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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존 그리샴 타임 투 킬 (2)

by Casey,Riley 2023.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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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임 투 킬time to kill제2권
존 그리샴
일요일 오후 다섯시가 좀 몫 되어서 에이지 목사는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주차장으로 몰려드는 신형
캐딜락과 링컨 컨티넨탈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재판
때까지 남아 있는 3주 동안 헤칠리 사건의 정황을 판단하고 효과적
인 변호 전략을 기획하는 모임을 소집해 놓은 터였다 이번 모임은
특히 미국흑인지위향상폅회 소속 변호사가 도착하는 시기에 맞춰 준
테할 일이 있는가를 논의하는 자리띠기도 했다 특별헌금은 차곡차
곡 모아지고 있었다 포드 군 내에서만도 헌금이 7천 달러를 넘어섰
구 그중 6천 달러에 가까문 돈이 칼 리 헤일리의 변호 기금으로 에
이지 목사에게 전달된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헤일리 가족에게 전달
된 돈은 한푼도 없었다 에이지 목사는 협회 변호사를 만나 기금의
대부분을 변호 비용으로 써달라고 얘기할 작정이었다 헤일리의 가
족이야 돈을 빌려 생활할 수도 있지만 변호를 위해서는 쳔금이 반드
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모임은 돈을 더 모으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나뒀다 가난한 신
도들한테 돈을 긁어모으기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헤일리 사건에 대
한 관심이 절정에 달아오른 지금 한푼이라도 더 모으지 않으면 앞으
로는 전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다음날 스프링데일 교회에서 다
시 모이기로 합의했다 협회 소속 변호사는 아침에 도착할 예정이었
다 기자들은 참석하지 않을 터였다 바야흐로 일을 시작해야 할 때
가 되었다
노먼 레인꿸드는 형법의 귀재로 하버드 대학을 스물한 살에 졸업
한 재원이었다 서른 살의 유태인인 그는 선조 때부터 이어오던 월
스트리트 법률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마다하고 미국흑인지위향상협
회에 들어가 죽음을 눈앞에 둔 남부 흑인들을 구명하는 데 전념하였
다 그의 재능은 뛰어났지만 사건 자체가 워낙 무망한 것이었기 때
문에 그는 그 방면에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가스실을 눈앞에 둔
대부분의 남부 흑인들은 많은 남부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가스실로
보내졌다 하지만 레인펠드와 그의 변호팀은 그들의 능력 이상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피들은 패소했을 경우에도 여러 가지
지연 전술을 통해 사형수들의 목숨을 연장시켜 주었다 레인꿸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그의 의뢰인 네 명이 가스실이나 전기의자
혹은 약물주사로 죽어갔다 그에게 넷은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
경험을 통해 레인펠드는 다시 태어났다 그는 사람을 합법적으로 죽
이는 일을 막을 수 있다면 뭐든지 다하게 되었다 그래서 법을 위반
하고 법조인의 윤리를 침해하구 법정을 모독하고 판사들을 무시하
구 명령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그에게 불법적인 살인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잔인하고 교묘한 합법적인 살인 그의 적은 바로 그것이었
다 그는 살인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았다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
이다 문제는 사형이었다
그는 세 시간 이상을 자는 법이 없었다 서른한 명의 의뢰인이 죽
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잠을 자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판
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의뢰인도 열입곱이나 되었다 게다가 그는 자기
밖에 모르는 여덟 명의 변호사를 다독거리면서 일해야 하는 처지였
다 이 모든 이유로 그는 서른의 나이에 벌써 마흔다섯은 돼 보였다
그는 이제 늙었고 진이 빠졌구 또 성질마저 나빠졌다 평소의 성격
대로라면 미시시피 클랜턴 지역의 혹인 목사들 모임에 그가 참석한
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바
로 자경단원이라 불리는 혜일리 사건이었던 것이다 복수에 나선
아버지 강간범을 죽인 칼 리 헤일리는 지금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
한 피고인이었다 여기는 미시시피였다 오랜 세월 동안 백인들은 아
무 이유 없이 흑인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강간을 자행했다 그건 범죄
라기보다는 차라리 스포츠였다 대드는 흑인들은 영락없이 목매달아
죽였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 흑인 아버지가 딸을 강간한 백인 청
년들을 둘이나 죽여 버린 것이다 이제 그 아버지는 30년 전에 백인
이 저질렀다면 덤덤하게 넘어갔을 그 사건 때문에 가스실로 보내질
운명에 놓여 있었다 레인펠드는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다루고 싶었

월요일에 에이지 목사는 레인펠드를 모임 장소로 데리고 가서 소
개를 했다 에이지 목사는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장황하게 포드 군
에서의 활동 상황을 보고했다 레인펠드는 간단하게 자기 의견을 피
력했다 피고인이 자기와 자기 팀을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는
피고인을 대표할 수 없으므로 한시바삐 피고인을 만나야 한다는 얘
기였다 그는 오늘이라도 괜찮다고 했다 내일 멤피스에서 정오 비행
기를 타고 조지아 주로 날아가 살인사건 재판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
에 늦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피고인을 만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에이
지 목사는 가능하면 빨리 약속을 주선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자기랑
보안판이 친구라면서 레인펠드는 좋다떤서 빨리 만나게 해달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모감한 돈은 얼마나 됩니까띤
레인펠드가 둘었다
計5字 달러 정도칩니다
레이지 목사가 대답했다
그건 저도 압니다 이 찌져메써 멀마나 모으셨느냐구요
천 달러일니다
에이지 목사는 목에 料會 주고 賣價다
6천 달러요
레인꿱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이곳은 조직이 튼튼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
시끌벅쩍한 후원 모임은 여태 윌 한 겁니까6천 달러라니요 앞으
로 얼마나 더 모을 수 있습니까3주밖에 안 남았는데
목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태인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얼마나 더 필요하죠
애이지 목사가 레인펠드레게 물었타
그건 얼마나 좋은 법률 서비스를 례잉리 씨란테 제공하고 싶은가
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 팀에는 여털 몃뫼 별호사가 있습니다 1중
다섯 명은 지금 재판에 묶여 있는 상태입너다 형티 확정되어서 항소
중인 것만도 서른한 개이구 앞으로 5개월 동안 열 개 주에서 열일곱
건의 재판이 있을 예정입니다 찌금도 변호 의뢰가 일주일에 열 건씩
들어오는데 그중에서 두 건밖에는 손을 못 대고 있씁니다 변효사와
돈이 없기 때문이죠 헤일리 씨 경우에는 중앙과 지부 두 곳이 하쳐
서 1만5천 달러를 내놓았는데 이곳에서는 겨우 6字 달러밖에 못 모
았어요 총 2만1천 달전데 여러분은 그 한도 내에서 최고의 벌률 서
비스를 받으실 겁니다 변호사 두 명하고 정신과 의사 한 명을 댈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괜찮은 변호는 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만큼
은 안 될 겁니다
당신 생각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저는 최고의 팀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변호사 서너 명에 한 무더
기의 정신과 의사 여섯 명 정도의 연구원입니다 배심원 심리 연구
원들도 필요하고요 이 사건은 평범한 사건이 아니구 저는 이기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도 이기기를 원하니까 제가 이리로 온 것 아닙니

얼마면 되겠습니까
에이지 목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최소한 5만입니다 10만 정도면 더 좋구
하지만 레인꿸드 씨 여기는 미시시피입니다 주민들은 모두 가
난한 사람들이에요 앞으로 3만을 더 모으기는 불가능합니다
레인펠드는 뿔테안경을 고쳐쓰구 회색빛 수염을 긁어댔다
그럼 얼마나 더 모을 수 있습니까
천 정도는 더 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별로 대단한 액수는 아니군요
당신한테는 그렇겠죠 하지만 여기 흑인들한테는 그것도 큰 돈입
니다
레인펠드는 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수염을 매만졌다
멤피스 지부에서는 얼마나 기부했습니까
5천 달럽니다
멤피스에서 온 한 목사가 말했다
애틀랜타는요
S천입니다
주 지부에서는요
어느 주를 말하는 겁니까
미시시피요
없습니다
없어요

왜죠
저 사람한테 직접 물어보십시오
에이지 목사는 주 지부장인 헨리 힐먼 목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희도 돈을 모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힐먼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까지 얼마 모았습니까
에이지 목사가 날카롭게 물었다
글쎄 지금까지
단 10센트도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직까지 하나도 없습니

에이지의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컸다
그동안 얼마 모았는지 얼른 얘기해 봐요 힐먼
목사회 부회장인 루즈벨트 목사가 소리를 질렀다
힐먼은 깜짝 놀라서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까지 첫줄에 앉아 반
쯤은 졸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공격의 화살이 자신
에게 돌아온 것이다
주 지부도 기괌을 낼 것입니다
그러시겠힐먼 당신네 지부에서는 매번 이런저런 명목으로
우리 주머니를 뜯어가지 않았습니까 근데 언제 한번 우리한테 돈을
준 적 있습니까 당신네들이 파산할 지경이라고 울상을 지으면 우
리는 항상 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
면 어전습니까 와서 입만 놀려댔지 한번도 실질적인 도움을 준 적
이 없었죠
그렇지 않습니다
거짓말하지 마세a힐먼
레인펠드는 갑자기 당혹스러워졌다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
같았다
여러분 좀 진정하십시오 다른 얘기를 하도록 하지요
레인펠드는 중재자처럼 말했다
좋은 생각입니다
힐먼이 맞장구를 쳤다
언제 헤일리 씨를 만나볼 수 있습니까
레인펠드가 물었다
내일 아침에 만나실 수 있게 해드리죠
에이지 목사가 대답했다
어디서요
보안관 사무실에서요 미시시피 주의 유일한 혹인 럴안관이죠
예 저도 들은 바 있습니다
자기 사무실에서 만나게 해줄 검니다
좋습니다 피런데 현재 헤일리 씨의 변호사는 누굽니까
제이크 브리건스라구 이 지역 사람입니다
그 사람도 오라고 해주십시요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럴
겠습니다 그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에셀의 듣기 싫은 고음이 오후의 정적을 깨뜨렸다 제이핀는 깔짝
놀라서 인터폰을 받았다
브리건스 씨 오지 보안관입니다 2번 전화예요
알았어9
다른 말씀하실 건 없습니까
없어9 내일 봅시다
제이크는 2번 전화를 받았다
오지 무슨 일이야긴
잘 들어 제이크 협회 사람들이 왔네
그게 뭐 이상해
아냐 이번에는 달라 내일 아침에 칼 리를 만나겠패

레인펠드라는 사람이 보고 싶다는데
LL아 그 사람 나도 알지 살인사진 전담 변호사 노먼 레인팰드
그래 맞아
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니까
제이크는 흔잣말을 하듯 말했다
어쨌든 그가 와서 칼 리를 만나겠패
그 사람이 무슨 일로 오는 거지
LL에이지 목사가 불렀나봐 부탁을 하는 거겠지 나보고 자네한테
전화를 해달라더군
내 대답은 안 돼야 필요없어
오지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제이 자네도 와야 된다는데
초대를 했다는 얘긴가
그래 에이지 목사가 꼭 오라고 그랬어
어디로
내 사무실료 아침 아흡시야
제이크는 한숨을 푹 쉬더니 작은 소리펀 말했다
알았어 갈게 칼 리는 어디 있지
자기 방에
오분 전에 도착할 테니까 사무실로 좀 와 있으라고 해

준비를 해야지
레인펠드와 에이지 목사 루즈땔트 그리고 힐먼이 줄을 맞춰 앉아
있었다 칼 리와 오지 보안관 제이크는 그들과 마주 앉았다 제이크
는 쉴새없이 시가를 뻐끔거렸다 그는 담배만 열심히 빨면서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바닥만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레인펠드와 목사들에 출
한 경멸의 표정만은 잊지 놀았다 맞서기로 작정하면 레인펠드는 결
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래인펠드는 지금 하찮은 시골뜨기 변호사
를 마음껏 깔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로서는 깔본다는 감정을 감출 이
유가 하나도 없었다 레인펠드는 헌성적으로 거만한 사람이었구 제
이크는 어쩔 수 없이 그걸 견뎌내야 했출
누가 이 모임을 주선했습니까
어색하고도 지루한 침묵이 한참 흐른 다음 제이크가 더는 못 참
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글
내가 주선했습니다
에이지 목사는 레인펠드의 변호사라도 되는 것 같다
자 그럼 시작하시죠 뭔하는 게 뭡니까
진정해 제이
오지가 끼여들었다
사실은 에이지 목사팀께서 여기서 칼 리가 레인펠드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네
됐어 이제 만났잖아 그 다음엔 뭐죠 레인펠드 씨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나와 협회 변호시팁이 칼 리 혜일리 씨에게
서비스를 해드리고 싶다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섭니다
레인펠드가 말씬다
어떤 서비스죠
물론 법률 서비습니다
칼 리 씨 당신이 레인펠드 씨를 부르셨습니까
제이크가 물었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건 손님 빼앗기처럼 들리는데요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도 내가 누군지 알구 왜 여기 왔는
지도 알잖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모든 사건을 강탈하고 다니십니까
우리는 강탈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지방에 있는 혹인지위향상
협회와 인권단체에서 우리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살인사건
만 전담으로 다루는 사람들이구 또 이 방면에는 프로입니다
그러니까 당신만 살인사건을 다를 자격이 있다고 얘기하시는 겁
니까
내 몫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늘 그 몫을 잃어버리구
우리가 맡는 사건은 대개가 승산이 없는 사건입니다
아 이 사건에서 당신이 맡는 역할이 그겁니까 지는 것
레인펠드는 턱수염을 만지면서 제이크를 노려보았다
나는 당신하고 논쟁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나도 알아요 당신은 훌릉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이
곳에 왔죠 당신 이름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초 지금의 변호사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사람한테요 그러니까 당신은 내 고객을 빼앗
아가려고 온 겁니다 그게 당신이 온 이유 아닙니까
나는 협회에서 보내서 온 것뿐입니다 그외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어요
당신은 협회에서 주는 사건만 맡습니까
나는 협회를 위해서 일할니다 브리건스 씨 나는 살인사건 전담
변호사들의 대표이고 협회에서 보내는 곳은 어디든 갑니다
지금 고객이 얼마나 됩니까
서른 명쯤 됩니다 그게 중요합니까린
당신이 끼여들기 전에 그 서른 명한테 다 변호사가 있었습니

몇 명은 그랬습니다 우리의 기본 원칙은 지방 변호사와 협력해
서 사건을 다루는 것입니다
제이크는 피식 웃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군요 당신은 지금 나한테 서류가방을 들고
당신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군9 쉬는 시간에는 당신
이 먹을 샌드위치도 사와야겠지요 안 그래요
칼 리는 괄짱을 긴 채 꼿꼿하게 앉아서 양탄자를 뚫어지게 노려
보고 있었다 목사들은 칼 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칼
리가 자신의 변호사한테 입 닥치고 가만있어라 나는 당신을 해고하
고 협회 변호사에게 내 사건을 위임하겠다고 말해 주길 바라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에는 아랑곳없이 칼 리는 잠자코 앉아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건 많습니다
레인꿸드가 말했다
제이크는 칼 리가 변호사를 결정하도록 가만히 있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괜히 화를 내면 일을 망칠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요
제이크가 물었다
LL인력과 재원 전문가 오직 살인사건만 다루는 전문 변호사 등이
죠 게다가 우리는 이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할 아주 능력있는 의사
들을 많이 확보해 두고 있죠 재판에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돈은 얼마나 들일 예정입니까
그건 당신이 상관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요 헤일리 씨의 문제라 이거죠 당사자는 헤일리 씨니가
그럼 헤일리 씨는 자기 변호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쓰일지 알고
싶겠지요 헤일리 씨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자 레인펠드 씨 얼마나 쓰실 예정입니까
레인펠드는 머뭇거리면서 못마땅한 눈으로 목사들을 쳐다보았고
목사들도 칼 리에게 못마땅한 눈길을 보냈다
지금까지는 대충 2만 달러쯤 됩니다
레인펠드는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이크가 웃음을 터트렸다
만 달러요 지금 장난치십니까2만 달러라니 내가 알기로 당
신들은 큰 사건만 다루는 것 같은데요 작년에 버밍햄에서 경찰을 죽
인 흑인을 변호할 때는 15만 달러를 들였죠 그런데 유죄를 받았습
니다 그리고 슈리브포트에서 고객을 죽인 매춘부한테는 10만 달러
를 들였지만 그 여자 역시 유죄판결을 받았구요 그런데 이 사건에
는 고작 2만 달러를 들이시겠다구요
그러는 당신은 얼마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게 당신과 관계된 문제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기꺼이 대답해 드
리겠습니다
레인꿸드는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왜 칼 리 헤일리 씨한테 얘기하지 않는 겁니까 에이지 목사님
목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칼 리에게 쏠렸다 사실 그들은 이 백인
놈을 빼놓고 칼 리하고만 얘기하고 싶었다 흑인들끼리 통하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백인 변호사를 해고하고 흑인을 전문적
으로 변호하는 협회 변호사를 고용하라고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칼 리하고만 있는 게 아니었구 제이크를 욕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목사들은 앞에 앉은 백인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에이지
가 먼저 입을 열었다
칼 리 씨 우리는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 그래서 레인펠드 씨를
데리고 온 겁니다 레인펠드 씨는 당신을 돕기 위해서 변호사와 전문
가들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제이크 씨한테는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그 또한 좋은 변호사죠 레인펠드 씨랑 같이 협력해서 일
한다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제이크 씨률 해고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냥 레인펠드 씨를 고용하라는 얘기죠 두 사람이 같이
일하면 된다는 겁니다
같이 하는 문제는 잊어버리십시오
제이크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에이지는 말을 멈추고 제이크에게 애원하듯이 말했다
제이크 씨 제발 이러지 마세요 당신한테는 감정이 없습니다 당
신한테도 좋은 기회잖습니까 능력있는 변호사와 같이 일을 한다는
게요 경험도 횔씬 풍부해질
요점을 정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칼 리 씨가 당신네 변호사를
원한다면 좋습니다 나는 깨끗이 물러서겠습니다 나는 누구하고도
같이 일하지 않습니다 혼자 하거나 빠지거나 둘 중 하납니다 그 이
상은 없죠 내 사건이 되든가 당신들 사건이 되든가 선택은 하나라
는 말입니다 레인펠드 변호사하고 버클리 검사하고 내가 다 들어갈
만큼 법정은 넓지 않으니까요
레인펠드는 눈알을 굴리면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더니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당신 말은 칼 리 씨한테 달렸단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결정을 내리는 건 칼 리 씹니다 그가 나를 고용했으
니까 해고하는 것도 그 사람입니다 나는 이미 해고를 당한 적이 있
었지만요 어쨌든 그가 결정해야 합니다 가스실을 바라보고 있는 것
도 칼 리 씨지 내가 아니니까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칼 리 씨
에이지 목사가 칼 리에게 물었다
칼 리는 팔짱을 풀더니 에이지 목사를 바라보았다
12만 달러는 어디에다 쓰실 겁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3만 달러 정도 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만 달
러를 더 로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까요 그 돈은 모두 당신 변호 비
용에 들어갈 겁니다 변호사 수임료가 아니구 변호 비용입니다 우
리는 연구원이 두세 명 있어야 하구 정신과 의사도 두세 명쯤 필요
합니다 그리고 배심원 선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배심원 심리 연구
원도 고용해야 됩니다 우리의 변호 전략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죠
레인펠드가 대신 대답했다
그럼 이 지역 사람들한테서는 얼마나 모았죠
칼 리가 물었다
6천 달럽니다
레인펠드가 대답했다
누가 모았습니까
레인펠드는 에이지 목사를 쳐다보았다
교회에서 모았습니다
에이지 목사가 대답했다
교회에서 누가 돈을 거뒀습니까
우리가 거뒀습니다
목사님이 모으셨다는 얘깁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각 교회에서 모은 돈을 내가 거둬서 은행의 특
별구좌에다 예치시켜 놓았다는 얘깁니다
받은 것을 전부 예금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LL물론이시라구요 그럼 이렇게 여쭤보겠습니다 내 아내와 아이
들에게는 얼마나 주셨습니까
에이지의 목사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그는 도움을 요청하
듯이 다른 목사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양탄자 위에
벌레라도 기어다니는 듯 바닥만 보며 딴청을 부렸다 헤일리 가족에
게 준 돈은 한푼도 없었다 그들은 에이지 목사가 특별헌금에서 자기
몫을 떼었고 칼 리 가족에게는 한푼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
었다 칼 리도 그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얼맙니까 목사님
칼 리가 되풀이해서 물었다
우리 생각에 돈은
얼마나 주셨습니까
LL그 돈은 변호사 비용하고 그외 다른 목적에 쓰이는 걸로 되어 있
습니다
LL신도들한테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죠 가족에게 줄 후원금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낼 수 있는 만큼 다 내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굶어죽을지도 모른다고 소리치셨다던데요 안 그러셨습
니까 목사럼
LL돈은 당신 겁니다 칼 리 씨 당신과 당신 가족을 위한 거조 하지
만 지금으로서는 변호 비용에 쓰이는 게 더 좋습니다
내가 새로운 변호사를 원하지 않으면요 그러면 그 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제이크는 낄낄대고 웃다가 질문했다
L좋은 질문입니다 헤일리 씨가 레인펠드 씨를 변호사로 고용하지
않으면 돈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돈은 내 것이 아닙니다
레인펠드가 대답했다
에이지 목사님
제이크는 에이지 목사의 대답을 원했다
에이지 목사는 그 정도면 충분히 당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갑자기 적대적인 태도로 칼 리를 지목하면서 말했다
잘 들으십시오 칼 리 씨 우리는 이 돈을 모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6천 달러라는 거금을
모았다구요 그들에겐 이 돈을 내야 할 의무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열심히 모았습니다 이 돈을 어떤 사람들한테 모은 줄 압니
까 식권을 받아 먹구 생활 보조금을 타서 사는 사람들 의료보장제
도에 목매달고 사는 사람들한테 거둬들인 돈이란 말입니다 단 10센
트도 남에게 줄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한테 거둬들였단 말입니다 그
들이 돈을 낸 이유가 뭔지 압니까 단 하납니다 당신을 믿고 당신
이 한 행위가 옳다는 것을 믿고 당신이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걸 믿
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돈이 필요없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말아 주
십시오
저한테 설교하지 마십시오
칼 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목사님 말은 가난한 사람들이 6천 달러를 모아주었다
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나머지 돈은 어디서 온 겁니까
협회가 보낸 겁니다 애틀랜타에서 5천 멤피스에서 5천 중앙에
서 5천입니다 그 돈은 오직 당신을 변호하는 데만 쓸 겁니다
제가 레인펠드 변호사를 고용한다는 조건으로요
그렇습니다
만약 고용하지 않으면 그 돈은 사라지는 겁니까
그래9
그럼 나머지 6천 달러는 어떻게 됩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우린 아직 그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를 못 했습
터다 우리는 오직 돈을 거둬서 당신을 도우려고 했구 당신이 이런
제의를 마땅히 좋아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최고의 변호사를
대겠다는데도 당신은 내키지 않는다 이거군요
사무실 안은 무거운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보안관과 변호사 목
사들 모두 칼 리 헤일리의 대답만 기다리고 있었다 칼 리는 아랫입
술을 깨물면서 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곡 제이크는 시가에 불을
붙였다 그는 이제 막 해고되었다가 다시 복귀한 변호사였다
지금 대답을 드려야 됩니까
칼 리가 물었다
아닙니다
에이지 목사가 대답했다
아니오 지금 대답을 들어야겠습니다
레인펠드는 에이지 목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재판은 이제 3주도 안 남았구 우리는 이미 두 달이나 뒤졌습니
다 더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나를 고용하시든지 버리시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십시요 나는 좀 있으면 비행기를 타야 됩니다
좋습니다 레인펠드 씨 그렇다면 당신이 이제 하셔야 할 일을 알
려드리겠습니다 지금 곧장 나가셔서 비행기를 타시구 나를 도우러
클랜턴에 오실 생각일랑 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친구 제이크에게
내 운명을 걸겠습니다
7월 11일 목요일 늦은 밤 포드 군 북폭에 있는 깊은 숲 속에서는
KKK단 포드 군 지부가 결성되었다 여섯 명의 지원자는 비포장도
로 옆의 조I란 복초지에서 불타는 심자가를 알에 두고 마왕이 외우
고 있는 이상한 주문들을 따라했다 제복을 빼입은 열두 명의 KKK
단원들이 그들을 지켜보면서 사이사이에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곤
했다 길 아래쪽에서는 총을 든 단원이 감시를 하면서 이따금씩 의식
을 구경했다 1의 임무는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이 있나 살피는 것이
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정확히 자정이 되자 지원자들은 무릎을 꿇었호 곧이어 투건 여섯
개가 엄숙하게 그들의 머리에 씌워졌다 그 여섯 멍은 빌리 레이 콥
의 동생인 프레디 콥을 위시해 제리 메이플수 클리프턴 콥 에드 웜
번 모리스 랭커스터 테렐 그리스트였다 그들은 KKK단원으로 다
시 태어났다 십자가에서 내뿜는 불꽃들이 무릎을 꿇고 두건과 쩨복
으로 온몸을 가린 채 앉아 있는 신참들의 숨통을 조르고 있었다 1
들의 얼굴 위로는 땀이 비오듯이 쏟아져 네긴다 그플은 마왕의 꼴같
잖은 말과 그 미친 의식이 빨리 끝나기를 열력히 간구하고 있었다
노래가 그치자 새로운 단원들은 재빨리 일어나 십자가에서 벗어났
다 지켜보고 있던 단원들이 신참들을 괄어안으며 땀에 젖은 어깨를
두드려 대더니 이상한 주문을 외우기 시짜했나 타핌내 두건이 벗겨
지구 신참과 고참들은 한데 어울려 당당하게 숲 슥윽 걱어나치 비
장도로 건너편에 있는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보초를 서던 단원이 니
시 계단 입구에 앉아 주위를 살피는 동안 안에서늘 파지 지f3 리h
키를 쏟으며 칼 리 헤일리를 엄단하기 위한 전파이 세워졌다
퍼틀 보안관 대리는 목요일 밤 열시부터 다음날 새벽 여섯시까지
순찰을 도는 당번이었다 그는 커피와 파이글 떡기 위해 클랜턴 북쪽
고속도로에 있는 거디네 가게로 들어갔다 그때 그의 무전기에서 급
히 구치소의 보안관 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밤 열두시 살분이
었다
퍼틀은 파이를 먹다 말고 남쪽으로 1킬로 넘게 떨어진 구피소고
향했다
무슨 일이에요
그가 무전 계원에게 물었다
몇 분 전에 럴인긴을 찾는 익랜의 선화가 왔어요 런안괄은 지감
근무중이 아니라7入랬더니 당찌자를 따꾸라는 거예요 아주 준요
한 일이라면서9 십오분 뒤에 다시 전화하겠팎니다
퍼틀은 커피를 한 잔 따라서 오지의 커더란 의자에 똔을 뚠었파
전화벨이 울렸다
당신한테 온 전화예요
무전 계원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여보세요 조 퍼틀 보안관 대리입니다 그쪽은 누구십니가
보안관 어디 있소
자고 있을 접니다
資아요 이건 진짜로 중요한 얘기구 나는 다시는 전화를 안 할
테니까 잘 들으시오 칼 리라는 검등이를 알고 있土
그 사람 변호사 브리건스도 알고 있겠죠
물론입니다
됐소 지금부터 세시 사이에 그 사람 집을 날려 버리려는 사람들
이 있소
누구요
브리건스
아니 내 말은 그런 짓을 누가 하느냐는 말입니다
그건 상관하지 말고 듣기나 하시오 이건 농담이 아니요 농담으
로 들린다면 거기 가만히 앉아서 그의 집이 터져나가는 꼴을 구경이
나 하고 있으면 되겠지 언제라도 터질 수 있으니까
수화기 저쪽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끊은 것
은 아니었다 퍼틀은 반응을 기다리다가 수화기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아직 거기에 있습니까
잘 자시오
수화기가 탁 소리를 내며 끊겼다
퍼틀 보안관 대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전 계원에게 갔다
들었죠
럼9
보안관한레 전화해서 브리건스 씨 집으로 오라고 해요 나는 먼
저 가 있을 테니까
퍼틀 보안관 대리는 순찰차를 먼로 가의 인도에 박아놓고 잔디밭
을 넘어서 제이크의 집으로 다가갔다 수상한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시계는 열두시 오십오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켜고 집
주위를 샅샅이 돌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집들이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다 퍼틀 보안관 대리는 현관의 전구를 돌려
불을 꺼 버리고는 고리버들로 만든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낡은 차 한 대가 베란다 밑 올스모빌 옆에 주차되어 있었
다 그는 오지가 오면 제이크에게 알릴 것인지에 대해 의논할 작정이
었다
길 저쪽 끝에 전조등 불빛이 나타났다 퍼틀은 재빨리 의자 깊숙
이 몸을 묻었다 그들은 퍼틀을 보지 못했다 빨간색 픽업 트럭이 제
이크의 집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고 저 아래
쪽으로 사라졌다 퍼틀은 몸을 일으켜 시야에서 사라지는 차의 뒤꽁
무니를 바라보았다
조금 있으니 광장 쪽에서 두 사람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퍼틀은
권총 지갑을 끌러 리볼버를 꺼내들었다 앞서 달려오는 사람은 뒷사
람보다 약간 커보였구 뛰는 폼도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은
오지와 네스비트였다 퍼틀은 두 사람을 만나자마자 현관으로 끌고
들어갔다 세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거리를 지켜보았다
그 사람이 정확히 뭐라고 그랬는데
오지가 물었다
LL지금부터 세시 사이에 누군가가 제이크 씨 집을 날려 버린다고
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고 했어Q
그게 전부야건
예 별로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더군요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어
이십분9
오지 보안관은 네스비트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전기 나한테 주고 뒤뜰 쪽에 가서 숨어 잘 살펴보라구
네스비트는 재빨리 뒤뜰로 돌아가 울타리의 관목 사이에 난 조그
만 틈새로 기어들어갔다 제이크의 집 뒤쪽이 전부 보이는 자리였다
제이크한테 얘기할 거예요
아직 몇 분 더 지켜봐야지 우리가 문을 두드리면 집 안에 불이
켜질 텐데 아직은 그럴 필요 없잖아
하지만 제이크가 우리 말소리를 듣고 총을 쏘아대며 뛰쳐나오기
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우리를 밤손님츠로 착각할 수도 있잖아요
오지는 거리를 내려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봐요 오지 한번 처지를 바러서 생각해 보세요 경찰들이 새벽
한시에 당신 집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폭탄이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
다고 생각해 보라구S 그럴 때 보안관 같으면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자는 게 좋겠어요 아니면 사실을 아는 게 좋어요
오지 보안관은 건너편 집들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제 생각에는 깨우는 게 나을 것 같아9 만약 우리가 놈들을 못
막아서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치면 어떡하죠 우리 잘못이잖아요
오지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벨을 눌렀다
전구 빼놔
그는 현관 천장을 가리키면서 명령했다
벌써 뺐어9
오지는 다시 한번 벨을 눌렀다 나무로 된 현관문이 열리더니 제
이크가 나왔다 그는 덧문을 사이에 두고 오지 보안관을 마주보았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구겨진 잠옷을 입고 손에는 38구경 권총을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오지
제이크가 덧문을 열며 물었다
들어가도 돼
그래 근데 무슨 일 있어
자네는 여기 있어 금방 나을 테니까
오지가 퍼틀에게 말했다
오지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는 집 안의 불을 껐다 두 사람은
현관과 앞마당이 보이는 어두운 거실에 앉았다
말을 해봐 오지
제이크가 다그쳤다
삼십분쯤 전에 익명의 제보 전화를 받았어 세시 이전에 자네 집
을 날려 버리려는 자들이 있다는 거야 아무래도 장난이 아닌 것 같
아 심각한 문제야
고맙군
퍼틀은 현관에 있구 네스비트는 뒤뜰에 있어 십분 전에 퍼틀이
픽업 한 대가 다가오는 것을 봤다는데 그것말고는 아무 일도 없어
집 주위에서 찾아낸 거 없어
없어 아직 안 온 모양이야 하지만 뭔가 있는 것 같아
어떻게 알지
육감이지
제이크는 38구경 진총을 소파에 놓고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앉아서 기다리는 거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어
자네 라이플도 있나
쿠바를 전부 날려 버릴 만큼 있어
그럼 총을 하나 들고 위층에 가서 자리를 잡아 우리는 바깥을 맡
을 테니까
사람은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그래 저쪽도 하나 아니면 둘인 것 같으니까
누굴까
모르지 KKK단 아니면 청부업자들이겠지 누가 알겠어
두 사람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어두온 거리를 바라보았다 퍼틀
의 머리녹대기가 창 너머 의자 등받이 위로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

제이크 1964년에 理KK단한테 살해된 인권단체 소속 노동자들
기억나나 필라델피아 부근의 둑방에서 시체를 파냈지 아마
그래 내가 어릴 때였어 기억나
그때도 누가 얘기해 주지 않았으면 어디에 붇혀 있는지 알지도
못했을 거야 그때 얘기를 해준 사랍이 토KK단원이야 밀고자 KKK
는 항상 그래 누군가 내부 사람이 밀고를 하거든
그들 짓이라고 생각해
그런 것 같아 한두 놈이 제멋대로 날뛰는 거라면 누가 눈치채고
대비할 수 있겠어 패거리가 많을수륵 밀고하기도 쉬운 법 아냐컨
일리는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확신할 순 없군
물론 장난전화일 수도 있지
장난치고는 고약한데
아내한테 말할 거야킨
말하는 게 낫겠어
내 생각도 그래 하지만 불은 켜지 마 놈들이 도망갈 수도 있으
니까
오히려 그랬으면 좋겠는데
LL나는 잡을 거야 지금 잡지 않으면 이런 짓을 또 벌일 거라구 그
리고 다음번에는 우리한테 귀띔을 안 해줄 수도 있어
칼라는 어둠 속에서 얼른 옷을 주워 입었다 그녀는 잔뜩 겁을 먹
고 있었다 제이크는 한나를 작은 방에 있는 소파에다 뉘었다 그애
는 뭐라 잠꼬대를 하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칼라는 한나의 머리를
받치면서 라이플에 실탄을 장전하는 제이크를 보았다
나는 위층 응접실에 올라가 있을 테니까 불은 절대로 켜지 마 경
찰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구요 당신 제정신이에요
가서 자도록 해봐
자라구외 제이크 당신 정말 정신 나갔군요
사건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관목 사이에 숨어 있던 오지
가 먼저 놈을 보았다 광장 반대쪽 거리에서 집을 향해 느릿느릿 걸
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사내의 손엔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두 집
정도 거리를 두고 이르렀을 때 사내는 이웃집의 앞마당을 가로지르
기 시작했다 오지는 리볼버와 경찰봉을 쥐고는 자기 쪽으로 곧바로
다가오는 놈을 기다렸다 제이크도 총의 조준경에다 놈을 가두었다
퍼틀은 마치 뱀처럼 현관에서 관목더미로 기어내려와 습격 태세를
갖추었다
옆집 앞마당을 사각으로 가로지른 범인은 제이크의 집 왼쪽으로
다가와 침실 창문 바로 아래에 작은 상자를 놓았다 그가 막 돌아서
서 도망가려고 하는 순간 거대한 검은 경찰봉이 그의 옆머리를 내리
치면서 오른쪽 귀를 두 조각 냈다 사내는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찢어진 귓살이 머리 옆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잡았다
오지가 소리를 질렀다
퍼틀과 네스비트는 재빨리 오지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제이크
는 층계를 천천히 걸어내려오고 있었다
금방 올게
제이크가 칼라에게 말했다
오지는 범인의 목을 움켜쥐고는 집 옆으로 끌고와 앉혔다 사내는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멍하고 얼떨떨한 상태였다 사내가 놓은 작은
상자가 바로 옆에 있었다
이름이 뭐이
P지가 물었다 그러나 사내는 신음을 내뱉으며 머리만 떨굴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물었잖아
오지가 범인을 흔들면서 다시 물었다 바로 옆에서 범인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퍼틀과 네스비트는 너무 겁을 먹어서 한마디도 못하고
있었다 제이크는 상자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말 안 하겠소
사내가 대답했다
오지는 경찰봉을 높이 쳐들더니 놈의 오른쪽 발목을 향해 힘껏 내
리쳤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사내는 발목을 움켜쥐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오지가 다
시 놈의 얼굴을 걷어찼다 그의 뒤통수가 쿵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
쳤다 놈은 신음소리와 함께 바짝 오그라들었다
제이크는 작은 상자에 바싹 귀를 대고 소리를 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뒤로 흠칫 물러났다
째깍째깍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지는 범인 쪽으로 몸을 굽혀 경찰봉을 콧등에 살짝 갖다댔다
뼈마디를 다 작살내기 전에 대답해 상자 안에 뭐가 들었지
아무런 대담이 없었다 오지는 기다리고 뭐고 할 것도 없이 경찰
을 다시 후려쳐서 왼쪽 발목뼈를 마저 부됐다
안에 뭐가 있냐구 이 새끼야
오지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다이너마이호
사내가 신음처럼 겨우 대답을 했다
퍼틀의 총이 눅 떨어졌구 기겁을 한 네스비트는 벽에 돔을 바짝
기댔다 하얗게 질린 제이크는 무릎을 부들부들 떨다가 문 쪽으로
후다닥 달려가면서 칼라에게 소리를 쳤다
차 열쇠 가져와 차 열쇠
왜요
칼라가 다급하게 물었다
LL글쎄 시키는 대로 해 차 열쇠 갖고 얼른 차고로 들어가라구
제이크는 한나를 들어서 부엌을 통해 차고로 갔다 제이크는 한나
를 뒷좌석에 누인 뒤 칼라를 차 안으로 밀어넣었다
가 그리고 삼십분 안에는 돌아오지 마
제이 무슨 일이에요
칼라가 차에 타면서 물었다
L나중에 얘기할게 시간 없어 빨리 떠나라구 삼십분 동안 차를
몰아 가능하면 멀리
하지만 왜요 무슨 일인데요
다이너마이트야
칼라는 재빨리 차를 몰고 사라졌다
제이크가 다시 들아왔을 때 범인의 왼손은 수갑에 묶인 채 창문
옆에 있는 가스관에 걸려 있었다 그는 신음과 욕설을 함께 내뱉고
있었다 오지는 다이너마이트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더니 범인의 부
러진 다리를 툭툭 차서 다리를 벌려 놓았다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오지는 상자를 범인의 다리 사이에 가지런히 놓고는 뒤
로 물러서서 범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범인은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난 어떻게 해체하는지 몰라요
범인은 이를 꽉 물고는 말했다
빨리 배우는 게 좋을걸
제이크가 단호한 목소리는 말했다
범인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떨됐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숨
을 헉헉 내뱉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이 뺨에서 희미한 물줄기
를 이뤘다 귀는 마치 나뭇잎처럼 얼굴 옆에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손전등을 주세Q
퍼틀이 그에게 손전등을 건네주었다
두 손 다 필요한데9
범인이 말했다
한 손으로 해
오지는 매몰차게 대답했다
범인은 손가락을 살금살금 걸쇠에 갖다대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저리로 가지
오지의 말에 네 사람은 집을 돌아서 가능하면 멀리 떨어졌다
가족들은
오지가 제이크에게 물었다
내보냈어 근데 저놈 누군지 알겠나
몰라
오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본 적이 없는데요
네스비트가 말했곤 퍼틀은 오지처럼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다
오지가 무전기로 무전 계원을 불러 릴리 보안관 대리를 급히 불렀
다 폭발물 전문가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놈이 해체를 못 해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면 어떻게 하지
제이크가 물었다
보험 안 들었어요 제이크
네스비트가 실없는 소리를 했다
재미없는 질문이군 네스비트
조금 있다가 퍼틀 자네가 가보도록 해
왜 접니까
알았어 그럼 네스비트 자네가 가봐
제이크네 집이니까 제이크가 가봐야 될 것 같은데요
네스비트가 기겁을 하면서 말했다
그건 좀 재미있군
제이크가 응수했다
네 사람은 폭탄이 해체되기를 기다리면서 잡담을 나누었다 네스
비트가 다시 보험 얘기를 꺼냈다
조용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제이크가 말했다
네 사람이 동시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범인이 다시 소리를 질
렀다 그들은 집 앞으로 달려가서 조심스럽게 모퉁이를 돌았다 빈
상자가 저만큼 내팽개쳐져 있었고 범인 바로 옆에는 다이너마이트
더미가 놓여 있었다 두 다리 사이에는 전선이 달린 커다란 시계가
은색 테이프에 촘촘히 묶여 있었다
해체했어
오지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했어9
범인이 숨을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오지는 범인 바로 앞에 무릎을 꿇고 시계에서 전선을 뽑아냈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는 건드리지 않았다
다른 놈은 어디 있어
아무 대답이 없었다
오지는 경찰봉을 꺼내서 얼굴 가까이에 들이댔다
그럼 한 번에 갈비뼈 한 대씩을 박살내도록 하지 어때 말하는
게 낫겠지 자 다른 놈은 어디 있어
엿 먹어 이 검등이 새끼야
오지는 일어서더니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이크와 보안관
대리들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웃집 동정을 살피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것이 확인되자 오지는 경찰봉을 높이 쳐들었다 오지는
여전히 가스관에 묶여 있는 범인의 왼팔을 정확히 가격했다 범인은
上半를 지르면서 오른쪽으로 몸을 홱 꺾었다 제이크가 보기에도 가
엾을 지경이었다
어디 있어
오지가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뵉시 대답이 없었다
경찰봉이 갈비배를 향해 내리쳐졌다 제이크는 차마 볼 수가 없어
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어디지
경찰봉이 다시 올라갔다
그만 제발 그만해요
범인은 드디어 애원하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어
길 아래쪽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 있어9
몇 놈이이
한 명
차는
픽업 빨간색 지엠시cMC
순찰차 가져와
오지가 명령했다
제이크는 주차장 앞에서 칼라가 돌아오기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
고 있었다 두시 십오분이 되자 칼라의 차가 천천히 집 앞으로 들어
와서 멈추었다
한나는 잠들었어
제이크가 차 문을 열면서 물었다
그래9
좋아 그럼 그냥 자게 놔두자고 우린 몇 분 있다가 떠날 거니까
어디로Q
안에 가서 얘기하지
제이크는 커피를 따르면서 침착하게 행동하려고 애썼다 겁에 질
린 칼라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화도 잔뜩 나 있었다 마음을 진정
시키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제이크는 폭탄과 범인에 대한 이야기
를 차근차근 설명하구 오지가 다른 공범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덧붙
였다
LL내 생각에는 당신과 한나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월밍턴에 가 있
었으면 좋겠어
칼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내려다볼 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LL장인어른한테 전화해서 이미 다 설명해 드렸어 당신들도 걱정이
되시는지 이 일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는 게 좋겠다고 하시더군
내가 가기 싫다면요
L1칼라 제발내 말 좀 들어 지금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럼 당신은요
나는 괜찮아 오지가 경호원을 붙여줄 거구 집 주위를 24시간 감
시해 준다고 약속했어 당분간은 사무실에서 잘 거야 나는 걱정없
어 약속해
칼라는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는 눈치였다
L잘 들어 칼라 나는 지금 생각해야 뵉 게 한두 가지가 아냐 내
의뢰인은 가스실을 목전에 두고 있고 재판까지는 열흘밖에 남지 않
았어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 지금부터 22일까지는 밤낮으로 일
해야 해 그리고 어차피 재판이 시작되면 내 얼굴 보기 힘든 건 마찬
가지일 거야 나는 당신과 한나 걱정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그러니 제발 가 있도록 해
그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했어요 제이크 그들은 우리를 죽이려
고 한단 말이에
제이크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우리 가족이 위험에 처하면 사건에서 손떼겠다고 했잖아요
그건 불가능해 이제 와서 그만두겠다면 누스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야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군
아니야 내가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뿐이고 이제는 너
무 늦었어
칼라는 침실로 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여섯시 삼십분에 멤피스에서 떠날 거야 장인어른께서
아홉시에 레일레이 공항으로 마중나오실 거야
알았어
십오분 후에 제이크의 가족은 를랜턴을 떠났다 제이크는 운전을
했구 칼라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섯시에 그들은 멤피스 공항
에서 아침을 먹었다 한나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
를 만나러 간다는 것에 무척 즐거워했다 칼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
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한나 앞에서는 싸우지 않는 것이 그들
의 원칙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마치 아
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신문을 보고 있는 남편을 내내 홀겨
보았다
제이크는 모녀에게 작별 키스를 하고는 매일 전화하겠노라고 약
속했다 비행기는 정시에 떠났다 일곱시 삼십분에 제이크는 보안관
사무실에 도착했다
뭐하는 놈이야긴
제이크가 보안관에게 물었다
알아낸 게 아무것도 없어 지갑도 신분증도 아무것도 없어 입도
꾹 다물고 있고
그자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어
오지는 잠간 뜸을 들였다
지금으로서는 알아보기 힘들 거야 얼굴 전체에 반창고가 덕지덕
지 붙어 있거든
제이크가 씩 웃었다
너무 심했지 안 그래
그래야 할 때만 그래 자네도 말리지 않았잖아
웬걸 오히려 돕고 싶었는데 공범은
자네 집에서 8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빨간색 픽업 트럭을 세원놓
고 자빠져 자고 있더라구 테렐 그리스트라고 이 지역 놈이야 주소
는 레이크 빌리지로 되어 있내 생각엔 콥의 친척들의 친구인 것
F
제이크는 테렐 그리스트라는 이름을 몇 번 되뇌었다
처음 듣는데 지금 어디 있어
병원에 두 놈이 같이 누워 있지
이런 오지 그 사람 다리도 분질러왔나
내 잘못이 아냐 그놈이 반항하기에 그런 것뿐이야 일단 제압을
해야 되잖아 몇 가지 물어보는데 자식이 협조를 안 하잖아
그래서 무슨 얘기를 했는데
별거 없었어 아무것도 모른대 서로 모르는 사인 거 같아
자네 말은 그러니까 폭파 전문가를 데리고 왔다는 얘기야띨
그런 것 같아 릴리가 폭탄하고 시계를 보더니 아주 정교하게 만
든 거라더군 자네 세 식구하고 집이 몽땅 날아갈 뻔했어 새벽 두시
에 맞춰져 있었으니까 제보 전화만 없었으면 자네하고 가족들은 끝
장났지
제이크는 현기증이 일어 소파에 주저앉았다 사타구니를 한대 얻
어맞은 것 같았고 속도 메스꺼웠다 설사라도 한바탕 쏟아질 지경이
었다
가족들은 피신시켰어
그래
제이크는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안관 대리 하나 붙여줄게 누가 좋아
모르겠어
저스비트는 어때
좋아 고맙네
그리고 이 사건 조용히 처리하는 게 낫겠지
가능하면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지
나랑 보안관 대리들이지 뭐 재판 끝날 때까지는 보안이 지켜질
것 같은데 장담은 못 해
알았어 노력해줘
애써 보지 제이크
자네가 애쓸 거라는 건 알아 오지 어쨌든 고마워
제이크는 사무실로 가서 커피를 끓인 다음에 소파에 몸을 뉘었다
장간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그러기가 어려웠다 눈꺼풀이 무
거웠지만 눈이 감기지는 않았다 그는 천장에 붙은 선풍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브리건스 씨
인터폰에서 에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브리건스 씨
무의식 깊은 어딘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제
이크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가 고함을 질렀다
누스 판사님 전화예IZ
알았어요 받을게요
그는 중얼거리면서 책상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시계는 아홉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잠을 잔 셈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판사님
제이크는 자다가 일어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유쾌한 목
소리로 말했다
제이잘 지내고 있소
좋습니다 판사텀 재판이 다가와 좀 바쁘긴 하지만요
그럴 거요 오늘 특별한 약속이라도 있나요
제이크는 속으로 날짜를 더듬었다 일정표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별일 없습니다
좋아요 우리 집에서 점심이나 같이 했으면 하는데 열한시 삼십
분쯤이 어떻겠土
좋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헤일리 사건 때문에 그럽니다
알겠습니다 그때 뵙조
누스 판사는 광장에서 멀리 떨어진 체스터라는 곳에 살았다 남북
전쟁 전에 지어진 그 집은 1세기 동안 처가쪽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
다 몇 번 손질을 하고 보수공사를 거쳐 아직까지는 말끔한 편이었
다 제이크는 그 집에 한번도 초대된 적이 없었구 누스 판사의 부인
을 만난 적도 없었다 하지만 한때는 북군파에 속하던 돈많은 가문의
딸이던 그녀의 가계에 대해선 익히 들어온 터였다 누스 판사처럼 그
녀도 잘생긴 얼굴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애들은 어느 혈통을 이어
받았는지 훤칠하게 생겼다 누스 판사의 부인은 제이크를 문에서 맞
아 안뜰까지 데리고 가면서 이런저런 말을 시키구 비교적 정중하게
대했다 판사는 차를 마시면서 우편물들을 훌어보고 있었다 하녀가
옆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제이3 와주어서 고맙군
누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별말씀을요 판사님 아름다운 곳에서 사시는관요
두 사람은 수프와 치킨 샐러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헤일리 사건
에 대해서 얘기를 나뒀다 누스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재판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헤일리 사건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판
사에게는 하나의 부담이었구 그는 이미 지쳐 있는지도 몰랐다 판사
가 버클리 검사를 혐오한다고 해서 제이크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 제
이크는 자기도 그렇다며 동의를 했다
제이크 재판지 변경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당신하고 버클
리가 낸 서류도 다 살펴보았구 나도 나름대로 많은 조사를 했는데
역시 어려운 문제더군 지난주에 걸프 코스트에서 있었던 판사 회의
에 갔었는데 거기서 대법원에 있는 덴턴 판사하고 술을 한잔 하면서
얘기를 나누었쇼 그와 나는 법률학교를 같이 다녔고 주의원도 같이
지낸 사이라요 우리는 매우 친하죠 그는 남부 미시시피의 듀프리
군에 있는데 그곳에서도 이 사건을 놓고 많은 얘기를 한다고 했소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에게 만약 항소가 올라오면 어떻게
판결할 거냐고 물어온다고 하더군요 여기서 65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도 사람들이 이미 저마다 판결을 내리고 있다는 얘기죠 이런
삵황인데 재판지를 변경한다면 과연 어디가 적당하겠소 미시시피
주를 벗어날 수는 없구 주 안에서는 어디를 가나 헤일리 사건 얘기
로 떠들썩한데 말이오 미시시피에는 온통 마음속으로 유죄 여부를
결정해 놓은 사람들뿐이라오 제이당신 생각은 어떻소
이미 잘 알려진 얘기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제이크는 조심스럽게 판사의 말에 동의를 했다
말해 보시오 여기는 법정이 아니니까 솔직하게 말해 주길 바라
오 내가 당신을 부른 이유가 그거니까 당신 생각을 좀 듣고 싶어서
널리 알려져 있는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니 만약 옮긴다면 어디가 적
당하겠소
델타는 어떻습니까
누스는 제이크의 대답을 듣더니 빙그레 웃었다
그쪽을 좋아하는군 그렇소
그렇습니다 그쪽에서라면 적당한 배심원을 구할 수 있을 것 같
습니다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計理
그렇군 절반은 흑인일 거고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그 지역 사람들이 진짜로 칼 리 헤일리에 대한 편견을 가
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오
그렇습니다
또 다른 곳은
덴턴 판사님 의견은 어떻습니까
별거 없었소 우리는 아주 극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판지 변
경을 허가하지 않는 법원의 오랜 관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을 뿐
이오 피고인 편을 드는 사람과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 모두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유명한 사건은 손대기가 어려운 법이오
텔레비전과 신문이 하도 설쳐대는 통에 사람들은 재판이 시작되기
도 전에 사건의 세밀한 부분들을 모두 알게 되니까 최고의 화젯거리
가 된 셈이오
덴턴 판사도 이령게 세인의 관심을 많이 끈 사건은 본 적이 멀다
고 말했소 그는 미시시피 주 어디를 가든 공정하고 편견이 없는 배
심원들을 찾기란 불가능할 거라고 했소 만약 포드 지방에서 재판을
했다가 유죄판결이 났다고 칩시다 그러면 당신은 재판지가 변경되
지 않아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며 항소를 할 거요
덴턴도 재판지를 음기지 않아야 한다는 나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
소 그는 대부분의 법조인들이 재판지 변경 신청을 거부한 내 결정에
동의할 거라고도 했죠 물론 보장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어쨌든 우
리는 술을 마시면서 이런 얘기를 오랫동안 했소 제이쿠 당신도 한
잔 하겠소
아닙니다 사양하겠습니다
나는 재판지를 변경할 아무런 이유를 찾을 수가 없소 헤일리에
대해 마음속으로 판결을 내리지 않은 열두 명의 배심원을 찾기 위해
재판지를 변경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리석은 일인 것 같단 말요 불
가능한 일이p
이미 결정을 하신 모양이군요
그렇소 재판지를 변경하지 않기로 했소 재관은 클랜턴에서 열
릴 거요 물론 나도 마음이 편치 않지만 재판지를 변경해야 할 이유
가 없으니까 게다가 나는 이곳 클랜턴을 좋아하오 집에서도 가깝
고 법훤은 냉방도 잘 되잖쇼
누스는 서류철을 뒤져 봉투를 하나 꺼냈다
재판지 변경 신청을 기각한다는 내용이 든 명령서9 오늘 날짜
로 되어 있죠 버클리 검사에게도 하나 보냈고 이건 당신 거요 원본
이 여기 있으니 당신이 이것을 클랜턴 법원의 서기에게 제출해 주면
고맙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결정을 잘 내렸기를 바라9 정말이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
어려운 일인 줄 압니다
제이크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기 위해 애썼다
누스 판사는 하녀에게 진과 토닉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는 제이크
에게 한사코 정원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제이크는 한 시간 동안 장미
꽃 향기 그득한 뒤뜰을 거닐었다 제이크는 한나와 칼라 포근한 보
금자리와 다이너마이트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누스
판사의 세심한 정원 가꾸기 솜씨에 관심을 표명해야 했다
금요일 오후면 제이크는 종종 법대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흐린
날이면 그는 친구들과 옥스퍼드의 단골 술집에 모여 맥주를 마시고
새로운 법이론에 대한 논쟁을 벌이곤 했다 거만하고 잔인한 법대 교
수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실컷 욕을 퍼붓던 시절이었다 날씨가 따
뜻하면 따뜻한 대로 그들은 맥주를 사들고 사디스 호숫가로 달려갔
다 제이크의 폴크스바겐 지붕을 걷어내구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면
서 금요일 오후를 무작정 달리곤 했다 햇빛 아래서 피부를 태우고
있는 늘씬한 미녀들이 그들을 꾀죄죄한 법대생이라고 놀려도 마냥
기분좋던 시절이었다 아무런 죄도 허물도 없던 시절
제이크는 법대를 싫어했다 그리고 사실 모든 법대생들이 조금씩
은 다 법대를 싫어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친구들 그 시
절의 금요일만큼은 여전히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제이크
理 자신의 삶을 압박해 오는 것들이 싫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압박
과 구속은 삶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법대 1학년
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지근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는 아
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그 시절이 그리웠다 가진 것도 없을 놘 아니
라 빛진 것도 없었구 친구들 또한 같은 처지였던 그때가 그리웠다
하지만 수입이란 것이 생기고 난 뒤로 제이크는 저당과 부도 신용
카드와 싸워야 했고 풍족한 삶에 얽매이기 시작했다 그의 삶에서
아름다운 차는 사브가 아니라 여전히 폴크스바겐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받은 그 풍뎅이차에는 갚아야 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는 가끔 흔자이기를 원했다 결혼생활은 더없이 행복했지
만 혼자가 좋을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맥주를 그리워
했다 병맥주든 캔맥주든 생맥주든 상관없었다 제이크는 그것이 단
지 친구들과 행복하게 나누어 먹던 술이었기 때문에 좋았다 매일 미
시는 술주정뱅이도 아니었고 취한 적도 거의 없는 신사였지만 그래
도 그 속에는 몇 번의 아름다운 환각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절이 지나고 제이크는 칼라를 만났다 그는 마지막 학기에
칼라를 만나 6개월 만에 결흔했다 물론 그녀는 예뱄구 제이크의 마
음에 쏙 드는 여자였다 처음 봤을 때는 대부분의 돈많은 대학생들처
럼 그녀도 말수가 적고 거만했지만 차츰 그녀에게도 따뜻한 사랑이
끄고 남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숨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제이크
는 어째서 칼라 같은 여자가 불안해 보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
었다 그런데 칼라는 그런 여자였다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여자 그녀의 집은 부유했구 그녀의 어머니는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점이 특히 제이크의 마음을 끌었다 제이크는
가정과 아이들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알고 바지라고는 입어 본 적도
없는 그런 여자를 원했다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칼라는 어떠한 술도 용납하지 않았다 술을 많이 먹던 아
버지가 그녀의 어린 시절에 가슴 아픈 그늘을 남겨두었기 때문이었
다 제이크는 그녀에게 그늘을 드리우지 않으려고 마지막 학기 동안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고 그 때문에 몸무게를 7킬로나 잃었다
그는 멋있어 보였구 자기 자신이 멋있게 느껴졌다 그러나 여전히
맥주가 그립기는 했다
체스터에서 빠져나와 몇 킬로를 달리다 보니 쿠어스라는 간판이
보였다 쿠어스 맥주는 제이크가 법대 시절 가장 즐겨 먹던 술이었
다 물론 더 좋은 술도 많았지민 캠퍼스 주위에서는 쿠어스 맥주가
최고였다 쿠어스를 한번 먹어본 사람은 버드와이저에도 입맛을 잃
어버릴 정도였다
금요일이었고 날씨는 몹시 더웠다 칼라는 1400킬로나 떨어진 곳
에 있었고 사무실로 돌아가기는 정말로 싫었다 그곳에서 내일을 기
다리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어떤 작자가 제이크 자신의 가족을 죽이
구 역사적인 건축물마저 날려 버리려 했었다 그리고 제이크의 변호
사 경력에서 가장 최고가 될 재판은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왔구 제
이크는 아무 준비도 못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재판에서 가장 중요
한 재판지 변경 신청서는 방금 전에 기각당하고 말았다 압박감이 점
점 제이크를 짓눌러왔다 제이크는 목이 말랐다 그는 차를 세우구
여섯 개들이 쿠어스 맥주를 샀다
체스터에서 클랜턴까지 오는 데는 두 시간이 걸렸다 그는 빙빙
돌면서 맥주와 풍경을 즐겼다 쉬기 위해서도 섰고 맥주를 더 사기
위해서도 섰다 그는 오는 사이에 두 번이나 멈추었구 여섯 개들이
팩을 하나 더 샀다 기분이 좋았다
지금 상태에서 갈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집도 아니구 사무실
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지긋지긋한 법원에 판사 심부름이나 하러
갈 생각도 없었다 제이크는 작고 더러운 포르세 뒤에 사브를 세우고
는 찬 맥주를 들고 옆길로 들어섰다 루시엔은 여느 때처럼 현관에
있는 흔들의자에서 흔들리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심신장애
변호에 대한 논문을 인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책을 덮고는 제이크의
손에 들린 맥주를 보더니 음흥하게 웃었다 제이크도 루시엔을 따라
마주 웃었다
무슨 일이야 제이크
아니오 별일 없어9 그냥 목이 말라서
그래 마누라는 어쩌고
LL제 마누라는 저보고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가 없어요 나는 나고
내가 바로 보스예요 내가 맥주를 마시고 싶으면 먹는 거죠 마누라
는 한마디도 못 한다구
제이크는 맥주를 한 모금 길게 들이켰다
칼라가 어딜 갔나 보군
노스 캐롤라이나에Q
언제
L오늘 아침 여섯시요 한나랑 같이 멤피스에서 비행기를 탔죠 재
판이 끝날 때까지 윌밍턴에 있을 겁니다 조그만 해변에서 여름을 나
겠죠
자네 부인이 아침에 떠났는데 자네는 오후에 벌써 취해 있군
취하지 않았어요 아직은요
제이크는 호기있게 대답했다
마신 지 얼마나 됐나
LL두 시간 정도요 한시 삼십분에 누스 판사 집에서 떠나면서 여섯
개들이 팩을 샀죠 당신은 마신 지 얼마나 됐어요
L나는 주로 아침 밥상 때부터 마시지 누스 집엔 뭐하러 갔나
LL재판 얘기를 했습니다 재판지 변경 신청을 기각한대요
뭐라고
LL들으셨잖아9 재판은 여기 이곳 클랜턴에서 한다구9
루시엔은 술을 한 모금을 마시고는 얼음 조각을 혼들었다
샐리
그는 하녀를 불렀다
이유가 뭐라던가
LI헤일리 사건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배심원은 어딜 가도 찾기
어렵다는 거예요
내가 얘기했잖나 그 정도는 재판지 변경을 불허할 때 흔히 써럭
는 수법이지 하지만 법적인 근거는 회박한 거야 누스가 실수한 거

샐리가 시원한 위스키를 가져다준 뒤 제이크가 들고 온 맥주를
받아서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루시엔은 위스키를 마시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는 팔로 입가를 훔치고 나서 다시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게 무슨 의민지 아나
루시엔이 물었다
배심원이 전부 백인이라는 얘기죠
게다가 유죄가 확정될 경우에도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
ol야
그건 아직 몰라요 누스 판사는 이미 대법원 판사하고 얘기했다
고 했어9 그는 대법원도 자기 뜻에 동의할 것을 확신하고 있어S
법적인 근거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죠
바보 같은 판사군 나는 그에게 재판지 변경이 꼭 필요하다는 것
을 증명할 판례를 스무 건도 더 들이댈 수 있어 내가 보기에는 그가
겁먹은 게 분명해
누스 판사가 왜 겁을 먹어요
압력을 받은 거지
누구한테요
루시엔은 잔에 든 금빛 위스키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얼음조각을 딸그락거리기 시작했다 희미한 그의 미소로 보아 뭔가
를 분명히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 애원이라도 하지 않으면 얘기하지
않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루시엔 누구한테요
제이크가 루시엔에게 다시 물었다
버클리
루시엔의 목소리는 선고라도 내리는 사람 같았다
버클리라니요 저는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는데EL
제이크의 눈이 휘등그레졌다
물론 모르겠지
설명해 주시면 안 됩니까
설명해 주지 하지만 누구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비밀이니까 괜
찮은 소식통한테 따낸 정보라구
누구한테 들었는데요
제이크는 어린아이처럼 듣지도 못할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묻지 마
어떻게 버클리 검사가 누스 판사에게 압력을 넣을 수가 있습니
까 버클리는 누스한테 영향력이 없어요 누스는 버클리를 싫어한다
구요 자기 입으로 한 말입니다 오늘 점심 때
나도 알아
근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죠
글쎄 입이나 좀 다물고 있어 그럼 얘기할 테니까
제이크는 맥주캔 하나를 다 비우구 샐리에게 또 하나를 주문했다
자네 버클리 검사가 얼마나 비열한 아부꾼인지 잘 알지
제이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버클리가 얼마나 이 재판에서 이기고 싶어하는지도 잘 알고 있겠
지 그는 이번 재판에서 이겨야만 법무장관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거라고 믿고 있어
주지사예
제이크가 덧붙였다
뭐가 됐든지 간에 그는 야망에 불타고 있어 알아들어
맞아
그는 재판이 클랜턴에서 열릴 수 있도록 누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적인 패거리를 찾았지 그들 중 몇몇이 누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던 모양이야 그들은 누스에게 재판지를 변경하면 다음 선거
에서 끝장이라고 협박을 한 거야 대신 클랜턴에서 재판을 열면 재
선을 도와주겠다고 했지
믿을 수가 없군요
그래 하지만 사실이지
어떻게 알았죠
정보통
누가 누스 판사에게 전화를 걸었을까요
예를 들어볼까 밴 뷰렌 군에서 보안관을 지냈던 암살자를 기억
하나 이름이 모틀리였지 FBI에 잡혔었지만 지금은 자유인이 되어
바깥을 돌아다니지 이 지역에선 유명인사야
예 알아Q
LI내가 들은 사실은 그가 친구들 몇 명을 끌고 누스 판사네로 가서
클랜턴에서 재판하라고 말했다는 거야 물론 버클리가 시킨 거겠지
누스는 뭐라고 그랬대요
LL그들은 서로 좋은 말로 얘기했어 모틀리는 누스에게 다음 선거
에서 밴 뷰렌 군에서는 50표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는군 투표함을
막아 버리든가 흑인들을 괴롭히든가 부재자 투표함에 농간을 부리
든가 하는 선거 방해 공작을 벌이겠다고 협박한 거지 누스는 그들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었고
누스 판사는 왜 그렇게 겁을 먹죠
당연하지 그는 판사 노룻말고는 해먹을 게 없는 늙은이니까 그
사람이 변호사를 해먹겠나 아니야 1년에 6만 달러를 받는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사나 당장에 거리로 쫓겨나고 가족들은 굶어죽을 텐
데 다른 판사들도 사정은 모두 비슷하지 그는 일자리를 지켜야 해
버클리는 그걸 알았던 거고 버클리는 지방의 유지들한테 만약 재판
지를 옮기면 검등이놈이 풀려날 수 있으니 누스에게 압력을 넣어 달
라고 선동을 한 거야 그게 누스가 받는 압력이네
두 사람은 나무의자 속에서 흔들리면서 조용히 술잔만 들이켰다
맥주 맛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다른 것도 있지
勺초 뭐가 있어요
그래
뭔데요
누스는 다른 위협도 받고 있어 정치적인 게 아니라 실질적인 위
협 누스 판사는 지금 죽을까봐 겁을 집어먹고 있어 경찰들이 집 주
위를 감시하고 있는데도 총을 들고 다닌다더군
저도 그 심정은 알아
제이크가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들었어
듣다니 윌요
다이너마이트 어떤 놈 짓이야
제이크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멀뚱멀뚱 루시
엔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보원은 묻지 말게 다 소식통이 있으니까 범인이 누구야丁
아무도 몰라요
프로라는 얘기가 있던데
가르쳐줘서 고맙네
이 집에 와 있어도 돼 방이 다섯 개나 되니까
오지의 순찰차가 사브 뒤에 주차된 시각은 해가 완전히 넘어간 여
턴시 십오분이었다 사브는 여전히 포르세 뒤에 주차되어 있었다 오
지는 현관으로 이르는 층계를 걸어올라왔다 루시엔이 그를 먼저 보
았다
안녕하쇼 보안관
루시엔은 점잖게 말하려고 했지만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예 루시엔 제이크는 어디 있습니까
루시엔은 현관 저쪽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제이크가 흔들의자
위에서 완전히 뻗어 있었다
낮잠을 자고 있소
루시엔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오지는 삐걱거리는 나무를 밟고 현관을 건너가서 태평하게 코를
골고 있는 혼수상태의 변호사 앞에 섰다 그는 제이크의 갈비뼈를 툭
건드렸다 제이크가 눈을 뜨더니 어떻게든 사물을 알아보려고 애를
썼다
칼라가 사무실로 전화해서 자네를 찾았어 걱정이 태산이더군
오후 내내 전화했는데 못 찾았다면서 자네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
니까 죽은 줄 알더라구
제이크는 천천히 흔들리는 의자 속에서 눈을 비벼댔다
죽지 않았다고 좀 전해줘 나를 만나서 얘기까지 나뒀으니까 절
대로 죽지는 않았다교 그리고 내일 내가 전화한다고 전해
싫은데 친子 자네도 이제 어른이니까 자네가 직접 전화해서 얘
기하지 그래
오지는 그 말만 남기고 현관에서 빠져나갔다 기분이 좋은 것 같
지는 않았다
제이크는 간신히 일어서서 집 안으로 비틀비틀 들어갔다
전화 어디 있어요
제이크는 샐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가 전화를 걸고 있을 때 루시엔이 숨 넘어갈 듯 웃어젖히는 소
리가 들렸다
마지막으로 숙취에 시달렸을 때가 6 7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법
대 재학 시절이었고 날짜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쑤시면서 입술은 바짝 타들어갔으며 숨이 몹시 밭았다 충혈된 눈과
이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잃어버린 그날의 기억과 잊을 수 없는 갈
색 맥주의 맛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제이크는 왼쪽 눈을 뜨는 순간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
을 알아차렸다 왼쪽 눈은 그런대로 떠졌는데 오른쪽 눈꺼풀은 서로
단단히 엉겨붙어서 손가락으로 떼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을 지경이었
다 움직일 기력조차 없었다 그는 어두을 방의 소파에 누워 있었다
옷은 입은 그대로였고 신발도 여전히 신은 채였다 머릿속이 쾅쾅 을
렸다 제이크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천장에서 부질없이 돌아가는 선
풍기를 바라보았다 구역질이 올라왔구 베개를 베지 않고 잔 탓에
목덜미도 뻐근했다 신발에 꼭 조인 발은 쥐가 났으며 위는 바로 내
용물을 쏟아낼 것처럼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만 같았다
제이크는 남들처럼 푹 자는 것으로 숙취를 풀지 못했기 때문에 한
번 취하면 고생이 심했다 일단 눈을 뜨고 뇌가 다시 될동하기 시작
하면 관자놀이께가 파르르 떨리면서 통증이 밀려와 잠을 잘 수가 없
었던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법대의 다른 친구들
은 며칠씩 잘도 잤는데 제이크는 아니었다 술잔을 다 비우고 나서
고작 서너 시간 자고 나면 끝이었다
왜일까 술 마신 다음날의 질문은 항상 그렇게 시작됐다 왜 술을
먹는 걸까 차가운 맥주를 먹으면 기분이 상쾌했다 두세 캔까지는
하지만 열 개가 되구 열다섯 개가 되구 스무 개가 되면 셈은 거기
서 끝난다 여섯 개가 넘어가면 그때부터 맥주맛은 사라지고 맥주를
먹는 행위 취하기 위한 몸부림만 남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루시엔의 공이 컸다 루시엔은 어둡기 전에 샐리를 시켜 쿠어스 맥주
를 있는 대로 사오도록 했다 그가 돈을 냈구 제이크는 마음껏 마셨
다 남아 있는 맥주는 몇 개 안 되었다 모두가루시엔의 잘못이었다
제이크는 한 번에 한 발씩 천천히 발을 떼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관자놀이를 부드럽게 비벼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심호홉을 깊
게 했으나 심장은 더 거칠게 뛰었구 피가 머리끝으로 몰리는 느낌이
었다 마치 작은 드릴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았다 혀가 바
싹 말라서 차라리 개처럼 혀를 내밀고 헐떡거리는 것이 나을 정도였
다 물을 마셔야 했다 왜 그랬을까 아 도대체 왜
제이크는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살금살금 부엌으로 갔다 스토브
위에 켜진 희미한 불빛이 어두운 공간을 가르면서 눈으로 파고들었
다 그는 뭔가 볼 수 있도록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제이크는 따뜻한
물을 집어서 반은 입으로 홀려넣고 반은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어차
피 치우는 사람은 샐리니까 상관하지 않았다 시계는 두시 삼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운을 내야 할 시간이었다 제이크는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
심스렵게 거실을 가르며 베개도 없는 소파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현
관에는 빈 병과 구겨진 캔들이 나됩굴고 있었다
제이크는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이나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두통과 속싼림은 조금씩 가라앉았지만 머릿속에서 웅웅대는 소리는
더 심해졌다 법대에 다닐 때는 잠에서 깨면 냉장고로 기어가 맥주를
한 병 더 마시곤 했다 그러고 나면 훨씬 몸이 편해졌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적도 있었다 샤워기 아래 앉아 있는 지금은 그 생각만으로
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는 속옷 바람으로 회의실 긴 탁자에 누워 죽어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보험금은 많을 테니 집은 남을 것이구 새로운 변호사가 자기
일을 이어받을 것이다
재판까지 9일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했다 술 때문에 소중
한 하루를 망친 셈이었다 제이크는 칼라를 생각했다 머릿속이 더
웅웅거렸다 그는 칼라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 내내 루시엔네 집에서
심신장애 변호에 관한 판례를 검토하면서 보냈다고 얘기했다 일찍
전화하려고 했지만 전화기가 고장이 났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혀
는 무거웠구 말은 느릿했다 칼라는 그가 취해 있다는 것을 눈치챘
다 칼라는 화가 났지만 꾹 참는 것 같았다 칼라가 믿을 수 있는 유
일한 사실은 집이 아직 멀정하다는 말뿐이었다
여섯시 삼십분이 되자 칼라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 시간에
나와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던 모양
이다 그러나 칼라의 기분은 좋아지지 않았다 제이크는 억지로 활기
찬 목소리를 가장했지만 1녀의 기분은 끝내 좋아지지 않았다
기분이 어때요
칼라가 물었다
아주 좋아
제이크는 눈을 반쯤 감은 채로 큰 소리로 말했다
몇 시에 잔 거예요
한숨도 못 잤어 제이크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한테 전화하고 나서 바로
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새벽 세시에 사무실에 나왔어
제이크는 자랑삼아 떠들어댔다
세시요
응 잠이 안 와서
당신은 목요일에도 한잠도 못 잤잖아요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따뜻한 정이 느쪄져서 제
이크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괜찮아 이번주하고 다음주에는 루시엔네 집에 며칠 있을
거야 훨씬 안전하니까
경호원은요
거스비트 보안관 대리야 바깥에서 차를 대놓고 자고 있어
칼라는 기분이 좀 풀렸는지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당신이 걱정돼서 그래
따뜻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건너왔다
난 괜찮을 거야 여보 내일 전화할게
제이크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오래도록 게
워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십오분 동안이나 모른 척
했지만 제이크가 사무실에 있는 것을 아는지 그칠 줄을 몰랐다
제이크는 발코니로 가서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십니까
제이크의 고함소리가 거리로 떨어졌다
한 여자가 발코니 아래로 난 옆길에서 BMW에 기대고 서 있었다
빳빳하게 다린 빛 바랜 청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깊이 會러넣은 채
정오의 눈부신 햇살 때문에 여자는 제이크를 제대로 올려다보지 못
했다 햇살은 여인의 붉은 금발에도 쏟아져내렸다
제이크 브리건스 씨세요
그녀가 손으로 햇살을 가리면서 물었다
그렇긴 한데 무슨 일이죠
얘기 좀 하고 싶습니다
나는 바
중요한 일이에요
변호를 의뢰할 건 아니죠
제이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라깽이 아가씨를 훌어보았다 고객
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요 하지만 오분만 시간을 내주세요
제이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을 열었다 그녀는 마치 제집처럼
태연하게 들어오더니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는 엘렌 로아크라고 합니다
제이크는 창 열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만나서 반갑소 여기 앉아요
제이크는 에셀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한 음절이e두 음절이오
무슨 말씀인지
그녀는 빠르게 굴러가는 북동부의 억양을 지녔으나 부분적으로는
남부 지방의 억양도 섞여 있었다
로아크Roark인지 로 아Row Ark인지 묻는 겁니다
로아크예요 보스턴에서는 로아크라고 부르구 미시시피에서는
로 아크라고 부르죠
엘렌이라고 불러도 되겠소
그러세요 저도 제이크라고 불러도 될까요
좋을 대로
좋군오
보스턴 아가씨라고 했소
예 거기서 태어났어요 보스턴 대학을 나왔구요 제 아버지는 의
스턴에서 악명높은 형사사건 변호사죠
들은 적이 없는 것 같군요 미시시피에는 왜 온 거죠
을 미스 법대에 다녀요
을 미스 어떻게 이런 촌구석까지
제 어머니는 나체스에서 태어났고 올 미스를 다니셨죠 그러다가
뉴욕으로 이사를 가서 아버지를 만나셨어요
나도 올 미스 출신의 숙녀와 결혼했죠
잘 고르셨네요
커피 한잔 하겠소
아니e됐어Q
이제 서로에 대해서 대충은 알았으니 용건을 얘기하도록 합시다
클랜턴엔 무슨 일로 왔소
칼 리 헤일리 사건 때문이에요
놀랄 일은 아니군
저는 이번 겨울이면 법대를 졸업하는데 지괌은 옥스퍼드의 여폰
학기를 다니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죠 거스리 효수 밑에서 형사 소송
법을 듣는데 정말 지겨워요
또라이 조지 거스리 말요
기1그 사람 별명은 지금도 또라이죠
난 첫해에 헌법을 배우면서 낙제 점수를 받았소
어쨌든 저는 당신을 돕고 싶어9
제이크는 빙그레 웃으면서 에셀의 뚱뚱한 몸을 감당하는 회전의
자에 앉았다 제이크는 엘렌을 주의깊게 관찰했다 검은색 폴로 셔츠
가 단정한 느낌을 주었다 풍만한 가슴 선이 셔츠 위로 슬쩍 내비쳤
으며 브래지어는 하고 있지 않았다 물결처럼 곱슬거리는 머리칼이
어깨를 덮고 있었다
왜 내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당신이 흔자 일한다는 걸 알구 법률 서기가 없다는 것도 알죠
어떻게
뉴스위크에서 읽었어요
아 그렇군 좋은 신문이죠 특히 사진이 괜찮지 않았소
약간 뽀로통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어9 하지만
실물이 훨씬 낫군
그래 가져온 신임장이라도 있어요
우리 가문은 천재 집안이죠 저는 법학과에서 두 번째로 실력이
좋은 우등생이에요 지난 여름에는 버밍햄에 있는 남부 재소자 변호
인 협회에서 3개월 동안 일하면서 일곱 건의 주요 재판에 참여하기
도 했어요 엘머 웨인 도스가 플로리다의 전기의자에 앉아 죽는 것을
보았구 윌리 레이 애시가 텍사스에서 약물주사로 죽는 것도 봤죠
올 미스에서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 미국자유인권연합의 준비서면을
써주고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스파텐버그에 있는 법률회사에서 두
건의 사형 항소심을 도와주고 있어요
저는 아버지의 법률 사무소에서 많이 배웠어요 운전보다 법률 조
사를 먼저 배웠지요 아버지가 살인 강간 횡령 강탈 테러 청부 살
해 아동 학대 아동 희롱 소년범 존속살해 소년범 들을 변호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자랐죠 고등학교 때는 일주일에 40시간
대학교 때는 일주일에 50시간씩 사무실에서 일을 도우면서9 아버
지 회사에는 변호사가 열여덟 명 있는데 모두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
이죠 그렇게 좋은 법률 훈련소 생활만 저는 14년이에요 이제 제 나
이 스물다섯인데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처럼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어 사형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하리라 마음
먹었어Q
그게 전분가요
우리 아버지는 상당히 부자예요 아일랜드계 카톨릭 집안이기는
하지만 당신이 가진 돈보다는 제가 가진 돈이 더 많을 거예요 그래
서 저는 돈 따위는 필요없어요 3주간 무보수로 일할 작정이죠 필요
한 모든 조사와 타이핑 전화 받는 일도 하겠어요 서류가방도 들어
드릴 수 料入 커피도 끓여드리죠
나랑 동업하자 그럴까봐 겁나는군요
저는 여자구 이곳은 남부예요 저도 제 처지를 잘 알아요
왜 그렇게 이 사건에 관심이 많은 겁니까
저는 법정에 서고 싶어요 형사 재판을 좋아하죠 삶과 죽음이 촌
각에 달려 있구 무거운 공기가 법정 안을 꽉 채우는 큰 재판은 특히
신나9 삼엄한 경비 속에 법정은 방청객들로 꽉 차죠 그들 중 반은
피고인과 그의 변호사를 증오하구 나머지 반은 그가 석방되기를 바
라죠 저는 그런 싸움이 좋아요 재판 중의 재판이라고 할 수 있죠
저는 남부 사람도 아니구 이 사람들의 습속에 당황한 적도 여러 번
있기는 하지만 저도 모르게 어느새 남부를 좋아하게 되었어9 인종
간의 갈등과 반목이 거센 이곳에서 자기 딸을 강간한 백인을 죽인
흑인 아버지를 재판한다 저희 아버지는 공짜로라도 변호를 맡겠다
고 하셨을 거예
아버지더러 그냥 보스턴에 있으라고 전하시Q
이 사건은 모든 변호사들이 꿈꾸는 재판이에요 저는 그 자리에
있고 싶어요 절대로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약속해요 그냥 뒤에서
일하면서 재판을 지켜보게 해주세요
누스 판사는 여자 변호사를 좋아하지 않아
누스 판사뿐 아니라 남부의 모든 법률가들이 다 그렇죠 하지만
저는 변호사가 아니잖아요 단지 법대생일 뿐이니까요
그럼 학생이라고 설명할 기회를 주겠어요
일을 주신다는 얘긴가요
제이크는 말을 멈추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메스꺼운 냄새가 위
에서 식도를 거쳐 입으로 올라왔다 드릴로 쑤시는 것 잘은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당장이라도 화장실로 가야 할 판이었다
그래요 당신은 일을 잡았고 나는 공짜 연구원을 구한 거죠 당
신도 알다식피 이 사건은 아주 복잡한 거요
엘렌이 입을 활짝 벌리면서 웃었다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언제 시작하죠
바로 지금
제이크는 간단하게 사무실을 구경시킨 다음에 위층의 방 중 하나
를 엘렌의 방으로 정해 주었다 두 사람은 헤일리 사건에 대한 서류
를 회의실의 긴 탁자 위에 늘어놓았구 엘렌은 복사하는 데만 한 시
간을 보냈다
두시 삼십분에 제이크는 곤한 낮잠에서 깨어나 아래충 회의실로
내려왔다 엘렌은 서가의 반도 넘는 법률서적들을 꺼내 탁자에 늘어
놓았다 필요한 부분에는 간지를 끼워 표시를 해둔 상태였다 그녀는
메모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왜 쓸만한 서재군
엘렌이 말했다
지난 20년간 한번도 들춰보지 않은 것도 있쇼
알아9 먼지가 많이 쌓였더군
배 고프지 않소
몹시Q
모퉁이에 있는 카페에서 기름에 구운 옥수수를 팔아요 지금 내
뱃속엔 기름기가 좀 필요해서
맛있겠는데
두 사람은 광장을 가로질러 클로드네 가게로 갔다 토요일 오후라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백인이라고는 그들 두 사람밖에 없었다
클로드가 자리를 비운 탓에 가게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제이
크는 치즈버거와 양파를 시키고 두통약도 조금 달라고 했다
머리가 아프신가요
엘렌이 물었다
그래요 굉장히
스트레스 때문에요
술 때문이오
술 때문이라고요 금주하시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었죠
뉴스위크에서요 당신은 아주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독
실한 기독교 신자에 열심히 일하구 술 같은 건 입에 대지도 않으며
싸구려 시가만 태우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던데요 기억나세요 잊어
버릴 내용은 아닐 텐데요
거기 적힌 게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 겁니까
그렇진 않아
어제 사정없이 취해서 오늘 아침 내내 토했소
신참 법률 서기는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였다
윌 마셨는데요
기억이 안 나요 법대 졸업한 뒤로 이렇게 많이 마시긴 처음이요
이게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소 기억력이 안 좋아서 숙취로 고생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금세 까먹거든
띤호사들은 왜 그렇게 폭음을 하는 거죠
다 법대에서 배우는 거죠 아버지도 술을 많이 하시나요
농담하시는 거예요 저희 아버지는 카톨릭 신자예요 아주 신중
하시죠
당신은
물론 저야 매일 마시죠
엘렌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좋은 변호사가 되겠군
제이크는 두통약 세 봉지를 얼음물에 타 잘 저은 다음 천천히 삼
켰까 얼굴을 찡그리면서 입가를 닦아내는 제이크를 엘렌은 즐거운
듯 빙그레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부인께선 뭐라시던가요
뭐에 대해서 말이오
그렇게 독실하고 가정적인 남자가 숙취에 시달리는 것에 대해서

아내는 모르고 있소 어제 아침에 떠났거든요
죄송해요 괜히 물어봤네요
재판이 끝날 때까지 친정에 가 있을 거요 우리는 지난 두 달 동
안 익명의 협박전화에 시달렸소 죽음의 위협도 받았죠 그런데 어제
새벽엔 드디어 침실 창문 바로 아래에 다이너마이트가 설치되었소
다행히 경찰이 제때 알아내서 범인은 체포했지많 까딱했다간 개죽
음 당할 뻔했죠 KKK단 짓인 것 같았소 우리 집을 날려 보내고 가
족을 몰살시키고도 남을 만큼 많은 다이너마이트였죠 술 먹기엔 좋
은 핑겟거리였지
그런 일을 당하시다니 안됐어요
당신이 지금 하겠다고 나선 일은 매우 위험한 거요 그점을 명심
하도록 해Q
저도 그런 협박을 받은 적이 있어요 우리는 지난 여름 앨라배마
의 도선 지방에서 여든 살 먹은 할머니를 강간한 뒤 목폴라 죽인 십
대 흑인소년 두 명을 변호했었어9 앨라배마 주에 등록된 어떤 변호
사도 사건을 맡지 않으려고 해서 우리 변호인 협회가 나섰죠 우리
는 검은 말을 타고 마을에 들어섰는데 우리를 보자마자 길모퉁이에
서 성난 군중들이 달려들었어요 내 생전에 그렇게 미움을 받아 보기
는 처음이었어9 우리는 옆 마을에 있는 모텔에 몸을 숨기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죠 그날 모텔 라운지에서 두 사람이 나를 납치하려고도
했어9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소
다행히 주머니에 38구경 권총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 눈에도 내
가 총을 쏠 수 있어 보였나봐요
구경이라고
열다섯 살 생일에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거예요 면허도 있어요
대단한 아버지를 두셨군
아버지도 여러 번 총에 맞았어요 신문에서 시끌벅적하게 떠들어
대곤 모든 사람들이 변호사고 재판이고 다 필요없이 범인을 사형시
키라고 요구하는 어려운 사건들만 골라 맡으셨거든요 아버지는 그
런 사건들을 가장 좋아하셨죠 그래서 아버지 곁에는 24시간 내내
경호원이 붙어다녀요
나도 경호원이 있소 네스비트라는 보안관 대리인데 헛간도 못
맞힐 위인이죠 어제부터 나를 보호하고 있어요
음식이 나왔다 엘렌은 클로드네 햄버거에서 양파와 토마토를 끄
집어 내고 제이크에게 감자튀김을 밀어주었다 그녀는 햅버거를 반
으로 쪼개서 가장자리부터 새처럼 갉아먹기 시작했다뜨거운 기름
이 접시 위로 뚝뚝 떨어졌다 엘렌은 한 입 베어 먹을 때마다 입가를
훔쳤다
엘렌의 얼굴은 편안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자연스러운 그
미소가 미국자유인권협회나 남녀평등주의 노브라 투쟁 같은 것을
숨겨주었으나 제이크는 그녀의 얼굴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가 있
었다 화장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그리 아름답지도 귀엽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머리칼은 붉고 낯빛은 창백했지만 작고 뽀족한 코
주위에 예닐곱 개의 주근깨가 나 있는 피부는 무척 건강해 보였다
한번 웃을 때마다 입술이 활짝 열리면서 뺨에 보조개가 패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의 미소에는 자신감이 넝쳤
구 뭔가에 도전하려는 기운과 신비한 일면이 있었다 금속성의 초록
눈동자는 고집스러워 보였고 말할 때는 상대에게서 초점을 떼는 댑
이 없었다
굉장히 지적인 얼굴이었구 또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제이크는 엘렌의 눈길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면서 햄버거를 씹었다
든든한 음식이 뱃속에 차곡차곡 쌓여가자 열 시간 만에 처음으로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왜 올 미스를 택했소
좋은 법과 대학이죠
나도 물론 거기를 나왔소 하지만 북부 출신의 똑똑한 학생들에
겐 별로 인기가 없는 학교죠 거기는 아이비 리그 지역이니까 우리
도 똑똑하고 유망한 아이들은 아이비 리그로 보내죠
아버지는 아이비 리그 출신의 변호사들을 싫어하세9 몹시 가난
했기 때문에 스스로 학비를 벌어 법대를 나오셨죠 아버지는 부잣집
에서 태어나 좋은 곳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실력은 형편없는 변호사
들한테 무시를 당했구 그것을 견뎌야 했죠 지금은 그들을 비운고
계세요 아버지는 제게 어디든 가도 좋지만 만약 아이비 리그에 간다
면 학비를 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죠 엄마의 영향도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남부 얘기를 옛날이야기처럼 듣고 자랐으니까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남부의 주에는 여전히 사형 제도가
남아 있잖아요 저는 그것을 끝장내야겠다고 다짐했죠
왜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겁니까
그럼 당신은 반대하지 않는단 말인가요
전혀 나는 오히려 지지하는 쪽이오
이런 형사사건 변호사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나는 법원 앞 잔디밭에서 교수형을 행하던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
겠소
농담하시는 거죠 그러길 빌겠어
진담이e
엘렌은 먹던 것을 멈추고는 미소를 지었다 두 눈은 마치 활활 불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심각하군요
매우 심각하오 사형 제도의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효과적으로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쇼
헤일리 씨한테 그 얘기를 했나요
칼 리는 사형을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오 그러나 그 강간범들은
사형을 받아 마땅한 놈들이었소
누가 사형감이고 누가 사형감이 아닌가를 윌로 구분하죠
간단해요 범죄와 죄인을 보면 알 수 있소 마약단속반을 쏴죽인
마약 밀매자는 사형감이요 세 살짜리 아이를 강간하고 진흙 속에 머
리를 처박았다가 다리 아래로 그 어린 것을 떨어뜨린 깡패라면 하나
님의 이름으로 사형에 처해야 하오 탈주범이 한밤중에 어떤 농장에
들어가서 노부부를 때려 기절시킨 뒤 집까지 몽땅 태워 버렸다면 당
신은 그를 전기의자에 앉혀서 철사로 몸을 꽁꽁 묶은 뒤 명복을 빌
면서 스위치를 내려야 할 거요 그리고 마약에 취해 열 살난소녀를
강간하고 뽀족한 카우보이 구두로 턱이 쪼개져 나갈 때까지 걷어찬
악당이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마음으로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감사
하면서 그들을 가스실에 가둬놓고 비명소리를 들어야 할 거9 아주
간단한 원칙이요
야만적이군요
야만적인 것은 사형이 아니라 범죄요 죽음도 그들에겐 과분한
처사요 너무 과분하지
만약 헤일리 씨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져 죽게 된다면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10년 동
안 항소를 반복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법적인 수단을 모두 동원할
거요 그래도 그가 결국 전기의자에 앉혀진다면 나는 교도소 밖에서
당신과 교회 신도들과 수백 명의 다른 선한 영흔들과 함에 촛불을
켜들고 찬송가를 부르면서 시위를 할 거요 그리고 나서 교회 뒤편에
있는 그의 무덤가에 서서 그의 미망인과 아이들과 함께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를 할 거9
사형 장면을 본 적 있어요
없소
저는 두 번 봤어요 한번이라도 보시면 마음이 변하실 거예요
그렇다면 나는 보지 않겠소
너무 끔찍했어
피해자 가족들도 참석했소
예 두 번 다9
그들이 겁을 먹는 것 같았소 그들의 마음이 변한 것 같았소 물
론 아닐 거요 악몽이 끝나는 순간이니까
놀랍군9
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소 왜 사형을 받지 못해
서 안달인 인간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그렇게 열심인 거요 그들은
죽음을 자초한 자들이오 법에 따라 그들은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하
는 사람들이란 말이오
LI어떤 법을 말하는 거죠 매사추세츠 법은 그렇지 않아9
U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그곳도 맥거번이 사형폐지 법안을 통과시
킨 1972년에야 처음으로 사형이 사라진 주가 된 거요 그전에는 다
른 주하고 똑같았소
두 사람은 논쟁을 하느라 햄버거를 내려놓온 채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제이크는 따가운 눈총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
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엘렌은 미소를 지으면서 양파링을 집어
들었다
인권협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죠
엘렌이 양파링을 씹으며 물었다
당신 주머니에 회원증이 들어 있을 것 같은데
그래EL
그럼 해고요
저는 열여섯 살 때 가입했어요
U왜 그렇게 늦게 가입했소 걸 스카우트에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
었던 모양이군
LL도대체 제이크 씨는 권리 장전미국 연방정부가 국민의 기본적 인
권을 보장하고자 북미합중국 헌법에 덧붙인 열 개 조항의 법률옳긴이
을 존중하지 않나요
LL물론 존중하요 그러나 그것을 아무겋게나 해석하려는 판사들은
질색이p
두 사람은 서로를 조심스럽게 쳐다보면서 묵묵히 식사를 끝냈다
제이크는 커피와 두통약을 더 주문했다
우리가 이 재판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은 뭐죠
엘렌이 물었다
우리
아직까진 제 일이기도 해요 그렇죠
좋소 내가 보스고 당신은 서기라는 것만 기억합시다
알았어s보스 전략이 뭐죠
당신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제가 모은 자료에 의하면 우리 의뢰인은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
지른 게 틀림없어요 강간이 있은 지 엿새 후에 잔인하게 살해를 했
으니까 자기가 저지른 행위를 다 알고 있었다고 봐야죠
그렇소
그러니까 변호할 방법은 없어요 유죄는 인정하되 무기징역으로
형을 끌어내리는 게 좋겠어요
당신 진짜 싸움꾼이군
농담이에요 심신장애가 우리의 유일한 변호가 될 수 있지만 증
명하기가 어려을 것 같군요
맥노튼 규칙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군요
정신과 의사는 준비됐나요
대충 그는 우리가 말하라는 건 뭐든지 말할 사람이오 재판할 때
취해 있지만 않는다면 당신이 할 일 중에 또 하나 중요한 일은 그
의사가 재판 때 멀정한 상태로 나을 수 있도록 감시하는 거요 쉽지
않을 거요
법정에서 받는 새로운 도전이군요
雪九 엘렌 펜을 들어요 당신의 보스가 명령을 내리겠소
엘렌은 냅킨에다 제이크의 말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지난 50년 동안 미시시피 대법원에서 맥노튼 규칙에 따라 내려
진 판결을 요약해 주시오 백 개쯤 될 거요 그중에 가장 유명한 건
1976년에 있었던 힐 사건이오 그때는 배심원들이 5대 4로 갈렸소
반대자들은 심신장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자는 정의를 내세웠소 20
페이지 이내로 준비서면을 제출해 주시오 타이프 칠 줄은 압니까
rl분에 90타 정도 치죠
수요일까지 다 했으면 좋겠소
될 겁니다
그리고 이건 증거물에 대한 얘긴데 총격 피해자의 모습을 담은
끔찍한 사진이 있소 누스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그걸 보여주려고 하
겠지만 나는 가능하면 안 보여주고 싶쇼 방법이 있는지 좀 찾아보
lgl
쉽지 않겠는데요
강간사건은 우리 변호 전략에서 아주 중요해요 나는 배심원들이
세세한 부분까지 알았으면 해요 그래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요 나
한테 도움이 될 만한 사건이 두세 개 정도 있으니 가져가시오 우리
는 누스에게 이번 총격사건이 강간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다른 지시사항은 없습니까
그 다음은 나도 잘 모르겠소 머리가 다시 돌아가면 생각이 더
날 거Q
월요일 아침에 보고드릴까요
좋소 하지만 아흡시 넘어서 오시오 그때까지는 혼자 있고 싶으
니까
복장은 어떻게 할까요
그 정도면 괜찮소
청바지에다 양말도 안 신었는데요
나는 직원이 한 명 더 있소 에셀이라는 여비선데 올해로 예순넷
이고 굉장한 거구요 고맙게도 그녀는 브래지어를 하고 다녀요 브
래지어 정도쯤 하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소
생각해 보겠어요
나는 정신이 산란해지는 건 싫소
7월 15일 월요일 재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클랜턴에서 재
판이 열리게 된다는 소문이 확 퍼졌고 클랜턴은 재판 준비로 들썩거
렸다 모텔 세 곳은 예약을 확인하려는 기자들의 전화로 불이 날 지
경이었고 커피숍들도 이런저런 설레임으로 시끌벅적했다 보수업자
들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떼거리로 몰려와서는 법원의 페인트 칠을
다시 하고 광을 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지 보안관도 나름대로 교도
소의 정원 담당 죄수들을 내보내 잔디를 깎게 하고 잡초를 뽑게 했
다 베트남 창전비 아래 모인 노인네들은 조심스럽게 풀을 뽑으면서
이런 부산함을 즐기고 있었다 청소를 관장하고 있는 모범수는 길가
에 침을 뱉지 말고 잔디에다 뱉으라고 부탁을 했다 아침 아흡시부터
스프링클러 열두 개가 물을 뿜었구 버뮤다 잔디에 비료를 주는 일손
도 더없이 바빴다
아침 열시가 되자 기온은 이미 30도를 넘어섰다 광장 주위의 가
게들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선풍기를 열심히 돌려대면서 꽉 찬 습
기와 열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상인들은 멤피스와 잭슨 시카고에까
지 전화를 걸어 다음주까지 싼 가격에 냉방 기구를 공급해 줄 수 없
겠느냐고 물었다
누스 판사는 지난 금요일에 순회법원의 서기인 진 길레스피에게
전화를 걸어 클랜된에서 재판이 열리게 되었다고 통보하면서 150명
의 예비 배심원 명단을 뽑아놓으라고 일렀다 예비 배심원 수를 늘려
달라는 변호인측 요청을 누스가 받아들인 것이다 진과 두 명의 부서
기들은 선거인 명부를 보고 무작위로 150명의 이름을 뽑아내는 데
토요일 하루를 꼬박 날렸斗
누스의 지시에 따라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자동적으로 제외되었
다 1차로 천 명이 선택되었다 그들은 각각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작은 색인을 만들어 판자로 된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부서기들이 카
드를 번갈아가며 뽑았다 서기 중 하나는 백인이었구 다른 하나는
흑인이었다 그들은 각자 눈을 가린 채 상자에서 카드를 뽑아 다른
카드와 함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해서 150명의 명단이 타
이핑되어 나왔다 그들이 바로 헤일리 사건의 배심원으로 지명될 후
보들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누스 판사의 용의주도한 지시 아래 이루
어졌다 누스는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도 잘 아는 판사였다 만약 배
심원 전원이 백인으로 선정되어 유죄판결과 함쩨 사형선고가 내려진
다면 배심원 선정 과정의 모든 것이 항소의 구실이 될 게 뻔했다 전
에도 한번 이런 일 때문에 판결이 취소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
럴 수가 없었다
최종 선출된 배심원들의 이름과 주소를 적은 소환장이 작성되었
다 그 소환장들은 윌요일 아침 여덟시 오지 보안관이 도착할 때까
지 진의 사무실에 철통같이 보관되었다 오지는 커피를 마시면서 진
에게 누스 판사의 지시사항을 들었다
판사님이 오늘 오후 네시에서 자정 사이에 이걸 다 배달해 주셨
으면 하던데Q
알겠습니다
소환장을 받은 사람은 다음주 월요일 오전 아홉시까지 법원에 신
고를 해야 돼요
그러죠
소환장에는 이름이나 재판의 성격에 대한 내용이 없으니까 보안
관님께서도 어떤 사건에 대한 소환인지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도 다 알 겁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누스 판사님은 철저하게 지시를 내리셨어요
소환장을 전달할 때 어떠한 얘기도 해선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수요일까지는 소환장을 받은 사람의 명단이 공개되어서는 안 돼요
이유는 묻지 마세요 누스 판사님 명령이니까요
오지는 소환장 뭉치를 슬슬 넘겼다
이게 다 몇 장이죠
150장이에Q
150장 왜 이렇게 많습니까
중요한 사건이니까요 그것도 누스 판사님의 명령이에요
이거 다 돌리자면 고생 좀 하겠군
미안해9
괜찮습니다 판사가 원한다면 해야죠
오지가 떠나고 나자 곧바로 제이크가 들어왔다 그는 다른 비서들
과 얘기를 나누다가 진을 보자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진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진은 책상 쪽으로 물러서면서 제이크
를 쳐다보았다 제이크는 씨익 하고 웃을 뿐이었다
왜 왔는지 알아9 하지만 안 돼
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진 명단을 줘요
수요일까지는 안 됩니다 누스 판사의 명령이에요
수요일 왜 수요일이죠
몰라요 누스 판사가 못을 박았어요
진 그러지 말고 명단을 줘요
제이그럴 수 없어요 나한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해요
아무도 모르게 할 거니까 당신한테 문제될 건 없어요 내가 얼마
나 비밀을 잘 지키는지 잘 알잖아요
제이크의 얼굴에선 이미 미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진 그 명단 좀 달라니까
안 돼요 제이크
나는 그게 필요해요 수요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하다구요
바로 일을 시작해야 해
하지만 버클리에게는 공평치 못한 일이에요
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버클리 지옥에나 가라지 당신은 그가 공정하게 숭부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뱀처럼 사악한 놈이에요 당신도 나만큼 그 자식을
싫어하잖아요
당신보다 더 싫어할 거예요
그러니까 명단을 달란 말입니다
이봐요 제이크 우리는 늘 가까운 사이였죠 나는 내가 아는 어떤
변호사보다도 당신과 친하다고 생각해요 내 아들한테 문제가 생겼
을 때도 당신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그렇죠 나는 당신을 믿구 당신
이 재판에서 이기길 원해요 하지만 판사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어

지난번에 당신이 당선될 수 있게 도와준 게 버클리요 나요
제이이러지 말아9
당신 아들을 감옥에서 꺼내준 사람은요
제발 제이크
당신 아들을 감옥에 처넣으려고 한 게 나B버클리요
공평하지 못해요
교회의 회계장부에 문제가 생겨 모든 사람이 당신 남편을 내몰려
고 했을 때 그의 편을 들어준 사랑이 누구였죠
이건 신의信認의 문제가 아니에요 제이크 나는 당신과 칼라
한나를 다 사랑하지만 그래도 할 수 없어요
제이크는 문을 쾅 닫고는 법원을 빠져나갔다 진은 의자에 앉아
두 빤에 궁프늑 누물으 다아텐다
아침 열시가 되자 해리 렉스가 제이크의 사무실로 어슬렁거리며
들어오더니 배심원 명부의 복사본을 책상 위에 툭 던졌다
아무것도 묻지 마
해리 렉스는 각 배심원의 이름 옆에 모르는 사람임 나의 의뢰
인이었음흑인을 싫어힘 신발 공장에 다니구 동정심이 많뜸
따위의 신상 정보를 일일이 달아놓았다
제이크는 이름을 하나하나 훌으면서 얼굴과 평판을 알아내려고
갖은 애를 썼다 명부에는 오직 이름만 있었다 주소도 나이도 직업
도 아무것도 없고 오직 이름뿐이었다 4학년 때 담임 선생님 이름도
있었고 가든 클럽의 회원인 어머니의 친구분도 한 분 있었다 도둑
질로 잡혀들어갔던 그의 의뢰인의 이름도 보였다 그외에도 같은 교
회에 다니는 신도와 커피숍의 단골손님 서명한 농장주 등이 끼여 있
었는데 대부분의 후보가 백인이었다 윌리 매 존스나 레로이 워싱
턴 루즈벨트터커 베시 로 빈 같은흑인 이름도 몇 개 눈에 띄었지
만 명단은 지독하게 하얗다고 봐야 했다 제이크가 알고 있는 이름
은 겨우 서른 명 정도였다
어떻게 생각해
해리 렉스가 물었다
글쎄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 대부분이 백인인 것 같은테
뭐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니까 근데 이건 어디서 구한 거야런
그건 묻지 말라니까 내가 아는 사람은 스물여섯 명이야 나머지
는 나도 몰라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야
고맙네 해리
그래 난 좋은 놈이지 재판 준비는 다 된 건가
아직 하지만 비밀무기를 하나 찾았지

좀 있다가 그 여자를 만나게 해주겠네
그 여자라니
그래 수요일 저녁에 바쁜가
안 바쁠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좋아 그럼 여덟시에 내 사무실에서 만나자구 루시엔도 올 거야
한두 사람 더 낄지도 모르고 두 시간 정도 배심원에 대해서 얘기했
으면 좋겠네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누군지 가장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서 거기서부터 시작해 보기로 하자구 여기 있는 이름을 전부
조사해서 자세한 사항을 알아내야겠어
재밌겠군 오도록 하지 어떤 사람이 이상적인 배심원 모델이라
고 생각하나
아직은 잘 모르겠네 촌스러운 백인 농부들은 자경단원에게 동정
적이지 총과 폭력 여자를 보호하는 것 따위를 좋아한다구 그러나
내 의뢰인은 흑인이야 그들은 아마 그를 기름에 튀기러 들 거야 칼
리가 살해한 두 놈은 바로 그들 자신이니까
맞아 나도 동의해 나는 여자도 피했으면 좋겠어 여자들은 강간
범에겐 일말의 동정심도 갖지 않지만 사람의 목숨에 더 많은 가치를
두니까 M16을 들고 나와 대갈통을 날려 버리는 짓 따위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걸세 자네나 나 같은 사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린 같은 아버지니까 폭력과 피가 우리를 괴롭히지는 않아 우리는
오하려 그를 존경하지 자네는 그런 식으로 통할 수 있는 배심원을
골라야 해 먹물을 좀 먹은 젊은 아버지들을 말이야
그거 재미있는 발상이군 루시엔은 동정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여
자 배심원을 더 좋아하는데
내 생각은 달라 배심원으로 쁩아주지 않으면 자네 목을 자르려
고 들 여자들을 몇 알고 있지
누구 자네 고객인가
응 한 사람이 명부에 올랐더라구 프랜시스 버딘 그 여자를 뽑
아 내가 어떻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 말해 놓을 테니까
자네 진심인가
그럼 내 말이라면 뭐든지 다 듣는 여자야
월요일에 법정에 와줄 수 있겠나 배심원을 뽑을 때 자네가 좀
지켜봐줬으면 하는데
걱정 마 갈 테니까
아래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자 제이크는 재빨리 손가락을 입에
갖다댔다 제이크는 그 소리를 듣더니 미소를 지으며 해리 렉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은 층계 끝으로 살금살금 걸어가
에셀의 책상 주위에서 벌어지는 소란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은 분명히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에셀의 목소리였다
여기서 일한다니까9 토요일에 제이크 브리건스 씨가 저를 고용
했어9 브리건스 씨가 당신의 상관 맞죠
당신을 왜 고용했죠
에셀이 다시 물었다
법률 서기로요
나한테는 아무 말씀 없으셨어
나한테는 얘기하셨어요 일자리를 줬다구요
얼마 받기로 했죠
시간당 백 달러Q
오 맙소사 브리건스 씨를 먼저 봐야 되겠군
벌써 다 얘기가 된 거예오 에셀
당신한테는 에셀이 아니구 트위티 부인이에요
에셀은 엘렌을 위아래로 천천히 훌었다 바랜 청바지에 양말도 안
신은데다 슬리퍼까지 질질 끌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포대기를 걸쳐
입은 것 같은 차림에 속옷도 안 입고 있었다
당신 복장은 이 사무실에 어울리지 않는 것 칼군요 너무 단정치
못해
해리 렉스는 눈셉을 치켜올리면서 제이크를 보았다 둘은 키득거
리며 아래충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즐기고 있었다
당신 상관께서 이젠 제 상관이기도 하죠 이렇게 입어도 된다고
그랬어요
그래도 틀림없이 빼먹은 게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제이크 씨가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그가 그러던데 당신은
20년 동안 브래지어를 한번도 안 차고 다녔다면서요 즐랜턴 아줌마
들은 대개 안 하고 다닌다기에 나도 집에다 벗어두고 온 것뿐이에
그가 뭐라 그랬다구요
에셀은 소리를 꽥 지르면서 양팔로 가슴을 감쌌다
위에 계시나요
엘렌이 쌀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요 내가 불러드리지요
아니 됐어요 내가 올라가 보겠어요
제이크와 해리 렉스는 얼른 사무실로 돌아가 새로운 법률 서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커다란 서류가방을 들고 들어섰다
잘 있었소 로 아크 小 여기는 내 친한 친구친 해리 렉스요
제이크는 고개를 까닥이고 나서 엘렌에게 해리 렉스를 소개했다
해리 렉스는 악수를 나누면서 엘렌의 셔츠에 눈길을 고정시켰다
반갑습니다 이름이 뭐죠
엘렌이에9
로 아크 얄이라고 불러 재판이 끝날 때까지 법률 서기를 맡아볼
거네
제이크가 말했다
좋은 소식 이군
해리 렉스가 말했다 눈은 여전히 셔츠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해리 렉스는 클랜턴의 변호사구 당신 같은 사람이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인간 중 하나죠
그럼 제이크 자네는 왜 여자 법률 서기를 고용했나
해리 렉스는 불퉁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로 아크 양은 형사사건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 대부분의 법
대 3년생들처럼 게다가 임금도 싸고
여성혐오증이라도 있나요
엘렌이 해리 렉스를 공격하고 나섰다
아닙니다 나도 여자를 좋아하죠 그러니까 결혼을 네 번이나 했
It
해리 렉스는 아주 교활한 이혼 전문 변호사죠 내가 아는 가장 교
활한 인간일 거Q
칭찬해 줘서 고맙군
해리 렉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엘렌에게서 시선을 거둬들였다 이
번에는 엘렌이 해리 렉스를 살펴볼 차례였다 그녀는 제일 먼저 해리
렉스의 커다란 발을 쳐다보았다 신발은 더러웠고 헤진 나일론 양말
은 축 늘어져 발목 주위에 뭉쳐 있었으며 먼지가 잔뜩 묻은 바지는
쭈글쭈글한데다 그 위에 받쳐입은 상의도 다 닳아빠진 것이었다 반
짝거리는 분홍색 넥타이가 혁대에서 20센티 정도 올라간 곳에 붙어
있었다
빈틈없어 보이시네요
엘렌이 말했다
당신을 다섯 번째 부인으로 등록시켜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해리가 대답했다
전 육체적인 매력밖엔 없어요
엘렌이 웅수했다
잠간 루시엔이 떠난 뒤로는 이 사무실에서 섹스에 관계된 말을
한 적이 없쇼
제이크가 두 사람의 눈싸움에 끼여들면서 말했다
루시엔이 많은 걸 가져가 버렸지
해리 렉스가 말했다
루시엔이 누구죠
제이크와 해리 렉스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곧 만나게 될 거
제이크가 대답했다
비서가 매우 친절하던데요
아래층에서 두 사람이 소동을 부린 것 다 알고 있소 에셀도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요
언제쯤 그걸 알 수 있죠
난 그 여자랑 알고 지낸 지 한 20년 되는데 아직도 기다리는 중
OJIt
해리 렉스가 끼여들었다
조사는 어떻게 돼갑니까
제이크가 물었다
느려요 맥노튼 관련 사건이 몇십 개나 되는데다 모두 기록된 양
이 엄청나요 이제 겨우 반 했어요 아래층의 비서만 날 건드리지 않
는다면 오늘 여기서 하루 종일 일할 생각이에요
그녀는 내가 알아서 하겠소
제이크가 얘기했다
해리 렉스가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로 아크 양 다음에 또 봅시다
고맙네 해리 수요일 밤에 보자구
제이크가 말했다
날이 저문 뒤 제이크가 탱크네 술집으로 찾아갔을 때는 자갈 깔린
더러운 술집 주차장이 이미 꽉 들어차 있었다 전에는 탱크네 술집에
들릴 이유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방문해야 하는 두려움 따위를 느
긴 적도 없었다 탱크네 술집은 클랜턴에서 10킬로 정도 떨어진 비
포장도로 옆에 교묘하게 숨어 있었다 제이크는 작은 벽돌 건물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는 탱크가 이곳에 없을 경
우 재빨리 도망갈 것에 대비해 시동을 끄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동차를 도둑맞을 위험이 있었
던 것이다 이 소중한 차는 훔쳐갈 가능성이 더 높았다 제이크는 문
을 단단히 잠그고 도난 경보기까지 작동시켜 놓았다
열려진 창문 사이로 자동 전축 소리가 들려왔다 병이 깨지는 소
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바닥이 아니라 어떤 놈 머리에 부딪
쳐 깨지는 건지도 몰랐다 제이크는 차 옆에 선 채 그냥 돌아갈까 어
쩔까 망설였다 그러나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제이크는 심호흡
을 가다듬고 나무문을 슬쩍 열었다
몇십 개의 검은 눈동자가 일제히 제이크에게 쏠렸다 그들은 코트
에 넥타이까지 걸친 백인이 어두운 실내에 적응하기 위해 눈을 찡그
리는 것을 꼴같잖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제이크는 필사적으로
친구의 얼굴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순간 자동 전축에서
나오던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멈추더니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침묵
이 흘렀다 제이크는 문가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는 웃음을 홀리
고 고개를 까닥거려 보이며 마치 갱단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무도 운지 않았다 갑자기 바 주위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제이크의
무릎이 떨리기 시작했다
제이크
누군가가 제이크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가 들은 말 중에서 가장
반가운 단어였다 바 저쪽에서 그의 친구 탱크가 앞치마를 벗으며 걸
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제이크와 악수를 나뒀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야小
잠깐만 얘기하고 싶은데 나가지
뭔데
라업 얘기
탱크는 문 옆의 스위치를 켜면서 말했다
여기를 좀 봐주세요 이 사람이 칼 리 혜일리의 변호사인 제이크
브리건스 씹니다 우리의 좋은 친구죠
작은 실내는 갑자기 박수 소리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바에 있
던 몇몇은 제이크를 붙들고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덩달아 신이 난
탱크는 바 아래 서랍에서 제이크의 명함을 꺼내 사탕을 나눠주듯이
죽 돌렸다 제이크는 한숨을 돌렸다 이제 혈색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탱크의 캐딜락 옆에 기대고 섰다 라이오
넬 리치의 노래가 창문을 통해 흘러나왔구 들떴던 손님들은 평정을
리 會心가고 있었다 제이크는 탱크에게 배심원 명부를 건네주었다
여기 이름들을 잘 봐줘 아는 이름이 있나 확인해 보고 사람들한
테 물어봐서 알 수 있는 데까지 좀 알아봐줘
탱크는 명단을 받아들고 눈앞에 바짝 댔다 창문에 달려 있는 미
셀롭 간판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그의 어깨를 비췄다
흑인이 몇 명이야민
그걸 모르니까 자네한테 부탁하지 손님들한페 보여줘 확실치
않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백인은 따로 표시해
기꺼이 하지 그런데 이거 불법은 아닌가삣
아니야 하지만 아무한테도 얘기하진 마 수요일 아침까지 줬으
면 좋겠어
걱정 마 자넨 역시 보스야
마지막 명단을 탱크에게 돌리고 제이크는 곧바로 사무실로 향했
다 열 장을 돌렸다 에셀이 해리 렉스가 준 명단의 사본을 열두 장
만들었곤 제이크는 믿을 만한 친구들한테 그것들을 직접 건네주었
다 루시엔 스탠 앳캐비지 탱커피숍의 델 캐러웨이의 변호사인
롤랜드 아이솜과 그밖의 사람들 그리고 오지에게까지
탱크네 술집에서 5킬로도 안 떨어진 곳에는 에셀과 버드 트위러가
40년 넘게 살아온 아담한 시골집이 있었다 하얀 페인트 칠을 한 이
집의 역사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곳에서 두 부부는 아이
들을 키워서 북부로 보냈다 발육이 늦은 루시엔을 빼닮은 아들 하
나만 이런저런 이유로 마이애미에서 살고 있었다 이 집은 요즘 들어
서 부쩍 더 조용해졌다 버드는 75년에 뇌일혈을 일으킨 뒤로는 일
을 그만두었다 그뒤로도 두 번이나 심각한 뇌일혈이 있었구 뇌일혈
이후에는 심장발작 증세까지 나타났다 버드의 목숨은 얼마 남지 않
았다 버드는 오래 전부터 어느날 갑자기 천등 같은 발작을 일으켜
현관 앞 리마콩 나무 아래 쓰러져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먼다 그것
이 그의 소원이었다
월요일 밤 에셀이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버드는 현관의 리
마콩 나무 아래 앉아 카디널스의 야구경기를 듣고 있었다 8회말 투
아웃이 진행되고 있을 때 버드는 집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을 느꼈다 그는 라디오 소리를 죽였다 개 소리 같았다 그런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버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 끝으로 슬슬 걸어가 무
슨 소린지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관목 사이에서 검은색 위장
복을 입은 괴한이 뛰쳐나오더니 버드를 잡아 현관 아래로 던져 버렸
다 버드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지만 부엌까지는 닿지 않았다 두
번째 괴한이 튀어나와 버드를 질질 끌고 현관 앞 계단으로 갔다 한
놈은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고 다른 놈은 배를 걷어차고 피가 나
도록 얼굴을 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드는 의식을 잃먼다
에셀은 이상한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달려나왔다 그녀는 세 번째
괴한에게 잡혔다 범인은 에셀의 곽을 뒤로 비틀고는 커다란 팔목으
로 목을 조였다 그녀는 비명을 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에셀
은 그렇게 꼼짝없이 서서 남편이 자신의 발 밑에서 다른 두 놈에게
린치당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3미터쯤 떨어진 곳에서는 세 사
람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빨간 장식이 달린 하얀 옷
을 입고 있었다 얼굴엔 빨간색과 하얀색이 뒤섞인 커다랗고 긴 두건
을 쓰고 있었구 옷은 땅에 닿을 것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들은
마치 예수를 알현하려 온 동방박사처럼 어둠 속에서 처형당하는 버
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고통의 비명이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구 때리는 손발짓도 흥미를
잃어갈 때쯤 하얀 옷의 괴한 중 하나가 그만하라고 말했다 검은 옷
을 입은 세 명은 재빨리 도망가기 시작했다 에셀은 계단을 뛰어내려
와 만신창이가 된 남편의 몸뚱어리를 감쌌다 횐옷을 입은 세 명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자정이 넘어서 제이크는 병원을 빠져나왔다 버드는 아직 숨이 붙
어 있었지만 회생할 가망이 없었다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심장발작
을 일으킨 것이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에셀은 이 모든 잘못을 제이
크에게 돌렸다
당신이 아무 일 없을 거라고 했잖아요 모든 게 당신 탓이라고
남편에게 말해요
에셀이 소리를 질렀다
제이크는 잠자코 에셀의 원망과 한숨을 듣고 있었다 당혹감은 점
점 분노로 달아올랐다 대기실에 앉아 있던 친구들과 친척들이 모두
제이크를 노려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래a다 당신 탓이에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28
화요일 아침 그웬이 제이크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새로운 비
서인 엘렌이 전화를 받았다 엘렌은 인터폰을 이리저리 다루다가 결
국 망가뜨리고는 계단을 기어올라갔다
제이크 씨 헤일리 부인한테서 전화왔어요
제이크는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고는 수화기를 낚아챘다
여보세요
제이지금 바빠요
많이요 무슨 일인데요
그웬이 수화기 저쪽에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제이쿠 우린 돈이 필요해요 파산했다구요 청구서 날짜도 지났
구 집세도 두 달이나 밀려서 저당권을 가진 회사에서 자꾸 전화를
해대9 어디다 부탁을 해야 될지 모르겠어
당신 가족들에게 부탁하면 어때요
제이당신도 알다시피 다들 가난하잖아요 그들은 우리에게
먹을 음식을 주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해주었어9 하지만
집세와 밀린 청구서를 해결해 주진 못해요
칼 리하고는 얘기해 봤어요
돈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최근에는요 남편은 걱정밖에 더 하겠
어요 주님께서도 그이가 걱정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계세요
교회에서는요
한푼도 못 받았어요
돈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적어도 5백 달러는 있어야 해요 그거면 겨우 막을 수 있어요 다
음달에는 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는
수밖에 없죠
9백 달러에서 5백 달러를 빼면 살인사건 수임료로 4백 달러가 남
았다 기록적인 액수였다 4백 달러라니 그때 한 가지 기발한 생각
이 떠올랐다
오늘 오후 두시에 사무실로 올 수 있어요
애들을 데리고 가야 해Q
좋아9 그렇게 하세Q
그때 뵙겠어요
제이크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재빨리 전화번호부를 뒤적여 에이지
목사를 찾았다 그는 교회란에서 그 이름을 찾았다 제이크는 헤일리
의 재판과 에이지 목사의 증언에 대해 얘기할 게 있으니 만나자고
했다 에이지 목사님은 중요한 증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에이지 목
사는 두시에 사무실로 오겠다고 했다
헤일리의 식구들이 먼저 도착했다 제이크는 그웬과 아이들을 회
의실의 탁자 주위에 앉혔다 아이들은 지난번 기자회견 때 이 회의실
에 온 적이 있었지만 아직도 기다란 탁자와 거대한 흔들의자 서가
에 빼곡이 꽂힌 책들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에이지 목사는 회의실로
들어서자마자 그웬과 아이들을 한번씩 안아주느라 법석을 떨었다
특히 토냐에게는 더욱 그랬다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같이 의논할 문제가 있습니
다 한 서너 주 동안 에이지 목사님과 다른 분들이 여기 있는 헤일리
가족을 위해서 기금을 마련한 걸로 압니다 제가 듣기로는 6천 달러
가 넘는다고 하셨는데 참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제가 신경쓸 문제는 아
니지요 그 돈은 칼 리를 변호할 협회 변호사한테 주기로 되어 있었
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 변호사는 이 사건을 못 맡게 되었습니
다 제가 이 사건의 유일한 변호사란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지껏
그쪽에서 주는 돈은 한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돈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칼 리가 협회에서 추천하는 변호사를 택하
지 않은 이상 그가 어떤 변호를 받든 신경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좋습니다 그러나 저를 정말 괴롭히는 것은 그 돈이 헤일리 가족한테
는 한푼도 지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주 그웬
그저 멍하기만 하던 그웬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변했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은 점점 분노의 얼굴로 변해갔다 그웬은 에이지 목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천 달러라구요
16천 달러가 넘지요 마지막으로 계산된 액수가 그보다 좀 더 됐
으니까요 그 돈은 칼 리가 교도소에 있을 동안 어떤 은행에 유치될
예정입니다 그웬은 지금 일을 할 처지가 못 되고 청구서는 쌓여 있
으며 음식은 친구들에게서 겨우 얻어먹고 있습니다 저당 잡힌 집은
곧 날아간 판인데 그 눈먼돈은 지금 은행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자
목사님 그 돈을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제이크가 말했다
에이지 목사는 미소 떤 얼굴로 혀를 잔뜩 굴리면서 말했다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저하고는 상관있는 일이에요
그웬이 마침내 소리를 지르고 나섰다
목사님은 돈을 모을 때 저와 제 가족의 이름을 팔았잖아요 제가
직접 듣기도 했어요 신도들한테 사랑의 헌금이라고 하셨죠 우리 가
족을 위한 거라고 하시면서9 저는 그 돈이 변호비용으로 쓰이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보니까 그 돈은 다 은행에 들어 있었군요 목
사님께서 그 돈을 챙기시려고 한다고밖엔 생각할 수 없어요
에이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L잠깐만 기다려 봐그웬 우리는 그 돈이 칼 리를 위해서 쓰이
는 게 가장 쵸과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칼 리는 협회 변호사를
거절하면서 우리의 돈도 거절한 겁니다 그래서 나는 레인펠드라는
변호사에게 그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변호사가 나중에 항소할 때 돈이 필요할 테니까 그때까지 가지고 있
으라고 했어EL
제이크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며 이를 앙다물었다 이 바보
같은 목사를 혼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에이지는 제이크의 말을 이해
하지 못할 게 뻔했다 제이크는 욕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웬이 말했다
LL간단해요 레인펠드 씨는 칼 리가 자신을 고용하지 않았으니 질
게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항소를 해야겠죠 여기 있는 제
이크 씨가 재판에서 지면 당신과 칼 리는 다른 변호사를 구할 겁니
다 칼 리의 목숨을 구해 줄 사람을요 그래서 레인펠드 씨가 필요하
게 되면 그때 돈도 필요한 거지9 결국 돈은 칼 리를 위한 겁니다
에이지는 이 상황을 무마시키려고 은근한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
다 제이크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주 작은 소리로 욕을 내뱉었다 에
이지 목사보다는 레인펠드를 향한 것이었다
그웬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구 또 알고 싶지도 않아
요 내가 아는 사실은 이젠 음식을 구걸하는 데도 질렸구 남한테 구
차한 소리 늘어놓는 데도 질렸구 집을 잃을까봐 걱정하는 것도 신물
난다는 것뿐이에9
에이지는 동정어린 표정으로 그웬을 마주보았다
나도 이해채요 하지만
우리 돈 중 6천 달러를 은행에 넣어두고 있으면서 우리한테 한푼
도 안 주는 건 당신 잘못이에요 우리에게도 그 돈을 현명하게 쓸 정
도의 머리는 있어9
칼 리 주니어와 자비스는 엄마 옆에 앉아 엄마를 진정시키려고 했
다 하지만 목사를 노려보는 시선만은 엄마와 똑같았다
하지만 그 돈은 칼 리를 위한 겁니다
목사가 다시 칼 리를 들먹였다
제이크가 참다 못해 끼여들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칼 리한테 그 돈을 어디다 써야 할지 물어봤나

순간 비열한 웃음이 에이지의 얼굴에서 사라졌다 그는 몸을 움찔
했다
칼 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목사는 확신이 서지 않는 표정이었다
감사합니다 그건 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신중하게 들어
주십시오 칼 리에게 그의 돈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 물은 적이 있습
니까
물론 얘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에이지는 거짓말을 했다
그럼 확인해 보도록 하죠
제이크는 그렇게 말한 다음 회의실 옆에 달린 작은 방으로 통하는
문으로 걸어갔다 에이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을 쳐다보았다 제
이크가 문을 열더니 누군가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 칼 리와 오지
보안관이 그 문을 통해서 태연하게 걸어들어왔다 아이들은 아버지
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반갑게 달려가 안겼고 에이지는 당혹감
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
렀다 제이크가 다시 목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 목사님 이제 칼 리한테 그 6천 달러가 어디에 쓰이면 좋을지
물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 돈은 칼 리의 것만은 아닙니다
에이지가 대답했다
그렇다고 당신 돈도 아니잖소
오지 보안관이 더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칼 리는 무릎에 앉은 토냐를 내려놓더니 에이지에게 다가가 탁자
끝에 걸터앉았다 그는 목사를 아래위로 훌어보았다 필요하다면 주
먹질이라토 할 태세였다
목사님의 고민을 내가 간단히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은 내
이름을 걸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이 동네에 사는
흑인들한테 돈을 걷으면서 돈이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쓰일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죠 그 돈은 내 가족을 위해서 모
은 게 아니고 현회에 잘 보이기 위해서 모은 것입니다 목사님은 교
회에도 거짓말을 했구 신문에다가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온통 거짓
말만 치고 다녔다구
에이지는 주의를 둘러보았다 애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를 노려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칼 리는 목사가 앉아 있는 의자에 발을 얹고는 목사 쪽으로 몸을
숙였다
만약 돈을 내놓지 않으면 모든 혹인들한테 당신이 거짓말이나 치
고 다니는 사이비 목사라고 얘기하겠소 우리 교회사람들한테 가서
우리는 돈을 한푼도 못 받았다고 말할 거란 말이오 내가 그렇게 말
하면 당신은 앞으로 주일 헌금을 단 2달러도 못 벌 거9 멋진 캐딜
락도 잃게 될 거구 화려한 옷도 잃게 될 거요 나는 사람들한테 교회
를 떠나라고 얘기할 거곤 그러면 교회도 잃게 될 거요
다 끝났습니까 만약 끝났다면 내가 심히 불쾌하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당신과 그웬이 그런 만큼 나도 가슴이 아픔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한 겁니다 당신이 아프든 말
든 우린 상관없어요
이번에는 오지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나도 이 사람들하고 생각이 같습니다 당신이 잘못했구 당신도
그걸 잘 압니다
오지 당신까지 그렇게 나오니까 마음이 더욱 아프군또
정말로 가슴 아픈 사실을 얘기해 드려야겠군요 다음 주일에 나
와 칼 리는 당신 교회에 갈 겁니다 이른 아침에 교도소에서 칼 라를
몰래 빼내 조금 드라이브를 할 생각이죠 그런 다음 당신이 막 설교
를 시작할 시간에 맞춰 교회 앞문으로 들어갈 겁니다 통로를 지나서
연단으로요
만약 당신이 나를 막는다면 수갑을 채우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칼
리가 설교를 할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성껏 모아준 돈은 목사님 주머
니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고 그웬과 아이들은 보금자리를 잃고 거리
로 나앉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당신이 협회와 손잡고 유명해지려고
했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도 말할 겁니다 칼 리는 그밖에도
당신이 신도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밝힐 겁니다
그가 한두 시간 정도 연설하고 나면 나도 올라가서 몇 마디 할 겁
니다 당신이 얼마나 야비한 사람인가에 대해서요 멤피스에서 도난
맞은 차를 백 달러에 샀다가 기소되었던 얘기도 할 거구 장의사에서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폭로할 겁니다 또한 2년 전
에 잭슨에서 각하했던 DUI세금에 대해서도 말할 거곤 理
그만 하시s오지
에이지가 애원조로 나왔다
당신과 나 그리고 평판이 안 좋은 몇몇 여자들만 알고 있는 사실
도 얘기할 겁니다
오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돈이 언제 필요합니까
언제 찾을 수 있습니까
칼 리가 물었다
지금 당장 갖다주겠소
제이크와 오지는 헤일리 가족들만 남겨두고 2者 사무실로 올라왔
다 엘렌은 책에다 코를 박고 있었다 제이크는 오지 보안관에게 엘
렌을 소개했다 세 사람은 책상 주위에 둘러앉았다
그놈들은 어떻게 됐어
제이크가 물었다
다이너마이트 장치했던 놈들 잘 회복되고 있지 재판 끝날 때까
지는 병원에 둘 생각이야 병실 문도 잠그구 보안관 대리도 한 명 배
치해 놨지 별수 없을 거야
주범이 누구지
아직 몰라 지문조회 결과가 안 나왔거든 알아내기 어려을 것 같
아 여전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거든
이 지역 사람도 하나 있다면서요
이번에는 엘렌이 물었다
테렐 그리스트란 놈이죠 체포 과정에서 입은 상처에 대해 TI소
하겠다더군 상상할 수 있겠나긴
아직까지 입을 닫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군
제이크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물론 그리스트와 나머지 한 놈은 입을 다물
고 있을 수밖에 없을 테구 내 부하들도 입 다물고 있지 자네와 여기
있는 자네 법률 서기가 남았군
그리고 루시엔도 있지 내가 얘기하진 않았지만
알 만해
언제쯤 기소할 건가
재판 끝난 다음에 구치소로 옮겨서 조서부터 쓸 생각이야 모두
우리 뜻에 달린 거지
버드는 어때
그 두 놈 보려고 아침에 병원에 들렀다가 에셀을 만났지 아직 중
태라더군 아무런 변화가 없대
용의자는
하얀 옷을 입었다는 걸로 봐서 KKK단이 분명해 얘기가 되잖아
처음에는 자네 집 앞에서 십자가를 태우고 그 다음에는 다이너마이
투 이젠 버드까지 죽음의 위협이 여전하지 나는 그들이라고 확신
해 정보원도 있고
뭐가 있다구
정보원 자기 이름을 미키 마우스라고 그러더군 그가 일요일날
집으로 전화를 해서는 자기가 자네 목숨을 구했다고 얘기하더라구
자네를 검등이의 변호사라고 부르던데 KKK단이 공식적으로 포
드 군에 도착해서 지분지 뭔지를 결성했대
누가 단원인데
깥이 얘기는 안 해 누가 위험에 처할 경우에만 전화하겠대
좋은 얘기군 그런데 믿을 수 있나
자녜 목숨도 구했잖나
그럴군 그 사람도 단원인가
말 안 해 옥요일에 커다란 시위가 있을 거래
KKK단이
그래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는 내일 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겠다
더군 시위가 끝나면 가두 행진도 할 모양이야 KKK단은 목요일날
평화 시위를 하겠다고 했고
몇 명이나 참가하지
말했듯이 미키 마우스는 세부적인 얘기는 안 해
KKK단이 클랜턴에서 행진을 한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심각한 문제네요
엘렌이 말했다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 주지사한테 고속도로에 순찰차를 대기시
켜 달라고 얘기했어 아무튼 힘든 한 주야
오지가 말했다
그런데도 누스는 이곳에서 재판을 하겠다니 자네는 이해되나
제이크가 물었다
옮기기에는 너무 큰 사건이니까 어디로 옮기든 시위와 행진이
있을 테고 KKK단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자네 말이 옳은 것도 같군 배심원 명단은 어떻게 되고 있나
내일 가져오지
수요일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서 조 프랭크 페리먼은 현관에 앉아
신문을 보면서 담배를 셉고 있었다 그는 씹던 담배를 현관에 뚫린
구멍에다 조심스럽게 뱉었다 그것이 그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렐라가 접시를 다 닦고 나서 차가운 흥차를 두 잔 만들어 오면 두
사람은 현관에 앉아 날이 저물 때까지 수확과 손자들 습기에 대한
얘기로 저녁나절을 보내곤 했다 그들은 캐러웨이 근처에 1만 평 남
짓한 농장을 가꾸면서 살고 있었다 그 땅은 프랭크의 아버지가 대공
황 때 강탈한 것이었다 프랭크와 렐라는 성실히 일하며 묵묵히 살아
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구멍 속으로 웬만큼 담배를 뱉어냈을 무렵 픽업 한 대가 고속도
로를 빠져나와 프랭크의 집으로 통하는 긴 진입로에 들어섰다 집 앞
잔디밭에 주차한 픽업에서 낯익은 얼굴이 걸어나왔다 포드 군의 감
독관이었던 윌 티어스였다 윌은 24년 동안 6선에 걸쳐 감독관 생활
을 하다가 83년 선거에서 일곱 표 차로 떨어진 사람이었다 윌 티어
스는 프랭크네 자갈 도로와 진입로의 배수로 등을 돌봐주고 있어서
프랭크는 그를 열렬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잘 있었나 윌
프랭크가 잔디밭을 넘어 계단으로 올라서는 전 감독관에게 반갑
게 아는 척을 했다
그래 프랭크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고 현관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담배 좀 주게
윌이 말했다
LL물론이지 그런데 웬일인가
LI그냥 들렀네 렐라가 주는 냉흥차가 마시고 싶어서 목이 말랐거
든 자네 본 지도 오래 됐고
두 사람은 날이 저물 때까지 앉아서 담배를 셀구 렐라의 냉흥차
를 마셨다 어두워지자 모기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프랭크는 10
년 만에 찾아오는 대가뭄이라며 비가 오지 않아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6월 들어 3주가 지났는데도 비 구경을 못 했구 이대로 조금만
너 가다간 목화 농사는 잊어버려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콩은 그럭저
럭 되겠지만 목화는 수확이 어려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조 프랭자네가 배심원으로 소환뤘다며
그래서 걱정이 더하네 근데 누구한테 들었나낄
몰라 그냥 들리는 소문에 그렇더군
사람들이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클랜턴에서 들었네 오늘 일이 있어서 법원에 갔었거든 거기서
들었어 검등이놈 재판이라지 자네 알고 있었나
짐작은 하고 있었지
그 검등이가 백인을 쏴 죽인 걸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그를 비난하지 않아9
렐라가 끼여들었다
피래 하지만 당신 손으로 법을 집행할 수는 없어 그럼 법제도는
뭣하러 있겠어
조 프랭크는 아내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아나 그놈이 심신장애자라는 얘기가 들
리더라구 그 검등이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다고 사기를 쳐서 빠져나
오려는 모양이야 레이건 대통령을 쏜 놈처럼 말이야 아주 교묘한
수법이야 그 겁등이놈은 그들을 죽이려고 계획을 짜구 기다리고 있
었다구 그건 틀림없는 모살이야
만약 당신 딸이 강간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렐라가 물었다
나라면 재판에 넘길 거예요 만약 우리가 강간범을 잡았는데 그
게 혹인이라면 우리는 대개 그를 감방에 가둡니다 파치먼에 가면
그렇게 갇혀 있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에오 렐라 평생 교도소에서
썩을 놈들이죠 여긴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처럼 미쳤다고 우기면 내
보내 주는 그런 허술한 데가 아니에요 우리는 훌릉한 법제도를 가지
고 있고 누스 판사는 엄한 사람이죠 그러니까 그 제도에 맡기면 되
는 거예요 사람들 특히 검등이 녀석들한테 자기 손으로 법 집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면 우리 사회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내가 진짜로 걱정하는 건 그거예요 이 검등이 녀석이 법정에서
풀려나와 자유의 몸이 된다고 생각해 봐요 포드 군에 있는 모든 사
람들이 그것을 알게 될 거구 검등이들은 모두 미쳐 날뒬 거예요 검
등이들은 길을 건너다가 만난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는 잠시 미쳤었
다고 말할 거예요 그리고는 풀려날 테죠 이 재판에서 가장 위험한
대목은 바로 여기예요
그래 흑인들은 잘 통제해야 돼
조 프랭크가 윌의 말에 동의를 했다
자네도 그걸 명심해야 하네 헤일리가 풀려나게 된다면 우리 중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네 이 지방에 있는 검등이들이 모두 총을 들
고 나와 문제가 생기기를 기다릴 거라고
그점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프랭크는 잔뜩 겁을 먹은 채 윌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옳은 판단을 하기 바라네 프랭크 나는 자네가 배심원으로 앉았
으면 좋겠네 자네처럼 분별력 있는 사람이 나서야 되니까
그런데 왜 나를 지목한 걸까
내가 듣기로는 150명이 정해졌지만 막상 법원에 출석할 사람은
100項 정도라더군
내가 배심원이 될 확률은 얼마나 되지
백분의 일이죠 뭐
렐라가 대답했다
안 되면 좋겠어 농장일이 바빠서 그런 데 신경쓸 겨를이 없어
그래도 자네 같은 사람이 배심원이 돼야지
윌은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구 다시 화제는 정치 얘기와 새로운
김관 얘기 도로를 잘 닦아주지 않는다는 푸념 따위로 옮겨다녔다
어둠이 깊었고 농부들은 잠을 잘 시간이었다 윌은 작별 인사를 하
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부엌 식탁에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배
심원 명부를 훌어보았다 그의 친구 루퍼스는 만족스러워할 것이다
웜이 가진 배심원 명부에는 여섯 개의 이름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
다 그는 그 여섯 명을 만나 모두 언질을 주었다 그중 두 명은 처음
엔 랭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믿을 만한 친구 윌 티어스가 정의에 대
해서 설명을 하자 유죄판결을 내리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들은 루퍼
스가 원하는 대로 포드 군의 법과 질서를 구현하는 훌릉한 배심원들
이 될 터였다
루퍼스 버클리는 아주 흡족해할 것이다 그리고 윌 티어스의 어린
조카 제이슨 티어스를 마약사범으로 기소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지킬
것이다
제이크는 기름이 잘잘 흐르는 돼지고기와 리마콩을 집어들구 같
은 음식을 놓고 마주 앉아 있는 엘렌을 쳐다보았다 탁자 끝에 자리
잡은 루시엔은 음식에는 입토 대지 않고 위스키만 홀짝이다가 배심
원 명부에서 아는 이름이 나을 때마다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평소
보다 더 취해 있었다 사실 루시엔이 아는 이름은 얼마 없었다 하지
만 그는 모르는 이름이 나을 때도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다 엘렌은
재밌다는 듯이 제이크를 보면서 눈을 깜빡였다
루시엔은 배심원 명부를 내려놓고 포크로 식탁을 두드렸다
샐리
그는 샐리를 부르고 나서 고개를 엘렌 쪽으로 돌렸다
포드 군에 인권협회 회원이 몇이나 되는지 알고 있소
최소한 인구의 80퍼센트는 되겠죠
나 하나요 내가 인권협회에 든 첫번째 사람이자 마지막 사람이
될 거요 이 동네 사람들은 다 바보요 인권을 존중하지 않지 아무
도 모르면서 어느새 공화당이 된다구 여기 있는 제이크처럼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클로드네로
가서 밥을 먹는데요
제이크가 응수했다
그래서 진보적인 생각을 갖게 됐나
너무 급진적으로 변했죠
내가 보기엔 자넨 아직도 공화당 같은데
루시엔 당신이 내 집사람이나 어머니 내 조상에 대해서 얘기할
순 있어9 하지만 나를 공화당이라고 부르지는 마세
제가 보기에도 공화당처럼 보여요
엘렌이 맞장구를 쳤다
그럼 루시엔은 민주당처럼 보입니까
제이크는 루시엔을 손가락질했다
그럼요 첫눈에 알아차렸는데요
암 그러면 그렇지
루시엔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잔을 바닥에 던졌다 잔이 깨지는 소
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샐리
샐리의 이름은 아예 루시엔의 입에 붙어 있었다 루시엔은 다시
엘렌에게 질문을 던졌파
포드 군에서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에 든 세 번째 백인이 누군지
는 아나
루퍼스 버클리
제이크가 끼여들었다
날세 루시엔 윌뱅크스 1967년에 들었지 백인들은 나더러 미쳤
다고 했지
상상할 수 있어
제이크가 한마디 했다
하긴 흑인들도 나더러 미쳤다고 그랬으니까 그때는 모든 사람
이 다 그렇게 말했지
지금도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지 않으세요
제이크가 루시엔을 놀려댔다
입 닥쳐 이 공화당놈 로 아크 양 을랜턴에 회사를 차려서 인권
협회 사건만 다를 생각 없소 보스턴에 있는 아버지도 오셔서 같이
하면 좋지 뭐
당신이 보스턴으로 가지 그래요
제이크가 말했다
자넨 지옥에나 가라끈
회사 이름을 뭐라고 하죠
엘렌이 물었다
바보들의 집
제이크가 대신 대답했다
윌뱅크스와 로 아크 법률 회사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네요
제이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루시엔의 눈꺼풀이 점점 내려앉고 있었다 그의 머리가 툭툭 아래
로 떨어졌다 루시엔은 부서진 컵을 쓸어담고 있는 샐리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아주 비열한 농담이군 제이크
루시엔은 값자기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로 아크 양 미시시피 법원에서 마지막으로 자격을 박탈당한 변
호사가 누군지 아시오
제이크가 루시엔의 말투를 흥내내면서 말했다 엘렌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로 아크 양 다음번에 자기 사무실에서 쫓겨날 변호사가 누군지
아시오
루시엔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제이크는 엘렌에
게 윙크를 했다
웃음이 잦아들자 루시엔이 제이크에게 물었다
내일 밤 모임에서는 뭘 하는 거지
몇 명이 모여서 배심원 명부를 뒤지는 거죠
누가 오지
해리 렉스하구 스탠 앳캐비지 또 한 명쯤 더 있을 것 같아요
어디서
여덟시에 제 사무실에서요 알코을 없이
이봐 제이크 거긴 내 사무실이야 그러니 술을 가져가는 건 내
맘이라구 우리 할아버지가 그 건물을 지었다는 걸 잊어버렸나
제가 어떻게 잊어버리겠습니까
제이크는 루시엔을 보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루시엔은 엘
렌에게 말했다
로 아크 양 한번 멋지게 취해 보자구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루시엔 저녁 잘 먹었고 얘기 즐거웠습
니다 저는 이제 옥스퍼드로 돌아가 봐야겠어
그들은 루시엔 혼자만 달랑 탁자에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이크는 현관에 나가 앉자는 루시엔의 청마저 거절했다 엘렌은 옥
스퍼드로 떠났구 제이크는 위충에 마련된 임시 숙소로 자리를 옮겼
다 칼라에게 집에서 자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제이크는
칼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칼라와 한나는 무사히 있었다 걱정이 되기
는 하지만 잘 지낸다는 칼라의 목소리가 저쪽에서 들려왔다 제이크
는 버드 트위티 얘기는 끝내 꺼내지 못했다
29
수요일 오후가 끝나갈 무렵 사람을 가득 실은 여러 대의 버스가
클랜턴 광장을 돌아 천천히 들어모고 있었다 버스들은 횐색 녹색
검은색 등으로 색칠을 해서 개조한 것이었다 버스의 창 아래에는 각
각의 교회 이름이 쓰여 있었다 전부 서른한 대였다 버스를 가득 채
운 노인네들은 손수건과 부채를 흔들며 찌는 듯한 7월의 열기를 물
리치고 있었다 광장을 세 바퀴 정도 돈 뒤 선두에 선 차량이 우체국
앞에 멈춰 서자 서른한 대의 버스문이 열리면서 수많은 흑인들이 몰
려나왔다 버스 안은 순식간에 말끔히 비어 버렸다 그들이 법원 잔
디밭 위에 마련된 연단으로 모여들자 올리 에이지 목사는 질서를 지
키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칼 리를 석방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나
눠주었다
광장으로 이르는 양쪽 도로는 법원으로 가려는 차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마침내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어 도
로는 아예 주차장이 되어 버렸다 수백 명의 흑인들은 도로에 차를
그대로 세워둔 채 천천히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연단 주위에
서 플래카드를 받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 플래카드를 받은 사람들은
한데 뒤엉켜 떡갈나무와 목련 아래에 자리잡은 사람들에게 가거나
친구들과 잡답을 나누었다 더 많은 버스가 도착했으나 광장으로는
더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버스들은 커피숍 옆에 주차를 했다
사상 처음으로 기온은 40도에 육박했으며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
었다 두껍게 깔린 열기와 사람들의 몸을 옥죄는 습기를 흩뜨릴 바람
한점 불지 않았다 나무그늘에 앉은 사람들의 셔츠는 십오분 만에
태양볕 아래 있는 사람들의 셔츠는 오분 만에 땀에 젖어서 찰싹 들
러붙어 버렸다 노인네들은 숨을 곳을 찾아 법원 건물로 비집고 들어
가기도 했다
군중들의 숫자는 점점 불어났다 처음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압도
적으로 많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호전적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몰려
들었다 그들은 60년대에 성행했던 위대한 시민권 가두 행진과 시위
를 그리워하며 이제는 우리 승리하리라와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백인 사회에서 억압받고 있는 혹인들을 지지하고 저항할 수 있는 기
회가 드물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 먼저 공격을 개
시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학생 세 명이 법원 앞 계단으
로 올라가 플래카드를 들더니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
라 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군중들도 다 함께 소리치기 시작했다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상촹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나무그늘에서 나와 대중연설장
치가 되어 있는 간이 연단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새로 얻은 슬로건
을 높이 쳐들면서 곧 한목소리가 되어 외치기 시작했다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무슨 일인가 싶어 법원 창문을 열어본 법원 서기와 직원들은 아래
쪽에서 일어나는 土동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의 외침은 몇
블록 너머에 있는 가게까지 아득히 퍼져나갔다 소리를 들은 가게 주
인과 손님들 모두 거리로 몰려나와 놀란 눈으로 시위 행렬을 쳐다보
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나와 구경하자 군중들의 열기는 더욱 달아
올랐다 노랫소리와 함성 소리에 흥분한 기자들은 그들 주위를 돌며
취재에 열을 올렸구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법원 앞 잔디밭으로 들
어섰다
오지와 그의 부하들은 고속도로와 시내 도로의 교통을 뚫기 위해
서 호각을 불면서 갖은 애를 썼지만 헛수고였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계속 자리만은 지키고 있었다
에이지 목사와 세 군에서 몰려온 시간제 목사들 퇴임한 목사들과
예비 목사들이 소리를 지르는 군중을 뚫고 연단으로 올라섰다 목사
의 얼굴을 보자 사람들의 흥분은 극에 달했다 그들이 한목소리로 부
르는 노래는 광장 주위를 돌아 길을 따라 내려가 조용한 주택가 너
머 외곽까지 울려 퍼졌다 수천 명의 군중이 플래카드를 흔들면서 구
호를 외쳤다 에이지 목사는 군중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다른 목사들
의 손을 맞잡구 군중들의 잡다한 소리를 일치된 함성으로 이끌어내
고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에이지는 장장 십오분 동안이나 군중들을 열광과 함성의 도가니
로 몰고 갔다 시간이 지나자 그의 훌릉한 감각은 사람들의 열기가
차츰 식어간다는 것을 얼른 알아챘다 그는 곧바로 연단으로 올라섰
다 그러고는 땀에 젖고 숨이 가빠 헐떡거리는 대중들을 향하여 이제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갑자기 자유의 노래가 멈춰졌다 에이지는 보
도진이 들어설 수 있도록 앞자리에 공간을 내달라고 부탁하고는 기
도를 올릴 수 있도록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다 루즈벨트 목사가 온갖
수사를 동원한 능변으로 마라톤 기도를 올렸고 군중들의 눈엔 노히
없는 눈물이 맺혔다
마침내 그가 아멘 소리와 함께 기도를 마치자 붉은 가발로 치
장한 거대한 체구의 흑인 여자가 마이크 앞으로 걸어나와 커다란 입
을 벌렸다 그녀가 깊고 풍부한 목소리로 반주도 없이 우리 승리하
리라의 첫 소절을 시작하자 뒤에 서 있던 목사들이 박수를 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즉흥적인 움직임들이 군중들 사이에서 파도를
일으켰고 수천 명의 목소리는 화음을 이루면서 합창을 하기 시작했
다 애도에 찬 노랫소리는 클랜턴의 하늘을 뚫고 올라갈 듯했다
노래가 끝나자 누군가가 다시 칼 리를 석방하라고 외쳤다 다
시 새로운 합창이 시작되었다 에이지는 그들을 다시 한번 침묵하도
록 이끌면서 마이크 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더니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루시엔은 술을 한 보따리 싸들고 약속 시간보다 늦
게 도착했다 그는 해리 렉스와 제이앳캐비지에게 두루두루 술을
권했지만 다들 사양했다
루시엔 지금 여털시 사십오분이에요 우리는 당신을 거의 한 시
간이나 기다렸다구요
제이크가 투덜거렸다
늦으면 벌금이라도 내기로 되어 있었나
루시엔이 되물었다
아니에요 하지만 정시에 와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 술도 가져오지 말라고 그랬지 그러나 이 건물은 우리 할아
버지께서 지으신 내 건물이구 나는 자네에게 아주 합당한 가격에 빌
려주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네 나는 어느 때든 원하면 올 수
있고 술을 가지고 오든 말든 그건 내 맘이네
알았어a그만하세9
LI그런데 저 바깥에 있는 혹인들은 이 밤중에 법원 주위에서 윌 하
고 있는 거야것
LL불침번을 서는 겁니다 칼 리가 석방될 때까지 매일 촛불을 들고
법원 주위를 맴돌기로 했대요
해리 렉스가 대답했다
L1불침번 한번 무지무지 오래 서겠군 죽을 때까지 서야 할지도 모
르지 12년이나 15년이 걸릴 수도 있지 아예 촛농으로 똥칠을 하겠
군 안녕하시P로 아크 양丁
엘렌은 윌리엄 포너 사진 밑의 책상에 앉아 배심원 명부의 복
사본을 홀어보고 있었다 엘렌은 루시엔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
소를 지어 보였다
LL로 아크 양 나는 당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누구보다 존중합니다
당신은 나와 똑같이 동등한 사람이오 같은 노동을 했으면 정당한 대
가를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란 말이오 아이를 갖든 유산을 하든
다 당신의 권리라고 생각하요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
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여성이구 당신의 성 때문에 특권을 누릴 이
유는 없으며 당신도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9
루시엔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냈다
LL당신의 성이 무엇이든 간에 내 눈에 당신은 법률 서기로밖엔 안
보입니다 그러니 가서 차가운 쿠어스 맥주를 사을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고 생각되는군
안 돼a루시엔
제이크가 말했다
입 닥치게 제이크
엘렌이 자리에서 일어나 루시엔을 노려보았다
알았어a루시엔 하지만 돈은 제가 내
그녀는 뽀로통한 얼굴로 사무실을 나갔다
제이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루시엔에게 화난 표정을 지
어 보였다
아주 긴 밤이 되겠어
해리 렉스는 마음이 변했는지 커피잔에다 위스키를 한 잔 따라
부었다
제발 취하지 마세요 할 일이 있어요
제이크가 애원했다
난 취했을 때 더 일을 잘한다네
나도 그렇습니다
루시엔의 말에 해리 렉스가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앳캐비지도 한마디 했다
제이크는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놓고 시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첫번째로 할 일은 모의 배심원 명부를 만드는 겁니다
흑인이 좋지
루시엔이 말했다
늙은 흑인이 그만이죠
해리 렉스가 거들었다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한텐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버클리가 흑인들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테니까요
우리는 일단 백인들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이크가 말했다
그럼 여자로 골라야겠군 형사사건에서는 여자 배심원을 뽐아야
돼 마음이 약하고 동정적이니까
루시엔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아닙니다 이번 사건은 예외예요 여자들은 총을 들고 나와 설치
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들을 골라야 합니다 칼 리
헤일리처럼 하고 싶어하는 젊은 아버지들 말입니다 딸을 가진 아버
지가 적격이죠
해리가 반론을 폈다
언제부터 자네가 배심원 선정 전문가가 되었나 자네는 시시껄
렁한 이多사건 전문 변호사잖아
루시엔이 쏘아붙였다
그래요 저는 시시껄렁한 이혼사건 변호사지만 배심원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가는 잘 알고 있조
그리고 그들이 하는 얘기를 잘 엿듣기도 하지
비열하게 나오시는군
제이크가 팔을 들어 두 사람의 싸움을 제지했다
그만들 해요 빅터 온젤은 어떻습니까 스탠 자네가 알지
우리 은행과 거래를 했지 마혼 살 정도 됐고 결혼해서 애가 셋
인가 될걸 북부 출신의 백인이지 마을의 북쪽 고속도로에서 트럭
정비소를 운영하는데 이곳에 온 지는 한 5년 돼
나 같으면 그자를 배심원으로 고르지 않겠네 북부놈들은 우리랑
생각이 달라 총기에 대해서 민감하다구 총기 사용 규제에 열렬히
찬성하는 작자일걸 형사사건에서 양키놈들은 항상 골칫거리야 이
곳에서 얼마를 살았든 간래 양키는 배심원석에 못 앉도록 하는 법이
미시시피에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
루시엔이 말했다
고마워9 잘 들었습니다
제이크가 대답했다
나라면 그를 고르겠네
다시 해리 렉스가 반론을 제기했다

그 사람은 애가 있잖아 아마 딸일지도 모르지 게다가 북부 출신
이라면 편견도 덜할 거야 나는 괜찮아 보이는데
존 테이트 애스턴
제이크가 새로운 이름을 댔다
죽었어
루시엔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뭐라구요
죽었다군 3년 전에
그런데 왜 배심원 명부에 올라가 있죠
변호사가 아닌 앳캐비지로서는 그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권자 명부를 갱신하지 않아서 그래
해리 렉스가 술을 마시면서 설명해 주었다
이사간 사람도 있구 죽은 사람도 있지 소환 날짜에 다 참석한다
는 것은 불가능해 150명한테 소환장을 보내떤 100명이나 120명 정
도가 나온다고 봐야지
캐롤라인 백스터 오지 말로는 혹인이라던데요 캐러웨이에 있는
기화기 공장에 다니고요
제이크가 기록을 들춰보며 말했다
그 여자를 뽑게
루시엔이 말했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때 엘렌이 맥주를 사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루시엔의 무릎 위에
다 맥주를 내려놓고는 여섯 개들이 팩을 뜯어 캔 뚜껑을 따서는 책
상 위로 돌렸다 제이크는 싫다고 했고 앳캐비지는 갈증이 난다며 하
나 집어들었다 제이크만 술을 마시지 않는 셈이었다
조 킷 세퍼드
백인 촌뜨기 같군
루시엔이 말했다
어떻게 아시죠
해리 렉스가 물었다
이름이 두 글자잖아 백인 촌뜨기들은 대부분 이름이 두 글자지
빌리 레이 조니 레이 보비 리 해리 리 제시 얼 빌리 웨인 제리
웨인 에디 맥처럼 말이야 그 아내도 마찬가지지 보비 수 베티 펄
메리 벨 델마 로 샐리 페이 같은 이름을 갖고 있지
해리 렉스는 어떻게 되죠
해리 렉스가 물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여자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백인 남자 촌뜨기 말입니다
있을 수도 있겠지
제이크가 끼여들었다
델 페리라는 사람은 호수 아래서 휴게소를 경영한다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긴 하지만 백인 촌뜨기가 틀림없을 거야 이름이 벌써
그렇잖아 나라면 그 이름은 지워 버리겠어
루시엔이 말했다
주소나 나이 직업 같은 기본적인 정보도 없는 건가
앳캐비지가 물었다
재판 때까지는 몰라 다음 월요일이면 배심원 후보들이 법원에
나와 여러 가지 질문을 받을 테지만 그때까지는 우리도 이름만 아는
거지
제이어떤 배심원을 찾고 있는데요
엘렌이 질문을 던졌다
가족이 있는 젊은 남자 마혼 살 이하면 더 좋고
그건 왜
루시엔이 제이크에게 물어왔다
젊은 백인일수록 흑인한테 대체로 우호적이니까요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월러드처럼 말인가
루시엔이 빈정거렸다
나이 든 주민들은 대부분 흑인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
들은 인종차별주의가 폐지된 사회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대체로 편
견이 덜하죠
나도 동감이네 내 생각에는 여자하고 시골 농부들은 피했으면
좋겠어
해리 렉스가 조건을 제시했다
내 계획도 그렇네
제이크가 동의했다
내 생각에는 둘 다 틀렸어 여자들이 훨씬 더 동정심이 많다구
로 아크 양을 봐도 알 수 있잖아 로 아크 양은 모든 사람한테 동정
적이지 안 그렇소 로 아크 썬
맞아s루시엔
로 아크 앓은 범죄자들을 동정하지 어린이들에게 음란서적이나
팔아먹으려는 도색 서적 작가들이나 무신론자 불법 이민자들과 동
성연애자들까지도 불쌍하게 생각할걸 그렇죠 로 아크 양긴
그래요 루시 엔
포드 군에서 인권협회 회원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로 아크 양
과 나 둘밖에 없지
그만합시다
은행가 앳캐비지가 말했다
클라이드 시스코
소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제이크가 다시 분위기를 다잡았다
그 사람은 살 수 있는 작자야
루시엔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살 수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
제이크가 물었다
말한 대로야 살 수 있다고
어떻게 알아요
해리 렉스가 루시엔에게 물었다
농담하자는 건가 그자는 시스코란 말이네 포드 군의 동쪽에 살
고 있는 악당들이지 그 사람들은 다 메이스 군 근처에 몰려 사는 도
둑놈이자 보험 사기꾼들이야 3년에 한 번씩 자기 집을 태워 먹는 놈
들이잖아 들어본 적도 없단 말인가
루시엔은 해리 렉스에게 쏘아붙였다
없습니다 그런데 살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죠
내가 산 적이 있으니까 10년 전 민사사건을 맡았을 때였지 배심
원 명부에 이름이 있기에 내가 소송 금액의 10퍼센트를 주겠다고 그
랬더니 말을 잘 듣더군
제이크는 명부를 내려놓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믿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요
해리 렉스는 약이 바짝 달아올랐다
그자는 결국 배심원 명부에 올랐구 난 포드 군 역사상 가장 많은
소송 금액을 받아냈지 아직도 기록이 깨지지 않았을걸
스터블필드 사건 말입니까
제이크가 물었다
그래 1974년 9월에 있었던 스터블필드 대 북텍시스 송유관 회사
사건이지 80만 달러였어 항소를 했는데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
결이 났지
그 사람한테 돈을 줬습니까
해리 렉스가 물었다
루시엔은 술을 한 잔 들이키고는 입술을 다셨다
100달러짜리로 8만을 줬지 그는 그 돈으로 집을 새로 지은 다음
다시 태워 버렸지
루시엔의 목소리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당신 몫은요
이번에는 앳캐비지가 물었다
소승 금액의 40字센트였지 물론 거기서 8만 달러를 뺐지만
방 안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저마다 속으로 돈 계산을 하고 있
는 것 같았다
우와
앳캐비지가 탄성을 질렀다
정말이에a루시엔
제이크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라는걸 잘알텐데 제이크 내가어쩔수없이 거짓말을하
는 경우는 있지만 이런 일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잖아
이 녀석은 매수할 수 있다니까
얼마면 됩니까
해리 렉스가 물었다
그만둬 해리
제이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한 5천 달러면 될걸
그만두라니까
제이크가 클라이드 시스코에게 정말 관심이 없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사람들은 잠시 뜸을 들였다 정말로 관심이 없는 것 같자 모두
들 술을 마시면서 다음 이름을 기다렸다 열시 삼십분에 제이크는 첫
번째 맥주를 들이켰구 한 시간쯤 뒤에는 마흔 명 정도의 이름만 남
아 있었다 루시엔은 발코니로 걸어가 법원 주변 도로를 따라 촛불
행진을 하고 있는 흑인들을 바라보았다
제이콕 저 사람은 왜 내 사무실 앞에 차를 대고 있는 거지
루시엔이 물었다
내 경호원이에요
이름은
게스비트
지금 깨어 있나
아닐 겁니다
루시엔은 난관을 잡고 바깥 쪽으로 몸을 쭉 내밀었다
네스비트 보안관 대리
그가 소리를 질렀다
네스비트가 순찰차 문을 열고 나와 섰다
무슨 일입니까
제이크가 가서 맥주 좀 사오라는데 목이 마르대 여기 사람이
무 명쯤 있으니까 한 박스는 있어야 될 거야
근무중에는 술을 살 수가 없습니다
네스비트는 고개를 저었다
언제부터
루시엔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물었다
어쨌든 살 수 없습니다
자네 먹을 게 아니구 브리건스 씨가 먹을 거야 무척 필요한 것
같던데 벌써 보안관한테 전화했어 괜찮대
누가 보안관한테 전화했습니까
브리건스 씨가
루시엔은 거짓말을 했다
보안관 말이 자네만 먹지 않는다면 어떻든 상관없다더군
네스비트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별수 없군이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루시엔은 발코니 아래로 20달러를 떨어뜨렸다 몇 분 있
으니 네스비트가 맥주를 한 박스 사들고 돌아왔다 캔 하나는 벌써
뚜껑이 따져서 과속 측정기 옆에 놓여 있었다 앳캐비지가 루시엔의
명령을 받아 맥주를 들고 올라왔다 여섯 개짜리 팩이 뜯겨지고 사람
들에게 맥주가 분배되었다
한 시간쯤 뒤 배심원 명부에 대한 검토가 끝나고 파티도 막을 내
렸다 네스비트는 해리 렉스와 앳캐비지 루시엔을 순찰차에 태워 집
으로 데려다주었다 엘렌과 제이크는 발코니에 앉아 맥주를 들이키
면서 흔들거리는 촛불이 법원 주위를 천천히 맴돌고 있는 광경을 내
려다보았다 광장 서쪽에 서너 대의 차가 세워져 있었구 혹인 몇몇
이 잔디밭 의자에 앉아 행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 나쁘진 않았던 것 같소 150명 중에서 20項만 못 알아냈으

제이크가 조용히 말했다
다음엔 뭐죠 니
나머지 20명을 마저 알아내구 각 배심원의 색인표를 만들 생각
오 월요일까지는 내 가족처럼 훤히 알 수 있어야 하니까
네스비트가 광장으로 되돌아와 흑인들 주위를 두 바퀴 정도 돈 다
음 사브와 BMW사이에 차를 댔다
맥노튼 판례가 열쇠요 내일 우리쪽 정신과 의사인 베이스 박사
가 이곳에 올 겁니다 베이스 박사와 함께 맥노튼 판례에 대해 연구
해 보도록 해요 재판 때 예상되는 질문 목록을 만든 다음 박사하고
입을 맞춰 보는 거요 사실 난 좀 불안합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
르구 그냥 루시엔 말만 믿고 따르는 거니까요 그 사람의 약력과 배
경도 좀 알아봐 줘요 전화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보고요 주 의사협
회에 전화해서 진료하는 데 문제가 없었는지도 알아봐요 이번 사건
에서 그 사람은 아주 중요해요 그러니 갑자기 당황할 일이 생기면
안 되죠
알겠습니다 보스
제이크는 마지막 맥주를 비웠다
L그리고 로 아크 양 여기는 아주 조그만 동네9 내 아내가 떠난
지 닷새 됐는데 사람들은 곧 그 사실을 알게 될 거요 사람들이 당신
을 이상한 눈으로 볼 수도 있쇼 사람들은 남 얘기 하길 좋아하니까
아무튼 조심하도록 합시다 가능한 한 사무실에서 일하도록 하구 누
가 물으면 에셀의 후임자라고 얘기해요
커다란 브래지어가 필요하겠군요
당신이 뜻대로 해Q
LL저는 그 자리에 어울릴 만큼 새침을 떨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알고 있소
두 사람은 교대를 한 혹인들이 촛불을 들고 도는 것을 바라보았다
네스비트가 빈 캔을 도로에 내던졌다
집에 차를 몰고 갈 건 아니죠
제이크가 엘렌에게 물었다
I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9 알코을 농도가 02는 될 테니까8
그럼 사무실 소파에서 자도록 해9
그러겠어요
제이크는 엘렌에게 잘 자라고 말하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
는 네스비트와 잠시 얘기를 나눈 뒤 차에 올라탔다 제이크는 사브를
몰았구 네스비트가 그 뒤를 따랐다 제이크는 애덤스 가에 들어서서
칼라의 차 옆에 차를 세웠구 네스비트는 큰 길가에다 주차를 했다
7월 18일 목요일 새벽 한시였다
여러 주에서 두세 명씩 무리를 지어 모인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
했다 그들은 깊은 숲 속 비포장도로에 차를 세우고 오두막으로 들어
갔다 평범한 작업복 차림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잘 다려진 말끔한 가
운과 두건을 쓰고 나왔다 그들은 서로 옷매무새를 고쳐주면서 치장
을 도왔다 그들은 대부분 서로 알고 있는 듯했으나 몇몇은 소개를
해주기도 했다 전부 마흔 명으루 참가율은 썩 좋은 편이었다
스텀프 시슨은 기분이 좋았다 그는 위스키를 한 잔 마시구 방 안
을 이리저리 돌았다 마치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을 다독이는 코치처
럼 시슨은 모든 회원들의 복장을 점검하고 매무새를 바로잡아 주기
도 했다 그는 단원들이 자랑스러웠구 단원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이번 모임은 최근에 이루어진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이었다
모여 주어서 고맙소 여러분의 희생은 반드시 귀한 열매를 맺뜰
것입니다
시슨은 단원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단원들 모두 가정과 일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이번 일은 그보다
더 중요했다 그는 미시시피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하구 모든 주민을
쥐고 흔들었던 옛날의 영화를 들려주었다 다시 그런 날이 돌아와야
하며 그것은 오늘 이렇게 모인 헌신적인 사람들 백인들을 대표하는
당신들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가두 행진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검등이들의 시위와 행진이 하루 종일 계속되고 있구 아무도 그걸 막
으러 들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백인들은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행진을 해야만 했다 시에서는 이미 행진을 허가했구 검등이 보안관
은 안전을 보장했다 하지만 KKK단의 행진은 최근 미쳐 날뛰는 젊
은 검등이들한테 자주 방해를 받았기 때문에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
었다 연설은 스텀프가 할 계획이었다
KKK단원들은 시슨의 말을 주의깊게 들었다 시슨의 말이 끝나자
그들은 화물 트럭에 나눠 탄 채 클랜턴으로 향했다
클랜턴의 주민들은 KKK단의 가두 행진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오후 두시가 되자 법원 주위는 흥분에 쉽싸여 일렁이기 시작했다 상
인들과 손님들이 도로로 몰려나와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중
요한 사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보도진들이
장비를 갖추고 몰려나와 잔디밭 연단 주위에 자리를 잡았구 하나둘
무리를 짓기 시작한 흑인 청년들은 떡갈나무 아래 그늘로 모여들었
다 오지는 분쟁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흑인들은 단지 구
경을 하러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지는 문제가 생기면 체포하겠다
고 경고한 뒤 부하들을 법원 주위 곳곳에 배치시켰다
온다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조그만 거리를 돌아 광장 북쪽의 워싱턴
가를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는 KKK단의 모습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
은 고개를 바짝 내밀었다 행렬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무
척 거만해 보였다 단원들의 얼굴에는 불길해 보이는 빨갛고 하얀 마
스크가 씌워져 있었구 머리에는 마치 왕족처럼 보이는 장식이 달려
있었다 구경꾼들은 얼굴 없는 무리들이 워싱턴 가를 지나 남쪽 캐
페이 거리를 지나구 다시 동쪽으로 잭슨 가를 따라 올라오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선두에 선 스텀프는 자랑스럽고도 위풍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법원 앞에 이르자 스텀프는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잔디밭 중
앙에 난 인도를 따라 자신의 무리를 이끌었다 행렬은 법원 계단 앞
에 놓여 있는 연단 주위로 반원을 이루고 섰다
행렬을 따라가다가 서로 엉켜 넘어지기도 했던 보도진들은 시슨
이 연단 근처에 멈춰 서자 재빨리 카메라와 녹음기의 전선을 이어
연단 위로 밀어넣었다 떡갈나무 아래 몰려 있던 흑인들도 점점 숫자
가 늘었다 그중 일부는 반원에서 몇 발자국밖에 안 떨어져 있었다
상인과 점원 손님 그외 호기심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KKK단
의 대장이 하는 말을 듣기 위해 저마다 잔디밭에 을라서서 귀를 기
울였다 그 바람에 도로는 순식간에 텅 비어 버렸다 보안관은 흑인
들에게 특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천천히 걸어
다녔다 오지는 떡갈나무 아래 흑인들 무리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

제이크는 법원 2층에 있는 진 길레스피의 사무실 창을 통해 KKK
단의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땅에 질질 끌리는 가운에 흥측한 가면
으로 얼굴을 숨긴 그들의 모습을 보자 역겨움이 치밀어을랐다 수십
년간 그 두건은 남부 지방에서 중오와 폭력의 상징이었다 저들 중에
어떤 놈이 우리 집 앞에다 나무십자가를 놓고 불을 질렀을까 다이
너마이트를 장치하는 데 저들이 동참했을까 다음엔 어떤 놈이 또
무슨 짓을 할까2층에서는 혹인들의 모습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나는 너희 검등이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스텀프는 손가락으로 흑인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것은 KKK단의 모임이다 너희 검등이들을 위한 게 아니란 말
ol다
옆의 도로와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난 골목에서 한떼의 흑인들
이 법원을 향해 천천히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무리와 합쳐서
순식간에 스텀프와 그의 부하들을 에워쌌다 흑인들의 수는 KKK단
의 열 배나 되는 것 같았다 오지는 무전기로 대기 태세를 명령했다
나는 스텀프 시슨입니다 보이지 않는 제국 쿠 쿨룩스 클랜
KKK의 미시시피 주 지부장이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자랑스럽게
선언하는 바입니다 나는 법을 준수하는 선량한 미시시피의 백인들
이 겁등이들의 도둑질과 강긴 살인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
실을 알리려고 여기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우리는 정의를 요구합니
다 우리는 더러운 칼 리 헤일리가 정의의 심판을 받아 가스실로 가
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스텀프 시슨이 가면을 벗고 연설을 시작하자 흑인들은 일제히 한
목소리가 되어 외쳤다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닥쳐 이 검등이 새끼들아
시슨이 흑인들의 함성에 맞섰다
입 닥치지 못하겠나 이 짐승 같은 자식들아
시슨의 군대는 그의 얼굴을 마주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등뒤에서 들려오는 외침 소리에 바짝 얼었다 오지와 그의 부관들은
두 집단 사이를 가로막았다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시슨의 불그스레한 얼굴이 더 붉게 물들어갔다 그의 입은 마이크
를 거의 씹어 먹을 기세였다
입 닥쳐 이 더러운 검등이들 너희들은 어제 너희들의 집회를 가
졌구 우리는 방해하지 않았다 우리도 너희와 같이 이곳에서 평화롭
게 집회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이제 입 닥쳐라
그러나 혹인들의 함성은 점점 커져만 갔다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보안관은 어디 있소 당신은 법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요 보안
관 얼른 당신의 임무를 수행하시요 우리가 평화적으로 집회를 가질
수 있게 저 검등이들의 입을 막아 버리란 말이오 당신 일하지 않을
거요 당신의 종족을 통제할 수 없단 말이오 보시a여러분 이래
서 검등이 놈한테 저런 막중한 자리를 주면 안 되는 겁니다
함성 소리가 계속되자 시슨은 마이크에서 물러나와 혹인들을 노
려보기만 했다 사진기자들과 방송국 카메라맨들이 이 모든 광경을
담기 위해 진땀을 흘리는 동안 아무도 법원 3충에 있는 작은 창문은
주시하지 않고 있었다 법원 창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어둠 속에서 조
잡한 소이탄이 아래쪽 연단을 향해 떨어졌다 그것은 정확하게 스텀
프 시슨의 발 위로 떨어졌고 순식간에 피어난 불꽃이 지부장을 삼키
며 폭발했다
폭동이 시작되었다 스텀프는 비명을 지르면서 충계 위로 굴러떨
어졌다 KKK단원 세 명이 옷을 벗어 스텀프의 몸에 붙은 불길을 끄
려고 했다 나무로 된 연단이 가솔린 냄새를 풍기면서 타올랐구 흑
인들은 몽등이와 칼을 휘두르며 횐옷과 가면 쓴 사람들을 닥치는 대
로 패고 그어댔다 횐 가운 밑에는 짧고 검은 몽등이가 숨겨져 있었
다 KKK단들도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폭발이 있은 지 몇 초 만에
포드 군의 법원 앞 잔디밭은 비명과 욕설과 고통이 뒤섞인 함성이
짙은 연기와 뒤범벅되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공중에서는 몽등이
와 돌멩이가 날아다녔곤 두 무리는 이제 육탄전으로 돌입하고 있었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잔디밭 위로 나동그라지고 있었다 오지가
첫번째 희생자였다 그는 몽등이로 뒤통수를 맞고 힘없이 꼬꾸라졌
다 네스비트 프레이서 헤이스팅슨 퍼틀 테이텀 그외의 다른 보안
관 대리들은 두 무리가 서로를 다 죽여 버리기 전에 그들을 갈라놓
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보도진들은 몸을 피하기
는커녕 더 완전한 유혈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연기와 폭력이 난무하
는 광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폭동의 순간 속에 그들은 손쉬운 표적이 되어 버렸다 한 카메라
맨은 오른쪽 눈 깊숙이 자기 카메라가 박혔고 왼쪽 눈에는 뽀족한
벽돌 조각이 떨어졌다 그와 그의 카메라가 길바닥에 나가떨어지자
다른 카메라맨이 쓰러진 동료를 찔어대기 시작했다 멤피스 방송국
에서 온 맹렬 여기자는 한 손에 마이크를 들고 광란의 현장으로 겁
도 없이 뛰어들었다 카메라맨은 여기자의 뒤를 따랐다 여기자는 날
아오는 돌을 피하면서 요령있게 광란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그러
나 그녀는 방금 십대 흑인 소년 둘을 해치운 거구의 KKK단원 곁에
너무 바짝 다가서고 말았다 KKK단원은 괴성을 지르면서 여기자의
작은 머리를 몽등이로 내리치고는 발길질을 해댔다 카메라맨도 그
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클랜턴 시경에서 지원병력이 도착했다 네스비트와 프레이서 헤
이스팅스는 전장의 한가운데서 서로 등을 기대고 서서 스미드 앤드
웨슨의 357千경 매그넘 권총을 하늘에 대고 쏘았다 총소리에 폭동
은 곧 제압되었다 전사들은 그 자리에 선 채로 총성이 들린 곳을 찾
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재빨리 다시 두 무리로 나뉘어 자기
편 쪽으로 천천히 후퇴하기 시작했다 경관들은 흑인들과 KKK단
사이에 휴전선을 긋고 있었다 그때쯤에는 양쪽 다 휴전을 반가워하
는 것 같았다
평정을 되찾은 광장에는 부상자들이 누워 있었다 오지는 뒷머리
를 문지르면서 일어나 앉았다 의식을 잃은 멤피스 여기자의 이마에
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KKK단원 몇 명이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된
횐 가운에 덮여 도로 옆에 쓰러져 있었고 연단에서는 아직도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소방차와 구급차가 광장 안으로 들어섰
다 소방수와 의사들이 부상자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죽은 사람은 없
었다 스텀프 시슨이 제일 먼저 실려 나갔구 오지 보안관은 부축을
받으며 순찰차로 갔다 속속 도착한 지원 병력은 재빨리 군중들을 해
산시켰다
제이크와 해리 렉수 엘렌은 회의실에서 다 식어빠진 피자를 먹으
면서 클랜턴에서 일어난 폭동을 보도하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
었다 CBS는 폭동을 보도하는 데 뉴스 시간의 절반을 할애했다 화
면에 나온 기자는 자신은 운좋게 다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가두 행
진에서부터 구호 폭탄 투하와 그 뒤에 벌어진 격투 장면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오늘 오후에 발생한 이 사건의 부상자 수는 아직 정확하게 발표
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융 자기를 보이지
않는 제국 쿠 쿨룩스 클랜의 미시시피 주 지부장이라고 소개한 스텀
프 시슨 씨입니다 그는 소이탄에 맞아 중화상을 입었구 현재 멤피
스 중남부에 있는 화상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화면은 폭동 시작 장면과 불에 타는 시슨의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었다 기자는 계속해서 보도를 했다
칼 리 헤일리 씨의 재판은 이곳 클랜턴에서 월요일에 열립니다
이번 사건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재판이 연기되거나 재판지가 변경되는 등 중대한 영향을 미
칠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큽니다
처음 듣는 소식이군
제이크가 말했다
정말 아무 소리도 못 들었나
해리 렉스가 물었다
전혀 어떤 조치가 있으면 CBS보다는 내가 먼저 알겠지
화면에서 기자의 모습이 사라지구 앵커가 나와 잠시 후에 계속되
겠다고 말했다
무슨 뜻이죠
엘렌이 물었다
누스가 재판지를 변경할 생각이 전혀 없는 바보란 뜻이pn
나는 오히려 변경이 안 됐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면 항소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니까
해리 렉스가 말했다
고맙네 해리 렉스 변호사로서의 내 능력을 그렇게 얘기하다니
아주 고맙군
전화벨이 울렸다 해리 렉스가 재빨리 수화기를 들었다 칼라였다
그는 수화기를 제이크에게 건네면서 물었다
자네 아내야 우리가 들어도 되겠나
아니 안 돼 피자나 더 먹으라구 여보세요
제이당신 괜찮아요
물론 나는 멀정하지
방금 뉴스에서 봤어9 끔찍해9 당신은 어디 있었어요
횐 가운 입고 있었지
제이쿠 제발 지금 농담하고 싶지 않아요
길레스피 사무실에 있었어 법원 2충에 말이야 위치가 좋아서
다 봤다구 아주 재미있었어
그 사람들 누구예요
십자가를 불태우구 우리 집에 폭탄을 장치했던 그놈들이야
어디서 왔대요
사방에서 왔어 병원에 있는 다섯 놈을 조사해 봤는데 주소가 다
제각각이더군 모두 다른 주로 되어 있어 한 놈만 여기 놈이고 한나
는 어때
잘 놀아요 하지만 집에 가고 싶어해요 재판이 연기될 것 같아
Q
그렇진 않을 거야
당신은 정말 괜찮은 거죠
그럼 24시간 내내 경호원이 지켜주지 서류가방에 38구경까지
갖고 다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걱정돼요 내가 당신과 함께 있어야 되는데
그건 안 돼
한나는 재판 끝날 때까지 여기 있겠지만 나는 가고 싶어
안 돼 칼라 당신은 그곳이 안전해 여기 있으면 그렇지 않아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나는 충분히 안전할 수 있어 그렇지만 당신하고 한나는 어렵다
는 얘기야 불가능해 그 얘긴 더이상 하지 말자고 장인 장모님은 잘
우리 부모님 안부 전하려고 전화한 건 아녜요 걱정이 돼서 당신
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전화한 거지
나도 당신하고 같이 있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이해해줘
칼라는 잠시 머뭇거렸다
어디서 자요
주로 루시엔의 집에서 자 가끔 집에서 잘 때는 바깥에 경호원이
지키고 있고
집은 괜찮아요
그래 아직 거기 있어 지저분하긴 하지만
보고 싶어요
집도 당신을 그리워할 거야
사랑해요 제이크 그리고 겁나요
나도 사랑해 하지만 난 겁나지 않아 쉬면서 한나나 잘 돌보고
있어
끊을게요

부인이 어디 계세요
엘렌이 물었다
노스 캐롤라이나의 월밍턴에 있소 장인이 거기서 휴가를 보내고
있지
해리 렉스는 남은 피자로 손을 뻗었다
보고 싶으시죠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누 상상할 수 있어요
자정이 넘도록 단원들은 오두막에 모여 위스키를 마시면서 검등
이들을 욕하고 서로 다친 곳을 보여주었다 멤피스의 병원에서 스텀
스 시슨을 보고 온 몇몇 단원들이 결과를 보고했다 스텀프는 일을
계획대로 진행시키라고 지시했다 열한 명의 단원들이 포드 군 병원
에서 풀려나왔다 그들은 자상과 타박상을 입어 군데군데 멍이 들고
상처투성이였다 그들이 자신들이 부상을 입고서도 달려드는 검등이
들에 맞서 얼마나 용감무쌍하게 싸웠는지 각자 무용담을 자랑했구
다른 단원들은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붕대를 감고 있는
그들은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영웅담이 쏟아질 때마다 위스키가 잔
가득 채워졌다 그들은 잔을 들어서 여기자와 검등이 카메라맨을 흔
내준 사람을 위해 건배를 했다
두 시간 동안 술을 마시고 왁자지껄 떠들던 그들은 시간이 되자
다시 모의를 하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커다란 지도 위에 클
랜턴 출신 단원이 공격 목표 지점을 표시해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
스무 군데였다 오늘밤 안으루 예비 배심원에 오른 스무 명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누군가가 건네준 명단을 들고서
네 명씩 5개 조로 나뒨 단원들은 오두막을 나와 픽업에 올라탔다
그들은 각자 모험을 하러 어둠 속으로 떠났다 각각의 픽업에는 석유
에 흠뻑 적신 나무십자가가 네 개씩 실려 있었다 가로 1미터에 세로
3미터짜리의 작은 나무십자가였다 그들은 클랜턴과 작은 마을들은
피하고 어둠에 젖은 시골길을 밟았다 목표는 차량도 별로 다니지 않
구 이웃들과도 멀리 떨어진 한적한 집들이었다 눈에 잘 안 띄고 일
찍 잠이 들어 조용한 먹잇감들
작전은 간단했다 길에서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다 차를 세웠다
전조등을 끄고 시동은 켜둔 채 운전사는 차 안에서 대기하구 나머지
세 명은 나무십자가를 들고 가 마당에 꽃은 다음 불을 붙이는 것이
다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픽업이 집 앞으로 달려와 세 사람을
태우고 흥겹게 노래를 부르면서 다음 목표지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
게 전부였다
스무 개 중 열아홉 개를 불태을 때까지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었
고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루터 피켓의 집에서 발생했다
루터 피켓은 멀리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깨어나 현관에 우두커
니 앉아 있었다 그때 픽업 한 대가 전조등을 끄구 호두나무 저쪽 길
가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루터는 총을 들고 픽업이 나타나 주차하기
를 기다렸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세 명이 막대기 비슷한
것을 들고 와서 집 앞마당에다 꽃았다 바로 길 옆이었다 루터는 관
목 사이에 몸을 숨기고 조심조심 총을 겨눴다
운전사는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면서 불꽃이 타오르는 上半가 들
리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長上可가 들려왔다 세 명의 단원
들은 나무십자가를 버리구 현관에서 앞마당을 지나 길 바로 옆의 도
랑으로 뛰어들었다 다시 총이 불을 뿜었다 운전사는 비명소리를 들
었다 구해야 된다는 생각이 얼른 머리를 스쳤다 그는 맥주를 내팽
개치고 그들이 있는 쪽으로 픽업을 몰았다
루터는 현관에서 뛰어나오면서 다시 총질을 했다 그리고는 픽업
이 집 앞으로 달려와 도랑 바로 옆에 서는 것을 보고는 다시 公定다
정신없이 미U러지면서 진흙탕에 빠진 세 놈은 욕설을 내뱉으며 어
떻게든 픽없으로 기어오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꼭 붙들어
루터가 다시 총을 쏘자 다급한 운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에는 픽업에 맞았다 갈지자로 꽁무니를 흔들면서 먼짓길을 도망쳐
나가는 픽업을 보면서 루터는 미소를 지었다 멋모르고 까부는 주정
뱅이들 루터는 그렇게 생각했다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는 KKK단원 하나가 스무 명의 이름과 전화
번호가 적힌 명단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앞마당을 한번 내다보라는 간단한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금요일 아침에 제이크는 누스 판사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스
판사의 부인은 누스가 민사사건 때문에 포크 군에 갔다고 전했다 제
이크는 엘렌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스미
스필드로 떠났다 제이크는 텅 빈 법정에 들어서면서 누스 판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법정 안에는 배심원들만 있을 뿐 방청객이라
곤 하나도 없었다 제이크는 맨 앞줄에 앉아 재판을 보았다 누스 판
사도 배심원루 변호사들도 다 지루해하는 것 같았다 이분쯤 지나
자 제이크도 지루해졌다 증인 심문이 끝나자 누스는 휴정을 선언했
다 제이크는 판사실로 들어갔다
제이웬일이오
어제 일어난 사건 얘기는 들으셨습니까
어제 저녁 뉴스에서 봤소만
오늘 아침 소식은 못 들으셨습니까
못 들었소
누군가 KKK단에게 배심원 명부를 넘겨줬습니다 어젯밤 스무
명의 예비 배심원의 집마당에서 나무십자가가 불탔으니까요
누스는 깜짝 놀랐다
배심원들의 집에 말이오
그렇습니다
범인은 잡았소
물론 못 잡았죠 불을 끄기도 바빴을 테니까요 게다가 판사럼은
이런 사람들을 잡아넣지도 않잖습니까
배심원 스무 명이라니
누스가 제이크의 말을 다시 받았다
그렇습니다 판사럼
누스는 헝클어진 회색 머리를 손으로 한번 훌더니 자리에서 일어
나 작은 방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는 머리를 저으면서 가끔씩 사타구
니를 박박 긁어댔다
당신 말은 위협처럼 들리는데
누스가 중얼거렸다
참 대단한 사실을 깨달으셨군 역시 천재야 제이크는 속으로 빈정
거렸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소
누스는 쩔쩔매고 있었다
재판지를 변경하십시오
어디로 말요
남쪽으로요
캐러웨이 군 같은 곳을 말하는 거요 거기는 주민의 60퍼센트가
흑인이니까 거기서라면 적어도 불일치 배심을 따내 미결정 심리를
이끌어낼 수 있겠지 안 그렇소 브라워 군도 마음에 들겠군 그곳은
흑인이 휠씬 더 많으니 잘만 하면 무죄 석방도 가능할 거고
LI저는 어디로 옮기든 상관 없습니다 제 말은 포드 군에서 재판을
여는 게 공정하지 않다는 겁니다 어제 그 난동이 있기 전에도 상황
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백인 주민들은 칼 리를 사형에 처
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구 내 의뢰인에게는 희망의 여지가 보
이지 않습니다 KKK단이 나무십자가 따위로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
기 전에도 상황은 심각할 만큼 심각했습니다 월요일이 오기 전에 무
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제 포드 군에서는 공정한 배
심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흑인 배심원을 얘기하는 거요
LI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배심원은 예단을 하지 않은 배심원입니다
칼 리 헤일리는 편견을 갖지 않은 열두 명의 배심원 앞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얘깁니다
누스 판사는 쿵쿵거리면서 의자 쪽으로 걸어가 의자 속에 푹 파묻
혔다 그는 코끝에 걸려 있는 안경을 벗어서 한쪽 끝을 쥐었다
그 스무 명은 제외시키겠소
누스는 큰 소리로 못박았다
그래도 소용 없습니다 포드 군 사람들은 그 사건에 대해서 다 알
고 있습니다 지금은 모른다 해도 서너 시간 뒤면 다 알게 될 겁니다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명부에 오른 사람은 누
구든 겁을 집어먹을 거라구요
그럼 전부 다 취소하고 새로 뽐으면 어떻겠소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판사님
제이크는 누스의 고집에 짜증이 나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누가 배심원이 되든 다 포드 군 사람일 테구 포드 군 사람이라면
전부 그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KKK단이 새로 뽑은 배심원들을 괴
롭히는 것은 어떻게 막을 생각이십니까 소용없는 일입니다
재판지를 옮기면 KKK단이 어이구 무서워라 하며 따라오지 않을
것 같소 다른 곳으로 옮겨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
냔 말오
누스의 말투엔 비웃음이 묻어 있었다
물론 그들은 따라을 겁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조 우리가 확
실히 아는 건 KKK단이 이미 포드 군에 들어와 있구 활발한 활동을
하며 배심원 스무 명을 위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바로 문젭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이크가 반박했다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소
누스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뭐라구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생각이 없다고 했소 나는 그 스무 명을 배심
원 후보에서 제외시키는 일만 할 거요 다음 월요일 클랜턴에서 재
판이 시작되면 배심원들을 심문할 것이오
제이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누스를 노려보았다 누스가 아
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에게는 슁게 털어놓
을 수 없는 어떤 두려움이 있었다 루시엔의 말이 옳았다 누군가가
지금 누스 판사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칼 리 헤일리를 어디서 재판하느냐 하는 건 중요하지 않소 배심
원 자리에 누가 앉게 되느냐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구 그들이 흑인
이냐 백인이냐 하는 것도 문제가 안 되요 어디에 사는 누구든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단 말이e제이크 씨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
의 의뢰인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배심원들을 고르는 일일 거요
그 말이 옳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인정할 수는 없었다 제이크는
나무들 사이에 시선을 박은 채로 말했다
왜 재판지 변경을 두려워하십니까
누스 판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두컴워하다니 나는 내가 내리는 어떤 결정도 두려워하지 않아
요 그러는 당신은 왜 포드 군에서 재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거요
이미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지금부터 사흘 후 원요일에 헤일리 사건은 포드 군에서 재판할
것이요 내가 재판지 변경을 두려워해서 포드 군에서 여는 게 아니
라 옳긴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기 때문에 포드 군에서 여는 것임을
명심하시오 나는 이 문제를 아주 진지하게 고민해 왔소 브리건스
씨 내 오랜 경험으로 볼 때 클랜턴에서 재판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거요 다른 질문 있소
없습니다
잘 가시P 윌요일에 봅시다
제이크는 뒷문을 통해 사무실로 올라갔다 정문은 일주일 전부터
잠가 놓았다 그래도 늘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대긴 했
지만 대부분은 보도진들이었구 재판 준비가 어떻게 진행되는가 보
기 위해서 잠간씩 들르는 친구들도 간혹 있었다 고객은 없었다 전
화가 끊임없이 울려댔지만 제이크는 절대로 받지 않았다 엘렌이 어
쩌다가 수화기 옆을 지날 때 가끔 받을 뿐이었다
엘렌은 회의실에 앉아 팔꿈치를 책 위에 대고 있었다 그녀가 작
성한 맥노튼 판례에 관한 준비서면은 걸작이었다 제이크는 20페이
지 정도로 정리해 줄 것을 요구했는데 엘렌이 내놓은 것은 75페이지
나 되었다 그녀는 미시시피 주에서 맥노튼 이론이 적용된 판례들을
20페이지 분량으로 요약하기는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준비서면은
꼼꼼하고도 치밀했다 엘렌은 1800년대에 있었던 영국의 맥노튼 사
건의 원본은 물론 150년 동안 미시시피 주에서 심신장애 판결을 받
은 판례들을 조사해 놓았다 중요하지 않은 것과 불분명한 사건들은
제외시키고 복잡하고 중요한 사건들은 요점만 모아서 간략하게 정
리를 했다 준비서면의 마지막은 현행 법이론에 대한 요약과 그것을
칼 리 헤일리 사건에 적용시킨 것으로 끝나 있었다
14페이지에 걸친 좀더 작은 준비서면에는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의 얼굴이 날아간 끔찍한 사진을 배심원에게 보여주지 않을
방법은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미시시피 주에서는 그와 같은 자
극적인 증거를 채택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피
할 방법은 없었다
엘렌은 또 정당한 살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변호할 수 있는 방
법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했다 살인사건이 있고 난 후에 제이
크가 잠시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엘렌의 결론은 제이크와 같았다 적
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시시피 주 판례에 부기를 들고 도망간
피고인을 쏴죽이고 석방된 예가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과 헤일리 사
건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제이크가 그 부분에 대한 조사는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그녀가 많은 에너지를 그 서면에 쏟아부어서
제이크는 짜증이 났다 하지만 그가 요구한 내용은 빠짐없이 들어 있
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엘렌의 작업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것츤 떼이스 박사와 힘을
합쳐서 만든 질문지였다 두 사람은 일주일 동안 두 차례 만남을 통
해 맥노튼 사건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제이크가
질문할 내용과 베이스 박사가 대답할 내용을 25페이지 정도로 요약
했다 질문과 대답은 능숙하고도 아주 치밀한 논리의 사슬로 엮여 있
었다 제이크는 그녀의 능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엘렌
나이였을 때는 연구보다는 사랑에 더 관심이 많았었는데 대학 3학
년생인 엘렌은 논문 수준에 해당하는 자료를 거뜬히 소화해내고 있
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요
엘렌이 물었다
생각했던 대로 꼼짝도 안 하더군 재판은 윌요일에 예정대로 클
랜턴에서 열릴 거라나 협박을 받은 스무 명은 예비 배심원에서 뺀다
고 하더군
미쳤군요
무슨 일을 하고 있었소
강간사건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배심원들 앞에서 대응해야 될지
조사하고 있었어요 지금으로서는 괜찮아 보여요
언제쯤 끝낼 수 있을 것 같소
급한 건가요
일요일까지 했으면 좋겠는데 또다른 문제가 있어서 말이오
엘렌은 서류들을 한쪽으로 밀어놓구 제이크의 말에 귀기울였다
검사측에서 내세운 정신과 의사는 위트필드의 진료부장인 월버
트 로드히버 박사요 그 사람이 그 병원 터줏대감인데 수백 건이 넘
는 재판에서 증언을 한 경력이 있죠 법원 판결문에 그 사람 이름이
얼마나 나오는지 조사를 좀 해봤으면 좋겠어요
이미 그 사람 이름을 본 적이 있는데요
좋아요 하지만 우리가 본 대법원 판례는 피고인이 유죄판결을
받아서 항소했던 사건밖엔 없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죄판결이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조사를 하도록 해요
특별히 생각하고 있는 게 있나요
로드히버 박사는 피고인이 법적으로 심신장애자였다는 증언을
할 사람이 아니오 한번도 그렇게 증언한 적이 없지 심지어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명백한 심신장애자에게도 이
상이 없다고 증언했소 나는 반대심문에서 그가 아무런 이상이 없다
고 증언했던 피고인이 배심원들에게 무죄판결을 받았던 사건을 물고
늘어질 거Q
그런 판례를 찾기는 무척 힘들겠네요
하지만당신은할수 있소 일하는 걸 지켜보니 할수 있다는 결
론이 저절로 서는데 뭘
칭찬이 과하시군요 보스
예전에 로드히버 박사와 싸운 적이 있는 변호사들에게 전화를 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힘들겠지만 꼭 해줘요
알았습니다 어제까지 완성되었어야 할 일인 것 같군요
아니오 로드히버 박사는 다음주쯤 맞닥뜨리게 될 거9 그때까
지는 시간이 좀 있는 셈이지
그러니까 어떡하라는 얘기예요 급하지 않다는 얘긴가요
그래요 그렇지만 강간사건에 관한 건 아니오
알았어8
점심 먹었소
배고프지 않아
좋소 저녁식사는 약속하지 말아요
무슨 뜻인가요
내게 생각이 있다는 뜻이오
데이트 신청 같은 거요
아니 프로들끼리의 저녁 약속이지
제이는 서류가방 두 개를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루시엔네 있을 거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연락하지 말구 사
람들한테 나 있는 곳도 얘기하지 말아요
윌 하실 거죠
배심원 선정 문제Q
루시엔은 술에 취한 채 현관에 앉아 있었곤 샐리는 보이지 않았
다 제이크는 위층에 있는 넓은 서재로 올라갔다 루시엔은 웬만한
변호사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많은 법서를 갖고 있었다 제이크
는 서류가방에 넣어온 것을 책상 위에 넓게 펼쳤다 배심원의 명단이
알파벳 순서대로 놓였고 9x15센티 크기의 카드뭉치와 형광펜도 놓
였다
첫번째 이름은 애커 배리 애커였다 배리라는 이름은 카드 위쪽에
파란색 펜으로 써서 표시를 해두었다 파란색은 남자 붉은색은 여
자 흑인은 성별에 관계없이 검은색으로 표시했다 제이크는 애커라
는 성 아래 신상 명세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나이 마흔 살 정도 두
번째 부인과 살고 있고 1남 2녀를 둠 클랜턴 고속도로변에서 철물
점 운영 부인의 직업은 은행 비서 목요일에 그 철물점에 가서 애커
를 보고 온 앳캐비지는 그가 좋은 사람인 것 같고 웬만큼 교육도 받
은 것 같다고 했다 제이크는 애커라는 이름 옆에 9점을 주었다
제이크는 그만큼 알아낸 것에 만족했다 버클리는 이만큼도 알아
내지 못하리라
다음 이름은 빌 앤드루였다 골때리는 이름이었다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는 것만도 자그마치 여섯 개나 되었다 제이크가 아는 사람이
한 명 해리 렉스도 한 명 알고 있었다 오지 보안관이 아는 빌 앤드
루는 흑인이었지만 그중에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
이크는 이름 옆에다 물음표를 그려 넣었다
제럴드 얼트 제이크는 카드에다 이름을 적으면서 씨익 웃었다 몇
년 전에 제이크에게 의뢰를 했던 사람으로 저당잡힌 집이 은행에 빼
앗길 판이어서 제이크를 부랴부랴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신
장병을 심하게 앓는 아내를 치료하느라 파산한 상태였다 프린스턴
대학을 나온 지식인 얼트는 대학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포드 군
출신인 그의 아내는 한때 부자였지만 멍청하게도 철도에 투자를 해
홀랑 망한 가문의 외동딸이었다 결흔 후 그는 포드 군으로 내려왔
지만 마침 처가가 파산하는 바람에 안락한 생활에 대한 꿈이 순식간
에 날아가 버렸구 그때부터 살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
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구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한때
는 법원에서 서기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는 힘든 일은 질색하는 성
격이었으나 아내가 병에 걸려 하나 남은 집마저 잃게 되자 식료품점
점원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제럴드 얼트에 대해서는 제이크만 아는 은밀한 얘기가 하나 있었
다 그는 어려서 펜실베이니아 고속도로 옆에 있는 작은 농가에 살았
는데 어느날 식구들이 모두 잠든 사이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마침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문을 박차고 들어가 얼트네 식구들
을 구해냈으나 불이 급속도로 번져 위층에서 자고 있던 얼트와 형은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두 형제는 창문가에서 애타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구 집 바깥에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은 발만 동
동 구르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있던 침실만 빼놓구 집 전체가 불
꽃과 연기로 가득 뒤덮이는 순간 구조대원 하나가 온몸에 물을 흠뻑
적시고는 과감하게 집 안으로 뛰어들어 화염과 연기를 뚫고 위층 침
실로 들어갔다 그는 창문을 발로 차고는 제럴드와 형을 껴안고 땅으
로 뛰어내렸다 신기하게도 두 형제는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
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 구조대원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그
리고 피부가 검은 그 이방인에게 거듭 감사를 표했다 그 구조대원은
어린아이들이 처음으로 만난 검등이였다
제럴드 얼트는 포드 군에서 흑인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몇 안 되는
백인 중 하나였다 제이크는 이름 옆에다 10점을 주었다
제이크는 여섯 시간 동안 배심원 명단을 살폈다 각자의 카드를
작성하구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을 그리며 그들과 자세
한 얘기를 나누는 장면도 상상해 보았다 그는 배심원 모두에게 점수
를 매겼다 혹인은 무조건 10점이었지만 백인들의 점수를 매기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남자가 여자보다 높은 점수를 받
았고 젊은 사람이 나이든 사람보다 높았다 교육 정도에 따라서도
받는 점수가 달랐구 무엇보다 자유주의자인 경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제이크는 누스 판사가 얘기한 대로 협박을 받은 스무 명을 제외한
111명의 신상을 조금은 알게 된 셈이었다 후후 버클리도 나만큼은
모르겠지
제이크가 루시엔네 집에서 돌아왔을 때 엘렌은 에셀이 쓰던 타자
기와 열심히 씨름을 하고 있었다 엘렌은 타자기를 U고 법서를 덮
은 다음에 제이크를 올려다보았다
저녁은 어디서 하죠
엘렌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잠간 드라이브를 해야 하는데
그거 좋죠 어디로 가는데요
미시시피의 로빈슨빌이라는 데 가본 적 있소
아니오 하지만 갈 준비는 됐어요 거기 가면 뭐가 있죠
목화밭과 콩밭 그리고 작은 레스토랑
옷차림에 신경써야 하는 곳인가요
제이크는 엘렌을 위아래로 훌었다 평소처럼 색바랜 청바지에 셔
츠를 입고 양말도 신지 않은 차림이었다 헐렁한 셔츠가 그녀의 날씬
한 엉덩이 위에 보기 좋게 매듭지어져 있었다
그 정도면 썩 괜찮아 보여Q
두 사람은 복사기와 전등을 끄고 차에 올라탔다 가는 길에 혹인
들 동네에 들러 여섯 캔짜리 쿠어스 맥주 한 팩과 차가운 백포도주
도 公다
거기 가려면 술은 사가야 하거든요
마을을 떠나면서 제이크가 말했다
쭉 뻗은 고속도로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제이크는 햇빛
가리개를 차창에서 내렸고 엘렌은 바텐더처럼 맥주를 따서 제이크
에게 건넸다
얼마나 가야 되죠
엘렌이 물었다
한 시간 반 정도
한 시간 반이라구요 저는 배고파 죽겠는데
그럼 맥주로 배를 채워요 그 정도 참을 가치는 있으니까
메뉴가 뭐예요
바비큐 새우튀김 개구리 다리 그리고 구운 메기
엘렌은 맥주를 한 모금 입 안으로 삼켰다
차는 호수의 지류에 놓인 다리를 지나 짙푸른 나무로 뒤덮인 언덕
길로 올라갔다 차가 굽이길에서 돌아나오는 트럭을 피해 미끄러질
때는 아찔한 스릴마저 느껴졌다 제이크는 천장에 붙은 창을 열고 차
창을 내렸다 시원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엘렌은 의자에 몸을 깊
숙이 누이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부푼 머리가 얼굴을 감싸면서 뺨으
로 흘러내렸다
엘렌 오늘 저녁식사는 단지 일에 관한
물론이죠
나는 고용주고 당신은 고용인이요 이건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의
저녁식사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오 그러니까 당신의 자유분방한
성관념은 머릿속에서 지워 버려요
오히려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들리는데요
아니 나는 당신 생각을 알고 있을 뿐이오
LL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죠 당신은 도대체 뭘 믿구
당신은 굉장한 매력남이며 나는 그 매력에 흘려 당신을 유혹하려고
안달이 났다고 확신하는 거죠
어쪘든 나는 행복한 결흔 생활을 하고 있구 내가 만약 바람을 피
운다면 나를 죽이려고 들 홀릉한 아내가 있는 몸이오
알았어요 그럼 친구로 하죠 친구끼리의 저녁식사로 하면 되잖
아9
남부에선 통하지 않는 얘기요 아내가 있는 사람은 여자친구와
저녁을 먹을 수 없소 이곳에서는 안 되지
왜 안 되죠
왜냐하면 남자들은 여자친구를 만들지 않으니까 전혀 나는 남
부 전체를 통틀어서 여자친구를 가진 유부남은 본 적이 없소 남북전
쟁 때부터 그래 왔어Q
LL중세 때부터 그런 건 아니구요 남부 여자들은 왜 그렇게 질투가
심한 거죠
LL우리가 여자들을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죠 여자는 우리한테 배
우는 겁니다 만약 내 마누라가 남자친구와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다
면 나는 그 자식 머리통을 박살내 버리고 이혼을 할 거9 우리가 그
러니까 여자들도 그러는 거예요
너무너무 멍청한 소리군9
전혀 그렇지 않소
그럼 부인은 남자친구가 없단 말이에요
내가 아는 한 만약 알게 되면 나한테 꼭 귀띔해 주시오
당신도 여자친구가 없구요
L1왜 내가 여자친구가 있어야 되는 거죠 축구 오리사냥 정치 소
송 내가 관심있는 어떤 주제도 같이 나눌 수 없는데 말이P 여자들
은 항상 애들 얘기나 옷 얘기 요리 상품권 가구와 같은 내가 잘 모
르는 얘기만 한다구요 여자친구는 있지도 않구 원하지도 않소
그게 내가 남부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유예요 참을이 많다는

좋게 봐줘서 고맙군
유태인 친구는 있어요
포드 군에는 아는 사람이 없쇼 대학 다닐 때 이라 타우버라는 뉴
저지 출신의 친구가 있었죠 아주 절친했소 나는 유태인을 사랑하
요 당신도 알다시피 예수도 유태인이니까 나는 반유태주의를 눈곱
만큼도 이해할 수 없소
맙소사 당신은 자유주의자로군요 그럼 동성연애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죠
유감스럽게 생각하죠 그들은 윌 잃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르는 사
람들이오 그러나 그게 그들의 문제점이겠죠
친구 중에 동성연애자가 있었나요
아마 있었을 거B 그들이 말은 안 했지만
당신은 역시 공화당이에요
엘렌은 빈 캔을 뒷좌석으로 집어던지구 두 개를 더 땄다 해는 이
미 저물어 버렸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150킬로로 질주하는 차 안
으로 상쾌하게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될 수 없쇼
연인은 물론이고요
그만 얘기해B 운전해야 되니까
그럼 우리 사이는 뭐죠
나는 변호사고 당신은 법률 서기죠 나는 고용주고 당신은 고용
인이구 내가 보스라면 당신은 졸개지
당신은 남자고 나는 여자구요
제이크는 엘렌의 청바지와 불거진 셔츠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 같군
엘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차창 밖으로 지나는 거대한 산
을 바라보았다 제이크는 싱긋 웃으면서 맥주를 들이켰다 차는 속도
를 점점 높였다 시골길의 교차로를 지나고 한적한 고속도로를 넘어
서자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레스토랑 이름이 뭐죠
엘렌이 물었다
할리우드
뭐요
할리우드
어쩌다가 그런 이름을 얻게 줬죠
그 레스토랑은 원래 미시시피 주의 할리우드라는 작은 동네에 있
었는데 할리우드가 불타는 바람에 로빈슨빌로 옳겨왔소 그렇지만
이름만은 여전히 할리우드죠
뭐가 그렇게 유명한 곳인데요
음식도 좋구 음악도 좋구 무엇보다 공기가 좋죠 클랜턴에서 멀
리 달려나왔으니까 묘령의 아가씨와 저녁을 먹고 있다는 걸 들킬 염
려도 없고
나는 묘령의 아가씨가 아니고 졸개인 걸요
미모의 졸개
엘렌은 피식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교차로에
이르러 제이크는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더니 기찻길 옆의 작은 마을
이 나타날 때까지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도로 한쪽에는 오두막집들
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그 반대편은 잡화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게 앞에는 차가 열 대 정도 주차되어 있었다 창문틈으로 부드
러운 음악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제이크는 백포도주를 손에 들고 엘
렌과 함께 현관을 지나 건물로 들어섰다
문 바로 옆에 자리잡은 작은 무대에서 예쁘게 생긴 흑인 가수가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조지아의 비오는 밤이었
다 피처로 맥주를 따르던 흑인 여종업원이 두 사람에게 이리로 오라
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두 사람을 체크 무의 식탁보가 덮인 안쪽
자리로 안내했다
오이 튀김 드시겠어요
여종업원이 제이크에게 물었다
물론 2인분 주시오
엘렌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제이크 쪽으로 몸을 숙였다
오이 튀김이라구요
그렇소 보스턴에서는 안 먹는 음식이죠
남부 사람들은 뭐든지 튀겨 먹나 본죠
먹어서 괜찮은 건 싫다면 내가 다 먹겠소
고함 소리가 통로를 지나 두 사람이 앉은 탁자를 덮쳤다 사람들
이 누구의 무엇을 위해 축배를 들면서 폭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tll
스토랑 안은 떠들썩한 여흥과 재잘거림으로 확 찼다
할리우드의 좋은 점은 원하는 만큼 머물면서 꺼떤 소리를 질러도
된다는 점이요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 일단 자리를 잡으면 우리 게
되는 거9 좀 있으면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고 그럴 거9
제이크는 새우튀김과 구운 메기 2인분을 더 주문했다 엘렌은 앞
에 놓인 개구리 다리를 제이크 쪽으로 슬쩍 밀었다 여종업원이 백포
도주와 잔 두 개를 가져왔구 두 사람은 헤일리의 심신장애를 위해서
잔을 부딪쳤다
베이스 박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제이크가 물었다
증인치고는 완벽한 사람이죠 우리가 얘기하라는 건 뭐든지 얘기
할 테니까요
잘 할 것 같소
그냥 증인이라면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사람은 전
문가예요 자기 의견을 확실히 말할 줄 안다구요 누가 감히 그 사람
한테 반론을 펴겠어요
믿을 만한 사람 같소
정신만 멀정하면9 두 번 만났는데 화요일날 처음 만났을 때는
정신도 말짱하고 도움도 많이 됐어9 그런데 수요일날은 술에 잔뜩
취해서 별로 관심이 없더라구요 제 생각에는 그만한 증인을 찾기가
힘들 것 같아요 듣고 싶은 건 다 얘기해 주잖아요
칼 리가 정신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소
아노 당신은 그렇게 생각해요
전혀 사실 칼 리는 살인사건이 있기 닷새 전에 나한테 얘기를 했
소 어디서 죽일 건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말했죠 물론 그 당시에
는 믿지 못했소만 우리 의뢰인은 자기 행위가 뭘 뜻하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소
왜 말리지 않았죠
나는 믿지 않았소 그뻔 칼 리의 딸이 막 강간을 당해서 사경을
헤맬 때였거든
말릴 수 있었다면 말렸겠어요
오지한테도 얘기한 바 있지만 나는 안 말렸을 거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곤 우리 둘 다 상상도 못 했지만 알았더라도 나는
안 말렸을 거요 나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테니까
어떻게요
칼 리가 한 대로 별로 어렵지 않소
엘렌은 포크를 들고 오이 튀김을 뒤적거렸다 그녀는 튀김을 반으
로 자른 뒤 포크로 찍어 냄새를 킁킁 맡아보기까지 했다 마침내 결
심이 섰는지 그녀는 오이 튀김을 입에 밀어넣고 천천히 씹었다 그리
고는 접시째 제이크에게 떠넘겼다
전형적인 양키군 로 아크 양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소 당
신은 오이 튀김을 좋아하지도 않구 매력적이며 또 매우 총명해요
당신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전망이 좋은 법률회사에서 목돈을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사람이오 그런데 왜 굳이 이 험한 데까지 내려
와서 잠도 못 자면서 사형을 당할 이유가 충분한 죄인을 위해 희생
을 하는 거요 이유가 대체 뭐요
당신도 그런 사람을 위해서 잠을 설치기는 마찬가지잖아요 그게
지금은 칼 리일 뿐이에요 다음에 다른 의뢰인이 와도 예를 들면 모
든 사람들이 다 끔찍이 싫어하는 그런 의뢰인이 와루 당신은 잠을
설쳐가며 일할 거예요 언젠가는 브리건수 당신도 당신 의뢰인이 사
형당하는 것을 보게 될지 몰라요 그럼 그게 얼마나 끔찔한 짓인지
알게 되겠죠 전기의자에 앉아서 마지막으로 당신을 쳐다보는 그 눈
빛을 잊지 못할 거고 마음이 바필 거예요 우리의 제도가 얼마나 야
만적인지 깨닫게 될 거라구요 그럼 그때 이 로 아크를 기억하세요
그러고 나면 수염을 기르고 인권협회에 가입해야겠군
그럴 수도 있겠죠 당신을 받아준다면
새우 튀김이 작은 프라이팬에 담아져 나왔다 버터와 마늘과 바비
큐 소스가 어우러져 팬 위에서 지글거리고 있었다 엘렌은 한 숟갈
가득 퍼서 자기 접시에 담더니 피난민처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
다 불이 켜졌고 흑인가수가 무대로 올라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여종업원이 급히 지나가면서 바삭바삭한 개구리 다리가 든 큰 접
시를 내려놓았다 제이크는 와인을 한 모금 쭉 들이키고 나서 개구리
다리를 한 숟갈 떴다 하지만 엘렌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전채요리
가 그렇게 끝나자 주요리인 메기 구이가 나왔다 할리우드의 메기
구이는 숯불에 단 석쇠를 놓아 구운 것이었다 두 사람은 바착 구운
메기를 씹으면서 천천히 술을 마시면서 감미로운 분위기에 젖어들
었다
자정이 되자 술도 다 비워졌구 흘 안을 비추던 불빛도 희미하게
잦아들었다 제이크와 엘렌은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천천
히 계단을 걸어내려와 차에 올랐다
너무 취해서 운전을 할 수가 없겠는데
제이크가 안전밸트를 매다가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 아래 조그만 모텔이 보이던데
나도 봤소 하지만 방이 없을 것 같소 어쨌든 로 아크 잃 가보자
구 나를 취하게 한 다음 한번 도전해 보라구
그럴 수 있으면요 브리건스 씨
두 사람의 눈길이 잠시 마주쳤다 엘렌의 눈동자에 할리우드의 붉
은 간판이 반사되었다
시간이 좀더 흐라 할리우드의 간판 불이 꺼졌다 제이크는 히터
를 살짝 켜고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토요일 아침 일찍 미키 마우스가 오지 보안관에게 전화를 걸어
KKK단이 문제를 더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목요일의 폭동은
KKK단의 잘못이 아닌데도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려졌기 때문
이라고 했다 그들은 평화적으로 집회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그들의
지도자는 몸의 70年센트에 3도 화상을 입고 누워 있다고 했다 앙갚
음이 있을 것이다 곧 다른 주에서 지원 부대가 도착하기로 되어 있
으며 폭력이 뒤따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사
실을 아는 바가 없으며 사실을 아는 대로 전화를 해주겠다는 게 내
용이었다
오지는 침대끝에 걸터앉아서 목덜미의 혹을 비벼대다가 시장과
제이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사람은 한 시간 후 오지의 사무실에
서 자리를 같이 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오지 보안관이 말했다 그는 얼음주머니를 상처에 갖다대면서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인상을 잔뜩 구겼다
저는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KKK단이 목요일 폭동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다른 주에서 지원 부
대가 도착하고 있답니다
그 말을 믿는 겁니까
시장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같은 정보원인가
제이크가 물었다
그렇네
그럼 저도 믿습니다
재판을 연기하거나 재판지를 옮긴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인

오지가 물었다
아니 어제 누스 판사를 만났는데 변동 사항 없이 월요일에 재판
을 열겠다더군
불타는 십자가에 대해서 얘기했나
전부 다 얘기했지
그 사람 돈 거 아닙니까
시장이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주 멍청합니다 하여튼 그에 관해서
는 더 얘기하지 마십시오
누스 판사가 확실한 법적 근거를 갖고 그러는 거야
오지가 짜중을 내면서 나섰다 제이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어 그 사람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지
보안관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시장이 보안관에게 물었다 오지는 얼음주머니를 목에 대고 문질
러댔다
더이상의 폭동은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일이 계속 일어
나도 될 만큼 병원이 넓지 않아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흑인
들은 화가 나 있구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어떤 놈들은 어디 총 쏠
일 없을까 찾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구9 그럴 때 횐 두건은 아주 좋
은 목표물이죠 저는 KKK단이 누구를 죽이거나 하는 멍청이짓을
할까봐 내심 불안합니다 그들은 이번 일을 핑계로 과거 십 년 동안
저질렀던 것보다 더 격렬한 난동을 부릴 것 같습니다 제 정보통에
의하면 목요일 폭동 이후에 이곳에 내려와 재미 좀 보려는 지원자들
로부터 전화가 폭주한다고 합니다
오지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다시 얼음주머니를 갈았다
저도 이런 말씀드리기는 싫지만 시장님께서 주지사께 주방위군
을 요청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어려운 조치라는 건 알고 있지
만 인명 손실은 막아야 합니다
주방위군이라고요
시장은 오지의 요청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깜짝 놀라서 소리
를 쳤다
예 그렇습니다
클랜턴을 포위하라는 말입니까
예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거리를 순찰하면서 말입니까
예 총이나 다른 장비들도 갖추고 말입니다
이런 그건 비상이군요 너무 과잉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닙니까긴
아닙니다 우리 병력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는 데 역부족입니다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폭동도 막지 못했습니다 KKK단이
불을 지르고 다니는데도 우리는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흑인들까지
가세해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이 될 겁니다 우리는
병력이 부족합니다 시장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기가 막힌 생각이군 제이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주방위군이
법원에 진주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공정한 배심원이 선출될 수 있
겠는가 제이크는 배심원들이 총과 지프와 탱크로 무장한 채 진주
해 있는 주방위군들 사이를 지나 법원으로 걸어올라가는 모습을 상
상해 보았다 어떻게 그들이 공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누스 판사가
재판지를 변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하늘이 심술을 부
려서 칼 리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진다 해푸 그런 상황에서 난 판결을
어떻게 대법원이 취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말 혁명적인 아이디
어가 등장한 것이다
제이크 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시장은 제이크가 거들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질문을 떠넘겼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시장님 폭동이 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시장님께 정치적인 피해를 줄지도 모릅니다
나는 정치 따위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시장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오지와 제이크가 자기 속을
뻔히 알고 있다는 것은 시장도 눈치채고 있었다 지난번 선거에서 불
과 50표도 안 되는 근소한 차이로 겨우 재선된 처지니까 정치적인
낙진이 있을 경우엔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을 시장도 잘 알고 있
었다 조용하기만 하던 이 마을에 군대가 진주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시장이 괴로워하는 동안 제이크는 오지를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보
냈다
토요일에 날이 저물자 헤이스팅스와 오지 보안관은 교도소 뒷문
을 통해 칼 리를 몰래 데리고 나와 순찰차에 태웠다 헤이스팅스가
운전하는 동안 그들은 웃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차는
시내를 벗어나 베이츠네 식료품점을 지나 크래프트 로路를 달렸다
헤일리가의 앞마당은 이미 다른 차들로 꽉 찬 상태여서 순찰차는 도
로변에 주차해야 했다
칼 리는 마치 자유인처럼 현관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섰다 거실
가득 모인 친척들과 친구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칼 리에게 달
려들었다 칼 리가 오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한 터였다 그는 두 팔
로 한꺼번에 네 가족을 꼭 끌어안았다 사람들은 칼 리가 무릊을 꿇
구 훌쩍이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고개를 박고 있는 모습을 침울하게
내려다보다가 슬금슬금 눈시울을 적셨다
부엌에는 음식이 한상 그득히 차려져 있었다 칼 리는 그가 늘 앉
던 식탁머리에 앉았구 아내와 아이들은 그 주위에 빙 둘러앉았다
에이지 목사가 하루빨리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팎은 기도
를 드렸다 백 명이 넘는 친구들이 평화로운 가정을 지켜보고 있었
다 오지와 헤이스팅스는 음식을 가지고 현관으로 나와서는 모기를
쫓으며 재판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오지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칼 리를 법원으로 안전하게 호위하는 문제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
다 그 짧은 거리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는 칼 리가 이미 믐소
증명해 주었으니까
저녁식사가 끝나자 사람들은 바깥으로 몰려나왔다 아이들은 아버
지가 보이는 곳에서 흥곁게 뛰놀았구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칼 리 곁
으로 다가서려고 애쓰면서 현관 주위를 가득 매웠다 칼 리는 그들의
영웅이었다 그들 가운데 한번도 그렇게 유명해진 사람이 없었다 게
다가 그 유명한 칼 리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으니 사람들의 시선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온 칼 리가 재판을 받아야 할 이유가 딱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가 두 사람을 죽이기는 했지
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칼 리가 만약 백인이었다
면 그는 그가 한 일에 대해서 시민들에게 표창을 받았을 것이다 설
사 마지못해 재판을 받더라도 백인 배심원 앞에서 받는 재판은 장난
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칼 리는 오직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재판을
받는 것이었다 그가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그것도 그가 흑인이기 때
문일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들
은 그가 재판 얘기를 하자 주의깊게 경청했다 칼 리는 사람들의 기
도와 성원을 바라며 모두들 재판에 참석해서 재판을 똑똑히 지켜봐
주고 자기의 가족을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와 습기 속에서 네 시간이나 앉아 있었다
칼 리와 그웬은 그들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며 이 위대한 남자 옆
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앉으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칼 리를 껴안으며 월요일 재판에
참석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들은 돌아서면서 현관에 앉아 있는 칼
리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정이 되자 오지가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칼 리는 그웬
과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힘껏 껴안고 순찰차에 올라탔다
버드 트위티가 간밤에 죽었다 무전 계원이 네스비트에게 알려왔
구 네스비트는 그 소식을 제이크에게 전했다 제이크는 조科料料
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요일 재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제이크는 새벽 다섯시에 잠
에서 깨어났다 위가 쓰리고 아픈 것은 재판 때문이었구 극심한 두
통은 토요일 밤을 루시엔네 집에서 엘렌과 함께 보낸 탓이었다 엘렌
이 루시엔네 손님방에서 자겠다고 했기 때문에 제이크는 사무실 소
파에서 잠을 잤다
소파에 누워 있자니 바로 아래 거리에서 소음이 들려왔다 그는
어둠을 헤집고 발코니로 갔다 법원 주위에서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디데이였다 전쟁이 터지구 패튼 장군이 도착한
것이다 수송 트럭과 지프가 거리에 반듯하게 줄지어 서 있었구 군
인들이 이리저리 뛰면서 자기 대열을 찾아가고 있었다 무전기 소리
가 요란하게 울렸구 배가 툭 불거져나온 대령은 부하들에게 줄을 맞
춰 서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잔디밭 가운데 지휘소가 설치되고 있었
다 세 개 분대가 말뚝을 박고 줄을 잡아당기며 야전막사 세 채를 짓
고 있었다 광장의 네 귀퉁이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었구 각 위치
에 배치된 보초병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가로등에 기대 서 있었다
네스비트는 순찰차 트렁크에 걸터앉아 클랜턴이 무장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몇몇 보초병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제이
크는 네스비트에게 커피를 끓여 갖다주면서 자기는 이제 잠에서 깼
구 이곳은 안전하니까 그만 집으로 돌아가 어두워질 때까지 쉬라고
말했다 제이크는 다시 발코니로 돌아와 해가 뜰 때까지 군대의 움직
임을 지켜보았다 수송 트럭은 병력을 내려놓은 뒤 북록에 있늘 주방
위군 기지로 돌아갔다 제이크는 군인들의 숫자를 세어보았다 적어
도 2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몇몇씩 무리를 지어 법원 주위
를 어슬렁거리면서 광장을 돌아보거나 상점 안을 기웃거리며 얼른
날이 새서 뭔가 짜릿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스는 분명히 화를 낼 터였다 감히 한마디 상의도 없이 주방위
군을 불러들이다니 시장도 그 문제를 걱정했으나 제이크는 클랜턴
의 안전을 지키는 책임은 시장의 권한이지 판사의 권한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오지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구 시장은 누스 판사에게 통보
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지와 모스가 대령을 만나러 갔다 그들은 광장 주위를 순시하면
서 막사와 부대의 위치를 점검했다 오지는 여러 가지 지적을 해주었
고 대령은 그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 모스는 법원의 문을 열어 군
인들이 물을 마시고 용변을 볼 수 있게 했다 보도진이 점령당한 클
랜턴을 처음 목격한 것은 아홉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한 시간도 지나
지 않아 수많은 보도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그만 정보라
도 얻어내기 위해 중사와 하사들을 붙들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
밀었다
이름이 會니까
드럼라이트 중사입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분빌에서 왔습니다
그게 어디쯤이죠
여기서 240킬로쯤 됩니다
왜 온 겁니까
주지사가 소집했습니다
왜 소집을 한 거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섭니다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얼마 동안 주둔하게 됩니까
모릅니다
누가 결정합니까
주지사일 것 같습니다
군대가 진주했다는 소식은 클랜턴 일대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교인들은 이 놀라운 광경을 직접 확인하기 위
해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보초병들은 바리케이드를 거두고 사람들이
광장을 돌아볼 수 있게 배려해 주었구 사람들은 차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총과 지프로 무장한 실제 군대의 모습을 견학하는 좋은 기회
를 얻었다 제이크는 발코니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배심원 명단과
기록을 암기하고 있었다
제이크는 칼라에게 전화를 걸어 주방위군이 법원 앞에 배치된 것
과 그가 여전히 안전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솔직히 한번도 안전하다
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어쪘든 그는 군대가 자기의 안전을 위해
중무기로 무장을 하고 워싱턴 가를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
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래 경호원도 여전히 붙어다니고 집도 아직
안전해 제이크는 버드 트위티의 죽음이 언론에 보도되었는지 어쩐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칼라는 그 소식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칼라는 장인 어른의 보트를 타고 낚시를 하러
갔다 왔는데 한나가 아빠를 몹시 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제이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두 모녀가 그리웠다
엘렌은 사무실의 뒷문을 잠근 뒤 작은 식료품 봉지를 부엌의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서류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들고는 보스
를 찾기 시작했다 제이크는 발코니에 앉아 법원과 배심원들의 기록
을 적은 카드를 번갈아 살펴보고 있었다
안녕하시s로 아크 양
안녕하세a보스
그녀는 제이크에게 3센티는 되어 보이는 서류뭉치를 건네주었다
강간사건이 증거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사 서류예요 관
련되는 문제가 너무 많아서 두꺼워졌어요 그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드리죠
그것 역시 엘렌이 작성한 다른 준비서면처럼 훌릉했다 내용을 도
표로 정리했고 참고문헌과 인용문의 페이지까지 꼼곰히 적어놓았
다 제이크는 종이를 펄럭거리면서 대충 훌어나갔다
로 아크 양 내가 부탁한 건 교과서가 아니잖쇼
당신이 학술적인 논문을 두려워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3음절
이 넘지 않는 단어들을 쓰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구요
오늘은 장난치고 싶은 기분이 아니요 이걸 30페이지 정도로 다
시 요약해 줄 수 있겠소
보세요 제이이건 뛰어난 능력을 가진 법대생이 심혈을 기을
여 작성한 준비서면이에요 가히 천재적인 작업이죠 그리고 이건 이
제 당신 거예요 공짜로 당신한테 드리죠 그러니 이제 그만 징징대
세요 아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마님 골치깨나 썩이셨겠습니다
정말 그래요 아침에 일어나니까 머리가 아프더군요 이것 때문
에 어제 열 시간 동안이나 타자를 쳤어요 왈좀 마션야겠어오 블렌
더 있나요
뭐요
블렌더요 북부가 발명해 낸 새로운 발명품이죠 부엌에서 쓰는
거예요 주방기구
전자렌지 옆 선반에 뭔가 있는 것 같던데
엘렌이 사라지구 제이크는 광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법원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보는 데 싫증을 느
긴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가자 광장을 둘러싼 차량의 행렬은 뜸해지
기 시작했다 열두 시간 동안이나 클랜턴의 찜통 같은 더위와 끈끈한
습기에 시달린 군인들은 집 생각이 간절했다 그들은 나무그늘에 접
는 의자를 펴놓고 앉아 주지사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자 군인들은 법원 안에서 전선을 끌어와 막사 주위에 불을 밝
혔다 한 무리의 흑인이 야간 불침번을 서기 위해 간이 의자와 촛불
을 들고 우체국 옆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잭슨 가를 따라 행진을
시작했다 2백 명의 중무장한 군인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들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행렬의 선두에는 몸무게가 90킬로나 되는
미스 로시아 알피 게이트우드가 있었다 그녀는 혼자서 열한 명의 자
식을 키우고 그중 아흡을 대학에 보낸 또순이였다 클랜턴 광장의 공
공 누물에서 솟아난 샘물을 처음으로 맛본 흑인이었구 그것을 말해
줄 만큼 오래 살아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게이트우드가 군인들을
노려보았다 군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엘렌이 보스턴 대학 이름이 새겨진 머그잔 두 개에 옅은 녹색 음
료를 타 가지고 왔다 그녀는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구 의자를 바싹
끌어당겼다
이게 뭐요
마시기나 해봐요 기분이 편안해질 테니까요
마시긴 하겠는데 이름이라도 알고 먹읍시다
마가리타
제이크는 머그잔 안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소금은 안 쳐도 됩니까
나는 소금을 치지 않아요
그럼 나도 관둡시다 그런데 왜 하필 마가리타죠
왜 안 되나요
제이크는 눈을 감고 쭉 들이켰다 맛이 예사롭지가 않찼다 한 모
금을 더 삼키면서 제이크가 말했다
당신은 참 재주가 많은 여자군요
졸개요
제이크는 마가리타를 다시 음미했다
마가리타를 먹어본 지 8년이나 됐소
안됐군9
엘렌은 500ce가 넘는 머그잔의 반을 비워 버렸다
어떤 럼주를 넣었소걸
당신이 내 보스만 아니면 바보라고 부르고 싶군요11
고맙군
럼주가 아니라 데킬라예요 오렌지 주스에다 코인트로를 섞었죠
벌대생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요
그런 건 좀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 없소 나도 대학교 다닐 때는
다 알았다구
엘렌은 눈길을 돌려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굉장하네요 전쟁터 같아
제이크는 잔을 바닥내고 입맛을 다셨다 군인들은 막사 아래서 카
드를 치면서 웃어대고 있었다 어떤 병사들은 모기를 피해 법원 안으
로 도망치기도 했다 촛불을 든 행렬이 모퉁이를 돌아 워싱턴 가로
내려갔다
LL아름답지 않소 우리의 공정한 배심원들이 아침에 법원 앞에서
군인들과 맞닥뜨린다고 상상해 보시요 나는 재판지 변경을 다시 신
청할 생각이P 물론 누스는 안 된다고 그러겠지 그러면 나는 무효
심리절차상의 하자나 배심원의 판정 불능에 입각해 심리를 무효화하는
것옮긴이를 요청할 거구 누스는 다시 안 된다고 하겠죠 그러면 나
는 법원 출입기자들에게 이 재판이 서커스처럼 위태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떠벌릴 거요
군인들이 왜 이곳에 온 거죠
LL보안관과 시장이 주지사한테 전화를 걸어서 포드 군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방위군이 필요하다고 했소 재판 때문에 병원
에 침상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라구
군인들은 어디서 왔죠
LL분빌하고 콜럼버스 점심 때 세어 보니까 한 2백 명쯤 되더군
군인들이 하루 종일 이곳에 있었나요
새벽 다섯시에 도착해서 내 단잠을 깨웠죠 나는 진종일 그들을
쭉 지켜봤소 몇 명이 빠져나가기는 했는데 다시 충원되더군요 몇
분 전에 미스 게이트우드를 위시해 촛불을 든 일단의 흑인들을 마주
치자 마치 적을 대하듯 했소 그녀가 그들을 한껏 째려보니까 군인들
미 움찔하더니 지금은 들어가서 카드를 치고 있는 거Q
엘렌은 마가리타를 더 만들어 오기 위해 자리를 떴다 제이크는
배심원 카드를 다시 집어들었다 오늘 벌써 백 번도 넘게 한 일이었
다 그는 카드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이름 나이 직업 가족관계 인
종 교육 수준 등을 읽고 또 읽었다 아침부터 계속 이짓만 하고 있었
다 두 번째 잔이 도착하고 엘렌이 카드를 집어들었다
코린 헤이건
엘렌이 잔을 들이키면서 물었다
제이크는 머릿속에 저장된 자료들을 꺼냈다
나이 마흔 다섯 보험회사 비서 이혼해서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음 고졸 플로리다 출신이지 중요한 건 그거야
점수는요
6점 정도 줬을 거요
좋아요 그럼 밀러드 실스
메이스 근처에 호두농장을 가지고 있지 일흔 살 정도 됐고 그의
조카가 몇 년 전에 리틀 록에서 강도짓을 하다가 흑인 두 명한테 머
리에 총을 맞았소 흑인을 아주 싫어하니까 배심원으로 올라가면 안

점수는요
O점
클레이 베일리
나이 서른에 애들은 여섯이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서쪽에 있
는 가구공장에서 일하죠
10점을 줬네요
그래요 성경에서 눈에는 눈이다라는 구절을 읽었을 것 같아서
게다가 애들 여섯 중에 최소한 둘은 딸일 테니까
이 내용을 전부 다 외운 건가요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가리타를 한 모금 삼켰다
그사람들을 안지 몇 년씩은 된 것 같소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요
얼마 안 돼요 하지만 버클리보다는 많이 알 거요
인상적이군요
뭐라고요 당신 지금 나한테 인상적이라고 했소 나의 지적인 면
이 당신한테 인상적으로 보였단 말이오
그래요 다는 아니고 일부분이 그렇군요
이거 영광이군 형사사건의 귀재한테 칭찬을 듣다니 그가 누군
지는 모르지만 셀던 로 아크의 딸이자 학과에서 차석을 차지한 수재
한테 말요 이따가 해리 렉스에게 얘기해 줘야겠소
그 코끼리 씨는 어디 갔죠 보고 싶은데 귀여운 사람이에요
가서 전화해요 빨리 와서 3차대전을 준비하고 있는 군대를 내려
다보면서 파티나 하자고 전해요
루시엔은요
엘렌이 제이크의 책상 쪽으로 걸어오며 물었다
됐소 루시엔한테는 질렸으니까
해리 렉스는 장롱 깊숙이 꼬불쳐 놓았던 데킬라를 들고 나타났다
그와 법률 서기는 좋은 마가리타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야 할 재료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제이크가 그의 서기 편을 들었다
세 사람은 발코니에 앉아 배심원 카드에 적힌 이름을 불러대며 톡
쏘는 칵테일을 마셨다 가끔씩 군인들에게 소리를 치기도 하구 흥에
겨우면 지미 버렛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자정이 되자 네스비트는
엘렌을 태워 루시엔네 집에 바래다주러 갔고 해리 렉스는 걸어서 집
으로 돌아갔다 제이크는 사무실의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7월 22일 월요일 마지막 마가리타를 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제
이크는 잠에서 벌떡 깨어났다 세 시간쯤 잔 것 같았다 위 속에서 나
비들이 떼지어 춤을 추었구 사타구니 쪽으로 신경이 몰려 통증이 느
껴졌다 그러나 오늘은 숙취 때문에 비실거릴 시간이 없었다
네스비트는 어린아이처럼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제이크는 네스
비트를 깨운 뒤 뒷자리에 올라탔다 그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
고 있는 보초병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두 블록 떨어진 제이크의 집으
로 갔다 네스비트가 제이크의 지시를 받아 길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
안 제이크는 샤워를 하고 면도를 말끔히 끝낸 다음 모직 양복을 꺼
내 입었다 깃에 작은 단추가 달린 와이셔츠와 점잖아 보이는 줄무의
실크 넥타이로 구색을 맞추고 나니 아주 괜찮아 보였다 빳빳하게 다
린 바지가 가느다란 허리 위에 완벽하게 걸쳐져 자신의 라이벌을 압
도할 만큼 세련돼 의였다
제이크가 개를 풀어놓고 순찰차 뒷자리에 올라탔을 때 네스비트
는 다시 잠들어 있었다
안에 별일 없습니까
네스비트가 뺨에 홀러내린 침을 닦으면서 물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말하는 거라면 보지 못했는데Q
네스비트가 제이크의 말에 폭소를 터뜨렸다 그는 별로 우습지 않
은 말에도 곧잘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이었다 제이크는 광장을 돌아
다시 사무실 앞에서 내렸다 사무실을 떠난 지 꼭 삼십분 만이었다
제이크는 커피를 한잔 타 마셨다
제이크는 포도 주스와 함께 아스피린 네 알을 삼켰다 피로와 숙
취 탓에 눈 주위가 화끈거렸구 머릿속이 왁자지껄했다 그러나 아직
도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제이크는 책상 위에 칼
리 헤일리와 관련된 서류들을 펼쳐놓았다 법률 서기가 색인을 매기
고 잘 정리해서 분류해 놓은 것이었다 제이크는 그 서류들을 다 섞
어놓고 그것을 다시 원상복귀시킬 생각이었다 막상 재판에 임했을
때 원하는 서류를 30초 내에 찾을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
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엘렌의 완벽한 분류 솜씨에 미소를 짓기
만 하면 되었다 엘렌은 모든 서류를 10초 만에 찾을 수 있게 정리해
놓았다 모든 게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닿을 수 있었다 세 개의
고리에 묶여 있는 3센티 두께의 서류에는 베이스 박사의 약력과 증
언 내용이 요약되어 있었다 그녀는 예상되는 버클리의 반대심문 내
용을 적고 거기에 대한 적절한 대답과 그 답을 지지할 수 있는 판례
까지 곁들여 놓았다 제이크는 재판준비 상태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
게 되었으나 이 모든 게 법대 3학년생의 노고로 이루어진 것이 약간
부1Z러웠다
제이크는 도금으로 이름자를 새긴 가죽가방에 서류들을 집어넣었
다 그러고는 화장실로 가서 색인표를 살펴보면서 용변을 봤다 모든
배심원들을 다 기억할 수 있었다
다섯시가 조금 넘자 해리 렉스가 문을 두드렸다 아직 밖이 어두
리 그는 강도처럼 보였다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이
제이크가 물었다
잠이 안 와서 초조해서 죽겠어
그는 기름으로 얼룩진 종이 봉지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델이 갖다주래 따끈따끈한 거야 土시지 비스킷 베이컨과 치즈
비스킷 치킨과 치즈 비스킷 취향대로 먹으래 델의 특별 음식이니

고맙네 해리 하지만 배가 안 고파 속이 뒤집힐 지경이거든
신경과민인가
성가대가 뱃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
수척해 보이는데
듣기 좋은 말이군
그래도 옷은 좋은데
칼라가 고른 거니까
해리 렉스는 호일에 쌓인 음식들을 회의실 탁자 위에다 길게 늘어
놓았다 그는 커피에 설탕을 넣고 있었다 제이크는 맥노튼 사건에
관한 기록을 훌어보았다
그 여자가 작성한 건가
해리 렉스는 입 안 가득 음식을 집어넣고는 열심히 턱을 움직이면
서 말했다
그래 미시시피 주에서 있었던 심신장애 변호에 관한 75페이지짜
리 준비서면이네 사흘이나 걸려서 작성했다더군
똑똑한 모양이군
머리도 좋고 작문 솜씨도 훌릉하지 지적인 능력은 충분한데 그
걸 현실에 적용하는 데는 애를 먹고 있지
그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해리 렉스의 입에서 비스킷 부스러기가 떨어져 탁자 위에 톡톡 뉘
었다 그는 탁자를 소매로 스윽 닦아냈다
훌릉한 학생이야 과에서 2등이라더군 법대 부학장으로 있는 넬
슨 배틀스한테 전화를 해봤는데 엘렌의 성적ol아주 좋대 수석으로
졸업할 가능성도 있다더군
나는 98명 중에서 93등으로 졸업했지 92등으로 졸업할 수도 있
었는데 커닝을 하다가 들켰거든 항의를 하려다가 93등 정도면 잘했
다 싶어서 그냥 있었지 등수야 아무렴 어때 클랜턴 사람들이 그런
데 신경이나 쓰나 그 사람들은 내가 졸업해서 월 스트리트 같은 데
로 안 빠지고 이곳에서 변호사를 해주는 것만도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는데
제이크는 백 번도 더 들은 얘기를 들으면서 씨익 웃었다
해리 렉스는 치킨파 치즈 비스킷을또 한 입 물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군 친구
괜찮아 첫날은 항상 그런 거잖아 준비도 다 됐구 나도 괜찮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지
언제쯤 로 아크 양이 오실라나
모르지
어떻게 입고 올지 궁금하군
아예 안 입고 올지도 모르지 이번에는 제대로 입고 왔으면 좋겠
는데 누스 판사가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 줄 잘 알잖아
설마 자네 옆자리에 앉히려는 건 아니지
아니 자네처럼 뒤에 앉힐 생각이야 여자 배심원들 눈밖에 나면
곤란하니까
그래 눈에 안 보이는 데다 앉히는 게 좋을 거야
해리 렉스는 커다란 손으로 입가를 슥 닦았다
같이 잤나
아니 미쳤어 자네 왜 그래
안 잤다면 자네가 미친 거지 그렇게 멋진 아가씨랑 말이야
자네나 같이 자지 그래 내 마음은 이미 다른 것들로 꽉 차 있으
니까
엘렌도 내가 귀엽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말하더군
한번 도전해 봐야겠군
해리 렉스는 진지하게 말하고 나서는 자기도 쑥스러운지 빙그레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폭소를 터트리는 바람에 입에 들었던 것들이
책상으로 튀어나갔다
전화벨이 울렸다 제이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바람에 해리 렉
스가 대신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는 여기에 없습니다 제가 메모를 남겨드리죠
해리 렉스는 제이크를 보면서 눈을 찡긋했다
예 예에 그럼요 그건 아주 끔찍한 짓이죠 그런 짓을 한 사람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예 예 알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백 퍼센트
동감입니다 예 근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여보세요 여보세요
해리 렉스는 끊긴 수화기를 멍하니 바라보다 툭 내려놓았다
뭐라는 거야건
검등이 뒤나 쫓아다니면서 변호를 해주는 자네는 백인들의 수치
라는군 어떻게 그런 검등이 자식을 변호할 수 있냐면서 KKK단이
자네를 잡아갔으면 좋겠대 그들이 하지 않으면 자기가 나서서 변호
사협회에 연락을 해 자네 자격증을 영구 박탈하도록 할 거래 검등이
여자와 한집에서 사는 루시엔 윌뱅크스 같은 놈한테 배웠으니 자네
토 볼장 다 봤다는데
그런데 자네는 그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단 말인가
왜 그러면 안 되나 그 사람은 정말로 진지했어 해를 끼칠 사림
이 아니야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으니까 지금쯤 속이 시원할 거야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해리 렉스는 재빨리 수화기를 낚아챘다
변호사 제이크 브리건습니다 상담을 원하시거나 충고를 구하시
려면 법에 정통한 저를 찾아주십시오 여보세요
제이크는 이미 화장실에 들어가 있었다 해리 렉스가 큰 소리로
제이크를 불렀다
일 본다고 그래
그는 도망갔습니다
해리 렉스가 기자에게 소리쳤다
여섯시 윌밍턴 시간으로는 일곱시에 맞춰서 제이크는 칼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신문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제이크
는 버드 트위트의 사망 소식과 미키 마우스가 제보한 심각한 폭력
에 관한 얘기를 했다 그는 조금도 무섭지 않으며 신경도 안 쓰인다
고 말했다 지금 신경쓰이는 것은 어떤 배심원이 선출될 것인지 그
리고 그들이 그의 의뢰인에게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하는 것뿐이
라고 했다 그외 다른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칼라가 처음으
로 집에 오고 싶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제이크는 밤에 다시 전화
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아래층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엘렌이
도착하자 해리 렉스가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제이크는 엘렌
이 미니스커트에다 속이 훤히 비치는 블라우스를 입고 왔을 거라고
예상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아니었다 해리 렉스는 정숙
한 남부 여인처럼 옷을 입고 갖가지 장신구를 단 엘렌을 보며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색 체크무의의 브이 네크라인
재킷에다 짧은 스커트를 받쳐입고 있었다 검은색 실크 블라우스에
속옷도 다 갖춰 입은 것 같았다 머리는 뒤로 넘겨 단정하게 묶었고
놀랍게도 눈썹을 그리고 은은한 마스카라를 했으며 립스틱까지 바
르고 있었다 해리 렉스의 말을 빌리자면 정숙한 여자이자 변호사의
풍모를 풍기는 모습이었다
L고마워요 해리 렉스 씨 제이크 씨 당신이 마음에 안 들어할까
봐 신경 많이 쓰였어요
아주 좋아s로 아크 양
제이크는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신도9
엘렌은 제이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해리 렉스에 대
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LL우리의 무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로 아크 양 우리는 당신이
그렇게 다양한 장신구와 의상을 갖고 계신 데 대해 크게 감동받았습
니다 당신의 옷에 엄청난 찬사를 드렸던 점을 사과드리며 그점이
당신의 자유주의에 상처를 주지 않았길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는 섹스에 굶주린 늑대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 소굴로 들어오는 것
을 스스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남부인들은 대체로 옷을 잘
입은 맵시있는 아가씨한테는 군침을 흘리죠 당신이 자유주의자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해리 렉스가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봉지에 있는 건 됐죠
엘렌이 물었다
아침
엘렌은 아침식사를 뜯더니 소시지 비스킷을 공략하기
LL베이즐도넛형의 딱딱한 롤빤옳긴이은 없나요
그게 뭡니까 시작했다
해리 렉스의 눈이 휘등그레졌다
별거 아니에9 잊어버리세9
제이크는 두 손을 비비면서 힘을 북돋우려고 애썼다
자 재판까지는 세 시간 남았는데 여러분들은 그동안 윌 하고 싶
으십니까
마가리타나 한잔 마시지 뭐
해리 렉스가 대답했다
안 돼
그래도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는 그게 좋아
LL저도 을어요 이건 사업이에요
엘렌이 말했다
해리 렉스는 별수없이 봉지에 남아 있던 마지막 비스킷을 뜯었다
첫날은 뭐가 있지
LL해가 떠오르면 재판이 시작되지 아침 아홉시에 누스 판사가 배
심원들에게 주의사항을 얘기한 뒤 배심원 선정을 시작할 거야
얼마나 걸리는데요
엘렌이 물었다
지틀이나 사흘 정도 미시시피에서는 변호사들이 배심원을 판사
실에서 개인적으로 심문할 수 있소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
저는 어디 앉아서 윌 해야 되죠
LL재판 경험이 많은 아가씬 줄 알았는데 법원이 어디 있는 줄은 알
고 계시나
해리 렉스가 빈정거렸다
변호인석에는 앉을 수 없소 나하고 칼
제이크가 말했다
알겠어9 당신하고 피고인 둘이서만 그 리만 앉을 거
에 앉아 죽음을 대면하시죠 득실거리는 악마들 사이
엘렌은 입을 닦으면서 응수했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오 그와 비슷하지
우리 아버지도 그런 책략을 가끔 사용하시죠
양해해 주니 고맙소 당신은 내 뒷자리 난간 옆에 앉으면 돼요
내가 누스 판사에게 개인적인 의논을 나눌 때 당신이 판사실로 들어
올 수 있도록 허락을 받겠소
그럼 나는
해리 렉스가 물었다
누스 판사가 자네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지 내가 만약 자넬 판
사실로 데리고 오겠다고 하면 졸도할걸 그러니까 자네는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는 게 도와주는 거네
눈물나게 고맙군
하지만 당신이 참석해 주면 좋겠어Q
엘렌이 해리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달렸죠 아가씨
그리고 술도 함께 마시도록 허락하3E
엘렌이 덧붙였다
그렇담 나는 데킬라를 가져다 드리죠
이제 이 사무실에서 알코올은 금지네
제이크가 단호하게 말했다
오후 휴정 때까지는 그러세
해리 렉스가 말했다
자네는 쵱소처럼 서기 뒷자리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배심원들에
관해 기록을 해주게 우리가 작성한 배심원 카드하고 실제의 인물들
이 맞는지 잘 확인하고 대충 120項은 올 것 같네
아무렴
동이 트자 진주한 군대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바리케이드가 정비
되구 군인들은 거리를 막고 있는 오렌지색과 횐색 줄이 번갈아 그어
진 커다란 통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지나는 차량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면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마치 적들의 침공을 기다
리며 한판 소동이 벌어지기를 원하는 결전의 용사들 같았다 일곱시
삼십분이 되자 울긋불긋한 로고를 칠한 취재 차량이 도착했다 그 때
문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군인들이 차량을 둘러싸구 재판이 진행
되는 동안엔 어떤 차도 법원 주위에 주차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
었다 취재차들이 옆길을 따라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거운
카메라와 취재 기구를 든 기자들이 투덜거리며 얼어오는 게 보였다
그들은 각각 법원 앞계단과 뒷문에 캠프를 쳤다 어떤 취재진들은 2
층의 법정 바깥에 있는 원형홀에 캠프를 치기도 했다
헤일리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청소부 머피가 나타나 법정 문은
여덟시에 열 거라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보도진들은 문앞에 줄을 서
기 시작했다 원형흘이 차츰 좁아지고 있었다
흑인들을 가득 실은 버스가 광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그들은 목사들의 인솔 아래 잭슨 가를 따라 광장으로 다가오고 있었
다 행렬은 칼 리를 석방하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구 한목소리로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고 있었다 행렬의 모습이 나타나자 경계를
서고 있는 군인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무전기마다 시끄러운 소
리가 오갔다 잠시 후 대령과 오지 보안관이 대책 협의를 시작하자
군인들은 다소 긴장을 풀었다 혹인들은 오지의 지시에 따라 잔디밭
에 지정된 그들의 구역으로 갔다 그들은 거기서 주방위군의 감시를
받으며 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여덟시가 되자 금속 탑지기가 법원 안으로 들어갔구 무장 경관
세 명이 원형흘에서부터 흘까지 줄을 서 있는 방청객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법정 안에서는 프레이서 보안관 대리가 배심원석을 피해
방청객들을 의자에 앉혔다 첫번째 줄은 가족들 자리였고 두 번째
줄은 법정 삽화가들 차지였다 삽화가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재판장
석과 방청석 벽에 걸린 영웅들의 초상화를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KKK단은 재판 첫날 속속 도착하는 배심원들에게 자기들의 존재
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배심원들이 도착할 때 그들의 모습
을 보여줘야 한다고 스무 명이 좀 넘는 KIK단원들이 완벽한 복장
을 갖추고 워싱턴 가에 천천히 들어섰다 군인들이 행렬을 가로막고
그들을 둘러쌌구 올챙이배를 한 대령이 의기양양하게 길을 가로질
러 나왔다 그는 난생 처음 횐 두건과 횐 가운을 입은 理KK단과 마
주쳤다 KKK단 대장은 대령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이 극적인
상견례를 취재하기 위해 보도진의 카메라가 몰려들자 대령은 신경
이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대령의 입에선 평소의 우렁차던 목소
리 대신 가늘고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더듬더듬 흘러나왔다 그 자신
이 듣기에도 몹시 거슬리는 소리였다
오지가 움츠러든 대령을 구하기 위해 끼여들었다
잘 있었소 친구들
오지는 대령 옆으로 바싹 다가서면서 차갑게 인사를 했다
당신들은 지금 포위되어 있소 숫자도 우리가 많죠 우리는 당신
들을 이곳에 머물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소
KKK단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내 지시만 어기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들은 오지와 대령을 따라 법원 앞 잔디밭의 한쪽으로 갔다 오
지는 그들에게 이곳이 재판기간 동안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구역이
라고 말했다 대령은 그들이 그곳에만 머물며 조용히 있는다면 군인
들은 멀리서 감시만 할 거라고 말했다 그들은 동의했다
예상했던 대료 하얀 가운의 출현은 60미터쯤 떨어져 있던 흑인들
을 자극시켰다 그들은 다시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리 칼 리를 석방하라
KKK단도 주먹을 쥔 채 맞받아쳐 고함을 지르지 시작했다
칼 리를 죽여라 칼 리를 죽여라 칼 리를 죽여라
군인들은 법원 앞 층계까지 두 줄로 길게 늘어서서 두 진영을 갈
라놓았다 KKK단과 보도 사이에도 군인들이 결계를 만들었고 흑인
들과 보도 사이에도 경계를 만들었다
속속 도착한 배심원들은 굳은 얼굴로 군인들 사이를 걸어 법원으
로 향했다 그들은 끔찍한 소환장을 손에 꼭 쥐고는 날카롭게 맞서
는 두 진영의 외침을 들으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법원으로
들어갔다
위대한 버클리 검사가 클랜턴에 도착했다 그는 보초병에게 공손
하게 자기 이름을 대면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은근히
전달했다 보초병은 법원 옆에 마련된 지방검사 전용 주차장으로 버
클리를 안내했다 갑자기 기자들이 바빠졌다 한 기자가 바리케이드
를 넘어뜨리면서 달려들었다 버클리는 자신이 애용하는 캐딜락에
앉아 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잠시 머뭇거렸다 그가 문을
열고 나오자 기자들이 그를 에워쌌다 그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법원
문을 향해 아주 느릿느릿 걸었다 질문 공세가 너무 거셌는지 그는
여덟 번이나 판사의 함구령을 어겼다 그때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면
서 방금 자신이 받은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의 뒤에는 무스그로브가 서류가방을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제이크는 사무실 문을 잠근 채 안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엘렌은
아래층에서 다른 준비서면을 작성하고 있었다 해리 렉스는 커피숍
에서 벌써 두 번째 아침을 먹으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배심원
카드가 책상 위에 가득 펼쳐져 있었지만 이제 제이크는 쳐다보기도
싫증이 나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준비서면을 뒤적거리다가
발코니로 갔다 창문을 열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밀려 들어왔다 체이
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배심원들 앞에서 맨 처음에 얘기할 내용
들을 검토했다 첫인상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제이크는 소파에 털척 앉아 눈을 감고서 그가 이제부터 해야 할
수많은 행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대개의 경우 그는 자신의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두려운 순간들도 있었다 이럴 때면 그는
왜 보험회사 직원이나 주식 중개인이 되지 못했는가를 뼈저리게 후
회했다 세무변호사도 괜찮았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이런 순간에
찾아오는 쭈기적인 설사와 멀미로 고생하지는 않을 테니까
루시엔은 두려움이란 좋은 것이라고 가르쳤다 두려움은 동료였
다 모든 변호사들은 새로운 배심원 앞에서 자기 사건을 대변해야 할
때 두려움을 느긴다고 했다 배심원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와 미사
여구를 늘어놓는 변호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뻔드르르하게
빼입은 변호사도 믿지 않구 어릿광대나 익살꾼처럼 구는 변호사도
믿지 않고 설교조로 떠들어대며 목소리를 높여 싸우러 드는 변호사
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루시엔은 배심원들은 변호사가 어떤 옷을 입
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오로지 진
실만을 말할 때 믿는다고 말했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두려워하는 게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
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사실 배심원들도 똑같
이 두려워하고 있으니까
루시엔은 늘 두려움을 친구로 삼으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
려움은 영원히 떨칠 수 없으며 만약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그 때
문에 자기 자신이 파괴될 수도 있다고 했파
뱃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구 제이크는 아래
층 화장실로 갔다
괜찮으세a보스
엘렌이 제이크에게 물었다
다 준비된 것 같소 조금 있다가 갑시다
밖에서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저는 당신이 사건을 포기하고
떠났다고 말했죠
지금은 진짜 그러고 싶은 심정이오
웬덜 솔로몬이라고 들어봤어요
글쎄 기억에 없는데
남부 재소자 변호 기금에서 일하는 사람이죠 작년 여름에 그 사
람 밑에서 일을 했어요 남부 일대를 다니면서 살인 사건만 백 건도
넘게 변호한 베테랑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도 여전히 재판 첫날에는
신경이 곤두서서 자지도 먹지도 못하죠 의사가 진정제를 주긴 하지
만 첫날엔 늘 신경이 곤두서 있어 아무도 말을 걸면 안 됐어요 변호
사로서는 닳고닳은 사람인데도요
당신 아버지는 어떻게 합니까
마티니에다 신경안정제를 섞어서 몇 잔 드시죠 그리고 법정에
갈 때까지 불을 끄고 문도 잠근 다음 누워 계세9 신경이 날카로워
지구 화를 잘 내기는 남들과 마찬가지예요 그게 당연하대요
그럼 당신은 그런 심정을 잘 알고 있겠군요
너무 잘 알죠
내가 지금 신경과민으로 보여요
피곤해 보여요 하지만 잘 해내실 거예요
제이크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갑시 다
보도에 널브러져 있던 기자들이 먹이를 보자 일제히 달려들었다
노 코멘트
제이크는 천천히 거리를 가로질러 법원으로 올라설 때까지 똑같
은 말을 되풀이했다 질문이 쇄도했다
무효 심리를 주장하실 거라는데 사실입니까
재판이 시작될 때까지는 그런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KKK단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데 사실입니까
노 코멘트
재판이 끝날 때까지 가족들을 피신시켰다는데 사실입니까
제이크는 잠시 머뭇거리면서 질문한 기자를 노려보았다
노 코멘트
주방위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포드 군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제이크는 고개를 일단 가로젓고 나서 대답했다
노 코멘트
보안관 대리가 제이크 곁으로 다가와 기자들을 떼놓았다 그가 엘
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누굽니까 제이크 씨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이니까 괜찮습니다
제이크는 뒷계단을 통해 재빨리 법원으로 뛰어올라갔다 칼 리 혼
자 변호인석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방청객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진 길레스피는 배심원들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보안
관 대리들은 통로를 왔가갔다하면서 수상한 것이 없나 감시하고 있
었다 제이크는 그의 의뢰인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며 악수를 나누
었다 그리고는 칼 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엘렌이 서류가방을
열어 변호인석 위에 파일들을 펼쳐놓았다
제이크는 칼 리와 귓속말을 속삭이고 나서 법정 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시선이 다 자신에게 꽃혀 있었다 맨 앞줄에는 헤일리 가족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이크는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레스터에
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토냐와 세 사내녀석들은 교회갈 때 입
는 옷을 말끔히 차려입고 그웬과 레스터 사이에 인형처럼 앉아 있었
다 배심원들은 통로 건너편에 앉아 헤일리의 변호사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제이크는 지금이 배심원들에게 피고인의
가족을 인식시킬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하고는 난간의 문을 젖히
고 방청석으로 가 헤일리의 가족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그웬의 어
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 레스터와는 악수를 나누구 사내녀석들은
가볍게 건드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냐를 꼭 끌어안아 주었
다 헤일리의 어린 딸 파렴치한 건달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고통
을 이겨내야 했던 그 아이 배심원들은 제이크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따라가다가 작은 여자아이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누스 판사가 판사실로 오시라는데요
제이크가 자리로 돌아오자 무스그로브가 제이크에게 귓속말로 전
했다
제이크와 엘렌이 판사실 문을 열었을 때 누스 판사와 버클리 검
사 법원 서기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이크는 판사와 검사 법원
서기에게 엘렌을 소개했다 제이크는 엘렌이 올 미스 대학 3학년으
로 자기 사무실에서 서기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변호
인석 가까운 곳에 앉고 판사실에서 진행될 심리에 참석해도 되겠느
냐고 물었다 버클리는 반대하지 않았다 누스 판사는 흔히 있는 관
례라고 하면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재판 전에 요구할 것이 있소
누스 판사가 물었다
없습니다
버클리 검사가 말했다
저는 몇 가지 있습니다 기록에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제이크가 서류철을 열면서 말했다
노마 갈로라는 법원 서기가 제이크의 말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우선 저는 재판지 변경 신청을
반대합니다
버클리가 끼여들었다
주지사님 입 좀 닥치시오 아직 내 얘기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끼여들지 말란 말이오
제이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버클리와 다른 사람들은 제이크의 이런 돌출적인 언사에 깜짝 놀
라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엘렌은 이 모든 게 마가리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합니다 브리건스 씨 하지만 다시는 나를 주지사라고 부르
지 마시Q
검사가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해둘 말이 있소
누스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 재판은 아주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거요 나도 여러분들이 받고
있는 압력을 잘 알고 있소 내가 여러분들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들을 겪는지 다 알고 있다는 얘기요 나는 두 사람이 좋은
법률가들이고 이렇게 중요한 사건에서 두 사람과 함께 재판을 하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좋지 않는 감정
이 있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소 그래서 여러분더러 굳이 악수를 하
고 좋은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라고 얘기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최
소한 내 방이나 내 법정 안에 있을 때는 서로를 방해하거나 소리지
르는 일이 없길 바라오 이름을 부를 때도 브리건스 씨와 버클리 씨
로 정중하게 불러주시기 바라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예 판사님
예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브리건스 씨 계속하시요
감사합니다 판사님 말씀하시는 뜻을 충분히 알겠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던 것처럼 변호인측에서는 다시 한번 재판지
변경을 신청합니다 7월 22일 월요일 아흡시 십오분 우리가 배심원
선정을 시작하는 이 마당에 이곳 포드 군 법정은 주방위군에 둘러싸
여 있는 상태라는 것을 기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잔디밭 한쪽에
서는 하얀 옷을 맞춰 입은 KKK단원이 한떼의 흑인들에게 소리를
지르구 혹인들도 그들에게 맞고함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진
영 사이에는 중화기로 무장한 주방위군이 경계를 짓고 있는 상황입
니다 오늘 아침 법원에 도착한 배심원들은 법원 앞에서 벌어지는
이 아슬아슬한 광경을 다 보았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공정한 배심
원의 선정이 불가능합니다
버클리는 커다란 얼굴에 시종 번질번질한 웃음을 띠면서 제이크
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이크의 말이 끝나자 버클리가 입을 열었다
판사럼 제가 얘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아니P기각합니다 다른 신청 사항이 있소
누스 판사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변호인측은 배심원 명부에 오른 모든 사람을 교체해줄 것을 신청
합니다
이유가 者니까
KKK단이 이 명부에 오른 배심원들에게 위협을 가했기 때문입니
다 적어도 불태운 십자가만 해도 스무 갭니다
나는 위협을 받은 스무 명을 제외시킬 것이오
누스 판사가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협 행위에 대해
서는 어떻게 대처하실 겁니까 불태운 십자가 얘기를 들은 배심원들
은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제이크가 빈정대는 투로 물었다
누스 판사는 눈을 비비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버클리는
나서고 싶었지만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가만히 있었다
여기 KKK단의 위협을 받은 배심원들의 명부가 있습니다 그리
고 위협 행위에 대한 자세한 경찰 기록과 오지 윌스 보안관이 증언
을 하고 서명한 서류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배심원 전원을 기피
하는 근거 자료로 제시하겠습니다 이 서류들이 기록에 첨부되어 대
법원이 명명백백하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항소를 준비하는 겁니까 브리건스 씨
버클리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끼여들었다
엘렌은 방금 루퍼스 버클리라는 인물을 만났지만 해리 렉스와 제
이크가 왜 그렇게 그를 싫어하는지를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닙니다 주지사님 저는 항소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뢰
인이 공정한 배심원들 앞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뿐
입니다 제 말뜻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본 명부를 기피할 수 없소 배심원을 교체하려면 일주일은 걸리
니까Q
누스 판사가 결론을 내렸다
한 인간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시간이 무슨 문제입니까 우
리는 지금 정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
리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기본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의뢰인을 목매달아 죽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하얀 옷을 입고 배
심원들을 위협했다는 사실을 알면서그 명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당신의 신청은 기각합니다 다른 신청이 또 있소
누스 판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더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스무 명을 제외
시킬 때 다른 배심원들에게 그 이유는 말씀하지 말아주십시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소 브리건스 씨
페이트가 진 길레스피를 데리고 왔구 누스 판사는 그녀에게 스무
명의 배심원 명단을 건네주었다 길레스피는 법정으로 가서 그 스무
명의 이름을 부른 다음 배심원 의무가 면제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가
도 좋다고 말했다 길레스피는 다시 판사실로 돌아왔다
남은 예비 배심원들은 몇 명입니까
아흔네 명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한 숫자군요 합당한 열두 명을 가려낼 수 있을 거
9
단 두 사람도 못 찾을 거요
제이크가 엘렌에게 중얼거렸지만 그 소리가 너무 커 누스 판사의
귀에까지 들렸다 노마 겔로가 속기록에 기록했다 누스는 그들에게
나가도 좋다고 했다 그들은 법정으로 돌아가 각자 자리에 앉았다
아흔네 명의 배심원 후보 이름이 적힌 종이쪽지가 나무로 만든 원
통에 매달렸다 진 길레스피는 원퉁을 돌리다가 멈춘 다음 무작위로
이름을 뽑았다 그녀는 뽑힌 이름을 누스 판사에게 건네주었다 누스
판사는 진 질레스피와 많은 사람들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인 재판장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누스가 뽀족한 코 너머로 첫번째 이름을 확인하
는 동않 무거운 침묵 속에서 법정 안의 시선들이 누스 판사에게 모
아졌다
카를렌 말론이 1번 배심입니다
누스 판사는 큰 소리로 첫번째 자리를 차지한 배심원의 이름을 불
렀다 그녀는 배심원들에게 할애된 좌석 첫째 줄 통로쪽 자리를 찾
아 들어갔다 의자 열 개가 열 줄로 마련되어 있는 배심원들의 자리
는 가족과 친지 방청객과 보도진들이 바착 붙어 앉은 자리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보도진들은 카를렌 말론의 이름을 재빨리 받아
적었다 제이크도 그 이름을 받아적었다 뚱뚱한 백인 이혼녀 낮은
수입 제이크의 점수판에서 2점을 받은 여자였다
첫번째는 글렀군 제이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진이 다시 원통을 돌렸다
마샤 디킨슨 2번 배심입니다
누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백인 비만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오십
대 노인 두 번째도 그른 셈이었다
틴번 배심 조 베스 밀스
제이크는 점점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녀 역시 백인으로
캐러웨이에 있는 셔츠 공장에서 일하는 오십대의 저임금 근로자였
다 엎친 데 덮친 격으루 그녀는 무식하고 뻔뻔스러운 흑인 상사 밑
에서 일하고 있었다 제이크의 카드아 적힌 그녀의 이름 옆에는 O점
이 쓰여 있었다 최악이었다 세 번째도 가망이 없었다
제이크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통을 돌리고 있는 진을 바라보
았다
4번 배심 레바 베츠
제이크는 의자에 더 깊이 가라앉아 이마를 쿡쿡 쑤셔댔다 네 번
째도 마찬가지였다
믿을 수가 없군
그는 엘렌을 보며 중얼거렸다 해리 렉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고 있었다
5번 배심 제럴드 얼트
드디어 제이크의 첫번째 배심원이 레바 베츠의 옆자리를 꿰어찼
다 제이크는 미소를 지었다 버클리는 그 이름 옆에다 검은색으로
표시를 하고 있었다
6번 배심 알렉스 섬머스
첫번째 흑인 배심원이 나와 제럴드 얼트 옆에 앉자 칼 리의 입에
서도 회미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버클리도 첫번째 혹인 배심원
후보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며 웃고 있었다 다음에 불려진 네 명도
모두 백인 여자였다 제이크의 평점으로 3점을 넘긴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제이크는 첫번째 줄이 다 찬 것을 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법
으로 정해진 바에 따라 그는 열두 번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첫 줄에 앉은 사람들에게만도 거부권의 반을 써야 할 판이었다
11번 배심 월터 고지
예비 배심원의 이름을 부르는 누스 판사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
고 있었다 고지는 아무런 가능성도 동정심도 없는 중년의 소작인이
었다
누스가 두 번째 줄의 호명을 끝내자 둘째 줄에는 백인 여자 일곱
명과 혹인 두 명 그리고 고지가 앉아 있었다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진이 네 번째 줄에 남자 일곱을 앉혔을 때에야 제이크는 조금 마옴
이 놓였다 남자 일곱 중 네 명이 혹인이었다
예비 배심원들의 자리를 정하는 데 거의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누스 판사는 진이 번호 순서대로 예비 배심원들의 이름을 다시 쓰기
까지 십오분 동안 휴정을 선언했다 제이크와 엘렌은 적은 것을 다
시 들여다보면서 이름과 실제의 얼굴을 비교했다 재판서류들이 놓
여 있는 책상 저쪽에 앉아 있던 해리 렉스는 누스 판사가 이름을 부
를 때마다 열심히 받아적다가 휴정이 되자 제이크에게로 다가왔다
해리 렉스가 보기에도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열한시가 되자 누스 판사가 다시 재판장 자리에 앉았다 조용한
가운데 재판이 속개되었다 누군가 일어나 판사에게 마이크를 대고
말을 해달라고 요청했구 누스는 코 앞으로 마이크를 갖다댔다 누스
판사는 그르렁거리는 음성으로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는 의례적인 질
문을 했다 법정 안은 유쾌하지 못한 누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
는 칼 라를 예비 배심원들에게 소개하고 나서 칼 리의 친척이나 칼
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물론 칼 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었다 그중
에 두 명이 사건이 일어난 5者 전부터 칼 리를 알고 있었다고 했다
누스 판사는 변호사와 검사를 소개하고 나서 칼 리에게 부과된 죄목
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했다 헤일리 사건을 전혀 모르고 있는 예비
배심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스는 계속해서 자잘한 여러 가지 사항을 얘기하고는 열두시 삼
십분이 되어서야 휴정을 선언했다 휴정은 두시까지였다
델이 회의실로 따끈따끈한 샌드위치와 차가운 차를 가져왔다 제
이크는 델을 껴안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영수증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말했다 제이크는 점심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회의실 탁자
위에다 배심원들의 카드를 앉은 순서대로 다시 배열했다 해리 렉스
는 구운 쇠고기에 치즈를 얹은 샌드위치를 탐하기 시작했다
정말 끔찍한 제비뽑기야 너무 끔찍하다구
그가 입에 음식을 잔뜩 집어넣은 채로 말했다
아흔네 번째의 카드가 놓여지자 제이크는 뒤로 물러서서 그것들
을 바라보았다 엘렌은 제이크 옆에 서서 감자 튀김을 씹으며 배심원
카드를 들여다보았다
정말이지 끔찍한 제비뽑기야
해리 렉스가 입 안을 흥차로 비우면서 다시 말했다
입 좀 다물 수 없나
제이크가 쌀쌀맞게 말했다
L1앞의 50명 중에 흑인 남자가 여덟이고 흑인 여자가 셋 그리고
백인 여자는 서른 명이나 돼요 백인 남자는 아흡밖에 안 되는데 그
들도 별 볼일 없을 것 같군요 결국 백인 여자 배심원이 판치게 되겠
어Q
엘렌이 말했다
백인 여자들이라 백인 여자들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배
심원들이군 백인 여자라니
해리 렉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엘렌이 해리 렉스를 公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같이 뚱뚱한 백인 남자야말로 가장 끔찍한 배심원이죠
로 아크 양 내 말 오해하지 말아요 나는 백인 여자들을 사랑하
는 사람입니다 오죽했으면 네 명하고나 결혼했을라구요 나는 단지
백인 여자 배심원이 싫다는 거예요
나는 칼 리에게 유죄표를 던질 생각이 없어요
로 아크 양 당신은 인권협회 소속 공산당원이잖소 당신은 누가
무슨 짓을 해도 유죄표를 던지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약간 맛이 간
듯한 마음속에는 어린이에게 음란만화를 그려 파는 작자들이나
PLO테러리스트들까지도 잘못된 제도에 희생당한 불쌍한 사람들이
라는 생각이 들어 있을 테니까 당신은 그들을 석방시켜야 한다고 믿
는 사람이죠
그럼 그렇게 이성적이구 건전하구 이해심 많은 당신의 마음속
엔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믿음이 들어 있나요
거세를 시킨 다음 목을 매달아서 죽을 때까지 피를 홀리게 놔두
는 거죠 물론 재판 없이
당신은 그런 게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법에서 배웠나요
그렇지는 않죠 하지만 나는 애들을 망치는 작자들이나 테러리스
트들을 막아내는 덴 그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죠 제이큰
샌드위치 좀 먹겠나
아니
해리 렉스는 햄치즈 샌드위치를 꺼냈다
1번 배심 카를렌 말론은 거부하게 레이크 빌리지에 사는 말론
가 족속 중 하나지 쓰레기 같은 추잡한 백인이야
그 사람뿐 아니라 모두 다 거부하고 싶네
제이크는 탁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정말 끔찍한 제비뽑기야
로 아크 양 어떻게 생각합니까
제이크가 물었다 해리 렉스가 재빨리 샌드위치를 삼키면서 끼여
들었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유죄를 인정하고 그를 재빨리 지옥에서 꺼내
와야 할 것 같네 줄행랑치는 수밖에 없어
그건 더 나쁠 수도 있어Q
엘렌이 카드를 보면서 말했다 해리 렉스는 과장된 웃음을 터트리
며 대꾸했다
더 나쁘다구요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는 경우는 횐 가운에다
삐죽한 두건을 쓴 놈들이 첫번째 30項 자리에 앉는 거요
해리 렉슨 입 좀 가만 놔둘 수 없겠어
제이크가 말렸다
도와주려고 그러는 것뿐이야 감자튀김 좀 먹겠나
됐어 제발 그거 다 입에 집어넣구 오래오래 씹고 있을 생각 없

당신이 이 여자들 중에 잘못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루시엔 말에 동감해요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동정심이 많아요
강간 피해자는 여자들이니까9 안 그래요
엘렌이 말했다
거기에 대해서 나는 대답하지 않겠쇼
해리 렉스가 말했다
고맙군 여기 있는 여자 중에 전에 자네 의뢰인이었던 사람은 없
나 자네가 윙크 한번만 하떤 하라는 대로 해줄 그런 여자 말이야
엘렌이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제 생각에는 29번인 것 같은데요150센티에 몸무게가 180킬로
는 나가 보이던데9
재밌군 나는 74번이 마음에 들었는데 하지만 너무 뒤쪽에 앉아
있으니 잊어야겠지
해리 렉스가 입 주위를 종이로 닦아내며 대꾸했다
두시가 되자 누스 판사가 의사봉을 두드렸다 법정은 다시 조용해
졌다
검사측에서 배심원들을 심문하겠습니다
위대한 지방검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확 펴고 난간
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난간 옆에 서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방청객과 배심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삽화가들이 그림을 그리
고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잠시 포즈를 취했다 검사는 배심원들을 향
해 정중하게 미소를 지은 다음 자기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시민들을 위해 일하는 법률가라고 했으며 자신의 의
뢰인은 미시시피 주라고 했다 지금까지 9년 동안 지방검사로서 성
실히 일해왔으며 포드 군의 건전한 시민들의 공복으로 일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바로 여기 앉은 여러분이 자기에게 표를 던진 사
람들이므로 그 열렬한 성원에 감사드리며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
겠다는 다짐도 빼먹지 않았다
LL그렇습니다 솔직히 저는 두렵습니다 저는 이미 수많은 사건을
다뤄왔지만 재판 때마다 늘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여러분 앞에
서 두려운 심정을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제 두려움은
죄인들을 교도소에 보내고 시민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감 때문이며
저를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하
는 걱정 때문입니다 저는 그 두려움들을 안고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제이크는 그의 이런 신소리를 전에도 수없이 들은 터라 아예 외우
고 있었다 버클리는 자신이 주의 법률가로서 정의를 구현하구 사회
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늘어놓았다 그는 타고
난 연설가였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충고를 하듯 구수하게 말을 하더니 다음 순간에는 어떤 흑인 목사도
흥내낼 수 없을 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유창한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
러다가 그는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미사여구를 섞어가면서 유죄선
고를 내리는 것만이 사회의 안정과 인류의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하
는 길이라고 연설했다 그는 중요한 재판에서는 최선을 다했구 지금
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는 원고도 없이 즉흥적으로 연설했다 진
실을 규명하고 가증스러운 행위를 징벌하는 배심원들의 동료이자 공
복임을 자청하며 연설하는 그에게 배심원들은 장악되었다 십분쯤
지나자 제이크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자리에
서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검사는 지금 배심원을 선출해야 할 본
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검사가 윌 하고
있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의를 인정합니다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질문할 게 없으면 자리
에 앉아주십시
누스 판사가 마이크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죄송합니다 재판장님
버클리는 상처를 입은 척 어색하게 대답했다
버클리는 서류를 펼치고는 엄청나게 많은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
다 그는 전에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석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몇 명
의 손이 올라갔다 민사사건이었습니까 형사사건이었습니까 유죄
라고 투표했나a무죄라고 투표했나요 그건 언제였죠 피고인이
백인이었습니까 흑인이었습니까 그럼 피해자의 인종은요 여러될
중에 강력 사건의 피해를 당하신 분이 있습니까 두 사람의 손이 을
라갔다 언제였습니까 어디서 일어난 사건이었죠 범인이 잡혔나
요 유죄판결을 받았나요 백인이었습니까 흑인이었습니까
제이크와 엘렌 해리 렉스의 펜이 동시에 빠르게 움직였다 여러분
가족 중에 강력 사건의 피해자가 있습니까 좀더 많은 손이 올라갔
다 언제 어디서였죠 범인은 어떻게 되었나요 여러분 가족 중에
범법자가 있습니까 기소가 되었습니까 재판에 회부되었나요 유
죄판결을 받았습니까 친구나 가족 중에 법률 관계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죠 어디서 일합니까
버클리의 질문은 쉬지 않고 세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배심
원들을 집요하게 쪼아댔구 거의 빈틈이 없었다 제이크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도 많았다 개인적인 감정과 의견에 대한 광범위한 심사가
버클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준비를 열심히 한 흔적이 곳곳에
서 드러났다 그는 적당한 시점에 우스개 소리를 함으로써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줄 줄도 알았다 법정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철저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다섯시가 되자 누스 판사가 그를 제지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버클리는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했을 것이다
누스 판사는 다음날 아침 아홉시까지 휴정을 선언했다 사람들이
문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제이크는 칼 리와 잠간 얘기를 나누었다
오지가 수갑을 들고 칼 리 옆에 와서 섰다 칼 리는 앞줄에 앉은 가
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을 일일이 껴안으면서 내일 보자고 말했
다 오지 보안관과 칼 리는 대기실을 지나 계단으로 내려섰다 그곳
에서는 보안관 대리들이 칼 리를 교도소로 데리고 가기 위해 기다리
고 있었다
34
둘째 날에는 해가 일찍 떠올랐다 해는 동쪽에서 떠오자마자 포
드 군 법원 주위에 돋아난 버뮤다 잔디에 맺혀 있던 이슬방울들을
바짝 말려 버렸다 풀밭에서 피어오른 두꺼운 안개가 군인들의 단단
한 부츠와 헐렁한 바지를 적셔 놓았다 태양볕은 클랜턴 시내의 보도
를 하릴없이 걷고 있는 군인들을 내리쬐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나무
밑으로 숨거나 조그만 가게의 차양 밑으로 엉금엉금 숨어들었다 아
침 먹을 시간이 되자 군인들은 막사 주위로 몰려들어 땀에 흥건히
젖은 국방색 속옷을 훌훌 벗어 던졌다
혹인 목사들과 신도들이 속속 도착해서 곧장 캠프를 쳤다 그들은
떡갈나무 아래 그늘에다 의자를 펴고 작은 탁자 위에는 아이스박스
를 올려놓았다 횐 바탕에 파란색 글씨로 칼 리를 석방하라고 쓴
플래카드는 말뚝을 박아 고정시켰다 그것은 마치 잘 정리된 울타리
처럼 보였다 에이지 목사는 칼 리의 대형 흑백사진을 중앙에 넣고
그 주위를 울긋볼긋한 색으로 칠한 포스터를 제작했다 이제 그들은
숙달된 전문가였다
KKK단원들도 역시 잔디밭 위에 지정된 그들의 자리를 찾아갔다
횐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칼 리를 죽여라라고 쓴 것이 그들의 플래
카드였다 KKK단들이 건너편에 있는 흑인들을 향해 플래카드를 흔
들어대자 두 진영은 서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법원으
로 통하는 도로 위에 가지런히 진을 치고 섰다 그들은 머리 위로 날
아다니는 고함 같은 것에는 이미 익숙해진 듯했다 둘째 날 아침 여
덟시의 풍경이었다
기삿거리를 찾아다니던 보도진들이 두 진영의 시위 장소로 달려
들었다 오지 보안관과 대령은 여느 때처럼 법원 주위를 누비면서
여기저기 손짓을 해대구 무전기에 대고 명령을 내렸다
아흡시가 되자 누스 판사가 방청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면서 법정에 들어섰다 법정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 만원
이었다 버클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판사를 향해 활기찬
목소리로 배심원들에게 더이상 질문할 게 없다고 말했다
브리건스 변호사는 후들거리는 무릎과 뒤틀린 위장을 안고 자리
에서 일어났다 그는 난간으로 걸어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
보는 아흔네 명의 배심원들 앞에 서서 그들을 똑바로 주시했다
방청객들은 살인사건에서는 한번도 져본 적이 없는 젊고 당찬 변
호사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편안하고 자신감 넘쳐 보였다 목소리는
우렁찼으나 따뜻했고 말은 점잖으면서도 세련되었다 제이크는 자
기 소개를 마친 뒤 의뢰인인 칼 리와 그의 가족들을 소개하구 마지
막으로 귀여운 토냐를 소개했다 그는 어제 오후에 지방검사가 했던
철저한 심문에 찬사를 보냈다 검사가 자기가 할 질문을 대신해서
많이 해주었다고 했다 그는 잠시 서류를 내려다보다가 첫번째 질문
을 던졌다 그 질문은 폭탄선언과도 같았다
여러분 중에 심신장애 변호가 특정한 경우에 사용되어선 안 된다
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약간 술렁거리기는 했지만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그들을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심신장애 그래 심신장애
다 제이크는 은연중에 배심원들의 머릿속에 씨앗을 뿌렸다
만약 칼 리 헤일리가 빌리 레이 롭과 피트 월러드를 쏘았을 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도 그가 무죄가 아니라고
주장하실 분 계십니까
제이크의 질문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었다 손을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는 손을 들고 싶
어했지만 맞는 대답인지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제이크는 예비 배심원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상
당히 당황하고 있었지많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배심원들이 그의
의뢰인이 심신장애자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이크는
바로 그점을 노렸다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이상입니다
제이3늘 쵱생동안 쌓아온 매력이 모두 담기도록 애써 대답했다
버클리도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판사를 쳐다보았으나 판사도 역
시 어리등절해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전붑니까 브리건스 씨
누스 판사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예 재판장님 저는 배심원 여러분께 만족합니다
제이크는 장장 세 시간 동안 무차별 질문을 퍼붓던 버클리 검사와
는 대조적으로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었다 제이크로서는 배심원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버클리가 했던 질문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었다
좋습니다 검사와 변호사는 제 방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버클리와 무스그로브 제이엘렌 페이트가 재판장석 바로 옆에
있는 문을 통해서 판사실로 들어갔다 그들이 책상 주위의 자리를 차
지하고 나자 누스 판사가 입을 열었다
이제 양측 검사와 변호사께서는 각 배심원들이 사형 제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듣고 싶으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재판장님
제이크와 버클리가 동의했다
페이트 씨 가서 1번 배심원인 카를렌 말론 씨를 모시고 오세요
페이트가 법정으로 가서 카를렌 말론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쳤다
잠시 후 카를렌 말론은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판사실로 들어왔다
검사와 변호사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
았다 누스의 명령이었다
앉으십시오
누스가 손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LL말론 부인 얼마 안 걸릴 겁니다 부인은 사형 제도에 대해서 찬
성하거나 반대하거나 하는 확실한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카를렌 말론은 머리를 불안하게 흔들면서 누스를 쳐다보았다
아닙니다 판사님
LL당신이 배심원으로 선정되구 칼 리 헤일리 씨가 유죄판결을 받
을 경우 그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LL만약 검사가 피고인의 범행이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사건 당시 피고인의 정신상태가 정상이었다는 것
을 당신이 믿으신다면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그 제도가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범죄를 막는 데 필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형제도에 찬
성합니다
제이크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며 1번 배심원에게 정중하게 고
개를 끄덕여 보였다 버클리는 싱글벙글하면서 무스그로브에게 윙크
를 했다
길사합니다 말론 부인 이제 자리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2번
배심원을 불러주십시요
페이트가 마샤 디킨스라는 나이 많은 백인 여자를 데리고 왔다
주름살이 깊게 파인 디킨스 부인은 사형에 동의한다고 했다 유죄라
고 투표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제이크는 여전히 미소를 지었
고 버클리는 다시 윙크를 했다 누스 판사가 3번 배심원을 불렀다
3번 4번 역시 증거가 분명하다면 칼 리 헤일리를 죽일 마음의 준
비가 단단히 되어 있었다 제이크의 비밀무기인 5번 제럴드 얼트가
판사실로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얼트 씨 금방 끝날 겁니다
누스 판사가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럼 우선 사형제도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확실한 생각을 갖호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물론 반댑니다 저는 사형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건 너무 잔인
한 짓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을 법적으로 죽이는 제도를 허용
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제럴드 얼트는 진심으로 얘기했다 그의 목소리와 얼굴에는 동정
의 빛이 역력했다
그럼 당신이 배심원으로 선출된다면 사형판결을 내릴 수 있겠습
니까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무슨 죄를 지
었건 간에 말입니다
버클리는 헛기침을 하고는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재판장님 검사측에서는 제럴드 얼트 씨의 배심원 자격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위더스푼 판례에 의해 이분을 배심원애서 면제시켜 주
시기 바랍니다
이의를 인정합니다 얼트 씨 당신은 배심원의 의무에서 면제되
었습니다 원하신다면 법정을 나가도 좋습니다 남아 계셔도 쇈찮습
니다만 다른 배심원과 같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누스 판사가 말했다
제럴드 얼트는 영문을 몰라 친구 잭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
었다 제이크는 입을 꼭 다문 채 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제럴드 얼트가 말했다
누스는 코에 걸린 안경을 걷어내구 강의를 하는 교수처럼 말을
꺼냈다
법에 의해 법원에서는 사형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배심원에 대해
서는 배심원 자격을 박탈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께서 인정하든 인
정하지 않든 사형은 미시시피 주를 포함한 여러 주에서 시행되고 있
는 법적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법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을 배심원으
로 앉히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Q
판사실에서 나온 제럴드 얼트가 난간을 밀고 방청석으로 나와 법
정을 떠나자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페이트가 6번 알렉스 섬
머스를 판사실로 데리고 왔다 알렉스 섬머스는 잠시 후에 첫번째 자
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대부분의 혹인들처럼 사형 제도에 반대했
지만 판사 앞에서는 거짓말을 했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는 휴정
시간을 이용해서 다른 혹인 배심원들에게 판사 앞에서 어떻게 대답
해야 되는지 귀띔해 주었다
선별 과정이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마지막 배심원이 판사실
을 나왔을 때는 모두 열한 명의 예비 배심원이 사형을 인정하지 않
는다는 이유로 명부에서 제외되었다 누스 판사는 세시 삼십분까지
휴정을 선언하고 변호사와 검사에게는 네시까지 명부를 점검할 시
간을 주었다
제이크와 엘렌 해리 렉스는 3층 도서관에서 명부와 카드를 놓고
마주 앉았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파란색 붉은색 검은
색으로 분류된 이름들 옆에 예비 배심원의 번호가 나란히 적혀 있었
다 제이크는 이미 이틀 동안 꼬박 예비 배심원들을 관찰해 왔구 이
제 알 만큼은 알고 있었다 해리 렉스는 남자를 원했구 엘렌은 여자
를 원했다
누스 판사는 제외된 열한 명을 빼구 다시 순서를 매긴 예비 배심
원 명단을 보고 있었다 그는 검사와 변호사에게 눈길을 돌렸다
자 준비됐습니까 좋습니다 알다시피 배심원을 거부할 수 있는
기회는 열두 번입니다 버클리 검사 지금부터 변호를 위한 열두 명
의 명단을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1번 배심원부터 시작하기 바랍
니다 배심원은 이름말고 번호로 호명하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재판장님 저희 검사측에서는 1번 Z번 3번 4번을
선택하고 5번에 대해서는 첫번째 거부권을 쓰겠습니다 6번 7번 8
번 9번을 선택하고 10번에 대해서는 두 번째 거부권을 쓰겠습니다
11번 12번 13번을 선택하고 14번에 대해서는 세 번째 거부권을 쓰
겠습니다 15번은 선택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제이크와 엘렌은 그들의 명부에다 표시를 했다 누스 판사는 맞는
줄 알면서도 의례적으로 숫자를 세었다
열두 명이군요 다음 브리건스 씨
버클리 검사는 흑인과 백인 남자는 제외시키고 백인 여자만 열두
명을 고른 셈이었다
제이크는 명부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거부된 배심원의 이름을
명부에서 지워나갔다
저희는 1번 2번 3번을 거부하고 4次 6번 7번을 선택하겠습니
다 8번 9번 11번 12번을 거부하고 13번 선택 15번은 거부합니다
여덟 멍에 대한 거부권을 썼습니다
누스 판사는 명부를 훌어내려가면서 표시를 한 다음에 천천히 숫
자를 세었다
두 분께서 같이 선택하신 배심원은 4번 6번 7번 13번입니다
버클리 씨 당신 차례입니다 다시 여덟 명의 배심원을 더 선택하십
q
저희는 16번을 선택하구 17번에 대해서는 네 번째 거부권을 쓰
겠습니다 18번 19번 20번은 선택하고 21번은 거부하겠습니다 22
번 선택 23번 거부 24번 선택 25번 26번 거부입니다 27번과 28
번을 선택하겠습니다 아직 거부권이 네 개 남아 있고 이상 여턴 명
입니다
제이크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클리는 이번에도 흑인
과 백인 남자들을 모조리 거부했다 그는 제이크의 마음을 다 읽고
있었다
브리건스 씨 당신 차례입니다
재판징림 잠간 의논할 시간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오분 드리겠습니다
누스 판사가 대답했다
제이크와 엘렌은 바로 옆에 있는 휴게실로 갔다 해리 렉스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 좀 봐
제이크가 명부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구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댔다
29번까지 왔어 이제 버클리나 나나 거부권이 각각 네 개 남았는
데 버클리가 흑인하고 백인 남자는 다 지웠어 지금까지 몽땅 백인
여자야 다음의 둘도 백인 여자구 31번이 클라이드 시스쿠 32번이
배리 애커야
그리고 나서 그다음 여섯 명 중네 명이 흑인이죠
엘렌이 거들었다
그래 그령지만 버클리는 거기까지 안 갈 거요 그는 네 번째 줄
에서 끝내려고 할 거라구
자네가 애커를 좋아하는지는 알고 있구 클라이드 시스코는 어떻
게 할 건가
해리 렉스가 물었다
그 사람은 께름칙해 루시엔이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했거든
좋아 그럼 선택해 그 사람을 사자고
재미있군 벌써 버클리가 매수했는지도 모르잖아
내가 가로챌 수 있어
제이크는 명부를 들여다보면서 숫자를 세고 또 세었다 엘렌은 애
커와 시스코 두 남자를 다 거부하고 싶어했다
두 사람이 판사실로 돌아와서 자리에 앉자 서기가 펜을 들었다
변호인측은 22번 28번을 거부합니다 거부권이 두 개 남았습니

당신 차례입니다 버클리 씨 29번 30번을 어떻게 하시겠습니

둘 다 선택하겠습니다 아직 네 개의 거부권이 남았습니다
다음 브리건스 씨
29번 30번 거부합니다
그럼 거부권을 다 쓰신 겁니까
누스 판사가 물었다
좋습니다 버클리 씨 31번 32번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둘 다 선택하겠습니다
버클리는 클라이드 시스코 뒤에 줄줄이 따라오는 흑인들의 이름
을 보면서 재빨리 대답했다
됐습니다 열두 명이군요 다음은 대리인 두 명을 뽐겠습니다 대
리인을선랙하는 데 두개의 거부권을쓸수 있습니다 버클리 씨 33
번과 34번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3번은 흑인 남자였고 34번은 백인 여자였지만 제이크가 원하던
배심원이었다 다음의 번호도 흑인남자가 나란히 차지하고 있었다
33번은 기피하구 34번 35번을 선택하겠습니다
변호인측도 34번 35번을 선택합니다
제이크가 대답했다
누스와 버클리 제이크가 다시 법정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는 동안
페이트는 장내를 정리했다 누스가 열두 명의 배심원 이름을 부르자
배심원들은 진 길레스피의 지시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여자 열 명
남자 두 명 전부 백인이었다 방청석에 앉은 흑인들은 믿을 수 없다
는 표정으로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귓속말들을 나누었다
당신이 저들을 고른 겁니까
칼 리가 제이크에게 물었다
나중에 설명할게
제이크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두 명의 대리인이 불려나와 배심원석 옆자리에 앉았다
저 흑인들은 뭐죠
칼 리가 대리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제이크에게 속삭였다
나중에 말할게9
누스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배심원들을 바라보았다
신사 숙녀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건의 배심원으로 선정되었습
니다 여러분이 서약한 대로 공정하게 이 사건을 재판해 주시기 바랍
니다 여러분은 미시시피 주의 법에 따라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격리
수용될 것입니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우리가 정한 모텔에 묵으면
서 집에 돌아가실 수 없다는 뜻입니다 고생스러우시겠지만 법이 요
구하는 거니까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잠시 후면 내일 아침까지
휴정하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집에 전화를 거셔서 옷과 세면도
구 등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밤
여러분은 클랜턴에서 약간 떨어진 모텔에서 자게 됩니다 질문 있으
십니까
며칠 동안 집에 못 간다는 말에 배심원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그
들은 가족과 아이들 직장과 빨랫감에 대해 생각했다 왜 나란 말인
가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내가 선택되어야 한단 말인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누스는 의사봉을 두드렸다 법정 안의 사람들
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진 길레스피는 배심원을 한 사람
씩 판사실로 데리고 가서 집에 전화를 걸게 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죠
1번 배심원이 진에게 물었다
비밀이에Q
진이 말했다
비밀이래9
1번 배심원이 남편에게 그대로 전했다
일곱시가 되자 가족들이 옷가지와 필요한 용품이 든 상자 가방을
가지고 나타났다 선출된 사람들은 법원 뒷문에 대놓은 그레이하운
드 호송 버스에 실렸다 순찰차 두 대와 지프 한 대가 앞에서 버스를
호위했고 뒤에는 3개 분대의 군인이 따라왔다 버스는 광장을 돌아
클랜턴을 떠났다
스탬프 시슨이 화요일 밤에 멤피스의 화상벙원에서 숨을 거두었
다 자신의 작고 뚱뚱한 몸을 오랫동안 소흘히 했기 때문에 화상으로
인한 합병증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토냐 헤일리
의 강간에서 비롯된 인명 손실은 넷으로 늘어났다 빌리 레이콥 피
트 윌러두 버드 트위티 그리고 이제는 스텀프 시슨까지
재판이 시작된 뒤로 매일밤 모여서 먹고 마셔대던 KKK단원들에
게도 사망 소식이 알려졌다 복수다 눈에는 눈이었다 그들은 복수
를 다짐했다 포드 군에서 다시 다섯 명의 신입회원이 들어왔다 이
로써 이곳 출신은 전부 열한 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열
성적이었구 뭔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동안 재판은
너무나 조용했다 이제 분위기를 바꿀 때가 왔다
제이크는 소파 앞에 서서 모두賣料 진술을 백 번도 넘게 재연했
다 엘렌은 제이크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며 이의를 제기하구 비판을
하고 토론을 하느라 두 시간을 보냈다 엘렌의 진이 다 빠질 때쯤
제이크의 손엔 완벽한 연설문이 쥐어졌다 마가리타 두어 잔이 제이
크를 편안하게 만들었고 혀도 잘 돌아가도록 도와주었다 제이크는
청산유수였다 확실히 재주가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특히 한두 잔
을 걸치고 난 뒤에는
두 사람은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발코니에 느긋하게 앉아 광장 주
위를 도는 희미한 촛불 행렬을 바라보았다 막사 안에서 포커를 치고
있는 군인들의 웃음소리가 밤하늘을 타고 울려퍼졌다 달도 비추지
않는 밤이었다
마가리타를 마지막으로 한 잔씩 더 마시기 위해 엘렌은 부엌으로
갔다 그녀는 얼음을 넣은 마가리타를 탁자에 올려놓구 제이크 뒤로
가서 섰다 그리고는 제이크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얹어 엄지손가락
으로 목 아랫부분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제이크는 몸의 긴장을 풀구
엘렌의 손놀림을 따라 고개를 이쪽 저쪽으로 움직였다 엘렌의 손이
제이크의 등을 타고 내려갔다 엘렌은 제이크의 등에다 볼록한 몸을
갖다댔다
엘렌 열시 삼십분이나 되었소 무척 졸립군 오늘 어디서 잘 거

제가 어디서 잤으면 좋겠어요
을 미스에 있는 당신 아파트에서 자겠다고 얘기해야 될 것 같은
너무 많이 마셔서 운전을 못 하겠어
네스비트가 데려다줄 거요
당신은 어디서 잘 건지 물어봐도 돼요
애덤스 가에 있는 우리집에서
엘렌은 마사지를 하던 손을 멈추구 마가리타를 집어들었다 제이
크는 발코니 끝으로 걸어가 네스비트에게 소리를 질렀다
네스비트 일어나게 옥스퍼드까지 운전해야 돼
칼라는 정치 사회면의 두 번째 페이지를 펼쳤다 헤일리 사건 배
심원 전원 백인이라는 머릿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화요일 밤에 제이
크의 전화를 못 받았기 때문에 칼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
는 커피가 식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문에다 코를 박았다
해변가의 집은 해변에서 좀 떨어진 후미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웃이 2백 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이웃
집과의 사이에 있는 땅은 모두 칼라 아버지의 소유였다 이 집은 아
버지가 십 년 전에 녹스빌의 회사를 팔고 은퇴하면서 지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 집을 3층으로 멋지게 지었구 침실 네 개와 욕실 네 개
를 갖추어 손자들이 열이라도 지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렇지만
칼라는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으며 이제는 한나도 하나
밖에 없는 손녀였다
칼라는 기사를 다 읽고 나서 멀리 푸르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문으로 걸어갔다 아침식사 때 가족들이 모이는 방이었다 오렌지
색 빛덩이가 동쪽에서 떠올라 아득한 수평선을 지워가고 있었다 할
라는 날이 샌 뒤에도 따뜻한 침대 속에 누워 있기를 좋아했다 그러
나 제이크와의 생활은 매일 일곱 시간밖에 잘 수 없도록 그녀를 몰
아붙였다 칼라는 이제 다섯시 삼십분이면 깨어났다 제이크는 해가
뜨기 전에 사무실로 나갔다가 해가 지고 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자기의 목표라고 했다 그리고 대개는 그 목표를 이루었다
제이크는 포드 군의 어떤 변호사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일한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는 칼라와 많이 달랐지만
칼라는 그런 제이크를 사랑했다
클랜턴에서 북동쪽으로 80킬로쯤 떨어진 곳에 템플의 중심지인
밀번 군이 티파 강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의 주민은 약 3천 명
이었구 모텔은 두 군데가 있었다 템플 모텔은 중심가에서 약간 떨
어진 곳에 있는데다 지금은 성수기가 아니어서 손님이 거의 없었다
모텔의 한쪽 끝에 따로 마련된 여덟 개의 방이 꽉 들어찼고 군인들
이 철저하게 경비를 섰다 여자 배심원들은 한 방에 둘씩 들어갔다
그러나 흑인 대리인인 벤 레스터 뉴턴과 프랜스 피츠에게는 독방이
배정되었다 이들은 텔레비전을 볼 수 없었고 신문도 허락되지 않았
다 식사도 각자의 방으로 배달되었다
배심원들이 아침을 먹고 있는 동안 주차장에서는 호송차가 시동
을 걸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삼십분 만에 준비를 끝내고 여덟시
에 호위를 받으면서 클랜턴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배심원들은 가족과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배심원
이 되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단 세 명이었구 대부분은 처
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이런 낯선 곳에서 잠을
자야 하구 이런 일을 맡아 해야 하는지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싶었
다 하지만 누스는 사건에 대한 어떤 얘기를 서로 나눌 수 없다고 강
조했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강간과
강간범 칼 리 제이버클리 누수 KKK단 따위를 그들은 모두
불타오른 십자가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나 얘기하지 않았다 적어도
버스 안에서는 대신 그들은 모텔 방에서 충분히 얘기를 나누었다
아홉시 오분 전에 호송차가 법원 광장에 도착했다 배심원들은 어
둡게 가려진 창문을 통해 얼마나 많은 혹인과 KKK단원이 모여 있
는지 또 그 사이로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지를 내
다보았다 차는 바리케이드를 쉽게 통과해 법원 뒤편에 가 멈췄다
그곳에서는 오지의 부하들이 배심원들을 가능한 한 빨리 계단으로
올려보내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뒷계단을 통해 배심원실
로 들어갔다 배심원실에는 커피와 도넛이 준비되어 있었다 법원의
정리가 아흡시가 다 되었다고 알려주었고 판사는 모든 준비가 다 끝
났다고 했다 정리는 배심원들을 방청객이 가득 들어찬 법정으로 데
리고 들어와 준비된 배심원석에 앉혔다
모두 기립해 주십시오
정리가 소리를 질렀다
이제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누스 판사가 재판장석에 마련된 가죽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모두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배심원 여러분 오늘 아침엔 다들 기
분이 괜찮으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준비되셨습니까
누스 판사의 말에 배심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앞으로 저는 매일 아침 이런 질문을 드릴 것입니다 지
난밤에 여러분께 접근하거나 말을 걸거나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
고 한 사람이 있습니까
배심원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습니다 본 사건에 대해서 여러분들끼리 토론을 한 적이 있습
니까
그들은 모두 거짓말을 했다 다시 한번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좋습니다 만약 누군가 접근해서 이 사건에 대해 토론하자고 강
요하면 즉시 제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첫번째 순서로 검사와 변
호사의 모두 진술을 듣겠습니다 주의하셔야 할 것은 검사와 변호사
의 말이 증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것을 증거
로 채택해서는 안 됩니다 버클리 씨 준비됐습니까
버클리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번쩍거리는 폴리에스터 코트의
단추를 채웠다
예 재판장님
시작하십시오
버클리는 나무로 만든 작은 연단을 배심원들 앞으로 옮긴 다음
그 앞에 서서 숨을 가다듬었다 그는 서규들을 슬쩍 훈어보면서 모든
시선들이 다 자기를 향하고 모든 귀들이 자기를 향해 종긋 열려 있
는 이 순간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버클리는 먼저 배심원석에 앉아
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리고 그들의 희생정신과 시민정신에 깊이 고
개를 숙인다고 말했다 그는 마치 배심원들이 그들 스스로 선택한 일
인 양 말하고 있었다
저는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 중요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변호사이구 제
의뢰인은 미시시피 주정부입니다 저 같은 스미스필드 출신의 보잘
것없는 검사인 루퍼스 버클리에게 이런 막중한 임무를 맡겨준 데 대
해 굉장한 책임감을 느끼며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고 있습니다
버끌리는 자기 개인의 이야기와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오랜
시간을 들여 시시콜콜 늘어놓다가 주민들을 위해 훌릉하게 일을 마
치고 싶다는 희망찬 말로 결론을 맺었다
버클리는 모두 진술에서 늘 하던 말을 똑같이 지껄이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연기가 더 좋았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포장만
그럴싸한 쓰레기와 다름없었다 제이크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오랜 경험을 통해 연설 내용이 악독하고 치사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면 누스는 모두 진술중에 이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
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버클리의 탁월한 웅변술은 교묘하게 속
마음을 잘 감추고 있었다 제이크는 성실과 진실한 감정을 가장한 이
런 허풍에 분노가 치밀었다 무엇보다 순진한 배심원들이 그 말에 동
감하고 수긍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검사는 항상 좋은 사람이었다 불
의를 바로잡구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 다시는 죄를 지을 수 없도록 가둬놓는 정의의 사도
버클리는 모두 진술 동안 배심원들을 숨가쁘게 몰아갔다 자기와 선
택된 열두 명의 배심원들은 이제 한 배를 타구 진실을 올바로 세우
기 위해 악에 대항하며 열심히 항해를 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들
은 오직 진실만을 찾아낼 것이며 결국에는 진실을 찾아 승리할 것이
라고 했다
물론 강간은 끔찍한 짓입니다 저도 토냐와 같은 딸을 둔 아버지
입니다 저는 강간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위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칼
리와 그의 부인을 위해 진심으로 슬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제
어린 딸을 보면서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제이크는 엘렌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버클리는 강간사건을 숨기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기로 전략을 바꾼
듯했다 제이크는 강간이 살인사건의 법적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
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버클리와 한판 대결을 벌일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엘렌의 조사에 따르면 법은 증거 채택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
았다 그러나 강간에 대해서 언급해선 안 된다는 강제 조항은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상왑이니 버클리는 강간사건에 대해 인정하고 넘어
가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괜찮은 전략이었다 이미
배심원들과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느 방식으로든 강간사건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까
엘렌도 제이크를 따라 웃었다 토냐 헤일리의 강간이 첫번째로 재
판대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아버지로서 복수를 다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라도 그렇
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수를 하고 실어하는 것과 실제로 복수
를 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이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슬슬 열기가 무르익자 버클리는 연단을 무시하고 앞뒤로 몸을 움
직이면서 박자를 탔다 그는 사법제도와 그것이 미시시피 주에서 어
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또 자신이 얼마나 많은 강간범들을 파치먼 교
도소로 보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형벌을 받도록 만들었는지 장장
이십분 동안 떠벌렸다
이렇게 법제도가 잘 돌아가는 이유는 미시시피주의 주민들이 이
만한 제도를 유지시킬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칼 리 헤일리
씨와 같이 법제도를 무시하고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람이 있
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제도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법이 무너지고 개인의 복수심만 불타오르
는 사회 경찰도 없구 교도소도 없곤 법정도 재판도 배심원도 없
는 사회를 상상해 보시란 말입니다
버클리는 숨을 한번 돌린 다음 말을 이었다
정말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저기 앉아 있는 칼
리 헤일리 씨는 자신이 스스로 적법한 과정을 무시했으면서 공정하
고도 적절한 재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현상입니
까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의 어머니에게 그의 아들이 얼마나
공정한 재판을 받았는지 물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버클리는 배심원과 방청객들에게 자기가 제시한 논점을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뜸을 들였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으며 배
심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칼 리에게로 향했다 동정의 시선과는 거리
가 먼 것이었다 제이크는 작은 칼로 손톱을 다듬으면서 지루한 표
정을 짓고 있었다 버클리는 연단 위에 놓인 서류들을 뒤적이는 척하
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그가 이번에는 확신에 찬 사무적인 말투로 얘
기를 꺼냈다
검사측에서는 칼 리 헤일리 씨가 범행을 사전에 모의했다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헤일리 씨는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가 호송되
는 통로에 달린 작은 방에 한 시간 동안이나 숨어서 그들이 법정을
나와 호송차로 옳겨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법정
에 들어갈 때는 M16을 몰래 갖고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버클리는 서기석 옆의 책상으로 가서 문제의 料16을 높이 들어
올렸다
이게 그 M16입니다
그는 총을 든 손을 흔들어대며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그는 그것을
연단 위에 내려놓고 나서 칼 리 헤일리가 얼마나 신중하게 살상용
무기를 골랐는지 말하고는 베트남전의 백전용사로서 그가 얼마나
무기를 잘 다루는가도 말했다
칼 리 헤일리 씨는 M16으로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총은
명백한 불법무기였기 때문에 총포 가게에서는 쉽게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헤일리 씨는 무기를 특정한 경로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로써 그가 범행을 모의했다는 게 드러납니다
증거는 분명했다 사전에 모의하고 계획된 잔인한 살인이었던 것
이다
버클리가 전열을 가다듬고 파고들기 시작한 다음 주제는 드웨인
루니 보안관 대리에 대한 것이었다
드웨인 루니 보안관 대리는 보안관 사무실에서 14년 동안 일해
온 베테랑입니다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구 제가 아는 가장 훌릉한
법 집행관입니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칼 리 헤일리
씨가 쏜 총알에 맞아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아마 변호인께서는 그건 사고였으니 문제 삼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미시시피 주에서 그런 변호는 통하지 않
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폭력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반드시 유죄판결이 내려져야 합니다
모두 진술에 주어진 시간은 변호인과 검사 모두 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방검사에게는 그 시간이 벅찼는지 했던 말을 자꾸 되풀이
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고 있었다 그는 심신장애 변호를 주장하는 것
이 터무니없다는 주장을 하다가 두 번이나 실수를 했다 배심원들은
지루한 표정을 지으면서 법정 안에 다른 흥미거리가 없나 두리번거
리기 시작했다 삽화기들도 그리기를 멈추었고 기자들은 더이상 받
아적지 않고 있었다
누스는 벌써 여덟 번째 안경을 닦고 있었다 누스가 졸음이 오는
것을 참기 위해 안경을 닦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제이
크는 증인들이 증언을 하면서 눈물을 찔끔거리고 검사와 변호사가
소리를 지르면서 서로를 헐뜯는 사이에도 누스 판사가 손수건으로
넥타이로 소맷깃으로 안경을 닦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그러
나 그는 단어 하나 놓치는 법이 없었곤 어떤 이의 신청이나 속임수
도 거저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누스는 단지 이 모든 것들이 지루할
뿐이었다 사건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졸음의
유혹에 내몰리는 경우가 몇 번 있었지만 그래도 재판장석에서 졸아
본 적은 없었다
그는 안경을 불빛에 비춰 보면서 마치 기름때라도 긴 양 열심히
닦은 뒤 다1뽀족한 코 위에 걸쳤다 그러나 안경은 오분도 안 되어
서 다시 더러워질 것이다 버클리가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안경은 반
들반들하게 닦여질 것이다
마친내 한 시간 반이 지나고 나서야 버클리의 말이 끝났다 법정
안의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십분간 휴정하겠습니다
누스 판사는 재빨리 휴정을 선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통해
판사실을 지나쳐 화장실로 들어갔다
제이크는 버클리의 마라톤 같은 말잔치를 듣고 나서 모두 진술을
아주 짧게 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배심원들은 변호사를 좋아하지 않
았다 특히 사설이 길고 말이 많은 변호사들은 더욱 아주 간단한 것
들도 세 번 이상씩 강조해서 머릿속에 주입시키려는 변호사들 게다
가 중요한 논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는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며
했던 말을 반복하는 변호사들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변호사
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들이 변호사들에
게 입 닥치라고 말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었다 법정 밖에서는
변호사건 누구건 맘에 안 들면 입 닥치라고 소리지를 수 있었다 그
러나 법정에 들어선 이상 그들은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졸거나 코를 골거나 노려보거나 시선을 돌리거나 시계를 보거나
하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항변을 하는 수밖에 없려다 둘째는 배심
원들은 대체로 긴 재판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배심원들의 주장
은 간단했다 잡동사니는 집어치우고 우리에게 진실만을 말해 달라
그러면 우리는 판결을 내려주겠다
휴정시간에 제이크는 칼 리에게 짧게 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내 생각도 그래9 짧게 하도록 해
칼 리도 순순히 동의했다
제이크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모두 진술은 십사분이면 충분했구
배심원들은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었다 제이크는 딸에 대한 얘
기로 시작했다 그들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에 대해서 사내놈들
과 달리 딸들은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기
딸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아버지와 딸 사이에는 특별한 유대 관계가
있으며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정이 흐른다고 말했다 그는 버클리
검사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자기 딸을 강간한 술주정뱅이 성도
착자들에게 어쩌면 그렇게 너그럽고 동정적일 수 있는지 그럴 수 있
는 능력과 자질에 찬사를 보낸다고 했다 버클리는 대단한 사람이라
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배심원 여러분이나 평범한 부모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딸을 강간한 사람들에게 너그러을 수 있겠습니
까 그 강간범들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아이를 나무에 매달아 놓구
아랫도리를 드러내 놓고는 짐승같이
이의 있습니다
버클리가 소리를 질렀다
인정합니다
누스 판사의 목소리도 버클리 못지 않았다
제이크는 두 사람의 흥분된 목소리에는 아랑곳없이 차분하게 소
리를 낮추고 얘기를 이어 나갔다 그는 배심원들에게 만약 여러분의
딸이 강간을 당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했을 건가를 한번 상상해 보
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간절한 음성으로 칼 리 헤일리를 여기 이렇게
묶어두지 말구 집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심신장애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 얘기가 나을 거라
고 예상하고 있었다
제이크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하게 끝을 맺었다 그렇
게 함으로써 자기와 적 사이에 뚜렷이 낄비되는 특성을 배심원들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그게 전붑니까
누스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제이크는 의뢰인 옆에 앉으며 고개
만 끄덕여 보였다
좋습니다 버클리 씨 첫번째 증인을 부르십시오
코라 콥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정리가 증인실에 가서 코라 콥을 데리고 왔다 그녀는 배심원석
바로 옆문을 통해 법정으로 들어와서 진 길레스피가 지시하는 대로
선서를 하고 증인석에 앉았다
마이크에 대고 증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버클리가 코라 좁에게 말했다
증인이 코라 콥 부인이십니까
버클리는 난간 옆에 있는 연단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어디 사십니까
포드 군 레이크 빌리지 3번 도로입니다
죽은 빌리 레이 콥의 어머니가 맞습니까
코라 콥은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전형적인 시골 아낙네로 청
상과부로 아이들을 키웠다 그녀는 캐러웨이와 레이크 빌리지 사이
에 있는 작은 가구공장에서 2교대로 일을 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갔기
때문에 아이들은 거의 스스로 커나갔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어려
서부터 집밖으로 나돌기 시작했고 그 덕에 쉰 살 나이보다 훨씬 늙
어 보였다 젊어 보이려고 염색을 하고 치장을 했지만 오히려 육십
대로 보였다
사망 당시 아드님의 나이가 몇 살이었습니까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것을 본 게 언젭니까
죽기 바로 직전입니다
어디서 봤습니까
이 법정에서 봤습니다
어디서 죽었습니까
아래충에서Q
총소리를 들으셨습니까
코라 콥이 울기 시작했다
어디서 마지막으로 봤습니까
장례식에서 봤습니다
그는 어떤 상태였습니까
죽어 있었습니다
이상입니다
버클리가 말했다
반대심문 있습니까릴
변호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코라 콥은 큰 해가 되는 증인이 아니
었다 그녀는 그저 피해자가 진짜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배심원
들의 동정표를 얻을 목적으로 나온 사람이었다 반대심문을 통해서
얻을 게 없었으므로 그런 증인은 그냥 놔두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놓칠 수 없는 기회를 포착해 냈다 재판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 판사와 버즐리 배심원들의 주위를 환기시킬 수 있는 기
회 실제로 코라 꼽은 그렇게 가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체하고
있을 뿐이었다 버클리는 가능하다면 그녀에게 울먹이라고 종용했을
지도 몰랐다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제이크는 버클리와 무스그로브의 뒤를 돌아서 연단으로 다가섰
다 버클리가 즉시 긴장한 얼굴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콥 부인 댁의 아드님이 마리화나를 판 죄로 교토소에 갔던 게 사
실입니까
이의 있습니
버플리가 자리애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피해자의 전과 기록은 중거로 채택할 수 없습니다
인정합니다
감사합니다 재환장점
제이크는 마치 누스가 자기 편을 들어 준 것처럼 공손하게 답했다
코라 콥은 눈물을 닦아내며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아드님이 사망했을 때 스물세 살이었다고 하셨죠
아드님이 23년 동안 몇 명의 어린아이를 강간했습니까
이의 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버클리는 손을 쳐들어 흔들면서 누스를 향해 간곡하게 소리를 질
렀다
인정합니다 브리건스 씨 지금 규칙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누스 역시 고함을 치면서 말했다
코라 콥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판사와 검사
가 소리를 지르자 그녀의 울음소리도 점점 커졌다 그녀가 마이크
앞에 얼굴을 대고 있었던 탓에 울음소리가 법정 안을 가득 울렸다
경고를 주셔야 합니다 재판장님
버클리의 얼굴과 눈이 분노로 달아올랐다
질문을 철회하겠습니다
제이크는 자리로 돌아와 앉으면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브리건스 씨 치사한 짓입니다
무스그로브가 속삭였다
제발 경고를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배심원들에게 그 질문을 무
시하라고 하십시오
버클리가 간곡히 부탁했다
재직접 심문 하시겠습니까
누스 판사가 물었다
아닙니다
버클리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증인석으로 가 코라 옵에게 손수
건을 내밀었다 그녀는 머리를 깊숙이 묻은 채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옵 부인 이제 내려가셔도 좋습니다 정리 증인을 부축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스가 말했다
정리가 다가와서 코라 콥을 부축했구 버클리도 옵 부인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녀는 배심원석 앞을 지나 난간을 건너 중앙통로
를 통해 걸어나갔다 코라 콥은 뒷문께에 이르자 목을 놓아 울기 시
작했다 법정이 떠나갈 것 같았다
누스는 옵 부인이 나가고 법정이 다시 평온을 되찾을 때까지 제
이크를 빤히 노려보았다 콥 부인이 나가고 나자 그는 고개를 돌려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L브리건스 변호사의 마지막 질문을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칼 리가 제이크에게 속삭였다
나중에 설명할게요
LL어니스틴 윌러드를 두 번째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버클리는 증인을 소환하는 데 좀더 조심스러워졌다 목소리는 한
결 작아졌구 증인을 부르는 데도 머뭇거렸다
윌러드 부인이 대기실에서 나와 서약을 하고 증인석에 앉았다
어니스틴 윌러드 씨 맞습니까
버클리가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월러드 부인이 조용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삶도 콥 부인만큼이나
험했다 그러나 월러드 부인의 얼굴에서는 콥 부인보다 신뢰가 가는
동정심을 자극하게 만드는 고결한 분위기가 홀렀다 값싸 보이는 옷
을 입고 있었지만 정갈하게 빨아서 잘 다려 입고 있었구 머리에 들
인 염색약이나 화장도 콥 부인보다는 훨씬 옅구 깨끗해 보이는 색이
었다 월러드 부인은 소리를 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어디 사십니까
레이크 빌리지에 삽니다
피트 윌러드가 아들이 맙습니까
예 맞습니다
피트 월러드가 살아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젭니까
죽기 바로 전에 이 법정에서 봤습니다
총소리를 들으셨습니까
어디서 그를 마지막으로 봤습니까
장례식장에서 봤습니다
어떤 상태였죠
죽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화장지로 눈물을 찍어내면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이상입니다 재판장님
버클리가 제이크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반대심문 있습니까
누스도 역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제이크를 보며 물었다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윌러드 부인 저는 제이크 브리건습니다
그는 연단에 서서 냉정한 얼굴로 윌러드 부인을 바라보았다
어니스틴 윌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망 당시 아드님의 나이가 몇 살이었습니까
스물일곱이었습니다
버클리는 의자를 뒤로 쭉 밀고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언제라도
잽싸게 일어나기 위해서였다 누스도 역시 안경을 벗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칼 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스물일곱이 될 때까지 아드님이 얼마나 많은 어린아이를 강간했
습니까
버클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이의를 인정합니다 인정해요
윌러드 부인은 고함소리에 놀라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경고를 주십시P재판장님 경고를 주셔야 마땅합니다
질문을 철회하겠습니다
제이크는 자리로 돌아오면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버클리는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간청했다
그걸로 충분치 않습니다 재판장님 경고를 주셔야 합니다
판사실에서 잠간 봅시다
누스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는 증인을 내려보낸 다음 한시까지 휴
정을 선언했다
해리 렉스는 샌드위치와 마가리타를 들구 제이크의 사무실 발푀
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이크는 마가리타 대신 포도 주스를
마셨구 엘렌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 잔을 마시겠다고 했다
델은 삼일 내내 점심을 직접 만들어서 사무실로 배달해 주었다 커피
숍에서 보내는 격려의 선물이었다
세 사람은 발코니에 앉아 말없이 점심을 먹으며 법원 주위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판사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丁
해리 렉스가 물었다
제이크는 델의 선물을 야금야금 씹으면서 재판말고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젠장 무슨 일이 있었냐니까
로 아크 양 카디널 팀이 세 게임이나 뒤졌다는 거 알고 있소
네 게임인 줄 알고 있었는데요
무슨 일이 있었냐구
진짜로 알고 싶은 건가
그래
알았네 화잔실 갔다 와서 얘기할게
제이크가 두 사람에게서 멀어져 갔다
로 아크 양 당신이 한번 얘기해 봐요
별거 없었어요 누스 판사가 제이크에게 잘하는 짓이라고 몇 마
디 하기는 했지만 다른 피해는 없었어요 버클리는 혈전이라도 벌일
태세였어요 버클리의 얼굴이 그렇게 붉어질 때면 틀림없이 무슨 일
인가가 일어난다고 제이크가 말하더군요 버클리는 제이크가 고의적
으로 배심원을 자극했다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어요 제이크는 그
냥 빙그레 웃으면서 죄송합니다 주지사님이라고만 대답했죠 제
이크가 그를 주지사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버클리는 누스에게 저 사
람이 저를 주지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판사럼 뭔가 조치를 취해
주세요라고 말했어요 그러면 누스는 두 사람 다 법률가답게 자중
하라고 타일렀구요 제이크는 감사합니다 재판장님이라고 한 다
음에 조금 있다가 다시 버클리를 주지사님이라고 불렀죠
왜 그 부인들을 울린 거래요
그건 아주 잘한 거예요 해리 렉스 씨 그는 배심원들하구 판사
검사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곳은 법정이며 자신은 저주받
아 마땅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거예요 그가
먼저 선수를 친 거죠 그는 버클리를 벌떡벌떡 일어서게 만들어 신경
을 자극했어9 누스는 제이크가 자기를 겁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게 됐죠 배심원들도 그들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어요 그는 배심원들
에게 이 재판은 전쟁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거예요 아주
뛰어난 행동이었어9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했소
우리한테는 하나도 해될 게 없어9 그 여자들은 나와서 동정을
구걸한 거예요 하지만 제이크는 그들의 귀한 자식들이 죽기 전에 어
떤 짓을 저질렀는지 분명히 상기시켜 주었죠
깡패들이었지
배심원 중에 화가 난 사람이 있더라도 마지막 증인이 나을 때쯤
엔 모두 잊어버릴 거예요
제이크는 정말 차분하지 않소
그럼요 제가 본 변호사 중 최고예요 그 나이 또래에선 말이죠
최종 변론을 한번 들어봐9 나도 몇번 들었는데 제이크는 군 하
사관들한테도 동정을 살 수 있을 정도죠
제이크가 화장실에서 돌아와 마가리타를 조금 따랐다 아주 조금
이었다 해리 렉스는 술고래처럼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점심 식사 후 검사측에서 부른 첫번째 증인은 오지 보안관이었다
버클리는 법원 1층과 2충의 도면을 색색의 색깔로 표시한 커다란 지
도를 가지고 나왔다 그러고는 보안관과 함께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의 최후 행적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 버클리는 콥과 윌러드가 죽은 채로 계단에 널브러져 있
는 장면을 찍은 16x24짜리 사진 열 장을 내놓았다 끔찍한 모습이
었다 제이크는 수많은 시체 사진을 보아 왔다 그런 사진이라는 게
원래가 보기 좋을 리 없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도 개중엔 있었
다 그가 맡았던 한 사건의 피해자는 가슴에 357구경을 맞고 쓰러졌
는데 워낙 근육질이었기 때문에 총알이 가슴을 뚫지 못했었다 그래
서 피도 한 방을 나진 않고 커다란 몸에 작은 구멍 하나 뚫린 게 전
부였다 피해자는 마치 푹 쓰러져 잠이 든 사람이나 루시엔처럼 술
에 취해 뻗어버린 사람 같았다 그런 사진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
기 때문에 검사가 사진을 가지고 법석을 떨 수도 없었구 과장할 수
도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확대하지도 않았구 배심원들에게는 간단
한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면 배심원들은 그 사진을
보고 찝찝한 표정을 지으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장 사진은 끔찍하고 구역질나는 것이었다 벽
과 천장에 피가 튀어 있고 몸의 일부분이 날아가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지방검사를 흥분시키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버클리는 그런 사진은 크게 확대를 해서 증거물로 제
시했다 그리고는 그것이 대단한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증인과 함께
사진을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장면을 자세히 묘사했다 마침내 배심
원들이 호기심으로 달아오를 때쯤이면 그는 판사에게 사진을 보여줄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 나면 버클리를 비롯한 모
든 사람들은 배심원들이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아 겁을 집어먹거나
심한 경우 구토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실제로 제이크는 뭉개진
시체를 보고 구토를 하는 배심원을 두 명이나 본 적이 있었다
그런 사진들은 선입견을 불러일으켜 판결을 내리는 데 불리한 역
할을 하고 선동적이며 증거로서 아주 확실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
리고 90년 동안의 판례에서 알 수 있듯이 배심원들의 결정에 도움
을 주었다미시시피에서는 배심원에게 어떤 영향을 주든 간에 사진
을 보여주는 것이 관례였다
제이크는 몇 주 전에 그 사진들을 보았다 그리고 채택 불가 신청
을 요구했지만 여지없이 퇴짜맞고 말았다
버클리는 배심원들에게 보여줄 사진을 탄탄한 널빤지 위에 깨끗
하게 붙여서 들고 나왔다 평소와 달리 특별히 신경쓴 모습이 역력했
다 그가 첫번째 사진을 배심원석의 레바 베츠에게 건네주었다 윌러
드의 머리와 뇌수가 바닥에 흩어져 있는 사진이었다
어머 세상에
레바 베츠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다음 배심원에게 사진을 넘겼다
배심뭔들이 차례로 사진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다시 버클리 검사에게
돌려주면 그는 다음 사진을 레바 베츠에게 넘겨주었다 그렇게 열
장의 사진을 다 보는 데 삼십분이 걸렸다
버클리 검사는 M16을 한 손으로 쥐고 오지 보안관에게 쑥 내밀
었다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예 범행 현장에 있던 무기입니다
누가 주웠습니까
저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하셨죠
비닐 봉지에 싸서 교도소 지하 창고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잭슨
에 있는 과학수사연구소의 레어드 씨에게 넘겨줄 때까지 그곳에 보
관했습니다
재판장님 저희는 이 총을 증거 13호로 제출합니다
버클리는 총을 크게 흔들어 보였다
이의 없습니다
제이크가 말했다
이상입니다
버클리가 의기양양하게 선언했다
반대심문 있습니까
제이크는 서류뭉치를 펄럭거리며 증인석으로 다가섰다 그는 친구
에게 물어볼 게 몇 가지밖에 없었다
보안관님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를 체포한 적이 있습니

버즐리가 다시 의자를 밀어 둔중한 몸을 의자 끝에 걸쳤다 필요
하다면 언제라도 일어나서 소리를 지를 태세였다
예 있습니다
보안관이 대답했다
혐의가 뭐였습니까
토냐 헤일리 양을 강간한 죄였습니다
오지의 대답은 제이크가 원한 것 그대로였다
토냐 헤일리 양이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에게 강간을 당할
때 나이가 몇 살이었습니까
열 살이었습니다
보안관님 피트 윌러드가 자술서에 서명했다는 것이 사실
이의 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그것은 이 사건에서 증
거로 채택될 수 었습니다 그것은 변호인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오지도 검사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합니다
버클리는 그래도 화가 가시지 않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질문을 속기록에서 삭제할 것과 배심원들은 이 질문을 증거
로 채택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힙니다
질문을 철회하겠습니다
제이크는 버클리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브리건스 씨의 마지막 질문은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누스 판사가 배심원들을 보면서 주의를 주었다
이상입니다
제이크가 말했다
재직접 심문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좋습니다 증인은 내려가셔도 좋습니다
버클리가 내세운 다음 증인은 지문감식원이었다 과학수사연구소
에서 온 그는 장장 한 시간을 들여서 이미 몇주 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을 얘기했다 그의 결론은 증거로 제출된 M16에서 검출된 지
문과 칼 리 헤일리의 지문이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다음 증인은 과학
수사연구소의 탄환 전문가였는데 그의 증언은 지루했을 뿐 아니라
앞의 증인만큼 유익한 내용도 아니었다 그는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탄환이 지금 저 탁자 위에 놓인 M16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고 했
다 차트와 도표까지 들고 나와 한 시간을 끈 결과가 고작 그거였다
제이크는 검사의 과잉 반웅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검사들의 지리멸
렬한 태도 때문에 고생한 적이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제이크는 두 증인에 대해서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았다 다섯시 십
오분이 되자 누스는 배심원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다시 한번 토론
금지 명령을 강조했다 배심원들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스
는 다음날 아침 아홉시까지 휴정을 선언하고 의사봉을 두드렸다
위대한 시민으로서의 배심원의 의무는 빠른 속도로 강화되었다
둘째 날 밤에는 판사의 명령에 따라 템플 모텔에 있는 모든 전화기
가 치워졌다 클랜턴 도서관에서 가져온 따분한 잡지들은 배심원들
에게 지급되자마자 버림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뉴욕인이나
스미소니언 박물관보 건축의 세계따위의 잡지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펜트하우스 없어요
클라이드 시스코가 잡지를 회람시키고 있는 정리에게 물었다 그
는 없지만 알아보겠다고 했다
텔레비전도 신문도 전화도 없는 작은 방에 갇힌 배심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카드를 치거나 재판에 대해서 수다를 떠는 것밖에 없
었다 특별한 일이라면 한 사람이 감시하는 틈을 타서 흘 저쪽까지
가 시원한 음료수를 뽑아오는 것이었다 배심원들은 번갈아서 음료
수를 마시러 드나들었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지루한 시간들이 점점
깊어갔다
흘 양쪽 끝에서는 군인 두 명이 어둠과 지루함을 이기며 보초를
섰다 이따금씩 음료수 자판기에서 나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일찍 잠들었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 여섯시에 군인들이
문을 두드릴 때면 대부분 깨어 있었구 개중엔 옷을 입고 채비를 다
끝낸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목요일 아침식사로 나온 팬케이크와 소
시지를 재빨리 먹고는 아침 여덟시에 고향으로 향하는 호송버스에
부리나케 올라탔다
재판이 나흘째로 접어들던 날 아침에도 원형흘은 여덟시부터 사
람들로 만원이었다 사람들이 여덟시 삼십분이면 법정의 자리가 다
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레이서가 문을 열면 몰려든
군중들은 금속 탐지기를 지나 경관들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며 법정
으로 들어섰다 흑인들은 왼쪽 방청석에 앉았고 백인들은 오른쪽에
앉았다 헤이스팅스는 그웬과 레스터 아이들과 친척들을 위해 맨 앞
자리를 맡아주었다 두 번째 줄은 에이지 목사와 목사회 소속 회원
들 그리고 앞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친척들 몫이었다 에이지 목사는
법정 안에 앉아 있는 일과 법정 바깥에서 시위를 주도하는 일을 번
갈아가떤서 맡고 있었다 그는 개인적으루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정 안에 있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법원 잔디밭에 있는 카메라와
기자들이 아쉽기도 했다 통로 너머 그의 오른편에는 피해자의 가족
들이 앉아 있었다 아직까지는 얌전한 모습이었다
아흡시가 조금 못 되자 칼 리가 경관들에게 둘러싸여 법정으로 나
왔다 한 경관이 그의 수갑을 풀었고 칼 리는 가족들에게 환하게 웃
어 보였다 변호인과 검사가 각자의 자리에 앉자 법정은 조용해졌다
쳐리가 배십원석 바로 옆에 난 문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배심원들을 들여보냈다 페이트는 판사실
로 통하는 문에서 이 광경을 다 지켜보고 있다가 앞으로 나서면서
소리를 질렀다
모두 기립해 주십시오
누스 판사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텟바랜 검은색 법복을 입고 성
큼성큼 재판장석으로 올라가더니 모두 앉으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배심원들을 돌아보면서 어제 휴정 이후로 무슨 일이 없었는지 물었
다 그러고는 검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스그로브 씨는 어디 있습니까
좀 늦을 겁니다 재판장림 하지만 준비는 다 됐습니다
버클리가 대답했다
다음 증인 신청하십시오
누스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과학수사연구소에서 나온 병리학자가 원형홀에서 대기하고 있다
가 법정으로 들어섰다 보통 때 같으면 그는 할 일이 많다는 핑계로
재판에서 증언하는 것 정도는 부하에게 떠넘겼을 테지만 이건 헤일
리 사건이었다 그는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가 어떻게 죽었는지
직접 와서 설명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사건은 그가 맡았던 사건 중에서 유쎄가 없을 만큼 쉽고
명확한 것이었다 시체가 현장에서 발견되었구 무기도 시체 옆에 얌
전히 놓여 있었다 시체에는 충분한 총알 구멍이 뚫려 있었구 그것
만으로도 사인은 명백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
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방검사가 전문가로서 치밀한 증언을 해주기
를 강력하게 요청해 왔고 그도 순순히 응했다 그는 부검결과가 나
타난 엑스레이와 색색의 차트를 들고 증인석에 섰다
제이크는 판사실에서 사인에 대해서는 미리 서면으로 간단히 제
출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버클리는 절대로 그 정도로 만족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배심원들이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직접 듣고 알아
야 한다고 우겼다
변호인측에서는 피해자들이 M16에서 나온 총알에 맞아 사망했
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제이크가 간단하게 말했다
제게는 그걸 증명할 권한이 있습니다
버클리는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결국 그렇게 했다 버클리는 그것이 과잉 살상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병리학자는 장장 세 시간에 걸쳐 몇 개의 총알이 빌
리 레이 좁과 퍼트 윌러드를 관통했는지 그리고 각각의 총알들이 어
떤 효과를 냈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해 나갔다 해부도가 이젤에
올려져 배심원 앞에 놓였곤 병리학자는 플라스틱으로 된 총알을 그
해부도 위에서 천천히 움직여 총알이 뚫고간 궤적을 설명했다 콥의
몸에 열네 발 윌러드의 몸에 열한 발이 박였다 버클리는 질문을 던
지고 답을 유도했다 그리고는 중간중간에 끼여들어 요점을 짚어주
었다
재판장님 사인에 대한 중언을 제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이크는 삼십분에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버클리는 고집스럽게 대답하고 나서 다음 총알로 넘어갔다
제이크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고 배심
원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아직 졸지 않고 있었다
열두시에 병리학자의 증언이 끝나자 피곤과 지루함에 맞서 싸우
느라 초죽음이 된 누스는 두 시간 동안 점심식사를 하도록 했다
정리가 배심원들을 깨웠다 배심원들은 바비큐 요리를 특별메뉴로
받아 먹고는 카드 놀이를 시작했다 법원 밖으로 나가는 것은 여전히
금지였다
남부의 작은 마을에는 어디나 돈벌이에 재주가 많은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아이는 다섯 살에 이미 거리에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설치해 색소를 넣은 물을 25센트에 판다 자기 입맛에는 영 맞지 않
지만 어른들이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는
웨스턴 오토에서 잔디깎는 기계를 할부로 사들여 금요일이면 집집
마다 문을 두드리면서 일거리를 찾아다니zz아침저녁으로 신문을
돌리기 위해서 자전거를 산다 8월이 되면 노파에게 크리스마스 카
드를 팔구 11윌이면 이집 저집 기웃거리면서 과일 케이크를 판다
토요일 아침 다른 아이들이 만화영화에 열중할 시간에는 벼룩시장
으로 달려가 구운 땅콩과 옥수수 소시지를 팔구 열두 살에 이미 통
장을 가진 어엿한 예금주가 된다 열다섯 살엔 자기 돈으로 픽업을
사구 비슷한 시기에 운전면허를 따낸다 그런 다음에 픽업 뒤에다
트레일러를 달아 정원을 다듬는 일에 나선다 그리고 고등학교 축구
시합이 열리는 운동장에서는 티셔츠를 판다 물불 안 가리는 장사꾼
인 그 아이는 곧 백만장자가 될 것이다
클랜턴에 사는 이 장사꾼의 이름은 열여섯 살 난 힝키 미릭이었다
힝키는 원형흘에서 휴정이 되기까지 기다렸다가 경관들의 감시망을
뚫고 재빨리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방청객들은 대부분 점심을 먹으
러 나가지 않기 때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힝키는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아이였다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필
요로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힝키는 이날도 어김없이 샌드위치
와 갖가지 요깃거리를 가득 실은 짐수레를 밀고 통로를 지나다녔다
저쪽 끝에 앉은 사람도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천천히
사람들 틈을 지나다녔다 힝키는 노련한 상인이었다 2달러에 파는
참치 샐러드 샌드위치는 80센트가 남았구 콩과 닭요리를 담은 3달
러짜리 전시는 1달러 25센트가 남았다 그리고 캔에 담은 음료수도
1달러 50센트나 받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음식
을 사먹었다 앞에서 네 번째 줄을 다 지나오지도 못하고 가져온 음
식이 동이 났다 그는 뒤쪽까지 쭉 가면서 주문을 받았다
힝키는 한줌 가득 주문서를 들고는 법정을 빠져나가 클로드네로
갔다 곧장 주방으로 들어간 그는 주방장에게 20달러 지폐와 주문서
를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시계를 보면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클로드네의 음식은 너무 느리게 나왔다 그래서 힝키는 주방장에게
20달러를 더 얹어 줄 때도 있었다
재판은 클로드네 가게에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클로드는 전에 꿈
러 보지 못한 호황국면에 접어들었다 그 조그만 커피숍의 아침과 점
심은 밀려드는 주문을 다 들어주지 못할 지경이었다 자리가 모자라
는 바람에 사람들은 후끈후끈한 열기와 음식 냄새를 맡으면서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월요일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클로드는 클랜턴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접는 탁자와 의자를 죄다 사들였구 다음날 점
심시간부터는 통로도 아예 없애 버렸다 그 바람에 웨이트리스들은
재주껏 손님들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다녀야 했다
재판이 거의 유일한 화젯거리였다 수요일에는 백인 배심원들을
욕하는 소리가 들렸고 목요일에는 지방검사 성토대회가 식당 안을
가득 메웠다
그 사람 주지사에 출마한다지
민주당이야 공화당이야긴
민주당
미시시피에서 흑인표 없이 당선되긴 힘들걸
그럼 이 재판 때문에 많이 깎이겠지
떨어지는 꼴 좀 보게 출마했으면 좋겠다
꼭 공화당놈들 같아
재판이 있기 전에 클랜턴의 점심시간은 정오가 좀 못 돼서 시작되
었다 열한시 오십분이면 은행과 법률사무소 보험회사 법원 등지
에서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 얇은 옷차림으로 쏟아져나왔다 그 때문
에 법원 주위는 상큼한 아가씨들로 가득 들어차곤 했다 아가씨들은
대개 차이니즈 델리에서 점심을 사가지고 와 친구들과 함께 모여 나
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먹었다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의 클랜턴은
그래서 언제나 젊고 싱싱했다
그러나 재판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나무 그늘 밑은 앞다투
어 차지해야 하는 자리가 되었구 커피숍은 열한시부터 한시까지 군
인과 법정 안에 들어가지 못한 외지인들로 가득 들어찼다 차이니즈
델리 역시 외지인들로 붐비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가씨들은 요
깃거리를 사서 사무실로 되돌아가야 했다
티숍에 모인 은행원들과 화이트칼라들은 각종 언론과 언론이 클
랜턴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집중 성토하고 있었다 문제는 KKK단
이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KKK단에 가입한 클랜턴 사람이 누군
지 알지 못했구 KKK단은 그들에게 이미 흘러간 옛말이었다 그런
데도 어느새 클랜턴은 마치 KKK단의 요새처럼 외부에 비쳐지고 있
었다 클랜턴 사람들은 KKK단을 싫어해도 기자들은 하얀 옷을 입
은 그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클랜턴의 화이트칼라들
이 언론을 씹지 않을 수 없었다
목요일 점심 시간 커피숍은 돼지고기 튀김과 순무잎 샐러두 고구
마 크림을 바른 옥수수 오크라 튀김을 특별 메뉴로 내놓았다 델은
꽉 들어찬 손님들 사이를 뚫고 음식들을 날랐다 클랜턴 사람들과 외
지인들 군인들이 끼리끼리 몰려앉아 있었다 수염을 기르고 이상한
억양을 쓰는 사람들과는 절대로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 클랜
턴 사람들의 불문율이었다 서먹서먹하기는 했지만 클랜턴 사람들은
낯선 이들에게는 웃지도 않고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살인사건이
있고 얼마간은 기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
런 분위기는 수많은 신문들이 클랜턴 주민을 배반하고 제멋대로 당
치도 않은 기사들을 써갈김으로써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주민들
은 그들은 듣도 보도 못한 사람에 대해 이곳에 온 지 하루 만에 전
문가가 된 기자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클랜턴 사람들은 보안관과 검사 변호사 쥐꼬리만큼이라도 뭔가
알고 있을 만한 제보자를 찾아 귀신들린 사람처럼 광장을 헤매 다니
는 기자들이 한심하기만 했다 기자들은 법원 뒤편에 늑대처림 진을
치고 있다가 피고인이 나오면 우르르 몰려가 어제와 똑같은 질문을
무작정 쏟아붓기도 했다 칼 리는 그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칼 리의 주위에는 항상 경관들이 철통같이 에워싸고 있었는데도 기
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들은 특히 KKK단과 성깔있
는 흑인 시위대들을 찍기를 좋아했다 뭔가 과격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그것이 마치 클랜턴의 본 모습인 것처럼 보도하기 일쑤
였다
클랜턴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을 증오했다
저 여자 얼굴에 바른 오렌지색 저건 워야
팀 넌리가 창문가에 앉은 기자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잭
존스는 오크라를 씹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 때문에 바른 거겠지 얼굴 하얗게 보이려고
안 그래도 하얗잖아
그래 하지만 화면에 나을 때는 오렌지색을 발라야 더 하얗게 보

그럼 흑인들은 어떡하지
넌리가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저 여자 어젯밤 뉴스에 나온 거 봤어
잭 존스가 물었다
아니 어디 뉴슨데
멤피스의 채널 4번 어젯밤에는 빌리 레이 콥 엄마를 붙들고 그
노인네가 실신할 때까지 몰아붙였다구 울고 짜고 하는 것만 계속 보
여주는데 영 밥맛 없었어 그 전날 밤에는 오하이오에서 온 KKK놈
하고 미시시피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고 있대 가장 비열하고 못
돼먹은 리포터야
검사측의 증인 심문은 목요일 오후까지 끝나기로 되어 있었다 점
심식사 후의 첫번째 증인은 청소부 머피였다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심하게 말을 더듬는 사람의 증언을 듣고 있으려니 머리가 지끈거리
고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 주십시오
버클리는 똑같은 말을 백 번도 넘게 했다
머피는 물을 한 잔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긍정의 뜻이
면 고개를 끄덕이구 그렇지 않으면 고개를 가로저어서 의사를 표시
했다 하지만 법원 서기는 그것이 끄덕이는 건지 가로젓는 것인지 분
간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법원 서기가 증언대 쪽으로 등을 바짝 밀어붙이고 말하면 머피는
발음을 정확히 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렸다 그는 불쑥 말을 내뱉었
다가는 더듬거리며 침을 튀기곤 했다
알아들을 수가 없어Q
증언이 끝나고 나면 법원 서기는 어쩔 줄 몰라하며 얘기했다 버
클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배심원들은 의자 안에서 몸을 연신 흔들어
대고 있었구 방청객의 반 정도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버클리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가지고 물었다
미 미 미 미안합 합 합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자주 했다 불쌍한 사람이었다
어쨌든 검사의 질문과 그의 증언을 짜맞춰서 말하면 다음과 같았
다 머피는 두 피해자가 살해된 계단이 마주보이는 뒷계단에서 콜라
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흑인 한 사람이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
는 작은 창고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흑인은 두 사람이 계단을
내려오자 총을 들고 앞으로 튀어나와서는 한바탕 갈겨대더니 비명
을 지르고 웃음을 터트렸다 총을 다 쏜 다음에 그는 총을 버리고 도
망을 쳤다 그가 바로 저기 앉아 있는 흑인이다
누스는 머피의 얘기를 들으며 열심히 안경을 닦고 있었다
버클리가 자리에 앉자 누스 판사가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제이
크를 바라보았다
반대심문 하시겠습니까
누스가 진이 다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제이크가 서류를 들고 일어났다 법원 서기가 제이크를 째려보았
고 해리 렉스는 제이크에게 그만 좀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엘렌은 눈을 아예 감아 버렸으며 배심원들은 손을 꽉 쥐고 제이크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질문하지 말아
갈 리가 제이크에게 속삭였다
질문은 없습니다 판사넘
감사합니다 브리건스 씨
누스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다음 증인은 보안관 사무실의 심문관인 래디 보안관 대리였다 그
는 계단 옆의 창고에서 콜라 캔을 발견했는데 거기에서 검출된 지문
이 칼 리의 지문과 일치한다고 증언했다
콜라가 들어 있었습니까
버클리는 중요한 논점이라도 되는 듯이 극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P 완전히 비어 있었습니다
퍽도 중요한 질문이군 몹시 목이 말랐나 보지 제이크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케네디를 죽인 오스왈드도 치킨을 먹으면서 저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누스에게 반대심문이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 증인을 신청하겠습니다
오후 네시에 버클리는 증인심문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루니 보안
관 대리를 불렀다
드웨인 루니 보안관 대리입니다
루니는 목발을 짚고 절룩거리면서 법정으로 들어와 증인석에 앉
았다 그는 옆구리에 찬 권총을 페이트에게 넘겨주었다
버클리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루니에게 말했다
이름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드웨인 루닙니다
주소는요
미시시피 주 클랜턴 베닝턴 가 1468번지입니다
나이가 몇입니까
서른아흡입니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습니까
포드 군 보안관 사무실입니다
윌 하십니까
무전 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5월 20일 월요일에도 같은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때 전 보안관 대리였습니다
사고가 나던 날 무슨 임무를 맡고 있었죠
두 피고인을 법원에서 구치소로 호송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두 피고인이 누구였습니까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드였습니다
몇 시에 그들과 함께 법정을 나섰습니까
한시 삼십분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누구와 같이 근무중이었죠
마셜 프레이서 보안관 대리입니다 그 사람과 제가 피고인을 호
송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법정 안에서 우리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구 문 앞에서도 두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호송일은
프레이서 보안관 대리와 제가 맡았습니다
예심이 끝난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는 두 사람에게 수갑을 채우고 법정에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대기실에서 잠깐 기다리다가 프레이서 보안관 대리가 먼저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었죠
콥과 윌러두 제가 차례대로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말씀드렸듯이
프레이서 보안관 대리는 이미 계단을 내려간 뒤였습니다 그는 문 바
깥에 있었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는요
콥이 계단 끄트머리에 이르렀을 때쯤 총소리가 났습니다 그때
저는 층계참에 서서 막 내려가려고 할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조금 있으니 칼 리 헤일리 씨가 총을 들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콥이 총에 맞아서 윌러드 쪽으로 쓰러졌구 두 사람 디
비명을 지르며 굴러 떨어졌습니다 제가 서 있는 곳으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말입니다
보신 걸 정확하게 묘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총알이 벽에 맞아서 사방에 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제가 들은
소리 중에서 가장 큰 소리였죠 마치 칼 리 헤일리 씨가 영원히 총을
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총에 맞은 두 사람은 비명을 지르고 몸부
림을 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들의 손에는 수갑이 채
워진 상태였으니까요
그리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저는 층계로 미처 내려서지도 못했는데 총알 하나가 벽을 퉁기
면서 제 다리에 맞은 것 같습니다 다리가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저도 계단으로 기어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총에 맞은 다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잘라냈습니다 무릎 아래쪽이죠
마치 다리를 절단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일어나는 일인 양 루니
의 목소리는 담담하기 그지 없었다
총을 쏜 사람을 확실하게 봤습니까
배심원들을 위해서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예 저기 앉아 있는 헤일리 씨였습니다
루니의 증언은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합당했다 간결하구 요점만
을 정확히 짚어낸 것으로서 게다가 버클리가 원하는 정보들을 제대
로 잘 준 셈이었구 배심원들도 그의 얘기를 주의깊게 들었으니까
그러나 버클리와 무스그로브는 법원 설계도를 꺼내와서 루니가 배
심원들 앞에서 절룩거리며 설명을 하게 했다 루니는 버클리의 요구
에 따라 살인이 일어나던 순간의 모든 사람의 움직임을 설계도 위에
그려야 했다
제이크는 이마를 문지르며 콧등을 매만졌곤 누스 판사는 다시 안
경을 닦아 댔으며 배심원들은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
하고 있었다
반대심문 있습니까
누스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예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제이크는 무스그로브가 설계도를 치우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
증인석으로 갔다
루니 씨 칼리 헤일리 씨가총을쏠때 누구를 쳐다보고 있었습
니까
두 사람을 보고 있었습니다
칼 리 헤일리 씨와 눈길을 마주친 적이 있습니까
글쎄요 그와 눈을 마주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고 있었으니까9
칼 리 헤일리 씨가 당신을 겨뒀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두 사람을 겨뒀구 그들에게 총을 쐈습니다
총을 쏘면서 칼 리 헤일리 씨가 어떻게 했습니까
마구 소리를 지르구 웃었습니다 미친 사람 같았죠 제가 들은
소리 중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소리였습니다 진짜로 미친 사람의 소
리였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모든 소음입니
다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 살을 뚫는 소리 비명 소리 그리고 그 모
든 소리를 제압하는 칼 리 씨의 웃음소리 미쳐서 날뛰는 웃음소리
말입니다
루니의 대답은 완벽했다 제이크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제이크와 루니는 이미 백 번도 넘게 연습을 했지
만 이건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어휘 선택도 아주 완벽했다 제이
크는 서류를 뒤지는 척하면서 배심원들의 동향을 살폈다 그들은 모
두 루니의 증언에 흘려서 증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제
이크는 뭔가 쓰는 척하기 위해 아무 글씨나 갈겨대고 있었다 마지막
으로 중요한 질문을 하기 위해 잠시 뜸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칼 리 헤일리 씨가 당신 다리를 쏘았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것이 고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절대로요 그건 사고였습니다
그가 당신을 쏜 죄로 처벌받기 바라십니까
LL아니오 저는 칼 리 헤일리 씨에 대해서는 아무런 원한이 없습니
다 저라도 그처럼 했을 테니까요
버클리는 볼펜을 툭 떨구고는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는 그
의 스타 증인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말씀하시는 뜻이 뭡니까
LL그가 한 일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의
어린 딸을 강간했습니다 제게도 딸아이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 딸
을 강간했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겁니다 저도 칼 리 씨가 했던 것처
럼 그들을 날려 버렸을 겁니다 우리는 그에게 표창장을 주어야 마땅
합니다
LI배심원들이 칼 리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길 바라십니까
버클리가 벌떡 일어나면서 고함을 질렀다
이의 있습니다 부당한 질문입니다
L아닙니디 나는 그가 유죄판결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
다 그는 영웅입니다 그리고 그는
루니도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L1대답하지 마십시요 루니 씨 대답하지 마십시오
누스 판사가 루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의 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버클리는 깨금발을 하고서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칼 리 혜일리 씨는 영웅입니다 그를 석방시켜야 합니다
루니는 버클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명령입니명령입니다
누스가 기어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버클리가 조용해졌구 루니도 입을 다물었다 제이크가 자리로 돌
아오면서 말했다
질문을 철회하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잊어버리십시오
누스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루니는 배심원들을 향해 빙그레 운으면서 절뚝거리며 법정을 물
러나왔다
다음 증인 신청하십시요
누스 판사가 안경을 벗으면서 말했다
버을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배우가 연기를 하듯이 목소리
에 힘을 주었다
재판장님 검사측은 증인심문을 마치겠습니다
좋습니다
누스 판사는 아주 짤막하게 말하고 나서 제이크를 쳐다보았다
브리건스 씨 신청 사항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예 재판징림
좋습니다 제 방에서 듣기로 하겠습니다
누스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매번 했던 주의를 주고는 금요일 아침
아흡시까지 휴정을 선언했다
제이크는 어둠 속에서 약간의 숙취와 피로 두통을 느꼈다 간밤에
마신 쿠어스 맥주 탓이었다 멀리서 희미하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너무 오래 울려서 거의 익숙해져 버린 소리 같았다 제이크는 잠옷을
입은 채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그는 현관에 서 있는 두 사람의 형체
를 분간하려고 눈에 힘을 주었다 오지 보안관과 네스비트였다
무슨 일이지
제이크가 문을 완전히 열어젖히면서 물었다 두 사람은 제이크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자넬 죽이려고 해
오지 보안관이 입을 열었다
제이크는 소파에 앉아서 관자놀이께를 주물렀다
안그래도 죽을 것 같은데 윌
LL제이크 농담이 아니야 심각하다구 자넬 죽이려고 계획을 다 짰
누가
KKK단
미키 마우스가 그러던가
그래 그가 어제 전화해서 뭔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그랬는데 두
시간 전에 다시 전화를 걸어서 자넨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
군 오늘은 중요한 날이잖아 뭔가 흥분되는 순간이지 로이즈빌에서
스텀프 시슨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실
천할 때 아니겠어
왜 나한테 그러는 거지 버클리나 누스나 혹은 좀더 가치있는 사
람도 많을 텐데 왜 하필이면 나小小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얘기할 시간이 없었어
어떻게 죽일 거래
제이크는 잠옷 바람으로 그렇게 앉아 있는 자신이 갑자기 초라하
게 느껴졌다
그가 말 안 했어
알기는 안대
자세한 건 얘기 안 한다니까 오늘 언제쯤 일을 벌일 거라고만 전
했어
그래서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야 항복해야 되나
몇 시에 사무실에 갈 건가
지금 몇 시지
다섯시가 다 됐지
샤워하고 옷을 입고 오겠어
기다리지
다섯시 삼십분에 오지 보안관과 네스비트는 제이크를 데리고 사
무실로 가서 문을 잠가 버렸다 여덟시가 되자 군인들이 사무실 발코
니 아래 모여서 제이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리 렉스와 엘렌은 법원
2층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오지와 네스비트는 제이를 양쪽에서
잡은 채 사무실을 빠져나와 워싱턴 가를 건넜다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는 세 사람 주위를 에워쌌다
버려진 사료 제조 공장은 클랜턴에서 가장 큰 언덕을 반쯤 내려온
지점 황폐한 철로 옆에 놓여 있었다 광장에서 동북쪽으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지점이었다 사료 제조 공장 옆으로 닌 아스팔트와 자
갈이 깔린 도로가 언덕 아래까지 뻗어내려와 세다 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길로 이어져 광장의 동
쪽 경계인 퀸시 가로 통했다
사료 제조 공장의 저장탑에서 보면 법원 뒤편이 약간 멀긴 해도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저격수는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조그만 문을 통해 아래쪽의 표적을 겨누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는 위치였다 그는 일곱시 삼십분부터 여덟시까지 검등이의 변
호사 사무실 주위를 주시하면서 그의 목표물을 쏘는 연습을 천 번이
나 연습했다 화끈한 위스키가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다른 공범이 저장탑 옆의 창고 뒤푄에 트럭을 대놓고 대기하고 있
었다 운전사는 엔진을 켜놓고 럭키 스트라이크를 연달아 빨아대며
라이플이 불을 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장한 경찰과 군인들이 워싱턴 가를 건너가고 있는 모습을 본 저
격수는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조준경에 겨우 보이는 것은 푸르른
나무들 사이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검등이 변호사의 머리 정도였다
그놈을 둘러싸고 기자들 한무리가 떼를 지어가고 있었다 자 계속
해 가서 뭔가 흥분거리를 만들어 위스키가 말했다 그는 제이크의
머리의 흔들림을 따라 호흡을 조절하다가 그 타이밍에 맞춰 방아치
를 당겼다 제이크가 막 법원 뒷문으로 다가설 때였다
라이플은 정확하게 발사되었고 명중시킨 것 같았다
군인들 중 반은 땅바닥에 엎드렸고 반은 제이크를 끌어 베란다
아래로 던졌다 호위병 중 하나가 비명을 질렀다 기자들과 카메라맨
들은 재빨리 몸을 숙여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지만 그 와중에도 용감
하게 학살의 장면만은 놓치지 않도록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군인이
목을 움켜쥐면서 다시 비명을 질렀다 땅 땅 저격수의 총이 다시
불을 뿜었다
총에 맞았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자 군인들이 사방에서 기어와 보도 위에 나동
그라진 부상자를 둘러쌌다
제이크는 문을 통해 법원 안으로 안전하게 대피한 뒤 입구의 마
룻바닥에 앉아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오지 보안관이 제이크 옆에 서
서 군인들이 문을 통해 가는 것을 쳐다보았다
저격수는 저장탑에서 뛰어내려와 총을 뒷좌석으로 던진 다음 동
료와 함께 시골길로 사라졌다 그들은 미시시피 남부에서 있을 장례
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목에 맞았다
군인들이 보도진들을 밀쳐내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가 소리를 질
렀다 군인들은 부상자를 끌어서 지프에 실었다
누가 맞았어
제이크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 채 오지에게 물었다
호위병이야 자네는 괜찮나긴
그런 것 같아 내 서류가방은
제이크는 머리 뒤로 두 손을 깍지긴 다음 가만히 바닥을 내려다보
았다
바깥에 떨어져 있는데 금방 가져오지
오지는 혁대에 찬 무전기를 들어서 법원 근처에 포진한 경찰들에
게 명령을 내렸다
총소리가 멈춘 게 분명해지자 오지는 바깥으로 나가 군인들과 합
류했다
괜찮습니까
네스비트가 제이크 옆에 다가오며 물었다
이제 막 모퉁이를 돌아온 대령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소리를 질러
댔다
무슨 일인가 총소리가 들렸는데
매켄베일이 총에 맞았습니다
어디 있나
대령이 물었다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중사 한 명이 뒤꽁무니를 보이며 멀어지고 있는 지프를 가리켰다
심한가
보기에도 심해 보입니다 목에 맞았습니다
목이라고 왜 하필 그를 쏜 건가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뭔가 목격한 사람 없나
대령이 군인들을 쭉 둘러보았다
저 언덕 위에서 총을 쏜 것 같습니다 빨리 지프를 올려보내 살펴
봐야 될 것 같은데
오지는 언덕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야겠습니다
대령은 바짝 긴장한 채 아수라장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군인들
에게 명령했다 군인들은 총을 장전한 채로 싸을 준비를 다 갖추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지프가 언덕 위의 버려진 사료 제조 공장
을 서성일 때쯤 저격수는 이미 포드 군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오지는 서류가방을 제이크 옆의 바닥에 놓았다
제이크는 괜찮아
오지가 네스비트에게 속삭였다 해리 렉스와 엘렌은 빌리 레이 콥
과 피트 윌러드가 총에 맞아 죽은 계단에 서 있었다
모르겠어9 꼼짝도 안 하고 있습니다
네스비트가 보고했다
제이괜찮아
오지가 제이크를 툭 건드렸다
그래
제이크는 눈을 감은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총에 맞은 군인은
제이크의 왼쪽 어깨 옆에 있던 사람이었다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군인이 제이크에게 그 말을 했을 때 총알이 그의 목에 구멍을 뚫
어 버린 것이다 그는 목을 움켜쥐고 피를 철철 흘리며 비명을 질렀
구 제이크는 넘어졌다 그리고는 안전한 곳으로 밀쳐졌다
죽었을 거야 안 그런가
제이크가 물었다
아직 몰라 병원으로 실려갔어
오지가 대답했다
죽었을 거야 나는 알아 목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어
오지는 네스비트와 해리 렉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동전 크기만
한 네다섯 개의 핏방울이 제이크의 회색 양복에 떨어져 있었다 제이
크는 아직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것
을 똑똑히 목격했다
제이크 자네 옷에 피가 묻었네 사무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어야
겠어
오지가 한참만에 말을 꺼냈다
그게 뭐가 중요하지
제이크는 바닥에 대고 중얼거렸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델과 커피숍에서 뛰쳐나온 손님들이 제이크가 법원에서 나와 거
리를 건너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두런두런 구경하고 있었다 제
이크 일행은 기자들을 무시하고 거리를 지났다 해리 렉스는 문을 잠
그구 문 앞에 경호원을 세워 놓았다 제이는 2者으로 올라가서 코
트를 벗었다
로 아크 양 마가리타 좀 만들어줘야겠어
해리 렉스가 2충으로 올라가면서 엘렌에게 말했다
판사님 우리는 일이 좀 있었습니다
오지는 누스가 옷을 벗고 서류가방을 푸는 동안 판사에게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누스 판사가 물었다
LL오늘 아침에 어떤 놈들이 제이크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뭐라고요 언제 말입니까
한 시간쯤 전에9 누군가 법원으로 향하는 제이를 쐈습니다
멀리서 라이플로 쏜 것 같은데 누군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제이크는 맞히지 못하고 대신 군인 한 명을 맞혔습니다 그 군인은
지금 수술을 받고 있습니다
제이크는 어디 있습니까
누스 판사가 휘등그레진 눈으로 오지를 쳐다보았다
LL사무실에 있습니다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나라도 그랬겠소
누스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오시면 전화해 달라고 그랬습니다
물론 해야죠
오지는 다이얼을 돌려서 누스에게 넘겨주었다
누스 판사야
해리 렉스가 제이크에게 전화를 돌렸다
여보세요
괜찮소 제이크 씨
별로 안 좋습니다 오늘 재판에 참석 못 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했지요
누스가 간신히 되물었다
오늘 법원에 나가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나가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제이크 씨 법정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죠
그건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제이크는 두 번째 마가리타를 들이키면서 말했다
뭐라구요
저는 상관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못 나가
니까요
누스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물었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누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총에 맞아보신 적 있습니까
없소만
총 맞은 사람이 비명지르는 소리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없쇼
그럼 다른 사람의 피가 판사님 옷에 튄 적은요
없쇼
저는 가지 않을 겁니다
누스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잠간 생각에 잠겼다
제이크 씨 일단 이곳으로 와서 얘기합시다
싫습니다 저는 사무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겁니다 밖
은 위험하니까9
그럼 한시까지 휴정을 하는 건 어떻겠소
저는 그때까지 술을 마실 겁니다

저는 열시까지 술을 퍼마실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해리 렉스는 눈을 감았구 엘렌은 부엌으로 갔다
언제쯤이면 제정신으로 돌아을 것 같소
누스의 목소리는 굳어 있었다 버클리와 오지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윌요일쯤이면 될 겁니다
내일은 안 되겠소
내일은 토9일입니다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내일 법정을 열도록 하겠소 이럴수록 배
심원들을 붙들어놓는 꼴만 될 거 아노 내 말 알아듣겠소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나가겠습니다
좋아9 그런데 배심원들한테는 뭐라고 얘기해야 좋겠소 지금
배심원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법정 안에도 사람들이 꽉 찼
구 당신의 의뢰인도 자리에 혼자 앉아 당신을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
어요 이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뭔가 생각해 내실 수 있을 겁니다 판사님만 믿겠습니다
제이크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누스는 제이크가 먼저 전화를 끊
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기까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
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수화기를 오지 보안관에게 건넸다
누스는 창가로 걸어가서 코에 걸친 안경을 걷어냈다
오늘은 재판에 못 나오겠다는군
버클리는 그답지 않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지가 제이크 편
을 들고 나섰다
충격이 클 겁니다 판사님
제이크 씨가 원래부터 술을 마셨습니까
아닙니다 마시지 않았죠 그는 지금 자기가 맞았어야 할 총에 다
른 사람이 맞은 걸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제이크 옆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이를 겨냥한 총알에 맞은 겁니다 누구라
도 제정신일 수 없을 겁니다
오지가 말했다
내일 아침까지 휴정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누스가 버클리에게 통고했다 버클리는 어깨만 으쓱거릴 뿐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소문이 퍼져나가자 제이크의 사무실 앞 보도가 사람들의 물결로
붐비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그 앞에 진을 치구 문틈을 통해서 뉴스
거리가 될 만한 뭔가가 있지 않나 싶어 안을 훔쳐보고 있었다 제이
크가 괜찮은지 알아보러 들른 친구들은 기자들로부터 사무실 문은
잠겼으며 아무도 나오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워들었다 물론 제
이크는 다친 데가 없다는 말도 전해졌다
베이스 박사는 그날 아침에 증언을 할 예정이었다 베이스와 루시
엔은 열시가 조금 넘어서 뒷문을 통해 부랴부랴 안으로 들어왔고 해
리 렉스는 술을 더 가져오기 위해 자리를 떴다
루시엔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금요일날 말짱한 정신으로 증언대
에 세우기 위해 목요일 밤 내내 베이스 박사를 달래느라고 애간장을
태운 터였다 이제 재판이 토요일로 연기되었으니까 연달아 이틀 동
안은 베이스 박사를 달래야 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았
다 그는 어제 먹지 못한 술에 대해서 줄곧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
었구 사실 화가 난 이유는 그거였다
해리 렉스가 술 1갤론을 들고 돌아왔다 그와 엘렌은 술을 섞으면
서 성분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엘렌은 커피 주전자를 헹궈서 블러디
마리를 가득 채운 뒤 이 칵테일에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스웨덴
산 보드카를 부었구 해리 렉스는 많은 양의 타바스코까지 덧부어댔
다 그는 회의실을 한 바퀴 돌면서 각자의 잔에 이 기가막힌 흔합물
을 다시 채웠다 베이스 박사는 미친 듯이 꿀꺽꿀꺽 마시고는 한잔
더 달라고 했구 루시엔과 해리 렉스는 저격수가 누굴까에 대해 열떤
토론을 벌였다 제이크는 구석에 앉아 책꽃이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
었다 엘렌은 그런 제이크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전화가 울렸다 해리 렉스가 전화를 받아 귀를 기울여 내용을 듣
고 나서 끊었다
오지 보안관 전화야 총 맞은 군인이 수술실에서 나왔는데 총알
이 척추에 박여서 마비될 거라는군
모두들 아무 말 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모두가 멍하니 앉아 한손
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한손으로는 술잔 속을 휘휘 젓고 있는 제이크
를 모른 척하려고 애썼다 뒷문을 두드리는 희미한 소리가 짧은 추도
식을 방해했다
가서 누군가 봐요
루시엔이 엘렌에게 말했다 엘렌은 뒷문으로 다가갔다
레스터 헤일린데요
엘렌이 회의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들어오라 그래
제이크는 거의 알아듣기 힘든 말로 중얼거렸다
레스터가 조촐한 파티에 초대되어 인사를 나누었다 레스터는 블
러디 마리는 싫다면서 위스키 같은 것을 달라고 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나도 이따위 맹숭맹숭한 술에는 물렸다
구 잭 다니얼을 듭시다
루시엔이 말했다
좋은 생각이지
베이스 박사도 잔에 남은 것을 비우면서 맞장구를 쳤다
제이크는 레스터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다시 책꽃이로
시선을 가져갔다 루시엔이 탁자 위에 백 달러짜리 지폐를 내놓자
해리 렉스가 술을 사러 나갔다
몇 시간 후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엘렌은 제이크의 사무실 소파에
서 잠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방은 어둡구 인기척 하나 없었으며 시
큼한 술 냄새가 진동했다 그녀는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았다
자신의 보스가 전쟁터 한복판에서 전시 책상 아래로 떨어져 코를 골
며 평화롭게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엘렌은 천천히 계단을 걸어내려
왔다 회의실엔 빈 병과 맥주캔 플라스틱 컵과 치킨 봉지들이 어지
럽게 널려 있었다 밤 아홉시 삼십분이었다 다섯 시간을 잔 셈이었

그녀는 루시엔의 집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있었다 엘렌은 네스비트에게 옥스퍼드까지 태워다 달라고 말하려다
가 자신은 잠을 실컷 잔 탓에 술도 깼구 또 제이크는 현재 그가 받
을 수 있는 모든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사
무실을 나섰다
옥스퍼드에 거의 도착할 때쯤 뒤쪽에서 푸른 불빛이 비춰왔다 엘
렌은 평소대로 120킬로로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차를 갓길에 세운
다음 미등 앞으로 걸어나와 지갑을 찾으면서 경관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평상복 차림의 두 사내가 푸른 불빛을 앞세우고 엘렌에게
접근했다
술 먹었습니까 아가씨
한 사내가 담뱃진을 칙 뱉으면서 물었다
아닙니다 경관님 면허증을 보여드리죠
엘렌은 면허증을 찾으려고 다시 뒷좌석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갑자기 그녀의 몸이 땅바닥에 쿵 하고 부딪쳤다 두 남자는 그녀를
그렇게 내동댕이친 다음 두꺼운 이불로 뒤집어씌웠다 밧줄이 그녀
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가슴과 허리께를 두르면서 바착 조여진 밧
줄은 팔 아래서 매듭이 지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발로 차고 욕을 하
면서 저항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만있어 이년아 조용히 해
한 사내가 엘렌의 차 점화장치에서 열쇠를 빼내 트렁크를 열었다
두 사람은 엘렌을 트렁크 속에 넣고 문을 쾅 닫았다 낡은 링컨 차에
서 흘러나오던 푸른 불빛이 꺼지더니 링컨은 BMW뒤에 매달려 자
갈길을 지나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다 차가 방향을 틀자 비포장도
로가 시작되었고 그 도로 끝에 이르자 조그만 목장이 나왔다 커다
란 십자가가 KKK단의 환호를 받으면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엘렌을 포박해 온 두 사내는 재빨리 횐 가운과 두건으로 몸과 얼
굴을 가리고 트렁크를 열었다 엘렌은 바닥에 팽개쳐졌구 이불도 걷
혔다 KKK단원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엘렌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들은 그녀의 몸을 질질 끌어 십자가에서 1미터 정도 떨어진 기등
에 묶었다 그녀는 타오르는 불을 마주보았고 등은 KKK단의 시선
을 받고 있었다
횐 가운에 뽀족한 모자를 쓴 놈들이 다가와서 엘렌의 입에다 기
름묻은 천조각을 쑤셔넣었다 엘렌은 피하려고 했지만 사태는 절망
적이었다 속이 뒤집힐 것 같았기침은 더 심해졌다
작은 목장을 환하게 비추면서 타오르는 불꽃이 그녀에게 뜨거운
입김을 뿌리고 지나갔다 엘렌은 익어가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서 기
등으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했다 목구멍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두건을 쓴 사내 하나가 대열을 벗어나 그녀에게로 다가오고 있었
다 그가 저벅저벅 걸으면서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엘렌의 귀에 똑똑
히 들려왔다
넌 검등이한테 달라붙은 더러운 년이야
그 목소리는 바삭바삭 부서지는 중서부 지방의 억양이었다 그는
엘렌의 칼라 뒤쪽을 잡구 하얀 실크 블라우스가 목과 어깨 주위에
몇 조각만 너덜너덜 남을 때까지 찢어내렸다 엘렌의 손은 기등에 묶
여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다시 하얀 옷 속에서 재크나이
프를 꺼내더니 남은 블라우스의 조각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LL넌 검등이한테 달라붙은 년이야 검등이에 미친 년이라구
엘렌은 그를 저주했다 하지만 그녀의 욕은 신음소리에 지워졌다
사내는 짙은 남색 리넨 치마의 오른쪽 부분에 달런 지퍼를 내렸다
엘렌은 발길질을 하려고 했으나 발목을 감은 밧줄이 그녀의 발을 기
등에 꽁꽁 붙들어 놓고 있었다 사내는 칼의 날을 세우더니 지퍼 끝
에서 감침질을 한 아랫단까지 단칼에 그어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엘
렌의 허리 주위를 붙잡고 치마를 벗겨 내렸다 KKK단원들이 군침
을 흘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KKK단원 중 하나가 엘렌의 궁등이를 찰착 때리면서 환성을 내질
렀다
죽이는데 아주 멋있군
그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는 엘렌의 몸매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엘렌은 소리를 지르고 몸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슬립
이 허벅지 중간쯤 와서 걸렸다 그는 경건한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슬립을 찢어내려 거적때기로 변한 그것을 타오르는 불
꽃 속에 던졌다 곧이어 브래지어도 찢겨 내려갔다 그녀는 몸을 떨
면서 더욱 크게 신음소리를 냈다 조용한 반원이 점점 그녀에게로 다
가와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불은 뜨거웠다 벌거벗은 목덜미와
허벅지 드러난 등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져 내렸다 불그스름한 어깨
와 목 주위로 붉은 머리칼이 엉겨붙었다 사내는 가운 아래로 손을
넣더니 채찍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엘렌 옆의 바닥에다 채찍소리
를 냈다 엘렌의 몸이 주춤거렸다 그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서 채찍
과 기등 사이의 거리를 눈대중했다
사내가 막 채찍을 들어 엘렌의 벌거벗은 등을 노리는 순간 가장
키가 큰 사내가 엘렌에게 등을 보이면서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아
무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채찍이 조용히 치워졌다
사내는 대신 엘렌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머리칼을 쌍등 잘라냈다
머리칼이 한움큼씩 잘라질 때마다 엘렌의 머릿가죽이 흥측한 몰골을
드러냈고 발치엔 머리칼이 소복이 쌓여갔다 엘렌은 아무런 움직임
없이 신음만 뱉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매사추세츠 번호판이 달린 BMW차로 다가가 기름을 부었
다 누군가 성냥을 그어댔다
KKK단원들이 다 사라지자 미키 마우스가 숲 속에서 나왔다 그
는 엘렌을 묶은 끈을 풀구 그녀를 목장 옆의 공터로 데리고 갔다 그
러고는 남은 옷가지들을 추려서 엘렌을 덮어주었다 비포장도로 옆
에 놓인 BMW가 다 탈 때쯤 미키 마우스는 옥스퍼드로 차를 몰고가
서 공중전화를 집어들었다 라파예트 보안관에게 거는 전화였다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토요일에 재판을 여는 것은 특별한
경우였다 특히 배심원들을 격리시키는 중요한 재판에서는 더욱 드
물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끝나는 날짜가 하루라도 빨라지기 때문
에 토요일 재판도 마다하지 않았다
클랜턴 사람들도 토요일 재판을 싫어하지 않았다 휴일이라서 법
원으로 달려가 직접 재판 광경을 볼 수도 있었구 혹 자리를 못 잡더
라도 법원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
고 운이 좋으면 저격 장면을 목격할 수도 있었고
일곱시까지 법원 주위의 커피숍은 넘쳐나는 손님으로 즐거운 비
명을 질러댔다 방청을 원하는 사람 중 3분의 2정도가 법정 안에 자
리를 배짙받지 못해 밖으로 쫓겨나왔다 쫓겨난 이들은 광장과 법원
근처를 서성이면서 법정에 자리가 비기를 기다렸다 그들 중 대부분
은 KKK단이 죽이려고 했던 유명한 변호사의 얼굴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제이크의 사무실 앞에 잠시 멈추었다 자
기가 그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했었다고 우기는 허풍쟁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의 목표물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 어제의 파티에서 남은 블러
디 마리 혼합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두통약을 먹으
면서 머릿속에 남은 실타래 같은 상념들을 걷어내려 애썼다 그 군인
은 잊어버리자 KKK단도 잊어버리고 그들의 협박도 잊어버리자
재판과 베이스 박사를 빼고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자 제이크는 세 시
간 내내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짐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도 베이스 박사가 온전한 정신으로 증언대에 서기를 빌었다 박사와
루시엔은 어제 오후 내내 술을 마시면서 니가 더 술고래니 어쩌니
떠들어댔구 자기들의 쫀경스런 직업에서 무참히 쫓겨난 사연에 대
해 열떤 논쟁을 벌였다 두 사람이 사무실을 떠날 때 에셀의 책상에
서 험악한 상황이 연출될 뻔하기도 했다 다행히 네스비트가 끼여들
어서 그들을 순찰차에 태워 집으로 모셔갔다 기자들은 늦은 시간에
술취한 두 사람이 제이크의 사무실에서 나와 순찰차에 태워지자 호
기심이 발동해 몰려들었다 루시엔은 뒷자리에 베이스 박사는 앞자
리에 앉아 집으로 가는 내내 서로에게 욕을 퍼붓고 소리를 지르며
싸워댔다
제이크는 심신장애 변호에 관한 엘렌의 준비서면을 다시 검토해
보았다 베이스 박사에게 질문할 내용들은 두세 가지만 손보면 되었
다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포드 군의 배심원들을 만족시키
기엔 충분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정신과 의사도 130킬로나 떨
어져 있는 판이니까
누스 판사는 지방검사를 바라본 뒤에 측은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제이크는 문가에 앉아 버클리의 뒤쪽에 걸려 있는 이미
작고한 판사들의 빛바랜 초상화를 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엔 기분이 어떻습니까 제이크 씨
누스 판사가 따뜻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습니다
군인은 어떻게 됐습니까
이번에는 버클리가 물었다
마비되었습니다
누스와 버클리 무스그로브와 페이트가 동시에 카펫 위의 한점을
응시하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그들은 잠간 동안 엄숙하게 경의를 표
했다
당신의 법률 서기는 어디 갔습니까
누스가 시계를 보면서 물었다 제이크도 역시 시계를 쳐다보았다
LL모르겠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기다리다 왔습니다
준비됐습니까
페이트 씨 법정도 준비되었습니까
예 판시럼
좋아a갑시다
누스는 재판장석에 앉아 배심원들에게 전날의 휴정에 대한 사과
의 말을 십분 동안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배심원들은 클랜턴에서 금
요일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유일한 14인이었다 그
사건은 배심원들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말을 해
선 안 되었다 누스는 재판이라는 게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위급한 상
황이 생기핀 그래서 어잴 수 없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지
리멸렬하게 이어 나갔다 그가 마침내 말을 괄내자 배심원들은 어리
등절한 표정으로 증인이 불려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증인 신청하십시오
누스 판사가 제이크 쪽으로 고개만 돌리면서 말했다
베이스 박사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제이크가 연단으로 걸어나오며 말했다 버클리와 무스그로브는 서
로 눈짓을 교환하면서 음홍한 미소를 나누었다
베이스는 가족들이 앉아 있는 두 번째 줄에 루시엔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는 자기 이름이 불리자 우당탕탕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의
통로로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속이 빈 커다란 가죽가방으로 사람들
을 툭툭 치면서 걸음을 옮겼다 제이크는 등 뒤에서 나는 요란한 소
리를 들으면서 배심원들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베이스 박사는 선서문을 읽는 진 길레스피에게 빨리 빨리 대답했
다 페이트가 베이스 박사를 증인석으로 데리고 가서 마이크를 사용
하는 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베이스 박사는 비록 숙취 때문에 고생
한 얼굴이긴 했지만 전문가답게 거만해 보였구 정신도 말짱했다
그는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비싼 손으로 수를 놓은 짙은 회색
모직 양복에 말끔하게 다린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작고 귀
여운 빨간색 나비넥타이가 그를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어떤
면에서는 전문가다운 모습이었다 그는 또한 제이크의 반대에도 불
구하구 타조 가죽으로 만든 밝은 회색의 카우보이 부츠도 신고 나왔
다 천 달러나 주고 사 놓고는 열두 번도 안 신었다던 그 부츠였다
루시엔은 11년 전에 그가 최초로 심신장애 사건을 맡았을 때부터 그
에게 부츠를 신고 나오도록 강요했다 베이스는 그것을 신고 나와 증
언을 했고 매우 정상적이었던 피고는 결국 파치먼 교도소로 가고 말
았다 두 번째 심신장애 재판에서도 그는 루시엔의 요구대로 그것을
신고 나왔고 그 피고인 역시 파치먼 교도소로 보내졌다 그러나 루
시엔은 그 부츠를 베이스의 행운의 부적이라고 믿었다
제이크는 그 망할놈의 부츠가 정말 싫었다 그러나 루시엔은 배심
원들이 좋아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비싼 타조 가죽으로 만든 것은
안 된다고 제이크가 맞받아치자 루시엔은 멍청한 배심원들은 그 차
이를 알 수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제이크가 꿈쩍도 안 하자
루시엔은 남부의 백인 촌뜨기들은 부츠 신은 사람을 미더워할 거라
고 설명했다 제이크는 주장을 조금 굽혀 그렇다면 굽과 밑창에 혼
이라도 좀 묻혀서 다람쥐 사냥할 때 신는 친근한 부츠처럼 보이도록
하자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베이스 박사가 거절했다 그렇게
하면 자기가 입은 양복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베이스 박사는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척 올려놓고 부츠를 슬쩍
과시했다 그는 부츠를 보고 흐뭇하게 웃고는 배심원들을 향해서도
싱긋 웃어 보였다 타조 가죽이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제이크는 연단에 놓인 서류를 보고는 부츠를 보았다 부츠는 증인
석의 바깥으로 삐죽이 비어져 나와 아주 잘 보였다 베이스가 부츠를
지그시 보면서 감상하고 있었구 배심원들도 부츠에서 눈을 떼지 않
았다 제이크는 숨을 꾹 누르면서 서류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W T 베이스입니다
베이스가 부츠에서 갑자기 눈을 떼면서 대답했다 그의 눈길은 이
제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로 제이크를 향했다
주소는 어떻게 되십니까
미시시피 주 잭슨 시 웨스트 캔터베리 908번지입니다
직업은 뭡니까
의사입니다
미시시피의 개업 면허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렁 요
면허는 언제 따셨습니까
1963년 2윌 g일입니다
다른 주의 개업 면허도 가지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어딥니까
텍사스 주입니다
언제 취득하셨습니까
1962년 11월 3일에 취득했습니글
어느 대학을 졸업하셨습니까
학사학위는 1956년 밀샙스 대학에서 받았구 의학박사학위는
1960년에 텍사스 주 댈러스에 있는 텍사스 건강과학센터 부설대학
에서 받았습니다
공인된 의학학교입니까
어디에서 인정합니까
미국병원협회와 의학교육협회에서 인정하고 있죠 의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협회들입니다 물론 텍사스 주의 교육당국으로부터
도 공인받은 학교구
베이스 박사는 편안하게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발을 풀었다가 다
시 꼬아 이번에는 왼쪽 부츠를 내보였다 그는 여유있게 몸을 흔들
며 이따금씩 배심원을 향해 회전의자를 돌렸다
인턴 과정은 어디서 얼마 동안 밟았습니까
의대를 졸업하고 12개월 동안 덴버에 있는 로키 마운틴 의학센
터에서 받았습니다
전공 분야는 무엇입니까
정신의학입니다
정신의학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요
정신의학은 인간의 정신적 결함을 치료하는 의학의 한 분야입니
다 보통은 정신기능 이상을 치료하구 잘 알려지지 않은 기능이상의
유기적 근거들을 연구합니다
제이크는 베이스 박사가 증인척에 앉은 이후 처음으로 안도의 숨
을 쉬었다 박사의 목소리는 신뢰가 갔다
자 박사님 그럼 이제 배심원들에게 정신의학 분야에서 받았던
전문 훈련과정을 설명해 주시기 바람니다
제이크가 배심원석으로 약간 다가가면서 베이스 박사에게 말했다
LL저는 공인된 훈련센터인 텍사스 주 정신병원에서 2년 동안 정신
의학 레지던트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정신 신경증 환자와 정신
병 환자들을 임상 치료했고 심리학과 정신병리정신요법 심리학
요법을 공부했습니다 유능한 정신의학 교수들이 지도한 이 훈련과
정에는 일반의학 및 정신의학적 측면에 대한 교육 아동 청년 성인
들의 행위심리학 교육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법정 안에 베이스 박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천재의 모습을 하고 흘연히 나타난 전문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 정도의 말을 내뱉은 것으로도 그는 충분히 똑똑하
고 지성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했다 나비넥타이와 유창한
어휘들 덕에 부츠가 깎아먹은 그의 신뢰도가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
었다
미국의학위원회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따셨습니까
물론입니다
베이스 박사의 대답은 자신감에 넘쳤다
어느 분야에서 자격증을 받으셨습니까까
정신의학에서 인증받았습니다
언제 인증되었습니까
1967년 4者입니다
L미국의학위원회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
을 거쳐야 합니까
LL의사고시에 붙은 다음 구두 시험과 실습 시험에 합격해야 합니

제이크는 서류를 들여다보다가 무스그로브가 버클리에게 윙크하
는 장면을 포착했다
박사님 전문가 모임에 가입하셨습니까
이름을 대주시죠
저는 미국의사협회와 미국정신과의사협회 그리고 미시시피의사
협회 회원입니다
얼마동안 정신과 의료행위를 하셨습니까
22년입니다
제이크는 재판장석을 향해 세 걸음을 옮겨 판사를 마주 보았다
재판장림 저는 베이스 박사를 정신의학 분야의 전문가로 결론
내립니다
인정합니다
누스 판사가 대답했다
버클리 검사 증인을 심문하시겠습니까
지방검사는 서류들을 손에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저놈이 무슨 수작이지
하지만 제이크는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칼 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엘렌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베이스 박사럼 박사넘께서는 박사넘 자신이 정신의학 분야의 전
문가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정신의학에 대해서 강의를 하신 적이 있습니까丁
없습니다
정신의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정신의학에 관한 책을 저술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미국의사협회와 미시시피의사협회 미국정신
과의사협회 회원이신 걸로 아는데S
맞습니다
이 협회에서 임원으로 일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당신은 현재 병원에서 맡고 계신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당신의 정신의학 경력이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후원 아래 이루어
진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베이스 박사의 당당했던 표정이 얼굴에서 사라지구 자신감 있는
목소리도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베이스는 서류만 들여다보고 있는
제이크에게 시선을 주었다
베이스 박사님 지금도 정신의학 진료를 하고 계십니까
전문가는 주춤거리면서 두 번째 줄에 앉은 루시엔을 쳐다보았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환자들을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계시죠
먹이를 문 버클리는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자신감으로 넘쳤다
일주일에 다섯 내지 열 명을 보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두 명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 정도 될 겁니다
그런데도 전임의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바쁘기 때문에 그만큼만 보는 것입니다
버클리는 서류를 탁자에 올려놓고 누스 판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LL재판장님 주에서는 본 증인이 정신의학과 관련된 증언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증인은 자격이 없습니다
제이크가 입을 벌린 채로 일어섰다
LL버클리 씨 기각합니다 브리건스 씨 심문 계속해 주시죠
제이크는 서류들을 다시 챙겨서 연단으로 을라갔다 방금 지방검
사가 그의 스타 증인의 권위를 은근슬쩍 실추시켰다는 사실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베이스의 부츠가 움직였다
LL박사님 피고인 칼 리 헤일리 씨를 진찰하신 적이 있습니까
몇 번 하셨습니까
세 번입니다
첫번째 검사는 언제였습니까
6월 10일이었습니다
검사의 목적은요
LL콥 씨와 윌러드 씨를 총으로 쏘았던 5월 20일의 정신상태와 평소
의 정신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디서 검사를 하셨습니까
포드 군 구치소에서 했습니다
혼자서 하셨습니까
예 저와 칼 리 헤일리 씨 둘만 있었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렸죠
세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그의 병력을 살펴보셨습니까
포괄적으로 확인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그의 과거에
관한 얘기를 했습니다
뭘 알아내셨습니까
베트남전에 관한 것말고는 별로 중요한 게 없었습니다
베트남전이라니요
베이스 박사는 볼록한 배 위에 팔짱을 끼고 앉아 지적인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변호사를 쳐다보았다
글쎄s브리건스 씨 저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환자들을 많이
진료했었는데 칼 리 헤일리 씨도 그들처럼 끔찍하고 공포스런 경험
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쟁이란 항상 끔찍하지라고 칼 리는 생각했다 그는 증언을 열
심히 경청했다 지금도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나빴다 그는 총에 맞
았고 핀구를 잃었으며 사람을 죽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을 그가 죽
인 사람 중엔 어린아이도 있었다 베트남의 아이들은 총과 수류탄을
운반했다 나쁜 짓이었다 그는 베트남이라는 곳을 다시는 보지 않기
를 바랐다 그는 지금도 악몽을 꾸구 그 기억으로 가끔씩 되돌아가
서 땀에 흠뻑 적곤 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머릿속이 꼬이고 정신
이 이상해진 적은 없었다 콥과 윌러드 때문에도 미친 적은 없었다
그는 사실 베트남에서 죽였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루 그들이 죽은 데
대해 만속하고 있었다
칼 리는 이런 얘기들을 베이스 박사를 처음 만났을 때 다 털어놓
았다 그런데 박사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만남은 두 번
다 한 시간을 넘지 못했다
칼 리는 배심원들을 쳐다보면서 자신이 베트남전에서 겪었던 끔
찍한 경험을 대신 진술하고 있는 전문가에게 의심쩍게 귀를 기울였
다 베이스 박사는 베트남전이 칼 리 헤일리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비전문가들에게 전문용어를 써가며 목소리를 세 옥타브쯤 올려 설명
하고 있었다 정말 그럴싸하게 들렸다 몇 년 동안이나 악몽을 꾸었
지만 칼 리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걱정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
데 베이스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그것이 자기 생애에서 중대한 의미
가 있는 사건처럼 느껴졌다
베트남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셨습니까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베이스 박사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나서 전쟁으로 인해 고
통받구 무거운 기억들에 묻혀 신음하는 인간에게서 얘기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정을 설명했다 칼 리는 그가 얘기하고
있는 사정대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고통으로 물든
베이스 박사의 표현을 들으며 처음으로 그 기억들이 자기 생애에 어
둠을 드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 시간 동안이나 전쟁은 재현되었구 그 효과가 철저하게 이용되
었다 제이크는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자 박사넘 베트남 얘기말구 그의 정신사를 관찰하시면서 특별
히 주목하신 또다른 사건이 있었습니까
제이크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물었다
딸이 강간당한 얘기말고는 없었습니다
칼 리 헤일리 씨와 강간사건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습니까
세 번 만날 때마다 아주 오랫동안 얘기했습니다
배심원들에게 딸의 강간사건이 칼 리 헤일리 씨에게 어떤 영향
을 주었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베이스 박사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
였다
브리건스 씨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얘기를 다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제이크는 그 마지막 말이 주는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잠시 뜸
을 들였다
요약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베이스 박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루시엔은 베이스 박사의 말을 듣는 데 점점 싫증을 느껴가고 있었
다 그는 눈을 돌려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 클라이드 시스코와 눈길을
맞추려고 애썼다 클라이드 시스코는 이미 증언에 흥미를 잃고 있었
으나 부츠만은 감탄스럽게 눈여겨보고 있었다 루시엔은 클라이드
시스코가 법정 안을 휘둘러 보기만을 기다렸다
베이스 박사가 얘기를 질질 끌고 있을 때 드디어 시스코의 눈길
이 증인을 떠나 칼 리와 버을리 검사 첫번째 줄에 앉은 기자에게로
옮겨갔다 그러다가 그의 눈길은 결정적으루 언젠가 그에게 시민의
의무를 행사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라고 8만 달러를 건네주었던 강
렬한 눈매를 가진 턱수염의 늙은이에게 멎고 말았다 그들은 서로에
게 초점을 맞추었다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교환했다 얼마면
되지 루시엔의 표정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시스코는 베이스 박사
에게로 눈길을 돌렸다가 얼마 견디지 못하고 다시 루시엔을 돌아보
았다 얼마면 되지 이번엔 진짜로 말했다 그러나 입술만 움직였을
뿐 소리를 밖으로 내진 않았다
시스코는 베이스 박사를 보면서 공정가가 얼마나 될지 계산했다
그가 턱수염을 매만지면서 루시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손가락 다섯 개를 확 펴서 얼굴에 갖다대고는 콜록 하고 기
침을 했다 그는 다시 기침을 하면서 전문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5천 달러야 5만 달러이3루시엔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시스
코를 봐서는 5천 달러일 가능성이 컸지만 어쩌면 5만 달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루시엔은 돈을 낼 터
였다 그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열시 삼십분까지 누스는 안경을 백 번이나 닦았고 커피를 열두
잔이나 비웠다 방광에 쌓인 물이 방수로를 압박하고 있었다
휴정할 시간입니다 열한시까지 쉬겠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의사봉을 치고는 사라져 버렸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거야긴
베이스 박사가 루시엔과 제이크를 따라 3충에 있는 법원 도서관으
로 올라가면서 조바심을 냈다
잘하고 있습니다 제발 부츠만 안 보이도록 해주세Q
제이크가 대답했다
그 부츠는 아주 중요해
루시엔이 반박했다
윌 좀 마셔야겠어
베이스 박사가 간절하게 말했다
잊어버리세Q
제이크는 한마디로 잘랐다
LL사실은 나도 그래 자네 사무실에 가서 딱 한잔만 마시고 오는 게
어때
루시엔이 거들고 나섰다
좋은 생각이야
베이스의 얼굴이 확 펴졌다
L1잊어버리세9 정신이 말짱해야 잘할 거 아니에Q
제이크가 다시 거절했다
삼십분이나 남았잖아
베이스와 루시엔은 사무실로 가기 위해 이미 도서관을 반쯤 벗어
나고 있었다
L안 돼요 절대로 안 돼요 루시엔 절대로
제이크가 소리를 질렀다
딱 한잔이야 딱 한잔이라구
루시엔은 손가락 하나로 제이크를 겨누면서 말했다
LL언제 한잔만 먹고 관둔 적이 있었습니까
같이 가자구 제이크 기분이 안정될 거야
딱 한잔이야
베이스가 계단 밑으로 사라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열한시에 베이스 박사는 증인석에 앉아 잔뜩 흐려진 눈으로 배심
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거의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베이스
는 앞줄에 앉은 삽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는 가능
하면 전문가처럼 보이기 위해 잔뜩 위엄을 부렸다 그의 신경은 과연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LL베이스 박사넘 맥노튼 규칙에 입각한 피고인의 처벌가능성 이론
에 대해서 아십니까
물론 압니다
베이스는 갑자기 위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규칙을 배심원들에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tr그러지요 맥노튼 규칙은 미시시피 주를 포함한 16개 주에서 채
택하고 있는 형사범인의 처벌가능성에 대한 기준입니다 이 규칙의
기원은 1843년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다니엘 맥노튼이라는
한 남자가 당시 영국 총리였던 로버트 필 경에 대한 암살을 기도했
습니다 그런데 총알은 빗나가서 비서인 에드워드 드루먼드를 죽였
습니다 맥노튼의 재판이 시작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가 편집증적
친 정신분열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는 증거들이 제시되었습니다 배
심원들은 심신장애자라는 이유로 무죄를 평결했죠 이때부터 맥노튼
규칙이 확립되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영국과 미국 내 L6개 주에서
채용되고 있습니다
맥노튼 규칙이 의미하는 것은 老니까
LL맥노튼 규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모든 피고인들은 우선 정상적인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심신장애라는 것으로 변호를 확립하기 위해서
는 피고인이 행위 당시 이성의 결함이나 정신병으로 인해 자기 행동
의 성격이나 의미를 알지 못했거나 또는 자기의 행위가 뭔지는 알았
어도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명백히 증명되어야 합니

좀더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예 피고인이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는 법적
으로 심신장애자라는 것입니다
심신장애를 정의해 주시겠습니까
그것은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개
인의 정신상태와 정신 환경에 대한 법적 기준인 것입니다
제이크는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논의를 좀더 진전시켰다
박시럼 박사님께서 검사하신 것을 근거로 해서 5者 20일 칼 리
헤일리 씨가 콥과 윌러드를 쏠 때의 정신상태에 대해서 견해를 내리
신 게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럼 그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피고인은 그의 딸이 강간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현실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강간사건이 있은 직후
에 딸아이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에게 딸이 강
간을 당했고 심하게 매를 맞았으며 거의 교살당할 뻔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을 때는 마음속에서 뭔가가 강렬하게 솟구쳤습니다 그것
이 정신이상에 빠져드는 일반적인 절차입니다 뭔가가 강렬하게 치
밀어오르는 거죠 그 충격으로 인해 현실 감각이 무너져 버린 것입니
다 그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칼 리 씨는 제게 법정에
서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 왜 경찰들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지 이
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경찰이 총을 꺼내서 그들의 머
리를 날려 버리길 기다렸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당연한 그 일
을 하지 않자 그는 자기가 그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딸을 강간한 두 사람을 처형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브리건스 씨 요점은 이겁니다 그는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었습
니다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환각이 그를 지배했
구 그는 미친 상태였습니다
베이스는 자신이 훌릉하게 증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제 변호사가 아닌 배심원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강간사건이 있었던 다음날 그는 병원에서 딸과 얘기를 나뒀습니
다 그 아이는 턱과 여러 군데가 부숴져서 말을 거의 할 수 없었습니
다 그러나 그런 입술로 그 아이는 숲 속에서 자기를 구하려고 달려
나오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왜 그냥
사라져 버렸느냐고 물었습니다 자 여러분은 그와 같은 말이 아버지
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는 나중에 아
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간절하게 찾았는데 두 사내는 아이
를 보고 웃으며 너에겐 아버지가 없다고 말했다고요
제이크는 베이스 박사의 증언이 배심원들의 가슴속에 파묻힐 수
있게 잠시 시간을 주었다 엘렌이 작성한 질문지에는 두 가지 질문만
이 남아 있었다
박사넘 칼 리 헤일리 씨에 대한 관찰과 범행 당시 그의 정신상태
에 대한진단에 근거해서 칼리 헤일리 씨가총을쏠때 옳고그른
것을 판단할 능력이 있었는지에 대해 전문가로서 견해를 갖고 계십
니까 의학적인 확신을 통한 합리적인 각도에서 갖고 계신 의견이
있으십니까
예 있습니다
어떤 의견입니까
그의 정신상태에 근거해서 그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없
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근거에 기초해서 칼 리 헤일리 씨가 자신이 행한 행위의 성
격과 결과를 판단할 능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어떤 의견이시죠
정신의학자로서의 제 견해는 칼 리 헤일리 씨가 자신이 행한 행
위의 성격과 결과를 판단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박시넘 이상입니다
제이크는 서류들을 챙겨서 당당하게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루시
엔을 쳐다보았다 루시엔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고 있었다 제이크
는 배심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베이스 박사를 보면서 증언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동정에 가득 찬 눈빛을 반짝거리곤 하던 완
다 워맥이 제이크를 보면서 가볍게 웃어 주었다 재판이 시작된 이래
로 제이크가 배심원들로부터 받아본 첫번째 청신호였다
지금까진 좋았어요
칼 리가 속삭였다
제이크는 그의 의뢰인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당신은 진짜로 미친 사람이에요
반대심문 있습니까
누스 판사가 버클리에게 물었다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버클리는 연단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제이크는 버클리가 전문가를 상대로 정신의학에 관해 논쟁하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 전문가가 W T 베이스 박사라
할지라도 그러나 버클리는 정신의학에 대해서는 논쟁할 계획이 없
었다
박사님 이름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십니까
제이크는 바짝 긴장했다 불길한 징조가 느껴졌다
월리엄 타일러 베이스입니다
줄여서 쓰실 때는요
W T 베이스입니다
지금까지 타일러 베이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까
전문가는 주춤거리다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뜨거운 작살이 위를 찌르는 것처럼 제이크에게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질문만 들어도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확실합니까
버클리는 눈샐을 치켜뜨면서 파고들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엄청
난 불신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베이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렸을 때는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텍사스 주 건강과학센터 부설의과대학을 졸
업했다는 것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예 정확합니다
그 학교는 어디 있습니까
댈러스에 있습니다
언제 그곳의 학생이셨습니까
1956년부터 1960년까지입니다
어떤 이름으로 등록하셨습니까
윌리엄 T 베이스입니다
제이크는 두려움으로 온 몸이 마비되었다 버클리는 확실히 뭔가
를 잡고 있었구 그것은 오직 베이스 박사와 버클리만 알고 있는 어
두운 과거에 속해 있는 게 분명했다
의과대학에 다닐 때 타일러 베이스라는 이름을 쓰신 적이 있습
니까
없습니다
확실합니까
틀림없습니다
사회보장 번호가 어떻게 됩니까
410968585입니다
버클리 검사는 어떤 서류 옆에다 체크 표시를 했다
생년월일은요
1934년 9월 14일입니다
모친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조니 엘리자베스 베이스입니다
처녀 때 이름은요
스키드모어
버클리가 다시 체크를 했다 베이스는 제이크를 초조한 얼굴로 쳐
다보았다
출생지는 어딥니까
일리노이 주 카본데일입니다
또다른 체크 표시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합당했구 제이크는 이
의 신청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릎이 흐물흐물해졌구
창자가 다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일어설 힘조차 없었다 만약 일어
나서 말을 했다간 일을 더 망칠 것 같았다
버클리는 체크 표시를 확인하고 몇 초 동안 기다렸다 법정 안의
모든 귀가 다음 질문을 기다렸고 그것이 결정적인 질문이 될 것을
알았다 베이스는 사형 집행인을 쳐다보는 사형수처럼 지방검사를
쳐다보았구 총알이 뎃나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마침내 버클리가 전문가 베이스 밭사를 보면서 웃었다
LL베이스 박사님 당신은 지금까지 중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 질문은 침묵에 빠져 있는 공간을 메아리치다가 타일러 베이스
의 떨리는 어깨에 와서 내려앉았다 몹시 서두르는 듯한 그의 얼굴이
이미 대답을 드러내고 있었다 칼 리는 그의 변호인을 곁눈질로 보았

물론 없소
베이스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절규에 가까웠다
버클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사석으로 걸어갔다 무스그로브가
중요해 보이는 어떤 서류를 집어서 검사에게 건네주었다
확실합니까
물론 확실합니다
베이스는 중요해 보이는 서류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제이크는 일어나서 몇 초 후에 일어날 끔찍한 형벌을 막기 위해 뭔
가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마비되었다
확실합니까
버클리가 다시 물었다
그렇습니다
베이스가 앙다문 입술 사이로 말했다
당신은 중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까
물론 없습니다
LL배심원들 앞에서 당신이 진술했던 증언이 확실한 것처럼 이 말
도 확실한 겁니까
그것은 함정이었다 살인과도 같은 질문 중에서 가장 최악의 질문
이었고 제이크도 많이 써먹었던 수법이었다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제이크는 베이스가 끝장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칼 리 헤일깁도
물론입니다
베이스는 당당함을 가장하며 대답했다 버클리는 마지막 한방을
먹이기 위해 움직였다
1956년 10윌 17일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당신이 타일러 베이스
라는 이름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까
버클리는 배심원들 앞에서 중요해 보이는 서류를 읽으면서 질문
을 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오
베이스는 조용히 그리고 설득력 없게 말했다
정말 거짓말입니까
그렇소 새빨간 거짓말이오
베이스 박사님 진실에서 거짓말이 나옵니까
제기랄 내 말이 맞다고 했잖소
누스는 안경을 벗어 코에 걸치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배심원들
은 흔들거리던 몸짓을 멈췄구 기자들은 펜을 내려놓았다 법정 뒤편
에 선 경찰들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버클리 검사는 중요해 보이는 서류에서 한 장을 빼내더니 읽었다
당신은 지금 배심원들 앞에서 1956년 10월 17일 당신이 법정
강간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겁니까
이런 엄청난 법정 위기 속에서조차도 철저히 무표정한 얼굴을 유
지하구 표정 관리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제이는
잘 알았다 특히 조그만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배심원들에게 피고인
측 변호사가 자신있는 표정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제이
크는 많은 재판과 온갖 충격을 려으면서 이런 자신감을 모든 것이
훌릉하고 나는 괜찮다는 자신감을 연습해 왔다 그러나 법정 강간
이라는 말은 제이크의 표정에서 자신감과 확신 용기에 가득 찬 표정
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구 대신 병자같이 창백하고 초라하고 고
통스런 표정만을 남겨두고 말았다 배심원 중 최소한 반은 제이크의
얼굴을 읽었으리라 나머지 반은 증인석에 앉은 증인에게 눈살을 찌
푸렸다
박사님 당신은 법정 강간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오랜 침묵이 흐른 뒤에 버클리가 다시 물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
었다 누스는 몸을 일으켜 증인석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베이스 박사넘 질문에 대답해 주십시오
베이스는 버클리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사람 잘못 봤습니다
버클리는 코웃음을 치면서 더욱 중요해 보이는 서류를 들고 있는
무스그로브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하얀 봉투를 뜯어 8x10크기의
사진들을 꺼냈다
자 베이스 박사님 저는 댈러스 경찰국에서 1956년 9월 11일에
찍은 사진을 입수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버클리는 사진을 증인석으로 들이밀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러면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를 텐데
베이스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서 발에
걸린 부츠를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재판장님 주에서는 법령에 따라 인증된 텍사스 주 대 타일러 베
이스 소송사건의 최종 판결문과 선고문의 복사본을 증거로 제출합니
다 이 복사본은 텍사스 주 댈러스의 관리로부터 미시시피 주정부가
입수한 것입니다 이 서류는 타일러 베이스가 1956년 10월 17일에
텍사스 주의 법령에 따라 법정 강간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음을 증명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일러 베이스와 오늘 증인으로 참석한 W
T베이스 박사가 동일인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무스그로브는 친절하게두 버클리가 손에 잡고 흔들고 있는 서류
의 모든 복사본을 제이크에게 넘겨주었다
이걸 증거서류로 접수하는 데 이의 있습니까
누스가 제이크 쪽에 대고 물었다
연설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배심원들의 가슴을 녹이구 베이스 박
사와 칼 리 헤일리에 대한 측은함 때문에 눈물을 홀리게 만들 명쾌
하고 애절한 연설이 필요했다 그러나 의사진행의 규칙은 이런 연설
을 허락하지 않을 터였다 물론 증거에는 하자가 없었다 제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고개만 가로저었다 이의는 있을 수 없
었다
이상입니다
버클리의 목소리가 법정 안을 독식하고 있었다
재직접 심문 있습니까
누스가 다시 물었다
그 짧은 시간에 베이스 박사에게 질문을 던져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질문은 단 한 가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배심원들은 변호인측 전
문가에게 이미 충분한 증언을 들었으니까
없습니다
제이크는 조용히 대답했다
좋습니다 떼이스 박사님 내려가셔도 좋습니다
베이스 박사는 난간에 있는 작은 문을 통과해 급히 내려와선 중
앙통로를 통해 법정 밖으로 나갔다 제이크는 그가 떠나는 것을 바라
보면서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경멸 섞인 눈길을 담아 보냈다 배심원
들이 피고인측 변호사와 피고인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중죄를 지은 사람은 증인으로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베이스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제이크는 조그만 용기라도 줄 수
있는 얼굴을 찾아 법정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루시엔조차
도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레스터는 팔
짱을 긴 채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그웬은 울고 있었다
다음 증인 신청하십시요
누스 판사가 말했다
제이크는 계속 법정 안을 뒤졌다 세 번째 줄 에이지 목사와 루터
루즈벨트 목사 사이에 노먼 레인펠드가 앉아 있었다 그는 제이크와
눈길이 마주치자 얼굴을 찌푸리고는 거봐 내가 얘기했잖아라고
말하듯이 고개를 저었다
반대쪽에 앉은 백인들은 긴장이 풀린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들
은 제이크를 보면서 싱글거리기까지 했다
브리건스 씨 다음 증인 신청하십시오
제이크는 판사를 향해 겨우겨우 일어섰다 무릎이 떨려서 탁자에
손바닥을 대고 기대야 할 정도였다
재판장님 한시까지 휴정을 신청할 수 있겠습니까
제이크는 목청을 높이고 날카롭게 그러나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
했다
하지만 브리건스 씨 이제 겨우 열한시 삼십분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거짓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압니다 그러나 다음 증인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한시까지는
올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한시까지 휴정하겠습니다 판사실에서 두 분을 뵙도
록 하겠습니다
판사실 옆에는 변호사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는 조그
만 방이 있었고 그 옆엔 화장실이 있었다 제이크는 화장실로 기어
들어가 문을 닫고 코트를 벗어 바닥에 팽개쳤다 그는 변기 옆에 쭈
그려 앉아 잠시 동안 기다렸다 그리고는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오지 보안관은 무스그로브와 버클리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제이크
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판사 앞에 서서 얘기를 하려고 시도했다 그
들은 제이크를 기다렸다
마침내 제이크가 판사실로 들어왔다
제이안 좋은 소식이 있네
오지가 말했다
앉은 다음에 듣겠네
한 시간 전에 라파예트 군 보안관한테서 전화가 왔었는데 로 아
크 양이 병원에 있대
무슨 일이 있나
어젯밤에 KKK단이 그녀를 납치했네 옥스퍼드로 가는 길목이었
다는군 그들이 그녀를 기등에 묶어 놓고 때렸네
상태는
생명에 지장은 없는데 심하게 충격을 받았다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버클리가 물었다
KKK단이 제이크의 법률 서기를 납치해서 숲 속으로 끌고 갔습
니다 옷을 資고 머리칼을 잘랐답니다 뇌진탕을 입고 머리에 상처를
입은 걸로 봐서 KKK단이 그녀를 때린 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1
제이크는 다시 토악질을 할 필요가 있었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면서 베이스를 기등에 묶어 놓고 실컷 두들
겨 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누스가 피고인측 변호사를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괜찮습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두시까지 휴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좀 쉬어야 될 것 같
으니까요
누스가 말했다
제이크는 빈 맥주병을 들고 앞쪽으로 걸어가면서 잠시 동안 그걸
로 루시엔의 머리를 후려치면 어떨까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래도 녹
이 시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루시엔은 얼음조각을 달그락거리면서 멀리 광장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은 토요일 밤 동시상영 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든 십대들
과 군인들을 고는 인적이 끊긴 뒤였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루시엔은 먼 곳을 바라보았구
제이크는 빈 병을 든 채 루시엔을 노려보았다 베이스는 수백 킬로
밖으로 떠났을 것이다
몇 분이 지난 다음 제이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베이스는 어디 있습니까
갔네
어디
집으료
집이 어딘데요
왜 알고 싶지
LI그의 집을 보고 싶어요 자기 집에 있는 그 사람을 야구방망이로
죽을 때까지 패주고 싶어9
루시엔은 얼음조각을 더 세차게 흔들었다
자네를 비난하지 않겠네
알고 있었나요
알다니 윌
유죄판결에 대해서
LL절대로 아니네 아무도 몰랐지 기록은 말소되었으니까
이해할 수가 없군
LL베이스는 내게 텍사스에서 받았던 유죄판결은 3년 후에 바로 말
소됐다고 했네
제이크는 의자 옆의 현관에다 맥주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더
러운 유리잔을 들어 입김을 불면서 얼음조각과 잭 다니얼을 가득 채
웠다
설명해 주시겠어a루시엔
그 여자애는 열일곱 살이었는데 댈러스의 유명한 판사 딸이었다
더군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구 판사는 어느날 소파에서 쉽굴고 있
는 그들을 목격했네 판사는 고소를 했고 베이스는 도망갈 재간이
없었지 결국 법정 강간죄를 받았네 그러나 그들은 사랑에 빠져 있
었기 때문에 계속 만났구 소녀는 임신을 했네 그래서 두 사람은 결
혼을 했고 판사에게 첫 손자를 선물로 안겨줬네 그 노인네는 마음
이 누그러져 기록을 말소시켜 주었다고 하더군
루시엔을 술을 마시면서 멀리 광장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 소녀는 어떻게 됐습니까
베이스 말로는 그가 의대를 졸업하기 일주일 전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아내와 어린 아들이 포트 워스의 열차사고로 다 죽었
다고 했네 술을 마시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게 그때부터지
당신한테 전에도 그런 얘기를 했었나요
나를 다그치지 말게 자네에게 그 사실은 아무도 몰랐었다고 말
하지 않았나 나도 베이스 박사를 두 번이나 증언대에 세웠었네 잊
어버렸나 내가 알았다면 그를 증언대에 세우지 않았을 거야
왜 그 사람은 당신한테 얘길 안 한 거죠
기록이 지워졌다고 생각했으니까 안 했겠지 하지만 정확한 건
나도 모르네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옳지 말소되면 기록은 없어
지니까 하지만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
제이크는 쓰디쓴 위스키를 꿀꺽 삼켰다 속이 메스꺼웠다
두 사람은 십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밖은 어두웠고
귀뚜라미들이 한데 어울려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샐리가 문으로
걸어와 저녁을 먹을 건지 제이크에게 물었다 제이크는 싫다고 대답
했다
오늘 오후에는 어떻게 됐나
루시엔이 물었다
칼 리가 증언하고 네시에 끝났어요 버클리가 정신과 의사를 준
비시켜 두지 않았죠 윌요일에 증언한대요
칼 리는 어펐어
그저 그랬어요 베이스 다음이라 배심원들이 얼마나 같잖게 봤을
지 짐작이 가시죠 뻣뻣하게 굳어가지곤 예행연습을 하는 배우 같았
어요 좋은 점수는 못 받았을 거예요
버클리는
사나웠죠 칼 리한테 한 시간 동안 土리를 질러댔으니까요 칼 리
도 버클리한테는 기민하게 대처했죠 그리고는 둘이 치고받고 했어
요 둘 다 상처를 입었죠 재직접 심문에서 나는 몇 가지를 제공했구
그는 가엾고 불쌍하게 진술했어요 끝에 가서는 모든 사람들이 울었

잘했네
예 정말 괜찮았죠 하지만 유죄판결을 내릴 겁니다 그렇죠
그럴 것 같네
재판이 끝난 다음에 칼 리는 저를 해고하려고 했어요 나는 재판
에서 졌구 새 변호사를 구하겠다고 했죠
루시엔은 현관끝으로 걸어가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는 기
등에 기대어 몸을 숙인 채 소변을 보았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은
수재민을 연상시켰다 샐리가 시원한 음료수를 가지고 왔다
로 아크 양은 어때
루시엔이 물었다
위험하지는 않다고 했어요 병실로 전화했더니 간호사가 그녀와
통화할 수는 없다고 그러더군요 내일 다시 걸어봐야죠
괜찮았으면 좋겠군 좋은 아가씬데
과격하기는 하지만 똑똑하죠 제 탓인 것 같아요
자네 탓이 아니야 미친 세상 탓이지 사방이 다 미친놈들 투성이
라구 그들 중 반은 포드 군에 있는 것 같고
두 주 전에는 내 침실 창문 아래다 다이너마이트를 갖다 놓았어
요 그 다음엔 내 비서의 남편을 때려죽였구 어제는 나를 쏘려다가
군인을 맞혔어요 그러더니 이제는 내 법률 서기까지 잡아다가 기등
에 묶고 놓고 옷을 찢고 머리칼을 잘라서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만들었어9 다음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군Q
자네 항복할 것 같군
그러고 싶어9 지금 당장 법원으로 가서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손을 저어서 포기하고 싶다구9 그러나 누구한테 항복을 하죠 적
은 보이지도 않는데
포기하지 말게 제이크 칼 리에게는 자네가 필요해
내 고객더리 지옥에나 가라고 하세요 오늘 나를 해고하려고 했
다니까요
그에겐 자네가 필요해 재판은 끝나야 끝나는 거야
네스비트는 차창 밖으로 고개를 반쯤 내밀고 졸고 있었다 침이
그의 왼쪽 뺨을 타고 흘러내려 차의 옆면에 붙어 있는 포드 군 보안
관 소속 순찰차량의 마크에 조그만 점을 그리고 있었구 빈 맥주캔에
서 흘러내린 맥주가 그의 가랑이를 적셨다 검등이의 변호사를 경호
한 지 2주일 째 그는 이제 차 안에서 모기와 함께 자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토요일 자정이 지난 지 십분도 안 되어 무전기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네스비트는 왼쪽 소매로 침을 슥 닦으면서 마이크를
집어들었다
S O81다
네스비트가 대답했다
지금 위치는
두 시간 전과 동일하다
윌뱅크 씨 집인가멀
그렇다
브리건스 씨도 거기 있나
그렇다
그를 애덤스 가에 있는 집으로 데려다 줘라 비상사태다
네스비트는 열려 있던 문을 열고 현관에 널브러진 빈 술병들을 지
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제이크는 거실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다
일어나세요 제이쾨 집으로 가야 됩니다 비상사태예요
제이크는 얼른 자지를 차고 일어나 네스비트를 따라나섰다 두 사
람은 앞 계단에 멈춰 서서 법원 꼭대기의 등근 돔 너머를 유심히 쳐
다보았다 검은 연기와 작열하는 불꽃이 어우러져 반달이 비추는 밤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애덤스 가는 도움을 주려고 나온 지원 차량이 너무 많아 꽉 막혀
있었다 대부분이 픽업들이었다 각 차량마다 노랑과 빨강의 비상등
을 켜놓고 있었다 불빛이 족히 천 개는 될 것 같았다 그들은 불빛을
번쩍이면서 조용한 어둠 속을 질풍같이 내달렸다
소방차는 집 앞에 되는대로 주차해 있었다 소방수와 지원자들이
소방 호스를 놓고 소방대장의 명령에 따라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
었다 오지와 프레이서 헤이스팅스는 소방차 옆에 서 있었다 군인
몇 명이 지프 주위에서 서성거리는 게 보였다
불꽃은 이글거리며 잘도 타올랐다 불길이 집의 정면을 타고 올라
가 위아래층 모든 창문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모든 것이 타들어갔
다 차고는 화염에 완전히 뒤덮여 있었다 칼라의 차인 커틀러스도
안과 바깥이 몽땅 탔고 네 바퀴에서 불꽃들이 톡톡 튀고 있었다 이
상한 점은 사브말고 또 한 대의 차가 커틀러스 옆에서 타고 있는 것
이었다
불꽃이 탁탁 튀기는 소리와 뼈대가 쿵 하고 무너지는 소리 소방
차의 엔진소리와 시끄러운 목소리 따위가 한데 뒤섞여서 몇 블록 건
너의 이웃들을 애덤스 가로 불러들였다 구경꾼들은 집 건너편의 잔
디밭에 몰려 있었다
제이크와 네스비트는 애덤스 가를 따라 뛰어내려갔다 소방대장이
그들을 보고 달려왔다
제이크 씨 안에 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저도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개가 한 마리 있습니다
개라고요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불타는 집을 쳐다보았다
유감입니다
소방대창이 말했다
세 사람은 피클스 부인의 집 앞에 주차해 있는 오지 보안관와 차
로 모였다 제이크가 질문에 대답했다
저 아래 있는 건 당신의 폴크스바겐이 아니죠
제이크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차고 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제이
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불이 저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Q
제이크가 말했다
당신 차가 아니라떤 누가 저기다 차를 세워놓은 거로군요 차고
의 바닥이 타는 것 보이세요 콘크리트는 정상적으로 타지 않습니다
가솔린이에요 누가 폴크스바겐에 가솔린을 싣고 와서 주차해 놓고
도망간 겁니다 아마 폭발시킬 만한 장치가 있었겠죠
프레이서와 지원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타기 시작했습니까
제이크가 물었다
한 십분 전에 여기 도착했는데 그때 이미 불길이 번져 있었어요
삼십분 전부터 타기 시작한 것 같아요 굉장한 불입니다 누군가가
1들이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소방대장의 의견이었다
안에 있는 것은 하나도 못 건지겠죠
제이크는 불가능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냥 물어보았다
그래요 너무 번졌어요 사람이 갇힌 게 아니라면 대원들을 들여
보낼 수가 없습니다 이건 교묘하게 지른 불이에요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죠
잘 보세요 집 전체에서 골고루 타들어가고 있잖아요 1者과 2者
가릴 것 없이 창들마다 다 불꽃을 뿜고 있죠 아주 특이한 경우입니
다 좀 있으면 지붕까지 다 탈 거예8
두 진화팀이 줄을 맞춰 조금씩 전진하면서 정면 유리창에 물을
뿜어대고 있었다 좀더 작은 소방호스가 2충을 겨냥했다 그러나 물
은 불꽃 속에 먹혀들어가기만 하고 아무런 쵸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자 소방대장이 침을 뱉으면서 말했다
전부 다 타겠어
그는 소방차 쪽으로 걸음을 을기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제이크가 네스비트에게 고개를 돌렸다
부탁 좀 들어주겠나
물론이죠
해리 렉스 집으로 가서 좀 데리고 와주게 그가 이 구경을 놓치게
할 수는 없지
알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해리 렉스와 네스비트 제이크와 오지는 순찰차에
기대어 불이 완전히 타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끔씩 이웃들이
들러서 가족들은 무사한지 염려해 주었다 옆집에 사는 퍼클스 부인
은 맥스가 타버렸다는 소식을 듣더니 큰 소리로 목놓아 울었다
세시가 되자 경찰들과 구경꾼들이 사라졌구 네시에는 작은 빅토
리아식 가옥이 한줌의 재로 변했다 소방관들이 불꽃이 남았나 확인
했다 굴뚝과 앙상하게 남은 차 두 대만이 폐허 위에 위태롬게 서 있
었다 방화 부츠를 신은 土방관들이 불꽃을 확인하느라 잔해를 발로
툭툭 찰 때마다 폐허 속에서 퉁겨져 오른 불꽃들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땅에 처박혔다
해가 떠오를 때쯤 소방관들은 마치막 소방호스를 접었다 제이크
는 떠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해리 렉스와 제이크
는 뒤뜰로 걸음을 옮기면서 피해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런 집터만 남았군
해리 렉스가 말했다
칼라한테 전화해서 얘기 좀 해주겠나
자네가 해야 될 것 같은데
기다리는 게 좋겠군
해리 렉스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침 먹을 시간이군 그렇지
일요일 아침이라 아무 데도 문을 안 열었을 거야
제이 밥 찾아 먹는 데는 내가 선수잖아 나는 언제든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네
기사식당 말인가
그렇지 기사식당
알았어 일단 밥 먹고 로 아크 양을 보기로 하지
LL좋은 생각이야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인 그녀 모습을 보고 싶어
죽겠거든
샐리는 수화기를 들어서 루시엔 쪽으로 던졌다 루시엔은 더듬거
리다가 가까스로 귀 옆에 갖다댔다
여보세요
루시엔은 사시눈으로 창밖의 어둠을 가늠하면서 말했다
루시엔 윌뱅크스 씹니까
예 그렇소 누구십니까
클라이드 시스코라고 아십니까
알고 있소
만 달럽니다
아침에 다시 전화해 주면 좋겠소
셀던 로 아크는 다리를 의자 등받이에 대고 창가에 걸터앉아 일
요일자 멤피스 신문에 실린 헤일리 재판 기사를 읽고 있었다 1면 아
랫단에 딸의 사진과 함께 KKK단에게 봉변을 당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딸은 옆의 침대에 누워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왼쪽 머리는
깨끗하게 밀어서 붕대로 친친 감겼곤 왼쪽 귀는 스물여덟 바늘을 꿰
맸다 처음에는 심각했던 뇌진탕 증세도 차츰 호전되어 의사는 수요
일쯤에 퇴원할 수 있다고 했다
엘렌은 강간을 당하거나 채찍으로 맞지는 않았다 처음에 의사들
이 보스턴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는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셀던은 이곳까지 내려오는 일곱 시간 내내 비행기 안에서 끔
찍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혼자 마음을 태워야
했다 의사들은 지난 토요일 밤 엑스레이를 더 찍어보고는 안심해도
좋다고 했다 상처도 곧 아물 것이고 머리는 자라면 그만이니까 엘
렌은 심한 충격을 받았고 겁을 먹었지만 더 나빴을 수도 있었다 그
는 그만하기를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래층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와 누군가가 싸우는
소리였다 셀던은 신문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문을 열었다
한 간호사가 흘을 따라 살금살금 들어오고 있던 해리 렉스와 제이
크를 잡았다 간호사는 면회시간은 오후 두시부터이므로 앞으로 여
섯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다가 그것도 가족에게만 허락되니 두
사람은 당장 나가줘야겠다고 말했다 만약 나가지 않으면 수위를 부
르겠다는 엄포도 놓았다 해리 렉스는 면회시간이나 병원에서 얘기
하는 멍청한 규칙 따위에는 신경쓸 생각이 추호도 없으며 자기는 좀
있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약흔녀를 꼭 봐야겠다고 응수했다 그리고
만약 간호사가 당장 입을 닥치지 않으면 고소를 해서 본떼를 보여주
겠노라고 윽박질렀다 자신은 변호사이며 안 그래도 일주일 동안 손
님이 없어서 걱정하던 참이었다고 했다
무슨 일입니까
셀던이 물었다 제이크는 붉은 머리에 녹색 눈동자를 가진 키작은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셀던 로 아크 씨죠
그렇습니다
저는 제이크 브리건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 이 사람은
LL아 브리건스 씨 당신에 대해선 잘 알고 있습니다 간호사 괜찮
습니다
LL그럼요 우리는 이분과 일행이죠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소환장
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해리 렉스가 목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간호사는 수위를 부르겠다고 맹세하며 투덜투덜 계단을 내려갔다
저는 해리 렉스 보너입니다
해리 렉스는 셀던 로 아크와 악수를 나뒀다
들어오시죠
두 사람은 셀던을 따라 작은 침실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엘렌을
보았다 그녀는 아직 자고 있었다
좀 어떻습니까
제이크가 물었다
가벼운 뇌진탕입니다 귀를 스물여덟 바늘 꿰맸구 머리를 열한
바늘 꿰맸습니다 의사가 수요일에는 퇴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
젯밤에는 깨어나서 나와 오팻동안 얘기도 했습니다
머리칼이 끔찍하군요
해리 렉스가 엘렌의 머리를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들이 머리를 잡아당겨서 무딘 칼로 잘랐다고 하더군요 옷도
다 찢고 채찍질을 하겠다고 위혈도 한 모양입니다 사실 머리에 난
상처는 자해한 겁니다 그들이 죽이든지 강간을 하든지 아니면 둘
다 할 거라고 생각해서 묶여 있던 기등에 머리를 찧었답니다 그러니
까 놈들이 겁을 먹은 것 같아요
그럼 그놈들이 때리지는 않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해치지 않았습니다 겁만 잔뜩 주었죠
윌 봤다고 했습니까
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불타는 십자가와 하얀 가운 그리고
KKK단원들 정도죠 보안관 말로는 여기서 동쪽으로 18킬로쯤 떨어
진 곳에 있는 작은 목장이라고 하더군요 제지회사 소유라고
누가 그녀를 발견했습니까
해리 렉스가 물었다
보안관이 전화를 받았는데 미키 마우스라고 했답니다
아 잘 압니다 제 오랜 친구조
엘렌이 가는 신음을 내뱉으면서 몸을 폈다
나가시죠
셀던이 말했다
커피숍은 없습니까 여기 오니까 또 배가 고프네
해리 렉스는 아랫배를 쓸어내렸다
물론 있죠 가서 커피나 한잔 하시죠
2충에 있는 커피숍은 텅텅 비어 있었다 제이크와 셀던은 블랙 커
피를 마겼구 해리 렉스는 롤케이크와 우유를 먹었다
신문에서 보니까 잘 안 되시는 것 같더군요
셀던이 재판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LL친절한 신문이군요 제이크는 법정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고 있습
니다 법원 바깥 생활 또한 그다지 좋지는 않죠 총부리를 겨누구 법
률 서기를 납치하는가 하면 집을 불태워 버렸으니까요
해리 렉스는 입에 음식을 가득 문 채로 말했다
당신 집에 불을 질렀단 말입니까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이죠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을 겁니다
안그래도 어디서 연기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죠
L장장 네 시간 동안 깡그리 다 탈 때까지 지켜보고 왔습니다
LI기분이 안 좋습니다 전에도 물론 위협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기
껏해야 타이어에 펑크내는 것 정도였죠 물론 저격을 당한 적도 었었
지만
제이크가 말했다
나는 두 번이나 저격당했었죠
보스턴에도 KKK단이 있습니까
해리 렉스가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L1안됐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변호사의 일거리를 늘려주는데 말입
니다
그럴싸하관요 지난주에 법원 주변에서 일어났던 폭동을 텔레비
전에서 봤습니다 엘렌이 일을 맡으면서부터는 관심있게 보았죠 북
부에서도 아주 유명한 사건입니다 나도 맡고 싶었던 사건이죠
맡으실 수도 있습니다 제 의뢰인이 새 변호사를 구하고 있거든

제이크가 말했다
주에서는 정신과 의사를 몇이나 부를 예정입니까
딱 한 사람입니다 아침에 증언을 끝내고 나면 최종 변론이 있을
겁니다 배심원들은 내일 오후 늦게쯤에는 결론을 내리게 되겠죠
엘렌이 그 장면을 못 보게 돼서 안뤘어요 그애는 매일 나한테 전
화해서 사건에 대해서 수다를 떨었죠
도대체 제이크가 잘못한 게 뭐죠
해리 렉스가 먹을 게 꽉 들어찬 입을 열었다
먹고 나서 얘기할 수 없나
제이크가 핀잔을 주었다
제이크 씨는 잘해 왔습니다 워낙 사실관계가 불리한 사건이라서
요 칼 리 헤일리 씨가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경우니까 심신장
애라고 주장하기는 힘들죠 보스턴에 있는 배심원들은 그렇게 관대
하지 않습니다
클랜턴도 마찬가집니다
해리 렉스가 덧붙였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최종 변론을 하길 바라겠습니다 소맷자
락에서 비법이 나오겠죠
셀던이 말했다
제이크는 소맷자락 속에 숨겨둔 비법은커녕 바지랑 속옷도 없습
니다 집이랑 같이 홀랑 다 타버렸거든요
내일 오셔서 재판을 구경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판사실
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도 받아 놓겠습니다
제이가 셀던에게 말했다
판사님은 저는 허락하지 않죠
해리 렉스가 토를 달았다 셀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군9 어쨌든 화요
일까지는 머물 테니까9 그곳은 안전합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디 매켄베일의 아내는 병실 근처에 놓인 의자에 앉아 숨을 죽
이면서 울고 있었다 아이들 얼굴을 봐서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거였다 아이들은 다 닳아빠진 화장지로 이따금씩 뺨에 흘러내
리는 눈물을 닦고 코를 풀어댔다 제이크는 매켄베일 부인 앞에 무릎
을 꿇고 의사가 한 얘기들을 진지하게 전해 들었다 총알이 척추에
박여서 신경을 마비시켰구 죽을 때까지 회복이 안 될지도 몰랐다
매켄베일은 분빌의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좋은 직업이었고 좋
은 삶이었다 아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매켄베
일은 아들의 야구팀 코치였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매켄베일 부인은 큰 소리로 울었고 아이들은 연신 볼을 훔쳤다
댁의 남편께서 제 생명을 구했습니다
제이크는 매켄베일 부인과 아이들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부인은 눈을 감고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남편은 자기 일을 한 거예요 우리는 잘 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제이크는 의자에 놓인 화장지를 한 장 꺼내 눈가를 씻어냈다 친
척들이 곁에 서서 힐끔거리고 있었구 해리 렉스는 흘 끝에서 담배를
퍼웠다
제이크는 매켄베일 부인을 껴안고 아이들의 머리를 토닥였다 그
리고는 부인에게 전화번호를 주면서 자기가 도을 일이 있으면 언제
든지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재판이 끝나면 우디를 꼭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맥주 가게는 일요일이면 정오나 되어야 문을 열었다 하나님의 집
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 두 상자를 사서는 일요일 저녁
식사와 흥겨운 오후를 보낼 할머니 집으로 가는 교회 신도들처럼 그
리고 이상하게도 신도들이 일요일 저녁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
로 돌아갈 때는 맥주를 금지해야 하는 것처럼 오후 여섯시가 되면
문을 닫았다 토요일을 포함해서 엿새 동안은 아침 여섯시부터 밤 열
두시까지 장사를 했지만 주일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예의를
지키느라 영업시간을 단축했다
제이크는 베이츠네 가게에서 여섯 개들이 팩을 산 뒤 해리 렉스에
게 호숫가로 달리자고 했다 해리 렉스의 브론코는 거의 골동품에 가
까웠다 그 고물차의 문짝 네 개엔 진흙 더께가 10센티 가량 쌓여 있
었구 네 바퀴에도 타이어보다 두꺼운 진흙이 묻어 있었다 정면 유
리는 금이 가서 오늘내일 했구 가장자리로는 곤충의 유해들이 케이
크처럼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검사필증은 4년 전에 받은 거였는데
그나마 바깥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바닥에 빈 병과 맥주캔이 나쉽
굴고 있었다 제이크는 에어컨이 고장난 지 6년이나 된 고물차에 앉
아 사브를 한번 타보라고 제의했다 그러자 해리 렉스는 코웃음을
치면서 사브만큼 저격수의 표적이 되기 쉬운 차가 지금 어디 있느냐
고 반문했다 사실 브론코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로는 안성맡춤
이었다
두 사람은 목적지도 없이 그저 호수를 향해서 천천히 달려갔다
윌리 렐슨의 노래가 카세트에서 흘러나왔다 해리 렉스는 운전대를
툭툭 치면서 노래를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냥 듣기
에도 거칠고 투박했는데 노래로 듣고 있자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끔
찍했다 제이크근 맥주를 마시면서 유리창 너머로 햇살을 찾았다
찜통 같던 더위도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검은 구름이 남서쪽에
서부터 몰려오더니 휴이콘 술집을 지날 때쯤엔 소나기가 말라붙은
대지를 적셨다 비는 길가에 늘어선 칡의 먼지를 썬어내렸다 텟방을
이 달아오른 포장도로를 식히면서 그 위로 1미터 높이의 물안개를
만들었다 목마른 골짜기가 물을 흠뻑 빨아들였다 골짜기의 물은 곧
넘쳐 들판과 길 옆의 도랑으로 흘러들어갔다 텟물은 목화와 리마콩
을 적시구 줄기 사이에 작은 웅덩이가 생길 때까지 농작물을 거세게
때렸다
핍자기 영원히 멈춘 줄만 알았던 와이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
것은 좌우로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진흙과 곤충들을 닦아냈다 바람
이 거세지자 해리 렉스는 카세트의 볼륨을 한껏 높였다
밀짚모자를 쓴 흑인들이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다리 아래 모여 폭
풍이 기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개울들이 차츰 생명을 되찾
고 있었다 들판과 골짜기를 흘러내려온 물은 작은 개울과 시내를 흔
들고 나서도 지칠 줄 모르게 뻗어내려갔다 혹인들은 소시지와크래
커를 먹으면서 낚시에 대해서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해리 렉스는 배가 고팠다 그는 호수 근처의 트레드웨이 식료품점
에서 맥주와 메기 구이 매운 양념을 한 돼지고기 바비큐를 샀다 그
는 차에 앉으면서 그것들을 제이크에게 던졌다
그들은 세차게 퍼붓는 소낙비 속에서 댐을 건너 들놀이를 하는
잔디밭 위의 작은 가건물 옆에 멈추었다 그리곤 콘크리트로 만든 탁
자에 앉아 비가 호수를 때리는 광경을 쳐다보았다 해리 렉스가 메
기 구이를 먹는 동안 제이크는 맥주를 마셔댔다
칼라한테는 언제 얘기할 거야것
해리 렉스가 맥주캔을 따면서 물었다 양철 지붕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집 얘기 말이야
재기하지 않을 생각이야 오기 전에 다시 지을 거야
이번 주말까지 지을 수 있다는 얘기야尸
그래
정신차려 제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지 정신이 좀 오락가락
하는 모양이야
그럴 만하지 않아 나는 두 주 후면 파산이야 내가 맡은 가장 큰
사건에서 무참하게 패하게 생겼구 고작 9백 달러를 받았어 지나가
던 사람들이 사진이라도 한번 찍어보고 싶어했구 가든 클럽에서 온
부인들이 생활잡지에 실으려고 눈독을 들였던 내 집은 잿더미가 되
었어 아내는 지금 내 곁에 없구 이 소식을 들으면 아마 이혼하자고
그러겠지 틀림없어 난 아내를 잃게 될 거구 딸아이는 자기가 사랑
하는 개가 불타 죽었다는 얘길 들으면 나를 평생 미워할 거야
어디 그뿐인가 내 머리통은 KKK단이 예약해 왔나를 쏠 저격
수도 있지 운이 억수로 없는 군인은 내가 맞을 총알을 척추에 꽃은
채 병원에서 식물인간이 되었고 나는 죽을 때까지 매일 매시간 그
사람 생각으로 보내게 될 거야 내 비서의 남편은 나 때문에 죽었곤
가장 최근에 나와 함께 일을 했던 여자는 나를 위해 일한다는 이유
로 머리칼이 잘리고 뇌진탕을 입었지 배심원들은 나의 전문가 증인
때문에 나를 거짓말쟁이 악당 취급해 나의 의뢰인은 나를 해고하고
싶어하고 그가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 모든 사람이 나를 비난할 거
야 그는 항소를 위해 자유인권협회 타입의 다른 변호사를 고용할 거
구 그들은 내가 무능한 재판 변호사라고 고발할 거야 그들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 나는 배임 행위로 고소당할지도 몰라 나는 아내
딸도 집도 일도 의뢰인도 돈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놈이
될 거야
자네 정신과 치료를 좀 받아야겠군 베이스 박사를 만나봐야겠어
그전에 우선 술이나 한잔 들지
이제 루시엔네 집으로 이사 가서 하루종일 현관에 앉아 있는 일
만 남았어
그럼 자네 사무실은 내가 써도 되겠네
자네는 칼라가 나와 이혼하자고 그럴 것 같아
그러겠지 나는 네 번 이혼했는데 그들은 그때마다 온갖 서류를
들이밀었어
칼라는 아닐 거야 나는 그녀가 랍고 있는 땅까지 숭배해 그녀도
그걸 알고 있지
그녀가 클랜턴으로 오면 땅바닥에서 자게 될 거야
아니 우리는 멋지구 작구 귀엽구 두 배로 넓은 이동주택을 살
거야 완전히 파산할 때까지는 거기서 살다가 낡고 오래된 집을 하
나 구해서 다시 시작할 거야
자네는 아마 새 마누라를 구해서 다시 시작해야 할 거야 칼라가
왜 해변의 예쁜 집을 놔두고 이동주택에 와 살겠어
내가 거기 살기 때문이지
그건 충분한 이유가 안 돼 자네는 술꾼에다가 돈도 한푼 없구
자격도 박탈당한 변호사로 이동주택에 살 텐데 자네는 사람들한테
욕이나 얻어먹을 거고 나랑 루시엔 빼고 다른 친구들은 다 자네를
잊어버릴 거야 칼라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끝났어 제이크
자네 친구이자 이혼전문 변호사로서 나는 자네가 먼저 이혼소송을
걸기를 충고하겠어 당장 내일 시작하라구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
는지 모를 거야
왜 내가 이혼소송을 해야 되지
자네가 안 하면 칼라가 할 테니까 먼저 소송을 걸어서 자네가
칼라를 필요로 할 때 그녀가 곁에 없었다고 그러는 거야
그게 이혼사유란 말이야캔
아니지 하지만 우리는 자네가 미쳤구 일시적으로 정신이상을
일으켰다고 주장할 거야 나한테 맡겨 맥노튼 규칙을 쓰면 되니까
내가 사악한 변호사라는 걸 잊었나
어떻게 잊겠나
제이크는 미지근해진 맥주를 부어 버리고 새 캔을 땄다 텟방울도
가늘어지구 구름 또한 얇아져 갔다 선선한 바람이 호수면 위로 불
어가고 있었다
유죄판결이 내려지겠지 안 그런가 해리 렉스
제이크는 멀리 호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해리 렉스는 식사를 끝내고 입 주위를 닦았다 그는 탁자 위에 누
워 맥주를 들이켰다 바람이 그의 얼굴에 빗방울을 뿌렸다 그는 소
매로 빗방울을 닦아냈다
그래 제이크 자네 의뢰인은 끝났어 배심원들 눈을 보면 알 수
있지 심신장애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구 그들은 애당초 베이스 박
사의 말을 믿을 마음이 없었구 버클리가 베이스를 무장해제시켰을
때 얘긴 끝났지 칼 리는 자기 자신을 돕지 않았어 그는 연습한 대로
아주 진지해 보이더군 동정을 구걸하는 것 같았지 증인치고는 최악
이었어 나는 그가 증언할 때 배심원들을 유심히 살폈지 아무도 그
를 지지하지 않더군 그들은 유죄판결을 내릴 거야 그것도 아주 빨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해 주니 고맙군
나는 자네 친구로서 자네가 빨리 포기하고 항소 준비를 하기를
바라네
차라리 칼 리를 안 만났으면 좋았겠어
후회하긴 너무 늦었어 제이크
샐리가 문에서 제이크를 맞으면서 화제에 대해서 유감이라고 말
했다 루시엔은 위층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말짱한 정신이었다 그
는 제이크에게 의자를 내주면서 앉으라고 했다 책상 위에 법률 서류
들이 한 무더기 널려 있었다
최종 변론서를 쓰느라고 반나절을 보냈네
루시엔은 서류더미를 제이크의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LL칼 리를 구할 방법은 최종 변론에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어 우
리는 지금 소송사에 길이 남을 최종 변론서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지
그게 가장 필요해
걸작을 창조한 것 같군Q
LL사실이야 자네가본 것 중 최고일 거야 자네는 없어진 집에 대
해 생각하면서 일요일 오후 내내 술로 보냈겠지 물론 준비한 것도
하나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자넬 위해 준비했지
저도 당신처럼 정신이 말짱했으면 좋겠군요 루시엔
말짱한 자네보다야 술에 취한 내가 더 낫지
적어도 저는 변호사이기는 하잖아요
루시엔은 서류를 제이크에게 넘겨주었다
L여기 있네 거기에 내가 쓴 최고의 변론서가 들어 있지 루시엔
윌 뱅크스가 자네와 자네 의뢰인을 위해서 사력을 다한 거라구 한자
한자 다 외워서 몽땅 써먹게 아주 훌릉하니까 절대로 고칠 생각은
하지 말아 첨가하지도 말고 그냥 외우기만 하면 되는 거야
LL생각해 볼게요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요 기억하죠
자넨 절대 예상하지 못했을걸
제길 루시엔 날 좀 내버려둬요
LL진정해 제이크 술을 한잔 해야겠군 샐리 샐리
제이크는 걸작품을 소파에 던지구 창문가로 걸어가 뜰을 내다보
았다 루시엔은 샐리에게 위스71와 맥주를 주문했다
밤을 꼬박 샜나
루시엔이 물었다
아니오 열한시부터 열두시까지는 잤어요
몰골이 말이 아니늴 잠을 쫌 자야겠어
정말이지 미칠 지경이에요 잔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아요 다 소
용 없다구요 재판이 빨리 끝나주는 수밖에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요 루시엔 왜 모든 것이 이렇게 잘못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단 말
입니다 맹세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었는데 말이조 클랜턴에서 재
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9 우리는 가장 나쁜 가장 선입견이 강한
배심원들에게 끌려다니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을 증명할 수가 없어
요 우리의 스타 증인들은 완전히 개판이었구 피고인은 최악의 증인
이 되었어요 그리고 배심원은 나를 믿지 않아요 이제 또 무슨 일이
잘못될지 짐작도 못 하겠어요
아직 이길 가능성은 있어 제이크 가끔씩이긴 하지만 기적이 일
어날 수도 있으니까 나는 최종 변론에서 막판 뒤집기를 한 적이 여
러 번 있었네 우리편의 배심원이 한둘뿐이거나 아예 없었을 경우에
도 말이야 그들에게 맡기고 말을 하게 단 한 사람만 있으면 결론을
유보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
내가 그들을 울려야 합니까
가능하다면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지 그렇지만 나는 배심원석
에서 눈물이 쏟아지리라 믿네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지
샐리가 술을 내왔구 두 사람은 샐리를 따라 아래층 현관으로 갔
다 어둠이 깔리자 샐리는 두 사람에게 샌드위치와 감자튀김을 갖다
주었다 열시에 제이크는 방으로 돌아와 칼라와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집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칼라의 목소리가 수화기 저편
에서 들려왔다 머지않아 그녀에게 그녀의 집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
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위경련이 일어났다 제이크는
전화를 끊고 칼라가 아침신문을 보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월요일 아침 클랜턴은 다시 정상을 되찾았다 바리케이드가 광장
주위에 쳐졌곤 군인들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몰려나왔다 그들은
느슨하게 무리지어 움직이면서 양쪽에 자리한 흑인과 KKK단 무리
를 감시하고 있었다 양쪽 시위대들은 하루 쉬는 사이에 다시 기력을
회복했는지 여덟시 삼십분쯤에는 목소리가 최고조에 달했다 베이
스 박사가 꽁무니를 빼고 도망간 얘기는 중요한 화젯거리였고 KKK
단들은 이미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애덤스 가에서
한 점을 더 딴 상태였으므로 사기가 충천할 수밖에 없었다
이흘시에 누스 판사가 검사와 변호사를 판사실로 불렀다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고 불렀소
그는 제이크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내 엉덩이나 한으시주 판시럼
제이크가 낮은 소리루 그러나 모두가 들을 만큼 충분하게 중얼거
렸다 검사가 흠칫 놀랐구 페이트는 헛기침을 했다
누스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금 뭐라고 그랬습니까 브리건스 씨
재 엉덩이는 무사하주 판사님이라고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나도 그렇게 들었소 그런데 당신 서기인 로 아크
양은 괜찮소
괜찮아질 겁니다
KKK단 짓입니까
예 판사님 저를 죽이려고 한 그 KKK단 짓입니다 온 마을을 십
자가로 불태우고 다니는 바로 그놈들이죠 저기 앉아 있는 배심원들
을 협박한 놈들도 그놈들이겠죠 예 바로 똑같은 놈들 짓입니다
누스는 안경을 벗어 들었다
증거라도 있土
말씀하시는 것은 저더러 KKK단들이 직접 쓰고 사인해서 공증
까지 마친 자백서라도 받아오라는 뜻입니까 그건 안 되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좀 비협조적이라서요
증명할 수 없다면 브리건스 씨 더이상 거내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재판장님
제이크는 먼저 판사실을 나오면서 문을 쾅 닫았다 조금 있다가
페이트가 법정에 들어섰구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스
는 배심원들에게 다시 보게 되어 반갑다며 재판이 곧 끝날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누스를 보고 웃지 않았다 템플 모텔에서 갇
혀 보낸 주말이 지겹고 따분했으니까
검사측 신청할 증인이 있습니까
누스 판사가 물었다
예 한 명 있습니다 재판장님
로드히버 박사가 증인실에서 나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증인석에
앉은 다음 배심원들을 향해서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히버
박사는 진짜 정신과 의사처럼 보였다 검은 양복을 입었구 부츠 따
위는 신지 않았다
버클리는 연단에 나와서 배심원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증인이 윌버트 로드히버 박사십니까
버클리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마치 배심원들에게 여러분
은 이제야말로 진짜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라고 말하
는 것 같았다
예 그렇습니다
버클리는 로드히버 박사의 학력과 전문 경력에 대해서 무수한 질
문을 퍼부었다 로드히버 박사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자신있고 신념
에 가득 찬 태도로 철저히 준비된 답변을 내놓았다 증인석에 많이
앉아 본 사람다운 태도였다 그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정신과 의사로
서의 훈련과정과 전문의로서의 풍부한 경험 현재 맡고 있는 주립정
신병원 진료부장으로서 활동 내용 등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버클리는 그에게 정신의학 분야에서 저술한 책이 있느냐고 물었고
로드히버는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삼십분 동안 저
술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지원을 받
아 연구를 수행했고 베이스 박사가 회원으로 있는 협회의 회원이었
다 이름을 대는 협회도 베이스보다 많았을 뿐 아니라 인간심리에
관계되는 모든 방면에서 다양한 학위를 갖고 있었다 아주 품위있구
명석해 보였다
버클리는 로드히버 박사를 진짜 전문가라고 불렀구 제이크는 할
말이 없었다
버클리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로드히버 박사님 언제 칼 리 헤일리 씨를 처음으로 검사하셨습
니까
전문가는 노트를 살펴보면서 대답했다
6월 19일입니다
어디서 하셨습니까
위트필드에 있는 제 사무실에서 했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렸습니까
두 시간 정도입니다
검사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콥 씨와 윌러드 씨를 사살할 당시와 현재의 정신상태를 확인하
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진료기록을 보셨습니까
병원협회에서 대부분의 기록을 받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걸 칼
리 헤일리 씨와 함께 검토했습니다
그의 병력은 어땠습니까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베트남전에 대해서 많이 얘기했지만 중요
한 건 아니었습니다
베트남전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를 나뒀습니까
그럼요 칼 리 헤일리 씨는 그 얘기를 하고 싶어핼습니다 가능하
면 더 많이 얘기하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첫번째 검사에서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습니까
아주 다양한 주제들을 다뤘습니다 어린시절과 가족관계 교육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진 일 등 거의 모든 얘기를 했습니다
딸의 강간사건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얘기했습니까
물론입니다 아주 자세하게 얘기했죠 그에게는 그 얘기를 하는
게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만약 제 딸이 그랬다면 저 역시 말을 꺼내
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그가 콥과 윌러드를 살해하기에 이른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습니까
예 좨 오래 얘기를 나뒀습니다 저는 그가 당시 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자세히 알고 기억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
처음에는 별 얘기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편하게 입을 열기 시
작했습니다 그는 살인이 있기 사흘 전에 법원을 뒤지면서 범햄장소
를 물색한 경위를 말해 주었습니다
총격에 대해서는 어땠습니까
실제 살인을 한 시점의 기억은 별로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기억
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정말 그랬는지는 의심스러웠습니다
제이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증인은 사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추측을 말할 수
는 없습니다
인정합니다 버클리 씨 계속하십시오
그의 기분이나 태도 말투에서 어떤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로드히버 박사는 다리를 꼬면서 몸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그리고
는 눈살을 약간 찌푸리면서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칼 리 헤일리 씨는 저를 못 믿는 것 같았구 그래서인지
제 눈을 똑바로 보지 않았습니다 질문에도 짧게 대답했죠 그는 병
원에 있는 동안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과 심지어는 수갑까지 차야 한
다는 사실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말도 잘하고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로했습니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답변을 거부한 적도 있지만 일단 얘기를 하겠다
고 마음먹으면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언제 어디서였습니까
다음날 같은 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날의 기분이나 태도는 어땠습니까
전날과 비슷했습니다 처음에는 냉담하다가 나중에는 얘기를 잘
했죠 전날과 거의 같은 내용을 얘기했습니다
얼마 동안 했습니까
네 시간쫌 됩니다
버클리는 서류를 뒤지면서 무스그로브에게 뭔가 속삭였다
자 로드히버 박사님 6월 19일과 20일 양일간에 걸쳐 칼 리 헤일
리 씨를 검사한 결과 당시 피고인의 정신상태에 대한 정신과 전문가
로서의 견해를 결정하셨습니까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6월 19일과 20일의 칼 리 헤일리 씨는 전혀 이상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정상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틀간에 걸친 검사 결과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월러
드를 쏠 당시의 칼 리 헤일리의 정신상태에 관한 전문가로서의 견해
도 결정하셨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당시 칼 리 헤일리 씨의 정신상태는 정상인과 전혀 다르지 않았
습니다 어떤 정신적 결함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근거를 말씀해 주십시오
로드히버는 배심원들에게 몸을 돌리곤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 범죄에는 예모輸料가 있었다는 것을 유심하게 살펴봐
야 합니다 예모란 반드시 동기를 내포하기 마련이구 헤일리 씨에게
는 충분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사건 당시 그의 정신상태는 그러한 동
기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헤일리 씨는 자기 행위에 대한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다
고 볼 수 있습니다
박사넘은 범죄자의 처벌가능성에 대한 맥노튼 규칙을 잘 아십니

물론입니다
전에 증인으로 참석하셨던 WT베이스 박사께서는 칼 리 헤일
리 씨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없었구 자기 행위의 성격과 결
과에 대해서도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고 증언한 사실을 아십니까
예 알고 있습니다
그 증언에 동의하십니까
아닙니다 그건 터무니없는 얘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증언
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칼 리 헤일리 씨는 자신의 입으로 범행을 계
획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스스로 그것을 인정했구 범행 당시 그의
정신상태는 그의 범행 계획을 준비하는 데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
습니다 이것은 모든 법률서적과 의학서적에서 예모라고 부르는 것
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살인을 계획했고 또 자기 스스로가 계획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행위의 성격과 내용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건 모순된 말입니다
제이크가 듣기에도 그 말은 모순처럼 들렸다 로드히버의 말이 법
정에 울려퍼지면서 범행의 모순도 함께 퍼져나가근 것 같았다 로드
히버의 증언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이크는 베이스 박
사를 떠올리며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혹인들 사이에 앉아 있는 루시엔도 로드히버 박사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다 옳다고 느꼈다 베이스와 비교해 보면 주의 증인은 정말
믿음직스러웠다 루시엔은 애써 배심원석을 무시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만 돌려 힐끗 배심원석을 쳐다보기는 했다 배
심원석에서 클라이드 시스코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자기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루시엔은 그와 눈을 마주치
지 않았다 연락책이 윌요일 아침에 다시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래
서 지금 그가 확인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윙크라도 한번
하면 그것으로 거래는 성립되고 지불은 나줄에 판결이 끝난 다음 하
면 될 일이었다 시스코는 그 규칙을 알았기 때문에 루시엔의 표정만
살피고 있었지만 아무런 신호가 오지 않았다 루시엔은 제이크와 먼
저 얘기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박시럼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들과 검사결과에 근거해서 피고인
이 빌리 레이 콥과 피트 윌러두 드웨인 루니 보안관 대리를 쏠 때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능력이 있었는가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견해
를 결정하셨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요
그의 정신상태는 정상이었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러면 역시 그 검사의 결과료 당시 헤일리 씨가 그 행위의 성격
과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견
해도 결정하셨습니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틀림없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버클리는 서류철을 접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이상입니다
반대심문 있습니까 브리건스 씨
누스 판사가 물었다
예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십오분 동안 휴정한 후에 듣겠습니다
제이크는 칼 리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구 법정을 빠져나와 도서
관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해리 렉스가 웃으면서 제이크를 기다
리고 있었다
안심해 제이크 내가 노스 캐롤라이나에 있는 모든 신문사에 다
전화를 걸어봤는데 자네 집에 관한 기사는 하나도 없었어 로 아크
에 대한 기사도 전혀 없고 랠레이 신문사가 재판에 관한 기사를 짤
막하게 실었는데 아주 일반적인 얘기들밖에 없어 결국 칼라는 모르
고 있는 거지 그녀에겐 그 예쁜 문화재가 아직 건재한 거야 어때
굉장하지않아
잘췄네 다행이야 고마워 해리
천만에 그런데 제이크 나도 이런 얘기는 하기 싫은데 말이야
무슨 얘긴데 그래
내가 버클리를 싫어한다는 건 자네도 익히 알고 있잖아 자네보
다 더 놈을 싫어하지 하지만 무스그로브하고는 사이가 괜찮거든 그
사람하고는 얘기가 통해 간밤에 곰곰 생각한 건데 그러니까 무스그
로브를 통해서 저쪽과 타협을 할 수도 있지 않냐는 거지 그래서 형
량을 좀 줄여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안 돼
들어봐 제이크 해 될 건 없잖아 전혀 없다고 유죄를 받아도가
스실로만 가지 않는다면 자네가 그 사람 생명을 구하는 게 되잖아
안 된다니까
제이자네 의뢰인은 48시간 후면 사형선고를 받을 거야 그걸
자네가 모른다면 자네가 눈이 먼 거네 이 바보 같은 친구야
버클리가 왜 형량을 깎겠나 이미 다 잡은 고긴데
물론 안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일단 내가 시도하게 해줘
안 돼 해리 렉그 얘긴 잊어버려
휴식시간이 끝나고 로드히버가 다시 증인석에 앉았다 제이크는
연단에 서서 증인을 내려다보았다 법률가로서 일을 하는 동안 제이
크는 단 한 번도 법정 안에서건 밖에서건 전문가와 논쟁을 해서 이
겨본 적이 없었다 그는 논쟁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일방적
인 질문만으로 결론을 내려야 했다
LL로드히버 박사님 정신의학은 인간의 정신을 연구하는 학문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주 정확한 학문일 수는 없는 거죠
예 맞습니다
L그래서 박사님이 환자를 진단하고 어떤 결론을 내려도 다른 정
신과 의사는 다른 결론을 내릴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L그럴 수도 있죠 가능한 일입니다
LL그럼 열 사람이 한 사람을 진단했을 때 열 가지 의견이 나을 수
도 있겠네요
L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L1가능성이 적더라도 그런 경우가 있을 수는 있겠죠
L있겠죠 법적인 판결과 마찬가지겠죠
L그러나 우리는 지금 법적인 판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은 아닙니다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LL그렇다면 대개의 경우에 정신과 의사가 한 인간의 정신에 관해서
뭐가 잘못됐는지를 정확히 말하는 것은 욜가능하다는 얘기 아니습
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의 의견이 항상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

그렇습니다
L자 박사넘은 누구를 위해서 일하십니까
L미시시피 주정부 소속입니다
얼마 동안이나 일하셨죠
11년 동안입니다
칼 리 헤일리를 기소한 건 누굽니까
미시시피 주정부입니다
11년 동안 주정부를 위해 일하시면서 심신장애를 주장하는 재판
에 몇 번 정도 나와서 증언하셨습니까
로드히버 박사는 속으로 숫자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
이게 마혼세 번쨀니다
제이크는 서류를 들여다보고는 능글맞은 웃음으로 반문했다
정확하게 마혼여섯 번째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죠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법정 안이 조용해졌다 버클리와 무스그로브는 서류를 만지작거리
면서 증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니까 주정부를 위해 마흔여섯 번의 정신감정을 하신 겁니

그렇다고 봐야죠
그리고 마흔여섯 번 모두 피고인이 정상이라고 증언을 하셨습니
다 맞습니까 박시럼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사넘은 마흔여섯 번 법
정에 나와서 증언을 했구 그때마다 모든 피고인들의 정신상태는 법
률적으로 정상이었습니다 그렇주 박사럼
로드히버는 약간 머뭇거렸다 그의 얼굴에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
력했다
확실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박사님 한번이라도 정신상태에 이상이 있었던 피고인을 보신 적
이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한테 그 피고인의 이름과 어디서 열렸던 재
판이었는가를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버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의 단추를 채웠다
재판장님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습니다 로드히버 박사
는 자신이 증언했던 사건의 피고인 이름과 재판 장소를 다 기억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각합니다 증인은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로드히버 박사는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제이
크는 배심원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들은 모두 정신을 바짝 차
리고 박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억이 안 납니다
로드히버 박사가 입을 열었다
제이크는 두꺼운 서류를 들고 증인 앞에서 흔들었다
박사님께서 기억을 못 하시는 이유는 단 한번도 피고인에게 유리
한 증언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비정상이라는 판결을 내렸던 피고인을 단 한명도 기억
하실 수 없는 이유가 뭡니까
분명히 있기는 있었습니다
예 아니면 아니오로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사건이라도 있
었습니까
로드히버 박사는 지방검사를 잠간 동안 바라보았다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번도 없었
던 것 같습니다
제이크는 피고인석으로 가서 두꺼운 서류뭉치를 집어들었다
로드히버 박사님 박사님은 1975년 12월 맥머피 군에서 대니 부
커라는 피고인에 관한 재판에 참석하셔서 증언을 하신 적이 있습니
다 아주 잔인하게 두 사람을 살해한 사건이었죠
예 기억합니다
그때 박사님은 피고인이 정상이라고 증언하셨죠
맞습니다
그런데 몇 명의 정신과 의사는 박사럼과 다른 증언을 했습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의사가 몇 명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은 노엘 매클래키와 맥가이어 루 왓슨이었습니
다 모두 의학박사들이죠 기억나십니까
그 사람들 모두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물론 다 저명한 사람들이었고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부커 씨를 검사하고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라
고 진술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정상이라고 증언하시지 않았습니까
박시텀의 의견에 찬성하는 의사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킬서 3대 1이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내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알겠습니다 배심원들의 판결은 어떻게 났습니까
심신장애자로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드히버 박사님 박사님은 위트필드
병원의 진료부장이시죠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위트필드 병원에 있는 환자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또
는 간접적으로 책임을 지고 계신 분이죠
직접적으로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모든 환자를 다 직접 진료하
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의사들을 관리하는 것이 제 책임이니까요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지금 대니 부커 씨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
니까
로드히버는 그순간 당혹스런 표정으로 버클리를 쳐다보았지만 곧
배심원들을 의식하고는 아주 여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대답
을 망설였다 그리고 그 망설임은 자꾸 길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은 위트필드 병원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이크는 법정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 대답이 예라는 것을 알
리듯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박사럼 책임하에 있겠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한 진단은 어떻습니까 박사님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많은 환자를 다루니까
편집증적 정신분열증 아닙니까
그럴 겁니다 예
제이크는 뒷걸음을 쳐서 방청석과 분리되는 난간에 기대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박사님 배심원들을 위해서 이 문제를 요약하고 넘어가겠습니다
1975년 박사님께서는 대니 부커가 정신적으로 정상이라고 증언하셨
고 범행을 저지를 때 그 행위의 성격과 결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
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배심원들은 그가 심신장애라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루 대니 부커는 박시럼이 책임
자로 있는 병원에서 편집증적 정신분열증 환자로 분류되어 지금까
지 병원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로드히버 박사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어색한 웃음이 배심원들에게
맞다는 대답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
제이크는 다른 서류를 꺼내서 쳐다보는 척했다
1977년 5월 듀프리 군에서 애덤 코치라는 사람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신 적이 있으시죠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강간사건이었죠
그때도 주정부측 중인으로 증언하셨죠
맞습니다
박사님은 배심원들에게 피고인이 법적으로 심신장애자가 아니라
고 얘기하셨죠
제 증언은 그랬습니다
그때는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박사넘과 달리 피고인이 심신장애
자라고 진단을 내렸습니까
서너 명 정도입니다
꿸릭스 페리 진 슈메이투 호브니 위커 같은 이름을 기억히십니

모두 자격있는 정신과 의사들이죠
그리고 모두 코치 씨의 증인이었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모두 그 사람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맞습니

예 맞습니다
그러니까 박사님만 그 사람이 정상이라는 진단을 내린 겁니까
제 기억으로는 그렇습니다
배심원들은 어떻게 판결을 내렸습니까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역시 심신장애자라는 이유였죠
그렇습니다
코치 씨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위트필드 병원에 있습니다
거기 얼마 동안 있었죠
재판이 끝나고부터 줄곧 있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박사님 병원에서는 완전히 정상인 사람을 환자
로 취급해서는 몇 년씩이나 붙들어 놓는다는 얘깁니까
로드히버 박사는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다시 주민을 위해 일하는 지방검사를 바라보았다 이
제 이런 질문을 좀 그만하게 해달라는 눈빛이었다
제이크는 더 많은 서류들을 집어들었다
1979년 5월에는 클레번 군에서 버디 우드댈의 재판에 참석하셨

예 기억합니다
살인사건이었습니다 그렇죠
박시럼은 정신의학의 전문가로서 배심원들에게 그 사람이 정상
이라는 증언을 하셨죠
그랬습니다
그때 몇 명의 정신과 의사가 박시덤의 의견에 맞서서 피고인이
정상이 아니라고 진단을 내렸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다섯 명이었습니다 브리건스 씨
맞습니다 그때는 5대 1이었습니다 배심원들의 판결을 기억하
십니까
분노와 짜증의 기색이 증인의 얼굴에서 피어올랐다 항상 정확한
답만을 얘기하는 나이 든 교수로서 희끗희끗한 노인으로서 로드히
버 박사의 여유만만한 모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 심신장애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박사님 박사넘께서는 이런 사태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다
섯 명의 전문가들이 당신 의견에 반대했고 배심원들도 반대했습니

배심원들은 믿을 게 못 됩니다
로드히버 박사는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는 기겁을 했다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가 배심원들을 쳐다보면서 어색한게 웃었다
제이크는 교활찬 웃음을 지으면서 로드히버 박사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서 도저히 증인의 대답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는 뜸을 들였다
계속 진행해 주십시오 브리건스 씨
누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이크는 여전히 로드히버 박사를 노려보면서 책상에 흩어져 있
는 서류를 주워 모았다
본 증인한테는 충분히 얘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재판장림
재직접 심문 있습니까 검사
없습니다
누스는 배심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배심원 여러분 이제 재판이 거의 끝난 것 같습니다 증인은 더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검사와 변호사를 만나서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듣구 양측의 최종 변론을 들으시면 됩니다 재판은
두시에 다시 시작할 것이며 두 시간 정도 걸릴 것입니다 그러면 네
시쯤엔 재판이 모두 끝나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섯시까지 배
심원들끼리 토론 시간을 가지시면 됩니다 지금이 열한시니까 두시
까지 휴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사와 변호사는 제 방으로 와주시기
바람니다
칼 리는 제이크 쪽으로 똔을 기울이면서 지난 토요일 이후로 처음
변호사에게 말을 걸었다
제이크 그놈을 작살냈군요 아주 잘했어요
최종 변론 때까지는 기다려야 알아9
제이크는 해리 렉스를 피해서 캐러웨이로 차를 몰았다 그가 어린
시절에 살던 집은 캐러웨이 시내에 있는 옛날집이었다 떡갈나무와
단풍나무 느릅나무로 둘러싸인 집은 한낮의 열기도 접근을 못할 만
큼 시원하고 상쾌했다 나무들을 지나 뒤뜰로 들어서면 약간 놨어진
들판이 2백 미터 정도 뻗어가다가 작은 동산으로 이어졌다 제이크
는 이곳에서 첫걸음마를 멨구 자전거를 배웠고 야구와 축구를 익혔
다 들판 옆을 호위하고 있는 떡갈나무 그늘에는 개 세 마리와 너구
리 한 마리 토끼 한 마리와 오리들을 묻었다 54년형 뷰익차의 낡은
타이어 하나가 그 작은 묘지 주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 집은 두 달째 비어 있었다 이웃에 사는 한 꼬마가 잔디를 깎고
잡초를 잘라주었으며 제이크도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정원손질을
거들었다 제이크의 부모님은 지금 캐나다의 어디쯤에서 캠프를 치
고 있을 터였다 연중행사와도 같은 캠프 제이크는 그들과 합께 거
기에 있고 싶었다
그는 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갔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야구
팀 사진과 트로피 야구모자 피트 로스와 아키 매닝 행크 아론의 포
스터가 벽을 가득 메웠구 옷장 문 위엔 야구 글러브가 줄줄이 꿰어
져 걸려 있었다 모자와 유니폼은 경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한 달에 한 번씨 아무도 입지 않는 모자와 유니폼
을 빨았다 그리고는 생각날 때마다 빈 방에 올라가서 스크랩북을 뒤
적이며 부질없는 눈물을 흘리셨다
제이크는 온갖 동물들과 엄마 오리의 그림이 걸린 한나의 방을 생
각했다 목에서 뭔가가 울컥 치밀어올랐다
제이크는 슬그머니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개 세 마리를 묻은
하얀 십자가 근처 빈 타이어에서 작은 제이크가 맴을 돌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장례식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버지는 개를 다시
사 주시겠다고 했다 한나와 한나가 사랑하던 개 생각을 하다가 제이
크는 눈물에 젖었다
제이는 이제 턱없이 작아져 버린 침대에 신발을 벗고 드러누웠
다 천장에 미식축구 헬멧이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캐러웨이 무스탕
슨 8위 제이크는 다섯 게임에서 일곱 번의 터치다운을 따냈다 그
장면들은 모두 아래충 책장에 비디오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뱃속이 꾸룩거리떠 아파왔다
제이크는 경대 위에 자신의 최종 변론서를 올려놓았다 루시엔의
원고가 아닌 자신의 원고 그리고는 거울을 통해 오래전의 제이크와
지금의 제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이크가 배심원들 앞에서 변론을 시작했다 그는 먼저 자신의 가
장 큰 약점이 되어 버린 베이스 박사 얘기를 꺼내고는 정중히 사과
했다
변호사가 법정에 들어가 낯선 배심원들을 만나 그 앞에 서면 사
실 내세을 건 신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뢰에 금이 가는 짓을 했
다면 그것은 곧 의뢰인에게 큰 손해를 입히는 것입니다
제이크는 이제까지 어떤 재판에서도 중죄를 범한 증인을 법정에
세운 적이 없었다는 점을 믿어달라고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베이스 박사의 전과에 대해서는 맹세코 전혀 몰랐었다고 말
했다 정신과 의사는 얼마든지 있는데 내가 왜 약점을 가진 사람을
굳이 썼겠냐며 자신은 몰랐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
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는 말로 사과했다
그렇지만 베이스 박사가 30년 전에 택사스에서 미성년자와 성관
계를 가졌다고 해서 그의 증언이 거짓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사
실이 있다고 해서 전문가로서의 그의 견해를 의심할 수는 없는 일입
니다 제발 베이스 씨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을 보지 마시고 그의 환자인 칼 리 헤일리 씨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도 의사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으니까요
그리고 베이스 씨에 대해서는 또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건 버를리 검사가 그를 발기발기 資어놓으면서도 은근히 말하지
않았던 사실입니다 30년 전 베이스 씨와 성관계를 맺었던 소녀는
당시 열일곱 살이었습니다 그 소녀는 재판 직후에 베이스 씨의 아내
가 되었고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그리고는 두 번째 아이를 임신
한 채로 열차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그건 증거가 없는 얘깁
니 다
버클리가 소리를 질렀다
인정합니다 브리건스 씨 증명된 사실만을 말씀해 주시기 바람
니다 배심원들께서는 마지막 말은 고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이크는 버클리와 누스의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고통에 찬 시
선으로 배심원들만 바라보았다
시끌벅적한 두 사람의 소리가 끝나자 제이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로드히버 박사는 어땠습니까 저는 그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했는지 안 했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 아닙니까 베이스 박사와
로드히버 박사의 과거를 가지고 티격태격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들
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했든지 그것은 이 재판과 전혀 상관이 없기 때
문입니다 중요한 점은 주정부가 내세운 로드히버 박사는 편견이 있
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분은 수년 동안 무수히 많은 정신과 환자
들을 진료해 왔지만 범죄와 관련된 환자에 대해서는 절대로 정신적
인 결합이나 이상이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점
에서 그의 증언은 유심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배심원들은 청산유수로 흘러가는 제이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버클리처럼 설교조로 말하지도 않았고 조
용하면서도 진지해 보였다 다소 피곤하고 힘겨워 보이기는 했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루시엔은 술 한잔 들이키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팔짱을 낀 채료
시스코를 제외한 모든 배심원들을 보고 있었다
제이크는 루시엔이 써준 최종 변론서를 읽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루시엔은 그 원고가 아주 홀릉하다고 느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저의 미숙함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저는 버클리 검사처
럼 많은 재판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숙하고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모자란다고 해서 칼 리 헤일리 씨까지 모자란
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닙니다 버클리
검사는 살인사건을 매달 다루지만 저는 계절에 한 번 정도밖에는 다
룰 기회가 없었습니다 베이스 박사에 대해서는 제가 실수를 한 것입
니다 그리고 다른 면에서도 실수가 많았습니다 여러분에게 그점에
대해 머리 숙여 사치드립니다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에게도 딸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네 살이고 곧 다섯 살이 되죠
저에게 모든 세계의 중심은 그애입니다 그애는 특별하구 또 작고
어립니다 그리고 그애를 보호할 책임은 아버지인 제게 있습니다 딸
과 아버지 사이에는 특별한 연대감이 있죠 말로 설밍하기는 어렴지
만 뭔가 특별한 기운이 흐르고 있습니다 칼 리 헤일리 씨에게도 딸
이 있습니다 이름은 토냐라고 하죠
제이크는 맨 앞줄에 엄마와 오빠들과 함께 앉아 있는 소녀를 가리
켰다
이제 열 살이 된 작고 귀여운 꼬마 아가씨입니다 그런데 저 아
이는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 절대로 예쁜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의 있습니다
버클리가 비교적 조용한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했다
인정합니다
누스도 목소리가 작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이크는 두 사람이 어떤 쪽으로 흐르건 간에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강간에 관한 얘기를 한동안 해나갔다 그는 강간이 왜 살인보다
더 무서운 죄인가를 말했다
살인의 경우 피해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기에
게 일어난 일이 다시 일어날 위험도 없고 그 일에 대한 기억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강간의 피해자는 한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되살아나는 끔찍한 기억들을 달래기 위해 애써야 하고 주위
의 눈총도 감당해야 하죠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그 강간범이 아직
살아 있구 언젠가 교도소에서 나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피해자는 편안히 잠들지 못하며 매일 매시간 강간의 쓰라
린 기억을 떠올리며 수천 가지도 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
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잔인한 것이 어린아이에 대한 폭력적인 강간입
리다 성인이라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알고 있고 이해할 능
력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어떻습니까 그것도 열 살밖에
안 된 아이라면요 여러분이 그 아이의 부모라고 생각해 보십시요
만약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왜 강간을 당해야 했는지를
설명해야 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아이가 왜 아이를 낳을 수 없
는지 설명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의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마지막 말은 고려하지 말아 주십시p
그러나 제이크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열 살난 딸이 강간을 당했습니
다 여러분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으로 M16을 잘 다루구
딸이 병원에 누워 생명을 향한 가쁜 호흡을 뿜어가는 사이에 여러분
의 손에 그 총이 어떻게 해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강간범들은 체포
되었고 엿새 후 그들이 법정에서 나갈 때 바로 몇 미터 앞에서 마주
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손에는 M16이 들려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버클리 검사는 본인이 그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지 이미 대답
을 해주었습니다 그는 딸을 위해 눈물을 흘리겠지마는 법 체계가 범
인을 마땅한 절차에 따라 처리해 주기를 바라겠다고 했습니다 강간
범들이 공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 파치먼 교도소로 보내지구 절대로
가석방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버클리
검사가 하고자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친절함과 동정심 이해심과
넓은 아량에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정말 분별있
는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요 제 손에 M16이 들려 있다면 저는
그 녀석들의 대가리를 날려 버렸을 겁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그게
바로 정의입니다
제이크는 잠시 쉬면서 물을 마시고는 화제를 바꾸었다 고통스럽
고 슬퍼 보이던 표정은 어느새 당당하고 품위있는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콥과 윌러드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요 바로 그 사람들 때문에
이 소동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주정부에서는 지금 그들의 생명에 대
한 정의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어머니말고는 어느 누
가 그들의 목숨을 아까워하겠습니까 어린이 강간범에 마약 밀매자
인 그들을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어느 사회가 필요로 하겠습니까
그들이 없어짐으로 해서 포드 군은 더 안전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들
이 없어짐으로써 더 많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커나갈 수 있게 된
것 아닙니까 모든 부모들이 칼 리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칼 리는
메달이나 아니면 최소한 박수라도 받아야 합니다 그는 영웅입니다
이 말은 루니 보안관 대리가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칼 리에
게 트로피를 안겨주고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제이크는 루니 보안관 대리에 대한 얘기를 좀더 했다
루니 보안관 대리도 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칼 리 헤일
리 때문에 한쪽 다리를 잃게 되었죠 어느 누구도 그런 시련을 겪을
이유가 없으며 피를 흘려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루니 보안
관 대리는 그런 시련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칼 리가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루니 보안관 대리가 칼 리를 용서한 것
처럼 우리도 칼 리를 용서해야 합니다 루니 보안관 대리의 소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제이크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그는 거의 끝나간다고
말하고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하겠다고 했다
이런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소녀는 온몸을 두들겨 맞아 피투
성이가 되어 두 다리가 벌려진 채 나무에 묶여 있었습니다 소녀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숲 속을 바라보았구 숲 속에서 누군가가 자기글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물가물한 의4속에서 자기를 구
하러 오는 아버지 자기 지광 가장 필요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소녀는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며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모습은 무참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때 그애가 아버지를
필요로 했던 것처럼 지금도 까버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제발 그
애한테서 아버지를 빼앗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앞줄에 앉아 간절하
게 기도하며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어린 것을 위해서 아버지를 돌
려주시기 바랍니다
법정 안은 쥐죽은듯이 조용해졌구 제이크는 피고인 옆에 앉았다
그는 배심원들을 힐끗 돌아보았다 완다 워맥이 눈물을 찍어내고 있
었다 이틀 만에 처음으로 한가닥 희망을 보게 된 날이었다
네시가 되자 누스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배
심원들에게 배심장을 뽑아 바쁘게 움직여달라고 부탁했다 여섯시나
일곱시까지 의논을 하구 만약 오늘 내로 판결이 안 난다면 화요일
아침 아홉시에 다시 재판을 열겠다고 했다 누스는 일단 여섯시까지
휴정을 선언하고 검사와 변호사에게는 법원에서 멀리 벗어나지 말
것과 혹 나갈 일이 있다면 서기에게 전화번호를 남겨줄 것을 명령했

방청객들은 자리에 앉은 채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구 칼 리는
앞줄에 가족들과 함께 앉기를 허락받았다 버클리와 무스그로브가
판사실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해리 렉스와 루시엔 제이크
는 사무실로 가서 술잔을 들이켰다 아무도 판결이 일찍 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정리가 배심원실 문을 잠갔구 배심원들은 자리에 앉았다 배리 애
커가 박수와 함께 배심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배심원 수칙을 받아
서 구석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배심원들은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탁자 주위에 둘러앉았다 다들 겁먹은 표정이었다
우선 대충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비공식적인 투표를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이의 있으신 분 있습니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배리 애커는 열두 명의 명단을
집어들었다
유죄 무죄 미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주시기 바람니다 물론
기권을 하셔도 됩니다 레바 베츠 씨
미결입니다
버니스 툴 씨
유죄입니다
캐를 코먼 씨
유죄 입니다
도나 로 펙 씨
미결입니다
수 윌리엄스 씨
기권입니다
조 앤 게이츠 씨
유죄입니다
리타 매 플렁크 씨
유죄입니다
프랜시스 맥고왠 씨
유죄 입니다
완다 워맥 씨
미결입니다
율라 델 예이츠 씨
아직은 미결입니다 그런데 얘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론 곧 얘기할 시간이 있을 겁니다 클라이드 시스코 씨
미 결입니다
자 이렇게 열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 배리 애커는 무
죄입니다
배리 애커는 잠간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LL다섯 분이 유죄고 다섯 분이 미결 한 분은 기권입니다 그리고
무죄가 하납니다 지금부터 많은 토의가 필요할 것 같군요
배심원들은 사진 지문 탄도 보고서 등 제출된 증거물들을 훈어보
기 시작했다 여섯시가 되자 그들은 누스 판사에게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들은 배가 고팠기 때문에 모텔로 돌아가
기를 바랐다 누스는 화요일 아침까지 휴정을 선언했다
두 사람은 오래도록 현관에 앉아 어둠이 깔리는 거리와 모기들이
들끓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은 거의 오가지 않았다 뜨거운
밤의 열기가 다시 밀려오고 있었다 끈끈한 바람이 살갗과 셔츠를 흥
건하게 적셨구 뜨거운 여름밤의 적막이 현관 앞 잔디밭에서 피어을
랐다 샐리가 음식 준비를 하다고 했으나 루시엔은 거절하고 위스
키나 한잔 달라고 했다 제이크 역시 식욕이 없었구 위장을 가득 채
운 맥주가 허기를 잊게 해주고 있었다 편안하고 아늑한 어둠이 더욱
짙어지자 네스비트가 순찰차에서 내려 현관을 걸어 올라와 집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그는 차가운 맥주를 손에 들고 현관문을 나오더니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 차로 돌아갔다
샐리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내밀고 정말로 식사를 안 하겠냐고 물
었다 둘 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이오늘 오후에 전화를 받았네 클라이드 시스코가 2만5천
달러를 내면 미결정 심리 5만 달러를 내면 무죄로 해주겠다더군
제이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다고 하기 전에 내 말을 좀 들어봐 시스코가 무죄를 보장하지
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미결정 심리는 보장할 수 있어 한 사람만 끝
까지 반대표를 던져도 판결은 무효가 되니까 2만5천 달러면 되는
일이야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 하지만 그쯤은 내가 지불할 수 있어
내가 돈을 빌려줄 테니까 자네는 천천히 두고두고 갚으라고 설사
못 갚는데도 상관하지 않겠어 나야 통장에 돈이 많은 사람이니까
돈은 나한테 아무것도 아냐 내가 자네였다면 얼른 결정을 내렸을 거

미쳤군요 루시엔
그래 미쳤어 하지만 짜네도 그리 상태가 좋은 건 아니잖아 재판
이 자네를 미치게 만들 거야 자 재판이 지금 자네를 어떻게 만들었
는지 한번 봐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정상적인 생활은 고사하
고 집까지 없잖아 남은 건 술마실 일뿐이야
여전히 양심도 남아 있죠
잘났군 그래 나는 그따윈 없어 양심도 도덕도 의식도 버렸지
그렇지만 나는 이겼어 이 바닥에서 나만큼 많이 이겨본 사람은 없을
거네 자네도 알잖아
그건 타락하고 부패한 거예a루시엔
그럼 자넨 버클리는 타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그 사람 역시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고 매수를 하구 돈을 받아먹고 재판에 이
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아 우스꽝스러운 양심이나 규
칙 여론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다구 도덕과 양심 홍 집어치운 지
오래지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뿐0야 오로지 자네는 이 게
임에서 그자를 이길 수 있는 결정적인 찬스를 맞고 있어 제이나
라면 그렇게 해
잊어버리세a루시엔 제발 그만두시라구Q
아무 말도 없이 한 시간이 더 흘러갔다 마을의 불빛은 하나 둘씩
꺼져가고 있었다 네스비트가 코고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샐리는 마지막으로 마실 것을 갖다주고는 잘 자라고 했다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야 지극히 평범한 열두 명의 사람들한
테 이 모든 결정을 맡긴다는 게
루시엔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정말 미친 제도예요 안 그래요
그래 하지만 잘 돌아가고 있지 배심원들은 대개 을아
아무래도 운이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아요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기다리는 심정이에요
제이내일이면 기적이 일어날 거야
내일요
그래 내일 아침 일찍
말씀이세요
내일 정오까지 포드 군 법원 근처로 분노한 흑인들이 개미떼처
럼 몰려들 거야 만 명 아니 그보다 더 될지도 모르지
흑인 만 명이라는 왜요
소리치고 노래부르기 위해서지 와서 칼 리를 석방하라고 외칠
거야 모든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이야 온 마을이 들
썩거리고 배심원들은 잔뜩 겁을 먹겠지 혹인 숫자에 눌려서 백인들
은 죄다 도망갈 거고 주지사는 군대를 더 보내려고 소동일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냈어요
내가 계획했으니까
뭐라구요
잘 들어 제이크 내가 잘 나가던 시절에 난 근처 15개 군의 모든
혹인 목사들을 알고 있었어 그들 교회에 가서 같이 기도도 하구 시
위도 하구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 그들이 의뢰인을 보냈구 나
는 돈을 보냈지 북부 미시시피 주에서 흑인지위향상협회 변호사에
소속된 백인은 내가 유일했어 인종차별에 관한 사건으로 치자면 워
싱턴에 있는 열 개 법률회사들이 맡은 사건을 다 합해도 나를 따라
오지 못할 거고 혹인들은 내 사람들이야 내가 한 일이라곤 고작 전
화 몇 통 돌린 것뿐이야 내일 아침이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서 정오쯤 되면 경찰 진압봉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상태가 될걸
다들 어디서 오는 거죠
사방 팔방에서 오지 혹인들은 시위하고 저항하는 것을 좋아해
이런 일은 그들한테는 둘도 없는 기회야 목이 빠지라고 기다리던 일
01
당신 정말 미쳤군요 루시엔 정말로 미친 친구예요
나는 항상 이긴다니까
163호실에서 배리 애커와 클라이드 시스코는 마지막 카드 게임을
끝내고 자리를 폈다 배리 애커는 동전들을 모으더니 음료수나 마시
러 가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클라이드 시스코는 목이 마르지 않았다
애커는 졸고 있는 군인들 옆을 깨금발로 걸어서 흘로 나갔다 그
런데 마침 자판기가 고장이었다 애커는 비상구를 통해 2층으로 을
라가 얼음 제조기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허리
를 숙였다 그때 어둠 속에서 두 형체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애커를
넘어뜨리더니 발로 차서 얼음 제조기 옆의 어두운 구석으로 몰아붙
였다 그리고는 쇠사슬로 그의 몸을 꽁꽁 묶고는 문 쪽으로 몰았다
그중 덩치 큰 놈이 애커의 멱살을 잡고 그를 콘크리트 벽에 밀어 세
웠다 작은 놈은 자판기 옆에 서서 어두운 흘의 동정을 살폈다
당신이 배리 애커지
덩치 큰 놈이 앙다문 입술 사이로 물었다
그래 나를 놔질
애커는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큰 덩치는 그의 목을 확 움
켜쥐고는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그는 다른 손으로 재크나이프를 꺼
내 애커의 코앞에 갖다댔다 애커가 발버등을 멈췄다
잘 들어
큰 덩치가 속삭이는 소리치고는 크게 말했다
우린 네놈이 결혼을 해서 포레스트 거리 1161번지에 살고 있다
는 걸 알고 있어 아이가 셋 있다는 것과 그애들이 어디에서 노는지
또 어떤 길로 등하교를 하는지도 알고 있지 아내는 은행에서 일한다
더군
애커의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만약 그 검등이 새끼가 석방된다면 상당히 유감스런 일이 발생할
거야 너도 그렇구 네 가족도 말이야 몇 년이 걸리더라도 아주 끔찍
한 일을 맞게 만들어줄 거거든
그는 애커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겼다
이 일에 대해서 뻥끗했다간 네 아이들 목숨은 끝장이야 이해하
겠지
그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애커는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목이 꽉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는 목덜미와 뒤통수를 계속 주무르면서
너무 두려운 나머지 어둠 속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북부 미시시피에 있는 수백 개의 흑인 교회 신도들은 동이 트기
전부터 모여들었다 그들은 저마다 소풍용 바구니와 아이스박스 접
는 의자 물통 등을 가지고 와 교회 버스에 실었다 그들은 서로 인사
를나누면서 재판 얘기로들떴다 벌써 몇 주동안칼 리 헤일리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고 그에 대해 얘기해 왔지만 오늘은 드디어 그를
도와주러 가는 길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노인네들이거나 지긋하
게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었지만 아이들과 갓난아이까지 데리고 나
온 가족들도 많았다 그들은 짐을 가득 싣고 나서 목사의 지시에 따
라 버스에 올랐다 노래와 기도가 시작되었다 작은 마을과 군 경계
지역에 이를 때마다 다른 목사가 이U는 차량들과 합류되어 대열은
더욱 커졌다 고속도로와 포드 군으로 향하는 모든 도로는 순례자의
행렬로 가득 메워졌다
그들은 광장 주위의 도로에 짐을 내리고 자리를 잡았다 거의 모
든 도로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뚱뚱한 대령은 이제 막 아침식사를 끝내고 연단에 올라서서 그 광
경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버스와 승용차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대는
수많은 차들이 산지 사방에서 광장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대령은
군인들에게 바리케이드를 정비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들자 그는 일곱시 삼십분에 오지 보안관에게 전화를 걸어 혹
인들이 광장을 점거했다고 알렸다 오지가 곧바로 도착해 에이지 목
사를 찾았구 에이지 목사는 평화적인 시위일 뿐이라고 장담했다 일
종의 연좌농성이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온 겁니까
오지가 물었다
수천 명은 될 겁니다
혹인들은 떡갈나무 아래에 캠프를 치고 잔디밭 위를 서성이면서
대열을 정비했다 탁자와 의자를 정비하고 아이들이 놀 곳도 만들었
다 그들은 평화적이었다 그러다가 칼 리를 석방하라라는 익숙한
구호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들뜨기 시작했다 흑인들은 목청을 가다
듬고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아직 여덟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멤피스에 있는 한 흑인 라디오 방송이 화요일 아침에 구원을 요청
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한 시간 거리인 미시시피의 클랜턴에서 흑인
들의 시위와 행진이 있으니 모두 참여하라는 내용이었다 곧 수백 대
의 차량이 멤피스를 떠나 남부로 향했다 여러 시민단체들과 혹인 정
치인들이 그 행렬에 합류했다
에이지는 재간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속속 도착하는 새로운 사
람들에게 위치를 정해 주고 흑인 목사들을 조직하는 데 여념이 없었
다 그는 오지와 대령에게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고 거듭 장담했다
물론 만사 오케이였다 KKK단원들이 매일 하는 시위를 하기 위
해 모습을 나타내기 전까지는 하얀 가운이 등장하자 흑인들의 목소
리는 한충 더 높아졌구 야유와 욕설이 퍼부어졌으며 대열은 조금씩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KKK단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
들을 에워쌌다 백인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어 고함은커녕 제자리에
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여덟시 삼십분이 되자 클랜턴의 주요 간선도로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승용차와 버스들이 주차장을 꽉 채우고서도 모
자라 주택가까지 차를 세우는 사태가 벌어졌다 흑인들의 물결은 사
방 팔방에서 광장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교통은 완전히 마비되었
고 외곽도로까지 완전히 막혀 버렸다 그 바람에 상인들은 차를 멀
리 세워두고 가게까지 걸어와야 했다 시장은 연단 중앙에 올라서서
오지에게 손짓을 하며 뭔가 조치를 취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시장
주위에서는 수천 명의 흑인들이 몰려들어 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
대고 있었다 오지는 시장에게 광장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모두 체포
하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누스는 교도소에서 남쪽으로 8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겨우 차
를 세우고는 흑인들 틈에 섞여 법원을 향해 걸었다 흑인들은 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힐끔거렸지만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아무도 그
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클리와 무
스그로브는 애덤스 가의 도로에 그대로 차를 세우고는 투덜투덜 욕
을 하면서 법원을 향해 걸었다 그들은 걷다가 잿더미로 변해 버린
제이크의 집앞을 지났지만 욕을 해대느라 너무 바빠서 거기에 대해
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아흡시 이십분에 템플 모텔에서 출발한 배심원 호송차가 군인들
의 호위를 받으면서 광장으로 들어섰다 안에 타고 있던 열네 명의
승객들은 어두운 창문 너머로 광장 주위에 까맣게 몰려든 사람들을
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페이트의 소리로 재판이 시작되었다 누스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그는 밖에서 일어나는 소동에 대해서 사과를
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배심원 회의를 시작해 달라고 했다
LL좋습니다 배심원실로 가셔서 일을 시작해 주십시요 법정은 점
심시간 조금 못 돼서 다시 열겠습니다
법정을 빠져나온 배심원들은 배심원실로 삼삼오오 돌아갔다 헤일
리의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앉았고 이제 압도적인 숫자로 불어난
흑인 방청객들은 자리를 지키면서 열심히 얘기를 나누었다 제이크
는 사무실로 돌아갔다
배심장 애커는 먼지가 덕지덕지 낀 탁자 한끝을 차지하고 앉아
지난 세기 동안 이 자리에 앉아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놓고 토
론을 하며 의무를 다했던 수백 수천의 배심원들을 생각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에서 배심원으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은 지난밤의 끔찔
한 기억으로 인해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애커는 얼마나 많은 사람
들이 자기와 같은 죽음의 위협을 받았을까 생각했다 아마 거의 없었
을 거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다른 배심원들이 커피를 타가지고 와 슬슬 자리에 앉았다 클라이
드 시스코에게 그 방은 아주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이었다 지난번 배
심원의 의무를 맡았을 때는 이곳에서 한 건 푸짐하게 건졌었다 그는
또 한번 정확하고 진실된 자기 판결을 사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
각에 입맛을 쩍쩍 다셨다 중간 연락책으로부터는 아직 아무 연락이
없었다
어떻게 진행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까
애커가 물었다
말할 게 있습니다
찔러도 피 한 방을 안 나을 것같이 생긴 리타 매 플렁크가손을 들
었다 그녀는 남편도 없이 혼자서 두 아들과 허름한 이동주택에서 사
는 억척스러운 여자였다 그녀의 두 아들은 특히 칼 리라면 이를 가
는 사내들이었다 그녀는 지금 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LI예 말하실 게 있으면 먼저 말씀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순서대로
말씀하시면 되겠군오
LL저는 어제 유죄라고 투표했구 앞으로도 제 생각엔 변함이 없을
겁니다 도대체 저는 어째서 그 검등이가 무죄라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중에 그 검등이가 유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
다면 한번 말씀해 보세9
검등이라는 표현은 두 번 다시 입에 담지 마세요
완다 워맥이 소리를 질렀다
LL내가 부르고 싶으면 검등이라고 불러요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尸
리타 매 플렁크가 맞받아쳤다
제발 그런 표현은 삼가해 주겼으면 좋겠습니다
프랜시스 맥고왠이 점잖게 타이르고 나섰다
그런 말은 인신공격이에요
완다 워맥이 다시 말했다
검등이 검등이 검등이 검등이 검등이 검등이
리타 매 플렁크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야유를 퍼부었다
그만들 하십시오
클라이드 시스코가 끼여들었다 그러자 배심장이 나섰다
여러분 잠간 진정하시고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플렁크 씨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말을 가끔씩 쓰구 또 어떤 사람들은 자주 쓰
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발언으로
들립니다 그러니 이 회의중에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군9 우리는 그
것말고도 토의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자 다들 동의하십니

리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 윌리엄스가 발언권을 얻어 자리에서 일어랐다 그려는 옷을 멋
지게 차려입은 매력적인 사십대 미녀였다 그녀는 군복지국에서 일
하고 있었다
저는 어제 투표를 안 하고 기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칼 리
헤일리 씨를 동정하고 있습니다 제게도 딸이 있습니다 만약 그애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예요 저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뻤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상일 수가 없지8
그래서 저는 그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일을 저지른 사람하고 똑같은
상황에서 판결을 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가 법적으로 정상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시는 겁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레바 베츠가 물었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안정적인 상태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불가능했겠지요
그럼 그 엉터리 같은 베이스 박사의 말을 믿는다는 얘기예요
리타 매 플렁크가 수 윌리엄스를 물고늘어졌다
예 그 사람도 주정부측 의사만큼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난 부츠가 맘에 들던데9
클라이드 시스코가 농을 떨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베이스 박사는 전과자예요 게다가 거짓말을 했구 또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했어요 그런 사람 말은 한 마디도 믿으면 안 된다구요
리타 매 플렁크가 반박하고 나섰다
그 사람은 18세가 안 된 여자하고 섹스를 했다는 죄목으로 기소
되었어요 만약 그게 죄라면 우리 중에도 전과자가 많을걸요
클라이드 시스코는 여전히 웃겨 보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는 당분간 가만히 있기로 했다
나중에 결혼했다잖아요
도나 로 펙 말했다 그 여자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의견을 말하고 질문을 주고받았다 유죄를 대
답하면서 한 순배가 돌았다 유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이상 검등
이란 말을 삼갔고 패는 양쪽으로 분명하게 나뉘었다 그동안 결정
을 미뤄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유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특히 칼
리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는 피
해자들이 이동할 길을 미리 봐두었구 M16도 준비해 두었다 그가
우연히 그들을 마주쳐 살해했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면 문제가
다르지만 그는 엿새 동안이나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그런 사람을
정신이상자라고 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했다 완다 워맥과 수 윌리엄
스 클라이드 시스코는 무죄로 돌아섰구 그 나머지는 유죄였다 배
리 애커는 머뭇거렸다
에이지 목사가 칼 리를 석방하라고 쓴 커다란 플래카드를 가로
로 길게 펼쳤고 그것을 목사 열다섯 명이 가슴께로 잡으면서 나란히
섰다 그들 뒤에는 행진을 준비하는 대열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열은
법원 앞의 잭슨 가에 줄을 맞춰 섰다 에이지 목사가 대열을 점검하
면서 주의사항을 일렀다 수천 명의 흑인들이 목사들 뒤에 서서 행진
을 시작했다 그들은 캐페이 가에서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광장의 서
쪽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에이지 목사가 구호를 선창하자
모두 칼 리를 석방하라를 큰 上司로 외쳐댔다 그 외침은 곧 한
목소리가 되어 반복적으로 터져나왔다 광장을 돌수록 군중들의 숫
자가 늘어났고 외침 또한 간절해졌다
이상한 기미를 느긴 상인들은 서둘러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서도 그들은 폭동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 보험 혜택을 받
을 수 있는지 문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군인들의 녹색제복은 검은
물결에 파묻혀 이제 작은 점들에 불과했다 잔뜩 긴장한 대령은 땀을
뻘밸 흘리면서 군인들에게 광장을 에워싸고 자리를 철저히 지키라
고 명령했다
에이지와 행렬이 워싱턴 가로 막 들어설 때 오지 보안관은 KKK
단 무리와 만났다 오지는 진지하고도 정중한 어조로 군중들이 자제
력을 잃게 되면 자기로서도 보호할 방도가 없다고 했다 물론 집회의
자유는 있지만 그들의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었으니 문제가 생기기
전에 해산해서 광장을 떠나는 게 좋겠다고 했다 KKK단원들은 재
빨리 광장을 빠져나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대열이 배심원실 아래를 지나갈 때쯤 열두 명의 배심원들은 창문
으로 몰려가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칠 줄 모르는 노랫소리가 유
리창을 흔들었구 확성기에서 나는 소리는 바로 천장에 붙은 스피커
에서 새어나오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배심원들은 캐페이 가로 들어
서는 흑인들의 숫자를 보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
었다 집에서 만들어 온 제각각의 피켓들이 군중들의 머리 위로 솟아
오르면서 칼 리를 석방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었다
포드 군에 검등이들이 이렇게 많이 사는 줄 정말 몰랐네
리타 매 플렁크가 말했다 그 순간만큼은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
고 있었다
버클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는 3층 도서관에서 무
스그로브와 함께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하도 시끄러워 대화조차
못 나눌 지경이었다
포드 군에 흑인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는데요
무스그로브가 말했다
누군가가 딴곳에서 데려온 거겠지 누구 짓인지 궁금하군
브리건스 짓이겠죠
그럴 거야 배심원들이 결정을 하는 때에 이런 소동을 벌이면 유
리한 건 그놈뿐이지 5천 명은 충분히 되는 것 같은데
그보다 더 되겠어Q
누스 판사와 페이트도 2층의 판사실 창문을 통해 같은 광경을 내
려다보고 있었다 판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배심원들
이 걱정이었다
LL어털게 이 시간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
아주 시간을 잘 맞췄죠 판사님
페이트가 말했다
그렇군
L포드 군에 흑인들이 저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페이트와 진 길레스피가 변호사와 검사를 불러서 재판을 시작하
는 데만 꼬박 이십분이 걸렸다 준비가 끝나고 법정 안이 조용해지
자 배심원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스가 헛기침을 하고 말을 꺼냈다
여러분 점심 드실 시간입니다 결정된 게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
다만
배리 애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L제 생각이 맞군요 그럼 한시 삼십분까지 휴정하겠습니다 법정
에서 나가지는 못합니다만 식사를 하는 동안만은 사건을 잊고 즐겁
게 식사하시기 바랍니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동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저로서도 달리 방도가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휴정합니다
판사실에 얼굴을 드러낸 버클리는 화가 이만저만 난 게 아니었다
LL이건 미친 짓입니다 판사님 밖이 저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배
심원들이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습니까 이건 배심원들을 위협
하려는 고의적인 행동입니다
나도 물론 좋아하지 않소
누스 판사가 말했다
이건 아주 계획적인 겁니다 누군가의 농간이란 말입니다
버클리는 소리를 질렀다
정말 나쁜 일이오
누스가 덧붙였다
무효 심리를 신청하겠습니다
개가 인정하지 않을 거요 제이크 씨 당신은 할 말이 없습니까
제이크는 여유있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칼 리를 석방하시죠
웃기는군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게 다 당신이 꾸민 짓이로군
버클리가 으르렁거렸다
천만에요 버클리 씨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이런 사태
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애를 쓴 사람입니다 그래서 재판지 변경을 신
청했구 끊임없이 재판이 다른 곳에서 열려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
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여기서 재판을 열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죠
그리고 판사님이 결정을 내리셨구요 이제 와서 두 분이 나한테 불평
을 하시다니 기막힐 노룻이군
제이크는 아주 거만해져 있었다 버클리는 계속 투덜거리며 창밖
을 내다보았다
저 분노한 검등이들을 보세요 이제 만 명은 되겠어요
점심시간 동안 만 명은 다시 만 5천 명으로 늘어났다 수백 킬로
떨어진 테네시 고원 쪽에서도 차량이 몰려들어 시 경계 밖의 고속도
로변에까지 차를 대 놓았다 그들은 법정 주위에서 벌어지는 축제 행
렬에 참가하기 위해 작열하는 태양볕 아래를 3 4킬로 정도 걸어왔
다 에이지 목사가 점심 휴식을 선언하자 광장이 금세 조용해졌다
혹인들은 평화적이었다 그들은 아이스박스와 소풍용 가방을 열어
서 음식을 내놓고 서로 나눠먹었다 모두들 나무 그늘로 모여들었지
만 그늘이 충분치 않았다 일부는 차가운 물과 화장실을 찾아서 법
원 안으로 들어갔구 일부는 길을 걸으면서 닫힌 상점 안을 기웃거렸
다 커피숍과 티숍들도 군중들에 놀라 문을 닫은 상태였다 문을 연
클로드네 가게만 대호황을 이루고 있었다
제이크와 해리 렉스와 루시엔은 발코니에 느긋하게 앉아 아래서
벌어지는 서커스를 감상했다 탁자 위에 놓인 차가운 마가리타 주전
자는 천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이따금씩 군중들과
합세해 칼 리를 석방하라고 외쳤구 우리 승리하리라를 따라불렀
다 그러나 가사를 아는 사람은 루시엔뿐이었다 그는 60년대 민권
운동에 뛰어들었을 때 흑인들의 노래를 배웠구 지금도 혹인들의 영
가를 줄줄이 꿰고 있는 유일한 포드 군민이라는 데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술 마시는 사이 사이 루시엔은 그 시절 얘기를 들려주었다 루시
엔은 교회에서조차 인종차별이 심하던 그 시절에 혹인들의 교회에
나가기도 했는데 장장 세 시간 동안이나 설교를 하는 그들의 예배
때문에 허리가 아파 도저히 다닐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때 처
음으로 백인들은 그런 종류의 예배oil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헌금은 꼬박꼬박 낸다고 했다
그들이 마시고 있는 사이 간간이 방송국 직원이 제이크의 사무실
아래를 지나가다가 질문을 외쳤다 그러면 제이크는 못 들은 척 딴청
을 부리다가 한 번씩 칼 리를 석방하라고 외쳤다
한시 삼십분 정각에 에이지는 확성기를 들고 플래카드를 넓게 편
다음 목사와 군중들을 모았다 그는 확성기에 대고 찬송가를 부르면
서 군중들을 잭슨 가에서 캐페이 가로 끊임없이 맴을 돌렸다 행렬
이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아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레바 베츠가 미결에서 무죄로 돌아서자 배심원실 안은 십오분 동
안 침묵에 횝싸였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강간했구 나한테는 복수할
기회가 생겼다면 나는 그놈의 머리를 날려 버리겠다는 게 레바 베츠
의 변辨이었다 유죄 대 무죄는 5대 5로 팽팽했다 아직 두 사람이
미결이었고 타협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배심장은 계속 방 안을 왔
다갔다했고 늙은 율라 델 예이츠는 자꾸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노파가 틀림없이 대세가 기우는 쪽으로 갈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창밖을 보다가 다시 울음을 봇물처럼 터뜨린 율라 델
예이츠를 클라이드 시스코가 데려가 자리에 앉혔다 그녀는 집에 가
고 싶다고 했다 마치 자기가 교도소에 갇힌 죄인 같다는 것이다
외침과 행진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확성기 소리가 바로 옆을
지나자 조그만 방을 가득 채운 공포 또한 절정에 다다랐다 애커가
잠시 조용히 해줄 것을 부탁했고 사람들은 안절부절못하면서 행렬
이 법원 정문으로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소리가 완전히 사
라지지는 않았다 캐를 코어먼이 최초로 자기들이 안전할 수 있을지
물어왔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조용하기만 한 템플 모텔이 안락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노랫소리는 그후로도 세 시간 동안이나 끊임없이 들려와서 예민
해질 대로 예민해진 사람들의 신경을 거덜내고 있었다 애커는 누스
판사가 다섯시에 사람을 보낼 때까지 가족 얘기나 그밖의 다른 화젯
거리로 시간을 보내자고 제의했다
침착하고 조용하게 유죄주장을 폈던 버니스 툴이 모두들 생각은
했으면서도 차마 꺼내지 못했던 제안을 했다
왜 판사한테 가서 평결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얘기하지 않는
거죠
그러면 미결정 심리가 선언되겠죠
조 앤 게이츠가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재판은 몇 달 있다가 다시 열리죠 오
늘은 이만하고 내일 다시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배심장이 대답했다
모든 배심원들이 공감하는 얘기였다 그들은 아직 결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율라 델 예이츠 할머니가 조용히 흐느꼈다
칼 리와 아이들은 네시에 법정의 양쪽에 난 길다란 창으로 다가갔
다 창엔 조그만 손잡이가 있었다 칼 리는 그걸 조심스럽게 돌렸다
문 바깥은 서쪽 잔디밭 위로 삐져나온 작은 베란다였다 칼 리는 경
찰에게 고개를 U덕여 보인 다음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토냐를
안고 군중들을 바라보았다
군중들도 칼 리를 보았다 그들은 칼 리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가
서 있는 아래로 다가왔다 에이지 목사가 군중들을 잔디밭 안으로 이
끌었다 검은 손들의 흔들림이 작은 현관 아래서 물결쳤다 그들은
영웅을 잠간이라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서로 부대끼고 있었다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를 석방하라
칼 리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사내놈들을 감싸안구 토
냐에겐 키스를 퍼부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손을 흔들며 아이들에
게도 손을 흔들어 보라고 했다
제이크 일행은 군중의 행렬 바깥쪽으로 돌아 법정으로 향했다 진
길레스피가 전화를 걸어 판사실에서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알려왔
다 제이크는 약간 당황스러웠구 버클리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L이것은 무효 심리입니다 저는 무효 심리를 요청합니다
제이크가 판사실에 들어섰을 때 버클리는 누스에게 이렇게 소리
치고 있었다
무효 심리를 요청한다구요 주지사님 당신은 동의할 수는 있어
도 그걸 요청할 자격은 없습니다
제이크는 녹색 눈동자를 반짝거리면서 말했다
꺼져 브리건스 이건 다 네가 꾸민 짓거리잖아 이따위 소동을
일으키다니 바깥에 있는 네 검등이들을 좀 보라구
법원 서기는 어디 있습니까 이 말을 기록으로 남겨야겠습니다
제이크가 말했다
두 분 다 진정하시오 프로답게 굴란 말입니다
누스 판사는 위기 때마다 똑같은 말만 연발하고 있었다
판사님 저희는 절차상의 과오에 의한 무효 심리를 정식으로 신
청합니다
버클리가 프로다운 목소리로 누스에게 말했다
기각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주정부에서는 배심원들이 평온한 분위기에서 회
합을 가질 수 있도록 장소를 옳기겠습니다
그래요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누스가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전 배심원들이 템플 모텔에서 심리를 하도록 신청합니다 조용하
고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 가장 적당한 장소입니다
버클리는 그곳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모텔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
신있게 말했다
제이3당신 생각은
누스가 제이크의 의중을 물었다
안 됩니다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우선 법정 밖에서 사건을 심
의할 수 있는 권한이 규정에 없습니다
제이크는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1963년 린우드 군에서 열린 두보스 사건 판례입니다 린우드 군
의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아 더위를 견딜 수 없게 되자 순회판사는
배심원들을 군 도서관으로 이동시켜 그곳에서 심의하도록 조치했습
니다 피고인측이 이의를 제기하는 가운데 평결이 있었고 결과는 유
죄였습니다 항소심에서 대법원은 재판장의 결정이 적절치 못했고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피고인이 재판받고 있는
동안 배심원들의 회합은 법정 안의 배심원실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는 점을 대법원이 화인시킨 것이죠 이 판례에 따라 배심원들의 심의
장소를 옮기시겠다는 두 분 생각을 접어주셨으면 합니다
누스는 판례를 흩어보고는 무스그로브에게 넘겼다
재판 준비시켜요
누스가 페이트에게 대신 신경질을 부렸다
기자들을 빼고는 법정 안은 흑인 일색이었다 배심원들의 몰골은
하나같이 수척하고 긴장되어 보였다
평결이 아직 안 난 걸로 압니다만
누스가 배심원석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애커가 대답했다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표결수와 상관없이 합의하신 게 있습니
까 여러분께서 더이상 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셨다든
가 하는 얘기 말입니다
저희도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재판장님 저희
는 오늘은 이만 이곳을 떠나고 싶습니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하루
저녁 쉰 다음 내일 다시 재판을 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준
비가 안 됐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반갑습니다 법원 바깥을 소란스럽게 한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제가 취할 수 있는 조치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모쪼록 여러분께서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좋습니다 내일 아침 아흡시까지 휴정합니다
칼 리가 제이크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이게 무슨 얘기요
아직 결정난 게 없다는 말입니다 배심원들의 판결이 교착 상태
에 빠졌다는 얘기죠 6대 6일 수도 있고 유죄로 11대 1이나 무죄
로 11대 1일 수도 있죠 홍분할 필요 없습니다
배리 애커가 모퉁이를 돌아나가면서 정리에게 쪽지를 건네주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루안에게
여보 애들이랑 같이 친정에 가 있도록 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거기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내가 말한 대로 반드시
해야 돼 상황이 매우 위험해지고 있으니까
배리
오늘 이 쪽지를 집사람한테 전해 줄 수 있겠습니까 전화번호는
8810774입니다
그러겠습니다
정리가 대답했다
제이크의 옛 고객이었구 같은 커피숍의 단골이며 지금은 시보레
공장의 정비사인 팀 넌리는 숲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오두막집 소
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귀에 술취한 KKK단들이 검
등이들을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도 가끔씩은 욕하는 데 끼
여 거들기도 했었다 지난 이틀밤 동안 속삭이는 소리로 봐서
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귀를 좀더 가까이 갖다 댔다
팀 넌리는맥주를한잔더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데 그때 갑자기 동료들 셋이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벽에다 몰아세우
고 주먹과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넌리는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사
정없이 두들겨 맞고는 입에 재갈이 물려 바깥으로 끌려나왔다 그리
고는 비포장도로를 건너 그가 처음 KKK단에 가입한 장소까지 개
처럼 끌려나왔다 옷을 찢기고 기등에 묶인 넌리 앞에서는 십자가가
불타고 있었다 누군가 채찍을 들어 그를 갈기기 시작했다 어깨와
등 허리 다리 할 것 없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푸르스름하게 변
해 갔다
한때는 형제이기로 서약했던 스무 명 정도의 동료들은 넌리의 몸
에 기름이 뿌려지는 것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대장
은 채찍질을 멈추고는 넌리 옆에 와서 섰다 시간이 영원히 멈춘 것
같았다 대장은 마침내 사형을 선고하고 성냥을 그었다
미키 마우스는 영원히 입을 다물었다
KKK단들은 가운과 소지품을 챙겨 각자 집을 향해 떠났다 그들
은 대부분 다시는 포드 군에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수요일 제이크는 몇 주 만에 처음으로 여덟 시간 이상 잠을 잤다
사무실 소파에서 잠에 곯아떨어진 그는 새벽 다섯시에 군인들이 최
악의 사태에 대비해서 이동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잠은
충분히 잔 셈이었지만 오늘이 가장 중요한 날이라는 생각에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제이크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샤워를 하고 수염을 깎은 뒤 가게에
서 산 새 속옷과 스탠 앳캐비지가 빌려준 사계절용 양복을 입었다
양복은 길이가 조금 짧고 헐렁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라면 그리 나쁜
차림새는 아니었다 애덤스 가에 남은 폐허와 칼라 생각을 하자 속이
다시 쓰려왔다 제이크는 신문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
멤피스와 잭슨 투펄로의 1면 기사는 하나같이 토냐를 안고 군중
들 위에 서서 손을 흔드는 칼 리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제이크의 집
에 관한 기사는 전혀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델은 마치 잃어버린 아이를 찾은 것처럼 제이크를 꼭 부등켜안았
다 그녀는 앞치마를 걷어치우고 구석자리에 제이크와 나란히 앉았
다 단골손님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제이크에게 다가왔구 등을 토닥
여 주었다 그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모두들 제이크
를 보고 싶어했곤 모두 제이크 편이었다 얼굴이 수척해 보인다고
델이 말했다 제이크는 메뉴에 있는 것을 모조리 다 주문했다
어제 그 혹인들 죄다 다시 오겠지
버트 웨스트가 물었다
그럴걸요
제이크는 팬케이크를 자르면서 대답했다
오늘은 더 많이 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북부 미시시피의 모든 방
송국들이 혹인들에게 동원령을 내리고 있대
앤디 레닉이 아는 체를 하고 나섰다
잘 됐군 제이크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달걀말이에 소스를 뿌렸다
배심원들도 군중들이 소리치는 것 다 들었겠지
버트가 다시 물었다
그럼요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귀머거리들이 아니니까
겁먹었겠네
제이크는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어때요
델이 목소리를 한껏 죽여서 물었다
괜찮은 것 같아 매일 밤 전화하거든
칼라는 무섭지 않대요
무서워 죽으려고 그래
그들이 당신한테 또 무슨 짓을 했어요
일요일 아침 이후로는 아무 소식이 없는데
칼라도 알아요
제이크는 음식을 씹으면서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안됐어요
나는 괜찮아 근데 여기 손님들은 뭐라 그래
어제 점심 때 문을 닫아서 잘 몰라요 흑인들이 하도 많아서 폭동
이라도 일어날까봐 문을 닫았죠 오늘도 문을 닫을지 몰라요 아침부
터 주의깊게 지켜보다가 결정할 거예요 제이큰 유죄판결이 나면 어
떻게 되죠
끔찍하겠지
제이크는 한 시간 가량 머물면서 갖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낯선 얼굴들이 들어와 제이크는 얼른 자리를 피했다
이제 기다리는 일밖에는 할 게 없었다 제이크는 발코니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시가를 피우면서 아래에 늘어서 있는 군인들을 쳐다
보았다 그는 이전의 고객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조용한 남부의 법률
사무소에서 비서와 함께 고객들을 기다리던 일 소송서류를 들고 구
치소로 면회 가던 일 가족이나 집 일요일 아침의 교회처럼 익숙하
기만 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제이크는 자신이 이렇게 대단한 사건
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곱시 삼십분에 첫번째 교회 버스가 도착했다 군인들이 그들을
제지했다 문이 열리고 수많은 흑인들이 의자와 음식 바구니를 들고
나와 잔디밭으로 줄을 지어 흘러들어갔다 제이크는 여덟시 삼십분
까지 흑인들이 평화적인 모습으로 광장을 가득 채우는 광경을 흐뭇
하게 바라보았다 군중의 숫자는 광장의 수용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
다 광장은 발디딜 틈도 없이 꽉 메워졌다 목사들은 최선을 다해 군
중들을 지도하면서 오지 보안관과 대령에게 비폭력 시위가 될 것이
라고 거듭 다짐했다 오지는 그 말을 믿고 있었지만 대령은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아흡시가 되자 거리는 시위대로 완전히 들
어찼다 누군가 호송버스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배심원들이 온다
에이지 목사는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구 군중들은 잭슨 가와
퀸시 가가 만나는 어귀로 물밀듯이 다가갔다 군인과 경찰들은 흑인
들 틈을 비집고 인간 바리케이드를 만들어서 법원으로 향하는 길을
냈다
율라 델 예이츠는 다시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클라이드 시스
코는 그녀 옆 창가에 앉아 예이츠의 손을 꼭 쥐었다 버스가 법원으
로 조금씩 다가가는 동안 안에 앉은 배심원들은 공포에 젖은 눈으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중무장한 군인들이 버스에서 법원에 이르
는 길을 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를 따라 법원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오지가 차 안으로 올라와 큰 소리로 배심원들을 안심시켰다
배심원들이 커피포트 주위로 모이자 정리가 문을 닫았다 율라 델
예이츠는 혼자 구석자리에 앉아 흐느끼면서 칼 리를 석방하라는
외침이 들려을 때마다 몸을 떨었다
나는 어떤 결정이 나든 상관 안 해요 나는 피런 건 몰라요 하지
만 이런 짓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여드레 동안 가족들 얼굴도
못 보구 바깥은 저 모양이고 간땀엔 한숨도 못 잤다구요
율라 델 예이츠가 입을 열었다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신경과민으로 죽을 것 같아요 얼른 여기서 나가고 싶
어Q
클라이드 시스코가 화장지를 건네면서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유죄이긴 하지만 그리 강건한 쪽은 아니었던 조 앤 게이츠도 쌓였
던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도 간밤에 한잠 못 잤어요 단 하루도 견티지 못할 것 같아요
애들이 보고 싶어요
배리 애커는 창문가에 서서 유죄평결이 나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폭동에 대해서 생각했다 법원 건물을 포함해서 남아나는 빌딩은 하
나도 없을 것이다 잘못된 판결을 내려 버린 배심원들을 누가 끝까지
보호해 줄지 확신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마 버스로 돌아갈 수조차
없을지 몰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애들과 애 엄마가 이미 안전
한 아칸土 주로 피신을 갔다는 점이었다
나는 인질이 된 기분입니다 우리가 칼 리에게 유지를 선고하는
순긴 저 군중들이 몽땅 법원으로 몰려들어오겠죠 정말 겁이 나서
죽겠어요
유죄로 확고하게 마음을 굳히고 있던 버니스 툴이 말했다
클라이드는 그녀에게 화장지를 박스째로 건네주었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 없어요 여기서 빨리 나가기만 해요 어서
유죄라고 하든지 석방을 하든지 하여튼 빨리 끝내고 나가자구a
난 더 견딜 수 없으니까
율라 델 예이츠는 볼 장 다본 사람처럼 찔끔거렸다
탁자 끝에 앉아 있던 완다 워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신중하게
헛기침을 했다
절 좀 잠간 봐주세요 제안할 게 있습니다 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한 단어 한 단어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율라 델이 울음을 멈추었구 배리 애커는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
았다 모든 사람이 다 완다 워맥을 보고 있었다
어젯밤 내내 생각한 건데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
다 고통스러우시겠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진
지하게 들여다보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자기 자신에게 좀더
솔직해진다면 우리는 이 일을 쉼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늘 끝낼
수도 있겠죠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 우리는 지금 완전히 의견이 갈렸습니다 누스 판사한테 가서
교착 상태에 빠져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러면 판사는 미결정 심리를 선언할 테구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겠죠
그러면 몇 달 후에 다시 이 모든 일들이 반복될 겁니다 피고인은 여
전히 칼 리 헤일리이고 판사도 누스 판사겠지요 하지만 배심원은
바필 것이구 그들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 배심원들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건 우리의 친구가 될 수도
있구 남편이 될 수도 있구 아내 부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랑
똑같은 사람들이 뽑혀서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
게 되겠죠 그 사람들이라고 해서 우리보다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
일 수가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결정을 내릴 사람은 우리이고 결정
을 내릴 시간 또한 지금입니다 여기서 책임을 회피하고 모든 짐을
다른 배심원들한테 넘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제 말에 동의하십니

침묵 속에서 사람들의 고개가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들어주세요 잠간 저를 믿어
주시고 여러분들의 상상력을 최대한 이용하는 겁니다 자 모두 눈
을 감으시고 오로지 제 목소리만 들어주세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배심원 모두가 눈을 감았다 무엇이든 시도해
봐야 했으니까
제이크는 사무실 소파에 누워 루시엔의 애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와 할아버지 법률회사와 돈과 땅을 사람들로부
터 긁어낸 내력을 을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피는 다 내 자랑스러운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거라
곽 모든 사람들에게 짜낸 거란 말이지
루시엔이 소리쳤다
해리 렉스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제이크는 전에도 몇번이나 들은
얘기였지만 그래도 늘 새롭고 재미있었다
그럼 에셀의 덜 떨어진 아들네미는 어떻게 된 겁니까
제이크가 물었다
내 동생에 대해서 그런 말투는 쓰지 말게나
루시엔이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그애는 우리 가문에서 가장 똑똑했던 자식이야 틀림없는
내 동생이지 우리 아버지는 에셀이 열일곱 살이었을 때 고용했어
믿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때는 에셀도 예뺐다子 에셀 트위티는 당시
포드 군에서 인기 만점이었고 우리 아버지도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가 없었지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지만 사실이야
정말 끔찍하네Q
제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셀은 애를 많이 낳았는데 그중 둘은 꼭 나를 닮았어 특히 저
능아인 게 닮았었지 그땐 얼마나 황당했었는지
당신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죠
해리 렉스가 물었다
남부의 고상한 가문 출신이신데 우리 어머니의 유일한 관심사는
누가 귀족이고 누가 귀족이 아니냐 하는 거였어 이 동네에는 귀족이
별로 없었지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멤피스로 올라
가서 그곳 귀족들의 눈에 들려고 애를 쓰는 데 보냈어 그래서 난 어
린시절에 나비넥타이와 빳빳하게 다린 양복을 입고서 피바디 호텔로
가 멤피스의 귀한 집 애들한테 아부하면서 며칠씩을 보낸 적도 있었
어 나는 그게 끔찍하게 싫었지 게다가 난 어머니를 별로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에셀 물론 어머니도 에셀에 대해 알고 있었곤 그
사실을 인정했지 하지만 아버지한테는 점잖게 대하셨어 집안의 명
예에 먹칠하지 말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말이야 아버지도 대체로 점
잖게 행동하셨지만 어쨌든 나는 덜 떨어진 배다른 동생 때문에 상처
를 많이 입었지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아버지가 비행기 사고로 죽기 6개월 전에
돌아가신 이유는요
해리 렉스는 루시엔의 가계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임질 머슴한테 옮은 거였지
루시엔 정말이에요
아니 암으로 돌아가셨어 3년 동안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는
데 끝까지 위엄을 잃지 않으셨다네
당신은 어쩌다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제이크가 물었다
글쎄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봐야지 우리 삼촌이 남쪽에서 큰
농장을 경영하고 계셨는데 거기 흑인 가족들이 몇 있었어 그리고
공황이 닥쳤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기서 보냈어 우리 아버지는
사무실 일 때문에 바쁘고 어머니는 모임 때문에 정신 없그래서
어떡하겠나 내 친구들은 다 흑인일 수밖에 나를 키운 것도 하인이
었고 가장 친했던 친구는 윌리 레이 윌뱅크스였어 농담 아냐 진짜
윌뱅크스였지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그의 할아버지를 샀었는데 노
예 해방될 때 대부분 우리 성을 따다 붙였으니까 그들이 뭘 했는지
아나 이곳에 왜 그렇게 윌뱅크스란 성을 가진 흑인들이 많겠나 포
드 군에 있는 노예들은 대부분 우킬 소유였고 그들이 훗날 다 윌뱅
크스가 된 거야
그들 중 몇몇은 진짜 친척일 수도 있겠군요
제이크가 말했다
우리 선조들의 기질로 본다면 월뱅크스가 다 우리 친척들일 수
도 있지
전화벨이 울렸다 세 사람이 다 그 자리에 얼어붙었구 제이크는
몸을 바짝 일으켰다 숨이 턱에 와서 걸렸다 해리 렉스가 수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잘못 걸려온 전화야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어쨌든 어린시절로 다시 돌아가 보시죠
제이크가 제안했다
그래 처음 학교에 갈 때였어 윌리 레이하고 내 친구들이 다 같
이 흑인학교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어 그런데 운전사가 나를 유심히
보더니 가만히 내려놓더군 나는 울면서 막 소리를 질렀는데 삼촌이
그런 날 집으로 데리고 가서는 어머니한테 이렇게 말했지 루시엔이
검등이학교 버스에 탔어요 우리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듣더니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렸지 우리 아버지도 나
를 때렸어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아버지는 그 일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짓이었다고 말씀하셨지
어쨌든 나는 백인학교로 가게 됐어 거기서야 나는 돈많은 부잣집
도련님이었지 근데 말야 모든 애들이 돈많은 아이를 싫어했어 특
히 클랜턴처럼 가난한 동네에서는 더욱 미움을 받았어 내가 나쁜 아
이여서가 아니라 단지 부잣집 아이라는 것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속상한 일이었지 그때부터 나는 돈을 별로 안 좋아하게 된 거
야 내가 비뚤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그때였지 국민학교 1학년
때야 나는 어머니처럼 되기 싫었어 어머니는 매일 찡그린 얼굴을
하고는 사람들을 모두 깔보며 사셨거든 아버지야 흔자 재미를 보느
라고 식구들한테 신경 쓸 시간이 없었고 나는 그때부터 내 멋대로
살리라 다짐했어
제이크가 기지개를 펴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자네 신경쓰이나
루시엔이 물었다
얼른 끝났으면 좋겠어9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루시엔이 수화기를 들고서 유심히 듣더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무슨 전화죠
해리 렉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비크는 일어나 앉아서 루시엔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드디어 결
전의 시간이 온 것이다
진 길레스피야 배심원 평결이 났대
이런
제이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면서 신음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개 말 잘 들어 제이크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 침착하
구 말 조심해야 해
루시엔이 진지하게 충고했다
난 어떡하고 있죠 가서 속 좀 게우고 와야겠는데
해리 렉스가 내뱉었다
당신이 그런 충고를 다 하다니 이상하군요 루시엔
제이크는 양복단추를 채우면서 말했다
나도 배운 게 많아 품위를 잃지 말라고 만약 이긴다면 언론에
대고 할 얘기도 잘 생각해 두고 배심원들에게 당당하게 고맙다고 인
사하는 것도 잊지 말게 그리고 만약 진다면
얼른 도망가야죠 흑인들이 법원으로 벌떼처럼 몰려들 테니까
해리 렉스가 대신 결론을 내주었다
루시엔 정말 자신 없네
제이크가 말했다
에이지 목사가 법원 계단을 몇 개 올라가서 배심원들의 평결이
끝났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는 잠간만 주목을 해 달라고 외쳤다 군
중들이 일거에 조용해지면서 법원 쪽으로 몰려들었다 에이지 목사
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자고 제안했다 흑인들은 모두 무릎을 꿇
구 열렬히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남자구 여자구 아이고 할 것
없이 하나님께 고개를 숙이구 칼 리 헤일리를 석방해 달라고 애원
을 했다
군인들도 메를 지어 모여서 마찬가지로 칼 리의 석방을 바라고
있었다
오지와 모스 수석 보안관 대리는 부관들과 경찰들을 벽과 통로 아
래쪽에 배치시키구 자리에 앉았다 제이크는 대기실을 통해 법정 안
으로 들어가 피고인석에 앉은 칼 리 헤일리와 방청객들을 보았다 기
도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웬은 눈물을 닦아냈구 레스터는 겁에 질려서 제이크를 멍
하니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반쯤은 당황하구 반쯤은 겁먹은 표정이
었다
누스 판사가 재판장석에 올라서자 감전된 것 같은 침묵이 법정을
감싸고 돌았다 바깥에서도 들려오는 소리가 없었다 흑인들은 회교
도들처럼 전부 땅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법원 안팎이
완전한 정적 속에서 평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심원 여러분들이 평결을 마쳤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맞습니까
정리 좋습니다 조금 있다가 배심원들을 들여보내기로 하구 그전
에 일단 주의사항을 전달하겠습니다 저는 흥분하거나 소동을 일으
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소동을 일으키는 사람은 보안관이
바깥으로 끌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모든 방청객들을 전
부 퇴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정리는 배심원들을 들여보내시
기 바랍니다
문이 열렸다 율라 델 예이츠가 눈물을 흘리면서 들어서는 데만
한 시간은 걸린 것 같았다 제이크는 고개를 떨구었구 칼 리는 용감
하게 누스 판사의 머리 위에 붙은 로버트 리의 초상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배심원들이 엉거주춤 자리를 차지했다 그들은 긴장하고 겁
먹은 표정이었다 신경과민에 걸린 사람들 같았다 대부분의 배심원
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이크의 몸도 찌뿌드드했다 배리 애커
가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 중요한 종이를 손에 꼭 쥐고 있
었다
여러분 평결을 마치셨습니까
예 끝냈습니다
배심장의 입에서 고음으로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서기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진 길레스피가 종이를 받아서 재판장에게 넘겼다 누스 판사는 느
릿느릿 종이를 훌었다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군요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율라 델 예이츠는 홍수처럼 눈물을 쏟았다 법정 안에서 나는 소
리라곤 그녀가 코를 팽 하고 푸는 소리밖에 없었다 조 앤 게이츠와
버니스 툴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저렇게 운다는 것
은 오로지 한 가지 이유뿐이었다 제이크는 평결이 나기 전에는 배심
원들을 쳐다보지 않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처음으로
형사사건을 맡았을 때 배심원들은 자리에 앉으면서 운고 있었고 제
이크는 그걸 보고 무죄가 틀림없다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몇 초 뒤에 그는 그 미소가 피고인을 사회에서 격리시킨 기쁨에서
나온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재판 이후로 제이크는 배심원들
의 얼굴은 보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만 항상 보게 되었다 누군가가
윙크를 하거나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
어난 적이 없었다
누스 판사가 칼 리에게 말했다
피고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그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형사사건의 변호사에게 판
사의 그 같은 명령만큼 무섭게 들리는 말은 없을 터였다 칼 리는 어
색하게 일어나 섰다 불쌍해 보였다 제이크는 눈을 감고 숨을 죽였
다 손이 떨리구 속이 아릿하게 쓰려왔다
누스는 평결문을 다시 진 길레스피에게 넘겼다
자 서기 판결문을 읽어주십시오
진 길레스피는 종이를 펴고 나서 피고인의 얼굴을 보았다
본 배심원은 칼 리 헤일리의 기소 내용에 대해서 심신장애를 이
유로 무죄를 평결합니다
순간 칼 리가 뒤로 돌아서서 난간을 뛰어넘었다 토냐와 아이들이
자리에서 퉁겨져 올라 아버지를 힘껏 부등켜안았다 법정 안은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웬은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레
스터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목사들은 일어나 고개를 쳐들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누스의 사전 경고는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는 의사봉을 두드리며
L조용 조용 질서를 지키시요라며 고함을 질렀지만 그 土리는 소
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제이크는 아무런 감각이 없어지구 몸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가 애써 움츤일 수 있는 데라곤 입 주위의 근육밖에 없었
다 그는 배심원들에게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눈에는 눈물이 차오
르고 입술이 씰룩거렸지만 그는 수선을 떨지 않기 위해 마음을 꼭
다잡는 중이었다 제이크는 울고 있는 진 길레스피에게 고개를 끄덕
였다 하지만 몸은 조금도 움직여 주지 않았다 버클리와 무스그로브
가 파일을 접구 중요해 보였던 서류들을 챙겨서 서류가방에 아무렇
게나 쑤셔넣고 있는 게 곁눈질로 보였다 품위를 지키자 제이크는
속으로 다짐했다
흑인 소년 하나가 경찰들 사이를 쏜살같이 달려나가더니 문을 열
고 원형흘로 향하면서 소킵를 질렀다
무죄다 무죄다
그는 법원 정면으로 난 발코니로 나가 아래쪽의 군중들을 보면서
무죄라고 외쳤다 곧 대혼란이 시작되었다
자 조용 조용 법정 안에서는 질서를 유지하세Q
바깥에서 외치는 환호성이 천등처럼 법원 건물을 울리고 있을 때
도 누스는 계속 정숙을 외치고 있었다
조용히 하세9
누스 판사는 몇 분 더 사람들의 소동을 지켜보다가 오지 보안관
에게 질서를 유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오지는 앞으로 나가서 사람들
에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박수 소리와 서로 껴안고 감사기도를 올리
던 소란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칼 리는 아이들을 내려놓고는 피고
인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는 제이크 옆으로 바짝 다가붙어 그의 어
깨에 손을 둘렀다 그도 역시 웃으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스도 피고인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헤일리 씨 당신은 시민들 앞에서 재판을 받아 무죄가 확정되었
습니다 당신의 정신상태가 안 좋아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증언은 상기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자유
인입니다
누스 판사는 다시 검사와 변호사에게 주의를 돌렸다
더이상 질문이 없으면 이상으로 본 법정은 8월 15일까지 휴정하
겠습니다
칼 리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들은 칼 리와 제이크를
껴안고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들은 부끄러움도 잊은 채 눈물을 흘리
며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제이크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피고인석으로 몰려오면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제이
크는 손을 들어 보이면서 노 코멘트라고 말했다 대신 오후 두시
에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겠다면서
버클리와 무스그로브는 옆문을 통해서 법원을 빠져나갔다 배심원
들은 배심원실 안에 갇혀 템플 모텔로 갈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리 애커가 보안관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오지 보안관
은 애커를 현관에서 만나 얘기를 주의깊게 들은 다음 그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또 24시간 주위를 감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보도진들이 칼 리에게 몰려들었다
집에 가고 싶습니다
칼 리는 그 말만 되뇌었다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의식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노래와
춤은 물론이고 울구 등을 두드리구 껴안구 하늘을 보며 감사기도
를 올리구 축하하구 웃어대구 연호하고 손바닥을 위로 아래로 마
주치구 형제끼리 악수를 나누구 하는 소동이 끝도 없이 물결치고
있었다 하늘은 한목소리루 흑인 영가로 영광의 제물을 받았구 군
중들은 어깨에 어깨를 맞대고 몰려들어서 그들의 영웅이 축복 속에
서 햇볕 아래 밝은 세상으로 나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중들은 삼십분 정도 소리를 지르고 나서 칼 리 칼 리 하며
외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칼 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귀청을 찢을 듯
한 소리가 그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가족과 변호사와 함께 군중들
에게로 조금씩 다가섰다 그는 합판으로 만든 연단이 놓인 계단 끝에
서 우뚝 멈췄다 수백 개의 마이크가 칼 리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
었다 2만 명이 지르는 외침과 환호가 모든 소리를 압도했다 칼 리
는 제이크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환호의 물결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기자들이 뭐라 외쳤지만 환호 속에 잠겨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
았다 제이크는 가끔씩 손을 흔들다 말구 두시에 있을 기자회견에
대한 정보를 보도진들에게 흘려보냈다
칼 리는 그웬과 아이들을 껴안고 가족과 함께 손을 흔들었다 군
중들도 마찬가지 몸짓으로 그들에게 화답했다 제이크는 슬쩍 자리
를 피해서 법원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술렁거리는 구경꾼들과 약간
떨어진 곳에 해리 렉스와 루시엔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죠
제이크가 두 사람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군중들 사이를 헤치
면서 흘을 내려가 뒷문을 통해서 빠져나갔다 제이크의 사무실 앞에
한떼의 보도진들이 몰려 있는 게 보였다
차 어디다 세워 놓았어요
제이크가 루시엔에게 물었다 루시엔은 골목길을 가리켰구 세 사
람은 커피숍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샐리가 돼지고기 튀김과 토마토 샐러드를 현관에 앉은 세 사람에
게 내 놓았다 루시엔은 이런 날을 위해서 숨겨둔 거라면서 값비싼
샴궤인을 꺼내왔다 해리 렉스는 몇 달 동안 음식이라고는 손도 못
대 본 사람처럼 손가락으로 뼈를 잡고 고기를 물어뜯었다 제이크는
앞에 놓인 음식을 뒤적거리다가 얼음을 넣은 샴페인만 마셨다 두 잔
을 마시고 나서야 제이크는 멀리 광장을 내려다보며 편안하게 웃었
다 지금은 제이크가 즐겨야 할 土중한 순간이었다
왜 이렇게 멍청해 보여
해리 렉스가 입에 고기를 가득 문 채 제이크에게 말했다
그러지 마 해리 렉스 제이크가 이 순간을 누릴 수 있게 가만 좀
내버려두자군
루시엔이 끼여들었다
충분히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요 뭘 저 능글능글한 웃음 좀 보
신문에다가는 뭐라고 그래야 되지요
제이크가 물었다
앞으로 고객이 좀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해
해리 렉스가 제이크처럼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객이 오는 건 문제도 아냐 이제부터 약속 잡으려고 줄을 설 테
니까
루시엔은 자기 일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말했다
왜 법원에서 보도진들한테 얘기하지 않았어 카메라 들고 뛰고
난리가 났드만 나도 그들에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구
맞아 그때 얘기했으면 정말 무슨 말이든지 특종감이었을 텐데
루시엔이 말했다
이미 제 손안에 있으니까 딴데 못가요 우리 기자회견 입장권
팔아서 돈 좀 벌까요
제이크는 루시엔 쪽으로 은근히 고개를 내밀었다
나도 한 장 줘야 돼 제이크 공짜로 말이야 알았지
해리 렉스가 안달을 부렸다
세 사람은 찌그러진 포르세를 타고 갈지 아니면 고물차 브론코를
타고 갈지를 놓고 한참 말다툼을 벌였다 제이크가 운전을 하지 않겠
다고 하자 해리 렉스가 투덜거리면서 브론코에 올라탔고 루시엔은
뒷자리에 앉았다 제이크가 옆자리에 올라타서 길 안내를 했다 세
사람은 뒷골목을 골라서 광장 주위의 엄청난 교통량을 피해 고속도
로로 접어들었다 고속도로 역시 만원이었다 제이크는 다시 자갈길
로 접어들라고 했다 조금 가다가 아스팔트가 나오자 해리 렉스는
속도를 높여서 호수 쪽으로 내달렸다
질문이 있는데요 루시엔
제이크가 말했다
뭔데
사실대로 대답을 해주셔야 돼9
뭐냐니까
시스코하고 거래했어요
아냐 자네 힘으로 이긴 거야
맹세할 수 있어요
그럼 성경책 한 박스에 손을 올리고 맹세를 하지
제이크는 루시엔을 믿고 싶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제이크와 루시엔은 무더운 열기 속에서 아무 말
없이 해리 렉스가 따라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었다
갑자기 제이크가 손짓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해리 렉스는 차를
급히 세우면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는 속도를 낮춰 자
갈길로 기어 들어갔다
어디 가는 거야尸
루시엔이 물었다
잠깐이면 돼
제이크는 길 오른편으로 늘어선 집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가
두 번째 집을 손으로 가리키자 해리 렉스가 나무 그늘 아래 인도에
차를 세웠다 제이크는 차에서 나와 두리번거리다가 현관으로 걸어
가 문을 두드렸다
사내 하나가 문을 열고 나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는 제이크 브리건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문이 확 열리면서 사내가 현관으로 달려나와 제이크의 손을 맞잡
았다
반갑습니다 제이크 씨 저는 맥 로이 크로웰입니다 그 사건에서
대배심을 맡기도 했었죠 거의 기소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아무튼 잘하셨습니다 아주 훌릉했어요 당신이 정말 자랑스럽습니

제이크는 악수를 하면서 사내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맥 로이 크로웰 대배심에서 버클리에게 입 닥치고 찌그러져
있으라고 말한 그 사람이었다
아 맥 로이 씨 기억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이크는 어색한 몸짓으로 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완다를 찾으세요
크로웰이 물었다
지나는 길에 들렀습니다 명부에 적힌 주소가 생각이 나서요
잘 찾아오셨습니다 완다는 여기 살죠 결혼을 한 건 아니지만
줄곧 저랑 같이 살았죠 지금 잠들어 있습니다 아주 피곤했던 모양
깨우지는 마십시오
제이크가 손을 저어 보였다
완다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완다가 당신을 도와준 것 같던데요
어떻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완다가 배심원들에게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한 뒤 한번 다들 생각
해 보라고 했답니다 만약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백인 소녀가
흑인들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상상해 보자고 말이죠 土녀의 한쪽 발
은 나무에 묶이고 다른 한쪽 발은 울타리에 묶인 채로 폭행과 끔찍
한 강간을 당했다고 말이그 혹인 강간범들이 백인 아이를 강간하
면서 그애가 백인이라는 이유로 욕까지 했다고 치자고요
그애가 울면서 아버지를 간절하게 부르고 있는데 그놈들이 입을
걷어차고 이빨과 턱 코뼈까지 부수는 장면을 그대로 상상해 보라고
했답니다 술주정뱅이 흑인 놈들은 맥주를 쏟아붓구 얼굴에다 오줌
을 갈기고 미치광이들처럼 웃어대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서요 그럴
때 만약 그 소녀가 당신들의 가족이라면 당신들의 딸이라면 그리
고 당신들이 그들을 죽일 기회를 잡았다면 솔직하게 우리들은 어떻
게 했을지 종이에다 한번 써보자고 했답니다
그리고 그것을 투표함에 넣었는데 열두 명이 모두 죽이겠다고 대
답을 했더래요 12대 O으로 완벽했죠 완다는 자기는 크리스마스 때
까지라도 배심원실에서 버틸 수 있다며 그때까지 재판이 간다 해도
절대로 유죄 쪽에는 투표할 수 없다고 말했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들도 솔직하게 자기 생각대로 투표를 하라고 했대요 결국 배심원 중
에 열 명이 완다에게 동의를 했고 어떤 여자 한 명만 머뭇거리고 있
었다는데 다른 배심원들이 모두 울면서 그 여자를 나쁜 사람으로 몰
아세우니까 그 여자도 결국은 두 손을 들었답니다 아주 힘든 평결이
었다고 해요 제이크 씨
제이크는 크로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가슴에 새겼다 숨조차
뒬 수 없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완다 워맥이 문으로
걸어나왔다 그녀는 제이크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눈에 눈물이 가
득 고여 있었다 제이크는 완다 워맥을 마주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그의 입에서 겨우겨우 나온 말이었다 완다 워맥도 눈가를 닦아내
면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크래프트 가에 있는 헤일리 집으로 들어가는 양쪽 보도는 차들로
꽉 메워져 있었다 넓은 앞마당은 노는 아이들과 나무 그늘에 앉거
나 자동차 위에 걸터앉은 사람들로 대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해리 렉
스는 우체통 옆의 도랑 근처에 차를 세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칼 리
를 구해낸 변호사를 보기 위해서 달려나왔다 레스터가 제이크의 손
을 흔들면서 말했다
당신 또 해냈어요 또 했다구9
둘은 서로의 등을 두드리면서 현관으로 걸어 올라갔다 에이지 목
사가 제이크를 끌어안으면서 축하한다고 했다 현관에 앉아 있던 칼
리는 혼들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의 뒤로는
가족들과 후원자들이 겯겹이 쌓여 있었다 칼 리와 제이크가 마주보
고 서자 그 감격스러운 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사람들이 두 사람 주
위를 에워쌌다 둘은 손을 맞잡고 미소를 지으면서 무슨 말을 꺼낼
지 몰라 마냥 그렇게 서 있었다 마침내 둘이 포옹을 했다 둘러선 사
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고마워요 제이크
칼 리가 물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변호사와 의뢰인은 흔들의자에 앉아 재판에 대해서 쏟아지는 무
수한 질문에 대답을 했다 루시엔과 해리 렉스는 레스터와 다른 친구
들과 어울려서 나무 그늘 아래서 조촐한 술파티를 벌였다 토냐는 많
은 아이들과 함께 앞마당을 뛰어다녔다
두시 삼십분 제이크는 책상에 앉아 칼라쎄게 전화를 걸었다 해리
렉스와 레스터는 마지막 마가리타를 마시면서 금세 취해 떨어졌다
제이크는 칼라에게 세 시간 후에 멤피스에서 비행기를 잡아타고 떠
나 열시까지 노스캐롤라이나에 도착하겠다고 말했다
그래 괜찮아
제이크의 음성이 수화기를 타고 노스캐롤라이나로 전달되었다 모
든 것이 괜찮고 모든 것이 다 끝났다 제이크는 지금 기자들이 수십
명 회의실에 모여 있으니까 저녁 뉴스는 놓치지 말라고 말하고는 빨
리 끝내고 멤피스로 달려갈 것을 거듭 약속했다
사랑해 정말 보고 싶어 곧 갈게
제이크는 그 말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제이크는 내일 엘렌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오늘 떠나는 거지
루시엔이 물었다
자네 정말 바보군 천 명이나 되는 보도진들이 자네를 못 찍어서
안달인데 오늘 떠난단 말야 그런 멍청한 짓이 어디 있어
해리 렉스가 소리를 질렀다
제이크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내 모습 어때 좋아 보여
뭐가 어때서 그래 오늘 떠나면 바보 중의 바보야
며칠 미뤄 이건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일 제이크 제발
루시엔도 애원조로 해리 렉스를 거들었다
너무 흥분하지 말아요 지금 당장 가겠다는 게 아니에요 내려가
서 기자들을 만나구 사진도 찍게 놔두구 질문에 대답도 멋지게 한
다음 갈 거라구
미쳤군 제이크
해리 렉스는 여전히 화를 풀지 못했다
내가 보기도 그래
루시엔도 마찬가지였다
제이크는 거울을 보면서 앳캐비지가 빌려준 넥타이를 고쳐 맸다
그러고는 친구들을 보면서 웃었다
모두 고마웠어요 나는 진짜 두 사람이 좋습니다 이번 재판으로
9백 달러를 벌었는데 두 사람하고 나눠 쓸 생각이에요
해리 렉스와 루시엔은 마가리타를 따라서 한 입에 삼킨 다음 제
이크를 따라 아래충으로 내려갔다
기자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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