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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 향수

by Casey,Riley 2023.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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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1877 - 1962는 독일의 낭만주의 경향을 띠고
있는 소설가이며 시인이다.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며 방랑과 자유를
즐기는 서정적인 문학을 출발로 하는 그는 신낭만주의 문학의 완성자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헷세의 소설이나 시는 모든 이의 고향과 같아서 인간의 진실되고
아름다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구름, 산천, 바람 바다 등을 배경으로
자신의 내면적 생활의 변화와 성장을 깊이 관찰하여 표현하는데서 그의
소설은 모두가 예술적 향기가 강하게 풍긴다.
  대표작 : 향토, 수레바퀴 밑에서, 크눌프, 청춘은 아름다워라, 황야의
이리, 나르찌스와 골드문트

  향수

1. 태초에 신화가 있었다. 일찍이 위대하신 하느님은 인도인, 그리스인
그리고 게르만인들의 마음속에 시를 쓰고 표현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모든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시를 쓰고 계시다.
  그때 나는 어렸기 때문에 고향의 호수와 산과 시내들의 이름은 잘
몰랐었다. 그러나 나는 청록빛의 잔잔한 호수면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그 주위를 빙 둘러싼 험한 산들과 산꼭대기로부터 눈에 덮여
반사되는 계곡, 작고 좁은 폭포들 그리고 그 아래 과일나무와 오두막집과
잿빛의 알프스 젖소들이 떼지어 풀을 뜯고 있는 비탈진 목장을 보았다.
이때 내 가난한 어린 영혼은 아직 텅빈 채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호수와 산의 정령들이 찾아와 내 어린 영혼 속에 아름답고 대담한
영혼들을 기록해 넣는 것이었다.  가파른 낭떠러지와 절벽들은 거만하게,
그러나 두려움에 떨며 조심스럽게 그들이 태어난 그대의 상처를 아직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땅은 갈라지고 굽어지고 진통으로 괴로운
태 속에서 산봉우리와 산등성이가 태어난 그때를 말해 주었다.  돌산은
폭음과 함께 울부짖으며 솟아나서 어느 결에 봉우리가 되고 꺾이어
골짜기가 되었다.  쌍둥이 화산은 절망적인 몸부림 속에 자리를
다툼으로써 결국 한쪽이 승자가 되어 높이 솟고, 다른 한쪽은 패자가 되어
밀려 부서지고 말았다.  그 태고 이래 지금도 여기저기 높이 솟아 있는
계곡 위에는 부서진 봉우리와 밀려나고 깨어진 바위가 걸리어, 해동할
무렵이면 폭포의 분류는 집채만한 바위를 굴려 유리그릇 부수듯이
산산조각 내든가 아니면 대번에 산 아래의 푸른 목장으로 밀어버리든가
하는 것이었다.
  그 돌산들은 언제나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첩첩이 꺾이어
구부러지고 깨어져 모두 입을 벌린 상처를 가지고 있는 험상궂은 절벽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은 몸서리쳐지는 큰 괴로움을 겪었어요.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괴로움을 겪고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비록 늙긴 했지만 아직도 건장한 무사처럼 당당하게
그리고 준엄하게 분개하여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들은 무사였다.  나는 이른 봄, 밤마다 미쳐 날뛰는 열풍이
돌산의 허술한 꼭대기 근처에서 울부짖으며, 그 옆에 격류가 있는
튼튼하고 성긴 바윗돌을 마구 뽑아 낼 때에 그들이 폭풍과 물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밤이면, 그들은 분개하여 숨을 죽이고 튼튼한
뿌리로 완강히 버티고 서서 바람에 시달린 암벽과 돌뿌리를 폭풍을 향하여
잔뜩 내밀고는, 온갖 힘을 다하여 굳건히 맞서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분개와 격노의 처참한 전락의 소리를 내었고, 그
무서운 신음은 다시금 다른 먼 계곡에까지 단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나는 그 목장과 비탈과 흙에 묻힌 바위들이 옛날 통속적인 말로
기묘하고 불길한 예감을 주는 이름을 가진 풀과 꽃과 이끼들로 덮여 있는
것을 보았다.  산의 아들이요 손자인 이 초목들은 다채로운 빛깔로
천진스럽게 자리를 잡은 채 자라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매만지고
바라보고 향기를 맡으며, 그 이름을 하나 둘 익혀 갔다.  나무를 바라볼
때에는 진실하고 경건해지곤 했다.  나는 나무들이 저마다 고립적 생활을
하며 독특한 형태와 모자를 만들어 각기 특이한 그림자를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내게는 그 나무들이 산과 인연이 깊은 은사나 투사처럼 보였다.
그것은 모든 나무가 - 특히 산에 높이 서 있는 나무는 물론이고 - 생존과
성장을 위하여 바람과 기후와 돌과 조용히 끈기있는 투쟁을 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모든 나무는 자기의 무거운 짐을 지고 찰싹 달라붙어 있어야
했고, 그리하여 각기 독특한 모양과 특수한 상처를 입어야만 했다.  폭풍
때문에 한쪽밖에 가지를 갖지 못한 소나무도 있고, 붉은 밑동이 뱀처럼
바위 비탈을 기어올라 나무와 바위에 짓눌려 서로 의지하고 있는 소나무도
있었다.  그들은 마치 무사처럼 나를 바라다보며 내 마음속에 공포와
존경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의 남자들과 여자들도 그 나무들처럼 딱딱하고,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파이고 말수가 적었는데, 특히 사람이 좋을수록 더욱 말수가 적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나무나 돌처럼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어, 조용한
백송(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 교목) 이상으로 그들을 존경하거나
사랑하지는 않았다.
  우리들의 니미콘 마을은 산줄기가 둘로 갈라진 끝에 끼여 있는 호수에
접한 경사진 삼각지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 길은 근방의 수도원으로
통하였고, 또다른 길은 마을에서 네 시간 반쯤 걸리는 이웃마을로
통하였으며, 호숫가에 있는 다른 여러 마을에는 수로로 내왕하였다.
마을의 집들은 구식 목조건물들로 일정한 연대라는 것이 없었다.  새로운
건물이라고는 거의 없었고, 필요하면 부분적으로 - 금년에는 마루를
고치고, 다음 해에는 지붕을 고치는 식으로- 고쳤을 뿐이다.  이전에는
바람벽에 쓰였던 작은 각재와 많은 판자가 지금은 지붕의 서까래로
쓰였다.  그리고 서까래로 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불을 때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경우에는 가축우리나 헛간의 수선 또는 현관 입구의 가로목으로
사용되는 형편이었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비슷했다.
모두 자기의 소임을 다할 수 있을 동안, 그대로 있다가 주저하면서
쓸데없는 무리 속으로 물러나 결국 그리 눈에 띄지도 않게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타향에 있다가 돌아온 사람은 낡은
지붕이 몇 개 새로 수리되고, 새로 올렸던 몇 개의 지붕이 조금 낡아 있는
것을 보게 될 뿐이었다.  예전에 있던 노인들은 세상을 떠났으나 다른
새로운 노인이 생겨나서 같은 시골집에 살고, 같은 성을 부르고, 같은
검은 머리의 어린아이를 돌보며, 그 얼굴이나 거동에 있어서도 전혀
별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은 신선한 피와 생명이 외부로부터 들어와 섞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꽤 건강한 종족인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밀접한
인척관계를 맺고 있어, 그 사분의 삼은 카멘친트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교회의 명부를 여러 장 차지하고 있는 것도, 묘지의 십자가에 씌어있는
것도, 집집마다 페인트로 새겨 쓴 문패에도, 마차나 물통이나 호수의
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카멘친트라는 성이었다.  또한 아버지의
집 현관에도 이 집은 요스토와 프란체스카 카멘친트가 세웠다라고 씌어
있는데 그것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의 조부 즉 나의 증조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지식도 없이 언젠가 죽는 날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살던 집이 그때까지 남아서 지붕을 남겨놓는다면, 이 낡은
집에는 다시금 다른 카멘친트 성을 가진 사람이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이토록 단조롭게 보이나, 우리 마을 사람들 중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귀한 사람과 천한사람, 권세있는 사람과 보잘것 없는
사람이 있고, 바보들은 계산에 넣지 않더라도 많은 지혜로운 사람들과
함께 꽤 재미있고 익살맞은 사람들이 있다.  어디에서도 그런 것과 같이,
그것은 대세계의 축도로 부자와 빈민, 교활한 자와 익살스러운 자들이
서로 얽히어 인척관계를 맺고 있어, 대단한 교만과 우매한 경솔이 종종 한
지붕 밑에서 동시에 일어났으므로 우리의 생활은 인생의 깊이와 희극을
충분히 엿볼 수 있게 하였다. 다만 감추어졌거나 혹은 의식되지 않는
압박의 영원한 면사포가 그 위에 덮여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이 자연의 힘에 지배를 받고, 빈곤이 온갖 애를 쓰나 날이 갈수록
점점 쇠퇴해 가는 우리 족속에게 우울한 기분을 불어넣어주는 까닭이었다.
 이러한 우울은 저 날카롭고 근엄한 얼굴에 전혀 맞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밖에는 별다른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였고, 이렇다 할 무슨
즐거운 효과라고는 전혀 나타내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을에
몇몇 바보가 있어 다소 진실한 점이 있기는 하였으나, 어쨌든 좀 색다른
웃음거리와 비웃을 만한 사건을 일으키면 사람들은 그처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 중의 누가 어리석은 일로 소문거리가 되면, 니미콘 마을
사람들의 주름잡히고 햇볕에 그을은 이마 위에 전광처럼 기쁜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우스운 일 자체를 향락하는 동시에, 또한
양념으로써 자기 우월감의 기쁨이 가미되어, 자기들이라면 그러한 과오와
실책을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만족한 기분으로 혀를 쯧쯧 차는
것이었다.  아버지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옳은 자와 죄인의 중간에 서서
양자에게서 즐거운 것을 취하여 즐기려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무슨 웃음거리가 일어나면 아버지는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
하시며 그 당자와 동감이 되어 감탄하시든가 아니면 자기에게는 그런
결점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시든가 하여, 우습도록 두 감정 사이를 오가는
것이었다.
  나의 백부 콘라트는 이러한 웃음거리의 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아버지나 다른 잘난 사람들보다 머리가 비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교활한 사람이었고, 그의 끊임없는 발명 정신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물론 성공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 일없이 우울해지는
법이 없이 언제나 다시 새 일을 시작하고, 자기 계획의 희비극에 대하여
묘하게 즐거운 기분을 가지곤 하는 점이 실로 그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우스운 일로 느껴져 사람들은 그를 웃음거리의
한사람으로 꼽았다.  나의 아버지와 그와의 관계는, 때로는 감탄하고
격려하고 때로는 경멸하는 관계를 항상 지니고 있었다.  백부의 새로운
계획은 무엇이든 아버지에게 호기심과 흥분을 일으키게 했다.  아버지는
조롱하는 듯한 질문과 비웃음으로써 그것을 감추려고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럴 때 백부가 꼭 성공할 것이라 믿고 위대한 사람처럼
행동하시면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호기심에 가득찬 친밀감을 가지시고 이
천재의 편이 되어 주셨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실패로 백부가 어깨를
움찔하시면 아버지는 노하셔서 조소와 모욕을 동시에 퍼부으시며, 몇 달
동안이나 말씀도 하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우리 마을에서 처음으로 돛단배를 구경하게 된 것도 백부의 덕이었다.
그리고 거기엔 나의 아버지의 작은 배가 이용되어야 했었다.  돛과 닻줄은
백부가 달력에 그려진 목조범선을 보고 훌륭하게 만드셨으나, 우리의 작은
배가 돛단배로 되기엔 너무나 작았던 것은 결코 백부의 탓이 아니었다.
그 준비에 수주일이 걸렸는데, 그때 아버지는 긴장과 기대와 초조함으로
수은처럼 거의 안정하지를 못하셨고, 마을의 다른 사람들 또한 콘라트
카멘친트의 새로운 계획에 관해서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 돛단배가 어느 바람부는 늦은 여름날 아침에 처음으로 호수 위로
미끄러져 나갔을 때 그날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기념할 만한 날이었다.
아버지는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날는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에서 멀리
떨어져 서서 내가 그 배에 타는 것을 한사코 말리셨으므로 나는 너무나
슬펐었다.  다만 빵집 아들 피슬리만이 이 돛단배의 명수와 동행되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전부 호숫가 자갈밭과 작은 뜰안에 서서 이
전대미문의 장관식에 참석하였었다.  호숫가 멀리에서 동풍이 솔솔 불고
있었다.  처음에 배가 미풍을 받을 때까지는 빵집 아들이 노를 저여야
했다.  곧 돛은 바람을 모아 안았고, 따라서 배는 의기양양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감탄하여 배가 곧 가까운 산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다보았다.  그리고 솜씨 좋은 백부가 돌아오면
승리자로서 그를 대하고 우리들이 실없이 얕잡아 본 것을 뉘우치리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밤중에 배가 돌아왔을 때에는 돛은 없어지고, 배를
탔던 두 사람은 살아 있다기보다 죽어 있다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빵집
아들은 기침을 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일요일날에는 송장 두 개를 치울 뻔했어요.  여러분은 대단히 재미있을
뻔했는데······.
  아버지는 배 밑창의 판자 두 개를 새로 갈아넣어야 했다.  그러고 그후
다시는 푸른 호수 위에 돛이 떠 있는 일이 없었다.  콘라트가 무슨 일을
급하게 하고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그의 뒤로 가서 꽤 한참 동안이나
놀려대는 것이었다.
   돛을 달아야지, 콘라트!
  아버지는 분노를 누르시고 오랫동안 불쌍한 백부를 만나실 때마다
외면을 하시며, 말로써는 할 수 없는 경멸의 표시로서 활을 그리시듯
멀찍이 침을 탁 뱉으시는 것이었다.  이 일은 어느 날 콘라트가 불에 잘
견디는 빵 굽는 가마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나타났을
때까지 계속되었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착상은 발명자에게 끝없는 조소를
받게 하였고, 아버지에게는 현금 4 탈레르를 손해보게 하였다.
아버지에게 이 4 탈레르 사건을 회상하게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화를
입었다.  오랜 후의 어느 날, 집에 돈이 옹색해졌을 때에 어머니는 우연히
그때 쓸데없이 써 버린 돈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 아버지는 성이 머리끝까지 났으나 꾹 참으시고, 다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요일날 하루 실컷 술이라도 마셔버렸더라면 좋았을 걸.
  겨울이 지날 무렵이면 언제나 열풍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불어닥쳤다.
이 바람은 알프스 사람들이 공포와 전율로써 듣는 것이며, 그들이 타향에
있을 때는 뼈저린 향수로써 그리는 것이었다.
  열풍이 가까워져 올 때에는 남녀 할 것 없이, 그리고 산과 야수와
가축들까지도 몇 시간 전부터 그것을 느끼게 된다.  언제나 앞서 서늘한
역풍이 불어옴으로, 따듯하면서도 세찬 알 수 없는 수선함이 그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청록색의 호수는 순식간에 먹을 머금은 듯 검어지고,
갑자기 흰 물결이 급하게 머리를 쳐든다.  그리고 몇 분전까지만 해도
소리없이 평화롭던 호수가 곧 바다처럼 성난 물결로써 언덕을 울리면
동시에 온 산천이 전전긍긍하여 서로 모여든다.  그때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산봉우리 위에 있는 돌을 지금은 셀 수 있게 되며, 갈색 점들같이
멀리 떨어져 보이던 마을의 지붕들, 덧문, 창까지 지금은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산, 목장, 집 할 것 없이 모두가 놀란 가축처럼 모여든다.  그리고
나서 멀리 들려오는 우뢰소리 같은 수선함이 일어나고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채찍에 쫓기는 호수의 물결은 일직선으로 공중을 달리어
물보라로 안개를 일으키며, 그리고 끊임없이, 특히 밤에는 폭풍과 산들의
절망적인 싸움의 소리를 사람들은 듣게 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개천,
집이 무너지고, 배가 부서지고, 아버지와 형제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이 마을에서 마을로 퍼진다.
  유년시절에 나는 이러한 열풍을 무서워하고 싫어했었다.  그러나
장난꾸러기 소년이 되면서부터는 나는 이 반역자, 영원한 젊은이, 용감한
투사 그리고 봄의 안내자인 열풍을 사랑하게 되었다.  열풍이 생명의
발랄함과 희망에 가득차서 덤비고 웃고 신음하며, 거친 싸움을 시작하여
울부짖으며 산골짜기를 달려 산마다 쌓인 눈을 헤집고, 굳센 늙은 백송을
난폭한 손으로 비틀어 신음하게 하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후
나이를 먹을수록 열풍에 대한 사랑은 깊어져서 결국 산에 부딪쳐
부서지고, 나중에는 평탄하고 찬 북국에 피로를 느끼어 죽어버리는 열풍
속에서 언제나 기쁨과 따듯함과 아름다움이 샘처럼 솟아나는, 감미롭고
아름답고 풍부한 남쪽나라를 느낄 수 있었으므로 나는 열풍을 환영하게
되었다.  열풍의 계절에 있어서는 산골 사람들, 특히 부인들을 습격하여
그들의 수면을 빼앗아 가고, 모든 감각을 쓰다듬어 자극시키는, 이
감미로운 열풍병보다 신기하고 귀중한 것은 없었다.  열풍은 메마르고
초라한 북국의 가슴에 끊임없이 불타는 몸을 던져, 가까운 자색의
이탈리아 호반에는 이미 다시금 앵초와 수선(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과
편도의 가지에 꽃이 피어 있다는 것을 눈 덮인 알프스의 마을 마을에
알리는 남국의 사자였다.
  열풍이 그치고 마지막 더러운 눈덩이가 녹아버리고 나면, 곧 더할
나위없는 아름다운 계절이 찾아온다.  산기슭 사방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목장은 이내 노란빛 향연이 벌어지고, 눈이 쌓인 봉우리와 빙하와
맑고 우뚝 솟아오른 호수는 푸르고 미지근해져서 태양과 구름의 왕래를
반영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유년시절은 물론이고 때에 따라서는 일생을 기쁨에
차게 한다.  그 이유는 이러한 모든 것이 인간의 입에 오르지 아니한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말해 주는 까닭이다.  유년시절에 이 말을 들은
자에게는 일생동안 그 여운이 달콤하고 강하고 무섭게 남아서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산을 고향으로 하는 자는 몇해 동안
철학과 자연사를 연구하는 데서 낡은 신을 버리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다시 열풍을 느끼고, 눈덩이가 숲을 헤치고 녹아내리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의 가슴은 다시 심장이 뛰며 하느님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의 아버지의 오두막집은 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뜰에 접해 있었다.  뜰
안에는 신선한 살라트와 빨간무와 카베츠가 심겨져 있었고, 또 한쪽에는
어머니가 놀랄 만큼 작고 초라한 화단을 만드시어 장미가 두 그루,
다알리아가 한 그루, 목서초가 한 움큼 쓸쓸히 시들어 가고 있었다.
  이 뜰에 인접하여 더욱 작은 자갈밭이 호수에까지 이어졌다.  그곳에는
부서진 물통 두 개와 몇 개의 판자와 말목이 놓여 있었고, 물 위에는 당시
몇 해마다 새로 수선하여 콜타르 칠을 한 작은 배가 매어져 있었다.  배를
수선하고 콜타르 칠을 하던 그때가 아직도 기억이 새롭다.  그것은 첫여름
더운 오후의 일로, 유황색의 나비가 햇빛에 하늘거렸고, 호수는 기름처럼
미끄럽고 푸르고 조용히 반짝였으며, 산봉우리에는 안개가 끼었고, 작은
자갈밭에선 페인트와 콜타르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후
여름내내 작은 배는 콜타르 칠 냄새가 났었다.  몇 해 후 어떤 바닷가에서
물의 향기와 콜타르 친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찌를 때마다 나의 눈에는 이
호수의 자갈밭이 나타나고, 또한 아버지가 소매를 걷으신 채 털솔을
움직이고 계실 때 그의 파이프에서는 잿빛 연기가 조용한 여름의 대기
속으로 피어오르고, 노랑나비가 겁을 집어먹은 듯 불안하게 날아 다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날에는 아버지는 매우 기분이 좋으셔서
멋들어지게 휘파람을 부시며, 또한 아마도 그가 아시는 유일한 노래인
짧은 민요의 일절을 나지막하게 부르시는 것이었다.  그럴 때에 어머니는
저녁을 맛있게 준비하시곤 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남편 카멘친트가 제발
오늘 저녁에는 술집에 가지 말았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에서 그렇게 하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날도 어김없이 주막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양친이 내 어린 감정을 발전하도록 특별히 촉진시켰다든가 혹은
방해하였다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어머니는
항상 손이 쉴새없이 바쁘셨고, 아버지는 세상에서 교육문제처럼 등한히
여기시는 문제는 없으셨다.  그는 몇 그루의 과일나무를 손질하시고,
감자밭을 가꾸시고, 마른 풀을 보살피는 것으로써 충분히 바쁘셨다.
그러나 가끔 몇 주일에 한 번씩은 저녁에 외출하시기 전에 내 손을
잡으시고 묵묵히 외양간 위에 있는 마른 풀이 놓여져 있는 헛간으로 끌고
가시곤 하셨다.  그리고 거기에서 묘한 징벌과 속죄의 행위가 이루어져서
나는 회초리로 무참하게 맞는 것이었으나, 아버지나 나 자신도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보복의 여신인 네메지스의 제단에 올리는
조용한 희생의식으로 아버지께서는 특별히 꾸짖으시는 것도 아니셨고,
그렇다고 내쪽에서 울며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니었으며, 다만 어떤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그에 대한 당연한 제물처럼 올리는 행위였다.
  후일  맹목적 운영 이라는 말을 들을 때에는 언제나 이때의 이상한
장면이 다시금 머리에 떠올라 이 개념의 구체적인 표현처럼 느끼곤
하였다.  선량한 아버지는 부지불식중에 인생 자신이 스스로 우리에게
가하여지는 소박한 교육법을 쓰셨다.  즉, 인생은 우리의 개인 하늘에
때때로 뇌우를 보냄으로써 우리가 무슨 잘못한 일을 하였기에 하늘이
그렇게 벌을 내리시나 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을 우리에게 밭기는
그러한 교육법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것을 생각해 보는
일이란 거의 아니면 전혀 없었고, 이 세금을 바치는 듯한 징벌을 받게
되면 반성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태연히 혹은 반항적으로 받고 나서, 그날
저녁에는 세금을 바쳤으므로 다음 또 세금을 바칠 때까지 몇 주일 동안은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기쁘게 생각하곤 하였다.  이렇게 나는 나에게 일을
가르쳐 주시려는 늙은 아버지의 행위에 대하여서는 퍽 완강히
반항하였었다.  알 수 없는 낭비적인 자연은 두 개의 모순된 선물, 즉
건강한 체력과 함께 유감스럽게도 일을 싫어하는 선물을 동시에 주었다.
아버지는 나를 쓸모있는 아들뿐만 아니라 조력자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시었으나 나는 모든 꾀를 다 부려 맡은 일을 회피하였으며,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나는 그 유명한 어려운 노동을 강제로 맡았던 고대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대단히 동정하였다.  그 당시 나는 무엇보다도 바위
위나 목장 또는 호숫가를 일없이 헤매는 것을 즐겁게 생각했었다.  산과
호수와 폭풍과 태양이 나의 벗이었다. 그것들은 나에게 말하고 나를
길러주고, 또 오랫동안 어떤 사람이나 인간의 운명보다도 내게 한결
부드러웠고 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빛나는 호수와 슬픈 백송과 햇빛이
내리쬐는 바위보다도 더 사랑스러운 것은 구름이었다.
  이 광활한 세계에 나보다 더 구름을 알고, 나보다 더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든 내게 알려다오! 또한 이 세계에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거든 내게 보여다오! 구름은 오락이요 눈을 즐겁게 해주는 위안물이고,
구름은 축복이요 신이 준 선물이며, 구름은 분노요 죽음의 힘이다.
  구름은 갓난애의 영혼처럼 연약하고 부드럽고 평화로우며, 구름은
고상한 천사처럼 아름답고 윤택하고 마음이 곱고, 또한 구름은 죽음의
사자처럼 험상궂고 피할 수 없고 용서가 없다.  구름은 엷게 둥둥 떠서
은빛을 띤 채 떠돌고, 구름은 금빛 테를 두른 흰돛처럼 순하게 달리며,
누렇고 붉고 엷은 푸른 빛을 띤 채 편히 쉰다.  구름은 자객처럼 사뿐사뿐
어둠에 스며들고, 구름은 달리는 기수처럼 고개를 숙이고 줄달음질치며,
구름은 우울한 고독자처럼 창공에 슬피 명상하며 떠 있다.
  구름은 행복스런 섬의 모양을 할 때도 있고, 아름다운 천사의 모양을 할
때도 있으며, 구름은 사람을 해하려는 손 같고, 활짝 편 돛 같기도 하며,
훨훨 날으는 학도 같다.  구름은 거룩한 하늘과 가련한 지구 사이의 모든
인간에게 동경의 아름다운 상징처럼 더러운 혼을 거룩한 하늘로 인도하는
대지의 꿈처럼 떠돌고 있다.
  구름은 모든 방랑과 탐구와 갈망과 향수의 영원한 상징이다.  그리고
구름이 하늘과 땅 사이에 수줍어하고 동경하며 굳세게 붙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 또한 시간과 영원 사이에서 수줍어하고 동경하며 굳세게
붙어있다.
  오, 구름, 아름다우리만큼 쉬지 않고 방랑하는 자여! 나는 그때 철없는
소년이었었고, 그리고 구름을 사랑하고 쳐다보며 자랐다.  그러나 나 또한
구름처럼 방황하며 집착함이 없이 시간과 영원 사이에 떠돌며 인생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었다.
  어릴 때부터 구름은 나의 사랑스런 여자친구였고 자매였다.  내가 길을
걸어갈 때면 우리는 어느새 서로 머리를 숙이어 인사하고, 잠시동안 눈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었다.  또한 나는 그때 구름에게서 배운 것, 즉 구름의
형태나 빛깔, 행동과 유희, 원무와 댄스, 휴식 그리고 기묘하리만큼
지상적이며 천국적인 이야기들을 잊을 수 없다.
  특히 눈아가씨의 이야기는 잊을 수 없다.  이 이야기의 무대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산이고, 때는 초겨울 따뜻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눈아가씨는 몇 사람의 시종을 거느리고 높은 곳에서 내려와
넓고 편편한 곳이나 넓은 산마루에 쉴 곳을 찾았다.  이때 아주 심술궂은
북동풍이 쉬고 있는 천진하기만 한 눈아가씨를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더니
살그머니 탐을 내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산으로 불어올라와 갑자기
거세고 난폭하게 습격하였다.  북동풍은 눈아가씨에게 찢어진 검은 구름을
퍼부으며 조소하고 욕을 하여 쫓아버리려고 하였다.  눈아가씨는 잠시동안
불안해하였으나 꾹 참고 기다리며 의아스러운 듯이 머리를 여러 번
기웃거리고 나서는 비웃는 듯한 얼굴을 하고 고요히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그리고 눈아가씨는 급히 떨고 있는 시녀들을 주위로 불러모아 놓고는
눈부신 듯한 얼굴에 위엄있는 표정을 나타내더니 갑자기 찬 손을 들어
괴물스런 바람에게 퇴거를 명하였다.  바람은 퇴거를 명하였다.  바람은
저주를 퍼부으며 소리를 지르고 도망갔다.  그리고 나서 눈아가씨는
조용히 옆으로 누워 창망한 안개 속으로 자리를 넓히며 몸을 감추었다.
그리고 안개가 개일 때에는 눈아가씨는 산의 편편한 곳과 산마루의 맑고
반짝이는 곳에 순수한 하얀 첫눈에 덮여 누워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어떤 숭고함 같은, 어떤 미의 혼과 승리 같은 것이
담겨 있어, 그것이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고, 내 작은 마음을 어떤 기쁜
비밀을 가졌을 때처럼 감동시켰다.
  얼마 안 되어, 내가 구름을 가까이하고, 구름 속에 들어가서 흩어진
구름떼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때가 있었다.  우리의 니미콘 마을이
그 밑에 놓여 있는 젠알프스 봉이라고 부르는 첫째 봉우리에 올라간 것은
내가 열살 되던 해였다.  그때에 나는 처음으로 산의 두려움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보았다.  얼음과 눈녹은 물이 넘쳐 흐르는 깊이 패인 계곡들,
푸른 유리 같은 빙하, 눈에 녹은 무서운 바윗돌, 그 위에 종처럼 높이
둥글게 열린 하늘을 보았다.  십 년 동안이나 산과 호수 사이에 끼여
살고, 겹겹이 둘러싼 가까운 산들 속에 갇히어 산 자는 자기 위에 크고
너른 하늘이 보이고, 앞으로는 끝없는 지평선이 벌어져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본 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법이다.  아래에서 익숙하게
보아오던 낭떠러지와 절벽이 올라가면서 내리누를 듯이 큰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 순간 압도되어 불안과 환호 속에서 갑자기 놀랄 만한
광활한 경치가 앞으로 다가서는 것을 보았다.  이토록 세계는 말할 수
없이 넓었던가! 밑에 보이는 우리 마을 전체는 그 중에서 다만 밝고 작은
한 점에 불과하였다.  지금 보니 골짜기 아래에서 봤을 때 서로 밀접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던 봉우리들은 서로 몇 시간 걸려야 갈 수 있도록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나는 내가 세계를 작은 눈으로 보아왔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조금도 확실하게 보아오지 못하였었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내가 보는 세계 밖에도 산이 있고, 산이 무너지고, 또한 소식이
벽촌인 우리 마을까지 올 수 없는 대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내 마음속에는 나침반의 바늘처럼
아득히 먼곳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힘차게 떨리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또한 구름이 무한히 먼곳을 방황하고 있음을 앎으로써 비로소
구름의 아름다움과 우울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두 어른은 내가 잘 따라 올라온 것을 칭찬하고,
얼음같이 찬 산마루에서 잠시 쉬면서 내가 미칠 듯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껄껄 웃었다.  그러나 나는 딱 한 번 크게 경탄하고 나서 기쁨과 흥분으로
인하여 소처럼 큰 목소리로 맑은 대기를 향하여 높이높이 소리를 질렀다.
그것이 아름다움을 향하여 내가 최초로 부르짖은 나의 음절없는
노래였었다.  나는 세찬 메아리가 울려 올 것을 기대하였으나, 내
목소리는 약한 새소리 모양 고요한 산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몹시 부끄러워 가만히 서 있었다.
  이날은 내 생애에 하나의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그것은 그후부터
사건이 차례차례로 일어난 까닭이었다.  우선 나는 등산을 자주 다녔는데,
특히 아주 힘든 등산까지도 따라다니게 되어 가슴벅찬 쾌감을 맛보면서
산의 위대한 신비를 헤치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나는 염소를 지키는 일을
맡게 되었다.  내가 언제나 염소를 몰고 가는 산기슭 한 곳에는 코발트
빛깔의 과남풀과 담홍색의 범의귀가 무성한, 무척 아늑한 장소가 있어
나는 그곳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였다.  그곳에서는 마을은 보이지
않았고, 호수도 바위 위로 멀리 가느다랗게 반짝이어 마치 허리띠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대신 꽃은 미소를 머금은 듯 신선한 빛으로 타는 듯이
펴고, 푸른 하늘은 뾰족한 설봉 위에 천막처럼 덮여 있고, 산양의
방울소리와 함께 그곳에서 멀지 않은 폭포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었다.
내가 그곳 양지 쪽에 누워 흰 구름이 가는 곳을 바라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염소들도 나의 게으름을 눈치채고 금지된 장난과
희롱을 하여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주일 지나지 않아 처음으로 나는
잃어버렸던 한 마리의 염소와 함께 낭떠러지에 떨어져 나의 게으른
천국생활에 신랄한 틈이 생기게 되었다.  염소는 죽었고, 나는 머리가
깨어졌으며, 뿐만 아니라 부모님으로부터 매를 호되게 맞고 가까스로
도망을 쳤으나, 그후 애걸복걸하여 다시 집으로 들어갔었다.
  이러한 모험은 한 번 하고 다시는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랬었더라면 이러한 소설은 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또한 그밖의
여러 가지 고생과 어리석은 일도 없이 평안하게 지냈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은 어느 이웃집 여자와 결혼을 했든가 아니면 어떤 외떨어진 빙하
속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을 앞으로 일어날
일과 비교해 보는 것은 내가 할바가 아니다.
  우리 아버지는 종종 웰스도에르프 수도원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편찮으셔서 못 가신다고 나에게 그곳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가지 않고 이웃집에서 종이와 펜을
빌려서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보내는 정중한 편지를 써서 심부름하는
여자에게 부탁하여 보내고 나서는 혼자 작정하고 산으로 갔었다.
  다음 주일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거기에 신부 한 사람이 와 앉아서
편지를 잘 써보낸 장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약간 근심이
되었으나, 그는 나를 칭찬하며 나의 아버지에게 자기 곁에서 나를
공부시키게 하도록 권하는 것이었다.  그때 마침 백부 콘라트는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시던 무렵이라 아버지의 의논을 부탁받았다.  백부는 물론
내가 공부하고 또한 연구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찬성이었다.  끝내 아버지는 설복되셨다.  그리하여 내 장래는 불에 잘
견디는 빵 굽는 가마와 돛단배와 도한 그러한 여러 가지 그의 공상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백부의 계획의 하나가 되었다.
  곧 맹렬한 공부가 시작되었고, 특히 러시아어, 성서 이야기, 식물, 지리
공부를 하였다.  이 모든 것은 대단히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목에 대한 취미가 나중에 고향을 떠나 아름다운 청춘을
잃어버리게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성서 이야기에 나오는
유명한 인물을 앞뒤로 모두 왼다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으므로 내가
러시아어를 잘했다는 것만이 아버지가 나를 농부로 만드시지 못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현명한 아버지는 내 본성을 밑바닥까지 뚫어보시고는
어찌할 수 없는 나태함이 내 마음의 중심을 이루어 아주 주요한 부덕이
깃들어 있음을 아신 까닭이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일을 피해 산과
호수로 달려가거나, 산기슭에 숨어 누워서 책을 읽거나, 몽상에 잠기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하였다.  이런 것을 아시는 데서 아버지는 결국 농부로
만드시는 것을 단념하시고 공부하도록 놓아 주신 것이었다.
  이 기회에 나의 부모에 대하여 간단하게 몇 마디만 하고 넘어가자면,
어머니는 이전에는 꽤 미인이었으나 지금은 다만 튼튼하신 체격과
부드러운 검은 눈 속에 그 자취가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키가 훨씬 크고, 대단히 힘이 세며, 또한 부지런하시고 조용하셨다.
아버지만큼 현명하시고 기력 또한 아버지보다 좋으셨으나 집안 일에
대해서는 아버지에게 모두 맡기셨다.  아버지는 중키에 손과 발은 가늘고
연약하였으며, 완고하고 빈틈없는 머리에 얼굴에는 잘 잡혔다 펴졌다 하는
잔주름살 이 잔뜩 있었다.  게다가 이마에는 세로로 짧은 주름살이 있어
눈썹이 움직일 때마다 그것이 흐려져서 꼭 근심에 싸인 얼굴처럼 보였다.
또한 그것은 무슨 대단히 중요한 일을 생각해내려고 하는데 그러시지
못하는 것같이 보이기도 했다.  실로 그에게서 우울한 점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아무도 그것에 주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우리
지방의 주민들 모두가 언제나 긴 겨울과 여러가지 위험과 궁핍한
생활투쟁과 세상과 동떨어져 사는데서 오는 가벼운 우울에 사로잡혀 있는
까닭이기도 했다.
  양친에게서 나는 내 성질의 중요한 부분들을 물려받았다.
어머니로부터는 천성적인 처세의 재주와 약간의 신앙심과 말수가 적은
조용한 성품을 이어받았고, 이에 반하여 아버지로부터는 결단력이
부족하고, 돈을 처리하는 데 무능력하고, 술을 즐기며 많이 마시는 성품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술 마시는 맨 나중의 성품은 어린시절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었다.  표면상으로 나는 아버지에게서는 눈과 입을,
어머니에게선 정중하고 참을성있는 걸음걸이나 건강한 체격 그리고 질기고
힘찬 근육을 물려받았다.  아버지와 일반적인 우리 족속에게서 나는
나면서부터 농부들이 가지는 빈틈없는 이해력과 또한 음침한 성품과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한 데로 치우치는 성품을 이어받았다.
나는 오랫동안 타향의 낯선 사람들 틈에서 방랑하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그러한 성질 대신에 약간 활달하고 줌 쾌활한 명랑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편이 훨씬 이로웠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러한 성품을 가지고 한 벌의 새로운 복장을 차려입은
나는 인생의 나그네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고향을 떠나서부터는 세상에서
혼자 살았기 때문에 양친에게서 받은 성품이 차차 증명되었다.  그러나
학문과 생활로써 보충할 수 없는 한 가지 결함이 내게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도 내가 이전처럼 산을 정복할 수 있고,
열 시간 동안 계속하여 걸을 수도 있고, 노를 저을 수도 있고, 필요하면
맨손으로 한 사람쯤 때려눕힐 수는 있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처세술에는 능하지 못한 까닭이다. 일찍부터 흙과 식물과 동물하고만
편벽되게 교제해 온 것이 나로 하여금 사회적 능력을 가지지 못하게
하였고, 그리고 지금도 내가 꿈꾸는 내용은 유감스럽게도 내가 얼마나
순수한 동물적인 생활에 애정을 느끼는가를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즉
나는 종종 동물, 대개는 물개가 되어 호숫가에 누워 있는 꿈을 꾸며,
그리고 거기에서 큰 기쁨을 느끼다가 깨어나서는 다시금 사람의 신분이
되어 있는 것에 기쁨과 자랑을 느끼기보다는 슬픔을 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세상에 흔히 있는 방법으로 어떤 고등학교에서 수업료를 면제받고
식비 또한 면제받으면서, 교육을 받은 후에는 언어학자가 되도록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었다.  그렇게 쓸모없고, 권태를 주고,
또한 나에게 인연이 먼 학과는 정말 없었다.
  학교시절은 비교적 빨리 지나갔었다.  격투와 수업을 하는 틈틈이
향수에 가득차는 때도 있었고, 대담한 미래의 꿈으로 가득찬 때도 있었고,
학문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며 숭배하는 심정으로 가득찬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나의 천성인 나태함이 종종 고개를 들어 여러가지
불평을 지니게 되었고, 벌을 서게 되었으며, 그리고 나서는 어떤 새로운
것에 다시 열중하곤 하였었다.
   페터 카멘친트
하고 그리스어 선생이 말했다.
   넌 고집쟁이에다 이상한 녀석이야.  언젠가는 한번 그 고집 때문에
큰코 다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안경을 쓴 뚱뚱한 그를 바라다보고 설교를 들으며 우습게
생각했었다.
   페터 카멘친트
하고 수학 선생이 말했다.
   넌 게으른 데는 아주 천재야.  영점보다 더 아랫점수가 없는 것이
유감이지.  오늘의 네 성적은 -2.5다.
  나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 그의 눈이 사팔뜨기인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며
대단히 지루한 선생이라고 생각했었다.
   페터 카멘친트
하고 한번은 역사 선생이 말했다.
   넌 좋은 학생은 아니야.  그러나 장차 훌륭한 역사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게으르긴 하지만 큰 일과 작은 일을 구별할 줄을 알거든.
  이것 또한 나에게는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들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그것은 선생님들은 지식의 소유자로
생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 또한 지식에 대하여 막연하게 큰 경의를
가지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선생들 간에 내가 게으름뱅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되긴 했었으나, 어쨌든 나는 진급되었고, 석차는 중위권
이상이었다.  학교나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보잘것 없는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후에 계속될 것을 기다렸다.  나는
이러한 현재의 준비와 까다로운 일 뒤에 있는 순 정신적인 것, 의심할
나위 없이 확실하면서도 참다운 지식을 예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역사의 애매한 분쟁과 제민족의 싸움과 각 개인의 마음속의
불안한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더욱
강하고 생생한 동경이 또 하나 있었다.  나는 실로 벗을 하나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에 나보다 두 살 위로 갈색머리를 가진 착실한 카스파 하우리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착실하고 조용하였으며, 어른같이 엄숙하게
머리를 바로 들고 친구들과도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나는 몇 달 동안이나
대단히 존경하는 눈길로 그 애를 바라보았고, 한길에서는 그 애의 뒤를
따라가며 은근히 눈치채어 주기를 바랐다.  난 그 애가 인사하는 모든
애들과, 그 애가 출입하는 것을 보게 되는 모든 집에 대해서까지 질투를
느꼈다.  그러나 나는 그 애보다 두 학급이 아래였었고, 또한 그 애는
동급생에게 대하여서도 이미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듯싶었다.  우리들
사이에선 말 한마디도 건네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 애 대신 병이 있는 한
작은 소년이 내가 별로 잘해 주는 것도 없는데 따르기 시작했다.  그는
나보다 어리고 수줍음 잘 타고, 이렇다 할 재주도 없었으나 애수에 찬
아름다운 눈과 용모를 지녔었다.  그는 병약하고 약간 곱사등이여서
동급생에게 여러 모로 놀림거리가 되었으므로 건강하고 세력있는 나를
보호자로 구하였던 것이다.  곧 그 애는 중병에 걸려서 더이상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나는 그 애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으므로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 반에 금발의 장난꾸러기가 있었다.  그는 요술쟁이요,
음악가요, 배우요, 어릿광대였다.  나는 무척 애를 써서 그와 친하게
되었다.  그 애는 키는 작았으나 쾌활했으며,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는데도
나에게 약간 보호자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한 친구를
가지게 되었다.  난 그 애의 방으로 찾아가서 함께 책을 몇 권 읽거나 그
애의 그리스어 숙제를 해주고, 그대신 그 애는 나의 산수공부를
도와주었다.  또한 우리들은 함께 산책도 했는데, 그때는 아마 곰과
족제비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애는 언제나 말을 잘하였고, 쾌활하고
재치가 있어 결코 당황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애의 말을 잘
듣는 자였고, 잘 웃었고, 그 애와 같은 쾌활한 친구를 가진 것을
기뻐하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우연히 난 이 작은 어릿광대가 학교 복도에 서서
몇 명의 친구들 앞에서 그 애가 잘하는 어릿광대짓을 멋들어지게 하는
꼴을 보게 되었다.  그는 바로 어느 선생의 흉내를 내고 난 후였는데
이번에는,
   이것이 누구인지 알아맞혀 봐라!
하고 소리를 지르고 나서 큰소리로 호머의 시를 몇 구절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그대로 흉내내었다.  나의 머뭇머뭇하는 태도, 나의
애쓰며 읽는 모양, 나의 산골지방의 거친 발음, 또한 주의할 때에 언제나
짓는 얼굴표정, 눈을 깜빡깜빡 하거나 왼 눈을 감는 것 등 나 그대로였다.
 그것은 여간 우습지 않았다.  그리고 대단히 재치있게 계속해서 흉내를
내는 것이었다.
  그 애가 책을 덮고, 거기에 해당한 박수갈채를 받았을 때에, 나는 뒤로
그에게 달려가서 복수를 하였다.  적당한 말은 발견하지 못하였으나,
전신의 분개와 수치와 노여움을 뺨을 한 번 힘껏 때리는 것으로써
표시하였다.  곧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선생은 내 친구가 훌쩍훌쩍 울고
있고 뺨이 벌겋게 부풀어 올라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애는
그 선생이 몹시 사랑하는 애였다.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느냐?
   저 카멘친트가요.
   카멘친트, 앞으로 나와! 그게 정말이냐?
   네.
   저 애를 왜 때렸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랬느냐?
   네.
  이리하여 나는 심한 벌을 받으며, 죄없이 박해받는 자의 쾌감을 깊이
느꼈다.  그러나 나는 스토아 학파도 아니고 더군다나 성자도 아닌 한
학생에 불과하였으므로 벌을 받고 나자, 적을 향하여 될 수 있는 한 길게
혀는 쏙 내밀었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 선생은 놀라서 내게로 달려왔다.
   너는 부끄럽지도 않느냐? 그게 뭐하는 것이냐?
   저기 저 자식은 비열한 자식이라서 비웃은 거예요. 그리고 또 저
자식은 비겁한 자식이에요.
  이리하여 그 어릿광대 소년과의 교제는 끝나고 말았다.  그는 다시
친구를 가지지 못했고, 그리고 나 또한 수년 동안 단 한 삶의 친구도 없이
성숙기를 보내야만 했었다.  그후 나의 인생관과 인간관은 몇 번이나
변하였으나, 그 따귀를 갈긴 일을 회상할 때마다 대만족감이 일어나곤
하였다.  그 금발머리 소년도 그 일을 또한 잊지 않을 것이다.
  열일곱 살 되던 때에 나는 어느 변호사의 딸을 사랑하였다.  그 소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내 생애에 있어 언제나 대단히 아름다운
여성들만을 사랑한 것에 대해 무척 자랑으로 생각한다.  그 소녀 때문에
그리고 그외의 다른 여성들 때문에 고민한 사실에 관해서는 뒤에 말하기로
하겠다.  그 소녀의 이름은 로에지 기르타네르였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서 지금도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때 나의 온몸에는 새로운 청춘의 힘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많이 싸웠었고, 그밖에 격투자, 테니스 선수, 육상선수, 보트
경주의 제일인자임을 자랑으로 여긴 반면에 늘 우울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연애 이야기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것은 초봄의 달콤한
우울에 불과하였으나 그 우울은 무엇보다도 나를 강하게 붙잡았고, 따라서
나는 슬픈 상상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비관적인 상상을 즐겨하곤 했었다.
물론 염가판으로 된 하이네의 소곡집을 읽어 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것은
이미 읽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공허한 시구 속에 나의 넘쳐흐르는
마음을 불어넣어 같이 번민하고, 같이 시를 짓고 그리고 정서적인 정열
속에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 셔츠를 입은 돼지처럼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순수문학 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레나우와 쉴러를 읽고, 그리고 나서 괴테,
셰익스피어를 읽음으로써 갑자기 문학이라는 엷은 환상이 위대한 신과
같은 괴물로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이러한 책들 속에서 이때까지 지상에 없었던, 그러나 진실한 나의
감동된 마음속에 물결을 치며 그 운명이 체험되는 듯한 생명의 향기로운
서늘한 공기가 내게로 향하여 흘러들어 오는 것을 달콤한 전율로써 느끼는
것이었다.  내가 독서하는 곳인 조용한 고미다락방에서는, 다만 가까운
종탑에서 때를 알리는 종소리와 그 근처에 집을 짓고 있는 백조의 메마른
울음소리가 들릴 뿐이었으나, 괴테와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이 무시로 내
곁에 드나들었다.  나는 점점 인간 본성의 신성한 것과 우스꽝스러운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우리들의 분열된, 제어할 수 없는 마음의 수수께끼와
세계사의 깊은 본질과, 또한 우리들의 짧은 생애를 정화시키며 인식의
힘을 통하여 우리들의 작은 실존을 필연과 연원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정신의 큰 비밀을 알게 되었다.  좁은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면 지붕들과
좁은 가로 위로 태양이 빛나고, 노동과 일상생활의 혼잡에서 오는 작은
소음들이 이상하게 들려오며, 위대한 사람들의 정신으로 가득찬 내 방의
고독과 신비가 이상한 아름다운 동화처럼 나를 둘러싸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독서를 하면 할수록, 또 지붕과 가로와 일상생활을
내려다보고 감동하면 할수록 점점 내 마음속에는 나도 아마 위대한 시인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세계는 그 속에 있는
보물의 일부를 끌어내어 우연과 비속의 면사포를 벗기고, 발견된 것을
시인인 나의 힘으로 불멸하고 영원하게 만들도록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압박을 느끼며 떠오르는 것이었다.
  조바심을 가지고 나는 시를 조금 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몇 권의
노트가 시와 초안과 단편으로 차여졌다.  그것들은 지금 없어졌거나 또는
거의 가치가 없는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나에게 심장을 뛰게 하고
남모를 기쁨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러한 시를 쓰는 데 뒤이어
비평과 자기 반성을 하게 되었으나, 나는 최고 학년에 가서야 비로소
필연적인 최초의 큰 실망이오게 되었다.  나의 처녀작의 시들을
집어치우고 나의 글쓰는 것을 전반적으로 불신하기 시작하였을 때에, 나는
우연히 고트프리드 켈러의 작품 몇 권을 입수하여 두 번 세 번 읽게
되었다.  그러는 데서 나는 나의 미숙한 몽상이 얼마나 진실되고 준엄하고
진정한 예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갑자기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시와 단편을 불살라버리고, 괴로운 감정으로 냉정하고
슬프게 세상을 바라보았었다.
2.  연애에 관한 일을 말하자면 ― 그 점에 있어서 나는 일생동안
어린애에 불과했다.  내게 있어서 여자에의 사랑은 언제나 우울한 불꽃이
곧게 피어오르며, 기도의 손이 창공을 뻗치는 순결한 예배와도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로부터 타고난, 그리고 또한 나 자신의 막연한 감정에서
나는 여자를 전반적으로, 한갓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수수께끼 같은
족속으로서 타고난 미와 본성의 통일로 인하여 남성보다 나으며, 별과
푸른 산처럼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어 신에게 가깝게 보이는 이유로
하여금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여야 할 족속으로서 존경하였다.  그러나
거친 삶이 많은 겨자를 거기에 치는 데서 여자에 대한 사랑은 감미로운
동시에 괴로운 것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즉, 여자는 여전히 높은 자리에
서 있으나 기도하는 사제의 엄숙한 것이 어릿광대의 괴롭고
우스꽝스러움으로 손쉽게 변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나는 매일 식사하러 갈 때마다 로에지 기르타네르를 만났다.  몸이
탄력있고 날씬한 17살의 소녀였다.  갈색을 띤 갸름하면서도 신선한
얼굴에는 조용하면서도 윤기가 도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소녀의
어머니도 그러했고, 조모와 증조모도 그러했다.  이 축복받은 전통있는
고귀한 가문에서는 대대로 많은 미인이 계속해서 배출되었다.  모두
조용하고 귀족적이며, 생생하고 고귀하고 흠없는 미의 소유자였다.
16세기에 어떤 무명화가가 그린 푹게르 씨 집안의 소녀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런데 기르타네르
씨 집안의 부인들은 그 그림과 비슷하였었고, 또한 로에지도 그러하였다.
  물론 그때에는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었다.  나는 다만
그 소녀가 조용하면서도 고상한 태도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소박한
성질을 가진 우아한 점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저녁이 되면
나는 생각에 잠겨 그 소녀의 모습을 뚜렷이 눈앞에 그리며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그러면 감미로운 그윽한 전율이 소년인 나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기쁨의 순간은 흐려지고 쓴 괴로움이 엄습하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그 소녀는 남이며 나를 모를 뿐 아니라 나에 관해
묻는 일도 없고, 또한 내가 그리는 환상은 그녀의 기품있는 모양을 훔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렇게 예민하고 괴롭게 느끼면
느낄수록 눈앞에 그 소녀의 모습이 언제나 사실처럼 생생하게 나타나 내
심장에는 검푸르고 뜨거운 파도가 넘쳐흐르며, 맥박의 말초신경에
이르기까지 이상하게도 따끔따끔 아파오는 것이었다.
  한낮의 수업시간중에 또는 막 싸울 때에도 이 물결이 다시 일곤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눈을 감고 팔을 늘어뜨리고 따뜻한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가다가, 선생이 부르든가 아니면 친구의 주먹에 한 대 얻어맞고
정신을 차리곤 하였다.  친구들을 피하여 밖으로 뛰어나가 이상한 꿈을
꾸는 듯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갑자기 모든 것이 아름답게
빛나 보이고, 빛과 호흡이 만물에 흘러들어 강은 밝은 푸른 빛을 띠며,
지붕은 붉고 산은 푸르러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위의
아름다움도 나의 기분을 말끔히 씻어 주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조용하고도 슬프게 그 아름다움을 맛보았었다.  모든 것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나에겐 상관없고 인연이 먼 것으로 보였다.  그리하여 나의
막연한 생각은 다시금 로에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만일 이
시간에 죽는다면 그 소녀는 알지도 못할 테지.  그것에 대하여 물어보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리라!
  그러나 그 소녀는 내 마음을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소녀를
위하여 깜짝 놀랄 일을 하고 싶었다.  또한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도
모르게 선물을 하나 보내고도 싶었다.
  사실 나는 그 소녀를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마침 짧은 휴가를
받아 나는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을 로에지에게 바칠
생각으로 매일 여러 가지 힘든 일을 했다.  험한 산봉우리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호수 위를 작은 배를 타고 돌아와서 목이
타고 배가 고파도 밤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견디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로에지 기르타네르를 위해서였다.  나는
그 소녀의 이름과 칭찬을 멀리 떨어진 산등성이와 사람이 가보지 못한
계곡에까지 가지고 갔다.
  동시에 교실에만 틀어박혀 있던 나의 소년시절은 이러한 일로 인하여
흐뭇한 쾌감을 느꼈었다.  나의 양쪽 어깨는 떡 벌어졌고, 얼굴과
목덜미는 햇볕에 갈색으로 그을렸고, 근육은 모두 발육되어 단단해졌다.
  휴가가 끝나는 전날, 나는 애써 얻은 꽃을 내 사랑에 바쳤다.  나는
유혹적인 여러 산허리에 있는 허리띠처럼 좁은 흙 위에 은설초가 서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 향기도 빛깔도 없는 병적인 은빛 꽃은 내게는
넋이 없는 것 같아서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몇
군데 여기저기 한 송이 두 송이 피어 있는 알프스의 들장미를 알고
있었다.  낭떠러지 바위틈에 여기저기 흩어져 피어 있어 매우 꺾기 힘든
아름다운 꽃이었다.  그렇다.  이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청춘과
사랑에는 불가능한 게 없으므로 나는 손등을 찢기며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위험한 곳에 있었으므로 환성을 지를
수는 없었으나, 조심조심 억센 가지를 꺾어 그것을 손에 잡았을 때는
심장은 뛰었고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꽃을 입에 물고 뒷걸음질하여
내려와야 했다.  나는 그만큼 대담한 소년이었으나 내가 어떻게 해서 절벽
밑까지 내려왔는지는 하느님밖에 모를 일이었다.  산 전체에 알프스
들장미꽃이 피는 계절은 벌써 지나서, 내가 꺾은 것은 그해 마지막으로
봉오리를 피우고 있는 들장미였었다.
   그 이튿날 고향을 떠나고 무려 다섯 시간 동안이나 나는 그 꽃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처음에 내 심장은 아름다운 로에지가 있는 거리를
향하여 힘차게 뛰었으나, 높은 산들이 멀어지는 데 따라 나의 향토적인
사랑도 위로 점점 사라져 갔다.  그때의 기차여행을 나는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젠알프스 봉은 이미 멀리 사라지고, 톱날같은 그 앞의
산들 또한 멀어지며, 그 하나하나가 모두 엷은 우수를 띠고 내 마음에서
떠나갔다.  이윽고 고향의 산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지고, 너르고 낮으며
옅고 푸른 광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첫번째 여행은 나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치 형벌을 받아 평지로 평지로
하염없이 떠나감으로써 고향의 산들과 시민권마저 영원히 잃어버린 채
다시 찾을 수 없을 듯한 불안과 동요와 비애에 사로잡혔다.  동시에 내
눈앞에는 아름답고 가냘프며 분노와 비통에 싸여 숨이 끊어질 듯하게
만드는, 냉정하고 무관심한 어여쁜 로에지의 얼굴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뾰족하게 높이 솟은 탑들과 흰 지붕이 행복스러워 보이는
깨끗한 마을들이 연달아 창을 스쳐 지나가고, 사람들은 오르내리며,
말하며, 인사하며, 웃으며 혹은 담배를 피우며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재치있고 싹싹하고 세련된 평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산골의 평범한 젊은이인 나는 묵묵히 쓸쓸한 모습으로 심술궂게 속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이미 향토에 있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영원히 산에서
떠나버렸으나, 평지 사람들처럼 쾌활하고 재치있고 원만하며 자신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이런 사람이 늘 나를 비웃고,
언젠가는 기르타네르와 결혼할 것이며, 또한 나를 언제나 방해하고,
나보다 한 걸음 앞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나는 거리에 도착했다.  먼저 인사를 하고
고미다락방으로 올라가 나의 상자를 열고 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좋은 종이가 아니었다.  나는 거기에다 알프스의 들장미를 올려
놓고 집에서 가져온 노끈으로 정성들여 묶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사랑의 선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진실한 마음으로 그것을 들고
기르타네르 변호사가 사는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가장 좋은 틈을 타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 저녁 어두컴컴한 현관에서 잠시 주위를 살피고
나서는 그 모양없고 볼품없는 꾸러미를 넓고 훌륭한 층계 위에 가만히
내려 놓았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로에지가 과연 이것을 보았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집 층계에다 들장미 한 송이를 놓기 위해
절벽을 기어올라가는데 내 생명을 걸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쾌감과
비애와 시가 들어있어 나는 기쁘게 그 일을 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일에
쾌감을 느끼고 있다.  가끔 이 장미의 모험은 다만 모욕적인 때에만
그후의 내 연애사건과 마찬가지로 한 동키호테식 모험이었다고 느껴졌다.
  이러한 나의 첫사랑은 끝맺음이 없이 의문을 가진 채 아직 미해결의
문제로 나의 청춘 속에 자취를 감춤으로써, 어느 조용한 누님 같은
모습으로 그후의 나의 사랑에 보조를 나란히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조용한 눈동자를 가졌던 그 명문 가정의 소녀보다 더 고상하고 순진하고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후 여러 해가 지나 뮌헨의 어떤
역사 전람회에서 저 이름도 없는, 이상하게도 사랑스러운 푹게르 가정의
딸의 초상화를 보았을 때에, 내 앞에는 열광적이고도 슬펐던 나의 온
청춘시대가 나타나서 말할 수 없는 깊은 눈으로 꿈을 꾸는 듯이 나를
바다라보는 것 같았다.
  이러는 동안에 나는 점점 조심스럽게 껍질을 벗고 완전히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때에 찍은 나의 사진은 허름한 학생복을 입었고, 골격이 우뚝
나오고, 키가 크게 자란 시골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은 약간
피로해 보이고, 손발은 아직 성숙되지 않아 균형이 잡히지 못한 채로
있고, 다만 머리만이 약간 조숙하여 굳어진 것처럼 보였었다.  나는
한편으로 놀라면서 소년의 티를 벗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고, 막연한
즐거운 기대를 가지고 대학생활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취리히 대학에서 공부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성적이 특히 우수한
경우에는 연구 시찰도 하게 될 것이라고 나의 보호자들은 말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든 기대는 나에게 하나의 아름다운 고전적인 그림처럼 보였다.
나는 호머와 플라톤의 흉상이 있는 엄숙한 친밀감을 주는 정자 속에 앉아
허리를 굽혀 책을 읽고 있고, 사방으로는 넓고 밝은 거리, 호수, 산
그리고 아름다운 원경이 보이는 그러한 그림처럼 보였다.  내 마음은 좀더
냉정해졌고, 좀더 활기를 띠어 꼭 그렇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행복을 기뻐하고 있었다.
  최고 학년이 되어 나는 이탈리아어 공부를 했고, 또한 고전작가들의
단편을 처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에 관한 근본적인 연구는
취리히 대학에 입학한 후 한 학기 초의 좋은 연구과제로서 보류해
두었었다.  급기야는 선생님들과 하숙집 주인과 작별할 날이 왔다.  나는
작은 상자에 짐을 싸서 못질을 한 후 섭섭하나 한편으로 즐거운 기분으로
작별인사를 하며 로에지의 집 근처를 서성거렸다.
  이번 휴가는 나에게 인생의 쓴맛을 처음으로 알게 해 주었고, 내
아름다운 꿈의 날개를 어느새 갈갈이 찢어 놓았다.  먼저 나는 어머니가
앓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병석에 누워서 아무 말씀도
못하셨다.  내가 돌아왔다고 해서 반가워하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나는 별로 불평은 하지 않았으나,  나의 기쁨과 청년다운 자랑을
거들떠보지 않는 데에는 무척 섭섭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가는 데는 아무 반대도 하지 않으나 돈을 대어줄 수는 없다고 확고히
밝히셨다.  적은 장학금으로 불충분할 때에는 필요한 만큼 스스로 벌어야
할 것이며, 지금 내 나이 때 아버지는 벌써 자기가 직접 벌어 쓰셨다는
등의 말씀을 하셨다.
  이번에는 산책도, 노를 젓는 일도, 등산도 그리 하지 않았다.  그것은
집과 들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해야 했었고, 그나마 반나절 쉴 때에는
아무런 흥미도, 책을 읽으려는 흥미조차 일지 않은 까닭이었다.  평범한
일상생활이 입을 크게 열고 자기의 권리를 요구하며, 내가 가지고 온
원기와 자부심 등을 모두 삼켜버리는 것을 보는 것은 화가 나며 피로를
느끼게 하였다.  아버지는 돈 문제에 대해 한 번 말씀하신 후에는 여전히
무뚝뚝하시고 말이 없으셨으나, 그렇다고 불친절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대해 어떤 기쁨도 느끼지 못하였다.  또한 나의 학교
교육과 책들이 아버지 마음에 남모르게 반경멸적인 존경을 일으키게 한
것도 나를 괴롭히고 슬프게 하였다.  그럴 때에 나는 종종 로에지를
생각했고, 또한 나같이 농촌에서 자라난 녀석은 다시  세상 에 나가서
착실하고 재치있는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완고하고 좋지 못한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대로 남아 빈약한 향토생활의 음산한
압력 속에서 러시아어며 희망을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며칠을 두고 생각하였다.  괴롭고 우울한 기분으로 이리저리 근방을
헤매였고, 앓고 계신 어머니의 병상 곁에서도 아무 위안이나 휴식을 찾기
못했다.  저 호머의 흉상이 있는 정자의 광경이 조소하듯 다시 나타나서,
나는 그것을 부서버리고 나의 일그러진 성질이 지닌 분노와 적의를 그것에
퍼부었다.  몇 주일이 견딜 수 없이 길었고, 이 분노와 분열과 실망의
기간에 나는 온 청춘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인생이 나의 행복스럽던 몽상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부서버린 것에
대해 놀랐고 또한 화가 났으나, 한편으로는 현재의 고통 속에 그렇게 빨리
강한 정복자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은
지금까지 잿빛의 일상생활의 측면을 나에게 보여 주었으나 갑자기 영원한
깊이를 가진 것으로서 눈앞에 나타나 단순하나마 나의 청춘에 힘찬 경험을
갖게 하였다.
  어떤 무더운 여름, 새벽에 나는 목이 말라 침대에서 일어나 언제나
찬물이 든 물통이 있는 부엌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래서 양친의 침실을
지나가야 했었는데, 그때 나는 어머니의 이상한 신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의 침대로 가까이 갔으나 어머니를 나를 보지도 않으신 채
아무 대답도 없이, 다만 풀이 죽은 모양으로 불안에 싸여 눈을 부르르
떨면서 창백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나는 좀 불안스러웠으나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음에 나는 이불 속에 고요히 잠들고 있는
자매와 같이 가지런히 놓여진 어머니의 양손을 보았다.   그 손에서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려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그 손이 살아 있는
사람의 손 같지 않고, 이미 묘하게 피로하여 생기를 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목마른 것도 잊어버리고 어머니 침상 옆에 꿇어앉아
어머니의 이마 위에 손을 얹고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이
나를 보았을 때에 그 눈은 부드럽고 아무 고통도 없어 보였으나, 여전히
빛을 잃고 계셨다.  나는 그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쿨쿨 주무시고
계시는 아버지를 깨워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렇게 거의 두 시간
동안을 꿇어앉아 죽음을 이겨내고 계시는 어머니를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조용하고 엄숙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참으심으로써
나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셨다.
  방은 고요했고, 떠오르는 새날의 밝은 기운이 점점 가득찼다.  집도
마을도 아직 잠들어 있어, 나는 마음속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영혼을 좇아
집을 지나고, 마을을 넘고, 호수와 눈 쌓인 산을 넘어, 멀리 맑은
아침하늘로 서늘한 자유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나는 거의
고통을 잊었다.  그것은 커다란 수수께끼가 풀리며, 생명의 고리가 가만히
떨리며 닫히는 모양을 볼 수 있었던 경이와 두려움이 마음에 가득찼던
까닭이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탄식없는 용감성은 또한 대단히 숭고하여
그 준엄한 영광에서 차고 맑은 한줄기 빛이 내 마음속으로 비춰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옆에서 주무시는 것도, 신부가 와 있지 않은 것도,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올려 돌아가시는 영혼을 정화시켜야 하는 것도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다.  나는 다만 영원으로 식어가는 호흡이 점점
밝아오는 방안에 넘쳐서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눈은 이미 빛을 잃고 있었으나, 최후의 순간에 나는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의 싸늘하게 다문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러자 나는 그 접촉에서
이상하게도 싸늘함을 느껴 갑자기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나는 침대
옆에 앉아서 서서히 주저하면서 큰 눈물방울이 뺨과 턱과 손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아버지가 눈을 뜨시고 내가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더니,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웬일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대답하려 하였으나
아무말도 못하고 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돌아와 꿈을 꾸는 듯이 천천히
무의식적으로 옷을 주워 입었다.  그러자 아버지 내게로 오셨다.
   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넌 알고 있었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를 깨우지 않았느냐?  그리고 신부님도 안 모셔오고! 참
넌······
하고 막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그러자 내 머리는 혈관이 터질 듯이 아파왔다.  나는 아버지 앞으로
가서 아버지의 양손을 꽉 잡고 ― 힘에 있어서는 아버지는 나에 비하면
어린애였다 ―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말도 못하였고,
아버지는 묵묵히 침울해하셨다.  둘이 함께 어머니 있는 곳으로 갔을
때에, 죽음의 힘은 아버지를 꽉 붙잡아 아버지의 얼굴은 이상스러울
정도로 엄숙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는 시체 위에
엎드리시고는 어린애처럼, 또한 새처럼 높고 약한 소리로 울기
시작하셨다.  나는 밖으로 나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을
알렸다.  그들은 내 말을 듣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다만 내 손을
붙들고 우리의 집안 일을 돕겠다고 했다.  한 사람은 신부를 모시러
수도원으로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이미 이웃여자 한 사람이 와서
외양간에 들어가 소를 돌봐주고 있었다.
  신부가 오고, 마을의 부인들이 총출동하여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으므로 관까지도 우리의 손을 거치지 않고 준비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곤란한 경우엔 고향땅의 인정많은 작은 마을에 속해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후일에 나는 이것을 좀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을 것이다.
  관이 축복을 받으며 매장되고 서럽도록 유행이 지난, 털이 부스스한
실크핼의 모자들이 자취를 감추고, 또한 아버지의 것과 다른 사람의
것들이 모두 각각 모자곽이나 의장 속에 치워지자 불쌍한 아버지는 갑자기
기가 푹 죽으셨다.  그는 갑자기 자기자신을 동정하기 시작하여 아내를
잃고, 게다가 또다시 자식을 멀리 타향으로 떠나보내게 된 자기의 비참한
심정을 거의 성경을 읽는 듯한 묘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끝이
없었고, 나는 그말을 듣고 두려워져서 집에 그냥 남아 있겠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올 뻔했다.
  그렇게 대답하려던 순간에 묘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갑자기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고 원하고 동경하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홀연히 열린
내 마음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나는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을 생각했다.  나는 열풍이
부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먼 호수와 언덕이 남국의 빛을 띠고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총명한 얼굴을 한 사람들과 아름답고 기품있는 부인들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고, 길이 뻗쳐 있고, 알프스를 넘어가는 고개와
기차들이 각국을 통하여 달리는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이 동시에, 그러나
하나하나가 분명히 보였고, 그 뒤에 아득히 먼 지평선이 있어 흘러가는
빠른 구름에 스치고 있었다.  연구, 창작, 관조, 방랑, 그밖의 풍부한
생활이 은빛으로 빛나며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하여 다시금 소년시절
때처럼 마음속에 광활한 세계를 향하여 무언가가 무의식적으로 힘차게
전율하고 있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대로 내버려둔 채 다만 꾹 참으며
아버지의 분노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아버지의 분노는 저녁 때가 다
되어서야 가라앉았다.  그리하여 나는 아버지께 대학에서 공부하여
정신계에서 내 미래의 고향을 찾을 것이며, 또한 아버지에게 아무 원조도
바라지 않는다는 나의 굳은 결심을 분명히 말하였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더이상 나무라지 않으시고 울상를 하신 채 고개를 저으시며 나를 바라보실
뿐이었다.  그것은 아버지 또한 지금부터는 내가 나의 길을 걸을 것이고,
그의 생활에서 곧 아주 떠나버릴 것을 아신 까닭이었다.
  오늘날 이렇게 글을 쓰며 그날의 회상하니 그날 저녁 의자에 앉아서
창가를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떠오른다.  날카롭고 지혜로운
농부의 머리가 가는 목위에 놓여 있고, 짧은 머리는 백발이 되기
시작했으며, 위엄이 굳어진 얼굴에는 고뇌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노령이 완고한 남성적인 것과 어우러져 싸우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하여 그리고 당시 내가 집에 머물러 있던 일에 대하여 작인
일이나마 이야기해야 할 중요한 것이 남아 있다.  내가 출발하기 바로 전
주일 어느 날 저녁, 아버지는 모자를 쓰시더니 문의 손잡이를 잡으며
외출하려 하셨다.
   어디 가시려고요?
  나는 물었다.
   그래.  왜 그러냐?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상관없으시면 말씀해 주셔도 좋지 않아요?
  이렇게 나는 말하였다.
  그때 아버지는 웃으시며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와도 좋다, 너도 이젠 다 컸으니까.
  그리하여 아버지를 따라 나도 술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몇 명의 농부가
할라우 주 병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고, 다른 마을에 사는 마차꾼 두 명이
아브산 주를 마시고 있었으며, 한 테이블에는 젊은 패들이 가득 앉아
노름을 하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 포도주를 한 잔씩 마시기는 하였으나 필요없이 술집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주정뱅이라는 것은 소문을
듣고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주량도 많으시고 또한 잘 마시셨다.
그렇다고 집안 일을 등한히 여기시는 것은 아니었으나, 집 형편은 항상
어려워 절망적일 만큼 궁핍에 빠졌었다.  그런데 지금 주인과 손님들이
아버지에게 표시하는 존경의 정도는 나를 놀라게 하였다.  아버지는
버트런드 주를 한 릿트르 주문하여 가져오게 한 후, 나에게 따르라고
명하시고는 따르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먼저 나직하게 따르기 시작하여
그 다음에 나오는 술은 좀 길어지게 따르고 끝에 가서 다시 병을 한껏
낮추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도시로 갔을 때나 혹은
이탈리아로 갔을 때 우연한 기회에 맛보셨었던 여러 가지 술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는 술을 세 종류로 구별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대단히
존경스러운 태도로 새빨간 벨틀린 주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낮고 힘찬
목소리로 어떤 병에 넣은 버트런드 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다.  나중에는
거의 속삭이듯이 그리고 동화를 말하는 사람의 표정을 지으면서 노이샤텔
주 이야기를 하셨다.  이 술은 아주 잘된 것은 잔에 따를 때는 거품이 별
모양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는 집게손가락에 술을 찍어서
테이블 위에 별을 그려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아직 마셔보진
못하였으나 한 병이면 두 사람이 녹초가 되어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
샴페인의 성질과 맛에 관하여 엄청난 추측을 하시는 것이었다.
  묵묵히 생각에 잠기듯이 아버지는 파이프에 불을 붙이셨다.  그때
아버지는 내게 담배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아시고 여송연을 사라고 10라펜을
주셨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마주앉아 서로 얼굴에 연기를 끼얹으며
천천히 마신 술이 어느새 한 릿트르의 술을 다 마셔버렸다.  노란 빛깔의
자극적인 버트런드 주는 대단히 맛이 좋았다.  옆에 앉았던 농부들은 점점
말참견을 하기 시작하더니, 하나하나 기침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우리에게로 자리를 옮겨왔다.  곧 내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는데, 여기에서
나는 나의 등산가로서의 평판이 아직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대담한 등산과 난폭한 하산에 관한 이야기가
신비적인 안개에 싸여 꽃이 피며 반박도 되고 옹호도 되곤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벌써 또 한 릿트르의 술을 다 마셨으므로 나의 눈은
벌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내 성질과는 아주 반대로 음성을
높여서 자랑하기 시작했다.  로에지 기르타네르를 위하여 대담하게
젠알프스 꼭대기 절벽 위에 올라가서 알프스 들장미를 꺾어 온 이야기까지
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기에 나는 단언하였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그저 웃기만 할뿐이었다.  나는 무척 화가 났다.  나는 내 말을
믿지 않는 자에게 싸움을 걸었고, 필요한 경우에는 그들 모두를 한꺼번에
때려 눕히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때 허리가 굽은 한 늙은 노인이 안으로
들어가서 큰 사기 술병을 가지고 나오더니 그것을 테이블 위에 눕혀
놓았다.
   왠지 알겠나?
  그는 웃었다.
   자네가 그렇게 힘이 세거든 이 병을 주먹으로 쳐서 깨뜨려 보게.
깨뜨리면 우리가 병에 들어갈 만큼의 술을 사겠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자네가 술값을 치러야 하네.
  아버지는 그 말에 곧 동의하셨다.  따라서 나는 일어서서 손에 손수건을
감고 내리쳤다.  첫번 두 대에는 아무 효과가 없었으나 이윽고 세번째에
병은 깨어지고 말았다.
   하하하, 술값을 물게나.
  아버지는 고함을 치시며 기쁨에 차서 얼굴이 빛나셨다.
  노인은 알았다는 듯이  종아  하고 말했다.
   그 병에 들어갈 만큼의 술을 사지.  그러나 많이는 못들 것일세.
  물론 깨진 병이라 반 릿트르도 채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손이
아팠고 게다가 조소까지 받았다.  아버지 또한 지금은 나를 보고
웃으셨다.
   자, 이젠 당신이 이겼소.
  나는 소리를 지르며, 병을 들어 깨진 조각에다가 술을 가득 따른 후
그것을 노인의 머리 위에 확 뿌렸다.  이번에는 우리가 다시 승리자가
되어 손님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런 지나친 장난이 좀더 계속되었다.  나중에 아버지는 나를 집으로
끌고 가셨다.  집에 가서도 그대로 기분이 나빠서 욕을 해대며, 어머니의
관이 놓였던 지 아직 삼주일도 못된 방을 소란스럽게 지나갔다.  그날 밤
나는 죽은 듯이 잤는데도 그 이튿날 아침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기운이 나셔서 나를 놀리며 명랑해 하셨고, 확실히 자기의
우월성을 기뻐하고 계셨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는 과음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하고, 오로지 집을 떠나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그날이 와서 나는 출발하였으나 그 맹세는 지켜지지 못하였다.  그
이후 나는 노란 버트런드 주, 새빨간 벨틀린 주, 노이엔브르그의 별표주,
그밖에 많은 술과 친하게 되었고, 술의 좋은 벗이 되었다.
3.  고향의 무미건조하고 억누르는 듯한 공기에서 벗어나, 나는 기쁨과
자유의 커다란 날개를 활짝 폈다.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내 생활은 실패의
연속이었으나, 그러면서도 청춘시절의 특유한 공상적인 즐거움을 풍부하고
순수하게 맛보았었다.  꽃피는 숲기슭에 쉬고 있는 젊은 무사처럼 싸움과
희롱 사이의 즐거운 불안 속에 살았었고, 또한 예언자처럼 커다란 격류와
폭풍의 소리를 들으며 온갖 사물의 공명과 모든 생명의 조화를 듣기 위해
어두운 심연가에 서기도 했었다.  청춘의 넘쳐흐르는 잔을 마음껏
행복스럽게 마시기도 했고, 아름답고 수줍은 내 존경하는 여성으로 인해
남모르게 달콤한 괴로움도 겪었고, 또한 남성적이고 명랑하고 순진한
우정의 기품있는 젊은 행복을 근본적으로 맛보기도 했었다.
  이제 나는 양피옷을 입고 책과 그밖의 것으로 가득찬 작은 트렁크를
들고, 한 세계를 정복하여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고향의 무골충(줏대가
없이 무른 사람을 욕으로 이르는 말)들에게 나는 다른 카멘친트들과는
재목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스스로 결심하며 거리에 도착했다.  3년
동안 난 멀리까지도 조망이 좋고 바람도 잘 통하는 고미다락방에 하숙하며
공부도 하고, 시도 짓고, 동경하며,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따듯한
친밀감을 갖고 나를 감싸주는 것을 느꼈다.  매일 더운 음식을 먹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매일 매밤 매시간을 강렬한 기쁨에 차서 노래하며 웃으며
울며 지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인생을 열렬히 동경하며 포옹했었다.
  취리히는 백면서생인 페터라는 내가 본 최초의 큰 도시였다.  그리고
나는 몇 주일 동안이나 구경거리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곤 했었다.  나는
특별히 도시생활을 찬미하거나 선망하지는 않았었다.  그것은 내가
농부였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러 거리와 집들과 사람들의 모양을
보고 즐겼었다.  나는 차가 왕래하는 거리며, 부두, 광장, 공원, 고층
건물, 교회 등을 구경하고, 또한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터로 떼를 지어
가고, 학생들이 걸어가고, 고귀한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가고, 멋쟁이들이
어깨를 버티고 다니며, 외국인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근대적이고
우아한 부잣집 부인들은 양계원의 공작처럼 어여쁘고 사랑스러웠으나 좀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나는 본래 수줍은 편은 아니었으나 강직하고
고집이 세어 도시의 이런 활기찬 생활에 근본적으로 익숙해져서, 훗날
자신이 그 속에 확고한 지위를 발견하게 되기에는 내가 너무나도
촌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름답고 젊은 청년이 내게 나타났다.  그는 나와 함께 이 도시에서
공부하며 내가 묵고 있는 하숙집 이층에 아담한 방 두 개를 빌려 살고
있는 청년이었다.  나는 매일 나의 방 아래층에서 그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처음으로 가장 여성적이고 가장 감미로운 예술인 음악의
매력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음악이 끝나면 그 미남 청년은,
왼손에는 책이나 악보를 끼고 오른손에는 담배를 피워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담배연기가 유순하고 가냘픈 걸음걸이 뒤로 맴돌곤
하였다.  나는 그에게 은근한 사랑을 느꼈으나 그를 가까이하지는 않았다.
 명랑하고 자유롭고 부유한 그와 같이 서면, 나의 빈곤과 못남이 나를
비굴하게 만들 것 같아서 그와의 교제를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먼저 내게 찾아왔다.  어느 날 저녁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나는 좀 놀랐었다.  그것은 여태까지 아무도 나를 방문한 일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잘생긴 그 대학생이 들어와 내게 악수를 청하고 자기 이름을
말했는데, 마치 구면인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쾌활했었다.
   저와 음악을 좀 같이 하자고 찾아왔는데요.
하고 그는 친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여태까지 악기를 만져 본 일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알프스 지방의 민요를 부르는 것 외에 아무 재주가 없다는 것과
그리고 종종 들려오는 그의 피아노 소리는 무척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말을 했다.
   어쩌면 이렇게 속일 수 있담!
  그는 유쾌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겉모습을 보고 첫눈에 음악가라고 단정했었는데,
이상하군요1 그러나 민요를 부르신다지요? 어디 한 번 불러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정말 한번 듣고 싶군요!
  나는 아주 당황하며 그렇게 정식으로 청하면 부르긴 하겠는데
방안에서는 부를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산위에서나 적어도 밖에서,
그것도 흥이 날 때에만 부를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럼 산에서 불러 주십시오! 내일이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저녁 때쯤 같이 갑시다.  좀 걸어 다니며 이야기를 하고 나서
노래를 듣기로 하지요.  그리고나서 마을 어느 곳에서 저녁을 같이
합시다.  시간은 있으시겠지요?
  물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나는 곧 승낙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무엇이든 한 곡 쳐달라고 부탁을 해 크고 훌륭한 그의 방으로 내려갔다.
사진틀에 끼인 몇 장의 그림과 피아노와 일종의 우아한 혼잡과 연한
담배냄새가 아담한 방안에 자유스럽고 유쾌하고 고상하게 살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그것은 내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리하르트는
피아노에 앉아 몇 소절을 쳤다.
   이게 무슨 곡인지 아시죠?
  그는 내쪽을 보고 머리를 끄덕였는데, 그가 그렇게 연주를 중지하고
귀여운 머리를 이쪽으로 숙이고 나를 황홀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아뇨, 저는 전혀 모르겠는데요.
  내가 말했다.
   바그너입니다.  아미스터징거의 한 소절이지요.
  그는 대답하고 나서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경쾌하고 힘차고 동경하듯 명랑하게 들려 흐뭇한 흥분을
일으키며, 마치 목욕탕 속에라도 있는 것처럼 나를 감싸 녹여 주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기쁨을 감추고 연주자의 긴 목과 등과
음악가다운 아름다운 흰손을 바라다보았다.  그랬더니 이전에 저
갈색머리의 학생을 바라보았을 때와 같은 수줍고 감탄적인 사랑과 존경의
감정이 마음에 넘쳐흘렀다.  그와 함께 이 잘생기고 훌륭한 사람이 정말
나의 벗이 되어 줄까, 그리고 이러한 우정에 대한, 옛날부터 잠시도 잊은
적이 없는 나의 소원을 실현시켜 줄 것인가 하는 불안스러운 기대가
일어났다.
  이튿날 나는 그를 데리러 갔다.  우리들은 천천히 잡담을 하며 꽤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서 시가와 호수와 공원을 내려다보며 저녁 무렵의 풍부한
미를 즐겼다.
   그럼 이제 노래를 부르시지요.  여전해 부끄러우시면 돌아서서 불러도
좋습니다.  그러나 크게 불러 주십시오!
  리하르트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는 만족했을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높여 재주껏 장밋빛
같은 저녁놀을 향해 민요를 불렀다.  내가 노래를 마치자, 그는 무어라
말하려다 말고 귀를 기울이며 먼 산을 가리켰다.  먼 산에서 대답이
나직하고 길게 늘어졌다가 높이 들려왔다.  아마 목동이나 길손의
인사였을 것이다.  우리들은 조용히, 기쁘게 그것을 듣고 있었다.
처음으로 벗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아름다운 장밋빛 구름에 싸인 인생을
멀리 바라본다는 생각이 이렇게 서서 듣고 있는 사이에 샘솟듯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저녁 호수는 부드러운 빛을 희롱하기 시작하고, 해가 지기
직전의 녹아버리는 안개 속으로 예리한 톱날 같은 알프스의 산봉우리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저기가 나의 고향입니다.  저 가운데 있는 낭떠러지는 붉은 절벽이라고
부르며, 오른쪽이 가이스 호른 산이고, 왼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둥근 젠알프스 봉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저 산의 꼭대기에 올라간 것은
10살 하고 삼주일이 되었을 때입니다.
  나는 말했다.  그리고 더 남쪽에 있는 한 봉우리를 찾으려고 눈을 크게
떴다.  잠시 후에 리하르트는 무어라고 말했으나,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뭐라고 그랬어요?
  나는 물었다.
   당신이 무슨 예술을 하는지 지금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래 그게 무슨 예술이지요?
   당신은 시인입니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화가 났으나, 동시에 그가 바로 맞힌 데 놀랐다.
   아니에요, 나는 시인이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시를 좀 썼습니다만
지금은 그만 둔 지 오래됐습니다.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언제 한번 보여 주시겠어요?
   다 태워버린 걸요.  그러나 설사 가지고 있어도 보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확실히 현대적인 것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니체에 관한 것도 많이
들어가 있는······.
   니체? 그것이 무엇이지요?
   아니 아직 니체를 모르시나요?
   네, 잘 모르겠는데요.
  내가 니체를 모른다고 하자 그는 의기양양해 하였다.
  나는 화가 나서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과거에 빙하를 얼마나 걸어 보았소?
  그가 한 번도 걸어 본 일이 없다고 말하자, 나는 그가 아까 내게 했던
태도로 조롱하듯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그는 손을 나의 어깨에
얹고 아주 진실한 태도로 말했다.
   자존심이 대단히 세군요.  그러나 당신이 얼마나 부럽도록 범상하지
않은 존재며,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세상에 많지 않다는 것을 아마 모를
것이오.  두고 봐요, 이제 한두 해 안으로 니체며 그밖의 모든 사람을
나보다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나보다 더 철저하고 영리하니까.
 그러나 사실 나는 지금의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니체도 바그너도
모르지만 눈 덮인 산에 여러 번 올라갔었고, 또 그런 튼튼한 산골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정말 시인이오.  그건
눈과 이마를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지요.
  그러나 내가 더욱 놀라고 행복스러웠던 것은 일주일쯤 후에 소란스런
비에 홀에서 그를 만나 형제간의 우정을 서로 맺고, 그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키스를 하고 나를 끌어안으며 미친
사람처럼 나와 함께 테이블을 돌며 춤을 춘 때였다.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나는 겁을 집어먹으며 그에게 말했다.
   둘은 아주 행복스러운 모양이군, 아니면 아주 정신없이 취한
모양이든가,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대개는 아무 생각도 안할
것입니다.
  대체로 리하르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현명하였고, 교육을 더 많이
받았으며 모든 일에 정통하고 세련되어 보였으나, 나에게 비하면 종종
순진한 어린애같이 보였다.  길거리에서 그는 아직 어린 여학생에게
농조로 사랑을 구하는가 하면, 가장 진실한 피아노 곡을 치다가 갑자기
어린아기 같은 농담을 하며 중단하는 것이었다.  한번은 장난삼아 교회에
들어갔었는데, 설교 도중에 그는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 듯한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때, 저 목사 꼭 늙은 토끼같지 않아?
  나는 그 비유는 꼭 들어맞았으나 나중에 말해도 좋을 일이 아니냐고
말했더니, 그는 화가 나서 말하였다.
   하지만 정말이잖아.  넌 나중에 말하라고 하지만 그때면 벌써 잊어먹고
말 텐데 뭘.
  그의 기지는 결코 씨가 먹은 것이 아니었고, 때로는 붓슈의 시를
인용하여 웃기기도 했지만, 내게 있어서나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를 좋아하고 감탄한 것은
그의 기지와 정신 때문이 아니었고 그의 맑고 어린애 같은 본성에서
나오는, 어찌할 수 없는 쾌활한 성격이었던 까닭이다.  그 쾌활한 성격은
어느 순간에나 나타나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로써 그를 감싸 주었었다.
그것은 그의 몸짓, 그의 미소, 그의 쾌활한 눈을 통해 나타나므로 오래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아마 자면서도 웃고 쾌활한 몸짓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하르트는 종종 다른 젊은이들, 즉 학생, 음악가, 화가, 문인, 그밖의
온갖 외국인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그것은 이 거리를 헤매며, 재미있는
예술을 사랑하는 특수한 사람이라면 모두 그와 교제했었던 까닭이었다.
그 중에는 굉장히 진지하고 투쟁적인 정신의 철학자, 미학자,
사회주의자도 있어서, 그들에게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여러
방면의 지식들을 하나하나 내것으로 만들었고, 한편 독서 속에서 점점
무엇이 이 시대의 가장 민활한 사람들의 머리를 괴롭히고 속박하고
있는가에 대한 어떤 생각들을 찾았으며, 국제적 정신에 대한 유익하고
자극적인 통찰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희망, 예측, 활동, 이상에 대하여
충동에 이끌려 적극적으로 찬성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그것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사상과
정열의 온갖 노력을 사회, 국가, 과학, 예술, 교육방법 등의 상태를
연구하고 계획하는 데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외적인 목적보다도
자기자신을 쌓아가고, 시대와 영원에 대한 자기의 개인적 관계를 밝혀
나가려는 필요성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나 자신에 있어서도
이러한 충동은 거의 졸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오로지 리하르트만을 존경하며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더
우정을 맺지는 않았다.  나는 질투를 하여 그가 믿고 자주 교제하는
여성들까지도 그를 떠나게 하려 했었다.  그와 한 약속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꼭 지켰고, 나를 기다리게 하는 경우에는 화를 내곤 했었다.  한
번은 리하르트가 몇 시에 보트를 타러 가자고 나보고 찾아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갔더니 집에 없어서 쓸데없이 세 시간 동안이나
기다렸었다. 그 이튿날 나는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을 몹시
비난하였다.
   그럼 왜 혼자 가지 않았나?
  그는 의아스러운 태도로 웃었다.
   나는 그것을 그만 깜빡 잊었었네.  그게 뭐 그리 잘못된 일이라도
되나?
   나는 약속을 꼭 지키는 습관이 있네.  그러나 나는 어디서 내가
기다리는 것을 자네가 안다손 치더라도 무심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친구가 아주 많으니까 말일세!
하고 격분하여 대답했다.
  그는 매우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여보게, 그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나의 우정은 내게 있어서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야.
   그 말씀 그의 마음에 스며들어 곧 고치기로 맹세했네.
  그는 이렇게 엄숙하게 시를 인용하고 나서 나의 머리를 감싸안고 동양식
여성의 표현방식으로 그의 코 끝을 내 코 끝에 대고 문지르며, 내가
귀찮아 웃으며 그를 밀칠 때까지 나를 애무하였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우정은 다시 회복되었다.
  내 고미다락방엔 빌려온 책과 때로는 근대의 철학자, 시인, 비평가들의
비싼 책을 비롯해 독일과 프랑스의 문학잡지, 새로운 희곡, 파리의
문예신문, 비엔나의 유행 심미작가들의 책까지 다 있었다.  나는 이러한
빨리 읽을 수 있는 것들보다도 이탈리아의 고전 단편소설과 역사를 더욱
열심히 즐겨 연구하였다.  나의 소원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언어학을
해치운 후 역사연구에만 열중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반사와 역사
연구방법에 관한 책을 읽는 한편,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중세 후기에 관한
사료와 논문을 주로 읽었다.  그러는 중에 나는 처음으로 내가 경애하는
모든 성자 중 가장 거룩하고 신성한 앗시시의 성 프란시스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풍부한 생활과 정신이 내 앞에 전개되어 나의 꿈은
나날이 사실화되어 갔고, 내 마음은 야심과 기쁨과 청춘의 자부로
가득찼었다.  강의실에서는 진지하기도 하지만 약간 엄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소 지루한 학문을 연구하는데 바빴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중세기의 음침하면서도 신앙적이거나 무서운 이야기 또한 즐거운 고대
단편소설에 파묻혀 그 아름답고 좋은 세계가 그늘진 어두운 동화처럼 나를
에워싸기도 하고 또는 근대적인 이상과 정열의 물결이 내게서 떠나가는
듯한 느낌을 가졌었다.  간간이 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리하르트와
같이 웃기도 하고, 그의 친구의 회합에도 참석하고, 프랑스 사람, 독일
사람, 러시아 사람들과도 사귀며 묘한 현대적 글이 낭독되는 것도 듣고,
여기저기에 있는 화가들의 화실에도 들어가 보고, 애매하고 흥분한
청년사상가들이 많이 나타나 환상적인 사육제처럼 나를 둘러싸는 밤의
모임에도 참석하였었다.
  어느 일요일에 나는 리하르트와 같이 어떤 새로운 작은 회화 전시회에
갔었다.  내 친구는 몇 마리의 산양이 있는 알프스의 목장을 그린 그림
앞에 섰다.  그것은 정성껏 깨끗하게 그려져 있었으나 사실에 있어,
진정한 예술적 핵심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전시회에 가도
이런 깨끗하고 거의 무의미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어쨌든 그 그림은
고향의 알프스 목장을 꽤 충실히 그린 것으로서 나를 기쁘게 하였다.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는 리하르트에게 그 그림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이것이야.
  그는 한구석에 있는 화가의 시인을 가리켰다.  나는 붉은 갈색의 그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이 그림은 대단한 것은 아니야.  더 좋은 그림이 있지.  그러나 이
그림을 그린 여류화가보다 더 예쁜 여자는 아무도 없어.  에르미니아
아그리에티라고 하는데, 자네가 원하면 내일 그 여자에게 같이 가서
당신은 위대한 여류화가입니다 하고 추켜 주어도 좋아.
   자네가 이 여자를 아나?
   물론이지.  그 여자의 그림이 그녀만큼 아름다웠다면 벌써 부자가
되어서 그림같은 건 더 그리지 않았을 것일세.  별로 흥미도 없지만 달리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길을 배우지 못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지.
   그러나 리하르트는 그 일을 계속 잊고 있다가 몇 주일 후에야 겨우 그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난 아그리에티를 만났네.  사실 우리는 전날 찾아가기로 했었지?
자, 가세!  자네 깨끗한 칼라가 있지?  그 여자는 특히 거기에 관심을
갖거든.
  칼라는 깨끗이하였었다.  우리는 함께 아르리에티의 집으로 갔다.  나는
속으로 좀 언짢았다.  그것은 여류화가들과 여대생들, 리하르트나 그의
동료들의 자유스러우면서도 좀 방종한 교제가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들이 교제할 때에보면 남자들은 좀 염치가 없고
야비했으며, 어떤 때는 익살을 부렸고, 젊은 아가씨들은 실제적이고 꾀가
있으며 교활하였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여자들이 갖고 있는
고상한 향기 같은 것을 그 여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약간 주저하면서 나는 화실로 들어갔다.  화실의 분위기에는 많이
익숙했으나, 여자의 화실에 들아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미건조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서너 개의 완성된 그림이 틀 속에
들어 걸려 있고, 한 개는 전혀 칠을 하지 않은 채로 이젤 위에 놓여
있었다.  벽의 남은 곳은 연필로 그린, 퍽 산뜻해 보기좋은 스케치들과
반쯤 빈 책장으로 가려져 있었다.  여류화가는 우리들의 인사를 냉정하게
받았다.  그 여자는 화필을 놓고 앞치마를 걸친 채로 책장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 우리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리하르트는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에 대하여 터무니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 여자는 웃으면서 그러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거 보시오.  나는 정말 그 그림을 사려고 했습니다.  어쨌든
그 소들은 실감이 났거든요.
   그것은 염소들이에요.
  그 여자는 침착하게 말했다.
   염소?  물론 염소지요! 나는 다만 나를 놀라게 한 그 연구심을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실감이나서 산 염소와 꼭 같았습니다.  산골에서
온 내 친구 카멘친트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 말이 옳다고 할 것입니다.
  주저하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에 나는 여류화가의 눈길이 나를
바라보며 음미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여자는 오랫동안 끊임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당신은 산골 분이세요?
   그렇습니다, 아가씨.
   그래요?  그럼 당신은 내 염소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대단히 좋았습니다.  적어도 저는 리하르트처럼 그것들을 소로
보지는 않았으니까요.
   당신은 참 좋은 분이시군요.  음악가이신가요?
   아닙니다, 학생입니다.
  그 여자는 나와 더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여자를
관찰할 여유를 가졌었다.  몸은 앞치마에 가리워져 추해 보였고, 얼굴은
내가 보기엔 그리 예쁜 편은 아니었다.  얼굴은 뾰족하며 딱딱하고, 눈은
좀 날카롭고, 머리털은 검고 부드럽고 숱이 많았다.  그러나 눈에 띄도록
싫증나게 하는 것은 얼굴빛이었다.  그것은 꼭 고르곤 졸라 치즈를
연상시켰다.  그 속에서 푸른 빛의 금이 갈라져 있는 것을 본다 해도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또한 그렇게 창백한 얼굴도 처음 보았다.
그것은 운나쁘게도 아침의 화실 광선으로 인해 놀랄 만큼 돌처럼보였다.
그것도 대리석 같은 것이 아니라, 풍화되어 아주 빛이 낡은 돌처럼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여자의 얼굴 모습을 따지는 데 익숙하지
못했으므로, 아직 소년다운 방법으로 얼굴의 윤기, 장밋빛 볼, 애교 같은
것을 찾으려 했었다.
  리하르트 또한 오늘의 방문을 기분나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잠시 후에 그가 나에게,
   아그리에티가 자네를 그려봤으면 좋겠다고 하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놀랐었다.
스케치를 하려는 데 얼굴은 필요없고, 나의 폭이 넓은 몸이 약간 특징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가 더 진전되기 전에 나의 전생애를 변경시키고 수년 동안에
내 미래를 결정한 조그마한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날 아침
깨어났더니 나는 일약 문사가 되어 있었다.
  나는 리하르트의 권유에 의해 문장 연습삼아 때때로 우리 주위의
사람들, 작은 체험, 대화 그리고 그외의 것을 스케치하여 되도록 충실하게
묘사해 보았고, 또한 문학과 역사에 관한 논문도 몇 편 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내가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리하르트가 들어오더니 이불 위에 35프랑을 내놓으며 딱딱하게 말했다.
   이건 자네 것일세.
  내가 온갖 억측의 질문을 하자, 그는 호주머니에서 신문 한 장을 꺼내
그 속에 나의 단편이 발표된 것을 보였다.  그는 내 원고 중에서 하나를
정서하여 그와 친한 어떤 신문 편집자에게로 가지고 가서 몰래 나를 위해
팔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인쇄된 것과 그 고료를 함께
받았다.
  나는 이처럼 이상한 기분을 가져본 일이 일찍이 없었다.  사실 나는
리하르트의 지나친 친절에 한편으론 화를 내면서도 처음 당하는
문사로서의 기분좋은 긍지와 꽤 많은 돈과 앞으로 있게 될 문사로서의
작은 명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져 결국 그에게 지고 말았다.
  어느 카페에서 리하르트는 나와 그 편집자를 만나게 해 주었다.
편집자는 리하르트가 보여 준 다른 작품들도 맡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신작품 또한 종종 자기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내가 쓴 것
중에서 특히 역사에 관한 논문은 독특한 맛이 있어 좋다고 하며, 그것을
보내 주면 원고료를 제대로 잘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에야 비로소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매일 규칙적으로 밥을
먹게 되었고, 작은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리한 공부를
집어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영역에서 일하며 내 수입으로써 충분히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 나는 그 편집자로부터 평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신간 서적의
꾸러미를 받았다.  몇 주일 동안 나는 열심히 그 일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원고료는 3개월 후에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원고료만
믿고 지금까지 보다 넉넉하게 생활한 까닭으로 어느 날 한 푼도 없이 된
것을 알고는 다시 단식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간은 하숙집에서
빵과 커피로 참을 수 있었으나 배가 고파서 나는 어떤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값 대신 저당물로 평을 쓰라고 준 책 중에서 세 권을 들고 갔었다.
헌책방에 그것을 들고 갔으나 소용이 없었다.  식사는 훌륭했지만 식사가
끝나고 블랙 커피를 마실 때에는 가슴이 약간 떨렸다.  나는
조마조마하면서 돈을 가진 것이 없으니 그 대신 책을 저당으로 두겠다고
심부름하는 소녀에게 말했다.  그 소녀는 그 중에서 시집 한 권을 들고
호기심에 차서 페이지를 넘겨 보더니 읽어도 좋으냐고 물었다.  그 소녀는
독서를 매우 좋아하지만 책을 얻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세 권을 식사 대금 대신
저당하기를 청하여 승낙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차례차례로 17프랑
대신에 그 소녀는 나의 책을 받아갔다.  작은 시집 몇 권에 빵과 치즈,
장편소설 몇 권에는 빵과 포도주, 단편소설 몇 권에는 빵과 커피 한 잔에
해당하는 데 불과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것들은 대체로 충동적인 유행
문체로 씌어진 보잘것 없는 작품들이었으나, 사람 좋은 이 소녀는 아마
현대 독일 문학에 대해 특별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어느 날 오전을
회상하면 지금도 괜히 웃음이 나온다.  나는 그날 오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둘러 책을 또 한 권 끝까지 읽고 그것에 관해 몇 편 썼다.
점심 때까지 끝내고 그 책으로 점심을 사먹으려고 했던 까닭이었다.
리하르트에게는 이러한 나의 궁핍을 감추려고 하였었다.  그것은 쓸데없이
내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고, 또한 그의 도움을 좋아하지 않았고,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단시일에 갚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나는 나를 시인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내가 주로 쓴 것은
장문이었고 시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언젠가 내게도 동경과
생을 위한 위대하고 담대한 시를 지을 날이 있을 것이라는 남모르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내 마음의 즐겁고 맑은 거울은 아직 큰 괴로움으로 흐려진 일은
없었으나, 때로는 우울로써 흐려지곤 하였었다.  이 우울은 하루 혹은
한밤 동안 꿈 같은 고독한 예수로 나타났다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수주일 혹은 수개월 후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었다.  나는 친한
여자친구에게 익숙해지듯이 점점 이 우울증에 익숙해져서 그것을 괴롭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독특한 감미를 가진 불안한 권태로써 느끼게
되었다.  밤에 이 우울증이 엄습하면 나는 몇 시간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창에 기대어 검은 호수, 연푸른 하늘에 그려진 산의 그림자,
그리고 그 위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모든
밤의 아름다움이 올바른 비난의 눈으로써 나를 보는 듯한, 불안스럽고
감미로운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별과 산과 호수는 그
아름다움과 그들의 묵묵한 존재의 괴로움을 이해하여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동경하는 것 같았고, 그 사람이 바로 나이며, 이 묵묵한
자연을 문학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의 참다운 천직인 듯이 느껴졌다.  어떤
방법으로 그것이 가능할는지는 아직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나는
다만 아름답고 엄숙한 밤이 참을 수 없는 듯 묵묵히 요구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을 느꼈다.  이러한 기분 속에서는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어두운 음성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느꼈고,
이러한 밤을 지낸 후에는 대개 며칠 동안 외로운 도보여행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렇게 하는데서 내게 묵묵히 애원하는 대지에게 약간의
사랑을 표시하는 것같이 느꼈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다시 웃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 여러 여행은 그후의 나의 삶의 토대가 되었다.
나는 그후 대부분의 세월을 방랑자로서 수주일 혹은 수개월 걸려 많은
지방을 여행하였다.  나는 약간의 돈과 한 개의 빵을 호주머니에 넣고
멀리 걸으며, 며칠씩 고독하게 여행을 계속하였고, 때때로 밖에서 자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이러한 문필생활로 인해 여류화가를 잠시 잊었었다.  그때 그
여자에게서 쪽지 하나가 왔다.

    이번 목요일에 남녀 몇몇 친구가 우리 집으로 차를 마시러 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쪼록     당신도 참석하여 주시기 바라며, 당신의 친구도
함께 오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그곳에 가서 예술가들의 작은 모임에 참석하였다.  모두
대단히 만족하여 기분들이 좋았었으나 전혀 이름이 없는 사람, 성공하지
못한 사람,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들이 모인 데서 나는 약간 감동되었다.
차와 버터를 바른 빵과 햄과 샐러드가 나왔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고, 그렇지 않아도 말을 잘 하지 않는 나는 무척 배가 고팠던 터라,
다른 사람들이 겨우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하고 나서 한
30분 동안을 말 한마디 없이 끈기있게 먹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차례차례로 음식을 먹으려 하기 시작하였을 때에 나는 나 혼자서 그 많은
햄을 다 먹어버린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적어도 한 그릇쯤 예비로
있으리라고 잘못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킥킥 웃으며 조소하는
눈초리가 여기저기 보였으므로 나는 분개하여 이 이탈리아 여류화가와
그녀의 햄을 함께 저주하였다.  나는 일어서서 그 여자에게 간단히 변명을
하고, 이 다음부터는 내 저녁은 내가 가져오겠다고 선언하며 모자를
집어들었다.
  그랬더니 아그리에티는 놀라서 내게서 모자를 빼앗고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면서 그대로 있으라고 간곡히 사정하는 것이었다.  비단으로 된
갓을 통해 스탠드의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비치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화가 난 중에서도 날카로운 눈으로 갑자기 이 성숙한 여인이 놀라우리만큼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곧 내가 대단히 실례를 한
어리석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책망받은 학생처럼 좀 떨어진
한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곳에서 고메르 호수의 앨범을
뒤지며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차를 마시며 왔다갔다하면서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그때에 어느 뒤끝에서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가 울려
나왔다.  막이 열리며 네 청년이 현악 사중주를 연주할 양으로 갑자기
만든 악보대를 앞에 놓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때 여류화가는
내게로 와서 홍차 한 잔을 내 앞 탁자 위에 놓고는, 친절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내 옆에 앉았다.  사중주가 연주되기 시작하여 오래 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그것은 듣지 않고 눈을 크게 뜨고는 이 날씬하고 품위있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만을 바라보았다.  한때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의심하였었고,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내가 다 먹어버렸던 그
여인이었건만, 지금은 기쁨과 불안한 마음으로 그녀가 나를 그리겠다고 한
기억을 떠올렸다.  다음에 로에지 기르타네르, 알프스의 들장미가 있는
절벽을 올라간 일, 눈아가씨의 이야기 등이 생각났으나 지금의 내게
있어서는 그 모든 것이 오늘의 이 순간을 위한 준비에 불과하였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음악이 끝난 후에도 여류화가는 내가 염려하고 있었던대로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그냥 조용히 앉아서 나와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신문에 난 나의 단편에 대해 축하를 했고, 두세 명의 아가씨들에게
둘러싸여 다른 누구보다도 크게 웃어대는 리하르트에 관해 농담을 하였고,
그리고 나서 나를 그리게 해달라고 다시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나서 나는 이탈리아어로 말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가
생기있는 남국 사람과 같이 즐거워하며 놀라는 눈을 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녀의 모국어, 즉 그녀의 입과 눈과 모양에 어울리는 뎃신의
사투리가 섞인 즐겁고 경쾌하고 유창한 발음으로 명랑하고 우미하고
흐르는 듯이 빠른 토스카나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기뻐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은 아름답고 유창하게 말할 수 없었으나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 이튿날, 그녀가 나를 그릴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 그녀를
찾아갔다.
   안녕.
  나는 떠날 때에 이탈리아어로 말하면 될 수 있는 대로 깊이 허리를
굽혔다.
   안녕, 내일 만나요.
  그녀도 웃으며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녀의 집에서 떠나올 때에 나는 언제나 마냥 끝없이 걸어서 어떤 높은
언덕에 이르곤 하였다.  그러면 갑자기 어두운 평지가 아름답게 밤빛에
싸여 눈앞에 내려다보였다.  호수에는 붉은 등을 단 보트가 몇 척 떠 있어
검은 물 위에 몇 개의 흔들리는 붉은 줄을 던지고있는 것 외에는 여기저기
엷은 은빛의 윤곽을 그리며 띄엄띄엄 작은 물결이 일고 있었다.  가까운
정원에서는 만돌린을 타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은 반쯤
흐리고 언덕 위에는 거세고 뜨거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이
과일나무의 잔가지며 카스타니아의 검은 머리를 어루만지며 휘두르고
휘어잡아, 그것들이 신음하고 웃으며 떨듯이 온 정열이 나를 희롱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언덕마루에 꿇어앉기도 하고, 땅 위에 몸을 눕혔다가
벌떡 일어나서 신음하며 땅을 구르고, 모자를 내동댕이치고, 얼굴에 풀을
비비고, 나무밑동을 흔들면서 울고 웃고 흐느끼고 미쳐 날뛰고 뉘우치기도
하며, 행복스러웠고 또한 죽을 듯이 괴로웠다.  그러나 한 시간 후에는
모든 것의 긴장이 풀리고 우울한 더위에 질식하고 말았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결심도 없이 아무것을 느끼지도
않으며 몽유병자처럼 언덕을 내려와, 거리의 한 중간을 지나 뒷골목에
늦게까지 열려 있는 작은 주점을 보고 힘없이 들어가서 두 릿트르의
버트런드 주를 마시고 곤드라지게 취해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 오후에 갔더니 아그리에티는 깜짝 놀랐다.
   웬일이세요?  어디 몸이 편찮으세요?  몹시 아프신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어젯밤에 몹시 취했었거든요.  그뿐입니다.  자
시작하시지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는 움직이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그
말에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나는 곧 쿨쿨 잠이 들어 그날 오후를 쭉
화실에서 자고 말았다.  화실의 테르펜틴의 기름냄새 탓이었던지 나는
꿈을 꾸었다.  고향의 집에 있는 우리 배가 새로 잘 칠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옆 모래 위에 누워서 아버지가 페인트 통과 솔을 들고 일하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도 그곳에 계셨다.
   어머닌 돌아가신 게 아니었나요?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어머니는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물론 아니다.  내가 없으면 너는 결국 네 아버지처럼 술주정뱅이가
되고 말 테니까.
  눈을 떴을 때 나는 그만 의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곤 내가
에르미니아 아그리에티의 화실에 앉아 있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옆방에서 그녀가 커피 잔과 식기를 씻고 있는
소리를 들으며 저녁 준비를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셨어요?
  그녀가 저쪽에서 소리를 쳤다.
   네, 제가 오래 잤습니까?
   네 시간 동안이에요.  부끄럽지 않으세요?
   그래요, 그러나 저는 아주 재미있는 꿈을 꾸었어요.
   말씀해 주세요.
   네, 이리 나오셔서 용서해 주신다면.
  그녀는 나왔으나 꿈 이야기를 해야만 용서해 준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꿈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잊어버렸던
어린시절로 깊이 들어갔다.  방이 어둠에 차서 이야기를 그쳤을 때에는
그녀에게 내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전부 말해 주고 난 후였다.  그녀는
손을 뻗어 구겨진 나의 윗옷을 바로잡아 주고는 내일 다시 그리도록
와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오늘의 내 잘못을 이해하고
용서해 준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다음 며칠동안 날마다 나는 그 여자 앞에 몇 시간씩 앉아 있었다. 
말은 일체 못하였고, 마술에 걸린 사람처럼 앉았다 섰다 하며 콘테가
부드럽게 달리는 소리와 가벼운 유화냄새를 맡으며, 사랑하는 여인의
곁에서 끊임없이 그녀의 눈길을 받고 있다는 생각 외엔 아무 생각도
없었다.  하얀 화실의 광선이 벽에 흐르고, 조는 듯한 파리가 몇 마리
창문에 윙윙 날으며, 옆방에서는 알코올 램프의 불꽃소리가 노래하듯
들렸다.  한 차례씩 앉아 있고 나서는 커피를 대접받기로 되어 있었다.
  집에서 나는 종종 에르미니아를 생각했다.  내가 그녀의 예술을 존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조금도 나의 정열을 움직이거나 감소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대단히 아름답고 친절하고 명랑하고 착실했다.  그런데 그녀의
그림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나는 오히려 그녀의 열정있는
제작활동에서 어떤 영웅적인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생존경쟁에서
굳건하게 참으며 용감히 싸우는 여전사였다.  어쨌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러쿵저러쿵 생각하는 것처럼 무익한 일은 없다.  이런 생각의
흐름이라는 것은 그 속에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이 일어나, 맞지 않는
경우에까지 자꾸 쓸데없이 후렴을 부르게 되는 일종의 민요나 군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내 기억에 남은 아름다운 이탈리아 여자의 모습은 분명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가까운 사람보다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종종 느끼게 되는
여러 가지 가는 선과 특징을 생각해낼 수 없다.  난 그녀가 어떤 머리를
하고 어떤 옷을 입었었는지, 또한 몸집이 컸는지 작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나는 그녀를 생각할 때에 머리털이 검고 고상하게 빗은 여성다운
머리와, 희고 푸른 생생한 얼굴에 눈매는 날카로웠으나 그렇게 크지 않던
두 눈과, 완전히 성숙된 어여쁜 활 모양의 팽팽하고도 작은 입술이 다만
떠오를 뿐이다.  또한 그녀를 사랑하던 그때를 전체적으로 생각하면,
따뜻한 바람이 호수 위로 불고 있고, 내가 울며 기뻐하고, 미쳐 날뛰던
언덕 위가 생각난다. 그리고 내가 이제 말하려는 또다른 어느 날 저녁이
회상된다.
  어떻게 해서라도 여류화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구혼을 해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또렷해졌다.  만일 그녀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나는 그녀를 계속
존경하며, 그녀를 위해 모든 괴로움을 몰래 참고 견디었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 보며 말하고 악수를 하고 그 집에 드나들게 되니, 마음속에
가시가 박힌 것 같아 더 오래 참을 수 가 없었다.
  예술가들과 그들의 친구들이 모여 조그마한 여름축제를 가졌었다. 
호숫가의 어느 아름다운 정원에서 열렸던 한여름의 무르익은 온화한
저녁이었다.  우리들은 포도주와 얼음물 마시며, 음악도 듣고 나무들
사이에 매달아 놓은 긴 꽃다발에 걸린 붉은 색종이 램프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수다를 떨고, 조롱을 하고, 웃고, 나중에는 노래까지 불렀다. 
어느 너절한 청년화가는 낭만적인 태도로, 대담한 베레모를 쓰고 난간에
기대어 채가 긴 기타를 켰다.  좀 이름난 몇 명의 예술가는 참석하지
않았거나 혹은 눈에 띄지 않게 옆에 떨어져서 나이가 듬직한 축에 끼여
있었다.  부인들 중 젊은 몇 명은 얇은 여름옷을 입었고, 그 나머지
부인들은 평소에 입던 허름한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떠들고 있었다.  좀
나이들고 밉게 생긴 여대생은 특히 눈에 거슬렸다.  그녀는 단발머리에
남자 모자를 쓰고 여송연을 피워 문 채 익숙하게 포도주를 마시며 언성을
높여 떠들어댔다.  리하르트는 언제나처럼 젊은 처녀들 축에 끼여 있었다.
 나는 내심 흥분되었으나 냉정한 태도로 거의 술도 안 마시며, 오늘 함께
배를 타기로 약속한 아그리에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나타나서는 내게 몇 송이의 꽃을 주고 나와 함께 작은 배에 올라탔다.
  호수는 기름처럼 매끄러웠고 어둠에 싸여 빛이라곤 전혀 없었다.  나는
경쾌하게 노를 저어 고요한 호수 위 저편으로 나가, 나를 바라보며
뱃머리에 기대어 만족한 듯 편안히 앉아 있는 매력적인 여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늘은 아직 높고 푸르며 연약한 빛의 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고, 언덕 여기저기에서는 음악과 정원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노는 찰싹찰싹 소리를 내며 흐린 물을 쳤고, 다른
보트들이 고요한 호수면 여기저기에 어렴풋이 떠 있었으나 거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거기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조용히 키를 잡고
앉아 있는 여인에게만 눈길을 보내며, 계획했던 무거운 쇠사슬 같은
사랑의 고백을 가슴에 지니고 있었다.  저녁 풍경의 시적인 아름다움, 배
위에 앉아 있다는 것, 별, 온화하고 고요한 호수 그리고 그밖의 모든 것이
나를 불안하게 하였다.  그것은 그 속에서 감상적인 한 장면을 연출할
아름다운 무대장치처럼 보인 까닭이었다.  불안해지고 둘 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데에서 깊고도 고요한 압박감을 느껴 나는 힘껏 노를 저어
나갔다.
   참 기운도 세시네요! 
  여류화가는 감탄하듯이 말했다.
   뚱뚱하단 말씀이십니까? 
   아뇨, 근육을 보고 하는 말이에요. 
  그녀는 웃었다.
   네, 세구말구요. 
  이런 말들을 결코 내가 하려는 말을 꺼내는 데 적당한 시초가 될 수는
없었다.  쓸쓸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나는 계속해서 노만 저었다.  잠시
후에 나는 무슨 경험담을 얘기해 달라고 청했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아무거나 다 좋습니다 
하고 나는 말하였다.
   그러나 제일 듣고 싶은 것은 연애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나도 단 한
번 있었던 내 연애담을 말씀드리지요.  그것은 짧고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들으시면 아마 흥미로우실 것입니다. 
   어머나!  그럼 선생님부터 말씀하세요. 
   아닙니다, 먼저 말씀하십시오!  제가 당신에 관해서 아는 것보다도 더
많이 저를 알고 계실 테니까요.  저는 당신이 정말 사랑한 적이 있으신지
혹은 제가 두려워하듯 너무도 총명하고 자존심이 강해서 연애를 통
못하셨는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에르미니아는 잠시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언제나 그러한 당신의 낭만적인 생각이에요.  밤에, 더군다나 이
검은 물 위에서 여자더러 이야기를 하게 하시다니.  미안하지만 저는
못하겠어요.  무엇이나 아름답게 말하려고 하고, 자기 감정을 잘 말하지
않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당신네 시인들의
습관이에요.  그러나 저를 그렇게 생각하시면 큰 오산이에요.  세상에
저보다 더 열렬하고 사무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한 분을 사랑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분도 저 못지 않게 저를 사랑해요.  우리 둘이 같이 살게 될는지는 저도
알 수 없어요.  우리들은 서로 편지도 하고 또 가끔 만나기도
합니다만--. 
   실례입니다만 그 사랑이 행복하십니까, 불행하십니까 혹은 양쪽 다
입니까? 
   아, 연애란 행복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사랑이란 우리들이
얼마나 슬픔과 무거운 짐을 참고 견디는가 보기 위해 있다고 믿고 있어요.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답 대신 가벼운 탄식 같은 것이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소리를 들었다.
   아아, 당신도 벌써 그것을 아세요?  아직 그렇게 젊으신데!  고백해
주시겠어요?  그러나 말하고 싶다면 말이에요. 
   다음에 하지요, 아그리에티 씨.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기분이 좀 좋지
않은데, 혹시 제가 당신의 기분까지 상하게 하지 않았을까요?  아제 그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어요. 
   아무래도 좋아요.  얼마나 멀리 왔을까요? 
  나는 아무 대답도 더 하지 않았고 북동풍이라도 불어오듯이 노로 물을
탁 쳐서 배의 방향을 돌려 잡아 끌었다.  보트는 빠른 속도로 수면을
달렸고, 나는 마음속에 끓어 오르는 비탄과 수치의 도가니 속에서 구슬
같은 땀이 얼굴에 흘러내리며, 동시에 오한이 나는 것을 느꼈다. 
하마터면 나는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자가되어 부드럽고 상냥하게
거절당하는 추태를 연출하였을 것을 생각하니 등에 진땀이 났다.  적어도
그것만은 모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남은 비애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나는 홀린 사람처럼 노를 저어 나갔다.
  배가 언덕에 닿자, 간단히 인사를 한 후 혼자 그녀를 남겨 둔 채 떠나려
했더니, 아름다운 그녀는 좀 이상해 하는 눈치였다.  호수는 전과 같이
매끄럽고 음악 또한 전과 같이 즐거웠으며, 색종이 램프도 변함없이
화려하게 밝건만 지금의 나에게는 모든 것이 어리석고 우습게 보였다. 
특히 음악이 그랬다.  여전히 넓은 비단끈으로 기타를 자랑스럽게
둘러메고 있는 빌로드 양복을 입은 녀석을 때려눕히고 싶었다.  그는
불꽃을 공중으로 올리려 하고 있었다.  얼마나 어린애 같은 짓인가!
  난 리하르트에게 돈을 몇 프랑 꾸어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교외로
나가서 아주 멀리 몇 시간 동안을 잠이 올 때까지 걷기 시작하였다.  나는
풀밭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한 시간쯤 후에 몸이 이슬에 젖어 꼿꼿해지며
오슬오슬 오한이 나서, 다시 일어나 가까운 마을로 들어갔다.  이른
아침이었다.  클로버를 베려는 사람들이 먼지 나는 길을 지나가고 있었고,
잠이 덜 깬 머슴들이 외양간에서 눈을 크게 뜨고 내다보며, 가는 곳마다
여름철 농부들의 부지런함을 알리고 있었다.   나도 농부가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부끄러워하며 마을을 지나 뜨거워진 햇살에 비로소
피로를 느끼며 잠시 쉴 수 있는 곳까지 그냥 걸어갔다.  마침내 한 그루의
어린 개암나무 옆 마른 풀 속에 몸을 던지고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잤다.  머리에 풀냄새가 그윽하게 배고, 수족이 신의
사랑스런 대지 위에 오래 누워 있을 때에 느끼는 것 같은 상쾌하고도
무거움을 느끼면서 깨어났을 때는 축제도 뱃놀이도 그리고 모든 것이
수개월 전에 읽은 소설처럼 아득하고 서럽고 아른아른했다.
  나는 사흘 동안 그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므로 햇볕에 살결이 검게
그을렸다.  그냥 이대로 곧장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버지의 농사나
거들어드릴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었다.
  물론 그런 것으로 고통이 쉽게 가셔질 리가 없었다.  거리로 돌아온 후
처음에는 페스트를 피하듯이 여류화가의 눈을 피했으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후에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마다 슬픔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오곤 했었다.
4.  옛날에 아버지에게 당해내지 못했던 일을 실연의 슬픔으로 인하여
지금은 어느 정도 견디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실연의 슬픔은 나를
술고래로 만들었다.
  내 생애와 성질에 있어 이 일은 지금까지 말한 어떤 것보다도 중대한
것이었다.  강하고 감미로운 술의 신은 나의 진실한 벗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누가 술보다 힘이 더 셀 것인가?  누가 그렇게 아름답고
공상적이며, 열광적이고 즐거우며, 우울할 것인가?  술은 영웅이요
마술사이다.  술은 유혹자요 에로스의 형제이다.  술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술은 가련한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고 신비로운 시로
채워 준다.  술은 고독자이며 농부인 나를 왕자, 시인 그리고 현인으로
만들었다.  텅텅빈 인생의 배에 술은 새로운 운명을 실어 주며, 조난자를
다시금 위대한 인생의 급류로 돌려 보낸다.
  술은 과연 그렇다.  술은 모든 귀중한 선물과 예술과도 같다.  그리하여
술은 사랑을 받으며 찾게 되고, 이해되고, 또한 애써 얻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은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되지 못하고,
무수한 사람을 죽여버린다.  술은 그들을 늙게 하고, 그들을 죽이며
그들의 정신의 불꽃을 꺼버린다. 그러나 술은 그 사랑하는 자들을 잔치에
초대하여 그들을 행복의 섬으로 이끄는 무지개의 다리를 놓아 준다. 
사랑하는 자들이 피로할 때에는 머리 밑의 베개가 되어 주고, 그들이
슬픔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벗과 같이 위로해 주고, 어머니같이
친절하고 인자하게 포옹해 준다.  술은 혼란한 인생을 위대한 신화로
변하게 하고, 큰 거문고가 되어 창조의 노래를 켜 준다.
  술은 또한 긴 비단실 같은 고수머리에 작은 어깨와 귀여운 손발을 가진
어린애이다.  술은 그대의 품에 안겨 작은 얼굴로 그대를 쳐다보며 꿈꾸는
듯한 사랑스러운 큰 눈으로 그대를 응시한다.  그 눈동자 속에는 낙원의
추억과 하느님의 아들다운 순진한 성질이 숲속에서 새로 솟아나는 샘같이
빛나며 윤택하게 솟아오른다.  그리고 이 감미로운 신은 봄날 깊은 밤에
소리내며 흐르는 시내와 같고, 태양과 폭풍이 차가운 물결 위에 희롱하고
있는 바다와도 같다.
  술이 그 사랑하는 자들과 말할 때에는 비밀과 추억과 문학과 예감을
담은 거친 바다가 되어 소리를 내고 물결을 치며 그 위를 지나간다. 
그리하여 낯익은 세계는 작아져 끝내는 사라져버리고, 영혼은 불안한 기쁨
속에 아득히 모든 것이 생소하고 믿을 수 있으며, 음악과 시인과 꿈의
말이 서로 통하는 미지의 세계로 달려간다.
  이제 나는 다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
  나는 몇 시간 동안을 내 자신을 잊고 명랑하게 지내기도 하였고, 공부도
하고, 글도 쓰며 리하르트의 음악을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정 슬픔이
없이 지낸 날은 하루도 없었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문득문득 슬픔이
찾아들어 일어나서 울다가 지쳐 잠이 드는 때도 있었다.  아그리에티를
만난 날이면 이런 슬픔은 더했다.  슬픔은 대개 아름답고 서늘하며 피로한
여름저녁이 시작되는 늦은 오후에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호수로 가서 보트를 타고 마냥 노를 저어 나가므로 피로해져서 그대로는
도저히 집으로 돌아올 수 없게된다.  따라서 술집이나 요릿집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때때로 그 이튿날이면 거의 병자같이 되었었다.  그럴 때에는 무서운
슬픔과 싫은 생각이 들어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찾아가서 술을 마시곤 하였다.
  나는 점점 술의 종류와 그 효력을 구별하게 되었고, 아직 단순하고
소박한 편이었으나 일종의 맛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마시게 되었다. 
드디어 나는 짙은 다홍빛 벨틀린 주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 술은 첫잔은
쓰고 자극이 심하나, 그 다음에는 내 생각을 베일로 덮어 고요하고
끊임없는 몽상으로 인도하여 마술을 행하고 창작을 하고 시를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면 이때까지 내 마음에 들던 모든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둘러싸는 것 같고, 내 자신은 그 속을 방황하며, 노래하고 꿈꾸며,
내 속에 뜨겁게 약동하는 생명이 순환하는 것을 느끼곤 하였다.  그래서
마치 민요를 듣는 듯한, 그리고 내가 그 옆을 지나가며 놓쳤던 큰 행복을
어디서 다시 찾은 것 같은 유쾌한 슬픔으로 끝을 맺고는 하였다.
  차츰 나는 혼자서는 그리 마시지 않았고, 여러 친구들과 함께 마시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이면 술의 효력이 달라지곤 하였다.  그럴
때는 나는 말이 많아지고 흥분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냉랭하고 이상한
오한을 느끼곤 하였다.  그리고 나 자신도 여태까지 모르던 본성이 갑자기
드러났다.  그것은 화원의 꽃이나 관상용의 꽃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삽주(엉거시과의 여러해살이풀)나 새삼(새삼과의 한해살이 기생식물) 같은
종류에 속하는 것이었다.  또한 다변과 함께 날카롭고 냉정한 정신이
나타나 나에게 확신을 갖게 하고, 깊이 생각하게 하며, 비판적이고
기지적인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만일 그곳에 내 눈에 거슬리는
자들이 있으면, 그들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멋지고 교활하게 혹은 거칠게
계속해서 놀려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화를 내게 만들었다.  어릴적부터
나는 대체로 인간을 각별히 사랑하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인간을 비판적이고 풍자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작은
이야기를 일부러 지어내 즐겨 말하였는데 그 속에 나오는 인간의 관계를
애정 없는 것으로 만들고, 사실같이 꾸며 풍자적으로 말하고 신랄하게
그들을 조소하였다.  어디서 이런 경멸스런 생각이 나왔는지 나 자신도
몰랐으나, 그것은 본성에서 곪은 종기처럼 나타나 나는 오랫동안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저녁에 혼자 앉아 있으면, 나는 다시금
산과 별과 슬픈 음악을 꿈꾸었다.
  이러는 몇 주일 동안에 나는 현대의 사회, 문화, 예술에 관한 일련의
고찰을 저술하여 한 독설적인 소책자를 만들었다.  술집에서의 대화가
토대가 된 것이었으나 내가 꽤 열심히 애써 온 역사적 연구에서 많은
재료를 거기에 가미시켜 나의 풍자에 일종의 든든한 배경을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 어느 큰 신문에 늘 기고할 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되어
그것으로 거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전에 써두었던 단편 몇
개가 곧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꽤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제 나는 완전히
언어학을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벌써 고학년이 되었고, 독일잡지에도
관계를 맺게 되어 지금까지의 무명과 빈곤에서 벗어나 일약 저명인사 축에
끼어들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생활을 하게 되었고, 불쾌한 장학금을
단념할 수 있게 되어,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달고 작은 직업적 문인이라는
비굴한 생활로 돌진하였다.
  성공을 하든 자부심을 갖든 그리고 풍자를 하든 사랑의 괴로움이 있든
기쁜 때나 슬픈 때나 나에게는 언제나 청춘의 따뜻한 빛남이 있었다. 
잠시 풍자와 죄없는 흥미 상실의 상태에 빠졌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한 가지 목표인 행복, 즉 완성을 꿈꾸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어야 할는지는 나도 몰랐었다.  다만 인생이 언젠가는 나의 발 밑에
기쁜 행복, 즉 명성이든가 사랑이나 동경의 만족이든가 인격의
향상이든가를 가져다 줄 것으로 느꼈었다.  나는 또한 귀부인과
기사임명식과 큰 명예 같은 것을 꿈꾸는 못난이였다.
  나는 올라가는 궤도의 시초에 서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이 우연에 불과하다는 것도, 나의 성질과 생활에
아직 깊고 독특한 기본적인 것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또한 사랑도 명성도 끝이 없이 도저히 채울 수 없는 동경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얻은 약간의 작은 명성을 온갖 청춘의 기쁨을 다 동원해
즐기려 하였다.  좋은 포도주를 마시며 총명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과
나란히 앉았을 때 내가 말하기 시작하면, 그들의 얼굴이 열심히 주의를
집중하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때때로 나는 이렇게 모여 있는 모든 현대인의 정신 속에 얼마나 큰
동경이 구원을 외치며 구하고 있는지, 그 동경이 그들을 얼마나 기이한
길로 인도하는 것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어리석고 보기 싫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외에는 쇼펜하워,
석가, 짜라투스트라 그리고 그밖에 많은 이름과 여러가지 교훈이 신봉되고
있었다.  풍부한 취미가 느껴지는 조용한 방안에서 조각과 회화 앞에
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무명의 젊은 시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 앞에
꿇어앉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오트리콜리에서 발견된 제우스 신상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또한 금역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며
기상천외의 옷을 입은 금욕주의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신은 톨스토이나
석가였다.  깨끗하고 잘 조화된 벽에 걸린 모포의 그림, 음악, 음식,
포도주, 향수, 여송연 등의 자극에 의한 특별한 기분에 도취되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음악의 선율과 색채의 조화 같은 것에 관해
유창하게 말하며 혼자 아는 척하고 있었고, 어디서나 소위 개성적인 점을
찾고 있었다.  그 개성적인 점이란 대개 악이 없는 착각이든가 광기였다. 
말하자면 이 모든 발작적인 희극은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진실한 동경과 순수한 정신력이
타올랐다가 꺼지는가를 생각하고 전율을 느꼈다.
  내가 당시에 놀라움과 기쁨으로써 사귄 이 모든 공상적이고
의기양양하던 유행 시인, 예술가, 철학자 중에서 조금이라도 유명하게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중에 나와 동년배인 북부 독일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이 좋고 몸집이 작은 유순하고 사랑스런 사람으로 모든
예술적인 것에 관해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하였다.  그리고 몇 번 그의
시 낭송을 들었는데, 그것은 아직도 향기로운 정신이 깃든 아름다운
것으로 기억이 새롭다.  그야말로 우리들 중에서 정말 시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후에 우연히 그의 이야기를 잠깐 듣게 되었다. 
문학적 실패로 겁을 잔뜩 집어먹은 이 예민한 사나이는 사회와 등지고
어떤 문예보호자의 손에 들어갔는데, 이자는 그를 격려하여 본심으로
돌아가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타락의 길로 인도하였다는 것이다. 
즉, 그는 이 부호의 별장에서 신경질적인 부인들과 어리석은
심미주의자들에게 호언장담이나 하여 숨은 영웅으로 자처하다가 비참하게
타락되어, 다만 쇼팽의 음악과 라파엘 전기 파류의 도취에 빠져
의식적으로 지성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머리털을 지져서 늘어뜨리고 이상한 복장을 한 풋내기 시인들과 오만한
인텔리 여성들을 생각할 때에는 소름이 끼치고 동정이 간다.  그것은 후에
와서 이들과의 교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가를 알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러한 축에 끼어들지 않게 나를 보호한 것은 나의 산골 농부
기질이었다.
  그런데 명성이나 술이나 사랑이나 지혜보다도 한결 고귀하고 나를
기쁘게 해 준 것은 우정이었다.  결국 이것만이 타고난 나의 우울한
기분을 돋우어 내 청춘시절을 상하지 않고 생생하게 새벽의 붉은 빛 속에
보호해 주었다.   나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남성간의 훌륭하고 건전한
우정보다 더 귀중한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내가 만일 울적한 날에
무슨 청춘의 향수 같을 것을 느낀다면 그것은 오직 나의 학창시절의
우정을 생각함에서이다.
  에르미니아를 사랑한 이래로 나는 리하르트를 좀 등한히 여겼었다. 
그것은 처음 무의식중에 그렇게 된 것이었으나, 몇 주일 후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다.  내 사랑의 경위를 고백했더니 그는 실로 이런
불행한 일이 생겨서 커가는 걸 지켜 보는 것은 유감이라고 솔직히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마음으로부터 그를 독점이라도 하려는 듯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내가 그때 명랑하고 자유스러운 약간의 처세술을
익혔던 것은 모두 그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그는 몸과 정신이 모두
아름답고 건강하였다.  그리고 인생은 그에게 아무 그림자도 드리워지지
않도록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총명하고 활달하여서 시대의 정열과 과오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것들은 그의 곁을 그냥 스쳐가 아무 상처도 주지
않았다.  그의 걸음걸이, 그의 말, 그의 모든 성질은 부드럽고 경쾌하고
사랑스러웠다.  아!  그가 웃을 때란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술을 마시는 데 대해서 그는 그리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종종
나와 함께 술을 마시러 갔었으나 두 잔만 마시면 충분하여 그냥 나 혼자
마시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하였다.  그러나 내가 슬퍼져서 어쩔 수 없을
만큼 괴로워 하는 것을 보면 그는 피아노도 쳐 주고, 책도 읽어 주고,
밖으로 끌고 나가 산책도 같이 해 주었다.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갈
때에는 소년들처럼 기뻐하였다.  한 번은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서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누워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 전나무 방울을
던지기도 하고 엄숙한 곡조로 경건한 헬레네의 시를 노래하기도 했었다. 
물길이 빠른 맑은 시내가 졸졸 시원하게 귓전을 울려와, 결국 우리는 옷을
벗어던지고 찬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때 리하르트가 희극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이끼 낀 바위 위에 올라가 앉았다. 
그는 로렐라이의 처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작은 배를 타고 그 밑을
배 저어가는 사공이었다.   그는 처녀같이 수줍어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주 근심에 싸인 표정을 지어야 할 내가 그것을 보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사람들 소리가 높이 들리며 여행자 일행이 길가에 나타나서,
우리들은 벌거벗은 채로 급히 뛰어내려가 구석진 언덕 밑으로 숨어버렸다.
 그 일행이 우리들을 보지 못한 채 옆으로 지나갔을 때에 리하르트는 코와
입으로 여러가지 이상한 소리를 냈다.  행인들이 놀라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며 물속을 들여다 보았으므로 우리는 결국 발견되었다.  그때
나의 친구 리하르트는 숨은 자리에서 몸을 반쯤 내밀어 분개하고 있는
일행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설교하듯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는 곧 다시 숨으면서 내 팔을 꼬집으며 말했다.
   또 한 번 곯려먹었지. 
   어떻게? 
   판(목축신)이 몇 사람의 목자를 놀린 셈이지. 
  그는 웃었다.
   그러나 안된 것은 그 속에 부인들이 섞여 있었다는 점이야. 
  나의 역사 연구에 관하여 그는 거의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앗시시의 성 프란시스를 거의 편벽스러우리만큼 애모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는 곧 공감을 하게 되었다.  그는 경우에 따라서는 이 성자에
대해서까지 농담을 함으로써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우리들은 이 복받은
성자가 사랑스러운 소년처럼 감격에 차서 명랑하게 움브리아의 들을
방황하며 그의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한 사랑을
베풀던 광경을 연상하며, 함께 이 성자의 불멸의 태양의 노래를 읽으며
거의 암송하다시피 하였다.  한 번은 우리가 호수 위로 증기선을 타고
소풍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저녁바람이 금빛 물위로 물결을 일으키고 있을
때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여보게, 이런 풍경을 그 성자는 뭐라고 말씀하셨지? 
  그래서 나는 다음의 말을 인용하여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주여, 저희들은 찬미하나이다.  상쾌한 바람을, 하늘을, 흐리나 개이나
매시간 우리가 있음을! 
  우리들은 서로 싸움을 시작하고 욕설을 퍼붓게 되면 그는 언제나 반은
농을 섞어 학교의 어린이들이 하는 식으로 우스운 별명을 그냥 불러버리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없이 웃게 되어 화가 풀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나의
친구는 다만 자기가 사랑하는 음악가의 음악을 듣거나 자기가 연주할
때에만 비교적 진지한 태도를 취했다.  그때도 역시 농을 아주 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예술에 대한 사랑은 순수한 진심에서
우러나왔으므로 순수하고 중요한 것에 대한 그의 감정은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그의 친구 중의 누군가가 곤궁에 빠졌을 경우에는 그를 위로하거나
동정하여 도와주거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부드러우면서도 놀랄 만큼
훌륭한 기술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기분나빠하면 여러 가지
괴상하면서도 재미있는 작은 일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곤 했는데, 그럴
때의 그의 말에는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그 무엇이
있어서 나는 이야기하는 것을 반대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아주 조금 존경하였다.  그것은 내가 자신보다 좀 진실했다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으나, 그보다도 나의 체력을 그가 부럽게 생각한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서도 그는 나의 체력을 자랑삼아
말하였고, 자기를 한 손으로 눌러 죽일 수 있는 친구를 가진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는 육체적 능력과 훈련을 중요시하여 내게 테니스도
가르쳐 주고, 함께 보트도 젓고, 수영도 했으며, 승마에도 데리고 가고,
또한 그가 치는 것 만큼 당구를 잘 칠 때까지 쉬지 않고 지도해 주었다. 
당구는 그가 즐겨 치는 것으로 능수능란하게 잘 쳤을 뿐 아니라, 그때에는
언제나 새삼스러울 정도로 쾌활하고 기지적이고 즐거워하였다.  그는 가끔
세 개의 알에다가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의 이름을 각각 써붙이고, 한 번 칠
때마다 그 위치의 접근과 떨어져 있는 모양을 보고 기지와 익살과 우스운
비교를 하여 많은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유유히 쾌활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당구를 쳤다.  그러한 그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나의 문필생활은 나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도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는 한 번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게, 나는 언제나 자네를 시인으로 생각하였고,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그러나 그것은 자네의 잡문을 보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조만간 나타나리라고 생각되는, 자네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아름다운
것과 깊은 것을 생각해서 하는 말일세.  그것이 나오면 그땐 정말 시가 될
것일세. 
  그러는 동안에 몇 학기가 유수같이 흘러 벌써 리하르트가 귀향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왔다.  우리들은 일부러 약간 방종하게 놀면서 얼마
남지 않은 몇 주일을 즐기고, 괴로운 이별을 하기 전에 뭔가 화려하고
빛나는 계획을 세워 이 아름다웠던 몇 해의 마지막을 즐겁고 희망에 찬
것으로 끝맺기로 합의하였다.  나는 버언의 알프스로 휴가 여행을 가자고
제의했으나 아직 이른봄이라 산에 가기는 사실 너무 일렀었다.  내가 무슨
다른 제안을 하려고 머리를 쓰는 동안에 리하르트는 자기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나를 위해 기쁘고 깜짝 놀랄 만한 준비를 몰래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거액의 돈을 가지고 달려와서 내가 안내자가 되어 북부
이탈리아로 함께 가자고 청하였다.
  나의 심장은 뛰고 환희에 넘쳤다.  소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몇천 번이나
꿈꾸고 동경해 오던 소원이 이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나는 마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작은 준비를 하며 친구에겐 몇 마디 이탈리아어를
가르쳐 주면서, 그날이 오기까지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우리들은 작은 짐들을 미리 부치고 기차를 탔다.  푸른 들과 언덕이
차창을 스치고 지나갔다.  맑은 호수와 고트하르트 산이 보이고 나자 텟신
지방의 산속에 있는 작은 마을들과 시내와 석회언덕이며 눈 덮인 산들이
지나가고, 그리고 나서 평탄한 포도원 속에 비로소 검을 돌집이 하나 둘
나타났다.  또한 여러 호수들을 지나고 풍성한 롬바르디의 들을 지나,
묘하게 매력이 있으면서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은근한 밀라노를 향하여
기대에 가득찬 여행을 계속하였다.
  리하르트는 밀라노의 대가람에 대하여 한 번도 상상한 일이 없고, 다만
그것을 유명한 큰 건축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가 생각했던
것과 엄청나게 다른 데 놀라 분개하는 모양은 매우 유쾌하였다.  그가
처음에 놀랐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분을 회복하자, 지붕으로 올라가서
여기저기 난잡하게 흐트러진 석상 속을 걸어다녀 보자고 제의하였다. 
우리들은 고딕식의 뾰족한 탑 위의 수백 개나 되는 불행한 성자들의 상이
그리 애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곤 얼마간 만족하였다.  그것은 그
대부분이, 적어도 새로운 것은 모두 평범한 공장에서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었다.  우리들은 꼭 두 시간 동안을 4월의 태양이 내리쬐는
넓은 경사진 대리석 마루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기지개를 켜며
리하르트는 나에게 이렇게 고백하였다.
   알겠나, 자네.  나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 대가람같이 또다시
놀라게 될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할 수 없는 일이야.  우리 여행중에
우리가 보고 압도되리라고 생각한 모든 굉장한 것에 대해서 나는 약간
불안한 생각을 가졌었네.  그런데 이렇게 알고 보니 친밀하고 인간적이고
우스꽝스럽단 말일세! 
  또한 우리가 누워 있는 주위의 흐트러진 석상들은 그에게 여러 가지
바로크적인 공상을 일으켜 주었다.
   아마 저기 가장 높은 본당 위에 서 있는 것이 가장 훌륭한 성자일
것일세.  그런데 저렇게 뾰족한 탑 위에 돌로된 불타는 광대같이 언제나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일세.  그래서
때때로 가장 높은 성자는 거기에서 해방되어 천국으로 옮겨질 것이
사실일세.  그런데 그때마다 어떤 장관스런 일이 일어날는지 한번 생각해
보게! 왜 그런고 하니, 저절로 남은 성자들이 모두 한 계급씩 올라갈
테니까 말일세.  그리고 성자마다 한번 선배가 앉았던 뾰족탑을 향하여
자기보다 앞선 자를 질투하며 분주히 뛰어올라갈 테니까 말일세. 
  그후 나는 밀라노를 통과할 때마다 그날 오후의 일이 생각나서 우울한
미소를 띠고 수백 개의 대리석 석상의 성자들이 모험적인 뜀뛰기를 하는
것을 그려보곤 하였다.
  제노아에서 나는 더 풍부한 사랑을 가질 수 있었다.  바람부는 맑은 날
바로 정오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넓은 성벽에 양손을 의지하고 서
있었다.  뒤에는 다채로운 제노아 거리가 가로놓여 있고, 발밑으로는 넓고
푸른 조수가 물결치고 있었다.  바다였다.  이 영원하고 불변한 자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과 이해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내 속의 그 무엇인가가 이 푸르고 설레게 하는 조수와 생사를
걸고 친해지려 하는 것을 느꼈다.  광막한 바다의 수평선 또한 힘차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년시절과 같이 나는 다시금 아련히 멀고도
푸른 풍경이 열어제친 문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다시금 내가 사람들 속에 섞여 거리와 집 속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도록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낯선 지방을 유랑하며 바다 위를 표류하도록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한 하느님의 가슴에 몸을
던져 나의 작을 생을, 이 무한하고 영원한 것과 친해지고 싶었던 옛날의
슬픈 동경이 막연한 충동과 함께 마음속에 되솟아 오르는 것이었다.
  라팔로에서 나는 처음으로 바다의 조수와 싸우며 헤엄을 쳤고, 짠
염수를 맛보며 물결의 위력을 느꼈다.  주위에는 맑고 푸른 물결, 해변의
청황색 바위 깊고 고요한 하늘, 영원하고 우렁찬 파도뿐이었다.  멀리
미끄러지듯 가는 배, 검은 돛배, 흰 돛과 멀리 달리는 기선이 뿜는 가냘픈
연기는 언제나 새삼스럽게 마음을 끄는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방랑자인 구름을 제외하고는 멀리 달아나 점점 작아져 나중에는 너른
수평선 멀리 사라져 버리는 배보다 더 아름답고 엄숙한 동경과 방랑의
모습을 나는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플로렌스로 왔다.  이 도시는 수백의 그림에서 보고 수천
번 꿈꾸었던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밝고, 넓고, 기분좋고,
다리가 놓인 푸른 강이 밝은 언덕에 둘러싸여서 가운데로 흐르고, 팔라쪼
벡키오의 뾰족탑은 유달리 많은 하늘 위로 높이 솟아 있고, 아름다운
피에솔레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그 언덕 위에 서 있고, 모든 언덕은
과일나무의 꽃이 한창이어서 희고 붉게 수놓여 있었다.  생생하고 즐겁고
평화스러운 토스카나의 생활이 나에게 기적처럼 나타나 고향에 있을
때보다도 이곳이 더욱 고향처럼 느껴졌다.  낮에는 교회에서, 광장에서,
길가와 회랑에서 시장으로 빙빙 돌아다녔고, 저녁 때는 레몬이 이미
푸르익은 언덕에서 공상에 잠기거나 혹은 소박한 주점에서 샨티 주를
마시며 지껄여댔다.  그러는 동안 회랑에서, 바르겔로에서, 승원, 도서관,
성기실에서 즐겁게 몇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오후에는 피에솔레, 상
미나아토, 세티니야노, 프라토 등의 명승에서 지내기도 했다.
  집에서 이미 약속했던 대로, 나는 그후 일주일 동안 리하르트를 혼자
남겨 둔 채, 선명한 초록빛의 움브리아 언덕들을 거닐며 나의 청춘시절의
가장 귀하고 가장 즐거운 여행을 하였다.  나는 성 프란시스의 길을
거닐며 마치 그 성자가 내 곁을 같이 걸어가며 마음에 무한한 사랑이
가득차서 모든 새, 모든 샘, 모든 들장미에게 감사와 기쁨의 인사를 하는
것처럼 느꼈었다.  나는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이는, 반짝이는 언덕의
경사진 곳에서 레몬을 따서 먹었고, 작은 마을에서 자면서 혼자 노래하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부활제 때에는 앗시시에 있는 내 성자의
교회에서 축하의 예배를 올렸다.
  움브리아의 이 일주일간의 여행이 나에게는 언제나 내 청춘시절의
절정이요, 아름다운 저녁놀처럼 느껴졌다.  내 마음속에서 매일 샘이
솟아나는 듯 흡족했고, 나는 하느님의 인자하신 눈이 보살펴 주시는 듯한
포근한 마음으로 밝고 화려한 봄풍경을 바라보았다.
  움브리아에서는  하느님의 편력가 였던 성 프란시스의 유적을
존경스럽게 살폈고, 플로렌스에서는 15세기의 문예부흥기의 생활을 항상
머리에 그리며 즐겼다.  본국에 있을 때 나는 이미 현대의 생활형식에
대해 풍자의 글을 썼었다.  그런데 플로렌스에 와서 비로소 나는
현대문화가 아주 빈약하고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는 비로소 현대사회와 영원히 동떨어진 자라는 예감에 휩쓸렸고, 
여기에서 또한 그러한 사회를 떠나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남국으로 와서
살았으면 하는 소원이 마음속에 눈뜨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곳에서는
여러 사람들과 교체할 수 있었고, 고전문화와 역사의 전통으로 기품있고,
세련된 생활의 자연성을 어디서나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까닭이었다.
  빛나고 행복스럽고 아름다운 몇 주일이 흘러갔다.  나는 여태까지
리하르트가 그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리들은
힘차고 즐겁게 미와 향락의 잔을 쭉 들이마셨다.  또한 거리에서 떨어져
있고 뜨겁도록 일광이 잘 쬐는 곳에 있는 언덕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여관
주인들, 수도승들, 시골처녀들 그리고 불만이 없는 작은 마을의 목사들과
친하게 지냈고, 그들의 소박한 소야곡에 귀를 기울였으며, 햇볕에 그을은
귀여운 어린이들에게 빵과 과일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태양이 빛나는 높은
산마루에서 봄빛을 담뿍 실은 토스카나 일대가 펼쳐져 있고, 그보다 멀리
반짝이는 리그리아 바다가 넘실거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행복됨에 부끄럽지 않게 우리가 풍부한 신앙생활로 향하고 있다는
강한 감정을 가졌었다.  활동과 투쟁과 향락과 명예가 눈앞에 가까이
빛나고 확실하게 나타나 우리는 천천히 행복한 날들을 즐겼다.  또한
앞으로 닥쳐올 우리들의 이별도 쉽게 할 수 있고, 일시적인 것같이
느껴졌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더욱 필요하게 되었고, 서로가 상대를
위해 생명을 바쳐도 좋다고 확실하게 느꼈던 까닭이었다.


  이상이 나의 청춘시절의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여름의 하룻밤처럼
짧은 것같이 느껴졌다.  약간의 음악, 약간의 정신, 약간의 사랑, 약간의
자부.  그러나 그것은 에로이지스 여신의 축제처럼 아름답고 풍부하고
다채로웠다.
  그렇지만 홀연히 풍전등화처럼 비참하게 꺼지고 말았다.  취리히에서
나는 리하르트와 헤어졌다.  그는 내게 키스를 하기 위해 두 번이나
기차에서 내려왔고, 기차가 떠나기 시작해서도 오랫동안 내다보며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
  이 주일 후 그는 남독일에 있는 아주 작은 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그만
익사하고 말았다.  나는 다시 그를 볼 수 없었고, 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수일 후 그가 이미 관에 들어가서 매장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모든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자, 나는 방바닥에 쓰러져
무섭고 야비한 모욕적인 언사를 써서 신과 생을 저주하고 울며 미쳐
날뛰었다.  그때까지 나는 당시에 가지고 있었던 유일하고도 확실한
재산이 우정이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우정이 지금 사라진
것이었다.
  여러 가지 추억이 매일 머리에 떠올라 기쁨을 빼앗아 간 취리히에서
나는 더이상 살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다.  나는
마음속이 병들어 모든 것들이 무서워졌다.  당분간은 나의 흩어진 마음이
회복되어 새로운 긴장된 돛을 달고 성년시절의 힘든 행복을 향해 달리기는
매우 힘들 것 같았다.  하느님은 내가 나의 가장 좋은 본성을 순수하고
즐거운 우정에 바치기를 바라고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 두 척의 빠른
배와 같이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 리하르트의 배는 화려하고 경쾌하고
행복하고 사랑스러워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며, 아름다운
목적지까지 동반하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짤막한
소리를 지르며 침몰하였고, 나는 키를 잃고 갑자기 어두워진 물 위에서
정처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엄한 시련에 견디고, 키를 바로잡아 새로 출발하여 생의 월계관을 얻기
위해 싸우고 방황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길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우정을 믿었고, 여자의 사랑을 믿었고, 청춘을 믿었었다. 
그것이 하나하나 나를 버리고 달아난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님을 믿어
그의 강한 팔에 안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평생
어린애처럼 겁이 많고 고집쟁이였다.  그래서 참다운 생활이 자기 편에서
폭풍같이 내게로 달려와 나를 분별있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큰 날개를
펴서 완전한 행복으로 나를 이끌어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현명하고 검소한 참다운 생활은 묵묵히 내가 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것은 나에게 폭풍도 행운의 별도 보내 주지 않은 채
내가 다시금 안정을 되찾고 참을성있는 몸이 되어 내 고집이 꺾여지기만을
기다렸다.  참다운 생활은 나로 하여금 거만하고, 아는 척하고, 희극을
연출시키고, 그 옆에서 보며, 달아났던 어린애가 다시 어머니의 품에
안기기를 기다렸다.
5.  그후 얼핏 보기엔 지금까지의 생활보다 한결 활기가 있고 정신없이
바빠져 자칫하면 요즘 유행하고 있는 통속소설이라도 될 수 있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실은 내가 어떻게 독일신문의 편집자로 초청을 받게
되었는지부터 말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내가 붓으로 독설을 마음대로 퍼부었기 때문에 혹평을 받고 비난을
당한 사실과, 그것으로 인하여 술을 막 마셔댐으로써 술고래라는 이름이
붙었고, 결국 대판 싸운 후에 사표를 내고 파리의 통신원으로 파견된
사실의 경위를 말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주받은 도시에서
불건전한 생활을 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독한 담배도 피워댄 사실들도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 중에 외설스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지난 일을 생략하는 것은 결코 비겁하여서가 아니다.
 나는 연달아 잘못된 길을 걸어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을 보았고, 또한 그
속에 빠졌었음을 고백한다.  그 이후 나는 예술가적 방랑생활의 낭만적인
것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은 내 생활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순수하고 선한 것에 내가 의지하고, 저 잃어버린 시절은
잃어버린 시절로,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내버려 두는 것을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혼자 보아(파리 교회에 있는 숲)에 앉아서 파리를
떠날 것인가 혹은 차라리 생을 버리고 말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이리하여 나는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의 지나온 생애를 마음속으로
더듬었고, 그리하여 지금 죽어도 별반 손해될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아주 오래된, 그동안 잊어버렸었던 어느 날―산골
고향의 이른 여름아침, 어머니가 누워 죽음에 신음하시던 침대 옆에 내가
꿇어앉아 있었던―이 연상되었다.
  나는 놀라며 너무나도 오랫동안 그날 아침을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자살을 하려던 생각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진실하고 완전히 탈선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건강하고 선량한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한 번 볼 때에 자기의 생명을 끊을 수는 없다는
것을 믿는 까닭이었다.  나는 운명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 위에 고결하면서도 조용하고
엄숙한 죽음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죽음은 엄격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또한 탕자를 집으로 되돌아 오게 하는, 마치 신중한
아버지처럼 굳세고 자비롭게 보였다.
  나는 다시금 죽음은 그 바른 때를 알므로, 우리는 믿고 기다릴 수 있는
현명하고 착한 형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고뇌나 환멸이나
우울은 우리들을 불쾌하게, 가치없게 또는 천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을 성숙하게 하고 정화시키기 위해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에 나의 짐은 바젤로 발송되었다.  그리고 나는 프랑스 남쪽의
아름다운 지방을 도보로 여행하며, 날이 갈수록 악취와 함께 나를
싫증나게 했던 파리 시절의 추억이 희미해지며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구애의 경우도 당했다.  성과 풍차와 곡식창고 속에서 밤을
지새기도 했고, 말하기 좋아하는 검은 머리의 젊은이들과 함께 따듯한
햇빛에 빛나는 그들의 포도주를 마시기도 하였다.
  피로하고 여위고 햇볕에 그을리고 심경이 변화된 채 2개월 후에 나는
바젤에 도착했다.  이 여행은 수많은 여행 중에서도 최초의
장기여행이었다.  로카르노와 베로나간, 바젤과 부릭 간, 플로렌스와
페루지아 간 등 구두를 먼지에 더럽히며 두세 번 걸어 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금처럼 꿈꾸며, 그러나 그때는 아직 이러한 꿈이 하나도
실현되지 못했을 때였다.
  바젤에 이르자, 교외에 방을 한 간 얻고 짐을 푼 후에 일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조용한 거리에서 사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몇
가지 신문과 잡지와의 관계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으므로 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했었다.  처음 몇 주일 동안은 침착하게 안정할 수 있었으나 점점
옛 슬픔이 되살아나 며칠, 몇 주일씩 계속되어 일을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우울함을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무서운 고독감을 느꼈다.
 나와 사람들과 거리, 광장, 집 그리고 길과의 사이에는 언제나 커다란
함정에 놓여 있었다. 큰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신문에 중대한 사건이
실려 있다.  그것은 내게 아무 상관이 없었다.  축제가 있고, 사람이 죽어
매장되고, 장이 서고, 음악회가 열렸다.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나는
밖으로 달려나가 숲과 언덕과 시골길을 헤매며 돌아다녔다.  그러면 내
주위에는 목장들과 수목들과 밭들이 탄식하지 않는 슬픔 속에서 묵묵히
나를 바라보며, 애원하듯이 무언가를 말하며 내게 인사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슬픔에 대해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들의
슬픔을 이해하였으나, 풀어 줄 수가 없어서 같이 슬퍼하였다.
  나는 나의 자세한 병세를 기록하여 어떤 의사에게 가서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의사는 그것을 읽고 나서 몇가지 묻고 나더니 나를
진찰하였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부러울 정도로 건강합니다. 
  그는 이렇게 칭찬하는 것이었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 독서나 음악으로 기분을 전환시켜 보세요. 
   나는 직업상 매일 많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어쨌든 밖에서 운동을 조금씩 하셔야 합니다. 
   저는 매일 서너 시간씩 걸어다닙니다.  휴가 때는 그 배를 걷기도
하고요. 
   그럼 사람들과 억지로라도 섞여 노십시오.  사람이 싫어지는 증세가
되기 쉬우니까요.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게 큰일이지요.  지금 당신은 사교를 싫어하는 증세가 커질수록 더
자꾸 많은 사람들과 사귀어야 합니다.  당신의 상태는 아직 병이라고 할
수는 없으므로 상관없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렇게 소극적으로 곰곰이
생각만 하고 있으면 결국에 가서는 이상이 오고 말 것입니다. 
  의사는 이해심이 많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안스럽게 여겨
어떤 학자를 소개해 주었다.  이 학자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였고, 그는 일종의 정신적·문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찾아갔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알고 있어, 친절하게도
나를 마음으로 맞아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곳에 자주 가게 되었다. 
한 번은 어느 늦가을 쌀쌀한 저녁에 그곳에 갔었다.  한 젊은 역사가와
머리가 검고 몸매가 가냘픈 아가씨가 있었을 뿐 다른 손님이라고는
없었다.  그 아가씨는 차관(찻물을 끓이는 주전자 비슷한 모양의 그릇)을
살피며, 말이 많았고 역사가에 대해서는 좀 못 마땅해 하는 어투였다. 
그리고 나서 그 아가씨는 잠깐동안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서는 나의 풍자소설을 읽었으나 전혀 재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꽤나 영리했다.  아니, 지나치게 영리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곧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중 사람들은 내가 술집에 자주 드나들며, 사실은 술고래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것은
유식한 남녀 사회에서는 남의 험담이 가장 꽃을 피우는 까닭이었다.  내가
술고래라는 부끄러운 발견은 나의 술집 출입을 방해하진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은 좋아하였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금주열에 빠져 거기에 오는
신사 숙녀들은 주로 금주회 위원들로서, 술주정뱅이들이 자기들의 수중에
들어오는 것을 좋아한 까닭이었다.  어느 날 처음으로 은근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술집 생활의 수치와 알코올 중독의 저주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생적·윤리적·사회적 관점에서 볼 것을 암시하며, 어느 예식에
참석하도록 초대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우 놀랐다.  이때까지 이런
회합과 운동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던 까닭이었다.  예식은
음악이 있고 종교적 의식이 있어 대단히 우스꽝스러웠으나, 나는 그러한
인상을 애써 감추지는 않았다.  몇 주일동안 그들은 내가 귀찮을 만큼
친절히 권했기 때문에 아주 질색이었다.  또 어느 날 저녁은 같은 설교가
시작되고 간곡히 나의 개심을 바라왔으므로, 나는 견디다 못해 제발
시끄럽게 굴지 말아달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그런데 교수집에서 만났던
그 젊은 아가씨가 그때 옆에서 그 말을 유심히 듣고 있다가 아주 진심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통쾌하군, 통쾌해! 
  그러나 나는 그 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기분이 나빠 있었다.  그런
관계로 더 한층 나는 금주가들의 대대적인 모임에서 일어난 어떤 작은
실패의 사건을 큰 기쁨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그 큰 모임은 무수한
내빈을 모시고 그 본부에서 열렸었는데 연설과 합창이 있었고, 친분관계가
맺어졌고, 이 착실한 계획의 진전을 만세를 부르며 축하하였다.  기를
들고 있는 고용인 중의 한 사람은 금주의 연설이 너무 긴 데 참을 수 없어
부근의 술집으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엄숙한 금주 시위행렬이 한길로
나서기 시작했을 때 심술궂은 주정뱅이들은 재미있는 광경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것은 감격한 군중들의 선두에 유쾌하게 술에 취한
지휘자가 하나 나섰는데, 그의 팔에는 적십자의 깃발이 마치 난파선의
돛대처럼 나부끼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주정뱅이 일꾼은 곧 해고되었다.  그러나 경쟁적인 이러한 모임들과
위원들의 내부에 일어나서 격렬해진 가장 인간적인 허영과 질투와 음모와
혼란은 해고될 수 없었다.  이 운동은 분열되었다.  몇 명의 야심가들은
모든 명성을 독점하려고 자신들의 이름으로 개심하지 않은 모든
주정뱅이를 저주하였다.  고결하고 사심없는 협력자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무례하게 악용되었다. 이리하여 얼마 안 되어
측근자들은 이런 모임에도 이상적인 이름 밑에 여러 가지 추악한 인간성이
악취를 풍기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나는 우연히
제삼자로부터 이 모든 희극을 들어 알고 몰래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종종
술에 취해 밤에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혼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럼, 우리 술꾼들이 역시 더 좋은 사람들이란 말야. 
  라인 강을 바라보고 있는 높고 전망이 좋은 나의 작은 방에서 나는 여러
가지 공부도 하고 괴로운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나는 생활이 이렇게 내
옆을 비껴서서 나를 끌고가는 급류도 없고 나의 열을 올릴 만한 격렬한
정열도 관심도 없이, 나를 몽롱한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절망을 느꼈다.  물론 나는 그날 그날의 필요한 일 외에 초기 프란시스
파의 승려의 생활을 그린 작품 준비에 바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창작이
아닌 끊임없는 작은 수집에 불과한 것으로, 그것은 내 동경의 충동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지 못했다.  나는 취리히, 베를린, 파리 등을
회상하며, 오늘날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소원과 정열과 이상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은 종래의 가구와 까래와 의복을 버리고
인간을 더욱 자유롭고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다른 어떤 사람은 헤켈(1834∼1919, 독일의 철학자)의  일원론
을 통속적인 책과 강연으로써 보급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영원한 세계평화를 가져오려고 노력하며 그것을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하층 계급을 위하여 투쟁하거나
인민을 위해 극장과 박물관이 세워지고 개관되어야 한다고 설명을 하며
기금을 모으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바젤에서는 술이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모든 운동에는 생기와  충동과 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중의
어느 것 하나도 내게는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목적이 달성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나와 나의 생활을 감동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실망해서 의자에 주저앉아 책과 잡지를 밀쳐 놓고 생각에
잠기고 또 잠겼다.  그때 창밖으로부터 라인 강의 물결과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데 감동을 받으며, 어디에나 숨어 있는 우수와 동경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첩첩이 싸인 청백의 밤구름이 놀란 새처럼
하늘을 달려가는 것을 보았고, 라인 강의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며
어머니의 죽음을, 성 프란시스의 일을, 고향의 눈 덮인 산을, 리하르트의
죽음을 생각하였다.  또한 로에지 기르타네르를 위해 알프스의 들장미를
꺾으려고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나를 그려보았고, 취리히에서 책과 음악과
이야기에 흥분한 나를 그려보았고, 리하르트의 죽음에 절망하고 있는 나,
여행을 갔다가는 돌아오고, 마음이 회복되었다가는 다시 병드는 나를
그려보았다.  왜?  무엇 때문에?  아아 하느님!  이 모든 것이 대체
단순한 장난이며, 우연한 일이며, 한 그림에 불과한 것이겠습니까?  나는
정신을 구하고, 우정을 구하고, 미를 구하고, 진리와 사랑을 구하고
애쓰며, 그것을 샘솟듯 갈망하는 데에서 괴로움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동경과 사랑의 불안한 물결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고통이었고,
아무에게도 기쁨이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술집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등불을 끄고, 손을
더듬어 낡고 험한 나선형의 층계를 내려와 벨틀린 주나 버트런드 주를
마실 수 있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언제나 고집세고 때때로
난폭하였으나 좋은 손님으로서 존경을 받고 환영을 받았다.  나는 잡지
《짐플리치므스》를 읽었는데, 그것은 언제나 나를 분개시켰다.  그리하여
나는 술을 마시고, 그 술이 나를 위로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랬더니 이
감미로운 술은 여자의 손처럼 부드럽게 나를 어루만지며, 기분좋고
나른하게 만들어 나의 방황하는 영혼을 아름다운 꿈나라의 손님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때로는 사람들을 난폭하게 다루고 그들을 호령하는 것에 일종의 쾌감을
갖게 된 것에 대해 나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내가 종종 찾아간
술집에서는 여자들이 나를 버릇없는 자, 언제나 투덜거리는 불평가라고
하여 무서워하고 싫어하였다.  다른 손님들과 말하기 시작하면 비웃으며
난폭하게 굴었고, 상대편도 물론 따라서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사람의 술친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이미
나이들은 어찌할 수 없는 주정뱅이들이었으나 나는 종종 그들과 같이
하룻저녁 술을 마시곤 하는 데서 꽤 친밀해졌다.  특히 그중에 좀 늙은
무골충으로 직업은 화가이며, 여자를 싫어하고, 불결하였으나 일등급
술고래인 사람이 있었다.  저녁에 어떤 술집에서 그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때에 만나면, 그때마다 꼭 폭음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수다를
떨게 되고, 다음엔 농을 던지게 되다가 붉은 포도주 한 병을 다 마실 때쯤
되면 점점 말은 없어지고 술만 마시게 된다.  그리하여 묵묵히 마주앉아
각각 자기의 여송연을 피우며 자기의 병을 비워가는 것이었다.  그때 둘은
서로 엇비슷했다.  우리들은 항상 동시에 병에 술을 다시 채우고, 반
존경하고 반 악의를 가진 즐거움으로써 서로를 쳐다보곤 하였다.  늦가을
새 술이 나왔을 무렵, 우리는 하루종일 변두리에 사는 영주의 포도촌을
걸어서 킬헨이라는 마을에 있는 히르쉔이라는 요정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늙은 화가는 자기의 경력을 말해 주었다.  그것은 재미있고 기이하다고
생각했었으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모두 잊어 버렸다.  다만 그가 만년에
어떤 곳에서 술을 마신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있다.  어떤 마을의 축제
때였다고 한다.  그는 지방명사들의 만찬에서 한 손님으로서 목사와
촌장을 곤드라지도록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목사는 아직 연설을
해야만 되었었다고 한다.  겨우 그를 이끌어 연단에 세웠으나 그는
어처구니 없는 말만 지껄임으로써 결국 끌려 내려오고, 그 대신 촌장이
뛰어 올라갔다.  그는 큰소리로 연설을 시작했으나, 너무 열을 올린
탓으로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연설을 이상하고 서툴게 끝맺었다는
것이다.
  후에 이 이야기와 또다른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즐겁게 듣고 싶었었다.
 그러나 어느 사격대회가 있던 날 밤에 우리에게 심한 싸움이 일어나 서로
수염을 잡아뜯고 법석들을 떨다가 아주 화가 나서 헤어졌다.  그후
술집에서 만나도 서로 원수가 되어 자연히 각각 다른 자리에 앉은 일이 몇
번 있었다.  우리는 옛날 습관대로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고 같은 속도로
술을 마시며 앉아 있었다.  나중에는 모두 돌아가고 둘만 남아 결국
시간이 다 되어 주인이 돌아가달라고 애원을 할 때까지 함께 있었으나
끝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말았다.
  나의 우울과 처세술의 무능에 관해 끝없이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고 피로하기만 했다.  나는 내가 기력이 다해 낡아버렸다는 생각은
털끝만치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막연한 충동에 차서 이제 적당한 시기가
오면 어떤 깊고 좋은 것을 만들어내어 이 메마른 생에서 적어도 한 줌의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적당한 시기가 언제 올
것인가?  나는 저 여러가지 인공적인 자극을 통하여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신경질적인 현대파 문사들을 생각하면 입맛이 썼다.  그런데 내게는
소모되지 않는 굳센 힘이 쌓여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금 어떤
장해나 악마가 내 터질 듯한 굳센 육체 속에 있는 영혼을 흐리고 아주
우울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때 나는 어떤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특수한 인물이기 때문에 아무도 나의 괴로움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며, 나눌 수 없을 것이라는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우울의 악마적인
점은 그것이 다만 사람을 병들게 할 뿐 아니라 자기도취가 되게 하고,
근시적으로 만듦으로써 거만스럽게 하는 점이다.  우울증에 걸린 자는
하이네가 그린 무미건조한 거인 아트라스 같은, 자기자신만이 세계의 모든
고통과 수수께끼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고,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고통을 전혀 모르는 채 미로에서 방황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법이다.  또한 나의 성벽과 특징의 대부분이 내것이라기보다는 카멘친트
가문의 가보 혹은 화근이라는 생각도 고향을 떠나 고독하게 지내오는
동안에 전부 잊어버렸었다.
  나는 다시금 몇 주일에 한 번씩 손님을 초대하는 그 학자의 집에 가곤
하였다.  나는 점점 거기 출입하는 모든 사람을 알게 되었다.  대개는
젊은 대학생들이었고, 그 중에는 독일 사람도 많았다.  그밖에 화가가 몇
명, 음악가가 몇 명 있었고, 그리고 부인과 딸들을 동반한 시민이 몇 명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나를 맞아 주는 이 사람들을 종종 놀라움에 차서
쳐다보았고, 그들의 행동에서 그들은 매우 여러 번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대부분이 동일한
사교형의 인물들로서 서로가 조금씩 닮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그들이 사교적이고 일률적 정신을 가진 탓이었다.  나만이 그것을 가지지
못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는 아무것도 잃지 않은, 그
청신함과 개성적인 힘이 소모되지 않은 훌륭하고 우수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과는 오랫동안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 다니며 누구에게나 일
분 이상 서있지 않았고, 부인들에게는 재주있는 찬사를 보냈으며, 차와
대화와 피아노에 동시에 집중하며 흥겨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문학과 예술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내게는 힘겨운 일이었다.  그들은 이 방면에 있어서는 거의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으로 실로 거짓말이 많았고, 어쨌든 언제나 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또한 그들을 따라 거짓말을 하고
말았으나 조금도 기쁘지 않았고,  그런 쓸데없는 많은 말이란 지루하고
야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것보다는 어떤 부인이 자기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는 것이 오히려 즐거웠고, 특히 나는 내가
여행한 일이며 그날 그날의 경험과 그밖의 사실에 관해 많은 말을 하였다.
 그러는 데서 때론 친밀하고 즐거운 기분을 가지기도 했으나, 결국 끝에
가서는 술집으로 찾아가 기갈과 썩은 듯한 권태를 벨틀린 주로 씻어
버리곤 하였다.
  이 모임에서 어느 날 나는 위에 말한 검은 머리의 아가씨를 다시
만났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음악도 하고 언제나처럼 떠들어댔으므로
나는 화첩을 들고 램프가 있는 구석진 곳으로 가 앉아 있었다.  화첩은
토스카나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보통 볼 수 있는 흔한 것이 아니었고,
좀더 친밀감이 일어나는 스케치된 풍경화로 대부분이 이 집 주인이 여행할
때 같이 다닌 사람들이나 그의 친구들이 보내온 것이었다.  나는 바로 산
클레멘테의 쓸쓸한 골짜기 안에 돌로 지은, 창이 아주 작은 집의 소묘를
발견한 참이었다.  나는 이 골짜기를 여러 번 산책한 일이 있었으므로 곧
그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골짜기는 피에솔레에서 아주 가까우나
고적이 없는 탓으로 그곳을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골짜기는 험한 대신 뛰어나게 아름다웠으며, 높고 험한 벌거숭이 산에
끼어 건조하고 인가도 없는, 세계와 동떨어진 외로운 곳이었다.
   왜 언제나 혼자 앉아 계세요, 카멘친트 씨? 
  그 아가씨가 내게로 와서 어깨 위로 넘겨다 보며 말했다.
  나는 화가 났다.  그녀는 남자를 우습게 여기고 있다고 나는 쭉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지금 내게로 온 것이었다.
   여보세요, 왜 대답이 없으세요? 
   용서하시오, 글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하는 그게 좋으니까 혼자
앉아 있을 뿐이오. 
   그럼 저도 방해가 되겠네요? 
   별 말씀을 다 하시는군요. 
   고맙습니다.  그러나 우습기는 피장파장이에요. 
  그리고는 내 옆에 앉았다.  나는 보고 있던 그림을 손에 꽉 쥐고
있었다.
   산골서 오셨군요. 
  그녀가 말했다.
   언제 한 번 그 고장 이야기를 들려 주셨으면 하는데요.  제 오빠가
그러는데, 선생님 마을에는 카멘친트 성 뿐이라면서요, 정말이세요? 
   대체로. 
  나는 웅얼거리듯이 대답했다.
   그러나 피슬리라는 빵장수도 있고, 또 니데게르라는 요릿집 주인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카멘친트뿐!  모두 친척이겠지요? 
   가깝거나 멀거나 우리는 모두 한 친척들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그림을 내밀어 보여 주었다.  그녀는 그 것을 꽉
잡았는데 나는 그런 물건을 잡는 법을 알고 있었으므로 잘 잡는다고 말해
주었다.
   칭찬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녀는 웃었다.
   그러니까 꼭 학교 선생님 같군요. 
   그 그림을 안 보시렵니까? 
  나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안 보시겠다면 치워 두겠습니다.. 
   이 그림이 뭐죠? 
   산 클레멘테. 
   어디에요? 
   피에솔레 근방입니다. 
   여기 가 보셨어요? 
   네, 여러 번 가 봤습니다. 
   그 골짜기는 어떻지요?  이건 다만 그 일부분이겠네요? 
  나는 잠시 생각하였다.  험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반쯤 감았다.  내가 말을 시작하기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으나, 그동안 그녀가 조용히 참고 기다려 준 것이 나를
즐겁게 하였다.  그녀는 내가 감개무량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산 클레멘테를 설명해 주었다.  여름 오후, 찌는 듯한
일광 속에 묵묵히 뼈만 남은 웅장한 자태를 말해 주었다.  그 근방인
피에솔레에서는 산업을 장려하여 밀짚모자와 바구니를 들고 기념품과
오렌지를 팔며, 관광객을 속이기도 하고 구걸을 하기도 한다.  멀리
밑으로는 플로렌스가 가로놓여 있어, 그곳에서는 신식과 구식생활이 함께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클레멘테에서는 피에솔레도 플로렌스도 모두
보이지 않는다.  클레멘테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없고, 로마 시대의
건물도 없어 역사는 이 가련한 골짜기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태양과 비가 흙과 싸우며 굽은 소나무가 겨우 생을 유지하고
있고, 몇 그루의 전나무가 여윈 가지를 펴고 공중에 솟아 있으면서 메마른
뿌리로 유지하고 있는 빈약한 생명을 단축시키는 무서운 폭풍이 오나 안
오나를 망보고 있다.  때때로 가까운 큰 농장의 달구지가 지나가고 혹은
농민의 가족이 피에솔레로 걸어가나 그들은 그저 우연한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가볍고 즐겁게 보이는 촌여자들의 붉은
앞치마도 여기에서는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사람들은 저마다 저것은 없어도
좋을텐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또 젊었을 때에 한 친구와 경치를 구경하며 전나무 밑에서 자거나,
그 여윈 밑동에 몸을 기대고 서 있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슬프도록
아름답고 쓸쓸한 골짜기에 감도는 이상한 고독이 고향의 산골짜기들을
연상시켰었던 점을 말해 주었다.
  우리들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선생님은 시인이세요? 
  그녀는 말했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생각하는 것을 의미가 달라요. 
하고 그녀는 말을 계속하였다.
   선생님이 단편소설이나 그런 유의 것을 쓰셔서 시인이라는 것이
아니에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이에요.  나무가
속삭이고 산이 햇빛에 빛난들 다른 사람에게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그 속에서 생명을 찾아 같이 즐길 수 있잖아요. 
  나는 아무도  자연을 이해한다 고 말할 수 없다는 것과 아무리 자연을
구하여 이해하려고 해도 수수께끼만 발견되어 슬퍼진다는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햇빛 속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도, 풍화된 돌도, 동물도, 산도
그것들은 모두 한 생명을 갖고 있으며, 역사를 가지고 살면서 괴로워하고
반항하며, 또한 즐기며 죽으나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야기하면서 나는 그녀가 조용히 앉아서 내 말에 경청하는 것을 보고
내심으로 기뻐하며 그녀의 모습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길은 내
얼굴에 쏠린 채 나의 시선을 전혀 피하지 않았다.  얼굴은 아주 고요하고
여념이 없으며, 약간 긴장한 듯 어린애같이 앉아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아니, 어른이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자신을 잊어버리고
어린아이의 눈을 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나는 점점 소박한 발견자의 기쁨을 가지고
그녀가 대단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말을 마쳤을 때까지도 그녀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놀란 듯이 일어나서 램프불을 눈이 부신 듯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지요? 
  나는 별 생각없이 물었다.
   엘리자베트예요. 
  그녀는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곧 사람들의 간청에 의해
피아노를 쳤다.  매우 잘 쳤다.  그러나 그녀 곁으로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그렇게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고풍스런 층계를 내려갔을 때 현관에서 외투를 입고
있던 두 화가의 말이 들려왔다.
   이봐, 그 자식 온 밤을 귀여운 엘리자베트와 상대하고 있었어. 
  그 중의 하나가 말하며 웃었다.
    조용한 물 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래도 그 자식 아주 못난 것은 고르지 않았단 말야. 
  어리석은 자식들, 벌써 말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자, 나는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젊은 아가씨에게 거의 생각하지도 않았던 나의 그리운
회상과 내적 생활의 대부분을 이야기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벌써 저렇게 악담들을 하다니, 나쁜 자식들!  
  나는 그 집을 나온 후 몇 달 동안 발을 끊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
화가 중의 한 사람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그가 내게 왜 나오지 않느냐고
최초로 물은 사람이었다.
   왜 요즈음엔 통 오시지 않습니까? 
   쓸데없는 말들을 듣기 싫어서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거기 오는 부인들은 말이 많아서--. 
  그자는 웃었다.
   아니오. 
  나는 대답했다.
   내가 말한 것은 남자들입니다.  특히 화가들은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 몇 달 동안에 엘리자베트는 길에서 겨우 몇 번, 상점에서 한 번
미술관에서 한 번 보았을 뿐이었다.  언제나 귀여웠지만 미인은 아니었다.
 그녀의 가냘픈 자태의 움직임은 무언가 특이한 점이 있어 대개 맵시가
나고 눈에 뜨이나, 어떤 때는 도가 지나쳐서 꾸민 것처럼 보였다. 
미술관에서 보았을 때에는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그때 나는 옆에 앉아 쉬며 목록을 뒤지고 있었다.  그녀는 내
옆에 있는 세간티니의 큰 그림 앞에 서서 넋을 잃고 있었다.  그것은 산의
가난한 목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몇 명의 시골처녀를 그린 것으로
배후에는 슈토크호른의 연봉을 연상시키는 톱날 같은 험한 산들이 솟아
있고, 그 위의 상쾌하게 비치는 하늘에는 말할 수 없이 천재적인 수법으로
그린 상아빛 구름이 떠 있었다.  그 구름은 이상스럽게도 뭉키고 서로
얽힌 덩어리로 되어 있어 첫눈에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것은 지금
막 바람에 뭉치고 단단하게 떠올라, 고요히 멀리 사라지려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엘리자베트는 이 구름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아주 열중하여 바라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 숨어
있던 그녀의 영혼이 다시금 얼굴에 나타나 크게 뜬 눈으로 고요히 웃고
있고, 그녀의 가느다란 입술은 애기처럼 부드러워 미간에 잡힌 지나치게
영리해 보이는 강한 주름살을 살며시 펴는 것이었다.  위대한 작품의 미와
진실이 그녀의 영혼을 뒤흔들어 미와 진실을 그녀에게 그대로 나타나게 한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옆에 앉아 아름다운 세간티니의 구름과 황홀하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머리를 돌려 나를 보고 말을 건네는 데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게
될까 염려되어 가만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묵묵한 자연에 대한 나의 기쁨과 관계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나는 끊임없이 이 거리의 경탄할만한 교외를 걸으면서
헤매였고, 특히 유라 산으로 가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거듭 숲과 산과
목장과 과수와 수풀들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나를, 아니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나는 이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에 그것들의
고요한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갈망이 일어났다.  또한 마음속에 깊은
생명과 동경이 막연히 머리를 들어 의식되고 이해되고 사랑받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이
때때로 나타내는 미를 즐기는 것을 단지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서 지상의 미를 즐기며 풀밭을 짓밟고,
나중엔 많은 꽃과 가지를 꺾는다.  그것은 곧 버리든가 집으로 가지고
와서 쓰러지게 한다.  이것이 그들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다.  날씨가 좋은
일요일이면 그들은 이런 사랑을 회상하고 자기들의 좋은 마음에 스스로
감동을 받는 것이다.  사실은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필요없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인간이 자연의 주인 인 까닭이다.  아아,
참으로 인간이 자연의 참 주인이란 말인가!
  이리하여 나는 차츰 사물의 깊이를 탐내며 눈을 떴다.  나는 바람이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를 흔드는 것을 보았고, 시냇물이
골짜기를 흘러내리고, 고용한 강이 들로 조용히 흘러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리가 진정 하느님의 소리이며, 이런 알 수 없는
원시적이며 아름다운 말을 이해하는 것이 낙원을 다시 찾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는 많은 책이 있으나, 이러한 것을 말한 책은
없고, 다만 성경에 생명을 지닌 자의  표현할 수 없는 탄식 이라는 묘한
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나와 같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이 끌려 창조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구름의 움직임을
살피고, 또한 끊임없이 동경하며 영원한 것에 대해 숭배의 손을
들어올리기 위해 그들의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정숙한 시간을 찾는 사람들,
즉 은둔자, 속죄자, 성자 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대는 피자에 가서 캄포산토를 방문한 일이 있는가?  그 벽에는 과거
수세기 동안에 퇴색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 중에 테베의 황야에
은둔해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린 그림이 있다.  그 소박한 그림은 낡아
희미해진 빛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화의 매력을 발하여, 그것을 보는
사람은 곧 슬퍼지며 거룩한 세계의 어딘가로 가서 죄와 부정한 것에 대해
뉘우쳐 울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믿게 된다.  무수한
화가들은 거룩한 그림 속에서 이렇게 자기들의 향토를 말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루드비히 리히테르의 사랑스러운 아기의 작은 그림 또한 피자의
벽화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  현재와 형체적인 것을 사랑하던 티치안은
왜 그의 명랑하고 대상적인 그림에 종종 감미롭고 먼 푸른 배경을 그려
놓곤 하였던가?  그것은 다만 한 번 붓이 슬쩍 간 짙은 남빛의 따듯한
빛깔로 먼 산을 의미하는 것인지 또는 무한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사실주의자였던 티치안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미술가들이 아는 척하며 말하는 것처럼 색채의 조화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이 명랑하고 행복스러웠던 화가의 영혼 속에 숨어 있던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선물이었었다.  이렇게 모든 시대의 예술은
우리들 마음속에 신적인 무언의 요구에 어떤 말을 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성 프란시스는 이것을 더욱 완전하고 아름답고 어린아이같이 말하였다. 
나는 그때 비로소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 땅 전체를, 즉 식물,
천체, 동물, 바람, 물 등 모든 것을 하느님에 대한 그의 사랑으로 싸안아
중세기와 단테까지도 넘어서서 시간을 초월한 인간의 말을 찾아냈다. 
그는 자연의 모든 힘과 현상을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다.  그가
만년에 의사들로부터 불에 달군 쇠막대기로 자기의 이마를 스스로
지지도록 선고를 받았을 때 그는 이 괴로운, 중병과 같은 불안 속에 서서
이 무서운 쇠막대기를  그의 사랑하는 형제인 불 이라고 환영하였다.
  난 지금 사람과 같이 자연을 사랑하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친구나
여행의 동반자에게 귀를 기울이듯이 자연에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것으로써 나의 고민이 풀리는 것은 아니었으나 조금은 고귀해지고
정화되는 것이었다.  나의 눈과 귀는 예리해져서 여러 가지 빛깔과 소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생명의 고동을 더욱 가까이에서 분명하게
듣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체험하여 시인의 말로 표현하길 바랐다. 
다른 사람들도 생명의 고동에 가까이할 수 있고 더욱 좋은 이해로써 모든
원기와 쟁화와 순진의 원천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러나 당분간
그것은 희망이요 꿈으로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먼저 가까운 것에서부터 출발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랑하여
이제는 어떤 물건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게 되었다.
  이 일이 얼마나 나의 우울한 생활에 혁신을 가져왔고 위안을 가져왔는지
그것은 말할 수 없다.  격정을 떠난 무언의 굳건한 사랑보다 세상에
귀하고 행복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몇
사람이라도 혹은 두 사람이나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권고에 의해 이
순수하고 행복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다면 그 이상 바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러한 기술을 가져 무의식적으로
한평생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총아요, 인간 중의
선인이요, 어린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픈 고뇌 속에서 그것을 배웠다. 
여러분은 혹시 불구자나 불쌍한 사람들을 못 보았는가?  만일 여러분께서
나의 빈약한 말들을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가 보아라. 
그들의 마음의 고뇌는 욕심없는 사랑에 의하여 정복되고 쟁화되어
있으리라.
  내가 수많은 가련한 수난자들을 존경하게 될 수 있는 완성된 경지에
도달하기엔 아직도 매우 멀다.  그러나 이 몇 해 동안 이러한 완성에
이르는 바른 길을 알고 있다는 나의 위안의 신념을 잃어버린 적은 결코
없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바른 길을 언제나 걸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도중에 여러 벤치에 걸터앉기도 하고, 돌아가는 길을 여러 번 걷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 큰 성벽이 있어 그것이 순수한 사랑을
방해하였다.  그것은 술을 마시는 것이나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었다. 
물론 주량은 훨씬 줄었으나 몇 주일에 한 번씩 아첨을 잘하는 이 신에게
넘어가서 그의 팔에 몸을 맡기곤 하였다.  전처럼 술에 곤드라지게 취해
길가에 눕던가 그와 유사한 밤의 추태를 부리는 일은 물론 없었다. 
그것은 술이 나를 사랑하고 유혹하기는 하였으나, 다만 나의 영혼과
주령이 서로 정답게 이야기할 정도에서 그치곤 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술을 마신 후에는 오래오래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술에 대한 사랑은 버릴 수 없었다.  오랫동안 나는 물려받은
재산을 정성껏 경건한 마음으로 보호하여 아주 내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대책을 강구하여 본능과 양심 사이에 반은 진실하고 반은 농담인
계약을 맺게 되었다.  나는 앗시시의 성자의 찬가 속에  나의 사랑하는
형제인 술 이라는 말도 넣었다.
6.  나의 다른 한 가지 악덕은 더욱 심했다.  나는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거의 싫어했고, 은둔자와 같이 살며 인간의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조소와
멸시로써 대하였다.
  새로운 생활의 시초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인간의 일은 인간들이 서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나는 오로지
자연의 묵묵한 생활에 나의 애정과 귀의와 동감을 바치기만 하면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또한 자연은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웠었다.
  밖에 나가 누우면 갑자기 언덕, 숲의 변두리 또는 내가 오래 찾아가지
않은 사랑스런 나무가 하나하나 마음에 찾아드는 것이었다.  지금쯤
나무는 아마 밤바람 속에 우뚝 서서 졸며 꿈꾸며 탄식하며 가지를 흔들고
있을 것이다.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그럴 때면 나는 집을 나와 그
나무를 찾아가 어둠 속에 희미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애정을
갖고 바라다본 후 어렴풋한 모양을 가슴에 지니고 돌아오곤 하였다.
  여러분은 웃을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잘못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사는 아니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내가 이런 사랑에서
인간을 사랑하는 길로 가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든 시작만 하면 언제나 좋은 일들이 그 뒤에 따르는 법이다. 
내 눈앞엔 나의 위대한 문학의 이상이 점점 가까이, 점점 가능한 것같이
보였다.  내 사랑이 언젠가 시인으로서 숲과 시내의 말을 할 수 있게
한다면 대체 누구를 위하여 그것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다만 내가
사랑하는 자연물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지도자가 되고
사랑의 스승이 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나는 이 냉담함을
정복하고 인간에 대해서도 또한 우정을 보이려는 갈등과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고독과 운명이, 이 점에 관해 나를
완고하고 나쁘게 만든 까닭이었다.  집과 술집에서 좀더 유순하려고
애쓰고, 도중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손히 인사하는 정도로는
불충분했다.  어쨌든 이렇게 대하는 데에서만도 내가 얼마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있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내가 친절히
굴려고 하면 그것을 믿지 않고, 냉담하게 대하거나 그것을 조롱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까닭이었다.  가장 나빴던 것은 위에 말한 유일한 친지인
학자의 집을 일 년간이나 피하고 안 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곳을 다시 찾아가서 이 지방의 사교계에 들어가는 어떤
길을 구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업신여겼던 나의 인간미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다시금 그 집을 생각하게 되자, 홀연히 나의 마음엔 세간티니의 구름 앞에
서 있던 아름다운 엘리자베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가
나의 동경과 우울과 얼마나 깊은 관계가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진실하게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까지 나에게는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여 그것을 신랄하게
조소했었다.  시인이요, 방랑자요, 술꾼이요, 이상한 사람인 내가 무슨
능력이 있으랴!  그러나 지금 나는 내 운명을 알게 되었다.  그 운명이란
사랑이 결혼을 가능하게 하여 인간세계에로 다리를 놓으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유혹적이고 확실하게 보였다.   엘리자베트가 내게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녀가 감수성이 풍부하고 고상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일찍이 느끼고 또한 보아온 바였다.  나는  산 클레멘테 에 관하여 내가
이야기하였을 때에 그리고 세간티니의 그림 앞에 섰을 때에 그녀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생생했던 것이었나를 생각하였다.  나는 이 몇 년 동안
예술과 자연에서 풍부하리만큼 내적인 재산을 모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내게서 도처에 졸고 있는 미를 보고 배울 것이고, 나 또한 미와 진실로써
그녀를 감싸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얼굴과 마음은 탁한 것을 버리고
힘껏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고 우습게도 나는 내가 급격히
변하고 있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고독자요, 기이한 사람이었던
나는 갑자기 결혼생활의 행복과 가정의 건설을 꿈꾸는 사치한 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황급히 손님이 많은 그 집으로 찾아갔다.  사람들은 친절하게
그러나 비난조로 나를 맞아 주었다.  그후 나는 여러 차례 그곳에 가서
며칠이 지난 후에야 엘리자베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아, 그녀는
미인이었다.  내가 그녀를 연인으로 마음에 그렸던 대로 그녀는 아름답고
행복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한 시간 동안 그녀를 눈앞에 지켜보며
즐거운 행복을 맛보았다.  그녀는 부드럽게, 아니 진정 친밀한 우정으로
내게 인사를 했으므로 난 행복스러웠다.


  여러분은 아직 호수에서의 저녁 보트 놀이를, 붉은 등과 음악과 그리고
질식할 듯 싹텄다가 스러진 나의 사랑의 고백을 기억하는가?  그것은
연애하는 소년의 슬프고도 우스운 사랑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더욱 우습고도 슬픈 것은 성인이 된 페터 카멘친트의 사랑
이야기다.
  나는 우연히 엘리자베트가 최근에 약혼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축하를 하고 그 여자를 맞으러 온 약혼자와도 알게 되어 축하를
해 주었다.  나는 하룻저녁 쭉 호의적이고 후견인 같은 미소를 얼굴에
띠고 있었으나, 가면 같아서 내 자신이 정말 싫었다.  그 뒤 나는
숲으로도 술집으로도 가지 않고 혼자 침대 위에 앉아서 램프가 악취를
내며 꺼질 때까지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앉아 다시 의식이 소생될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의식이 소생되자, 비통과 절망의 검은 날개가 나를
덮쳐 나는 작고 약하게 부서져 흐느껴 울었다.
  아침이 되자 나는 짐을 추려서 역으로 나가 고향으로 떠났다.  나는
다시 한 번 젠알프스 산정에 올라가서 소년시절을 생각하며, 또한
아버지가 건재하신지 보고 싶었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 멀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아주 백발이 되셨고,
등이 굽으셨고, 초라하게 보였다.  아버지는 나를 부드럽게 대하셨고,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으며, 아버지가 사용하시는 침대를 내게 양보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나의 귀향에 놀라며 당황해 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집만 남기고 목장과 가축은 벌써 다 팔아 얼마 되지 않은 이자와 함께
여기저기서 조금씩 일을 하심으로써 생활을 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나를 혼자 두고 어디 가신 틈에 나는 이전에 어머니의 침대가
있었던 방으로 갔다.  지나간 날들이 고요하나 강처럼 흘러들었다.  난
이미 청년이 아니다.  남은 세월도 얼마나 빨리 흘러가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도 허리가 굽은 백발노인이 되어 괴로운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내가 어릴 때에 지냈고, 러시아어를 배웠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 빈약하고 낡은 방,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방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웠고, 또한 기분을 침착하게 만들었다. 
나는 감사한 생각을 가지고 나의 청춘시절의 풍성했던 모든 것을
회상하였다.  그때에 플로렌스에서 배운 로렌쪼 메디치의 시가 생각났다.

    아아 아름다운 청춘
    지나가니 슬프구나
    마음대로 즐겨라
    내일을 모르는 인생이어니

  그리고 동시에 이탈리아와 역사가 넓은 정신계의 회상을 이 낡은 고향
방안으로 옮겨 온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약간의 용돈을 드렸다.  그리고 저녁에 우리는 함께
술집으로 갔는데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다만 옛날과 다른 점은 이번에는
내가 술값을 내고 아버지가 별표주와 샴페인을 시키실 때 나보고 사실
그러하냐고 물은 것과 아버지보다 내가 술을 더 잘 마실 수 있게 된
점이었다.  나는 이전에 내가 술을 퍼부었던 대머리 영감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재담쟁이에다 책략가였었는데 벌써 죽고, 지금은 그의 실없는
이야기들도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버트런드 주를 마시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나 별로 말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달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아버지가 술에 취해 무어라고
말씀하시며 몸짓을 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이때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이상한 기분에 잠겼다.  지난날 내 곁을 스쳐간 사람들의 영상이 끝없이
나를 감싸는 것이었다.  백부 콘라트, 로에지 기르타네르, 어머니,
리하르트 그리고 아그리에티.  나는 이들의 영상을 사실은 그 반도 생각을
못하나 모든 것이 놀랄 정도로 훌륭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듯
훤했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가고 잊어버린 과거의 것들이었으나
아직도 분명하고 깨끗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모르는 사이 기억이 보존한 나의 반생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
한참되어 아버지가 잠잠해지고 잠이 들어버렸을 때에 비로소 나는
엘리자베트를 생각하였다.  바로 어저께 그녀에게 인사를 하였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했었고, 또한 그녀의 약혼자에게 축하를 했었다.  그런데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나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고통은 다시 눈을
뜨고, 물결치는 홍수와 함께 마치 열풍이 알프스의 목장에서 떨고 있는
썩은 오두막집을 뒤흔들 듯이 이기적이고 메마른 나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집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낮은 창을 넘어 작은 뜰을
지나 호수로 가서 거기 버려둔 작은 배를 풀어 몰래 푸른 밤 호수를 저어
나갔다.  은빛 안개에 둘러싸인 산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고, 거의 만월이
된 달은 푸른 하늘에 걸려 있으며, 검은 산봉우리들의 끝이 그곳에 닿을
듯 말 듯 하였다.  멀리 젠알프스의 폭포소리가 그윽하게 들려올 듯한
고요한 밤이었다.  고향의 영들과 청춘시절의 영들이, 그들의 푸르고 흰
날개로 나를 둘러싸고, 나의 작은 배를 치우고 양손을 벌린 채 알 수 없는
괴로운 태도로 슬픔을 나타내었다.  내 생활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왜 그렇게 많은 기쁨과 슬픔이 내 위를 지나갔는가?  왜 나는
진실을 갈망하였고, 또한 아직도 갈망하고 있는가?  왜 나는 좋아하는
여성을 위해 항거의 눈물을 흘리며 사랑하고 번민해야만 했는가?  그리고
오늘도 다시금 슬픈 사랑을 위하여 수치와 눈물로써 머리를 숙이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가?  또한 왜 알 수 없는 하느님은 나의 생애를 고독자의
생애,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의 생애로 해 놓으시고도 내 마음속에
사랑에 대한 열렬한 향수를 넣어 주셨을까?
  물은 뱃머리에 둔하게 부서지며, 노에서는 은빛 물방울들이 떨어졌다. 
산들은 주위에 가까이 다가서며 말이 없고, 골짜기에 싸인 안개 위엔
은은하게 달빛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청춘시절의 영들이 말없이 나의
주위에 둘러서서, 깊은 눈으로 조용히 물어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 속에서 아름다운 엘리자베트를 보았고, 시기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그
여자를 사랑하여 내것이 되게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푸르고 흰 호수 속으로 잦아들어 아무도 나 같은 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낡아빠져 못 쓰게 된 배 안에서 물이 새어드는 것을 보자 나는 빨리 노를
저어 나왔다.  갑자기 오한이 났다.  그리하여 집에 빨리 돌아와서 자리에
누웠다.  몸은 피로하였으나 정신은 말짱해 지난 생애를 회상하며 좀더
행복하고 순수하게 살며, 좀더 생의 본질에 가까이 가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물론 생의 모든 호의나 기쁨의 핵심은 사랑이라는 것, 엘리자베트에
대한 새로운 슬픔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리고 누구를 사랑해야만 하는가?
  그때 늙은 아버지의 생각이 떠오르며 처음으로 나는 지금까지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한 일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년시절에 나는
아버지를 괴롭혔고, 그후 고향을 떠났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를 홀로 계시게 하였고, 종종 아버지 일로 화를 내었고, 나중에는
아주 잊어버리고 말았었다.  아버지는 임종의 자리에 누워계시고 나는
혼자 고아가 되어 그 옆에 서서 지금껏 친한 일이 없고 사랑하려고 애써
본 적도 없이 그저 그의 영혼이 날아가버리는 것을 지키고 앉아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나는 사랑한다는 어렵고 즐거운 일을 아름답고 놀랄 만한
연인에게서가 아니라, 백발이 다 된 보잘것 없는 주정뱅이에게서 배우기
시작하였다.  다시는 아버지 말씀에 거칠게 대답하지 않았으며, 될 수
있는 대로 아버지를 상대로 하여 달력에 적혀 있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읽어드리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생산되고 그 고장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포도주 이야기도 들려드렸다.  아버지가 늘 하시던 사소한 일은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것마저 내가 해드린다면 아버지는
할일이 없으셔서 무료해 하실 것이다.  또한 저녁에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대신에 집에서 나와 함께 마시도록 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며칠동안 그렇게 해 보았다.  며칠, 저녁에 술과 여송연을 사다두고
노인의 무료함을 위로해드리려 하였다.  사오일째 저녁이 되자 아버지는
무언으로 반항하셨다.  내가 무엇이 부족해 그러시냐고 묻자, 아버지는
탄식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너는 네 애비를 술집으로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러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는 말했다.
   저는 아버지 자식이고 좋을 대로 하십시오. 
  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눈치를 살피시더니 그제서야 기쁜 듯이
모자를 들고서 나와 함께 술집으로 가셨다.  
  아버지는 한마디 말씀은 없으셨어도 나와 함께 오래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도 어느 곳에선가
타향에서 분열되었던 상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려는 기분에 쫓기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삼 일 안에 다시 떠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버지를 머리를 긁으시더니 축 처진 어깨를 들먹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씁쓸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하려므나. 
  출발 전에 몇몇 이웃사람과 수도원 사람들을 찾아가서 아버지를 잘 좀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어느 아름다운 날을 이용해 나는
다시 젠알프스 봉에 올라갔다.  반원형의 넓은 꼭대기에서 산들과 푸른
골짜기와 빛나는 물과 그리고 멀리 보이는  거리에서 떠오르는 연기를
내려다보았다.  이 모든 것은 일찍이 소년인 나로 하여금 큰 갈망에 차게
하였었고, 나는 아름답고 넓은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떠나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역시 세계는 옛날과 같이 아름답고 신기하게 내 눈앞에 전개
되었고, 나는 다시 한 번 행복의 나라를 찾아가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연구를 하기 위하여 언제 한 번 앗시시에 가려고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바젤로 돌아가 긴급한 일을 마친 후 몇 개의
짐을 꾸려 페루지아로 부쳤다.  그리고 나는 풀로렌스까지 기차로 가서
거기서부터 도보로 천천히 남쪽으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여기 남
이탈리아에서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데 아무 기술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언제나 표리가 없고 단순하고 자유롭고
소박하여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과 악의없이 친해질 수가
있었다.  나는 다시 안전한 향토적인 친밀감을 느꼈다.  그리하여
이후에는 바젤에 있어서도 인간생활의 따뜻한 친밀성을 사교계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소박한 민중 속에서 구하리라 결심하였다.
  페루지아와 앗시시에서의 역사 연구는, 나에게 흥미와 활기를 띠게
했다.  여기서는 매일의 생활이 즐거웠으므로 상한 나의 마음은 곧
회복되어 생활로의 새로운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앗시시에서 내가
하숙하던 집 부인은 채소가게를 하는 수다스럽고 신앙이 깊은 부인으로서
성 프란시스의 이야기를 몇 번 들려 준 것이 인연이되어 나와 친교를 맺게
되었는데, 내가 엄격한 카톨릭 교도라고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렸다.  이런
명예는 내게 적합하지 않았으나, 그로 말미암아 그들이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 갖게 되는 이교도라는 의심을 받지 않고 친하게 교제할 수
있는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부인은 아눈치아타 나르디니라고 하는데
체구가 무섭게 큰 34세의 예절바른 미망인이었다.  그녀는 일요일이면
꽃무늬가 있는 화려한 빛깔의 옷을 입어 꼭 축제일 같았다.  그리고
귀걸이 외에 가슴에는 금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금줄에는 금으로
만든 납작한 메달이 죽 결려 있어 소리를 내며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은줄로 장식한 무거운 기도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가 읽기에는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또 은줄이 붙은 아름다운 흑백의 염주도 가지고
다녔는데 그것은 손쉽게 다룰 수 있었다.  이런 날 그녀가 두번째 교회에
가려는 틈을 타서 난간에 걸터앉아 감동하며 듣고 있는 마을 부인들에게,
오늘 나오지 않은 부인들의 죄를 늘어놓을 때의 그녀의 신앙심이 깃든
둥근 얼굴에는 하느님과 융합된 영혼의 표정이 떠도는 것이었다.
 이 지방 사람들은 내 이름의 발음을 못했기 때문에 나는 다만 시니올
피에트로라고 불리었다.  화창하게 개인 저녁에는 우리들은 이웃 사람들과
어린이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작은 정자에 모여 앉거나 혹은 상점의 과일,
채소 바구니나 씨앗 상자 그리고 줄줄이 매달아 놓은 소시지 사이에
앉아서 서로 경험담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수확의 예상의 말하기도
했으며, 여송연을 피우거나 메론을 한 조각씩 받아 빨기도 하였다.
  나는 성 프란시스의 일, 포르티운쿨라와 그 교회의 이야기, 성 클라라의
이야기 그리고 초기 수도사들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열심히
그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잡다한 질문을 하며 성 프란시스를
칭찬하든가 또는 최근에 일어난 신기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토론도 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것은 도둑에 관한 이야기나 정치적
투쟁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들 주위에는 어린이들이나 고양이나 작은
개들과 함께 장난을 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놀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의 기쁨과 나에 대한 호평을 유지하려고 『성도전』중에서 교훈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두루두루 찾아내었다.  그리고 몇 권의 다른 책과
아놀드의 『제교부 및 제성도전』을 가지고 온 것을 기뻐하였다.  나는 이
책의 성실한 일화를 조금씩 변경시켜 통속적인 이탈리아어로 번역하여
말해 주었다.  그러면 길가던 사람들도 잠시 발을 멈추고 같이
떠들어대며, 종종 하룻밤에 3∼4회 가량 사람들은 바뀌어도 나르디니
부인과 나는 언제나 끝까지 남아 있어 빠지는 법이 없었다.  나는
그때마다 내 옆에 붉은 포도주병을 놓고 마시곤 했었으므로 영세민생활을
하는 그들은 놀라서 존경하는 마음을 품었다.  근처의 수줍어하는
처녀들도 점점 친밀감을 드러내며 이야기에 가담하여 내가 주는 그림책을
즐겁게 받게 되었고, 나의 경건심을 믿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쓸데없는
농담도 하지 않으며, 대체로 그들이 신용을 얻으려고 일부러 꾸미는 빛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는 페루지노의 그림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눈이 크고
몽상적인 미소녀들도 몇 명 있었다.  나는 그들이 다 맘에 들었고
사심없는 장난을 치는 그들이 눈앞에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소녀들은 서로 하나같이 비슷하여 그들의 미는 언제나
종족적이고 개성적인 미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중 어느 아가씨와도
사랑에 빠진 일은 없었다.  마테오 스피넬리라는 빵집 아들도 종종
나타났는데, 그놈은 영악하고 재미있는 소년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동물
흉내를 낼 줄 알았으며, 또 온갖 추문을 잘 알고 있었고, 대담하고, 또한
짓궂은 짓을 잘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내가 『성도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는 아주 경건하고 겸손하게 듣고있다가 나중에 가서 소박하지만
질 나쁜 질문을 해 비교하고 억측을 하여 성자들을 조롱하는데서 채소가게
부인을 놀라게 하였고, 듣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말할 수 없이 즐겁게 해
주었다.
  종종 나는 혼자서 나르디니 부인의 상점에 앉아 그녀의 교훈적인
이야기를 듣거나 그녀의 인정스런 말을 듣고 인간적인 기쁨을 가졌었다. 
주위 사람들의 어떤 과오나 죄도 그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의 연옥의 좌석까지 미리 정확하게 사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여 아무리 작은 체험이나 관찰이라도
감추지 않고 자세히 털어 놓았다.  내가 작은 물건이라도 무엇을 사면
뒤에 꼭 값을 묻고 내가 속지 않도록 주의를 시켰다.  내가 그녀에게
『성도전』을 가르쳐 주는 대신에 그녀는 내게 과일을 사고 채소를 고르고
부엌에 익숙해지는 비결을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 밤 우리들은 무너져가는 큰 정자 안에 앉아 있었다.  내가
스위스의 민요를 부르고 알프스의 목가를 불렀더니, 소년소녀들은 미칠
듯이 좋아하였다.  그들은 좋아서 몸을 꼬며 외국말을 흉내내고, 또한
내가 알프스의 목가를 부를 때에 어떻게 나의 목천도가 아래위로 우습게
움직이는가를 흉내내어 보여 주었다.  그때에 누군가가 사랑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소녀들이 킥킥웃으니까 나르디니 부인은 화가 나서
눈을 하얗게 뜨고 감상적인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결국 나로 하여금 내
사랑의 이야기를 하도록 나를 졸라댔다.  나는 엘리자베트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아그리에티와의 뱃놀이와 실패로 끝난 내 사랑의 고백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는 리하르트 외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는데, 지금 남국적인 좁은 들길과 붉은 금빛 황혼이 덮여 있는
움브리아의 언덕을 마주 바라보면서, 호기심에 찬 움브리아 지방의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말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달리
생각 안하고 오래된 단편소설을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는 나의 심정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듣다가 웃고
조롱하지나 않을까 하고 몰래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 모든 사람들의 눈은 동정하듯 슬프게
나를 바라다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신데두--. 
  소녀들 중의 하나가 감격하여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신데 실연을 하셨다니! 
  나르디니 부인은 부드럽고 통통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나의 머리털을
쓰다듬으면서 말하였다.
   가엾어라! 
  또다른 한 소녀는 나에게 큰 배를 주었다.  먼저 한 입 먹고 달라고
하였더니 그렇게 하고 나서 정색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소녀들에게도 한 입씩 베어물게 하려고 했더니 그 소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안 돼요, 그냥 잡수세요!  당신께 드린 거예요.  불행한 이야기를 해
주셨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은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계시겠죠? 
  얼굴이 햇볕에 그을린 포도지배인이 말했다.
   아니오. 
   그럼, 아직도 그 몹쓸 에르미니아를 사랑하고 계십니까? 
   나는 지금 성 프란시스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내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들도, 페루지아
사람들도, 또한 여기 있는 이 어린이들도, 에르미니아의 애인까지도. 
  그러나 나르디니 부인이 내가 언제까지나 이곳에 남아서 자기와
결혼했으면 하는 절실한 소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이
평화스럽고 목가적인 생활에 어떤 혼란과 위험을 느끼게 되었다.  이
조그마한 사건은 나를 능력있고 꾀많은 외교가로 만들었다.  그것은
조화를 깨뜨리지 않고 좋은 우정을 유지한 채 그녀의 이 꿈을 깨뜨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고향으로 돌아갈
일도 생각해야 했다.  미래의 문학에 대한 꿈과 절박한 금전의 곤란이
없었다면 나는 그대로 거기에 남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금전의
곤란은 나로 하여금 나르디니 부인과 결혼을 하게 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아직 가시지 않은 엘리자베트로 인한
비통과 그녀를 다시 만나려는 갈망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로 통통하게 살찐 이 미망인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단념하고, 환멸의 보복을 하는 일은 없었다.  떠날 때의 이별은 아마
그녀보다 내가 더 쓰라렸을 것이다.  나는 이전에 고향에서 버렸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버렸다.  그리고 작별을 할 때에 이처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잡혀 본 일도 없었다.  사람들은 내게 과일,
포도주, 달콤한 워카, 빵 그리고 소시지를 선물로 기차까지 가져왔다. 
그리고 나의 거취에 무관심할 수 없었던 많은 친구들과 작별한다는 것은
실로 섭섭한 일이었다.  아눈치아타 나르디니 부인은 떠날 때에 나의
양뺨에 키스를 하면서 눈에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전에 난 스스로 사랑함이 없이 남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은 특히
즐거울 것이라고 믿었었다.  이제 나는 사랑을 받고 그것에 보답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라는 가를 경험하였다.  또한
외국여성에게서 사랑을 받고 남편이 되기를 간청받았다는 것에 대해 약간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 조그마한 자만은 벌써 얼마만큼 내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르디니 부인에게는 미안한 일이나 이 일이 없었더라면 하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는 점점 행복은 외적 희망의 실현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과 연애하는 청년의 번민이란 괴롭기는 해도 전혀 비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엘리자베트를 소유할 수 없었다는 것은
물론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나의 생활, 자유, 활동, 생각이
조금도 좁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멀리서 이전과 같이 내가
원하는 대로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과 움브리아에서의
수개월간의 간소하고 명랑한 생활이 대단히 나에게 효과가 있었다. 
이전부터 나는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런 것에 익숙해져 있으면서 비뚤어진
마음 때문에 그것을 즐길 기분을 망치곤 하였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인생의 유머에 대한 눈이 뜨여서 나의 숙명과 화해하며 인생의 식탁에서
이것저것 맛있는 것을 골라 먹는 것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누구나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오면 그런 생각이 든다. 
주의라든가 편견은 문제도 안 되고, 점잖게 미소를 띠고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스스로 멋진 처세술을 가진 듯이 느껴진다.  잠시
남국의 기분좋고 온화한 민중생활에 젖었다가 돌아오면 고국에서도 꼭
그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같이 생각된다.  이탈리아의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곤 했었으나,  이번에는 특히 더
그랬다.  바젤로 돌아와 옛날과 같은 빡빡한 생활이 그대로 불유쾌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을 대하자, 나는 명랑하고 높은 곳에서 무기력하고
불쾌하게 한 계단 한 계단씩 내려갔다.  그러나 거기에서 얻은 것들 중의
몇 개는 싹이 돋아서 그 이후 나의 작은 배는 낡은 물을 달리건 흐린 물을
달리건 적어도 다채로운 작은 깃발을 언제나 대담하고 정답게 날릴 수가
있었다.
  또한 그밖에 나의 견해도 많이 변했다.  나는 이미 내가 유감스럽게도
청춘시절을 흘려보내고, 사람들이 내 생애를 짧은 행로라 여기며, 그
걸음걸이나 끝장의 종연까지도 그리 세상이 떠들썩하거나 돌봐줄 만한
사람이 못 되는 나그네라고 보기 시작하는 시기를 향해 성숙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시기가 되면 사람은 생의 목표나 사랑의 꿈을 잃게 되지는
않을지라도 자기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는 생각지 않게 된다.  그리고
도중에서 종종 옛길로 들어서 양심의 가책없이 하루의 행로를 게을리
보내며, 풀숲에 뒹굴기도 하고 휘파람으로 노래를 부르며 흡족한 현재를
거리낌없이 즐기는 법이다.  나는 지금까지 짜라투스트라를 경배하지는
않았으나 본래 자주적이었으므로 자기를 존경하고 비속한 사람들을 경멸한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인간들 사이에 결코 고정된 한계라는
것이 없으며, 비속하고 억압된 생활을 하는 가련한 사람들의 생활은
혜택을 받아 빛나는 사람들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다양할 뿐 아니라,
대개는 오히려 따뜻하고 진실하고 모범적이라는 것을 차츰 잘 알게
되었다.
  아무튼 꼭 알맞게 바젤에 돌아와서 그동안 결혼한 엘리자베트가 벌이는
밤의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여행의 뒤끝이라 즐거웠고, 아직
기운이 있었으며 햇볕에 그을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작고 재미있는
기념품을 많이 가지고 갔었다.  아름다운 부인은 잔정을 보이면서 나를
환대하려고 하였다.  나는 때를 놓친 구혼의 창피를 폭로하지 않고도 지낼
수 있었던 나의 행복을 밤새도록 즐겼다.  그 이유는 이탈리아에서와 같은
경험도 없지는 않았으나 나는 여전히 여성들은 자신들을 사랑한 남자가
절망적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잔인하게도 즐거워하는 것 같은 불신을
남모르게 품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내가 일찍이 다섯 살 난 어린이의 입에서 들은 유치원시절의 한
조그마한 이야기는 이런 굴욕적인 괴로운 상태를 가장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이 어린이가 들어간 유치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상징적이며 묘한
풍습이 있었다.  어떤 어린이가 지나친 장난을 저질러 볼기를 맞게 되면
여섯 명의 계집애가 반항하는 그 아이를 의자에 꼭 앉아 있도록 붙잡고
있게 명령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붙잡고 누르고 있다는 것이
무상의 쾌락이요 큰 명예로 생각해 당시의 가장 모범생인 온순한 여섯
계집애들만이 이 참혹한 기쁨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재미있는
유년시절의 이야기는 내 자신을 생각하게 하였다.  그리고 몇 번이나 내
꿈속에까지 나타나서 나는 적어도 꿈의 경험에 비추어 그러한 상태에
놓이게 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7.  나의 문필업에 대해서 나는 여전히 아무런 관심도 존경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고, 약간의 저축도 할 수
있었으며, 부친에게도 얼마간의 돈 송금할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부친 돈을 가지고 기뻐하시며 술집으로 가셔서 갖은 자랑을 늘어놓으며
나를 칭찬하셨고, 또한 송금에 대한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시는
것이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나는 신문에 기고를 해서 생활을 해나간다는
말을 한 번 부친에게 했었다.  그래서 부친은 나를 지방신문에 있는
편집자나 통신원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세
번씩이나 아버지다운 편지를 써서 중대한 신문기사거리로서 돈이 되리라고
생각되는 사건을 알려주셨었다.  첫번은 곡창에 불이 난 사건이었고, 두
번째는 등산가의 조난사건이었고, 세 번째는 동장 선거의 결과를 알려 준
것이었다.  이 보고들은 모두 괴상한 신문체 문장으로 씌어져 있었고,
사실 나를 기쁘게 하였다.  그 이유는 이 사실이 부친과 나 사이의 친밀한
결합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수년 이래 고향에서 처음 받은 편지였던
까닭이었다.  이러한 편지들은 나의 문필생활에 대한 본의 아닌 조소로써
나를 통쾌하게 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다달이 나는 그 중요성과 결과에
있어 부친이 알려 준 시골사건보다도 훨씬 못한 책들을 논평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때 바로 내가 취리히에서 알게 되었던,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두 명의
서정시인이 쓴 책이 두 권 있었다.  한 사람은 베를린에서 살고 있어
대도시의 바와 유곽의 추악한 상태를 묘사할 줄 알았다.  또 한 삶은
뮌헨의 교외에 사치스런 집을 짓고 숨어 살고 있어 노이로제 환자 같은
내관적인 상태와 심령주의자적인 흥분의 상태 사이를 절망적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나는 이 두 책을 비평해야 했다.  물론 나는 두 책을 악의없이
비평하였다.  노이로제 환자 같은 사람에게서는 실로 당당한 문제로
경멸받을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베를린에 사는 사람은 어떤 잡지에
기고하여 대소동을 일으켜 자기의 진지한 의사를 무시했다고 하면서  조라
를 인용하는 등 나의 이해없는 비평에 대해서뿐 아니라, 스위스 인 일반의
비현실적인 산문정신에 대하여 비난하였다.  이 사람은 아마 취리히에서
문필생활을 하던 때가 어느 정도 건전하고 가치있던 유일한 시기였을
것이다.
  나는 각별한 애국자는 아니었으나 그가 너무도 베를린 냄새를 피우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이 불만가에게 긴 편지를 써서 대도시의
거만한 현대파를 경멸하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응수하였다.
  이 싸움은 내게 도움이 되었다.  그것은 다시 한 번 근대의 문화생활에
관한 나의 이해를 생각하게 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 일은 무척
귀찮았고, 드디어는 이렇다 할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 결과로
생긴 나의 소책자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켜도 섭섭하지 않다.
  동시에 이러한 고찰은 나로 하여금 내 자신과 나의 장기계획이었던
필생의 저작에 관하여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하였다.
  나는 일생을 두고 한 문학작품에서 현대인을 자연의 묵묵한 큰 생명에
친근하게 하여 그것을 사랑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나는
그들이 대지의 고동에 귀를 기울이고 우주의 생명에 참여하며, 우리들은
시도 아니고, 우리들 자신에게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대지와 전우주의
아들이고 부분이며 그것들의 작은 운명의 충동이란 것을 잊지 않도록
가르치려고 했다.  또한 현대인들에게 시인의 노래와 찬란한 밤의 꿈과
같이 강이나 바다 또는 흐르는 구름이나 폭풍처럼 동경의 상징이며
대표라는 것을 회상하게 하고 싶었다.  즉, 그것들이 하늘과 땅 사이에
날개를 펴고 우주에 있어서의 시민권의 확보 및 모든 생명의 불멸의
확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  모든 존재는 마음깊이
이 권리를 확신하며, 하느님의 아들로서 아무 불안도 없이 영원의 모태
속에 쉬고 있다.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모든 악과 병과 부패된 것만이 이
사실에 항변하며 죽음을 믿는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에게 형제와 같이 자연을 사랑하는 데서 기쁨의
원천과 생명의 흐름을 발견하도록 가르치려 하였고, 관조와 방랑과 향락의
기술, 눈앞에 있는 것만을 즐기려는 태도를 말하려 하였다.  산과 바다와
푸른 섬으로 하여금 매혹적이고 굳센 말로써 여러분에게 말하게 하려
하였고, 여러분의 집과 거리 밖에서 얼마나 무수하게 다채로운 생명의
약동이 매일같이 꽃피며 넘쳐 흐르고 있는가를 보게 하려고 하였다.  나는
여러분의 거리에서 제어할 수 없는 활동을 전개하는 봄이든가, 다리 밑을
흐르는 강이든가, 기차가 통과해 달리는 숲과 아름다운 초원을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다른 나라의 전쟁과 유행, 소문, 문학, 예술에 관한
것을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려고 했다.  또한
고독하고 괴로운 삶을 지닌 나라는 사람이 이 세계에서 어떤 잊지 못할
즐거움의 빛나는 연속을 발견하였는지를 말하려 하였고, 나보다 더욱
행복스럽고 쾌활한 여러분이 보다 큰 기쁨을 가지고 이 세계를 발견하기를
원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름다운 사랑의 비밀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불어넣고
싶었다.  온갖 살아 있는 것에 대하여 형제가 되고, 사랑에 넘쳐서
괴로움과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이 찾아올 때에 엄숙한
형제로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러분에게 가르치기를 희망하였다.
  이런 모든 것을 찬가와 아가로서가 아니라 소박하고 진실하고 객관적인,
마치 귀향한 여행가가 친구들에게 다른 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해
주듯이 유머를 섞어 진실하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내가 하려고
했다든가 원한다든가 희망한다든가 하는 것은 물론 우습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많은 소원들이 하나의 계획과 윤곽을 가지게 될 날을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많은 재료를 수집하였다.
 단지 머리로써가 아니라 여러 수첩 속에 수집하였다.  나는 여행과 소풍
때에는 수첩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그것은 두 주일이면 꽉 차곤
하였다.  나는 반성도 없었고, 앞뒤를 연결시키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세계에서 보는 것은 모두 그 속에 간단하게 기록하였다.  그것은 화가의
스케치북과 같은 것으로서 간단한 말로 순수한 사실을 기록하였었다.  즉,
길과 신작로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산과 거리의 영상, 귀담아 들은
농부·직공·시장의 부녀자들 이야기, 또한 기사의
법칙·전광·바람·비·바위·식물·동물·새가 나는 것, 파도의 형성,
바다 빛깔의 장난, 구름의 형성에 관한 노트 등이었다.  때때로 이런
것에서 간단한 이야기를 만들어 자연과 여행의 습작으로서 세상에
발표하였으나 모두 사람과는 관계없는 것이었다.  내게 있어서는 한 그루
나무의 역사나 동물의 생활 혹은 구름의 여행은 인간의 점경없이도
얼마든지 재미있었다.
  대체로 사람이 들어가지 않은 위대한 문학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종종 머리에 떠오르곤 하였으나 오랫동안 그 이상에서 떠날 수가 없어,
어느때나 위대한 영감이 떠오르면 이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결국 아름다운 풍경에도 사람이
필요하며, 또한 이 사람을 자연스럽고 충실하게 묘사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등한시했던 많은 것을 도로 찾아야
했고, 지금도 그것을 찾는 중이다.  이제와서 나는 추상적인 인류 대신에
개개의 사람을 알고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를 배워 내
수첩과 기억은 전혀 새로운 형상으로 채워졌다.
  이러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대단히 기뻤다.  나는 단순한 무관심의
상태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자명한 사실들을 모르고 있었는가를 알게 되었고, 또한 많은
방랑과 시찰이 나의 눈을 열어 주고 예민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나는 아이들과 자주 사귀었다.
  언제나 구름과 파도를 관찰하는 편이 사람을 연구하는 것보다 기뻤다.
나는 사람이 위선의 미끈한 탈을 쓰고 있는 점에서 다른 자연과 구별되는
것을 인정했고 또 놀랐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현상을
보았다.  그것은 누구나가 자기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서 한 인물, 한
분명한 자태를 나타내야 하는 사정에 있는 까닭이다.  나는 나 자신에
있어서도 똑같은 사실을 이상한 기분으로 인정했었고, 지금은 인간의
핵심에 육박하려는 일을 포기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탈이 더욱 심하였다.  나는 아이들에게서까지도 이미 도처에서
그것을 발견하였다.  아이들은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알 수 없으나
전혀 숨기지 않고 본능적으로 자기를 나타내는 것보다 한 연극 같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 나는 자신이 더 전진하지 못하는 것 같은, 그리고 헛된
개개의 일 때문에 타락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나는 먼저 그 잘못을
나 자신에게서 구했으나, 나의 실망과 내가 찾는 그러한 사람들을 내
주위에서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흥미로운
것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전형적인 인물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대학생에게서도 사회인에게서도 그러한 인물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탈리아를 회상하였고, 나의 많은 도보여행의 유일한 친구였으며
동반자였던 그때의 견습직공들을 열심히 회상하였다.  그때 나는
견습직공들과 많이 방랑하였고, 그들 중에서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발견했었다.
  고향의 직공 숙박소와 몇 곳의 하숙집을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무리들은 내게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당분간 어린이들과 놀거나 술집을 많이 헤매였으나 물론 아무것도 얻은
것은 없었다.  몇 주일 동안은 무척 우울하였다.  그동안 나는 나를
의심하였고, 내 희망과 소원이 어리석게도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하여
정처없이 밖을 헤매였고, 밤이 깊도록 술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었다.
  나의 책상 위에는 몇 묶음의 책이 모여 있었는데 그것은 헌책방에
보내지 않고 고이고이 간직해 두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책장에는
더이상 넣어 둘 장소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중에 그것을 넣기 위해
조그마한 목수집을 찾아가서 책장의 치수를 재달라고 부탁하였다.
  키가 작고 조심성 있어 보이는 행동이 느린 한 목수가 집으로 왔다.
그는 책장 놓을 자리를 재며 마루에 무릎을 꿇기도 하고, 미터 자를
천장으로 뻗치기도 하고, 갖풀 냄새를 풍기며 인치의 큰 숫자를 일일이
정성껏 수첩에 적어 넣었다.  이렇게 분주하게 일하는 동안에 우연히 그가
책을 쌓아 놓은 의자를 건드렸다.  몇 권의 책이 밑으로 떨어졌다.
그것을 주우려고 그는 허리를 굽혔다.  그 책 중에 목수들이 사용하는
말을 모아 놓은 소사전이 있었다.  그것은 독일의 모든 직공들이
하숙집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두꺼운 표지의 재미있는 책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실례입니다만 이 책은 저도 잘 아는데, 선생님은 정말 이 책을
읽으셨습니까?
   예, 나도 떠돌아다니는 직공들의 말을 조금 배웠습니다.  알맞은
표현법을 찾는다는 것을 정말 재미있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럼 선생님도 직접 여행을 하신 일이 있으시군요?
  그는 이렇게 외쳤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지는 몰라도 나도 꽤 여행을 즐겼고,
하숙집에서도 많이 자 보았습니다.
  그동안 그는 책을 다시 쌓아 놓고 나가려고 하였다.
   당신은 그때 어디를 여행하였지요?
  나는 이렇게 그에게 물었다.
   여기서 코블렌츠까지, 그리고 나중에는 제네바까지 갔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요.
   당신도 몇 번 걸려들었겠군요?
   꼭 한 번 두르라흐에서 그랬습니다.
   상관없다면 내게 한번 얘기해 주십시오.  언제 술집에서 만날까요?
   글쎄요, 언제든 일이 끝나신 후에 제게 들르셔서 형편을 물어 주시면
됩니다.  농담이 아니시라면.
  며칠 후 엘리자베트 집에 모였던 날 저녁이었다.  나는 길가에 서서 그
목수한테 가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목수를 찾아갔다.  나무공장은 이미 닫혀져
컴컴했다.  나는 더듬더듬 어두운 현관과 좁은 안뜰을 지나 집안의 층계를
오르내리다가 결국 목수의 문패가 붙은 문을 발견했다.  돌어섰더니 곧
거기에 아주 작은 부엌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느 바짝 마른 부인이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좁은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장난하는
세 아이를 감시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 부인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어두컴컴한 창가에서 목수가 신문을 읽고 앉아 있는 옆방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는 나를 귀찮은 손님으로 알고 무어라 웅얼거렸으나
나중에 나를 알아 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놀라서 당황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아이들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아이들이 부엌으로 달아]났으므로 나는 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부엌에서는 부인이 쌀로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니 움브리아에
있는 파드론의 집 부엌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때
그와같은 실패를 하고 있었다.  나는 요리하는 데 한몫 끼었다.
그곳에서는 쌀로 요리를 할 줄 몰라서 일종의 풀을 만들어 아무 맛도 없고
끈적끈적하여 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때
그와 같은 실패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곧 냄비와 주걱을 맡아 내가 직접
요리를 함으로써 식사를 실패에서 구할 수 있었다.  부인은 내게 모든
것을 맡겨 버리고는 내가 하는 일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쌀 요리는 꽤
훌륭했다.  우리는 그것을 방에 옮기고 등불을 켰다.  나도 한 그릇
차지하였다.
  부인은 그날 저녁 요리 이야기에 나를 몰아 넣어 주인과는 말할 틈을
주지 않았으므로 여행 이야기는 다른 날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이들 부부는 내가 외면으로는 신사지만 실은 농부의 아들이요, 가난한
집안의 출생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고는 첫날 저녁부터 벌써 친밀해졌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같은 처지의 출생이라는 공감을 가졌고, 나도 어려운
가정 속에서 소시민의 고향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는 치장을
한다든지 잘난 척하거나 희극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교양이나
고급스런 취미의 옷을 두르지 않은 엄하고 어려운 생활이 행복하고 좋아서
굳이 아름다운 말로써 꾸밀 필요가 없었다.
  나는 종종 이 목수집에 찾아가서 가엾고 재미없는 사교를 잊었을 뿐
아니라, 내 슬픔과 어려움까지도 잊었다.  나는 한 조각의 유년시절이
나를 위해 여기에 보존된 듯한, 또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 신부들이
파괴해 버린 생활을 여기에서 다시 되찾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찢어지고 땀이 배어 누렇게 찌들은 오래된 지도 위에 허리를 굽히고,
목수와 나는 함께 거닐어 본 모든 도시의 성문과 거리를 헤매며 즐겼고,
직공들의 농담을 새롭게 했으며, 때로는 젊은 방랑자의 노래를 몇 곡 함께
부르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수공업의 괴로움이며 가족과 아이들과 도시에
관한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다가 점점 주인과 나의 구실이 바뀌어
나는 그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그는 나에게 주는 자, 가르치는 자가
되었다.  나는 여기에서 사교적인 것이 아니라 진실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자녀 중에 다섯 살 난 여자아이가 특히 여위어 눈에 띄었다.  그
애의 이름은 아그네스인데 아기라고 사람들은 불렀다.  금발에 얼굴은
창백하고 여위었으며, 수줍은 큰 눈을 가졌고, 동작은 부드럽고 겁이 많아
보였다.  어느 일요일날 그 가족과 소풍을 가려고 들렀더니 아그네스는
앓고 있었다.  할 수 없이 그 어머니가 그 애 곁에 남아 있었고, 그
나머지들은 천천히 걸어 거리를 빠져나왔다.  우리는 성 마가레테 교회
뒤꼍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았다.  어린아이들은 돌, 꽃, 갑충 등을 찾아
헤매고 우리 어른들은 여름철의 목장이며, 빈닝그의 묘지며, 유라 산의
푸르고 아름다운 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수는 피로하고 괴로운지
묵묵히 앉아만 있어 무슨 근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가 아프시오?
  아이들이 꽤 멀리 갔을 때에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는 멍하니 슬픈
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애가 죽어 갑니다.  나는 벌써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자란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눈에 늘 죽음의 기운이 드러나 있어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죽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를 위로하려 했으나 곧 입을 다물고 말았다.
   보시오.
  그는 슬픈 빛으로 웃었다.
   당신도 그 애가 회복되리라고는 믿지 않으시겠지요?  나는 독실한
신자가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나는 교회에도 잘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이 나에게 한마디 하시려 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아직 어린애라 늘 건강하지 못합니다만 그 애는 다른 애들을 다 합친
것보다 귀여웠습니다.
  아이들은 기쁘게 고함을 지르며 몰려와서 나를 둘러싸고 많은 질문을
하였다.  꽃과 풀의 이름을 묻고, 나중에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꽃과 나무와 숲에 관한 이야기며, 그것들에게도
어린이들처럼 각각 혼이 있고, 자기의 천사를 가졌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들의 아버지도 듣고 웃으며, 이따금 가볍게 그렇다고 내 말에 보증을
해 주었다.  우리들은 산이 어둑해지는 것을 보고,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돌아왔다.  목장 위에는 붉은 놀이 걸려 있고 먼 교회의 종탑들이 따뜻한
공중에 작고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여름 하늘가의 푸른 빛은 아름다운
초록과 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나무들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피로해선지 잠잠히 있었다.  아이들은 겨자꽃,
카네이션, 풍령초의 천사들을 생각하였고, 우리 어른들은 영혼에 날개가
돋쳐 근심하는 우리들의 작은 무리를 떠나려고 준비하는 작은 아기의 일을
생각했다.
  다음 두 주일간의 경과는 좋았다.  소녀의 병은 회복되는 것 같아, 몇
시간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 있을 수도 있었고, 찬 이부자리 속에서
지금까지보다 더 귀엽고 명랑하게 보였다.  그러더니 며칠 밤 열이 나며,
서로 말은 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아기의 생명이 수일이나 수주일에
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단 한 번 그 애 아버지는 거기에 대한 말을
하였다.  그것은 일하는 장소에서 였다.
   아무래도 곧 해야 될 것이니까요.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일을 마친 후에 자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나는 한쪽 대패판 위에 앉았고, 그는 다른 대패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판자에 대패질을 다하고 나서 그것을 자랑삼아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아름답고 건장하게 자라난 흠이 없는 전나무 목재였다.
   못은 하나도 박지 않고 부분 부분을 잘 맞춰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튼튼해서 오래갈 테니까요.  그러나 오늘은 그만 하렵니다.  자,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시죠.
  뜨겁고 상쾌한 여름날이 연이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매일 한두
시간씩 작은 아기의 곁에 앉아서 아름다운 목장과 숲에 관해 이야기해
주며, 그 애의 작고 여윈 손을 내 큰 손으로 꼭 쥐고 마지막날까지 그
애의 사랑스럽고 명랑한 애교를 마음껏 즐겼다.
  그후 우리는 불안과 슬픔에 싸여 작고 여윈 몸뚱이가 강한 죽음과
싸우기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모으는 것을 보았다.  죽음은 빨리 그리고
쉽게 그 애를 정복하였다.  어머니는 묵묵히 참고 있었으나. 아버지는
침대 위에 쓰러져서 몇백 번이나 작별을 하고 금발을 쓰다듬어 주며 숨이
끊어진 딸을 위로하고 있었다.
  소박하고 간단하게 장례식이 끝나자, 옆 침대에서 자던 아이들이 밤마다
울어 가슴이 답답했다.  이윽고 아름다운 성묘날이 와서 우리들은 새
무덤에 나무를 심고는 묘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죽은 아기의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우리들이 사랑하던 아기가 잠들고 있는 땅이며,
그 위에 자라던 나무와 잔디며, 자유롭고 즐겁게 조용한 무덤의 정숙을
깨뜨리며 날고 있는 새들을 바라보았다.
  한편 빡빡하고 부지런한 날은 이제 달아나 버리고, 아이들은 다시
노래를 부르고 씨름을 하며,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그리고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아기를 영 보지 못해도 아름답고 작은 한
천사를 천국에 모시는 데 익숙해졌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아는 교수집의 모임에 더 참석하지
못하였고,  또한 엘리자베트의 집도 몇 번밖에 방문하지 못하였는데,
그때에도 이야기꽃이 피는 도중에 나는 홀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가슴
답답함을 느꼈다.  지금 내가 두 집을 찾아가니 모두 문이 닫혀 있고,
그들은 벌써 시골로 가고 없었다.  나는 비로소 내가 목수집과 가까이
교제하며 어린애의 병을 돌보는 사이에 무더운 여름과 피서할 생각을 전혀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이전에는 7월과 8월에
시내에 남아 있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었다.
  나는 잠시동안 그들과 작별하고 슈바르츠발트, 베르그슈트라쎄,
오덴발트 등지로 도보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경치좋은 곳에서 바젤의
목수집 아이들에게 그림엽서를 보내며, 이르는 곳마다 나중에 아이들과
그의 아버지에게 어떻게 여행 이야기를 해 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다.
  프랑크프르트에서는 예정일보다 며칠 더 있기로 했었다.  아사펜브르그,
뉴른제르그, 뮌헨 그리고 울름에서는 새로운 기쁨으로써 고대미술품을
감사하였고,  마침내 아무 생각도 없이 취리히에서 발을 멈추었다.
지금까지 몇 해를 두고 무덤을 피하듯이 이 도시를 피하고 있었으나, 지금
나는 낯익은 거리를 헤매며 옛날의 술집과 화원을 다시 찾아 아무
괴로움도 없이 지나간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다.  여류화가
아그리에티는 결혼을 했었는데, 그녀의 주소를 알려 주는 사람이었었다.
나는 저녁 때에 그곳으로 가서 그 집 현관 문앞에 붙어 있는 그 여자
남편의 이름을 일고 창문을 올려다보곤 들어가기를 주저하였다.  그때
옛날이 생생하게 돌이켜지며 청춘의 사랑이 가벼운 쓰라림으로써
깨우쳐졌다.  나는 발길을 돌려 일찍이 사랑한 이탈리아 여인의 아름다운
영상을 무익한 재회로써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걸어서 당시
예술가들이 여름밤의 축제를 가졌던 호반의 집을 찾고, 어느덧 즐겁게
흘러가 버린 삼 년 동안을 살았던 그 집의 고미다락방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뜻밖에도 모든 추억에 앞서 엘리자베트의 이름이 입술에 떠올랐다.
 새로운 이 사랑은 그 이전의 낡은 사랑보다도 강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도 지금에 와서는 역시 더욱 고요하고 슬프고 괴로우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좋은 기분을 지속시키려고 나는 보트를 타고 따듯하고 밝은 호수 위를
고요히 저어 나갔다.  황혼이 짙어오고 있었다.  하늘에는 아름답고
눈처럼 흰 구름이 한 점 떠 있었다.  나는 끊임없이 구름을 쳐다보며
유년시절에 구름을 사랑했던 것을 회상하고, 엘리자베트를 생각하며, 또한
엘리자베트가 그때 그렇게도 아름다움에 취해 그앞에 멍하니 서 있던
세간티니의 구름의 그림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때처럼
엘리자베트에게 언어와 불순한 욕망에 흐리지 않은 사랑을 그토록
행복스럽고 순수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것은 구름을 바라보며
조용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의 좋았던 모든 것을 더듬으며, 이전의
혼란과 정열 대신에 유년시절의 동경을 느낀 까닭이었다.  그러나
유년시절의 동경도 지금은 더욱 무르익고 더욱 침착한 것이 되어 있었다.
  이전부터 나에게는 보트를 저으며 조용한 박자 맞추어 무엇을 읊든가
노래하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도 나는 고요히 노래를 부르며 그것이 시가
되어 있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그대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취리히의 아름다운 호수의 저녁을 기억하기 위해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것을 수첩에 적어 넣었다.

    하늘 높이 머물러 있는
    흰 구름같이
    밝고 아름답고 먼
    너, 엘리자베트.

    구름은 가고 방황하나
    거들떠보지 않는구나.
    그러나 어두운 밤이면
    그대의 꿈길을 걸으리.

    거룩하게 가고 반짝이어
    그후부터 안식을 잃고
    흰 구름따라
    그리워 한숨짓노라.

  바젤로 돌아오자 앗시시에서 내게 한 통의 편지가 와 있었다.  그것은
아눈치아타 나르디니 부인에게서 온 것으로 기쁜 소식이 가득 적혀
있었다.  그 여자는 재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 내용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존경하고 친애하는 페터 님!
    당신의 충실한 여자치구가 이 글을 올리는 자유를 허락해 주세요.
신의 은총으로 저는 커다    란 행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12월 12일,
저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이름은    메노티라고
하는데, 돈은 없습니다만 저를 대단히 사랑하고 있으며, 이전에는
과일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귀여운 사내입니다.  그러나 페터
씨, 당신처럼 크고 어여쁘지는 못합니다.     앞으로 저는 상점에 앉아
있고, 그는 시장에서 과일을 팔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집 옆에 사는
어여쁜 마리에타도 외국에서 온 목수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당신을 생각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    는 당신을 대단히 사랑하며, 또한 성
프란시스도 사랑합니다.  그래서 성 프란시스에게는 당신    을 기념하기
위해 촛불을 네 자루 드렸습니다.  당신이 결혼식에 참석하시면 메노티도
매우 기    뻐 할 것입니다.  만일 그가 당신에게 불친절한다면 제가
그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유감인    것은 제가 늘 말씀드린 대로 그
조그만 마테오 슈피넬리란 녀석이 정말 악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녀석이 가끔 저의 레몬을 훔쳐 갔어요.  그 녀석은 지금
끌려 갔는데, 왜냐하    면 빵장수인 자기 아버지의 돈을 12리라나
훔치고, 거지 지안지아코모의 개에게 독약을 먹인     까닭입니다.
    끝으로 당신에게 하느님과 성자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당신을
만나 뵐 날을 기다리며.


당신의 충실한 여자친구

 아눈치아타 나르디니

    P.S : 우리들의 수확은 꽤 되었습니다.  포도는 흉작이었고 배도 잘
되지는 못했습니다만 레    몬은 대풍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싸게
팔 수밖에 없었어요.  스펠로에서는 대참극이 일    어났답니다.  한
청년이 자기 동생을 괭이로 찍어 죽였어요.  잘은 몰라도 친형제이지만
아마     질투심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섭섭하게도 나는 이 마음이 끌리는 초대에 응하지 못했다.  나는 축사를
쓰고 내년 봄에 방문하겠다고 약속하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편지와
아이들에게 주려고 뉴른베르그에서 가져온 선물을 들고 목수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서 나는 예기치 못했던 큰 변화가 생긴 것을 보았다.  책상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창문을 향해 기괴하게 구부러진 사람의 자태가 의자
속에 앉아 있었다.  그 의자에는 아이들의 의자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가
가슴 앞에 가로 붙여져 있었다.  그는 목수의 처남인 보피로 불쌍한
반신불수의 곱사등이였다.  최근에 늙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갈곳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라 했다.  그런데 앓고 있는
불구자가 항상 눈앞에 있다는 것이 공포처럼 가정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아직 그에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를 무서워하였고,
어머니는 내내 동정과 낭패와 침울한 표정이었으며, 아버지는 분명히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보피는 목이 그 속에 묻혀 보기 흉한 두 개의 살뭉치 위에, 넓은 이마와
큰 코와 괴로운 듯 일그러진 입을 가진 묵직한 머리를 얹고 있었다.  눈은
고요하고 맑았으나 근심스럽게 뜨여 있었고, 어울리지 않게 작고 흰
귀여운 손을 언제나 가로놓인 좁은 나무 위에 조용히 얹고 있었다.  나
또한 당황하였고, 이 불쌍한 침입자에 대하여 불쾌감을 가졌다.  그러나
목수로부터 이 환자의 짧은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아팠다.  그동안 이
환자는 옆에 앉아서 아무와도 말을 주고받지 못하고 자기 손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불구자였지만 국민학교는 졸업하였다.
 그리고 수년간은 밀짚모자를 만드는 일을 하여 다소 생활에 보탬이
되어왔었으나, 거듭 일어나는 중풍의 발작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그후부터 수년 동안 쭉 자리에 누워 있었고, 때로는 묘한 의자에 앉아서
쿠션에 끼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전에는 가끔 혼자서 아름답게
노래를 불러보고 했었으나 몇 해 동안은 들을 수 없었고, 이 집에 와서는
한 번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이 화제가 되고 있는
동안 그는 거기에 앉은 채로 꿈벅꿈벅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곧 작별을 하고 나와 며칠 동안은 그 집을 멀리 하였다.
  나는 평생 강하고 건강하여, 아직 한 번도 병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병자, 특히 불구자에 대하여 동정은 하였으나, 약간 경멸하는 태도로 보곤
하였다.  그러므로 목수 집에서 갖는 나의 유쾌하고 명랑한 생활이 이
비참한 존재의 불쾌한 중압으로 인해 부서지는 것을 보는 것은 기분이
나빴다.  그리하여 다시 방문하는 것을 하루하루 연기하고, 어떻게 하면
불구자인 보피를 내쫓을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하였다.  적은 비용으로
어떤 병원이나 요양원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듯했다.  그것을
상의하기 위하여 나는 여러 번 목수집을 방문하려고 마음먹었으나 그 말을
꺼내는 것을 두려워했고, 또한 병자와 만나는 것을 어린애처럼
무서워했다.  언제나 그를 봐야 하고 그와 악수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었다.
  그래서 일주일을 그냥 지냈다.  다음 일요일 아침 차를 타고 유라
산으로 여행을 가려고 생각했었으나, 나의 비겁함을 부끄럽게 생각해
그만두고 아침을 먹은 후 목수 집으로 갔었다.
  싫지만 할 수 없이 보피와 악수를 하였다.  목수는 화가나 있었으므로
나는 소풍을 가자고 했다.  그는 이 끝없는 비참한 일에 싫증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내 제의를 들어 줄 것을 알고 기뻐하였다.
목수의 부인은 집에 남아 있으려고 하였으나 불구자는 혼자서도 잘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같이 가자고 권했다.  한 권의 책과 물 한 잔만을 그
옆에 놔두면 혼자 남아서 염려없이 집을 잘 본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꽤 선량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던 우리들은 그를 가두어 놓고
소풍을 갔다.  우리들은 즐거웠고,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아름다운 금빛
가을 햇살을 즐기며 아무도 뉘우침이 없었고, 반신불수를 집에 혼자
내버려 두고 온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들은
오히려 잠시나마 그를 피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맑고도
따듯한 태양의 햇살을 마시며, 하느님의 일요일을 이해와 감사로써 즐기고
있는, 은혜를 아는 성실한 가족 같은 광경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렌짜하의 헤른 거리에서 포도주를 한 잔 마시기 위해 뜰안의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았는데 먼저 목수가 보피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귀찮은 손님을 탄식하고, 생활의 곤궁과 생활비가 늘어감을
걱정하며 허탈하게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맺었다.
   어쨌든 그 자식의 방해를 받지 않고도 아직 한 시간을 더 즐길 수
있어!
  이 경솔한 말에 나는 갑자기 불쌍한 반신불수를 생각하게 되었다.
애원하고 괴로워하는 그, 사랑하기는커녕 우리가 피하려고 하는 그,
그리고 지금은 우리에게 버림을 받은 채 홀로 갇혀 저물어 가는 방안에
외롭고 슬프게 앉아 있는 그를 생각하였다.  곧 어두워질 것이나 그는
불을 켜지도 못할 것이요, 그렇다고 창으로 가까이 갈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이곳에서 술을 마시며 웃고 즐기고 있는 동안
그는 책을 옆에 밀어 놓고 반쯤 어두워진 방 속에서 말할 사람도 없고
아무 위안도 없이 홀로 앉아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일찍이 앗시시에서
이웃사람들에게 성 프란시스의 이야기를 해 준 일이며, 이 성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떠들어대던 일을
생각하였다.  여기에 불쌍하고 의지할 곳 없는 한 사람이 있어 내가
그것을 알고 위로해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거기에 누워 그냥
괴로워해야 한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성자의 생애를 연구하고, 그의
거룩한 사랑의 노래를 암송하며, 움브리아의 언덕으로 그의 종적을
찾아갔던가?
  보이지 않는 힘찬 손이 내 가슴 위에 놓이며, 나의 가슴을 억눌러 나를
부끄러움과 괴로움으로 가득차게 해, 마침내 나는 전율을 느끼고 말았다.
나는 신이 지금 나와 더불어 말씀하시려는 것을 알았다.
   너, 시인이여!
  신은 말하였다.
   너, 움브리아 성자의 제자여,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예언자여!  바람과 물속에서 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몽상가여!  너는 친절한 대접을 받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집을
사랑하고 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집에 내가 들러도 좋으리라고 생각한 바로 그 날에, 너는 그
집을 빠져나가 나를 내쫓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 성자!
예언자!  시인이여!
  나는 마치 깨끗이 닦여진 거울 앞에 서서 그 속에 거짓말쟁이로서,
허풍쟁이로서, 비겁한 자 그리고 식언자(약속한 말을 지키기 아니하는
사람)으로서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슬프고
괴롭고 또한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 내 마음속에서 부서지고
괴로워하고 상처를 입은 것은 결국 파괴되고 멸망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억지로 급히 작별을 하고, 술과 빵을 식탁 위에 그대로 남겨둔 채
거리로 돌아왔다.  나는 흥분되어 무슨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억제할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불이 일어났을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보피는 의자에서 떨어져
괴로워하며 마루에 죽어 넘어져 있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넘어져
쓰러진 모습을 그려보았다.  나는 그 곁에 서서 불구자의 눈초리에서
무언의 비난을 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숨쉴 틈도 없이 그
집으로 달려가서 총총걸음으로 층계를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잠깐 문
앞에 서서 비로소 열쇠가 없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의
불안은 금방 가라앉았다.  그것은 내가 부엌 문에 이르기 전에 안에서
노래소리가 들려온 까닭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순간이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숨을 죽이고 어두컴컴한 계단 중턱에 서서, 조용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갇혀 있는 불구자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낮은
음성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약간 한탄하듯이 통속적인 연애노래인 〈꽃은
희고 붉다〉의 일절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가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감동하여 그가 그의 식으로 즐기려고
이 조용한 시간을 이용하는 것을 깨닫고는 몰래 엿들었다.
  어떻든 그런 것이다.  인생은 엄숙한 사건과 깊은 감동에다가 익살을
덧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하여 나는 내 처지의 웃음과 부끄러움을
체험하였다.  갑자기 불안해져 나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막
달려와서는 열쇠가 없어서 부엌 문 앞에 서 있다.  물러가든지 잠긴 두
개의 문틈으로 불구자에게 나의 호의를 소리쳐 말하든지 해야 한다.
불쌍한 그를 위로하고 동정하며 그를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는
층계에 서 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안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만일 내가 부르거나 문을 두드려 알리면 그는 반드시 놀라고 말
것이다.
  나는 그냥 떠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일요일답게
번화한 거리를 헤매이고 나자 그 가족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보피와 악수하는 데 아무 힘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아 말을
건네며 지금 읽고 있는 것을 물어 보았다.  그에게 책을 빌려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는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내가 그에게
예레미아스 고트헬프를 추천하였더니 그는 이 작가의 작품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고트프리트 켈러는 모르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책들을 빌려 주겠다고 말했다.
  그 조그마한 불구자는 그의 큰 머리를 약간 내게로 돌려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머리를 돌린다는 것은 그에게는 큰 일로,
그것은 건강한 사람의 열 번의 포옹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의 눈은
매우 맑고 어린애같이 아름다워 내 얼굴은 부끄러운 마음에서 핏기가
올랐다.
  그런데 아직 목수와 이야기해야 할 괴로운 일이 남아 있었다.  어제의
나의 불안과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그에게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섭섭하게도 그는 내 마음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내 말을
알아듣기는 했다.  그리하여 둘이 공동의 손님으로 병자를 집에 둘 것과
그 부양의 비용을 같이 부담하여 마음대로 보피의 곁을 출입하여 그를
친형제처럼 돌볼 수 있도록 승낙을 얻었다.
  그 해 가을은 유난히 오랫동안 날씨가 좋고 따뜻했다.  그래서 보피를
위해 내가 맨 먼저 해 준 일은 휠체어를 사서 매일 그를 태우고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8.  생활에서나 친구들에게서나 항상 줄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받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다.  리하르트나 엘리자베트나 나르디니 부인이나
목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했거니와, 지금 난 성숙한 나이가 되어
충분히 자존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비참한 곱사등이에 대하여
경탄하며 감사하는 제자가 되었다.  만일에 일찍이 시작한 나의 문학을
완성하여 남길 날이 실지로 온다면 그 속에 있는 좋은 것은 모두
보피에게서 배운 것일 것이다.  나에게는 평생 풍부한 양식을 삼을 수
있게 된 기쁘고 좋은 시절이 시작되었다.  질병도 고독도 빈곤도 학대도
가볍고 유유히 지나가는 구름처럼 그 위에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는
훌륭한 인간의 영혼을 나는 지금 분명하고 깊게 볼 수 있었다.
  우리들의 아름답고 짧은 생애를 방해하고 타락시키는 모든 작은 악덕,
분노, 성급함, 불신, 거짓―우리를 추악하게 하는 이러한 불쾌하고 불결한
모든 화근은 이 곱사등이에 있어선 길고 심각한 고뇌로 말미암아 아픔속에
불살라지고 말았다.  그는 현자도 천사도 아니었으나, 크고 무서운 고뇌와
부자유 때문에 부끄러움 없이 자기의 약함을 느끼고 신의 팔에 몸을 맡긴,
분별과 귀의심에 가득찬 사람이었다.
  나는 언젠가 어떻게 괴롭고 약한 신체를 지탱해 나가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거야 퍽 간단한 일이지요.
  그는 정답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저와 병과는 영원한 전쟁을 하고 있지요.  어떤 때는 제가 이기고 어떤
때는 지기도 하고 이렇게 전쟁을 계속하지요.  그러나 종종 쌍방이
조용해져서 휴전상태로 들어갑니다만 서로 감시하고 있다가 어느 한 쪽이
다시 오만해지면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지요.
  나는 지금까지 내가 정확한 눈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나는 훌륭한
관찰자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보피는 그 점에 있어서도 놀랄 만한
나의 스승이었다.  그는 자연, 특히 동물을 대단히 좋아했기 때문에 가끔
그를 동물원에 데리고 갔다.  거기서 우리는 참으로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보피는 곧 모든 동물들과 친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빵과
과자를 가지고 갔었기 때문에 많은 동물들도 우리를 알아보았고,
그리하여 우리들은 모든 우정을 맺었다.  특히 우리가 좋아한 것은
맥(맥과에 속하는 동물의 총칭.  원시적인 척추동물로서 온몸에 빳빳하고
짧은 털이 났으며, 주둥이가 코끼리 모양으로 늘어졌고 꼬리는 몹시
짧으며, 등은 위로 굽었음)이었다.  이 동물의 독특한 점은 그와 비슷한
다른 동물이 가지지 못하는 결백성이었다.  그밖에는 자만심이 많고, 약간
지성적이며 불친절하고 은혜를 모르는 대식가였다.  다른 동물들, 가령
코끼리, 사슴, 염소 그리고 천한 들소까지도 받아먹은 과자에 대하여
우리들을 친밀하게 바라보든지, 아니면 가만히 쓰다듬게 내버려 두어 항상
어떤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그러나 맥은 털끝만큼도 그러는 점이
없었다.  우리들이 가까이 가면 그놈은 재빠르게 울 앞으로 다가와서
우리가 준 것을 천천히 다 먹어 치운 후 자기에게 주어질 것이 더 없음을
알았을 때에는 조용히 물러가고 마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거기에서 맥의
긍지와 성격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놈이 애걸하지도 않고 감사해
하지도 않으며 당연히 받을 것을 받는다는 식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놈을
세금장이라 불렀다.  보피는 대체로 자기가 직접 동물에게 먹일 수
없으니까, 맥은 그만 주라든가 혹은 좀더 주라든가 하여 우리들 사이에
종종 말다툼이 일어났다.  우리들은 마치 그것이 나라 일이나 되는 것처럼
실지의 경우와 사태를 잘 검토하며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어느새 우리가
맥의 곁을 지나버렸을 때 보피는 맥에게 과자를 한 개 더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돌아갔으나 그동안 짚으로 만든 자리로
돌아가 버린 맥은 거만하게 눈만 꿈벅거리며 울 앞으로는 오지 않았다.
   용서하십시오, 세리님.
  보피는 맥에게 말하였다.
   저, 과자가 한 개 틀린 것 같군요.
  그 다음에 코끼리한테로 갔다.  코끼리는 벌써 기대에 차서 왔다갔다
하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따듯한 코를 내밀었다.  코끼리에게는
보피가 직접 먹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큰 짐승이 부드러운 코를 굽혀
그의 손바닥에서 빵을 집어, 쾌활하고 작은 눈을 교활하게 뜨고 기분이
좋아서 바라보고 있는 모양을 보피는 어린애같이 좋아하며 바라보았다.
  나는 동물원 감시원에게 상의하여, 내가 보피 곁에 남아 있을 시간이
없을 때에는 휠체어에 그대로 태운 채 원내에 두어 햇볕을 쪼이며 동물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나중에 그는 자기가 본 것을 모두 말해 주곤
하였다.  특히 수사자가 암사자를 정중하게 대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감명깊었던 모양이었다.  암사자가 누워서 쉬고 있자 수사자는 암사자를
다치게 하지도 않고, 방해도 하지 않고, 타고 넘지도 않으며 쉴새없이
왕복하는 방향을 지키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물개를 보는 것이었다.  자기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아
머리와 팔을 움직이는 데도 힘이 들었으나,  이 날쌘 동물의 부드러운
수영술과 체조술을 구경하며 명랑한 기쁨을 가짐으로써 피로한 줄을
몰랐었다.
  그해 가을 맑게 개인 어느 날 나는 보피에게 내 연애담 두 가지를 말해
주었다.  우리는 이제 대단히 신뢰하는 사이가 되어서 기쁘지도
명예롭지도 않은 내 체험을 더이상 감추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묵묵히
앉아 다정한 미소를 띤 채 열심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흰구름 같은 엘리자베트를 한 번 보고싶다며 언제 길에서 만나거든 꼭
가르쳐 달라고 그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기회는 오지 않고 날이 추워지기 시작해 나는
엘리자베트를 찾아가 가련한 곱사등이를 한번 기쁘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여자는 친절하게도 나의 청을 들어 주어, 나는 날을 정해
그녀와 함께 보피가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동물원으로 데리고
가기로 하였다.  아름답게 잘 차려입은 훌륭한 부인이 몸을 조금 굽혀
악수를 하자, 그 가련한 보피는 기뻐서 얼굴을 붉히고 감사하듯 애정에
넘친 크고 착한 눈을 그 여자에게 던졌다.  그때 바로 그 순간 나는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아름답고 더 내 마음에 가까이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친절하게 몇 마디 말을 건넸는데, 불구자는 그동안 내내
여자에게서 반짝이는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옆에 서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이 좋지 못한 환경을 서로 사이에 두고 삶을 달리하며 내
앞에서 손에 손을 잡고 있는 순간을 보는 것이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보피는 그날 오후엔 엘리자베트 이야기만 하여, 그녀의 아름다움, 고상함,
친절함, 그녀의 옷, 노란 장갑과 푸른 구두, 그녀의 걸음걸이와 눈매,
그녀의 음성과 아름다운 모자를 끊임없이 칭찬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나는 나의 애인이 내 친구에게 동냥을 주던 것을 본 일이 슬프고도 우습게
생각되었다.
  이런 일이 있는 동안 보피는 『녹색의 하인리히』와 『셀도빌라의
사람들』을 읽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유일무이한 책의 세계에
친밀하게 되어, 우리는 화 잘내는 판크라츠, 알베르트스 쯔비한, 그리고
빗 만드는 정직한 직공을 공동의 사랑하는 벗으로 가지게 되었다.  한때
나는 C. F. 마이어의 작품도 좀 빌려 줘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는
마이어의 너무도 압축된 순러시아어적인 정확성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고, 또한 이 고요하고 명랑한 눈앞에 역사의 심연을 펼쳐 보이는 것에
대해 좀 주저하게 되었다.  그 대신 나는 그에게 성 프란시스 이야기를 해
주고, 메리케의 단편들을 읽게 하였다.  만일 그가 종종 물개가 있는 연못
옆에 앉아서 여러 가지 동화 같은 물의 공상에 잠기지 않았던들 아름다운
라우의 이야기는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는 고백을 듣고 나는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점점 친밀해져서 너와 나로 통하게 된 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내가 그것을 제의하고 그가 수락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서로 그렇게 말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된 것인데, 어느 날
그것을 깨닫고 웃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후부터는 항상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다가오는 겨울이 우리들의 외출을 불가능하게 하고, 다시금 내가 저녁에
보피의 자형 방에 오래 앉아 있게 되었을 때에, 난 차츰 나의 새로운
친교가 아무 희생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목수가 자주 불평을 하기 시작하였고, 불친절하며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필요없는 식객이 눈앞에 앉아 있을 뿐 아니라 나와 그와의
관계가 오랫동안 그를 불쾌하게 하였다.  어느 날 저녁 늦게까지 내가
불구자와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으려니까 목수는 화가 나서 신문을 펴들곤
옆에 앉아 있었다.  또한 매우 참을성있는 부인과도 사이가 나빠졌는데,
그것은 보피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주인의 주장을 부인이 끝끝내 듣지
않은 까닭이었다.  여러번 나는 그를 부드럽게 하려고 했고, 새로운
제의를 하려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더욱 화를 내고 나와
불구자와의 친교를 비웃으며, 그 때문에 그로 하여금 생의 괴로움을
느끼게 하기 시작했다.  물론 병자와 매일 그 곁에 오래 앉아 있는 나는
어려운 가정에 큰 짐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수가
우리들의 편이 되어 병자를 사랑할 때가 언젠가는 오려니 하고
희망하였었다.  그러나 목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고 보피에게 해롭지
않도록 행동하기는 나로선 불가능하였다.  나는 무엇이나 급히 무리를
하며 일하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이미 취리히 시대에 리하르트는
나에게 느림뱅이 페트루스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었다.) 몇 주일
기다리면서 한쪽 혹은 자칫하면 양쪽의 우정을 잃지 않을까 하고 항상
걱정하였다.
  이러한 친밀하지 못한 관계에서 생기는 불쾌함으로 인해 난 다시
술집으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밤 굉장히 불쾌한 사건으로 더욱
분개하여 나는 어느 작은 버트런드 술집으로 가서 이 불쾌한 기분을 씻어
버리려고 몇 릿트르의 술을 들이켰다.  2년 이래 처음으로 나는 꼿꼿이
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데 힘이 들었다.  그 이튿날은 폭음 후에 늘
그랬듯이 기분이 가라앉고 좋아져서 용기를 내어 이 희극을 끝맺기 위해
목수를 찾아갔다.  나는 그에게 보피를 내게 맡기라고 제의하였다.
그랬더니 그는 싫은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며칠 생각한 후에 쾌히
승낙하였다.
  그후 곧 나는 가련한 곱사등이를 데리고 새로 빌린 집으로 이사를 갔다.
 지금까지 독신생활을 하던 방에 정식으로 두 사람이 작은 살림을 하게
되니 나는 마치 결혼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살림살이의
실수로 좋지 않았으나, 그럭저럭 잘 해나갔다.  청소와 빨래는 일하는
여자아이가 와서 해 주었고,  식사는 집으로 날라다 먹으면서 우리는 곧
공동생활에서 아주 따듯하게 잘 지냈다.  이제부터는 마음놓고 하던
가깝고 먼 모든 여행을 단념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당장은 염려되지
않았다.  일을 할 때에도 오히려 그가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마음을
가라앉게 하며, 일도 촉진시켜 준다는 것을 느꼈다.  환자를 돌보는 것은
나로선 처음하는 일이라 옷을 벗기고 입히는 일들이 처음에는 귀찮았으나,
보피가 잘 참고 고마워하는 데서 나는 부끄러운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를
세심히 돌보아 주는 데 힘썼다.
  그 교수집에는 별로 가지 못했으나 엘리자베트의 집에는 여러 가지 다른
사정이 있더라도 항상 매력에 이끌려 자주 갔다.  그럴 때 나는 거기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포도주를 한 잔씩 마시며 그녀가 주부노릇을 하는
것을 구경하며, 때때로 조소하는 마음으로 마음속에 일어나는
베르테르적인 감정과 싸워야 할 것 같은 감상적인 발작의 습격을 받았다.
그러나 여성적이고 청년다운 연애의 이기주의는 내게서 사라졌다.
그리하여 고상하고 친밀한 교전상태가 우리들 사이에 정상적인 관계가
되어, 만나기만 하면 대단히 친밀하게 논쟁을 하곤 하였다.  이 총명한
부인은 쾌활하고 여자다우며 약간 응석이 섞인 이해력을 가지고 있어
연애하는 초라한 나의 마음과 전혀 맞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또한 우리는
서로 마음깊이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쓸데없는 작은 일에 대해서는
그만큼 더욱 열을 내어 논쟁하였다.  특히 그녀―얼마 전까지도 생명을
내걸고 결혼을 하겠다던 그 여자―앞에서 독신생활을 변호하는 것은
우스웠다.  선량한 젊은이요, 자기의 영리한 아내를 자랑하고 있는 그의
남편과 한패가 되어 그녀를 야유하기까지도 하였다.
  남몰래 예전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이전의 원하는 것이 더 많던 불꽃은 아니었고,  마음을 젊게 하며 희망을
잃은 늙은 독신자가 겨울 저녁에 가끔 손을 쪼일 수 있는, 꺼지지 않는
따뜻한 난롯불에 불과하였다.  특히 보피와 친해져서 끊임없이 성실하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이상한 의식에 싸이게 된 이후부터 나는 나의 사랑을
다만 한 편의 청춘과 한 편의 시로서 안심하고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엘리자베트는 때때로 참으로 여자다운 심술로 내 마음을
차게 하여 마음속 깊이 독신생활을 즐기게끔 하였다.
  가련한 보피와 함께 살 게 된 후부터 나는 엘리자베트의 집에도 점점
방문하는 횟수가 드물게 되었다.  나는 보피와 책을 읽었고, 여행 앨범과
일기를 뒤져보며 도미노 놀이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또한 심심풀이로
삽살개를 길렀고, 창 밖으로 겨울이 시작되는 풍경을 내다보며 매일 여러
가지 지혜롭고 어리석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탁월한 세계관과
재치있는 유머가 섞인 실제적인 인생관을 체득하고 있어, 나는 매일
거기에서 배우는 점이 많았다.  많은 눈이 내려 겨울이 창 밖에 순결한
미를 전개시켰을 때에 우리는 소년 같은 환희로 난로 곁에 앉아 고요한
실내의 목가를 즐겼다.
  이 기회에 내가 오랫동안 구두창이 닳도록 헛되이 돌아다니며 배우려던
세태인정을 아는 기술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은 고요하고 예민한
방관자로서 보피가 이전의 생활환경에서 얻은 여러 가지 체험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어,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놀랍도록 잘 말해 주는 까닭이었다.
이 불구자는 평생에 3타스 이상 되는 사람을 알지도 못했고, 또한 인생의
큰 흐름을 누구와 같이 헤엄친 일도 없었지만, 그는 나보다 더 많이
인생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그가 지극히 작은 것에도 모든 사람에게서
체험과 즐거움과 인식의 샘을 발견하려고 노력한 까닭이었다.
  우리들의 오락은 여전히 동물의 세계를 즐기는 것이었다.  더 방문할 수
없게 된 동물원의 동물에 관하여 우리들은 여러 종류의 이야기와 우화를
생각해 내었다.  그 대부분을 우리는 말로 하지 않고 즉흥적인 대화로써
표시하였다.  가령 두 마리 앵무새의 사랑의 고백, 여우의 가정분쟁,
산돼지들의 저녁의 오락 같은 것이었다.
   족제비님, 좀 어떠십니까?
   고맙소, 여우님.  그저 그럭저럭 지내오.  아시다시피 붙잡혀 올 때에
사랑하는 마누라를 잃어서,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름이 핀젤슈반츠였는데,
당신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정말 진주였지요, 아주 보기드문--.
   이웃양반, 그 옛이야기는 그만하시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마 그 진주 얘기를 수백 번은 더 했을 것이오.  젠장, 잠깐동안
한 번 사는 목숨이니 놀구나 지냅시다.
   용서하십쇼. 여우님.  당신이 내 마누라를 알 수 있었다면 내 심정을
잘 이해했을 것이오.
   그야 그렇지요, 그렇구말구요.  부인의 이름이 핀젤슈반츠라고
하셨지요?  참 아름다운 이름이어서 쓰다듬어 주고 싶어요!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옳지, 그렇군.  당신은 그 얄미운 참새들이
몹시 못 살게 구는 것을 아시겠지요?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작은 계획을
세웠지요.
   참새 일로서요?
   네, 참새일로서요.  보시오,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지요.  빵을 조금
쇠우리 앞에 놓고 우리가 누워서 조용히 그놈들을 기다린단 말이오.
그렇게 해서도 그놈들을 못 잡는다면 그야말로 우스운 일이지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훌륭한데요. 여우님.
   자, 그럼 빵을 놓으시오.  네, 됐어요!  그런데 그것을 좀 바른편
쪽으로 옮겨 놓으시오.  그러면 우리들에게 서로 좋을 테니까요.  내게는
지금 당장 가진 것이 없어서 그럽니다.  네, 그만하면 됐어요.  자,
정신차리시오!  이젠 누워서 눈을 감고 있어야지요.  쉿, 벌써 한 마리
날아왔어요! (사이)
   여보, 여우님, 아직 멀었나요?
   성미도 급하시네!  생전 처음으로 사냥을 하시는 분 같구료.
사냥꾼이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자, 다시 한 번!
   아니 그런데 빵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뭐요?
   빵이 없어졌어요.
   설마!  빵이?  정말 없어졌네!  이상한 일인데!  아마, 그럼 또 저
몹쓸 바람이--.
   아니, 내 생각에는 좀 전에 당신이 무엇을 먹는 것 같던데요.
   뭐라구?  내가 무엇을 먹었다구요?  대체 무엇을 말이오?
   아마 빵이겠지요.
   그러한 추측은 분명히 모욕입니다.  족제비님, 이웃분의 말이니까
참아야겠지만, 그러나 너무한데요.  알겠어요?  정말 너무한데요.  나를
이해 못하시겠어요?  내가 빵을 먹었다구?  대체 뭘 보고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나는 당신의 진주에 관한 흥미없는 이야기를 몇천
번이나 들어야 했소.  그리고 나서 내가 좋은 생각을 해서 우리들은 빵을
놓지 않았소?
   그건 나지요!  내가 빵을 놓았지요.
   우리는 빵을 놓았단 말이오.  나는 누워서 감시를 하였소.  그래서
모든 것이 잘 되었는데,  그때 당신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참견하지
않았소?  물론 새는 날아가고 사냥은 헛탕이지 뭐요.  그런데 이제 와서
나보고 빵을 먹었다구?  이봐요,  내가 다시 당신과 교제하기까지 참고
있어요.
  이러한 대화를 하는 데서 오후와 저녁은 쉽게 지나갔다.  난 기분이
좋아 일을 재미있고 빨리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전에 그렇게도
게으르고 일에 성의가 없고 우울해 하던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리하르트와 지내던 가장 좋았던 시절도 밖에 눈이 훨훨 춤을 추고 난로
옆에는 삽살개와 같이 우리 둘이 정답게 앉아 있는 고요하고 명랑한
요즈음보다 더 즐겁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나의 사랑하는 보피는 전무후무한 어리석은 짓을 하였다.
만족한 나는 자연히 눈이 멀어서 그가 이때까지보다 더 괴로워하는 것을
몰랐었다.  그리고 그는 겸손과 사랑으로 이때까지보다 더 즐겁게 굴었고,
사실을 말하지도 않고 담배를 피워도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밤에
누워서는 괴로워하며 기침을 하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옆방에서 글을 쓰고 있었는데, 그는 내가 벌써 잠이 들어 있는
줄 알고 안심하고 신음하고 있는 것을 나는 우연히 들었다.  내가 갑자기
등불을 들고 그의 침실로 들어가자 가련한 그는 깜짝 놀라 질겁을 하였다.
 나는 등불을 옆에 놓고 그의 침대 옆에 앉아 심문을 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피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자백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도--.
  그는 주저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많이 움직이면 심장이 경련하는 것 같고, 그리고 때때로 숨을
쉬기에도--.
  그는 병세가 더하는 것을 마치 죄나 지은 듯이 솔직히 사과하는
것이었다.
  아침이 되자 나는 의사에게로 달려갔다.  날이 차차 맑고 아름다워
도중에서 나의 불안과 걱정은 좀 가셔져서 나는 크리스마스 생각까지도
하며, 무슨 선물로써 보피를 즐겁게 해 주나 하고 생각했다.  마침 의사가
집에 있어 나의 간절한 청을 듣고 함께 집으로 왔다.  우리는 의사의
편안한 마차를 타고 달려와서 층계를 올라와 보피의 방으로 들어갔다.
촉진, 타진, 청진이 끝나고 나서 의사가 약간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소리를 좀 부드럽게 하자, 나의 모든 즐거움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통풍, 심장쇠약, 중태―나는 의사가 말하는 것을 듣고 모든 것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의사가 입원시키라고 말했을 때에 전혀 반대하지
않은 것은 나 자신도 이상한 일이었다.
  오후에 침대차가 왔다.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삽살개는 뛰어들고,
환자의 큰 의자는 한구석에 밀쳐져 있었고, 옆의 침실은 텅 비어 있어
방안에서 나는 참담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사랑하는 것이란 그러한 것이다.  사랑은 비통을 가져온다.  그리하여
나는 그 뒤로 몹시 괴로워하였다.  그러나 비통은 괴로워하고 아니하고는
그리 문제가 아니다.  만일에 굳센 한 몸이 되는 생활만 있다면, 또한
모든 생명이 연결되는 긴밀하고 생생한 연줄만 느껴진다면, 그리고 오직
사랑이 식지만 아니한다면, 만일에 그때처럼 가장 성스러웠던 것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면, 일찍이 내가 가졌던 명랑한 날의 모든 사랑과 나의
모든 시적 계획을 함께 내동댕이쳐도 좋을 것이다.  눈과 마음은 몹시
아프고, 아름다운 긍지와 자부심은 산산이 상처를 입어도, 그렇게 되면
나중에 마음은 대단히 고요해지고 겸손해지며 성숙해지고 생생해지는
것이다.
  이미 금발을 가진 아기로 인해 그때 벌써 나의 낡은 성질의 일부는 죽어
버렸었다.  지금 나는 나의 모든 사랑을 바치며 전생활을 같이 해오던
곱사등이가 고통을 받으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매일 나도 함께
괴로워하며 죽음의 모든 공포와 신성을 같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아직
사랑의 기술에 있어 초심자이며 동시에 죽음의 기술이라는 엄숙한 장을
펼쳐야 했다.  이 시기에 관해서는 나는 파리의 일처럼 침묵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시기만큼은 부인이 그 약혼시절을 말하듯이 혹은
노인이 소년시절을 말하듯이 소리높여 말할 것이다.
  나는 한평생을 다만 고뇌와 사랑으로 살았던 한 인간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린애같이
아양을 떠는 소리를 들었다.  나에게 동정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용기를 주고, 고투와 고뇌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속에 있는 가장
좋은 것만은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을 내게 보여 주기 위하여 심한 고통
속에서 그의 눈길이 나를 찾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의 눈은 컸으나
쇠약해진 얼굴은 더 볼 수가 없었고, 단지 눈만 크게 빛나고 있었다.
   무엇을 해 줄까, 보피?
  내가 맥의 얘기를 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 데 무척 애를 썼다.  그런데
그가 듣지 않고 자는 줄만 알고 이야기를 끊었다.  그때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나서--.
  나는 이야기를 더 계속하여 맥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삽살개, 나의
아버지, 불량소년 마테오 스피넬리, 엘리자베트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말, 그 여자는 바보와 결혼해서 그렇게 된 거야, 페터!
  가끔 그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농담이 아냐, 페터.  아무리 괴로운 일도 죽음만큼 괴롭지는 못해.
그러나 사람은 결국 죽어야 해.
  또는 이렇게도 말하는 것이었다.
   괴로움을 이겨내면 나는 웃을 수가 있어.  그러나 내 경우는 죽는 편이
낫지.  적어도 곱사등이, 짧은 다리, 못 쓰는 허리를 면할 수 있거든.
자네와 같이 널찍한 어깨와 아주 튼튼한 다리를 가진 사람에게는
안됐지만.
  그리고 마지막 며칠동안 한 번은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아주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목사가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천국은 없어.  천국은 훨씬 더
아름다워, 훨씬 더.
  목수의 부인은 자주 찾아와서 슬퍼하며 자상하게 도와주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대단히 섭섭한 것은 목수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우연히 보피에게 이렇게 물었다.
   천국에도 맥이 있을까?
   물론이지.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동물이 다 있지, 염소까지도.
  크리스마스가 되자, 우리는 그의 침대 옆에서 간단하게 축하를 하였다.
심한 추위가 왔다가 다시 풀어지고 빙판 위에 첫눈이 내렸으나, 나는
그러한 일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또한 엘리자베트가
사내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것도 곧 쉽게 잊어 버렸다.
나르디니 부인에게서 재미있는 편지도 왔으나, 대강 훑어보곤 옆에 놓고
말았다.  나는 일각이 삼추 같은 의식을 언제나 가지고 재빨리 일을
해치우고 나서 쫓기듯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면 거기에는 밝은
고요함이 있어 나는 꿈 같은 깊은 평화에 싸여 반나절을 보피의 병상 옆에
앉아 지내곤 하였다.
  보피는 죽기 직전에 며칠은 병세가 좋았었다.  이상하게도 지금 막
지나간 시간은 그의 추억에서 사라진 것 같고, 그는 과거에 살고 있었다.
그는 이틀 동안이나 어머니 얘기만 했다.  물론 오래 이야기할 수는
없었으나 몇 시간씩 이야기가 중단되는 동안에도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자네에게 어머님 얘기를 너무도 하지 않았어.
  그는 탄식하였다.
   그러나 내 어머님의 일을 하나도 잊어서는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님의 일을 알고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되고 말
걸세.  모두 그런 어머님을 가졌으면 좋을 텐데, 페터.  어머님은 내가
전혀 일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나를 구빈원에 넣지 않았어.
  그는 누워서 괴로운 듯이 심호흡을 하였다.  한 시간쯤 지나자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어머님은 자식들 중에서 나를 제일 사랑하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나를
떼어 놓지 않았어.  형제들은 모두 외국으로 가고 누님은 목수와 결혼
했으나, 나만은 집에 남았어.  어머님은 그렇게도 어려우셨으면서도 내게
일을 시키진 않았어.  자네는 내 어머님을 잊지 말게, 페터.  나의
어머님은 참으로 작으셨어.  어쩌면 나보다도 작으셨을 거야.  나와
악수를 하면 아주 작은 새가 그 위를 앉는 것 같았으니까.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옆집 류티만은 어린애 관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을
정도니까.
  보피에게도 역시 어린애 관으로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작은 모양을 한 깨끗한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의 손은 길고 여위었으며 희고 약간 굽은 것이 부인 환자의 손처럼
보였다.  그는 한참동안 어머님의 환상을 좇다가 중지하고, 그 대신 나를
생각하게 됐다.  마치 내가 옆에 앉아 있지 않은 것처럼 그는 나의 일을
말하였다.
   그는 참으로 불행한 사내야.  그러나 어쩔 수 없었어,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셨으니까.
   아직 나를 알겠나, 보피?
  나는 물었다.
   알구말구, 카멘친트 군.
  그는 농담조로 말하고 나직이 웃었다.
   노래를 부를 수만 있다면.
  그는 곧이어 말하였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물었다.
   여보게, 병원 비용이 많이 들지?  비싸게 먹힐 거야.
  그러나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연붉은 빛깔이 그의 흰 얼굴을
물들이고 나자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동안 대단히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임종하셨습니다.
  간호원이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눈을 떠서 장난꾸러기처럼 나를 바라보며, 마치
끄덕이기라도 하듯이 눈썹을 움직였다.  나는 일어나서 한 손을 그의 왼편
어깨 밑으로 넣어, 늘 그가 기분좋아 하는 식으로 약간 그를 조용히
들어올렸다.  이렇게 내 손 위에 누워서 그는 다시 한 번 괴로워서 입술을
잠시 깨물고 나더니, 머리를 약간 돌리고 갑자기 오한이 나는 듯 떨었다.
그것은 해탈이었다.
   좋은가, 보피?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고통을 떠나 내 손에서 싸늘히
식고 있었다.  때는 1월 7일 오후 1시였다.  저녁 때 우리들은 모든 일을
끝마쳤다.  그리고 작은 기형의 시체는 운반되어 매장될 때까지 더
추악해지는 일도 없이 평화롭고 깨끗하게 거기에 누워 있었다.  그 이틀
동안 나는 그렇게 슬퍼하거나 어찌할 바를 몰라하지도 않으며, 또한 한
번도 울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별과 영결을 그가
앓는 동안 쭉 느껴왔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더 느낄 여지가 없었고, 나의
괴로움에 동요되는 저울대는 서서히 가볍게 다시 올라왔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야말로 조용히 이 도시를 떠나 다른 곳에서,
될 수 있으며 남국에서 쉬며, 이제야 비로소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나의
문학의 실마리를 한번 진실하게 풀어봐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였다.  돈도
좀 남아 있어, 나는 문인으로서의 의무를 포기하고 봄이 되면 짐을 싸서
떠날 채비를 하였다.  먼저 채소가게 부인이 기다리는 앗시시로, 다음에는
일을 많이 하기 위하여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한 산촌으로.  나는 이미
생과 사의 일면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관해 다른 사람에게 들려
주어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즐거운 초조 속에서 3월을
기다렸다.  귀는 이미 이탈리아어 같은 딱딱한 말에 익숙해 있었고, 코는
리조토 요리, 오렌지, 샨티 주의 입맛을 돋우는 아름다운 향기를
맡았었다.
  계획은 물샐 틈 없이 잘 되어 생각하면 할수록 기뻤다.  이렇게 샨티
주를 마시겠다는 기대로 즐거웠던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모든 사정은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술집 주인 니데게르에게서 복잡하고 기묘한
문체로 씌어진 편지가 2월에 왔다.  눈이 아주 많이 와서 마을에서는
가축과 사람이 말이 아니었고, 더욱이 나의 부친의 건강이 걱정되니 돈을
부치든가 빨리 돌아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사연이었다.  돈을 부칠
수는 없었고, 노인의 일이라 염려되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매우 사나운 날에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눈과 바람으로
인하여 산과 집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익숙한 길이어서 잘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노인 카멘친트는 병석에 누워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초라하게 난로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이웃부인들한테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 부인들은 그를 위하여 방금 우유를 가지고
와서는 그의 좋지 못한 행동을 충고하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내가
들어가도 전혀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구, 페터가 돌아왔군.
  백발의 술꾼은 왼눈을 껌벅이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여자들은 그대로 설교를 계속하였다.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그 여자들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설교가 끝나기를 기다렸는데, 그 말
중에는 내게도 들어맞는 말이 몇 마디 있었다.  한편 나의 외투와
구두에서 눈이 녹아 처음에는 의자 주위에 축축이 물방울이 지더니, 점점
바닥에 고요한 연못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부인이 말을 그쳤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아버지와 공식적인 인사를 했고, 부인도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아버지는 기력이 대단히 쇠퇴해져 있었다.  이전에 잠시나마 아버지를
돌보아 드리려던 생각이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었으므로 그렇게 못해드렸지만, 그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지금부터라도 아직 나는 그렇게 해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 시절에도 덕있는 분이 못 되던 늙은 농부에게 노병으로
애쓰는 오늘에 와서야 부드러워져 아들의 사랑의 연극을 감동하며
받아들인다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도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앓으시면 앓으실수록 더욱 짓궂은 사람이 되어 이전에
내가 그를 괴롭힌 일체에 대하여 이자는 붙이지 않았지만 고스란히 돌려
주셨다.  물론 말씀은 좀 삼가시고 나를 조심스럽게는 생각하셨지만,
과격한 수단을 쓰시어 무언의 불만과 괴로움과 야비성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도 늙은이가 되면 저렇게 불쾌하고 까다로운 괴물이
될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내가 하루에 두 번씩 따라드리는
남국산의 좋은 포도주를 성난 표정으로 마시었다.  그것은 내가 언제나
포도주병을 빈 창고에다 넣어 놓고 열쇠를 그에게 맡기지 않는
까닭이었다.
  2월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고산의 겨울을 장엄하게 하는 그 맑게 개인 몇
주일이 찾아왔다.  눈이 덮인 높은 산의 절벽은 들국화처럼 푸른 하늘을
향하여 우뚝 솟아 있어 맑은 하늘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까이 보였다.
산의 목장과 산허리는 낮은 골짜기에서는 볼 수 없는 새하얀 수정 같고
향기짙은 겨울 산의 눈에 덮여 있었다.  작은 언덕 위에는 대낮의 햇살이
화려한 축제를 축하하고, 웅덩이와 산허리에는 푸른 그늘이 풍부하게
드리워져 있으며, 공기는 몇 주일 동안 눈이 내린 뒤끝이라 아주 맑아서
양지에서 호흡하는 한 숨 한 숨은 그대로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조그마한 산허리에서는 소년들이 썰매를 타고 놀고, 오정이 지나면서는
밤새 지붕의 서까래가 쩡쩡 얼어오는 소리를 듣던 노인들이 길가에 서서
기분좋게 햇볕을 쬐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흰눈 덮인 들 가운데 한 번도
언 적이 없는 푸르고 고요한 호숫가는 여름보다도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점심 전에 나는 매일 아버지를 문앞으로 부축하여 가서 갈색으로 흉하게
구부러진 손가락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햇살에 펴시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서 아버지는 기침을 하며 추우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게서 브랜디를 한 잔 얻으시려는 악의없는 수단이었다.  사실은
기침도 추위도 대단치 않은 것이었다.  이렇게하여 엔치안 주나 아브산
주를 조금 받아 마시면 재주있게 적당히 기침을 그치시고 책략으로 나를
이기신 것을 기뻐하셨다.  저녁 후에 나는 그를 홀로 남겨둔 채 각반을
치고 두어 시간 동안에 오를 수 있는 데까지 등산을 하여, 가지고 간 실과
망태기를 타고 경사진 눈 위를 썰매처럼 미끄러지면서 돌아왔다.
  앗시시로 여행을 떠나리라고 생각하던 그 계절은 다가왔으나 아직도
눈은 수 미터 깊이로 쌓여 있었다.  4월이 되어서야 봄기운이 돌기
시작했으나 몇 년 동안 없었던 급격한 눈사태가 우리 마을을 습격했다.
밤이나 낮이나 열풍이 포효하고 멀리 들려오는 눈 무너지는 소리와 격한
급류의 성난 소리가 들렸으며, 급류는 큰 바윗돌과 찢어진 나무들을 싣고
와서 우리들의 가엾게 메마른 밭과 과수원에 내동댕이쳤다.  열풍의
열기는 나를 잠 못 이루게 하였고, 밤마다 불안에 떨면서 폭풍이
호소하고, 눈사태가 진동하고, 노한 호수가 출렁대는 소리를 들었다.
무서운 투쟁의 이 열병 같은 계절이 되자, 나는 이미 극복하였던 연애병에
다시금 사로잡혔다.  그리하여 밤중에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비통 속에서
엘리자베트에게 보내는 사랑의 말을 미쳐 날뛰는 창밖의 소음 속을 향하여
외쳐댔다.  이탈리아의 여류화가의 집 언덕 위에서 사랑에 빠졌던 훈훈한
취리히의 밤 이래로 항거할 수 없는 정열이 그토록 무섭게 나를 지배했던
적은 없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내 앞에 가까이 다가와 나에게 미소를
지음으로써 그 여인에게 한 걸음 다가서면, 그 여인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듯한 기분이 종종 들었다.  나의 상념은 어디서 일어나든 항상
이 모습으로 돌아와, 나는 상처입은 사람처럼 끊임없이 가려운 종기를
긁는 기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나는 괴로워하며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는
내 자신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며 열풍을 저주하였으나, 또한 모든
고통과 함께 마치 귀여운 로에지를 생각할 때 따듯한 큰 파도가 내 가슴에
넘치던 소년시절과 같이 무언의 숨가쁜 쾌감을 따듯하게 느꼈다.
  이런 병에는 약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을 좀 하려고 하였다.  나는
내 작품의 구성에 착수하여 습작을 몇 개 하였으나, 지금은 곧 그런 것을
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는 동안에 열풍으로 인한 피해의
보고가 사방에서 날아들고, 우리 마을 자체의 피해도 막심했다.  개울의
제방이 반이나 무너지고, 많은 집과 창고와 가축 우리들이 큰 손해를
입었으며, 마을 어귀에서 집 잃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모두들 돈은
없고 비탄과 곤궁에 빠졌었다.  이때 동장이 동회 사무실로 나를 불러, 이
일반적인 곤궁을 위한 제거책의 위원이 될 수 없겠느냐고 물어 준 것은
나에게 있어 퍽 다행한 일이었다.  마을의 사정을 주에 호소하고, 특히
신문을 통하여 전국의 사람들로 하여금 동정의 의연금을 내도록
동원시키는 것이 나의 책임이었다.  때마침 나 자신의 쓸데없는 괴로움을
엄숙하고 훌륭한 일로 인해 잊어 버리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어서, 나는
열심히 일하기 시작하였다.  바젤로 편지하여 급히 의연금 모집자를 몇
사람 얻었다.  주 당국은 예상했던대로 예산이 없어서 다만 구조원 몇
사람을 보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격문과 피해 보고를 신문에 부탁하고,
편지, 기부, 조회 등을 받았다.  나는 글을 쓰는 한편 완고한 농부들과
동회에서 논쟁도 해야 했다.
  몇 주일 동안 일이 과해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내게 있어선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일이 겨우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 내가 그다지 필요없게
되었을 때에 주위의 목장들은 푸른 빛을 띠기 시작하였고, 호수는
눈사태에서 해방된 산허리를 쳐다보며 악의없고 명랑한 맑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럭저럭 날을 보내셨고, 내 사랑의 고민도 불결한
눈사태의 잔재처럼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옛날 같으면 아버지는
마상이(통나무를 파서 만든 작은 배)에 니스 칠을 하시고, 어머니는
뜰에서 그것을 바라다보시고, 나는 아버지가 일하시는 것이며 아버지의
파이프에 피어오르는 연기며 노란 나비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니스를 칠한 마상이도 없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내버려 둔 집안을 불쾌하게 서성거리고 계셨다.  백부 콘라트가
나에게 그 무렵의 일을 회상케 해 주었다.  아버지 모르시게 나는 종종
백부와 포도주를 한 잔 마시면서 그가 말씀하시는 것이며 마음 좋으신
웃음을 웃으시며 다소 자랑스럽게 여러 가지 계획하시는 것을 들었다.
지금은 더이상 새로운 계획을 세우시지도 않고 늙음 또한 유난히 나타나
보였지만, 그러나 그의 얼굴, 특히 그의 웃음에는 소년이나 청년 같은
점이 있어 그것이 나에겐 기뻤다.  내가 집안 노인 곁에서 더 참고 있을
수가 없을 때면 백부는 종종 나에게 위로가 되고 즐거움이 되었다.  내가
술을 마시러 가자고 권하면 그는 분주히 내 옆에 따라나서 그의 굽고 여윈
다리로 내 다리와 보조를 맞추시기에 애를 쓰시는 것이었다.
   돛을 다셔야지요, 큰아버지.
  나는 그를 격려하였다.  그러면 그는 돛의 이야기에서부터 번번이
없어진 마상이 이야기까지에 이르러 그는 마치 애인의 죽음을 슬퍼하듯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 낡은 배는 나도 좋아했었는데, 없어져서 우리는
다같이 배와 배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극히 세밀한 데까지 추상했다.
  호수는 여전히 푸르고, 태양도 그와 같이 화려하고 따사로웠다.  그리고
늙은 나는 때때로 노란 나비를 바라보며, 마치 그 이후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그리고 다시금 목장에 누워 소년의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가졌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나는 나의 생애의 대부분을
이미 허비하였다는 것을 매일 세수할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녹슨 대야에서 뻣뻣하여진 코와 씁쓸한 입이 있는 얼굴이 번득이며
바라다보이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바로
알게 하는 것은 늙은 카멘친트였다.  그리고 현재의
나를 바로 알려면 낡은 스케치의 한 묶음과 넷으로 접은 종이 위에 씌어진
예닐곱 개의 복안인 미래의 작품이 잠들고 있는 내 방의 작은 책상 서랍을
여는 것으로 족하였다.  그러나 나는 서랍을 좀처럼 열지 않았다.
  아버지를 간호하는 한편, 낡은 우리집을 수선하기에 바빴다. 마루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었고, 난로와 가마는 낡고 연기에 그을어 냄새가 나서
문을 닫을 수가 없었고, 옛날 아버지가 벌을 주던 곳인 고미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층계다리는 꽤 위험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수리하기 전에 먼저 도끼를 갈고, 톱니를 세우고, 망치를 빌리고, 못을
주워 모으고, 그리고나서 이전부터 저장해 두었던 재목 중에서 썩고 남은
것을 골라내야 했다.  백부 콘라트께서 도구와 낡은 숫돌을 수선하는 것을
조금 도와 주셨으나, 원체 늙으셔서 허리가 굽어 큰 도움은 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마음대로 안 되는 재목 때문에 나의 글만 쓰던
흰 손을 찢기우며, 숫돌을 짓밟기도하고, 여기저기 못 쓰게 된 지붕을
기어다니며 못질을 하고, 망치로 두들기고, 지붕을 잇고, 자귀로 다듬는
등 그리하여 나의 약간 살찐 몸뚱이는 땀투성이가 되었다.  때때로 특히
힘든 지붕 수선 때는 망치를 치던 손을 멈추고 바로 앉아서 거의 꺼진
여송연에 다시 불을 붙이고 드높은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지금은
아버지가 독촉하든가 꾸짖지는 못하실 것이라는 것을 즐겁게 생각하면서
게으름을 즐겼다.  그때 마을의 부인, 노인, 학생 등 여러 사람들이
지나가면, 나는 게으름을 숨기기 위하여 그들에게 친절히 말을 건네는
데서 차차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오늘은 따듯하지요, 리즈베트?
   정말 그래요, 페터.  그런데 무엇을 하세요?
   지붕을 수선하고 있어요.
   하는 수 없지요.  벌써 했어야 할 일인데요.
   네, 그래요.
   아버지는 뭘 하시지요?  아마 칠순이 다 되셨을 텐데요.
   팔십이세요, 리즈베트.  팔십이 되셨어요.  우리도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요?  농담이 아니에요.
   정말 그래요, 페터.  그런데 난 가 보아야겠어요, 남편이 배가
고프다니까.  그럼 그동안 일 잘하세요!
   잘 가세요, 리즈베트.
  그리고 나서 그 여자가 보자기에 그릇을 싸가지고 가는 것을 보고
공중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그녀의 뒤를 바라다보고, 모든 사람들은
저렇게도 부지런히 일을 잘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이틀 동안을 꼬박 같은
곳에서 못질을 하며 헤매여야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결국 지붕
수리는 되었다.  아버지는 그것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셨으나, 지붕 위에
모시고 올라갈 수도 없어서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여 드리고, 하나하나
판자 붙인 것에 대하여 이유를 말씀드려야 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다소 자만심이 일어났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
   됐어.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됐어, 그러나 나는 네가 이 해 안으로 해치우리라고는 생각 못했었다.


  지금에 와서 나의 여러 여행과 생활을 곰곰이 회고하여 볼 때, 고기는
물에 속하고 농부는 흙에 속한다는 것과 니미콘 마을의 카멘친트는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도시에 사는 세계적인 인물은 될 수 없다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체험을 나도 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기쁘기도 하거니와 한편 화도
난다.  나는 그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도록 자신을 달랬다.  그리고
세상의 행복에 대한 나의 졸렬한 추구가 나로 하여금 내가 거기에 속하며,
나의 장점과 단점, 특히 나의 단점이 아마도 그곳에 본래 보통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이 호수와 산 사이에 자리잡은 옛집으로 뜻하지
않게도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을 기뻐한다.  나는 타향에서 고향을 잊고, 나
자신이 꽤나 희귀하고 기묘한 식물인 것처럼 느끼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내 속에는 니미콘의 정신만이 살아나서 다른 세상의 습관을
좇을 수 없었다는 것을 잘 안다.  마을에서도 어느 한 사람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늙은 아버지나 백부 콘라트를 볼 때에 나는 그의
아들이며 또한 조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소위 정신과 수양면에
있어서의 나의 몇 번이나 엉망이 된 비약은 결국 백부의 유명한 출범과
바로 비교할 수 있다.  다만 나의 비약이 돈과 노력과 귀중한 세월에 있어
더욱 비싸게 먹히는 것 뿐이다.  사촌인 쿠오니가 내 수염을 다듬어 주고,
혁대 달린 바지를 입고 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린 채로 바쁘게 돌아다니게
되고 나니, 외면적으로도 나는 완전히 마을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 머리가 백발이 되어 늙어 버리면 틀림없이 아버지의 자리와
마을에서 그가 맡고 있는 작은 사명을 물려받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은
내가 외국에서 몇 년 동안 있었다는 것을 알 뿐이고, 내가 거기에서
얼마나 천한 직업을 가졌었고, 얼마나 더러운 물에 몸을 담그었었던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곧 조소와 마음에
들지 않는 별명을 얻게 될 것이다.  나는 독일, 이탈리아, 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종종 자만해지며, 가장 진실한 대목에 가서도 때때로
진실성이 약간 의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방황과 허송된 세월에서 대체 무엇을 얻었는가?
내가 사랑했었고,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여인은 바젤에서 귀여운 두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나를 사랑했던 또 한 여자는 자위하며 과일과
채소와 씨앗을 팔고 있다.  그리고 바로 아버지 때문에 내가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버지는 돌아가시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으시지도 않은 채
마주보이는 침대 의자에 앉으셔서 나를 노려보시며, 창고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나를 원망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어머니의 익사한 친구 외에도
금발의 아기와 작은 곱사등이 보피를 천사가 되어 천국에 살게 했다.
그리고 마을의 집들이 다시 수리되고, 돌로 만든 두 개의 제방이 다시
쌓아지는 것을 보았다.  원한다면 동회에 자리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카멘친트들이 수두룩하게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나에게는 또다른 기회가 왔다.  나의 아버지와
내가 그 술집에서 그렇게도 많이 벨틀린, 발리스, 버트런드 등의 술을
마셨었는데, 그 술집 주인 니데게르가 갑자기 노쇠하여 더이상 장사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요즈음 그의 딱한 사정을 내게 호소하여왔다.
가장 곤란한 것은 만일 우리 마을에서 적당한 사람을 못 찾게 되면 다른
마을의 양조장 사람이 그 술집을 사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니미콘
마을에 기분좋은 술집을 다시는 못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그 집을 사게 되면 그는 물론 포도주보다도 맥주를 팔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니데게르 저장의 맛있는 포도주는 쓸모없게 되어 술 먹을
맛이 나지 않게 될 것이었다.  그 일을 안 후부터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바젤 은행에 약간 예축해 둔 돈이 있으니까 니데게르
영감의 그리 나쁘지 않은 후계자도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한 가지 곤란한
일은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 술집 주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술버릇을 더는 말리지 못할 것이고, 그뿐만
아니라 내가 러시아어를 배우고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하였어도 니미콘
마을의 술집 주인이 되었을 뿐 그 이상 되지 못했다고 하시며 아버지는
의기양양해 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견딜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모든 일이 잘 되기만을 서서히 기다리기 시작할 뿐이었다.
  백부 콘라트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킨 후 최근에 다시 사업에 열중하고
계셨으나, 나는 찬성할 수 없었다.  그는 집게손가락을 입에 대고 이마에
주름살을 지으며 바쁘게 방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날씨가 좋을 때마다
자꾸 호수를 바라다보고 계셨다.
   저이는 또 배를 만들 모양이야.
  늙으신 첸친 큰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실 그는 수년 이래
처음으로 싱싱하고 기운있게 보였으며, 이번에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하고 아주 승산이 있는 것처럼 얼굴에 심사숙고하는 빛을 띠고 계셨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건대, 그렇더라도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피로한 영혼이 곧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금 날개를 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돛을 달아야 합니다.  늙으신 큰아버지!   그러나
그때가 되면 니미콘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런 일이 이 세상에서는 아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난 신부의 말에 이어서 백부님 무덤 앞에서 몇 마디 말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백부를 행복자요, 신의 은총을 받은 자로서
추도사를 드릴 것이고, 이 경건한 추도사에 이어 장례식에 모인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곧 나를 잊어 버리거나 용서하지 않을 익살스러운 말을 하려
했다.  아마 아버지도 그 자리에 계실지 모른다.
  내 서랍에는 나의 대작을 시작하는 부분이 들어 있다.   나의 필생의
작품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너무 과장되게
들리므로 나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의 진행과
완성에는 자신이 없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그러나 아마 내가 다시
시작하여 계속하는 데서 완성할 시기가 다시 한 번은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청춘시절의 동경은 올바른 것이었고, 나는 역시 영원한 시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게 있어 동회의원이나 돌로 쌓은 제방 도로나 혹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날씬한 로에지 기르타네르로부터
가련한 보피에 이르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포함한 내
생애의, 흘러갔으나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만큼은 내 마음 속에서
파도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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