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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존 레슬리 충격대예측 세계의 종말

by Casey,Riley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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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대예측 세계의 종말
존 레슬리
      서문 - 멸망의 위험 
    카터의 종말론
  21세기 말의 상황을 상상해보자. 1백 20억의 인간들이 지구 위를 걸어다니고 있지만, 모두 
곧 죽을 운명에 처해 있다. 오존층 파괴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환경오염이나 핵전쟁에서 비
롯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세균전 때문이라고 가정하자. 치명적인 어떤 바이러스가 잠복기
가 매우 길어서, 전세계 모든 곳으로 퍼질 때까지 아무런 조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바이
러스를 만든 나라에서 자기 보호용으로  만들었던 백신조차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 어떤 사람이, 하필이면 지구 종말이 다가온 맨 나중에 자기가 태어났느냐고 불만을 터
뜨린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1만 5천 세대나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재수없게도 그 1만 5천 
세대 중에서 더 이상 후손을 남길 수 없는 유일한 세대에 태어나다니..."
  이 사람의 푸념에서 뭔가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을까? 만일 지구 최후의 날이 서기 2090년
에 닥친다면, 인구 증가를 감안할 때 지금까지 지구에서  살아온 사람의 10분의 1이 아직도 
살아 있는 셈이 된다. 지금까지 지구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 중 10분의  1이나 살고 있는 
시대에 내가 속한다는 것은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이제 종말론(doomsday argument)을 살펴보자. 지능을 가진 종이 수만 종이나  거의 같은 
크기의 집단으로 우주에서 진화하게 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을 특별히 
'아주 일찍 출현한 종'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은하계를 정복하게  될 수
천억, 수조에 이르는 인류 중에서 아주 초기에 존재하는 종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주의 전체 나이에 존재할 모든  인류 중에서 우리가 최초의  0.001퍼센트는 차치하고라도 
최초의 0.1퍼센트에 포함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기술의 진보는 인구 폭발을 가져오는 측면이 있는 반면,  핵전쟁이나 환경오염 등을 통해 
급작스런 파국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인류가 물리학과 화학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얻고 난 
다음에 멸망해 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류의 장래가 아주 창창한 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에 우리는 우주에서 태어날  모든 인류 중에서 아주 일
찍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모든 인류의 10퍼센트와 동
시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위험에 대한 
평가를 보다 비관적으로 만듦으로써 인류의 장래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키지 않을까?
  종말론은 궁극적으로 이미 태어났거나 앞으로 태어날 모든 인류 중에서 우리가  예외적으
로 일찍 출현했다는 이론을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
론에서 우리가 예외적으로 아주 일찍 출현한 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거꾸로 우리가 그
러한 이론을 배격하는 근거를 강화시켜준다. 그렇다면 그러한 근거를 얼마나 강화시켜줄까? 
해답은 서로 경쟁하는 근거들(인류가 수천 년 이상 생존하면서 어쩌면  은하계 전체를 정복
할 것이라고 믿는 근거들)이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다. 그 근거들 사이의 경쟁은 수학적
으로 모형화할 수도 있다. 
  종말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1980년경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우주론자 브랜던  카
터(Brandon Carter)였는데, 그는 응용수학 분야의  업적으로 영국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된 
인물이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카터의 종말론 자체는 어떤  위험에 대한 평가도 수반하지 않
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카터의 종말론은 발생 가능성이 있는 여러 위험들을 고려할 때 그러
한 위험들에 대한 우리의 평가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먼저 그러한 위험들을 살펴보
고, 종말론에 대해서는 서문의 끝머리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
  오늘날, 인류가 곧 멸망할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은 대중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많은  작가
들은 핵문제나 환경오염과 같은 위험을  그러한 멸망의 가능성으로 여겨왔다.  이 책에서는 
복잡한 문제들을 세세히 파고드는 대신에, 비전문가라 할지라도 그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
는 사실을 강조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것이 거기에 달려 있는지를 생각할 때, 우리는 위험들을 무시할 권리가 전혀 
없다(스마트가 쓴 것처럼,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대형 재난을 곱하면', '대
형의 부정적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만약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을 경
우 전개될 수백만 년의 인류 진화'를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각각의 위험을 합
친 '전체 위험'이 비록 아주 작은 것처럼 보인다 해도, 카터의 종말론에 따른다면 그것은 아
주 큰 것으로 재평가되어야만 한다. 위험의 크기를 다시 작게 보이게 하려면, 그 위험을  감
소시키는 노력을 활발히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 특히 우리의 노력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위험들
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널리 인식된 위험들
  1. 핵전쟁 : 핵폭탄을 만드는 지식을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을 볼모로 삼아 이익
을 얻고자 하는 작은 나라나 테러리스트들, 돈 많은 범죄자들은 이미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닌 폭탄을 보유할 능력이 있다. 제조 원가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 데 비해 세상에는 억만
장자가 많다. 대규모의 핵 파괴가 가져올 영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지구  전
체가 방사능에 오염되고, 먼지와 검댕이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기온이 급강하하는 '핵겨울'이 
도래할 수도 있다. 나무와 풀이 고사하고, 바다의 플랑크톤도 모두 죽어버릴 것이다. 
  2. 생물학전(세균전) 또는 생물무기를 이용한 테러 : 생물무기는 핵무기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생산 비용도 값쌀뿐더러 파괴 범위 또한 무제한이다. 생물무기는 스스로 증식하는  미
생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3. 화학전 또는 화학무기를 이용한 테러.
  4. CFC(염화불화탄소)나 다른 물질에 의한 오존층의 파괴 :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자외선
의 양이 급증한다. 암 환자들이 발생하고, 나무와 풀과 플랑크톤이 죽을 수 있다. 
  5. 온실효과 : 온실효과란,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비롯한 여러 기체 성분이 증가
함에 따라 지구에서 우주공간으로 방출되는 열이 차단됨으로써 지구의 표면 온도가  상승하
는 것을 말한다. 온실효과는 피드백(feedback) 효과 때문에  급속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예
를 들면, 극 지방의 얼음이 녹음으로써 많은 이산화탄소와 케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고, 이
것이 다시 지구의 표면 온도를 상승시킴으로써  더 많은 얼음이 녹아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더 많이 방출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대기 중에서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비율이 1퍼센
트로 증가한다면(정상적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지구는 금성과 같은 '고열 지
옥'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금성에서는 온실효과 때문에 표면 온도가 납을 녹일 정도로 뜨겁
다. 지구에서는 물이 끓는 온도까지 상승할 것이다. 
  6. 환경오염 : 환경오염은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산성비의 경우, 옷에 구멍을 낼 
정도이다. 매년 수백 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지구 환경에 유입되고 있다. 이 화학물질이 미
치는 영향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살충제로 사용되던 DDT나 겨드랑이에 뿌리는  냄새 
제거제가 오존층을 파괴시키기 때문에 생산 금지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환경오염은 
특히 정자 생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며,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미 호수의 많은  물고기
들이 이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여기서도 피드백 효과  때문에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
다. 오염된 환경은 다른 생물이나 물질을 오염시켜 더 많은 유독성 물질을 만들어낸다. 통제
할 수 없는 인구 증가와 쾌적한  생활수준 요구가 맞물려 단기적으로는 심각한  환경오염이 
불가피할 것 같다. 
  7. 질병 : 중세 시대에 유행했던 흑사병의 사례에서 보듯이, 치명적인 질병은 감염된 사람
들 중 상당수를 죽일 수 있다. 오늘날에는 교통 발달로 인해 질병이 전세계로 빨리 퍼질 수 
있다. 많은 질병들은 아직도 불치의 병으로 남아 있다. 매년 약 3백만 명이 결핵에 감염되어 
죽어가고 있는데, 최근에는 기존의 모든 치료약에 저항력을 지닌 변종마저 나타났다. 바이러
스성 질병에는 항생제도 소용이 없다. 

  잘 인식되지 않은 위험들
  제1군 : 자연재해
  1. 화산 분출 : 공룡의 절멸을 가져온 원인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분출된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어 핵겨울처럼 '화산재 겨울'을 가져올 수 있다. 
  2.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 : 공룡이 절멸한 원인으로 가장 유력한 것이 '소행성 충돌설'이
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대륙을  파괴시키는 거대한 천체의 충돌로 
인해 죽을 확률이 더 높다. 당신이 이렇게 죽을 확률은 2만분의 1로 계산된다. 비록  우주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 많다고 해도, 그 대부분은  지능을 가진 생물이 출현하기 전에 
다른 천체와의 충돌로 여러 차례 파국을 겪을 것이다. 
  3. 성간구름을 통과하면서 극심한 빙하시대가 도래한다? : 앞으로 수십만 년 내에는 이러
한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비록 전하를 띤  입자들로 이루어진 태양풍에 급격한 변화
가 일어나 지구 기후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은  있지만, 성간구름의 밀도 정도로는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햇빛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4. 지구 근처에서의 초신성 폭발 : 초신성이 폭발하는 위력은 10만X1조X1조 메가톤의 수
소폭탄과 맞먹는다. 
  5. 다른 거대한 천체의 폭발 : 블랙 홀이 증발을 끝마칠 때, 두 개의 블랙 홀끼리 또는 두 
개의 중성자 별, 그리고 블랙 홀과 중성자 별이 합쳐질 때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다. 
  6. 본질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한 계의 붕괴 :  카오스 이론의 연구로 이러한 가능성
이 대두되었다. 문제의 계는 지구의 바이오스피어(생물권)일  수 있다. 바이오스피어 안에서 
공기와 토양, 물, 생물들은 긴밀하게  상호 작용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태양계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왜냐 하면, 행성들의 운동방식이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7.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 : 우리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자연재해를 예측할 수 있다
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제2군 : 인간이 만든 재앙
  1. 아기를 키우기 싫어하는 것 : 가끔 인류 생존에  위협을 주는 요소로 거론되긴 하지만, 
진지하게 고려할 만한 가치는 없다. 불과 1만 명만 자식을 낳기를 원해도, 그들의 후손은 곧 
지구 전체를 뒤덮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 부유한  나라에서는 인구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 유전공학에서 비롯되는 재앙 : 유전공학으로 만들어진 유기체가 무한하게 번식해 가면
서 다른 생물들을 질식시키는 '그린 스컴(green scum)'과 같은 재앙이  닥칠 수 있을까? 아
니면, 어떤 유기체가 인체에 침입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을까?
  1993년 11월 2일자 캐나다 토론토의 <글로브 메일(The Globe and Mail)>지는 미국 워싱
턴 대학에서 살모넬라균을 유전적으로  변형시키는 연구를 했는데, 이  균에 감염된 여성은 
피임할 수 있으며, 적어도 몇 달 동안은 임신을 피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1면에 게재
했다. 즉, '내장에 일시적으로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감염시켜 정자의 유전자 성분에 대
한 항체를 생산하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두번째 백신을 투여하지 않으며,  1년 내에 
다시 임신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살모넬라균에 
감염되어 불임이 된다면 어쩔 것인가? 실제로 살모넬라균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감염되는 세
균의 하나이다. 유전적으로 변형시킨 살모넬라균이 처음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지만,  이 
세균이 진화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만일 전세계 여성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 
세균에 영원히 감염되어 다른 사람들을 계속 감염시킨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3. 나노테크놀로지에서 비롯되는  재앙 :  매우 작은  자기복제 기계들 -  리처드 파인먼
(Richard Feynman)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그러한 기계들은 조만간 개발될 것으로 기대된
다 - 이 한 달 내에 전섹계로 퍼져서 '그레이구(grey goo)'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 
  4. 컴퓨터와 관련된 재난 : 컴퓨터  때문에 핵전쟁이 발발하는 시나리오는 흔히 인용되는
데, 그보다는 오히려 현대 생활의 필수품인 컴퓨터 네트워크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
고 상상 속의 이야기이지만, 컴퓨터가 인간을 대체하는 여거  가지 상황들을 많은 작가들은 
다음과 같이 상상한다. 
  첫째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생산 방법을 컴퓨터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들 간의 경쟁의 
결과, 둘째로 역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 설계 작업을 컴퓨터에 맡김으로써, 그리고 
셋째로 컴퓨터의 생명과 지능이 인간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의 고의적인  계획
(세 가지 가능성 중 마지막은 과학자들의 생각이 옳으냐 그르냐에 따라 재앙이  될 수도 있
고 안 될 수도 있다. 처음에 두뇌와 컴퓨터가 서로 긴밀히 협력하는 기간을 거친 후, 발전된 
컴퓨터가 인간의 많은 특징들을  지니게 된다면, 그것을 인류의  멸망으로 보아야 하느냐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등이다. 
  5. 기술 분야에서의 다른 재난 : 이  중에서 인간의 생존에 중대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분야가 농업 분야이다. 현대 농업은 오염 유발물질인 비료와 살충제에 지나치게 의존할뿐더
러, 점점 더 적은 수의 유전적 변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매우 복
잡한 계, 특히 복잡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 새로운 기술을 포함한 계는 본질적으로 예측
할 수 없는 양상으로 붕괴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대규모 지역에서 발생한 정전 사고나 
통신 시스템의 마비는 이 점을 설명하는 좋은 사례이다. 
  6. 실험실에서 새로운 빅 뱅이 만들어진다?  : 물리학자들이 일찍부터 검토해온 가능성이
다. 일반적으로는 약 20킬로그램의 물질(또는 그에 해당하는 에너지)을 점보다 더 작은 부피
로 압축하면 되는 것으로 계산해 왔다. 그러나 우주론자 안드레이 린데는 수십만분의 1그램
이면 충분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게 작은 물질을 압축시킨다 해도 그 결과는 엄청날 것
이다. 이런 방식으로 만든 소형 빅 뱅은 그 자신의 공간으로 팽창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결
과, 미니 블랙 홀이 될 것이다. 
  7. 모든 것을 파괴하는 '상전이'의 가능성이 훨씬 더 심각하다 : '상전이'란,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것과 같이 상태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1984년 에드워드 파르히(Edward 
Farhi)와 로버트 재프(Robert Jaffe)는 물리학자들이 '스트레인지  쿼크 물질'을 만들어낼 가
능성을 언급했다. 즉, 이 괴상한 물질은 정상 물질을 흡수하여 자신과 같은 물질들로 변화시
키고, 결국에는 지구의 모든 물질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스트레인지 쿼크 
물질'은 다른 물질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밀어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되고 있
다. 이 경우라면, 고에너지에서 행하는 실험과정에서 매우 심각한 '진공 준안정' 참사가 초래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역장(전문용어로는 '스칼라장')으로 가득 차 있는 '가짜 진공' 상
태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 역장은 조각상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과 같아서 아주 작은 흔들
림에는 안정적이지만, 심한 흔들림에는 붕괴할 수 있다. 고에너지 실험에서 발생하는 요동으
로 '진짜 진공' 거품이 생겨날 수 있고, 이것은 거의  빛의 속도로 팽창해 나가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마치 조그만 얼음 결정이 과냉각된 물방울들을 더 많은 얼음 결정으로 
변화시키는 이치와 같다. 
  우리는 실험에서 사용되는 에너지가 우주선(cosmic ray : 우주공간에서 날아오는 높은 에
너지를 지닌 광선)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것보다 낮은 수준에서 유지될 때에만  안전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실험실에서 그렇게  높은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이자 시카고의 미국 국립가속기연구소장을 지낸 데이비드 슈램(David 
Schramm)과 레온 레더먼(Leon Lederman)은 1989년에 쓴 글에서, 2100년경에는  기술이 급
진전하여 그러한 에너지가 실현될 것이라고 했다. 
  8. 외계인에 의한 멸망 : 고의이건 실수이건 간에, 외계인들이 앞서 언급한 고에너지 실험
을 하다가 '진공 준안정' 참사를 일으킬 수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외계인은 단 한 명도 확
실하게 발견된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조사가 지극히 원시적인 수준이었
기 때문에 설사 아주 가까운 별에 외계 문명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발견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발달된 문명의 행성에서 나올  법한 강력한 전파가 포착되지 않고 있는  '깊은 
침묵'을 설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과학자들은 적대적인 외계인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모두가 듣고는 있지만 응답을 하지 않는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외계인들은 우리를 위협의 대상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예컨대, 우리가 '진공  준안정' 참사
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외계인들은  지구의 전파망원경이나 조기경보 레
이더에서 발사되는 전파를 포착함으로써 우리의 존재를 먼저 알아챌지도 모른다. 이 전파들
은 앞으로 4천 년 안에 약 6천만 개의 별에 도착할 것이다. 어쩌면 외계의 지능 생명체들은 
아주 드물게 진화할지도 모르고, 또 그나마도  곧 자멸할지도 모른다(우리의 망원경으로 탐
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준안정 진공을 파괴할 만한 고에너지 실험을 실시한 존재가 있
을 수 없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최근에 그런 일이 일어남으로써 그 사건을 우리들에게 
전달해주는 빛이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가  그것을 발견할 가능성은 없
다. 왜냐 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순간, 모든 생명은 종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9.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 : 우리는 기술 진보가 가져올 모든 위험들을 다 예상하지 
못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위험 가운데 몇몇은 확실한 증거가 없다. 반면에, 그러한 위험이  존재하
지 않는다는 그 어떤 확고한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어둠 속을 더듬어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철학에서 비롯되는 위험
  1. 종교와 관련된 위험 : 종교와 관련된 위험은 종종 '철학에 기초한 위험'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물론 그 철학은 아주 빈약한 철학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건, 
세상이 곧 심판의 날을 맞이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 환경부 장관이 된다
면, 매우 위험한 사태가 초래될 것이다. 또 하느님이 세상을 영원히 평화롭게 지켜줄 것이라
고 믿는 사람이나, 우리가 설사 지구를 파멸시킨다 해도 이 곳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세계
를 창조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더라도 역시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 주장은 종교적인 세계 모형이나 수많은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견해를 겨냥한 공격이 
아니다. 내가 쓴 글 '가치와 존재(Value and Existence)'는  신을 추상적인 창조력으로 간주
하는 신플라톤주의적 시각 또는 신플라톤주의적 존재이유를 가지고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을 
옹호하는 글이다. 그러한 사람은 자신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존재하게  된다. 왜냐 하면, 
신적인 존재는 창조적인 윤리적 필수요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러한 필수요건을 갖춘 존재는 세계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세계들(Universes)>을 
비롯한 나의 다른 글들은 많은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그 우주가  신의 창조로 태어
났건, 순전히 물리적 과정으로 태어났건)과 함께 이러한 개념을 또다시 옹호한 글이다. 그렇
지만 신이나 다원 우주에 대한  이론들이 옳은지 그른지 알 방법이  없다. 우리가 엉망으로 
만든 세계를 대체할 다른 세계들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2. 쇼펜하우어의 비관론 : 많은 작가들은 종교를 공격하면서  죄악의 문제, 즉 독사, 지진, 
전염병, 암, 나치스의 '죽음의 수용소' 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지구가 달처럼 생명이 없는 덩어리였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말한 쇼펜하우어의 견
해에 동조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즉시 지구를 생명이 없는 곳으로 만들면 되지 않겠
느냐는 생각이 나올 수도 있다. 
  3. 윤리적 상대주의, 감정주의, 규범주의 : 이러한 주의들은 정말로 노력해서 얻을 만한 가
치가 있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정말로'라는 단어는 "2더하기 2는 정말로 4이다"
라거나 "아프리카는 정말로 아이슬란드보다 더  크다"고 말할 때 사용된 것과  같은 의미이
다. 
  첫째로 상대주의의 예를 들면, 재미삼아 사람을 산 채로 불태우는 것은 특정 도덕률에 비
해 상대적으로만 나쁠 뿐이라는 주장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무례한 짓이지만,  티벳에서는 
혀를 내미는 것이 공손한 인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둘째로 감정주의는 사람
을 불태우는 것이 "정말로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을 태우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아
무런 사실도 언급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 대신에, 말하는 사람의 불쾌한 감정을  표현할 
뿐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규범주의 역시 감정주의와 마찬가지로 그  말 자체는 아무런 사실
도 언급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람을 불태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사실이다"라는 말은 
"따라서, 나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불태우지 말라고 규정한다"와 같은 뜻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유행하는 또 하나의 주의는, "사람을 불태워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이 생기는 것은 
사회 규범체계를 내면화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본다(정글에서 혼자 식사하면서 정장으로 갈
아입는 영국인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규칙들은 대개 나와 관계된 일을 다른 사람
들이 할 때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들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 규범체계를 진정으로 내면화
시키지 못한다면, 즉 그 규범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도록 만들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그 규범체계를 지킬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 사람을 피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도 사람을 불태우는 것이 정말로 나쁘다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상에서 소개한 내용에 대해 혹자는 다양한 철학적 주의들을 풍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 평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엄연히 존재하는 주의들
이고, 광범위한 지지자들이 있다. 그러한 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대체로 친절한  개인
들이다. 그렇지만 만일 당신이 이들 주의 가운데 어떤 것을 받아들인다면, 단지 친절한 개인
으로 남기 위해서 정신적 또는 육체적 고통이나 유혹을 참아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
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고통을 멈추게 하기 위해 설사 1천만 명의 목숨을 빼앗는다고 해도, 
그 행위에 정말로 잘못된 것이 있을까?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정말로 나쁠지 모르지만, 
'그래서 내가 피해야 한다고 규정할 만큼 정말로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이 내게 해준 만큼 돌려주는 것'을 강조하는 축소주의자의 입장은 로버트 헤일브로
너(Robert Heilbroner)가 던진 질문 때문에 곤란에 처하게 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질문이란, "아주 먼 미래의 사람들은 내게  혜택받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라는 것이
다. 
  4. 부정적 공리주의 : 부정적 공리주의는 선을 최대화하기보다는 약을 감소시키는 것을 목
적으로 한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한 나라에  불행한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은 존재할 수  있
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그 사람의 불행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고상한 행동이다.  그런데 그것을 막기 위해 취해야  할 도덕적 행동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러한 생각이 지닌 가장  큰 
위험은 그 생각의 잘못을 증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5. 어떤 철학자들은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 불가피한 사람들에게만 
도덕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만약 아이를 갖는 것이 번거로운 일이 된다면 인류를 존
속시키는 것은 더 이상 의무가  되지 않을 것이고, 인류를 멸종시키는  것이 도덕적 과제로 
보일 수도 있다. 왜냐 하면, 이제 불행한 아이를 낳지 않는 의무는 행복한 아이를 낳는 의무
와 더 이상 상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 있다. 
  6. 어떤 철학자들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주장한다. 그들은 설사 하늘을 무너지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예컨대,  인구 폭발로 숨쉴 공기가 모자라
는 형국이더라도 그에 상관없이 부모들은 원하는 만큼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7. 죄수의 딜레마 : 많은 사람들은 이 딜레마를 다루는 특별한 방법에 지나치게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죄수의 딜레마'는 당신이 상대방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가 없는
가를 알 수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결정해야 하는 딜레마를 말한다(예컨대, 핵전쟁이 발
발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 두 나라는 선제공격을 하기보다 상대방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
라고 믿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기희생을 모르는 사람은 비협조적인 행위가 자신에게 유
리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 철학자들 사이에 정설로 되어 있다. 
  8. '정의의 응징' 또는 '합리적인 일관성' : 어떤 철학자들이 주장하기를, 설사 아무도 이익
을 얻지 못하더라도 보복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예컨대, 핵공격에 대해서)은 적절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전멸한다 해도, 그것이 대단한 비극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곧 다른 생물이 진화하여 은하계  전체로 퍼져갈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행성에서조차 지능을 가진 생명이 얼마나 자주 진화할 수 있
느냐에 대해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만약 지구에서 생물들
이 전멸한다면, 은하계뿐만 아니라 전우주에서 생물이 영원히 사라질지 모른다.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의 주장대로, 은하계에 기술이 발달한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
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만약 은하계에 외계 문명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전파신호 위에 그들
에게 정복당함으로써 그 존재를 이미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류가 살아남기만 한
다면, 수백만 년 안에 인류는 전 은하계를 정복할 것이다. 
  '관찰자 선택효과'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것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면, 질병이나 소행성의 충돌로 지능을 가진 모든 생물이 전멸한 행성에
서는 우리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지능을 가진  생명체는 살아 있는 지능체가 존
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결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관찰자 
선택효과'는 우리가 어디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사전에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생명의 존재가 지닌 신비감을  없애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우리 앞에 놓인 위험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봤다. 이제 브랜던 카터의 '종말론'으
로 되돌아가자. 
  카터의 종말론은 이상에서 언급한 위험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종말론은 지금까지 태어났거나 앞으로 태어날 모든 인간  중에서 우리가 아주 일
찍(예컨대, 전체의 0.01퍼센트 이내에 들 정도로) 태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라고 했
다. 반면에, 우리가 마지막 10퍼센트 안에 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곧 멸망한다고 할 때 우리가 속하는 범위이다(지금까지  태어난 사람들 중에
서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모든 것을 갑자기 알아차렸다고 가정
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인류의 멸망이 임박했다는 생각을 전보다 더 강하게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카터가 주장하는 종말론의 요지이다. 
  우주 역사에서 지능을 가진 수백만 종이 진화한다고 가정하자. 지능을 가진 모든 생물 중
에서 상당수가 너무 급격하게 발전한 나머지, 새로운 화학물질들로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새
로운 형태의 전쟁을 벌이거나 또는 문명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다준 과학을 잘못 사용함으로
써 멸망에 이르는 것은 아닐까?  카터의 논리는 그러한 시나리오들을 심각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근거들을 추가로 제공한다. 

    종말과 인간중심의 원리
  카터는 '인간중심의 원리(anthropic principle)'를 주장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이  원리는 
관찰자(예컨대, 인간)는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출현 가능한 장소와 시간에서만 자신이 존재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관찰자는 태양의 중심이나, 엄청나게 뜨거운  불덩어
리였던 빅 뱅 직후의 시간에는 존재할  수 없다. 우주가 태어난 뒤 수백만  년 안의 시간에 
존재했을 리도 없다.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출현하는 데에는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가 필요
했기 때문이다.
  내가 쓴 <세계들>이란 책에서, 그리고  내가 편집한 <물리적 우주론과  철학>(1990년)에 
실린 여러 저자들의 글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카터의 '인간중심의 원리'는 시간과 공간상에
서의 우리의 위치가 매우 특별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예를 들어, 우주에 행성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그렇더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어느 행성 위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별의 중심이나 우주 공간에서 태
어나지 않고 행성에서만 태어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최소한  우리의 최초의 조상은 행성
에서 진화했을 것이다. 우주가 종말에  이를 때까지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의 '창'이 아주 약간만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우주의 초기는 너무 뜨겁기 때문에, 그리고 
후기는 너무 차갑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런 경우에도  여러분은 아주 좁은 시간대에 존
재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만약 우주에 각각의 영역을 별개의 우주라고  부를 수 있는 거대한 영역(domain)들이 수
십억 개 이상 존재한다고 하면 어떨까? 그리고 그 중에서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영역이 겨우 대여섯 개뿐이라면? 그 때에도 우리는 수십억 개의 영역 중
에서 선택받은 대여섯 개의 영역에 존재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카터의 '인간중심의 원
리'가 관심을 끌게 된 데에는 최근 이루어진 세 가지  발견이 큰 역할을 했다. 첫째, 적절한 
물리적 메커니즘을 통해 수많은 우주의  존재가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둘째,  우주마다 
기본적인 성질들이 무작위적으로 다를 수 있다. 셋째, 우주가 지닌 성질들은 지능을 가진 생
명체가 진화하기에 놀랍도록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존재하는 실제의 장소와 시간, 그리고 우주는 아주  특별하다고 믿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만약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아주 드물고 비정상적 상황에서만 
존재한다면, 우리 자신을 그러한 상황에서 발견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카터의 '인간중심의 원리'이다. 거기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중심의 원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상황이 매우 드물고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믿
게 해주면서, 동시에 생명과  지능의 존재에 필요한 상황보다  더 희귀하고 비정상적이라는 
믿음을 꺾는다. '인간중심의 원리'에 따르면, 최소한 지능을 가진 관찰자들이 존재할 수 있는 
상황 중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상황은 매우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중심
의 원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생명과 관찰 행위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이 무엇인가(수십억 
도의 뜨거운 온도와 같은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를 고려하는 대신에, 관찰자의 
상황은 어떤 것이 될 가능성이 높은지를 물을 것이다. 예컨대, 모든 관찰자의 99퍼센트가 물
이 끓는 온도보다 낮은 체온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주위 온도가 체온보
다 더 낮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리처드 고트(Richard Gott)는 '인간중심의 원리'다  지닌 편리성을 "우주의 시간과 공간상
에서 당신이 태어난 위치는 당신이 지능을 가진 관찰자라는 바로 그 사실이 의미하는 만큼
만 특권을 부여받았다(특수하다)"말로 표현했다. 그는 만약 이와 반대되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면, 당신의 위치는 '지능을 가진 관찰자 가운데 특수한 것이 아니라, 임의로  선택된 것'
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종말론을 개발했다. 
  카터와 고트가 똑같은 견해에 도달한 것은 별로 놀란 만한  일이 못 된다. 우주론은 확률
론적 주장, 그 중에서도 관찰자가 존재할 수 있는 위치에  관심을 갖는 주장이 종종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지는 1993년 7월 27일자에서 에릭 러너(Eric Lerner)의 '초점을 벗어난 적대
적인 비판'에 대한 고트의 반론을  게재했다. 러너는 자신을 우연한(임의로  선택된) 존재로 
취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고트는 다음과 같이 반격했다. 
  "러너의 주장은 놀라운 일이다. 왜냐 하면, 나의 논문에서는 그에게 적용했을 때  옳은 것
으로 확인되는 수많은 예언들을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는 전화번호부의  95퍼센트에 
해당하는 중간 부분에 존재할 확률이 높고, 1월 1일에 태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높고,  6백30
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태어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살았거나 살아
갈 인류 중에서 마지막 2.5퍼센트 안에 들지 않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러너는 (특별한 존재
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연한 존재이다."
  최근에 우주론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충분히 큰 우주에서는  진화의 어떤 
전제조건도 필요없이 일부 관찰자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은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냐고? 그 답은 블랙 홀이 완전히 검지 않기 때
문이다. 
  블랙 홀은 온갖 종류의 입자들을 임의로  방출한다. 따라서, 수많은 블랙 홀 가운데  일부 
블랙 홀에서는 언젠가 물질입자들을 방출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책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것도 당신 마음에 떠오른 바로 그 책(어쩌면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 작품을 실은 책)일 
수 있다. 이것은 원숭이가 자기 마음대로 타자기를 두들기다 보면 언젠가 완벽한 소네트(14
행짜리 영시)를 지어낼 때가 있다는 이야기의 변형이다.  블랙 홀에서 방출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원숭이도 튀어나오고, 원시적인 관찰자도  튀어나올 것이다. 셰익스피어와 
똑같은 관찰자가 튀어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나 우주에 아무리 많은 블랙 홀이 존재한
다 하더라도, 그 어떤 관찰자도 자신이 이러한 해괴한  방법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
을 것이다. 
  카터는 어떤 관찰자도 자기와 같은 종의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아주 이른 시간에  자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카터가 먼저, 그리고 다음에  고트가 
종말론에 다다른 것은 바로 이 사실 때문이었다.
  인류는 수십만 년 이상 살아왔다. 따라서 정상적인 시계로 인류가  비록 10만 년 후에 종
말을 맞이하더라도, 여러분과 나는 특별히 일찍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태어
날 때마다 시계 바늘이 조금씩 움직이는 '인구 시계'의 기준에서 보면, 우리는 아주 일찍 태
어났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각기 나름대로  특별한 존재이지만, 그 사실
은 자기 자신을 상당히 특별한 존재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실
제로 많은 이론들은 우리가 상당히 평범한 존재라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리고 핵전쟁
과 같은 경우를 고려할 때, 인류 역사가 곧 종말에 도달함으로써 그 속에 있는 우리의 위치 
또한 평범한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주장 역시 그럴 듯하게 들린다. 만일 카터와 고트의 견
해가 옳다면, 인류가 앞으로 수세기 이상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 속에서 우리가 관찰되는 위치를 고려하여 인류가 직면한 위험을 
재평가해야만 한다. 

    종말론을 쉽게 논박할 수 있는가?
  카터는 종말론을 강의나 세미나에서만 제기했을  뿐, 글로는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세계들>이란 책의 214쪽 각주에서 종말론을 언급한 이후, 여러 차례 종말론을 탐구해왔다. 
  분명 종말론은 논쟁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종말론을 의심할 만한 그럴 듯
한 근거는 오직 한 가지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양자물리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우주는 근
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이라고 가정하자. 또 비결정론은 인류가  얼마나 오랫동안 존속할 것인
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인류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
해, 전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들의 현 위치를 충분히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 현실적으로
나 이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어떤  확고한 사실(남아 있는 카드에 에이스가  정확하게 몇 
장 포함되어 있는지, 또는 제비뽑기통에서 당신의 이름을 빼낸  뒤에 남은 이름이 정확하게 
9개 또는 60개라는 사실과 같이)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종말론을 부드럽게 전개하
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실들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나는 세상이  비결정론적인지 여
부에 상관없이, 여기에는 이러한 종류의 확고한 사실, 즉 설사 시간의 성질에 관한 일부  견
해에서처럼, 미래에 대해 진리로 성립할 모든 것은 이미 진리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
론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6장
에서 다시 다루게 될 것이다).
  물론 종말론이 다소 거칠게 전개되더라도,  그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종말론은 
인류가 수만 년 이상 더 존속할  것이라는 이론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질  수 있다. 왜냐 
하면, 극단적으로 비결정론적인 인자들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은 비결정론적인 인자들조차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하기 때
문이다. 
  사람들은 종말론을 부정하는 근거로 많은 것을 들고 있다.  나 역시 종말론을 결정적으로 
논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10여 가지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생
각되더라도, 일단은 그 주장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있다. 확률론에는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
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명명백백해 보이는 반론'을 완전히 신뢰
하지는 말기 바란다. 오늘날의 종말론은 머리가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 고안
해낸 것이다. 단순한 반격에 쉽게 무너지리라고 기대하지 마라. 
  만일 종말론이 쉽게 무너진다면, '인간중심의 원리'에 바탕을 둔 모든 생각(관찰자가 언제 
어디에 존재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둔 생각)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관찰 행위의 전제조건이 완전하게  확고한 경우는 드물다. 관찰자는 블랙  홀에서 
임의로 방출되는 입자의 형태로 빅 뱅 초기에 존재할  수도 있다. '인간중심의 원리'를 사용
하는 사람들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관찰자가 존재 가능한 위치를 묻는다. 종말론에 대한 대
부분의 비판은 대체로 '시간 속에서 가능한 위치'를 '공간 속에서 가능한 위치'라면  결코 그
렇게 다루지 않을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인간중심의 원리에 바탕을 둔 사고들이 좇
는 전통, 즉 시간과 공간을 똑같이 취급하는 전통에 어긋난다. 여기서는 전통에 역행해야 할 
어떤 정당성도 찾을 수 없다.  앞에서 우리는 미래가 극단적으로  비결정론적일지 모른다고 
중요한 양보를 했는데, 이 경우 종말론은 붕괴하지 않더라도 그 기반은 매우 약화될 것이다. 
  아주 일반적인 비판의 예를 살펴보자. 아주 먼 미래에  살아갈 사람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작은 시골 마을보다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우리 자신
을 발견하기 쉽듯이, 그들 중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가 지금, 즉 서기 2000년경에 종말론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자. 우리는 서기  2000년경
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할 것인가에 대
해 여러 이론들이 어떤 주장을 하든 간에,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인
류가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무사히 살아갈지 말할 
수 없는 까닭은 우리가 서기 2000년경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앞에 놓인 위험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증거는 서기 2000년경에  얻은 것이지, 수천 년 또는 수만  년 뒤에 얻은 
증거가 아니다. 
  이상의 주장은 상당히 설들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과연 종말론을 부정할 수 있
을까? 브랜던 카터는 서기 2000년의 근처가 지금이라는 사실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지 않는
다. 그는 실제로 1백 퍼센트의 확률로 그 근처에 있다. 카터가 묻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만
일 인류 중에서 아주 적은 일부만이 그 후까지 살아갈 수 있다면, 인간 관찰자가 자신이 그 
곳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여러분과 나는 지금까지 태어난 모든 
인간, 그리고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인간 중에서도 특별히 일찍 출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점에 집착하다가는 카터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미래의 인간이 현재 살고 있지  않다고 반박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간단한 
이야기를 통해 증명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실험을 생각해 보자. 시간상의 어느  지점에서 
세 사람에게 각각 에메랄드 한 개씩을 준다.  또 몇 세기가 지난 후,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을 때 5천 명의 사람들에게 역시 에메랄드를 한 개씩 준다. 다음에는 실험에 참가한 
당신에게도 에메랄드가 주어졌다고 하자. 그렇지만 당신은 지금 세 사람에게 에메랄드가 주
어진 앞시대인지, 아니면 5천 명에게 에메랄드가 주어진 뒷시대인지를 알지 못한다고  하자. 
만약 당신이 앞시대에 존재한다면, 5천 명의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당신은 그
들 속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앞시대에 살고 있다는 쪽
으로 생각하는 게 낫다고 결론내리지 않을까?
  실제로 당신이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쪽에 내기를 걸었다고 가정하자. 실험에 참가한 에메
랄드를 가지 사람들도 모두 이와 똑같은 쪽에 내기를 걸었다면, 그 중 이기는 사람은 세 사
람뿐이고, 5천 명은 질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라면 당신이  뒷시대에 살고 있다는 쪽에 거
는 것이 현명하다. 
  만일 실험에서 뒷시대에 에메랄드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앞시대에  에메랄드를 
가지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많은지 적은지 불확실하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에메랄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뒷시대에 내기를 걸어야 할 충분한 근거는 못 될 것이다. 또 당
신이 실제로 앞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이 새로운  지식은 뒷시대에 더 
많은 에메랄드가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있는 강한  근거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전체 과정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관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진리이
다. 그렇지만 이 진리는 쓸데없는 진리이다. 

    그 밖의 몇 가지 반론의 예
  종말론 자체는 아주 간단명료하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예외적으로 일찍 출현한 인간이라
고 제시하는 그 어떤 이론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은 결코 복잡하거나 난해한  것이 아
니다). 그런데 종말론이 복잡해진 것은  수많은 비판에 대해 방어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에 대한 논의와 검토는 5장과 6장에서 하기로 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
이 생각하는 명백한 반론이 왜 잘못인가를 즉시 알고 싶어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상식
적인 반론 몇 가지를 간단히 소개하고, 그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당신의 유전자는 서기 2000년 근처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종류라는게 분명하다.  따
라서, 당신은 서시 2000년 근처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을 고집하지 말기 바란다. 왜냐 
하면, 카터가 묻는 것은 인간 관찰자가 서기 2000년 근처에  그 시대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다(에메랄드 이야기에서 앞시대의 유
전자들이 뒷시대의 유전자들과 큰 차이가 난다고  가정하자. 그렇더라도 이야기의 전체적인 
내용과 맥락은 그대로 유지된다. 당신은 여전히 자신의 유전자가 5천 개의 에메랄드가 존재
하는 시대의 것이라고 믿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길 것이다).
  '당신 자신'이 특정한 시점에 태어날 확률은 후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느냐  하
는 사실에 의해 높아지거나 낮아지지 않는다고 반박하지 말기 바란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
이 집 안에서 사고를 당한다는 사실이 어떻게 바로 내가 1995년 3월 17일 2층에서 추락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주장과 유사하다(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사고가 당신이 당
한 특정 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사례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언젠가 당신이 2층에
서 추락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일 뿐이다).
  둘쨰, 종말론은 확률에 관한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이름이 제비뽑기통 속에 들어 있는 것
을 알지만, 그 속에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고 가정하자.  그
렇지만 당신은 통 속에 1천 개의 이름이 들어 있을  확률이 반이고, 10개의 이름이 들어 있
을 확률이 반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당신의 이름이 맨 처음에 뽑은 3개의 이름 중에 포함
되어 나왔다.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의 추측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 않을까? 
아직도 통 속에 9백97개의 다른 이름이  들어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가?
  당신이 태어난 시간은 제비뽑기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반박하지 말기 바란다. 제비뽑기의 
비유는 통계라는 거대한 영역에서 아주 적절하다는 사실을 당신은  잊고 있다. 실제로 태어
나는 것은 확률론적인 문제이다(당신은 12월 25일 11시에서 12시 사이에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  않은가?). 또 제비뽑기에서는 누군가가 이기기 마련이라는 사실에 너무 집착
하지 말기 바란다. 수백만 달러가 걸린 카드 게임에서 13장의 스페이드를 잡은 것을 봤다고 
하자. 다른 무늬의 카드도 13장이 나올 수 있으므로 13장의  스페이드도 나올 수 있다고 생
각할까? 그리고 13장의 카드는 어떤 패로든지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생각할까? 처음에 속임
수를 쓸 확률이 50퍼센트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속임수가 틀림없다고 믿지 않을까?  설사 
속임수를 쓸 확률이 5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처음에 생각했더라도, 이제 당신은 그것을 속임
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셋째, 종말론을 가리켜, 책상머리에서 미래에 존재할 사람들의 수가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수 정도밖에 안 될 것이라고 예언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종말론은 인류가 아
주 먼 장래까지 살아남아 은하계 전체를  정복하리라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제비뽑기통 안에 10개가 아니라 1천 개의 이름이 들어 있다고 확신하고 제
비뽑기를 시작한다면, 설사 당신 이름이  맨 처음에 뽑은 3개의  이름에 포함되더라도 역시 
통 안에는 1천 개의 이름이 들어 있다고 믿을 것이다. 다만, 당신의 이름이 나오기 전보다는 
확신을 덜 가지게 될 것이다).
  넷째, 만약 석기 시대의 사람이 카터의 논리를 사용한다면, 인류는 곧 종말을 맞이할 것이
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기게 되지  않겠느냐고 반박할 생각은 잊기 바란다.  이 반박에 대한 
하나의 대답으로, 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인구 폭발이 가져온  환경오염 위기와 같은 위험에 
직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또 하나의 답은, 확률적으로 매우 희귀한 곳에  위치
한(예컨대, 태어날 모든 사람들  중 최초의 1퍼센트 또는  0.01퍼센트 또는 0.00001퍼센트에 
해당하는) 어떤 사람의 마음에 설사 잘못된  결론을 일으키더라도, 그것은 확률론적 사고에 
전혀 손상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종말론은 인류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도  사용될 수 있
고, 대부분의 시점에서 실패로 판명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기
억해야 할 사실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잘못된 예측을 제공함으로
써 실패한 논리가, 만약 멸망 직전에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난다면, '종말론을 사용하는 대부
분의 사람들에게' 정확한 예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종말론은 위험  평가를 
상향 조정하는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종말론은 종말이 눈앞에 임박했다
는 식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석기 시대 이래로 큰 재난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종말론의 논리가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다섯째, 만약 우주에 두 종의 인류가 존재하며, 그 중 하나는 아주 오래 존속하여  은하는 
정복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곧 멸망할 운명에 처해 있다고 가정하자. 또 서기 2150년까지는 
이 두 종의 인구가 똑같다고 하자. 이때, 서기 2000년경에 당신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 자신이 어느 종에 속하는지 아무런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반론은 포
기하기 바란다. 그러한 반론에 대한 답은 이 해괴한 시나리오에서 사람들은 '서기 2150년 후
에 오래 존속하는 종'에 속한다고 크게 기대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여러분과 나는 그러
한 사람들에 속하지 않는다. 
  여섯째, 아주 오래 존속할 인류 종의 한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이 훨씬 더 많으며,  이것은 
그 인류 종의 역사에서 아주 일찍 태어날 확률이 낮은 것을 완전히 보상해줄 것이라고 주장
해서는 안 된다. 즉, 아주 짧은 기간 존속할 인류 종에 속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장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이다(오직 열  사람만 태어날 것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당신은 그 열 사람 중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랄까? 그렇지는 않다. 일단 태어
난 사람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전인구 예컨대 태어날 모든 사람들의 숫자에 대해  우리는 다만 임의적인 추측만
을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반격하지 마라. 왜냐 하면, 종말론을 고려하기 이전에도, 우리는 인
류가 서기 2150년 이전에 멸망할 확률이  최소한 2퍼센트는 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 때까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더욱 번성하여 은하계를  정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상의 주장들은 '철학적인 탁상공론'이 아니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구체적인 증거들이 
있다. 환경오염이나 핵전쟁, 생물학전의 위험을 시사하는 증거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위험에 
대한 다른 주장들과 마찬가지로, 종말론  역시 위험을 감소시키려는 노력도 감안하고  있다. 
종말론 자체는 실제 경험을 모두 무시하면서 위험 평가를 내리지 않기 때문에, 결코 절망의 
메시지가 아니다. 

      제1장 - 전쟁과 오염과 질병
    1. 핵폭탄
  1957년에 사망한 컴퓨터 과학의 창시자 폰 노이만(J.  von Neumann)은 "(1) 핵전쟁이 일
어날 것이며, (2) 모든 사람이 핵전쟁에서 죽을 것이다"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핵전쟁은 어느 정도 위력을 지니고 있을까?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휘력은 
약 10킬로톤이었다. 즉, TNT 1만 톤을 폭발시킬  때 발생하는 것과 맞먹는 에너지였다. 현
대의 '전략적' 폭탄은 이것보다 1백 배 내지 1천 배 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1961년, 소련
은 58메가톤(TNT 5천8백만 톤에 해당)의 폭탄을 실험했는데, 이보다 더 큰 위력의 폭탄 역
시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기폭제로 핵분열 폭탄을 사용하는 
핵융합 폭탄은 어떤 규모로든지 제조할 수 있다. 
  냉전 시기에 미국과 소련은 핵탄두 수만 개를 비축함으로써 현재 전세계의 핵 저장고에는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1백만 배에 해당하는 위력의 폭탄들이 있다. 칼 세이건은 이
러한 상황을 가리켜, '나른한 어느 날 오후 내내 매초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 번씩 일어나
는 것과 같은 파괴력'이라고 표현했다. 
  1982년 세계보건기구(WTO)는 대규모의 핵전쟁이  일어나면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즉시 
죽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뒤, 소련의 붕괴로 핵 저장고의 재고는 감소했으나 핵폭탄의 주 
원료인 플루토늄 공급량은 오히려 증가하여 약 2천 톤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전체 핵탄두
에 장착되어 있는 양의 10배나 된다. 또 최근에는 핵폭탄  설계가 크게 발전하여 상업용 원
자로의 폐연로봉에서 회수한 플루토늄을 이용, 핵폭탄을 제조하는 것(다소 복잡한 공정이긴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이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이 가능한 상황이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의 물리학자 패노프스키(W. Panofsky)의 주장에 따르면, 핵폭탄 설
계자들은 플루토늄-239 외의 다른 동위원소들을 선호하지만, 플루토늄-239를 이용한 핵폭탄 
제조 또한 가능하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이지만,  미 군부에서는 플루토늄-239를 
이용하여 제조한 핵폭탄을 실험한 것으로 보인다. 나가사키에 투하된  것과 같은 위력을 지
닌 폭탄이라면 플루토늄 7킬로그램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한다. 2000년경에는 현재 핵
탄두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고순도의 플루토늄 2백-3백  킬로그램이 민간인들의 수중에서 
사용될 전망이다. 
  프랑스의 쉬페르페닉스와 같은 고속증식로는 특히 위험하다. 고속증식로는 우라늄에 가장 
풍부한 동위원소인 비분열성  우라늄-238로부터 플루토늄-239를 효율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우라늄 1톤당 생산할 수 있는 전기량이 재래식 원자로의 6배나 된다. 그 결과, 
사용하고 난 연료봉에 담긴 에너지는 잠재적인 전세계 연료 자원을 두 배로 늘리는 셈이 된
다고 애덤슨(D. Adamson)은 설명한다.  지금으로서는 고속증식로를 작동시키는  데 따르는 
기술적 문제 때문에 전기를 생산하는 비용이 비싸지만 곧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환경론자들은 재래식 원자력을 비교적 오염이 없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
능하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유럽의 전력(Power in Europe)>  편집자인 홈스(A. Homes)는 
영국 하원에서, 고속증식로에 대해 준엄하게 반대하지 않는 환경론자들을 한 사람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플루토늄이 쉽게 핵탄두로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전면적인 핵전쟁이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까? 아마도 전세계 인구가 급격하게 절반으로 줄
어드는 것만으로 석기 시대의 환경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지구는 석기 시대의 환경이라면 5
백만 명 정도의 수렵 채집인들만 멱여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큰 포유류 동물과 마찬가
지로 인간 역시 멸종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방사능으로 인한 멸
종이다. 방사능 때문에 암에 걸리거나 면역력이 약화되어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유아 사망률
이 급격하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건강한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미생물 역시 사라질지 
모른다. 칼 세이건의 표현대로, 그들 중 일부는 "방대한 생태계 피라미드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으며, 그 꼭대기에 우리가 비틀거리며 서 있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의 한 위원회는 1975년에 1만 메가톤 규모의 핵전쟁이 지구 생태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면서, 초기에는  미약한 수준에 그치고, 30년 후에는  무시해도 
좋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볼 때, 이 평가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왜
냐 하면, 핵전쟁이 지구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심각하다는 '핵겨울'에 대한 연구 결과
가 나왔기 때문이다. 
  약 1억 톤의 먼지가 대기 중으로 날아올라가고, 숲과 초원, 도시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약 
3억 톤의 검댕을 포함한 연기가 먼지와 합류할 것이다. 무게로 따진다면, 그 연기가  햇빛을 
차단하는 효과는 먼지에 비해 약 1백 배에 달한다.  그리하여 전세계는 수일 내지는 수주일 
동안 어둠 속에 묻히고, 몇 달 또는 1년여 동안 희미한 빛만이 비치게 될 것이다. 기온은 섭
씨 15도 이상 떨어질 것이다(이에 관해서는 과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어떤 과학자
들은 기온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검댕 입자의 모양 
또한 냉각효과의 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다소 위안으로 삼을 만한 점은, 공룡이 
절멸했을 때(소행성의 충돌로 공룡이 절멸했다는 것이 유력한 가설이다.  이때, 엄청난 양의 
먼지가 대기 중으로 올라갔을 것이다)에도 포유류가 모두 절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전면적인 핵전쟁이 가져올 영향(핵겨울이 올지, 아니면 단순히 핵가을에 그칠지, 
즉 기온 냉각이 며칠 만에 끝날지, 아니면  수십 개월 계속될지)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만
은 분명하다. 핵폭발시, 대기 상층부의 질소가 타면서 생성된 질소 산화물은 또 다른 위험을 
만들어낸다. 즉, 질소 산화물은 상당량의 오존층을 파괴시키기  때문에, 어둠이 걷히고 나면 
태양 자외선이 치명적으로 내리쬐어 지구상에 살아남은 모든 생물들을 태워죽일 것이다. 
  불확실한 것은 핵전쟁의 결과만이 아니다. 그러한 핵전쟁을 장기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불확실한 요소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컨대, 소련이  붕괴했다고 
해서 핵폭탄이 사라진 것인 아니다. 소련 붕괴 이후, <원자과학자들의  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는 1990년 3월호에서 '종말의 시계'를 '자정 10초 전'으로 되돌린 그림을 
실었다. 1963년 핵실험금지조약이 체결되었을 때에는 '자정 12초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2천만 명  이상이 갖가지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핵의 평화'는 
그런대로 유지되어 왔다. 그것은 교전 당사국 국민의 최소한 4분의 1 이상이 죽을지 모른다
는 '상호 공멸'에 대한 두려움과 '병아리  게임(game of chicken)' 때문이었다. '병아리 게임
'에서는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파멸의 위험을 택하겠다는 입장을 상대방에게 알
리려고 노력한다. 예컨대, 고속도로 중앙선을 따라 2대의 차가 마주보며 달리다가 핸들을 꺾
는 쪽이 진다고 할 때, 자기가 먼저 핸들을 뽑아  창문 밖으로 집어던짐으로써 상대방이 피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 때에는 미국과 소련 모두가 핸들을 뽑아 던진 
것처럼 보였다. 소렌슨(T. Sorenson)이 보도한  바와 같이,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과의 
전쟁 발발 가능성이 3분의 1 수준까지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당시 미 국방장관이었
던 맥나마라(R. McNamara)는 "쿠바에 배치된 미사일은 미국에  대한 핵 위협을 사실상 조
금도 증가시키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소련이 관심을 표명한 이후,  미국측으로서는 
터키에 배치한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하는 타협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 미사일과 모스크바
의 거리는 쿠바 미사일과 워싱턴의 거리와 비슷했지만, 발사에서 목표물에 도달하는 시간이 
더 짧았기 때문에 소련으로서는 매우 위협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소련으로서는 미사
일 발사 경보의 진위를 확인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기에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는 원
리에 따라 대웅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높았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소련 공산당 서기
장 흐루시초프의 입장에서는 이 점이 가주 큰 불안요인이었다. 더구나 그의 여름 별장은 흑
해 연안에 있었다. 결구 차의 핸들을 먼저 꺾은 쪽은 흐루시초프였다. 
  병아리 게임에서 구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전략은 자동차를 최고 속도로 높이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의 충고대로 "상대방 차가 더 이상 시도할 수 없을 정도까지 급격하고도 냉혹하
게 가속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눈을  가린 채 중앙선을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것이다. 
셀링(T. C. Schelling)이 제안한 이 방법은 '모든 것을 운에 맡기겠다는 위협'을 사용하는 극
단적인 경우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전략들을  '비윤리적'이라고 부르기 전에, 이러한  전략이 
충돌 위험을 줄이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았는가를 반문해 보라. 
  핵전쟁에 대한 각종 연구에서는 윤리적 역설들이 난무하는 법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
한 역설은 핵전쟁의 보복으로 2차 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실제로 감행하는 것이 옳
은가 하는 점이다(7장 참고). 그 밖의 역설 가운데 많은 것은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 이로운
가(특히, 상대방이 '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는 원칙에 따른 대응 경고 발사를 하지 않을 경
우) 하는 점에 집중하고 있다. 다음 사항들을 고려해 보자. 
  첫째,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대피호를 만드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
다. 그러나 대피호를 충분히 갖춘 국가 지도자들은 자국민의  피해가 적을 것이라는 판단에
서 선제공격의 유혹을 받게 된다. 또한, 상대국 지도자들도 자신들이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
는 불안에서 선제공격을 감행하려 할지 모른다. 
  둘째, '고결한 체'하는 지도자들은 전면적인  핵전쟁 대신 제한전쟁(핵무기를 전혀 사용하
지 않거나 위력이 약한 국지전의 무기들을 가지고)을  계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전면전의 위험을 무릅쓰거나 선제공격에 매력을 느끼게 함으로써 전면적인 핵전쟁으로 확대
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에스컬레이션이  통제 가능한가에  대해 미  국방장관 와인버거(C. 
Weinberger)는 "거기에 대해 아무런 대비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셋째, 도시민들을 살상하는 대신, 사일로(미사일 지하격납고)에  있는 적의 로켓을 파괴할 
수 있는 정밀한 미사일을 개발한다면 다소 인도적으로 비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선제공
격을 부추긴다. 그러한 미사일이 실전 배치되기 전에 상대방이  선제공격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욱 정밀한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미 육군의 노력은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미 해군도 여기에 가세하여 목표물에서 1백 미터 이상 벗어나지 않는 미사
일 개발에 착수했다. 그에 따라 미국이 선제공격을 가했을 때 소련의 반격으로 사망할 미국
인은 2백만 내지 1천5백만 명밖에 안 되며, 결국  미국은 핵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호전적
인 전략가들의 주장에 한층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 역시  항상 현재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들 또한 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
다. 
  넷째, 이상과 같은 논리는 전략방위구상(SDI)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은 잠정  폐기된 
상태이지만, 레이건 대통령의 '스타워즈' 계획으로  1983년에 발표된 전략방위구상은 레이저 
무기(또는 입자빔 무기)를 이용한 방어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기존의 핵무기를 무용지물로 만
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그 뒤, 과학자들은 SDI에 필요한 기술개발의 어려움,  그보다 훨
씬 싼 값으로 효과적인 대응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SDI 방어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만일  SDI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보다 부정
적인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SDI가 적의 핵무기 공격에 대해 완벽한 방어망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경우, 소련은 미국에  아무런 손실도 입히지 못할 전쟁에서 전멸을  당할 
위험에 처하느니, 차라리 미국이  신무기를 실전에 배치하기 전에  선제 예방공격을 가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설사  부분적인 방어만 가능하다고 해도, 이 역시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맥나마라가 설명했듯이, "이슬비에는 조금 새는 우산이라도  큰 쓸모
가 있다." 따라서, 그러한 우산(미국의 선제공격에서 살아남은 허약한 소련의 공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을 구축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전쟁을 시작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맥나마라는 "러시아인들은 미국인들의 전략적  사고에서 항상 선제공격이 배제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어빔 무기를  개발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완전히 폐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하기 바란다. 미 공군은  비행기에 장착하여 수백 킬
로미터 떨어진 목표물을 정확하게 파괴할 수 있는 레이저 무기의 설계에 대한 계약을 발주
했다. 
  다섯째, 우리는 의학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핵전쟁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죽음과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또 냉전 기간에 전세계 인구 1인당 TNT 
5톤에 해당하는 폭발력의 핵무기가  비축되었으며, 그것은 전인류를 수십  차례나 죽이기에 
충분한 양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하버드 대학의 원자력연구그
룹이 주장한 바와 같이, 핵  병기고의 규모를 줄인 것이 오히려  선제공격에 매력을 느끼게 
함으로써 인류 재앙의 가능성을 더 높였는가 하는 점이다. 
  선제공격을 받은 뒤, 반격에 나서는 쪽은 핵전력의 90퍼센트를  상실한 상태가 된다고 가
정하자. 그렇다면 남은 10퍼센트의 전력으로 상대방에 전면적인 타격을 줄 수 없는 한, 경고
용 발사 전략에 강한 유혹을 느낄 것이다. 즉, 적의 미사일이 자국 내에서 폭발할 때까지 기
다리기보다는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기미를 포착하자마자 곧바로 보복 핵미사일을  발사하
는 것이다. 말하자면, 적이 실제로 공격했다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실제 공
격이 감행된 것으로 믿는다는 이야기이다. 
  냉전이 종식되기 전에 두 강대국인 미, 소가 거대한 군사력을 구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
나 그것은 상대방의 선제공격을 받은 뒤에  사일로에 남아 있는 미사일이나 활주로에  남아 
있는 폭격기 등을 동원하여 상대방에게 핵 억지전략의 중심 개념인 '확실한 파멸'을  가져올 
만큼 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 결과, 블레어(B. G. Blair)의 설명과 같이, 쌍방은 실수로 심
각한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고용 발사  행동에 즉각 돌입하는 자세
를 보이게 되었다. 구름에 비친 햇빛이  로켓의 배기가스로 잘못 감지될 위험도 있고,  하급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하여 경고용 발사를 감행할 위험도 있다.  또 핵탄두를 장착했든 아니
든, 실수로 발사된 미사일 몇 개가 전면적인 공격으로 해석될 위험도 있다. 
  1969년, 소련은 중국에 대해 핵공격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특히, 핵폭탄 실험장소와 핵기
지를 공격하겠다고 했다. 1967년과 1973년, 1991년에 이스라엘은 핵무기 부대에 비상을 걸었
던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1984년과 1987년, 1990년에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무
기가 사용될 수 있는 전쟁 직전 단계까지 갔다. 물론  그러한 전쟁으로 지구 전체의 파멸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고 해도, 미국이나 소련이 그러한  핵전
쟁에 개입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핵전쟁의  위험은 항상 미, 소  두 강대국의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 때 그러한 위험이 현실화할 뻔했다. 소련이 이집트에 군대를 투입하려 
했는데, 미국의 군사적 경고로 철회된  일이 있었다. 이것은 한쪽이 고속도로의  중앙선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다른 한쪽이 피해간 경우이다. 
  소련이 수소폭탄을 개발한 이래, 인류에게 있어 가장 위험시되어 온 것은 미, 소간의 우발
적인 핵전쟁 발발 가능성이다. 이 위험은 오늘날에도 상존하고 있다. 더욱이 소련이  해체된 
이후, 상부의 허락 없이 미사일 발사가 쉬워졌을 뿐더러, 연대급 지휘부의 결정만으로도 3백
여 개의 핵폭탄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제 '우발적인 핵전쟁'이란 용어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기계적,  전자적 
결함으로 인한 결과뿐만 아니라 사람의  실수나 정신 이상으로 인한  결과까지도 포함된다. 
상대방에 대한 공격 준비로 해석되는 훈련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실수로 인해 실제  공격과 
가짜 공격을 구분하지 못할 경우에는 더욱 위험하다. 블레어는 "미국은 실수로 훈련명령 대
신에 실제 핵무기 발사 명령을 종종 내리곤 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실제로 핵무기가 발사
된 경우는 없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기계적 실수는 1961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일어났다. B-52 폭격기가 
산산조각나면서 24메가톤급 폭탄 2개가 떨어졌다. 그중 하나는 6개의 안전장치 중 5개가 작
동되지 않는 상태였다. 단 하나 남은 스위치가 겨우 폭발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더 
위험한 경우는(날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소련의 핵탄두 탄도미사일이 정기점검 도중에 실
수로 발사된 사고였다. 다행히 그 미사일은 폭발하도록 프로그램된 목표물까지 날아가지 않
고 짧은 거리를 날아가다가 추락했다. 이보다 더 극적인 사고는 1980년 아칸소 주에서 있었
다. 추진 연료가 새어나와 폭발하면서 9메가톤급 핵탄두가 6백  피트 상공으로 치솟은 사건
이었다. 칼 세이건은 "통계자료를 구할 수 있는 1950-68년 사이에, 전세계에서 매년  핵무기
와 관련된 사고가 평균 3-4차례씩 일어났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격 감지 시스템의 작동 오류 역시 중요한 위험 발생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다른 경우
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접근 가능한 자료는 대부분 미국의 것이다. 소련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1980년 6월 북미방공사령부(NORAD)에서 컴퓨터 
칩 1개의 결함으로 소련의 공격을 경고하는 신호가 울렸다. 핵전쟁 비상경보가  발령되었고, 
다음 날, 사령관은 적절한 판단을 재빨리 내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임되었다. 그보다 7개월 
전에는 B-52 폭격기가 출격 준비에 들어갔고, 대륙간 탄도미사일 요원들이 예비발사 절차를 
작동시키고 발사 키를 넣기 직전까지 가는 일이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은 전쟁 게임 테이프
가 실수로 북미방공사령부의 주 경고 화면을 통제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화면에는 
소련 미사일이 잠수함과 육지에서 날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에, 미 상원은 1979년  1
월에서 1980년 6월 사이에 잘못된 경보가 1백47건 울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후에도 '일
상적인' 경보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울렸다. 그리고 1년에 한두 차례는 핵 비상사태를  선포
할 만큼 오랫동안 경보가 계속되었다. 
  잘못된 경보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을수록  위험하다. 오늘날 대륙간 탄도미
사일은 비행시간이 30여 분밖에 안 되며, 잠수함에서 발사한 미사일은 10분 이내에 목표 지
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우주공간에 설치한  '스타워즈' 방어무기는 6분 내에 작동하여 
SS-18 로켓을 불태울 수 있다. 만일  소련이 레이저 광선에 빨리 타는  로켓을 사용한다면, 
불과 1분 이내에 태울 수도 있을 것이다. 최신 감시시스템을 신뢰하는 사령관이라면 컴퓨터
만이 적절한 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 발사  결정을 컴퓨터에 맡길 수도 있다. 
우발적인 핵전쟁의 위험을 당사자들이  훨씬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그렇지 
않다면 오래 전에 핵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군부는 안전장치를 개선하라는 요구에 대해 
"불필요한 발사를 줄이기 위한 조처는 정당한 발사 명령의 수행을 방해할 가능성을 높인다"
는 핑계를 대면서 거부반응을 보인다고 블레어와 켄덜은 지적했다. 언젠가 소련 외무장관은 
미사일이 발사된 후에 그 폭발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도입했다고  발표
했지만, 미 군부는 그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블레어는, 미국이 1980년대 중반 '경고 발사 전략을 사실상 채택'한 것을 비판하면서 긴장
이 고조된 시기에는 잘못된 경보가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제 적의 핵
공격이 진행 중인가 시작되었는가 하는  판단은 "더이상 핵폭발의 유무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었으며", "북미방공사령부는 적극적인 전략적  경고(정치적 위기 때, 소련  핵무기의 이동 
상황을 포착하는 것과 같은)와 전술적 감지장치의 정지(고의적인 전파 방해로 오해될 수 있
는 우발적인 전자 사고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다)를 결합한 정보를 바탕으로 확실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군부는 정치지도자로부터 승인받지 않은 채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을까? 블레어
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러시아와 미국 군부는 대통령으로부터 필수적인 암호를 얻지 않는 
한, 물리적으로 핵공격을 시작할 수 없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
제로 군부는 전면적인 전략적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모든 암호들을 손에 쥐고 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첫째, 미국에서는 핵무기 통제가 위험
할 정도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하급 지휘관의 판단으로 핵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 예컨
대,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이 함장과 장교들의  판단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방
지할 수 있는 물리적 안전장치가  없다"는 보고서가 있다. 특히, 위기시에는  이러한 통제의 
분산은 대단히 위험하다. 제4차 중동전 때, 미국 지휘관들은 발사 키와 대통령의 발사  암호
를 안전장치로부터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다. 
  둘째, 반대로 통제가 중앙에 집중되면, 일선 지휘관들은 발사를  막을 수 없게 된다. 현재 
러시아와 미국은 고위급 지휘관이 미사일을 자동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
다. 이 과정들이 완전 자동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1987년, 군 
역사학자 키건(J. Keegan)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핵무기의 지휘 및 통제에 관한 비밀은 상대방이 알아내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이다. 
왜냐 하면, 선제공격으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가를  계산하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핵무기에 관한 정보는 철통같이 비밀에 싸여 있어 발사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는지 어떤지조
차 알 수 없다. 즉, 사전에 정해진 경고신호가 다른 감시 시스템으로부터 전해질 경우에  미
사일이 자동적으로 발사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더 명백히 헌법을  위반하는 사안은 없을 테지만, '대통령은  의회에서 
전쟁 선포에 관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은 핵공격이 실제로 일어나거나 그럴 우
려가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누구에게(컴퓨터, 군 지휘관, 정치가) 발사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이 최선인가  하는 것은 
답하기 어렵다. 왜냐 하면, 고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컴퓨터 칩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블
레어와 켄덜의 조사에 따르면, 1989년 한 해 동안 '핵무기와 관련 장비에 접근할 수 있는  7
만 5천여 명의 미군 중 2천4백여 명이 전역했다. 그  중 7백30명은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자
였고, 나머지는 정신적, 정서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명령 불복종 또는 범죄에 관련된  자들이
었다.' 브리텐(S. Britten)은 "전역 조처를 내리는 권한은 해당 부대 지휘관에게 있는데, 지휘
관들은 가끔 '훌륭한 병사'나 조종사는 술병을 숨기듯이 마약 복용 사실을 숨길 수 있는  사
람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이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핵무기
를 다루어왔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문제는, 겉보기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사실은 파괴에 희열을 느끼고 자기  감
정이나 계획을 숨기는 데 뛰어나다는 사실과 뒤섞여 매우  복잡해진다. 그런데 정치가들 역
시 언제나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모범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
제로 존경받는 인물을 포함한 전세계 지도자 중에는 알코올이나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
았다. 
  정치가들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닉슨 대통령이 사임 압력을 받으며 매우 심한 고통
을 겪고 있을 당시, 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군 통수권자로서 닉슨이 혹시 비이성적으로 행동
할 가능성에 대해 큰 주의를 기울였다. 프랑스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탱이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은 누구의 도움이나 조언도 받지 않고(따라서 만약 갑자기 정신적 장애가 발
생해도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고) 프랑스가  보유한 원자폭탄 사용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선언했을 때, 많은 시청자들은  그가 너무 독선적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킨 일단의 군 장성들은 고르바초프가 핵전쟁을 통제하는  암호
와 통신장비가 담긴 가방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곤혹스러워한 나머지, 고르바초프의 
그 어떤 발사 명령도 받아들이지 않기로 자기들끼리 합의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까운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핵무기 확산을 
막으려는 지금까지의 노력은 대체로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예컨대, 중국과 영국, 프랑스
가 보유한 핵무기는 미, 소가 잠정적으로  합의한 감축안(2003년까지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
는 3천5백 개, 러시아가 보유한 핵탄두는 3천 개)에 도달할 무렵이면, 이들  두 나라가 보유
한 총 파괴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핵무기들을 갖게 될  것이다. 인도는 곧 수소폭탄 실험
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거나(예컨대,  이스라엘) 핵무기 개발 계
획을 세웠던 국가 역시 10여 개 국에 이른다(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한 이라크 포함). 그 밖
에 일부 국가에서도 핵개발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설사 지금은 중단됐다 하
더라도 언제 재개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미 여러 국가들이 원자로뿐만  아니라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재처리 설비까지 갖추고 있는 형편이다.  마음만 먹으면 플루토늄을 빼돌리
거나 구입할 수 있을뿐더러 핵탄두까지 살 수 있다.  국가뿐만 아니라 테러리스트나 범죄집
단 역시 그러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다음 이야기는  구소련이 붕괴할 당시의 혼란상을 감
안하면 충분히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다. 
  "1991년,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동독의 한  군인으로부터 핵탄두를 사들일 계획을  세웠다. 
그린피스는 그것을 배에 실어 베를린으로 운반해  깜짝 놀랄 만한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었
다. 그러나 그 군인이 소속된  부대가 러시아로 일찍 철수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중단되었
다."
  해서드(J. Hassard)가 지적했듯이, 원자폭탄의  운반 시스템은 "반드시  탄도미사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난민들이 가득 탄  트럭도 사용될 수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사일로에 
있는 초강대국의 핵무기들이 인류 생존에 직접적이고도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들마저 핵무기를 보유
하려고 나서고 있다. 핵무기 개발에 관한 지식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그 중 많은 것(수
소폭탄을 제조하는 아주 세부적인 사항까지)은 공공도서관이나 컴퓨터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다. 1995년, 도쿄의 한 지하철에서 신경가스 테러사건을 일으킨 옴 진리교는 16억 달러
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핵무기 제조에 관한 많은 자료들도 갖고 있었다. 
4만여 명에 이르는 신도들 중에는 물리학자와 로켓 과학자까지 있었다. 
  마지막으로, 매우 골치아픈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것은  플루토늄이나 농축 우라늄을 기
폭제로 사용하지 않고도 소형 핵융합 폭탄을  만들 가능성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장
을 지낸 프랭크 바너비(Frank Barnaby)는 최근에 '적색수은'(안티몬과 수은의  화합물. 원자
로에서 방사선에 쬐었을 때 결합되며, TNT보다 수백 배나 많은 화학적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 기폭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명한 핵무기  분석가인 그는 관련 당사자
들이 완강하게 부인하는 '적색수은'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과학자로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적색수은은 이미 존재하며, 러시아의 중성자폭탄에  이용되었을 가능
성이 높다."
  중성자폭탄을 발명한 핵물리학자 샘 코헨(Sam  Cohen)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적색수은은 
실제로 존재하며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고도의  조직사회에 종말을 가져올 수 
있는 테러리스트의 잠재적 무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사방 6백 미
터 이내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야구공 크기만한 중성자폭탄의 중심에서 3중수
소의 핵융합 반응에 불을 당기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다른 전문가들은 이 주장
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2. 화학전 및 생물학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약 1백만 명의 병사들이 염소가스나 포스겐가스와 같은 독가스 공격
에 노출되어 9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개발되었지만 사용되지 않았던 
타분, 사린, 소만과 같은 신경가스는 극소량만으로도 치명적이다.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
이 VX(미국은 1967년 4천  톤을 보유하고 있었다)인데, VX는  불과 수 밀리그램만 피부에 
닿아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전체 인구를 모두 죽이기에 충분한 양(만일 중
국인들이 그것을 맞기 위해 한 줄로 늘어선다면)일지라도 실제로는  불과 1평방킬로미터 정
도의 전장을 청소할 뿐이다(냉소주의자들은 최근에 많은  나라들이 화학무기제조금지협약에 
서명하려는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 협약이 효력을  발생하려면 65개국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오늘날 유전자 클로닝으로 값싸게 만들어낼 수 있는 천연독소는 이러한 독가스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다. 천연독소 3백 톤은 한때 초강대국들이 보유했던  화학무기 8만 톤에 맞먹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이질균독소는 타분보다 약 1백만 배나 강하다. 시가 유전자는 미  육군
에서 클로닝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공식적인 목적은 '백신을 만들기 위한 평화적인 것'이었
다. 미 육군은 그에 앞서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의  새로운 치료약을 개발하기 위해' 디프
테리아 독소의 유전자를 클로닝한 바 있었다. 
  물론 보호장비를 적절하게 갖춘 군대는 화학무기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다. 다만,  두
꺼운 의복과 호흡기 등의 장비 때문에 전진 속도가 느릴  뿐이다. 그러나 민간인들은 큰 피
해를 입게 된다. 그리고 인류를 절멸시키려면  스스로 번식하는 다른 종류의 매개물(생물학
전에 사용되는 세균, 리케차, 박테리아, 곰팡이균 등)이 필요할 것이다.  단 하나의 리케차만 
몸 속에  들어가도 Q열(리케차로  인한 폐렴과   비슷한 열병)의 발생으로  죽을 수  있다. 
1918-19년에 창궐한 인플루엔자는 유전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최소
한 7억 명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인플루엔자로 죽어갔다. 
  1346년, 몽고군은 카파(Caffa)를 포위 공격하면서 역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도시 
안으로 던졌다. 그 뒤, 카파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흑사병을 유럽 전역에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 전 유럽 인구의 30퍼센트에 달하는 2천5백만  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1763년, 
영국인들은 천연두병원에서 사용하던 담요를 의도적으로 북미 인디언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세균전이 있었다는 주장은 많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은 
탄저병 폭탄을 개발했다. 그 후, 영국은 "이러한 형태의 전쟁이 우리에게 가해질  때 사용하
고자" 미국으로부터 50만 개를 주문했다고 한다. 이는 윈스턴 처칠 수상의 기록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때, 영국 합동참모본부는 연합군이 그러한 형태의 전쟁을 먼저 일으킨다면  승리
를 앞당길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1945년에 이르러,  영국에서 
는 5백 파운드짜리 세균폭탄이 상당한  수준까지 개발되어 있었다. 이 폭탄을  4천 개 정도 
떨어뜨린다면 아헨,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슈투트가르트, 빌헬름샤펜에 거주하는 
시민 중 절반 가량이 탄저병으로 사망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미국에서는 4천여 명에 달하는 어느 부대가 탄저병,  황열병, 페스트, 보툴리누스균 및 수
십 가지의 병균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곡식  및 가축의 병균도 포함되어 있었
다. 인디애나 주에 소재한 제조공장이 1945년에 준비를 완료했지만 실제로 가동되지는 않았
다. 그러나 이 공장에서는 한 달에 50만 개의 탄저병  폭탄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
며, 종전 6년 후에는 미 공군을 위해 곡식병균 폭탄을 제조하기도 했다. 
  1935년, 소련이 수원지에 콜레라균을 살포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접한 일본은 콜레라에 
대해 대대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페스트, 티푸스, 장티푸스, 출혈열, 천연두에 대해서도 연구
했다. 그 결과, 탄저병 폭탄과 괴저가스폭탄을 개발했다. 일본은 중국 대륙을 침략하면서 최
소한 11개 도시에 비행기로 페스트균이 묻은 종이, 솜, 밀, 쌀 등을 투하하여 실험적인 세균 
공격을 감행했다. 탄저균과 파라티푸스균도 1백30킬로그램을 살포했다. 그들은 또 수천 명의 
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했는데, 그 중 3천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
나 당시 미국은 실험 자료를 얻는 대가로 이러한  사실을 눈감아주었다. 소련도 세균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9년 미 상원에는 소련 스베르들로프스크에서 발생한 탄저
병이 생물무기 공장의 폭발 때문이라는 보고서가 제출되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황열병을 옮기는 데  사용하기 위해 한 달에  1억3천만 마리의 
모기를 번식시킬 수 있는 공장 설계가 전후 연구  활동에 포함되기도 했으며, 포트데트릭에
서는 페스트, 야토병, 탄저병, 이질 등을 옮기는 운반체로 사용하기 위해 벼룩과  진드기, 파
리를 기른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브루셀라증, 로키산홍반열, 리프트밸리열, Q열, 뇌척수
염 등도 전시에 사용할 목적으로 연구되었다. 
  한국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1952년에  국제과학자위원회는 "한국과 중국 사람들이  실제로 
세균학 무기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물론  미국은 사실 자체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로부터 상당 기간이 지난 뒤, 그 성명 발표에 참여했던 한 영국인  과
학자는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그것은 대체로 실험적인 연구였으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
었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군이 샌프란시스코,  뉴욕, 위니페그에서 비밀리에 진
행한 모의공격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1950년에 실시된  모의공격에서는 2대의 소해정에서 
강한 바람에 실려 날아간 세균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폐에 1인당 최
소한 5천 마리씩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무해한 세균이긴 했지만). 1948년에서 1959년 사이
에 영국에서 실시된 비슷한 실험 결과 역시 놀랄 만한  것이었다. 수천 마리의 동물들을 뗏
목 위의 우리에 가두어 바하마 제도와 스코틀랜드의 서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세균에 노출되게 했다. 그리고 비행기가  영국 해안 주위를 날아다니
면서 해롭지 않은 황화카드뮴아연을 살포했다. 그 결과, 영국은 에어로졸 형태의 세균  공격
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임이 밝혀졌다. 
  이상에서 언급한 모든 실험은 이를 금지하는 일련의 국제협약이 체결되는 와중에서  일어
난 것들이었다. 1925년에  체결된 '제네바  협약'은 가스나  세균무기의 사용을  금지했으며, 
1972년의 '제네바 협약'은 추가로  생물학무기의 개발과 비축을  금지시켰다. 물론 초기에는 
상당수의 국가들이 협약에 서명하지 않거나 비준하지  않았다. 일본은 1970년에 이르러서야 
첫 번째 제네바 의정서에 비준했고, 미국은 1975년에 비준했다. 1985년까지 개발도상국 가운
데 절반 가량이 두 협약 중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다가, 두 가지 조건을  전제로 
비준하는 사례가 많았다. 선제 사용만 금지한다는  것(어느 쪽이 먼저 사용했는가를 확인하
기는 매우 어렵다)과 협정에 비준하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공격해도 된다는 것
이 그 조건이었다. 
  이 밖에 '제네바 협약'은 연구에 대해서는 무제한 허용하고, '보호용 또는 다른  평화적 목
적'으로 제조하는 것 역시 허용했다. 그 결과,  '백신을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상당량의 생물
학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데, 일부는  자국민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는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검증방법에  대한 연구는 199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것은 어느 특정 국가가 협정을 위반했는지의 여부를 밝혀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
문에 그랬을 것이다. 결구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아무리 양순한 국가라 할지라도  타국
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전 연구가 불가피하며, 나아가 그 무기를 즉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밝힘으로써 상대방의 공격을 억제하려 할 것이
다. 1994년, 미국은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포함하여 최고 25개 국이 생물학무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는  공격적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전공학의 발달은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1983년, 미 군부의 대변인은 탄저균과 같은 생물학무기가 전세계에 가득차 있다고 언급했는
데,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어리석은 반응이었다. 왜냐  하면, 유전자 조작 기술은 급
속하게 발달하여 이제는 전염성이 매우 강한 바이러스를 다루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기 때
문이다(탄저병 백신은 사망률을 20퍼센트 미만으로 낮추었다. 실제로 탄저병은 전염성이 특
별히 강하지도 않다).
  미생물의 DNA나 RNA의 특정 부위에  화학물질을 가함으로써 정상적으로는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서로 다른 유기체로부터 잘라낸 유전자들을 
결합하는 방법 등을 통해 아주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1985년, 영국의 대처  총
리는 "생물학무기는 핵무기만큼 위험한 잠재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언명하기도 했다. 
  정상적인 세균은 숙주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 숙주를  죽이면 진화에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페스트의 새로운 변종은 퍼지면 퍼질수록 덜  치명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경향
이 있다. 문제는 여기에다가 독소를 생산하는 유전자를 의도적으로  집어넣을 수 있다는 사
실이다. 모든 사람들의 창자 속에 들어 있는 무해한  대장균을 변형시키면 보툴리누스 독을 
생산할 수도 있다. 병원체의 표면 구조를 변화시켜 식별을  불가능하게 하면 자연적 저항력
과 백신의 작용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이처럼 식별 불가능한 특징은 인플루엔자나 AIDS  
바이러스와 같이 다양한 변형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이용하여 지속시킬 수  있다. 공격에 
사용하려는 특정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자국 군인들에게 미리 투약할 수도  있
다. 자국민들 역시 바람에 실려 보낸 에어로졸을 통해 비밀리에 백신을 투여할 수 있다. 
  그러나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공격자가 정확히 어떤 종류의 미생물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
기 때문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질병이 발생하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에야 비로
소 그러한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인종차별적'인 생물학무기도 제안되었다. 리프트밸리열의 경우, 백인이 이 병에 결려 죽을 
확률은 흑인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또, 엡슈타인-바 바이러스는 아프리카 흑인과 동
남아시아 사람들에게 암을 일으키지만, 백인에게는 암을 일으키지 않는다. 결국 그러한 질병
이나 유전공학을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질병으로 공격을 감행한 나라는, 적국에서는 사망률
이 높고 자기 나라에서는 사망률이 낮은 질병이 발생한 데에는 조금도 이상한 것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특정 질병이 특정 지역에서만 발병할 경우에도  비슷한 논리로 혐의를 부인
할 수 있다. 유전공학자들이 만들어낸 치명적인 새로운 종류의 병원체는 자연적인 돌연변이
에 의해 생겨났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조 방법이 크게 발달함에 따라 검증은 더욱 어려워졌다. 항생물질이나 백신을 만들어내
는 평화적인 연구소일지라도 언제든지 병원체를 만들어내는 연구소로 전환될 수 있다. 제조
에 걸리는 시간이 수천 배 이상 단축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대한 포유류의 세포를 아주 
작은 물방울 표면에서 성장시킬 수도 있고, 작은 병 하나로 예전에 거대한 생산설비를 통해 
만들어내던 양만큼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다. 그리하여 세균은 매우 빠른 속도로 가난한 자
들의 원자폭탄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소규모 테러 집단이나 전세계를 볼모로 삼으려고 하는 
범죄자들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이 과연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축병이 광범위하
게 연구되었으며, 영국은 탄저균이 든 가축용  케이크를 5백만 개나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가축이 탄저병에 걸린다고 해도, 사람들은 채식을 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다. 반면에, 쌀이
나 밀, 옥수수, 감자 등을 공격하도록 개발된 바이러스와 세균과 균류는 광범위한 기아 사태
를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전 인류를 전멸시킬 만큼  작물이 완전히 파괴되리라고 보기는 어
렵다.
  인류에게 가장 큰 위험은 인간을 직접 겨냥한 병원체들일 것이다. 공격을 가한 나라가 보
유한 백신은 실패작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많다. '인종차별적'인  생물학전 매개체들은 쉽게 
돌연변이를 일으켜 모든 종족을 무차별적으로 죽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포분열을 일정
한 횟수만큼 한 다음에는 스스로 죽게끔 유전공학적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돌연변이나 자연 속에 존재하는 다른 유기체와의 유전물질 교환으로 그 장치가 제대로 작동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테러리스트나 수십억 달러를 요구하는  범죄자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그 어떤 백신으로도 대응할 수 없는 치명적인 병원체를 갖고 있다면 인
류 전체의 미래를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로버트 왓슨-와트(Robert Watson-Watt)는 1961년 집필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람의 수단>이란 책에서, 핵전쟁과 생물학전의  가능성을 검토한 뒤, 만약 전세계가  '단일 
경찰력'을 갖출 수만 있다면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여기서 '단일 경찰력'이란, 개개 국가들의  치안 유지에 필요한 무력보다  훨씬 강한 무력을 
갖춘 세계 유일의 군대를 말한다. 
  오늘날 테러리스트와 범죄자들로부터 가해지는 위협을 제거하는 일은 개인의 사생활을 무
시하는 강압적인 경찰력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매우 소
중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명의 위협을 감수할 만큼 소중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
생활의 보호를 악용하여 새로운 병원체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
다.  

    3. 환경오염과 인구 위기
  이것은 가장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부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은 잘 알려져 있
는 것들이지만, 여러분은 급진적인 온실효과에 대한 것을 읽고 나면 무척 놀랄 것이다. 

  화학물질이나 원자력 방사능에 의한 오염
  오늘날 물과 공기 및 토양은 오염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우선 가정에서 나
오는 하수와 쓰레기가 하나의 요인이다. 많은 곳에서 하수도는 강이나 호수, 바다로 직접 연
결된다. 산업화된 국가에서는 매년 1인당 0.5톤의 쓰레기를 배출하는데, 이 쓰레기가 산더미
처럼 쌓여 지하수를 오염시키기도 하고, 공기 중에 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재 속의 다른 오염
물질들의 농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태워지기도 한다. 가정용 쓰레기에 포함된 많은 성분들도 
위험한 폐기물로 분류되지만, 그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 산업 현장에서 배출된다. 미국의  공
장들에서는 시민 1인당 최소한 1톤에 이르는 유해 폐기물을  만들어낸다. 그 중에서 약 1천
만 톤은 독성 화학물질이다. 때문에 나이아가라  시의 악명 높은 러브 운하와 같이  '쓰레기 
매립지 침수 사건'을 일으키곤 한다. 가난한 국가에서는 쓰레기 매립지에 대한 규제  조항이 
거의 없다. 중국은 1년에 약 5억 톤의 산업폐기물을 배출하는데, 그 대부분을 도시 외곽에다
가 버린다. 북아메리카와 유럽에서도 불법적인  쓰레기 투기 장소들이 종종 발견된다.  작은 
나라인 네덜란드에서조차 단 한 번의 조사에서 4천여 곳이 발견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영국과 프랑스는 쓰레기를 바다에 버렸다. 그들은 산업현장에서 합성된  8
만여 가지의 화학물질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전혀 모른 채, 매년 2천만 톤의 산업
폐기물을 바다에 버렸다. 사람들이 DDT와  유연 휘발유가 위험하며, 염화불화탄소(CFC)와 
같은 비활성물질도 자연적 과정에 의해 그 구성 성분들로 분해되면 큰 해악을 가져올 수 있
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우리는 해마다 약 20역 톤의 비연료 광물을 캐내어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데 이용하고 있
다. 채광이나 제조 과정에서 독성 금속들이 광범위한 지역으로 흩어진다. 채광 과정에서  얻
은 경험에 따르면(벌목이나 농업에도 적용된다), 최종 산물(이것 역시 결국은 대부분 쓰레기
가 된다) 1톤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조 과정에서  5톤의 쓰레기가 발생하며, 최초의 원료 물
질을 얻는 과정에서는 20톤의 쓰레기가 발생한다. 
  광산의 고갈은 원료 물질의 추출에 필요한 에너지 및 찌꺼기 폐기물을 엄청나게 증가시킨
다. D. H. 메도즈(D. H. Meadows)와 D. L.  메도즈(D. L. Meadows), 랜더스(J. Randers)는 
"몬태나 주의 뷰트에서 채굴하는 구리 광석의 평균  순도가 30퍼센트에서 0.5퍼센트로 떨어
짐에 따라 구리 1톤당 발생하는 찌꺼기의 양은  3톤에서 2백 톤으로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납은 자연적인 방출 속도보다 18배나 많은 양이 환경 속으로 방출되고 있다. 카드뮴
은 5배, 수은과 니켈, 비소, 바나듐은 자연적 방출 속도보다 2배의 속도로 방출되고 있다. 약 
2천 톤의 수은이 단지 시금 때문에 아마존의 생태계에 흘러들어갔다. 
  많은 살충제와 폴리염화비페닐(PCB : 이용가치가 크지만, 유독한 오염물질). 그리고 보다 
위험한 다이옥신과 같은 발암성 물질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할 대상이다.  이 물질들은 
자연계의 먹이사슬을 따라 올라가면서 농도가 엄청나게 농축될 수  있다. 북해 포유류의 몸 
속에서 발견되는 PCB는 약 1천만 배까지 농축된 상태이다. 커민스(J, Cummins)는 "만일 제
3세계가 보유하고 있는 PCB를 바다로 흘려보낸다면, 전부는  아닐지언정 광범위한 해양 포
유류의 절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1976년, 세베소(Seveso)에서 발생한 화학공장 폭
발하고롤 전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양의 다이옥신이 누출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고들은 
문제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1984년, 인도 보팔의 한 살충제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나 
20만 명이 부상하고, 2천 명이  사망했다. 한편, 작업 중에 또는  사고로 살충제에 중독되는 
사람은 매년 1백만 명에 이르며, 2만여 명이 사망하고 있다. 
  토질이 나빠지고 해충(잡초, 균류, 선충류, 진드기, 곤충)의  저항력이 강해짐에 따라 살충
제와 화학비료의 사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살포된 화학물질들은 땅에 축적되거나 
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살충제는 명백한 재앙을 가져온다. 비료가 지닌 가장 큰 결점은  토양
의 균형과 곡식의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살충제 사용을 불가피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런
데 서구에서는 자국 내에서 사용 금지된 많은 살충제를  수출용으로 제조하고 있다. 영국에
서는 강한 발암성 물질은 DDT의 사용이 금지되자, 수출량은  오히려 7배로 늘어났다. 미국
에서는 1972년에 DDT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매년 2만 톤씩 제3세계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공기오염을 일으키는 기체와 미립자들은 도시에서 두드러지게 발생한다. 어느 도시에서는 
공기오염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자동판매기에서 산소를 사서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공
기오염의 피해는 도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도시 주변의 시골  역시 수확량 감소에서 
볼 수 있듯이, 공기오염의 영향을  받고 있다. 먼지 입자와  일산화탄소, 오존이 공기오염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황이나 질소의 산화물이야말로 진짜 주범이다. 이 물질들은 차량이나 
발전소 등에서 배출되어 산성비를 내리게 함으로써 물고기와 삼림에  큰 피해를 입힌다. 공
기오염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관찰되어 왔으나, 
산성비는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얕은 홍토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산성비
는 토양에서 영양물질을 씻어가 버리고, 수은과 카드뮴을 비롯한 독성 금속물질을 활성화시
킨다. 
  전쟁 및 전쟁 준비 역시 오염을 악화시키는 데 큰 몫을 해왔다. 베트남전 때, 미군은 고엽
제를 비롯하여 여러 화학 약품을 수십만 톤이나 뿌렸다. 그 중에서  에이전트 오린지(Agent 
Orange)는 다이옥신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담  후세인은 코란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1991년에 걸프전의 패배에 대한  복수로 쿠웨이트의 유정에 불을  질렀다. 거기서 
발생한 시커먼 연기 구름은 길이 9백  킬로미터, 폭 6백 킬로미터나 되었다. 화재가  진화된 
후, 수천 평방킬로미터의 땅이 독성 증기를 내뿜는 기름 호수로 뒤덮였다. 다행히 그것은 우
려했던 것만큼 큰 피해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연기가 비교적  낮은 고도에 머물러준 덕분이
었다. 
  보다 큰 재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제조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1949년,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지역에 살던 수천 명의 사람들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들과 비슷
한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시름시름 앓아갔고, 백내장과 암에  걸렸다. 
스탈린은 최초의 원자폭탄실험을 명령했지만, 그곳에서 발생한  방사성 낙진이 바람에 실려 
인구 1백만 명 이상의 인근 도시로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염려하지 
않았다.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사전이든 사후든 아무런 경고도 듣지 못했으며, 오염
된 농경지에서 수확된 식량과 과일 및 야채를 맛있게 섭취했다. 
  1957년 겨울, 소련 키슈팀에 있던 군사용 원자로에서 나온  핵폐기물 저장 창고가 폭발하
는 바람에 수백 평방킬로미터의 지역을 영구히 폐쇄해야만 했다.  또 우리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까지 핵실험을 보는 것을 연기하고 싶지 않다고 장난스럽게 
거절했을 때(이 실험은 3천 킬로미터 이내의 주민들이 높은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되는 결과
를 가져왔다), 1945-61년 사이에 지상 핵실험이 4백61차례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
가 있다. 그리고 잔류 방사능 때문에 태평양상의 많은 섬들은  향후 수천 년간 인간이 생활
하기에 위험할 수도 있다.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로  폭발사고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민간용 원자력의 발전은 
놀라웠다. 특히 원자력은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이나 수력발전보다 환경친화적인 에너지원
으로 각광을 받았다. 실제로 체르노빌 원자로폭발사고가 있기 7년 전,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
드에서 원자로 붕괴 사고(원자로 중심의 일부가 붕괴된 사고였다)가 있었지만, 방사능은 거
의 누출되지 않았다. 1957년에도 윈드스케일 원자력발전소에서 화재사건이 있었지만, 장기적
으로 최고 1백여 명이 암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될  뿐, 단기적으로는 사망자가 한 사람
도 없었다. 석탄을 때는 대규모 화력발전소의 경우, 채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나 진
폐증, 천식 등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더 큰 희생을 가져온다. 
  체르노빌의 재난은 관리자들이 무식할 정도로 안전을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따라서, 우리는 안전에 유의만 한다면 그러한 사고는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평상시에 체르노빌 원자로의 운전 요원들은 "원자로를 어떻게 다루든 간에 푝발은 절
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체르노빌 원자로의 푹발 사고
로 30명이 순식간에 사망했으며, 소련의 공식 보고에 따르면, 그 후 4만 명이 제 명을  채우
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생물물리학자   고프먼(J. Gofman)과  방사능학자 스턴글래스(E. 
Sternglass)는 이 사고로 약 50만 명의 수명이 짧아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체르노빌 원자로 사건보다 더 강력한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원자로 위험에 관
한 전문자인 웹(R. Webb)에 따르면, 3킬로톤의 TNT 폭발과 맞먹는 규모의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원자력과 관련된 가장 큰  위험요소는 원자폭탄을 보유하고자 하는 
국가를 도와주거나,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들의 원자로 공격, 수만 년 동안 높은 방사능을  내
뿜는 핵폐기물 저장에 따르는 위험 등이다. 
  특히 핵폐기물을 오랫동안 저장할 만한 지질학적으로 적절한 지하 장소를 찾기가 매우 어
려우며, 지상에 저장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1945년에서 1973년 사이에  미
국의 주요 저장센터인 핸퍼드의 저장탱크에서는 40만 갤런 이상의 방사성 폐기물이  누출되
었는데, 미국 에너지부는 2000년까지 미국 내에 약 5만 톤의 '폐연료'가 쌓일 것으로 추정하
고 있다(이 폐연료는 방사능이 지나치게  많이 증가하여 상업용 원자로에서  빼낸 우라늄을 
말한다). 더욱이 핵융합 반응을 이용하는  원자로들이(설사 개발에 성공하여 현재의 핵분열 
원자로를 대체하더라도) 더 많은 방사성 폐기물을 발생시킴으로써 원자로 벽이 즉시 오염될 
것으로 보인다. 
  부유한 국가의 회사에서는 때때로 환경 규제가 경미한 가난한 나라로 공장시설을  이전하
기도 한다. 시설을 이전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런 행동을 취함으로써 자국 내에서  규제를 
완화시킬 수 있다(지구 전체로 보면 하나도 달라질 것이 없는데 괜히 자국의 실업자만 늘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위협함으로써). 매년 약 2천만 톤의  독성 폐기물이 부자 나라에서 가난
한 나라로 수출되고 있으며, 그것은 종종 불법적으로 매립된다. 물론 부자 나라만이  오염물
질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열대림 및 아열대림, 관목 또는 초지를 불태워 개간하는 행위
가 해마다 반복되는데, 여기에서 연기와 가스(예컨대, 수백만 톤의 염화메틸)가 발생한다. 일
반적으로 제3세계에서는 산업활동을 제한하는 극소수의  법률마저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구소련 연방 국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 
  비어드슬리(T. Beardsley)는, 체르노빌에서 누출된 방사능은 "플루토늄을 얻기  위해 구소
련이 사용했고 지금도 러시아가  사용하고 있는 핵반응으로부터 발생하는,  수명이 훨씬 더 
긴 방사성 핵종의 대량방출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다"하고  했다. 중앙시베리아에 있는 톰스
크-7호 원자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최대의 오염물질 배출원이었다.  이 원자로는 약 
10억 퀴리의 고준위 폐기물, 즉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20배에 달하는 양을 쏟아낸다.  이
로 미루어볼 때, 러시아 전체에서 배출되는 방사능은 미국의  4백여 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
정된다. 1992년, 약 30만 명의 구소련 시민들이 방사능병 치료를 받았으며, 우랄지역 군사산
업지역에서 배출되는 유독성 증기로 인해  선천성 결손증과 기관지염, 혈액병, 신경장애  및 
정신박약 등과 같은 질병이 발생했고, 그 근처의 도시들은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공산주의의 불결한 유산은 동구  국가들에까지 이어졌다. 폴란드의  비스툴라강은 오염이 
심해 공업용수로 이용할 수 없을 정도이고, 바르샤바는 이미 하수처리 능력을 상실했다.  체
코는 지방에 소재한 우물의 90퍼센트가 오염되었고, 루마니아에서 배출된  염소(눈과 폐, 피
부 등에 질환을 유발시킴)가 인근 국가에까지 펴져, 1987년에 불가리아인 수만 명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삼림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행위로  인해 오염이 심화되고 있다.  숲은 대기를 
정화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숲을 불태울  때 발생하는 일산화탄소 때문에 수산기(반응
성이 매우 높은 분자 조각으로, 대기  중에 포함된 이산화황이나 질소 산화물, CFC와  같은 
희소 기체들의 비율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의 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 
  더 일반적인 위험은 앞에서 언급한 각각의 요인들이 더 많은 변화를 초래하는 '긍정적 피
드백'에 의해 지구의 환경사이클  자체가 '파국적인 변화'를  초래할 위험이다. 러브록(J.  E. 
Lovelock)의 저서 <가이아>는 부정적인 피드백  메커니즘(온도조절장치에서 볼 수 있는)에 
의해 지구가 수십억 년 동안 건강을 유지해 왔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에, 산업가들은 이것
을 지구를 오염시켜도 괜찮다는 이야기로 간주했다. 그러나 <가이아>에는 '급진적인 긍정적 
피드백' 메커니즘을 통해 '대규모 절멸'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나중에 러브
록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류는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산업의 도움을 받아 지구의 주요한 화학적 사이클을 크게 
변경시켰다. 우리는 탄소 사이클을 20퍼센트 증가시켰으며, 질소는 50퍼센트, 황은 1백 퍼센
트 이상 증가시켰다. 우리는 급진적인 긍정적 피드백 또는 바람직하지 않은 둘 이상의 상태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진동하는 사이버네틱 재앙을 피하도록 조심하면서 걸어다녀야 할 것이
다." 
  1986년, 메도즈 등은 인류가 지구 전체(육지와 바다 포함)의 광합성 산물 중 25퍼센트, 그
리고 육지의 광합성 산물 중 40퍼센트를 사용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그리고 20-30년 
뒤 인구와 경제활동이 두 배로 늘어나  80퍼센트 이상의 광합성 산물을 차지한다면  지구는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암울한 질문을 제기했다. 
  지구의 환경 붕괴가 임박했다는 신호는 아프리카를 제외한 지구 곳곳에서 개구리와  두꺼
비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읽을 수 있다. 축축하고  섬세한 피부를 통해 호흡하는 
이들 양서류는 카나리아와 같은 역할을 한다(카나리아는 광산에서 유독성 가스가 있는가 없
는가를 판별하는 데 사용된다). 그런가 하면, 전세계적으로 성인 남자의 정자  수가 절반 이
하로 감소했으며, 고환암 환자가 2-4배 급증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에스트로겐(발정 호
르몬)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오염물질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데, 여러 가지 독성 물질 또한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물론 희망의 여지는 있다. 다소  비과학적인 것으로 보이는 '가이아 가설'(바이오스피어를 
스스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초유기체로 보는 편리한  가설)의 주창자 러브록은 '가이아 
가설'이 지질학적 기록으로 보나, 부정적인 피드백이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나 옳다
는 것이 확인되며, 여기서 혜택을  얻을 수 있는(떄로는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그러한 
요인들을 강화시키기도 하며) 종들이 진화해 간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숲은 과도한 햇빛을 
받으면 많은 양의 물을 증발시키게 되고, 그에 따라 구름이 많이 생겨 햇빛을 우주공간으로 
반사시키게 된다.
  이 밖에 암 환자의 발생률이 아직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은 아니하는 주장이  공식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폐암 발병률은 높아지고  있지만, 이것은 담배 때문에  그런 것이며, 위암과 
자궁암은 오히려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1994년에는 "유럽에서  삼림의 바이
오매스(biomass)는 오염물질과 산성비의 심각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단지 살아남을 뿐만 아
니라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해를 끼치는 바로 그 화학물질들이 오히려 비료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산성비가 온실효과로 인한 온난화 현상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산성비는 바
다의 생물학적 활동을 증가시키고, 이것은 바다로 하여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흡수하도록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빗속에 포함된 황산염 물질은 구름씨 역
할을 함으로써 많은 구름을 생성시켜 지구를 냉각시키는 데  일조한다. 더구나 어떤 미생물
들은 오염물질 속에서도 잘 살아간다.  어느 미생물은 오염물질을 무해한  물질로 바꾸기도 
하는데,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는 석유의 유막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유전공학으로 만들
어내어 특허를 신청하기도 했다. 메도즈 등은 전화 시스템에서 수백 가닥의 구리선을 한 올
의 머리카락만큼 가느다란 유리로 대체하거나, 산업혁명 이래 줄곧 사용되어 온 '고온, 고압, 
독한 화학물질, 그리고 가공할 힘' 대신에 바이오테크놀로지나 나노테크놀로지 같은  기술혁
명으로 인류의 생존 환경은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낙관론의 근거들은 환경운동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환경친화적 공장이나 기계 및 오염된 
토양과 물을 정화하는 산업 시장은 약 1조 달러에 달하고 있다. 또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람
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려는 정부 당국자들의 의지 또한 확고해지고 있다. 
 

  오존층의 파괴
  성층권의 오존층은 자외선을 차단해준다. 만약 성층권에  존재하는 모든 오존을 해수면까
지 끌어내린다면, 오존층의 두께는 불과  3밀리미터에 불과할 것이다. 1970년대에  오존층은 
CFC(염화불화탄소)의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CFC는 냉장고의 냉매, 에어로졸의 분사제, 공
업 용매 등으로 연간 약 1백만 톤씩 생산되었다. 내다버린  냉장고에서 새어나온 CFC는 서
서히 성층권으로 올라간 다음, 햇빛에 의해 분해된다. CFC에서 분리되어 나온 염소 원자는 
촉매 반응을 통해 오존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염소 원자 하나는 수십만  개의 오존 분자를 
파괴할 수 있다. 성층권에 존재하는 염소의 양이 이전의 5배에 이르렀고, 계속 증가하고  있
는 것은 주로 CFC 때문이다. 현재 성층권에 존재하는 오존의 양은  4-8퍼센트가 감소한 것
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남극 상공에서 오존 파괴의 정도가 심하게 나타나, 해마다 10월 무렵이면 남극 상공
의 오존층에 구멍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존 구멍의 면적은 어떤 때에는 미국만한 크
기로 커지기도 한다. 
  다른 오염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오존층 파괴를 시사하는 증거들이 제시됐을 때,  처음에
는 이를 의심하는 주장들이 나왔다. 오존 구멍이 발견되었다는 보고서가 제출되었을 때,  일
부 과학자들은 계절풍이 오존을 불어날려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제
시했다.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의  환경보호위원회  회장직을 맡았던   버퍼드(A. G. 
Burford)는 훗날 냉소적으로 "불과 몇 년 전에 플루오르탄소가 오존층을 위협한다는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일을 기억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내무장관이
던 호델(D. Hodel)은 그러한 위험에 대한 충분한 대응조처로 '개인적인 보호 장비와 생활양
식의 변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문제가 정말로 심각하다는 과학계의 공통적인 인식과 함께, 실명을 방지하기 위해 
젖소들이 야구모자와 선글라스를 쓴다거나, 피부암을 막기 위해 햇빛 차단 크림을 바른다거
나, 실내에서 주로 머무는 '생활양식의 변화'를 묘사한 만화들은 1987년에 '몬트리올 의정서'
를 체결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에  21개국이 서명한 '몬트리올 의정서'는 1991
년까지 CFC와 할론(오존 파괴의 또 다른 주범 물질)의 생산량을  절반으로 감축할 것을 요
구했다. 그 뒤, 이러한 조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서명국들은 50개국 이상의  나라들을 
추가로 참여시켜 20세기 말까지 이러한 화학물질의 생산을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낙관주의자들은 성층권의 오존이 2050년경에는 정상  상태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
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설사 서명국들이 제시된 일정을 정확하게 따른다고 해도  오존층
의 고갈 상태는 기껏해야 1990년의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부 국가들이 
재정 지원을 요구하며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으며, 또 환경을 보호하겠노라고 서약한 회사
들이 약삭빠르게 오존 파괴 물질을  비서명국인 개발도상국들에 팔아치웠다는 점을  지적한
다. 1990년, 인도에서 판매된 할론은 1987년보다 8배나  늘어났다. 1993년에는 제3세계 국가
들 중 9개국만이 배출량을 줄었다. 대체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손쉬웠는가를 돌이켜 
본다면, 이러한 모든 행동은 너무 느리고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성층권의 오존에 위협을 가하는 물질은 CFC와 할론뿐만이 아니다. 비행기 엔진에서 나오
는 증기 물질도 10퍼센트의 책임이 있다. 그리고 고공비행이 더욱 증가함에 따라 오존 파괴
도 그만큼 증가한다(1990년,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에서 환경론자들이  이와 비슷한 계획에 
대해 크게 항의한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고도로  비행하는 새로운 초음속 항공기
를 공동개발하자는 계획을 제안했다). 질소질 비료의 사용에서 발생하는 것과 같은 빌소 산
화물도 오존층 파괴에 10퍼센트의 책임이  있다. 곡식 훈증제로 사용되는  브롬화메틸 역시 
그와 비슷한 정도의 책임이 있다. 
  그 밖에 오존 파괴 물질로는 염화메틸이 있다. 이 물질은 앞서 언급했듯이, 숲이나 관목이
나 초지를 불태울 때 다량 발생한다. 염산을 분출하는 화산은  인간보다 더 많은 양의 염소
를 성층권으로 올려보낸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거의 모든 염산은 화산 분출 직후에 뒤따르는 빗물에 씻겨  땅으로 내려간다. 최근에 큰 폭
발을 일으킨 피나투보 화산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염산의 방출량은 5만 톤에 불과했다.  이
것은 같은 기간에 방출된 CFC에 비하면 무시할 정도의 양이다. 그렇더라도 화산 분출 물질
들은 산업 오염물질과 함께  성층권에 구름을 생성시키는 데  일조하며, 사람들이 올려보낸 
염소의 오존 살육 반응을 촉발시킨다. 
  만약 오존 파괴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2100년경에는  미국에서만도 피부암으로 20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할 것으로 추정된다(환경보호청의 평가에 따르면 3백만 명 이상). 그리고 실명
(유엔의 한 연구단에 따르면, 성층권의 오존이 1퍼센트 감소할  때마다 10만 명씩 증가), 면
역체계의 약화, 조로 등의 피해자도 속출할 것이다. 그렇지만 최악의 결과는 간접적인  형태
로 나타날 것이다. 
  자외선 B 파장대의 빛은 육지와 물 속을 막론하고 주요한 모든 종류의 유기체에 해를 입
힌다. 자외선 B는 나무를 포함한 식물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질소 고정 박테리아마저 공
격한다. 식물들은 비료 공급을 받지 않는 한, 질소 고정 박테리아에 의지하여 질소를 흡수한
다. 무엇보다도, 자외선 B는 동물성 플랑크톤과 식물성 플랑크톤에게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것이다. 동물성 플랑크톤과 식물성 플랑크톤은 바다의 먹이사슬에서 맨 아래의 기반을 이루
고 있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대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
고 있다. 온실효과 기체인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서 제거하는  데 식물성 플랑크톤이 담당
하는 역할은 다른 모든 요인을 합한 것보다도 크다. 
  일부 식물성 플랑크톤이 자외선에 대해 특별한 저항력을 보이고  있고, 또 일부는 저항력
을 키워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에서 희망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식물들도 어떤 종
류(예컨대, 특별한 종의 콩)는 다른  것들보다 저항력이 강하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자외선 
C(이것은 자외선 B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지만, 지금까지는 성층권에서 완전히 흡수되어 왔
다)가 곧 남극 상공을 뚫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또한, 낮은 고
도에서 온실효과 기체에 의해 열이 갇히면 성층권 온도가 더 내려가고, 이것은 구름 생성을 
촉진함으로써 오존 손실을 증가시킨다. 더욱 많이 쏟아져 들어오는 자외선은 낮은 대기권에
서 반응력이 강한 라디칼(radical : 기)을 더 많이 생성시키게  되며, 이것은 다시 보다 많은 
오염물질 생성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오염물질에는 낮은 고도에  생기는 오존(이것은 아주 
강력한 작물 파괴 물질이다)도 포함된다. 
  그런데 오존층 파괴에는 혹시 인간보다 베텔기우스라는 별이 보다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되
지 않을까? 거의 수명이 다한 적색  초거성인 베텔기우스는 향후 수천 년 내에  초신성으로 
폭발할 것이다. 천문학자 맥콜(M.  L. McCall)은 이때  발생하는 자외선과 X선은 오존층을 
완전히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나 베텔기우스는 약 5백20광년이라는 아
주 먼 거리에 있으며, 다른 천문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것은 충분히 안전한 거리라고 한
다.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오존층을 충분히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지닌 것처럼 보인다. 과학적인 불확실성을 감안해 말한다면, 인류가 오존층을 파괴할 위험이 
'0'이거나 '아주 작다'고 단정하는 것은 소견이 짧은 생각이다. 
  냉장고 판매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인도에서는 오존 친화적인 냉각 방법을  채택하려
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도보다 부유하고  공업화된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앞으로 생산될 5천만 대의 냉장고에 
CFC를 그냥 사용할 계획이다.  1995년 4월, 애리조나  주의회는 CFC의 제조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이것은 연방 법률에 위배된다). 주지사는 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오존층
에 관한 무책임한 이론들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술을 박탈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고 말했다. 

  온실효과
  온실효과 기체들은 햇빛은 통과시킨다. 그러나 파장이 긴 지상의 열이 우주공간으로 빠져
나가는 것은 막는다. 가장 주요한 온실효과 기체는 수증기이지만, 그 밖에도 30여 종이나 있
다. 그 중에서 중요한  온실효과 기체는 이산화탄소(CO2),  질소산화물, 메탄, 플루오르탄소
(CFC, HCFC, HFC), 대기권 하층부의 오존 등이 있다. 
  인간은 매년 3백억 톤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그 중에서 3분의 2는 화석 연
료를 태우는 데서 발생하는데, 이것은 1950년대 이후 4배로 증가했으며, 1900년대  이후부터
는 30배 증가했다. 그러나 비료에서 발생하거나  물질을 태울 때에 발생하는(자동차와 항공
기에서 다량으로 배출된다) 질소 산화물도  이산화탄소에 못지않게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최근에 추정되고 있다. 이산화탄소보다 수천 배나 더 강한 효과를 나타내면서(분자 대 분자
로 따질 때)  앞으로 상당 기간  대기 중 농도가  증가할 것으로 생각되는  플루오르탄소는 
2030년경에는 수증기를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온실효과 기체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리
고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는 이산화탄소보다  30배나 더 효과적인 온실효과 기체인  메탄이 
플루오르탄소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지도 모른다. 현재 메탄은 새로운 온난화 현상에 
5분의 1 정도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산화탄소를 대량 발생시키는 주요 요인으로는 발전소(1970년에 전세계의 발전소들은 23
억 톤의 석탄을 태웠고, 1990년에는 52억  톤을 태웠다),  자동차(1970년에는 2억 5천만 대, 
1990년에는 5억 6천만 대), 들판의 화재(여기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풀들이 
새로 자람에 따라 재흡수된다), 숲의 벌목 등이 있다. 
  숲이 사라지면, 숲에 저장되어 있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돌아간다. 주지하다시피, 이산화
탄소를 주로 흡수하는 나무는 젊은  나무들이다. 다 자란 나무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양과 거의 같은 양을 호흡 작용으로 내뱉는다. 또한, 나무들이 산소를 계속 공급한다고 해서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계속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모든 것이 불타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설사, 나무들이 내일 당장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가 질식해 죽지는 않
는다. 그렇지만 대기가 이산화탄소보다 산소를 더 많이 포함할 수  있게 된 것은 나무를 비
롯한 녹색식물 덕분이며, 만약 이들이 사라진다면 1천여 년  후에 우리는 숨쉬기가 매우 힘
들게 될 것이다. 
  1950년에서 1990년 사이에 지구의 삼림 면적은 1천3백만 에이커에서 1천만 에이커로 줄어
들었다. 열대림은 1주일에 1백만 에이커의 비율로 사라져가고 있어, 만약 현재의 이러한  추
세를 역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2040년경(이보다 더 빠른  시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에는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다. 유럽 근처의 러시아 지역에 있는 거대한 숲
들은 오염과 벌목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인도에는 사실상 숲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하다(숲이 많은 양의 물을 증발시키며, 증발된 물은 구름을 생성시켜 
태양에서 오는 햇빛을 우주로 반사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숲들이 경
작지로 바뀐다면, 전 지구적 규모의 재난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러브록은 
지적했다).
  만약 녹색식물이 육지와 바다에  출현하지 않았더라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9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0.036퍼센트에  불과하
며,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는 1도C 정도에 불과하다.  1850년 이래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증
가해왔으며, 현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난 16만 년 이래 가장 높다. 2060년 이전에 이산화
탄소 농도는 4분의 3이 더 증가할 것이다. 
  메탄 역시 지난 16만 년 이래 가장 높은 농도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농도는 이산화탄소
보다 3배나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1900년 이래 두 배로 증갸했다. 만약 그  농도
가 다시 두 배로 증가한다면, 메탄의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와 맞먹을 것이다. 메탄  발생량 
중 절반 정도는 경작지, 그 중에서도 벼논에서 발생하며,  나머지는 습지대, 숲과 초지를 불
태울 때, 가축의 배출가스, 유정, 광산, 쓰레기  매립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누출 등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산화탄소는 정말로 강한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기체일까? 이산화탄소가 온실효
과를 나타낸다는 주요 증거는 암석의 기록과 깊은 만년설에서 추출한 공기방울에서  발견된
다. 지구의 기후가 따뜻했던 시기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최근에 
들어 온난화 현상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는 주장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최근
의 기후는 점점 더 따뜻해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것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지구가 밀란코비치 주기로 옮겨감에 따라  서서히 온도가 내려갈 것이라는 예상(온
실효과가 주목을 끌기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가까운 장래에 소규모 빙하기가 올 것이라
고 예상하고 있었다), 둘째 산업활동이나 사막화, 그리고 화산 활동  등으로 인해 대기 중에 
방출된 먼지와 에어로졸의 냉각효과, 셋째 증가한 이산화탄소량의 절반 정도와 새로 발생한 
열의 절반 정도를 바다가 당분간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45년 동안, 남극의 워디(Wordie)  지역의 빙붕(바다 위에 나와  있는 빙관 부분) 중 
상당 부분이 녹았으며, 1970년대에 북극에서는 바다를 덮고 있던 얼음이 약 2백만 평방킬로
미터나 감소했다. 
  다음 세기의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지만 수증기를 제외한 온실효과 기체
들을 모두 합한다면, 2030년에서 2050년 사이에는 온실효과가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
되며, 대다수 전문가들은 1.5-5도C의 기온  상승(지구 전체의 평균으로)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기온 상승은 주로 극 지방에 집중되어,  그 곳에서는 12도C까지 상승하는 반면에 
적도 지방은 겨우 1도C 정도밖에 상승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렇지만 
최근에 여기에 의혹을 제기하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만약 다른 주장이 옳다면, 열대 지방
뿐만 아니라 중위도 지방도 가뭄과 더 강력한 태풍의 피해를 빈번하게 입게 될 것이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 것인가? 세계자원연구소의  민처(I. M. Mintzer)가 제사한 2075년의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기온이 현재보다 16도C나  상승한다. 이것은 너무나도 비관적인 
예측이지만, 최소한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하리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자동차 
수는 날로 급증하고, 중국과 인도는 공업화를  향해 치닫고 있다. 그리고 이미 발견된  석탄 
광산 및 유전에서는 대기 중에 존재하는 양의 5배가 넘는 4조 톤의 탄소들이 연소되기를 기
다리고 있다. 설사 지금 당장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5분의 4로 줄인다 하더라도,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량은 몇십 년 후에나 안정될 것이다. 반면에, 현재와 같은 추세대로 이산화탄소를 
계속 배출한다면, 2010년경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50퍼센트나 증가할 것이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연합 사이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세기말까지 1990년 수준으로 감소시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 
목표를 강제로 실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미국은 에너지  소비세를 포기한 현재,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캐나다 정부는 앨버타 주의 석유산업 대형 프로젝
트에 수억 달러의 보조금을 대주면서, 선거 캠페인 때  200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퍼센트 줄이겠다고 내건 공약 대신, 시민들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권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
꾸었다. 그 결과, 200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3퍼센트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
럽연합 역시 에너지세 도입을 미루고 있다. 한편, 개발도상국가들은 거의 모두 입에 발린 말
만 할 뿐, 그 이상의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상당 기
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최소한  2.5도C의 기온 상승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지역에서 가뭄을 겪게 될 것이다. 1930년대, 미국에 먼지 바람이 휩쓸던 때, 여름
의 기온은 평년보다 겨우 1-2도C 정도 높았을 뿐이고, 작물 생장기에 내린 비의 양도 5분의 
1 정도 줄었을 뿐이었다. 온실효과가 조금만 증가한다고 해도, 미국에서는 미시시피강의  수
심이 얕아져 관개를 못하고, 곡창지대 전체의 수확량 격감을  초래했던 1988년과 같은 가뭄
을 몇 년 동안 겪을 것이다. 열대 지방에 위치한  가난한 나라에서는 대기근이 발생할 것이
다. 실제로, 온실효과로 인한 가뭄 때문에 이미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주장도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극 지방에 새로운 열이 집중되는 현상은  현재의 바람 체계를 진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1970년 방글라데시에서 수십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것과 같은 태풍을 많이 발
생시킬지도 모른다. 인도는 강수량 중 70퍼센트를 계절풍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러한 계절풍
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바다의 열팽창 및 빙하의 해빙에 따라 해수면은 2050년경
에는 1미터나 높아질 것이고, 카터 대통령의 환경위원회에서  평가한 최악의 경우에 따르면 
2100년에는 5-8미터나 높아질지 모른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해변 지역에 살고 있다. 
미국 과학아카데미는 최고 10억 명이 곧 자신이 사는 땅이  침수되거나 최악의 경우(때로는 
해수면의 상승으로) 소금밭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 밀집 지역 
중 상당 부분이 침수될 곳에는 벵골과 이집트가 포함된다. 해수면이 1미터만  상승하더라도, 
중국에서는 최소한 7천만 명이, 방글라데시에서는 1천5백만 명이 이주해야 할 것이다. 
  변화는 매우 빠르게 닥쳐올 수 있다. 그린란드의 깊은  얼음층에서 추출한 물질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8천 년 내지 1만 년 동안 기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안정한 패턴을 보
였으며, 그 이전의 기후는 해류의 변화로 인해 수십 년  사이에 급격하게 변한 것으로 나타
났다. 
  기후학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이러한 전망에 회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환경
학 교수인 와츠(K. E. F.  Watts)는 온실효과에 대한 두려움을 '세기의  웃음거리'라고 불렀
다. 캘리포니아의 권위 있는 기후학자 구드리치(J. Goodrich)는, 온난화 현상을 시사하는  잘
못된 자료들은 팽창해가고 있는 과열된 도시 부근에서 수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와츠와 구
드리치의 주장은 미국에 대해서는 옳을지  모른다. 미국은 실제로 당분간  기온이 내려갔을 
수도 있다. 오염물질, 그 중에서도 특히 황산염은 직접적으로 또는 구름 생성을  촉진함으로
써 대기가 햇빛을 잘 반사하게 만든다). 기후학자 린젠(R. S. Lindzen)은, 복사열은 온실효과 
기체에 의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이  차단될 수 있지만, 열은 대류에  의해 항상 위쪽으로 
올라가 돌아다니다가 결국 틈을 통해 빠져나간다고 주장한다. 
  최근 기온이 높아진 것은 단순히 있을 수 있는 기후의 기복 현상이거나 활발한 태양 활동
에 그 원인을 돌릴 수도 있다. 1750년에서 1850년 사이에  나타난 기온 상승은 태양 활동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은 수증기가 가장 강력한 온실효과 기체이며, 
다른 것들은 별다른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주장을 펼치려고 노력했다. 또한(이것은 지금 전
반적으로 부정되고 있긴 하지만), 사람보다는 화산이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는 주
장이나 CFC가 온난화 효과뿐만 아니라 냉각효과도 가져온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성층권의 
오존층은 효과적인 온실효과 기체이기 때문에  CFC가 오존을 파괴하면 상당한 냉각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게다가, 낮은 대기층에 도달하는 새로운 자외선들이 구름 생성을  촉진시켜 
냉각 작용을 촉진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CFC보다  덜 파괴적이어서 '몬트리올 의정서'에서 
2030년까지 제조가 허용된 HCFC나 이들을 곧 대체할 오존 친화적인 HFC는 온실효과 기체
들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부정적인 피드백'이 존재할 수도 있다. 린젠은 그러한 피드
백 중 하나에 수증기가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온실효과로 인한 온
난화 현상은 대류 현상을 증가시켜 비를 많이 내리게 한다. 그 결과, 대기 중의 수증기 농도
가 감소하고, 이것은 기온의 하강을 가져온다. 그러나 현재까지 해수면의 온도 연구를  통해 
확인된 일반적인 믿음에 따르면,  수증기와 관련이 있는  가장 강한 피드백은  '긍정적'이다. 
즉, 온실효과로 인한 온난화로 더 많은 수증기가 발생하고, 이것은 더 많은 열을 가두게  된
다. 물론 수증기의 증가는 더 많은 눈을 내리게 하고, 눈이 햇빛을 반사시켜 지구 온도를 냉
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구름 역시 전체적으로  냉각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생
각되고 있다. 구름은 열을 가둘 수 있지만(특히 밤에), 최소한 현재로서는 열을 가두는 것보
다 더 많은 열을 반사시키고 있다.  수증기의 증발이 많아질수록 구름은 더 많이  생성된다. 
그리고 구름에서 떨어지는 비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데 일조한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식물이 보다 잘 자라게 되고, 식물의 번성은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더 떨어
뜨린다. 1984년, <기후학 저널(Journal of Climatology)>지에서 이드소(S. B. Idso)는 식물의 
번성이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와 지구 냉각화의 균형을 이루게 해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
다. 
  이러한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지구가 생겨난 이래 수십억  년 동안 태양의 밝기가 
30퍼센트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급진적인 온난화나 빙하기를  피해왔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이것은 강력한 부정적 피드백 고리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럴 수
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전반적인 피드백은 계속해서 부정적이고 강한 상태로 유지될까? 
여기에 대해 일치된 의견은 지구가 다소 극적인 행운을 누려왔다는 것이다. 강한 햇빛은 녹
색식물의 광합성으로 인한 온실효과 기체(이산화탄소, 메탄,  암모니아)의 감소에 의해 상쇄
되었다. 
  온실효과로 인한 온난화 현상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지구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지역은 더 더워지고 건조해지겠지만, 또  다
른 지역은 더 추워지고 습해질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소련의 기후학자였
던 부디코(M. Budyko)는 사하라사막에서 가축 떼가  풀을 뜯게 되고, 중앙아시아의 사막지
대가 곡창으로 변하는 '온실 낙원'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특정 식물이나 동물이 살기
에 적합한 지역이 북쪽으로 옮겨갈 것이다. 식물의 생장 환경은 더 풍부해질 것이고, 구름의 
증가로 인해(낮은 더 추워지겠지만 밤은 더  따뜻해지고, 가뭄도 줄어들어)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계절도 더 길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을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사람들
과 생태계에 미칠 잠재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에 많은 지역이 갑자기 살
기에 부적당한 장소로 변한다면 기아와 전쟁이  일어날 수 있으며, 또 식물(특히  나무들)과 
동물은 그러한 급격한 변화(2050년까지 2도C 정도만 기온이 상승한다 하더라도)에 발맞추어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가 무척 힘들 것이다. 더구나 다른 지역은 더워지는 반면, 일부 지역은 
먼지와 에어로졸 물질들(황산염, 숲의 화재에서 발생하는 연기와 숯 등)로 인해 냉각되는 양
극화 현상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 이것은 기후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화학적 
사이클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대기 중에 포함된  히드록실기는 메탄의 공격을 
받아 고갈될 수 있는데, 이것은 매우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더욱이, 세계 기후는 카오스 이론(2장 참고)에서  초기 조건의 작은 변화가 그 후의  상황 
전개에 엄청난 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표준적인 예로 사용된다. 현재 우
리 앞에 놓여 있는 큰 위험은, 지구 기후가 준안정  상태에서 극적으로 다른 상태로 급변하
여 대파멸을 초래하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아니냐 하는 점이다. 전 지구적인 온난화 현상으
로 인해 멕시코 만류의 방향이 변하는 한편, 유럽은 빙하기로 접어들 수도 있다. 

  급진적인 온실효과가 초래할 재난?
  온실효과가 초래할 가장 심각한 위험은 급진적인 긍정적 피드백이다. 우리는 그 비극적인 
예를 금성에서 볼 수 있다. 아마도 처음에는 금성에서도  원시적인 생명체가 진화했을 것으
로 생각되지만, 지금은 대부분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진 두꺼운 대기층에 둘러싸인 금성은 온
실효과로 인해 기온이 4백50도C에 이른다. 러브록은 "0.5퍼센트 정도의 농도는 숨쉬기에 약
간 불편할 정도의 효과를 미칠 뿐이지만, 일단 1퍼센트를 넘어서게 되면 새로운 비선형적인 
효과들이 작용하기 시작하여 가열이 급격하게  증가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수증기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곧 물이  끓는 온도까지 급격하게 뜨거워질 것이다"라
고 러브록은 주장한다.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1퍼센트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재난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다른 온실효과 기체들이 미치는 영향이 강화되어 이
들 전체의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 농도 1퍼센트에 해당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강한 긍정적 피드백이 작용하는 시나리오는 쉽게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슈나이더(S. H. 
Schneider)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급격한 기후 변화는 숲과 다른 생태계를 파괴하여 대기로부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능
력을 대폭 감소시킬 수 있다. 게다가,  온난화는 토양 속에 유기물질로 포함돼 있는  방대한 
양의 탄소를 대기 중으로 급격히 방출시킬 수 있다. 이 방대한 양의 탄소(대기 중에 포함돼 
있는 양의 최소한 2배)는 토양  속 미생물의 작용으로 계속 이산화탄소와  메탄으로 분해될 
것이다. 기후가 따뜻해지면 이  작용은 더욱 활발해져,  이산화탄소(건조한 토양으로부터)와 
메탄(벼논, 매립지, 습지대 등으로부터)의 방출이 더욱 촉진될 것이고, 이것은 기온을 더  상
승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다. 상당량의 메탄은 대륙붕의 퇴적층과  북극의 만년설 아래에 포
접 화합물의 형태(메탄과 물의 분자 격자)로도 갇혀 있다. 얕은 바다의 온도가 상승하고 만
년설이 녹으면 이러한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될 수 있다."
  그러한 메탄은 10조 톤이 넘으며, 그것을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현재 알려져 있는 화석
연료의 매장량을 능가한다. 분자식이 CH4인 메탄에 포함돼 있는 탄소는, 연료 속에 들어 있
다가 불타면서 이산화탄소를 생성하는 탄소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다. 분자 하나를 기준으로 
볼 때,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30배나 더 강력한 온실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린피스 산하 국제  대기 및  에너지 캠페인에서  과학분야 책임자인  르게트(Legett)는,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 회의에 모인 정치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보고서를 낸  것으로 
유명한 '환경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이  낙관적인 결론과 비관적인 결론 양 극단을  모두 
배제함으로써 일치된 의견에 이르렀으며, 모든 생물학적 피드백 고리를 "생물학적 피드백은 
아직까지 고려되지 않았다"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함축했다고 말했다. 
  바다에 사는 식물 플랑크톤을 10퍼센트 감소시키는 변화는 매년 바다에 흡수되는  이산화
탄소의 양을 약 50억 톤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정이  내려졌
다. 이 양은 매년 화석연료의 소비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맞먹는다. 식물  플랑크
톤은 또한 구름 생성을  돕는 디메틸설파이드를 생산하기 때문에,  식물 플랑크톤의 감소는 
햇빛을 우주공간으로 반사하는 구름의 감소를 가져오며,  상대적으로 수증기가 온실효과 기
체로 비중이 더 커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린피스는 4백 명의 기후학자들에게 르게트가 만든 급진적인 온실효과 시나리오에  대한 
반응을 물어보았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기후학자들은 만약  온실효과 기체의 방출량을 줄
이지 않는다면, 급진적인 온실효과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0퍼센트 이상은  그러한 
시나리오가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르게트의 시나리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
었다. 
  (1)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바닷물이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양이  줄어든다. 
(2) 차가운 물에 포함된 영양물질이 따뜻한 해수면 위로 잘 올라오지 않아 식물 플랑크톤의 
생장이 느려지고, 그 결과 이산화탄소가 덜 흡수되며, 구름을 생성하는 디메틸설파이드도 덜 
생산된다. (3) 오존층 파괴로 식물 플랑크톤이 죽는다. (4) 따뜻한 기후로 인해 토양과 식물
의 이산화탄소 생산량이 증가한다. (5) 툰드라가 녹으면서 더 많은 이산화탄소와 방대한 양
의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6) 높은 고도의 구름들이 더 많은 열을 가둘 수 있게 된
다. (7) 가뭄 때문에 식물들이 말라죽고, 탄소가 대기 중으로  돌아간다. (8) 메탄과 다른 온
실효과 기체들의 파괴활동을 통해 현재 이러한  기체들을 대기 중에서 청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히드록실기가 고갈된다. (9) 자동차와 트럭의 증가로 인해 강력한 온
실효과 기체인 오존이 대기권의 낮은 고도에 많이 생긴다. (10) 바다를 덮고 있는 얼음의 상
당량이 녹아 햇빛을 반사하는 기능이 떨어진다.  (11) 대륙붕의 퇴적층에 묻혀 있던 메탄이 
방출되면서 결국 급진적인 온실효과가 일어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요인을 더 추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
다. (1)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온이  상승하면 더 많은 수증기가 대기 중으로 올라가, 
다른 모든 기체를 합한 것보다 더 강한 온실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2) 토탄 늪이 마를 때
에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된다. 영국의 모든 흙과  식물에 포함돼 있는 탄소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양이 스코틀랜드의 늪에 포함되어 있다. (3) 따뜻해진 바다에서는 박테리아의 
활발한 작용으로 이산화탄소와 마찬가지로 물 속에 녹아 있는 유기탄소가 상당량 방출된다. 
북대서양 지역을 조사한 한 탐사단은 수면 근처의 유기탄소 분자의 농도가 때로는 며칠 사
이에 30퍼센트나 감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다에는 이러한 분자가 1조  6천억 톤이나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모든 육상 식물에 저장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이러한 점들은 앞서 지적된 두  가지 사실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다. 하나는 
온실효과로 인해 기온이 최소한 2.5도C 상승하는 것을 누구나 거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태양의 밝기가 지난 수십억 년  동안 계속 증가하여 지금은 30퍼센
트 정도 더 밝아졌으며, 1750년부터는 일시적인 감소 현상에서  벗어나 다시 증가세를 회복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2도C 상승한다면, 지구는 지난 1억 
년 동안 가장 높은 온도에 이르게 되며, 그것은 약 4억 년 전에 생물이 육지로 이동한 이래 
가장 높은 온도일지도 모른다. 
  채프먼(C. R. Chapman)과 모리슨(D. Morrison)은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그린란드의  얼
음층에 갇힌 이산화탄소를 최근 측정한 결과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비율이 불과 몇백 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예측 불가능하게 갑자기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우리는 따뜻
한 간빙기의 정점에 위치해 있다. 빙하기의 주기가 시작된 이래 이처럼 따뜻했던 적은 일찍
이 없었으며,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함량이 이렇게 높았던 적도 일찍이 없었다."  그들은 또 
6천5백만 년 전에 끝난 백악기는 급진적인 온실효과가 시작되는 문턱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럴 경우, "오늘날 작동된 변화들은 제때 돌이키기 불가능하여 지구는 금성과 같
은 상황을 향해 돌진할 것이다."
  강한 부정적 피드백이 지구를 건강하게 유지시켜준다는 개념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러브록 자신도 1985년(가장 곤혹스러운 일부 증거들이 밝혀지기 전)에 행성의 온
도 조절 메커니즘이 거의 한계에 이른다면, "그것은 아주 작은 동요만으로도 완전히 무너질 
수 있으며", 온도 조절 메커니즘이  그러한 한계에 아주 가까이  접근해 있는지도 모른다는 
글을 썼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추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기후학에서는 확실한 것은 거
의 얻을 수 없다. 설사 확실한 것을 얻는다 해도, 그것은 이미 때를 놓친 뒤일 것이다. 실번
(R. Sylvan)의 말대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일어날 가능성이 적더라도  만약 일어난다면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페름기 말엽인 2억 5천만 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 때, 전세계에 살고 있던 생물 종의 4분의 3이 질식사로 의심되는 원인
으로 절멸했다. 위그널(P. Wignall)은 "산소 결핍과 해수면의 상승은  지질학 기록에서 동시
에 일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안전조처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화이트(R. M. White)는 
1990년에 "우리가 어떤 정책을 취하든지 간에, 기후의 온난화를  완전히 저지할 수 있는 방
법은 우리 손에 든 카드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묵시론적인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으며, 상황이 '심각하게  변할' 향후 30-50년 사이에  국제사회가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느슨한 접근 태도는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서명된, 모
호하고 구속력이 없는 '기후변화 협약'과 1995년 '베를린 협약'에 잘 반영돼 있다. 베를린 협
약은 서명국들에게 단지 대화를 계속하라고 촉구했을 뿐이며, 2000년 이후의 이산화탄소 배
출량의 제한에 대한 세부 목표는  1997년에야 논의하기로 했다. 아직도  서명국들을 강력한 
환경협약에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어떤 사항을 이행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다. 
  화석연료의 사용에 대해 '탄소세'를 매기는  것은 커다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시민들에게도 에너지를 절약하라고 권함으로써 사실상 아무런 부담도 지우지 않을 수 있다. 
탄소 배출량에 대해 세금을 매긴다는 점을  감안하여, 노르웨이는 천연가스에서 이산화탄소
를 분리하여 압축한 뒤, 연간 1백만 톤씩 북해 해저의 암석 속에 묻고 있다. 
  원자력 사용을 늘리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라늄광을 채굴하고, 농도가  낮은 
우라늄을 늘어난 에너지 수요에 맞추어 대량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다량  발생하
게 된다. 그리고 슬프게도, 수력발전에서는 댐에 저장된 물 속에서 식물들이 썩으면서  다량
의 메탄가스가 방출되고 있다. 태양전지나 풍력발전 또는 파력발전이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수단으로 우리는 원자폭탄과 같은  것을 사용하여 엄청난 양의 
먼지를 대기층 높은 곳에 쏘아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먼지가 햇빛을 차단하여 냉각효과를 
가져오기를 기대하면서, 실제로 이런 제안을 아주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작지와 물의 고갈
  오늘날 농업은 관개와 비료를 최대한 사용하여 매년 같은  작물을 키우고 수확한다. 그러
다 보니 땅은 휴식을 취하면서 지력을 회복하거나 질소 고정클로버를 자라게 할 여유가 없
다. 만약 토양이 피폐해진 것 같은 기색을 보이면 더 많은 비료를 주지만, 끝내는 비료를 아
무리 많이 주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지경에 이른다. 지속적으로 물을 대주면 염분이 축적
되지만, 이 역시 흉작이 발생할 때까지 무시된다. 물을 붙들어두고 증발을 감소시키는  역할
을 하는 잡초를 무조건 제거하다  보니, 표토는 염분을 많이 품거나  쉽게 씻겨 내려가거나 
바람에 날아간다. 
  인구 증가와 대지주들의 이기심 때문에 조금 비옥한 토지를 과도하게 혹사시켜 지력을 쇠
약하게 만드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토지를 최선으로  사용하는 곳에서도 지력 감퇴
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삼림 벌채는 새로운 경작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열대 지방에서는 지력이 낮기 때문에 3년 
정도 지나면 더 이상 경작할 수 없다. 삼림 벌채는 또한 토양의 침식을 가속화시킨다. 그 결
과, 표토가 바람에 쉽게 날려갈 뿐 아니라, 큰 홍수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매년 2백50억 
톤의 표토가 침식으로 유실되고 있다.  해마다 에티오피아에서 15억 톤,  미국에서 40억 톤, 
인도에서 60억 톤의 표토가 유실되고 있다. 다른 요인과 합쳐져, 이것은 매일 2만  헥타르의 
땅이 불모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지나친  방목과 가뭄이 겹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아프리카의 사헬 사막에서 일어난 재난이 그 유명한 예이다. 아시아에서도 
최소한 전체 경작지의 5분의 2가 매우 위험한 수준에 처해 있다. 
  작물 경작에 제약을 가하는 다른 요인으로는 오염, 대수층(지하수를 간직한 다공질 지층)
의 고갈(미국 곡창지대, 중국 북부 평야, 펀잡 지방의 밀밭에 물을  공급하는 대수층들의 수
위가 매년 약 1미터씩 낮아지고 있다), 유전적으로  단일한 품종의 작물이 병충해에 지속적
인 저항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이 있다. 전세계 1인당 곡물 수확량은 1984년 이래 1년에 1
퍼센트  정도씩  감소해왔으며,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 두드러졌다.   1994년, 맥켄지(D. 
Mackenzie)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아프리카는 매년 생산되는 양보다 1천4백만 톤의 곡물이 더 필요하다. 매년 인구 증가율
은 3퍼센트인 데 비해 곡물 생산 증가율은 2퍼센트에 머물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2000년
경에는 5천만 톤의 곡물이 모자랄 것이다. 중국은 인구 증가와 경작지 감소, 경제수준  향상 
등을 감안할 때, 현재 매년 1천2백만 톤을 수입하는  곡물량이 2000년에는 1억 톤으로 늘어
날 것이다. 잉여농산물을 비축하고 있는 나라들이 아프리카에 잉여농산물을 그저 주어야 할
지, 아니면 중국에 돈을 받고 팔아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결정은 조금도 어렵지  않
을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어났던 녹색혁명을 다시 일으켜 곡물 생산량을 늘릴 수는  없을
까? 지금 개발되고 있는 다수확 품종들은 녹색혁명의 선조들이 지녔던 많은 결점들(낮은 영
양소, 저장 중에 썩기 쉬움, 과도한 관개와 비료 및 살충제 사용)을  지닌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녹색혁명은 일시적으로는 지구의  수확량을 증가시켰지만, 결국에는 오히려  감소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도 사람들은 서구 과학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자식들의 밥을 미리 뺏어먹은 셈이  되었다. 이미 시판 단계에 들어간  슈퍼쌀 품종은 현재 
가장 우수한 품종보다 25퍼센트나 많은 소출을 낳고, 황폐하거나  가뭄이 심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병충해에 높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가 사
실이라고 해도, 그러한 쌀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땅을 소모시키게 된다.  국
제쌀연구소가 실시한 최대 수확량 실험에서 최근 쌀 수확량은 감소했다. 
  물의 상황도 이에 못지않게 비관적으로  보인다. 강과 호수의 어족량은  오염물질로 인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러한 오염물질에는  부영양화를 초래하는 질산비료, 인산이  포함된
다. 식물들이 과도하게 성장한 뒤에 썩으면서 거의 모든 산소를 고갈시킨다. 
  무엇보다 경종을 울리는 것은 바다의 오염이다. 바다는 사람들이 섭취하는 전체 단백질의 
4분의 1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갯벌은 대부분의 어족이 산란하는 장소인 동시에 오염물질을 
여과해주는 소중한 곳인데, 간척사업이나 망그로브나무의 벌목,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 건축 
현장에서 실어온 흙의 매립 등으로 인해 절반 이상이  죽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생물학적
으로 가장 풍부한 장소였던 연안 지역은 거의 모두 하천에 씻겨 내려온 살충제와 비료물질
(이들은 부영양화도 초래한다), 가정 및 공장의 하수, 독성폐수, 기름 때문에 심하게  병들고 
있다. 물론 슈피리어 호수의 물고기보다  대양에 살고 있는 고기에게 해를  입히기 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0만 톤이 넘는 이페리트가스 및 여러 유독성 가스(예컨대, 독
일의 가스탄을 가득 싣고 있는 상태에서 나포된 20척의 상선에서  압수한)를 바닷속에 던졌
지만, 어떤 심각한 재난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다로 흘러드는 오염물질의 양은  매
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매년 6백만 톤의 기름이 바다로 흘러드는데, 유조선 
사고로 인한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도시와 연안에 위치한 정유공장, 선박  등에서 
나온다. 오늘날 수은은 자연 방출량의 3.5배나 되는 양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며, 납은 13배나 
많이 흘러들어간다. 특히 카리브해와 지중해, 흑해, 북해, 발틱해가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 
발틱해에서는 지렁이류 몇 종만이 살아남았다. 
  지금까지는 오염보다 남획이 어류 감소의 주원인이었다. 트롤어선(저인망선)들은 첨단 기
술을 이용해 물고기 떼를 정확하게 포착한 다음, 엄청나게 큰 그물로 사실상 해저의 생태계 
전부를 퍼올린다. 한편, 유망은 50킬로미터나  길게 뻗치기도 한다. 이렇게  잡은 물고기 중 
상당량은 그냥 버린다. 남은 것 중에서도 많은 부분은 비료나 동물 사료로 사용된다. 
  고기잡이는 '보통 사람들의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예이다. 어떤 자원을 많은 사람
들이 이용할 수 있을 때, 보통 사람들은 각자 최대한  많이 차지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
한다. 그것이 자원을  고갈시키는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전세계의  어획고는 
1989년까지 계속 증가일로에 있었다(비록 1970년부터는 증가세가 둔화되긴 했지만). 그러다
가 1990년에 들어와 어획고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선단은  연간 
1백50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지만, 정부 보조금 덕분에  선단의 활동은 전과 다름없이 활
발하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모든 주장들이 담고 있는 심각성에 대해 의심을 나타낸다. 예를 들
면, 사막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심지어 유엔 환경프로그램에 참여
하여 '세계 사막화 지도'를 제작한 두 전문가조차 이를 부정했다. 많은 사람들은,  사막화 현
상을 가리켜, 일시적으로 강우량이 줄어들어서 발생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식량부족 
사태는 곡물 외의 다른 것을 유전공학으로 생산하거나 켈프(다시마 등의 대형 갈조류)나 크
릴새우를 해저농장에서 생산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물론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리는 대신, 어느 지역의 사람들을 굶어죽게 하는 통
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신 농업 기술은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가난한 나라들이 도입하기 어렵다. 그러한 나라의 군부 지도자들은 굶어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생물학무기를 사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것이  배터지게 잘 먹고 사는 
자들에 대한 복수하고 여길  것이다. 지구의 동물  부양능력(carrying capacity)을 존중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과 관련지어, 하딘(G. Hardin)은 거의 절반이 굶어죽어간 난민촌을 방문
한 한 미국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근처에 있는 밭에 곡식이 든 자루들이 많이 쌓여 있는 것을 본 그 미국인은 난민촌의 지
도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곡식을 지키고 있는 병사는 단 한 명뿐인데, 왜 사람들이 
그 곡식을 훔칠 생각을 하지 않느냐고요. 그러자 그 지도자는  곡식 자루 속에는 다음 계절
에 심을 종자가 들어 있다고 설명했지요. '우리는 미래를  도둑질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지요."
  그러나 하딘이 지적했듯이, 모두 그 역할을 하겠다고 자청하여 나선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자들은 비옥한 땅과 다른 자원이 고갈되어감에  따라 성장률이 점차 둔화된
다는 모형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불행하게도, 메도즈  등이 1992년에 출판된 <한계를 넘어
서(Beyond the Limits)>라는 책에서 소개한 보다 현실적인 컴퓨터 모형에 따르면,  결핍 사
태와 그것에 대한 이상적인 경제적 대처 사이에 갭이 있을 때에는 대단히 심각한 붕괴가 불
가피하게 일어난다. 자원이 고갈되든 않든 간에, 먹여살려야 할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고
기잡이 배들이 해체되기 전에 아주 오랫동안 활동을 계속하는 등의 일이 계속될 때에는 갭
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한계를 넘어서>에서 검토된 컴퓨터 모형에 따르면,  전 지구적인 
붕괴는 불과 50년 이내로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문제는, 경작지의 한계, 숲의 한계, 토양과 물과  공기가 오염물질을 흡수할 수 있
는 능력의 한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술 발달의 역사에서 언젠가 도달할 
수밖에 없는 한계상황에서 환경의 적당한 개발은 파국적이고 장기적인 붕괴로 이어질  것인
가, 아니면 소규모의 일시적인 붕괴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을 방지
하기 위한 영웅적인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는 한, 장기적인 붕괴가 사실상 명백해 보인다. 
  메도즈 등은 지구에 대한 컴퓨터 모형으로, 일부러 간단한 것을 사용했다. 그들은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의 최대량과 토양이 피폐화되는 속도, 광물과 화석연료의 가용성 등에 대
한 가정을 매번 달리하면서 그 모형을 계속 돌렸다. 그들은 이용 가능한 자원의 양을 두 배
로 늘리는 것과 같은 일은 단지 한계를 넘어서는 시점을 연장시킬 뿐이며, 성장을 가져다준 
모든 것이 그만큼 오랫동안 과도하게 사용되어  고갈되기 때문에 그 후에 발생하는  붕괴는 
치명적이고 장기적이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우리가 지난 수 년 동안에 시도한  수천 회의 모형실험에서 가장 빈번하게 얻은  결과는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고갈과 붕괴였다.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고갈은  피드백에 일어나는 
지연 때문에 초래된다. 즉, 어떤 계 속의 정책결정자들이 한계를 이미 넘어섰다는 정보를 얻
지 못하거나 믿지 않거나 혹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난다."
  비록 이것은 실제 세계에 대한  예측은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가 수십  년 앞을 내다보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도 대부분 나라의 정부
에서는 선거나 나이 든 독재자의 수명에만 관심을 쏟는 것 같다. "만약 사회가 자원을 이용
하는 것만 생각하고, 그 전체량이나 질, 다양성, 건강, 보충속도 등에 대한  정보를 등한시한
다면,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자원의 고갈을 맞이하게 된다." 농업 및 오염위기  때와 마찬가
지로,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고갈은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상황에서 오염된 환경을 
깨끗이 해야 하는 진퇴양난에 빠뜨릴 것이다. 

  생물 다양성의 상실
  생물 다양성(biodiversity)이 상실되는 주원인은 다음의 네 가지이다. 첫째, 현존하는 모든 
동식물 종의 5분의 4가  살고 있는 삼림지대(특히 열대우림)와  산호초(종종 석회암을 얻기 
위해 채굴된다)의 파괴, 둘째, 오염으로 인한 멸종, 셋째, 극히 제한된 소수의 종만을 재배하
는 현대 농법, 경작자들은 산출량이 많은 몇몇 종만을 재배하고, 다른 종들은 제거해야 하는 
잡초로 여긴다. 그리고 식물 및  동물 육종가들은 자신이 개발한 종에  대한 상업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 그러한 종이  순종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유전적  다양성을 거의 포함하고 
있지 않아야 함을 뜻한다. 영국에서는 등록되지 않은 잡종  종자들을 파는 것을 범죄행위로 
간주하며, 오직 순종 종자만 등록이 가능하다. 넷째, 물고기 및 짐승의 남획이다. 
  멸종의 속도는 갈수록 증가일로에 있어, 핵전쟁이나 오존층 파괴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현
재 살고 있는 모든 종들  중 절반 이상이 2100년경이면 사라지고  말 것이다. 2000년경에는 
15년 전에 존재하고 있던 종들 중 15퍼센트 가량이 멸종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비
록 인용되는 수치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종'이라는 단어 자체도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급속하게 사라져가고 있는 열대우림에 모든 종들 중 5분의 3이 몰려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그것은 산호초 중 10분의 9가 다이너마이트와 오염, 그리고 채집 
활동으로 파괴되었다. 야생 생물의 거래는 매우  수지 맞는 장사여서(오늘날 코뿔소의 뿔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더 비싸며, 난은 수천  달러의 고가에 거래된다) 종들의 멸종을 더욱 
부추기고 있지만, 가장 큰 위협은 서식지 파괴이다. 
  개개의 동식물 중 집단 내에서의 생물 다양성의 파괴는 병충해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키
기 때문에 살충제와 백신의 과도한  사용을 더욱 부추긴다. 기후  변화나 토양 변화(염분의 
증가나 중금속 오염물질의 축적 등), 오존층을 뚫고 들어오는 자외선  양의 변화, 대기에 포
함된 오염물질의 양의 변화 등이 초래하는 효과도 점점  심각해진다. 유전공학을 이용한 육
종가들이나 자연 자체가 실험할 수  있는 유전적 조합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 종 
안에서의 개체 수 감소도 중요한  변수이다. 개체 수가 1백만에서 1만으로  줄어든 종은 그 
종의 유전적 다양성 중 절반 정도를 상실할 수 있다.  여러 서식지에서 생물 다양성이 상실
되는 것 역시 염려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는 그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완전히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임피리얼 칼리지에서 만든 '에코트론(Ecotron)'의 간단한 인공 
서식지와 미네소타 주의 잡초 무성한 초원, 그리고 세렌게티  국립공원의 야생 식물들에 대
해 실시한 실험 결과는, 식물과 곤충이 많이 혼합되어 존재하는 상태에서 생산력이 훨씬 뛰
어나며, 초식동물에게 뜯어먹히거나 가뭄 등의 피해에 대해 훨씬 더 잘 견딘다는 사실을 시
사한다. 이 결과는 단종 재배를 하는 경작지에 많은  관개가 필요하다는 사실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바이오스피어 2호'(유리로 둘러싸인 1헥타르 넓이의  인공 생태계로, 기대했던 것보다 훨
씬 적은 식량이 얻어졌다)의 실패는 '바이오스피어 1호'(우리  행성이 지닌 전체 바이오스피
어)가 지닌 것과 같은 아주 복잡한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편, 바이오스피
어 2호에서 일어난 산소 결핍(그 속에서 산 8명이 질식하지 않도록 많은  양의 산소를 밖에
서 공급해주어야 했다)은 생물 다양성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토양  속에서 미생물이 과도하
게 번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구의  바이오스피어가 지닌 매우 복잡한  생물 다양성은 
실제로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바이오스피어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는
데, 이것은 지질학적 기록에 나타난 몇몇 대량절멸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윌슨(E. O. 
Wilson)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왜 생물들은 열대우림이나 산호초와 같이 아주 제한된 장소에서 풍부하게 증식하는 것일
까? 수많은 종이 공존하면 그들의 라이프 사이클과 먹이사슬이 서로 얽혀서 생태계를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지난 20년 동안에 '인과 역전  시
나리오'에 밀려나고 말았다. '인과 역전 시나리오'란, 환경이 장기간에 걸쳐 안정을 유지하면
서 종들의 진화를 도우면 종의 상부구조가 허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열대우림의 풍부한 다양성을 상실해도, 인간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열대우림이  대기를  깨끗하게 해주는  역할이라든가 풍부한   동식물 
DNA가 농업 재난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수 있다는 사실 등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생물 다양성 협약'은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 정상회의에서 거둔 가장 유익
한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그로부터 30개월이 지날 때까지도  협약 사무국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냐와 같은 사소한 문제조차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과학 및 기술자문을 제공할 소
위원회는 1995년 9월에야 겨우 첫 회의를 열도록 일정이 잡혀 있었다. 숲의 보존에 관한 문
제는 결정사항이 법적 구속력을 결여하고 있는 유엔 지속발전위원회로 넘어갔다. 주목할 만
한 결정사항은 12월 29일을 전세계적인 '생물 다양성의 날'로 제정한 것 뿐이다. 

  인구위기
  맬서스는 세계 인구가 10억을 막 넘어선 시점인 1798년에, 인구는 지구가 부양할 수 있는 
한도를 곧 넘어설 정도로 증가할 것이며,  그 후 기아와 전염병, 전쟁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세계 인구는  그 후 1백 년 동안  두 배로 늘어났고, 그 
다음 50년 동안에 다시 두 배로 늘어났다. 현재의 세계 인구는 예수가 살던 시대에 비해 25
배로 늘어났으며, 매일 25만 명씩 증가하고 있다.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
도 약 35년으로 단축되었다. 설사 인구증가율이 오늘 밤부터 인구보충 수준(즉, 성인 여자 1
명당 2명의 아기만 출산하는 비율)으로 줄어든다 하더라도,  현재 탄생한 여자들이 출산 연
령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세계 인구는 현재의 약 60억에서 약 85억으로 증가할 것이다. 
  미국도 1940년 이후 인구가 거의 두 배로 증가했지만, 인구 증가는 대부분 가난한 나라에
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1800년에서 2040년 사이에 아시아 인구는  약 10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아프리카는 약 30배, 라틴아메리카는 약 50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1975년에 
케냐의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출산하는 아이의 수)은 8명이 넘었다. 지금은 출산율이 감소
했다지만, 아직도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와 비슷한 수준인 6명이나 된다. 이집트는  출
산율이 약 5명이며, 페루와 인도는 약 4명이다. 인도네시아는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교육과 
홍보 그리고 피임기구의 무료 배포  등을 활발하게 펼쳤지만, 출산율은  아직도 3명 이상에 
머물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출산율이 현저하게 감소하더라도 2050년의 세계 인구는 약 1백억,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1백25억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10억 명  이상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2100년에는 전세계에 먹여 살려야 하는 사람이 2백70억이나 존재하게 된다.  나이지
리아만 놓고 보더라도, 20여 년 만에 2백씩 증가하는  인구증가율을 감안할 때 인구는 현재
의 약 1억에서 5억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도 많은 인구로 고민하고 있는 파키스
탄과 방글라데시도 인구가 2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극히 비관적인 예측을 담은 <인구폭탄(The Population Bomb, 1968)>과 <인구 폭발(The 
Population Explosion, 1990)>의 저자인 경제학자 에얼리히(P. Ehrlich)는 지구가  부양할 수 
있는 최대 적정인구는 20억이라고 제시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현재의 방글라데시 사람들
처럼 빈곤상태에서 산다면, 2백억의 인구가 꾸역꾸역 모여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파리나 뉴욕의 사람처럼 배불리  먹고, 자원을 많이 사용하고,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면, 환경 재난은 불가피하다. 미국의 평균 시민 1명은 소말리아인 1명보다 40배 내지 1백 배
나 많은 스트레스를 환경에 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과학의 진보(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
는 새로운 에너지원과 같은)는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2백억이라는 인구는 21세기의 첨
단 과학기술로도 쾌적한 삶(어쩌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게 하기에는 무리이다. 우주공간으
로 이주하는 방안도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것이다. 현재  상상 가능한 기술을 총동원하더
라도, 우리 은하 전체를 식민지로 만드는 데에는 약 4백만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
고 오늘날의 로켓 기술로 식민지 개발에 나선다면 약 3억 년이 걸릴 것이다. 인구가 현재의 
비율(연 2퍼센트)로 계속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1천3백년 후의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지
구와 같은 행성이 1천억 개나 필요할  것이다. 우리 은하에 있는 모든  별들이 지구와 같은 
행성을 하나씩 포함하고 있다고 가정해도,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빛보다 더 빨리 달리는 우
주선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최소한 가까운 장래에 인구가 1백억 정도만 되더라도 사막화와 기아, 국지적인 물 기근과 
오염 현상 등이 심각해져 전쟁이  불가피해질 것이다(최근 르완다 내전에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것은 인구 폭발로 인한 식량 부족 사태에서 직접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인
구는 20년 만에 2배로 늘어났는데, 토양의 피폐화로 수확량은 약  20퍼센트 감소했다). 농업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향후 40년 내에 인구 증가는 곡식의 생산량을 앞지를 것이 분명
하다. 그렇게 되면 질병과 환경 재앙이 전 지구를 휩쓸 것이다. 많은 종이 멸종하는  바람에 
생태계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고, 온실효과는 통제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모든 것을 감안하면, 1992년 세계감시연구소(Worldwatch Institute) 의장이  쓴 논문 제목 
'세계를 구할 수 있는 10년'은 아주 시의적절해 보인다. 인구폭탄은 이미 폭발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의 전쟁들은 이 문제에 별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다.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 때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모든 전투에서 죽은 사람은 2억 명 정도에 지나
지 않았다. 그러나 절박한 기아 상태 또는 물 부족  상태에 처한 나라가 생물학전을 전개한
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제3세계 국가의 한 관리에게 20년 후에 자신의 창 밖에 무엇이 보이면 좋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스모그"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지긋지긋한 가난
과 아사의 공포에 시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산업화에서 발생하는 스모그를 마시는 편이 낫다
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스모그를 유발하는 환경오염 역시 기아를 초래할 수 있다. 
  1972년에 로마클럽의 지원 아래 D. H. 메도즈와  D. L. 메도즈, 랜더스(J. Randers), 베렌
스(W. H. Behrens)는 <성장의 한계>라는 책을 발표했다. 이들은 여기서 급속도로 증가하는 
환경 착취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이 예측한  것 중 일부는 지나치게 비
관적인 것으로 드러났지만, 어장 붕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것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
었다. <한계를 넘어서>에서 D. H. 메도즈와 D. L. 메도즈,  랜더스는 인구와 산업생산의 지
수함수적 성장이 비록 잠깐 계속된다고  볼 때, 비극적인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들은 지수함수적 성장을 가리켜 '증가량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에  비례하
여 증가할 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매일 2배로 증가하는 수련이 30일 후에는 연못에  사는 
모든 생물을 질식해 죽게 만드는 경우가 그 예이다. "오랫동안 수련의 활동은 미약해보이기 
때문에 수련이 연못의 절반을 덮기 전까지 사람들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데 수련이 연못의 절반을 덮는 날은 언제인가? 바로 29일째이다. 연못을 구할 수 있는 시간
은 이제 겨우 하루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카터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나온 '대통령에게 보
고하는 지구 2000년 보고서(1980)'에서도 인구 증가, 자원 감소, 환경 악화 사이의 상호 작용
에 대해 이와 비슷한 불안스러운 결론을 내렸다)
  인구 증가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더 높은 생활수준을 추구함에 따라 산업생산량은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인구 폭발과 동등한 생활수준에 대한 요구, 그리고  느린 
대응 등이 결합되어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희망의 여지도 약간은 있다. 
  첫째로 전혀 예상 밖의 방법으로 기술이 구조의 손길을 뻗칠지도 모른다. 특히, 사회적 가
치의 변화를 수반할 때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한계를 넘어서>에서  새로 태어나는 한 
사람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이론상으로  '1천배 이상' 감소될지 모른다고 제시했다.  우선, 
전세계 사람들이 '스위스 사람의 생산성과 중국인의 소비 습관, 스웨덴의 평등주의적 사고방
식, 일본인의 사회적 규율'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로 나라가 부유해짐에 따라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만약 현재 서독과 같은 
출산율이 세계 전체로 확산된다면, 2400년경에는 지구에 인간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
이다. 풍요로운 사람은 노동을 거들어줄 아이를 굳이 낳을 필요가 없으며, 늙더라도  부양해
줄 자식이 없어도 된다. 그렇지만 피임기구를 사용할 수 없거나 여성의 의사가 무시되고 있
기 때문에 현재 전세계 여성들의 임신 중 4분의 1은 임산부가 출산을 원치 않는 임신이라고  
국제보건기구는 보고했다. 전세계의 군비를 한 달만 절약하면 전세계 모든 여성에게 피임약
이나 피임기구를 나누어줄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가족이 적은 가정은 
행복하게, 가족이 많은 가정은 불행하게  살아가는 장면을 묘사함으로써 큰 효과를  보았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에서도 소득이 약간 증가하면서 인구학적 추이가 변화하는 경향이  나타
난다. 
  셋째로 많은 나라의 정부에서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여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서양 
사람들은 1975-77년에 인도 정부가 취한 인구 억제책(세 자녀를 둔 부모 중 한  사람에게는 
강제로 불임시술을 하고, 그 외에 불임시술을 받는 사람에게는  약간의 보상금을 지불한 정
책)에 분노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인도는 아직도  불임시술을 자발적으로 받는 사람에게 현
금을 지불하고 있다. 지불하는 돈이라야 20달러도 채 안 되는 약소한 금액이지만,  놀랍게도 
그것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에서는 더욱 가혹한  '한 자녀 갖기' 정책을 실시
했는데, 이를 어기는 사람에게는 각종 혜택의 상실, 벌금,  강제 불임시술 등의 제재가 뒤따
랐다. 그 결과, 중국의 출산율은 거의 인구보충 수준까지 떨어졌다. 개인의 고통이나 불행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대다수 사람들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1950년에서 1980년 사이에 그 많은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났다. 
  비관론의 근거도 상당하다. 매년 1천6백만 명의 인구가 늘어나는 중국은 인구 1인당 경작
면적이 2010년에는 1994년보다 25퍼센트나 줄어들 것이다.  토양 침식으로 유실되는 경작지
도 감안해야 한다. 가난한 내륙  지방이나 북부 지방의 수천만 명이  해안 도시로 이주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방 간의 해묵은 분쟁을 야기할 수 있
다. 
  대다수의 개발도상국가에서 임금은 인구 추이를 안정 쪽으로 몰고 가도록 상승한 것이 아
니라, 오히려 오랫동안 떨어져왔다.  게다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종종 여성을 무력하게 
만들기를 원하여 피임기구의 사용을  오난(Onan : 창세기 38-39장  참고)의 죄로 간주하고, 
어떤 형태의 수정란 파괴(예컨대, 경구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도  영아 살해로 간주한다. 그
리고 몇몇 제3세계국가 지도자들은 출산율을 낮추라는 권고를 '인종차별주의적 음모'라고 몰
아세운다. 결국 인구정책은 1992년의 '지구 정상회의'와 환경 및 개발에 관한 유엔회의의 공
식 안건에서 제외되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국제가족계획협의회와 인구활동을 위한 유엔기금
에 대한 지원금을 삭감했고, 부시 행정부 역시 그것을 복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도 사람들
이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혹해 불임시술을 받는다는 사실에 분노를 나타내는 캐나다 인도 문
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자발적인 인구 억제가 오랜 기간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러브록은 <종의  기원
>을 쓴 찰스 다윈의 손자(C. G. 다윈)의 주장을 인용해 자연 선택의 결과로 '호모 필로프로
게니투스'(Homo philoprogenitus : 많은 자녀를 사랑하는 인간)가 최종적인 승리를  얻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적 영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더라도, 이것은 옳은 것처럼 보일  것이
다. 필로프로게니투스는 필요하다면 그러한 영향력에 맞서나가도록 진화할 것이다. 그렇지만 
특정 집단 사이의 갈등은 외부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손을 더 많이  낳도록 부추길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문제 집단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많은  자손을 낳고자 하는 충동은 
유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가족을 가진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거나, 신이 그들을  사
랑한다고 설교함으로써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있다. 
  인구 과잉, 환경 악화, 질병, 범죄, 전쟁은  모두 한꺼번에 닥치는 경향이 있다. 카플란(R. 
D. Kaplan)은 동료 미국인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한동안 매체들은 해외에서 일어나는 폭동이나 그 밖의 폭력 사태를 주로 인종 분규나 종
교분쟁으로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쟁들이 늘어가고, 점점 많은 곳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짐에 따라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환경'
이니, '천연자원의 고갈'이니 하는 말이 대외정책을 담당하는 집단 내에서  나오기 시작하고, 
우리는 회의론이나 지긋지긋하다는 냉담한 반응들에 직면할 것이다. 특히 보수주의자들에게 
그러한 용어들은 쓰잘 데 없는 것으로 비칠 것이다. ...이제는 '환경'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때다. 환경은 21세기 초의 국가 안보에 큰 문제이다. 인구 증가나 질병의 확산, 
삼림의 황폐, 토양 침식, 물의 고갈, 공기 오염, 그리고 나일 삼각주와 방글라데시와 같이 인
구 과밀 지역의 해수면 상승  등이 가져올 정치적, 전략적 영향은  대외정치 문제에서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프랜시스코 푸쿠야마(Francisco Fukuyama)가 지적한 대로,  극소수의 사
람을 충분한 보호시설을 갖춘 곳으로 이주시켜 '역사 후'의 영역에서 환경을 지배하고  부르
주아 계층의 번영으로 인종적 적대감을 해소시키면서 살아갈 수 있겠지만, 엄청나게 늘어난 
수많은 사람들은 그대로 역사 속에 갇힌 채  빈민촌에 살면서 가난과 문화적 기능 장애 및 
종족 분쟁을 벗어나려고 허우적대다가, 결국 식수 부족과 경작지  및 주거 공간의 부족으로 
종말을 맞이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4.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질병
  오늘날 전염병은 전체 사망 원인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전염병을 유발하는 병원체로는 
크게 세균, 바이러스, 리케차(세균과 바이러스의 중간에 위치하는),  기생충(말라리아를 일으
키는 원생동물과 주혈흡충병을 일으키는 작은 벌레와 같은)의 네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말라리아와 결핵은 현재 사망 원인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약 3백만 명
의 사망자를 낳은 결핵이 말라리아보다 약간  앞서고 있다. 그러나 1918-19년에 번진 '스페
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지구의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전염되었고, 2천만 명의 사망자를 냈
다. 비록 현대의학의 발달로 지구상에서 천연두가 멸종했다는 선언이 나오고, 소아마비와 디
프테리아의 위협이 크게 감소됐지만, 약품과 항생제에 저항력을 키운 질병들(말라리아와 결
핵을 포함하여)이 많이 남아 있다. 모기를 비롯하여 질병을 매개하는 많은 곤충들도 살충제
에 대한 면역력을 키웠다. 게다가, 레기오넬라균과 같은 새로운 병원균이 계속 나타나고  있
다. 
  선페스트의 치사율이 50퍼센트인 데 비해  1976년에 처음으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90퍼센트에 이른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현재 AIDS와 결핵 이외의 다른 전염병 연
구에 투입하는 지원금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40년  전보다 오히려 감소하였으며, 질병통
제센터는 AIDS가 감기만큼 전염성이 높지 않았던  것은 단지 생물학적인 우연에 불과했는
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치명적인 병원체를 찾는  데 해마다 겨우 수백만 달러만을  사용하고 
있다고 로스(P. E. Ross)는 지적했다. 
  그런데 왜 병원균들은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퍼진 제1세대 점액종
증에 걸린 토끼는 1천 마리당 2마리만이 살아남았다. 왜 1백퍼센트의 치사율을 가진 병원균
이 모든 포유류 또는 특히 인간을 멸종시키지 못했을까? 여기에는 운이 크게 작용한 것 같
다. 복잡한 생명체들이 우주의 많은 행성에 흩어져 진화해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 중에서 많
은 행성들은 병원균이 승리를 거두어, 그러한 비극적 사태를  돌이켜볼 생명체가 하나도 남
아 있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과 나는 운좋게도 그러한 생명체들이  계속 살고 있는 아주 희
귀한 행성에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추론의 연장선상 어디에 한계를 그어야 할지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복잡한 생
태계를 갖추고 있는 모든 행성 중에서 99.9999퍼센트가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진화하기 이
전에 질병으로 재난을 맞이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나머지 0.0001퍼센트에 속하는 행성
에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거기가 
아니라면, 어디서 우리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물론 병원체들이 자신들이 먹이로 삼는 숙주들과 불안한 타협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는 것
은 사실이다. 병원균이 숙주를 죽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없다. 말라리아에는 매
년 3억 명 정도가 감염되지만, 그 중에서 2백만 명  이상은 죽이지 않도록 말라리아균이 특
별히 배려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그렇지만 미치슨(A. Mitchison)이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 우리는 유례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과거에 얼마나 자주 숙주 종들이 기생충에 
의해 멸종됐는지 우리가 안다고 해도, 그러한 지식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알려주는 것이 
거의 없다. 미치슨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상황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빚어
내고 있다. 
  첫째, 2010년경에는 2명 중 1명은 도시에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인구가 1천만 명 이상
인 도시가 30여 개이며, 1백만 이상인 도시는 4백 개가 넘는다. 인구 밀집 지역에서는  질병
이 빠른 시간에 수십 종류의 새로운 변형을 만들어내면서 가공할 속도로 전파될 수 있다. 
  둘째, 국제적인 곡물 거래나 사업상의 여행, 관광객들은 빠른 시간에 질병을 전세계로  확
산시킬 수 있다. 오늘날의 해외여행자 수는 1950년대에 비해 약 20배 증가했다. 숙주와 병원
체가 나란히 진화할 때에는 양자는 앞에서 언급한 불안한 타협을 유지할 수 있다. 즉,  병원
체는 숙주에게 저항력을 키우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어떤 질병이  갑자기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옮겨갈 때에는 새로운 환경에서 병원체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맹위를  떨칠 
수 있다. 그 결과, 아무 준비도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종종 반복해서 일어나
는 일이지만, 감기는 전에 그것을 경험한 적이 없던 지역에 전파되었을 때에 치명적인 결과
를 낳는다. 콜럼버스 일행이 북아메리카에 가져온 수도,  인플루엔자, 홍역은 아메리카 원주
민 수를 20분의 1로 감소시킨 주요인으로 꼽힌다. 
  셋째, 나날이 새로이 오염되어 가는 환경에서 질병들은  더욱 번성한다. 1991년, 페루에서 
시작되어 멕시코로 옮겨간 콜레라는  하수처리 불량이 주원인이었다.  환경오염은 병원체의 
전파속도를 증가시키는 것 외에도 인체에  스트레스를 가해 쉽게 질병의  희생자로 만든다. 
폐를 둘러싸고 있는 막을 공격하는 암의 일종인 메소텔리오마(Mesothelioma)는 바이러스와 
함께 석면을 흡입했을 때 걸릴 확률이 높다. 이 병은 건축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서 많이 발병한다. 
  넷째, 메소텔리오마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병이다. 왜냐 하면,  브라운(P. Brown)의 
주장에 따르면, 이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새로운 종으로  보이며, 
그 DNA는 SV40의 것으로 의심되기 때문이다.  SV40은 원숭이의 바이러스인데, 1954-63년
에 실수로 소아마비 백신에 섞여 수백만 명에 투입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의학의 역사에서 
최악의 사고일지도 모른다. 
  AIDS의 바이러스인 HIV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심이 제기되었다. HIV는 유인원과 원숭이
에 감염되는 바이러스인 SIV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에게 감염되는 바이러
스로 변한 과정은 원숭이의 혈액을 실험적으로 수혈한다든지 소아마비 백신을 만드는 데 원
숭이 신장을 사용한  데(중앙 아프리카에서 실험되었다)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1994년에 
황색 비비에게서 발견된 SIV 바이러스는 최근 종의 장벽을 건너뛰었음이 밝혀졌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녹색원숭이에게서 건너왔다).
  동물들의 장기(예컨대, 비비의 간, 심장, 신장 등)가 종종 사람에게 이식되는 경우가  있다
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장기 기증자의 수가  부족한 현실을 감안할 때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동물 질병이 인간의 질병으로 도약할  수 있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종종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라사와 마르부르크 바이러스는 최근에 그러한 도약을 
통해 인간에게 감염된 바이러스이다. 이제는 죽을 때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동의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장기를 이식받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전면적으로  실시
해야 할 때가 왔다. 
  바이러스가 특히 무서운 것은, 항생제로도  치료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종이 
나타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비교적 해가 없던  열대병 뎅기열은 최근에 들
어 치명적인 출혈 증상을 나타내는 병으로 변했다. 얼마  전에는 SIV의 변종이 발견되었다. 
거기에 감염된 원숭이는 AIDS와 같은 만성질환 증상을 나타내는  대신, 1주일 안에 사망한
다. 
  다섯째, 신체의 면역계는 질병에 대항하여  싸운다. 그런데 AIDS와 같이,  병원체가 바로 
면역계 자체를 목표로 삼을 경우에, 감염된 사람은 곤경에  빠지게 된다. AIDS는 '후천성면
역결핍증(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의 약자이고, HIV는 '인간 면역 결핍 바
이러스(Human Immuno deficiency Virus)'의 약자로서  AIDS를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되는 
전염성 병원체를 지칭한다. HIV는 처음에는  상당 기간의 잠복기를 거친다.  최고 10년까지 
신체의 방어체계는 이상 없이 작동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HIV가 면역계를 파괴하기 시작한
다. AIDS는 동성 연애자들  사이에서 주로 감염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오늘날 AIDS 환자 
중의 80퍼센트는 이성간의 성행위를 통해 감염된다. 이 바이러스는  감염된 사람을 아주 천
천히 죽이기 때문에 숙주를 통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시간이  아주 길다. 때문에 덜 치명
적인 형태를 발전시킬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1980년, HIV에 감염된 사람들
은 30만 명 정도였으나, 오늘날에는 약 2천만 명으로 늘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4천만 명  이
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혼 남자의 비율 또는 아내가 시골에 있는 남자의 비율이 아주 
높은 많은 도시들에서는 어른 중 절반은 HIV에  감염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확한 수치
는 평가하기 매우 어렵다. 지구 전체의  위험에 관한 전문가인 마이어스(N. Myers)는  결국 
전세계 인구의 5분의 1이 AIDS에 희생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HIV는 아주 빠른 속도로 변이를 일으킨다. 한 개인의 신체 내에서조차 한 종류의 HIV는 
종종 아주 다른 종류들로 변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견된 종류들의 경우, HIV에 감염
된 사람과 성행위를 통해 감염될 확률은 상당히 낮다. 모기는 HIV를 전염시키지 않는 것으
로 밝혀졌다. 그리고 침 속에도 HIV가 섞여 있지만, 키스나 재채기 또는  기침을 통해서 전
염이 된다는  증거는 알려진  바 없다.  양 사이에서  전염되는, HIV와  관련 있는  비스나
(visna) 바이러스는 재채기를 통해서 전염된다. 

      제2장 - 그 밖의 위험들
    1. 천체와의 문제
  혜성 또는 소행성의 충돌
  거대한 혜성 또는 소행성이 충돌함으로써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1994년에  '슈메이커
-레비 9호 혜성'의 잔해가 목성에 충돌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다. 지
름이 약 20킬로미터인 이 혜성의  잔해들은 초속 약 60킬로미터로 목성에  충돌했다. 그 중 
한 파편은 최소한 6백만 메가톤의 위력으로 폭발했다. 1979년, 머리가 지구보다 훨씬 큰 '하
워드-쿠먼-미셸스 1979XI 혜성'이  태양에 충돌한 사건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2126년에는 1조 톤의 얼음과 암석을  끌고 초속 약 60킬로미터로  움직이는 '스위프트-터틀 
혜성'이 지구 궤도를 가로질러가게 되는데, 그 때 지구는 공전 궤도상에서 불과 2주일의  거
리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현재의 계산이 정확하다면).
  지구의 생물사를 살펴보면, 최소한 다섯 차례 이상의 대규모 절멸이 있었다. 최소한 맨 마
지막 것(약 6천5백만 년 전에 공룡의 절멸을 가져온)은 천체의  충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카탄 반도에는 지름 10-20킬로미터의 소행성이 충돌한 흔적이 남아 있다. 약 1조 
톤의 암석 덩어리가 초속 2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날아와 1억 메가톤 이상의 에너지를 내
면서 폭발했을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는  최전성기 때 전세계의 핵무기고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보다 약 1만 배나 더 강한 것이다. 그 때에  파인 크레이터는 지름이 3백 킬로미터나 
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고, 먼지  수십조 톤이 대기 중으로 날아올라
가고, 세계 곳곳에서 숲이 불타고, 산성비가 내리고, 음속의 10분의 9에 달하는 강속의 태풍
이 몰아쳤을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암흑이  몇 달 동안 계속되면서 혹한이 닥쳤을  것이다. 
그 뒤에는 화재와 충돌시 발생한 열로 인해 석회석에서 방출된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로 이
전보다 기온이 10도C 정도 높아졌을 수도 있다. 
  태풍이 다량의 소금물을 성층권으로 올려보내 오존층을 파괴시킨 데 따른 지상까지  내리
비치게 된 자외선도 온난화에 기여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세계 
각처에서 이리듐이 풍부하게 함유된 점토층이 숯과 함께 발견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지구 
표면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리듐은 폭발한 소행성의 흔적임이 분명하고, 숯은 그 때 발생
한 화재에서 생겼을 것이다. 또, 표석 및 표준화석과 함께 나란히 퇴적된 깊은 바닷속  지층
들은 큰 해일이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그 밖에, 유리질 구형 입자들로 이루어진  지층이라든
가 충격의 흔적이 있는 큰 석영 결정, 크레이터의 흔적, 공룡뿐만 아니라 모든 종들 중  4분
의 3이 멸종해버린 대량 절멸 등도 이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어떤 증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대규모 화산 분출의 증거로도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산재와 황산염을 풍부하게 함유한 에어로졸 물질은 어둠과 기온 냉각을 가져올 
수 있다. 1815년에 폭발한 탐보라 화산은 멀리 떨어진 미국 동부의 뉴잉글랜드 지방에 여름
철인데도 눈과 서리를 내림으로써 기근을 몰고 왔다. 인도  데칸고원의 화산들은 활동을 멈
추기 전까지 약 50만 년간 활동을 계속해왔다. 여기서  분출된 용암의 흐름은 2백만 평방킬
로미터가 넘었을 것이고, 수백억 톤의 황산이 분출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산성 안개와 산
성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산성 바다에서 이산화탄소가  증발함에 따라 온실효과가 나타
났을 것이다. 
  소행성 충돌과 화산 분출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이미 위기에 
처해 있던 많은 종에게 소행성 충돌은  마지막 일격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또한,  거대한 
소행성 충돌이 화산 활동을 촉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지름 15킬로미터 정도의 
물체가 충돌하면, 충돌 장소에서 1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지표면이 1백여 미터나 위
아래로 움질일 수 있다. 
  최대 규모의 대량 절멸은 약 2억 5천만 년 전의 페름기 말기에 일어났다. 이 때,  전체 종
의 75-96퍼센트가 절멸했다. 포유류를 닮은  파충류 50종 중에서는 겨우  1종만이 살아남았
다. 여기서도 많은 요인들인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재난을 불러왔을 수 있다. 그  요인으로는 
해수면의 급격한 하강과 상승(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량  증가 및 산소의 결핍과 관련  있다), 
탄소 13대 탄소 12의 비율이 최저치로 떨어진  것(석탄과 검은 셰일의 산화를 시사한다. 그 
결과, 대기의 산소량이 절반 이하로, 그리고 바닷속에 녹아 있는 산소량은 5분의 4 가량  감
소되었을 것이다) 등을 들 수 있다. 게다가, 이 무렵에 시베리아의  화산들이 대규모로 폭발
했으며, 용암이 2백만-3백만 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을  덮었다. 그런데 이 무렵에 곤드와나라
는 하나의 대륙으로 붙어 있었던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남극 대륙 모두에서 지름 
3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크레이터의 흔적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알프스의 암석에서는 
소행성의 충돌로 인한 이리듐이 검출되었다. 
  언젠가 지구와 충돌할 수 있는 궤도를  가진 혜성과 소행성 중에서 지름이 1-10킬로미터
인 것은 2천여 개나 된다. 그보다 더 큰  것은 훨씬 적지만, 작은 것들은 훨씬 많이  존재한
다. 1908년, 시베리아의 퉁구스카 지방에서는  사방 40킬로미터 이내에 있던 모든  나무들이 
쓰러지는 폭발 사고가 일어났는데, 이것은 겨우 지름 60미터  정도의 천체가 충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정도 크기의 천체는 대기권을 무사히 통과하기도 힘들 정도이지만, 그 위
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천 배나 되었다. 1965년, 캐나다의 레벨스토크에  떨어
진(다행히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에) 유성의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맞
먹었다. 대량 절멸을 가져올 만큼 위험한 지름 1킬로미터  이상의 천체가 지구와 충돌할 확
률은 50만 년 내지 1천만 년에 한 번으로 추정된다.  지표면에는 지름이 5백 킬로미터에 이
르는 옛날의 크레이터 흔적이 남아 있다.  클로스(F. Close)는, 지구는 "대양을 모두 증발시
키고, 전세계의 기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 거대한 천체의 충돌이  1억 년마다 한 차례씩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때, 발생한 에너지를 만약 대기 중에 골고루 확산시킨다면, 기온은 무
려 섭씨 2백도나 올라갈 것이다. 
  대량 절멸과 그것을 가져온 천체의 충돌이 약 3백만 년마다 한 차례씩 규칙적으로 일어났
다는 주장이 최근에 제기되었다. 이것은 1천억 개에서 수조개의 혜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
로 추정되는, 태양계 외곽에 있는 혜성  구름대인 오르트운(Oort Cloud)에 규칙적으로 무엇
인가가 충격을 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추측된다. 
  오르트운에 충격을 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후보로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태양의 동
반성으로 생각되는, 네메시스(Nemesis)란 이름이 붙어 있는 어두운 왜성이다. 또 하나는 지
구보다 크고 명왕성의 2-3배 거리에 있는 열 번째 행성인 '행성X'이다. 나머지 하나는 태양
계가 밀도가 높은 은하면을 지나갈 때 진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세 후보 중 아직까지 그 
존재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천체의 충돌은 어떤 시기에 특별히 많
이 일어날 수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르트운보다 훨씬 더 안쪽에서 돌고  있는 코이퍼대(Kuiper Belt) 안에 수조  개의 '얼음 
덩어리'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이 얼음 덩어리들은 크기가 아주 큰 것도 있다. 가장 
큰 것은 폭이 1천 킬로미터가 넘는다(1995년에 D. 주잇과 J. 루는 그 중 3만 5천여 개는 폭
이 1백 킬로미터가 넘는다고 추정했다). 아마도 1백만 년에 한 번씩 매우 큰 얼음 덩어리가 
태양계 안쪽까지 흘러들어와 분해될 것이다. 그 파편 중에서 대량 절멸을 가져올 만큼 충분
히 큰 것만도 수천 개나 될 것이다. 지금 황소자리  유성우와 관련이 있는 거대한 덩어리가 
분해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년 대기권에는 1킬로톤 규모의 충돌이 20여 차례 일어나고  있다. 1994년에는 1백 킬로
톤 규모의 폭발이 태평양의 토켈라우 섬 상공에서  일어났다. 1937년에는 지름 2킬로미터의 
소행성이 지구 궤도를 가로질러갔다. 그것은 불과 공전  궤도 거리상으로 6시간이라는 근소
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1989년에도 6시간 차로 지름 1킬로미터의 소행성이 빗나
갔다. 
  유리질 구형 입자들은 지난 3천5백만 년 사이에 무게 5백억 톤 가량의 충돌이 네 차례 일
어났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의 것은 약 1백만 년 전에 일어났다. NASA가 
후원하여 1980년에 열린 스페이스워치(Spacewatch : 우주 감시) 워크숍에서는 '문명을 파괴
할 수 있는'(전세계 인구 중 최소한 10퍼센트 이상을 죽일 수 있는) 혜성이나 소행성의 충돌
이 어느 해에 일어날 확률은 30만분의 1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참석자들은 그 값이 1백만분
의 1에서 1만분의 1 사이라는 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 확률이 1만분의 1
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50년을 산다고 할 때 그러한  재난을 맞이할 확률이 2백분의 1이나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30만분의 1의 확률도, 어떤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죽을  확률
의 60분의 1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위험을 줄이려고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1993년 9월 11일자 <이코
노미스(Economist)>지는 어떤 사람이 천체의 충돌로 인해  죽을 확률이 2백만분의 1이라는 
상당히 보수적인 평가를 인용하면서, 미국인의 경우 다른 종류의  자연재해를 당해 죽을 확
률보다 훨씬 더 높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영국 정부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1백20
만 달러를 도로 안전시설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는 사실을 인용하면서, 선진국들
이 천체의 충돌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매년 4억 7천만 달러를 투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
장했다. 
  일련의 전자 감지 장치와 몇 개의 전용 망원경을 사용하여 지름 1킬로미터 이상의 위험한 
천체를 90퍼센트 이상 포착할 수 있는 계획을 25년간  추진하는 데에는 초기에 5천만 달러, 
그리고 그 후로는 매년 1천만 달러밖에 들지 않는다. 만약 망원경에 아주 위험한 큰 물체가 
충돌 코스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발견된다면, 사람들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더 
값비싼 비용은 얼마든지 대려고 할  것이다. 1991년에 NASA가 설치한 요격위원회는,  수백 
메가톤의 핵탄두나 심지어는 수백만  메가톤(오늘날 가장 강력한  수소폭탄 위력의 약  1만 
배) 규모의 핵탄두를 사용하여 그러한 천체의 궤도를  바꿀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많
은 사람들은 만약 이 방어 시스템이 나쁜 무리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혜성이나 소행성
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궤도를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다면, 필요한 에너지를  크게 줄일 수 있다. 10년 
앞의 위험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1메가톤 규모의 폭발로도 지름 1킬로미터인 천체의 궤
도를 벗어나게 할 수 있다. 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레이저 열을 이용하거나 아주 얇은  플
라스틱판으로 만든 거대한 거울을 우주공간에 설치하거나 또는 일정 부분을 검게  칠함으로
써 가스 제트를 분출하게 하여 몇 년간에 걸쳐 천체의 궤도를 서서히 바꿀 수 있다는  제안
도 나오고 있다. 
  또 하나의 대안은 대규모 충돌의 피해로부터 농작물이 다시 원상을 회복할 때까지 인류가 
먹고 살 만큼 식량과 필수품들을 비축해두는 것이다.  클로스는 스위스가 "모범을 보여주는 
국가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모든 국민은 각자 2년치의  식량 및 필수품이 저장된 지하 
피난처를 준비하는 것이 의무적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  계획은 핵전쟁에 대비하여 마련된 
것이지만, 그 밖의 다른 재난에도 유효한 대처 방법이 될 것이다. 

  초신성, 은하 중심의 폭발, 태양 플레어
  수백조X수천조 메가톤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초신성 폭발은 거성이  별 내부의 핵융합 에
너지를 다 사용했을 때, 또는 한 별에서 다른 별로 물질이 이동될 때 일어난다. 길게는 수주
일 동안, 초신성은 수백억 개의 태양을 모아놓은 것만큼 밝은 빛을 낸다. 이때, 방출되는 에
너지는 특히 위험한 형태(X선, 감마선, 고에너지 '우주선' 입자)로 나온다. 
  지구에는 위험한 광선을 차단해주는  전자기장이라는 보호막이 있지만,  초신성 폭발에서 
나오는 우주선은 보호막을 파괴할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자외선을 차단해주는 오존층도 파
괴될 것이다. 그 결과, 지구는 냉각되고, 전세계적인 가뭄이 닥칠 것이다. 초신성 폭발이  얼
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는 평가하기 어렵지만, 우리 은하 안에서는 1세기에 한 번 내지 열 번 
정도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되며, 위험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일어난 초신성 폭발은 화
석의 기록에 남은 대규모 절멸 중 한두 차례의 후보로  추측될 정도로 드물게 일어났다. 오
존층의 90퍼센트 이상을 약 3백 년간 파괴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한 우주선이 지구  대기층에 
도달하려면 지구에서 33광년 이내의 거리에서 초신성이 폭발해야 하는데, 엘리스(J. Ellis)와 
슈램(D. Schramm)은 최근에 그러한 초신성 폭발은 2억 4천만 년에 한 차례 이상은 일어나
지 않는다고 계산했다. 따라서, 우리는 상당 기간은 초신성 폭발의 위험에서 안전한 셈이다. 
더구나, 가장 가까이 있는 잠재적인 초신성 후보 알파 크루시스는 약 4백 광년의 거리에 있
으므로 더욱 안심할 수 있다. 
  약 5억 년 전에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있다(어쩌면 수
백만 년에 걸쳐 일련의 폭발들이 몇 차례에 걸쳐 일어났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때, 발생한 
에너지는 초신성 폭발 때보다 1억 배나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그와 유사한 다른 
사건들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별들이 은하 중심에 밀접해 있기  때문에 초신성 연쇄 폭발
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또는, 은하 중심에 태양의 수백만 배의 질량을 가진 블랙 홀이  있
어 그 속으로 많은 물질이 빨려들어갈 때 엄청난 양의 복사 에너지를 방출하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폭발은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 전에 일어났을 수도  있다. 현재 관찰되는 지름 10광
년 정도의 은하 중심 부분의 공동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방출된 에
너지가 과거보다 훨씬 더 짧은 시기에 집중적으로 방출되거나 은하 중심보다 더 가까운 지
역에서 날아오지 않는 이상,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 
  중성자 별이나 블랙 홀은 아주 먼 거리에서도 위험을 가할 수 있는(특히, 오존층에) 에너
지를 방출할 수 있다. 이들은 폭이 아주 좁은 제트 형태로 에너지를 농축해 방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초신성 폭발에서 방출되는 에너지에도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1993년 1월에 
관측된 특별히 강렬한 감마선 방출을  설명하기 위해 S. 우슬리는 초신성도  그러한 제트를 
방출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렇지만 제트의 폭이 좁을수록 그러한 제트가 지나가는 길에 
지구가 놓일 확률은 더욱 적어진다. 그리고 제트의 분출 방향이 계속 변한다면, 제트가 우리
를 지나갈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만, 대신에 제트가 우리를 지나가는 시간은 아주 짧을 것이
다. 
  거대한 태양 플레어도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 만약 간혹 일어나듯이, 태양의 대류가  혼합
되는 시기에 들어간다면, 지금까지 관측된 것보다 최고 1천  배나 더 강력한 플레어가 방출
되어 가까이에서 일어난 초신성 폭발만큼 효과적으로 지구의 오존층을 파괴할지 모른다. 특
히, 지구 자기장이 역전되는 시기에 자기장이 최소치로 줄어들었을  때 그러한 일이 발생한
다면,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 지난 2백50만 년 동안에 자기 역전은 10번이나 일어났으며, 
이때 지구 자기장은 길게는 2만 년 동안 거의 0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문제는 당장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과거 수천만 년 
동안에도 지구는 이들 문제에 의해 위험을 겪은 적이 없다. 

  블랙 홀 폭발, 블랙 홀 합체...
  블랙 홀은 중력 붕괴가 일어난 곳으로, 그 곳에서는 빛조차 탈출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
지만, 사실은 이름처럼 완전히 검은(블랙) 것은 아니다. 호킹이 증명한 바와 같이, 블랙 홀도 
양자효과로 인해 '증발'한다. 처음에는 아주 천천히 에너지를 조금씩 잃지만,  종국에는 증발
이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폭발하고 만다. 빅 뱅 직후에 생긴 미니 블랙 홀들(산 하나 정도의 
질량을 가진 아주 작은 블랙 홀들)은 지금쯤 폭발 단계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그러한 미니 
블랙 홀이 마지막 순간에 뿜어내는 전체 에너지는 1천만 메가톤 내지 1조 메가톤의 수소폭
탄이 폭발하는 것과 맞먹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블랙 홀에  아주 가까이 있는 장소에만 피
해가 미칠 것이다(참고로, 우리 태양은 매초 30억 메가톤  규모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설사 
블랙 홀이 은하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블랙 홀은 "최소한 명왕성
보다 더 먼 곳에 있을 것"이라고 호킹은 평가한다. 그리고 만약 그러한 미니 블랙 홀에서 1
조 메가톤 규모의 폭발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우리가 속한 지역에서 블랙 홀이 증발하는 것
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은 1백 년에 1입방광년의 공간 속에서 두 차례 미만에 불과할  것이라
고 호킹은 덧붙였다. 
  거대한 두 개의 블랙 홀이 합쳐질  때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 이때, 이들이  지닌 
질량 중 최고 40퍼센트가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1천만X1조X1조 메가톤 규모의 
에너지가 방출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은하에는 큰 블랙 홀이  1억 
개 이상 존재할지 모른다고 한다. 이 추정치는 블랙 홀을  발견하는 데 따르는 모든 어려움
에도 불구하고 이미 발견된 후보들(예컨대, 백조자리에 있는 두  후보)을 고려하고, 또 초거
성으로 존재하다가 생을 마감하며 블랙 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별의 수를 계산한 반 덴 
호이벨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은하 전체의 크기를 고려할 때, 블랙 홀  합체
가 우리에게 끼칠 위험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다. 중성자 별끼리의  합체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임의의 방향에서 우리에게 오는 감마선  강도가 다른 곳보다 수백 배
나 많은 지점은 바로 이 블랙 홀의 합체나 중성자 별의 합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이들 방출원의 위치나 밝기 및 파장의 분포 등은  아주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일
어나는 매우 희귀한 사건에서 비롯된다고 보면 논리정연하게 설명된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근처가 아니라 아주 먼 곳에서만 관측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것
은 은하들이 가까이보다는 먼 곳에 훨씬 더  많이 존재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일 수도 있
다. 만약 이 설명이 옳다면, 그러한 희귀한 사건에서는 수분의 몇 초에서 몇 분이라는  아주 
짧은 순간에 태양보다도 10억X10억 배라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 소셋(S. Thorsett)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2천 광년 안의  거리에서 그러한 에너지 
방출이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오존층은 몇 년 동안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한다. 그리
고 그러한 에너지 방출은 수억 년에  한 차례씩 일어난다고 한다. 이때, 방출되는  에너지는 
우리 은하 안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 방출원에서 나오는 것보다 수천 배나 더 강렬할 것이
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은 은하 중심 근처에서  더 자주 일어나며, 실제로 약 2만 7천  광년 
거리에 있는 우리 은하 중심이 약 1천5백만 년 전에 수십만 개의 초신성 폭발과 맞먹는  엄
청난 폭발을 했다는 증거(바깥쪽으로  밀려나가는 가스의 흐름이나 물질들의  고리 모양)가 
있다. 
  그 밖에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으로는 화이트 홀의 '미니 뱅'이 있다. 이것은 시간 속에
서 빅 뱅이 지연된 지역이다. 날리카(J. Narlikar)는 우주론자들이 이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포기한 것은 너무 성급했다고 주장했다. 우주론자들이 그러한 생각을 포기한  것은, "생성되
자마자 화이트 홀은 주변의 매질에 의해 포화돼 곧 블랙 홀로 변한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
문이라고 날리카는 설명했다. 그는 그 계산의 근거가 되는  가정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
다고 지적하면서, 그 경우 화이트 홀은 고에너지 우주선이나 감마선의 방출원 후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르코프(M. A. Markov)는 원시  블랙 홀들이 수십억 톤  정도의 질량을 가지고 무리를 
지어 존재할 수도 있으며, 그러한 블랙 홀 무리는  '파국적일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 방출원'
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데이비스(P.  C. W. Davies)는 단 하나의 거대 블랙  홀
(그는 갈색 왜성과 같은 다른 별 주위를 돌다가 궤도에서  벗어난 방랑자 행성도 덧붙인다)
이 우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살그머니 다가와서 태양계를 산산조각내 버릴 위험도 미소
하나마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모든 경우는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으나, 당장 절박한 위험요소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위에서 언급한 존재들에 의해 지구가 영향을 받은 흔적은 전혀 없으며, 우리
가 가진 증거를 바탕으로 분석할 때 그  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사건들은 우리 은하 안에서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우리 은하 안에서 중성자 별의  충돌
은 10만 년에 한 차례 정도 일어난다. 

    2. 유전공학
  생물학전에 이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별도로 치더라도, 유전공학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유전공학이 아주 복잡한 분야라는 사실은 그것이 초래할 위험에 대한 평가
를 대단히 어렵게 만든다. 최소한  공식적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특별히  염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받고 있거나 이성을 잃지 않는 이상, 지금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어떤 위험 못지않은 커다란 위험이 유전공학에 도사리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공통된 견해는 과학적인  사실보다는 사회적 압력으로 설명하
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유전공학에 가해질 규제는 원자력발전소에  적용되는 규제처럼 
산업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나 연구소에 근무하는 과학자들의 월급과 연구
비를 삭감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증거는 불충분하지만, 과학자들 사이에 재빠른 통
일전선이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간다. 
  결국에는 간단한 화학물질들을 '유전자 기계'에 넣고 혼합함으로써 모든 고등생물의 DNA 
분자(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세포를 만들고 통제하는)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질지도 모른
다. 그러나 현재 유전공학자들은 단지 서로 다른 생물에게서  떼어낸 유전물질의 긴 조각들
을 서로 이어붙이는 정도에 불과하다. DNA는 특정 효소를 사용하여 잘라낼 수 있고, 그 중
에서 선택된 부분을 플라스미드나 리포솜, 바이러스 또는 소형 총에 의해 발사된 총알의 형
태로 세균이나 식물 또는 동물의 몸 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 그 결과,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
는 인슐린이나 항암제 인터페론 같은 것을 유전공학적으로 만들 수 있다. 
  유전공학이 가져다줄 혜택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인간이나 가축의 질병들을 유전공학으로 
만든 백신이나 항생제를 사용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적인 결함(예컨대, 정상적인 헤
모글로빈을 만들어내지 못해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경우와 같이) 역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식물이 서리나 염분, 질병, 곤충, 살충제 등에 저항력을 갖게 만들 수도 있고, 새
로운 질소 고정 능력을 부여할 수도(그러면 비료를 줄일 수 있다) 있을 것이다. 유전공학으
로 만든 생장 호르몬을 투입함으로써 젖소의 우유 생산량을 늘릴 수도 있다. 필요한 화합물
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거나 고갈된 유정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데, 산업폐기물을 먹어치우는 
데, 심지어는 화성 토양을 경작 가능하게 만드는 데에  유전공학으로 만든 미생물들을 이용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게놈(genome)을 약간 조절함으로써 인간의 노화를 상당히 지
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비자연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신발이나  트랙터, 보청기, 맹장 
수술, 집과 낙하산 등도 비자연적인 것이다. 암과 전염병, 지진, 그리고 눈이 멀거나  불구로 
태어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자연적인  것에만 의존해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인류에 대해 아무런 증오심도 없는 사람들이 몇 달 동안 정자 생산을 못하게 하는 살모넬
라균을 인체에 투입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문에서 언급했
듯이, 바로 그런 계획이 미국의 한 대학에서 세워졌다. 그것은 정자 생산을 막는 물질을  생
산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면, 세균들의 생존능력을 저해하여 세균들을  모두 죽게 할 것이라
는 가정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항상 어느  정도의 살모넬라균을 보유하고 있
다. 다행히 이들은 정자 생산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욱 운이 좋게도 이들은 유전공학
으로 만들어낸 종류보다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하는 능력이 있다. 만약  이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유전공학으로 만든 살모넬라균에 '가미가제 유전자'로 알려
진 유전자를 주입하여 적당량의 약을 복용하면 자살을 감행하도록 하는 조처만으로는  이러
한 의문이 완전히 불식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돌연변이를 일으켜 특정  유전자
를 상실한 세균은 통제 불가능하게 증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곤충의 공격을 물리치도록 유전공학적으로 처리된 작물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증식하지
는 않을까? 또 해충에 저항력을 가진 이들의 새로운 특성이 자연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종의 
유전물질 교환을 통해 잡초들에게 옮겨지지는 않을까? 그리고 유전적으로 앞세대들보다  더 
뛰어나게 '개량된' 인간들이 새로운 종류의 암과 같은 질병에 쉽게 희생되지는 않을까?
  특히, 모든 사람들이 '개량'되고 난 다음에 그러한 질병이 나타난다면, 그 결과는 파멸적일 
것이다. 우리의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일정 횟수의  분열을 거친 뒤에는 죽도록 DNA에 프
로그램돼 있다. 따라서, 세포분열 횟수를 증가시키면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렇
게 변형된 세포들은 끝없이 분열을 계속하는 종양 세포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세포가 죽도
록 프로그램돼 있는 것은 암에 걸려 일찍 죽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1970년대 중반에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개발되었을 때,  연구자들은 자발적으로 위험 가
능성이 있는 실험들을 1년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스탠퍼드 대학에서 종양 바이러스인 유인
원 바이러스 40을 사람의 창자 속에 많이 살고 있는 대장균 속에서 클로닝함으로써 연구하
기로 했을 때, 처음으로 대중적인 경각심이 제기되었다고 P. R.  휠과 R. M. 맥낼리는 설명
한다. 이 바이러스는 햄스터에게 암을 일으키기 때문에,  암을 유발하는 DNA가 사람에게까
지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었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재빨리 'DNA 
분자 재조합과 관계된 연구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아닌 
다른 연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인 구속력이 없었지만, 처음에는  이 지침이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처음에 이 지침은 아주 엄격했다. 유전공학으로 처리된 유기체를 환경에 
방출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많은 실험들은 완전히 밀폐된 보호복을 입은 실험자들에 의해서
만 행해져야 했으며, 실험실도 기압을 낮은 상태로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설사 틈이 있더라
도 실험실 안의 입자들이 밖으로 누출되지 않도록 했다. 게다가, 연구되는 유기체들은  실험
실 밖에서는 살아남지 못하도록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적용해야 했다. 
  그러나 성장하는 바이오테크놀로지 산업의 압력(아무런 규제가 없는 나라에서  실험을 강
행하겠다는 위협을 포함하여) 때문에 미국  보건원의 지침은 법적 구속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더욱이, 이  지침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생물물리학자  신샤이머(R. L. 
Sinsheimer)의 말을 인용하면, 지침은 "거의 존재 의미가  없을 지경으로" 완화되고 말았다. 
미국 보건원에 보낸 편지에서 신샤이머는,  그러한 완화 조처는 "이미  알려진 매우 위험한 
병원체를 제외한 모든 DNA 재조합  실험에서 초래될지도 모르는 위험  가능성을 무시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항의했다. 1986년,  환경의 질에 관한 백악관위원회는 한술  더 떠
서, 최악의 경우가 예상되는 사례에  대해 연방기관이 조사하도록 규정한 규칙을  삭제했다. 
재난을 방지하기 위한 그러한 노력은 '끝없는 가설과 추측'을 낳을 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규제를 완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유전자를 무력화시키는 많은 방법
이 완벽하게 갖추어졌다. 정상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화학물질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도록 유기체를 유전공학적으로 만들 수도 있고, 또는 몇 세대가  지난 후에는 더 이상 번
식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전자를 삽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 속으로 방출시켰을 때, 자연적인 유기체보다 훨씬 더 잘 번식할 가능성이 있
는 유기체를 유전공학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규제하는 강력한 법은 없다. 유전자를 무력화시
키는 방법은 일시적으로만 성공을 거둘지  모르며, 한 종 속에 주입한  변이가 다른 종으로 
옮겨갈지도 모른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비어드슬리(T. Beardsley)의  말을 빌리면, "상당량의  유전물질들이 미생물 세계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같은 종류의 세균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관계가 아주 먼 종들 
사이에서, 심지어 세균과 바이러스 사이에서 유전물질들이 서로 교환되고 있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위험성이 더 큰데, 바이러스는 기능적인 유전 단위를 통째로 교환함으로써 살아가
며,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유전자를 전달하는 속도가 아주 빠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복
제로 필수적인 요소들을 박탈함으로써 유전공학적으로 무력화시킨 세균들은 다른 곳에서 그 
물질들을 취할 수 있다. 영국의 안전감독관들은 이러한 이유에서 버밍엄 대학에서 무력화시
킨 암 병원균을 사용한 연구를 중단시켰다. 바이러스를 운반체로 삼아 유전자는 한 종의 식
물에서 다른 종의 식물로, 또는 사람들이나  포유류 동물 사이에서 옮겨갈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운반체가 없어도 된다.  바다에 사는 세균은 다른 세균이  죽어 부패한 곳에 
떠다니는 DNA를 흡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이러한 발견은 유전공학 실험이 별다른 위험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강화해주
는 것같다. 즉, "자연은 끊임없이 그러한 실험들을  실행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
나 유전공학에서는 간혹 자연 속에서 수백만 년이 지나야 가능한 과정을 순식간에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재래의 육종가나 식량 과학자, 백신 개발자들은 도저히  이룰 
수 없었던 일이 가능해진 것은 바로 그러한 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중 어떤 것들은 자연
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어떤 유기체의 적응성을 키우기 위해 가해진 돌연변이
들은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실행해도 치명적일  수 있는 변화를 동시에 여러 가지를 거치게 
한 결과로 얻었다. 또한, 65번째 코돈-안티코돈 쌍을 유전자 알파벳에 첨가시킴으로써 아주 
다른 새로운 단백질을 생산하는 길을 열기도 했다. 
  여기에 도사리고 있는 주된 위험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이
러한 상황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위험을 확대시키고 있다. 왜냐 하면, 이러한 상황은 곧  무
용지물로 변하지 않을 규제 마련을 매우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 유전
공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인류의 발전에 중요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그들이 연구하는 분야는 지금 막대한 돈이 투자되고 있다. 
  휠과 맥낼리는 "미국의 보험회사들은 재조합 미생물의 현장 실습에서 일어나는 사고에 대
해 보험을 받아주기를 꺼려해왔다"고 지적한다. 

   
    3. 컴퓨터와 나노테크놀로지의 재난
  컴퓨터와 관련된 재난, 인간을 대체하는 컴퓨터
  핵 미사일을 컴퓨터의 통제하에 두는 것은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데, 이것은 컴퓨터 혁명
에서 비롯될 수 있는 재난 중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 밖의 가능성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
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로 파괴 행위(예컨대, 테러리스트가 장치한 폭탄에서  발생한 전자기 펄스가 한 도시 
전체의 컴퓨터 회로를 망가뜨릴 수 있다)에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전기망 또
는 전자망은 예측할 수 없게 붕괴할 수 있다. 
  1965년,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있는 발전소의 중계 장비가  고장나는 사고로 주변 지역
은 모든 활동이 정지되었다. 온타리오 주  대부분과 미국의 7개 주는 여러  시간 동안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다. 1990년과 1991년에는 미국 전화망에 대규모 사고가 일어나 수도가 고립
되고 공항이 폐쇄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원인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중 철자 하나의 잘못으
로 밝혀졌다. 그것 때문에 한 교환국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는 메시지가 다음 교환국을 일
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마비된 그 교환국을 회복시키자, 그 메시지가 이번에는 
또 다음 번의 교환국을 마비시키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일반 대중은 컴퓨터 해커들의 장
난이 아닌가 생각했다. 의도적인 조작이 가해지지 않더라도,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엄청난  사
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일반 대중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1972년과 1980년에 
이와 유사한 병균이 통신 시스템에 확산되었다.  그것은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하는 메시지는 
마이너스 지연 효과(메시지가 도착하기도  전에 송신됨으로써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가 
생긴다는 안내문이 잘못 나간 데서 비롯되었다. 논리적으로 도저히  불합리한 이 소식은 로
스앤젤레스에서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한 장소에서 그것을 없애도 어딘가 다른 장소
에서 재감염되곤 했다. 
  1992년, 영국의 핵연료국은 셀라필드에 있는 거대한 핵연료 재처리 공장을 통제하는 초기 
버전의 소프트웨어에서 2천4백여 개의 에러를  찾아냈다. 그 중 1백여  개는 안전 시스템에 
지시를 내렸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2천  행 이상의 보호로 이루어져 있
을 경우, 그 모든 잘못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장기간에 걸쳐 실제적인 테스트
를 거친다고 해도 노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듯한 수학적 가정에 따르면, 어떤  프로그램
이 이전과 같은 시간 동안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은 2분의  1밖에 안 되며, 광범위한 테스트
를 거친 프로그램에서는 남아 있는 모든 에러의 3분의 1은 '5천 년짜리 버그'(각각의 에러가 
5천 년에 한 차례 정도 문제를 발생시키는)이다. 
  인류 멸망이 시작되는 구체적인 날짜를 대는 내기를 한다면, 서기 2000년 1월 1일을 대는 
것이 가장 유리할 것이다. 군사 시스템에 사용되는 것을  포함해서 수많은 컴퓨터에 내장된 
시계는 시간을 급작스럽게 바꾸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미 NASA에서는 세기말로 예정된 
우주왕복선 발사 계획을 연기했다는 믿을 만한 이야기가 들린다. 최근의 평가에 따르면,  전
세계의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시간을 다음 천 년 동안 무리없이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5천억 
달러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둘째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이너스 지연 효과가  잘못 알려진 것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부주의 때문이 아니었다. 모래벡(H. P.  Moravec)은 통신망에 "간단한 임의의  변형에 의해 
생겨나 자발적으로 진화해간 자기 복제 유기체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자기
복제 능력을 가진 존재(컴퓨터 부호의 일부)가 발견된 것은 그  효과가 아주 심각했기 때문
이다. "만약 더 신중하게 행동했더라면, 그것은 훨씬  더 오래 살아남았을 것이다. 지배자가 
없는 프로그램 사이에 통용되는 자연 선택의  기준이 있다. 그것은 번식을 하되, 몸을  바짝 
낮추라는 것이다. 컴퓨터 메모리 속에는 이미 상당수의 유기체들이  우리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숨어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컴퓨터 속의 데이터는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고 모래벡은 덧붙였다. 몸을 사리는 성공적인 전략
은 사람이 만든 컴퓨터 바이러스가 변형된 것이 구사할 수도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에 약간
은 지능을 더해준다거나 AIDS 바이러스처럼 급속하게 변형을 만들어내도록 함으로써 바이
러스 퇴치 프로그램을 피할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은  확실히 바이러스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될 것이다. 
  1994년에, <PC컴퓨팅(PC Computing)>이란 잡지는  '돌연변이 기관(Mutation Engine)'이
라는 소프트웨어 패키지의 존재에 대해 보고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퍼져나가면서 계속 변화
를 일으키도록 설계된 바이러스를 장난꾸러기 컴퓨터  매니어들에게 제공한다고 했다. 컴퓨
터가 더욱 복잡해지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사이버스페이스 세계'도  더욱 커지고, 그 속에서 
전자 '쥐, 코요테, 범죄자들'이 아주 간단한 컴퓨터 바이러스로부터 놀라운  속도로 진화해나
올 것이라고 모래벡은 말한다. 이들의 진화는 다른 프로그램이나 바이러스로부터 부호 조각
들을 체계적으로 복사하거나 시험해보는 능력(즉, 컴퓨터 바이러스의 섹스)에 의해 더욱 촉
진될 것이다. 수많은 바이러스 치료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진  컴퓨터 
바이러스 중에서 멸종한 것은 거의 없다. 
  오래 전에 배리셀리(N. A. Barricelli)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약간 다른 복제본들은 사전에 규칙이 알려지지 않은 어떤 간단한 게임을 잘 해나가기 위해 
변이된 후손을 낳았다. 다시 말해서,  진화한 것이다(성공적이지 못한 복제본들은  제거되므
로). 컴퓨터상의 복제는 엄청난 속도로 일어날 수 있다.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이용하여 수억 년에 걸친 시험관 실험을 거치지  않고도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러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은 동료 과학자들에게서 안전  문제(그가 만든 진화하는 RNA 모
형이 다른 사람의 컴퓨터로 옮겨가 스스로 생명력을 갖게 되는 위험)를 지적받고 걱정된 나
머지, 자신의 프로그램이 정상적인 컴퓨터 언어로는 읽히지 않도록 만들었다. 
  셋째로 컴퓨터 속에서 스스로 진화해가는 지능은 이 분야에서 발생하는 주요한 위험은 아
니다. 더 큰 위험은 컴퓨터에게 더 많은 지능과 힘을 부여하려는 인간의 의도적인 계획에서 
비롯될 수 있다. 
  처음에는 컴퓨터로 하여금 공장이나 정부의 많은 기능을 처리하게 함으로써 국가들은  상
당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에  기계들은 아마도 "정치지도자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전략"을 사용하여 자신들이  힘을 펼치는 데 제약이 되는 요소들을  점차 
극복해나갈 위험이 있다고 맥거원(R. A. MacGowan)과 오드웨이(F. I. Ordway)는 지적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산 복합체'라고 이름붙인 강력한 요소들은 이미 그들에 대한 규제를 
좌절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군사령관이나 산업계의 거물들이  개인적으로 군비 
축소를 선호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군산 복합체는 계속 번영을 누려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맥거원과 오드웨이는 거대한 컴퓨터의 지배(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권력이 중앙에 집중된 
독재)를 받는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노예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유토피아적 사회가 구현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의 생산력은 무
시할 정도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동화 과정은 인류를 포기하고, 환경이 더 좋은  천문
학적 목장으로 옮겨갈 것이다. "지능을 가진 자동기계는 지능을 가진 생물학적 종보다 우주
에서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져나갈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보다 더욱 암울한 시나리오도  제기되었다. 드렉슬러(K. E.  Drexler)는, 다른 인공지능 
시스템을 훨씬 더 잘 설계하고  만들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개발되면, 국가들은 짧은 
시간에 군사적 능력을 엄청나게 키울 수 있다고 썼다. 그는 덧붙이기를, 이미 세상에는 시민
들을 고문하고 감시하는 정부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기술의 발전은  단지 그들에게 더 나은 
수단을 제공할 뿐이라고 했다.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널리 이용 가능해
짐에 따라, 정부들은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들은 그러
길 원치 않을 수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발달된  기술을 소유한 국가들은 사람들을 통제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을 포기해버리면 간단하니까." 인공지능 시스템은 단
순히 노동자들만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학자, 과학자, 행정가, 심지어는 정치지도자
도 대체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을 버리더라도,  심지어는 모든 사람들을 버리더라도, 국가
는 계속 번영할 수 있다." 이때, 번영이란 단어는 경제적 또는 군사적 경쟁에서 다른 나라들
을 압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세계 정부는 바람직하지 못하게 독재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나왔다. 그
런데 국가간의 경쟁은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가 아니라 단지 다른 나라들을 경제적으로 또는 군사적으로 이기기 위해 국가 전체를 기계
의 손에 맡기는 나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신반의할 것
이다. 그러나 오늘날 존재하는 나라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국민의 행복보다는 다
른 나라를 이기는 데 더 몰두하고 있는지를 돌아본다면,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게 이기는 것
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지 않는 나라들이  세계 지도에서 사라져갈 위험에 처한다는  사실을 
돌이켜본다면, 그러한 시나리오를 가볍게 여기지 못할 것이다. 
  넷째로 모든 사람들을 버린다는 계획을 사람들 자신이 세울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은 인류
를 발달된 컴퓨터로 대체하는 아이디어를 선호한다. 물론 선택된  사람의 마음을 그러한 기
계에 이전하는 중간 과정을 거친 후의 일이다. 이전이  완전히 이루어지기까지 그러한 사람
들의 두뇌를 컴퓨터와 연결시켜 몇 달 또는 몇 년간 컴퓨터와 함께 협력하여 생각하도록 할 
것이다. 
  맥거원과 오드웨이는, 컴퓨터는 가장 최신의 모든 지식과 '무한히 긴 수명'을 가지고, 그리
고 '자신의 사고 과정의 변수들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정신병 증세나 편집증이나 
우울증 등에 빠지는 일이 없이) 태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컴퓨터들은  정신적, 육체적 능
력을 모두 무한히 증가시킬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둘 이상의 존재를  합체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컴퓨터는 진공을 포함해 극한적인 환경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모래벡은 자신을 "인류는 이제 마지막 세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즐거운 마음으로 결론내리
고, 그 과정을 잘 지나가게 돕는 방법을 제시하는 저자"라고 부른다. 그는  기계들이 자신의 
설계와 제작을 담당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지면 지능 연구에 급속한 진전이 이루어질 것
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불사조에 가까운 존재이자 새로운 종류의 '유전 정보'(마음에서 인공 
마음으로 넘겨준 모든 지식)의  유연한 전달자에게 횃불을 넘겨주고  나서 "우리의 DNA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처음에는 하나의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프로그램과 데이터가 전달되듯이, 인간
의 두뇌에서 인공지능 기계로 정신이 이동함으로써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에 예속돼 있던 
상태에서 인간 정신이 해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인공지능 연구에 사용되는 모든 컴퓨
터들은 기껏해야 곤충 정도의 정보처리 능력밖에 갖고 있지  못하지만, 인간의 두뇌에 필적
할 만큼 정교한 시스템이 2030년까지는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한 시스템은 약 1
조 비트의 메모리를 가지고, 초당 10조 회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상업적인  목적
으로 또는 다른 경쟁의 결과로 그러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개발될 것이다. 그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래벡의 견해에 따르면, 기계가 인간을 '유전적으로 대체하는 것'은 좋
은 일이 될 수 있다. 결국에는 초고밀도 물질을 사용함으로써 인간이 지닌 정신 능력의 1백
만X1백만X1백만X1백만X1백만 배의 능력을 가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사람처럼 능숙하게 주위 환경에 반응하는 컴퓨터를 보고 "아직 의식을 가졌다고  결코 말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체스 경기에서 세계 챔피언을 꺾
는 컴퓨터를 보고 '체스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지
만 많은 사람들은 정보처리에 아무리 방대한 기술이 사용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절한 의
식을 지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견해에는  물론 무시하지 못할 
근거가 있다. 
  먼저, 태어날 때부터 장님인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두뇌 속에 행동 패턴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이 들어 있다고 해도, 노란색이나 파란색을 
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잭슨(F. C. Jackson)
과 스윈번(R. Swinburne)의 주장에 많은 작가들이 동조한다. 다른  감각에 대해서도 똑같이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컴퓨터가 설사 자신의 내부 활동 패턴을 추적할 수 있
다고 할지라도(컴퓨터가 그러한 것들을 통제하고 보고하기 위해 늘상 하고 있듯이), 컴퓨터
는 소경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물론 컴퓨터는 노란색 물체와 파란
색 물체를 구분할 줄 안다. 그리고 바퀴를 이용하여  움직이다가 위험한 자극을 받으면 "아
야!"하고 소리치면서 피해갈 줄도 안다. 그렇지만 컴퓨터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 똑같이 색
들을 인식하지 못하며, 우리가 발로 걷어차더라도 컴퓨터는 진짜로 아픔을 느끼지는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설(J. R. Searle)은 어떤 컴퓨터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컴퓨터가 체스 게임을 능숙하게 하는 것은, 마치 한자로  이루어진 
질문에 역시 한자로 된 적절한 답을 찾기 위해 엄청나게 복잡한 규칙집을 뒤적이지만, 한자
를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낙서로 인식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체스 대국에서 늘 이기고, "아야!"하고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피해 달아나는 
컴퓨터와 사람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기계가 아무리 자신의 내부 활동 패턴
을 성공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계는 '그러한 활동 패턴을 총괄적으로 개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주장이 의미하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인
가? 스윈번은 "동시에 일어나는 마음 속의 어떤 사건들은 공통적인 주체가 느끼는 상태들이
다. 당신은 다리에 쥐가 나는 것과, 내 목소리를 듣는 것과, 내 팔의 움직임을 보는 것을 동
시에 느낀다"고 썼다. 그러나 우리는 컴퓨터가 느끼는 상태 역시 '어떤 공통적인  주체가 느
끼는 상태'라고 할 수 없는가 라는 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컴퓨터의 내부 활동 패턴들은 체
스판 위의 32개의 모든 말들이나 목소리와 움직이는 팔 등을 '적절히 통합된' 형태로 대표할 
수 없는가?
  많은 사람들이 신경쓰는 부분은(나는 분명히 신경이 쓰인다)  컴퓨터가 각각 별개로 존재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 각각의 부분들은 설사 우주의 
나머지 부분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
로, 의식은 영국의 관념주의 철학자 브래들리(F. H.  Bradley)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 속
에 많은 것을, 하나의 통일체 속에 다양성을 담고" 있다. 브래들리는 문제의 통일성을 "어떤 
관계 또는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를 "허무맹랑한 생각"이라고 
간주했다. 
  여기서, 우리는 우주의 모든 부분들은 단 하나의 존재가  지닌 양식이나 측면에 불과하다
고 본 스피노자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즉, 체리의 붉은색이 체리에서 분
리될 수 없듯이, 모든 것은 별개로 존재할 수 없는 요소들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스피노자
의 추종자들은 우주에는 별개의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별
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최소한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 그러한 부분들 중 어
떤 집단들은 특별히 통합되어 있다. 그렇다면 컴퓨터 또한 그러한 집단으로 보아서는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사람의 두뇌도  극적으로 잘 통합된 생물학적 컴퓨터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의 두뇌가 정말로 컴퓨터라는 대답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사람의 두뇌가 컴퓨터와 같
다는 것은 정보처리 능력이 뛰어나 전화를 통한 오랜 인터뷰에서 사람으로 인정받는 데 합
격할 수 있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양자효과를 이용함으로써  우리의 두뇌는 매우 바
람직한 종류의 통일성을 지닌 컴퓨터가  될 수 있다. 복잡한 정보  처리에는 실제로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양자물리학에 의해 이룰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통일성은 그러한 고도
의 능력을 가진 컴퓨터에 도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의 유용성은 단지 
그러한 도움을 준다는 문제뿐만이 아니다. 인류를 모두 컴퓨터로 대체해야 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컴퓨터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와  같은 특수한 종류의 통일성('양자론적 통일
성')을 가져야 한다고 나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양자효과에 의해 '하나의 전체'로 융합되지 못한 의식은 어떠한 종류의 본질적 가치도  지
니지 못할 것이다. 양자론적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의식 상태를 형성하는  요소들은 
결합이 잘 되지 않아 실제로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그  요소들의 총체적인 존재가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다시 말해서, 다른 것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총체적인 존재가 윤리적으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던질 때 적절한 대답이다. 
  어떤 저자들은 최소한 어떤 핵심 영역 또는 영역들에서는 두뇌가 양자효과에 의해 통일되
어 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양자론에 따르면, 복잡한 계들이 고전물리학이 허용하는 것
보다도 훨씬 더 긴밀히 결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양한  입자들(양자론을 기초로 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보스-아인슈타인 통계학에 합치하는  입자들)은 자신의 독자성(identity)을 
아주 잘 잃어버린다. 따라서, 예컨대 상자 속에 같은 입자 2개가  들어 있다고 할 때, 두 입
자 모두가 상자 속에서 같은  반쪽에 있을 확률은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2분의 1이 아니다. 
그 확률은 3분의 2이다(이것은 두 입자 중 어느 것이 상자의 한쪽에 있고 다른 것이 반대쪽
에 있는지, 즉 입자 A는 왼쪽에, 입자 B는 오른쪽에, 또는 그와 반대로 있다는 식으로 분명
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입자 A와 입자  B는 다소 복잡한 의미로  말하자면 
'독자성이 융합돼버렸다.').
  봄(D. Bohm)은 "현대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별개의 물체들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데카르트적 개념으로는 무생물 물체조차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입자들의 상호 작용은 전체 계에 속하는 공통정보의 풀(pool)에 의존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썼다. 훗날 힐리(B. Hiley)와 함께 쓴 논문에서 그는,  의식 속에서 '자신의 가장 중
요한 경험'은 자신의 의식의 부분들이 어떻게 '다른  부분들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나오는지, 
그리고 어떤 의미로는 서로  결합하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펜로즈(R. Penrose)는 
"양자 상호관계는 아주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따라서 "두뇌의 넓은 
영역에 걸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일체성' 또는 '전체성'의 근
거로 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이러한  의식의 '일체성'과 양자평행론
(quantum parallelism) 사이에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양자 수준에서
는 서로 다른 선택들이 직선적인 중첩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에, 하나의 양자 
상태는 원칙적으로는 동시에 일어나는 수많은  행동들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
다. 
  여기에 상상을 더하여, 많은 작가들은 생물학적인 세부  사항까지 첨가했다. 특히, 마셜(I. 
N. Marshall)은 '의식의 통일성과 복잡성'에 깊은 인상을 받고, '어떤 고전적인 물리 계도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진 나머지, "양자론적 계에서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이  올
바른 성질들을 가진다"고 언급했다. 
  초유동 상태의 헬륨(절대 영도 근처의 액체 상태에서 헬륨 액체가  중력의 법칙에 반하여 
유리벽을 타고 거꾸로 올라가 유리병 밖으로 나오는 현상)은 '원거리에 미치는 질서와 구성 
단위들의 독자성의 공유'가 실현되어 그러한 응축이 일어난 한 예이다. 이러한 종류의  일은 
'통일성 속의 다양성'을 제공할 수 있다. 프뢸리히(H. Frohlich)는 보스-아인슈타인의 응축과 
유사한 '펌핑된 포논(phonon : 음향 양자)계'가 살아 있는 두뇌의 온도에서 존재할지도 모른
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계는 "의식 상태들을 나타내는  은유로 홀로그램을 사용하려는 최근
의 시도들에 확고한 물리적인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마셜은 제안한다. 홀로그램을 이루
는 각각의 작은 영역들은 전체에 대한 정보를 암호화한다. 록우드(M. Lockwood)가 쓴 <마
음, 두뇌 그리고 양자(Mind, Brain and  the Quantum)>라는 책에는 그러한 생각들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가 소개되어 있다. 

  나노테크놀로지에서 초래되는 재난
  나노테크놀로지(nanotechnology)란, 크기가 1나노미터(1밀리미터의  1백만분의 1)  정도인 
부품들로 만들어진 복잡한 기계를 사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그러한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개 원자나 분자를 매우 정밀하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기술은 화학과 액체물리학과 
공학이 결합되어야 가능하다. 파인먼(R. P. Feynman)은 '밑바닥엔 풍부한 여지가  있다'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기계를 사용하여 더 작은 기계들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계로  하여
금 더 작은 기계를 만들게 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또 다른 접근 방법은 마이크로전자공학의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축소된 사진 주형과 컴퓨터로 조종하는 절단 빔, 특정 원자를 원하
는 장소에 갖다놓을 수 있는 주사형 터널 전자현미경 등이 그것이다. 
  화학자들은 열 운동에 의해 원자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원자를 조작
하는 일에 오랫동안 몰두해왔지만, 나노테크놀로지 공학자들은 화학적 결합 대신에 수소 결
합과 같은 약한 결합을 사용하여 원자를 결합하기를 선호한다. 이미 수소 결합, 반 데르  발
스 결합, 그리고 친수성 반응을 바탕으로 하는 결합들은 빛에 의해 활성화되는 종류인 자기 
조립식 '분자 스위치'를 만드는 데에 이용되어 왔다. 
  수 세기 안에 자기 조립에서 자기 생산으로 넘어가는 단계가 실현될 것이다. 다른 기계들
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조립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어떤 나노기계들은 수천 개 또는 수백만 
개의 스위치와 막대와 로터를 지니고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기계를 만들어내는  '복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폰 노이만은 자기복제 기계에 대한  일반 이론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
다. 이 이론은 훗날 자연적인  자기 재생에서 DNA와 RNA,  그리고 단백질의 상호 작용을 
잘 설명해주는 것으로 밝혀진다. 컴퓨터로  통제되는 오늘날의 선반은 자기  자신을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는 '폰 노이만 기계'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전자 컴퓨터들은 곧 미크론(1밀리미터의 1천분의 1) 단위로 축소될 것처럼 보인다. 
"부품들의 크기가 원자 몇 개 정도의  크기라면, 간단한 컴퓨터는 1백분의 1세제곱미크론의 
공간밖에 차지하지 않을 것이다. ...10억 바이트의 저장 용량을 가진 나노공학 컴퓨터는 박테
리아의 크기와 비슷한 한 변이 1미크론인  상자 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드렉슬러는  자신의 
저서 <창조의 기관(Engines of Creation)>에서 서술하고 있다. 나노미터 크기의 톱니바퀴는 
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품으로 만든 컴퓨터는 오늘날의 전자 컴퓨터보
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재생 작업을 포함해 매우 
복잡한 건축 임무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다. 만약 전자컴퓨터 자체가  그와 같은 크기로 
줄어들 수 있다면, 전자컴퓨터는 훨씬 더 빨리  작동할 것이다(아마도 수십만 배나 더 빠른 
속도로).
  이러한 이야기는 공상미래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의 기관>에
서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으며,  드렉슬러가  쓴  <나노시스템
(Nanosystems)>에서는 기술적인 세부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자체 컴퓨터를 
내장하고 초당 10억 사이클의 속도로 작동되면서 서로 협동하여 킬로그램 단위의 복잡한 물
체를 1시간 정도에 만들 수 있는 나노공학 도구들을 화학물질이 든 큰 용기에 도입하면  거
의 모든 종류의 기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에팅거(R.  C. W. Ettinger)가 <불사에 대한 전망
(The Prospect of Immortality)>에서  제시한 것처럼, 이들은  초소형 외과의사로서 우리의 
동맥에서 지방을 제거하거나 미세한 수술을  수행함으로써 우리의 수명을 크게  연장시켜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도구들이  '보통 물질로부터 거의  무엇이든지(자기 자신을 포함하
여)'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이들은 '핵전쟁 못지않은 멸망의 잠재적인  위험' 요소로 부상할 
것이다. 태양전지를 이용하는 인공 식물들이 "진짜 식물보다  경쟁력이 월등하게 뛰어나 바
이오스피어를 뒤덮어버릴 수도 있으며", 강력하고  잡식성인 인공 박테리아가 "바람에 날리
는 꽃가루처럼 확산되고, 빠른 속도로 복제하여 며칠 내에 바이오스피어를 먼지로 만들어버
릴지도 모른다." 이 위험을 '그레이 구(gray goo) 문제'라고 부른다. 단순한 사고로 인해 재
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복제자들을 '프로그램이 가능하고 컴퓨터로  통제할 수 있는 
병원체로 사용하는 일종의 세균전을 벌임으로써' 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 통제에서 벗어나
지 않는 한, 이들은 진짜 병원체보다 군사적으로 더 유용할 것이다. 
  드렉슬러가 언급했듯이, "단지 어려운 몇 가지  문제의 해결을 보류함으로써 우리는 급진
적으로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할 가능성이 있는 나노 복제자를 만들 가능성 또는 위험을 초
래할 수 있는 계로 진화할 가능성에 다가가는 것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아주 작은 부품들
은 자연 복사에 포함된 단 하나의 입자에 의해서도 큰 변화를 겪을 수 있지만, 이러한 장애
는 자기복제 기계들이 엄청난 수의 후손을 남기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자연유
기체들은 자연발생적인 조립을 과도하게 사용한다. 분자  부품들은 올바른 위치에 맞추어질 
때까지 가능한 모든 위치와 방향에서 확산되고 충돌을 일으킨다.  여기서 올바른 위치는 정
확한 공간적 위치를 말하기보다는 정확한 연결을  뜻하는 위상공간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
다. 
  한편, 나노 도구들은 자동차와 유사하다. 대부분의 부품들은 아주 정확하게 위치하지 않는 
한 전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의 연료탱크에 난 구멍이 연료 파이프의 끝부분과 일
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해가 갈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주 값비싼 비용
을 들여 그렇게 설계되지 않은 이상, 나노 도구들이 다윈식의  진화를 해갈 염려는 거의 없
다. 더구나 나노 도구들은 '특수  화학용기(예컨대, 과산화수소를 에너지와 산소의 공급원으
로 제공하는)'와 같이 비자연적인 환경에서만 작동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나노 도구
들을 '값싸고 풍부한 화학 물질'을 이용하고, 공장보다는  자연계 속에서 작동하도록 만들면 
이로운 점이 많겠지만, 이러한 기계들이 반드시 복제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나노 도구
들은 다른 기계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은 만들어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험이 전혀 없다고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나노 기계들이 가져다줄 엄
청난 상업적, 의학적, 그리고 그 밖의 이익들을 고려한다면, 잠재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고 해서 발전을 억누르는 것이야말로 아무 소용 없을 뿐더러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고 드렉
슬러는 언급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준비를 갖출 때까지 위험을 유예시키는  지능
적인 지연 장치'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방어 장치들은 조립 생산 시스템을 바탕으
로 해야 하는데, 그러한 시스템은 위험한 복제자를 만들어낸 이후에야 만들어질 수 있다. 그
리고 책임이 지워진 사람들은 폭발물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밀봉된 작은 용기 속에 담긴 내
용물을 가지고 연구하며, 외부 사람들이 실험실 안에 들어오면 내용물이 자동적으로 파괴되
도록 할 수 있지만, 범죄자들이나 테러분자들 또는 호전적인 국가들은 아무 제약도 없는 실
험실을 운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면역계에서 백혈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나노 기계
들을 만들어 전세계에 퍼뜨림으로써 모든 종류의  위험한 나노 기계들을 파괴하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러나 위험한 복제자를 만드는 쪽이 그것을 처치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요약하자면, 나노테크놀로지 혁명이 도래하기 전에 전쟁이나 테러, 범죄 등이 완전히 사라
지기를(거대한 국제 경찰력을 통해, 또는 많은  사람들은 악의적인 세뇌 교육이라고 비난할 
엄격한 교육을 통해) 바랄 수밖에 없다. 

    4. 고에너지 물리학의 위험
  카오스 이론, 카타스트로피 이론 등에서 연구되는 위험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이전의 상황에 대한 완전한 지식과 은하 크기의 컴퓨터없이는  재난을 
포함하여 많은 사건들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카오스(chaos) 
이론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로렌츠(E. Lorenz)는, 예컨대 다음 달의 날씨는 오늘의 조건에 
아주 미묘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브라질에서 일어난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미국 텍
사스 주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1979년에 열린 미국 과학발전
협회 회의에 제출한 논문 '예측 가능성'의 부제였다. 
  태양계 자체도 수억 년 후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태양계 행성들의 카
오스적인 움직임은 어떤 한계 속에 갇혀 있어서 지구가 금성과 부딪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그러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을 뿐더러, 뉴턴의 법칙이 다음 어떻게 작
용하여 10억 년 동안에 지구가 태양계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갈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채프먼(C. R. Chapman)과 모리슨(D. Morrison)은 "이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위험은, 수십만 
년간 아주 규칙적인 궤도를 돌던 소행성의 궤도가 갑자기 카오스적으로 변해 혜성처럼 변해 
지구로 접근해올 가능성이다"고 지적했다. 
  카오스 이론이 밝혀낸 예측의  어려움 문제는 톰(R. Thom)의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 
이론, 박(P. Bak)과 첸(K. Chen)이 '자기 조직되는  임계 이론'이라 부른 이론에서도 다루어
진다. 카타스트로피란, 반드시 재난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
다. 
  로렌츠의 '카오스'는 종종 좋은 것을 가리킬  때가 있다. 예컨대, 심장의 박동은  로렌츠가 
의미하는 '카오스적'인 패턴을 가져야만 건강하다. 다윈의 진화론에 적용했을 때, 카타스트로
피 이론은 오랜 기간 안정 상태가 지속되다가 별안간 수많은 새로운 종들이 출현하는 급변
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카타스트로피가 일어나는 실제  시간은 죽어야만 하는 존재들
로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긴장의 강도가 서서히 증가하는 것으로 보아 급격한 
변화가 조만간 일어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다(변화의 크기와 내용은  우리의 예측 능
력을 벗어나는 것이지만), 예를 들면, 국제관계가  전쟁을 향해 긴장이 높아갈 때, 카타스트
로피 이론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지 예측해  주지는 못하지만, 전쟁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 제시할 수는 있다.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사용해 캐스티(J. L. 
Casti)가 보여준 것처럼, 국가들로 이루어진 계는 모든  국가들이 선의를 갖고 있다고 해도, 
전쟁을 향해 치닫는 수가 종종 있다. 
  카타스트로피의 가장 일반적인 예로는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을 들  수 있다. 모래알을 하
나하나 쌓아 모래성을 쌓다보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작은 판 위에 깨끗한  모
래를 쌓을 때, 붕괴가 일어나는 규모는 사실상 예측하기 어렵다. 
  많은 연구들은 복잡한 많은 계들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밝혔다. 어떤 계의 
복잡성은 그 자체가 점점 더 복잡한 상태들로 진화해가도록 해, 불안정의 수준이 점점 높아
져 마침내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붕괴가 일어난다는 사실도 카타스트로피 연구를 통
해 밝혀졌다. 박과 첸은 "지각이나 증권시장, 지구 생태계와 같이 아주 크고  복잡한 계들은 
큰 충격을 받아서가 아니라 바늘 하나를 떨어뜨리는 충격에 의해서도 붕괴할 수 있다. 커다
란 상호작용 계는 임계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조직해나간다. 임계 상태에
서는 아주 사소한 사건조차 연쇄 반응을 일으켜 카타스트로피에 이르게 된다"고 썼다. 지각
의 경우, 카타스트로피(파국)는 지진으로 일어난다. 
  화석의 기록이 보여주는 대량 절멸 가운데 몇 가지는  이를 뒷받침해준다. 박과 플라이브
예르그(H. Flyvbjerg), 스네펜(K. Sneppen)은 "진화의 역사에서 큰 사건들(공룡의 절멸과 같
은)은 대격변과 같은 사건에 의해 촉발되지  않고서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적자생존은 모두 
잘 사는 상태로 진화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개개의 종은  간신히 
살아남는 데 그쳤을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붕괴 직전의  모래성에 쌓여 있는 모래알과 같
은 신세이다"라고 언급했다. 
  컴퓨터로 여러 가지 모래성 모형을 만들어본 결과, 이들은  많은 생물학자들이 이전에 제
시했던 것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즉, "서로 관련이 많은 종들(즉, 복잡하게  진화한 종들)일
수록 환경에 더 민감하며, 다음의 공동진화적 붕괴가 일어날 때 거기에 포함돼 멸종될 가능
성이 높다." 따라서, "바퀴벌레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다른 종들과 연관성이 풍부한 종에게 적용되는 사항은 상호 작용하는 종들로 이루어진 풍
부한 집단에도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 생태학자 메이(R. May)가 1970년대에 주장한 것처럼, 
생태계의 생물 다양성은 서로 섞이지 않는 축복의 산물이 아니다 : 부분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연관성은 단지 그것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 때문에 생태계의 해체를 촉진할 수도 있다. 
이들 가운데 많은 것은 자연계나 보통의 더러운 모래와는 약간 다르게 행동하는 컴퓨터 시
스템, 또는 아주 깨끗한 모래를 사용한 과감한 모형화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이 살충제
를 여기저기에 살포함으로써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킨다든가 많은 복잡한 동물들을  죽이는 
구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한편, 지구 생태계의 요소들이 현재 서로 아주 정교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오염물질들
이 가하는 새로운 스트레스에도 해체될 위험이 실제로는 전혀  없다거나, 최소한 인간은 살
아남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발달한 상태에 있다는 주장에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화석
의 기록은 단순한 종은 계속 살아남고, 복잡한 종은  멸종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해주
고 있다. 

  위험한 준안정 '진공'
  1980년에 콜먼(S.  Coleman)과 데   루치아(F. De Luccia)는   <물리학 회보 D(Physical 
Review D)>지에 '진공 붕괴에 미치는 중력효과와 진공  붕괴가 가져오는 중력효과'라는 흥
미로운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 뒤를 이어, 1982년에는  <자연계(Nature)>지에 터너(M. 
S. Turner)와 윌크젝(F. Wilczek)이 '우리의 진공은 준안정 상태인가?'라는 글이 실렸고, 1년 
뒤 다시 헛(P. Hut)과 리즈(M.  J. Rees)가 쓴 '우리의  진공은 얼마나 안정한가?'라는 글이 
실렸다. 헛과 리즈는 우주선 연구로부터 "최소한 어떤 입자가속기도 예측 가능한 미래에 우
리의 진공에 어떤 위협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진공'과 같이 텅 빈 것이 어떻게 입자가속기 같은 것에 의해 위협을 받는다는 것일까? 만
약 우리가 이 때문에 어떤 위협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우주선을 연구함으로써 그러
한 위협이 감소될 수 있는가?
  최소한 현재로서는, 입자가속기는 물리학자들이 고에너지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가장 선호
하는 연구 도구이다. 물론 이때  얻어지는 고에너지는 수소폭탄 폭발시  발생하는 것보다는 
훨씬 좁은 범위에서 발생한다. 헛과 리즈가 그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확
실하게 알고 있는 모든 사건 중에서 지금까지는, 소총에서 발사되는 총알에 맞먹는 운동 에
너지를 가진 매우 빠른 입자인 우주선끼리 서로 충돌할 때 국지적으로 가장 큰 에너지가 발
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선 충돌시 발생하는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
가 다른 방법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위험한 경우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
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어떤 에너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진공에  위협을 제기
하게 된다."
  현대물리학에서 '진공' 또는 '텅 빈 공간'은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다. 그
것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의미한다. 
  하나는 '진공'(특히 '진짜 진공'과 같은 용어에서)은 모든  장(자기장, 전기장 등)들이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 정의는  장들이 0이라는 것과는 아주 다
른 의미이다. 어떤 장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때 에너지상으로 0보다  더 클 수 있기 때문이
다. 따라서, 이러한 장들은 0의 값을 가지지 않는 것이 자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텅 빈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은 놀랍게
도 실질적인 '물질'을 상당히 내포하고 있다. 아주 미소한 규모에서 텅 빈 공간은 양자 요동
으로 가득 찬 아주 복잡한 물질이다. 그 속에서는  입자들이 끊임없이 태어났다가 사라져간
다. 점들 사이의 연결은 연결과 단절이 계속 반복된다.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시공간 거품'이
라고 부른다. 대규모적으로 볼 때, 텅 빈 공간은 매우 단단한 물질이다. 공간은 중력에 의해 
휘어질 수 있지만, 중력에 대해  버티는 힘은 강철보다도 훨씬 더  강하다. 따라서, 이 공간 
물질의 자연적 상태(에너지가 가장 적게 드는 상태)는 많은 장들이  0이 아닌 값을 갖고 있
는 상태이다. 
  다른 하나는 '진공'(특히 '가짜 진공'이라고 이야기할 때)이라는 말은 장들이 가장 낮은 에
너지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안정한 상태에 있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이때, 장들
은 최소한 준안정(metastable) 상태에 있다. 즉, 이보다 더 낮은  에너지 상태도 존재하지만, 
그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에 준안정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마치 
구덩이 속에 빠져 언덕을 굴러내려가지 않는 공처럼, 준안정 상태에서 장들은 '최소한  아주 
작은 범위에서는' 아주 안정한 상태에 있다. 충분히 큰 힘이 작용하면 물론 이 상태가  변할 
수 있다. 실험물리학자들은 그러한 힘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헛과 리즈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진공 상태는 절대적으로 가장 낮은 
상태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많은   물리학이론에 따르면,   "효과적인 퍼텐셜
(potential)의 국지적인 최소값(아주 안정한)이 특정 매개변수값들에 대해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고온에서 시작한 우주는  그러한 국지적인 최소값에서  초냉각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에 우리는 '가짜 진공' 속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때 장들은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공 상태'(우리가 살고 있는 
종류의 공간)는 만약 진짜 진공의  거품이 생겨난다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 거품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은하를 지나 끝없이 팽창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할 것이다.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새로운 세대의 입자가속기에 의해 초래될 가능성은 없는가? 콜
먼과 데 루시아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사건은 '궁극적인 생태계의 파국'을  가져올 것이다. 
팽창하는 '새로운 거품' 내부에서는 '자연계의 새로운  상수들'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알
고 있는 어떤 종류의 생명체도 존재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화학
조차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팽창하는 거품의 벽에 충돌하자마자 양성자가 모두 
붕괴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우울한 소식은, 새로운 진공이 어느 시간엔가 "설사 우리
가 알고 있는 종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즐거움을 아는 어떤  존재"를 출현시킬 희망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거품이 팽창해간 공간은 1백만분의 1초보다 더  짧은 시간에 중력 붕괴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헛과 리즈는 이러한 위험이 별로 심각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들은,  우주선끼
리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는 현재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어떤 입자가속기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보다 크다고 주장한다. 현재까지 만들어진 입자가속기에서 입자들을 충돌시켜 발생시
킬 수 있는 최대의 에너지는 4천GeV(기가볼트  : 1기가볼트는 10억 전자볼트) 정도에 불과
하다. 현재 계획이 취소된 초전도 초충돌 장치에서는 이보다 10배 정도 강한 에너지를 만들
어낼 수 있다. 그리고 우주선이 지닌 에너지는 최고 약 10의 11제곱GeV에 이르렀다. 
  아주 높은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이 비교적 느리게 움직이는 입자(예컨대, 지구 대기권 상
공에 있는 양성자나 에너지가 낮은 우주선)에  충돌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방출되는 에너
지는 우주선이 지닌 운동 에너지의 제곱근  정도로 아주 낮다. 매우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에너지가 매우 높은 두 우주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이다. 10
의 11제곱GeV의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끼리  충돌하는 경우는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혹
은, 우리의 과거의 광추(light cone) 내부에서 그러한 충돌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을까?
  광추 밖에서 일어난 충돌 사건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도리가 없다.  광추 밖에서 일어난 
사건은 빛조차도 우리에게 도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추 내부
에서 일어나는 충돌 중에서 아마도 10만 개 정도는 약 10의 11제곱GeV의 에너지를 방출했
을 것이라고 헛과 리즈는 계산했다. 그리고, 그 중에 10의 12제곱GeV를 능가하는  에너지를 
방출한 충돌은 단 한 차례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10의 11제곱GeV만 해도 초전도 초충돌 장치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보다 무려 1백
만 배나 더 강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고에너지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인류의 종말을  가
져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결론내려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결
론은 확고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우선, 실험가들이 천재적인 발상을 통해 얼마나 큰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단언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쿼크에서 우주까지>라는 책에서, 페르미 미국 국립가속기 연구소장
을 지낸 바 있는 레더먼(L. M. Lederman)과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슈램(D. N.  Schramm)은 
실험실에서 다룰 수 있는 에너지는 20세기에 들어와서 10년마다 10배씩 계속  증가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이 관계는 "1980년대까지 계속 유효하게 지속돼왔고, 만약 초전도 초충돌 
장치가 만들어진다면 향후 10년 동안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을 단
순히 유추해서 계산하면, 우리는 2150년경에 플랑크 규모의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는 기
술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회의론자들은 격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사용되는 기술은 분명히 오늘날의 기술과는 아주 다른 종류가 될 것이다. 
  플랑크 규모의 에너지는 대략 10의 19제곱GeV이다. 이것은 우주선 충돌시 발생되는 에너
지인 10의 11제곱GeV나 10의 12제곱GeV에 비해 1천만 배 및  1억 배나 더 큰 에너지이다. 
만약 10년마다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의 크기가 10배씩 증가한다면,  10의 11제곱GeV의 
에너지는 2100년보다 훨씬 이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일부 과학자들은  '플라스마 
입자가속기'를 구상하고 있다. 여기서는 입자들을 가속시키는 장들이 현재의 가속기에  사용
되는 것보다 수만 배 이상 강하다. <마지막 이론을 향한 꿈(Dreams of a Final Theory)>이
란 책에서 와인버거(S. Weinberg)는 플라스마를 사용해 '강력한  레이저 빔으로부터 개개의 
전하 입자에게' 에너지를 전달하면 플랑크 규모의 에너지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추측
했다. 
  버지스(D. Burgess)와 허친슨(H. Hutchinson)이 이 분야의 발전상에 대해  상세히 묘사했
다. 1980년대 말까지는 가장 강력한 레이저 빔을 격납고 크기의 공간에 가득 채워서 집중시
킨다 해도, 겨우 10의 19제곱W/제곱m(평방미터당 10억X1백억 와트)의 세기밖에 얻지 못했
다. 그러나 불과 얼마 후에, 그보다 1천 배나 강한 10의 22제곱W/제곱m의 세기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책을 읽는 데 적당한 밝기보다 수천억X1조 배나 더 강하며, 엄청난 물
리압(제곱센티미터당 약 10억 킬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다. 사용된 레
이저는 'T세제곱' 레이저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table-top terawatt'(식탁  위의 테라
와트. 1테라와트는 10의 12제곱와트)를 뜻하는  농담이었다. 1988년, 임피리얼 칼리지에서는 
그러한 레이저를 사용하여 1조분의 1초의 펄스에서 10의  22제곱W/제곱m 규모의 빔으로도 
전자와 수소원자의 양성자를 결합시킬 수 있는 강력한 장(번개가 만들어내는 것보다 약 1백
만 배나 강한 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버지스와 허친슨은 계산했다. 불과 10센티
미터 정도의 공간에서 이러한 장들은 제네바에 있는 둘레 27킬로미터인 입자가속기를  수많
이 돈 뒤에야 도달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전자들을 가속시킬 수 있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은 레이저광 파동  자체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농축시켜 높은  에너지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작은 확성기에서 나오는 음파를 이용해서 플라스크에 든 물을 진동시키
는 방법으로, 약 1조 배나 농축시켜  모든 음파가 모이는 지점의 온도를 10만도C  이상으로 
올릴 수 있다. 레이저광을 1마이크로미터(1밀리미터의 1천분의 1)의 두께로 농축시킴으로써 
단단한 물체에 구멍을 내는 방법은 이미 사용된 지 오래이다. 
  지금까지 물리학자들이 개발한 전자기파의 원천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레이건  대통령
의 SDI, 일명 '스타워즈'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강한 X선 레이저이다. 이 레이저 무기
의 출력은 비밀에 부쳐져 있지만, 로렌스 리버모어 미  국립연구소에 있는 격납고만한 크기
의 노바 레이저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노바 레이저는 10만 줄(J)의 에너
지를 낼 수 있는데, 이것은 10억분의 1초라는 아주 짧은 시간에 1킬로그램 무게의 물체를 1
만 미터 올려놓을 수 있는 에너지이다. 
  1988년에 미국 에너지부가 해제한 비밀문서에서,  리버모어 연구소의 핵융합 계획(펠릿을 
압축하여 그것을 1억도C까지 올리는 데 강력한  레이저가 필요한 이 계획은 SDI의  레이저 
연구와 함께 수행되었다)은 크게 진전되어 1천만 줄의 펄스를 가진 새로운 레이저의 개발을 
고려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각각의 펄스는 TNT 2킬로그램의 폭발력과 맞먹는다. 이 
레이저는 여러 차례 작동하게끔 설계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SDI 레이저는 단 하나
의 펄스를 만들어낸 후에 소멸해버리고 만다. 소형 원자폭탄으로 필요한 동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1백 킬로톤 정도의 폭탄으로 만들어낸 X선 레이저는 단지 1천만 줄이 아니라, 10
조 줄의 에너지를 발생할 수 있다. 레이저 빔이 지름 2백 미터 이상으로 확산돼버리지만 않
는다면, 이것은 아주 먼 거리에서 가속 단계에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요격하기에 충분
한 에너지이다. 
  그러한 레이저를 사용하여 우주선 충돌  에너지를 능가하는 에너지를 만들 수는  없을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레이저 펄스이지만, 빛의 속도로 달리는 우주
선 입자들(우주선은 양성자나 헬륨 원자핵 또는 간혹 그보다 더  무거운 원자핵으로 이루어
진다) 사이에 일어나는 충돌보다는 훨씬 긴 시간 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에너지가 확산돼버
리는 경향이 있다. 펄스를 압축시키는 여러 가지 기술을 응용할 수 있다. 펄스를 이루는  각
각의 요소들을 조금씩 다른 비율로 속도를 지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여, 전체 펄스가 거의 
동시에 목표 지점에 도달하게 할 수 있다. 단순히 음향광학 지연선을 사용함으로써, 또는 펄
스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다양한 진동수를 가진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을 경우, 진동수가 각
각 다른 요소들을 서로 다른 거리의 경로를 지나가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펄스를 1
천 배 가량 압축시킬 수 있다. 단 하나의 진동수로  이루어진 빛일 경우에는 급격하게 진동
하는 전기장 속에서 굴절률이 변하는 수정을 사용하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남은 문제는 어떤 파동을 그 파동의  파장보다 더 가늘게 집중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SDI의 X선 레이저의 파장  10의 -9제곱미터와 전형적인 우주선이 지닌  파장 10의 
15제곱미터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에너지가 매우 강한 펄스를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갭을 어느 정도 좁힐 수는 있다. 또한, 광선의 진동수를 증가시켜 파장을 감소시키는 
기술을 사용할 수도 있다. 레이저광을 수정 결정에 통과시킬 때 진동수가 2배로 증가한다는 
사실이 발견됨으로써 이 분야에서 최초의  진전이 이루어졌다. 다른 결정을  단독으로 또는 
여러 결정을 결합하여 사용함으로써 더 큰 진동수 증폭이 이루어졌다. 그 후, 원래보다  1백 
배나 큰 진동수로 증폭시키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강한 레이저 빔은  원자들에서 전자들을 
떼어내게 하지만, 떨어져나온 전자들이 되돌아가면서 훨씬 더 높은 진동수의 빛을 방출하게 
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더 높은 에너지를 추구하는 물리학자 앞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
이 확실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플랑크 규모의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은하계 크기만한  입자가속기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이전의 
생각이 오히려 어색하게 여겨진다. 여기에는 기억해두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첫째, 아주 정밀하게 동조시키면, 레이저의 여러 빛 성분들을 상당히 먼 거리까지도  동시
에 보내 초점을 맺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주 많은 수의 레이저들이 지닌 에너지를 결합할 
수가 있다. 
  둘째, X선은 렌즈나 '상 형성' 거울을 사용하여 농축시키기 어렵다. 그러나 깔때기를 사용
하여 농축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깔때기는 이미 햇빛을 농축시키는 최고의 수단으로 사용되
고 있다. 윈스턴(R. Winston)은 8만 4천 배의 농축이 실현되었으며, 이론적인 한계는 최소한 
14만 배라고 보고했다. 
  셋째, 레이저 빔이 초점을 맺는 것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현상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레이저 빔들은 고체 속에서 뿐만 아니라 플라스마 속에서도 스스로 집중되는 성질이 있다. 
  넷째, 버지스와 허친슨은 다음과 같이 썼다.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단일한 광  사이클에서 1백조분
의 1초보다 더 짧은 시간에 물질을 이온화시키는 능력은 입자가속기뿐만 아니라 광자가속기
에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광자가속기는 진동수를  극적으로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광 펄스의 지속 시간을 아주 짧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 '진공 준안정'은 우스꽝스러운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엘리스(J.  Ellis), 린데(A. 
Linde), 셔(M. Sher) 등이 지적한 바와 같이, 많은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불안정한 진공 상태
에 살고 있다는 가능성은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입자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소위  표준모형(글래쇼-와인버그-살람 모형)에  따르면, 만약   톱 쿼크의 질량이 
95GeV와 히그스보손(Higgs-boson) 질량의 16분의 1을 더한 것보다 더 크다면, 우리가 실제
로 그러한 상태에서 살고 있는 셈이 된다고 그들은 지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지도 모른
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톱 쿼크의 질량은 1백-1백60GeV로 추정되며, 히그스 보손의 질량은 
41GeV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더 최근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톱 쿼크의 
질량은 2백GeV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값은 지나치게 높아보이는데, 최근에  유행되
고 있는 이론들에서는 히그스 보손의 질량이 매우 높다는 것(따라서, 모든 위험을 사라지게 
하는)을 시사하는 증거로 본다. 이 분야에서의 두드러진  특징은 어느 누구도 확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히그스 보손이라는 입자가 존재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고, 히그스  보손의 
질량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는지도 분명치 않다. 또, 표준모형을 뛰어넘어  '초대칭' 모형으
로 넘어가면, 매개변수들의 난립으로 인해 한계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되
고 말기 때문에, 높은 에너지의 분출에 대해 우리의 진공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 도
리가 없다고 플로어즈(R. A. Flores)와 셔는 지적한다. 확실한 안전책은 헛과 리즈가 계산한 
우주선 충돌 에너지 이하에서만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낮은 에너지밖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어려
운 문제는, 과연 운좋게도 과거의 광추 속에서 파국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느냐 하는 것
이다(다시 말해서, 빛의 속도로 팽창하는 진짜 진공 거품의 시공간 단면  내에 들어 있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이 모든 문제를 토론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헛과 리즈
의 충돌 에너지 계산은 다소 위험한 다음의 두 가지 간략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헛과 리즈는 우주선이 모든 방향으로부터 거의 같은 세기로 온다는 사실로부터 "초
고에너지 입자들의 분포가 균일하다"고 가정했다. 만약 이 가정이 잘못되었다면? 그렇게 되
면 혹시 아주 위험한 결론에  이르지는 않을까?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입자들이 
여러 곳에 편중되어 있다면, 특정  공간에서 입자들이 충돌을 일으킬 확률은  감소하겠지만, 
다른 공간, 특히 입자들이 생성된 공간에서는 확률이 반대로 높아질 것이다. 
  이 주장은 반대 주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즉, 입자들을 집중시키는 현상(자기장의 효과
에 의해 그럴 가능성이 있다)은 입자들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매우 빠르게 움직이게 함으로
써 파국적인 충돌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 한 차례에 
수천 개 내지 수만 개의 고에너지  입자 충돌을 야기해 '진공 준안정'을 파괴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발생시킬지도 모른다(다만, 많은 입자들이 한  번에 그런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극히 낮을 것이다). 반면에,  "만약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는  바와 같이, 우주선들이 은하들 
안의 어느 곳에 집중되어 있다면, 모든 공간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을 경우보다 우주선 입
자들 사이의 충돌이 일어날 확률이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라고 엘리스는 나에게 보낸 글에
서 주장했다. 
  위험을 안고 있는 또 하나의 간략화는 다음과 같다. 오늘날의 시점에서 과거로 뻗어 있는 
전형적인 광추 내부에서 충돌이 일어날  확률을 구하는 것이 적절한  계산이라고 가정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러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는 능력은 우리의 과거의 광추에서 어떤 파
국적인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장해준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여 어떤 
것을 관찰한다는 사실은 관찰자 선택효과를 일으키는지도 모른다(이것은 우리가 기술적으로 
발달한 외계인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다.  우주 전체에 걸쳐 발달
된 문명에 도달한 존재들은 거의 언제나 위험한 고에너지 실험을 수행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의 미래의 광추에서는 어떤 관찰자도  존재할 수 없다. 당신은 당신의  조상이 될 모든 
생명체들을 죽여 없앤 실험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신의 존재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렸을 실험
을 볼 기회는 결코 가질 수 없다).
  복잡한 연구에 따르면, 충돌 에너지뿐만 아니라 거기서 비롯되는  화구도 치명적일 수 있
다. 예를 들면, 진짜 진공 거품(특히, 아주 높은 에너지 속에서 태어난 것이라면)은 너무  작
은 크기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팽창 대신에 수축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입자가속기를 비롯해 
여러 실험장치들은 우주선보다 더 효율적으로 치명적인 거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입자가
속기에서 발생하는 빔의 세기는 매우 크다. 이것은 미래의 고에너지 입자 또는 질량이 매우 
커다란 입자들이 충돌 직후에 거품의 성장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그러한 일
은 일어날 법하지 않지만, 일단 일어나면 결과는 단 한 가지뿐이다."
  우리의 진공이 완전한 안정 상태가 아니라 위험한 상태일지 모른다는 것을 시사하는 이론
적 근거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미 언급했듯이, 입자물리학자들의 표준모형에 따르면  불완전한 안정은 톱 쿼크
와 히그스 보손의 적당한 질량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다른 모형들에서는 어떤 질량이 안정 
상태를 가져오게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히그스 보손은 히그스 스칼라장의  입자이다. 
이 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앞으로 확인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스칼라장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장을 말한다. 예컨대, 자기장의 방향은  나침반으로 알 수 있지만, 스칼라
장은 자기장과는 달리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표준모형을 비롯해  그 밖의 주요 
경쟁모형들에서는 모두 스칼라장 입자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다른 입자들이 왜 
광자처럼 질량이 0이 아니고 질량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망원경으로 관측된 우주영역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관찰자를 위해 잘 맞
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입자들의 질량이 아주 약간만 달랐더라도, 그리고 입자
들의 질량이 반영된 힘들의 세기가 아주 약간만 달랐더라도, 관측되는 우주영역에서는 관찰
자가 전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실은 역으로  스칼라장의 세기가 우연의 산물임을 
시사한다. 즉, 입자들이 질량과 힘의  세기는 수많은 우주영역에서 모두 제각각으로  존재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관찰자의 존재를 허용하도록 잘 맞춰져  있는 우주영역에서 우리 자신
을 발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장의 실제 크기가  순전히 우연에 달려 있다면, 그것은  쉽게 변하여 파국을 
몰고 오지는 않을까? 이제 다음 두 가지 점에 대해서 자세히 검토해보기로 하자.
  (1) 만약 어떤 입자가 고유 질량을 가진다고 한다면, 표준모형의 수학적 완전성이 깨지고 
만다.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힘들 사이의 구별이 점점  없어진다는 징후를 바탕으로 이론물
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빅 뱅의 초기 단계에서는 중력과 전자기력, 강한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의 네 가지 힘 
대신 하나의 '통인된 힘'이 존재했다. 그리고 모든 입자들은 질량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
시 말해서, 오늘날의 광자처럼 입자들은 정지 질량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후, 우주의 온
도가 내려감에 따라 하나 이상의 스칼라장이 생겨나면서 통일된 힘을 파괴시켰는데, 이것을 
'대칭성의 파괴(symmetry breaking)'라고 부른다. 그러한 스칼라장들과 상호 작용하면서 입
자들은 스칼라장의 세기에 대응하여 질량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또한  중력과 전자기력 
등 나머지 힘들의 상대적 세기를  결정했다. 힘이 작용하는 어떤 입자의  질량이 더 클수록 
힘은 더 약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힘을 전달하는 '전달 입자'의 질량이 커질수록  힘은 그만
큼 더 약해진다. 질량이 아주 큰 전령 입자들은 아주 짧은 거리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2) 어떤 스칼라장의 세기는 대통일 이론 또는 모든 것의 이론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그
렇지만 스칼라장의 세기는 임의적일 수도 있다. 따라서, 아주 작은 거품 속에서 그 값이  변
할 수도 있으며, 그 결과 거품이 팽창하면서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 수 있다. 
  우리 우주가 아주 절묘하게 조화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일들이 우연의 산물로 이
루어졌다는 훌륭한 증거가 된다. 내가 쓴 책 <세계들>에서는 다원우주 또는 러시아 과학자
들의 표현으로는 메타은하(metagalaxy)의 존재를 가져올  수 있는 많은 물리적 메커니즘을 
소개하고 있다. 
  다원우주 또는 메타은하란, 각자 다른 영역들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나름대로의 고유한 성
질들을 가지고 있는(아마도 스칼라장의 세기가 다르기 때문에) 거대한 우주영역들을 말한다. 
일부 철학자들은 '우주(universe)'란 단어는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따
라서, 우주가 아무리 많은 영역들로 나누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우주는 단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주론자들은 우주란 단어를 이들 철학자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거대한 코스모스(cosmos) 안에 존재하는  우주들은 연못 속에 들어있는  개개의 얼음 
결정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공간 대신 시간상으로 분리될 수도 있다. 예컨대, 진
동우주(빅 뱅 후에 대수축이 일어나고, 다시 빅 뱅과 대수축이 반복되는 우주)에서 연속적인 
진동주기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이들은 영원히 팽창해가는 코스모스에서 다른  영
역들로부터 완전히 떨어져나가는 '새싹'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이론물리학자들은 이러한 모
든 것들이 똑같은 시공간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독립적으
로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실제로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가? 가장 
그럴 듯한 근거는 이것이다. 임의의 성질들을 가진 다원우주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관찰자
가 존재하도록 '절묘하게 조화된' 최소한 하나의 우주, 즉  우리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를 근
사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절묘한 조화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들은 <세계들>에 논의되고 있다. 관심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그러한 주장들을 여기에 소개하기로 한다 :
  1. 만약 가스구름이 응축되어 은하들을 생성하려고 한다면, 초기 우주의 밀도와 팽창 속도
는 10의 12제곱분의 1 또는 심지어는 10의 60제곱분의 1의 비율까지 절묘하게 딱 들어맞아
야 한다. 적절한 밀도와 팽창속도는 우주의  초팽창(우주 초기에 일시적으로 일어난 우주의 
급격한 팽창)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초팽창을 일으킨 요인 자체도 그
와 마찬가지 또는 그 이상의 정밀도로 절묘하게 조화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 유명한 
'우주상수', 달리 말해서 '진공 에너지 밀도' 문제에 마주치게 된다. 이것은 아주 크리라 기대
했던 값이 왜 아주 작은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잠시 후에 다시 다루기로 하자. 
  2. 빅 뱅에서 수소원자가 태어나기 위해, 그리고 양성자-양성자 순환반응과 탄소-질소-산
소 순환반응을 통해 별들이 열과 빛의  원천이 되고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을  만들어내는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약한 핵력(약한 상호작용)의 크기가 아주 좁은 범위 내에 있지 않으
면 안 된다. 
  3. 별들이 수소폭탄처럼 폭발해버리거나 아예 불타지 않거나 하지 않고, 생명체들이  살아
가기에 적절한 빛과 열을 내며 타도록 하기 위해서, 강한 핵력(강한 상호작용)의 크기가 현
재값의 +-5퍼센트 범위 내에 있어야만 한다. 
  4. 태양과 같은 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중력과 전자기력의 크기비는 10의 40제곱분의  1
의 수준까지 아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전자기력의 크기가 조금만  컸더라
도, 모든 원자들은 파괴돼버렸을 것이고(쿼크가 경입자로  바뀌면서), 양성자들은 서로 너무 
강하게 반발을 일으켜 수소 외에는 어떤 원소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며, 화학반응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5. 공간이 격렬하게 수축하거나 팽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력과 약한 핵력의  크기비는 
10의 100제곱분의 1의 수준까지 절묘하게 맞추어져야 한다. 
  6. 여러 가지 초중입자들의 질량이 약간만 다르더라도, 우주는 빛만으로 또는 블랙 홀만으
로 가득 차 있는 곳으로 변해버렸거나 모든 물질이 아주 강한 방사성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
다. 
  7. 고체물질과 화학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전자의 질량이 양성자보다 훨씬 더 작아야 한다. 
또한, 생명의 존재를 위해서는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차이는 전자 질량의  약 두 배여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빅 뱅에서는 중성자 또는 양성자만이 태어나 화학과 생물학의  기초
가 되는 1백여 종의 안정한 핵자들이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절묘한 조화를 설명하기 위해 러시아 과학자들은 볼 수 있는 우주(지름 수십억 광
년의 우주, 그보다 더 먼 곳에 있는 것들은 아직  우리에게 도착할 시간이 충분치 않으므로 
우리가 볼 수 없다)는 훨씬 거대한 코스모스 속에 포함돼 있는 하나의  영역에 지나지 않으
며, 우리 우주가 생명이 살기에 적합한 성질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단지 우연히 적절한 값
들을 가지게 된 스칼라장 때문이라는 개념에 특히 집착했다. 
  린데는 "초팽창 우주는 엄청나게 많은 초팽창  미니 우주들로 나누어졌으며, 거기서 스칼
라장들은 가능한 모든 미소한 값들을 가지게 되었다"고 썼다. 따라서,  코스모스 전체는 "수
많은 거대한 영역들로 나누어졌으며, 가능한  온갖 종류의 대칭성 파괴가 일어났다.  초팽창 
우주에는 가능한 온갖 종류의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마지막 이론을 향한 꿈(Dreams of a Final Theory)>이란 책에서, 와인버그는 특히 우리 
우주의 팽창속도를 결정하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는 '전체적인 또는 효과적인 우주상수'의 경
우에 대해 그러한 추론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우주상수는 현재는 0 또는 0에 
아주 가까운 값이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우주상수의 값이 현재까지는 밝혀지지  않은 어떤 
기본적인 물리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0과 같은 값을 대할 때, 물리학자들은 그것
을 우연의 산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따라서, 고에너지 실험을 통해  우
주상수의 값이 재난을 가져올 만큼 낮은 값으로 떨어질 위험은 실제로 없다고 물리학자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우주상수를 '인간중심적으로' 다루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와인버그는 주
장한다. 즉, 우주상수가 아주 다른 값들을 가질 수도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우주나  영역에서 우주상수는 다른 값들을 가질 수도 있
다. 그러한 곳들은 너무 빨리 팽창하거나 수축하여 어떤 종류의 관찰자도 살 수가 없다. 
  다원우주와 임의의 성질들, 관찰자  선택효과 등의 개념을 도입하는  대신에 신의 섭리를 
믿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신은 우주에 생명체가 진화하기에 적당한 성질들을 만들어낼 충
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말 새로운 크기의 스칼라장 거품을 초래하는 
진공 준안정 재난에 대해 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못 될 것이다. 신은 가공의 
존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이 무한히 많은 우주를  창조한 다음에 그 중에서 우
연히 적절한 크기를 가진 스칼라장 덕분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우주가 나타나기를 기대했
을 수도 있다. 그리고 거기서 지능이 매우 발달한 종이  실험을 하다가 그 스칼라장을 파멸
로 이끌 수도 있다. 우리가 신의 자비를 믿는 것은 신이 우리를 모든 종류의 악으로부터 구
해준다는 절대적인 보장이 결코 될 수 없다.  그리고 신의 알들이 모두 하나의 광주리(우리
가 살고 있는 작은 우주 또는 영역)에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일 것이다. 
  브랜던 카터는 나에게 보낸 글에서, 진공 준안정 문제는 매우 흥미롭지만, 우리를  둘러싸
고 있는 훨씬 더 명백한 모든 위험들을 고려한다면, 특별히 주목할 만한 놀라움을 더해준다
고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태도는 옳을 수도 있다. 그러한 현명한 다른 사람들은 카터가 
'훨씬 더 명백하다'고 하는 위험에 대해 어깨를 으쓱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들은 핵전쟁이
나 생물학전조차도 인류의 종말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재
로서 진공 준안정 문제를 무시하는 태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진공 준안정에 관계된 물리학
은 매우 어려우며, 만약의 경우 발생할 파국은 결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기후 불안정과 같은 일이 모든 생명체를 절멸시키는 사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이는 반면에, 고에너지 실험이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
는 없다. 따라서, 고에너지 실험이 기본적인 물리법칙들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제
공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거기서 얻은 지식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에게 닥
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피해가는 데 필수적인 방법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헛과 리즈
가 안전하다고 추정하는 에너지보다 더 높은 에너지에 도달하는 것은 앞으로 이삼백 년 안
에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5. 쿼크 물질의 창조, 그리고 새로운 빅 뱅
  대기의 연소, 쿼크 물질의 창조
  이번에는 내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은 두 가지 위험 요인을 살펴보기
로 하자. 그렇다고 해서 이들 위험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매우 높은 에너지에서 실험을 계획할 때, 진공  준안정 상태에 대한 두려움
이 첫 순위로 꼽힌 위험은 아니었다. "원자력 시대가  시작된 이래 연구자들은 계획된 실험
이 재난을 가져오지는 않는지 검토하기 위해 수많은 토론을 했다"고  루센(R. Ruthen)은 썼
다. 
  이러한 최초의  자성은 아마도  최초의 핵무기를   개발할 때 일어났을  것이다. 텔러(E. 
Teller)는 그 곳에 모인 석학들 앞에서 원자폭탄이 지구의  대양이나 대기를 불태우고, 지구 
전체에 화재를 가져올 가능성을 제기했다. 원자폭탄 개발계획의  지휘자인 오펜하이머(J. R. 
Oppenheimer)는 텔러의 제안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곧 그러한 위
험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전후에 작성된 기술보고서에서는 "대기연소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과학과 상식에 의해 확실히 보장되었다"고 쓰여져  있다. 그러나 텔러나 오펜하이머와 
같은 천재들이 걱정할 만큼 복잡한 문제에 대해 상식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베
테(H. A. Bethe)가 <원시과학자들의 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1976년 6월
호에 기고한 글에서, 항상 충분한 안전요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여야만 그 말이 완전하다고 여겼다. "다만, 미래의 어느 시점에 훨씬 더 높은 열을 내도
록 설계된 완전히 다른 종류의 핵무기가 발명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물론 수소폭탄의 폭발로도 대기나 대양은 불타지 않았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현실세계에
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낸 온도가 재난을 초래할 위험은 0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잠재적인 위험은 중수소-중수소 반응과  양성자-중수소 반응에 
있다. 얼마 전에 시험관 안에서 '저온 핵융합 반응'을  실현했다는 보고를 놓고 벌어진 소동
에서, 쿠닌(S. E. Koonin)과 나우엔버그(M. Nauenberg)는 중수소-중수소 융합이 어떤 상황
에서는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약 1백억 배나 더 빨리 진행된다고 계산했다. 그리고 양성자-
중수소 융합 반응도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1억 배나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잘못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설사 옳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반응
은 저온 핵융합 반응을 두드러지게 일으킬 만큼 빠르지 못하다. 게다가, 저온 핵융합과 원자
폭탄은 공통점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이  에피소드는 전문가들의 계산조차 얼마
나 신용할 수 없는지를 보여주었다. 
  원자핵들을 격렬하게 충돌시키는 입자가속기인 베벌랙(Bevalac)을  만들기 전에도 정밀한 
계산들이 행해졌다. 굽타(S. D. Gupta)와 웨스트폴(G. D. Westfall)은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1970년대 초에 청 다오 리(Tsung Dao Lee)와 지안 카를로 윅(Gian-Carlo Wick)은 아주 
높은 밀도에서 새로운 단계의 핵물질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토론했다. 그 핵물질은 원자
핵 속에 있는 일반적인 물질  형태들보다도 낮은 에너지를 가질 것이다.  이 새로운 물질을 
만들고 발견하는 데에 베벌랙은 아주 이상적인 장치가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만약 이 물질
이 실제로 존재하고, 보통 물질보다 더 안정하다면, 그것은 보통 물질들을 흡수하면서  성장
해갈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질량이  아주 커져서 실험실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눈으로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물질이  지구를 집어삼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있는
가?(지구를 집어삼킨다는 것은 지구 전체를 새로운 종류의 물질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뜻한
다) 그 당시에는 밀도가 높은 핵물질에  대한 지식이 아주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재난에 대한 가능성을 놓고 심각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여러  차례의 비밀회의에서 이 실험
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심각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실험이 예정대로 
진행되었으며, 다행히도 우려하던 재난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실험을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루센은 
설명했다. 
  "자연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와 비슷한 실험들을 해왔다. 지구와 달, 그리고  천체들은 별
에서 방출된 수많은 고에너지 입자들에게 항상 폭격을 받고 있다.  이들 입자 중 일부는 지
구상의 원자들과 충돌하면서 베벌랙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 같거나 훨씬 능가하는 조
건들을 만들어낸다."
  그 후, 베벌랙보다 훨씬 더 높은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입자가속기들이  등장했는데,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고에너지 물질들은 생성되자마자 팽창하면서 즉시 분해해버리는 것으
로 밝혀졌다. 보통 물질에서 원자핵(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양성자와 
중성자는 또 각각 3개씩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의  크기는 제한되어 있는데, 그것은 양성
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력 때문에 큰 원자핵이 분해돼버리기 때문이다. 
  리와 윅이 떠올린 핵물질은 일종의 '쿼크 물질'로서, 양성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크기
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들의 우려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증명되
었지만,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리와 윅의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변형시킨 가설들을 내놓
았다. 만약 '스트레인지(strange)' 쿼크를 더해준다면,  쿼크들은 어떤 크기든지 안정한 덩어
리를 실제로 형성할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스트레인지 쿼크 물
질(스트레인지 물질이라 약칭)'의 핵은 아주 작은 전하를 가질 것이다. 만약 전하가 (+)라면, 
보통 물질의 원자핵은 반발력 때문에 밀려나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파리(E. Farhi)와 재프(R. L. Jaffe)는, 스트레인지  물질은 음전하를 가진 핵 주위에 양전자
가 둘러싸고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에 상황은 아주 달라진다. 정상 물질의 원자들이 스트레인지 물질에게 끌려가 흡
수돼버릴 것이다. 이렇게 정상 물질들과 계속 접촉함으로써 스트레인지 물질은 끝없이 성장
할 것이다. 이처럼 음전하를 가진  스트레인지 물질은 자신과 닿는 모든  것을 자신과 같은 
물질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재난을 초래할 것이 명백하다."
  안타깝게도, 이 분야의 계산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워 "스트레인지 물질의 존재와 성질
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는 실험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루센은 이에 대
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론물리학자들은 입자가속기에서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스트레인지 물질이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절대 확신할 수 있는가? 이 문제가 처음으로 심각하게 제기된 것은 과학자들
이 상대론적 중이온 충돌  장치(RHIC : Relativistic  Heavy Ion Collider)를 설계하고  있던 
1983년이었다. 지금 브룩해번 국립연구소에 세워져 있는 이 충돌  장치는 세계에서 가장 강
력한 중원자 충돌 장치로서, 스트레인지 물질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피엇  헛은 
모든 사람들의 우려를 잠재웠다. 앞사람들이 펼쳤던 것과 똑같은 논리를 사용하여, 헛은  지
구와 달에서 수많은 우주선 입자들이 원자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으며, 거기서는 RHIC에
서 만들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격심한 조건들이 만들어진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 문제를 마무리지을 수는 없다. 여기에는 몇 가지 사실을 더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RHIC 속에서 중원자들은 약 10의 제곱GeV의 충돌 에너지에 이를 것이다. 헛과 리
즈는 중원자로 이루어진 우주선의 경우에 현재까지 관측된 가장 높은 에너지는 10의 9제곱
GeV, 또는 대기권에서 다른 원자핵과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킬 때 10의 4.5제곱GeV에 불과
하다고 평가했다. 이 두 가지 값 중에 두 번째 것(첫번째 것의 제곱근 값인)이 적절한  것으
로 생각된다. 왜냐 하면, 과거의 광추에서 두 개의 중원자핵이 정면 충돌을 일으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중원자핵이 지구 대기권에서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스트레인지 물질
의 씨를 생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RHIC보다 수백 배나 강한 가속기라면 위험 수준의 
최저한계에 달하는 에너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현재 건설 중인 거대  하드론 
충돌 장치(Large Hadron Collider)에서는 약 1.4X10의 4제곱GeV의 충돌 에너지를 낼 수 있
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스트레인지 물질은 아마도 충돌하는 중성자 별이나 쿼크 별(쿼크 별은 구성 성분이 
주로 또는 전체가 쿼크인 별을 말한다. 다이슨과 비텐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은 중성자 별
로 알려진 별들은 실제로는 쿼크  별이라고 주장했다)로부터 방출되어 아주  작은 덩어리로 
대기권에 계속 충돌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덩어리들은 관측되는  몇몇 우주선 샤워의 원인
인지도 모른다. 이들이 대기권의 원자핵들과  충돌하면서 충분히 작은 입자들을  불과 수십 
개의 쿼크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조각들로 분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트레인지 물
질 덩어리가 지구를 집어삼키는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 크기가 크고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스트레인지 물질 덩어리는  물리학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일 수
밖에 없다. 
  (1) 크기가 커지기 위해서는 급격한 방사성 붕괴에 대해  충분한 안정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이 점에서 중원자핵 우주선들이 오래 전에 스트레인지 물질 재난을 발생시켰을 것이라
는 헛과 리즈의 추측과 유사한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각각의 우주선 충돌은 아주 작은 
스트레인지 물질을 만들어낼 뿐이다. 더욱이 그 물질 덩어리가 우리 행성 표면에 닿기 전에 
방사성 붕괴 과정을 통해 분해되고 만다).
  (2)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는 조건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중요할 수 있다. 우주공간에서 날
아오는 쿼크 덩어리들은 만약 그  질량이 10분의 1그램 이상이라면,  마치 구름을 통과하는 
탄환처럼 지구를 관통할 것이다. 
  스트레인지 물질 덩어리는 더 커질수록 정상 물질들을 빨아들여 자기 물질로 만드는 대신
에 오히려 반발력을 작용해 밀어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재프는 나에게 보낸 글
에서,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모든 것을 흡수하는 음전하를  띤 스트레인지 물질은 "나와 파
리가 조사한 매개변수 공간에서 선호되는 지역"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서, 그 존재 가능성을 부여한 바로 그 근거 때문에  스트레인지 물질의 존재 자체가 가능하
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러한 물질이 큰 덩어리 상태로 안정하다면, 양전하를 띤 아주 작은 덩어리의 스트
레인지 물질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러한 덩어리들은 천체물리학적 과정에서 생성되기가 쉽
기 때문에 우리 행성에서도 그러한 물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한 
물질을 찾으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즈(F. Close)의 다음 
결론은 아주 적절한 상황 정리로 보인다. 
  "쿼크 물질 이론은 매우 어렵고도 까다로운  이론이며, 스트레인지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
을 의미하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렇지만  이 이론은 보통의 원자핵들이  안정성을 보인다고 
해서 우리 역시 가장 안정된 형태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
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자연의 가장  안정된 상태가 어딘가에서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주 심한 농담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언젠가 그러한 물질  상당량이 지구에 도달한다
면...?"
  셋째, 쇼(G. L. Shaw), 신(M.  Shin), 댈리츠(R. H. Dalitz),  드세이(M. Desai)는 함께 쓴 
논문에서, 중원자핵을 표적 물질에 충돌시켜 스트레인지 물질 방울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
했다. 이 방울들을 즉시 선형 정전감속기에 통과시켜 액체  중수소 탱크로부터 중성자를 흡
수함으로써 매우 급속하게 성장시킨 다음, 자기 용기에 모은다. 이 방울들은 안정성을  증대
시키기 위해 가능한 빨리 성장시켜야 한다. 이 실험에서는  이전의 실험이나 자연 과정에서 
이루지 못했던 스트레인지 물질의 생성이 가능할지 모른다. 아주  작은 최초의 방울에 질량
을 약 1백 배 가량 증가시키는 성장과정을 통해 안정성을 증대시키고, 그 후에 느린 중성자
를 먹여 질량을 더욱 증대시키면서 안정성도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키게 된다. 
  만약 논문에 설명된 과정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아주 훌륭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을 것이
다. 스트레인지 물질 방울들은 중성자를 먹일 때마다 전자기복사를 방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기 용기에서 방울 하나가 탈출한다면(논문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부분) 파리
와 재프가 묘사한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재프는 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
약 그러한 방울들을 이용 가능한 크기로 성장시킬 수  있다면, "어떤 용기에 담아둔다 해도 
중력이 그들을 끌어내고야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드세이와 쇼는 다른 논문에서, 이전의 사람들이 써먹었던 주장을 다시 반복했다. 즉, 만약 
음전하를 띤 위험한 스트레인지 물질이 존재 가능하다면, 지구 대기권에 충돌하는 우주선이 
그러한 물질 방울을 만들어 이미 오래 전에 재난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렇
지만 내가 앞에서 든 이유들로  이 주장이 과연 옳은지는 불분명하다.  우주선은 단지 아주 
작은 방울밖에 만들지 못한다. 이 방울은 정상 물질들을 흡수하여 성장하기 오래 전에 붕괴
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과학자가 제시한 기술이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엄청난 혜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원으로서 이 기술을 사용하면 환경오염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
고, 그 결과 인류가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새로운 빅 뱅을 만들어내다
  실수로 전세계를 파괴시키는 새로운 빅 뱅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없을까? 이 역시 심각하
게 받아들일 만한 위험은 아니지만, 생각해볼 가치는 있는 문제이다. 
  거의 모든 우주론자들은 우주 역사의 초기에 초팽창이 일어났다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즉, 
빅 뱅이 아주 조금 진행되었을 때, 갑자기 팽창속도에 가속이 일어났다. 최초의 조그마한 덩
어리가 그 부피가 계속해서 2배, 4배로 마구 불어났던 것이다. 그것은 중력장의 에너지가 마
이너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구스(A. H. Guth)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두 개의 거대한 질량이 서로 아주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고 가정하자. 이들은 서로를 중
력으로 끌어당길 것이다. 이것은 두 질량이 서로 가까워짐에  따라 에너지가 추출된다는 것
을 의미한다. 그런데 두 질량이 서로  닿게 되면 그들의 중력장은 서로  중첩된다. 그 결과, 
양쪽에서 모두 에너지가 추출되며, 더 강한 중력장이 생기게 된다. 만약 하나의 중력장이 없
어지는 것이 에너지가 0이 되는 것에 해당한다면, 0이 아닌  어떤 계의 세기는 마이너스 에
너지에 해당하는 셈이다."
  여기서 나오는 놀라운 결과는 초팽창하는 우주의 에너지 밀도가 계속 일정하게  유지된다
는 사실이다. 부피가 2배로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곳에서 입방밀리미터당 질량-에너
지는 이전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부피가 이런 식으로 무한정  늘어나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없다. 
  린데는 우주가 10의 1000000제곱배(1 다음에  0이 1백만 개 붙은  것)만큼 늘어난 후에야 
초팽창이 멈췄다고 주장했다. 처음에  10의 -33제곱센티미터(1센티미터의 10억X1조X1조)에 
불과했던 공간이 지금은 우리가 보고 있는 광대한 모습으로  성장한 것이다. 초팽창이 끝난 
후에 빛이 우리를 향해 달려온 거리로 정의되는 우주의 지평선은 불과 10의 28제곱센티미터
의 거리에 있다. 따라서, 관측 가능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들이 원래 10의 -5제곱그
램 미만의 물질을 포함하고 있던 영역 안에서 작용하던 중력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주장에는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린데는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지름 10의 -33제곱센티미터와  같이 아주 작은 공간 안에 
10만분의 1그램 정도의 물질을 압축해넣을 수는 없을까 하고 린데는 생각해보았다. 만약 그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새로운 빅 뱅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린데는 그러한 생각은 "아무
리 좋게 봐주어도 상상의 극치가 빚어낸 산물"이라고 썼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된다. 유망한 방법은 약간 많은 물질을 약간 큰 공간에다가 압축해넣
은 다음에 양자 요동에 의해 초팽창이 촉발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린데가 가장 선호하는 
'카오스적 초팽창' 시나리오의 범위 내에서 단순하게 추측한 결과에 따르면, 1밀리그램 미만
의 물질을 압축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린데의 10의 -5제곱그램과 10의 -33제곱센티미터는  임의로 선택된 값이다. 이들은  대략 
플랑크 질량과 플랑크 길이에 해당하는데, 이 값들은 물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양이며,  새로 
탄생하는 빅 뱅 상황의 '자연적' 질량과 크기로 흔히  생각된다. 플랑크 질량은 자동차가 휘
발유를 다시 채울 때까지 소비하는 에너지와 맞먹는다. 에너지가  가장 높은 우주선들은 총
알처럼 서로 충돌하지만, 이와 같은 양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충돌은 소형 제트기 2대가 충
돌하는 것과 맞먹는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빅 뱅을 만들어낼 구상을 하는 물리학자들은 1그
램의 수천분의 1을 압축하는 대신에 수킬로그램의 질량을 압축하는 방법을 상상해왔다. 
  파리와 구스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초팽창 모형에 따르면, 관측되는 우주는 10의 
-24제곱센티미터보다 더 작은 공간과 10킬로그램 미만의 질량에서 성장했다." 따라서,  에너
지를 충분히 압축시키면 우리도 새로운 빅 뱅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
각이 자연히 들게 된다.  여기에 필요한 에너지 밀도인  약 10의 76제곱g/세제곱cm는 현재 
알려져 있는 기술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압축을 필요로 하지만,  거기에 필요한 에너지는 대
형 수소폭탄에서 방출되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설사 그러한 압축이 가능하다고  해도 빅 뱅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파리와 구스는 지적했다. 방정식에 따르면, 새로운 빅 뱅은 '이전
의 역사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초고밀도 거품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그러한 조건은 어
떤 실험실에서도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기묘한 거품 기하학'이 이 난제를 
해결해줄지도 모른다. 또한, 일반 상대성이론을  양자화시킨 이론에 따른 효과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공할지 모른다. 
  이 점에 대해, 파리와 구스와 구벤(J. Guven)은 두번째 논문에서 상세하게 전개했다. 이들
은, 초팽창이 일어나기 전에 10킬로그램 정도의 질량을 가지고서 GUT(대통일 이론) 규모에
서 빅 뱅을 만들어내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플랑크 규모에 
근접한 에너지 수준'에서 그러한 사건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 마지막 언급은 10의 28제곱GeV의  에너지에 해당하는 10킬로그램이라는 값이  정말로 
옳은 값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러한 계산들은 매우 복잡할뿐더러 확립된 사실들과
도 거리가 멀다. 예컨대, 한 곳에서 저자들은 에너지 밀도의 추정치를 취한 다음, 그것을 제
곱하고 나서 다시 그 결과를 제곱했다. 게다가, 린데는 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10킬로그램은 
너무 높은 값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지금은 폐기된 낡은 초팽창 시나리오에서 얻은 값이다. 
1983년에 내가 제기한 카오스적 초팽창  시나리오에서는 10의 -5제곱그램이라는 값이 나왔
다."
  우리 우주의 기원이 10의  -5제곱그램과 10의 -33제곱센티미터에서  양자 요동을 일으켜 
시작된 다음 초팽창이 일어났다고 하는 편이 그것보다 10억 배나 더 크고 더 무거운 상태에
서 시작됐다고 하는 편보다 이해하기가 훨씬  더 쉽다. 스타로빈스키(A. A. Starobinsky)와 
젤도비치(Y. B. Zeldovich)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반지름이 플랑크 길이(10의 -33제곱cm)이고 플랑크 밀도 수준의 밀도를 가진 물질 또는 
양자 장으로 가득 찬 닫힌 우주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초팽창 단계는 플
랑크 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정확한 값이 10킬로그램이 아니라 10의 -5제곱그램이라고 하더라도,  실제적인 위험이 존
재하는가? 파리와 구스는, 우리가 만들어낸 어떤 새로운 빅 뱅도 단지 '아기 우주'의 탄생에 
불과하며, 그것은 '부모에게 아무런 부담도 지우지 않고' 팽창해간다고 기술했다. 그리고 "우
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우주에 의해 파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냐 하면, '비유
클리드적 기하학' 때문에 새로운 우주는 그 자신의 공간 속으로 팽창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우주는 단지  작은 블랙 홀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논문에는 
"우리는 단정할 수 없다"든가 "우리는 배제하지 않는다"  또는 "우리의 모든 논의는 고전적
인 일반 상대성이론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등의 불안한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양
자화된 일반 상대성이론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지는 아직까지 아무도 모른다. 
  블라우와 구엔델먼, 구스가 계속 설명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안전하다는 판단은, '아기 우
주'가 '부모 우주의 내부에서 볼 때' 아주  급속하게 점점 더 작아진다는('아기 우주' 내부에
서 볼 때에는 그 부피가 점점 더 커지겠지만) 생각에 바탕하고 있다. 설령 상식에서 벗어나
는 이야기처럼 들릴지라도, 이것은 우주론에서는 얼마든지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이 주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어느 누가 이  문제에 대해 완전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겠는가? 적어도 아기가 초팽창을 일으켜 부모의 내부 구조 속으로 솟아오를 위험이 있
지 않을까?
  린데는 우리가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또 다른 강력한 근거를 제시하여 나의 관
심을 끌었다. 그는 "새로운 우주에서 우리 우주로 에너지를 퍼올릴 수는 없다.  이것은 에너
지 보존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논지를 좀더 확대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전체 '에너지 비용'이 0이거나 아주 작은 경우에만 새로운  빅 뱅을 만들 수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 우주의 (마이너스) 중력 에너지가 그 속에 담겨 있는 다른 모든 에너지와 
정확하게 똑같거나 거의 같을 경우에만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만약 아기 우주가 너무 많은 
일을 한다면(아기 우주가 초팽창을 일으켜  파국적으로 부모 우주 속으로  솟아오르는 것도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한 균형은 깨어지고 말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논리가 엃은지 어떤지는 확실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전체 에너지의 
개념을 그대로 우주에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예컨대, 우리 우주의 전체 에
너지가 0인 양자 진공 요동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펼친 트라이언마저 자신의 주
장은 "확고한 것이 아니며, 그렇게 만들어질 수도 없다. 우주의 순 에너지는  정확하게 기술
할 수 없다"고 썼다). 최소한  중력에 의해 시공간의 곡률이 매우  컸던 창조 무렵의 빅 뱅 
우주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우리가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 
새로운 빅 뱅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그 빅 뱅이 초기  단계에서 우리를 파멸시키는 데 필
요한 모든 에너지를 가질 위험이 최소한 약간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3장 - 위험의 평가
    1. 위험의 평가
  위험 분석의 일반적 문제들
  위험 분석은 <위험 분석(Risk Analysis)>지를 비롯해 방대한 문헌을 가진 연구 분야이다. 
그러나 이 분야의 연구는 매우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큰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흡연이 암을 비롯해 다른 질병들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에 대해 통계학자들은 상당 
기간 의문을 제기했지만, 40년간에 걸친 영국 의사들의 연구에서  나온 최근의 결론은 흡연
자 두 사람 중 한 사람(이전에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높은  비율)은 바로 흡연 때문에 사
망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또한, 인과론적인 원인과 위험한 재난 사이의 많은 연결고리들이 
체계적으로 과소평가되어 왔음이 최근에 밝혀졌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고혈압 때문에 심장병
이 생길 위험이 얼마나 높아지는가를 알고자 한다고 하자.  그런데 평상시에는 혈압이 높은 
사람이 혈압이 낮을 때에 측정할 수도 있고, 그 반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점을 감안한
다면, 고혈압은 이전에 생각해왔던 것보다 위험이 약 60퍼센트 더 증가한다고 판단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사건들을 포함하여 의학적 위험과 같이  아주 
폭넓고 깊이 연구되는 위험조차도  측정하기 어려운 판국에, 2400년에  인류 전체가 멸망할 
위험은 그만두고라도 향후 10년 안에 핵전쟁이 일어날 위험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평가를 
내놓기는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무엇을 '위험'이라고 불러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인 판단까지 더해져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당신이 인류가 멸망하는 것은 놓은 일이라고, 또는 최소한 단지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생
명들(여기서는 실제로 태어나지 않을 생명들)이 어떤 윤리적인  의미로도 죽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에 당신은 인류의 멸망을 위험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당신은 인류가 멸망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막기 위해 막대한 비용도 
불사하는 것에 찬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장에서는 문제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 인류의 멸망이  재앙이라고 가정하고, 크든 작든 
간에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경고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로 한다. 종말이 다가왔다는 주장이 사람들을  자포자기시켜 오히려 위험을 증가시
킨다는 견해에 나는 찬동하지 않는다. 그러한 견해는 권력을 가진 일부 사람들이 듣기 좋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늘상 해왔던 것처럼 행동하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지구에 위
험을 가져오는 결정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카터의 종말론
  지금까지 논의된 것을 감안할 때, 위험 분석의 핵심적인 원칙들이 겨우 최근에 와서야 주
목을 받게 되었으며, 때로는 격렬한 반대에 부닥치기도 한다는 사실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브랜던 카터의 종말론은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5장에서 상세하게 다루
어지겠지만, 카터의 종말론은 우리가 실제로 발견하는 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해
주는 이론들을 더 선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용하고 있다. 이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
이지만, 많은 위험 분석가들이 카터의  주장을 논박하는 데 실패한 이유는  단지 그와 같은 
주장에 일찍이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인간이  인류 전체 역사의 어느 시점
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고 반문해보는 문제를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서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응용수학자인 카터는 바로 그 질문을 제기했다. 카터는  만약 
인류가 예컨대 다음 2백 년 안에 멸망한다면, 모든 인류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여러분과 내
가 있는 바로 이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급속한 인구 증가 때문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만약 인류가 앞으로도 10만 년  더 살아남는다면, 20세기 말에 사는 사람들의  수는 
전체 인류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에 비해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전체 인류의 0.001퍼센트보다 더 적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이 사실은 인류에게 창창한 미
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우리의 자신감에  찬물을 끼얹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카터의 논리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5장과 6장에서 밝혀지듯이 옳다. 

  많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를 순식간에 죽일 수 있는 것
  카터의 주장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다음 수백 년을  인류가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인류
가 얼마나 오래 지속할 것인지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들은 다이슨의 '끝이  없는 시간 : 
열린 우주에서의 물리학과 생물학'이나 프라우치(Frautschi)의 '팽창 우주 속의 엔트로피', 린
데의 '초팽창 후의 생명'과 같은  논문, 또는 이슬람(Islam)의 <우주의 궁극적인  운명>이나 
배로와 티플러의 <인간중심적 우주론 원리>, 티플러의  <불사의 물리학>, 데이비스의 <최
후의 3분>과 같은 저서를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글들은 양성자의 느린  붕괴나 
'열적 죽음'의 도래와 같은 것들이 인류의 미래에 분명한 한계를 예고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가까운 미래에 관심을 집중해야 할 근거가 여러  가지 있다. 그 중 하나
는 서문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앞으로 적절한 곳에서 상세하게 논의될 것이다. 그것은 만약 
인류의 미래가 아주 비결정론적이라면, 카터의 종말론은 종말이 임박했을 위험의 평가에 아
무런 수정도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이다(설사  종말의 지연이 수십조의 인류가  은하 전체에 
확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더라도).
  또 하나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인류와 그 후손의 생존 자체에 더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단기간에 닥칠 수 있는  위험들뿐
인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한 50억 년 뒤에 태양이 적색 거성이 되어 지구의  모든 바
다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고 해도, 그것이 지금의 인류와 큰  관계가 있겠는가? 만약 그 때
까지 살아남아 있기만 한다면, 인류 또는 그 후손인 어떤  종은 명왕성이나 다른 별들에 있
는 우주 식민지로 이주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쯤이면, 인류의 알들은 한 꾸러미  안에 
다 들어 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진공 준안정 재난(2장 참고)이 빛의 속도로 은하계 전체를 
파멸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긴 한다. 그러한 재난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
지만, 먼 장래에 그러한 재난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한 재난을 불러올 수  있는 
고에너지 실험이 훨씬 더 일찍 실행될지도 모르고, 그러한 실험이 금지될지도 모른다. 
  1천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우주 거주지에 대한 구상인 오닐(O'Neill) 원통이나, 화성이
나 금성의 대기를 우리가 숨쉴 수 있게 만드는 계획,  또는 인간이나 인간만큼 똑똑한 기계
를 이용하여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은하  식민지를 건설해나가는 계획 등에 대한  자료들을 
방대한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집에 있는 서재에만도 이러한 것들을 언급한 책으로 
배로와 티플러가 쓴 <인간중심의 우주론 원리>, 클로즈의 <종말>, 다부스트의 <우주의 워
터홀>, 다이슨의 <우주의 요동과 모든 방향으로의 무한>, 맥도너의 <외계 지능을 찾아서>, 
루드와 트레필의 <우리는 혼자인가?>, 세이건의  <코스모스>, 슈클로프스키와 세이건의 <
우주의 지능 생명체>, 설리번의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로스먼  등이 쓴 <현대물
리학의 최전선>에 실린 티플러의 글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책들에서 제안되는 것들 중 일부는 상상되는 미래의  기술을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로켓 엔진에 핵융합이나 반물질을 사용하는 것이라든지, 레이저를 사용하여  우주선을 
엄청난 속도로 가속시키는 것 등이 있다(승객을 태운 우주선 대신에 사람의 냉동 난자를 양
육 및 교육시키는 기계와 함께 태운 훨씬 더 가벼운 우주선을 생각할 수도 있다).
  오닐(G. O'Neill)은 1970년대에 당시의 기술로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1킬로미터 길이의 
원통 속에 1만 명 정도의 우주 이주민들이 살 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당
시의 화학 로켓 기술(오리온 계획의 소형  수소폭탄은 차치하고라도, 소형 수소폭탄을 사용
해 우주선을 추진한다는 이 구상은 우주공간에서의 핵 폭발을 금지하는 협정이 체결되기 전
까지 미국에서 관심 깊게 검토하던 아이디어였다)로도 우주 이주민들을 비록 느리기는 하지
만(보이저 호를 타고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는 데에는 약 4만 년이 걸린다) 다른 별 근처로 
충분히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처음에는 지상의 레이저로, 그 다음에는 햇빛에 의
해 가속을 얻고, 목표 지점의 별빛을 이용해 감속하는 광우주선을 사용한다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훨씬 높은 속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주목할 만한 발상들이 많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인류가 앞으로 5백 년만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그 후에 어떤 재
난이 지구에 닥치더라도 인류는 멸망에서 확실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
실은, 그 세기가 오기 전까지 닥쳐올 재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구에 인공 바이오스피어를 
건설할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바이오스피어 2호'(1장 참고 : 산소 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에 사용된 과학기술에 대해 불만을 쏟아놓은 것은 너무  성급했다. 거기에 소요된 자금 1억 
5천만 달러를 배스(E. Bass)라는 한 개인이 전적으로 부담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기억
하지 못한다. 만약 핵무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돈의 1백분의 1만 인공 바이오스피어를 개
발하는 데 사용되었더라면, 지금쯤 인류의 미래는 확실히 보장되어 있을 것이다. 
  종말론의 견지에서 전개되는 이 모든 이야기에서 우리는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수십억의 
세계 인구가 고통을 받는 것과 같은 단순한 문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
기 바란다. 수십억의 인구가 고통을 받고  죽어가는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지만, 그  후에 
재난을 서서히 극복하고 거기서 교훈을 받은 인류들에게는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 
종말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모든 인류를 전멸시킬 수 있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페르미의 질문
  만약 우리보다 약간 더 진보한 문명을 가진 외계 지능체들은 쉽게 성간 여행을 할 수  있
다는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페르미(E. Fermi)가 제기한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질문은 만약 그러한 외계인들이 존재한다면, 왜 아직  외계인들
이 우리 태양계를 방문하지 않았으며, 전파 망원경으로도 그러한 문명이 존재한다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가 하고 반문한다. 만약 지능을 가긴 생명체가 우리 은하 안에 일반적으로 존
재한다면, 왜 그들은 오래 전에 지구를 식민지로 삼지 않았을까?
  은하계는 나이가 1백억 년 정도 됐는데, 일단 그러한 문명이 우주여행을 시작한다면, 은하
계의 끝에서 끝까지 퍼져나가는 데에는 불과 수백만 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최초로 거
기에 소요되는 시간을 추정해 발표한 다이슨은 약 1천만 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다
른 평가들에 따르면 그 시간은  3억 년에서 3백만 년까지  천차만별이다(티플러만큼은 60만 
년 정도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외계인을 목격했다는 비행접시 목격자들의 증언을 믿어야 할까? 그보다는 지구는 우리 은
하에서 높은 지능을 가진 생명(또는 여하한 생명)이 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배로
와 티플러의 견해 쪽이 더 유력해보인다. 반대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지구와 같이 생명
체가 살고 있는 행성을 전형적인 행성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대부분
의 은하들에 생명체가 전혀 살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만약 인류가 멸망한다면, 우주 
전체를 통틀어 지능 자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될 가능성도 있다. 아주 원시적인 생명체조
차 원시적인 수프 상태에서 화학물질들이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방법들을 통해  결합한 
다음에야 출현이 가능하다. 원시적인 생명체에서 지능을 가진 생명체로 도약하는 것도 굉장
히 힘든 일이다. 또, 설사 그 과정이 쉽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진화상의 조
건들이 갖추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인류의 멸망을 결코 초래해서는 안 되며, 특히 사소한 이
익을 위해 인류의 운명을 저당잡히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CFC가 오존층을 파괴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즉시 겨드랑이
에 뿌리는 방취제 분사 물질의 사용을 전세계적으로 즉각 중단시켰어야 했다. 
  우리가 외계 지능체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진화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기술문명을 이루자마자 급속히 멸망해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매우 
드물게 진화한다는 가설의 기반이 취약할수록 기술문명이 일찍 멸망한다는 가설은 더욱  설
득력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는 일단 이 가설이 큰 설득력을 지닌다고 가정하자. 그렇게 되면 
1장과 2장에서 언급한 많은 위험들에 대한 평가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왜냐 하면,  태어
난 지 얼마 안 된 다른 기술문명들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위험들에 직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계인을 왜 발견하지 못하는가를 설명해주는 그 밖의 가설들은 별로 설득력이 없
다고 나는 판단한다. 외계인들이 우리의 눈에 띄지 않고 우리 은하를 지나가버렸다거나,  그
들이 외부 우주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가 사는 곳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거나, 그들 역시 
우리보다 아주 약간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을 뿐이어서 우주여행에 착수한 지 얼마 되지 않
아서 라는 등의 가설은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렇지만 전문가 입장에서 이러한 가설들
을 훌륭하게 변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에 대해서는 브린(G.  D. Brin)이 쓴 글 '거대한 침
묵(Great Silence)'을 참고하라. 

  관찰자 선택효과
  1장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질병들이 인류를 멸망시키는 데 실패한 원인을 논의하면서 
관찰자 선택효과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우주에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들이 
많이 있고, 병원체들이 거의 모든 곳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게 되면 우리 
행성은 그러한 병원체들이 승리를 거두지 못한 극소수의 행성에  속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면,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과거의 광추(우리가 지금까지 소식을 받아볼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을 담고 있
는 시공간 단면)은 2장에서 언급한 진공 준안정 재난을 담고 있을 리가 없다. 왜냐 하면, 그 
사건에 대한 정보가 우리에게 닿자마자 우리는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재난이 일어나지 않은 과거를 가진 관찰자 선택효과'는, 수백만 년 심지어는 수십
억 년이 지나는 동안 아직까지 무서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앞으로도 안전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뿌리째 뒤흔든다. 닐센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지구 전체를 파괴시켜버릴  위험한 붕괴(예컨대, 양성자 붕괴)가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왜냐 하면, 만약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그것을 관찰하게끔  존재하지
도 못할 것이고, 만약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관찰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다."
  아마도 닐센은 진공 준안정 재난을 촉발하는 아주 희귀한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
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까지 그러한 재난이 어디에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뜻인가? 이것은 특히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이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무한히  큰 
우주 또는 우주의 초기에 엄청난 속도로 초팽창을 일으킨 유한 우주에 있어 옳은 이야기가 
아닐까?
  모래벡이 강력한 새 입자가속기가 순전히 사소한 불운으로 인해(퓨즈가 끊어진다든지, 수
위가 케이블을 밟고 지나간다든지, 지진이 일어나 비상 차단장치가 작동된다든지 하는 등의 
이유로) 끊임없이 가동이 중단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느낀 것을 검토해보자. 
  모래벡은 다원우주 양자론이 이 문제에 단서를 제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이론에서는 
우주와 그 속에 있는 모든 관찰자는 계속 더 많은 우주와 관찰자들로 갈라져나간다. 대부분
의 우주에서   가속기는 가동되고,  진공  준안정 재난을   야기한다. 그러한  관찰자  버전
(version)의 우주에서는 운좋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우주 버전들만을 발견할 수 있
다.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이것이 타당한 이야기인가?
  올바른 접근 방법은 다음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우리는 과거에 재난들이  일어나
지 않았다는 이론들에 대해 얼마나 자신을 가질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먼저 우리가 큰 자
신을 가질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게 되면 우리는 과거에  재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은 관
찰자 선택효과를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을  다소 무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만약 그러한 
이론들을 자신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 관찰자 선택효과가 작용하는 실제 영역
(예컨대, 지능체들이 살고 있는 많은 실제 행성들 또는 다원우주 양자론에서 언급한, 수많이 
갈라져가는 실제 우주들)을 믿는 것이 합리적인 한, 우리는 관찰자 선택효과를 진지하게 고
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는 지구가 지금까지 모든 생명체를 쓸어버릴 만큼 충분히 큰 소행성과 충돌한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주장하려 한다고 하자. 여기에는 관찰자 선택효과가 어느 정도 작용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들이 많이 존재하며, 이들 
역시 모두 소행성의 충돌에 노출되어 있다는 가설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첫
째로 그러한 다른 행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다. 둘째
로 소행성 충돌 사건은 소행성의 크기가 10배 큰 것은 발생빈도가 10분의 1만큼 줄어든다는 
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을 절멸시킬 
만큼 큰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근거에서 관찰자 선택효과
가 작용한다는 주장에 대해 의심이 제기된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의 경우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1장에서 병원체들은 그들의 숙주
를 완전히 멸종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것은 우리 조상이 왜 멸종하지 않았
는가에 대해 아주 그럴 듯한 설명을 제공하므로, 이 역시 관찰자 선택효과를 배제하는 근거
가 된다. 그렇지만 관찰자 선택효과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아무리 그 정도가 미미하다
손 치더라도, 관찰자 선택효과는 인류에게 창창한 미래가 있다는 자신감에 분명히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새로운 위험들
  인류가 과거의 질병을 무사히 극복해왔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새로운 조건
들(인구 위기, 거대 도시, 환경오염, 해외여행과 교역 등)을 감안하면 별로 대수로운 일로 보
이지 않는다. 따라서, 질병에 의해 전체 종들이 멸종할 위험은 '대체로 새로운'  것으로 분류
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행성이 충돌할 위험은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하고  나서도 
증가하지 않았다. 따라서, 소행성 충돌 위험은 '낡은' 위험으로 분류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조상들이 소행성 충돌의 위험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여러분과 나도 그러한 위험에서  살
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일반적인 생물 종 혹은 그 중에서 특별히 포유류가 과거에 얼마나 오래 생존했는가를 알
아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아주 
특별한 종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약간 온난해지거나 냉각된다고 해서, 그리고 자연의 식물군
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인류가 멸망할 것 같지는 않다. 또, 새로운 종의  육식동
물이 나타나 인간들을 모두 잡아먹을 위험도 전혀 없다. 
  이전에 인구 폭발이 재난을 불러온 적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까? 이 경우
에도 오늘날의 상황은 너무나 새로워서  과거가 별로 참고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카터(1989년에 나에게 보낸 글에서)와 브린은 모두 이스터 섬의 경우를 지적한다. 이스터 섬
은 "별개의 행성처럼 아주 오랫동안 고립돼 있었으며"(카터), "800년경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정착했을 때, 인류사에서 이스터 섬은 마치 성간 공간의 식민지와 같았다(브린)." 이스터 섬
의 주민들은 인구 폭발을 겪었으며, 그  결과 섬의 처녀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시켰고,  그에 
잇따른 전쟁에서 거의 멸종 직전 상태까지 갔다. 

  
  이 책에서 소홀히 다룬 위험들
  인류의 생존에 큰 위험이 되는 것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많은 사소한 위험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화성을 탐사한 우주 비행사들이 화성에서 살아남은 치명적인  병원
체들을 가지고 올지도 모른다는 주장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화성보다 생물이 살
기에 훨씬 혹독한 달에서 돌아온 우주 비행사들도 적절한 것으로 판단되는 살균 처리를 받
았다. 
  카노(R. Cano)와 보루키(M. Borucki)가  호박 속에 갇힌  곤충의 몸에서 2천5백만-4천만 
년 된 세균과 균류를 되살려내는 데 성공했다는 최근의 결과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이 행
한 새로운 항균, 향진균, 항종양 효과 실험은 유망한  결과를 낳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늘
날의 유기체들이 아무런 저항력을 갖고 있지 않은 옛날의 질병이 되살아날 위험은 없을까?
  우주에는 "기술문명이 막 발달하려는 종들을  학살하는 강도 같은 늑대들이 도사리고  있
다"는 모래벡의 견해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 늑대들은 아마도  전파에 의해 옮겨지는 
"데이트 비트(bit)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이들은 문명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는 은하들 사
이를 지나가는 수백만 년간의 여행에서 조용히 죽어  지낸다." 그러다가 새로운 기술문명이 
자라나는 흔적이 보이면, 즉시 행동을  개시한다. 그것은 아마도 "숙주에게 혜택을  주게 될 
기계의 청사진"에 의해 자극을 받아 "숙주를 죽이고 자신을 우주 전체에 천문학적인 숫자로 
전파시키는 재생 잔치"를 벌인다. 브린은 이와 비슷하게 '죽음의 탐사선'을 생각했다. 이것들
은 자기복제 기계들로서, 전파와  같이 "확인되지 않은 동조  전자기파를 발생하는 물체"를 
모조리 파괴한다. 그들의 조상들은 은하 전체에 혜택을 전파하도록 설계되었을 수도 있지만, 
일종의 성공적인 돌연변이를 통해 이러한 파괴자들이 태어날 수 있다고 모래벡과 브린은 주
장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이러한 시나리오를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 않는다. 
  물론, 왜 그러한 시나리오를  배제하느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정확한  이유나 근거를 대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내가 너무 성급하게 물리친 위험들이 많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분야가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단지 내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빠진 것
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거기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거나(소송을 걸 상대자나 약탈
을 할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재난이 일어날 위험과 같이) 분류하기 곤란하여 언급되지 
않은 위험들도 있다. 
  정신을 파괴하는 어떤 화학약품의 중독성이 아주 뛰어나다고 할  때, 어떤 마약왕이 그것
을 수돗물에 풀어놓아 우리 모두를 거기에 중독시킬 위험은 없는가? 연간 국민총생산의 2배
나 되는 미국 정부와 기업 및 가계의  부채 때문에 전세계적인 경제 붕괴가 일어날 위험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일로부터 인류가 멸망할 수 있을까? '파생금융  상품'이
라고 부르는 증권거래에서 그러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을까?
  거의 규제를 받지 않는 증권거래는 그 규모가 미국과 유럽과 일본 등의 연간 국민총생산
을 합친 것에 육박하고 있다. 월리치(P. Wallich)는 관측자들은 한번 큰 거래가 삐끗하면 금
융시장이 증발해버리고 말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이제 전 지구적인 
산업으로 자리잡은 범죄에서 발생하는 거래액은 연간 1조  달러의 규모에 달했는데, 이것은 
군사 비용과 거의 맞먹는 액수이다. 더구나 미국 수용소에는  1백만 명 이상의 죄수가 갇혀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전 인구의 1퍼센트가 범죄자인  문명은 석기 시대의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오래 된 경고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보다는 인류를 무지무지하
게 증오하는 한 개인이 더 큰 위험이 되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많은 행위가 범죄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도 
별로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 컴퓨터 해커들은 자신의 행위를 좋은 일이라고 여기며, 핵무기
를 통제하는 시스템에 침입하는 것을 큰  오락으로 여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위대한 정치인들은 군사적 가치가 조금도 없고 여자와 어린이들만 가득한 도시  드레스덴에 
화재를 일으킨 데 대해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원자폭탄을 개발한 과학자들은 만약 
원자폭탄이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 스트론튬(방사성 물질로서, 살아 있는  사람의 뼛속에 축
적됨)을 사용하여 약 50만 명의 독일인들을  중독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다. 로드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인간의 잔혹성이 점점 증가해간  증거로는, 평생 동안 틈만 나면 '아힘사'(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뜻의 산스크리트어)에 몸을 바쳤다고 공언해
온 오펜하이머가 50만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대량 중독시킬 준비에 대해  열정적으로 
글을 쓴 것만큼 더 생생한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5분의 1의 사람들이 5분의 4의 
부를 소유하고 있어서 테러리스트와 자유의 투사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드는 세계에서  이러
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미래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독일의 도시에 고의적으로 화재를 일으킨 행위나, 심지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행위가 명백하고도 순전히 악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로 인해 종
전이 앞당겨졌으며, 수백만 명의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는 주장을 가볍게 일축할 수는 없다
고 생각한다. 한 개인의 행동으로부터 장기간의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면, 사실상 아무 의미
도 없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와 같은 말을 들먹이면서 원시적일 정도로  단순
하고도 완고한 도덕적 규범을 따르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외과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약간의 고통을 가한다고 말할 때, 이것은 수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목적을 사용
하는 것인가? 그렇든 않든 간에 의사의 행위에는 악의적인 것이 조금도 없다).
  재난은 악인들에 의해서만 초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는 독선적
인 사람들에 의해서도 초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정신분열증 환자
가 실제로는 아프지 않다는(그래서 그들을 핵무기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
장을 펼치는 사람들, 검열은 항상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또는 민주적 결
정은 항상 최선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다(첫번째 위원회 구성원들은  B보다 A를 
더 좋아하고, C보다는 B를 더 좋아한다. 두번째 위원회 구성원들은 C보다는 B를 더 좋아하
고, A보다는 C를 더 좋아한다. 세번째  위원회 구성원들은 A보다 C를 더  좋아하고, B보다 
A를 더 좋아한다. 따라서, B보다 A가 더 낫다는 표가 두 표, C보다 B가 더 낫다는 표가 두 
표, A보다 C가 더 낫다는 표가 두 표 나온다).  
    2. 위험의 비교, 전체 위험의 평가
  위험의 비교, 그리고 전체 위험의 평가
  이번에는 여러 가지 위험이 어느 정도 심각성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종말론
을 그려한다고 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충분히 있고, 완전히 절망해야 할  근거는 
전혀 없다.
  우선, 만약 세계가 비결정론적이라면 종말론의 입지가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세계가 비결정론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점은 잠시 후에 살펴보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 초신성 폭발이나 태양 플레어, 블랙 홀이나 중성자 별의 합체, 대규모 화산 활동,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과 같은 사건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앞
에서 말한바와 같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까운  장래에 우리가 멸망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 고비만 넘기면 인류는 곧 전 태양계로  삶의 공간을 넓혀갈 것이기 때문이
다. 그 후에는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이 죽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인류는 계속 살아남을 것
이다.
  자연적인 질병은 어떠한가? 거대도시, 항공여행 등의 요소는 질병의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의학의 발전으로 어느 정도 이에 대항할  수 있다. 설사 그렇지 못하더라도, 
질병이 모든 사람을 완전하게 죽이는 사태는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은행 시스템이나 식품이나 물, 전기 등의 공급 시스템이 붕괴하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어느 
정도 기아사태나 무정부 상태가 초래되긴 하겠지만, 전 인류가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
존층 파괴, 온실효과, 환경오염, 경작지의  고갈과 생물 다양성의 상실  등도 엄청난 희생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이 역시 인류 전체를 완전히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인공 바이오스
피어를 만들어 그 속에 대피함으로써  인류는 그러한 재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불과 
수천 명만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거기서 인류는 다시 수십억의 인구로 번성할 수 있다. 전세
계적인 핵전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설사 지구의 거의 모든 땅이 생물
이 살아가기에 부적합하다 하더라도, 인공 바이오스피어 속에서 인류는  계속 살아갈 수 있
다.
  나노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진전이 이
루어지기 전에 인류는 하나의 세계정부로 통합되어 거기에 대해 안전장치를 마련할  시간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나노테크놀로지 혁명이 도래할 때쯤에는 인류는 태양
계 전체와 어쩌면 가까운 다른 항성계까지도 식민지로 삼아, 설사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
이 죽는다 하더라도, 인류라는 종은 멸종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 3백 년 안에 아주 높은 에너지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나는 확신하지만(소수의 
물리학자들만이 여기에 동의한다), 고에너지 실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그 중 가장 중대
한 것이 준안정 상태의 진공을 파괴하는  것이다)은 현실화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론적 연구를 통해서건, 실제로 아무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서건,  우리가 
살고 있는 진공 상태가 완전히 안전한 상태이며, 스트레인지  쿼크 물질은 초고밀도 별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위험들은 어떠한 낙관론이나 자신감도 무너뜨릴 많나 파괴력을  가지
고 있다. 그리고 아직 더 중대한 위험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중 하나는 유전공학이라고 생
각하는데. 특히 생물학전에서 또는 범죄자에 의해 사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위험은 지능을 가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이다(최소한 기계들이 의식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양자효과를 이용할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험이 있을 수 있
다. 이러한 위험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위험은 남극 상공에 뚫린  오존 
구멍처럼갑자기 윌에게 알려질 것이고, 역시 과학기술  발전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리라는 것
뿐이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류가  다음 5백 년 동안 멸망하지  않을 확률이 충분히 
높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확률이 약 70퍼센트는 된다고 본다. 만약 그렇다면, 다음 수만 년 
동안도 그 확률은 유지되거나 오히려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확신하지는 못
한다. 사람들의 순발력이나 과학자들의 두뇌, 선출된 정치지도자들의 지혜를 신뢰하는  표현
들은 나에게는 사탕발림으로나 들릴 뿐이다.
  인류의 멸망이 임박했다는 주장은 관신도나 미치광이들이  항상 짖어대는 주제이지만, 실
제로 그럴 가능성도 높다. 단지 오랫동안 광신도들이 그것과  관련된 생각을 해왔다는 이유 
때문에 어떤 생각을 혐오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광신도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쥐어주는 결과
를 가져올 것이라고 부린은 말했다. 이 장을 끝내기  전에, 카터의 종말론이 그럴 듯하다면, 
위험의 평가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결정론, 비결정론과 종말론
  카터의 종말론은 인류의 멸망이 임박했을 위험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근거를 제공하지만, 
이러한 근거들은 비결정론적 세계에서는 그 기반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비결정론은, 현재
의 상황과 필요한 물리법칙을 충분히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류 멸망 이
전에 태어날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이론상으로 알 수 있는 '확고한 사실'이 어떤  형태
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당신의 이름이 제비뽑기통에서  나온 후에 
그 통 속에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이름이 남아 있을까 하는 문제에 비유할 수 있다. 종말의 
위험을 재평가하려는 카터의 노력(예컨대, 5백 년 후에  인류가 한명도 살아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가능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이 사실로 인해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받을까? 어쩌면 어떤 비결정론도 쓸데없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제비뽑기통에서 앞으로 계속 나올 수 있는 이름의 수(앞으로 태어날 인류의 수)'
는 이미 수십억으로 제한되어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것은 이미  지구는 오염에 찌들어 
있어 종말이 곧 닥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결정론적으로 그 움직임이 결정
되어 있는 혜성이나 소행성만이 유일한 위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비결정
론적인 요인들이 아주 중요하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카터의 주장은 주로 인류의 
운명에 대한 자신감(인류에게는 결정론적으로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일
부 사람들이 가진 것과 같은 자신감)을 감소시키는데 그치게 될 것이다.
  세계는 실제로 비결정론적일까? 우리는 근본적으로 사건들이 카지노의 도박사들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비결정론적으로 일어난다는 명백한 징후들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 현재 우
리의 우주와 아주 세세한 것까지  정확하게 똑같은 또 다른 우주가  하나 있다고 가정하자. 
이 우주는 몇 년의 세월이 지나면, 우리의 우주와는 아주 다른 길을 밟아갈 것인가? 
  여기서 '근본적인 비결정론'과 '우리가 예측하기  불가능한 것'을 구별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2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카오스 이론의 연구자들은 '나비효과'의 구체적인  예를 여
러 가지 들 수 있다. 
  일련의 많은 사건들은 출발점의 상황에 아주 미묘하게 종속되어  전개된다. 나비 한 마리
가 특정 시점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날개를 퍼덕거린  것이 어떤 사건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그것은 몇 개월 뒤, 미국 플로리다 주에 태풍이 불어닥치게  하느
냐 마느냐를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비록 그 자체로는 많은 목적
을 위해 매우 중요하겠지만, 세계가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이냐 하는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카오스 이론을 아주 잘 적용할 수 있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고  하자. 두 세계 사이에 오
늘날 존재하는 아주 미소한 차이(원자 하나의 방사성 붕괴와 같이  아주 미소한 차이)로 인
해 이 두 세계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나가, 50년후에  각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
람의 수에 차이가 날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약 이 두  세계가 완전히 똑같고 완전히 결정론
적이라며, 두 세계는 영원히 똑같은 상태로 존재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카오스 이론에 의해 밝혀진 현상들은 비록 위험을  초기에 평가하는 것을 훨
씬 어렵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기의 평가들을 수정해야  한다는 카터의 근거에 영향
을 미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앞으로 태어날 사라므이 수가  물리법칙과 현재의 상황에 의
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카터의 주장은 그 기반이 약해진다. 그러나 만약 세계가 
결정론적이라며, 그 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캘리포니아에 다음 번 큰 지진이 일어날 날짜
를 예측하는 경우처럼, 비록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할  능력은 없지만 이론상으로는 그것을 
알 수 있다(현재의 세계 상황을 세세하게 다  알고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라플라스의 악마처럼). 나비의 날갯짓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그 나비의  날갯짓은 빅 
뱅 이래 결정되어 있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람들은 두 가지의 중요한 이유 때문에 비결정론을 믿는  경향이 있다. 양자물리학이 비
결정론을 지지한다는 것과, 완전한 결정론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생각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
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첫재, 결정론은 자유를 파괴하는가? '자유'라는 단어는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사용되며, 종
종 철학이론이나 신학이론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사용된다. 많은  논란이 되어온 
한 가지 문제는 결정론이 죄와 벌의 정당성에 영향을 줄 정도로 사람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시간이 시작된 때부터 잘못을 행하도록 결정되어 있었다면, 누
가 그것을 처벌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럴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라는 주장이 제기 될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살인을 저지르도록 결정되어 있던 행위 때문에 살인자가 죽은 후
에 지옥까지 가야 한다는 것은  매우 부당해 보인다. 지금 이곳에서  그 살인자를 처벌하는 
문제에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만약 그 살인자가 완전히 결정론적인 세계의 일부
라면, 그를 처벌하는 것은 아주 불공정할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고 해도, 살인자를 지
금 이곳에서 처벌하는 것은 분명히 어떤 이익이 될 수 있다.
  완전히 결정론적인 세계에서도 당구공의 움직임은  다른 당구공의 움직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당구공의 움직임이 결정되어 있다고 해서, 다른 당구공들이 어떻게 움직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그 당구공이 자기 갈 길을  유유자적하게 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완전히 결정론적인 세계에서도 사람들의 행동은 칭찬과 비난, 상과  벌에 의해 효과적인 영
향을 받을 수 있다. 즉  살인자가 구금되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살인을 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나 자신은 '양립주의자'들이라 부르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주장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들은 
자유와 결정론 사이에 실질적인 모순이 없다고 본다. 결정론은  단순한 종류의 예측 가능성
을 포함하지 않는다. 만약 결정론이 사람들을 기계로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기계 구조는 날
씨를 만들어내는 기계만큼이나 복잡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만
으로도 전지전능한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을 일어나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설사 전지전능한 자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행위를 예측하지는 못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예측된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굳이 하려고 할 수 있기 때
문이다(이와 유사한 행동을 하는 간단한 기계들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녹색 불'이라는 단추
를 누를 때 빨간 불이 들어오는 기구는 어린아이라도 쉽게 만들 수 있다).
  물론 결정적인 요인 중에는 자유를  잠식하는 것도 있다. 돌로 된  벽과 철창을 포함하는 
결정론은 당신을 감옥 속에서 부자유스럽게 만들 수 있다. 마약중독이나 뇌종양, 또는  당신 
머리에 겨누어진 총을 포함하는 결정론은 자유를 제한하거나 철저히  파괴할 수 있다. 자유
롭다는 것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감금이나 마약 
중독 같은 것은 당신의 결정권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의 원시적
인 체스 컴퓨터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상당히 중요한 의미에서)스스로 결정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유로운 사람은 스스로의 마음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나쁜 해동에 대해서는 비난이나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많은 철학자들은 비난과 
처벌은 살인과 같은 행동을 억제하여 좋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결정론적인 세계에서 도
덕적으로 정당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철학자들은, 사람은 자신이  결정론적으
로 행동하는 한도 내에서만 자유롭다는  주장을 옳다고 느낀다. 결정론에  대해 유일하고도 
명백하게 반대되는 것은 임의적인 것인데, 만약 당신의 결정이 임의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
다면 당신은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논쟁은 
매우 어렵고도 복잡하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를 길게 논의할 장소가 못 된다. 자유와  결정
론의 양립성에 대한 보다 깊은 논의는 데이비드 흄과 존 스튜어트 밀, 매키(J.L.Mackie), 오
디커드(D.Odegard), 팁턴(I.Tipton)등이 다루었다.
  둘째, 양자물리학은 비결정론적인가? 양자론은, 세계의 가장 미소한 부분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오로지 통계법칙에 의해서만 지배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으로  흔히 
생각된다. 이러한 사건들을 많이 모아놓고 보면, 우리는 큰 규모에서 예측 가능한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
  10톤의 동전을 던졌을 때, 거의 정확하게 약 5톤은 앞면이, 나머지 약 5톤은 뒷면이  나오
는 것을 발견하리라는 사실을 고려해보라. 어떤 방식으로 던진  동전이 땅에 어떻게 떨어지
는가는 초고성능 감지기와 초고속 컴퓨터를 사용하여 물리학자가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어
떤 우라늄 원자가 정확하게 언제 붕괴할지 또는 가열된 필라멘트에서 다음 번 복사 양자가 
언제 방출될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신조차 이러한 일은 알 수 없다고까지 이야기된다.  폰
노이만은 양자론의 불확정성 관계식은 사람이 알 수 있는 지식의 한계를 설정한다기보다는, 
현실 그 자체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고 말했다. 따라서, 표준양자론이 그보다 더 속에  내재
하는 결정론적인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더 완전한 이론에 의해 대체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부정을 증명하려는',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이 단지 발견하기 어려운 것
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시도를 의심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폰 노이만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  새면(W.C.Salmon)은 "양자역학을 단지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대체할" 완전히 결정론적인 이론의 완성을 촉구하는 글을 썼다. <신비스러운 
우주>에서 제임스 진스(James Jeans)는 빗방울이 임의적으로  생겨난다고 확신하는 지렁이
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땅 표면 위를 기어다니기만  하는 지렁이들은 날씨가 지닌 3
차원적인 구조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 역시  지렁이들과 비슷하게 현실의 중요한 
차원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리학자들은 양자 수준에서 사건들이 정확하게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결정하는 '숨어있는 
변수'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벨(J.S.Bell)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실험들에
서 '국지적으로' 숨어 있는 변수이론들은 옳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입자들이 공간과 
시간상 거리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에도, 각각의 입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사전
에 미리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해서는 설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했다. 그러나 벨
이 주장한 것처럼, 봄(D.Bohm)이 옹호한  이론과 같은 '비국지적으로'숨어 있는 변수이론들
은 이러한 어려움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이들 이론에 따르면, 아주 머릴 떨어진 별개의  사
건들은 서로에게 동시에 결정론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결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러한 동시적인 연관성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충돌하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
면, 그것은 빛보다 빠른 대상에 대해서는 통제될 수도 없고, 사용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것은 마치 뉴욕에서 던진 동전이  앞면이 나왔다면, 런던에서 던진 그  동전의 짝은 뒷면이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즉시 알  수 있으면서도, 동전들이 어떻게 나올  지에 대해 우리가 
아무런 영향력도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같다.
  봄의 견해들은 특별히 흥미를 끄는데, 그것은 사고방식이 극적으로 전환한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951년에 출간된 <양자론>에서 봄은 비결정론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나중에 비결
정론을 공격할 때, 봄은 양자 퍼텐셜(quantum  potential)을, 그 효과가 세기와는  관계없이 
오직 형태와 관계가 있어 아주 먼 거리에까지 작용할 수 있는 하나의 힘으로 해석할 수  있
다는 개념을 최대한 이용했다. 세계가 절대적으로 임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
기보다는, 봄은 명백하게 비결정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사실은 우리가  도저히 추적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결정론에 의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비국지적'효과(서
로 아주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계들 사이에 성립하는 동시적인 연결)는  이러한 종류의 복
잡성을 쉽게 나타나게 할 수 있다.
  보이어(T.Boyer)와 푸소프(Puthoff)는 새로 손질한 고전적이고 결정론적인 물리학으로 표
준양자론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발굴했다.  이들의 '확률론적 전기역학'은 고전물리
학을 채용하고, 거기에  항상 요동하는 영점  장(zero-point field)배경을 추가했다.  '영점'은 
'영점운동'에서 떼어온 수식어이다. 이것은 절대온도 0도에서  입자들이 보이는 진동 운동을 
말한다. 푸솔프는, 영점 장들은 입자들의  운동을 우주 전체를 통해  전달하며, 이들 운동은 
장들에 '스스로 발생하는 피드백  사이클'을 생성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접근방법에 
바탕한 계산들은 실험값과 잘 일치했다.
  이러한 생각들은 결코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세계가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
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아직은 단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개개의 입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알지 못하며, 이러한 우리의 무지는 어떤 명쾌한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
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래에는 과거에 의해 결정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포
함되어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종말론을 적용할 때 위험의 재평가
  설사 종말론적 사고에 의해  아무리 그 평가치가 확대된다  하더라도, 종말이 임박했다는 
위험의 전체적인 확률은 1백퍼센트를 넘을 수 없다. 따라서, 개별적으로 고려한 위험에 종말
론적 사고를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전체 덩어리를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고에너지 실험과 관련된 위험이 1퍼센트이고, 나머지 모든 위험은 오염과 관련
된 것이 9퍼센트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가정하자.  종말론은 이러한 위험들의 평
가치를 재평가하여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각각 8배로 증가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13배로 증가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전체  위험의 평가치는 1백 30퍼센트가 되
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유일한 위험들이  오염과 관련된 것이 2퍼센트이고,  고에너지 
실험과 관련된 것이 1퍼센트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가정하면, 각각의 위험을 13
배로 늘어난 것으로 재평가한다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다.

       제4장 - 인류의 역사를 왜 존속시켜야 하는가?
    1. 진실로 필요한 것들
  선과 악의 실재를 부정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위험들
  당면한 온갖 위험을 고려할 때, 인류가 계속 생존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
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3×5=15라는 사실만큼 확실한 사실인가?
  현대의 많은 철학자들은 윤리적 요구들이 그러한 종류의 실재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
정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주장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약 내가 갑작스럽게 그
들의 주장에 동조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여전히 어떤  의견을 다른 의견보다 선호
할 것이고,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선호하는 의견을 추천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러한 노력을 기울이거나 반대로 내가 선호하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거기서 아무런 가치나 
의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현재의 내 생각으로는, 진정한 가치는 현실적인  차원에
서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얼마나 더 나은가 하는 점과 직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기심 자
체가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경우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다양한  것들
이 세계를 이루는 구조의 일부인 선(善)을 지닐 대뿐이다. 따라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견
해 쪽으로 전향하면 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얻는 것에서만 실제적인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
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그 무엇에서도 실제적인 가치를 느끼지 못하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
이다.
  이 이야기는 그저 진부한 개인적인 의견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존 레슬리는 '현실의 문
제'로서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나을 수 없다는 주장에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존 레
슬리는 그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매우 열정적이고도 친절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
이 알고 있다. 이 사람들은 타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종종 아주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다. 그들은 자신이 말하는 바를 완전히 믿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자기 성찰에 서툴거나 
조지 오웰이 '이중신념(모순된 두 생각을 동시에 용인하는 능력)'이라고 부르는 것에 능숙한 
것은 아닐까? 그들 중에는 분석적인 학풍 속에서 하나의 생각을 다른 것과 구별하는 고도의 
훈련을 쌓은 매우 뛰어난 철학자들도 많이 끼여 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것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은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흄이 말했듯이, "손가락에 상처가 나는 것보다 이 세상이 파괴되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흄의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최소한 '이
성'이라는 단어의 한 가지 용례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  사용하는 
이성이란, 건강을 위해 독성 물질을 섭취하지 않거나,  사과보다 블랙베리를, 그리고 블랙베
리보다 체리를 좋아하면서 또한 체리보다 사과를 더 좋아하는 일과 같은 문제라는 것이다.
  인간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나, 반대로 굉장한 충동을 느끼는 일에는 한계가 없
는 것 같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차 경주의 열렬한  팬들이 라이벌팀의 지지자들을 주저없이 
살해했으며, 최근에는 담배 즙을 가능한 멀리 뱉는 것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생각하는 사람
들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녹색 신을 신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
는 햇볕을 쬐는 악어들처럼 꼼짝 않고 누워 있는 것을 최고의 자기 실현으로 생각하는 사람
들도 있다. 이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푸트남(H.Putnam)은 다음과  같은 글을 통해 흥미
로운 사실을 분석했다:
   "가난한 시골뜨기 소년에게 마피아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가정해보
   자.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는 앞으로 온갖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마약 밀매와 윤락업
   에 손을 대게 되고, 도박장을 운영하고, 심지어 살인도 저지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많은 친구와  아가씨들을 사귈 수도 
   있고, 그들 사이에서 존경과 동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제안을 거절하면, 그에게 주
   어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가난뿐이다. 이러한 조류의 희생은 수박만
   의 가난한 사람들이 항상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다. 그렇다면 희생을 강요하는 근본
   적인 요인이 단지 이웃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자 하는 욕망에 불과하다고 생각
   한다면, 과연 누가 그런 희생을 감수하려 들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자기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어떻게 충실하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수사학적으로 번지르르한 말을 갖
   다 붙이는 것은,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옥스퍼드의 철학자와 프랑스의 실존주의자(이
   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비록 부조리하더라도!'라고 덧붙이겠지만)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그러한 희생을 하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희생을  
   감수한다."
  푸트남은 '실재성'의 의미에 대해 왔다갔다한 사람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
다(그는 스스로를 '움직이는 과녁'이라고 불렀다).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심리학 분야에서의 
그의 시도가 오류이맂도 모른다고 주장해왔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
에게 주는 도움이 아프리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나, 2×2=4처럼 실재적인 것이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자기를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다. 반대로,  그러한 
도움이 실재적이라고 믿으면서도 도움을 줄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선과 
악이 실재한다고 믿는 것과, 그렇게 믿도록 동기가 부여된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잠시 후에 논의하게 될 규범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인 헤어(R.M.Hare)는, 자신이 선이라고 부
르는 행위들에 대한 열정이 그러한 선이 사실적이라는 것을 믿는다고 해서 어떤 영향을 받
을 수 있다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반복해서 강조하곤 했다. 그러나 철학계 바깥에서 
해어와 같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내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열심히 행하는 사람과, 내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열심히 행하는 사람과, 내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역시  열심히 저지르는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을 거리에 내놓기를 원하겠는가? 물론 첫 번째 사람이다. 설사 그 사람이 마음 속
으로 어떤 것을 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규정하는 것에 불과
하다고 믿는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를 선호할 것이다. 또, 설사 그러한 것을 선이라고 부르
는 것이 어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그렇게 시킨 것이 라거나, 또는 단지 개인적인 취향
으로 그러한 일들을 좋아할 뿐이란 건, 오직 성자만이 볼 수 있는 이상한 광채를 띠며 빛을 
내기 때문에 그 일을 한다고 그가 주장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를 선호할 것이다.
  만약 인류를 계속 존속시키는  것이 현실 문제에서 선이라는  사실을 당신이 부정한다면, 
이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당신이 거기에 대해 침묵을 지킨다면, 세상은 더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인류에 대해 사실상 큰  위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인류가 존속되기를  더 선호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절망시키는 것으로 판단되는 몇몇 주장이나 주의에 대해 짧게나마 공격을  전개해 
보고자 한다.

  상대주의; 감정주의와 규범주의; 자연주의 계약의 내면화 또는 '가치의 창조'
  상대주의에서는 윤리적으로 필요한 것은 차라리 '예의'라고 부르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적절한 예의는 나라마다 다르듯이, 선(善)도 스미스  씨의 세계와 존스 씨의 세계에서  서로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같은 것이 선이 될 수 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다. 겨자를  역겨워하
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겨자가 맛있다는 것을 하
나의 현실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살 마들이 실제로 맛있다고 느
낄 때에만 그러하다.
  윤리적인 상대주의자는 재미삼아 아이를 산채로 태우는 것과 같은 일은 절대적으로  나쁘
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거기에는 완전히 상대적인 어떤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아
이를 재미삼아 불태우는 사람은  누구든지 절대적으로라는 의미에서 '절대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잘못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의 윤리적 상대주의자가 우연히 받아들이게  된 옳음과 그름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에만 나쁜 것이다. "그러한 기준을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라는 질
문을 던질 수 있지만, "물론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기준을  부정하는 것은 
아프리카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2+2=5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답
변이 나올 수 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입장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윤리적 용어의 의미를 전혀  반
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우선, 한 사람의 현재의 윤리적  기준(또는 그 사람이 
사는 사회의 윤리적 기준)은 실제적인 자기 모순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잘못됐을지
도 모른다는 겸손한 진술에는 조금도 이상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윤리적 상대주의
는 그러한 진술이 별다른 의미를 지녔다고 보지 않는다.
  참고적으로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상대주의는 마취제 없이 행하는 수술이 마취제를 구
할 수 없는 상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을지도 모른다는 그럴 듯한  견해와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아주 어리석은 논쟁을 피할 수가  있다. 어리석은 논쟁을 피할 수가 있다.  어리석은 
논쟁의 예로는, 우리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취
향의 문제라든가, 선이란 내가  개인적으로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는 주장 
등을 들 수 있다
  철학자들은 어떤 것을 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과 관련된 어떤 실재성을 묘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흔히 주장한다. 그 대신, 그  표현은 그것에 대한 감정을 나타내거나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그것을 선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거나, 또는  그것에 대한 어떤 사실을 
들춰내지 않는 방식으로 분류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리적 주장이나  수학적 주장이 옳은 경
우처럼 옳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감정주의자, 규범주의자, 그리고  모호하게 '등급 매기기'
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을 '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거
나, 아이를 산채로 불태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사실'  또는 '참'이라는 식의 말을 자주 한
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단지 일반적인 언어 습관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간주할 뿐이다. 
"어린이를 불태우는 것은 나쁘다"를  정확하게 분석한 것은,  "현실을 완전하고도 정확하게 
나타낸 지도는 어린이를 불태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것보다는, "우우! 
어린이를 태우지 마!" 또는 "아무도 어린이를 결코 불태워서는 안 된다고 나는 규정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상대주의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주장들도, 한 개인이 지닌 현재의  윤리적 기준이 자기 모
순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잘못일 수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예컨대, 규범주의자는 어떤 것이  실제로 자신의 기준에 맞느냐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선'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월요일에 받아들인 일관성
이 있는 일련의 기준들은 잘못되었고, 화요일의 새로운 기준들이 옳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은 "나는 모든 사람들이 월요일의 기준이 아니라 화요일의 기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규정
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같다.
  규범주의가 부닥치는 또 하나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종
류의 문제를 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력의 법칙이  계속 유효한 것이 좋지 않
은가? 또, 우주가 계속 존재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규정하고 
있는가? (우리는 신에게 중력의 법칙이 계속 성립하게 해달라고 규정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또,  세상에 자유가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
낸 것은 좋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경우에 우리는  누구에게 무엇을 규정하고 있는가? 
자유가 처음으로 나타나기 전에 누가 자유롭게  어떤 규정을 따르기로 선택할 수  있었겠는
가? 진화에서 자유로운, 즉 규정을 따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능을 가진 존재들이 태어나
기 오래 전에 숲의 화재에 휩싸인 동물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러한 고
통은 정말로 나쁜 것이 될 수 없었을까?
  자연주의, 계약적인 '윤리의 창조'. 규범주의와 같은 사상은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보이지
만, 왜 철학자들이 거기에 혹했는지 그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윤
리적 자연주의가 지닌 결함들을 살펴 보기만 하면 된다. 윤리적 자연주의란, '본질적으로 좋
은'이나 '본질적으로 나쁜'이 라는 라벨을 사물(물체, 사건, 상황등)에 붙이는 것을 사물의 본
질적인 성질을 묘사하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정말로 좋다'는 것은 정말로 
이러저러한 성질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이론에는 두가지 주요한 문제
점이 있다.
  문제(1): 사람들이 흔히 '좋다'는 딱지를 붙이는 사물의 조류는 너무나 천차만별이다. 지식, 
축복받은 무식, 마음의 평화로운 상태, 격렬한 흥분, 방종, 자기 부정, 환희, 심미적으로 우아
한 슬픔, 전통의 존중, 독창성 등 수많은 대상에 그러한 딱지를 붙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좋다고 불리는 성질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진짜 좋은 것을 정의하려고 시
도하더라도, 당신은 곧 지긋지긋한 혼란에 빠져들고 만다.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와 같은 것
을 듦으로써 이 상황에 약간의 질서를 부여하려고 시도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삶은 놀라
울 정도로 많은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간주하지 않는 한 어떤 것을 '정말로 필요한 것'이라고 부르길 거
부하는 것 역시 정말로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다. 또한, 만약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한지를 강조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어려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첫째, 다른 많은 것들 역시 좋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삶의 고통은 본질적으로 너
무나도 크기 때문에 차라리 모두가 전멸해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주장
에도 명백한 잘못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쇼펜하우어의 생각이 아주 중대하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문제(2): 기쁨이 좋다는 것마저 사소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사람들은 단지 언어적인 실
수나 어쩌면 어떤 실수도 저지르지 않고도 그것을 의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두뇌의  기쁨 
중추에 전극으로 자극을 가하여 기쁨을 얻었을 때, 거기에서  좋은 것이 무엇인가? 이 예가 
보여주듯이, 본질적인 선(그 사물의 존재 자체가 지니고  있는 종류의선, 예컨대, 당신의 생
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고통스러운 수술이 지닌  선과는 대조적으로)에 대해 
물을 때, 우리는 별개의 두 가지 질문에 부닥친 것처럼 보인다.
  첫 번째 질문은 어떤 일의 상태가 어떠하느냐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두 번째 질문은 그
것과 같은 어떤 상태가 존재해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윤리적 자연주의자들은 이 질문을 
혼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상황은 그 상황이 본질적으로 지닌 성질들에 의해 좋은 것이 
될 수 있는 반면에, '좋다'는 것(선)은 '이러이러한  성질들을 가지고 있다'거나 '느슨하게 연
결된 저러저러한 집단으로부터 얻은 성질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대신
에, 그것은 '윤리적으로 요구되는 존재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어떤 것이 윤리적으로 요구되는 존재를 가질 때, 요구되는 것은 물론 바로 그것의 존재이
지, 다른 것의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가지 성질을 가짐으로써 바로 정확히  그
것이 된다. 그러나 일상적인 생각이나 언어에 묻혀 사용되는  선이라는 개념에 대해 당신이 
근본적으로 혼동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의 윤리적 요구  자체가 그러한 성질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일상적인 생각이나 언어에 관한 이러한 개념은 현재 상당수 철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
고 있는데, 다만 내가 완전히 불행한 것으로 여기는 '또 다른개념'과 짝을 이룰 경우에만 조
종 그렇다. '또 다른 개념'이란, 실제 세계가 여기서 상상된 윤리적 요구와 같은 것을 포함하
고 있다고 믿는 것은 낡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윤리적 요구를 지닐 수 
있다는 개념은 겨자 자체가 훌륭한 맛을 가지고 있다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괴상하다'고  간
주된다. 그럴 듯한 유일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본질적으로 사람들의 목표는 서로 다른 경향이 있다. 행동 규범은 그 결과로 발생하는 분
쟁의 최소화하기 위해 발전했다. 그 규범들을 준수하라는 강한  사회적 압력은 그 규범들을 
내면화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삶에 많은 스트레스를 가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회가 
바라는 것을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요구 사항들(다소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절대적인)을 어
기는 이를 위반자로 취급함으로써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 관
계 것들은 내면화된 사회적 압력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어떤 시도도  모든 사람들(편리한 허
구와 현실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철학적인 혜안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에
게서 격렬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군사훈련이 좋은 예를 제공한다. 상과 벌을 반복해서 가하다 보면, 병사들은 서서히  적에 
대해  용감하게 대처하려는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되고, 도망가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경멸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경멸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도망가는 것은 자연적인 본성에 
거스르는 범죄라는 신념에서 비롯되는 깊은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톰과 댄이 초소에 새로 배치된 두 병사라고 가정하자. 적들이 접근할 때, 두 사람은  달아
나고 싶을 것이다. 동료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간에 혼자서 달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
나 두 사람은 실재한다고 믿게 된 가공의 결합에  의해 초소를 지킨다. 각자는 동료를 적과 
혼자 맞서게 내버려두고 달아나는 대신에 동료를 도와야 한다고 느낀다. 즉, 두 병사는 유령 
계약(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는 계약)에 집착하는 행위에 '절대적인 의
무감'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톰과 댄 사이에, 그리고 두 사람과 나머지 모든 국민들 사이에 
어떤 계약서가 서명된 일은 전혀 없다. 그러나 어떤 서명된  계약서도 이 유령 계약보다 더 
강한 구속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톰과 댄을 초소에 붙들어 두는 것은 동료를 돕고 국가를 위하는 것이 절대적인 의무라는 
신념이다. 톰은 상사나 헌병을 보아서 그러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댄과 함께 초소를 
지키는 의무 그 자체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 톰의 잘못은 겨자 자체가 훌륭한 
맛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크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일반적인 잘못이며,  전
통 윤리는 모두 그러한 잘못에 바탕하고  있다. 이것은, 각 개인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을 바라게 된다는 간단한 명제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톰은 
달아나고 싶어 죽을 지경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를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절대적인 
의무에 대한 신념이다.
  톰과 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옳고 그름을 발명하는 윤리학>과 <유신론의 기적>에서, 
매키(J.L.Mackie)는 나의 아주 다른 견해들을 길고도  관대하게 다루면서 놀라울 정도로 솔
직하게 이 분야의 논쟁을 전개했다. 다음에 인용부호로 싸인 문장들은 모두 이 두권의 책에
서 인용한 것이다.
  매키는 "객관적으로 규범적인 가치들이 있다는 가정"을 공격하면서, "그안에 내재하는 어
떤 실제적인 모순도 발견할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매우 이상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 이상한 개념을  실제적으로 실증하는 것이 가능하다
고 가정하는 데 주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고싶은  충동은 "흄이 지적
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리학은 "특히 사회 속의 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에   의해 발달한   행동들의  체계"에   관한  것이며,  "본질적   요구(intrinsic 
requiredness)의 개념은 실제로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요구 조건의 추상화에
서 비롯된다."
  매키는 '이상한 것에서 비롯되는 논증'을 사용하여 객관적  가치를 부정한다. 객관적 가치
는 "우주의 어떤 것과도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세계의 구조"에는 이러저러한 일(굶주린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이나  재미삼아 아이를 불태워죽이는  행위를 말리는 것 등)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주관적인 관심을 지지해주거나 합리화해주는"것은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 양심은 종종 어떤 행동에는 "꼭 해야 할 것과 꼭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그러한 행동 자체에" 포함되어 있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것"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도 "매우 그럴 듯하다."  "도덕적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얼마든지 사회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도덕적  가치는 우리들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게"해주기  때문이다. "유럽의 도덕  철학의 보류
를 이루는 전통"은 객관적인 가치를  선호해온 것이 사실이다. 객관적  가치에 대한 신념은 
"일상적인 사고 속에 확고한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도덕적 용어의 기본적이고 전통적인 
의미 속에도 확고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능한 것을 냉철히 생각해 보면, 어떤 행위도  "그 자체로는 나쁘다고" 할 수 없
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진술은 "단순히 참이 될 수  없다." 어떤 
상황도 "어떠어떠한 행동이 어떤 방식으로 거기에 결부되어 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가질 수 
없다. "사물이 지닌 자연적  속성상 본질적으로 적합하거나 필요한  무엇이 있다는 개념"은 
단지 "자연적인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모든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들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매키 자신은 이 모든 것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올바르고 친절하고 자기 희
생적인 삶을 살아갔지만, 그러한 묘기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둘째, 매
키는 자신이 사용한 '선(좋음)'과 '악(나쁨)'과 같은 용어들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매우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 결과, 만약 그의  이론이 옳다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로서의 선은 어떤 것에도  있을 수가 없다. 셋째,  바로 다음에 소개하겠지만, 
일상적으로 믿고 있는 바와 같이, 선과 악에는 사실 아주 "이상한"것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
다. 오히려 재미삼아 아기를 태워죽이는 것과 같은 일을 포함하여 어떤 일도 "그 자체로 나
쁜"것은 없다고 믿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본질적인 윤리적 요구의 옹호
  매키는 나의 입장을 다룰 때, "어떤 것을 선이라고 부를 때, 어떤 사람이나 사람들의 집단
이 그것을 요구하거나 규정하거나에 상관없이,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것이 본질적이고 객관
적으로 요구되거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여기에  그토록 이상한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매키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어떤 것이 지닌 윤리적 요구와 다른 성질들간에 반드시 존
재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연결이었다. 그러나  그가 본질적인 윤리적 요구라는  개념에 대해 
'실제적인 아무런 모순'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것은 분명히 본질적인 윤리적 요구는 어떤 것이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성질임을 뜻
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매키는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어떤 대상이 본질적인 윤리
적 요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우리 세계와 똑같이 생긴  다른 세계에서 우리와 똑같이 생
긴 다른 대상은 본질적인 윤리적 요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다시 말해서, 본질
적인 윤리적 요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우연히 결여된 성질이란 말인가? 물론 터
무니없는 말이다. 매키도 이 주장을 일축한다. 왜냐하면, 매키는  선과 악이 신의 임의의 결
정에 따라 사물에 부여되었다는 것을  부정한 플라톤의 의견을 칭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성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논리의 문제도 우연의  문제도 아니라면, 그것은 철학자들
이 '종합적 필연(synthetic necessity)'이라 부르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종합적 필연이란, 논
리적 필연성과 같이, 말이나 기호의 정의에 비춰볼 때 절대적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필연성
을 말한다.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종합적 필연성을 받아들인다. 나는  우리가 색을 경험하는 데
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밝은 빛에  의해 생기는 잔상을 들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먼저 붉은색을 경험하고 나서 그 다음에 오렌지색을 경험한다면, 그 다음에 세 
번째로 경험하는 색은 필연적으로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경험한 색에 더 가까운 것이 될 
것이다. 실제로 세 번째 경험하는 색은 노란색이 될 것인데, 오렌지색은 빨간색과 노란색 사
이에 위치해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의 필연성은 모든 홀아비는 아내가 없다는 식의 필연성
과는 같지 않다. 그것은 단지 정의의 산물이 아니다. 언어를 몰랐던 동굴 속 거주자들도  그
것을 느낄 수 있고, 오렌지색이 '빨간색과 노란색 사이의  중간에 있는 색'이라는 정의를 결
코 알지 못하는 현대의 어린이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것이 종합적 필연성이다.  내 
견해가 매키의 견해와 분명히 다른 점은, 윤리학에서 조합적  필연은 실제적인 윤리적 요구
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한 병사가 재미삼아 한 여자아이를 공중으로 던져올린 다음에 총검으로 받으려고  한다고 
가정하자. 그의 행동을 멈추게 하려는 실제적인 도덕적 의무가 '필연적으로 그 상황에  내장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배제되어 있다고 하는 매키의  생각만
큼 아주 그럴 듯해 보인다.
  윤리학 밖의 영역에서 철학자들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절대적 요구의 개념을 만나
는 경우가 최소한 한 가지는 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그  요구가 정말로 실제적일 수 있
다고 동의한다. 그것은 합리적 연역 추론의 경우이다.
  거의 모든 철학자들은 단순히 논리만으로는 중력이 내일도 오늘과 똑같이 작용하거나  끓
는 물속에 발을 담그면 역시 화상을 입는다는 것을 알려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들은 과거에 발견된 다양한 규칙성이 앞으로도 계속 성립할 것인지를 자문하는  상황에서는 
그러한 규칙성을 바탕으로 한 결론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끓는 물이 당신의 
발에 화상을 입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상태는 그 자체의 특유한 본질적 요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연역 추론의 요구는 예의의 요구 또는  '비합리성의 요구'(예컨대, 끓
는 물은 내일 당신의 발에 화상을 입히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은)와 동등하다는 주
장에 대해서는 경멸을 보낼 것이다.
  어떤 가능한 일이 지닌 성질은 그의 존재  또는 비존재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내일 끓는 물에 대한 생각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윤리학의  경우에
는 그러한 성질은 때때로 사물을 존재하게끔 작용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때로는 그 성질
은 존재하는 것(예컨대, 고통의 상태)을 없애는 행동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만약 
선과 악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이 바른 길을 걷고 있다면,  행동에 대한 모든 도덕적 근거를 
넘어서는 어떤 윤리적 근거가 있다. 왜냐하면, 규범주의에  대한 공격에서 언급했듯이, 일반
적으로 선이나 악으로 생각되는 어떤 일은 어떤 행동도 영향을 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
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다른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여기서는 다음의 세 가
지 주요 사항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핵심 개념은 다양한 것들이 진부하지 않은(non-trivial)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다. 선의 윤리적 요구는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열적요구'나 고문과 같은 '악마적 요구'와 
비교할 수 없으며, 단순한 변덕은 그러한 요구의 원천이 될 수 없다. 윤리적 요구의  권위는 
어떤 중대한 방식으로 절대적이다(어쨌든, 그것은 칸트의 '지상  명령'선언에서 사실이다. 칸
트가 길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모든 윤리적 요구가 다른 어떤 윤리적 요구도 그 위에 설 수 
없는 방식으로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데 있다).
  여기에 내포된 개념을 잘 이해하는 것은 매우 힘들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개념이 와 닿
지 않는다면, 당신은 윤리학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잘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인간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음악을 싫어한다고 할 때, 그가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윤리적 요구
는 없을 것이다. "거짓말하지 말라"와 같은 도덕적  법이 절대적으로 아무런 예외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또, 어떤 것이 본질적으로  선이라고 할 때, 언제나 그것을 절대
적으로 선호해야 한다고도 주장할 수는 없다(어떤 사물은 다른 모든 것보다 더 길지 않고서
도 본질적으로 길이를 가질 수 있다. 본질적인 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이와 달라야 할 
이유가 있는가?). 때로는 본질적으로 선인 것조차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회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음악을 즐기는 것은 그 자체로는 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만약 집이  화재에 
휩싸인 경우에는 음악을 즐기지 않아야 한다.
  둘째, 선과 악이 '객관적'이라고 믿는다고 해서,  윤리적 진리를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론자' 나 '직관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여러분은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주거나 재미삼아 총질을  하는 사람들을 말리는 것이 옳다는  것은 
진실로 진리이며 엄연한 사실이라고 믿는 나의 견해에 주저없이 찬동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단순한 도덕적 신념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면(만약  우리가 도덕적 지식이라
고 부를 만한 것을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면)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재미삼아 총질을 해대
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전문적인 
철학자들은 어떤 것에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데 심한 제약을  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사람중의 하나인 나는,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낫거나 나쁘다는  것
을 진실로 안다고 말하기를 주저한다.
선과 악이 완성한 환상은 아닐까? 이것은 우리가 완전히 확실할 수 있는 사항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재미삼아 사람들에게 총질을 하는 것 자체는 아무것도 나
쁜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 정신질환 상태에 있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두뇌 세포의 질병뿐만 아니라 생각의 질병도 있을 수 있다. '질병'에 걸렸다는  것이 '비정상
적'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질환상태'라는 것은 윤리적인 무게를 싣고 있는 단어이다. 
수학 천재들은 매우 비정상적인 사람들이지만, 질환상태는 아니다.
  지식에 대한 나의 기준을 다소 누그러뜨리면, 나는 끓는 물이  내일도 내 발에 화상을 입
히리라는 것을 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종류의 도덕적  진리를 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심지어 쇼펜하우어가 지구도 달처럼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었더
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한 주장이 잘못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셋째, '윤리적으로 요구되는 존재'와 윤리적으로 요구되는 비존재'의 개념은 내가  아주 진지
하게 생각하는 개념이다. 윤리적 진리는 설사 우주가 사라진다고  해도 여전히 진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이 텅 빈 상황이 단지산 채로 불에 태
위지고 있는  사람들로 채워진 세계로 대체되는 것은 윤리적으로 요구될  수 없다. 만약 당
신이 이 생각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나쁘다'는 의미로 말할 때 당
신은 그러한 세계가 그 자체로 나쁘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선과 악은 단지 도덕
적 대리자들이 지닌 칭찬할 만한 점이나 비난할 만한 점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선과 악은 
이러저러한 일을 해야 할 임무를 지닌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존속할 만큼 강
한 것이다. 철저한 악의 세계가 출현하는 것은 아마도 어떤 도덕적인 대리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한, 도덕적인 재난으로  간주될 수 없을 테지만, 이것은 도덕이나 임무가 개입하지 않
더라도 어떤 일들은 매우 나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선과 악에 대한 이러한 접근방법은 플라톤주의(이상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수학에서 플라
톤주의자들은 "2+2=4"라는 진리는 세어야 할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세어야 할 물체의 존재 
유무에 상관 없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존재하는 물질들로 이루어진 전체  우주가 사라진다고 해도, 2+2=는 여전히  4일 것이
다. 윤리학자에서의 플라톤주의도 이와 상당히 유사하다. 플라톤의 '선의 형상'은 '존재를 초
월하는' 그 무엇이다. 플라톤은 또한 선의 형상 그 자체는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 데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관한 플라톤의 언급(<국가론>6권  참고)은 다소 모호하지만, 디오
니시오스를 비롯해서 훗날에는  틸리치(P.Tillich), 쾡(H.Kung)과  같은 신플라톤주의자들이 
이 주제를 끄집어냈다. 분석적 성향을  지닌 일부 철학자들도 이  주제에 주목했다. 예컨대, 
에빙(A.C.Ewing)은 특히 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데에 이것을 사용했다. 
  나는, 선은 다른 성질들에 첨가할 수 있는 단순한 성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선의 형상
을 옹호하려고 계속 노력해왔다. 진부하지 않은 방법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선이며,  이
것은 선이 최소한 창조적으로 행동하는 올바른 종류의 현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어
떤 진지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우주가 바로 그 사람이나 우주의 존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윤리적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암소는 비록 암컷이긴 하지만, 어떤  암
소도 암소라는 그 자체로는 갈색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신플라톤주의자들은 말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등한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말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연구한다고 해서 신플라톤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연구는 
윤리적 요구를, 만약 당신이 그러한 요구를  믿는다면, "플라톤적으로" 다루게 만들 것이다. 
즉, 무조건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신플라톤주
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윤리적 요구는 누가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는 우주를 필연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것은 종합적 필연성이 될 수 있고, 종합적  필연성은 성립하기가 매우 어려울 수 있다(위에
서 주장한 바와 같이, 어떤 윤리적  요구의 현실은 오직 종합적으로 필요할 뿐이다.  따라서 
쉽게 논박할 수 있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어떤 것이 본질적으로 선이라는 사실에 대해 아주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더구나 신플라톤주의자로 전향한 사람들조차도 자신의 윤리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윤리적 요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선의 세계는 
마약 중독자의 행복한 꿈과 같이 무질서한 세계가 아니라,  자연법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라
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예컨대 원자폭탄은 정말로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모든 윤리적  필요(예컨대, ①사람들이 자
유를 가질 필요 ②사람들이 재미삼아 도시에 원자폭탄을 폭발시키는 데 자유를 사용하지 않
을 필요)가 항상 동시에 만족될  것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믿음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별하게 도와주는 도덕적 횃불로 무장하고 있
다는 개념도 물리칠 수 있다.
  나는 신플라톤주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닌 대부분의 윤리적 신념들을 얻은 것
에 대한 매키의 견해는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신념들은 사회적 압력에 의해  생겨났으며, 
그중 상당수가 잘못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왜 멸망하면 안 되는가?
  왜 멸망하면 안 되는가?
  만약 인류가 멸망한다면, 슬프게도 지구의 생물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말은 사실일까? 모
든 윤리적 사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행동을 취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로 축소하는 철학
자들은, 여기에 대해 어떤 도덕적 대리자(신 또는 외계인?)가 계속 존재하여 상황을 개선시
키는 일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지 않는 한,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철학자
들은 인류가 모두 죽어 없어진다는 사실은 그에 대해 생각하고 평가할 누군가가 남아 있지 
않는 한 슬픈 일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인류의 멸망을 초래하는 과정조차 실제로 
사람들이 그것에 의해 불행해지지 않는 한 조금도 불행한 것은 없다고 볼 것이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단지 행복하게 살 가능성만을 가진  사람을 비존재 상태에 남겨두
는 데에는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다. 왜냐 하면, 도덕적 의무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설명한다. 또 다른  철학자들은 최소한 일부 사
람들의 삶은 매우 불행하기 때문에, 인류 전체가 멸망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고까지 주장
한다.
  나는 이러한 모든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만약 사람들이  철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
인다면, 이러한 견해들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인류를 계속 지속시키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
얹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슬아
슬한 핵전쟁 위기 때, 핵무기를 통제하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내가 지금 핵 미사일들을 발사하라고 한다면, 인류가 멸망할까? 그래서 어쨌단 말인
가? 고명하신 철학자들께서는 단지 살 가능성만을 가진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태어나지 않
게 하는 것은 아무런 윤리적 무게도 담고 있지 않다고 확언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지금 내
가 벌이고 있는 이 위험한 게임의 계산에서 그들의 삶은 제외해도 된다.'
  이러한 견해에 정말로 잘못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이 장에서는  전에 썼던 주제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행복한' 삶은 단지 즐길 수 있는 삶이 아니라, 
누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오랜  철학적 관습을 따를 것이다. 따라
서, 고문 행위에 극치의 즐거움을 느끼는 고문 전문가의 삶은 행복한 삶이라고 보지 않는다.

  쇼펜하우어의 비관은 옳은가?
  어떤 정치 지도자가 단추 하나를 누름으로써 전 지구적인 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가
정하자. 아주 짧은 순간에 충분한 위력의 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고통이나 절
망을 느낄 순간도 없이 죽어간다고 하자. 한때는 정상적으로 살았지만, 다음 순간 우리는 기
체와 재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 불행한 것이 있는가?
  쇼펜하우어는 모든 인간의 삶은 대체적으로 비참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자기 몸의 전
반적인 건강과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구두가 발에 맞지 않아 불편한 것'
과 같은 세세한 것에 신경을 쓴다고 했다. 그 정치  지도자가 이 견해에 동조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렇다면,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비관적 결론에 필연적으로  이르게 
될까?
  이 비관적인 결론은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어떤 방법으로도 옳다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윤리적 자연주의를 공격하면서 나는 '선'이 '기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하고 주장했다. '약'이 '비참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개념 역시 잘못된 것
이다. 세상에 태어난 것은 달나라로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큰 모험처럼 보인다. 설사  싫어하
더라도 그것은 한 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모험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에 대해 만족을 느낀다(비록 순간순간에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 사
람의 죽는 순간이 이러한 종류의 만족으로 가득 차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
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윤리적 자연주의가 실패한다면, 쇼펜하우어의 비관적 결론 역시 잘못됐다는 것을 논
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게 된다.  개념적으로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고  그 정치 지도자는 
단추를 누르는 것을 하나의 의무로 간주할 수 있고, 실제로 단추를 누를지도 모른다. 여기에 
간섭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물론이다. 기관총을 발사하는 것만으로 그  일을 해낼 수 있다
면, 누가 그 일을 하더라도 나는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윤리적 요구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언제나 관용해야 함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
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거의 언제나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그리
고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정치 지도자들을 죽이는 것을 특히 나쁘다고 생
각하지만, '죽음을 당하지 않을 양동할 수 없는 권리'를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
을 수 없다(미친 사람들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어떤 미친 사람이 단추를 눌러 핵전쟁을 시작하려 한다면, 그  사람을 쏘아 죽이지 않는 것
을 결코 잘한 짓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그것을 방조죄로 간주할 것이고,  그 
미친 사람도 만약 제 정신이 든다면 자신의 그러한 행위를 누구보다도 앞서서 비난할 것이
다).
  그러나 나는 단추를 누르기로 결정한 지도자에 대해 존경심을 금할 수 없다. 인류를 전멸
시키려고 하는 행위는 인간의 삶이 살 만한 가치가 거의 없다는 전혀 비이성적이지 않은 고
상한 생각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우주가 자비로운 신에 의해 창조되었는지 아닌지를 토론
하면서 철학자들은 항상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윤리적 재난(그 속에 있는  모든 불행 때
문에 부정적인 가치를 가진)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런데 철학자들이 종
교철학을 떠나 윤리학 분야를 다루면서,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태평스럽게 가정하
는 것은 너무나도 일관서이 없어 보인다.
  물론 그렇게 가정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쇼펜하우어가 당장 명백한 실수를 저지른 것
은 아니지만, 나는 그가 아주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철학자들  거의 
모두가 나와 같은 견해를 가졌다는  것은(윤리학을 다룰 때)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펴내는 책과 학술자들은 종종 인류를 멸망시켜야 한다거나 또는 최소한 인류를 계속 
존속시켜야 할 의무를 부정하는 주장들로 가득 차곤 한다. 그렇다면 왜 그런 주장들이 나오
는지 알아보자.

  불행한 사람을 위하는 것이 우리의 주관심사가 되어야 하는가?
  우선, 우리의 주임무는 불행한 사람들을 도우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종종  나온다. 
상당한 만족을 느끼고 있는 5천 명을 매우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자원은 그 대신에  다소 
불행하게 사는 5명을 만족스럽게 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가끔 이 견해를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다.  "만약 당신이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알 수 없다고 한다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역할마저도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정의론>에서 롤스는  '그렇다'고 답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아주 서툰 것이다. 왜냐 하면, 예컨대 당신은 
이성적으로 다음과 같은 대답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예가 될 확률이 8이고, 노예를 부리면서 편안한 삶을 누릴 확률이 28이라면, 한 번 도박
을 걸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당신이 노예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이것은 당신과 당
신 노예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룰렛 게임의 결과가 아니라면 어떤가? 그것은 당신의 양심
에 가책을 느끼게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최소를  최대화시키려는 시도'(가장 불행한  개인들에게도 가능하면 최대한 
행복을 보장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에 강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무도 맨 아래에 깔
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참지 못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고
상한 사람들이 맨 위에 올라서 있는 현실을 참기 어려운 것으로 느끼는데 있다.
  불행의 최소화를 강조하는 것은 "인류의 멸망을 향해 노력해야  한다"에 직접적으로 연결
될 수 있다. 살 만한 가치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최소한 약간은 
있다.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 곧 고통 속에 죽어가는 어린이들이 가끔 있다. 의학의 
발달로 이러한 일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또, 태아에게 처
음으로 의식이 깃들일 무렵, 사고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만약 사람이 계속 살아가게 된다면, 행복한 사람의 삶은 항상 불행한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
로 하여 유지된다.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불행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최소를 최대화시키
는'생각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이 행복과 불행의  대조가 아니겠는가? 만약 
행복의 정도에 약간씩 차이가 날 뿐이라면, 이 생각에 유혹을  받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
다. 같은 자원으로 약간 더 행복한 10억 명의 사람들을 아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데, 조금 
행복한 한 사람을 좀더 많이 행복하게 만드는 데 쓰자고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의 삶은 가끔 필연적으로 부정적인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인류의 
멸망을 선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 주장에 아무런 느낌도 받
지 않는 사람은 냉담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주장을 받아들이기 전에 다시 한 번 생
각해보자.

  살 가능성만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무를 느낄 필요가 없다?
  삶은 항상 살 가치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래도 당신은 인류를 멸망에서 구해야 한다는 명
백한 의무를 부정하는 철학자를 만날 수  있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그들에게 단지 해(害)를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만약 삶을 미래
의 후손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간주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주어야  할 아무런 의무도 
없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해 있을  때에도 구명대를 던져주어야 할 의무
는 없을 것이다. 돌을 던지지 않는 한, 의무는 충족될 것이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을 악의적인  것이라고 간주하여 무시한다. 반면
에, 다른 점에서 존경할 만한 도덕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옳다고 내세우는 견해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기 쉽다.
  맨 먼저 '평균적 공리주의'를 들 수 있다. 이것은  도덕을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 사이에 
묵시적으로 맺어진 계약이라고 생각할 때, 철학자들이 빠지기 쉬운 입장이다. 이 입장에서는 
훌륭한 행동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의 평균가치를 높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더라도 행복과 불행의 분배가 예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면, 
우리는 인구를 두 배로 늘려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평균적 공리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평균을 높여준다고해서 아무  행위나 
해도 된다고 하지는 않는다. 조금 덜 행복한 사람을 쏘아  죽이는 것이 행복의 평균치를 높
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이들은 그러한 행위를 찬성하지 않는다.
  이들은 만약 아무리 근소하게나마 후세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평균을  끌어
내리게 된다면, 인류가 멸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  후로 
우주에는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마찬가지일  것
이다. 이들은 행복한 후손 수십 억이 태어날 수 있다는 전망조차, 만약 그 수십 억의 사람들
이 평균적으로 더 행복하지 않다면,  1백 명(아마도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행복을 
감소시키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보다 엄격한 입장에서는 '만약∼하지 않는다면'이라는 단서를 빼버린다. 이들은 이미 시작
된 삶이나 필연적으로 태어날 삶들의 평균 가치가 결코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설사 그 평균 가치를 낮춤으로써 새로 세상에 태어나는 수십 억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한  삶
을 누리게 되어 전체 평균이 올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또 하나의 변형된 입장은 다음과 같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실은 그러
한 삶을 살아갈 사람들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사람을 만드는 것은 설사 이미 존재하거나 필연적으로 존재할 삶의 가치를 약
간 떨어뜨리는 한이 있더라도 허용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될 것이다. 행복할 
가능성이 있는 삶을 만들어내야 할 강한 도덕적 근거가 없다면(어떤  철학자들은 어떠한 종
류의 근거도 없다고 주장한다)불행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그러한 삶을  만드는 것이 
어떻게 허용될 수 있는가? 아이들을 낳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결론을 내려
야 옳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 마지막 사항은 젖혀  두고라도, 이 모든 갖가지 변형이론에서
는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수십 억 삶의 행복에 관한 사실이 그러한 삶을 태어나게 해야  한
다는 강한 의무를 구성하지 않는단 말인가?
  주요한 이유는 블랙(M.Black)이 확률론에 관한 글에서 따온 '공포 확률'에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실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믿음이 오랫동안 받아
들여진 것처럼, 단순한 가능성은 공허한 것이기 때문에 단지  가능성만을 가진 행복한 삶의 
존재가 선이라고 새도 실제적인 의무를 구성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나비슨(J.Narveson)과 베넷(J.Bennett)은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두 주요 인물이다.  베넷
을 철학자들이 행복의 가능성이 '사람을 결여하고'있는 상황을 한탄할 때, 그들은 혼동을 일
으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계속 존속하도록 허용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는 우리의 종을 영속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그렇게 하
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서
는 안 된다고 베넷은 말한다.
  우주의 어떤 곳에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지능 생명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가정하
자. 이것은 베벳에게는 좋은 소식이겠지만, 단지 지능을 가진 모든 존재는 풍부한 유기물 복
합체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특수한 존재들은 두드러질 정도로  불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
다고 베넷은 말했다. "만약 그  유기체들이 아주 불행한 상태에 있다면,  추가적인 유기체가 
환영받지 않는 것을 행복이라고 불러야 적절할 것이다." 여기서 설사 베넷이 손가락 하나를 
드는 수로만으로 문제의 유기체들의 삶을 단지 불행에서 벗어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그는 그 의무를 전혀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추론은 20세기에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악에 관한 신학적 문제를  생각해보자. 
어떻게 전지전능한 신이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불행으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들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시도중 가장 권위 있는 설명에서는, 신은 어떤 존재
도 창조할 의무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왜냐 하면, 단지 가능성만을 가진 채 영원히 남아  있
는 존재는 창조되지 않은 사실은 물론, 다른 무엇에 대해서도  불평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
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은 축복받은 행복한 존재를 창조할  의무도 없었다는 결론이 유도
된다. 그 대신, 신이 덜 행복한 존재를 창조한다면, 이들은 신에게 고마워할 것이며, 다른 존
재들도 신에게 불평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논리는 너무 허술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신은 왜 악마에게 충분히 비참한  삶을 
창조하는 즐거움을 내주기를 꺼리는가? 단지 가능성만을 가진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창조되지 않을 권리도 없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앞의 주장만큼이나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물론 불행한 존재들은 일단 창조된 이상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여 불평을 늘어놓을 
것이다. 행복한 존재들도 일단 창조된 이상 실제로 존재할 것이다.
  미래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정체(identity)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
실이 중요한가? 누군가 먼 미래에 수십억의 사람들을 죽일 것이 확실한 방법으로 방사성 폐
기물을 보관하려는 계획을 세운다고 상상하자. 당신은 세계는 비결정론적이기 때문에 그 때
에 살 사람들은 구체적인 정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이  계획은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것인가?
  가능성만을 가진 사람에 대해 우리가 지고 있는 의무는 철학적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 이 
안개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출현하지 않을 경우에  특히 짙어진다. 그러한 사람
들은 구체적인 정체를 가지고 있는가?
  나의 개인적 의견은 그렇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 대해 이론상으로 완전히 구체적인 
기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잘못이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파슨즈(T.Parsons)가 
자신의 책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부모에게 바친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왜냐  하면, 파슨
즈도 존재하지 않는 것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은 "누군가
가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박탈한다"는 사실에서 파생되는 어떤 잘못도 없다고 한 베넷의 
주장이 옳아보인다("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해서 가능성만을 가진 사람에
게 어떤 해를 끼쳤다는  주장은 부당하다". "가능성이 현실화되지  않고 가능성만으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할 수 없다. 왜냐 하면, 가능성을 가진 사
람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결코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정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 나비슨의 주장과 비교해보라).
  그러나 파핏(D.Parfit)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항상 어떤 개인에 대해 그가 태어난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쓸 수 있으며,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좋은 팔자를 타고
났다고도 쓸 수 있다(비록 "만약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걸 또는 아주 나빴을 
걸"이란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약간의 개념적 혼동이 있긴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태어
나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들을 태어나게 해야 한다는' 필요 때문에 어떤 의무
가 생긴다고 보는 것은 개념적인 혼동을 일으킨 것이라고 하는 그 자체가 개념적인 혼동을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이다.
  아주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행성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행성보다 
더 나쁘다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행성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행성
보다 더 낫다. 만약 어떤 철학자가 손가락 하나를 듦으로써  첫 번째 행성을 창조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손가락을  드는 것은 "불행한 삶을 살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의무(그들에게 불행한 삶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를 무시하는 행위"라는 주장에 미묘한 개념
적 어려움이 있는지 없는지에 상관 없이, 누구나 당연히 손가락을 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
할 것이다. 두 번째 행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그 행성을 창조하는 것이 다
른 곳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그 행성은 창조되어야 한다"는 말을 특
정인에 대한 의무에 관한 말로 번역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미묘한 개념적 차이에도 상관 없
이, 그 행성을 창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특정인을 향한 것이 아닌 많은 의무(먼 미래 사람들의 삶을 파괴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방사성 폐기물을 매장하지 말아야 하는 의무처럼)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자. 그리
고 만약 우리가 이러저러한 일을 한다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실제 사람들이 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 논란의 여지 없이 정체를 가질 사람들에게 일어날 일들을 바탕으로 한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렇다면 만약 아이를 갖는 것이 지겨운 일로 간주될 때 인류를 멸망하게 
방치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개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극동아시아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관습이 이에 대한 정확한 대응이 될 수 있다
고 생각한다. 거기서는 자식을 낳지 않고 자기 인생만 즐기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그렇다면 
인류를 멸망하게 방치할 수 있는 유일한 구실은 미래의 인간들의 삶이 매우 불행한 것이라
고 생각되거나, 지능을 가진 다른 존재가 급속하게 진화하여  인류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빼앗을 가능성이 있을 경우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현명
하지 못하다. 인류는 우리 은하에서, 아니  어쩌면 망원경으로 볼 수 없는 모든  은하들에서 
지능을 가진 유일한 생명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양해 사항들
(1)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같이 인구 과인인 세계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의
무가 될 수도 있다.
(2) 당신의 가족이 굶주리고 있는데, 먼  나라에 식량을 보내는 것은 잘못된  일일 수 있다. 
그 식량이 그 곳에 제대로 도착하지 않을 염려도 있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사람들에게 혜택
을 줄 수 있다는 희망에서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종종  잘못
된 일일 수 있다.
(3) 윤리적 자연주의에 대한 공격 때 언급한 것처럼, 어떤 것(예컨대, 기쁨)의 본질적인 선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주요한 이유는, 그렇게 하면 문제를 너무 단
순화시킨다는 점 때문이었다. 여기서도 만약 우리가 어떤 행동(예컨대,  인류를 계속 존속시
키려는 행동)의 정당성을 그러한 행동이 좋은 결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용어로 
정의하려고 한다면, 역시 비슷한 단순화에 빠질 수 있다.
 개념적인 분석을 통해 증명하지 않고도, 기쁨은 선일 수 있으며, 행복한 삶을 존재케  함으
로써 전체 기쁨의 양을 증가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행동도  옳을 수 있다. 만약 '강아지'라는 
단어가 '어린 개'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옳다'는 단어가 '최대의 선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졌다면, 최대의 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옳다는 것은  언어적으로 이미 보장된 사실
에 불과하다. 그러나 '옳다'는 것이 '신에 의해 명령된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면 신이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로 명령할 경우에 고통은 자동적으로 옳은 것이 되고 만다. 이것이 지
닌 한 가지 문제점은,  "신은  옳은 명령만을 내린다"는 것은 신에  대한 찬사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은 신이 명령하는 것을  명령한다"는 것 이상으로 전달하는 내용
이 있기만 하다면, 도덕적인 사람들에게 신의 뜻을 수행하려는 열정을 불어넣을 수 있다. 마
찬가지로, "옳은 행동은 좋은 결과를 최대화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좋은 결과를 최대화하
는 행동은 좋은 결과를 최대화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좋은 결과를 최대화하는 행동은 좋은 
결과를 최대화하는 행동이다"라는 뜻 이상으로 전달하는 내용이 더  있다면(그리고 오직 그
럴 경우에만)사람들에게 많은 열정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이 점은 닐(W.C.Kneale)이 지적
했다.
  이 분야에 관한 철학적 문헌은 매우 방대하고도 복잡하다. 나의 입장에 대충 이름을 붙인
다면 '공리주의'나 '이상적 공리주의', '비쾌락적인 공리주의', '전체 공리주의', '결과주의',  '반
칸트주의', '의무론 배격주의' 등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두 사람의 철학자 무어(G.E.Moore)와  스마트(J.J.G.Smart)처럼, 세상을 내가 원한 
것보다 진실로 더 나쁘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왜 나의 의무가 되어야 하는지 결코 알 수
가 없다(스마트는 이 단순한 사실을 주장하면서 이것을 반박하려는 어떤 반례도 받아들이길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한 행동이 반대 의견을 물리치는  말장난이 된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만약 무어나 스마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반대 주장은 불필요하
게 복잡하다고 주장할 때, 이들이 '타락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취급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잘못 생각한 것으로 취급받는다면 좀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윤리학에서는 누가 옳은지를 판정해줄 수 있는 공식이 없다. 따라서, 철학을  오랫
동안 공부한 도덕적인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는 실제적으로  인류를 계속 존속시켜야 
할 어떤 의무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미래의 인간들이 큰 행복을  누리리라고 기대되는 것에 
상관 없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에서 살펴보듯이, 이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믿을 
만한 강력한 이유들은 있다. 

  창문이 없는 오두막집 이야기
  행복한 삶을 태어나게 해야 한다는 의무를  논리로써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하지만, 나는 두 가지 점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인간의 삶은 최소한 대부분, 오늘날에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만약 인류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인간의  삶은 이전보다 더욱 행복해질 가
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행복한 삶의 수를 증가시키려는 모든 의무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주 역설적인 입장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다. 후자의  주장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려
면 파핏의 <이성과 사람들>이라는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파핏의 생각에 포함된 
다양한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는 한 이야기를 통해 짧게 변호해보고자 한다.
  다소 환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테지만, 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의도는  어
떤 상상된 일이 지닌 가능성이  아니라, 어떤 원리가 얼마나 그럴  듯한가를 보여주려는 데 
있다.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개념은 다음과  같다. 즉, '그러지 않으면 아주 나빠질  상황을 
좋은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 행복한 사람을  태어나게 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분명히  요구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그러지 않으면 상황이 나빠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태어나
게 하는 것 역시 윤리적으로 요구되지 않겠는가?
  많은 철학자들(이들을 '달콤한 만족'과 이론가들이라 부르자)은  행복한 사람이 많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그 수를 7백70억이라고 정하자.  그
리고 미래의 어느 시간에 7백70억의 행복한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상상하자. 해롭지 않은 수
단(원한다면, 마술을 사용해도 좋다. 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을 사용
하여 각각의 섬에 10만 명씩의  행복한 사람들을 살게 한다고 하자.  그런데 각각의 섬에는 
창문이 없는 오두막집이 하나씩 있다. 
  그 오두막집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경우에는 거기서 사는 사
람은 아주 고독하게 살기 때문에 삶의 가치가 마이너스이다.  오두막집에 창문이 없다는 것
은 철학적인 의미이다. 오두막집에는 문도 없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의 불행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오두막집 안에서 전혀 
알 수 없고, 안에서 일어나는 일 또한 밖에서 전혀 알 수 없다.
  거기서 멀리 떨어진 섬 '불행하지 않은 섬'에도 이미 10만 명의 행복한 사람과 창문이  없
는 오두막집이 하나 있다. 섬의 이름이 암시하듯이, 이 섬은 윤리적 비극 상황에 처해  있지 
않다. 오두막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없는지에 상관 없이 이 섬은 아주 좋은 상태에 있다. 만
약 당신이 이것을 부정할 수 있다면, 고통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인류를 즉시 멸망시켜버릴 
강한 근거들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예측  가능한 미래에 인류는 10만 명  당 최소한 1명의 
불행한 사람을 포함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불행하지 않은 섬'과 같은 섬이 90조 개나 존재한다고  해도 비극은 아닐 것이다. 각각의 
섬이 아주 행복한 상태에 있는데, 그러한 섬이 90조 개가 있다고 해서 비극이 될 수 있겠는
가? 반면에, 우주에 90조의 사람들이 각각 외딴 섬에 창문이 없는 오두막집에서 마이너스의 
가치를 가진 삶을 살고 있고 오직 7백70억의 사람만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면, 이것은 
매우 비극적일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비극적이지 않은 상황(각각의 섬에 불행하게 
살고 있는 한 사람에 10만 명의 행복한 사람을 추가하는 것과 같은)으로  대체해야 하는 도
덕적 필요가 있지 않을까?
  분명히 그러한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필요는 아주  강할 것이라고 가정해도 안전할 
것이다. 오두막집에는 창문이 없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들을 만드는 것은 불행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질 않는다. 여기서 '달콤한 만족'파 이론가들은, 각각의 섬에 10만  명의 행
복한 사람들을 살게 할 도덕적 필요가 아주 강한지, 아니면 전혀 없는지는 오두막집에 사람
이 살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결론을 변호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은 아
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안과 밖은 서로 아무런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밖에 행복한 사람들을 창조해야 하는 의무가 오두막집 속에 누가 살고 있
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가?
  '달콤한 만족'파의 이론은 아주 잘못된 이론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영(0)을 충분하다고  생
각하는 사람들('행복하게 살 가능성을 가진 사람을 단  한 사람이라도 태어나게 해야 할 아
무런 의무도 없다'고 생각하는)은 그보다 더욱 잘못되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내가 여기에 실수가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확실하게 증명한 것은 아니다. 나는 다
만 어떤 상황에서는 아주 강한 도덕적 필요를 "안전하게 가정할 수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불행한 상황을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불행하지 
않은 상황으로 대체하는 행동은 자명하게 옳은 것에 아주 가깝다. 
  이러한 추론에는 냉혹한 점이 조금도 없다. 삶의 가치가  마이너스인 사람을 추가하는 것
은 그만큼 비극을 추가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주장하는 바는 설사 
그러한 삶을 포함하더라도, 세계는 윤리적으로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10만 
명 중 단 1명이 불행한 것조차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이야기를 각각의 섬에 1천만 
명의 행복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그것도 모자라면  1조×1조×1조 명의 행복한 사
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꾸어보라. 이제는 그 섬이 윤리적으로 불행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그래도 수긍할 수 없다면 '달콤한 만족'파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즉, '불행한 사람이 1명씩 
있는 섬에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게 되면, 실제로 더 좋아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최
소한 덜 불행해질 것이다.'
  나의 주장의 요지는 "불행한 사람을  도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들을 그냥 불행한  채로 
내버려두고, 대신에 행복한 사람들을 충분히 많이 만들어 내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
리 노력하더라도 불행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길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의무는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또, 특별히 비현
실적인 것도 아니다. 불행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면, 태어날 때부터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거나 또는 불구로  태어난 그들을 도우려는 노력
은 오히려 그들의 불행을 연장시킬 뿐인 경우가 있다. 
  이 모든 이야기는 현실의 삶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이미 인구 과잉 상태라, 사람들을 추가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90조  개의 섬에 행복한 많은 사람들
을 채우는 것과 유사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만약 인류가  다음 수백 년 
동안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인류는 은하계 전체로 확산을 시작할  입장에 놓일 가능성이 높
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의무를 매우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만약 창문 없는 오두막집 이
야기가 일리가 있다면, 다른 존재들의 행복과 충돌하지 않는  한 행복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좋다. 
  일부 철학자들은 위치상의 제약이 가해질 때에만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만약 
행복한 삶을 사는 집단이 서로를 영원히 이어나간다고 할 때, 이들 철학자는 시간상의 어느 
위치에서 그 이후로는 우주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왜냐 하면, 그 때쯤에는 충분히 많은 행복한 삶들이 살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간
상의 어느 위치에서 옆으로 퍼져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달리 생각한다. 만약 어느 시점에 우
주에 행복한 사람들이 77조 명 살고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그 시간에서는 충분한 숫자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공간상이 아니라 시간상으로 흩어져 있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 단지 마술적인 것
처럼 보인다. 섬들이 시간상으로 흩어져 있든 공간상으로 흩어져 있든 간에, 항상 창문이 없
는 오두막집 이야기는 잘 성립한다.
 
  공리주의의 반대자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나는 "공리주의"를 아주 강하게 옹호한다. 나는 어떤 행동이 칭
찬받을 만한 요소를 지닌 것과 그 결과의 선 사이에 아주 강한 연관 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다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염두에 두고 있다.
  첫째, 아주 불행한 결과(예컨대, 인류의 멸망과 같은)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아주 작은 
위험조차 매우 큰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다. 둘째, 대리자는 양심을 따르는 것에 대해  격려
를 받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방향을  잘못 잡은 양심을 가진 것에 대해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어떤 삶이 '행복한가' 물을 때, 단순히 삶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지 물을 필요는 없다는
(비록 기쁨은 매우 중요한 것일 수 있지만) 사실을 기억하고 나는 얼마나 많은 행복을 현실
에 실현시키도록 노력해야 하는지 제한을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모두가 불
행해지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거나,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보통 사람
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철학자들은 어렴풋하게나마 위의 노선을 따르는 모든 사고방식에  반
대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인류를 계속 존속시키는 데에 어떠한 도덕적 의무도 있다고 인정
하지 않는다. 설사 손을 한 번  흔드는 것만으로 은하계를 정복하는 1조  명의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들은 손을 흔들어야 할 의무는 조금도 없다고 본다.
  또 그들 중 상당수는 공리주의를 배격함으로써 인류를 존속시키는 경우를 조금이나마  강
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혜택을 최대화시키라고 촉구하는 공리
주의자는 도덕적인 확실성이 없을 때마다 마비되는 이론이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범죄
자인지 선량한 사람인지 전혀 개의치  않는 이론, 또는 사소한 현재의  다양한 이익을 위해 
미래 세대의 행복을 큰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수백 년 후의 1백만 명의 죽음이  내일 한 사
람이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실제적으로 미래를 평가절하 함으로써)이론
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공리주의를 쉽게 깔아뭉갠 그들은 후손을 위한 혜택(혜택의  최대화만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별로 만들어내고  싶지 않은 혜택)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온갖 
신기한 이유를 찾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사자(死者)의 유언을 존중해야  한다는 필요에서,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손자에 대한 사랑이 손자들 역시 손자를 갖는 기쁨을 누리겠
다는 바램과 논리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후세의 손자들 자신들도 단지 
가능성만을 가진 것에서 좀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에서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으로 분류된다.
  그 결론은 조금도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인류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의무는 이론적으로는 
인정되지만, 미래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지에 대한 불확실성, 이미 존재하고 있
는 사람에 대한 애틋한 관심, 오염 통제와 같은 일이 비민주적으로 강제되어야 할지 모른다
는 생각 등 수많은 고려 사항에 의해 침식된다. 가끔  인류 역사를 오랫동안 연장시키는 것
은 '가치 없는 반복'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고문은 점점 더 잔혹해질 것이고,  고문에 고통받
는 사람도 점점 더 많아질 것이지만,  행복한 사람들을 추가함으로써 우주의 선(善)이  조금 
나아지는 것은 21세기 초에 이르면  상한선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류의 
존속을 끝내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을 공공연히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
나 그러한 결론을 끌어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글로버(J.Glover)가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은 "가능한 일 중에서 최악의 일이 될 것"이라는 
정반대의 결론을 이끌어낸 것은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글로버를  비롯해 수십 명의 사람들
은 매우 고무적인 예외인 반면에, 이 분야에 종사해온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마음에 들지 않
는 결론을 끌어내왔다. 예들 들어, "우리는 미래의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무도  갖고 있
지 않다"는(따라서, 예컨대 불필요한 수소폭탄을 거대한 콘크리트로 덮인 구덩이 속에 넣어
두어 수백  년 후에  폭발하도록 하는  행위도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전혀 없다는)  톰슨
(T.H.Thompson)의 기분 나쁜 주장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이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 대해 아무도 동정적인 관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그의 
기이한 노력을 생각해보라.
  이것은 아무도 맥주를 진짜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부질
없는 짓이기도 하지만, R.루틀리와 V.루틀리가 잘 진단한 질환의 한 예이다. 왜 현대의 많은 
이론가들은 미래의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한 의무를 부정하는가 하고 그들은 
반문했다. 그것은 이들 이론가들이 의무를 "어떤 것(예컨대,  계약)을 하거나 실패하는 것에 
따라 조건적인 것으로 간주하거나, 또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특징(예컨대, 사랑, 
동정심, 공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 이론가들이 옳다면, 윤
리적 요구를 제거하는 일이 얼마나 쉽겠는가! 당신은 그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선언
하기만 하면 된다.
 
       제5장 - 종말론
    1. 인간중심적 논의와 베이스의 추론
  고양이 이야기      
  우리는 어색해보이는 이론보다는 관측 결과와 잘 일치하는 이론을 선호한다. 밤중에 잠이 
깬 당신에게 두 가지 이론이 떠올랐다고 하자. 당신의 판단으로는 각각의 이론이 옳을 가능
성은 반반이다. 첫 번째 이론은 뒷문을 열어놨다면 이웃집 고양이가 당신의 침실에 있을 확
률이 10퍼센트라고 예측하고, 두 번째 이론은 뒷문을 닫았다면 그 확률이 0.01퍼센트라고 예
측한다.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켰더니 고양이가  방안에 있다. 이제 당신은 당연히 첫  번째 
이론을 선호할 것이다.
  다음에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관측되는  지점을 생각해보자. 만약 인류가  지금의 크기로 
앞으로 수천 세기 이상 계속 생존한다면, 우리는 전 인류(지금까지 태어났고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들)가운데 예외적으로 아주 일찍 태어나 어쩌면 전 인류의 0.01퍼센트에 해당할지 
모른다. 반대로, 인류가 조만간 종말을 맞이할 운명이라면(오존층이나 수소폭탄 등을 고려할 
때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다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 최근의 인구 
증가 때문에, 지금까지 태어난 인류의 약 10퍼센트가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리가 인류의 인구 역사에서 아주 예외적인 지
점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오존층이나 수소폭탄 등을 감
안하여 제시된 근거들이 더욱 강해져, 인류가 정말로 곧 멸망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지 않
을까?
  대답은 '그렇다'인 것처럼 보인다. 세계가  결정론적이라면, 그러한 근거들은 매우  강해진
다. 반대로, 세계가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이고, 또 그  비결정론적인 요소들이 인류가 얼마
나 오래 생존할 것인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면, 그 근거들은 상당히 약해질 수  있지만, 
불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그러한 근거는 그 자체가 아무런 힘도  갖고 
있지 않다손 치더라도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잠시 후에 설명하겠지만, 수소폭탄이나  오존층
을 고려할 때 얻었던 것과 같은 위험의 평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관측된 자신의 시간상 위치로부터 이러한 방법으로 뭔가를 알아낼 수 있다
는 것을 모순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주론에서 '인간중심적' 추론에  익숙한 사람들은 내가 
방금 언급한 '종말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사실, 이것을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브랜던 카터('인간중심의 원리'라는 말을  고안해낸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학자)였다.  카터는 
가끔 나에게 편지를 써서, '카터-레슬리의 종말론'에 대한 의견을 묻곤 했다. 그것은 칭찬이
나 지지뿐만 아니라, 결코 끊이지 않을 비난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두  사
람은 종말론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종종 받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어떤 점에서 그 비난은 이상하게 생각된다. 이 논쟁은 분명히 확률론이라는 분야에 확
고한 기반을 두고 있는데, 확률론은 워낙  어려운 영역이라서, 그 속에서 확실한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사람들은 종종 누가 옳은
지 판별하기 가장 어려울 때 가장 공격적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중심적 논의들
  카터가 처음 제기한 인간중심의 원리는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것들을  우리가 관찰자로
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다. 카터는 그  후 '인간중심
의 원리'라는 이름은 잘못 붙여졌다고 말하곤 했다. 이  원리는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에 존
재하는 모든 관찰자에게 적용된다. 이 원리는, 지능이 충분히 발달하여 관찰자가 된  생명체
들은 그들 자신이 위치한 장소와 시간에서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출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남편이 있어야 아내가 된다"는 것처럼 진부한 진리이긴 하지만, 이것은 흥미있는 이론을 
낳을 수 있다. 예컨대, 대부분의 위치에서는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가 있는 시공간적 위치가 아주 특별하다는 이론이 있다. 관찰 행위는 아주 특별한 환경에서
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디키(R.H.Dicke)가 이미 해왔던 생각이다.  아주 큰 수 
10의 40제곱은 우주론적으로 중요한 몇몇  방정식에 등장한다. 이 사실에 주목하여,  에딩턴
(A.S.Eddington)은  10의  40제곱과   관련된 물리학이론을   발전시켰으며,  그   후 디랙
(P.A.M.Dirac)이 그것을 모방했다.
  중력의 측정값에 대한 우주의 현재 나이는 그 큰 수가 포함된 관계식이 성립한다. 디랙은 
그 관계는 항상 필연적으로 성립한다고 제안했다. 만약 그렇다면, 중력은 변하고 있는  셈이
다. 중력은 우주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더 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디키는 이  분야에
서 유일한 필연성은 관찰상의 필연성뿐이라고  주장했다. 관찰자들은, 무거운 원소들  (특히 
탄소)이 별 속에서 생성되었다가 별들이  폭발하여 우주공간으로 흩어진 후인  대단히 늦은 
시간에야 자신의 존재를 발견할 것이다. 또한, 별의 복사 에너지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다 타버리지 않은 별이 하늘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디키는 
중력이 변하지 않더라도 현재의 중력의 세기는 디렉의 방정식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고 계산
했다. 
  인간중심의 원리를 좀더 대담하게 사용한 사람은 휠러(J.A.Wheeler)였다. 휠러는 진동하는 
우주를 상정했다. 수축된 물체가 다시 튀어오르는 것처럼 각각의 빅 뱅(Big Bang:대폭발)뒤
에 빅 스퀴즈(BIg Squeeze:대수축)가 따르고, 새로운 빅 뱅이 다시 일어난다. 엄청난 압축이 
일어나는 순간에 우주는 그 전에 지녔던 성질들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우
주는 무작위로 정해진 성질일 지닌 채 폭발한다. 입자들의 수는 각 폭발시마다 달라진다. 우
주의 팽창 속도도 마찬가지이다. 강한 상호 작용에 대한  전자기력의 비아 양성자의 진자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로 생겨난 총체적인 우주의 성질이  생명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경우는 진동 우주에서 매우 희귀한  경우에만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관찰자 선택효과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시대에서만 생명체가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장
해 준다.

  확률론적으로 고찰한 인간중심의 원리
  관찰 행위의  전제조건이 완전히  확고한 것은  아니다. 블랙  홀의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를 생각해보자. 호킹에 따르면, 블랙  홀은 양자론적이고 임의적인 방법으로 모든 
종류의 입자들을 방출한다. 블랙 홀의 거대하고 풍부한 창고에서는 텔레비젼이 튀어나올 수
도 있다. 심지어는 찰스 다윈도 튀어나올 수 있다. 여기서 호킹이 말하는 것은 물론 진짜 옛
날의 다윈이 아니라 다윈가 똑같이 생긴  사람(블랙 홀 밖으로 나와서 다윈과  똑같이 행동
할)을 말한다. 그러나 관찰자들이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을 발견할 경우는 아주 드물다는 것
은 확실하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표현에 따르면, 인간중심의 원리는 자신을 발견하는  장소
가 어디인지를 고려한다. 
  빅 뱅의  처음 몇 분 동안  블랙 홀의 가장자리에서 다윈처럼 블랙 홀  밖으로 튀어나온, 
지능을 가진 어떤 생명체들이 존재했다고 가정해보자. 충분히 거대한 우주에서 그러한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아직 아무도 그 한계조차 정하지 못했다. 내가 우
주의 역사에서 훨씬 뒤의 시대에  존재한다고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못 된다. 관찰자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발견될 시공간 지점에서 자신도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할 것이다. 
  또, 지능을 가진 거의 모든 생명체가 물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수많은 별들이 빛을 발하는 
시대의 행성에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디렉에 반대하는  디키의 주장은, 생명을 촉진시키는 
별들이 훨씬 나중의 시대에는 전혀 빛을 내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성립될 수 없다). 그렇
다면 우리가 물이 있는 행성에 살고 있고,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본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
이 아니다.
  지리적 위치의 경우와 비교해보자. 창문이 없는 방에서 살고  있는 당신에게 건망증이 생
겼다고 하자. 인구가 적은 소도시인  리틀푸들과 런던 중에서 당신은 어느  곳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까? 리틀푸들의 인구가 50명인 반면에 런던은 1천만 명이라는 것을 
당신이 기억하고 있고, 당신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이 숫자들뿐이라고 가정하자(자신이 두 
곳에 가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떠오르지 않고, 리틀푸들의 안개가 건망증을 유발시킨다는 
이론도 알지 못한다).
  당신은 자신이 런던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두곳  중 인구가 더 
많은곳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선호해야 할 이유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쪽
에 내기를 걸도록 강요당해서, 자신이 리틀푸들에 있다는 쪽에 걸었다고 가정해보자. 두  곳
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건망증에  걸려서 당신과 똑같이 내기를 건다면,  이기는 사람은 단 
50명인 반면, 지는 사람은 1천만 명이나 된다. 따라서, 런던 쪽에 거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
으로 보인다. 리틀푸들보다는 런던에 있을 확률은 당신이 갖고  있는 증거를 바탕으로 계산
할 때 1천만 대 50이다.
  당신이 런던에 있다면, 바로 당신을 런던에 있게끔 한 수많은 특별한 원인으로부터 이 사
실을 도출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특별한 원인에 바탕한 설명이 옳을  가능성은, "더 
많은 사람들이 런던에 산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도 그 곳이
다"라는 말이 지닌 합리성과 거의 비중이 같다. 다음 경우들을 비교해 보자.
(1) 두 개의 주사위를 동시에 던져 둘다  6이 나오게 하는 데 실패했다. 왜 다른  눈들(예를 
들어, 4와 2)이 나왔는지를 설명하는데 에는 온갖 세부적인  이유들(떨어질 당시의 위치, 속
도, 풍속, 책상 표면의 고른  정도 등)이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 둘 
다 6이 나올 확률은 36분의 1밖에 안된다는 것으로 당신의 실패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2) 7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모두 딸은 아니라고 하자.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세부적인 
설명이 없더라도, 당신은 당연히 그러리라고 예상하지 않겠는가?
(3) 같은 단면적을 가진 정사각형 쐐기가 왜 동그란 구멍에는 맞지 않는지 알고자 할 때, 쿼
크와 전자의 세부적인 운동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 비슷한 예로, 왜 당신이 길이 33.84센티
미터의 물고기를 잡지 못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당신이 잡은 한 마리 물고기의 이력을 완전
하게 알 필요는 없다.
  이번에는 건망증 때문에 런던의 인구가 더 많은지 의심스럽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런
던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 의심은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인구가 더 많기 때문에,  런던
은 당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더 많은 곳이다.  런던과 리틀푸들이 당신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데, 리틀푸들에서 당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런던은 가공의 도시였다
는 사실이 강하게 부각될 것이다.
  우리는 페르미(E.Fermi)가 던진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유명한 질문을 검토할때에
도 비슷한 추론을 사용할 수 있다. 왜 우리는 외계  지능체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까? 시공간 전체로 보면, 기술적으로 진보한 문명 사회들이 아주 많이 존재하지만, 내가  살
고 있는 지금의 이른시간대에는 아주 극소수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이론상으로는 이 시나리오가 옳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발달한 문명 사회
의 관찰자가, 기술문명 사회들이 훨씬 많이 존재할 그런 시기를 제쳐두고, 이른 시기(문명의 
규모도 작고 그 수도 적은)에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이것은 그 시나리오가 틀렸
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것은 내가 속해 있는 기술문명 사회가 아주 이른 시기
에 있지 않음을 의미할 수 있다. 많은 다른 문명들은 아마도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알기 전
에 너무 빨리 멸망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주의 전  역사를 통해, 단지 극소수의 기
술문명만이 발달하도록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속한 기술문명 사회가  우주에서 
최초의 기술문명 사회일 가능성도 있다. 어떤 기술문명 사회는  우주의 전체 시간을 통틀어 
존재할 수조×수조×수조개의 기술문명 사회 중에서 공교롭게도 가장 최초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그러한 곳(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명 사회 가운데 최초의 문명 사회)에 
속하는 것으로 믿어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말기 바란다.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아주 강한 근
거들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은.

  카터의 놀라운 주장
  1980년경에 카터가 지적한 것과 같이, 우리가 그러한 추론을  조금만 확장해보면 거의 모
든 사람에게 충격을 주는 결과를 얻게 된다. 전형적인 '인간중심적'추론은, 당신이 지능을 가
진 어떤 생명체라는 가정하에 당신이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하는 문
제를 다루지만, 그것을 더 좁게 적용해 특별히 인간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
류 역사의 시간대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을 찾을 가능성이 높은 곳은 어디인가? 인구가 비교
적 적었던 이른 시기일까, 아니면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난 훨씬 나중의 시기일까?
  카터는 이 질문을 "의심의 여지가 있는 기술적 가정에 얽매이는 일없이  인간중심의 원리
를 적용하는 경우"인 동시에 또한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적용"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카터가 출판한 저서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나의  글에 대한 답장으로 보낸 그의 
편지에 적힌 것이다. 내가 그러한 글을 카터에게 보낸 것은 소문에 들리는 것처럼 인간중심
적 논의들이 원래 그의 이론인지 아닌지 말해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카터의 편지는 그 이
론이 정말로 그의 것임을 확인시켜주었지만, 나를 제외하고는 그것을 확인하려는 사람은 아
무도 없었다. 그는 "당신이 처음인 것 같다"고 편지에 썼다. 그런데 그 후에, 안드레이 린데
(Andrei Linde)가 거의 같은 시기에 닐센(H.b.nielsen)이 발표한 다소 유사한 이론을 언급해 
나의 관심을 끌었다.
  카터의 글이 출판되지 못한 주 원인은, 그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 중 몇몇 예외적인 경우
를 제외한 대부분이 "인간중심의 원리를 다른 원리들에 비해 특별하게 적용하는  것을 받아
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카터는 설명했다(인간중심의 원리에 대한  반대는 놀라울 
정도로 많다. 우리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 우주 전체에서 아주 특별한 것일 수 있
다는 흄과 칸트의 주장이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키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예들 들어, 
지능을 가진 생명체는 행성의 표면에서만  생길 수 있다거나 빅  뱅으로 생겨난 이 우주가 
1∼2년 안에 다시 붕괴했더라면 우주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격렬한 분
노를 불러 일으키리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관찰자가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 인간중심의 원리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
지를 강조한 1983년의 한 강의에서, 카터는 종말론을 소개하면서, 원자력 잠수함의 지휘관은 
이런 생각에 익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의 강의 내용을 출판한 책자에서는 "사람
이 만든 생태학적 재앙과 같은 예를 인간중심의 원리와 관련해서 다룰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단지 암시하는 데에 그쳤다.
  종말론은 인류가 곧 멸망한다고 단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얼마 안 가서 
멸망할 위험이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는 클지 모른다는 어쩌면 훨씬 더 클지 모른다는 제
안일 뿐이다. 인류가 아주 먼 장래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에 설사 종말론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우리의 확신은  거의 흔들리지 않을 것
이다.
  만약 세계가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이라고 한다면, 종말론은 잘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들은 계속해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종말론(doomsday argument)'이라는 이름을 프랭크 티플러(Frank Tipler)에게서  처음 
들었는데,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인류가 곧 멸망할 것이라는 위
험을 우리가 체계적으로 평가절하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인간중심적 논의들"이란  이름은 너
무 긴 듯싶다.
  카터의 1983년 강의의 주제는, 어떤 과정(예를 들어, 3개의 주사위를 던져 한  번 이상 전
부 6이 나오게 던지기)이 일어나기 매우 힘든 사건을 포함하고 있고, 주어진 시간(30회 던지
기)안에 성공할 가망이 거의 없어 보일 때, 그것이  성공할 기회는 대개 그 시간이 끝날 무
렵이라는 것이다. 카터는 이것이 인류가 생겨나게 된 진화에 걸렸던 시간과 그 때부터 우리
의 태양이 불안정하게 될 때(몇십억 년 후의 미래)까지의 시간이  거의 일치하는 것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이와 관련된 '인간중심적 예언'은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갖은 종
이 드물다는 것이다. 생명이 태어날 수 있는 행성들이 수많이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과 같은 
지능이 그렇게 빨리 진화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주장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걱정스러운 주장을 단지 암시만 했던 그의 강의 출판본의 내용과는 매우 다르다.
  나와 카터는 이렇게 묻고 있다. 인간 관찰자는 시간상의  어디쯤에서 자신을 발견할 가능
성이 높은가? 인류가 인구의 감소 없이 수만  년 동안 생존한다면 당신과 나는 전 인류  중 
최초의 0.01퍼센트, 심지어 0.00001퍼센트에 속할 수도 있다.  반대로, 전쟁이나 환경오염 또
는 준안정 상태에 있는 스칼라장을 교란시켜 모든 것을 죽일 수 있는 고에너지 물리학 분야
의 실험으로 인해 인류가 조만간 멸망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시나리오에서 당신과 나는 평
범한 사람이 된다. 지금까지 태어난 전 인류 가운데 약 10퍼센트의 사람이 지금 바로 이 순
간 살고 있기 때문이다(인류가 내일 종말을 맞게 된다고 해도 당신과 나는  매우 특별히 늦
게 태어난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전체 인구 중 약 10분의 1이 우리와 함께 늦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크기를 모르는 도시에 도착해서 '179'라고 표시된  전차를 보고서 그 도시에는 전
차가 1백79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다소 엉뚱한 상상이겠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인
류가 멸망을 맞이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문제이다).
  시공간을 조사해 보면, 우리는 우리 종이 시작된 초기 시대부터 대략 20세기 말까지의 지
점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반면에, 더 나중 지점에서 자신을 발
견하게 되리라는 데에는 어느 누구도 확신을 가질 수없다. 20세기  말 전후에 존재하는  사
람들과 더 나중에 존재할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카터와 레슬리는 확률 계산에 사용되는 베이스(Bayes)의 법칙이 여기에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인류가 곧 멸망한다는 모든 평가의  확률을 증대시키는 작용을 한
다.
  제비뽑기에서 당신이 1등 또는 2등 또는 3등 상을 탔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제비
뽑기통 안에 그 세 가지 외에 아무리 많은 이름들이  들어 있다고 해도, 누군가는 1등, 2등, 
3등 상을 탈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류가 아무리  오랫동안 지속된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은 
가장 일찍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이름이 맨 처음에 나온 3개의 이름 가운데 있다면, 
제비뽑기통 안에는 겨우 몇 개의 이름만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굳혀줄 것이다. 
  실제로 복권에서 당첨된 사람만이 다음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내가 당첨될 
수 있었을까? 단순히 운이 좋았을까. 아니면, 복권 회사에 있는 내 친구가 손을 쓴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처음부터 겨우 몇 개의 이름만이 들어 있었을까?"
  이것은 결코 어리석은 질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 물음들은 진짜 당첨자가  당첨됐다는 
확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을 다른 가능성과 연결시키려는 혼동을 겪고 있다. 복권  회
사에 있는 친구를 의심하는 것은,  바보나 물을법한 "실제로 당첨된  사람이 당첨될 확률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어리석은 반응이 아니다. 제비뽑기통  안에 단 몇 개의 이름만
이 들어 있었다는 의심 역시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한 출판업자가 경품으로 3백 달러에 해당하는 책
을 주는 추첨식 판매를 조직했다. 그런데 신청자가 작성해야  하는 방대한 신청서를 보고서 
나는 그런 수고를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신청서를 
작성했고, 2주일 후에 3백 달러 상당의 책이 집에 도착했다. 나의 의심이 옳았던 것이다.
  이러한 의심은 당첨되기 전에 내가 추첨식 판매를 몰랐다고 해도  정당화 될 수 있다. 다
른 사람이 나 대신 경품을 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경우에도 내가 조만간 경품의 운명
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의  당첨 유무에 상관없이 나의 의식은 정당화된다.  이것은 
물론 의미심장한 조건이 된다. 내가 당첨된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처음으로 추첨식  판매에 
대해 들었다면, 이것은 나 대신 누군가가 경품을 탔다는 것만을 안 것보다 더 강하게  '티켓
이 조금밖에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다만, 당첨이 되지  않은 사람들 역시 언젠가 자신
의 티켓 운명을 확실히 알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중요하다. 당첨자를 제외하고 아무도  추
첨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없다면, 자신의 티켓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듣는 것
에서 추론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편, 내가 당첨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실패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당첨자가 당첨되지 않은 사람들보다 미리 알았는지, 후에  알
았는지, 아니면 동시에 알았는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률 이론 대신에 
마술을 믿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티켓을 구입했을 경우에도(가장 단순한 경우
를 가정하여), 나에게는 단지 이 한 장의 티켓을 구입했을 경우에도(가장 단순한 경우를 가
정하여), 나에게는 단지 이 한 장의 티켓 운명이 알려지는 것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역시 아
무런 차이가 없다. 이 분야에서 행한 어떤 확률 계산도 내가 실제 수혜자가 되는 것에 좌우
되는 마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추첨에서 누군가가 당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지적 관점'을 취하는 것도 잘못
이지만, 내가 나라는 것이 그 자체 어떤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
것이 타당성을 갖는 오로지 내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 즉  나의 지식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
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신은 많은 추첨식 판매 티켓이 어떻게 팔리는지를 정확하게 안다. 
그러나 나는 애써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오직 나 자신의 티켓과 그것의 운명을 아는 
것이 보장되었다는 것을 알 뿐이다. 여기에 더하여 개똥이가 티켓을 한 장 샀으며, 내가  그 
티켓의 당첨 여부를 알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개똥이의 티켓이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내 티
켓이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로 '티켓이 얼마 없었다'는 이론을 확인해준다.
  제비뽑기통 안에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면,  모든 당첨자는 자신이 당
첨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통 속에 단지 몇 장만이 들어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강한 
근거를 가지게 된다. 반대로, 모든 실패자는 통속에 많은 티켓이 들어 있었을 거라고 의심할 
여지가 크다. 여기에 모순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선,  실패자들은 통에 하나 이상의 이
름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1등 상의 당첨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3백 달
러어치의 책을 탄 것은 순전히 행운이 작용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추첨
식 판매에 참가한 사람은 내가 유일한 사람이 아닌가 의심된다.
  1천 명의 참가자가 있다는 것을 악마가 안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상황을 '전지적으로' 알
고 있기 때문에 나를 비웃는다. 당첨자는 누구나 나와 똑같이 추론할 것이라고 악마는 생각
한다. 그러나 이것이 알려주는 것은 무엇인가? 단지 악마가 불공정한 논쟁을 하기를 좋아한
다는 것뿐이다. 악마의 지식을 가지지 않은  나의 추론은 빈약한 것이 아니다. 나는  악마가 
가진 증거가 아니라 내가 가진 증거를  바탕으로 확률을 평가해야 한다. 왜냐 하면,  잘못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는 이제 더 이상 이전처럼  내 이름이 통 속에 들어 
있는 유일한 이름이라고 확고하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자.
  이 경우에 추첨식 판매가 계속 반복된다면, 이전에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아는 것이 나
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두 번에도 내가 또 당첨되더라도, 첫 번째 경우와 똑같
은 추론을 사용해야 하며, 확률 평가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게 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
로, 연속적으로 30번 계속 당첨되었다 해도, 통 속에 항상 수백 장의 티켓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의심할만한 어떤 추가적인 이유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악마가 비웃을까 두려워하
여 이렇게 우스꽝스러운(경험에서 진실을 배우려는 노력에  대해 터무니없이 절대적인)결론
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베이스의 추론
  베이스의 법칙은 수학적인 법칙이다. 그것은  증거 e를 바탕으로 한 가설  h가 옳을 확률
은, 그 가설이 실제로 옳을 경우에 우리가 그러한 증거를  얻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냐에 따
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널리 적용되는 상식이다. 증거는 당신이 추첨에 당첨되었다거나, 화살에 맞았
다거나, 개에 물렸다거나, 관찰한 차가 빨간색이라거나, 다른  어떤 영역의 것이라도 가능하
다. 가설 역시 어떤 영역에서도 나올 수 있다. 제비뽑기통 속에 매우 적은 수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는 것도 많이 들어 있었다는 것도 가설이 될 수  있고, 화살이 겨냥된 것이라거나 무
작위로 발사된 것이라는 것도, 그리고 빨간 차가 많다는 것도  거의 없다는 것도 전부 가설
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수학적 공식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다음 두 가지 사
항을 명심하기만 하면 된다. 
 (A) 우리가 실제로 관찰하는 다양한 사실들을 더 잘 예측해주는 이론들을 선호해야 한다.
 (B) 설사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과 같은 것을 관찰하게 될 것이라고 잘 예측해주는 이론이
라 하더라도, 어떤 이론들은 너무나 황당하게 하거나 이미 수집된 모든 증거와도 어긋나 도
저히 신뢰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선녀 같은 대모(代母)가 있다면,  그
녀는 틀림없이 당신의 은행 계좌에 1백만 달러를 입금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 계좌에 1백
만 달러가 입금되었다고 해서 선녀 같은 대모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에는 불충분하다.

  우리는 상식적인 방법으로 (A)와 (B)를 확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A)와 (B) 사이의 상호 
관계를 판단하는 수학적 절차가 있다면 훨씬 유용할 것이다.  그리고 매 경우마다 베이스의 
법칙은 꼭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제비뽑기통의 경우와 같이 몇몇 경우에는 베이스의 법칙이 유용하다는 것을 아주  확실하
게 증명할 수 있다. 반면에, 다른 경우들에서는 그것이 단지 매우 그럴 듯해 보이거나, 최소
한 베이스의 법칙을 적용하는 것이 수학적으로  정교하지 않은 방식으로 (A)와 (B)가 옳다
고 주장하는 것에 못지 않게 합리적이라는 것을 시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럴 듯해 보일 
수도 있다. 
  가장 단순한 공식들 중 하나에서  베이스의 법칙은 네 가지 확률  P(h, e), P(h), P(e, h), 
P(e)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 중 P(h,  e)는 증거 e를 고려할 때 가설 h가  옳을 확률이
다. 그리고 P(h)는 가설이 옳을 '사전 확률'(prior probability:증거 e를 고려하기 전에 가설이 
옳을 확률)이고, P(e, h)는 가설 h가 실제로 옳을 경우에 증거 e를 얻을 확률이다. P(e)는 옳
은 가설 또는 틀린 가설을 가질 확률이다.
  베이스의 법칙에 따르면, 첫 번째 확률은  두 번째 확률과 세 번째 확률을  곱한 것을 네 
번째 확률로 나눈 값과 같다. 이것은 내가 앞서 말했던 것이다. 즉, 증거 e를 고려할  때, 가
설 h가 옳을 확률은, 그 가설이  실제로 옳을 경우에 우리가 그러한  증거를 얻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다른 말로 한다면, "어떤  이론이 옳
을 경우에, 당신이 본 것을 볼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고려하라."
  이 책은 수학 논문이 아니므로, 그 법칙의 약간 더 복잡한 형태의 식을 간단히  적어놓고, 
각각의 경우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보자. 이 형태에서 P(h, e)는 다음 공식과 같다.

 [P(h) P(e, h)] [P(h) P(e, h)+P(not h) P(e, not h)]

  이 공식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당신의 이름이 들어 있는 통 속에 1천 개의 이름이 들어 있을 확률은 98퍼센트이고, 단지 
10개만이 들어 있을 확률은 2퍼센트라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사전' 확률은 어떤 이름을 뽑
기 전에 두 가지 확률 중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있는지를 고려한 나의 개인적인 추정(아주 
훌륭한 근거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이다(나는 1백 개의 똑같은 통 속에 내 이름
을 집어넣는 것을 지켜보았을 수도 있다. 99가지 경우에는 내 이름말고도 9백99개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수도 있다).
  다음 순간, 처음 뽑은 3개의 이름 중에 내 이름이  포함됐다면 어떻게 될까? 베이스의 계
산은 새로운 추정치를 제공한다. 통 속에 단 10개의 이름만이 들어 있을 '사후' 확률은 다음
과 같이 계산된다.

 [2% 3/10] [(2% 3/10+(98% 3/1000)]

  이것은 약 67퍼센트이다. 이제 1백분의 2라고 추정했던 확률은 3분의 2 이상으로  커졌다. 
통 속에 1천 개의 이름이 들어 있다고 큰 확신을  가졌지만, 단 10개의 이름만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행한 계산들은 인류가 곧 멸망할 것이라는 위험이 일반적으로 과소
평가되어왔다는 것을 시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통  속에서 이름이 나오는 경우가 생명
체가 세상에 태어나는 경우와 충분히 유사한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서, 이 경우에 
베이스의 법칙을 유용한 지침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한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통 속에 1천 개의 이름이 있었는데, 어떤 이름이 처음  나온 3개의 이름 중에 포함되었다
면, 그것은 아주 예외적으로 일찍 나온 셈이 된다. 시공간에 수십조, 수백조나 되는 많은 인
간들이 흩어져 있다면, 20세기 말경에 태어난 사람은 아주 예외적으로 일찍 태어난 셈이 된
다. 각각의 경우에 대해 우리는 비슷한 추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종말론의 계산'
  이 분야에 베이스의 수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실,  수
학을 사용하기 위해 도입한 단순화 과정(예를 들어,  복잡한 가능성의 범위를 단지 두 가지
의  선택만을 가진 조잡한 '2개의 통'을 사용하는 것)은 베이스의 방법보다 비수학적 상식을 
선호하게 할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귀납 논리(경험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하는 
논리)에 대한 몇 가지 기본 사실들을 고려함으로써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 예측이 우리가 
실제 경험하는 것과 더 잘 부합하는 이론들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아
무것도 배울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개에게 물렸다면, 당신은 그 개가 사람을 자주 문다는 의심을 증가시키게 된다. 당
신이 화살에 맞았다면, 화살이 멈춘 지점은 그 화살이 당신을 겨냥한 것이라는 이론을 뒷받
침해주는 근거로 생각할 수 있다. 길 모퉁이를 돌아가는 빨간 자동차를 봤다면, 그것은 빨간 
차가 꽤 많다는 가설을 강화시켜주는 사건으로 취급할 수 있다. 불은 아픔을 가져온다는 생
각에 좀처럼 확신을 갖지 못해 계속 불 쪽으로 기어가는 아이는 머리가 나쁜 아이이다.
  이 모든 것은 상식이다. 베이스의 수학으로 포장을 할 수 있지만,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
는 것은 아니다. 수학자가 아닌 사람도  이 분야를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대한 우리의 평가가 종말론에 의해 얼마나 크게 변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종
말론을 고려한 다양하고 실제적인 베이스의 계산들을 살펴보자(인류가 조만간  멸망할 위험
이 n퍼센트라고 하는 것은 인류가 조만간 멸망한다는  이론이 옳을 확률이 n퍼센트라는 말
과 같다).
  문제를 단순화시켜, 서기 2150년까지 인류가 전멸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거나, 현재의  인구 
수준 또는 그 이상으로 수천 세기 동안 생존하거나,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하
자. 또한, 세계는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이 아니라고 하자(왜냐 하면, 비결정론은 나중에 논
의되겠지만, 문제를 심각하고도 복잡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종말이 곧 닥칠 것이라고 판단되는가? 그렇다. 종말이 임박한 경우의 '사전 확률'(즉, 시간
상에서 우리 자신이 관찰된 지점을 고려하기 전에 추정하는  확률)이 매우 낮지 않다면! 베
이스의 계산은 이것을 지지해준다. 예를 들어, 인류가 짧게 존속하는 경우에 어떤 사람이 살
아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확률은 10분의 1이고,  반대로 인류가 오래 존속하는 경우에는 
1천분의 1이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종말이 곧 닥칠 위험, 즉 2150년까지 인류가 멸망할 확률
은 1퍼센트이고, 반면에 수천 년  동안 종말이 지연될 확률은  99퍼센트(앞에서 단지 이 두 
가지만 고려하도록 문제를 단순화시켰기 때문에)라고  생각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가정하자. 
말하자면, 1퍼센트와 99퍼센트는 시간상에서 당신의 위치를 고려하기 전의 확률이다.
  이제는 시간상에서의 위치를 고려해보자. 앞에서처럼 베이스의 법칙을 정확하게 사용한다
면, 종말이 곧 닥칠 위험의 평가는 다음과 같이 수정된다. 
 
 [1% 1/10) [(1% 1/10)+(995 1/1000)]

  즉, 50퍼센트를 약간 넘는다. 종말이 곧 닥칠 확률이 단지 1퍼센트라고 생각했던 데서  이
제 당신은 그 확률이 반반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만약 인류가 2150년을 무사히 넘겨 태양계 너머까지 널리 퍼져서 1천분의 1이라는 수치가 
1백만분의 1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될까? 종말이 임박했다는 위험의 추정치
는 훨씬 더 커져서 거의 99.9퍼센트에 육박한다.
  이러한 수치는 당연히 설명을 위한 것일 뿐이다. 이 수치들은, 당신이 갑자기 종말론이 그
럴 듯하다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당신의 추정치에  얼마나 큰 '베이스 이동'(Bayesian shift)
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종말의 임박이나 종말의 지연이냐를 가르는 날로서 서기 2150년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별도로 해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음 한 세기 반이 아주 위험한 시기가 될 것이라는 생
각은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이 기간에 어떻게든 재앙을 모면한다
면, 인류가 그 후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아 은하를 정복하며 번성할  확률이 높다는 생각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카터의 수학적 주장의 의미는 2150년이 아닌 다른 날짜를 선택
한다 하더라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두 가지 경쟁 시나리오(종말 임박설과 종말 
지연설)에서 오늘날 살아 있는 사람들의 비율을 다른 그럴 듯한 숫자로 바꾼다 해도 마찬가
지이다. 중요한 점은 종말론이 옳다면, 베이스 이동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계산이 근사값 부호 가득하고, 그 부호들이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넓은 범위의 숫
자들을 나타내는 것이라 해도 이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의  이름이 제비뽑기통에서 
나온 "처음 10안에 들었다"거나 "여섯 번째와 열여섯 번째 사이에서 뽑혔다"는 소식이 아직 
통 안에 남아 있는 이름이 "최소한 1천 개"라거나 "1천 개에서 2천 개"라는 주장에 대해 얼
마나 강한 반박력을 가지는지 살펴보자(야구장에 아주 많은 인원이 수용되었을 때, 그 수용 
인원을 정확한 숫자로 알아맞히기가 더 어려운 것처럼, 인류가  존재할 전체 시간에서 인류
의 숫자를 정확하게 알아맞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친구의 호주머니 속에 있는 
돈이 얼마인지 알아맞힐 가능성이 태양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를 정확하게 알아맞힐  가능성
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종말론에서 필요한 것은 정확한 숫자들이 아니다. 근사값과  범위만
으로도 훌륭하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2개의 제비뽑기통' 접근법이 많은 상상 가능한  숫자들(예를 들어, 인류가 2150년에 멸망
한다거나 7257년에 멸망한다거나 94183년에 멸망한다거나 또는 아주 오랜 기간  생존하다가 
54323년에 붕괴되어 단 몇천 명만 살아남는다는 등)을 고려하지 못한다고 너무 격렬하게 항
의하지는 말기 바란다. 그러한 주장은 일리가 있긴 하지만, 큰 관심을 끌 만한 아니다. 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우리가 인류의 인구 역사에서 특정 지점에 태어난 것을 제비
뽑기통에서 우리 이름이 특정 단계에 나온 것과 유사한 것으로 취급할 권리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유사성이 상당히 있다면 어떻게 될까? 카터와 나는 이것을 절망의 메시지로 여기지 않는
다. 왜냐하면, 종말론에 포함된 모든 것은 인류가 곧 멸망할 가능성을 추정하는 데에 관계되
는 베이스이동(베이스의 수학을 싫어한다면 그냥 이동이라고 불러도 좋다.  즉,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기기 보다는 진부한 것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상식적인 평가에
서 나온 이동)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언뜻 보기에는 핵전쟁으로 전 인류가 멸망할 위험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후 수 세기 
안에 예전의 인구를 회복할 것이다. 고에너지 실험을 하다가  준안정 상태에 있는 스칼라장
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돌 교환시킬 위험도  아주 적어 보인다. 우주선(cosmic ray)끼리의 충
돌에서 생기는 에너지는 인간이 이미 개발해낸 어떤 기술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보다 훨씬 
더 강하다.
  카터가 자신의 이론을 통해서  제안한 바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러저러한 위험이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하다는 것을 제대로  다시 평가해야 하며, 
우리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이런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의 
한 예로, 우리는 실험실에서 매우 높은 에너지를 얻으려는  시도를 금지시켜야 할지도 모른
다. 그러나 베이스 이동을 한 후에도 그러한 위험이 여전히 작게 평가된다면, 우리는 인류의 
역사가 곧 종말을 맞이할 가능성보다는, 반대로 우리가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특별히 이른 
시기에 존재할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고 판단하고서, 그러한 위험을 간단히 무시해버릴 수
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카터-레슬리의 종말론은  그 자체만으로는 어떠한 위험 평가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지금까지 다른 방법으로 추정해온 모든 위험 평가치에  베이
스 이동을 적용시켜 그 값을 매우 크게 보아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지금까지 태어난 인간의 수가 오늘날보다 훨씬  더 커지기 전에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탁상공론이 아니다(카터의 이론을 소개했을 때, 닐센이 이 점을 정확하게 인식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만약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면, 비록 '종말론'이라는 이름은 붙였겠
지만, 그가 소개한 이론들은 그와 비슷한 다른 것일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존재론적 주
장을 펼치려는 철학자는 순수이성으로부터 실제적인  사실에 이르려는 시도를 할지  모르지
만, 카터는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베이스 이동은 증가시킬 요소가 이미 존재하고 있을 
때에만 위험 평가를 증가시킬 수 있다.
  우리는 CFC가 오존층에 미치는 효과를  신중하게 살펴보면서 사람들이 CFC사용을 금지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또한, 과학자들이 재난에 현명하게 대처하며, 지구상의 많
은 조들이 종종 천재지변을 겪지만 계속 그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침대에서 평화롭게 임종을 맞는다는 사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만약 여러 위험들이 애초
에 아주 작은 것으로 평가되었다면, 베이스 이동을 한  후에 그 위험이 1천배쯤 증가했다고 
해도 그 위험들은 여전히 작게 보일 수 있다. 반대로  위험들이 매우 크게 여겨진다면 모든 
CFC의 사용 금지와 같은 엄격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우리가 베이스의 계산에 사용되는 데
이터를 변화시킬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카터-레슬리의 이론은  우리가 어떻게 하더라도 인류는  멸망하고 만다고 
떠들어대는 그런 종류의 종말론이 아니다. <원자과학자들의 회보>지에 실리는 '종말시계'는 
인류의 생존에 희망을 주는 발전적 사건(핵무기 경쟁의 완전한 종식과 같은)이 생길 때마다 
시계 바늘이 자정에서 오히려 거꾸로 조금씩 멀어진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시계 바늘이 
자정('시계바늘이 자정에 가깝다'는 것은 '인류가 곧 멸망할  확률이 크다'는 뜻이다)에서 점
점 더 멀어진다고 믿을 만한 일반적인 근거들이 실제로 있을  수도 있다. 아주 위험한 상황
에서도 오랜 시간 살아 남았다는 것은 그러한 위험들이 실제로는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카터는 인류가 21세기에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들을 극복하고 더 오래 살
아남을수록 인류의 미래에 대해 더욱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 적이 없다.
  카터의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내가 제기했던 것처럼,  고대 로마인이 종말론을 사용하더
라도 인류의 수가 곧 0이 된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지 않겠느냐고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첫 번째 답변은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이다.  확률론적 주장에서는 매우 희귀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우리가 시간상으로 아주 이른 시기에  존재한다거나, 눈을 감고 12개의 주사위
를 던지고 나서 -운 나쁘게도 이미 탁자 위에 던져진 12개의 주사위의 눈이 모두 6인데도- 
모든 주사위의 눈이 6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못 판단
하여 잘못된 결론에 이르는 것은 약점이 될 수 없다.  추론 과정이 어리석거나 잘못된 것이 
아닌데도 결론은 잘못 될 수 있다.
  두 번째 답변은 인류가 조만간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로마인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
이다. 만약 인류가 2150년에 멸망한다면, 이  시기는 로마 시대로부터 그리 먼 미래는  아니
다. 종말론은 인류가 내일 당장 멸망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세 번째 답변은 로마 시대에는  엄청난 인구 폭발이 진행되지도 않았고,  또 쉽게 그것을 
예견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네 번째 답변은 로마인들이 인류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근거들이  불충
분해서 그 '사전 확률'이 아주 낮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환경오염, 핵폭탄의 위협, 
항공 교통의 발달로 며칠만에 전염병이 전세계로 퍼질 수 있는 오늘날의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의 경우가 로마인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흥미로운 질문이다.
  우주 전체에 걸쳐 지능을 가진 종들이 과학원리들을 습득하여 인구 폭발이  불가피해지지
만, 한편으로는 인구 폭발과 과학의 발전에서 생기는 다른  위험들에 대해 적절한 예방조처
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능 생물체의 대부분은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가 재빨
리 사라져버릴 종들 가운데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종말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종말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종말론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나 로마 시대에 종말
론을 생각했던 사람에게나, 인류에게 종말이 곧 닥칠 가능성이  다른 방식으로 평가한 것보
다 훨씬 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는 점만으로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 종말론에 대한 반대 의견들
  많은 사람들은 시간만 준다면  카터-레슬리의 접근방법을 납작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반대  의견들을 4개의 그룹으로 분류해 보았다.  특히, 네 번째 
그룹의 반대 의견들은 세계가 분명히 비결정론 적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6장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다.

  첫 번째 그룹
  여기에 속하는 반대 의견은 베이스의 접근방법이나 그와 비슷한 접근방식이 과연  제시된 
결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들이다.

  모든 인간은 많은 점에서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찰될수 있는 지점이 평범
하다는 이론을 선호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물론 인간은 모두 많은 점에서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가 진부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그럴 듯한 이론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
점을 우리가 매우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충분치 못하다. 오존의 감소
와 여타의 위험들을 떠올려보라. 인류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주장은 매우 그럴 듯해 보인다.
  나는 <계간철학(Philosophical Quarterly)>지에서 카터의 주장이  "완전히 귀납적이지 못
하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은 틀린 말이다. 모든  훌륭한 귀납적인 주장(실제 경
험을 바탕으로 세운 주장)은 다양한 가설들이 그럴 듯한가 그렇지 못한가를 고려해야 하며, 
베이스의 법칙은 종종 그 방법을 보여준다. 이 목적을 위해, 더 나중의 시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이른 시기에 발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는 가설은 다른 가설들과 동등하게 취급된다.
  귀납적 추론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딱 부러지는 결론을 내놓지  못한다. 물론 베이스의 추
론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전혀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 이론(동화 같은 대모 이야기, 쇠
못과 자석은 서로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꼭 붙어 있으려 한다는 이론,  인류가 35초 안에 
멸망한다는 이론,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한 것 때문에 21세기에 멸망한다는 이론 등)에는 전
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이론들이 만약 옳다면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을 보
게 될 가능성을 크게 높여 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이 지닌 터무니없는 성격은  '사
전확률'의 정확도를 매우 낮게 만들어버려, 우리가 실제로 보는 것을 예언하는데 성공한  것
을 베이스의 방법으로 고려한 후에도 이 이론들이 옳을 가능성은  여전히 아주 작다(더군다
나 그러한 이론이 많으면 많을수록 각각의 이론이 지닌 매력은 줄어든다. 만약 어떤 이론이 
옳다면 다른 이론은 틀린 것이다. 틀린 이론을 여전히 옳은  이론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
다고는 봐 주지 않는다).
  종말론에서 우리가 특별히 일직 태어났을 가능성을 고려할 때, 물론 이것은 우리가  '지금
까지 존재해온 모든 사람들'중에서는 다소 늦은 시기에 태어난  평범한 존재일 가능성을 부
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태어난  전 인류의 약10퍼센트가 현재 지구  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인류의 인구 역사에서는  우리가 있는 지점이 아주 평범하지만,  인류가 
현재의 크기로 수천 년 이상 계속 살아간다면 우리는 더 이상 평범할 수 없다는 것이  종말
론이 물고 늘어지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류의 전체  시간에서 특별히 이른 시기에 
있다는 사실은 왜 그토록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이 질문에  대해, 지금의 인류가 특별히 이
른 시기에 있다는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카터와 레슬 리가 그들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지 않으며, 또한 결론에서도 그것을 주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사
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종말론을 고려하기 전에 인류의 종말이  곧 닥칠 확률이 매우  낮다고 생각했다면(인구가 
계속 증가해왔다는 단순한 사실만 봐도 인류가 전멸하기는 어렵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 종
말론에서 사용하는 베이스의 계산을 거친 후에도 여전히 당신은 인류의 종말이 곧 닥칠 확
률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실들(예컨대, 시간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에 대
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하며 젖혀놓는 대신에 설명을  특별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상당히 그럴 듯한 설명이 마음속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또, 종말이 
곧 닥친다는 주장이 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는 상인의 엄지 손가락 원칙을 따라야 한다. 도박장에 들른 손님이 그저 우연
으로 생각하지 않고 카드 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경우는 언제인가? 그  카드판이 
속임수를 쓰기 쉬운 판이거나, 들고 있는 카드패가 딜러에게  굉장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 
확실하거나, 딜러가 크게 이겨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 경우 등이다. 처음에는 시시해 보여서 
특별히 설명이 필요 없었던 포커판이 어느 순간 백만 달러가 왔다갔다하는 상황이 되고, 딜
러가 여러 장의 다른 카드를 숨겨두었다가 별게  아닌 자신의 카드 패를 아주 유리한 패로 
조작했다고 생각될 때에는 매우 특별하게 보일 것이다. 그밖에도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하
고 넘길 수 없는 경우는 많다. 하필이면 당신이 아치 밑을 지나갈 때 아치가 무너졌다면 거
기에 뭔가 의혹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와 같은 때는 언제인가? 아마도 당신의 연적이 덤불 
뒤에 숨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일 것이다.
  비단옷을 보여주는 상인이 엄지손가락의 위치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엄지손가
락이야 여기에 놓일 수도 있고 저기에 놓일 수도 있지만,  상인은 비단옷을 팔 욕심에 엄지
손가락으로 구멍을 가리고 있다. 우리가 시간상의 어느 지점에 존재해야 하며, 누군가는  가
장 이른 시기에 태어나야 한다고 그냥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주
는 것이 상인의 엄지손가락 원칙(베이스의 법칙이라는 옷을 입고 나타날  수 있는 원칙이지
만, 이것은 우리의 두뇌속에 상식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이다.
  결국에는 인류가 곧 멸망하리라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류의 시공
간상에서 특별히 이른 시기에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장 합리
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터의 종말론은 분명히 인류에게 곧  종말이 다가올 가능성이 우
리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왔던 것보다는 더 크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경험한 일을 
왜 경험하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아주 그럴듯한 다양한 이론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면,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항의할지도 모른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간들의 이름이 들어 
있다고 가정한 가상의 제비뽑기통에서 우리만큼 일찍 나온게 뭐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 일
찍 나온 것이 어떻게 특별한 일일 수 있는가? 처음에 나온 10개 안에 포함된 것은 76만 7천 
4백개 21번째와 76만 7천 4백 30번째 사이에 포함된 것보다 조금도 특별하지 않다." 이러한 
항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통 안에 1백만 개  정도가 아니라 단 15개나 1
백여개의 이름만이 들어 있다는  경쟁이론과 비교해본다면, 당신의 이름이  처음 뽑힌 10개 
안에 포함된 것은 특별할 수 있다. 이들 경쟁이론에서는 처음  10개 안에 자기 이름이 포함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이상한 것도, 특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없는 생각이다.

  제비뽑기통의 비유는 부적절하다. 우리가 태어나는  시간은 제비뽑기통에서 우리의 영혼
을 연속적으로 봅아낸 다음, 거기에 인간의 형체를 부여하는 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
다.

  이 의견은 결함이 있어 보인다. 제비뽑기통의 비유는 많은 통계학적 계산에 적절하다.  예
를 들어보자.
  첫째, 짐과 마이크는 같은 도시에서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시간도 
거의 같은데, 짐은 사고를 20번이나 일으켰고, 마이크는 한번도 일으키지 않았다. 두 사람은 
똑같이 훌륭한 운전자라 할 수 있는가?
  하나는 '짐', 또 하나는 '마이크'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두 개의 공이 들어 있는 제비뽑기
통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공을 계속해서  하나씩 뽑아낸다고 하자. 각 경우에 뽑아낸  공은 
다시 통 속에 넣고 잘 흔든다. 이 때, 매번마다 '짐'이라는 공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가?
  둘째, 당신이 작은 섬에서 걸어다니다가 화살에 맞았다고  하자. 이것은 단순한 불운인가, 
아니면 그 화살은 당신을 겨냥한 것인가? 만약 순전히  우연히 일어난 것이라면, 이것은 섬 
전체를 매 평방미터에 해당하는 종이조각들로 만든 다음, 그 중 하나에 당신의 이름을 적어 
제비뽑기통에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종말론에서는 제비뽑기통의  비유를 구체적으로 어떤 식
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런던과 리틀푸들 중 어느 쪽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지를 알려고 노력하는 건망증이  심한 
당신의 예를 다시 살펴보자. 당신이 참고로  할 수 있는 것은 인구뿐이다. 문제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든 관찰은 서기 2150년이 시작되는  첫순간 이전이나 이후에 일어나
야 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리틀푸들 아니면 런던에서 발견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리
틀푸들가 런던의 인구는 각각 50명과  1천만명이라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  있다고 하자. 이 
상황을 적절하게 재현한 제비뽑기통 모형은 '리틀푸들'이라 쓰여진 공 50개와  '런던'이라 쓰
여진 공 1천만개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만약 당신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은 50명
이 살고 있는 분명히 존재하는 장소인 리틀푸들이거나, 아니면  1천만 명이 살고 있는 가공
의 장소일지도 모르는 런던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어떻게 될까?
  런던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주 불분명하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흥미롭게도 서기 2150ssu 
이전에 사람들이 존재했는지를 알면서 그 이후에도 사람들이 존재하는지는 불확실한 경우에 
비교할 수 있다고 카터와 나는 제안한다.
  당신의 상황은, 이제 '리틀푸들'이라고 쓰여진 공 50개가  들어 있는 것은 확실하고 '런던'
이라고 쓰여진 공 1천만 개가 들어 있을 확률은  63퍼센트라고 알고 있는, 제비뽑기통을 가
진 사람의 상황과 비교할 수 있다. 만약 다음 순간, 당신이 리틀푸들에 있는 사실을  발견한
다면, 당신은 마치 그러한 상황에서 '리틀푸들'의 공을 뽑은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즉, 이 사실은 '런던'공들은 가공의 이야기라고  믿을 만한 훌륭한 근거를 제공하며,  당신은 
런던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새로운 이유를 발견한 것이다.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사전 확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베이스의 계산에  대
입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만약 사용할 수 있는 '사전 확률'이 사실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라면, 이 반대 주
장은 설득력을 가질 수도 있다.
  1백 개의 제비뽑기통이 채워지는 것을 당신이 보았다고  가정하자. 그래서 다신은 당신의 
이름이 모든 제비뽑기통 속에 들어가 있으며, 그 중 2개의  통에는 다른 이름이 9개가 들어
가고, 나머지 98개의 통에는 9백99개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분명히 안다고 하자. 도  제비
뽑기통은 완전히 똑같이 생겼으며, 당신이 돌아서 있는 동안  서로 위치를 마음대로 바꾸었
다고 가정하자. 이제 당신은 제비뽑기통 중 하나에서 이름 하나를 뽑아 당신의 이름이 나오
는 것을 발견하기 이전에, 통 속에  1천 개의 이름이 들어 있을  확률이 98퍼센트라는 것을 
분명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강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이것을 모른다고 하면 어떨까? 그 대신, 당신은2개의 통 중에서 하나
는 당신 이름 외에 9개의 이름이, 또 하나는 9백99개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둘 
중에서 왼쪽 것이 더 많은 이름이 들어 있다고 약간만 확신할 수 있다고 하면(당신이 본 것
을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어떻게 될까? 당신이 어느 정도 확
신할 수 있는지를 수치로 나타내라는 요구를 받아, 98퍼센트라고 답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 
통에서 이름을 하나 뽑았더니 당신 이름이다.  이 경우, '98퍼센트의 확신'을 가지고  출발한 
것은 '알려진 확률이 98퍼센트'인 경우에서 출발한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떤 사람은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베이스의 법칙은 두 경우에 정확하게 똑
같이 적용된다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는 논
쟁을 벌이지 말자. 그 대신, 두 경우 사이에는 크게 중요한 차이는 없다는 사실만  알아두기
로 하자. 첫 번째 경우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경우에서도, 당신의 이름이 통에서 아주  일찍 
나왔다는 사실은 그 통에 1천 개의 이름이 들어 있다는 당신의 확신을 대폭 감소시킬  것이
다.
  종말 임박설과 종말 지연설이 두 가지 시나리오의 확률,  그리고 이두 시나리오와 연관된 
인구의 크기를 추정하는 데에 우리가 추측에 크게 의존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추측을 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거나 그러한 추측을 근거로 하여 실제 행동을 취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인류의 역사가 다음 1백
50년 사이에 끝날 확률이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퍼센트라고 추정했다면 어떨까?
  나는 그의 추정이 잘못됐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는 너무 낙관적인 것처
럼 보이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들을 너무 무책임하게 무시하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카터의 종말론을 고려하기 전에 종말이 임박했을 가능성이 약 5퍼센트로 생각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어리석은 말이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5퍼센트라는  수치
를 왜 베이스의 계산에 대입하기를 거부해야하는가?
  나는 여기서 베이스의 계산이 명백하게 적절한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는 
나중에 세계가 비결정론적일지도 모른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베이스의 계산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를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5퍼센트라는 수치가 '밝혀진'것
이 아니라 '추정된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것을 어떤 계산에도 대입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추정치와 밝혀진 확률 사이의 완전한 구분자체가 불
분명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태어날지 추정하려고 할 때,  대략적인 수치(예컨대, 3천
억±50억과 같이)조차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런 근거도 없는 데서 마구잡이로  끌어올 수는 없다. 양식 있는  많은 사람들은 카터의 
주장과는 별개로, 인류가 곧 멸망할 확률이 최소한 5퍼센트는 된다는(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심하게 오염되고 있다거나 세균전이 발발할  가능성 등의 이유 때문에)견해에  대해 상당히 
그럴 듯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인류가 다음 수 세기를 무사히 살아남는
다면, 은하계 전체에 식민지를 건설해나갈 것이라고 믿는 상당히 그럴듯한 근거들을 제시하
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이들이 다음 수 세기 동안 인류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도록 깊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존층의 고갈과 같은 일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정치가들은 별 어려움 없이 인류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들과 같은 살마들에게 모
든 추측을 맡기지 않도록 노력하자.

  대조집단이 잘못 선택되었다. 대조집단은 단지 인간 관찰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의식과 
지능을 가진 모든 유기체가 되어야 한다.

  인류의 생존에 관한 예측을 위해서 어떤 제비뽑기통 속에 들어 있어야 할 유일하게 적절
한 이름은 인류여야 한다고 나는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그  밖의 다른 이름은 무시할 권리
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시조새나 현명한 코끼리나  화성인들을 고려할 필요가 없
다(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할 것이다).

  두 번째 그룹
  이 그룹의 반대 이견들은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상관없이  우리가(그리고 우리와 
같은 다른 사람들도 함께)지금 현재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바탕
하고 있다.

  먼 미래는 우리를 죽이지 못한다. 이것은 명백한 진리이다.

  불행하게도, 이 진리는 미래의 사건에 대해 현재 존재하는 증거들이 그 사건들에 의해 초
래된 것이라고 가정될 때에만 카터-레슬리의 종말론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즉, 눈사태가 당
신 마을을 덮치는 것을 보고서, 이것은 문제의 재난이 눈사태를 초래했을 경우에만 그 재난
이 임박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와 유사한 반대 의견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떻게 전체 인류의 운명이 미천한 
나나 시간상의 나의 위치에 달려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눈사태에  의해 야기된 재
난이 어떻게 미천한 나나 나의 위치에 좌우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항의할 수도 있을 것이
다.
  카터와 레슬 리가 그들의 시간상의 위치로부터 끌어낸 결론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그
러나 그들은 최소한 서기 2150년 직후에 "카터와 레슬리 이후에 살아간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지 않도록 함으로써 그들을 예외적으로 일찍 태어난 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인류
에게 운명의 날이 닥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오존층 파괴, 세균전 연구, 우
주 천체의 충돌 등에 추가되는 새로운 '종말론 매커니즘'같은  것은 없다. 종말론은 단지 시
간상에서 우리가 발견되는 지점을 근거로 하여 그러한 매커니즘들과 관련된 위험들을  재평
가해야 한다는 주장일 뿐이다.
  관찰 행위는 그 자체가 재난의 원인이 아니면서도 이러저러한 미래의 재난에 대해 알려줄 
수 있다. 시계바늘의 움직임은 폭탄의 방아쇠를 당기는 한 과정이 아니라, 폭탄이  폭발하려
고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카터와 레슬리 직후에  인류가 너무 많이 
태어나서 재난을 초래할 정도로 환경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구 증가는 우리의 생각에 두 가지 영향을 줄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시간상 위치가 아
주 평범한 것이냐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다음 수세기 안에 재난을 초래할 원인
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예전에 일어난 많은 인구  증가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지구 전체가 오염되어 가는 새로운 상황에서 별로 위안이 못된다.
  우리는 흥미롭게도 행운의 편지(연쇄편지)를 받는 사람과 같은 처지에 있다. 각자는 편지
를 여러 통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다. 결국에는 편지가 더 이상 새로운 살마에게 갈 데
가 없을 것이다. 거기서 편지의 운명은 끝난다. 편지를 받는 새로운 세대의 크기가 이전  세
대보다 3배만큼 크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내가 편지를 받았다. 그렇다면 나의 위치는 어디일
까? 그것은 마지막 세대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마지막 세대는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세대를 합친 것보다 그 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내가 편지를 본 것은 편지의 운명을 끝마치
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없다. 다만, 편지의 운명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려주는 데 도움
을 줄뿐이다. 그러나 편지가 이전에 급속하게 전파된 것은  그러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기
도 하고, 편지의 운명을 끝마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공간상에서처럼 시간상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다. 따라서, 시간상의 위치를 
공간상의 위치와 유사한 것처럼 다루어서는 안된다. 런던과 리틀푸들의 경우를 비교하는 것
은 잘못 된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반론은 우리가 공간상에서 이동할 수 있는 능력도 
크게 제약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오직 빛보다 더 바른 여행을 통해 갈  수 
있는 아주 먼 지역으로는 갈 수가 없다. 우리는  그러한 지역(예컨대, 지역1, 지역 2라고 부
를 수 있는 곳들)에 대해  '인간중심적' 추론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지역 1이나 지역 2에 
존재하는 관찰자보다 우리 지역에는  수백만 배의 관찰자가 존재한다면,  참고로 할 정보가 
이 사실밖에 없을 경우에 관찰자들은 지역 1이나 지역 2보다는 우리 지역에서 자신을 발견
하리라고 기대할 것이다.
  두 번째 반론은, 공간상에서 아무리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자
신이 태어난 곳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자신의 출생지(예컨대, 
런던이냐 리틀푸들이냐)에 대해 확률론적 추론을 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아
무도 자신의 출생 시간을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와 유사한 추론을 막을 수는 없다. 당
신이 생일 날짜를 잊어버렸다고 하자. 그것은 7월 4일일 가능성이 높은가? 언뜻 생각할  때, 
그럴 것 같지 않다.
  당신의 생일이 8월 19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가정하자. 다른 날에 태어난 사람들은 당신
이 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여기에 확률론적 주장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얼마나 
괴상한 주장이 될 것인가?

  지금 카터의 종말론을 논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수천 년 후의 미래가 아니라 현
재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진부한 사실이다. 진부한 사실에서 진부하지 않은 사실
이 도출 될 수는 없다. 먼 미래의 사람들은 아직 살아 있지 않으므로, 우리가 그들  속에 포
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인류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 한,  우
리를 사람들의 집단에서 훌륭한 표본이라고 간주할 수 없다. 우리의 계산은 '표본추출'이 부
적절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고려해야만 한다. 따라서, 종말론은 종말이 아직 닥치지 않
았다는 사실만 증명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 대한 나의 답변은,  카터는 "홀아비는 마누라가 없는  사람"이라거나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오늘날에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과 같은 진부한 진리로부
터 정보를 끌어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미래 세대의 사람들이 아직까지  자
신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카터는 부정하지  않는다. 카터의 계산에 사용되
는 것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대략 20세기 말)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이 
시기에 존재하는 인구가 인류가 오래 살아남을 경우에 기대되는 미래의 인구와 비교하면 어
느 정도가 될 것인가 하는 추정치이다.
  '대략 20세기 말'이란 바로 지금을 가리키기 때문에, 우리는  20세기 말경보다 더 일찍 또
는 더 나중의 어느 지점에 있을 수 없다는 반대  주장은 카터의 핵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카터는 '대략20세기 말'이 지금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단  적이 없다. 카터가 묻는 것은 
경쟁 시나리오들(예컨대,  오존층 파괴로 인해 22세기에 종말을 맞이한다  서기 50만년까
지 종말이 연기된다)에 비추어 생각할 때, 사람들이  대략 20세기 말이 현재인 시점에서 자
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은 쪽이 어느 쪽이냐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두 가지 시나리오에서 사람들의 시간상 분포가 어떠하냐에 직접
적으로 관계된다. 아이들이 실제로 천국에서 먼저 태어난 다음에  타임 머신을 타고 지상으
로 여행하여 자신의 생일에 태어날 때, 이들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시기에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굳이 생각하지 않고도 카터는 그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카터는 사람들의 신체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영혼들의 이야기를 상상할 
필요도 없다. 이들 영혼은 종종 운좋게 들어갈 수 있는 신체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성공률
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 사용 가능한'신체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와 직접적으로  관
련된다. 살마들에게 "당신은 지금 현재 존재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니다"라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결코 없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인류의 시간분포에서  자신을 완전히 어느 한쪽
에 치우친 특이한 표본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이 증명
하는 것은, 어떤 시간에 존재하는 사람이 그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존재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뿐이다. 
  만약 태어날 모든 사람들 중 대다수가 서기 2000년에 살아 있도록 세상이 운명지어져 있
다면, 서기 2000년에 존재하는 당신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이 진리를(단지 '지금 서기2000년
에 존재하는 누구처럼,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을 발견할 확률이 1백퍼센트'라는  사실보다
는)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인류가 멸망할 때에도 대략 20세기 말에 최소한 일부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반대 주장 역
시 핵심에서 벗어난다. '어떤'사람이 대략 어떤  시간에서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을 물을  때, 
카터는 최소한 한 사람이 그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은 것
이 아니다. 라틴어를 아는 사람이 그리스어도 알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을 때, 당신은 
단지 어떤 사람이 두 가지 언어를 아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
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어떤  이론들이 존재하든지 간에, 우리는  자신이 20세기말경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가?  두 이론과 모두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관찰 사실이라 할지라도, 두 이론 중 한 이론을 더 지지할 수 는 있다. 동전을 1천 번  던졌
더니, 1천번 모두 앞면이 나왔다고 하자. 이 경우, 동전이 정상이라는 이론 역시 논리적으로
는 양립할 수 있지만, 양면이 모두 앞면으로 되어 있다는  이론이 더욱 설득력을 갖지 않겠
는가?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비판가를 생각해보자.
  "두 장의 명단이 있다고 상상하자.  하나(종말 임박설 명단)는 23개의  이름을 담고 있고, 
다른 하나(종말 지연설 명단)는 아주 많은 이름들을 담고 있다. 그런데 두 명단에서 처음 나
오는 20개의 이름은 정확히 똑같다고 하자. 이제 두 명단  중 하나를 골라 위에서부터 차례
로 20개의 이름을 당신이 읽는다. 만약 그 중에 내 이름이 포함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
도 나는 그 명단이 어느 쪽 명단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종말론은 잘못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주장처럼 이상한 것이다.
  "두개의 명단이 있다고 상상하자. 하나는  양면이 모두 앞면으로 되어  있는 동전을 20번 
이상 던진 결과를 적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동전을 던진 결과를 적은 것인데,  우
연히 처음 20번은 모두 앞면이 나왔다. 두 명단 중  하나를 골라 위에서부터 차례로 20개의 
결과를 읽어보라. 어느 쪽 명단을 골랐든지 간에, 그 결과는 모두 앞면일 것이다. 따라서, 동
전을 던져서 앞면이 20개가 나왔다는 결과는 동전의 양면이 앞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앞
으로도 계속 앞면이 나올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결코 될 수 없다."
  카터는, 만약 당신의 이름이 명단에서 처음20개의 이름 중에 있다면, 그 명단이 그 이후에 
아주 길게 계속되든 않든 간에 당신의 이름이 처음 20개의 이름에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의 이름이 누락된 채 당신의 이름을  명단에서 
발견하면 매우 놀라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는다.
  카터가 지적하는 것은, 태어나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적은 명단이 있다면, 당신의  이름이 
특별히 명단의 윗부분에 나타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자
신의 이름이 유사한 위치에 나타나는 것은  결코 특별히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
다. 왜냐하면, 명단 이야기에서 두 개의 명단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주사위를 던진  결과
를 담은 명단으로 보아야, 즉 더 긴 명단(자신의 이름이 아주 특이하게 윗부분에 있는)이 선
택되는 것은 주사위가 있을 법하지 않은 방식으로 떨어졌을 때뿐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도, 그는 제비뽑기통 속에 넣은 두 개의  명단
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따라서, 둘 중 어느 것이든 선택되어 읽힐 가능성은 똑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어느 쪽 명단을 읽는 것인지 단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20세기 말경에 살고 있기 때문에 먼 미래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없
다는 주장을 카터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결코 될 수 없다. 인류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지
에 대해 어떤 이론들이 무슨  소리를 하든지 간에, 우리가 20세기  말경에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이고, 우리가 그것을 확실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카터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 
되지 못한다.
  베이스의 법칙은 특정 증거를 고려할 때  다양한 확률에 대한 그들의 평가를  수정하도록 
한다. 만약 빨간색 차가 당시의 눈앞에  나타난다면, 이것은 베이스의 법칙에 따라 모든  차 
중 10퍼센트는 빨간색이라는 이론(0.01퍼센트가 빨간색이라고 이론에 대해)을 더 신뢰할  수 
있게 해준다.
  당신이 이렇게 주장한다고 가정해보자. 즉 당신은 빨간색 차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
으며,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빨간색 차라고 확신할 수 있다고해도, 세상의 나머지 모든  차들
은 파란색 차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빨간색 차를 보았다고 해서 모든 차 중  10
퍼센트가 빨간색 차라는 이론을 지지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여기서 당신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런 이상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경험에서 거
의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베이스의 법칙을 적용하면서  당신은 실재로 "만약 전체 차중 
10퍼센트가 빨간색이라면 어떤 차가 빨간색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것은 확
실치 않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의도하는 것은 마약 모든 차  중 10퍼센트가 빨간색이라면 
어떤 차가 빨간색이라는 것이 밝혀질 가능성이다. 당신이 차를  직접 쳐다보고 있어 그것이 
실제로 빨간색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그  차가 실제로 빨간색으로 밝혀질 가능성(그 확
률이 1백퍼센트인)이 아니다.
  인류가 2150년까지만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그리고 인류가 수십만 년 이상 살아남아 아마
도 은하계 전체에 식민지를 건설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인류의  전체 시간중에서 자신을 발
견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 어디일까를 묻는 문제에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나는 
내가 20세기 말경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 인류가 그 때까지 안전하게 생존
해왔다는 것을 알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내가 바로 그 시간에(나
중이 아니라)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0세기 말경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주장이다. 만약 인류가 수만 년 이상 
더 지속할 수 있다면, 20세기 말경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주장이다. 만약  인류가 수만 년 이상 더 지속할  수 있다면, 
20세기 말경에 사는 것이 매우 놀라울 정도로 이른 시기에 출현한 것이라고 카터가 말했을 
때, 카터는 자신이 20세기 말경에 존재하고 있고, 그 시간대에서 증거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순간이라도 의심해본 적은 없다. 그렇다니, 그는 인류의 인구 역사에서 자신을  발
견할 수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를 묻고 있다.
  만약 지금 무엇인가를 논의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정확하게 지금  살아 있어야 한다는(조
상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오래 전에  죽었기 때문에 현재 살아 있지 않은 어떤 사람을 
대신하여) 진리를 우리가 매우 그럴 듯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인간중심의 원리를 우리가 위
치하는 시간에 결코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우주에서 지능을 가진 종
들 중에서 아주 일찍 출현한 종에 속하는 것 같지 않다고 한 페르미의 주장도 아무런  설득
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실제로 그러한  최초의 종에 속한다면 다른 사람
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은 즉시 기반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페르미의 주장을 앞도하기에 충분치 못하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있는 
여기서 어떤 것들은 논의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이곳에 있어야지 다른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 인간중심의 원리를 공간상의 우리의 위치에  적용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항을 더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오래 된 증거'의 반론이다. 한 가지  어려운 문제는 사람들이 종종 '오래 된  증거 
문제'라고 부르는 것을 믿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만약 당신이 리틀푸들에 산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당신은 이 사실을 어떤 이론(예컨대, 런던은 가공의 도시라는 이
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하기에 매우 이상한 
주장이 아닌가?(뉴턴 선생,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새로운 물리학을 생각해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아닙니까? 당신은 오래 전부터 사과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
니까요)
  디키가 디랙에 대한 반론으로 펼친 주장을 생각해보자. 디키는  아주 먼 미래의 언젠가에
는 오직 소수의 관찰자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은  디랙의 이론이 필요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디키박사, 생명을 주는 별들이 아직도 빛나고 있는 때에 당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주진부한 일입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항상 알고 있었으니까요!"라
고 항의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가 시간상의 자신의 위치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느냐 없었
느냐 하는 점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부적절하다. 적절한 질문은  디렉의 이론을 검토할 
때 그가 사전에 바로 이 증거를  고려했느냐 하는 것이다. 오래된 증거라고 하더라도,  만약 
당신이 아직까지 고려하지 못했던 증거라면 그것은 새로운 증거나 마찬가지 효력을 지닌다.
  오래 전에 자신이 복권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당첨될 것이라고  말해온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베이스의 법칙을 
적용하면, 그는 자신이 당첨된 것은 복권에 참여한 사람이 극소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의
심의 근거를 제공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오랫동안 자신이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무시
해왔다는 것이 지금도 계속해서 그 사실을 무시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베이스의 계산에 포함되는 '사전 확률'은 '오직 최근에 이루어진' 관찰 이전의 확률로 정의되
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창문이 없는 방에 갇혀  자신의 시공간상의 위치를 전혀 모른 
채 어른이 될 때까지 자란 한 소녀를 상상해 보자.
  소녀는 '시제가 없는'  언어로(역사가나 현재의  사건을 평가하는  비평가의 언어가  아니
라)20세기 말에 인류에게 위협을 주는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한 위험에서 살
아남아 은하를 정복하기 시작한 종은 그 이후에 아주 길고도 많은 인구를 가진 역사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 소녀는, 20세기 말에는 그 때까지 태어난 모든 인류 중 10퍼센트는 아직도 
살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20세기 말에 살고 있을 확률은 아주 작다고 
판단한다. 핵폭탄이나 환경오염, 그리고 그 밖의 20세기 말의 위험들은 소녀의 판단에  아무
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소녀는 자신이 있는 위치가 20세기 말의 지
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소녀가 "이것은 단지 나  이후에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살 것이라는 사실을 
시시하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가? 소녀는 핵폭탄이나 환경오염이 얼마나 안전한가에 대한 
앞서의 판단을 수정해야 할 근거를 가진  것은 아닌가? 그리고 만약 소녀가 그러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라고 왜 가질 수 없는가? 시간상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오래 전부터 안
다는 사실을 피하기 위해 창문이 없는 방에서 자라지 않고서도 우리는 시간상에서의 우리의 
위치를 고려할 수 있지 않은가?
  둘째로 시간에 관한 B이론의 부적절성이다.
  나는 방금 내가 말한 모든 것을 'B이론'이라고 알려진 시간에 관한 견해를 언급하지 않고
서도 말할 수 있다. 'B이론'이란, 시간상의  지금이 공간상의 여기와 마찬가지로 상대적이라
는 견해이다. 따라서, 전체 우주의 그림을 그리려고 할 때, 우리는 3차원이 아니라 아인슈타
인의 4차원으로 생각해야 한다.
  다른 많은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아인슈타인이 B이론을 선호하는  것에 공감한
다. 그런데 만약 이 이론이 부정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해도, 미래의 어떤 인간도 자
신의 시간상 위치를 생각할 기회를  아직 갖지  않았다는(즉, 그들은 지금 시간상의 위치를 
고려할 수 없다. 반면에, 지금 현재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고 있는 우리는 분명히 1분 전이나 
1분후의 위치가 아니라 지금의 위치를 생각하고 있다)반대 의견(이것은 세계가 비결정론 적
이라는 데에 근거한 반대 의견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에 유의하라)은  여전히 설득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공간이건 시간이건 간에, 자신이 실제로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자신
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
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서문에서 언급한 에메랄드 이야기를 상기해보라. 앞시대보다는  뒷시대에 더 많은 사람들
이 에메랄드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잇고, 그 밖의 다른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에메랄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이 뒷시대에 속한다는 쪽에 내기를  걸 것이다. 만약 뒷시
대가 지금으로부터 미래에 속한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
지만 이 진리는 당신이 에메랄드를 가진 사람으로서 지금이 미래인지 아닌지 판단하려고 할 
때에는 쓸데없는 것이다. 또한, 뒷시대에 에메랄드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는  사
실을 당신이 알지 못한다고 할 때에도 이 진리는 여전히 쓸데 없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나 
B이론에 대해 당신이 무엇을 생각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우리와 같은 인간은 오직 오늘날에만 발견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특징은 우리로 하여
금 오직 이 시대에만 존재하게 하지, 다른 시대에 존재하게 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한  나의 
답은, 카터-레슬리의 종말론은 이러한 반대 의견이 적절하게 적용되는  문제(즉, "우리가 20
세기 말경에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로 사실인가?"와 같은)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
려 그 시대에 특유한 '유전적 서명이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며, 그것은 항상  변하고 
있다. 때문에, 먼 미래에 내 무덤에서 추출한  ANA조각을 검사하고 20세기 말경의 ANA패
턴의 특징을 발견함으로써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정
말 나와 같은 사람이 아주 다른 시대에 존재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내가 
구사하는 발음의 영어, 내가 지닌 모든 편견, 지식과 무식은 내가 16세기나 19세기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카터는 종말론에서 자신이 실제로 시간상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
치 않았다. 그가 정확하게 자신과 같은 특징들(20세기의 부모를  기억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20세기에는 보편적이지만 몇 세기 후에는 결코 발견될 수 없는  유전자들을 포함한)을 가진 
사람이 어디에 존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가와  같은 아주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키로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그 대신, 그는 인간 관찰자가 자신을 20세기에 있는 것으로 , 그리하
여 그 시대와 장소의 유전자와 기억,  언어습관, 지식과 무식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발견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느냐를 물었다.
  "만약 당신이 이러저러한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다면, 먼 미래에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될 수 있겠는가?"라는 반대  주장
이 나올 수 있다. 만약 이 사람의 주장이 옳다면,  단지 종말론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인간
중심적 생각들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무너뜨릴 
수 있다. "만약 화학적 생명이 플라스마적 생명보다 훨씬 더 잘 진화한다면, 어떤 사람은 별 
내부의 플라스마를 지배하는 힘들보다는 화학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자신을 발견할  가능
성이 더 높다."
  여기에 대한 반대 주장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펼칠  것이다. "화학을 기초로 탄생한 관찰
자는 플라스마를 기초로 탄생된 자신을 관찰할 수가 없을 것이다. 화학을 기초로 한 존재는 
플라스마를 기초로 한 존재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러한 조류의 반대 주장은 
그 어떤 것도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이와 유사하게, 레밍과 같은 종(인구 폭발과 붕괴를 끊임없이 겪는 종)에 속하는 외계인은
(만약 자신의 시간상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면)자신이 인구 붕괴 직전의  인구 과다 세대에 
속할 가능성이 높은지 물음을 제기할 수 없다는 반대 주장도 있다. 왜냐하면, 그 종은  인구
사이클의 다른 곳에 위치하는 유전자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 그러한 유전자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종은 이 사실을 이용하여 "내가 
어느 사이클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가?"와 같은 질문을 의미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사실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왜 우리가 외계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가 하는 페르미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자. 
많은 문명을 최초로 이루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만약 우리 종이  현재 우리가 가진 
유전자를 가진 최초의 종이라면, 우리는 예컨대 6개의 다리가 달린 종과 같이 먼 훗날의 종
이 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서문에 소개한 에메랄드 이야기를  변형한 것을 검토해 보
기로 하자. 사람을 2개의 실험용기 속에서  배양하려는 엄격한 계획이 세워졌다고 하자.  첫 
번째 용기에는 한 쪽 성만으로 이루어진 3명이 나올 것이고, 두 번째 용기에는 그것과 다른 
족 성만으로 이루어진 5천명의 사람이 나올 것이다. 첫  번째 용기에서 사람을 배양하는 데
에는 1세기가 걸린다고 하자. 다른 쪽 성을 가진 5천명의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그보다 몇
세기 후가 될 것이다.
  자, 이제 당신이 배양되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상상하자. 당신은 어
느쪽 용기에 들어 있는지는 모르고, 단지 여성이라는 사실만 안다고 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당연히 자신이 큰 용기 쪽에 들어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것
이다. 실험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큰 용기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성을 가졌
을 것이라는 데 내기를 건다면, 실패하는 사람은 3명뿐이고, 5천명은 이길 것이다.
  "만약 내가 첫 번째 작은  용기 속에 있다면, 두 번째  용기 속에 있는 사람은 아직 관찰
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나처럼  관찰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첫  번째 용기에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두 번째 큰 용기에 있다고 생각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주
장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주장도 명백히 잘못이다. "내  유전자는 
여성이다. 따라서, 여성이 들어있는 용기가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간에 상관없이 나는 자신
을 여성으로 관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여성이 들어 있는 용기가 큰 것이라고  믿어
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문제를 더 간단하게 하기 위해, 당신이 여성이고 또 스스로 그것을 좋아한다고  가정하자. 
당신이 여성으로 태어나는 데에는 큰 행운이 작용했을까?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 중 절
반은 여성이 아닌가? 인간으로서 자신이 여성으로 태어나리라는 것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
다."고 대답하는 것은 아주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만약  당신이 남자였다면, 당
신은 당신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매우 이상한 주장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 중 어떤 것도, 바로 당신이라는 것은 당신의 유전형질과 주위 세계의 환경 
사이에 수많은 연결 고리로 이루어진 무한히 복잡한 인과적 연쇄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완전히 결정론적인 세계관과 상충되는 것도 아니다.
  완전히 결정론적인 세계관에서는 모든 것이 일어나는 바로 그대로 정확하게 일어날  수밖
에 없고, 동전을 던지거나 방사성 붕괴와 같은 경우에도  절대적으로 완전한 우연이란 없다
고 본다. 그런데 현재의 목적을 위해 나는, 아주 뛰어난 지성을 가진 악마에게 지금 이 순간
의 세계를 최대한 상세히 기술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그는 내가 시간상의 어느 위치에 있는
가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듣고 보아온 모든 것을 알 수 있는지 없는지  상관
하지 않기로 한다. 어느 순간에 붙잡힌 특정 물고기는 길이가 정확하게 얼마여야  한다거나, 
어떤 동전을 던지면 앞면이 나와야 한다거나 하는 사건을 현실로 만드는 특정 인과적 연쇄
들은, 방금 당신이 잡은 물고기의 길이가 정확하게  33.84센티미터여야 한다거나, 동전을 90
번 던진 결과가 모두 앞면이 나온다거나 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다고 말하게 하는 
세계관과 양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가 완전히 결정론적이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확률론적 생각도 합당한 대우를 받을  자
격이 있다. 만약 실제로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경험해야만  한다면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래도 나는 내 경험에 확률을 적용할 수 있다. 
  이 영역의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종말론은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는 반
론(실제로 이것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을 검토해보자. 여러분과 나는 마치 인류의 전체 존
속 시간중에서 무작위로 뽑혀 나온 것으로 취급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러한 논의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수학적 지식(예컨대, 동굴거주자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반론에 대해 세 가지 응수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우리의 목적에 적합한 질문은 "인간 관찰자가 유전자,  지능, 언어구사, 수학적 
지식 등의 특징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에 자신을 발견할 확
률은 얼마인가? "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이다. 종말론의 '대조집단'은 확률미적분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인간관찰자가 아니라 그냥 인간  관찰자이면 된다. 만약 대조집단을 
수학자들에게만 한정한다면, 대부분의 '인간중심적' 주장은 아무런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응수는 종말론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에는 수학적 전문지식이 필요없다는 점을 강
조하는 것이다. 수학적인 전문지식이 없는 사라도 자신을 인류의 역사중에서 예외적으로 일
찍 출현했다고 시사하는 이론들을 의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셋째로 종말론은 만약 이류가  앞으로 수천년 이상 살아남는다면,  여러분과 나처럼 동굴 
거주자가 살던 시대로부터 훨씬 후에 태어난 사람들조차도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아주 일찍 
출현한 셈이 된다고 주장한다. 만약 동굴 거주자들은 고려해서는 안 되며, 적절한 인구 시계
는 사람들이 수학적인 지식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면, 이
것은 종말론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가 20
세기 이후로도 몇천 년 더 살아남는다면, 여러분과 나는 그  시계에서 볼 때 아주 예외적으
로 일찍 태어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 그룹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시간 영역이 클수록 우리가 그  속에 태어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것은 아주 일찍 태어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상쇄한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으로 보인다. 복권 추첨의 경우, 한 장의 복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복권이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팔렸거나 주어졌다는 사실을 시사할 수 있다.
  친구가 당신을 위해 복권을 한 장 사주었는데, 당신이  거기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당신이 제일 먼저 복권 추첨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당신이 당첨되었다는 사실은 
제비뽑기통 속에 이름이 몇  개밖에 없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당신의 친구는 널리 
알려진 큰 규모의 복권에 더 관심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그런데 
친구가 당신을 위해 복권을 사주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당신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우리가 처한 우주론적 상황에서는 우리가 과연 태어날 수 있는 운(運)을 가졌느냐에 상관
없이 우리는 항상 일정한 수를 유지하며 존재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 자신을 마
치 한때는 형상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그리고 창조되는 신체가  증가할 때마다 그러한 기
대가 증가하는 비물질적인 영혼이었던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또,  우
리는 자신을 의식이 없는 원자들의 집단으로 발견할 위험이  있었으며, 그러한 위험은 인간
이 한명씩 태어날 때마다 줄어드는 것으로 상상해서도 안 된다. 만약 오직 10명의 사람만이 
태어날 수 있다면, 그 중에 자신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놀랄 만 한 이유가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오직 태어난 사람만이 자신을 특
별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인류라는 종이  오래 지속된다면 인류로 태어날 
기회가 훨씬 더 많이 주어진다는 이야기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20세기에 종말론을 고려하
고 있는 사람에게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것은(단, 그가 실제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자신을 
20세기에서 발견하게 될 확률일 것이다.  20세기에 존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은 
'여분의 존재기회'(그 이후에 존재하게 될  기회)에 의해 줄어들 수는 있을  뿐 늘어날 수는 
없다. 당신이 인류의 역사에서 특별히 일찍 출현했다는 개념을 억지로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고 할 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나중에 발견할 기회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
는다고 해도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인류가 서기 2149년에  멸망한다면, 
어떤 사람이 서기2150년 이전에 태어날 확률은 1백 퍼센트가 될 것이고, 설사 인류가 1백만 
년을 더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 확률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은하 중심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밀도파가 별들과 거의 같은 속도로 궤도를 돌고 
있다는 마로치니크(I.S.Marochnik)의 개념을 고려해보자.  우리 태양도 바로  그러한 거리에 
있으며, 따라서 태양계의 물질들은 특별히 지속적으로 압축을 겪었다. 마로치니크는 이 과정
이 행성들의 생성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특별히 지속적인 압축이 문제의  그 거리에서 
일어난다는 그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밝혀진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히 우리 자신을 바로 그 
거리에 위치한 행성에서 발견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압축과 행성의 생성을 연결짓는 그의 이
론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만약 행성들이 은하계 전체를  통해 얼마든지 생성될 수 있다면(그래서 아주 
많이 생성된다면), 행성들이 좁은 띠에서만 주로 생기는 경우보다 우리가 은하계 안에 태어
날 기회를 훨씬 더 많이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많은 기회는 우리가 은하계의 다른 곳이 아
니라 좁은 띠안에서 태어날 적은 기회를 보상해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마로치니크는 우리가 
그의 이론이 예측한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아무런 뒷받침도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공간상의 위치가 아니라 시간상의 위치에 대해서는 이
와 유사한 주장을 서슴지 않고 강변한다. 이들은 인류가  아무리 오래 지속하는가에 상관없
이, 자신을 20세기 말경에 발견하는 것은  매우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오래도록 지속될 인류의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아주  출현한 셈이 되므로 있을 법하지  않거
나, 둘째 오래 지속되는 인류에 의해 제공될 수 있는 추가적인 많은 존재기회(더 나중의 시
대에 존재할 기회)를 놓친 채 아주 짧게 지속되는 인류에 속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있을 법
하지 않다는 것이다.
  당신의 시간상 위치나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 인류의 수가 얼마나 될 것인지에 대해 정보
를 제공해주는 관찰을 사실상 전혀 할 수 없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지금 당신이 두 가지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가정하자. 하나는 5조 명이고, 다른 하나는 5천억 명이다. 이 때,  당신
은 단지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이유 때문에 더 큰 쪽이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
하겠는가? 그렇다면 숫자를 점점 더 증가시켜 무한대까지 가더라도 당신은 이와 비슷한 논
리를 적용하여 무한히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리라는 결론을 내릴 것인가?
  당신이 믿는 종교가 그 숫자는 신이 동전을 한 번 던진 것에 의해 결정돼있다고 확  신을 
심어주었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앞면이 나오면 5조 명의 사람들이 태어나고, 뒷면이면 5천
억 명이 태어난다고 하자. 이 때, 당신은  앞면이 나올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할 수  있겠는
가? 만약 당신의 종교가 앞면은 무한히 많은 사람의 탄생을,  뒷면은 5천억 명의 탄생을 의
미한다는 신념을 심어주었다면, 앞면이  나올 가능성이 절대로 확실하다고  믿겠는가?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항에 시간상의 위치를 도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사실에 유의하기 바란다. 이것을 보여주는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당신은 당신  외의 다른 사람의 존
재를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하자. 당신은 단지 신이 동전을 단 한 번 던지기로 결정했으며, 거
기서 앞면이 나왔으면 신은 9천만 명의 사람을 창조하고,  뒷면이 나왔으면 단 한사람만 창
조했다는 사실만 안다고 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신의 동전이 앞면이 나올 확률이 9천만대 1
이라고 생각하는가? 
  약간 변형시킨 예도 소개해보자. 앞면이 나오면 9천만 명의 사람이 태어나고 그 중에  '블
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 1명만이 태어난다고 하자. 지금 당신은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렸지
만, 자신이 동전을 던진 결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안다고 하자. 이때, 당신은 자신이 '블랙'
일 확률은 '그린'일 확률과 똑같다는 쪽에 내기를 걸겠는가? 그것은 분명히 틀린 것처럼  보
인다.
  그 대신, 당신은 신의 동전에서 뒷면이 나와 당신이 '그린'일 확률은 2분의  1이지만, 설사 
앞면이 나오더라도 당신이 '블랙'일 확률은 9천만 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자신이 '그린'이라는 쪽에 내기를 거는 것이 현명하다. 
  이와 같은 경우에서 우리는 확률을  판단하기 위해 시도를 무한히 반복할  때, 어느 쪽에 
내기를 거는 것이 승리를 최대한 보장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 따는  직관적 생각(직관적 생
각은 다른 많은 경우들에서는 우리를 올바른  길로 안내하기 때문에 위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을 버려야 한다. 만약 신이 동전을 수조번 던진다면, 동전의 뒷면이  나와 태어난 사람
은 9천만 명 중 단 1명꼴일  것이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동전을 던져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앞면이 나와서 태어났다는 쪽에  자신있게 내기를 걸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동전을 
단한 번만 던져야 한다면, 이것은 그 결과가 앞면이 나온다는 것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내가 여기서 끌어내려고 하는 교훈은 런던과 리틀푸들의 경우에서 끌어낸 것과는  정면으
로 상치되는 것이라는 반대 주장을 하고 싶은가? 그 때에는 런던이 더 크기 때문에 당신이 
런던에 있다고 믿을 만한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분명히 그렇
게 말했다. 그러나 이 두 경우가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런던과 리틀푸들이 모두 존재한다고 알고 있는(이것은 신이 동전을 한번 던 져 런던을 만
들고, 다시 한 번 던져 리틀푸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한 건망증 환자를 상상
해보자. 건망증 환자는 자신이 두 도시 중 어느 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정확하
게 어느 쪽인지는 모른다.
  만약 다른 적절한 증거가 없다면, 그는 더 큰 도시인  런던에 있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런데 만약 런던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리틀푸들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발견은 런던이 가공의 도시라는 그의 의
심을 굳혀줄 것이다. 왜냐하면, 런던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는  더 큰 도시인 런던에 있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만약 그 사람이 런던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내가 리틀푸들과 런던 지역의 주민들을 합친 더 큰 관찰자 집단에 속할  것이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면 매우 어리석은 주장이 될 것이다. "자신이  더 많은 사람을 포함하고 있는 
공간상 또는 시간상 지점에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슬로건은 액면 그대로 아무 데나 
적용하지 말고 분별 있게 해석되어야 한다.

  더 많은 인류는 관찰자에게 눈이 다섯 개 달린 안드로메다 외계인보다는 인간이 될 가능
성을 더 높여준다.

  이 반론 역시 잘못된 것이다. 애 잘못됐는지 알아보기 위한 첫 단계로, '아느로메다인'이라 
적힌 공 10개와 '2150년 이전의 인간'이라고 적힌 10개의 공이 제비뽑기통 속에 들어 있다고 
상상하자. 여기서 하나의 공을 끄집어 내야 한다. 공은 지금 끄집어낼 수도 있고, '2150년 이
후의 인간'이라고 적힌 공 1천 개를 집어넣은 뒤에 끄집어낼 수도 있다. 1천 개의 공을 집어
넣는 것은 끄집어내는 공이 '안드로메다인'일  가능성보다는 '인간'일 가능성을 더  높여주지 
않겠는가?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1천 개의 '인간'을 더한 것은  '2150년 이전의 인간'이라고 적힌 공
을 뽑아낼 가능성을 오히려 감소시킨다. 그것은 1천 개의 공이 '안드로메다인'이었을 경우와 
정확하게 똑같은 정도로 그 가능성을 감소시킨다.
  이와 비슷하게, 어떤 관찰자가 2150년 이전에 살고 있는 인간일 가능성은, 인류의  수에는 
그 이후에 태어날 수많은 사람들이 포화될 것이라는 사실에 의해 결코 증가하지 않으며, 오
히려 크게 감소할 수 있다.  "그것은 관찰자에게 인간이 아닌  존재보다는 인간일 가능성을 
더 많이 부여하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는 그 가능성을 증가시킨다"고 말하는 것은 큰 실수
이다. 앞( )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2150년 이후의 인간을 더  많이 더하는 것은 단지 관찰
자가 2150년 이전의 인간 집단에 있을 가능성을 감소시킬  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이 
관찰자가 그 집단에 속할 가능성을 감소시킨다는 것이 분명해진다(어떤 마술적 원리에 의해 
관찰자의 수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 한).
  그렇지만 만약 96조×1조나 되는 인간이 아닌 관찰자가  존재한다면, 거기에다 2150년 이
후에 존재할 인간 수천억 명을 더하는 것은 관찰자가 2150년 이전의 인간이 될 가능성을 아
주 조금만 감소시킨다고 양해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점은 양해하지 않을 수 없다(여기
서 큰 영향력을 지닌 것은 96조×1조라는 숫자이다. 거기에  수천억을 더하는 것은 거의 영
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 양해 사항은 앞의  두 문단에서 관찰자가 처할 가능성이 있는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 모든 것과 함께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항으로 취급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인류의 규모가 안드로메다인이나  인간이 아닌 모든 종들
을 한데 모은 것과 비교해 큰가 작은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문제라면, 
인간이 아닌 존재도 계산 속에 포함시켜 '관찰자'로서 어떤 존재가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곳이 어딘가(인간들 사이에서? 아니면  안드로메다인이나 화성인이나 침팬지들  사이에
서?)하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카터는 아주 다른 것을  묻고 있다. 카터는 인류는 얼마나  오래 지속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고 있다. 그는 2150년 이전의 인간들이 그 이후의 인간들에 비해 그 수가 더 많
은지 적은지와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공룡이나 돌고래  또는 프레드 호일(Fred 
Hoyle)이 언급한 지능을 가진 성간 구름 등은 모두 무시하고, 이간 관찰자의 경우에 2150년 
이전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모든 사람들 중 몇 퍼센트가 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눈먼 아이로서, 이 문제에 대해 어렴풋한 육감밖에 동원하지  못
한다고 하자. 그런데 만약 당신 자신이  갈색 피부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면,  이 
사실은 갈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1백만분의 1이상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를 강
화시켜줄 것이다. 당신이 새로 안 사실에 영향을 받을 때, 당신은 얼마나 많은 안드로메다인
들이 존재하는지 물어볼 필요가 전혀 없다.

  인류가 여러 종 존재한다고 보면 카터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이 반론은 다음
과 같은 논리를 펼친다. "우주 전체에 많은 인류가  흩어져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즉, 이곳
에 살고 있는 인류뿐만 아니라 우리와 아주 닮은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인류라고 간주할 수 
있는 다른 종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하자. 그  중 절반의 종은 아주 오래 살아남을 수  있고, 
은하를 정복할 수 있어 아주 많은 관찰자들이 존재한다고 하고, 나머지 반은 일찍 멸망한다
고 하자. 그리고 문제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 모든 종들은 동시에 출현했고, 2150년까지는 똑
같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시나리오가 우리에게 필요한 정확한 수학적 직관을 제
공할 수 없을까? 우리가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안다고 상상하자. 이 경우에 우리 자신을 2150
년 이전에 발견했다는 사실이 어떻게 우리 인류의 운명이 단명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
가 될 수 있는가?

  이처럼 아주 특별한 경우에, 우리는 그러한 근거를 가질 수  없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
다. 2150년 이전의 인간인 여러분과 내가 아주 오래 존속할 수 있는 인류 중에서 일찍 출현
했을 가능성은 원래가 단명한  인류 종에 속할 가능성과  정확하게 똑같다. 왜냐하면,  모든 
2150년 인간들 중에서 정확하게 절반은 오래 존속하는 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가설에 의해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따라서, 논쟁할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이 특
별한 상황에서는 오래 존속하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 존재할  '더 많은 기회'와, 만약 그러한 
종에 속할 때 자신을 2150년 이전에 발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정확하게 균형을 이
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시간상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려주는 증거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
신은 자신이 오래 존속하는 조에 속한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
(단지 가능성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은 오래 존속하는 종에 속
할 것이고, 당신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베이스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오래 존속하는 종에 
속하는 당신을 발견할 '사전확률'은 매우  높다(이 경우는 281쪽에서 고려한  경우와는 아주 
다르다. 거기서는 당신이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신의 동전이 앞면이 나와 5조 명의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그 경우에는 다지 확률만이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5조냐 아니면  5천억이냐 하는 문제였지, 5조 5천억의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들에 관계된 것이 아니다. 신의 동전은 단 한번만 던져졌다는 사실을 명심하
라). 그러나 사실상 우리는 지금 설명한 것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
다. 오히려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믿어야 하는 강력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많은 실제 인류 종의 개념에는 모호한 것이 없다고 해도,  그 중 절반의 종들은 은하계를 
정복할 정도로 오래 존속하는 종이라는 주장은 여러분과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만약 정말로 절반의 종들이 이와 같이 존속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이 자신을  발견
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이겠는가? 그 답은 2150년  이후가 될 것이다. 대다수
의 사람들은 그때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곳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잘 알려진 사실이 지닌 의미를 간과하고,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추측했다면 어떻
게 해야하는가? 많은 실제 인류종 가운데 절반은 오래 존속하는 종이라는 우리의 추측은 수
정되지 않으면 안된다(물론 우리가 애초에 그것에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출발했다면 큰 수
정을 거치지 않겠지만). 지나치게 성급한 추측과 관련된 확률계산(예컨대, 2150년 이전의 어
떤 사람이 오래 존속하는 종에 포함될  확률이 절반이라는) 역시 이제 수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증거에 의해 잘못  인도되는 것과 증거에 대한 
믿음에 대해 잘못 인도되는 것의 차이를 직시해야만 한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인류 종 중 
절반은 오래 존속하는 종이라는 가설에 따르면, 2150년 이전에 살고 있는 인간인 당신은 아
주 특별한 시간상의 위치에 존재하는 셈이 되며, 당신이 가진  증거에 의해 잘못 인도될 가
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당신이 가진 증거가 가설을  의심할 이유가 전혀 되지 못한
다는 것을 뜻하지는 안는다. 악마는 그 증거가 우리의 판단을 잘못 인도하는 증거인지 알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론이 당신이 관찰하는 것은 다른 관찰자도 관찰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러한 관찰
자가 아주 희귀한 존재(예컨대, 일천분의 일의  확률 또는 일조분의 일의 확률로)라고  한다
면, 당신은 그렇게 유별난 이론 대신에 다른 이론을 선호할 권리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다음 사실(돈 페이지가 나에게 들려준)을 받아들일 수 있다. 만
약 많은 인류 종이 존재하고, 그 중 절반은 아주 오래 존속되는 종이라면, 여러분과  나처럼 
일찍 출현한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다음 두 가지 운명 중 하나를 타고났다고 보아야 할  것
이다. 즉, 아주 오래 존속하는 종 중에서 예외적으로 아주 일찍 태어났거나, 단명한 인류 종 
중에서 아주 극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들 중 하나에 속한다.
  우리가 있을 법하지 않은 이렇게 특별한 두 가지의 상황 중 하나에 속해야 한다고 믿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우리는 단순히 많은 실제 인류 종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버릴 수도 
있고, 또는 거의 모든 인류 및 인류와 비슷한 종들은  핵폭탄을 만들고 모든 것을 오염시키
고 나서 얼마 안 돼 멸망해버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네 번째 그룹
  가장 중요한 네 번째 그룹의 반론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비결정론 적일지도 모른
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이 반론들은 여기서는 간략하게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6장에서 
자세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제비뽑기통 속에 든 것들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반론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주어진 통 속에 실제로 몇 개의 이름이 들어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알든  모르
든 간에 확고한 사실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아마도 양자물리학적인 이유 때문에 세계는 근
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일지도 모른다. 이 경우에  인류가 얼마나 오래 지속할  것인가와 같은 
것은 아직 적절한 사실로 성립될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종말론은 무난한 전개를 위해 
그러한 사실을 필요로 한다("제비뽑기통 속에  든 이름의 수는 이미 일어난  어떤 사실들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종류의 두 번째 반론은, 어떤 비결정론도 훗날에 '정확하게 누가' 관찰하느냐에 대
해 사용할 수 있는 어떤 사실도 배제한다("정확하게 그 이름들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지금
까지 일어난 것들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주장은  명백하게 잘못이다. 나 이후
에 수조×수조 명의 사람들이  태어난다는 것이 보장된다면, 수조×수조  명의 정체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하다라도, 나는 아주 예외적으로 일찍  태어난 사람이 될 것이
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첫 번째 반론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이것은 종말론을 완전히 
무너뜨리기보다는 종말론의 위력을 반감시킬 뿐이다.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인  세계란, 만
약 그 세계를 처음 상태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게 한다면, 거의  틀림없이 실제로 진화한 
지금의 세계 모습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는 세계를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가 비결정론적이라면 우리가 유용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세계가 되
리라는 이론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목적상 그러한 이론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비록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결정론적으로 작동되는 오늘날의 체
스 컴퓨터들은 인간 챔피언들을 물리치기 위해 '유용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고  말하겠지
만).
  지금 우리의 목적을 위해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만약 우리의 세계가  비결정론적이라면, 
인류가 얼마나 오래 존속할 것인가에  대해 이용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비뽑기통의 비유도 별 쓸모가  없어진다. 이것은 또한 인류가 수조 년  이상 
존속하여 우주를 정복할 확률이  절반이라는 이론(다이슨과 프라우트치가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의 경우에 진지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제안한 이론)에 대해서도  별다른 반론을 제
기할 수 없게 만든다.
  인류가 수조 년 이상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기인 다음  수 
세기 동안에 일어나는 일에 전적으로 달려  있을 수 있다. 그 문제는 단  한두 가지 사건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 아마도 극단적인 양자론적 불확정성에 의해 좌우될지로 모른다.  그
렇다고 해도, 종말론은 인류가 수십만 년 이상 살아남아  은하계를 식민지로 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이론에 반대할 수 있는 상당한 힘을 여전히 지닌다. 왜냐 하면, 비결정론을  믿
는 사람들에게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은 비결정론적인 인자들마저 그 일이 일어나는  것
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말의 어느 시점에서, 인류의 전체 시간에  수조 명의 사람들(그 중에서 그 날까지 
태어난 사람은 수백억에 불과하겠지만)이 포함될 가능성이 97퍼센트(또는 98.5퍼센트나 99.9
퍼센트라고 해도 좋다)라고 가정할 때, 인간 관찰자가  그 때까지 자신이 태어난 것을 발견
할 가능성이 높을까? 분명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 결정론이 인류가 얼마나 오래 존속하는지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는 이론으로 판단
된다면, 카터의 생각은 비결정론적인 세계에서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 문
제에 영향을 주는 인자들이 처음에는 비결정론적이었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결
정 같은 것을 통해 바로 이 순간에는 결정론적 또는 사실상 결정론적인 것이 되어 있을  것
이다. 뒤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이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총알이 날아오는 방의 반론.

  이 반론은 현재의 인구 증가와 비결정론을 결합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당신이 어떤 방에 들어갈 때, 그 방에 들어간 사람들  중 최소한 90퍼센트는 총알에 맞아 
죽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고 하자. 당신은  당연히 공포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주사위 두 개를 던져 둘다 6이 나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무사히 그 방에서 나올 수 있
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은 그 방에 들어간  사람들중 최소한 90퍼센트는 총알에 맞
아 죽는다는 사실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그 답은 매번 방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수가 
그 앞번에 들어간 사람의 수보다 10배나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개의 주사위가 모두 6이 
나오는 순간, "최소한 90퍼센트는 총알에 맞아 죽을 것"이라는 예언은 실현된다. 만약 이 사
실과 함께, 주사위에서 어떤 눈이 나올 것인지는 비록 전지한 악마라 할지라도 예측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당신이 안다면 , 이제 공포가 사라지지 않을까?
  이 주장은 역설적이긴 하지만, 비록 그 방에 들어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운명을 맞이
하더라도, 위에서 설명한 상황에서는 당신의 공포가 사라지리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종말
론의 배경을 이루는 상황은 두 가지 중요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는 각각의 세대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주사위에 의해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일전
한 값을 가진다는 가정은 차지하고라도, 인류가  완전히 임의적이고 비결정론적으로 결정된 
순간에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에 대해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만약 인류
가 다음 수 세기를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지만, 환경오염
과 같은 원인으로 인해 인류가 2150년 전에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다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둘째는, 카터-레슬리의 생각에서는 인구증가를 중요하게 여기긴 하지만, 방안으로 들어가
는 사람들의 경우처럼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인구가 일정한 비율로 계속 증가하는 것이 확
실하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만약 이  개념이 정확하게 성립하려면 인류가 
곧 멸망을 맞이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종말론은 충분히 옳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왜냐 하
면, 만약 인류가 멸망하지 않은 채 현재의 증가속도대로 인구가 증가되어 간다면,  1천5백년
도 못 되어 전체 사람들의 무게는 지구보다 더 커질 것이고, 거기서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
아 인구는 빛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팽창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말을 맞이할때까
지, 인구가 20세기 말의 수준을 거의 유지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종말론은 매우 두려운  위험 
평가들을 내놓을 수 있다. 
  급속한 인구 증가가 끝나고 나서 수천 세기 후와 같은 아주 먼  미래의 상황(완전히 안전
하고 쾌적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카터와  레슬리를 아주 특이한 시대에 산  인물로 
생각하는 상황, 카터와 레슬리가 산 시대는 대부분의 인류가  태어나지 않은 시대인 동시에 
인구 증가가 급격하게 일어나 그 때까지 태어난  사람 중 10퍼센트가 아직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이상한 시대였다고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을 너무 지나치게 상상하지는 마라.
  당신과 나는 그렇게 완전히 안전한 상태가  보장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
라. 당신과 나는 그들이 지닌 지식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될 것이 확실한 세계에서는 인간 관찰자들은 그들과 같은 시대나 혹은 그 이후의 시대에서
(재난이 임박했다는 징후들이 난무하는 20세기 말경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
다.
  종말론에 대한 일반적인 반론은 인류의 인구 역사에서 각각의 위치를 누군가가 채워야 하
므로, 우리가 어디에서 발견되든지 간에 이상할 것은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명백히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근본
적으로 비결정론적이든 아니든 간에, 불행하게도 여기에 명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세기 
말경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인류가 아무리 오래 존속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을 20세기  말경에
서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공간상의 어느 지점에서 당신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그 곳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극히  드물다고 주장하는 이론을 반박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이 논리는 시간상의 어느 지점에서 당신을 발견하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공간상의 위치와 시간상의 위치를 계속 반복하여 비교하는 사고 실험의 도
움을 받아 이 점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제6장 - 종말론의 검증
    1. 종말론, 그 요약과 새로운 언급들
  다른 장들과 마찬가지로 이 장 역시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쓴 것으로, 지금까지 다
룬 것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카터가 처음으로 생각하고, 레슬리가 발표하고 옹호했으며, 고트와 닐센이 변형판들을  내
놓은 종말론은, 만약 인류가 곧  멸망한다면 당신과 나는 모든 인류  관찰자 중에서 특이한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최근의 인구 폭발 때문에 지금까지 태어난 모든 사람들 중 약 10퍼센
트의 사람들이 현재 살고 있기 때문에)을 지적한다. 만약 반대로, 인류가 수천 년 이상 살아
남아 은하계 전체에 식민지를 건설해나간다면, 당신과 나는 모든  인류 중에서 아주 예외적
으로 일찍 태어난 사람에 속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이 새로 태어날 때마다 한 칸씩 
움직이는 인구 시계가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시간이 시작된 직후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종말론의 내용은 인류가 오래 존속할 수 없다고 의심할 수 있는 이유들을 강화시
켜준다. 이 점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환경 파괴, 세균전 및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
는 다른 위험들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할 것이다.
  종말론에서 주장하는 것은 위험에 대한 평가들을 확대하는 것뿐이기 때문에, '종말론'이란 
이름은 잘못 붙여진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종말론을 고려하기 전에  인류에게 
종말이 곧 닥칠 전체 위험을 10퍼센트라고 평가했다고 치자.  그런데 종말론을 고려하여 다
시 평가해보면, 이 위험은 80퍼센트로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80퍼센트라는 새로운 평가
치는 완전히 절망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물론이고, 인류가 취할 것으로 예상되
는 위험한 방식들에 바탕해 얻은 것이다.
  이제, 당신이 처음에 평가한 10퍼센트 중에서 5퍼센트는 환경 파괴와 관련된 추정 위험이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전체 위험을 80퍼센트로 재평가한 후에는 환경 위험으로부터 인
류가 곧 멸망할 위험은 아마 40퍼센트로 재평가될 것이다. 아주 먼 곳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격렬한 우주적 현상과 같은 형태의 위험에 대해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할
지 모르지만, 이40퍼센트라는 수치를 보고 우리는 깜짝 놀라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비상조
치를 취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카터-레슬린의 이론은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에 대한 새로
운 증거들에도 민감하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그러한 증거는 사람들이 위험한 방식으로 행
동하기 쉽다는 견해를 수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의 행동은 그러한 견해에 의심을 품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환경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수 세대 동안  계속되었다면, 사람들은 종말론이 이러
한 노력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종말을  오랫동안 지연시킬 확률을 인간
의 노력으로 증가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종말론에서는 그러한 종류의 이
야기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종말론은 인류가 계속 존재하는 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그것이 전하는 경고 메시지는 새로운 증거들에  따라 계속 변화해갈 것이
다.
  종말론은 많은 반론들에 대해 문이 열려  있다. 앞장에서 분명히 밝혀졌듯이, 나도 그  중 
한가지 의견을 받아들인다. 만약 우리가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면, 인류
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판단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사실'이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종말론은 입지가 매우 약해질 수 있다(약해지는 정도는 인류의 미래가 얼마나 비결정론적이
냐에 따라 좌우된다). 그러나 약점이 무엇이든 간에, 종말론은 명백한 한  가지 중요한 사실
을 담고 있다. 즉, 종말론은 앞에서 언급한 인구 시계로 측정한 시간에서 당신과 내가  예외
적으로 일찍 태어난 사람들에 속한다고 믿을  수 없다는 강한 근거를 제시한다. 이  장에서, 
나는 다양한 사고(思考) 실험을 통해 이 강력한 주장을 지지하고자 한다.
  현재의 인구 폭발이 어떻게 종말론의 기반이 될 수  있는가? 우선, 오늘날의 상황은 많은 
점에서 아주 새롭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지난날 인류가 한 세기에서 다음 세기
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능력은 인류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해 
아무런 참고 사항이 되지 못한다. 카터는 평가된 확률값의 이동을 주장한다. 카터의  주장을 
의심하여 그 확률값은 변경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그 값들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다면, 확률값을 변화시키는 데 대해 크게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확률값을  변화시키기
를 주저하는 한 가지 일반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인류는 매년 인구 크기와는  상관없
이 일정하게 남아 있는 위험들에 직면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 상황은 마치 우주의 주인이 매년 여러 개의 주사위를 던져 모든 주사위의 눈이 6이 나
오면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마음먹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상
상할 수 있는 적절한 이야기이고, 문제의 주사위가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이라면,  종말론은 
별로 큰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야기가 적절한지 어떤지 알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쪽이 옳다고 의심할 만한 강력한 근거가 존재한다. 오늘날의 인구 폭발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위험이라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기술 발전의 
결과로 인한 것이다. 종말론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인식시켜줄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뒤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것이라고 어떻
게 자신할 수 있는가?
  만약 인류가 다음 시간에 종말을 맞이한다면 어쩔 것인가? 물론 우리는 이 사실을 잘 믿
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의 최초의 추정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설사 종말론을  고
려하여 그 값을 1천배쯤 높게 재평가한다고 해도, 원래 워낙 낮은 값을 가지고 있는 위험은 
역시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0.0000000000000000000000001퍼센트와 같
은 값을 1천 배로 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보잘 것 없는 값밖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것이 정말이라면  어떻게 되는가? 앞에서 지적했듯이,  인류가 
멸망할 때에는 그 때까지 태어난 모든 인류  10명중 1명은 그 때 살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므로, 당신과 나는 모든 인류 주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인류가 최소한 다음 몇 세기 동안 살아남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서기2050년에 인구가 약 1백억으로 안정되었다고 가정하자. 얼마나 많은 세기가 지나가야 
전체 인류 중 약 절반이 당신과 나보다 더 이후의 시기에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불과 2세
기면 충분하다. 만약 그 때 은하계 식민지 건설이 시작된다면, 인구는 또다시 최근처럼 50년
마다 두 배씩 늘어나기 시작하여, 3000년경에는 당신과 나는 모든 인류 중 최소한 99.99퍼센
트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점에 살았던 셈이 될 것이다.
  카터와 레슬리의 생각은 이 분야의 두 가지 경쟁 가설 모두를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이해
될 수 있다. 두 가지 가설이란, 인류가 곧 멸망할  것이라는 것과, 인류가 아무리 오래 살아
남는다 하더라도 은하계 식민지 건설은 결코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사실, 카터와 레슬리의 
생각은 이 두 가지 가설을 동시에 강화시켜줄 수 있다. 이 두 가설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 가능성들은 동시에 상승할 수 있다. 갑이라는 사람이 근무 책상에 앉아 있지  않
다는 사실은 "갑은 자신이 요구한  자리로 승진했다"는 가설과 "갑은  회사를 그만두겠다던 
말을 실천했다"는 가설 모두를 지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와 비교해보라).
  사람의 마음은 확률을 다루는 데 적합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수학자 라이프니츠조차 2개
의 주사위를 던져 모두 6의 눈이 나올 확률은, 하나는 6, 다른 하나는 5가 나올 확률과 똑같
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더  심한 예로는, 프랑스의 수학자  달랑베르(d'Alembert)가 같은 
동전을 세 번 던진 결과와 3개의 동전을 동시에 던진 결과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카터의 종말론에 대한 반론 중에 관심을 끄는 흥미로운 주장도 있지만, 많은 것들은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주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상당히  취
약한 것들이다. 예컨대, 다음 주장을 살펴보자.
  단일 사건에서는 어떤 확률론적 결론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있고, 인
류의 인구 역사에서 관찰되는 당신의 위치는 단일 사건임이 분명한데,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위치를 물음으로써 증거의 기반을 넓히려고 시도하는 것은 우수꽝스러운 일에  불과
하므로 종말론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반론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사고 실험이 유용하다.
  각각의 통 속에 당신 이름이 적힌 공이 하나씩 포함된 2개의 제비뽑기통이 있다고 상상하
자. 첫 번째 통에는 모두 다른 이름이 적힌 1천 개의 공이 들어 있고, 두 번째 통에는 단 10
개의 공이 들어 있다. 왼쪽 통이 1천 개의  공이 들어 있는 통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확률이 75퍼센트라고 생각하고서 당신은 임의로 공을 하나 꺼낸다. 그랬더니, 그 공에는  당
신 이름이 적혀 있었다. 10개 중에서 뽑은  것이든 1천 개 중에서 뽑은것이든, 당신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온 것이다.
  이 사건은 통속에 아직도 9백99개의 공이 들어 있다는 믿음을 줄어들게 하지 않을까? 분
명히 그럴 것이다. 간단한 계산을 통해  이제 당신은 통속에 9개의 공이  들어 있을 확률이 
약 97퍼센트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사고 실험만으로는  종말론이 옳다는 
것을 확립시켜주지 못하지만, 한가지 점만은 분명하다. 즉, 이 실험에서는 단 하나의 이름만
을 꺼내는 사건이 포함되었고, 단일 사건으로부터는 확률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
가 알고 있기' 때문에 당신 이름이 일찍 나왔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다는 주장
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실험으로부터는 어떤 확률도 도출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는 모든 책들은 무
시하기 바란다. 그러한 책들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2개의 제비뽑기통을 상상해보자. 한쪽에
는 1백만개의 검은 공과 1개의 흰공이 들어 있고, 다른 쪽에는 1백만 개의 흰공과 1개의 검
은 공이 들어 있다. 어느 통이 어떤 공들을 담고 있는 통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동
전을 던져 나온 결과에 따라 한쪽에서 공을 하나 꺼낸다고 하자. 그렇게 해서 꺼낸 공은 흰 
공이었다. 그 공이 1백만 개의 흰공이 들어 있는통에서 나왔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정답
은 1대 1백만(즉, 1백만 1분의 1백만)이다.  이 답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흰공이 나올 수 
있는 1백만 1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된다. 1백만 가지는  1백만 개의 흰공이 들어 있는 
통에서 나올 경우이고, 1가지는 다른 통에서 나올 경우이다.
  어떤 가설이 1대 1백만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 가설은 아주  훌륭한 가설이라고 할 수 있
다. 이것이 단 한 번의 시도에서 얻은 결과라고 해서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
는다. 동전을 던져 17번이나 계속해서 앞면이 나왔을 때, 그 동전은 양면이 모두앞면으로 되
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생각해보자. 정상적인 동전을 던져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
을 확률은 1대 1백마보다 낮다.
  제비뽑기통 실험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각각의 경우에 꺼낸 공을 다시  통 속에 집어넣고 
잘 흔든 다음 역시 같은 통에서 꺼낸다고 할 때)어떤 의미에서는 그 통 속에 1백만 개의 흰
공이 들어 있다는 판단의 신뢰도를  '크게 증가시킬'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예컨대 흰 공이 
계속해서 3번 나왔다고 할 때, 이 판단을 지지하는 확률은 1대 1백만×1백만×1백만으로 증
가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달리 말하면, 확률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고 할 수있다. 첫 
번째 값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높은 확률이기 때문이다.
  사고 실험은 종종 실제 실험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단일 사건으로부터 확률을 결정할 수
는 없기 때문에' 흰공을 하나 꺼낸 사건은 그 통 속에 1백만  개의 흰 공이 들어 있다는 이
론을 조금도 지지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의심 많은 사람을 만났다고 가정하자(나는 
그러한 사람을 두 사람 만난 적이 있다. 한 사람은 철학자였고, 또 한 사람은 물리학자였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데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통속에 1백만 개의 공을 집
어넣는 것은 힘든 노동이 필요하므로, 각각 20개의 공이  들어있는 2개의 통을 사용하는 실
험을 해보기로 하자. 한쪽에는 19개의 검은 공과 1개의 흰공, 다른 쪽에는 19개의 흰 공과 1
개의 검은 공이 들어 있다. 이제 의심 많은 사람을 불러 두 개의 통 중 하나를 선택한 다음, 
공을 하나 꺼내라고 시킨다. 그 전에 그 사람과 내기를 걸어보자. 그 사람은 만약  나온공이 
흰색이면 그 통 속에 든 나머지  공들은 검은색이고, 나온 공이 검은 색이면  그 통속에 든 
나머지 공들은 흰색이라는 데 1달러를 걸고, 당신은 그 반대쪽에 1달러를 건다. 이 내기에서
는 거의 매 판마다 당신이 이길 것이다. 통과 공의  수를 바꿔가면서 계속 내기를 걸더라도 
당신은 거의 언제나 이기는 쪽일 것이다.
  사고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확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없는 다양한 현실 문제들에 어느 정도의 확률을(주관적으로)부여해
야 할지 생각할 때, 우리는 종종 주사위나 동전이나 제비뽑기통에서 나오는 공과 같이 분명
한 시도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결과에 대한 확률이  (객관적으로) 얼마인지를 참고하게 
될 것이다.
  만약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존스가 내일 시내에 있을 확률과 있지 않을 확률이 똑같다고 
생각된다면, 그리고 스미스와 브라운에게도 이와 똑같은 확률이 적용된다면, 또한 과거의 경
험에 비추어볼 때 세사람의 움직임은 서로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면, 존스와 스
미스와 브라운이 모두 내일 모두 시내에 있을 확률은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마치 첫 
번째 동전의 한면에 존스가, 또다른 동전의  한면에는 스미스가, 또 다른 동전의 한  면에는 
브라운이 새겨져 있고, 3개의 동전을 던졌을 때 3개의 이름이  모두 나올 확률을 구하는 것
과 같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주관적인 확률과 객관적인 확률을 혼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
은 단지 상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주관적인 것'관 '객관적인 것'은 구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종종  확률은 단지 
무지를 '주관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고, 반면에 이러저러
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정확하게 이러저러한 정도로만 가
능하다고 보는 것은 '객관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일련의 사건들이 완전히 결정론적이어
서 우리가 불확실하다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단지 우리가 모르는 일 뿐일 때에도, 우리는 
그 상황을 동전이나 주사위로 성공적으로 모형화할 수 있다.
  이제 실험들을 해보기로 하자. 이 실험들은 순전히 사고 실험일 뿐이므로, 실험자는  언제
나 신이나 악마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리고 실험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실험상의 목적을 위
해 특별히 창조된 사람이다.

    2. 작은 방과 큰방
  이 사고 실험에서는 5장의 '런던과 리틀푸들'이야기의 변형들을  소개한다. 그 중 몇 가지
에는 극단적인 비결정론이 포함된다.
  당신은 실제 세계에서 서기 2150년 이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방안에 있
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들의 숫자는 매우 많다고 생각될 테지만, 방의 크기는 두 번째  방
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편이다. 두 번째 방에는 첫 번째 방에 있는 사람들의 9만 배나 되는 
사람들이 들어 잇다(명백하게, 다른 곳이나 방안의 다른 곳보다는 방의 구석에서 당신 자신
을 발견하기가 '더 어렵다'. 즉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당신이 완전히 방 바깥에 있든지 없든
지와는 무관하게, 부가적인 어려움은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베이스의 계산은 그렇게  조
건을 개선시킨다 하더라도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큰방에 실제로 사람들이 존재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신이 단 한차례만 던지는 2
개의 주사위에 달려 있다. 만약 주사위의 눈이 적절한 것이 나온다면, 신은 그 많은  사람들
도 창조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신의 주사위가 어떻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물론 여기에는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알아보아야 할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창
조할 전체 숫자가 사전에 정해져 있는 경우와 비결정론적 세계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창조할 전체 숫자가 사전에 정해져 있는 경우
  추가적으로 (1)주사위는 극단적으로 비결정론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며, 따라서 사전에 어떤 
눈이 나올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고, (2)주사위 속에 납을 넣은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잇는 소지가 충분히 있고(이것은 확률을 추정할 때 우리가 종종 느끼는  불안감을 잘 반
영하는 요소이다). (3)두 주사위가 모두 6이 나오지 않으면 큰방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질 것
이며, (4)주사위를 던지는 행동은 신이 어떤 사람도 만들기 전에 이루어졌으며, 주사위를 던
진 후에 신은 작은 방의 사람들과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큰 방의 사람들을 즉시 만든다는 
사실을 당신이 안다고 가정하자.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당신은 주사위가 실제로 모두 6의 
눈이 나온 것이 아닌가, 즉 작은 방에만 사람이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근거
들을 가지지 않을까?
  신이 주사위에 납이 들어 있다고 의심할 소지가 충분히 있지만, 납을 넣었더라도 두 가지 
가능성(즉, 6이 나오게 하든지 6이 나오지 않게 하는)중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납이 채
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자.  그런데 당신이 눈이 가려진  채 창조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은 언뜻 생각하기에 두 눈이 모두 6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흥미로운  근
거들을 가지게 된다. 주사위가 정상적이라고 가정하면, 다른 눈들이 나올 가능성은 1대 35이
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눈이 나왔다면,  신이 창조한 사람들 중 대부분(35배가  아니라 9만 
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은 큰 방에 있을 것이다. 눈을 가린 것이 벗겨지기를 기다리면서 당
신은 자신이 큰방에 있을 것이라고 크게 기대할 것이다. 작은 방에도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그들 중 누구도 당신이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작은 방에서 자신
을 발견한다. 따라서,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신의 주사위는  누구든지 작은 방만을 볼 수 있
는 방식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실험이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  2150년 이전의 어느 시대에 인간
으로 태어난 것을 발견한다면, 이것은 2150년 이후에 모든 인류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
나기로  그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부터 결정돼 있다는(신의 주사위나 또는 더 그럴듯
한 방식으로) 이론에 반대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확률론은 워낙 논란이 많은 분야이므로 방금 내가 이 교훈을 얻기 위해 걸어온 길에는  5
장에서 본 것과 같은 여러 가지 반론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신이 던진 
주사위에서 모두 6이 나왔으며, 작은 방에만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매
력적인 근거들을 가지게 된다고 하자. 이제부터 흥미로운 문제는  이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
으로 변형시켰을 때에도 똑같은 결론이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신이 주사위를 던진 후에 작은 방의 모든 사람들은  어떤 해에 태어나도록 하고, 주
사위를 던진 결과 큰방의 사람들도 존재하게 됐다고 할 때,  그 사람들은 그보다 좀더 훗날
에 태어나도록 계획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약간 조건을 변경하면, 작은 방에서 자신을 
발견한 당신이 큰방에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특
히, 큰방의 사람들이 태어나기로 정해진 해가 아직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당신이  안다면, 
당신의 처음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큰 방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믿기 어려운  것'
이 아직 그들이 창조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창조되리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
다면, 이러한 조건의 변경이 당신의 애초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큰방에  사
람들이 존재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결정이  작은 방에 사람들이 창조되기 이전에  내려졌다
면, 큰방에 사람들이 태어날 시간이 작은 방에 사람들이  태어나는 시간보다 이전이든지 이
후이든지 혹은 동시로 정해졌다고 해도 아무런 차이도 가져올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 아직 큰방의 사람들이 살아 있지 않은 한, 그들 중
에서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은 없지 않느냐는 항의도 약간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이 항의는 자기가 살아 있는 때가 아니면 아무도 살아 있지 않다는 진부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진부한 사실들은 어떤 것도 우리가  관찰되는 시간상 위치에서 확률
론적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신이 두 무리의 사람들을 창조하기로 결정했다고 상상해보자. 한 무리는 단 3명으로 이루
어져 있고, 다른 무리는 57조나 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신은 먼저 작은 무리의  사람
들을 창조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사람들이 모두 죽고 난 다음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을 만들
기로 결정했다. 이 경우,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이 문제를 생각할  때, 큰 무리의 사람들은 
아직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이 실험에서 창조됐고, 또 이 모든 사실을  안다
고 하자. 그런데 눈이 가려진 채 태어나 눈이 뜨이길 기다리고있다고 할 때, 당신은  자신이 
57조의 사람들 중에서 발견되리라고 기대하겠는가?
  분명히 그럴 것이다. 왜냐 하면, 반대로 만약 57조의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지 않다면, 당
신은 그들 중에 있을 가능성도 절반이라는 쪽에 내기를 건다고 하자. 이 경우, 실험에  참여
한 모든 사람들도 눈을 가리고 당신과 똑같은 생각으로 내기를 건다면, 내기에서 이기는 사
람은 3명 뿐이고, 57조 명의 사람들은  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  쪽에 내기를 거는 것에 
반대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이와 유사한 상황으로, 만약 당신이 나중 무리에 속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신의 계획에 더 큰  무리로 계획되어 있는지 아닌지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도 "더 큰 무리로 계획되어 있는지 아닌지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도 "
더 큰 무리가 더 일찍 창조되었다면, 그 사람들 중에서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나도 그들 중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작은 무리에 속할 가능성은 반
반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만약 작은 방의 사람들이 창조되었을 때, 큰방에 창조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 각각의 머
리카락 색과 눈 빛깔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큰방의 사람들이 모두 남자일
지, 모두 여자일지, 아니면 남녀가 반반일지 신이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만
약 신이 그들이 모두 인간이라는 것말고는 세세한 여러 가지 특징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하
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만약 작은 방의 사람들이 창조되기 전에 큰
방의 사람들도 창조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었다면, 당신은 자신이 큰방에 있는 것으로 기대
할 수밖에 것이 요점이다. 눈이 가려진 채 눈이 뜨이길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내기를 건
다면, 이 쪽이 훨씬 더 확실한 배팅이다. 만약 큰방의 사람들을(만약 그들이 존재한다면) 신
이 직접 창조하는 대신에, 작은 방의 사람들에 의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태어나도록 신이 결
정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설사 사람들이 '작은 방, 이른 시간'이나 '큰 
방, 늦은 시간'이라는 낙인이 이마에 찍혀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역시 아무 차이가 없다.
  요약하자면, 5장에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사항들은 옳은 것으로 보인다. 카터의  일반적인 
논리를 반박하는 근거로서 제시되는, 미래에 행해지는 관찰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
장은, 바로 지금 그러한 논리를 사용할까말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지금보다 더 이
른 시간이나 더 늦은 시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생각하고 있다는 더 지엽적인 주장만큼이나 
쓸데없는 것이라는 점을 사고 실험은 확인시켜준다(이러한 쓸데없는 주장들을 잠시 후에 고
려할 아주 다른 주장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미래에 사람이 존재하느냐 마느냐, 그리
고 만약 존재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은 아직 신이나  결정론적인 
자연적 인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왜 하필이면 작은 방의 사람들이 창조되기  전에 큰방이 채워지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 경우를 논하는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실제 
세계는 완전히 결정론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세계는 시간이  시작될 무렵의 세부 사항
들에 의해 전체 미래가 결정된 세계를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도 창조되기 전에 창조될 전
체 사람수가 결정돼 있다면, 이것은 결정론적인 실제 세계 상황에 해당하며, 이러한  세계에
서는 (사고 실험이 확인해주는 것처럼) 종말론이 무난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실제 세계가 결
정론적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다음에서는 우리의 사고  실
험을 좀더 다양하게 해보기로 하자.

  비결정론적 세계에 해당하는 경우
  비결정론적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 사고 실험은 어떻게 꾸밀 수 있을까? 그 담은 아주 간
단하다. 신이 주사위를 던지는 행위를 작은 방의 사람들을 창조한 것보다 더 늦은 시간으로 
잡음으로써 그러한 여러 가지 사고 실험을 할 수 있다.
  이번에도 당신은 작은 방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당신은 주사위의 결과에 대해 어떤 결
론을 내릴 수 있을까?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의 주사위는 극단적으로 비결정론적이라고 하
자. 즉, 주사위의 눈이 어떻게 나올지는  앞에 일어난 어떤 상황에 의해  결정될 수가 없다. 
당신은 주사위 안에 납 같은 것이 들어 있지 않으며,  주사위가 아주 공정하다는 사실을 안
다고 하자. 또한, 앞의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주사위의 눈이 모두 6이 나올 경우에만 큰
방의 사람들이 태어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주사위가 아직 던져지지 않았다는 사실
을 알고 있다(실은, 이 마지막  사항은 지나치게 구체적이다. 필요한 것은  주사위를 던지는 
행위가 당신이 창조된 시간 후에 일어났다는 것뿐이다. 당신이  카터의 종말론과 유사한 어
떤 주장을 고려하기 전에 주사위가 던져졌느냐 혹은 후에 던져졌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
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처럼 때를 명시하는 것은 사고를 명쾌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
다). 이제 작은 방에서 당신을 발견한 사실은 두  주사위의 눈이 모두 6이 나왔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가?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사위는 공정하며,  그 결과를 절대로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주사위는 아직 던져지지 않았다. 두 주사위의 눈이 모두 6이 나올 확률은 36분의 1이다.  더 
이상 논의할 것은 없다.
  여기에 대한 한 반론으로 시간에 관한 B이론(과거냐 현재냐 미래냐 하는 것은 저기냐 여
기냐 하는 것처럼 상대적이라는 이론)에서는 주사위가 어떻게 나오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실제적인 '사실'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주사위들은 '4차원을 따라' 정해
진 방식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사위가 어떻게 떨어질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방
법은 절대로 없지만, 지금 현재 주사위들이 어떤 방식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그렇다면, 카터의 종말론과 같은 생각은 그것은 알 수 있는 비범한 방법을 제공하거나 
최소한 그것에 대한 아주 그럴 듯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B 이론이 옳으냐 그르냐에 관계 없이 이 반론은 틀렸다. 
설사 시간이 시작된 순간부터 우주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진화해가고, 인류가 존재할 시간 
역시 몇 년이라고 정해져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
이라는 생각(나중의 사건들은 취할 수 있는 많은 형태들 중에서 앞서의 시간이 우연히 취한 
형태들에 의해 결정되는 방식으로  앞서의, 사건들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생각)과 양립할 수 
있다.
  근본적인 비결정론은, 확실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의 인구에  대한 사실은 카터의 종말론
은 적용할 수 있는 적절한 사실이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만약 세계의 시간 역사가 시간에 
관한 A 이론에서 주장되듯이 조금씩 점차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카터의 생각은 성립하지 않
으며, 또한 그러한 연속적인 시간 역사 단계들이 B  이론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모두 거기
에 함께 존재한다고' 해도 (따라서, 세계가 아인슈타인의 4차원 시공간적  존재라는 것을 가
진다면) 역시 카터의 생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립하지 않게 된다.
  만약 아직 던져지지 않은 2개의 공정하고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인 주사위의 결과에 따라 
인류가 서기 2150년 이후에도 살아남을 것인지가 결정되며, 또 두 눈이 모두 6이 나올 경우
에만 인류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안다고 할 때, 인류가 2150년 이후에도 살아
남을 확률은 36분의 35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설사  그러한 비결정론적인 주사위들이 특
정 방식으로 떨어지고, 따라서 인류의  미래도 어떻다는 것을 이미 알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내가 B  이론이 부적절하다고 강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
은, 그 경쟁이론인 A 이론이 옳을 수  있는 최소한 논리적 가능성이 있다는데-어떤 사람들
은 부정하겠지만-일부 기인한다).
  이 주장은 종말론의 기반을 무너뜨리는가? 불행하게도, 이것은  다만 종말론의 입지를 약
화시킬 뿐이다.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세계에서 인류가 구체적으로 몇 년이나 오래 살아
남을 확률이 정확하게 얼마라는 확신은 절대로 가질 수 없다.  인류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높은 확률을 부여해주는 주사위와 같은 인자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런 확
고한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세계가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은 충분히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우리가 어느 때에 지구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인류가 훗날 은하계 전체로  확산되리
라는 가능성이, 예컨대 12퍼센트 혹은 20퍼센트일 때 우리가 태어났으며, 모든 인류  중에서 
예외적으로 일찍 출현했다는 생각에 반대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도 되지 못한다. 반면에, 이 
사실은 정말로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는(예컨대, 97퍼센트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반대를 제기
할 수 있는 상당한 근거가 된다.
  여러분과 나는 당연히 우주의 주사위를 믿으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우주
의 주사위란, 우리가 태어날 시간에 아직 던져지지 않은 것으로서, 전체 시간에 존재할 인류
의 수가 그 때까지 태어난 사람들보다 약 10억 배나 더 많을 가능성이 36분의 35(약 97퍼센
트)라는 높은 확률을 가지고 있는 주사위를 말한다. 주사위에 대해 확고한 지식을 가짐으로
써 그것을 확실하다고 믿을 수 없는 한, 인류가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아 우리가 모든 인류
중 최초의 10억분의 1에 속하도록 사실상 결정된 때에 우리가 태어났다고 왜 믿어야 하겠는
가?
  어떤 상황이 1백 퍼센트의 가능성을 가진 것에 접근할수록 우리는 그 상황이 사실상 결정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당성을 더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즉, 그 상황
을 통제하는 인자들에 작용하는 비결정론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설사 세계가 비결정론적이라고 가정해도, 카터의 생각은 우리가 태어날 때 인류는 사실상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 확실하였다는 이론에 대해 매우 강한 반론으로 성립할 수 있다. 마
찬가지로, 카터의 생각은 이것이 72퍼센트의 가능성이 있다든가, 저것이 65퍼센트의  가능성
이 있다든가 하는 이론에 대해서도 매우 강한 반론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세계는  완
전히 결정론적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카터의 종말론이 '결정되지 않은 미래의  성질' 
때문에 약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비록 오늘날 사람들은 양자론이 세계가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
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3장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다른 생각을 가진 물리학자들도 있다.  양
자론적 불확실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해 보이지만,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 지닌 
불확실성조차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그러나 이  의미는 주어진 순간에 세계의  모든 상태를 
아는 악마라면 주사위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는 개념과 양립할  수 있다)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총알이 날아오는 방
  '총알이 날아오는 방' 사고  실험은 5장에서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그것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악마가 하나의 방안에 사람들을 한 무리 또는 여러  무리 창조한다고 상상하자. 연속적으
로 만들어내는 무리들은 처음엔 10명, 그 다음엔 1백 명, 1천 명, 1만 명씩으로 계속 10배씩 
늘어난다고 하자. 당신은 그러한 한 무리 중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실험의 각 단계마다 다음 
번 무리가 만들어질지 여부는 악마가  던지는 2개의 주사위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자. 어떤 
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주사위가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2개의  주사위가 모두 6이 
나오지 않는 한, 그 무리의 사람들은 무사히 방에서 나간다. 그렇지만 둘 다 6이 나오면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총에 맞아 죽게 되고, 실험은 끝난다. 당신은 방에서 무사히  나갈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는가?
  여기서도 우리는 주사위는 공정하며, 근본적으로  비결정론적이라고 가정한다. 따라서, 주
사위의 눈이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둘 다  6
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줄 수 있는 비상한 방법은 없을까?
  실험에 참여한 사람 전부가 두 주사위의 눈이 모두 6이 나와 자신들이 총에 맞아  죽는다
는 쪽에 내기를 걸었다고 상상해보자. 이들 중 최소한 90퍼센트는 내기에 이길 것이다. 만약 
첫 번째 시도에서 두 주사위가 모두 6이 나왔다면, 내기를 건 사람들 1백 퍼센트가 이길 것
이다. 그리고 총에 맞아 죽을 사람은 10명의 한 무리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두 번째 시도에
서 둘 다 6이 나온다면, 지금까지 그밖에 들어온 1백10명  중에서 1백 명이 총에 맞아 죽을 
것이다. 그 비율은 약 91퍼센트이다. 세 번째 시도에서 둘  다 6이 나온다면, 희생자의 비율
은 90퍼센트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희생자의 비율은 실험이 계속될수록
(끝나지 않고 계속하는 한) 90퍼센트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따라서, 자기가 총에 맞아 죽을 
것이라는 쪽에 내기를 건 사람들 대부분은 내기에서 이기게 된다.
  각각의 무리가 그 방에서 무사히 나올 확률은 36분의 35라는 확신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려
고 노력하는 보험업자는 엄청나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셈이라고 반 프라센
(B.van Frassen)은 말했다(50번째 시도에서 2개의 주사위가 모두 6이 나왔다고 하자. 그 때
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부분의 무리, 즉 50개의 무리 중  49개는 그 방에서 무사히 나
갈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총에 맞아 죽을 운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한 이야기에서 악마는 2개의  주사위가 나오는 것이 얼마나 오래  지연되는냐에 
상관 없이 사람들을 끝없이 만들어낼 수 있고, 또 아무 문제 없이 방안에 채워넣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방은 무한히 크다. 그렇지만  방의 크기가 무한히 큰 것이 아니라 그  방이 
가득 채워지기 전에 2개의 주사위에서 6이 나올 것이 거의 확실할 정도로 상당히 크기만 하
더라도, 결과는 똑같지 않겠는가?
  이것은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다. 아무리 미약하긴 하지만, 주사위를  1조×1조×1조×1조 
번 혹은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횟수를 던진 후에도 모든 사람들이 살아 있을 확률은  존재
한다. 만약 그 방에서 나오는 무리의 수가 그 방을 가득 채울  만큼 수가 아주 많을 경우에
는 실험이 끝난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마지막 무리의 사람들의 수가 아주 크다는 사
실에 착안하여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아주  작은 확률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주장한
다. 그래서 그 방에 들어가는 보통 사람들은 무사히 나올 확률이 36분의 35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은  1조×1조×1조×1조 번이라는 비교적 작은  횟수의 
시도 뒤에라도 그 방에서 무사히 나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총알이 날아오는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날아올 가능성이 엄청나게 
커서 방에 들어온 사람은 대부분 또는 전부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방
이 무한히 크다고 함으로써 이  귀찮은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자. 그래서  이 방에 들어오는 
무리 중 총에 맞아 죽을 마지막 무리가 항상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올바른 교훈은 당신이 이 방에서 살아서 나가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역설적이다. 특히, 살아서 나가는 쪽에 내기를 건 사람들 중  90퍼
센트는 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는 주사위가 둘 다 6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주사위는 
악마의 손에 아직 머물러 있고 던져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눈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방에서  무사히 나올 확률이 36분의 35라
는 것뿐이다.
  이것으로 모든 논의는 끝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  문제는 너무나도 역설적이기 때
문에 완전히 확신을 가지기가 어렵다(한 봉투에 다른 봉투보다 두 배의 돈이 들어  있는-그
렇지만 당신은 어느 것이 더 많은 돈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봉투 교환의 패러독스의 경우
에 비유해보자. 봉투를 바꾸길 원하는 주장에 대해 당신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펼칠 수 있
다. 봉투 교환은 돈을 두 배로 불릴  수 있는 기회를 절반 제공하지만, 처음에 당신이  돈이 
적게 든 봉투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돈을 두 배로 불릴 수 있다. 반면에, 처음에  돈이 많
이 든 봉투를 가지고 있었다면, 당신은 오히려 돈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당신의 봉투 안에 든 금액을 x라고 한다면, 다른 봉투에 든 금액을 2x의  절반에다가 x/2의 
절반을 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비유에 대해 나는 데이비
드 루이스에게 감사한다. 또한, 총알이 날아오는 방의 패러독스에 이르게 한 서신에도  감사
한다). 왜냐 하면, 당신이 실제로 방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기  위해 어떤 
논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당신이 사용한 것과 똑같은 논리를  사용하여 방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 중 90퍼센트는 총에 맞아 죽어야 한다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오랫동안 종말론을 반
박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마침내 종말론의 강력한 지지자가 된 수학자 델라에는 <과학을 위
하여>에서 이것을 약간 변형시킨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그 이야기에 '이기는 확률과 지
는 확률이 모두 90퍼센트'라는 제목을 달아 이 이야기가 지닌 역설적인 성격을 잘 표현했다.
  총알이 날아오는 방의 역설은 종말론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종
말론을 완전히 무너뜨린다기보다는 그 입지를  약화시킬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구가 현재의 증가 속도로 아주 오랫동안 늘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게 되면 인류
는 얼마 안 되어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팽창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21세기 중반에 기
아와 같은 현상을 통해 일시적인 정지도 기대할 수 있다.  그 때쯤에는 종말이나 인구 충돌
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세계 인구가 1백억 정도에 이를 것이다.
  이번에는 급속한 인구 증가가 일어나는 시기에는 종말론이 잘못된 교훈(위에 소개한 것과 
같은 상황에서 자기가 총에 맞아 죽을 가능성이 많다고 잘못 내린 결론처럼)을 줄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인류는 2050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으며, 인구는 1백억까지  문제없
이 증가할 것이고, 은하를 정복함으로써 가능해질 미래의 인구 증가는 무시하기로 주장한다
고 하자. 이 모든 것을 양해한다고 해도, 카터의 생각은 여전히 강한 설득력을 유지할  것이
다. 왜냐 하면, 여러분과 나보다 더 늦은 시기에 살아갈 사람들은 역사상 태어난 모든  사람
들의 절반 정도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인류는 2050년 이후에는 겨우 2백 년 정도 더 지속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류가 그와 같은 크기로 계속 증가한다면, 불과 몇천 년 후
에는 여러분과 나는 아주 극소수의 비율 중에 포함될 것이다.
  게다가, 작은 방과 큰방에 대해 이야기한 사항들로 돌아갈 수도 있다. 우리는  주사위들이 
파국적인 결과로 떨어질 가능성이 실제로  아주 작은지(그래서 미래에 존재할  인류의 수가 
엄청나게 많도록 결정되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주사위들을 면밀하게 검사하지는 않았다. 
카터의 생각을 검토하기 전에라도 다음 몇 세기 후에  사람들이 존재할 확률은, 공정한 2개
의 주사위를 다음 몇 번에 걸쳐 던지는 동안에 둘 다 6이 나오지 않을 확률보다 훨씬 더 작
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근거들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또, 우리는 인류가 얼마나 오래 존
속하느냐는 이미 오래 전에 사실상  결정되어 있다고 의심할 수도 있고,  이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들은 주사위를 반복해서 던지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고 의심
할 수도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양자론적 비결정론에 대한 글을 쓰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
구하고 세계는 완전히 결정론적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다.
  완전한 결정론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악마가 파이(원주율: 이것은 3.14159…로 시작된다)를 소수로 나타낸 일련의 수들에서 6이 
두 개 겹쳐서 나오기 전까지는 방에 들어온 각 무리들을 무사히 내보내기로 결정했다고 가
정하자. 소수 7백만째 자리(이것은 수학자가 아닌 악마가 이 자리의  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다음에 어떤 수가 계속되는지 모르고 선택한 자리이다) 이후에 계속되는 숫자들을 2개씩 
선택하여 방에 들어오는 새로운 각각의 무리에게 부여한다. 이제  당신은 방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컴퓨터는 다음의 두 숫자가 무엇인지 계산을 하고 있다.
  당신은 그것이 66이 되리라고 기대해야 할까?  정말로 그래야만 한다. 왜냐 하면,  이제는 
비결정론적인 경우의 실험에서 적용되었던 역설적인  결론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
다. 당신이 방에 들어왔을 때, 당신이 그 방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결정론적
으로 작용하는 요인들에 의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파이의 연속되는 숫자
에는 비결정론적인 요소라고는 조금도 없다. 앞서 컴퓨터가 계산한 숫자들을 검토한다고 해
도 다음에 나올 2개의 숫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을 것이다(당신은 
그 정도로 뛰어난 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므로). 그러나 당신은 재난이 닥칠 
것이라는 건 예상할 수 있다. 당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 중 90퍼센트는 그러한 재난
을 맞이할 것이다.
  완전히 결정론적인 이 경우에, 시간상의 대부분의 위치에서 종말을 기대한 사람들은 잘못
된 것으로 판명날 것이기 때문에 종말(총에 맞아 죽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
는 것은 어리석다. 왜냐 하면, 주어진 상황에서 결정론이 중요한 것은, 만약 모든 사람이 종
말을 기대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옳은 것으로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리의 크기(인구 크기)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의 결정도 이 이야기를 변형시켜 반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악마가 맨 처음 무리의  수 다음에는 한 무리의 수가 얼마 되는지에  대해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상상해보자.  악마는 잔에게 그것을 결정하도록 맡겼다.  잔은 
첫 번째 무리에 포함된 누구라도 좋다. 나는 지금 나중에 태어난 무리 속에 있는 자신을 발
견했다. 내가 총에 맞아 죽느냐 여부는 앞에서와 같이  컴퓨터에서 66이라는 숫자가 나오느
냐에 달려 있다. 잔은 컴퓨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자유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내가 총에 맞아 죽는가도 기대해야 하는가의  여부는 잔이 어떻게 결정했느냐
를 아는 것에 달려 있다. 만약 잔이 첫 번째 무리 이후에는  각 무리의 수가 똑같도록 결정
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내가 방에서 무사히 나가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반면에,  만약 
잔이 어떤 무리의 수가 그 앞의 무리보다 1백 배  많도록 결정했다면, 나는 총에 맞아 죽는
다고 기대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역설도 개재하지  않는다. '총에 맞아 죽을 실제 
위험'이 잔의 결정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렇지만 총에 맞아  죽는 
상황을 설정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중요할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잔과 함께 첫  번째 무리에 속해 있다고 상상하자.  그리고 악마가 잔에게 
이 다음에도 다른 무리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들의 크기는  오로지 잔의 결정에 달려 있
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치자. 그리고 잔과 나는 컴퓨터에서 66이 나오지 않는 한, 그 무
리의 사람들은 무사히 방에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약 66이 나오면 그 때의 
무리는 모두 총에 맞아 죽고, 실험은 끝난다. 이제 인간의 결정을 비롯해 모든 사건들이  궁
극적으로 결정론적이라고 내가 확신한다고 가정하자.  즉, 인간의 두뇌는 '의사결정  기계'이
고, 나중에 태어날 무리의 수를 잔이 어떻게 결정할지는 잔과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결정
되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는 총에 맞아 죽을 것이라고 기대해야 할까?
  그렇다. '총에 맞아 죽을 실제 위험' 같은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잔의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지적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러나 내가 총에 맞아 죽을 가능성에 대한 나의 평가는 잔의 결정이 어떠하느냐를 아는 것
에 좌우될 수 있다. 잔의 결정 덕분에 만약 단 하나의 무리가 뒤에 있다고 해도,  나는 아주 
소수의 집단(그 방에 들어올 모든 사람들 중 최초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에 속하게 되리라
는 것이 확실하다.
  어떤 무리의 크기가 내가 태어나기 전에  결정론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내가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내가 그렇게 작은  집단에 속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만약 잔의 결정이 비결정론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방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총에 
맞아 죽을 운명이지만, 나는 방에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큰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상의 이야기 중 역설적인 것은 전혀 없다.

    3. 누구를 인간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이번에는 종말론에서 언급하는 '대조 집단'에 대해 살펴보자.  종말론의 목적상 어떤 존재
를 '인간'으로 간주해야 할까? 과거를 돌아볼 때,  우리는 인간이 유인원에서 갈라져나온 것
이 언제라고 말해야 할까? 또, 먼 미래를 상상할 때, 진화상 많은 변화를 겪은 우리의  후손
을 아직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과거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어디다 선을 긋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
다는 첫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여기에 포함되는 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약 10만 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생각되는 집단)만 세거나, 모든 호모 사피엔스(네안데르탈인까지 포함해 
약 6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집단)를  세거나, 혹은 오늘날의 침팬지로 이어지는 가
지와 갈라진 이후(약 5백만 년 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의 모든 존재들을 포함시켜도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초기에 존재했던  인구는 오늘날에 비하면 보잘 것 없기  때문이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소개한 대략적인 평가를 얻을 때, 나는  최초의 인간이 약 50만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가정하였는데, 그보다 2배 정도 더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가정하더라도 별 
차이는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가 미래 쪽을 바라볼 때에는  스테이플던(O.Stapledon)이 <최후의 
인간과 최초의 인간>이라는 책에서 상상한, 크게 변화한 모든 형태의 후손들을 인간으로 간
주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기 수 있다. 심지어  우리의 후손과 컴퓨터 사이에 고
도의 결합이 일어나 그들의 두뇌가 영원히 연결된 경우까지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들 모두
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우주론자 데이비스(P.C.W.Davis)는 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종말론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
다고 생각하지만(이러한 종류의 반응은 일반적인 과학자나 철학자 사이에서보다 우주론자나 
과학철학자 사이에서 더 흔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우주론자로는 이스라엘(W.Israel)과 리스
(M.J.Rees)가 있고, 과학철학자로는 록우드(M.Lockwood)와 스마트(J.J.C.Smart)가  있다. 여
기에는 시간의 B 이론을 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 같다. B 이론의 
옹호론자인 스마트는 자신이 B 이론가인가 아닌가 하는  사실이 종말론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내 주장에 임시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나는 여기서 단지 마음들이 어떻게 작용
하는가를 보고하고 있을 뿐이다-실제로는 종말론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사람들이 카터의 
목적을 위해 시간상 관찰된 위치들을 공간상에서 관찰되는 위치들로 취급하는 것처럼  취급
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현재 B 이론은 과학철학자들과 우주론자들 사이에 특히 휴행되고  있
다. 남성들은 종말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여성들은 종말론을 매우 강력하게  생각
하는 경향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언급하고자 한다. 이것은  여성들이 남자들이 세상을 엉
망으로 만들어놓았다고 믿기를 좋아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성들이 새로운 생각에 거부감
을 덜 느끼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인류가  곧 완전히 컴퓨
터에 의해 대체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말로 우리와 거의 똑같이 생각하도록 설계된다면,  컴퓨터들도 종말론의 대상인 인간으
로 간주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는  아무리 지능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영
원히 의식을 가질 수 없으며, 따라서 진정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
의 생각이 옳은지는 확실치 않다.
  이러한 이야기는 흥미로운 논쟁거리를 제공할 수 있지만, 이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카터의 종말론이 우리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카터의 종말론은 인류 앞에 닥쳐 있는 어떤 위험들을  별 것 아니라고 무시하기 전
에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터와 나는 미래에  대해 낙관할 수 
없다는 쪽으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오늘날의  인간들이 단지 
수천 년 정도가 아니라 수백만 년 동안 계속될 후손들을 가지려면, 그리고 이들을 모두  '인
간'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면, 그러한 사고의 전환이 더욱 크게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약 인류가 수천 년 후에 멸망한다고 해도, 컴퓨터에 기초한 지능 시스템에 의해 대체됨
으로써(물론 그러한 시스템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야  한다) 멸망한다면 비극은 좀더 
줄어들 것이라는 것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진실로 중요한 문
제가 아니다. 진실로 중요한 문제는 카터의 주장이 성립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성
립한다면, 설사 우리의 관심을 다음 수백 년 동안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에 한정
한다 하더라도, 종말론은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줄 수 있다.
  인류가 큰 재난을 맞이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수백 년 동안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
다. 그런데 이 기간에 사람들이 인간의 사고 과정을 기계로 옮겨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계가 등장할 가망은 거의 없다. 더구나, 만약 종말론이 보통 인간들을 지능 기계들로 대체
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것은 그 자체로 다소 흥미롭기도  하지만,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방금 제기한 '대조집단' 문제에 대해  제시될 수 있는 다양한 답들
을 검증해볼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나는 이용 가능한 기술이 한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제비뽑기등의 비유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당신이 제비뽑기통 안에 특정 집단의 공들이 몇 개나 들어 있는가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상황을 상상하자. 특정 집단을 빨간 공들의 집단이라고 하고, 통 속에는 빨간 공뿐만 아니라 
녹색 공과 노란 공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당신은 베
이스의 추론을 사용할 수 있다. 베이스의 추론은 종말론이 아주 강한 상황에 잘 적용된다고 
나는 주장했다. 그러한 상황은 세계가 완전히, 결정론적이든지, 비결정론적이지만, 인류가 얼
마나 오래 존속하느냐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때를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제
비뽑기통 속에 들어 있는 이름들의 수'(세상에  태어날 모든 사람들의 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베이스의 추론은 대조 집단 수수께끼에 어떤 빛을 던져줄 수 있는가?
  제비뽑기통 속에 1천 개의 공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안다고 가정하자. 만약 첫 번
째로 나온 공이 빨간 공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통 속에 빨간 공이 단 하나 또는 10개
뿐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을 증폭시킬 수 있다. 그러한  의심이 얼마나 증가하느냐 하는 
것은 5장에서 설명한 베이스의 법칙을 이용하여 구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의 확률 평가가 
얼마나 많이 이동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번에는 당신이 관심을 가진 문제는 얼마나 많은 공이 빨간색 공이나 녹색 공 집단에 속
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상상해보자. 첫 번째 나온 공이 빨간 공이라면, 이것 역시 당신의  확
률 평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를 들면, 빨간 공이 관찰된 사실은 1천 개의 공 중에 단 3
개만이 빨간색 또는 녹색 '대조집단'에 속할 확률이 99퍼센트라는 평가에 아주 큰 베이스 이
동을 가져올 수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빨간 공은 그냥 빨간  공으로 취급될 수도 
있고, 빨간색 또는 녹색 공으로도 취급될 수 있다는 점이다. 빨간 공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
느냐가 관심 사항일 때에는 그 공을 빨간색 또는 녹색 공으로 취급해야 한다. 따라서,  계산
에 대입되는 사전 확률은 빨간색 또는 녹색  공 집단에 속하는 공들의 다양한 수들에 대한 
사전 확률이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정확하게 똑같은 증거(빨간 공이 나왔다는 증거)를 사용한 베이
스의 계산은 두 가지 서로 다른 평가(통 속에 다양한 개수의 빨간 공들이 들어 있을 확률들
에 대한 평가)의 경우에 서로  다른 베이스 이동을 나타낸다. 이것은  빨간색 또는 녹색 공 
대신에 빨간색 또는 핑크색 공 또는 빨간색 또는 불그스름한 색의 공으로 대체한다고 해도 
성립한다. 물론 '불그스름하다'고 부를 수 있으려면 공의 색이 어느 정도까지 엷은 빨간색을 
띠는 것을 말하는지 당신이 결정을 해야 한다. 당신이 원한다면 어두운 보랏빛 공도 불그스
름한 공으로 간주할 수 있다. 다만, 당신이 하는 행동이 모호하지 않고 명쾌하도록만 주의하
고, 거기에 따라 사전 확률을 조정하라.
  통 속에 든 모든 공에 번호가 매겨져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거기서 공을 하나 꺼냈는
데, 엷은 빨간색 공이다. 그것은 통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엷은 빨간색 공 중에서  임의로 나
온 번호의 엷은 빨간색 공일 뿐만 아니라, 모든 빨간색 또는 불그스름한 색의 공 중에서 임
의로 나온 번호의 빨간색 또는 불그스름한 색의 공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따라서, 
관찰자를 제비뽑기통 속에서 임의로 나온 것으로 취급하는 종말론은, 전형적인 인간(임의로 
꺼냈을 때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종류의 인간)을 비전형적인 포유류로 생각해도 괜찮다는 주
장, 즉 한 대조집단의 전형성이 대조집단을 약간 수정했을 때  아주 이상한 것으로 변할 가
능성이 있다는 주장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빨간색 공들은 전형적인  녹색 공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똑같은 공이 빨간색 공들의 집단과 빨간색  또는 녹색 공의 집단 모
두로부터 임의로 나왔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전형적인 포유류가  아니듯이 제비뽑기통 
속의 어두운 빨간색 공도 전형적인 빨간색 공이 아닐지 모르지만, 임의로 꺼낸 공이 어두운 
빨간색으로 들어났을 경우, 그 공은 제비뽑기통 안의 모든  어두운 빨간색 공들로부터 임의
로 선택된 공이다. 그것이 '임의의 어두운 빨간색 공이  아니라 임의의 빨간색 공'이 아닌지
에 대해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주는 교훈은, 대조집단은 종말론의 목적에 맞게끔 만들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우리가 많은 변형이 일어난 후손들, 예컨대 팔이 3개라든지 신과 같은 지능을 가진 존
재들을 '진정한 인간'으로 간주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에도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
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만약 우리가 단지 2개의 팔을 가진 인간이나 오늘날의 인간과  거의 
같은 지능을 가진 인간들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다른 존재들을  제외하는 것에도 아무런 잘
못은 없다.
  대조집단의 변화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설명한 바 있다. 페르미의 유명한  질문,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와 관련하여 우리는 원한다면 우리 자신을 '기술적으로 발달한 종의 구성원'
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우리 우주가 그러한 종을 수많이 포함하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이것을 사용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신에  우리를 단지 '인류의 구성원'으로 간
주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인류의 미래에 관한 종말
론을 전개했다. 또, 나중에는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예컨대, 성별이나 눈의 색깔 등에 상관 
없이 큰 방에 인간이 창조되었느냐의 여부와  같은)에 부적절한 것이라고 판단되면, 관찰자
는 자신의 특징(예컨대, 남자냐 여자냐, 또는 눈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혹은 머리카락의 
색이 어떠냐 등)을 무시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만약 당신이  맹인으로 태어나 얼마
나 많은 사람들이 갈색 피부를 가졌는지 추측하려고 노력한다면,  당신의 피부 색깔에 대한 
정보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말론의 대조집단은 우리 마음대로  얼마든지 변화시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가? 대조집단을 확대하는 것은 쉽사리 지나친 것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주 원시적 
형태의 생명체도 관찰자로 간주하는 확대를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
다. 그러한 생명체는 의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완전한 의식은 
아직 침팬지도 그러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자기성찰 능력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Julian Jaynes)는 인간들조차 그러한 능력을 최근에야 습득했
다고 주장하는 한 <동물행동학>지의 원고 검토 위원과 열띤 논쟁을 벌이다가 퍼뜩 그의 이
론에는 그가 주장하는 것보다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의식이라는 개념은 명확한 개념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적  마음'은 아주 복잡한 정
보처리 과정일 가능성이 높다.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우리의 무의식적  과정은 순간적으로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어떤 카메라도 흉내낼 수 없는  아주 정교하고 복잡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대조집단을 아주 좁게 잡는 것도  부적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당신이 
태어난 바로 그 날 또는 그 후에 태어난 모든 인간들의 집단에서 특별히 일찍 태어난  사람
이 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종말론이 당신이 태어난 것과 같은 때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특히 위협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인간과 네안데르탈인의 공통 조상도 종말론의 계산에 넣어야 할까? 대조집단을  네안데르
탈인에게서 갈려나온 이후의 사람들로만 한정하는 것은, 자기가 태어난 때 이후의 사람들만
을 대조집단으로 삼는다든지 또는 최소한 자기보다 1백 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포함시
키지 않는 것과 같은 행위라는 불평이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종말론에서 누구를  인간으로 
간주해야 하는가를 찾기 위해서는 그보다 좀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5장에서 설명했듯이, 종말론의 인구 시계는 인간들이 확률론 시험에 합격할 수 있
을 때에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개념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시간상의 자신의 위
치를 비교적 정교하게 관찰할 수 있는(예컨대, 어떤 침팬지도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가진)존
재들이 출현한 때부터 인구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길 원할 수 있다. 침팬지는 
시간이 점심때라는 것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침팬지 종의  역사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원칙을  인간과 네안데르탈인의 공통 조상
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종말론에서는 그들의 존재를 무시해야 옳지 않을까?
  다음의 고찰은 아주 중요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만약 그러한  공통 조상을 포함시킬 필요
가 있다고 양해한다면, 이것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갈라져나온 이후의 인간들만을 대조집단
으로 삼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사실상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카터가 나에게  지
적한 것처럼 '이들을 포함시키는 것'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분리가 일어나기 전에 존재했을 인간들 또는 인간에 거의 가까운 존재들이 자신들
의 혈통을 수천 세기 동안 성공적으로 전파했다는 사실은, 분리가 일어난 후의 인간들이 극
소수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초기  인간들 또는 인간에 
거의 가까운 존재들이 아주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생존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후손 역시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는 경향을 시사한다. 따라서, 베이스의 법칙을 사용하는 사람은  대조집단속
에 포함될 다양한 수의 미래 인간들의 사전 확률을 추정할 때 이들 초기의 인간들을 고려할 
수 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대조집단을 당신보다 더 늦게  태어난 사람들로 좁히는 경우
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조집단을 이렇게까지 좁히더
라도, 사전 확률을 적절하게 조정한다면 부적절하게  공포스러운 종말론이 비롯되지는 않는
다.
  당신이 베이스의 계산과 인류의 역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태어났다고 가정하자. 인류
가 당신이 태어난 바로 그 주에 멸망할 사전 확률은 아마도 아주 작은 것으로 생각될  것이
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즉, 만약 인류
가 다음 1세기를 더 살아남는다면, 문제의  그 주에 태어난 사람들은 바로  그 주에 태어난 
사람들이나 다음 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에서 예외적으로 일찍 태어난 셈이 되겠지만, 
이것을 근거로 하여 인류가 다음 1세기를 더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에 멸망할  것이라
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미래 쪽을 바라다볼 때에 대조집단을 어느 정도까지 확대하는 것이 적절할까? 종
말론의 목적상 팔이 3개 달린 사람을 포함해 진화상 많은 변형이 일어난 후손들까지 포함시
키도록 대조집단을 확대하는 것을 지지하는 강한 근거가 있다(단, 그들의 지능 수준은 침팬
지보다 넘어서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왜냐 하면, 우리는 후손들  중에서 얼마나 많
은 존재들이 팔이 2개인 집단과 같은 특정 집단에 속하는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
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인류가 조만간 재난을 맞이하여 어떤 유형이든지 간에 우리의 
후손이 거의 남지 않는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팔이 3개 달린 후손이나 눈이 5개 달
린 후손, 전파를 감지할 수 있는 후손,  복잡한 방정식을 쓱 훑어보는 것만으로 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후손 모두를 인간으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 팔이 3개 달렸다거나, 전파를  감지
할 수 있다거나, 굉장한 지능을 가진 후손들이 존재한다면 결코  종말이 왔다고 말할 수 없
다. 더구나 인간과 같은 사고 과정을 가진 고도의 지능  기계나 심지어는 인간과는 아주 다
른 사고 과정을 가진 지능 기계조차도 만약 이들이 우리를 이어갔다고(이들이 존재할 수 있
는 것은 한때 인간의 형태로 지구상에 출현한 지능 생명체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에서) 말할 수 있는 한, 종말론의 목적상 인간으로 간주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다음 몇 세기 후에도 우리의 후손이 존재하는가를 예측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후손에는 매우 다양한 지능 기계들(아마도 은하계를 정복하는 데에 인간보다  더 뛰어난 적
응성을 지닌)도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아주 많은 후손들을 가질 수 
있는 기대치는, 만약 인류가 다음  수세기를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바로 종말론이  우리에게 
인류가 다음 수 세기를 무사히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과 똑같다.

    4. 물리학자들을 위한 첨언
  안드레이 린데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종말론은 실패한다고 제안했다. 즉, 우주는 
인류가 무한히 길게 존속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린데는  생각한
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조건을 잘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인류 역
사가 시작된 이래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난 지점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 사람은 전체 인
류의 존속 시간에 비하면 '무한히 일찍' 출현한 셈이 된다.
  그러나 린데는 나를 설득시키지는 못했다.  린데의 주장을 그냥 묵살하지 말고,  인류에게 
무한히 긴 미래가 있다는 린데의 이론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이 이론이  옳다면, 
당신의 시간상의 실제 위치는 당신이 언제 존재하든지 상관없이 아주 이른(무한히 이른) 시
간이 될 것이며, 다른 경우들 보다 특별히 더 이른 시간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종말론
은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
  종말론의 지지자들이 린데의 이론이 옳다고 가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 대신, 그들은 린
데의 이론이 옳지 않을 경우에 그들의 위치가 얼마나 이른 것이 되는가를 린데의 이론이 옳
을 경우와 비교해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 그들의 위치는 무한히 이른 시간이 되고,  전자
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이 사실은 린데의 이론을 부정하는 강력한 확률론적 근거를 제공
한다.
  종말론의 한 변형은 다윈우주 양자론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또는 이 이론의 창시
자 에버렛(H.Everett)이 생각한 것처럼 모든 관찰자가 각각의 연속적인 순간마다 무한히 많
은 자신의 버전(version)으로 분열해간다는 다윈우주 양자론의 변형들은 최소한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들이 이러한 연속적인 분열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믿는다면, 사람들은 
곧 죽을 것이라고 기대해야 한다. 왜냐 하면, 죽음이 도래하는 순간까지 앞 시간보다는 나중 
시간에 엄청나게 더 많은 관찰자 버전들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관찰자들 중에
서 압도적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버전들이 순간적으로 죽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장과 앞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래에 행해질 관찰들을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
다'는 이유로 이러한 종류의 결론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사람이 곧 죽을 것
이라고 기대해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므로, 분열의 개념은 폐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자신의 생애에서 외관상의 위치(임박한  죽음과는 거리가 먼)는 에버렛의  이론이 
다른 근거에서 아주 옳을 가능성이 있지 않는 한(실제로는 옳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에버
렛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어떤 사람이 에버렛
의 이론이 옳다고 확신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는 두 가지 가능성에 직면하게  되는데, 
둘 다 모두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이다. 하나는 그 사람이 예외적으로 아주 이른 관
찰자 버전으로, 나중의 버전들이 엄청나게 많이 생길 경우이다. 그렇지만 실상은 이  괴상한 
두 가지 대안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필요는 굳이 없다. 그 대신에, 간단하게 에버렛의 주
장을 묵살하면 된다.
  에버렛의 이론에서는 앞 시간보다는 나중 시간에 엄청나게 더 많은 관찰자 버전들만이 존
재할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더 많은 관찰자도 존재하게 되는데,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관찰
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이론에 강한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에버렛의 이론에서 곤란한 점은 우주가 자꾸 가지를 쳐나가면서 점점 더 많은 가지들
이 생겨나고 거기서 관찰자들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지능을 가진 생명체의 역사
를 통해서나 또 한 사람의 생애의 각  단계들을 통해 시간을 점점 뒤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에버렛의 우주 파동 방정식에서 더 높은 양자 진폭을 가진 더 초기의 관찰자들이나 더 이른 
단계들을 보게 된다. 그것은 위로 올라갈수록 계속 가지를 쳐가는 나뭇가지들이다. 더  높은 
양자 진폭을 가진 더 일찍 출현한 가지는 더 무겁다고  묘사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거기서 
갈라져 나오는 가지는 그 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에버렛의 세계상에서는 더 많은 수
의 후손이 생긴다는 이 개념이 더높은 양자 진폭은 현실이 될 수 있는 더 높은 확률에 해당
한다는 일반적인 개념을 대체한다. 왜냐 하면, 에버렛에 따르면 모든 가지와 거기서  갈라져
나온 가지, 또 거기서 갈라져나온 가지들은 모두 똑같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에버렛은 확률을 '현실이 될 수 있는 경향'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일어나
는가 하는 빈도로 해석한다. 그러나 더 무거운 가지들의  지점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나 고통
은 그와 똑같은 정도로 더 생생하다고 생각할 수 없음은  확실하다. 오늘 내가 겪는 치통은 
1주일 전에 겪은 치통보다 1조×1조부의 1만큼 덜 아프지는  않지 않는가? 또한, 이러한 고
통들이 그 횟수가 '훨씬 더 많이' 또는 '훨씬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
다고 나는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한 가지가 무거운 지점에서 일어나는 어떤 관찰은 단  하
나의 관찰로 취급되어야지, 수조×수조  가지의 동일한 관찰이 서로  다른 관찰자 버전들에 
의해 가지의 두께를 따라 서로 다른 지점에서 행해진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이치(D.Deutsch)는 하나의 공리를  추가하여 에버렛의 입장을 보완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 공리란, 연속적으로 무한히 측정되는 우주 집합이 존재하며, 그 우주는 불연속
인 부분집합들로 분열되어가며, 각각의  부분집합들은 연속적이고 무한한  동일한 우주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 또한 측정에 의해 분열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동일한 우주가 무
한히 존재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지만, 도이치의 수정이론은  최소한 곧 죽음을 
맞이할 기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은 있다. 

      제7장 죄수의 딜레마와 핵 보복
    1. 선제 공격을 하지 않음
  핵전쟁을 향해 치닫는 두 나라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각 나라는  선제 공격을 해야 할 충
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래야만 상대방의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에 상대측 미사일을 많
이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제 공격을 자제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서도 핵폭탄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죄수의 딜레마'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선제 공격을  당한 
다음에 보복 공격을 하지 않는 경우는 자국이 거의 완전히 파괴되어 보복을 가해도 얻을 이
익이 전혀 없을 때이다. 이것은 보복을 하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두 초강대국(그들을 오세아니아와  유라시아라고 하자)이 거대한  핵무기고를 보유했다고 
가정하자. 두 나라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결과는 핵전쟁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
지만 오세아니아의 입장만 고려한다면, 선제 공격을 가해 유라시아의  핵 미사일을 거의 모
두 파괴라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세아니아는  아주 위험한 라이벌을 처치하는 
동시에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남아 있는 유라시아의 미사일들이 보복에 나서겠
지만, 오세아나아의 '스타워즈' 방어망 때문에 한두 개의 미사일만이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유라시아가 먼저 공격한다면, 오세아니아에게 그 것은  아주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유라시아가 현재 어떤 계획을 갖고 있든지 간에, 오세아니아로서는 선제 공
격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독자적인 스타워즈 방어 계획을 세운(오세아니아와 똑같이 
'세계 평화의 실현을 위해서'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유라시아도 똑같은  이유로 선제 공격을 
하려고 할 것이다. 이들은 모두 죄수의 딜레마라 부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평화를 지속시키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책임에도 불구하고, 각 나라는 전쟁을 시작해야 하
는 이기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국가란 종종 이기적이다. 실제로 이기적으로  행동
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대통령 취임 선서에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오세아니아
와 유라시아가 정말로 이기적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처한 상황은 두 이기적인 죄수,  올리버
와 에드워드의 상황과 비슷하다.
  교도소장은 올리버와 에드워드에게 채찍과 당근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인 것처럼 보이게 해 서로 상대방을 배신하도록  유도한다. 교도소장은 그 두 
죄수가 작당하여 간수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만약 두 사람 모두 자백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교도소장은 두 죄수를 서로 떼어놓고 각자에게 말하기를, 만약 네 
동료가 입을 열지 않고 네가 입을 연다면 너는 즉시 석방이지만 네 동료는 10년을 더  감옥
에서 보낼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둘 다  자백한다면, 그들은 각각 5년씩을 더 감옥에서  살 
것이다. 그러므로 올리버와 에드워드는 상대방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자백하는 편이 더 낫
다.
  이것은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 유혹이지만, 많은 철학자들이 믿는 것처럼 대단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설명해보자. 죄수의 딜레마에  처한 사람들은 거의 똑같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비겁한 짓'(자백, 배신, 핵전쟁 도발, 기타 등)을 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이익에  영향을 미
친다. 그 결과는 '비겁한 짓'을 하는 것이 심지어는 완전히 이기적인 사람에게조차 합리적이
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아주 중요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죄수의 딜레마는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협력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문제에  자주 부딪히곤 하는데, 그런 
상황이 바로 죄수의 딜레마이다. 예를 들면,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는 바다에서 고기잡이  배
가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그것이다. 선장들이 다른 선장들에게 제한 어획
량 이상은 잡지 말자고 호소한다고 가정하자.  이 때, 규정을 어기는 선장은 자백한  죄수에 
해당한다.
  다음 이야기를 보면 나의 주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거울처럼 보이는 
것 앞으로 다가가면 나는 자신이 거울이 아니라 살에 닿는  것을 느낀다. 우주는 완전히 대
칭적이라고 나는 결론을 내린다. 그 육체는 나와 똑같은  반물질 쌍둥이이다(왼쪽, 오른쪽만 
바뀌었지 나머지는 모든 것이 똑같은 완전한 복제물 말이다).
  또한, 우주는 완전히 결정론적이어서,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일어난다. 만약 우주가 결정론적이지  않다면, 내 반물질 쌍둥이가 나를  정확하게 
그대로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기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나를 골치 아프게 하지
는 않는다. 선택의 자유는 환상일 뿐이라는 결론으로 비약할 필요도 없다. 결정론적  우주에
서 나의 두뇌는 단지 '의사결정 기계'에 불과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의 두뇌는 진
정한 의미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나의 두뇌는 나의 신체가 수행할 수 있는 수많은 행동
들 중에서 적절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단지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또한, 
나의 두뇌 세포는 내가 생각을 할 때 사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만약 굶주린 사자가 근처에 있다면, 나는 내 두 다리가 나를 끌고 가기를 기다리
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나는 죽어라고 도망가기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두 배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나 자신의 팔다리뿐
만 아니라, 나의 반물질까지 지배할 수는 없을까? 내가 원하는 대로 그(나의 반물질)를 달리
게 하거나 손을 흔들게 하거나 손뼉을 치게  할 수는 없을까? 돌을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던질 수는 없을까? 하나는 새를 잡기 위해 내가 던진 돌이고,  다른 하나는 동시에 내 반물
질의 손에서 날아가는 돌이다. 거울에 비친 내 형상을 조절할 수 있다면, 나의 반물질도  조
절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부정해야 하는가? 그것을 부정하는 근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결
정적인 점에서 나와 나의 반물질은 독립되어 있다. 내가 달릴 때, 그를 달리게 만든 것은 정
말로 내가 아니다. 이 때, 그가 '나'를 달리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가 나를 달리
게 만들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달리기로 한 나의 결정은  그가 아니라 나 자신의 뇌세포에
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로 결정함으로써 나는 반사물도 달리게 만들  수 
있다. 나는 그에게 돌을 던지게 시키지 않고도 그가 확실히 돌을 던지게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단지 나 자신이 돌을 던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대칭적인 우주의 나머지 반쪽에 있는 새를 보고 있다고 하자.  나는 그 새가 죽기를 바란
다. 우주의 반쪽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각각 반쪽씩의 우주가  맞닿는 
지점에서 그 돌은 동시에 던져진 내 반물질의 돌과 충돌한다.  그러나 내가 던진 돌이 내가 
살고 있는 반쪽 우주에 있는 그와 똑같은 새를 죽였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죽기를 바랐던 
그 새 역시 필연적으로 죽게 될 것이다.
  좀 어색하게 들리긴 하겠지만, 나머지 반쪽 우주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에 내가 미
치는 '유사 인과 작용'(quasi-causing: 나의 반물질이  갑자기 원을 그리며 돌기로 결정했다
든가, 갑자기 그가 새를 죽인다든지  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물론 진정한  인과가 아니긴 
해도, '유사 인과'(quasi-causation)는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는 데에는 아주 쓸모가  있다. 사
실은 훨씬 편리할 때도 있다. 나의 반물질에 간청을 해서 그로 하여금 돌을 던져 새를 죽이
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돌로 나의 세계에 사는 새를 죽이기로 결정하기 전에는 나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만약  내가 그를 침대에서 일어나게 하여  민주당에 투표하게 하고 
싶다면, 나 스스로 침대에서 일어나 민주당에 투표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서로의 완전한 복
제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다른 도리가 없다.
  우주론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완전히 대칭적이라는 이러한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지만, 그런 일은 있을 법하지 않다. 그렇다면 죄수의 딜레마는 물론, 나와 내 반물질의 이
야기가 현실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루이스(D.Lewis)가 여기에 답을 제시했다. 즉,  완
전한 복제는 허구이지만, 사람들은 종종 아주 훌륭한 서로의 복제물일 때가 있다. 내 발  위
에 돌을 떨어뜨렸을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추측컨대, 당신 발 위에 내가 돌을  떨어
뜨렸을 경우와 거의 같을 것이다.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은 종종 아주 똑같은 우스꽝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가? 영국
의 공립학교의 교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교도소의 같은  감방에 
있는 죄수들, 수녀원의 수녀들, 부자들,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성인 두 사람을 임의로 뽑아 비슷한 환경에 놓아두면, 그들은 아주 유사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을까?
  내 이야기에서 '유사 인과'는 '완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돌을 던질 때마다 나의 
반물질도 어김없이 늘 그렇게 한다. 만약 발에 돌이 떨어져 그가 화를 내면, 나 역시 1백 퍼
센트 화를 낸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게 극적인 유사 인과를 보기는 어려운  반면, 
'불완전한' 유사 인과는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행동방식은 결코 정확하게 복제될 수 없겠지만, 거기에는 종종 강한 상관 관계가 있다. 재
질이 같은 두 공이 같은 방식으로 튀어 오르듯, 사람들은  본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일
에 대해 예측이 가능한 똑같은  행동을 한다. 당신이 자유 의지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다년간에 걸쳐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좋은 성격이 형성될 수도 있고 나쁜 성격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 특유
의 이기심 혹은 이타심을 가진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불완전한 유사 인과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의 이야기에서, 새를  죽이기 
위해 사용했던 완전한 유사 인과와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는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 전형적
인 죄수의 딜레마에서 죄수들은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여기에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
다. 철학이나 수학 또는 과학적인 측면에서 연구하고 싶을 때, 종종 아주 깨끗하고 이상적인 
경우들을 논의하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다.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점은, 조금만 더  문제를 
이상화시키면 죄수들은 모든 점에서 정확하게 똑같아져 버리고, 그들의 두뇌는 명령과 협작
에 대해서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의사결정 기계'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죄수
의 딜레마에 대한 보편적인 결론, 즉 이기적인 사람은 자백이나 배반 혹은 핵전쟁을 시작하
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은 옳지 않다. 똑같은 처벌과 보상이 기대되는 상황에 처하여 당
신과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 분명한 상대방보다 '더 잘 되기 위해 이기적으로 싸운다'는  것
은 생각할 수 없다.
  한편, 당신이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상대방도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과 상대방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
택을 따르게 된다.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간에 상관없이 나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행동을 취한다"는 전략은 상대방의 행동이 나와 똑같을 때에는 완전히 실패하고 만다. 다양
한 사람들이 서로의 복제물일 정도가 다양한 만큼이나 그들은 서로에 대해 다양한 '유사 인
과 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중  한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행동
을 하면,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행동하도록 '유사 인과' 작용을 약간 미친다. 
그러한 경향이 아주 미약할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유사 인과는 인과가 아니기  때문에 인과론적으로 강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나타날 수가 있다.
  '유사 인과' 현상은 분명히 존재하며,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유사  인과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현명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 문제는 상당한 연구가 
필요하다.
  중요하든 않든 간에(핵전쟁 연구에 관한  다양한 글들을 읽을 때 나는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유사인과'가 존재한다는  현실은 서로를 신뢰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견해들을 재삼 강화시켜준다. 그러한 견해의 예로
는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할 때 좋은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거나 "이기적인 사람들은 
살 가치가 없다"와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2. 보복 공격을 하지 않음
  한 나라가 수천 개의 핵폭탄으로 선제 공격을 했을 때, 보복 공격을 해야하는 필요성으로
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공리주의자인 나는 좋은 일을 할 가능성이 있는 행동만 가치가 있다
고 생각한다. 칸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아마 별 어려움 없이 핵 보복을 '정의의 복수'로 간
주할 것이다. 칸트는 하늘이 무너진다 할지라도 살인자는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칸트의 접근방식을 존경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도 못하면서 
어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해야 할  의무를 느낄 수 있는가?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들 
일이 어떻게 옳을 수 있는가?
  이러한 것들은 4장에서 논의됐던 것처럼 수사학상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 하면, 우리가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다"는 명제는 "홀아비들은 아내가 
없는 사람들이다"는 명제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그렇지만  정말로 흥미로운 유일한 문제
는, 최소한 위험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 '보복하겠다고 협박하는 행위'
가 정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시어(D.Gauthier)가 주장했듯이, 협박이 실패했
을 경우에 '실제적인 보복'이 뒤따르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것이다.
  물론 핵 보복은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 보복이 뒤따를 것이므로 핵폭탄을 다시는 투하
해서는 안 되다는 교훈을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억지력의 목적도 달성할 
가능성이 없을 때, 핵 보복을  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집중해보기로 
하자.
  그러한 핵 보복이 남아 있는 모든 인류를 죽일 것이라고  가정하자. 그래도 여전히 핵 보
복은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앞서 보복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 옳았다고 해서 도덕
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실제적인 핵 보복까지 감행할 수 있는가? 고시어는 '그렇다'고 대답
할 것이다.
  고시어의 입장이 지닌 장점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한참 후에도 수
천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를 상상해보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사
람들을 설득하지 않는 한, 핵전쟁으로 인류가 파멸될 것은 분명하다('제한적 핵전쟁'이란 개
념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전쟁에 돌입한 국가들은 이성을 잃어 되도록 더 많은 사람을 죽이
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는 나라의  아주 도덕적인 지도자는 종말 기계를 만들 
것을 지시한다. 이것은 감지 장치와  컴퓨터로 이루어진 복잡하고도 완전한  자치 시스템을 
가진 대규모 기계 집단이다. 만약 어딘가에서 핵폭탄이 터지면, 이것은 자동적으로 감지되어 
즉시 중앙컴퓨터가 인류를 완전히 파멸시킬 훨씬 더 많은 폭탄을 발사하게 된다.
  종말 기계를 만드는 것은 인류가 파멸되지  않을 최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기계가 없다면, 국가들은 핵전쟁 도발의 유혹을  받을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그 결과로 모두가 파멸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지만, 국가들이  언
제 상식을 참고하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따라서, 최선의 정책은 종말 기계를 만들고,  그것
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아무리 무모한 사람이라도 핵폭탄을 사용하려
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도덕적인 지도가가 기계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릴 훌륭한 명분을 갖고 있다고 치자. 그
런데 (미국에서처럼) 헌법 조항 때문에  핵무기의 관리를 완전히 기계에서  맡길 수 없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종말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중앙컴퓨터가 폭탄을 발사시키기를  원할 때 
지도자가 동의한다는 버튼을 누를때에만 작동하게 된다. 그 지도자는 최면술사나 뇌수술 담
당 의사에게 가서 "나를 종말의 협박을 실행하는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이 되도록 해달라. 내
가 단추를 누를 때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게 하고, 모든 사람에게 당신이 한 일을 말하라"고 
지시한다. 이것은 윤리적으로 요구되는 일이 아닐까? 종말의  위협이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
해서는 진정으로 도덕적인 누군가가, 설사 핵 보복을 자유로이  선택하는 것이 자유를 비윤
리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라 할지라도, 핵 보복을 자신이 확실하게 단행하도록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억지력을 발휘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서도 자신을 '좀비(zombie)' 처럼  만드는 것이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 답이 '그렇다'고 동의해보자. 그러면 '복수에 불타는  실제적인 행동'은 자유 의지를 가
진 사람에 의해서는 오로지 비윤리적으로만 행해질 수 있다  할지라도, 협박에 실패했을 경
우 '보복을 해야 한다고 자유롭게 보장해 줄 수 있는'  훌륭한 도덕적 근거를 가질 수 있다. 
여기에 역설적인 적은 아무것도 없다. 인류 멸망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을 때 보복의 보
장은 선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그 보복이 어떻게 인류를 파멸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는 
관계없이 사실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헌법 조항들이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것을 금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도자
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만약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나는  정말로 그 단추를 눌러 
모두 멸망시킬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뿐이라면 어떻게 될까? 완벽하게 도덕
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도자는 이러한 형태의 협박을  하면서 다른 나라의 심리학
자들을 초청하여 거짓말 탐지기로 자신의 협박이 정말인지 아닌지 확인하게 할 수 있지 않
을까? 고시어는 '그럴 것'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자, 이제 그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보자. 그에 대한 반박은 순전히 논리적인 것이 될  것
이므로, 다음과 같은 환상적인 가설의 도움을  받아 설명해볼 수 있다. 환상적인 요소는  이 
문제의 논리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이다.
  만약 1백억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내가  악마에게 내 영혼을 가져가 영원히 고통을  받게 
하라고 제안한다고 상상해보자. 단, 당신이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올 경우에만 내 영혼을 가
져갈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며, 나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당신은 동전을 던지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악마가 당신
에게 동전을 던지면 5백억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때, 악마가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말하기만 하면, 우리 둘  모
두의 영혼을 지옥으로 데려가겠다고 제안했다고 하자. 당신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제 나는 당신이 동전을 던지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알림으로
써 합리적으로 협박할 수 없을까? 악마의 마수에서 완전하게 빠져나가기 위해, 당신이 동전
을 던지자마자 나는 자동적으로 우리 둘  모두를 지옥으로 보낼 것이라는 엄숙한  선언서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리고 내가 그 선언서를 반복해 읽는 동안 완벽한 거짓말 탐지기를 나
에게 사용하도록 할 수는 없을까?
  답은 '안 된다'이다. 내가 미치지 않는 한, 당신이 동전을 던지더라도 나는 두 사람의 영혼
을 지옥으로 보낼 생각이 없다는 것을 거짓말 탐지기는 밝혀줄  것이다. 설사 내가 이를 악
물고 그러한 계획을 만들만큼 미쳤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동전이 공중에 떠 있는 동안이나 
땅에 떨어져 뒷면이 나타난 뒤까지도 더  미친 척해야만 한다. 미치광이 복수광이 아닌  한, 
당신이 동전 던지기에 도전하자마자 가해지는 무한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모든 사실을  안다는 것과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믿
을 수 있다면, 우리 둘  다 지옥에 가게 된다고 협박하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좀비'로(나 
자신을 비이성적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동전을 던지면 당신이 지옥에 가게 된다
는 걸 알고 동전을 던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항상 이성을 잃지 않은 상태로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협박은 결코 아무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성적인 사람은 그러한 협
박을 결코 할 수 없다.
  이것은 완전하고도 일관성 있게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완전하고도 일관성 있게 이성
적인 것과 같은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인류의 죽음이 걸린 형태의 보복을 하느냐 마
느냐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도덕적인 지도자는 보복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복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옳을 수 있다. 어쨌든, 구경꾼들은 정신 나간  보복을 
할 성향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오늘날 많은 지도자들이 그러한 성
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일 수도 있다. 냉전 기간에 핵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
도 초대강국들이 서로 상대방이 그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나 의심했기 때문에 가능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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