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20가지 과학 이야기
B.E.짐머맨 & D.J.짐머맨
첫째마당-참을 수 없는 과학에의 호기심
생물들의 성
하늘에 드리운 그림자
대체 의학
유성우:바윗덩어리 비
천체들이 충돌할 때
살인 유전자를 찾아서
알레르기:존재하지 않는 적과의 싸움
땅콩 버터에서 다이아몬드를
둘째마당-아는 길도 물어 가라
기적의 분자
지구에서 생물은 어떻게 출연하였는가?
열대 우림
일반적으로 말하면
시간대의 역사
셋째마당-낯선 시간 속으로
가상 현실:거짓 세계
나의 형제, 클론
카오스 이론: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한다.
공간 여행과 시간 여행
화성, 제2의 우리의 고향(1)
화성, 제2의 우리의 고향(2)
초전도:저항이 전혀 없는 길
첫째 마당-참을 수 없는 과학에의 호기심
생물들의 성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섹스를 한다. 이른 봄 연못가에서, 수캐구리가 암캐구리 위헤 올라타
고 있는 모습은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암캐구리가 물 속에 알을 낳자마자 숙개구리는
그 위에다 정자를 쏟아 놓는다. 수캐구리는 암캐구리 몸 안에 집어 넣을 수 있는 페니스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수캐구리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종류의 청개구
리들은 암컷과 수컷이 6개월 동안이나 계속 서로 들러붙은 채로 지내기도 한다.
꿀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털투성이인 자신의 몸에 꽃가루들을 묻혀 다른 꽃들에게
옮겨 줌으로써, 꽃들의 생식을 도와준다. 고등 식물에게 꽃은 생식 기관이고, 꽃가루는 동물
의 정자인 셈이다.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단세포 생물인 짚신벌레도 서로 격력하게 포옹하는 것처럼 보이
는 접합을 한다. 거기에 무슨 사랑이나 열정이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은 분명
히 성 행위이다. 왜냐하면 이 과정에서 유전 물질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든 생물들은 성 행위를 한다. 그렇다면 왜 생물들 사이에는 이러한 성 행위
가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을까? 생식을 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 간단하고 쉬운 방법
이 있다. 바로 무기 생식이라는 방법인데, 사실 유성 생식을 하는 종들이 출현하기 전의 약
10억 년에 걸쳐 생물들은 이 무성 생식을 통해 번식하였다.
1)유성 생식 대 무성 생식
무성 생식에서는 부모가 어느 한 쪽만 있어도 충분하다. 많은 식물들은(대부분은 아니지
만) 이 방법을 통해 번식하며, 정원수의 가지를 잘라 땅에 심는 경우가 바로 무성 생식이다.
또 세균이나 단세포 생물이 반으로 분열하여, 2개의 딸세포를 만드는 이분법의 경우도 무성
생식이다.
곰팡이나 버섯 같은 균류 중에는 포자법으로 번식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 역시 무성 생
식의 일종이다. 이들 포자는 날아가서 그대로 새로운 곰팡이나 버섯으로 성장하게 된다.
동물 중에도 무성 생식을 하는 종류가 있다. 물론 무성 생식을 하는 동물은 일부 하등 동
물에 제한되어 있다. 예를 들어 동물 중에서 가장 간단한 종인 해면 동물은, 단순히 세포들
을 뿌리면 그것들이 새로운 해면 동물로 자라난다. 해파리의 친척인 히드라는 자기 자신의
몸에서 새로운 개체가 쑥 솟아나와 독립해 나간다. 이 기묘한 무성 생식법은 '출아법'이라
부른다.
해파리의 또 다른 친척인 말미잘은 바다 밑바닥에 붙어 사는 고착 동물이다.밝은 빛깔을
지닌 촉수 때문에 말미잘은 마치 바다 밑의 꽃처럼 보인다. 말미잘이 번식을 할 때에는 간
단히 몸 중간 부분이 둘로 나누어지고, 2개의 새로운 개체가 생긴다.
어떤 편형 동물들은 번식을 하고자 할 때 신체의 일부가 잘려 나간다. 그리고 이 잘려 나
간 조각 하나하나가 새로운 개체로 성장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준다. 물에 잠긴 통나무
나 돌 밑바닥에 붙어 사는 플라나리아가 바로 그러한 편형 동물이다.
그렇지만 진화의 사닥다리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무성 생식은 점차 보기 힘들어진다. 불가
사리는 각각의 팔에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를 한 쌍씩 갖추고 있으며, 평소에는 무성 생식을
하지 않지만 조개 양식업자들 때문에 무성 생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불가사리는 조
개를 먹고 산다. 불가사리는 팔들을 이용하여 천천히 조개의 껍질을 열어 젖힌다. 그리고 입
에서 위장을 끄집어 내어 조개의 맛있는 내장으로 집어 넣는다. 조개 양식업자들은 이러한
불가사리를 반가워할 리 없으므로, 그물에 불가사리가 걸리면 여러 조각으로 토막내어 다시
바닷속으로 던져 버린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현명한 벙법이 아니다. 양식업자들은 불가사리
를 완전히 죽였다고 생각하겠지만, 중심 원반 부분을 조금이라도 포함하고 있는 조각들은
상실된 부분들을 재생하여, 다시 새로운 불가사리로 자라날 수 있다. 이 경우에 무성 생식을
하는 것이다.
척추 동물-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이 무성 생식을 하는 경우에는 매우 드물
게 나타나며, 하더라도 그렇게 특이한 양상을 보이지는 않는다. 팔이나 다리가 떨어져 나가
새로운 개체로 성장하는 일 때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무성 생식이 일어나는 경우가
난자가 정자와 수정을 거치지 않고, 혼자서 새로운 개체로 발생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것을
'단위 생식' 또는 '처녀 생식'이라 하는데, 어류와 양서류, 도마뱀류 중 몇몇 종에서 볼 수 있
다. 텍사스 주와 멕시코에 서식하는 밝은 빛깔의 작은 물고기인 아마존 몰리(Amazon
molly)의 경우는, 수컷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도 최소한 한 번은 처녀
생식을 한 적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바로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것이다.
동물들이 무성 생식을 하는 경우는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다. 배우자의 존재 없이 쉽고
간단하게 번식을 할 수 있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척추 동물은 말할 것도 없으며 곤충이나
거미류, 게, 바닷가재, 지렁이 따위도 반드시 암컷과 수컷의 교미를 통해 생식을 한다. 짝을
찾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교미에 필요한 복잡한 생식기를 갖추어야 하는 거추장
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유성 생식은 동물의 세계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다. 무성 생식을 하는
가장 간단한 동물도 때에 따라서 유성 생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럴까? 동물들이 이토록 집착하는 유성 생식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한마디로 대
답하면, 다양성이다. 무성 생식의 경우는 부모를 그대로 복사한 개체들이 만들어진다. 새로
운 개체들은 겉모습만 같을 뿐 아니라 유정적으로도 동일하다(간혹 일어나는 돌연변이는 예
외로 한다.)
그런데 모든 개체들이 유전적으로 똑같은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만약 한 호수에
사는 모든 물고리들이 특정 사상균에 민감하다고 가정할 경우, 그 사상균이 호수에 흘러 들
어오면 물고기는 모조리 전멸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상균에 덜 민감한 변종들이 있다면, 그
들 중 일부 물고기는 살아 남아 대를 이어 갈 수 있게 된다.
집단 내에서의 다양성, 이것이 바로 유성 생식의 축복이다. 수컷과 암컷이 교미를 할 때에
는 유전 물질이 혼합된다. 그래서 새로운 개체들은 부모로부터 서로 다른 유전자들을 물려
받아, 어떠한 개체도 똑같은 유전자 세트를 가질 수 없다-똑같은 부모에게서 난 개체들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유전적으로 동일한 일란성 쌍생아의 경우이다
(일란성 쌍생아에 대해서는 「나의 형제, 클론」편 참고).
2)짝짓기
유성 생식을 하기 위해서는 배우자를 찾아야 한다. 몹시 춥고 캄캄한 깊은 바다와 같은
가혹한 환경에서 설상가상 개체수도 적게 존재하는 종의 경우,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
다. 깊은 바다에 사는 수컷 아귀가 암컷을 만날 기회가 적다면 어떻게 짝짓기를 할 것인가?
그러나 거기에 대해 여러분은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수컷 아귀는 아주 놀라운 방법으
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암컷은 큰 것의 경우에는 1m나 되지만, 수컷 아귀는 불과 1cm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렇게 큰 차이 때문에 분류학자들은 한때 이들을 별개의 종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발달 과정
의 초기에 수컷 아귀는 암컷에 달라붙는다. 너무나도 단단하게 달라붙어, 수컷은 사실상 암
컷의 몸 안에서 자란다. 순환계마저 암컷의 그것에 연결되어 버린다. 이 조그마한 수컷은 스
스로 먹이를 섭취하지 않고, 기생충처럼 암컷에 붙어 산다. 실제로 수컷은 암컷의 혈액 흐름
에서 호르몬의 변화를 감지하여 필요에 따라 정자를 방출하는, 하나의 생식기에 불과한 존
재로 전락한다. 이는 그다지 남성적인 행동처럼 보이지 않지만, 아귀의 번식을 위해서는 좋
다.
따개비는 딱딱한 껍데기 속에 털이 많이 난 자신의 몸을 감추고 있는 작은 동물이다. 따
개비는 아귀처럼 깊은 바다 밑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지 않고, 얕은 바다에 무수히 많이 모
여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따개비 역시 고착 생활을 한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따개비는 평생 동안 바위나 나무, 배 밑바닥, 다른 커다란 바다동물의 몸 등에 붙어
산다. 이처럼 몸이 다른 물체에 단단하게 들러붙어 있기 때문에, 따개비가 짝을 찾아 돌아다
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따개비는 이 난관을 극복하는 기발한 방법을 찾아내었다.l 바닷가 어디를 가나
따개비를 볼 수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따개비는 두 가지 적응 방식, 즉 자웅 동체와 거대
한 페니스를 통하여 이러한 성공을 거두었다.
자신의 몸 크기에 대한 비율로 따진다면, 따개비는 모든 동물 중 가장 큰 생식기를 가지
고 있다. 그것은 전체 몸 크기의 2배나 된다. 따개비는 약 4cm에 이르는 이 괴물 같은 성기
를 쭉 뻗어, 옆에 있는 따개비의 구멍 속에 집어 넣는다. 따개비들은 서로 빽빽하게 집단을
이루고 살기 때문에 이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따개비들은 이웃의 성에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모든 따개비는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를 모두 갖추고, 정자와 난자를 모두 생산하는 자웅 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모든
따개비가 이웃의 따개비를 수정시킬 수도 있고, 그 이웃에 의해 수정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웃의 따개비가 페니스가 닿을 수 있는 길이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다면, 따
개비는 혼자서 수정하여 자손을 낳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
다고 했던가?
자웅 동체는 동물 세계에서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니다. 지렁이와 같은 많은 벌레들은 자웅
동체이며, 달팽이 등 연체 동물도 자웅 동체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산호초에 사는 물고기
인 푸른머리 양놀래기(blue-headed wrasse)이다. 수컷 양놀래기는 푸른 머리를 가지고 있으
며, 암컷보다 크다. 수컷 한 마리는 암컷 대여섯 마리를 거느리고 하렘을 이루고 있으며, 매
일 모든 암컷들과 짝짓기를 한다. 그리고 수컷이 죽게 되면, 암컷들 중 가장 큰 것이 약 2주
일만에 푸른 머리와 수컷의 성기를 갖추게 되어 수컷으로 행세한다.
한편 청소부 양놀래기(다른 고기의 몸에 붙어 있는 기생충을 잡아 먹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라고 하는 다른 종류의 양놀래기는, 수컷이 죽은 후 몇 시간 만에 암컷이 수컷으로
변한다. 또 여러분이 즐겨 먹는 커다란 보리새우(butterfly shrimp)도 역시, 어릴 때에는 조
그맣고 보잘 것 없는 수컷이었다가 커다란 암컷으로 변한 것이다.
짝을 찾기 위해 어떤 동물들은 극단적인 수단을 강구하기도 한다. 진드기의 일종인 옴벌
레(개선충)가 그러한 경우이다. 진드기는 거미류에 속하는, 다리가 여덟 개 달린 아주 작은
벌레이다. 많은 벌레들은 다른 동물의 피나 피부, 조직을 먹고 사는 기생 생활을 하는데, 옴
벌레도 역시 그러한 기생충이다.
옴벌레는 숙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평생을 살며, 짝을 찾아 숙주를 떠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옴벌레에게 숙주 동물은 완전히 고립된 하나의 섬이다. 주위에 짝은 없는데 생
식은 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 앞에 맞닥뜨리면, 옴벌레는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근친 상간을 하는 것이다. 아드리안 포시스는 『성의 자연사(A Natural
History of Sex)라는 책에서 이것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옴벌레는 다 자란 상태에서 태어난다. 모든 중간 과정이 하나로 압축된 것이다. 맨 먼저
깨어나는 것들은 수컷이며, 이들이 산파의 역할을 맡는다. 즉, 이들은 집게 모양의 다리를
어미의 몸 속에 집어 넣어, 자신의 여동생들을 끄집어 내기 시작한다. 수컷은 자신의 여동생
을 차지하자마자 교미를 한다……. 수컷 한 마리가 20여 마리의 여동생들 전부와 교미를 하
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종류의 옴벌레는 어미 뱃속에 들어 있을 때부터 이미 수컷이 여동생들과 교미를
한다. 그리고 수컷을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 버린다. 처녀성을 잃은 그의 여동생들은 어미의
배에 구멍을 뚫고 밖으로 기어나온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일어난다. 암컷들은 교미를 하지도 않은 상태에
서 수정되지 않은 알들을 낳게 되며, 이것들은 수컷으로 깨어난다. 그러면 어미는 새로 깨어
난 자기 자식들과 교미를 한다. 이렇게 수정을 통해 낳은 알들은 모두 암컷으로 태어나며,
이것들은 다시 제 어미가 했던 것과 똑같은 근친 상간을 저지른다. 포시스는 이를 "아들이
어머니의 남편이자, 여동생의 아버지가 된다. 여동생은 오빠의 딸이고, 자기 아들의 아내이
다." 라고 묘사하고 있다.
정액을 암컷에게 가장 이상한 방법으로 전하는 동물 중 하나는 빈대이다. 곤충류에 속하
는 빈대는 무척추 동물 중에서 페니스를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빈대는 낮에는 가구나 마루
의 틈 사이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살금살금 기어 나와 잠자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다. 그들은 피를 충분히 빨아먹고 떠나면서, 다녀갔다는 표시로 매우 따금거리는 붉은 반점
을 남겨 놓는다.
물론 우리로서는 결코 반가운 이웃이 아니다. 빈대는 수컷끼리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강
간을 자행하는데, 동성간의 성 폭행에는 이유가 있긴 하다. 그리고 성 폭행 피해자인 수컷이
암컷과 교미하게 되면, 강간한 빈대의 정액이 암컷의 몸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빈대는 암컷과 교미를 할 때에도 난폭한 방법으로 한다. 암컷이 완벽한 생식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컷은 칼과 같은 날카로운 자신의 성기를 암컷의 배에 찔러 넣는다. 방
출된 정액은 암컷의 순환계를 돌아다니다가 저장 기관에 모여, 결국은 암컷이 낳은 알들과
수정된다. 그 동안에 특수한 조직들이 자라나 암컷의 상처를 회복시키게 되는 것이다.
빈대 못지않게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동물은, 체절(환형 동물 등의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낱낱의 마디)구조를 가진 바다 지렁이인 플라티네레이스 메갈롭스(Platynereis megalops)이
다(체질을 가진 환형 동물에는 지렁이와 거머리도 포함된다). 무리를 지어 모여 있을 때, 암
컷들은 수컷들의 꼬리 체절들을 뜯어 먹는다. 체절들 안에는 정액이 들어 있다. 몸 속으로
들어간 체절을 암컷의 소화액이 녹임으로써 정액을 해방시키면, 정액은 창자벽을 통해 체강
으로 들어가 우여곡절 끝에 난자를 찾아 수정된다(다행히도 수컷은 잃어버린 체절들을 재생
할 수 있다).
수펄은 그다지 운이 좋은 편은 아니다. 교미를 할 때 수펄은 문자 그대로 폭발해 버린다.
수펄의 성기는 수류탄처럼 폭발한다. 왜 자폭을 하는 교미 방법을 선택하도록 진화했는가
하고 여러분은 의아해 할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자신의 내장 모두를 빼 준다는 말인가? 이
상하게 생각될지 몰라도, 수펄은 교미 도중 자폭을 함으로써 자신의 생식기를 여왕벌의 몸
속 깊숙히 집어 넣을 수 있다. 이것은 여왕벌의 생식기 통로를 완전히 막아, 자신이 아닌 다
른 수펄의 정액이 수정되지 못하도록 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많은 곤충들은 페니스를 가지고 있다. 육상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은
페니스를 사용함으로써, 정액 전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거미류는 육상 동물이지만
페니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다. 거미는 복부에 붙어있는 발더듬
이라고 하는 한 쌍의 부속 기관을, 점안기처럼 사용하는 성기로 발전시켰다. 발더듬이 끝 부
분에 있는 흡입 주머니에는 정액이 모였다가, 암컷의 생식기 구멍으로 직접 방출된다.불행히
도 교미 중간이나 교미가 끝난 바로 직후, 수컷은 종종 암컷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수컷이
소모품으로, 특히 암컷의 먹이로 제공되는 것에 놀랄 필요는 없다. 일단 임무를 다한 수컷은
더 이상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포시스의 표현을 빌자면, "개체는 유전자가 자신을 전
달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교미 방법은 정협(精 :정자가 있는 주머
니)이다. 정포는 정자들이 모여 있는 고체 상태의 다발로, 많은 종류의 곤충, 환형 동물, 연
체 동물 그리고 도룡뇽 등에서 볼 수 있다. 거머리도 정포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암컷의 등에다 붙여 놓는다. 정포의 껍질에는 자극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암컷의 피부에 궤
양을 일으킨다. 정자는 이 궤양을 통하여 암컷의 몸 속으로 들어가며, 결국은 성숙한 난자들
이 기다리고 있는 난소로 흘러가게 된다.
대왕문어(giant octopus)의 정포는 연필처럼 두껍고, 길이도 90cm가 넘는다. 달팽이는 암
컷의 자궁 내부의 구불구불한 구조와 일치하는, 기괴한 모양의 정포를 만들어 낸다. 어떤 정
포들은 엄청나게 커서 수컷 몸무게의 절반에 달하는 것도 있다. 모양이나 크기가 어떻든 간
에, 정포는 다목적용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암컷의 생식기 입구를 틀어막아, 꿀벌의
수류탄 성기처럼 다른 수컷의 정자가 침투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봉쇄한다. EH한 고단백질
로 이루어진 껍질은 곧 수태할 암컷에세 양질의 영양분을 공급한다. 그러나 정포의 진정한
가치는, 육상 동물들에게서는 정액을 액체의 형태로 암컷에게 집어 넣을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만약 당신이 양서류이고 페니스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정포가 아주 편리하다는 것을 꺠닫
게 될 것이다. 페니스를 가지지 않은 양서류인 개구리류는 정자와 난자를 얕은 물 속에 함
께 집어 넣음으로써 생식하지만, 많은 도룡뇽은 수컷이 암컷에게 최음제를 주입하기도 한다.
그러면 암컷이 수컷의 꽁무니를 뒤쫓아다니게 되는데, 이때 수컷은 땅바닥에 아교질의 정포
를 쏟는다. 그 정포 위를 지나가면서 암컷은 정포를 자신의 생식기 안으로 흡입해 들이는
것이다.
육상 척추 동물들 중에서 페니스나 다른 교접 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조류이다(단
오리나 거위, 백조 등에서는 아주 초보적인 기관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류들에
서 정액 이동은 '배설강 키스(cldacal kiss)'에 의해 이루어진다.
배설강이란 배설기와 생식기를 겸한 장관(腸管)의 끝 부분으로 포유류를 제외한 모든 척
추 동물은 배설강을 가지고 있다. 암컷과 수컷이 서로의 배설강을 대고 강하게 압박하면, 수
컷의 정액이 암컷의 배설강 속으로 전달된다. 어류 중에서는 체외 수정보다 배설강 키스를
하는 것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파충류는 페티스를 가지고 있다. 뱀은 끝이 두 개로 갈라진 페니스를 가지고 있
다(한쪽을 헤미니페니스(hemipenis)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페니스를 가진 것은
뭐니뭐니 해도 포유류이다. 모든 포유류는 페니스를 가지고 있으며, 포유류의 페니스는 신경
과 근육, 발기 조직과 혈관 조직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기관이다. 적절한 자극을 받아 발기
세포가 혈약으로 가득 차면, 페니스는 단단해진다. 고래의 경우, 발기시의 페니스 길이는
3.6mm까지 이른다. 여러분이 궁금해 할 것 같아 살짝 가르쳐 주는데, 세상에서 가장 큰 고
환은 바로 고래의 것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거대한 정자 생산 공장으로, 무게는 0.5톤이
나 나가고 길이는 2.7m나 된다.
대부분이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포유류는 암컷의 생식기에 페니스를 완만히 삽입할 수
있도록 페니스 안에 특수한 구조를 발달시켰다. 바로 음경뼈(penis bone)이다. 음경뼈는 포
유류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박쥐, 뾰족뒤쥐, 두더지, 그리고 개나 고양이, 곰 같은 육식 동물
뿐만 아니라 물개나 바다사자 등도 음경뼈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우인원도 음경뼈를
가지고 있다. 한편 바다코끼리의 음경뼈는 길이가 약 60cm에 이르는 뭉둥이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
음경뼈를 가졌든 발더듬이를 가졌든 간에, 또는 자웅 동체이건 동성끼리 강간을 자행하건
간에 모든 생물들은 섹스를 통하여 생식을 하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발달시켰다. 세상에는
알려진 것만해도 약 150만 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데, 그 중 똑같은 방법으로 생식을 하는
것은 거의 없다. 이는 자연과 성의 경이이자 아름다움이다.
하늘에 드리운 그림자
1941년에 아이작 아시모프는 『황혼(Nightfall)이라는 단편 소설을 썼다. 이 작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훗날 미국 공상과학 소설 작가협회에서 행한 투표에서 사상 최고의 공
상 과학 소설로 선정되었다. 이 소설에는 라가시(Lagash)라는 행성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여섯 개의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그래서 라가시에는 언제든지 최소한 하나의 해가 비치도
록 되어 있다. 라가시에는 어둠이나 밤이 찾아오는 법이 없고, 별도 뜨지 않는다. 그러던 어
느 날 상상할 수 없는 바로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밤이 찾아오고 별들이 하늘에 그 모습을
드러냈으며, 라가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렸다. 항상 하늘에 최소한 하나의 해가
떠 있는데, 어떻게 라가시에 어둠이 찾아올 수 있었는가?
1)정오의 황혼
그것은 바로 일식 때문이었다. 일식은 행성 라가시뿐 아니라 이곳 지구에서도 종종 일어
난다. 일식이 일어나는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놓여 태양에서 오는
빛을 가로막고 그 그림자가 지구를 가릴 때, 일식이 일어나는 것이다. 태양과는 달리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하라. 달이 밤하늘에서 빛을 내는 것은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서 달이 지구에 던지는 원반 모양의 그림자는, 본그림자(umbra)와 반그림자
(penumbra)등 두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반그림자는 부분적인 그림자로,
태양 표면에서 나오는 빛의 일부가 반그림자 영역에 비친다. 반면 본그림자는 완전한 그림
자로, 태양으로부터의 어떤 빛도 본그림자 영역에 비치지 않는다. 달의 반그림자 영역에 들
어간 지구 위의 장소들에서는 부분 일식이 일어난다. 그곳의 관측자가 볼 때, 태양은 한 쪽
부분이 잘려 나간 것거처럼 보인다(단, 이것은 적절한 필터를 통해 태양을 볼 때 그렇게 보
일 뿐이다. 부분 일식이 일어난다 해도, 보행자들은 햇빛이 약간 침침해진 것을 느낄 따름이
다). 달의 본그림자가 비치는 영역에 들어간 지구의 곳곳에서는 개기 일식이 일어나고, 태양
은 완전히 달에 의해 가려진다. 태양의 대기에서 퍼져 나오는 빛의 무리(halo)만이 달의 어
두운 원반 주위에서 보일 뿐이다.
일식은 그렇게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일식은 매년 2∼5차례 정도는 일어나며,
동시에 지구상의 어딘가에서는 최고 세차례까지 개기 일식이 일어난다(개기 일식이 일어나
는 지역의 범위는 매우 좁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부분 일식과 개기 일식은 동시에 일어
나는 사겆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부분 일식만 경험하거나 아예 일식을 보지
못한다). 논리적으로 이해하자면, 달이 지구 주위를 돌면서 태양과 지구 사이를 지나갈 때마
다, 즉 한 달에 한 번씩은 일식이 일어나야 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이렇다. 우선 개기 일식의 경우를 살펴보자, 위에서 내려다볼 때, 달은
정확하게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한다(달이 태양과 지구와 함께 이런 식으로 늘어서는 것
을 합(合)이라 하며, 달이 초승달로 나타나는 음력 초하루에 일어난다. 일식은 합이 일어날
때에만, 즉 음력 초하루에만 일어날 수 있다). 달은 지구 주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29.5일 뒤에 달은 다시 태양과 지수 사이에 가로놓이고, 이는29.5일이 지날 때마다 반복된다.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위치할 때마다 일식이 일어난다면, 왜 일식은 29.5일마다 계속 일
어나지 않는가? 아니, 왜 29.5일마다 개기 일식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1)일직선상으로 정렬될 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달이 29.5일마다, 즉 초승달이 될 때마다 반드시 태양과 지구를 잇
는 직선상에 위치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달이 지구와 태양을 잇는
직선상에 위치하지만, 측면에서 보면 달이 항상 그러한 위치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달은 일
직선상에서 약간 위 또는 아래로 치우쳐 위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달이 태
양을 가리지 않으므로 일식이 일어나지 않으며, 때로는 세 천체를 잇는 선이 부분적으로 겹
쳐 부분 일식이 일어나기도 한다.
음력 초하루 때마다 달이 태양과 지구에 일직선상으로 놓이지 않는 이유는,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의 공전 궤도가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공전 궤도에 대해 5°정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달은 지구의 공전 궤도면에서 약간 위나 아래로 비켜나 있
다. 일식은 달이 지구의 공전 궤도면을 가로질러 갈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 또 공전 궤도면
을 가로질러 가는 시간도 음력 초하루와 맞춰 일어나야만 일식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들-시간과 공간-이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일식은 매달 일어나
는 것이 아니라 이따금씩 일어난다.
실제로 개기 일식은, 이런 단순한 천체 역학의 이유만으로도 기대보다 훨씬 드물게 일어
난다. 비록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완전히 일직선을 그리며 가로놓인다 하더라도, 달이 태
양을 완전히 뒤덮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개기 일식이 일어나
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부분 일식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2)크기문제
여기서 결정적인 요소는 크기이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뒤덮으려면 최소한 태양의 겉보기
크기만큼은 커야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천체의 곁보기 크기는 거의 비슷하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겠지만, 겉보기 크기가 같다고 해서 두 천체의 실제 크기도 같은 것은
아니다. 태양의 지름은 달보다 무려 400배나 크지만, 태양은 달보다 약 400배나 더 먼 거리
에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곳 지구에서 볼 때는 두 천체의 겉보기 크기가 비슷해 보이는 것
이다. 어쨌든 일식의 경우, 중요한 것은 실제 크기가 아니고 바로 이 겉보기 크기이다. 겉보
기 크기는 그 천체가 하늘에서 차지하는 각도로 나타낼 수 있다. 태양과 달은 모두 약0.5°
의 시지름을 가진다. 이것은 어린이용 아스피린을 팔 뻗은 손 끝에 쥐고 볼 때의 크기와 비
슷하다. 같은 거리에서 엄지손가락의 굵기는 약2°, 주먹은 8∼10°의 크기로 보인다. 그러
므로 엄지손가락의 굵기는 달 네 개를 이어 붙인 크기와 비슷하다.
태양과 달은 거의 똑같은 시지름을 가지지만, 때에 따라 달이 평소보다 좀더 멀리 떨어질
때도 있고, 또 태양이 평소보다 더 가까이 다가올 수도 있다(믿거나 말거나, 태양은 겨울에
여름보다 약 480만km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이러한 경우는 달이 태양보다 약간 더 작아 보
인다. 따라서 설사 태양과 달, 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이더라도 달은 태양을 완전히 뒤덮지 못
한다. 이 경우, 태양 가장자리의 얇은 고리가 달의 어두운 원반 주위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
러한 종류의 일식을 금환식(金環蝕)이라 부른다. <그림 3>은 금환식이 일어나는 경우를 나
타내고 있다. 지구 표면의 어떤 곳도 달의 본그림자 속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금환식의 장관
은 1994년 5월 10일에 볼 수 있었다. 텍사스 주에서 메인 주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금환
식은 6분 이상이나 계속되었다.
(3)개기 일식
여러 종류의 일식 중에서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개기 일식이다. 그럼 눈을 감고 상상력
을 최대한 동원하여, 개기 일식의 장관을 경험해 보기로 하자.
일식은 달이 태양과 최초의 접촉을 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보통 우리가 보았을
때 오른쪽에서부터 일어난다. 일식이 진행되면서 달은 차차 태양을 먹어 들어간다. 태양이
반쯤 가려지고부터는, 대낮인데도 세상이 조금씩 어두침침해지기 시작한다. 태양이 초승달
모양으로 점점 얇아짐에 따라 어두움은 점점 더 짙어진다. 태양의 약 90%가 덮이면, 하늘의
어두움은 이제 현저하게 느껴질 것이다. 단순히 구름 낀 날과는 다른 느낌이 여러분을 엄습
할 것이다. 뭔가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밤이 다가와 박쥐들이 날아다니고,
꽃이 꽃망울을 닫을지도 모른다.
개기 일식에 접어들기 1분쯤 전에, 태양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달의 가장자리 근처를
간신히 덮고 있는 가느다란 테로 변한다. 이 테는 태양의 마지막 빛이 달 표면을 수놓고 있
는 계곡들과 크레이터들을 지나오는 순간, 빛들의 점으로 분열될 수도 있다. 이 목걸이 모양
의 빛들은, 19세기에 이미 이러한 현상을 묘사한 천문학자의 이름을 따서, '베일리의 목걸이
(Bailey's beads)'라 부른다. 일식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한 5초쯤 전에 이 목걸이 모양의
빛들은 단 하나의 빛으로 축소되어, 빛의 무리 속에서 빛나는 하나의 보석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은 특히 깊은 계곡을 통과해 온 빛만 남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일이다. 이를 '다이
아몬드 반지'라 한다.
그런 다음 개기 일식이 시작된다. 이를 두 번째 접촉이라 부른다,. 이것은 정말 악몽을 꾸
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밝은 대낮에 갑자기 별들이 총총히 빛을 발한다. 평소에는 태양의
밝은 광구에 가려 보이지 않던 태양의 대기 바깥층인 코로나(corona)가, 유령처럼 홀연히 불
길을 흩날리며 등장한다. 이 유백색의 코로나는 개기 일식의 장관으로 꼽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이외에도 달의 가장자리 주변에 나타나는 태양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어, 태양 표면에
서 갑자기 뜨거운 기체 덩어리의 붉은 혀가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개기 일식은 끝나고 만다. 태양은 다시 빛나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여러분의 눈을 기준으로 오른쪽부터). 천문학자들은 이것을 세 번째 접촉
이라 부른다. 개기 일식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이번에는 거꾸로 되짚어 일
어난다. 코로나의 광채도 사라지고, 다이아몬드 반지, 베일리의 목걸이도 거꾸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별들도 다시 숨어 버리고, 대낮의 환한 빛이 온 세상을 뒤덮는다. 일식은 마지만
접촉 이후 끝이 난다.
개기 일식은 최고 7분 40초까지 진행될 수 있으며, 평균적으로는 2분 30초 정도 진행된다.
전체 일식 과정-최초의 접촉에서 마지막 접촉까지-은 최고 3시간 동안 진행될 수 있다.
(4)발생 빈도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일식은 그렇게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지구 표면의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난다(개기 일식은 특히 그렇다). 지구가 자전함에 따라 본그림자는 개기 일
식대라 부르는 영역을 따라 지표면을 지나간다. 이 길의 너비는 적도 지역에서는 최고
269km까지 이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것보다 훨씬 더 좁다(남북으로 위도가 더 높은
곳에서는 그림자가 지구에 비스듬히 걸쳐지기 때문에 다소 넓게 퍼진다). 지표면의 95% 이
상은 개기 일식대 바깥에 놓여 있어, 개기 일식을 전혀 볼 수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비록 개기 일식 현상이 아주 드물지는 않지만, 지구상의 한 지역에
서 개기 일식을 보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장 최근에 미국의 어느 지역에
서 개기 일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1979년 2월 26일이었는데, 미국 대륙에서 개기 일식을
다시 볼 수 있으려면 38년 후인 2017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같은 대륙 또는 같은 나라가 아
닌, 똑같은 장소에서 개기 일식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는 따라서 더욱 드물다. 그것은 활귝
상 50년에 한 번꼴로 일어난다.
특별히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되는 개기 일식은-지속 시간과 개기 일식의 정도로 볼 때
-1991년 7월 11일에 일어났다. 하와이, 멕시코, 중앙 아메리카 지역 등에서 개기 일식을 목
격할 수 있었는데, 지속 시간은 6분 58초-최고 지속 시간에 가까운-이나 되었다. 이와 비슷
하거나 이를 능가하는 가장 최근의 일식은 1955년에 일어났다. 그 다음은 141년 후인 2132
년에 일어날 것이다. <표1>에 1991년부터 2000년 사이에 발생했거나 발생할 일식의 날짜와
종류, 그리고 그것을 볼 수 있는 지역을 실어 놓았다.
부분 일식, 금환식, 개기 일식 외에 제4의 일식이 있는데, 바로 금환-개기 일식이다(1991
년에서 2000년까지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으며, 2005년과 2013년에 한 차례씩 일어날 예정
이다). 금환-개기 일식은 일식대의 중심 부분에서만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린다. 중심 부분
에서 조금만 벗어난 곳에서는 지구 표면의 곡률로 달과 태양이 다소 멀어 보이는데, 그 결
과 달이 태양보다 작게 보이므로 금환식을 보게 된다(보통의 개기 일식에서는, 지구의 곡률
때문에 개기 일식대 중심으로부터 먼 곳에서 달이 태양보다 더 작게 보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개기 일식만 일어날 뿐 금환식은 볼 수 없다. 물론 모든 일식은 <그림 1>과
<그림 3>에서 보는 바대로, 반그림자 영역에든 곳에서는 부분 일식으로 관찰된다). 여러 종
류의 일식 중 부분 일식이 가장 흔하고, 금환-개기 일식이 가장 드물게 나타난다.
(5)시력 손상에 주의!
눈을 보호하는 적절한 장비-공인된 태양광 필터-를 갖추지 않고 일식을 관찰해서는 절대
로 안 된다!(그을린 유리나 X선 칠름, 선글래스 절대 사용 금지!) 부분 일식(금환식을 포함
하여)의 경우, 30초만 쳐다보아도 시력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눈으로 보는 모든 사물에 태
양의 상이 겹쳐 보이는 현상에서부터 시력 상실까지, 정도에 따라 증상도 광범위하게 나타
날 수 있다(1970년의 일식 때 미국에서 일식을 관찰하다가 시력에 손상을 입었다고 보고한
사람은 140명이었다). 쌍안경이나 망원경을 사용할 경우에는 1초 이내에 손상을 입는다. 시
력 손상의 주범은 적외선으로, 적외선은 눈의 망막을 태운다. 시력 손상은 아무런 경고나 고
통 없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망막에는 고통을 느끼는 감각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일식이 일어날 때 태양을 안전하게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기 일식 때 바라보는
것뿐이다.
태양은 일식 때뿐만 아니라 항상 자외선을 방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식이 일어나지 않
을 때 태양을 바라보는 것은 왜 시력에 손상을 입히지 않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태양을 충분히 오랫동안 펴다보면 분명히 눈을 상한다. 그러나 태양의 눈부신 빛
때문에 우리는 몇 분의 1초도 태양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구름이 씨었을 때에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구름은 적외선을 차단해 주기 때문에, 구름을 통하여 태양을 바라보는 것은 안
전한다.
2)지구의 그림자
태양뿐만 아니라 달도 역시 그림자에 덮일 수 있다(<그림 4> 참고). 이것이 바로 월식이
다. 일식이나 월식은 모두 그림자에 덮이는-일식은 달의 그림자가 지구를 덮는 것이고, 월
식은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덮는 것-현상이다., 그러나 두 현상의 공통점은 그것으로 끝난
다는 것이다. 일식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기 때문에 태양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월식이 일어날 때에는 달을 물리적으로 가리는 물체가 아무것도 없다. 월식이
일어나는 것은 달 표면에서 빛이 전혀 반사되지 않기 때문이다(달은 거대한 거울이라는 것
을 기억하라).
일식과 더불어 월식에도 부분 월식과 개기 월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월식의 경우에는
반그림자가 그다지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달이 지구의 반그림자 속에 들어가는 우러식
도 존재하긴 하지만, 이 경우는 지구에서 월식이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기 힘들기 때문에 반
그림자에 의한 월식은 무시한다). 달 전체가 지구의 본그림자 속에 완전히 들어가면 개기
월식이 일어나고, 달의 일부가 지구의 본그림자 속에 들어가면 부분 월식이 일어난다. 개기
월식은 개기 일식과는 달리, 더느 특정 지역에서만 관측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개기 월
식이 일어날 때에는 밤이 된 지구상의 모든 지역-즉, 지구의 반쪽 전체-에서 볼 수 있다.
<그림 4>에서 보듯이, 개기 월식은 지구가 태양과 달을 잇는 일직선상의 한가운데에 들
어갈 때-보름달일 때-나타난다. 그렇다면, 개기 우러식은 달이 지구 주위를 29.5일에 한 번
씩 돌면서 보름달이 될 때마다(즉, 295.일마다)일어나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식이29.5일마다
한 번씩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개기 월식도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달과
지구의 공전 궤도면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보름달이 될 땜나다 태양과 지구와 달
이 반드시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월식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일식보다 더 자주 일어나는 것
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지구상의 어느 지역에서 월식을 관측할 기회는 일식을 관측할 기회
보다 훨씬 많지만, 월식은 일식보다 실제로 좀더 드물게 일어난다. 평균적으로 1년에 두 번
정도 일어나는 것이 고작이며, 그 가운데 개기 월식이 절반을 조금 넘는다. <표 2>에는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일어나는 월식을 실어 놓았다.
월식도 일식 때 일어나는 현상과 같은 일반적인 과정(접촉들)을 겪지만, 이 과정이 진행되
는 속도는 훨씬 완만하다. 본그림자의 지름이 달의 지름보다 3배나 더 크기 때문에, 개기 원
식은 최고 2시간까지 계속될 수 있다. 그리고 전체 월식은 4시간 동안 진행될 수 있다. 물론
베일리의 목걸이나 다이아몬드 반지, 코로나의 광채 같은 것은 볼 수 없으며, 별들은 이미
월식과는 상관없이 하늘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월식은 그 나름의 독특하고
미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월식은 그 나름의 독특하고 미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반대로, 달은 개기 월식 중에 완전히 어두워져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다. 지구의 대기가 태양빛 중 일부를-특히 빨간색과 주황색 파장의 빛을-굴절시켜
지구의 본그림자가 비치는 부분으로 보내기 때문에, 이 빛을 반사하여 달이 어두운 구리빛
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월식은 아무리 육안으로 관찰하더라도 눈에 손상을 입지 않는다.
일식과 월식은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자연의 장관들이다. 이들은 단지 경이로운
구격거리일 뿐만 아니라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기원전 450년에 그리스의 천문 관
측자 아낙사고라스(Anaxagoras)는, 월식이 일어날 때 달이 비치는 지구의 그림자가 원형의
일부처럼 곡선을 이루는 것을 보고, 지구는 둥글다고 추측하였다. 이것은 콜럼버스가 신대륙
을 발견하기 1942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일식은 태양의 코로나에서 방출되는 빛과 열의 측
정에 이용되어 왔다. 1919년의 개기 일식은 또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
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일반적으로 말하면」편 참고).
대체 의학
죽음을 맞이한 환자가 침대에 누워 있다. 그를 소생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의사들
은 그의 혈관을 절개하여 열두 시간 동안 80∼90온스의 피를 뽑아 내었다. 그리고 입 속으
로, 또한 주사를 통하여 독성이 매우 강한 수은 화합물인 감홍(甘汞:염화제일수은)을 다량
투입하였다. 그 다음에는 발한과 구토를 유발하는 데 사용해 온, 독성이 있는 흰색 염인 토
주석(吐酒石:tartar emetic)을 다시 투입하였다. 그리고 물집을 유발하는 자극성이 강한 찜질
약을 신체 여러 곳에 바르고, 식초 증기를 들이마시도록 하였다. 마침내 죽어가는 환자는 말
을 하려 애쓰면서, 조용히 죽게 해달라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죽었다. 그 당시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은 분명히 그의 죽음을 오히
려 재촉하였다. 이 사건이 일어난 해는 1799년이었고, 죽어 간 환자는 바로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이었다.
이러한 불명예스러운 시대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수백
만, 수천만의 사람들을 죽어 가게 한 많은 전염별들-천연두, 디프테리아, 소아마비 등-은,
이제 악몽과 같은 먼 과거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백신법과 항생제는 의학이 거둔
가장 위대한 2대 승리이다. 더 정확하게는 정통 의학-의과 대학에서 가르치고, 병원에서 실
행되고, 보험 회사에서 인정되는 의학-의 승리이다. 그러나 대체 의학(alternative medicine)
은 그만한 인정과 성가(成家)를 누리지는 못했다.
대체 의학이란, 간단히 말하여 정통 의학이 아닌 모든 치료법을 말한다. 광범위하게 인정
되고 있는 대체 의학에는 동종 요법(同種療法:homeopathy), 약초 치료법, 영양 및 비타민 치
료법, 킬레이션(chelation) 요법, 침술, 척추 지압법 등이 포함되며, 그 밖에도 많은 치료법이
있다. 대체 의학에서 비교적 영향력이 적은 치료법으로는 발 마사지법, 오존 치료법, 자외선
혈액 조사법(피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물 치료법, 요가, 향기 요법, 채식법, 그 밖에 분류하
기 어려운 여러 가지 기법들이 있다. 이러한 치료법을 시술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술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끈질기게 힘겨운 투쟁을 벌여 왔다.
대체 의학이 지닌 문제점의 일부는, 상식에 반하는 그 치료법에 있다. 대체 의학의 치료법
들은 종종 치료하고자 하는 질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발바닥을 마사지해
주는 것이 어떻게 두통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가느다란 침들을 피부에 꽂는
것이 어떻게 과민성 대장염을 치료하거나, 최소한 그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가? 대체 의
학에서 사용하는 많은 치료법들은 이렇듯 상식적으로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대체 의학의 효험을 보았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은 수도없이 많다. 그렇다면 왜
이 의문스러운 치료법들은 엄격한 과학적 검증을 거치는 과정을 시도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대체 의학은 대개, 치료에 목적을 두기보다 예방에
목적을 두고 있다. 예컨데 영양 및 비타민 요법은 신체를 최적의 건강 상태로 유지하여, 감
기나 암을 비롯한 질병이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유명한 대체 의학
자인 로버트 애트킨스sms 두통 환자에게 무엇을 줄 것이냐는 질문에, "다음 번에 다시 두통
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처방"이라고 대답하였다.
어쩌면 보다 중요한 요인일 수도 있는데, 대체 의학에서 사용되는 치료법들은 엄격하게
통제된 실험으로 인해 검증이 어렵다는 사실을 또한 지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 식품
의약국(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의 승인을 얻으려면 이중 맹검법(double blind
test)이라는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즉, 똑같은 환자들로 이루어진 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집단에는 진짜 약을 주고 다른 집단에는 가짜 약(placebo)를 준다. 있을 수 있는 어떠한 선
입견도 없애기 위해, 대상 환자들이나 실험자들은 연구가 끝날 때까지 어느 집단이 어떤 약
을 보용했는지 알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이중 맹검법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것은 오랜 시간
을 거쳐 유효한 방법으로 증명된 과학적 연구 방법이다.
그렇다면 동종 요법과 같은 치료법의 경우, 어떻게 이 방법으로 검증할 수 있을까? 동종
요법 의사는 맨 처음 환자를 방문했을 때, 환자와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환자의 질환
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이끌어 낸다. 그런 다음 그는 환자에게 맞는 독특한 여러 가지 처방
들을 선택한다.
맹검법은 대부분의 대체 의학 요법들(침술이나 척추 지압법과 같은)에 대해서 실시하기
곤란하다. 그것을 심장 절개 수술 같은 정통의학의 치료법에 대해 망검법의 실시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 이유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대체 의학의 효험에 대한 증언은, 대체 의학
자들의 입지를 충분히 굳혀 준다. 대체의학자들은 확실한 과학적 증명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들이 겪은 특수한 경험들을 신뢰하는 것이다. 의려계나 보험회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과
학적 증거가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지의 보고에 따르
면, 1992년에 미국인들 중 약 6천만 명이 대체 의학자들에게 140억 달러를 지출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 비정통적 치료법들로부터 정통 의학이 제공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기대하였던가?
그러면 대체 의학의 주요한 치료법들을 살펴보면서, 그들이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
기로 하자.
1)영양-비타민 요법
건겅은 위하여 음식을 조절하는 것은 정통 의학이나 대체 의학이 모두 인정하는 방법이
다. 미국 심장협회를 비롯한 다른 건강 관련 기관들이 옹호하는 저지방, 저염분 식단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그렇지만 식이 요법의 식단에는 정통 의학이 코웃음 치는 내용들도 많다. 양
진영간에 의견이 불일치를 보이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설탕의 섭취에 관한 것이다.
설탕을 다량으로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나, 영양 요법을
따르는 사람들은 설탕에 대하여 종교적인 열정에 가까울 정도로 과민 반응을 보인다. 애트
킨스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설탕 소비량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전국가적인 건강의 자멸
행위"라는 것이다. 설탕의 다량 섭취는 심장병, 고혈압, 효모균 감염(설탕은 체내에 자생하
는 효모균을 번식시킨다), 정신 질환, 암, 고혈당(혈액 속에 당분이 많은 것. 심하면 당뇨병
이 됨)을 포함하여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설탕
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저혈당을 초래할 수도 있다. 고혈당과 저혈당은 각각 설탕의 과량
섭취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설탕의 과량 섭취는 신체 인슐린의 과량 생산을 유발하여, 혈당
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영양 요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에 따르
면, 현재 미국인들의 설탕 섭취는 정도를 지나쳐,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인슐
린 작용에 의한 저혈당을 겪고 있다고 한다.
또한 과량의 설탕을 신진 대사시키는 반응에는 필수 비타민과 미네랄이 필요하기 때문에,
몸 안에서 이러한 물질들의 결핍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들은 저칼로리나
무칼로리 설탕을 선호한다. 이러한 반응들 중 어떤 것들은 설탕을 심장병을 유발하는 지방
성 물질인 트리글리세리드(triglyceride)로 변화시킨다. 게다가 비타민과 미네랄의 결핍은 면
역 체계의 약화를 초래하여, 암에 걸릴 위험을 높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결론은 설탕을 섭
취하지 말라는 것이다.
정통 의학과 대체 의학의 견해가 갈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내용은 비타민의 과량 복용 효
과에 관한 것이다. 비타민 요법은 분자 성분 요법(orthomolecular medicine)이라고 하는, 더
큰 범위의 영양 요법 중에서 본가지를 이루고 있다. 분자 성분 요법이라는 용어는 노벨상
수상자인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이 만든 것으로, 신체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체내
의 세포와 조직들에 필요한 모든 화학 원ㄴ소들을 공급하는 처방을 가리킨다. 폴링은 비타
민 C의 옹호론자이기도 하다. 이 요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어떠한 형태로든 비타민
과량 복용을 강조한다.
신체가 제대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량의 비타민이 필수 불가결하다. 정통 의학에서도 비
타민을 주제로 한 방대한 양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괴혈병, 각기, 펠라그라, 구루병 등은 특
정 비타민의 결핍에서 발생하는 병들이다. 그렇다면 비타민의 과량 복용은 어떤 도움을 주
는가? 미국 의학협회(AMA:American Medical Association)나 FDA는 비타민 C의 1일 권장
량은 60mg 으로 규정해 놓았는데, 그것을 600mg혹은 6,000mg을 섭취하는 것은 어떠한 효
과가 있겠는가?
여기서도 비타민 요법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맹검법을 실시해 본 적은 거의 없다. 그리
고 실험을 행한 경우라도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비타민 C는 감기를 빨리 회복하게 하
는 데 효과가 있지만, 예방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에서 사용되는 비타민 복용량
은, 비타민 요법사들이 권장하는 양에 훨씬 못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정통 의학자
들은, 과량 복용된 비타민의 대부분이 소변으로 그대로 배출된다고 믿고 있다.
맹검법의 증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대체 의학자들은 여전히 비타민 A,C,E,B를 과량
복용하면 알레르기나 감기와 같은 잔병에서부터 관절염이나 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질
병에 대해 예방 내지 치료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들 비타민은 자연 상태의
항히스타민제와 발암 엊게 물질이다. 여기서 대체 의학자들은 경험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떤 요법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명백한 위험을 수반하지 않는
다면, 왜 그것을 마다하겠는가?
정통 의학과 영양 요법의 방법에는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지만 동종 요법의 경우는 그
렇지 않다. 동종 요법에서 주장하는 경험에 따른 치료법은 정통 의학의 상식과 어긋나는 것
이 많으며, 때로는 다소 환상적인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2)동종 요법
독일의 외과의 사무엘 하네만은 1796년에 말라리아의 치료약인 키니네를 추출하는 기나나
무 껍질을 다량 복용하였다. 그 결과로, 그는 말라리아의 전형적인 증상인 두통과 갈증, 고
열을 경험하였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어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품의 효력은 건강한
사람에게 그 질병과 유사한 증상을 일으키는 능력에서 비롯된다응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
를 동종 법칙이라 부르고, 이 원리를 바탕으로 한 동종 요법(同種療法:homeopathy)을 창시
하였다.
동종 요법은 이옇 치열(以熱治熱)의 원리를 신봉하는 치료법이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은
가? 그렇다면 "당신을 물어 뜯은 개의 털을 씹어 보라." 또 만약 효모균 감염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 효모균을 더 많이 먹도록 하라. 그러면 그 증상이 없어질 것이다. 납이나 수은
에 중독되었다고? 그렇다면 납이나 중독을 더 먹도록 하라. 한편 아이오와 주의 민주당 상
원의원이자 미 상원 정부지출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톰 하킨은, 꽃가루를 사용한 동종 요법
이 자신의 알레르기를 치료해 주었다는 확신에서 대체 의학청의 설립에 조력하였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과연 신빙성이 있는가? 그렇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납
을 더 먹는다고 해서 납중독이 치료될 리는 만무하다. 그렇지만 알레르기 연구자들은 알레
르기를 일으키는 원인 물질을 환자에게 소량 접종하여, 탈감작(desensitization)을 일으킴으
로써 알레르기를 치료한다. 그리고 면역법도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 바로 그 병원균을 약화
시켜 접종하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동종 요법은 분명히 과학적 및 통계적 집중 연구가 필요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
한 연구는 일천한 편이다. 그렇지만 현재 대체 의학청에서 지원하는 여러 가지 연구들이 진
행되고 있기 때문에, 연구 부족 상태는 곧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내가 동종 요법을 너무 단순하게 취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개의 경우, 치료법은 상기
한 바와 같이 쉽게 처방할 수 있는 것이다.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을 쉽게 밝혀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두통이나 관절염, 열, 천식 등은 그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원인이 분명하지 않으면 치료법도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동종 요법 의사들의 전문 기술이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들의 선반에는 수백, 수천 가지의 처방(약 2천 가지
가 존재함)이 쌓여 있다. 그 중 많은 것은 약초를 사용한 것이며, 의사는 어떤 물질들을 어
떻게 배합해야 최고의 효과를 내는지 결정한다. 목표는 건강한 사람의 신체에서 환자의 증
상과 유사한 증상을 일으키는 터방을 찾아내는 것(하네만의 동종 법칙에 따라)이다. 예를 들
어, 무기력과 발한, 착란을 일으키는 아편은 이러한 증상들을 수반하는 열병을 치료해 준다
고 생각하는 것이다.
동종 요법에서 가장 환상적인 것은 극소량의, 그리고 극히 낮은 농도의 약품 투약에 대한
신봉이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소량이고, 또 얼마나 낮은 농도를 말하는가? 벨라도나
(belladonna)의 추출물을 가지고 동종 요법에 사용하는 약품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죽음의 밤 그림자(deadly nightshade)'로 알려진 벨라도나는 유동성 식물로, 그 추출물을
섭취하면 위경련과 호흡 곤란이 일어난다. 이와 같은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나은 동종 요법 치료약이 또 있겠는가? 순수한 추출물 한 방울에 알코올 수용액(물과 알
쿄올의 혼합액) 99방울을 섞는다. 이것은 1% 용액이다. 여기서 한 방울을 취하여 다시 알코
올 수용액 99방울과 섞고, 이러한 과정을 30번 반복한다. 이렇게 만든 벨라도나 용액의 농도
는, 지구의 모든 바다에 벨라도나 분자 하나를 녹인 것보다 3천조 배나 더 묽다. 두말 할 필
요도 없이, 이렇게 만든 용액에는 벨라도나 분자 단 1개도 포함되기가 힘들다. 정통적인 의
사들이 동종 요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무런 효력이 없을 것 같은 이러한 처방에도 불구하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동종 요법으
로 효과를 보았다고 증언한다. 이는 아마도 최후의 경험론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동종 요법의 효과는 단지 플라시보(placebo:가짜 약) 효과에 불과한 것일까? 즉, 그 약을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실제로 그러한 효과를 내는 것일까? 이렇게 존재하지도
않은 물질이 분명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동종 요법 치료사들은 여러 가지
대체 이론들을 내놓았다. 가장 일반적인 지지를 얻었던 이론은, 격렬하게 흔들어 주는 행동
(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이 물 분자들을 약 성분 분자의 구조와 일
치하도록 재배열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약 성분 분자가 마지막 용액에서 완전히
제거되더라도, 물 속에 그 구조의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럴 듯하다고 생각되는지? 개인적인 견해로는 플라시보 효과를 지지하는 쪽이다.
한 가지 처방-알레르기 증상 치료를 위한 동종 요법 약품-에서는, 여러 가지 식물과 씨앗
추출물을 부피비가 70%인 알코올에 녹였다. 그러면 140도가 되나? 어쩌면 동종 요법이 성
공을 거둔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3)킬레이션 요법
동종 요법과는 달리, 킬레이션 요법은 정통 의학자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새로운 방법은 아니었지만, 킬레이션 요법은 1941년 이래 납 중독을 치료하는 가장 효
과적인 방법으로 간주되어 왔다. 대체 의학계는 이제 킬레이션 요법이 동맥경화에 대해서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공식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킬레이션(chelation)은 중금속 원자들이 킬레이트제(chelating agent)라고 하는 화합물에
결합되는 화학 과정을 말한다. 킬레이션 요법에서 사용하는 킬레이트제는 합성 아미노산인
EDTA이다. EDTA는 체내에 들어가 독성 중금속 물질들과 효율적으로 결헙한다. EDTA와
결합한 중금속은 신체 조직에서 제거된 다음, 소변으로 배출된다. 제거 대상인 금속에는 수
은이나 납 같은 유해한 오염 물질 외에 칼슘-관상 동맥을 막아 심장병을 유발하는 플라크
(plaque)를 단단하게 하는 미네랄-도 포함한다.
대체 의학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EDTA가 동맥 벽의 플라크에서 칼슙
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들은 킬레이션 요법을 실시한 환자들 중 4분의 3이상이(때로는 약
90%까지)관상 동맥 폐쇄가 감소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높은 성공률이라면 외과 수술은
불필요하다. 킬레이션 요법을 통해 혈관을 뚫을 수 있는데, 왜 비싼 비용을 감수하고 환자에
게 고통과 불편을 주면서까지 관상 동맥을 수술을 통해 교체하겠는가?
킬레이션 요법 의사들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이 요법의 우수함을 자랑한다. 그들은 킬레이
션 요법이 관상 동맬뿐만 아니라 모든 혈관들을 깨끗하게 청소해 준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킬레이션 요법은 다른 혈관 관련 질병들, 예컨대 뇌졸중, 알츠하이머병, 당뇨병 등의 위험도
감소시켜 준다는 것이다. 어떤 연구는 킬레이션 요법이 암에 의한 사망률을 감소시킨다고도
(아마도 몸에서 환경 오염 물질들을 제거함으로써) 보고하였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이 킬레이션 약품은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닭고기 수프보다
훨씬 더 몸에 좋은 것처럼 보인다(그렇지만 EDTA가 닭고기 수프만큼 맛있으리라고는 생각
하지 않는다). 물론 문제가 없을 리 없다-최소한 전에는 문제들이 있었다. 초기에는 컬레이
션 요법이 환자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야기하기도 했다. 또 치료의 결과로 사망하는 경우
도 발생하였다(주로 신장 기능 부전으로). 신장 내의 여과 기관인 미세한 관들이 금속
-EDTA 착화합물에 의해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투약량을 줄이고 배출 시간
을 늦추고, 또 손상을 복구하기 위해 비타민이나 미네랄을 함께 투여하는 방법을 쓰기 때문
에 위험은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전체 혈관계의 세척이 신장 기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간이라 췌장, 두뇌의 기능을 향상시켜 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까지 50만 명 이상의 환자들이 킬레이션 요법을 사용하여 치료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
고 있다. 그렇지만 치료는 단 한 번에 물나는 것이 아니다. 환자의 동맥을 완전히 뚫리게 하
기 위해서는, 약 40주 동안 매주 또는 2주마다 한 번씩 치료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치료 과
정은 거의 1년이 걸린다. 한 번 치료를 받는 데 100달러씩 든다고 계산한다면, 전체 치료를
받는 데에는 2,000∼5,000달러면 충분하다. 수술 비용이 약 4만 달러가 들고, 또 수술을 받은
뒤에도 값비싼 약을 투약해야 한다는 것과 비교해 보라.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킬레이션 요법은 심장 절개 수술(연간 사망률이 5%에 이르러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을 대체할 수 있는 의술로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보
인다. 많은 대체 의학자들은 킬레이션 요법을 "의술의 최고의 비밀 중 하나:라고 부른다. 그
러나 그것은 그렇게 오랫동안 비밀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최근 FDA는 킬레이션 요법을 사용한 치료에 대한 임상 연구를 두 군데에서 진행하도록
하였다. 하나는 워싱턴 D.C.에 있는 월터리드 육군병원이고, 또 한군데는 샌프란시스코에 있
는 레터먼 육군 연구소이다. 그러나 이 책이 출판될 때쯤에도 이들 연구는 아직 예산 지원
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4)침술
두통이 있다고? 그러면 귓불에 가느다란 바늘을 몇 개 꽂기만 하면 된다. 두통이 아니고
등이 아픈가? 그것도 문제 없다. 귀 바깥쪽으로 조금 이동한 위치에 침들을 몇 개 꽂으면
된다. 귀에다 바늘을 꽂아 병을 치료한다는 사실에 당신은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것은 동양 전래의 귀 침술이다. 보다 전통적인 침술에서는, 몸 전체를 침 놓는 장소로 사
용한다. 중국의 침들은 일본의 침들보다 좀더 굵고 길며, 더 깊숙이 찌른다. 일단 침을 꽂은
뒤에는 손이나 전기의 약한 진동을 사용하여 침들에 자극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침들 대신 레이저 광선을 사용하기도 한다. 어떤 침술에서는 침을 피부 표면에 갖다 대기만
하고, 살 속으로 찔러 넣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이 정말 병을 낫게 할 수 있는가? 서양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침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치료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효험이 있기 때
문이다. 침술이 고통을 완화시키거나 마취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문서로도 입증되어 있
다. 환자에게 단지 십여 개의 침만 꽂아 놓고, 고통스러운 수술이나 치과의 치료를 행한 사
실들이 엄연히 기록되어 있다. '암시 효과'를 사용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은 즉시 사라졌
다. 똑같은 침술 마취 방법을 사용한 동물들에게도, 유사한 수술을 아무런 문제 없이 행하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약 2500년 전에 침술을 확립시킨 고대 중국인들은 건강을 서로 대립되는 두 힘, 음과 양
이 조화를 이룬 상태로 정의하였다. 그리고 생명의 힘인 기(氣)는 음과 양의 상호 작용으로
생겨난다고 하였다. 기는 경락(經絡)이라고 하는 열네 개의 주요 통로를 따라. 몸 전체로 흘
러간다. 몸의 어느 부분에서 기가 너무 과도하게 넘치거나 부족하게 되면 질병이 생기는데,
이는 몸이 조화를 잃었기 때문이다. 침술의 역할은 흐트러진 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다.
즉, 적절한 경락을 통해 기의 흐름을 다시 제대로 흐르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몸 전체에
퍼져 있는 2천여 개의 경혈(經穴) 중 한군데 또는 여러 군데에 침을 꽂음으로써 이루어진다.
물론 서구의 과학자들은 침술이 거두는 경이로운 성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려고 시도
하였다. 한 이론에 따르면, 경혈에 있는 신경들을 자극함으로써 척수와 뇌에 자극이 전달되
오, 이 척수와 뇌는 고통 신호가 통과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저지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다른
이론은 엔도르핀이나 엔세팔린과 같은 자연적인 진통제가 작용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침술
에 의해 이러한 물질들이 방출된다는 최초의 증거는 일련의 어려운 실험들을 통하여 나왔
다. 쥐 두 마리의 순환계를 서로 연결시킨 다음, 그 중 하나에게 침을 찔렀더니 두 마리 쥐
모두에게서 고통의 역치가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화확 물질 무언가가 혈관계에
방출되어, 양쪽 쥐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여기에 엔도르핀의 확동을 차
단하는 날록손(naloxome)을 투입하였더니, 침술은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아무런 효과도 발
휘하지 못했다.
엔도르핀은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상쾌함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 화학 물질이다.
그 작용 양태는 아편제와 유사하다. 그래서 마약 중독의 치료에 침술이 큰 효과가 있는지도
모른다(침술이 마약 중독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아주 우연히 발견되었다. 어느 아편
중독자가 수술을 받기 전에 침을 맞았는데, 기이하게도 그의 중독 증세가 완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알코올 중독자를 비롯하여,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의 치료에 침술을 사
용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늘어났다. 보고에 따르면, 이러한 프로그램 중 많은 경우가 최소
한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당연히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오른다. 침술은 관절염에서 편두통, 좌골신경
통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질병에서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렇지만 침술은 과연 이들 질병을 실제로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가? 그렇지 않고 다만 이러한
고통스러운 증상들만 일시적으로 가리거나 완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고통은 내재하는 문제
를 나타내는 하나의 증상이다. 즉, 신체의 어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려 주는 신
호이다. 관절염 환자들은 침을 맞은 후, 통증의 감소와 함께 해당 관절의 부기나 염증이 가
라앉았다고 주장한다. 로버트 애트킨스는 자신의 병원에서 침술을 사용하여(그는 침술의 전
문가들을 고용하고 있다), 과민성 대장염을 치료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둔 사례들을 보고하고
있다. 그러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주로 내장과 결장의 기능을 통제하는 신경계를
목표로 침술을 사용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주로 신경 근육 기능에 문제가 있어 일어나는
두통도 역시, 침술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신경계는 대단히 많은 신체 기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모든 내부 장기는 신경들로 뒤덮여 있다. 신경계는 심장 박동과 혈압도 조절한다. 근육 활동
과 호르몬 분비 역시 신경 자극에 의해 조절된다. 이 때문에 침술의 치유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정확하게 집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침술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과학적 조
사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매우 심각한 질병의 경우는 침
술을 사용하는 데에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협심증이나 암과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수단으로 침술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침술에만 의존하여 심장
전문의나 종양 전문의의 전통적인 치료를 거부하는 것도 분명히 어리석은 짓이다.
지압은 침술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치료법이다. 침술과 마찬가지로, 지압 역시 신체의 어
느 부분들(종종 아픈 부위와는 동떨어진)에 자극을 가하면 고통을 덜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예를 들어, 발바닥의 장심(掌心)을 지압하면 신장병을 치료할 수 있
다는 식이다. 이들 치료법의 기본 원리는 생명의 기의 조화이다.
5)척추 지압(chiropractic)
그리스어 cheir(손)와 prakikos(∼으로 행해지는)가 합성된 단어인 척추 지압은, 척추와 신
경계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과 기술로, 어긋나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척추뼈를
주로 손을 사용하여 교정함으로써 건강을 회복시키거나 유지시켜 준다.
내 척추 지압원의 벽에 걸린 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문구도 있다.
병을 치료하는 동안 척추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라.
-히포크라테스-
무슨 선동 문구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척추 지압은 대체 의학의 여러 가지 치료
법 중 건강 보험으로 변상받을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다. 이는 척추 지압사들이 뭔가 합
리적인 치료를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다면 척추 지압사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
히 살펴보기로 하자.
척추 지압사를 찾아가면, 대개는 먼저 두개골에서 꼬리뼈에 이르는 척추에 대한 X선 사진
을 여러 차례 찍는다. 이것은 척추뼈가 어긋난 정도를 조사하기 위해서이다. 그 다음에는 보
통 척추 지압의 장점을 설명하는 설교가 뒤따를 것이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척추뼈에 난 작은 구멍들을 통하여 척추에서 신경들이 처져 나와, 이들은 온몸의 기관과
근육들로 뻗쳐 있다. 척추뼈들이 잘못 늘어서 있을 경우에는 여러 신경들에 압박을 가하게
된다. 또한 이자액이나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신경이 압박을 받을 경우에는, 해당 장기들이
제대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어긋난 척추를 바르게 하여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척추 지압사는 신체를 갑작스럽게 꺾
어 젖히거나 비트는 교정을 시술한다. 척추뼈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거나 느낄 수 있는데, 그 소리는 다소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조금도 아프지 않다.
이론은 상당히 그럴 듯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척추 교정이 심각한 신체 내부의 질병
을 고칠 수 있다는 일부 척추 지압사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증거는 거의 없
다. 당뇨병 환자는 척추 교정을 받는다 해도 인슐린을 함께 투여해야만 한다. 의료기관에서
는 목이나 등 부위의 고통이나 불편을 경감시키는 경우에만 척추 지압 치료의 효과를 인정
하고 권할 뿐이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나 좌골 신경통이 이러한 범주에 든다.
의학계는 더 이상 대체 의학 치료법들을 돌팔이 약장수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대체 의학
이 대중들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 미국 정부는 1992년에
국립보건원의 한 부처로서 대체 의학국을 신설하였다. 신설된 대체 의학국의 목적은 동종
요법이나 침술, 척추 지압 같은 치료법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치료법들은 여태까지
과학적 조사를 거부해 왔었고, 또 그럴 듯한 연구 결과도 나오지 못했다. 이제 맹검법 대신
에 더욱 혁신적인 방법들이 도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네 번째 이야기
유성우:바윗덩아리비
1966년 11월 17일 오전 3시경. 미국 서부의 맑은 밤하늘은 캄캄한 가운데 셀 수 없이 많
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이따금씩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불빛이 있었는데, 그것
은 다른 말로 별똥이라고도 하는 유성이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흥미를 가지고
유성이 몇 개나 떨어지는지 세어 보았다. 그런데 1분에 1개 정도로 떨어지던 유성이 1분에
2개, …5개, …10개로 늘어나더니, 1시간 후에는 1초에 1개꼴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4시
30분경에는 초당 20개씩, 그러니까 시간당 72,000개의 유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셀 수도 없게 되었다. 5시경에는 유성들이 눈보라처럼 쏟아져 내렸다. 시간당 15만 개
-초당 40개-이상의 유성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마치 별들이 불꽃놀이를 하고 있는
것과도 같은 장관이었다.
유성우는 한 시간 정도 계속되다가, 해가 뜰 즈음 이슬비처럼 잦아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20세기 최대의 유성우는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아직고, 방
금 보았던 광경에 취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런 세기적인 장관이 일어날
것이라는 뉴스가 없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1966년에 일어난 환상적인 사자자리 유성우에 대해 사람들이 사전에 아무런 예고도 듣지
못했던 것은, 그것이 일어나리라는 예상을 누구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유성우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조차 왜 그것을 예보하지 못했던가를 이해하려면, 유성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할 필요가 없다.
1)유성:행성들 사이에 떠 있는 쓰레기
유성은 지구 대기권 안으로 들어온 암석 덩어리 혹은 금속 덩어리이다. 또는 그 둘이 섞
인 덩어리라고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지구의 중력에 의해 빠른 속도로 대기권 안으로 진입
하면서,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 불타기 시작한다. 밤하늘에 그 긴 꼬리를 끌고 나타나는 불빛
이 바로 이 별똥이다.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기 전에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이러한 작은 암석
덩어리를 우리는 유성체라 부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유성들 대부분이 모레알보다 작다는 것이다. 우
리가 그것을 밝은 빛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초속 40마일(시속 64KM)이상의 빠른 속
도로 달리면서 매우 밝게 타오르기 때문이다. 큰 유성들은 하늘을 가로질러 갈 때 마치 불
덩이처럼 보인다. 유성은 때로는 달만큼 밝게 빛나기도 하며, 어떤 것은 달보다 100배나 더
밝게 빛나기도 한다. 간혹 대기권 중에는 폭발적으로 빛을 내는 것도 있다.
대부분의 유성은 대기권에서 완전히 타버리지만, 큰 유성-주먹크기 이상-은 완전히 타버
리기 전에 지표면에 도달한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두 시간마다 한 개꼴의 우성이 지표면에
떨어진다. 이렇게 지상에 떨어진 유성을 운석이라 부른다. 운석은 지구의 암석과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운석을 열심히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암석질 운석보다는 금속질(주로 철)
운석을 발견하기가 더 쉽다.
지상에 떨어지는 유성이 두 시간당 한 개 꼴이라면, 집 안에만 머물거나 헬멧이나 강철
우산을 쓰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 필요는 전
혀 없다. 운석에 맞을 확률보다는 벼락에 맞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사실 운석에 맞아
사망하거나 다친 경우는 아주 드물게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1992년 10월 9일, 뉴욕 주의 픽
스킬에 있던 한 자동차가 3파운드 무게의 운석에 맞았다.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는 않았으나,
차는 심하게 파손되고 말았다.
2)유성우 vs. 유성폭풍우
구름도 달도 없는 밤하늘을 한 시간 이상 바라보면, 당신은 반드시 유성을 목격할 수 있
을 것이다. 이들은 우연한 유성일 뿐이며, 우주 공간에 떠 있던 조각들이 우연히 지구 대기
권 안에 들어 온 것이다(이상적인 조건에서는 이러한 우연한 유성들을 시간당 7개 정도 볼
수 있다).
그런데 1년에 열두 번 정도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유성들이 하늘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현상은 매년 같은 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사전 예측이 가능하다. 이 유성들은 우
주 공간에 임으로 떠 있는 조각들이 아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모여 있는 조각들로, 지구
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그 지역을 통과할 때 마다 주기적으로 유성우가 되어 쏟아지는
것이다. 유성의 활동이 이렇게 증가하는 것을 '유성우(meteor shower)'라 부른다(간혹 예기
치 못한 시기에 많은 유성들이 쏟아질 때도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유성우는 매년 같은 시
간에 일어나는 정기적인 현상을 말한다).
유성우는 활동이 활발할 때에 시간당 10개 이상의 유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 빈도가 특
히 높을 때는(초당 하나 이상 정도. 그러나 거기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내려져 있지 않다)
'유성 폭풍우(meteor storm)'라 부르기도 한다.
3)혜성의 꼬리가 남기고 간 물질
유성우가 생기는 원인으로는 혜성을 꼽는다. 특히, 지구 궤도를 가로지르는 혜성들 때문이
라 할 수 있다. 혜성은 행성과 마찬가지로 태양의 주위를 도는 태양계 가족이다. 그렇지만
그 궤도는 크게 찌그러진 타원형이며, 한쪽 끝 부분에 있는 초점이 태양이다. 혜성은 물이
언 얼음과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등의 기체가 언 것(이들을 또한 얼음이라고 한다), 소량의
암석, 금속, 그리고 먼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버드 대학과 스미소니언 천문대에 근무하
는 프레드휘플은 혜성을 '더러운 눈뭉치(dirty snowball)'라고 표현했다.
이들 눈뭉치는 보통 지름이 수마일 이하인데, 이들이 태양 가까이로 다가오면 뜨거운 태
양열에 가열되기 시작한다(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몇 년이 걸리는 것이 있는 반면,
수백만 년이 걸리는 것도 있다). 그러면 얼음 성분들이 기체로 변하기 시작한다. 태양에서 2
억 마일 정도 되는 거리에 이르면, 혜성은 긴 먼지 꼬리를 끌기 시작한다.
이 꼬리가 우주 공간에 먼지의 흔적을 남기는데, 이들은 띠를 이루며 우주 공간에 머물러
있다가 유성우를 내리게 한다. 이 먼지띠 속의 파편들을 아주 천천히 혜성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지만, 수년 이상이 흘러도 그 위치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구가 공전을 하며
1년 중 거의 같은 시간에 먼지띠가 있는 지역을 통과하게 될 때마다, 그 속의 먼지나 파편
들이 유성우로 쏟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성우는 특정 혜성과 관련이 있다. <표 1>은 유성우들 중 가장 활동적인 아홉
개에 대한 관측 정보를 실어 놓았다. 전통적으로 가장 유명한 두 유성우는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와 쌍둥이 자리 유성우이다(맑은 하늘과 달이 없을 때 등 이상적인 관측 조건이 갖추
어져야만 유성우가 잘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각 유성우와 관련이 있는 혜성의 이름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중
에타 물병자리 유성우와 오리온자리 유성우 등 두 개의 우성우는 아주 유명한 혜성으로 인
해 발생한다(<그림 1>참고). 그것은 지름 8마일 정도의 얼음 덩어리로, 75년 혹은 76년마다
태양을 찾아오는 헬리혜성이다(가장 최근에 나타난 것은 1986년이다).
8월 중순에 볼 수 있는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와 관련된 혜성도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
다. 1992년 11월말에서 12월초 사이에 태양을 방문한 이 혜성은 130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이전에 이 혜성이 나타난 것은 미국 남북 전쟁시였다). 혜성의 이름은 혜성 사냥꾼 루이스
스위프트와 호레이스 터틀의 이름을 딴 스위프트-터틀(Swift-Tuttle)이다. 스위프트-터틀 혜
성이 최근에 나타나자, 천문학자들은 그 꼬리가 페르세우스자리 유성군 띠에 더 많은 유성
먼지를 공급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또 1993년의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는 그전보다 훨씬 멋진 장관을, 어쩌면 유성 폭풍우를
이룰 것이라 예측하였다(지난 30여 년간 일어난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는 100년 이전에 그
곳에 형성된 먼지와 파편들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는 근래에
보기 드문 유성우를 연출하였다(시간당 110개의 유성이 떨어졌고, 불덩이도 상당수 떨어졌
다). 그렇지만 유성 폭풍우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으며. 1994년에도 역시 폭풍우는 일어나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1966년 11월에 일어난 사자자리 유성 폭풍우는 왜 예측하지 못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며, 유성우는 예측 가능하지만 유성 폭풍우는
예측할 수 없다. 천문학자들은 폭풍우를 몰고 올 정도로 많은 유성들이 떨어지는 것을 예측
할 수 없다. 폭풍우를 몰고 올 만큼 쓰레기들이 비정상적으로 집중해 있는 우주 공간은 아
주 좁고 한정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4)유성우를 맞으며
12월 14일 새벽 3시경이었다. 날씨는 춥고 하늘은 맑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
고 있으니, 매분마다 1개씩의 별빛이 하늘을 가르며 지나갔다. 어떤 것을 아주 짧은 순간에
빛을 내고는 사라졌고, 또 어떤 것은 좀더 오랫동안 하늘의 절반쯤 날아다니다가 사라졌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것은 쌍둥이자리 유성우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유성우와는 상관 없는
우연한 유성도 섞여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가?
우성우에서 비롯된 유성은 우주 공간의 특정 지역에 혜성이 남긴 잔해의 띠에서 오기 때
문에, 날아오는 지점이 하늘의 어느 한 점으로 정해져 있다. 우연한 유성의 경우는 그 밖의
지역에서 날아온다. 유성우가 비롯되는 그 지점을 복사점이라 부르기도 한다. 유성우의 이름
은 이 복사점이 위치한 별자리의 이름을 따서 붙인다(드물게는 복사점 근처에 있는 별의 이
름을 붙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나 쌍둥이자리 유성우, 사자자리 유성
우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유성우를 이루는 유성은 하늘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유성우를 관찰할
때 복사점이 있는 지역만 보지는 말 것), 그것은 금방 사라져 버린다. 유성우의 일부인 유성
들의 꼬리나 궤적을 이어 보면, 그것들은 모두 복사점을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림 2>
참조). 그 선들을 거꾸로 연장하면 모두 한 점에서 만나게 된다. 이에 비해 우연한 유성들은
복사점을 가지지 않는다.
유성우를 관찰할 때에는 한 시간에 볼 수 있는 유성의 수를 세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간
이 침대나 담요 위에 누워 편한 자세로 하늘을 바라보자. 쌍안경이나 전체 망원경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우성우는 시야가 제일 넓은 육안으로 볼 때 가장 잘 볼 수 있다. 유성들의 꼬
리를 하늘을 향해 펼친 종이 위에 그려, 복사점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어떤 유성우는 다양한 색깔의 유성들을 내려 보내기도 한다. 당신은 두 손과 두 눈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보고 기록하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다. 그렇다면 친구와 함께 유성우
를 맞아 보는 것은 어떨까?
유성우를 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하루 중 언제일까? 물론 우선적으로는 밤이어야 하고,
날씨가 맑고 달이 없으면 더욱 좋겠다. 되도록 주위가 어두운 곳을 선택하라. 불빛은 유성우
의 장관을 크게 감소시킨다. 관찰은 절정기에 가까운 시간에 하는 것이 좋다(이것은 종종
불가능하기도 한데, 절정의 시간이 그 지역에서는 낮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성우는 자정이 지나 동트기 전에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 시간에 지구는
혜성의 잔해가 있는 쪽을 향해 자전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대기권에 들어오는 유성들의 속
도가 더 빨라진다. 그 결과 유성들은 더욱 환하게 타올라, 눈에도 잘 보이고 더욱 극적인 장
면을 연출한다. 자정이 되기 전에는 지구가 유성들이 날아오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자전하
기 때문에, 지구에 돌입하는 유성의 속도가 느려지고 밝기도 약해진다.
1966년에 일어난 사자자리 유성 폭풍우는, 약 33년마다 새로운 먼지 파편을 남기고 가는
펨펠-터틀(Tempel-Tuttle) 혜성으로 인해 일어났다. 1833년과 1866년에도 이 혜성이 남긴
잔해 때문에 커다란 유성 폭풍우가 관측되었다. 그러나 1899년과 1933년에는 유성 폭풍우가
관측되지 않았다(유성우는 관측되었지만).
이 때문에 유성 전문가들은 템펠-터틀 혜성의 궤도가 지구의 공전 궤도에서 약간 벗어났
다고 믿게 되었으며, 사자자리의 유성 폭풍우는 옛날의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1966년
에 역사상에 기록된 가장 큰 유성 폭풍우 중 하나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사자자리 유성 폭
풍우는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었으며, 다시금 부활하였다!
1998년이나 1999년에(혜성의 공전 궤도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템펠-터틀 혜
성은 다시 태양 가까이로 돌아와서, 우리 주변의 우주 공간에 그 잔해를 다시 한 번 뿌려
놓고 갈 것이다. 그것은 1966년의 유성 폭풍우와 같이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장관을
다시 연출할 것인가? 아니면 별 볼일 없는, 소문만 무성한 잔치로 끝나고 말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 혜성이 다녀간 다음의 11월 16일 밤에, 자명종
시계를 새벽 3시에 맞추어 놓고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슬리핑 백이나 담요도 준비해 놓고
서, 만약 사자자리 유성 폭풍우가 다시 한 번 세기의 장관을 연출한다면, 나는 바로 그 현장
을 체험하고 싶다.
다섯 번째 이야기
천체들이 충돌할 때
종말을 가져오는 소행성-폭 7마일인 우주의 암석 덩어리가
11월 11일 지구에 충돌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이는 지구를 위협한 최초의 소행성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소행성이 될지도 모른다.
1993년 7월 20일자 「Weekly World News」의 머리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11월 11일은
마침내 다가왔고 또 지나갔지마느 우리는 여전히 아무 일 없이 그대로 있다. 인류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사건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 예측은 지나친 과장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소행성의 충돌에서 안전한가? 소행성이나 다른
천체들이 우주 공간에서 날아와 지구와 충돌하여, 지구 종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재앙을 일으
킬 가능성은 과연 없는 것일까?
1)충돌하는 천체들
분명히 소행성들은 큰 재양을 가져올 수 있다(그리고 이미 가져왔다). 공룡의 절멸뿐만 아
니라 지난 5억 년 동안 지구상에서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난 생물들의 절멸이, 소행성의 충돌
때문이라는 주장이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충돌 때문이라는 주장이 줄기차
게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충돌들은 지구에서 생명의 진화 방향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였다.
소행성들은 태양계에 속해 있는 아주 작은 행성들로, 질량이 위낙 작아 9개의 주요 행성
의 대열에 끼지 못한 소천체들이다. 소행성의 주성분은 돌이나(S형) 탄소(C형), 혹은 금속이
며(M형), 존재하는 위치에 따라 아래의 세 범주 중 하나에 속한다.
소행성대:화성과 목성 사이의 공간에 존재하는 소행성들로, 거의 원형 궤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대부분의 소행성들은-특히 큰 소행성들-이 소행성대에 위치한다.
트로이군:목성과 같은 궤도를 도는 두 집단의 소행성들. 한 집단은 목석 궤도에서 60°전
방에, 또 한 집단은 60°후방의 위치에 공전하고 있다. 이들 소행성에는 트로이 전쟁에 등장
하는 영웅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헥토르나 네스토르 등).
불규칙 소행성군(아폴로군):매우 길쭉한 타원 궤도를 가지고 있어,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동안 지구 궤도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는 소행성 집단을 말한다. 이 소행성군의 이름은 그리
스 신화에 나오는 빛의 신의 이름을 따서 아폴로군이라 한다. 이는 이 소행성군에서 처음으
로 발견된 소행성의 이름이기도 하다(그 밖에 다소 생소한 불규칙 소행성군들도 있다. 화성
의 공전 궤도를 가로지르는 아모르(Amor)군과 지구 궤도 안쪽에 주로 존재하는 아텐(Aten)
군이 그들이다).
위의 세 범주 중 지구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는 소행성군은 아폴로군이다. 지구 공전 궤도
를 가로질러 가기 때문에(평균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이들이 지구와 충돌한 위험은 상존
하다. 이들은 대부분 암석질 소행성으로, 평균 지름은 800m가 조금 넘는다. 가장 큰 것은
지름이 89km이며, 최근까지 발견된 바에 따르면 가장 갖은 것은 지름이 6m에 조금 모자란
다. 아폴로군 소행성은 지금까지 200여 개가 발견되었는데, 매달 몇 개씩이 추가되는 추세이
다. 지구와 충돌할 경우, 전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만큼, 큰 소행성은 최
고 4,200여 개까지 존재할 수 있다고 천문학자들은 추측한다.
지구가 큰 소행성과 충돌할 확률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 가능성은 엄연히 존재하며, 수백
만 년 혹은 수천 년마다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정확하게 얼마나 자주 소행성의 충
돌이 일어날까?
2)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큰 충돌이 일어나는가?
수성이나 달 같은 천체의 표면은 생생한 지질학적 증거를 가지고 있다. 작은 망원경이나
쌍안경으로 달 표면을 바라보면, 우주에서 날아온 천체들이 충돌한 흔적인 수많은 구덩이들
과 상처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지구 표면에서는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그러
한 흔적들을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가 우주의 침입자들을 불
태우기 때문에, 대부분은 지표면에 도달하기도 전에 없어지고 만다. 설사 지표면에 그러한
흔적들이 생긴다 해도 풍화 작용과 침식 작용으로 인해 지워지고 만다. 지구는 수성이나 달
과는 달리, 항상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불이 지표면을 씻으며 흘러 내려간다. 오랜 세월에
걸쳐 물과 바람은 사표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결국은 소행성 충돌의 흔적을 지워 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질학자들은 지표면에서 130여 군데의 크레이터를 확인하였고, 그 숫
자는 매년5∼6개씩 증가하고 있다. 지구 역시 소행성 충돌로 인한 많은 상처들을 가지고 있
는 것이다. 몇몇 예를 들자면, 남아프리카의 브레드포트 크레이터(지름 10km), 독인의 리스
크레이터(wlrma 24km), 미국 애리조나 주의 배링거 크레이터(지름 1.2km)등이다. 가장 큰
크레이터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있는 것으로 지름이 무려 200km에 이른다.
풍화 작용과 침식 작용으로 지질학적 기록들이 지워지기 때문에 소행성이 지구에 얼마나
자주 충돌하는가를 추정하는 데는 어려움이 적지 않아. 그러나 지질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은,
소행들의 궤도 연구와 다른 행성들과 위성덜의 표면을 연구한 결과로부터 대략적인 수치를
추정할 수 있다. 그들의 추정치를 <표 1>에 실어 놓았다. 여기에는 충돌 빈도와 함께 소행
성의 크기, 그리고 파괴력의 정도를 함께 관련지어 소개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가는 소
행성의 속도와 구성 성분뿐만 아니라, 지구의 대기권에 들어오는 각도등에 따라 크게 변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한다.
평균적으로 소행성들이 지구 대기권에 들어오는 속도는 초속 16km(시속 58,000km)정도이
다. 작은 소행성들(지금45m 이하)은 대부분 대기권의 높은 상공에서 폭발해 버리므로, 거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이 사실은 반대로 소행성의 가공할 파괴력을 설명해 주는 것
이기도 하다. 석질 소행성은 금속질 운석보다 빨리 대기권 상공에서 폭발하기 때문에 위험
도는 더 낮은 편이다.<표 1>에 소개된 것처럼, 지름 45m정도의 소행성이 지표면에 충돌하
거나 지표면 근처에서 폭발한다면 큰 재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달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서, 지구와 거대한 소행성이 충돌하여 달이 생겨났다는
설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충돌한 소행성의 크기는 대략 화성(지
름 6,400km)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큰 소행성이라면, 차라리 행성체나 행성이라
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 충돌로 인해 태양계 역사의 초기에 지구의 많은 물질(그리고 그
소행성의 많은 물질)이 떨어져 나가, 나중에 그것이 뭉쳐 달이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3)가까이 있는 소행성들
최근 100여 녕 동안 외부 천체와 지구의 치명적인 충돌은 없었다. 가장 최근의 것은 퉁구
스카(Tunguska)의 재난이다. 1908년 6월 30일, 중앙 시베리아의 퉁구스카라는 지방에서 숲
의 상당 부분이 사라져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2천 평방킬로미터가 넘는 광활한 지역의 나
무들이 불에 그을린 채 쓰러져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은 이 재난을 가져온 원인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그 중 가장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 소행성 충돌설이었다. 그렇
지만 소행성이 충돌한 크레이터는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실로 인해 반물질이나 미니
블랙 홀 또는 UFO가 충돌한 것이라는 등의 극단적인 추측들이 난무할 뿐이었다.
최근 NASA의 에임스 연구센터에 근무하는 크리스토퍼 시바와 그 동료 연구원들이 제안
한 설명(아마도 가장 신빙성 있는 설명)에 따르면, 지름 46m정도의 석질 소행성이 대기의
마찰로 타오르다가 지상 8km높이에서 격력하게 폭발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크레이터가
생기지 않았고, 이때 발생한 폭발 총격파가 퉁구스카의 산림을 쓰러뜨렸다는 것이다. 만약
석질이 아니라 금속질 소행성이었다면, 지표면에 충돌하여 배링거 크레이터만한 구멍을 만
들면서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켰을 것이다.
1908년 이후로는 비교적 조용하였다. 그러다가 1965년 3월 31일, 캐나다 남서부의 레벨스
토크(Revelstoke)라는 소도시에서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큰 유성(소행성이라 부르기에는 너
무나 작은 천체)이 지상 약 32km상공에서 폭발하는 것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목격하였다.
그것은 tnt 약 2만 톤을 폭발시키는 것과 같은 위력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
자 폭탄의 위력과 맞먹는 것이었다. 다만 너무 높은 곳에서 폭발했기 때문에, 다행히도 지상
의 생물에는 거의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퉁구스카 상공에서 폭발한 소행성은 이보다 약 1천
배나 더 큰 위력을 지니고 있었고, 지상과의 거리 또는 4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최근 웅리는 재난을 가져올 만한 충돌의 위기를 몇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1968년
6월 14일, 아폴로군에 속하는 이카루스(Icarus)아는 이름의 한 소행성이 지구로부터 6백만
km거리까지 근접하였다. 1989년 3월에는 소행성 1989 FC가 지구에서 110만km 거리까지 다
가왔다. 이는 지구에는 달까지의 거리의 3배를 조금 못미치는 거리였다. 1989 FC는 이카루
스보다 작지만, 퉁구스카 상공에서 폭발한 것으로 추측되는 소행성보다 1,000배나 더 크다.
만약 그것이 초속 11km라는 중간 정도의 속(고속 총알 속도의 2배)로 지구에 충돌했더라면,
엄청난 참사를 불러왔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대기권을 지나 지구 표면에 충돌하면서, 1초도
채 안 되어 기화하고 말았을 것이다. 폭발과 연이어 발생한 충격파는 사방 250km 이내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켰을 것이고, 만약 그것이 바다에 떨어졌다면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서,
전세계의 해안 지역들을 침수시켰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익사하고,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1991년 6월 중순, 소행성 1991 BA가 지구에서 17만 km 거리까지 근접하였다. 이는 달까
지의 거리의 절반밖에 안 되는 거리였으며, 천문학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거의 충돌할 뻔한
가까운 거리였다. 그것은 그렇게 큰 소행성은 아니었고, 실제로는 지구 궤도를 가로질러 가
는 소행성 중 가장 작은 것(지름 9m)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소행성이 초속 24∼32km의
속도로 지상에 충돌하거나 지상 근처에서 폭발했다면, 그 위력은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떨
어진 원자 폭탄보다 좀더 강했을 것이며, 따라서 한 도시 전체를 날려 버릴 수도 있었다.
4)혜성 충돌
태양계 내에서 지구와의 충돌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은 소행성만이 아니다. 혜성도 지구와
충돌할 수 있다. 특히, 태양으로 다가오는 길쭉한 타원 궤도의 여정에서 지구의 공전 궤도를
가로질러 가는 혜성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한 혜성들에 대해서는 「유성우」편에서 다룬
바 있다. 이들 혜성은 매년 지구에 떨어지는 유성우에 원인을 제공한 주범이기도 하다.
최근에 작은 소동을 불러일으킨 혜성은스위프트-터틀(Swift-Tuttle)로, 이 혜성은 매년 8
월 중순에 일어나는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에 그 재료를 제공하였다. 이는 태양 주위를 약
130년마다 한 바퀴씩 돌면서 지구 공전 궤도를 가로질러 간다. 가장 최근의 방문은 1992년
에 있었으며, 천문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다음 방문은 2126년에 올 것이라고 한다. 국제 천
문학협회에서는 일찍이 그 궤도 운동을 면밀힌 분석하여, 1992년 10월에 다음과 같이 발표
하였다. 즉, 2121년 8월 14일에 이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1만분의 1이며, 그럴 경우
전지구적인 지각 변동 및 광범위한 죽음과 파괴를 일으켜, 우리가 알 고 있는 문명이 모조
리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2년 12월초에 새로운 자료들이 추가하여 면밀히 분
석한 결과, 그러한 일은 아주 미약한 가능성마저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혜성과 소행성은 서로 별개의 천체로 취급되지만, 서로 연관되는 부분도 있다. 혜성은 본
질적으로 작은 암석질 핵 주위에 큰 눈뭉치가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혜성이 태양계의 안쪽
으로 다가와 태양 주위를 돌 때는 눈뭉치의 얼음이 기화하여, 혜성은 자신이 가진 물질 중
상당 부분을 상실하게 된다.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의 세월이 흐르면, 혜성은 자신이 지닌
모든 얼음 물질을 잃고 빈털터리 상태에 놓일 것이다. 또 나머지 작은 암석질 핵 부분은 계
속 태양 주위를 돌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 궤도를 가로질러 가는 아폴로군의 소행성들 중
일부는, 이러한 빈털터리 혜성들의 잔해인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일부는 화성과 목성 사
이의 소행성대에 있는 소행성들 중 탈출하여 옮겨 온 것으로 추측된다.
아폴로군의 소행성들은 영원히 살아 남지는 못한다. 지구와 다른 행성들 사이를 지나가면
서 이들 소행성은 궤도가 변하여, 마침내 이들 행성 중 하나와 충돌하고는 생을 마감하고
만다. 1994년 7월 16일부터 22일 사이에 그러한 충돌이 발생했다. 슈메이커-레비 9혜성의
잔해가 수십 개의 큰 덩어리로 나누어진 것이(수천 개의 작은 덩어리들과 함께)목성에 충돌
하였다. 이러한 종류의 충돌은 인류가 관측한 것으로는 최초의 일이었다. 그 충돌 효과는 지
구에서는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정도였고, 목성 자체에도 영향을 거의 주지 않았지만, 충
돌의 위력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 폭탄을 터뜨리는 것보다 더 강한 것이었다. 슈메
이커-레비 9가 지구가 아닌 목성에 충돌한 것은, 천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5)영원한 감시
애리조나 주의 투스콘에 있는 행성과학 연구소의 클라크 채프먼과 NASA의 에임스 연구
센터의 데이비드 모리슨에 따르면, 전지구적으로 가공할 영향을 끼칠 정도로 큰 소행성이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은 30만 년에 한 번꼴이라 한다. 즉, 수명이 75년인 사람이 그
러한 충돌 현장을 경험할 확률은 4천분의 1이다. 채프먼과 모리슨은 또 소행성이나 행성의
충돌로 인해 사망할 확융도 계산하여, 그것을 미국에서의 사고로 이한 사망 원인들과 비쇼
하였다(<표 2>참고).
소행성이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빈도는 물론 통계적인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다음
번의 큰 충돌은 50만 년 후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5년 후에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것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일깨워 준다.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지질학적 시간의 관점에서) 지
구에 재앙을 가져 올 소행성이나 혜성의 충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기후는 급격히 변하고,
전세계의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고 말 것이며, 지구상의 많은 식불들과 동물들은
절멸할 것이다. 즉, 문명 자체가 살아 남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위험이 우리 앞에 있다
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불행히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현재 극소수의 사람이 경계를 담당하는 보
초 역할을 하고 있다. 유진 슈메이커와 그의 아내 케롤린(이 두 사람은 데이비드 레비와 함
께 슈메이커-레비 9혜성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밖의 몇 몇 자원자들이 그러한 사람들이
다(소행성 1989 FC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이들 자원자 중 하나인 헨리 홀트였다). 또
한, 애리조나 대학에 기지를 둔 소규모의 스페이스워치(Spacewatch:우주 감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하늘을 계속 감소하고 있다. 1990년에 스페이스워치 팀은 애리조나 주의
키트피크 천문대에 있는, 36인치짜리 망원경에 전하 결합 소자(CCD)라는 매우 감도 높은
전자 탐지 장치를 부착하였다. 이 장치는 너무 희미해서 사진 필름에 나타나기 어려운 물체
들을 탐지할 수 있게 해준다. 지름 5m 정도의 작은 소행성들은 이 CCD가 부착된 장비를
통해 발견되었다(지금 5m정도의 크기라면, 소행성이라기보다 유성체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경계선은 모호하다).
1993년 6월 현재 스페이스워치는, 지름이 풋불 경기정의 절반(46m)보다 작긴 하지만, 지
구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소행성들이 지구를 지나가는 것을 12개나 확인하였다. 이것
은 지구가 매년 나가사키나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 폭탄의 위력과 맞먹는 폭발 에너지를
지닌 천체들과 여러 번 충돌한다는 것이다(이들은 대부분 대기권 아주 높은 곳에서 폭발하
기 때문에,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다. 만약 이들이 지상 가까이에서 폭발한다면 큰 재난을 불
러일으킬 것이다).
많은 천문학자들은 전자 감도가 높은 대형 망원경 하나만으로는 지구에 다가오는 침입자
들을 충분히 감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유진 슈메이커에 따르면, 그러한 망원경들을 지구
전체에 네 군데 정도 설치하여 감시하면, 10년 이내에 지구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소행성이
나 혜성의 90%를 포착할 수 있다고 한다(1992년 1월에 NASA의 과학자들이 행성간 침입자
들을 감시하기 위해, 6개의 대형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의 도입을
제안하였지만, 스페이스가드 서베이(Spaceguard Survey)라고 이름 붙여진 이 시스템은 결
국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일단 위험한 소행성이나 혜성이 발견되면, 고성능 폭발물을 사용하
여 그것의 궤도를 바꾸거나 폭발시킬 수 있다. 우리는 현재 그렇게 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
하고 있다.
스페이스워치 프로그램을 10년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2천만 달러 정도이
다. 이는 연간으로 따지면 2백만 달러에 불과하므로, 전세계 각국 정부에 분담할 것을 요구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지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문명과
인류가 살아 남기 위한 대가로는 매우 값싼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라. 만약 6500만 년 전에 소행성이나 혜성을 조기 발견하고 요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더라면, 지상에는 아직도 공룡들이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라
고.
여섯 번째 이야기
살인 유전자를 찾아서
경험 많은 산파는 아기가 태어나면 이마를 핥아 본다. 만약 짭짤한 맛이 느껴진다면, 그
아기는 곧 아파서 죽을 운명에 이른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땀에
염분이 과도하게 많이 함유된 것은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의 증상이다. 이 병은 땀
샘을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고, 폐와 소화 기관들에 진하고 끈끈한 점액들이 들러붙게
하여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질명이다. 점액은 세균들에게 훌륭한 서식처를 제공한다. 폐
렴과 같은 치명적인 폐 질환을 막기 위해, 낭포성 섬유증에 걸린 환자는 하루에 몇 시간씩
가슴을 두들겨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점액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또한 낭포성 섬유
증 환자는 항상 항생제를 복용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조처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폐 질환이나 심장마비로 서른 살 이전에 사망하고 만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의사들은 이 치명적인 질병이 환자의목숨을 앗아가는 매커니
즘에 대한 단서조차 얻지 못했다. 그들이 알아 낸 유일한 사실은, 이 병이 가족들 사이에 퍼
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낭포성 섬유증은 카프카스의 어린이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가장
흔하고 치명적인 유전병이다. 카프카스 지방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2,500명 중 한 명이 이 병
에 감염되는데, 안타까운 것은 유전병에는 낭포성 섬유증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약 4천 가지의 유전병이 존재하며, 이들 대부분의 유전병은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매우 희
귀하다. 이러한 유전병에는 종종 전형적인 증상을 나타내는 기묘한 이름이 붙은 경우가 많
다. '행복한 강아지 증후군(happy puppet syndrome)'dlfkrh 하는 앙겔만병(Angelman's
syndrome)에 걸린 환자는, 상당히 오랫동안 웃음과 함께 강아지의 동작을 연상시키는 경련
을 시도 때도 없이 일으킨다. 유전성 경기(herediary startle syndrome)환자는 갑작스러운
접촉이나 소리에 쓰러지면서, 근육이 뻣뻣해지고 만다. 단풍설탕 배뇨병(maple syrup urine
disease)은 비정상적인 소변과 함께, 졸도와 혼수 상태를 초래한다. 또한 레시-니한 증후군
(Lesch-Nyhan Syndrome)은 자기 입술과 손가락을 물어 뜯는 증상을 나타낸다. 이러한 질
환들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병이지만, 혈우병이나 근위축증, 겸상(鎌狀)적혈구 빈혈증
(sickle-cell anemia), 헌틴텅병(Huntington's chorea)등의 유전병 환자는 수백만 명에 이른
다.
유전병을 의학적으로 조사하면, 그 질병을 일으킨 물질은 정확하게 밝혀 낼 수 있을 것이
다(이상적으로는). 대개의 경우. 피고는 결함이 있는 단백질이다. 우리 몸의 세포들이 만들어
내는 온갖 종류의 단백질은 각각 특정 유전자의 지시를 받아 만들어진다. 유전학자들은 결
함이 있는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 냄으로써, 그 유전 암호를 이용하여 유전자의 구조를 해독
할 수 있고, 결국에는 그것이 어느 염색체상에 존재하는지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유전학자들의 최종 목표는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정상적인 유전자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
렇게 가장 기본적인 세포 내 차원에서 유전병을 치료하는 것을 '유전자 치료(gene therapy)'
라 일컫는다. 언뜻 보기에는 별로 대단한 진보를 이룬 것 같지 않지만, 유전자 치료는 최근
들어 공상 과학을 방불케 하는 첨단 의료 기술의 대표적인 주자로 부각되고 있다. DNA 연
구 결과로 인해, 우리는 지금까지 절망적이라고 여겨 온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최초로 치료에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유전병 가운데 하나는 겸성적혈구 빈혈증이다.이 빈
혈증은 아프리카 흑인 사이에 주로 나타나는 병으로, 몸이 심하게 쇠약해져 종종 죽음에까
지 이르는 병이다. 이 병의 이름은 보통 현미경으로도 볼 수 있는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붕
괴하는 데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 병의 증상으로는 빈혈증과 함께 몹시 고통스러운 경련과
타질환의 감염 위험성 증가, 그리고 결국에는 많은 기관들에 손상을 입히는 것으로 나타난
다.
1945년경에 이르자, 병의 원인은 결함이 생긴 헤모글로빈(hemoglobin)이라는 적혈구 때문
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헤모글로빈은 적혈구가 신체의 모든 부분에 산소를 실어 나르도록
해주는 단백질이다. 불행히도 겸상적혈구 빈혈증에 걸리면 헤모글로빈에 이상이 일어나고,
헤모글로빈 분자가 이상한 모양으로 뒤틀려 적혈구 세포가 일그러지고 만다.
헤모글로빈에 일어나는 이러한 변형은 과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헤모글로빈 분자는
다른 단백질들과 마찬가지로, 아미노산이 특별한 순서로 긴 사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겸상적혈구 세포에서는 146번 사슬에 있는 하나의 아미노산이 이상을 일으킨다. 전체적으로
그다지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헤모글로빈 분자의 3차원 구조를 파괴하
기에 충분한 결함이다.
1978년에는 헤모글로빈 분자의 아미노산 배열과 유전 정보의 지식을 이용하여, 그 정체를
알기 어려웠던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추적하여 밝혀 내는 데 성공하였다. 몇몇 주요한 유전
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밝혀 낸 최초의 사례였다. 그리고 몇 년 후부터는 출산전에 겸상적
혈구 빈혈증에 대한 검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오늘날은 약 75가지의 유전병에 대하여 출산
전에 검사를 시행할 수 있다.
헤모글로빈 분자에 생긴 조그마한 결함은 유전 정보를 암호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훨씬
더 미소한 결함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그 유전자를 구성하는 1,720개의 염
기 중 하나에 결함이 있어 생기는 것이다. 많은 유전병은 이와 같이 단 하나의 염기에 변형
이 일어남으로써 발생한다. 로버트 샤피로가 자신의 저서『인간 청사진(The Human
Blueprint)』에서, 유전병을 '무서운 식자공'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유전병은, 겸상적혈구 빈혈증의 경우처럼 연구자들의 경우
처럼 연구자들의 뜻대로 호락호락 그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많은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결
함 있는 단백질들을 분리해 내기란,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사실상 매우 어렵다. 다행
히도 과학자들이 여기에 접근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있는데, 그것은 이들 유전병이 지닌
유저적 특성 때문에 가능하다. 먼저 문제의 근원인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찾아낸다. 그 다
음, 그 유전 물질이 만들어 내는 단백질이 무엇인지를 역추적해서 밝혀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추접법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엄청난 수의
DNA가 들어 있으며, 이들은 또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암호화한다. 만약 우리의 유전 정보
문자를 책에다 인쇄한다면, 그것은 단행본 소설책 5천 권 분량을 가득 채울 것이다. 설상가
상으로, 가장 강력한 전자 현미경으로도 DNA의 구조를 상세히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DNA 분자의 개개 염기를 구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특정 유전자를 발견하기 위
해 인간 게놈(genome:전체 유전 물질)을 샅샅이 훑어 나가는 것은, 마치 책들이 가득 차 있
는 작은 도서관에서 눈을 가린 채 하나의 문장을 찾으려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가끔 추적의 결과가 특정 염색체로 좁혀질 때가
있다. 염색체는 모든 세포핵 속에 들어 있는 벌레처럼 생긴 물질이다(단, 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적혈구 세포 속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인간은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속에는 약 10만 쌍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22쌍의 염색체들은 각각 자기의 짝과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들을 상염색체(相染色體:autosome)라 부른다. 23번째 염색체 쌍을 성
염색체라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성을 결정한다. 남자의 성 염색체는 X와 Y라는 서로 다른
염색체로 이루어져 있고, 여자의 성 염색체는 형태학적으로 동일한 2개의 X염색체로 이루어
져 있다.
드문 일이지만, 특정 형질의 유전자가 바로 X염색체에 존재할 수 있다(Y 염색체는 크기
가 작아서 성 이외의 다른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 하나는
귀에 털이 많이 나는 것이다). 이러한 특정 형질은 성과 연관된 형질로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이들은 주로 남자에게만 일어난다). 최초의 반성(伴性)유전 형질로 판명된 것은 1911년
에 발견된 적록 색맹으로, 이는 X염색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색맹 유전자가 포
함된 X염색체를 가진 남자는 자동적으로 색맹이 되지만, 여자의 경우는 남자에 비해 훨씬
안전하다. 여자는 2개의 X 염색체 모두에 색맹 유전자가 존재해야만 색맹이 되기 때문이다.
대머리 역시 반성 유전 형질로, 건상상에 특별한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성 유전병
인 혈우병과 근위축증은 생명을 위협한다.
1)근위축증
근위축증(muscular dystrophy)은 신체의 근육이 위축되어 마비되는 무서운 병이다. 이 병
에 걸리면 대개 스무 살을 전후하여 사망하게 되는데, 사망 원인은 심장근이나 호흡 관련
근육들이 너무 약화되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과 관련된 질병이라
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이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x염색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X염색체 상에만도 1억 6,600만 개의 염기쌍들이 존재하며, 수천 개
의 유전자가 존재한다. 과연 DNA 나선 위의 어느 지점에 근위축증 유전자가 존재할까? 이
것을 찾아내는 것은, 한 도시 안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집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가지고 그
집을 찾으려는 것과 같다.
이때, 워싱턴 주 스포케인 출신의 브루스 브라이어라는 한 아이(이 아이는 양자였다)가 근
위축증 연구자들에게 단서를 제공하였다. 브루스는 X염색체의 잘못으로 세 가지 유전 질환
을 지니고 태어났는데, 그 중 하나가 근위축증이었다. 브루스의 백혈구 세포 내의 염색체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관찰한 결과, X염색체 중 미소한 부분이 상실되었음이 발견되었다. 그러
자 도시 전체를 찾아 헤매던 작업은 십여 개의 블록을 조사하는 것으로 좁혀졌다.
이후의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전자의 기본 물질인
DNA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DNA는 이중 나선 구조로 이루어진 분자이며, 두 가닥의
DNA는 각각 대응하는 염기쌍으로 짝을 지으며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 두 가닥에 늘어
서 있는 염기들은 임의적으로 배역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한쪽에 늘어선 염기쌍에
따라, 다른 쪽 가닥에 늘어선 염기들의 배열이 결정된다. 즉 한쪽에 A염기가 존재하면 거기
에 연결되는 반대 쪽에는 반드시 T염기가, 그리고 C염기에 대응해서는 반드시 G염기가 존
재한다. 따라서 한쪽에 염기들이 ATACCGT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면, 다른 쪽에는
TATGGCA의 염기들이 배열되어 있는 것이다.
염기들이 짝을 지을 때 나타나는 이러한 선택적 특성 때문에, 과학자들은 살인 유전자를
색출하는 데 일말의 단서를 얻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사용한 사냥개는 DNA한 가닥 중 극
히 일부였다. '프로브(probe:탐사자)'라 불리는 이 사냥개는, 염색체상의 위치가 알려져 있는
이십여 개의 염기들로 이루어진다. 한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는 특성으로 인해, 프로브는 자
신의 염기 배열에 대응하는 다른 쪽 가닥의 DNA부분에 가서 결합할 것이다. 대응하는 두
가닥의 DNA가 이렇게 결합하는 것을 '교잡(hybridization)'이라 일컫는다. 조사 대상인 염색
체로부터 추출한 많은 한 가닥의 염색체 조각들과 프로브를 섞어 놓았을 때, 프로브는 신비
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짝을 정확하게 찾다 교잡한다.즉, '겔 전기 영동(gel electrophoresis)'
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우선 DNA조각들을 전류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이것을 젤라틴 판
을 통과하게 함으로써 분리한다. 그 다음에는 방사성을 띠거나 형광을 띤 프로브를 분리된
DNA조각들 위에 투입한다. 교잡이 일어난 후 프로브가 위치하는 곳은 쉽게 찾아낼 수 있
고, 이로써 DNA의 특정 조각은 염색체상에서 프로브와 같은 위치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 1>참고).
이러한 강력한 조사 도구들을 갖추고서, 유전학자들은 근위축증 유전자를 추적하는 데 나
섰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각각의 염색체에 대해 꽤 많은 프로브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들은 세균체내의 DNA도서관이라 부르는 곳에 저장되었으며, 그와 함께 세균 DNA를 생
산해 내는 데 사용되었다.
유전학자들은 먼저 브루스 브라이어의 X염색체에서 빠져 있는 부분과 동일한 부분에 존
재하는 프로브를 건강한 사람에게서 떼어 내었다. 그 다음에 많은 근위축증 환자들에게서
채취한 DNA와 교잡하지 않는 프로브가 발견된다면, 근위축증 환자에게서 DNA의 바로 이
부분이 변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근위축증 유전자에 일어난 변형일 가능성이
크다.
마침내 하버드 의과대학의 루이스 쿤켈과 앤소니 모나코는, 많은 DNA 샘플들과 교잡하
지 않는 하나의 프로브를 분리하였다. 그것은 약 200개의 염기들로 이루어진 아주 작은 유
전 물질 조각이었고, 근위축증 유전자의 일부였다. 1985년에 이르러, 마침내 250만 개의 염
기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DNA조각인 전체 유전자가 밝혀졌다.
마지막 단계는, 유전자의 DNA배열로부터 그것이 만들어 낸 단백질을 밝혀 내는 것이다.
이것 역시 쉬운 말보다는 훨씬 어려운 작업이다. 유전자는 터무니없이 길지만, 필요한 근육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암호에 관여하는 부분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유전자의 나머지 부
분은 '인트론(intron)'이라고 하는, 아무 쓸모 없는 부분들이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88년 봄에 쿤켈 연구팀은 근위축증을 일으키는 미스터리 같은 단백질을 밝혀 내었다. 그
들은 이 단백질에 '디스트로핀(dystriphi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반년 후에는 쥐에게 디스
트로핀을 주사하여, 쥐의 근위축증을 치료하였다. 추적은 끝났다. 이제 사냥개들, 아니 프로
브들을 불러들이자.
2)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
피부에 짠맛이 나는 그 이상한 병으로 다시 돌아가자. 낭표성 섬유증을 연구하는 과학자
들은 근위축증 유전자를 추적하던 사람들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 낭포성 섬유증은 반성 유
전병이 아니기 때문에, 그 범인이 존재하는 특정 염색체를 지목할 수 없었다. 또 현미경으로
염색체상의 이상을 발견하여 추적의 단서를 얻게 해주는 브루스 브라이어라는 어린이도 존
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가?
먼저 낭포성 섬유증과 연관을 가진 특정 형질로, 그 유전자가 존재하는 염색체로 밝혀진
것을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1900년대 초 토머스 모건이 수십 개의 초파리
유전자의 위치를 밝혀 낸 바로 그 방법이다. 그는 쌍을 이루며 함께 유전되는 형질들을 나
타내는 유전자들이 똑같은 염색체상에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그러한 형질들을 조사하였다.
모건은 또한 교차가 일어나는 빈도를 조사함으로써, 염색체상의 유전자들의 상대적인 위치
를 알아낼 수 있었다. 미지의 유전자를 알아내는 데 사용되는, 이미 알고 있는 유전자를 '표
지 유전자(maker)'라고 부른다.
모건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수천 마리의 초파리들을 수많은 세대에 걸쳐 선택적
으로 교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실험을 인간에게 행할 수는 없다. 이것
은 결함이 있는 인간의 유전자를 찾아내는 데 큰 장애물이 되었다.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병의 발병률이 높게 나타나는 근친 결혼 가계를 많이 조사하는 것뿐이었다.
이 병이 아주 희귀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대상자들이 발
견되면, 표지 유전자를 사용하여 가능한 한 많은 가계의 많은 세대에 대해 추적을 감행, 이
병과 연관된 형질을 발견하는 데 착수한다. 표지 유전자는 어떤 것을 사용해도 좋다. djEJs
표지 유전자든 이미 그 위치는 알려져 있으니까. 문제는 그 위치가 정확하게 알려진 표지
유전자들이, 충분할 정도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를 추적하는 연구자들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렇게 어려운 상
황에 처해 있었다. 그들은 그 유전자가 어느 염색체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
다, 이는 결코 그들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상황이 급변
하여, 인간 유전 연구는 극적인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제한 효소(restriction
enzyme)'로 시작되었다. 1970년에 발견된 제한 요소는, 살인 유전자를 추적하는 데 매우 유
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한 효소는 세균들 속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며, 이들은 침입하는 바이러스의 DNA를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DNA를 난도질하는 것이 제한 효소의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다. 분자
를 가르는 가위처럼 이들은 길다란 DNA가닥을 작은 조각들로 쪼갠다. 그런데 제한 효소는
조각들을 임의로 아무렇게나 자르지는 않는다. 하나의 특정 제한 효소는 DNA를 인식하고,
특정 염기쌍들이 배열되어 있는 장소에서만 자른다(제한 효소는 이중 나선의 DNA를 자른
다). 선택적으로 DNA 가닥을 자르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제한 효소는 새로운 표지 유전
자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이 유전학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를 이해
하기 위해, 하나의 문장이 한 가닥의 DNA를 나타내고, 각 문자가 개개의 염기를(또는 우리
가 이중 나선의 DNA를 나타내고, 각 분자가 개개의 염기를(또는 우리가 이중 나선의 DNA
를 다루고 있다면 개개의 염기쌍을) 나타낸다고 비유해보자, "Suzy sells seashells(수지가
조개를 판다)."라는 문장을 예를 들어 보자. 모든 문자를 대문자로 나타내고, 단어들 사이의
띄어쓰기를 생략하면 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SUZYSELLSSEASHELLS
이제 FLIS의 배열만 인식하여, 항상 E와 L사이만 자르는 제한 효소를 도입한다고 하자. 효
소가 자신의 임무를 다한 후, 위의 문장은 아래와 같이 잘라져 있을 것이다.
제한 효소의 칼질 제한 효소의 칼질
SUZYSE LLSSEASHE LLS
여섯 개, 아홉 개, 세 개의 염기들로 이루어진 세 부분의 염기 배열들이 새롭게 생겨났다.
이번에는 철자상의 오류가 있다고 가정하자. 즉 DNA상에 돌연 변이가 생겨, SELLS 중의
E가 DNA복제 과정에서 A로 잘못 대체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문장은 다음과 같이 된다.
SUZYSALLSSEASHELLS
다시 제한 효소를 도입하여 이 DNA를 자르면 다음과 같이 변한다.
제한 효소의 칼질
SUZYSALLSSEASHE LLS
이번에는 열다섯 개와 세 개의 염기들로 이루어진 두 부분만이 생겨났다. DNA상의 단
하나의 염기쌍에 일어난 변화가 이렇게 아주 다른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DNA상에 나
타나는 어떤 차이나 변형을 다형성(多形性:polymorphism)이라 한다면, 갈색 눈과 파란색 눈
은 눈의 색깔 유전자에 나타나는 두 가지 다향성이다. 또한 A,B,O형의 혈액형은 특정 혈액
단백질 유전자에 나타나는 세 가지 다향성이다. 제한 효소가 두 가지 변형으로 나타나는 동
일한 DNA부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르는 것을, '제한 효소 절편 다향성
(RELP:restriction-fragment-length-polymorphism)'이라 부른다. 유전학자들은 이를 줄여 종
종 '리플립스(riflips)'라고 부르기도 한다. 리플립스는 인간 게놈의 어떠한 부분에서도 일어
날 수 있다.
제한 효소들이 점점 더 많이 발견됨에 따라, 유전학자들에게 리플립스는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만나(manna: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광야를 헤맬 때, 하늘로부터 받
은 양ㅇ식)처럼 보였다. 리플립스는 실로 하늘의 축복이었다. 게놈에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
으면서 변형을 시킨 것은, DNA를 따라 표지판의 역할을 하였다. 리플립스는 제한 효소를
백혈구 세포에서 추출한 DNA에 집어 넣음으로써, 대를 이어 추적할 수가 있다.
한편 1985년에 라이추이는 리플립스와 토론토 병원의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에 대한 많은
샘플로부터,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가 염색체 7번에 위치한다는 것을 밝혀 내었다. 그후 연관
연구와 함께 보다 풍부하고 훌륭한 리플립스를 사용하면서, 그 유전자가 160만 개의 염기쌍
으로 분리되어 있는 두 개의 표지 유전자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리고 1989년 여름에 추이와 그 밖의 연구자들은 마침내 그 유전자를 완전히 밝혀 내었
다. 근위축증 유전자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크기를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단백질을
합성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액숀(exon)이라 불리는 27개의 DNA부분을 포함하여, 14,80가지
의 아미노산을 합성하는 암호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유전자의 전체 길이는 25만 갸의 염기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서운 식자공을 추적하여 찾아내는 작업은, 유전 질환을 앓고 있는 수십만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1990년에는 코끼리인간병의 유전자가 발견되었고, 1993년 3월에는 루
게릭병(ALS)의 유전자도 발견하였다. 그리고 1994년 9월은 기념할 만한 달로 기록될 것이
다. 유전학자들은 인슐린에 의존해야 하는 당뇨병을 유발시키는, 다섯 개의 윤전자와 유전성
유방암의 유전자를 찾아냈다고 발표하였다.
그 밖에도 살인 유전자들을 계속 추적함에 따라, 그 성공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그렇지
만 살인 유전자의 염기 배열 위치를 결정하는 것만으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질병을
치료해야만 궁극적인 목적이 달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유전자 치료에 대하여 심도있게 알아
보자.
3)유전자 치료
중국의 옛 격언에 이르기를, "가난한 사람에게 고기 한 마리를 주면, 하루를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면, 그는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유전병을 연구하고 있는 유전학자들 역시 영원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 근위축증 환자에게
디스트로핀 주사를 놓거나 혈우병 환자에게 여러 성분이 복합된 주사를 놓으면, 그들은 며
칠 동안 무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유전자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면, 그들을 평생 동안 무사
할 수 있다. 유전자 치료는 이처럼 일시적인 치료가 아닌 평생 동안의 치료를 보장하는 것
이다.
유전자 치료의 목표는 아주 간단하고 명백하다. 즉, 유전자에 결함이 있는 환자의 세포에
정상적인 유전자를 집어 넣어 대체하는 것이다. 이 치료법은 ADA(adenosine deaminase)결
핍증이라는 아주 희귀한 유전성 면역 결핍증을 앓고 있는, 네 살짜리 소녀 린다에게 최초로
시술되었다. 미국 내에서 환자가 15명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희귀한 이 병은, 결함이
생긴 유전자가 필수적인 효소를 생산해 내지 못함으로써 발생한다. 그 결과, 면역 체계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T벽혈구 세포들은 특정 종류의 독소를 제거하지 못해 문자 그대로 자멸하
고 만다. 이것은 존 트래볼타가 주연한 1976년작 영화「플라스틱 거품 속의 소년(The Bㅐ
ㅛ IN THE Plastic Bubble)」에서, 주인공인 데이비드가 앓은 바로 그 병이다.
린다에 대한 유전자 치료는 1990년 9월 14일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거기에 착수하기까지
는 수년간의 연구가 선행되었다. ADA결핍증을 유발하는 유전자는 1983년에 분리되어JT다.
제한 효소들을 사용하여 인간의 DNA에서 정상 ADA유전자(필수 효소를 생산하는)를 잘라
내고, 이를 세균의 DAN속에 집어 넣었다. 세균이 번식하면서 자신들의 DNA를 세포 분열
시마다 복제하게 되는데, 이때 ADA유전자도 함께 세포 분열시마다 복제하게 되는데, 이때
ADA유전자도 함께 수천 개나 복제된다. 이것을 유전자 클로닝이라 부른다.
클로닝을 통해 충분한 양의 ADA유전자를 확보했다면, 이번에는 이 유전자를 인간의 세
포들 속으로 주입하는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때 바이러스가 등장한다.
바이러스는 미소한 전염성 입자인데, 내부에 소량의 DNA(또는 RNA)가 들어 있고 그 외부
를 단백질 껍질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이다. 바이러스는 유전자를 운송하는 완벽한 수단으로
기능하는데, 이것은 바이러스가 다른 세포를 감염시키는 독특한 방법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세포 속으로 직접 들어가, 그 세포의 기구를 이용하여 더 많은 바이러스 단백질과 DNA를
생산한다. 어떤 바이러스들-레트로 바이러스(retrovirus:윤정 정보 암호화에 DNA 대신
RNA를 사용하는 바이러스)은, 자신의 유전 물질을 숙주 세포의 유전 물질 속에 집어 넣어
숙주 세포와 함께 복제한다. 이보다 더 완벽한 운송 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레트로 바이러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자, 정상 ADA유전자들을 제한 효소를 사용하여 바
이러스의 게놈 속으로 주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바이러스가 질병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전에 바이러스의 특정 유전자를 잘라 내는 작업도 취해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90년 9월 14일에 린다에게 유전자 치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메릴랜드 주의 베세스다에 있는 국립 의료원에서 케네스 컬버, 마이클 블리스, 프렌치 앤더
슨은 린다를 어느 기계 장치 위로 들어올리고는, 린다에게서 백혈구 세포를 제거하였다. 그
다음에 이 세포들을 배양 접시 속에서 변형된 레트로 바이러스들과 함께 길렀다. 10일 동안
린다의 백혈구 세포들은 증식하였고, 그 과정에서 정상 ADA유전자들을 흡수하였다. 그리고
다시 린다에게 배양시킨 백혈구 세포들을 혈관 주사를 통해 주입하였다.
몇 주 지나지 않아, 린다의 면역 체계는 놀랄 만한 회복을 보였다. T세포의 수가 급속도
로 증가하였고, 면역 반응을 확인하는 피부 테스트에 양성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태어날 때
없었던 편도선(백혈구 세포들의 저장고)마저 자라났다. 한 가지 문제점은 백혈구 세포들의
수명이 겨우 몇 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린다는 이 과정을 6주 내지 8주 만에 한 번씩
반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후 의사들은 백혈구 세포들을 만들어 내는, 간세포(幹細胞:stem cell)라는 보다 수명이
긴 골수 세포들에 대해 이와 비슷한 유전자 치료를 실행하였다. 면역 결핍증에 걸려 태어난
신생아의 탯줄(드물게 존재하는 간세포가 탯줄에는 많이 있다)에서 간세포들을 채취하였다.
만약 변형시킨 간세포들이 정상적인 T백혈구 세포들을 생산할 수 있다면, 치명적인 유전병
인 ADA결핍증에 대해 평생동안의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치명적인 낭포성 섬유증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 병에 대한 유전
자 치료는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가? 1993년 4월 18일, 국립의료원에서 폐질환 전문가 론 크
리스털은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목을 통해 기관지경(bronchoscope)이라는 유연한 튜브를 집
어 넣었다. 그리고는 보통의 감기 바이러스를 폐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 바이러스는 정상적
인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들 바이러스들이 호흡계에 침입하여, 항구적
인 DNA차원의 치료를 이룰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좋은 경과를 보이고
있다.
일곱 번째 이야기
알레르기:존재하지 않는 적과의 싸움
어느 날, 한 젊은 남자가 미네애폴리스에 있는 한 프랑스식 레스토랑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프렌치 누브(Frdnch nouve)'라는 밝은 갈색의 소스를 친 스테이크를 주문하
였다. 주문한 스테이크가 나오자, 그는 맛있게 그것을 먹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마크 프레
이들랜더 주니어와 테리 필립스가 자신들의 저서 『내부 전쟁에서 이기는 법(Winning the
War Within)』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즐거움은 잠깐이었다. "불과 몇 분 후, 그는 숨을 쉬
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어 번 헐떡거리며 말한 후 그의 입은 감각을 잃었으며, 숨이 막
히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그는 양손으로 테이블 가장자리를 붙잡고 숨을 쉬려고 필사적으
로 애썼다." 같이 식사를 하던 사람 하나가 그의 등을 세게 두들겼다. 또 한 사람은 스테이
크 조각이 목에 걸린 것으로 짐작하여 흉부 압박법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공기를 마시려고 헐떡거리다가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다행히도 정식 의사는 아니지만 의료 활동을 하는 사람이 그곳에 달려와, 그 사람의 이마
와 뺨에 붉은 반점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 급성 알레르기 반응임을 직감하였다. 나중에 확인
되었지만, 그 남자는 조개류나 갑각류에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프렌치 누오브의
원료에 바닷가재가 들어간 것을 모르고 식사를 주문했던 것이다. 아드레날린 주사를 한 대
놓자, 그는 곧 기도가 열렸고 금방 의식을 회복하였다.
전신에 영향을 끼치고 생명까지도 위험하게 하는 이 알레르기 반응을 '아나필락시스
(anaphylaxis:과민증)'라고 한다. 견과류, 특히 호두는 과민한 사람들에게 심한 반응을 일으
키는 또 하나의 음식물이지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원천이 비단 음식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비문을 해석한 결과, 이집트의 왕 메네스는 기원전 1641년에 곤충에 쏘여 죽었
다고 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아나필락시스로 사망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이 아닐까 싶다. 그
러나 불행히도 아나칠락시스로 사망한 경우는 주변에서 적지 않게 목격되어 왔다. 미국에서
만도 매년 수백 명 내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아나필락시스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
다.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개 쇼크나 질식이다.
그렇지만 다른 수천만의 사람들(인구의 20~25%)의 경우는 다행히 이러한 알레르기 증상
이 훨씬 가볍게 나타난다. 그러한 증상들은 대개 콧물이 나오거나, 눈이 따갑거나, 재채기를
하거나, 두드러기가 나거나, 위나 내장의 통증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는 하지만, 이러한 증상들도 상당히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며, 이러한 통증을 가시게 하
기 위해 매년 수십조 달러 상당의 돈이 들고 있다. 그러므로 의료계에서도 알레르기의 비밀
을 밝혀 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 왔음은 물론이다.
알레르기는 우리의 면역 체계가 잘못 작동하였을 때 발생한다. 정상적으로는 외부에서 해
로운 미생물체가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올 때, 면역 체계가 작동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그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과민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인해 알레르겐(allergen)이라고 하는 해롭지 않은 물질에 대해서도 면역 체계가
작동된다.
집 밖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원인은 꽃가루를 흡입하는 것이다. 집 안
에서는 먼지, 더 정확하게는 먼지벌레(dustmite)라 불리는, 다리가 8개 달린 아주 작은 벌레
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먼지벌레들은 먼지가 많이 있는 곳에서 번식하는데, 비듬
과 같은 사람 몸에서 떨어져 나간 피부 부스러기를 먹고 산다. 이러한 먼지벌레류의 배설물
을 코로 흡입할 경우, 재채기가 나고 콧물이 흐르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알레르기성 코
카타르라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양이 알레르기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고양이 털이나 비듬 그 자
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고양이가 자기 몸의 털을 핥을 때, 털에
묻은 고양이 침 속에 있는 어떤 단백직 때문이다. 3개월 내지 8개월 동안 고양이를 한 달에
한 번씩 목욕시켜 주면, 고양이 침이 그러한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이
간단한 조치만으로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 고양이로 만들 수 있다.
알레르겐의 종류가 어떤 것이든 간에 일단 거기에 노출되면, 알레르기 환자는 특정 알레
르기 반응을 나타낸다. 어떤 경우에는 위험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1) 감각
알레르겐을 먹거나 들이마시거나 또는 주사를 놓고 몇 분 후면,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난
다. 이것은 알레르기 환자의 신체가 이전에 그 알레르겐과 이미 접촉하여,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준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최초에 알레르겜과 접촉하여 알레르기성 체
질을 갖추게 되는 것을 감작(減作:sensitization)이라 한다. 감작 단계에서는 어떠한 알레르기
증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음에 그 알레르겐이 다시 체내로 들어올 때에는, 세포
들이 거기에 즉시 반응을 보이도록 하는 준비가 갖추어진다. 감작이 일어난 후 두 번째로
알레르겐이 체내로 들어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까지는 몇 주일이 걸리기도 하고, 몇
달이나 심지어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알레르겐을 들이마셨을 경우, 감작은 기도 주변에서 시작된다. 즉, 마크로파라지라 불리는
백혈구 식세포가 조직들 사이를 흘러다니다가, 먼지벌레의 배설물이나 다른 알레르겐을 삼
켜서 소화해 버린다. 이로써 면역 체계의 작동이 시작된다. 그리고 소화된 배설물에서 나온
단백질 조각들이 마크로파지의 표면에 노출되면, 특정 헬퍼 T세포들이 그것을 인식한다.
이것은 병원균이 우리 몸 속으로 침입했을 때 일어나는 일과 똑같다. 그러나 알레르기 감
작에서는 일들이 약간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헬퍼 T 세포들은 병원균이 침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B 백혈구 세포들을 자극하여 항체를 생산하도록 하는 화학 물질들을 분비한다.
그렇지만 병원균에 감염되었을 때 생산되는 항체들은, 알레르기 반응시 만들어지는 항체들
과는 다른 종류이다.
항체는 그 구조와 행동 양식에 따라 크게 다섯 종으로 분류한다. 즉, 면역 글로불린
G(IgG), 면역 글로불린 M(IgM), 면역 글로불린 A(IgA), 면역 글로불린 D(IgD), 면역 글로
불린 E(IgE)가 그것이다. 면역 글로불린 G와 면역 글로불린 M은 정상적인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 때 가장 흔하게 생성되는 항체들이고, 면역 글로불린 E는 잘 나타나지 않는 항체이다.
그런데 알레르기 감작시에는, 반대로 면역 글로불린 E가 B세포에 의해 대량 생산된다. Y자
모양의 이 항체 분자는 두 종류의 세포들에 들러붙는다(꼬리를 먼저 하여). 두 종류의 세포
란 마스트(mast)세포와 염기성 백혈구(basophil)이다. 마스트 세포들은 골수에서 만들어져
전신으로 퍼져 나가, 마침내는 피부나 점막, 그리고 폐와 창자를 따라 늘어선 조직들에 머문
다. 염기성 백혈구 역시 골수에서 만들어지지만, 이들은 백혈구 세포 가족에 속하여 혈액 속
에서 함께 순환한다. 면역 글로불린 E항체들은 마스트 세포와 염기성 백혈구 양자에 특히
친화력을 가지고 있으며, 감작이 일어난 뒤 면역 글로불린 E항체들은 이들 세포의 표면에
점처럼 들러붙는다(<그림 1>에서 감작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알레르겐과 처음으로 접촉한 후, 면역 글로불린 E항체가 생성되기까지는 수주일이 걸릴
수 있다. 이때쯤이면 알레르겐은 사라지고 없겠지만, 우리의 몸은 이미 손상을 입은 후이다.
마스트 세포들은 이미 감작되었으며, 그들의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항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알레르겐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알레르겐과 두 번째 조우가 일어날 때, 알레르기
반응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마스트 세포의 활성화이다.
2)마스트 세포의 활성화
체내로 들어온 지 수초 이내에, 특정 알레르겐은 마스트 세포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면역
글로불린 E세포에 붙잡히게 된다. 하나의 알레르겐 분자가 이웃한 2개의 면역 글로불린 E
분자 가운데로 들어가면, 마스트 세포에서 갑자기 '알레르기 매개 물질(ALLERGIC
MEDIATOR)'이라는 화학 물질이 폭발적으로 분비된다.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키는 것은 이
매개 물질 때문이며, 과민 증상이 충분히 크면 수분 내에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
다(마스트 세포가 활성화되는 과정이 <그림2>에 상세히 도해되어 있다).
알레르기 매개 물질 중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었고, 또 가장 악명 높은 것은 히스타민
(histamine)이다.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키는 데 히스타민이 악역을 담당한다는 사실은 1911
년경부터 알려져 있었다.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약의 대명사가 항히스타민제인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만 알레르기 매개 물질에는 그 밖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특히 프로스타글라딘
(prostagladin)과 류코트리엔(leukotriene)을 빼놓을 수 없다. 머지않은 장래에 류코트리엔의
작용을 중화시키는 치료약이, 알레르기 증상을 치료에 있어 항히스타민에 버금가는 대표적
인 약으로 부상할 것이다.
또한 알레르기 매개 물질들은 여러 가지 작용을 함께 하는데, 이들 모두가 달갑지 않은
일들이다. 간단히 몇 가지만 말하자면, 이들은 작은 혈과을 팽창시켜 혈액이 새나가게 한다.
만약 알레르겐이 마스트 세포 근처에만 머문다면, 환자는 국부적인 증상(붉게 반점이 생기
거나 부풀어오름)을 경험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기에 물리거나 벌에게 쏘였을 때 일어나
는 증상이 바로 이것이다. 피부 끝에 있는 신경도 알레르겐(독)에 자극을 받아 통증을 느낄
것이다.
알레르기 연구자들은 피부 테스트를 할 때, 특정 알레르겐에 대한 염증 반응을 이용한다.
이 테스트에서는 이물질을 피부 아래에 주입한다. 만약 그 물질에 대해 과민 반응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자리가 붉게 변하면서 부풀어 오를 것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실험실에서처럼 조건들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종종 알레르겐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핏줄을 따라 몸 속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상황은
극히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알레르겐은 몸 전체에 퍼져 있는 활성화된 마스트 세포들을 만
나, 알레르기 매개 물질을 광범위하게 분비시킨다. 만약 혈관에서 약체가 새나와 성대 조직
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심해지면, 성대가 부어 올라 기도를 막게 될 수도 있다. 프랑스식
레스토랑에서 프렌치 누오브를 먹었던 사람도 바로 그와 같은 운명을 맞았던 것이다. 혈관
에서 액체가 새나가는 것은 혈압 강하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를 '과민 반응 쇼크
(anaphylactic shock)'라고 부르는데, 바로 이것이 알레르기 과민 반응으로 인한 주요 사망
원인이다.
매개 물질들의 활동은 또 부드러운 근욱들의 수축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한 근육들은 대
개 신체 내부에 있다. 내장에 이러한 수축이 일어나면 경력이나 설사를 일으키고, 기관지에
수축이 일어나면 숨이 헐떡거리는 것 같은 호흡 곤란을 일으킨다. 여기에 EH 다른 알레르
기 증상으로 인해 기도에 점액 분비가 증가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알레르기는 아직 그 원인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천식과도 관련이 있다. 천식을 앓는 사
람의 기관지는 수축이 일어나서, 환자가 숨을 쉬는 데 곤란을 겪게 한다. 외부 요인으로 인
한 천식은 알레르겐을 흡입함으로써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경우에는 알레르기 매개 물질이
바로 그 원인이다. 그러나 천식은 내부 요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알레르겐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힘든 일이나 스트레스 또는 찬 공기를 마심으로써 이러한 유형의 천식
이 발생할 수 있지만, 왜 그것이 천식을 일으키는지는 아직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3)후기 반응
마스트 세포의 활성화로 인해 나타나는 급성 알레르기 반응은 약 한 시간 동안 지속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알레르기 반응은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급성 반응이 진정된 후에도 종종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존스홉킨스 대학을 비롯한 여러 연구소에서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후기 반응을
가져오고 지속시키는 것은 주로 감작된 염기성 백혈구(마스트 세포와 함께 면역 글로불린
E로 뒤덮인 백혈구 세포)라고 한다. 우선 이들은 마스트 세포의 활동 장소로 유인되 다음,
자신의 알레르기 매개 물질을 분비하도록 촉진된다. 후기 반응은 급성인 초기 반응이 진정
된 지 몇 시간이 지날 때까지는 나타나지 않지만, 이는 더 오랫동안 지속되며 만성적인 알
레르기 증상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건초열 환자들이 겪는 지속적인 증상으로, 후기 반응
인 염증은 틀림없이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알레르기 반응은 많은 측면에서, 어떤 오해로 인해 아군끼리 총격전을 벌이는 상황과 유
사하다. 즉, 알레르기 반응에서는 우리의 신체를 지키는 면역 체계를 담당하는 세포들과 그
분비물들이 잘못 작동하여, 우리의 몸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이 비극에서 주도적인 역학을 담당하는 것 중 하나가 잘못 생산된 면역 글로불린 E항체
이다. 만약 B 세포들이 이 면역 글로불린 E항체를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 할 수만 있다면,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알레르기 환자들이 과민 반응을 일으키지 않
도록 주사를 놓는 것은, 바로 이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알레르기 환자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알레르겐을 몇 개월 또는 몇 년을 주기로 주사하고, 점점 그 양을 증가시켜 나가
는 것이다. 이것은 개에게 물린 환자를 치료하는 데 그 개의 털을 사용한 옛날의 민간 요법
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는 알레르겐을 소량 주입함으로써 면역 글로불린 G 항체의 생산이
촉진되기를 기대한다. 이 면역 글로불린 G 항체들은, 알레르겐이 면역 글로불린 E를 대량
생산하기 전에 알레르겐을 중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4)알레르기는 왜 일어나는가?
이쯤에서 나는 면역 글로불린 E 항체를 대신하여 변호의 말을 하고자 한다. 이들이 알레
르기 증상을 일으키는 주범인 것을 부인할 수 없으나, 우리의 신체는 그렇게 유해하거나 쓸
모 없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도록 형편없이 진화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원생 동물이나 현미경
적 해충들과 같은 큰 기생충과 싸우는 데는 면역 글로불린 E 항체의 활약이 단연 돋보인다.
실처럼 생긴 사상충(絲狀蟲)은 강한 면역 글로불린 E 반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예이다.
모기에 물려 감염되는 사상충은 열대 지역의 제3세계 국가들에서 만연하고 있다. 사상충은
인간을 숙주(宿主)로 삼게 되면 급속도로 번식한다. 피 한 방울에 수천 마리나 되는 실 같은
기생충들이 꿈틀거리고 있을 수도 있다. 사상충들은 결국에는 임파선을 틀어막아, 환부를 심
하게 부어오르게 만든다. 이 병은 다리가 코끼리 다리처럼 엄청나게 부어오르는 증상이 종
종 나타나기 때문에, 상피병(象皮病)이라 부르기도 한다.
면역 글로불린 E 반응의 진화는, 바로 사상충과 같은 침입자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기생충들이 체내에 들어오면, 즉시 엄청난 수의-알
레르기 반응시에 만들어지는 것보다 최대 10배나 더 많이-면역 글로불린 E 분자들이 면역
체계에 의해 배치된다. 기생충의 침입이 일어난 지 14일 이내에, 각각의 마스트 세포는 수십
만 개의 면역 글로불린 E 항체로 뒤덮인다. 이 시점에서 기생충이 마스트 세포와 접촉하게
되면, 마스트 세포의 뇌관을 건드린 격이 되어 항체들과 함께 알레르기 매개 물질들의 홍수
를 맞게 될 것이다. 이 매개 물질들은 몸을 붓게 하고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에, 기생충은 더
이상 꼼짝 못하게 되어 번식이 중단된다.
그렇다면 면역 글로불린 E 항체들은 왜 스트로베리(양딸기)나 초콜릿 또는 페니실린, 그
리고 심지어 내 동생의 향수에까지 반응을 보인단 말인가? 그것은 단지 이들 단백질의 구조
가 우연히 기생충의 단백질 구조와 비슷하기 때문인가? 혹은 겉으로 보기에는 잘못 작동하
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면역 체계의 이러한 행동에,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어떤 의
도가 담겨 있는 것일까? 또한 기생충이 면역 글로불린 E 항체의 생산을 유발한다면, 나는
왜 내 아이들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설사 진화상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
하고 있다.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알레르기 반응은 연구자들을 종종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
다. 이렇듯 알레르기 반응은 유전되는 경향도 있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유전 알레르기 연구
자인 데이비드 마시(David Marsh)는, 알레르기 반응에 최소한 일부 정도는 관련이 있는 열
성 유전자를 발견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 행동 방식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구를 계속하면 알레르기에 관련된 다른 유전자들도 발견될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매우
높다. 세포 단계나 분자 단계에서의 알레르기 반응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것이 밝혀졌다. 그
러나 아직도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적잖이 남아 있다.
여덟 번째 이야기
땅콩 버터에서 다이아몬드를
1957년에 방영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슈퍼맨」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전설적인 그
철의 사나이가 석탄을 한 움큼 손에 쥐고 꽉 짜면서, 눈에서 나오는 X선 광선으로 그것을
태운다. 잠시 후, 손을 펴자 석탄은 온데간데 없고, 대신 호두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영
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물론 슈퍼맨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텔레비전 스토리 작가들은 다이아몬드
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시청자들이 그
렇게 쉽게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 흥미를 보일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
었다. 다이아몬드는 수천 년 동안 보물로서 소중하게 취급되어 왔다. 그것은 다이아몬드가
지닌 성질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연계에 아주 희귀하게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한다. 만약 그
때「슈퍼맨」을 보았던 시청자들이, 3년 전부터 실험실에서 다이아몬드들이 만들어지고 있
었음을 알았더라면 더 감탄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하면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자연적으로는 어떻
게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지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1)자연속의 다이아몬드 공장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기 위한 조건은 '열'과 '압력'의 두 가지 요소로 압축할 수 있다. 슈
퍼맨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지상에서는 이러한 조건이 자연적으로 갖추어질 수 없다.
그러한 조건은 지구 표면 아래의 깊숙한 곳에서 충족될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맨틀이라 불
리는 땅 속 깊은 곳-최소한 지하 100마일에서 300마일-에 있는 암석층에서 만들어진다. 바
로 이곳에서 탄소 퇴적물이 수백만 년 동안 엄청난 열과 압력을 받아 다이아몬드로 변한다.
가장 큰 것으로는 호박만한 크기의 것도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다이아몬드는 나이가 최고
33억 년에 이를 정도로, 아주 오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다이아몬드는 사실 지구에서 가장 오
래 된 광물 중 하나로, 최초의 생물체들과 탄생 시점이 비슷하다.
다이아몬드는 화도(火道)라고 하는 화산의 길고 좁은 통로를 통해 지표면으로 나오게 된
다. 이화도는 땅 속 아주 깊은 곳까지 연결되어 있다. 다이아몬드가 지구의 내부에서 폭발적
인 분출로 지표면까지 올라오는 데 약 하루가 걸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가 분출될 때에는 용암 분출을 수반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다이아몬드가 분출
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최초로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것은 약 4천 년 전의 일로, 강 밑바닥에서 자갈과 모래와 더
불어 섞여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다이아몬드가 가장 풍부하게 생산된
곳은 아프리카이다. 다이아몬드 산지의 발견은 아주 우연히 일어났다. 1866년, 한 농부의 아
이가 강둑 근처에서 아주 아름다운 조약돌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런데 그 조약돌은 무려 2,500달러의 값이 나가는 다이아몬드로 판명되었다. 1979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에서 거대한 다이아몬드 광상(鑛床)이 발견되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천
연 다이아몬드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는 오스트레일리아이고, 자이르와 남아프리카 공
화국, 보츠와나, 러시아가 그 뒤를 잇는다(다이아몬드를 함유한 화도가 캐나다 북서부에서
발견된 적은 있지만, 미국에는 상업적 용도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없다). 전세계의 다이아몬
드 광산들에서는 1년에 약 25톤의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광상을 찾는 방법은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대개 강바닥
의 광물들을 걸러서 다이아몬드나 지시 광물인 석류석을 찾아 화도를 추적한다. 지질학자들
은 어디가 유망하고 또 어디가 전망이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와 자료들을 가지고 있
지만, 광상을 찾는 작업은 아직도 시행 착오의 연속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이 오래 된 광물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게 여긴다.
그 매력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2)야수의 본성
다이아몬드를 하늘에서 떨어진 별의 조각이나, 물이 매우 오랫동안 언 상태로 있다가 변
한 것이라고 믿었던 고대 때부터 우리는 다이아몬드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해 왔다. 그
러나 사실상 다이아몬드는 연필심을 이루는 흑연이나 석탄과 같은 탄소 덩어리일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탄소 원자들이 서로 결합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고등학교에서 이미 화학을 배운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탄소 원자들은 다른 원자들과(다
른 탄소 원자들을 포함하여) 네 번의 결합을 한다. 가장 흔한 탄소 단체 물질인 흑연에서는
원자들이 평면성으로 층을 이루며 결합한다. 같은 층 사이의 탄소-탄소 결합은 상당히 강하
지만, 층과 층을 잇는 탄소들 사이의 결합은 매우 약하다(<그림 1>차모). 이들의 결합은 너
무 약하여, 한 층의 탄소 원자들은 다른 층 위로 쉽게 미끄러질 수 있다. 흑연이 매끈매끈한
촉감을 가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며, 이러한 성질로 인해 흑연은 윤활제로도 쓰인다.
그렇지만 다이아몬드의 경우에는 약한 결합이나마 존재하지 않는다. 각 원자들은 정사면
체의 꼭지점에 위치하는 다른 탄소 원자들과 결합되어 있다(<그림 2>참고).
그 결과, 아주 단단하게 결합된 탄소 원자들의 네트워크 구조를 가진 다이아몬드는 매우
높은 녹는점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굳기를 가진다(다이아몬드는 일정 부피 안에 다
른 어떤 물질보다도 많은 원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다이아몬드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중에서 가장 단단한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그 다음으로 단단한 천연 광물보다 무
려 5배나 더 단단하며, 천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을 모두 고려할 때 그 다음으로 단단한
물질보다도 2배나 더 단단하다(하나의 예외가 있긴 하다. 1993년 7월, 질화탄소(C3N4)라는
물질이 합성되었다. 불순물을 제거했을 때, 질화탄소의 굳기는 거의 다이아몬드와 맞먹었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다이
아몬드는 또한 다른 어떤 것보다도 발게 빛나는데, 이는 다이아몬드가 어떠한 투명한 물질
보다 그 속을 통과하는 빛의 속도를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빛은 진공 속에서는 초속
300만 km의 속도로 달리지만, 물속에서는 초속 22만4천 km로 속도가 떨어진다. 한편 유리
속에서는 속도가 더 떨어져 초속 19만2천 km로 달린다. 그리고 다이아몬드 속에서 빛의 속
도는 11만2천 km로 크게 떨어진다. 이것은 진공속의 속도에 비해 60%나 격감한 속도이다.
빛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짐에 따라 두 가지 중요한 효과가 나타난다. 첫째, 빛이 크게
굴절된다(하나의 투명한 물질에서 다른 투명한 물질로 빛이 들어갈 때, 빛의 속도가 느려질
수록 굴절되는 정도는 더욱 커진다). 빛은 다이아몬드로 들어갔을 때 굴절이 크게 일어나기
때문에, 다이아몬드 내부에서 여러 번 반사를 하게 된다. 반사를 많이 하면 빛이 나올 수 있
는 것도 많아지므로, 다이아몬드가 광채를 발하게 된다. 실제로 다이아몬드는 놀라울 정도의
광채를 발한다. 둘째, 빛이 굴절할 때에는 분산이 일어나 무지개빛으로 나누어진다. 빛이 굴
절되는 정도가 클수록 분산의 정도는 더 크다. 그 결과로서, 다이아몬드 내부에서는 많은 다
른 색들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다이아몬드는 단순히 광채를 발할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영롱한 빛으로 반짝이다.
다이아몬드는 또한 매우 뛰어난 내구력을 지니고 있다. 산이나 염, 또는 다른 화학 물질의
부식성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실, 영어의 'diamond'라는 단어는 '무적'이라는 뜻
의 그리스어 'adamas'에서 파생한 것이다. 그렇지만 다이아몬드는 순수한 탄소이기 때문에,
고온에서는 산소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 기체로 사라져 버린다. 산소가 없이 고온을 가하면,
다이아몬드는 순수한 탄소 물질의 일반적인 형태인 흑연으로 변한다.
현란한 빛을 발하고,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며, 뛰어난 내구성을 지닌 다이아몬드가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3)원석과 가공
다이아몬드는 매우 값비싼 보석이기 때문에 숱한 화제를 뿌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
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다이아몬드 중의 하나인 'Hope(희망)'라는 이름을 들어 보았을 것
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큰 다이아몬드 원석은 쿨리난(Cullinan)이다. 이는 남
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쿨리난은 무게가 3,106캐럿,
그러니깐 0.6kg이나 나간다(1캐럿은 0.2kg에 해당한다. 142캐럿은 대략 1온스이다). 쿨리난
은 발견된 후 아홉 개의 큰 덩어리와 96개의 작은 보석으로 분할되었다. 쿨리난에서 나누어
진 가장 큰 다이아몬드는 530캐럿짜리 '아프리카의 별(Star of Africa)'이다. 세상에서 두 번
째로 큰 다이아몬드 역시 쿨리난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석으로 통용되는 다이아몬드는 대개 투명산 색이며, 노란 색조가 약간 섞여 있다. 무색
이거나 푸른 색조가 섞여 있는 다이아몬드는 희귀하므로 값이 훨씬 더 비싸다. 붉은색, 녹
색, 오렌지색, 갈색, 검은색 다이아몬드도 있는데, 그 중 붉은색 다이아몬드가 가장 희귀하
다. 가장 비싼 가격으로 팔린 다이아몬드는 캐럿당 926.315달러였다.
다이아몬드는 가공을 끝마쳐야 보다 비싼 값을 받게 된다. 가공에는 원석을 자르고 다듬
는 과정이 포함된다. 자르는 과정은 다이아몬드의 모양을 만들고, 또 반반한 면들을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인 모양은 원형, 복숭아형, 에메랄드형, 마퀴스(긴 볼록렌즈 모양)이다(<그림
3>참고).
가공한 다이아몬드는 대개 58개의 면을 가지고 있다. 가공된 것은 원석보다 훨씬 더 강한
빛과 다양한 색채를 낸다. 이는 깎은 면들이 빛을 보석 내부에서 더 많이 반사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를 깎기 전에 수년간 다이아몬드를 연구하기도 한다.
전설적인 다이아몬드들은 모두 가공된 보석들이지만, 실제로 광산에서 캐낸 다이아몬드
원석 중 보석으로 통용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다이아몬드는 크기가 작
고, 투명도도 떨어지며, 회색이나 갈색을 띠로 있다. 이러한 것들은 보석으로서는 값어치가
없지만,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 산업적인 용도로 많이 쓰인다. 따라서 이것이 다른 다이아몬
드를 자르는 데 사용될 것임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 밖에도 다른 도구들의
외부에 코팅되어, 자동차나 트럭, 기차, 비행기 등을 비롯한 기계류의 단단한 금속 부품들을
절단하거나 다듬는 데 사용되고 있다. 또한 미세한 알갱이나 가루로 갈라서 단단한 물체의
표면을 갈거나 광을 내게 하는 데에나, 혹은 드릴에 코팅되어 바위를 뚫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전축의 바늘로도 사용되고 있다.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과 단단함, 그리고 다양한 용도를 가진 다이아몬드는 당연히 그 값
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지구 내부에서 다이아몬드가 튀어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직접 만들어 볼 수 없을까 하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여기
서 인조 다이아몬드를 지르코늄 같은 모조 다이아몬드와 혼동하지 않기 바란다. 모조 다이
아몬드는 다이아몬드도 아닐뿐더러, 광채나 견고성, 내구성 등이 다이아몬드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4)압력을 높여라
인조 다이아몬드를 만든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수백 년 전부터 이
에 대한 연구를 해 왔으며, 19세기 초부터는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다.
1797년에 영국의 한 화학자가 다이아몬드는 순수한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이며,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석탄이나 흑연과는 다만 그 외관이 다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1828년에 몇
몇 화학자들은 용액 속에서 다이아몬드 결정을 성장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들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들은 알루미늄과 마그네슘 산화물 결정을 성장시켰던 것
이다. 한편, 전기 아크로나 다른 가열 장치를 사용하여 다이아몬드를 만들었다고 주장한 사
람들도 있었다. 다이아몬드를 만들려는 초기 시도들에서의 오류는, 오로지 온도에만 관심을
집중한 데 있었다. 1866년에 남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고, 그후 광범위한 다이아
몬드 채광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과학자들은 온도뿐 아니라 압력이 다이아몬드를 만
드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리학 교과서에서는 압력을 단위 면적당 가해지는 힘으로 정의한다. 해수면을 기준으로
1㎠의 면적에 작용하는 대기압은 약 1013g이다. 이 값을 1기압이라 부른다. 압력은 토르
(torr), 파스칼(pascal), 바(bar)등 여러 가지 단위로 표기되고 있다. 예전에는 밀리바를 공식
단위로 썼으나, 최근 헥토파스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기압이라는
단위를 쓰는 것이 무방할 것 같다.
5)다이아몬드를 asem는 데에 따른 문제점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왜 그렇게 까다로운 조건들이 필요한가?
그것은 약간의 불순물을 뺀다면 단지 순수한 탄소일 뿐이다. 플라스틱의 주성분도 탄소이고,
나무의 대부분이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신체도 물을 뺀다면 거의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유기화학이라는 학문과 관련 산업 분야는 오로지 탄소 화합물만을 다룬다. 비탄소 화
합물을 전부 합쳐도 탄소 화합물의 종 수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는 왜 그토
록 회귀하며, 또 만들어 내는 것은 왜 그렇게 까다로운가?
그 주요 원인은 탄소들이 서로 결합하는 방식에 있다. 흑연을 이루는 탄소 결합은 쉽게
만들어진다. 이러한 탄소 결합들은 에너지가 적게 드는 결합들이다. 그렇지만 다이아몬드를
이루고 있는 탄소들간의 결합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탄소 원자들을 압착시키면서 고온을 가해 주어야만 한다. 이것은 공을 언
덕 위까지 굴려 올라가게 만드는 것과 같다. 즉, 언덕 밑에 있는 것이 흑연이라면, 언덕 위
에 다이아몬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덕 위까지 올라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 역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충분한 압력과 온도를 가한
다면, 공은 언덕 위로 올라가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아 다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요약하면, 충분한 온도와 압력을 가한다면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
하다.
6)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사람들
그러나 문제는 높은 압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20세기로 접어들 무렵까지만 해도, 고
압 연구에 몰두한 실험실들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속적인 압력은 3천 기압을 넘지 못했
다. 그 이상을 넘어서면 압력 장치가 내려앉거나 공기가 새나왔다(3천 기압은 엄청난 얍력
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깊은 바다 밑에 작용하는 압력도 1천 기압을 조금 넘을 뿐
이다. 그렇지만 3천 기압 정도로는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데 충분하지 못했다).
퍼시 브리지먼이라는 미국의 천재적인 발명 실험가가 고압 연구에 반세기 동안 몰두한 끝
에, 고압을 몇 단계 높은 수준에서 실현시키는 획기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그는 1905년에 고
압을 만들어 내는 장비를 개량하여, 7천 기압이라는 고압을 실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1910
년에는 2만 기압 이상에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다음 약 20년간 그는 수백 종의
화합물들을 고압하에서 처리하여, 여러 가지 새로운 성질들과 새로운 결정 형태들을 발견하
였다. 그는 실온에서도 얼음 상태의 물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1930년대에 브리지먼은 고압 장비의 설계를 개선하여, 마침내 40만 기압이라는 엄청난 압
력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제 이 정도의 압력이라면, 다이아몬드를 ask들어 내고
도 남음이 있었다. 그후 2년 동안 브리지먼은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내기 위해 흑연 시료들
을 가지고 실험을 하였으나, 다이아몬드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압력이 계속 유지되지
않거나, 또는 동시에 가해 주어야 하는 고열이 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리지먼은 자신
이 골인 지점에 가까이 갔으나, 충분히 가까이 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오늘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5만 기압 이상에서 1000℃이상의 온도
를 상당 기간에 걸쳐 가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퍼시 브리지먼은 단 한 알의 다이아몬드 결정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평생 동안 헌신적인 연구를 통하여 고압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공
로로, 1946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다이아몬드 제조라는 긴 모험담의 대장정은 대서양 건너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있는, 대규
모 전기 회사 ASEA에서 다이아몬드 프로젝트를 담당한 주요 인물은, 발트자르 폰 플라텐
이다. 폰 플라텐은 '천재 미치광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는 과연 어떻게 보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매우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세계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초의 영구
운동 기계를 발명하여 명예를 얻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열역학 제2법칙이
틀렸다고 선언하였다(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작업 도중에 항상 열로써 상실되
기 때문에, 그 상실되는 에너지를 계속 공급해 주지 않는 한 기계는 계속 작동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실험실의 폰 플라텐은 놀라운 재주를 보였다. ASEA에서 그는, 6천 기압 이상의
고압에서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는 기계를 설계하였다. ASEA에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모두가 그를 따랐으며, 그 사람들 중에 에릭 룬드
블라드라는 체구가 큰 사나이가 있었다. 1953년 2월 16일에, 마침내 그는 역사적인 쾌거를
이루었다. 그는 8만 3천 기압의 고압과 고온하의 기계 속에 흑연을 넣고 꼬빡 한 시간 동안
그 상태를 유지한 끝에, 최초의 합성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냈다. 이로써 다이아몬드를 향한
경주는 끝이 났다.
그런데 과연 끝이 났던가? ASEA사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그 역사적 쾌거를 공식 발
표하거나 특허 신청 등의 절차를 행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최초의 다이아몬드를
만든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과학계에서 어떤 실험 결과가 공인되기 위해서는 그
것이 먼저 발표되어야 하고, 다른 과학자들이 똑같은 조건에서 그 실험을 재현했을 때 똑같
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후속 절차들이 따라 주지 못했던 것이다. 로버
트 하젠은 이조 다이아몬드 합성에 관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저서 『새로운 연금술사들
(The New Alchemists)』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몇 년이 지난 후, 폰 플라텐은
ASEA가 그 업적을 발표하지 않은 것을 한탄하였다. 비밀을 세상에 공표하지 않음으로써
폰 플라텐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생애 최대의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따라서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한 경주는 계속되었다!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이야기의 마지막 장은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펼쳐진다. 1950
년에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사는 다이아몬드 제조에 뛰어들었다. 제너럴 일렉트
릭 사는 위대한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세운 회사이기도 하다.
위대한 다이아몬드 발명 경주에 두 명의 과학자가 도전하였다.
1954년 12월 8일 수요일 저녁, 허브 스트롱이라는 과학자가 고압 장치에 검은색 탄소 가
루를 넣고, 5만 기압의 압력과 1250℃의 고온에서 열여섯 시간 동안(그 전에 그가 행한 150
번의 실험 때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처리한 결과, 두 개의 조그마한 다이아몬드를 ask
들어 내는 데 성공하였다.
한편 1954년 12월 16일 목요일, 제너럴 일렉트릭 사의 또 다른 과학자 트레이시 홀은 탄
소 시료를 10만 기압, 1600℃에서 38분간 처리하였다. 그리고 그 장치를 연 순간을 홀은 이
렇게 묘사하였다.
"나는 손이 떨리기 시작하는 걸 느꼈습니다. 심장도 격력하게 고동치고 있었죠. 다리에 기
운이 빠져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압도된 나는 앉을 곳
을 찾아야 했습니다! 내 눈은 팔면체 결정들의 수십 개 면들에서 나오는 찬란한 광채에 빠
져 있었습니다……. 마침내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나는 되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경주는 끝났다. 그렇다면 승자는 누구였을까? 스트롱일까, 홀일까? 논
리적으로는 당연히 먼저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낸 스트롱이 이겼다. 그렇지만 그가 다이아몬
드를 만들어 낸 결과는 재현되지 않았다. 재현성 여부는 어떤 과학적 주장을 확인하고 받아
들이는 데 결정적이다. 반면에, 홀의 결과는 재현되었다. 게다가 그후 몇 년 동안 스트롱이
ask들어 낸 두 결정을 전문가들이 세심히 검토한 결과, 그것들은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결정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치고는 너무 컸고, 모양이나
색깔도 달랐다. 그리고 X선 패턴이나 적외선 스펙트럼 결과도 천연 다이아몬드에서만 나타
나는 특징들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최초의 다이아몬드는 1954년 12월 16일, 제너럴 일렉트릭 사의 트레이시 홀이 만
들어 낸 것으로 공식 인정되었다.
그후의 다이아몬드 제조는 상업적인 이야기가 되고 만다. 다이아몬드는 탄소를 많이 함유
하고 있는 어떤 물질로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연금술사들』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보
자.
"1955년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로버트 웬토프 주니어는 식료품 상점으로 걸어 내려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땅콩 버터 한 병을 샀다. 근처에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 사의 실험실
로 돌아온 그는 땅콩 버터를 한 숟갈 떠서 고온 고압하의 기계 속에 넣었다. 그로써 그의
요리법은 끝났다. 그리고 나중에 뚜껑을 열자, 땅콩 버터는 작은 다이아몬드 결정들로 요리
되어 있었다."
다이아몬드는 플라스틱이나 설탕, 나무, 타르, 심지어는 나방의 몸뚱이로도 만들 수 있다.
오늘날 사용되는 다이아몬드 중 약 80%는 합성 다이아몬드이며, 그 생산량은 매년 100톤
이 넘는다. 그렇지만 인조 다이아몬드는 오로지 산업용으로만 사용될 뿐, 손하가락이나 손목
또는 귀를 장식하는 보석으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예외적인 품질을 가진 큰(14캐럿 이상의)
다이아몬드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든
다. 그러므로 보석용 다이아몬드는 천연산에 맡겨 두는 것이 보다 현명하겠다.
둘째마당-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
:상식적이고 절대적인 과학 이론의 깊이 있는 탐구
이홉번째 이야기
기적의 분자
그러나 사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물이다.
물은 모든 물질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다. 물이 없다면 생명도 존재할 수 없고,
지구의 기후도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음식물을 전자 레인지에 넣더라도 조리가
되지 않는다. 모든 물질 중에서도 유독 물이 이렇게 특수한 위치에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
까? 열쇠는 물의 분자 구조에 있다.
1)적절한 각고
그 복잡한 행동과 독특한 성질에 비해 물은 아주 간단한 분자이다. 그것은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의 산소 원자 양쪽에 수소 원자 하나씩 붙어 있는 구조이다.
물 분자를 이루는 세 원자는 104.5°의 각도로 벌어져 있다.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의 결
합은 한 쌍의 전자를 공유함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유 결합(covalent bond)'이라 부
른다. 그리고 이때, 전자들이 양쪽 원자에 똑같이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산
소 원자가 수소 원자보다 전자를 더 간절히 원한다(전기 음성도라는 성질 때문에). 다시 말
해, 수소 원자 하나가 산소 원자 하나와 결합할 때, 이 과정에서 공유되는 전자들은 전기 음
성도가 더 큰 산소 원자 주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 결과, 결합에서 산소 쪽은 음
전하를 띠게 되고, 수소 쪽은 양 전하를 띠게 된다(여러분이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잊어버
렸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설명하자면, 이것은 전자의 음의 전하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물 분자 구조가 직선형이라면 이러한 전하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분자는 <그림 2>와 같이 대칭적이다.
양 전하들은 음 전하 주위에 균등하게 분포하여 서로 상쇄된다. 여기서는 오직 하나의 전
하 중심만이 존재한다. 물 분자는 양과 음의 전하 중심(극)을 갖지 않으므로, 무극성 분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물 분자의 구조는 직선형이 아니고, 각도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모든 차이는 비
롯된다(<그림 3>참고).
분자 구조는 각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대칭적이 아니며, 양 전하들은 음 전하 주위에
균등하게 분포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양 전하들은 서로 상쇄되지 않고, 그들 나름의 전하
중심을 가진다. 물 분자는 양의 극과 음의 극을 가지기 때문에, 극성 분자 또는 이중 극자
(dipole)라고 부른다(<그림 4>참고). 사실 물 분자는 극성이 매우 큰 분자이며, 물 분자보다
더 큰 극성을 가진 분자는 거의 없다.
이렇게 물 분자는 직선형이 아니고 굽은 형이다. 만약 물 분자가 이렇게 약간 굽어 있지
않았다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2)물의 부착성
극성 분자들은 각각 음극과 양극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작은 자석처럼 행동한다.
한 분자의 양극은 이웃 분자의 음극 부분을 끌어당기므로, 분자들은 서로 잘 들러붙는다. 꿀
이 끈적끈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림 5>는 물 분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을 보여준다.
인력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그것은 수소 원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수소 결합'이
라 부른다(수소 결합은 수소가 포함된 극성 분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이다. 수소 결합은
물 분자속의 산소와 수소 원자 사이의 공유 결합보다는 약하다).
물 분자들은 극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강한 수소 결합에 의해 들러붙어 있다. 따라서
물 분자들은 서로 붙어 있으려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어느 정도나 강할까? 스포이트를 사
용하여 10원짜리 동전 위에 물방울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보라. 그리고 물이 동전을 넘쳐
흐를 때까지 얼마나 많은 물방울을 떨어뜨려야 하는지 한 번 세어 보라.
물 분자들간의 부착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가 있다. 유리컵 두 개를 준비하고 한쪽에
는 기름을, 다른 쪽에는 물을 가득 채운다. 그 위에 클립을 수평으로 조심스럽게 놓는다. 그
러면 클립은 기름 속으로는 빠지지만, 물 위에서는 둥둥 떠 있다. 클립은 물보다 밀도가 훨
씬 큰 쇠로 만든 것이므로, 원칙적으로는 클립이 물과 기름 모두에 가라앉아야 할 것이다.
클립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은 밀도차(부력)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물 분자들의 부착력으
로 인해 표면에 있는 분자들이 서로 단단하게 들러붙어, 일종의 막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
것을 '표면 장력'이라 부른다. 클립을 표면 아래로 밀어 넣으면, 클립은 금방 아래로 가라앉
고 만다.
서로 들러붙는 분자들은 고체와 액체를 이룬다. 들러붙어 있는 물 분자들을 서로 떨어지
게 하여 기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대개 열의 형태로-물에 가해 주어
야 한다. 바꿔 말하면, 물은 끓는점이 상당히 높다. 물 분자들이 서로간의 수소 결합을 끊고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물의 온도를 100℃까지 올려야 한다. 0℃에서 100℃사이의 온도에
서 물은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 세계의 어느 지역에서든, 물은 1년 중 최소한 어느 기간만큼
은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
만약 물 분자가 굽은 형이 아니고 직선형이라면, 그래서 극성 분자가 아니라 비극성 분자
라면, 물 분자들은 서로 들러붙지 않을 것이고, 물의 끓는점은 매우 낮아질 것이다. 물 분자
가 만일 비극성이라면, 물은 -65℃에서 끓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지구 어느 곳에서
나 물은 기체 상태로 존재할 것이다.
물이 생명의 원천이 된 것은, 바로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3)생명의 묘약
지구상의 생명은 화학적 진화라는 복잡한 분자 합성 과정을 거쳐 출현하였다(「지구에서
생물은 어떻게 출연하였는가?」편 참조). 이 과정은 askg은 화합물들의 혼합과 반응을 포함
하였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액체 상태의 물보다 더 나은 물질이 없다. EH한 다른 물질
들을 녹이고, 물질들이 서로 충돌하여 반응할 수 있게 하는 매개 물질로서 물보다 더 우수
한 것은 없다. 물은 그러므로 '만능 용매'로 불린다. 물은 특히 살아 있는 세계를 이루는 많
은 물질들을 녹이는 데 뛰어나다. 액체 상태의 물이 없었더라면, 생명은 진화하지 못했을 것
이다. 생명이 바다에서 최초로 출현했고, 육지로 상륙하기 전에 물 속에서 수억 년 동안이나
번성을 계속한 것이 그 증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생물이 번성하고 있는 지구를 '물의 행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
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액체 상태의 물은 지구 표면의 약 4분의 3을 뒤덮고 있으며, 그
무게는 무려 1,5000,000,000,000,000,000톤에 이른다. 물방울의 개수로 표현하자면, 무려
28,000,000,000,000,000,000,000,000개에 이른다.
다른 행성들은 그런 행운을 얻지 못했다. 화성은 건조한 행성이며, 따라서 생명이 존재하
지 않는다. 그렇지만 표면에 남아 있는 침식의 흔적이 과거에 물이 흘렀다는 것을 암시한다
고 볼 때, 화성에도 생명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다. 달은 문자 그대로 뼛속까지 바싹 말라
있는 상태이므로,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 금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성의 표면에서는 납도
녹아 버리고 말 것이다. 기체 행성들도 마찬가지로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명왕성은 얼음
덩어리이다. 명왕성에서 생명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라도 한 적이 있다면, 즉시
잊어버리는 것이 좋겠다.
물은 생명이 탄생하는 데에도 필수적이지만,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데에도 필수적이다(증
명이 필요하다면, 액체 상태의 물을 마시지 말고 수증기를 마셔 보도록!).
살아 있는 유기체를 '효소 주머니'라 부르기도 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살아 있는 생
물은 수천 가지의 화학 반응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매우 복잡한 고도의 구조를 가진 기
계와 같다는 것이다. 효소들은 이들 화학 반응을 조절하거나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효소가
없다면 많은 반응들은 너무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이들 효소들이 작용하는 데에 물은 매개
체의 역할을 한다.
물만큼 그렇게 많은 물질을 녹고, 또 서로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액체 물질은 없다. 감히
비교할 만한 대상조차 없다. 생물의 몸을 이루는 화합물 중 가장 풍부한 것이 물인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세포를 이루는 성분 중에서 70~85%를 물이 차지한다. 여러분과 나의 몸 중
에서 물은 60%(무게로 따질 때)를 차지한다. 우리의 뇌는 물이 70%나 차지한다. 우리의 뼈
에도 물이 함유되어 있다(무게로 따져서 약20%). 체중 68kg의 사람은 약 38리터의 물을 담
고 걸어 다니는 셈이다.
물은 또한 기름이나 당밀과 같은 점성이 큰 액체와는 달리, 잘 흘러가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뛰어난 용해성과 함께 잘 흘러가는 이 성질 때문에, 물은 탁월한 운송 물질 또는 순환
물질로 존재한다. 구성 성분의 93%가 물인 혈액은 영양 물질과 호르몬뿐만 아니라 신진대
사 노폐물도 녹여, 세포들로 보내고 또 실어온다.
또한 물은 증발할 때, 상당량의 열을 함께 가지고 날아간다. 더워서 땀을 흘릴 때, 땀 속
의 물은 피부에서 증발하면서 열을 가지고 날아감으로써 몸을 냉각시킨다. 물은 우리 몸의
냉각제인 셈이다.
사실 물은 우리의 체온을 조절해 주는 뛰어난 조절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물이
비교적 큰 비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물은 온도가 쉽게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은 우리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
물의 온도 조절 기능은 생물의 몸 밖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4)물과 기후
땅은 물보다 훨씬 더 빨리 가열되고 또 더 빨리 식는다. 땅의 비열이 물보다 더 낮기 때
문이다. 이 때문에 내륙 지방은 해안 지방보다 계절에 따른 온도차가 더 크다. 예를 들면,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Reykjavik)와 시베리아의 베르호얀스크(Verhoyan나)는 거
의 같은 위도상에 있으며, 해발 고도도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두 지역이 매일 받는 햇빛의
양은 거의 똑같다. 그렇다면 두 지역의 기후, 특히 기온은 비슷하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
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의 남서 해안에 위치해 대서양을 마주
보고 있다. 레이캬비크의 연평균 기온차는 11℃에 불과하지만,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베
르호얀스크의 연평균 기온차는 67℃나 된다.
5)물의 기이한 성질
대부분의 물질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밀도가 작아진다. 구리 동전을 예로 들어 보자. 동전
에 열을 가하면 구리 원자들이 더 빨리 움직이면서 널리 퍼진다.그리하여 구리 동전은 부피
가 좀더 늘어난다. 즉 밀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계속 동전을 가열하면, 결국 동전은 녹을 것
이다. 액체 상태가 된 구리 동전의 밀도는 고체 상태 때보다 더 작다. 액체 상태가 된 구리
를 계속 가열하면 그 분자들은 계속 퍼져 나가려 하고, 그 결과 밀도는 점점 작아진다. 이러
한 현상은 순수한 거의 모든 물질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물만은 다르다.
10℃의 물이 있다고 하자. 이 온도에서 물은 액체 상태이다. 구리의 경우와는 반대로, 이
번에는 물을 냉각시켜 보자. 물을 냉각시키며느 물 분자들은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고 서로
간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기대한 바대로 밀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4℃에 이르면 이상
한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이하로 온도가 내려갈수록 물 분자들이 서로 멀리 떨어지기
시작한다. 0℃에서 물이 엉ㄹ 때에는 물 분자들은 더욱 멀리 떨어진다. 거의 10%나!(겨울에
자동차 라디에이터에 부동액을 넣는 이유는, 물이 지닌 이 성질 때문이다. 만약 물이 얼어
부피가 늘어난다면, 차의 엔진이 손상될 염려가 있다).
다시 말해서, 4℃의 물은 0℃의 물보다 밀도가 더 크다. 실제로 4℃일 때의 물은 다른 어
떠한 온도의 물(액체 상태)보다 밀도가 크다. 그리고 어떤 온도의 물(액체 상태)도 고체 상
태의 얼음보다 밀도가 더 크다. 얼음 덩어리가 유리컵 위에 떠다니거나 빙산이 바다위를 떠
다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기이한 현상은 얼음이 될 때 물 분자들이 속이 빈
결정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일어난다. 얼음이 녹으면 이 결정 구조가 무너져 물 분자들이
서로 접근하기 때문에, 밀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속이 빈 결정 구조는 물의 온도가 4℃에 이
를 때까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물의 이러한 기이한 행동 때문에 우리 주변의 세계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진다. 계절
이 변할 때 호수나 연못에 일어나는 변화를 한번 살펴보자. 겨울이 다가오면 기온은 내려간
다. 호수 표면의 물도 온도가 내려가 밀도가 높아지므로 호수 아래로 가라앉고, 그 대신 아
래쪽에 있던 물들이 호수 표면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4℃이하로 온도가 더 내려가게 되면,
냉각된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호수 표면에 머문다. 그리하여 호수의 물은 위에서부터
얼기 시작한다. 다른 액체 물질들은 거의 아래쪽에서부터 얼기 시작하여 위로 올라간다.
이렇게 호수나 연못의 물은 위에서부터 얼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 아래에 있는 물들은 기
온이 0℃아래로 내려가더라도 계속 액체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다. 표면이 얼음층이 차가
운 기온을 차단하는 벽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아주 얕은 연못을 제외하고 호수나 강에
있는 대부분의 물은 얼음층 아래에서 액체 상태로 남아 있다. 덕분에 물 속에 사는 생물들
은 추운 겨울에도 살아 남을 수 있다.
6)눈송이
물은 예술 작품을 연출하기도 한다. 고체 상태의 물은 아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형태를
취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눈이다. 눈을 생각하면 지긋지긋한 기억-눈 치우는 작업, 꼼
짝달싹 못하는 자동차, 동상 등-이 떠오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눈송이는 자연이 만들어 낸
가장 섬세한 디자인 중 하나이다. 눈이 내리면 검은색 종이 위에 눈송이 몇 개를 받아 확대
경으로 살펴보라. 눈송이들은 모두 육각형 모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물 분자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눈이 만들어진 곳의 기온
이 비교적 따뜻하다면(비록 영하이긴 하지만), 눈송이들은 크고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을 것
이다. 그렇지만 그곳의 기온이 비교적 차갑다면 눈송이들은 작고 모양도 단순할 것이다. 따
뜻한 공기는 일반적으로 습기가 보다 많으므로, 눈송이 결정이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물
분자들을 더 많이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눈송이 결정들은 모양이 아주 다양한다,. 육각형 평면 모양, 육각기둥 모양, 여
섯 개의 팔을 가진 별 모양 등 갖가기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눈송이 결정의 모양은
주로 온도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지만 지상으로 떨어지는 속도와 같은 그 밖의 다른 요인도
모양에 영향을 준다.
눈송이의 구조는 속이 많이 비어 있으므로, 눈의 밀도는 매우 작다. 그것은 얼음보다도 훨
씬 더 작아, 5cm 높이의 가루눈을 녹이면 1cm 높이의 물로 변한다. 눈은 대기권 상층에서,
수증기가 핵 역할을 하는 먼지 주위에 얼어붙으면서 만들어진다. 눈이 이렇듯 액체 상태의
물로부터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퍽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렇다면 와넞ㄴ히 똑같이 생긴 눈송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일까? 어떤 측면에
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의 눈송이는 약 1019개의 물 분자를 포함하고 있다. 3차원
공간에서 물 분자들이 배열할 수 있는 방법은 무한대에 가깝다. 따라서 어떤 눈송이들도 완
전히 똑같은 분자 배열을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크게 보면, 많은 눈송이들은 똑같
은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있다. 「USA Today」지의 기상학자 잭 윌리엄스(Jack Williams)
는 자신의 저서 『기상학 책(The Weather Book)』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많은 조그만 눈
결정들은 모양에 별다른 차이가 없는 단순한 육각형 평면이다. 더 복잡한 결정들도 비슷할
것이다."
1)유용한 진동
전자 레인지 속에서 음식물이 조리되는 것은 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은 극성이
강한 분자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전기적으로 물 분자는 양 끝에 강한 +극과 -극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전자 레인지에서 나오는 초단파는 전파나 빛, X선과 같은 일종의 전자
기파이다. 전자기파는 전기의 성질과 자기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는 또한 음식물을 지나갈 때에는 물과 같은 극성 분자들을 빠르게 진동하게 한다. 이
진동 때문에 열이 발생하며, 전자 레인지 속에서 음식물이 조리되는 것도 바로 이 열 때문
이다. 전자 레인지는 속설처럼 반드시 안쪽에서부터 조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열의 근원은 음식물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 내부에 있다. 그래서 전자 레인지로
조리한 음식물은 겉이 눌거나 바삭바삭 굽히지 않는 것이다.
물에 관한 이야기는 실로 기적의 분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신의 마음은 그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당신의 눈은 그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몸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당신의 건강을 유지해 줄 수 있는
가장 쉽고도 가장 중요한 방법은 매일 그것을 충분히 마시는 것입니다.
-Evian 광고에서
열 번째 이야기
지구에서 생물은 어떻게 출연하였는가?
생물은 지구 어디서나 존재한다. 세상에서 가장 춥거나 가장 더운 곳에도, 깊은 심해저나
높은 산꼭대기에도(혹은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도. 해발 고도 40.8km 지점에서도 세균이 발
견되었다. 이 높이는 에베레스트산 높이의 거의 5배에 해당한다) 생물은 존재한다. 지구 어
디를 가나 생물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의심스럽다면 정원이나 밭에서 잡초를 제거하거나, 음
식물에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노력해보라.
그렇다면 생물은 언제나 존재했을까? 아무리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도 우리는 생물이
존재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약 40억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암석에서도, 그 당시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화석이 발견되었다. EK라서 생물의 존재는 지구 자체보다 앞선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생물은 지구에서 생겨난 것일까, 아니면 캄캄한
우주 한 구석에서 생겨난 것일까?
1)우주 기원설
어느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의 기원은 실제로 지구보다 앞섰다고
한다. 즉, 생명은 우주의 다른 곳에서 만들어져 적당한 환경을 갖춘 행성으로 옮겨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범종설(汎種設:panspermia)'이라 부르는데, 그 기원은 수천 년 전으
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 사람들은 지구를 외계의 생명 종자들이 뿌려진 풍요로운 정원으로
생각하였다. 19세기에는 켈빈경을 위시한 유명한 과학자들이, 운석 속에 있는 생명체가 동면
상태로 갇혀 지구로 날아왔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이론은 운석 기원설로 알려져 있다. 1909
년에는 스웨덴의 유명한 화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가, 미생물은 우주의 이곳에서 저곳으로-
지구를 포함하여-복사압에 의해 이동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곧 복사 기원설로 명
명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범종설의 개념은 과학계에서 인기를 잃었고, 운석에서 생명체의
형태를 발견하려는 시도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우주 공간을 표류하는 포자나 종자들은
설사 생명력이 길다 하더라도, 깊은 우주 공간의 가혹한 온도와 복사를 견뎌 내지 못할 것
이라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생각하였다. 그래도 생명체의 기원이 우주 바깥이라는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아직 존재한다. 그중에는 영국의 저명한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도 포함된
다.
오늘날 범종설은 더 이상 일반적인 개념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많은 천
문학자들-그것들을 '생명을 가져온 것들(the bringers of life)'이라 명명한 코넬 대학의 칼
세이건을 비롯하여-은, 지구에 쏟아지고 있는 소행성, 혜성, 유성들, 그리고 성간 먼지들이
생명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선구자격인 유기 물질의 씨
를 제공했다고 믿고 있다. 톨레도 대학의 아먼드 델셈에 따르면, 유성들은 생명의 존재에 필
수적인 물뿐 아니라 다른 중요한 유기 물질들을 가져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외
계 천체들이 지구상의 생명의 기원에 끼친 정확한 역할을 놓고 벌인 논쟁에 뛰어든, 많은
과학자들 중 두 사람의 대변자에 불과하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스탠리 밀러를 비롯한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혜성이나 소행성 같은 천체들이 지구상의 생명의 기원에 관여했을 가능
성은 거의 없다고 믿고 있다.
2)지구 기원설
소행성이 생명의 기초 물질을 제공했든 안 했든 간에, 생명의 기원은 본질적으로 지구에
서 발생했다는 것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일치된 견해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전제로부터
출발하기로 하자. 이 경우에도 여러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생명은 초자연적 사건에서 비
롯되었을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화학적, 물리적 과정을 통해 생겨났을 수도 있다. 초자연주
의는 본질적으로 과학적이라기보다 종교적인 관점이며, 실험이나 관측으로는 검증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그것은 과학적 탐구를 추구하는 책에서는 무시된다. 그렇다면 생명의 기원은
자연적 과정을 통해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 생명을 창조하는 방법은, 거의 모든 시대를 통해
마술사들과 소설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프
랑켄슈타인 박사는 번개에서 전기를 끌어다가 죽은 조직을 살려 내는 데 성공한다. 그렇지
만 실제 세계에서의 생명은 오로지 자연의 힘만으로 무생물로부터 발생하였다. 그것은 수십
억 년전에 특수한 조건들이 맞아떨어졌을 때 일어났다.
(1)자연 발생설
고대의 철학자들은 진흙이 햇빛을 받아 따뜻해지면 개구리나 뱀으로 변하고, 오래된 누더
기는 쥐로 변하며, 고기가 썩으면 구더기로 변한다고 믿었다. 비교적 최근인 1609년만 해도
한 프랑스 식물 학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무가 하나 있다…….이 나무에서 나뭇잎
들이 떨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나뭇잎들이 물에 떨어져 천천히 물고기들로 변하고, 다른
쪽에서 나뭇잎들이 땅에 떨어져 새로 변한다." 또한 오이 속에 주입한 정액에서 사람이 자
연 발생적으로 나오거나 고깃국물에서 미생물이 자연 발생한다는 사실을 언급한 글들도 있
었다. 무생물로부터 어떤 종류의 변형을 통하여, 언제든지 생명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러
한 믿음을 자연 발생설이라 한다.
이 개념에 따르면, 생명의 기원을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한 가지 문제점은, 엄격한
과학적 분석에 따르면 이 개념이 옳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외과의
프란체스토 레디는 1668년에 행한 전설적인 실험을 통해, 구더기는 썩은 고기가 변해서 생
기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1세기 후 라차로 스팔란차니라는 또 다른 이탈리아 과학자는,
끓인 고깃국물에서는 미생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그의
실험 결과에 대해 다른 과학자가 이의를 계속 제기함으로써, 자연 발생설의 진위에 관한 논
쟁은 1세기나 더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1800년대 중반에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와 영국의
존 틴들은, 각자 독자적인 연구를 통하여 고깃국물은 물론 다른 어떤 무생물로부터도 생명
체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최정적으로 증명하였다. 이로써 자연 발생설은 종지부를 찍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자연 발생설이 폐기되자, 골치 아픈 역설이 제기되어 과학자들을 괴롭히게 되었다.
만약 생물이 생물에게서만 발생할 수 있다면, 지구의 생성 초기에 어떠한 생물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최초의 생물은 과연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가?
(2)생물 발생 이전의 진화
먼 옛날의 언젠가에 생명은 무생물 물질에서 생겨났다. 이 개념을 자연 발생설과 혼동해
서는 안 된다. 생명이 창조되는 과정은 수백만 년 이상의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난 점진적
이고 복잡한 과정이었으므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는 일정한 고에너지원이 존
재해야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대기 조성도 갖추어져 있어야 했다. 생명의 기
원은, 비록 단 한 번만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겠지만(그것은 원시 지구의 서로 다른 여러 부
분들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났다) 쉽게 발생하지 않았으며, 최근 10∼20억 년 사이에는 그러
한 일이 다시금 일어난 것 같지 않다.
물질이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그리고 마침내는 생물로 점점 복잡하게 발전해 가는 그 지
루한 과정을 화학적 진화(chemacal evolution), EH는 생물 발생 이전의 진화(prebiotic
hypothesis)라 부른다. 이것을 또한 '화학 합성 가설(chemosynthesis hypothesis)'이라 일컫
기도 하는데, 1920년대 영국의 생물학자 홀데인과 러시아의 생물학자 오파린이 이를 처음으
로 제기하였다.
홀데인과 오파린의 이론은 약 40억년 전 지구의 초기 대기 상태에 기초하고 있다. 주로
수소, 암모니아, 메탄, 수증기로 이루어진 대기는 나중에 수소를 잃고, 암모니아와 메탄은 화
학적 과정에 의해 각각 질소와 이산화탄소로 변했다. 고에너지 태양 복사-특히 자외선-는
이 대기를 무차별 폭격하며 내리쪼였다. 번개는 다반사로 일어났고, 지구는 중력 수축과 방
사성 원소의 붕괴로 인해 뜨거웠다. 물질과 에너지가 이렇게 뒤섞여 있는 환경은, 생명이 진
화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라 과학자들은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화학 합성 가설이 처음으로 제기된 이래,
과학자들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검증할 수 있는 실험을 해왔다. 1953년에 미국의 생물학
자 스탠리 밀러는 메탄과 수소, 암모니아, 수증기로 이루어진 원시대기를 재현하여, 거기에
다 전기 스파크를 가해 주고 끓였다. 그로부터 1주일 후, 반응 용기에서 아미노산과 당의 합
성물이 발견되었다. 아미노산은 모든 생물에게 필수적인 구성 물질인 한편, 단백질의 기본을
이루는 성분이다. 당 역시 영양 물질과 세포의 구성 요소로서 매우 중요하다.
마이애미 대학의 시드니 폭스는 화학 합성 가설의 다음 단계에 관한 실험을 실시했다.
1957년에 그는 열여덟 가지 아미노산이 섞인 혼합물을 가열하여, 단백질과 유사한 큰 분자
를 얻어 내었다. 또한 다른 과학자들은 뉴클레오티드(nucleotide)라는 분자를 합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뉴클레오티드는 유전 물질인 DNA와 RNA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다. 미국의
물리화학자 필립 아벨슨은 1956년에, 암모니아와 메탄 대신 질소와 이산화탄소를 집어 넣은
보다 현대적인 대기를 가지고(이러한 환경에서 생명이 생성되었을 경우를 알아보기 위해)
가설 검증 실험을 행한 결과, 아미노산과 다른 유기 물질들을 얻었다.
흥미로운 것은, 산소 기체를 반응 용기 속에 집어 넣었을 때에는 유기물이 전혀 합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산소는 화학적으로 반응성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원소나
화합물들과 결합하여 매우 안정적이고 반응성이 없는 생성물들을 만든다. 좀더 복잡한 분자
들을 만들어 나가면서 궁극적으로는 생명의 분자들을 만들려면 계속 결합을 해야 하므로,
분자들은 약간 불안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실험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생명조차 탄생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실험을 비롯
한 여러 실험들을 통해 화학적 진화 가설이 상당한 신빙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화학적 진화 과정이 이렇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구의 나이가 아직 5억 년이 못 되었
을 때 따뜻한 바다에 유기 물질들이 쌓였으며, 아미노산이 생성되고 이들이 결합하여 단백
질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방과 당도 만들어졌고, 당이 결합하여 녹말도 만들어졌으며, 뉴
클레오티드로부터 핵산(DNA 와 RNA)도 만들어졌다. 또 지구의 바다가 유기물질로 가득
찬 수프가 됨으로써, 생명에 필요한 모든 필수 요소들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액체 상태의 물
은 분자들이 서로 섞여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이상적인 매개체가 되었다. 유기물의 잡탕에
서 원시적 형태의-세포막에 싸여 세포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필수적인 화학 반응을 촉진시
키는 효소 체계와 함께 다소 조악하지만 생식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생명페가 태어나
기까지는 아마도 수억 년이 걸렸을 것이다.
이렇게 생명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가장 간단한 세포의 형태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놀라운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의 생물들로 진화가 일어나기까지 다시 35
억 년에서 40억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3) 생물 진화
최초의 원시적인 세포들은 핵을 비롯한 다른 세포내 기관들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러
한 세포들을 원핵 생물(原核生物:prokaryote)이라 부르는데, 이 세포들은 오늘날까지도 박테
리아의 형태로 남아 있다. 이 세포들은 스스로 자신의 음식물을 만들 수 없는 대신, 바다에
녹아 있는 유기 분자들을 빨아들였다. 이러한 방식의 영양-이미 만들어져 있는 외부의 음식
물을 흡수하는 것-을 외부 영양(heterotrorhism)이라 일컫는다. 이 세포들은 음식물 분자들
을 분해하는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데에 산소를 쓰지도 못한다. 또한 음식물에서 에너
지를 방출하는 과정을 호흡이라 한다. 최초의 생물체들은 무기 호흡을 하였다. 대기에 유리
된 상태의 산소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기 호흡이 지닌 문제는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아주 적은 에너지를 얻는 데에도
상당히 많은 음식물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처음에는 바다에 유기물이 풍부했다. 하더
라도, 바다에 있는 음식물은 영원히 남아 있지는 못한다. 화학적 과정을 통해 바다에 유기
물질들이 공급되는 양보다 생명체들이 음식물을 먹어치우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음
식물이 없으면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가장 하등 동물이 지상으로 기어오를 수
있게 되기 훨씬 이전에, 생명체들은 아사하여 절멸하는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가?
이때 기적의 분자 클로로필(chlororhyll)이 등장한다. 클로로필은 25∼30억 년 전에 출연하
여, 생물의 진화 과정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클로로필은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 그것을 저
장 화학 에너지, 즉 음식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제공하였다. 이제 생명체들은 고갈해 가는
영양 물질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다. 단지 태양에 몸을 그을리는 것만으로도 스스
로 음식물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생물이 기초 물질로부터 자신의 음식물을 스스로 만
드는 영양법을 독립 영양(autitrirhism)이라고 한다. 그리고 태양을 이용하여 이러한 일을 하
는 과정을 '광합성(photosynthesis)'이라 칭하는데, 이 광합성 작용은 대기 중에 유리된 산소
를 방출시켰다. 암석들을 화학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약 20억 년 전에 지구의 대기가 숨쉴
수 있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리된 산소가 존재하자, 이에 따라 호기성 생물들이 진화하기 시작했다. 산소를 이용하
면, 세포들은 산소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보다 약20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음식물의 장기간 공급이 가능해지자. 점점 더 복잡한 유기체들이 진화하게 되었다.
이렇게 간단한 원핵 세포들이 점점 발달함에 따라, 세포막 속에 핵을 갖춘 최초의 진핵 세
포(眞核細布:eucaryotic cell)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약 14억 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진핵 세포들이 결합하여, 다세포 유기체 만어지기 시작하였다. 가장 오래 된 다세포
동물의 화석은 약 10억 년 전의 것이다.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동물과 식물들은 이 진핵 세
포들로 이루어져 있다.
산소가 대기의 일부가 되고 나서 얼마 후에, 생물들은 육상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대
기 중에 산소가 방출되지 않았더라면, 육상에서는 생명체가 전혀 진화하기 못했을 것이다.
생명체는 애초에 바닷속에서 화학 합성을 통해 생겨났는데, 그것은 매우 정교한 과정이었다.
새로 생겨난 유기 분자들은 고도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지만 매우 연약했다. 지구에 쏟아진
태양 복사-그 중에서도 특히 자외선-는 그러한 생명체들이 생성되자마자 바로 파괴시켜 버
렸을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간단한 세포라도 이러한 환경에서는 진화할 가망이 없었다. 그
렇지만 이러한 분자들이 생성되자마자 요행히 물 속으로-수십 cm 아래로-잠길 수 있다면,
이들은 치명적인 태양 복사의 폭격을 피할 수 있다. 화학 합성은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항상 가공할 만한 태양의 자외선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때 산소가 등장하게 된다. 자외선과 번개 방전은 대기 상층에서 정상적인 공기를 오존
으로 변화시켰다.(<그림 1>참고).
오존은 자외선을 흡수하는 특수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존층이 지구의 보호막으
로 생성되자(이것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나, 환경 보호론자들은 오존층이 고갈되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생물은 육지로 상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약 10억 년이 넘는 긴 세
월을 거치면서, 벌레, 개구리, 뱀, 새, 양치류, 꽃, 오이…… 그리고 사람으로 진화해 갔다. 오
존층의 보호막이 없었다면, 이러한 진화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 본다면, 생명체는 태양계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진화하지 않았
다. 화성과 달의 토양을 직접 분석한 결과, 어떠한 생명 활동도 발견되지 않았다. 금성은 너
무 뜨겁고, 수성은 밤낮에 따라 고온과 극저온이 교차할 뿐만 아니라, 태양 복사가 너무 강
렬하게 쏟아진다. 기체 행성들-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생명체가 진화하기에 적절한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표면 온도가 너무 차갑다. 명왕성은 얼어붙은 황량한 땅이
다. 혹은 아마도 60여 개의 위성들 중 몇몇은 아주 간단한 현미경적인 생명체를 가지고 있
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 내기를 걸지는 않기 바란다. 생명의 진화는 적절한 종류의 물질들, 적절한
에너지, 적절한 온도, 액체 상태의 물과 시간이 모두 갖추어져야 가능한, 매우 까다로운 작
업이다. 이 생명체가 더 복잡하고 다양하게 진화하려면,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에 상응하는
조건들이 적절히 변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체들이 번성
하게끔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외부 영양에 의존하던 생명체가 독립 영양을 할 수 있게 변
하고, 무기 호흡을 하던 생명체들이 유기 호흡을 하게 되고, 수중 생활을 하던 생명체들이
육지로 상륙하게 되는 등, 결정적인 순간마다 모든 조건들이 적절하게 갖추어졌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영리한 생명체들이 진화하여 자신과 우주의 기원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이러한 기적들은 오직 지구에서만 일어났을 뿐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열한 번째 이야기
열대 우림
"이 땅은 자연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 낸, 거칠고 지저분하지만 풍요하고 거대한 온실이
다." 이것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150여 년 전에 열대 우림을 처음으로 보고 난 후
한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자연의 위대한 축복과 생명의 활기찬 춤을 오히려 과소 평가한 것
이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다양한 모습과 소리, 냄새를 가진 열대 우림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접하면, 우리는 마치 미지에 있는 마술의 행성을 방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열대 우림은 대부분 적도의 양편으로, 북회귀선에서 남회귀선 사이에 분포하고 있다. 그것
은 마치 뚱뚱한 허리에 둘러져 있는 거대한 웨이스트밴드처럼 지구를 빙 두르고 있는 적도
대이다. 이 벨트안에는 무성한 우림이 자라고 있으며, 이 숲들은 각각 하나의 에덴 동산인
셈이다. 이들은 세계의 밀림을 이루고 있다. 남아메리카에는 이러한 에덴 동산 중 가장 거대
한 아마존 열대 우림이 브라질과 인접한 몇 개 국가에 펼쳐져 있다. 거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과 맞먹는 크기인 이 밀림의 이름은, 그곳을 흘러가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강의 이름
을 ek서 붙여졌다. 길이 4천 마일에 이르는 아마존강이 얼마나 거대하고 유량이 많은가 하
는 것은, 대서양에 접하는 당어귀에서 1백 마일이나 바깥쪽 바다로 나가 물을 한 컵 떠도,
바닷물이 아닌 민물이 담겨 있다는 사실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지구 위를 흘러가는 민물
중 약 6분의 1은 아마존 강의 방대한 배수로를 통해 바다로 흘러간다.
다른 열대 우림은 중앙 아메리카, 동남 아시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중앙 아프
리카 일부 지역(주로 자이르)에 분포하고 있다. 미국에도 작은 규모로나마 하와이, 푸에르토
리코, 버진아일래드 등에 열대 우림이 자리하고 있다. <그림 1>은 전세계에 분포한 주요 열
대 우림 지역의 분포를 나타내고 있다.
대부분의 열대 우림은 적도 근처에 모여 있지만, 그들이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과학자
들은 각각 특유의 식물군과 동물군을 가진, 40종 이상의 열대 우림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크게 보아 열대 건조림, 열대 습윤림, 순수 열대 우림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순수 열대 우림-가장 일반적이고, 여기서 다루는 주된 대상이기도 한-은 적도에 아주
가깝고, 고도가 낮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이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1,000mm 이상에 달하
므로, 세상에서 가장 습기 찬 곳이다. 뉴욕의 연평균 강수량이 108mm, 샌프란시스코는
80mm에 불과하다는 점과 비교해 보라. 열대 우림 지역의 기온은 평균 27℃이며, 계절에 따
른 기온 변화가 거의 없다.
또한 이러한 고온과 높은 습도 속에서 온갖 생물이 번성하고 있으므로, 열대 우림은 지구
표면적의 7%만을 차지하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약 90%가 이곳에서 살고 있다. 그
래서 열대 우림은 "지구에서 가장 생명이 넘치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
1) 생물 다양성과 열대우림
미국 본토에서 가장 풍부한 숲조차 기껏해야 25종 정도의 수목이 자라고 있을 뿐이지만,
보르네오의 열대 우림에서만도 2,500종의 수목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놀랍
게도 브라질의 아마존 열대 우림에서는, 2.5에이커의 좁은 면적에 450종의 수목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다. 열대 우림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는 60m나 솟아 있다. 이들은 아래쪽에 다른
수목들이 빽빽하게 모여 이루어진 수림의 천개(天蓋:canopy) 위로, 군계일학처럼 여기저기에
우뚝우뚝 솟아 있다.
열대 우림의 천개는 높이 30∼36m의 나무 윗부분들이 빽빽하게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열대 우림 지역에 사는 모든 식물군과 동물군 중 약 3분의 2가 이곳 천개 부분에서 살며,
자연이 가장 극적인 장관을 보여 주는 곳도 바고 여기이다. 거대한 공중 식물 정원처럼 2만
여 종의 착생 식물(着生植物:epiphyte)-나무에 붙어 살지만, 기생을 하거나 나무에 해를 끼
치지는 않는다-들이 천개에서 아래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착생 식물의 뿌리는 공중에 자
유롭게 매달려 있으며, 공중이나 나무 둥치, 혹은 줄기에 난 구명에 모이는 물체들로부터 물
이나 영양 물질을 흡수한다.
난초류는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아름다운 착생 식물로서, 전세계의 난초류 중 대부분은
열대 우림에서만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난초류는 주목할 방법으로, 수백만 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을 동물들과 공존해 왔다. 예를 들면, 어떤 종류의 난초는 어떤 곤충의 암컷 몸을
닮은 꽃을 피운다. 어쩌다 운이 없는 수컷이 여기에 속아 그 꽃과 교미를 함으로써, 난초의
수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브로멜리아드(bromeliad) 역시 착생 식물이다. 파인애플의 가까운 친척뻘인 크로멜리아드
는, 잎 밑바닥에 빗물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고여 있는 물은 하나의
미니 생태계를 이루어, 곤충들과 독화살개구리(poison dart frog) 같은 작은 양서류가 서식
한다. 독화살개구리는 화려한 색깔을 띠고 매우 강한 독을 지니고 있어, 밀림의 사냥꾼들은
화살촉에 바르는 독을 이 개구리에게서 얻었다. 부두교의 사제들은 사람들을 좀비(zombi:영
력으로 되살려 낸, 자신의 의지를 가지지 않은 인간)로 만드는 데 독화살개구리의 독이 유
용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열대 우림의 천개는 날아 다니는 새들로도 요란하다., 전세계의 조류-약 수천 종-중 절반
가량이 아마존 열대 우림에 살고 있다.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쉴새없이 날아 다니는 작은 벌
새들은, 그 긴부리로 꽃들의 중요한 수분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학고 있다. 벌새는 초당 50∼
80번의 날개짓을 하는데, 만약 인간이 그러한 에너지를 소비한다면 하루에 빵 150덩어리는
먹어야 할 것이다.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앵무새, 마코앵무, 큰부리새, 극락조 등은 녹색의 천개를 마치 눈
부신 보석들처럼 아름답게 장식한다. 열대 우림에서는 이들이 요란하게 지저귀는 소리를 언
제나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열대 우림의 천개를 지배하는 것은 매와 독수리이다. 이들은
그곳에 마련한 둥지에서 아래를 굽어보면서, 민첩하지 못한 어떤 동물이라도 덮쳐 죽일 수
있다. 이들은 열대 우림의 먹이 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다.
가장 기이한 것은 엄청난 수의 박쥐가 열대 우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쥐는 날아
다니는 유일한 포유류이다. 1천여 종의 박쥐 중 대부분은 열대 우림에 토착해 산다. 어떤 지
역에서는 모든 포유류 중 박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들의 바이오매스
(biomass:생물량0는, 다른 모든 포유류 동물을 합한 것보다 많을 수도 있다.
박쥐는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 작은 것에서부터 날개 길이가 1.8m에 이르며, 커다란 나무
열매를 먹고 사는 '날아 다니는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것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가 매우 다
양하다. 그 중 세 종류는 흡혈 동물로서,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삼각형 모양의 앞니를 희생
동물의 살에 박아 넣어 피를 뺀다. 박쥐의 침 속에는 마취제 성분이 들어 있으므로, 피를 빨
라는 동물은 고통을 덜 느낀다. 한편 침 속에는 항응고제도 들어 있어, 박쥐가 동물의 피를
빠는 동안 피가 굳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곤충이나 새처럼, 박쥐도 또한 열대 우림 식물들의 수분(受粉)을 도와준다. 그러나 박쥐가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씨를 뿌려 주는 것이다. 즉 열매를 따 먹고 다른 데로 날아감으로
써, 그들은 열대 우림 전체에 그 열매의 씨를 흩뿌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열대 우림에서
일어나는 씨의 살포 중 96%는 박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대 우림의 천개 아래에는 작은 나무들과 관목, 덩굴식물들이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그
리고 위에 있는 울창한 수림들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
인다. 이들 식물군이 하층(understory)을 이루게 되는데, 지상에서 15∼24m 높이에 잎이 무
성하게 달린 가지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다.
천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뛰어다니
거나 나무에 매달려 있는 많은 영장류들을 볼 수 있는데, 전세계의 영장류 중 대부분이 이
곳에서 살고 있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정글에는 원숭이, 거미원숭이, 짖는원숭이
(shrill howler monkey) 등이 뛰어다니고 있는데, 이들 원숭이는 모두 나뭇가지를 붙잡을 수
있는 꼬리를 가지고 있다(이는 신댉 원숭이들의 특징이다. 꼬리 있는 영장류를 monkey, 꼬
리 없는 영장류를 ape라 한다). 그리고 이들의 꼬리는 수상(樹上) 생활을 돕기 위해 제5의
팔다리로 진화하였다.
침팬지는 아프리카의 열대 우림 전역에서 볼 수 있다. 꼬리 없는 원숭이인(고릴라, 긴팔원
숭이, 오랑우탄과 함께) 침팬지는, 천개 위에서 장난치며 뛰어다닐 때와 땅 위에서 먹을 것
을 찾을 때 가장 즐거워한다. 영장류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 고릴라 역시 아프리카의 열대
우림에 사는 동물이다. 몸집이 너무 크기 때문에 어른 고릴라는 나무에 올라가는 일이 거의
없다.
나무에 사는 기묘한 동물로서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열대 우림에 살고 있는 가장
흔하고, 커다란 포유류는 나무늘보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그곳에 살고 있는 포유류의 총무
게 중 3분의 2를 차지하기도 한다. 나무늘보를 기묘한 동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기다란 발
톱을 갈고리처럼 사용하여, 언제나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무늘보는 늘
이런 자세로 먹이를 먹고, 잠을 자고, 짝을 짓고, 새끼도 낳는다. 나무늘보의 털에는 늘 조류
(藻類)가 두껍게 끼기 때문에 몸이 초록빛을 띠게 되고, 이는 곧 보호색으로 작용한다. 다른
포유류와는 달리, 나무늘보의 체온은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그래서 나무늘보들은 나
무들 사이로 햇빛이 비치기만 하면 거꾸로 매달려 일광욕을 즐긴다.
아마존의 열대 우림을 어슬렁거리며 돌아 다니는 재규어는 남아메리카 정글의 진정한 왕
자라고 할 만하다. 고양이과의 동물 중 사자와 호랑이를 이어 세 번째로 큰 동물인 재규어
는, 열대 우림의 지표면에서부터 천개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지배하며, 약하거나 행동이 느
린 동물들을 잡아먹고 산다. 먹이 사슬에서 재규어보다 더 위에 분포하는 동물은 없다.
열대 우림에서는 어떤 생태학적 공간도 텅 빈 채로 남아 있지 않다. 그 결과, 아주 기묘한
생물들도 많이 서식한다. 아놀드 뉴먼은 자신의 저서 『열대 우림(Tropical Rainforest)』에
서 몇몇 기묘한 생물을 소개하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종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긴 목록을 읽는 것
과 같다. 대나무의 형태를 가진 풀은 하루에 90cm씩 자라, 키가 30m에 이른다. 줄기 둘레가
44m에 이르는 장미가 있는가하면, 사과나무만큼 큰 데이지와 제비꽃도 있고, 가장 단단한
목재 재질을 지니고, 키가 18m에 이르는 양치류도 있다. 길이가 11m나 되는 뱀, 어린이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지름 1.5m의 수련 잎도 볼 수 있으며……라플레시아(rafflesia)는
세상에서 가장 큰 꽃이다. 지름은 9.5m, 무게는 17.2kg에 이르며, 꿀샘에는 수갤런의 액체를
채울 수 있다.……또 날개 길이다 30cm에 이르는 나방도 있고, 쥐를 잡아먹는 큰 개구리도
있으며, 무게가 45kg이 넘는 설치류(쥐, 다람쥐 등)도 있다.
이들은 분명 기묘한 생물임에 틀림없다. 어떤 생물들은 기묘할 뿐 아니라 때로는 위험하
기도 하다. 아마존 강과 거기로 흘러드는 많은 지류에는 도처에 악어들이 서식하고 있다. 면
도날처럼 번득이는 이로 무장한 피라니아(piranha)떼가 무게 90kg의 동물을 몇 분 만에 뼈
만 앙상하게 남겨 놓은 적도 있다. 그러나 강물에 사는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것은, 길이 5cm 정도의 가시투성이 물고기 칸디루(candiru)이다. 칸디루는 오줌 냄새를 맡고
쫓아와 생식기의 요도 입구로 들어가 버리고는, 요도를 따라 계속 들어가 방광에 머문다. 몸
속으로 들어간 칸디루가 엄청난 고통을 준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아마존 유역에
사는 부족 남자들은 종종 칸디루의 침입을 막기 위해, 표피가 귀두를 덮도록 실로 잡아 묶
기로 한다.
열대 우림에서는 개미도 엄청난 규모를 서식한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아프리
카의 병정개미(driver ant)와 남아메리카의 병정개미이다. 이들이 수백만 또는 수천만으로
떼를 지어 지나가는 자리에는 정글의 모든 것이 파괴된다. 피할 수 없는 것들은 말이든 소
든 간데 산 채로 뜯어먹히고 만다.
그러나 병정개미나 피라니아, 나무들에 도사리고 있는 치명적인 독을 가진 뱀들조차도 열
대 우림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은 아니다. 가장 위험한 동물은 조그마한 모기이다. 모기(암
컷)에게 물리면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원생 동물에 감염될 수 있다. 말라리아는 아직도 전세
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는 병이다. 모기는 또한 상피병(象皮病)을 일으키는 사상충을
감염시킬 수도 있다. 상피병이란 이름은, 피부를 부풀어오르게 해 종종 환자의 다리를 코끼
리 다리처럼 퉁퉁 붓게 하는 이 병의 증상에서 비롯되었다. 성기가 사상충에 감염된 어떤
사람은, 걸어다닐 때 자신의 고환을 손수레에 올려 놓고 끌고 다녀야 했다.
2) 열대 우림의 파괴-전세계적인 재앙
루이스 스콧의 저서 『열대 우림에 관한 책(The Rainforest Book)』에 나오는 숫자를 인
용하면, 우리의 열대 우림은 분당 67에이커-초당으로 치면 축구 운동장 한 개꼴-씩 조직적
으로 파괴되어 가고 있다. 매년 뉴욕 주만한 면적의 열대 우림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금세기 말에 이르러 대부분의 열대 우
림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라고 스콧은 경고한다.
열대 우림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수의 종들도 영원히 사라지고 있다. 즉, 수많은
종들이 멸종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종들은 지금 이 순간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오
렌지색의 털을 가진 오랑우탄(;오랑우탄'은 '숲 속의 늙은이'라는 뜻이다. 인간과 흡사한 얼
굴을 가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은 한때 아시아의 모든 지역을 누볐다. 그렇지만 서식
지가 점점 파괴되어 감에 따라 오랑우탄의 수는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이제는 인도네시아
의 수마트라 섬과 보르네오 섬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동식물들이 멸종해 갔으며, 또 현재 멸종 단계에 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
른다. 아무도 그 단서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 중 약 95% 가량
이 아직 발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것을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현재까지는
약 150만 종의 생물이 확인되었다(그 중 절반은 곤충이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전체 종
수는 1,000만 아니 어쩌면, 1억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은 열대 우림에 살고
있다.
자신의 저서 『열대 우림(Tropical Rainforests)』에서 뉴먼은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하였
다. 우리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상당히 정확하게 (5mm 이하의 오차로) 측정할 수 있
지만,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들에 대해서는 전체 종수의 6% 미만만 확인했을 뿐이다. 여러
분이 그 생물들의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들이 죽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열대 우림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한
것들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면 아래와 같다.
모든 의약품 중 약 4분의 1은 그 원료를 열대 우림의 식물과 동물에서 추출한 것이다.
미국 국립 암연구소는 약 3천 종의 식물에서 항암성 물질을 확인하였는데, 그 중 70%
는 열대 우림에서 자라는 식물들이다. 장미빛의 빙카(periwinkle)는 어린이 백혈병과
호지킨병에 놀라운 효과를 보이는 여러 가지 약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말라리아를
치료하는 기적의 약인 퀴닌은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기나나무 껍질에서 얻는다.
스큅 (Squibb)제약회사는 고혈압 치료약의 원료로, 브라질에 서식하는 독사의 독을
사용하고 있다.
최소한 2,500종 이상의 새로운 과일과 채소가 열대 우림에서 자라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기르는 작물이나 가축의 다양한 변종들이 열대 우림에 존재하는데,
이들로부터 유전자를 추출하여 작물이나 가축을 개량할 수 있다. 우리가 기르는 모든
종류의 닭은 아시아의 밀림에서 살았던 네 가지 종의 야생닭의 후손들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커피와 초콜릿 또한 전체량의 80% 가량은 열대 우림에서 나온다.
열대 우림은 타이어나 고무, 껌의 성분인 오일, 페인트, 화장품 등의 원료로 쓰이는
고무를 제공한다. 열대 우림의 한 나무에서는 골프공의 껍질에 사용되는 딱딱한 라텍스
(latex)를 추출한다. 브라질의 코파이바(copaiba)라는 나무에서는 가지를 베면, 디젤
연료가 쏟아져 나온다. 브라질에서 사용되는 디젤 연료 중 20%는 이 나무에서
추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발견한 멜빈 캘빈은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니 이렇게 소중한 자원들의 보고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겠는가? 열대 우림이 파괴되
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목재 회사이다. 목재 회사들은 엄청난 수의
나무들을 베어 국제적으로 수출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열대목 수입국으로, 일본에서
는 11,000채나 지을 수 있는 양을 매년 일회용 젓가락으로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가축 목장으로 만들기 위해 숲을 벌목하기도 한다. 이것을 열대 우림 지역에서 큰
사업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노력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약 110g
의 햄버거 고기를 하나 생산하기 위해서는, 67평방피트의 브라질 열대 우림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열대 우림의 토양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두께가 매우 얕고 토질
도 연약하여, 자주 쏟아지는 비에 표토가 씻겨 버리고 만다. 그래서 몇 해도 못 가서 목장주
들은 원래의 목장을 버리고, 새로운 목장을 만들기 위해 다시 숲을 베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화전민들도 농사를 짓기 위해 상당량의 열대 우림을 파괴하고 있다. 나무를 베어
불을 지르면, 그 재들이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하게 된다. 그러나 화전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역시 목장주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표토는 금방 씻겨 내려가 버려, 그 농장은 버
려지게 되는 것이다. 또 마약의 원료인 코카(coca)를 재배하기 위해 상당량의 숲이 훼손되고
있다. 1988년에 코카인은 콜롬비아 제1의 수출 품목이었다. 그 금액은 40억 달러에 이르러,
수출 품목 2위인 커피의 15억 달러를 훨씬 능가하였다.
열대 우림의 나무를 베고 태우는 행위는 단지 수많은 동식물을 없애는 것에 그치지 않는
다.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파괴함으로써, 모든 생물들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대기를 훼손
하고 있는 것이다.
녹색 식물(그리고 조류)은 특별한 종류의 생물이다. 이들은 공기중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
하여, 그것을 토양(또는 바다)에서 빨아올린 물과 결합시켜 단당류인 포도당과 산소 기체를
만들어 낸다. 이 마술은 지구의 녹색 색소인 클로로필에 의해 이루어진다. 클로로필은 햇빛
을 흡수하여, 광합성이라는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에너지로 사용된다.
나무들은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그것을 포도당 속에 저장함으로써, 대기 중
의 이산화탄소량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무성한 열대 우림은 바로 이 광합
성 게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열대 우림은 매년 수백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서 제거하고 있다.
대기 중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은 지구로서는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이산화탄소는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기체이며, 인류의 산업 혁명 이래로 너무나도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
출해 왔다. 온실 효과를 유발하는 기체들은 지표면에서 방출되는 열을 흡수하여, 우주 공간
으로 방출되는 것을 차단한다. 그 결과, 온도가 올라가 전지구적인 온난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편 화전민들은 이산화탄소를 증가하시키는데 이중의 기여를 하고 있다. 화전법은 일종
의 양날을 가진 칼과 같다. 먼저 나무들을 벰으로써 광합성량을 줄여,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량이 늘어나게 하는 데 기여한다(이것은 또한 생명들이 호흡하는 데 필수적인 산소의 공급
도 줄인다. 대기 중에 산소가 고갈되지 않게 하는 과정인 산소 순환에서, 광합성은 매우 중
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다음에 나무를 태움으로써, 다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방출한다. 결과는 전지구적인 재앙이다. 기후 변동이 일어나고, 빙하가 녹고, 대홍
수가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유쾌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시나리오는 점점 비극으로 치
달아, 동물과 식물의 대규모 절멸을 가져올 수도 있다.
지난 5억 년 동안에 지구에서는 다섯 차례의 대규모 절멸이 일어났다. 가장 최근의 것은
약 6600만 년 전의 백악기에 일어나, 공룡들이 절멸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최악의 재앙은 아
니었다. 지구상의 생물들이 가장 많이 절멸한 사건은 약 2억 4500만 년 전에 일어난 폐름기
대절멸로, 전체 수중 동물의 77∼96%가 이때 절멸하고 말았다. 욱상 동물 역시 비슷한 비율
로 절멸하였다.
만약 열대 우림이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면(그 시기는 다음 세기 중반쯤으로 추정된다), 우
리는 여섯 번째 대절멸 사태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 과거의 재앙을 경험한 바에
의하면, 생물들은 다시 번성하게 될 것이다. 생명체는 이와 같은 끈질긴 탄력을 가지고 있
다. 그렇지만 특별한 종류의 난초에 있는 꿀샘을 빨아먹기 적합하게 진화한, 20cm나 되는
긴 혀를 가진 다윈나비(Darwin moth)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투명한 몸체와 녹색 뼈를
가진 유리개구리(glass frog) 또한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유명한 박물학자이자 탐험가인 찰스 윌리엄 비브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하였
다. "어떤 생물 종의 마지막 개체가 숨을 거둔 후 다시 그 종이 나타나는 것을 보려면, 또
다른 하늘과 또 다른 지구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열두 번째 이야기
일반적으로 말하면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위대한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칭송받게 되었다. 한때 세상에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겨우 열두 명밖에 없다는 말이 퍼진 적도 있었다(다소 과장
되었겠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은 특수 상대성 이론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우아하며, 대상으
로 삼는 규모도 훨씬 광범위하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운동의 개념을 재정의하였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과 공간, 그리고 시간의 개념을 재정의하였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주를
다시 세운 것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등속도 운동을 하는 좌표계에만 적용되었고, 가속도 운동을 하는 좌
표계에는 적용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해 보았다. 왜 상대성 이론은
한 종류의 운동에만 적용되고, 다른 종류의 운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는 항상
단순한 답을 추구하는 단순한(?) 사람이었으므로, 예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
다. 그는 비등속도 운동의 딜레마에 매달려 10년간이나 고민한 끝에, 마침내 1915년에 일반
상대성 이론을 내놓았다.
1) 중력과 관성
비등속도 운동의 문제는 그 효과를 실제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차 두 대가 서로
반대 방향에서 일정한 속도로 다가와 스쳐 지나간다고 하자. 이때, 실제로 어느 차가 움직여
다른 차를 지나갔는지 분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중의 하나가 비등속도 운동을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할 것이다. 만약 속도를 높인
다면 차 안에 타고 있는 승객은 앞으로 끌어당겨지는 힘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차가 어느
방향으로 돌면, 승객은 차 안의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가속 효과는 운동
을 절대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상대성 이론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뒤로 밀리거나 앞으로 끌어당겨지거나 한쪽으로 쏠리는 따위의 효
과는 '관성 효과'로 알려져 있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관성을 어떤 물체가 외부에서 가한 힘
에 저항하는 또 다른 힘으로 정의하고 있다. 등속 운동을 하는 물체에는 관성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마찰이 없다면, 그 물체는 영원히 등속 운동을 계속할 것이다. 놀란 라이
언이 우주 공간에서 시속 160km의 속도로 공을 던진다면, 그 공은 영원히 시속 160km의
속도로 날아갈 것이다. 그런데 만약 외부의 힘(예컨대 프랭크 토머스의 배트)이 공에 작용하
여, 공의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거나 혹은 공의 방향을 바꾸거나 하면 관성 효과가 나타난다.
즉, 공은 가해진 외부의 힘에 저항하게 된다. 자동차 안에 탄 승객이 밀려나거나 끌어당겨지
거나 또는 한쪽으로 쏠리는 힘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저항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관성 효과이다.
관성 효과는 다른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여러분은 아마도 물을 채운 두레박이나 물통을
빙빙 돌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때, 두레박이나 물통이 머리 위에서 거꾸로 되었을 경
우, 그것을 계속 빙빙 돌리고 있는 한 물은 아래로 쏟아지지 않는다. 물은 두레박이나 물통
의 원온동(비등속도 운동)으로 인해 바깥쪽으로 밀려 나가는 힘을 받기 때문에, 쏟아지지 않
는 것이다. 여기서 두레박이나 물통속의 물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힘을 원심력이라 부르는
데, 물이 두레박이나 물통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바로 이 힘 때문이다(물리학자가 볼 때
물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힘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힘은 두레박이나 물통이
물에 미치는 힘인데, 그것은 물을 원형 궤도의 중심으로 끌어당긴다. 그렇지만 물의 입장에
서는 원심력은 실제적으로 느껴지며,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도 원심력이 그렇게 작용하는 것
으로 보는 것이 편리하다). 원심력은 중력처럼 작용하는 힘인데, 중심을 향해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반대로 중심에서 바깥쪽을 행해 작용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실상 이것
은 관성 효과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관성 효과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중력이 전혀 없는 우주 공간 속의 엘리베이
터 안에 당신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지금 그 엘리베이터는 <그림 1>에서처럼 위쪽으로 속
도를 내고 있다.
그로 인해 당신은 엘리베이터 바닥 쪽으로 밀리는 힘을 느낄수 있는데, 이 또한 관성 효
과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중력이 당신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가속
운동을 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점프를 하면, 다시 엘리베이터 아래로 떨어진다. 지구에서처
럼 당신은 무게를 가진 물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중력이 작용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이
다. 만약 엘리베이터가 9.8㎨dml 가속도로 떨어진다).
아인슈타인은 관성 효과와 중력이 똑같이 느껴지기 때문에, 이 둘은 동일한 것이라고 생
각하였다. 중력과 관성은 같은 것을 나타내는 다른 말일 뿐이다. 따라서 엘리베이터가 우주
공간 속에서 위쪽으로 움직이면서 관성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가 엘리베
이터의 아래쪽으로 움직이면서 중력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다.(엘리베이터가 움직이
는 것이 아니므로, 이때 나타나는 효과를 관성 효과라 부를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관성
효과냐 중력 효과냐 하는 것은 어휘론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다. 이번에는 두 대의 차가 서
로를 스쳐 지나가는 경우에 대하여 다시 검토해 보자. A차에 탄 승객이 관성 효과(뒤로 밀
리는 것 같은)를 느끼고, B차에 탄 승객은 그러한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A가 우주
전체에 대해 상대적인 운동을 하는 반면, B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운동은 상대적이며-등속도 운동이든 비등속도 운동이든 간에-똑같은 방정식들을 사용하여
기술할 수 있다. 관성 효과는 절대 운동을 결정하는 좌표계로 사용할 수 없다.
2) 공간과 시간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해 주는 한편, 공간과 시간을 바
라보는 새로운 방법도 제공하였다. 고전 물리학에서 공간은 3차원으로 존재한다. 이 차원들
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상자 하나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상자의 크기는 가
로, 세로, 높이를 측정하면 알 수 있으며, 이들 측정값은 각각 공간의 세 차원 중 하나를 나
타낸다. 상자 속 또는 공간상의 어느 장소라도, 이 세 가지 좌표축을 사용하여 나타낼 수 있
다. 이 체계에서는 제4의 차원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수학자들은 수학적인 개념으로서 4차
원, 5차원 등을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 것을 나타내 보일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세계에는 4차원이 존재하며, 그것은 추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실재하는 세계이
다. 그가 생각한 제4의 차원은 공간상의 차원이 아니라 시간의 차원이며, 그의 세계는 4차원
시공간이다. 이인슈타인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을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 결합되어 있으
며, 우주는 바로 이 시공간이 연속적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라고 한다(최초로 시간을 제4의
차원이라고 수학적으로 기술한 사람은 폴라드의 수학자 민코프스키였다. 아인슈타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위대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그렇지만 4차원의 세계를 마음 속에 그려 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제4의 차원이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좀더 쉽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편법을 쓴다
면,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으로 축소시켜 생각하고, 시간의 차원을 제3의 차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시공간 우주를 여전히 상자 모양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된
다.(<그림 2> 참고).
어떤 물체가 한자리에 가만히 정지해 있다면, 그것은 공간상에서 이동하지는 않지만 시간
상으로는 이동하는 것이다-<그림 2>에서 화살표 A로 표시된 것과 같이, 한편, 공간상에서
등속도 운동을 하면서 이동하는 물체의 움직임은, 직선(화살표 B)으로 나타낸다. 또한 비등
속도 운동을 하며 공간상을 이동하는 물체의 움직임은, 곡선(보기 쉽게 점선으로 표시)인 C
로 표시한다. 시공간상에서 이렇게 물체들의 움직임을 나타낸 것을 '세계선world line)'이라
부른다.
아인슈타인과 그 동료들은 시공간의 개념을 바탕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의 몇몇 현상들,
예컨대 길이 수축이나 시간 지연 같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각각 별
개로 존재하는 절대적 개념들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변하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들이 일
어난다는 것이다. 마틴 가드너는 자신의 저서 『상대성 폭발(The Relativity Explosion)』에
서 아주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다. 지금 벽을 향해 불빛을 비춘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
불빛 앞에 책 한 권을 놓아 두면, 그림자가 벽에 비칠 것이다. 이에 대해 가드너는 "책을 공
간상에서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책의 그림자는 뚱뚱한 직사각형으로도 나타나고, 홀쭉한 직
사각형으로도 나타날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물론 책 자체는 모양이나 크기가 변하지 않고, 다만 벽에 투영된 그 그림자의 모양이나
크기만이 달라질 뿐이다. 가드너는 또한 "마찬가지로, 우주선과 같은 4차원 물체를 우리가
볼 때에는 4차원 시공간에 대한 그 자신의 운동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
이다. 어떤 경우에는 공간적인 모습이 시간적인 모습보다 더 많이 보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그 반대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우주선이 시공간에서 회전을 하거나
그 상대운동이 변할 때는 우리에게 투영되는 모습도 변한다. 이 투영되는 모습의 변화가 길
이 수축이나 시간 지연 같은 상대성 이론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3) 시공간의 굴곡
고전 물리학에서는 중력을 하나의 힘으로 다룬다. 중력은 근처에 있는 물체에 힘을 작용
하며, 그 힘 때문에 빗방울이 땅으로 떨어지고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돈다. 그렇지만 상대론
자들은 중력을 그러한 고전적인 시각에서 보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힘이 아닌 하
나의 효과로 보았다. 중력은 물질을 움직이지 않으며, 다만 공간, 아니 시공간을 휘게 할 뿐
이다. 물체의 질량이 클수록 중력은 크며, 따라서 그 주위의 시공간을 그만큼 더 많이 휘게
한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태양의 중력이 행성에 작용하여 타원궤도로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 주위의 시공간이 그러한 방식으로 휘어져 있어, 행성들이 자신의 세계선을 따
라 달린 결과가 타원 궤도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상대론자들은 그 개념을 분명하게 설
명하기 위해 종종 '상대성 폭발'에서 묘사된 다음의 비유를 인용한다.
"트램폴린처럼 팽팽하게 쳐져 있는 고무천을 상상해 보라. 그위에 사과(태양)를 하나 놓는
다면 고무천은 아래로 약간 처질 것이다. 사과 주위에 공기돌(행성 중 하나)을 하나 놓으면,
그 공기돌은 사과를 향해 굴러갈 것이다. 이 경우 사과가 공기돌을 잡아 끈 것은 아니다. 다
만 공기돌이 사과를 향해 굴러가도로그 주위에 그러한 구조를 가진 장(field)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아인수타인의 말을 인용한다면, "공간은 물질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지시하고, 물질
은 공간이 어떻게 휘어야 하는지 지시한다."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 지나가야겠다.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하면, 관측되는 물체의 경로
는 공간 차원에 투영될 때 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시간 차원에 투영되면, 그 물체
의 시간 경과도 또한 변한다. 중력이 클수록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4)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정말로 옳은가?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이후 오랫동안, 물리학자들은 그것이 과연 옳은
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증거는 많이 있었다. 빛의 속도는 불변
이라는 것,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물체의 길이가 수축되거나 질량이 증가한다는 것, 시간 지
연, E=mc2의 식에 따라 질량이 에너지로 변하는 것 등은 의심할 여지없이 특수 상대성 이
론의 정당성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그러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실험 물리학자들에게
하나의 난제로 남아 있었다. 미스너, 손, 휠러가 함께 쓴 『중력(Graviation)』에 나오는 구
절을 인용하자면,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이론은 일찍이 생각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만
큼 실험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이론도 여태껏 나온 적이 없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실험은, 1919년에 개기 일식이 일어났을 때
행해졌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강력한 중력장이 그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만들어, 그 근
처를 지나가는 빛의 경로를 휘게 만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태영의 개기 일식은 그것을 확
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태양은 제법 큰 중력장을 가지고 있으므로, 멀리서
태양 근처를 스쳐 지구로 오는 별빛의 경로를 조사한다면, 이 주장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
을 것이다. 평소에는 태양의 밝은 빛 때문에 태양 근처를 지나오는 별빛을 관측할 수 없으
므로, 개기 일식은 그러한 별빛을 관측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관측이 행해지기 전에 대
대적인 홍보가 이루어지자, 일반 상대성 이론도 아인슈타인의 명성과 함께 이 한 번의 관측
에 운명을 걸게 되었다. 관측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예언과 대체적으로 일치하였다. 별빛이
휘어진 정도는 아인슈타인이 계산한 값과 거의 같았다.
또 다른 증거는 수성의 공전 궤도를 예측하는 것으로부터 확인되었다. 뉴턴의 중력 이론
에 따라 계산된 수성의 공전 궤도는 실제로 관측되는 궤도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태양과
다른 행성들이 수성에 미치는 중력 효과를 고려하여 고전 물리학의 방정식에 의해 계산된
결과에 따르면, 수성의 궤도면은 1세기에 7분의 1도 정도만 변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 관측
결과는 이보다 훨씬 더 빨리 변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일치를 설명하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수성의 궤도 안쪽에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행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추측하였다.
그들은 그 행성에 '불칸(Vulcan)'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놓았다.
1800년대 후반에 천문학자들은 불칸을 찾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했지만, 끝내 발견
되지 않았다. 그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수성의 공전 궤도 이상은 아인슈
타인이 무대에 나타날 때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고, 마침내 일반 상대성 이론이 그 수수
께끼를 풀어 내었다. 그 여분의 중력은 미지의 열 번째 행성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태양
자체로부터 온 것이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에세이 『존재하지 않았던 행성(The Planet
That Wasn't)』의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해 보자.
태양의 엄청난 중력장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에 해당하며, 이는 또한 그보다 훨씬 작은 일
정량의 질량에 해당한다. E=mc2의 식에 따라 에너지와 질량은 상호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
을 상기하기 바란다. 모든 질량은 중력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태양의 중력장을 질량으로
간주한다면, 이 또한 그 자체로써 훨씬 작은 여분의 중력장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 여분의 미소한 중력장이, 관측된 수성의 궤도와 뉴턴 역학에 따라 계산된 궤도의 차이
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바로 그 여분의 양으로, 시공간을 휘게 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은 또 중력이 시간을 더디 가게 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중력장이 강할수록 시간 지연의 효과는 더 커진다. 매우 정확한 원자 시계를 사
용하여 과학자들은 이 시간 지연 효과를 측정하였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중력이 약한 곳)에
서 측정한 시계는, 해면(중력이 강한 곳)에서 측정한 시계보다 시간당 10억분의 3초 정도 더
빨리 진행되었다. 우주 공간(중력이 존재하지 않는)에서는 시계가 훨씬 더 빨리 간다.
시간 지연은 또한 빛의 스펙트럼을 붉은색 쪽으로 이동하게 만든다(이 현상을 '적색 이동'
이라 부른다). 중력으로 인한 적색 이동은 태양과 같은 별들에서는 매우 미약하게 나타난다.
비록 태양이 질량이 덜 나가는 다른 행성들에 비하여 현저히 큰 중력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두드러진 효과를 나타내기에는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태양의 적색 이동은
1962년에 이르러 매우 확인되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으며, 오늘날의 과학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다.
5) 블랙홀,중력파,중력렌즈
일반 상대성 이론은 현실 세계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의 다른 현상들도 예언하거나 설명하
였다. 그러한 예측 가운데 가장 기묘한 것이 블랙 홀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고 가정한다. 그 결과, 물질뿐만 아니라 빛과 같은
에너지도 이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중력장의 중심을 향해 휜 경로를 따르게 된다(누턴의 물
리학에 따르면, 중력은 에너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보아 에너지에
는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태양이나 혹은 태양보다 몇 매나 더 큰 별 근처를 지나
오는 빛은 미약하나마 휘어질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큰 중력장이 생성될 수도(물
질의 압축을 통하여)있다.
충분히 큰 중력장에서는 시공간이 휘어진 정도가 너무 커서, 빛이 중력장의 중심을 향해
휘어진 경로를 따라가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중력장의 중심으로 빠져들어서
탈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여기서 '블랙 홀(black hole)'이라는 말이 생겼다). 빛은 강한 중
력장 근처에서 약간 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린다. 그곳은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소용돌이를 그리며 빨려들어가는, 일종의 밑바닥이 없는 깔때기와 같
다.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는 물질들은 광속까지 가속되고, 무한대의 밀도로 압축된다. 그리
고 시간은 점점 늦어지다가 마침내 멈춰 서고 만다. 실로 기괴한 이야기가 아닌가?
기괴한 존재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가? 천문학자들은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블랙 홀을 확인한 증거는 1994년 5월 25일에 발견되었다. 과학자들은 허블 우주 망원경을
사용하여, 5천만 광년 거리에 있는 M87이라는 거대 은하 중심에서 강력한 중력장을 발견하
였다. 그것을 블랙 홀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블랙 홀의 강한 중력이 아니면 잡고 있기 불가
능한 뜨거운 가스의 소용돌이도 함께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증거가 결정적
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간접적인 증거에 불과할 뿐이다. 빛이나 다른 어떤 복사도 블랙 홀을
빠져 나올 수 없으며, 따라서 블랙 홀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는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할 수 없다.
블랙 홀의 존재를 시사하는 간접적인 증거는 또 있다. 블랙 홀 속으로 들어간 물질은, '사
건의 지평성(event horizon)'또는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라고 하는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지나기 직전에, 강한 X선 복사의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우주에
는 천문학자들이 블랙 홀이라고 추정하는 강한 X선 방출원들이 여럿 있다. 그들은 또한 거
대 은하들 대부분의 활동적인 중심부에는 블랙 홀이 있다고 믿고 있다(천문학자들은 비교적
작고 활동이 약한 우리 은하의 중심에도 블랙 홀이 존재하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중력파를 검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블랙 홀의 존재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증거
가 될 것이다. 중력파 역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예언된 것이다. 중력파는 중
력 에너지에 의해 시공간 구조에 발생하는 일종의 파문이다. 중력파는 시공간을 크게 휘게
하는 방출원으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나아간다. 블랙 홀은 시공간을 크게 휘게 할 수 있으므
로, 측정 가능하고 다른 것과 구별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중력파를 방출한다.
그렇다면 중력파는 실제로 발견되었는가? 1960년대 중반 이래 정교한 중력파 실험들이 계
획되고 중력파 검출기들이 설치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는 확인할 수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한편, 중력 렌즈는 중력파처럼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중력 렌즈는 실제로
존재하여, 이것은 1979년에 직접 관측되기도 하였다. 중력 렌즈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그 존재를 예언한 바 있었다. 중력 렌즈는 매우 높은 밀도의 질량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져, 마치 렌즈처럼 그곳을 지나가는 빛들을 구부러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 중
력 렌즈 현상을 일으키는 대상으로는 우선 은하들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빛을 방출하거나
반사하지 않아 '어두운 물질(dark matter)'이라고도 하는, 보이지 않는 물질도 그 후보로 꼽
을 수 있다. 이러한 중력 렌즈는 뒤쪽에서 오는 별이나 은하 또는 퀘이사들의 빛을 휘어지
게 하여, 그 천체들의 상이 망원경에 두 개, 세 개, 심지어 네 개까지 나타나게 한다. 또한
은하들의 모양을 이상한 각도로 일그러지게 하거나 반지 모양의 빛으로 보이게도 한다.
중력 렌즈는 또한 꽤 많은 잠재적인 용도를 가지고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 중 99%
정도는 어두운 물질일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어두운 물질의 중력 효과-중력 렌즈 같은 것
으로 나타날 때-를 관측할 수 있다면, 과학자들은 어두운 물질의 존재와 그 질량을 계산할
수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질량을 아는 것은, 우주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커다란 도움
이 된다. 즉, 우주가 영원히 팽창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어느 순간에 팽창을 멈추고 수축
으로 돌아설 것인지의 운명은, 오로지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양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많은 부분은 뉴턴과 그의 역학 및 중력의 법칙을 지지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많은 부분은 뉴턴의 역학과 중력 법칙을 뛰어넘어, 우주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
각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아인슈타인이 이러한 위대한 성과를 거둔 후 말년에 "나를 용서하
기 바랍니다, 뉴턴."이라고 썼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다. 그렇지만 용서를 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뉴턴은 자신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이렇게 썼기 때문이다. "내가 남보다 좀더
멀리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를 밟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인슈
타인 역시 가장 위대한 한 거인의 어깨를 밟고 서 있었을 뿐이다.
열세 번째 이야기
시간대의 역사
인간은 직립 보행을 시작한 이래, 대략적이나마 시간을 재어 왔다. 그들의 시계는 지구 그
자체였다.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밤과 낮이 교대로 규칙적으로 변한다. 아
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특히 짧은 시간 간격에서는), 아직 텔레비전이 발명되지 않은 때였
으므로 매시간이 그렇게 정확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가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하여 생활이 복잡해지자, 시간을 좀더 정확하
게 측정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에 이집트인들은 이미 해시계의 작동은
지구의 자전에 의존한다. 즉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태양이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것으로
보이게 돈다(태양이 움직이는 속도와 보조를 맞추어 달려서 태양이 하늘에 가만히 정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하려면, 적도에 있는 사람의 경우는 서쪽으로 시속 1038마일의 속도롤
달려야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값은 조금씩 변한다. 지구가 자전할 때 바닷물
이 대양에 부딪치며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에, 지구의 자전 속도는 1세기에 1000분의 1초 정
도씩 늦어지고 있다). 또한 하늘에서 태양의 위치가 변함에 따라 그림자들도 변하게 횐다.
태양이 떠오를때에는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오른다. 땅바닥 위에 똑바로 세운 '노몬(gnomon:
그리스어로 '아는 것'이란 뜻)'이란 이름의 막대기는, 서쪽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정
오쯤이 되면 그림자는 많이 이동한다. 이제 그림자의 길이는 짧아졌고, 북쪽을 가리키고 있
다(북반구에서는). 오후가 되면 태양은 조금도 쉬지 않고 서쪽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며, 이
제 노몬의 그림자가 다시 길어지면서 동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막대기를 약간 기울여
놓으면, 그 그림자가 땅 위에서는 반원의 경로를 그리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것을
열두 시간으로 나누어, 이집트인들은 최초의 시계를 만들었다.
물론 그 밖의 다른 시계들도 나타났다. 이 시계들은 해시계처럼 맑은 날에만 볼 수 있거
나, 계절에 따라 한 시간의 길이가 달라지는 등의 맹점은 없었다. 불이 타는 정도로 시간을
재는 촛불 시계가 있었고, 모래나 물을 위쪽 용기에서 아래쪽 용기를 향해 일정한 속도로
흘러내려 보내어 시간을 재는, 모래 시계와 물시계도 있었다. 그러다가 1600년대 중반, 네덜
란드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호이겐스가 흔들리는 진자를 이용해 시계를 만들었다. 이 진자
시계는 아주 정확하여,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측정할 수 있었다. 17세기로서는 대단한 업
적이었다(오늘날에는 세슘 원자나 수소 원자의 진동을 기준으로 한 원자 시계가 있다. 원자
시계는 아주 정확하여, 오차는 1억 년에 1초 미만 정도에 불과하다. 레이저나 초냉각 상태를
이용하면, 그보다 훨씬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도 있다).
그 다음에 철도가 놓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먼 거리를 손쉽게 여행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철도는 멀리 떨어진 지방들과 도시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느 한 장소에서의 시간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지만, 지방이나 도시마다 각
각 그곳의 시간이 있었다. 예를 들면, 뉴욕 시의 시간은 이웃 도시인 뉴어크(Newark)나 사
우샘프턴(Southampton)의 시간과 서로 달랐다. 그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
오(낮12시)는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이르는 시간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 시간이
정확하게 똑같은 두 지점은 같은 자오선상에 있어야 하며, 동쪽으로나 서쪽으로 조금이라도
치우쳐 있어서는 안된다. 뉴욕 시에서 정오일 때 서쪽 도시에서는 정오가 아직 안 됐고, 동
쪽 도시에서는 정오가 이미 지난 시간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는 있지만, 받아들이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특히, 당신이
기차를 운행한다면, 게다가 전신의 발달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1884년경에 이르러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시간을 표준화하기 위한 국제 회의가 열리게 되었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시간대이다.
시간대는 그 안에 있는 모든 지방의 시간이 정확하게 똑같은 지역들을 말한다. 시간대는
북극에서 남극으로 지나는 선인 자오선에 의해 정해진다. 이 자오선들은 지구를 오렌지 자
르듯이 정확하게 동일한 크기의 24조각으로 나눈다. 왜 24조각으로 자를까? 물론 지구가 한
바퀴 도는 데 24시간이 걸리니까 그렇다. 지구를 24부분으로 나누면, 다른 지역과의 시간 차
는 차이가 나는 만큼의 조각 수에 1시간을 곱하면 된다.
영국의 그리니치는 거기에 있는 유명한 영국 왕립천문대 때문에 시간대를 나누는 출발점
으로 선정되었다. 그리니치를 지나면서 북극에서 남극을 잇는 선을 '본처 자오선(prime
meridian)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경도 0°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다른 자오선들은 15°마
다 그어져, 지구를 정확히 24개의 시간대로 나누었다. 본초 자오선에서 동쪽에 있는 자오선
들에는 '동경'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서쪽에 있는 자오선들에는 '서경'이라는 수식어가 붙
었다(<그림 1> 참고). 그리고 180°가 되는 경도에서는 동경과 서경이 만나게 되고, 이 지
점을 지나는 자오선의 정반대편 지구에는 본초 자오선이 지나간다. 이 지점의 시간은 본초
자오선이 지나는 곳과 12시간의 차이가 나게 된다. 이 자오선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자
세히 다룰 것이다.
본초 자오선은 주변 지역의 시간대를 나누는 경계선이 아니다. 나머지 23개의 자오선 역
시 그러하다. 이들 자오선은 24개로 분할 된 시간대들의 대략적인 중심 역할을 할 뿐이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땅들을 지나갈 때 시간대를 나타내는 경계선들은, 도시나 주, 심지어 국
가를 2개의 다른 시간대로 분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그재그로 그린다.<그림 2>와 <그림
3>은 정치적 경계나 지리적 경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시간대를 나누는 경계선들이, 얼마
나 불규칙하게 변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66년에 미국 상원은 표준 시간령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미국의 표준 시간대를 4개가 아
닌 8개로 설정하였다. 미국 내륙의 4개 표준시 외에 푸에르토리코에 적용되는 대서양 시간
대(동부 표준시보다 한 시간 더 빠름), 유콘 시간대, 알레스카-하와이 시간대, 알류샨 열도
에 적용되는 베링 시간대가 추가되었다.
1) 일광 절약 시간(서머타임제)
이것만으로는 덜 복잡하다고 느꼈는지, 미국의 위대한 과학자이며 정치가인 벤저민 플랭
클린은 그의 별난 에세이에서, 일광 절약 시간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였다. 이것은 일년
중 어는 기간 동안 시계를 표준 시간보다 한 시간 앞으로 돌려 놓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저녁의 일광을 한 시간 더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아침의 한 시간은 희생되겠지만.
이 아이디어는 그 당시(1784년)에는 채택되지 않았으며, 진지하게 고려되지도 않았다. 특
히, 농부들은 이 아이디어를 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들의 하루는 예나 지금이나 해가 뜨고 지
는 시간에 의해 좌우된다. 해가 지는 시간을 저녁 7시에서 8시로 옮긴다는 것은 일을 한 시
간 늦게까지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일이 끝난 후 보낼 수 있는 여가 시간이 한 시
간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1915년에 이 아이디어는 빛을 보게 되었다. 그 해에 독일은 세계 최초로 달력에
일광 절약 시간 제도를 도입하였다. 영국과 미국도 그 뒤를 따라, 각각 1916년과 1918년에
이 제도를 채택하였다. 이렇게 표준 시간보다 한 시간 앞당김으로써, 사람들이 일어나서 돌
아 다니는 시간을 한 시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줄일
수 있고, 여기세어 절약된 연료를 제1차 세계 대전에 소요되는 연료나 산업으로 돌릴 수 있
었다. 미국의회는 전쟁 기간 내내 국가 전체가 서머타임제를 시행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
시켰다. 이러한 에너지 절약 방법-전일 서머타임제-은 중동 국가가 미국에 석유 금수 조치
를 내린 1974∼1975년까지 약 1년 동안 다시 채택되었다.
1966년의 표준 시간령에 의해 미국내 대부분의 지역은 1년 중 6개월-4월 마지막 일요일
에서 10월 마지막 일요일까지-은 서머타임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1987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통과시킨 법령에 따라, 서머타임제 시행 시작 날짜가 4월 마지막 일요일에서 4월
첫째 일요일로 바뀌었다. 흥미로운 것은, 서머타임제 시행 날짜를 앞당김으로써 교통 사고
비용이 약 2,800만 달러 절약되었고, 연간 사망자 수 20명, 부상자 수 1,500명이 줄었다는 미
국 운송부의 발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주 의회에서는 서머타임제 채택을 부결시켰
다. 1년 내내 표준 시간을 그대로 고수하는 주는 애리조나 주와 하와이, 푸에르토리코, 그리
고 인디애나 주 일부 지역이다.
국제적으로는 상황이 좀더 복잡하게 돌아간다. 대부분의 서유럽에서는 서머타임제를 3월
마지막 일요일에서 9월 마지막 일요일까지 실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독 영국만 10월 마지
막 일요일까지 서머타임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 어떤 나라들에서는 한 시간이 아니라 두 시
간을 앞당기는, 일광 절약 시간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한편 어떤 나라들-특히 중동의 몇몇
국가-에서는, 시간이 다른 나라와 30분 또는 40분 차이가 나기도 한다. 네팔의 표준 시간은
이웃 나라인 인도와 10분 정도 차이가 난다. 이들 나라들은 시간대에 때른 표준 시간을 따
르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2) 날짜변경선
1519년에서 1522년 사이에 마젤란과 그의 선원들 중 살아 남은 사람들은 최초로 세계 일
주 탐험에 성공하였다. 그런데 고향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여
행 중에 하루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리둥절했다. 그들이 표시한 달력의 날짜는
고향에 남아 있던 친구와 가족들이 알고 있는 날짜보다 하루가 늦었던 것이다.
그들이 날짜 기록을 잘못했던 것일까? 여행 중에 겪은 많은 고초속에서 해가 떠오른 것을
한 번 빼먹은 것이 아닐까? 사실 그들의 기록은 정확했다.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돈다
(북극 위에서 내려다보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그 결과, 지구 주위를 서쪽 방향으로
여행하여 한바퀴 돌아오면, 고향에 남아 있던 사람들보다 해가 뜨는 것을 한 번 덜 보게 된
다. 이를 다르게 설명해 보자. 만일 마젤란이 오늘날 세계 일주를 한다면, 그는 새로운 시간
대에 들어갈 때마다 시계를 한 시간씩 늦출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 일주를 마칠 무렵이면,
시계를 정확하게 24시간 뒤로 돌려 하루를 잃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지구를 동쪽으로 여행
하여 한바퀴 돌면 고향에 남아 있던 사람들보다 하루를 벌게 된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아무리 세계 일주를 여러 번 했다치더라도 똑같은 장소에 있는 데 한
사람에게는 월요일이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화요일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세계 곳곳을 돌
아 다니는 사람의 달력을 어마 여행하지 않는 사람ㄷ르의 달려과 맞추는 방법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날짜 변경선(international date line)이다.
날짜 변경선은 하나의 경도선이다. 정확하게는 본초 자오선에서 180°되는 위치에 있는
자오선과 대략 일치한다. 이 자오선을 서쪽으로 넘어가는 사람은 날짜를 하루 앞당겨야 한
다. 즉, 월요일 오후 5yl는 화요일 오후 5시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날짜 변경선을 동쪽으로
넘어가는 사람은 날짜를 하루 뒤로 늦추어야 한다.
180°자오선이 날짜 변경선으로 채택된 것은 이 선이 주로 대양위-정확하게는 태평양과
북극해-를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 선은 위에서 내려오다가 동쪽으로 꺽어지며 베링 해협을
지나가는데, 이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분리하기 위해서이다. 그 밖에도 알류샨열도를 피
해 갈 때나 북태평양과 남태평양의 섬들을 피해 갈 때 등 여러 군데 꺽어지는 곳이 있다.(<
그림 4> 참고).
쥘 베른은 자신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에서 날짜 변경선을 이용하여 재미있는 이
야기를 꾸민다. 주인공인 영국 신사 필리스 포그는 80일 만에 세계를 일주할 수 있다는 것
에 2만 파운드의 내기를 건다. 그때는 1872년으로 비행기를 이용할 수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신뢰할 수 없는 기차와 증기선만을 이용해야 했다. 그렇지만 포그는 이 모든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여행을 계속하며, 도중에 코끼리를 이용하여 아름다운 인도 공주까지 구한다. 그런
데 세계 일주를 마쳤을 때, 그는 자신의 시계를 보고는 약속 시간을 조금 넘겼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내기에 졌다고 체념한다. 그런데 사실 포그는 동쪽 방향으로 여행하였기 때문에,
날짜 변경선을 지나면서 하루를 벌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내기에도 이기고, 아름다
운 공주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날짜 변경선, 만세!
결혼도 하고 내기에도 이긴 소설 이야기는 멋져 보이지만, 시간대는 항상 즐거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여객기가 지연되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이 말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뉴
욕에서 런던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오후 7시에 탑승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비행 시간
은 여섯 시간이 걸린다고 하자. 런던 히스로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하면, 당신의 시계와 신체
는 지금이 새벽 1시라고 알려 준다. 당신의 눈앞에는 호텔의 침대와 차 주전자가 어른거린
다. 그러나 런던의 시간은 뉴욕 시보다 다섯 시간이나 빠르기 때문에 아침 6시이다. 새로운
아침이 밝아 오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이날 낮동안 잠을 자면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지친
몸을 이끌고 런던 시내를 돌아다닐 것인가?
시간대는 실제로 불편하다. 우리 학생들은 시간대 때문에 지구과학 시험을 망칠 수도 있
다(이 cot을 읽기 전에 시험을 본다면). 그렇지만 지구가 계속 도는 한, 그리고 태양이 계속
빛나는 한, 시간대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한 부분이다.
셋째 마당-낯선 시간 속으로
열네 번째 이야기
가상 현실:거짓 세계
거울 앞에 서서 그 안을 들여다보면, 거울 속에 당신의 모습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로 거울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거울 속에 비치는 이 상을 물리학자들은 허상
(virtual image)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virtual'은 '실제가 아닌' 또는 '가상의'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리고 오늘날 과학자
들은 거울보다 훨씬 더 뛰어난 가상 세계를 만들어 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들은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를 이용하여, 전체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현실을 만들
어 내고 있다. 이러한 세계들 중 하나로 당신이 걸어 들어간다면, 당신은 가상 현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가상 현실(virtual image)이라는 말은 1989년에 VRL 연구소의 창설자인 제이런 레이니어
가 만들어 냈다. 이는 이 분야가 얼마나 새로운 것인가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한편 스티브 옥
스타칼니스와 데이비드 블래트너가 그들의 저서 『실리콘 환상(Silicon Mirage)』에서 정의
한 바에 따르면, 가상 현실을 "사람이 그 속에 빠져 들어갈 수 있는, 컴퓨터가 만들어 낸 상
호 작용적인(interactive) 3차원 환경"이다.
컴퓨터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인공 세계를 만들어 낼까? 그보다 더 불가사의한 것은
어떻게 우리가 그 세계에 빠져 들어가 그것과 상호 작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이것
은 코끼리가 새끼를 낳는 것처럼 매우 어려운 일이다.
1)기술
가상 현실을 실현하기 위해 프로그램된 컴퓨터의 목적은,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속
에 들어온 것으로 믿도록 당신을 속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컴퓨터는 당신의 감각, 특히 시
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을 속여야 한다. 또 이 세 가지 감각 중에서 시각을 속이는 것이 가
장 중요하다. 이것은 가상 현실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인 부분이
기도 하다.
오늘날의 가상 현실은 머리에 쓴 디스플레이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것은 눈을 덮고 있는
헬멧 모양의 다소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다. 헬멧 속에는 각각의 눈앞에 갖다 대도록 하는
2∼3인치 크기의 화면이 내장되어 있다. 보다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에서는 화면들이 머리
주위에 빙 둘러 있어, 사방의 시각은 가상 세계가 실재하는듯한 느낌을 보다 생생하게 해준
다.
화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브라운관이나 액정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브라운관은 현
재 텔레비전 화면이나 컴퓨터 화면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액정 화면은 무게가 가볍고 가격
도 싸지만, 브라운관에 비해 해상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사실, 액정 화면의 영상은 종종
만화영화 같아서 현실감이 떨어져 보인다.
화면의 종류가 어떤 것이든 간에, 일단 컴퓨터가 작동하면 '스테레오 쌍(stereo pair)'이라
고 하는 상들이 관찰자의 눈앞에서 초당 60회 이상의 빠른 속도로 계속 반짝인다. 각각의
눈에는 거의 동시에 서로 다른 상들이 비치는데, 이는 3차원 영상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
다. 그러나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헬멧 속에는 센서들이 부착되어 있어 '위치 추적
및 방향 추적(position/orientation tracking)'의 기능을 수행한다. 센서들은 당신이 머리를 돌
리거나 끄덕이는 등의 움직임을 모두 포함하여, 그 정보를 컴퓨터에 전달한다.
추적 장치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이들은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 중 한 종류는 헬
멧 꼭대기에 카메라를 장착한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움직임을 측정 탐조등으로 포착하게
하여 멐퓨터에 당신의 위치를 알려 준다. 대중적인 인기를 끈 바 있는 닌텐도(Nintendo)의
파워글러브 게임에서는, 게임을 하는 사람이 고주파의 째깍거리는 음을 내도록 특수 제작된
장갑을 낀다. 그러면 닌텐도의 컴퓨터에 장착된 마이크폰은 이 초음과 음을 포착하여, 화면
상에 주먹의 움직임으로 나타낸다.
세 번째 추적 방법은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자기 위치 탐지(magnetic position sensing)'
라 일컫는다. 두 세트의 전선 코일을 서로에 대해 다양한 각도를 이루도록 배치하여, 헬멧
속이나 장갑 속에 내장시킨다. 한 세트의 코일을 통해 전류가 흐르면 약한 자기장이 형성된
다. 이때 손이나 머리가 움직이면, 다른 세트의 코일들이 자기장 속을 움직이면서 그 코일
속에 미약한 전류가 유도된다. 그러면 사전에 프로그램된 컴퓨터가 이 유도 전류 정보로부
터 신체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VPL의 데이터글러브(DaraGlove)는 이러한 종류의 움직임 추
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닌텐도의 파워글러브보다 성능이 월등하며, 가격은 약 100
배나 비싸다.
자기 위치 탐지 방법이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앞으로의 추적 방법은 영상 추출
(image extraction)이 될 것이다. 영상 추출 기술은 서로 다른 여러 각도에서 비디오 카메라
로 당신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데이터를 컴퓨터에 전송한다. 그리고 당신의 움직임을 해석하
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위치 추적 장치 중에서 가장 정확한 것으로, 화면상에 가장 현실감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더욱 편리한 것은 거추장스러운 장치를 몸에 달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다만 아쉽게도, 이 방법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매우
뛰어난 성능을 가진 슈퍼컴퓨터와 꽤 복잡한 프로 그래밍이 필수적이다. 이 기술이 일반 소
비자들에게 선을 보이려면 다음 세기나 되어야 할 것 같다.
당신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추적하는 것은 가상 세계에서 필수 요건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에 이르러야 컴퓨터가 환경을 적절하게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오른쪽으로 돌았다면, 당신은 현실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풍경이 그 움직임에 따라 변하
는 것처럼 보이길 기대할 것이다. 방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가까이 다가오는 물체는 커져
보일 것이다. 또한 의자 주위를 돌 때에는 의자 모양만 서서히 변하는 것으로 보일 뿐 아니
라, 의자에 가까이 있는 물체들이 멀리 있는 물체들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는
시차 현상까지도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등의 불빛이 방을 밝히고 있다면, 컴퓨터가
수시로 사물들의 음영을 조절해 주어야만 당신이 그것을 현실로 착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영화 필름이 천천히 돌아갈 때 불연속적으로 보이는 어색한 광경을 피하려면, 컴퓨터
가 최소한 초당 15회 이상 정도는 풍경에 손질을 가해야 한다. 게다가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컴퓨터가 다루어야 할 사물이 많을수록-컴퓨터가 처리해야 하는 계산도 많아진다. 현재의
컴퓨터들의 성능은 그렇게 많은 데이터들을 만족할 만한 속도로 처리하기에 충분치 않다.
따라서 아직도 가상 세계들은 간단하게 만들어지며, 실제 인물들을 캐리커처한 그림들로 채
워져 있다.
눈을 속이는 것만으로 일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는 당신의 귀도 또한 속여야 하
는데, 이를 위해 3차원 가상 세계는 현실에서 듣는 것과는 구별할 수 없는 소리들로 채워져
야 한다. 방 안의 한쪽 구석에서 나오는 라디오의 큰 소리는, 그 방의 그 구석에서 나는 것
으로 들려야만 한다. 그리고 당신이 뒤로 물러나면 그 소리는 점점 약해져야 하고, 다른 쪽
구석으로 가면 그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달라져야만 한다.
옥스칼니스와 블래트너는 그들의 저서에서 위스콘신 대학의 플레드 라이트먼과 도리스 키
슬러가 행한 흥미 있는 실험을 소개한다. 라이트먼과 키슬러는 3차원 공간에서 소리를 들을
때, 귀는 정확하게 무엇을 포착하는가를 알고자했다. 이것을 알면 그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
력시켜,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는 음파들이 귀에 닿는 순간의 음파 모양을 흉내 낼 수 있다.
그들은 실험 대상자의 귓속 고막 근처에 소형의 측정 마이크로폰을 장치하고는, 방 한가운
데에 앉혀 놓았다. 높낮이(tone)가 서로 다른 소리들이, 방 주위에 설치한 144개의 스피커를
통해 한 번에 한 가지씩 울렸다. 마이크로폰은 특정 스피커에서 나오는 각각의 소리를 포착
하여 녹음하였다. 그리고 녹음한 것을 헤드폰을 통해 다시 재생시켰을 때, 놀랍게도 소리들
의 톤은 처음에 스피커들을 통해 들렸던 소리와 거의 똑같이 들렸다.
이와 같은 실험들로부터 얻은 충분한 데이터와 일련의 스테레오 헤드폰들, 위치 및 방향
추적 장치, 매우 복잡한 알고리듬(algorithm:문제 해결 전략)들로 가득 찬 슈퍼컴퓨터를 사
용하여, 현실의 소리와 유사하고 또 비슷하게 변하는 가상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촉각이다. 가상의 공을 만지거나, 가상의 전원 스위치를 켜거나, 가상 물
통 속에 손을 집어 넣을 때, 그리고 가상 장미의 가상 가시에 손가락을 갖다 댈 때, 당신은
실제로 그러한 것들을 만졌을 때의 느낌과 똑같은 촉감을 원할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가상
환경 속에 빠져든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촉감을 느낄 수 없다면 환상은 쉽게 깨지고 말 것
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환상에서 쉽게 깨어나게 하는 이 취약점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촉감을 피드백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결과는 아직 현실과 커다란 차이가 있다. 촉감을 재현하는 것은 VR
(가상 현실)연구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시각이나 청각과는 달리, 촉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피
부에 물질이 닿아야 한다. 이러한 종류의 자극을 주려는 시도는 대부분 손에 집중되어 왔다.
사실 손에는 촉각을 느끼는 감각 기관이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으며, 우리 주위의 환경을
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신체 기관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원리를 이용하였
다. 특수 제작된 장갑을 통하여 손가락의 구부림을 포함한, 손의 모든 움직임을 추적한다.
그런 다음 컴퓨터가 만들어 낸 가상 손이 이 움직을 흉내 내어, 머리 위에 장착된 3차원 디
스플레이에 그것을 재생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렇지만 만약 가상의 손이 앞으로 쭉 뻗어
어떤 물체를 잡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장갑은 물체를 접촉한 감각을 전달해야만 한다.
이를 행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1980년대 중반, 미 공군은 압전
기 결정들을 장갑의 손가락 끝에 봉합해 넣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결정들은 전류가 통하
면 진동을 함으로써 촉감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매우 조악하고 부정확한 것이었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조종사들이 가상 계기판을 손으로 다루는 모의 비행 실험에서는 성공
적으로 사용되었다.
가상 세계에 촉감을 부여하는 보다 야심적인 두 번째 시도는, 장갑의 안쪽에 작은 공기
주머니들을 많이 집어 넣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가상 물체를 만질 때, 적절한 공기 주
머니들을 부풀리면 손과 손바닥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실제로 물건을 만지는
것과는 거리가 있긴 하지만, 손을 뻗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물체를 만지면서 그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가까운 장래까지는 그 이상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손의 신경과 근육뿐만 아니라 신
체 전체를 자극하는 기발한 방법에서 큰 진전이 이루어지겠지만(VPL은 이미 DaraGlove와
함께 착용이 가능한 DaraSuit(데이터옷)까지도 만들어 냈다), 사실상 이룰 수 있는 것들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가상 의자에 앉는다거나 가상 벽에 기대는 따위의 경험은
결코 생생하게 체험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몸을 지탱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다. 물체를 들어올릴 때 물체의 중량을 느끼는 것 또한 장갑에 저항을 느낄 수 있는 장치가
장착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촉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 반만이라
도 느끼는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러면 오늘날 어떤 종류의 세계들이 만들어져 있으
며, 장래에는 어떤 세계들이 만들어질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2) 응용 분야
가상 현실은 단순히 텔레비전을 대체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텔레비전을 산
채로 삼켜 버릴 것이다. -아서 클라크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공상과학 소설 작가 중 하나인 아서 클라크의 이 말은, VR이
오락과 레크리에이션 분야에서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사실을 다소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과연 단순히 수사상의 과장법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VR은 실제 세계에서 경험하는 복잡하고도 풍부한 질감과 촉감에 미치기는 못하지
만, 2I-immersion(빠져 들어감, 몰입)과 interaction(상호 작용)-의 마술을 보여 줄 만한 단계
에는 이르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텔레비전은 완전히 수동적이다. 따라서 VR의 이용자는
결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될 수 없다.
Aurodesk 사가 만들어 낸 오락실용 게임인 가상 라켓볼(Virtual Racketball)을 예로 들어
보자. 헬멧을 쓰고 데이터글러브를 낀 다음 운동추적 시스템이 장착된 라켓을 잡는 순간, 당
신은 이미 가상 라켓볼 코트에 들어서서 서비스를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컴퓨터를 상대로
하든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다른 경기자를 상대로 하든간에, 당신 라켓의 모든 움직임은 멐
퓨터가 만들어 낸 화상에 의하여 충실하게 재현된다.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아드레날린은
분비되기 시작하고, 게임이 끝나면 땀에 흥건히 젖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W인더스트리스 사가 만들어 낸 '닥틸 악몽(Dactyl Nighmare)은, 이미 1993년 3월에 미국
의 십여 군데의 가상 현실 센터에서 사용되고 있는 상호 작용 게임이다. 이 게임의 방법은
적(다른 게임자)이 당신을 발견하여 쏘기 전에, 당신이 먼저 그를 발견하여 쏘는 것이다.여
기에는 한 가지 위험이 더 있는데, 컴퓨터가 만들어 낸 익수룡(pterodactyl)이 별안간 나타
난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당신을 낚아 챌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러나 현재의 모든 VR게임 시스템이 그렇듯이, 아직은 조잡한 수준이다. 비록 입체
영상을 보여 주긴 하지만, VR은 아직까지 만화 영화처럼 보인다. 촉감이 전해지지도 않으
며, 조이스틱 핸들에 달린 단추를 눌러야만 이동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상 세
계를 경험하기 위해 사람들은 줄을 선다. 3분 30초에 4달러나 지불라면서 말이다. 이쯤되면
게임 이름을 '금전적 악몽'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장래에 VR이 오락 매체로서 매우 유망한 산업이 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VR
은 환상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 줄 것이다. 헬멧을 쓰고 특수 제작된 기타를 들면, 컴퓨터
가 당신을 록 콘서트로 데려다 줄 것이다. 당신은 수천 명의 관중들의 환호성을 지르며 열
광하는 가운데 연주를 한다. 이 정도라면 당신은 가라오케 따위에는 절대로 가지 않게 될
것이다.
VR을 레크리에이션으로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인간의 상상력의 한
계 때문일 것이다. 닌텐도 가정용 전자 오락 게임의 예로 미루어 보아, 그 인기도는 기하 급
수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가상 현실은 단순한 전자 게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
도의 기능을 지니고 있어, VR을 '가상 바보 상자'에 불과한 것으로 보게 되지는 않을 것이
다. 가상 현실의 진정한 가치는 인공 세계를 만들어 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세계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화학자들은 고글(goggle:보호 안경)을 쓰고서 구불구불
하고 이리저리 꼬인, 단백질 분자들이 날아 다니는 3차원 세계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조이
스틱이나 제어봉을 사용하여 그들은 단백질의 활성 부위에 보다 작은 약(drug) 분자를 도킹
시키려고 시도한다. 조이스틱에는 저항이나 끌어당기는 힘까지 느낄 수 있도록 장치해 두었
는데, 이것은 단백질 분자의 전자기력을 나타낸다. 약 분자가 단백질 분자에 접근하면, 단백
질 분자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형을 일으킨다. 이러한 모의 실험을 통하여, 제약 회
사들은 실제로 약품을 제조하기 앞서 어떤 약품이 가장 효력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1992년 「Science」지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현실 세계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과학의
제3분야'로 명명되고 있다(그 기사는 그 앞의 두 분야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NASA는 에임스(Ames) 연구 센터에서 그것을 이용하여, 화성 탐사선을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화성의 표면을 재생해 내고 있다. 한편 도시 설계자들은 폭동이 휩쓸
고 간 남부 로스앤젤레스의 80X80블록의 가상 모형을 만들어, 재개발을 설계하는 데 참고로
하고 있다. 가상 모형 속을 걸어 다니거나 그 위를 날아다니면서, 그들은 설계에서 간과하거
나 잘못된 부분을 찾아 정정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전축가들과 자동차 회사는 똑같은 방법
으로 VR을 이용하여, 새로운 집이나 자동차 디자인의 가상 모형을 만들고 있다. 1992년 1월
「Science News」지 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고객이 쇼룸에서 컴퓨터 화면에 새로운 주방
을 설계한다. 그리고는 고글과 장갑을 착용하고 가상의 부엌을 걸어 다니면서, 가구나 도구
의 배치들을 살펴본다"고 한다.
심지어 법정에서도 일종의 가상 현실(완벽하게 그 속에 몰입할 수 있거나 상호 작용적인
것은 아니지만)이 채택되고 있다. 그러한 특수한 예로는 1991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포르노 영화의 대부로 불리던 한 사나이의 살해 사건(그의 동생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
되었다)을 들 수 있다. 검찰측은 살해 행위가 재현되는 광경을 무대와 함께 가상 현실로 만
들어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 시뮬레이션을 본 배심원들은 피고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VR의 연구에 큰 투자를 하고 있는 곳이 군이라는 사실도 또한 흥미를 끈다. 옥스타칼니
스와 블래트너가 "국방부가 없다면 가상 현실도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하듯,
실제로 가상 현실 연구와 개발에 최대의 자금줄은 바로 군이다. 최고의 헤드기어와 바디기
어, 그리고 군은 거의 현실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어 내고 파일럿에게 조종술을 훈련시키고
있다. 미국 전역과 유럽의 군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뮬레이션인 SIMNET를 통하여, 그
리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들을 사용하여 가상 전쟁 게임과 테러 공격에 참여함으
로써,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를 대비하고 있다. 1992년에서 1996년 사이에 미 군부는
시뮬레이션에 5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쓸 예정이다(비행 모의 실험에 사용되는 헬멧 한 개
의 값만 해도 1백만 달러 이상에 이른다).
의학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제 의사들은 다양한 가상 질병을 가진 가상 환자들을 상대
로, 외과 수술을 연습하고 있다. '실리콘 환상'에서 옥스타칼니스와 블래트너가 묘사한 시나
리오를 보자.
팔을 뻗으면서 미야카와 박사는 장갑을 낀 손에 외과용 메스가 쥐어져 있다는 것을 느낀
다. 그리고 환자의 피부를 절개할 때, 컴퓨터에 의해 조절되는 소형 모니터들이 조용히 진동
하면서 손에 저항을 전달하여, 실제로 수술을 하는 것과 같은 촉감을 느끼게 한다. 피부의
수축, 출혈, 내부 장기, 그리고 발생할 수도 있는 잠재적인 문제들이 컴퓨터에 세밀하게 프
로그램되어 있어, 의사가 수술을 진행함에 따라 눈앞의 현실처럼 펼쳐진다.
VR 분야의 선구자이자 진정한 거인인 제이런 레이니어는, 의학 분야야말로 앞으로의 가
상 현실에서 거대 시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지구 한쪽에 있는 의사가 수천 마
일 떨어진 곳에 있는 환자에게 정교한 수술을 행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수술실의 로봇
에 장착된 카메라는 외과 의사의 눈이 될 것이다. 의사가 낀 장갑은 흔히 의사가 수술실에
들어갈 때 끼는 멸균된 고무 장갑이 아니라, 추적 장치가 달리고 촉감이 피드백할 수 있는
특수 장갑이다. 이 장갑을 낀 의사는 원격 조종을 통하여, 로봇의 손이 매우 정밀한 외과 수
술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수백 마일 떨어진 수술실처럼, 멀리 떨어진 실제 환경을 경험하는 것을 '텔레프레즌스
(telepresence: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원격 존재')'라 한다. 그렇지만 순수주의자들에 따르
면, 텔레프레즌스는 인공적이고 컴퓨터로 만들어낸 환경이 아니므로 가상 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들의 주장도 옳지만,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논란을 벌일 필요가 있겠는
가? 가상 현실의 기술과 하드웨어, 몰입과 상호 작용이 사용되는 것도 똑같고, 실용적으로
이익이 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다음 세기에는 전세계의 사업가들이 컴퓨터에 접속하여 머리
위에 디스플레이를 쓰고 함께 가상 회의실로 들어가, 그들이 토론하고자 하는 것을 무엇이
든 토론하게 될 것이다. 비록 대양이 그들을 갈라 놓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진짜로 같은 회
의실에 모인 것처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에 몰입할 것이다. 이것을 '텔레컨퍼러
싱(teleconferencong:원격지간 회의)'이라 부르는데, 이의 실현을 이미 눈앞에 다가와 있다.
혹시 고소공포증을 가진 분이 있는가? 또는 뱀이나 거미를 무서워하는 분은 없는지? 그
렇다면 당신은 정말 운이 좋다. 의사들은 그러한 증상을 치료하는 데 VR의 이용을 고려하
고 있다. 환자들을 가상 뱀이나 거미와 맞닥뜨리도록 하여 그러한 동물들을 아무렇지도 않
게 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실제의 치료 효과를 거두게 하려는 것이다.
섹스, VR은 여러분에게 이 분야에도 좋은 시절이 올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
히도 실질적인 가상 섹스가 완성될 때쯤에는 당신이 그것을 애용하기에 너무 늙어 버렸을지
도 모르겠다. 베스트셀러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의 저자 하워드 레인골드에 따르면,
가상 섹스는 내년에 당장 가능한 것이 아니고 21세기 초반이나 중반에 이르러서야 그 기술
이 마련될 것이라 한다. 그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컴퓨터의 능력 부족이
고, 다른 하나는 필요한 촉감을 만들어 내는 적절한 하드웨어가 개발되지 않은 탓이다. 그렇
지만 다음에 인용한 것처럼 레인골드가 묘사한 미래의 가상 섹스가 실현된다면, 기다려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패드를 댄 방 안으로 들어가 3차원 안경을 쓰기 전에, 당신은 신체를 감싸는 가벼운 옷을
입는다. 이것은 일종의 보디 스타킹인데, 콘돔 같은 부드러운 촉감을 지니고 있다. 그 옷의
안쪽 표면에는 아직 개발하지 않은 기술을 적용하여 만든 지능 센서 작동체들로 뒤덮여 있
다. 이들은 미소한 촉각 탐지기에 각기 다른 경도의 진동 장치들이 결합된 것으로서, 제곱
센티미터당 수백 개가 분포하고 있어 실재적인 촉감을 받아들이고 또 전달할 수 있다…….
당신은 (가상) 비단에 뺨을 갖다 대 보고 그 촉감이 (가상) 피부에 닿을 때와 현저히 다
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부드럽고 유연한 어떤 물체를 꽉 쥐면, 그것이 당신 손 안에
서 오그라들면서 단단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당신의 전체 시각-청각-촉각 텔레프레즌스 시스템을 전화망에 연결시킨다고 상
상해 보자. 당신은 실물과 동일하지만, 완전히 인공적인 당신 자신과 당신의 파트너의 육체
를 보게 될 것이다……. 손을 뻗어 당신 파트너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 놓으면, 일련의 센서
작동체들이 정확한 순서로 작동하여 당신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바로 그 촉감을 6천 마일이
나 떨어진 당신의 파트너에게 전달할 것이다.
멋진 이야기가 아닌가! 섹스 경험을 시뮬레이션한 것을 '텔레딜도닉스(teledildonics:원격지
간 섹스)'라 부르는데, 이에 비하면 텔레컨퍼러싱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은 이렇게
가상 밀회를 즐긴 후, 컴퓨터의 단추를 눌러 시원하게 가상 샤워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손을 뻗어 두꺼운 가상 타월을 집어 몸을 닦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자
마술이 끝나고 당신의 신체를 감싼 옷을 벗어 던지고 나오면, 당신의 가상의 땀이 아닌 실
제의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여전히 몹시 더울 것이다.
세 라 비!(C'est la vie:그런 것이 인생이다).
열다섯 번째 이야기
나의 형제, 클론
나는 클론(clone)이다. 그렇지만 나는 과학 연구의 결과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내 형제가
나와 똑같은 쌍둥이이기 때문에 클론인 것이다. 사실 그는 이 팩을 나와 함께 저술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클론은 유전적 복제물이다. 내가 수태되었을 때, 내가 성장하여 나오게 되
어 있는 난자는 수정된 이후 분열된 한 덩어리의 세포들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것은
진적에 둘로 분열되었다. 지적이고 잘생기고 카리스마적인 젊은이로 성장해 갈 운명을 지닌
덩어리는 내가 되고, 다른 쪽 덩어리는 내 형제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똑
같은 수정란에서 나왔다는 것이다(이러한 쌍둥이를 보다 정확하게 일란성 쌍생아라고 한다).
이는 우리의 DNA(유전적 구조)가 똑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쌍둥이는 일종의 자연적 클로닝
(cloning:복제)인 것이다(이 점에서 아홉 줄무늬 아르마딜로 nine-banded armadillo는 흥미
로운 동물이다. 암컷은 항상 네 마리의 일란성 쌍생아를 낳는데, 이는 수정된 난자가 세포
분열 때 4개로 분열하기 때문이다).
클로닝은 생물들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유기체가 무성 생식-배우자 없이 혼자서
하는 생식-을 할 때마다 그 어머니의 클론들이 태어나는 것이다. 사실상 거의 모든 식물들
은 자신을 클로닝한다. 감자 식물의 덩이줄기, 딸기의 덩굴, 튤립의 구근 등은 모식물의 클
론을 만들어 냄으로써 생식을 한다. 한편, 꽃가루가 난세포에 수분을 하여 만들어진 씨앗은
유성 생식인 셈이다. 각각의 씨앗은 발아하여 유전적으로 유일한 개체-비(非)클론-로 성장
한다.
클로닝은 식물이나 동물의 특별한 품종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이어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클로닝을 이용해 왔다. 당신이 좋아하는
식물을 꺾꽂이했을 때, 거기서 새로 자라나는 식물은 원래 식물의 클론이다. 또 당신이 씨없
는 오렌지나 메킨토시 또는 부사 같은 사과를 먹을 때, 당신은 원하는 과일의 가지를 보통
의 나무에 접목하여 생겨난 클론을 먹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클론이란 말도 실은 그리
스어로 '작은 가지'를 뜻하는 klon에서 나왔다. 포도나 바나나, 감자, 사탕수수, 파인애플, 아
스파라거스, 심지어 마늘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특수한 품종들은 이미 4000여 년 전부터 인
공적으로 클로닝되어 왔다.
동물의 경우는 식물만큼 무성 생식이 보편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유성 생식을
하며, 무성 생식인 클로닝을 하는 경우는 단순한 무척추 동물들에서만 볼 수 있다. 해파리나
편형 동물은 자신의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그 부분이 하나의 새로운 개체로 성장한다.
암컷 진딧물은 알을 낳는데, 그 알은 수정을 거치지 않고 유전적으로 어머니와 동일한 진딧
물로 성장한다. 어류와 양서류, 도마뱀류 중 어떤 종들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클로닝을 하는
데, 이를 처녀 생식이라 부른다(처녀 생식에 대해 더 상세한 것은 「생물들의 성」편 참고).
그렇지만 대체로 척추 동물들은 그것이 단 하나의 세포든 상당히 큰 세포든 간에, 자신의
신체 일부로부터 하나의 새로운 개체를 탄생시키지는 않는다. 동물들은 척추 동물로 진화하
는 순간부터 그러한 능력을 상실하였다. 그렇다면 과학이 개입하여 그들의 잃어버린 능력을
부활시켜 줄 수 있을까? 과학이 하도록 도와주어야만 하는가?
1) 동물 클로닝의 역사
동물 클로닝의 과학은 세포 분화에 관한 연구이다. 왜 수정된 난세포는 뼈나 근육이나 피
부가 되는 세포로 분열할 수 있는데, 성장한 개체의 피부 세포는 좀더 많은 피부 세포만을,
또 근츅 세포역시 조금 더 많은 근육 세포만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인가? 왜 피부 세포는
수정된 난세포가 지닌 모든 DNA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난세포가 할 수 있는 일-새로운 인
간을 만드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 생물학의 풀리지 않은 가장 큰 수수
께끼가 숨어 있다. 배(胚)의 발달 과정에 관한 수수께끼를 우리가 알아낼 수 있다면, 암이나
기타 다른 난치병 치료에 관한 열쇠뿐 아니라 노화를 방지할 수 있는 열쇠까지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유전자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20세기로 접어들기 바로 직전에 독일의 생물학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이 제안한 세포 분
화에 관한 초기 이론에서는, 수정란에 들어 있던 유전 결정소가 세포 분열을 일으킬 때마다
각각의 세포 속으로 나누어져 간다고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각각의 세포는 그 세포의
기능에 해당하는 유전 결정소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피부 세포는 피부를 위한 유전
결정소만을, 근육 세포는 근육을 위한 우전 결정소만을 갖는다.
이 이론은 그후 행해진 과학적 검증에서 옳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폐기되고 말았다. 2개
의 세포로 분열된개구리 알을 흔들어 두 세포를 분리시켰을 때, 각각의 세포는 건강한 올챙
이로 발달하고 건강한 개구리로 성장해 갔다. 이것으로 보아, 유전 결정소가 세포들 사이에
서 나누어진다는 가설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분열 때마다 새로 생겨나는 모든 세포들은, 원래 수정란이 지니고 있던 유전
물질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이렇다.
어느 한 시점에서 각 세포 속에 들어 있는 어떤 유전자들은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
는 것이다. 배의 발달이 진행되는 도중 각각의 세포 속에 들어 있는 서로 다른 유전자들은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배의 발달이 진행되는 도중 각각의 세포 속에 들
어 있는 서로 다른 유전자들이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그 세포는 오로지 자신에게 정해진
운명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능이 정지된 이들 유전자의 기능을 다시
복원할 수는 없는가? 과학과 기술의 도움으로 피부 세포에게 잃어버린 기능을 복원시켜, 피
부 세포 하나로부터 완전한 인간을 만들어 내게 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이야기는 공상 과
학 소설의 소재로서는 재미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대답은 NO이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이라 레빈은 1976년에 출판된 자신의 책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The Boys Brazil)』에
서, 신나치주의자 과학자들이 히틀러의 체세포로부터 새로운 히틀러들을 만들어 내는 이야
기를 쓰고 있다. 한편 히틀러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은 듯 마이클 크라이던은, 『쥐라기 공
원(Hurassic Park)』에서 공룡의 DNA 조각으로부터 공룡들을 복제해 내고 있다. 필요한 유
전 물질은 선사 시대에 공룡의 피를 빨았던 곤충의 뱃속에서 얻는다. 그 곤충은 어떻게 얻
을 수 있느냐고? 호박(琥珀)이라는 광물 속에 가끔 곤충이 갇혀 완벽하게 보존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 속에서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사실상 이러한 책들의 내용은 공상 과학이며, 소설은 단지 흥미를 위해 도입한 것일 뿐이
다. 그런데 1978년에 데이비드 로빅이 쓴 『자신의 형상대로-인간의 복제(In His
Image-The Cloning of a Man)』라는 책이 서점가에서 히트를 쳤다. 이 책에서는 인간의
복제가 이미 완성됐다고 주장한다. 부유한 어느 사업가가 과학자들에게 100만 달러를 지불
하고, 자신의 피부 세포나 간 세포 중 어느 하나를 사용하여(이 책에서는 어느 쪽을 사용했
는지에 대해 분명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복제 인간을 반들었다는 것이다.
전세계의 과학자들은 이 책을 사기라고 규탄하였다. 어떤 과학자는 자신의 이름이 부당하
게 그 클로닝 과정에 연루된 것으로 나온다 하여 출판사측을 고소하였다. 그렇지만 로빅은
개구리 같은 하등 척추 동물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 복제 과정을 매우
그럴 듯하게 그려 내고 있다.
아, 불쌍한 개구리! 개구리는 발생학자들에게 불가사리와 친척 관계에 있는 섬게와 더불
어 19세기 후반부터 인정사정 없는 취급을 받아 왔다. 개구리가 선택된 이유 중 하나는 포
유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큰 알 때문이다. 또 하나는 체외 수정과 발달 과정으로 이는
조작이나 배의 분화를 연구하는 데 아주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발생학자들은 연못 물이 들어 있는 접시 속의 개구리 알로부터 어른 개구리
를 복제해 내려 했다. 그 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핵 이식 실험으로 알려진 이러한 실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수정란 속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성정한 개구리의 세포핵은 기능이 정지된 유정 기능을 다시 복원하여 새로
운 개체로 성장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50년대 초반 이 실험을 다시 시도했을
때는,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배(胚)의 핵을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 하루가 지난 배는 포배
(胞胚:blastula)라 하는데, 이것은 수천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실험은 성공하였고,
수정란은 정상적으로 발달하여 건강한 올챙이와 건강한 개구리로 성장해 갔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어른 개구리의 암세포에서 빼낸 핵을 난세포 속
에 집어 넣었을 때에도 올챙이가 태어났고, 어른 개구리로 정상적으로 성장해 간 것이다. 이
는 종양 세포들만이 우글우글 생겨날 것이라고 예상하였던 많은 생물학작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세포가 암세포로 변할 때 성장한 개체 내에서 각종 기
능이 정지된 유전자들은 반드시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을 죽
이고 있는 암세포가 당신 자신을 복제하는 데 이용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생각이
기는 하지만, 잠시 접어두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자.
1970년대 중반, 옥스퍼드 대학의 거던 박사와 그 동료들은 충분히 성장한 올챙이의 내장
세포로부터 핵을 빼내어 핵을 제거한 난세포에 이식한 결과, 정상적인 개구리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이러하다. 올챙이 단계에서 분화된 유전자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기능 정지가 일어나지는 않으며, 난세포들의 조건만 충족된다면 그
러한 기능들의 복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 메커니즘은 아직도 미스터리이다.
개구리를 이용한 실험은 이렇듯 커다란 진전을 보였다. 그렇다면 포유류의 경우는 어떤
가? 우리 인간과 같은 털이 있는 온혈 동물들에서도 클로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있
는가?
1980년대 초, 제네바의 생물학자들은 쥐 세 마리를 클로닝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들은 개구
리를 클로닝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이를 해냈다. 즉, 발생 초기에 있는 배의 세포로
부터 핵을 분리하여, 핵을 제거하고 정자로 활성화시킨 수정란에 이식하였다. 단, 개구리 알
과는 달리, 쥐의 배는 다시 암쥐의 자궁 속으로 넣어주어야 했다.
이렇게 한창 개가를 올리던 시절이 지난 이후로, 클로닝 분야에서 또다시 세상을 뒤흔들
만한 새로운 진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성장한 세포 핵은 여전히 생물학자들의 온갖 달콤
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전문화된 유전자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키길 거부하고 있다. 1993년 후
반에 대중 매체는 인간의 복제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 적이 있었으나, 그
것 역시 과잉 반응이었다. 성장한 인간은 결코 복제된 적이 없으며, 과학자들은 아직 그 가
까이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쌍둥이를 만드는 것이나 할구 분리는 가능하지만, 클로닝은 여전
히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2) 할구 분리
수정란이 분열을 시작했을 때, 그 결과로서 생긴 배의 세포들을 할구(割球:blastomere)라
고 한다. 1970년에 동물학자들은 2개의 할구를 분리하여, 똑같은 쌍둥이 쥐새끼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어떠한 형태의 자궁도 발달 과정에 있는 배를 배태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반드시
생물학적 어머니여야 할 필요는 없다. 1979년,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동물 생리학 연구소
에서는 할구 분리를 통해 여러 쌍의 똑같은 쌍둥이 새끼양을 만들어 내었다. 곧이어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송아지들도 탄생시켰다. 동물 육종가들 사이에서는 우수한 품종의 자손을
많이 얻기 위한 이러한 종류의 '인공 쌍둥이 만들기'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
런데 1993년 10월, 제리 홀과 로버트 스틸먼은 최초로 인간의 할구를 성공적으로 분리하였
다. 여기서 '성공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발달 과정에 있는 할구를 실제로 인간의 자궁 속에
이식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한 실험은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
이다. 그들의 실험은 다음과 같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체외수정 진료과에서 일하면서, 홀과 스틸먼은 하나 이상의 정자에
의해 수정된 17개의 배를 선발하였다. 그러한 결함이 있는 배는 살아 남지 못하기 때문에
쓰레기통으로 향하게 된다. 선택된 배들은 모두 초기 분할(수정 직후에 일어나는 세포 분열)
상태에 있었고, 2할구기에서 8할구기까지 분포되어 있었다. 여기에 프로나아제라는 효소를
사용하여 발달 과정의 난자를 보호하는, 젤라틴 모양의 깝질인 난막을 녹였다. 그렇게 하여
할구들을 분리해 낸 다음, 해초로 만든 합성 막으로 하나씩 쌌다.
그런 다음, 하나의 접시 속에서 이들 할구들이 발달을 계속하도록 하였다. 2할구기의 배에
서 선택한 세포들이 가장 잘 발달하여 32할구기까지 이르렀고, 이 시점에서 이것을 자궁 속
에 착상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홀과 스틸먼은 48개의 클론을 만들어 냈다.
이는 예전과 전혀 다른, 아주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가축 육
종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십수년간 사용되고 있던 방법이었다. 홀과 스틸먼은 가축 육종가들
이 하듯이, 배의 세포로부터 핵을 분리해 내어 난세포에 이식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소란을 떨었던가? 사람은 가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의 배(비록 자력
으로 살아살 수 없는 것이었지만)에 행한 최초의 실험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배에 대한 실험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특히, 그 결과가 악용되어 재
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월한' 인간의 정자와 난자를 이용하여 '우월
한' 할구들을 만드는 '아기 농장(baby farm)'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자궁 빌려 드
립니다.'라는 광고 벽보가 여기저기에 나붙을지도 모르고, 나이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쌍둥
이인 가족이 생겨날 수도 있다. 또 다른 쌍둥이가 필요할 때까지 분리된 할구를 냉동시키기
만 하면 그것은 가능할 수도 있다. 황당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여자가 자신과 똑같은 쌍둥
이를 낳는 일도 생각할 수 있다. 또 어떤 아이가 매우 우수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얼려 놓은
그 아이의 클론들을 높은 값에 팔 수도 있을 것이다.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는가? 물론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위에 소
개한 것과 같은 미래의 시나리오는 히틀러의 군대를 복제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다음 사실은 한번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1990년에 에이브 아얄라와 메리
아얄라라는 부분는 백혈병으로 죽어 가는 나이 든 환자에게 골수를 제공하기 위하여, 여자
아이를 임신하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장차 냉동된 배를 성장시켜, 필요한 장기를 공급
할 목적으로 희생시키는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더구나 클론은 원래 떼어
낸 세포를 복제한 것이기 때문에, 신체 거부 반응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클로닝이든 트위닝(twining:쌍둥이 만들기)이든, 어떠한 형태의 인
간 실험에 대해서도 윤리를 내세우며 격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렇
지만 초기 배에 대한 실험은 좋은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은 수많은 불임 부부들의 고
민을 해결해 줄 수도 있다. 현재 체외 수정(시험관 아기)은 의사가 하나의 난자를 가지고 시
도할 때, 겨우 10%의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만약 할구 분리를 이용하여 착상할 수 있는 배
들을 많이 만들어 낸다면, 이 비율은 크게 상승할 것이다.
할구 분리는 유전 진단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광범위하게 응용될 수도 있다. 심각한 유전
질환을 가지고 있는 부부의 경우, 이 방법을 이용하여 체외 수정을 시도할 수 있다. 즉, 마
이크로피펫으로 난막에 구멍을 뚫고 배 속의 할구를 뽑아 내어, 그 DNA에서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체크하는 것이다. 만약 홀과 스틸먼이 사용한 방법을 써서 하나의 할구를 증가시
킬 수 있다면, 성공적인 검사에 필요한 충분한 DNA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의문을 던지고 탐구하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는 사실이다. 초기의 외과의들은 인체를 해부하지 않고서는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얻을 수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학자들도 수정란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수정란이 어떻게 분화해
가는지를 배울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사실 단순한 진리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17세기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남긴,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러
한 힘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만 사용되기를 바랄뿐이다.
열여섯 번째 이야기
카오스 이론: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한다
당신은 급하게 흘러가는 강물이나 시냇물에 나타나는 소용돌이를 보고 거기에 정신이 팔
린 적이 있을 것이다. 또 담배 연기가 보기 좋게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무질서한 형태로 소
용돌이치며 부서지는 것을 본 적도 있을 것이다. 유체 속에서 부드러운 흐름이 갑자기 혼란
을 일으키며, 혼돈 상태로 변하는 현상은 요동(turbulence)이라고 한다. 졸졸 소리를 내며 내
려가는 시냇물에 나타나는 작은 소용돌이는 매우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러한 요동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요동은 파이프라인의 흐름에 장애를 가져오며, 비행기 날개의 부력을
순간적으로 떨어뜨린다. 혈관 속에서의 소용돌이 흐름은 인공 심장 밸브 수술시 큰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요동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유체와 관련된 모든 장비에 비효
율적인 작동을 초래한다.
유감스럽게도 유체의 요동 운동은 수세기 넘게 연구 대상이 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고전
물리학에서 가장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문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지금도 완전히 평탄
한 파이프 속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부드럽게 흘러가던 유체의 흐름이, 유체의 속도가 증
가하면 어느 순간에 이르러 왜 갑자기 혼돈 상태로 되는지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컴퓨터로도 요동치는 흐름을 수초 이상 정확하게 추적하지는 못한
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제창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임종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에게 물어 볼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왜 상대성이 존재하고, 또 요동이 존재하는가
이다. 상대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신도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신도 난처해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새롭게 부상하는 과학의 한 분야가 여기에 답을 제시
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카오스 이론이다.
카오스(chaos) 이론은 왜 많은 자연계들이 본질적으로 임의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예측 불가능성을 보여 주는 고전적인 예로는 날씨를 들 수 있다.
갖가지 정보와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가지고도 기상학자들은 아직 1∼2일 이상의 날씨를 정
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 왜 그런가? 우리가 대기의 상태를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해서인가?
뉴턴은 운동의 법칙을 발표할 때, 우주는 결정론적이라고 확신하였다. 어떤 물체의 질량과
위치를 알고 거기에 작용하는 힘을 안다면, 그 물체의 운동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정확하게
계산해 낼 수 있다. 대기에 작용하여 다양한 날씨를 만들어 내는 힘들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모든 자료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시간에 대해서도 정확한 날씨를 예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렇듯 매우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서, 나서기 싫어하는 조용한 성격을 가진 한 젊은 기상
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1960년대 초반에 답을 제시하였다. 그는 열두 개의 방정식만으로
이루어진 아주 간단한 기상 모형 체계를 사용하여(오늘날의 기상 모형은 약 100만 개의 방
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슈퍼컴퓨터를 이용하여 계산한다), 초기의 입력값에 극히 미소한
변화-예컨대 온도를 100분의 1도 정도 다르게 읽는다거나 하는-가 있어도 아주 짧은 기간
내에 엄청나게 다른 날씨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어떤 이유로 인해 그 방정식들
은 초기 조건에 극단적으로 민감하였다. 이것을 농담삼아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 부
른다. 이는 도쿄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짓을 한 것이 얼마 후 미국 플로리다 주에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다소 과장된 비유에서 유래하였다.
그후 로렌츠는 열두 개의 방정식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모형을, 더 간단한 3개의 방정식으
로 이루어진 '계(system)'로 만들었다. 이는 가열된 유체 속에서 일어나는 대류 현상을 나타
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체 속에서 일어나는 대류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방정
식들은 결정론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이들은 유체의 행동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들
이었다-, 결과는 초기조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어는 온도 이상에서는 가해 주는
열의 양이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유체의 운동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이보다 더 중요
한 것은, 유체의 운동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체의 운동에
끊임없이 임의적으로 변하여 혼돈적인 양상을 나타낸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나중에는 유
체 속의 어떤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뉴턴의 운동의 법칙을 따르는 간단한 '계'들에서조차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항상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카오스 이론의 전문가인 아이언 스튜어트의 말은 카오스 이
론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한마디로 말해,
불안정(instability) 때문이다. 어떤 계가 안정적일 때, 우리는 그 행동을 나타내는 간단한 선
형 방정식들을 쓸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계'속의 요소들은 서로 연관된 행동을 보인다.
간단한 예로 얼음 위에서 하키 척이 가속되는 것을 보자. 퍽과 얼음 표면 사이에 마찰이 전
혀 없는 상태에서는, 척에 가한 힘과 척의 가속도 사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산뜻한 선형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힘 = 질량 * 가속도
힘을 두 배, 세 배로 증가시키면 가속도도 두 배, 세 배로 늘어난다.
그러나 불행히도 마찰이 존재한다면, 이 '계'는 비선형적이 되고, 따라서 불안정할 것이다.
제임스 글릭이 자신의 저서 『카오스(chaos)』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마찰이 존재하면 그
관계는 복잡해지고 만다. 퍽이 움직이고 있는 속도에 따라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찰에만 계속 주목하고 있을 수도 없다. 마찰의 중요도는 속도에 좌
우되기 때문이다. 한편 속도는 마찰에 좌우된다."
비선형 '계'를 상상하려는 노력은 끊임없디 규칙이 변하는 카드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미래의 조건에 대한 계산과 예측은 정확한 값에서 점점 벗어난다. 정확한 값에서 얼마나 벗
어나느냐 하는 것은 비선형성이 어느 정도냐에 의해 좌우되며, 그것을 결정하려는 것이 카
오스 이론의 초점이다. 카오스 이론을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비선형 역학을 다루는 학
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비선형성은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계'는(날씨나 물의 흐름과 같은) 비선형적이다. 마찰, 열, 공기 저항, 점성 등은 어
디에나 존재하며, 이러한 것들이 '계'안에 포함되면 그 '계'는 비선형적이 된다. 더구나 하나
이상의 힘의 작용을 받는 '계'는 어떤 것이든 비선형적이다. <그림 1>은 그러한 '계'를 나타
내고 있다. 여기에서는 쇠로 만들어진 추가 흔들리고 있고, 그 아래 양쪽에는 2개의 자석이
위치하고 있다. 추가 자석 위를 지나갈 때, 자석들은 추가 끌어당기는 힘을 작용한다. 또 두
자석의 중간 지점에 추가 있을 때에는 양쪽 자석에서 똑같은 힘을 미친다. 진자의 운동에서
비선형성이 가장 커지는 것은 바로 이때이다. 비선형성은 추의 속도나 위치가 조금만 달라
져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극도로 커진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진자의 운동은 몇 번만 왔다갔다 해도 혼돈적으로 변하여, 완전히 리
듬을 잃고 전후 좌우로 흔들리게 될 것이다. 초기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혼돈적인
'계'가 되려는 조짐이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민감한 것을 민감하다고 일컫겠는가? 런던의 퀸
메리 & 웨스트필드 대학의 수학 교수이자 카오스 이론 전문가인 아이언 퍼시벌은, 전자와
자석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민감한 정도가 매우 커서, 자석들 사이를 진자가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진자의 위치 측정
에 있어 오차가 10배씩 증가한다고 가정하자. 이는 그렇게 예외적인 가정은 아니다. 이럴 경
우, 진자가 한 번 움직인 뒤에 그 위치를 1cm이내의 오차로 예측하기 위해서는, 초기의 위
치를 1mm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 진자가 네 번 움직인 후 마찬가지의 정확도로
예측을 하려면, 초기 위치는 세균의 크기만큼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홉 번
움직인 후의 진자의 위치를 이와 같은 정확도로 예측하려면, 초기의 위치를 원자 크기보다
더 작은 단위까지 정밀하게 측정해야 한다. 진자는 뉴턴의 결정론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만, 오랜 시간이 지난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려는 것은 이처럼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만약 비선형성과 그 자식인 카오스가 정말로 도처에 존재한다면, 왜 bzkdhtm 이론은 20
세기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부각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과학자들이 과거에는 자연의 비선형
성을 대체로 무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방정식을 만들 때, 편리하게도 비선형적 요
소들을 생략해 버리고 현실 세계의 근사값을 도입하였다. 예를 들어, 갈릴레이가 빗면에 공
을 굴려 중력 운동의 기본 법칙을 도출했을 때, 그는 마찰 때문에 발생한 사소한 편차들을
무시하였다. 그리고 피사의 사탑에서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려(실제로
그가 이 실험을 행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과학사가들의 일치된 주장이지만) 이들이 똑같은
가속도로 낙하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을 때, 그는 공기의 저항을 완전히 무시하였다. 그
가 만들어 낸 선형 방정식들은 실제 세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 실제 세계의 이상
적인 모습을 반영한 것이었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접근 방법은 유효하였다. 비선형성이 충분히 크지 않은 한, 어떤 '계'
에 카오스 이론을 도입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비선형성이 뚜렷이
부각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또 결과로 나타나는 효과가 미소할 수도 있다.
태양계가 좋은 예가 된다.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의 궤도는 분명히 규칙적이다. 그렇지만
태양계는 각 천체들이 다른 천체들에 서로 영향을 미치는 다수의 물체로 이루어진 '계'이다.
이러한 '계'는 본질적으로 비선형적이어서 혼돈 상태로 변할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 제임스
글릭은 이 점을 인정하였다. "궤도들은 잠시 동안은 수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그리고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를 사용하여, 불확실성이 부각되기 전까지 제법 오랫동안 그 궤도들을 추적할
수 있다…….어떤 행성 궤도들이 점점 정상 궤도에서 벗어나, 마침내 태양계에서 영원히 떨
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날지의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확실히 모른다." MIT의 제널드
서스먼과 잭 위즈덤은 태양계 행성들의 위치와 속도에 대한 계산이 그 어떤 것이든 간에,
앞으로 400만 년 후에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이와 같이 예측을 하기 위해서는 무한에 가까운 정확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예측 불가능한 비선형적 '계'들이 자연에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변의 세상을 결
코 이해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말아야 하는가? 물론 그것은 그렇지 않다. 바로 컴퓨터가 있
기 때문이다.
카오스 이론에 대한 컴퓨터의 관계는, 생물학에 대한 현미경의 관계와 같다. 그 이유는 간
단하다. 컴퓨터는 성능이 매우 뛰어나고 속도도 빠르다(인간의 두뇌보다 수백만 배 이상 빠
르다). 컴퓨터는 비례적으로 변하지 않으며, 실제 세계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비선형 방정식들의 연산(하나의 계산에서 나온 결과를 다음 연산에서 방정식의 초기값으로
대입하는)을 수억 회 이상이나 계속해서 처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계'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볼 수 있다. 즉, 눈에 띄지 않는 아주 미소한 변화들이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크게 증폭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생태학자들이 동물의 개체수가 해마다 변하는 것을 계산하는 데 사용하는 비선형 방정식
을 예로 들어 보자.
X' = RX(1-X)
X' : 어느 해의 개체수
X : 그 전 해의 개체수
R : 그 세대의 동물 각각이 낳은 새끼의 수를 나타내는 상수(개체수 증가율)
실제로 이 방정식을 사용하려면, X와 X'의 값을 0과 1사이의 분수로 잡아야 한다. 실제
개체수는 그 분수값에 10,000이나 100,000또는 1,000,000을 곱한 값이라고 하자.
이렇게 한 해의 개체수(X)가 다음 해의 개체수(X')를 구하는 방정식에 대입되는 피드백
고리가 만들어졌을 때, R의 값에 따라 아주 이상한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R를 1로 놓
고 개체수가 0.4일 때, 해가 바뀜에 따라 이 개체수는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보자.
첫해 : X' = RX(1-X)
X' = 1(0.4)(0.6) = 0.24
두 번째 해 : X' = RX(1-X)
X' = 1(0.24)(0.76) = 0.18
세 번째 해 : X' = RX(1-X)
X' = 1(0.18)(0.82) = 0.15
매년 개체수는 점점 감소하여 0으로, 즉 멸종 단계로 접어든다. 실제로 R값이 1이나 그
이하일 경우에는, 최초의 개체수가 얼마든 상관없이 동물들을 멸종하게 되어 있다. R의 값
이 2일 때, 개체수는 결국에 0,.5에서 안정을 이룬다. R의 값이 2보다 더 클 경우, 개체수는
매년 서로 다른 값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이를 '양분화(bifurcation)'라고 일컫는다. R의
값이 더욱 커지면 양분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즉, 이번에는 개체수가 4개의 값 사이에서 왔
다갔다하며, R의 값이 계속 커짐에 따라 분기점은 8개, 16개, 32개…로 계속 늘어난다. 그리
고 R의 값이 3.75일 때에는, 신비스럽게도 매년 달라질 수 있는 개체수의 경우의 수가 무한
대가 된다. 즉, 매년의 개체수 변화가 임의로 일어난다. 이 '계'는 카오스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카오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R의 값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카오스에 의
해 다시 진행되는 기묘한 양분화가 3분화가 나타나게 된다. 모두 처음에는 간단한 비선형
방정식에서 시작하여, 무한히 심오하고 복잡한 '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카오스를 연구에 있어 컴퓨터는 아주 강력하고 소중한 도구이다. 컴퓨터는 수백만 번의
반복적인 연산 결과를 긴 수치의 리스트로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래픽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각 연산에 대한 결과를 공간상에 하나의 점으로 나타낼 수 있다면, 수많은 연
산 반복의 결과를 공간상에 하나의 점으로 나타낼 수 있다면, 수많은 연산 반복의 결과는
컴퓨터 화면상에 어떠한 형태나 그림으로 나타날 것이다. 방정식의 모든 가능한 해가 포함
될 수 있는 공간상의 영역을 '위상 공간(pgase space)'이라고 한다. 많은 연산 반복 끝에 나
타나는 것은 그 '계'의 '위상 공간 그림'이다. 이것은 방정식으로 대표되는 어떤 '계'의 장기
적 행동을 보여 준다.
만약 그 방정식이 선형적이라면, 위상 공간 그림은 단순한 곡선을 그릴 것이다. 그러나 만
약 비선형 방정식이라면, 그래서 그 '계'에서 카오스가 발생한다면 곡선들이 매우 복잡하게
뒤얽혀 있으면서도, 어떤 곡선도 다른 곡선이 지나간 자리를 다시 지나가지 않는 기묘한 모
양을 그릴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위상 공간 그림을 '이상한 끌개(strange attractor)'라고 한
다. 이상한 끌개는 카오스가 나타나는 '계'의 행동을 컴퓨터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 2>는
에드워드 로렌츠가 일련의 간단한 기상 방정식을 가지고 만든, 이상한 끌개를 묘사한 것이
다.
뉴욕 대학의 프랭크 호펜스테드는 동물의 개체수 변화를 다루는 방정식을 고성능 컴퓨터
에 집어 넣어, 1,000개의 서로 다른 R값에 대하여 수억 회의 연산을 반복해 보았다. 그 결
과, 그는 무한히 심오하며 복잡한 '계'를 발견하였다. 글릭은 이것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양
분화가 나타난 후 카오스가 나타났다. 그리고 카오스 내부에 질서를 나타내는 작은 뾰족한
끝점들이 나타났다. 비록 불안정성 때문에 순간적이긴 했지만."
이상한 끌개의 구조를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카오스적 '계'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
었다. 무엇보다도 호기심을 끄는 발견은, 이상한 끌개의 임의성 속에 질서가 내재하고 있다
는 사실이다. 카오스 연구의 대사 중 하나인 베노이트 맨들브로트는, 간단한 비선형 다항식
을 가지고 컴퓨터로 연산을 실행하다가 이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가 얻은 결과는 '프랙탈
(fractal)'이라고 하는, 매우 복잡한 형태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이상한 끌개들이었다. 이러한
프랙탈 도형이 지닌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복잡한 형태가 반복적이라는 점이다. 큰 규모를
기준하여 보면 불규칙하게 보이는 형태들이, 그 내부의 작은 규모로 내려가면서 끝없이 반
복된다. 이러한 성질을 '자기 닮음(self-similarity)'이라고 일컫는다.
코흐 눈송이는 프랙탈 도형의 대표적인 예이다. 코흐 눈송이는 그것을 발견한 헬게 폰 코
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연필과 종이를 준비하고 <그림 3>에 그려진 그림들을 순서대로 따
르면, 코흐 눈송이를 쉽게 그려 볼 수 있다. 먼저 정삼각형을 하나 그린다. 그 다음에 정삼
각형의 각 변을 3등분 하고, 각 중간 부분을 밑변으로 하는 정삼각형을 불룩 솟아오르게 그
린다. 새로 생겨난 삼각형의 각 변에 이렇게 정삼각형을 덧붙이는 과정을 계속해 나가면, 가
장자리가 솜털처럼 무수한 장식이 달린 눈송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림이 나타
내는 바와 같이, 어느 부분을 확대하든 간에 나타나는 모양은 언제나 자기 닮음 도형이다.
프랙탈 도형은 곧 예술적인 도형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거기에 여러 가지 색을 가미하
면, 프랙탈 도형은 정말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그렇지만 프랙탈의 진가는 실제 세계에
서 일어나는 일들을 묘사하는 능력에 있다. 이상한 끌개의 프랙탈적 성질로부터 우리는, 카
오스적 '계'들의 내부 구조와 그 속에 내재해 있는 질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유체의 소용돌이, 기상 예보의 불가능성, 심장 박동의 불규칙성, 면역 반응의 불확정적인 성
질, 전자 '계'들과 화학 반응의 임의적인 요동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식 시장의 주가 등락까
지도 카오스 이론을 적용하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가진 컴퓨터가 들장하면, 우리가 또 어떤 비밀을 밝혀 낼지 누가 알겠는가?
열일곱 번째 이야기
공간 여행과 시간 여행
시속 60마일(97km)로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간다면, 축구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데, 3.4초,
미국 본토를 횡단하는데 50시간, 전세계를 한 바퀴 도는 데 17일 정도가 걸릴 것이다. 그렇
다면 달이나 화성까지, 혹은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는 데에는 과연 얼마나 걸릴까? 또 가장
먼 은하까지 가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 우리는 이미 태양계 내에 있는 모든 행성들을 방
문했는데(21세기 초에 방문할 예정인 명왕성만 빼놓고), 성간 여행이나 은하간 여행은 아직
도 머나먼 꿈 속의 이야기일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공룡들이 지구 위를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능할까? 우리
가 현재 보고 있는 사물들은 정말로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변은 분명히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1) 행성 여행
자, 그럼 다시 우리의 자동차로 되돌아가, 지구에서 다른 행성들과 별들, 그리고 은하들로
연결되는 우주 고속 도로를 따라 여행을 해 보자.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시속 60마일의 속도
로 계속 달린다면, 달에 도착하는 데 6개월, 지구와 가장 가까이 있는(26개월마다 한 번씩
일어남) 화성까지는 93년, 태양계에서 가장 바깥쪽에 있는 행성인 명왕성까지는 6800년 이
상 걸릴 것이다.
6개월 정도라면 또 모르지만, 93년이나 걸린다면 누가 그곳에 가려고 하겠는가? 우리가
화성에 도착할 때쯤이면 우리의 증손자들이 우리의 시체를 화성에 묻을 것이다. 명왕성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지구에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후 흐른 시간과 거의 맞먹는다.
시속 60마일의 자동차로는 도저히 행성간 여행을 해낼 수 없을 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는
자동차보다 훨씬 더 빠른 운송 수단들을 가지고 있다.
1947년에 미 공군의 찰스 척 이거는 사상 최초로 시속 1,078km 이상의 속도로 음속의 벽
을 넘었다. 6년 후 그는 그보다 2.5배나 더 빠른 비행기를 조종함으로써, 해로운 기록을 세
웠다. 이때까지 인간이 직접 탑승한 물체가 가장 빨리 달린 기록은 39,897km/h로, 1969년
아폴로 10호의 사령선이 세운 것이다. 무인 우주선은 이보다 훨씬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독
인에서 만든 NASA의 헬리오스(Helios) 태양 탐사선은 185,391km/h, 즉 초속 51km의 속도
로 달린다(헬리오스가 태양에 가장 근접한 지점에서 돌 때는 초속 94.2km의 속도까지 낼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속도일 뿐이다). 이 속도라면 먼 행성을 탐사하려는 우리의 목적
을 적절히 충족시킬 것 같다. 그러니 이제 자동차는 차고에 갖다 놓고 헬리오스로 옮겨 타
기로 하자(사실 우리는 거기에 올라탈 수 없다. 헬리오스는 무인 탐사선이니까). 초속 51km
의 속도로 달린다면, 지구를 한바퀴 도는 데 1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달에 도착하는
데는 2시간, 화성까지는 18일, 명왕성까지는 6,800년 3년 반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정도면
근사하지 않은가!
2) 다른 별 7가지의 여행
그러나 아직 다른 별들까지 가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가장 가까운 별은 (물론 태양은 제
외하고), 프록시마 센타우루스(Proxima Centauri)이다. 프록시마 센타우루스는 약 40조km
거리에 있는데, 이것은 명왕성보다 7천 배나 더 먼 거리이다. 헬리오스를 타고 간다 하더라
도 거기에 도착하는데 2500년이나 걸린다. 그 밖의 별들은 우리 은하 안에 있는 별들이라
하더라도, 프록시마 센타우루스보다 수백 배 내지 수천 배나 더 멀리 떨어져 있다. 다른 은
하들은 이보다 훨씬 더 먼 거리에 있다. 은하수를 이루고 있는 우리 은하에는 그 나선팔들
을 따라 수천억 개의 별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들은 모두, 우리
은하의 나팔선에 있는 별들 중 일부이다. 다른 은하들 속에 있는 별들은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서, 대형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으면 개개의 별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수조 개
이상의 은하들 중 단지 다섯 개의 은하만 육안으로 간신히 볼 수 있다).
별이나 은하들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마일이나 킬로미터를 거리 단위로 쓰는 것
은 부적절하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광년이라는 단위를 쓴다. 1광년은 진공 속에서 빛이 1
년 동안 달릴 수 있는 거리를 말하며, 약 9조5천만km에 해당한다. 프록시마 센타우루스는
지구에서 약 4.2광년의 거리에 있다. 다시 말해, 이는 빛의 속도로 달린다 하더라도 4.2년이
걸리는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발했듯이, 광속의 6천분의 1의 속도로 달리는 헬리오
스를 타고 가면 약 25,000년이 걸린다. 우리 은하를 가로질러 가는데에는 빛의 속도로 10만
년, 헬리오스를 타고 가면 약 6억 년이 걸린다. 실로 엄청나게 먼 거리다. 우리와 가장 가까
운 별까지라도 가는 도중에 늙어 죽지 않고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3) 속도를 더 빨리
초속 51km는 성간 여행을 위한 속도로서는 너무 느리다. 성간 여행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가 필요하다. 우주 공간과 같은 진공 상태에서 빛(초속 약30만
km)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그러한 속도에 이르게 하기 위
해 오랫동안 계속적으로 추진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추진을 시키면 가속도가 필요하
다(g은 중력 가속도의 단위이다. 1g는 공기의 저항을 무시할 때, 지구에서 사과가 땅에 떨
어지는 가속도와 같다). 이 값은 32ft/s2,즉 9.8㎨이다. 달리 말하면, 높은 빌딩의 옥상에서 돌
을 아래로 떨어뜨릴 때, 1초 후 그 돌은 9.8m의 속도를 가지게 되고, 2초 후 19.6m, 3초 후
에는 29.4m의 속도를 내며, 매초마다 속도가 9.8m씩 증가해 간다. 이러한 비율로 우주선을
가속시켜 나가면, 1년 후에는 광속에 rkRKdns 속도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빛의 속도는 고사하고 거기에 가까운 속도에도 근
접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로켓은 화학 연료로 추진되는데,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연료로는 부적합하다. 로켓 엔진에서 일어나는 연소는 비핵
반응으로, 단순히 연료를 태우는 매우 비효율적인 과정이다. 화학 연료는 충분한 추진력을
낼 수 없을뿐더러, 풍족할 정도의 연료를 로켓에 적재할 수도 없다.
핵 추진 방법은 이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며, 실제로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핵
분열 반응로-원자 폭탄이나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에너지를
방출하는-는 현재의 기술로도 실현 가능하다. 이것을 사용하면 광속의1%까지 가속하는 것
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태양계 외곽에 있는 행성들까지 3∼4주면 갈 수 있다. 그러나 프록시
마 센타우루스까지는 아직도 400년이나 걸린다.
핵 추진 방법 중 보다 효율적인 것은 핵융합 반응-태양을 비롯한 별들과 수소 폭탄의 에
너지 방출 방법-이다. 불행하게도, 현재의 기술로서는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우리 마음대로
통제하며 방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미래에 이용될 가상 기술 중에는 우주선에 연료를
전혀 싣지 않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이 우주선은 태양풍(태양에서 고속으로 방출되는
고에너지를 가진 전하 입자들의 흐름)의 에너지를 받아 사용한다. 이론상으로 이러한 우주
선은 성간 여행에 필요한 1g의 가속도에 충분히 이를 수 있다. 우주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
의 머릿속에는 더 환상적인 계획들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물질-반물질 엔진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우주 공간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수소 원자들을 모아 핵연료로 사용한다.
우리가 비록 광속이나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달릴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일생 동안에
갈 수 있는 장소들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우리 은하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별들은 약 8만
광년의 거리에 있다. 한편,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인 대마젤란운은 무려 17만 광년
의 거리에 있고, 가장 먼 곳에 있는 은하들은 약150억 광년의 거리에 있다. 우주가 이렇게
광대할진대, 설사 빛의 속도로 달린다 해도 우리가 탐사할 수 있는 장소는 우리 주변의 몇
백여 개의 별에 국한되고 말 것이다.
물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4) 시간 여행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물체들에게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 물체와 그 물체에
타고 있는 어떤 물건이나 사람에게라도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이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내용이며, 원자 시계를 사용한 실험으로도 확인된 것이다.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은 단지 시계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며, 화학 반응과 생물학적 과정들도 느려진다. 이러
한 현상은 '시간 지연(time dilation)'이라고 한다.
운동 속도와 시간 변화 사이의 관계는 간단한 직선적인 관계가 아니다. 즉, 광속의 절반
또는 4분의 1의 속도로 달린다고 해서, 시간이 흐르는 속도도 마찬가지로 절반이나 4분의 1
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 지연 현상이 눈에 띌 만큼 나타나기 위해서는, 속도가
광속에 아주 가까워져야 한다(<표 1> 참고). 그러나 광속에 아주 가까운 속도로 달리면 경
이로운 일이 일어난다. 그러한 속도에서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지구에 머물러 있는
사람보다 천분의 1이나 만분의 1정도의 느린 속도로 흐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구에 머물
러 있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10만 년의 시간 동안,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여행하는 사람은
10년밖에 늙지 않는다. 그 동안 셀수없이 많은 세대들이 태어나고 죽고, 많은 문명들이 새로
생겨나고 스러져 가고, 또 빙하가 오고 갈지 모르지만, 우주선을 타고 가는 사람에게는 오직
10년이라는 세월밖에 흐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여행하는 사람은
이 시간 지연 현상 덕분에 아주 먼 별이나 은하까지 여행할 수 있게 된다.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높은 속도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시간 지연은 우리의 일생 동안에 찾아갈 수 없는 먼 우주를 탐사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일종의 시간 여행도 가능하게 해준다. 만약 우주 여행자들이 지구 나이로 1만 살까지 살 수
있다면, 그들이 지구로 돌아왔을 때는 1만 년 후의 미래를 경험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들은
9920년 전에 죽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수명을 80년이라 계산한다면).
그렇지만 시간 지연은 진정한 의미의 시간 여행은 아니다. 우리가 과거의 모습을 보고 있
는 또 다른 현상 역시 진정한 의미의 시간 여행은 아니다. 우리는 또한 빛이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어디로 이동하기까지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빛은
순간적으로 이동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빛이 달에서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 약 1초가 걸
린다. 태양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는 약 8분 정도 걸린다. 프록시마 센타우루스 별에서 지구
까지 빛이 도달하는 데 약 4.2년이 걸리며, M104라는 은하에서 지구까지 빛이 오는 데에는
약 4천만 년이 걸린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달의 모습은 1초 전에 존재하던 모습이며, 태양
의 모습은 8분 전에 빛을 내뿜던 모습이다. 또 프록시마 센타우루스의 모습은 4.2년전, 그리
고 M104은하의 모습(고성능 망원경이 있어야 볼 수 있겠지만)은 4천만 년 전의 것이다. 우
리가 보는 모든 것은 과거의 모습이지, 지금 현재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 갑자기 폭발하여
사라진다해도, 앞으로 8분 동안은 태양이 그대로 존재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8분 동안 원래 존재하던 것과 똑같은 태양의 중력을 여전히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반대도 성립한다. 즉,M104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은 4천만 년 전에 존재하던 지구
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광학 망원경이 무한대의 관측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오래 전의 과거까지 볼 수 있을까? 우주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경계는 약 150억 광년으
로 추측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먼 과거의 모습도 150억 년 정도일 것이
다. 그것은 빅 뱅(Big Bang)이라는 사건으로 인해 우주가 막 탄생한 시점이다. 그 거리 밖
으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 그 시간 이전에는 어떠한 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
실상, 그 이전에는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득히 먼 과거의 모습은 백열의
불빛으로만 보일 것이다. 그것은 우주 도처에서 처음으로 생겨나고 있는 빛 에너지의 모습
으로, 정확하게는 빅 뱅 후 약 30 만 년간은 불투명했다(천문학자들이 '우주의 경계'를 본다
고 말할 때의 우주의 모습은, 빅 뱅 후 30만 년이 경과했을 때의 모습이 아니다. 그보다 훨
씬 지난 빅 뱅 후 10억 년에서 20억 년 사이에, 별과 은하들이 처음으로 생성될 당시의 모
습을 가리킨다).
M104 은하의 어떤 별 주위를 돌고 있는 한 행성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 행성은 표면
이 완전히 부드럽고 반짝이는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빛을 매우 잘 반사한다. 이 행성의
이름을 거울-X라고 부르자. 그리고 지구의 천문학자들이 거울-X행성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빛을 포착할 수 있을 만큼 성능이 좋은, 대형 광학 망원경을 개발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지구의 천문학자들이 망원경을 거울-X행성으로 들이댔을 때, 그들은 마치 거울에 비친 자
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거울- X행성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다만 거울-X행
성까지 빛이 가는 데 4천만 년, 거기서 빛이 반사되어 돌아오는 데 다시 4천만 년이 걸린다.
결국 천문학자들은, 거울-X행성에서 자신들의 모습 대신 지표면 위를 걸어다니고 있는
공룡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의 모습을 보게 되는 이러한 현상 역시 시간 여행은 아니다. 어떤 이론 물
리학자들은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로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
의 이론으로도 그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다. 회전하는 블랙 홀과 화이트 홀, 윔 홀과 슈퍼스
트링(superstring)이 필요하고, 어쩌면 전체 우주에 존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까운 장래에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마련되지는 않겠지만, 그
동안 생각해 볼 시간은 충분한 셈이다.
열여덟 번째 이야기
화성, 제2의 우리의 고향(1)
1976년 여름, 미국의 우주 탐사성 바이킹 1호와 비이킹 2호가 화성에 착륙하였다. 이들은
화성의 토양을 채취하여 분석한 결과, 대부분 규소와 철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학적으로는
산소와 결합한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철과 산소가 결합한 것은 녹으로서, 화
성이 불그스름한 색을 띠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두 우주 탐사선은 화성의 토양을 면밀
히 조사한 결과, 생명의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으며, 생명체가 태어날 수 있는 기본 물
질인 유기 물질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공기의 조성도 분석하여, 대부분이 이산화탄소
(95%)와 질소(2.7%), 아르곤(1.6%)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밝혀 내었다.
그러니까 화성의 공기는 우리가 호흡할 수 없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화성의 대기
는 너무나도 희박하여, 그곳에 가 있으면 우리 몸의 피는 끓어오르고 말 것이다. 화성 표면
의 공기 밀도는, 지구에서 해발 32km 상공의 공기 밀도와 비슷하다. 또한 화성의 하늘은 파
르스름한 하늘색이 아니라, 연어 살빛과 같은 불그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
았더니 미국 몬태나 주의 크기와 맞먹는 거대한 화산이 있었고, 그랜드캐넌보다 4배나 더
깊은 계곡이 미국 전체의 길이만큼이나 길게 뻗어 있었다. 액체 상태의 물은 한 방울도 발
견되지 않았다. 평균 기온은 -60℃로서, 지구의 그 어떤 곳보다도 더 추웠다.
바이킹호 이후로 화성 표면에 로봇 탐사선을 착륙시킨 적은 없다. 구소련에서는 1988년에
포보스 1호와 포보스 2호를 화성에 보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하나는 화성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고, 다른 하나는 착륙에 실패했다. 미국은 1992년에 탐사선 마스옵서버(Mars
Opserver)호를 보냈으나, 화성에 도달한 후 교신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18년 동안에 화
성의 환경이 변했을 리는 만무하다. 화성은 정말로 황량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성
은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처럼 우리를 손짓해 부르며 유혹한다.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이 붉
은 행성에 매력을 느껴왔다. 화성(Mars)이라는 이름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마르
스(Mars)'에서 따온 것이다 .아마도 화성의 붉은빛이 전사들이 흘리는 핏빛을 연상케 했기
때문일 것이다.
1877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는 망원경으로 화성을 바라보다가 화성
표면에 규칙적으로 줄이 쳐져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물이 흘러간 길이라고 생각하여 '카날
리(canali)'라고 불렀다. 어떤 과학자들은 그것을 화성에 사는 영리한 생물이 인공적으로 만
든 운하나 수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빌 로웰이 이러한 생
각을 공공연하게 퍼뜨렸다. 그리하여 일반 대중들 사이에는 20세기에 접어들어서도 한참 동
안이나, 화성에 지능 생물이 존재한다는 그릇된 생각이 널리 퍼지기도 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줄무늬들이 지능이 높은 생물이 만들어낸 인공 건조물이 아니라,
한때 화성 표면을 흘렀던 강물이 깎아낸 자연적인 지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실제로 화
성은 먼 옛날에는 물이 흘렀고, 더 따뜻했고, 공기도 더 많았다. 과학자들은 화성에서 생명
이 태어나기 충분할 정도로 물과 공기가 풍부했고, 기온도 따뜻했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그후 화성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리고 만약 그 과정을 거꾸로 되
돌린다면, 화성은 다시 생명이 살기에 적절한 곳으로 변할 수 있을까? 태양에서 네 번째에
위치한 이 붉은 행성을 우리의 제2의 고향으로 만들려면 어떤 기술들과 생태학적 기적들이
필요할까?
1) 무엇이 잘못되었나?
대기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화성은 생성 후 10∼20억 년 사이에 대기를 잃었으나, 지구
는 그렇지 않았다. 두 행성 모두에 있어 대기는 주로 화산 분출을 통해, 혹은 유성들이 대기
중이나 지상에 충돌하여 기화함으로써, 또는 지각의 다공질 암석 속에 갇혀 있던 기체들이
방출됨으로써 생성된 이산화탄소 기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러한 자연적 과정들은 지구와
화성의 역사 초기에 상당한 양의 대기를 생성시켰다. 한편,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진 대기는
'온실 효과'로 알려져 있는 과정을 통해 태양열을 대기에 가두었다. 온실 효과때문에 행성들
은 따뜻해졌으며, 그 결과로 물이 액체 상태로 흘러가고 비가 되어 쏟아지게 되었다. 화성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지구의 1.5배에 달하기 때문에 온도가 상승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화성에서는 다른 뭔가가 잘못 되었던 것이다.
그 해답은 크기에 있다. 화성은 지구에 비해 꽤 작어서, 지름은 지구의 절반 정도이고 질
량은 10분의 1밖에 안 된다. 화성 표면에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는 지구 표면의 38%에 지나
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몸무게가 100kg인 사람은 화성에서는 38kg에 불과할 뿐이
다. 이처럼 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수십억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벼운 기체 분자들
이 우주 공간으로 빠져 나갔다.
그렇지만 우주 공간으로 빠져 나간 가벼운 기체들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 수도 있
다. 이산화탄소는 비교적 무거운 기체이기 때문에, 쉽사리 우주 공간으로 탈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크기는 그 밖의 다른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화성은 크기가 작고
중력도 작기 때문에, 지구처럼 강력한 내부 압력이나 지하열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지구에
서는 압력과 열로 인해 지각의 상당한 부분-'판'이라 부른다-이 움직인다. 이 판들의 움직임
은 '판 구조론'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대륙을 이동시키는 근본 원인이 된다. 그렇지만 화
성에서는 눈에 띌 만한 판 구조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결국 대기를 잃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판 구조론과 대기 사이에 관계는 상당히 미묘하고 복잡한 것이다. 그것이 지구에서 어떻
게 작용했는지를 알아보기 전에, 화성에서는 왜 작용하지 않았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이산화탄소 기체는 액체 상태의 물에 일정량이 녹아, 탄산이라 일컬어지는 약산을 만든다.
탄산은 지각 중의 물질과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석회석과 같은 탄산염을 만든다. 화성에서는
탄산염 생성이 활발하게 일어나므로,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서 효율적으로 걸러 내었다. 수
백만 년 또는 수십억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화성의 대기는 지구의 1% 미만(정확하게는
0.8%)으로 감소하였다. 또한 화성은 작은 크기로 인해 중심부가 지구보다 훨씬 더 빨리 냉
각되어, 화산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로써 화산 활동을 통한 공기 공급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대기 중의 상당량이 없어짐에 따라 화성은 춥고 건조한 행성이 되고 말았다. 액체 상태의
물은 끓어서(대기압이 낮을수록 물은 낮은 온도에서 끓는다) 증발해 버리고, 기체 상태의 물
은 바로 얼어 버렸다(마찬가지로 지구도, 높은 대기층에서는 기체 상태에서 바로 눈으로 변
한다). 지표면 아래에 갇힌 물은 얼어 버렸다. 현재 화성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은, 표면
아래의 영구 동결층과 극관을 이루는 얼음층(대부분은 이산화탄소가 언 것이지만)에 포함되
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화성의 대기압하에서는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화성에서 강물이 흐르거나 물결이 출렁거리는 호수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여름
에 얼음 상태의 물이 열을 받으면, 그것은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곧바고 기체상태로 변
한다(이 과정은 '승화'라 부른다).
그렇지만 지구에서는 판 구조론 때문에 전혀 다른 역사가 전개되었다. 지각 판들이 움직
이고 이동할 때, 두 판의 경계는 서로 충돌하면서 한 판이 다른 판 밑으로 밀려 들어가게
된다. 밑으로 밀려 들어가는 암석은 약간의 열을 받게 되는데, 이 열이 암석 중의 탄산염에
서 이산화탄소 기체를 방출시킨다. 이산화탄소 기체는 결국 지표면으로 스며나와, 대기에 새
로운 이산화탄소 기체를 보충시켜준다. 화산 활동 또한 대기에 기체들을 공급해 준다(<그림
1>참고). 대기압도 증가하고, 액체 상태의 물이 흐르고, 결국 생명이 진화하게 되었다.
화성에서 생명이 진화할 기회가 있었는지의 여부는 관심을 끄는 의문점이다. 지구에서 최
초의 생명은 38∼40억 년 전에 출현하였다. 화성도 역시 그 당시에는 분명히 물이 있었고,
기체도 풍부하게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이 매우 혹독해지기 이전에 화성에서는 미생
물체가 출현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만약 그랬다면, 생명체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영구 동결
층이나 지각 아래의 암석층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생명체가 화성의 극심한 환경을 견디고
살아 남아, 영구 동결층 나래에서 아직도 존재할 가능성은 사실상 거릐 없다. 비록 영구 동
결층이 좀더 따뜻하고,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하고(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물의 존재
는 필수적이다.「기적의 분자」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태양의 치명적인 자외선이 화성의 엷
은 대기를 뚫고 내리쬐는 것을 막아 줄 수 있다 해도 그렇다. 지구의 남극 대륙 깊숙한 곳
은 기온이나 액체 상태의 물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화성과 유사하지만, 그곳에는 간단
한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한다.
이들 질문들에 대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화성으로 돌아가 생명체나 생명체의 화석
이 있는지에 대하여 광범위한 탐사를 하는 것이다.
2) 생명체를 찾아서
우리가 그것을 실행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므노, 지그쯤 우리는 이미 화성에 가있어
야 한다. NASA의 우주 탐사선 마스 옵서버호는 1993년 8월 24일에 화성에 도달하여 궤도
로 진입했으며, 맡은 임무를 수행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불
가사의하게도 지구와의 교신이 두절되는 바람에 마스 옵서버호의 활동을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러시아가 화성 탐사의 주도권을 잡았다. 러시아는 궤도 비행선, 착륙선, 이동
선 등으로 이루어진 우주 탐사선단을 만들어 화성 탐사 계획을 세웠다. 화성'94/화선'92로
명명된 2단계 계획에는, 미국과 유럽 연합도 제한된 범위나마 함께 참여한다.
(1) 화성'94
이 계획은 1994년 9월에 화성 탐사선을 발사하여, 11개월 후인 1995년 8월에 화성에 도착
하기로 짜여져 있다. 여기에는 두 대의 착륙선과 두 대의 시추 장비가 포함되어 있다. 시추
장비란 창처럼 생긴 것으로, 시간당 480km까지 화성의 땅을 뚫고 들어갈 수 있다. 이들 장
비는 표면 아래의 토양을 분석하고, 지진 활동을 측정하는 한편, 기상 측정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착륙선은 토양을 분석하면서, 생명체의 존재를 시사하는 유기물과 화성을 녹슬게 만
든 화학 물질을 찾는 임무를 수행한다. 공중 사진도 찍게 될 것이다.
(2) 화성'96
이것은 화서'94보다 더 야심 찬 계획이다. 발사 예정 날짜는 1996년 10월이며, 화성 도착
예정일은 1997년 9월이다. 이 계획에는 대형 궤도 비행선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비행선에서
이동선과 풍선 탐사 장비를 내보내게 된다(풍선 탐사 장비는 프랑스와 미국이 공동으로 지
원하는 프로젝트이다). 이동선은 화성의 표면을 달리면서, 광범한 지역에 걸쳐 화성의 토양
과 지질학을 탐사하게 된다.
대형 이동선으로 이동하기에는 너무 좁은 지역의 탐사를 위해, 소형 탐사선이 잡재될 수
도 있다. 풍선은 화성의 밤낙(지구와 마찬가지로 하루의 길이는 약24시간이다)에 따라, 그리
고 온도가 오르고 내림에 따라 상승과 하강을 되풀이하면서 기상 측정과 화성 표면의 공중
사진을 찍게 된다. 또한 풍선에서는 'Snake'라는 긴 밧줄이 아래로 내려오게 되는데, 그 끝
에는 화성이 표면과 표면 아래의 토양을 분석하는 장비가 달려 있다. 화성'96의 완전한 계획
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계획에는 화성에서 생명의 존재를 찾으려는 시도가
반드시 포함되어야만 한다.
(3) 미국의 노력
1994년 2월에 미국은 화성 탐사 분야에서 독자적인 계획을 마련하기로 했다. NASA는 화
성의 대기와 토양, 기후, 지형 등을 연구하기 위한 10년간의 계획을 세웠으며, 이미 초기 예
산을 받아 일을 시작하고 있다. NASA는 1996년 11월을 시작으로, 두 대의 소형 우주 비행
선을 발사시켜 10개월 후에 화성에 도착하게 할 것이다. 마스 서베이어(Mars Surveyor)호
는 2년 이상 화성 주위를 돌면서, 사진을 찍고 기상 정보를 수집할 것이다. 또 다른 탐사선
패스파인더(Pathfinder)호는 화성에 이동선을 착륙시켜, 30일 동안 일부 지역의 지형을 조사
하게 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또 다른 궤도 비행선들과 착륙선들을 1998년과 2001년에 발사할 계획도 갖고
있다. 발사 날짜는 화성이 지구에 가장 근접하는(매 26개월마다 한 번씩 일어남) 시간을 따
져서 정해질 것이다. 2001년 이후의 발사 계획은 아직 미정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로봇 탐사
선을 보내 화성의 암석과 토양, 공기 표본들을 채집하여 지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NASA
의 희망이다.
그렇지만 러시아와 미국 양쪽의 계획 모두에서, 여러분은 뭔가 빠진 것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인간을 화성에 보낸다는 계획이 빠진 것이다. 과연 그것은 가능한가? 그
리고 우리가 화성에 갈 수 있다면, 화성을 숨쉴 수 있는 공기와 마실 수 있는 물이 흐르는
행성으로 변모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는 화성을 제2의 고향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쨌
거나 성실한 우리의 과학자들은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3) 화성 여행
화성을 변모시키는 것을 생각하기 전에, 우리는 우선 그곳에 도착해야 한다. 대기 중에 풍
선들이 떠다니고 이동선이 녹슨 표면 위를 달리고, 시추 장비들이 녹슨 암석과 땅 밑을 쑤
시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우리는 사람을 화성에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달까지의
여행보다 200배나 더 긴 여행이다.
이것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고려되고 있다. 화성까지 우주선을 발사하고
착륙시키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게(초기의 개척자들이 화성에 영원히 거주하지는 않을 것이
다) 하는 데에는 약 100톤의 연료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너무 무거운 하중이다.
사용 연료를 줄이기 위해, 과학자들은 지구 주위를 도는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선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100∼400억 달러를 들여 1999년까지 완성될 계획인 프리덤(freedom)같
은 우주 정거장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선을 발사하고 착륙시키면, 지
구의 중력을 탈출하는 데 소요되는 상당량의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
문제는 오늘날과 같은 경제 난국의 시대에는 우주 정거장의 장래가 확실치 않다는 점이
다. 미국의 클린턴은 NASA에 프리덤보다 더 작고 비용이 적게 드는 우주 정거장을 건설하
라는 주문을 하였다고 한다. 러시아는 이미 1986년 2월부터 미르(Mir) 우주 정거장을 운영
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르가 화성 탐사선을 만드는 기지로 이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한편, 우주 탐사선을 착륙시키는 데 드는 연료의 양을 줄이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있
다. 그 기술은 '공중 포획(aerocapture)'이라고 불린다. 보통 어떤 행성에 접근하는 우주선은,
로켓의 추진력을 사용하여 속도를 틎추고 행성의 중력에 포획된 다음, 그 행성의 주위를 돌
게 된다. 그리고 이 속도를 늦루는 과정에 상당량의 연료가 소모된다. '공중 포획' 방법에서
는, 우주선이 화성 근처를 지나가 우주 저편으로 계속 나아간다. 또 화성의 중력이 우주선을
포획하여 궤도를 선회하게 만들어, 화성 주위를 돌게 한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우주선의 속
도를 감속할 필요가 없으므로, 상당령의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
최선의 기술로 생각되는 것은 '화성 현지 조달(Mars Direct)'방법이다. 이것은 새로운 기
술이라기보다 새로운 사고라고 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이는 화성 현지에서 필요
한 자원들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먼 훗날에 우리가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면, 진지
하게 고려할 만한 방법이다. 어쨌든 우리는 화성에 바다를 만들 수 있는 물이나, 충분히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싣고 갈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화성 현지 조달 방법은, 최초의 바이킹호 착륙선과 마스 옵서버호를 만들어 낸 회사인
Martin Marietta Astronomics사의 로버트 주부린이 제안하였다. 이에 따르면, 화성으로 보
내는 우주선은 식민지 개척을 위해 필요한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수톤의 액화수소(H2)도 가
져가야 한다. 이 수소는 화성의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CO2)와 결합시켜, 메탄 기체
(CH4)와 수증기(H2O)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메탄 가스는 천연 가스이다. 우리는 조리를
하고 난방을 하는 데 메탄 가스를 사용한다. 따라서 메탄 가스를 로켓의 연료 탱크에 넣어,
우주선을 지구로 돌려보내는 연료로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메탄을 연소시키기 위해서
는 산소(O2)가 필요하다. 산소는 생성된 물을 전기를 사용하여 분해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나온 수소 부산물은 다시 처음 공정으로 되돌려 재순환시킨다(<그림 2>에 모든 화
학적 과정이 도해되어 있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화성에 도착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춥고,
메마르고, 녹슬고, 거의 공기가 없는 적막한 사막을 온화하고, 물도 충분히 있고, 생물들이
넘치는 세계로 만들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까?
열아홉 번째 이야기
화성, 제2의 우리의 고향(2)
이제 우리는 만약 인류가 화성을 식민지로 삼아, 제2의 지구로 만들기 위하여 모든 노력
과 기술을 경주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볼 차례이다.
세부적인 전략에서는 행성과학자들의 의견이 갈리기도 하지만, 화성을 지구처럼 만들기
위한 전체적인 접근 방법은 대체로 일치한다. 앞으로 이것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다룰
것인데, 여기에 소개된 내용은 대부분 NASA의 에임스 연구센터에 근무하는 행성과학자 크
리스토퍼 매케이, 대기과학자 오언 툰,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대기과학자 제임스 케이스
팅 등 세 사람이 행한 화성의 지구화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1) 1단계 : 캠프 세우기(2010∼2030년)
시작 날짜는 우주 계획의 우선 순위에 따라 크게 변할 수 있지만, 기술적인 관점에서 본
다면 2010년경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 단계는 인간이 화성에 최초로 발을 내딛는 것이 포
함된다. 물론 우주복을 입은 상태로 화성에 착륙한다. 화성은 동물을 환영하는 세계가 아니
다. 평균 기온은 -60℃이고, 대기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대기압이 매우 낮기 때문에, 우주
복을 입지 않고 화성에 내린다면 우리의 고막은 터져 버리고, 몸 속의 피는 끓어오를 것이
다. 그리고 태양 광선은 몇 분만 쬐어도 치명적이다. 마실 물도 없고, 호흡할 산소도 없다.
최초의 개척자들은 미리 만든 유리 구 모양의 바이오스피어 안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바이
오스피어는 1개당 열 두 사람 정도를 수용할 것이며, 생태학적인 자급 자족, 즉 물질 재 순
환의 원칙에 따라 작동된다(수년간 시험하여 제한적인 성공을 거둔, 애리조나 주에 있는 바
이오스피어와 같이).
개척자들은 시인이나 정치가, 혹은 변호사도 아니다! 그들은 각각 다른 분야를 전공한 과
학자들로, 주로 생물학자, 화학자, 지질학자, 엔지니어, 기술자, 의료진 등으로 이루어질 것이
다
그들의 임무는 화성을 탐사하는 것이다. 지표면과 지표면 아래, 대기, 기상, 방사능, 자기
장 등을 조사하고, 병에 걸린 다른 사람들을치료하고, 고장난 장비들을 고치는 일 등도 여기
에 포함된다. 바이오스피어 외부와의 교신은 무선 통신을 통해 수행한다. 이 단계에 드는 비
용은 약 4,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것은 미국인들이 같은 기간에 핫도그, 피자, 유선 TV등
에 소비하는 비용보다 훨씬 적다.
그러나 1단계는 화성을 개조시키는 단계라 할 수 없다. 유리구안에서 살고, 우주복을 입고
조사하는 것은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본격적인 개척 사업은 2단계에서
시작된다.
2) 2단계 : 온도를 높이는 단계(2030∼2130년)
간단히 말해, 화성은 너무 춥고 공기가 거의 없어서 생명이 살아갈 수 없다. 화성의 온도
가 그렇게 낮은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지구의
1.52배나 멀리 있어, 지구가 받은 태양열의 43%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밖의 모든
조건을 감안할 때, 화성은 지구만큼 온도를 높이거나, 또 높인 온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
다. 그러나 행성과학자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비결은 흥미로베고 화성에 대기
를 공급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추운 겨울밤에 잠을 잘 때, 이불이나 담요를 머리 위까지 푹 뒤집어쓴다. 그렇게
하면 이불 속에서 따뜻하게 잘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기도 행성에 대해 이불이
나 담요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이른바 ;온실 효과'를 통해 행성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역
할을 하는 것이다. 사실상 화성은 열을 붙잡아 두어 따뜻한 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담요를
가지고 있지 않다. 2단계에서는 화성에 그러한 담요를 제공하여, 화성의 평균 온도를 -60℃
에서 결빙점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 사화산(死火山)에 원자폭탄을 터뜨려 대량의 이산화탄소 기체와 수증기를 분출
하게 만드는 방법을 포함, 꽤 많은 방법들이 제시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
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화성 현지의 화학 공장에서 온실 효과 기체들을 생산하여, 대기 중으로 방출한다. 가장
효과적인 온실 효과 기체는 염화불화탄소(CFC)이다. CFC는 프레온 가스와 같은 냉매로 사
용되며, 이전에는 에어로졸을 뿜어 내게 하는 기체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CFC는 대기권
상층에서 지구를 태양의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오존층을 파괴하기 때문에, 현재 사용
이 규제되고 있다. 그렇다 해도 화성에는 아직 오존층이 없으며, 제1의 관건은 화성의 온도
를 높이는 것이다.
화성의 토양에는 CFC를 만드는 원료 물질들인 염소, 불소, 탄소, 수소 등이 풍부하다고 천
문학자들은 믿고 있다. 화학자들은 이들 원료를 사용하다고 천문학자들은 믿고 있다. 화학자
들은 이들 원료를 사용하여, 다량의 CFC를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대기과학자 오
언 툰은 "우리의 계산에 따르면, 화성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당장 필요한 CFC의 양은 지구
에서 1년간 사용하는 수백만 톤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문제는 CFC 태양의 자외선에 의
해 금방 분해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개척자들이 해결해야 할 한 가지 숙제는, 태양의 자외선
에 대해 안정적인 CFC분자를 합성하는 것이다.
극 지방의 얼음층에 어두운 물질을 뿌린다. 어두운 색의 물질은 적외선을 흡수하므로, 밝
은 색의 물질보다 더 효율적으로 열을 흡수한다(겨울에는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여름에는
밝은 색의 옷을 입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이 얼어 있는 극관의
온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들 얼음층은 기화(승화)하여, 대기 중의 CFC물질들
과 합류할 것이다.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도 매우 효율적인 온실 효과 기체들이다(지구에서는 물이 가장 강력한
온실 효과를 발휘한다). 어두운 물질은 화성의 두 위성인 포보스(Phobos)와 데이모스
(Deimos)에서 채취해 올 수 있다. 이 두 위성은 태양에서 가장 어둡고 반사를 잘 하지 않는
천체들 중에 포함된다.
거대한(지름이 수km에 이르는) 집광 렌즈들을 화성의 극 지방 주변에 배치하고 태양광을
극관에 집중시켜,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게 한다.
CFC와 이산화탄소, 수증기가 대기 중에 쌓이면, 이제 하나의 순환이 시작된다. 이들 기체
들은 화성 표면에서 우주 공간으로 탈출하는 열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함으로써, 화성의 온
도를 상승시킨다. 이것은 또한 얼어 있는 이산화탄소와 물의 기화를 더욱 촉진시켜, 온도 상
승 효과를 더 높이기도 한다. 화성의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토양과 다공질 암석층 속에 갇
혀 있던 이산화탄소, 질소, 수증기 등이 스며나와 이들 역시 대기층에 합류하게 된다. 영구
동결층-땅 밑에 물과 이산화탄소 등이 얼어 있는 층-도 해빙되어, 대기 중으로 기체를 방출
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결과로 인해 화성의 온도는 상당히 올라갈 것이다. 수십 년 안에 화
성의 평균 기온은 -60℃에서 -40℃로 올라가고, 50∼100년 이내에 물이 녹는 온도까지 상승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영구 동결층이 땅 속 아주 깊이 -500m정도 아래라 하더라
도-존자한다면, 100년 아니라 10만 년이 걸릴 수도 있다.
2단계 사업에 드는 비용은 1단계보다 훨씬 비싼, 약 수십조 달러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
상된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온도가 상승하여 극관과 영구 동결층이 녹으면, 화성은 전에 생각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물로 넘칠 것이라고 한다. 연못과 호수가 생기고, 어쩌면 바다까
지 생길지도 모른다. 생명체는 물을 반드시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것 역시 개척자들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나쁜 면도 지니고 있다. 1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산화탄소 기체는 물에 대해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이산화탄소 기체는 물 속에 녹아 들어
가, 결국은 지각 중의 석회석이라는 광물로 변해 버린다. 지구에서는 지각의 움직임-판 구
조론- 때문에 석회석이 열을 받아 다시 이산화탄소 기체를 대기 중으로 방출하지만, 화성에
서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개척자들은, 지구적인 규모에서 석회석들을 가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새로 생성된 대기는 서서히 사라져 갈 것이다"라고 툰은 지
적한다. 1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화성이 대기를 잃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
로 이것이었다고 천문학자들은 믿고 있다.
개척자들이 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면-아마도 석회석들을 캐내어 거대한 용광로에 가
열함으로써-모든 일이 쉽게 풀려 나갈 수 있다. 평균 기온은 이미 물이 어는 온도 혹은 그
이상으로 상승하였다. 대기압도 지구와 비슷해져서. 고막이 터지거나 피가 끓어오르는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기층은 태양의 유해한 자외선을 차단해 주는 보호막 역할을
한 뿐만 아니라,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는 동료들
에게 무선 통신을 통해 교신하는 것이 아니라. 산소 마스크에 달린 확성기를 통해 직접 말
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화성 이주민의 수는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렀지만, 그들은 아직도 화성 표면 여기
저기에 산재해 있는 유리 구 안에 살고 있다. 산소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유리 구 안에서 사
는 이유는 간단하다. 화성의 공기가 아직 호흡하기에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 단
계에서 이루어 내야 할 기적이다.
3) 3단계 : 신선한 공기를 마시다
지구에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은 클로로필(chlorophyll)이라는 녹색의 놀라운 분자 덕
분이다. 클로로필이 펼쳐 보이는 마술을 태양을 이용하여 물을 분해하고, 물 속의 산소 기체
를 방출하는 것이다(이 과정을 '광합성'이라 부른다). 동물이 호흡할 수 있는 공기는 산소를
포함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산소가 너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면 화재가 일어나기 쉽고,
또 너무 적게 함유되어 있으면 동물들은 질식해 죽고 만다. 20∼30%가 공기 중에 함유되어
있는 것이 가장 좋다(지구의 대기에는 산소가 약 21%함유되어 있다).
클로로필은 모든 녹색 식물-이끼와 같은 지의류, 풀, 관목, 수목 등-뿐만 아니라 수중에
사는 조류(藻類)에도 들어 있다. 지구에서는, 식물들의 광합성 작용을 통하여 대기에 산소가
풍부해지는데 최소한 수십만 년이 걸렸다. 이것이 하나의 난관이다. 비록 개척자들이 화성
전지역에 나무를 심고, 씨를 뿌리고, 모든 호수와 바다(화성의 바다는 아직 짜지 않을 것이
다)에 조류를 가득 채운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숨쉴 수 있는 대기가 조성되기까지 최소한
십만 년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식물들은 질소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이 시점이나 그
이전에 토양과 물에 특별한 박테리아를 첨가하여,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들이 이용할 수 있
는 형태로 변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유전공학자들이 등장한다. 광합성 과정을 조작하여, 식물과 조류가 산소 기체를 생
산해 내는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이들의 임무이다. 행성과학자 크리스토퍼 매케이는 이
것이야말로 다른 많은 문제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식물들은
지구에 수십억 년 동안 살아왔고, 자신들이 살아가기 위해 산소를 생산할 뿐이다. 자연은 이
미 이 과정을 최대한 활용했을 수도 있다. 즉, 자연이 식물에서 뽑아 낼 수 있는 산소는 다
뽑아냈다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낙관적으로 생각해서, 식물과 조류를 유전적으로
조작하여 산소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화학자들과 지질학
자들은 화성의 암석 속에서, 다른 원소들과 결합되어 있는 산소를 유리시킬 수 있는 방법도
고안해 낼 것이다. 모든 것이 낙관적으로 진행된다고 가정할 때, 100년 정도면 화성의 공기
는 호흡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 그 동안에 기온도 온화한 수준-아마도 10℃-까지 상승할 것이다. 그리고 대기권 상
층에서는 산소 분자들이 강렬한 햇빛에 분해되면서 오존층을 형성할 것이다(이 시점에서 공
기 중에 머물러 있는 CFC는 오존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사람들은 유리 구
속에서 나와, 우주복이나 산소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화성의 땅 위를 걸어다닐 수 있다. 고
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이제 화성의 하늘은 더 이상 불그스름한 빛이 아니라 지구의
하늘 같은 파란빛을 띠고 있을 것이고, 구름도 여기저기 흘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화성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제2의 고향이 된다.
이렇게 하기까지 얼마만큼의 비용이 들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아마도 2단계보다 수백 배
내지 수천 배의 비용이 들 것이다.
4) 후속조치
화성을 지구처럼 만든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계속 그런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또 다
른 문제이다. 행성과학자들은 화성도 한때 지구처럼 따뜻하고, 물이 흘러다니며, 공기가 풍
부했다고(비록 산소가 충분치는 않았지만) 믿는다. 그러므로 개척자들은 과거에 화성에서 일
어났던 일이 다시 재발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화성과 지구 사이의 커다란 차이
점 세 가지가 그러한 문제들을 만들어 낸다.
화성의 작은 크기와 질량-표면 중력은 지구의 5분의 2미만-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대기가
지구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우주 공간으로 빠져 나간다. 개척자들은 이 손실분의 공기를
보충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화성에는 판 구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척자들은 화성의 암석 속에 갇혀 있는 이
산화탄소 기체를 방출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성의 암석을
용광로에 넣어 가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지구에 비해 멀어 햇빛을 적게 받기 때문에, 화성을 따뜻하게 유
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렇지만 화성 개척자들이 온실 효과 기체들로 화성을 두텁게 둘
러싸고, 또 반사경들을 궤도에 띄워 햇빛을 화성에 집중시킨다면, 화성은 인간이 살 수 있을
만큼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5) 왜 화성인가?
가장 가까이 다가올 때에도 화성은 달보다 200배나 멀고, 금성보다도 2배나 더 멀다. 그런
데 왜 하필이면 화성을 제1의 식민지 후보로 꼽는가?
달은 크기와 질량이 너무 작아(화성보다도 훨씬 작다) 지구와 같은 쾌적한 환경으로 변화
시키기 어렵다. 또 달의 표면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하므로, 사실상 오랜 기간에 걸
쳐 대기를 붙잡아 두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기가 존재할 수 없다면, 달에서 쾌적한 온도나
액체 상태의 물, 또는 호흡할 수 D씨는 공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현재의 달은 공
기가 없으며, 바싹 말라붙은 상태이다.
금성의 경우, 대기의 온도는 납이 녹는 온도(480℃)를 넘으며, 대기는 지구보다 100배 이
상 밀도가 높다. 행성의 온도를 낮추고 대기를 감소시키는 것은, 온도를 높이고 대기를 증가
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화성은 제2의 우리의 고향으로 만드는 계획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리는 놀라운
기술의 발전을 이용하여 화성을 지구처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메마르고 불모의 암석 덩
어리를 생명이 살 수 있는 인큐베이터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 다른 행성을 우리의 목적에 맞게 변화시킬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 매케이의 말을 들어 보자.
"지구에서 생명과 자연의 개념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화성을 비롯하여 태양계
의 나머지 천체들에서는 생명과 자연이 서로 별개이다. 화성은 죽은 행성처럼 보인다. 그렇
지만 화성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행성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화성의 이
자연 상태를 변화시켜야 할까?"
우리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매케이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다른 행성에 생명을 옮겨 놓는 것의 윤리성을 따질 경우, 무엇보다 생명을 선호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바이킹호가 찍은 화성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 준다. 그렇
지만 나는 거기에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작은 동물들이 뛰어다닌다면 훨씬 더 아름다운 세계
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명을 좋아한다."
나에 관해 말하자면, 이에 충분한 공감을 표하는 바이다.
스무 번째 이야기
초전도:저항이 전혀 없는 길
<상상 1>:자기 부상 열차가 2.5cm정도의 공기 쿠션 위에서 시속 500km의 속도로 달린
다!
<상상 2>:조금의 손실도 없이 송전선을 통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보내진 전기가, 여러분
가정에 빛과 열을 공급해 준다.
<상상 3>:손바닥만한 크기밖에 안 되는 초고성능 컴퓨터
<상상 4>:몸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심장 기능과 혈액 분석에서부터 궤양과 종양의 발
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검사할 수 있는 의료 기기
<상상 5>:현존하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고에너지 입자 가속기를 사용하여, 물질의 본
질과 우주의 창조에 관한 수수께끼를 푼다.
이상은 초전도 기술이 개발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장거리를 약간의 전력 손실
도 없이 송전할 수 있게 되면, 막대한 비용이 절약될 뿐 아니라 천연 자원도 보존할 수 있
고, 원자력 발전소를 아주 먼 안전한 곳에 지을 수도 있게 된다(체르노빌을 기억하는지?).
전기 저항이 전혀 없는 회로를 이용한 특수 초전도 기술은 우리에게, 대형 슈퍼 컴퓨터의
능력을 지녔으면서 손바닥만한 크기밖에 안 되는 컴퓨터를 선사해 줄 것이다. 또한 개선된
MRI(magnetic resonance imager:자기 공명 촬영장치)와 SQUIDS(superconducting quantum
interference devices:초전도 양자간섭 장치)를 이용하여, 의학은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그리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전자석보다 수백 배나 더 강력한 초전도 전자석은
우주의 비밀을 풀어 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다면, 왜 이러한 약속들이 실현되지 않는 것일
까? 이유를 하나 든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초전도 물질들은 몹시 변덕스럽기 때문
이다.
1) 초전도성이란 무엇인가?
텔레비전이나 전자 레인지, 에어컨 등을 켤 때 이들이 작동하는 것은 전기 현상 때문이다.
전기, 즉 전류는 전자들의 흐름이다. 전자는 보통 원자 속에 존재하지만, 도체라고 부르는
금속 물질 속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도 한다. 대부분의 금속은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
이다. 구리, 알루미늄, 은, 금 등은 아주 훌륭한 도체이다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수
은은 액체 상태에서나 고체 상태에서나 모두 훌륭한 도체이다(대부분의 금속들도 그렇지만).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도체라도 완전하지는 않다. 가장 훌륭한 도체라 하더라도, 그 속을
지나가는 전자들은 주위의 원자들이나 금속 속에 존재하는 불순물에 의해 끄어당겨지거나
밀려나게 된다. 이 때문에 전자들은 속도가 느려지고, 그들이 가진 에너지의 일부를 상실한
다(대개 열의 형태로). 전자가 이렇게 에너지를 상실하는 것은 전기 저항이라는 현상으로 나
타난다. 저항은 원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마찰 현상인데, 전기 기구를 오래 사용하면
열이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전기 기구들은 이러한 전기 저항을 이용하기도
한다. 전기 히터나 헤어 드라이어, 전기 난로등은 워하는 열을 발생시킬 수 있는, 저항이 큰
물질을 사용한다.
가장 훌륭한 도체라도 저항은 있기 마련이다. 구리선과 알루미늄선은 전기 저항 때문에
전체 전기 에너지 중 약 20%를 잃는다. 만약 송전 과정에서 전기를 조금도 잃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돈과 자원을 절약할 수 있는지 상상해 보라! 바로 그러한 물질이 초전도체이
다. 초전도체는 저항이 전혀 없다. 전자들은 에너지 손실을 전혀 입지 않고 초전도체 속을
흐른다. 이렇게 저항 없이 전류가 흐르는 것을 초전도성이라고 한다.
2) 차가운 고객을 따뜻하게
아직 초전도성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초전도성이 발견된 것은 꽤 오래
전인 1911년이다. 그 해에 네덜라드의 물리학자 하이케 오네스는 수은을 초전도체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그 비법은 바로, 아주 차갑게 냉각시키는 것이었다. 상온은 1
5℃(297K)이며, 물은 0℃(273K)에서 언다. 수은은 -39℃(234K)에서 얼어 고체가 된다. 수은
을 초전도체로 만들기 위해, 오네스는 그것을 -269℃(4K)까지 냉각시켜야 했다. 이것은 가
장 낮은 온도인 절대 0도보다 불과 4도 높은 온도이다. 4K의 온도에서는 우리가 숨쉬는 공
기도 고체 상태로 변하고 만다. 오네스가 수은을 그렇게 낮은 온도까지 냉각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에 이미 헬륨 기체를 액화시키는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원소 가운
데에서도 헬륨은 가장 낮은 온도인 4K에서 액체로 변한다. 오네스는 수은을 액체 헬륨 속
에 집어넣음으로써 그것을 초전도체로 만들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발견이었으며, 이 업적
으로 오네스는 191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절대 0도 근처까지 냉각시켜야 하는 초전도체는 상업적인 이용 가치가 거의 없다.
이 온도까지 냉각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보다 더 높
은 온도에서 초전도성을 나타내는 물질을 개발하려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초전도성이 나타
나기 시작하는 가장 낮은 온도를 변환 온도(transition temperature)또는 임계 온도(critical
temperature)라 하고, 기호로는 Tc로 나타낸다.
최근까지의 고온 초전도 물질을 발견하려는 경쟁은 비교적 서서히 진행되어 왔다. 주로
연구된 물질은 순수한 금속이거나, 합금이라 일컬어지는 금속들의 혼합물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나은 것이 니오븀과 제라늄의 합금으로, 1983년에 Tc는 23K를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1986년 1월 27일까지 거의 10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았다(따라서 고온 초전도성이란 일반적
으로 23K이상에서 초전도성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바로 그날, 취리히의 IBM연구소에
근무하던 게오르그 베드노르츠와 알렉스 뮐러는 Tc를 30K까지 상승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온도의벽을 깬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초전도 물질의 성분이었다. 그것은 금속이
나 합금도 아니고, 산화물(산소를 함유한 화합물)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금속인 바륨, 란타
눔, 구리 등이 산소와 함께 특별한 결정 배열 상태로 결합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종류의 금
속 산화물은 자연 상태에서는 금속이라기보다 세라믹의 성질을 나타낸다. 세라믹 초전도체
의 발견으로 초전도체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으면, 이 공로를 인정받아 베드노르츠와
뮐러는 1987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 다음에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휴스턴 대학의 물리학자 폴추와 그의 동료들이었다.
1986년 12월에 그들은 Tc를 40K로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바륨을 그보다 더 작은 원
자인 스톤튬으로 대체함으로써, 그것을 다시 52K로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폴 추는 마치 연
금술사처럼 금속 산화물의 조성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키면서, 마법의 혼합 비율을 알아내려
고 노력했다.
1987년 1월 20일, 마침내 폴 추는 이트륨(yttrium),바륨(barium), 구리(cooper), 산소
(dxygen)를 결합한 물질 (이것을 YBCO라 부르고, '이브코'라 발음한다)로 93K에서 초전도
성이 일어나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이것은 여전히 실용적으
로 이용하기엔 매우 낮은 온도가 아닌가?
매우 낮은 온도이긴 하나, 실용성이 없다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 이것은 일생 일대의 발
견이라 할 만한 것이다. 추는 질소가 액화하는 온도인 77K의 벽을 뛰어넘었던 것이다. 카네
기 재단의 지구물리학 연구소에 근무하는 로버트 하젠의 말을 인용해 보자.
"이는 단지 또 하나의 완벽한 전도체를 발견한 것에 불과한 일이 아니다. 이 초전도체는
77K이상의 온도에서 초전도성을 나타내었다. 77K는 값싸고 쉽게 다룰 수 있는 액체 질소를
사용할 수 있는 온도이다. 77K는 말하자면, 음속의 벽을 깬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서, 77K는 모든 차가운 물질의 효용성을 찬단하는 척도이다. 77K이하의 온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신비스러운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실용적인 가치는 전혀 없다. 그렇지만 액체
질소는 누구나 살 수 있다(액체 헬륨은 1쿼트에 10센트 정도이며, 헬륨보다 60배는 더 오랫
동안 액체 상태로 머문다). 폴 추의 팀은 그 장벽을 무너뜨린 물질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기이하게만 생각하던 초전도성을, 일상 생활에서도 볼 수 있는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
다."
그후로도 고온 초전도 물질을 개발하려는 경쟁은 계속되었다. 비록 팡파르는 울렸지만,
93K는 아직도 매우 차가운 온도였다. 1988년에 연구자들은 이트륨을 탈륨으로 대체시켜,Tc
를 127K까지 올렸다. 그리고 그후 약 5년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몇몇 과학자들은
그것이 고온 초전도 물질이 이를 수 있는 한계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들은
틀렸다.
1993년 5월 6일, 취리히에 있는 오스트리아 국립 기술연구소의 한스 오트는 그 화합물에
새로운 첨가물-옛 친구인 수은-을 넣어, 133K애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
다고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넉 달 반 후, 이번에는 초전도 물질의 대부격인 폴 추가 위와 동
일한 물질을 사용하면서도 15만 기압(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압의 압력은 1기압이
다)이라는 초고압하에서 실험을 실시하여, 153K에서 초전도 현상을 실현시키는 데 성공하였
다. 그 다음 한 달 사이에 Tc의 기록은 여러 번 갱신되었으면, 1994년 8월 현재 164k를 기
록 중이다(1993년 12월에 한 프랑스 연구팀이 250k까지 도달했다고 보고한 적이 있다. 이것
은 시베리아 지방의 바깥 기온과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은 그 데이터에 의문을 제
기한다. 흥미로운 실험 결과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추는 150K의 장벽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우선 우리는, 보통 가정에서 에어
컨의 냉매로 사용하는 프레온 가스로도 초전도체를 충분히 냉각시킬 수 있게 되었다." 프레
온은 액체 질소보다 훨씬 싸고 다루기도 쉽다.Tc의 상한선에 대해 추는, "180K에는 곧 도달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어떻게 하면 거기에 갈 수 있는지 그 길은 아직 잘 모르지만."라
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늘하던 방식대로 주기율표에 있는 모든 원소를 샅샅이 훑으며
배합을 해보려 한다.
초전도성은 전혀 다른 분야의 연구에서도 발견되었다. 그 분야는 엉뚱하게도 유기화학(탄
소 화합물을 다루는 화학)이다. 1986년에는 속이 빈 축구공 모양의 분자가 실험실에서 만들
어졌다. 그 주된 구조는 오면체 또는 육면테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분자의 이름은 벅민스
터풀러렌(buckminsteerfullerence)이라 지어졌는데, 측지선 돔(geodesic dome)을 설계한 건축
공학자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를 간단히 줄여서 버키볼
(Buckycall)또는 풀러렌(fullerence)이라 부르기도 한다. 버키볼은 지름이 400억분의 1인치인
소형 측지선 돔이다. 이들은 흥미로운 성질을 여러 가지 지니고 있는 유기 화합물인데, 그
중 한 가지가 초전도성이다. 앞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버키볼들이 초전
도성을 나타내는 온도는 세라믹 산화물보다 훨씬 낮다.
3) 마이스너 효과
지금까지 초전도성은 전류가 어떤 물질 속을 아무런 전기 저항없이 흘러가는 것으로 정의
되어 왔다. 그런데 초전도성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자기장에 대한 반발이다. 자기장에 대
한 반발은 완전하게 일어나므로, 초전도체 내부에는 어떠한 자기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현상은 1933년에 발터 마이스너와 그의 조수인 옷Psvpfxm가 발견하여, 마이스너효과
(Meissner effect)라는 이름이 불러졌다. 마이너스 효과는 교실에서도 재미있는 실험으로 보
여 줄 수 있다. 초전도체 위헤 자석을 놓으면, 자석은 마치 공기 중에 떠 잇는 것처럼 초전
도체 위에 머문다. 이를 '자기 부상(magnetic levitation)'이라 하는데, 가히 마술과도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술이 아니다. 초전도성이 비록 마술적인 성질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은
엄연히 현실적인 것이다.
4)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가?
유명한 물리학자인 펠릭스 블로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초전도성에 대하여 증명 가
능한 유일한 정리는, 초전도성에 관한 어떠한 이론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시라
쿠사대학의 물리학 교수 잔프란코 비달리는 『초전도성:다음 번의 혁명?』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아직 고온 초전도성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조차 여
기에 달려들어 보았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
에 따라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그 대답들은 매우 복잡하고, 양자 역학이라는 추상적인 물리학분야의 이론마저 도입하고
있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양자론을 공부하지 않고도 초전도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개략
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상적인 전선-예컨대 구리선-에서는, 원자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전자들이 원자에 아주
약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전지나 발전기를 통해 전류를 흘려 주면, 이 전자들이 에너지
를 얻어 전선을 이루는 원자들 옆을 미끄러지면서 이동하기 시작한다. 원자들 자체는 격자
라 불리는 특정 형태로 배열되어, 이들은 고정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서 결정을 이루고 잇
다. 그러나 원자들도 진동을 한다. 절대 0도 이상의 온도에서는 모든 원자들이 진동을 하며,
온도가 높을수록 더 많이 진동한다. 전기 저항이 생기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
다.
원자가 진동을 하면 전자는 그 옆을 미끄러져 지나가기가 어려워지며, 따라서 전자는 원
자에 충돌하게 된다. 그로 인해 전자의 흐름이 방해를 받고, 전자는 에너지를 잃게 되는데,
이것이 전기 저항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온도가 낮을수록 진동의 정도는 약해지
고, 그에 따라 저항도 작아진다. 그렇지만 아무리 낮은 온도에서도 원자들은 여전히 진동을
하므로, 어느 정도의 저항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초전도 물질들은 어떻게 이 전기
저항을 없앨 수 있는가? 더구나 164K라는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어떻게 전기 저항을 나타
나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을 전자들이 쌍을 이룸으로써 가능하다. 전자 쌍 이론은 1957년에 세 사람의 미국 물
리학자가 제안하였다. 그 세 사람이란,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공로로 그 전년도에 노벨 물리
학상을 받은 존 바딘, 컬럼비아 대학의 양자역학 전공 물리학자 레온 쿠퍼, MIT의 물리학
자로서 전기공학자로 변신한 존 슈리퍼을 말한다. 그래서 이 이론은 이 세 사람의 이름 첫
자들을 따서 BCS이론이라 부른다.
전자 쌍 이론은 그리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이는 1930년대에 물리학자 프리츠 런던이 처
음으로 주장하였는데, 쌍을 이룬 전자들이 서로의 반발력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여 지지를 얻지 못했다(같은 전하끼리는 밀어내는 힘이 작용한
다.전자들은 모두 음 전하를 띠고 있기 때문에 서로간에 밀어내는 힘이 작용한다).
BCS이론은 전자들이 진동하고 있는 원자들과 상호 작용을 하여, 결정 격자 속에 비틀린
공간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이 비틀린 공간이 전자들을 상으로 끌어당겨, 그들 사이의 반발
력을 극복하도록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전자-격자 상호 착용은 부드러운 매트리스 위를 빠
른 속도로 굴러가는 무거운 공에 비윧히었다. 비달리의 설명을 인용해 보자.
"만약 공이 충분히 빨리 굴러간다면, 스프링들은 공이 지나가고 난 후 조금 있다가 원래
의 위치로 돌아갈 것이다. 이때, 그 옆을 지나가는 다른 공이 약간 가라앉은 그곳으로 흘러
들어올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공이 상호 작용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두 공이
서로의 존재를 느끼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공이 첫 번째 공이 있는 곳으로 끌어당겨지는 힘
을 받기 때문에, 이 상호 작용은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상호 작용은 전자들이 서로 쌍을 이루게 하는데, 이렇게 이루어진 전자 쌍을 '쿠퍼 쌍
(cooper pair)'이라 한다. 쿠퍼 쌍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존 라곤은 그의 저서 『초전도성:새로운 연금술Superconductivity:The New Alchemy)』
에서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전도체 속을 지나가는 전자들은 바퀴 저국, 구멍, 돌덩이들이 흩어져 있는 들판을 행진
하는 한 소대의 병사들과 같다. 만약 병사 하나가 걸어간다면, 그는 많은 장애물로 인해 걸
려 넘어지거나 빠지거나 할 것이다. 그러나 두 명씩 짝을 지어 손을 잡고 서로 바짝 붙어서
행진한다면, 그들은 큰 탈 없이 지나갈 수 있다. 한 사람이 구멍에 빠지더라도, 옆의 동료가
그를 붙잡고 끌어내어 계속 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각 쌍은 항상 자기 앞과 뒤에
쌍을 지어 행진하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구멍에 빠진다는 것은 일어나기 힘들다."
초전도성을 설명한 공로로 바딘과 쿠퍼, 슈리퍼는 197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바딘
은 노벨 물리학상을 두 번씩이나 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예전에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일이다.
BCS이론을 초기의 초전도체들, 즉Tc가 낮은 금속이나 합금 초전도 물질들에 대해서는
아주 잘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고온 초전도체들이 등장하면서 세라
믹(금속 산화물) 초전도체 시대가 열리자, BCS이론은 이들 물질 (산소와 구리가 주요 성분)
의 초전도성까지는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쿠퍼 쌍은 여전히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으로 보였지만, 그 밖의 다른 과정들이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산소의 양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많을수록 더 좋다-그리고 산소 원자들이 구리 원자들과 연결되어, 초
전도 전류가 지나갈 수 있는 고리나 면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세라믹 속의 다른
금속들도 쿠퍼 쌍을 이루는 전자들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듀퐁
사의 아서 슬레이트의 말을 빌리면, "이론가들마다 각각 최소한 하나씩의 이론을 가지고 있
는 것 같다."
5) 기대와 전망
초전도성의 꿈을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되는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은 이론가는 아무
도 없다. 그러한 문제들 중 하나는 마이스너 효과와 관계가 있다. 만약 자기장이 충분히 세
다면, 그 자기장은 초전도체의 반발력을 물리치고 뚫고 들어가, 초전도성을 파괴해 버리고
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시점의 자기장의 세기를 '임계 자기장'이라 부른다. 문제
는 전류가 자기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초전도체가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세기의 전류를 보내려 하면, 자신의 초전도성을 파괴할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자기장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초전도체들의 임계 자기장
은 큰 규모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높지 못하다.
그렇지만 희망도 있다. 초전도체들은 1형과 2형의 두 가지로 나뉜다. 1형은 아주 낮은 온
도에서만 초전도성을 보이는 순수한 금속 물질을 말한다. 이들은 아주 작은 임계 자기장을
가진다. 2형은 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성을 보이는 합금와 세라믹 산화물이다. 이들의 임계
자기장은 상당히 높아서, 머지않은 장래에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이 엿보인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초전도체 속을 흐르는 전류의 양이 '임계 전류량'이라는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초전도성이 상실되고 만다. 현재 액체 질소 속에서 초전도성을 나타
내는 물질들의 임계 전류량은, 상업적으로 실용화하는 데 필요한 전류의 100분의 1에도 미
치지 못한다.
상황은 이렇듯 그다지 좋지 않다. 대규모의 산업 혁명을 몰고 올 큰 변화의 잠재력이 있
으나, 거기에는 그에 못지않은 문제들도 있다. 초전도성은 군이나 새별 기업에서 제한된 용
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상업적으로는 아직 그 기대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 아직 기술이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거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자기 부상 열차의 경우, 원한다
면 우리는 그것을 달리게 할 수도 있지만 1마일의 선로를 까는 데 3천만 달러의 비용을 감
당해야 한다.
해가 갈수록 기대는 점점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연금술사들이 나날이 더 높은 임
계 온도와 임계 자기장, 그리고 임계 전류량을 가진 새로운 초전도 물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까지 이 새로운 연금술사들에게 9개의 노벨상이 돌아갔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기
위를 달리는 열차를 타고 여행하고, 남극 대륙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송전해 온 전기를 사용
할 때까지 얼마나 더 많은 노벨상이 이들에게 돌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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