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째 바이올린과 함께한 음악가이자 클래식을 대중에게 알리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티스트의
고민과 갈증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냈다. 저자는 몇 개월 동안 특정 곡을 끊임없이 연주하고 갈고
닦았다가 무대 위에서 선보이고 난 후의 감정,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시간의 예술’을 글
과 그림으로 표현했고, 그 기록을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작가가 본격적으로 음악과 결합한 그림을
그린 것은 차이콥스키의 <소중한 곳에 대한 추억 Op. 42-3> ‘멜로디’를 듣고서다. SNS에 그림과
곡 해설, 개인적인 감상을 올렸더니 흥미롭다는 댓글이 달렸고, 이를 계기로 매일 음악 감상과 그
림을 올리자 칼럼 기고와 강연 제의가 들어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지음
▣ Short Summary
‘그림 그리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활동명에서 볼 수 있듯 그림은 저를 표현하는 도구이자 저만의 스트
레스 해소 창구입니다. 저의 첫 작품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품 <멜로디
Op.42-3>을 듣고 그린 것인데요. ‘나는 어떤 아티스트가 되어야 할까’ 고민이 많았던 때 복잡한 마음
을 가라앉히려 그렸습니다. 자연스럽게 SNS에 그림과 함께 곡에 대한 해설, 개인적인 감상을 올렸더
니 흥미롭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신이 나서 매일 같이 그림과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글이 쌓이자 여러 군데에서 칼럼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연재한 월간 《음악저널》, 네이
버 ‘올댓아트 클래식판’ 등 여러 곳에 썼던 칼럼들을 하나로 모아, 그리고 새벽의 고요함 속에 찾아온
영감들을 엮어 책을 만들었습니다.
2015년 우연한 기회에 ‘사랑’을 주제로 한 음악들을 골라 한 시간짜리 강연을 하게 되었고, 그날로 강
연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말과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 대중에게 음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고, 대중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하며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는 예전부터 꿈꾸던 일
이었습니다. 욕심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는 바이올린으로 나를 표현했다면, 이제부터는 말과 글과 그
림으로 나를 표현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시간의 예술’이라고들 말합니다. 비록 한정된 시간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반짝반짝 빛나고, 값을
매길 수 없이 귀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클래식 음악가는 필연적으로 어떤 갈증이 있습니다. 몇 개월 동
안 특정 곡을 갈고닦았다가 한두 차례의 공연 무대 위에서 선보이고 난 후에는 빛나던 것들이 공중에서
흩어 없어지고 맙니다. 저 또한 이러한 갈증 때문에 비언어적인 것에서 언어적인 것으로, 청각에서 시각
으로, 사라지는 것에서 기록되는 것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총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미술 전시에 다녀온 후 작가나 특정 그림과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을 매치시켜 1장 <그림에 음악 더하기>에 담았습니다. 2장 <이음줄과 붙임줄>에서는 필연
이라는 끈으로 촘촘히 엮인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마지막 장 <바이올린 세레나데>에서는 연
주자로서, 감상자로서 사랑하는 바이올린 곡을 소개했습니다.
혼자만 알기 아까운 식당 리스트를 공유하는 마음 넉넉한 친구처럼 제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 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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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트와 음악 감상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만의 음악 취향이 생기기를, 그
음악이 인생의 순간순간 여러분을 위로해 주기를, 그리고 다양한 이들과 음악 이야기로 깊게 소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차례
작가의 말 - 모든 것은 차이콥스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장. 그림에 음악 더하기
영웅을 사랑한 예술가들_ 바스키아×베토벤
내 방 안락의자 같은 예술_ 마티스×사티
두 예술가의 평행 이론_ 워홀×거슈윈
동물의 사육제, 어디까지 알고 있니?_ 생상스
지친 이들을 위한 음악 진통제_ 쇼팽
북한산 정상에서 영감을 찾다_ 드뷔시×모네
오래된 사랑 이야기_ 김향안과 김환기×클라라와 로베르트슈만
파리의 괴짜들_ 사티×발라동
신체의 풍경_ 이건용×니진스키×드뷔시
반복의 힘, 비워 냄의 미학_ 박서보×사티
‘크로이처 소나타’로 엮인 이름들_ 베토벤×톨스토이×프리네×야나체크
2장. 이음줄과 붙임줄
고통이 인생을 관통할 때_ 칼로×비탈리
색이 담긴 음악_ 피아졸라×드뷔시×베토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무엇이 탄생할까_ 뷔페×모차르트×슈베르트×스메타나×브람스
로미오와 줄리엣_ 셰익스피어×프로코피예프
커피 한 잔 어때요?_ 바흐×차이콥스키×피아졸라×쇤필드
영웅들을 위하여_ 쇼팽×엘가×생상스×리스트×로시니
환상 속의 그대_ 베를리오즈
이토록 극적인 순간_ 헨델
구스타프 옆 구스타프_ 클림트×말러×융×카유보트×에펠
3장. 바이올린 세레나데
그 여자, 그 남자의 로망스_ 클라라×로베르트 슈만
지금, 감사하고 있나요?_ 바흐×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리스트
당신이 피는 계절_ 야나체크
노르웨이의 작은 거인_ 그리그
백 번째 생일을 맞은 탱고의 황제_ 피아졸라
당신은 ‘인싸’인가요?_ 파가니니×리스트
떠나자! 스페인으로_ 라벨×사라사테×랄로
비발디를 품은 영감의 도시 베네치아_ 오펜바흐×멘델스존×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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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1장. 그림에 음악 더하기
영웅을 사랑한 예술가들_ 바스키아×베토벤
거리의 화가, 검은 피카소, 앤디 워홀의 후계자 등.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를 설명하는 수식어
는 여러 개입니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지만 남달랐던 재능에 호감형 외모,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지원과 지지까지. 노숙하며 거리를 배회하던 화가가 미술계의 새로
운 얼굴이 되어 대중의 사랑을 받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스키아는 인
기가 절정에 올랐던 27세에 요절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로써 그의 신화 공식이 완성되었죠.
무명의 길거리 그라피티 아티스트였던 바스키아가 20대 초반 어마어마한 유명세를 얻게 된 데는 ‘최초
로 유명해진 흑인 화가’라는 인식도 한몫했습니다. 하지만 바스키아는 “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니라
그냥 아티스트”라며 세상의 평가를 강박적으로 싫어했죠.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도 흑인을 비하하는
뉘앙스 때문에 싫어했습니다.
바스키아가 활동했던 시기의 뉴욕은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했습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택시도
쉽게 잡지 못하는 현실에 그는 분개하곤 했죠. 때문에 마일스 데이비스, 듀크 엘링턴, 무하마드 알리,
행크 에런 등 음악과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흑인 영웅들에 대한 그의 존경심은 남달랐습니
다. 마음속 영웅들을 그린 그림에는 그의 사인이나 다름없는 ‘왕관’이 그려져 있습니다. <뉴욕, 뉴욕>
의 오른쪽 위를 보면 고고히 빛나는 왕관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바스키아만의 독특한 표식으로 왕
관이 그려진 그림은 그렇지 않은 그림보다 더욱 깊은 의미가 있고, 가격도 몇 배나 높습니다.
베토벤이 사랑한 나폴레옹: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하이든, 모차르트와 함께 고전주의 시
대에 활동하며 낭만의 시대로 가는 물꼬를 튼 작곡가입니다. 클래식 음악계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
는 중요한 작곡가 중 한 사람이죠. 베토벤의 인생에서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1789년 발발한 프랑스 혁명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유럽인들에게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면서 혼란스러운 시기를 평정할 영웅을 기다렸죠. 그
때 등장한 사람이 나폴레옹입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부터 시작해 공화국 설립, 루이 16세와 마리 앙
투아네트의 처형,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 쿠데타 등 엎치락뒤치락하던 권력 싸움은 군사령관 나폴
레옹에 의해 진압됩니다. 이후 이집트 원정과 이탈리아 원정에서 승리하면서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
죠. 유럽의 많은 지식인은 나폴레옹을 숭배했습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마저 나폴레옹의 흉상을 자신
의 작업실에 둘 정도였으니까요.
이 시기 베토벤은 자신의 우상이었던 나폴레옹을 염두에 둔 교향곡을 작곡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곡의
표지에는 <보나파르트 교향곡>이라고 적어 두었죠. 하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자 베
토벤은 분개합니다. “그 역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군. 자신의 야욕을 위해 모든 인간 위에 올라
서서 독재자가 되려 하다니!”라며 ‘보나파르트’라고 적어 놓은 부분을 좍좍 그어 구멍을 내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교향곡의 부제를 ‘영웅’이라고 고쳐 썼고 지금까지도 <교향곡 3번>은 ‘영웅 교향곡’이라고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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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립니다. 베토벤은 생전에 대중에 잘 알려진 교향곡 5번 ‘운명’보다 3번 ‘영웅’을 더 높이 평가했는데요.
영웅은 곧 베토벤 자신의 모습, 역경을 헤쳐 나가는 의지를 가진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입
니다.
덧없도다, 천재들의 마지막 순간: 뛰어난 음악성으로 동시대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전설’로 이름을 떨
친 베토벤. 하지만 그의 말년은 고통으로 가득했습니다. 20대 후반부터 청력에 이상이 생겨 40대에는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죠. 이 밖에도 베토벤은 사망하기 전까지 만성 복
통과 잦은 음주로 인해 간 질환, 두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베토벤처럼 생전에 부와 명예, 인기 등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바스키아에게도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
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긴다고 생각했고, 대중을 만족시킬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으며 마약 중독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결국 작업실에서 헤로
인 과다 복용으로 급사하고 말죠. 참으로 허무한 마지막입니다.
저는 종종 “우리는 삶 속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베토벤, 바스키아처
럼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기댈 곳 없이 쓸쓸한 마지막을 보낸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우리 각자가 가진 지식과 재능을
세상에 나누며 서로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기쁨과 위로의 제스처를 주고받을 때 삶이 한결 풍요로
워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지친 이들을 위한 음악 진통제_ 쇼팽
역사에 길이 남은 음악가들은 재미있는 별명들을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피아노의 예술적인 면을 혁신
적으로 끌어올린 프레데리크 쇼팽은 ‘건반 위의 시인’이라 불릴 정도로 평생 작곡한 곡들 대부분이 피
아노곡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콩쿠르도 있습니다. 1927년에 시작해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세계 3대 콩쿠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15년에
1등 수상과 함께 폴로네이즈 최고 연주상을 받았습니다.
쇼팽이 피아노곡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가 될 수 있었던 데는 피아노의 개량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페달로 음을 길게 지속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의 개성을 담은 실험적인 곡들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이
죠. 특히, 쇼팽은 어릴 때부터 병약해 큰 음량으로 연주할 수 없었고, 연주 스타일 또한 섬세했던지라
개량된 피아노 덕을 많이 봤습니다. 쇼팽의 파리 데뷔 연주는 그를 후원하던 피아노 제조사인 플레옐
의 홀에서 열렸는데, 데뷔 연주의 성공 덕분에 쇼팽은 귀족들의 살롱 콘서트를 드나들며 떠오르는 스
타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후원자와 예술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평범함 속에 빛나는 멜로디: 쇼팽의 녹턴 장르 중 대표곡을 뽑아 보라고 하면 곧바로 <녹턴 Op.9-2>
의 멜로디가 떠오릅니다. 이 곡은 봄바람 혹은 사뿐사뿐한 왈츠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클래식 라디
오 방송의 시그널로 이 곡의 도입부 멜로디를 사용하고 있을 만큼 한 번 들으면 기억에 남을 만한 멜
로디를 갖고 있지요. ‘녹턴’이라는 장르를 쇼팽이 창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 장르를 높은 서정성과
예술성을 띤 장르로 확립시켰습니다. 쇼팽이 녹턴이라는 장르에서 이런 위상을 차지하게끔 해 준 것이
바로 작품 번호 9번에 담긴 세 개의 녹턴이고요. 아이러니하게도 쇼팽 생전에는 녹턴의 멜로디들이 평
범하게 취급받으며 “살롱 음악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평을 듣곤 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시간이
지나야 진가를 발휘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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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사랑하는 여인에게 주는 선물: 폴란드에서 음악 교육을 받다가 22세에 유럽 문화 예술의 중심지인 파
리로 이주한 쇼팽은 조용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으로 인해 처음에는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늘 고
국과 가족을 그리워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친구들과 독일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어릴 적 같이 어
울려 놀던 마리아 보진스카라는 여성과 재회하고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죠. 올리브색 피
부와 검은 눈동자를 갖고 있던 그녀는 나폴레옹 3세가 한때 좋아했고, 폴란드 시인 스워바츠키는 그녀
를 위한 시를 지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였습니다.
마리아와 쇼팽이 일주일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야 했을 때, 쇼팽은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곡 <왈츠 Op. 69-1>을 그녀에게 선물합니다. 후에 이 둘은 약혼까지 하지만 마리아
부모님의 반대로 파혼하고 맙니다. 쇼팽의 건강이 큰 이유였습니다. <왈츠 Op. 69-1>은 아픈 사랑의
기억을 담은 곡이기에 쇼팽 생전에는 출판되지 않았지만, 사후에 친구가 악보를 발견하고 작품 번호를
붙여 출판하게 됩니다. 지금은 <이별의 왈츠>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리며 피아니스트들이 자주 연
주하는 곡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에서 받은 영감: 파리 사교계에서 주목받던 음악가 쇼팽은 20대 후반에 몇 번의
사랑에 실패하고 건강까지 악화되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동년배의 피아니스트 리
스트를 알게 되고, 그의 연인 마리 다구 백작 부인과도 친분을 쌓게 되죠. 그녀는 본인의 살롱을 운영
하고 있었는데, 쇼팽은 그곳에서 조르주 상드라는 작가를 만나게 됩니다.
조르주라는 남성의 이름을 필명으로 썼던 이 여성의 본명은 아망틴 오로르 뒤팽. 쇼팽보다 여섯 살 연
상이었고 아이들의 싱글 맘이자 소위 히트 작가였습니다. 두 사람은 출신도, 살아온 배경도, 추구하는
가치도 달랐지만 상드는 쇼팽에게 모성애를 느꼈고 먼저 적극적으로 구애한 끝에 쇼팽이 28세, 상드가
34세 때부터 10여 년간을 함께했습니다. 이들의 다사다난했던 지난 연애 행적을 비추어 볼 때 의외의
조합이었죠.
1838년, 쇼팽의 유전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자 두 사람은 따뜻한 지중해에 위치한 마요르카로 휴양을
떠납니다. 당시 폐결핵은 전염병에다 불치병으로 여겨져 사람들이 피해 다녔고, 이혼한 여성과 청년의
결합은 좋게 보일 리 없었습니다. 어느 날 상드가 쇼팽을 위해 멀리 떨어진 마을에 먹을 것을 구하러
갔다가 폭우에 발이 묶여 여섯 시간 동안이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급류에 신발까지 잃어버렸고 그녀
를 태웠던 마부는 도망가기까지 했죠. 홀로 크고 어두운 수도원에서 상드를 기다리던 쇼팽은 상드가
무사히 도착하자 크게 안도하며 눈물을 흘렸고, 이런 사연을 바탕으로 작곡한 곡이 <빗방울 전주곡>
입니다.
곡의 초반에서 피아니스트가 일정한 박자로 치는 왼손의 음들을 잘 들어 보세요. 툭툭 떨어지기 시작
하는 약한 빗줄기를 묘사하는 듯하죠. 곡의 중반으로 갈수록 음량이 고조됩니다. 어두워지는 하늘, 거
세지는 빗줄기, 쇼팽이 당시 느꼈던 외로움, 연인에 대한 걱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합니다.
2장. 이음줄과 붙임줄
커피 한 잔 어때요?_ 바흐×차이콥스키×피아졸라×쇤필드
하루 두 잔의 커피를 마시는 저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라는 튀르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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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예 속담과 “커피는 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모스카토 와인보다 부드럽다.”라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커피 칸타타> 가사에 굉장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음악가 중에도 커피 애호가가 많습니다. 모차르트는 연주가 끝나면 당구장에서 블랙커피와 담배 한 대
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고, 베토벤은 매일 아침 60개의 원두를 일일이 세어 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이는
오늘날 에스프레소 한 잔에 들어가는 원두의 양과 비슷하다죠. 강박에 가까운 완벽함은 그의 음악에도
녹아 있습니다. 작곡가들은 커피에서 얻은 영감을 어떻게 악보 위에 풀어냈을까요?
바흐의 <커피 칸타타>: 이 곡은 <커피 칸타타>라고 알려져 있지만 <조용히 하세요. 떠들지 말고>가
원제입니다. 사뭇 딱딱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내용은 유쾌합니다. ‘커피를 마시면 얼굴이 검은색이 된
다.’, ‘불임이 된다.’ 등 떠도는 소문 때문에 커피를 금지하는 아버지와 커피와 사랑에 빠진 딸의 실랑
이를 담은 곡입니다. 딸이 ‘하루 세 잔의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구운 염소처럼 바짝 마를 것’이라고 말
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협박합니다. “건강에 해로운 커피를 끊지 않는다면 약혼자와 결혼시키지 않을 거
야!”
바흐의 칸타타 중 유일하게 종교색이 드러나지 않은 이 곡은 놀랍게도 커피 광고 음악입니다. 당시 라
이프치히에 살던 바흐는 ‘짐머만 커피 하우스’의 의뢰를 받아 작곡, 연주하게 되는데 정부가 외화 낭비
라는 구실로 규제했던 커피와 커피 하우스 홍보가 주목적이었습니다. 그 시대 커피 하우스는 여성의 출
입이 금지되어 있어 당시 남성 성악가가 딸 역할을 맡아 유머러스한 느낌이 더욱 강했다고 합니다.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 ‘아라비안 댄스’: 매년 겨울 대형 공연장에서 표트르 차이콥스키
(1840~1893)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상연되는 것은 하나의 관례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가득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을 담았기에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
는 작품으로, ‘꽃의 왈츠’, ‘사탕 요정의 춤’, ‘중국의 춤’ 등 한 번 들으면 귀에 팍 꽂히는 멜로디가 인상
깊습니다. 특히, 다섯 번째 악장인 ‘아라비안 댄스’는 ‘커피 요정의 춤’이라고도 불리며 신비롭고 나른
한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반 관현악곡에는 잘 쓰이지 않는 잉글리시 호른과 탬버린 등의 악기를
사용해 동양적인 분위기를 내고, 무용수가 아라비안 의상을 입고 이국적인 춤을 춥니다. 이 곡의 마지
막 부분에는 ‘여리게’를 뜻하는 악상 기호 피아노 ‘p’가 다섯 개 붙어 있는데, 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킬 때처럼 아쉬움과 여운을 남깁니다.
쇤필드의 <카페 뮤직>: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작곡과 교수로 재직 중인 폴 쇤필드는 전 세계를 돌아다
니며 연주하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미국 민속 음악과 클래식을 접목시킨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습니
다. 독특하게도 탈무드와 수학 분야에도 큰 열정을 갖고 있죠.
1985년 어느 날 저녁, 그는 담배 연기 가득했던 미네소타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내내 연주했던 피
아노 트리오로부터 영감을 얻게 됩니다. 가벼운 클래식, 20세기 초 미국 음악, 집시풍의 음악, 브로드
웨이 스타일의 음악 등 여러 가지 스타일이 모두 섞여 있는 연주였습니다. 이후 쇤필드는 고급 식당에
서도, 클래식 공연장에서 연주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하이클래스 디너 뮤직을 만들고자 했고, 그렇게
탄생한 곡이 <카페 뮤직>입니다. 팔색조처럼 다양한 음악 스타일로 구성된 이 곡은 예상보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연주되고 있습니다.
커피와 클래식 음악.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입문이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점차 자신만의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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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향을 갖게 된다는 것, 혼자 즐겨도 좋으나 여러 명이 함께해도 좋다는 것, 순간의 감각이지만 평생 기
억에 남을 수도 있다는 것, 똑같은 것을 접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 이 글을 읽는 분
들은 어떤 커피와 어떤 음악 취향을 갖고 계실지 참 궁금합니다.
이토록 극적인 순간_ 헨델
과거에도 요즘처럼 극적인 예술 양식을 탄생시킨 시대가 있었습니다. 바로크 시대는 ‘찌그러진 진주’라
는 어원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마냥 아름답고 고귀한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끓어오르는 감정을 적나
라하게 표현했습니다.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비발디, 바흐, 헨델이 있고요.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평생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던 바흐, 그와 대비되는 인물이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개방
적인 스타일로 작곡 활동을 했던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입니다.
동갑 바흐와 헨델: 흔히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이는 두 사람
이 클래식 음악의 지반을, 기악과 성악 두 분야의 기본을 단단히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
다. 바흐와 헨델은 모두 1685년생으로 동갑이지만 많은 면에서 대비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흐는 독
일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데 반해 헨델은 세계인이었습니다. 태생은 독일이지만 26세에 영국으
로 귀화해 평생을 영국인으로 살았죠. 영국에서 그의 독일 이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는 영어식 ‘조지
프레데릭’으로 발음되었습니다.
전 유럽을 돌아다녔던 헨델은 다양한 나라의 음악 양식을 흡수했고, 어렵고 복잡하게 여겨지는 바흐
음악보다 대중적인 음악을 남겨 동시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스타일의 오
페라,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성악곡 양식인 오라토리오가 그의 주 장르였죠. 그러다가 오페라단 운영
문제로 파산을 겪기도 했지만, 재기에 성공한 헨델은 생전에 부와 명예를 모두 누린 몇 안 되는 작곡
가 중 한 명입니다.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이유는 뛰어난 사업 수완과 융통성으로 알뜰살
뜰 재산을 불려 나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조지 1세 왈, 묻고 더블로 가!: 혈기 왕성했던 청년 헨델은 독일 하노버 제후를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
다. 하지만 25세 때 영국에서 오페라로 큰 인기를 끌게 되자 욕심이 생겨 바로 다음 해에 제후의 허락
도 없이 영국으로 귀화합니다. 대륙 간의 거리가 거리인 만큼 살면서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죠. 하지만 7년 후 문제가 생깁니다. 영국의 앤 여왕이 후사 없이 급사하자 헨델의 고용
주였던 하노버 제후가 조지 1세로 등극합니다. 이 소식을 접한 헨델은 난감해졌습니다. 귀화 후에 영
국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기 때문에 조지 1세를 마주치지 않기란 불가능했던 것이죠. 그
래서 헨델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냅니다.
조지 1세가 종종 템스강에 뱃놀이를 나간다는 소식을 들은 헨델은 50명의 악사를 배 위에 태우고 나
가 이날을 위해 작곡한 <수상 음악>을 연주합니다. 무거운 하프시코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악기를 동
원했죠. 특히 금관 악기 위주로 편성해 드라마틱한 청각 효과를 노렸습니다. 그렇게 헨델은 ‘한 사람을
위한 수상 공연’이라는 전에 없던 명장면을 연출했죠. 배은망덕한 피고용인에게서 깜짝 이벤트를 받은
조지 1세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짜리인 <수상 음악>을 세 번이나 반복하게 했고, 헨델
의 연금을 세 배나 인상해 주는 대인배 같은 면모를 보였습니다.
헨델 때문에 생긴 런던 최초의 교통 체증: 헨델이 영국에서 활동한 18세기 중반에 오스트리아 왕위 계
승권을 두고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전쟁을 벌입니다. 두 나라는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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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바이올리니스트
앙숙이었는데, 유럽에서는 누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지를 두고 수많은 분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죠.
19세기를 살았던 베토벤 역시 프랑스군이 점령한 오스트리아 빈 한가운데에서 하루하루를 마음 졸이
며 보낸 적이 있었죠.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에서 영국은 오스트리아를 지원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승리하면서
1748년 엑스라샤펠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이로써 오스트리아에 대한 마리아 테레지아의 왕위 계승권이
확실해집니다. 덩달아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영국은 1749년 4월 27일, 불꽃놀이를 기획합니다. 불꽃
놀이 직전에 연주될 목적으로 작곡된 <왕궁의 불꽃놀이>는 제목처럼 화려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런던의 그린 파크에서 열리는 야외 공연이었기 때문에 백 대 이상의 악기가 동원된, 전에
없던 대규모 편성의 곡이었죠.
이 흥미로운 작품의 리허설을 보기 위해 1만 2천여 명의 관중이 몰렸고, 다음 날 신문에는 “런던 브리
지가 너무 막혀서 마차가 세 시간 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라고 실렸습니다. 헨델의 공연은 성공적
이었지만 막상 불꽃놀이 행사는 처참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이라이트로 준비한 회전 불꽃이 제대로 터
지지 않았고, 화재까지 발생해 불꽃놀이 기획자와 축제 감독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어
찌 보면 이 모든 사건의 승자는 헨델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3장. 바이올린 세레나데
지금, 감사하고 있나요?_ 바흐×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리스트
‘감사’에 대하여: 불안과 결핍이 우리를 집어삼킬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늘 아쉬움과 후회 사이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그렇기에 평정심을 찾고 중심을 잘 잡는 것이 날이 갈수록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가
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고 아쉬워 말고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하자,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나부터 다른
이에게 감사할 만한 존재가 되자고 종종 생각합니다. ‘감사’와 관련된 다양한 작곡가의 에피소드와 이
를 배경으로 탄생한 음악을 살펴볼까요.
일자리를 얻는 데 도움을 준 지인에 대한 감사: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고 흔히 불리는 이 곡의 원제
는 <2단의 손건반을 가진 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여러 변주>입니다. 바흐가 건반 악기를 위해 작곡
한 작품 중에 제일 긴 곡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면 50분 정도 걸리고요. 바흐가 건반 악기를
위해 작곡한 마지막 작품이기에 유난히 애정을 쏟았는지도 모릅니다. 제목에 붙은 ‘골드베르크’는 사람
이름인데요. 어떤 이유로 이름이 음악사에 길이 남게 되었을까요? 1741년경,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
사였던 카이저링크 백작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흐가 작센 궁정 음악가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힘써 준 인물이었죠. 백작은 잠을 잘 수 있도록 자신이 고용한 연주자 고트리프 골드베르크
가 연주할 음악을 바흐에게 의뢰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자장가 작곡을 부탁한 것이죠.
신에 대한 감사의 노래: 베토벤의 전곡을 통틀어 제일 종교적이면서도 숭고한 곡이 있습니다. <현악 사
중주 15번 3악장>으로 베토벤 스스로 “신성한 감사의 노래”라고 묘사한 악장입니다. 악보에는 ‘요양
중인 환자가 신에게 전하는 숭고한 추수 감사절의 노래’라고 적혀 있는데, 베토벤이 거의 죽기 직전까
지 갔다가 극적으로 회복한 후 작곡했기 때문이죠. 베토벤은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20대 후반부터 겪었던 청력 이상, 수시로 겪었던 위장 장애, 매일 마시던 술 때문에 겪었던 간경화,
말년에는 시력까지 말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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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작곡가 내면의 감정과 철학을 곡에 직접적으로 담았기 때문에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가는
문을 활짝 연 작곡가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현악 사중주 15번 3악장>에서만큼은 다시 고전
주의 스타일로 노래합니다. 극적으로 표현하던 감정을 최대한 절제해 주관이 아닌 객관으로, 폭풍의
한가운데가 아닌 한 발 뒤로 물러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의연한 자세로 ‘죽음은 고통과 공포가 아닌 평화와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이 악장에서 말
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총 열여섯 개의 현악 사중주를 작곡했습니다. 후기로 갈수록 형식이 복잡해지고 길이도 점점
길어집니다. 이 곡의 3악장도 20여 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 앞에 무릎 꿇
고 드리는 경건한 기도, 다시 생기를 되찾은 자의 홀가분한 마음, 삶에 대한 미련과 애착 등 곡 속의
다양한 감정을 따라가며 듣노라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죠. 창문 너머로 밝아 오는 새벽빛을 바라보
며 침대맡에서 기도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이 악장을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미완의 아름다움을 품은 곡: 베토벤을 유난히 흠모했던 한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바로 슈베르트였
죠. 베토벤이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 놓은 ‘교향곡’이라는 장르에 수많은 후배 작곡가들은 정면으로 맞
서 도전하기도, 아예 회피해 버리기도 했죠. 슈베르트는 도전하는 쪽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열 개 남짓
한 교향곡을 남겼는데 그중 <교향곡 8번> ‘미완성’이 제일 유명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보통 교향곡을 구성하는 네 개의 악장 중 두 개 악장만 완성되었고, 3악장은 스케
치만 짧게 남아 있습니다. 슈베르트가 3악장을 작곡하다가 중단한 이유를 두고 매독으로 한참 고생하
던 시기라 창작열이 떨어져 있었다거나 너무 바쁜 나머지 곡의 완성을 미루다가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는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1823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한 음악 협회의 명예 회원으로 뽑힌 슈베르트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
기 위해 이 교향곡을 헌정하기로 합니다. 두 개 악장을 받은 협회 측은 슈베르트가 나머지 악장들을
보내 줄 것으로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결국 나머지 악보들은 오지 않았고, 이 작품은 그대로 잊힙니다.
이후 슈베르트가 사망한 지 30년도 지난 1860년에 지휘자 요한 폰 헤르베크에 의해 악보가 발견되었
고, 5년 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됨으로써 이 곡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집니다.
이 곡의 매력은 각 악장마다 분위기가 뚜렷하게 대비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겨
울날 어디론가 바삐 향하는 마차처럼, 음산하고 조급한 느낌의 1악장 도입부를 주의 깊게 들어 보세요.
반면 2악장은 따뜻한 목관 악기들의 음색과 안정적인 멜로디 덕분에 평화로운 에덴동산 같죠.
곡이 미완성으로 남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후대 음악가들은 슈베르트가 남긴 악보 스케치를 바탕으로
새롭게 작곡하거나, 그가 작곡한 단악장짜리 곡을 엮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마냥 자연스럽지 않았죠. 악장 개수는 비록 미완성일지라도 1, 2악장의 음악적 완
성도가 뛰어나 현재에는 낭만주의 교향곡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내는 연인에 대한 감사와 위로: <사랑의 꿈>, <순례의 해>,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
기교 연습곡> 등 리스트의 작품 중에는 제목부터 듣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곡들이 몇 있습니다. <
위로> 역시 그런 곡이죠. 리스트가 작곡했던 여섯 개의 위로 중에 제일 유명한 곡은 3번입니다. 이 곡
은 프랑스 작가이자 문예 비평가 샤를 오귀스탱 생트뵈브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기에 ‘위로’라는 제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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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였고, 단어 대신 음표가 작곡할 당시 리스트의 심정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곡이 작곡된 1849~1850년, 리스트는 독일의 작은 도시 바이마르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바이마르
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고전주의 예술을 활짝 꽃피웠던 곳으로 괴테, 실러 등 당대 최고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 활동했죠. 괴테 하우스, 실러 하우스, 귀족들의 성 등 많은 명소가 있
어 1998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도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리스트는 바이마르에 정착해 연인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문제는 연인 비트겐슈타인 후작
부인이 유부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녀는 결혼 후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편과 이혼하려고 했으나 교
황청이 동의하지 않아 심신의 고통을 받던 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곡을 듣고 있으면 힘들어하는
연인 곁에서 부드럽게 다독거리며 위로하는 리스트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부터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
다. 지금 이 순간, 감사한 것을 떠올려 볼까요. 나 자신이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지성인인 것, 수준 높
은 연주자들의 음악을 검색과 클릭 한 번으로 편하게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 주변 사람들과 영감을
나누며 건강한 삶을 사는 것 등 말이죠. 오늘 하루도 감사함으로 가득한 하루가 되시기를. 오늘도 누
군가에게 차고 넘치게 감사한 존재가 되시기를.
비발디를 품은 영감의 도시 베네치아_ 오펜바흐×멘델스존×비발디
대학생 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이탈리아 주요 도시들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바다 위에
세워진 마법 같은 도시 베네치아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물 위에 떠 있는 항구 도시라 많은 이들이
한데 섞여 독특한 문화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작곡가 비발디의 고향이기 때문이죠.
이곳에서 잉태되어 탄생한 작품들을 살펴볼까요.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 자연과 인공 섬을 모두 합하면 118개이고, 이를 4백여 개의 다리가 연
결하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네치아는 5세기경 세워졌습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둔 최적의 위치로 무역을 하며 번성했고요. 활발한 무역 덕분에 경제와 금융이 다른 도시들보
다 빨리 안정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당시의 분위기와 도시의 위상을
알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는 넓은 광장을 두고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
라고 불렀고, 18세기 러시아의 서구화와 근대화를 추구했던 표트르 대제는 늪지대 위에 상트페테르부
르크 건설을 지시하면서 ‘제2의 베네치아’를 염두에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독특한 매력을 가진 도시 베
네치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들을 살펴볼까요.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중 ‘뱃노래’: 독일 태생의 프랑스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가 유작
으로 남긴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는 대성공을 거뒀지만 오펜바흐는 그 성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
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열렬하게 사랑했던 세 명의 여인을 회상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구성
도 흥미롭지만 이 오페라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뱃노래’ 때문입니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가
고소한 커피와 신선한 우유처럼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이루는 아리아죠. 가사의 첫 부분을 따 ‘아름다
운 밤, 사랑의 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아리아는 지금까지도 유명한 성악가들이 앞다투어 부르고
있습니다. 밤의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한 기악 전주, 허밍으로 산들바람을 표현하는 합창, 달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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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또한 이 곡의 감상 포인트입니다. “오 아름다운 이 밤 기쁨 가득한 미소 짓네. 낮보다 더 달콤한
밤, 오 사랑의 밤이여….”
멘델스존의 <무언가 Op. 30-6> ‘베네치아의 뱃노래’: 클래식 음악계의 몇 안 되는 금수저 중 한 명인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 그는 성인이 되자마자 유럽 귀족들의 자제라면 으레 가는 ‘그랜드 투
어’를 다녀왔습니다. 그랜드 투어란 모든 예술의 근원지라 여겨지는 로마 및 주변 도시에서 몇 년씩 머
물며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세상의 이치를 스스로 깨우치게끔 장려하는 관습이었습니다. 특히, 문화
적 열등감이 있었던 영국과 독일에서 17세기 중반부터 유행했죠. 멘델스존은 이탈리아에서 받은 영감
을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곡에 골고루 녹여 냈는데 피아노 독주곡집 <무언가>에 무려 세 편의 ‘베네치아
의 뱃노래’를 수록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작품 번호 30-6번은 활기찬 낮보다는 달빛을 반사하는 바다
의 물결을 묘사하는 듯 은은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Op.8 No.1-4>: ‘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음악’ 순위를 뽑을 때 꼭 이름을
올리는 음악 중 하나인 비발디의 <사계>. 각 계절의 수에 세 개 악장씩, 총 열두 개의 악장으로 이루
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편의상 ‘사계’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원래 이 곡의 정식 명칭은 <바이올린 협주
곡 1-4번>입니다. 독주 바이올린과 간단한 구성의 오케스트라 반주로 되어 있죠.
음악의 아버지 바흐보다도 일곱 살 많은 안토니오 비발디는 기악곡 장르를 마음껏 실험했고, 후에 바
흐에게 큰 영향을 끼쳤죠. 바흐가 비발디의 악보를 구해 달빛 아래에서 사보하다가 눈이 급격하게 나
빠져 수술을 받아야 했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비발디뿐만 아니라 많은 작곡가들이 사계절의 변화무쌍함에 영감을 받아 곡 속에 자연을 녹여 냈습니
다. 차이콥스키, 슈베르트 등이 그렇죠. 작곡가 막스 리히터의 <사계>도 독특합니다. 1966년생인 그는
<인셉션> 등의 영화 음악 작곡가로 알려진 세계적인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아예 비발디의 <사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재작곡해 음반을 발표합니다. 가끔 비발디와 막스 리히터의 <사계>를 번갈아 듣는
데 두 사람의 천재성에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는다.”라는 말처럼 비발디의
음악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살아남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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