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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존 그리샴 타임 투 킬 (1)

by Casey,Riley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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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임 투 킬time to kill제1권
 존 그리샴
두 놈 중에서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은 놈이 빌리 레이 콥이었다
그는 이제 겨우 스물세살밖에 안 되었지만 파치먼 주 교도소 밥을
3년이나 먹은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마약 소지와 판매 혐의
죄목에 걸맞게 그는 교도소 안에서도 마약 거래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검은 애들에게건 간수에게건 언제든 마약을 대줄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체구는 빈약해도 나름대로 성깔을 갖춘 빌리 레이 콥은 교도소에서
나온 뒤 마취제에 손을 대다가 아예 사업을 시작했고 어느새 포드 군에서
가장 잘 나가는 부자 축에 끼었다 아랫사람을 부리고 약간의
빛도 지고 있으며 거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그는
누가 봐도 명색이 사업가였다 세금 내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빌리 레이 콥은 최근에 포드 픽업 하나를 장만했는데 클랜턴의
포드 대리점에서 1만6천 달러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픽업을 산 사람은
빌리말고는 없었다 전륜구동형의 노란 카나리아 빛 포드 픽업
그냥 봐도 화려한 차에 크롬 휠을 달고 진흙을 움켜잡고 달리는
광폭 타이어까지 장착하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사업 수완 덕이었다
픽업 뒤창에 보란 듯이 걸린 혁명기는 콥이 올 미스 대학의 축구 시합을
보러 갔다가 어수룩한 대학생놈한테서 빼앗은 것이었다 어쨌든
이 포드 픽업은 그의 재산목록 1호로 손색이 없었다
지금 그는 픽업 뒤에 걸터앉아 검둥이 계집애 위에 올라탄 윌러드를
보고 있다 맥주 한 모금에 마리화나 한 모금을 곁들이면서
윌러드는 빌리 레이 콥보다 겨우 네 살 많은데 움직이는 꼴로 봐서는
열두 살은 더 먹어 보였다 온순한 인상만으로는 큰 사고를 저지를
위인 같지 않았다 그는 주먹 한번 잘못 휘둘러 감방에 드나든 게 고작인데
클랜턴에는 그런 경력을 가진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다
한때 나무 자르는 일을 했었던 윌러드는 만資料 근처에서 통나무에
올라탔다가 등을 다치는 바람에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배상금으로
받은 돈은 홀라당다 벗겨 먹었고 이렇게 저렇게 흘러다니다가
빌리 레이 콥 밑에까지 굴러오게 된 것이었다 짭짤한 돈벌이는 못 되지만
그래도 콥 덕분에 마약은 실컷 만져볼 수 있는데다가 콥은 항상
뭔가를 손에 쥐어 주는 사람이라 붙어 있을 만했다 윌러드는 늘 콥에게
손을 벌렸다 등을 다친 이후로 그는 쭉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윌러드에게 당하고 있는 검둥이 계집애는 열 살인데도 제 나이보다
체구가 작았다 아이는 누런 나일론 끈에 묶인 팔꿈치를 뒤로 한 채
누워 있었다 오른쪽 다리는 떡갈나무 가지에 걸려 있고 왼쪽 다리는
낡은 울타리에 묶여 있었다 스키 끈에 심하게 묶긴 발목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다리를 흠뻑 적셨고 퉁퉁 부은 얼굴도 피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한쪽 눈은 잔뜩 부어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반쯤 뜬
다른쪽 눈으로 픽업에 걸터앉은 백인을 보고 있었다 자기 몸 위에 올라타
땀을 흘리고 있는 백인은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일을 마치고 나자 윌러드는 검둥이 계집애를 찰싹 때리고는 한바탕
신나게 웃어댔고 콥도 느글느글한 웃음으로 맞장구를 쳤다 이윽고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콥과 윌러드는 트럭 주위의 잔디밭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둘은 괴성과 비명을 지르며 점점 더
달아올랐다 흑인 여자아이는 그 꼴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등을 돌리고
소리를 잔뜩 죽여 흐느껴 울어댔다 처음에 강간을 당할 때는 비명도
지르고 큰 소리로 악을 쓰고 대들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두 사람은 정말 자기를 죽일 것만 같았다
웃다 지친 두 사내는 픽업 짐칸으로 돌아와 검둥이 계집애의 피와
땀과 때가 얼룩진 셔츠로 바닥을 닦은 다음 그 위에 걸터앉았다 콥은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윌러드에게 건네주면서 끈적끈적한 날씨에
대해 투덜거렸다 계집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콥과 윌러드는
모르는 척하고 내버려두었다 울음소리는 차츰 잦아들었다 콥은 반쯤
남은 맥주캔이 후끈한 날씨에 미지근해지자 계집애에게 던져 버렸다
맥주캔은 계집애의 배에 맞아 거품을 울컥 뿜어내고는 먼지더미 위로
굴러떨어졌다 그렇게 버려진 맥주캔이 열두 개나 되었다 그들은 반쯤
남은 캔을 아이에게 던질 때마다 어김없이 웃어댔고 콥이 던진 캔은
매번 정확하게 계집애의 몸 어딘가를 맞혔다 맥주가 많이 든 캔일수록
거품이 더 많이 일어 두 사람을 한결 즐겁게 해주었다
미지근한 맥주와 검붉은 피는 한데 흘러내려 계집애의 얼굴을 적시고
머리맡의 진창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나 아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건 아닐까
윌러드가 콥에게 물었다
콥은 맥주캔을 새로 따면서 윌러드에게 잘라 말했다
찌르고 때리고 강간하는 것 정도로는 검둥이는 죽지 않아
칼이나 총 밧줄 같은 더 강력한 것을 쓰지 않으면 검둥이를
해치울수 없다는 게 콥의 지론이었다 콥은 제 손으로 그런 짓을 한 적은
없었지만 감옥에 있으면서 그런 사실을 수도 없이 목격했던 터였다
검둥이들은 항상 서로를 죽였는데 그때마다 무기를 사용했다 백인이
맞아 죽는 경우는 있어도 흑인이 맞다가 죽는 경우는 없었다 절대로
그들의 머리는 훨씬 더 단단하니까 윌러드는 콥의 설명에 적이
안심 하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떡하지
윌러드가 콥에게 다시 물었다
아직 끝난 게 아냐
마리화나를 한 모금 빨고 맥주를 들이키면서 콥이 말했다
콥은 픽업에서 펄쩍 뛰어내려 검둥이 계집애가 묶여 있는 곳으로
어기적거리며 걸어갔다 그는 계집애에게 욕설을 퍼붓고 괴성을 지르더니
일어나라고 소리치면서 피묻은 얼굴에 맥주를 쏟아부었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콥이 오른쪽에 있는 나무 주위를 돌다가 자기 사타구니에 눈길을 던지는 순간
계집애는 콥의 표정을 가만히 훔쳐보고 있었다 콥의 팬티가 내려졌다
아이는 등을 돌리고 질끈 눈을 감았다 다시 폭행이 시작되었다
나무들 사이로 뭔가 보이는 것 같았다 포도넝쿨과 잡목숲을 헤치면서
누군가 거침없이 달려오는 모습이 아버지였다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기어이 기어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도 따라서 소리를 질렀다 순간 아버지의 모습은 무참히 사라지고
눈앞의 세상은 암흑 속에 잠겼다
아이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한 사내는 픽업 아래서 다른 사내는
나무 밑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팔과 다리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사타구니 아래에는 피와 맥주와 정액이 딱딱하게 굳어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땅에 붙여 놓고 있었다 몸을 조금씩 꿈틀거릴 때마다 어딘가 조금씩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도망가야 한다 아이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한껏 힘을 써보았지만 오른쪽으로 한 뼘 정도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다
다리가 너무 높이 매달려 있어서 궁둥이가 땅에 닿을락 말락했으며
사지는 미동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는 나무숲 사이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는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아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두 사내도 잠에서 깨어나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키 큰 사내가 작은 칼을 들고 다가와 발목을 움켜쥐고는 거칠게
칼질을 해댔다 마침내 왼쪽 다리가 올가미에서 풀려났으며 오른쪽 다리도
이내 자유로워졌다 아이는 두 사내에게서 등을 돌리고는 태아처럼
잔뜩 몸을 웅크렸다
콥은 스키 끈 가닥을 길게 늘여서 계집애의 사지를 다시 꽁꽁 묶은 다음
목에다 올가미를 씌웠다 그는 끈 한쪽을 쥐고 픽업 쪽으로 가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는 윌러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윌러드는 콥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채고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콥은 갑자기
손에 힘을 주어서 끈을 바짝 당겼다 발가벗겨진 계집애의 몸뚱어리가
맨땅을 가로질러와 콥의 다리 밑에 멈춰 섰다 계집애는 기침을 콜록콜록 해댔다
콥은 범퍼에다 끈을 묶고는 맥주캔을 땄다
두 사내는 픽업에 걸터앉아 마시고 피우고 이따금 계집애를 들여다보았다
둘은 오늘 하루 종일 보트를 가진 친구와 함께 호수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헤퍼 보이는 여자들을 만나기는 했다
그러나 마약과 맥주를 실컷 제공해 주었는데도 여자들은 아무짓도 못 하게 했다
잡친 기분을 달랠 겸 차를 타고 이리저리 쏘다니던 둘의 눈에
검둥이 계집애가 띄었다 윌러드는 식료품 봉지를 안고 자갈길을 걷고 있던
계집애의 뒤통수에 맥주캔을 던졌다
한번 해볼래
벌겋게 충혈된 눈을 콥에게 돌리면서 윌러드가 물었다
싫어 하려면 너나 해 네가 생각한 거니까
콥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윌러드는 마리화나를 깊게 빨고는 침을 찍 뱉으면서 쏘아붙였다
내 생각이라니 검둥이 못살게 구는 건 네 전문이잖아 안 그래
자 한번 해보라구
콥은 범퍼에 묶여 있던 끈을 풀어서 손에 바짝 움켜쥐었다 아이의 살갗이
벗겨지고 느릅나무 껍데기들이 이리저리 묻어났다 아이는 겁에 질린 채
두 사내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기침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때였다 값자기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소방차 소리 같았다
두 사내는 재빨리 몸을 돌려서 고속도로 쪽을 허둥지둥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욕설을 내뱉으면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사내는
픽업 문을 소리나게 닫았고 다른 사내는 계집애 쪽으로 다가왔다
오는 동안 발을 헛디뎌 계집애 옆에 꼬꾸라질 뻔하자 사내는 누구에겐지 모를
욕을 해대면서 범퍼에 묶여 있던 끈을 풀고는 만신창이가 된
계집애의 몸을 들어 픽업 뒤칸에 실었다
조용히 누워 있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콥은 계집애를 때리면서 잔뜩 겁을 주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집에
돌려보내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도 잊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픽업은
도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거야 아이는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
좁은 도로에서 소방차 옆을 스쳐 지날 때 콥과 윌러드는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소방차가 지나가자 윌러드는 짐칸의 동정을 확인했다
운전대를 잡은 콥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이젠 어쩌지
윌러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몰라
콥의 목소리에서도 짜증이 잔뜩 묻어났다
뭔가 하기는 해야지 짐칸에다 온통 피를 묻혀놓기 전에 말이야
뒤를 보라구 사방이 다 피잖아
윌러드는 마지막 남은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리에서 던져 버리자
윌러드가 자랑스레 내뱉었다
그래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콥은 맞장구를 치면서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맥주나 하나 더 줘
윌러드는 짐칸으로 가서 맥주 두 개를 꺼내왔다
냉장고에도 피가 묻어 있어
윌러드의 말을 듣더니 콥은 갑자기 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웬 헤일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보통은
사내녀석들 셋 중에 하나를 보냈는데 오늘따라 세 녀석 모두 벌로 잡초를
뽑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남편의 명령이라 어길 수도 없었다
그웬은 토냐가 전에도 혼자서 갔다 온 적이 있고 겨우 15킬로밖에
안 되는 거리라 안심하고 그애를 보냈다 그런데 떠난 지 두 시간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웬은 세 녀석 모두 토냐를 찾아 나서게 하고
혼자 애를 끓이고 있었다 파운더네 애들과 놀고 있는 거겠지
아니면 가게를 지나 단짝인 베시를 만나러 갔는지도 모르고
식료품 가게 베이츠씨 말로는 왔다간지 한시간이 넘었다고 했다
둘째 아들 자비스가 길 옆에서 식료품 봉지를 찾아낸 것이 무엇보다 꺼림직했다
그웬은 제지공장으로 전화를 걸어 남편을 찾았다 그리고 첫째 놈을
차에 태워 가게 주위의 자갈길을 누비기 시작했다 고모를 만나기 위해
그래엄 농장 안의 일꾼 숙소까지 차를 몰았다 베이츠 씨 가게에서
15킬로나 떨어진 브로드웨이 상점에 들렀다가 오는 길에 사람들을 만나
물어보았지만 토냐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자갈길은 물론 비포장도로까지
이리저리 헤매면서 집 근방의 반경 5킬로를 샅샅이 뒤진 셈이었다
다리란 다리는 죄다 낚시를 하는 검둥이들 차지였다 커다란 밀짚 모자를 쓰고
대나무 낚시를 드리운 채 대여섯 명이 떼를 지어 다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다리 밑 물가도 똑같은 대낚시와 똑같은 밀짚모자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한쪽에 양동이를 놓고 이따금 파리나 모기를 쫓기 위해 손을 휘저을 뿐
검둥이들은 움직이려는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콥은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혼자 곯아떨어진 윌러드 놈은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이제 이 계집애를 잔인하게 없애버리는 일은 콥 혼자
해야 할 숙제였다 윌러드의 코고는 소리가 높아질수록 콥은 점점 더
거칠게 차를 몰았다 다리며 강둑 어디건 차를 세우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빌어먹을 검둥이들 눈에 띄지 않게 계집애를 떨어뜨릴 만한 곳을 찾아야만 했다
그는 백미러를 통해 계집애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계집애가 깨어나지 못하게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계집애는 창 바로 밑 쇠판에 가서 부딪쳤고
계기판에 얼굴을 묻고 있던 윌러드도 마루널에 뒤통수를 부딪쳤다
그러나 윌러드의 코고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콥의 입에서는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포드 군의 남서쪽 구석과 밴 뷰렌 군에 걸쳐 있는 채털라 호수는 크기만 클 뿐
인공으로 만든 얕은 늪에 지나지 않았다 진창 위로 잡초들이 자라나
15킬로나 되는 한쪽 물가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봄에 받아둔 미시시피 강물이
말라 버리는 늦여름쯤에는 바닥이 훤히 드러났다
그나마 바닥이 깊고 수량이 많은 다른쪽 가장자리에 적갈색의 물이 고여 있어
깊은 웅덩이 구실을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호수에
물을 대고 있는 물길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개울이나 시내 진창도 있고
그중 몇 개는 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넓었다
그리고 지류가 많은 만큼 다리도 많았다
노란 픽업은 적당한 자리를 찾아 그 많은 지류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콥이 알고 있는 다리는 안개가 많이 끼는 작은 개울 위의 나무다리였지만
그곳도 이미 검둥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콥은 부랴부랴
샛길을 질러 아무데나 차를 세웠다 그는 뒷문을 내리고 계집애를 끌어내서
작은 골짜기에다 계집애를 던져 버렸다
칼 리 헤일리는 집에 가는 걸 서두르지 않았다 애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 싶으면 수백 번도 넘게 전화를 걸 만큼 아내가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정확하게 퇴근시간에 나와
평소처럼 차로 삼십분 걸리는 길을 거쳐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자갈길에 이르러
자기 집 주위에 주차해 있는 순찰차를 보는 순간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집으로 들어가는 긴 길가와 집 앞에는 친척들 차와 순찰차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고 그중에는 처음 보는 차도 있었다 대나무 낚싯대가 차창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고 예닐곱 명이 밀짚모자를 쓴 채 빽빽이 앉아 있는 차였다
토냐와 애들은 어디 있지
문을 열자마자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 조그만 거실 안에서는
사람들이 소파 주위에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린것은 젖은 수건에 감싸인 채
누워 있었고 친척들은 아이 주위에서 울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소파로 다가갔다 울음소리가 잦아지고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웬만이 토냐 곁에 남아 토냐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칼 리는 소파 옆에 무릎을 꿇고 토냐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토냐는 아버지에게 미소를 지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토냐의 얼굴은
옹이가 지고 갈가리 찢어진 피에 절은 펄프 같았다
퉁퉁 부은 두 눈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그 작은 몸뚱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칼 리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가득 고였다 발목부터 이마까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수건에 감싸여 있는 토냐
칼 리는 아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웬이 대답 대신 몸을
부르르 떨면서 울음을 터뜨리자 그녀의 오빠가 그웬을 데리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칼 리는 일어나서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무슨 일이냐고 거듭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칼 리가 세 번째로 물었을 때 그웬의 사촌이자 보안관 대리인 윌리
헤이스팅스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채털라 호수 근처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토냐를 발견했고 토냐가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대서 집으로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칼 리는 입을 꼭 다문 채 고개를 떨구었다
칼 리가 다시 고개를 들어 헤이스팅스의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숨을 죽이고는 하나 둘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헤이스팅스 무슨 일이냔 말야
칼 리는 헤이스팅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헤이스팅스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토냐가 엄마에게 말한 그대로 백인과 픽업 끈 나무들 그들이
자기에게 했던 그 끔찍한 짓에 대해서 구급차 소리가 들릴 때까지
헤이스팅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구급차가 도착하자 거실에 있던 사람들은 열을 지어 현관으로 나갔다
구급대가 들것을 들고 집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구급대가 정원 중간쯤 이르렀을 때 토냐를 안은 칼 리가 집밖으로 나왔다
그는 토냐에게 뭐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져 토냐의 뺨을 적셨다 칼 리와 토냐가 구급차
뒤에 올라타자 구급대원이 문을 닫았다 이윽고 토냐의 작은 몸은
헤일리의 품에서 조심스럽게 떼어졌다
오지 월스는 미시시피 주에서 유일한 흑인 보안관이었다 예전에는
몇 명 있었지만 현재 보안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은 오지뿐이었다
오지는 그 사실이 그렇게 자랑스러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다른
전임 보안관들과는 달리 백인이 75퍼센트를 차지하는 포드 군의 흑인
보안관이라는 사실이
포드 군에서 자란 오지는 흑인들과는 물론이고 몇몇 백인들과도
친하게 지내왔다 1960년 말의 차별폐지조치 이후 백인들과 나란히
클랜턴 고등학교를 처음으로 졸업한 그는 바로 옆에 있는 올 미스 대학에서
미식축구를 하기를 원했지만 그 팀에는 이미 흑인이 두 명이나 있었다
그래서 알콘 스테이트 대학에서 축구를 하게 되었다 오지는
유명한 수비수로 뛰다가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클랜턴으로 돌아왔다
물론 축구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보안관으로서 일하는 것도
그로서는 기쁜 일이었다 게다가 보안관 선거에서 경쟁자였던 백인보다
자기가 더 많은 백인표를 얻었다는 사실에 그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오지는 백인 아이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축구 중계를 통해 본 적이 있었고 잡지에도
그의 얼굴이 자주 실렸기 때문이었다 어른들 역시 불량배라면 흑인이건
백인이건 가리지 않고 잡아넣는 듬직한 그에게 기꺼이 표를 던졌다
정치인들에게는 그가 포드 군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外D의 간섭없이
알아서 잘 처리할 인물이라는 점이 잘 먹혀들었다 흑인들의
절대적 지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지는 포드 군 구치소 안의 자기 사무실에서 헤이스팅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칼 리의 집에 갔다 온 결과를 보고받기 위해서였다 심증이 가는
인물이 있기는 했다 빌리 레이 콥 그는 이미 보안관 사무실 내에서는
유명 인사였다 그가 마약을 거래하고 추잡한 구석이 있는
말썽꾼이라는 것쯤은 오지도 꿰고 있는 사실이었다
오지는 무전기로 부하들에게 그의 소재를 파악하되 체포는 하지 말라고
일러 놓았다 오지가 지휘하는 보안관 대리는 모두 열두 명으로
백인 아홉에 흑인 셋이었다 그들이 지금 부채꼴로 퍼져서 혁명기를
단 노란색 포드 픽업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헤이스팅스가 도착하자마자 보안관은 그를 데리고 군병원으로 향했다
보통 때처럼 헤이스팅스가 운전대를 잡고 오지는 무전기를 손에 쥐었다
2층 대기실에서 두 사람은 칼 리의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모와 삼촌들 할아버지 할머니 친구들 그리고 낮선 사람들까지
끼여서 조그만 대기실은 대만원을 이루었고 복도에 나와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로 속삭이고 흐느끼는 소리가 병원
전체로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토냐는 수술중이었다
칼 리와 그웬과 아이들은 구석의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칼 리는 시선을 떨구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움직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눈치였고 그웬은 칼 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낮은 소리로 훌쩍이고 있었다 옆에 앉은 아이들은 무릎 위에 얌전히
손을 얹고 잔뜩 긴장해 있었다 이따금 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눈치를 힐끔힐끔 볼 따름이었다
오지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고 등을 두드려 주고 금방 잡을 거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혜집고 나가 칼 리와 그웬
옆에서 몸을 낮췄다
토냐는 어때
오지가 물었다 칼 리는 오지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그웬의 흐느낌
소리는 점점 커졌다 아이들도 덩달아 축축한 눈가를 훔치고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오지는 위로의 뜻으로 그웬의 무릎 위를 툭툭 치면서
몸을 일으켰다 칼 리의 형제들 중 하나가 오더니 오지와 헤이스팅스를
데리고 홀로 나갔다 그는 두 사람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애는 어때요
오지가 물었다
별로 안 좋아요 지금 수술중인데 당분간 여기 있어야 될 것 같아요
갈비뼈가 부러졌고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목에 그어진 자국으로 봐선
매달아 죽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강간이 맞습니까
오지는 뻔한 사실을 물었다
예 두 놈이 번갈아서 겁탈을 했대요 의사도 확인을 해주었구요
칼 리와 그웬은 어때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에요 충격이 보통 큰 게 아닙니다 여기
온 이후로 칼 리는 한번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오지는 반드시 두 놈 다 잡을 것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잘 가둬
놓겠다는 등의 다짐을 했다 그래야만 할 거라고 말하는 칼 리의 형제의
말투로 미루어 보아 그자들은 오지한테 잡히는 게 천만다행일 것같았다
오지는 클랜턴에서 몇 킬로 벗어난 자갈길을 가리켰다
차 세워
오지의 명령에 따라 헤이스팅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인적이 드문
이동주택 근처에 차를 세웠다 어둠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오지는
경찰봉을 꺼내 이동주택의 문을 탕탕 두드렸다
문 열어 범퍼스
이동주택이 심하게 흔들렸고 화장실로 후닥닥 기어올라가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범퍼스 문 안 열 거야
오지가 다시 한번 문을 세게 때렸다
거기 있는 줄 다 알아 안 열면 부숴 버리겠어
범퍼스가 문을 확 잡아당기며 나타났다 오지는 재빨리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여기 올 때마다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 변기 물 내리는 소리도 항상
들리고 자 옷 입어 할 일이 있으니까
뭐 뭔데요
밖으로 나가서 얘기하지 이거 원 숨도 못 쉬겠구만 자 얼른 옷 입어
싫다면요
뭐 싫어 좋아 내일 가석방 담당관을 만나겠어
아 알았어요 나갈게요
오지는 씨익 웃으면서 순찰차로 되돌아왔다 범퍼스는 오지가
좋아하는 놈 중 하나였다 형기를 2년 남기고 가석방된 뒤로 별 말썽 없이
지내고 있는 범퍼스는 마약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만 빼면
꽤 괜찮은 놈이었다 오지는 그동안 범퍼스를 감시해 왔고 몇 번의 마약 거래도
눈치채고 있었다 범퍼스도 물론 오지가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지 보안관의 심부름을 안 들어줄 수 없는 처지였다
원래는 범퍼스를 미끼로 빌리 레이 콥을 마약 거래 혐의로
잡아드릴 예정이었지만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었다
잠시 후 소맷자락을 반쯤 걷어붙인 채 바지 지퍼를 올리면서
범퍼스가 걸어나왔다
찾고 있는 게 누군데요
빌리 레이 콥
문제없어요 개는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
입 닥치고 잘 들어 오늘 오후에 강간사건이 있었는데
빌리 레이콥 짓인 것 같아 흑인 여자아이가 백인 두 놈한테 당했다
내 생각으로는 콥이 거기 있었어 무슨 말인지 알아
콥은 강간 같은 건 안 하는데요 개 전공은 마약이에요
그건 네가 알 바 아니야 넌 그냥 콥을 찾아내서 같이 좀 어울리기만 하면 돼
한 오분 전에 휴이네 술집 앞에서 콥의 픽업이 발견됐어
가서 맥주나 좀 사주고 당구를 치든지 주사위를 굴리든지 해서 시간을 끌어
그러면서 오늘 뭐 했나 누구랑 같이 있었나 어디 갔었나 하는 것들을 물어봐
그 자식 떠벌리기 좋아하잖아
알았어요
알아내는 즉시 경찰서에 전화하라구 그럼 나한테로 연락이 오니까
나는 그 근처에 숨어 있을 거야 알았지
어려운 것도 없네요 뭘
질문 있어
예 지금 난 돈이 없는데 맥주 값은 누가 내는 거죠
오지는 범퍼스에게 20달러를 쥐어 주고 자리를 떴다 그러고는
호수 아래쪽 휴이네 술집으로 차를 몰았다
저놈 믿을 수 있어요
헤이스팅스가 물었다
누구
범퍼스요
그럼 믿을 수 있지 가석방된 뒤로는 한번도 말썽을 안 피웠잖아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는 것 같아 어쨌든 저놈은 내 편이야
내말이라면 뭐든지 들을걸
왜요
몇 년 전에 마약을 한 3백 그램 들고 있다가 나한테 잡혔거든
그래서 1년 살다 나왔지 그런데 범퍼스 형한테서 30그램이 또 나온 거야
나는 일단 범퍼스를 잡아서 족치기 시작했지 이번에 들어가면 30년은
살아야 된다면서 그랬더니 밤새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 다음날
아침쯤 되니까 다 불 준비가 되어 있더군 자기한테 마약을 공급해 준게
자기 형 보비라는 거야 그래 범퍼스는 내보내고 보비한테 쫓아가서
문을 두드렸지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놈이 문을 안 열길래
문을 부수고 쳐들어갔더니 보비 놈이 팬티만 입은 채로 변기를
부등켜안고 수작을 부리고 있더군 사방이 다 마약투성인데 얼마나 많이
물을 내렸는지 변기가 넘칠 정도였다니까
그놈은 너무 놀란 나머지 오줌을 질질 싸더라구
정말이에요
그래 엄청나게 싸댔지 한 손에는 마약 봉지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변기 물고리를 잡은 채로 오줌을 지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봐
게다가 방 안은 변기에서 넘친 물로 홍수가 날 지경이었고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넌 끝장이다 그랬지
그랬더니요
그놈도 울대 애기처럼 말야 갑자기 엄마를 찾아대고 감방 가기 싫다는 등
별 시답잖은 얘기를 다 늘어놓더라구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빌면서 말이야
잡아넣었어요
아니 못 넣었어 진짜로 심하게 욕을 해대고 한번만 더 그러면
죽여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고는 그 자리에서 풀어줬어
그 뒤로는 열심히 살더군
두 사람은 휴이네 술집이 가까워지자 다른 트럭들 사이에 주차되어 있는
콥의 픽업을 보았다 헤이스팅스는 고속도로 쪽으로 더 올라가
검은 교회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휴이네 술집이 잘 내려다보이는 지점이었다
또 한 대의 순찰차가 조용히 다가와 반대편 나무 밑에 섰고
잠시 후 범퍼스의 차가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범퍼스는 콥의
픽업 바로 뒤에다 부옇게 먼지를 일으키면서 차를 세웠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술집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삼십분쯤 있다가 무전기가 울렸다
제보자 호수 근처 305번 고속도로변 휴이네 술집에서 혐의자 발견 백인
몇 분 후에 순찰차가 두 대가 살금살금 휴이네 술집으로 다가갔다
콥이 그랬는지 어떻게 알아요
헤이스팅스가 물었다
확실치는 않아 그냥 육감일 뿐이야 토냐 말로는 번쩍거리는 휠에다가
광폭 타이어를 단 차였다잖아
그런 차가 한 2천 대는 되겠죠
노란색 신형에다가 깃발이 걸려 있었고
한 2백 대로 줄겠네요
그만큼도 안 돼 빌리 레이콥의 차가 워낙 특이하니까
만약 콥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죠
콥이야
아니라면요
곧 알게 되겠지 그놈 제 입으로 다 지껄이게 돼 있어
술만 먹여놓으면 말이야
그들은 두 시간 동안 기다리면서 트럭이 오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트럭운전사와 벌목공 노동자 농부 들이 지프와 트럭을 주차시켜놓고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술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당구를 치고 쿵쾅거리는 밴드 소리를 듣는 게 그들의 일과지만
더 중요한 목적은 여자를 꼬시는 것이었다 일단 여자를 건지면 그들은
바로 옆에 있는 앤 여관으로 들어갔고 얼마 후에 다시 휴이네
술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앤 여관은 안이나 밖이나 온통 어둠으로 뒤덮여 있었고 휴이네 술집처럼
휘황찬란한 맥주 광고판도 없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곳은 원래 마약 거래를 하는 장소였다 반면에 휴이네 술집은
음악과 여자와 여흥과 도박 기계 주사위 춤 주먹질 따위의 것들을
갖추고 있었다 안쪽에서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주차장으로 새어나왔다
백인 여럿이 서로 엉켜서 드잡이를 하고 닥치는 대로 주먹을
휘두르다가 이내 주사위가 있는 탁자로 되돌아갔다
설마 범퍼스가 당하고 있진 않겠지
보안관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술집 안의 화장실은 좁고 더러웠기 때문에 손님들은 대부분 주차장의
트럭들 사이에서 볼일을 봤다 맥주를 단돈 50센트에 내놓는 월요일은
특히 심했다 군 구석구석에서 몰려든 트럭들이 저마다 세 번씩은
오줌 세례를 받아야 했다 이 지방을 지나던 오토바이족들이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꼴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도망을 친 적도 있었다
단속을 하는 것이 오지의 임무였지만 오지는 대개 모른 척 내버려두었다
소위 통크라고 불리는 이런 술집들이 범법을 저지르는 사례는 사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도박과 마약 밀주는 물론이고 미성년자를 출입시키고
영업시간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선거를 통해 민선 보안관이 되었을 때
오지는 그걸 죄다 단속하기로 했다 선거공약에 내세운 대로 통크의 문을
닫게 했는데 그게 큰 실수였다 범죄율은 급격히 올라가고 감방은
만원 사례가 되면서 형사소송 사건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불한당들이 합세를 해서 클랜턴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법원 근처에 주차해 있는
차가 늘 수백 대에 이르렀다 매일밤 그들은 광장을 점거하고 술을 마시고
싸움질을 하곤 노래를 틀어대고 선량한 시민들에게 욕지거리를 해댔다
아무데나 버려진 캔과 맥주병으로 광장은 아침마다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흑인들이 드나드는 바에는 폐쇄조치가 가해졌고 그 때문에 불법침입과
강도 칼싸움 같은 강력 사건이 한 달 사이에 세 배로 늘어났다
일주일에 두 명씩은 죽어 나간 셈이었다
마침네 지방 유지들이 회합을 갖곤 오지에게 폐쇄조치를 철회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오지는 선거기간중에 통크의 폐쇄를 지지한
기억을 상기시켰다 유지들은 자기들이 잘못 판단했음을 시인하고
다음번 선거에도 오지를 밀겠다고 밀약을 했다 한껏 누그러진 오지는
클랜턴의 삶을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주었다
오지는 개인적으로 그런 통크들이 자기 군내에 밀집해 있는 게 싫
었다 하지만 그걸 열어두어야만 주민들이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열시 삼십분 제보자가 보안관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지는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조금 뒤 범퍼스가 바에서 나와
트럭에 올라타는 게 보였다 그는 차를 비틀비틀 몰면서 자갈길을 기어 올라왔다
취한 것 같은데요
헤이스팅스가 말했다
범퍼스의 차는 교회 앞 주차장으로 들어와 끽 소리를 내며 섰다
순찰차로부터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다
보안관 어디 있어요
범퍼스가 소리를 질렀다 오지는 천천히 트럭 앞으로 다가갔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오래 있으라고 그랬잖아요
그래도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잖아
아이구 보안관님 한 캔에 50센트짜릴 40개나 먹으려면 그 정도 안 걸리겠어요
자네 취했나
아니요 약간 알딸딸할 뿐이에요 근데 20달러만 더 주시면 안 되겠어요
그래 알아낸 게 뭐야
뭘요
콥 말이야
아 콥이요 안에 잘 있어요
그건 나도 알아 뭐 알아낸 거 없냔 말야
보안관이 꽥 소리를 지르자 범퍼스가 움찔하며 웃음을 감추었다
그는 멀리 휴이네 술집을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웃고 난리가 났어요 콥이 드디어 흑인 중에서 처녀를 찾아냈다고 하니까
어떤 놈이 몇 살인데 하면서 묻더라구요 아홉 살쯤이라고 하자
모두들 자지러져서는
헤이스팅스는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었다 오지는 이를 악물면서
범퍼스를 쳐다보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같았다
다른 말은 안 했어
아주 취해 있어서 아침에 뭘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던데요
콥 말로는 아주 영리하고 작은 흑인 아이였답니다
누구랑 같이 있었대
피트 윌러드요
그놈도 저 안에 있어
예 둘이서 그 얘기를 하던데요
지금 있는 위치가 어디야
들어가서 왼쪽요 핀볼 기계 옆이죠
오지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잘했어 이제 가봐
헤이스팅스는 무전기에 대고 두 혐의자의 이름을 불렀다 군판사인
퍼시 불러드의 집 앞에 주차해 있던 루니는 무전기로 그 사실을 듣자마자
판사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 두 장의 진술서와 두 장의 체포영장을
내밀었다 영장에다 대충 서명을 한 불러드는 그걸 루니에게 건네주었고
루니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그곳을 나왔다 이십분 후 루니는 교회 뒤쪽에
숨어 있던 오지에게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에 대한 체포영장을 내밀었다
정각 열한시 갑자기 밴드의 음악 소리가 끊어지고 무희들의 춤이
얼어붙고 구르던 당兮이 멈추었다 누군가 홀 안의 불을 환하게 켰던 것이다
그때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보안관 오지 월스가 홀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보안관 일행은 댄스홀을 지나 핀볼 기계 옆에 있는 탁자로 천천히 다가갔다
콥과 윌러드 그리고 다른 얼간이 몇이 앉아 있는 탁자 위에는
빈 맥주캔이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오지는 콥을 향해 씨익 웃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여기는 검둥이들이 오는 곳이 아닌데요
콥이 입을 열었다 탁자 주위에 앉았던 네 사람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오지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물고 있었다 좌중의 웃음이 멈추자 오지가 말했다
그래 잘 놀았어 콥
그럼
그래 보이는군 분위기 깨서 안됐는데 너하고 윌러드 좀 같이 가주겠어
어디로
윌러드가 끼여들었다
차로
난 싫은데
콥이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같은 탁자에 앉아 있던 두 놈이 자리를차고 일어나
구경꾼 틈에 끼였다
너희 둘을 체포한다
오지가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영장 있어
콥이 대들었다 헤이스팅스가 영장을 오지에게 건네주자 오지는 그걸
빈 맥주캔 사이에 툭 던졌다
물론 자 일어나시지
윌러드는 기가 잔뜩 죽어서 콥의 눈치를 살폈고 콥은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말했다
감방은 내 체질에 안 맞는데
루니가 오지에게 포드 군에 있는 경찰봉 중에서 제일 길고 검은 것을 주었다
윌러드가 공포에 질려 있는 사이에 오지는 경찰봉을 높이 들어올렸다가
탁자 중앙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맥주 거품이 사방으로 튐과 동시에
윌러드가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루니 앞으로 내밀었다
수갑을 들고 기다리고 있던 루니는 윌러드를 순찰차로 끌고 나갔다
오지는 경찰봉을 왼쪽 손바닥에다 툭툭 내리치면서 입을 열었다
피의자에게는 묵비권이 있으며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법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 또한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국가가 국선변호인을 선임한다 질문 있어
그래 지금 몇 시야
감방 갈 시간이야
놀고 있네 검둥이 새끼
오지는 콥의 머리채를 확 잡아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 다음 마루에다
그의 얼굴을 처박았다 오지는 무릎으로 콥의 등허리를 누른 채 그의 목 앞에
경찰봉을 걸어 힘껏 당겼다 콥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왔다
오지는 경찰봉을 빼들어 콥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콥에게 수갑을 채운 오지는 그의 머리채를 잡아끌고는 홀을 지나
문밖의 자갈길로 나갔다 콥은 윌러드와 함께 순찰차 뒷자리에 던져졌다
강간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클랜턴 일대로 퍼져나갔다
더 많은 친구들과 친척들이 병원 대기실과 복도로 몰려들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토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오지는 그웬의 오빠에게 피의자의
체포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들이 틀림없다는 말과 함께
제이크 브리건스는 자고 있는 아내를 뛰어넘어 바로 옆에 붙은 조그만 화장실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러고는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자명종시계를 더듬더듬 찾았다 전날 자신이 놓아두었던 그 자리에서
그는 자명종시계의 꼭대기를 탁 쳐서 목숨을 끊어 놓았다
5월 15일 수요일 새벽 다섯시 삼십분이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심장은 여전히 발작적으로 뛰고 있었고 자기를 응시하는 빌어먹을
시계의 시침만이 늑대 눈처럼 형광빛을 쏘아댔다 그놈의 울음소리는
큰길에서도 들릴 만큼 컸다
제이크는 매일 아침 그놈이 울 때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고통속에서
깨곤 했다 1년에 딱 두 번 칼라가 침대에서 기어나와 시계를 꺼주고
조용히 침대로 돌아오는 날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별로 바랄 일이 못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천사 같은 여자는 아니니까 칼라는 이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여자였다
시계를 욕실 창문틀에 숨겨 놓은 것은 제이크였다 그렇게 하면 시계가
멈추기 전에 얼마간은 어두운 침실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시계를 침대맡에 두면 칼라가 대뜸 일어나 소리를 죽여 놓았고 그렇게 되면
아침 일곱시 내지 여덟시까지 늘어지게 잔 하루가 되고 말았다 일단 일어나면
다시 눕지 않는다는 게 제이크의 원칙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일곱시까지는
사무실에 들어가 있는다는 게 두 번째 원칙이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화장실에 놓여 있는 시계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었다
제이크는 세면대로 가서 찬물을 얼굴과 머리에 끼얹은 다음 불을켜고
거울 속을 들여다보면서 공포에 젖은 숨을 헐떡거렸다 머리카락은
머리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어젯밤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것 같았다
아니면 이마가 그만큼 늘어났거나 눈은 물기 없이 바짝 말라 있었고
푸른 광채가 흰자위를 꽤 잡아먹은 것 같았다 얼굴 왼쪽에
나 있는 침대 솔기에 눌린 자국도 전날과 다름없었다 제이크는 그 자국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볼을 문질러 보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린 다음 다시 머리의 형태를
들여다보았다 나이 서른둘 새치는 아직 없고 희끗희끗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새치가 아니라 바로 대머리였다 아버지
어머니 쪽 모두로부터 물려받은 대머리는 이마 위를 덮고 있는 수북한
머리카락을 바라는 제이크를 매일 아침 배반하고 있었다 칼라 말로는
아직 머리칼이 많다지만 새로 나는 속도보다는 없어지는
속도가 더 빨라 보였다 칼라는 그래도 아직은 잘생긴 얼굴이라고 했다
제이크도 그건 그렇다고 생각했다 칼라는 사실 당신 같은 젊은 변호사에겐
훤한 이마가 안정감을 더해 준다는 말도 했다 제이크는
물론 그것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이마가 훤해진 원숙한 변호사는 보기 좋은데
일찍부터 머리가 벗겨진 변호사는 왜 이렇게 추해 보이는 걸까
왜 머리카락이라는 놈은 희끗희끗한 구레나룻처럼 새로 나지 않는 것일까
샤워를 하는 동안 제이크는 내내 그 생각만 했다 그렇다고 샤워기를
붙잡고 신세 타령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서 면도를 하고 옷을 입어야
여섯시 전에 커피숍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게 제이크의 세 번째 원칙이었다
침실로 돌아와서 불을 환하게 켜고 서랍과 옷장을 탕 소리나게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제이크는 나름대로 칼라를 깨우려고 애썼다
칼라가 학교에 나가지 않는 여름 내내 이것은 제이크의 아침 일과였다
내가 출근하고 난 다음에도 얼마든지 잘 수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적어도
아침 시간은 함께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제이크는 칼라에게 수백 번도 넘게
얘기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칼라는 끙 소리를 내면서 침대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기만 했다
옷을 다 입자 제이크는 칼라에게 달려들어 귀와 목 언저리에 키스를 퍼부어댔다
칼라는 세찬 도리질로 제이크를 물리쳤고 제이크는 홧김에 이불을
확 잡아당겼다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칼라는 이불을
돌려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그러나 제이크는 이불을 쥔 채로 햇살에
보기 좋게 그을린 가늘고 긴 다리를 감상하고 있었다 잠옷이 가려 주지 못하는
허리 아래쪽을 보고 있자니 뜨거운 욕망이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칼라가 제이크의 요구에 순순히 응해 주는 일이 한 달에 한번쯤 있기는 했다
합의하에 이불이 치워지는데 그럴 때마다 제이크는 자신의 세 원칙을
무참히 깨고 부랴부랴 옷을 벗었다 한나가 태어난 내력이 그랬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아니었다 제이크는 칼라에게 이불을 돌려주고
불을 껐다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칼라는 다시 아늑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제이크는 한나의 방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딸 옆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네 살짜리 귀여운 아기 인형과 솜으로
채워진 갖가지 동물들의 축복을 받으며 잠들어 있는 한나의 뺨에 제이크는
부드럽게 입을 맞춰 주었다 한나는 엄마만큼이나 예뻤고 하는 짓이나
생김새도 엄마를 쏙 빼닮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것 같은
청회색 눈동자와 가지런히 뻗은 검은 머리칼까지 둘은 너무나도 닮아서
옷까지 같이 맞춰 입기도 했다
제이크는 두 여자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는 한나의 뺨에 다시 한번
입을 맞추고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큰 여인을 위해 커피를 올려놓은 다음
맥스를 들어서 마당에 내다놓았다 작고 귀여운 맥스는 마당에
나오자마자 옆집 피클스 부인네 고양이를 향해 짖어대기 시작했다
제이크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제이크는 대문으로 가서 칼라가 읽을
아침 신문을 가져왔다 아직은 어둡지만 상쾌하고 서늘한 날이었다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제이크는 어둠 가운데서 애덤스 가情를 둘러보다가 이 지방의 명물 중 하나인
자기 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포드 군의 가옥들 가운데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것은 딱 두 개인데 그중 하나가 제이크의 것이었다
비록 머리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저당잡혀 있기는 하지만 제이크는 그 집이
아주 자랑스러웠다 19세기 빅토리아 왕조풍으로 지어진 이 집은
원래 은퇴한 철도인부의 소유였는데 그는 이 집에서 첫번째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곧 죽어 버렸다
넓은 대문 위로 올려진 커다란 박공이 집 전체에 화려한 분위기를
더해 주었고 현관 역시 온통 박공으로 뒤덮여 있었다 흰색과 청회색을 배합해
칠한 다섯 개의 기둥에는 수선화와 붓꽃 해바라기 등 여러 종류의 꽃들이
새겨져 있었다 화려한 레이스 세공이 기둥들 사이 난간을 장식하였고
그 위층에는 퇴창과 작은 발코니가 있었다 발코니 오른쪽에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한껏 멋을 부린 팔각기둥이 박공을 뚫고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
기둥 바로 아래 현관 옆에는 넓고 아늑해 보이는 베란다가 화려한 난간을 따라
이어져 있으며 그 옆으로는 차고가 있었다 제이크의 집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울퉁불퉁한 조각과 삼목지붕널 가리비와 생선 비늘 모양 정교한 박공과
작은 방추가 한데 어우러져 온갖 무의들의 콜라주를 연상시켰다
칼라는 집에 칠을 하기 위해 뉴올리언스의 전문가까지 찾아가서 여섯 가지
천연색을 받아왔는데 그중에서 오리색 청회색 복숭아색 흰색 등이
주로 사용되었다 칠을 하는 데 든 시간만 해도 두 달이었고
제이크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무려 5천 달러나 됐다 두 부부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허우적거린 노력과 가장자리를 정교하게 칠하기 위해 보낸 기회비용을
뺐는데도 그랬다 행여 칠이 서툴게 되었다고 해도 이제 다시 손을 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다른 건물들처럼 이 집 역시 영광의 상징이었다
솔직하고 활기찬 아이들처럼 발랄하면서도 야무지고 당당하고 위대했다
칼라는 결혼하기 전부터 그 집을 갖고 싶어했는데 마침 멤피스에
살던 소유자가 죽은데다 아무도 그 집을 원하지 않는 덕분에 헐값으로
사드릴 수 있었다 제이크는 클랜턴의 세 은행 가운데 두 군데에서
돈을 빌리고 3년을 기다린 끝에 소유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20년이나 버려진 이 집의 권위를 회복시킨 지금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올 만큼 명소가 되었다
제이크의 빨간색 사브는 클랜턴의 세 번째 은행에 저당잡혀 있었다
제이크는 사브의 앞유리창에 내린 이슬을 닦은 뒤 문을 열었다 이웃집
단풍나무에서 자고 있던 까치들을 다 깨워놓고도 맥스는 아직도
무언가를 향해 짖고 있었다 까치들이 제이크에게 아침인사를 해주자
제이크도 휘파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제이크의 차는 애덤스 가로
다시 내려와 동쪽으로 두 블록을 간 다음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제퍼슨 가로
들어섰다 제퍼슨 가는 두 블록밖에 뻗지 못했다 워싱턴 가가
그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워싱턴 가는 클랜턴 광장의 북쪽을
가로지르면서 동서로 쭉 뻗어 있었다 제이크는 늘 왜 남부에는 애덤슨
제퍼슨 워싱턴이라는 길 이름은 있어도 링컨이나 그랜트라는 이름은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포드 군의 군소재지인 클랜턴에는 광장이 있었고 으레 그렇듯이
군소재지의 중심가에는 법원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클랜턴 장군은
여러 가지 면에서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광장도 길고 넓게 만들었고
커다란 떡갈나무를 가지런히 심어 놓았으니까 떡갈나무들 사이로는
잔디밭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었다 두 세기 동안 튼튼하게 버터오던
법원 건물은 남북전쟁 때 파괴되었다 아직도 완강하게 남쪽을 향하고 있는
법원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양키들에 대한 반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정면에서 바라본 건물은 흰 기둥과 열두 개의 창에 쳐진 검은 차양
때문에 묵직한 느낌을 받지만 그래도 세월의 때를 속일 수는
없었다 붉은색 벽돌들은 점점 바래서 흰색 페인트를 뒤집어써야 했고
4년에 한 번씩 건물 전체에 에나멜을 칠하는 것은 이제 보이스카웃들의
여름 행사가 되었다 그나마 조성된 기금이 있어서 가꾸고 새로
지을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법원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잔디밭이
깨끗하고 가지런한 것도 일주일에 두 번씩 잔디를 깎으러 오는 죄수들
덕분이었다
클랜턴에 있는 세 군데 커피숍도 전부 클랜턴 광장에 모여 있었다
두 개는 백인 전용이었고 하나는 흑인 전용이었다 백인은 주로 서쪽에 있는
클로드네로 갔고 흑인은 워싱턴 가에 있는 커피숍에 가거나
클랜턴 광장 남쪽의 티숍에 갔다 여차하면 흑백간의 싸움이 일어날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알아서 제자리를 찾아갔다 제이크도 매주 금요일에는
대부분의 백인들처럼 클로드네서 바베큐를 먹지만 나머지 엿새는
워싱턴 가의 커피숍을 애용했다
제이크는 워싱턴 가에 있는 사무실 앞에 사브를 세운 뒤 세 집 건너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이미 한 시간 전에 문을 열었기 때문에 이 시간이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커피숍에서 일하는 여급은 커피와 아침식사를 나르면서
단골손님들과 잡담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백인들은 좀더 늦은 시간에 건너편에 있는 티숍에 모여 정치나
테니슨 골푸 주식 시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흑인들이 드나드는
이 커피숍에서의 화제는 지방 정치와 축구 낚시가 주된 내용이었다
제이크는 이곳에서 인정을 받은 몇 안 되는 백인 중의 하나였다
블루 칼라들이 대부분인 이 커피숍의 단골손님들은 제이크를 좋아했다
적어도 한두 번은 유언이나 양도 이혼 변호 등 무수히 많은 문제들 가운데
하나 때문에 제이크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침을 먹는 동안 연방법이나 잡다한 법률 문제들을 제이크에게 물었고
제이크는 그들에게 공짜로 법률 서비스를 해주었다 제이크는 어떤 문제든
끝까지 들어주고 얘기를 나누었으며 사람들은 제이크의 그점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 제이크와 의견이 항상 일치하는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진지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논쟁을 하더라도 앙금이 남지 않는 상대 제이크 브리건스는
바로 그런 상대였다
여섯시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고 등을 두드리고
여급에게 아는 척을 하는 데 오분이 걸렸다 제이크가 자리에 앉자마자
제이크와 가장 친한 여급인 델이 직접 커피와 토스트 젤리 구운 옥수수를
가지고 왔다 델은 제이크의 손을 치면서 자기 혹은 하니라고 부르며
제이크 앞에서 수다 떨기를 좋아했다 다른 손님들에게는
불평을 하고 대들기도 하지만 제이크 앞에서는 절대 그러질 않았다
제이크는 시보레 공장에서 일하는 정비공 팀 넌리의 형제들 마을 북쪽의
신발 공장에서 일하는 웨스트 형제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제이크는 구운 옥수수에다 매운 타바스코 소스를 서너 방울 뿌린 다음
조심스럽게 버터를 바르고 토스트 위에는 포도잼을 1센티 두께로
발랐다 그렇게 아침식사가 준비되고 나면 제이크는 먼저 커피를 한모금 마신 뒤
아침을 와작와작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제이크 주위에 앉은 사람들은
비교적 조용하게 아침을 먹으며 매운 소스에 대해 한 두 마디씩 던졌다
1미터쯤 떨어진 옆 탁자에 앉아 있던 보안관 대리들 가운데 키가 큰
마셜 프레이서가 제이크를 보고는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제이크 당신이 몇 년 전에 빌리 레이 콥을 변호했었죠
커피숍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프레이서의 질문보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나 이상해서 제이크는 옥수수를 꿀꺽 삼키고 그가 댄 이름을
기억 속에서 찾아보았다
빌리 레이 콥이라 무슨 사건이었는데요
제이크는 큰 소리로 되물었다
마약이었을 거예요 4년 전에 마약 팔던 걸 잡아서 파치먼에 처넣었는데
작년에 출감했죠
제이크는 그제야 그 이름이 기억났다
아 알겠어요 하지만 내가 변호하지 않았어요 아마 멤피스에서
변호사를 데려왔었죠
프레이서는 안심된다는 듯이 팬케이크로 눈길을 돌렸다 제이크는
프레이서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궁금증이 나서 물었다
그 사람이 무슨 사고를 쳤어요
어젯밤에 강간 혐의로 붙잡혔어요
강간요
그래요 피트 윌러드랑 같이
피해자는요
헤일리라고 당신도 알 거예요 몇 년 전에 당신이 살인사건에서 꺼내줬죠
예 레스터 헤일리 물론 알죠
그럼 그 형도 알아요 칼 리라고
잘 알죠 헤일리네 식구들은 거의 다 알아요 내 고객들이니까요
그럼 그 집 딸도 알겠네요 토냐 말예요
토냐가 당했다구요 그게 정말이에요
몇 살인데요
열 살
커피가 식으면서 제이크의 식욕도 차갑게 식어 버렸다 제이크는
잔을 만지작거리면서 옆에서 들려오는 낚시 얘기며 일본 차 얘기를
시큰둥하게 듣고 있었다 그는 웨스트 형제들이 떠나자 자리를 옮겨
프레이서 쪽으로 다가앉았다
상태가 어때요
제이크가 물었다
누구 말예요
토냐요
안 좋아요 아직 병원에 있어요
어떻게 된 일이래요
아이가 말을 못 해서 다는 모르지만 엄마 심부름으로 가게에 갔다 오다가
당했다나 봐요 헤일리 집이 베이츠 가게 근처잖아요
어디 사는지는 나도 알아요
어떻게 해서 애를 픽업에 태워 가지고 숲 속으로 끌고 가서 강간한 거죠 뭐
두 놈 다요
예 한 번씩만 한 게 아니래요 발로 차기도 하고 하여튼 무식하게
두들겨 팼더라구요 너무 많이 맞아서 그애 얼굴을 거의 못 알아볼 정도라니까요
제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구역질 나는 일이군요
그래요 보기에도 끔찍했어요 아마 죽이려고 했던 모양이에요
누가 발견했답니까
포기 크리크 아래서 낚시질하던 흑인들이 길에서 여자애를 본 모양이에요
팔이 뒤로 묶여 있었대요 아버지가 누군지 겨우 얘기해서
집으로 데리고 온 거죠
빌리 레이 콥이 한 짓인지 어떻게 알았어요
엄마한테 혁명기가 달린 노란색 픽업을 탄 사람들이라고 그랬대요
그 정도면 오지한테는 충분한 거죠 오지 말로는 병원에 가서 아이를 보고 나서
곧바로 콥의 짓이라는 걸 알았대요
프레이서는 너무 많은 정보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 같았다
프레이서도 제이크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제이크가 형사사건을 주로
다루는 변호사이기 때문에 경계하는 눈치였다
피트 윌러드는 누구예요
콥의 똘마니 중 하나죠 뭐
두 놈을 어디서 잡았어요
휴이네서요
알 만하군요
제이크는 커피를 마시면서 한나를 떠올렸다
끔찍해 정말 끔찍한 일이야
루니가 중얼거렸다
칼 리는 어떡하고 있어요
프레이서는 수염에 묻은 시럽을 닦아내면서 입을 열었다
난 개인적으로는 그 사람을 잘 모르지만 그 사람에 대한 나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정말 안된 일이에요 어쨌든 그 칼리힐 식구들은
지금 병원에 있어요 오지도 같이 밤을 새운 것 같아요 물론 오지는
그 식구들을 다 잘 알죠 헤이스팃스도 칼 리와 친척이구요
예심은 언제래요
불러드 판사가 오늘 오후 한시로 잡았다고 하던데 맞지 루니
루니는 프레이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석은요
아직 아무 얘기가 없어요 불러드는 예심 때까지 기다려볼 건가봐요
여자애가 죽으면 모살죄가 되나요
이번에는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살죄도 보석 신청이 가능한가요
루니가 제이크에게 물었다
가능하긴 하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아마도 그건 불러드 판사한테
달려 있을 겁니다 하지만 판사가 모살죄에 보석을 허가할 것 같지는 않군요
피해자가 죽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몇 년이나 구형될까요
프레이서와 루니와 함께 앉아 있던 네스비트가 물었다 다른 두 사람은
제이크가 설명하는 동안 가만히 듣고 있었다
강간죄로는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콥과 윌러드의
경우엔 유괴와 폭행죄가 추가돼요
그렇죠
유괴와 폭행으로 각각 20년씩을 더하면
도대체 얼마나 오래 살아야 되는 거예요
루니가 끼여들었다 제이크는 속으로 셈을 해보았다
최소한 13년은 살아야 가석방을 신청을 할 수 있어요 살인으로 7년
유괴와 폭행으로 3년씩 해서 말이죠 물론 세 가지 죄목으로 모두
기소가 되고 최고형을 받는다는 전제하에 하는 얘기죠
콥은 어때요 그 자식은 전과가 있는데
전과는 있지만 같은 죄로 두 번 이상 유죄선고를 받지 않은 한
상습범은 아니죠
13년 루니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제이크의 말을 되뇌었고
제이크는 멍하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일과 야채를 실은 트럭들이
도착하자 농부들이 잔디 주변의 도로에 트럭을 갖다 댔다 광장은 조금씩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그을린 얼굴의 농부들은 토마토와 호박과
오이 등을 트럭 뒤와 천막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있었다
플로리다에서 가져온 수박을 때묻은 타이어 옆에 놓고 농부들은
베트남전 참전기념탑 쪽으로 무리지어 갔다 벤치에 앉아 씹는 담배를 씹다가
조금씩 뱉어내면서 그들은 이런저런 화제를 입에 올리리라
강간사건 얘기도 하겠지 제이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날은 점점 밝아오고
이제 사무실로 올라갈 시간이었다 막 아침식사를 끝낸 보안관 대리들에게
먼저 올라가 보겠노라고 인사를 남기고 제이크는 자리를 떴다
델을 한번 끌어안아 주고 계산을 치르면서 그는 집에 두고온
한나를 또다시 떠올렸다
일곱시 삼분 전 제이크는 사무실 문을 열고 불을 환하게 켰다
칼 리는 대기실 소파에 누워 있었지만 도저히 잠을 이를 수가 없었다
토냐는 중태이긴 하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토냐를
만나기 전에 의사는 토냐의 상태가 안 좋다고 보호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칼 리가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그웬이 토냐에게 입을 맞추는 동안
칼 리는 목석처럼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흉칙스러운 기계와 고무 호스와 간호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어린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게 전부일 뿐
조금 있다가 그웬은 평정을 되찾았고 칼 리는 아내를 장모님에게 보냈다
아이들은 삼촌네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조그만 소파에는 칼 리 혼자 남았다 두시쯤
오지가 커피와 도우넛 두 개를 들고 찾아와 콥과 윌러드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커피숍에서 조금 떨어진 광장 북쪽에는 3층짜리 건물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제이크의 사무실은 그 건물들 중 하나인 윌뱅크스
일가가 지은 건물의 3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윌뱅크스 가문은 1979년에
그 집안의 마지막 변호사가 자격 박탈이라는 중징계를 받음으로써 변호사를
가업으로 이어오던 집안의 이력도 끝이 나고 말았다
제이크의 사무실 동쪽 바로 옆 건물에는 보험대리인의 사무실이 있었는데
언젠가 제이크는 시보레 공장의 정비사 팀 넌리의 의뢰를 받아
그 대리인을 상대로 소송을 건 적도 있었다 그리고 서쪽에 있는
건물은 제이크의 차 사브를 저당잡고 있는 은행 건물이었다 은행 건물말고
다른 건물들은 모두 3층짜리 벽돌 건물이었다 광장 남동쪽 구석에 있는
4층짜리 건물과 남서쪽 구석에 있는 5층짜리 새 건물까지
합쳐서 세 개의 건물이 윌뱅크스 가의 소유였다
제이크는 1979년부터 혼자 일했다 그게 오히려 편했다 사실 클랜턴에는
그와 함께 일할 만한 괜찮은 변호사가 하나도 없었다 좋은 변호사가
몇 명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대개 5층짜리 은행 건물에 있는
설리번 법률회사 소속이었다 제이크는 그 법률회사를 싫어했고
그 회사의 변호사들을 뺀 다른 모든 변호사들이 그곳을 싫어했다 설리번
법률회사의 변호사 여덟 명은 하나같이 거만한 바보들이었다 그중
두 명은 하버드 출신인데 정말이지 그런 천치들은 생전 처음이었다
설리번 회사는 대농장주들과 은행 보험회사 철도회사 등 부유한
고객을 두고 있었고 포드 군에서 일하는 나머지 열네 명의 변호사는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었다 살아서 숨을 쉬는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제이크는 자신이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참호를 파고 있는 거리의 변호사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제이크가 일하는 곳은 엄청나게 넓었다 건물 안에 있는 방 열 개 중에서
그가 실제로 쓰고 있는 것은 다섯 개밖에 안 되었다 응접실과
회의실 부엌 잡동사니를 두는 작은 창고가 밑에 있었고 위층에는 제이크의
거대한 사무실과 상황실이라고 불리는 작은 방이 있었다 창도 없고
전화도 없고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방이라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었다
잘 나가던 시절 윌뱅크스 법률회사가 쓰던 사무실 가운데 위층 세개와
아래층 두 개가 지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제이크의 방은 그 빈 사무실이
필요없을 만큼 넓었다 넓이가 100평방미터에 높이가 3미터인
큰 사무실 안에는 두꺼운 나무 바닥이 깔려 있었고 한쪽에는 커다란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방 안에는 제이크의 책상과 회의용 책상
윌리엄 포크너의 초상화 아래 있는 뚜껑 달린 책상까지 책상만 세개였다
이 튼튼한 책상들은 사무실 구석구석을 장식하고 있는 고가구들과 함께
1세기의 세월을 같이 호흡해 왔다 한쪽 벽면은 온통 책으로
채워져 있었다 워싱턴 가를 향해 난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클랜턴 광장의
전망은 비길 데 없이 아름다웠다 클랜턴에서 가장 좋은
사무실에서 제이크는 일하고 있었다 그것만은 설리번 회사의 변호사들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사무실을 쓰면서도 이 건물의 소유자이자 제이크의
전 상사이기도 한 루시엔 윌뱅크스에게 제이크는 한 달에 4백 달러밖에 내지 않았다
윌뱅크스 가는 수십 년 동안 포드 군을 지배해 온 당당하고 부유하고
유명한 가문으로 농장 경영과 금융계와 정치 그리고 특히 법조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부분의 윌뱅크스 가 사람들은 아이비리그를 나와
변호사가 되었으며 은행을 설립하고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공공
이익을 위해 재산을 내놓곤 했다 윌뱅크스 법률회사는 오랜 세월 동안
미시시피 강 북쪽에서 가장 잘 나가던 기업이었다
그리고 루시엔의 차례가 되었다 루시엔 윌뱅크스는 그의 세대에서
유일한 남자였다 누이들이야 좋은 가문에 시집을 가면 그만이었지만
루시엔에게 거는 기대는 어려서부터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루시엔이 선대의 어른들만큼 총명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965년 아버지와 삼촌이 비행기 사고로 죽자
그는 윌뱅크스 법률회사를 상속받았다 나이는 사십이나 먹었지만 루시엔은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겨우겨우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서 회사의 대표를 맡았지만 고객들은 하나둘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은행과 보험회사와 대농장주 같은 굵직한
고객들은 새로 생긴 설리번 회사로 옮겨갔다 오랫동안 윌뱅크스 법률회사에
속해 있던 변호사 설리번이 루시엔에게 해고되자 몇 명의
변호사와 대부분의 고객들을 훔쳐갔던 것이다 사실 루시엔은 설리번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해고했다 변호사와 비서 직원 등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쫓아냈고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던 에셀 트위티라는
비서만 남겨두었다
루시엔의 아버지 존 윌뱅크스와 에셀은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왔으며
에셀에게는 루시엔과 비슷하게 생긴 아들도 하나 있었다 그 녀석은
젊은 시절을 정신병원이나 왔다갔다하며 보냈는데 루시엔은 그를 두고
농담으로 자기의 덜 떨어진 동생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비행기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덜 떨어진 동생이 갑자기 클랜턴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자기가 존 윌뱅크스의 서자라고 떠들고 다녔다
에셀은 창피스러워서 아들을 말렸지만 아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때문에
클랜턴은 흉흉한 소문으로 들끓었고 재산분할 청구소송이 설리번 회사에
의뢰되고 말았다 루시엔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루시엔은 아버지의 재산과
유산으로 남겨진 모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윌뱅크스 가문의 긍지와 명예를
위해서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배심원들의 눈에는 오직 루시엔과 원고가
많이 닮았다는 사실만이 들어왔다 설리번의 변호사들은 에셀의 아들에게
걷고 말하고 앉는 자세까지 루시엔을 흉내내게 했고 옷도 비슷한 것으로
골라 입혔다 에셀과 그녀의 남편이 나서서 자기 아들은 윌뱅크스 가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증언했지만 배심원들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원고는 결국 존 윌뱅크스와의 친자관계를 인정받았고 유산의 3분의 1을
보너스로 받았다 분에 못 이긴 루시엔은 판사에게 욕을 퍼붓고 원고에게
폭행을 가하고 괘성을 지르다가 법정 밖으로 끌려나갔고 교도소까지 가게 되었다
나중에 배심원들의 판결이 번복되어 원고 패소 판결이 나기는 했지만
루시엔은 에셀이 언제 생각을 바꿀지 몰라 그녀를 해고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아버지가 물려주신 회사를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게
루시엔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루시엔은 자기 선조들이
다루던 분야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형사사건을 다루고 싶어했고
이전의 고객들도 그런 사실을 조금씩 인정해 주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맡기 꺼리는 강간과 살인 아동학대 같은 추잡한
사건들을 루시엔은 좋아했다 그는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었고 법정에서
시민의 자유를 지켜주고 싶어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했다 변호사로서 과격한 이미지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건들을 맡을 필요가 있었다 루시엔이 진정으로 원한 것 역시
그런 것이기도 했다
루시엔 윌뱅크스는 수염을 길렀고 아내와 이혼했고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는 골프장 회원권을 팔아 버리고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나
미국자유인권연합 같은 단체와 어울리기 시작했으며 은행가협회에도
발길을 끊었다 그는 마치 클랜턴의 심술꾸러기가 되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학교에 인종차별이라는 죄목으로 시비를 걸고 교도소의 인권문제에 대해
주지사에게 대들고 흑인들의 거주지에 포장도로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를 고발하고 흑인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행을 법정으로 불러내고
연방정부에다가는 사형 폐지를 요구하고 공장주에게는 노동조합을
인정하라고 소리쳤다 그는 포드 군뿐 아니라 다른 곳의 형사사건에도 관여해
승리를 거뒀다 그의 명성은 점점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미시시피강
북쪽에 사는 흑인들과 가난한 사람들 노동조합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루시엔은 짭짤한 돈벌이가 되는 대인상해 건도 많이 다뤘으며 살인사건의
판결을 뒤집기도 했다 번번이 눈부신 성공을 거두면서 루시엔과 에셀의 회사는
전보다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루시엔에게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손익을 따지는 일은 모두 에셀의 차지로 돌아갔다
법은 루시엔의 삶을 사로잡았다 그는 가족도 없는 사람처럼 미친듯이
일에 몰두했다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일주일 내내 정열적으로
일을 했고 유일하게 즐기는 것이라고는 술밖에 없었다 60년대 말부터
잭 다니얼에 손을 대더니 70년대 초반에 들어서서는 취해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제이크를 고용했던 78년에는 이미 심각한 알코을 중독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서 술 때문에 일을 망치는 법은 없었다 그는
술을 마시면서 일을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어떻게 보면 반쯤 취해 있는
변호사라는 점에서 더 위험한 인물인지도 몰랐다 술은 천성적으로
약간 대담한 그의 성격에다 불을 질러 놓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법정에서 상대 변호사를 골탕먹이고 판사에게 욕을 퍼붓고
증인을 윽박지르고 배심원들 앞에서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는
아무도 존경하지 않았고 누구한테도 겁을 먹는 법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루시엔을
슬슬 피하기 시작했지만 루시엔은 오히려 그걸 즐겼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그는 난폭해졌고 그 때문에 더 많이 구설수에 올랐고 또 그 때문에 다시
술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1966년부터 1978년 사이에 루시엔에게 해고를 당한 변호사는 모두
열한 명이었다 그중에는 흑인과 유태인 멕시코인 그리고 여자도 있었지만
루시엔 밑에서 제대로 견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무실에서
그는 폭군이었고 시도 때도 없이 나이 어린 변호사들에게 욕을 해댔다
루시엔은 돈이 있으니까 제멋대로 할 수 있었지만 돈 없는 변호사들은
그저 그에게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78년 루시엔은 이제 갓 법대를 졸업한 제이크를 고용했는데 제이크는
클랜턴에서 서쪽으로 32킬로 정도 떨어진 캐러웨이란 작은 마을 출신이었다
용모는 단정하고 성격은 보수적인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예쁜 아내를 두고 있었다 루시엔이
자기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제이크를 고용한 이유는 제이크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제이크는 집 근처에
다른 일자리를 구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잠간만이라는 조건을 달고
루시엔 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1년 후에 루시엔이 변호사 자격을
박탈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건은 루시엔이 조직하고 대표자로 등록되어 있는 클랜턴 북쪽의
조그만 신발공장노조가 파업을 일으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공장측에서는
노동자들을 새로 갈아치우려고 했고 노조는 노조대로 버티는 와중에
폭력사건이 발생했다 루시엔이 피켓을 들고 선두에 섰는데
때마침 방해꾼들이 노동자들 틈에 끼여들었던 것이다 싸움을 지휘한
루시엔은 결국 체포되어 철창 신세를 지게 되었고 폭행과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정식 기소되었다 그리고 소송에서 연거푸 패소했다
게다가 주 변호사는 몇 년 전부터 루시엔을 주목하고 있던 참이었다
루시엔이 말썽을 일으킬 때마다 자체 징계와 경고 권리 정지 등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루시엔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었다 주 변호사회는 소청심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를 잇달아 열고
변호사의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루시엔에 대해 변호사 자격 박탈을
결정했다 그는 다시 소송을 걸었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연방대법원이 루시엔에 대한 자격 박탈 결정을 최종적으로 승인한다는 통보가
도착하던 날 제이크는 루시엔의 사무실에 있었다 루시엔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가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제이크는 루시엔의 입에서 쏟아질 일장 연설을
기대하면서 그의 눈치를 가만히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루시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층계를 걸어내려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에셀과
배웅 나온 제이크를 번갈아 쳐다본 뒤 문을 열었다
자리 잘 지키고 있어
루시엔은 두 사람에게 그 말만 남기고 떠났다
두 사람은 창가로 뛰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루시엔은 광장을 총총히 가로질러
낡은 포르세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뒤로 몇 달 동안 전혀 연락이 없었다
제이크는 루시엔이 맡고 있던 사건을 열심히 쫓아다녔고 에셀은 사무실을
정리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제이크는 루시엔의 사건 중
몇 개는 해결하고 몇 개는 다른 변호사에게 넘겼으며 나머지는 재판에
계류시켰다
루시엔이 돌아온 것은 6개월쯤 지나서였다 하루 종일 재판에 시달리다
사무실로 돌아온 제이크는 페르시아 양탄자 위에서 자고 있는
루시엔을 보고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루시엔 돌아오셨군요 몸은 괜찮아요
루시엔은 제이크의 목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커다란 가죽의자에 앉았다
약간 그을린 모습이 편히 요양을 하고 온 사람 같았다
술을 마신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제이크?있었어
루시엔이 따뜻한 시선을 던지면서 물었다
예 그런데 어디 갔었어요
케이먼 섬에
뭐하러요
양주도 마시고 해변에 누워 몸도 태우고 여자애들도 꼬셨지
재미있었겠는데요 그것 때문에 떠나셨던 거예요
정말 지겨웠었거든
제이크는 루시엔을 마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어쨌든 다시 뵙게 돼서 반가워요
나도 그래 일은 어때
힘들지만 할만해요
메들리 사건은 해결했어
예 피고인측에서 8천 달러를 내놓았어요
잘줬군 메들리도 만족하던가
예 그런 것 같더군요
크러거도 재판 시작했나
제이크는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프레드릭스 변호사를 새로 고용했어요 다음달에 시작할 거예요 아마
떠나기 전에 그 사람한테 얘기를 해줬어야 하는데
그 사람 유죄예요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지 누가 변호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대부분의 피고인은 다 유죄란 걸 명심해
루시엔은 발코니로 걸어가 광장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제이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앞으로 어쩔 셈인가 제이크
여기 계속 있고 싶은데 당신 생각은 어떠세요
자넨 괜찮은 변호사야 나도 자네가 여기 남길 바라네 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카리브 해로 옮겨갈까 생각했는데 그만두기로 했어
한번 가보기에는 좋은 곳이지만 이제는 신선한 맛도 없고
난 사실 확실한 계획이 없어 여행을 하고 돈이나 좀 쓰는 거지 뭐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돈은 꽤 있잖아
제이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엔은 두 팔을 벌린 채 방 안을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자네가 여길 좀 맡아주면 좋겠어 회사가 계속 일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말이야 자네 사무실을 위로 옮기고 이 책상도 자네가 쓰라구
우리 선조께서 남북전쟁 이후에 버지니아에 가서 맞춰온 걸세
이제 여기 있는 모든 자료와 사건 고객 책이 전부 자네 책임이야
고마워요 루시엔
대부분의 고객들은 나를 따랐기 때문에 자네가 일을 시작하면 떠날지도 몰라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게 자네는 언젠가 위대한 변호사가 될 테니까
듣기는 좋은 말이었지만 제이크의 입장에서는 그 많은 고객들이
떠나지 않고 북적대는 것이 오히려 더 끔찍했다
집세는
낼 수 있는 만큼만 내 처음에는 쪼들리겠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나는 돈이 별로 필요없어 돈이 필요한 건 자네지
하지만
됐네
감사합니다
내가 봐도 난 참 괜찮은 놈인 것 같아
루시엔의 말에 두 사람은 마주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에셀은 어떻게 하지요
제이크가 먼저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가 말을 꺼냈다
자네 마음대로 해 그 여자가 자네보다 훨씬 더 많은 법률사건을 다뤘지만
자네가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건 나도 알아 자네 좋을 대로해
해고하고 싶으면 하라구 그 여잔 다른 데 일자리 구하기 어려울거야
어쨌든 난 신경쓰지 말라구
루시엔은 떠날 채비를 했다
필요하면 전화해 자네 주위에 있을 테니까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쓰시던
이 사무실에서 자네를 보게 되면 좋겠어 내 짐들은 박스에 좀 넣어두게
나중에 찾아갈 테니까
콥과 윌러드가 잠에서 깨어난 곳은 구치소였다 오지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팠다 바로 오른쪽은 파치먼 교도소로
이감될 죄수들의 방이었는데 두 사람이 잔뜩 부은 눈을 비비고 있으려니
열 명도 넘는 흑인들이 쇠창살 너머로 무섭게 노려 보고 있었다
왼쪽 방도 흑인들로 꽉 차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어나
다시 한번 오지의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조용히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간 흑인들 방에 처넣을지 모르니까
에셀이 출근하는 여덟시 삼십분까지는 제이크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제이크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문을 잠그고 수화기를 내려놓았고
가능하면 아침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하루 일과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여덟시 삼십분까지 에셀에게 오늘 시킬 일을 준비해 놓고 아홉시쯤엔
법정에 가 있거나 고객을 만나고 있으리라 아침 열한시까지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게 제이크의 네 번째 원칙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걸려온 모든 전화에 대해서 제이크는 정확하게 회신을 주었다
그는 항상 체계적으로 일하려고 애썼고 얼마 안 되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쪼개 쓰려고 했다 그건 루시엔이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제이크 스스로 세운 원칙이었다
여덟시 삼십분 드디어 아래층에서 에셀이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편함을 들여다보고 커피를 끓이면서 시작되는 그녀의 아침 일과는
사십일년 동안 변함이 없었다 에셀은 예순넷이나 되었지만 오십대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적당한 몸집에 정갈한 매무새 그러나 매력적이지는 않은 여자
에셀은 지금 집에서 싸온 비스킷과 소시지를 씹으면서 제이크에게 온 우편물을
살펴보고 있었다
제이크의 귀에 또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셀을 부르는 것 같았다
제이크는 재빨리 약속 시간표를 들춰보았다
브리건스 씨 저 에셀이에요
에셀이 인터폰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죠 에셀
에셀은 트위티 부인이라고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다 루시엔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제이크는 루시엔이 떠나고 나서
잠깐 그녀를 해고한 적이 있었는데 그후로는 줄곧 에셀로 불렀다
어떤 숙녀분이 만나고 싶어하는데요
약속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예 압니다 하지만
그러면 내일 아침 열시 이후로 잡도록 해요 지금은 바쁘니까
그래도 급한 일이라는데요
누굽니까
제이크는 신경질적으로 에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침에 불쑥 찾아오는 사람치고
급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들은 변호사 사무실이 무슨 장의사나
세탁소인 줄 안다 기껏해야 삼촌의 유언장이나 석 달 뒤에 있을 재판문제로
찾아오면서도 화급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 것이다
윌러드 부인입니다
이름이 그게 전부인가요
어니스틴 윌러드요 변호사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아들이 지금
구치소에 있답니다
제이크는 항상 약속시간을 지키지만 이런 방문객들한테는 쌀쌀맞게
굴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개는 비서를 시켜 쫓아 보내거나 다음날로
약속을 잡게 했다 브리건스 씨는 지금 바쁘신데요 내일 모레쯤이면
시간이 나겠는데요라는 식으로 처리하는 게 에셀의 일이고 그러는 편이
사람들한테도 더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관심없다고 전해요
하지만 당장 변호사를 구해야 한답니다 오늘 오후 한시에
재판이 있을 거라는데요
그분한테 드류 잭 틴데일이라는 이름을 알려주도록 해요 국선변호인치고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아마 그 사람은 시간이 많을 겁니다
에셀은 제이크의 말을 불청객에게 전하였다
그래도 당신한테 의뢰를 하고 싶답니다 군내에서 당신이 제일 유능한
형사사건 변호사라는 얘기를 들었대요
에셀의 목소리에서도 흐뭇해하는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그건 맞는 얘기지만 나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지는 윌러드에게 수갑을 채워서 포드 군 구치소 앞 건물 1者으로
데리고 갔다 사방이 확 막힌 방 한가운데 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오지는 윌러드의 수갑을 풀어준 다음 나무의자에 앉히고 자기는
맞은편 큰 의자 속에 몸을 묻었다 오지는 윌러드를 세심하게 훑어보았다
윌러드 씨 이분은 미시시피 고속도로 순찰대의 그리핀 경위이고
저기 계신 분은 나랑 같이 일하는 래디 심문관입니다 보안관 대리인
루니와 프레이서는 어젯밤에 만나보셨으니까 아실 테고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지 월스 보안관입니다
윌러드는 잔뜩 겁먹은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었다 윌러드는 밀폐된 방에서 보안관 대리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것이었다 보안관의 책상 양 모서리에서는 녹음기
두 개가 돌아가고 있었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시작하기 전에 당신한테는 묵비권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무 말도 안 하셔도 되고 무슨 말이든지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한 말은 법정에서 불리한 증거로 채택될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글을 읽고 쓸 줄 아십니까
그럼요
좋습니다 그럼 이걸 읽고 서명을 하시죠 이 서류에는 제가 지금
당신한테 설명드린 피의자의 권리가 적혀 있습니다
윌러드는 서명을 했고 오지는 녹음기의 빨간 단추를 눌렀다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자 오늘은 5월 15일 수요일이고 지금 시간은 아침 여덟시 사십삼분입니다
그렇겠죠 뭐
이름이 뭡니까
제임스 루이스 윌러드입니다
애칭은 없습니까
피트 피트 윌러드라고 부릅니다
주소는요
미시시피 레이크 빌리지 6번가 14번지입니다
거리 이름이 뭐죠
베셀 로路입니다
누구랑 같이 살고 있습니까
이혼한 뒤로 어머니랑 같이 살고 있습니다 어니스틴 윌러드 부인입니다
빌리 레이 콥을 아십니까
윌러드는 잠시 머뭇거리면서 발을 내려다보았다 감방 안에 신발을
벗어놓고 와서 더러운 양말만 신은 채였다 삐죽 튀어나온 발가락
두 개를 바라보면서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예 압니다
어제 그와 같이 있었습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디 있었습니까
호숫가에 갔습니다
호수에서 언제 떠났습니까
세시쯤에요
누가 운전을 했습니까
나는 아닙니다
누구 태운 사람 없었습니까
윌러드가 다시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더 말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오지는 녹음을 멈추고 윌러드를 향해 긴 숨을 내뱉었다
혹시 파치먼 교도소라는 데 가본 적 있습니까
윌러드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안에 흑인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요
윌러드는 다시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5천 명 있습니다 그럼 백인은 몇 명인지 알아요
몰라요
약 천 명쯤 됩니다
윌러드가 고개를 떨구자 턱이 가슴께에 가서 파묻혔다 오지는 윌러드에게
잠시 생각할 기회를 주고는 그리핀 경위에게 눈짓을 했다
흑인 여자아이를 강간한 백인을 그들이 어떻게 다룰지 생각해 봤습니까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경위 피의자한테 파치먼 교도소에서 백인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려줘요
그리핀은 오지의 책상 끝에 걸터앉아 윌러드를 내려다보았다
5년 전에 저기 삼각주 넘어 헬레나 군에서 백인 하나가 흑인 여자아일
강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당시 열두 살이었죠
파치먼 교도소에 있는 흑인들은 그가 올 거라는 것을 미리 알고 이감될 날만
기다렸죠 첫날 30명의 흑인들이 그를 55갤런짜리 드럼통에 묶은 채
굴리고 다녔습니다 간수도 모른 척하고 웃기만 했죠 강간범한테는
잘해 줄 필요가 없으니까요 자그마치 석 달 동안 매일 밤 그는 흑인들한테
시달림을 당하다가 결국 피살되었습니다 시체는 거세가 된채 드럼통 속에서
발견되었죠 잔뜩 구겨진 채
윌러드는 약간 몸을 떨더니 머리를 뒤로 젖혀 천장을 향해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잘 들어요 피트 우리가 원하는 건 콥이지 당신이 아닙니다
콥은 파치먼에서 나오던 날부터 우리한테 찍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잡아넣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우리를 도와주면 우리도 당신을 도울
용의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난 검사와 아주
친한 사입니다 콥을 집어넣게만 해주면 검사랑 내가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그냥 있었던 일을 우리한테
그대로 얘기해 주면 되는 겁니다
오지가 부드럽게 그를 설득했다
변호사를 불러주세요
윌러드가 말했다 오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신음소리를 냈다
변호사가 당신한테 뭘 해주는데요 흑인들로부터 떼어내줄 수 있을까요
잘 생각해 봐요 나는 당신을 도을 수가 있어요 안 그래요
보안관 말 들어요 당신을 구하려고 그러는 거니까
그리핀 경위가 거들고 나섰다
여기 안전한 교도소에서 몇 년 살다 나오면 그만인데 왜 그래요
루니의 말이 윌러드에게는 훨씬 더 솔깃하게 들렸다
파치먼에 비하면 천국이지
참지 못하고 끼여든 프레이서의 말은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선택하는 건 당신입니다 파치먼에서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고
여기 머물러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만 잘하면 모범수로 풀려날 수도 있구요
윌러드는 마침내 고개를 떨구고 관자놀이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알았어알았다구
윌러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지는 다시 녹음 단추를 눌렀다
그 아이를 어디서 만났죠
저기 자갈길에서요
길 이름이 뭐죠
길 이름은 몰라요 그때 이미 취해 있었으니까
어디로 데리고 갔죠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콥과 당신 둘만 있었습니까

강간을 한 건 누굽니까
둘 다요 빌리가 먼저 했습니다
몇 번이나요
기억 못 하겠어요 마리화나를 피운데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두 사람 다 그 여자애를 강간했단 말이죠

그리고 어디다가 버렸습니까
기억이 안 납니다 진짜예요 나는 잘 모른다니까요
오지는 녹음기의 스위치를 껐다
이거 종이에다 써 가지고 올 테니까 서명을 해주세요
윌러드의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렸다
제발 빌리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알았어요
법정 바로 옆에 위치한 판사실에 앉은 퍼시 불러드는 영 심기가
편치 않았다 낡은 떡갈나무 책상을 앞에 두고 커다란 가죽의자 속에 몸을
묻은 채 신경질적으로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강간사건의 예심을
지켜보러 온 방청객들이 잔뜩 몰려든데다 바로 옆방에서도 변호사들이
커피 자판기 주위에 모여 강간사건을 놓고 쑥덕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불러드의 작은 법복은 워싱턴 가가 내려다보이는 창문 옆에 걸려 있었다
조깅 신발을 신고 있는 그의 발은 바닥에 닿을락 말락한 높이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작고 신경질적인 불러드는 예심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3년 동안 재판을 해왔지만 지금도 판사석에 앉으면
신경이 바짝 곤두서곤 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큰 사건들은
순회판사가 맡는다는 점이었다 불러드는 일개 군판사에 불과했고
그게 그의 능력의 정점이었다
페이트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불러드 판사가 대답했다
오후가 됐습니다 판사님
흑인들이 얼마나 모였습디까
판사는 조바심이 나서 물어보았다
법정을 반 정도 채웠습니다
그럼 백 명이나 된단 말이오 살인사건에도 그렇게 많이 오진 않는데
도대체 그 사람들 원하는 게 뭐요
페이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이 정식 재판인 줄로 착각한 거 아니요
제 생각에는 그냥 관심이 있어서 모인 것 같습니다
페이트가 정중하게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뭐에 관심이 있단 말이오 범인들을 풀어주는 것도 아닌데
이건 그냥 예심에 불과하지 않소
불러드는 언성을 높이다가 그에게 소리질러 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걸
깨달았는지 창밖으로 시선을 한번 돌렸다가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피해자 가족들도 왔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몇 명은 얼굴을 알겠는데 나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보안관은
보안관은 보안관 대리들과 청원 경찰들을 모두 동원해 법원 주위에
배치시켰습니다 정문에서는 모든 방청객들을 검사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게 있었습니까
전혀요
피의자는 어디 있습니까
보안관이 곧 데리고 올 겁니다
판사는 그의 말에 적이 안심하는 것 같았다 페이트는 뭔가 적힌 종이를
판사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뭐죠
페이트는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말했다
멤피스 방송국에서 예심을 촬영하고 싶답니다
뭐라구요
불러드 판사는 금세 얼굴에 노기를 띠면서 의자 안에서 몸을 흔들어댔다
촬영이라니
판사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갔다
내 법정에 카메라를 들이대겠다구
그는 종이를 박박 찢어서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렸다
그 사람들 지금 어디 있습니까
홀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나가라고 하세요
페이트는 묵묵히 판사실을 물러나왔다
칼 리는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의 친척과 친구들은 법정의
오른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왼쪽의 피의자 쪽 의자는 텅 빈 상태였다
무장한 보안관 대리들이 살벌한 눈으로 흑인들이 앉아 있는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중에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몸을 숙인 채로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칼 리가 가장 요주의 인물이었다
제이크는 창문을 통해 광장 건너편의 법원 건물을 바라보았다
시계는 오후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여느때처럼 재빨리 점심을
해치우고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하루 종일 사무실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제이크는 강간에 관한 지저분한 얘기들을 듣긴 싫었지많 그래도
예심을 놓칠 수는 없었다 주차장에 평소보다 차가 많이 서 있는걸로 보아
법정 안에 사람이 꽉 차 있을 게 분명했다 제이크는 법정
뒤편으로 통하는 작은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콥과 윌러드가 들어가는
나무문 주위에는 기자와 카메라맨들이 이제나저제나 피의자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 구치소는 광장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두 블록 아래 위치해 있었다
오지는 앞뒤로 순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뒷자리에 콥과 윌러드를
태우고 차를 몰았다 좌회전 신호가 떨어지자 세 대의 차량은 워싱턴가로
들어섰고 이윽고 법원 건물 베란다 아래에 차를 세웠다 피의자들을
에워싼 여섯 명의 보안관 대리들이 보도진을 헤치고 법정과 나란히 붙은
조그만 방으로 피의자들을 데리고 갔다
제이크는 코트를 집어들고 에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사무실을 나섰다
그는 법정 뒤편 층계로 올라가 배심원석과 마주 붙은 작은
홀을 지나 판사가 입장하는 문을 통해 법정에 들어섰다
기립
정리의 구령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사이에
불러드는 판사석에 올라가 앉았다
앉으십시오 피의자는 어디 있습니까
판사가 물었다 그러자 바로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콥과 윌러드가
보안관 대리들에 이끌려 들어왔다 수염을 깎지 않은 그들은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윌러드는 모여 앉아 있는 흑인들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폈지만
콥은 단호하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루니가 수갑을 풀어준 뒤
국선변호사인 잭 틴데일 옆에 두 사람을 앉혔다 변호사와 두 피의자 사이를
커다란 책상이 이어주고 있었다
윌러드는 어깨 너머로 다시 흑인들의 동정을 살폈다 바로 뒷자리에는
콥의 엄마와 자기 엄마가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보안관 대리 한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보안관 대리가
같이 앉아 있는 것을 보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콥은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20여 미터 떨어진 뒤쪽에 앉아 있던 칼 리는 고개를 들어 자기 딸을
강간한 두 사내의 등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두 사내의 모습은
수염이 텁수룩한 인긴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칼 리는 얼굴을
한번 문지른 다음 다시 고개를 숙였다 벽에 바싹 붙어 서 있던 보안관 대리들은
이런 모든 움직임들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불러드 판사가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건 정식 재판이 아니라 예심입니다 예심의 목적은 피의자를
대 배심에 넘길 충분한 증거가 있는가 확인하는 데 있습니다 피의자측은
예심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틴데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판사님 예심을 진행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보안관이 제출한 진술서에 의하면 두 피의자는 열두 살
이하의 여자아이를 납치해서 강간하고 폭행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차일더스 검사 첫번째 증인을 불러주십시오
보안관 오지 월스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제이크는 자료를 읽으면서 바쁜 척하는 변호사들 틈에 끼여 앉아 있었다
오지는 증인선서를 하고 불러드 판사 옆의 증인석에 가서 앉았다
배심원석에서 1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였다
증인 이름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차일더스 검사가 물었다
보안관 오지 웜스입니다
포드 군의 민선 보안관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당신이 누군지는 나도 잘 알지
불러드 판사는 파일을 넘기면서 중얼거렸다
보안관 어제 오후에 여자아이의 실종 신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예 네시 삼십분경입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보안관 대리인 윌리 헤이스팅스를 여자아이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거기가 어딥니까
크래프트 가 아래쪽 베이츠 상점 뒤편입니다
그가 무엇을 알아냈습니까
헤이스팅스는 전화를 건 여자아이의 엄마를 만나보았고 아이를
찾기 위해 그 일대를 수색했습니다
아이를 찾았습니까
못 찾았습니다 그가 피해자의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가 거기 있
었습니다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발견해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아이의 상태는 어땠습니까
강간과 폭행을 당한 후였숩니다
의식이 있었습니까
예 더듬더듬 간신히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아이가 뭐라고 했나요
그때 틴데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판장님 예심에서 전문傳導n증거는 가능하지만 3중 전문증거는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각합니다 앉으세요 검사 계속하십시오
자기 엄마한테 유리창에 혁명기를 단 노란 픽업을 탄 사람들이 자
기를 데려갔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아이는 턱이 깨
지고 얼굴이 짓밟힌 상태여서 말을 많이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을 말해 보시죠
구급차를 불러서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의사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중태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조치는요
당시 제가 알던 사실들을 근거로 해서 혐의자를 지목하고 수색에
나섰습니다
좀더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정보를 제공해 줄 사람을 찾아서 호수 옆에 있는 술집으로 보냈습
니다
차일더스 검사는 세부사항을 꼼꼼하게 다루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
히 불러드 판사 앞에서는 더 그랬다 제이크도 국선변호사인 틴데일
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불러드 판사는 예심에서 피의자를 풀어주는 적이 없었다 피는 사
건을 항상 대배심에 넘겼으며 예심은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어
떤 사건이든 사실 관계나 증거가 어떻든 불러드는 상관하지 않았다
증거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피의자를 방면해 주는 것은 대배심의 몫
이지 불러드의 몫이 아니었다 판사는 선거를 통해 앉는 자리이지만
대배심은 선거를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죄인이
법정에서 이러쿵저러쿵 대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변호
사들 역시 별 소득도 없는 예심에서 불러드 판사와 상대하려 하지 않
았다 단 한 명 제이크만 예외였다 제이크는 예심이 사건을 보는 검
사측의 시각을 가장 정확하고 쉽게 알 수 있는 기회라고 믿었다 국선
변호사 틴데일이 예심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어떤 술집입니까
휴이네 술집입니다
제보자가 알아낸 건 뭐죠
저기 있는 끕과 윌러드가 흑인 여자아이를 강간했다고 떠들어댔답
니다
순간 콥과 윌러드는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대체 제보자가 누구지
하지만 휴이네 술집에서 있었던 일이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휴이네 술집에서 뭘 찾아냈죠
우리는 콥과 윌러드를 체포하고 빌리 레이 콥의 픽업을 찾아냈습
니다
그래서요
오늘 아침에 견인해 와서 샅샅이 검사했습니다 혈흔이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요
피로 물든 티셔츠를 발견했습니다
누구 것입니까
강간을 당한 토냐 헤일리라는 피해자의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인
칼 리 헤일리 씨가 오늘 아침에 확인해 주었습니다
자기 이름이 언급되자 칼 리는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오지는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제이크는 칼 리가 법정에 나와 있다는 것을 처음으
로 알게 되었다
픽업에 대해서 묘사를 해보시지요
05톤짜리 신형 포드 픽업입니다 크롬 휠과 광폭타이어가 장착되
어 있 뒷유리창에 혁명기가 달려 있습니다t
소유자는 누굽니까
오지는 피의자를 지목하면서 말했다
빌리 레이 콥입니다
피해자가 얘기한 것과 일치하는 픽업입니까떳
예 그렇습니다
차일더스는 잠시 사이를 두고 기록들을 臺어보았다
좋습니다 보안관 법정에 제출할 다른 증거가 또 있습니까
우리는 오늘 아침 피트 윌러드와 얘기를 나눴습니다 여기 그가 서
명한 자술서가 있습니다
너 이 자식 무슨 짓을 한 거야민
콥이 자기도 모르게 불쑥 소리를 질렀다 윌러드는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조용히 하세요 조용히
불러드 판사가 의사봉을 두드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고 틴데일 변
호사는 두 피의자를 갈라놓았다
윌러드 씨한테 피의자의 권리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까
그가 피의자의 권리를 이해했습니까
그리고 나서 진술서에 서명을 했단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 자리에 누가 입회하고 있었습니까
두 명의 보안관 대리와 심문관 래디 고속도로 순찰대의 그리핀 경
위가 있었습니다
지금 자술서를 가지고 있습니까
읽어주시죠
오지가 짧은 진술서를 읽어나가는 동안 법정은 침묵에 잠겼다 칼
리는 두 피의자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콥은 더러운 신발을 툭툭
차고 있는 윌러드를 노려보았다
수고했습니다 보안관
보안관이 자술서를 다 읽고 나자 차일더스 검사가 말했다
윌러드가 서명을 한 게 맞습니까
그럼요 증인이 세 명이나 있습니다
이상 심문을 마칩니다
차일더스 검사가 자신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반대심문 있습니까 틴데일 씨
불러드 판사가 큰 소리로 국선변호사에게 물었다
지금은 없습니다 재판장님
잘하고 있군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방어전략상 예심에서는
입 다물고 있는 게 최상이었다 결국 대배심이 심리를 할 텐데 굳이
이쪽 카드를 내보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피의자를 증언대에 세워서
는 안 되었다 피의자가 겁을 먹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틴데일은 피의자를 증언대에 세우지 않을 것이다 제이크가 아는 바
에 의하면
변호인 신청할 증인 있습니까
판사가 물었다
없습니다 재판장님
좋습니다 본 법정은 기소조항에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판단하고
피의자인 빌리 레이 콥 씨와 제임스 루이스 윌러드 씨를 다른 명령이
있을 때까지 구금할 것을 결정합니다 대배심은 5윌 27일 윌요일에
소집될 예정입니다 질문 있습니까
틴데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있습니다 변호인측은 적절한 금액의 보석을 신청
보석은 안 됩니다
불러드 판사가 틴데일의 말을 가로첬다
지금 상태로는 보석을 허가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가 중태에 빠져
있고 만약 상황이 더 악화되면 피의자들에게 다른 죄목이 추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피해자의 상태가 호전된다는 것을 전제로 보석 신청에 대한
심사가 며칠 내에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불러드는 틴데일의 눈빛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좋습니다 보석신청에 대한 심사를 다음주 월요일 5월 20일에 본
법정에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피의자들은 포드 군 보안
관의 책임하에 수감됩니다 정회합니다
불러드는 의사봉을 두드리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대기하고 있던 보
안관 대리들이 피의자 주위에 몰려들어 다시 수갑을 채우고 법정에서
데리고 나갔다 아래층으로 통하는 층계를 내려선 일행은 보도진들의
물결을 혜치고 순찰차에 올라탔다
불러드가 진행하는 예심은 여느 때처럼 이십분도 안 돼서 끝났다
불러드의 법정은 항상 속전속결이었다
제이크는 방청객들이 거대한 나무문을 통해 법정 뒤편으로 퇴장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변호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칼 리는 서둘러
나가지 않고 제이크에게 잠간만 보자는 신호를 보내 왔다 제이크는
칼 리를 따라 홀로 내려갔다 칼 리는 뭔가 할 얘기가 있는 눈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병원에서 보자고 하고는 제이크와 함께
나선형 층계를 따라 2층으로 내려갔다
정말 안줬어요 칼 리
제이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토냐는 어때요
나아질 거예요
그웬은
괜찮은 것 같아요
당신은 괜찮아요
두 사람은 천천히 뜰을 지나서 법원 뒤편으로 걸어갔다
뭐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24시간 전만 해도 모든 것이 다
괜찮았는데 지긍 우리 집안 꼴 좀 봐요 딸애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병원에 누워 있고 아내는 거의 미쳐 버린데다 애들도 무서워서 죽으려고
하고 지금 생각 같아서는 저 새끼들을 내 손으로
내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기도나 해줘요 그것말고 뭐가 있겠어요
알아요당신 심정
당신도 딸을 키우죠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제이크가 먼저
화제를 돌렸다
레스터는 어디 있어요
시카고에
거기서 윌 하는데요
제철소에서 일해요 괜찮은 일이에요 결혼도 했죠
결혼을 했다구요 정말이에요
그래요 그것도 백인여자하고
백인 여자 레스터가 백인 여잘 원했었나
당신도 레스터를 잘 알잖아요 그놈은 어려서부터 주제넘은 흑인이었어요
지금 우리집으로 오고 있는데 오늘밤쯤 도착할 거예요
무슨 일로요
그들은 뒷문 근처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제이크가 다시 물었다
레스터가 무슨 일로 오는 거죠
집안일이니 신경쓸 것 없어9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녜요
아녜요 그냥 조카를 보러 오는 것뿐이에요
절대로 흥분하면 안 돼요
말하기는 쉽겠죠 제이크
나도 당신 심정은 알아요
그럼 당신이라면 어쩌겠어요
무슨 뜻이죠
당신도 딸이 있잖아9 만약 만약에 당신 딸이 강간을 당해서 병
원에 누워 있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냐구요
제이크는 열린 문을 통해 바깥만 내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
었다 칼 리는 그의 대답을 本띠고 있었다
어리석은 짓 하지 말아a칼 리
일단 내 질문에 대답해 봐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모르겠어요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나도 장담할 수 없군요
좋아9 그럼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당신 딸을 망나니 같은
흑인 두 놈이 망쳐놨는데 그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면 어떻게 할 거
죠끄
죽여 버리겠어
칼 리는 미소를 짓다가 이내 소리내어 운었다
그래요 당신은 틀림없이 그렇게 할 거예요 그리고 나서 괜찮은
변호사를 찾아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항변하겠죠 당신이 레스
터의 사건에서 했던 것처럼
그때 우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말하진 않았어9 다만 보위가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얘기했을 뿐이죠
어쨌든 당신이 레스터를 꺼내줬잖아요
그랬죠
칼 리는 층계를 걸어내려가다가 제이크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 층계가 그놈들이 올라오는 길인가건
제이크의 시선을 피하며 혼자말처럼 칼 리가 물었다
누구 말이에요
그 새끼들
예 대개는 이 층계로 올라오그게 가장 빠르고 안전하니까 차
를 문 바깥에다 바로 세을 수 있거든요
칼 리는 법원 뒷문으로 다가가서 창을 통해 베란다의 모양을 살피
면서 물었다
살인사건을 몇 번이나 다줬주 제이
레스터까지 포함해서 세 번이죠
그중에 흑인은요
셋 다 흑인이었어요
세 명 다 살려냈나요
당신은 흑인들 살리는 데는 자신있나 봐요
그런가 봐Et
한 건 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지 말아요 칼 리 그럴 가치가 없어요 만약 당신이 유죄판결을
받아 기실로 가버리면 어린것들은 누가 책임지죠 누가 키우냐구요
그놈들은 그럴 가치도 없어요
당신이라면 죽이겠다고 그랬잖아요
제이크는 문 쪽으로 걸어가 칼 리 옆에 섰다
나는 달라요 나라면 아마 풀려날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요
난 백인이고 이곳은 백인 동네죠 운이 좋으면 전원 백인 배심원을
가질 수 있는데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내 편이에요 여기는 뉴욕이나
캘리포니아가 아니라구요 남자라면 자기 가족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고 생각하죠 배심원들은 그래요
나는요
내가 말한 것처럼 여기는 뉴욕이나 캘리포니아가 아니예요 백인들 중
몇몇이 당신을 동정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당신을
처형하고 싶어할 겁니다 당신은 석방되기가 훨씬 어려워요
그렇지만 당신이라면 할 수 있잖아요 제이크
그만둬요 칼 리
제이크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 자식들이 죽기 전에는
나도 괸히 잘 수가 없단 말예요 나는 딸애한테 빛을 졌고 우리 가족
한테 빛을 졌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한테 빛을 진 거예요 그러니
그 빛을 갚을 사람은 바로 나라구요
그들은 문을 열고 베란다 아래로 내려가 샛길로 워싱턴 가에 이르
렀다 건너편에 제이크의 사무실이 보였다 제이크는 칼 리와 악수를
나누면서 내일 그웬과 식구들을 보러 한번 들르겠노라고 약속했다
제이한 가지만 더 물어봅시다 만약 내가 감옥에 가면 나를 만
나러 올 겁니까
제이크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고개부터 끄덕였다 칼 리는 웃음을
지으며 도로 옆에 세워둔 그의 트럭을 향해 걸어내려갔다
레스터 헤일리는 위스콘신 출신의 스웨덴 여자하고 결혼했다 아내
는 아직도 레스터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레스터는
아내가 자기 혈통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영 못마땅했다 아내는 미시시
피를 두려워했다 아무리 안전하다고 얘기해도 남쪽으로 여행하는 것
은 질색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까지 레스터의 가족을 만나본 적
이 없었다 그렇다고 레스터의 가족들이 그녀를 만나고 싶어 안달하
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레스터의 가족들은 그녀를 만나볼 의사가 별
로 없었다 남부 출신의 흑인이 북쪽에 가서 백인 여자와 결혼하는 것
은 그다지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헤일리 일가에서 백인 여자
와 결혼한 사람은 레스터말고 아무도 없었다 시카고에는 헤일리라는
이름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고 그들 대부분이 레스터의 친척임에도
백인과 결혼한 사람은 레스터 혼자뿐이었던 것이다 헤일리 가 사람
들은 레스터의 금발머리 부인을 좋아하지 앉았다 레스터는 새로 산
캐딜락을 몰고 클랜턴으로 내려가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병원에는 수요일 밤 늦게 도착했다 레스터는 2층 대기실에서 잡지
책을 뒤적거리고 있는 사촌들과 인사를 나누고 칼 리를 만나 반갑게
포옹을 했다 시카고의 흑인들이 떼를 지어 미시시피나 앨라배마로
몰려들었던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 두 형제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둘은 친척들 사이를 빠져나와 홀로 내려갔다
토냐는 어때
레스터가 물었다
훨씬 좋아졌어 이번 주말에는 집으로 가게 될 것 같아
레스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가 시카고에서 떠나던 열한 시
간 전만 해도 토냐는 거의 죽은목숨이었다 사촌들이 전화를 걸어 이
제 막 잠에서 깨어난 레스터에게 전한 바는 그랬다 레스터는 금연 표
시 바로 아래서 담배를 꺼내 물면서 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형도 괜찮아떳
칼 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홀 아래로 시선을 던졌다
형수는긴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지 장모님하고 같이 있어 너 혼자 왔니
그렇게 됐어
레스터는 아내를 두둔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잘했다
너무 그러지 마 형 내 아내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걸 들으
려고 그 먼 길을 달려온 건 아니니까
그래 그래 알았다 근데 아직도 위가 안 좋니
레스터는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사실 그는 스웨덴 아가씨와 결혼
하던 그날부터 위에 가스를 채우고 살았다 그녀가 듣도보도 못한 음
식들만 내놓는 바람에 소화기관이 늘 긴장 상태에 돌입해 있기 때문
이었다 레스터는 고기말이나 완두콩 오크라 통닭 돼지 바비큐 기
름기 많은 등심이 그리웠다
두 사람은 접는 의자와 카드 탁자가 있는 작은 휴게실을 4者에서
찾아냈다 레스터는 커피 자판기에서 미지근하고 진한 커피 두 잔을
뽑아와서 손가락으로 덜 녹은 크림을 휘저었다 칼 리는 그동안 일어
났던 강간과 체포와 예심에 대해서 레스터에게 얘기해 주었다 레스
터는 칼 리의 말을 주의깊게 들었다 레스터는 냅킨에 법원의 모형을
그려놓고 건물의 구조와 감방에 대해서 칼 리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살인혐의로 재판을 받은 게 벌써 4년이나 된 일인지라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는 쉽지 않았다 보석으로 풀려나오기 전에 딱 일주일 구
치소에 있었고 그후로는 한번도 그 근처에 얼씬거린 적이 없기 때문
이었다 석방되자마자 레스터는 시카고로 줄행랑을 쳤다 클랜턴에는
피해자의 친척들이 득실거렸으니까
두 사람은 자정이 넘도록 계획을 세우고 수정을 하면서 시간을 보
냈다
정오에 토냐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상태가 괜찮아
졌던 것이다 의사도 표정이 좀 밝아진 것 잘았다 토냐의 가족들은
장난감과 꽃 사탕을 사다가 토냐에게 안겨주었다 부러진 턱을 철사
로 감고 있었기 때문에 사탕은 그림의 떡이었다 토냐의 오빠들만 이
래저래 신이 났다 친척들은 하나둘 침대 곁으로 다가와 토냐의 손을
잡아주었다 마치 자기들이 그애를 보호해 줄 것처럼 병실은 항상 친
구들과 낯선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토냐를 토닥거리면
서 그녀가 얼마나 예쁜지를 얘기했으며 그 끔찍한 사고를 견뎌냈다
는 면에서 그애를 특별하게 취급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교대로 홀에서 토냐의 병실로 다시 홀로 옮겨다녀서 간호사들은
토냐의 방을 주의깊게 감시해야 했다
토냐는 가끔 상처의 통증 때문에 울기도 했다 간호사는 시간마다
방문객들을 비집고 들어와 진통제를 놔주었다
밤에 멤피스 방송국이 강간사건을 보도하자 토냐의 방은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텔레비전은 두 백인 남자의 모습을 화면에 내보냈
지만 토냐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포드 군 법원은 금요일에만 오후 네시 삼십분에 문을 닫았고 다른
날에는 아침 여덟시에 문을 열어 오후 다섯시에 닫았다 금요일 네시
삼십분 칼 리는 2층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변기에 앉은 채로
약 한시간 동안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수위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사위가 다 조용했다 그는 반쯤 어두워진 커다란 홀을
통해 뒷문으로 가서 바깥 동정을 살폈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다시
잠시 귀를 기울여 보았다 법원은 마치 사막 같았다 칼 리는 몸을 돌려
긴 복도에서 원형 홀을 지나 앞문까지 내려다보았다 거리가 60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그는 법원 건물을 살펴보았다 두 개로 된 뒷문은 안쪽으로 열리게
되어 있으며 들어서자마자 직시긱형 입구가 있었다 오른쪽 끝과 왼쪽 끝에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나 있었고 입구는 홀로 이어지면서
차츰 좁아졌다 칼 리는 자신이 법정으로 들어가는 피고인이라고 가정하였다
손을 등뒤에서 맞잡은 다음 뒷문에 등을 대고 섰다 오른쪽으로
정확하게 서른 걸음을 걷자 층계가 나왔고 열 개의 층계를 올라
서니 층계참에 이르렀다 그리고 거기서 레스터가 일러준 것처럼 90
도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기실까지는 다시 열 개의 층계가 남아
있었다 대기실은 넓이 16項방미터에 문 두 개와 창문 하나가 있는
작은 방이었다 칼 리는 그중 문 하나를 열었다 문은 방청석 바로 앞
으로 이어졌다 칼 리는 그 문으로 나가 제일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
레스터의 말대로 법정은 판사와 배심원 변호사 피고인 서기 등이 있
는 공간과 방청석이 있는 공간이 난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칼 리는 통로를 천천히 걸어가 뒷문에 이르는 동안 법정의 구석구
석을 살펴보았다 수요일에 보았던 것과는 전혀 딴판 같았다 그는 왔
던 길을 되짚어서 대기실로 가서 나머지 문을 열어보았다 그 문은
법정의 앞 공간 그러니까 변호인과 서기가 앉아 있는 공간과 연결되
어 있었다 칼 리는 다시 법정으로 들어가 콥과 윌러드가 앉았덜 긴
의자에 앉았다 오른쪽에 있는 똑칼이 생긴 의자는 검사가 앉는 자리
였다 그 뒤에는 공간을 나누는 난간이 있었다 난간 양끝에는 방청석
으로 통하는 조그만 미닫이문이 있었다 판사석은 약간 높은 곳에 있
었고 판사 뒤편에는 빛바랜 제퍼슨 데이비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제퍼슨은 마치 법정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잔뜩 찡그리고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배심원석은 오른쪽 벽 앞에 마련되어 있었다 판사의 왼쪽
벽에도 이제는 잊혀진 영웅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판사석보다 약
간 낮은 곳에 있는 증인석은 배심원석과는 가까이 있었다 배심원석
맞은편에는 붉은색 소송자료들이 가득 찬 작업대가 길게 뻗어 있었다
서기와 변호사들은 재판중에는 그 작업대 뒤에 앉았다 그 뒤가 아까
그 대기실이었다
칼 리는 수갑을 찬 것처럼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조그만
미닫이문을 밀고 방청석으로 나가 처음 들어왔던 대기실 문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좁고 어두운 층계는 아까처럼 열 개였다 열 개의
층계를 내려온 그는 잠시 멈추어 섰다 층계참에서는 두 개의 뒷문과
홀 사이에 있는 법정의 뒷문들과 입구 대부분을 볼 수 있었다 층계를
다 내려오자 바로 오른쪽에 조그만 문이 하나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잡동사니와 수위의 옷가지들이 들어 있었다 칼 리는
그 조그만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두리번거렸다 방은 굽어 있었고
층계 아래로 이어졌다 여기저기에 텟자루와 양동이 따위가 널려
있었지만 한번도 쓰지 않은 것 잘았다 칼 리는 다시 문을 열고 나와
서 층계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법원을 살펴보기 시작한 지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 칼 리는 반대편
층계로 올라가 배심원석 바로 뒤에 있는 대기실에 이르렀다 대기실
에 있는 두 개의 문 중 하나는 법정과 통하게 되어 있었고 다른 하나
는 배심원석으로 열려져 있었다 대기실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
가면 법원도서관과 증인대기실로 갈 수 있었다 레스터가 말한 그대
로였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칼 리는 자기 딸을 강간한 두 사내가 움직이
기로 되어 있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칼 리는 판사석에 앉아 혼자만의 왕국이 되어 버린 팅 빈 법정에서
호령도 해보고 배심원석의 안락의자에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어 보
기도 하고 증인석에 앉아서 마이크에 대고 후후 불어 보기도 했다
저녁 일곱시가 되자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칼 리는 잡동사니를 넣
어두는 방 바로 옆의 화장실로 가서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와 숲 속
으로 숨었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럼 누구한테 얘기할 거예요
칼라가 피자 상자를 닫고 컵에 레모네이드를 좀더 부으면서 물었다
제이크는 현관 앞에 앉아 버드나무로 만든 흔들의자 속에서 몸을
흔들어댔다 한나는 큰길가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당신 내 말 들었어요
칼라가 다시 물었다

누구한테 얘기할 거예요
그럴 생각 없는데
내 생각엔 누구한테든 귀띔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다니까
왜요
제이크의 몸이 점점 더 빠르게 흔들렸다 그는 레모네이드를 한 모
마신 뒤 입을 열었다금
첫째 그게 확실한 범죄 모의 단계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야 그는
자기 생각의 일부를 내게 말했고 어쩌면 더 자세하게 범죄 계획을 세
웠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실하지 않다는 거야 그리고 둘
채 그는 나를 믿고 자기 생각을 얘기한 거야 내 고객이라는 위치에
서 나를 변호사로 생각하고 말했다는 뜻이야
勺래도 설령 당신이 그 사람 변호사라고 해루 범쬐를 저지르려고
하는데 다른 누구한테 보고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 범죄를 저지를 게 확실할 때는 하지만 지금은 확실치 않아
칼라는 제이크의 대답에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해야 돼
제이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
다 그는 마지막 남은 과자 한쪽을 먹으면서 가능하면 칼라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당신 혹시 칼 리가 일을 저지르길 바라는 거 아니에요
뭐라고
은근히 그 사람들을 죽였으면 하는 것 아니냐구요
천만에 그렇지 않아
단호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제이크 자신도 자기 의견이 정확히 어
떤 것인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칼 리가 그들을 죽인다고 해도 나는 칼 리를 비난할 수 없
어 나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 말은 다시 꺼내지도 말아요
나는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 거야 나라면 그런다니까
제이당신은 사람을 죽일 위인이 못 돼요
좋아 어쨌든 나는 지금 논쟁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 이미 끝난
얘기니까
칼라는 한나에게 큰길에서 물러서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제이크 옆
에 앉아 컵 속의 얼음을 달그락거리며 휘저었다
당신 칼 리를 변호할 거예요
그럴 거야
배심원들이 유죄선고를 내릴까요
당신 같으면
모르겠어
그렇다면 한나를 생각해 봐 저기 줄넘기를 하면서 놀고 있는 어
린아이를 생각해 보라구 당신은 엄마야 근데 지금 저애가 두들겨 맞
아서 피를 흘리고 누워 있어 엄마 아빠를 부르면서
그만해요 제이크
제이크가 희미하게 웃었다
내 질문에 대답해 봐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애 아버지에게 유죄 투
표를 할 건가
칼라는 창틀에다 컵을 올려놓고 갑자기 살갗을 살피는 척했다 제
이크는 자기가 이긴 거라고 생각했다
얼른 당신은 배심원이야 유죄알 무죄O理
나는 배심원이니까 반대심문이 더 있은 다음
유죄야 무죄야건
칼라가 드디어 제이크의 눈을 응시했다
글쎄 유죄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제이크는 씨익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근데 강간범들이 구치소에 있는데 어떻게 칼 리가 그들을 죽일 수
있죠
그거F쉽지 그들이 항상 구치소에 있는 건 아니니까 법정에도
서야 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녀야 하거든 오스월드와 잭 러비 생각 안
나 더구나 보석으로 나을 가능성도 있잖아
언제 보석으로 나온다는 얘기예요
월요일에 심사가 있을 거야 만약 보석이 결정되면 나오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요
재판 때까지 구치소에 있게 돼
재판이 언젠데요
늦여름쯤일걸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다른 사람한테 얘기해 줘야 할 것 같아
제이크는 칼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흔들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한
나에게 달려갔다
K T 브루스터 혹은 캣 브루스터라고 불리는 그 사내는 멤피스
에서는 유일한 흑인 백만장자로 꼽히는 사람이었다 애꾸눈의 그는
나체쇼 바를 시내에 여러 개 가지고 있었고 집을 지어서 세를 놓기
도 했는데 이것은 모두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우스 멤피스
에 세운 교회 두 개도 물론 합법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캣은 흑
인운동에 돈을 대는 든든한 후원자에다 정치가의 친구이며 흑인들
의 영웅이었다
사실 캣에게는 사람들의 인기를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했다 번번
이 그랬던 것처럼 그가 다시 기소되었을 때 그의 동료이자 친구들인
배심원이 그를 방면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배심원 중 반은 흑인
이었다 캣은 사람도 죽이고 여자에서부터 코카인 장물 신용카두
식권 밀주 총 작은 대포까지 팔수 있는 건 다팔았지만 그를 잡아
넣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캣은 한쪽 눈을 베트남의 논두렁에다 떨어뜨렸다 1971년 칼 리
가 다리에 총알을 맞던 날 캣은 눈을 잃어버렸다 칼 리는 아군을 싼
나기 전까지 두 시간 동안이나 캣을 이끌고 다녔다 전쟁이 끝나고
멤피스로 돌아오면서 캣은 해시시인도 대마잎으로 만든 향정신성 약
듬옳긴이를 약 1킬로 가량 갖고 들어와 그걸로 장사를 시작했다
그 돈을 모아 사우스 메인에 살롱을 사들이기는 했지만 매춘굴에서
포주 노룻을 하고 포커에서 한몫 잡기까지는 그도 배를 많이 곯았다
창녀들에게 자기네 가게에서 옷 벗고 춤을 추면 매춘굴에서 벗어나
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 식으로 여자들을 사들였고 밤장사
는 날로 번창해서 더 많은 바가 필요해졌다 2년 만에 캣은 그 바닥
을 장악했고 마침내 부자가 되었다
그의 사무실은 밴스와 빌 사이의 사우스 멤피스에 위치하고 있는
데 그곳은 멤피스에서 가장 험악한 지구로 유명했다 나체쇼 바 2충
이 그의 사무실이었다 길가에 내건 광고판에는 버드와이저와 젖가
슴이 전부였지만 이 시커먼 건물 속에서는 더 많은 것들이 왔다갔다
하곤 했다
토요일 정오쯤 칼 리와 레스터는 브라운 슈가라는 바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버드와이저를 시키고 앉아 무희들의 젖가슴을 구경하고
있었다
캣 안에 있나
칼 리는 바를 돌아 두 사람 옆을 스쳐지나가는 바텐더에게 물었다
바텐더는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바 안쪽 싱크대로 돌아가 머그잔을
닦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칼 리는 맥주를 마시고 무회들
을 보는 중간중간 바텐더에게 눈길을 주었다
맥주 한 잔 더
레스터는 무희들에게 눈을 박은 채 큰 소리로 주문을 했다 바텐
더가 맥주를 가지고 오자 칼 리는 좀더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
했다
캣 브루스터 있냐구
누가 알고 싶어하는 거죠

그래요
그래요라니 나하고 캣은 친구야 베트남에서 같이 뒹굴던 전우
이름이 뭐죠
헤일리 칼 리 헤일리 미시시피에서 왔다고 하면 알 거야
바텐더가 사라졌다가 술병들 뒤에 붙은 두 개의 거을 사이로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 데는 일분 정도 걸렸다 그는 헤일리 형제에게 따라
오라는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은 작은 방과 화장실을 지나고 밀실을
가로질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사무실은 어둡고 화려했다 바닥에는
금빛 양탄자가 깔려 있고 벽은 불그스름했다 풀定 천장에는 녹색
보풀이 두껄게 일어 있었다 쇠막대기가 가로질러져 있는 검은 창이
두 개 있었고 무겁고 둔중해 보이는 커튼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채 천장에서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햇빛이라고는 한 줄기도 허락
하지 않는 검붉은 방 안을 크롬으로 장식된 샹들리에가 흐릿하게 비
추고 있었다
검은 정장을 빼입은 보디가드 두 명이 바텐더를 내보내고 레스터
와 칼 리를 의자에 앉힌 다음 뒤에 가서 섰다
두 형제의 입에서는 저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죽이는데 형
레스터가 칼 리에게 속삭이고 있는 동안 B B 킹의 노래가 방 안
가득 울려퍼졌다
대리석과 유리로 만든 책상 뒤에서 갑자기 보이지 않는 문이 열리
면서 캣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칼 리를 향해 반값게 달려들었다
오 내 친구 칼 리 헤일리
캣은 소리를 지르면서 칼 리의 손을 붙잡았다
어서 오게 칼 리 반갑네 반가워
칼 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캣을 힘껏 부등켜안았다
그래 어떻게 지냈어
캣이 물었다
그럭저럭 괜찮아 자네는
좋지 재미있어 근데 이 사람은 누구야삘
캣은 레스터의 가슴 앞으로 손을 불쑥 내밀었다 레스터는 캣의
손을 맞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레스터라고 내 동생이야 시카고에서 왔어
잘 왔네 레스터 자네 형하고 나는 아주 절친한 친구지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레스터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캣은 칼 리에게 돌아서서 위아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나의 칼 리 자네 아주 좋아 보이는데 다리는
좋아졌어 비만 오면 좀 욱신거리긴 하지만
자네 옛날 생각나나
칼 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다 칼 리를 부등켜안고 있던 캣
의 손이 조금씩 풀렸다
한 잔씩 할까
나는 됐어
저는 맥주를 마시겠습니다
칼 리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레스터는 반가운 목소리로 맥주를 청
했다
캣이 손가락을 한 번 탁 튀기자보디가드 한 명이 재빨리 사라졌
다 칼 리는 의자 안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고 캣은 책상 모서리에 걸
터앉아 부듯가의 아이처럼 다리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칼 리를 바
라보는 캣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질 줄 몰랐다 칼 리는 그런 캣이
오히려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왜 멤피스로 오지 않나 나하고 같이 일하면 좋을 텐데
또 그 소리군 칼 리는 캣을 보면서 씨익 웃어주었다 캣에게 이런
제안을 받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냐 나도 살 만해 행복하다구
그래 나도 자넬 보니까 행복하구만 그런데 무슨 일이야띤
칼 리는 다리를 꼬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끄
덕하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부탁할 게 있어서 대단한 건 아니야
칼 리는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이 팔을 활짝 벌렸다
뭐든지 필요한 게 있으면 말만 하라구
베트남에서 쓰던 M16있지 그게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가능
하면 빨리
캣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벌렸던 팔을 접어 팔짱을
꼈다
그건 위험한 장난갑인데 다람쥐가 큰가 보지
다람쥐를 잡으려는 게 아냐
캣은 두 사람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말 안 해도 무슨 이유인지
알 것 같았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칼 리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
았을 테니까
진짜 총
그래 성능 좋은 걸로
돈이 좀 든다는 건 아나
얼마면 되는데
알다시피 불법이잖아
알아 시어스 같은 데서 구할 수 있었으면 자네한테 부탁하지도
않아
캣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언제 필요한데
오늘
보디가드가 맥주를 가지고 와서 레스터 앞에 놓았다 캣은 책상
뒤로 돌아가서 오렌지색 비닐의자에 앉았다
천 달러
좋아
캣은 적이 놀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이 미
시시피 촌뜨기가 천 달러를 어떻게 구하겠다는 거지 분명 동생놈한
테 빌리는 걸 거야
다른 사람한테는 천 달러지많 자네한테는 아니야
그럼 얼만데
공짜 칼 리한테는 공짜지 자네한테 내가 빛진 게 더 많으니까
그래도 돈을 내고 싶어
못 들은 걸로 하겠네 촘은 이제 자네 거야
자네 정말 대단하구만 캣
한 50자루 줄까
아냐 아냐 딱 하나면 돼 근데 언제쯤
한번 보자구
캣은 수화기를 들더니 누군가에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것으로
주문은 끝났다 캣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 시간쯤 걸릴 거라고 얘
기했다
기다리겠네
칼 리가 말했다
캣은 왼쪽 눈에 댔던 안대를 풀고 빈 눈구멍을 손수건으로 문지르
다가 말했다
더 좋은 생각이 있어
그는 보디가드에게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차 좀 대기시켜 우리가 직접 가서 가져오지 뭐
헤일리 형제는 캣을 따라 비밀 문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 여기서 살아 저 안에 내 침실이 있지 벗은 애들 몇 명하고
저도 좀 보고 싶은데Q
레스터가 끼여들었다
그것도 괜찮겠는데
칼 리가 맞장구를 쳤다
홀 안쪽으로 더 들어간 캣은 좁은 복도 끝의 두꺼운 철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기가 내 금고야 24시간 동안 애들이 지키고 있지
저 안에 얼마나 들어 있는데요
맥주를 홀짝거리던 레스터가 다시 한번 끼여들었다
캣은 레스터를 한번 쳐다보고는 계속 홀로 걸어갔다 칼 리는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홀이 괄나는 지점에서 세
사람은 층계를 통해 5층으로 갔다 캣이 벽을 더듬어 단추를 누르자
잠시 후 벽이 열리면서 붉은 양탄자가 깔린 엘리베이터가 눈앞에 나
타났다 캣은 금연표지 옆에 있는 또다른 단추를 눌렀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올라가야 돼
캣은 재미있지 않냐는 듯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보안을 위해서야
헤일리 형제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실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보디가드 하나가 하얀색 리
무진 문을 열어둔 채 서 있었다 캣은 손님들을 먼저 차에 태웠다 세
사람이 탄 차는 리무진과 롤스 로이스와 플릿우드 그밖의 내로라 하
는 유럽 차들을 사열하면서 천천히 전진했다
저게 다 내 거야
캣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차장 문이 열리면서 차는 일방통행로로 접어들었다
천천히 몰아
캣이 소리를 지르자 앞에 앉은 보디가드가 운전수에게 뭐라고 지
시를 내렸다
친구들한테 구경 좀 시켜줘야 하니까
지난번에 왔을 때 칼 리는 이미 똑같은 관광코스를 섭렵한 바 있
었다 캣이 자기 소유라며 보여주는 것들은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
들과 안에 뭐가 들었는지 도대체 짐작할 수 없는 바랜 벽돌색 창고
몇 블록 사이를 두고 띄엄띄엄 서 있는 교회 두 채가 고작이었다 캣
의 말로는 목사도 자기 소유라고 했다 열 개 정도 되는 모퉁이 길엔
어김없이 바가 있었고 문밖 벤치에는 젊은 흑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칼 리는 빌 근처의 불타 버린 빌딩을 손가락
으로 가리키면서 자기에게 덤벼들었던 철없는 경쟁자의 최후에 관
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캣에게 대들 사람은 없다는 것이 그 요지였
다 캣은 엔젤이니 캣츠 하우스니 하는 클럽을 여러 개 소유하고 있
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술과 음식 음악과 벌거벗은 여자 원한다
면 그 이상도 얻을 수 있었다 캣이 소유하고 있는 여덟 개의 바는
모두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헤일리 형제는 여덟 개의 바를 모두 보았다 멤피스 남부를 다 돌
아본 거나 다름없었다 강 근처의 이름도 없는 한적한 골목길에 이르
자 리무진은 벽돌색 창고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 좁은 길의 끝까
지 가자 오른쪽에 있던 창고 문이 열렸다 이윽고 차가 섰고 보디가
드가 먼저 내렸다
여기 앉아 있게
캣이 말했다
트렁크가 열렸다가 닫혔다 불과 일분도 안 돼 리무진은 다시 멤
피스 거리로 들어섰다
점심 먹어야지 블랙 파라다이스로 가 점심 먹으러 간다고 전화
해 놓고
캣은 두 사람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운전사에게 말했다
내 클럽에서 멤픽스 최고의 돼지갈비를 먹어 보게 신문에서는
잘 안 다뤄주지만 말이야 자식들이 나를 좀 싫어하거든
차별하는 건가요
레스터가 물었다
그래 분명히 하지만 난 기소되기 전까지는 그런 말을 안 쓰지
최근에는 별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캣
칼 리가 기억을 더듬으면서 물었다
탈세로 마지막 재판을 받은 게 한 3년 전이지 경찰이 3주 동안
관련중거들을 모았지만 우리 배심원들은 이십칠분 만에 우리가 가
장 좋아하는 두 글자로 대답해 주었지 무죄
그 얘기 들었던 것 같아
레스터가 말했다
클럽 앞에 이르자 닫집 모양의 차양 아래 도어맨이 기다리고 있었
다 다른 보디가드들은 캣과 헤일리 형제를 댄스홀에서 약간 떨어진
특실로 안내했다 여러 명의 웨이터가 번갈아 드나들면서 술과 음식
을 내놓았다 레스터는 스카치 위스쑤를 쉬지 않고 마셔대는 바람에
돼지갈비가 나을 때쯤에는 이미 반쯤 취해 있었다 칼 리는 차를 마
시면서 캣과 전쟁에 관한 추억을 더듬었다
식사가 끝나자 보디가드가 다가와 캣에게 귓속말을 중얼거렸다
캣은 칼 리를 쳐다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일리노이 번호판이 붙은 붉은 엘도라도야런
웅 그 차 딴 데 주차시켜 왔는데
문밖에 대왔네 물건은 트렁크 안에 있고
아니 어떻게Q
레스터의 입이 확 벌어졌다
캣은 레스터의 등을 두드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게 친구 캣은 무엇이
든 할 수 있으니까
평소처럼 커피숍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제이크는 토요일 아침의
일과를 시작했다 제이크는 전화도 오지 않고 비서도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의 고즈넉한 시간을 좋아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전화도 받지
않고 고객과의 약속도 없이 자료를 정리하거나 최근의 대법원 판결
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재판이 다가오면 전략을 짜
느라 정신이 없었다 토요일은 제이크의 머리에퍼 아이디어가 떠오
르는 날이었다
열한시쯤 제이크는 구치소에 전화를 걸었다
보안관 있습니까
잠간만 기다리라는 교환수의 말이 들려왔고 잠시 후 보안관이 전
화를 받았다
예 월스 보안관입니다
오지 나 제이크야 잘 있었나
아 그래 자네는
나도 좋아 거기 몇 시까지 있을 건가
몇 시간 더 있을 것 같은데 왜
별건 아니고 그냥 좀 할 얘기가 있어서 삼십분 후쯤 어때
좋아 기다리지
제이크와 오지는 서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이였다 가끔 반대심
문을 하면서 제이크가 오지를 심하게 다루기는 하지많 오지는 별로
불쾌해하지 않았다 그건 일이니까 제이크는 오지의 선거를 위해서
뛰었고 루시엔은 자금을 대주었다 재판 때 몇 마디 추궁받는 걸 가
지고 감정 상할 오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오지는 법정에서의 제이크
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축구시합 얘기를 하면서 놀려먹는 것도 재미
있고 1969년 제이크는 캐러웨이 대학의 2학년생 쿼터백이었고 오
지는 클랜턴 대학의 수비수이자 주대표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
다 두 라이벌은 협회장컵대회 결승전에서 만나기까지 무적이었다 4
쿼터 내내 오지는 캐러웨이팀의 공격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덩치가 작은 캐러웨이팀 선수들은 오직 제이크만 믿고 있었는데 제
이크는 4쿼터가 끝날 때쯤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44대 O 압
도적인 점수차로 이기고 있던 오지는 경기가 끝날 때쯤엔 제이크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오지는 가끔 제이크에게 겁을 주곤 했
다 나머지 다리도 마저 부러뜨려 놓겠다면서 오지는 항상 제이크에
게 다리를 절뚝거린다며 놀렸고 요즘 다리는 어떠냐고 묻곤 했다
무슨 일이야전
오지는 의자에 앉으면서 물었다
칼 리 때문에 그 사람 아무래도 위험해
뭐가
그전에 먼저 오늘 우리가 한 얘기는 비밀일세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가면 안 된다구
꽤 심각한 문젠가 보군
그래 실은 수요일날 예심이 끝난 뒤 칼 리하고 얘기를 했었거든
그 사람 좀 제정신이 아니었어 하긴 나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
자식들을 죽여 버리겠다고 하는 게 장난이 아니더라구 자네가 알아
둬야 할 것 같아서
걱정 마 문제 없어 피의자들은 안전하다구 칼 리가 죽이고 싶
어해도 그건 불가능해 우리도 협박전화를 많이 받았어 흑인들이 죄
다 흥분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절대 아무 일 없을 거야 구치소에
들어가 있는 애들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 우리도 조심하고 있는데
좋아 그건 됐고 난 한번도 칼 리를 변호한 적이 없지만 그 집
식구들 일을 많이 봐줘서 그런지 날 자기 변호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변호사로서 난 당신한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런 건 난 별로 걱정하지 않아 제이크
알겠네 근데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나도 딸을 키우고 자네도 딸이 있지 않나
그래 난 둘이지
흑인 아버지로서 칼 리가 무슨 생각을 할 것 같아
자네 생각하고 같겠지
그게 뭔데
오지는 의자 속으로 몸을 파묻으면서 팔짱을 끼고는 잠시 머릿속
으로 점리를 하는 것 같았다
칼 리가 걱정하는 건 첫째 토냐가 육체적으로 문제가 없느냐 하
는 거야 그애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상처가 남지 않겠냐는
거지 둘째로 과연 토냐가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남은 시간 동안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균형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게 칼
리의 걱정거리겠지 그리고 세 번째로 그 더러운 자식들을 죽이고
싶을 거야
자네라면
나라도 그럴 거라고 말하기는 쉽겠지 하지만 정말로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나도 몰라 파치먼에 가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게
애들한테 좋을 테니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비슷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지 아마 미쳐 버리기
는 하겠지
제이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책상을 물Y러미 내려다보았다
나라면 그게 누구든간에 심각하게 살인계획을 고려할 거야 그
런 놈들이 살아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잠이 오겠어
배심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배심원이 누구냐에 달려 있지 자네가 뽑는다면 살아 나가는 거
고 검사 편 배심원이면 바로 가스실 행이지 완전히 배심원 손에 달
려 있지만 이 동네에서라면 배심원들이 칼 리 편일 확률이 높지 강
강간 살인이라면 사람들은 이를 가니까 그건 백인들도 마찬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지
내 말의 요지는 자기 손으로 복수를 하는 아버지에 대해서 충분
히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말이야 사람들은 법체제를 믿지
않아 내 생각엔 최소한 평결을 내리지 못하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아
그런 놈들은 죽어도 싸다고 설득시킬 수 있을 거야
먼로 보위처럼
그래 먼로 보위 같은 놈은 죽어야 했어 그가 죽어 마땅한 흑인
이었기 때문에 레스터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야 근데 레스터는
왜 시카고에서 여기까지 먼 길을 달려왔을까
자기 형하고 아주 가깜잖아 어쨌든 우리가 잘 감시하고 있으니
까 걱정하지 말라구
화제가 바뀌자 오지는 결국 제이크의 다리 안부를 물었다
악수를 나눈 다음 보안관 사무실을 나온 제이크는 곧장 집으로
차를 몰았다 칼라가 제이크에게 줄 숙제를 가지고 기다지고 있는 집
으료 칼라는 제이크가 토요일에도 일을 한다는 것에 별로 개의치 않
았다 그저 정오까지는 귀가해야 했곤 그 다음에는 그녀의 명령이
수없이 쏟아졌다
일요일 오후가 되자 병원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헤일리 가의
작은 소녀가 타고 있는 휠체어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휠체
어를 밀고 복도를 지나 병원 문을 나와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토냐를 부드럽게 들어서 차의 앞좌석에 앉혔다 그녀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 앉혀졌고 세 오빠들은 뒷좌석에 앉았다 토냐네 차 뒤로는
친구들과 친척들 그리고 낯선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차는 천천
히 움직여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앞자리에 앉은 토냐는 여장부처럼 당당했다 칼 리는 아무 말 없
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고 그웬은 연신 눈물을 찍어냈으며 뒷자리에
앉은 오빠들은 입을 꼭 다문 채 잔뜩 굳어 있었다
차는 길다란 앞마당 잔디밭에 멈춰 섰다 또 한 무리의 친척들이
집 앞과 현관을 메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칼 리는 토냐를 품에 안고
층계를 올라섰다 문을 지나 조그만 소파 위에 토냐를 누일 때까지
친척들은 벌떼처럼 토냐와 칼 리 주위에 몰려들었다
토냐는 집으로 돌아온 것이 무척 기뻤으나 자기를 내려다보는 많
은 사람들을 보면서 조금씩 피로를 느꼈다 그웬은 삼촌과 이무 사
촌형제들 이웃들이 토냐에게 다가와 한 번씩 어루만져 주는 동안에
도 토냐의 발을 꼭 붙잡고 있었다 미소를 짓는 사람도 있었고 우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
지는 레스터 삼촌과 다른 아저씨들과 함께 바깥에서 뭔가 얘기를 나
누고 있었고 오빠들은 부엌으로 달려가 차려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로키 차일더스가 포드 군의 지방검사로 일한 지는 그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오래되었다 그는 1년에 만오천 달러를 받는 대가로
대부분의 시간을 국가에 바쳤다 변호사로 개업할 희망도 사라진 마
흔두 살 나이에 그는 매일같이 불량배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4년
마다 있는 선거를 치러 재신임을 얻어야 했다 다행히 맞벌이를 하는
마누라가 덕분에 신형 뷰익과 골프장 회원권을 갖춰 웬만큼 배운 백
인들이라면 누려야 할 여유를 그도 누릴 수는 있었다 젊은 시절엔
정치적 야망이 있었지만 유권자들에게 배반당한 뒤로는 주정뱅이나
좀도둑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범죄자들이나 족치며 사는 게 전부였
다 게다가 그가 경멸해 마지않는 불러드 판사 같은 인간이 자기를
홀대하거나 콥이나 윌러드 같은 죄인들이 기어오를 때는 이만저만
분통이 터지지 않았다 자기는 그저 예심이나 다루고 순회법정의 루
퍼스 버클리 검사에게 사건을 넘길 수 있도록 준비만 하는 것도 서
러운데 말이다 버클리는 바로 로키 차일더스의 정치적 야망을 좌절
시킨 장본인이었다
차일더스는 사실 예심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
건은 달랐다 지난 수요일부터 유권자라고 신분을 밝힌 흑인들의 협
박성 전화를 수십 통 받았기 때문이었다 콥과 윌러드가 보석으로 석
방되면 알아서 하라고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보석허가를 받지 못
한 다른 흑인들처럼 콥과 윌러드도 보석으로 풀려나서는 결코 안 된
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차일더스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보석을
허가하는 것은 불러드 판사지 내가 아니다 베닝턴 가에 있는 불러드
판사의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겠다라는 말로 간신히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법정에서 보자는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다
윌요일 열두시 삼십분 차일더스는 보안관 오지 윌스와 불러드 판
사가 기다리고 있는 판사실로 불려갔다 판사는 신경이 잔뜩 곤두서
서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했다
보석금을 얼마로 할까요
불러드 판사가 대뜸 차일더스에게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판사럼 별로 생각을 안 해봐서요
지금이 바로 그 생각을 할 뻔데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요
불러드 판사는 책상 뒤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
렸다가 다시 책상 위를 쳐다보고는 했다 오지는 아무 말 없이 두 사
람의 얘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건 판사님이 결정하실 문제가 아닌가요
차일더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군 고마워 어쨌든 얼마로 할까요
저는 항상 제 생각보다 많은 돈을 신청한다는 걸 아시잖아요
이제 차일더스는 불러드 판사의 약을 올리면서 그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게 얼마냔 말이오
모르겠어요 별로 생각을 안 해봐서요
불러드의 목 주위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오지에게 고개를 괴
돌렸다
보안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글쎄Q
오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보석 조건이 좀 까다로웠으면 좋겠는데요 이놈들은 자기들
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감옥으로 가는 게 낫거든요 밖에 흑인들이 널
려 있는데 석방되어서 나갔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올리
는 게 좋죠
그 사람들 돈이 얼마나 있나요
윌러드는 빈털터리고 콥은 얼마나 갖고 있는지 추적이 안 돼요
제 생각에는 23만 달러는 모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듣자 하니 멤피스에서
변호사를 사왔다는데 그런 걸 보면 돈이 꽤 있는 모양입니다
멤피스 변호사가 온다구요 왜 그 얘길 진작 안 했습니까 그래
이름이 뭐래요
버나드입니다 피터 버나드 오늘 아침에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차일더스 검사가 끼여들었다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불러드 판사는 자기가 법조계의 인물은 죄다 베고 있는 것처럼 말
했다
불러드 판사가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보안관과 검
사는 눈짓을 교환했다 여느 때처럼 보석금이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
다 보석 담당관들이 불러드 판사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
들은 범인과 그 가족들이 10퍼센트의 선불금을 내기 위해 재산을
긁어모으고 되는 대로 저당을 잡히면서 대출 계약서에 서명하는 꼴
을 보면서 희열을 맛보았다 불러드는 무조건 돈을 올려야겠다는 생
각을 했다 그게 정치적으로 안전했다 흑인들이 그러는 걸 좋아했
다 백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는 했지만 결코 흑인들의 표를 무시
할 수는 없었다 사실 불러드 판사는 흑인들에게 빛을 지고 있는 거
나 마찬가지였다
윌러드에게는 10만 달러 콥에게는 20만 달러로 하는 게 어때요
그 정도면 만족스럽지 않겠어요
만족스럽다니 누구한테요
보안관이 물었다
저기 저 바깥에 있는 사람들한테요 차일더슥 당신도 좋죠
예 괜찮습니다 근데 예심은 어떻게 하죠
예심은 공정하게 할 거a아주 공정하게 그런 다음 보석금을 각
각 10만과 20만 달러로 부르는 거
그러면 제가 30만 달러 정도 부르면 되겠죠
차일더스가 물었다
그건 당신 맘대로 해요
불러드가 버럭 신경질을 냈다
그 정도면 괜찮겠네요 찬 저를 증인으로 신청할 건가요
오지는 문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차일더스에게 물었다
아니오 필요없어요 예심은 그 정도로 충분하니까
차일더스와 오지는 판사실을 나갔다 불러드 판사는 땀을 뻘뻘 흘
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불러드 판사는 문을 잠그고 보
드카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페이트는 바깥에서 기다
리고 있었다 오분 후 불러드는 사람들이 꽉 들어찬 법정에 모습을
나타냈다
기립
정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앉으십시요
사람들이 다 일어서기도 전에 판사의 말이 떨어졌다
피의자들은 어디 있습니까
콥과 윌러드가 대기실에서 들어와 피고인석에 앉았다 콥의 낀빔
변호사 버나드는 콥의 수갑이 제거되는 동안 콥에게 미소를 던졌다
월러드의 변호사인 틴데일은 멤피스 출신의 새 변호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수요일 예심 때와 똑같은 인물들이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친구들
몇 명씩을 더 데리고 왔다는 점만 달랐다 그들은 피의자들의 움직임
을 하나하나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레스터는 두 강간범의 얼굴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다 칼 리는 방청석에 와 있지 않았다
불러드는 경찰들을 세었다 모두 아흡이었다 그것은 기록될 터였
다 그 다음에 그는 흑인을 세었다 수백 명이 한데 몰려앉아 변호사
들 사이에 앉아 있는 두 강간범을 노려보고 있었다 보드카 기운이
올라와 기분이 좋았다 불러드는 찬물처럼 보이는 스티로폼 잔에 든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신 뒤 슬쩍 미소를 지었다 취기가 올라와 불러
드의 뺨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불러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경
찰을 다 내보내고 콥과 윌러드를 저 흑인들에게 던져 버리는 것이었
다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정의를 따르는 일이기도 했다 뚱뚱한 흑인
아줌마들이 두 놈을 짓밟고 서서 발을 구르고 남자들은 재크나이프
와 식칼로 그들을 겨눈다 일이 끝나면 흑인들은 시체를 주섬주섬 챙
겨 법정 밖으로 조용히 사라지리라 불러드는 눈앞에 그런 장면을 그
리면서 씨익 웃었다
불러드 판사가 손짓을 하자 페이트가 재판장석으로 다가왔다
내 방에 가면 서랍 속에 얼음물이 좀 있을 거예요 스티로폼 컵에
다 한 잔만 따라와
페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법정 문을 나섰다
본 법정은 보석에 관한 예심을 시작하겠습니다
불러드 판사가 큰 소리로 좌중을 향해 말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변호인측 준비됐습니까
예 재판장님
준비줬습니다
틴데일과 버나드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려왔다
저도 준비뤘습니다
차일더스 검사가 자리에 앉은 채 또박또박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첫번째 증인 신청하세
차일더스가 불러드 판사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장님 저희는 더이상 신청할 증인이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
예심에서 본 바와 같이 두 피의자에 대한 기소사실이 너무도 명백하
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는 지금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 있는 상태이
므루 더이상 추가기소는 없을 것입니다 다음주 월요일에 열릴 대배
심은 두 사람을 강간과 폭행 납치 혐의로 정식재판에 회부할 예정이
며 죄인들의 폭력적인 특성 피해자의 나이 빌리 레이 콥의 중죄 사
실 등을 감안해 저희는 법정 최고의 보석금을 상정하는 바입니다
단 한푼도 빼지 않고 말입니다
불러드 판사의 얼음물이 목구멍에 가서 걸렸다 법정 최고의 보
석금이라니 최고 보석금 같은 것은 없었다
검사가 생각하는 보석금이 얼맙니까
50만 달럽니다
차일더스는 뻐기듯이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50만 달러 그건 불가능한 액수였다 불러드는 술 한 잔을 얼른 마
시고 검사를 노려보았다 50만 달러 공개된 법정에서 나를 배반하
다니 불러드 판사는 페이트를 불러서 얼음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이의 있습니다
콥의 새 변호사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는 헛기침을 한번
한 다음 양끝이 삐죽 올라간 샌님 같은 안경을 벗으면서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림 저는 멤피스 출신의 변호사 피터 버나듭니다
여기 앉은 빌리 레이 콥의 신임을 받은 변호사로서
당신 면허증 있습니까 이곳 미시시피에서 변론을 할 자격이 있
냐구요
불러드 판사가 버나드의 말을 매몰차게 잘랐다 버나드가 더듬거
리기 시작했다
저 뭐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재판장님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배심원석에 앉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키득거리는 운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불러드 판사의 전공이 드디어 나온 것이다 그는 멤피스 변
호사들을 싫어했고 자기 법정에 출두하기 전까지 이 지방의 변호사
회에 등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불러드 판사가 이미 똑
같은 이유로 테네시 주 내의 멤피스 법정에서 무참하게 쫓겨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복수였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곳 미시시피 주 변호사회에는 등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테네시 주에 정식으로 등록된 변호사입니다
불러드 판사의 대꾸에 변호사들의 웃음소리가 좀더 커졌다
포드 군의 규칙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불러드 판사가 물었다
예 예 압니다
복사본 가지고 있습니까
가지고 있습니다
법정에 서기 전에 차근차근 읽어봤습니까
대부분은 읽어봤습니다
14조가 뭘 얘기하는지 아십니까
콥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새 변호사를 위아래로 훈밌다
저 그건 잘 기억나지 않는데요
버나드가 순순히 인정을 했다
제가 기억을 되살려 드리지요 변호사는 법정에 서기 전에 주변
호사회에 가입해야 한다는 게 14조의 내용입니다
예 재판장님
외모나 하는 짓으로 보아 버나드는 멤피스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
축에 속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조그만 동네의 말 빠른 판사 앞
에 선 그의 몰골은 비참하기만 했다
예라니요
불러드 판사는 버나드를 구석으로 몰았다
그 규칙에 관한 얘기를 들은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럼 주변호사회가 어디 있는지도 아십니까
가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 멤피스에서 올 때 규칙을 알면서도 일부러 무시했다는 얘
깁니까
버나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책상 위에 놓인 노란 법령집만 물
러미 바라보았다
틴데일이 천천히 일어나면서 말했다
재판장님 저는 이 예심을 위해 버나드 씨의 배석고문 자격으로
참석하였습니다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불러드 판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교활하게 빠져나가는군 틴
데일 얼음물은 불러드 판사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는 다소
긴장이 풀어졌다
좋습니다 첫번째 증인 신청하시죠
버나드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까딱 숙여 보였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콥 씨를 대신해 그의 형제인 프레드 곱
씨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콥의 동생이 증인석에 나와 선서를 하고 앉았다 버나드는 칸막이
를 밀고 법정 가운데로 나가 꼼꼼하게 반대심문을 해나갔다 사전 준
비를 잘한 것 같았다 빌리 레이 콥이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포
드 군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자란데다 대부분의 가
족과 친구들이 포드 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도망칠 이유가 없다는
요지의 증언이었다 그가 도망을 친다는 것은 깊은 뿌리를 가진 건실
한 시민으로서 잃을 게 많다는 얘기였다 그는 법정에 나타날 것이
며 낮은 보석금으로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불러드 판사는 잔을 홀짝거리고 펜을 톡톡 두드리면서 방청석에
앉아 있는 흑인들의 동태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검사는 물어볼 내용이 없다고 했다 버나드는 콥의 어머니인 코라
를 불러서 프레드가 했던 말들을 되풀이하게 했다 그녀는 가름씩
눈물을 찔끔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불러드 판사는 고개를 절레절
레 흔들었다
다음은 틴데일 차례였다 그는 윌러드의 가족들을 붙잡고 비슷한
열기를 마쳤다
50만 달러 그걸 한푼이라도 깎았다가는 흑인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불러드 판사는 차일더스 검사를 노려보았다 그를 싫어할 명
분이 또 하나 생긴 셈이다 그러나 불러드는 흑인들을 좋아했다 지
난번에 자기를 뽑아준 게 바로 흑인들이었으니까 그는 51퍼센트의
지지를 받았으며 모두가 흑인들 표였다
다른 증인 없습니까
틴데일의 심문이 끝나자 불러드 판사가 물었다
검사와 두 변호사는 서로 힐끗거리다가 판사를 쳐다보았다 이윽
고 버나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장님 저는 피의자의 경제적 여건을 감안해서 합리적인 액수
의 보석
알았어요 변호인측 얘기는 충분히 들었으니까
불러드 판사는 잠시 뭇거리다가 재빨리 준비한 말을 늘어놓았다
피트 윌러드에게는 10만 달러 빌리 레이 콥에게는 20만 달러의
보석금을 선고합니다 선불금을 낼 때까지 두 피의자는 구치소에 구
금될 것입니다 정회합니다
불러드 판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그는 반
쯤 남은 보드카를 다 마시고 새 병을 땄다
레스터는 보석금에 대해서는 만족하는 편이었다 먼로 보위 때는
보석금이 5만 달러였기 때문이다 물론 보위는 흑인이었기 때문에
백인들에게 선고하는 것보다는 적게 부르는 것이 통쎄였지만
방청객들이 조금씩 뒷문으로 걸어나가는 동안 레스터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두 명의 피의자가 수갑에 채워진 채 문을 통
해 대기실로 걸어가는 모습을 쭉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레스터는 두 손 사이에 머리를 묻고 낮은 소리로 기도문을
외웠다 그리고 그는 귀를 기울였다
제이크는 적어도 하루에 열 번쯤은 프랑스식 창문을 열고 발코니
로 나가 클랜턴 시내를 굽어보곤 했다 가끔씩은 싸구려 시가 연기를
워싱턴 가를 향해 뿜어대기도 했다 여름이면 그는 창문을 열어둔 채
로 일을 하면서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사무실을 아늑하게 감싸
게 내버려두었다 법원 근처에서 소란이 일 때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내다보기도 하고 아무 소리가 나지 않으면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
어 밖을 내다보곤 하였다
5월 20일 윌요일 오후 두시가 조금 못 된 시간에 제이크는 발코
니로 나가 시가에 불을 붙였다 무거운 침묵이 미시시피의 클랜턴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수갑에 묶인 손을 뒤로 한 채 콥이 먼저 조심스럽게 층계를 내려
가필 윌러드와 보안관 대리인 루니가 그 뒤를 이었다 층계에서 열
걸음을 내려가면 층계참에 이르렀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아 다시
열 걸음을 더 내려가면 I층 바닥이었다 밖에서는 세 명의 보안관 대
리가 순찰차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콥이 마지막 층계를 두 칸 내려서고 윌러드는 그보다 세 걸음 뒤
쳐져 있었고 루니는 첫번째 층계의 마지막 칸을 남겨 두었을 때였
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작은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칼 리 헤일리가M16소총을 들고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정면에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커다랗고 재빠르게 터지는 총소리는
침묵을 깨트리고 법원을 뒤흔들었다 두 강간범은 그 자리에 얼어붙
은 듯이 서 있다가 그대로 총에 맞았다 총알은 먼저 콥의 배와 가슴
에 이어서 윌러드의 얼굴과 목에 구멍을 뚫었다 수갑이 채워진 무
방비 상태이면서도 그들은 본능적으로 층계를 향해 돌아섰다 서로
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와 살덩이가 한데 뒤엉켰다
다리에 한 발을 맞은 루니는 겨우겨우 층계를 기어올라가 대기실
에 이르렀다 몸을 숙이는 동안 그는 콥과 윌러드의 비명소리 칼 리
의 미친 듯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좁고 어두운 복도 벽에 총탄이 튀
었다 바닥 아래를 흘끗 내려다본 루니는 벽에 튄 콥과 윌러드의 피
와 살이 범벅이 되어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다시 M16이 질러대는 예닐곱 발의 거대한 총성이 법원
건물을 영원히 흔들 것처럼 울려퍼졌다 층계 근처의 벽에 총알이 날
아가 부딪치는 소리 속에서도 부들부들 떠는 칼 리의 웃음소리는 너
무나도 또렷했다
한바탕 난사를 끝내고 난 칼 리는 무기를 두 구의 시체 위에 던지
고 뛰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가서 의자로 문을 막고 창문을 통해 관
목숲으루 그리고 태연하게 보도를 걸어 차를 타고 집으로 달렸다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을 때 레스터의 몸은 뺏뻣하게 얼어붙었다
법원 가득 울려퍼지는 소리에 콥과 윌러드의 어머니는 비명을 질러
댔고 경찰들은 부랴부랴 대기실로 뛰어갔다 그러나 아무도 층계를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총소리가 멈추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이에 레스터는 법원을 빠져나왔다
첫번째 총성이 울리자마자 불러드 판사는 위스키병을 들고 책상
밑으로 숨었고 페이트는 황급히 판사실의 문부터 걸어 잠갔다
콥의 남은 살점들은 윌러드 곁에서 쉬고 있었다 걸음을 옳길 때
마다 그들의 뒤섞인 피가 진흙처럼 튀었고 흘러넘친 피는 한 걸음
앞에서 뚝뚝 떨어졌다 순식간에 층계 바닥은 그들의 혼합물로 흘러
넘쳤다
제이크는 법원 뒷문으로 이어지는 거리를 가로질러 냅다 뛰었다
앞문에는 보안관 대리인 프레이서가 쭈그리고 앉아 몰려드는 보도진
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나머지 보안관 대리들은 순찰차 옆의
층계참에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이크는
다시 법원 정문을 향해 뛰었다 그곳에는 더 많은 경찰들이 문을 지
키고 서서 직원들과 방청객들을 건물에서 내보내고 있었다 현관으
로 몰려나오는 사람들의 틈을 헤집고 제이크는 안으로 뛰어들어가
큰 소리로 지휘를 하고 있는 오지를 찾아냈다 오지는 제이크에게 따
라오라는 신호를 보냈고 두 사람은 홀을 지나 뒷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허리춤에 총을 찬 대여섯 명의 경찰들이 층계 쪽을 물11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제이크는 구역질이 올라왔다 원러드의 몸은 층계
에 걸쳐져 있었는데 머리 앞부분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고 바닥을
향한 얼굴은 뇌수로 뒤덮여 있었다 콥이 몸을 비트는 사이에 날아온
총알은 등쪽 깊숙한 곳에 박인 듯했다 그의 얼굴은 윌러드의 배에
깔려 있었고 두 다리는 문에서 네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 그대로
굳어 있었다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시체에서 나온 온갖 액체
가 층계를 흠뻑 적셔놓았다 시뻘건 피웅덩이는 빠른 속도로 경찰들
을 향해 흘렀고 경찰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두 사람의 몸
뚱이를 날려 버린 끔찍한 무기는 콥의 발사이에 피범벅이 된 채 떨
어져 있었다
끊임없이 피를 쏟아내고 있는 시체 두 구를 보며 사람들은 넋이
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비린내는 층계를 지나 홀에 이르러
둥근 천장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람들을 내보내는 경찰들의 목
소리와 함께
제이자네는 좀 가질야겠어
오지가 시체에다 시선을 박은 채로 말했다

그냥 가
왜 그러냐니까
지금부터 사진도 찍고 증거도 수집해야 하는데 자네가 여기 있을
필요는 없잖아
알겠네 하지만 내가 입회한 상태에서 칼 리를 심문해야 해
오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진을 찍고 증거를 수집하고 시체를 치운 다음 오지 윌스는 다
섯 대의 순찰차를 대동하고 클랜턴을 떠났다 헤이스팅스는 호수 쪽
으로 차를 몰아 베이츠 씨 가게를 지난 다음 크래프트 가로 접어들
었다 칼 리의 집 앞에는 그웬의 차와 칼 리의 트럭 일리노이 번호판
이 붙은 캐딜락 한 대가 서 있었다
순찰차들이 칼 리의 집 앞에 일렬로 주차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지가 혼자 걸어들어가는 동안 다른 경찰들은 차문을 방패
삼아 쭈그리고 앉아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칼 리의 식구들이 문
을 열고 나오자 오지 보안관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칼 리는 토냐를
두 팔에 안은 채 현관을 걸어내려와 보안관과 늘어선 순찰차 그리고
보안관 대리들을 쳐다보았다 그의 왼쪽에는 피웬이 서 있었고 오른
쪽에는 그의 세 아들이 있었는데 두 놈은 당차고 용감한 표정으로
보안관을 노려보았다 그들 뒤로는 레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대치하고 선 두 무리는 서로 상대편이 무슨 말이든 행동이든 먼저
취해 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양쪽 모두 앞으로 닥칠 일을 피하고 싶
어했다 사위가 다 고요한 가운데 토냐와 그웬과 제일 어린 사내놈
의 훌쩍거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아이들은 이해하려고 애썼다 아버지는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해했지만 왜 아버지가 잡혀가야 하고 왜 감옥에
갇혀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오지는 칼 리의 식구들과 보안관 대리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
다가 발 밑의 혼을 툭 찼다 마침내 오지가 입을 뗐다
나랑 같이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칼 리는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레스터가 칼 리에게서 토냐
를 받아 안자 그웬과 나머지 사내놈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칼 리는
세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곤 지금은 가야 하지만 반드시 돌아을 거라
고 속삭였다 칼 리는 아이들을 모두 품에 안았다 아이들은 아빠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칼 리는 일어나 그웬에게 키스를 한 다음 층계
를 내려와 보안관 앞에 섰다
수갑 채우겠어a오지
아냐 그냥 차에 타
보안관 대리들과 청원경찰 구치소 직원들이 보안관 사무실 바로
옆에서 새로운 죄수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동안 제이크와 수석
보안관 대리인 모스 주니어 테이팀은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보안관 대리 하나가 블라인드 틈으로 구치소와 고속도로 사이의 주
차장을 가득 메운 보도진과 차량들을 훔쳐보았다 멤피스와 잭슨 투
펄로에서 온 방송차량이 보도진들 사이에 전봇대처럼 흩어져 있었
다 모스는 이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밖으로 걸
어나가 보도진들은 한 곳으로 모이고 방송차량은 치워 달라고 얘기
했다
공식 발표를 하실 건가요
기자 한 명이 큰 소리로 물었다
그래요 차를 치워주십시오
살인사건에 대해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예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자세하게 말해 주십시오
현장에 없어서 모릅니다
용의자는 있습니까
있습니다
누굽니까
저 차들을 치우면 얘기하겠습니다
그러자 금세 방송차들이 치워지고 카메라와 마이크가 모스가 서
있는 보도로 몰려들었다 모스는 자리를 지정해 주고 보도진들이 하
는 짓이 맘에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모스는 씹
던 껌을 엄지손가락으로 꺼내더니 보란 듯이 툭 튀어나온 배 아래
걸쳐진 벨트 버클에 갖다 붙였다
누가 죽였습니까
체포는 됐나요
그 소녀의 가족과 관련이 있습니까
둘 다 죽었습니까
모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에 하나씩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용의자가 있으며 그는
방금 체포되었습니다 좀 있으면 이리로 올 겁니다 그러니까 차들을
안 보이는 곳으로 옮겨주십시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입니

모스가 등을 돌려 구치소 쪽으로 걸어가자 기자들이 그를 부르고
난리였다 그는 기자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사무실로 들어갔다
루니는 어때
모스가 다른 보안관 대리에게 물었다
프레이서가 병원에 같이 있습니다 다리에 가벼운 부상을 입은
것을 빼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래 가벼운 다리 부상에 가벼운 심장 이상이겠지 뭐
모스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고 보안관 대리들도 맞장구를 쳤다
저기 옵니다
직원 하나가 소리를 치자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창에 달라
붙어 푸른 등을 켠 채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순찰차들을 쳐다보
았다 오지가 직접 운전하고 있는 맨앞의 차에는 수갑을 차지 않은
칼 리가 오지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뒷자리에 앉은 헤이스팅스는
차가 보도진들과 방송차량을 지나 구치소 뒷문에 이르는 동안 카메
라맨들에게 비키라는 손짓을 내내 하고 있었다 오지의 차가 멈춰 서
자 칼 리와 헤이스팅스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구치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칼 리는 즉각 간수에게 넘겨졌고 오지 월스는 제이크가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칼 리를 만나볼 수 있네 제이
고마워 근데 칼 리가 했다고 확신하나
그래 확실해
자백을 하진 않았겠지
별 얘기 안 했어 아마 레스터가 말 많이 하지 말라고 시킨 모양이야
모스가 사무실로 걸어 들어왔다
보안관님 기자들이 좀 만나고 싶다는데요 금방 나오실 거라고
했습니다
알았네
오지는 한숨을 푹 쉬었다
목격자는 있어요
오지는 붉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응 루니가 일단 칼 리를 확인했고 머피라고 법원에서 바닥
청소하는 절름발이 알아
알지 말을 심하게 더듬던데
그 사람이 다 봤대 바로 맞은편 층계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
다니까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거의 한 시간 동안 한마디도 못하더라

오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제이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근데 내가 왜 자네한테 이 얘기를 하고 있지
뭐 큰 차이가 있나 나도 금방 다 알게 될 텐데 윌 칼 리는 지금
어디 있나
홀 아래 감방에 사진도 찍고 모든 절차를 랄아야 해 삼십분쯤
걸릴 거야
오지가 나가자 제이크는 칼라에게 전화를 걸어 뉴스를 꼼꼼히 보
고 모니터를 해두라고 일렀다
오지는 마이크와 카메라를 마주보고 섰다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피의자는 지금 구금되어 있습니다 이
름은 칼 리 헤일리 포드 군에 거주하며 두 사람에 대한 살인죄로 기
土될 예정입니다
그 소녀의 아버집니까
예 맞습니다
그 사람이 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우린 눈치가 빠릅니다
목격자가 있습니까
아직 아는 바 없습니다
자백은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다
어디서 체포했습니까
그의 집에서요
경찰도 총에 맞았습니까
상태는요
경상입니다 병원에 있으며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그 사람 이름은요
루니 드웨인 루니 입니다
예심은 언제 열릴 예정인가요
판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쯤일 것 같습니까
내일 아니면 수요일 정도겠지요 자 더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
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더 알려드릴 게 없습니다
간수는 칼 리의 지갑과 돈 시계 열쇠뭉치 반지 그리고 재크나이
프를 압수하여 목록을 만들었고 칼 리는 거기다 날짜를 적고 서명을
했다 칼 리가 옆방으로 가자 사진을 찍고 지문을 채취했다 레스터
가 말한 그대로였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지는 칼 리를 데리고
홀 아래로 내려가 알코을 농도를 측정하는 기계가 있는 조그만 방으
로 들어갔다 제이크는 기계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오지는 두 사람
만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변호사와 의뢰인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서로 동정을 살
폈다 가끔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기는 했지만 말은 한마디도 나누
지 않았다 지난주 수요일 예심이 끝난 뒤 처음으로 대면하는 것이었

칼 리의 상태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편안해 보였고 눈빛은
맑았다 마침내 칼 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일을 저지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이크
아노 당신이 정말 저지른 거예요
당신도 알잖아요
제이크는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팔짱을 끼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칼 리는 몸을 축 늘어트리면서 의자 안에 몸을 파묻었다
훨씬 기분이 좋아9 이제까지 일어난 모든 일이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났으면 더 좋았겠죠 내 딸에게
도 아무 일도 없었다면 좋았을 거고요 그놈들이 내 딸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 전까진 나도 그자들에게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그들은
뿌린 대로 거뒀을 뿐이에요 그 부모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겁나지 않아요
뭐가요
가스실 말예
아노 그게 바로 내가 당신을 고용한 이유인 걸요 난 가스실에
갈 계획 없어요 레스터가 무사히 나오는 것을 봤고 나도 그렇게 나
올 건데a뭐 제이당신은 해낼 수 있어요
결코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칼 리
뭐라고요
당신은 냉혹하게 사람들에게 총을 쏴놓고 배심원들에게는 그들
은 죽어 마땅하다며 법정 밖을 무사히 걸어나가길 바라는군요
그래요 레스터가 그랬던 것처럼요
하지만 차이가 있어9 가장 큰 차이는 레스터는 흑인을 죽였다
는 거고 당신은 백인을 죽였다는 거죠 이건 아주 큰 차입니다
제이겁나Q
내가 채 겁나겠어요 가스실에 가는 건 당신인데
자신감을 가져
칼 리 당신 참 바보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 그래 그들이 살아 있을 때는 자신만만해했을지도 몰라 하지
만 지금은 아니야
자기 죄를 인정하고 있는 의뢰인 앞에서 가스실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의뢰인 앞에서 제이크의 자신감은 하나둘 꺾여가고 있었다
총은 어디서 구했죠
멤피스에 사는 친구한테서
좋아9 레스터가 도와줬나요
아노 동생은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눈치채고는 도와주겠다
했지만 내가 싫다고 했어Q
그웬은 괜찮아요
지금은 제정신이 아닐 거예요 하지만 레스터가 같이 있으니까
곧 괜찮아지겠죠 사실 그웬은 아무것도 물라요
애들은요
애들이 어떨지는 잘 알잖아요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게 싫겠죠
하지만 잘 견딜 거예요 레스터가 돌봐줄 거고
레스터는 시카고로 돌아가지 않아요
당분간은 있을 거예요 근데 언제 재판을 받게 되죠
예심은 내일 아니면 모레예요 불러드한테 달렸죠
그 사랍이 판사예요
예심은 담당하겠지만 정식재판은 아닐 겁니다 순회재판소에 회
부될 거예요
거기 판사는 누구죠
밴 뷰렌 군에서 온 오마 누스예요 레스터 사건을 맡았던 사람이
Is
그 사람이라면 괜찮겠죠
좋은 판사라고 할 수 있죠
정식재판은 언제 열릴까요
늦여름이나 초가을쯤 버클리는 빨리 끝내려고 하겠지만
버클리가 누군데요
루퍼스 버클리라고 검사예요 레스터를 기소했었죠 기억나요
키 크고 뚱뚱한 검사
아 그 사렌 고약한 버클리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아주 나쁜 자
식이었는데
나쁘진 않아요 괜찮은 편이죠 야망이 좀 있고 돈을 밝힌다는
점만 빼면 이 사건은 유명한 사건이라 기를 쓰고 덤벼들걸요
그자를 이길 수 있죠
글쎄 내가 질지도 몰라요
제이크는 서류가방에서 파일을 꺼냈다 그 안에는 법률 서비에
대한 계약서가 있었다 제이크는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서류를 다
시 한번 훌었다 수임료는 대개 지불 능력에 따라 정해졌는데 피고
인이 흑인일 경우에는 지불 능력이 변변치 않았다 세인트루이스나
시카고에 돈 잘 버는 친척이라도 있다면 몰라도 대개는 다 그랬다
레스터 사건 때도 캘리포니아 우체국에 다니는 형제가 있었지만 별
로 도와주질 않았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누이들은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어서 정신적 지지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웬에게
는 친척들이 아주 많은데다 다들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들 넉넉지가 않았다 칼 리의 집 주위에 있는 몇 에이커의 땅은 레스
터 사건 때 이미 저당을 잡힌 상태였다
제이크는 레스터에게 요구한 5字 달러의 수임료 중 반은 재판 존
에 받았고 나머지 반은 3년에 걸쳐 다 받아냈다
제이크가 제일 하기 싫은 일이 수임료 얘기였다 변호사로 일하면
서 겪는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의뢰인들은 즉석에서 얼마가 드
는지 알고 싶어했고 비용을 알고 나면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깜짝
놀라는 사람 침을 꿀꺽 삼키는 사람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사
람도 있였다 그러나 협상이 벌어지고 돈을 내거나 내겠다고 약속하
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제이크는 서류와 계약서를 살펴보면서 제 값을 받기는 어렵겠다
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밖에는 공짜로라도 이 일을 맡겠다고 나설
변호사가 널려 있었다 이 사건이 굉장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건이기
때문이었다 제이크는 칼 리가 소유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부동산과
제지공장에서 받는 웜급 가족들의 경제적인 능력 등을 고려한 뒤
입을 열었다
수임료는 만 달러로 하죠
칼 리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레스터 때는 5천 달러였잖아요
제이크는 이런 얘기가 나을 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레스터는한명 죽였고 당신은두명 죽였어요 또한명은 경상
을 입고
내가 가스실로 갈 가능성은 얼마나 되죠
바로 그거예9 자 얼마 낼 수 있어요
지금 당장 천 달러 줄 수 있고 내 부동산을 담보로 빌릴 수 있는
대로 전부를 당신한테 주겠어요
칼 리는 약간 거만하게 말했다 제이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아요 이렇게 하죠 우선 지금 천 달러를 내고 그 나머지 금액
에 대해서는 어음을 쓰세요 나중에 대출받아서 내는 조건으로
원하는 금액이 얼만데요
칼 리가 다시 물었다
만 달러요
5천 낼게Q
그보다는 더 낼 수 있을 텐데요
당신도 만 달러 이하로 할 수 있어요
좋아요 9천으로 하죠
6천
8천

그럼 7천 5백에 합의하는 건가요
좋아요 그 정도는 낼 수 있을 거예요 나한테 얼마를 빌려주느냐
에 달려 있지만 지금 천 달러를 내고 나머지 6천5백 달러는 어음을
쓰라는 얘기죠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알았어요
제이크는 계약서와 약속어음을 작성했곤 칼 리가 서명을 했다
제이크 돈 많은 사람한테는 얼마나 청구하나요
5만 정도요
5만 진짜예요
그럼요
와 엄청나구만 진짜 그만큼 받아본 적 있어요
없어요 살인죄로 기소된 사람치고 돈 많은 사람은 본 적이 없거

칼 리는 알고 싶은 게 많았다 보석금과 대배심 정식재판 중인에
대해서 그리고 배심원은 누가 될 것인지 언제쯤 감옥에서 나을 수
있는지 재판을 빨리 끝낼 수는 없는지 제이크의 생각은 어떤지 등
등 제이크는 앞으로 얘기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그웬에게 전
화도 하고 제지공장에 가서 사장을 만나보겠다는 약속을 했다
제이크가 떠나자 칼 리는 독방에 수감되었다 바로 옆방에는 파치
먼 교도소로 이감되길 기다리는 죄수들이 있었다
제이크의 사브 자동차는 방송차량에 막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제
이크는 차를 치워줄 사람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다 대부분의 보도진
들은 자리를 떴고 몇 명이 남아 더 건질 게 없는지 기웃거리고 있었
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구치소에서 일하는 사람입니까
기파 한 명이 제이크에게 물었다
난 변호사요
제이크는 관심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헤일리의 변호사란 말입니까
제이크는 고개를 돌려 다른 보도진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래요 내가 칼 리 헤일리의 변호사요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볼 수야 있죠 대답해 주겠다고 약속은 못 하지만
이리 좀더 나와 주시겠습니까
제이크는 카메라와 마이크가 있는 쪽으로 걸어나가면서 일부러
귀찮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이크가 카메라를 좋아하는군
다른 보안관 대리들과 함께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지가 말했다
변호사들은 원래 그렇잖아요
모스 수석 보안관 대리가 옆에서 한마디 보탰다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제이크 브리건스입니다
당신이 칼 리 헤일리의 변호사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제이크는 별 표정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헤일리 씨가 오늘 죽은 두 사람에게 강간을 당한 여자아이의
아버지 맞습니까
맞습니다
누가 죽였습니까
모릅니다
헤일리 씨가 죽인 것 아닙니까
저는 분명히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헤일리 씨가 당신에게 위임한 일은 뭔가요
그는 지금 빌리 레이 큽과 피트 월러드에 대한 살인혐의로 체포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헤일리 씨가 살인쬐로 기소될 것 같습니까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왜 대답하지 않는 거죠
헤일리 씨와 얘기를 나뒀습니까
기자들 사이에서 질문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예 방금 전에 얘기했습니다
그는 어떻습니까
무슨 말씀인가요
아 그냥 그가 어떠냐는 얘깁니다
그가 감옥을 좋아하느냐는 뜻입니까
제이크는 씨익 웃으면서 되물었다
어 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언제 법정에 서게 됩니까
내일 아니면 모레쯤입니다
그가 유죄선고를 받을깐요
제이크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을 듣고 느긋하게 웃었다
물론 아니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끝내고 칼라와 제이크는 현관의 흔들의자에
앉아 재판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포드
군 전체가 다 알고 있었다 칼라는 가능한 한 많은 뉴스를 보고 나서
제이크에게 내용을 요약해 주었다 두 개의 채널은 멤피스 방송지국
을 통해 실황으로 그 이야기를 크게 내보냈곤 멤피스와 잭슨과 투펄
로는 콥과 윌러드가 보안관 대리들에 둘러싸여 법정에 들어섰다가
잠시 후 하얀 천에 씌워진 시체가 되어 나오는 장면을 몇 번이나 방
송해 주었다 한 방송국은 보안관 대리들이 부산하게 흩어지는 화면
과 실제 총소리를 함께 내보내기도 했다
제이크의 인터뷰는 저녁 뉴스에 나오기엔 너무 늦었기 때문에 제
이크는 칼라와 녹화 준비를 하고 열시가 되길 기다렸다 손에 서류가
방을 들고 있는 제이크의 모습은 단정하고 아주 말쑥해서 약간 거만
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기자들을 귀찮아하는 표정도 역력했다 제
이크는 화면에 비춰진 자기 모습에 만족하는 눈치였고 솔직히 텔레
비전을 볼 때는 약간 흥분하기까지 했다 레스터가 석방되었을 때도
그는 잠깐 전파를 탄 적이 있었는데 커피숍에 들르는 단골손님들은
그 얘기를 몇 달이나 물고늘어졌었다
제이크는 기분이 좋았다 그는 명성을 즐기면서 좀더 유명해지기
를 은근히 바랐다 칼 리 헤일리의 재판만큼 명성을 가져다줄 수 있
는 사건이나 소송은 생각할 수 없었다 백인들에게 강간을 당한 딸을
위해 두 강간범을 총으로 쏴 죽이고도 백인 배심원들로부터 무죄선
고를 받아 칼 리 헤일리가 석방되는 날에는
뭐가 좋아서 그렇게 웃고 있죠
칼라가 제이크의 흐뭇한 상상을 깨트리면서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렇겠죠 당신이 뭘 생각하는지 다 알아요 재판과 카메라 기자
들 석방 칼 리를 끼고 법정에서 유유히 걸어나오는 모습 당신을 표
적으로 몰려드는 보도진 등을 두드리면서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사
람들 난 당신 생각을 훤히 꿰뚫고 있다구9
근데 왜 물어봤어
인정하나 안 하나 보려구
좋아 인정하지 이 사건은 나를 유명하게 만들 거고 우리한테
꺼마어마한 돈을 안겨줄 거라군
당신이 이기면
래 이기면
지면 어떻게 되는 거죠
난 0171
하지만 지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구
전화벨이 울렸다 제이크는 클랜턴 크로니클 지 사장이자 편집
자인 사람과 십분 정도 얘기를 나뒀다 다시 벨이 울렸고 이번엔
멤피스 모닝지의 기자와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은 뒤 제이크는
그웬과 레스터에게 전화를 걸었고 제지공장 공장장과도 얘기를 나
진다
열한시 십오분 다시 전화가 울렸다 제이크는 첫번째 협박전화를
받았다 물론 자기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제이크는 검둥이하고 붙
어먹은 개자식이란 말과 만약 그 검둥이놈이 살아 나왔다가는 네가
죽을 거라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살인사건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 델 퍼킨스는 평소보다 많은 커푀
와 구운 옥수수를 날라야 했다 단골손님들과 낯선 얼굴들이 아침 일
찍부터 몰려들어 커피숍 바로 건너편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았기 때문이었다 클로드네와 티숍에도 평소보다 많은
손님들로 들끓고 있었다 투펄로 신문은 제이크의 얼굴을 1면에 실
었고 멥피스 신문과 잭슨 신문은 법정으로 들어서는 콥과 윌러드의
사진과 그들이 시체가 되어 구급차에 실리는 장면을 나란히 1면에
내걸었다 세 신문 모두 칼 리의 사진은 싣지 않았고 클랜턴에서 지
난 6일 동안 벌어졌던 모든 일을 시간순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칼 리가 사람을 죽였다는 얘기는 이미 클랜턴 일대에 널리 퍼졌지
만 또 한 명의 총잡이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더니 급기야 티숍
에서는 검둥이들이 떼로 총질을 했다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로 변하
고 말았다 그러나 커피숍에는 보안관 대리들이 드나들어서 별로 말
이 많지 않았고 소문도 돌지 않고 통제가 잘 되었다 단골손님인 루
니는 처음 보도된 것보다는 상태가 안 좋은 걸로 알려졌다 총을 쏜
사람이 레스터 헤일리의 형이었다고 밝힌 루니는 아직도 병실에 남
아 있었다
제이크는 정각 여섯시에 커피숍으로 들어가 문 근처에 앉은 농부
들과 합석을 했다 그는 프레이서와 다른 보안관 대리들에게 인사를
했지만 그들은 제이크를 외면했다 제이크는 루니가 퇴원하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하고 넘어갔다 신문에 사진이 실렸다고 얘기해
주는 사람은 있었지만 살인사건과 칼 리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하
나도 없었다 분위기가 어쩐지 냉담했다 제이크는 얼른 아침을 해치
우고 자리를 떴다
아흡시가 되자 에셀이 제이크에게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불러드
판사의 전화였다
판사님 괜찮으십니까
죽을 지경이요 당신이 혜일리 씨의 변호를 맡았습니까
예심은 언제 하면 좋겠소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시는 거죠
좋은 질문이요 잘 들어요 제이크 장례식이 내일인데 그 자식들
땅에 묻힐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소
그렇겠네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내일 오후 두시 어때요
좋습니다
수화기 저쪽에서 머뭇거리는 불러드 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이예심 포기하고 그냥 대배심으로 넘기면 안 되겠소
저는 절대로 예심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시잖아요
알았소 그냥 한번 부탁해 본 거요 나는 도대체 듣고 싶지가
않아서 그래요 아주 끔찍해요 어쨌든 내일 봅시다
한 시간 후에 에셀이 다시 인터폰을 연결했다 투덜거리는 목소리
였다
브리건스 씨 기자들이 좀 뵙자는데요
제이크는 얼씨구나 싶었다
어느 방송국입니까
멤피스하고 잭슨 같습니다
회의실에서 기다리라고 해요 금방 내려갈 테니까
제이는 넥타이를 고쳐 매고 머리를 손질한 다음 워싱턴 가에
주차해 있는 방송차량을 눈으로 확인했다 기다리게 해야 한다는 게
제이크의 생각이었다 그는 쓸데없는 전화를 두 통이나 한 뒤에 아
래층으로 내려가 에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근 회의실 문을 열었
다 그들은 조명 때문에 회의실 탁자 끝에 앉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제이크는 거절했다 모든 건 내가 알아서 할 거라구 제이크는 두껍
고 비싸 보이는 법률서적들이 즐비하게 꽃혀 있는 자리 앞에 앉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이크가 제이크 앞에 설치되고 카메라 조명이 서둘러 조정되었
다 인터뷰 준비가 끝나자 이마 위로 붉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매력
적인 아가씨가 멤피스 방송국에서 왔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브리건스 씨 칼 리 헤일리 씨의 변호시입니까
예 맞습니다
칼 리 헤일리 씨는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를 죽인 혐의를
받고 있습니까
맞습니다
콥과 윌러드는 헤일리 씨의 딸을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었죠
예 맞습니다
헤일리 씨는 혐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습니까
그는 무죄를 주장할 겁니다
루니 보안관 대리에 대해 총을 쏜 혐의도 추가될 것 같습니까
예 공무원에 대한 3급 가중 폭행 혐의가 추가될 걸로 알고 있습
니다
정신이상으로 저지른 것이라고 변호하실 건가요
그가 아직 기소된 게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변론에 대해서 언급
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소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깁니까
바로 그거라구 대배심이 칼 리를 기소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
다 그러나 대배심이 소집되는 것은 5월 27일 순회재판이 시작된 다
음이니까 미래의 배심원들은 지금 클랜턴 시내를 활보하고 있거나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고 칼 리 헤일리의 기소 여부를 놓고 토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 우리는 기소되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예심
이후에 소집될 대배심에 달려 있는 문제지요
예심은 언젭니까
내일 오후 두십니다
불러드 판사가 그를 대배심에 넘길 것 같습니까
당연하
제이크는 불러드 판사가 이 대답을 들으면 오싹해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대배심은 언제 소집되나요
새로운 대배심들이 윌요일 아침에 선서를 하고 나면 그날 오후
쯤 사건이 다뤄질 것 같습니다
정식재판은요
헤일리 씨가 기소된다고 가정하면 재판은 늦여름이나 초가을이
될 겁니다
어느 법정에서요
포드 군의 순회법정이겠죠
판사는 누굽니까
오마 누스 판시럼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어디 출신인가요
미시시피 주의 체스터 출신이죠 밴 뷰렌 군에 있는
그림 여기 클랜턴에서 재판이 열릴 거란 말씀이십니까
재판지가 변경되지 않으면요
재판지 변경을 신청하실 겁니까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문제에 답할 때가 아니
라고 생각합니다 변호 전략에 대한 얘기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니까
왜 재판지를 변경하고 싶은신 거죠
흑인들이 많은 동네를 찾고 싶으니까 제이크는 그렁게 대답하고
싶었다
재판 전에 이미 알려진 사건이기 때문에 선입견이 개입될 우려
가 있습니다
재판지 변경은 누가 결정합니까
누스 판사의 고유권한입니다
보석신청도 하셨습니까
아니요 정식으로 기소되기 전까지는 보석이 결정되지 않을 것입
니다 저희 의뢰인은 보석을 신청할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
으로 살인죄의 경우엔 정식기소가 되고 순회법정으로 사건이 이송
된 다음이 아니면 보석이 결정되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면 보
석을 결정하는 건 누스 판사의 몫이 되는 거죠
헤일리 씨에 대해서 해주실 말씀은 없습니까
카메라가 계속 돌아가는 동안 제이크는 잠간 쉬면서 생각을 정리
했다 이게 또 하나의 논점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건강한 씨앗을
뿌릴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헤일리 씨는 서른일곱 살이고 자기 아내와 20년 동안 살아왔습
니다 딸 하나에 아들 셋을 키우고 있는 건실한 가장으로서 범죄경력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던 그는 코을 만에 있는
제지공장에서 일주일에 50시간씩 일해 왔습니다 부도를 낸 적도 없
고 약간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며 일요일이면 가족과 함께 교회로
갑니다 그는 지금 혼자서 많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 안 됩니다
몇 년 전에 그의 동생이 살인죄로 재판을 받지 않았나요
있습니다 그는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
당신이 그의 변호사였지요
맞습니다
당신은 포드 군에서 몇 건의 살인사건을 변호했나요
세 건입니다
그중에 몇 건이나 이겼습니까
세 건 다 이겼습니다
제이크는 느릿느릿하게 대답했다
미시시피에서는 배심원들에게 여러 가지 선택권이 주어집니까
그렇습니다 살인죄로 기소된 경우 배심원들은 세 가지 안을 선
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20년 징역형인 고살죄이고 둘째는 무기
나 사형에 해당하는 모살죄 셋째는 무죄입니다
제이크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씨익 웃고 덧붙였다
물론 기소가 될 경우에 말입니다
헤일리 씨의 딸은 상태가 어떻습니까
그 아인 일요일에 퇴원을 해서 지금 집에 있습니다 그애가 어서
낫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더 물을 게 있는지 살피는 눈치
였다 제이크는 지금부터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괜히 엉
뚱한 질문을 받게 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제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집어들었다
들러 주션서 감사합니다 더 알고 싶으신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들은 제이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수요일 아침 열시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웜러드는 장의사에서 산
아무런 장식도 없는 관 속에 나란히 묻혔다 지난번 오순절에 안수를
받은 목사가 얼마 안 되는 참석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두 개
의 관에 간단한 명복을 빌어주는 것으로 눈물도 별로 없는 간단한
입관예배가 끝났다
영구차 한 대가 앞장을 서구 뵉업과 먼지가 뽀얗게 앉은 시보레
가 뒤를 따른 장례 행렬이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교회 옆에 멈춰선 장례 행렬은 시신을 영구차에서 꺼냈다 콥과 윌러
드는 잡초가 무성한 작은 교회묘지에 서로 마주보면서 영면에 들어
갔다 몇 마디 위안의 말들이 더 오간 다음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
기 시작했다
콥이 어렸을 때 이혼을 하고 버밍햄으로 떠났던 콥의 아버지는 장
례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가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황급히 자취를 감
추었다 클랜턴에서 16킬로 정도 떨어진 호수 근처에 있는 하얀 목
조가옥으로 돌아온 콥의 어머니는 끝내 오열을 터뜨렸고 몇몇 여자
들이 그녀 주위에 모여 위로를 해주었다 콥의 두 형제와 친구들 사
촌들은 뒤뜰의 떡갈나무 아래 모여 앉아 흑인들에 대한 욕설을 늘어
놓고 있었다 그들은 씹는 담배와 위스키를 마시면서 흑인들이 자기
주제를 알던 옛날을 그리워했다 흑인들은 정부와 법의 보호 아래 곱
게 자라고 있고 이제 백인들에게는 할 일이 없다면서 사촌 중에 하
나가 KKK단에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며 연락해 보면 어멓겠냐고 물
었다 콥의 할아버지가 한때 KKK단 土속이었다는 것도 그가 귀띔
해준 말이었다 빌리 레이가 어렸을 때 그의 할아버지는 포드 군과
타일러 군에서 흑인들을 목매달아 죽이던 장면들을 들려주곤 했다
마침내 흑인들에게 복수를 하자고 의견을 모았지만 지원자는 하나도
없었다 바로 남쪽에 있는 잭슨 군과 네틀스 군에 지부를 두고 있는
KKK단이라면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들과 접
촉하는 일은 제일 먼저 얘기를 꺼낸 콥의 사촌이 맡기로 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준비한 음식을 말없이 먹은 뒤 나무 그늘 아
래로 위스키 잔을 들고 다시 모였다 예심이 두시에 있다는 얘기에
그들은 우르르 차에 올라탔다
살인사건 전의 클랜턴으로 돌아가려면 적어도 두 달 정도의 시간
은 필요할 것 같았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 비극은 불과 15초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클랜턴 전체의 분위기를 뒤집어놓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조용한 남부의 작은 도시 클랜턴은 자그마치 8천명이나
되는 기자 카메라맨 보도진 사진사들이 모여들어 하루아침에 언론
의 성지로 변해 버렸다 그중에는 인접 도시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중앙에서 파견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광장이나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헤일리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어느쪽에 투표하겠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수백 번씩 퍼
부어댔다 그러나 그 가운데 확실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하
나도 없었다 방송차량과 카메라를 실은 차들이 광장 구석구석을 휘
젓고 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고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느라 여념이 없
었다 오지는 그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이었다 살인사건 이
후로 오지는 하루에 대여섯 번씩 인터뷰를 해야 했다 지금은 모스
에게 인터뷰를 떠넘기고 그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모스는 보도진
들을 희롱하는 걸 아주 재미있어했다 그는 스무 개나 되는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하면서도 단 한 가지 사실도 누설하지 않았다 거짓말
을 한 적도 많았지만 이곳을 잘 모르는 이방인들로서는 그의 얘기
중 거짓말과 참말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다른 총잡이가 개입뤘다는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정말요 누굽니까
우리는 이 사건에 흑표범단의 한 세포가 개입되어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스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보도진들 중 일부는 그의 말을 열심히 받아적었구 일부는 그가
말한 것을 되뇌었으며 나머지는 그저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
었다
불러드 판사는 판사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고 전화도 받
지 않았다 제이크에게 전화를 걸어 예심을 포기해 달라고 간청한 것
이 전부였다 제이크는 물론 거절했다 판사실의 로비에는 수많은 보
도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문을 잠근 채 보드카를 홀짝
거리는 게 마음이 편했다
장례식 장면을 찍고 싶다는 방송사측의 제안이 있었다 콥의 형제
들은 돈을 내면 찍게 해주겠다고 말했지만 콥의 어머니는 반대하고
나섰다 보도진들은 장의사 바깥에서 기웃거리면서 찍을 수 있는 데
까지만 찍었다 그들은 장례 행렬을 따라가 매장 장면과 오열을 터뜨
리는 콥 부인의 얼굴을 찍다가 프레디라는 나이 많은 친척에게 욕을
얻어먹고 쫓겨나왔다
수요일의 커피숍은 조용했다 제이크를 비롯한 대부분의 단골손님
들은 성역을 침범한 이방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수
염을 기르고 이상한 억양의 말을 쓰며 구운 옥수수를 주문하지 않
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당신이 헤일리 씨의 변호사 아닌가요
커피숍 저쪽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물었다
제이크는 묵묵히 토스트만 먹을 뿐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맞습니까
맞다면 어쩔 거요
제이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가 유죄선고를 받게 될까요
난 지금 아침을 먹는 중이오
그는 어떻게 될까요
대답하지 않겠소
왜 대답하지 않으시는 거죠
대답하지 않겠다니까
그래요 왜죠
난 식사중엔 대답하지 않아요 대답하지 않겠다구
그럼 조금 있다가 얘기할 수 있을까요
약속하면 되지9 난 한 시간에 60달러Q
단골손님들이 야유를 보냈지만 이방인들은 끈질겼다 제이크는
돈은 안 받기로 하고 멤피스 신문과 인터뷰를 약속했다 제이크는 사
무실에 처박혀 예심준비를 하다가 낮 열두시쯤 유명해진 자기 고객
을 만나기 위해 구치소로 갔다 칼 리는 편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주차장에서 북적거리는 보도진들을 태연히 구경하고 있었으니까
구치소는 어때요
제이크가 물었다
나쁘진 않은데요 음식도 좋고 보안관 사무실에서 오지랑 같이
먹 어9
뭐라구요
오지랑 같이 밥먹는다구요 카드도 치초
지금 장난하는 거예요
아노 텔레비전도 보는데 어젯밤엔 당신 얼굴도 봤어요 멋지던
데요 제이쿠 내 덕분에 너무 유명해지는 거 아녜요
제이크는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나는 언제쯤 텔레비전에 나오죠 내 말은 죽인 사람은 난데 왜
당신하고 오지가 유명해지냔 말이에요
제이크의 고객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제이크의 기
분은 전혀 달랐다
오늘 한 시간쯤 있다가요
나도 들었어요 법정에 가야 된다는데 이유가 뭐죠
예심이에요 별거 아니죠 카메라가 있으니까 이번엔 상황이 좀
달라질지도 모르죠
난 뭐라고 말해야 되는 거죠
아문 말도 하지 마세요 단 한마디되 판사에게건 검사에게건
기자에게건 누구한테건 우리는 그냥 듣기만 하는 거예요 검사의
말을 듣고 그가 무슨 죄목으로 당신을 걸었는지 알아야 꽤9 검사는
아마 증인을 불러 심문을 할 거예요 오지가 나오게 되면 총하고 지
문 루니에 대해서
참 루니는 어때요
몰라요 생각보다 안 좋다는 것밖엔
이런 난 루니에게 총을 쏴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9 난 정말이
지 그를 보지도 못했어요
어쨌든 검사는 루니에 대한 가중 폭행죄로 당신을 기소할 거예
요 잘 들어요 칼 리 예심은 그냥 형식이에요 당신을 대배심에 넘
길 증거가 충분한가 보는 거라구요 물론 불러드는 당신을 대배심에
넘길 거예요 예심은 형식에 불과하니까
그럼 뭐하러 예심을 하는 거죠
제가 하자고 그랬으니까
제이크는 칼 리의 말에 대답하면서 자기를 비출 카메라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물론 저도 하기 싫어요 하지만 검사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는 좋
은 기회예요
제이그들은 날 잡아먹으러 들죠
그렇겠죠 어쨌든 듣기만 하자구요 예심 전략은 그거예요 알았

어쨌든 좋아요 근데 그웬하고 레스터한테 오늘 전화했어요
오늘은 안 했어9 월요일 밤에는 전화를 했지만요
어제 오지 사무실에 왔었다는데 오늘 나오겠다고 그랬대
오늘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올 텐데
제이크는 구치소를 나왔다 주차장에서 칼 리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 보도진들은 제이크를 보고는 그에게 몰려들었다 제이크는 아
무에게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질문이 쏟아지는 어수선한 가운데도
제이크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한시 삼십분 제이크는 법원으로 가 3층에 있는 법원도서관으로
숨어들었다
오지와 모수 그밖의 보안관 대리들이 주차장을 내려다보면서 망
할 놈의 보도진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한시 사십오분 구치소에서
법정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고속도로 옆에서 죽은 개를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들 잘네
모스는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여태껏 본 놈들 중에 제일 버룻이 없는 것 같아요 아주 끈질긴
놈들이에요 온 도시를 휘젓고 다니면서 사람들한테 대답해 달라고
쫓아다니던데요
프레이서가 말했다
그래도 저기 있는 놈들은 반밖에 안 돼 나머지 반은 벌써 법정에
서 기다리고 있을걸
오지는 말을 하지 않았다 신문에 그에 관한 기사가 실려서 심기
가 몹시 불편했던 것이다 일부러 보안을 느슨하게 해서 범행을 방
조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언론 때문에 아주 피곤했다 수요일에도
두 번씩이나 보도진들을 구치소에서 내쫓아야 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오지가 입을 열었다
뭔데요
모스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오지를 쳐다보았다
커티스 토드파 아직 감옥에 있나
예 다음주에 출감이죠
그자가 칼 리하고 약간 닮았지
왜요 뭘 하시게요
내 말은 토드도 흑인인데다 키나 몸무게가 칼 리랑 비슷하지 않냔 말이야
글쎄 그런 것 같은데도 뭐 때문에 그러세요
이번에는 프레이서가 물었다
모스는 창밖을 바라보는 오지를 보면서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안관님 그러시면 안 돼요
대체 무슨 일인데요
프레이서가 또 물었다
가서 칼 리와 커티스 토드를 데려오게 차는 뒤에다 대곤 토드는
이리로 데려와 교육을 좀 시켜야 하니까
오지의 명령이 떨어졌다
십분 후 구치소의 정문이 열리자 보안관 대리들이 흑인 한 명을
감싸고 보도로 내려섰다 두 명은 뒤를 막고 두 명은 앞장을 섰으며
나머지 두 명은 흑인의 양쪽에서 팔짱을 끼고 나왔다 흑인은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수갑을 차고 있었지만 묶여 있지는 않았다 보도진
들과 카메라가 일제히 달려들어 질문을 퍼부어대기 시작되었다
죄를 인정하실 겁니까
무죄를 주장하실 겁니까
어떻게 항변하실 건가요
헤일리 씨 심신장애를 주장하실 겁니까
죄수는 웃음을 띠면서 순찰차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보안관 대
리들도 웃으면서 보도진들을 무시했다 사진사들은 이 동네에서 가
장 유명한 흑인을 완벽하게 찍기 위해 분주하게 자리를 옳겨다녔다
죄수는 갑자기 경찰들을 밀치더니 달아나기 시작했다 전국의 시
청자가 보고 있는 앞에서 보도진들이 일거수 일투족을 다 보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죄수는 경찰에게서 우습게 빠져나온 것이다 그는 사
람들을 밀치고 펄쩍 뛰어올라 몸을 굴리면서 주차장을 거칠게 달려
나갔다 죄수는 진창을 건너고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숲 속으로 사라
져 버렸다 보도진들은 우왕좌왕하면서 소리를 질러댔고 몇몇은 범
인을 잡겠다며 쫓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보안관 대리들의
태도였다 그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뒤돌아서서 구치소로 들어
가더니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아 버렸다 얼빠진 보도진들을 아수라
장 속에 남겨두고 숲에 이른 커티스 토드는 수갑을 끄르고 유유히
집을 향해 걸어갔다 일주일 먼저 가석방된 몸으로
오지와 모스 칼 리는 뒷문을 통해 구치소를 빠져나가 법원에 이
르렀다 더 많은 보도진들이 앞다퉈 그들의 입정 장면을 찍었다
흑인들이 얼마나 와 있죠
불러드 판사가 신경질적으로 페이트에게 물었다
엄청나게 왔는데요
엄청나다구 백인도 물론 그만큼 많겠지
꽤 됩니다
꽉 찼나
발 디딜 틈도 없습니다
이런 겨우 예심인데
불러드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불러드 판사가 벌컥벌
컥 양주잔을 비워 버리자 페이트가 또 한 잔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진정하십시e판사님
제이크 다 그놈 때문이야 그렇게 얘기를 했으면 예심을 포기해
야 할 거 아냐 두 번이나 부탁했건만 내가 대배심에 넘길 걸 뻔히
알면서 이느 변호사든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이제 흑인들은 풀어
주지 않는다고 뭐라 그럴 거고 백인들은 오늘 당장 형집행을 하지
않는다고 미쳐 날뛰겠지 제이크 내 이걸 꼭 갚아주지 그놈은 카메
라 앞에서 폼을 잡고 싶어한다구 나는 또 선거를 치러야 하지만 자
기는 그럴 필요 없다 이거야 뭐이
그런 건 아니겠죠 판사님
보안관 대리는 몇 명이나 왔나
많습니다 보안관이 충원을 시켰으니까 안전합니다
기자들은
제일 앞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카메라는 안 돼
카메라는 없습니다
칼 리는 왔나
예 지금 브리건스 씨 옆에 앉아 있습니다 준비는 다 돼 있습니
다 모두 판사님을 기다리고 있죠
불러드 판사는 얼음도 타지 않은 보드카를 삼키고는 자리에서 일
어났다
갑시다
60년대 이전의 옛날처럼 법정 안은 중앙 통로를 사이에 두고 흑
인과 백인 두 패로 정확하게 갈라져 있었다 통로와 벽을 따라 보안
관 대리들이 순시를 돌았다 요주의 인물은 문 앞의 두 줄에 몰려 앉
은 술 냄새 나는 백인들료 그증에 둘은 빌리 레이 콥의 형제나사촌
으로 보였다 백인들이 포진한 왼쪽의 제일 앞줄과 흑인들이 차지한
오른쪽 앞의 세 줄에는 신문사와 방송국의 보도진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피의자와 변호사 그리고 불러드 판사의 모습을 뜯어보면서
열심히 법정 풍경을 기록하고 있었다
검둥이를 영웅으로 만들 생각인가 보군
뒤에 앉은 백인 중에 하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도진
들의 귀에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불러드 판사가 자리에 앉자 보안관 대리들이 뒷문을 잠갔다
첫번째 증인 신청하십시p
불러드 판사가 차일더스 검사 쪽에 말했다
보안관 오지 월스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보안관은 선서를 하고 증인석에 앉았다 그는 긴장을 풀고 앉아
총격 장면과 시체들 부상자 범행에 쓰인 총 총에 묻은 지문과 피고
인의 지문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차일더스
검사는 루니 보안관 대리의 자술서와 오지 윌스 보안관과 모스의 목
격자 진술서를 보안관에게 보여주었다 총을 쏜 사감은 칼 리 헤익리
라고 적혀 있었다 보안관은 루니의 서명을 확인or고 내랑이 사실과
같음을 확인해 주었다
다른 목격자가 또 있습니까
검사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예 머피라는 청소부가 사건 현장에 있었습니다
이름이 정확하게 뭡니까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머피라고 부르죠
좋습니다 그 사람과 얘기를 나뒀습니까
저는 아니고 다른 보안관 대리가 얘기를 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래디입니다
이번에는 래디가 선서를 하고 증인석에 앉았다 페이트는 판사실
에서 얼음물 한 잔을 더 가져다 판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동안 제이크
의 노트는 빠른 속도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오늘 증인 신청도 하
지 않을 것이고 반대심문을 안 할 것이다 가끔 검사측의 증인이 혼
동을 하고 사실과 다른 말을 할 경우엔 모순점들을 들어가며 증인을
꼼짝 못하게 하기야 하겠지만 제이크는 재판에서 증인이 계속 거짓
말을 하면 예심 때 자료를 보이면서 증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수법을
쓰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머피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까
검사가 물었다
머피라니 누구 말씀이십니까
이름은 정확하지 않지많 법원 청소부 말입니다
아 예 그 사림오 얘기해 봤습니다
좋습니다 그 사랍이 뭐라고 했습니까
뭐에 대해서 말입니까
차일더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래디는 신참이라서 증언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오지는 이번 일이 그에게 좋은 훈련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총격 장면에 대해서외 그가 말한 대루 그대로 얘기해 보세요
제이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판장님 예심에서는 불가피한 경우에만 전언증거를 채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증인이 바로 여기서 청소를 하는 사람인데
왜 소환하지 않는 것입니까
말을 더듬기 때문입니다
불러드가 중얼중얼 대답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말을 더듬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여기 나와서 삼십분
이나 지체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기각합니다 검사 심문 계속하세
9
제이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숨을 턱 내뱉으며 자리에 앉았다 불
러드 판사는 페이트를 보고 낄낄 웃어댔고 페이트는 다시 술을 가지
러 판사실로 갔다
자 래디 보안관 대리 머피가 총격 장면에 대해서 뭐라고 했습니

글쎄요 그 사람이 너무 놀란 상태라서 제가 그 사람 말을 제대
로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충격을 받아서 말을 진짜 심하게 더듬
었어요 제 말은 그러니까
요점만 얘기하세요
불러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예 흑인 남자가 두 명의 백인과 보안관 대리에게 총을 쐈다고 했
습니다
감사합니다
차일더스가 래디 보안관 대리에게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사건이 일어날 당시 어디 있었답니까
누구요
머피요
아 총격이 벌어진 층계 맞은편 층계에 앉아 있었답니다
그래서 다 봤답니까
예 다 봤답니다
총을 쏜 사람을 확인했습니까
저희가 흑인 열 명 정도의 사진을 보여됐더니 바로 저기 앉은 괴
고인이 맞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판장림 이상입니다
차일더스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브리건스 씨 반대심문 하시겠습니까
불러드가 물었다
아닙니다
제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대답했다
증인 신청하시겠습니까
없습니다
그외 신청하실 거나 요구사항 있습니까
없습니다
제이크는 보석은 신청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첫째
살인죄에 대해서는 불러드 판사가 보석을 허가하지 않기 때문에 신
청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둘째 판사에게 나쁜 인상을 줄 우려가 있
기때문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브리건스 씨 본 법정은 퍼의자를 대배심에 회
부할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피의자는 보안관의 책임하
에 구금되며 보석은 없습니다 이상 정회합니다
칼 리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수갑이 채워져 구치소로 이송되었다
아래층 법원 뒤쪽은 완전 통제되어 있었다 보도진들의 카메라는 정
문과 대기중인 순찰차 사이에서 피의자의 모습을 잠깐 잡았을 뿐이
었다 칼 리는 방청객들이 법정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구치소로 수감
되었다
경찰은 왼쪽에 있는 백인들을 먼저 내보내고 그 다음에 흑인들을
나가게 했다
보도진들이 제이크에게 몰려들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제이크는 잠
시 후 원형 홀에서 인터뷰를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기자들을 기다
리게 하고는 판사실로 가서 판사에게 인사를 한 뒤 3층으로 올라가
책을 뒤적거렸다 법원이 조용해지고 충분히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
될 때쯤 제이크는 뒷문을 통해 원형 홀로 내려가 카메라 앞에 섰다
붉은 글씨가 적힌 마이크가 제이크의 얼굴 앞으로 불쑥 비집고 들
어왔다
왜 보석을 신청하지 않으셨습니까
나중에 신청할 겁니다
헤일리 씨의 심신장애를 주장할 겁니까
이미 말씀드렸듯이 변호 전략에 대해서 얘기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우리는 일단 대배심 결과를 기다릴 겁니다 기소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기소가 확정되면 변호도 시작될 것입니다
버클리 검사 말로는 유죄판결을 내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거라던데요
버클리 씨는 종종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해 버려서 걱정스럽습니다
대배심이 끝나기도 전에 이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재판지 변경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는데요
저는 아직 신청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서 재판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민하는 게 아닙니다 기자들만
온다면 사막에서라도 재판할 사람입니다
당신과 검사 사이에 불편한 감정이 있는 것 같은데요
좋을 대로 생각하십시요 그는 능력있는 검사이고 저의 훌릉한
적수입니다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몰라서 그렇지
제이크는 몇 가지 질문을 더 받은 뒤 정중하게 자리를 피했다
수요일 밤 늦은 시각 루니 보안관 대리의 한쪽 다리는 무릎 아래
3분의 1이 무참히 잘려 나갔다 병원측은 오지 보안관에게 전화를
걸어 수술 결과를 알려주었다
루퍼스 버클리 검사는 목요일 아침신문을 훌어보다가 포드 군에
서 있었던 예심 기사를 보고는 코를 박고 자세히 읽어 내려갔다 그
는 제이크 브리건스에 의해 자기 이름이 신문에 언급된 것이 기분
좋았다 자기를 헐뜯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자기 이름이 찰자화되어
나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그는 제이크 브리건스를 싫어했지만
그가 카메라와 기자들 앞에서 자기 이름을 또렷이 댔다는 건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건 발생 후 이틀 동안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피의자와 변호사에게 쏠려 있었다 이제는 검사가 나설 때였다 브리
건스는 인기를 얻기 위해 누군가를 비난해서는 안 되었다 재판에 임
하면서 언론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책까지 낸 루시엔 윌뱅크스에
게서 배운 게 틀림없겠지만 그러나 버클리는 악감정은 없었다 지금
은 기분이 좋으니까 버클리는 그에게 의미 있는 출현이 될 최초의
기회를 안겨줄 거친 싸움에 대한 생각을 오랫동안 음미했다 버클리
는 포드 군의 법정에서 맞을 월요일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올해 마흔한 살인 버클리가 미시시피 주의 최연소 검사로 선출된
지 어느덧 9년이 지났다 세 번째 임기의 첫해를 보내고 있는 그는
슬슬 야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다른 공직으로 옮길 때가 된 것이
다 이를테면 법무장관이나 주지사로 그 다음엔 의회로 진출하고
그는 계획을 다 짜놓았지만 문제는 22관할7포드 타일러 포크 밴
뷰렌 밀번 군 외에는 그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는 자주 얼굴을 보이고 자꾸 떠들 필요가 있었다 그에게는 명성이
절실했다 루푀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아주 까다롭고 논쟁의 소지
가 많으며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커다란 살인사건 재판미시 승리
를 거두는 것이었다
루퍼스는 포드 군 바로 남쪽에 있는 포크 군의 스미스필드에서 살
고 있구 포드 군 북쪽에 있는 테네시 주 경계선 근처의 타일러 군에
서 자랐다 그는 정치적으로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고 성공한 검사
였다 미시시피 주에서 가장 많은 사형수를 내는 그는 선거 때마다
줄곧 9O퍼센트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목소리가 크고 강인하고
경건한 버클리는 신의 이름으로 그 임무를 진지하게 수행했다 사람
들은 범죄를 증오했고 그도 범죄를 싫어했다 그러니 이제 함께 힘
을 합쳐 범죄를 뿌리봅으면 되는 것이었다
루퍼스 버클리는 배심원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잘 알았다
가르칠 필요도 있고 간청을 할 괼요도 있곤 가끔씩 감동시킬 줄도
알아야 한다 배심원실에 돌아가서 생각하게 하는 게 아니라 핵심을
찔러서 그들을 화나게 해야 한다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쩨 기도를
올린 뒤 피고인의 목에 걸 밧줄을 들고 법정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
다 그는 22관할구의 정의를 위해서라면 흑인들의 입맛을 맞출 줄
도 알았고 백인들의 비위를 맞출 줄도 알았다 그래서 포드 군의 배
심원들은 그를 좋아했으며 그도 클랜턴을 좋아했다
포크 군 법원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방송국 직원들
이 회의실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고 버클리는 무척이나 기뻤다 그
는 당장이라도 인터뷰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지만 시계를
보면서 지금은 바쁘다고 말했다
그는 보도진들을 자기 사무실로 불러들이고 자기는 책상 건너편
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았다 가죽으로 된 근사한 의자였다 잭슨에서
왔다는 기자가 첫 질문을 했다
버클리 씨 피의자 헤일리 씨에게 조금이나마 동정을 느끼십니

루퍼스는 웃음을 지으며 눈에 띄게 심각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예 그렇습니다 자식이 강간을 당한 모든 아버지에게 저는 깊은
연민을 느낍니다 진심으료 그러나 제가 묵과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의 법체계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바로 이런 폭력적인 정의입니다
자녀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린 아들 하나와 딸이 둘인데 그중 하나는 헤일리씨의
딸과 나이가 비슷합니다 만약 제 딸이 강간을 당했다면 저 역시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법체계가 효과적으로
강간범들을 응징해 주길 바랄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법체계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죄를 예상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제가 나선 사건들은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도 유죄를 선고할 예정입니다
사형을 구형하실 겁니까
예 이건 틀림없는 모살입니다 사형 외에는 다른 처벌 방법이 없습니다
사형이 선고되리라고 보십니까
그럼요 제가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요구할 때마다 포드 군의
배심원들은 기꺼이 사형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항상 훌륭한
배심원들을 만났습니다
피의자의 변호사인 브리건스 씨는 배심원들이 기소를 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보던데요
버클리는 기자의 질문에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글쎄요 브리건스 씨가 그렇게 멍청한 줄은 몰랐습니다 이 사건은
월요일에 대배심이 소집될 것이고 그날 오후에 기소가 확정될 것입니다
사실 브리건스 씨가 더 잘 알 겁니다
포드 군에서 재판이 진행될 것 같은가요
재판이 어디서 열리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유죄를
밝혀낼 테니까요
심신장애를 주장할 경우를 생각하셨나요
저도 물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브리건스씨는
유능한 변호사입니다 그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이미 완벽하게 모든 시나리오에 대해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유죄 답변 흥정피고인의 유죄 인정 대가로 검찰측이 구형을 가볍
게 내리는 것읖긴이 가능성은요
저는 그런 협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브리건스 씨도 마찬가질 거구요
그리고 그런 건 기대하지 않습니다
브리건스 씨는 살인사건 재판에서 한번도 당신한테 진 적이 없다
던데요
버클리 검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는 책상에 바짝
몸을 기대면서 그 기자의 얼굴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장강도나 절도사건 같은 것에 대해서는
브리건스가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물론 항상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90퍼센트라는 숫자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카메라의 불이 꺼지고 기자가 고맙다고 말했다
천만에요 언제든지 오십시오
에셀은 뒤뚱거리며 층계를 올라와 제이크의 책상 앞에 섰다
브리건스 씨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제 남편하고 제가 어젯밤에 이
상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두 번째 전화를 받았
구요 저는 그런 전화라면 질색입니다
제이크는 에셀에게 일단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래 그들이 무슨 말을 했습니까
협박전화였습니다 그들은 제가 당신 밑에서 일하기 때문에 위협
을 하는 거랬어요 검둥이의 애인이랑 놀면 신상에 안 좋을 거라고
그러더군요 사무실에 온 전화는 당신과 당신 가족들을 해치겠다는
내용이었어9 전 정말 너무 무서워
제이크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에셀에게 어깨만 으
쓱거려 보일 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전화번호를 바러요 비용은 내가 댈 테니까요
그러고 싶진 않아9 17년 동안이나 써온 번호거든9
그럼 좋을 대로 해9 나는 전화번호를 바됐더니 별 문제 없어

그래도 전 안 바꾸겠어요
좋아9 그밖에 내가 뭐 도을 건 없나요
제 생각엔 브리건스 씨가 이 사건에서 손을 떼는 게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난 상관 안 해요 내 사건에 대해서 생
각하는 건 당신 일이 아닙니다 당신 생각을 알고 싶으면 내가 물을
겁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계세요
에셀은 잔뜩 화가 나 사무싶을 나가 버렸다 제이크는 보안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시간쯤 뒤 에셀이 인터폰으로 말했다
루시엔 씨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오늘 오후에 최근 사건들에 관
련된 자료들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어요 브리건스 씨 못 본 지가5年
도 더 됐답니다
줍니다 오후에 가져갈 수 있도록 자료 좀 복사해 주세요
루시엔은 한 달에 한 번씩 전화를 하거나 사무실에 들렀다 그는
사건기록들을 훌어보면서 법조계의 최근 동향을 꿰고 싶어했다 사
실 그는 잭 다니얼을 마시거나 주식을 갖고 노는 것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두 가지 일에 더 무모하게 덤벼들
었다 그의 집은 클랜턴 광장에서 여덟 블록 떨어진 언덕 위에 있는
하얀 집이었다 알코을 중독자인 그는 집 앞 현관에 앉아 클랜턴을
굽어보며 잭 다니얼을 마시고 판례를 읽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
냈다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뒤로는 점점 더 폐인이 되어갔다 간호사
이자 하녀이기도 한 여자가 정오부터 자정까지 술시중을 들었다 그
는 거의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렇게 시간 보내는 걸 더 좋아했다
제이크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루시엔을 방문해야 했다 그 방
문은 거의 의무적이었다 루시엔은 변호사와 판사 특히 주변호사협
회에다 대고 신랄하게 욕이나 퍼붓는 노인네였다 제이크는 그의 유
일한 친구이자 그의 지루한 잔소리를 만족스러을 만큼 들어주는 유
일한 청중이었다 그는 설교 중간중간에 제이크의 사건에 대해 부탁
하지도 않은 조언을 늘어놓곤 했는데 제이크는 그점이 가장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 루시엔이 자기 사건들에 대해 그처럼 많이 알고 있는
지 제이크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술을 사러 흑인 구역에 나타나는
것말고는 클랜턴 시내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데 말이다
제이크는 사브 자동차를 찌그러진 포르세 뒤에 세웠다 제이크는
자료를 루시엔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악수
를 하지도 않았다 제이크는 그냥 자료를 넘겨줄 뿐이었고 루시엔
역시 아무 말 없이 자료를 받아들 뿐이었다 두 사람은 기다란 현관
에 버들가지로 만든 흔들의자에 앉아 끌랜턴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광장 근처의 건물과 집과 나무들 사이로 법원 꼭대기가 삐죽 올라와
있었다
루시엔이 위스키나 와인 아니면 맥주라도 마시겠냐고 물었다 제
이크는 싫다고 했다 칼라는 제이크가 술 마시는 걸 질색했고 루시
엔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축하하네
윌요
헤일리 사건 맡은 것 말야
왜 제가 축하를 받아야 하죠
그렇게 큰 사건은 나도 맡아본 적이 없으니까
크다니 어떤 의미에서 크다는 얘기죠
광고 효과와 관심도 변호사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그거야 알
려지지 못하면 굶어 죽으니까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자기가 이름
을 알고 있는 변호사를 찾지 그러니까 자네도 변호사로 성공하려면
사람들한테 이름을 알려야 돼 법률회사나 큰 보험회사에 들어가서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한 시간에 백 달러 하루에 천 달러씩
요구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벗겨먹는 변호사가 된다면야1
루시 엔
제이크가 루시엔의 말을 자르고 대들었다
그런 얘기는 수없이 들었으니까 헤일리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시
It
좋아 좋아 누스 판사는 절대로 재판지를 바꾸지 않아
제가 재판지 변경을 신청했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신청 안 하면 바보지
왜요
이유는 간단해 여기는 흑인들이 25퍼센트밖에 안 되는 지역이지
만 22관할구의 다른 곳들은 최소한 30次센트는 되니까 밴 뷰렌은
40퍼센트나 되지 그 동네에서라면 흑인 배심원들이 많아질 테니까
재판지를 옮기면 자네가 흑인 배심원을 얻을 확률은 당연히 높아지지
여기서 재판을 했다가는 배심원들이 다 백인이 될 수도 있어 왜
안 믿겨 나는 이 동네에서 배심원이 전부 백인인 경우를 여러 번 봤다구
자네한테 필요한 건 결심을 망설이는 흑인이고 그를 이용해서
미결정 심리를 이끌어내는 거야
그럼 다시 재판하진아요
그럼 또 걸고 넘어져야지 그렇게 세 번만 하면 검사 쪽에서 포기
하고 말걸 망설이는 배심원 하나가 버클리의 점수를 깎아내리는 거
라구 세 번이면 그도 나가떨어진다구
그래서 누스 판사한테 흑인들이 많은 동네로 재판지를 바러 달
라고 얘기하란 겁니까
자네가 그러고 싶으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나라면 그러지 않
겠네 가서 그냥 엄살만 떠는 거야 선입견이 개입되어 있다느니 인
종 편견이 심한 군이라느니 하면서 물고늘어지는 거야
그런다고 누스가 넘어갈 것 같습니까
물론 안 넘어가지 이 사건은 지금도 대단한데 재판지까지 옮기
면 더 커질 거야 언론에서는 이미 재판을 시작했어 모든 사람이 이
사건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 포드 군만 관심을 갖는 게 아냐 미시시
피 주에 사는 사람치고 이 사건에 대해서 자기 판단을 내리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야 그렇다면 뭐하러 다른 군으로 재판지를 옮
기겠어
그럼 왜 신청을 해야 합니까
만약 헤일리가 유죄로 확정되면 뭔가 변명할 거리가 있어야 할
거 아냐 재판지 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공정한 재판을
받았다고 말야
조언 고맙습니다 만약 재판지를 변경할 수 있게 된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그런 건 신경쓰지 마 재판지 변경 신청을 하되 구체적인 장소는
대지 말라구
제이크는 그점을 놓치고 있었다 제이크는 보통 이런 방문을 통해
그에게 한수 배우곤 했다 제이크는 무슨 뜻인지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루시엔의 때묻은 잿빛 수염을 바라보았다 형법
에 관해서는 루시엔을 당할 재주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생
각이 들었다
샐리
루시엔은 얼음 조각을 숲 쪽으로 던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샐리가 누구죠
하녀야
루시엔이 대답하는 사이에 큰 키에 매력적으로 생긴 흑인 아가씨
가 문을 열고 나와 제이크에게 미소를 지었다
예 루시엔
잔이 비었어
그녀는 루시엔의 잔을 집어들었다 서른이 좀 안 돼 보이는 샐리
는 맵시가 좋고 미인이며 피부색이 아주 검었다 제이크는 냉홍차
를 부탁했다
어떻게 알게 되셨죠
제이크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루시엔은 멀리 법원 건물 위의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찾으셨냐니까요
몰라
몇 살이죠
루시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같이 살아요
침묵이 계속되었다
얼마나 주고 있죠尸
자네가 왜 그런 데 신경을 쓰나 자네가 에셀한테 주는 것보단
많이 줘 간호사이기도 하니까 됐어
그러시겠죠
제이크는 음흉하게 웃었다
제가 장담하건대 저 여자 그것보단 더 많은 일을 할 겁니다
자네가 걱정할 게 아냐
당신은 재판지 변경 신청에 별로 기대를 걸지 않는 것 같은데

루시엔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루시엔의 하녀가 위스키와 차를
내왔다
어려을 거야
왜요
계획된 살인이니까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그래 맞아
심신장애라고 변론할 거지
잘 모르겠어
그래야 돼 달리 방법이 없어 사고라고 얘기할 수도 없고 정당
방위였다고 할 수도 없지 수갑을 차고 무기도 없는 사람을 쐈으니
말이야 안 그래
그래요
그 시간에 집에 있었다고 그럴 수도 없지
그럼 남은 게 뭔가 미쳤다고 하는 수밖에 없지
하지만 루시엔 그는 제정신으로 한 일이에요 저는 엉터리 정신
과 의사를 데려을 자신도 없다구요 칼 리는 아주 철저하게 준비를
했으니까
루시엔은 웃으면서 위스키를 홀짝 삼켰다
그게 자네 문제야
제이크는 차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가볍게 의자를 흔들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루시엔은 그게 자네 문제야라고 되뇌었다
배심원들은 어쩌죠 그들은 동정적인 편이거든요
그러니까 심신장애를 주장하라는 거야 배심원들이 무죄선고를
할 의사가 있으면 그 길을 만들어줘야 할 것 아닌가 그들이 동정하
고 있다면 그를 풀어주고 싶어한다면 자네가 그들에게 구실을 제공
하는 거야 그럼 그들은 그걸 이용하는 거고 그들이 그를 진짜로 미
쳤다고 생각하느냐 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돼 중요한 건 그를 풀어
줄 수 있는 법적인 근거란 말야
그들이 풀어주려 할까요
몇 명은 그러겠지 하지만 모살을 주장하는 버클리의 공세도 만
만치 않을걸 그는 뛰어나다구 배심원들한테서 동정심을 빼앗아가
는 덴 선수지 버클리가 몰아치기 시작하면 칼 리는 그냥 백인을 죽
인 또 하나의 흑인으로 전락하고 마는 거야
루시엔은 얼음조각을 달그락거리면서 갈색 위스키를 멍하니 들여
다보았다
참 총에 맞았다는 보안관 대리는 어때 보안관 대리에게 죽일
목적으로 폭행을 가한 것은 사형에 해당돼 가석방도 없지 거기 타
져들지 않게 조심해야 해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래 만약에 그 불쌍한 보안관 대리가 절뚝거리면서 증인석에
나와 배심원물한테 실밥을 보여주었다간 그 위력이 대단할 텐데
실밥이라노
그래 실밥 어젯밤에 다리가 잘렸잖아
뭐라구요 루니의 다리가
칼 리의 총에 맞은 다리지
저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래 괜찮지 다리 잘린 것만 빼고
어떻게 아셨어요
정보원이 있지
제이크는 난간에 몸을 기댔다 갑자기 기운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자신이 없었다 루시엔이 가져가 버린 것 같았다 루시엔은 제이크의
사건에 구덩이를 파놓는 데 선수였다 루시엔에게 사건은 일종의
운동경기였고 대부분의 경우 그가 옳았다
이봐 제이크 자네 기죽이려고 얘기한 건 아냐 이길 수 있어
사정거리가 길긴 하지만 맞힐 순 있다구 헤일리를 데리고 나오려면
자넨 해낼 수 있다고 믿어야 돼 너무 재지 말고 언론엔 그만큼
나섰으면 됐어 이젠 자네 자리로 돌아가서 일해야지
루시엔은 현관 끄트머리로 나가 관목에다 침을 뱉었다
칼 리가 유죄란 사실을 명심해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유죄야
이 경우엔 틀림없지 헤일리는 법을 자기 손아귀에 움켜쥐고 사람을
둘이나 죽였어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우리의 법체계는 그런 사적 정의를
인정치 않아 하지만 자넨 이길 수 있어 자네가 이기면 정의는
퍼져나가는 거고 자네가 져도 마찬가지로 정의는 퍼져나가게 돼 있어
참 이상한 사건이지 내가 맡았으면 좋았을 텐데
진심이세요
그럼 진심이지 변호사들의 꿈이 바로 이거야 이기면 자네는 유명해지지
진짜 대어를 낚았다고 생각해 부자가 될지도 모르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물론이지 나도 뭔가 하고 싶어
저녁을 먹고 한나가 잠들자 제이크는 칼라에게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에 대해서 얘기했다 다른 살인사건을 맡았을 때도 이상한 전화
를 받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신음소리를 내거나 숨을 헐떡거리는 정
도였지 지금처럼 제이크의 이름과 그 가족을 들먹이면서 복수를 하
겠다고 위협한 적은 없었다
걱정돼요
칼라가 물었다
아니 애들이나 콥의 친구놈들이 하는 짓일 텐데 뭐
그래도 전화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만 그런 전화를 받는 게 아냐 오지는 수백 통도 넘게 받았고
불러드 판사랑 차일더스 검사도 마찬가지야 난 별로 걱정하지 않

점점 더 심해지면 어떻게 하죠
칼라 절대로 내 가족을 위험에 처하게 하진 않겠어 가족보다 중
요한 건 없으니까 만약 위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바로 사건에서
손을 떼겠어 약속해
그러나 칼라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레스터는 백 달러짜리 지폐 아흡 장을 꺼내 제이크의 책상 위에
자랑스럽게 내려놓았다
g백 달러밖에 안 되잖아요 우리가 합의한 건 천 달러예요
제이크가 말했다
형수가 살 게 좀 있다고 해서9
당신 술값에 쓴 건 아닌가요
제이크 무슨 말씀이세요 난 절대 형의 돈을 훔치지 않아요
좋아9 좋아 그웬은 언제쯤 나머지 돈을 은행에서 빌리겠대요
지금 제가 가려는 참이에요 앳캐비지라고 하셨죠
그래요 스탠 앳캐비지 시큐러티 은행 바로 옆 사무실이에요 나
도 잘 아는 사람인데 당신 재판 때도 거기서 돈을 빌렸죠 문서는 가
지고 왔어요
주머니에 있어요 얼마나 빌려줄까요
모르죠 당신이 직접 가서 물어봐요
레스터가 사무실 문을 나선 지 십분쯤 지나서 앳캐비지한테 전화
가 왔다
제이크 이분한테는 대출을 해줄 수가 없어 유죄가 확정되면 받
을 방법이 없다구 물론 자네가 잘하겠지만 그리고 이혼할 때 내가
자네한테 신세진 것도 있지만 사형을 앞둔 사람한테 어떻게 돈을 받
겠나
돈을 못 받으면 땅 10에이커가 자네 게 되잖아 앳캐비지
맞아 그 판잣집도 정화히 말하면 10에이커의 땅에 심어진 잡목
하고 판잣집이야 나히 새 아내는 좋아하겠지만 난 별로야
괜찮은 집이야 저당 잡힌 돈도 다 갚아간다고
판잣집치고는 깨끗하지 하지만 은행에서 볼 때는 별 가치가 없
는 집이라니까
전에도 빌려줬잖아
그때는 본인이 감옥에 있었던 게 아니고 동생이 있었지 그 사람
은 제지공장에 다녔곤 그 정도면 보증이 돼 근데 이번 경우는 달
라 그는 파치먼을 눈앞에 두고 있다군
고맙네 앳캐비지 자신감을 심어줘서 고마워
이봐 제이자네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냐 하지만 돈 빌려주는
건 달라 잘못 빌려줬다가는 감사에서 내가 박살난다구 어쨌든 그
사랗을 구할 수 있는 변호사는 자네밖에 없어 나도 자네가 이겼으면
좋겠어
레스터는 피플스 은행과 포드 내셔널 은행에도 들렀다 하지만 대
답은 똑같았다 헤잎리 씨가 석방되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지 못할
경우에는 돈을 받을 방법이 없다는 게 그들의 변명이었다
대단하군 일급 살인사건을 겨우 9백 달러에 맡다니
를로드네는 메뉴를 적어놓을 필요가 없었다 개업하고 처음 얼마
간은 메뉴를 적어놓았지만 세윌이 흐르면서 단골손님들이 쌓이다
보니까 다들 알아서 주문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토스트와 쌀만 빼會고 아침식사로 클로드는 모든 것을 내놓았으
며 값도 천차만별이었다 금요일 점심에는 돼지 등심 바비큐와 돼지
갈비가 나왔다 금요일 점심만 되면 주중에는 잘 오지 않던 백인들도
이 조그만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요리할 줄 몰라서 그렇지 백인들도
흑인들만큼이나 바비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클로드는 새로 알게 되
었던 것이다
제이크와 앳캐비지는 주방 근처 자리에 마주보고 앉았다 클로드
가 직접 돼지갈비 두 접시와 양배추 샐러드를 가져왔다
그는 제이크에게 몸을 숙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일 있길 바라네 헤일리가 나왔으면 좋겠어
제이크도 클로드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고마워 클로드 나는 당신이 배심원이 되었으면 좋겠어
클로드는 웃음을 터트리고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신청하면 되는 건가
클로드가 물러가자 제이크는 돼지갈비를 정신없이 먹으면서 돈
을 빌려주지 않는 앳캐비지도 같이 씹었다 이 응통성 없는 은행가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그가 기껏 내놓은 제안은 제이크가 공동 서
명을 하면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건 말도 안 돼 제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에 늘어선 사람들은 가게 이름이 씌어진 앞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클로드는 엄청나게 바빴다 주문을 받아 주방장
에게 넘겨주고 직접 요리도 하다가 돈을 받는 일 모두가 그의 차지
였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단골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간이 자
리 좀 내주십사 하고 부탁도 해야 했다 금요일 점심 때 손님들에게
배당되는 시간은 요리가 나온 후 이십분간이었다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 주어야 더 많은 바비큐를 팔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얘기는 그만하고 어서 먹으라구
클로드가 소리를 질렀다
십분 남았는데
칠분이야
수요일 메뉴인 구운 메기를 먹을 때는 삼십분을 뒀다 배를 발라
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수요일 메뉴는 잘 먹
지 않았다 클로드는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클로드의 할머니 때부
터 전해 내려온 조리 비법 때문이었다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메기
고기는 백인들의 창자에 가서 쩍쩍 달라붙었다 하지만 흑인들에게
는 별 문제가 없는지 수요일마다 차량들이 줄을 섰다
카운터 근처에 앉은 두 이방인은 큰 소리로 주문을 전하는 클로
드를 공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클로드가 이따금 다가와
그들을 노려보면 그들은 얌전히 고기를 먹는 척했다 기자가 틀림없
었다 아마 이 돼지갈비는 처음 먹어볼 거다 북부에서 온 놈들은 다
그랬다 그들 중에는 샐러드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러면
클로드는 궁시렁궁시렁 욕을 하면서 바비큐를 먹든지 나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손님들을 향해서 이 양반들
이 샐러드 요리를 먹겠대라고 놀려댔다
주문한 거 여긴소 빨리 먹고 나가쇼
클로드는 음식을 내오면서 기자들에게 말했다
스테이크 칼은 안 줘요
기자 하나가 퉁명스럽게 따젓다
클로드는 눈알을 굴리고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주방으로 걸어갔다
제이크의 얼굴을 알아본 기자는 몇 분 정도 눈치를 보다가 마침
내 제이크가 앉은 자리로 다가왔다
헤일리 씨의 변호사 브리건스 씨 맞죠
예 맞습니다 누구신데요
뉴욕 타임스의 로저 매키트릭입니다

제이크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그는 미소를 띠고 기자의 얼굴
을 쳐다보았다
헤일리 사건을 머릿기사로 실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
고 싶은데요 가능하면 빨리요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오후에는 별로 바쁘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오후에 뵙기로 하죠
네시 어떻습니까
태시요
매키트져은 클로드가 오는 겄을 보고는 급히 제자리로 돌아가면
서 덧붙였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다 먹었어요 그럼 얼른 계산하고 나가질9
클로드는 매키트릭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제이크와 앳캐비지가 식사를 끝내는 데는 십오분이 걸렸다 둘은
클로드의 성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가락까지 쪽쪽 빨면서 돼지갈
비가 아주 부드럽다는 얘기를 빼먹지 않았다
이번 사건으로 자넨 유명해지겠지
앳캐비지가 물었다
그랬으면 좋겠네 하지만 이 사건 자체는 짭짤하지 않아
농담은 그만두고 자네 변호사 생활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
이기면 고객이 많아지겠지 그건 사실이야 그렇게 되면 사건도
고를 수 있고 고객도 선택할 수 있지
재정적으로는 어떻게 될 것 같아
몰라 어떤 사건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사건이
많아지면 지금처럼 경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거야
그래 자넨 이제 경비 염려는 없겠어
스탠 잘 들어봐 우린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게 아냐 변
호사짓 해먹기가 옛날처럼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이 동네에서 일하
는 변호사가 열네 명인데 경쟁이 아주 심해 짭짤한 사건도 별로 없
는데 변호사만 많지 물론 큰 도시로 가면 더 해 법대 졸업생들은 점
점 늘어나니까 일자리가 없는 사람도 많아 내 사무실 문을 두드리
는 애들만 해도 1년에 열 명은 돼 멤피스에 있는 큰 법률회사에서는
몇 달 전에 감원조치를 취했다더군 무슨 말인지 알겠어 공장의 근
로자처럼 변호사도 해고된단 말이야 이젠 변호사들도 직업안내소에
가서 불도저 기사처럼 줄을 서야 할 판이야 비서나 트럭 운전사가
아니라 변호사가 말이야
내 질문이 이상하게 들렸나 보군
솔직히 나도 경비 걱정을 많이 해 한 달에 4천은 기본으로 들어
간다子 그리고 나는 혼자잖아 기껏 벌어들이는 게 1년에 5만밖에
안 돼 어떤 달은 괜찮고 어떤 달은 적자니 예측할 수가 없어 다음
달에 얼마 벌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니까 그래서 나한텐 이런 사
건이 중요한 거야 아주 좋은 기회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기회
야 내가 평생 변호사짓을 해도 뉴욕타임스 기자가 커피숍에 앉아
있는 나한테 인터뷰 좀 하자고 졸라대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아 내
가 만약 이기면 나는 미시시피 주에서 가장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될
수도 있어 그펀 경비 걱정을 안 할수 있겠지
만약 지면
제이크는 말을 멈추고 잠시 클로드의 눈치를 봤다
결과에 관계없이 이미 나는 떴어 이미 떴기 때문에 내가 질 경우엔
타격이 훨씬 더 심하지 포드 군에 있는 모든 변호사들은 내가 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구 그들은 칼 리를 죽이고 싶어해 왜 샘나니까
내가 굵직한 변호사가 되어 자기 고객들을 가로챌까봐 변호사들은 다 그래
자네도
물론이지 설리번 법률회사를 예로 들어볼까 나는 거기 있는 변호사들을
다 싫어해 하지만 질투하는 면도 분명 있어 나는 그들이
갖고 있는 고객 변론 기회 안정성 같은 게 부러워 매달 그들은 두둑한
돈을 받아 그건 거의 보장된 거고 크리스마스 때는 보너스도
챙기지 그들은 돈 많은 사람들을 대표하니까 잔돈 같은 건 신경도
안 쓴다고 하지만 난 뭐야 내 고객은 주정뱅이나 도둑 마누라 팬놈
남편을 때린 여자 불구자가 대부분이고 그중에 돈 많은 사람은
거의 없어 그나마 그런 사람들이 내 사무실에 얼마나 많이 나타나줄지도
장담할 수 없고
잠간 제이크
앳캐비지가 제이크의 말을 잘랐다
나도 이 얘기를 마저 끝내고 싶은데 클로드가 자꾸 우릴 쳐다보
는데 이십분이 다 된 것 같아
분명 같은 걸 시켰는데 제이크의 계산이 71센트 더 나왔다 클로
드는 계산서를 보더니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제이크가 돼지갈비 하
나를 더 뜯은 것이다
매키트릭은 의젓하고 정확하며 철저하고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었
다 포드 군에 기록된 살인사건 중에서 가장 유명한 헤일리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그는 지난 수요일에 클랜턴에 도착했다 먼저 인터뷰
를 한 오지 보안관과 모스 수석 보안관 대리는 제이크와 얘기해 보
라고 했다 불러드 판사에게 갔더니 그도 제이크를 추천해 주었다
매키트릭은 이미 그웬과 레스터도 만나본 상태였다 하지만 토냐와
의 인터뷰는 끝내 성사시킬 수 없었다 단골손님들의 안내로 커피會
과 티숍에도 들르고 휴이네 술집파 앤 여관에도 들렀으니까 클랜턴
일대는 거의 다 순례한 셈이었다 윌러드의 전처와 어머니는 만났고
콥의 어머니는 인터뷰를 하러 가보니 마침 다른 보도진들한테 둘러
싸여 있어 하지 못했다 콥의 형제 중 하나가 그에게 촌지를 찔러넣
어 주려 했지만 매키트릭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매키트릭은 제지공
장으로 달려가서 칼 리 헤일리의 동료들을 만나고 스미스필드에서
지방검사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며칠 더 취재를 하고 돌아갔다가 재
판 때 다시 내려을 예정이었다
텍사스 출신의 매키트릭은 말수가 적고 말이 느린데다 억양도 클
랜턴 사람들과 비슷했다 딱딱하고 어색한 현대 영어를 구사하는 다
른 기자들하고 달라 대하기가 좋았다
그게 윌니까
매키트릭은 제이크의 책상 가운데 놓인 기계를 가리켰다
녹음기입니다
제이크가 대답했다
매키트릭은 자기 녹음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제이크의 녹음
기를 쳐다보았다
왜 녹음을 하시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여기는 제 사무실이고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저니까 제가 원하
면 녹음을 할 수도 있는 거죠
문제가 생길까봐 그러십니까
그냥 예방책입니다 저는 제 말이 잘못 전해지는 게 싫거든료
저는 남의 말을 엉터리로 전하지는 않는데요
그렇다면 녹음을 해도 상관없젠죠
저를 믿지 못하시는군오 브리건스 씨
예 안 믿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제이크입니다
왜 안 믿죠
당신은 기자고 뉴욕에서 왔어요 뭔가 화끈한 얘기를 건지러 오
신 것 아닙니까 당신의 의욕이 지나치다 보면 우리 모두를 인종주
의자라고 매도하는 기사가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틀렸습니다 저도 남부 텍사슨 출신입니다
신문은 뉴욕에서 나오잖습니까
전 제가 남부인이란 걸 항상 잊지 않습니다
뉴욕에 가서 사신 지 얼마나 됐습니까
한 이십 년 됩니다
제이크는 그건 너무 긴 시간이란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그리고 제가 일하는 신문사는 화끈한 기사를 좋아하는 신문사가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재판은 아직 몇 달 뒤니까 당신네 신문이 어떤 논
조로 이 사건을 실을지 두고보겠습니다
별수 없군요 녹음하십시오
제이크는 녹음 단추를 눌렀고 매키트릭도 똑같이 했다
포드 군에서 칼 리 헤일리 씨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왜 공정한 재판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시죠
제이크가 되물었다
그 사람은 흑인에다 백인을 죽였어요 그리고 배십원석엔 백인들
이 앉겠지Q
당신 말씀은 칼 리 헤일리 씨가 인종주의자들한테 재판을 받을
거란 얘긴가요
저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 질문의 의도와는 전
혀 다릅니다 당신은 어떤 근거로 제가 당신들을 인종주의자로 못박
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 생각이 그렇기 때문이고 당신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전형적
인 남부 사람들이니까요
매키트릭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속기장에 뭔가를 적었다
제 질문에 대답해 주실 수 있습니까
좋습니다 우리는 포드 군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생
각합니다
그럼 여기서 재판 받기를 원하십니까
물론 재판지를 옮겨볼 겁니다
어 디로Q
장上水지 지정해 줄 이유는 없습니다 그건 판사 몫이니까요
M16총은 어디서 구했답니까
제이크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녹음기에 바착 입을 갖다대고 말
했다
모릅니다
그가 백인이었다면 기소가 되었을까요
그는 백인이 아니라 흑인입니다 그리고 아직 기소되지 않았고
그래도 만약 백인이었다면 어펐을 것 같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엔 백인이었다고 해도 기소는 됐을 것 같습니다
유죄판결은요
시가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아니s저는 괜찮습니다
제이크는 시가 상자를 열고 시가를 꺼내 끄트머리를 잘라낸 뒤 불
을 붙였다
그가 백인이었다면 유죄판결은 나지 않을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미시시피에서루 텍사스에서도 와이오밍에서푸 그는
무죄가 될 것입니다 뉴욕에선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요
왜 무죄죠
딸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럼 당신은 이해 못 할 겁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헤일리 씨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질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법제도가 흑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
군요
흑시 레이먼드 휴즈와 얘기해본 적 있습니까
그가 누군데요
전에 이곳의 보안관이었던 사람입니다 오지 월스 보안관에게 져
서 물러났죠 그는 백인이고 오지는 흑인입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
면 그는 31次센트의 득표율을 얻었습니다 백인이 75次센트인 이 동
네에서 말입니다 레이먼드 휴즈한테 가서 흑인에게 공정하게 제도
가 적용되는지 물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는 지금 법제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배심원석에 앉는 사람이 누구죠 다 오지 월스를 보
안관으로 뽑아준 유권자들 아닙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범인이 백인이었다면 틀림없이 무죄였을 거고
칼 리 헤일리가 범인이기 때문에 유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면
그게 어째서 공정한 제도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물론 공정하지 않죠
말씀하시고자 하는 게 뭔지 저는 이해를 못하겠는데요
제도는 사회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우리의 제도가 항상 공정한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소한 뉴욕이나 매사추세추 캘리포니아만큼은
공정합니다 그쪽에도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편견 내에서만큼은 공정하니까요
그래서 헤일리 씨가 뉴욕에서만큼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긴가요
이곳에 인종주의자가 있다면 뉴욕에도 그만큼 있습니다
이 동네가 특별히 인종 편견이 심한 건 아닙니다 이곳 공립학교도
인종을 차별하는 곳은 전혀 없습니다
법의 명령에 따른 겄뿐이지요
좋아요 그럼 뉴욕의 법정은 어떻습니까 수년 동안 당신들은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학교 차별을 폐지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학교 차별을 폐지한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닙니다 당신네 학교와
이웃들과 선거에는 차별이 없습니까 백인들만 앉아 있는 배심원석과
백인들만 앉아 있는 시의원회는 왜 모른 척하는 거죠
물론 과거에는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교훈을 얻었습니다 물론 우린 느리긴 하지만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여전히 우리를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다시 남북으로 갈라서서 싸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흥분해서 미안합니다 저는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변론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긴 아직 이르죠 기소도 안 됐으
니까S
당연히 기소가 되기는 하겠죠
당연히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이
기사가 언제 실리나요
일요일쯤에Q
하긴 기사가 언제 실리든 상관없습니다 이곳에서 뉴욕 타임
스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요 칼 리 헤일리는 기소될
겁니다
매키트릭은 시계를 들여다보았고 제이크는 정지 단추를 눌렀다
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언제 맥주나 한잔하면서 이 얘
기를 마저 끝내죠
저는 술을 못 합니다 하지만 초대에는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클랜턴의 첫번째 장로교회는 첫번째 감리교회 맞은편에 세워졌다
두 교회 모두 좀더 큰 침례교회에서 훤히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
다 침례교 신자가 제일 많으니 돈도 그만큼 많겠지만 일요일 점심
을 먹는 데는 장로교 신자나 성결교 신자가 더 유리했다 예배가 먼
저 끝나니까 장로교와 성결교 신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천천히 먹
고 있을 때쯤인 열두시 삼십분경 침례교 신자들이 도착해서 바깥에
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제이크는 늘 자기가 침례교에 다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교리가 너무 엄격하고 핀협한데다가 늦도록 일요일 저녁 예배를 보
기 때문이었다 침례교를 믿고 자란 칼라와 감리교에서 세례를 받은
제이크는 장로교를 믿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들은 교회에 대해서 대
체로 만족하였고 일요일 예배엔 꼬박꼬박 나갔다
일요일 아침 보통 때처럼 두 사람은 졸고 있는 한나를 사이에 두
고 신도석에 앉았다 설교엔 귀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제이크의 두
눈은 설교를 하는 목사를 향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전국의 시
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건실한 시민인 열두 명의 배심원 앞에 서서
버클리 검사와 맞서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칼라 역시 목사를 바
라보면서 주방을 새로 꾸밀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한순간 제이크는 몇
몇 호기심 어린 시선을 의식했다 그는 교우들이 자기 같은 유명인사
와 함께 예배를 보는 것에 약간의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
다 교우들 가운데는 못 보던 얼굴이 많았는데 오랫동안 교회에 나
오지 않던 길잃은 탕자 아니면 기자들인 게 분명했다 제이크는 자기
를 내내 쳐다보고 있는 사람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들이 모두 기자라
는 걸 확신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목시럼
제이크는 교회 밖에 나와 목사와 악수를 나누면서 거짓말을 했다
잘 있었나 제이크 텔레비전을 계속 지켜보았다네 우리 애들은
자네만 보면 좋아서 어깰 줄 모른다니까
목사의 목소리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부모님 댁으로 가 점심을 같이 할 시간이었다 제이크는 식구들을
차에 태워 클랜턴 시내를 빠져나왔다 제이크의 부모는 캐러웨이 시
내에 확 트인 넓은 집을 가지고 있었다 6천여 평 정도 되는 땅에 나
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옛날 집이었다 세 블록 건너에는 메인 가가
있었고 두 블록만 가면 제이크와 그의 누이가 12년 동안 다녔던 학
교가 있었다 제이크의 부모는 두 분 다 은퇴했지만 해마다 여름이
면 캠핑카를 타고 대륙을 휘젓고 다닐 만큼 정정했다 두 분은 내일
캐나다로 떠났다가 노동절 이후에 돌아오실 예정이었다 제이크는
두 분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고 딸은 지금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
었다
일요일 점심 제이크의 어머니 에바가 차리는 식탁은 남부 고유
음식들의 전시장이었다 구운 고기와 신선한 야채들이 한 상 가득 차
려졌다 삶고 으깨고 구운 요리와 날로 먹을 수 있는 요리 그리고 집
에서 직접 만든 롤케이크와 고깃국물 소수 수박 멜론 복숭아 파이
레몬 파이 딸기 쇼트케이크 같은 것이 나왔다 사실 그 많은 음식들
을 다 먹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이크네 부부는 남는 것은 싸와서 일
주일 동안 양식으로 요긴하게 먹었다
부모님들은 어떠시냐긴
브리건스 씨는 롤케이크를 건네주면서 칼라에게 물었다
잘 계세요 어제 어머니하고 전화 통화를 했어요
아직도 녹스빌에 계시냐긴
아노 윌밍턴으로 여름휴가 가셨어요
너희들도 그리로 갈 거지
시어머니 에바가 커다란 주전자에 담긴 차를 따라주면서 물었다
칼라는 제이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이크는 태연한 표정으로 한
나의 접시에 리마콩을 얹어주고 있었다 그는 칼 리 헤일리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월요일 밤 이후로 식사 때마다 오간 얘기였고 같
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이젠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예 저희도 갈 생각인데 이이 스케줄이 어떨지 몰라서요 이번
여름은 바쁠 것 같아요
우리도 들었다
에바는 그 사건을 맡은 뒤로 한번도 전화를 하지 앉은 게 야속했
는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근데 얘야 너네 전환 망가졌냐
브리건스 씨는 통화가 안 되는 이유를 제이크에게 물었다
예 번호를 바됐습니다
한나는 쇼트케이크에 코를 박고 있고 나머지 네 사람은 저마다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건 교환수한테 들어서 안다만 교환수가 바펀 번호를 모른다더

죄송해요 진짜로 바빴어요 정말 정신이 없었다구요
우리도 신문에서 다 읽었다
브리건스 씨의 말에 뒤이어 에바가 포크를 내려놓더니 내내 속에
담아둔 얘기를 꺼냈다
얘야 네가 진짜로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난 네 식구가 걱정된다 아주 위험한 사건이야
브리건스 씨도 제이크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 사람 사람을 아주 잔인하게 죽였더라
그놈들은 그의 딸을 강간했어요 만약 한나가 강간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제이크가 부모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엄마 강간이 뭐야킨
한나는 아빠가 자기 이름을 들먹이자 호기심이 나는 모양이었다
넌 몰라도 돼 우리 화제 좀 바꿀까요
칼라가 굳은 얼굴로 브리건스 일가를 바라보자 그들은 묵묵히 다
시 식사를 시작했다 칼라는 평소처럼 교묘하게 적절한 화제를 찾아
냈다
제이크는 아버지는 보지도 않고 어머니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조
용하게 용서를 구했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싫어요 하도 시달려서요
그럼 우리는 신문을 통해 네 얘기를 듣는 수밖에 없겠구나
브리건스 씨가 그 화제를 마무리지었다 이어 가족들은 캐나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브리건스 일가가 점심을 마칠 무렵 시온감리교회는 격앙된 분위
기에 쉽싸여 있었다 올리 에이지 목사가 신자들에게 성령의 채찍질
을 가하자 집사들은 신들린 듯 춤을 추었고 장로들은 찬송가를 불
렀으며 몇몇 여신도들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신자
들의 외침이 커지면서 두 팔이 천국을 향해 간절하게 펼쳐졌다 아
이들은 공포에 질려 어른들의 의식을 지켜보았다 성가대는 몸을 마
구 흔들어대고 소리를 지르면서 손발을 부들부들 떨었다 찬송가는
급기야 다른 음계로 옮겨갔다 오르간도 피아노도 성가대도 제멋대로였다
진홍빛 레이스로 테를 두른 하얀 성복 속에 묻힌 목사는 연
단을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소리를 지르고 기도를 하고 비명을 지르
듯 하나럼의 은총을 구하면서 땀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기절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피곤에 지쳐 기절
하는 신자들은 마치 순번이라도 정한 것 같았다 수년간의 목회 경험
을 통해 에이지 목사는 어느 순간에 신자들이 절정에 이르고 종교적
흥분이 식어가는지 어디쯤에서 영광도 멈춰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목사는 재빨리 연단으로 돌아가서는 하
나님의 힘으로 연단을 쾅 내리쳤다 음악이 멈추고 환각이 끝났다
기절했던 자들이 일어나고 아이들의 눈에서 눈물이 그쳤다 신자들
은 제자리를 찾아 허둥거렸다 이제 설교를 할 시간이었다
목사가 막 설교를 시작하려고 하는 찰나 뒷문이 열리면서 토냐네
가족이 성소로 들어왔다 불쌍한 토냐는 절뚝거리면서 어머니의 손
을 꼭 잡고 있었고 아이들과 레스터 삼촌이 그 뒤를 지키고 있었다
헤일리 일가는 천천히 통로를 걸어들어와 맨 앞자리에 앉았다 목사
가 오르간 주자에게 고갯짓을 했다 천천히 오르간 연주가 시작되었
다 성가대의 콧노래가 흘러나오자 집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가
대에 맞춰 찬양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 높이를 맞춰가면서 장로들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갑자기 크리스털 권사가 의식을 잃었다 그러자
마치 무슨 신호라도 한 양 다른 권사들도 하나둘 쓰러졌다 이제 장
로들의 노랫소리는 성가대의 목소리를 넘었다 그것은 다시 성가대
를 자극하는 효과를 연출했다 피아노 소리가 오르간과 성가대의 조
화를 깨고 들어오자 오르간도 질 수 없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에이
지 목사는 성복을 휘날리며 연단에서 내려와 헤일리 일가를 위해 춤
을 추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몰려나왔다 집사도
장로도 권사도 우는 아이들도 헤일리 일가를 위해 영혼의 춤을 추
었다
칼 리의 구치소 생활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물론 집보다는 못했지
만 칼 리는 그곳에도 나름대로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재소자의 인권에 관한 법률 덕분에 새로 단장한 교도소는 그런대로
안락했다 교도소가 그런 형편이니 그 안에 마련된 구치소 또한 마
찬가지였고 주방에서 일하는 흑인 아줌마 둘은 가끔씩 음식을 착복
하기는 하지만 칼 리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내놓았다 오지는 그들
의 비리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주었다
40項의 재소자에게 음식을 퍼주는 일은 모범수의 차지였다 40명
가운데 열세 명은 파치먼에 속한 죄수들이지만 파치먼에 자리가 빌
때까지 임시로 구치소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내일이라도 파치먼
을 향한 공포의 여행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보기 흉하게 뻗은 삼각
주의 농장에 자리잡은 파치먼 교도소는 음식도 침상도 공기도 훨씬
안 좋고 끔찍한 모기와 험상궂은 죄수들 턱없이 부족한 화장실 등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곳이었다
칼 리가 있는 곳은 이감되기를 기다리는 열세 명의 죄수 옆방이었
다 그들은 둘만 빼고 나머지는 흑인이었고 하나같이 폭력적인 죄수
들이었지만 칼 리를 우습게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칼 리는 같
이 방을 쓰고 있는 좀도둑 두 놈에겐 완전 공포의 대상이었다 매일
저녁 칼 리는 보안관 사무실에 불려가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봤
다 칼 리는 변호사 제이크나 버클리 검사만큼 인기를 좋아하는 사람
이었다 칼 리는 기자를 만나 자기가 감옥에 가면 안 되는 이유와 어
쨀 수 없었던 범행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었다 제이크가 그렇게 말리
는데도
그웬과 레스터가 일요일 오후에 왔다가 돌아가자 오지와 모스는
칼 리를 데리고 몰래 구치소를 빠져나가 병원으로 갔다 칼 리가 제
안했고 오지가 승낙한 일이었다 칼 리는 루니의 다리와 얼굴을 번
갈아 쳐다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악수가 오가면서부터 칼 리는 눈물
을 글썽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단 말만 되풀이했다 맹세코
두 놈말고는 아무도 해칠 생각이 없었으며 할 수만 있다면 루니의
다리를 원상태로 돌려놓고 싶다고도 말했다 루니는 칼 리의 사과를
기꺼이 받아주었다
세 사람이 다시 구치소로 돌아와 보니 제이크가 보안관 사무실에
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지와 모스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
뒤 칼 리를 데리고 왔다
어디 갔었던 거예요
제이크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칼 리를 다그쳤다
병원에 갔었어요 루니를 만나러
뭐라고요
뭐 잘못됐어요
이 다음에 그런 짓을 할 때는 꼭 나한테 얘기해야 해요
루니를 만나러간 게 잘못이에요
주에서 당신을 가스실로 보내기로 맘만 먹는다면 루니는 가장 훌륭한
증인으로 이용될 거예요 그뿐이에요 루니는 우리 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루니하고 얘기할 때는 항상 내가 입회해야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 알았어요
오지가 그런 짓을 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제이크가 중얼거렸다
내가 제안했던 거예
그래요 앞으론 뭐든 제안할 게 있으면 나한테 하라구요
알았어Q
최근에 레스터하고 얘기한 적 있어요
예 오늘 그웬하고 같이 왔었어요 먹을 것 좀 사가지교 은행 얘
길 하던데
제이크는 수임료에 대해서 얘기할 작정이었다 9백 달러에는 칼
리의 변호를 맡을 수가 없었다 제이크는 이 사건에 최소한 3개월을
전적으로 매달려 있어야 하는데 9백 달러는 그 기간 동안 받는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다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일하는 것
은 그나 그의 가족들을 위해서 온당치 않은 일이었다 칼 리는 돈을
모아을 수 있었다 친척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고 그웬의 친정 쪽은
대가족이었다 땅이나 차를 팔아서라도 그를 도와줄 친척은 수도 없
이 많은 것이다 제이크는 돈을 받지 않고는 일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집문서를 주면 안 될까요
칼 리가 제안했다 제이크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칼 리 내가 윈하는 건 당신네 집이 아니라 현금이에요 정확하게
6천5백 달러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방법을 알려줘요 그대로 할 테니 당신은 변호
사니까 방법을 알 거 아녜요
제이크는 이제 이런 말씨름하기도 지겨웠다
칼 리 9백 달러 받고는 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사건 때문
에 파산하고 싶지는 않단 말입니다 나는 변호삽니다 다 먹고 살자
고 이짓 하는 거란 말이에요
글쎄 돈은 준다니까요 약속해요 다만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반드시 줄 거예요
그래 죽지 않으면 받을 수 있겠지 제이크는 힘이 쭉 빠졌지만 어
쨌든 화제를 바됐다
내일 대배심이 열리면 당신 사건을 다를 겁니다
그럼 법정에 가야 되나요
아노 내일 정식기소가 된다는 얘깁니다 기자들과 방청객들이
빽벡이 들어찬 상태에서 누스 판사가 내일 5월 순회재판을 시작합니
다 버클리 검사는 카메라를 붙잡아두려고 혈안이 될 거예요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내일 오후에 무장강도사건부터 시작할 거예요 만
약 내일 기소가 되면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법정에 나가 정식기소 절
차를 밟아야 됩니다
그게 뭐죠
공소죠 판사가 여러 사람 앞에서 당신이 기소되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절차예요 그들의 공세가 시작된다는 얘기고
우리는 죄가 없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런 다음 누스
가 재판날짜를 정합니다 내가 보석을 신청하면 판사는 안 된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내가 보석이란 말을 꺼내자마자 버클리는 길길이 날
뛸 거예요 하여튼 그 사람 생각할수록 정이 안 가요 아주 고약해
왜 보석은 안 된다는 거죠
살인죄니까요 보통 살인죄는 보석허가를 안 합니다 할 수는 있
지만 안 하죠 보석을 허가해도 당신은 낼 돈도 없잖아요 신경쓰지
말아9 재판 때까지는 구치소에 있어야 할 겁니다
나 해고됐어요 알고 있어요
언제요
그웬이 금요일에 가서 봉급을 받아왔어요 그웬한테 그랬대요
세상에 11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겨우 닷새 못 나갔다고
해고시킬 수 있어요 그 사람들 내가 못 나갈 거라고 생각하나봐
9
안됐네9 칼 리 정말 안됐어
존경하는 재판장님인 오마 누스가 항상 존경할 만한 인물인 건 아
니었다 22관할구의 순회판사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별로 내세
울 게 없는 변호사였다 하지만 누스는 정치 수완만큼은 남에게 뒤지
지 않았다 미시시피 주의원으로서 5선의 경력을 쌓는 동인 그는 슬
슬 돈맛을 알기 시작했고 정치 공작에도 눈이 트이게 되었다 재정위
원회 의장이 된 그가 연봉 7천 달러를 받으면서 어떻게 그처럼 부유
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미시시피 주의원들처럼 그도 선거를 치러 재신임을 얻
어야 했다 그러나 1971년 여름 5선에 빛나는 누스도 무명후보한테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리고 I년 후 순회판사였던 루퍼스가 죽자
누스는 의회에 심어둔 친구들을 사주해서 남은 임기를 채을 순회판
사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1975년 선거를 통해 순회판사직을 지켰
고 1979년과 1983년에 연속 재선되었다
권력으로부터의 빠른 추락 덕분에 그는 회개하고 자신을 재정비
하였으며 게다가 매우 겸손해지기까지 했다 정신을 차린 그는 법률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위태로웠지만 판사로서의 자리는
서서히 잡혀갔다 연봉 6만 달러란 높은 봉급으로 인해 품위있는 삶
도 회복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예순셋 어쩌면 나이가 그에게 지혜
를 주었는지도 몰랐다 이제 변호사들도 다 그를 좋아했고 대법원도
그의 판결을 중시해 주었다 그는 조용하지만 부드럽고 도량이 있으
면서도 엄격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띄는 특징은 그의 코였다
길고 뽀족하기로 소문난 그의 코는 팔각형의 독서용 안경이 올라가
앉기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오마 누스는 항상 그 안경을 쓰고 있었
다 하지만 그 안경 때문에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은 아니었다 안경은
그냥 얹어져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유명한 코와 큰 키 멍청해 보이
는 골격 제멋대로 헝클어진 숱 많은 잿빛 머리 찢어질 듯한 목소리
같은 그의 특징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의 별명이 탄생했다 이차보드
Ichabod성서에 나오는 영광은 사라졌구나란 뜻의 탄식옮긴이 누
스 이차보드 누스 재판장
누스 판사가 법정에 들어섰다 오지 보안관은 웅얼거리는 소리로
포드 군의 5월 순회재판을 알리는 법령을 낭독했다 방청객들이 자
리에서 일어났다 미사여구로 가득 찬 목사의 기도가 끝나자 사람들
이 자리에 앉았다 예비 배심원들이 법정 한편에 앉아 있었다 범인
과 원고 피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기자들 그리고 별로 상관 없
어 보이는 사람들까지 법정을 가득 메웠다 누스 판사는 항상 순회재
판 첫날에는 변호사회에 소속된 모든 변호사들을 출석시켰다 그들
은 저마다 협회 기장들을 하나씩 앞에 꽃아놓고 사뭇 늠름한 모습으
로 배심원석에 앉아 있었다 검사 버클리와 검사보 무스그로브는 미
국의 권위를 대신하기라도 한 사람들처럼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원고
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정리와 서기 보도진들은 소송일람표가 놓인
작업대 뒤에 입회해 있다 방청객들은 재판장석으로 올라가 의자에
앉는 누스 판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들은 유독
빳빳한 예복과 괴상한 안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누스 판사가 큰소리로 꽥꽥거렸다 그는 마이크를 자기 앞으로 바
짝 당겨놓았다
다시 5월 순회재판을 위해 포드 군에 오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
밸게 생각합니다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여느 때처림 참석해 주신 변
호사회 회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기는 혹시 오늘
참석하지 못한 분이 계시면 명단을 적어서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얼굴을 좀 뵙고 싶군요 오늘도 배심원이 될지도 모르는
포드 군 시민 여러분께서 많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우리의 법제도를 유지하는 데 아주 긴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
시켜 드리면서 아울러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저희는 일단 대배심 명단을 뽑은 뒤 그중에서 이번주와 다음주에
재판을 같이 할 배심원들을 선택할 것입니다 자 갈 길이 멉니다 변
호사 여러분들께 나눠드린 종이에 적힌 대루 소송사건들이 꽉 차 있
고 이번주와 다음주엔 하루에 두 건씩 재판을 진행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형사사건의 경우 전격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으므로
계류될 소송 숫자가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빠른 시간 내에
모든 사건들이 처리될 수 있도록 변호사회 회원 여러분께서 열심히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대배낌 명단이 확정되고 그들이 기소를 시작하면 제가 재판
일정을 잡겠습니다 자 그럼 기소가 확정된 소송사건들을 확인하겠
습니다 나머지 사건들을 기소할 대배심 명단이 확정되면 회원 여러
분은 자리를 뜨셔도 좋습니다 형사사건부터 부르겠습니다 워렌 모
크 무장강도사건 오늘 오후에 재판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요
버클리 검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미시시피 주정부는 본 재판을 개시할 만반의 준비를 갖췄습니

저희도 준비됐습니다
피고인측 변호를 맡은 틴데일이 말했다
재판기간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판사가 물었다
하루 반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버클리 검사가 대답을 했고 틴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오늘 아침 배심원을 확정해서 오후 한시에 재판을 속
개하겠습니다 다음 윌리엄 달 사건 여섯 건의 위조에 대해서 기소
가 되었습니다 내일 재판하기로 되어 있는데요
재판장님 합의가 될 것 같습니다
검사보 무스그로브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로저스 흔턴 사건 두 번의 중절도죄로 기소되었습니
다 마찬가지로 내일 재판이군Q
누스 판사는 소송 일람표를 쭉 훌어나갔다 모든 사건마다 대답은
똑같았다 버클리 검사가 일어나서 준비가 됐다고 말하거나 검사보
무스그로브가 재판부에 합의사실을 알리면 변호사들은 자리에서 일
어나 한마디 하거나 가만히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크는 5월 순회재판에 걸린 사건이 없었다 그래서 애써 따분
한 표정을 지었지만 소송사건을 호명하는 과정은 그리 지루한 것만
도 아니었다 누가 사건을 맡았고 경쟁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래의 고객인 방청객들에게 얼굴을
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설리번 회사에서는 반 정도 되는 변호사가 나와 배심원석 앞줄에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지루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경력이 웬만큼
되는 변호사들은 절릴로 순회재판 첫날에 참석하지 않았다 옥스퍼
드의 연방법원에서 재판이 있다고 하거나 잭슨에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거짓말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원칙적으루 변
호사회의 회원이 다른 지방에 가서 일하는 것은 온당치 않기 때문에
설리번에서는 중간 고참급 변호사들을 찹석시켜 판사의 비위를 맞췄
다 그들은 회사가 맡고 있는 민사사건에 여러 가지 이유를 대가며
연기를 하려고 들었다 가령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다거나 이행중이
라거나 이행이 지연되고 있다거나 하는 이유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가능하면 재판을 받지 않고 적정한 금액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노리는 것이었다 그들의 주고객인 보험회사가 재판에 계류되는 것
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법적인 절차를 밟는 시늡만 해도 시간당 수임
료를 받아낼 수 있기 때문에 그들 역시 土송보다는 합의를 더 좋아
했다
설리번 회사처럼 아첨이나 하는 법률회사를 피해 문제를 해결하
는 것이 돈도 적게 들고 깨끗하게 일처리를 할 수도 있었지만 보험
회사나 그들의 조정자들은 너무도 어리석고 인색했다 그래서 제이
크 같은 거리의 변호사들은 처음부터 공정하게 재판이 진행됐으면
받았을 금액 이상의 액수를 보험회사를 상대로 지불 요청하거나 손
해배상청구를 하여 생찰비를 벌었다
제이는 보험회사가 싫었고 1들의 변호사들이 싫었다 특히 제
이크 나이 또래의 젊은 변호사들이 회사를 위해서라면 자살이라도
할 것처럼 충성을 바치는 꼴이 역겨웠다 1년에 20年 달러를 벌기
위해서 돈 있는 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척하다가 정작 소송에 들
어가서는 일부러 직무를 유기하는 그들의 작태가 싫은 것이었다
제이크는 그중에서도 로터하우슨 명함에 의하면 윈스턴 로터하우스라는
키 작은 백인 변호사를 가장 싫어했다 알이 작은 안경을
쓴 그는 하버드 대학 출신으로 그동안 몸바쳐 충성한 덕분에 정식
파트너 자리는 따논 당상이었다 그는 지금 두 명의 동료변호사 사이에
점잔빼고 앉아서는 일곱 개의 소송 파일을 뒤지고 있었다 판사의
호명에 대답만 하고 있어도 그는 시간당 백 달러를 챙길 수 있었다
누스 판사가 민사사건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콜린스 대 왕립상호보험회사 사건
로터하우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초가 일분이 되고 일
분이 한 시간이 되면 돈이 들어온다 사건이 많아진다는 얘기고 곧
정식 파트너가 된다는 얘기다 서두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재판징림 본 사건은 지난 수요일부터 일주일간 유예기간을 가졌
습니다
저도 압니다
누스 판사가 대답했다
에 그런데 재판장님 저는 이 시점에서 유예기간 지속 신청을 해
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멤피스 연방법원에 지난 수요일까지 진행되
어온 양측의 분쟁에 관한 사전합의 절차를 신청했지만 안타깜게도
기각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유예기간 지속을 신청하
는 서류를 작성한 것입니다
원고측 변호사인 가드너가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재판장님 본 사건의 유예기간은 지금까지 2개윌이나 주어졌습
니다 지난 1월에 재판하기로 되어 있던 본 사건은 로터하우스 변호
사의 처가쪽 장례 때문에 연기되었습니다 작년 11월에는 삼촌이 죽
었다고 연기시켰고 작년 8월에도 비슷한 핑계를 대고 연기한 바 있
습니다 이제 더이상 돌아가신 분이 없다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법정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로터하우스의 얼굴은 순식간에 시뻘
개졌다
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로터하우스 변호사는 지
금 이 사건을 영원히 연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제 재판할 때가
되었고 제 의뢰인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떠한 연기 신청도 반대하는 바입니다
로터하우스는 누스 판사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안경을 벗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로서는 이런 답변을 해야
답변은 필요없습니다
누스 판사가 로터하우스의 말을 가로막았다
더이상의 연기신청은 기각합니다 재판은 수요일에 시작하겠습
니다 연기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잘한다 누스 제이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렸다 누스는 설리번 회
사를 상대로 심술을 부리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제이크는 로터하
우스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제이크가 맡은 민사사건 두 건은 8월로 넘어갔다 누스 판사는 민
사사건의 호명을 끝내고 변호사들을 법정에서 나가게 했다 그는 방
청객을 향해 대배심의 역할과 중요성 절차 등을 설명했다 누스는
대배심은 재판배심원과는 다르지만 똑같이 중요하면서도 많은 시간
이 걸리지 않는다고 말해준 뒤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배심원으로서
재판에 임할 자격이 있는지 육체적인 능력 감정적인 상태 면제조항
나이 등에 관한 것이었다 법이 정한 조건에 맞아도 배심원으로
일하기 적당하지 않은 사람도 몇 있었다
상습적으로 도박을 하시거나 알코올에 중독되신 분 있습니까
배심원으로 모인 사람들 속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65세가 넘은 사람은 본인이 원하면 제외될 수
있었고 그외 몇 가지 면제 조항들이 있었다 가령 몸이 아프다거나
급한 일이 있거나 생업에 지장을 받는다는 등의 이유가 그것이었다
특히 경제적인 이유를 내세워 사양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지만 그
런 경우는 거의 인정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배심원으로 호명을 받
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었다 며칠 동안 자리
를 비우면 농장이나 자동차 조림공장 혹은 나무를 자르는 데 지장
이 있다면서 아주 유순하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누스 판사는 시민의
의무에 대해 힘주어 말하곤 했다
배심원 출두영장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열여덟 명은 대배심 명부
에 올랐다 그리고 나머지는 재판배심원 후보가 되었다 누스의 질문
이 끝나면 서기가 대배심 명부에 오른 열여덟 명의 이름을 적었고
그들을 방청석 맨 앞자리에 앉혔다 배심원들은 호명될 때마다 한 명
씩 자리에서 일어나 판사 앞으로 나왔다가 배심원석 안락의자에 가
서 앉았다 배심원석에는 모두 열네 개의 자리가 있었고 그중 열두
개는 배심원석이었고 나머지 두 개는 대리 배심원석이었다 대배심
명부에 오른 열여덟 명을 위해 맨 앞줄에는 나무의자 네 개가 놓여
있었다
일어나서 선서하세Q
판사의 지시에 따라 서기는 배심원 선서가 씌어 있는 검은 책을
읽었다
오른손을 드세요 여러분은 본 법정에서 얘기하는 모든 사실과
증거들을 진지하게 듣고 판단하며 대배심원으로서 직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맹세하십니까
합창하듯 배심원들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가 닫고는 자리에 앉았
다 흑인 다섯 명 중에 여자가 둘이었고 백인 열셋 중 여덟이 여자였
다 그들 대부분은 클랜턴 근방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제이크가
알고 있는 사람도 일곱이나 되었다 선서가 끝나자 누스 판사의 장황
한 연설이 시작되었다
배심원 여러분 여러분은 포드 군 순회법정의 대배심원으로 선출
되었으며 배심원으로서 성실히 직무를 수행할 것을 선서했습니다 8
윌에 새로운 대배심원이 선출될 때까지 여러분은 본 법정의 대배심
에 회부되는 모든 형사사건을 다루게 됩니다 제가 특히 강조하고 싶
은 것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결코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주에는 매일 모임이 있겠지만 그 다음부터 9윌까
지 한 달에 몇 시간씩만 찰애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형사사건에 관한 경찰과 그외 공공의 안전을 위해 일하
는 사람들의 얘기 그리고 피의자측의 얘기를 공평하게 듣고 피의자
가 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가를 결정하
셔야 합니다 만약 열여덟 명 중에 열두 명 이상이 근거가 있다고 판
결을 내리면 피의자들은 정식재판에 회부됩니다 그러므로 법이 여
러분에게 허락하는 권력은 실로 상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범인과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되는 시민 공무원 등을
심문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문제 모든 대상에 대한 심문이 가능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면 언제든지 모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보통은 검사가 소집하는 때에 모임을 갖지많 여러분은 원하는 증인
을 소환해서 증언 요청을 할 수 있으며 원하는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모든 판단은 전적으로 여러분 개인의 의사에 따르며 누구
의 개입도 받지 않습니다 검사건 경찰이건 증인이건 누구도 여러
분의 지유로운 결정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피의자가 여러분 앞에 나
타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며 배심원실에서 있었던 모든
얘기는 절대 바깥에서 얘기할 수 없습니다
버클리 검사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저분은 지방검사
인 루퍼느 버클리입니다 포크 군의 스미스필드에서 왔습니다 검사
가 하는 일은 여러분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배심원의 직무를 감독하
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버클리 검사 무스그로브 씨 일어나 주시
습니까 저분은 검사보 무스그로브입니다 역시 스미스필드에서
왔으며 검사의 직무를 보조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스그로브
씨 이 두 분이 주정부를 대신해서 여러분에게 형사사건을 제시할 것
입니다
마지막으루 지난 2월 대배심원들이 명부에 올랐을 때는 배심장이
백인 남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관례와 사법부가 요구하는 공평성 원
칙에 따라 이번 배심장은 흑인 여자분이 맡게 되겠습니다 래번 고
셋 씨 어디 계십니까 고셋 부인 예 거기 계셨군요 여기 기록에는
교사로 나와 있는데 맞습니까 좋습니다 당신이라면 배심장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자 이제 일을 시작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다루어야 할 형사사건은 50건 정도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부터 검사와 검사보를 따라 아래충 대배심원실로 가십시요 수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버클리는 새로운 대배심원들을 이끌고 자랑스럽게 법정을 걸어나
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보도진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자그마한 대배심원실에 이르자 배심원들과 검사는 긴 탁
자 두 개에 나눠 앉았다 비서가 파일들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고 반
쯤 귀가 먹은 늙수그레한 청원경찰이 자리를 잡고 섰다 방은 안전해
보였다 검사는 잠간 실례한다고 말하고 홀에 있는 보도진들에게 쪼
르르 달려갔다 법원 앞 계단에서 오후 네시에 기자회견을 갖겠다고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때쯤이면 기소장을 들고 나타날 수 있을 테니

점심식사를 마친 캐러웨이 시경국장은 긴 탁자의 끝에 앉아 신경
질적으로 파일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첫번째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
배심원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이름을 대세
검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캐러웨이 시경국장 놀런 언하트입니다
제출할 사건이 몇 개나 됩니까 국장님
다섯 건입니다
첫번째 사건을 들어보죠
좋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시경국장은 파일을 뒤적거리면서 중얼중얼 말하기 시작했다
에 첫번째 사건은 페디슨 벌로우 사건입니다 스물두 살의 흑인
남자로 4윌 12일 새벽 두시 그리핀스 식료품점 뒤에서 체포되었습
니다 경보가 울리는 바람에 가게 안에 있던 그를 체포할 수 있었습
니다 금고는 열려 있었고 비료 몇 푸대가 없어진 걸로 확인됐습니
다 가게 뒤에 주차해 있던 그의 명의로 된 차에서 없어진 현금과 비
료 푸대를 찾아냈습니다 세 쪽 분량의 자술서를 구치소 안에서 썼습
니다 여기 복사본이 있습니다
버클리는 방 안을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면서 배심원들에게 간간
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국장님은 대배심이 피의자를 상가침입 및 절도혐의로
기소하기를 바라십니까
버클리가 배심원들을 돕는 척하면서 대신 질문해 주었다
예 맞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여러분들은 무엇이든 물어볼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예심이니까요 질문 없으십니까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피의자한테 전과가 있습니까
지금은 놀고 있는 트럭운전사 맥 로이드 크로웰이 물었다
없습니다 이게 처음입니다
시경국장이 대답했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항상 전과가 있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전과가 있을 경우에는 상습범으로 기소할 수 있으니까요
버클리는 마치 강의하듯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다른 질문 없습니까 좋습니다 자 이제 누군가가 페디슨 벌로우
를 정식기소하는 데 동의를 하셔야 되는데요
침묵 열여덟 명의 배심원들은 탁자만 내려다보며 누군가 먼저 동
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클리도 마찬가지로 기다리기만 했다
더 무거운 침묵 이거 곤란한데 약한 배심원들이군 말하기를 겁내는
자유주의자들 왜 모든 사건에 대해 피를 토하면서 기소하려고 드는
그런 배심원들은 없는 걸까
고셋 부인 당신이 배심장이니까 처음으로 동의를 해보겠어요
동의합니다
고셋 부인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버클리 검사는 부인을 향해 고개를 11덕여 보였다
자 이제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페디슨 벌로우를 상가침입 및
절도혐의로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
니다
열여덟 명 전원의 손이 동시에 올라갔다 버클리 검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경국장이 캐러웨이 시에서 가져온 네 건도 대배심에 제출되었
다 모든 사건이 벌로우 사건처럼 기소되었고 예외없이 만장일치였
다 버클리는 슬슬 배심원들을 꼬시기 시작했다 그들이 스스로를 중
요하고 힘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고 정의의 무게가 자신들의 양
어깨에 얹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배심원들은
열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전과가 있습니까
몇 범입니까
언제쯤 석방되나요
기소조항이 몇 갭니까
재판은 언제죠
지금 감옥에서 나온 상탭니까
다섯 건을 만장일치로 기소시키고 나자 이제 배심원들이 먼저 다
음 사건에 관심을 나타냈다무엇이든 가져오라는 투였다 버클리 검
사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검사는 배심원
실 문을 열고 보도진들을 보면서 경찰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오지
월스 련안관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해일리 사건을 먼저 제출하게
버클리 검사는 보안관에게 낮은 소리로 이르고는 배심원실로 들
어갔다
배심원 여러분 오지 보안관을 소개합니다 여러분 모두 잘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가 여러분 앞에 제출할 사건이 몇 개 있습니다
처음은 뭐죠 보안관님
오지는 그냥 건성으로 파일을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툭 내뱉었다
칼 리 헤일리 사건입니다
배심원들이 다시 침묵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버클리 검사는 반응
의 수위를 점치기 위해 배심원들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대
부분의 배심원들이 탁자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오지 보안관이 서류
를 훌어보다가 가방을 가지러 갔다 오겠다고 말할 때까지 입을 여는
배심원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오지는 헤일리 사건을 제일 먼저 제출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버클리 검사는 배심원들의 얼굴을 보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
는지 읽어낼 수 있다는 걸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재판중
에도 그는 배심원들의 얼굴을 주의깊게 쳐다보면 그들이 무슨 생각
을 하는지 맞힐 수가 있었다 증인을 심문할 때도 결코 배심훤들에게
서 눈길을 떼는 법이 없었다 그는 가끔 검사석에서 걸어나와 배심원
석 바로 앞으로 가 배심윈들의 눈치를 보면서 증인을 심문하고 그들
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가까이서 살펴보기도 했다 경험으로 미루
어보아 지금 배심원들은 칼 리 헤일리 사건을 앞에 두고 심한 갈등
을 겪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피할 수 없는 논쟁거리인 헤일리 사건
이 제출되자 다섯 명의 흑인들은 적이 긴장하면서 자세를 바로하기
까지 했다 오지가 중얼거리면서 서류를 넘기는 동안 고셋 부인은 경
건한 표정을 지었고 대부분의 백인들은 주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만 한 싸람 촌사람처럼 차려입은 중년의 맥 로이드 크로웰만이 백
인이면서도 흑인들처럼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크로웰
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 창문께로 걸어가 법원 남쪽 광장을 내려다보
았다 버클리 검사는 크로웰의 표정만큼은 정확하게 읽을 수 없었지
만 뭔가 갈등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헤일리 사건의 증인이 몇 명이죠 보안관님
버클리 검사의 목소리에 짜증스런 기색이 있었다 오지는 서류 넘
기던 것을 멈췄다
저 혼잡니다 하지만 필요하면 한 명 더 데려을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사건에 대해서 얘기해 주시죠
오지는 의자 깊숙이 앉아 팔짱을 끼었다
검사님 이 사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일주일
동안 텔레비전에 도배를 했는데
그럼 증거만 얘기해 보세요
증거요 알겠습니다 정확히 일주일 전에 칼 리 헤일리라는 서른
일곱 살 먹은 흑인이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를 쏴 죽이고 드웨
인 루니 보안관 대리에게 총상을 입혔습니다 드웨인 루니는 지금 다
리가 잘린 채 병상에 누워 있습니다 범행에 쓰인 M16소총을 압수
해서 조사해 본 결과 피의자인 칼 리 헤일리의 지문과 총에 묻어 있
는 지문이 일치했습니다 그리고 루니 보안관 대리가 서명한 진술서
에 따르면 자기에게 총을 쏜 사람이 칼 리 헤일리였답니다 목격자로
는 머피라는 법원청소부가 있습니다 키가 작고 발을 절뚝거리는 사
람입니다 말을 심하게 더듬긴 하지만 원하시면 증인으로 소환할 수
있습니다
질문 있습니까떤
버클리 검사가 재빨리 보안관의 말끝을 잘랐다 검사는 신경질쪄
으로 배심원들을 쳐다보았다 배심원들도 보안관을 예민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다 크로웩은 등을 돌리고 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질문 없어요
검사가 다그치듯 물었다
있어
크로웰이 드디어 고개를 돌리고 검사와 보안관을 번갈아 쳐다보
면서 입을 열었다
총에 맞아 죽은 두 사랍이 칼 리 헤일리의 딸을 강간한 놈들 맞
죠긴
거의 확실한 것 같습니다
오지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자백했나요
크로웰은 느릿하면서도 당당한 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 반대편
탁자 끝에 멈춰 섰다 그는 보안관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물었다
보안관 당신도 자식을 키우죠
딸이 있나요
예 있습니다
그럼 당신 딸이 강간을 당했고 강간을 한 놈들이 바로 저기 있
다고 생각해 봐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오지는 근심스러운 눈으로 검사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검사의 목
덜미가 불쾌합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대답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9
보안관이 말했다
아니오 대답을 해야 돼요 당신은 여기 증언하러 왔잖아요 당신
증인 아니에요 어서 대답하세
어떻게 했을지 모르습니다
보안관 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 줘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
어요
오지는 당황스러웠다 이 낯선 백인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사실
오지로서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나라면 그자를 거세하고 사지를
다 찢어서라도 딸을 망친 데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배심원들이 칼 리를 기소하지 않을지
도 모르니까 칼 리가 기소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기소가 불가
피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는 도움을 청하듯 버클리 검사
를 쳐다보았다 검사 역시 잔뜩 긴장해 땀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크로웰은 오지 보안관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그는 마치 거짓말을
하는 증인을 대하는 변호사 같았다
어서요 보안관 우린 모두 당신 말을 기다리고 있어요 진실을
말하세요 당신 같으면 강간범들한테 어떻게 했겠어요 빨리 말하라
니까요
버클리는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자칫하면 법정에 서보지도 못하고 물거품이 될 찰나인 것이
다 한낱 실직한 트럭 운전사의 손에 의해 무참하게 검사는 자리에
서 일어나 겨우겨우 말을 골랐다
증인은 말할 의무가 없습니다
크로웰은 고개를 홱 돌려 검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조용히 앉아 있으시公 당신한테 말한 게 아니오 우리는
당신을 기소할 수도 있어요 안 그래요
버클리는 재빨리 자리에 앉아 멍한 눈으로 보안관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크로웰은 자기 신분을 속인 게 분명했다 그는 배심원이 되
기에는 너무나 똑똑했다 누군가 사주를 한 게 틀림없었다 그는 아
는 게 너무 많았다 배심원은 누구든 기소할 수 있다는 것까지
크로웰은 돌아서서 다시 창문을 바라보았다 배심원들이 보기에
그의 역할은 그쯤에서 끝난 것 같았다
칼 리 헤일리가 한 짓이 틀림없습니까
그웬 헤일리의 먼 친척뻘 되는 레모옌 프레디가 물었다
예 틀림없습니다
오지는 크로웰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우리가 무슨 죄목으로 그를 기소하기를 바라죠
프레디가 다시 물었다 프레디는 크로웰보다는 보안관을 더 좋아
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에 대한 살인과 경관폭행죕니다
형량이 어떻게 됩니까
바니 플랙이 물었다 또 한 사람의 흑인이었다
살인죄는 사형에 해당하고 경관폭행죄는 가석방 없이 무기징역
형입니다
그게 당신이 원하시는 겁니까
플랙이 물었다
예 저는 대배심이 반드시 피의자를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

더 질문 없습니까
버클리 검사가 끼여들었다
서두르지 마시오
크로웰이 돌아서면서 검사를 제지했다
당신 이 사건을 빨리 해치우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반대요
얘기를 더 해봐야 한단 말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물어볼 때만 대답하
시오 물어보는 건 우리니까
버클리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는 크로웰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
서 말했다
나더러 앉아 있으라느니 조용히 입 닥치고 있으라느니 하고 명
령하지 마시오
글쎄 알았으니 조용히 앉아 있어요 안 그러면 당신을 쫓아 버
릴 거요 우리한테 그럴 권리가 있죠 만약 우리가 나가라고 했는데
도 나가지 않으면 그뻔 판사한테 가서 얘기할 거요 판사가 아마 당
신을 쫓아 버리겠주 안 그래요
크로웰은 검사를 향해 싸늘하고 신랄하게 쏘아댔다
버클리 검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정신이 멍하고 양 무릎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움직이려고 애를 썼
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 얘기를 끝까지 듣고 싶으면 조용히 앉아 계시란
말입니다
버클리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정리 옆에 가서 앉았다
고맙소 저는 배심원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누가 당신들의 딸이나 부인 흑은 어머니를 강간했다면 당신들도 헤
일리처럼 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 한번 손 들어보세요
예닐곱 개의 손이 올라갔다 버클리 검사는 고개를 푹 떨고었고
크로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얘기를 계속해 나갔다
나는 칼 리 헤일리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정말이지 대단
한 일입니다 저도 그런 용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을 테니까요 사람이란 해야 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을 왜 기소합니까 상장을 줘도 모자랄 판에
크로웰은 탁자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배심원들은 귀를 종
긋 세우고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투표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얘기하겠습니다 한번 그 어린 여파
아이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알기로 그 아이는 열 살입니다
자 머릿속에 한번 그려봅시다 손을 뒤로 묶인 채 누워서 여자애가
울고 있어9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면서 애원을 하고 있다구9 근
데 이 두 강간범은 술주정뱅이에다 마약중독자인 이 두 놈은 번갈
아서 여자애를 농락하고 때리고 차고 그것도 모자라서 죽이려고 했
습니다 그게 당신 딸이었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놈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저는 오히려 그들이 죽은 게 다행이라
고 생각합니다 더이상 다른 애들이 강간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
니 위안이 된다구요 헤일리 씨는 그런 의미에서 좋은 일을 했습니
다 우리 그를 기소하지 맙시다 집으료 가족들의 품으로 그를 돌려
보내자구요 그는 귀감이 되는 일을 한 사람이니까요
크로웰은 말을 마치고 창가를 향해 돌아섰다 버클리 검사는 크로
웰을 무섭게 노려보다가 그의 말꼬리까지 완전히 사라져 버리자 자
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끝났습니까
배심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제가 몇 가지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대배심은 피고인을 재판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그건 재판배심원이
할 일입니다 헤일리 씨는 열두 명의 공정한 배심원들 앞에서 머지않
아 재판을 받게 될 것이고 만약 죄가 없다면 석방될 것입니다 그러
나 대배심이 그의 유죄 여부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할
일은 국가가 제출하는 증거를 듣고 피의자가 죄를 범한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칼 리 헤일리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두 사람을 죽였고
다른 한 사람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목격자가 증언한 틀림없는 사
실입니다
버클리는 탁자를 빙빙 돌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배심원들의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피의자를 기소하는 것은 대배심의 의무입니다 만약 피의자의
주장에 타당성이 있다면 우리는 재판에서 가려낼 것입니다 그의 행위에
합리적인 근거가 분명하다면 그를 석방시킬 겁니다 그게 재판이니까요
국가는 그가 죄를 지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재판에서 그것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피의자가 옳다면 배심원들 앞에서
주장할 수 있고 범죄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재판은 그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다만 지금 대배심에서 죄를 가려낼 계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저는
똑똑히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보안관님
오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증거가 확실하다면 대배심은 피의자를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효과적으로 범죄사실을 증명하지 못하거나
피의자의 변론에 타당성이 있다거나 하는 사실은 배심원이 결정하는 것이지
대배심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더 궁금하신 것 있습니까
버클리가 이제 끝내자는 듯이 말했다
자 그럼 동의를 받겠습니다
칼 리 헤일리를 기소하면 안 됩니다
크로웰이 소리를 질렀다
재청합니다
바니 플랙이 중얼거렸다
버클리의 무릎이 부르르 떨렸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오지 보안관은 버클리를 보며 즐거웠지만 내
색하지는 않았다
동의가 나왔고 재청도 있었습니다 찬성하시는 분들은 손을 들
어주십시요
고셋 부인이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다섯 명이던 흑인들이 손을 들었다 크로웰까지 합쳐 여섯인 셈이
라 부결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요
고셋 부인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버클리가 재빨리 말했다
헤일리 씨를 두 사람에 대한 살인죄와 경관폭행죄로 기소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 동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의합니다
백인 중의 한 명이 말했다
재청합니다
다른 백인이 그 뒤를 따랐다
찬성하시는 분은 손 들어주십시요
고셋 부인이 말했다
열두 분이 들어주셨습니다 반대는 저까지 합쳐서 여섯 명입니다
12대 6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칼 기 헤일리가 기소되었다는 얘깁니다
버플리 검사가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그의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
왔고 혈색도 다시 생기를 찾았다 그는 서기에게 귓속말을 하고는
배심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십분만 쉬겠습니다 아직 해결해야 할 사건이 마흔 개나 되니
멀리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판사가 얘기했던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서의 숙의 사실은 절대 비밀입니다
바깥에 나가서 얘기하시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그러니까 당신 얘기는 딱 한 표 차로 기소가 결정됐다고 얘기하지
말라는 거 아니오 안 그래요 버클리 검사님
크로웰이 검사의 말허리를 잘랐다 버클리 검사는 서둘러 방을 나가면서
문을 거칠게 닫았다
열 명 정도의 보도진에 둘러싸인 버클리 검사는 법원 앞 계단에
서서 기소장을 흔들어 보였다 버클리 검사는 지금 막 대배심원들을
다구치고 윽박지르고 애원하고 겨우겨우 타이른 끝에 칼 리 헤일리를
매장시키라는 허가서를 받아낸 것이다 재판이 시작되고 배심원을
자리에 앉히면 그는 유죄를 확인하고 사형을 구형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버클리 검사는 밉살스럽고 공격적이고 거만하며 독선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밖에 몰랐다 보도진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경력과 검사로서의 승률 90퍼센트 아니 정확히
말하면 95퍼센트의 승률을 침을 튀겨 떠들어댔다 카메라의 불이 꺼지고
보도진들이 사라졌지만 그는 누스 판사의 지혜와 공평한 자세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포드 군 배심원들의 현명한
판결에 대한 경의도 잊지 않았다
버클리 검사는 계속 뭐라 중얼댔지만 보도진들은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그의 곁을 떠났다
스텀프 시슨은 미시시피 주 KKK단 내의 귀재로 통했다 그는 포드 군에서
남쪽으로 350킬로 정도 떨어진 네틀스 군의 깊은 소나무 숲 속에서
모임을 소집했다 제복도 의식도 연설도 없는 조촐한 모임이었다
시슨은 포드 군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단원들과 함께 고
Ilirc빌리 레이 콥의 동생인 프레디 콥과 얘기를 하기로 했다 프레
디 콥이 시슨에게 요청을 하여 열리는 모임이었다
그 검등이는 기소됐나Q
콥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늦여름이나 초가을쯤 재판이 열린다
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프레디 옵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 검
등이 자식이 심신장애 판정을 받아 풀려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
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검등이는 빌리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사전 모의까지 했으며 창고
속에서 빌리가 나오기를 기다린는데 그게 어떻게 흥분한 상태에서
나온 우발적인 범행일 수 있는가 그런 냉혈한은 그냥 두어서는 안
되었다 KKK단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검등이들은 인권단체와
국가와 법의 보호 아래 응석받이로 자라고 있었다 KKK단 외에는
어떤 백인도 그들에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어느 누가 백인의 편에
서서 진군할 것인가 법도 검등이 편이고 자유주의 물을 먹은 흑인
들은 백인들에게 불리한 법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제 누군가 나서
야 했다 이것이 오늘 모임의 주제였다
검등이가 아직 구치소에 있습니까
프레디 콥은 그렇다고 했다 검등이는 왕이나 다름없었다 오지란
검등이 보안관은 헤일리에게 온갖 특혜를 베풀고 있으며 같은 검등
이라 이번주에 보석으로 풀려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들렸다 하여
튼 검등이들은 죄다 칼 리가 풀려나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 형이 정말 검등이 계집애를 강간했습니까
프레디 콥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마 아닐 것이다 윈
러드란 사람은 강간을 했다고 자백했지만 우리 형은 그런 자백을 한
적이 없다 사방에 깔린 여자를 내버려두고 뭐 때문에 검등이 계집
애에게 손을 대겠는가 혹 그랬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순가
검등이의 변호사는 누구죠
프레디는 브리건스라는 이름을 똑똑히 댔다 클랜턴 놈인데 나이
는 어려도 재주가 좋다고 말했다 형사사건을 많이 다뤄서 평판도 괜
찮고 살인범들을 많이 빼냈다는데 기자들 말로는 칼 리도 심신장애
판정을 받아 빼내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판사는요
프레디는 지금으로서는 누가 될지 잘 모른다고 했다 불러드라는
사람이 군판사이지만 재판을 맡는 건 그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고 했다 변호사가 재판지를 옮기려고 한다니까 판사는 누가 될지
아직 모른다고도 했다
시슨과 KKK단원들은 낯선 백인의 얘기를 주의깊게 들었다 인권
단체와 정부 정치가들에 대한 이야기에는 그들도 동의했지만 그들
도 이미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프레디 콥의 형이 못된 짓을 했
구 그 대가를 받은 것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흑인의 손에
당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건에는 아직 변수가 많았다 재판까지 3개윌도 더 남았곤 뒤
엎을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동안에 얼굴까지 길게 내려오는 하
얀 두건과 하얀 가운을 입은 채 법원 앞에서 시위를 할 수도 있었고
카메라 앞에서 행진을 하며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을 수도 있었다
자기들 편은 아니었지많 신문이란 훤래 분쟁과 흔란을 좋아하니까
이건 좋은 기회였다 밤이면 십자가를 불태우면서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재미도 있고 협박전화를 거는 맛 또한 짜릿했다 의심할 바 없
는 확실한 목표들은 풍부했다 폭력은 불가피했다 KKK단은 어떨게
폭력을 유도해 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백인들의 시위에 대항하는 성
난 검등이 무리를 보는 것도 놓칠 수 없는 기쁨이었다
포드 군은 숨바꼭질을 하고 난동을 부리고 치고 빠지기에 아주
좋았다 다른 주에서 동지들을 규합해 올 만한 충분한 시간 여유도
있었다 KKK단이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이번 기회에 인종
주의에 불을 붙여 검등이를 혐오하는 사람들을 거리로 끌어낼 수도
있었다 그러잖아도 KKK단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고 있는
판에 헤일리 사건은 하나의 슬로건이 되고 반격점이 될 수 있을 것
이었다
그 검등이놈과 가족들 변호사 판사 배심원들의 전화번호와 주
소를 알아을 수 있습니까
시슨이 물었다 콥은 책상을 탁 치면서 말했다
배심원들 것말고는 다 알아을 수 있습니다 배심원은 아직 결정
되지 않았습니다
언제쯤 알게 됩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재판이 시작돼야 알죠 도대체 계
획이 뭔데요
아직은 잘 모르지만 KKK단은 관여하게 될 겁니다 우리 위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제가 도을 일이 있습니까
콥은 벌써부터 의욕이 넘치는 모양이었다
물론 있지9 하지만 그전에 가입을 하셔야 됩니다
포드 군에는 KKK단 지부가 없는데요 해체된 지 한참 됩니다
저희 할아버지도 한때는 단원이셨는데
아니 할아버지가 옛날에 KKK단원이셨다구요
그럼요
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우린 개입할 의무가 있습니다
KKK단원들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
서 복수를 다짐했다 그들은 콥에게 친구나 친척들 중 뜻을 같이하
는 사람을 대석섯 명 더 모아 포드 군 숲에서 십자가에 불을 지르면
서 모든 행사를 거치는 비밀스런 의식을 거행하라고 일러주었다 그
런 다음 단원 교육을 받고 나면 어엿한 KKK단원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모여 칼 리 헤일리의 재판이 벌어질 법원 앞에서 장관
을 연출해 낼 것이다 그들은 이번 여름에 포드 군을 쑥밭으로 만들
어놓을 것이며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검등이에게
석방표를 던지는 것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대
여섯 명만 더 모아라 그러면 당신을 포드 군의 리더로 만들어주겠

콥은 사촌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콥은 모임이 끝난 뒤
KKK단원들과 함께 기분좋게 술을 마셨다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버클리가 가진 네시 기자회견은 저녁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그가
시간을 잘못 잡은 것이다 제이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리모컨을 이
리저리 눌러보다가 멤피스에도 잭슨에도 투펄로에도 기소에 관한
소식이 없자 통쾌하게 웃었다 버클리의 가족들이 텔레비전 앞에 꼼
짝않고 앉아 채널을 돌리다가 당황하는 가장의 얼굴을 바라보겠지
버클리는 가족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를 테고 저녁 일곱시
투펄로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마지막 일기예보가 끝나구 가족들은
버클리만 남겨놓고 조용히 사라지리라 그리고 열시는 돼야 버클리
의 꽉 닫혔던 입이 열릴 것이다
밤 열시 제이크와 칼라는 소파에 발을 꼬고 앉아 뉴스를 기다렸
다 마침내 버클리의 얼굴이 나왔다 4번 채널의 아나운서가 헤일리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지방검사 루퍼스 버클리를 소개하구 헤일리
사건이 기소되었음을 알려주는 동안 버클리는 법원 앞 층계에 서서
기소장을 흔들며 전도사처럼 연설하고 있었다 카메라는 버클리의
독한 눈길을 한번 비춘 뒤 이내 아름다운 클랜턴 광장의 모습을 담
았다 다시 카메라 앞에 선 기자는 헤일리 사건의 재판은 늦여름에
열릴 것이라며 말을 마쳤다
아주 공격적인데요 왜 기소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
청했을까요
칼라가 물었다
검사니까 변호사들은 언론을 싫어하지
나도 눈치채고 있다구요 내 스크랩북이 얼마나 빨리 채워지고
있는데요
명심하고 잘 복사해둬 나중에 어머니께 보여드리게
사인해서 드릴 거예요
칼라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돈 주시면 하지만 당신은 공짜야
좋아요 하지만 만약에 당신이 지면 스크랩한 수고비 당신한테
청구할 거예요
한 가지 말해 줄까 난 살인사건에서는 한번도 진 적이 없어 3대
O이라고
칼라는 리모컨을 눌렀다 아나운서가 날씨를 예보하고 있었다 하
지만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당신이 살인사건 재판을 할 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칼라는 가늘고 쭉 뻗은 다리로 쿠션을 차면서 물었다 검게 그을
린 거의 완벽한 다리였다
피와 살육과 공포
아니
칼라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풀어 소파 팥걸이 쪽으로 늘어
뜨렸다
아무리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아니에
칼라는 풀을 빳빳하게 먹인 남편의 오래된 옥스퍼드 버튼다운 셔
츠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셔츠의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가스실을 앞둔 무고한 사람이 느끼는 무시무시한 악몽
그것도 아니에9
칼라는 셔츠의 단추를 끌렀다 텔레비전이 내뿜는 푸르스름한 빛
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어두운 벽에 드리우고 있었다 아나운서는 웃
으면서 잘 자라는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법정으로 걸어들어가 배심원으로 앉아 있는 그의 친구
들 앞에 서는 것을 보게 될 어린 가족들의 두려움인가
아니
셔츠의 단추를 끄르자 얇고 형광빛이 나는 흰 실크 밴드가 갈색
피부와 대조를 이됐다
법제도가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불공정성
아니p
칼라는 거의 완벽한 구릿빛 다리를 소파 등받이로 조금씩 올렸다
등받이를 넘어간 다리는 긴장을 풀고 편안한 휴식에 들어갔다
무고한 피고인을 옭아매려는 경찰과 검사들의 비윤리적이고 사
악한 모략건
아노
칼라는 실크 밴드를 풀러 두 개의 완벽한 젖가슴을 드러냈다
격노 격렬합 통제되지 않는 감정 영혼들 사이의 잔인한 싸움
물불 못 가리는 열정 같은 거
됐어요 충분해요
옷이 하나둘 벗겨져 램프의 불을 꺼버리고 두 몸이 한데 뒤엉켜
쿠션을 깊이 눌러댔다 혼수로 장만한 낡은 탁자가 흔들리면서 삐걱
삐걱 신음을 내뱉었구 백 년을 넘게 견딘 마룻바닥이 같은 음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너무도 익숙해진 소리였다 맥스는 본능적으로 아
래충으로 달려내려가 한나의 방문 앞에서 파수를 섰다
해리 렉스 보너는 추잡한 이혼을 전문으로 다루는 지저분한 거물
변호사루 양육비를 대지 못하는 자들은 어김없이 감옥으로 보내는
사람이었다 꾀가 많고 교활했으며 포드 군에서 일어나는 이혼소송
의 상당 건수가 다 그의 손에서 처리되었다 덕분에 그는 아이도 키
울 수 있었고 집도 사고 농장과 VCR과 전자렌지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사들일 수 있었다 부유한 농장주 하나가 미리 손을 써 그
와 변호 예약을 맺어 놓은 상태이므루 그 농장주의 아내는 이흔소송
을 할 경우 해리를 변호사로 고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해리 렉스는 형
사사건 의뢰가 들어오면 제이크에게 보내구 제이크는 이혼사건을
해리 렉스에게 넘겨주었다 두 사람은 친구 사이이며 둘 다 설리번
회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화요일 아침 해리는 성큼성큼 걸어들어와 에셀에게 큰 소리로 물
었다
제이3있어요
그러나 그는 이미 층계에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해리는 에셀을
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에셀은 그저 고개만 까닥했다 약속했냐고
물어봤자 소용없는 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전에 그렇게 물었다가 에
셀은 그에게서 험한 욕만 들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한테 욕을 퍼부어
댔다
그는 마치 천등이라도 내리치면서 층계를 오르는 것 같았다 제이
크의 사무실에 들어선 그는 숨을 헐떡거렸다
안녕 해리 자네가 시끄럽게 군 건가
1층에다 사무실 좀 두지 그래
해리 렉스가 헉헉거리며 말했다
자넨 운동을 할 필요가 있어 이 충계마저 없었으면 자넨 벌써
140킬로를 넘었을 거야
눈물나게 고맙군 나 지금 막 법원에서 오는 길인데 누스 판사가
가능하면 열시 삼십분에 판사실에서 좀 보라던데 헤일리 사건에 대
해서 검사하고 자네를 불러 얘기를 하고 싶은가봐 공소 일정 잡고
재판 날짜 맞추는 그런 자질구레한 거 있잖아
좋아 가지
자네 대배심 얘기 들었어
물론 여기 기소장 사본도 가지고 있는걸
해리 렉스는 제이크를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아니 아니 그거 말고 투표 결과에 대해 들었냔 말이야
제이크는 깜짝 놀라서 해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해리가 조
용히 움직이면 뭔가 사건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잡다한 얘기나 소문
에 대해서는 꽉 잡고 있었고 자기 입으로는 진실만을 유통시킨다는
것이 해리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그의 얘기가 모두 신빙성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소문을 제일 먼저 듣는 것은 항상 그였다
해리의 전설은 20년 전 그의 첫 재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도회
사를 상대로 수백만 달러짜리 소송을 걸었는데 철도회사측에서 합
의금 지불을 거절했다 3일간의 재판이 끝나고 배심원들이 숙의에
들어갔을 때 철도회사측 변호사는 자기네가 유리한 판결을 얻어낼
수 있을까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배심회의가 이틀째로 접어든
날 그에게 2만5천 달러의 합의금을 제안했다 그는 대담하게도 그
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거절했다 그러나 해리의 원고는 돈을 원했
다 그는 자기 의뢰인에게도 욕설을 퍼부었다 몇 시간 후 배심원들
은 지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섰구 15만 달러의 원고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해리 렉스가 완벽하게 이긴 것이었다 그는 의뢰인을 반강
제로 술집으로 끌고가 모든 손님들에게 축하주를 돌린 뒤 그날 밤
내내 자기가 어떻게 배심원들의 진을 빼놓았는지를 들려주었다 그
는 배심원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소문은 퍼져나갔
구 청소부 머피가 배심원 방으로 이어지는 난방관에서 전선뭉치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주법률가협회는 내사를 벌였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20년 동안 판사들은 해리가 소송에 관련될 때마다
집행관에게 배심원실을 조사해 보라고 성화를 해오고 있었다
투표 결과를 어떻게 알았나
제이크는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한 단어 한 단어 힘을 주어 말했다
아는 수가 있지
알았네 그래 결과는
12대 6 한 표만 더 얻었으면 기소조차 안 되는 거였지
12대 6이
제이크가 해리 렉스의 말을 받았다
버클리는 죽다 산 거야 크로웰이라는 백인이 나서서 설쳐대는
통에 배심원들이 거의 기소하지 말자는 분위기였대
크로웰이 누군데
년 전엑 그 사람 이혼 건을 맡은 적이 있어서 내가 잘 알지 첫
번째 부인이 흑인한테 강간당하기 전까진 잭슨 군에서 살았어 강간
을 당하고 난 후 여자가 미쳐서 결국 이혼할 수밖에 없었어 스테이
크 써는 칼로 자기 손목을 썰었다니까 크로웰은 클랜턴으로 이사온
뒤 여기 시골 여자하고 재혼했지 그런데 어제 버클리가 그 사람한
테 걸린 거야 검사보고 입 닥치고 조용히 앉아 있으라고 소리까지
쳤대 그 꼴을 한번 봤어야 하는 건데
마치 본 것처럼 들리는데
아냐 정보통이 있을 뿐이라구
누군데
이봐 제이그만하자구
또 도청했지
절대 아냐 정말 들은 거래두 어때 좋은 신호 아냐官
워가
아슬아슬한 투표였다구 열여덟 명 중 여섯이 무죄라고 했어 흑
인 다섯에 크로웰까지 이건 좋은 신호야 흑인 두 명만 배심원석에
앉혀놓으면 되는 거라구 그렇지
그렇게 쉬운 게 아냐 배심원이 전부 백인이 될 가능성도 있어
자네도 알다시피 이 동네에선 그런 일이 아주 흔해 게다가 크로웰
이 다시 배심원이 될 순 없잖아
그게 바로 버클리가 생각하는 거야 자네도 그자의 당황하는 꼴
을 봤어야 하는 건데 어젯밤에 텔레비전에 나온 거 가지고 아주 사
인을 하고 다닐 태세더라구 아무도 그 얘긴 하고 싶어하지 않는데
모든 대화를 그 얘기로 이끌려고 안달이 났더구만 관심을 끌려고 구
걸하는 아이 같다니까
좋게 대하게 주지사가 될지도 모르는데
헤일리 사건을 잃으면 아니지 내 생각엔 그가 질 것 같아 제이
크 훌릉한 배심원들을 골라서 돈 좀 먹일까
그 얘긴 안 들은 걸로 하겠네
다 그런 거야
열시 삼십분이 조금 지나서 제이는 법원 뒤편 판사실로 들어가
버클리 검사와 무스그로브 누스 판사와 시큰등하게 악수를 나눴다
세 사람 토두 제이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누스 판사는 의자륵
가리키면서 앉으라고 한 뒤 자신은 책상 뒤에 가 앉았다
브리건스씨 몇 분안걸릴 거요 내일아침 아흡시에 칼리 헤일
리를 공소할 생각인데 어때요
누스는 안경 너머로 제이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예 잰찮습니다
제이크가 대답했다
그것말고도 공소할 사건이 몇 개 있으니까 강도사건은 열시에
재판을 하기로 하죠 어떻土 버클리 검사랠
좋습니다
됐소 다음은 헤일리 사건 재판 날짜 얘긴데 알다시피 다음번 순
회재판이 8월말 세 번째 월요일에 시작되는데 그때도 다를 사건이
많을 것 같소 헤일리 사건의 성격상 좀더 솔직히 말해서 사람들의
관심이 이 사건에 다 몰려 있으니까 가능하면 빨리 마무리지었으면
좋겠소
빠를수록 좋습니다
버클리 검사가 끼여들었다
브리건스 씨 재판을 준비하는 데 얼마면 될 것 같소
60일이오
60일 도대체 왜 그렇게 긴 거요
버클리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제이크는 버클리의 반응은 무시하고 안경을 치궈올리면서 일정표
를 들춰보고 있는 누스 판사를 쳐다보았다
재판지 변경을 신청할 생각이오
그래 봐야 아무런 차이도 없소 우린 어디에서 하든 유죄선고를
받아낼 테니까
버클리가 제이크를 향해 딱 잘라 말했다
그런 얘기는 카메라 앞에서나 하시지 그래요
제이크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당신이 카메라 얘길 하면 안 되지 당신도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왜 좋아하지 않
버클리가 얼른 제이크에게 쏘아붙였다
그만들 두시요 피고인측은 재판 전에 신청할 것이 있소
제이크는 잠간 사이를 두었다
예 있습니다
그 다른 신청에 대해서 물어봐도 되겠소
누스의 목소리엔 약간 짜증이 배어 있었다
판사텀 지금은 제 변호전략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방금 전에 기소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구 아직 제 의뢰인과 얘기도 못
해봤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 시간을 얼마 주면 되겠소
60일Q
당신 지금 장난하는 거요 우리는 내일이라도 당장 재판을 할
수 있쇼 판사님 60일은 말도 안 됩니다
버을리 검사가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제이크도 슬슬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
다 버클리는 창가로 걸어가더니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
들어댔다 누스 판사는 일정표를 뒤적거리면서 말했다
왜 60일이나 필요한 거요
복잡한 사건이니까요
버클리는 기가 막히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더 세차게 흔들
었다
심신장애를 주장할 건가 보죠
예 그렇습니다 헤일리 씨가 정신과 의사에게 검사를 받으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검사측 의사도 만나봐야 하고요
알겠소
그외에도 재판 전에 취해야 할 조치가 여러 개 있습니다 이건 큰
사건입니다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기 바랍니다
버클리 검사
판사가 검사의 의견을 물었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어떻게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준비가 다 됐습니다 내일이라도 출석할 수 있습니다
누스 판사는 일정표에다 글씨를 갈겨쓰면서 안경을 치켜올렸다
안경은 매부리코의 콧잔등에 난 사마귀 바로 옆에 가서 걸쳐졌다 코
가 워낙 길고 머리 모양도 이상해서 누스 판사의 안경은 테가 유난
히 길었다 그의 안경은 크고 이상한 코로부터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목적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었다 물론 독서용도 아니었고 제이크는
누스를 볼 때마다 오렌지색을 입힌 팔각형의 안경 때문에 다른 데보
다 코가 더 돋보인다고 충고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질 않
았다
재판은 며칠 정도 걸릴 것 같소
판사가 물었다
사나흘 걸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배심원을 선정하는 데만도 사
흘은 필요할 겁니다
검사 당신 생각은
그건 맞는 얘기 같은데 저는 사흘이면 끝날 재판을 준비하는 데
왜 M일이나 필요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빨리 재판을 열
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편히 가져요 버클리 검사 카메라는 60일 뒤면 이 자리로
다시 옵니다 90일이 걸린다 해도 당신 얼굴을 잊어버리진 않는다구
요 인터뷰를 할 수도 있고 기자회견을 가질 수도 있고 설교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그렇게 신경쓰지 마세요 기회는 얼마든지 있
으니까
제이크는 침착한 어조로 버클리를 타일렀다
버클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제이크에게 서너 걸음 다가와 말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지난 일주일 동안 브리건스 씨 당신이 나보
다 더 많이 카메라 앞에서 알짱거린 것 같은데
아 그래요 그래서 샙이 나시나요
샘이 나다니 난 카메라 따윈 신경도 안 쓰
언제부터 그러셨나요
제발 조용히 하시p
누스 판사가 참다못해 두 사람에게 호통을 쳤다
이번 재판은 시간이 오래 걸릴 사건인데다 감정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 모두 법률가로서의 품위를 각별히 지켜주기 바라요
자 내 일정은 꽉 차서 7월 22일부터 일주일 동안만 비어 있소 문제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검사보 무스그로브가 대신 대답했다
제이크는 버클리 검사를 향해 씩 웃어 보인 뒤 자기 일정표를 확
인했다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좋소 신청할 게 있으면 7윌 8일 전까지 제출해야 됩니다 공소는
내일 아침 아흡시에 열릴 거요 질문 더 있소
제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누스 판사 무스그로브 검사보와 악수
를 나누고 판사실을 나왔다
점심식사를 마친 뒤 제이크는 구치소로 칼 리를 만나러 갔다 감
옥에 갇혀 있는 그에게 기소장의 복사본을 건네주었다
모살죄가 뭔가요
가장 나쁜 종류의 살인죄죠
몇 종류나 있는데요
고싫 살인 모살 그렇게 세 개입니다
고살은 형량이 어떻게 되는데요
20년형
살인은
20년에서 무기까지
모살은
가스실로 가죠
경관폭행죄는
가석방 없이 무기입니다
칼 리는 기소장으로 다시 고개를 돌려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니까 난 평생 감옥에 처박혀 살다가 가스실에 두 번 간다는
말이에요
아직은 아니에요 우선 재판을 받아야 하니까 어쨌든 재판은 7
윌 22일로 잡혔습니다
7윌 22일이면 두 달 후잖아요 왜 그렇게 길어요
우린 시간이 필요해요 당신을 미쳤다고 말해 줄 정신과 의사를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검사도 당신을 위트필드로 보내 지정
의료기관에서 정신과 검진을 받게 할 겁니다 물론 안 미쳤다고 하겠
지요 우리도 신청할 게 있고 검사도 신청할 게 있는데다 청문회만
해도 한두 번이 아니니까 시간이 필요하다구요
더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尸
빨리 하는 게 우리한텐 불리해요
내가 하겠다면요
제이크는 칼 리를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무슨 문제 있어요
여기서 나가고 싶어a빨리
감옥 생활이 그리 나쁘지 않다면서요
물론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웬은 돈이
다 떨어졌을 거예요 일자리도 못 찾을 거고 레스터는 자기 아내하
고 문제가 있는 것 같아9 매일 전화해 대는 걸 보면 오래 못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친척들한테 손 벌리긴 죽기보다 싫어요
하지만 손을 벌리면 도와주기는 하잖아요
몇몇은요 하지만 그들도 문제가 많아요 나를 여기서 나가게 해
줘오 제이
잘 들어요 칼 리 당신은 내일 아침 아흡시에 공소될 거구 재판
은 7월 22일에 열릴 거예요 날짜는 바꿀 수 없으니까 그런 문제는
아예 잊어버려요 내가 공소에 대해서 설명해 줬어요
칼 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십분도 안 걸릴 거예요 우리 둘이 법정에 나가 판사 앞에 서
면 판사가 당신한테 몇 가지 물어볼 거예요 나한테도 물어볼 거고
사람들 앞에서 기소장을 읽은 다음 복사본을 가지고 있는가 물어보
죠 무죄를 주장할 건지 판사가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세요 그럼
재판 날짜를 확정해 줍니다 당신은 일단 자리에 앉구 나는 보석 문
제를 가지고 검사와 한판 벌일 거예요 누스 판사는 아마 안 된다고
할 거구오 그럼 당신은 다시 구치소로 가서 재판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재판 후에는요
제이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판이 끝난 뒤에도 구치소에 있고 싶어요
약속할 수 있어요
약속은 못 해요 내일 일정에 대해서 물어볼 거 있어요
없어요 근데 제이큰 음 내가 얼마나 줬죠
머뭇거리는 말투로 보아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건 왜 물어보는 거죠
그냥요
g백 달러하고 어음 한 장오
그웬이 가지고 있는 돈은 백 달러도 안 된다 청구서는 납기일이
다가오고 음식도 떨어질 때가 췄다 그웬이 일요일날 와서 한 시간
동안이나 울다 갔다 갑작스런 공포는 이제 그녀의 삶의 일부가 되었
구 그녀의 얼굴과 몸조직을 차지하고 있었다 칼 리는 그들이 파산
했으며 아내는 겁에 질려 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웬네 가
족들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기댈 거라고는 밭에서 나는 채
소 몇 단과 계란과 우유를 팔아서 벌 수 있는 푼돈이 전부였다 장례
식이나 병원으로 찾아오는 친척들은 많았다 그들은 기꺼이 시간을
내서 같이 울고 아픔을 나누기도 하지만 진짜 현금이 필요하다고 하
면 꽁지 빠진 닭마냥 다 흩어진다 헤일리네 친척들도 그웬네 친척들
보다 나을 게 없었다
칼 리는 제이크에게 백 달러만 빌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웬이 완전히 파산할 때까지는 그냥 있기로 했다 그때 말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제이크는 서류를 뒤적거리면서 칼 리가 돈을 되돌려 달라고 물어
오기를 기다렸다 형사사건 의뢰인들은 특히 흑인인 경우에는 수임
료를 지불한 뒤 다시 돌려 달라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제이크
는 실제로 9백 달러 이상을 손에 쥐어본 적이 없었구 그래서 수임료
를 되돌려 주는 데는 인색했다 대부분의 흑인들은 변호사가 아니어
三 손 내델 데가 많다는 걸 제이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
친척들도 많고 교회토 그들을 도와주려고 했다 사실 아무도 굶어죽
지는 않았다
제이크는 파일들을 서류가방에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더 물어볼 것 없어요
그래요 내일 난 무슨 얘길 해야 하죠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요
내가 왜 그 자식들을 죽였는지 판사한테 말하면 안 될까요 내
딸을 강간해서 그랬다고 그런 놈들은 죽어 마땅하잖아요
판사한테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요
흐래요
그럼 판사가 순순히 풀어줄 것 같아요
칼 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봐요 칼 리 당신은 날 변호사로 고용했어요 당신 날 믿기 때
문에 고용한 것 아녜a그렇죠 당신이 말을 하는 게 좋겠다 싶으면
내가 하라고 그럴게요 아니면 당신은 조용히 있어야 해요 7월애 재
판이 열리면 얼마든지 당신의 생각을 얘기할 기회가 주어질 거예요
그러나 그동안에는 내가 하겠어
당신 말이 맞아9
레스터와 그웬은 토냐와 사내놈 셋을 빨간 캐딜락에 태우고 병원
으로 갔다 강간사건이 있은 지 벌써 2주일이 지났다 이제 토냐는
가볍게 다리를 절었지만 오빠들과 함께 뛰고도 싶고 층계를 오르고
도 싶었다 하지만 그웬은 딸아이의 손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다리와
엉덩이 쪽 통증은 거의 가셨고 손목과 발목의 붕대도 지난주에 벗겨
냈다 꿰맨 자국도 말끔히 아물어갔다 하지만 두 다리 사이에 집어
넣은 솜뭉치와 보호대는 아직 그대로 있었다
작은 방에서 토냐는 옷을 벗구 엄마와 함께 패드를 간 탁자 위에
나란히 앉았다 그웬은 행여 추울세라 토냐를 꼭 안아주었다 의사는
토냐의 입 안을 검사해 보고 턱을 문질러 보았다 손목과 발목 부위
가 다 아물었는지 확인한 다음 토냐를 침대에 뉘어 다리 사이를 만
졌다 토냐는 비명을 지르며 엄마를 움켜잡고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 아이는 또다시 상처받고 있었다
수요일 아침 다섯시 제이크는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흘짝거리면
서 눈으로 프랑스풍 문을 지나 법원 광장을 가로질렀다 간밤에 잠을
설치다가 몇 시간 일찍 눈을 뜬 제이크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따뜻한
침대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학교 때 들은 적이
있는 조지아 주의 사건을 기억해 내기 위해서였다 모살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전과가 없으며 관할지 내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고 인근
에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안정된 직업을 가진 경우에는 보석
신청을 허가한 판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는 최관에 미시시피 주에서 있었던 합리적이고 선명하고 정확한 사
건들은 한 묶음 찾았다 모살죄를 범한 피고인에게는 판사의 자유재
량이 엄격히 제한된다는 판례들이었다 법이 그랬구 제이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나 판사와 한번 논쟁해 볼 필요는 있었다 제
이크가 보석을 신청하면 버클리 검사는 길길이 날뛰면서 그 훌릉한
판례들을 들먹이며 설교를 해댈 것이구 누스 판사는 웃으면서 진지
하게 듣다가 끝내는 기각하고 말 것이다 첫 접전에서부터 제이크가
꼬리를 밟힐 판이었다
자기 오늘은 일찍 나왔네
델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객에게 커피를 따라주면서 말했다
오랜만이지
루니의 다리가 잘린 뒤 며칠간 제이크는 커피숍에 나을 수가 없었
다 루니의 다리가 잘려나갔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몹시 분개해
있었으며 그 불똥은 제이크에게도 튀었다 제이크는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으면서도 부러 모르는 체했다 백인을 죽인 흑인을 의뢰인으
로 가진 변호사는 어떤 식으로든 원한을 사기 마련이니까
잠깐 얘기 좀 할수 있을까
제이크가 물었다
그럼요
델은 주위를 돌아보면서 반갑게 말했다 다섯시 십오분 사람들이
붐비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델은 제이크 맞은편 의자에 앉아 그의
잔에 커피를 더 부어주었다
요즘엔 사람들이 무슨 얘길 하지
제이크의 첫번째 질문이었다
똑같주 뭐 정치나 낚시 농장에 관한 얘기 그런 거예요 변한 게
없어요 21년 동안 여기서 똑같은 손님들에게 똑같은 음식을 날랐지
만 듣는 것도 똑같다니까요
새로운 소식이 전혀 없어
헤일리 얘기죠 다들 헤일리에 대해서 얘기해요 기자들이 있을
때는 조용히 있다가 기자들이 가고 나면 많이들 쑥덕거리던데요
기자들이 있을 때는 왜
사건에 대해서 뭔가 아는 척을 하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 귀찮게
굴거든요
불편하겠군
아누 전혀 오히려 장사가 더 잘돼요
제이크는 웃으면서 구운 옥수수에다 버터를 바르고 타바스코 소
스를 뿌렸다
당신은 그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델은 길고 붉은 손톱으로 콧등을 긁더니 후하고 불었다 델은 무
뚝뚝하기로 유명한 여자니까 그녀에게라면 아주 솔직한 대답을 기
대할 수 있었다
그가 잘못했어요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건 명백한 사실이죠 그
러나 그는 최고의 변명거릴 갖고 있어요 칼 리에게 동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왜 있어요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무죄야 유죄야긴
델은 이제 막 들어오는 단골손님에게 아는 체를 했다
글쎄 난 본능적으로 강간범을 죽인 사람은 용서하겠어요 특히
아버지가 그랬다면 말이죠 하지만 사람들이 멋대로 총을 들고 나와
저마다 점의를 실현하게 해서는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가 당시에
미쳤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그럼 난 무죄에 투표하겠어9 그가 미쳤다는 말을 믿진 않겠지

제이크는 딱딱한 토스트 위에 딸기잼을 바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루니는 어떻게 되죠 루니는 내 친군데
그건 사고야
그러면 다 된 거예요
아니지 사고로 총이 발사되는 경우는 없으니까 루니는 우연히
총에 맞았을 뿐이야 내 변론이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루니에게
총을 쏜 건 유죈가
그럴 것 같아요 다리를 잃었으니까
어떻게 콥과 윌러드를 쏠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루니
를 쏠 때는 제정신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제이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그쯤에서 화제를 바긴다
나에 대해서는 뭐라고 그래
비슷비슷해요 어제 왔었냐고 물어보는 손님들도 있고 유명해져
서 이젠 여기 올 시간도 없다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죠 당신하고 흑
인과의 관계에 대해 쑥덕거리는 사람도 있지만 대수로운 건 아니에
요 심하게 당신을 욕하는 사람은 없어요 내가 못 하게 하니까
당신은 진짜 멋진 사람이야
난 심술궂은 여자일 뿐이예요
아냐 당신은 일부러 그러는 거라구
델이 간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커피를 좀 더 달라는 농
분들에게 싫은 소리를 퍼부어댔다
제이크는 혼자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에셀이 여덟시 삼십분에 사무실에 도착해 보니 기자 몇 명이 잠
겨 있는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에셀을 따라들어와 브
리건스 씨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에셀은 안 되니까 나가 달라고 했
지만 기자들은 막무가내로 졸라댔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충계를 타
고 올라오자 제이는 사무실 문을 아예 잠가 버렸다 싸우는 건 에
셀 몫이니까
사무실 창문을 통해 제이크는 법원 뒤편에 대기중인 카메라를 내
려다보았다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저녁 뉴스 시간이면 다부진 사업
가처럼 딱딱하고 바쁘게 걷는 그의 모습이 전파를 탈 것이다 기자들
은 뒤를 졸졸 따라오면서 대답 좀 해달라고 조르구 제이크는 할 말
없다며 냉정하게 잘라 말할 것이다 이건 그저 공소이다 그러니 재
판을 상상해 보라 카메라가 사방에서 그를 비추구 기자들이 저마다
질문을 해대고 1면 머릿기사나 잡지 표지는 브리건스로 채워질 것
이다 애틀랜타 신문은 20년 만에 있는 가장 깜짝 놀랄 만한 살인사
건이라고 보도했다 그 사건을 제이크는 거의 공짜로 맡은 것이다
잠시 후 제이크는 소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아래충으로 내려가 기
자들에게 따뜻하게 안사를 했다 에셀은 회의실 안으로 사라졌다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릴
기자 한 사람이 말했다
안 됩니다 법정에 가야 할 시간입니다
제이크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안 됨니다 오늘 오후 세시에 71자회견을 가질 테니까 그때 물어
보십시오
제이크가 사무실 문을 나서자 기자들은 얼른 그의 뒤를 따라 워싱
턴 가로 나섰다
기자회견 장소는요
제 사무실입니다
논점이 뭐죠
헤일리 사건에 관한 겁니다
제이크는 천천히 워싱턴 가를 가로질러 법원 정문 앞으로 뻗은
보도에 들어섰다 그가 걷는 동안에도 질문은 계속되었다
헤일리 씨도 기자회견 장소에 나을 겁니까
예 가족과 함께 참석할 겁니다
그 소녀도요
헤일리 씨가 직접 질문에 대답합니까
어쩌면8 아직 결정하진 않았습니다
제이는 수고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법원 안으로 사라졌다 뒤에
남은 기자들은 기자회견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버클리는 나무로 만든 거대한 법정의 정문을 열어젖히며 힘차게
들어섰다 그런데 팡파르가 없었다 그는 카메라 한두 대쯤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카메라가 이미 유명해진 피고인의 입정 장
면을 담기 위해 뒷문에 가서 모여 있다는 걸 안 버클리는 실망이 이
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도 다음엔 뒷문을 이용하리라
누스 판사는 우체국이 마주 보이는 소화전 바로 옆에 차를 세웠다
광장을 가로지른 그는 동쪽 보도를 따라 천천히 법원 안으로 걸어들
어갔다 그러나 몇몇 호기심 어린 시선 외에는 그에게로 관심이 쏟아
지지 않았다
오지 보안관은 구치소의 창문을 통해 주차장에서 칼 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보도진들의 모습을 보았다 또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
이 불쑥 들었지만 이내 떨쳐 버렸다 칼 리를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
전화가 그의 사무실로 20여 통 걸려왔구 그중 몇 건은 심각해 보였
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날짜와 장소까지 정했다 그러나 나머지는 늘
있어온 협박전화였다 이건 단지 공소였다 오지는 재판에 대해서 생
각하다가 모스와 귓속말을 나누었다 칼 리의 주위를 제복 차림의 보
안관 대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칼 리를 데리고 보도를 걸어
내려가 보도진을 헤치고 호송차에 올라탔다 여섯 명의 보안관 대리
와 운전사 하나가 함께 탔다 호송차는 순찰차 세 대의 호위를 받으
며 쏜살같이 법원으로 달려갔다
누스 판사의 일정표에는 아침 아홉시부터 열 개의 사건에 대한 공
소가 잡혀 있었다 그는 재판장석에 앉자마자 두꺼운 파일을 펼쳐 헤
일리 사건을 찾아냈다 방청석 첫째 줄에 앉아 있는 낯선 사람들은
이제 막 기소된 피고인들이었다 보안관 대리 두 명이 그 줄 끝에 앉
아 있었는데 그 옆에는 수갑을 찬 피고인이 있었다 제이크 브리건
스가 그에게 뭐라고 속닥거리고 있었다 그가 헤일리인 게 분명했다
누스는 붉은 파일을 집어든 다음 안경을 치켜올렸다
사건번호 3889칼 리 헤일리 사건 혜일리 씨 앞으로 나모시겠
습니까
보안관 대리가 수갑을 풀어주자 칼 리는 변호사를 따라 누스 판사
앞에 서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판사는 조용히 얼굴을 찡그리면서 기
소장을 혼어내려갔다 법정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버클리 검사도
일어서서 거들먹거리며 걸어와 피고인과 몇 발짝 떨어져 섰다 방청
석 맨앞에 앉은 삽화가 한 명은 그 장면을 빠른 속도로 스케치하고
있었다
제이크는 공소중에는 나와 있을 필요도 없는데 굳이 나온 검사를
노려보았다 그는 검은색 법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커다란 머리통
위를 둘러싼 머리카락을 아주 세심하게 빗질해 착 붙여놓은 상태였
다 과러고 있으니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전도사 같았다
제이크는 버클리 쪽으로 걸어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옷이 죽이는데요 버클리 검사
고맙군
버클리 검사가 시큰등하게 대답했다
깔깜한 데서 보면 번쩍거리어요
제이크는 씨익 웃으떤서 피고인 옆으로 되돌아갔다
당신이 칼 리 헤일리입니까
누스 판사가 물었다
브리건스 씨가 당신의 변호사입니까
여기 대배심에서 넘어온 기소장이 있는데 복사본 받았습니까
읽어보셨습니까
변호사와 얘기해 봤습니까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습니까
좋습니다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이 기소장을 본 법정에서 읽
겠습니다
누스 판사는 헛기침을 하고는 기소장을 읽기 시작했다
포드 군의 건전한 시민들로 구성된 대배심원단은 미시시피 주정
부의 위임을 받아 포드 군 법정이 제출한 사건들을 심사하기로 선서
한 바 자연인 빌리 레이 콥과 자연인 피트 윌러드를 고의적으로 살
해하구 공무집행중이던 보안관 대리 드웨인 루니를 살해할 목적으
로 총격을 가한 칼 리 헤일리 사건이 미시시피 주형법에 위배됨은
물론 주의 권위와 주구성원들의 안녕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고 간
주하므루 피고인 칼 리 헤일리를 중죄 혐의로 기소하기로 결정하였
습니다 배심장 래번 고셋 서명
누스 판사는 숨을 한번 고른 뒤 말을 이었다
피고인에게 부과된 죄목이 무엇인지 이해하셨습니까
유죄가 확정되면 파치먼 교도소에서 사형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하셨습니까
유죄를 인정하겠습니까 무죄를 주장하겠습니까
무죄를 주장하겠습니다
방청객들이 주의릴게 지켜보는 동안 누스 판사는 일정표를 살펴
보았다 보도진들은 뭔가를 열심히 기록했고 삽화가는 법정 안의 인
물들을 모두 담고 있었다 버클리의 옆모습도 가까스로 그림 속에 들
어갔다 그는 칼 리의 뒤통수를 아주 경멸스럽다는 듯이 노려보고 있
었다 마치 이 살인범의 처단을 조금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버클
리는 무스그로브가 앉아 있는 탁자로 느릿느릿 걸어가더니 뭐라고
속닥거렸곤 다시 법정을 가로질러 서기 한 사람과 횐소리로 말을 주
고받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제이크와 칼 리가 서 있는 옆에 와서 섰
다 제이크는 버클리가 쇼를 하고 있음을 눈치채고는 그를 무시하려
고 안간힘을 썼다
헤일리 씨 재판은 7월 22일 월요일에 열겠습니다 신청하실 게
있으면 6월 24일 전까지 해주시구 7월 8일까지는 신청에 대한 회답
이 끝난 상태여야 합니다
칼 리와 제이크는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하실 것 있숨니까
버클리 검사가 밖에 있는 보도진들에게도 들릴 만큼 우렁찬 목소
리로 끼여들었다
재판장님 주정부는 어떠한 형태의 보석 허가도 반대하는 바입니

제이크는 그에게 주먹을 한방 날리고 싶었다
재판장님 피고인은 아직 보석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버클리
검사가 또 절차를 흔동하고 있는 모양인데 아직 신청도 안 한 사안
을 가지고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검사는 아직 더 배을 필요
가 있는 것 같습니다
버클리는 순간 뜨끔했지만 조금도 혼들리지 않고 응수해 나갔다
브리건스 변호사는 항상 보석을 신청하므루 오늘도 예외가 없을
줄로 압니다 그 때문에 우리 주정부는 반대의 뜻을 전한 겁니다
그럼 피고인측이 신청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누스 판사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버클리는 시뻘개진 얼굴로 제이크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보석을 신청하실 겁니까
누스 판사가 제이크에게 물었다
적절한 때에 보석을 신청할 생각이었는데 버클리 검사가 쇼를
부리는 바람에
버클리 검사는 신경쓰지 마십시오
누스 판사가 제이크의 말을 가로막았다
저도 압니다만 검사가 워낙 정신이 없어서
보석 신청할 겁니까 브리건스 씨
예 신청할 생각이었습니다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서 보석이 허가되어
도 좋은지 생각해 보았구요 보석 결정은 어디까지나 판사인 저의 재
량입니다 저는 살인죄의 경우 보석을 허가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 사건도 예외가 되지 않을 줄 압니다
기각하신다는 말씀인가요
제이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파일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뤘습니다
또 질문 있습니까
없습니다 재판장님
제이크는 또박또박하게 대답했구 버클리 검사는 침묵 속에서 고
개만 가로젓고 있었다
좋습니다 헤일리 씨는 재판 전까지 오지 월스 보안관의 감독하
에 수감됩니다 이상입니다
칼 리가 방청석의 맨 앞줄로 돌아가자 보안관 대리 두 명이 그에
게 다시 수갑을 채웠다 제이크가 서류가방을 열고 파일들을 쑤셔넣
고 있는데 버클리가 다가와 제이크의 팔을 잡으며 내뱉었다
그따위 치사한 수를 쓰다니
버클리는 입술을 꽉 다문 채 내뱉었다
먼저 싸움을 건 건 당신 아냐 이 손 놓으시지
제이크는 단호하게 말했다 버클리 검사는 제이크의 팔에서 손을
떼었다
하여튼 난 맘에 안 들어
버클리가 제이크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러게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게 아니지 함부로 입을 놀리면 화
를 자초하기 마련이니까
제이크보다 7 8센티는 더 크고 몸무게도 20킬로는 더 나가 보이
는 버클리가 제이크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둘 사이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경찰이 두 사람을 말리고 나섰다 제이크는 버클리
검사에게 욍크를 하고 법정을 빠져나갔다
헤일리 일가가 레스터 삼촌을 앞세우고 뒷문을 통해 제이크의 사
무실로 들어선 시각은 두시였다 제이크는 아래층 회의실 옆에 있는
조그만 방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기자회견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 위
해서였다 이십분쯤 뒤 오지와 칼 리도 뒷문을 통해 걸어들어왔다
오지와 제이크는 칼 리와 그의 가족들만 남겨두고 자리를 떴다
기자회견에 대한 제이크의 준비는 용의주도했다 그는 언론을 다
루는 기술과 다뤄지고 싶어 안달하는 언론의 속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제이크는 긴 탁자의 한쪽 끝에 앉았구 그 왼쪽에 그웬 오른
쪽에는 토냐를 안은 칼 리가 앉았으며 그 뒤편에는 칼 리의 세 아들
이 서 있었다
원래 강간 피해자의 신원을 공개하는 것은 법률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토냐의 경우는 아버지 덕분에 이름과 나이 얼굴이 이미
신문에 공개된 상태였기 때문에 기자회견에 참석한다고 해도 별 문
제될 게 없었다 토냐는 주일마다 교회에 갈 때 입는 하얀 드레스를
걸치구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배심원이 될 사람들에게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제이크가 배려해 준 것이었다
회의실 가득 보도진들이 몰려들었다 다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의
행렬이 응접실로 쓰이는 흘까지 이어졌다 에셀은 기자들에게 나가
든지 자리에 앉든지 하라고 성화를 부렸다 보안관 대리 한 명이 정
문에 배치되었고 나머지 둘은 뒷문 쪽 계단을 맡았다 오지 보안관
과 레스터는 거북한 표정을 하고 헤일리 가족 뒤편에 서 있었다 제
이크 앞으로 다투어 마이크들이 몰려들었구 여기저기서 카메라에
파란 불이 들어왔으며 조명등이 아늑하게 제이크의 주위를 감쌌다
회견을 시작하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이크가 조용히 입을 떼었다
첫째 질문에 대답하는 건은 접니다 헤일리 씨나 그 가족들에게
질문하는 것은 사양하겠습니다 질문을 받아도 대답하지 말라고 얘
기할 겁니다 둘째 지금부터 헤일리 씨 가족을 소개하겠습니다 제
왼쪽에 앉은 사람이 헤일리 씨의 부인 그웬 헤일리입니다 뒤에 서
있는 아이들은 헤일리 씨의 세 아들 칼 리 주니어 자비수 로버트입
니다 저 뒤편에 서 계신 분은 레스터 혜일리라구 헤일리 씨의 동생
입니다
제이크는 고개를 돌려 토냐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버지 무릎에 앉아 있는 아이는 토냐입니다 질문해 주시기 바
랍니다
오늘 아침 법정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십시요
헤일리 씨는 공소되었고 그는 무죄를 주장할 것이며 재판은 7월
22일에 열릴 것입니다
당신과 검사 사이에 격론이 있었다던데요
예 맞습니다 공소 후에 버클리 검사가 제게 다가와 팔을 잡았습
니다 제게 가해를 할 엇 같자 보안관 대리들이 막아섰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버클리 검사는 원래 화가 나면 상대를 때리는 기질이 있습니다
당신과 버클리 검사는 친구 사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재판은 클랜턴에서 있을 예정입니까
재판지 변경을 신청할 생각입니다 재판지 결정은 누스 판사가
하므로 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헤일리 씨 가족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제이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카메라는 여전히 돌고 있었구 제이
크는 칼 리와 토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여러분은 지금 단란한 한 가족을 보고 계십니다 2주일 전까지만
해도 삶이란 기분 좋고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제지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 약간의 돈을 저축하면서 안정과 평화를 누렸으며 일요일마다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는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술주정뱅이가 공공연히 마약을 해대는 깡패들이 이 열 살짜리 딸
아이를 강간하면서부터 모든 것은 한순간에 허물어졌습니다 아주
충격적이고 역겨운 이 사건은 이 아이의 삶을 허물고 부모와 형제들
의 삶까지 만신창이로 짓밟아 버렸습니다 특히 아버지에게 닥친 불
행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토냐의 아버지는 방아치를 당겼구 그리
고 파멸했습니다 그는 이제 재판을 앞두고 감옥에 갇혀 있으며 어
쩌면 사형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일자리도 잃구 돈도 잃구 도덕적
순결도 잃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없이 살아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헤일리 씨의 부인은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구해
야만 합니다 어쩌면 생존을 위해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손을 벌려야
할지도 모르관요 이 가족의 상태에 대해서 대답하자면 한마디로 이
렇습니다 이 가족은 모든 것을 빼앗겼으며 완전히 파괴되고 있습니

그웬은 숨죽여서 울기 시작했다 제이크가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
네주었다
심신장애 변론을 펼 거란 암시를 하고 계신데요
실제로 그렇습니까
증명할 수 있습니까
배심원들이 증명해 줄 겁니다 정신의학계의 전문가에게 정신감
정을 의뢰할 생각입니다
벌써 만나보셨습니까
제이크는 거짓말을 했다
이름을 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P 지금은 적당한 시기가 아닙니다
헤일리 씨에 대한 살해 위혈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데 맞습
니까
헤일리 씨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과 제 가족 판사 등 이 사건
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위협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그 위협
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칼 리는 토냐를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멍한 눈으로 탁자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듯했구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불
쌍한 사람처럼 보였다 제이크 뒤에 서 있는 열다섯 살짜리 칼 리 주
니어 아버지 뒤에 서 있는 열세 살짜리 둘째 자비스 어머니 뒤에 서
있는 열한 살짜리 막내 로버트는 모두 겁에 질려 있었지만 잔뜩 긴
장한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셋 다 똑같이 해군복에 하얀 셔츠를 받
쳐입구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막내의 옷은 형들한테 물려
받은 듯 형들 것보다 많이 낡아 있었지만 깨끗하게 빨아서 단정해
보였다 아이들은 아주 총명해 보였다 누가 감히 이 아이들을 아버
지 없는 아이로 자라게 한단 말인가
기자회견은 대성공이었다 회견 장면 중 일부는 중앙방송국과 지
방방송국의 전파를 타고 저녁 뉴스와 밤 뉴스에 거듭 나왔다
목요일 조간신문 1면에는 사진과 함께 헤일리 씨 가족과 변호사
제이크에 관한 내용이 실렸다
스웨덴 아가씨는 남편이 미시시피에 가 있는 2주일 동안 여러 번
전화를 해댔다 그녀는 남편이 거기 내려간 게 의심스러웠다 그곳엔
남편이 고백한 과거의 애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가 전화할 때마다 레
스터는 집에 없었구 그웬은 거짓말을 둘러댔다 낚시하러 갔다는
등 나무를 자른다는 등 가게에 갔다는 등 그웬은 계속 거짓말을 하
기에 지쳐 버렸구 레스터는 레스터대로 술 마시는 데 질려 있었다
금요일 새벽 전화벨이 울리자 레스터가 받았다 스웨덴 아가씨였다
두 시간 후 빨간 캐딜락이 구치소 주차장에 와서 섰다 모스는 레
스터를 칼 리의 감방으로 데려갔다 그들 형제는 다른 죄수들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집에 가봐야겠어
레스터가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칼 리는 예상하고 있었던 듯 무덤덤하게 물었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전화했는데 내일도 직장에 출근하지 않으면
해고래
칼 리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형 나도 가기 싫은데 방법이 없어
H이해해 언제 다시 올 거니
언제 왔으면 좋겠는데
올 수 있어
재판 때 그웬하고 애들이 힘들어할 거야 그때
꼭 올게 휴가든 뭐든 다 내서 올게
두 사람은 칼 리의 침대에 걸터앉아 침묵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감방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칼 리의 맞은편 감방은 비
어 있었다
형 난 이곳이 얼마나 끔찍한지 다 잊었어
나도 더이상 여기 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힘껏 부등켜안았다 그리고 레
스터는 모스를 불러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U난 형이 자랑스러워
시카고로 떠나기에 앞서 레스터는 칼 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날 아침 칼 리의 두 번째 손님은 제이크였다 칼 리는 보안관 사
무실로 가 II를 만났다
칼 리 내가 어제 멤피스에 있는 정신과 의사 둘한테 전화를 해봤
는데 재판을 위해 당신을 검사하는 데 드는 돈이 최소한 얼만지 알
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칼 리가 되물었다
천 달러예요
제이크는 큰 소리로 말했다
천 달러라구요 어디서 천 달러 구할 수 있죠
내가 가진 돈은 다 당신한테 줬잖아요 집문서까지
글쎄 집문서는 필요없어요 왠지 알아요 아무도 안 사니까 팔
수 없으니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는 거라구9 문제는 현금이에9
내가 받을 게 아니고 정신과 의사한테 줄 거란 말입니다
왜요
왜냐구요
제이크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고개를 한번 뒤로 젖혔다
왜냐면요 여기서 150킬로 떨어진 사형장에서 당신을 구해 내기
위해서죠 그리 멀리 있지 않다구요 당신을 살리려면 당신이 총을
쏠 당시 제정신이 아니었단 사실을 배심원들에게 입증시켜야 해요
당신이나 내가 당신이 미쳤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예9 그건 정신과
전문의가 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공짜로 일하지 않아
9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칼 리는 몸을 숙여 팔을 무릎에 기댄 채 더러운 양탄자 위를 기어
다니는 거미를 쳐다보았다 감방에 묵은 지 12일 법정에 두 번 서는
동안 그는 법제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살인을 저지르기 전
에도 시시각각으로 그것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두 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다 그러므로 후회는 없다 하지만 감옥과
빈곤과 변호사 정신과 의사에 대해서도 생각했던가 아마도 했겠지
그러나 곧 홀려 버렸으리라 지금의 이 고통은 자유를 얻기 전에 우
연히 만나는 것일 뿐이며 일시적으로 견뎌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다 나는 갇혀 있는 것이구 그래서 힘든 것이다 재판이 끝나고 나
면 법제도는 나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나를 풀어 가정으로 돌려 보
내줄 것이다 아무런 고통이 없던 레스터의 경우처럼 아주 간단한
것이 되리라
그러나 법제도는 지금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작당해서 그
를 감옥에 묶어두려 들구 죽이려고 들고 그의 아이들을 고아로 만
들려 하고 있었다 그가 불가피했다고 생각한 행동에 대해 그를 응징
하기로 한 것 같았다 게다가 그의 유일한 동지인 제이크는 지금 들
어줄 수 없는 문제를 들고와 닦달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좌 변호사근
지금 불가능한 걸 요구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 제이크는 화가 났초
급기야 소리를 질러댔다
만들어 와요 형제들한테 꾸든지 그웬네 식구들한테 손을 벌리
든지 친구나 교회를 찾아가든지 아무튼 어떻게든 돈을 구꼰 와요
가능한 빨리
쾅하고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제이크는 멀어져갔다
정오가좀안된 시각 칼리의 세 번째 손님은테네시 주번호판
을 단 리무진을 타고 도착했다 검은색 리무진은 주차장을 지나 다시
세 구역을 통과한 뒤에 우뚝 멈춰 섰다 덩치가 크고 시커먼 보디가
드가 뒤에서 잽싸게 나타나 보스의 차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으쓱
거리며 보도를 걸어 구치소로 들어갔다
비서가 타이핑을 하다 말고 어색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내 이름은 캣 브루스터이고 월스 보안관을 만나러 왔쇼
안대를 한 좀더 키 작은 흑인이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헤일리 씨에 관한 거요 당신네 숙소에 투숙해 있는 걸로 아는
오지 보안관은 방문객의 이름을 듣고 사무실에서 나와 이 악명 높
은 흑인을 맞았다
브루스터 씨 제가 월스 보안관입니다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는 동안에도 보디가드는 꿈쩍하지 않았다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저는 캣 브루스터라구 멤피스에서
왔습니다
누구신지는 저도 압니다 뉴스에서 봤습니다 근데 무슨 일로 저
희 포드 군까지 오셨습니까
내 친구한테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는데 제가 도을 게 있을까 해

친구라니요
오지는 보디가드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오지 보안관의 키도 190
센티는 되는데 이 보디가드에 비하면 10센티는 작아 보였다 몸무
게도 140킬로는 나가 보였구 1중 상당량을 굵은 두 팔뚝이 차지할
것 같았다
이 친구는 타이니 톰입니다 그냥 타이니라고 부르죠
캣이 그의 보디가드를 소개했다
알겠습니다
일종의 보디가드죠
저 친구 총을 가지고 있진 않겠죠
물론입니다 보안관님 이 친구는 총이 필요없습니다
됐습니다 타이니와 함께 제 사무실로 들어가실까요
사무실에 들어서자 타이니는 문을 닫고 그 옆에 우뚝 섰다 보안
관과 캣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 사람도 앉아도 되는데요
오지 보안관이 캣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보안관님 저 친구는 항상 문 옆에 서 있습니다 훈련
을 그렇게 받았거든Q
경찰견처럼요
맞습니다
좋아요 근데 말씀하시고 싶은 게 뭡니까
캣은 다리를 꼬고 앉아 다이아몬드로 잔뜩 뒤덮인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저랑 칼 리가 알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입니다 베트남에서 같이
싸웠죠 71년 여름 우리는 다낭 근처에서 포위를 당했지요 그때 저
는머리에 총을한방맞았구 얼마뒤 칼리도다리에 총을맞았습
니다 우리 분대는 이미 다 흩어진 상태였구 베트콩들은 우리를 목
표로 덤벼들었어요 근데 칼 리가 절뚝거리면서 제게로 기어오더니
제 어깨를 부축하고는 바로 옆 참호로 숨었다가 다시 오솔길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를 들쳐업고 3킬로나 되는 거리를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답니다 그는 내 생명을 구하고 그 공로로 훈장을 받
았죠 알고 있었나요
아노
사실이에요 우리는 사이공에 있는 병원에 둘이 나란히 누워 두
달을 보내다가 그 지겨운 베트남에서 후송되어 왔지9 다시 생각하
기도 싫어요
오지는 주의깊게 귀를 기울였다
근데 그런 내 친구한테 문제가 생겼다니 저는 그를 도와주고 싶
습니다
M16도 당신이 대줬습니까
보디가드와 캣이 서로 웃음을 교환했다
물론 아니지9
칼 리를 보고 싶습니까
예 그렇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죠 타이니가 문에서 비켜서면 제가 데리고 오겠습니다
타이니가 문에서 비켜선 지 이분 가량 지나서 오지 보안관이 칼
리를 앞세우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캣은 칼 리를 보더니 반갑게 소리
를 지르며 와락 부등켜안았다 두 사람은 권투선수처럼 서로 등을 두
드려 주었다 칼 리가 오지 보안관에게 눈짓을 보내자 보안관은 눈
치있게 자리를 피했다 타이니는 문을 닫고 다시 그 옆에 섰구 칼 리
는 의자 두 개를 가져와 캣과 마주앉았다
캣이 먼저 말했다
잘했어 자네 아주 대단한 일을 한 거야 근데 왜 총을 달라고 할
땐 그 얘길 안 했나
그냥
그래 어떻게 했나
베트남에서처럼 갈겨 버렸지
그래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이런 일조차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
후회하는 건가
칼 리는 흔들의자에서 몸을 흔들면서 천장에다 눈을 박았다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후회는 없어 다만 그놈들이 내 딸을 망쳐
놓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거야 난 그애가 전과 같기만을 바라
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길 바란다구
그래 그래 자네 여기 있는 거 힘들지
나 자신에 대해선 걱정 안 해 진짜 걱정거리는 가족이지
알아 그래 집사람은 어때
괜찮아 잘해 나갈 거야
신문에서 보니까 재판이 7월이라더군 자네 요즘 나보다 훨씬
유명해졌어
그래 하지만 자네는 항상 빠져나오잖아 난 자신이 없어
변호사는 구했어
응 괜찮은 사람이야
캣은 천천히 자리를 차고 일어나 사무실을 빙 돌아보기 시작했다
오지가 받은 트로피와 면허장이 눈에 띄었다
내가 여기 온 이유가 그거야
그거라니
칼 리는 자기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냥
면회나 온 게 아닌 것 같았다
칼 리 자네 내가 몇 번이나 재판을 받았는지 아나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은데
다섯 번이야 그 자식들이 나를 다섯 번이나 잡아넣었다구 연방
경칠 주경찰 그리고 시경놈들이 마약 도理 뇌물 총기 공갈 매춘
등의 혐의를 내세워 다섯 번이나 날 끌고갔지 그때마다 재판을 받았
고 유죄라고 떠들어댔지 근데 내가 몇 번 유죄판결을 받은 지 아

몰라
한번도 없어 단 한번도 다섯 번 재판을 받았는데 다섯 번 다 무
죄였다구
칼 리는 대단하다는 듯이 캣을 우러러보면서 웃었다
왜 무죄였는지 알아
칼 리는 알 것 같았지만 그냥 고개를 젓고 말았다
왜냐하면 교활하고 노련하면서도 추잡한 변호사를 뒀기 때문이
지 그자는 거래를 아주 잘해 불법 행위도 많이 저지르고 그래서 경
찰들도 그를 싫어해 하지만 어쨌든 난 감옥에 안 가고 여기 있잖아
내 변호사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니까
자네 변호사가 누군데
칼 리는 호기심에 달았다
그가 법정에 드나드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많이 봤을걸 신문에
매일 나오지 잘 나가는 악당들한테 문제가 생기면 항상 그가 나타나
지 마약 거래하는 놈들하고도 친하고 정치가 일류 청부업자 나 같
은 사람하고도 아주 친해
이름이 뭔데
그자는 형사사건만 다뤄 주로 마약이나 뇌물 공갈 같은 것만
그중에서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죄목이 뭔지 알아
뭔데
살인 그는 살인사건을 제일 좋아해 한번도 진 적이 없지 멤피
스 거물들을 다 꺼내됐다구 자네 한 5년 전에 흑인들이 미시시피
다리에서 도회지 녀석 하나를 떨어뜨려 죽인 사건 아나 범인들은
현장에서 잡혔지
응 기억나는 것 같아
2주 동안 법정에서 신나게 싸우다가 결국 나왔어 그는 대단한
사람이야 아주 당당하게 법정에서 걸어나왔지 무죄를 선고받고
그래 나도 텔레비전으로 본 기억이 있어
그 사람이야 그는 진짜 프로라구 칼 리 단 한번도 실수를 하지
F
이름이 뭔데
캣은 다시 의자에 몸을 묻으면서 근엄한 표정으로 칼 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보 마샤프스키
칼 리는 마치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처럼 눈을 위로 치켜떴다
그래서
캣은 모두 8캐컨의 다이아몬드를 끼고 있는 손을 찬 리의 무릎 위
에 조용히 얹었다
그 사람이 자넬 돕고 싶어해
난 벌써 변호사를 구했기 때문에 줄 돈이 없어 얼마나 줘야 하는
돈은 한푼도 들지 않아 칼 리 내가 온 이유가 바로 그거야 그
사람은 내 개인변호사야 작년엔 법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조건으
로 그 사람한테 10만 달러나 주었지 자네는 돈을 낼 필요 없어
갑자기 칼 리는 보 마샤프스키에게 구미가 당겼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대
그 사람도 신문 보고 텔레비전을 보지 않나 자네도 변호사들이
어떤지는 잘 알잖아 내가 어제 그의 사무실에 들렀는데 자네 사진
이 나온 신문을 보고 있더라구 그래서 나와 자네의 관계를 얘기해
줬더니 마샤프스키가 잔뜩 흥분해서는 자네 사건은 무조건 자기가
맡겠다고 나서는 거야 그래 내 알아보마 했지
그래서 여기 온 거야낀
그래 그 친구 말로는 자긴 자넬 꺼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대
그게 누군데
정신과 의사들 말이야 마샤프스717F그쪽은 꽉 잡고 있지
돈이 들 텐데
내가 낸다니까그러네 칼 리 내 말잘들어 돈은몽땅내가댄
자네는 그 돈으로 최고의 변호사와 최고의 의사만 구해 그러
면 자네의 오랜 친구 이 캣이 돈을 치를 테니까 돈 걱정은 집어치
1
하지만 난 벌써 좋은 변호사를 구했어
나이는 얼마나 먹었지
한 서른쯤
캣은 칼 리의 말에 눈이 휘등그레졌다
칼 리 그는 어린애나 마찬가지야 대학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마샤프스키는 쉰 살이야 아마 자네 변호사가 알고 있는 사
건수보다 훨씬 더 많은 사건들을 다뤘을걸 이건 자네 생명이 달린
문제야 절대 그런 애송이한테 맡길 순 없어
갑자기 제이크가 너무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레스터 재
판 때 제이크는 지금보다 훨씬 어리지 않았는가
칼 리 나는 법정에 많이 서 봤기 때문에 변호사들이 하는 거짓말
이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지 잘 알아 딱 한번의 실수면 자네는 끝
이야 그 애송이가 사소한 실수 하나만 저질러도 자네는 사느냐 죽
느냐가 달라진다구 자넨 지금 어린애한테 실수하지 말라고 얘기할
여유가 없어 한번의 실수는 바로 가스실 행이야 하지만 마샤프스키
는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지
캣은 한번이란 단어에서 손가락까지 뻗어가며 열변을 토했다 칼
리는 슬슬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그 사람 내 변호사하고 같이 일하면 안 되겠나
칼 리가 타협안을 제시했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마샤프스키는 절대 같이 일하진 않아 누구
의 도움도 필요없지 그 애송이는 방해만 될 뿐이야
칼 리는 무릎 위에 양팔꿈치를 얹은 채 자기 발을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의사한테 줄 천 달러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총을 쏠 때 자
신이 왜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증명서가 필요한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증거로 그건 반드시 필요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으니까 싸구려 의사한테는 천 달러가 들지만 캣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의사를 제공해 줄 터였다
내 변호사한테 그런 말 하기는 싫네
칼 리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바보같이 굴지 말라구 이 친구야 자네가 나오는 게 급선무지
그 애송이랑 지옥에 가고 싶나 자넨 지금 남의 감정 상할까봐 신경
쓸 시간이 없어 그는 변호사야 잊어버려 곧 극복할 텐데 윌
하지만 벌써 돈을 뒀는데
얼마나 줬는데
캣은 손가락을 탁탁 부딪쳐 타이니에게 뭔가를 요구했다
백 달러
타이니가 돈 뭉치를 캣에게 건네주었구 캣은 눈으로 9字 달러를
세어 칼 리의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이건 애들한테 쓰라구
캣은9백 달러말고도 빳빳한천 달러짜리 지폐를한장 더 주었다
돈 뭉치가 가슴을 덮고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 박동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칼 리는 주머니 속에서 꿈틀거리는 돈의 감촉을 그의 가
슴을 지그시 누르는 지폐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돈
뭉치를 꺼내 손에 꼭 쥐고 싶었다 칼 리의 머릿속은 온통 아이들을
위한 먹을 것으로 꽉 찼다
이제 됐어
칼 리가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내 변호사를 해고하구 자네 변호사를 쓰란 말이지
칼 리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렇지 그렇지
그러면 자네가 모든 비용을 다 내겠다고
그럼 물론이지
이 돈은
자네 거야 더 필요하면 얘기하라군
자넨 정말 엄청나게 좋은 친구야 캣
그래 난 정말 좋은 친구지 난 지금 친구를 둘이나 돕고 있는 거
하나는 오래 전 내 생명의 은인이구 또 하나는 2년 동안 날 곤
경에서 구해준 사람이고
근데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내 사건을 맡고 싶어하나
인기 때문이지 변호사는 인기를 쫓아다녀 보라구 얼마나 많은
언론이 자네와 그 애송이를 유명하게 만들었는지 그게 바로 변호사
의 꿈이지 자 합의한 걸세
그래
캣은 다정하게 칼 리의 어깨를 툭 치고 나서 보안관 책상 위에 놓
인 전화기 쪽으로 걸어갔다
9015669800 캣 브루스터가 보 마샤프스키랑 통화하고 싶다고
전해 주쇼
멤피스 시내에 있는 빌딩 22층 보 마샤프스키는 수화기를 내려놓
고 비서에게 보도자료가 준비됐는지를 물었다 비서가 그에게 보도
자료를 넘겨주었구 그는 세심하게 내용을 살펴보았다
됐어 지금 당장 두 신문사로 보내 사진은 파일에 있는 것들 중
에서 새 것을 쓰라고 말해 포스트지의 프랭크 필드한테는 아침
신문에 1면에 실으라고 얘기해 그 친구 나한테 빛진 게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방송국은 어떻게 하지요
보도자료 복사해서 보내 지금은 시간이 없지만 다음주에 클랜
턴에서 기자회견 일정을 잡겠다고 그래
루시엔이 제이크에게 전화를 건 것은 토9일 아침 여섯시 삼십분
이었다 아직 담요 속에서 시체처럼 잠들어 있는 칼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제이크는 벽 쪽으로 기어가 램프를 더듬다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제이크는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자네 지금 뭐하고 있나
자다가 전화 받았는데요
신문 봤어
지금 몇 시입니까
가서 신문부터 읽은 다음에 나한테 다시 전화해
전화가 툭 끊겼다 제이크는 잠시 수화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전
화기 위에 얹어놓았다 제이크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눈곱을 떼어내
면서 루시엔이 집으로 전화를 건 적이 언제였나를 더듬었다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커피를 올려놓고 개를 내놓은 다음 운동용 반바지와 땀복을
입고 재빨리 거리로 나섰다 한 발짝씩 간격을 두고 아침 신문 세 개
가 길가에 떨어져 있었다 제이크는 식탁에 앉아 고무줄을 푼 다음
커피 옆에다 신문들을 펼쳐놓았다 잭슨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투펄로도 그렇고 멤피스 포스트의 1면 머릿기사는 중동 문제
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제이크는 보았다 1면 하단에 자기 얼굴이 실
려 있었다 제이크 브리건슨 해고라는 표제와 함께 그 옆에는 칼
리 헤일리의 사진이 있었구 그 다음에는 제이크도 본 적이 있는 눈
부신 얼굴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보 마샤프스키 기용이란 표제가
씌어 있었고 신문은 멤피스의 형사사건 변호사가 자경닦自發動
살인자를 변호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제이크는 너무 놀란 나머지 무기력해졌다 분명 오보일 거야 그는
어제도 칼 리를 만났었다 제이크는 다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어
떻게 해서 보 마샤프스키가 사건을 맡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얘
기는 거의 없었구 그의 혁혁한 업적에 대한 얘기만 그득했다 그가
한 말이라고는 클랜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겠다 새로운 각오로 사건
에 임하겠다 포드 군 배심원들을 믿는다 따위뿐이었다
제이크는 조용히 카키색 양복과 버튼다운 와이셔츠를 입었다 칼
라는 여전히 침대 깊숙한 곳에서 헤매고 있었다 칼라한테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구 제이는 신문을 집어들고 사무실로 향했다 커피
숍은 안전하지가 못했다 그는 에셀의 책상에서 다시 한번 기사를 인
은 뒤 1면을 장식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루시엔이 위로의 말을 보탰다 루시엔은 마샤프스키를 알고 있었
으며 그를 보고 상어라고 했다 그는 닳고닳은 너저분한 사기꾼이
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루시엔은 마샤프스키를 존경한다고 했다
모스는 칼 리를 보안관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제이크가 신문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모스가 재빨리 문을 닫고 나가자 칼 리는
검은색 의자에 앉았다
제이크는 칼 리에게 신문을 내밀면서 물었다
이거 보셨어요
칼 리는 제이크를 쳐다보기만 할 뿐 신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왜 그랬어a칼 리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잖아a제이
아니 해야 해9 당신은 나를 불러 속얘기를 해주지 않았어S
그리고 신문을 통해 이런 기사나 보게 했어요 난 설명을 들어야겠어
9
당신은 너무 많은 돈을 원했어요 제이크 당신은 항상 돈에 대해
불평했어요 난 여기 감옥에 갇혀 있는데 당신은 내가 도을 수 없는
걸 가지고 투덜거리잖아
돈이라구요 당신은 나한테 줄 돈도 없으면서 어떻게 마샤프스
키를 쓸 수 있나요
내가 내는 게 아니에요
뭐라구요
말 그대로예요 돈 안 낸다고요
마샤프스키가 공짜로 일한다는 건가요
아노 다른 사람이 내줘요
누구요
제이크는 소리를 질렀다
말할 수 없어요 당신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잖아우 제이크
당신이 멤피스 최고의 형사사건 변호사를 고용했는데 돈은 다른
사람이 낸다구요
그래요
순간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가 퍼뜩 떠올랐다 아니다 그쪽이라면
마샤프스키를 고용하지 않구 자기네 변호사들을 쓸 것이다 게다가
마샤프스키는 그들에게도 너무 비싸다 그럼 누구지
칼 리는 신문을 들어 반듯하게 접었다 부끄럽고 기분이 나빴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제이크에게 전화해서 소식을 전해 달라는 부
탁을 오지 보안관에게 했지만 그 역시 그런 심부름은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제이크를 불러야 했었다 하지만 칼 리는 사과하고 싶
은 마음은 없었다 칼 리는 신문 1면에 실린 자기 얼굴을 자세히 들
여다보았다 그는 자경단원 같은 행위란 언급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누군지 나한테 말 안 할 건가요
제이크가 다시 물었다 다소 침착해진 것 같았다
말 안 하겠어Q
레스터하고는 상의해 봤어요
칼 리는 제이크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아노 그가 재판을 받는 것도 아니구 이건 그애 일도 아니라구
9
레스터는 어디 있어요
어제 시카고로 떠났어요 그애한테 전화하지 말아요 난 이미 마
음을 정했으니까
두고 봅시다 레스터는 조만간에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제이크는 문을 열었다
그래요 난 해고됐어요 그뿐이죠
칼 리는 사진만 들여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칼라는 아침을 먹으면서 제이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잭슨 신문사
의 기자가 제이크를 찾는 전화를 했으며 그에게서 칼라도 마샤프스
키에 관한 얘기를 들은 것이다
제이크는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으쓱거린 다음 커피잔을 채워 뒷
문 쪽으로 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잔 너머로 제이크는
좁고 긴 뒷마당을 둘러막고 있는 듬성듬성한 울타리를 바라보았다
눈부신 햇살은 무성한 버뮤다 잔디를 태우고 이슬을 말려 옅은 안개
를 만들었다 안개는 그의 셔츠 위로 떨어져 달라붙었다 울타리와
잔디는 주말마다 있는 손질끌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크는 신발을 벗
어던지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물기를 머금은 잔디밭에 내려섰다
앙상한 은매화 곁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줍기 위해서였다 은매화 혼
자 서 있는 외로운 정원이었다
칼라가 제이크의 발자국을 따라서 등뒤로 다가왔다 그녀는 제이
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응 괜찮아
칼 리하고 얘기해 봤어요

뭐래요
제이크는 고개만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감스런 일이군요 제이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건들이 곧 생길 거예요
칼라는 자신 없는 말투로 얘기했다
알아
제이크는 버클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만 같았다 커피숍에 오는 많은 손님들도 떠올랐다 다시는 그 집에
못 가겠지 카메라와 기자들을 생각하니 뱃속에서 무지근한 통증이
일었다 제이크의 유일한 희망은 사건을 다시 맡는 것뿐이었다
아침 먹을래요
아니 배고프지 않아 고마워
좋게 생각해요 이제 협박전화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요
칼라는 제이크를 위로해 주었다
잔디 좀 깎아야겠어
목사평의회는 포드 군의 흑인공동체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도모하
기 위해 구성된 흑인 목회자들의 모임이다 보통 때는 자주 모이지
않지만 선거 때면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 오후에 회합을 갖는다
그들은 후보자를 인터뷰하구 논의사항을 토론하구 더 중요하게는
각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 것인가를 결정한다
자선금을 깎고 방법을 강구하고 돈을 주고받는다 평의회는 흑인들
의 표를 약속해 주었구 그 때문에 선거기간 중에는 교회로 들어오는
선물과 헌금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올리 에이지 목사는 일요일 오후 그의 교회에서 특별 모임을 소집
했다 오후 네시 설교를 일찍 끝낸 에이지 목사는 서둘러 모임 장소
로 갔다 링컨 컨티넨탈과 캐딜락이 주차장을 메우기 시작했다 모임
은 비밀이었고 목사평의회 소속 목사들만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포
드 군에 있는 흑인 교회는 모두 스물세 개였으며 에이지가 소집한
모임에 나온 사람들은 스물두 명이었다 모임은 길지 않았다 저녁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목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도 효
회의 목사는 곧 예배가 시작되니까 어서 가봐야 한다고 했다
에이지는 오늘 모임의 목적이 칼 리 헤일리에 대한 도의적 정치
적 경제적 후원을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칼 리는 그의 교
회에 다니는 착실한 신도였다 에이지는 최고의 변호사를 구하기 위
한 기금을 조성하고 그의 가족들을 도와줄 기금도 마련하자고 제안
했다 기금을 조성하는 문제는 에이지 목사가 맡곤 목사들은 보통
때처럼 자기 교회를 책임지기로 했다 다음 일요일부터 특별헌금이
아침 저녁으로 거둬질 것이다 그들 가족에게 헌금을 전하는 것은 에
이지 목사의 재량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기금의 반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쓰일 것이다 시간이 아주 중요했다 재판이 다음달로
다가왔다 문제가 한참 달아올라 있을 때 사람들이 돈을 내자는 분
위기일 때 돈을 재빨리 거둬야만 했다
평의회는 만장일치로 에이지 목사의 의견에 찬성했다 에이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도 헤일리 사건에 대한 활동을 개시할 것이
다 그가 백인이었다면 그곳이 포드 군이 아니었다면 그는 재판받
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단지 흑인이기 때문에 기소되었다는 것이 미
국흑인지위향상협회의 생각이다 본부장에게는 이미 연락을 했으며
멤피스와 잭슨 지부는 후원을 약속한 상태다 기자회견도 예정되어
있고 가두행진과 시위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시점에서 가장 호응
도 높은 전술인 백인 상점에 대한 불매 운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즉각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사람들
이 기꺼이 동찹하려 하고 기부할 마음이 있을 때 말이다 목사들은
그점에도 만장일치로 동의하고 저녁 예배를 위해 자리를 떴다
피곤하기도 하구 창피하기도 해서 제이크는 교회에 가지 않고 잠
을 잤다 칼라가 팬케이크를 만들어서 제이크와 칼라는 한나를 데리
핏 안뜰에서 오래도록 아침을 먹었다 제이크는 아침 신문을 발견했
으나 애써 무시했다 멤피스 포스트의 1면 하단은 마샤프스키와
그의 유명한 의뢰인에 대한 기사였다 마샤프스키의 말과 사진이 1
면을 온통 도배하고 있었다 마샤프스키는 헤일리 사건은 그에게 가
장 커다란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진지
한 법적 사회적 쟁점들이 제기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 진기한 피
고인은 자신을 고용했으며 자기는 그에게 석방을 약속했다는 것이
었단 그는 12년 동안 살인사건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랑하며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만 자신은 미시시피 배심원 여러분
의 지혜와 공정함을 믿는다고 했다
제이크는 한마디 말도 없이 기사를 읽은 뒤 쓰레기통에 신문을
처넣었다
칼라가 야외로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다 제이크는 일을 할 필요가
있었지많 칼라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은 사브에 음식과
장난감들을 싣고 호수를 향해 달렸다 하늘과 맞닿은 듯 내내 물마루
를 이루고 있던 진흙빛 채털라 호수는 며칠 있으면 중심부로 물이
천천히 고일 것이다 그러면 높아진 수위에 이끌린 뱃놀이 인파와 조
각배와 멧목 요트들이 몰려들 것이다
칼라는 누비 깔개 두 장을 언덕 중간의 떡갈나무 아래 넓게 펼쳤
고 제이크는 음식과 인형의 집을 차에서 내렸다 한나는 누비 깔개
한쪽에 자동차와 인형들 한 무더기를 펼쳐놓고 뭔가를 요구하면서
집을 지어가고 있었다 제이크와 칼라는 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빙그레 웃었다 한나의 탄생은 오장육부를 비트는 한 편의 고통스러
운 악몽이었다 아기는 복잡한 질병과 예후를 감춘 채 두 달 반이나
일찔 나왔다 11일 동안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고
무관과 주사바늘을 갈아끼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동안에도 제이크는
인큐베이터 옆에 앉아 13킬로짜리 앙상한 진흥빛 생명체가 삶을 향
해 기어오는 것을 죽 지켜보았다 제이크는 혼자 남아 있을 때면 인
큐베이터를 매만지며 양볼에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그는 난생 처음
기도라는 것을 해보았다 그는 흔들의자에 앉은 채로 딸 옆에서 잠이
들었구 파란 눈의 검은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인형들을
갖고 놀다 그의 어깨 위에서 잠드는 꿈을 꾸었다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간호사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구 의
사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일주일 동안 매일 하나씩 고무관이 사라
졌구 아이는 튼튼해져 몸무게가 2킬로그램이 넘었다 제이크와 칼
라는 자랑스런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의사는 그
들에게 양자를 들이지 않는 한 더이상 아이는 없을 거란 얘기를 조
용히 전해 주었다
한나는 이제 건강하게 자라났다 그애의 목소리는 아직도 제이크
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했다 칼라와 제이크는 점심을 먹으면서 인
형들에게 청결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한나를 보고 키득거
렸다
당신이 이렇게 쉬는 게 2주일 만이네요
누비 깔개에 나란히 누워 칼라가 말했다 울긋불긋한 멧목들은 반
쯤 취한 스키어들을 끌고 다니는 사나운 보트들을 살짝 피해가면서
호수 위를 누비고 있었다
지난 일요일에 교회에 갔잖아
온통 재판 생각만 하고 있었잖아Q
아직도 생각하고 있어
이제 끝난 거죠 그렇죠
모르겠어
칼 리가 마음을 바찰 것 같아요
레스터가 얘기하면 그럴지도 몰라 말하기 어려운 문제야 흑인
들은 도대체 예측 불가능이거色 특히 곤경에 처해 있을 때는 말이
야 칼 리는 진짜 홀릉한 카드를 쥐고 있는 셈이지 그는 멤피스 최고
의 형사사건 변호사를 고용했어 그것도 공짜로n
돈은 누가 내구요
칼 리의 오랜 친군데 멤피스 출신의 캣 브루스터란 사람이야1
어떤 사림인데요
돈 많은 포주에 마약 공급책이구 암살도 하고 도둑질도 해 마샤
프스키가 그의 변호사야 두 악당이 잘 만났지 뭐
칼 리가 당신한테 그 얘길 했나요
아니 말 안 하더라구 그래서 오지한테 물어봤지
레스터도 알아요
아직
그건 무슨 뜻이죠 당신 그에게 전화 안 할 생각이었어요
글쎄 그럴 생각이었어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a안 그래요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레스터는 알 권리가 있어 그리고1
그렇다면 칼 리가 레스터한테 얘길 해야죠
그래야 하는 거지만 그는 안 할 거야 실수를 하고 있지많 본인
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잖아
어쨌든 그건 그 사람 문제지 당신 문제는 아니에요 적어도 더이
상은Q
칼 리는 너무 당황해서 레스터한테 말하지 못하는 거야 레스터
가 자기한테 욕을 퍼붓고 또 실수를 저질렀다고 야단할까봐 그러는
거2
그럼 당신이 그들 집안 문제에 끼여들겠다는 얘기예요
아니 하지만 레스터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내 생각엔 그 사람도 신문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못 볼지도 모르지 한나한테 오렌지 주스 좀 더 주지 그래
당신 그 얘기 더이상 하고 싶지 않나 보군요
그것 때문에 괴롭지는 않아 난 그 사건을 원해 다시 찾아오고
싶다구 레스터는 그 사건을 되돌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칼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제이크도 그녀의 시선을 느꼈지만 호숫
가 근처의 진흙탕으로 달려가는 멧목만 쳐다볼 뿐이었다
제이큰 그건 비윤리적인 짓이에요 당신도 알잖아요
칼라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아직은 흔들림 없이 감정을 잘 통제하
고 있었지만 느릿한 한마디 한마디에는 조소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 않아 칼라 난 윤리적인 변호사라구
당신은 항상 윤리에 대해서 설교해 왔어9 하지만 이번에는 사
건을 달라고 구슬릴 음모를 세우고 있잖아9 그건 잘못된 거예a

구슬리는 게 아니고 되찾아오는 거야
무슨 차이가 있죠
구슬리는 것은 비윤리적이지만 되찾아오는 것은 금지된 게 아니

그렇지 않아우 제이크 칼 리가 다른 변호사를 고용힌으니까 당
신은 잊어버리면 그만이에요
당신은 마샤프스키가 윤리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가
어떻게 해서 이 사건을 맡았는지 알아 그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고객한테 고용된 거라구 그는 사건에만 집착한 거구 그래서 손에
쥐게 된 거야
당신이 지금 그 사건에 집착하는 건 괜찮구요
집착이 아니라 되찾는 거야
그때 한나가 쿠키를 달라고 했다 칼라는 소풍 바구니를 뒤졌다
제이크는 한쪽 팔꿈치에 몸을 기대고 누워 딸과 아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루시엔을 생각했다 루시엔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
게 했을까 아마 비행기 전세라도 내서 시카고로 날아가 레스터를
만나 돈을 좀 찔러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와서 칼 리에게
겁 좀 주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샤프스키는 미시시피 변호사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변론을 할 수 없으며 그는 외국인이므로 이곳
백인들도 그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샤프
스키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가로챈 것에 대해 실컷 욕을 퍼부은
다음 미시시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고소를
해버리겠다고 위협했을 것이다 그리고 흑인 친구들더러 그웬과 오
지에게 전화를 걸어 지옥에서 칼 리를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변호
사는 루시엔 윌뱅크스뿐이라고 설득하라고 시켰올지도 모른다 마침
내 칼 리는 항복을 하고 루시엔에게 기어오겠지
그게 바로 루시엔이 했음직한 일이다 변호사의 윤리라
왜 그렇게 웃고 있어요
칼라가 끼여들었다
당신이랑 한나랑 이렇게 나오니까 너무 좋아서 이런 기회가 별
로 없었잖아
당신 실망하고 있는 거죠
물론 그래 이렇게 큰 사건은 다시 없을 테니까 내가 이기기만
하면 난 이 분야에서 최고의 변호사가 되는 거라군 그럼 우린 돈 걱
정 따윈 안 해도 되지
만약 지면요
그래도 여전히 인기는 남지 하지만 갖고 있지도 않은 걸 어떻게
잃을 수 있겠어
화났어요
약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이 동네에서 일하는 변호사가 다 날
비웃을 거야 해리 렉스만 빼고 하지만 어떻게든 견뎌야지
스크랩북은 어떻게 할까요
그냥 둬 아직 다 채우지 못했잖아
3미터 길이에 1미터 넓이로 잔 작은 십자가는 픽업의 기다란 화
물칸에 딱 맞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예식에는 휠씬 더 큰 십자가
가 사용되지만 야밤에 주택가에 가지고 돌아다니기에는 작은 것이
더 좋았다 창단 멤버들은 자주 십자가를 써먹었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다 사실 포드 군에서도 이걸 쓴 지는 아주 오래되었
다 검등이 하나가 백인 여자를 강간해서 기소된 뒤로는 처음이었다
윌요일 아침 동트기 몇 시간 전 십자가는 조용하고도 빠르게 트
럭에서 내려졌다 이어 그들은 애덤스 가의 특이한 빅토리아식 저택
앞뜰에 30센티 정도 구덩이를 파고 십자가를 기운차게 박았다 그리
고 십자가 밑동에 횃불을 갖다댔다 불꽃이 금세 피어올랐다 픽업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더니 마을 어귀의 공중전화로 달려가 교환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분 뒤 보안관 대리인 프레이서는 애덤스 가에 이르자마자 제
이크네 앞마당에서 불타고 있는 십자가를 발견했다 순찰차는 제이
크의 집 앞으로 돌아 들어와 사브 자동차 옆에 섰다 프레이서는 초
인종을 누른 뒤 계속 불꽃을 지켜보며 현관에 서 있었다 새벽 세시
삼십분경이었다 그는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십자가의 불꽃 외에는
애덤스 가는 어둡고 고요했다 나무 십자가는 프레이서가 서 있는 곳
에서 약 15미터 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마침내 제이크가 어슬렁거리며 나와 문을 열어주더니 이내 그 자리
에 얼어붙어 버렸다 보안관 대리 옆에 선 제이크는 잠시 넋을 잃고
있었다 불타는 십자가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의미 때문에
잘 잤어8제이크
마침내 프레이서가 먼저 말을 꺼냈다 불꽃은 쳐다보지 않았다
누가 그랬죠
제이는 마르고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몰라요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니까요 조금 전에 전화를 걸어 한
번 가보라고만 하더군오
전화한 게 언제죠
십오분쯤 췄을 겁니다
제이크는 부드러운 미풍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을
렸다
얼마나 오래 탈까요
프레이서도 잘 모르는 줄 알면서 특히 불타는 십자가에 대해서는
자기보다도 아는 게 별로 없는 줄 알면서도 제이크는 그냥 물었다
글쎄요 아마 석유에 적셨을 거예요 아무튼 냄새는 그래요 두
시간은 더 타겠어9 소방차를 부를까요
제이크는 거리를 죽 훌어보았다 다른 집들은 여전히 어둠과 고요
에 잠겨 있었다
아누 모든 사람을 깨을 필요는 없어요 타게 내버려두죠 그리
해가 되진 않을 테니까요
마음대로 하세요
프레이서는 허리띠 위로 툭 튀어나온 배를 내민 채 주머니에 손
을 찔러넣고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이 근처에서 이런 일이 있기는 아주 오랜만이죠 1960년 캐러웨
01011
1967년이에9
기억하세요
예 고등학교 다닐 뻔데 차 타고 가서 구경했었죠
그 흑인 이름이 뭐였죠
로빈슨 로빈슨 뭔데 성은 잘 모르겠어9 그가 벨마 세이어글
강간했다고 그랬죠
사실이에요
배심원들은 그렇게 생각했죠 그는 남은 여생을 파치먼에서 목화
를 따며 보냈습니다
프레이서는 그 정도의 형벌이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칼라를 데리고 나올게Q
제이크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칼라가 제
이크 뒤에서 나타났다
9맙소사 제이누가 이랬어요
몰라
KKK단 아니에요
그럴 겁니다 그 사람들말고는 십자가를 태우는 사람이 없죠 안
그래a제이크 포드 군에서는 없어진 지 한참 된 줄 알았는데
프레이서가 제이크 대신 말해 주었다 제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이 돌아온 것 같아9
제이크가 프레이서의 말을 받았다
칼라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십자가의 불꽃이 그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떻게 좀 해봐요 제이크 불을 끄라구요
제이크는 불길을 보다가 인기척이 없나 길 양쪽을 살펴보았다 나
무가 타면서 내는 탁탁 소리는 점점 커졌고 불길은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순간 제이크는 다른 사람들이 알기 전에 불이 꺼졌으면 좋겠
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깨끗이 끝나는 것이고 세 사람 외에는 클
랜턴의 누구도 알지 못한 채 잊혀질 테니까 그러다가 제이크는 자신
의 어리석음에 혼자 괴식 웃고 말았다
프레이서는 그렇게 현관에 서 있는 게 피곤한 모양인지 툴툴거리
며 말했다
저 이젠 이런 걸 갖다 태을 필요가 없잖아요 신문에서 봤어요
그들은 변호사를 잘못 찾아온 거예요 맞죠
글을 못 읽나 보조
제이크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런가 보죠
근데 프레이서 보안관 대리 포드 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KKK단
원을 알고 있습니까
한 명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쪽에는 몇 있지만 이 근방
에는 하나도 없어요 제 의견이 아니구 FBI가 KKK는 이제 과거의
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다지 안심이 되지 않는군
왜요
만약 그자들이 KKK단이라면 이 근방에서 온 건 아니라는 얘기
니까요 이 불청객들은 우리가 모르는 외지에서 왔어요 그건 그들이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죠 안 그래요
모르겠어요 전 이 동네 사람들이 KKK단에서 활동하고 있을까
봐 더 걱정이에요 KKK단이 돌아왔다는 얘기니까요
저 십자가는 윌 의미하죠
칼라가 프레이서에게 물었다
경고예9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멈추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작은
나무를 태우는 것보다 더한 짓을 할 테다 뭐 그런 뜻이죠 옛날에는
흑인들에게 동정하는 백인이나 인권단체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겁
을 주기 위해서 이런 짓을 했습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그 다
음엔 폭력이 뒤따르죠 폭탄이나 다이너마이트를 쓰기도 하고 구타
하고 심하면 죽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 옛날 얘기죠 제이크 같은
경우에는 헤일리 사건에서 손을 떼란 얘기지요 하지만 이제 헤일리
씨 변호사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가서 한나 좀 살펴봐
제이크가 칼라에게 일러주자 칼라는 얼른 안으로 사라다
호스 같은 게 있으면 제가 꺼드릴게요
프레이서가 제안했다
좋은 생각이에요 나도 이웃들이 보는 건 싫으니까
제이크는 프레이서의 제안에 동의했다
칼라와 제이크는 잠옷을 입은 채 현관에 서서 프레이서 보안관 대
리가 불타는 십자가에 물을 끼얹는 것을 바라보았다 물이 끼얹어지
자 십자가에서는 치익 소리와 함께 연기가 잔뜩 피어올랐고 이내 불
길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프레이서는 십오분 정도 물을 뿌린 뒤
호스를 가지런히 말아 첫번째 충계 옆에 있는 관목 화분 뒤에 갖다
놓았다
고마워a프레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죠
프레이서는 젖은 손을 바지에 쓱쓱 닦은 뒤 모자를 바로 썼다
물론이죠 문 잘 잠그세9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바
로 전화하세9 앞으로 며칠간은 가까이에서 잘 지켜보겠습니다
프레이서는 보도를 걸어내려가 차를 타고 광장을 향해 애덤스 가
를 천천히 빠져나갔다 칼라와 제이크는 흔들의자에 앉아 연기가 나
고 있는 십자가를 지켜보았다
U라이프지에서 옛날 얘기를 읽고 있는 기분이군
제이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미시시피 역사책의 한 장을 읽는 것도 같네요 아무래도 그들한
테 당신이 해고됐단 사실을 알려야겠어요
과마워
고맙다니요
남의 일처럼 얘기해 줘서
미안해9 물러났다거나 그만뒀다고 말했어야 하는
그냥 다른 변호사를 구했다고 그래 당신 진짜 겁먹었나봐
그래요 너무너무 무서워요 우리 집 마당에서 십자가를 태우는
사람들이 우리 집인들 못 태우어요 이건 그만한 가치가 없는 일
이에요 제이크 난 당신이 홀릉한 자질을 발휘해 성공하고 행복해지
길 원해요 그렇지만 우리의 안전이 희생될 수는 없어요 어떤 사건
도 그만한 가치를 지니진 못한다구Q
내가 해고돼서 기쁘다는 얘기야틴
난 그가 다른 변호사를 구해서 좋다는 것뿐이에9 이젠 우릴 내
버려둘 테니까
제이크는 칼라를 안아 그의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의자는 기분좋
게 흔들렸구 칼라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새벽 세시 삼십분에 잠옷
을 입고 있는 칼라는
그들이 다시 올까요
아냐 우리한텐 끝났어 그들도 내가 사건에서 손을 價다는 걸 곧
알게 될 거야 어쩌면 사과 전화라도 할지 모르지
농담하지 말아a제이
알았어
사람들이 알게 될까요
몇 시간도 안 걸리지 다섯시에 커피숍이 문을 여니까 델 퍼킨스
는 첫 커피를 다 따르기도 전에 세세한 것까지 알게 될 거야
우린 이제 어떻게 하죠
칼라가 턱 끝으로 십자가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십자가는 어둠 속
에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좋은 생각이 났어 저걸 멤피스로 가져가서 마샤프스키 집 앞에
다 태우자구
난 잠이나 자야겠어Q
아침 아흡시 제이크는 사건에서 손을 뗀다는 내용의 서류 작성을
막 마쳤다 열심히 타이프를 치고 있던 에셀이 제이크에게 인터폰을
넣었다
브리건스 씨 마샤프스키 씨 전화예요 제가 회의중이라고 했더
니 기다리겠답니다
받을게
제이크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브리건스 씨 멤피스의 마샤프스키입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예 아주 잘 지냅니다
좋아요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 신문을 보셨을 줄로 아는데 거기
도 신문이 갑니까
예 전화도 있고 우체통도 있습니다
그럼 헤일리 씨에 관한 기사를 보셨겠네요
예 아주 훌릉한 기사더군요
그 정도는 별거 아닙니다 시간이 있으면 사건 얘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요
기꺼이 그러죠
제가 아는 미시시피 주의 법절차에 의하면 외부의 변호사가 그
곳에서 변론을 하려면 그곳 변호사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던데
그럼 미시시피 면허가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제이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음 없습니다
기사에는 그런 얘기가 안 나오던데요
그것도 별거 아니니까요 판사가 모든 사건에 대해서 사전 협의
를 요구합니까
판사에 따라 다르죠
누스 판사는 어떻습니까
가끔 요구하죠
고맙습니다 저도 시골에서 일할 때는 그곳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곤 하지요 시골 변호사들은 저랑 같이 일하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
정말 좋으시겠군
당신만 관심있다면
당신 지금 장난하는 거야
제이크가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지제 막 해고된 사람더러 당신 서류가방이나 들고 따라다니라구
당신 미쳤군 그래 절대로 당신하고는 일 안 해
잠간만 시골뜨기
이것봐 변호사 이 얘긴 당신한테 충격적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주에는 변호사가 지켜야 할 윤리라는 게 있고 그걸 어기면서 소송이
나 의뢰인을 가로채지 못하게 되어 있어 혹시 이익분배 특약에 관한
소송원조를 아시나 물론 모르시겠지 그건 여기 미시시피뿐만 아니
라 대부분의 주에서도 중죄로 처벌되는 거야 우리는 소송강탈과 소
송원조를 금하고 있는 윤리 강령을 가지고 있지 이봐 상어 씨 도대
체 윤리란 말을 들어보기나 했나
얘야 난 소송을 가로채지 않는단다 그들이 나한테 온 거지
칼 리 헤일리처럼 말이지 그럼 칼 리 헤일리가 당신 이름을 전
화번호부에서 찾아냈나 보군 아마 당신 광고는 낙태시술자 다음에
전면 광고로 실려 있겠지
헤일리 씨는 내 얘기를 들은 것뿐이야
그래 그 포주를 통해서 나는 당신이 그에게 어떻게 했는지 훤히
꿰고 있다구 철저한 교사지지 난 변호사협회에 당신을 정식 제소할
생각이야 아직은 좋겠지만 내가 대배심원들 앞에서 당신 수법을 읖
으면 어떻게 되나 두고보
그러라구 당신하고 검사하고 너무너무 친하다는 것도 알고 있으
니까 잘해 보시지 변호사 양반
마샤프스키는 그 말과 동시에 먼저 전화를 끊었다 제이크는 한
시간이나 씩씩거리다가 간신히 서류에 다시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
다 루시엔이 그를 봤으면 자랑스러워했을 텐데
점심을 먹기 직전 제이크는 설리번 회사의 웜터 설리번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제이잘 지냈나
아 그럼9
좋아 들어봐 제이크보 마샤프스키와 나는 아주 오랜 친구 사
이지 몇 년 전에 사기죄로 걸린 은행 임원들을 변호할 때 같이 일했
지 물론 다 석방시켜 주었어 그는 진짜 변호사야 그 친구가 이번에
칼 리 헤일리 사건으로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자네하고 얘기
좀 할까
제이크는 수화기를 내던지고 사무실을 나와 버렸다 제이크는 루
시엔네 앞 현관에 앉아 그와 함께 그날 오후를 보냈다
그웬은 레스터의 전화번호를 몰랐다 오지도 그렇고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교환수 말로는 시카고 전화번호부에 실린 헤일리란
성은 두 페이지가 넘구 레스터 헤일리만 해도 최소한 열 개는 된다
는 것이었다 제이크는 처음 다섯 개의 번호를 받아적어서 일일이 꽉
인하기 시작했다 모두 백인이었다 제이크는 다시 술집 탱크스 통
크의 주인 탱크 스케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탱크스 통크는 포드 군
에 있는 흑인 전용 술집이었는데 비교적 깨끗하고 안전한 곳으로 레
스터가 특히 좋아한 곳이었다 제이크의 고객이기도 한 탱크는 흑인
들의 거래 관계나 土재 따위에 관한 정보를 제이크에게 종종 제공해
주곤 했다
화요일 아침 탱크는 은행에 가는 길에 제이크의 사무실에 들렀다
지난 2주 동안 레스터 얼굴 본 적 있어
제이크가 물었다
그럼 우리 집에 와서 당구도 치고 술도 마시면서 며칠 놀다 갔
지 지난 주말에 시카고로 갔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봐 이번 주 내
내 못 봤거든
누구랑 같이 있었지
주로 히셀프랑 있었지
아이리스하고는
헨리가시외에 나가고 없을때 몇 번 데리고 왔지 레스터가아이
리스를 데리고 올 때마다 아주 신경쓰여 죽겠어 헨리는 성깔이 안
좋아 둘이 같이 있는 걸 아는 날엔 둘 다 목이 날아갈 거야
둘이 만난 지 벌써 십 년이야 탱크
그래 두 아이도 다 레스터 애지 헨리만 모르고 다 알고 있지 불
쌍한 헨리 헨리가 그 사실을 아는 날엔 자네한테 살인사건이 하나
맡겨질 거야
탱아이리스하고 얘기할 수 있지
그 여잔 자주 안 와
그게 아니고 레스터의 시카고 전화번호를 알고 싶어서 그래 아
이리스는 알고 있을 거야
분명히 알 거야 레스터가 돈을 보내는 모양이니까
좀 알아봐줘 레스터하고 할 얘기가 있어
걱정마 아이리스가 알고 있으면 내가 알아내 줄게
수요일이 되자 제이크의 사무실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고객들
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까다로운 바가지꾼인 에셀도 전에 없
이 아주 상냥하고 부드러워졌다 제이크는 다시 변호사로서 일을 시
작했지만 고통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는 커피숍에도 가지 않았구
그가 법원에 가서 해야 하는 서류 제출과 일정 확인 등의 모든 업무
를 에셀에게 떠넘겼다 제이크는 화가 났고 굴욕감에 빠졌으며 고
통스럽기까지 했다 다른 사건에 전념하기는 쉽지 않았다 장기간의
휴가를 고려해 보았지만 그럴 여유도 없는 처지였다 돈은 쪼들리고
일할 의욕은 나지 않았다 그는 사무실에서 지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법원과 광장만 내려다보면서 흘려 보냈다
제이크는 가끔 몇 블륵 건너 구치소에 있는 칼 리 헤일리에 대한
상념에 잠겼다 왜 배신을 당했을까에 대해 수천 번도 넘게 생각했
다 제이크는 돈 문제를 가지고 그를 너무 심하게 압박했으며 자기
말고도 기꺼이 공짜로 일을 맡을 변호사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잊
고 있었던 것이다 제이크는 마샤프스키를 증오했다 제이크는 마샤
프스키가 멤퍼스 법정을 들락날락하면서 고통받고 있는 불쌍한 자
기 의뢰인은 죄가 없으며 학대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꼴을 여러 차례
봤었다 마약 거래업자 포주 타락한 정치인 살인청부업자 등등 모
두 유죄였구 모두 감옥에서 오랫동안 썩을 인간들이었으며 심지어
사형당할 놈도 있었다 마샤프스키는 전형적인 양키였다 듣기 싫은
코멘 소리를 내는 걸 보면 틀림없이 북쪽 중서부 출신이었다 멤피
스 남쪽에서는 분명 그를 싫어할 텐데그는 능란한 배우처럼 카메
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콧소리로 떠들어댔다
내 의뢰인은 멤피스 경찰에게 부당하게 대우받고 있습니다 내
고객은 절대적으로 조금의 의심도 없이 완벽하게 무죄입니다 그에
게 재판 따위는 필요없습니다 그는 시민의 모범이며 꼬박꼬박 세금
을 내는 착실한 납세자입니다 민주시민을 이렇게 다루어도 되는 겁
니까
제이크는 그가 이링게 지껄이는 걸 열두 번도 더 봤다 직무상 부
당 취득으로 네 번이나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는데 어텅게 생각하
냐고 물으면 마샤프스키는 이렇게 떠들었다
그는 FBI와 정부의 함정에 걸린 겁니다 게다가 그는 이미 대가
를 치렀습니다 이번에는 절대적으로 무죕니다
제이크는 마샤프스키가 정말 싫었다 그리고 제이크의 기억에 의
하면 그가 진 게임도 이긴 게임만큼이나 많았다
수요일 오후가 되도록 마샤프스키는 클랜턴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지는 마샤프스키가 구치소에 나타나면 알려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순회법정은 금요일까지 계속 열렸다 제이크는 누스 판사를 만나
서 사건에서 손을 메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았다 누스 판사는 마침 민사사건을 주재중이었다 버클리 검사
와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제발 없기를 버클리 검사
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구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누스 판사는 보통 세시 삼십분경에 십분간 휴정을 했다 제이크는
정확하게 그 시간에 맞춰서 옆문을 통해 판사실로 들어갔다 누스 판
사는 아직 안 온 모양이었다 제이크는 창문가에 앉아 재판장석에서
내려와 뒤뚱거리며 걸어오고 있을 판사를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약
오분쯤 있으려니 문이 열리면서 판사가 들어왔다
제이잘 있었소
예 판사넘 시간 좀 있으십니까
제이크가 문을 닫으며 물었다
물론이요 자리에 앉아요 그래 무슨 일이죠
누스 판사는 법복을 벗어서 의자 너머로 던지더니 책상 위를 정
리하구 펼쳐졌던 책과 파일을 덮구 들었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얼빠진 사진틀을 한번 만지작거린 뒤 천천히 두 손을
배 위에 얹어놓았다 이어 누스 판사는 지그시 눈을 감고는 숨을 깊
게 들이쉬었다
등이 아파서 말이오 의사는 가능하면 딱딱한 데 누워 쉬라고 하
더군9
물론 그러셔야죠 그만 갈까요
아 아니오 그래 무슨 일이오
헤일리 사건 때문에요
내 그럴 줄 알았소 당신이 제출한 서류를 봤소 다른 변호사를
구했다더군
예 판사님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7월 재판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소 그 서류는 접수될 거요 당신 잘못이
아니잖소 늘 있는 일이에요 마샤프스키란 사람이 새로 맡는다지

예 멤피스 변호삽니다
포드 군에 충격을 몰고을 이름 같군
그렇습니다
누스noose는 올가미 교수형이란 뜻이 있디옮긴이란 이름만큼이
나 불쾌하주 제이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미시시피 면허가 없답니다
제이크는 마샤프스키를 생각해 주는 척하면서 설명했다
그것 참 재밌군 우리쪽 절차에 대해선 알고 있던가요
미시시피에서는 한번토 재판을 해본 것 같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일할 때는 항상 그곳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답니다
시골이라구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재 법정에 나타나려면 반드시 누군가를 대동하고 와야 할 거요
난 다른 주 특히 멤피스 변호사들하고는 안 좋은 경험이 있으니까
잘 알겠습니다
누스의 숨이 점점 가빠졌다 제이크는 이제 그만 가보기로 했다
판시럼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7월에는 못 뵙겠지많 8월 재판 때
뵐 수 있을 겁니다 등 조심하세요1
고맙소 제이크 잘 지내요
제이크가 뒷문에 거의 이르렀을 즈음 법정으로 통하는 커다란 문는
이 열리면서 그 잘난 윈스턴 로터하우스와 몇몇 설리번 회사의
용병들이 거들먹거리며 판사실로 들어왔다
여어 잘 있었나 제이크
로터하우스가 큰 소리로 떠들며 다가왔다
자네 아1小 우리 신임 변호사네 K 피터 오터라고
만나서 반갑습니다 피터 씨
제이크가 가볍게 인사했다
우리가 방해했나
아니 지금 막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판사님은 등 때문에 좀 쉬셔
야 하거든요 가서 일해야지요
여러분 일단 앉으십시오
판사가 말했다 그러나 로터하우스는 계속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
었다
제이쿠 우리 회사가 이번에 칼 리 헤일리 사건에 참여하기로 한
것 자네한테 얘기한 것 같은데
들었습니다
자네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안됐네
당신 슬픔이 너무 지나친 것 같군요
우리 회사로서는 아주 흥미있는 사건이 나타난 거지 그동안 우
린 형사사건을 너무 안 다뤘거든
알고 있어Q
제이크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난 빨리 가봐야 합니다 얘기 잘 들었어요 로터하우스 피터 씨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월터하구 로버트 다른 변호사들한테도 내가
안부 전하더라고 말해 주세요
제이크는 뒷문으로 법원을 빠져나오면서 아예 뺨을 내밀고 서서
당하고 온 자신에게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그는 재빨리 사무
실로 달려갔다
탱크 스케일한테 전화 왔었소
제이크는 충계를 올라가면서 에셀에게 물었다
아노 그런데 버클리 검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이크는 첫번째 칸에서 우뚝 멈춰 섰다
어디서요
그는 이를 악물고서 물었다
위층 당신 사무실에서
제이크는 에셀의 책상으로 다가가 그녀 앞에 고개를 바짝 들이밀
었다 에셀도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제이크
는 에셀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난 그 사람하고 약속한 적 없어요
이번에도 제이크는 이를 악문 채 내뱉었다
없었It
에셀의 시선을 책상 위에 던진 채 대답했다
그 사람이 이 건물 주인이라도 됩니까
에셀은 움직이지도 않구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 사무실 열쇠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역시 대답도 없었고 움직임도 없었다 제이크는 에셀에게 더 바짝
다가섰다
이번 일로 당신을 해고할 수도 있어9
에셀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에셀 나는 당신이라면 신물이 나요 당신의 태도 그 목소리 그
리고 교만한 자세 모두 다 사람들을 다루는 것도 그렇고 하여튼 당
신의 모든 게 맘에 안 든다子나요
에셀의 눈이 젖어갔다
미안해
당신은 그렇게 생각 안 하고 있어9 당신도 알다시피 수년 동안
내가 없을 때 내 사무실에 올라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내 아내
조차도요
그가 막 우겼어
그놈은 나쁜 놈이에요 그자는 어디든 사람을 쑤셔넣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구요 하지만 여기는 사무실이잖꾜
쉬 듣겠어요
상관없소 그자도 자기가 나쁜 놈인지 아니까
제이크는 에셀에게 더 달려들었구 두 사람의 코는 한 뼘도 채 떨
어져 있지 않았다
에셀 계속 일하고 싶어요
에셀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해9 지금 내 사무실에 올라가서
버클리를 끌고 나와요 그리고 그자를 회의실로 데려다 줘요 거기서
만날 테니까 그리고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아
에셀은 눈물을 훔치며 위충으로 뛰어올라갔다 잠시 후 지방검小
버클리는 회의실에 앉혀졌다
제이크는 바로 옆에 있는 주방으로 들어가 오렌지 주스를 들이키
면서 버클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제이크는 천천히 주스를 마
셨다 십오분 뒤 제이크는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버클리 검
사는 긴 회의 탁자 한쪽 끝에 앉아 있었다 제이크는 반대편 끝으로
가 멀리 떨어져 앉았다
안녕하시9버클리 무슨 볼일이오
여긴 참 좋은 곳이P 옛날에 루시엔이 썼던 걸로 알고 있는데
맞아요 무슨 일로 왔습니까
그냥 와보고 싶어서
난 지금 바쁩니다
헤일리 사건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소
마샤프스키한테 전화하시요
나는 한판 붙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특히 당신하고 말이오 당
신은 참 좋은 적수요
영광이군
오해하지 말아요 나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오래됐지
레스터 사건 이후죠
그렇쇼 당신은 그때 날 이겼지만 나한테 사기를 쳤소
나는 이겼습니다 중요한 건 그거요 그리고 난 사기치지 않았소
당신이 멍하니 있다가 당한 것뿐이지
당신이 속임수를 써서 누스가 당신 손을 들어준 거
아무튼 나 역시 당신을 좋아하지 않소
좋소 그렇다니 오히려 마음이 놓이는군 마샤프스키에 대해서
좀 알고 있소
그거 알아보러 여기 온 거요
어쩌면
난 그 사람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소 설령 그 사람이 내 아버지
라 해도 당신한테는 해줄 말이 하나도 없소 또 다른 용건 있나요
분명히 마샤프스키하고 얘기했을 텐데
전화로 몇 마디 나눴소 그 사람 때문에 걱정된다는 말은 아예 그
판둬Q
아니요 그냥 호기심에서 그러는 거요 워낙 평판이 자자해서
그렇죠 그 사람 평판이나 얘기하려고 여기 온 건 아닐 텐데
물론 아니오 난 사건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소
뭐에 관해서죠
석방 가능성 변론 전략 그리고 그가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등에 관해서요
내가 알기로 당신은 유죄판결을 장담하지 않았소 카메라 앞에
서 그런 것 기억나요 기소 후에 바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말요 당
신의 기자회견들 중 하나였소
벌써 카메라가 그리운가 보군a제이크
걱정 마십시오 검사님 난 이 게임에서 빠졌으니까 이제 카메라
는 몽땅 당신 거요 최소한 당신과 마샤프스키 그리고 설리번네 애
들 거죠 자 가서 싸우시죠 혹 내가 전에 당신의 스포트라이트를 빼
앗은 적이 있다면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그것 때문에 상처가 컸다는
것도 알고 있고
사과는 받아들이겠소 마샤프스키가 여기 온 적 있소
모르소
이번주에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했다는데
이제는 그의 기자회견에 대해서 얘기하자는 거요
아니요 난 그냥 헤일리 사건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을 뿐이오 하
지만 당신이 무척 바쁜 것 같아서
그렇소 게다가 나는 주지사님하고 할 말이 없소
듣기 거북하군
왜요 당신도 아는 사실 아니오 당신은 신문에 날 수만 있다면
당신 어머니라도 기소할 거요
버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의자 뒤로 가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난 당신이 여전히 이 사건을 맡길 바라오 브리건스
버클리는 목소리를 잔뜩 높여 말했다
나도 그렇소
당신한테 살인자를 어떻게 처벌하는가에 대해서 몇 가지 좀 가르
쳐주고 싶소 당신 콧대도 박살내고
과거에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지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 당신과 붙고 싶다는 거요 브리건스 난 당
신을 갈망하고 있지
늘 그렇듯이 버클리의 얼굴이 아주 시뻘개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건도 있을 거요 주지사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그랬지
버클리가 드디어 고함을 질렀다
재가 틀린 말했소 주지사님 그게 바로 당신이 그토록 카메라에
집착하는 이유 아니오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요 늙은 루퍼스
가 주지사가 되려고 카메라를 쫓아다니고 있다 맞는 말이잖소
난 내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오 악당들을 기소하는 일
칼 리 헤일리는 악당이 아니오
내가 그를 불질러 버리는 걸 지켜보시오
그렇게 쉽진 않을 거9
두고보지
배심원 열두 명을 다 설득할 수 있겠소
아무 문제 없소
대배심 때처럼
왔다갔다하던 버클리가 갑자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는 실눈
을 뜨고 제이크를 노려보았다 그의 드넓은 이마를 굵직한 주름살 세
개가 깨끗하게 가로질렀다
대배심에 대해서 뭘 알고 있는 거요
당신이 아는 것만큼 한 표만 적었으면 당신한테 물 먹일 수 있었
다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오
이거 왜 이러시나 주지사님 지금 기자한테 말하고 있는 것도 아
니잖소 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구 몇 시간도 안
돼서 알았지
누스 판사에게 말하겠소
그럼 난 신문사로 가서 말하면 되成分 재판도 시작하기 전에 꼴
좋겠소
감히 못 그럴걸
물론 지금은 아니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난 해고됐소 기억해
요 그래서 당신이 여기 온 것 아니오 난 사건에서 떨어져 나갔지
만 당신은 건재하다는 사실을 내게 상기시켜 주려고 남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러 온 것 아니오 좋소 당신 뜻대로 했쇼 그러니 이제
여기서 나가 주시요 가서 대배심원들이나 단속하란 말이요 어쩌면
기자들이 법원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당장 나가
기꺼이 방해해서 미안하오
천만에 미안한 건 본인입니다
버클리는 문을 열고 나가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재가 거짓말을 했소 제이크 당신이 사건을 안 맡아서 난 좋아
죽겠쇼
나도 당신이 거짓말했다는 걸 알고 있소 하지만 안심하지 말아
무슨 뜻이오
안녕히 가십시오 검사님
포드 군의 대배심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구 제이크는 둘째 주
목요일까지 새로 기소된 두 피고인에 대한 변호를 할 예정이었다 그
중 하나는 흑인으루 지난 4월 매세이네 술집에서 다른 흑인에게 칼
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었다 제이크는 이런 사건을 좋아했다 왜
냐하면 이런 사건들은 무죄로 석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배
심원들이 전부 백인으로 채워지는 경우 흑인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
는 것은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죽지만 않는다면 백인들은 저 아래
술집에서 싸움판이 벌어져 누가 누구를 찌르는 것 정도는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해롭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제이크가 레
스터 사건에서 배운 전략이었다 제이크는 새 의뢰인에게 수임료로
천오백 달러를 약속받았지만 그보다 보석금 마련이 더 급했다
다른 고객은 훔친 픽업을 몰다가 잡힌 백인 소년이었다 똑같은
죄로 세 번째 걸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파치먼에서 7년 정도 살다 나
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두 사람 다 구치소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제이크에게는 그들을 방
문할 기회와 의무가 주어졌구 오지 보안관도 대면해야 했다 목요일
오후 늦게 제이크는 보안관 사무실에서 오지를 만났다
바빠
족히 수십 킬로는 되어 보이는 서류뭉치들이 책상과 바닥에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제이크가 물었다
아냐 단순한 서류 업무야 또 십자가가 불타진 않았나
아니 다행히 하나로 끝났네
멤피스에서 온다던 친구는 아직 土식이 없더군
글쎄 나도 그게 이상해 지금쯤은 왔어야 되는데 칼 리하고 얘
기해 봤나
매일 얘기하지 걱정이 많은 모양이야 변호사한테 전화 한통 없
다던데
잘됐어 땀 좀 빼보라고 그래 그 사람 별로 불쌍하지도 않아
자네 칼 리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나
그래 오지 난 이 지역의 백인들에 대해서 잘 알아 그리고 그들
이 배심원이 되었을 때 어떻게 나올지도 잘 알구 그들은 말만 번드
르르하게 하는 외국인에게 호감을 갖지 않을 걸세 자네도 동의하
1
난 모르겠어 변호사는 자네니까 난 자네 얘기를 믿네 자네가
일하는 걸 죽 지켜봤으니까
그자는 미시시피 면허도 없어 누스 판사가 그냥 안 둘걸 누스
판사는 타지 변호사를 아쿠 싫어하거든
정말이이i
그럼 어제 판사랑 얘기했지
오지는 당황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만나보겠어
누구
칼 리
싫어 난 그 사람 만날 이유 없어 레로이 글래스를 만나야 해 폭
행죄로 기소된 사람
제이크는 서류가방에서 시선을 테지 않으며 말했다
레로이를 맡았나
웅 오늘 아침에 그 가족들이 찾아왔더라구
따라와
제이크가 면회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간수가 새 의뢰인을 데
리고 왔다 레로이는 포드 군의 형광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있었
다 분홍색 스펀지 롤러가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사방을 훌고 지난 듯
페인트 범벅이 되어 있었고 두 갈래로 길게 땋아 목 뒤로 넘긴 머리
는 기름이 껴 번질번질했다 양말을 신지 않은 검은 두 발에는 천으
로 만든 연녹색 슬리퍼가 신겨져 리놀릅 바닥의 먼지로부터 보호받
고 있었다 사나워 보이고 오래된 듯한 칼자국이 오른쪽 귓불 아래에
서부터 광대뼈를 지나 오른쪽 콧구멍까지 선명하게 이어져 있었다
찌르고 긋는 일에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는 증거
였다 그는 그걸 무슨 메달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담배부터 피
워 물었다
레로이 씨 전 제이크 브리건스입니다
제이크는 자신을 소개하구 펩시콜라 자판기 옆에 있는 접는 의자
를 가리켰다
어머니와 형님께서 오늘 아침에 저에게 변호를 의뢰하셨습니다
만나서 반가워a제이크 씨
제이크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동안 간수는 문가에서 지키고 서
있었다 제이크는 세 쪽 분량의 정보를 적어 나갔다 이 시점에서 최
우선의 관심사는 바로 돈이었다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더 구해 을
수 있는지 하는 문제들이었다 사건 얘기는 그 다음이었다 고모든
삼촌이든 형제 자매나 친구들이든 돈을 빌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
동원을 해야 한다 제이크는 전화번호를 받아적었다
내 얘기는 누가 하던가요
제이크가 물었다
텔레비전에서 당신과 칼 리 헤일리를 봤어9
제이크는 자랑스러웠지만 웃지는 않았다 텔레비전은 그의 파트
너라고 할 수 있었다
칼 리를 압니까
예 레스터도 알아요 당신이 레스터 변호사였죠
어젯밤에 칼 리가 있는 방으로 옮겨졌어요 같이 있죠
말이 없죠
예 별로 말이 없더군요 당신은 정말 좋은 변호사지만 어쩌다가
멤피스의 변호사를 구하게 됐대9
그래9 새 변호사에 대해서는 뭐라고 그러던가요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에 보니까 새 변호사가 아직도 만나러 오
지 않아서 몸이 잔뜩 달아 있어요 당신은 언제든 찾아와 사건 얘기
를 했었는데 그 웃기는 이름을 가진 변호사는 아직 내려와 보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제이크는 얼굴을 구기면서 기쁨을 감추려고 했지만 잘
았다 되지가 않
칼 리한테 얘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제가 얘기해 드리죠
말 안 할게요
그의 새 변호사는 그를 만나러을 수가 없어요
예 왜요
미시시피에서 변론할 수 있는 자격증이 없으니까요 그는 테네시
주 변호사예요 그 사람 혼자 여기 내려왔다가는 법정에서 쫓겨날 거
예요 칼 리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러워요
근데 왜 칼 리한테 얘기 안 하시는 거죠
이미 그가 절 해고했기 때문이죠 전 더이상 그에게 조언을 해줄
수 없는 몸이랍니다
그래도 누군가가 해야 해요
당신은 말 안 하기로 약속했어요
물론이죠 입 다물게요
약속해요
맹세하겠어요
좋아요 저는 가겠어요 내일 아침에 보석담당관을 만나니까 아
마 하루이틀 안에 나오게 될 거예요 칼 리한테 한마디도 하지 말아
a알았죠
아 알았어Q
탱크 스케일은 제이크의 사브 자동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제이크
가 구치소에서 나오자 그는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끄고는 셔츠 주머
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두 개야 위는 집이구 아래는 직장이야 웬만하면 직장으로는 전
화하지 말래
잘했어 탱크 아이리스한테 받았나
응 안 가르쳐 주려고 그러더라구 어젯밤에 들렀길래 잔뜩 술을
먹여서 알아냈지
신세 갚겠네
그래 조만간에
시계는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밖은 어두웠다 저녁상은 다 식
어 버렸다 드문 일도 아니었다 제이크가 전자렌지를 사준 것도 이
런 때를 대비해서였다 칼라는 몇 시간씩 기다리고 다시 데운 음식을
먹는 데 이골이 나 있었구 불평도 하지 않았다 칼라는 제이크가 돌
아와야만 밥을 먹었다 그게 여섯시가 됐든 열시가 됐든
제이크는 구치소에서 나와 사무실로 차를 몰았다 칼라가 있는 집
에서는 레스터한테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제이크는 사무실에 우두커
니 앉아 탱크가 건네준 전화번호를 들여다보았다 칼 리는 레스터한
테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왜 나는 전화를 해야만 하는 걸까
이것도 소송원조에 해당될까 비도덕적일까 레스터한테 전화를 걸
어 칼 리가 자기를 해고하고 다른 변호사를 구했다고 말하는 게 비
도덕적이란 말인가 아니다 그럼 새 변호사에 대한 레스터의 궁금
증을 풀어주는 게 아니야 걱정된다고 얘기하는 게 물론 아니다
그리고 신임 변호사를 헐뜯는 건 아닐 것이다 레스터한테 형을 설
득해 달라고 부탁하는 건 그것도 아니다 마샤프스키를 해고하라고
하면 그건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자기를 고용하라고 하면
그래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 그건 아주 비도덕적인 짓이야 제이
크는 일단 레스터한테 전화부터 걸어서 얘기가 흘러가는 대로 내버
려두기로 했다
여보세요
레스터 헤일리 씨 있습니까
예 누구시죠
억양이 강한 스웨덴 여자가 대답해 왔다
미시시피의 제이크 브리건스입니다
잠간만오
제이크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여덟시 삼십분이었다 시과고랑
여기랑 시간이 같을 텐데
레스터 잘 지냈어요
예 약간 피곤하기는 하지만 괜찮아요 당신은요
좋아요 이번주에 형하고 통화한 적 있어요
없는데요 금요일에 떠나온 뒤루 일요일부터 꼬박 2교대로 일했
어요 다른 일 할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신문은 봤어Q
아곤 무슨 일 났어요
믿을 수 없을 거요 레스터
무슨 일이에요 제이크
칼 리가 나를 해고하구 멤피스의 거물 변호사를 고용했어요
뭐라구요 정말이에요 언제요
지난 금요일이죠 아마 당신이 떠나고 난 직후였던 것 같아요 나
한텐 말하지도 않구요 다음날 멤피스 신문을 보고 알았다니까요
미쳤군 왜 그랬대요 제이크 새 변호사가 누군데요
혹시 멤피스에 사는 캣 브루스터라고 알아요
물론 알죠
그 사람 변호사예요 돈은 캣이 다 대고 지난 금요일에 멤피스에
서 내려와 칼 리를 만나고 간 것 같아9 다음날 아침에 신문을 보니
까 내 사진이랑 내가 해고됐다는 얘기가 실려 있더라구요
변호사가 누굽니까
보 마샤프스키예요
괜찮은 사람이에요
한마디로 악당이죠 멤피스의 포주랑 마약 거래자들 뒤나 봐주는
자니까
폴란드 사람 같은데요
맞아요 시카고 출신인가 봐요
예 여긴 폴란드 사람이 많아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어요
입에 뜨거운 기름을 잔뜩 담고 있는 놈처럼 혀를 굴리길래 그렇
게 생각했조 포드 군을 크게 뒤집어엎을 거예
이런 바보 멍청이 형은 한번도 똑똑하게 군 적이 없었어요 언제
나 내가 봐줘야만 한다니까요 바보 멍팅구리 같으니라됐
글쎄 아무래도 칼 리가 실수를 한 것 같아요 레스터 당신도 재
판을 받아봐서 잘 알죠 배심원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배심원들이
법정에서 배심원실로 들어갈 때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잖아B 배
심원들 손에 목숨이 달려 있는 거 아닙니까 열두 명의 시골 사람들
이 모여 남의 사건과 목숨을 놓고 시비를 가리는 겁니다 배심원이
가장 중요하니까 피고인에게 배심원한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
는 거예요
맞아요 제이크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마샤프스키가 멤피스에서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기 포드 군에
서는 안 될 거예요 미시시피 시골에서는 안 되죠 여기 사람들은 그
를 안 믿을 거예Q
당신 말이 을아요 제이크 형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니 믿어지지
가 않네요 또 일을 망쳐왔어요
그러게요 레스터 난 형이 걱정돼서 전화한 거예요
형하고 얘기해 봤어요
지난 토요일에 신문 보자마자 당장 구치노로 갔죠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하더라구9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서 그 다음
부터는 얘기도 안 했습니다 근데 마샤프스키도 아직 형하고 얘기를
안 했다는 거예요 아직 여기 오지도 않아서 칼 리 속이 뒤집어지고
있나 봐9 내가 말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겠지만 아무튼 이번주
에는 사건이 전혀 진전되질 않았어요
오지는 형하고 얘기 안 해봤대요
오지 성격 알잖아요 그 친구도 별로 말을 안 해요 오지도 브루
스터나 마샤프스키가 악당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칼 리 편을 들
려고 하질 않아요
세상에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요 백인들이 멤피스에서 온 악덕
변호사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정말 바보 같아요 거기 사람
들은 바로 옆 동네 변호사 말도 안 믿는다구요 오 맙소시
제이크는 수화기를 든 채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지는 비도덕적이
라고 할 수 없지
제가 어떻게 해야 되죠 제이크
나도 모르겠어요 형에게 도움이 필요해요 형은 당신 말이라면
듣잖아9 알다시피 칼 리가 좀 고집이 세야지
내가 전화를 해야겠어
그건 안 돼 칼 리로서는 전화에다 대고 안 된다고 말하기는 쉬웠
다 두 형제가 정면 대결을 할 필요가 있었다 시카고에서 차를 몰고
와야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개 생각엔 전화로는 어려을 것 같아요 형은 이미 마음을 정했으
니까 설득할 사람은 당신뿐인데 그게 전화로 되겠어요
레스터는 잠간 사이를 두었다 제이크는 바짝 몸이 달았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목요일 6월 6일입니다
가만있자 가려면 열 시간은 걸리는데 내일이랑 일요일은 네시
부터 자정까지 일해야 돼요 내일 자정에 떠나면 일 아침 열시면
클랜턴에 도착하겠네요 그리고 일요일 아침 일찍 떠나 여기 네시까
지 돌아오면 돼요 오래 운전을 해야 하긴 하지민 할 순 있어요
아주 중요한 일이에a레스터 난 고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
각해Q
제이크 토요일 아침에 어디 있을 거예요
여기 사무실에9
좋아9 일단 구치소로 갔다가 필요하면 전화를 걸겠습니다
좋아9 한 가지 더 있어9 형이 당신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
까 내가 얘기했다고 그러지 말아요
그럼 뭐라고 그래요
아이리스한테 전화했다가 얘길 들었다고 해요
아이리스가 누구예요
왜 이래요 레스터 여기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다 아는 얘기라구
요 아이리스 남편만 빼고 다 알지요 곧 알게 되겠지만
그런 일 없길 빌어야죠 그랬다간 또 살인나니까 당신은 새 고객
을 얻겠지만
아 제발 지금 하나 있던 것도 못 지켰어요 토요일에 전화해요
열시 삼십분 제이크는 전자렌지에서 꺼낸 저녁을 먹었다 한나는
자고 있었다 칼라와 제이크는 레로이 글래스와 트럭을 훔친 백인 소
년에 대해 얘기를 나뒀다 칼 리 얘기도 나왔지만 제이크는 레스터
얘긴 하지 않았다 칼라는 칼 리와 손핀다는 사실에 대해 적이 안심
하고 있었다 더이상 협박전화는 오지 않았구 불타는 십자가도 없었
다 교회에서 느끼던 이상한 시선도 칼라는 곧 다른 사건들이 생길
거란 말로 제이크를 위로했다 제이크는 별 말 없이 먹기만 했다 살
짝 운으면서
금요일 법원 문이 닫히기 바로 직전 제이크는 서기에게 전화를
걸어 아직 재판중이냐고 물었다 서기는 재판은 끝났구 누스 판사와
버클리 검사 무스그로브도 다 퇴근했다고 대답했다 법원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말에 안심한 제이크는 얼른 길을 건너가 법원 뒷문을 통
해 아래충 서기 사무실로 내려갔다 그는 서기와 비서들과 시시덕거
리면서 칼 리 헤일리의 기록을 찾았다 서류를 넘기던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았어 그가 생각했던 대로 지난주 동안 새로 첨
가된 서류는 제이크가 사건에서 물러난다는 것말고는 하나도 없었
다 마샤프스키와 설리번 회사측에서는 파일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었다 그는 좀더 수다를 떨다가 흘가분한 마음
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레로이 글래스는 아직 구치소에 있었다 보석금 만 달러 중 선불
금에 해당하는 천 달러를 그의 가족들이 아직 마련하지 못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칼 깁와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보석담당관 하
나가 제이크의 친구여서 제이크의 고객들은 그로부터 편의를 제공
받고 있었다 사실 그가 감옥에서 나을 필요가 있을 때는 즉시 도주
할 위험이 없는 한 바로 풀려날 수도 있었다 제이크의 고객에 한해
보석금 납입 기한도 응통성 있게 적용되었다 일단 보석금의 5퍼센
트만 내고 나갔다가 한 달 내에 나머지 5次센트를 낼 수 있었다 레
로이 글래스도 제이크가 빼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했다
하지만 그에겐 아직 감옥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미안합니다 레로이 씨 보석담당관과 얘기를 해봤는데
제이크는 면회실에서 레로이를 보자마자 말을 꺼냈다
당장 나갈 수 있다고 했잖아요
당신 가족들이 돈이 없다잖아9 그렇다고 내가 대신 낼 수도 없
고요 며칠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꼭 꺼내줄 거예요 나도 당신이 얼
른 나가 일을 해서 내 수임료를 갚아줬으면 한다구
레로이는 수긍하는 눈치였다
알았어요 제이크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여기 음식 괜찮지 않아요
제이크가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나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집만은 못하죠
곧 내보내 줄게
제이크는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제가 찌른 흑인은 어떻답니까
확실하진 않아요 오지는 아직 병원에 있다고 그러고 모스는 퇴
원했다고 하는데 누가 알겠어요 그렇게 심하게 다치진 않은 모양
이에요 그런데 그 여자는 누굽니까
제이크는 세세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 레로이에게 물었다
윌리의 여자죠
윌리 누구요
윌리 호이트
제이크는 잠시 기소장의 내용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그 사람은 당신이 찌른 사람이 아닌데요
아니에요 그건 커티스 스프롤링이죠
그럼 당신 얘기는 두 사람이 또다른 남자의 여자를 놓고 싸웠다
는 얘깁니까
바로 그겁니다
윌리는 어디 있었는데요
윌리도 싸웠어요
누구하고요
다른 얼간이랑오
그러니까 윌리의 여자 하날 놓고 네 명이 싸웠나요
예 이제 좀 이해가 되는 모양이군요
싸운 이유가 니까
그 여자 남편이 나가고 없었거든요
결흔한 여자예요
남편 이름은 뭔데요
조니 샌즈요 조니가 나가고 없으면 늘 그렇게 싸움이 붙어요
왜죠
그 여잔 애도 없고 애도 못 낳아9 게다가 다른 놈이랑 놀고 싶
어하죠 무슨 뜻인지 알겠죠 남편만 어딜 가면 모두가 다 알아요
그 여자가 술집에 나타나기만 하면 싸움이 벌어지죠
재판은 웬 재판 제이크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 여자가 윌리 호이트랑 같이 나타났다고 했잖아요
맞아요 그렇다고 그게 윌리 호이트의 마누라란 뜻은 아니죠 술
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그 여자한테 달려들어서 술 사주고 춤을
신청하니까요 당신도 어쩔 수 없을걸요
그렇게 대단한 여자예요
제이그 여잔 정말 끝내준다구요 당신도 한번 봐야 해요
곧 그렇게 될 거예요 증인석에 나을 테니까
레로이는 실실 웃으면서 조니 샌즈의 부인을 갈망하는 듯 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을 찔렀다는 것과 감옥에서 썰을지도
모를 20년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숱한 주먹다짐을 통해 레로
이는 그럴 만한 사람이란 것을 증명해 왔다
이봐요 레로이 칼 리한테 얘기 안 했죠
그럼요 아직도 그랑 같은 방을 써요 우린 내내 얘기하고 지내요
다른 짓 할 게 있어야죠
어제 우리가 한 얘긴 안 했죠
아 아니에요 말 안 하겠다고 그랬잖아요
좋아Q
그래도 제이크 씨 이건 알려드려야 될 것 같네요 칼 리는 지금
걱정을 많이 하고 있어요 새 변호사한테서 아무런 연락이 없거든요
화가 단단히 나 있어요 말 안 하려고 혀까지 깨물었지많 결국 말하
고 말았어요 당신이 내 변호사라고 얘기해 뒀거든요
그건 괜찮아요
칼 리는 당신이 감옥에 찾아와서 사건을 비롯한 온갖 얘기를 해
준다고 칭찬을 했어요 나더러 좋은 변호사를 구했대요
피에게는 충분하지 않았죠
재가 보기엔 칼 리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누구를 믿어야
할지 무슨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서요 좋은 사람인데
어쨌든 우리가 한 얘기는 절대 하지 말아요 알았죠 비밀입니

알았어요 그래도 누군가는 해줘야 하는데
그는 나를 해고하고 새 변호사를 고용하기 전에 나는 물론이고
아무하고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어엿한 성인이니까 자
기 일은 자기가 결정할 겁니다 그건 과의 몫이에요
제이크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레로이 곁으로 다가앉았다 그는 한
껏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이건 당신한테만 해주는 얘기니까 칼 리한테 말하지 말
아요 내가 삼십분 전에 법원에 가서 헤일리의 서류를 살펴봤어요
근데 지난 일주일 동안 사건에 전혀 손을 안 댔더라구요 파일이 새
로 쌓인 게 하나도 없더라구요 한 장도
레로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세상에
제이크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런 거물 변호사들은 그래S 말만 많고 허풍이나 떨다가 경험
으로 대충 얼버무리죠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사건들만 잔뜩 맡아서
결국은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게 더 많아지는 거예9 난 그들을 잘 알
아요 내가 죽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들은 과대평가를 받고 있어요
그래서 칼 리를 보러 오지 않는 거예요
그럼요 그는 너무 바빠요 게다가 다른 큰 사건들이 넘쳐나거든
9 칼 리한테는 신경도 안 쓴다구Q
너무 안됐어요 칼 리는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그가 선택한 거니까 그렇게 살아야죠 뭐
유죄선고를 받을까요
확실합니다 가스실로 가게 될 겁니다 자기 사건을 다를 시간도
없구 여기 내려을 시간도 없는 거물 변호사를 고용했기 때문이죠
그럼 당신은 석방시킬 수 있단 말이에요
제이크는 긴장쫄 풀고 다리를 꼬았다
난 절대 그런 약속을 하진 않습니다 그건 당신 재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구9 석방을 약속하는 변호사는 멍청이라고 보면 틀림없습
니다 재판중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으니까요
칼 리 말로는 자기 변호사가 신문에다 무죄를 약속했다던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바보죠
어디 갔었어
간수가 문을 잠그고 가자 칼 리는 레로이에게 물었다
변호사하고 얘기하러
tllol크

레로이는 칼 리 맞은편에 있는 침대맡에 걸터앉았다 칼 리는 두
번째 읽고 있던 신문을 접어 침대 밑에 넣었다
걱정이 있어 보여 나쁜 소식이라도 있나린
아냐 보석금이 아직 마련 안 됐을 뿐이야 제이크 말로는 며칠
걸릴 거래
제이크가 내 얘기도 했어
많이는 안 했어
많이 안 했다구 그래 뭐래
자네 어떻게 지내냐고 묻더라구
그게 전부이

나 때문에 열받지 않았던가
아니 자네 걱정을 하기는 했지만 열받은 것 같지는 않아
제이크가 내 걱정을 왜 하지
몰라
레로이는 팔베개를 하고 침대에 벌렁 누우면서 대답했다
이것 봐 레로이 자네 뭔가 알면서 말 안 하는 거지 제이크가
뭐라고 그랬어
제이크가 말하지 말랬어 비밀이라고 자네는 자네 변호사가 말
이나 옮기고 다니면 좋겠나
난 내 변호사 보지도 못했어
그러게 자넨 좋은 변호사를 해고한 거라니까
지금 변호사도 좋다구
어떻게 알아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은 너무 바빠서 당신
을 만날 시간조차 없대 그래서 당신 사건을 다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는군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지
제이크한테 물어봤지
그래 또 뭐라든가
레로이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
제발 제이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싶어
칼 리는 레로이의 침대 끝에 앉아 자기보다 작고 약해 보이는 레
로이를 바라보았다 레로이는 칼 리가 자기를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말을 발설한다고 해도 변명거리는 충분한 셈이었다 레로이의 얘기
가 시작되었다
그 사람은 악당이야 자네를 팔아먹으려는 진짜 악당이라구 그
는 자네나 자네 사건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인기만 노릴 뿐이지 지
난주 내내 그는 사건에 손도 대지 않았대 제이크가 오후에 법원에
가서 파일을 뒤져봤는데 그 작자의 사인조차 없다더군 너무 바빠서
멤피스를 떠날 수도 없고 자네를 관리하지도 못하는 거래 그 작자는
멤피스에 사기꾼 고껴을 이미 여럿 두고 있거든 자네 친구 브루스터
씨도 포함되지
자네 미쳤나 레로이
그래 나 미쳤어 누가 미쳤는지 두고보자구 그리고 그 작자가
자네 사건을 얼마나 열심히 다루는지
자네 아주 전문가가 다 됐구만
자네가 묻길래 난 대답해준 것뿐이라구1
칼 리는 철창문으로 다가가 커다란 손으로 쇠창살을 꽉 움켜잡았
다 지난 3주 동안 감옥은 자꾸 좁아지는 쩟 같았다 그럴수록 칼 리
는 생각하구 따져보구 계획을 세우구 반웅하기도 점점 힘들어졌다
감옥에서는 도대체 생각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다 남들이 하는 얘기
만 들릴 뿐 자신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랐다 그웬은 분별을 잃은
상태였고 오지의 태도는 쌀쌀맞았구 레스터는 시카고에 있었다 믿
을 사람이라곤 제이크밖에 없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새 변호사
를 고용하게 된 것이다 돈 바로 돈이 그 이유였다 멤피스의 거물급
포주이자 마약 거래상이 준 현금 천구백 달러 때문이었다 그의 변호
사는 포주와 마약 거래상들 살인자와 폭력배들의 뒤를 봐주는 게 전
문 분야였다 마샤프스키가 건전한 사람들을 대변한 적이 있었던가
마샤프스키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피고인을 보고 배심원들은 어떻
게 생각할까 물론 그는 유죄가 될 것이다 도대체 마샤프스키 같은
멤피스의 악질 변호사를 끌어들인 이유가 뭐란 말인가
배심원이 된 백인들이 마샤프스키를 보면 뭐라고 할 것 같나
레로이가 물었다
뭐라고 할 것 같은데
그들은 아마 저 불쌍한 검등이는 유죄라고 생각할 거야 그리고
멤피스의 최고 악질을 고용해 무죄를 주장하느라고 자기 영혼까지
팔아먹었다고 생각할 거라구
칼 리는 쇠창살 사이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배심원들이 자넬 가만 안 둘 거야 칼 리
토요일 아침 여섯시 삼십분 근무를 나온 모스는 보안관 사무실에
서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보안관이었다
벌써 일어나서 뭐 하시는 거예요
모스가 물었다
비몽사몽이야 모수 스트릿이라는 흑인 목사 기억나나 이사야
스트릿 목사
아노 모르겠는데요
기억해봐 저 북쪽에 있는 스프링데일 교회에서 50년 동안이나
설교를 한 사람이야 포드 군에서는 처음으로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
에 가입한 사람이지 60년대에는 그 사람이 흑인들에게 어떻게 시위
를 하고 파업을 하는지 가르쳤다네
아 이제 기억났어요 KKK단에 잡혀간 적도 한번 있었죠
그래 65년 여름에 KKK단에 끌려가서 얻어맞았지 심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들이 집도 불태웠었지
몇 년 전에 죽은 줄 아는데요
아냐 10년 동안 죽은 듯이 있었는데 그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
어 오늘 다섯시 삼십분에 나힌레 전화를 걸어왔길래 한 시간 동안
얘기를 했어 자기가 날 정치적으로 밀어준 걸 상기시키더군
그가 바라는 게 뭔데요
일곱시에 칼 리를 만나러 갈 거야 이유는 나도 로르구 꺼쨌든
정중하게 모셔 내 사무실에서 얘기할 수 있게 하게 난 조금 있다 가
겠네
알았어a보안관님
그의 전성기였던 60년대에 이사야 스트릿 목사는 포드 군 인권
운동을 이끄는 핵심 세력이었다 그는 멤피스와 몽고메리에서 마틴
루터 킹과 함께 가두 행진을 했으며 클랜턴과 캐러웨이 그리고 미시
시피 북쪽의 다른 도시에서 여러 차례 시위를 주도했었다 64년 여
름에는 북부에서 내려온 학생들과 합세해서 흑인 유권자표를 규합
하기도 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해 여름에는 몇몇 학생들이 스
트릿 목사의 집에서 기거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아직도 그 집을 종종
방문하고 있었다 그는 절대 과격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항상
조용하고 인자하고 지적이어서 모든 흑인과 대다수의 백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스트릿 목사는 증오와 반목의 시대를 조용하고 침착
한 목소리로 헤쳐나온 사람이었다 공인된 얘기는 아니지만 69년의
학교통합 문제를 해결한 것도 그였다 클랜턴에는 그 이후로 반목의
시대가 막을 내렸던 것이다
75년에 발생한 뇌일혈 때문에 는 오른쪽 몸을 못 쓰게 되었지
만 정신만은 여전히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이제 일흔여덟이란 나이
에도 불구하구 그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혼자 천천히 걸어다니핀 있
었다 가능하면 곧고 당당하게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스트릿 목사는 보안관 사무실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모스는 커
피 한잔 드시겠느냐고 물었다 목사는 사양했구 잠시 후 모스는 칼
리의 감방으로 갔다
칼 리 일어났나
모스는 다른 죄수들이 깨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물었다 괜히 죄
수들을 깨웠다가式 아침 달라 약 달라 변호사 불러와라 보석담당
관 데려오라며 쓸데없는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칼 리는 침대에서 얼른 일어났다
아노 잠이 별로 안 와9
손님이 왔네 이리 나오게
모스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칼 리는 당시 흑인학교였던 이스트고등학교 졸업반 때 스트릿 목
사를 처음 보았었다 학교통합은 바로 이루어졌구 이스트고등학교
는 중학교로 격하되었다 칼 리는 스트릿 목사가 쓰러진 뒤로는 한번
도 본 적이 없었다
칼 리 이사야 스트릿 목사님을 아나
모스가 칼 리에게 물었다
예 몇 년 전에 뵌 적이 있어9
좋아 문 닫을 테니까 목시럼하고 얘기 나누게
안녕하십니까 목사님
칼 리는 스트릿 목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침상에 나란
히 걸터앉았다
난 좋네 자네는
아주 잘 지냅니다
짜네도 알겠지만 나도 몇 년 전에 감옥에 있었지 끔찍한 곳이지
만 난 감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대우는 어떤가丁
좋습니다 목사님 오지는 저한테 귀찮게 간섭하거나 하지 않아
Q
그래 좋은 사람이지
칼 리는 나이 들어 쇠약해진 노인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몸은 비록 세윌의 형벌에 약해져 있었지만 정신만은 아직 날카로워
보였고 목소리도 기운차기 이를 데 없었다
우리는 모두 자네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네 난 물론 폭력을 용서
하진 않지만 그것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자넨 옳은 일을 한
걸세
예 목사님
칼 리는 적당한 대답이 아닌 것 같았지만 일단 대답을 했다
내가 왜 여기 왔나 궁금하겠지
칼 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릿 목사는 지팡이로 톡톡 두드렸다
난 자네가 무사히 석방되기를 바라네 모든 흑인들의 관심사지
자네가 만약 백인이었다면 재판은 받았겠지만 아마 거의 석방되었
을 걸세 어린아이에 대한 강간은 정말 끔찍한 죄야 누가 죄인을 징
계한 아버지를 욕할 수 있겠나 그건 백인 아버지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흑인 아버지들은 자네의 심정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네
다만 배심원들이 모두 백인이라는 게 문제야 그러니까 백인 아버
지차 흑인 아버지는 똑같은 기회를 갖는 게 아니지 무슨 뜻인지 알
겠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배심원이 가장 중요하네 무죄 대 유죄 자유 대 형벌 삶 대 죽음
이 모든 극단적인 결정이 배심원에 의해 내려지지 참 허술한 제도
지 법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재판중에 이런저런 럽박을 받는 열
두 명의 보통 사람들에게 목숨이 달려 있으니까
맞습니다 목사님
자네가 백인 둘을 죽이고도 백인 배심원들쎄게 풀려난다면 여기
미시시피 흑인 사회에서는 학교통합 이후 최대의 사건이 될 걸세 미
시시피뿐만 아니라 전 흑인사회의 쾌거지 자네 재판은 가장 유명한
사건이 되었구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네
저는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맞아 바로 그거야 자네가 옳다고 믿으면 실천하는 거야 비록
잔인하고 추악해 보이긴 하지만 올은 건 을은 거네 백인이든 흑인
이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네 만약 자네가 백인이었다
면 어떻게 다뤄질까 궁금하군
제가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Q
그건 우리로서는 또 하나의 모욕이네 그건 뿌리 깊은 인종주의
와 오랜 편견 해묵은 증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 그건 일종의 재
난과도 같은 거야 자넨 유죄선고를 받아선 안 되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가능하다면 자네 변호사 얘기를 하고 싶은데
칼 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만나봤나nr
아노
칼 리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눈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목사님은요
만나봤네
만나보셨다구요 언제요
68년 멤피스에서 나는 그때 킹 목사와 같이 있었구 마샤프스키
는 시를 상대로 파업중인 환경미화원들의 변호단에 속해 있었지 그
가 킹 목사에게 멤피스를 떠나라고 말했지 그는 킹 목사가 백인들과
흑인들을 선동해서 협상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네 그는 아주
거만하고 독선적인 사람이야 그는 킹 목사에게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네 비록 사석에서였지만 우리는 그가 시에 노동자들을 팔아 협상
탁자 아래서 돈을 챙기려 한다고 생각했구 결국 우리 생각이 맞아떨
어졌지
칼 리는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의 경력을 조사해 봤더니 깡패나 도둑 포주들을 변호하면서
유명해졌더군 그중 몇 명을 석방시키기는 했지만 사실 그의 고객들
은 항상 유죄지 자네가 그 고객 중에 한 명만 봐푸 그가 유죄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걸세 그게 내가 가장 걱정하는 점일세 그 일당
들 때문에 자네까지 죄인으로 몰릴까봐 두려워
칼 리의 몸은 자꾸 아래로 내려갔구 양 팔꿈치는 무릎에 닿아 있
었다
누가 여기 가보시라고 하던가요
칼 리가 정중하게 물었다
내 옛친구하고 얘기를 나뒀지
그게 누굽니까
그냥 옛친구야 그 친구도 자네 걱정을 하고 있지 우리 모두 말
이 야
제 변호사는 멤피스 최고의 변호삽니다
여기는 멤피스가 아니지 않나
그는 형사사건 전문갑니다
그 사람도 범인이니까 가능했던 거지
갑자기 칼 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스트
릿 목사에게 등을 돌리고 섰다
그 사람은 공짜예요 그는 나한테 단 한푼도 요구하지 않아요
자네가 죽는다면 수임료는 중요한 게 아냐
침묵 속에서 몇 초가 흘러갔다 스트릿 목사는 지팡이에 몸을 기
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얘기는 충분히 한 것 같네 이제 가봐야겠어 행운을 비네
칼 리는 스트릿 목사의 손을 마주잡았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요점은 이거네 자네 재판은 이기기가 아주 어려을 걸세 마샤
프스키 같은 악당을 끌어들여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들지는 말게
레스터가 시카고를 떠난 것은 금요일 자정이 좀 안 돼서였다 그
는 평소처럼 혼자 남쪽으로 향했다 레스터의 아내는 그보다 좀 먼저
친정 식구들과 주말을 보내기 위해 그린 베이로 떠났다 그녀가 미시
시피를 좋아하지 않듯이 레스터도 그린 베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의 가족을 방문하기 싫어했다 스웨덴 사람들인 처
가쪽 식구들은 좋은 사람들이므로 레스터만 허락하면 그를 한 가족
처럼 대해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 백인들과는 또 달랐다
레스터는 남부에서 백인들과 같이 자라서 백인에 대해 잘 알고 있었
다 그는 대부분의 백인들을 싫어했구 자기에게 느끼는 백인들의 감
정도 싫어했다
그리고 북구 백인들 특히 스웨덴 사람들은 보통의 백인들과 다른
점이 많았다 그들의 관습 음식 말씨 등 모든 것이 그에게는 낯설었
다 레스터는 그들에게 결코 편안한 마음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쩌면 1년 안에 두 사람은 이혼할지도 몰랐다 아내의 나이든 사
촌 하나가 70년대 초반에 흑인과 결혼해서 많은 눈총을 받았던 것
이다 레스터는 그녀에게 질리기 시작했고 그녀도 레스터 때문에 힘
들어하고 있었다 다행히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번다 레스터는 다내
에게 다른 남자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 자기도 다른 사람이 있으면
서 게다가 아이리스는 레스터에게 헨리를 걷어차는 즉시 시카고로
달려와 그와 결혼하겠다는 약속까지 한 상태였다
자정이 지난 시각 두 개의 주를 잇는 57번 고속도로의 양편에는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챔페인이나 에핑엄 같은 큰 마을이 종종 보
이곤 시골길에 흩어져 있는 작은 조촐한 농장에서 불빛들Oj어나
오고 있었다 북부는 그가 일하면서 살고 있는 곳이지만 고향은 아
니었다 그의 고향은 어머니가 사셨던 미시시피였다 겉핀 그는 미시
시피에서 살지는 않을 것이지만 지독한 무지와 빈곤이 싫기 때문이
었다 그럼에도 그곳이 고향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레스터는 인종주의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한때는 아주 극에
달했었지만 그는 곧 익숙해져 갔다 인종주의는 언제까지 남아 있을
터였다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해도 백인들은 아직도 모든 것을 소
유하고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니
었다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레스터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많은 흑인틀이 무지와 지독한 빈곤 속에
산다는 것이었다 판잣집과 파산 높은 유아사망률 기약 없는 실업
미혼모와 버려진 아기들 그런 것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레스터는 북부로 떠났다 빈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괜찮은 보수의 일을 찾아 이민을 간 수많은 사람들처럼
미시시피로 돌아을 때면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곤 했다 가족을 만
난다는 기쁨과 가족의 가난을 목격하는 슬픔이 밝은 곳이 있기는 했
다 칼 리는 괜찮은 직장을 가졌구 깨끗한 집에서 아이들을 말끔하
게 키우고 있었다 그 혼자만이 예외였는데 이제는 모두 다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백인 술주정꾼 둘 때문에 혹
인들은 그들이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백인 사회의
백인들로서는 용서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고맙게도 그들
은 죽었다 그리고 레스터는 그들을 죽인 형이 아주 자랑스러웠다
시카고를 떠나온 지 여섯 시간 레스터가 카이로에서 강을 건너고
있을 무렵 태양이 떠올랐다 두 시간 후 레스터는 멤피스에서 다시
강을 건너 멤피스 남동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는
클랜턴 법원에 이르렀다 그는 꼬박 스무 시간 동안 차를 몰아 이곳
에 도착했다
칼 리 손님이 왔네
오지 보안관이 철창 사이로 말했다
놀라지도 않아9 누구예요
따라와 내 사무실에서 얘기하게 이번엔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제이크는 사무실에서 빈등거리며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시
레스터가 왔다면 지금쯤 시내에 있어야 했다 열한시 제이크는 오래
된 파일을 뒤져 에셀에게 몇 가지 메모를 남겼다 열두시 칼라에게
전화를 걸어 한시에 새 고객과 만남이 있어서 점심을 먹을 수 없다
고 거짓말을 했다 마당 청소는 나중에 하겠다면서 한시 제이크는
와이오밍 판례집에서 아내를 강간한 자를 죽인 뒤에 무죄로 석방된
사건을 찾아냈다 1893년 사건이었다 두시 레스터가 여기 왔을까
레로이를 만나기 위해 구치소 근처를 기웃거릴 수도 있었다 아냐
좋은 생각이 아냐 제이크는 커다란 사무실에 놓인 소파에 벌렁 누워
버렸다
두시 십오분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다 제이크는 침상에서 곧장 튀
어올라 민첩하게 움직였다 전화를 받는 제이크의 심장은 심하게 두
근거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제이나 오지야
오지 무슨 일이야띨
여기 구치소로 좀 와저야겠어

제이크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능청을 떨었다
여기서 자넬 필요로 하는데
누군데
칼 리가 자네랑 얘기하고 싶대
레스터 거기 있어
응 레스터도 자네가 필요하대
금방 갈게
거1시간 동안 저러고 있다니까
오지 보안관은 사무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윌 하고 있는데
제이크가 물었다
얘기하곤 욕하구 소리지르고 그래 한 삼십분 전에 잠잠해지더
니 칼 리가 나와서 자네한테 전화 좀 해달라고 그러더군
고맙네 들어가 보자구
아니 난 안 들어갈래 날 보자는 게 아니니까 자네 일은 자네가
처리해
제이크는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제이크는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칼 리는
책상 저쪽에 앉아 있었구 레스터는 침상에 누워 있었다 레스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이크와 악수를 나뒀다
반가워요 제이크
반갑소 레스터 무슨 일로 여기 왔어요
집안일이죠
제이크는 칼 리를 보고는 책상 곁으로 걸어가 악수를 나뒀다 화
가 잔뜩 난 것 같았다
날 보자고 그랬나요
그래9 좀 앉아요 제이 얘기할 게 있으니까 제가 아니고 형
9
레스터가 말했다
네가 얘기해
칼 리가 말했다 레스터는 한숨을 쉬면서 눈을 비볐다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난 한마디도 안 하겠어 이건 형과 제이크 사이의 문제니까
레스터는 눈을 감고 침상에 몸을 뉘었다 제이크는 침상 반대편에
있는 접는 의자에 앉았다 제이크는 칼 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구
벽에 등을 기댄 채 레스터의 표정을 살폈다 칼 리는 오지의 안락의
자에 앉아 천천히 몸을 혼들고 있었다 칼 리도 레스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삼분 정도 지나자 제이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누가 날 보자고 그런 겁니까
제이크가 물었다
나9
칼 리가 대답했다
그래요 원하는 게 뭐죠
내 사건을 다시 주고 싶어서요
개가 사건을 다시 맡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군요
뭐라구요
레스터가 벌떡 일어나 제이퐈를 쳐다보았다
이건 줬다 뺏었다 하는 선물이 아니에요 당신과 변호사 사이의
계약이란 말입니다 나한테 선심쓰는 척하지 말아요
제이크의 목소리가 높아졌구 화가 진짜로 난 것 같았다
이 사건을 원해요
칼 리가 다시 물었다
나를 다시 고용하고 싶다는 건가a칼 리
그래요
왜죠
레스터가 그러라니까요
좋아요 그렇다면 난 사건을 원하지 않아요
제이크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게스터는 나를 원하고 당신은 마샤프스키를 원한다면 마샤프스
키 쪽으로 붙으세9 당신 혼자 힘으로 판단할 수 없다면 당신에겐
마샤프스키가 필요해Q
잠깐만요 제이크 진정해요
레스터는 문을 가로막고 섰다
앉아9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子9 형이 당신을 해고한 것 때문
에 당신이 그렇게 화를 낸다고 탓하진 않아요 형이 잘못했으니까
안 그래 형
칼 리는 손톱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자자 앉아요 제이크 앉아서 얘기하자구요
레스터는 제이크를 의자로 데리고 가면서 애원하듯이 말했다
됐어9 이제 이 상황을 정리합시다 형 제이크가 변호를 맡길
원하지
칼 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그럼 제이크
이유를 설명해 봐요
제이크가 칼 리에게 말했다
뭐라고요
왜 내가 당신 사건을 맡길 원하는지 이유를 설명하라구요 왜 마
샤프스키를 해고하는지도 설명하구요
난 설명할 의무 같은 건 없어요
아니s당신은 해야 해9 당신은 나한테 설명할 게 아직 하나
남아 있어요 일주일 전 당신은 날 해고했구 나한테 전화할 배짱도
없었어요 난 신문에서 그걸 읽었어요 그때 난 당신의 그 비싼 새 변
호사에 대한 기사를 읽었죠 결국 클랜턴엔 오지도 않은 그 변호사
말예요 그런데 이제 나한테 전화를 해서는 당신 마음이 바러었으니
까 나더러 모든 걸 털어 버리라는 건가요 자 설명해 봐요
형 설명해
칼 리는 책상 위에 팔꿈치를 얹고 몸을 기울이더니 두 손에 얼굴
을 묻었다 그의 손바닥 사이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머리가 복잡했어요 이곳은 날 미치게 만들었어요 신경이 몹
시 예민해지더라구요 딸 걱정에 식구들 걱정 그리고 나 자신에 대
한 걱정으로요 사람들은 와서 저마다 딴 소리를 해대구 난 이런 상
황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랐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
곤 사람들을 믿는 것이에요 난 레스터를 믿구 제이크 당신을 믿어
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예요
내 충고도 믿어요
난 항상 믿었어9
내가 당신 사건을 다를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요 제이크 난 당신이 그러길 원해요
됐어요 그럼
제이크는 화가 풀렸구 레스터는 안심을 하며 침상에 몸을 뉘었다
마샤프스키한테 당신이 알려야 해요 그전에는 내가 일을 시작할
수 없어IZ
오늘 오후에 할 거예Q
레스터가 말했다
좋아요 마샤프스키와 얘기한 뒤에 내게 전화를 줘요 할 일이 아
주 많아9 시간이 자꾸 흘러가는데
돈은 어떡해요
레스터가 물었다
수임료는 같아요 계약도 그대로구요 만족해요
알았어요 내가 어떻게든 해서 마련할게요
칼 리가 대답했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해요
의사는요
좀 타협을 해야죠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잘될 겁니다
칼 리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는 코를 크게 골고 있는 동생을
보며 싱긋 웃었다
난 당신이 레스터한테 전화한 것 같은데 죽어도 아니라고 하데
Q
제이크는 어색하게 웃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레스터는
기막힌 거짓말쟁이였다 그의 재판 때도 아주 큰 도움이 되었던 뛰어
난 재능이었다
미안해요 제이 내가 잘못했어요
사과할 건 없어요 사과하는 데 시간을 보내기엔 할 일이 너무 많

구치소 밖 주차장 옆에서 뭔가 사건을 기다리며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기자 하나가 제이크에게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브리건스 씨죠
누구십리까
잭슨 데일리의 리처드 플레이 기자입니다 제이크 브리건스 씨
맞죠

헤일리 씨의 전 변호사셨죠
아니오 헤일리의 변호사요
보 마샤프스키 씨한테 넘어간 걸로 아는데요 사실 제가 여기 온
이유도 그겁니다 마샤프스키가 오늘 오후에 여기 내려온다는 소문
이 있어서Q
그 사람 보면 너무 늦었다고 얘기해 주십시오
레스터는 오지의 사무실에서 잠에 곯아떨어졌다 일요일 새벽 네
시 급사는 레스터를 깨운 뒤 커다란 스티로폼 잔에다 블랙커피를
가득 따라 갖다주었다 레스터는 그걸 마신 뒤 시카고로 떠났다 어
젯밤 늦게 칼 리와 레스터는 멤피스 클럽 위충에 있는 캣의 사무실
로 전화를 겉어 사실을 통보했다 캣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바쁘
다면서 자기가 마샤프스키에게 전하겠다고 했다 돈 얘기는 한마디
도 없었다
레스터가 떠난 지 얼마 안 돼서 제이크는 잠옷 바람으로 현관에
나와 일요일자 신문을 집어들었다 클랜턴은 멤피스에서 남동쪽으로
한 시간 잭슨에서 북쪽으로 세 시간 투펄로에서 사십오분 거리였
다 세 도시가 모두 클랜턴으로 일간 신문을 배달했으며 일요일에는
각종 정보가 담긴 두툼한 신문뭉치를 받아볼 수 있었다 제이크는 오
래 전부터 세 신문을 정기구독해 왔는데 칼라의 스크랩북이 점점 두
둑해지는 걸 보면 마음 한편이 흐뭇했다 그는 신문을 펴놓구 한 단
씩 훌어내려갔다
잭슨 신문에는 제이크에 관한 기사가 없었다 리처드 플레이 기자
가 뭔가 쓸 거라고 기대했는데 구치소 앞에서 그와 좀더 시간을 보
냈어야 하는 건데 멥피스 신문에도 투펄로 신문에도 아무것도 없었
다 제이크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누군가 헤일리 사건 소식을 알아
내면 좋겠지만 대수로을 건 없었다 사실 어제 너무 늦게 일어난 일
이기 때문에 어쩌면 월요일에 나올지도 몰랐다
제이크는 이제 속상한 마음을 감추는 데 지쳐 있었다 커피숍의
단골손님들 교우들 버클리와 설리번 회사의 변호사들이 신문에서
읽을 때지 모든 사람들이 그가 다시 사건을 맡았다는 것을 알 때
까지 제이크는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지내야 했다 설리번한테는
어떻게 말하지 칼 리가 마샤프스키나 그 포주한테 전화를 했겠지
아마 그 포주 친구한테 했을 거야 그렇다면 그 포주가 마샤프스키한
테 얘기를 전했을 테고 마샤프스키가 언론에다가 뭐라고 말할까
그 거물 변호사가 설리번한테 전화해서 이 엄청난 뉴스를 전했겠지
윌요일 아침이나 조만간에 그렇게 될 것이다 소문은 설리번 회사 전
체에 곧 퍼질 것이구 마호가니로 장식된 회의실에 모든 변호사들이
모여 제이크의 저급한 윤리의식과 전술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욕을
해댈 것이다 신참들은 제이크가 어겼을 것으로 추측되는 윤리 조항
들을 활활 읖어대면서 상사들에게 압력을 가할 것이다 제이크는 그
들이 싫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몽땅 제이크는 설리번 앞으로 짧
고 형식적인 편지를 보내구 로터하우스에게는 복사본을 보내기로
했다
버클리 검사에게는 전화나 편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신문 보고
충격 좀 받으라지 누스 판사한테 보내는 편지를 복사해서 보내면
버클리에겐 그걸로 족했다 그는 개인적인 편지 같은 걸 받을 자격이
없는 인간이었다
제이크는 곰곰이 생각하고 망설이다가 루시엔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곱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루시엔의 하녀이며 간호원 그리고
바텐더인 샐리가 전화를 받았다
샐리
예 전데9
제이크예요 루시엔 일어났어요
잠간만오
샐리는 수화기를 루시엔에게 넘겨주었다
여보세요
루시엔 제이크예요
그래 무슨 일인가
좋은 소식입니다 칼 리 헤일리가 어제 절 다시 고용했어요 그
사건이 다시 제 차지가 된 거죠
무슨 사건
헤일리 사건요
아 그 유명한 사겔 그게 자네 게 뤘다구
예 어제요 우린 할 일이 생긴 거라구요
재판은 언제야7월 언제라고 그랬지
22일이9
얼마 안 남았군 제일 먼저 할 일이 뭐지
정신과 의사를 구해야 돼요 싼 사람으로요
재가 한 사람 알아
잘됐네요 서둘러 주세요 며칠 있다가 전화드릴게요
때마침 자리에서 일어난 칼라가 부엌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남편
을 발견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커피물을 올려놓고 제이크 맞은편
에 앉았다 제이크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 뒤 계속해서 신문을 읽
었다
몇 시에 일어났어요
다섯시 삼십분에
일요일인데 왜 그리 일찍 일어났어요
잠이 안 와서
너무 흥분돼Q
제이크는 신문을 내리고 칼라를 바라보았다
그래 사실 아주 기분이 좋다구 너무 좋아서 진정할 수가 없어
어젯밤엔 미안했어Q
사과할 필요는 없어 나도 당신 기분 이해해 당신은 긍정적인 것
은 생각 않고 부정적인 면만 보는 게 문제야 이 사건이 우리한테 안
겨다줄 것에 대해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제이난 이 사건이 겁나요 전화 협박 불타는 십자가 말이에
요 만약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이 사건이 백만 달러를 안겨줄지
언정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거야 좀더 협박을 받구 교회나 마을에서
눈총을 받기는 하겠지만 심각한 건 아니잖아
하지만 당신도 확신하지 못하잖아요
어젯밤에 한 얘기를 오늘 아침에 재탕하고 싶진 않아 나한테도
생각이 있어
지금 듣고 싶어Q
당신은 한나하고 노스 캐롤라이나로 가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친
정에 머물러 두분이 당신과 한나를 보고 싶어하시잖아 그리고
KKK단이든 불타는 십가가든 걱정 안 해도 되고
하지만 재판은 아직 6주나 남았어요 나보고 윌밍턴에 6주나 있
으라는 거예요
3래
부모님이 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건 너무해요
당신 부모님 뵌 지 오래됐잖아 그분들도 한나를 보고 싶어하시
츠乙
그럼 당신을 오랫동안 못 보잖아요 난 6주나 떨어져 있기는 싫
어9
난 준비할 게 엄청나게 많아 재판이 끝날 때까진 이 사건에만 몰
두해야 돼 밤이고 주말이고
늘 그랬잖아요
당신이랑 다른 모든 생각은 안 하고 오직 이 사건에만 매달리게
될 거야
난 그런 데 익숙해져 있어요
제이크는 칼라에게 미소를 지었다
참을 수 있다는 얘기야킨
그래요 나를 겁나게 하는 건 바로 저밖의 미치광이들이에요
U그 미치광이들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물러설게 내 가족들이
위험해지면 이 사건에서 손떼겠어
약속해요
물론 약속하지 그럼 한나만 보내자구
우리한테 위험이 없다면서 한나는 왜 보내요
다 안전을 위한 거야 한나도 할아버지 할머니랑 멋진 여름을 보
내게 될 거야 그분들도 좋아하실 거고
그앤 나 없인 한 주일도 못 있을 거예요
당신이 한나 없이 일주일도 못 버티겠지
그래요 내가 옆에 딱 붙어서 데리고 있는 동안에는 걱정할 거 없
어Et
커피가 다 되자 칼라는 잔에다 커괴를 따랐다
신문에 뭐 났어요
아니 잭쓴에는 뭔가 날 줄 알았는데 시간이 너무 늦었었나봐
주말 마감시간에 걸린 모양이네요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자구
어떻게 알아요
내기할까
칼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칼라는 신문지에서 괘션과 요리면을
찾고 있었다
교회에 갈 거죠
아니
왜요 사건을 다시 맡았으니 다시 스타가 됐잖아요
그래 하지만 아직 아무도 모르잖아
알았어요 다음 일요일에는요
물론 가야지
마운트 헤브론 마운트 시온 마운트 플레전트 브라운스 채플 그
린스 채플 노리스 로두 섹션 라인 로드 베델 로드 갓스 템플 크리
스트 템플 세인트 템플 등등의 교회가 칼 리 헤일리를 위한 특별헌
금 모금에 나섰다 양동이와 바구니 쟁반 등이 교회 입구와 제단에
놓였다 가족용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통만한 큰 바구니가 쓰인 곳도
여러 곳 있었구 통이 클수록 헌금이 차는 높이는 얼마 안 되기 때문
에 목사는 다시 한번 통을 돌릴 수도 있었다 칼 리 헤일리와 그의
가족을 위한 특별헌금은 가슴을 에는 듯한 슬픈 사건의 전말과 칼
리와 그 가족의 운명에 대한 장황한 설교가 곁들여져 주일헌금과 별
도로 주일 예배의 주요 행사가 되었다 헌금이 모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얘기하거나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를 들먹거리는 것
은 아주 큰 효과가 있어서 성도들의 지갑과 주머니를 빠른 속도로
비워낼 수 치었다
예배가 끝나면 통을 비워서 돈을 세구 저녁 예배 때도 똑같은 작
업이 반복되었다 일요일 저녁 늦게 아침 예배와 저녁 예배에서 거
둔 돈은 월요일쯤 에이지 목사에게 대부분 전달될 것이다 그러면 에
이지 목사는 과 돈을 교회 어딘가에 숨겨둘 것이구 그중 상당한 액
수를 헤일리 가족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
일요일 오후 두시부터 네시까지 포드 군 구치소에 수감된 죄수들
은 구치소 뒤편에 커다란 철창으로 막힌 뜰에 모였다 죄수들이 각각
세 명 이내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시간은 한
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쌍쌍이 나무 그늘에 앉아 있기도 하고
부서진 탁자나 농구골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동안 보안관
대리들과 경찰견들은 철창 반대편에서 파수를 섰다
일요일이면 그웬과 아이들은 주일 예배를 마친 뒤 세시쯤 구치소
로 향했다 오지 보안관은 칼 리만은 특별히 운동장에 일찍 들여보내
주어 네 다리가 멀정한 가장 좋은 탁자를 차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무 그늘이 선선하게 드리워진 탁자에 칼 리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
가족들이 도착할 때까지 죄수들의 농구경기를 지켜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농구경기라기보다는 럭비와 레슬링 유도 농구를 한데 섞어
놓은 것이었다 심판은 없었지만 피를 흘리거나 파울을 하거나 싸움
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싸움을 했다가는 즉각 독방에 처박혀져
한 달 동안 아무런 운동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몇몇 방문객들이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여자친구도 있었고
부인네들도 있었다 그들은 펜스 근처 농구골대 아래서 농구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죄수들 옆에 가 앉았다 한 쌍의 남녀가 다가오더니
칼 리가 차지하고 있는 탁자에서 점심을 먹어도 되겠느냐고 물어왔
다 칼 리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두 사람은 별수없이 잔디밭으로 물
러섰다
그웬과 아이들이 도착한 것은 세시가 조금 못 돼서였다 그웬의
사촌인 헤이스팅스가 문을 따주자마자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달려갔
다 그웬이 음식을 펼쳐놓는 동안 칼 리는 선망의 눈빛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죄수들의 시선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칼 리가 만약 백인
이었거나 시시한 조무래기였다면 그리고 좀더 경미한 범죄를 저질
렀다면 그들은 칼 리의 음식을 빼앗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칼
리 헤일리였다 그를 오래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구경기
는 점점 더 과격해졌지만 여섯 식구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점심을
먹었다 토냐는 여전히 아버지 옆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오늘 아침부터 우리를 위한 특별헌금 모금이 시작됐어S
점심을 다 먹고 나서 그웬이 말을 꺼냈다
누가
교회에서요 에이지 목사가 군내에 있는 모든 흑인 목사를 불러
서 우리 식구들한테 줄 돈과 소송비용을 모으기로 했대요
얼마나
몰라9 하지만 재판 때까지 매주 헌금을 받겠다던데
잘됐군 나에 대해서 뭐라고 그래
그냥 당신 재판 얘기만 했어9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 우리가
얼마나 교회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지 뭐 그런 얘기만 했어요 신
도로서 베푸는 자세와 그밖의 덕목에 대해서도 설교했어요 그리고
당신더러 진짜 영웅이라고 그랬어요
기분 좋은 소식이군 사실 교회가 좀 도와줬으면 하고 은근히 바
라고 있었지만 아무런 재정적인 지원이 없었는데
동참하는 교회가 몇 개나 되는데
흑인 교회는 전부 다예
언제쯤 돈을 받을 수 있대
그런 얘기는 안 하던데요
자기 주머니는 채우고 주겠지
얘들아 토냐 데리고 저 펜스 근처에 가서 놀다 와라 아빠는 엄
마하고 할 얘기가 있으리까 조심하구
칼 리 주니어와 로버트는 토냐의 손을 잡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의사는 뭐래
아이들이 멀어지자 칼 리가 그웬에게 물었다
괜찮아질 거래요 턱도 상태가 좋구 입에다 박은 철사도 곧 떼어
낸대요 아직 뛰어놀 정도는 안 되지만 좀 있으면 다른 애들처럼 될
거래9 아직 통증은 남아 있지만
그거 말곤 저 다른 거는
그웬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눈을 가렸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웬은 뭔가 말하고 있었지만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토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대요 의사가 그랬
그녀는 말을 멈추고 눈물을 훔쳐내면서 계속 얘기를 하려고 애를
썼다 그녀의 훌쩍임은 더욱 소리가 커졌구 얼굴은 점점 냅킨 속에
묻혔다
칼 리는 가슴이 저미는 것 같았다 그는 손바닥에 머리를 묻구 이
를 부드득 갈았다 어느덧 그의 눈가도 젖어 있었다
의사가 또 뭐래
그웬은 고개를 들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간신히 말을 꺼냈다
화요일에 만났는데 상처가 너무 심해서
그웬은 말을 끊고 손으로 연거푸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만 멤피스에 있는 전문가한테 보내 보겠대
아직 잘 모른다는 얘기야丁
그웬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90퍼센트는 화실하대요 하지만 그는 멤피스에 있는 다른 의사한
테 정밀진단을 받아보고 싶대요 한 달 후에 데려갈 생각이에요
그웬은 휴지를 뜯어서 얼굴을 닦으면서 칼 리에게도 한 장을 건
네주었다 칼 리는 재빨리 눈가를 찍어냈다
토냐는 펜스 옆에서 누가 경찰이고 누가 죄수냐를 놓고 티격태격
하는 오빠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저쪽에서 고개를 가로저으
며 울고 있는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았다 자기한테 뭔가 문제가 있
다는 것을 눈치챈 토냐는 눈가를 비비면서 울기 시작했다
토냐가 매일 악몽을 러요 제가 매일 옆에서 같이 자야 돼요 어
떤 아저씨들이 자기한테 달려든다고도 하고 옷장 속에 숨어 있다고
도 그러구 숲 속에서 자기를 막 쫓아온다고도 그래요 늘 땀에 흠뻑
젖은 채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나죠 의사는 정신과 의사에게 보일 필
요가 있다고 그래요 좋아지지는 않고 오히려 점점 심해진대요
그 비용은 얼마나 드는데
몰라9 아직 전화는 안 해봤어요
전화하는 게 나을 거야 정신과 의사는 어디 있대
멤퍼스에요
알아봐 녀석들이 토냐한테 잘해줘
예 이주 잘해요 제 여동생을 아주 극진하게 대해요 하지만 토
냐가 자꾸 악몽을 꾸니까 자기들도 겁나나 봐요 토냐가 비명을 지르
면 다른 애들도 다 깨9 토냐 침대로 달려가서 도와주려고 하지만
무섭대요 어젯밤에는 오빠들이 옆에서 자치 않으면 안 자겠다고 하
길래 모두 불을 켜놓고 밤을 새웠어9
그래도 사내놈들이니까 괜찮을 거야
당신을 너무나 보고 싶어해Q
칼 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오래 안 걸려
정말이에요
글쎄 나도 내가 윌 생각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하지만 나머지
인생을 감방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아 제이크를 다시 고용했어
언제요
어제 멤피스 변호사가 나타나지도 않구 전화 한 통 없길래 그
래서 그 사람을 해고하구 제이크를 다시 고용했지
하지만 당신이 제이크는 너무 어리다고 했잖아요
내가 잘못 생각한 거야 그는 어리지만 훌릉한 변호사야 레스터
한테 물어봐
알아서 하세Q
칼 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펜스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
는 죽어서 어딘가 구천을 떠돌고 있을 두 놈을 생각했다 그들의 육
신은 이제 썩어 문드러지고 있을 것이구 그들의 영흔은 지옥에서 불
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죽기 전 칼 리의 어린 딸을 아주 잠간 만
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두 시간 동안에 어린 육신과 영혼을 완
전히 망쳐놓았다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으면 토냐가 아이도 못 낳게
되었을까 얼마나 심하게 매질을 해댔으면 지금도 옷장 속에 숨어
자기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할까 토냐가 그 모든 것을 완전히 기억에
서 지워 버리고 보통 아이들처럼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의
사는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많 다른 아이들이 토냐를 정상적인 아이로
받아들여 줄까
그놈들의 생각으로는 토냐는 그저 검등이 계집애일 뿐이었다 누
군가의 자식이긴 하겠지만 다른 검등이들처럼 사생아일 게 분명하
고 그러니 흑인들에게 강간은 새로을 것도 없는 문제라고 그들은 생
각했을 것이다
칼 리는 법정에서 본 두 놈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 놈은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었고 한 놈은 잔뜩 겁먹은 얼굴이었다 계단을 걸
어 내려오던 그들의 모습이 칼 리의 머릿속엔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칼 리는 M16을 손에 들고 그들을 처단하기 위해 걸어나왔
다 칼 리는 법원을 뒤흔드는 총성과 아비규환의 절규 도와달라는
외침과 뒤로 함께 자빠지며 지르던 비명을 똑똑히 들었던 것이다 그
리고 수갑을 찬 채 다른 놈 위로 포개져서 비명을 지르고 몸을 뒤틀
다가 결국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하던 그들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
고 있었다 칼 리는 머리가 반쯤 날아가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그들을
지켜보며 통쾌하게 웃어젖혔다 그리고 그들의 육체가 잠잠해졌을
때 그는 바람처럼 도망쳤다
칼 리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이 한 행위가 아주 자랑스
러웠다 베트남에서 처음 죽였던 동양인들로 인해 더이상 괴로워하
지 않았듯이
윌터 설리번에게 보내는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J 윌터 귀하
마샤프스키 씨를 통해 헤일리 사건의 위임계약이 해지되었다
는 것을 전해 들으셨을 줄로 압니다 그러므로 본 사건에 대한 귀
하의 조언도 더이상 필요없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제이크
로터하우스에게는 이 편지의 복사본을 보냈구 누스 판사에게는
짤막한 편지를 따로 보냈다
누스 판사님 귀하
본인이 칼 리 헤일리 사건을 수임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희는 7월 22일 재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제가 칼 리 혜일리
의 변호사로 참석할 것입니다
itllol크
버클리에게는 누스 판사에게 보내는 편지의 사본을 우송했다
월요일 아흡시 삼십분 마샤프스키가 전화를 걸었다 제이크는 전
화기의 깜빡이는 불빛을 이분 정도 바라보다가 수화기를 자아챘다
여보세요
어떻게 한 거요
누구신가요
비서가 말 안 했소 나보 마샤프스키요 당신이 대체 어떻게 했
는지 알고 싶소
무슨 말이죠
내 사건을 빼앗아갔잖소
침착해 이놈은 남의 속을 긁는 놈이니까
재가 알기로는 당신이 내 사건을 빼앗아갔던 것 같은데요
난 그 사람한테 고용되기 전까지 그 사람 만난 적도 없소
당신은 그랬죠 하지만 당신의 포주를 보냈잖아요 기억나요
그래서 소송원조로 나를 기소하겠다는 거요
그렇소
마샤프스키는 잠시 뜸을 들였다 제이크는 곧 터져나을 윽설을 기
다리고 있었다
브리건스 씨 당신 알아둘 게 있는데 당신 말이 맞아 나는 매일
소송을 빼앗아 오지 그런 데는 내가 프로니까 내가 돈을 이렇게 많
이 벌 수 있는 것도다그때문이지 큰소송사건이 생기면 나는내
손에 넣으려고 노력하지 필요하다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말이야
재밌군요 신문에는 그런 얘긴 없던데
내가 헤일리 사건을 원하면 빼앗을 수도 있어
그럼 내려와 보라구
제이크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십분 동안 혼자 크게 웃었다 그는
시가에 불을 붙이고 재판지 변경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틀 후 루시엔이 에셀에게 전화를 걸어 제이크더러 자기한테 들
르라는 말을 남겼다 제이크가 꼭 봐야 할 손님이 있다고 했다 아주
중요한 일이라면서
잭슨에서 온 방문객은 베이스 박사였다 그는 루시엔과 오래 전부
터 알고 지내는 은퇴한 정신과 의사였다 루시엔은 베이스 박사와 함
께 두 명의 피고인을 심신장애로 빼내려고 한 적이 있었다 둘 다 아
직도 파치먼에서 형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베이스 박사는 루시엔이
자격 박탈을 당하기 1년 전에 은퇴를 했는데 그의 은퇴시기가 빨라
진 이유와 루시엔이 변호사를 그만두게 된 이유는 똑같았다 잭 다니
얼을 너무 좋아한다는 점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었다 베이스 박사는
루시엔을 보러 가끔 클랜턴에 들렀구 루시엔은 그보다 자주 잭슨으
로 갔다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거나하게 취하곤 했다 두 사람은
루시엔의 집 앞에 앉아 제이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그가 제정신이 아니었단 말만 하면 돼
루시엔이 베이스 박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진짜 미쳤나떡
박사가 물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림 뭐가 중요해
배심원들한테 피고인을 풀어줄 구실을 준다는 게 중요하지 배심
원들은 피고인이 미쳤나 안 미쳤나 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그들에겐 석방을 위한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하다구
일단 진단해 보는 게 좋겠어
그러게 알아보고 싶은 건 다 얘기할 수 있어 감옥에서 누가 말
좀 걸어뒀으면 하고 있을 테니까
여러 번 만나봐야 될 것 같아
F
그런데 그 사람이 총을 쏠 당시 미치지 않았었다는 결론이 나오
면 어떻게 하지
그래 법정에 나가서 증언하고 싶지 않구 신문에 사진도 나기
싫구 텔레비전이랑 인터뷰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이
루시엔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한 잔 쭉 들이켰다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칼 리를 만나보구 서류 한 뭉치 작성
해 이상한 질문을 하라구 어떻게 하는지 자네가 잘 알잖아 그런
다음 그는 미쳤소 하고 말만 하면 된다구
난 이런 데 자신없어 옛날에도 잘 안 됐잖아
잘 들어 베이스 자네 의사지 그러면 거만하고 자만심에 가득
찬 사람처럼 굴라구 의사답게 행동하고 자네 의견을 확실히 내놓으
감히 아무도 질문할 수 없게
모르겠어 옛날에도 실패했는데
내가 말한 대로만 해
전에도 그랬지만 둘 다 파치먼에 가 있잖아
개들은 원래 가망 없었어 하지만 헤일리는 달라
그는 가망 있는 것 같아
아주 약간
다르다며
헤일리는 사람을 죽일 이유가 있었던 멀정한 사람이야
그런데 왜 가망이 아주 조금만 있다는 거야틴
법은 그의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지
법은 늘 그렇잖아
게다가 그 사람은 흑인이고 여기는 백인 동네야 이 동네 사람들
은 편견이 심해서 난 별로 확신이 없어
베이스 박사는 잔을 비우고 한 잔을 더 따랐다 두 사람 사이에 놓
인 얼음통에는 얼음이 5분의 1정도 남아 있었다
변호사는
베이스 박사가 물었다
곧 이리 올 거야
자네 밑에서 일하던 사람이야건
응 하지만 자넨 처음 볼걸 내가 그만두기 2년 전에 우리 회사에
들어왔으니까 어려 삼십대 초반인데 성실하고 저돌적이고 아주 열
심히 일하지
그런데 자네 밑에서 일했다구
그래서 걱정이야 그 나이에 걸맞은 재판 경험도 있고 살인사건
이 처음도 아니지만 내가 알기로는 심신장애 판정을 받아내야 하는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거든
그런 얘길 들으니 반갑군 난 누가 자꾸 물어대는 건 별로 안 좋
아하거든
난 자네 판단이 좋아 검사 만날 때까지는 그럴 일 없어
난 이번 일에 느낌이 안 좋아 두 번이나 해봤지만 다 실패했잖

루시엔은 당황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자네는 내가 아는 의사 중에 가장 고집 없는 사람이야
제일 한심하
자네는 거만하게 앉아서 건방을 떨 필요가 있어 전문가답게 행
동하라구 이 미시시피 클랜턴에서 어느 누가 자네의 전문가적 소견
에 의문을 제기하겠나
주정부에는 전문가가 많을 거야
그래 위트필드에 한 명 있지 그 사람은 퍼고인이랑 몇 시간 얘
기하다가 재판에 돌려보내는 게 일이야 피고인은 자기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멀정한 사람이었다는 말과 함께 그는 법적으로 정신이
상인 피고인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자라구 그 인간이 보기엔 다
멀정하지 모든 사람이 완벽한 정신상태를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한
위트필드에 있는 사람들은 다 멀정한 사람들이지 정부에서 돈
탈 때만 빼고 피고인이 법적으로 히쳤다고 주장하는 날에는 바로 해
고를 당할까봐 그러는 거야 그게 바로 자네가 상대할 사람이네
그럼 배심원은 당연히 내 말을 믿는단 말이
자네가 이런 죄수는 처음 본다는 식으로 연기를 해야지
벌써 두 번이나 했어 루시엔 하나는 강간범이었구 하나는 살인
자였지 미치지 않은 줄 알면서 미쳤다고 얘기했다가 둘 다 감방에
있어 잊어버리진 않았겠지
루시엔은 잔을 길게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 옅은 갈색 술과 그 위
를 떠다니는 얼음조각을 바라보았다
나 도와주겠다고 그랬지 자네 나한테 빛진 것도 있어 내가 자
네 이혼소송 몇 번 다뤄뒀지
세 번 그리고 매번 난 거지가 됐다구
자넨 매번 그럴 만했어 곱게 돈을 주든가 아니면 법정에 불려나
가 자네 버룻을 만인 앞에서 밝혀야 하는 상황이었어
알아
그리고 내가 수년간 자네에게 얼마나 많은 고객과 환자들을 보내
줬나
별거 수당 대기엔 부족한 돈이야
일주일에 한 차례씩 치료받으러 온 부인들을 접는 침대에 뉘어놓
고 했던 부정요법 기억하고 있겠지 자네의 그 부정요법 행위는 변
호를 거부당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자네는 자네의 진정한 친구 이 루
시엔을 부른 것이구 난 푼돈을 받고 자네를 풀어뒀잖아
증인이 없었으니까 그랬지
그 여자가 증인이지 그리고 법원 파일에는 자네의 전 부인들이
간통죄로 자네에게 이혼소송을 걸었던 게 다 나와 있어
어쨌든 그들은 증명하지 못했어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야 우리가 재판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알았어 충분히 알았다구 돕겠네 내 자격증이 문제되진 않을

아주 고민을 사서 하는군
난 법정만 생각하면 신경이 예민해져
자네 자격증엔 문제 없어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은 거니까 너
무 걱정할 필요 없어
이건 어때
베이스 박사는 술병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술은 많이 마셔서는 안 되네
루시엔은 경건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베이스 박사는 잔을 내려놓고 폭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의자에
서 굴러떨어져 현관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배를 움켜쥐고 웃어댔다
취했구만
루시엔은 새 병을 따면서 말했다
한 시간 후 제이크가 도착했을 때 루시엔은 커다란 흔들의자 안
에서 가만가만 혼들리고 있었다 베이스 박사는 현관 끝에서 곯아떨
어져 있는 상태였다 양말도 신발도 가리지 못한 발가락이 현관과 나
란히 뻗은 관목 숲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제이크는 현관으로 올라가
면서 루시엔을 보고 깔짝 놀랐다
제이3잘 있었나
루시엔은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루시엔 술을 많이 마셨나봐
제이크의 눈에 빈 병 하나와 반쯤 빈 병이 보였다
자네가 저 사람 좀 만나봐야 될 것 같아서
루시엔은 몸의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누군데요
우리가 쓸 정신과 의사야 잭슨에서 온 베이스 박사라구 내 친구
지 헤일리를 도와줄 거야
괜찮은 의사예요
최고지 나랑 이런 사건을 다룬 적도 여러 번 있어
제이크는 흔들의자 쪽으로 몇 걸음 더 걸어가다 우뚝 멈춰 섰다
베이스 박사는 와이셔츠 단추를 다 끄른 채 누워 있었고 입은 헤 벌
리고 있었다 코 고는 소리는 이상하게 목구멍을 울리며 크게 울려퍼
졌다 작은 참새만한 말파리 한 마리가 청천벽력 같은 코 고는 土리
에 놀라 의자 위로 급히 몸을 피했다 코를 골 때마다 숨을 통해 뿜
어지는 역한 냄새가 안개처럼 현관 저쪽에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저 사람이 의사란 말이에요
제이크는 루시엔 옆에 앉으며 물었다
정신과 의사지
루시엔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 사람이 당신하고 같이 저 술들을 해치웠나요
제이크는 턱 끝으로 술병을 가리켰다
내가 좀 거든 거지 저 친구는 고래야 하지만 재판 때는 항상 멀
정하지
다행이네
자네도 저 친구를 좋아하게 될 거야 싸거든 나한테 빛진 것도
있고 하니까 돈은 거의 안 들어
벌써부터 그가 좋아지는군
루시엔은 얼굴빛과 눈빛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실래
아노 지금 세시 삼십분이에요
정말 며칠이지
6월 12일 수요일이에9 도대체 얼마 동안 술을 마신 거예요
한 30년 되지
루시엔은 얼음조각을 달그락거리면서 웃었다
전 오늘을 말하는 거예요
아침부터 마셨지 무슨 차이가 있나
저 사람은 일해요
아니 은퇴했어
자발적인 은퇴인가요
자네 말뜻은 쫓겨난 거 아니냐이거야
예 말하자면요
아니 아직도 면허를 가지고 있고 자격증에는 흠집 하나 없지
그래 보이네요
몇 년 전에 술 때문에 그만뒀어 술이랑 별거수당 때문에 내가
이혼 소송을 세 번이나 다뤄뒀지 한참 돈을 벌 때 위자료와 양육비
로 수입이 다 나가자 아예 일을 그만뒀어
어떻게 먹고살아요
우리 아니 저 사람은 감춰둔 돈이 왜 돼 아내랑 변호사 모르게
숨긴 돈으로도 웬만큼 살 수 있을걸
좋겠어
게다가 마약 비슷한 것도 좀 다루거든 부자들한테만 조금씩 파
는데 정확히 말하면 마약이 아니라 최면제지 법적으로 처방을 쓸
수 있으니까 불법은 아냐 좀 비윤리적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뭐해요
가끔 놀러와 잭슨에 사는데 그 동네가 싫대 일요일에 저 친구찬
테 전화하고 자네한테 얘기한 거야 저 친구는 가능하면 빨리 헤일리
를 만나고 싶대 내일이라도 가능하다면
흔들의자가 갑자기 중심을 잃자 베이스 박사는 그르렁거리면서
몸을 홱 돌렸다 그는 흔들의자치 움짙임을 따라 몇 번 뒤척이다가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쭉 뻗은 오른쪽 발이 관목 가지에 가서 걸
렸다 흔들의자가 무게를 못 견디고 오른쪽으로 쓰러지자 박사이 이
마가 나뭇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오른쪽 다리는 여전히 흔
들의자 끝에 걸린 채였다 그러나 그는 잠시 인상을 구기면서 기침을
해대다가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부축을 해주려고 일어섰던 제이
크는 아무 일도 아니란 것을 알고는 우뚝 멈춰 섰다
내버려둬
루시엔이 비실비실 웃으면서 말했다
루시엔은 얼음조각 하나를 박사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첫번째 것
은 텟나갔구 두 번째 얼음조각은 그의 코끝을 정통으로 맞혔다
명중
루시엔이 환호성을 질렀다
일어나 이 술주정뱅이야
제이크는 한때 자신의 상사였던 사람이 증언을 해줄 정신과 의사
에게 얼음조각을 던지고 욕을 퍼붓고 낄낄거리는 소리를 등뒤로 하
구 차에 올라탔다
드웨인 루니 보안관 대리는 목발을 짚고 병원을 나왔다 그는 부
인과 세 아이들과 함께 구치소로 차를 몰았다 보안관과 다른 동료
들 그리고 몇몇 친구들이 케이크와 작은 선물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
고 있었다 루니는 이제 그의 배지와 제복을 그대로 입은 채 무전 계
원으로 일할 것이다 두둑한 웜급과 함께
스프링데일 교회의 예배당은 말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고 번쩍
번쩍 윤이 날 정도로 잘 닦여 있었다 정확하게 열지어진 접는 의자
가 예배당 전체를 구획하고 있었다 에이지 목사는 이곳이 군내에서
가장 큰 교회인데다가 마침 클랜턴에 있기도 해서 이곳에서 기자회
견을 갖기로 했다 기자회견의 목적은 칼 리 헤일리의 행위를 지지하
고 후원한다는 뜻을 밝히고 소송을 위한 특별기금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5천 달러라는 거금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장은 앞으로 더 많은 기금을 내놓기로
철썩같이 약속해 놓은 상태였다 멤피스 지부장도 5천 달러를 가져
와 탁자 위에다 엄숙하게 올려놓았다 그들은 에이지 목사와 함께 임
원석 앞에 있는 두 줄짜리 특별석에 자리잡았다 그 뒤쪽은 클랜턴
목사회 소속 회원들의 자리였다 방청석에는 2백 명이 넘는 신도들
이 임원들을 마주보며 앉아 있얼구 그웬은 에이지 목사 옆자리에 앉
아 있었다 예배당 중앙에는 기자와 카메라가 몇 자리를 차지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수는 아니었다
에이지 목사가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서 가장 먼저 연단에 나섰다
그는 칼 리 헤일리의 선량함과 정직함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여덟 살이 된 토냐에게 세례를 주었던 이야기와 인종주의
와 적대감으로 만신창이 된 헤일리 일가에 대해서 웅변했다 좌중들
의 콧등을 시큰하게 적셔 놓은 뒤 에이지 목사는 선량하고 신앙심
깊은 사람을 잡아넣은 법제도에 대한 성토로 화제를 바꾸었다 에이
지 목사는 만약 칼 리 헤일리가 백인이었다면 헤일리는 기소되지 않
았을 것이라면서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죄가 있다고 치부된
다면 그 제도는 정당하지 않은 것이므루 칼 리 헤일리에 대한 기소
자체가 무효라고 말했다 에이지 목사는 좌중과 함께 호흡을 하면서
리듬을 탈 줄 알았다 기자회견은 천막부흥회와 같은 열기로 들떠 을
랐다 사십오분 동안 계속되던 연설이 끝났다
에이지 목사는 누구도 흥내낼 수 없는 위대한 배우였다 미국흑인
지위향상협회장도 주저하지 않고 나와 삼십분에 걸쳐 인종주의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협회장은 범죄
와 체e유죄판결의 과정을 거쳐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흑인 재소
자의 통계를 줄줄이 을으면서 법제도가 백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
기 때문에 흑인 재소자의 비율이 높은 것이라고 역설했다 협회장은
국가적인 통계 수치를 포드 군에 적용해서 포드 군에서는 칼 리 헤
일리가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텔레비전 카메
라 조명 때문에 협회장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협회장은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그는 에이지 목사보다 더 격련하게 연단을 내
리쳤구 그 바람에 입을 확 벌리고 있던 마이크들이 요동을 쳤다 협
회장은 포드 군과 미시시피 주의 흑인들이 귈기해야 할 때라고 주장
하면서 협회 차원에서 시위와 가두 행진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헤일
리 사건은 억압받는 사람과 흑인들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작은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게 연설의 요지였다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기금은 얼마나 마련하실 생각입니까
최소한 5만 달러는 되기를 바랍니다
헤일리 사건은 비용이 많이 들 텐데 5만 달러로 되겠습니까
얼마가 되든지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다만 문제는 시간이 부
족하다는 겁니다
기금은 어디에 쓰일 겁니까
소송비용과 수임료로 쓰일 것입니다 변호인단을 구성하구 의사
들도 동원해야 하니까요
혈회 변호사들이 동원될 예정입니까
물론입니다 워싱턴에 있는 우리 변호사들이 이미 일을 시작했습
니다 우리 변호인단은 모든 사건을 다를 준비가 되어 있지만 칼 리
헤일리 씨가 가장 우선입니다 그의 석방을 위해서 모든 법적인 조치
들이 강구될 것입니다
회견이 끝나자 에이지 목사가 다시 연단에 올라서서 피아노 주자
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자
리에서 일어나 손에 손을 잡고 우리 승리하리라를 합창하기 시작
했다
제이크는 화요일자 신문에서 특별기금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목
사회가 특별헌금을 모금한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
지나 가족들에 대한 후원금 명목이었다 그런데 소송비용 5만 달러
라니 제이크는 적이 화가 났구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수 없었다 다
시 해고되는 건가 만약 칼 리 헤일리가 협회 소속 변호사들을 거부
하면 기금은 어떻게 되는 건가 재판까지는 아年 5주가 남았으니까
변호인단이 클랜턴에 내려을 시간은 충분했다
제이크의 걱정은 협회의 변호인단 쪽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 변
호팀에 대해서는 제이크도 잘 알고 있었다 살인사건 전담변호사 여
섯 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남부 지방을 돌면서 악질적인 죄로 기소된
흑인들을 변호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팀의 변호사들은 죽음의 전사
들이라고 불렸다 똑똑하고 명쾌하곤 아는 게 많은 이 전사들은 가
스실이나 전기의자를 코앞에 두고 있는 위기일발의 흑인을 꺼내주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오직 살인사건만 다루지만 그들의 변론은 일
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는 변호사팀을 운영함으로써 기금을
모으구 조직을 강화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3중의 효과를 얻고
있었다 인종주의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였고 거의 유일한 변
론 전략이었다 비록 지는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기록상으로 볼 때
절대로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건드리는 사건은 별로 희망
이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목적은 재판에 임하
는 흑인을 순교자로 만들구 순교자를 죽인 배심원들을 죄인으로 만
드는 데 있다고 봐도 좋았다
다행히 그들은 클랜턴에 오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일주일 전에 버클리 검사는 칼 리 헤일리에 대한 정신감정을 신
청해 놓았다 제이크는 정신감정이 클랜턴에서 가능하면 제이크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누스 판사는 제이크의 신
청을 기각하구 오지 보안관에게 칼 리를 위트괼드에 있는 주립 정신
병원으로 호송할 것을 명령했다 제이크는 그렇다면 자신이 동행해
서 정신감정에 입회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누스 판사는 그것마
저도 기각해 버렸다
수요일 아침 일찍 제이크와 오지는 보안관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
시면서 칼 리가 샤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기를 기다렸다 위트필드
는 클랜턴에서 세 시간 거리에 있었는데 정신병원측과의 약속 시간
은 아흡시였다 제이크는 이미 칼 리를 만나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두었다
거기 얼마나 있을 거지
제이크가 오지에게 물었다
변호사는 자네잖아 정신감정이 얼마나 걸리는데
사나흘 정도 전에도 가본 적 있지
그럼 미친 사람들 데리고 다닌 게 한두 번인가 하지만 이번처럼
법석을 떨기는 처음이야 가면 어디다 수감하지
거기도 감방은 많아
헤이스팅스 보안관 대리가 잠이 덜 깬 눈을 하고 보안관 사무실로
느릿느릿 걸어들어왔다 그는 말라비틀어진 도넛을 씹고 있었다
차는 몇 대 가지고 가죠
헤이스팅스가 물었다
두 대 나하고 자네하고 운전하는 거야 퍼틀하고 칼 리는 내가
데리고 갈 테니까 자네는 릴리하고 네스비트를 책임지라고
오지가 말했다
총은요
차 한 대에 산탄총 세 자루씩 넣어왔어 실탄도 많이 있고 아무
튼 칼 리를 포함해서 전원 다 방탄조끼를 입히라구 차도 대기시켜
놓고 다섯시 삼십분에 출발이야
헤이스팅스는 무어라고 중얼거리면서 보안관 사무실을 나갔다
문제가 생길 것 같나
제이크가 물었다
전화를 몇 통 받았는데 그중 두 통은 우리가 위트필드로 간다는
걸 알고 얘기하는 것 같더라구 그래도 가는 길이 여러 갈래라서 괜
찮아
어떻게 갈 건데
다른 사람 같으면 22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준긴州料 고속
도로로 빠지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좀 작은 고속도로를 타는 게 안전
할 것 같아 14번을 타고 가다가 89번을 탈까 해
좋군 아무도 그렇게 가리라곤 예상하지 못하겠어
그래 자네가 인정해 주니까 기분이 좋군
내 고객 문제라 나도 알아야 돼
어쨌든 출발해야지
제이크가 위트필드에서 일어날 일들을 설명하는 동안 칼 리는 계
란과 비스킷을 우적우적 먹어치우고 있었다
알았어요 제이크 미친 척하라는 얘기잖아요
칼 리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오지 보안관 역시 그 상황이 웃기다
고 생각했다
이건 웃을 일이 아니에요 내 말 잘들어요
왜죠 내가 거기 가서 무슨 말을 하느냐 하는 건 상관없다면서
요 그 사람들이 내가 미쳤었다고 얘기해 줄 것 같습니까 아니잖아
요 의사도 주정부를 위해서 일하니까요 안 그래요 주정부는 나를
잡아넣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그 사람들은 이미 결론을 다 내린 상탠데 오지 안 그래

나는 끼고 싶지 않은데 나도 주정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니

주정부가 아니라 군을 위해서 일하잖아
제이크가 끼여들었다
이름 죄목 죄수번호 그게 다예요 그 사람들이 나한테 알고 싶
어하는 건
칼 리는 종이봉투를 비우면서 빈정거렸다
웃기는 말도 할 줄 아는군오
제이크가 말했다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뭐
오지 보안관은 칼 리가 측은한 모양이었다
칼리는빨대 두개를코에다걸더니 깨금발을한채 방안을서
성대기 시작했다 그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무언가 낚아채는
시늡을 하기도 하구 낚아챈 것을 종이봉투 속에 집어넣기도 했다
칼 리가 또 하나를 잡아서 종이봉투에 집어넣었다 헤이스팅스가 돌
아와서 사무실 문 앞에 서더니 칼 리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았
다 칼 리는 그를 음탕한 눈길로 한번 쳐다보더니 또 하나를 잡아서
봉투에 집어넣었다
저 사람 뭐하고 있는 거예요
헤이스팅스가 물었다
나비 잡고 있어요
칼 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제이크는 서류가방을 집어들고 문 쪽으로 걸음을 옳겼다
위트필드에 두고 오는 게 나을 것 같군
그는 문을 쾅 닫고는 구치소를 빠져나갔다
누스 판사는 재판지 변경에 관한 예심을 6월 24일 월요일로 잡았
다 예심은 많은 시간이 걸릴 터였구 예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전에 없이 높을 게 분명했다 제이크에게는 칼 리 혜일리가 포드 군
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포드 군에서 명망 있는 인물이 나서서 이곳에서의 공정한
재판은 불가능하다고 말해 주어야 했다 제이크로서는 그런 인물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앳캐비지는 증언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은행측에서 말렸다 해리
렉스는 자진해서 하겠다고 나섰다 에이지 목사는 기꺼이 증언을 하
겠노라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가 협회
변호사를 투입하겠다고 선언하기 전의 일이었다 루시엔은 명망 있
는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웠구 우선 제이크 쪽에서 그를 증인으로 세
울 마음이 없었다
반면에 버클리 검사는 이미 열두 명의 명망 있는 사람들을 증인으
로 내세워놓고 있었다 민선공무원 변호사 사업가 보안관 같은 사
람들이 나서서 칼 리 헤일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며 클랜턴에서
라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증언을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
었다
제이크 개인적으로는 재판이 클랜턴에서 열리기를 바랐다 그의
사무실 바로 건너편에 법원이 있는 이곳에서 그를 아는 사람들이 지
켜보는 이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 그래도 낫기 때문이었다 재판은 엄
청난 중압감과 지루함 불면증과 고통을 안겨줄 게 뻔했다 어차피
재판이 피곤한 고행인 바에야 걸어서 삼분밖에 안 되는 익숙한 동네
에서 치르는 게 덜 부담스러웠다 휴정 시간에는 사무실로 돌아와 생
각도 할 수 있고 증거를 모으거나 쉴 수도 있으며 커피숍이나 클로
드네 가게에서 밥을 먹거나 아니면 집으로 달려가 점심을 먹을 수도
있으니까 또한 그의 의뢰인도 가족이 가까이 있는 포드 군 구치소에
있는 게 좋았고
그리고 언론에 노출될 기회도 당연히 클랜턴이 더 많았다 매일
아침 보도진들이 제이크의 사무실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제이크
가 법원에 들어갈 때까지 그를 졸졸 쫓아다닐 테니까 정말 짜릿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칼 리가 어디서 재판을 받느냐 하는 것이 과연 중요한 문제일까
루시엔의 말이 옳았다 미시시피에 있는 사람들 중에 이 사건을 모펀
는 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왜 재판지를 변경해야 하는가
비 배심원들은 이미 칼 리에게 유죄나 무죄판결을 내린 상태일 것이
다 그래서 재판 장소가 중요했다
배심원들은 백인과 흑인이 섞여 있을 것이다 비율로 보면 포드
군은 다른 군에 비해 백인 배심원 수가 많아야 했다 형사사건인 경
우 제이크는 흑인 배심원을 좋아했다 특히 피고인이 흑인인 경우에
는 더욱 그랬다 그들은 유죄판결을 잘 내리려 하지 않았다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민사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흑인들은
대체로 거대한 회사 예컨대 보험회사한테 희생당한 사람을 동정했
구 다른 사람의 돈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제이크
는 고를 수만 있다면 흑인을 배심원으로 택하고 싶었다 그것도 전원
흑인 배심원으로 그러나 포드 군에서는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흑인이 좀더 많은 군에서 재판을 하는 것이 절대
적으로 필요했다 흑인 하나가 배심원 전체를 머뭇거리게 할 수도 있
구 어쩌면 다수가 무죄를 밀어붙이는 사태를 초래할지도 몰랐다 두
주 동안 모텔에서 자야 하고 낯선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것이 불편
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 불편은 흑인 배심원을 한 명이라도 더 받는
행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루시엔은 재판지를 변경하는 문제를 세세하게 연구했다 제이크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루시엔의 요구대로 정확히 아침 여덟시에 루시
엔의 집에 도착했다
샐리가 현관으로 음식을 날라와 제이크는 오렌지 주스와 커피를
마졌고 루시엔은 위스키에 물을 섞어 마시면서 재판지 변경에 관한
모든 세목들을 훌었다 루시엔은 지난 80년 동안의 대법원 판례를
몽땅 준비해 놓고 장장 세 시간에 걸쳐 교수처럼 강의를 해댔다 제
이크는 그저 받아적기만 했다 한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논쟁이 오가
기도 했지만 제이크는 대부분 듣는 위치였기 때문에 고분고분 루시
엔의 말에 따랐다
위트필드는 잭슨에서 랭킨 군의 시골길을 따라 몇 킬로 정도 가면
나왔다 오지 일행이 도착했을 때 위트필드의 정문에는 보초 두 명
이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칼 리는 아흡시에 도착하기로 되
어 있었구 그건 보초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여덟시 삼십분
포드 군의 번호판을 단 순찰차가 정문 입구의 멈춤 표지판 앞에 섰
다 기지들과 보도진들이 첫번째 차의 운전석 쪽으로 달라붙었다 운
전대를 잡고 있던 오지 보안관은 창문을 내리지 않았다
칼 리 헤일리 씨는 어디 있습니까
기자들은 허등대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뒤차에 있소
오지 보안관은 천천히 대답을 하고는 뒷자리에 앉은 칼 리에게
눈짓을 했다
두 번째 차에 있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구 기자들은 헤이스팅스가 운전하는 차로 우
르르 몰려갔다
헤일리 씨 어디 있어요
기자들의 물음에 앞자리에 앉아 있던 퍼틀이 헤이스팅스를 가리
키며 대답했다
이 사람이 칼 리요
당신이 헤일리 씹니까
기자가 헤이스팅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왜 당신이 운전을 하고 있습니까
그 제복은 뭡니까
그들이 나를 경찰로 변장시켰거든Q
헤이스팅스는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태연하게 말했다 문이 열리
자 순찰차는 재빨리 문 안으로 들어갔다
칼 리는 본관 건물로 갔다가 오지 보안관 일행과 함께 두 번째 건
물로 들어가서 방을 배정받았다 오지 보안관 일행은 칼 리가 수감되
는 것을 보고는 클랜턴으로 돌아왔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 흰 제복을 빼입은 사람이 회람판을 들고 칼
리의 방으로 찾아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조수쯤 돼 보이는 그 사
람은 태어난 것부터 시작해서 일생 동안 있었던 중요한 사건과 중요
한 인물들에 대해서 두 시간 동안이나 물어댔다 오후 네시가 되자
간수 두 명이 칼 리를 무개차에 태워 방에서 1킬로4채 안 떨어진
현대식 벽돌 건물로 데리고 갔다 칼 리는 진료부장이라고 씌어 있는
윌버트 로드히버 박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간수들은 칼 리가 들어간
방 앞에서 보초를 섰다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가 죽은 지 5주가 지났으며 재판까지
는 4주가 남았다 클랜턴에 있는 모텔 세 곳에는 재판이 열리는 그
주와 그 전주의 예약이 이미 끝난 상태였다 가장 넓고 안락한 베스
트 웨스턴 모텔은 멤피스와 잭슨에서 온 보도진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구 클랜턴 코트 모텔은 최고급 바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어서
애틀랜타와 워싱턴 뉴욕에서 온 기자들의 예약이 밀려 있었다 가장
하급인 이스턴 사이드 모텔 역시 7월 숙박료를 두 배나 올렸는데도
방이 다 나가고 없었다
처음에 클랜턴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이상한 억양을 쓰는 외지인
들에게 무척 친절했었다 그러나 클랜턴과 주민들에 대한 묘사가 그
다지 탐탁지 않다는 것을 알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닫기 시작했
다 시끌벅적하던 커피숍도 낯선 사람이 한 명 들어오면 순식간에 조
용해졌곤 광장 주변의 상인들도 얼굴을 잘 모른다 싶은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굴지 않았다 법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갑자기 쳐들어
와서 질문공세를 퍼붓는 보도진들을 아예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멤
피스와 잭슨에서 온 기자들도 새로운 기삿거리를 알아내려면 무진
애를 써야 할 지경이 되었다 클랜턴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인종
주의자라는 소리를 듣는 데 지친데다가 그런 말이나 지껄이고 다니
는 외지인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들을 무시하기로 했던 것이다
클랜턴 코트 모텔의 바는 기자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그나마 친절
한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형 텔레비전 화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클랜턴에 관한 얘기와
앞으로 다가을 재판 얘기를 떠들어댔다 그곳에서 그들은 서로 알아
본 것을 비교하고 소문의 진위를 따지면서 밤이 새도록 술을 마셨다
클랜턴에서는 밤이면 마시는 것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재판지 변경에 대한 예심이 있기 전날인 6월 23일 일요일에도 모
텔은 대만원이었다 윌요일이 되자 베스트 웨스턴 모텔은 아침 일찍
부터 커피를 마시며 떠들어대는 기자들로 시장거리처럼 북적거렸다
예심은 첫번째 전투이기도 하거니와 재판 전의 유일한 신청건이기
때문에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했다 누스가 아파서 예심에 참석할
수 없게 되어 대법원에 다른 판사를 지명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결국 그 소문은 잭슨에서 온 기자가 근거 없이 떠
들어댄 것으로 밝혀졌다 여덟시가 되자 기자들은 카메라와 마이크
를 챙겨 들고 클랜턴 법원을 향해 떠났다 구치소 앞에 자리를 잡은
무리도 있었고 법원 뒷문을 점거한 무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자
들은 법정을 확 채우고 있었다 여덟시 삼십분이 되자 법정은 발 디
딜 틈이 없었다
제이크는 발코니를 통해서 술렁이는 법원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구 위가 따끔거리며 쑤셔왔다 그는 빙그레 미
소를 지었다 어쨌든 모든 준비가 다 끝난 상태였다 버클리 검사와
카메라를 맞이할 모든 준비가
누스 판사는 코끝에 걸친 안경 너머로 꽉 들어찬 법정을 둘러보았
다 모든 사람이 제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누스 판사는 입을 열
었다
본 법정은 피고인측으로부터 재판지 변경 신청을 접수한 바 있습
니다 본 사건에 대한 재판은 7者 22일 월요일에 있을 예정입니다
제 일정표에 따르면 오늘부터 재판까지는 4주가 남았습니다 저는
이미 신청에 대한 서면제출과 최종기한을 정했습니다 지금부터 재
판 때까지 단 두 개의 신청건이 있는 줄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재판짱님
버클리 검사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천등처럼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나섰다 제이크 변호사는 휘등그레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확인해 줘서 고맙습니다 검사 피고인측은 피고인에 대한 정신
감정을 서면으로 신청하였습니다 위트괼드에 가서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았습니까
누스 판사는 아무 표정 없이 말했다
예 지난주에 끝냈습니다 재판장님
제이크가 대답했다
피고인측 의사도 선정했습니까
예 재판장님
그럼 정신감정도 받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다른 신청건이 있습니까
예 재판장님 저희는 예비 배심원의 수를 다른 재판 때보다 늘려
줄 것을 신청합니다
주에서는 그 신청에 반대합니다 재판장님
버클리 검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를 질렀다
앉으십시오 버클리 씨
누스 판사는 단호한 목소리로 검사를 제지하고 나섰다 그는 코에
걸친 안경을 밀어올리고는 검사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다시는 나한테 소리지르지 마십시오 물론 검찰측에서는 반대할
것입니다 검찰측에서는 피고인이 어떤 신청을 하든지 반대할 것입
니다 그게 당신의 일이자 역할이니까요 그러니 다시는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끝난 뒤에도 매스컴에 나설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버클리는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으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
겼다 누스 판사가 검사에게 그렇게 크게 소리지르기는 처음이었다
계속하십시오 브리건스 씨
제이크는 누스의 까탈스러움에 적이 놀랐다 그는 어느 때보다도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아마도 여러 로로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저희는 예상되는 증거물에 대한 이의서를 제출할 것입니다
예비적인 신청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정식 재판에서 듣겠습니다 다른 사항은요
지금으로선 그게 전부입니다
버클리 씨 주에서는 서면신청 자료가 없습니까
없습니다
버클리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재판이 열릴 때까지 다른 신청 사안은 없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저는 재판이 있기 일주일 전에 본 법정에 배
석해서 재판 전 준비작업을 마무리짓겠습니다 신청할 게 더 있으면
빠른 시간 내에 제출해 주기 바랍니다 그래야 22일 전까지 토든 일
들을 완벽하게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누스 판사는 서류천을 뒤적거리며 제이크가 제출한 재판지 변경
신청서를 살펴보았다 그 사이에 제이크는 칼 리와 귓속말을 주고받
았다 사실 예심에 칼 리가 참석할 필요는 없었지만 제이크는 칼 리
의 참석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웬과 세 아이들은 아버지 뒤편에 자
리를 잡았다 토냐는 보이지 않았다
브리건스 씨 신청 서류에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증인은 몇
명 신청했습니까
셋입니다 재판장님
버클리 씨 쪽에서는 몇 명입니까
스물한 명입니다
버클리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스물한 명이라고요
누스 판사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버클리는 뭐가 잘못됐나 싶어 무스그로브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하 하지만 모두 다 필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재판장님 그리
고 사실 전부 다 참석하라고 얘기한 것도 아닙니다
피중에 다섯 명만 고르시오 버클리 검사 하루종일 이곳에 있고
싶지는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재판장님
브리건스 씨 재판지 변경 신청에 대한 제안 발언을 해주십시오
제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법정을 가로질러 버클리의 뒤
쪽을 지나 배심원석 앞에 있는 나무로 된 작은 연단에 이르렀다
재판장님 헤일리 씨는 본 법정에 재판지 변경을 신청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인지도가 재판의 공정한 진행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포드 군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칼 리 헤일
리 씨에 대한 유무죄 여부를 이미 마음속에 결정해 놓고 있는 상태
입니다 헤일리 씨가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피해자는 이 지방에
서 태어났구 이 지방에는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
은 유명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죽음은 유명한 사건이 되어 버렸구 포
드 군에서 칼 리 헤일리 씨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든 사
람들이 칼 리 헤일리 씨가 누군지 그의 딸이 누군지 어떤 사건이 일
어났었는지 그리고 칼 리 헤일리 씨에게 어떤 혐의가 주어졌는지에
대한 세세한 내막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칼 리 헤일리
씨에 대한 예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열두 명의 배심원을 선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본 사건은 구체적인 내용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재판지에서 열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게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누스 판사가 끼여들었다
특별한 장소를 지목하지는 않겠지만 가능하면 먼 곳이면 좋겠습
니다 걸프 코스트 정도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곳은 포드 군에서 6백 킬로 이상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은 포드 군 주민들보다 사건에 대해 적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변호인은 남부 미시시피 사람들 가운데서 헤일리 사건에 대해서
못 들어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그들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훨씬 멀
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고 있겠죠 안 그렇습니까
브리건스 씨
물론 그럴 겁니다 재판장님
변호인은 이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열두 명의 배심원을 구할
수 있는 다른 재판지가 있다고 보십니까
제이크는 서류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법정에 선 사람들을
그리는 삽화가의 손놀림을 따라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구 비릿
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검사의 얼굴이 곁눈으로 잡혔다
어려을 것 같습니다
제이크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첫번째 증인을 신청하세Q
해리 렉스 보너가 선서를 하고 증인석에 앉았다 나무의자가 해리
의 몸무게를 버티느라고 삐걱거리며 흔들렸다 해리 렉스는 마이크
에 대고 숨을 훅 불었다 숨소리가 법정 가득 메아리치고 나서 해리
렉스는 제이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어 보였다
이름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이크가 물었다
해리 렉스 보너입니다
주소를 말씀해 주십시요
미시시피 주 클랜턴 시더브러시 8493번지입니다
클랜턴에 얼마나 오래 살았습니까
평생 살았습니다 46년 동안Q
직업은 뭡니까
변호삽니다 변호사로 일한 지 22년 됩니다
칼 리 헤일리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한 번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윌 아십니까
빌리 레이 좁과 피트 윌러드에 대한 살해혐의와 드웨인 루니 보
안관 대리에 대한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에 대해서 아십니까
개인적으로는 잘 모릅니다 빌리 레이 콥의 얼굴 정도는 압니다
총격 사건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습니까
제 기억에 의하면 그 사건은 월요일에 일어났습니다 저는 1층에
있는 서기실에서 토지등기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총
소리가 들렸죠 그래서 나와 봤더니 밖은 벌써 아수라장이 되어 있더
군오 저는 보안관 대리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법원
뒷문 근처에서 두 사람이 총에 맞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법원 근처에
서 잠시 서성거리고 있다가 범인이 강간 피해자의 아버지라는 소문
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맨 처음 어떤 반웅을 보였습니까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림요 하지만 강간 얘기를 들었을 때
도 마찬가지로 놀랐습니다
칼 리 헤일리가 체포되었다는 것은 언제 알았습니까
밤늦게 알았습니다 텔레비전이 온통 그 얘기를 떠들고 있었으니
까Q
텔레비전에서 본 게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얘기해 주십시요
글쎄a저는 거의 대부분을 보았습니다 멤피스와 투펄로 방송
국에서 보내는 뉴스하구 케이블 텔레비전을 통해 뉴욕과 시카구 애
틀랜타에서 나오는 뉴스도 보았습니다 거의 모든 채널이 총격사건
과 체포 사실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법원과 교도소 모습도 볼 수
있었고요 정말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클랜턴에서 일어난 일 중에
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간 피해자의 아버지가 살인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였을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
거든9 저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애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
습니다
강간사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때 버클리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강간사건은 본 심문과 무관합니다
누스 판사는 다시 코에 걸린 안경을 벗고는 버클리 검사를 노려보
았다 버클리 검사는 슬슬 고개를 숙이더니 탁자 위로 시선을 떨구었
다가 한쪽 다리에 실었던 무게를 다른 쪽으로 옮기면서 자리에 앉았
다 누스 판사는 몸을 앞으로 숙여 버클리 검사에게 얘기했다
버클리 씨 나한테 소리지르지 마시P 만약 한번만 더 그러면 당
신을 법정 모독죄로 고발할 거요 사실 강간사건이 본 법정과 무관하
다는 당신 말은 맞을 수도 있소 하지만 지금은 재판을 하고 있는 게
아니잖소 이건 단지 예심일 뿐이오 저기에 배심원들이라도 앉아
있소 기각하니 자리에 조용히 앉아 계시요 물론 오늘 모인 이런 방
청객들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렵겠지만 반드시 말해야 할 필
요가 있을 때에만 일어서도록 하시오 꼭 말해야 할 것이 있을 때는
정중하고 조용하게 일어나서 말하시요 아시겠소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제이크는 누스 판사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버클리 검사를 향해 씨
익 웃어 보였다
자 보너 씨 강간사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제이크의 목소리는 보다 당당해졌다
사람들에게 들은 만큼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이크가 물었다 그때 버클리 검사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
니 일본의 스모 선수처럼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가늘고 부드
러운 목소리로 누스 재판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재판장님 만약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 시점에서 이의
를 신청하고 싶습니다 증인은 오직 자기의 직접 체험에 관한사실들
만 증언하도록 되어 있는데 제3자를 통해 들은 얘기를 증언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버클리 씨 하지만 이의 신청은 기각합니다 계속하
세요 브리건스 씨
누스 판사의 목소리도 버클리 검사만큼이나 부드러웠다
알겠습니다 재판장님
무슨 말을 들으셨습니까
제이크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가 헤일리의 딸을 납치해서 숲 속으
로 끌고 갔으며 두 사람은 만취한 상태에서 소녀를 나무에 묶어놓고
번갈아 강간을 한 다음 아이를 목졸라 죽이려고 했다는 얘깁니다 그
들은 소녀에게 오줌을 갈기기까지 했다더군오
뭐라고 하셨죠
누스 판사가 놀라서 물었다
소녀의 몸에다 오줌을 갈겼다고 했습니다 판사님
법정 안은 해리 렉스가 폭로한 새로운 사실 때문에 술렁대기 시작
했다 제이크도 들은 적이 없었고 버즐리 역시 들은 바가 없는 아무
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오직 해리 렉스만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
다 누스 판사는 고개를 절리절레 흔들면서 의사봉을 가볍게 두드렸
다 제이크는 소송서류에다 끄적끄적 메모를 하면서 친구가 폭로한
이 은밀한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간에 대한 얘기를 어디서 들었습니까
제이크가 해리에게 물었다
클랜턴 어디서든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아는 얘기니까요
다음날 아침에 커피숍에서 한 보안관 대리가 자세한 내용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클랜턴 내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는 얘깁니까
그렇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강간사건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총격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을 말씀해 주십시오
아까 말씀드린 대루 월요일 오후였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보석
문제로 본 법정에 출두했던 강간범들o수갑에 채워진 채 법정을 나
갔습니다 루니 보안관 대리가 그들을 법원 뒤층계로 데려갔습니다
그들이 층계를 다 내려왔을 때 헤일리 씨가 창고 쪽에서 M16을 들
고 나타났고 그 총에 강간범 둘이 맞아 죽었고 드웨인 루니도 맞았
습니다 결국 루니 보안관 대리는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요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정확하게 어딥니까
바로 이 아랩니다 법정 뒷문 입구죠 헤일리 씨는 잡동사니를 넣
어두는 창고에서 뛰쳐나와 총을 쏘았습니다
사실이라고 믿습니까
저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들었습니까
여기저기서요 이곳 포드 군에서도 들었고 신문에서도 봤습니다
사람들이 다 아는 얘깁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토론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술집 교회 은행 세탁소 커피숍 레스토랑 어느 곳
에서든 사람들은 앉았다 하면 이 얘기를 했습니다
헤일리 씨가 빌리 레이 옵과 괴트 웜러드를 죽이지 않았다고 생
각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한 명도 만날 수 없을 겁니다
그럼 모든 사람들이 칼 리 헤일리 씨의 유죄 여부에 대해서 이미
판결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중립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 사
람은 없습니다 이건 중요한 사건이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인은 칼 리 헤일리 씨가 포드 군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3만 명이나 되는 주민 가운
데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은 사람은 단 세 명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헤일리 씨는 이미 재판을 받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편견이
없는 배심원을 찾기는 불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보너 씨 이상입니다 재판장님
드디어 제이크가 말을 마쳤다
버클리는 귀밑머리를 손가락으로 넘겨 을백 머리를 가지런히 매
만졌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증인석으로 다가왔다
보너 씨 당신도 이미 헤일리 씨에 대해 판결을 내리셨습니까
증인에게 묻는 버클리 검사의 목소리는 웅장하고도 컸다
젠장 그렇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증인 공손하게 대답하시오
누스 판사가 끼여들었다
증인이 판결을 내린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검사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질문을 했다
버클리 검사님 저는 이렇게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검사님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또박또박 천천히 말을 하지요 만약 내가 보안관
이라면 나는 헤일리 씨를 체포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내가 대배심
이라면 헤일리 씨를 기소하지도 않을 거구요 내가 판사라면 나는 그
를 재판하지도 않을 거구 내가 지방검사라면 기소하지도 않을 것입
니다 내가 배심원이라면 나는 그가 자유롭게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
는 데 한 표를 행사할 것이구 그를 가족들 품으로 조용히 돌려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약 내 딸이 강간을 당한다면 나도
그와 같이 행동할 수 있는 배짱이 있기를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증인의 얘기는 분한 일이 생기면 누구든 총을 들고
나와서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는 말이지요
아이들은 강간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아버지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린 소녀의 경우는 더욱 특별하지
내 어린 딸애가 나무에 묶여서 깡패 같은 마약사범한테 강간을 당했
다면 나는 아마 미쳐 버릴 겁니다 선량한 아버지에게는 그들의 아이
들을 해친 성도착자들을 단죄할 헌법상의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딸이 어떤 놈들한테 강간을 당했는데 당신은 그
강간범들을 죽이핀 싶지 않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거짓말쟁이 아니
면 겁쟁이일 것입니다
보너 씨 진정하세요
누스가 해리를 말렸다 버클리는 해리 렉스의 말에 짜증이 났으나
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증인은 이 사건에 관심이 아주 많은가 보군요 안 그렇습니까
잘 아시네9
결국 칼 리 헤일리 씨를 석방시키고 싶다는 얘기죠
나에게 돈이 좀 있다면 돈으로라도 돕고 싶습니다
증인은 재판지를 옮기면 석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나요
저는 피고인이 재판 전에 예단을 내리지 않은 배십원들 앞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증인이 배심원이라면 석방시키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겁니다
당신처럼 석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까
그렇습니다
유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포드 군에 있겠죠
물론입니다 많죠 피고인이 흑인이니까요
그동안 조사를 해본 결과 유죄와 무죄 중에 어느 쪽이 더 많았다
고 단언할 수 있던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버클리 검사는 소송서류를 살펴보다가 한 가지 질문거리를 찾아
냈다
증인은 제이크 변호사의 친한 친구시군요
해리 렉스는 웃으면서 누스 판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는 변호사구 이 동네에는 친구가 몇 명 안 됩니다 제이도
그중에 한 명입니다 맞습니다
제이크 변호사가 증언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까
아닙니다 몇 분 전에 법원을 어슬렁거리다가 엉겁결에 이 자리
에 앉게 되었습니다 오늘 예심이 열린다는 얘기도 못 들었습니다
버클리 검사는 서류를 책상 위에 던지고 자리에 앉았다 해리 렉
스는 증인석에서 물러났다
다음 증인 신청하시요
누스 판사가 말했다
올리 에이지 목사입니다
에이지 목사는 증인실에서 나와 자리에 앉았다 전날 제이크는 질
문 목록을 가지고 가서 목사를 만났는데 목사는 증언을 하고 싶어했
다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
목사는 증인으로서 안성맞춤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이크 없이도
법정을 가득 메을 만큼 크고 깊었다 강간과 총격사건에 대해서 목사
는 다 알고 있다고 얘기했다 헤일리 가족은 자기 교회의 신도이며
안 지도 오래되어 가족 같은 사이이기 때문에 강간사건이 있고 나서
는 자기도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에이지 목사는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구 그들 대부분은 마음속으로 예단을
내리고 있다고 했다 목사회 소속 목사들 사이에서도 헤일리 사건이
중요한 화제였다고 말했다 클랜턴에 예단을 내리지 않은 배심원은
없을 것 같고 그의 생각으로는 공정한 재판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잊
지 않았다
버클리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목사님 칼 리 헤일리가 유죄라고 생각하는 흑인을 만나보신 적
이 있습니까
아니e없습니다
에이지 목사는 증인석에서 물러나와 목사회 소속 목사들 사이에
앉았다
다음 증인 신청하세요
누스 판사가 말했다
제이크는 버클리 검사에게 미소를 띠면서 다음 증인의 이름을 불
렀다
오지 월스 보안관입니다
버클리 검사와 무스그로브 검사보가 동시에 머리를 맞대고 귓속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오지는 법과 질서의 편 다시 말하면 검사의
편이라고 믿고 있던 터였다 피고인을 도와주는 것은 그의 직무가 아
니었다 버클리 검사는 도대체 검등이들은 믿을 수 없는 족속이라고
되뇌고 있었다 흑인들은 죄를 지으면 서로 도와주려고 아우성이었
다 버클리는 그렇게 믿었다
제이크는 오지 보안관에게 강간사건과 두 강간범의 배경에 관한
얘기를 꺼내도록 유도했다 반복적이고도 지루한 얘기였기 때문에
버클리 검사는 이의를 제기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누스 판사에게 욕
을 실컷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꼼짝없이 듣는 수밖에 없었다 제이크
는 버클리가 더이상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리란 것을 알고는 피투
성이 강간사건에 대해서 끈질기게 물고늘어졌다 더이상 그 얘기를
듣고 싶지 않은지 누스가 제이크에게 제동을 걸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주십시오 브리건스 씨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월스 보안관 당신이 칼 리 헤일리 씨를
체포했습니까
그가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를 죽였다고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포드 군 내에서 칼 리 헤일리 씨가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칼 리 헤일리 씨가 죽였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입니까
예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제가 만나
본 사람들은 전부요
보안관은 이 지역을 순찰하십니까
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감시하는 게 제 임무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겠군요
제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요
칼 리 헤일리 씨에 대해 들어보지 못찬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

오지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눈과 귀가 멀었거나 말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칼 리 헤일리 씨를
모를지도 모르죠
유죄나 무죄 중에 어느 한쪽이든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만나보셨습니까
포드 군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강간과 총격사건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열두 명의 배심원을 찾아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이상입니다
제이크가 말했다
오지 보안관이 마지막 증인입니까
반대심문 있습니까 버클리 검사
버클리는 의자에 몸을 묻은 채 고개만 가로저었다
좋습니다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변호사와 검사는 제 방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변호사와 검사가 누스 판사와 페이트를 따라 재판석 옆문으로 빠
져나가자 방청객들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누스 판사는 판사실 문을
닫더니 법복을 벗어던졌다 페이트가 그에게 블랙커피를 가져다주었

나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함구령을 내릴 생각이오 나는 언론을
참을 수가 없소 내가 맡은 사건이 언론에 의해서 재판 받기를 바라
지 알는단 말이오 어떻게들 생각하시오
버클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아무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판사님 저도 그런 조치를 신청할 생각이었
습니다
제이크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줄 알았소 당신 역시 언론 때문에 고생이 진을 거요 버클
리 검사 당신은 어떻소
그 함구령이 누구한테 적용되는 겁니까
우선 버클리 씨와 브리건스 씨요 두 사람은 지금부터 이 사건과
재판에 대한 얘기를 언론에 발설해서는 안 될 거요 이 명령은 당신
들뿐만 아니라 법원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 법정 대리인과 서기 법
원 직원들과 보안관에게도 적용될 거요
그런데 왜죠
버클리 검사가 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당신들 둘이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을 재판하려고
하는 태도를 좋아하지 않소 난 귀머거리가 아니요 듣는 게 없어서
가만있었던 게 아니란 말9 당신들이 서로 언론의 주목을 받으려고
싸우는 것을 보면 재판이 어떻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해져요 재판이
아니라 한 판의 서커스가 될 거요
누스 판사는 창가로 걸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누스의 중얼거
림이 잠시 멈춘 사이 버클리와 제이크는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
다 누스 판사가 두 사람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 재판이 끝날 때까지 함구령을 내리겠소 이 명령을 위
반하면 법정 모독죄로 간주하겠소 어떤 내용도 어떤 언론과도 얘기
를 나누지 마시P 질문 있소
없습니다
제이크가 재빨리 대답했다
버클리 검사는 무스그로브 검사보를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험 예심 얘기를 하겠소 버클리 검사 증인이 스무 명이 넘는
다고 그랬는데 실제로 몇 명이 필요한 거요
다섯이나 여섯입니다
훨씬 낫군 누굽니까
플로이드 로이드입니다
누구죠
포드 군의 1관할구 보안관입니다
증언 내용은요
그는 포드 군에서 50년이나 살았고 공직 생활만 10년을 해왔습
니다 그 사람은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이 사건에 대해서 전혀 들은 바가 없나 보군
누스 판사가 빈정거렸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증인은요
거이던 베이커 포드 군의 3관할구의 치안판사입니다
내용은 같소
기본적으로는 같습니다
다음은
에드거 리 볼드윈입니다 포드 군의 전임 감독관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기쏘되었던 사람 아닙니까
이번에는 제이크가 끼여들었다
버클리의 얼굴이 전에 없이 붉게 닥아올랐다 그는 입을 쩍 벌리
고는 제이크를 쏘아보았다
유죄판결을 받은 건 아닙니다
무스그로브가 지원사격을 해주었다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소된 적이 있다고민
했을 뿐입니다 FBI가 기소했었죠
됐소 그만하시요 볼드윈 씨가 증언할 내용은 무엇이오
누스 판사가 중재에 나섰다
그는 평생을 포드 군에 살았습니다 그는 포드 군 사람들을 잘 압
니다 그는 포드 군에서도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스그로브 검사보가 대신 대답했다 버클리는 제이크를 노려보기
만 할 뿐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누가 있소
타일러 군의 해리 브라이언트 보안관입니다
브라이언트 보안관 그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할 건가요
그러자 무스그로브 혼자서 주정부를 대변하고 나섰다
판사님 우리가 재판지 변경을 반대하는 논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포드 군에서도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판사님 판단에 공정한 재판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하더라도 미시시
피 주에서는 어디를 가든지 헤일리 사건에 대한 인지도가 높기 때문
에 배심원들이 처한 상황은 같다는 것입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어디
를 가나 배심원이 될 사람들이 이미 예단을 해놓은 상태이므루 재판
지 변경은 아무런 소득이 없습니다 이 두 번째 논리를 위해서 브라
이언트 보안관이 증인으로 필요합니다
그거 새로운 발상이군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소만
저도 마찬가집니다
제이크가 누스 판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 다음 증인은 누구요
로버트 켈리 윌리엄스루 9관할구의 지방검사입니다
대체 9관할구가 어디 붙어 있소
저기 남서쪽 끝입니다
그가 여기까지 올라와서 숲 속에 사는 백인들도 모두 판결을 내
린 상태라는 증언을 한답니까
또 있소
14관할구 검사 그래디 리스턴을 신청할 생각입니다
내용은 같은가요
그렇습니다
이제 다 된 겁니까
몇 명 더 있지만 증언 내용이 상당 부분 일치할 것 같습니다
좋아요 그럼 증인을 지금 얘기한 여섯 명으로 한정하겠소
좋습니다
얘기는 대충 들은 셈이니까 증인 한 명당 오분을 드리겠소 두
주 안에 재판지 변경에 대한 예심 결과를 알려드리겠소 질문 있습니

기자들에게 노 코멘트란 말만 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워싱턴 가
를 건너 따라온 기자들에게 제이크는 할 말 없다는 말만 재빨리 던
지고는 사무실로 몸을 피했다 그런데 뉴스위크지의 사진기자 하
나가 과감하게 제이크의 사무실까지 따라들어와 사진 한 장만 찍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는 두꺼운 가죽 표지를 입힌 책들이 꽃
혀 있는 책꽃이를 배경으로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이크를 찍고
싶어했다 제이프는 넥타이를 바로 매구 기자를 회의실로 데리고 들
어갔다 그 와중에도 누스 판사의 함구령은 철저히 지켜졌다 기자는
고맙다고 말한 뒤 사무실을 나갔다
잠간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에셀이 층계에 올라서는 그녀의 상사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요
앉아서 얘기를 나뒀으면 좋겠는데요
제이크는 에셀이 드디어 그만두려나 보다고 생각하면서 창문 앞
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돈 문제예요
당신이 이 동네에서 가장 월급이 많은 비서인 걸로 알고 있는데
요 몇 달 전에 올려주지 않았습니까
제 윌급 얘기가 아니에9 은행에 남아 있는 돈으로는 이번 달 비
용을 다 지불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6월이 거의 다 갔는데 천칠백
달러밖에 남아 있지 않아Q
제이크는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관자놀이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 청구서들 좀 보세요 총액이 4천 달러나 돼요 어떻게 지불을
하죠
에셀은 한 다발의 청구서를 흔들면서 말했다
은행에는 얼마 남아 있죠
금요일 현재 천구백 달러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더 들어온 돈은
없구
전혀요
예 한푼도 들어오지 않았어Q
리포드 사건 해결한 건 어떻게 됐습니까 수임료가 3천 달런데
에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브리건스 씨 그 건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리포드 씨는 아
직 양도증서에 서명을 하지 않은 상태구93주 전에 리포드 씨 댁에
가서 받아오시기로 되어 있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아니 기억 안 나요 벅 브릿 씨의 수임료는 어떻게 됐습니까 천
달러짜린데
수표에 부도가 났습니다 은행에서 지불을 안 하고 돌려보냈기에
제가 2주 전에 책상 위에 올려놓았는데요
에셀은 잠간 말을 멈추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당신은 고객들을 관리하지 않고 있어요 만나지도 않고 회신도
안 해주고 게다가
나한테 훈계하지 말아a에셀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안 한 셈입니다
됐어요 그만해요
헤일리 사건을 맡은 다음부터예요 거기에만 매달려서는 다른 일
을 돌보지 않았어요 잘못하다간 우린 파산할지도 몰라요
우리라고요 에셀 당신이 제대로 못 받은 윌급이 있나요 도대
체 지불하지 못한 청구서가 몇 개나 됩니까
서너 개Q
언젠 안 그랬어요 그 정도면 정상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다음 달은 또 어떻게 하지요 재판은 아직 4주
나 더 남았잖아요
글쎄 알았어9 그만 얘기하세9 못 견디겠으면 나가세9 조용
히 있지 않는다면 당신을 해고할 겁니다
저를 해고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런 건가요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에셀은 비교적 독하고 드센 여자였다 루시엔과 함께 14년을 보내
는 동안 얼굴도 많이 두꺼워지구 정신적으로도 단단해져 있었다 그
러나 그래도 여자는 여자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입술을 파르르 떨면
서 눈물을 글썽이다가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죄송해요 걱정이 돼서 그랬어요
에셀이 웅얼거리며 말했다
뭐가 걱정된단 말입니까
버드하고 저Q
버드한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그는 아픈 사람이에요
그건 나도 압니다
혈압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9 전화가 오기 시작한 뒤로는 더 심
해요 5년 동안 세 번이나 쓰러졌는데 이번에 또 쓰러지면전
무서워요 우리 둘 다 겁에 질려 있다구요
전화가 몇 번이나 왔습니까
여러 번 왔어요 그 사람들은 우리 집을 불태우든가 폭파시키낀
다고 했어9 우리가 어디 사는지 다 알고 있다고 협박했어9 만약
헤일리 씨가 석방되면 우리 집에 불을 지르거나 다이너마이트를 장
치하겠대요 우리가 잠든 사이에 감쪽같이 죽이겠다고 했어요 나는
이 사건이 목숨을 걸 만큼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만두어야 할 것 같아Q
그럼 뭘 먹고살지요 아시다시피 버드는 일을 안 한지 십 년도
넘었구 제가 어디 가서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어요
이것 보세요 에셀 협박을 받고 있기는 나도 마찬가지예요 하지
만 나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칼라한테도 우리 가족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신들도 무사
할 거예9 그러니까 버드하고 당신은 마음을 편히 가져도 된다는 얘
깁니다 위협은 그리 심각하지 않아9 그런 놈들은 항상 널려 있는
법이니까
제가 걱정하는 게 그거예요 그 사람들은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거예요 아주 미쳐 있다구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오지한테 전화해서 당
신 집을 감시해 달라고 할게
그래 주시겠어요
그럼요 우리 집도 보호를 받고 있는걸요 내 말 믿으세요 에셀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냥 젊은 애들이 객기로 장난치는 거예요
에셀은 눈물을 찍어내면서 말했다
울어서 미안합니다 요즘 신경이 예민해져서요
당신은 40년 내내 그랬잖아요 제이크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럼 된 거죠
그런데 이건 어떻게 하죠
에셀이 다시 청구서 뭉치를 가리켰다
돈을 구해을 테니 놔둬요
밤 열시에 윌리 헤이스팅스는 교대를 끝내고 보안관 사무실 옆에
있는 퇴근부에 기록을 한 다음 차를 몰고 곧바로 헤일리네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그가 보초를 서는 날이었다 그웬의 친척들은 매일
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토냐를 지키기로 약속했다 형제나 사
촌 친구들이 교대로 불침번을 서기로 했는데 수요일은 헤이스팅스
차례였다
불을 켜놓고 자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토냐는 불을 켜놓아
야만 잠이 들었다 토냐는 자신을 짓밟았던 두 사내가 어둠 속에 숨
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마룻바닥에서 나와 침대로 기어오르기도
하고 옷장 속에 숨어 빠끔히 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잠을 자려고 누
우면 창문 밖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구 충혈된 눈으로 토냐의
방을 엿보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다락방에서는 그들이 쿵쿵거리며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토냐는 그들이 다락방에 숨어
있다가 모두가 잠들면 자기를 숲 속으로 끌고가려 한다고 믿었다 그
래서 엄마와 오빠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권총과 손전등을 들고 다락
으로 올라가 그곳을 샅샅이 뒤져보아야 했다
토냐가 잠들 때까지는 집 안에 어떤 방도 불을 꺼선 안 되었다 한
번은 토냐가 엄마 옆에 누워서 아직 잠들지 않았을 때 거실의 전등
이 꺼진 적이 있는데 그때 토냐는 삼촌이 클랜턴에 있는 24시간 편
의점에서 새 전구를 사을 때까지 쉬지 않고 비명을 질러댔다
토냐는 엄마와 함께 잠이 들었다 그웬은 토냐의 손을 꼭 붙들고
악령들이 어둠 속으로 흩어질 때까지 토냐의 방을 지켰다 그웬도 처
음에는 불을 켜고 자는 것이 고역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을 켜
놓은 밤에도 조금씩 눈을 붙이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토냐는 자다가
도 계속 경련을 일으켰구 악몽에 지쳐 몇 번씩이나 깨어났다
헤이스팅스는 조카놈들에게 잘 자라고 말한 뒤 토냐에게 입을 맞
추었다 그는 토냐에게 슬며시 총을 보여주면서 오늘밤은 내가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가 방을 전부 점검하고 옷장 속
까지 들춰보고 나자 토냐는 안심이 되는지 엄마 옆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홀러내렸다
자정쯤 되자 헤이스팅스는 신발을 벗고 소파 위에 몸을 뉘었다
권총 지갑은 풀어서 마룻바닥에 놓아두고 슬슬 잠이 들려고 하는 찰
나에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공포에 질리구 고통
에 가위눌린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헤이스팅스는 권총을 집어들고
토냐의 침대로 달려갔다 토냐는 얼굴을 벽에다 파묻고 부들부들 떨
면서 앉아 있었다 토냐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을 창문에서 보
았던 것이다 그웬은 토냐를 힘껏 감싸안았구 세 오빠들도 침대맡으
로 달려와 안타까운 눈으로 동생을 쳐다보았다 칼 리 주니어가 창문
으로 달려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5주 동안 이런 일을 수
도 없이 겪은 터라 토냐를 안심시킬 뽀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
고 있었다 그웬은 토냐를 토닥거려 침대에 가지런히 뉘었다
됐다 얘야 엄마도 여기 있고 헤이스팅스 삼촌도 와 있으니까 걱
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무도 너를 어쩌지 못해
토냐는 헤이스팅스 삼촌이 창문 아래서 총을 들고 앉아 있기를 바
랐구 세 오빠들보고는 침대 밑바닥에서 자달라고 했다 삼촌과 오빠
들은 토냐의 요구대로 각기 자리를 잡았다 가엾은 토냐는 몇 분 동
안 끙끙거리며 신음하다가 간신히 잦아들었다
헤이스팅스는 모든 식구들이 잠들 때까지 창문 옆 마룻바닥에 앉
아 있다가 바닥에 구겨져 자고 있는 사내놈들을 하나씩 들어서 침대
에 편안하게 뉘어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창문가에 앉아 기나긴 파수
를 섰다
제이크와 앳캐비지는 클로드네서 금요일 점심을 먹기 위해 만났
다 그들은 갈비와 양배추 샐러드를 시켰다 여느 때처럼 손님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4주 만에 처음으로 낯선 사람들의 얼굴이 보
이지 않았다 단골손님들은 예전처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식사
를 하고 있었다 클로드도 예전처럼 자신의 충성스런 단골손님들을
향해 떠들고 욕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는 욕을 하면서도 듣는 사람
의 기분을 잡치지 않게 할수 있는 몇 안 되는사람중 하나였다
스탠 앳캐비지는 재판지 변경에 관한 예심에 참석했었다 그는 진
작부터 증언을 해주고 싶어했지만 은행측에서 그가 증언대에 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제이크도 친구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바라
지 않아 더이상 부탁하지 않았다 은행원들이 법정에 대해 이상한 두
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보면 앳캐비지의 행동은 고맙기 그
지없는 것이었다 앳캐비지는 소환장 없이 자의로 법정에 나서려고
했던 최초의 은행원으로 포드 군 역사에 남을 것이다제이크는 친구
가 자랑스러웠다
클로드가 달려오더니 식사 제한 시간이 십분밖에 안 남았다며 입
닥치고 밥이나 먹으라고 내뱉었다 제이크는 갈비를 다 뜯고 나서 입
가를 닦았다
스탠 담보 없이 90일 동안 5천 달러 빌려줄 수 있어
갑자기 대출 얘기는 왜 하는 거지
은행 얘기를 하고 있었잖아
이런 우린 지금 버클리를 비난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난 이런
시간이 즐겁거든
남 욕하는 거 너무 즐기지 마 스탠 그런 습관은 한번 들기 시작
하면 고치기가 어려워 자네 영혼만 갉아먹는다구
정말 대단히 미안하네 나를 용서해줄 수 있겠나
돈을 못 빌려주겠다는 얘기야긴
아 돈 근데 뭐에 필요한 거지
어디다 쓸 거냐고 묻는 거야긴
그럼 자네 말은 어디다 쓸 거냐고 물으면 안 된다는 거야삔
이봐 스탠 자네가 걱정해야 될 건 내가 90일 안에 돈을 갚느냐
못 갚느냐 하는 문제야
좋아 그럼 90일 안에 갚을 수는 있어
좋은 질문이야 나는 갚을 수 있어
앳캐비지는 제이크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칼 리가 자네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나 보군
제이도 앳캐비지를 따라 웃었다
그래 돈 때문에 정신을 집중하기가 어려워 재판이 이제 3주 남
았어 난 재판에만 몰두하고 싶네
제이크는 앳캐비지의 염려를 순순히 인정했다
이 사건으로 얼마나 벌 수 있지
g백 달러에서 천 달러 정도
g백 달러
그래 칼 리가 가진 게 그것밖에 없어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리지
못했잖아
너무 싸군
그래 너무 싸지 자네가 칼 리의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기만
했어도 자네한테 돈 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 텐데
그래도 나로서는 자네한테 빌려주는 게 낫지
좋아 언제쯤 줄 수 있겠나
아주 절망적인 모양이로군
자네들 돈 빌려주려면 오래 걸리잖아 대부위원회 거치구 부지
점장 사인받구 부지점장이 최종적으로 대부를 결정하기까지 한두
달이나 걸리잖아 그것도 내부 규정상 자격이 돼야 하고 은행 사정
이 좋아야만 되는 거 아냐껀
앳캐비지는 힐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세시에 주면 되겠어
좋을 것 같춘
담보 없이
제이크는 입을 닦으면서 탁자 위로 몸을 숙였다 그러고는 속삭이
듯이 말했다
내 집은 담보에 걸렸고 차도 자네가 잡았으니까 이제 내 딸에 대
한 첫번째 저당권을 주지 하지만 만약 돈을 갚았는데도 내 딸을 안
돌려주면 자넨 죽을 줄 알아 이 정도 담보면 됐어
그래 담보 얘기 꺼내서 미안해
오분 남았어
클로드가 다가오더니 두 사람의 잔에 녹차를 채우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횐?
제이크가 대답했다
어이 스타양반 잘 들어 여긴 법정이 아니야 자네 얼굴이 신문
에 나왔다고 해서 누가 우러러볼 줄 아나 난 분명히 오분이라고 말
했어
클로드는 빈정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았어 하지만 어쨌든 오늘 갈비는 좀 질겼다구
그래도 다 먹었잖아
비싸니까 남길 수는 없잖아
불평하면 더 올려받을 거야
가a가
앳캐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돈을 탁자 위에 던져놓았다
일요일 오후에 헤일리 일가는 농구골대에서 좀 떨어진 나무 아래
서 평온하게 점심을 먹었다 초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숨어 있던 농후
한 습기가 땅을 적셨다가 나무 그늘 아래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그휀
은 열심히 파리를 쫓았구 칼 리와 아이들은 막 튀겨낸 치킨을 땀을
흘려가며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토냐와 아이들은 오지 보안관이 새
로 달아준 그네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위트필드에서는 윌 했어요
그웬이 물었다
별거 안 했어 이젓저것 물어보고 검사도 하고 뻔한 거지 뭐
대우는 어펐어요
수갑 채우고는 정신병동에 가둬놓더군
정말이에요 그 사람들이 당신을 정말로 정신병동에 가뒀단 말
예요
그웬은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 완전히 동물원 원숭이 취급하더라니까 날더러 유명인사라
고 하더군 간수들은 나를 보더니 잘했다고 칭찬하던데 한 명은 백
인이고 한 명은 흑인이었는데 왜 나를 가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자기들은 내가 석방됐으면 좋겠대 듣기엔 왜 괜찮더군
의사는 뭐라고 그래요
재판 때까지는 아무 말도 안 하겠지 그러다가 법정에서 저 사람
은 멀정합니다 그럴 거야
그렇게 말할지 어떻게 알아요
제이크가 말해 줬어 제이크 말은 틀린 적이 없어
제이크는 의사를 찾았어요
웅 어떤 술주정뱅인데 어쨌든 정신과 의사라고 했어 오지 사무
실에서 몇 번 얘기를 했지
뭐래요
별말 없었어 제이크 말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말할 거래
진짜 좋은 의산가 보네요
위트필드에 있는 의사들하고 똑같지 뭐
어디 의산데요
잭슨일 거야 나도 잘은 몰라 내가 마치 자기를 죽일 것처럼 굴
더라구 하여튼 두 번 얘기했는데 그때마다 취해 있었어 자기도 모
르고 나도 모르는 말만 지껄이다가 갔지 뭐 대단한 의사라도 되는
것처럼 수첩에 뭔가를 막 적더니 날 도을 수 있을 거라더군 하도 어
이가 없고 이상해서 제이크한테 물어봤더니 신경쓰지 말라고 하대
재판 때는 멀정할 거라나 하지만 제이크도 은근히 걱정이 되는 모
양이야
왜 그런 의사를 쓰죠
공짜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한테 빛을 졌다나봐 내 얼굴 한
번 보는 데 천 달러 내라던 의사들에 비하면 훨씬 싸잖아 진짜 의사
들은증언대에 서는 데 또 천 달러를내야하는데 말이야 내가그럴
돈이 어딨어
돈 얘기가 나오자 그웬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우리도 돈이 좀 필요해요
그웬은 칼 리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얼마나
음식값하고 세금 합하면 몇백 달러는 있어야 될 거예Q
지금 얼마 있어
50달러도 안 돼
내가 한번 알아보지
그웬은 칼 리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감옥에 있으면서 어떻게 돈을 구해요
칼 리는 그웬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웬은 그
런 말을 해선 안 되는 거였다 그가 감옥에 있다고 해도 칼 리는 여
전히 가장이었던 것이다
미안해
그웬이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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