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4권
제인 오스틴
35
이튿날 아침 엘리자베드가 잠에서 깨어나자 간밤의
상념들이 떠올랐다.
간밤에 일어난 일에 대한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인가 다른 일을 생각하려 했으나
불가능했고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아침이
끝난 뒤에 곧 야외로 나가서 운동이라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즐겨 다니던 산책길로 곧장 가다가 다아시
씨가 가끔 그곳으로 왔던 생각이 떠오르자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저택 쪽으로 들어서지 않고 작은
길로 접어들어, 큰길에서 뚝 떨어져서
걸어나갔다. 저택의 말뚝박은 울이 한쪽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어서 그녀는 곧 저택으로 통하는 한 문
앞을 통과해 갔다.
작은 길을 두세 번 걷고 나서 아침의 상쾌함에
끌려들어 문 잇는 데서 멈추고 저택 안을
들여다보았다. 켄트에 온 지가 5주가 지났는데도 전원의
기분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나날이 뭇 나무의
신록은 더해 가기만 했다. 그녀가 산책을 계속하려는
찰나 저택 끝에 있는 작은 숲 같은 곳에 신사 한
사람의 모습이 살짝 보였다. 그 사람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혹시 다아시 씨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서 그녀는 곧 되돌아섰다. 그러나 이쪽을 향해
오던 사람은 이제는 그녀의 자태가 보일 정도로
가까와지자 열심히 그녀 쪽으로 걸어와서는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외면해 버렸지만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게 다아시 씨의 목소리인 줄 알면서도
다시 문 있는 쪽으로 걸어나갔다.
이때쯤은 그쪽에서도 벌써 문에 당도해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그것을
받아 들자 그는 의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을 만날까 하는 생각으로 숲 속을 잠시
걸었었지요. 내 편지 좀 읽어 주실 수 없을까요?"
그리고 나서 가볍게 절을 한 후에 다시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즐겁고 좋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다시없이 강한
호기심에서 엘리자베드가 그것을 개봉해 보니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써 놓은 두 장의 편지지가 봉투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은 더해 가기만 했다.
겉봉에도 역시 가득 적혀 있었다.
작은 길을 걸어가며 그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오전
여덟 시 로징즈에서 라는 날짜로 되어 있었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편지를 받으시고 간밤 당신에게 그토록 불쾌감을
자아내게 한 그와 같은 감정의 반복이라든가
또는 청혼을 다시 하는 내용이 써 있지 않나 하고
근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되도록 빨리 잊어야 하는 소원 같은 것을
장황하게 늘어놓음으로써 당신을 괴롭히거나
나를 상대방에게 낮추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올시다. 내가 쓰는 괴로움이나 또
당신이 읽는 노력도 없애는 것이 상책이겠으나 내
성격 때문에 이 편지를 쓰고 당신이 읽어 주실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당신에게 한 번 정도 읽게끔 요구하는 내 생각을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의 감정은 그러한 노고를 마지못해 베풀
것이라고 믿습니다만 당신의 정의감에 호소하여
요구하는 바입니다.
성질이 매우 다른, 더우기 그 중요성 역시 결코
같지 않은 두 가지 죄를 당신은 지난밤 나의
것이라 질책하셨습니다. 처음에 말씀하신 죄는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을 무시하고 내가 빙리 군을
당신의 언니에게서 떼어놓았다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내가 여라 가지 권리를 무시하고 신의와
인정마저 무시해 가면서까지 위컴 군의 눈앞의
번영을 파괴해 놓고 전도를 암담하게 만들어
버렸다고 하셨지요.
나의 어렸을 때의 친구요, 우리 아버지의 마음에
들었었고 우리의 보호를 받는 길밖에는 거의 힘이
없는, 그리고 그 보호의 손길만을 기대하고 자라 온
젊은이를 다분히 고의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저버렸다는 것은 사악한 일이나, 그것에 비해 볼 때
겨우 2, 3주 동안에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던 두
사람의 젊은이 사이를 떼어놓은 일은 비교도 안될
일이겠지요. 그러나 나의 행위와 그 동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을 읽게 되시면 각기 두 가지 일에
대해서 그렇도록 속시원히 나에게 퍼부었던
신랄한 비난에는, 이 다음에라도 내가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바입니다.
나로선 당연히 해야 할 그러한 설명을 하면서
당신의 기분을 해칠 만한 감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에 놓인 것을 그저 안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니 이 이상의 사과는 어리석을
것입니다.
내가 허어퍼드셔에 온 지 얼마 안되어서 빙리 군이
그 근처의 젊은 여자들보다 언니에게 더 마음이
쏠리는 것을 나도 다른 사람과 함께 알게 됐지요.
그러나 빙리 군이 진지한 애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네더필드에서
있었던 무도회의 밤부터였지요.
그 친구가 사랑에 빠진 것은 그 저에도 자주 본
적이 있었죠. 그 무도회에서 당신과 춤추는 영광을
갖는 동안 난 루커스 경한테서 언뜻 들은 얘기로
언니에 대한 빙리 군의 관심은 누구나가 두 사람의
결혼을 기대할 정도로 고조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어요. 시기는 아직 안정해졌지만 결혼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루커스 경은 말씀하셨지요.
그때부터 나는 친구의 태도를 주의 깊게 관찰했는데
곧 베네트 양에 대한 그 친구의 열렬함은
지금까지의 그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란 걸 알게
됐어요. 언니의 태도도 난 지켜봤지요.
표정이나 태도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명랑하고
쾌활하고 매력에 넘치고 있었지만, 특별히 내 친구에게
마음 쏟고 있다는 흔적이 보이질 않더군요. 그래서 난
그날 밤의 검토에서 언니는 그 사람의 애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똑같은 감정에 불타서
그것을 불러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당신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내가
잘못 보았던 게 틀림없습니다. 언니에 대해선
당신이 훨씬 잘 알고 계실 테니까 후자 쪽이
맞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잘못으로 언니에게
고통이 있게 된다면 당신의 분한 행동은 조금도
무리가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슴지 않고
말씀드려 두지만, 언니의 조용한 표정과 태도는 매우
예리한 관찰자에게도 그분의 기질이 다시없이
상냥스럽긴 하지만 그분의 심정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기에 족했단 말입니다.
난 언니가 무관심하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차라리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감히 말씀드려
두지만 나의 검토나 판정이 일반적으로 내 자신의
희망이나 염려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언니가 무관심 하기를 바랐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이성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또 공평한 확신에 입각해 그렇게 믿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그 결혼에 대해서 가진 반대의
거론은 더욱 격렬한 정열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었다고 내가 간밤에 고백했던 내 경우에
있어서의 바로 그 거론하고는 다름 것입니다. 좋은
인척이 없다는 것이 친구에 대해서도 내 경우만큼
그렇게 큰 장애는 되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나
결혼에 반발하는 원인은 그 밖에도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
경우나 내 경우도 똑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나
자신으로서는 그것이 직접 내 눈앞에 없었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말겠다고 노력해 왔던 것입니다.
비록 간단하게나마 이 원인에 대해서 말해 두어야
되겠습니다. 당신 어머니 친정의 신분도 별로
좋은 편은 못됩니다만, 그것도 어머님이나 당신의 세
동생이 그리고 때로는 당신의 아버지조차
그렇게 빈번히 또 그렇게 한결같이 드러내는 전반적인
예절의 결여에 비할 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당신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도 저 역시
괴롭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자기 자신의 육친들의
결점을 걱정하시고 그것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조차
불유쾌하게 생각하시겠지만, 당신과 언니가 그와 같은
비난을 본성에 대한 명예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시고 마음을
달래 주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이 사실만은 말씀드려
두어야 하겠습니다만, 그날 밤에 일어났던
일로 해서 여러분에 대한 나의 생각은 확인되었고
아무리 보아도 불행하게 여겨지는 연분에서 친구를
구해 낼까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기분이
강해져 가기만 했습니다. 틀림없이 당신은
기억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그 친구는 곧 돌아올
생각으로 이튿날 런던을 행해 네더필드를
떠났습니다.
내가 연출했던 역할은 지금부터 설명 드리기로 하죠.
그 친구 자매들의 불안 역시 나에 못잖을
정도로 강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기분이 일치된
사실이 곧 발견되어, 일각의 유예도 없이 그를
떼어놓을 필요성을 깨닫고서 곧 런던에서 서로
합치기로 결정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출발한 겁니다. 나는 런던에서
그러한 선택이 가져다 줄 명백한 폐가 되는 나쁜
일을 친구에게 지적해 주는 일에 곧 착수했던
것입니다.
나는 진지하게 그것들을 설명해 주고 강조했습니다.
이 충고가 그의 결의를 얼마만큼 흔들어 놓고
지체시켜 놓았다 하더라도 내가 주저하지 않고 당신
언니의 무관심을 보증함으로써 들러리로 내세우지
않았던들 결혼을 끝까지 저지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친구는 그때까지만 해도
언니가 같은 정도로 생각을 못해 줄망정 성실한
애정으로 자기에게 보답해 오리라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빙리 군은 매우 유순한 사람이므로
자기 판단보다도 내 판단을 더 믿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판단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못되었습니다. 그렇게 믿게 했으므로 허더퍼드셔에
돌아가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일을 했다 해서 내가 매우 나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내 행위 중에서 꼭
한가지 만족하지 못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언니가 런던에 와 계시다는 사실을 그 친구에게
의식적으로 감춘 모책을 내가 썼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빙리 양이 벌써 알고 있어서 나도 알고
있었습니다만 당사자인 그녀의 오빠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나쁜 결과가 되지야 않겠지만, 그
친구의 애정의 불같이 언니를 만나서도 위험이
없을 만큼 식어 있다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
감춤질이나 숨김질을 한 것은 나의 품격을
떨어뜨린 결과가 되고 말았지요.
이제는 끝난 일이고 더우기 최선의 목적을 위해
이뤄지고 만 일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씀드리거나 달리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약 언니 되시는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렸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한 짓이겠지요. 날
지배했던 동기가 당신 눈에는 당연히 불충분한
것으로 보여질지 모르나 난 아직 그것을 꾸짖어서
마땅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위컴 씨에게 해를 끼쳤다고 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비난에 대해서는 그 사람과 나의 가족과의
관계를 몽땅 당신에게 털어놓아야 겨우 반론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사람이 나의 어떤 부분을
비난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난 알 방도가
없습니다만, 내가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진실이냐 아니냐에 대해선 그 정직함을 의심할 수
없는 증인 한 사람을 불러들일 수가 있습니다.
위컴 씨는 매우 존경해 마지않는 분의 자제로서,
그의 부친은 다년간 펨벌리의 토지 관리를
맡아봄으로써 훌륭하게 임무를 다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
보답을 하셔야겠다고 느끼시고 대자였던 조지 위컴
군에게 있는 대로의 친절을 다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사람을 학교에 보내 주셨고
나중에는 케임브리지에 보내 주시게 된 겁니다. 정작
그 사람의 친아버지는 부인이 사치를 일삼아서 항상
빈곤한 상태라 그 사람에게 신사로서의 교육을
베풀어 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조가 된 겁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애교 있는 태도를 지닌 이 청년을 옆에 두시기를
좋아하셨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을 다시없이 높이
평가해서 끝내는 그를 성직자로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하셔서 그것에 필요한 준비를 시킬 의향을
가지고 계셨던 겁니다.
나 자신으로서는 그 사람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한 것은 여러 해가 경과하고 나서였지요.
사악한 성향, 무절제, 그런 것들을 그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까지 알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경계했지만 그와 거의 동년배이며, 따라서 방심한
상태의 그를 관찰할 기회가 많았던 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기회들은 나의 아버지로서는
가질 수가 없었지요.
여기에서 다시 난 당신을 괴롭히게 됩니다.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는 당신만이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위컴 씨가 당신에게 어떠한
감정을 자아내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 감정의 속성을
내가 눈치챘다고 해서 그의 진정한 성격을 드러내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거기엔 또 하나의
이유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훌륭하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약 1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만, 위컴 군에 대한 그분의 애정은
끝까지 변할 줄 몰랐으며, 유언 중에는 그 사람의
직업이 허용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그의 출세를
위해서 특별히 저에게 부탁한 바 있지만, 그가
성직자가 되는 즉시 큼직한 성직의 자리가 바는 대로
그 사람에게 주도록 분부였습니다. 그 위에다 1천
파운드의 유산도 물려 주셨습니다.
그 사람의 친아버지께서도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더 살지도 못하셨고, 그러한 일이 있은 지
반 년이 채 못돼서 위컴 군은 나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결국 성직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으니,
그가 포기한 혜택의 대가로서 좀더 직접적인 돈의
이익을 희망하더라도 바른길을 벗어난다고는
생각지 말아 달라고 썼습니다. 법률 공부를 해볼
작정이라고 덧붙이면서 1천 파운드의 이자만으로는
충분한 학자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 말이 진실이기를
믿었다기보다는 그러기를 바랐지만, 아뭏든 그의
제안에 응해 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위컴 씨가 목사가 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은 아주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단 그 사람이 성직에 오르게 되어
원조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더라도 그
권리를 포기하기로 하고 그 대신 3천 파운드의 돈을
받았습니다. 우리들 관계는 이제는 완전히
해소된 듯이 보였습니다. 난 그 사람을 아주 나쁘게만
생각했기 때문에 펨벌리로 초대도 하지
않았으며 런던의 저택 출입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로 런던에서 살고 있었다고 믿었습니다만
법률을 공부한다는 건 단순한 구실에 불과했으며,
이제는 모든 굴레에서 해방되어 그의 생활은 태만과
방탕의 그것이 되고 말았지요. 그후로 3년 정도
그 사람 소식을 거의 듣지 못하다가 본래 그 사람에게
줄 예정이던 성직록의 재직자가 죽게 되자
그는 또다시 편지를 보내서 추천을 의뢰해 왔습니다.
생활이 매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쉽게 믿어지더군요.
그는 법률이라는 것이 전혀 이익이 안되는 길임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만약 문제의 목사직을 추천만
해준다면 이번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성직의 자리에
오르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겁니다.
나에게는 달리 추천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을 잊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자기로서는 분명히 알고 있으므로, 추천에
대해서만큼은 눈곱만큼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걸로 믿고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간청에 응해 주지 않았다고 해서 또 그것이
되풀이될 적마다 거절했다고 해서 당신은 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겠죠.
나에 대한 그의 원한은 생활 상태가 나빠짐에 따라
더욱 커 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욕을
심하게 했듯이 남에게도 내 욕을 심하게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후로는 형식적인 교제마저 끊어 버렸고 그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유감스럽게도 자주 내 눈에 그
자태가 끼여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어떤 상황에 대해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만, 그것은 나 자신한테도 잊고 싶은
일로서, 지금과 같이 부득이한 입장이 아니라면 어떤
사람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이만큼 말씀드리면 당신이 비밀을 지켜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내 누이동생은 나보다도 나이가 열 살 정도
아래인데 어머니의 조카뻘이 되는 피츠윌리엄 대령과
내가 그녀의 후견을 맡기로 되어 있습니다. 1년
전쯤에 누이는 학교를 그만두고서 런던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여름에 누이는 집을 지키는 부인하고
램즈게이트에 갔습니다. 거리로 위컴 군도 간
모양인데 이것은 명백히 계획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영부인은 전부터 교제가 있어 왔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지만, 이 부인 성격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불행하게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인의 묵인과 도움으로 그 사람은 조지아나에게
교묘하게 접근해 갔는데, 그녀의 상냥스런 마음은
어렸을 적에 그 사람이 친절하게 해주었다는 강한
인상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녀는 자기가 사랑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때의 그녀의 나이가 아직 열 다섯
살 정도였으니 그 연령이 그녀에겐 하나의
핑계가 되겠지요.
이제까지 그녀의 경솔함에 대해 언급했지만 직접
그녀 입에서 도망치려던 사실을 듣게 되었다고
덧붙일 수 있는 것은 나로서는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계획대로 도망치기 하루 내지 이틀 전에
우연히 그들한테 갔었습니다. 그때 조지아나는
거의 아버지 마냥 우러러보던 오빠를 슬프게 하고
노엽게 하리라는 생각에 견딜 길이 없어 나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게 된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느꼈고 어떻게 행동했던가는 상상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누이의 명예와 감정을
감안해서 표면적으로 밝히기를 꺼렸고 위컴 군에게
편지를 써서 그 사람은 즉시 그곳을 떠나고,
영부인도 물론 해고시켜 버렸습니다. 위컴 군의
주목적은 의심할 여지 없이 누이의 재산 3만
파운드였지요.
그러나 나에게 복수하겠다는 소망도 강한 동기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복수는 하마터면 완전히 성공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 두 사람에 관련된 모든 사건에 대한
충실한 내용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절대적인
허위라고 거부하지 않으신다면 앞으로는 내가 위컴
씨에게 가혹하게 행동했었다는 혐의는 일단 풀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어떤 형태로 그리고 어떤 거짓말로
당신을 속였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그 사람의
성공은 그리 놀랄 것이 못됩니다. 두 사람에 관한
전말을 당신은 잘 모르셨을 테니까 말입니다.
간파하신다는 것은 당신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일 테고
남을 의심한다는 것도 당신의 기질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간밤에 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의아해 하시겠지요. 그러나 간밤에 너무도 내
자신을 가눌 수 없어서 무엇부터 얘기해야 하는가 또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몰랐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모든 것들이 진실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피츠윌리엄 대령의 증언에 호소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근친자의 한 사람으로서 항상 가깝게
지내며, 더군다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 집행인의
한 사람으로 더 이상 말씀드린 교섭의 상세한
내용까지 어쩔 수 없이 알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날
싫어하시는 때문에 내 주장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신다면 같은 이유로 내 사촌 동생마저 불신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하고 상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것과 동시에 이
편지를 아침 나절에 당신 쪽으로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
피츠윌리엄 다아시
36
다아시 씨가 편지를 건네주었을 때 엘리자베드는
결혼의 제안이 되풀이 되는 줄은 생각지 않았지만
이런 내용이 될 줄은 미처 예상을 못했다.
그러나 정작 내용이 이러했기 때문에 어떻게 열심히
그녀가 통독했으며 결과적으로 그 얼마나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던가는 충분히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읽어 가는 중의 그녀의 마음은
이렇다 하게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녀가 놀라면서 알아차린 사실은 그 남자가
어떤 변명이라도 할 수 있는 걸로 믿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는 올바른 사람 같으면 감출 수 없을
거라고 그녀는 항상 믿었던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일의 하나 하나에 대해 강한
편견을 갖고서 그녀는 네더필드에서 일어났었던
일들에 대한 그의 설명을 읽기 시작했다. 이해할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읽으면서 다음 문장에 무엇이
씌어 있는가 알고 싶어서 눈앞의 문자의 의미를 전혀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녀의 언니가 무관심한 걸로 맏었다는 그의 말은
당장 거짓말이라고 정해 버렸다.
언니의 결혼을 가로막은 현실적으로 아주 잘못된 점에
대한 그의 설명을 읽고는 몹시 화가 치밀어
그에 대해 공평해 보리라는 심정은 도저히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행동거지에 대해서 그녀가 만족할 만큼의
유감의 뜻을 나타내지 않았다. 편지 내용에는
반성하는 빛이 엿보이지 않았으며 거만하기만 했다.
그것은 오만하고 무례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 다음에 위컴 씨에 대한 설명이
계속되었을 때 먼저보다는 다소 더 확실해진 주의력을
가지고 읽어 갔지만, 만약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사실일 것 같으면 위컴 씨의 가치에 대해 품어 왔던
모든 생각은 뒤집혀질 것이 틀림없고 더우기 그러한
것이 그 사람 자신의 신상 이야기와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의 심정은 더욱 심한 통증을 느꼈고
형용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말았다. 놀라움과
불안, 나아가 공포의 심리까지도 들었다. 그녀는
전적으로 그것을 불신하면서 계속 소리질렀다.
"그건 거짓말이야! 이럴 수가 없어! 이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거짓말이야!"
그리고 마지막 한두 장은 정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편지를 다 읽어 버림으로써 별안간
내동댕이치며 편지에 마음쓰지 않기로 하고 두 번 다시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산란한 마음으로 그녀는 무작정
걸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30초도 못돼 다시 편지를 펼쳤다. 그리고는 위컴에
관련된 내용을 분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하나 하나의 문장의 의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와 펨벌리 일가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그 자신이
말했던 그대로였으며 돌아가신 다아시 씨의
친절도 이렇게 컸었는지 전에는 몰랐던 일이었으나,
그것 역시 자신의 말과 잘 일치 되고 있었다.
여기까지의 내용과 그의 말이 맞아떨어졌으나 유언의
내용에 이르자 큰 차이가 생겨났다. 성직록에
관해서 위컴 씨가 했던 말은 그녀의 기억에도 새로왔다.
확실히 그가 했던 말을 회상해 볼 때 어느 쪽
한 편에 커다란 이율배반이 있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잠시 동안 그녀는 자신이
믿었던 바가 과히 잘못이 아니기를 빌었다.
그러나 주의를 기울여서 다시 읽어 나갔을 때 바로 그
다음에 계속된 위컴 씨가 성직록을 받을 권리를
깨끗이 단념했다든가 그 대신 3천 파운드라는 상당한
액수의 돈을 수령했다는 자세한 내용에 있자
그녀는 다시 한 번 주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읽던 편지를 손에서 떼고서는 공평한 태도를
가지겠다고 애쓰면서 사정을 빼놓지 않고 숙고해
보았다. 쌍방간의 진술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았다.
그러나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쌍방에서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데 불과했다. 다시 한
번 그녀는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대목 한
대목씩 읽어 갈수록 더 분명한 사실은 어떤 계략을 써도
다아시 씨의 행위를 파렴치하지 않게 만들 수는
없다고 믿었던 그 사건이 이제는 사건 전체를 보고
그에게는 비난할 점이 없다는 쪽으로 기우는
것이었다.
그가 서슴지 않고 위컴 씨의 책임으로 돌린 낭비와
방탕이라는 말이 유달리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그것이 중상모략이라는 증거를 잡을
수가 없어 더욱 안타까왔다.
ㅇㅇ주 의용군에 입대하기 이전의 그에 대해서는
그녀로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군에 입대하게 된
것도 런던에서 우연히 어떤 청년을 만나게 되어 약간의
친교를 맺고 난 후 그 사람의 권유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 이전의 생활상에 대해서는
허어퍼드셔에서 자기가 말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라곤 없었다. 그 사람의 진실된
성격에 대해서는 그녀가 설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알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의
용모, 목소리, 태도 따위가 그 사람을 모든
미덕을 갖춘 사람으로 그 자리에서 믿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아시 씨의 공격으로부터 그를 구해 낼 수 있을
선량한 예라든가 성실과 자애의 확실한 흔적 같은
것을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또는 적어도 그 미덕의
힘으로 그의 우발적인 과실들을 보상해 보려고 했다.
그녀는 다년간 계속된 나태와 악행이라고 다아시 씨가
말한 것을 우발적인 과실들의 범주에 넣어 보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어도
도움은 되지가 못했다. 태도나 용모에서 매력이란
매력은 죄다 갖춘 그의 자태를 곧바로 자기 눈앞에 볼
수가 있었지만, 이웃 일반에게 평판이 좋다든가
그의 사교 능력에 의해 군인 동료들한테 인정받고 있다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 실체성 있는 선량함
같은 것은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이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나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읽어 나갔다.
그러나 아! 그 다음에 이어지는 다아시 양에 대한
책략의 내용은 바로 어제 아침 피츠윌리엄 대령과
나눈 대화에서도 얼마간 확증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끝으로 사실 하나 하나의 소상한 내용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피츠윌리엄에게 알아 보라고 씌어
있지 않은가.... 피츠윌리엄으로부터 그녀는
그가 자기의 사촌형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말을 전에 이미 들은 바 있거니와
또 그녀로서는 그의 인격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한 번은 그에게 알아보리라고 거의 작심까지
해보았으나, 정작 그 일의 어색함이 그 생각을 가로막는
데다가 나중에는 다아시 씨가 자기 사촌 동생의 확실한
증언을 충분히 자신하지 않았다면 위험을 무릅
쓰고 그런 제안을 했을 리가 없을 거라는 확신 때문에
그 생각을 완전히 지워 버렸다.
그녀는 필립스 가에서 처음으로 위컴을 만났던 날
밤에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샅샅이 생각해 낼
수가 있었다. 그의 많은 말들이 아직도 그녀의 기억에
새로왔다. 지금 와서 생각할 때 처음 대하는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한 부당성에 새삼 놀라면서 그 전에
그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이상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자기를 내세우는 상스러운 행동과
언행의 불일치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가 다아시 씨를 만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뽐내면서 다아시 씨가 이곳을
떠날지는 모르지만 자기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를
않겠다고 말해 놓고서는 바로 다음 주에 있었던
네더필드의 무도회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던 일이
생각났다. 그녀에게 또 생각났던 일로서는 네더필드의
가족이 그것을 떠날 때까지는 그녀에게만 자신의 신상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이 떠나가자 장소를
안가리고 말을 퍼뜨리던 일과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그 아들을 폭로하지 못하겠다고 분명히
말해 놓고 조금도 삼가거나 거리끼는 빛이 없이 다아시
씨의 인격을 깎아 내리던 일이었다.
그와 관계되는 모든 일이 이제 와서는 얼마나 다르게
보여지는가! 그가 킹 양에게 마음을 가졌던
것도 지금에 와서 보면 철두철미하고 가증스러울 만큼
돈을 목표로 한 결과였다. 그녀의 재산이 그저
그런 정도라는 사실도 이제 와서는 그의 소망이
온건해졌다는 입증이 못되고, 그저 아무것이나 잡고
늘어지려는 그의 열의를 입증할 뿐이었다.
자기에 대한 그의 태도도 지금 와서 보면 용서 못할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녀의 재산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그녀가 부주의하게도 드러내 보였던 호의를
조장함으로써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있었던가 둘 중의
어느 것이었을 것이다. 그를 잘 보려 드는 미련
많은 노력이 점차 약해져 갔고 다아시 씨를 정당하다고
보는 마음이 더해 감에 따라서 그녀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던 일은 빙리 씨가 제인에게서 질문 받았던
진작 그때에, 그 문제는 그가 나쁘지 않다고
말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다아시의 태도는 거만하고 불쾌하긴 했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그와 계속 알고 지내는
동안...최근에 와서는 서로 함께 있어 본 일도 자주
있어서 그의 생활 방식에 익숙해질 정도의
사이였지만... 파렴치하다거나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면을 그가 드러내는 것을 본적이 없으며, 그의
경건하지 못한 습관이나 부도덕한 습관을 증명할 만한
일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친척들 사이에서도 존경받고 높이
평가되며, 위컴까지도 그를 오빠로서는 훌륭하다고
인정했고 그녀 자신도 그가 누이에 대해 너무도 깊은
애정으로 말하는 것을 가끔 들은 것을 생각하면
그도 상냥스러운 마음을 지닐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만약 그의 행위가 위컴이 말한 대로라면
그토록 난폭하게 정의를 짓밟아 놓고서는 세상의
문을 피할 길이 없으며, 또 그러한 짓을 해치우는
인간하고 빙리 씨와 같은 상냥한 사람 사이에 우정이
맺어졌다는 사실은 납득이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다아시와 위컴 어느 쪽으로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분별없고 불공평하고 편견에 지배되었으며 그리고
바보스러웠다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난 너무나 비열한 짓을 했어!"
그녀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내 자신의 견식을 그토록 자랑했던 바로 나 자신이!
그리고 자기 능력을 뽐내던 내가! 언니의
관대한 공평성을 곧잘 경멸했었고 아무 소용도
없는(비난받아 마땅한) 불신의 마음에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있던 내가! 지금 와서 뉘우치니 이 무슨
수치란 말이냐! 그러나 그 얼마나 당연한
수치이랴! 내가 만일 사랑에 빠졌더라도 이토록
비참하게 맹목적이진 않았을 거야. 그러나 내가
바보짓을 했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허영심
때문이다. 알게 된 당초부터 한 사람에게서
귀여움을 받아 좋아하고 또 한사람에게 등한시 당해서
화를 냈고 두 사람이 관련되는 일에는 선입관과
무지를 따른 나머지 이성을 쫓아내고 말았던 거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난 자신을 몰랐었어."
자기 자신에서 제인에게로, 제인에게서 빙리에게로
그녀의 상념은 하나의 흐름이 되어 갔었고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문제에 대한 다아시 씨의 설명이 매우
불충분한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에
또 한 번 그 대목을 읽어보았다. 두 번째 정독한 결과는
아까 하고는 아주 달랐다.
위컴의 일에 대한 그의 주장을 어쩔 수 없이 믿게 된
터에, 이번 경우에서도 어찌 그의 주장을
부정할 수가 있겠는가. 그는 언니의 애정을 전혀 눈치챌
수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샬로트의 의견이 향상 어떠했던가를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우기 제인에 대한 그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제인의 감정은 열렬하긴 했지만
겉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아서 그녀의 용모나 태도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격한 감수성 하고는 인연이 먼
아주 흡족하다는 그러한 기색만이 떠오른다고 생각했다.
분하기는 했어도 합당한 비난의 말로써 자기 가족에
대해 언급해 놓은 편지의 대목에 이르게 되자,
그녀는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한 비난의
타당성이 너무도 세차게 그녀에게 충격을 주어
부정할 수조차 없다. 그가 특히 언급한 사건은
네더필드의 무도회에서 일어났던 것으로서 그의 애초의
탐탁지 않은 기분을 더욱 확인시켜 주었다고 했는데, 그
일은 그녀 자신에게도 그에 못지 않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자신과 언니에 대한 칭찬에도 전혀 둔감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으로 그녀의 마음은 위로가 되었으나
나머지 가족 스스로가 초래했던 모욕을 생각할 때
마음이 편하질 못했다.
제인이 실연 당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녀의 육친들이
저질러 놓은 짓이며, 자기네 두 사람의 신용이
그러한 부적당한 행위에 의해 그 얼마나 손상을
입었는가 생각할수록 그녀는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한
이상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별의별 일들을 다 생각하며... 여러 일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따져 보기도 하고
이렇듯 돌발적이고 중대한 변화에 되도록 자신을
적응하려 애쓰며 두 시간 정도 작은 길을 헤매고 난
뒤에 지치기도 했거니와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운 것
같아서 마침내 귀가 길에 올랐다. 여느 때처럼 쾌활해
보이려고 애쓰면서 또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자기를 어색하게 만들 상념들을 억누르기로 다짐해
가면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가 부재중에 로징즈의 두
신사가 찾아 왔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아시
씨는 작별을 고하기 위해 불과 2, 3분 정도였으나,
피츠윌리엄 대령은 적어도 한 시간은 그들과 함께
자리하고서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랐으며 그녀를 찾으려
가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그와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체했지만 사실은 그것을 듣고서 기뻐하고 있었다.
피츠윌리엄 대령은 이제는 그녀의 대상이 못되었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온통 편지만이 가득 들어
있었다.
37
두 신사는 이튿날 아침 로징즈를 떠났다. 콜린즈 씨는
그들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오두막집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윽고 두 사람이 매우
건강해 보이더라는 이야기와 최근에 로징즈에서
있었던 쓸쓸한 이별의 장면이 있은 후로서는 바랄 수
있었던 만큼은 기분이 유쾌하더라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그리고 나서 로징즈로 캐더린 부인과 영애를
위로해 주기 위해 급하게 떠났다가 되돌아와서는
부인의 그 말을 매우 만족스럽게 전했다. 부인이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모두를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캐더린 부인을 보자, 만약 자신이
택하기만 했었더라면 지금쯤은 이 부인의 조카딸로
소개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부인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분은 어떤 말씀을 하실까.... 어떻게 행동하실까?'
그녀는 그렇게 질문하고 혼자서 즐겼다.
첫번째 화제는 로징즈의 식구 수가 줄어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나는 뼛속까지 느껴지는 일이지만"
캐더린 부인이 말했다.
"친구들이 떠난 후의 쓸쓸한 생각을 나만큼 맛본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난 그
청년들에게 특히 애착을 느끼고 있었고 그 사람들
역시 나한테 애착을 느꼈으리라 생각해요! 그
사람들은 떠나는 것을 매우 서운해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항상 그런 거지요. 친애하는 우리 대령은
끝까지 어떻게 해서든지 힘내려고 하고 있었지만,
다아시란 사람은 몹시 괴로운 것같이
보이더군요.... 작년보다도 더한 것같이 보였어요.
그 사람은 로징즈에게 애착을 더욱 더 느끼고
있는 모양이지요."
콜린즈 씨가 잽싸게 인사말과 암시 비슷한 말을 하게
되자 모녀는 다같이 즐거운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캐더린 부인은 베네트 양이 풀기가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아마 얼마 안되어 곧
집으로 돌아가는 게 싫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혼자서
재빨리 짐작하고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정 사정이 그렇다면 어머님께 편지를 내서 좀더
체류하고 싶다고 부탁을 해보는 것이 어떠우.
콜린즈 씨 부인도 당신이 같이 있는 것을 매우 기뻐할
테니까 말이지요, 틀림없이"
"친절하시게도 더 좀 체류하라고 하신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영부인님"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그러나 뜻을 받들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런던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6주밖에 머물지 못한 결과가 되는 것 아니오.
두 달은 체재하는 줄 알았었는데, 당신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콜린즈 부인에게 그렇게
말했었어요. 그렇게 빨리 안가도 좋을 텐데 말이에요.
어머님께서도 한 2주일 정도면 용서해 주실 텐데"
"그렇지만 아버님께서 못 기다리시는 거예요. 지난
주에도 빨리 돌아오라는 편지를 보내오셨거든요."
"아니! 어머님만 괜찮으시다면 아버님인들 허락
못하실라구. 딸 자식이란 아버지에겐 그리
중요하지가 못한 법이지요. 당신네들이 한 달만 더
머물 수 있다면 두 사람 중의 누군가를 런던까지
데리고 갈 수가 있을 텐데. 유월 초순에는 내가 한 주일
정도 머물려고 런던으로 떠날 예정으로
있어요. 도오슨이 마차에 앉는 걸 마다하지 않을 테니
한 사람 분의 좌석은 충분히 날 것이에요....
더우기 날씨만 신선하다면 두 사람 다 데리고 가도
좋을 거예요. 어차피 두 사람은 몸집들이 크지
못하니까."
"친절은 정말 고맙습니다, 영부인님. 그렇지만 원래의
계획대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캐더린 부인은 체념한 것 같았다.
"콜린즈 부인은 하인을 딸려 보내도록 해야 하오.
알다시피 난 언제고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지만, 젊은 여성 두 사람만이 역마차로
여행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일이오. 정말
잘못된 일이지요. 누군가를 딸려 보내도록 생각해
봐요. 세상에서 난 그런 일이 제일 싫으니까요.
젊은 여성들은 제각기 신부에 따라 언제고 적절하게
보호하고 시중을 들어주어야 하는 법이고.
조카딸 조지아나가 작년 여름 램즈게이트에 갔을 때로
하인 두 사람을 데리고 가라고 단단히
일러두었지요. 펨벨리의 다아시 가의 따님인 다아시
양이나 앤 부인도 그렇지 않았더라면 예절에
맞는 일이라고는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난 원래 이런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몹시 쓰는 편이지요. 이
젊은 여성들에겐 존을 딸려 보내도록 하오, 콜린즈
부인. 그런 말을 할 생각이 떠올라서 매우 기쁘오.
두 분끼리만 보내드린다면 그야말로 당신에게는
불명예가 되고 말 거예요."
"숙부님께서 하인을 보내 주시게 될 것입니다."
"아! 숙부님께서! 그분께선 하인을 두고 계신가요?
그런 일까지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니 난 정말
기쁘오. 말은 어디서 바꾸게 되지요? 아! 물론
브롬리에서 하게 되겠죠. 벨에서 내 말을 하게 되면
돌봐 줄 거예요."
캐더린 부인은 그녀들의 여행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해놓고서는 자작 일일이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쪽에서 그만한 주의를 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된 것이 엘리자베드로서는 오히려 다행하게
여겨졌다. 그렇지가 않았던들 마음 속에 들어찬 일들이
매우 많아서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는가를 잊고
말 지경이었다.
회상이란 혼자 있을 때를 위해 간직해야 할 일이다.
혼자 있을 때는 언제나 최대의 기쁨에 잠길 수
있는 단지 혼자만의 산책을 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다아시 씨의 편지는 그 전에도 거의 암기해 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녀는 문장이란 문장은 다
검토했다. 그 글을 쓴 사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은
때로는 크게 차이가 나기도 했다. 그 글의 스타일을
생각할 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비난하고 꾸짖었던 자신이 얼마나
부당했던가를 생각이 미치게 되자 이번에는 노여움의
화살이 자신에게로 향하게 되었고, 그의 낙담한 심정은
짐짓 연민의 대상이 되기로 했다.
그의 애정은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켰으며 그의 성격
전반에 대해서는 존경의 마음이 솟아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를 좋아할 수는 없었다. 나아가
그를 거절했던 것은 한시도 후회스럽지가 않았으며
다시 한 번 그를 만나보겠다는 기분도 전혀 들지 않았다.
지난날의 그녀의 행동은 언제고 회한의 불씨가 되었고
가족들의 불행스런 결점들은 더욱 무거운
분노거리가 되었다. 그런 것들은 고칠 가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딸들을 보고 그저
만족해서 웃을 뿐이었고 딸들의 어처구니없는 경솔함을
제지해 보려는 노력의 빛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어머니는 정작 자신의 예의범절이 너무나 올바름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러한 흉한 점이 눈에
뜨일 리 만무였다. 엘리자베드는 항상 제인하고 힘을
합해서 캐더린이나 리디어의 무분별한 행동을
제지해 보려고 애를 썼으나 정작 어머니 쪽에서
제멋대로 하게끔 내버려두는데 어떻게 개선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원래 마음이 약한데다 신경질적인 면을
가졌으며 꼼짝없이 리디어의 지도를 받다시피 하는
캐더린은 언니들한테 충고를 받게 되면 언제나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제멋대로며 신중
성이 모자라는 리디어는 그들이 하는 말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막내딸들은 무지스럽고 태만
한데다가 허영심이 강했다. 메리튼에 장교 한 사람이
있는 한은 그들은 함께 시시덕거릴 테고 메리튼이
롱본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면 그녀들은 늘
그곳으로 갈 것이 너무나 뻔했다.
제인에 관한 불안도 점점 크게 마음에 걸리게 되었다.
다아시 씨의 설명으로 그녀는 빙리를 다시 한
번 옛날처럼 높이 평가하게 되었으므로 더욱 제인이
잃은 것이 크다고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빙리의 애정은 성실한 것이었다고 증명되었으며, 그의
행동은 친구를 철두철미하게 믿는다는 점만을
제외해서 생각할 때 그 어느 곳에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족들의 바보스런
행동이나 범절에 어긋난 행동 때문에 제인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바람직하며 이점도 많으며 그토록
행복을 약속할 수 있는 지위를 놓치고 말았다고 생각할
때 슬픔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러한 회상과 더불어 위컴의 정체가 더욱
확실해졌으니 그 전에는 더욱 침울해 할 줄을 몰랐던 밝은
성품이었더라도, 이제는 너무도 상심한 나머지 웬만큼
쾌활해 보이기도 거의 불가능해졌다 해도 쉽게
이해가 갔다.
로징즈에 초대는 체재의 마지막 주에 가서는 첫주
못지 않게 빈번해졌다. 마침내 맨 마지막 밤도
거기서 보내게 되었다. 부인은 또다시 그녀들의 여행의
상세한 점까지 자세히 조사하고 최상의 짐을
꾸리는 방법에 마리아는 돌아가면 애써 오전 중에 꾸린
짐을 풀어서 여행 가방을 새로 챙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캐더린 부인은 작별할 대 겸손한 태도로 편안한
여행을 빈다는 인사말과 내년에 다시 헌스퍼드로
오도록 권유했다. 드 버그 양도 두 사람에게 인사를
나누자고 손을 내밀기까지 했다.
38
토요일 아침 엘리자베드와 콜린즈 씨는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에 아침 식탁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기회를 포착해서, 자기로서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작별의 인사말을 정중하게 꺼냈다.
"난 잘 모르겠습니다만, 엘리자베드 양"
"벌써 우리 집사람이 여기까지 와 주신 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렸는지요. 그러나 집사람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듣지 않으시고 이 집을 떠나실리는
만무하시겠지요만, 방문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정말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평범한
생활양식이라든가 방들이 작은 점, 하인이 또한 많지
못한 점, 나아가 세상일에 매우 아둔하다는 점 등 그 어느
것이고 당신과 같은 젊은 숙녀에게는 헌스퍼드란
곳을 사뭇 따분하게 만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당신이 친절하시게도 와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리고 아울러 당신이 불유쾌한 시간을 보내시지
않도록 하는 데까지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엘리자베드는 감사했으며 즐거웠었다고 말했다. 매우
기분 좋게 6주일을 보냈으며 샬로트와 함께 있는
있었던 일이 즐거웠고 게다가 친절한 배려까지 받게
되어서 자기 쪽에서 더 고맙게 여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콜린즈 씨는 흡족해 했으며, 더욱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자못 엄숙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기분 나쁘지 않게 시간을 보내셨다는 말을
듣게 되니 나는 더없이 기쁘게 생각합니다.
확실히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다행스럽게도 당신을 상류 사회에 소개할 수 있었던
우리의 능력과 그리고 로징즈와의 관계로 해서 누추한
우리 집 분위기에 자주 변화를 불어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헌스퍼드 방문은 전적으로 지루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좋을 성싶습니다.
캐더린 영부인 일가와 우리 집 하고의 관계는 정말
놀랄 만한 유익과 축복이라고 말할 수가 있으며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자랑거리라 할 수 있지요.
우리들이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는가를 당신도 잘
아시겠지요. 우리가 끊임없이 거기로 초대된다는
사실도 알고 계시겠지요. 사실 나 자신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일이지만, 이 보잘것없는 목사관에
이런저런 불편이야 있겠지만, 여기에 머무시는
분은 우리들과 함께 로징즈로 접근할 수 있는 한은
어떤 동정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감정이 고조됨에 따라 말로는 부족했던지,
엘리자베드가 몇 마디 짧은 말로 예의 같기도 하고 진실
같기도 한 의미를 애써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그는 방
안을 걸어다니지 않고서는 견디질 못했다.
"확실히 우리들에 관한 매우 좋은 보고를
허어퍼드셔에 가지고 가시겠지요, 엘리자베드 양.
그렇게 해주시기만 한다면 나는 기쁘기 한량 없겠어요. 우리
집사람에게 캐더린 영부인께서 친절히 해주신
것은 매일 직접 보셔서 아시겠지요만. 그래서 결국 난
믿고 있습니다만 당신의 친구분이 뽑은 것은
그렇게 나쁜 심지만은... 아니, 이 점에 대해서는
잠자코 있는 편이 낫겠지요. 사랑하는
엘리자베드양, 나는 진심으로 당신도 행복한 결혼을
했으면 하고 빌고 있을 뿐이지요. 사랑하는
샬로트와 나는 마음도 똑같고 생각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 둘이는 성격과
생각이 서로 매우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가 맺어지게끔 된 천생연분인 셈이죠"
엘리자베드는 상황이 그렇다면 최대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며, 꼭 같은 정도의 성의를
가지고서 그의 가정의 즐거움도 굳게 믿고 있다고
덧붙여 말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의
장본인인 부인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사연을 그로부터
소상하게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과히
섭섭하지는 않았다. 가엾은 샬로트! 그녀를 이런 남자의
상대로 내버려두다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녀 자신이 눈을 크게 뜬 채로 이
사람을 골랐던 것이다.
손님들이 떠나는 것을 애석해 하는 것은 명백했지만
그렇다고 동정 같은 것을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의 가정과 가사 처리, 그녀의 교구와
가금, 나아가 자질구레한 일상사가 아직 그들의
매력을 잃지 않았다.
이윽고 마차가 당도하여 여행 가방을 묶어 달고
소하물을 안으로 들여 넣자 곧 준비가 되었다는 통고를
받았다. 친지 사이의 애정 어린 작별 인사가 있은 후에
엘리자베드를 콜린즈 씨가 마차 있는 곳까지
수행해 주었다.
두 사람이 정원을 걸어 내려오고 있을 때 그는 가족
여러분께 안부를 잘 전해 달라고 했으며 지난
지난 겨울에 롱본에서는 친절한 초대를 받아 감사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으며 아직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가디너 부부에서도 안부 전해 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손을 내밀어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마리아가 뒤따랐으며 문을 막 닫으려는
찰나에 그는 별안간 사뭇 당황해 하며 그들이
아까부터 로징즈의 부인들에게 인사말을 하는 것을
잊었다고 주의했다.
"그러나"
그가 덧붙여 말했다.
"이곳에 머무신 동안 그분들이 베푼 친절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조촐한 경의를 그분들에게
전해 주기를 물론 원하고 계시겠지요."
엘리자베드는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자 문을 닫아도
좋다고 그가 말하자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마리아가 잠자코 있다가 외쳤다.
"처음 온 지 2, 3일밖에 안된 것 같은데요....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일들이 생겼지요!"
"정말 너무나 많았어요."
그녀의 상대가 한숨 지으며 말했다.
"우린 로징즈에서 아홉 번이나 식사를 했지요. 게다가
거기서 차 대접을 두번씩이나 받고 말예요!
할 말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엘리자베드는 마음 속으로 덧붙였다.
"더우기 감춰 둘 일도 많이 있구요!"
그녀들의 여행은 이야기 나눌 일도 많지 않았지만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없이 이루어졌다. 헌스퍼드를
떠나서 네 시간이 채 되기 전에 가디너 씨 댁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2, 3일 체류하기로 했다.
제인은 보기에 매우 원기가 있어 보였으며,
엘리자베드는 외숙모가 친절하게 자기들을 위해 마련해
준 여러 가지 초대를 받게 되어 미처 제인의 기분을
따져 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와 함께
귀가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롱본에서 관찰할 여가가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
다아시 씨가 청혼해 온 사실을 언니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적어도 롱본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데는 적잖이 힘이 들었다.
제인을 몹시 놀라게 해줄 것이며 동시에 이성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던 자기의 허영심의 많은 부분을
크게 만족시켜 놓고 말 일을 자기는 피력해 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 무엇에도
억압받지 않을 만큼 털어놓고 싶었으나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옳을 것인지 좀처럼 가늠하기 힘든 심정인
데다가 막상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빙리의 일도 저절로
몇 번씩 이야기하게 됨으로써 언니를 더욱 더
슬프게만 해줄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39
세 사람의 젊은 여자들이 함께 그레이스처치 가에서
허어퍼드셔의 ㅇㅇ시를 향해 출발한 것은 5월의 둘째
주였다. 베네트 씨의 마차가 마중을 나오기로 되어 있는
지정된 여관이 가까워지자 마부의 시간관념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그 증거로 키티와 리디어가 2층
식당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이 두 여자들은 거기에 온 지가 벌써 한 시간 이상이
되었는데도 맞은편 부인 모자 상점에 들르기도
하고 당직 중인 위병을 지켜보기도 하고 또 오이가 든
샐러드 양념을 만들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언니들을 영접하고 나서 여관 식료품 가게에서 내놓는
그런 냉육이 얹힌 식탁을 보여 주면서 자랑스럽게 외쳤다.
"이거 좋지 않아요? 놀랄 만큼 맛이 괜찮을 거예요?"
"우리가 한턱 쓸께요."
리디어가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돈은 빌려 주셔야 해요, 왜냐하면 바로 저
가게에서 다 써 버렸으니까요."
그리고는 사 온 물건들을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 보세요, 이 모자를 샀거든요. 그리 예쁘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사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집에 가서 즉시 풀어 해쳐서는 얼마만큼이라도 낫게
고칠 수 있을까 시험해 봐야겠어요."
그러자 언니들이 보기 흉하다고 트집을 잡아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덧붙여 말했다.
"그 가게엔 그것보다 더 못생긴 것도 두세 개
있었어요. 좀더 색깔이 예쁜 수실을 사서 새 장식이라도
하게 되면 이럭저럭 쓸 수 있게 될 거예요. 더우기
이번 여름은 뭣을 써도 괜찮을 것 같아요. ㅇㅇ주
연대가 베리튼을 떠나게 될 거예요. 한 2주일만 더 있으면"
"그거 정말이야?"
엘리자베드는 사뭇 만족스러운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브라이튼 근처에서 야영하기로 되어 있어요.
그러니 이번 여름엔 아빠가 우리들을 다 데리고
가 줬으면 얼마나 좋겠어! 이건 다시없이 좋은
계획인데다 돈은 한 푼도 안 들거든요. 엄마는 꼭
가시고 싶어 하실 거예요, 만사를 제쳐놓고서라도!
그런 일이라도 없게 된다면 얼마나 따분한
여름이 될 것인지 생각이나 해보세요!"
"정말야."
엘리자베드는 생각했다.
"그건 정말 즐거운 계획이야, 우리 모두한테 말야.
맙소사! 보잘것없는 의용군의 1연대하고 메리톤에서
매달 있는 무도회 같은 것으로 벌써 주체 못할
정도로 많은데 브라이튼이나 야영하는 전체
군인까지 합친다니!"
"그런데 좋은 소식이 있어요."
그녀들이 식탁에 앉았을 때 리디어가 입을 열었다.
"뭐라고 생각하우? 이건 정말 좋은 뉴스죠....
중대한 것이란 말예요....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 일이란 말예요."
제인과 엘리자베드는 서로 마주보고 급사에게는 더
이상 있지 않아도 좋다고 일렀다.
리디어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머, 언니들은 너무 딱딱하시고 분별이 지나치시단
말예요. 급사가 엿들어선 안된다 이거죠. 마치
급사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사람은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말보다는 더한 것들도 들었을 텐데요
그건 그렇고 못생긴 남자네요! 그 사람이 가 버리니까
기분이 너무나 좋아요. 그렇게 긴 턱은 정말
보지 못했어요. 그건 그렇고 뉴스를 말해야지. 위컴
씨 얘기죠. 급사가 듣기엔 너무나도 귀중하죠,
안 그래요? 위컴이 메어리 킹하고 결혼할 위험성은
우선 없어요. 자 어때요! 메어리는 리버푸울의
백부 댁에 가 있지 뭐예요. 그래서 위컴은
안전하지요."
"그렇다면 메어리 킹도 안전한 거야!"
엘리자베드가 덧붙여 말했다.
"재산이 축나는 연분에서 우선 안전해진 거야."
"위컴을 좋아한다면 이 곳을 떠나다니 좀 바보
같군요."
"그렇지만 서로간에 애정이 없어서 그랬겠지."
제인은 그렇게 말했다.
"틀림없이 남자 쪽에서 애정이 없었던 거야. 보장해도
좋지만 그 여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거야
주근깨 투성이의 불결하고 작은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냐 말야?"
엘리자베드는 자기로서는 그러한 조잡스런 표현은 할
수 없을지라도 그 감정의 조잡함에 있어서는
일찌기 자신의 가슴속에 간직했었고, 그것을 또한
자유라고까지 자부했던 것하고 별다름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을 때 그녀는 섬뜩해졌다.
모두들 식사를 끝내고 낮, 곧 마차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궁리 끝에 상자와 재봉
도구통과 소하물과 그리고 키티와 리디어가 구입했던
그리 달갑지 않은 추가 하물까지도 마차 안에
실었다.
"잘도 쑤셔 넣었군요."
리디어가 소리질렀다.
"보네트를 사 와서 다행이군요. 설령 모자 상자 하나가
더 불어나는 즐거움뿐이라도 말예요! 자아,
지금부터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기분 좋게 사뭇
얘기하고 웃고 해가면서 가요. 딴 것은 제쳐놓고
우선 언니가 그곳에 간 후에 어떤 일이 생겼었는가 그
일부터 들려 줘요. 멋있는 남자라도 만나셨었우?
바람 피웠어요? 난 말예요, 언니들이 돌아오기
전에 한 사람쯤은 신랑감을 정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어요. 큰언니는 얼마 안가 올드
미스가 되고 말 거니까. 조금만 있으면 스물 셋이
되니까 말예요! 맙소사! 스물 셋까지 결혼 안하고
있다면 전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필립스 이모가
언니의 신랑을 구해 주려고 얼마나 안달하시는지 모를
거예요. 리지는 콜린즈 씨의 청혼을 받았더라면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시고 계시죠. 그렇지만
농담으로 그러시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요. 아! 난
언니들보다 그 얼마나 먼저 결혼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되기만 하면 무도회에서는
샤프롱 구실을 해 드릴 수 있어요. 아, 정말 먼저번엔
포스터 대령 댁에서 유쾌한 일이 있었지요!
키티 하고 나하고 둘이서 주간에 그곳을 방문했더니
포스터 대령 부인이 밤에는 조촐한 무도회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하셨지요. (내친김에 말하지만,
포스터 부인하고는 매우 친한 사이죠!) 그래서
부인께선 해리톤 댁의 두 사람을 불렀지만, 그때 마침
나쁘게 해리에트가 병이 나서 편한 사람만 올
수밖에 없게 됐어요. 그리고 나서 우리가 뭘 했는지
아우? 체임벌린에게 여자 복장을 입혀서 귀부인
행세를 할 참이었었죠.... 얼마나 유쾌했을까
생각해 보세요! 포스터 대령 내외분과 키티와 나
이외에는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예요. 하기야
이모님의 가운 하나를 빌어야만 했기 때문에
이모께선 예외로 아시게 됐지만. 체임버릴은 어떻게
멋지게 보였는지 언니들은 상상조차 못할 거예요
데니와 위컴 그리고 프래트, 그 밖에 두 세 사람의
남자들이 들어왔었지만 체임벌린은 아무도 몰랐다니까요.
아주 재밌어! 난 한참 웃었다니까! 포스터
부인도 그랬구요. 난 웃다가 죽지나 않나 하고
걱정했죠. 그게 어쩐지 수상쩍다고 남자들이 말을
끄집어내기 시작하자 이내 내용이 드러나고 말았지요."
자기네가 겪었던 그러한 파티 이야기나 유쾌한 농담을
함으로써 리디어는 키티의 암시나 조언을
받아 가며 롱본까지 사뭇 일행을 즐겁게 해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엘리자베드는 될 수 있는 대로 듣지
않으려 했으나 위컴의 이름이 줄곧 튀어나왔기 때문에
안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집에서는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베네트 부인은
제인의 아름다움이 줄어들지 않은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더우기 베네트 씨는 식사 중에 여러 번
자진해서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돌아와 줘서 고맙구나, 리지야."
식당에 모여든 사람의 수효는 꽤 많았다. 왜냐하면
루커스 가의 식구들이 마리아를 맞이하여
이야기를 들으러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끌 화제는 여러 가지였다.
루커스 부인은 식탁 건너편에 앉은 마리아에게 맏딸의
행복에 관한 일이나 닭과 오리에 대해 묻기도
하고 베네트 부인은 한편으로는 약간 아래쪽에 자리잡은
제인한테서 최근의 유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것을 루커스 가의
막내딸들에게 말하느라고 이중으로 바빴다. 리디어는 그
누구보다도 큰 목소리로 오전 중에 있었던 여러 가지
재미있던 일을 들어 주는 사람만 있으면 열심히
지껄이고 있었다.
"아, 메어리 언니"
그녀가 말했다.
"언니도 함께 왔었더라면 좋을 뻔했어요.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가는 도중에 키티 언니하고
둘이서 차일을 전부 잡아 내려서 마차 안엔 아무도
없는 것같이 보이게 했었죠. 키티만 멀미를 하지
않았으면 난 그대로 가려고 했지요. 조지 여관에
도착해서는 우린 매우 기분 좋게 행동했다고 생각해요.
나머지 세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좋은
냉육 점심을 대접해 줬으니까 말예요. 언니도
같이 갔더라면 그런 대접을 받았을 거예요. 그리고
돌아올 때도 정말 아주 재미있었죠! 마차를
안 탔으면 좋을 뻔했다고 생각했죠. 어떻게나 웃었는지
죽을 지경이었지요. 그리고 집으로 올 때까지도
아주 재미있었어요! 어떻게나 큰소리로 웃고
떠들었는지 10마일 앞에서도 들렸을 거예요!"
이 말을 듣자 메어리는 자못 진지하게 말했다.
"난 말야, 그런 즐거움을 경멸할 사람은 못돼요,
리디어. 일반적인 여성의 심리로서는 확실히
그것은 쾌적한 일이겠지. 그러나 난 고백해 두지만
그런 일은 나에겐 별로 매력이 없어. 난 차라리
책을 더 좋아하지."
그러나 리디어는 이 대답을 한마디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의 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메어리의 말은 조금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오후가 되자 리디어는 메리튼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가 보자고 성화 했지만
엘리자베든는 그 계획에 대해서 굳이 반대하고 나섰다.
베네트 가문의 규수들이 집에 돌아온 지 반 나절도 채
안되는 데 장교들은 뒤쫓고 다닌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되겠기에. 그녀의 반대에도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또다시 위컴과 얼굴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으며
되도록 피해 보려고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연대의
이동이 가까와졌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다시없는
위로거리였다. 두 주일이 지나면 그들은 떠나가 버릴
것이며 일단 떠나면 그 사람으로 해서 괴로움을 당할
일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몇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여관에서
리디어가 암시하던 브라이튼 행 계획이 양친
사이에서 빈번히 야기되고 있는 사실을 그녀는 곧 알게
되었다. 엘리자베드는 이내 아버지에게는 승낙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나, 아버지의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애매하게 해석되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주 실망을 해가면서도 아직까지는 단념하지
않았다.
40
자기의 신변에서 일어난 일을 제인에게 말하고 싶은
엘리자베드의 안달은 더 이상 억제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마침내 엘리자베드는
언니에게 관계되는 일들은 하나같이 은폐하기로
결정하고 또 깜짝 놀랄 것을 미리 계산해 넣고서는,
다음날 아침 다아시 씨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장면의 골자를 말해 주었다.
베네트 양의 놀라움은 언니로서의 지극한 편애의 감정
때문에 곧 진정되었는데, 그 편애의 눈으로 볼
때 엘리자베드가 누구의 사모를 받는다 해도 극히
자연스런 일로 보였다.
그리고 순간적 놀라움은 곧 다른 감정으로
사라져 버렸다. 다이시가 자기의 감정을 고백하는 데
있어서 어쩌자고 그렇게도 부적당한 방법을 취했을까 그
점이 유감스러웠으나, 그보다도 동생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나서 얼마나 슬픈 심정에 젖었을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게 되자 그것을 더욱 가엾게
여기게 되었다.
"그분은 틀림없이 성공하리라고 확신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감정을 내색 않느니보다 못했단 말야. 그만큼
낙담도 더 컸을 게 아냐"
"정말 그래요."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나도 진정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우. 그러나
그분은 그 밖에 생각해야 할 일들이 있게 되면
나를 곧 생각하지 않게 될 거니까요. 그건 그렇고,
내가 거절했던 일을 꾸짖지 말아 줘요."
"널 나무라다니! 원 천만에"
"그렇지만 내가 위컴의 일을 너무 흥분해서 말한 것을
나무라겠지요."
"아냐.... 그렇게 말한 네가 틀렸다고 생각지는 않아"
"그렇지만, 곧 다음날 일어났던 얘기를 들려 주면
언닌 내 잘못을 알 거예요."
그리고 나서 엘리자베드는 편지 이야기를 말해 주었고
내용 속에서 조지 위컴과 관계 있는 부분을
전부 되풀이해 주었다. 가엾게도 제인에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큰 타격이 될 줄이야! 그녀는 방금 들은
한 인간 속에 내포돼 있는 사악함이 전 인류에게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믿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이
세상을 살아 나가고 싶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아시의 자기 변명도 그녀의 기분을 밝게 해주는
것이기는 했지만, 위컴에 대한 이 발견의 슬픔을
위로해 주는 것은 못되었다. 그녀는 짐짓 진지하게 어떤
오해에서 빚어진 결과이리라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어느 한족을 손상시키지 않고서 다른 한쪽의
결백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건 소용없는 짓이예요."
엘지자베드는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을 다 선인으로 만들자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한쪽을 정해 가지고 만족해야 하는
거예요. 두 사람 사이엔 꼭 한 사람 몫의 장점밖에
없으니까요. 그것마저 요즘에 와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있어요. 내 생각으로는 다아시 씨
쪽에 있는 걸로 믿고 싶은데 언니는 좋을 대로
정하시면 돼요."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자, 제인은 겨우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렇게 쇼크 받긴 이번이 처음이야."
"위컴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 가엾은 다아시 씨! 이봐, 리지, 얼마나
괴로왔을까 생각이라도 해줘야지. 실망이 얼마나
컸을까! 게다가 네가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말야! 누이동생의 그런 일까지
말해야 됐으니까!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야.
너도 꼭 그렇게 생각하겠지."
"야! 아녜요, 언니가 유감스러워 하고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나서 내가 그런 기분에
젖어 있을 수 없게 돼버렸어요. 언니가 그분을 그토록
공평한 눈으로 봐주신다는 걸 알고 나선, 난
어쩐지 태연해지고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는 기분이
자주자주 생기게 돼요. 언니의 풍성함이 나를
깍쟁이로 만들어요. 언니가 그분 일을 더 이상 한탄에
주신다면 내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워질 거예요."
"가엾은 위컴! 얼굴에는 그렇도록 선량한 표정이
깃들여 있는데! 태도도 그토록 밝고 상냥스럽기만 한데"
"틀림없이 그 두 청년의 교육에는 뭔가 관리상의
문제가 있었을 거야. 한족은 선인의 내용 덩어리인데
또 한쪽은 선인의 외관 덩어리이니까 말예요."
"난 네 생각하고는 달라, 다아시 씨에겐 그 외관이
없다고는 보지 않아"
"그런데도 난 이렇다 할 이유 없이 그분을 그토록
싫어했었고 내 딴엔 아주 현명하다고 여기고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자기
재능에는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고 재치 있는
슬기를 닦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요. 항상 사람을
중상 모략하고 있으면 올바른 일은 아무것도
말 못하게 되지만, 항상 사람을 비웃고만 있으면
때로는 재치 있는 말이 싫어도 입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거든요."
"리지, 넌 그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 틀림없이 이
문제를 지금처럼 해석 할 수는 없었을 거야."
"정말 못했죠. 적잖이 동요했어요. 비참할이만큼
동요했어요. 더우기 자신의 감정을 호소할 상대도
없었어요. 제인 언니가 없었던들 위로 받지 못했을
것이고 또 내가 생각했었던 만큼 약하지도 않으며
허술한 사람도 아니고 바보스럽지도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 줄 사람도 없었을 거예요! 아, 언니가
있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내가 위컴 얘기를 다아시 씨에게 말했을 때 그렇게
강한 표현을 하게 된 것은 정말 유감이란다.
지금 와서 생각할 때 그렇게 안해도 좋았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야."
"정말 그래요. 그렇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지독스럽게
말한 것은 내가 평소 마음에 품어 왔던 편견의
극히 당연한 결과인 거예요. 언니의 충고를 받고 싶은
점이 꼭 한 가지 있어요. 위컴의 성격을 친지
여러분에게 알려야 할 것인지 안 알려야 할 것인지 그
점을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베네트 양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대답했다.
"그토록 심하게 폭로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네 의견은 어떠냐"
"그런 짓을 해선 안되죠. 다아시 씨는 자기가 전한
말을 발표해도 좋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반면에 누이에 관한 얘기는 전부다 내 가슴속에
간직해 두란 부탁이었어요. 더우기 그분의 모든
행위에 관해 모든 사람에게 그 진실을 알리려 힘쓴들
그 누가 내 말을 믿어 주기라도 하겠어요?
다아시 씨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편견은 너무나 심한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그분을 잘 보이게 하려
들다간 메리튼의 선량한 사람들의 절반은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말 거예요. 난 그런 힘은 없어요.
위컴은 곧 가 버릴 사람이니까 그분이 실제 어떠한
인물이든 간에 이곳 사람들에게 큰 관계는 없는
일이지요. 앞으로 언젠가는 깡그리 알려질 테니까
그때 가선 그전에 그걸 몰랐던 모든 사람의
어둔했던 사실을 비웃기만 하면 되니까요. 지금으로선
난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가
않아요."
"네 말이 꼭 맞았다. 그분의 과오를 알리기만 하면
그분은 영원히 파멸 속에 빠져들고 말 테니까.
지금쯤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후회도 하고
명예회복도 하고 싶을 테지. 그분은 절망 상태로
몰아넣어서는 안되는 거야."
엘리자베드는 산란한 마음은 대화로 진정되었다.
두 주일 동안 마음이 무거웠던 비밀 중의 두 가지를
제거했으니, 그 둘 중의 어느 편이든 다시
말하고 싶을 때는 제인이 쾌히 들어 줄 게 확실했다.
그러나 아직도 감추고 있는 일이 있었지만 그녀는
조심성 있게 그것을 털어놓지를 않았다. 그녀로서는
다아시 씨 편지의 나머지 부분을 이야기를 할
용기가 없었으며, 또 언니를 빙리 씨가 얼마나
성심성의로 아꼈는지를 설명할 용기도 없었다.
그 속에는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그 부담스런
마지막 비밀을 털어놓는다 하더라도 당사자간의
이해만이 그것을 정당화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처럼 불가능한 일이라고 혹시 실제로 생긴다면
빙리 자신이 자기 입으로 더 기분 좋게 말할 수
있을 그런 일을 굳이 내가 나서서 말할 것까지는 없는
거야. 널리 발표할 자유를 내가 갖게 될 때면
말할 가치는 없어지고 말 때겠지!"
그녀는 집에 와 있었으므로 언니의 올바른 자태를
여유 있게 관찰할 수가 있었다. 제인은 행복한
편은 못되었다. 지금까지도 빙리에 대한 깊고 애절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이전의 그녀는 애정에는
첫사랑의 정열이 다 깃들여 있는데다가 그녀의 나이나
재주로 봐서는 첫사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상의 불편함이 있었다. 그에 대한 추억을 너무도
소중히 간직하고 그 사람 이외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상태여서, 그녀의 건강을 해치고
주위 사람들의 평온을 혼란시키기 십상인 번민에
휘말려 들지 않기 위해서는 그녀 자신의 양식과 주위
사람들의 기분을 살피는 마음이 꼭 있어야 했다.
어느 날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그렇지만, 리지야. 너의 언니의 그 슬픈 문제에 대한
너의 의견은 어떠냐? 나로서는 누구에게도
두 번 다시는 이 문제에 대한 말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다. 내 일전에도 필립스에게 말했다만,
그렇지만 제인은 런던에서 그 사람하고는 잠시도
만나 보지 못한 것 같구나. 그런데 그 사람은 정말
상대가 안되는 청년인가 봐.... 내 생각으로는 지금
와선 그애가 그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없어지고 만 거야. 난 알 만한
사람들에겐 죄다 물어 보았다만 이번 여름에는
네더필드로 돌아오기는 다 틀렸나 보더라."
"그분은 이제 네더필드에서는 안 살게 될 것 같아요."
"그래 좋다! 좋을 대로 하라지 뭐. 아무도 그 사람을
와 달라고 원치 않고 있단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내 딸에게는 너무했다고 언제나 말할 테다.
게다가 내가 그애 입장이라면 잠자코 참고만 있지
않겠다. 아무렴, 제인은 꼭 상심해서 죽어 버릴 테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도 자기가 한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까 한결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구나"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기대에서 어떤 위안을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리지야."
곧 그녀의 어머니는 말을 이어나갔다.
"콜린즈 부부는 잘 살고 있더냐? 그래, 그래
언제까지고 그런 상태가 계속됐으면 좋겠구나. 그래
어떤 음식을 먹고 있더냐? 샬로트는 가정 경제를 잘
보살피는 애니까. 친정 엄마 반만이라도 모질면
꽤나 모으게 될 테니까. 그 집 가계엔 사치스런
짓이라고 하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예, 정말 없어요."
"살림 솜씨는 대개 거기에 달려 있지. 암,
그렇고말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수입보다 조금 덜
쓰려고 애를 쓸 거다. 돈 문제로 곤란을 받지는 않을
거야. 참 잘하는 일이지! 그리고 너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게 되면 롱본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겠지.
그렇게 되는 날이면 롱본은 자기네 손에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하겠지."
"그런 문제는 내 앞에서는 꺼내지도 않았어요."
"암 그래야지. 꺼냈다면 이상한 일이지.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선 가끔 그런 말이 오간 것이
틀림없어. 하긴 법률상으로 자기네 소유가 아닌
재산을 태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
되겠지. 나 같으면 겨우 한사상속으로나 물려받을
재산이라면 부끄러워할 거다."
41
집에 돌아온 후 첫주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말았다. 이내 두 주일 째로 접어들었다. 연대의
메리튼 주둔의 최후의 주로서 근처의 젊은 여자들은
급속하게 침울해져 갔다.
거의 모두가 낙담 상태였다. 베네트 가의 두
큰딸들만이 여전히 먹고 마시고 잠을 잤고 여느 때처럼
일을 해 나갈 수가 있었다. 이 무감각 상태를 끊임없이
키티와 리디어가 나무랐는데, 이 두 사람의
비참함은 비할 데가 없었으며, 가족 안에 이토록 무정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느님! 저희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하면
좋단 말입니까?"
살을 에는 듯한 슬픔 속에서 그녀들은 자주
외쳐 보았던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싱글벙글하고 있을 수가 있어요. 리지 언니?"
애정 깊은 어머니마저 그녀들과 슬픔을 함께 했다.
그녀는 25 년 전에 자기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정말"
그녀가 말했다.
"밀러 대령의 연대가 떠나가 버렸을 땐 난 이틀
동안이나 사뭇 울며 지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어."
"정말 내 가슴도 찢어질 것 같아요."
리디어가 받아 말했다.
"브라이튼으로 갈 수만 있다면!"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아, 그렇구말구요!. 브라이튼으로 갈 수만 있다면!
그러나 아빠가 덜 좋아하시고 계시니까 말예요."
"해수욕을 조금만 하면 난 건강해질 수가 있겠는데"
"필립스 이모는 해수욕은 저에게도 매우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키티가 말했다.
이러한 한탄의 소리가 롱본 집에는 끊임없이
울려 나갔다. 엘리자베드는 그것들로 해서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했으나 즐거운 기분은 온통 수치심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녀는 다아시 씨가 흉본 것이 옳았다고 새삼 알게
되었으며 친구의 계획에 그가 간섭한 사실을 이토록
용서해 주고 싶은 심정을 전에도 전혀 느껴 보지 못했다.
그러나 리디어의 전도의 어두운 그림자는 곧 걷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연대의 포스터 대령
부인한테서 브라이튼으로 함께 가자는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없이 귀중한 이 친구는 아직 젊은 부인으로
최근에 결혼한 사람이었다. 명랑하고 생기발랄한
점이 서로 흡사해서 그녀와 리디어는 서로가 좋아하게
되었으며, 교제한 지 3 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이때의 리디어의 기뻐 날뛰는 것과 포스터 부인에
대한 그녀의 찬사, 베네트 부인의 만족, 그리고
키티의 원통해 하는 꼴들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 못할
것들이었다. 언니들의 기분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리디어는 침착성을 잃은 무아 상태로 집 안을
뛰어다녔으며 닥치는 대로 축하를 요구하며 보통 때
이상으로 웃고 지껄여 댔다.
반면 불운한 키티는 응접실에 처박혀서는 칭얼거리는
어조만큼이나 조리에 안 맞는 투로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포스터 부인은 왜 리디어만이 아니고 나까지 오라는
말을 안했는지 모르겠어."
"난 그분하고는 각별한 사이는 아니지만 나도
초대받을 권리는 리이어만큼은 있다고 봐요. 더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두 살이나 위니까 말예요."
엘리자베드는 이치를 따져서 납득시키려 하고 제인이
체념시키려 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엘리자베드 자신으로서는 이 초대를 해서 리디어나
어머니와 같은 기분에 젖어 들기 전에 거리가 너무
멀었으며, 리디어의 상식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탈로가 나면 그런 수단을 쓴 것으로 해서
미움받을 것이 뻔했는데도 동생을 보내지 말도록
아버지에게 살짝 권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리디어의
품행이 과히 좋지 못하다는 점, 포스터 부인과
같은 여자와 교제해서 별로 얻는 것이 없을 것이며,
집에 있을 때보다는 유혹이 많을 브라이튼 같은
곳에서 그런 상대와 함께 있으면 더 경솔해질는지도
모른다는 점등을 아버지에게 말해 주었다.
아버지는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리디어란 애는 어딘가 사람 많은 곳에 몸을 내맡기기
전에는 조용해질 수 없는 애야. 더우기 이번
경우처럼 돈도 안들것다, 제 식구들한테 폐끼치는
일도 별로 없는 터에 그애더러 얌전히 참고 있기를
기대할 수야 업지 않겠니"
"아버지께서 만일"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리디어의 부주의하고 경솔한 태도가 남의 눈에
뜨임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매우 막대한 손해를 끼칠
거라는 사실을 아니 이미 끼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시기라도 하신다면 틀림없이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판단하시게 될 거예요."
"이미 끼쳤다구!"
베네트 씨가 되뇌었다.
"뭐라구! 그래 네 애인 몇 사람을 놀라게 해서
쫓았다는 거냐? 가엾은 리지야! 그러나 그리 낙심할
필요까진 없다. 다소 불합리한 사람하고 인연이
맺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까다로운 청년 같으면
애석해 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서
리디어의 바보스런 행동으로 해서 멀어진 불쌍한
녀석들의 명부를 어디 한 번 대봐라."
"그건 잘못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전 그렇게
분할 만큼 피해는 안 입었어요. 제가 지금 불평을
털어놓고 있는 것은 어떠한 특정 재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일이에요. 세상에서의 우리
집안의 가치라든가 체면 같은 것들이 행여 리디어의
성격의 특징으로 돼 버린 야성적인 경솔함이라든지
아니면 뻔뻔스런 점 또는 일체의 구속을 경멸하는
따위로 해서 해를 입을 것이 너무나 뻔하거든요
죄송해요.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드려서. 아버지, 만약
리디어의 걷잡을 수 없는 기질을 막지 않으신다든가
지금 한창 쫓고 있는 것이 인생의 참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시다가는 그애는
정녕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거예요. 성격이
굳어져 버리고 열 여섯에 벌써 자신이나 가족을
우스갯감으로 만들고 마는 보기 드문 바람둥이가 되고
마는 거예요. 그 바람둥이라는 것도 얼마
안가서 제일 고약한 저질이 돼버려서 그저 젊고 쓸
만하다는 이외엔 아무런 매력도 없어지고 정신이
또한 어리석고 공허해져서 칭찬 받고 없어지는 거예요.
키티도 궁극엔 이러한 위험 속에 말려들게
마련이지요. 리디어가 가는 곳이면 어디라도
따라가려고 하니까요. 허영심이 있고, 무지스럽고,
게으르고, 또 완전히 제멋대로란 말예요. 그리고
아버지께선 그애들이 어디엘 가든 비난도 경멸도
안 받게 된다거나 또는 손위의 저희들이 자주 불명에
속에 휘말려 드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베네트 씨는 그녀의 마음 전체가 이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되었다. 이윽고 다정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서 대답했다.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애야. 너나 네 언니는 어디에
가든 존경받고 위함 받을 수가 있다. 두
사람의... 아니 세 사람이라도 좋을 거다만...
몹시 아둔한 동생들을 가졌다고 해서 너희 둘의
값어치가 줄어들지는 않을 거야. 리디어가
브라이튼으로 가지 않을 것 같으면 이곳 롱본에는
평화가 없을 거다. 그러니까 가도록 하자는 거다. 포스터
대령은 분별이 있는 남자니까 그애에게 뭔가
중대한 과오를 범하게 할 리가 없을 거다. 더우기
그앤 불행 중 다행으로 못사는 처지니까
누구에게도 희생물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브라이튼에서는 경박한 바람둥이로서도
여기보다는 인기가 덜할 테니까 말이다. 장교들도
좀더 눈요기가 될 만 한 여성들을 찾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그애가 그곳에 가더라도 자기가 아주
보잘것없다는 걸 배우기만 기대해 보자꾸나. 아뭏든
더 이상 더 나빠질 수는 없을 게다. 그렇게 된다면
죽을 때까지 가둬 두는 걸 우리에게 허용하는 셈이
되니까 말이다."
이 대답에 엘리자베드는 하는 수 없이 만족해야
했지만, 정작 자신의 의견은 조금도 변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낙심한 채 유감스러운 기분으로 아버지
곁을 떠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하며 번민을 더하는 것은
그녀의 성질로서는 못할 일이었다. 자기의
의무는 일단 다 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피치 못할
재난을 마음 속으로 걱정하거나 불안에 의해
재난을 더 크게 하는 그런 것은 그녀의 기질 속엔
없었다.
리디어와 어머니가 그녀와 아버지 사이에 오고간
내용을 알기나 하는 날이면, 그녀들의 분노는 그 두
사람의 심한 수다로도 표현을 다 못할 정도일 것이다.
리디어가 상상하는 바로는, 브라이튼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행복의 가능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창작적인 환상의 눈으로 화려한 해수욕장의
거리가 온통 장교들로 가득 차 있는 장면을
그려내었다. 지금은 아직 알지 못하는 그들의 시선에
자기가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야영의 모든 장관도 볼 수가 있었다. 텐트들이
아름다운 선으로 줄지어 있고 젊고 쾌활한
사람들이 넘쳐흐르며 심홍색으로 눈이 시릴 정도라고나
할까, 이 광경을 완벽한 것으로 만들기나
하듯이 텐트 아래에 자리잡고 앉아서 한꺼번에 적어도
여섯 명의 장교들을 희롱하고 있는 자기의
자태를 상상해 보았다.
만약 그녀가 이러한 희망, 이러한 현실에서 언니가
자기를 떼어 놓으려든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대체적으로 같은 심정이었을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침 남편이 브라이튼으로 갈 의향이 전혀 없다는
우울한 확인을 하고 난 후라서 리디어가 그곳에
가는 일만이 그녀의 위안거리였다.
그러나 그녀들은 어떤 일이 있었는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리디어가 집을 떠나는 그날까지
거의 끊임없이 그녀들의 기쁜 상태가 계속되었다.
엘리자베드는 이제 위컴 하고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었다. 돌아오고 난 후 자주 그와 어울렸기 때문에
마음의 동요는 꽤 가라앉고 그 전에 좋아했을 당시와
같은 설레임도 이제는 다 사라지고 말았다.
한때는 자기를 황홀하게 했던 그 부드러움 속에서
허식과 단조로움을 발견해 냄으로써 이제는 혐오감과
싫증마저 들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자기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새로운 불쾌감의 원천이 될 만한 것도
있었다. 그들이 서로 처음 알았을 때 눈에 띄게 보여
주곤 했던 그 친밀감을 새롭게 해보려는 그의
호의도 이제는 그 후의 일도 있고 해서 오히려 그녀를
짜증나게 할 뿐이었다. 자기가 이와 같이 헛되고
하찮은 정사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그에 대한 관심도 전혀 없어지고 말았다.
그의 친절이 끊어진 지 얼마나 오래 되었든 그리고 그
동기가 뭣이든 간에 그가 자기의 친절을 새로
보이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녀의 허영심이 충족될 것이며
그녀의 호의도 회복될 것으로 그가 믿고 있다는 사실에는
그녀 쪽에도 책임이 있다는 느낌을 그녀는 한사코
억누르려고 해보았지만, 그런 느낌을 안 느낄래 안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연대의 메리튼 주재의 마지막 날 다른 장교들과
함께 롱본에서 식사를 했다. 엘리자베드는 그와
기분 좋게 헤어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서,
헌스퍼드에서 어떻게 지냈느냐고 그가 물어 왔을 때
피츠윌리엄 대령과 다아시 씨가 로징즈에서 3주 동안
체재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혹시 대령하고는
안면이 있는 사이가 아니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매우 놀라고 불쾌해 하며 또한 낭패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머금으면서 전에는 그를 자주 만났다고 대답했다. 그는
매우 신사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고 나서, 얼마나
마음에 드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말에는
대령에 대한 호의가 은근히 담겨 있었다.
"그 사람이 로징즈에는 얼마나 있었다고 했죠?"
"이럭저럭 3주일 되죠"
"그 사람을 자주 만나셨던가요?"
"예, 거의 매일 같이오"
"그 사람의 태도는 사촌하고는 아주 달랐을 테지요."
"매우 달랐어요. 그러나 다아시 씨도 사귈수록 점점
좋아지는 분이신 것 같아요."
"정말입니까!"
엘리자베드는 그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렇다면 물어보겠습니다만"
자기를 억제해 가며 쾌활한 어조로 덧붙여 말했다.
"좋아지다니요, 그 사람의 인사말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그래 흔히 그가 하는 방식에다 또 무슨
정중함이라도 보태던가요? 설마하니"
그는 더욱 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 사람이 본질적으로 좋아질 리가 있겠어요."
"아, 아녜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제 생각으론 그분께선 본질적으로는 전혀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말하고 있는 동안에 위컴으로서는 그녀의 말을
듣고 기뻐해야 옳을지 아니면 그 뜻에 일말의
의혹을 품어야 옳은 것인지 전혀 분간을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을 때
그녀의 표정에는 어딘가 모르게 그를 불안한 심정과
그리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귀기울이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사귈수록 좋아졌다고 해서 그분의 마음이나 태도가
좋아졌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분을 좀더 잘
알게 됨으로써 성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그러자 위컴의 안색과 흐트러진 표정이 역력히
나타났다. 2,3분 동안 잠자코 있다가 이내 당혹감을
떨쳐 버리고는 다시 그녀 쪽을 향해 다시없이 부드러운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다아시 군에 대한 나의 기분을 잘 알고 있는
터이라, 그 사람이 정당한 체할 만큼이나
현명해진 것을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가를 곧 아시겠지요. 그 사람의 거만도 그
방향으로 움직여 나간다면 자신에게는 도움이 안될지
모르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고통받아 왔던 만큼이나 지독한 일은
이제는 더 하지 않을 것이니까 말입니다.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당신이 잠깐 암시했던 그
신중성이란 것도 이모님을 찾아갈 때만 있는 일시적인
것 같군요. 이모님의 평가를 잘 받으려고 그 사람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함께 있을 때는 그
사람은 항상 이모님을 두려워했는데, 그것은 효과가
충분했었죠. 그것도 따지자면 드 버그 양과의
혼담을 어떻게 잘해 보자는 생각에서 하는
일이겠지요. 그 사람이 마음 속으로 그것을 그리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니까요."
그 말을 듣자 엘리자베드는 미소를 억누를 수
없었지만 고개를 약간 끄떡여 보임으로써 대답을
대신했을 뿐이다. 그가 늘 자신의 해묵은 불평거리로
그녀를 끌어들이려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그날 저녁의 나머지 시간을 여느 때처럼 쾌활한
체하면서 보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엘리자베드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 정중하게 작별했는데,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서로가
마찬가지였으리라.
파티가 끝나자 리디어는 포스터 부인과 함께
메리튼으로 돌아가 버리고 그곳에서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와 가족 사이의 작별은
슬프기는커녕 오히려 소란스런 것이 되어 버렸다.
키티가 운 것은 어디까지나 속상하고 시샘이 나서였다.
베네트 부인은 딸의 행복을 기원하는 말을 잔뜩
늘어놓았으며 모처럼 즐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인상적인 지시를 했는데, 이 충고를 귀담아 듣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리디어는 신이 나서 언니들의 한결 차분한 인사말을 잘
들리지도 않았다.
42
만약 엘리자베드의 견해가 모두 다 자신의 가정에서
끌어낸 것이라면 부부 생활의 행복이나 가정의
단란함에 있어서는 그리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느 여성의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러한 젊음과 아름다움이 흔히 보여
주는 선량한 성품의 외양에 끌린 나머지
결혼하고 말았지만, 정작 그녀의 힘은 약하고 정신은
마냥 좁기만 해서 결혼 초기에 이미 그녀에 대한
진실된 애정은 끝이 난 것이다. 존경이라든가 높은
평가라든가 신뢰 같은 것은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가정의 행복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베네트 씨는 자기 자신의 경박함에서 비롯된
환멸의 위로를 세상의 가엾은 사람들이 자신의 우행이나
악덕을 달래 볼 양으로 흔히 탐닉하기 쉬운
쾌락 같은 데서 찾을 성격은 아니었다.
그는 전원이나 책들을 좋아했고, 그런 취미에서 주된
즐거움을 찾게끔 되었다. 부인한테 덕을 본
것이라고는 그녀의 무지와 어둔함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
이외에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남편이 부인한테서 얻고자 하는 그런 행복은
못되지만, 달리 즐거움을 취할 힘이 없을 때는
진정한 현인이라면 그와 같이 주어진 것에서 이익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한 남편으로서의 아버지의
태도가 온당하지 못한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 그것을 보고 마음 아프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능력을 존경했고, 자기를 애정
깊게 대해 준 데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간과할 수 없는 일까지도 잊으려고 애썼으며,
항상 남편으로서의 의무와 예의에 어긋나게 부인을
자식들로 하여금 경멸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몹시
못마땅하다는 생각을 지우려고 힘썼다.
그러나 그녀는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결혼에 의해
생겨난 자식들에 따르게 마련인 불리함을 지금만큼
느껴 본 적도 없었으며, 적절하게 이용만 했으면 자기
부인의 정신을 넓히진 못해도 자기 딸들의 품격
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을 재능을 그토록 그릇된
방향으로 몰고 감으로써 생겨난 불행을 이렇게 인식해
본 적도 없었다.
위컴이 떠나간 것을 기뻐하고 나자 엘리자베드에게는
연대가 없어진 것에 만족할 만한 이유는 없었다.
바깥에서 갖는 파티도 전보다 변화가 없었고 집에서는
어머니와 동생이 주변의 모든 일이 지루하다고
투덜거리기 일쑤여서, 어쩐지 가족들의 모임에는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게 마련이었다. 키티에게 더
이상 마음을 산란하게 할 사람도 없어졌으니 이럭저럭
타고난 분별심을 돌이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리디어 쪽은 아무래도 그 기질로 해서 더욱
나쁜 일이 생길까 염려스러운데다 해수욕장과
야영이라는 이중의 위험한 상황 때문에 어둔함과
뻔뻔스러움이 더 심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서
엘리자베드는 전에도 가끔 경험했지만, 조바심 나게
간절히 기대하던 사건이 일단 일어났을 때는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을 전부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실상의 행복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어떤
다른 시기를 기약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뭔가 다른 일에다 소원과 희망을 걸어 보고 다시 한 번
즐거움을 느낌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고
나아가 장래의 실망에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호반 지방의 여행이 가장 즐거운 상념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나 키티의 불만으로 자칫
불유쾌해지게 마련인 시간에는 다시없는 위안거리가
되었다. 제인을 이 계획에다 끌어넣을 수만
있었다면 금상첨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행스러운 거야. 바라는 것이
있으니까. 모든 일이 뜻대로만 된대서야, 실망이 꼭
따르게 마련인 거야.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언니가
함께 있지 않아 유감이라고 항상 느껴지며
여행을 하기 때문에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실현을
당연히 기대할 수 있을 거야. 시작에서 끝까지
즐거움이 약속된 계획이란 결국 별수 없게 되고 말아.
전체적으로 실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뭔가 조
조금은 번민하는 일이 있어서 막아 주어야 좋을
성 싶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리디어는 떠나면서 어머니와 키티에게는 매우 자주
그리고 자상하게 편지를 내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에는 그녀의 편지는 언제는 오래 기다리게 했다.
게다가 퍽 짧은 글이 고작이었다.
어머니에게 보내 오는 편지 속에는 자기는 지금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이고 이러이러한 장교들을
만나 보았으며 완전히 정신을 나가게 할 만한 아름다운
장식물들을 보았다든가, 새 가운과 새 파라솔을
샀는데 그런 일을 좀더 자세하게 쓰고 싶지만 포스터
부인이 부르고 있어서 지금부터 야영지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황망 중에 붓을 놓게 되었다는 그런 일밖에
씌어 있지 않았다.
더욱 언니 키티에게 보내 온 내용에서는 알 만한
일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로 온
편지는 다소 긴 내용이긴 했으나 줄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공표할 수가 없었다.
리디어가 집을 떠난 지 2,3주일 정도 지나자
롱본에서는 건강, 쾌활, 활기 같은 것들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들이 더욱 즐거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겨울 동안 런던에 올라갔던 가족들도 돌아오고 여름
옷단장과 초대의 화제가 풍성해졌다. 베네트
부인은 예전처럼 투정 어린 명랑함으로 되돌아갔다. 유월
중순쯤 해서는 키티도 제법 원기를 되찾아,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 메리튼으로 들락거릴 수 있게
되었다. 육군성이 잔인하고 심술궂은 배치에
의해서 또다른 연대를 메리튼에 주둔시키지 않는 한은
키티도 꽤 분별이 생겨서 오는 크리스마스까지는
하루에 한 번 이상 장교들 얘기를 입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만큼, 엘리자베드로서는 그
전망이 여간 다행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북쪽 여행을 시작하기로 정해진 시기가 바야흐로 점점
가까와져서 겨우 두 주일밖에 남지 않았을
때에, 출발이 연기되고 일정도 단축하기로 됐다는
편지가 가디너 부인한테서 왔다. 가디너 씨는 용무
때문에 7월 들어 2주일이 지나야 떠날 수 있게 되었으며
또 한 달 이내에 런던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짧은 기간으로 당초의 계획대로 멀리 가서
많은 것들을 볼 수도 없게 되며 적어도
계획했던 것처럼 천천히 즐겁게 구경할 수도 없게 된
판국이라 호반 지방은 어쩔 수 없이 단념해 버리고
더욱 짧은 여행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번 여행 계획으로서는 더비셔보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그 지방에도 볼 것은 충분히 있어서 거의 3주 정도는
걸릴 것이므로 가디너 부인은 그곳에 특히 강한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가 일찌기 몇 해를 지낸
일이 있고 이번에는 2,3일 체재하기로 되어 있는
이 도시가 매트러크(더비셔의 온천 도시)나
체츠워드(데본셔 공작의 저택이 있는 곳)나 더브데일
계곡이나 산정지대 등의 명승지에 못지 않게 그녀의
커다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엘리자베드의 실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꼭
호반 지방을 구경할 시간은 충분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었다.
더비셔의 언급과 더불어 그곳에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녀로서는 그 말을 보고
펨벌리와 그 소유자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틀림없이. 그분의 고장에 들어가더라도 별로
탓할 것도 없고 그 분 모르게 섬광석 두세
개를 기지고 올 수도 있는 거야.'
이제는 기다리는 기간이 배로 늘어났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도착하려면 아직 4주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들이 겨우 지나가서 가디너 부부는 네
아이들을 데리고 마침내 롱본에 왔다. 여섯 살과
여덟 살 짜리 두 계집아이들과 어린 두 남동생들은
그들의 사촌 제인이 특별히 돌보아 주도록 맡겨졌다.
많은 어린아이들은 제인을 좋아했고 정확한 분별과
상냥스런 기질로 해서 어느 모로나(그들을
가르치는 데나 함께 노는 데나 귀여워 해주는 데
있어서나) 그들을 돌보는 데는 안성마춤이었다.
가디너 부부는 하룻밤을 롱본에서 지냈을 뿐 다음날
아침 엘리자베드와 함께 구경과 행락의 여행을
떠났다. 한 가지 즐거움만은 분명했다. 호적한 여행에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불편에
견디어 낼 건강과 침착성을 포함한 호적함이
있으며(모든 기쁨을 더해 주는 쾌활함이
있었고) 더우기 여행길에서 여러 모로 실망되는 일이 있더라도
자기들에게 쾌활함을 불어넣어 줄 날카로운 지혜가 있었다.
더비셔에 대한 일이나 거기로 가는 길의 명승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은 아니다. 옥스퍼드, 블레닌,
워릭, 케닐워드, 버밍검 등은 잘 알려진 곳이다. 더비셔의
한 작은 부분만이 현재 관심 있는 곳이다.
이 지방의 주요한 명승지를 두루 살피고 난 후에
가디너 부인이 한때 살았었고 아직도 몇몇 지기가
있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된 램튼이라는 작은 도시로
발걸음을 돌렸다.
엘리자베드는 램튼에서 5마일도 안되는 곳에 펨벌리가
있다는 것을 외숙모한테서 들어 알 수 있었다.
직행하는 길목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길에서 1,2마일
이상 벗어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전날 밤의
경로에 대해 상의하면서 가디너 부인은 그곳을 재차
보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냈었다. 가디너 씨가
괜찮은 일이라 말하고 엘리자베드는 동의를 하도록
부탁 받았다.
외숙모가 말했다.
"얘, 넌 그렇게 말을 많이 듣던 곳을 보고 싶지도
않으냐? 그곳에서 말하면 또 너의 친지들 중 많은
사람들하고 인연이 있는 곳이잖니, 위컴도 어렸을 땐
사뭇 그곳에서 지냈었다."
엘리자베드는 궁지에 몰렸다. 자기는 펨벌리 같은
곳에서 아무런 용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곳은 보고 싶지 않은 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대저택에는 싫증이 났으며,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에 훌륭한 양탄자나 견수자 커튼 같은 걸 봐도
조금도 즐겁지가 않다고 털어놓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디너 부인은 그녀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값진 가구가 들어 있는 훌륭한 저택 같으면. 나도
보고 싶지가 않지만 그곳의 정원은 일품이다. 그
지방에서 제일 아름다운 숲이 있단다."
엘리자베드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곳을 구경하다가 혹시 다아시 씨하고 마주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리에 떠올랐다.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이랴!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차라리
외숙모에게 솔직이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반론도 나올 법했다.
그래서 마침내, 만약 그 가족의 부재 여부를 몰래
수소문해서 뜻하지 않은 회답이 있게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외숙모에게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밤에 자기 방으로 돌아갔을 때 객실 담당에게
펨벌리라는 곳이 매우 좋은 곳인가, 그
소유자의 성명이 무엇인가 묻고 나서 적잖이 불안한
심정으로 가족들이 이번 여름에 그곳에 와 있는지
물어 보았다. 마지막 물음에 대해서는 매우 기쁜 부정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이젠 그녀의
걱정거리가 사라졌으므로 자기도 그 저택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 그 문제가 재론되어 의사를
묻게 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관심을 꾸미면서
그 계획은 그다지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
드디어 그들은 펨벌리로 가기로 결정을 보게 되었다.
43
마차를 타고 가면서 엘리자베드는 다소 마음의 동요를
느끼며 펨벌리의 숲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상 마차가 오두막집 있는 데서 꺾어 들자
가슴은 매우 설레고 있었다.
저택은 매우 넓었고 그 속의 지면 형태도 다양했다.
마차는 제일 낮은 한 지점으로 들어서서
널찍하게 뻗어 있는 아름다운 숲속을 한참 동안 달리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대화를 하기에는 너무 벅차 있었으나
멋진 장소나 전망이 좋은 지점 하나 하나를 대할
때마다 감탄을 연발했다. 반 마일 정도 점차 언덕배기를
올라가자 곧 상당히 높은 곳에 닿게 되었는데,
숲은 거기서 사라지고 골짜기의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는
펨벌리 저택이 갑자기 시선에 들어섰다.
길은 골짜기를 향해 다소 경사져 있었다. 저택은
커다랗고 아름다운 석조 건물로 비탈진 곳에 잘
위치하고 있었으며 뒷면에는 울창한 수목이 연이어져
있었다. 건물 앞에는 자연 그대로의 가치를
얼마만큼 지닌 냇물이 더욱 불어나 있었지만 인공을
가미한 흔적은 조금도 없었다. 양쪽 둑은 형식을
갖추지도 않았고 꾸며져 있지도 않았다.
엘리자베드의 기분은 상쾌해졌다. 그토록 자연의 묘가
살려져 있으며, 또 이토록 자연의 미가 서투른
취미로 손상되지 않은 곳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모두들 열심히 칭찬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펨벌리의 주인이 되는 것도 괜찮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차는 다리를 건너서 현관에 닿았다. 더욱 가까운
위치에서 그 집을 살펴보면서 그 집 소유자와
얼굴을 마주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객실 담당 하녀가 잘못 알았던 게 아닌가
하고 불안해지기도 했다. 집 구경을 시켜 달라고
부탁했더니 현관의 홀로 안내되었다. 그들이 가정부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엘리자베드에게는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와 있는지 의아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가정부가 나타났다. 매우 의젓한 느낌의 중년
부인으로 짐작했던 바와 달리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으나 정중한 편이었다. 세 사람은 그녀 뒤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섰다. 커다랗고 균형 잡힌 방에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방 안을 잠깐 훑어보고 나서 풍경을
보기 위해 창문 쪽으로 갔다. 언덕은 그녀들이
내려왔던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먼 거리에서 보게
되자 더욱 가파르게 보였으며 아름다왔다. 토지의
배열은 두루 잘되어 있었다. 그녀는 강이며 양쪽 둑에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이며 골짜기의 굴곡을
눈길이 닿는 데까지 즐거운 기분으로 바라다보았다.
다른 방으로 들어감에 따라 그러한 풍경의 각도는
변해 갔지만 어느 창에서 보나 경치는 저마다
아름다왔다. 방마다 고상하고 훌륭했다.
그리고 그 가구들은 소유자의 재산에 어울리는
것들이었으나 엘리자베드는 그것들이 지속할이만큼
번지르르하지도 않고 쓸모 없이 아름답지도 않으며,
로징즈의 가구보다 화려한 편은 못되었으나 진정한
우아함이 있는 것을 알자 그의 취미에 감탄했다.
'내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 집 주부가 될 뻔했잖아! 이 방들하고는 지금쯤은
깊이 친숙해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남의 입장에서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으로서
즐기고 외삼촌이나 외숙모를 손님으로 환영하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어. 아냐, 그렇지 않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서,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외삼촌이나 외숙모는 나하고
관계가 끊어졌을 거야. 그들을 초대하도록
허락 받지는 못했을 테니까.'
이것은 다행스러운 회상이었다. 그 결과로 후회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이 정말 안 계신가에 대해 그녀는 가정부에게 묻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으나 차마 그럴 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외삼촌이 그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녀가 겁이 나서 외면하고
있으려니까 가정부인 레이놀즈 부인은 주인이
안 계신다는 말을 하고 나서는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내일이면 많은 친구분들을 대동하시고
돌아오시게 될 것입니다."
자기들의 여행이 어떤 사정으로 해서 하루 더
연기되지 않은 것을 엘리자베드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바로 그때 외숙모가 그림을 보라고 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벽난로 위에 놓여 있는 몇 폭의 다른
작은 초상화들 사이에 위컴 씨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외숙모는 싱글벙글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가정부가 앞으로 다가와서는 그것은
지금은 작고하고 안 계시는 주인님의 집사
아드님이신 젊은 신사 분의 초상화인데, 그 사람을
주인님 자신의 비용으로 가르셨다고 말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섭섭하게도 성질이 나빠졌다는 얘기올시다."
가디너 부인은 미소를 머금으며 조카를 바라보았으나
엘리자베드로서는 되받을 틈이 없었다.
"그리고 저것은"
작은 초상화 중의 하나를 가리키면서 레이놀즈 부인이 말했다.
"저의 주인님이세요. 본인과 꼭 닮으셨지요. 아까
것하고 같은 시기에 그려진 것이올시다. 한 8년
전쯤 됩니다."
"주인님이 매우 훌륭하시다는 건 여러 번 들은 바
있습니다."
그 그림을 바라보면서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단정하신 얼굴이시네요. 그러나 리지야, 넌 닮았는지
아닌지를 알고 있겠지."
자신의 주인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되자 레이놀즈
부인의 엘리자베드에 대한 경의는 더욱 더해
가는 것 같았다.
"이 아가씨께선 다아시 씨를 알고 계시는가요?"
엘리자베드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약간"
"정말 멋진 신사분이라 생각하지 않으세요?"
"예, 정말 멋지시군요."
"이렇게 멋진 분은 아직 보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2층
화랑에는 이것보다도 더 훌륭하고 큰
주인님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이 방은 돌아가신
주인님의 마음에 드셨던 방으로 이러한 작은
초상화들은 옛날 그대로입니다. 이런 그림을 매우
좋아하셨답니다."
위컴 씨의 그림이 끼여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레이놀즈 부인은 그리고 나서 그녀들의 주의를 다아시
양의 초상화로 향하게 했다.
그녀가 여덟 살 때 그려진 것이었다.
"다아시 양도 오빠에 못지 않게 아름다운 분이신가요?"
가디너 씨가 물었다.
"아, 아름답구말구요. 그렇게 예쁜 아가씨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말예요. 게다가 훌륭한 재능도
갖추고 계세요. 하루 종일 연주하시고 노래하곤
하시죠. 옆방에는 아가씨를 위해 런던에서 막 부쳐 온
새 악기가 있읍죠. 주인님께서 보내 오신 선물이지요,
아가씨께선 내일 주인님하고 함께 오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디너 씨는 부드럽고 명랑한 태도를 지닌 사람으로
질문도 하고 의견도 말함으로써 레이놀즈 부인의
수다를 더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녀는 자랑에서인지
아니면 애정에서인지 자기 주인과 동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
"주인께선 1년 중 펨벌리에 머무시는 일이
많으신가요?"
"제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세요. 그러나 1년의 반쯤은
여기서 지내시게 되지요. 그리고 아가씨께선
여름 동안은 언제나 이곳에 계시게 됩니다."
"다만"
엘리자베드는 생각했다.
"램즈게이트로 갈 때는 별도로 하고"
"만일 주인님께서 결혼하시게 되면 더 자주 뵐 수가
있게 되겠네요."
"예,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주인님과 어울리는 분이 어디
계셔야죠"
가디너 부부는 싱긋이 웃었다. 엘리자베드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걸 보면 훌륭한 분임에
틀림없겠네요."
"전 원래 사실 얘기만 합니다. 그리고 저의 주인님을
아시는 분이면 누구나 하시는 그런 말밖에
하지 않는 답니다."
엘리자베드는 엄청난 칭찬이라 생각했다. 상대방이
이렇게 덧붙여 말했을 때는 더욱 놀라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전 지금까지 주인님한테서 기분 나쁜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네살 되시던 때부터 사뭇 알고
지냈읍지요."
이토록 터무니없는 칭찬은 그녀의 생각하고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가 결코 상냥스런 사람이
아니라는 점만은 그녀의 움직일 수 없는 의견이었다.
그녀에게는 더욱 강한 관심이 일어서 좀더
물어 보고 싶어졌다. 외삼촌이 마침 이렇게 말해 주셔서
고마왔다.
"그럴 정도로 칭찬 받는 사람은 퍽 드물지요. 그런
주인을 모시게 되어 행복하시겠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딜 가나
이 이상의 분을 만나 뵙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전 입버릇처럼 말합니다만 어릴 때
상냥한 분은 커서도 역시 상냥하시다구요. 저의
집 주인님께선 언제나 이 세상에서 제일 마음씨
고우시고 넓으신 분이시랍니다."
엘리자베드는 눈이 휘둥그래질 지경이었다.
"그런 사람이 다아시 씨일 수가 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그분의 부친께선 훌륭하셨던가 봐요."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예, 정말 그러셨습니다. 부전자전인 게죠. 못사는
사람들에게도 한결같이 친절하셨답니다."
엘리자베드는 귀를 기울이고 의아해 하며 좀더 듣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레이놀즈 부인이 다른
일을 말해도 그녀는 흥미를 느껴 보지 못했다.
그녀가 그림이며 방의 크기며 가구의 값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디너 씨는 그녀가 주인을 지나치게 칭찬하는
것은 결국 가족적인 편애에서 비롯된 터라
생각되어 매우 재미가 나서 곧 이어 다시 그 화제로
옮겨갔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같이 커다란 계단을
올라갔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주인의 많은 장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훌륭한 지주님이시고 좋은 주인님은 정말
없을 거예요. 자기 밖에 모르는 요즘 젊은 주인들하고는
다르시답니다. 소작인이나 하인들 치고 그분을
좋게 말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어떤 사람은 간혹 그분을 거만하다고도 하지만 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점을 찾아 낼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 같아선 우리 집 주인님께선 다만
다른 젊은 분들처럼 말수가 많지 못하신 데서
그런 말을 듣게 되는 결과일 것입니다."
'어머, 그렇게 되면 대단히 상냥스런 분이 되고
말게요'
엘리자베드는 생각했다.
"이렇게 훌륭한 평판은"
외숙모가 다시 걸어가면서 속삭였다.
"우리들의 가엾은 친구 위컴 씨에 대한 그분의
태도와는 전혀 일치하지가 않으시네"
"아마 우리가 속았는지도 모를 일이죠"
"그럴 리야 없겠지. 우리의 소식통도 매우
선량했으니까."
위층의 넓은 복도에 이르자, 그들은 매우 아름다운
거실로 안내되었다. 아래층 방들보다는 훨씬
우아하고 밝았다. 다아시 양이 최근에 펨벌리에 왔을 때
이 방이 매우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이제 막 손본 곳이라고 했다.
"그분은 정말 좋은 오빠군요."
창문 쪽으로 걸어나가면서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레이놀즈 부인은 다아시 양이 이 방에 들어설 때의
기쁨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이런 식으로 주인님께선 하시는 거예요. 아가씨가
좋아하시는 일이라면 뭐든지 곧바로 해치우시게
되죠. 아가씨를 위해선 안하시는 일이 없으시답니다."
화랑과 두셋의 중요한 침실들이 모두 주인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랑에는 꽤 좋은 그림이 많이
있었으나 엘리자베드는 미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곧 눈길을 돌려서 다아시 양이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들을 보았는데 그러한 그림의 제목이
대체적으로 흥미 있고 또 알기 쉬웠다.
화랑에는 이 집안의 초상화들이 많이 있었는데 외인의
시선을 끌 만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자기에게 익숙한 얼굴만 찾아 걸어다녔다.
마침 그것이 그녀를 사로잡아 놓았다. 그리고
다아시 씨 하고 너무도 닮은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자기를 볼 때 때때로 보이곤 하던 낯익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열심히 들여다보며 그 그림 앞에 몇 분 서
있다가 일행이 화랑을 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았다. 레이놀즈 부인이 그것은 선친 생전에
그리게 한 그림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때 확실히 엘리자베드의 마음에는 그 그림의
장본인에 대해 서로 가장 가깝게 지내던 적보다는
훨씬 좋은 감정이 일어났다. 레이놀즈 부인이 들려 준
그에 대한 칭찬의 말은 결코 부질없는 성질의
것만은 아니었다. 총명한 하인의 칭찬만큼 가치 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오빠로서 지주로서
나아가 주인으로서의 그의 보호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행복이 달려 있는가를 그녀는 생각해
보았다. 얼마나 많은 기쁨이나 고통을 줄 수 있는 힘을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 얼마나 많은 선악이
그의 손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가정부가
털어놓은 모든 의견은 그의 인격을 더 높일
뿐이었다.
그의 자태가 그려져 있으며 그의 양 눈이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는 캔버스 앞에 서 있으면서 그녀는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깊은 감사의 기분으로,
자기에 대한 그의 호감을 생각해 보았다. 그 감정의
따뜻함을 되새겨 보았으며, 그 표현의 부적당함을
부드럽게 이해했다.
집안에서 일반에게 참관을 개방하는 곳은 빠짐없이
보고 나서 그들은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가정부에게 작별을 한 후, 그 다음은 현관에서 정원사의
안내를 받았다.
강 쪽을 향해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가다가
엘리자베드는 뒤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바라보자
외숙모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엘리자베드가 그 건물이
언제쯤 세워졌을까 하고 추측하고 있노라니까,
집 주인이 건물 뒤쪽에서 마구간으로 통하는 길에서
별안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로간의 거리는 20 야드가 채 못되었고, 더우기 그의
출현이 너무나도 뜻밖이었기 때문에 그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시선이 마주치자 두
사람의 뺨에는 새빨간 빛이 타올랐다. 그도 몹시
놀랐던지 한참 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제정신으로 돌아가 일행 쪽으로
가까이 왔는데 완전히 침착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내심 정중한 말로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외면했으나 그가 가까이 오자
걸음을 멈추고 당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그의 인사말을 받았다. 나머지 두 사람에게는 그의
자태를 처음 본 것만으로는 다시 말해서 여태까지
뜯어본 초상화와 그가 닮았다는 점만으로는 자기들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다아시 씨라고 단정하진
못했더라도 주인을 보고 놀라는 정원사의 표정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음이 틀림없었다.
그가 조카에게 말을 건네고 있을 동안 두 사람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지만, 매우 놀라 멍하니
얼이 빠져 있는 그녀는 눈을 치켜 떠서 그의 얼굴을 볼
용기조차 없었으며 가족의 안부를 묻는 그의
공손한 질문에 대해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지난번 헤어지고 난 후로 변해 버린 그의 태도에
자못 놀랐으나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 그녀의
마음을 당황하게 만들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곳에서 눈에 띈 것이 어색하기 그지없는
일이라 느껴질수록 이렇게 그와 대하고 있는 몇
분 동안은 그녀의 생애에서 가장 불편한 때이기도 했다.
그 역시 그녀보다 썩 침착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말하고 있는 동안도 그의 말투에서는 평소의
안정감 같은 것을 찾기란 어려웠다. 언제 롱본을
떠나왔는가 또 언제까지 더비셔에 머물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몇 번이고 매우 성급히 되풀이하는 것
을 보더라도 그것은 곧 그의 마음의 혼란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이윽고 그는 무엇 하나 제대로 생각을 하지
못했음인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잠시 서 있기만
하다가 돌연 정신을 차리고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그러자 외삼촌과 외숙모가 그녀에게로 와서는 그의
용감한 자태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에게는 한마디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혼자서 여러 가지 상념에
잠기면서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마음은 수치와
분개의 두 갈래로 뒤흔들리고 있었다. 자기가
여기에 온 것부터가 이 세상에서도 제일 가는 불행이며
분별없는 일이었다! 그의 눈에 얼마나 기이하게
비쳤을 것일까!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 그
얼마나 불명예스럽게 보였을 것일까! 자기가 일부러
다시 그 사람 앞에 몸을 내던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아! 내가 왜 왔단 말인가!
그런데 그 사람은 또 왜 예정했던 것보다 하루 빨리
왔단 말인가! 그들이 20분만 더 빨랐더라면 그의
눈길이 안 닿는 곳에 가 버리고 말았을 것을. 왜냐하면
그가 바로 그 순간에 도착해서 말이나 마차에서
내린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심술궂은
조우를 생각하면서 여러 차례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이상할이만큼 변해 버린 그의 태도(이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녀에게 말을 걸어 온
것부터가 놀랍지 않은가!), 게다가 그토록 정중한 말로
가족들의 안부를 묻다니! 지금껏 그토록 위엄을
저버린 그의 태도를 본 적이 없었으며, 이 뜻밖의 만남
때만큼이나 그가 상냥스런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얼마 전 로징즈 저택에서 편지를
전해 주었을 때의 그의 말하고는 그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마침내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이렇게
설명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들은 바야흐로 아름다운 강변의 보도로
접어들었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더욱 그 수려함을 더해
가는 비탈을 내려가서 이윽고 더 울창한 숲의 넓은
지역에 닿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 동안
엘리자베드는 이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계속 말을 해 왔으나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두 사람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듯했으나 그 풍경의 어느 부분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의 생각은 다아시 씨가 몸담고 있을지도
모를 펨벌리 저택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로서는 바로
이 순간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또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가
그의 마음에 있는 사람일까 하는 일들을 알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가 정중했다는 것은 그저
마음의 평정을 그가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그의 목소리에는 평정이라고만 할 수 없는
어떠한 것이 있었다. 자기를 보고 그가 고통을
느꼈을까, 아니면 기쁨을 더 많이 느꼈을까 그녀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침착하지 못한 마음으로
자기를 바라다보았던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드디어 그녀의 방심을 지적하는 동행인들의
말이 그녀를 일깨웠으므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숲속으로 들어서서 잠시 동안 강하고는 작별을
나누면서 몇 군데의 높은 지역을 올라갔다.
거기에서는 군데군데 숲 사이의 공지가 있어서,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 길게 뻗어 있는 숲이
잔뜩 뒤덮고 간간이 냇물 줄기가 보이는 건너편
언덕들과 골짜기의 매혹적인 전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가디너 씨는 저택 전체를 일주하고 싶지만 도저히
걸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기양양한
웃음을 보이면서 정원사는 둘레가 10마일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문제는 해결되었으며
그들은 가던 길을 그냥 걸어나갔다. 한참 동안 경사진
숲 사이를 내려가서 다시 강 기슭의 폭이 더욱
좁아진 곳까지 나갔다. 그들은 주위 풍경에 어울리는
작은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곳은 지금까지
보아 온 어느 곳보다도 소박하게 꾸며진 장소였다.
골짜기는 여기서 협곡을 이루어, 냇물과 그리고 냇물
가에 있는 억센 잡목 사이의 좁은 산책길만이 겨우
들어앉을 자리밖에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냇물의 굴곡을 탐험하고 싶었으나,
다리를 건너면서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워낙 튼튼한 다리가 못되는
가디너 부인은 그 이상은 갈 수가 없어서 되도록
빨리 마차 있는 데까지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카도 뜻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그들은 지름길을 택해서 강의 건너편 언덕에 있는 저택
쪽으로 향했으나 그들의 속도는 느린 편이었다.
이유인즉 가디너 씨는 낚시 취미에 빠질 만한 여유가
별로 없었지만 너무 좋아하는 편이어서 물 속에서
때로 송어가 얼굴을 내밀면 그것을 지켜보면 정원사와
그 얘기를 하는 데 너무 열중해서 걷는 속도가
자연히 느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다아시 씨가 그들을
향해,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온
것을 보고 그들은 또다시 놀라게 되었는데,
엘리자베드의 놀라움은 처음 때에 못잖게 강한 것이었다.
이쪽 산책길은 맞은편 길보다는 숲이 덜 우거졌기
때문에 그녀의 일행은 서로 마주치기 전에 벌써 그를
볼 수가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놀라긴 했지만 저어도
먼저번 보다는 대면할 각오가 서 있었기 때문에 그
가 진정 자기들을 만나고 싶다면 이번에는 침착한
태도로 이야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잠시 동안 그녀는 그가 다른 길로 접어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급은 산책길로 그의 자태가 눈에 띄지
않는 동안은 그런 생각이 계속되었으나 막상 그 굽은
모퉁이를 통과하자, 그는 이미 그녀들 앞에 당도해
있었다. 힐끗 바라다보기만 해도 그가 조금 전에 지났던
정중함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도 그와 얼굴을 맞대게 되자
그의 예절을 본떠서 경치가 좋다는 점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저 "훌륭해요." "아름답군요." 정도의 말밖에
못하고 있을 때 불현듯 이것저것 상서롭지 못한
회상들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자기 입으로 펨벌리를
칭찬하다가는 혹시 악의로 해석되지나 않을까
생각되자 그녀의 안색은 금방 변하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가디너 부인은 조금 뒤쪽에 서 있었다. 엘리자베드가
머뭇거리자 다아시 씨는 그녀의 일행을 소개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이것은 그녀로서는 미처 짐작도
못한 예절이었다. 자기에게 결혼을 청해 왔을 때만
해도 그의 자존심으로 말미암아 혐오하던 바로 그
대상에 속하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이었다. '얼마나
놀라게 될 것인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이
누구인가를 그가 알게 될 때! 혹시 상류 사회의 사람들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소개는 즉석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를 말해 주면서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
가 확인하려고 힐끔 쳐다보았는데, 그가 이러한
불명예스런 상대에게서 한시라도 빨리 도망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은 바는 아니었다.
그가 이 관계를 듣고 깜짝 놀라는 것은 명백했다.
그러나 그는 완강하게 버텨 가며 도망은커녕 그들과
어울려 길을 되돌아가서 가디너 씨와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기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의기양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쪽에도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는 집안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
준 것이 위안거리가 되었다.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에 매우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으며 외삼촌의 총명함, 취미, 예절 바름을 나타내는
태도 하나 하나, 용어 하나 하나를 자랑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새 낚시질로 이야기는 옮겨가고 있었다. 다아시
씨가 다시없이 은근하게, 외삼촌이 이 근처에 머무는
동안 괜찮으시다면 언제든지 낚시에 초대하겠으며
동시에 낚시 도구는 언제든지 제공해 주겠다고 하면서,
언제나 잘 잡히는 냇물 언저리를 가리키는 말을
그녀는 들었다. 가디너 부인은 엘리자베드 하고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는데 사뭇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엘리자베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것이 다시없이 기뻤다.
지금까지 자기에게 준 호의는 죄다 자기를 위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그녀의 놀라움은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왜 그이가 이렇게 변했을까? 어떤 연유로 그렇게나
변했단 말인가? 그이의 태도가 이렇게 누그러진 것은
나 때문일 리 만무하고 날 위해서 그런 것은 더욱
아니야. 헌스퍼드에서 내가 그를 책망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생각지 않아. 더우기 그이가
아직도 날 사랑하고 있을 리 만무한 거야."
이런 색으로 두 사람의 여성이 앞장서고 두 사람의
남성이 뒤따르면서 한참 동안 걸어가다가 어떤 신기한
수초를 좀더 잘 보려고 강 기슭까지 걸어 내려간
연후에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을 때쯤 해서 자그마한
변경이 이루어졌다. 일의 발단은 오전 중의 운동으로
녹초가 된 가디너 부인이, 엘리자베드의 팔로는
자신을 부축하기에 힘겹다 싶어 남편의 팔을 택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다아시 씨가 조카의 옆쪽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가 어울려서 계속 걸어나갔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여자 쪽에서 먼저 입을 뗐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에 그의 부재를 확인해 두었다는
사실을 그에게 먼저 알리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귀가가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고 말문을 열고,
"왜냐하면 댁의 가정부 되시는 분이"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분명히 내일까지는 돌아오지 않으신다고 말했거든요.
그래서 정말 우리들이 베이크웰을 떠날 때까지는
선생님이 별안간 이곳에 나타나시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그러자 그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고,
집사에게 용무가 있어서 함께 여행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시간 먼저 떠나왔다고 말했다.
"나머지 분들은 내일 아침 일찍 여기로 오시게 됩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분들 중에는 당신과 안면이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빙리 군과 그 사람의 자매들이죠'"
엘리자베드는 그것에 대한 대답 때문에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자 그녀의 생각은
곧바로 둘 사이에 빙리 씨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언급되었던 때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의
안색으로 판단할 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의 마음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을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았다.
"일행 중에는 또 한 분이 끼여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했다.
"그분은 특히 당신하고 지냈으면 하고 있어요. 당신이
램턴에 머물고 계시는 동안 서로가 알고 지낼
수 있게끔 내 누이동생을 소개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아니 내 요구가 너무 지나쳤을까요?"
그와 같은 간청을 받게 되는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었다. 너무나도 엄청난 일이어서 어떤
식으로 동의해야 좋은지 알 도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다아시 양이 어떤 마음에서 자기와 알고 지내려
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빠의
선동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고 그녀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친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또한 그가 일방 분한 감정이 들면서도 마음 속 깊이
자기를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기뻤다.
두 사람은 이제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고 저마다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엘리자베드의 마음은
안정되기가 않았다. 그러한 일은 불가능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우쭐해지기도 했고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그가 누이동생을 자기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베풀 수 있는 인사치고는 최고의 것이었다. 그들은
곧 앞서 간 두 사람을 앞질러 갔다. 마침내 그들이 마차
있는 데까지 당도했을 무렵엔 가디너 부부는
팔 분의 일 마일 만큼이나 뒤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집 안으로 들어가자고
청했다. 그러나 그녀 쪽에서 피로하지 않다고 하자 두
사람은 함께 잔디밭에 서 있게 되었다. 그럴 때일수록
마구 지껄여 대는 편이 낫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어색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녀로선 말을 하고
싶었으나 어느 화제도 하나같이 입 밖에 내서는
안될 것같이 여겨졌다. 이윽고 자기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자연 그들은 매트러크나
더브데일의 일에 관해서 참을성 있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시간과 외숙모가 걸음걸이도 다같이 느린
편이었다.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인내력도 착상도 거의 지쳐 있게 마련이었다.
가디너 부부가 도착하자 모두를 집 안으로
초청해서 다과 대접을 하겠다는 제안이 나왔으나
거절했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다아시 씨는
두 숙녀를 마차에 태워 주었다. 마차가 떠나자
엘리자베드는 그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별장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드디어 외삼촌과 외숙모는 한결같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비교가 안될 만큼 그 사람이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행동거지가 좋고
예의바르고 조금도 거만스럽지가 않더라."
"확실히 그 사람은 어딘가 좀 엄격한 데가 있어
보여요. 그러나 그건 그 사람은 거만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아 왔지만, 가정부의 말과 같이 그런 데는
조금도 보이지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요."
"우리들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만큼 놀라운 일은 또
없을 거야. 정중함도 정도가 지나칠
정도였으니까 말야. 진심이 깃들인 마음씨였어.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을 텐데.
엘리자베드와의 친분도 극히 우연스런 일이었을 테니 말요."
"정말 그래 리지야. 위컴 만큼은 미남자가 아냐. 아니
위컴의 용모가 나무랄 데가 없어서 그 사람만
못하다는 거지. 그런데 넌 왜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됐니?"
엘리자베드는 되도록 잘 변명을 했다. 즉 켄트에서
만났을 때는 전보다는 그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오늘 아침만큼 기분 좋게 그를 본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정중한 것은 다소 변덕에서 나온
일일는지는 몰라."
외삼촌이 대답했다.
"잘난 사람이란 대개 그런 법이거든. 그러니까 난
낚시에 관한 얘기는 곧이 듣지 않기로 했어요.
나중에 가서 마음이 변해서 날 자기들 장소에 들어서지
못하게 할지도 모를 테니까."
엘리자베드는 그들이 다아시의 성격에 대한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우리가 본 바로는"
가디너 부인이 말을 이었다.
"그분이 불쌍한 위컴에게 한 것 같은 엄청난 일을
남에게 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아요. 심술궂은
용모는 아예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그 반면에 얘기를 할
때엔 입 언저리가 어딘가 모르게 기분 좋기까지
했잖겠어요. 더우기 얼굴에는 위엄 같은 것이 엿보였고 도저히
마음씨가 곱지 못한 사람이란 그런 인상을 남에게
주지를 않을 거예요. 그러나 틀림없이 우리들에게 집
안을 보여 주었던 그 선량한 그 부인은 그분의
성격을 과장해서 말했을 거예요. 나는 이따금 큰 소리로
웃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말예요.
그러나 그분은 너그러운 주인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실만으로도 하인 측에서 볼 땐 모든 미덕을 죄다
내포하고 있는 셈이죠"
바로 이때 엘리자베드는 위컴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변호해서 한마다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되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해가면서
자기가 켄트에서 그의 친척들에게서 들은 바로는
그의 행위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릴 수도 있으며
허어퍼드셔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의 성격이 결함
있는 것은 절대 아니며 나아가 위컴의 성격은 그다지
좋은 편은 못된다는 점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것의 확증으로서, 두 사람 사이에 관계되었던
금전상의 모든 거래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 주고
어느 소식통에서 들은 것이라고는 밝히지 않고서 그저
신뢰할 수 있다고만 해두었다.
가디너 부인은 놀라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이미 그녀의 즐거웠던 옛 시절을 보냈던
장소에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상념들은 회상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주위의 경치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적해 주느라고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
밖의 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전 중의 걸었던
탓으로 지쳐 있었으나 식사를 끝내기가 무섭게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해서 옛날의 자기를 찾게 되었고,
밤에는 오랜 세월 끊어졌던 옛정을 되살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생긴 일들로 너무 마음이 끌려 있었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이렇게 해서 생긴 새 친구들의
누구에게도 주의를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다아시 씨의 정중했던 일과 특히 자신을 그의
누이동생과 사귀기를 바랐던 일만이었으며 또
생각할수록 이상한 감정에 젖어 들었다.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5권
제인 오스틴
44
엘리자베드는 다아시 씨가 자기의 누이동생이
펨벌리에 도착하는 바로 다음날 그녀를 데리고 자기를
방문하러 올 것이라고 예정했기 때문에 그날 아침
나절은 여관에 머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녀의 결론은 잘못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램턴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아침에
그 방문객들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새로 사귄
친구 몇 사람과 더불어 시내를 거닐다가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옷을 갈아 입으러 마침 여관에
다시 돌아왔을 때 마차 소리가 들려 와서 창가로 다가가
보았더니, 신사 한 사람과 부인 두 사람이
마차로 거리를 치닫고 있는 것이 보였다. 종자의
옷차림을 금방 가려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뜻을
알아차리게 되어 자기가 예기하고 있었던 영광을
친척들에게 알려줌으로써 그들을 적잖이 놀라게 했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온통 경악해 마지않았다. 말을 할
때 그녀가 어색해 하는 태도를 이 사태 자체와
전날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할 때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알아차리지를 못했지만 현재 그들은 그런
집안의 사람들한테 이와 같은 정중한 대접을 받는
것은 그들의 조카를 특히 좋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새로운 생각들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쳐 갔을 때
엘리자베드의 감정의 동요는 시시각각 더해 가기만 했다.
그녀는 자신이 불안해하는 것에 자못 놀랐지만 그러한
설레임의 원인 중에서도 다아시 씨가 자기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누이동생에게 자기를 지나치게 잘
말해 놓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
걱정이었다. 그리고 유별나게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려고
애쓰다가 혹시 헛돌지나 않을까 그녀는 걱정했다.
만약 상대방이 자기를 보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창가에서 물러섰다. 침착해지려고 노력하며 방 안
여기저기를 거닐고 있으려니까, 외삼촌과 외숙모의
얼굴에 호기심과 놀라움의 빛을 보게 되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다아시 양과 그녀의 오빠가 나타났고 소개라는 무서운
일이 행해졌다. 놀랍게도 엘리자베드는 이 새로운 친구도 역시 자기
못지 않게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램턴에 온 후로 다아시 양이 몹시 자만스런 사람이라고
이미 들어 알고 있었으나 잠시 몇 분간의
관찰로 그녀는 단지 매우 수줍어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말을 걸어서 '예'거나 '아니'라고 하는
말 이상으로는 그녀에게 말 한마디를 시켜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아시 양은 키가 큰 편이며 엘리자베드보다는 몸집이
컸다. 열 여섯 남짓했지만 그녀의 몸은 성숙해
있었으며 얼핏 보아 여성답고 정숙하게 보였다.
오빠만큼 용모가 뛰어난 편은 못되었으나 얼굴에는
총명함과 상냥스런데가 있어 보였으며, 태도는 조금도
거만스런 데가 없었으며 온화한 인품이었다.
엘리자베드는 누이동생 역시 지금까지 알아 온 다아시
씨 못지 않게 예리하고 좀처럼 당황할 줄 모르는
관찰자려니 생각해 왔다가 이렇게 판이한 심정을 깨닫게
되자 매우 안도감이 들었다.
한 자리에 그리 오래 앉아 있지도 않았는데 다아시는
그녀에게 빙리도 방문해 오기로 되어 있다고
알렸다. 그녀가 기쁜 뜻을 밝히고 그러한 방문객을
맞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채 하기 전에 벌써 빙리의
빠른 발걸음 소리가 계단 쪽에서 들려 왔고 순식간에
그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에 대한 엘리자베드의
노여움은 그 옛날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설사 그런
기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를 다시 보는 이 순간에
그가 꾸밈없이 성실하게 자기를 표현해 보이는
앞에서는, 그와 같은 감정을 계속 갖는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누구라고 지적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친절하게
그녀의 가족들의 안부를 물어 왔으며, 그때의
얼굴 표정이나 말하는 품은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부담 없게 대해 주는 것이었다.
가디너 부부에 있어서도 그가 흥미 있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를 보고 싶어했다. 물론
그들 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 사람은 많은 관심을
쏟았다. 다아시 씨와 조카 사이에 행여 무슨
일이라도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가졌던 터라
신중하면서도 진지한 탐색의 눈으로 두 사람을
관찰했다.
이 탐색에서 적어도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다는 충분한
확신을 이끌어 낼 수가 있었다. 여자 쪽의 감정에
대해서는 아직 미심쩍은 데가 있기는 했으나, 남자의
가슴에는 사모의 정이 넘쳐흐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엘리자베드 쪽에서는 매우 할 일이 많았다. 방문객
각자의 기분을 확인하고 싶었으며 자신의 기분을
가라앉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스럽게 대하고 싶었다.
나중 것의 목표는 혹시 실패나 하지 않을까
무척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 성공이 가장 확실했던
까닭은 그녀가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전부터 그녀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빙리와 조지아나는 기뻐했으며 다아시도
같이 기뻐했다.
빙리를 만나는 순간 그녀의 생각은 언니에게로
쏠려 갔다. 아! 그의 생각이 아직 얼마만큼이라고 같은
방향으로 향해지고 있을 것인가 아닌가를 얼마나 알고
싶었던 것일까. 때로 그녀 생각에는 그 사람의
말수가 그 전보다 더 줄어든 것 같기도 했고, 자기
얼굴을 쳐다봄으로써 언니와 닮은 점을 좇고 있는
듯이 보여, 한두 번 마음 속으로 기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록 상상에 불과하더라도 제인의 경쟁 상대
입장에 있는 다아시 양에 대한 그의 태도를 잘못
생각할 여지는 없었다. 양쪽 다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빙리 누이동생의 희망을
정당화시킬 만한 일은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다.
이 점에 관해서 그녀는 곧 만족했다. 그들이 헤어지기
전에 일어났던 두세 가지의 사소한 사건이
그녀의 절실한 생각으로 해석한다면 그가 애정에 물들지
않고서는 제인을 기억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그리고 그는 과감하게 많은 말을
함으로써 제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심정임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진정
유감스럽다는 어조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만나 뵌 지가 매우 오래된 것 같습니다. 네더필드에서
함께 춤을 췄던 11월 26일 이후로 서로 못
만난 셈이죠"
엘리자베드는 그의 기억이 그토록 정확한 것을 알게
되어 무척 기뻤다. 그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는 틈을 이용해서 자매 여러분들이 다들 롱본에
살고 있느냐고 안부를 물었다. 그 질문에도,
그에 앞서 한 말에도, 큰 뜻은 없었으나 그의 표정과
태도는 다른 뜻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녀는 시선을 자주 다아시 씨 쪽으로 향하지는
않았지만 힐끗 바라볼 때마다 누구에게나 공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고, 그가 하는
말에는 거만함이라든가 많은 사람들을 경멸하는
기분과는 거리가 먼 어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어제
목격했던 그의 태도 개선이라는 것이 결국
일시적으로 끝난다 하더라도 적어도 하루쯤은
지속되었다고 확신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사귀는 일조차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사귀려 하고
또 그가 이렇게 함으로써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공공연하게 업신여기던 자기의 친척들에게까지
은근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또 지난 번 헌스퍼드
목사관에서 있었던 그토록 격렬한 최후의 장면을
상기해 볼 때, 그 변화가 너무나도 크고 그녀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놀라운 내색을
감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네더필드에서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었을 때나
로징즈에서 지체 높은 친척들과 같이 있었을
때도 지금만큼이나 상냥스럽게 굴려고 애쓰고, 자존심과
완강한 과묵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본 일이
없었다. 더우기 지금에 와서는 그의 그러한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어떤 중대한
효과가 있는 바도 아닐 테고, 그가 지금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게 되면 네더필드와
로징즈의 비웃음과 비난만을 초래할 것이 아니겠는가.
방문객들은 반 시간 이상이나 그들과 함께
있었으나, 막상 그들이 자리를 뜨려고 일어섰을 때
다아시 씨는 누이동생을 통해서 가디너 부부와
베네트 양이 이 고장을 떠나기 전에 펨벌리로 식사하러
와 달라고 자신과 더불어 청해 주도록 부탁했다. 다아시
양은 평소에 사람을 초대하는 인사에 그다지
익숙해 있지 않아서 수줍은 듯했으나 곧 오빠의 뜻에
따르게 되었다.
가디너 부인은 그 초대에 가장 관계가 깊은 조카가
그것을 받아들일 기분이 되어 있는가 아닌가를
알고 싶어서 그녀 쪽을 바라보았는데 엘리자베드는
외면해 버렸다. 그러나 이 의식적인 회피는 제안을
싫어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순간적인 당황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편 쪽을 보았을 때, 그는
아주 사교를 좋아하는 터라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녀는 용기를 내어 약속을 했고 그래서
다음 다음날로 정해지고 말았다.
빙리는 아직 할 말이 많았고 허어퍼드셔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 볼 일도 있고 해서
엘리자베드를 틀림없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엘리자베드는 그것은 죄다 자기가
언니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싶기 때문이라고
해석되어서 기뻤다. 방문객들이 모두 떠나 버리고 나서
그녀는 이런 저런 이유로, 방금 지나간 반 시간을
만족스럽게 돼새겨 볼 수가 있었다.
비록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의 즐거움은 별것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혼자 있고 싶은데다가 외삼촌과
외숙모가 이것저것 묻거나 떠볼 것이 두려워서 그들이
빙리에 관해 좋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 거기에
머물다가 곧 옷을 갈아입기 위해 급히 나가 버렸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가디너 부부의 호기심을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우격다짐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추측했던 것보다는
그녀와 다아시 씨와의 친분이 훨씬 두텁다는 것만은
명백해졌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대단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또한 명백해졌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대단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또한 명백해졌다.
이것저것 짐작되는 바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었다.
다아시 씨에 대해서는 이제는 좋게 생각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소망이었다. 지금까지 교제해 온
바로는 그에게는 이렇다 할 결함이 없었다. 그의
정중함에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딴 이야기를 참고로 하지 않고 자기네의
기분이나 그의 하인의 보고한 바에 의해 그의 성격을
묘사해 보였더라면, 그를 알고 있는 허어퍼드셔의
사교계 인사들은 그것이 다아시 씨의 일이라고는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뭏든 지금으로서는 그 가정부를 믿는 게 이익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네 살 적부터 그를
알아 왔으며 본인의 태도로서는 훌륭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하인의 증언은 가볍게 물리칠 수
없는 것이라고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램턴에 사는 그들
친구들의 정보로서도 그 증언의 무게를
실질적으로 덜하게 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자존심이 유별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비난할
점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자존심을 가졌을지는
모를 일이나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가족이 찾지 않는 작은 시장 도시의 주민들한테 어김없이
그와 같은 평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넓은 사람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선행을 베풀고 있다는 것은 인정받고
있었다.
위컴에 관해서는, 이곳에서는 그다지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행자들은 곧 알게 되었다.
내용인즉 후원자의 아들과 그와의 관계의 중요한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더비셔를
떠나갔을 때 많은 빚을 남겨 놓아서 결국 그것을 다아시
씨가 나중에 갚아 주었다는 사실은 여러 사람이
아는 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드 편에서는 그녀의 생각이 오늘 밤은
간밤보다 훨씬 더 자주 펨벌리로 향해지는 것이었다.
저녁 시간이 긴 것같이 여겨졌으나 그 저택에 있는 한
사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결정지을 만큼
길지는 못했다. 그것을 명백히 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녀는 그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아니, 마음 같은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진 것이다.
그 오랜 기간을 거의 그녀는 미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을 한 때 그에 대해 느낀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해 온 터였다. 그의 뛰어난 자질을 확인하는 데서
우러난 존경은 처음에는 마지못해 인정했던
것이지만, 얼마 전부터는 자기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았으며, 그러한 감정은 이제 그에 대한 칭찬
덕분에 좀더 친밀한 감정으로 승화되고 그의 성격을
아주 사랑스러운 각도에서 보게 되었는데, 그런
감정은 어저께부터 생긴 것이다.
그러나 자기 마음 속에 유달리 존경이나 존중을
넘어서서 호의를 갖게 한 빼놓지 못할 동기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감사였다. 단순히 전에 자기를 사랑해
주었다는 사실뿐만 아니고, 그를 거절하던 당시
토라져서 심하게 했던 자신의 태도나 그 거절에
덧붙여서 부당한 비난을 마구 퍼부었던 일들까지도
말끔히 용서해 줄 정도로 지금도 자기를 깊이 사랑해
주고 있는 데 대한 감사였다. 자기를 최대의
적으로 보고 필할 것으로 여겨졌던 그가 막상 우연한
만남에서는 다시없이 열렬히 교제를 계속해
나가고 싶어하고, 두 사람의 관계에서 야비한 속셈을
드러내 보이거나 기교한 태도를 취하는 일이 없이
그저 자기의 친지들에게 잘 보이려 했고 그의
누이동생을 자기에게 접근시키려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와 같이 거만했던 사람이 그렇게 변해 버렸는가
생각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며 감사할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 때문에, 뜨거운 사랑 때문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그 변화가
자신에게 주는 영향을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결코
불유쾌한 것은 아니므로 고무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자기는 지금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의 행복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의 행복이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에게 재차 결혼 신청을 하게
할 힘이 아직도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만큼 자기가
그 힘을 발휘하면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보탬이 될 것인가, 주로 그런 일들이 알고 싶었다.
그날 밤 외숙모와 조카 사이에 결정지어진 사실은,
다아시 양아 펨벌리에 도착한 그날로 더우기 늦은
아침 시간에 도착하자마자 자기들을 방문해 준 것과 같은
큰 호의에 대해서는 이편에서 제아무리 예의를
다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지만, 그와 같은
흉내는 낼 수 있는 일이어서 다음날 아침 펨벌리로
그녀를 방문하는 일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래서 가기로 했다.
엘리자베드는 기쁘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자기에게 자문하면 답변할 만한 일이 없었다.
가디너 씨는 아침 식사 후 그녀들보다 먼저 출발했다.
그 전날에 낚시 계획을 새로 꾸며서,
정오까지는 펨벌리에서 몇 사람의 신사들과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45
지금에 와서 엘리자베드는 빙리 양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은 질투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펨벌리에 나타나면 틀림없이
상대방에게 별로 달갑지 않은 인물이 될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쪽에서는 과연 어느 만큼의
정중함을 가지고 교제를 새롭게 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저택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현관을 통해서 응접실로
안내되었는데 그곳은 북향이어서 여름철에는
쾌적한 곳이었다. 정원 쪽 창문으로는 저택 뒤켠의
무성한 숲과 높은 언덕과 중간에 있는 잔디밭에
산재해 있는 아름다운 참나무와 스페인 밤나무와 같은
매우 상쾌한 광경을 내다볼 수 있었다.
이 방에서 그녀들은 다아시 양의 영접을 받았는데
그녀는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 그리고 런던에서
함께 사는 부인과 앉아 있었다. 조지아나의 대접은 사뭇
정중했지만 당황의 빛이 감돌았다.
물론 수줍음과 혹시 실수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지만 신분이 낮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만스럽고 사귀기
힘든 상대라고 생각하기에 안성마춤이었다.
그러나 가디너 부인과 조카는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걱정스럽게 생각했다.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은 그저 무릎을 조금 굽혀서
그녀들을 알아보았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는데, 그러한 침묵은 늘 어색하기
마련이다. 그 침묵을 처음 깨뜨린 사람은 무엇인가 화제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나머지 두 사람 중
누구보다도 바른 예절을 명백하게 보여 주었던, 앤즐리
부인이라는 고상하고 인상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그녀와 가디너 부인 사이에 그리고 때로는
엘리자베드가 가세해서 대화가 어어져 나갔다.
다아시 양은 마치 대화 속에 끼여들 만큼의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남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면 짧게 말을 꺼냈다.
엘리자베드는 얼마 안가 빙리 양이 자기를 자세히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으며 특히 자기가
다아시 양에게 한마디라도 말하면 어김없이 그녀의
주의를 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말하기 거북한 거리에 자리잡지만 않았어도 이러한 관찰
때문에 그녀가 다아시 양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 방해받지는 않았겠지만, 그녀로서는 이야기를 많이
할 필요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유감스럽지는
안았다. 자기 생각만으로도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몇 사람의 신사들이 방 안으로 들어서기를
시시각각 고대하고 있었다. 이 저택의 주인이 그
속에 들어 있기를 바라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해서 그
소망과 두려움의 어느 편이 더 강한 것인지
자기로서는 결정짓기 못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태로
빙리 양의 소리를 듣지 않은 채 15분 가량 앉아
있다가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쌀쌀맞은 그녀의 질문은
받고 나서 깜짝 놀랐다. 그녀 역시 쌀쌀맞게
대답을 했더니 상대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방문으로 일어났던 다음 변화는 하인들이
냉육이나 과자나 계절 중 제일 가는 과일들을
골라 왔기 때문에 일어났으나, 이것 역시 앤즐리 부인이
다아시 양에게 몇 차례 의미 있는 눈짓이나
미소를 보냄으로써 그녀에게 그 역할을 상기시켜 준
후에 가서야 겨우 이루어졌다.
이렇게 해서 전원은 손이 심심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골고루 다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먹는 일에는 빠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름답게 피라밋 형으로 쌓아올린
포도나 넥타린 복숭아와 여느 복숭아가 그들을 바로
식탁 주위에 모이게 했다.
그렇게 식사하고 있는 동안에 엘리자베드는 다아시
씨의 출현에 대해 자기가 두려움과 소망 중 어느
편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는가를 그가 방에 들어설 때의
압도적인 감정에 의해 결정지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그때가 오고
보니 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라는 감정
쪽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들어서자
그것을 후회하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그는 저택에 와 있는 두세 명의 신사들과 강 기슭에서
낚시에 열중에 있던 가디너 씨와 잠시 함께
있었는데, 가디너 가의 숙녀들이 그날 아침 조지아나를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는 말만을 듣고서 그를
남겨 두고 돌아와 버린 것이다. 그가 나타나자 금방
엘리자베드는 현명하게 완전히 평안한 마음으로
침착해 있으려고 결심했다. 그가 처음 방에 들어서자 두
사람에 대한 일동의 혐의가 일깨워진데다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지 않는 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보게 된 그녀로서는 그러한 결심은
더욱 더 필요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래서 더욱 지키기가
힘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빙리 양의
얼굴만큼이나 호기심의 빛이 강하게 감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그녀가 그 호기심의 대상 중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는 언제나 미소가 얼굴에 흐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직 그녀는 질투에 의해 절망 상태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며 다아시 양에 대한 관심도 결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아시 양은 오빠가 들어오자
더욱 입을 열려고 노력했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누이동생과 자기를 접근시키려 많은 애를 썼고, 양편 다
고루 말을 시키기 위해 되도록 솔선하는 것을
보았다. 빙리 양도 이 상황을 완전히 알아차리고 화가
난 나머지 염치가 없어져서 첫번째 기회를
노리기가 무섭게 냉조의 빛을 띠었다.
"저어, 엘리자 양, ㅇㅇ주 의용군이 메리튼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게 아녜요? 귀댁에게는 아주 큰
손실이겠네요."
다아시 앞에서 상대편은 위컴의 이름을 입에 담을
용기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곧
상대방 마음 속에 떠오른 사람은 바로 그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그에게 얽혀 있는 여러
가지가 일순 그녀를 슬프게 했지만 악의에 찬 이 공격을
막으려 힘껏 노력하면서 이윽고 초연한 어조로
그 질문에 답했다. 이야기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를
힐끗 보니까 다아시는 상기된 얼굴로 열심히
자기를 바라다보고 있었으며, 그의 누이동생은 당황한
나머지 눈을 치켜 뜨지도 못하고 있었다.
빙리 양이 그때 둘도 없이 친한 친구에게 자기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고 있는가를 알았더라면
틀림없이 그런 비꼬는 말은 삼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로지 엘리자베드가 특히 호의를 갖고 있는
것이 것같이 보이는 남성의 이야기를 끄집어냄으로써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신경을 건드려서
그녀에 대한 다아시의 평가를 깎아 내리는 데만
급급했으며, 나아가 그녀의 가족 몇몇이 그 연대와의
접촉을 통해 저지른 모든 우행을 아울러 그에게
상기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미수로 그친
다아시 양의 줄행랑 사건은 한마디도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엘리자베드 이외에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오빠는 그것을 특히 빙리 집안 사람들에게는
감추려 고심하고 있었다.
사연인즉 엘리자베드는 전에도 추측해 왔던 바이지만,
다아시로서는 빙리의 집안이 누이동생의 집안이 되어지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확실히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일이 빙리를 베네트 양에게서 떼어버리려는
노력에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까지는 품지
않았겠지만 친구의 행복에 대한 그의 심려에 무언가
보탬이 될 것으로 여겼으리라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의 태연한 태도는 곧 그의 감정을
가라앉혀 놓았다. 더우기 빙리 양은 초조해지고
실망도 했던 터라 더 이상 위컴의 일에 가까이할 용기도
없어졌고, 조지아나 역시 더 이상 입을 뗄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때맞춰 평안을 되찾았다. 눈이
마주칠까 가장 두려웠던 오빠는 이 문제에 그녀가
관계돼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생각을 엘리자베드에게서 돌려버리려는
꿍꿍이에서 나온 이 문제가 오히려 엘리자베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더욱 호감 가게 만든 것 같았다.
그들의 방문은 앞서 말한 문답이 끝난 뒤 그리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다아시 씨가 그들을 마차 있는
곳까지 배웅 나간 사이에 빙리 양은 엘리자베드의 인품,
태도, 의복 등을 비평해 가며 자기의 노여움을
풀고 있었다. 그러나 조지아나는 끼여들고 싶지가
않았다. 다만 오빠의 칭찬으로 충분히 그녀에게
호의를 품을 수 있었다. 오빠의 판단에 잘못이 있을 리
없었다. 더우기 오빠는 그녀로 하여금
엘리자베드에게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점 말고는
아무것도 찾아낼 여지가 없을 만큼 칭찬하지
않았던가. 다아시가 응접실로 되돌아왔을 때 빙리 양은
누이동생에게 투정했던 몇 가지를 다시 한 번
그에게 되뇌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소리 높여 말했다.
"오늘 아침의 엘리자 베네트는 그렇게 초췌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다아시 선생님. 겨울 이래로
그토록 변해 버린 사람은 보다가도 처음이예요. 얼굴
빛이 검어지고 거칠어졌으니 말예요! 루이저와
저는 마침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말 걸 그랬다고
말하고 있는 중이예요."
그런 말을 듣게 된 다아시로서는 별로 즐거울 게
없었지만, 그로서는 그녀가 약간 그을은 것 말고는
별로 달라진 것을 못 느꼈으며 그것도 여름철에
여행하다 보면 생기는,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냉랭하게 대답하는 걸로 만족했다.
그녀가 대답했다.
"저의 입장으로는. 사실대로 말해서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데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얼굴은
너무 말랐고 안색에는 광택이라곤 찾아볼 길이
없구요, 이목구비도 전혀 예쁘지가 못하지요. 그 사람의
코에는 개성이 없어요. 콧날이 뚜렷한 데가
없거든요. 치아는 그런대로 괜찮다 하더라도 그저
보통이구요, 눈은 말이죠, 때론 너무너무 이쁘다고들
남들이 말했다고 하지만 저에겐 그렇게
두드러진 데가 있다고 생각되지가 않아요. 날카롭고
심술궂은 인상이어서 전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어요. 더우기 도대체 그 사람의 태도에는 고상한
데도 없는 주제에 자신감은 있어서 이건 정말
참기가 힘들어요."
다아시가 엘리자베드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빙리 양으로서는 이것이 자기를 자천하는 최선의
방법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화가 난 사람은 늘
현명하지 못한 법이다. 그래서 그가 드디어 약간
짜증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그녀는 예기했던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단호히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입을 열게
하려고 마음먹고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잊지 않고 있지만, 우리들이 처음 허어퍼드셔에서
처음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미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모두들
얼마나 놀랐다구요. 전 지금도 특별히 기억하고
있지만, 어느 날 밤에 그 사람들을 네더필드로
식사 초대를 하고 난 뒤에 선생님께서 '저 여자가
미인이라구! 이제부터 그 여자의 어머니를 재주 있는
여자라고 부르고 싶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나중에 가서 그 사람도 선생님께 점점 잘
보이게 되었나 보죠. 한땐 제법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셨겠죠"
"그렇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어 다아시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처음 그녀와 알게 되었던 때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지
몇 달이 되니까요."
그리고 나서 그는 자리를 뜨고 말았다. 빙리 양은
혼자 남아서 자기에게만 고통을 주는 일을 그에게
억지로 말을 시켰다는 만족을 만끽하게 되었다.
가디너 부인과 엘리자베드는 돌아오는 길에 방문중에
일어났던 모든 일에 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특히 그녀들이 다 함께 관심을 갖게 한
일은 제외되고 말았다. 그녀들이 만났던
사람들의 용모나 행동은 모조리 논의되었으나 그
중에서도 그녀들의 주의를 끌었던 사람에
대해서만은 예외였다.
두 사람은 그 사람 자신을 빼놓고는 그 사람의
누이동생이라든가 친지들이라든가 가옥 또는 과일과
같은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서로 다 이야기했으나,
엘리자베드는 가디너 부인이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으며, 가디너
부인은 조카가 그 이야기를 끄집어 냈더라면 아주
기뻐했을 것이다.
46
램턴에 도착했던 날 제인에게서 편지가 와 있지
않아서 엘리자베드는 크게 실망했지만 그 실망은
바야흐로 거기에서 아침을 보낼 때마다 새로움을 더해 갔다.
그러나 사흘째 아침에 언니한테서 편지를 두 통씩이나
받게 되어 그녀의 불평도, 또 그중 한 통에는
다른 곳으로 잘못 배달되었다는 표시가 있어 언니의
명분이 이럭저럭 서게 되었다. 제인이 수신인의
주소를 매우 서툴게 썼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편지가 배달되었을 때 그들은 막 산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때라, 외삼촌과 외숙모는 그녀가
조용히 남아 편지를 읽게 해주려고 자기들끼리 떠나
가고 말았다. 잘못 배달된 것부터 읽지 않으면
안되었다. 닷새 전에 씌어진 편지였기 때문이다.
서두에는 지방에서 있을 법한 소식과 함께 조촐한
파티라든가 초대 등에 관한 보고가 실려 있었는데,
뒷부분에는 날짜가 하루 늦게 되어 있었고
겉보기로도 동요된 심정에서 쓴 것이었으나, 더 중요한
정보를 전해 주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사랑스런 리지, 전혀 예기치
못한 중대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어. 그러나 혹시
내가 널 놀라게 해주지나 않겠는지.... 안심해도
좋아요, 우린 모두가 잘 있으니까. 이야기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니라 바로 가엾은 리디어에 관해서야.
간밤에 모두들 막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포스터 대령한테서 속달이 왔는데 리디어가 장교 한
사람과 스코틀랜드로 줄행랑을 쳐버렸다지 뭐냐.
사실대로 말하면 워컴과 함께 말이다!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지 상상 좀 해봐라. 그런데 키티에게는
그다지 의외로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더라. 정말
너무너무 유감이란다. 쌍방이 이토록 무분별하게
이럴 수가 있겠느냐 말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일이
최대한 잘되어지기를 바라고 있고 또 그의
성격이 오해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생각이 없고
경솔한 사람이라고는 쉽게 믿어지지만 이번
행위(우리들은 그것을 기뻐하기로 하자)는 마음 속
깊이 나쁜 마음에서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 리디어를 택한 것은 적어도 이익을 바라고
한 짓은 아니야. 왜냐하면 그는 아버님이
그애에게 넘겨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가엾게도 어머님께선 몹시
슬퍼하고 계셔. 아버님께선 훨씬 더 잘 참고 계시다.
그 사람에 대한 나쁜 점을 양친께 알리지 않은
것을 난 여간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우리들
자신도 그것을 잊어야 하는 거야. 두 사람은
토요일 밤 열두 시경에 떠나간 것이라 추측되지만
어제 아침 여덟 시까지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 그리고 곧 속달이 띄워진 거야. 사랑스런
리지, 두 사람은 10마일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을
통과했음이 틀림없는 거야. 포스터 대령께서 곧
이곳으로 올 눈치야. 리디어는 대령 부인에게 몇
줄의 글귀를 남겨 두고 자기네의 의향을 알려주었던
거야. 이만 줄여야 할 것 같아. 불쌍한 어머니
곁을 너무 오래 떠나 있을 수가 없으니까 말야. 네가
이 편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믿지만
그건 역시 내가 뭘 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란다.
자기 자신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동시에
자기의 감정을 알지도 못한 채로 엘리자베드는 이
편지를 다 읽고 나자, 또 한 통의 편지를 손에 들고서
무섭게 읽어 나갔는데 그것은 하루 후에 쓴
것이었다.
사랑하는 리지, 지금쯤은 내가 급히 써 보낸 편지를
받아 봤을 것으로 생각해. 이번 편지는 좀더
내용이 분명했으면 하는데 그러나 별반 시간의 제한은
받고 있지 않은데도 내 머리가 혼란스럽기
때문에 이론정연하기란 도저히 장담하기 힘들 것 같아.
사랑하는 리지, 난 지금 무엇을 쓰고 싶은가를
모를 지경이지만 너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는구나.
그것도 지체할 수 없이 말야. 위컴 씨와 가엾은
리디어 사이의 결혼은 일단 경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제 와서 우리들로서는 그 결혼이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랄 수밖에 없게 됐어.
왜냐하면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로 안가지 않았나 하는
이유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야. 포스터 대령님이 엊그제
브라이튼을 출발해서 속달이 도착한 지 몇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어제 이곳으로 오시게 된 거야.
리디어가 대령님 부인 앞으로 써서 보낸 짧은
편지로 두 사람은 그레트너 그린으로 가려고 한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데니라는 사람이 잠깐 들러
알리는 바에 의하면, 위컴은 거기로 갈 생각은 없었으며
리디어와 결혼할 생각도 전혀 없다는 거야.
대령에게도 그대로 전해지자 펄쩍 뛰시면서 두 사람의
뒤를 쫓을 생각에서 브라이튼은 출발했던 거야.
클래팸까지는 쉽사리 뒤쫓을 수가 있었지만 그 이상은
곤란했던 모양이었어. 그곳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임대 마차에 갈아타고 에프솜에서 타고 왔던
이륜마차를 돌려보냈기 때문이지. 그 다음에 내가
안 사실이라고는 두 사람이 런던 가를 치닫고 있는 것이
누군가의 눈에 띄었다는 일분이었어. 난 뭘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어. 대령님께선 런던
방면으로 모든 손을 다 써 가며 조사하고 난 뒤로
바아네트와 해트필드에 있는 통행세관문이고 여관이고
할 것 없이 샅샅이 추적해 보았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그런 사람들이 통과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들 했기 때문에 허어퍼드셔까지
가시게 됐다는 거야. 더할나위없이 친절하신 관심을
가지고 대령님께선 롱본까지 오시게 되었는데 정말
믿음직스러운 마음씨로 걱정의 빛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어. 난 그 내외분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게
여기고 있어. 그 누구도 그 두 분을 나무랄 수가 없지.
사랑하는 리지, 우리들의 고통은 더할나위없이
크단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최악의 결과가 된 것으로
정해 버리고 계시지만 난 그분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가 않아. 여러 사정이 있어 두 사람은
당초의 계획을 추진시키기보다는 런던에서 내밀히
결혼하는 편이 적합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 그가 리디어 또래의 어린
여성에게 안 좋은 속셈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애가
그렇게나 모든 것을 팽개쳤겠니? 그럴 리가 없지!
그러나 대령님께서 두 사람이 결합되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나서는
슬퍼지기만 해. 나 자신의 희망을 피력했더니 대령님은
고개를 저으시면서 위컴이란 사람은 신용할 수
없는 사나이라고 말씀하셨어. 가엾게도 우리 어머닌
정말 병이 나셔서 방에만 계시게 되었어.
어머니께서 건강을 되찾으시면 얼마나 좋겠냐만
기대하기가 어려워. 아버지에 대해 말하자면 이렇게나
마음 괴로와하시는 것을 난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
가엾은 키티는 두 사람이 애정을 감추어 온 사실에
대해 몹시 분개하고 있지만 본래 내밀적인 문제여서
이상하지는 않아. 귀여운 리지, 네가 이러한
통절한 장면은 얼마간이라도 보지 않은 것만도 난 정말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이제는 최초의
충격도 가라앉고 해서 너의 귀가를 학수고대한다 해서
잘못일까? 그러나 사정이 허락하지 않으면 꼭
그렇게 해달라고 내 속만 차리고 싶진 않아. 그럼 잘
있어! 내가 다시 펜을 잡게 된 것은 조금 전에
정녕 말하지 않으려 했던 일을 말하기 위해서야. 사정이
이쯤 되고 보면 여러분이 다 되도록 빨리
이리로 와 달라고 간청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어. 나는
외삼촌과 외숙모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터라 주저 없이 부탁할 수가 있어. 그리고 외삼촌께는 그
밖에도 부탁드릴 일이 있어. 아버님께선
리디어를 찾기 위해 포스터 대령님과 같이 곧 런던으로
출발하시게 돼. 무슨 일을 하실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지만 과도한 심로로 고민하시는 중이라,
최선이며 확실한 수단을 취하기가 아마도 어려우실
거야. 게다가 포스터 대령님은 내일 밤에는
브라이튼으로 돌아가셔야 해. 이렇게 위급한 때일수록
외삼촌의 조언과 조력만큼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거야.
외삼촌께서도 내 기분을 금방 이해해 주시게 될
것이고 그리고 난 그분의 호의를 의지하고 싶어.
"아! 어디, 어디에 외삼촌이 계실까?"
편지를 읽고 나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엘리자베드가 외쳤다. 중요한 시간을 한시라도 헛되이
하지 않고 그의 뒤를 쫓으려 했지만 그녀가 문쪽으로
가자 다아시 씨가 거기에 서 있었다. 그녀의
창백해진 얼굴과 성급해진 태도를 보자, 그는 크게
놀랐다. 입을 뗄 만큼 그가 정신차리기도 전에
그녀는 리디어가 처해 있는 입장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어 황급히 소리쳤다.
"실례합니다, 용서하세요. 급한 볼일로 한시바삐
가디너 씨를 찾아야겠어요."
"이게 대체! 웬일이십니까?"
정중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열을 담아서 그가
외쳤다. 그리고 나서 정신을 가다듬으며,
"1초라도 붙들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가디너 씨
내외분을 찾는 데 저나 하인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군요. 그러니까 혼자선
못 가십니다."
엘리자베드는 주저했지만, 무릎이 덜덜 떨려서 두
사람을 추적한다 해도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하인을 다시 불러서 거의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를 모를 정도로 숨을
헐떡거리면서 곧장 주인 내외분을 모시고 오리고
명령했다.
하인이 방을 나가 버리자 그녀는 자기 몸을 가눌 수도
없이 주저앉아 버렸는데,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기분이 좋지가 못한 것 같아서 다아시는 그녀 곁을 떠날
수도 없었고 부드럽고 동정에 넘친 어조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녀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힘을 내시기 위해 뭔가
좀 드실 것이 없을까요? 포도주 한 잔을
가져오게 할까요? 퍽 고통스럽게 보이십니다."
"아녜요, 괜찮아요."
그녀는 스스로 원기를 되찾으려고 애쓰면서 그녀는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어요. 전 괜찮아요. 단지 롱본에서 막
도착한 어떤 무서운 통지로 해서 괴로울
뿐이에요."
그 말을 하고 나자 그녀는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2, 3분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아시는
불안 속에 사로잡혀 자신의 근심을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지껄이다가 침묵 속에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전 제인 언니한테서 정말 무서운 편지를 막
받았어요. 누구에게도 감추지 못할 성질의 일인지요.
막내동생이 친구들한테 뛰쳐나와, 남자하고 눈이 맞아
도망을 치고 말았대요. 위컴인가 하는 남자가
하자는 대로 되고 말았다는 거예요. 그들은
브라이튼에서 함께 도망을 치고 말았어요. 그분을 잘
알고 계시는 선생님은 다음 사정을 잘 아실 테죠.
동생은 돈도 안 가졌고 이렇다 할 친척도 없고 해서
그분의 마음을 끌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앤 영원히 구제 받지 못하게 돼버린
거예요."
다아시는 너무 놀라서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더욱 혼란된 어조로 덧붙여 말했다.
"방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전 그분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 일의 얼마간이라도(제가 알고
있던 일을 얼마간이라도) 가족한테 알려 두었으면 좋을
텐데! 그분의 성격을 알았던들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모든
일이 너무 늦어지고 말았어요."
"정말로 비통합니다."
다아시가 말했다.
"슬픔을 아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인가요.... 너무나도 정확한 사실인가요?"
"정말 그래요! 일요일날 밤에 브라이튼을 두 사람이
떠났는데 런던까지 수소문해 거의 알았지만, 그
이상은 안되었어요. 스코틀랜드로 안간 것만은
분명하지만서도"
"그래서 동생을 되찾을 어떤 조치라도 취하셨나요?"
"아버님께서 런던으로 올라가시고 제인 언니가
외삼촌께 곧 원조를 청하는 편지를 띄웠어요. 30분
내에 우리들이 출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게 돼버렸지요.... 별 수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마음을 돌릴 수 있겠어요? 두 사람을 어떻게 찾을
수가 있겠어요? 전혀 희망 없는 것이지요. 이건 정말
지나친 일이에요!"
다아시는 그것을 인정하며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저의 이 눈이 그 사람의 정체를 꿰뚫었을
때... 아! 제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더우기 용기 내서
해야 할 일을 알았던들! 그러나 그걸 전 몰랐지요....
지나친 일이 아닐까 싶어 두려웠지요. 이건 너무너무 비참한
실수예요!"
다아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음울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가며 방 안
여기저기를 거닐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곧 그것을 보게 되자 금방 이해가 갔다.
그녀의 매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약점이 이토록 백주에 폭로되어 최악의 치욕이 이와
같이 확대되고 만대서야. 모든 일이 쇠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녀로서는 의아해 할 수도 책망할 수도
없었지만, 그가 자신을 억제하고 있다는 확신도
그녀의 쓰린 가슴을 조금도 달래 주지 못했으며, 고뇌도
가벼워지기란 어려웠다. 반면에 자기 자신의
소원을 이해시키기에 안성마춤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애정이 허망해지고 만 현재만큼 그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가 있다고 마음 속 깊이 느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은 그녀의 마음 속으로
침입해 들어갈 수는 있었으나 그것을 독점할
수는 없었다. 리디어(그녀)가 모두에게 날라다 준
굴욕과 불행이 이윽고 자기의 모든 사사로운
걱정을 삼키고 말았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며
엘리자베드는 이내 다른 모든 것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몇 분 동안 침묵이 흐른 후에 상대방
목소리로 겨우 제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상대편은 동정을 보여 주는 반면 자제하는 태도를
보여 가며 말했다.
"당신은 아까부터 내가 여기에 안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셨겠지만 내 입장으로서도 여기에 남아
있겠다고 간청할 만한 변명거리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쓸모 없는 걱정이나마 진정으로 하게
되는군요. 나로서는 그 고통을 덜어 드릴 수 있는
말이나 뭔가 할 수만 있다만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러나
당신한테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자는
의도에서라고 해석될지도 모를 허망한 소망을
말함으로써 당신을 만나지 못하게 되겠죠"
"예, 그래요. 다아시 양에게 우리들을 대신해서
사과 드려 주세요. 아주 급한 일로 집을 떠나게
되었다고요. 이 불행한 일은 되도록 오랫동안
감춰 두세요. 하긴 그다지 오래 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요."
그는 즉석에서 비밀로 하겠다는 것을 서약하고, 다시
한 번 그녀의 재난에 대한 유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바랄 수 있는 일보다 더욱 기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그녀의
가족들에 대한 인사말을 남기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가 방 밖으로 나갔을 때 엘리자베드는 더비셔에서
여러 차례 만났을 때와 같은 온정이 어린
관계에서 서로 다시 만나기는 이젠 틀린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처럼 모순과 변화에 찬 지금까지의 교제를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그전 같으면 교제가 끊어진
것을 기뻐했을 감정이 이제 와서는 그 교제를 잘 되길
바라게 된 전말에 그녀는 탄식했다.
감사와 존경이란 게 애정의 가장 좋은 기반이라면
엘리자베드의 그러한 감정의 변화는 있을 수 없는
바도 아니며, 잘못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가 못하다면... 다시 말해서 그러한 근거에서
생겨나는 애정은, 상대방과 처음 만나 얘기조차
나누기도 전에 생겨나는 것으로 흔히 묘사되는 애정에
비하여 불합리하거나 부자연스럽다고 한다면, 그녀가
위컴에 대한 호감에서 나중 방법을 약간 시도해
보았다가 그것이 별로 여의치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보다
덜 재미있는 애정의 방법을 추구하는 데 대한
변명거리가 된다는 것을 빼놓고는 어떤 사실로도
그녀에게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녀는 그가 떠나가 버린 것을 애석하게 여기면서
리디어의 비행이 이토록 빨리 가져다 준 이 실례를
염두에 두고 그 가증스런 행위를 곰곰 씹어 볼수록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제인에게서 온 두 번째의
편지를 읽고 난 후부터는 위컴이 리디어와 결혼할
것이라는 희망은 전혀 못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기대감으로 자기의 기분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는 제인
이외엔 아무도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와 같은 진전에도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첫번 편지 내용이 아직 마음을 점하고 있는
동안에는 위컴이 돈을 목적으로 결혼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여자하고 결혼하려는 데 대해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리디어가 어떻게 해서
그런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런 일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애정의 대상으로서는 리디어는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리디어
입장으로서도 결혼할 의사가 없이 고의적으로 줄행랑에
끼여들었다고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그녀 정도의 덕성과
지성으로는 값싼 희생물이 되는 일에서 몸을
지켜 나갈 힘이 없다고 믿는 것은 과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허어퍼드셔에 연대가 있었을 동안 리디어가 그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리디어는 유혹만 받게 되면 누구에게나 자기를 맡겨
버린다는 확신이 서게 되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자기에게 관심이 있다고 여겨지기만 하면, 때로는 이
장교가 또는 다른 장교가 그녀의 마음에 들곤
했던 것이다.
그녀의 애정은 끊임없이 변해 갔지만 그 대상이 없을
때라고는 없었다. 그러한 딸을 방임해 두고
자칫 뜻을 받아 주었다는 나쁜 일... 아! 그녀는 더할
수 없는 고통으로써 그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더 많은 일을 듣고 싶고 보고 싶었으며 또 발칵
뒤집힌 가정에서 지금으로선 전부 제인 한 사람의
어깨에 걸려 있기 십상인 그녀의 심적 수고를 그녀와
함께 나누기 위해 그 현장에 같이 있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집을 비우시고 어머니는 힘을 낼 수가 없어
늘 누군가가 붙어 있어야 할 판이었다.
리디어에게 어떤 조처를 하지 못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외삼촌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졌으므로 그가 방에 들어올
때까지의 그녀의 초조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디너 부부는 하인의 말로 조카가 갑자기 병에라도
걸리지 않았나 싶어 놀라서 급히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곧 두 사람을
안심시켰으며 불러오게 한 이유를 열심히 설명해 주고
두 통의 편지를 소리내어 읽었으며 두 통 째의 추신
부분은 떨릴 정도로 힘주어 가며 천천히
읽어 나갔다.
리디어는 가디너 부부의 마음에 드는 아이는
못되었으나, 크게 괴로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리디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에 휩쓸려고 만
셈이다. 먼저 경악과 공포의 탄식 소리를
지르고 나서 가디너 씨는 힘닿는 데까지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엘리자베드는 그 정도의 일은
기대했으나 눈물어린 감사를 했다.
"그렇지만 펨벌리 일은 어떡하나?"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존이 그러는데, 네가 우리를 부르러 보냈을 때
다아시 씨가 여기에 있었다며... 그랬었니?"
"그래요. 그래서 제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말씀드렸어요. 그 일은 잘 해결 지었어요."
"아니 잘 해결 지었다구!"
상대방은 엘리자베드가 준비를 하기 위해 자기 방으로
뛰어갔을 때 혼자 되뇌었다.
"그래 두 사람 사이는 그애가 사실을 밝힐 정도가
돼버렸다는 건가! 아, 그게 어떤 사이인지
알았으면 좋겠다만!"
그러나 그 소원은 소용없었다. 아니, 고작해야 그
뒤에 계속된 바쁘고 혼란스러운 시간 동안 그녀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될 뿐이었다. 한편
엘리자베드는 게으름을 피울 만큼 여가가
있었더라면 자신과 같은 비참한 사람에겐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일은 없는 법이라고 믿은 채로
있었겠지만, 마침 그녀에게도 외숙모만큼이나 할 일이
있었다.
특히 급히 출발하는 데에 대한 거짓 구실을 말해 가며
램턴의 친구 모두에게 편지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자 모든 일이 마무리
되었으며, 그 사이에 가디너 씨가 여관비 계산을
했으므로 이제는 떠나는 일밖에 남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오전 중의 비참했던 모든 일이 있었던 뒤로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짧은 시간에 마차에 몸을 싣고
롱본을 향하게 되었다.
47
"다시 한 번 그 일을 생각해 보았다만, 엘리자베드야."
마차가 시내를 벗어나자 외삼촌이 말했다.
"사실인즉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 이 사건에 대해서는
그 전보다는 훨씬 너의 언니와 같은 판단을
하게 되는구나. 보호자도 친구도 결코 없지 않은 터라
현재 자기 부대의 대령 집에 체류 중인
소녀에게 제아무리 젊은 남자일지라도 그런 음모를
꾸민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나는 최선의
희망을 갖기로 했다. 그 친구도 그애의 친구들이
나서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겠니? 그리고 그 친구가
이토록 포스터 대령님에게 무례한 짓을
저질러 놓고서도 연대로부터 후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느냐 말이다? 그 친구의 유혹은 그런 위험을
저지를 만한 것은 못되는 것 같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엘리자베드는 일순 밝은 기분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야."
가디너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나도 외삼촌의 의견과 같게 됐어. 품위로나 명예로나
이익으로나 너무도 엄청나게 어긋나는
일이니까, 그 사람으로서도 도저히 그런 죄를
범하지는 못할 거야. 나는 또 위컴을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리지야, 넌 그 사람이
능히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고 단정해 버릴 만큼
전적으로 그 사람을 불신할 수 있겠니?"
"자기의 이익을 무시해 버릴 수야 없겠지요. 그렇지만
딴 일 같으면 뭐든지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알아요. 정말 말씀하신 대로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전 그렇게 생각할 용기는 못
가졌어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이 왜 그
길로 스코틀랜드까지 가 버리지 않았을까?"
"첫째로"
가디너 씨가 대답했다.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에 가 있지 않다는 절대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는 거다."
"어! 그러나 두 사람이 이륜마차에서 임대 마차로
갈아타고 간 사실은 그러한 가정을 가능케
하거든요! 더우기 바아네트 길에서도 두 사람이
지나갔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두 사람이 런던에 가 있는 것으로 하자.
런던에 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물론
피신하려는 목적이지 달리 각별한 목적은 없겠지만.
쌍방 서로가 돈을 푸짐하게 가졌을 리는 없는
형편이라, 별로 급한 건 없지만 스코틀랜드보다는
런던에서 결혼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야."
"그러나 왜 이토록 비밀에 부쳐 두지요? 왜 알려지기를
두려워할까요? 무슨 이유로 결혼을 내밀하게
덮어두려는 건지요? 아, 아니, 아니 그럴 턱이 없어요.
그 사람하고 제일 친한 친구분도 제인의
설명에 따를 것 같으면 그 사람은 리디어 하고는
결혼할 의사가 없다고 믿고 있어요. 위컴이란 사람은
얼마간 돈이 없는 여자하고는 절대로 결혼하지를
않습니다.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는 위인이에요.
게다가 리디어에게는 어떠한 자격이
있나요.... 젊음과 건강과 명랑한 성품 외에, 그
사람이 좋은 혼처 자리를 얻어 득볼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그애를 위해
저버릴 만한 어떤 매력이라도 그애에게 있단
말예요? 연대 내에 있어서의 불명예가 된다는 걱정이
그애와의 파렴치한 줄행랑을 억제하는 데
얼마만한 힘이 됐는지 저로서는 판단이 서질 않아요.
왜냐하면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되면 어떤 결과가
되는지를 전 전연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외삼촌의 또 하나의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그게 잘
맞아떨어질 것 같지 않아 걱정이군요. 리디어에게는
간섭하고 나설 만한 오빠가 하나도 없는 터이고,
그 사람은 또 우리 아버지의 태도와 그리고 자기
가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한가한 채로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점 등을 미루어 보아서 이런
결과가 돼버려도 아버지가 여느 부친처럼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도 모를 일이죠"
"그러나 리디어가 그 사람의 사랑을 차지하는 것을
빼놓고는 모든 것을 죄다 잃어 가면서까지 그
사람하고 결혼 아닌 다른 조건으로 동거하는 데
동의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니?"
"아무래도 그렇게 여겨져서 정말로 가슴이 아파져요."
엘리자베드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대답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내 동생의 품위라든가 도덕에 대한
관념은 의심받을 만하지요. 그러나 사실은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어요. 혹시 제가
동생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그러나
그애는 매우 어리기 때문에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배우지 못했거든요. 더우기 반 년 동안은
아니 일 년 동안에는 쾌락과 허영에 몸을
내맡기다시피 했었죠. 정말 게으름이나 피우고 천박하게
시간을 보냈었고, 그저 되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지내도록 방임되다시피 한 거예요. ㅇㅇ주 의용군이
메리튼에 주둔한 후부터는 연애나 시시덕거리는
일이나 장교들 일 이외에는 동생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동생은 그런 일만 생각하고 입에
담았고 타고난 강렬한 감정을 더 한층 강하게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는지요. 다정다감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던 거예요. 더우기 위컴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모든 인간적인 매력과 말솜씨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저희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죠"
"너도 알고 있겠지만"
외숙모는 그렇게 말했다.
"제인은 위컴이 능히 그런 짓을 할 걸로 단정할 만큼
나쁘게 보질 않던데"
"제인 언니가 누굴 나쁘게 보는 적 있나요? 과거의
행위야 어떻든 간에, 확실한 증거가 나타났을
때까지는 그런 짓을 할 만하다고 제인 언니가 단정할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그러나 제인 언니도 나
못잖게 그 사람이 어떤 위인인가를 알고 있어요. 우리
둘이는 그 사람이 모든 의미에 있어서 방탕한
사람이며, 성실성도 염치가 없고, 게다가 남에게 아첨
잘하는 것에 못지 않게 거짓되고 기만성인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 일들을 넌 정말 샅샅이 알고 있느냐!"
그녀가 어떤 연유로 그러한 일을 알게 되었는지 자못
호기심에 마음 태우며 가디너 부인이 물었다.
"정말 알고 있어요."
엘리자베드가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며칠 전에 그 사람이 다아시 씨에게 파렴치한 해동을
취했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요. 더우기
외숙모님께선 그 전에 롱본에 오셨을 때 자기에
대해서 그토록 인내와 관용을 가지고 대해 주었던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했던가를 직접 듣지
않으셨어요. 게다가 저로선 자유로이 말 못할
일... 말할 만한 값어치도 없는 일도 여러 가지가
있지요. 펨벌리 가문에 대한 그 사람의 거짓말은
끝이 없구요. 그 사람이 다아시 양에 대해서 말한
걸로 보아서는 전 다아시 양이 거만스럽기에
느낌이 좋지 못한 여자인 줄만 알았죠. 그러나 그
사람은 아주 반대로 알고 있었던 모양이지요.
저희들이 봤던 것처럼 상냥스럽기만 하고 뽐낼 줄
모르는 분이란 사실을 그 사람도 알고 있어야 해요."
"그러나 리디어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냐? 너나
제인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을 그앤들
모르고 있으란 법은 없을 테지."
"아, 있지요. 바로 그 점이 가장 잘못된 거지요. 저도
켄트에 가서 다아시 씨와 친척이 되시는
피츠윌리엄 대령님 두 분을 만날 때까지는 그 진실을
전혀 몰랐지요. 그래서 집에 돌아와 보니 ㅇㅇ주
의용군이 한 주일이나 두 주일이 지나면 메리튼을
떠나기로 돼 있었어요. 사정이 그쯤 되고 보니
제가 모든 사실을 다 말해 주었던 제인 언니나 저로선
그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죠. 내용인즉 그 근처에서 그의
평판은 썩 좋았었기 때문에 그 당시로는 우정 그것을
뒤엎어 봤댔자 그 누구에게도 덕될 리가 없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거예요. 그래서 리디어가
포스터 부인과 함께 가기로 결정되었을 때도 그의
눈을 뜨게 해서 그 사람의 정체를 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애가
누구에게 속아넘어갈 위험성이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지요. 이런 결과가 되고 말 것이라고
외숙모님께선 쉽게 믿어 주시겠지만 저로선
생각조차 싫은 일이었어요."
"그렇다면 모두가 브라이튼으로 떠나갔을 때는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지?"
"조금도 없었어요. 두 사람 중 어느 편이고 애정의
징후는 전혀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만약 그런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였던들 우리 가정은 그것을 본
체하고 지나칠 리가 없다는 것을 외숙모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그 사람이 처음 연대에
입대했을 땐 그애는 지금 당장이라도 연애를 할
것같이 보였어요. 그러나 저희들 모두 그랬는걸요.
메리튼이나 근처에 살고 있는 처녀란 처녀는 처음
두 달 동안은 그 사람에게 정신이 푹 빠졌었지만. 그
사람이 특별한 관심으로 그애를 눈여겨 본 적은
없어요. 그렇게 해서 터무니없이 미친 듯이 찬양만
하던 시기도 어느 정도 지나가고 나자 그에 대한
환상도 사라져 버리고 자기를 좀더 알아 주는 연대
안의 딴 사람들이 대신 그애의 마음에 들기
시작했던 거예요."
이 중요 관심사에 대해 몇 번이고 의견을 서로
주고받았지만 그들이 불안, 희망, 추측에는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지 못했으나 여행 중 사뭇 그들을 오래도록
잡아 놓을 만한 화제가 달리 없었다는
사실만은 쉽사리 믿어질 것이다. 엘리자베드의 머리에서
이 문제가 떠난 일은 결코 없었다. 더욱 더
고민과 자책감에 사로잡힌 채 그녀는 안락과 망각의
틈을 전혀 가질 수가 없었다.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여행을 계속하고 차 위에서
하룻밤을 지새워 가며 다음날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롱본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제인이
기다리다 못해 지치기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엘리자베드의 마음은 한결 위안 받을 수가 있었다.
가디너 집안의 아이들은 이륜마차가 다가오는 광경을
보고 마음이 팔려 집으로 오르는 계단에 서서
일행이 소목장으로 타고 들어오는 것을 맞아들였다.
마차가 현관에 도착하자 기쁨과 놀라움은 그들의
얼굴을 밝게 했고, 좋아 날뛰는 그들의 몸 전체에도
나타났다. 그것은 또한 일동을 환영하는 최초의
진지한 기쁨이기도 했다.
엘리자베드는 뛰어나와서 그들에게 급히 입맞춤을
해주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는 마침
어머니 방에서 아래층으로 뛰어내려 오던 제인이 곧
그녀를 맞아들였다.
엘리자베드가 애정 어린 포옹을 했을 때 두 사람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으나 잠시 여유도 없이
도망자들에 관한 무슨 소식이나 없었나 하고 물었다.
"아직 없어."
제인이 대답했다.
"그렇지만 외삼촌께서 와 주셨으니까 모든 일이 잘돼
나갈 거야."
"아버지께선 런던에?"
"그래 아버지에게서 자주 소식이 있었어?"
"한 번 뿐이야. 수요일에 편지를 두세 줄 써
보내셨단다. 무사하게 도착하셨다는 내용과 내가 특히
부탁을 드렸더니 주소를 써 주셨더라.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없으시면 편지를 안하시겠다고 덧붙여
놓으셨어."
"그래 어머니는 어떠세요? 모두들 잘 있구?"
"어머니는 이럭저럭 지내셔. 그런데 많이 낙심하시고
계시단다. 이층에 계시는데 여러분과 만나시면
흡족해 하실 거야. 화장실에서 꼼짝도 안하셔.
메어리와 키티는 고맙게도 잘들 있어."
"그런데, 언닌 어떠세요?"
앨리자베드가 외쳤다.
"안색이 좋지 못해요. 정말 괴로왔을 거야!"
그러나 언니는 자기가 아주 원기왕성하다고 했다.
가디너 부부가 어린아이들과 대면하는 사이에
나누던 두 사람의 대화는 그들이 다가오자 중단되고
말았다. 제인은 외삼촌과 외숙모 곁으로 가서
미소와 눈물을 보이며 두 사람을 환영하고 감사를
표했다.
그들이 모두 응접실로 들어서자 엘리자베드가 이미
물었던 질문이 물론 외삼촌과 외숙모에 의해
되풀이되었는데, 제인에게서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제인은 그토록 선의에 찬 마음에서 나온
낙관적인 희망을 아직 못 버리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으며, 아침마다 꼭 리디어한테서나 부친한테서
편지가 날아들어 일 진행을 설명해 줄 것이고, 아마도
결혼했다고 알려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몇 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나서 일행은 베네트 부인
방으로 갔는데 영접 받는 것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후회의 눈물로 위컴의 악랄한 행위를 마구
욕하고 자신의 고통이나 비운을 늘어놓으면서,
딸의 실수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자신이 잘못
판단한 방임은 제쳐놓고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마구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때었다.
"내가 만일 말이지. 내 의견을 내세워서 가족과 함께
브라이튼으로 갈 수만 있었더라면 이런 꼴은
안 봤을 텐데. 가엾게도 우리 리디어는 돌보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왜 포스터 내외분은 그 아이가
사라지도록 내버려두었단 말이야? 아뭏든 그분들에게
큰 실수가 있었던 거예요. 원래 그애는 누가 잘
지켜 주기만 하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아이니까.
그분들은 그애를 돌볼 만한 사람들이 못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언제나 그런 것처럼 내 의견은 꺾어
버렸지. 가엾어라, 우리 애기야! 더우기 주인께서도
나가시고 안 계시니, 어디서든 위컴을 만나기만
하면 결투를 하실 게고 그렇게 되면 세상을
떠나시게 될 테니 우린 모두가 어떻게 되겠느냐 말야?
주인이 묘 속에서 몸이 채 식기도 전에 콜린즈
가에서도 우리들을 쫓아낼 테니 동생네마저 우릴
친절하게 돌봐 주지 않으면 우린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군"
좌중의 사람들은 그러한 무서운 일을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외쳤다.
그리고 가디너 씨는 부인과 가족 여러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확실히 표명한 후에 내일이라도 곧바로
런던으로 올라가서, 베네트 씨를 도와 리디어를
되돌려 오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불필요하게 두려워해서 항복하셔서는 안됩니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만도 아니니까요. 두 사람이
브라아튼을 떠난 지 아직 일 주일이 못됩니다.
2, 3일만 지나면 그들에 관한 어떤 소식을 얻게
되겠지요. 그들이 결혼하지 않았다든가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이젠 다 틀렸다고 단념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런던에 도착하는
대로 곧 형님을 찾아서는 함께 그레이스처치 가에
있는 집에까지 오시게 해서 그 다음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의논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어, 정말 좋은 동생이야."
베네트 부인이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바야. 그리고 런던에
가거든 그애들이 어느 곳에 있든 꼭 찾아내도록
해요. 그리고 만약 결혼 안하고 있거들랑 틀림없이
결혼을 시켜 버리도록 하구. 결혼 예복 같은
문제로 두 사람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돼요.
리디어에게는 식 올리고 난 후에 물건 사고 싶은 만큼의
돈을 주겠다고 전해 주고. 그리고 특히 주인에게는
결투는 하지 말도록 일러 줘요. 그리고 내가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주인에게 말씀
좀 해주는데...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고,
오장육부가 와들와들 떨리기만 하고 옆구리엔 경련이
일어나며 두통이 나고 심장이 뛰어서 밤낮 쉴
새도 없다고 전해 줘. 그리고 귀여운 우리
리디어에게는 나를 만날 때까지는 의상 주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전하고. 그애는 원래가 어느 가게가 제일
좋은가를 모르고 있으니까 말이야. 아, 동생은 정말
친절한 사람이야! 동생 같으면 모든 일을 잘 처리해
나갈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가디너 씨는 그 목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재차 보증했지만, 걱정을 하든 희망을
갖든 중용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식사 준비가 될 때까지 이런 식으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딸들이 없을 때 부인을
돌봐 주는 가정부에게 부인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퍼붓게 하고 모두 방을 나와 버렸다.
동생 부부는 누님이 그런 식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믿었지만, 그렇다고
반대해 볼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식사 시중을 들고 있는 하인들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 만한 신중성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는데다가, 이 가정에서 단 한 사람, 더구나
그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단 한 사람만은 이
문제에 대한 그녀의 불안이나 염려를 죄다 받아 주는
편이 낫다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식당에서는 곧 메어리와 키티가 합세하게 되었는데
그녀들은 저마다 자기 방의 일로 바빴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타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 사람은 독서를
중지하고, 또 한 사람은 하던 화장을 그만두고
나왔다. 그런데도 두 사람의 얼굴은 제법 침착했고 두
사람에게는 어떤 변화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좋아하던 동생을 잃어서인지 또는 이 사건으로
해서 직접 분노를 느꼈기 때문인지 키티의
어조에는 여느 때와는 달리 초조한 데가 있어 보였다.
메어리 쪽은 모두가 식탁에 앉자 곧 자못
심각하게 생각해 잠긴 표정으로 어른스럽게
엘리자베드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이건 가장 불행한 사건으로 아마 꽤나 남의 입에
오르게 될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들로서는 악의의
흐름을 저지해 버림으로써 상호간의 상처 입은
가슴에다 여자 형제다운 위로의 약을 넣어 주도록 해야
할 줄 알아요."
그리고 나서 엘리자베드에게 대꾸할 흥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리디어에게는 이번 사건이 불행한 일임엔 틀림없겠지만
우리들은 이번 일에는 유익한 교훈을 얻게 된
셈이죠. 여성이 정조를 잃게 되는 날에는 그땐 벌써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한 걸음 잘못 디디고
나면 끝내 파멸로 빠져들고, 여성의 평판이란 건
아름다움에 못지 않게 깨지지 쉬우며, 가치 없는
이성에 대해선 제아무리 경계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교훈 말예요."
엘리자베드는 매우 놀라 대답도 제대로 못했다.
그럼에도 메어리는 쉬지 않고 당면한 재앙에서
그러한 교훈을 끌어내서는 자기를 위로하기에 바빴다.
오후에 두 사람의 언니들은 반 시간 가량 둘이서만
있을 수가 있게 되었다. 엘리자베드는 곧바로 그
기회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제인
쪽도 상대방에 못지 않게 열심히 대답해 주었다.
엘리자베드가 거의 확정적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이
사건의 끔찍한 전망에 대해서는 제인 쪽에서도
전혀 안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도 없어서 함께 슬퍼하고
나서 엘리자베드는 그 화제를 계속해 나가며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직 듣지 못한 일까지도 하나 빼놓지
말고 들려 주세요. 상세한 것을 더 듣고
싶으니까 말예요. 포스터 대령님은 뭐라고
하셨던가요? 두 분께선 두 사람이 뛰쳐나가기 전에 뭔가
그럴 만한 낌새를 못느끼셨던가요? 그분들께서는 두
삶이 있는 것을 봤을 테니까 말예요." 포스터
대령 말씀으로는 아무래도 좋아하는 눈치를, 특히
리디어 편에서 가끔 느끼긴 했지만 그렇다고
경계할 만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는 거야. 정말 그분은
가엾기만 해. 그분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주의
깊고 친절하셨어.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시기 전부터 그분은
자기의 걱정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여기로
오시려는 중이었어. 그 걱정거리가 소문으로
파다해지자 급히 뛰어오시게 된 거야."
"그런데 데니는 위컴이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는 거예요? 두 사람이 도망치겠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던가요? 그리고 포스터 대령님께선 직접
데니를 만났던가요?"
"그랬어, 그렇지만 대령님의 질문을 받자 데니는 두
사람의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면서 마음 속의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으려고 했던
모양이야.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그 이상 되풀이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런
점에서 볼 때 데니는 원래 판단을 잘 못하지
않았나 하고 믿고 싶어."
"그래서 포스터 대령님이 오셨을 때까지는 우리
집에서는 누구 한 사람 그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데
대한 의심은 하지 않았던 것이 아녜요?"
"그런 의심이 들다니, 있을 수는 있는 일이니? 난
다소 불안하기까지 했어. 동생이 그 사람하고
결혼하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어. 그
사람의 행동이 반드시 좋은 편은 못된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아버님 어머님도 그 점은
모르셨기 때문에 얼마나 경솔한 결혼인가 하는
정도만 느끼신 모양이야. 키티는 그때 누구보다도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관계로 인지상정이겠지만
우쭐대면서 고백하는 바로는 리디어에게서 온 마지막
편지 속에서 이러한 일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애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몇 주 전부터 알고 있었던가 봐"
"그러나 그들이 브라이튼으로 떠나기 전부터는
아니겠지요?"
"그럼, 그렇지는 않다고 봐"
"그래서 포스터 대령님 자신께서도 위컴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진짜 성격을 알고 계시는 걸까요?"
"그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분도 전에 비해서 위컴의
말을 좋게는 하시지 않으셨어. 경솔한데다가
소비성이 많다고 말씀하셨거든. 이 슬픈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는 그 사람이 많은 빚을 진 채로
메리튼을 떠났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지만 그것만은
헛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아, 언니, 우리들이 말요. 지금까지 감추질 말고서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을 말했더라면 이런
일은 안 일어났을 텐데!"
"그랬으면 더 좋았을 뻔하지."
언니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현재의 그들의 감정이 어떤가도 모른 채 남의
과거를 들추어낸다는 것은 올바른 일이 못되는
것 같아. 우린 선의의 입장을 지켰던 거야."
"포스터 대령님은 리디어가 부인께 보냈던 편지에
대해 상세히 말씀해 주셨어요."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가지고 오셨더랬어."
제인은 지갑에서 편지를 꺼내어 엘리자베드에게 넘겨
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친애하는 헤리에트 님
제가 어디로 가 버렸는지 아시게 되면 부인께선
웃으시겠지요. 내일 아침에 제가 없어진 사실을
아시게 될 때 깜짝 놀라실 것을 생각하니 저도 웃지
않을 수가 없군요. 지금부터 그레트너
그리인으로 향하게 되는데 누구하고 함께 가는가를
모르신다면 얼간이로 보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남성은 이 세상에서는 오직 한 사람, 그리고 그이는
천사와도 같아요. 그이가 없이는 저는 절대
행복해질 수가 없기 때문에 제가 집을 뛰쳐나왔다고
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마음이 내키지 않으시거든 제가 집을 나가 버린
사실을 굳이 롱본에 알리실 필요는 없어요.
그렇지만 제 손으로 편지를 써서 리디어 위컴이라고
써서 보내면 모두가 놀라게 될 것이니까요.
얼마나 좋은 장난이 되겠어요! 어떻게나 우스운지 이
편지를 써 나갈 수가 없어요. 프래트에게는
약속한 대로 오늘 저녁에 함께 춤을 못 추게 된 점을
제발 사과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우리가 서로
만나게 될 무도회에서는 기꺼이 춤추겠다고 전해
주세요. 의상은 롱본에 도착하면 받으러 사람을
보내지요. 그런데 짐 챙기기 전에 제가 수놓았던
머슬린 가운에 생긴 터진 곳을 손질해 두도록
샐리에게 부탁해 두시기 바라며 아울러 포스터
대령님께 안부 전해 주세요. 저희들이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도록 건배를 올려 주세요.
당신이 사랑하는 벗
리디어 베네트
"아, 리디어는 너무너무 철이 없어!"
편지를 읽고 나자 엘리자베드가 소리쳤다.
"도대체 그런 순간에 쓴 편지가 이게 뭐람! 그러나
적어도 그애가 여행의 목적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이는 보여. 나중에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
설득을 했든 간에 그애 쪽에서는 불명예스런 짓을
획책한 것은 아냐. 불쌍하신 우리 아버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그렇게 충격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거의 10분
동안에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셨다니까. 어머닌 그
자리에서 병자가 돼버리시고 집안이 온통 벌집
쑤셔 놓은 것같이 돼버린 거야!"
"아, 언니"
엘리자베드가 또 소리쳤다.
"그날이 다 가기 전에 이 집 하인 치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어요?"
"잘 모르겠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때에
조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어머닌
히스테리가 나 계셨고 난 내 힘껏은 도와 드리고
싶었지만 내가 할 만큼은 못한 것 같아. 그리고 어떤
무서운 일이 생겼더라도 난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태였어."
"어머니 시중드는 일은 언니로서는 힘겨웠을 거예요.
언니 안색이 별로 좋지가 못해요. 아, 내가
언니와 함께 있었더라면 좋을 뻔했어! 언니 혼자서
간호와 걱정을 도맡아 했으니까 말예요."
"메어리와 키티가 너무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어떤 노고라도 꼭 함께 해주겠다는 생각은
있었겠지만, 그애들에게는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가
않았단다. 키티는 여윈데다가 몸이 약한 편이고,
메어리는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어서 휴식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아버지께서 떠난 뒤로
화요일에는 필립스 이모님께서 롱본까지 오셔서
친절하시게도 목요일까지 머물러 계셨어. 이모님께선
우리 모두를 곧잘 도와 주셨고 위로도 해주셨어.
그리고 루커스 부인께서도 매우 친절하게 해주셨어.
수요일 아침에 우리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 여기까지
걸어오셔서는 도움만 된다면 자기나 따님 중의
누구라도 돕겠다고 하셨어."
"그분은 자기 집에 그대로 있는 게 나았을걸"
엘리자베드는 강하게 말했다.
"아마 호의에서 그러셨겠지만, 이런 불운한 경우엔
이웃 사람들의 얼굴을 안보는 것이 상책이에요.
힘을 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위안 받는 것도 견디기
힘들거든요. 먼데서 승리의 눈초리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만족하고 있으면 될 텐데"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가 런던에 체류하는 동안에 딸을
빼앗아 오기 위해 어떠한 수단을 취하려는가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으론 아버지께선"
제인이 대답했다.
"두 사람이 마지막 말을 갈아탔던 장소인 에프솜에
가서 마부를 만나서 혹시 무슨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을까 노력해 보실 참이신가 봐. 주된 목적은
틀림없이 클래팸에서 그들을 태우고 간 임대 마차의
번호를 찾는 일일 거야. 그 마차는 런던에서 어떤
승객을 태워 왔는데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한
마차에서 다른 마차로 옮겨 탄다는 것은 남의 눈에
뛰었을 것이라 생각하시고 클래팸에서 수소문해
보실 참인가 봐. 마부가 전에 손님을 내렸던 곳이
어느 집이었던가를 이럭저럭 알게 될 것 같으면
거기를 찾아가기로 정하셨던 모양인데, 그렇게 하면
그 마차의 주차장과 번호를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지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서 그랬을
거야. 그 밖에 어떤 계획을 하셨는지는 난
모르겠지만 너무 급히 떠나셨고 침착성도 몹시 잃고
계셨기에 이 정도로 생각해 내는 것도 나로선
겨우 할 수 있었어."
48
이튿날 아침 그들은 베네트 씨로부터 소식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그에게서는 한 줄의 소식도
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여느 때 같으면 그가 편지 쓰는
데는 게으르고 더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겠지만, 때가 때인 만큼 그의 분발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렇다 할 반가운 소식이 없는 모양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렇더라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을 성싶다. 이리하여 가디너 씨는
출발시까지 편지를 마냥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게
되었다.
그가 가기만 하면 적어도 일의 진행 상황을 끊임없이
알려 올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외삼촌은
작별할 때쯤 해서, 베네트 씨를 설득해서 되도록 빨리
롱본으로 되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말은 그의 누님인 베네트 부인의 마음을 대단히 위로해
주는 결과가 되었다. 그녀로서는 그 길만이
남편이 결투로 살해당하지 않는 단 하나의 안전책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디너 부인은 아이들과 함께 며칠 더 허어퍼드셔에
체류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조카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카들과 교대로 베네트 부인의 시중을 들었으며
여가가 있을 때는 조카들에게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의 이모가 뻔질나게 그들을 방문해
주곤 했는데 그녀의 말인즉, 조카들의 마음을 북돋아서
힘을 내게 해준다고 했지만, 찾아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위컴의 낭비벽이나 품행이 좋지 못한
새로운 예를 보고하곤 했기 때문에 그녀가 돌아가고
난 후면 그녀가 오기 전에 비해 그녀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어 놓고 마는 일이 많았다.
메리튼의 모든 사람들은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빛의
찬사 같은 존재였던 그 사람의 얼굴에다 마구
먹칠을 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바야흐로
그는 그곳 어느 상인에게도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고 선언 당했고 그이 간사함은 글자 그대로 유혹이란
이름의 명예로운 호칭을 받기에 이르렀으며
모든 상인의 가정에까지 확대돼 나갔다. 누구나가 그를
세상에서 제일 나쁜 청년이라고 불렀고, 그리고
겉치레 만인 그의 선량함을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고
빠짐없이 주장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소문난 사실의 반도 믿지 않았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그
전부터 동생은 파멸이라고 생각해 왔던 기분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만큼은 믿지 않고
있던 제인마저 거의 희망을 잃고 말았다.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로 가 버렸다는 희망을 그 전에는 결코
버리지 않았지만 정말 갔다면, 아무런들
무언가 두 사람에 대한 소식을 들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생각하니 절망적인 마음은 더해 가기만 했다.
가디너 씨는 일요일에 롱본을 떠났으며 화요일엔 그의
부인에게 편지가 왔다. 그 편지 속에는 런던에
도착하자 곧 자형을 찾게 되었고 그를 설득해서
그레이스처치 가로 데리고 왔다고 씌어 있었다. 베네트
씨는 자기가 런던에 도착하기 전에 벌써 에프솜이나
크래팸을 답사했지만 만족할 만한 정보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며, 또 베네트 씨 의견으로서는 두 사람이
런던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하숙을 찾기 전에
호텔을 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아서 그는 런던 시내의
주요한 호텔을 찾아보기로 마음먹고 있다고 했다.
가디너 씨 자신의 소견으로서는 그 방법이
성공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자형이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돕기로 했다. 베네트 씨가
당분간 런던을 떠날 심산이 아님을 추가로 써 놓고
다시 편지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추신이 붙어 있었다.
내가 포스터 대령에게 편지를 내서 가능하다면 연대
안에 있는 그 청년의 친구들한테 위컴이 현재
런던의 어느 근처에 숨어 있을 것인가를 알고 있을
만한 친척이 있는가를 수소문해 주도록 부탁해
두었소. 문의해 본 결과로 그러한 단서를 주게 될
사람이라도 있게 된다면 다시없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오. 당장으로서는 무엇 하나 우리를
인도해 줄 만한 일이라고는 없소. 이 점에 대해선
포스터 대령이 우리를 만족시켜 줄 만큼 모든 일을
다해 주시리라 믿고 있소. 그러나 재고해 볼 때,
그 사람에게 어떤 연고자가 아직 살아 있는 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리지가 잘 알고 있을 것
같으오.
엘리자베드는 어떤 연유로 자기에게 그러한 권위가
있다고 경의를 표하게 되었는지 이해 안되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 칭찬에 어울릴 만큼 만족스런 정보를
제공해 낼 수는 없었다. 몇 해 전에 별세한 부모
이외에 어떤 연고자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ㅇㅇ주 연대 내의 그의 동료
중의 어떤 사람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줄지 누가
알겠는가.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너무 낙관할
수는 없었으나 문의를 해보았다는 점에서 이럭저럭
기대해 볼만도 했다.
롱본의 나날은 걱정 없는 날이라곤 없었으나 그
중에서도 으뜸가는 걱정거리는 우편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우편의 도착이 아침마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최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좋은 소식이든
하찮은 것이든 간에 편지에 의해서만 전달되는 것이므로
밝아 오는 날이면 무슨 중대한 정보라도
전해 올까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디너 씨로부터 두 번째 소식이 있기 전에
아버지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전혀 다른 곳에서
즉 콜린즈한테서 날아들었다. 제인은 아버지의 부재중에
그에게로 오는 편지는 다 뜯어보도록
지시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읽기로 했는데, 엘리자베드도
그의 편지는 항상 기묘한 것이라고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깨 너머로 함께 읽게 되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삼가 올립니다.
어제 허어퍼드셔에서 온 편지로 소식을 알게
되었사옵니다마는 현재 선생님을 고뇌 속에 빠뜨리고
있는 그 재앙에 대해서 위로 말씀을 올리는 것은
인척 관계와 더불어 소생의 지위가 그렇게 하기를
명하는 바입니다. 처와 소생은 선생님을 비롯해
귀댁의 현재 처해 있는 고통에 대하여 지심으로
동정의 말씀을 올리게 된 것을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고뇌야말로 시간이 경과해도 명분을 벗어날
수 없으니 가장 비통한 게 아니겠습니까. 이토록
격렬한 불행을 경감시켜 드리기 위해, 아니 부모의
심정으로 더할 수 없이 비통한 상황에 놓여 계신
선생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소생은 논의를 다해
그칠 줄을 모르는 바입니다. 영애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해도 이것에 비할 땐 오히려 축복할 만한
일일 것입니다. 소생의 처 샬로트의 말에 의하면
영애의 이와 같은 방종한 행위는 지나치게 너그럽게
해주신 실책의 소치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더 한층 한탄스러운 일이옵니다. 물론
동시에 선생님 내외분을 위안 드리기 위해서는 영애의
성질이 선천적으로 나쁘지 않았던가 하고
생각하고 싶으며,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젊은
사람으로서는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선생님을 애처롭게 동정해
드려야 되겠지만, 이 소생의 이 건에 대해
말씀드린 바 있는 캐더린 부인과 그분의 따님도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딸 한 사람의 이와 같은
과오의 첫걸음은 나머지 따님 전부의 운명에까지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두 분 역시
소생과 같은 의견이올시다. 왜냐하면 캐더린
부인께서 고맙게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러한 집안과
누구인들 인연을 맺을 생각을 갖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할 때 소생은 작년 11월에 있었던 어떤
사건을 회상해 보면 더욱 만족감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이유인즉 결과가 그렇게 되지 않았던들
소생도 어김없이 선생님과 같은 비탄과 치욕 속에
빠져들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는
되도록 위안을 스스로 찾아 보시고 선생님의 버린
자식에게는 영원히 애정을 포기하여 가증스러운
죄의 결과를 내버려 두시기를 감히 충고 말씀드려 두는
바입니다....
가디너 씨가 재차 편지를 보내 온 것은 포스터
대령한테서 회답 받고 난 후였지만 반가운 소식이라고는
하나 들어 있지 않았다. 인연을 끊지 않은 친척이
위컴에게 아직도 있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 없으므로
생존에 있는 근친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은 명백했다.
옛날의 지기들은 적잖게 있었으나 의용군에
입대하고 난 후로는 누구 하나 그와 특히 친밀히 지내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짐작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경제적으로도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리디어의
권속들에게 발견된다는 두려움 이외에도 몸을
숨길 만한 매우 강한 동기가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에 발각된 일이지만 상당한 액수가 되는
도박의 빚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포스터 대령이 믿는 바로는 브라이튼에서 그의 빚을
가리자면 1천 파운드 이상 필요한 것이라 했다.
시내에서도 많은 빚을 짊어졌지만 도박에서
신용 차용했던 금액은 더욱 가공한 액수였다. 가디너
씨는 이러한 소상한 사정을 롱본의 사람들에게 감추려 들지
않았다. 제인은 그 사실을 듣자 모을 치떨었다.
그녀가 외쳤다.
"노름꾼이라구요! 이건 정말 몰랐어요.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이에요."
가디너 씨는 그 편지 속에서 여러분들은 다음날인
토요일에 아버지의 귀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여 써 두었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의기소침해진 아버지는 처남의 간절한 뜻을 굽혀서
자기 가족들한테로 돌아가기로 하고, 그들의 추적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은 무엇이든 처남에게
일임하기로 했다. 베네트 부인은 이 소식을 듣자 남편의
생명을 전에 그렇게도 걱정한 것에 비하면
자녀들이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의 빛을 나타내지 않았다.
"뭐! 돌아오시게 된다구, 가엾은 리디어도 안 데리고
오신다더냐?"
그녀가 소리질렀다.
"두 사람을 찾아낼 때까지는 런던을 떠나지 않으실
거다. 아버지가 그곳에 안 계신다면 누가 위컴 하고
결투를 벌여서 그애하고 결혼시킨다더냐?"
가디너 부인이 귀가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베네트 씨가
런던을 떠나는 같은 시각에 그녀와 자제들이
런던으로 떠나기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마차는 그들을
첫번 역까지 태워다 놓고서 주인을 태워서
롱본으로 되돌아 왔다.
가디너 부인은 엘리자베드와 그녀의 더비셔의 친구
일에 관해서는 더비셔에서부터 품어 왔던 모든
수수께끼를 지닌 채 돌아갔다. 모두들 앞에서 조카가
자진해서 그의 이름을 입에 담은 일은 없었으며
뒤미처 그로부터 무슨 소식이 있으리라고 가디너 부인이
반쯤 기대했던 일도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귀가하고 나서 엘리자베드는 팸벌리에서 오는 편지는
한 통도 받아 보지 못했다.
현재 가족들이 불행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침체해져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구실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까 침체해져 있는
일에서는 아무것도 추측해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이제 와서는 이미 자기 감정을 상당히 알 수
있었던 엘리자베드로서는 다아시를 전혀
몰랐더라면 리디어의 불명예를 좀더 잘 견디어 낼 수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그렇다면 불면에 시달리는 밤도 두 밤 중에 한 밤만으로
족했으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베네트 씨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완전히 철학가적인 차분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말수가 적은 것도 전과 다름없었으며, 여행을 떠났던
목적의 용건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어서 한참
후에 딸들 쪽에서 용기를 내어 허두를 떼게 되었다.
엘리자베드가 과감하게 그 화제를 끄집어낸 것은
오후가 되어서 아버지가 차 시간에 함께 모였을
때였다. 바로 그때 아버지가 견디어 온 일에 대한 그녀의
유감의 뜻을 짤막하게 나타냈더니 그가 대답했다.
"그 얘긴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 다오. 괴로와도 나
혼자 당하는 일이 아니겠느냐? 내가 한 일에 대한
응보니 내가 그걸 겪어야 한단 말이다."
"너무 지나치게 자신을 꾸짖지 마셔야 해요."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그런 폐단에 빠져들지 말라는 너의 경고도 달게
받겠다. 원래 인간성이란 것이 그런 것 같구나!
아냐 리지, 평생에 꼭 한 번만 자기가 얼마나
잘못했던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 다오. 난 그런 느낌에
압도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단다. 곧 소멸해
버리고 말 테니까 말이다."
"아버지께선 두 사람이 런던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 런던 말고 그렇게 잘 숨어 살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니?"
"그리고 리디어는 늘 런던에 가고 싶어 했었죠"
키티가 덧붙였다.
"그렇다면 행복할 게야."
아버지는 냉담하게 받는다.
"아마 거기서 한참 머물게 될 거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다가 그가 말을 이었다.
"리지야, 지난 5월에 네가 나한테 했던 충고가
옳았었다고 해서 너에게 유한 같은 것은 모르고
있다. 이번 사건을 생각해 보니 너의 충고는 어떤
마음의 위대한 것을 보여 주는 것 같구나"
베네트 양이 어머니의 차를 가지러 왔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차단되고 말았다.
"이것 보라고 들이대는 건가"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좋기도 하겠지. 불행에다 그렇게나 흥취를 더했으니
말이다! 언젠가 나도 한번 해보련다.
나이트캡을 쓰고서 분칠할 때 입은 가운 차림으로
서재에 앉아서 되도록 귀찮게 굴어 볼 테다. 아냐,
키티가 줄행랑을 칠 때까지 연기하도록 할까."
"아버지 전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키티는 뾰로통해지며 말했다.
"제가 브라이튼으로 간다 해도 리디어 같이 서투른
짓은 하지 않을 거예요."
"네가 브라이튼으로 간다구! 그 근처인 이이스트
본까지도 50파운드를 준다 해도 못 보낸다! 아냐,
키티, 난 이제 적어도 경계한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넌
그 효과를 실컷 맛보게 될 거다. 앞으로는
장교가 이 집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할 것이고 우리
동네 앞을 통과도 안시킬 테다. 무도회까지도
너의 언니 중 한 사람이 동반하지 않는 한은 절대로
금지다. 그리고 매일 십 분 동안 이성을 가지고
행동했다는 증명 없이는 한 걸음도 밖에는 못 나가"
키티는 이런 식의 위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왈칵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래, 그래, 스스로 슬퍼할 것까진 없다. 앞으로
10년간 네가 좋은 딸 노릇만 해보렴, 그 대신에
열병식에 데려다 주마"
49
베네트 씨가 돌아와서 이틀이 지난 후에 제인과
엘리자베드가 집 뒤의 관목 숲을 거닐고 있으려니까
가정부가 그들에게 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와 필시
어머니 곁에 와 달라는 전갈을 하러 오는
것이라고 단정지으며 그쪽에서 걸어나갔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보았더니 예기했던 것이 아니었다.
가정부가 베네트 양에게 말했다.
"방해가 돼서 죄송스럽습니다만 런던에서 좋은
소식이라도 받으시지 않으셨나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여쭤 보러 왔어요."
"무슨 말이오, 힐? 런던에서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어요."
"아가씨."
힐 부인은 몹시 놀라 큰 소리로 말했다.
"가디너 씨로부터 주인님께 속달을 보내 오신 걸
모르시고 계세요? 배달부가 다녀간 지가 반 시간쯤
됐는데 주인님께서 편지를 받으신 거예요."
딸들은 곧바로 뛰어갔다. 어찌나 열심히 뛰어왔는지
이야기를 할 겨를조차 없었다. 현관 홀을 빨리
통과해서 식당과 서재로 달음질쳤다. 아버지는 어느
곳에도 있지 않았다. 그래서 2층에서 어머니하고
함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찾으러 갈까 했을 때
집사하고 마주쳤는데, 그가 말했다.
"주인님을 찾고 계시다면 작은 숲 쪽으로 걸어가고
계십니다."
그 말을 듣자 그녀들은 즉시 다시 한 번 현관의 홀을
통과해서 잔디밭을 질러서 아버지를 뒤쫓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때마침 소목장의 한켠에 있는 작은
숲 쪽으로 천천히 걸어나가고 있었다.
제인은 원래 엘리자베드 만큼 잽싸거나 달리는 데
익숙해 있지 못해서 곧 뒤떨어지고 말았지만 동생은
몹시 헐떡거리며 아버지를 따라 붙여서는 열심히 고함을 쳤다.
"아, 아버지, 어떤 소식 왔어요? 어떤 소식 말예요?
외삼촌께서 소식 보내 오셨어요?"
"그래, 속달을 받았다."
"그런데 어떤 소식이 왔지요. 좋은 소식 아니면 나쁜 소식?"
"좋은 소식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냐?"
호주머니에서 편지를 끄집어내면서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읽고 싶겠지."
엘리자베드는 조급하게 그에게서 편지를 받아 들었다.
제인도 따라왔다.
"오다 큰 소리로 읽어보렴"
아버지가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구나"
그리이스처치 가에서
마침내 조카에 관한 소식을 어느 정도 전해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만족이 가시기를
빕니다. 형님께서 토요일에 귀가하시고 난 직후에
저는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이 런던의 어느 곳에
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만나 뵙고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두 사람을 찾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두 사람을 다
만나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전부터 바라고 있었던 바와 같군요."
제인이 외쳤다.
"그들은 결혼하고 만 것이에요!"
엘리자베드는 계속 읽어 나갔다.
두 사람을 다 만나 보았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안하고
있었고 결혼할 의사도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형님 입장에 서서 감히 언약해 버린
약속을 형님께서 실행에 옮길 의사가 만약
있으시다면 두 사람은 곧 결합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형님께서 하실 일이라고는 형님 내외분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 자녀들에게 나눠 주실 수 있는
5천 파운드 액수를 증여재산으로서 동등하게
분배해 주실 것을 리디어에게 보증해 주시고, 나아가
형님 생존 중에는 1년에 100파운드씩
송금하신다는 약속을 하셔야겠습니다. 이러한 조건들은
모든 것을 잘 고려하였다가 저에게 권한이
있다고 생각되는 범위 내에서 형님을 대신해서 주저하지
않고 승인했던 사항입니다. 곧바로 회신을
주실 수 있도록 속달로 보내드리는 바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보면 위컴군의 상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만큼은 절망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되시라고
믿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세간에서는 잘못들
알고 있는 것 같으며 그 사람의 부채를 전부 갚아
버린다 해도 조카에게는 그녀 자신의 재산에 추가해
다소나마 돈을 증여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저로서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만 이 문제 전체에 뻗쳐 형님의 대행으로서
행동하는 전권을 위임해 주신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해거스튼에게 명령해서 적절한 재산증여의 준비를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형님께서 다시 런던으로 오실
필요는 없으므로 편히 롱본에 계셔서 저의 정면과
배려에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빨리 회신을 쓰시도록 주의를 환기시켜 드립니다.
저희들 의견으로서는 조카를 이 집안에다
시집보내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만
형님께서도 그렇게 인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애는
오늘 여기에 오게 돼 있습니다.
어떤 결정이 있는 대로 다시 편지를 하겠습니다.
8월2일 월요일
가디너 올림
"그럴 수가 있어요?"
편지를 다 읽고 난 후 엘리자베드가 외쳤다.
"그 사람이 그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가능하겠어요?"
"그렇게 돼버린다면 위컴이란 사람은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던 것만큼 값어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예요."
언니가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려요."
"그래서 회답을 하셨나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아니다. 그러나 곧 회신을 내야겠구나"
그래서 그녀는 하루 빨리 회신을 쓰도록 열심히
부탁했다.
"아, 아버지. 곧 돌아가셔서 편지를 쓰시도록 하세요.
이런 경우엔 일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셔야 해요."
"제가 대신해서 써 드릴까요."
이번에는 제인이 말했다.
"귀찮은 일을 하시기가 싫으시거든"
"정말 싫구나"
그가 대답했다.
"그러나 써 보내야지."
그 말을 하고 나서 그는 그녀들과 함께 발걸음을
되돌려서 집 쪽으로 향했다.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그리고 묻겠는데요. 조건은 승낙하셔야 하잖겠어요."
"승낙하다니! 네 애비는 그 사내가 요구를 적게 해 온
것을 부끄러워 할 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혼을 해야 되는 거구요!
그렇지만 그 사람은 그런 유의 남자이니까요!"
"그래, 그래, 두 사람은 결혼해야 하구말구. 별수가
없게 됐거든. 그런데 내가 꼭 알아두어야 할 두
가지 일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너의 외삼촌이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 돈을 얼마나 들였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떻게 해야 그 돈을 그
사람에게 갚느냐 하는 문제다."
"돈이라뇨! 외삼촌께서!"
제인이 외쳤다.
"어떤 의미에서 하시는 말씀이세요?"
"그 말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 같으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매년 100파운드, 죽고 난 뒤로는
5천 파운드라는 하찮은 돈에 눈이 떨어져서 리디어와
결혼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그건 정말이에요. 아까까진 그런 생각을 못해
봤지만. 빚 청산을 다 한다 해도 여전히 얼마간은
남다니! 아, 틀림없이 외삼촌께서 하신 일이야!
그토록 너그럽고 훌륭한 분이시니까 꽤 많은 희생을
하셨겠지요. 적은 돈으로는 이만한 일을 못하셨을
것이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못하구말구. 1만 파운드에서 한 푼이라도 덜한
액수로 그애를 얻겠다고 한다면 위컴은 바보지.
그리고 인척 관계를 맺게 되는 것부터 그 사람을
바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1만 파운드라구요! 너무 하시다! 그 반의 금액이라
해도 어떻게 갚는다지?"
베네트 씨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저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집에 도달할 때까지
침묵이었다. 아버지는 그 길로 편지를 쓰려고 서재로
갔고 딸들은 식당으로 들어섰다.
"정말로 결혼하게 되다니!"
둘이서만 있게 되자 곧 엘리자베드가 외쳤다.
"너무나 이상하단 말야! 그런데도 이것을 우리들은
고맙게 생각해야 하단. 두 사람이 결혼한다 해도
행복해질 가망은 없어 뵈고 그 사람의 성격은 돼먹지
않은데도 우린 억지로라도 기뻐해야 하다니!
에잇, 리디어년!"
"난 이렇게 생각해서 위로하고 있는 거야."
제인이 대답했다.
"그 사람이 리디어에게 진정한 애정을 갖고 있지
않다면 틀림없이 결혼을 안할 것이라고. 친절하신
외삼촌께선 그 사람의 빚을 갚아 주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겠지만, 1만 파운드까지 선불해
주셨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당신 자신의 아이들도
있고 또 더 생겨날지 누가 알아. 그런 터에
어떻게 1만 파운드의 절반이라도 냈을 거야?"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위컴의 빚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네.
게다가 그 사람 쪽에서 지참금으로 그애에게
얼마만한 재산을 분여할 수 있는가를 알게 되면 그
사람에겐 돈이 한 푼도 없는 처지이니까 가디너
숙부님께서 얼마나 내셨는지 확실히 알 수가 있게
되는 거예요. 그애를 집으로 데려다가 직접
해주신데 대해서는 몇 해를 두고서 감사해도 다 못할
입장 같아요. 지금쯤은 그애도 그분들과 함께
있을 거야! 그토록 친절을 다 받으면서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애는 행복해질 자격이 없는
거예요! 처음 외숙모님을 만났을 때 무슨 염치로 만날
수 있었을까!"
제인이 말했다.
"우린 지금까지 서로에게 생긴 일을 되도록 잊도록
해야 하는 거야. 난 두 사람이 아직도
행복해지기를 희망하고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싶어.
그애와 결혼하겠다고 동의한 사실이 곧 그
사람이 올바르게 생각했다는 증거로 믿고 싶어.
상호간의 애정의 힘으로 두 사람은 확고해질 거야.
나는 낙관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조용히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어 이성적인 태도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면 이럭저럭 두 사람의 경망했던 지난 일들은
다 잊어버리게 될 거라고 생각해"
"그들의 행동은 언니나 나나 누구나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런 말을 했댔자 다 소용없는 일이지."
바로 그때 어머니가 어떤 일이 생겼던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딸들의 머리를
스쳐 갔다. 그래서 서재로 가서 어머니에게 알릴 필요가
있겠는가 없겠는가를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는
마침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머리를 들지 않은 채 차갑게
대답했다.
"좋도록 하려무나"
"외삼촌의 편지를 가지고 가서 읽어 드릴까요?"
"뭐든지 마음대로 가지고 가도록 해라."
엘리자베드는 필기용 테이블에서 편지를 꺼내 들고
둘이서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메어리와
키티도 베네트 부인 곁에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읽어도
모두에게 다 들려 줄 수 있었다. 좋은
소식이라고 전제를 약간 해 두고서 소리 높여 읽어
내려갔다. 베네트 부인은 설레는 마음을 달래지를
못했다.
리디어가 곧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가디너 씨가 말한
부분까지 제인이 단숨에 읽어 나가자, 그녀는
환희의 고함을 터뜨렸고 그것은 계속해서 낭독됨에
따라서 범람의 도를 더해 가기만 했다. 여태까지는
놀라움과 근심으로 안절부절못했지만 이번에는 기쁨
때문에 그에 못지 않은 격렬한 흥분 상태에
빠져들었다. 딸이 결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족했던 것이다. 딸의 행복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으며 딸의 못된 소행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의기소침해진 것도 없었다.
"귀여운, 정말 귀여운 내 자식아!"
그녀가 외쳤다.
"결혼하게 된다니 얼마나 기쁜 일이냐구! 다시 만나게
된다구! 열 여섯 살에 결혼하게 된다니! 정말
친절하고 좋은 동생이야! 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고
있었단다. 동생이 모든 일을 잘 해낼 줄 알고
있었어! 그애를 만나 보고 싶구나! 그리고 위컴도 함께
말야! 그렇지만 결혼 예복은! 그 일에 대해선
곧 동생 댁에서 편지를 내야지. 리지야, 너 지금 곧
아래층에 계시는 너의 아버지에게 달려가서
그애에게 얼마나 내실 수 있으신지 물어 와 다오. 여기
있어, 가지 말고, 내가 가기로 하지. 키티야,
초인종을 울려서 힐을 부르도록 해라. 금세 옷을 입을
테니까. 귀여운, 정말 귀여운 리디어! 우리가
다 함께 모이게 되면 얼마나 즐겁겠니?"
장녀는 가디너 씨의 조처로 말미암아 자기네 모두가
지게 된 신세로 어머니의 생각을 돌림으로써,
그와 같이 행복한 기분을 얼마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하긴 이와 같은 행복한 결말도"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대체적으로 외숙부님의 친절 덕분이라 생각해야지요.
돈으로 위컴 씨를 돕겠다고 서약한 것은 확실하니까요."
"그래"
어머니가 외쳤다.
"그건 옳은 생각이다. 육친인 외삼촌 외에 누가 그런
일을 해주시겠느냐 말이다. 자기 가족이
없었더라면 나하고 내 아이들이 그 사람 돈을 받게
되었을 텐데, 불과 몇 번 선물을 받은 일을
제외하고는 그 사람한테서 무엇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런데 정말 난 행복해! 얼마 안 있어
딸 하나를 시집보내게 되니까. 위컴 부인!.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소리냐! 더우기 그애는 지난 6월로
겨우 열 여섯이 됐거든. 얘, 제인아, 난 지금 가슴이
뛰어서 정말 글을 쓰지 못할 것 같구나.
그러니까 내가 부르는 대로 내 대신 네가 써 주렴. 돈
문제는 나중에 아버지하고 결정짓기로
하자꾸나. 그러나 물건들은 지금 당장 주문해 두는
것이 좋겠구나"
그리고 그녀는 캘리코, 모슬린, 흰 린넬 따위의
세세한 것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틈이
생겨서 의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자고 제인이
어렵게나마 설득하지 않았으면 당장에 수많은 물건
주문서를 쓰게 했을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루쯤
지체한다 해서 큰일이 아니라고 그녀가 말했고,
어머니는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에 평소 때처럼
완고하지만은 않았다. 다른 계획들이 그녀의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옷을 입기가 무섭게 메리튼으로 가야겠어. 난 이
길로 내 동생 필립스에게 가서 이 좋은 소식을
전해 주어야 해.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루커스
부인과 롱 부인을 방문할 수가 있는 거야. 키티야,
너 말야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가서 마차 준비를
시켜 두도록 해라. 바깥 공기를 쐬는 것은 틀림없이
몸에 이로울 거다. 너희들 혹시 메리튼에 부탁할
일이라도 없느냐? 아, 힐 마침 오는구나! 힐, 자네
좋은 소식 혹시 들었나? 리디어 양이 결혼하게 돼.
그땐 자네에게도 펀치 술 한 사발 줄 테니 그리 알게"
힐 부인은 그 자리에서 기쁨을 표하기 시작했다.
엘리자베드도 모두 함께 축사를 받게 되었는데,
이내 그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자기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리디어의 처지는 가엾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으며 더 이상 나빠질 수가 없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녀는 적어도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앞날을 내다볼 때 동생에게는 행복이라든지
세속적인 번영도 도저히 기대하기가 어려웠지만 불과 두
시간 전만 해도 자기네가 걱정했던 상태를
돌이켜볼 때 이만한 것을 얻을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었다.
50
베네트 씨는 이 연배가 되기까지 여러 차례 생각했던
일이지만, 전수입을 다 써 버리지 않고 자녀의 장래나 처가
지기보다 오래 살 경우 장래에 대비해서 매년
얼마간이라도 저축해 두었으면 하고 원했던 것이다.
지금 와서는 더 간절하게 바라게 된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의무를 다해 두었더라면 이번에 리디어를
위한 어떠한 명예나 신용을 돈으로 사들이는데 있어서도
외삼촌에게서 은혜를 입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영국에서 제일 무가치한 남자를
그녀의 남편이 되어 달라고 설득하는 만족감도
당연히 부친으로서의 자기가 맛보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그 누구의 이익도 되지 못하는 목적을
처남에게만 폐를 끼쳐 가며 추구케 하는 것이 몹시
안타까와서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로 처남이 원조해
주었는가를 알아냄으로써 가능한 한 빨리 그 채무를
갚겠다고 결심했다.
베네트 씨가 처음 결혼했을 때는 검소 같은 것은 전혀
무용지물이라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도
물론 사내아이가 태어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사내아이가 성년이 되면 아버지와 아들이 합세하여
한사상속을 폐기할 수 있기 때문에 미망인이나 아래
아이들도 그것에 의해 아무런 부자유도 없이
생활해 나갈 수 있으리라. 딸 다섯이 잇달아 태어났지만
사내아이는 끝내 태어나지를 않았다.
베네트 부인은 리디어를 낳고 난 후 몇 해 동한 꼭
사내아이가 태어날 줄 생각했었다. 이 일도
이윽고 체념하게 되었지만, 이미 그때는 저축하기에는
한 걸음 늦어 버렸다. 베네트 부인은 절약하는
소질이 전혀 없어서 남편의 독립 애호의 기질이 그들의
수입 이상의 지출을 막아 주었던 것이다.
결혼 당시의 계약으로 베네트 부인과 아이들에게는 5천
파운드를 분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나뉘어질 것인가는 양친의
의사에 달려 있었다. 적어도 리디어에
관해서는 바로 이 한 점만을 처리해 두면 되었기 때문에
베네트 씨로서는 처남이 내놓은 제안에
응하기를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매우 간결하기는
했으나 처남의 친절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나서
그는 취해진 조처를 전면적으로 승인한다는 취지와
자기를 대신해서 체결해 준 계약을 기꺼이
수행하겠다는 취지를 썼던 것이다. 설사 위컴을
설득해서 딸과 결혼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조처처럼 자신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해결이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다.
두 사람에게 1백 파운드의 돈을 지불한다고 하더라도
일년에 10파운드를 손해볼 이유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식비나 잡비가 어머니를 통해 나가는 현금의
선물 등으로 리디어가 쓰던 비용은 그 액수
한도와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으로서는 조금밖에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도 또 하나의
바람직한 놀라움이었다.
왜냐하면 당장 그가 주로 바라고 있는 소원은 이
문제에 있어서 되도록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딸을
찾아 헤매는 행동을 취했지만 그 노여움도 이제는
가라앉게 되자, 그는 예전대로의 태만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의 편지는 곧 발송되었다. 그가 일을 착수
하기까지는 느렸지만 처리하는 데는 빨랐기 때문이다.
처남에게 얼마만큼 빚을 지고 있는가를 더욱
상세하게 알려 달라고 부탁했지만 리디어에게는 너무나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말도 전하지 않았다.
기쁜 소식은 곧 집안 전체에 퍼져 갔고, 이웃에도
퍼져 나갔다. 이웃에서는 꽤 냉정하게 그 사실이
받아졌다. 리디어 베네트 양이 런던 시에 보호받고
감추어져 있다든가 하는 식의 일 같았더라면 확실히
화제로 하기에는 편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이 있었다.
전에 메리튼의 입심 사나운 모든 노부인들의
입에서 나온 리디어의 선행을 바라는 선의의 소망들은
사정이 달라진 이번 경우에도 그 기세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남편을 얻게 되면
그녀의 불행은 틀림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베네트 부인은 아래층에 있고 난 후부터 2주일이
경과했지만 이 축하해마지 않는 날에 다시 한 번
식탁의 상좌에 앉게 되었으며, 남들을 압도할 만큼
원기에 차 있었다. 부끄러운 감정이 그녀의 자랑스런
얼굴을 어둡게 하지는 못했다. 딸의 결혼 문제가
제인이 열 여섯이 된 후부터 그녀의 염원이 되어
왔지만 바야흐로 그것이 성취될 단계에 살게 된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바를 말할 때는 전적으로 우아한
결혼의 참석자라든가 훌륭한 의상이라든가 새
마차며 하인들에 관한 일들 뿐이었다. 딸이 살기에
적합한 장소를 쉴새없이 부근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부부의 수입이 얼마 정도인가를 알지도 못한 채 크기가
쓸모 없다는 둥하며 이것저것 거절해 버리곤 했다
"헤이 장원 같으면 좋을지도 몰라. 굴딩 가족이
이사를 간다면, 아니면 응접실이 크다면 스토우크에
있는 큰 저택도 좋겠지만. 그러나 애시워드는 너무
멀지. 나하고 10마일이나 떨어져 살다니 안될 말이지
펄비스로지 같으면 다락방이 형편없고"
하인들이 있는 동안은 남편은 개입하지 않고 부인이
말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들이 물러가자 그가
부인에게 말했다.
"여보, 딸네 부부를 위해 아무 집이고 전부고간에
그것을 갖기 전에 우리 서로가 올바르게 이해는
해놓고 봅시다. 이 근처 어떤 집이고 간에 두 사람은
들여놓지 못할 거요. 나로선 그애들을 롱본의
집으로 들임으로써 둘 다 버릇 나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거요."
이 말이 있고 난 뒤 긴 논쟁이 벌어졌으나 베네트 씨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문제는 곧 다른 문제로
옮겨져서 베네트 부인은 딸 예복을 사들이는 데 남편이
한푼도 주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서는 한편
놀라고 무섭기까지 했다.
그는 막상 결혼식을 치른다 해도 애정 표시를
딸에게는 보이지 않겠다고 단언했던 것이다. 베네트
부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딸의
결혼을 떳떳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거의 없어서는
안될 그 특권마저 거절하고 나설 만큼 남편의 분노가
격심해져 있는 것은 부인으로서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딸이 줄행랑을 치고 아직 결혼도
하기 전에 2주일 동안이나 위컴 하고 동서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기보다도 아주 멋있는
예복이 없는 일로 해서 딸의 결혼에 수치를
당하지나 않나 그것만 걱정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일시적인 고통 때문에 다아시 씨에게
동생에 대한 가족들의 근심을 털어놓은 사실을
지금으로서는 마음 속 깊이 후회하고 있었다. 동생은 곧
결혼하게 되므로 이내 줄행랑도 제대로 해결될
것이고 그 달갑잖은 발단도 그때 그 장소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감출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입을 통해 그 말이 더욱 퍼져 나가리라는
두려움은 우선 없었다. 비밀을 지키는 데 있어서 그
사람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성싶었으나
동시에 동생의 과오가 그에게 알려지는 것만큼
한스러운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녀
개인에게ㄱ 불리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사이에는 아뭏든 건너기 힘든 간격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리디어의 결혼이
설령 가장 명예로운 형태로 결말지어졌다 하더라도,
본래부터 이런저런 다른 장애가 있는데다가
이번에는 그가 당연히 경멸해 마지않던 사람과 가장
가까운 인척 관계를 맺게 된 집안과 그가 인연을
맺으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한 관계에서 그가 몸을 사린다고 해도 그녀로서는
이상하게 여길 수가 없었다. 더비셔에서는 그녀의
애정을 얻기 바라던 그의 감정을 그녀
자신으로서도 잘 알 수 있었지만, 그러한 소원이 이러한
타격이 있고 난 후까지 남아 있으리라고는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수치감을 느꼈고
슬퍼져 갔다. 뭔지 뚜렷하지는 못해도 후회도 했다. 그
사람한테서 존중받고 있다 해도 이제 와서는 이롭게
될 리 만무였으며 그것이 애석하기 그지 없었다.
소식을 듣게 될 희망은 전혀 없어 보였는데도 그
사람의 일이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이제는 서로가
얼굴을 마주칠 것 같지가 않은데도 그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녀는 가끔 생각해 보았지만,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자기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물리쳤던 그 제안도
지금 같으면 기쁨과 감사로써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알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얼마나
승리감에 취해 버릴 것일까! 그가 그 어떠한 남성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매우 관대한 위인이라는
것을 그녀는 믿어 의심치 않겠지만, 그도 인간인 이상
승리감이란 것은 있게 마련인 것이다.
성격으로나 재능으로나 이만큼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이제야 이해
하기 시작했다. 설령 그의 지성과 기질은 자기와는
딴판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소원만은 풀어 줄
것이다. 그 결합은 서로에게 이점으로 갖다 줄 결합이
될 것이다. 자기의 여유 있고 쾌활한 기질에 의해
그의 마음은 한결 부드러워지겠고 그의 행동거지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더우기 그의 판단력, 지식,
그리고 세상사에 밝은 점 등에서 틀림없이 자기는 더욱
중대한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결혼에 감탄할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 생활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 줄 수는 없었다. 이와 다른 결합이, 이 결합의
가능성을 제거해 가면서 얼마 안 있어 자기의
집에서 거행될 것이기에.
위컴과 리디어 두 사람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 나갈 것인지 그녀에게는 상상 못할
일이었다. 다만 정열이 도덕심보다 강하기 때문에
맺어지는 부부에게는 영원한 행복이 뒤따르지
못한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쉽사리 추측이 가는
일이었다.
가디너 씨는 곧 다시 자형에게 소식을 보내 왔다.
베네트 씨의 감사하다는 말에 간단하게 답하고, 가족
여러분의 누구나 할 것 없이 행복이 더해 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보증하고 나서, 이번
문제에 대해서는 재차 논의되지 안기를 간청하면서 끝을
맺고 있었다. 편지의 주된 내용은 위컴 씨가
의용군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가디너 씨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전 크게 바랐던
겁니다. 결혼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말입니다.
더우기 형님께서도 그의 제대가 그 사람 자신뿐만
아니라 조카에게도 매우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점에
있어서 저에게 동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위컴 군은
정규군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옛날 친구 중에서
군에 입대하면 원조를 해줄 수 있으며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이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 현재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ㅇㅇ장군의 연대에서 기수가 될
약속을 받았습니다. 주둔지가 이 지방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주 편리한
일입니다. 그의 전도는 매우 밝은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는 저마다 평판을 나쁘지 않게 해야
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지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확약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형님께서도
귀찮으시겠지만 메리튼 채권자들에게 같은 식으로
보증해 주어서 납득이 가도록 해달라고 의뢰해 두었는데
그 변제는 제가 확약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형님께서도 귀찮으시겠지만 메리튼
채권자들에게 같은 식으로 보증해 주실 수
없으시겠는지요? 채권자의 명단은 당사자의 보고에 의해
제가 추가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채무 건수를
전부 제출했습니다. 그는 적어도 우리를 속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해거슨에게도 그와 같이
지시해 놓았으니 한 주일만 지나면 만사가 완료될
것입니다. 먼저 롱본으로 초대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입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사람의 말로는 조카는
남부로 떠나기 전에 여러분을 몹시 만나고 싶어한다
합니다. 그애는 몸 건강히 잘 있으며 아버지 어머니께
안부 전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네트 씨와 그 딸들은 위컴이 ㅇㅇ의용군에서
물러나는 것이 여러 모로 유리할 것이라는 것을 가디너
씨와 다름없이 명백히 감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네트 부인은 그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두 사람을 허어퍼드셔에서
거주하게 한다는 계획을 결코 버리지 않았고, 나아가
리디어를 자기 옆에 있게 하는 데에 최선의 기쁨과
자랑을 기대하고 있었던 판에 딸이 북쪽에서 자리잡는다는
것은 몹시 실망을 초래했다. 더우기 리디어가
모든 사람들과 친숙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그토록 많이 있는 연대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애는 포스터 대령 부인을 제일 좋아하지. 그애를
딴 곳으로 보낸다는 것은 큰 충격일 거야!
게다가 그애가 무척 좋아하는 청년도 몇 사람 있고
해서 ㅇㅇ장군의 연대에선 장교들이 훨씬 재미없는
친구들일 테니 말이다."
북부로 출발하기 앞서 다시 한 번 가정에 들여보내
달라는 딸의 요구는 고려해야 할 문제였지만,
처음에는 절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제인과
엘리자베드는 동생의 기분을 위해서나 장래를
위해서도 그 결혼은 양친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의견을 같이했으므로 결혼하는 즉시
동생 부부를 롱본으로 맞아들여 달라고 열심히 그리고
합리적이면서 상냥스럽게 설득했기 대문에
아버지도 솔깃해서 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 소원에 따르자는 심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결혼 딸이 북쪽으로 몰려나기 전에
근처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그래서 처남에게 여러 번
편지를 내면서 베네트 씨는 두 사람이 오는 것을
허락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 결과로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두 사람을
롱본으로 데리고 오도록 일이 진행되었다. 그러면서도
위컴이 그와 같은 계획에 동의했다는 것 자체부터가
엘리자베드를 놀라게 만들었다. 만약 자기
의사대로 하게 된다면 그와는 얼굴을 마주치지 않은
것이 그녀의 소망이었다.
51
동생 결혼식이 닥쳐오자 제인과 엘리자베드 두 사람은
동생의 일에 아마도 당사자 이상으로 신경을
썼다. 그들을 맞으려고 마차를 보냈으며 두 사람은 그
마차를 타고 정찬 때까지는 오기로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도착을 손위 두 언니들은 몹시 두려워했는데
특히 제인이 더 심했다.
그녀가 만일 죄지은 당사자 같으면 당연히 그런
심경을 리디어도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될 때, 동생의
심정은 오죽하랴 싶은 심정이 드니 가엾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그들이 왔다. 가족들은 식당에 모여서 그들을
맞았다. 마차가 문간까지 다가오자 베네트
부인의 얼굴은 미소가 감돌았다. 남편은 완고할 만큼
자못 엄숙한 표정이었고, 딸들은 겁먹은 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리디어의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려 왔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그 길로 그녀가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모친은 몇 걸음 다가서더니 그녀를 포옹하고 나서 아주
기쁘게 환영했다.
뒤를 따르던 위컴에게 환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두
사람의 기쁨을 표시했다.
그리고 다서 두 사람은 베네트 씨 쪽을 향하게
되었는데 그의 영접하는 자세는 그다지 따뜻한 편은
못되었다.
얼굴 표정은 엄한 기색이 더해 갔으며 도무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젊은 부부가 태연스러운
기분에 잠겨 있는 것은 그의 격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엘리자베드는 정나미가 떨어졌고 미스
베네트마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리디어는 변함없고
세련되지 못하고 뻔뻔스럽고 방종하며
소란스럽고 두려워 할 줄도 몰랐다. 차례 차례로
언니들을 향하여 축하의 말을 종용했다.
이윽고 일동이 자리를 잡게 되자 방 안을 열심히
돌아다보면서 조금 변한 곳을 찾아내고서는 웃음
소리를 내면서 이 방에 들어서는 것도 오래간만이라고 했다.
위컴도 그녀 못지 않게 조금도 괴로와할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의 태도가 너무나 쾌활했기 때문에 만
일 그의 성격과 결혼이 바람직한 것이었더라면
친척 관계를 강조할 때의 그의 미소와 부드러운 언변은
모든 사람을 다 기쁘게 해주었을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설마 그 사람이 이 정도로 뻔뻔스러운
짓을 해내리라곤 상상조차 못했지만, 자리를 잡고
나서 앞으로는 뻔뻔스러운 사람의 파렴치에는 한계를
두지 않으리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그녀도
얼굴이 달아올랐고 제인도 그러했지만 정작 그녀들을
당황하게 만든 두 사람의 얼굴은 조금도 변해
있지 않았다.
할 말은 매우 많았다. 신부와 신부의 어머니는
제아무리 빨리 말을 해도 부족한 상태였다. 위컴은
이따금 엘리자베드 옆에 앉았지만 그는 자못 명랑하며
태연했었고 예의 그 지방의 그의 친지의 안부를
물어 오곤 했는데, 그녀는 어찌 같은 기분으로 대답할 수
있으랴 싶었다. 두 사람은 제각기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즐거운 회상 거리를 지니고 있는 듯이 보였다.
과거의 일을 생각해 보아도 고통이 느껴지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리디어는 언니들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 화제를 먼저 끄집어냈다.
"생각해 보기나 해요. 내가 집을 나간 지 석 달이나
돼요! 똑바로 말해서 두 주일밖에 안되는 것
같아요. 그 동안에 여러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어요.
어머나! 내가 떠나갔을 땐 결혼해서 돌아오게
된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었거든요! 그렇게 되면
재미있는 일이 될 줄은 알았지만"
아버지는 눈을 부릅떴고 제인은 낙담했고
엘리자베드는 리디어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원래 자기가 알고 싶지 않은 일은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는 성미여서 쾌활하게 말을
계속해 나갔다.
"아, 어머니. 이 근처 사람은 제가 오늘 결혼한 것을
알고들 있어요? 혹시 모르고 있는 게 아닌지
몰라요. 이륜마차를 타고 가던 윌리엄 굴딩을
따라붙게 됐을 때 아려 버리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향한 쪽의 유리창을 내리고선 장갑을
벗고서 창틀에다 손을 얹어서 반지가 보이게 했지요.
그리고 고개를 숙여 보이면서 그럴 듯하게 미소를
보내 줬지요."
엘리자베드는 그 이상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뛰쳐나가서는 모두 홀을 지나서
식당으로 가서는 제일 큰언니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 제인 언니, 내가 언니 자리를 차지해야겠어요.
언닌 그 아래로 가셔야 해요. 왜냐하면 난
기혼 여성이니까요!"
처음엔 전적으로 제 뜻대로 할 수가 있었던 리디어도
시간이 흐르면 나중엔 당황해지리라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경박스러움과 우쭐한 기분은 더해 가기만
했다. 필립스 부인이나 루커스 가의 사람들, 그리고
그밖에 이웃 사람들을 모조리 만나서 그 사람들이 입을
모아 '위컴 부인'이라고 불러 주기를 몹시
바랐지만, 그 동안에는 반지를 보여줌으로써 결혼했다는
사실을 자랑하려고 힐 부인과 두 사람의
가정부를 찾아갔다.
"그런데, 어머니"
일동이 식당으로 되돌아오자 그녀가 말했다.
"저의 주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매력 있는 남자
아니에요? 언니들은 틀림없이 절 부러워들 할
거예요. 언니들이 저의 반만큼이라도 행복해 줬으면
해요. 남편감 구하기에는 그곳이 제일이거든요.
정말 유감스런 일이지요. 우리 모두가 그곳에 안간
것은 말예요!"
"그렇다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더라면 우린
모두 갔어야 했는데. 그러나 리디어야, 네가
그렇게 멀리 가 버린다는 건 반대다. 왜 꼭 가야만 하니?"
"아, 괜찮아요.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얼마
안가서 좋아하게 될 거예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언니들도 놀러와 주세요. 우린 겨울엔
뉴우캐슬에 있게 될 것이고 무도회도 있게 될 테니
언니들에게 좋은 상대를 만날 수 있게 노력해 보겠어요."
"그거 정말 다시없이 고마운 일이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돌아오실 땐 언니 한두 사람을 남겨 두고
떠나셔도 돼요.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제 힘으로
남편감을 구해 드릴 수가 있으니까요."
"나에게까지 친절히 해줘서 고맙구나. 그렇지만 네
식으로 남편을 구하는 것은 난 아무래도 싫구나"
엘리자베드가 그렇게 말했다.
그들의 방문객들은 열흘 이상은 묵을 수가 없게
되었다. 위컴 씨는 런던을 떠나기에 앞서 장교로
임명되어 있었고 2주일 뒤면 연대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체류 기간이 그토록 짧은 것을 유감 되게
생각했던 사람은 베네트 부인 혼자만으로 그녀는
그 기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딸을 데리고 이곳
저곳을 방문하고 다녔으며 집안에서는 줄곧 파티를
열곤 했다. 그 파티는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았다.
집안끼리 모이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은 사리를
고려하지 않는 편보다 차라리 고려하는 편에서 원했었다.
위컴의 리디어에 대한 애정은 엘리자베드가 예기했던
대로였고 그에 대한 리디어의 애정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줄행랑은 그의 애정보다는 차라리 그녀의
애정에의 힘에 의에 실현되었다는 것은 사리로
판단해서도 분명한 사실로 지금에 와서 일부러 관찰해
볼 필요도 없었다. 더우기 그가 도망친 것도
따지고 보면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게
분명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죽도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도망가기를 택했는지 엘리자베드는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궁지에 빠져
있었더라면 그 청년은 동행자를 가질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리디어는 그가 죽도록 좋았다. 어떤 경우에도 위컴은
사랑하는 존재였다. 그 누구도 감히 그의
경쟁자가 될 수는 없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제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또 9월이 되면 이
지방의 누구보다도 많은 새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직후 어느 날 아침에 두 언니와 함께
앉아 있을 때 그녀가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건넸다.
"리지 언니, 언니에겐 아직 내 결혼 때 얘기를
들려 드리지 않은 것 같아요.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할 때 언닌 마침 곁에 있지
않았거든요. 어떤 식으로 진행됐던가 언니는 알고 싶지 않수?"
"응, 조금도 그런 문젠 되도록 말 안해 줬으면 해"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어머! 언닌 이상하시다! 그렇지만 난 어떻게
됐었던가를 꼭 들려 줘야 할 것 같아요. 언니도
아시겠지만 우린 세인트 클레멘트 교회에서 결혼 했던
거예요. 위컴의 숙소가 그 방면의 교구에
있었으니까요. 우리 모두가 열한 시까지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돼 있었고 외삼촌 내외분과 내가 함께
가고 다른 사람들은 교회에서 우릴 만나기로 돼
있었던 거예요! 또 무슨 일이 생겨서 식이
연기되지나 않을까 하고 매우 걱정을 했었죠. 그렇게
됐었더라면 아마 난 미치고 말았을 거예요.
게다가 외숙모께서는 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내내
마치 설교를 읽고 있는 것처럼 사뭇 충고하고
연설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한 마디도 내 귀에
안 들어왔어요. 왜냐하면 말예요. 아시겠지만 난
사랑하는 위컴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분이
혹시 푸른 연미복을 입고 결혼식에 나오지나 않나
하고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죠. 그래서 우리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열 시에 아침 식사를 했었죠.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를 지경이었죠. 그건 그렇고,
나하고 함께 있었을 땐 외삼촌과 외숙모께선 사뭇
지긋지긋하게 불쾌히 여기더란 말을 언니에게
해줘야겠어요. 내 말을 믿어 주리라 생각하지만 난 두
주일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단 한 발짝도 바깥 출입을
못했었죠. 파티라곤 한번도 없었고 어떤
계획이나 다른 일도 없었어요! 런던은 틀림없이
여름을 타서 쓸쓸했었지만 '소극장'만은 열렸어요. 이럭저럭해서
마침 마차가 문턱에 도착했을 때 외삼촌은 무슨
용건으로 보기 싫은 스토운인가 하는
사람에게 불려 가고 말았지요. 그래서 말예요, 일단
서로가 만나게 되자 끝이 나질 않지 뭐예요. 이젠
난 너무나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외삼촌께서 날
신랑에게 넘겨 주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대지 못하는 날이면 그날 하루는 공치고 말
테니까 말예요. 그렇지만 운좋게 10분이 지나서
돌아오시게 돼서 우린 모두 떠날 수가 있었죠.
그렇지만 나중에 가서 생각해 보니 만일 그때
외삼촌께서 못 가셨다 해도 결혼식을 연기할 필요는
없었어요. 다아시 씨께서 대신하실 수 있었으니까 말예요."
"다아시 씨라구!"
엘리자베드는 혼비백산해서 되받았다.
"아, 그래요! 위컴과 함께 식장으로 오시게 돼
있었어요, 아시겠지만. 그러나 내 정신 좀 봐! 난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 일에 대해선 한마디도 말
않기로 돼 있었는데, 그렇게 굳게 약속했던
일이었는데! 위컴이 뭐라 하실까? 일급
비밀이었는데!"
"비밀이라면 그 일에 대해선 더 하지 마라. 나도 더
이상 묻지 않겠어."
제인이 말했다.
"우린 더 이상 안 묻기로 하면 되니까."
"고마워요. 만일 물어 오신다면 난 있는 대로 말해
버릴 게고 그렇게 되면 위컴이 너무너무 나에게
화를 낼 테니까 말예요."
리디어가 말했다.
이와 같이 물어 오라는 식이고 보면 엘리자베드로서는
그 자리를 뜸으로써 물을 기회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초점에 손이 닿지 않고 지내기란
불가능했다. 아니 적어도 정보를 구하지 않으려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분으로서는 분명히 갈 이유가 없고
가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는 곳엘 가서 엄연히
사람들 뜸에 낀 것이다.
그 의미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매우 빨리 그리고
사납게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무엇 하나
만족할 만한 회답은 얻지 못했다.
그의 행위를 더욱 고결한 것으로 빛나게 해주고
그녀에게 보다 큼 기쁨을 갖다 줄 수 있는 추측은
애당초 있을 성싶지가 않았다. 그녀는 그러한 불안
상태에서 계속 고통 당하기가 어려워서 급히 종이 한
장을 손에 잡고서는 외숙모 앞으로 짧은 편지를 썼는데,
리디어가 실토한 사실이 본래 의도했던 비밀
방침에 상반되지 않는 한 설명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외숙모님께서는 우리들 누구하고도 관계가 없는 분,
따지고 보면 우리 가정하고는 상관없는 분이
그와 같은 때에 어떤 연유로 여러분 가운데 있었던가
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저의 호기심을
쉽사리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제발 곧 회신을
쓰셔서 저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리디어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비밀에 부쳐 두어야
할 움직일 수 없는 사유가 없는 한에서 하는
말입니다. 이유가 그러하다면 저는 모르는 채로
만족하려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난 그렇게는 안할 참이야 하고 편지를 마치고
나서 그녀는 혼잣말로 덧붙여 말해 보는
것이었다. 외숙모님, 만일 공정하게 말씀 안해 주신다면
전 꼭 하는 수 없이 어떤 책략이나 술책에
호소해서라도 그것을 찾아내고야 말겠어요.
섬세한 명예 의식을 가진 제인은 리디어가 어쩌다가
내뱉은 것을 엘리자베드에게 살짝 말해 줄
심정은 도저히 될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드도 그것이
기뻤다. 편지로 문의할 사실에 대해 만족한 답을
얻을 때까지는 차라리 털어놓을 상대가 없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6권
제인 오스틴
52
엘리자베드는 회신을 가능한 빠른 시일에 받는
만족감을 맛볼 수가 있었다. 편지를 손에 넣자마자
다른 사람의 방해가 거의 없을 성싶은 작은 숲속으로
뛰어들어서는 벤치 위에 걸터앉아 즐길 준비를
했다. 무엇보다도 그 편지 길이로 미루어 볼 때 거절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신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스런 조카에게
너의 편지 받아 보았다. 한 줄로서는 하고자 하는 말이
다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침 나절 꼬박 걸려서
회신을 쓰기로 했다. 사실은 너의 문의를 받고 깜짝
놀랐구나. 설마 네가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화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 다오. 다만 너에게 그런 일을
물을 필요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다는 것을
알아 주기만 하면 되니까. 네가 만일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점을 양해 못한다면 나의 이 무례를
용서해 다오. 외삼촌께서도 나에 못지 않게 놀라고
계시다. 너 또한 이 일에 관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셨던 것이다. 네가
정말로 단순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면 난 너에게
명백히 말해 두어야 한다.
내가 롱본에서 돌아오던 날 외삼촌께서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손님의 방문을 받게 되셨다. 다아시
씨가 찾아와서는 몇 시간 동안 외삼촌과 단 둘이
있었단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벌써 일이 다 끝났기
때문에 내 호기심은 현재 네가 겪고 있는 것만큼은
괴롭지가 않았겠지. 다아시 씨는 네 동생과 위컴이
있는 곳을 찾았다는 점과 그리고 두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위컴 하고는 여러 차례
리디어 하고는 꼭 한 번은 일에 관해 외삼촌께 알리러
왔던 거야. 내 생각 같아서는 다아시 씨는 우리들
보다 꼭 하루 늦게 더비셔를 떠나서 그 두 사람을
찾으려는 결의를 갖고 런던에 왔던 모양이다. 그
표면적인 동기로서는 대체적으로 품성이 있는 젊은 여성
같으면 위컴을 사랑하거나 신뢰하지 못할 만큼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오로지 자기 탓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분은 관대하게도 모든 일을 자신의 잘못된
것으로 하면서, 그 전에 위컴의 사적 행동을 세상에
공포하는 것을 품위에 어긋나는 걸로 생각했었다고
고백했어. 그 사람의 인품은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누구나가 다 알게 될 것으로 여겼다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당장 행동에 옮김으로써, 자기 때문에
생겨난 해악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만일 또 하나의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분에게 수치스런 일은 못됐을
거다. 런던에 온 지 며칠 안돼서 두 사람을
찾을 수가 있었지만, 우리들보다 수색의 단서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야. 이 점을 고려했던
것이 우리 뒤를 따르기로 결심을 한 또 하나의 이유였던
거다.
영부인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얼마 전에
다아시 양의 가정교사로 지내다가 뭔가 불미스러운
일로 해서 해고를 당했다는 거야, 물론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은 에드워드
가에 큰 집을 사서는 그 후 사뭇 하숙을 치면서 생계를
유지해 왔던 모양이야. 이 영부인이란 사람이
위컴하고는 매우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그분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런던에 도착하자 곧 위컴의 정보를
들으러 그녀에게로 찾아갔던 거야.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알고 싶던 일을 듣게 된 것은 2,3일이
지나서였지. 매수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마음을
도저히 돌릴 수 없었던 걸로 생각되는데, 그
여자는 자기 친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위컴은 런던에 도착하자 즉시
그녀에게 갔던 모양이야. 그래서 그 여자가 두 사람을
자기 집에 들여놓을 수만 있었더라면 두 사람은
그곳에다 거처를 정해 버렸겠지. 아뭏든 궁극에 가서는
우리들의 친절한 벗은 소원 성취가 된 셈이다.
두 사람은 ㅇㅇ가에 있었던 거야. 그분은 위컴을 만났고
그리고 리디어도 만나고 싶다고 요구했단다.
그애를 만나고 싶은 제일의 목적은 그분도 인정하고
있더라만, 그애를 설득해서 현재의 불명예스런
입장을 떠나서 집안 사람들이 그애를 받아들일 것을
승낙만 한다면 그 길로 그들 품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그 일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대로의 원조를 하겠다고 했대. 그러나 리디어가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심정으로 굳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았겠어? 그애는 친한 사람들의 간섭이
귀찮고 그분의 원조는 원치 않으며 위컴 곁을 떠난다는
것은 듣기조차 싫다고 했단다. 틀림없이 두
사람은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며 그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야. 그녀의 감정이 그렇다면 남은 일은 결혼을
확정짓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길밖에 없다고 그분은
생각했지만 위컴과 처음 이야기를 나누고서 그 자리에서
알게 된 사실은, 그런 생각을 장본인인 그
사람은 꿈에도 하고 있지 않더라는 것이었어. 그는 매우
절박해진 도박 빛 때문에 연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노라고 고백하면서 리디어가 도망친 일로 해서
야기된 재앙은 깡그리 그녀 한 사람의 우매
때문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더라는 것이야. 그는 지금
당장에라도 사임해 버리고 싶지만 장래에 대한
전망이 서지를 않는다고 말했단다. 어디엔가 가야겠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으며, 먹고 살
건덕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아시 씨는 왜 곧 리디어 하고 결혼하지 않느냐고
물었었나 봐. 베네트 씨는 원래 대단한 부자는
못되지만 그를 위해서는 손을 쓸 것이며, 결혼하면 그의
입장도 유리해질 것이 틀림없다고 타일렀던 것
같아.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위컴은 어딘가
다른 지방에서 결혼함으로써 좀더 착실한 재산을
만들어 보겠다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그러나 그러한 궁지에 빠져든 그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당장 구제 받을 수 있다는 유혹을
이겨내지는 못했던 모양이야.
몇 차례 그들은 서로 만났던 것 같아. 할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겠지. 위컴은 물론 손에 넣을 수
있는 이상의 많은 재산을 원했지만 끝내는 적당한
선으로 깎이고 말았어.
당사자간에 모든 문제가 일단락 되었고, 다아시 씨의
다음 조처는 외삼촌께 그 사실을 알리는 일로서,
내가 귀가하기 전날 밤에 처음으로 그레이스처치 가를
방문하게 된 것이란다. 그러나 너의 외삼촌과
만나지를 못한 채로 다아시 씨가 더욱 알아본 결과 너의
아버지께서 아직 함께 계시고 다음날 아침에
런던을 떠나기로 되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분은
너의 아버지를 외삼촌만큼 적당한 의논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해서 곧 아버지의 출발 후까지
외삼촌을 만나는 것을 연기하기로 하셨다는 거다.
이름을 안 밝히고 가고 말았기 때문에 다음날까지 어떤
신사분이 용무로 찾아오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단다.
마침내 토요일 날에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그래서 나도 그분을 만났지. 월요일에 비로소 만사가
다 해결되었고 그 길로 롱본으로 속달을 띄었던 거다.
그러나 우리 집을 찾아온 손님은 옹고집이었다.
이건 내 생각이다만 리지야, 완고하다는 점이 바로 그분
성격의 결점이다. 그분은 때를 달리하여 많은
종류의 결점을 비난받아 왔지만 이것만은 속절없는
결점이다. 해야 하는 일은 모조리 자기 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도무지 뜻을 굽힐 줄을 모르더라.
실은 외삼촌께선 마음에서 우러나서 사건 해결을
전담하실 작정이셨다. 그렇다고 이것은 생색을 내자고
하는 말이 아니니 이것에 대해선 아무 말 말아라.
두 분은 구 문제에 대해서 장시간 티격태격했는데, 그
일에 관련된 두 남녀를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한
값어치도 없는 문제였지. 그리고 마침내 외삼촌께서
양보를 안하실 수 없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조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끔 허용되는 대신에 단지 그 일에
대한 그럴 듯한 명예를 뒤집어 쓰는 정도로 그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거야말로 외삼촌의 성미에 안맞는
일이었지. 그러니까 오늘 아침의 너의 편지는
외삼촌한테서 헛된 명성을 벗겨 드리고 마땅한 곳에다
칭찬을 돌려야 할 성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외삼촌께서는 매우 기뻐하시고 계시다. 그러나
이 얘기는 리지야, 너만 알고 있거나 아니면
고작 제인한테만 알리도록 하여라.
그 젊은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너는 잘
알고 있을 줄 안다. 그 사람이 젊어진 빚은 1천
파운드를 실히 넘는 줄 알고 있다만 그것을 변제하기로
돼 있으며, 곁들여서 리디어에게 분배될 그애의
몫에 1천 파운드를 더 얹어서 보내기로 했고, 나아가
장교의 지위마저 사주기로 돼 있다. 왜 이만한
일을 그분 혼자서 도맡아 하는지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대로다. 위컴의 성격이 그토록 잘못
이해됨으로써 그와 같은 대접을 받고 남들의 이목을
끌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즉 자기가 침묵을 지켜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마 여기엔
얼마간의 진실도 들어 있겠지만, 나는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이 과연 그분의 침묵에 있는지 또 다른
누구의 침묵에 달려 있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하여튼 리지야, 이 모든 그럴 둣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 속에는 또 다른 이해관계의 명분이
그에게 있다고 판정하지 않았더라면 외삼촌께선
양보하셨을 리 만무임을 너는 믿겠지.
이만하면 모든 것을 다 얘기한 것 같다. 넌 이걸 알고
나면 매우 놀라운 얘기라 말하겠지. 그러나
난 적어도 네가 불유쾌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리디어는 나한테 왔었고 위컴도 무상 출입하도록
허락을 받게 됐다. 그 사람은 허어퍼드셔에서 알게
되었던 그대로였지만 나한테 체류하고 있는 동안의
그 아이의 행동거지는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여서 이미 요전 수요일의 제인의 편지로
그애가 귀가한 후의 행적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너에게 새삼 이런 얘기를 하더라도 무슨
새로운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더라면 이런 편지는 쓰지 않았을 거다. 난 정말
진지하게 몇 번이고 그 아이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나쁜가, 가족들에게 어떠한 불행을 초래했는가에
대해서 십분 이해가 되도록 타일러 주었다. 그애에게는
마이동풍격이었지만 내가 한 말이 귀에 들릴
정도라면 꽤나 다행스런 일이 되겠지. 난 이따금 크게
분개하곤 했지만 그때마다 사랑스런
엘리자베드나 제인이 생각나서 그 두 사람을 위한다고
생각해서 그애한테는 꾹 참아 왔던 것이다.
다아시 씨는 약속한 대로 시간을 지켜서 돌아왔고
리디어가 말한 것처럼 결혼식에 참석했던 것이다.
다음날 우린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는데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재차 런던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리지야, 이번 기회에 내가 그분을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아느냐고 묻는다면(전에는 이런 말을 할 만한
용기가 없었다만) 넌 나한테 화를 내겠느냐? 우리들에게
대한 그분의 태도는 죄다가 더비셔 때에
못잖게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그분의 이해력과
사리 판단은 정말 썩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되더라.
모자라는 것이 있다면 쾌활성 뿐이겠는데, 그 점은 만일
신중한 결혼을 하는 경우에는 아내가 가르쳐
주면 되는 문제이다. 난 구분이 매우 능청스럽다고
생각했다. 너의 이름은 죽어도 안 비쳤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능청은 요즈음의 유행인가 보더라.
내가 너무 주제넘은 말을 했다면 용서해 주기 바란다.
적어도 날 팸벌리에서 몰아내는 형벌만은
가하지 말아 주길 빈다. 난 바로 그 저택을 다 돌아보기
전에는 완전히 행복하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자그마한 잘 생긴 두 필의 망아지가 끄는
나직한 사륜 마차 같으면 정말 안성마춤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젠 더 쓰지 못하겠다. 반 시간 정도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처치 가에서 9월 6일
외숙모 M. 가디너
이 편지 내용은 엘리자베드를 가슴 설레는 경지로
몰아넣었는데, 그 속에서 기쁨과 고통의 어느 편이
이기고 있는가를 결정짓기가 어려웠다. 다아시 씨가
동생의 결혼을 추진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주지나 않았나 하는 막연하면서도 불안한 의심이
반신반의 속에 싹트긴 했었지만, 설마
그랬으랴 싶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선행의 발휘라 더
계속하기라 두렵고 또 신세지는 괴로움 때문에
아니기를 빌었던 그 의심이 뜻밖에도 사실로 판명되고
말 줄이야! 그는 우정 런던까지 두 사람의 뒤를
뒤쫓았으며 그러한 탐색에 따르게 마련인 노고와 굴욕
같은 것을 전부 한 몸에 짊어졌던 것이다. 그
과정에는 혐오하며 경멸해 마지않았음이 분명한 한
여인에게까지 부탁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테고,
평소에는 되도록 회피하고 싶었으며 그 이름을 입에
담기조차 고통스러웠던 남자와도 만나야 했었고,
그것마저 자주 만나서 도리를 설명하고 납득시키고
끝내는 매수까지 해야만 했다. 그는 이만한 일을
호의도 갖지 않았던 한 사람의 여성을 위해 해냈던
것이다. 그는 그 일을 자기를 위해 해준 것이라고
그녀의 가슴은 속삭였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도 다른
사정들을 고려해 보면 금방 제지당하고 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의 청혼을 거절해 버린
자기가 위컴 하고 친척 관계가 된다는 사실에서 오는
극히 당연한 혐오감을 이겨 가면서까지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기대하기에는 자기의 허영심으로도 별다른
도리가 없음을 그녀는 곧 깨달았기 때문이다.
위컴의 동서가 된다구! 그러한 연분에는 오만 가지의
자부심이 반항하게 될 것이 너무나도 뻔한
노릇이다. 과연 그는 큰 일을 치러 주었던 것이다.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을까 생각할 때 마냥
부끄러워지기만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개입한 데
대해서는 그다지 무리를 하지 않더라도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이유는 말해 놓고 있었다.
그가 자기의 과실로 느끼고 있다는 것은 순리에 맞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너그러운 면이 있었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도 있다. 그가 그런
일을 한 주요 동기로서 그녀는 자기를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의 평정이 실질적으로
좌우될 문제를 위해 그가 발벗고 나선 것은 그녀에
대한 미련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됐을 거라고 그녀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갚을 수 없는 상대방에게
자기들이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리디어를 되돌려 오고 그녀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그의 덕분인 것이다. 아, 그에게
대해 함부로 불태웠던 무례한 감정과 그에게 함부로
내뱉었던 당돌한 말들이 그 얼마나 통렬하게
사무쳤던 것인가!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서는 겸손해졌고 그에 대해서는
자랑을 느꼈다. 동정심과 명예를 위해서 그가
스스로를 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외숙모가 그를 칭찬하고 있는 대목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보았다. 그것으로서는 흡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를 기쁘게 해주었다.
다아시 씨와 그녀 사이에 여전히 애정과 신뢰가
존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삼촌과 외숙모도 얼마나
믿게 되었는가를 알게 되자, 그녀는 후회의 감정이
뒤섞이긴 했어도 어느 정도의 기쁨마저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상념을 중지하고 말았다. 옆의
작은 길로 들어서기 전에 위컴이 뒤쫓아왔다.
"혼자 걸으시는 데 혹시 방해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처형?"
그녀 있는 데까지 와서 그가 말했다.
"되구말구요. 그러나 방해되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그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방해가 된다면 전 정말 미안할 따름입니다. 우린
항상 좋은 사이였었고 지금에 와서는 더욱 그런
입장입니다."
"그래요. 다른 분들께선 다들 나가셨나요?"
"글쎄요. 장모님과 리디어는 마차를 타고 메리튼으로
가시려나 봐요. 그런데 처형, 외숙부님과
외숙모님 말씀을 들어볼 것 같으면 처형께선 직접
펨벌리에 가 보셨던 것 같아요."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즐거움은 저에겐 부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과분한 즐거움이겠죠. 그렇지만 않다면
뉴우캐슬까지 그 즐거움을 지니고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나이 든 가정부를 만나셨겠네요.
가엾은 레이놀즈, 그 사람은 언제나 이 사람을
좋아했거든요. 그러나 물론 그분이 저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겠죠"
"아뇨, 말했어요?"
"그래 뭐라고 말하던가요?"
"댁에서 군대에 입대했는데, 어쩐지 뭔가 잘못된 것
같더라구요. 거리가 그만큼 떨어지고 보면
소문이 잘못 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습니다."
이만하면 그의 입을 봉해 버렸으려니 했더니 그는
잠시 후에 말을 이었다.
"전달에 놀랍게도 런던에서 다아시 군을 만났지요. 몇
번 서로 지나치게 됐습니다. 그 사람 런던에서
뭘하고 지내는지요?"
"드 버그 양과의 결혼 준비라도 하고 있는 거지요.
이맘때쯤의 계절에 런던에 가 계시다니 꽤나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겠지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틀림없습니다. 램턴에 가셨을 때 그 사람을 처형께선
만나셨습니까? 전 가디너 씨 내외분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래요, 자기 누이에게도 소개해 주셨어요."
"그래 그녀가 마음에 드시던가요?"
"들고말고요."
"그분도 한두 해 동안에 매우 훌륭해지셨다고 듣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희망이 없어
뵀는데요. 처형께서 그녀를 좋아하시다니 정말 기쁜
일입니다. 그녀가 훌륭해지기를 발라 뿐입니다."
"걱정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시련이 많을 나이는
지났으니까요."
"킴프넌 촌을 통과하셨던가요?"
"그건 기억에 없는데요."
"그 말을 하는 동기는 제가 받기로 돼 있었던
성직록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훌륭한 목사관이지요! 모든 점에서
저에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설교하는 일을 좋아하셨어요?"
"아주 좋아했죠. 자기의 의무의 일부라고 생각했었고
그 길을 위한 노력이라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요. 불평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어김없이 저에겐 최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유유자적한 생활은 저의 행복관을 완전히 충족시켜
주었을 텐데! 그러나 그렇게 되질 못했습니다.
처형께서 켄트에 체류하셨을 때 다아시 군이 그
사정을 말씀드리던가요?"
"훌륭하다고 믿어지는 소식통으로부터 들었지만,
성직록은 조건부에 불과했고 현재의 후원자의
의사에 달려 있었다는 겨예요."
"들으셨군요! 그랬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처음부터 그런 내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들은 말이 있어요. 설교를 하신다는 것이
현재나 다름없이 댁에게는 맞지가 않는 때도
있어서 결국 성직자가 되지 않겠다는 결의를 실제로
표명하셨기 때문에 따라서 그것에 의해 그 일은
끝장나고 말았다는 내용이지요."
"그렇게 들으셨군요!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일은
아닙니다. 처음 처형에게 말씀드렸을 때 제가
그 점에 대해서 말한 것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두 사람은 거의 문간까지 와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에게서 빠져 나오려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생을 위해서 그를 노엽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 상냥스럽게 미소로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저어, 위컴 씨, 우리 남매간에 된 거예요. 지나간
일로 해서 입씨름은 하지 말았으면 해요. 앞으론
말이예요, 우리 모두가 한 뜻이 돼야 하겠어요."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으면
좋을지 망설이면서 애정 어린 은근한 태도로
손에다 키스를 해주고 나서 두 사람은 집 안으로
들어섰다.
53
위컴 씨는 이번 대화로 매우 만족했기 때문에 그
화제를 다시 끄집어 냄으로써 두 번 다시 자기를
곤경에 빠뜨린다든가 상냥스런 그의 처형 엘리자베드의
기분을 해치는 그런 일은 하지를 않았다. 그녀
역시 이만하면 그를 잠자코 있게 하기에 충분했으리라고
생각되었기에 만족스러웠다.
이윽고 그와 리디어의 출발일이 다가왔는데, 베네트
부인으로서는 가족 전체가 뉴우캐슬까지 함께
그녀의 계획을 남편이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앞으로 1, 2개월 동안 별거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아, 귀여운 내 딸 리디어. 이번엔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담"
그녀가 말했다.
"어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앞으로 한두 해는 아마
안될 거예요."
"자주 편지 내도록 하여라, 얘야."
"되도록 자주 낼께요. 그러나 결혼한 여자가 편지 쓸
여가가 많이 있으려구요. 언니들은 저에게 편지
쓰실 수 있어요.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요."
위컴 씨의 작별 인사는 자기의 처보다는 훨씬
애정 어린 것이었다. 미소짓고 예절 바른 태도로 많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저토록 훌륭한 인물을 난 만나 본 적이 없다.
싱글싱글 능글맞게 웃는 품이 흡사 우리들에게 사랑의
속삭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을 크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윌리엄 루커스 경께서도 그
이상으로 값어치 있는 사위를 구하지 못하실 거다."
마차가 집에서 나가 버리자 곧 베네트 씨가 말했다.
베네트 부인은 딸이 안보이자 며칠간 매우 침울한
나날을 보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집안끼리 헤어지는
것만큼 마음 쓰라린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만큼 고통스런 일은 없을 게다."
"딸을 시집보낸 결과가 이런 거예요. 어머니. 나머지
넷이 그대로 독신으로 남아 있으니까 얼마간
위안이 되겠지요."
엘리자베드가 말을 받았다.
"그런 게 아냐. 리디어가 결혼해서 우리하고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게 아니고 남편 연대가 어쩌다가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이지. 좀더 가까왔더라면 그애
하고의 이별이 이렇게는 빠르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빠져들었던 의기소침해진
상태에서 그녀는 곧 구원을 받게 되었고, 그맘때쯤
퍼져 나가고 있었던 어떤 정보에 의해서 그녀의 마음은
다시 한 번 희망의 충동을 향해 줄달음치게
되었다.
네더피드의 가정부는 주인이 몇 주간 수렵을 하기
위해 하루 이틀 사이에 내려갈 테니 영접할 준비를
하도록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베네트 부인은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일방 제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가 했더니 웃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도 저어 보기도 했다.
필립스 부인이 맨 처음 그 소식을 전해 왔었다.
"그래, 그래, 마침내 빙리 씨가 오게 되는 거지,
동생. 그래, 참 좋은 일이구먼. 그렇다고 내가 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건 아냐. 그분은 우리하곤
아무 관계가 없으니까 말야. 난 정말 그분하고 두
번 다시는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고. 그러나 저러나
그가 바란다면 네더필드에 오는 것을 난
대환영하겠어. 더우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어! 그렇더라도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 되겠지.
집에선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않기로 합의를
보았거든. 그건 그렇다 치고 그분이 오게 되는 건
확실한 건가?"
필립스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믿어도 좋아요. 가정부 니콜즈 부인이 간밤에
메리튼에 있었으니까. 지나가는 것을 보고서 우정
나가서는 사실인가를 확인해 본 거예요. 그랬더니
사실이잖겠어요. 늦어도 목요일이나 아니 아마도
수요일쯤해서 올 거라나요. 수요일에 맞게 고기를
주문하러 푸줏간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 마침
잡을 만한 오리를 여섯 마리나 샀다나 봐요."
베네트 양은 그가 오게 된다는 소식에 접하자 안색이
안 변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몇 달 동안
엘리자베드에게 그의 이름을 말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제 단 둘이 있게 되자 그녀가 말했다.
"오늘 필립스 이모님께서 이 소식을 알려 왔을 때,
리지야, 네가 그때 내 쪽을 바라다보는 것을
깨달았어. 내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쑥스런 일이 원인이 됐다고
상상하지 말아 다오. 관찰 당할 것이라고 짐작이 갔었기
때문에 그 순간 약간 당황했을 뿐이다. 난 그
소식을 듣는다고 해서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다는 걸
명백히 말해 두마. 한 가지만 기쁜 일이 있다면.
그분 혼자서 오시게 된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린
그분을 덜 자주 만날 테니 말야.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을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두려운 거야."
엘리자베드는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더비셔에서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오는
목적은 일반이 인정하고 있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인을 아직도 좋아하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친구의 허가를 얻고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대담하게도 허가를 얻지 않고서
오는 것인지, 어느 쪽이 더 큰가를 결정짓기
힘들었다.
엘리자베드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야. 가없게 그분께선 법률적으로
제대로 수속을 밟은 셋집에 드는데 이토록
억측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니! 나 같으면 그분에게
내맡기고 말겠어.'
그가 오는 일에 대해서 언니는 자신의 감정을 명백히
선언했고 또 그렇다고 믿고 있겠지만
엘리자베드는 언니의 심정이 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쉽사리 인정할 수가 있었다. 이토록 마음의
혼란이 일어나고 동요가 생겨나는 것을 지금껏 자주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일 년 전쯤 해서 양친 사이에서 그토록 격렬하게
검토되었던 일을 지금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빙리 씨가 오게 되면, 당신 물론 인사하러
가 주시겠지요."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안돼요. 작년에 임자 쪽에서 억지로 날 방문하게
해놓고서 만일 내가 가게 되면 그 사람은 우리 집
딸 중의 하나하고 결혼하게 된다고 약속 했잖았소.
그러나 이 일이 허사가 되었으니까 두 번 다시는
바보스런 심부름은 안하기로 했소."
그의 부인은 그 사람이 네더필드에 되돌아온 이상
근처의 남자들은 그만한 예절도 필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말했다.
"그런 예법은 난 경멸하오. 우리하고 교제를 하고
싶으면 그 사람이 찾아오면 될 것 아니오. 우리
집을 그 사람은 알고 있을 테니까. 인근 주민들이
가고 올 때마다 따라나서느라고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가 않단 말요."
"그런데, 아시겠지만요, 당신께서 방문을 안하신다면
아마도 절대로 실례가 되고 말 거예요.
그렇다고 우리 집으로 식사 초대하려는 저의 결심은
안 변할 거구요. 곧 롱 부인과 굴딩 집안의
사람을 초대해야 하게 끔 돼 있어요. 다 합하면 모두
열 세 사람이 되니까 그분의 자리 하나는 비어
있는 셈이죠"
이러한 결의로써 마음을 달래 가면서 그녀는 남편의
무례한 점도 이럭저럭 참아 갈 수가 있었다. 비록
그 일 때문에 이웃 사람들이 모두 자기들 보다 먼저
빙리 씨를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몹시 마음이
아팠지만 그 사람의 도착일이 다가오자,
제인은 동생에게 말했다.
"그분이 오시는 것이 왠지 슬퍼지는 것 같구나.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분에게는 아주 냉정한
입장에서 만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일을
귀가 아프도록 듣게 되니 견딜 수가 없구나.
어머니께선 호의로 하시는 일이겠지만 당신이 하신
말로 해서 내가 얼마나 괴로와 하는가를 모르시고
계실 테고 그 누구도 모를 정도야. 그분의 네더필드
체류가 끝나면 난 얼마나 좋을까!"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언니에게 위로될 만한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전혀 그런 힘이 나에겐 없어요.
마음으로라도 알아 주도록 해줘요.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인내하라고 설교를 함으로써 만족할 수
있는 흔한 사람이 못돼요. 언니는 큰 인내심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빙리 씨가 도착했다. 베네트 부인은 하인들의 원조에
의해 이럭저럭 빠른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지만, 그것에 의하면 자기가 그토록 걱정하고 마음
죄며 기다렸던 기간을 가능한 한 연장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초대장을 송부할 수
있기까지에는 아직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하는가 손꼽아
세어 보았다. 그 전에는 그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허어퍼드셔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그녀는 화장실의 창문을 통해서 그가 말을 타고
소목장으로 들어서며 집 쪽으로 접근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어머니는 딸들을 열심히
불러들였다. 제인은 단호한 태도로 식탁을 향한
채로 였으며 엘리자베드는 어머니를 흡족하게 해주기
위해서 창가로 갔다.
"또 한 사람의 남자분이 함께 오는데요, 어머니. 누구일까?"
키티가 말했다.
"누군가 아는 사람일 테지, 정말 내가 모르는 사람일 거야."
"어머나!"
키티가 말했다.
"그 전에 함께 다니시던 그분 같아요! 이름이
뭐라더라. 왜 키 크고 거만한 사람 말야. 어머나!
다아시 씨야! 그럴 거야, 틀림없어. 그래 빙리 씨의
친구분 같으면 누구든지 우리 집에서는 환영을
받겠지만, 친구만 아니라면 콧등을 보는 것도 싫다고
말해 줄 텐데"
제인은 놀라움과 걱정으로 엘리자베드를
바라다보았다. 그녀는 더비셔에서 두 사람이 만났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다시피 했기 때문에 동생이 그의
해명 편지를 받고 나서 처음 만나게 되는
것으로 알고 매우 어색한 일이 될 것으로 여겼다.
두 자매의 심정은 산란한 상태였다. 저마다 서로의
심정을 위해 마음을 썼으며 동시에 물론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렇게 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다아시 씨가 싫지만, 빙리 씨의 친구로서만
정중하게 대해 주겠다고 결의를 표명했는데 두 사람의
어느 편도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드에게는 제인이 감지할 수 없는 불안이
있었다. 가디너 부인한테서 온 편지를 제인에게 보여
준다든가 다아시 씨에 대한 자기의 감정이 변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든가 할 용기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다. 제인의 눈에는 그 사람은 동생에게 결혼을
청했다가 거절을 당했으며 얕잡아 볼 만큼 값어치가
없는 존재에 불과하겠지만,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엘리자베드 입장에서 볼 때는 가족 누구나가
가장 중요한 물질적이 은혜를 입고 있는 사람이며, 아주
상냥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제인이
빙리에 대해서 느끼는 만큼은 합리적이고 정당한 관심을
그녀 자신이 품고 있는 대상인 것이다. 그가
오고 있다는 사실, 네더필드로 해서 롱본으로 해서
자진해서 자기를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그녀의 놀라움은 더비셔에서 일변한 그의 태도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것에 조금도 덜하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사라졌던 혈색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의 애정과 원망이 아직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쁨의 미소가 그녀의 눈에 광채를 더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안심하는 기분이 되지는
못했다.
"먼저 어떠한 행동으로 나오는가 그것부터 보기로
하자. 그때 가서 기대해 본대서 늦지는 않을
테니까 말야."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자수에다 정신을
쏟았으며 눈을 치켜 뜨지 않으나 하인이 문턱에 가까이
왔을 때는 불안한 호기심 때문에 언니 쪽을
바라다보았다.
제인은 평소보다 약간 창백해 보였으나 엘리자베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침착했다. 남자들이
나타나자 안색이 상기되긴 했지만 꽤 태연하면서도
원망의 내색도 없이, 그렇다고 불필요한 애교의
기색도 없이 예절바른 태도로 그들을 맞아들였다.
엘리자베드는 실례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어느
편에 대해서나 말수를 줄였으며 자리를 잡고서는
다시 수예를 시작했고 그 일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열의를 쏟았다. 꼭 한 번 용기를 내어서 다아시
씨 쪽을 힐끗 바라다보았다.
그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펨벌리에서 만났을 때의 그보다는
허어퍼드셔에서 많이 보았던 그런 표정에 가깝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도 어머니 앞에서는
외삼촌이나 외숙모 앞에 있을 때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추측치고는 괴로운 추측이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터무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빙리 쪽에게도 그녀는 일순 시선을 돌렸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즐거우면서도 어색해서는 그의 표정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베네트 부인한테서 두 딸이 부끄러워할 만큼
은근하게 영접을 받았는데, 그의 친구에 대한
그녀의 냉랭하며 의례적인 인사말과 대조해 볼 때 특히
수치스런 생각이 나곤 했다.
어머니의 귀여운 딸을 돌이킬 수 없는 오명에서 구해
준 은혜를 다아시 씨에게 입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엘리자베드는 이 뒤바뀐
차별대우를 보고 고통스러울 만큼 마음이 아프고
쓰렸다.
다아시는 엘리자베드에게 가디너 부부의 안부를
물어서 당황하지 않고서는 대답할 수 없는 그런
질문을 해놓고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
옆에 앉아 있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잠자코 있었는데 더비셔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땐 그녀에게 말을 안 건넬 땐 친척에게 말을
걸곤 했었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났는데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이따금 호기심의 충동을 이겨내지 못해서 눈을
치켜 떠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가 제인과
자기쪽을 보다가 때로는 하릴없이 마룻바닥만
내려다보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지난 번 만났을
때보다는 훨씬 사색적이고 호감을 사려는 노력이 덜해진
것이 역력히 눈에 띄었다. 그녀는 낙담했고ㅎ
또 낙담하는 자기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밖에는 될 수가 없었던 거야! 그런데 여길 왜 온 거지?"
그녀는 그 이외의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누고 싶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게 말을 건넬 용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의 누이의 안부를 묻고 나서는 그 이상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빙리 씨, 떠나가신 후로 말예요."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동의했다.
"난 또 혹시 전혀 안돌아오시지나 않나 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 말씀이 당신이 미카엘 제에는 거길
완전히 떠나고 말 것이라고들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떠나시고 난 후에
여기선 많은 변화가 생겨났죠. 루커스 양이 결혼해서
가정을 갖게 됐구요. 그리고 내 딸 아이도
말예요. 그것에 대해선 소문을 들으셨겠지만서두.
신문에서 틀림없이 보셨을 거예요. '타임즈'지와
'쿠리어.' 지상에 보도됐다니까요. 하긴 제대로
게재되지 못하긴 했지만. '최근 조지 위컴님은 리디어
베네트 양과 화촉을 올렸음' 정도로 실렸을 뿐 그애
아버지에 관해서도 출신지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언급이 없었다니까요. 그 원고마저도 제 동생 가디너
씨가 초를 잡았더랬지 뭐예요. 그런데도 왜
그런 서투른 결과가 돼버렸는지 의아스럽기
그지없군요. 혹시 읽어보셨던가요?"
빙리는 보았다고 대답하고 축하의 말을 했다.
엘리자베드에게는 눈을 치켜 뜰 용기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다아시 씨가 어떤 표정을 지었던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베네트 부인은 말을 이었다.
"뭐니뭐니해도 딸을 좋은 데로 시집보내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지요. 그렇지만 빙리 씨, 딸을
빼앗긴다는 건 정말 마음 쓰린 일이에요. 그애들은
뉴우캐슬인가 하는 퍽 북쪽에 있는 곳에 가서
살게 됐나 본데 그곳에서 얼마나 오래 살게 될지
그것마저 확실하지가 못한 거예요. 사위의 연대가
거기에 있나 보죠. 그 사람이 ㅇㅇ주 연대를 그만두고서
정규군에 들어갔다는 것을 들어 알고
계시겠지요. 정말 고마운 일이지 뭐예요! 친구 몇
사람이 있는 모양 같아요, 더 많아야 할 입장이지만서도"
엘리자베드는 이 말이 다아시 씨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스런 수치감에 사로 잡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다른 일로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지만 이 일로 해서 그녀에게는 말해 보려는 노력이
생각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빙리에게 당장 앞으로 얼마나 더
시골에 체류하게 될 것인가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2, 3주간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베네트 부인이 또다시 말했다.
"댁의 새를 다 쏘고 나시거든 빙리 씨. 제발 이곳으로
오셔서 베네트 저택에서 마음껏 쏴보시도록
하세요. 우리 집 주인께서도 기꺼이 도와 주시려 들
것이고 댁을 위해서 제일 좋은 메추리 때를
남겨 두실 테니까 말예요."
그러나 불필요하고 공연한 참견에 대해 엘리자베드의
비참한 심정은 그 도를 더해 가기만 했다! 설사
일 년 전에 자기네를 들뜨게 했던 것과 같은 유망한
전망이 지금 다시 생겨난다 하더라도 만사가 전과
같이 안타까운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그녀는 행복한
세월이 몇 해 더 지속된다 해도 제인이나 자기에게는
이와 같은 고통스런 순간을 보상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나의 으뜸가는 소원은 이 두 사람 중 누구하고도
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는 거야. 두 사람하고
교제한다고 해서 이토록 비참한 심정을 보상해 줄
만한 기쁨은 결코 얻어지지가 않는 거야! 두 사람
중 어느 편이고 다시 보지 말아야 하는 거야.'
그러나 행복스런 나날이 몇 해가 지나도 상환되지
못할 비참한 생각은 얼마 안가 언니의 아름다움이
언니의 옛 애인의 찬탄의 감정을 다시 불태우는 것을
보게 되자 충분히 구원받을 수가 있었다.
처음 들어섰을 때는 그는 그녀에게 거의 말을 건네지
않았으나, 그녀에 대한 그이 관심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가 여전히
아름다우며 작년만큼 말을 하지는 않아도
한결같이 마음씨가 아름답고 순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인 입장으로서는 자신이 변해 있는 사실을 조금도
보여 주고 싶지가 않았으며 그리고 또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었지만, 마음 속을 오가는 일이 하도
많아서 자기가 잠자코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되돌아가려 했을 때 베네트 부인은 평소에
마음먹고 있던 정찬에 초대할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은 2, 3일 내에 롱본에서 식사를 하기로 언약이
이루어졌다.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댁에선 나한테 방문해야 할 빚을 지고 있는 거예요,
빙리 씨. 왜 지난 겨울에 런던으로 떠나시면서
돌아오는 대로 우리 집안끼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잖아요. 난 안 잊고 있어요. 그래서 안돌아오시고
약속도 안지켜 주셔서 난 많이 실망했었죠"
빙리는 이 비난에 대해 짐짓 쑥스런 표정을 지으며
용무로 해서 약속을 못 지키게 된 점을 사과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나가 버렸다.
베네트 부인으로서는 오늘이라도 남아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언제나
풍성한 요리 준비를 하는 그녀로서도 두 코스
정도로서는 사위로 맞아들이겠다고 열망해 온 남성을
대접하기에는 미흡할 테고 매년 수입 1만 파운드나 되는
사람의 식성과 자부심을 충족시켜 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54
두 사람이 떠나가고 나자 곧 엘리자베드는 산책하러
나가서 원기를 돌이켜 볼 심산이었다. 아니
차라리 더욱 원기를 잃게 하고 말 문제를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서 곰곰이 생각해 볼 참이었다. 다아시
씨의 태도는 그녀를 놀라게 했으며 괴롭혀 주기까지 했다.
"입을 꼭 다물고서 엄숙한 표정을 짓고 시치미를
떼기만 하면 다야. 그렇다면 왜 찾아왔던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의문에서 기쁜 답을
끌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런던에 왔을 때만 해도 외삼촌과 외숙모님께는
그토록 상냥스러웠고 기분 좋은 태도를 취할 수
있었는데 왜 나한테 대해선 그렇지가 못할까? 내가
두렵다면 여기까지 올 게 뭐람? 그리고 이젠 더 내
생각을 않는다면 왜 줄곧 침묵만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걸까? 심술궂은 사람이야, 정말 너무나 심술궂은
사람이야! 이제 다시는 그 사람 생각은 안하기로 하겠어.'
그녀의 결심은 언니가 접근해 왔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잠시 동안 보류하게 되었다. 언니는 쾌활한
표정으로 그녀와 어울렸는데, 그 표정으로 보아
방문객들에 대해 엘리자베드보다는 훨씬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말했다.
"이런 정도로 해서 이번 첫 대면도 끝난 것이니까 나도
더할나위없이 느긋한 기분이야. 이젠 내 힘도
알게 되었고 그분이 다시 찾아오신다 해도 두 번
다시는 내 마음이 흐트러지지가 않을 것이니까 말야
말야. 그분이 오는 화요일이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된 것은 기쁜 일이야. 그때 가서 우리 두 사람
사이가 평범하고 무관한 사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니까."
엘리자베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정말 무관심하게 말예요. 아, 언니! 조심해요!"
"어머나, 리지야! 나를 지금도 위험스럴 정도로 약한
여자로 생각해선 안돼"
"그분으로 하여금 그 전처럼 격렬하게 사랑에 빠지게
할 만한 대단한 위험이 언니에겐 있다고 난 보는 거예요."
그녀들은 화요일까지는 그 남자들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반면에 베네트 부인은 그간 빙리의 반
시간의 방문에서 그가 보여 준 명랑함과 평범한 예절에
의해 되살아난 행복한 계획에 온통 마음이 쏠리고 있었다.
화요일 롱본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걱정스럽게 기다려지던 두 사람은
시간 엄수를 자랑이나 하듯 꼭 시간을 대어왔던 것이다.
그들이 식당으로 들어서자 엘리자베드는 빙리가 그
전의 어떤 파티에서도 한결같이 앉았던 자리, 즉
언니의 옆자리를 차지하는가를 확인하려고 열심히
지켜보았다. 세심한 그녀의 어머니도 같은
심정이었던 모양으로 그를 자기 옆으로 청해 보자는
마음을 억눌렀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주저
하는 빛이 보였으나 제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미소를
띠자 일은 결정이 나고 말았다. 그가 그녀
옆에 앉게 된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득의만면한 기분으로 그의 친구 쪽을
바라다보았다. 그는 초연한 무관심으로 참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 입장으로서는, 만일 빙리의 양쪽 눈이
반쯤 웃어 가며 놀라는 그런 표정으로 다아시 쪽을
향하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장본인 빙리가 친구로부터
행복해도 좋다는 인가를 이미 받아들인 줄로
상상했을 것이다.
식사 중 언니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그녀를 애모하고
있는 사실이 역력하게 나타났으며, 그것이 그
전에 비할 때 더욱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만약 전적으로
그에게 일임하기만 하면 제인의 행복도 나아가
그의 행복도 얻어질 것이라고 엘리자베드는 믿게
되었다.
그러한 결과를 필연적인 것으로 믿고 안심할 만한
용기가 그녀에게는 없었지만, 그런데도 그의 태도를
관찰하는 일은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결코 쾌활한
기분에 젖어 있지는 못했어도 그녀의 원기로서는
북돋을 수 있는 최대한의 활기에 불타 있었다. 다아시
씨는 식탁을 가운데 두고 그녀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 위치에 있게 되면 어느
편에도 그다지 즐거움을 줄 수가 없을 뿐더러 이롭게
해줄 리가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그녀가
앉아 있지는 못했으나 두 사람이 거의 입을 떼지를
않고 말을 건넨다 해도 서로의 태도가 형식적이며
냉랭하다는 사실을 엿볼 수가 있었다. 어머니의
무례로 말미암아 자기네가 그에게 은혜를 지고 있다는
의식이 더 한층 엘리자베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녀는 때때로 가족 전원이 그의 친절을 알지도
못하고 눈치채지도 못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특전을
가진다면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녀는 밤이 되면 그와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랐으며, 그가 들어섰을 때의 단순한 의례적인
인사보다도 좀더 이야기다운 이야기도 해보지 못한 채로
이번 방문이 끝나 버리지 말기를 기원해 보는
것이었다. 걱정스럽고 불안해져서, 남자들이 식당에서
나오기 전에 응접실에서 기다리는 동안은 그녀는
거의 난폭해 보일 정도로 따분하고 갑갑해 했다.
그녀는 그날 저녁의 즐거울 기회가 온통 그 시점에
달려 있는 것처럼 그들이 들어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번에도 나한테 가까이 안 와 봐라. 그땐 영원히
단념하고 마는 거야.'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그가 그녀의 희망을 이루어 줄
그러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아! 베네트 양이 차를
준비하고 엘리자베드가 커피를 따르고 있는 테이블
둘레에 여자들이 잔뜩 의좋게 들어갈 만한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남자들이 접근해 오자 딸들 중의 한
사람이 먼저보다도 더 바싹 다가서서는 나직한
소리로 속삭였던 것이다.
"남자들이 와서 우릴 떼놓지 못하도록 마음은 단단히
해야 해요. 우리에겐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니까, 안 그래요?"
다아시는 방 저 쪽으로 걸어나갔다. 그녀는 눈으로
그의 뒤를 쫓았고 그가 말을 건네는 사람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부러워했으며, 커피를 남에게 권하는
마음의 여유도 없어져 버리고 끝내는 그러한
자신의 아둔함에 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한 번 청혼해 온 것을 거절해 버린 사람인걸! 그
애정의 소생을 기대할 만큼 내가 바보가 되다니!
같은 여자에게 두 번씩 청혼하려는 약한 마음씨에
반발심을 안 느낄 남자가 또 어디 있을라구?
그만큼이나 남자들의 기분에 거슬리는 모욕은 또 없을
거야!'
그러나 그가 자기 손으로 커피 잔을 돌려 주려고
찾아왔을 때 그녀의 원기는 어느 정도 생겨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 기회를 포착해서 말했다.
"누이께선 아직 펨벌리에 계신가요?"
"예, 크리스마스까진 그곳에 머물게 될 것 같습니다."
"아니 혼자서 말예요? 친구분들은 다들
돌아가셨겠지요?"
"앤즐리 부인께서 함께 계시죠. 딴 분들께선
스커버러로 떠난 지 3주일째 됩니다."
그녀는 그 이상 말할 일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가 그녀의 말 상대가 되고 싶었다면 충분히
성공했을 것이다. 그는 몇 분 동안 말없이 옆에 서 있는
체로 였으나 이윽고 아까 그 젊은 여자가 다시
엘리자베드에게 속삭이자 저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차 도구를 치워 버리고 카드 테이블이 대신 들어서자
부인들이 모두다 일어났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그로 인해 곧 그가 와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녀의
예상은 깡그리 뒤집혀지고 말았다.
휘스트 놀이의 사람 수를 억지로 채워 보려고 급급해
있는 어머니에게 그가 때마침 붙잡혀서 얼마
안 있어 상대들과 함께 자리에 앉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녀로서는 기쁨의 기대 같은 것을 송두리째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들은 오늘 저녁은
이럭저럭 자기네 앞의 테이블에 붙박이가 되고 말
터인즉 그녀로서 바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의
시선이 되도록 자주 자기 쪽을 향함으로써 게임을
해나가는 그 역시 자기 못지 않게 서투른 일만을
저질러 주었으면 하는 정도밖에 없었다.
베네트 부인은 네더필드의 두 신사를 저녁 식사
때까지 붙들어 놓을 참이었으나 불운하게도 그들이
탈 마차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명령해 놓았기 때문에
그녀로서는 그들을 붙잡을 기회가 없었다.
집안끼리만 남게 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애들아. 오늘은 어땠느냐? 내 생각으론 모든
일이 제대로 잘된 것 같다만. 정말 요리가 그렇게
잘된 건 처음 있는 일이었지. 사슴 고기도 알맞게
구워졌고, 그렇게 살찐 허리 고기는 난생 처음
봤다고들 입을 모아 말하더라. 수프는 지난 주 푸커스
댁에서 맛보았던 것보다는 쉰 배나 더
맛있었고 다아시 씨 그 양반까지도 자고새 맛이 여간
좋지가 않았다고 말했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분은 불란서 요리사를 적어도 두세 사람은 고용하고
있을 텐데 말야. 그리고 얘 제인아, 넌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 내가 롱 부인에게 정말 그런가
하고 다짐을 했더니만 그렇다고 하셨다. 더우기
그분께서 무슨 말을 하셨는지 아니? 아, 베네트 부인,
마침내 댁의 따님께선 네더필드 사람이 되고
마는 거예요! 라고 하지 않겠어. 난 롱 부인만큼 좋은
분을 본 적이 없구나. 그리고 그분의 조카들도
여간 예의가 바르지 않다구. 인물은 별로 나을 게
없지만, 난 그만 반하고 말았다."
베네트 부인은 요컨대 매우 발랄해 있었다. 제인에
대한 빙리의 태도에 대해서는 딸이 끝내는 그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이라는
확신이 설 때까지 충분히 관찰했다. 기분이 매우
좋을 때면 가족들에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기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그녀의 기대는 이성을 초월해
버리는 정도로서 바로 다음날 빙리가 청혼해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완전히 낙담하고 말았다.
베네트 양이 엘리자베드에게 말했다.
"아주 기분 좋은 날이었어. 모인 사람들도 제대로
골랐던 편이고 서로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 그
사람들이 다시 모이게 되었으면 좋겠어."
엘리자베드는 미소를 지었다.
"리지야, 너 그렇게 웃지 말아. 날 의심하면 못써. 내
마음이 슬퍼지니까. 확실히 해두지만, 호감이
가고 양식 있는 청년으로서 그저 대화를 즐길 수 있을
뿐으로 그 이상의 소원은 나에겐 없단 말야.
다만 그분의 성품은 누구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누구에게나 다 잘하려는 강한 기분을 가지고 있을
뿐이야."
"언닌 너무 잔인해요. 나더러 웃지 말라고 해놓고선
늘 웃게 만들어 놓거든요."
"어떤 경우엔 사람을 믿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야!"
"절대로 믿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데 넌 왜 내가 인정하고 있는 이상의 감정을
내가 지니고 있다고 설득하고 싶어 못 견디는
거지?"
"그 질문은 나로선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를 모르는
성질의 것이예요. 우린 모두가 알려 주는 일을
좋아하는 거죠. 알 만한 가치도 없는 일밖에 알지
못하는 주제에 말예요. 용서해 줘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끝내 버티신다면 나에게 털어놓지 않아도 돼요."
55
이번 방문이 있은 2,3일 후에 빙리 씨는 다시 한 번
찾아왔는데 이번엔 혼자서 왔다. 그의 친구는
그날 아침에 런던을 향해 떠났는데 열흘쯤 지나면 다시
돌아오기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들하고 한 시간 이상 자리를 함께 했는데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베네트 부인은 그에게 꼭 식사를 하고 가라고 초청해
보았지만 유감스럽다는 말을 여러 번
늘어놓으면서 실은 다른 곳에 약속을 해놓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인이 또 말했다.
"다음에 또 오실 때 좀더 운이 좋았으면 좋겠네요."
그녀의 초대는 전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어떻게나 시간을 잘 지켰던지 숙녀들은 아직 채
의상도 제대로 갖출 겨를이 없었다.
베네트 부인은 화장 의상을 입은 채 머리도 대충 손본
채 딸들 방 안으로 뛰어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제인아, 어서 서둘러서 내려오도록 하여라. 그분이
오셨다. 빙리 씨가 오셨어. 정말 그분이 온 거야
빨리, 빨리. 이봐 사라, 이 길로 베네트 양에게로
가서 옷 입는 것을 도와 주도록 해요. 리지 양의
머리는 상관 말고 말야."
제인이 말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내려 갈께요. 그렇지만 우리
둘보다는 키티가 한 걸음 앞서 거예요. 반 시간
전에 벌써 2층에 올라와 있었으니까요."
"아, 키티야 아무러면 어때! 그애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구? 어서, 빨리 서둘러요! 너의 허리띠는
어디 있느냐?"
그러나 어머니가 가 버리고 나자 제인은 동생 하나를
안거느리고서는 내려가려 들지를 않았다.
밤이 되었는데도 두 사람끼리만 있게 하겠다는
어머니의 한결같은 걱정은 여전히 뚜렷하게 보였다.
차를 마시고 나자 베네트 씨는 평소처럼 서재로
들어갔고 메어리는 2층으로 올라가 악기 쪽으로 갔다.
다섯 중 두 장애물이 이럭저럭 물러가자 베네트 부인은
상당한 시간을 앉은 채로 엘리자베드와
캐더린을 바라보며 눈짓을 했는데도 두 사람에게는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그녀 쪽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키티가 그쪽을 바라다보게 되었을 때 그녀는
짐짓 천진스럽게 이렇다 말했던 것이다.
"웬일이세요, 어머니? 왜 저한테 자꾸 눈짓을 하시는
거죠? 절 어떻게 하시려구요?"
"아무것도 아니다, 얘야. 난 너에게 눈짓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앉아 있다가 이와 같이 중요한 때를
헛되게 보낼 수는 없었던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키티에게 말했다.
"얘, 너 이리로 온, 할 말이 있다."
그녀를 방에서 데리고 나갔다. 제인은 곧바로
엘리자베드를 향하면서 그런 미리 꾸민 책략은
곤란하니 너만은 제발 그 술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청이나 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리지야, 너하고 할 말이 있구나"
엘리자베드는 싫어도 가야만 했다. 복도로 나가자 곧
어머니가 말했다.
"둘이서만 남겨 두는 것이 좋지 않겠니. 키티와 난
2층으로 올라가서 내 화장실에 있겠다."
엘리자베드는 어머니하고 상의하려 하지 않고서
그녀와 키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조용히 복도에
남아 있다가 응접실로 되돌아왔다.
이날의 베네트 부인의 계획은 효과가 없었다. 빙리는
공공연하게 딸의 애인 행세를 안했으나 그 밖의
점에 있어서는 더할나위없이 매력이 넘쳐 흘렀다.
그의 여유 있고 명랑한 점이 그날 밤의 모임에
다시없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어머니가 부질없이
간섭하려 드는 것을 참아 냈으며, 제인으로서 각별히
감사해야 할 인내와 의연한 표정으로 어머니의
바보스런 말을 듣고 있었다.
그에게 저녁 식사 때까지 남아 있어 달라고 청하는
것은 거의 불필요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돌아가기
전에 주로 그와 베네트 부인의 결정으로 내일 아침
남편과 사냥을 하기 위해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이후로 제인은 자기로서는 무관심하다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빙리 일로 해서 자매들 사이에서는 한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았으나, 엘리자베드로서는 다아시 씨가
예정보다 앞당겨서 빨리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모든 일이
급속하게 결말을 보게 되리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믿으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러나 따지고
들면 이번 일의 전부가 다아시 씨의 합의에
힘입어 이만큼 진척되었다고 하는 편이 옳은 일같이
느껴졌다.
빙리는 약속한 시간을 어기지 않았다. 전날 말했던
대로 베네트 씨와 함께 오전 시간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베네트는 상대가 예기했던 바보다는
훨씬 친숙하기 쉬운 편이었다. 빙리에게는 베네트
씨의 비웃음을 살 만하다거나 불쾌한 침묵으로 빠져들게
할 만큼 잘난 체하거나 어리석은 점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베네트 씨 쪽은 상대방이 지금껏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말하기를 좋아하고 괴팍스럽지가 않았다.
빙리는 물론 함께 식사하러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에는 그와 자기 딸을 딴 사람들로부터
떼어놓으려는 베네트 부인의 계획이 다시 한 번
시도되었다. 엘리자베드는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차 시간이 끝나자 그 목적을 위해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카드놀이를
시작했었기 때문에 그녀는 구태여 그곳에 남았다가
어머니의 계획을 방해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지를 다 써 버리고 응접실로 되돌아오니
놀랍게도 어머니의 영리함이 그녀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고 혀를 두를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문을 열자 언니와 빙리가 나란히 난로 옆에 서서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것만 갖고는 아무런 의심도 살 만한 것이 못되었지만,
두 사람이 놀라며 돌아다보고 서로가 떨어져
버렸을 때의 표정에는 자초지종을 읽어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입장은 자못 난처한 것이었으나 오히려
그녀 자신 쪽이 더욱 그러한 것이리라 생각되었다.
서로간 말 한마디도 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자베드가 다시 그 자리를 뜨려고 하니까 언니와
같이 앉아 있던 빙리가 돌연 일어서더니 언니에게 몇 마디
속삭이고는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이렇게 되자 제인은 비밀을 고백해 버림으로써
즐거움을 주게 되는 경우에는 엘리자베드에게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별안간 그녀를
끌어안고서 자기만큼 행복한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라고 더할나위없이 강한 감동을 불어넣으면서
인정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너무 좋은 거야! 너무너무 좋은 거야. 나로선 그럴
만한 자격이 없어. 아, 남들은 왜 나만큼 행복하지 못할까!"
엘리자베드의 축하 인사는 성실성과 온정과 환희의
정을 가지고 말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말만
가지고는 표현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속속들이
친절한 한마디 한마디는 제인에게는 새로운 행복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경우에
동생한테만 머물러서 아직 남아 있는 나머지 반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 길로 어머니에게로 가야지. 이 딸이 귀여워서
걱정을 하시는 것을 어떤 이유로라도 가볍게
생각하거나 또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게 해드리고 싶지는 않단 말야. 그분께선 벌써
아버지에게로 가 버렸을 거야. 아, 리지야, 내가 할
말이 우리 가족 전체에 얼마나 큰 기쁨을 안겨다
줄까! 이토록 큰 행복을 내가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서 그녀는 우정 카드 놀이를 그만두고서
2층으로 키티와 함께 가 있던 어머니에게로 갔던 것이다.
혼자 남게 된 엘리자베드는 지금까지 몇 달을 두고
신경을 쓰고 괴로와 했었던 문제가 마침내
한꺼번에 쉽사리 해결을 보게 된 데 대해 미소를
지어 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분 친구의 걱정에 넘친 심사숙고의 결과이고 또
그분의 누이의 위장과 책략의 결말인 거야! 가장
행복스럽고 가장 현명하며 가장 도리에 맞는 그런
결과일 거야!"
잠시 후 빙리가 돌아왔는데 아버지와의 대화는 짧기는
했으나 목적대로 처리되었던 것이다.
그는 문을 열면서 황급히 말했다.
"언닌 어디 계시오?"
"어머니하고 2층에 계실 거예요. 틀림없이 곧 내려올
거예요."
그리고 나서 그는 문을 닫고 그녀에게로 다가와서는
동생으로서 축하와 사랑의 말을 들려 달라고
말했다. 엘리자베드는 정직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서
친척 관계가 맺어진 데 대한 기쁨의 말을 전했다.
두 사람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뜨거운 악수를 나눈 후
언니가 내려올 때까지 그가 지금 얼마나
행복하며 제인이 또한 얼마나 완전한가에 대해 그가
말하는 것을 그녀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듣고 있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연애하고 있을지언정
행복에 대한 그의 기대는 모두 다 이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엘리자베드는 명백히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기대 속에는 제인의 뛰어난 이해심이나
나아가 더욱 훌륭한 그녀의 기질이라든가 또는
그와 그녀 사이의 감정이나 취미의 전반적인 유사점이
그 기반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가족들 모두의 즐거움은 그저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베네트 양의 심적 만족은 얼굴에 그
그대로 아름답고 발랄한 빛을 비추어 주었으며 더 한층
눈을 부시게 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키티는 그저 싱글벙글해 가며 자기 차례도 곧 올
것이라고 원하고 있었다. 베네트 부인은 반 시간
동안이나 빙리에게 별달리 이야기를 못했지만,
그녀로서는 자기 감정에 흡족할 만큼 따뜻한 말로
동의를 하거나 승낙할 수가 없었다. 저녁 식사 때 모두
함께 있게 되었던 베네트 씨는 그의 목소리나
태도로 보아서 그가 진정으로 행복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손님이 작별할 때까지는 그 일에
대해서 그의 입장에 한마디 말도 없었으며, 손님이
떠나가 버리자 딸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인, 축하한다. 넌 정말 행복한 여자가 될 수 있다."
제인은 곧바로 아버지에게로 가서 입을 맞추며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에 감사했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넌 좋은 딸이다. 너의 일이 이렇게 행운스럽게
결정지어진다고 생각하니 난 기뻐 어쩔 줄을
모르겠구나. 너희 두 사람이 잘해 나가리라는 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로의 성격은 너무나
닮았어. 너희들은 서로가 상대방을 따르는 성격들이라
어떤 일이고 결정을 못 내리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마음들이 좋아서 하인들의 속임수를 당할 것 같기도
하구나. 그리고 너그러워서 언제나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고 말 테지."
"그렇지 않기를 바라요. 금전상으로 경솔하다든가
무분별하다든가 하는 일은 저희들에게는 허용될 수 없어요."
베네트 부인이 외쳤다.
"수입을 초과한다구요! 여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분의 수입은 일 년에 4, 5천 파운드
아녜요, 그 이상이 될는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리고 나서 딸에게 말을 건넸다.
"제인아, 네 어미는 정말 기쁘구나. 난 틀림없이
밤새도록 눈을 붙여 보지 못할 것 같구나. 어떻게 될
것인가 난 알고 있었다. 끝내는 이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네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아무 소용없이 지날 리가 없을 것이라고 난 생각했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면 작년에 그분이 처음
허어퍼드셔에 왔을 때 난 그 사람을 보기가 무섭게
너희들은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
내 생전에 그렇게 잘생긴 남자를 본 일이 없구나!"
그녀는 위컴이나 리디어에 대한 일은 모두 다 잊고
말았다. 어머니에게는 제인의 존재가 제일 아끼던
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마음에 들게 되었다.
그 순간에는 다른 어떤 일도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손아래 동생들은 언니가 장차 자기들에게 베풀
수 있는 행운의 목표를 따내기 위해 손을 쓰기
시작했다.
메어리는 네더필드의 도서실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며, 키티는 겨울철마다 몇 번씩이고
무도회를 개최해 달라고 사뭇 간청하는 것이었다.
빙리는 이때부터 줄곧 매일 롱본을 찾아오는
방문자였다. 때로는 아침 식사 전에 찾아와서는 항상
저녁 식사 후까지 남아 있곤 했다. 하기야 제아무리
미워해도 다하지 못할 만큼 야만스러운 이웃
사람들로부터 초대를 받고서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경우는 별문제였다.
지금의 엘리자베드는 언니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조금밖에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가 있는 동안에는 제인은 다른 누구한테도
관심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이따금 두 사람이 떨어져 있어야
할 그런 경우에는 자기가 두 사람 어느
편에게도 유용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인이 없을 때는 그는 늘 그녀 이야기를 해가며
즐기기 위해 엘리자베드는 곁을 떠날 줄을 몰랐으며
반면 빙리가 없을 때는 제인은 끊임없이 같은 수법으로
위안의 손을 바라곤 했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제인은 엘리자베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즐거웠어. 그분께서는 내가 지난 봄에 런던에
갔었던 사실을 전혀 모르고 계셨다지 뭐니! 그럴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난 그러리라 생각했댔어요. 그런데 그분께선 어떤
식으로 설명하셨죠?"
"십중팔구 그분의 누이들이 한 짓이었을 거야. 그들은
그분이 나하고 교제하시는 걸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너무나도 뻔한 거야.
왜냐하면 그분께선 여러 가지 점에서 훨씬 훌륭한
상대를 고를 수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내가
그분하고 함께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아 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는 날이면
그들도 흡족해 할 것이고 우리 모두가 다 의좋게
될 거니까 말야. 서로가 원래대로는 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용서할 줄 모르는 말을 언니가 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선량하신 우리 언니! 언니가
두 번 다시 빙리 양의 거짓 호의에 넘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면 난 정말 슬퍼질 거예요."
"넌 믿어 주겠지 리지, 작년 11월에 그분께서
런던으로 가셨을 때 날 사랑하시면서도 다시
돌아오시지 않은 것은 오직 내가 무관심하다고 남들이
설득했기 때문이야."
"그분께선 약간 오해하셨던 것 같아요, 틀림없이.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그분이 겸손하셨기 때문이죠"
그러자 제인은 그의 겸손과 자신의 장점을 그다지
내세우지 않는 점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친구의 간섭을 남에게 누설시키지
않았음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제인은 세상에서
둘도 없이 관대한 마음의 소유자이긴 했으나 그 일에
관해서만은 그의 친구에게 대해서 커다란 편견을
품게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인은 소리내어 말했다.
"확실히 나만큼 행복한 사람은 이 세상엔 없을 거야!
아, 리지야, 난 어떻게 해서 우리 가족 중에서
이와 같이 선택되어 누구보다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단
말이냐? 너도 나나 다름없이 행복하게 됐으며
얼마나 좋겠니!"
"그런 분을 마흔 명 준대도 난 언니만큼 행복해질 순
없을 거예요. 언니의 그런 성질, 그리고 그러한
선량함이 없이는 나로선 언니 같은 행복을 얻을 수가
없는 거예요. 아냐, 아냐, 내 힘으로 어떻게
결말을 내보도록 하죠. 두고 보세요. 그리고 만일
억세게 재수가 좋으면 이럭저럭 제2의 콜린즈 씨와
만나게 될지 누가 아우"
롱본의 일가에 어떤 일이 발생했던가는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 둘 수는 없었다. 베네트 부인은 그것을
필립스 부인에게 속삭이는 특권을 휘둘렀고, 그리고
필립스 부인은 허가도 얻지 않고서 메리튼 주변
사람들에게 똑같은 짓을 감행해 놓고 말았던 것이다.
베네트 집안은 불과 2, 3주 전에 리디어가 줄행랑을
쳤을 당시만 해도 불운한 가족이라고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나 지금에 와서는 별안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스런 가족이라고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56
빙리와 제인의 약혼이 정해지고 나서 한 주일쯤 지난
어느날 아침에 그와 이곳 가족 중의 여자들과
함께 식당에 앉아 있으려니까 돌연 마차 소리가
들려 와서 모두의 시선이 창가로 쏠리게 되었다. 네
마리가 끄는 사두 마차가 잔디밭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방문객이 찾기에는 아직 시간이
일렀으며 더우기 마차 장비 또한 이웃 누구 것하고도
합치되지 않는 것이었다. 말은 역마였고 차대며
선두에 서 있는 하인의 옷도 눈에 익은 것이 아니었다.
아뭏든 누가 찾아온 것만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빙리는
그러한 갑작스런 방문객을 상대나 하고 있을 게
아니라 관목 숲으로 산책이나 하자고 곧 베네트 양을
설득했다. 두 사람은 떠나 버렸고 나중에 남게 된
세 사람은 누구일까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은 채로 였었는데 별안간 문이
활짝 열리고서 방문객이 들어섰다. 바로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게 되리라고
얘기는 했었지만, 이 경악은 전혀 허를 찔린
그런 것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엘리자베드의 놀라움은
전혀 초면인 베네트 부인이나 키티의 경우보다
더욱 컸었다.
부인은 어느 때보다 불손한 태도로 방 안에
들어섰으며 엘리자베드의 인사에 답하며 고개를 약간
숙여 보였을 뿐, 말 한마디 없이 자리에 앉았다.
엘리자베드는 소개를 부탁 받은 일도 없었지만 부인이
들어섰을 때 어머니에게 통성명을 했다.
베네트 부인은 이토록 지체가 높은 손님을 맞게 된 데
대해 득의만면했었지만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다시없이 정중한 태도로 그녀를 영접했다.
잠시 말없이 앉아 있다가 부인은 아주 딱딱한 투
엘리자베드에게 말했다.
"잘 있었겠지요, 베네트 양. 그 편에 계신 부인께선
귀양의 모친 되시나요?"
엘리자베드는 매우 간단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저쪽이 자매 중의 한 분이시겠구요?"
베네트 부인은 캐더린 부인하고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영부인. 끝에서 둘째 되는
딸이옵니다. 막내 딸은 최근 결혼해 버렸사옵고 그리고
맏딸은 정원 어딘가에서 어떤 젊은 남자분하고 거닐고
있사옵니다만 그분은 얼마 안 있어 저희 가족 한
사람이 될 것이옵니다."
"정원은 퍽 작은 편이 되시겠지요."
잠시 동안 침묵을 지ㅋ고 난 뒤에 캐더린 부인이 말을
되받았다.
"로징즈하고는 비교가 되질 않겠지요, 영부인. 그러나
윌리엄 루커스경 댁보다는 훨씬 큰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 방은 여름 한철 저녁에는 불편한 거실이겠네요.
창문이 정서향이 돼 있으니까요."
베네트 부인은 저녁 식사가 끝난 뒤로는 이 방에 남아
있게 되질 않는다고 시인하고 나서 덧붙여 했다.
"떠나오실 때 콜린즈 내외께선 안녕하셨겠지요?"
"예, 잘들 있지요. 그저께 저녁에 두 사람을 만났었지요."
엘리자베드는 이제 부인이 샬로트에게서 온 편지를
끄집어낼 줄 알고 있었다. 부인이 찾아온
동기로서는 그 밖에는 있을 성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지는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완전히 당황해지고 말았다.
베네트 부인은 매우 예절바르게 무엇인가 가벼운 것을
들지 않겠는가 뜻을 물어 보았더니 부인은 사뭇
단호하게 아무것도 들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나서 그 길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엘리자베드에게 말했다.
"베네트 양, 댁의 잔디밭 한귀퉁이에 사뭇 보기 좋은
야생림 같은 곳이 보이더군요. 당신이 나하고
같이 갈 마음이 있거든 잠깐 거기로 산책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외쳤다.
"얘, 모시고 가 보아라. 그리고 영부인께 이곳 저곳
산책길을 안내해 드리도록 해라. 그리고 제
생각으로 그 암자는 마음에 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엘리자베드는 시키는 대로 했으며, 파라솔을 가지러
자기 방으로 뛰어 갔다가 아래층에 있는 고귀한
손님한테로 내려갔다. 현관의 홀을 통과하면서 캐더린
부인은 식당과 응접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잠시
살피고 나서 품위 있는 방이라고 말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가 타고 온 마차가 현관 앞에 멈추어 있었고
엘리자베드는 그 속에 하녀가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잡목 숲을 통하는 자갈길을
조용히 걸어나갔다. 엘리자베드는 오늘따라 평소보다
훨씬 거만하며 불유쾌한 부인에게 말을 건네보려는
노력을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조카 되는 그분하고 똑같이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인가?'
하고 그녀는 부인의 얼굴을 바라다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들이 잡목 숲으로 들어서게 되자, 곧 캐더린 부인은
다음과 같이 서두를 떼는 것이었다.
"베네트 양, 당신은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본인의 마음이, 아니 당신 자신의
양심이 어째서 내가 왔는지를 가르쳐 줄 것이 틀림없을
거구요."
엘리자베드는 꾸밈없이 놀라움을 내보이면서 바라다보았다.
"저어, 그건 잘못 생각하시고 계신 것이올시다,
영부인. 여기까지 오시게 된 이유를 저로서는 얼핏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부인은 매우 화난 투로 말했다.
"베네트 양, 알아둬야 할 일이지만 날 우롱해서는
안되는 일이에요. 당신 쪽에서 제아무리 불성실한
태도로 취해도 내 쪽은 그렇지가 않아요. 원래 내 성격은
성급한 점과 솔직한 점에서 남들의 상찬을
받고 사는 사람이오. 현재와 같은 중요한 문제에서도
거기에서 한 걸음도 물러설 생각은 않고 있는
거예요. 불과 며칠 전에 정말 놀랍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려 왔어요. 당신의
언니는 매우 유리한 결혼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바로
당신 엘리자베드 양도 그와 너무도 비슷하게
바로 내 조카, 어김없는 내 조카인 다아시 하고 곧
결혼하리라는 소문이 있다고 듣고 있었고,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그 사람을 욕되게
하고 싶지가 않지만, 내 기분이 어떤가를 알려주고
싶어서 곧 여기로 올 결심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 일이 정말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고 계시다면."
짐짓 경악과 경멸로 얼굴을 붉히면서 엘리자베드는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오셨는지요? 또 어떻게
하실 의향으로 계시는지요?"
"그러한 풍문은 전적으로 사실을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왔을 뿐예요."
"저나 저의 가족을 만나시려고 롱본까지 찾아오신 것은."
엘리자베드는 사뭇 냉정하게 말했다.
"오히려 그러한 뜬소문이 사실이라면."
"만일이라뇨! 그렇다면 그런 사실을 모른 체라도 할
참인가요? 자신이 애써 가며 퍼뜨린 결과가
아닌가 말예요? 그래 세상이 다 알고 있는 그런 풍문을
모른다고 말하기요?"
"그런 일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그런 소문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있겠소?"
"전 영부인만큼이나 솔직하다고는 말해 치울 수가
없어요. 영부인께서 아무리 질문을 하신다 해도
저에게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이건 정말 견딜 수가 없는 일이오. 베네트 양,
납득이 가도록 말해 주시오. 그래 내 조카가
그대에게 청혼이라도 했다는 거예요?"
"영부인께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땅히 그래야지요. 그 사람에게 이성을 가진
한에서는 마땅히 그래야지요. 그러나 그대의 기교나
유혹 때문에 한때 정신이 나가 버려서 자신이나
일족에 대해 과연 어떤 의무가 있는가를 잊고
는지도 모를 일이죠. 당신이 그 사람을 꾀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니까."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저로선 절대로 고백하지는
않을 것이에요."
"베네트 양, 내가 누군지 알고 있겠지요? 난 그런
식의 말버릇에는 익숙해 있지 않을 사람이요. 난
이 세상에선 그에게는 제일 가까운 친척이므로 그에
대한 중요한 문제는 죄다 알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러나 저에 대한 것을 아실 권리는 안 가졌을 것으로
전 알고 있어요. 더우기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저로 하여금 명백히 말하게 만들 수도 없을 거예요."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도록 하오. 그대가 자기
신분에 넘치게 바라고 있는 이번 혼담은 절대로
성립이 안될 것이니 그리 아시오. 아니, 절대로.
다아시 씨는 내 딸하고 약혼을 하고 있는 거니까.
자아, 이래도 할 말이 있소?"
"이 말씀만 해두겠어요.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분께서 저에게 청혼하리라고 생각하실 이유가
없으실 게 아니에요."
캐더린 부인은 일순 주저하는 듯하다가 이내 대답했다.
"두 사람 사이의 약혼은 특별한 경우지요. 어릴
적부터 짝지우기로 했던 거예요. 그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머니께서도 바라셨던
일이었구요. 그애들이 아직 요람 신세를 지고
있을 때부터 우린 이런 식으로 연분을 맺어 주기로
생각했었죠. 그랬던 것이 지금에 와서 이런
식으로 연분을 맺어 주기로 생각했었죠. 그랬던 것이
지금에 와서 우리 자매의 염원이 성취될 때쯤
해서 집안도 우리보다 못하고 아무런 사회적 지위도
없고 우리 일족하고는 동떨어진 그런 한 젊은
여성에게 방해를 당하고 말다니! 그래 당신은 그
사람의 집안끼리의 소망이라든가 나아가 드 버그
양과 그 사람 사이에 맺어진 묵계 같은 것은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는 건가요? 절도 있는 태도라든가
아량 같은 감정은 전혀 안 가졌다는 건가요? 어릴
적부터 그 사람이 종매와 결혼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내가 말하는 것이 당신 귀에는 안 들리던가요?"
"예, 들었어요. 그 전에도 들은 적이 있구요. 그런데
그것이 저에게 어쨌다는 거지요? 제가 조카하고
결혼하는 데 이의가 없다면 설령 그분의 자당과
영부인, 사이에 드 버그 양과 혼인시킬 희망을
가졌었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저에게 방해될 일은
없는 거예요. 두 분께서는 그 결혼 계획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셨을 줄 믿고 있어요. 다만 그
완성은 전혀 딴 사람이 맡게 되는 일이지요.
만약 왜 그 밖의 사람을 선택해선 안된다는 건지요?
그리고 그분이 만약 절 선택하셨다면 전들
받아들이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명예, 예의, 사려 분별 아냐, 이익이 그걸 금하니까
그렇지. 그래요, 베네트 양, 이익이 문제죠.
만약 당신이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 되는 사람들의
의향에 반해 가며 제멋대로 하다간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의를 받기란 기대하기 어렵죠. 그와
관련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경시와
멸시를 받게 마련이오. 이 연분은 수치스런 것이 될
것이며 당신의 이름은 이후엔 우리 입에
오르지도 않을 거요."
"이건 정말 큰 불행이에요."
엘리자베드는 대답했다.
"그렇지만 다아시 씨의 부인이 되는 날이면 그 입장에
따르게 마련인 굉장한 행복을 소유할 게
틀림없으므로 전체적으로 후회할 일은 별로 없을 걸로
알아요."
"이 얼마나 완고하고 완강한 여자일까! 오히려 이쪽이
부끄러워지는군! 그래 이게 바로 지난 봄에
친절을 베푼 데 대한 감사하다는 표시인가? 그 당시
일에 대해선 아무런 의리도 안 느낀다는 건가?
어서 앉기나 해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일은 베네트
양,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어떤 일이 목적을
달성하고 굳은 결심을 하고 온 것이며, 난 또 어떤
일이 있어도 단념은 안하는 성미죠. 실망을 참고
견디는 습관은 나에겐 없어요."
"그렇다면 영부인의 현재 입장은 더욱 딱한 것이 되고
말 거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전 제 마음을
바꾸어 먹을 수는 없거든요."
"남의 말을 방해하지 말아요! 잠자코 내 말을 들어
보기나 해요. 우리 딸과 조카 두 사람은
천생연분인 거요. 외가 쪽은 다같이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았고 친가 쪽은 설사 작위는 없어도
존경받을 만하고 명예스러운 오랜 집안 출신이라오.
재산은 쌍방간 말할 필요도 없구요. 두 사람은
저마다 집안간 여러 사람들의 뜻으로 결합되어야 할
운명인 거예요. 그 사이를 무엇이 갈라놓겠다는
것일까? 기세도 인척간도 재산도 제대로 못 가진 젊은
여성이 건방지게 권리를 주장하다니! 이걸
어떻게 참으라는 것이지? 이런 일을 하게 내버려둬선
안되는 거요! 만약 그대가 자기 자신의 행복에
대해 분별이 있다면 자기 자신이 자라났던 세계
밖으로 나오고 싶은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거요."
"조카님하고 결혼한다고 해도 전 제 자신이 그 세계
밖으로 나갔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예요. 그분은
신사이시고 저도 또한 신사의 딸입니다. 그점에
있어서는 평등한 거예요."
"사실이오. 그대는 분명 신사의 딸이오. 그러나 그대의
어머니는 어떤가요? 그대의 이모부와 이모는
과연 어떠하지요? 어떠한 지위의 사람들이란 걸
우리들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돼요."
"저의 집안이 어떻든간에."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영부인의 조카님께서 이의가 없으시다면 부인껜 상관
없으실 줄 알아요."
"정확하게 말해 줘요, 그 사람하고 약혼했는지
아닌지를?"
엘리자베드는 단지 캐더린 부인에게 만족을 줄
심산이었더라면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겠지만 한참
동안 생각하고 나서 그녀는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직 안했어요."
그 말을 듣자 캐더린 부인은 매우 기뻐하는 것 같았다.
"나아가 그러한 약혼 같은 건 앞으로도 절대로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을까요?"
"그런 식의 약속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베네트 양, 난 지금 너무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겠소. 난 그대를 좀더 사리에 분명한 젊은 사람으로
생각해 왔어요. 그렇다고 나란 사람이 뒷걸음을
치리라고 잘못 생각하지는 말아 줘요. 내가 원하는
약속은 나에게 해줄 때까지는 난 이곳을 떠나지 않을
작정이오"
"그런 약속은 전 절대로 안하겠습니다. 위협 당한다고
해서 깡그리 이치에 닿지 않는 짓을 할 사람이
아니올시다. 영부인께선 다아시 씨와 댁의 따님과의
결혼을 바라고 계시겠지만 만약 원하신 대로
제가 약속을 한다고 해서 두 분의 결혼이 더욱 쉽게
이뤄질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가령 그분이 절
사랑하고 계실 경우, 제가 그분의 손길을 거절했다고
하면 그분은 그 손길을 그분의 종매에게로 넘겨
주게 될 것 같은 가요? 말씀드려 두겠습니다만, 캐더린
부인, 이번 부탁 그 자체가 원래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그런 터무니없는 부탁을 뒷받침하는 그
논리가 시시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저런 사람이
그런 식의 설득으로 움직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저의 성격을 대단히 잘 모르시고 계시는
거예요. 조카님께서 자신의 문제에 영부인께서
간섭하시는 것을 어느 정도로 인정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영부인께서 저의 문제에 관여하실 만한
권리는 못 가지고 계시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제발 이 문제로 해서 절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절대로 끝났다고
생각지 않으니까. 지금까지 내세웠던 이의에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일이 있어요. 난 댁의 막내동생이
수치스럽게 줄행랑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지요. 그 청년이 동생하고 결혼하게 된 것은 댁의
아버님과 외숙부가 돈을 들여가며 이럭저럭
주물럭거린 결과란 것까지 다 알고 있어요. 그래 그런
여자가 내 조카의 처제가 될 수 있는 걸까요?
그 여자의 남편, 즉 작고 하신 아버지의 집사 아들이
조카의 손 아래 동서가 될 수 있다는 건가요?
천만의 말씀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펨벌리의
청아하고 한가한 취향을 이토록 더럽혀 놓아야
한단 말인가요?"
"이젠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겠죠"
그녀는 분개해서 대답했다.
"부인께선 절 모욕하신 거예요. 이제는 집에 돌려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일어섰다. 캐더린 부인도 따라
일어나서 두 사람은 되돌아갔다. 부인은
노기충천해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 조카의 명예도 신용도 아무렇게
돼도 좋다 그 말인가요! 무정하고 이기적인
여자이구먼! 당신하고 결혼하게 되면 그 사람은 세상
사람들 앞에다 수치를 드러내 놓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캐더린 부인, 전 이젠 더 드릴 말씀이라곤 없습니다.
저의 기분은 그만하면 아시겠지요."
"그래 끝내 그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건가요?"
"그런 말씀은 안드렸습니다. 전 제 생각으로 부인이나
혹시 저하고는 전연 관계가 없는 아무나
상관할 것 없이 저의 행복이 될 수 있다면 행동하기로
결심했을 뿐입니다."
"좋아요. 그래 끝까지 내 원을 안 들어 주겠다 그
말이지요. 의무, 명예, 감사 같은 것들이 요구하는
것에는 승복 않겠다 그 말이지요. 집안을 통틀어서
그의 평판을 밑바닥까지 내려뜨리고 그 사람을
세상 전체의 경멸의 표적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결심인가 보죠"
"의무고 명예고 그리고 감사고간에"
엘리자베드는 대답했다.
"현재 입장으로는 저에게 대해서는 아무것도 주장할
권리가 없습니다. 제가 다아시 씨와 결혼한다
해도 그 어느 원칙이고 위배되는 건 아니니까요. 더
나아가서 그분 집안의 유한이라든가 세간의
분개라든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설령
집안의 유한을 그분과의 결혼으로 해서 사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저로선 조금도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한 덩어리가 돼서 절
경멸할 만큼 상식이 결여되어 있다고는 보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게 당신의 진정한 생각이구료! 최후의 결의인
거지요! 대단히 훌륭하오. 이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게 됐어. 베네트 양, 자기의 양심이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못 써요. 난 시험해
보려고 왔을 따름이니까. 어째 사리가 통하는 줄
알고서 찾아왔었는데. 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난 내 생각대로 해 보여 주고 말 테니까."
이런 식으로 캐더린 부인은 말을 계속해 나갔으나
이윽고 두 사람이 마차 문 있는 데까지 왔을 때
갑자기 뒤돌아보면서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난 작별 인사를 안하겠소, 베네트 양. 어머니에게
안부도 안 드리기로 하구요. 당신네는 그럴 만한
값어치가 없는 사람들이니까 말요. 난 심히
불쾌하오"
엘리자베드는 전혀 대답하지 않았다. 부인한테 집
안으로 들어가자고 권해 볼 생각조차 않고서 자기
혼자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섰다. 2층으로 올라왔을
때 마차가 떠나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화장실
입구에서 어머니가 초조해 하며 그녀를 맞아들였고
캐더린 부인이 왜 안으로 들어와서 쉬지 않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그렇게 하시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딸이 그렇게 말했다.
"꼭 가야 하신대"
"정말 보기에도 너무 훌륭하셨어! 여기까지 찾아
주시다니 너무너무 정중하신 거야! 그런데 콜린즈
내외가 잘 있다고 안부 정도 전하러 오셨던 걸까.
어디엔가 가시는 도중 같아 보였는데. 메리튼을
지나가시다가 갑자기 널 만나 보고 싶어지신 거겠지.
너에게 특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야,
리지야?"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엘리자베드는 거짓말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오고간
이야기는 도저히 입 밖에 낼 성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57
이 뜻밖의 방문이 엘리자베드를 빠뜨린 혼란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힐 수가 없었으며, 몇 시간 동안
쉴새없이 이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캐더린
부인은 다아시와 그녀가 약혼해 버릴 거라
추측하고 그것을 만류시키기 위해 노고를 돌보지 않고
로징즈에서 우정 이곳까지 왔던 것 같았다. 하긴
이치에 맞는 계획인 것이다! 그러나 약혼의 풍문이
어디에서 나오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는
엘리자베드로선 알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그가 빙리의 친구며 그녀 자신이 제인의
동생이므로 혼담 하나가 정해지면 모두들 다른
하나가 더 있었으면 하고 원하고 있을 무렵이어서 자연
그러한 생각도 나옴직하다고 그녀는 생각을
돌려보았다. 언니가 결혼하게 되면 자기가 그와 둘이서
더욱 자주 만나게 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것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이웃 루커스 집안의
사람들이(그들로부터 콜린즈 부인에게로 보내 온 편지
내왕으로 그 풍문이 캐더린 부인한테까지 가 닿게 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었지만) 자기가 언제쯤인가
가까운 장래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는 사실은 거의
확정적이며, 곧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말 것이라고
판단한 것에 불과한 일이다.
그러나 캐더린 부인이 했던 말을 여러 모로 궁리해 본
결과, 간섭을 끝까지 해내고 말겠다는
끈질긴 집념이 어떤 중대한 결과를 몰고 오게 될는지
적잖이 불안한 심정이 들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결혼을 방해해 버리겠다는 결심으로
미루어 볼 때, 부인이 자기 조카에게 어떤 신청을
꾀하게 될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고 엘리자베드는
생각했고, 그리고 자기와의 결혼에 따르게 마련인
여러 가지 해악을 먼저번과 같이 설명하면 그가 과연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지 그녀로서는 잘라
말할 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가 이모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또 이모의
판단에 얼마만큼이나 복종하는 것인지 그것을 명백히
알 수는 없었지만, 자기보다는 그 사람 쪽에서 부인을 더
높이 평가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며, 나아가 그 이모라는 사람이 그 사람의 일족과는
동떨어지게 불균형한 근친을 가진 사람하고
결혼하게 되는 경우의 불행을 낱낱이 늘어놓음으로써
으뜸가는 그의 약점을 찌르고 말 것이 또한
확실했다. 위엄이란 점에 그토록 중점을 두는 구로서는
엘리자베드의 눈에는 박약하며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말들 속에는 역시 선량한 양식과 확고한 분별이
내포돼 있다고 느낄 법도 한 일이었다.
만약 그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보여 주었던 것처럼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망설이고 있다면 그처럼
가까운 집안 사람한테서 충고 받거나 간청 받게 되기만
하면 의문은 송두리째로 해결되고, 그로 하여금
당장 위엄이 추락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결의를 굳혀 줄 게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는 날이면 그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말
것이다. 캐더린 부인은 귀로에 런던에 들렀다가
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네더필드에 오리라는, 빙리와의 약속은 무너질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변명이 만약 며칠
사이에 친구분에게 전달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은가를 명백한 거야. 그때가 되면 그분의
절조에 대한 기대나 희망은 다 단념하고 말 거야.
나의 애정과 손길을 얻을 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때에
나에 대한 애석한 생각만으로써 만족하고 있다면
나 역시 그분을 아쉬워하는 생각을 말아야지.'
방문객이 누구였던가를 들었을 때의 가족의 딴
사람들의 놀라움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들 역시 베네트 부인의 호기심을
가라앉힌 정도의 추측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일로 해서 그 이상의 성가신 질문을 받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그녀는 편지를
손에 쥐고 서재에서 나오는 아버지와 마주치고 말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리지야 마침 널 찾으로 가는 참이었다. 내 방으로 좀
와 주도록 해라."
그녀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화제일까 알고 싶어지는 호기심은 그것이
아버지가 손에 쥐고 있는 편지와 무슨 관계라도
있지 않나 생각하니 더 한층 궁금해져 갔다. 캐더린
부인한테서 온 편지일지도 모른다고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고, 앞으로 듣게 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예상되자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난로 있는 데로 가서 두
사람은 자리잡았다. 이윽고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날 깜짝 놀라게 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주로 너에 관한 일이어서 너에게는 꼭 그
내용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난 지금까지 딸이
둘씩이나 결혼 직전에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구나.
우선 너의 매우 중대한 정복에 대해서 축하 인사를
해두 마."
그 편지가 이모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조카에게서 온
것이라고 일순 확신하게 되자, 엘리자베드의
뺨은 갑자기 달아올랐다.
그가 자신의 의중을 명백히 한 점을 기뻐해야 할
것인지 또는 그 편지의 수신인이 자기가 아니라는
점에 화를 내어야 할 것인가를 채 결정짓지 못하고
있었을 때 아버지가 계속해서 말했다.
"너도 느끼고 있는 모양이구나. 젊은 여성들은 이러한
것들을 꿰뚫는 힘이 대단한 줄 알고는 있다만
네가 제아무리 현명하다 해도 널 숭배하고 있는
인물의 이름은 맞히지 못할 거다. 이 편지는 콜린즈
씨한테서 온 것이다."
"콜린즈 씨라뇨! 그분이 또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건가요."
"물론 대단히 정곡을 찌른 말이다. 사람이 본래 좋고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루커스 집안
사람들한테서 들은 것 같은데, 먼저 내 큰딸의 혼례가
가까와진 데 대해서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 뭐라 말하고 있는가를 읽음으로써
내가 초조해 하는 것을 보고 즐길 애비는 아니다.
너에게 관계되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이번 귀댁의
경사에 대해서는 저의 처와 더불어 소생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축의를 이와 같이 드리는 동시에
또 한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말씀 암시 정도의
말씀을 덧붙여 드리는 바 올시다만, 이 역시 동일한
소식통에서 나온 사실이옵니다. 영애 엘리자베드
양께선 추측되는 바로는 언니의 바로 뒤를 이어서 곧
베네트란 성을 더 지니지 않게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의중의 반려자야말로 이 나라에서
최고 가는 귀현의 인사로 간주하며 너무나도
당연한 분이올시다.'"
"누굴 지목하는 말인지 넌 알겠구나, 리지야?"
"이 젊은 신사는 독특한 축복을 받은 분으로서 인간의
마음이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것, 크나큰 재산,
고귀한 친척 그리고 거대한 성직수여권 등의 혜택을
두루 지니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유혹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드와 귀하께 경고의
말씀을 올리고자 하는 바는 이 신사의 신청에
무턱대고 응함으로써 자초할 재난에 대해서인데, 물론
귀댁에서는 목전의 이익을 놓치고 싶지는
않을 줄로 아옵니다."
"그래 리지야, 이 신사란 사람이 누구겠는지 너 혹시
알겠느냐? 그러나 이제 곧 나오게 된다."
"주의를 환기시켜 드리고 싶은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그분의 이모 되시는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이 이 연분을 과히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근거를 저희들은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아시 씨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자아, 리지야.
이만하면 널 놀라게 해주었을 것 같은데. 콜린즈
씨나 루커스 집안 사람들은 하필이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이름만 들어도
거짓말이란 게 더욱 뻔해질 이름을 쳐들 게 뭐람?
여자를 보기만 하면 늘 헐뜯기 일쑤고 지금까지 한
번도 너한테 눈길을 돌려본 적이 없었던 다아시 씨
아니냐? 그럴수록 멋진 일이지!"
엘리자베드는 아버지와 함께 농담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마지못해 억지로 미소를 짓는 것이
고작이었다. 더우기 아버지의 재치가 이토록 흥을
깨면서 자기를 향했던 일은 전혀 없었다.
"너 재미없느냐?"
"재미있어요. 제발 더 읽어 주세요."
"'지난 밤에 이 결혼이 아무래도 사실인 듯하다고
영부인께 말씀을 아뢰더니 그 자리에서 여느 때처럼
황송하옵게도 이 문제에 대한 감상을 들려
주셨습니다. 부인께서는 엘리자베드의 집안에 몇 가지
난점이 있다는 이유로 그와 같이 치욕스런 연분에는
찬동을 하실 의향이 절대로 없으시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소생은 이 사실을 조속히
엘리자베드에게 알려주어서, 그녀와 그녀의
고귀한 숭배자가 바야흐로 하려 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시키고 정식으로 허가 받지 못한 결혼에
경솔하게 뛰어드는 일이 없게끔 노력하는 것을 저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콜린즈 씨는 나아가
이렇게 추가해 두고 있다. '소생은 친척 리디어의
슬픈 사연이 무난히 무마된 점을 충심으로
기뻐하고 있으며, 다만 마음 아픈 사실은 결혼 전에
두 사람이 동서했었다는 것이 널리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소생의
입장으로서는 두 사람이 결혼하자마자 귀하께서
그들을 귀댁으로 맞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부터는 소생의 지위에 수반되는 의무를 잊을 길이
없으며 또한 이것은 어안이 벙벙해지는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악덕을 장려하는
거나 다를 바 없는 일이어서 만약 소생이 롱본 교구의
목사일 것 같으면 전력을 다해 가며 반대했을
것입니다. 귀하께서는 틀림없이 그리스도교도로서 두
사람을 용서해 주셔야겠지만, 두 사람과의
상면은 거부해서 마땅했을 것이며, 아니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것 자체부터 기피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사내의 그리스도교적 용서의
사고방식인거다! 편지의 나머지 부분은 귀여운
샬로트의 근황이라든가 아들을 낳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씌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리지야, 넌 어쩐지
재미없는 표정이구나. 넌 새침을 떼면서 부질없는
소문에 대해 화내고 있는 체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 우리들이 살아가는 길은 이웃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나서 다음엔 이편에서 웃어 주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아! 전 정말 재미있게 들었어요. 하지만 너무나
이상한 것 같아요!"
"그렇다. 그러니까 재미있는 거지. 만약 다른 어떤
사람을 택했다면 아무렇지 않겠지만, 그 사람은
전혀 무관심하고 넌 지독히 싫어하니 일이 즐거울
정도로 우습다는 거다! 붓을 들기가 죽도록 싫다만
이렇게 되고 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콜린즈 씨와의
편지 내왕을 끊을 수가 없구나. 아냐, 그 사람의
편지를 읽게 되면 위컴 이상으로 좋아지는 것을
어떡허니. 내 사위의 후안무치한 점과 위선을 난 퍽
높이 평가하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리지야, 이
소문에 대해서 캐더린 부인은 뭐라 말씀하시더냐?
동의 안하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찾아오셨더냐?"
이 질문에 딸은 웃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눈곱만큼의 의심도 품지 않은 채 한 질문이기에
아버지가 이 문제를 되풀이해도 그녀는 조금도 당황한
빛을 보이지 않았었다. 엘리자베드는 자신의
감정을 실제의 경우하고는 동떨어진 것으로 꾸며야 할
퍽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실은 울고 싶은데 웃고 있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 나름으로 다아시 씨가 무관심했다고
말함으로써 더할나위없이 그녀를 슬프게 해놓고 말았다.
그녀 쪽에서는 아버지가 왜 이다지도 사리를
뚫어 보는 힘이 없는 것일까. 의아하기도 했으며, 또는
자칫하다가는 아버지가 너무나 적게 관찰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 쪽에서 너무 지나칠 만큼 많이
상상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8
빙리 씨는 엘리자베드가 조금은 기대한 사과 편지를
친구한테 받은 대신, 캐더린 부인의 방문이 있은
며칠이 경과되지 않아서 다아시 씨를 롱본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아침 일찍 찾아왔다.
베네트 부인이 그의 이모를 이미 만났었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할까 봐 엘리자베드는 순간적인 조바심
속에 앉아 있었는데, 그 얘기를 채 꺼내기도 전에
빙리는 벌써 제인하고 둘이만 있고 싶어했기 때문에
모두 함께 밖으로 산책을 하자고 제안했다. 모두가 그
제안에 동의했다. 베네트 부인은 산책하는
습관이 몸에 익어 있지 못했고, 메어리는 시간을 낼
수가 없었지만 나머지 다섯이서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러나 빙리와 제인 두 사람은 곧 딴 사람들을 먼저
보냈다. 그들이 뒤로 처졌기 때문에
엘리자베드와 키티 그리고 다아시 셋이서 서로 상대가
되어 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세 사람 다 별로
입을 열지 않았다. 키티는 그 사람을 너무 어려워해서
말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엘리자베드는 말해
보려고 결의를 남몰래 굳히고 있었는데, 미상불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키티가 마리아를 찾아가 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루커스 가 쪽으로 발걸음이 옮겨져 갔는데,
엘리자베드는 모두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보여서
키티가 두 사람을 앞서게 되자 큰 마음 먹고 그와
단 둘이서 걸어갔다. 이제야말로 그녀의 결의를 실행할
때였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던 것이다.
"다아시 선생님, 전 너무 제멋대로만 하는 사람이어서
저의 감정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해드릴 수도 있어요. 전 이젠 가엾은
동생에 대한 선생님의 다시없는 친절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 일을 알고 난 후부터는 사뭇 전
얼마나 고맙게 생가하고 있었던가를 꼭
말씀드리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어요. 저의 가족의
딴 사람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 단지 저만이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서는 안될 일이겠지만"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다아시가 놀라움과 감동이 넘쳐흐르는 어조로
대답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걱정거리도 될 수 있는 일이
당신 귀에까지 들리게 됐군요. 가디너 부인이
그렇게 믿지 못할 분인 줄은 몰랐는데요."
"외숙모님을 책망하지 마세요. 선생님께서 그 일에
대해서 개입하셨다는 걸 리디어가 먼저
경솔하게도 저희들한테 누설한 거예요. 물론 저로서도
상세한 내용을 알기까진 마음이 편하질
못했지만요. 가족 일동의 이름으로 몇 번이고 감사
말씀을 드려요. 두 사람을 찾아내시느라고 그토록
애를 쓰셨고 그 많은 굴욕까지 잘 참아 주셨던
선생님의 넓으신 동정심에 대해서 말예요."
"저에게 진정 감사하시려면, 혼자서만 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힘쓰겠다는 마음이
절 움직인 다른 동기에다 더욱 힘을 불어넣어
주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댁의 가족 여러분들께서는 저에게
아무런 부담을 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매우 존경하긴 합니다만 전 당신밖엔 생각한 일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엘리자베드는 매우 당황한 나머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상대방은 침묵을 했다가 한참만에 다시
시작했다.
"당신은 너그러우신 분이시라 절 놀림감으로 만들지는
않으시겠죠. 그쪽의 기분이 지난 4월과
여전하시다면 그렇다고 곧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지닌 애정이나 소망은 한결같습니다만, 당신의 그
한마디로 이 문제에 대해선 전 끝까지 침묵을
지키겠습니다."
엘리자베드는 그의 입장이 예사롭지 않게 어색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감지했지만 당장 뭐라고 말을
해야만 할 입장이었다. 그래서 때를 놓치지 않고,
유창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언급했던 그 시기 이래로
자기 감정은 결정적인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그가
확실한 사실을 감사와 기쁨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를 이해시켰다.
이 대답이 가져다 준 그러한 행복감을 아마도 그는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곧바로 그는
격렬한 사랑을 하고 있는 남자만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가장 조리 있고 열의를 불어 넣어 가며
자기의 생각하는 바를 말했다. 엘리자베드가 그의
눈길을 마주볼 수 있었다면 얼굴에 가득 넘쳐흐르는
진정한 기쁨의 표정이 그를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게
했는가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녀는 눈으로는 볼 수 없었을망정 귀로 들을
수는 있었다. 그녀가 그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증명해 주려고 자신의 감정을 펼쳐
보임에 따라 그의 애정의 정도는 시시각각
고귀한 것이 되기만 했다.
두 삶은 어느 쪽으로 걸어나가고 있는지 방향조차
잃은 상태였다. 생각하고 느끼고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아서 딴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곧 두 사람이 이와 같이 서로가 이해하게
된 것은 그의 이모의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의 이모는 집으로 가는 길에 런던을 통과하면서
어김없이 그를 찾아서 롱본에 들렀었다는 이야기며
그렇게 했던 동기, 나아가 엘리자베드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던 것이다.
부인은 자기가 보기에 엘리자베드의 옹고집과
뻔뻔스러움을 특별히 드러낼 것으로 여겨지는 갖가지
표현들을 유달리 헐뜯어 가면서 말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엘리자베드가 거절했던 약속을 자기
조카한테서 따내려는 노력에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인에게는 불행하게도
바랐던 효과가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다아시는 말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희망을 가지라고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망을 가져 볼 수 없을
정도의 것이었거든요. 제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당신의
기질로서는 절대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저하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정해 버렸다면 그 사실을 캐더린
부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고백했을 게
아니겠습니까."
엘리자베드는 얼굴을 붉히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요, 선생님은 저의 솔직한 심정을 잘 알고 계실
테니까 그런 짓을 능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직접 면전에 대놓고서 선생님에게
비난을 퍼부었던 일도 있었으니까, 친척
되시는 분 앞에서 선생님 욕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니었을 거예요."
"저한테 하셨던 말은 전부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가요?
당신의 비난은 근거가 없고 잘못된 전제에
입각한 것이었더라도 그 당시에 당신에 대한 저의
태도는 제아무리 심한 꾸지람을 들어도 괜찮은
편이었으니까요.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지요. 그때
일을 생각할 땐 으례 혐오의 정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그날 밤에 어느 쪽이 더 나빴던가를 책하는 경쟁은
그만뒀으면 해요. 엄밀히 따져 보면 어느 편이고
그 행동에 있어 실책이 없었던 것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로 저희들 둘은
서로가 예의바르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전 그렇게 쉽사리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말과 그날 저녁을 통한 저의 행위,
태도, 말버릇 같은 것을 회상한다는 것은 저에게
현재도 그렇지만 지난 몇 달 동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정말 적절했던 당신은
비난을 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좀더
신사답게 행동하셨던들' 하고 당신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절 얼마나 괴롭혔는지 당신은 거의
상상조차 못할 겁니다. 바로 말해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그 말의 정당성을 인정할
정도로 이성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확실히 전 그 말이 그토록 강한 인상을 주리라고는
정말로 상상도 못했어요."
"저로선 쉽게 믿어집니다. 그때 당신은 절 정상적인
감정이 전혀 결여되어 있는 남자라고 틀림없이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다른 방법으로
구혼했더라면 당신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것을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당신이 말했을
때의 그 안색의 변화를 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 그 당시에 제가 했던 말을 되풀이하시지 마세요.
그런 회상은 아무런 소용이 되질 않으니까요.
확실히 해두지만 전 그 후 사뭇 그 일을 부끄럽게
여겨 왔던 거예요."
다아시는 그 편지에 대해 말했다.
"그 편지로 해서... 그것을 읽고 나신 후부터 곧 절
좋게 생각하시게 된 것이었던가요? 그 편지를
읽으시고 내용을 얼마간이라도 믿으시게 되셨던가요?"
그녀는 그 편지가 자기에게 얼마만큼 효과를 줄 수
있었던가, 그때까지 마음에 품고 있던 편견이
점차 어떤 식으로 제거되어 갔던가를 말했다.
그가 말을 했다.
"제가 쓴 편지가 당신에게 고통을 주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편지는 찢어 없애 버렸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두 번 다시는 읽고 싶은
심정이 나지 않을 대목이 꼭 한 군데, 특히 편지
첫머리에 씌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미움을
사도 당연하다고 생각될 만한 대목을 전 몇 군데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의 애정을 지속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편지는 어김없이 불에 태워 버려야
하겠지만 저의 생각이 전혀 변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는 볼 수 없는 이유가 저희들 사이에 있더라도
불에 태워 버렸기 때문에 이러니저러니 할 만큼
쉽사리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 생각해요."
다아시가 대답했다.
"그 편지를 썼을 당시 전 완전할이만큼 침착하고
냉정했다고 생각했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깜짝 놀랄 정도로 화가 난 기분으로 썼던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 그 편지는 화난 상태에서 쓰셨겠지만 끝
부분에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어요. 작별 인사
부분에 가서는 자애로운 마음씨 바로 그대로였구요.
그러나 편지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 마세요.
보내 오신 분과 받은 사람의 기분이 지금으로선 그
당시하고는 판이하다는 것이 되고 말았으니까, 그
편지에 따르는 불유쾌한 일은 깡그리 잊어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저의 철학을 얼마간 배우셔야
되겠어요. 과거는 즐거운 일만 생각하자는 게 저의
철학이지요."
"그런 종류의 철학이라면 신용을 못하겠는데요.
당신의 추억은 전혀 비난할 만한 일이 없는 것이니까
그 추억에 의해 생겨나는 만족감은 철학에서 빚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더욱 좋은 일이 되겠습니다만
아무것도 후회할 일을 모르는 데서 온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하거든요.
쫓아 버릴 수도 없으며 쫓아 버려서도 안되는 고통에
찬 추억이 쇄도해 오기 때문입니다. 전
지금까지 사뭇 이론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았지만
실천에 있어서 이기적인 인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올바르게 행동하라는 교육은 받았지만 저의 기질을
고치라고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높은 경지의
도의는 배웠습니다만 거만과 자부심만으로써 그것을
추구하게 내버려두었던 것입니다. 불행히도
독자여서(오랜 세월을 동생 없이 혼자 지냈으니까요)
부모님이 절 너무 제멋대로 내버려두었던
것입니다. 부모님께선 두 분이 다 좋은
분들이었지만(특히 아버지는 자비로왔으며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셨지만) 절 이기적인데다 거만스럽도록 내버려두고
북돋아 주고 거의 가르쳐 주시기까지 했어요.
제 친척 일가를 빼놓고는 누구한테든지 아랑곳하지도
않고 그 나머지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업신여기고, 적어도 그들의 양식이나 가치를 내
자신의 것과 비교해서 경시하도록 말입니다. 여덟 살
때부터 전 그러한 사람이었고, 만약 세상에서 둘도
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엘리자베드가 나타나지
않았던들 사뭇 지금까지 그런 인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모든 것이 모두 다 당신 덕분입니다.
처음에는 몹시 괴로왔으나 다시없이 유익한 교훈을
당신이 저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당신 덕분으로
전 겸손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고 즐겁게 해주는 데 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당신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시다면 선생님께선 제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물론 그랬었지요. 저의 허영심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전 당신이 저의 구혼을 바라고
또한 기대하고 계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태도가 혹시 실례일는지는 몰라도 제가 고의로
한 짓은 아니었어요. 선생님의 마음을 혼란하게
해드리려는 생각은 아예 없었지만, 기분 내키는 대로
엉뚱한 일을 저지르게 되는 때가 가끔 저에겐
있는 것 같아요. 그날 밤 이후로 꽤나 절
미워하셨지요."
"미워하다니요! 하긴 처음 한참 동안은 화났지만 저의
노여움은 바로 풀어졌습니다."
"저희들이 펨벌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이 절
어떻게 생각하셨을까를 지금 생각해도 겁이 나요.
제가 거길 가서 절 많이 욕하셨겠지요?"
"아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놀랐을 따름이지요."
"그렇지만 따뜻한 마음씨에 접했던 저의 경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예요. 제가 그토록
굉장하게 정중한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제
양심이 말했어요. 정직하게 말해서, 전 제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으리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아시가 대답했다.
"그 당시의 저의 목적은 될 수 있는 대로 정중히
함으로써 제가 지나간 일을 유감스럽게 생각할 만큼
야비한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비난을 귀담아들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당신의 용서를 구하고 저에 대한
오해도 풀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밖의 소망이 어느 정도의 속도로 뒤미처 따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당신을 만나고 나서 반
시간쯤 지나서였나 봅니다."
그리고 나서 조지아나가 그녀와 알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더라는 이야기와 돌연 그것이 중단되어
실망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가 리디어를 찾기 취해
더비셔에서 자기의 뒤를 따라오기로 결심했던 것은 그가
아직 여관을 떠나기 이전의 일이었으며,
거기서 그가 진지하게 생각에 잠기곤 했던 것도 결국
그러한 목적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가지 노고를
계산해 넣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하고 그것은 서로간에
너무나도 뼈아픈 화제가 되기 때문에 그 이상
소상히 말하지 않기로 했다.
몇 마일을 천천히 걷고 난 끝에 이야기가 빠르게
돌아가는 바람에 깨닫지를 못했지만 이윽고 시계를
들여다보니 이미 집에 돌아가 있어야 할 시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빙리 씨와 제인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하고 깜짝
놀라면서 이야기는 이내 그 두 사람에 대한 일로
옮아갔던 것이다. 다아시는 두 사람의 약혼을 기뻐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가 벌써 그에게 그 일에 대한
보고를 일찌감치 끝냈던 것이다.
"놀라셨는지 아닌지 꼭 물어봐야겠는데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전혀. 제가 여길 떠나면서 곧 그렇게 될 걸로 알고
있었어요."
"말하자면 허가를 내려 주신 게로군요. 그런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허가라는 말을 듣자 그가 큰 소리로 질렀지만 대충
사정이 그 정도였으리라고 그녀에게는 짐작이 갔다.
"제가 런던으로 떠나던 전날 밤 그에게 한 가지
고백을 했는데요, 그것은 이미 옛날에 했어야 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 일어났던 자초지종을 다
그에게 말해 줌으로써, 전에 그의 문제에 간섭한
것이 터무니 없이 주제넘은 짓이었음을
주지시켰습니다. 그는 대단히 놀라더군요. 그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나아가 제가 평소에 당신
언니가 그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제 자신의 계산 착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언니에 대한 그의 애정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을
전 금방 알 수가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결혼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고 느꼈던 것입니다.".
엘리자베드는 친구를 좌지우지하는 그의 소박한
태도에 웃음이 저절로 나오게 되었다.
"선생님 자신의 관찰에서 하신 말씀이셨던가.
선생님께서 언니가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말이에요, 아니면 혹시 지난 봄에 저한테서 들으신
것을 단지 알려 드린 것에 불과한 건가요?"
"전자의 경우입니다. 최근에 두 번 댁을 방문했었는데
그 동안 전 언니를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그분의 애정에 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증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곧 확신하신
게로군요."
"그렇습니다. 빙리는 본래 꾸밈없고 겸허한
사람입니다. 워낙 걱정스런 일에 있어서는 소심한
나머지 자신의 판단에 의존하지 못하고 그저 저에게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꼭 한가지 일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때문에 한참 동안 그를 화나게
해주었지만 그것도 무리가 아닌 일이었습니다.
언니께서 지난 겨울에 3개월 가량 런던에 가 계셨는데
제가 그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계획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던 사실을 더 이상 감추어 둘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는 정말 화를 내더군요. 그
노여움도 언니의 감정에 대한 의구심이 싹 가시게
되자, 그 이상 지속되지를 않았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절 용서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드는 빙리 씨가 매우 유쾌한 친구이며,
남에게 쉽사리 이끌리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사람이라고 평하고 싶었지만
자신을 억제했다. 다아시 씨야말로 앞으로 남의
웃음을 사는 일을 배워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 그렇게
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는 물론 자기 몫보다는 못할 빙리의 행복을
기대하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얘기를 계속했다.
현관에서 두 사람은 헤어졌다.
59
"얘 리지야, 너 어디까지 걸어갔다 왔니?"
엘리자베드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곧 제인에게서 받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식탁에 자리잡자 모든
사람들로부터 받은 질문이었다. 둘이서 걷다가 보니
어느 틈에 어딘가도 모르는 곳까지 가 버렸다고
대답할 도리밖에 없었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얼굴을
붉히기는 했지만 그 일로 해서 또 다른 일로서도
진실을 추측해 내기란 어려웠다.
그날 밤은 별일 없이 조용히 보낼 수가 있었다.
인정받은 연인들은 끊일 사이 없이 이야기를 나눴고,
반면 인정받지 못한 연인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아시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행복이 넘쳐흐르는
기질이 아니었으며, 엘리자베드는 마음이 혼란해
있었지만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그러하다는 상태임을 알 뿐이었다.
왜냐하면 당장의 당혹함도 문제지만 그녀 앞에는 다른
어려운 일이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사실이 알려지고 말
경우에 가족들이 어떻게 느낄 것인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제인을 제쳐놓고 그에게 호감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그들에게는 그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것으로서도 제거해 낼 수 없는 혐오의 정이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밤에야 제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남을 의심하지 않지만, 대체로 제인은 좀처럼 이런
경우는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 상태였다.
"너 지금 농담하고 있구나, 리지야.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다아시 씨와 약혼하다니! 안돼,
안돼, 난 안 넘어간다. 안된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다."
"시작부터 이건 정말 너무해요! 언니만 잔뜩
믿었었는데, 언니마저 안 믿어 준다면 누가 믿어 주겠수.
언니, 나 정말 진지한 거예요. 사실만을 얘기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분은 날 사랑하고 계시고
우리들은 약혼했어요."
제인은 의아스럽게 그녀를 바라다보았다.
"아, 리지! 이럴 수가 없다! 난 네가 그분을 얼마나
싫어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단다."
"언닌 이번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계세요. 그
일은 완전히 잊어 버려야 해요. 나도 지금처럼
그분을 사뭇 사랑해 왔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이런
경우에 기억이 좋다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에요. 이번을 끝으로 난 지난 일은 회상하지
않기로 했어요."
베네트 양은 여전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더욱 더 진지하게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시켰다.
제인이 외쳤다.
"놀랐어!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렇지만 이젠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구나. 얘 리지야, 난 축하해
주고 싶은 거야. 아냐. 정식으로 축하한다. 그렇지만
확실하냐? 이런 질문하는 걸 용서해 줘. 그래 그분
하고 같이 살면 너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으냐?"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부가 되겠다고 벌써 우리 사이에선 정해
버린 걸요. 그런데 언닌 마음에 드셨나 몰라? 그런
친척을 맞게 되니 좋으시겠죠?"
"너무너무 좋다. 빙리나 나에겐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니. 우린 생각은 해봤다만 쉽게 될
일 같지가 않다고 말해 왔어. 그래 너 진정으로
그분을 죽도록 사랑하고 있는 거냐? 얘, 리지야,
애정 없는 결혼은 신중해야 하는 법이다. 네가 마땅히
느껴야 할 만큼의 애정을 갖고 있다고 확신할
수가 있냐?"
"아, 있구말구요! 자초지종을 말해 버리면 당연
이상의 애정을 내가 느끼고 있다고 언니는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무슨 뜻이냐?"
"그런데 난 빙리 씨보다는 그분을 더 사랑하고 있다고
자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언니가
화내 실까 두렵지만"
"얘, 너 제발 좀 진지했으면 한다. 난 지금 너하고
매우 진지하게 말하고 싶은 거야. 빠짐없이 내가
몰랐던 일을 다 얘기해 주려무나. 너 언제부터 그분을
좋아하게 됐는지 들려 줄래?"
"너무나 서서히 그렇게 돼버리고 말아서 언제 시작된
것인지를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펨벌리의
아름다운 저택을 처음 봤을 때부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진지해지라고 다시 한 번 부탁을 하자 이윽고
그녀는 엄숙하게 애정을 보증함으로써 제인을
납득시키기에 이르렀다.
그 점이 확인되고 나자 베네트 양은 그 이상 아무것도
바랄 수가 없었다.
제인이 말했다.
"자아, 이젠 난 정말 행복한 거야. 네가 나나
다름없이 행복하게 되었으니까. 난 늘 그분을 존경했던
거야. 그분이 널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라도 늘
그분을 높이 평가했을 거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빙리의 친구로서 너의 남편이지만 내게 더욱 중요한
사람은 빙리와 너뿐이다. 하지만 리지야, 넌
사람이 너무 엄큼했어, 나에게까지 감추고 있다니.
펨벌리나 램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말해
주질 않았잖니! 그것에 대해 내가 알게 된 것은 딴
사람을 통해서였지 네 입을 통해서가 아니란
말야."
엘리자베드는 비밀로 한 동기를 털어놓았다. 전에는
빙리의 이름을 들추기가 싫었었고 그녀 자신의
감정이 결정된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동시에 다아시의
이름도 피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일이 이쯤 되고 보면 그가 리디어의 결혼에 한 몫
끼여들었었다는 사실을 언니에게 감추어 두고 싶지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음으로써 그날 밤의 나머지
대화도 이어나가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창가에 서서 베네트 부인이 외쳤다.
"아니 이럴 수가! 저 불쾌한 다아시 씨가 어쩌자고
우리 빙리하고 이리로 오는 거지! 그래 사시장철
우릴 못 살게 구니 도대체 어쩌자는 걸까? 사냥을
간다든가 딴 일을 할 것이지 어쩌자고 우릴
찾아와서 방해하는지 모르겠어. 그 사람을 어떡하면
좋을까? 리지야, 너 또 그 사람하고 산책이라도
가서 빙리 씨의 방해가 안되도록 해 다오"
엘리자베드로서는 이토록 편리한 제안을 받고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어머니 쪽에서
그에게 항시 그런 형용사를 붙이는 데 대해서는 몹시
불쾌했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이내 빙리는 의미심장하게 그녀
쪽을 바라다보고 온정 어린 악수를 청해 왔기
때문에, 그가 좋은 소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서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베네트 부인, 리지가 오늘 미아가 될 만한 사잇길이
이 근방에 이젠 없겠습니까?"
베네트 부인이 받았다.
"다아시 씨와 리지 그리고 키티에게 권하고 싶은데요.
오늘 아침에는 오컴 산으로 산책 가도록 해요.
쾌적한 산책이 될 것이고 다아시 씨는 그쪽 경치를
아직 못 보셨을 테니까요."
빙리 씨가 대답했다.
"딴 분들에게도 정말 좋겠습니다. 그러나 키티에게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럴까, 키티?"
키티는 차라리 집에 남아 있겠다고 말했다. 다아시는
산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몹시 보고 싶다고
호기심을 드러냈고 엘리자베드는 잠자코 동의했다.
준비를 하려고 2층으로 올라갔더니 베네트 부인이
뒤따라와서 말했다.
"리지야, 너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 되고 말았구나.
네가 싫어하는 남자를 떠맡아 버렸으니. 그렇지만
넌 괜찮겠지. 이 모두가 네 언니를 위해서 그러는
거다. 더우기 그 사람한테 말을 가끔씩만 건네도록
하고 그 이상은 필요치 않으니 무리해 가면서까지
불편한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하여라."
산책하는 동안에 그날 저녁으로 베네트 씨의 승낙을
얻기로 결정을 보았다. 엘리자베드는 어머니의
동의는 자기가 도맡기로 생각했다.
어머니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그녀로서는 분간할 수
없었지만 그만한 재산과 지위 같으면 그 인물에
대한 어머니의 혐오의 정을 깨뜨릴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가끔 떠오르기도 했다. 정작
어머니가 이 연분에 대해 대단히 반대하고 나서든,
아니면 맹렬히 기뻐 날뛰는 양단간이겠지만,
어머니의 태도는 미상불 양식이 있다고 칭찬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녀로서는 어머니가 강하게 반감을 폭발시키는 것에
못지 않게 기쁨에 들뜬 그런 말도 다아시 씨에게는
들려 주고 싶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베네트 씨가 서재로 물러나자 다아시
씨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의 뒤를 쫓는 것을
그녀가 보았을 때의 그녀의 마음의 갈등은 더욱 격렬해
갔다. 아버지의 반대를 두려워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불행하게 될 것이며, 그것마저 자기 때문인
것이며 아버지에게 가장 귀여운 자식인 자기가
결혼 상대 선택 방법으로 하여 아버지를 괴롭혀 드리고,
자신의 결혼 때문에 아버지께 눈물과 유한을
남길 것이라고 생각하니 암담해졌다. 비참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다아시 씨가 재차 나타나서 그를
보았을 때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을 보고 약간 기분이
홀가분해지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그는 그녀가 키티와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서면서 뜨개질하는 그녀를
칭찬하는 체하면서 속삭였다.
"아버님에게 곧 가 보도록 하시오.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녀는 그 길로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자못 엄숙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방안을 거닐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리지야, 넌 지금 뭘 하고 있지? 그런 남자를
받아들이다니 너 정신 나간 게 아니냐? 넌 평소에 그
사람을 미워해 왔던 게 아니냐?"
바로 그때 그녀는 이전의 자기의 생각이 더욱
이성적이었고 그 표현이 좀더 온건한 것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생각에 잠겨 보는 것이었다. 만약 그랬었던들
지금 와서 몹시 어색한 변명이나 고백을 하지
않아도 될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 당장 그 짓이
필요하므로 그녀는 적잖이 혼란해지면서 다아시
씨를 사랑하고 있다고 아버지에게 분명히 말했다.
"말을 바꿔 하자면 넌 그 사람을 네 남편으로
삼겠다고 결심했단 말이지. 확실히 그 사람은 부유한
처지니까 넌 제인보다도 더 훌륭한 옷이나 마차를
가질 수가 있겠지. 그러나 그것만으로 네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엘리자베드가 물었다.
"또 다른 반대 조건이 있으세요?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믿고 계시는 일 외에
말씀이에요?"
"전혀 없다. 그러나 그 사람이 지나치게 거만을 떨고
불쾌한 사람이란 걸 우리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터다. 하긴 네가 진정 그를 좋아하고 있다면야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만?"
눈에는 눈물이 괴기 시작하면서 대답했다.
"전,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해요. 전 그분을 사랑하고
있어요. 사실은 그분은 도리에 벗어나는 그런
자부심 같을 것을 갖고 있지 않아요. 매우 부드러운
분이에요. 그분의 사람됨을 아버지께선 모르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분 말씀을 그런 식으로
하셔서 절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아버지가 말했다.
"리지야, 난 일단 승낙을 해두었다. 그와 같은 사람이
고개를 숙여 가며 청을 해오게 되면 나로선
무엇 하나 거절할 용기가 없어지고 마는구나. 네가 그
사람을 남편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면
지금 너에게도 승낙을 해주마. 그러나 충고해
두겠다만,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면 어떻겠니. 난
너를 잘 알고 있다. 리지야. 난 네가 남편을 진정으로
존경하지 않거나 남편을 너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우러러보지 않을 때는 행복해질 수도 없고
존경받을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너의 발랄한 재간이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했다가는
너를 최대의 위험 속에 몰아넣고 말 것이다.
불명예나 불행을 면할 길이 거의 없을 게야. 리지야,
네가 생애의 반려자를 존경 못하는 꼴을 이
아버지가 보지 않도록 해 다오. 넌 네가 하려는 일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엘리자베드는 한층 더 감동해서 열심히 그리고
숙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아시 씨만이 진정
자신의 평가가 점차 변해져 왔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그이 애정이 또한 하루에 생겨난 게 아니라
수개월을 두고 위험의 시련에 견디어 온 것임을 알리고,
그 사람의 장점을 샅샅이 늘어놓음으로써,
끝내는 아버지의 불신을 극복해 버리고 그 혼담을
승복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녀가 말을 다 마치고 나자 말했다.
"그렇다면 난 이젠 더 할 말이 없구나. 사정이 정
그렇다면 그 사람은 너에게는 천생연분인 거다.
그만큼 가치가 큰 인물이 아니라면 난 널 넘겨 줄 수가
없느니라. 리지야."
더욱 인상을 좋게 하려고 그녀는 다아시 씨가
자진해서 리디어에게 베풀어 준 일을 들려 주었다. 그
말을 듣자 아버지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정말 오늘 밤은 기적의 밤이다! 그래 다아시가 모든
일을 다 해치우고 말았구나. 혼담을 성립시키고
돈을 내주고 그 사내의 빚을 대신 갚아 주고 장교로
임명까지 해주고 말았다는 거냐! 그건 더욱
좋구나. 물심 양면의 걱정거리가 없어지는 셈이로구나
너의 외숙부가 그렇게 했더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갚아 주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연애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그대로 행동하고 마는
것이다. 내가 내일 돈을 갚겠다고 제안해 보겠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너를 사랑한다고 외치며
뛰어다닐 게고 그걸로 그 문제는 끝장이 나고
말겠지."
그리고 그는 2, 3일 전에 콜린즈 씨에게서 온 편지를
읽었을 때 그녀가 당황해 하던 일을 회상해
내면서, 그녀를 보고 한참 동안 웃고 나더니 이윽고
그녀더러 나가도 좋다고 했다. 그녀가 방 밖으로
나가려 했을 때 그가 말했다.
"혹시 어떤 젊은 남자들이 메어리나 키티 일로 해서
찾아오거든 이리로 안내하도록 하여라. 난 지금
한가하니까."
엘리자베드의 마음은 몹시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반
시간쯤 자기 방에서 조용히 상념에 잠겼다가
짐짓 침착해진 기분으로 모두 있는 곳으로 나오게
되었다.
모든 일이 지금 끝난 판이라 명랑해질 겨를이
없었으나 그날 밤은 조용히 지나가고 말았다. 이젠 더
걱정해야 할 중대사라고는 없으니까 이럭저럭 평온과
단란한 즐거움을 맛보게 되겠지.
밤이 이슥해서 어머니가 화장실로 올라갔을 때 그녀는
어머니의 뒤를 따라가서 이 중대한 사실을
전해 주었다.
그 결과는 전혀 이상한 상태고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처음 듣자 베네트 부인은 앉은 채로
움직일 줄 모르며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원래 가족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든가
누군가가 연인으로서 딸 중의 하나를 찾게 되면
그것을 믿는 데 있어서 꾸물거릴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러면서도 몇 분이 지나고 또 지나도 귀에
들어온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그녀는 제정신을 되찾게 되었으며 의자에
몸을 의지한 채로 안절부절 불안하게 몸을
움직였으며,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대경실색하고 나서
자신을 축복하기에 이르렀다.
"이럴 수가! 어떻게 된 걸까! 말을 못하겠네! 아니
다아시 씨! 그걸 누가 생각했겠어? 사실일까?
아, 귀여운 내 자식 리지야! 너 이젠 부자가 되겠고
지체도 높아지겠구나! 용돈이랑 보석이랑 마차랑
다 갖게 되겠구나! 제인 것은 비교가 안되겠다. 문제가
안돼. 난 너무 행복하다. 너무 행복해! 그렇게
매력 있는 남성! 그렇게 잘 생기고! 그렇게 키도 크고!
아, 귀여운 리지야! 내가 어쩌자고 그런 분을
싫어했던가, 제발 나 대신 사과를 해주려무나.
그분께서도 너그럽게 봐주시겠지만. 귀여운 내 딸 리지!
그래 런던에 저택도 있고! 하나에서 열까지 다 훌륭하고!
딸을 셋을 치웠어! 일 년에 1만 파운드! 아, 하느님! 전 어떻게
되는 겁니까? 미칠 것만 같구나"
이 정도면 벌써 어머니가 승인한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이와 같은 감정의 발로를 자기 혼자만 들은 것을 기뻐하면서 엘리자베드는
바로 그 장소를 뜨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가 자기 방에 들어가서
3분도 채 못되었는데 어머니가 그녀 뒤를 따라 들어 섰다.
그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얘야. 난 딴 일은 아무것도 생각 못하겠구나! 일 년에 1만 파운드, 아냐 아마
그 이상이 될 것 같다고 그러더라! 귀족이나 다름없는 처지다! 게다가 특별인가!
그 특별인가에 의해서 결혼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게 만들어야지! 그렇지만
얘야, 다아시 씨는 특히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지 알려 주려므나.
내가 내일 만들어 주려고 그런다."
그것은 그 신사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가 어떠한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슬픈
조짐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엘리자베드는 그 사람의 더할나위 없는 뜨거운
애정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고 나아가 친척의 승낙도 있으면서도 아직 무언가
흡족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튿날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잘 되어 갔다. 왜냐하면
다행스럽게도 베네트 부인은 미래의 사위감에 대해 위엄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친절을 베푼다든가 그의 의견에 대해 공손하게 승복하는 것 말고는,
그에게 감히 말 붙일 용기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드는 아버지가 그와 친숙하게 지내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서 기쁘게
생각했다.
베네트 씨는 그동안 그를 존중하고 싶은 기분이 매 시간마다 고조되기만
한다는 것을 그녀에게 확언했다.
베네트 씨가 말했다.
"나는 세 사위들에 대해 크게 감사하고 있어. 아마 위컴 군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너의 남편될 사람도 제인의 남편에 못지 않게 좋아질 거다."
60
엘리자베드의 기분은 고조되어 다시 장난기가
되살아나서, 다아시 씨더러 어떻게 해서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가 물었다.
"처음에 어떻게 된 거죠? 일단은 개시하시기만 하면
신나게 진행시켜 나간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어떤 일로 시작하도록 만들게 된 거지요?"
"기초가 된 그 시점, 장소, 용모, 말 같은 것들은
확실치가 않습니다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벌써 중간쯤에 와
있었습니다."
"제가 예쁘다는 것은 처음엔 인정하지 않으셨던
거예요. 그리고 저의 태도에 대해선, 선생님에 대한
저의 행동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한결같이 무례할
정도였으며 선생님에게 말을 건넬 때는 어떻게
해서든지 선생님에게 고통을 드리려고만 생각했었죠.
어서 진정으로 말씀해 주세요. 저의 건방진
점이 마음에 드셨던가요?"
"당신의 마음이 발랄했기 때문이죠"
"차라리 그것은 건방지다고 말씀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별 차이가 없으니까요. 사실
선생님께선 정중한 대접이나 경의나 지나친 친절에는
그만 역겨워지셨던 거예요. 늘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에서 말을 하고 체하는 여성들에게
신물이 나셨던 거예요. 전 그런 여자들하고는 전혀
달라서 선생님에게 자극을 주고 흥미를 갖게
했을는지도 모르는 일이죠. 선생님께서 상냥스런 분이
아니었던들 그 때문에 절 미워하셨을는지도 모를
일이죠. 그러나 자신을 감추려고 애써도 선생님의
기분은 늘 고상하고 정당하셨어요. 이젠 이걸로서
이유를 설명하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됐죠.
진정으로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해 볼 때 이것으로써
완전히 이치에 맞는 것이라 생각하게 됐지요.
확실히 선생님께선 저의 좋은 점을 모르시고
계세요. 그렇지만 누구나 연애를 하게 되면 그런 것은
생각 않는 법이죠"
"제인이 네더필드에서 앓아 누웠을 때 당신의
애정 어린 그 태도 속에는 당신의 좋은 점이 조금도
없었던 것일까요?"
"제인 언니한테 말이죠! 제인 언니를 위해서라면
누군들 그 정도의 일을 안하겠어요? 하지만 어쨌든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을 장점으로 만들어 보세요.
선생님은 저의 장점을 지켜 주시고 그리고 그것을
될 수 있는 한 과장하려고 하시는군요. 그 대신에
자주 선생님을 놀려 드리고 말다툼을 할 기회를
찾는 것을 제일로 삼겠어요. 그래서 직선적으로
질문드리겠는데요, 어떻게 해서 최후에 가서 요점을
끄집어내시길 그토록 싫어하셨던가요? 맨 처음
방문하셨을 때나 나중에 식사하러 오셨을 때 왜
그렇게 절 피하기만 하셨던가요? 특히나 방문하셨을
때는 전혀 저 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식의
표정을 짓고 계시지 않았어요?"
"당신이 언제나 엄숙하고 침묵만 지키고 있어서
조금도 절 격려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 입장은 난처했던 거예요."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식사하러 오셨을 때만 해도 좀더 얘기해 주실 수
있었잖아요."
"감정이 부족한 사람 같았더라면 그럴 수도
있었겠죠"
"선생님은 이치에 맞는 대답만 하시고 전 이성을
가지고 그것을 인정하게만 되니 꽤나 불운한
일이군요! 그렇지만 선생님을 그대로 혼자
내버려두었더라면 언제까지 그 상태로 계셨을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겠지요! 그리고 이쪽에서 묻지 않았던들
언제 입을 떼실 참이셨던가요! 리디어에게
베푸신 친절에 대해서 감사드리겠다는 저의 결의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거예요. 혹시 너무 큰
소리를 친 것이 아닐까요. 만약 저희들의 기쁨이
약속을 깨뜨리거나 하는 데서 오게 된다면 도덕은
어떻게 되고 말겠어요? 왜냐하면 전 그 문제를 말하지
않았어야 했던 거예요. 이건 정말 잘못된
일이었어요."
"괴로와하실 것까진 없습니다. 도덕이란 언제나
완전무결한 것입니다. 우리들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했던 캐더린 부인의 용서받지 못할 노력은 저의
의심을 깨끗이 제거해 버리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현재의 저의 행복은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시려 드는
당신의 강한 소망 때문이 아닙니다. 전 당신
쪽에서 먼저 말해 오기를 기다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모님이 가지고 오신 소식이
희망을 주었기 때문에 전 모든 일을 알아 버리겠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캐더린 부인께서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용이
되셨는데, 그분 자신께서도 매우 만족하시고
계시겠지요. 남에게 소용되시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니까. 그렇지만 말씀해 주세요, 왜 네더필드까지
오셨던가를. 그저 롱본까지 말을 타고 오셔서
당황하려고 오셨던 거예요? 아니면 더욱 중요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였던가요?"
"저의 목적은 당신을 만나 보고서 되도록이면 당신의
애정을 과연 기대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제가 공언했던 목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제 자신에게 공언했다고 할 수 있는 목적은,
언니께서 여전히 빙리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탐지해서는,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 통고해 줄
참이었습니다. 당연히 그후에 그것을
해치웠습니다만"
"캐더린 부인께 신상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를 말씀드려볼 용기가 있으세요?"
"저에겐 용기라기보다는 시간이 없다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엘리자베드. 그렇지만 그것을 꼭
해치워야 합니다. 종이 한 장만 주어 보십시오,
간단하게 처리해 버릴 테니까요."
"전 제 손으로 편지 쓸 필요가 없다면 어떤 젊은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옆에 앉아서 선생님의 글씨를
칭찬해 보겠어요. 그렇지만 저에게도 이 이상 더
등한히 해선 안될 숙모 한 분이 계세요."
엘리자베드는 가디너 부인이 보내 온 긴 편지에 대한
답장을 아직 않고 있었는데, 이유인즉 자신과
다아시 씨 사이의 친밀도에 대해서 외숙모가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자진해서 말할 기분이 내키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더할나위없이 환영해 주리라
생각되는 이번 일을 알려주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외삼촌과 외숙모 두 분이 사흘 동안씩이나
기쁨을 모르는 채로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다음과 같은 사연을 쓰게 되었다.
외숙모님, 실로 자상스런 편지 받고 좀더 일찍
고맙다는 인사말씀을 드려야 마땅하였사옵니다만,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조카의 기분이 언짢은 바 있어
도저히 편지를 쓸 수가 없었사옵니다.
외숙모님께서는 사실 이상으로 상상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좋을
대로 상상하셔도 돼요. 마음대로 공상의 활개를
펴셔도 좋으시고 이 주제로서 가능한 한도에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펴나가셔도 좋아요. 제가 벌써 결혼해
있다고 믿으시는 것 이외엔 별로 잘못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시 한 번 편지를 써 주셔서
저번보다도 더 많이 그분 칭찬을 해주셨으면 해요.
호반 지방으로 가지 않게 되었던 점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그 얼마나 바보였는지
몰라요! 망아지에 관한 일은 외숙모님의 재미있으신
생각이세요. 저희들은 매일 저택을 거닐기로
하겠어요. 전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에요.
하기야 전에도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저만큼
정확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제인보다도 전
행복하니까요. 언니는 미소를 짓겠지만 전 큰소리를
내며 웃고 있죠. 다아시 씨가 저한테 베풀지
않아도 될 애정은 다 숙모님께 보내드리고 싶대요.
크리스마스 땐 여러분께서 모두 펨벌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어요.
캐더린 부인 앞으로 보낸 다아시 편지는 그
문제부터가 엘리자베드의 것과는 달랐지만, 그 두 편지
어느 편하고도 다른 것은 콜린즈 씨가 먼저번에 보내 온
서신에 대한 회신으로 베네트 씨가 쓴 바로
그것이었다.
근계
다시 한 번 축하의 일로 귀하께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내 딸 엘리자베드가 얼마 안 있어 다아시
씨의 부인이 되게 되었습니다. 캐더린 부인을 되도록
위로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
입장이라면 오히려 조카 편을 들겠습니다. 그 편에서
증여성직록을 더 많이 따게 될 것이니까요.
경구.
눈앞에 다가오는 오빠의 결혼을 축하하는 빙리 양의
편지는 애정만은 깃들었어도 성의가 없는 그러한
것이었다.
그녀는 또 제인에게도 이 일에 관해 편지를 내어서
기쁨의 말을 전하고 기왕에 표명했던 대로의
친애의 정을 되풀이했다. 제인은 현혹되지는 않았으나
감동을 받았고, 그녀를 신뢰할 수는 없었으나
상대방이 받을 자격이 없으리라 생각될 만큼 다정한
사연의 회답을 보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아시 양이 같은 내용 후 표시한 기쁨은, 보고를
보내 왔던 오빠의 그것에 못지 않게 진정한
것이었다. 그녀의 기쁨과 올케에게서 사랑을 받고 싶은
진지한 글을 쓰기에는 편지지 넉 장도 모자라는
형편이었다.
콜린즈 씨한테는 회신이 없었고, 그의 아내로부터도
엘리자베드에게 이렇다 할 축하의 편지가 오지
않은 중에 롱본의 사람들은 콜린즈 부부가 루커스 경에
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 갑작스런
이전의 이유는 곧 명백해졌다.
캐더린 부인이 조카의 편지 내용에 대해 대단히
분노했기 때문에 샬로트는 마음 속으로는 이 혼인을
기쁘게 생각하면서도 폭풍이 가라앉을 때까지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 이럴 때 친구가 오게 된 것이 엘리자베드에게
다시없이 기뻤다. 하기야 몇 차례 만나면서
다아시 씨가 그녀의 남편에게서 드러나게 아첨하는
것을 보자 엘리자베드는 친구를 만나는 기쁨 꽤
비싸게 사들여야 할 물건이라고 생각해야 할
형편이었지만. 그러나 다아시는 찬양할 만큼 침착하게
곧잘 참아 나갔다.
윌리엄 루커스 경이 당신은 이 지방에서 제일 빛나는
보석을 가지고 가게 되었다고 인사를 치르고,
세인트 제임즈 궁정에서 모두 서로가 만나고 싶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귀담아듣고 있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을 때도 윌리엄 경의 자태가 보이지
않을 때였다.
필립스 부인의 저속함은 그에 있어서는 또 하나의
그리고 아마도 참기 어려운 인내력의 시련이 되어
버렸다. 필립스 부인은 언니와 마찬가지로 그를 너무나
어려워했기 때문에 빙리의 명랑함에 끌려들었을
때와 같은 친숙한 태도로는 도저히 이야기를 할 수
없었으나 일단 입을 열고 나면 결국은 저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존경심에서 그녀는 여느 때에 비해
조용해졌지만 고상해지기를 바라기는 힘들 것
같았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이 두 사람을 눈여겨 보지
못하도록 갖은 애를 다 썼으며 고통 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식구나 그녀 자신에게만 그의 주의를
붙잡아 두려고 고심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에는 생겨나는 불유쾌한 기분은 약혼
기간에서 많은 기쁨을 잃기는 했지만, 장래에 대한
희망은 더해 가는 것이었다. 자기들에게 조금이라도
달갑지 않은 사람들한테 떨어져서 펨벌리의 가족
파티에서 있을 모든 아늑함과 우아함을 향해 떠나게 될
날을 그녀는 즐거운 심정으로 기대해 보는
것이었다.
61
베네트 부인은 가장 자랑스러운 두 딸을 시집보내는
날 어머니로서의 섭섭한 마음보다는 행복함이 더
앞섰다. 그 후로 그녀가 얼마나 자랑스런 기쁨을
지니고서 빙리 부인을 찾았으며 또 다아시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가는 추측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작가인 나로서는 그녀의 가족들을 위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녀는 그토록 많은 딸들에게
짝지워 주려는 간절한 소원을 성취했으므로 그 후에
있어서는 나날은 한결 현명하며 상냥스럽고 분별 있는
부인이 되는 행복한 결과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토록 현저한 형태로 바뀐 가정의 행복이
구미에 맞지 않을지도 모를 그녀의 남편에게는, 처가
이따금 신경질을 부리고 여전히 바보스럽게 지내는 편이
행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베네트 씨는 둘째딸이 없어지자 몹시 허전하게 여기게
되었다. 다른 일보다 딸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는 가끔 집을 비우곤 했다. 펨벌리에 가는 것도
그나마 상대방이 거의 예기치 않을 때를 골라서 가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빙리와 제인은 네더필드에서는 1년 정도밖에 머물지를
않았다. 어머니가 메리튼의 친척 바로
가까이서 지낸다는 사실은 그의 태평스런 기질에서나
그녀의 애정 어린 마음으로서도 바람직한 일은
못되었다. 그의 자매들의 뜨거운 염원도 그리하여
성취도고 만 것이다. 그는 더비셔 근처 지방에다
땅을 샀다. 제인과 엘리자베드에게는 행복의 원천이
달리 많이 있었겠으나 그것들에 첨가해서 서로가
30마일 이내에서 살게 되었다.
키티가 대부분의 시간을 두 언니들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실질적인 은혜가 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의 사교계에
나오게 되자 그녀의 향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리디어만큼 겉잡을 수 없는 그런 성질도 아닌데다가
리디어를 본받을 필요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적당히 주의와 감독을 받게 되자 그 전에 비해 덜
조급하고 덜 무지하고 덜 단순해졌다.
리디어와 접촉한다는 불리한 상태에서는 물론 주의
깊게 피하게 만들었다. 위컴 부인은 때때로 젊은
남자들을 불러다가 무도회를 개최한다고 약속도 하고
체류하게끔 초청해도 그녀의 아버지는 절대로
보내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집에 남게 된 딸은 메어리 뿐이었고, 베네트 부인은
혼자만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성미여서 학예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를 곧잘 불러들이곤 했다.
메어리는 전에 비해 세상과 훨씬 많이 접해야 했지만
매일 아침 손님이 오는 데 대해서는 꽤 참을 수가
있었다. 이제는 언니들의 아름다움과 자기를
비교해서 굴욕을 느낄 필요가 없어져서 기꺼이 이러한
변화에 따르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아버지는
추측해 보는 것이었다.
위컴 리디어에 관해서 말하자면 두 사람의 성격은
언니들이 결혼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위컴은 엘리자베드가 이제는 전에 몰랐었던 자기의
은혜를 저버리거나 기만을 다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믿어 가면서 그것을 냉정하게 참아 나갔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지만, 다아시를 설득하기만
하면 아직 재산을 한 몫 만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혀 저버리지는 않았다. 엘리자베드가 결혼했을
때 리디어에게서 받은 축하의 편지는
위컴 장본인은 모를 일이나 적어도 그의 아내는 그러한
희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명백히
했던 것이다. 편지는 다음과 같은 취지였다.
사랑하는 리지 언니에게
행복해지길 바래요. 내가 위컴을 사랑하는
반만큼이라도 언니가 다아시 씨를 사랑한다면 언니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언니가 큰 부자가
되셨다니 마음이 무척 기뻐요. 달리 별로 할 일이
없을 땐 우리들 생각을 해 주세요. 위컴이 무언가
궁중에 자리를 얻게 되었으면 바라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일에에요. 우리들은 어떤 도움 없이는
살아 나갈 만큼의 돈을 벌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매년 3, 4백 파운드 정도의 일자리면 무엇이든
좋겠군요. 그렇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거든 다아시
씨에겐 이 일을 말하지 말아 주어요.
마침 엘리자베드는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답장을 보내서 그런 따위의 요구나 기대는
일체 버리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자기의 용돈을 이리저리 절약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구원의 돈을 자조 보내 주었다. 그들의
수입만 믿고 무턱대고 허욕만을 부리고 장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않는 그들의 생활 방식에서는
먹고 사는 데도 힘들 것이라는 것을 그녀로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명백한 사실이었다 . 두 사람이
주둔지를 바꾸게 될 때마다 꼭 제인이나 그녀 자신
중의 어느 한쪽에서 계산서를 청산해 주기 위한 다소의
원조를 신청해 오곤 했다.
두 사람의 생활 방식은 평화 회복에 의해 제대하고
나서도 나무나 불안정했다. 두 사람은 값싼 주택을
구하느라 이리저리 이전해 다녔으며 그러면서도 언제나
분에 넘치는 생활을 했었던 것이다. 리디어에
대한 그의 애정은 얼마 안가 무관심 속에 빠져 버렸다.
그녀의 경우는 좀더 오래 지속되어 나갔다.
젊은 데다가 예절은 말이 아니었지만 남의 처가 된
사람으로서의 필수적인 체면을 손상하는 일만은
절대로 하려 하지 않았다.
다아시는 그 사나이를 펨벌리로 오게 한 적은 결코
없었으나 엘리자베드를 위해서 직장 일로는 그
후에도 원조해 주었던 것이다. 리디어는 남편이
런던이나 바아드로 나들이를 했을 때는 이따금
펨벌리로 찾곤 했다. 빙리 가정에는 두 사람이
찾아와서는 오래도록 머무르게 마련이어서 마음 좋은
빙리까지도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암시하기까지 하는
판이었다.
빙리 양은 다아시의 결혼을 매우 분하게 생각했지만,
펨벌리를 방문하는 권리를 지속시키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의 유한을 깡그리
저버리고 말았다. 전에 비해 조지아나가 좋아졌으며
다아시에게는 지금까지와 거의 다름없이 베려 했고
엘리자베드에게는 지금까지 입고 있던 예의를
한꺼번에 갚게 되었다.
펨벌리는 지금은 조지아나의 가정이 되었다. 시누이
올케 사이는 다아시가 원하던 그대로 되었다. 두
사람은 저마다 마음 속에 가졌던 바와 조금도 다름없이
사랑할 수가 있게 되었다. 조지아나는 세상에서
엘리자베드를 제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긴 처음
한참 동안은 오빠에게 말을 건넬 때의 올케의
발랄하고 장난기 어린 말투를 대할 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자기의 애정을 압도하고
남의 경의를 자기 자신 속에서 불러일으키곤 했던
오빠가 드러내 놓고 농담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지금껏 생각조차 미치지 못했던 지식을
얻게 되었다. 엘리자베드의 가르침에 따를 것
같으면, 오빠란 열 살씩이나 손아래인 누이동생에게는
함부로 하는 것을 허용치 않으나 남편이 되고
나면 아내에게 그것을 허용한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캐더린 부인은 조카의 결혼에 대해 매우 분개하고
있었다. 결혼 이야기가 정해졌다는 사실을
써 보냈던 편지의 회답 속에서 자신의 성격을 솔직이
노출시켰으며 꾸짖음이 극을 다했고 특히
엘리자베드에 대해서 그러했기 때문에 한참 동안 교제는
끊어지고 말았다. 마침내 엘리자베드의 설득에
의해 그는 상대방의 바르지 못한 예의를 너그럽게 보게
되고 화해를 구하는 심정이 되었다.
이모 쪽에서는 그보다는 더 완강하게 버텼지만,
그녀의 분노는 그에 대한 애정과 또 그의 아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 가를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고 말았다. 그리하여 펨벌리의 숲이 거기에 늘
있는 주부뿐만 아니라 런던에서 자주 방문하는 외삼촌
내외에 의해 더럽혀졌겠지만 그녀는 펨벌리로
그들을 방문하기로 뜻을 굽혔다.
두 사람은 가디너 부부와는 늘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를 더비셔까지 데리고 옴으로써
두 사람을 맺어 준 계기가 되었던 사람들에 대해 두
사람은 가장 갚은 감사를 가졌다.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쟝 폴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0) | 2023.01.23 |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1) (0) | 2023.01.23 |
제임스 데이비드 타임 퀼트 (1) (0) | 2023.01.22 |
제임스 데이비드 타임 퀼트 (2) (0) | 2023.01.22 |
제임스 처치워드 아틀란티스 (0) | 2023.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