지 않게 되었다.
베네트 부인은 여전히 그가 안 돌아오는 것을
의아해 하고 그것을 계속 불평했으며 엘리자베드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지만,
부인이 그것을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날은 별로 없었다.
딸은 자기를 믿지 않고 있었다는 점, 즉 제인에게 접근했던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잠시 좋아진 그런 결과에
불과하며, 제인의 얼굴을 안 보게 되면 곧 소멸되고 마는
그런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납득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이 말하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라고 그 당장에는 인정하고서도, 엘리자베드는
매일같이 그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베네트 부인에게 다시없이 좋은 위안거리는 빙리
씨가 여름에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뿐이었다.
베네트 씨는 이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좀 달랐다.
"그렇다면 리지."
어느 날 하루 그가 말했다.
"너의 언닌 실연한 거다. 난 차라리 낫다고 본다.
여자란 한 번쯤은 실연해 보는 것도 결혼하기 전
좋은 경험이다. 이따금 생각할 거리가 생기기도 하고
동료들 사이에서 좀 두드러지기도 하는 게야.
네 차례는 언제 온담? 항상 언니에게 지고만 있어서도
곤란하지. 이젠 네 차례가 온 거다.
메리튼에는 이 지방의 젊은 여성들을 실연시킬 만한
많은 장교들이 있다. 위컴을 네 사람으로 만들어
보련. 그 사람 쾌활하니까 너한테는 잘 어울릴 거니까."
"고마와요, 아버지. 전 그분만큼 쾌활하지 않아도
만족이에요. 우린 언니만큼 행운을 다 기대할 수
없으니까 말예요."
"그건 그래"
베네트 씨가 말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언제고 그것에 힘
닿는 대로 소란 피우는 애정 넘친 너의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즐거운 일이다."
위컴 씨와의 교제는 최근 불유쾌한 사건들이 롱본의
많은 사람들에게 던져 주고 있는 우울한
그림자를 쫓는 데 크게 소용이 되었다.
그녀는 자주 그를 만났다. 그는 숱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주지하지 않는 장점이 또
추가로 발견되었다. 엘리자베드가 들어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다아시 씨에 대해 그가 요구해야 할
권리라든가 그로 말미암아 고통 당해 왔던 여러 가지
일들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인식되고 거침없이
논의되곤 했다. 가족 전원이 이런 사정을 알 때까지도
다아시 씨를 항시 덜 좋아했던 것을 생각하는
것이 기쁜 일이었다.
제인 베네트 양만은 이 문제 속에 허어퍼드셔의
사교계 사람들이 모르는 어떤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온순하고
착실하고 솔직한 마음은 언제나 그 나름의
입장을 참작하려 들며 어떤 실수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 밖의 누구도 다아시
씨는 최악의 인간이라 선언하는 것이었다.
25
애정의 고백과 행복의 계획으로 한 주일을 보내고
나서 토요일이 되자 콜린즈 씨는 상냥스런
샬로트와 작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별에서
오는 고통도 그의 입장에서는 신부 맞을 채비에
의해 완화시킬 수가 있었다. 이 다음 허어퍼드셔에 오는
즉시 자신이 남성 중에서는 가장 행복하게
되는 날짜를 정한다고 생각해서도 좋을 이유가 있었다.
그는 전과 다름없이 근엄하게 롱본의 친척들과
작별을 나누고 어여쁜 친척 딸들ㄹ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아버지에게는 다시 감사 편지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월요일에 베네트 부인은 남동생 부부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전례대로 롱본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온 것이다, 가디너 씨는 매우
분별 있고 퍽 신사적인 사람으로 교육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타고난 성품에서도 자기 누이보다
월등한 인물이었다.
네더필드에 살고 있는 여성들 눈에는 상업에 종사하며
자기의 창고가 빤히 보이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찌 그렇게 교양이 있으며 상냥스러운지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가디너 부인은 베네트
부인이나 필립스 부인보다 몇 해 손아래로 붙임성
있으며 머리도 좋고 고상한 여성이어서 롱본의
조카들에게는 인기가 있었다.
특히 위로 두 딸과 그녀 자신 사이에 서로 각별한
호의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자주 런던에 있는
그녀에게 가서 체재했다.
가디너 부인이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선물을
나누어 주고 최근 유행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그 일이 끝나자 그의 역할은 그다지 적극적인 것이
못되었다. 이번에는 자기가 이야기를 듣는
편이였다. 베네트 부인은 적잖이 슬픈 소리만
늘어 놓았고 불평도 말했다.
전번에 마지막 만난 이후 집안 사람들한테 무시당했던
것이다. 두 딸이 결혼 일보 직전까지
다가섰다가 결국 그것이 무산되어 버렸다.
"난 제인을 나무랄 생각은 없어요. 왜냐하면 그앤 할
수만 있었다면 빙리 씨하고 결혼할
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리지는 말이야! 만일 그 애가
고집을 내세우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콜린즈
씨의 배우자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정말
괴로와지는구료. 바로 이 방에서 구혼을 했는데
글쎄 그 애가 거절하고 말았다니까. 그 결과로 루커스
부인이 나보다 한 걸음 앞서서 딸을 치우게 돼서
롱본의 토지는 그 전과 같이 한사상속으로 돼버렸지
뭐야. 루커스 가의 사람들은 정말 교활한
사람들이란 말야. 가질 수 있는 것은 모조리 갖고
말겠다는 심보들이거든. 이런 말을 해선 뭣하지만
사실인걸 뭐. 자기 집안에선 딸에게 훼방을 당하고 이웃
사람들은 또 내 일만 알고 남이야 무슨
상관이냐 식의 사람들이 있어서야 어디 마음이
조급해져서 병이라고 날 것 같단 말야. 그러나 새댁이
마침 때를 맞춰 잘와 줬으니 내 마음이 한결
든든해지는구먼. 긴 소매 이야긴 정말 기뻤어."
가디너 부인은 제인과 엘리자베드의 편지로 이미
이야기를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베네트 부인에게
대답을 약간 하고 나서 조카들의 심정을 동정해서
화제를 바꾸어 버렸다.
나중에 엘리자베드와 단 둘만 남자 그녀는 이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제인에겐 정말 바람직한 혼처인데 그래"
그녀가 말했다.
"잘 되지 않아서 유감이구먼. 그러나 이런 일은 자주
있는 법야! 네 말을 들어보면, 빙리 씨와 같이
그렇게 쉽사리 2, 3주 동안에 예쁜 처녀하고 연애를
하고서는 우연히 헤어지게 되면 금세 잊어버리게
되니까 이렇게 일관성 없는 사람은 자주 볼 수가 있어."
"이건 확실히 훌륭한 위안의 말씀이세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들에게는 소용이 없어요. 우린 우연한
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남에게
신세질 필요가 없을 만큼의 재산을 가진 젊은 사람이
주위 사람들의 간섭을 받고 나서 2, 3일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열렬히 사랑했던 여자를
잊어버리고 마는 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 거예요."
"그렇지만 바로 열렬하게 사랑했다라고 하는 표현은
너무 진부하고 애매하며 부정확한 느낌이 들어서
나로선 그 뜻을 잘 모르겠구나. 그것은 진실하여 강한
애정에도 적용되고 30분간의 교제에서
일어나는 감정에도 적용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
빙리 씨의 애정이 얼마나 열렬했던가 어디 한 번 얘기해 보아라."
"그분은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아랑곳 않고 그저
언니에게만 빠져버렸다니까요. 두 사람이 만날
적마다 더욱 확실해졌어요. 자기네 무도회에서 춤
상대로 청하지 않았다 해서 두세 명의 젊은
여성들의 기분을 망치고 말았어요. 제 자신도 두 번쯤
말을 걸어 보았지만 대답도 않던데요. 이만한
조짐이 또 어디 있으려구요? 주위 사람에게
무례한 것은 결국에 사랑의 본질이 아니겠어요?"
"아, 아무렴... 그 사람이 느꼈다고 내가 상상하는
사랑은 아마 그럴 테지. 가엾은 제인! 그애
기질로선 쉽게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아 아주 안됐구나.
차라리 너에게 그 일이 일어났으면 좋을
뻔했구나. 너 같으면 곧 웃어넘기고 말 테니까
말이다, 리지아. 그런데 그애에게 우리가 권하면
우리하고 함께 런던으로 갈 것 같으냐? 장소를 바꾸면
혹시 무슨 소용이 될까 해서 그런다....
게다가 집을 잠깐 떠나면 꽤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엘리자베드는 이 제안을 아주 반갑게 받아들이고
언니도 마다 않고 승낙해 줄 것으로 확신했다.
"난 말야."
그렇게 가디너 부인이 덧붙여 말했다.
"그 젊은 사람 생각 때문에 그애가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우린 런던에서도 전연
다른 구역에 살고 있고, 연고 관계 역시 전혀 다르고
또 너도 알다시피 우린 외출이라곤 안하니까,
만일 그 사람 쪽에서 찾아오는 일이라도 없으면 두
사람은 꿈에도 만날 일이 없게 되는 거야."
"그것은 전혀 불가능할 거예요. 왜냐하면 그분은 지금
친구분한테 감금 당하고 있고, 그리고 다아시
씨란 사람은 런던의 그런 구역에까지 제인을 방문케
하지도 않을 것이니까요. 외숙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아시 씨 자신도 그레이스처치(시내의
상업지구)란 지명을 듣기는 했겠지만, 그 사람이
발걸음을 한 번이라도 그곳으로 옮겼다가는 그곳의
더러움을 씻어 버리는 데에 한 달이 걸려도
모자라는 형편일 테고요, 더우기 틀림없이 빙리 씨도
다아시 씨와 함께가 아니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더욱 잘됐구나. 두 사람이 통 안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제인은 그 사람의 누이와 편지 연락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 그 사람 누이동생은 안 찾고는
못 배길 것 아냐?"
"언닌 그런 사람하고의 교제는 딱 끊고 싶은 거예요."
빙리가 제인을 만나는 것을 저지 당하고 있다는 흥미
잇는 점과 마찬가지로 엘리자베드는 이 점에
대해서도 확신이 있는 체했으나, 자기에게 그런 확신을
준 그 문제를 곰곰 생각해 보니 전연 희망이
없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열망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의 애정이 되살아나고 또 친구의 영향도 제인의
매력이라는 자연스러운 영향력에 의해 보기 좋게
지게 될 것이 가능한 일이며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그녀는 때때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베네트 양은 외숙모의 초대를 기꺼이 받아 들였다.
캐롤라인이 오빠와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은 아닌
만큼 이따금 그녀와 함께 아침나절을 지내더라도 그와
얼굴을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정도밖에는
빙리 가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가디너 부부는 롱본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지만
필립스 부부라든가 루커스 가의 사람들,
나아가서는 장교들로부터 초대 없는 날이란 거의
없었다. 베네트 부인은 동생 부부를 대접하느라
너무나 애를 썼기에 그들은 한 번도 가족들만 식탁에
함께 앉아 보질 못했다.
자택에서 대접을 하게 될 때는 언제나 몇 사람의
장교가 눈에 띄었고 그 안에는 위컴 씨가 정해 놓고
한 몫 끼여들었다.
가디너 부인은 전에 엘리자베드가 열을 올려 그를
칭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에는 세심하게 두 사람을 관찰했다. 겉으로 보아서
매우 진지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으나 서로가 좋아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기에 다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허어퍼드셔를 떠나기 전 그 문제에 대해서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해서 그러한 애정 관계를
조장하는 것은 무분별한 일이라 깨닫게 하려고 결심했다.
위컴이 가디너 부인을 기쁘게 해주는 한 수단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의 매력과는 다른 데가 있었다.
이럭저럭 한 10년이나 12년쯤 전에 결혼하기 앞서
그녀는 더비셔에서 꽤 오래 산 적이 있었는데
때마침 그가 그 주변 사람이어서 두 사람에게는 공통된
친지가 많이 있었다. 위컴은 5년 전에 다아시
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그곳에 가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옛친구들에 대한 듣지 못했던 새로운
소식을 전할 수가 있었다.
가디너 부인은 펨벌리를 본 적도 있었고, 고 다아시
씨의 일도 평판에서 들어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런 결과로 화제가 그칠 줄 몰랐다. 펨벌리에 관한
자기의 기억을 위컴이 말해 주는 것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선인의 인품을 찬양해 가며 그녀는 그를
즐겁게 해주고 또한 자기도 즐겼다. 문제의
다아시 씨가 위컴 씨에게 행한 박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자, 그 신사가 아직 어렸을 적에 평판이
났었던 성질과 그 이야기와 일치되는 점이 없는가
기억을 더듬다가 거만스럽고 짓궂은 소년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26
가디너 부인은 엘리자베드에 대한 주의는 두 사람만이
남아 말할 최초의 기회가 주어지자 알뜰하고
친절하게 행해졌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정직하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넌 머리가 좋은 애니까, 리지야, 그저 안된다고 말을
들으면 우겨가며 연애를 하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솔직이 말해서 걱정은 없겠지. 진지하게
말해 둔다만 넌 경계하는 게 좋을 게다. 재산도
없는데 무분별하다는 말을 듣기 일쑤인 애정에 네가
끌려들어서도 안되겠지마는 또 사람을
끌어넣어도 안된다. 내가 그 사람을 마다 할 이유야
없다. 그 사람은 정말 흥미를 갖게 하는
면청년이었다. 그 사람이 당연히 가져야 할 재산을
가졌다면 다시없이 어울리는 좋은 연분이겠다만.
그러나 그렇지가 못하니까 너의 꿈에 끌려가서는 못
쓴다. 넌 양식을 가진 애니까 우린 모두가 그걸
사용하길 바라고 있다. 너의 아버지께서도 너의 강한
의지와 훌륭한 행동을 기대하시고 계시다,
틀림없이. 아버지에게 실망을 드려서는 안된다."
"외숙모, 얘기가 자못 진지해졌군요."
"그래, 너도 나같이 진지해 달라는 거다."
"그러시다면 안심하셔도 돼요. 제 자신도
조심하겠지만 위컴 씨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겠어요.
그분에게 연애를 못하게 할께요, 저에게 만일 그걸 막을
힘이 있다면 말예요."
"엘리자베드, 넌 지금 진지하지가 못하다."
"죄송해요, 한 번 더 노력할께요. 전 현재 위컴 씨와
연애하고 있지 않아요. 그건 틀림없어요.
그렇지만 그분은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제가 만나 뵌
사람 중에서 그렇게 기분 좋은 사람도 없을
거예요.(그리고 그분이 만약 절 사랑하게
된다면) 그분께선 그런 생각 안하시는 게 좋겠지만, 그
속에서 무분별을 찾아낼 수가 있어요. 아, 그러나 그
다아시 씨인가 하는 사람 정말 미워요. 아버지께선
절 높이 평가해 주시는 데 그건 다시없는
영광이므로 그 평가를 잃게 된다면 전
비참해지고 말아요. 그러나 아버지는 위컴 씨에게
호감을 갖고 계세요. 그러니까 외숙모, 저로서는
여러분 중의 누군가를 슬프게 해줄 수는 없어요.
그러나 저는 매일 같이 보고 있지만, 애정이 있을
경우 젊은이들은 지금 재산이 없다고 해서 결혼을
머뭇거리는 일은 별로 없는 판인데, 제가 어떻게
유혹 받을 때 제 또래의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겠어요?
하물며 거절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급히 서둘지 않는다는 것뿐이죠. 전 제 스스로가
서둘러서 그분의 의중의 인물이라고 믿지
않기로 하겠어요. 제가 그분하고 같이 있을 때도
희망을 안 갖기로 하겠어요. 요컨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어요."
"그 사람에게 너무 자주 여기에 오려는 생각을 말리는
것이 좋을 거야. 적어도 그 사람을 초대하는
일을 어머니 머리에 떠오르지 않게 하는 것이 좋아"
"사실은 일전에 그런 생각을 나게 했지 뭐예요."
엘리자베드는 그 일을 의식하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정말 그런 일을 안하는 게 현명해요. 그러나 그분이
항시 여기에 온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이번 주에 그렇게 자주 초대했던 것은 오직 외숙모를
위한 거지요. 손님에게는 언제고 상대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 생각을 외숙모도 알고 계실
테죠. 그렇지만 정말 제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지만
전 가장 현명하다고 인정받는 일을 하고 말겠어요.
이젠 이만하면 만족하시겠어요."
외숙모는 만족하다고 말했다. 엘리자베드는 외숙모의
친절한 조언에 감사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이러한 점에 대해 충고를 하고서도 원한을 사지 않은
드문 예였다.
콜린즈 씨는 가디너 부부와 제인이 떠난 직후
허어퍼드셔에 다시 나타났지만 루커스 가에다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그가 왔어도 베네트 부인에게는 그다지
큰 불편이 없었다. 그의 결혼 날짜가 급작스레
다가오고 있었고 그녀도 마침내 할 수 없는 일로
생각해서 짓궂은 투로 말했다.
"두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빌어요."
몇 차례 되뇌어 보일 정도로 체념하고 말았다.
목요일이 결혼식이어서 수요일에는 루커스 양이
롱본으로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하려고 했을 때 엘리자베드는 마지못해서
무뚝뚝하게 하는 어머니의 인사가 부끄러워, 진정한
호의에서 그녀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함께
계단을 내려올 때 샬로트가 말했다.
"종종 소식을 들려 주세요, 엘리자"
"그 일에 대해선 걱정 마세요."
"또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놀러와 주시겠어요?"
"허어퍼드셔에서 자주 만나기로 해요."
"난 잠시 동안 켄트를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 헌스퍼드에 오시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방문해 봤자 별로 기쁠 것 같지 않다는 것은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엘리자베드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버님과 마리아가 3월에 오기로 되어 있거든요."
샬로트가 덧붙여 말했다.
"당신이 그들과 어울려 주시길 동의해 줬으면 해요.
정말 엘리자, 아버님이나 마리아 못잖게 환영해 드릴께요."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신랑 신부는 교회 문 앞에서
켄트를 향해 출발했다. 그러한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누구나 할 말과 들을 이야기가
풍성했다. 엘리자베드는 곧 친구한테 소식을 받고,
그들의 서신 왕래는 전례 없을 만큼 규칙적으로
빈번해졌다. 다만 서로가 숨김없이 되기란 불가능했다.
엘리자베드는 그녀에게 편지를 띄울 때는 반드시
다정한 친밀감이 끝나고 말았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편지를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라기보다는 과거를 위한 일이 되어 버렸다.
샬로트의 처음 편지는 꽤나 기다려지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녀가 자신의 새 가정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이며 캐더린 부인이 마음에 들게 되었을까, 또
자신의 행복이 어느 정도라 말할 것인가, 그러한 것들의
호기심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편지를 읽고
나자 엘리자베드는 샬로트가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꼭
이쪽에서 예견하고 있던 대로를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즐겁게 사연을 써 나가면서 여러 가지 즐거운 일로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어떤 일에 대해
쓸 때도 반드시 칭찬을 빼놓지 않았다. 집도 가구도
이웃도 도로도 전부다 그녀의 마음에 들고 캐더린
부인 태도는 아주 우호적이며 친절하다 했다. 그것은
콜린즈 씨가 묘사하는 헌스퍼드와 로징즈의
화면을 합리적으로 누그러뜨려 놓은 것이라 하겠다.
엘리자베드는 그 밖의 일을 알고 싶을 때는 자기
스스로가 그곳에 가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인은 이미 런던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동생에게 짧은 소식을 전해 왔다. 이
다음에 언니가 편지를 보내올 때는 빙리 집 안의
사람들에 대해 다소나마 씌어져 있었으면 하고
엘리자베드는 은근히 바랐다.
그녀는 두 번째 편지를 무척 기대했지만 대체적으로
이럴 때 오는 회답의 내용은 별것이 아닌
법이다. 제인은 런던에 도착해서 한 주일이 되었는데도
캐롤라인을 만나지도 않았고 편지도 받지를 못했다.
그녀는 롱본에서 마지막 띄운 편지가 어떤 실수로
해서 분실되고 만 것이 아니냐고 상상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이유를 붙여 보았다.
"외숙모께서 내일 그쪽으로 갈 예정이라니 나도 그
기회에 그로스브너가에 들어가 볼까 한다."
방문이 끝나자 제인은 다음 편지를 보내 왔고 빙리
양을 만났다는 것을 알려 왔다.
"캐롤라인은 원기가 없어 뵈던데"
이것이 제인의 말이었다.
"그러나 날 보더니 무척 기뻐했고 왜 런던에
올라온다는 말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느냐고 나를
책망했어. 그걸 보니까 내 생각이 옳았지. 내가 보낸
마지막 편지가 닿지 않았다는 거야. 물론
오빠도 잘 계시냐고 물었어. 잘 지내기는 하지만
다아시 씨와 단짝이라서 남매가 얼굴을 맞대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거야. 다아시 양을 식사 초대한 것을 알게
됐어. 나도 만나 봤으면 좋겠어. 그러나
캐롤라인과 허어스트 부인이 외출하기로 돼 있어서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어. 멀지 않아 그들이
이곳을 찾아 주게 될 거야."
엘리자베드는 이 편지를 읽으면서 머리를 저었다.
어떤 우연한 일이 없는 한은 제인이 런던에 와
있다는 것을 빙리 씨가 알 리가 없다고 믿었다.
4주일이 지나도록 제인은 빙리 씨를 전혀 만날 수가
없었다. 만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고
스스로 타일렀다. 그러나 빙리 양의 냉담함에는 더 이상
맹목적일 수는 없었다.
2주일 동안이나 매일 아침 집에서 기다렸고 밤이 되면
그녀를 위해 새로운 구실을 고안해 낸 끝에 그
방문자는 마침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지체하는
시간이 너무 짧았고 게다가 태도에도 변화가 보여
제인도 이제는 그 이상 자신을 기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무렵 동생에게 쓴 편지에 그녀의 감정이
잘 묘사돼 있었다.
내 사랑하는 동생 리지는 빙리 양의 나에 대해
감정을 내가 전적으로 오해하고 있었노라고
고백해도 자기의 판단이 옳았다고 설마 우쭐대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사랑스런 아우여, 이번 일로
해서 네가 옳았던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빙리 양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내 신뢰감 역시
너의 의혹감에 못지 않게 자연스런 것이라 주장한다
해도 날 완고하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다오. 그
사람이 왜 나하고 친숙해지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만, 만일 같은
사태가 또 생겨날 경우 난 어김없이 또 오해하고 말 거야.
어제 처음으로 캐롤라인이 내 방문에 대한 예방을
한 거지만, 그 간에 단 한번이라도 편지 한 통,
편지 한 줄도 난 받지 못했던 거야. 방문해 왔음에도
조금도 기쁜 기색이 안보인 사실은 명확했었어.
좀더 일찍 찾아왔어야 할 텐데 하고 가볍게
형식적으로 사과했으나 다시 만나자고 하는 말은 한마디
없었고, 모든 것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고 났을 때 난 교제를 더 이상
계속하지 않을 수가 없어. 그 사람이 날 그런 식의
친구로 선택했던 것은 잘못이야. 친숙해지려고
접근해 온 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 쪽이었으니까 말야.
그러나 그 사람을 가엾게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끼고 있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자기 오빠에 대한 걱정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돼. 이 이상 내 입장을
명백히 할 필요가 없게 됐어.
우리들 족에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사람 쪽에서 여전히 걱정한다고
하면 나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를 쉽사리 설명이 될
줄 알아. 오빠란 누이동생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매우 중요한 존재이니까 그 사람이 오빠를
위해 어떠한 걱정을 하게 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적이며 상냥스런 일이 되는 거야. 그
사람이 지금도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게
나로서는 이상하게 느껴지는구먼. 왜냐하면 만약 빙리
씨가 날 조금이라도 좋아했더라면 우리들은
훨씬 전에 만났음에 틀림없기 때문이지. 캐롤라인이
한 말로 미루어 봐서 빙리 씨는 내가 런던에 와
있는 것을 틀림없이 알고 있으리라 믿어.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말투를 보게 될 때, 마치
빙리 씨는 진정 다아시 양을 사랑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드는 것같이 보인단 말야. 난 그걸
잘 모르겠어. 만일 내가 서투른 판단을
거침없이 한다면 모든 일에는 어딘가 모르게 이중성이
있는 것이라 말하고 싶어져. 그렇지만 난 슬픈
것은 몰아내고 날 행복하게 해주는 것, 즉 너의
애정이나 외삼촌 내외분 친절함만 생각하도록
노력할래. 곧 답장 보내 줘. 빙리 양 말로는 그 분은
다시 네더필드엔 안 돌아가시고 집도 처분해
버린다고는 했지만 확실한 것은 아냐.
우린 그런 걸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가
헌스퍼드에 있는 우리 친구들로부터 유쾌한
이야기를 들은 것을 나는 기쁘게 생각해. 제발 윌리엄
경이나 마리아와 함께 만나러 가도록 해.
틀림없이 즐거운 일이 거기에 있을 테니까... 이만 줄인다.
이 편지는 엘리자베드에게 어느 정도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제인으로서는 적어도 그 사람의
누이에게 더는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녀는
원기를 되찾게 되었다. 오빠한테 기대해 보았자
이젠 아무 소용이 안되었다.
그 사람의 애정이 두 번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은 바랄
수가 없었다. 그의 인격을 되새길수록 처지고
있었다. 그리고 제인에게는 이로운 일이 될지 모르나 그
사람에게는 벌로서 그가 곧 다아시 씨의
누이와 결혼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위컴 씨의 말에 의하면 다아시 양은 빙리 씨에게
자기가 저버린 여성을 몹시 애석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이다.
요즘 가디너 부인은 엘리자베드에게 이 신사 일로
해서 서로가 했던 약속을 잊지 말라고 했고 소식을
전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엘리자베드는 자기
자신보다는 외숙모를 만족시키는 내용을 써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위컴이라는 사람의 외양만의 애정은
숙어들었고 친절도 사라져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충분한 관찰력을 가지고
그러한 사실을 꿰뚫었으나, 그것을 보고 또
그것을 쓸 때도 강렬한 고통을 받지는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재산 문제만 허용했던들 그가 선택할 대상은 바로
자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녀의 허영심은
만족되었다. 별안간 1만 파운드의 돈이 생긴다는 것이
그가 새삼스럽게 접근하려고 하는 그 여성의
큰 매력이었지만, 이런 문제에서는 샬로트보다도 눈이
어두운 엘리자베드는 독립된 생활력을 갖고
싶어하는 그의 의지에 대해 그와 입씨름하지는 않았다.
그와 반대로 이처럼 자연스런 일도 없었다. 그래서
자기를 체념하자면 그에게도 약간의 고통은
뒤따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편,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현명하고 바람직한 조치라고 인정하고
진정으로 그의 행복을 빌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일을 엘리자베드는 가디너 부인에게 고백했다.
그리고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나서 그녀는 이렇게 써 나갔다.
친애하는 외숙모님, 저는 그리 많은 사랑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만일 제가 순수하고 마음을 고양시키는 정열을 정말
경험했더라면 저로서는 지금 그 사람의 이름조차
싫어지고 그에게 모든 재앙이 함께 하기를 빌었을
테죠. 그러나 저의 감정은 그분에 대해서도 따뜻할
뿐 아니라 킹 양에 대해서도 편견은 갖고 있지
않아요. 그 여자를 조금이라도 미워한다든가, 또 그
여자를 선량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든가 하는
그런 일은 없어요. 이런 것을 연애라고는 할
수 없겠죠. 경계했던 보람은 있었나 보죠. 그분에게
미친 듯이 연애를 했더라면 저는 친지분들에게
꽤나 흥미 있는 사람이 됐을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비교적 무의미한 존재가 됐다고 해서 조금도
후회스럽지는 않아요. 중요한 인물이 되자면 때로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되는 법이죠. 키티와
리디어는 그의 배신을 저 이상으로 깊이 원망하고
있어요. 그애들은 아직 세상 물정이 어두워서
잘생긴 남자 역시 못생긴 남자나 다름없이 먹고
살아가야 한다는 한탄스런 사상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거죠.
27
롱본의 가족에겐 더 이상 큰 사건도 없이 때로는 길이
나쁘거나 추운데도 메리튼까지 걸어가야만 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이 1월과 2월이
지나가고 말았다. 3월에 엘리자베드는 헌스퍼드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곳으로 갈 생각을
진지하게 하질 않았으나, 샬로트가 그 계획을 꽤 기대
하고 잇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도 차츰 전보다는
확고하고 더욱 기꺼이 생각하게 되었다. 떨어져 있으려니
다시 샬로트를 만나고 싶은 기분이 더해 갔고
콜린즈 씨에 대한 혐오감도 약화되어 갔다.
그 계획에는 신기함도 깃들여 있는데다가, 집에 있어
보았자 어머니도 그렇고 동생들하고도 별로
말이 안 통하는 처지에 완전무결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약간 장소를 바꾸어 보는 것도 그 자체로서 과히
싫지는 않았다. 그 뿐이랴, 이번 여행에서 제인의
얼굴도 잠깐 볼 수 있게 된다. 요컨대 그 시기가
가까와짐에 따라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것은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마침내
샬로트의 계획대로 낙착되었다. 엘리자베드는 윌리엄
경과 그의 작은 딸과 같이 동행하기로 되었다. 그 간에
런던에서 1박 한다는 수정안이 첨가됨으로써
계획은 정확히 완전한 것이 되었다.
다만 단 한가지 고통은 아버지와 헤어지는 일이었다.
어버지는 그녀가 없게 되면 틀림없이 쓸쓸해 할
것이라 생각되었는데, 막상 그 시기가 오자 그녀가
떠나가는 것이 싫어서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면서
자기도 딸 편지에 답장을 보내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녀와 위컴 씨 사이의 이별은 매우 화기애애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남자 쪽이 더욱 그러했다.
지금은 딴 여성의 애정을 추구하고는 있지만,
엘리자베드는 그의 마음을 불태우고 그를 끌기에 알맞은
여성이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동정해 주었던
첫번째의 여성이기도 했고, 그가 동경해 마지
않던 첫번째 여성이었던 사실을 그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이별의 말을 나누고 여행이 더욱 즐거운 것이 되길
빌고 캐더린 드 버그 부인에게 어떤 기대를
했으면 좋을 것인가 주의해 주고, 부인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 모든 사람들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은
항상 일치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하는 그 태도에는
적정과 초조가 엿보였다.
바로 그 점이야말로 그녀로 하여금 가장 진실한
호의로써 그에게 애착을 느끼게 한 점이라고 그녀는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결혼을 하든 독신으로
있든 간에 언제고 자기에게는 상냥스럽고 기분 좋은
사람의 정형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면서 그와 헤어졌다.
다음날 그녀의 여행 상대들은 위컴 씨에 대한 호감을
덜하게 만들 만한 상대들은 못되었다. 윌리엄
루커스 경과 쾌활하기는 하나 아버지와 다름없이 머리가
텅 비어 있는 딸 마리아 두 사람한테서
귀담아들을 만한 얘기는 하나도 없어서 흘려 버렸다.
엘리자베드는 어리석은 이야기가 좋았지만 윌리엄
경의 그것에는 싫증이 난 지 이미 오래다. 그는
배알과 수작의 경이에 대해서 하등 새로운 것을 말하지
못했고 그의 예절도 이야기나 다름없이 낡은 것이었다.
불과 24마일의 여행으로 그것마저 일찍 떠났기 때문에
정오에는 그레이스처치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가디너 씨 댁 문 앞에 마차를 갖다 대었을 때 제인은
응접실 창가에서 그들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에 들어서자 그녀는 거기까지 와서 영접했다.
엘리자베드는 언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여전히 건강해 보이고 아름다운 것을 보자 매우 기뻤다.
극성스러운 나머지 사촌이 오는 것을
응접실에서 기다릴 수 없어서 계단으로 줄지어 몰려온
어린 사내아이들과 계집아이들은 열두 달 만에
만나는 수줍음 때문에 더 이상 내려오질 못했다.
모든 일이 기쁘고 친절한 일로 가득 찼었다. 낮
동안은 더 말할 나위없이 즐겁게 보냈고 아침이면 한
바탕 소란을 피우고 쇼핑을 다니고 야간에는 극장에서 보냈다.
엘리자베드는 그때서야 겨우 외숙모 옆에 앉는 데
성공했다. 처음의 화제는 제인에 관한 일이었다.
이것저것 세밀한 질문 끝에 제인이 언제나 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우울한
때가 있다는 대답에는 놀라기보다는 차라리 슬퍼졌다.
그러나 그 우울한 기간이란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가디너
부인은 또 빙리 양이 그레이스처치 가를 방문했던
정경을 자세히 말해 주었고, 가끔 제인과 자신 사이에
이루어졌던 대화를 되뇌어 보였으나, 그 이야기
내용에서 제인은 진심으로 교제를 단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디너 부인은 그리고 나서 자기 조카가 위컴 한테
딱지 맞았다고 놀려대고 또 용케 그것을 참아낸 데
대해 칭찬했다.
"그건 그렇다 하고, 예 엘리자베드야, 킹 양은 어떤
여자냐? 우리 친구를 돈만 아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싫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외숙모, 혼담이 있을 경우 돈을 앞세우는
것과 조심성 있는 동기가 어떻게 틀리는 거예요?
조심성은 어디서 끝나고 탐욕은 어디서 시작되는 거죠?
작년 크리스마스 땐 무분별하시다면서 그분이
저하고 합치는 것을 두려워하셨지만, 지금 와선 그분이
단 1만 파운드 재산을 가진 아가씨를 자기
것으로 하려는 것을 돈만 안다고 하시네요."
"킹 양이 어떤 아가씨인가 말만 해주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난 알게 된다."
"정말 좋은 여자라고 생각해요. 그 여자에겐 별로
나쁜 점이라곤 없어 보여요."
"그렇지만 그 사람은 그 여자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서 그 여자가 그 재산의 소유자가 될
때까지의 일을 조금도 눈여겨 보지 못한 거야."
"아니... 그래서 안되나요? 저에게 돈이 없다고
해서 그분이 저의 애정을 얻지 못한다면 그분이
조금도 좋아하지 않고 저만큼이나 빈곤한 여자하고
연애를 하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번 일이 있은 직후에 그 여자에게 호의를
표시하다니 점잖지가 못한 것 같다."
"곤란한 처지에 처해 있는 사람은 딴 사람들이 지키는
점잖은 예의 같은 건 지킬 겨를이 없는 거예요.
그 여자가 반대 않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해요?"
"그 여자가 반대 않는다고 그가 정당한 건 아니다.
그건 그 여자에게 뭔가... 상식이나 정서 같은
그런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거야."
"좋아요, 좋으실 대로 생각하세요."
엘리자베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돈에 눈이 멀었고 그 여자는 멍청이로 해 두세요."
"아니 리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더비셔에
오래도록 살아온 청년을 나쁘게 생각하진 싫어."
"아, 그런 이유 만이라면 난 더비셔에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좋은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허어퍼드셔에 살고 있는 그들의 친구들도 더 잘난
데가 없구요. 그 사람들에겐 이젠 신물이 나요.
정말 감사하게도! 난 내일 상냥스런 데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태도도 그렇거니와 머리도
머리도 그렇고 칭찬할 데라곤 하나도 없는 남자에게
가기로 돼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알고 지낼
만한 사람은 바보 같은 남자뿐인가 보죠"
"말조심, 리지. 그 말 속엔 어쩐지 상심의 내음이
짙게 들었구나"
연극이 끝나 뿔뿔이 헤어지기 전에 그녀는 외삼촌
내외한테 이번 여름에 떠나기로 되어 있는
유람 여행에 동행하자는 예기치 않은 행복한 권유를 받았다.
"어느 정도로 멀리까지 가게 될지 아직 결정은
안했지만, 아마 호반 지방까지는 가게 될 거야."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엘리자베드에게는 이만큼 기쁜 계획이 없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다.
"외숙모. 외숙모. 이런 기쁜 일이, 또 이런 행운이
어디 있겠어요!"
그녀는 기쁨에 넘쳐 소리질렀다.
"외숙모는 저에게 새로운 생명과 활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거예요. 상심과 우울이여, 안녕. 바위와
산들에 비할 때 인간이란 뭐겠어요? 우리는 그 얼마나
황홀한 시간을 갖게 되겠어요! 우리는 그
얼마나 황홀한 시간을 갖게 되겠어요! 그리고 일단
돌아올 땐 여느 여행자들처럼 뭣 하나 정확하게
말 못 한대서야 되겠어요. 우리가 어디에 갔던가를 잘
알아야 하며, 무엇을 보고 왔는지를 잘
기억하기로 해요. 호수와 산고 강이 우리들 상송
속에서 혼잡을 이루어 놓지 않도록 하구요. 그리고
또 어떤 풍경에 대해 말하려 할 때 그곳이 어디서
어느 만큼의 거리였던가를 입씨름을 않도록
말이에요. 우리들이 먼저 한바탕 늘어놓는 일이 여느
여행자들처럼 상대방을 어안이벙벙하게
만들어서는 안되게 말예요."
28
이튿날 여행에서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이
엘리자베드에게는 새롭고 흥미 있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즐거움으로 흥청거렸다. 왜냐하면 언니를
만나 보니 건강에 대한 걱정도 싹 가실 정도로 활기에
차 있었고 북부 지방 여행에 대한 기대가 끊임없는
기쁨의 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차가 본가도를 벗어나서 헌스퍼드로 통하는 작은
길로 들어서자 시선은 일제히 목사관으로 쏠렸고
길이 굽어들 때마다 그곳이 보이지나 않을까 하고 마음 죄었다.
로징즈 저택의 울타리가 한편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그곳 주민들에 대해서 들었던
일을 상기해 가며 미소지었다.
마침내 목사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로 쪽으로
비스듬히 경사진 정원, 그 안에 서 있는 집,
녹색담과 월계수 울타리,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도착을
알려주고 있었다.
콜린즈 씨와 샬로트가 문간에 나타났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미소를 짓고 있는 동안에 마차는 짧은
자갈길이 집까지 계속되어 있는 작은 문 있는 데까지
도착했다. 그들은 곧 마차에서 내려 서로의
재회를 기뻐했다. 콜린즈 부인은 생기에 넘치는
즐거움으로 친구를 맞아들였으며 엘리자베드는 자기가
이렇게 환영받는 것을 보고 오길 잘했다고 더욱
만족해했다.
그리고 그들은 입구가 깨끗하지 않느냐 하고 그가
지적했기에 약간 지체되기는 했지만 곧 집 안으로
안내되었다. 응접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다시 한 번
허식에 찬 격식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되었다고 말했고, 그의 부인더러 다과를 가져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의기양양하리라고는 각오했던
바였다. 균형이 잘 잡힌 방이라든가 방의 향, 가구
등을 자랑하고 있는 그를 볼 때, 마치 그녀 쪽에서 그의
구혼을 거절함으로써 얼마나 손해 보았던가를
그녀로 하여금 느끼게 하려는 듯이, 그가 자기에게
특별히 자랑하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어느 것 하나 항상 깨끗하고 기분 좋게
보였으나 그녀는 후회의 한숨을 쉬어 가며 그를
만족시켜 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히려 자기 친구가 이러한 배우자를
가지고서는 사뭇 즐거워하는 것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자기 처가 당연히 부끄러워할 만한 얘기를 콜린즈 씨가
입에 올린 것은 분명히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런 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샬로트 쪽으로 시선을
보냈던 것이다. 그녀가 한두 번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았지만, 대부분 듣지를 못했었다.
손님들이 방 안의 가구를 찬장 쪽에서 벽난로 앞쪽
망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칭찬하고 그 다음
여행에서의 일이며 런던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앉아 있다가 콜린즈 씨는
모두에게 정원으로 산책하자고 권유했는데, 그곳은
널찍하고 잘 설계되어 있었고 손질은 자신이
맡아보고 있었다. 이 정원에서 일하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고상한 취미였다.
샬로트도 이 운동이 건강에 좋으며 자기로서도 되도록
그것을 권하고 있다면서 자못 의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도 엘리자베드도 감탄했다. 정원에서
콜린즈는 보도나 십자형 보도를 빼놓지 않고
안내했으며, 자기 쪽에서 찬사를 요구해 놓고서는 입을
벌릴 여유를 주지 않고서 전망이란 전망은
모조리 지적해 가며 아름다움 같은 것은 제쳐놓고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쪽에 밭이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 제일 먼
거리에 있는 숲에는 나무가 몇 그루 있는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원, 아니 이 지방이나 이
왕국이 자랑삼고 있는 모든 전망 중에서 그의 집
정면의 거의 맞은 편에 있는 장원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로징즈의 전망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그것은 높은 지대 위의
으뜸가는 장소에 세워진 아름다운 근대풍의 건물이었다.
정원에서 콜린즈 씨는 자기의 두 목초지까지 일행을
데리고 가고 싶었으나 여자들이 아직 남아 있는
서리를 밟을 만한 신을 신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되돌아왔다.
윌리엄 경이 콜린즈를 동반하고 있는 동안에 샬로트는
동생과 친구에게 집안 구경을 시켜 주면서,
남편의 도움 없이 안내할 기회를 얻었음인지 매우
기뻐했다. 그것은 규모는 작으나 건축이 잘되어 있고
편리한 구조의 집이었다.
모든 것들이 깨끗이 잘 정돈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샬로트의 덕분이라고 엘리자베드는
인정했다. 콜린즈 씨를 잊게 되자 확실히 주변에는
편안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고 샬로트가 그것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 것으로 미루어,
엘리자베드에게는 콜린즈가 어쩌다 잊혀지는 일이 있는
일이라고 미루어 살필 수가 있었다.
캐더린 부인이 아직 이 지방에 있는 것은
엘리자베드도 이미 알고 있었다. 식사 도중에 다시 그
이야기가 나오자 콜린즈 씨는 끼여들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엘리자베드 양, 당신은 이번 일요일에
캐더린 드 버그 영부인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내가 말씀드릴 필요조차 없겠지만 부인을 만나시는
일은 당신에겐 크나큰 기쁨이 될 줄로 압니다.
워낙 사근사근하신데다 겸손하신 분이시라 예배가
끝난 후에 틀림없이 일부나마 총애를 받으시게
될 겁니다, 나 주저 않고 말씀드립니다만 당신이
체류하고 있는 동안, 부인께서 우리들을 초대해
주실 때는 언제나 당신과 내 처제 마리아를
빼놓으시지를 않으실 겁니다. 내 처에 대해선 정말 잘해
주십니다. 우리들은 매주 두 번 로징즈에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만 절대로 걸려서 돌려보내신 일이
없으니까요. 부인의 마차가 정해 놓고 우릴 위해
준비되죠. 부인의 마차 중 한 대라고나 할까,
부인께선 몇 대를 소유하고 계시니까요."
"캐더린 영부인은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시고 분별
있으신 분이세요. 그리고 이웃으로서는 다시없이
친절하시고"
샬로트가 덧붙여 말했다.
"여보 당신 말이 옳아.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오. 아무리 존경해도 다 못할 그런 부인이시지요."
그날 밤은 주로 허스퍼드셔의 소식에 대해 말했고
이미 편지에 썼던 일들을 되뇌어 가며 시간을
냈다. 그리고 밤이 지나자 자기 방에서 혼자 있게 된
엘리자베드는 샬로트가 만족해하는 정도에
대해 생각했고 남편을 이끌어 가는 그녀의 방식,
남편에게 참아 가는 자세 같은 것을 이해하고 그리고
모든 일을 제법 솜씨 있게 처리해 나간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이 방문 인정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예측해
가면서 부부간의 평상시 일에 있어서의 조용한
진행, 콜린즈 씨의 귀찮은 입방아, 그리고 로징즈
가족과의 흥겨운 교제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곧
생생한 상상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다음날 정오쯤 방 안에서 산책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까, 별안간 아래층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와
그것이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을 알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잠시 귀를 기울이자 누군가가 몹시 다급해서 2층으로
뛰어오르며 큰 소리로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문을 열자 층계에서 마주친 마리아가
흥분해서 크게 소리질렀다.
"아, 엘리자! 어서 서둘러서 식당으로 들어오도록
해요, 매우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게
뭔지 알리진 않겠어요. 지금 당장 급히 내려오도록 해요."
엘리자베드는 이것저것 물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마리아는 그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 했고,
두 사람은 그 경이를 찾아볼 양으로 골목길을 향한
식당으로 뛰어내려갔다. 그것은 정원의 문 옆에서
나직한 두 마리가 끄는 사륜 마차를 타고 들어선 두
사람의 부인이었다.
"이걸 가지고 그래?"
엘리자베드가 소리질렀다.
"난 또 돼지 떼라도 정원으로 들이닥친 줄 알았지,
캐더린 부인과 따님 뿐이잖아!"
"아, 아녜요!"
엘리자베드의 착각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마리아가 말했다.
"그분은 캐더린 부인이 아니세요. 저 나이 많은
부인은 그분하고 함께 살고 계시는 젠킨슨
부인이시고 또 한 사람은 드 버그 양이에요. 저분 좀
보셔요. 정말 작은 분이시네요. 저렇게 마르고
작은 사람이 또 있으려구요!"
"이렇게 바람 센 날 샬로트를 밖에다 세워 두다니 아주
실례되는 분이시군. 왜 집 안으로 안 들어온다지?"
"아, 언니 말에 의하면 좀처럼 안 들어오신대요. 드
버그 양이 들어오기만 한다면 그건 대단한 호의가 되는 거죠"
"난 저분의 용모가 맘에 드는데"
엘리자베드는 다른 일을 마음 속에 그려보며 말했다.
"저 여잔 몸이 불편한 데다가 험상궂어 보이는군.
그렇지. 저 여잔 그분에겐 안성마춤이야. 썩 잘
어울리는 부인이 될 거야."
콜린즈 씨와 샬로트 두 사람은 문간에서 서서 그
부인들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의 시선을 유달리 끈 것은 윌리엄 경이
현관 있는 데 서서 눈앞에 있는 높으신 분을
눈여겨 보며 드 버그 양이 자기 쪽을 볼 때마다 연신
조아리는 모습이었다.
그 이상 말한 만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부인들은
마차를 타고 갔고 남은 사람들은 집 안으로 돌아왔다.
콜린즈 씨는 두 처녀를 보자마자 그녀의 행운을
축하했는데 그것에 대해 샬로트가 설명을 붙이고
전부 로징즈로 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통보했다.
29
콜린즈 씨의 승리의 기쁨은 이 초대의 결과 완전히
것이 되어 버렸다. 눈이 휘둥그래진 손님들에게
자기의 후원자의 위엄을 돋보이게 해주고 자신과 자기의
부인에 대해 그분의 정중한 태도를 보게 하는
것만이 짐짓 그가 원했던 바였다. 그렇게 하기 위한
좋은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오게 된 것도 캐더린
부인이 평민적이라는 한 예이며, 그것을 어떻게
칭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직하게 말해서"
그가 그렇게 말했다.
"영부인께서 우리들을 일요일에 로징즈에서 차와
저녁을 함께 하자고 초청하셨다 해서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마음이 고우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친절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께서 도착하신 즉시 그곳에서
식사 초대를 해 오실지(더우기 한 사람 빼놓지
않고 말입니다) 누가 상상조차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일에는 난 그다지 놀라지 않고 있지."
윌리엄 경이 대답했다.
"높은 분들의 예법이라는 것이 실제 어떤 것인지 내
신분으로서 이미 알 수가 있었거든. 궁전
주변에서는 그러한 품위와 교양이란 것이 드문 편도
아니란 말씀이야."
그날은 하루 종일 아니 다음날 아침까지 화제라고는
거의 로징즈 방문에 관한 일뿐이었다. 콜린즈
씨는 방 안의 광경이라든가 하인이 몇 명이나 되고
훌륭한 식사 등으로 해서 모두가 위압을 당해서는
안되며 어떤 일을 예상하고 가는가를 그들에게 일러주었다.
그는 여자들이 각기 화장을 하기 위해 흩어지려 했을
때 엘리자베드에게 말했다.
"당신은 복장에 관해서 신경 안 써도 돼요. 캐더린
부인은 자신이나 따님들에 어울릴 그러한 의상을
우리들에게는 바라실 분이 아니시지요. 그저 권하고
싶은 것은 당신 옷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 입으면 되지, 그 이상의 것은 할 필요가
없어요. 캐더린 부인께서는 신분의 한계가 명백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여자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두세 번
각지의 방을 찾아 가서 캐더린 부인은 만찬에서
기다리는 것을 매우 싫어하니까 빨리 서두르라고
충고했다. 영부인과 그녀의 생활양식에 대해 여러
가지 엄청난 설명을 듣고서 그리 남 앞에 나서 보지
못한 마리아 루커스는 로징즈에서 있을 자기
소개에 관해 마치 그녀의 아버지가 세인트 제임즈
궁전에서 높으신 분을 만날 때와 같이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날씨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그들은 저택을 횡단해서
반 마일 정도를 즐겁게 걸어갔다. 장원이라는
것은 원래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멋있는 광경을 지니고
있는 법이라 엘리자베드는 마음껏 즐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콜린즈 씨가 그렇게 되리라 예상했던 것만큼은
그 경치를 보고 그리 기뻐하지 않았고, 그 집
정면의 창문 수를 일일이 헤아렸어도, 그리고 유리창
전체에 일찌기 루이스 드 버그가 얼마만한 금액을
들였던가 설명해도 그다지 감동하지를 않았다.
현관 계단을 올라가면서 마리아의 가슴은
시시각각으로 두근거림이 더해 갔고 윌리엄 경까지도
전혀 평정한 표정을 유지하기 못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캐더린 부인에 대해서는
그녀가 무엇인가 비범한 재능, 나아가 기적적인 미덕
같은 것으로 해서 공경하고 두려워할 만한
인품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 없었다.
그저 돈과 지위로 말미암은 위엄이라면 당당히 대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콜린즈 씨가 황홀해지면서 아름다운 조화와 완벽한
장식이라고 지적했던 현관에서 그들은 객실을
통과해 캐더린 부인과 딸을 젠킨슨 부인이 앉아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영부인은 정중히 일어서서
그들을 맞아들였다. 그리고 콜린즈 부인은 소개하는
일은 자기가 맡겠다고 남편과 이야기했기 때문에
남편 같으면 필요하다고 생각했음직한 사과의 말이나
감사의 말들을 생략해 버리고 적절히 소개해 나갔다.
세인트 제임즈 궁전에서 기다린 일이 있었던 윌리엄
경이었지만, 주위의 장엄함에 위압당해서 고개를
나직이 떨구고서 한마디 말도 없이 자리에 참석할
뿐이었다. 딸도 거의 얼이 빠질 정도로 당황해서
어느 쪽을 향해야 좋을지를 모른 채 의자 끝에 자리잡고 앉았다.
엘리자베드는 자기가 이러한 장면에 매우 태연하게
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의 부인을 침착하게 관찰해 낼 수가 있었다. 캐더린
부인은 키가 크고 몸집이 큰 편이며 한때는
예뻤으리라고 믿어지는 선이 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태도에는 사람하고 잘 화합하려는 데가 없어
보였고 그들을 맞는 태도에도 손님들에게
자신들의 낮은 신분을 잊게 해주지를 않았다. 침묵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할 감을 주는 그런 힘은
없었고, 그저 입에 담는 것은 뭐든 위엄 있는 어조로
말했는데, 거기에 그녀의 자존심이 강하게 나타나
있었다. 엘리자베드에게는 그 즉시로 위컴 씨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하루만의 관찰에서 캐더린
부인은 위컴 씨가 묘사해 주었던 바로 그대로의 그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머니를 눈여겨보고, 그 얼굴 모양이나 태도에는
어딘지 모르게 다아시 씨와 닮은 데가 있는 것을
곧 발견하고 나서 딸 쪽으로 눈을 돌리자 그 여위고
작음 몸집에는 마리아와 거의 똑같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녀간은 자세며 얼굴이 전혀 닮은 곳이라곤
없었다. 드 버그 양은 창백하고 병약해
보였다. 얼굴 모양은 못생긴 편은 아니었으나
보잘것없는 편이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젠킨슨 부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
외에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그 부인의
풍채에도 이렇다 하게 시선을 끄는 곳은 없었고, 그저 드
버그 양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여 그녀의
문앞 적당한 방향에다 장막을 가리는 데에 열중했다.
얼마간 앉아 있다가 손님들은 죄다 멋있는 광경을
보기 위해 창문 앞으로 갔다. 콜린즈 씨가 거기서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를 설명하기 위해 뒤따랐고,
캐더린 부인은 여름철 광경은 한층 더 좋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만찬은 다시없이 호화로운 것으로 콜린즈 씨가 약속한
대로 하인도 많았고 접시도 많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미리 이야기한 대로 그는 부인의 소망에 따라
식탁의 끝에 자리잡고 마치 인생에서 더 이상
위대한 일은 없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기를
썰어 먹으면서 칭찬과 말을 재빨리 해댔다. 상
위에 나오는 요리는 그가 먼저 칭찬하면 다음에는
윌리엄 경이 칭찬했다.
윌리엄은 이제는 마음이 가라앉아 사위가 하는 말을
되뇌었는데 캐더린 부인이 과연 그것을 용케
참아 내는지 엘리자베드에게는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캐더린 부인은 그들의 터무니없는 칭찬에
만족해했고, 특히 식탁 위의 어떠한 요리가 그들에게
신기한가를 알게 되었을 때는 자못 만족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자리에서는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엘리자베드는 기회만 있으면 자진해서 이야기할
참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샬로트와 드 버그 양 사이에
끼여 앉게 되었다. 샬로트는 캐더린 부인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한창이었고, 드 버그 양은 식사
도중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젠킨슨 부인은 주로
드 버그 양이 식사하고 있는 일에만 신경을 썼고,
억지로 다른 요리를 권하기도 하고 또는 기분이
나쁘지나 않나 걱정도 했다. 마리아는 어림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남자들은 식사와 찬양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부인들은 응접실에 돌아오자 캐더린 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녀는
커피가 나올 때까지 계속 말을 해 나가면서 모든 문제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그
단정적인 태도는 자기 판단을 반박 당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또 샬로트에게 가사에 관한 일들을 매우
자상하게 물었으며, 그러한 모든 관리에 대해 적잖은
충고를 했고, 그와 같은 적은 가족을 질서정연하게
운영하는데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일일이 말하고,
소와 닭을 돌보는 일에도 지시를 했다. 엘리자베드는 이
지체 높은 부인이 남에게 지시하는 경우에는
어떤 하찮은 일도 빠뜨리지를 않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콜린즈 부인과 이야기하는 도중에 그녀는 마리아와
엘리자베드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으나, 특히
엘리자베드에게 질문을 했다. 부인은 특히 그녀의
집안 관계를 잘 몰랐지만, 매우 점잖고 말쑥한
처녀 같다고 콜린즈 부인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매는 몇 명이며 당신보다 손위인가 아니면
손아래인가, 그 중의 누구에게 혼담이 생기고
있는가, 모두들 예쁜가, 어디서 교육을 받았는가,
아버지의 마차는 어떤 종류이며 어머니의 성은
무엇이냐는 등의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질문이 실례되는 것들이라
생각하면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캐더린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의 재산은 콜린즈 씨가 상속하기로 되어 있는
줄 알고 있어요."
그는 샬로트를 향하여
"당신을 위해선 그거 잘됐군요.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여자 쪽에서 재산 상속할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봐요.... 루이스 드 버그 가에선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신은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가요, 베네트 양?"
"조금은요."
"아, 그렇다면 조만간에 한 번 들려 주세요. 우리 집
악기는 아마 괜찮을 거예요.... 언제고 한 번
연주 해보도록 하세요. 형제들도 연주와 노래를 하시던가요?"
"그 중의 한 사람만"
"왜 모두 함께 배우지 않구서? 함께 배웠으면
좋았을 걸. 웨브 양 자매들은 모두 연주를 할 줄
아는데도 아버지의 수입은 댁 아버지보다 못하단
말예요. 그림은 그리시나?"
"아뇨, 못합니다."
"아니, 자매 중에 누구도?"
"예, 한 사람도"
"거 참 이상한 일이네요. 그러나 그런 기회가 없었나
보죠. 어머니께선 매년 봄이면 자녀들을
런던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선생님에게 붙여 줬어야 했어요."
"어머님은 그렇게 하지는 데 이의가 없으셨겠지만,
아버지께선 런던을 덜 좋아하셔서"
"가정교사는 그만두셨던가요?"
"저희들은 가정교사를 둬 본 일이 없었습니다."
"가정교사가 없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가정교사 없이 딸 다섯을 기르다니! 난생 처음 듣는
얘기요. 어머니께선 당신네들 교육을 위해 노예가 되셨겠구먼"
엘리자베드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보증하면서도
미소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누가 당신네들을 가르쳤던가요? 누가 또
뒷바라지를 했지요? 가정교사 없이는 등한시됐음이 분명하지."
"어떤 가정에 비교하면 저희들이 그랬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저의들 중에서 배우고 싶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방법이 있었을 거예요. 저희들은 항상
독서하라고 격려 받았고 필요한 만큼의 명작은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게으름 피우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 그랬을 거예요. 그렇지만 가정교사가 있었으면
게으름 피우지 못하게 했을 거예요. 내가 만일
당신 어머님을 알았던들 가정교사를 두도록 권했을
거예요. 난 항상 말하지만 착실하게 규칙적으로
교육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며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가정교사이지요. 내가 얼마나 많은 가정에 이런 식으로
가정교사를 보냈는지 들으면 놀라겠지. 난
언제나 젊은 사람을 좋은 자리에 앉히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죠. 젠킨슨 부인의 네 조카들도 내
소개로 좋은 위치를 얻게 됐지요. 요 얼마 전만 해도
우연히 화제에 오른 젊은 사람을 추천해
주었더니 그 가정에서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지
뭡니까. 콜린즈 부인, 어제 메트카프 부인이
인사차 찾아 왔더라는 말을 했던가요? 부인은 포프
양을 아주 소중한 교사라고 말했어요. 캐더린
영부인님, 저에게 소중한 분을 보내 주셨습니다 라고
했어요. 동생들 중에서 사교계에 나간 사람이
있나요, 베네트 양?"
"예, 전부 다올시다."
"전부라뇨? 그래 다섯 사람이 전부 한꺼번에? 별난
일이네! 그리고 당신은 둘째 딸이 아니오.
언니들이 결혼하기 전에 동생들이 사교계에 나가다니!
손아래 동생들은 아직 어릴 텐데요."
"예, 막내동생은 아직 열 여섯이 못됐습니다. 그앤
사교계에 자주 나가기엔 너무 어린 것 같아요.
그러나 실제로는 언니들이 일찍 결혼할 만한 자금이
없다든가 아니면 그럴 의사가 없다고 해서
동생들이 사교의 즐거움을 못 같는대서야 불쌍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막내로 태어났건 맏이로
태어났건 청춘의 기쁨을 누릴 권리는 있는
법이겠지요. 더우기 그러한 동기 때문에 처지게 된다니
말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엔 자매간의 애정도 고운
마음도 일으키지 못하게 되고 말 것이 아닙니까."
"정말이요, 당신은 아직 젊은 사람치고는 자신의
의견을 자세히 털어놓았소. 그래 올해 몇 살이오?"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다 큰 동생이 셋이나 있는 저에게 나이를
털어놓으라고 하실 수는 없을 줄로 아는데요."
엘리자베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캐더린 부인은 대답을 얻지 못한 데 대해 적이 놀라운
듯이 보였다.
엘리자베드는 이렇게 거만하고 무례한 사람을
반놀림감으로 받아넘긴 것은 자기가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이 넘지는 않았을 테고, 틀림없이.... 그러니까
나이를 감출 필요가 없을 텐데"
"아직 스물 하나는 안됐습니다."
남자들이 그들과 합치게 되었고 차가 끝나자 카드
놀이 테이블이 놓여졌다. 캐더린 부인과 윌리엄
경과 그리고 콜린즈 부부가 쿼드릴 게임을 시작했다.
버그 양이 카지노 게임이 좋겠다고 말하자 두
여자가 젠킨슨 부인과 함께 승부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그들의 테이블은 다시없이 시시한 것이 되었다. 그저
젠킨슨 부인은 드 버그 양에게 너무 덥지 않느냐
춥지 않느냐 너무 밝지 않느냐 어둡지 않는가 하는
등의 걱정하는 말만 계속했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훨씬 화제가 많았다. 캐더린
부인이 주로 이야기하고 있었고 다른 세 사람에게
잘못을 일러주기도 하고 자신의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콜린즈 씨는 부인 말에 일일이 동의했고
상아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패를 딸 적마다 부인에게
사의를 표하고 계속 이기게 되면 사과하느라
바빴다. 윌리엄 경은 말수가 많지 않았다. 일화라든가
귀족의 이름을 외우느라고 바빴다.
캐더린 부인과 그 따님이 만족할이만큼의 게임을 하고
나자 카드 놀이가 끝나고 콜린즈 부인에게 마차가
권해지고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이자 곧 준비하도록
명령이 내려졌다. 모두들 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캐더린 부인이 내일 날씨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듣고 있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마차가 와서 그들은
불려 나갔다. 콜린즈 씨는 수없이 고맙다는
인사말을 했고 윌리엄 경은 그만큼 많이 굽실거리면서
작별을 나눴다. 문간에서 마차가 떠났을 때 곧
엘리자베드는 콜린즈 씨로부터 로징즈에서 본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을 들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엘리자베드는 샬로트를 위해 실제보다 더욱 좋게
말했다. 그만큼이나 칭찬하는 데도 적잖이 힘이 들었는데,
콜린즈 씨는 조금도 만족해하지 않았다.
30
윌리엄 경이 헌스퍼드에 체류한 것은 불과 한
주일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 방문은 딸이 가장
안락하고 안정되게 살고 있었고 그리 흔치 않은 남편과
이웃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신하기에 충분했다.
윌리엄 경의 체류 중에는 콜린즈 씨는 아침에 곧잘
그를 이륜마차에 태워서는 들녘을 보여 주곤 했다.
그러나 그가 떠나고 나자 가족들은 모두 평상시의 일로
되돌아갔다. 그리하여 엘리자베드는 사정이
변했기 때문에 콜린즈 씨의 얼굴을 전보다 덜 보게
됨으로써 매우 기뻤다.
왜냐하면 이젠 그가 아침과 저녁 식사 사이의 시간을
정원에서 일을 하든가, 독서를 하든가 무엇을
쓰든가, 그리고 서재에서 창 밖을 내다보는 데 보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함께 앉은 방은 뒤쪽에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처음에 왜 샬로트가 식당을 공동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의아해 했다. 그곳은 크기가 큰
편이며 방향도 쾌적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얼마
안가 자기 친구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령 콜린즈 씨의 방
만큼이나 좋은 전망이 있는 방에 있었더라면 그가
자기 방에 있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기 십중팔구였기
때문이다.
이 처리에 대해서는 샬로트를 인정해야만 했다.
응접실에서는 골목길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분간해 낼
수가 없었으며, 다만 콜린즈 씨 덕분으로 어떤
마차가 통과했다든가 특히 드 버그 양이 이륜마차를 몇
번 지나갔다든가 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거의 매일같이 일어나는 그가 알리러 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드 버그 양은 목사관에서 마차를 멈추고 샬로트와 2, 3분
정도 이야기 나누는 일은 자주 있었으나
제아무리 권해도 마차에서 내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콜린즈 씨가 로징즈로 걸어서 가지 않는 날이란 아주
드물었으며 그 부인 역시 안가도 좋다고
생각되는 날은 많지 못했다. 그 밖에 드 버그 가에서
처분할 수 있는 성직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칠 때까지는 엘리자베드는 부부가
그만큼 많은 시간을 희생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따금 영부인의 방문을 받는 날도 있었지만 이러한
방문 중에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무엇 하나
그녀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를 조사하고, 일하는 것을
훑어보며 다른 방법으로 해보라고 충고하곤 했다.
가구의 배열 방법을 꾸짖고 가정부의 게으름을
알아내기도 했다. 간단한 식사를 제공받는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은 다만 콜린즈 부인의 고깃점이
식구에 비해 너무 크다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같이 보였다.
엘리자베드는 곧 알게 되었지만, 이 귀부인은 이 주의
치안재판권을 위임받지는 못했어도
교구내에서는 매우 활동적인 치안판사나 다름없어서
교구내의 사건은 제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콜린즈 씨의 손에 의해 그녀에게로 들어오게 되었고
소작인의 누군가가 싸움질을 했다든가 불만을 품고
있다든가, 또는 너무 빈곤하다든가 할 때면 그녀는 그
길로 마을로 달려 가서 이견을 조정해 주고
불평을 달래고 그들을 나무라서 화해와 풍요를 부여하곤 했다.
로징즈에서의 만찬은 한 주에 두 번 꼴이 되었다.
윌리엄 경이 부재하고 밤에 카드 놀이 테이블이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 것만 제외한다면 밤마다의 환대는
첫날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집안으로 초대되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그것은
근처 주민들의 일반 생활양식이 콜린즈 가의
손이 미치지 못한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에게 기쁜 일은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보아서 그녀는 충분히 안락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때때로 반 시간쯤 샬로트와 즐거운 대화가 있었고 그
계절치고는 일기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자주 집
바깥에서 즐거운 시간을 맛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캐더린 부인을 방문하고 있는 동안에
그녀가 즐겨 가는 산책은 저택 가장자리에 잇는
수목이 드문 숲을 따라 걷는 것으로서 그곳에는 유쾌할
만큼 한적한 좁은 길이 있는데, 그 길은 그녀를
빼놓고는 아무도 애용하지 않는 것 같았으며 그곳까지는
캐더린 부인의 호기심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평온한 가운데 그녀의 체류 두 주일은
어느 새 흘러가고 말았다. 부활절도 가까와지고
그 전 주일에 로징즈에서는 가족이 한 사람 더 늘었는데
그런 일은 이렇게 작은 사회에서는 중대한
일임에 틀림없다. 엘리자베드는 도착 직후에 다아시
씨가 수주일 내에 그곳에 오기로 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의 잘 아는 사람 중에서 다아시 씨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드물었으나 그가 오게 되면
로징즈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인물 한
사람을 더하게 될 것이다. 더우기 다아시 씨의
사촌에 대한 태도로 미루어 빙리 양의 그에 대한
계획이 얼마나 가망 없는 것인가를 직접 본다는 것은
재미있는 것 같았다.
캐더린 부인에 의해 그가 사촌하고 운명 지워질 것이
명백하고, 부인은 그가 오게 되는 것을 기쁘게
만족해했고 최대한으로 칭찬하면서 루커스 양과
엘리자베드가 이미 그를 자주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거의 노여움을 나타낸 정도였다.
그가 도착한 사실은 목사관에서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콜린즈 씨가 그의 도착을 누구보다
제일 먼저 확인하려고 헌스퍼드의 작은 길목을 향해 서
있는 몇 채의 오두막집 언저리에 아침부터
사뭇 서성대다가 마차가 저택으로 굽어 들었을 대 절을
꾸벅하고 나자마자 그 중대한 정보를 가지고
급히 집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경의를 표하기 위해 로징즈로 급히
달려갔다. 그러한 인사를 해야 할 캐더린 부인의
조카는 두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다아시 씨는 외삼촌
백부의 작은 아들 피츠윌리엄 대령인가 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모두 놀란 사실은
콜린즈 씨가 돌아왔을 때 신사들이 그와 동반해 왔기
때문이다.
샬로트는 그들이 길을 건너는 것을 남편 방에서 보고
곧바로 다른 방으로 뛰어들면서 처녀들에게 그
얼마나 영광된 일이냐고 말하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해야겠어요. 엘리자, 이토록
친절을 베풀어 주셨으니까 말예요. 다아시 씨는
날 방문하신다 해도 이렇게 빨리 오시질 않는 분이시니까요."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칭찬의 말을 전부 들을 권리가
없다고 말하기 전에 현관의 초인종은 그들이
왔음을 알리고 그 길로 세 신사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선두에 선 피츠윌리엄 대령은 서른 정도로
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의 인품과 말솜씨는
신사다왔다. 다아시 씨는 허어퍼드셔에서 보았을
때와 똑같았고, 여느 때나 다름없이 과묵한 가운데
콜린즈 부인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엘리자베드에 대한 그의 감정은
어떠했는지간에 언제나 신중한 태도로 대면했다.
엘리자베드도 한마디 말도 없이 인사만 할 뿐이었다.
피츠윌리엄 대령은 교양 있게 자라난 사람의 순수함과
더불어 손쉽게 말을 건네 왔고 그리고 대단히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사촌은 집과 정원에 대해
콜린즈 부인에게 약간 평을 하고 나서 잠시
동안 아무에게도 입을 떼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끝내는 엘리자베드에게 가족들의 안부를
물어 올 정도로 그의 예절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평범하게 대답했고 잠시 후에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언닌 3개월 정도 런던에 가 있어요. 혹시 그곳에서
못 만나셨던가요?"
그가 못만났으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빙리 남매와 제인 사이에 일어났던
어떤 감정을 자칫 누설시키지나 않을까 알고 답했을 때
그의 표정이 약간 혼란해 보였다.
그 화제는 그 이상 진전되지 않았고 그리고 얼마
안가서 신사들이 자리를 비웠다.
31
목사관에서는 피츠윌리엄의 예절을 매우 칭찬했으며
숙녀들은 모두가 그가 틀림없이 로징즈의 초대에
상냥한 즐거움을 더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으로 초대받은 것은 며칠이
지난 후였다. 왜냐하면 그곳에 손님이 있는 동안은
이편은 필요한 사람들이 못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배려를 받게 된 것은 신사들이
도착해서 이럭저럭 한 주일이 지난 부활절의 일로서
그나마 교회를 떠나려는 찰나 저녁에 로징즈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들은 지난 한 주일 동안
캐더린 부인과 영애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간에
피츠윌리엄 대령은 여러 차례 목사관에 찾아왔지만
다아시 씨를 만난 것은 교회에서 뿐이었다.
물론 그 초대에 응해서 적당한 시각에 일동은 캐더린
부인의 응접실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영부인은
그들을 정중하게 맞아들였으나 달리 누군가 상대가 없을
때 만큼은 반갑게 맞는 것 같지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조카들에게 정신 팔렸고 특히
다아시에게는 방 안에 있는 누구보다도 말을 많이 건넸다.
피츠윌림엄 대령은 모두를 만나게 된 것이 매우
기뻐 보였다. 로징즈에서는 어떠한 것도 그에게
고마운 상태가 되었고, 더우기 콜린즈 부인의 예쁜
친구가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이제 그 옆에 자리잡고서는 켄트나 허어퍼드셔에
대한 것이라든가 여행 때나 집에 있을 때의
일, 새로 나온 책이나 음악에 대한 일들을 너무나
유쾌하게 말했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지금까지 이
방에서는 그 반 정도도 재미있는 대접을 받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나 다정한 이야기 꽃을 피웠기 때문에
다아시 씨뿐만 아니라 캐더린 부인의 주의까지
끌었다. 그의 눈은 몇 번이고 호기심 있게 두 사람 쪽을
향했다.
더우기 얼마 후 부인도 같은 기분에 젖어든 것이 더욱
확실해졌었다. 왜냐하면 주저하지 않고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들을 하고 있는 거지, 피츠윌리엄? 뭐에
관한 얘기들이냐? 베네트 양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나도 좀 들어보자"
"저희들은 음악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 대답을 피할 수가 없어서 그가 말했다.
"음악에 대한 것이라고! 그렇다면 큰 소리로 말하도록
해. 그건 내가 뭣보다도 좋아하는 것이니까.
음악 얘기를 하고 있다면 어디 나도 한몫 끼여야겠어. 나
보다 더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며 천부적인
음악 소질을 타고난 사람은 영국 안에선 없을 거야.
내가 만일 공부를 했더라면 훌륭한 명인이 됐을
텐데. 훌륭히 해냈을 것이 틀림없어. 조지아나는 얼마큼
숙달이 됐지 다아시?"
다아시는 누이의 숙달이 이야기를 애정을 쏟아 가며 말했다.
"그애에 관한 그런 좋은 얘기를 듣게 되니 정말 기쁘군"
캐더린 부인이 말했다.
"그애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충분히 연습을 쌓지
않으면 뛰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야."
"감히 말씀드려 두겠습니다만...."
그가 대답했다.
"누이에겐 그런 충고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항상
연습하고 있으니까요."
"더욱 좋지. 연습이 지나치다는 법은 없으니까. 내가
다음에 편지를 낼 때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태만해서는 안된다고 써 보내겠어. 난 젊은
숙녀들에게 곧잘 말하지만 쉴새없이 연습하지 않을 것
같으면 뛰어나지 못하는 거야. 베네트 양에게도 몇
번씩이나 얘기 했지만 더욱 연습 않고 서는 연주
잘 해낼 수가 없어요. 콜린즈 부인은 악기를
안 가졌지만 내가 자주 말한 대로 매일 로징즈로 와서
젠킨슨 부인 방에서 피아노를 쳐도 좋단 말야. 저택의
그 언저리 같으면 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을 테니까."
다아시 씨는 이모의 본때 없는 수다가 다소 부끄럽다는
그런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커피가 끝나자 피츠윌리엄 대령은 그에게 들려
주겠다고 약속한 일을 엘리자베드에게 상기시키자
그녀는 즉시 피아노 쪽으로 향해 앉았다. 그는 그녀
옆으로 의자를 당겼다. 캐더린 부인은 노래를 반쯤
듣고 있다가 그 전처럼 또 조카에게 말을 건네자 곧바로
그 사람은 그녀에게서 달아나 여느 때의
신중함을 잃지 않고 피아노 쪽으로 걸어가서는 아름다운
연주자의 얼굴이 잘 보이는 곳에 섰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편리한 휴지를 이용해서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띠면서 그를 향해 말했다.
"저를 놀라게 하시려구요, 다아시 씨. 그런 엄숙한
상태로 들으실 참이세요? 그렇지만 누님이 정말
연주를 잘하신다 하셔도 전 조금도 안 놀랄걸요.
저에게는 고집이란 게 있어서 타인의 의사대로
위협 당하는 것은 정말 못 견디거든요. 저는 위압 받을
때면 언제나 용기가 나곤 하지요."
"당신이 뭔가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내가 설마하니 당신을 놀라게 해주려는 그런 계획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이젠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내는 터이니까, 당신이
이따금 마음에도 없는 의견을 말하기 좋아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지요."
엘리자베드는 자기가 그런 식으로 묘사된 데 대해
마음껏 웃어대면서 피츠윌리엄 대령을 향해 말했다.
"사촌이 저에 대해 매우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한마디도 믿지 말라고 선생님에게
일러주고 있는 거예요. 조금은 자기가
신용 있는 사람으로 통했으면 하는 차에 저의
정체를 이렇게 근사하게 폭로하는 분을 만나게 되다니
저도 정말 운이 나쁜 여자죠. 정말 다아시 씨.
선생님이 허어퍼드셔에서 아시게 된 저의 불리한 점을
샅샅이 말씀해 버리시다니 너무하세요(그러나
실례된 말씀이지만 서투른 것이지요.) 저도
보복하고 싶어져서 친척 여러분들께서 간담이
서늘해질 만한 일이 제 입에서 나오게 될는지 모르니까요."
"난 당신을 두렵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했다.
"어떤 점에서 다아시 군을 책망하게 될지 들려 주십시오"
피츠윌리엄이 소리질렀다.
"그 사람이 초면의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고 싶군요."
"그럼 알려 드리지요.... 그러나 정말 지독한 일이라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해요. 허어퍼드셔에서
처음 뵌 것까지는 좋았는데 무도회 때라고
기억하는데요.... 그 무도회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아세요? 꼭 네 번 춤췄을 뿐이에요! 들으시기
거북하시겠지만 사실인 걸요. 남자분들이 별로 없었는데
꼭 네 번만 추셨어요. 전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지만 상대가 없어서 앉아 있는 여자는 한 사람뿐
아니었거든요. 다아시 씨, 그 사실을 부인 못하시겠지요."
"그때 그 모임에는 나하고 함께 간 일행 이외엔 알고
있는 여자분이 없었으니까."
"사실예요. 무도회에선 상호간 소개해서는 안되게
돼 있는 거지요. 자, 피츠윌리엄 대령님, 다음엔 뭘
연주할까요? 저의 손가락은 당신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럴 테죠"
다아시가 말했다.
"그런 경우 소개받도록 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었을
거지요. 그러나 난 모르는 분들에게 나 자신을
자천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사촌에게 그 이유를 알아볼까요?"
여전히 피츠윌리엄에게 말을 건네면서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양식도 교육도 그리고 사회도 잘 아시는 분이 어째서
미지의 사람들에게 자천할 자격이 없으시다는지 그걸 알고 싶은데요?"
"당신의 질문에 난 답을 할 수가 있어요."
피츠윌리엄이 거들었다.
"그 사람에게 묻지 않더라도 알 수 있지요. 귀찮은
일은 하기 싫어서였겠지요."
"난 확실히 남들이 가지고 있는 재간을 갖고 있지를 못해요."
다아시가 말했다.
"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하고는 쉽사리 얘길
못합니다. 가끔 보아서 알겠지만, 남들 말의
어조를 포착하고 남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흥미를 갖는 것처럼 보일 수가 없어요."
"저의 손가락도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많은 여성분들이 할 수 있는 것처럼 훌륭하게 악기
위를 달릴 수가 없어요. 그러한 힘의 속도도
없거니와 그러한 표현력도 나오지가 않거든요.
그렇지만 그걸 내 잘못이려니 생각해 왔어요. 애써서
연습할 생각을 안했으니까요. 저의 손가락이 딴
여자분과 같이 훌륭한 연주를 할 힘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다이시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절대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당신 편에서 훨씬 시간을
잘 써 온 겁니다. 당신 연주를 듣게끔 허용 받은
사람 치고 뭔가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우린 모르는 사람을 위해선 연주를 하지 않으니까요."
바로 이때 캐더린 부인이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알고 싶어 큰 소리로 말을 걸어 왔기
때문에 중단되었다. 엘리자베드는 곧바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캐더린 부인은 접근해 와서는 몇 분
동안 귀를 기울였다가 다아시에게 말했다.
"베네트 양은 좀더 연습하고 더우기 런던의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면 조금도 서투르지 않게 칠
수가 있을 거야. 손가락 쓰는 법을 잘 알고 있거든.
그러나 앤의 취미엔 못 미칠 것 같아. 앤도
건강해서 공부만 했다면 정말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을 텐데"
엘리자베드는 다아시의 얼굴을 보고서 친사촌 누이에
대한 찬사를 그가 얼마나 열심히 동의하는가를
알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리고 다른 때에도
애정의 징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드 버그 양에
대한 그의 태도 전체로 미루어 빙리 양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즉 그녀가 그의 친척이라면 그가 그녀와 결혼한다는
것도 똑같이 생각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캐더린 부인은 엘리자베드의 연주에 대해서 이것저것
의견을 계속해 말했고, 기술과 취미에 대한
많은 교훈도 곁들였다. 엘리자베드는 예의상 참을 대로
참으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캐더린 부인의
마차가 그들 집으로 돌려 보낼 준비가 될 때까지
신사들의 부탁으로 피아노 옆을 떠날 줄을 몰랐다.
32
이튿날 아침, 콜린즈 부인과 마리아가 볼일 보러
마을로 떠나간 사이에 엘리자베드가 혼자 앉아
제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을 때 어떤 손님이 왔는지
초인종 소리가 들려와 깜짝 놀랐다.
마차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캐더린 부인일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에서 실례되는 질문을 피하려는
심산으로 반쯤 써 가던 편지를 중단하고 있었을 때, 문이
열리더니 다아시 씨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너무나도 놀랐다.
그 역시 혼자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사과의 말을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서 그녀가 로징즈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했을 때 그들은 전적으로
침묵에 빠져들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무엇인가 이야기할 거리를 생각해 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 허어퍼드셔에서 마지막
만났을 때 일을 상기해 내고, 그들이 허둥지둥
떠나갔던 일에 대해 그가 어떻게 말할까 궁금해져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작년 11월에 여러분들께선 훌쩍 네더필드를 떠나셨던
거예요, 다아시 씨! 그렇게 모두들 곧 뒤를
따라가신 것을 보고 빙리 씨께선 정말 기쁘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놀라기도 했을 거예요. 만일
저의 기억이 옳다면 빙리 씨께서 떠나신 바로
이튿날이었나 봐요. 선생님께서 런던에서 떠나셨을 때
그분과 자매 여러분께선 편안하셨겠지요?"
"정말 편안하셨겠지요?"
그녀는 달리 대답을 얻지 못할 것을 알게 되자 잠시
후에 다시 덧붙였다.
"빙리 씨께선 네더필드로 다시 돌아오실 생각은
없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사람이 그런 말하는 것을 듣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거기에서는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겁니다. 친구도 많아질 테고 초대 같은 것도 계속
늘어나기만 할 때니까 말입니다."
"네더필드에 자주 오시지 않으시려면 그분의 댁을
완전히 포기하시는 게 이웃을 위해서도 좋을
성싶어요. 왜냐하면 그곳에 다른 가족이 살 수가 있기
때문이죠. 물론 빙리 씨께선 이웃 편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그 집을 입수하신
거니까 그 집에서 손을 뗀다든가 갖는다든가
하는 문제도 그와 같은 원칙에 의해서 하셔야 될 줄로
알고 있어요."
"난 조금도 놀라지 않을 겁니다."
다아시가 말했다.
"적당한 작가가 생기는 대로 그 사람이 그 집을 팔아
없앤다 해도 말입니다."
엘리자베드는 대답을 안했다. 그의 친구에 관한 일을
더 이상 말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하고
달리할 말도 없고 해서 화제 찾는 번거로움을 그에게
맡기기로 결심했다.
그는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해서 계속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집은 살기에 무척 편안한 곳인가 봅니다. 콜린즈
씨가 처음 헌스퍼드로 왔을 때 캐더린 부인께서 많이 손보신 것 같군요."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생각해도
부인께선 자기의 은혜를 그 이상 고맙게 여기는
사람에게 베풀 수는 없었을 거예요."
"콜린즈 군은 좋은 부인을 선택해서 행복하게 보이네요."
"예, 정말 그래요. 그분은 자기를 받아 줄 사람,
그리고 받아들였다면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적은
수의 현명한 부인 중의 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그분의 친구분들이 기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예요. 저의 친구 샬로트는 뛰어난 분별심을 갖춘
여자죠. 콜린즈 씨와 결혼한 것이 과연 그
사람으로서 현명했던가 아닌가는 저로선 확실히
모르겠지만. 그러나 정말 행복해 보여요. 그리고
신중하게 따져 볼 때 그 사람에겐 좋은 혼처인 거예요."
"자기 친정이나 친구들에게서 가까운 거리에 살게 된
것도 기뻤을 겁니다."
"가깝다니요? 거의 50마일은 되는 거리인데요."
"길이 좋은 50마일이 뭐 문제겠습니까? 반 나절 조금
더 걸리는 여행길인 걸요. 난 가까운 거리라고
부르고 싶군요."
"저로선 그 거리란 게 이번 혼인의 이점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콜린즈 부인이 자기 친정 쪽에 가까이 살게 되었다는
말은 저로선 안할 거예요."
"그건 당신 자신이 허어퍼드셔에 애착을 갖고 있는
증거입니다. 롱본 근처가 아니면 다 멀다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는 엷은 미소를 띠었는데 엘리자베드는 그것을 알
듯했다. 틀림없이 이 사람은 자기가 제인과
네더필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전요, 여자가 시집 갈 때 자기 친정 집에서 아무리
가까와도 지나치게 가깝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멀고 가까운 것은 상대적인 것으로서, 여러 가지
사정에 따르는 법이에요. 재산이 있어서 여행의
비용 같은 것이 문제가 안된다면 멀다 해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콜린즈 부부는 안정된 일정한 수입이
있지만, 자주 여행할 정도는 못되거든요....
그리고 샬로트는 지금의 거리의 반 이하가 아니라면
자기 친정 가까이에 있다고는 말하지 않으리라
전 믿어요."
다아시 씨는 그녀 쪽으로 의자를 약간 당기면서 말했다.
"댁에선 그렇게 강하게 토지에 애착을 가질 권리가
없어요. 댁에선 항상 롱본에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말예요."
엘리자베드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 찼다. 상대방
신사는 그녀의 감정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의자를 뒤로 끌고 신문을 손에 잡고서는 눈으로
훑으면서 전보다 냉정한 소리로 말했다.
"켄트가 맘에 드십니까?"
그리고 나서 그 지방을 화제로 해서 짧은 대화가
계속되었으나 쌍방 모두가 침착해 있고 간결해져서, 그리고
곧 외출에서 방금 돌아온 샬로트와 동생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야기는 끝이 나버렸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고
그녀들은 놀랐다. 다아시 씨는 잘못으로 베네트 양
혼자만 있는 곳에 찾아오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그 후
2, 3분 더 머물면서 누구하고도 말을 않고 앉아
있다가 떠나가 버렸다.
"이건 또 뭐지?"
그가 곧 가 버리자 샬로트가 말했다.
"엘리자, 틀림없이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안 그러면 이런 식으로 우리를 찾아온 일이
없었으니까 말예요."
그러나 엘리자베드가 그가 침묵만 지키더라고 말하자,
샬로트의 소원이야 어떻든 그렇게 될 성싶지가 않았다.
마침내 그녀들은 여러 가지 추측 끝에 그가 찾아온
연유는 결국 별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계절적으로 보아 더욱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야외의 스포츠는 다 끝장이 난 때였다. 실내엔 캐더린
부인도 있고 책도 있으며 당구대도 있지만 신사들은
언제나 실내에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목사관은 가깝고 거기로 가는 산책길도 쾌적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좋은 사ㅏㄻ들이라 두 사람의
종형제는 이 때부터 매일같이 그곳으로 찾아가고
싶은 유혹을 느낀 것이다.
그들은 때로는 개별적으로 또 때로는 함께 그리고
드물게는 이모를 동반해서 찾아왔다. 피츠윌리엄
대령이 찾아오는 것은 그녀들과 교제하는 것이
즐거워서라는 것은 누구나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확신은 물론 그를 더욱 호감 가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명백히 자기에게 마음이 끌려 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있을 때 자기 마음도
즐거워지는 것으로 봐서 한때 자기가 좋아했던 조지
위컴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비교해 볼 때 피츠윌리엄 대령의
태도에는 마음을 빼앗아 가는 부드러움이 적어
보였지만 둘도 없는 박식가같이 보였다.
그러나 다아시 씨가 왜 이렇게 자주 목사관에
찾아오는지 그것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는 종종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계속 10분 동안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교제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우기 입을 여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마지못해 그렇게 하는
것같이 보였다.... 자기 자신을 위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예절 때문에 희생당하고 있는 꼴이었다.
쾌활한 기분으로 있는 그를 보기가 힘들었다.
콜린즈 부인은 그를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피츠윌리엄 대령이 때때로 그가 멍청해
있다고 웃어대는 걸 보면 평상시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까지의 그에 대한 그녀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변화가 사랑의 결과이며 그
사랑의 그 상대가 친구 엘리자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캐내는 일을 진정에서 착수했다. 로징즈에
초대받을 때나 그가 헌스퍼드에 올 때면 언제나
그를 지켜보았으나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과연 그는 그녀의 친구 쪽을 많이 바라보기는 하나
그의 눈빛은 토론의 빛이 있었다. 진지하고
꾸준히 바라보기는 하지만 동경이 서려 있는지 아닌지를
자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때로는
그것이 단순한 방심의 상태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한두 번 엘리자베드에게 그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지만 엘리자베드는
언제나 그 말을 웃으며 상대해 주지 않았다. 콜린즈
부인은 모처럼 기대를 걸었다가 끝내는 실망으로
끝나고 말 것이 두려워서 그 문제를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의견으로는 엘리자베드마저도 그
사람이 자기 손아귀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사람을 싫어하던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엘리자베드를 위해 이것저것 친절한 계획을 세우는
가운데 그녀는 때때로 피츠윌리엄 대령과
결혼시킬 계획을 했다. 그는 유쾌한 인물이다. 그녀를
찬미하고 있는 데는 더 말할 필요가 없고 위치로
보아서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유리한 점을 상쇄하는 점은, 다아시
씨에게는 목사를 임명할 수 있는 큰 권한이 있는
데 반해 피츠윌리엄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33
엘리자베드가 저택 안을 배회하다 예기치 않게 다아시
씨를 만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없는 데서 그가 나타나게 되면 그녀는 기분 나쁜
불운이라 느꼈다. 그리하여 그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그곳은 자기가 좋아하는 산책 장소라고
알려 두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째서 두 번째 만나게 되었는지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또 만나게
되었는데 이번으로 세 번째다. 심술궂은 고의성 같기도
하고 또는 자발적인 고행 같은 느낌도 들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에 그는 짤막하고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어색하게 멈추었다가는 그만 가 버리는
그런 식 뿐이 아니라 발걸음을 되돌려 와서는 그녀와
함께 걷지 않으면 안된다고 실제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수가 많지 않았으며 그녀 역시 애써 말하거나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세 번째에
만났을 때는 놀랍게도 그는 이상하게 앞뒤가 잘 안 맞는
질문 헌스퍼드에 온 것이 즐거운가, 혼자서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콜린즈 부부의 행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체적으로 그런 유의 질문을
하고 나서, 로징즈의 일이며 그녀 쪽에서 그 가정을
완전히 이해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가며 이번에
다시 한 번 켄트에 올 때는 그녀가 거기서 머물게 되는
것을 예기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말은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듯이 느꼈다.
피츠윌리엄의 생각이 과연 그의 머릿속에 있었던
것일까? 만일 그가 그런 의도를 품고 있다면 그러한
방향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마음이 다소 괴로왔다가 목사관 맞은편 쪽
철책문 있는 데 이르렀을 때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느 날 그녀는 걸으면서 최근에 온 제인의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몇 군데 언니의 필적에 힘이 없는
것같이 보여지는 대목에 이르러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불현듯 얼굴을 치켜들자 이번엔 놀라게 하는
사람은 다아시 씨가 아니라 피츠윌리엄 대령이 자기
쪽을 향해 오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즉시 편지를 치우고서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이쪽으로 산책 오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택을 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매년 정해 놓고 합니다만 목사관을 찾아가서 일주를
끝낼 참이었습니다. 더 멀리 가실 작정이신가요?"
"아녜요, 곧 돌아갈까 생각 중이었어요."
그리하여 그녀도 방향을 바꾸어 두 사람은 함께
목사관 쪽으로 걸어나갔다.
"이번 토요일에 정말 켄트를 떠나세요?"
그녀가 물었다.
"예. 다아시가 다시 연기만 안하게 된다면.
그러나 난 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일을 처리해 나가니까 말입니다."
"그분은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선택의 권리만은 제대로 즐기시고 있는
거예요. 다아시 씨만큼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하는 권리를 즐기는 분도 보지를 못했어요."
"그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하기를 무척 좋아하지요."
피츠윌리엄 대령이 대답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두가 그런 것입니다. 다만 그
사람이 남들보다 그럴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은 부유하고 다른
친구들은 빈곤하기 때문이죠. 난 지금 실감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남들은 자제를 해가며 남에게
의지하게끔 훈련을 받는 법이겠죠"
"제 생각 같아선 백작의 차남으로서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잘 알 수가 없을 텐데요. 그런데
진지하게 말해서 선생님은 자제하고 남에게
의지하신다지만 어떤 경험을 하신 거예요? 돈이 없어서
가고 싶은 곳에도 못간다든가 하는 일이 언제 있었나요?"
"이건 정말 급소 찌르는 질문이신데요.... 아마
나로선 그런 성질의 고통은 많이 경험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로서는
돈이 없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차남은 결혼도 제멋대로 못할 판이지요."
"재산 있는 부인이라도 좋아하시지 않으신다면 별
문제이겠죠만, 그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지요."
"우리들은 돈 쓰는 관습 때문에 지나치게 남에게
의지하려 드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들 신분으로선
돈 걱정을 많이 하지 않고서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못하죠"
"이건 날 두고 하는 말일까?"
엘리자베드가 생각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얼굴이
빨개졌으나 정신을 차리고 원기 있는 투로 말했다.
"저어요, 백작님 차남의 값은 보통 얼마나 되죠?
맏이가 심히 병약하지 않는 한은 5만 파운드 이상은
요구하지 않겠지요."
그 역시 같은 식으로 대답하고 그 이야기는 그대로
끝났다. 잠자코 있으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마음이 동요되고 있다고 생각할까봐, 그녀는 침묵을
깨고 곧 이어 이렇게 말했다.
"사촌께서 선생님을 데리고 온 것은 주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그랬을 거예요. 그런 편의를
위해서라면 평생 그렇게 할 수 있는 결혼을 왜
안하신다지요. 그러나 당장은 누님으로도
족하시겠죠만. 누님 뒤를 봐주시는 분은 그분 뿐이실
테니까 그분께선 자기 좋아하시는 대로 뭐든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닙니다."
피츠윌리엄 대령이 말했다.
"나도 그 사람하고 함께 그 일을 나누어 가져야
하지요. 나도 그 사람하고 다아시 양의 후견을
맡아보고 있습니다."
"어머, 그러세요? 그래 어떤 후견인이신데요, 말씀해
주시겠어요? 후견인의 일은 여러 가지로 힘드실
텐데요. 그만한 나이의 여자들이란 다루기 힘들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녀에게 다아시 가혼이
있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제 고집대로 하려들 텐데요."
그녀는 말하면서 그가 자기 쪽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당신 생각에
다아시 양이 우리들에게 걱정을 끼친다고 생각하느냐고
그가 곧바로 물어 오는 그 태도에서 그녀는
자기가 말한 것이 어딘가 진실에 가까운 것이리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말했다.
"놀라실 필요는 없어요. 그분에 대해 어떤 나쁜
얘기를 들은 적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유순한 사람 중의 한 분이실 거예요. 제가 알고
있는 숙녀들 중에 허어스트 부인께서나 빙리
양도 그분을 몹시 좋아하시거든요. 선생께서도
그분들을 잘 알고 계시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 같아요."
"조금은 알고 있지요. 그분들의 오빠 되는 분은
괜찮은 사람으로 다아시의 친한 친구지요."
"아, 그래요!"
엘리자베드는 냉담하게 말했다.
"다아시 씨는 빙리 씨에게는 보통 이상으로
친절하시고 꽤 많이 뒤를 돌보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돌본다구요! 그렇습니다, 확실히 다아시는 돌볼
필요가 있는 일로 해서 빙리를 돌보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여행 중에 들은 바로는
빙리란 사람은 그 사람에게서 많은 덕을 받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먼저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말한 대상이
빙리였다고 생각할 권리는 나에겐 없으니까요. 모든
것이 추측입니다."
"그건 또 무슨 뜻이죠?"
"물론 다아시로서는 일반에게 알려지기를 꺼리는
사정인데요, 그 일이 만약에 그 여자의 집에까지
전해지는 날이면 불쾌한 문제가 될 테니까요."
"걱정 마세요, 전 말하지 않을 테니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그것이 반드시 빙리라고
상상할 이유는 나에겐 없습니다. 다아시가
말한 것은 이러한 내용뿐이었거든요. 최근 어떤 친구
한 사람이 매우 경솔한 결혼을 하려는 것을
구해 주어서 기쁘다는 내용이었지요. 상대방 이름이나
그리고 그밖의 소상한 내용은 말 안했지요.
그저 내 생각으론 빙리가 아닌가 추측해 본
것뿐입니다.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그 두 사람은 지난
여름 내내 함께 지냈거든요."
"다아시 씨는 그 간섭의 이유를 말씀하시던가요?"
"그 여자에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을 어떤 방법이라도 썼던가요?"
"자기가 쓴 방법은 말하지 않더군요."
피츠윌리엄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지금 한 얘기를 말했을 뿐이지요."
엘리자베드는 대답하지 않고 노여움이 가득 찬 채 걸어나갔다.
잠시 동안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가 어째서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가 하고 피츠윌리엄은 그녀에게 물었다.
"전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의 사촌 되시는 그분의 한 짓이 제 맘에
들지가 않아서요. 왜 그분은 심판자가 되셔야만 했을까요?"
"당신은 그의 권고를 참견하기 좋아하는 간섭이라고
보고 싶으신가요?'
"다아시 씨에게 과연 친구분의 애정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할 권리가 있으신지, 그리고 자기 혼자만의
판단으로 친구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이유로 해서 결정하고 지시하시는지
저로선 이해 못하겠어요. 그러나...."
그녀는 자제를 해가면서 계속해 나갔다.
"우리들은 상세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분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일예요. 하지만 이번
경우엔 너무 많은 애정이 있었다고는 보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조금도 부자연스런 추측은 아닙니다."
피츠윌리엄이 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득의 양양한 제 사촌의
면목도 몹시 슬픈 결과로 감소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농담조로 던진 말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
말이 어김없는 다아시 씨의 자태마냥 되어 버려서
털어놓을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화제를 별안간 바꾸고서 목사관에 다다를
때까지 관계없는 말만 지껄였다. 목사관에서는
손님이 돌아가 버리자, 그녀는 곧 자기 방으로
틀어박히게 되어 아까 들었던 일들을 남의 간섭 없이
생각해 볼 수가 있었다. 자기와의 관계 있는 사람들
이외의 일로 생각되지 않았다. 다아시 씨가
그 무한한 힘을 발휘해 낼 수 있는 남성은 이 세상에서
찾기 어려운 일이다.
빙리 씨와 제인 사이를 갈라 놓기 위해 취해진 일에
그가 관계 있다는 것을 그녀로선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주로 계획하고 조종한 것은 다름 아닌
빙리 양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자신이 허영심에 의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 사람이 그 원인의 장본인이며, 당시
말해 지금껏 제인이 괴로워 했고 앞으로도 괴로움을
지속해 나가게 되는 것은 그의 거만함과 제멋대로의
행동이 그 원인이 된다.
그는 한동안 이 세상에서 가장 애정이 깊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지닌 사람의 모든 행복의 희망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사람이 준 화근이 얼마나
오래도록 계속될 것인지 누구도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 여자에겐 잘못된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피츠윌리엄 대령이 말했다. 그 잘못된 점이란 아마도
외숙부 중의 한 사람이 시골에서 서기를 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의 외숙부가 런던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제인 자신에겐'
그녀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잘못된 점 같은 건 없을 거야. 사랑스럽기만 하고
선량하기만 하니까 말야! 지식은 뛰어나고 정신은
잘 닦여져 있고 예절은 남을 끌어들이고 말지.
아버지로서도 남의 말을 들을 만한 일도 없고, 약간
괴팍스런 데가 있긴 해도 다아시 자신일지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능력과 아마도 그의 손이 미치지
못할 품격도 갖추고 계시단 말야."
그녀의 생각이 어머니한테 미치자 다소 자신이
없어지긴 했어도 거기에 있는 잘못된 점이 다아시
씨에게 결정적으로 중대하다고는 그녀로선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의 자만심은 친구의 처가가
될 사람들에게 상식이 없어서보다는 그 처가 쪽의
신분이 낮은 일로 해서 더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그가 한편으로는 이런 식의 가장
돼먹지 않은 자만심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빙리 씨를 자신의 누이를 위해 보류시켜 두겠다는
심산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결정했다.
이 문제 때문에 두통이 생기고 저녁나절로 접어들면서
더욱 심해진데다가 다아시 씨의 얼굴을 보는
것만도 싫어져서 그녀는 차 초대를 받은 로징즈로 함께
가는 일을 그만두었다. 콜린즈 부인은 그녀가
정말 기분 나빠하는 것을 알고서는 무리하게 권하지
않고 되도록 남편으로 하여금 강권하지 않게 하려
했으나, 콜린즈 씨는 그녀가 집에 남아 있게 되면 혹시
캐더린 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34
콜린즈 부부가 가 버리자, 엘리자베드는 마치 다아시
씨에 대해 잔뜩 분노를 터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자기가 켄트에 온 후로 제인에게서 온 편지를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편지 속에는 확실한 불평 같은 것은 씌어 있지
않았으며 지나간 일을 되새기거나 현재의 고뇌에
대한 사연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연 속에는 아니 그
편지 한 줄 한 줄에는 바로 그녀 문체 특유한
그 쾌활함이 없었다.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와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언제나 흐릴 줄을 모르던 그 쾌활함이,
엘리자베드는 처음 읽었을 때는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주의해서 읽을 수록 하나 하나가 불안한 감정을
전해 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자기는 어떠한
불행도 남에게 주는 것을 불사한다는 뻔뻔스런
다아시의 자만심이 그녀로 하여금 언니의 고뇌를 더
한층 예리하게 느끼게 했다.
내일 모레면 그의 로징즈 체재도 끝날 것이라
생각하니 얼마간 마음의 위로도 되었고, 그리고 앞으로
두 주일 채 안 남았지만 자기는 다시 제인과 만나게 되고
형제간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서 언니가
원기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위로되는 것 같았다.
다아시 씨가 켄트를 떠날 무렵이면 그의 사촌도 함께
떠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피츠윌리엄 대령은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을 확실히 했으며 괜찮은 사람이긴 하지만 그와
헤어지는 것을 슬퍼할 생각은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동안에 돌연 현관의
초인종이 울렸고, 행여 피츠윌리엄이 아닐까 하고 생각
하니 약간 가슴이 설랬다. 그는 전에 한 번 밤늦게
자기를 찾아온 일도 있어서 지금 특히 자기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랍게도 다아시 씨가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자 지금까지 생각이 한꺼번에
사라지자 그녀의 마음은 전혀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성급하게 그녀의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고 이렇게 방문하게 된 것도 조금 건강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녀는
예의상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는 잠시 앉아 있다가 곧 일어나서 방 안을
돌아다녔다. 엘리자베드는 어안이벙벙해져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 그는 흥분된
몸짓으로 그녀 쪽을 향해 접근해 와서 입을 열었다.
"난 싸워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렬히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말씀드리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엘리자베드의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가 얼굴을 붉혔다가 또
의아해 하다가 끝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는 그것을
충분히 희망이 있는 걸로 생각했던지 자기가
그녀를 얼마나 오랫동안 사모해 왔던가 하는 고백을
뒤늦게 말했다.
그는 말은 잘했지만 연인의 감정 말고도 자세하게
설명해야 할 복합적인 감정들이 있어서 애정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자존심의 문제만큼 그렇게
능란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약점, 그 낮은 신분,
가족의 장애를 아무리 판단해도 늘 그의 애정과는
대립되더라는 그의 감정을 열띤 어조로 자세히
설명했는데, 그 열띤 어조는 그가 상처를 입었다고 하는
높은 신분에서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그의
청혼을 마음에 들게 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혐오감은 뿌리 깊은 것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남성의 애정의 찬사를 받고서 무감각할 수 만은
없었다. 그녀의 의사가 그 순간에 변한 것은 아니지만
우선 상대방이 받을 고통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계속했던 그의 말에 화가 나서 이
분노 때문에 동정심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상대방 말이 끝낼 때를 맞추어 그에게 대답하기 위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마지막 말로서 아무리
싸웠어도 정복할 수가 없었던 연정의 힘을 말하고
자기가 뻗은 손길을 받아들여 그 정에 보답해
주기를 바라는 희망을 전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호의적인 대답은 따 놓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게 보였다. 말로는 근심과 걱정을
하면서도 그의 얼굴 표정은 정말 안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은 더욱 그녀의
분노를 더했을 뿐으로 그의 말이 끝날 무렵에 얼굴을
붉히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경우 고백한 감정에 대해서 어떤 의무감을
표해야 한다는 것은 세상의 관습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그 대답이 아무리 불공평한 것이라도 말예요.
의무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지요.
만일 제가 감사하다는 생각을 느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어요. 그러나
저로선 할 수가 없어요. 전 선생님에게서 좋은 점수를
딸 생각을 한 적도 없거니와 선생님께선
마지못해 절 봐주신 거구요. 제가 어느 분에게든
고통을 드렸다는 것은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고통은 전적으로 제가 모르는 중에 생긴 결과였고
또 그 고통을 이겨내는 데 별로 힘이 안 드실 거예요."
시선을 그녀의 얼굴에 고정시킨 채로 벽난로에 기대
있던 다아시 씨는 놀라움에 못지 않은 분노의
심정으로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창백해졌고 마음이 흐트러져 있는
것은 얼굴의 어느 부분에서도 잘 알아볼 수가 있었다.
침착한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입을 떼려 들지를 않았다.
이 침묵의 간격이 엘리자베드의 감정에는 무섭기만
했다. 끝내 차분한 목소리로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바라던 회답의 영광은 바로 이것뿐이란
말입니까! 예의를 다해 보겠다는 한 가닥의
노력도 없이 이런 식으로 거절당하게 되는 이유가
뭔지 꼭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일은 못됩니다만"
"저로서도 묻고 싶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선생님은 또 왜 저를 화나게 하고 모욕하는 마음을
그렇게 분명히 드러내 가면서까지, 더우기 자신의
의사에 반하며, 이성에게도 반하고 성격에까지 반해
가면서 저를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던가요? 제가
만일 무례했다면 이것 역시 무례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저에겐 분개할 만한 또다른 이유가
있어요. 그건 선생님께서도 아실 거예요. 설사 제
자신의 감정이 선생님을 싫어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저 그런
감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니 그보다 더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언니의
행복을 아마도 영원히 파괴하는 데 힘이 되었던
분을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는다 해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 나겠어요?"
말이 여기에 미치자 다아시 씨의 얼굴빛이 변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잠시 후에 가라앉고 그녀가
말을 계속해 나가는 동안 방해하지 않은 채 듣고만 있었다.
"선생님을 나쁘게 생각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 일로 해서 선생님이 연출하신 부당하고
편협한 역할은 어떠한 동기로 하셨더라도 변명은
안됩니다. 선생님은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아,
한쪽은 변덕스럽고 지조 없다는 세상 사람의 비난을
면치 못하게 하고 또 한쪽 사람은 실연했다는
조소를 해서 두 사람 다 견디어 내기 어려운 비참한
밑바닥으로 밀어 던지 유일한 장본인은
아니더라 주동자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녀는 말을 멈추고, 그가 조금도 후회스런 모습이
보이지 않은 채 너무도 태연한 자세로 듣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러한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짓은 안했다고 부정할 수 있으세요?"
그녀는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평정을 꾸미며 곧 대답했다.
"내 친구를 당신 언니한테서 떼어놓으려는 일을 할
대로는 다 했고 또 그 성공을 대단히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
친구에 대해서는 차라리 나 자신에 대해서보다도
더 친절히 해왔습니다."
엘리자베드는 은근히 비꼬인 말을 알아듣는 체하는
것만도 힘든 일이라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내용을 알게 된 터라 그것으로 해서 마음이 위로 될 리도 만무했다.
"그러나 이 문제뿐만이"
그녀가 말을 잇는다.
"선생님을 안 좋게 보는 이유가 아닙니다. 그 일이
있기 훨씬 전에 선생님에 대한 저의 의견은 정해져
있었어요. 몇 달 전에 위컴 씨한테 들은 상세한
얘기로 선생님의 성격이 명백해져 있었지요. 이
문제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가공적인
우정 행위 같은 것을 만들어 내더라도 자신을
변호해 내실 수 있으세요? 또는 어떠한 거짓말을
꾸민다 해서 남을 속여넘길 수 있으시겠어요?"
"그 사람 문제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가 보죠"
상기된 얼굴에 다소 평정을 잃은 투로 다아시가 말했다.
"그분의 불행이 어떠했던가를 아는 사람은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을 거예요."
"그 사람의 불행이라뇨!"
다아시는 모멸적으로 되받았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불행은 정말 큰 것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 선생님의 덕분이죠"
엘리자베드는 힘주어 말했다.
"선생님이 그분을 지금처럼 빈곤하게... 비교적
빈곤하게 만들어 놓으신 거예요. 그분에게 할당된
이익을 안 주시려 했던 거예요. 그분 인생의 가장
적합한 시기의 연령 때에 당연히 받을 값어치가
있고 또 당연히 받을 권리도 있는 생활의 독립성을
박탈하고 만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까지
하셨어요! 그럼에도 선생님은 그분의 불행을 경멸하고
비웃고 계신 거예요."
"이것이"
그는 방 안에 빠른 걸음으로 걸어다니면서 외쳤다.
"나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란 말입니까! 이것이 나에
대해 지녔던 당신의 평가였던가요! 설명을
충분히 해주셔서 고맙소이다. 이 평가에 의하면 내
허물은 너무나 무거운 것으로 나타나 있네요.
그러나 아마도"
그녀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그가 덧붙였다.
"내가 중대한 결의를 하는 것을 장기간 방해해 왔던
여러 가지 거리낌을 당신에게 솔직이
고백함으로써 당신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았던들
그러한 허물들은 모르고 지나갈 뻔했군요. 만일
내가 좀더 책략적이 돼서 자신의 갈등을 감추고서,
다만 어울리지 않게 순수한 애정에 의해 내가
꼼짝 못하게 되어, 이성으로나 반성으로나 또는 그
어느 것으로나 어쩔 수 없이 되었다고 알랑거려
그렇게 믿게끔 유도했다면 이렇게 가지 가혹한 비난도
미리 막아낼 수 있었을 테지요. 그러나 난
속임수라는 것은 어느 것이든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내 생각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극히 자연스럽고 올바른
것들이었습니다. 내가 당신네 가족의 낮은
신분을 받아들이기를 기대하시는가요? 자기보다
확실히 낮은 신분의 사람들하고 친척이 되겠다는
희망으로 내가 기뻐 뛸 것 같습니까?"
엘리자베드는 시시각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예사롭게 말을 하려고 극도로
자제해 가면서 말했다.
"다아시 씨, 당신의 고백 방법 때문에 제 마음이
달라졌다고 상상하신다면 그건 오산이에요.
선생님이 좀더 신사다운 태도로 행동하셨다면 제가
거절하면서 느꼈을지도 모를 그 미안함을 그
고백 방법이 덜어 준 것밖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으니까요."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그가 깜짝 놀라는 것을
보았으나,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말을
계속해 나갔다.
"선생님이 어떤 방법으로 청혼을 하셨더라도 저로
하여금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하실 수는 없었을 거예요."
다시 한 번 경악의 빛이 뚜렷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감정과 굴욕감이 뒤범벅이 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다보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선생님과 알게 된 시초부터, 처음 본 순간부터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선생님의 태도에서 그 거만
그 자부심, 타인의 감정에 대한 제멋대로의 경시
따위에 대한 인상이 불만의 근거를 이룰 정도로
철저히 굳어져서, 그 후에 잇따른 사건들이
요지부동한 혐오감을 형성한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을
안지 한 달이 채 못돼서 선생님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가 도저히 결혼에 응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느꼈지요."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엘리자베드 양. 당신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했으니까, 이제는 지금까지의 내
감정을 부끄럽게 여기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이렇게 빼앗은 점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전정으로 기원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황급히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엘리자베드는 다음 순간 그가 현관문을
열고서 집을 떠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의 동요는 이제 절실하게 커졌다. 자신을
어떻게 가누어야 할 바를 몰랐으며 실제로
병약해 있었기 때문에 앉은 채로 30분 정도 울었다.
좀전에 일어났던 일을 돌이켜볼 때에 그 일을
하나하나 씹어 볼수록 그녀의 충격은 더해 가기만 했다.
다아시 씨한테 청혼을 받다니! 몇 달 동안이나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자기 친구가 언니와
결혼하는 것을 막아 버리는 이유가 된 모든 잘못된 점은
또 그 자신의 경우에도 최소한 같은 힘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나와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강하게 사랑하고 있었다니 거의
믿어지지 않는 일이 아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토록
강한 애정을 일으키게 한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의 자만심, 그 얄미운 자만심, 제인에게
저질렀던 일을 뻔뻔스럽게 공언하던 일, 그
정당성은 주장 못하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는 용서할 수
없는 자신, 위컴 씨에 대한 잔혹한 조치도
그것을 주정하려 들지 않고 바로 그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아 말할 때의 몰인정했던 그 태도 등이
그의 애정을 생각하면서 잠시 동안 일어났던 연민의
정을 곧 압도하고 마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설레는 마음을 거듭 회상하고 있었으나,
곧 캐더린 부인 전용의 마차 소리를 듣게 되자
이런 상태로서는 샬로트와 얼굴을 맞댈 수 없을 것이라
느끼고서 서둘러 자기 방으로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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