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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김용 녹정기05

by Casey,Riley 2023.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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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잔인한 유희

며칠 후 배는 진황도에(秦皇島)  도달했다. 그들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올라가 곧 북경에 들어갔다.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방법을 강구해서 황궁으로 들어가는 일은 언제쯤 성공할지 알 수 
없는 일이외다. 그러니 모두들 시간을 보낼 거처를 반드시 마련해야 될 
것이다.]
그 즉시 육고헌이 가서 한 채의 저택을 빌었다. 그 저택은 선무문(宣武
門) 옆에  있는 두발호동(頭髮胡同)이라는 골목길  안에 위치 하였는데 
매우 조용했다. 일행은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살고 있는 사람
은 이미 찻잎을 파는 장사치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는 천지회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그는 첨수정(甛水井)호동에 있는 
천지회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살고 있는 사람은 이미 찻잎을 
파는 장사치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는 천지회에서 사용하는 암호로 몇마디  물었으나 그 사람은 눈만 멀
뚱멀뚱 볼뿐이었다. 아마도 천지회는 이미 다른 장소로 옮겨 간 모양이
었다.
그는 다시 천교로  갔다. 속으로 팔비원후 서천천이  설사 핍박을 받고 
신룡교에 가입하게 되어 천교에  없다 하더라도, 어쩌면 천지회의 나머
지 형제들 가운데 고언초나 벌강, 전노본 등은 만날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교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했지만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즉시 그는  서직문(西直門)쪽으로 나아가서는 지난 번 머물
렀던 객점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세냥의 은자를 꺼내서는 계산대 위
에 던지며 좋은  방을 달라고 했다. 주인은 그의  돈 씀씀이가 큰 것을 
보고는 매우 공손하게 접대를 했다. 위소보는 다시 다섯전의 은자를 꺼
내서는 점소이의 손에 건네 주었다. 그리고 지난 번 머물렀던 그 제3호
방을 달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  방에는 손님이 들어 있지 않아 점소
이는 공짜로 오 전의 은자를 번 셈이었다.
위소보는 차를 마시고 침대 위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
듬었다. 사방은 조용했다. 아무 기척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난 다음 그
는 비수를 뽑아 벽에 구멍을  다시 뚫었다. 순치황제가 그에게 준 경서
는 바로 그 구멍안에 있었다. 그는 기름을 먹인 베를 풀어 살펴보고 차
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벽돌로 다시 그  구멍을 막았다. 반두타는 
이미 자기 부하가  되었으니 다시는 시위를 불러 경서를 호송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경서를 품속에 집어넣고는 곧장 자금성으로 걸어들어 갔다. 궁밖
에 이르게 되었을 때 문을 지키던 시위는 한 젊은이가 평민의 차림으로 
곧장 궁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호통을 내질렀다.
[이 녀석, 무엇하는 놈이냐?]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는 나를 모르시오? 나는 궁안의 계공공이외다.]
그 시위는 그를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황상의 곁
에서 가장 총애를 받는 계공공인지라  재빨리 온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계공공, 그런 옷차림을 하고 계셔서... 헤헤헤]
[황상께서 나에게 중요한 일을 시켰는데 빨리 돌아와 보고를 드려야 하
기 때문에 미처 옷을 바꿔입을 겨를이 없었구려.]
[네네, 계공공의 얼굴이 불그레 하신 것을 보면 이번 일은 반드시 순조
롭게 처리된 것 같군요. 황상께서는 반드시   큰 상을 내리실 겁니다.]
위소보는 자기의  거처로 돌아가 태감의 복색으로  바꾸어 입고 경서를 
헌 보따리에 싼 다음 곧장 서재로 황제를 만나러 갔다.
강희는 소계자가 뵙기를 청한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말했다. 
[빨리 들어와,  빨리 들어와.]
위소보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강희는 안쪽 서재로 통하는 문 입구
에 서서 기쁜 듯 말했다.
[제기랄, 소계자,  빨리 기어들어와. 어째서 그토록  오래 나가 있었느
냐?]
위소보는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며 말했다.
[황상에게 하늘처럼 기쁜 일이 생기셨으니 축하드립니다.]
강희는 그 말을  듣자 부황이 이 세상에 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챘
다. 그는 가슴이 크게 두근거리는 걸 느끼고 몸을 몇 번 휘청거렸다.
그는 손을 뻗쳐 문설주를 잡고 말했다.
[들어와서 천천히 이야기 하자꾸나.]
위소보는 안쪽 서재로 들어가  방문을 닫아걸고 빗장마저 질렀다. 그리
고 서가의 사방을 한 번  돌아보았다. 달리 시중드는 태감이 없는 것을 
보고 그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황상, 저는 오대산에서 노황야(老皇爺)를 만나뵈었습니다.]
강희는 그의 손을 꼭 쥐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부황... 정말 오대산에서 출가를 하셨더냐? 그분께서는...뭐라고 말씀
하시더냐?]
위소보는 청량사에서 어떻게 노황야를 만나게 되었고  서장의 라마들이 
어떻게 해를 끼치려고 했으며,  자기가 어떻게 용감하게 나서서 죽어라 
하고 노황야를  보호해 드리면서 지켰던가,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소림 
십팔나한이 도움의  손길을 뻗쳐 무사했다는 일등을  일일이 이야기 했
다.
이 일은 본래  매우 아슬아슬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입으로 이야기 
하면서 다시 삼푼쯤 보탰고 자기가 충성스럽고 용감하게 나섰던 사실에 
대해서는 반쯤 거짓말을 보태어 이야기 했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자 강희는 손에 땀을  쥐며 연신 부르짖었
다.
[정말 아슬아슬했구나.]
그리고 다시 말했다.
[즉시 일 천명의 시위를 산 위로 보내 신경을 써서 지켜드려야 겠다.]
위소보는 고개을 가로저었다.
[노황야께서는 십중팔구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순치황제가 했던 말을 일일이 이야기 했다.
강희는 부친이 자기보고'그는 훌륭한 황제이다. 먼저 조정의 일을 생각
하다니, 나를 닮지 않았구나....'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참을 수 없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반드시 가야겠다. 나는 반드시 가야지.]
위소보는 그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려  경서를 꺼내 두 손으로 바쳐들
고 말했다.
[노황야께서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황상에게 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천하의 일이란 반드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을 따라야 하
며 억지로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중원의 백성들을  위해 복을 베풀어 
준다는 것은 가장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약 천하의 백성들 모두가 우
리더러 가라고 한다면  우리들은 자연 온 곳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노황야는 또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해드리라고 했죠. "천하가 태평하도
록 하려면 영원히 세금을 증가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한 마디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다면 바로 나에게 잘 대하는 
것이고 나는 마음 속으로 기뻐할 것이다."]
강희는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리고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위소보가  내미는 보따리를 받아 들더니 보따리
를 풀어 헤쳤다.  그리고 한 권의 사십이장경을 펼쳤다.  그런데 첫 장 
위에는 영원히  세금을 증가하지 말라는  뜻의 영부가부(永不加賦)라는 
네 글자가 씌어 있었다. 필치는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것이 과연 부황
의 친필이 아닌가.
그는 흐느끼며 말했다.
[부황의 글씨를 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더니 순치황제의  몸이 건강한지, 그리고 지금의 모
습은 어떠한지, 청량사에서 너무나  고달픈 생활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
지 등을 물었다.
위소보는 사실대로 일일이 이야기  했다. 강희는 그만 서글픔이 복받치
게 되어 다시 대성통곡을 했다.
위소보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제기랄, 내가 그와 함께 크게 울어 준다면, 그가 나에게 내려 줄 것이 
반드시 더 많아질 것이다. 어쨌든  운다는 것은 돈 드는 것은 아니잖는
가?)
울려고 마음만 먹으면 정말 우는 그였다. 몇 번 흐느낀 끝에 눈물을 졸
졸 흘렸는데, 흐느끼는 것이 정말 구슬프기 이를데 없었다.
강희는 슬픔을 참을 수 없어 우는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그 자신이 신
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
로 감정을 억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위소보는 일부러 그렇게 하기로 
작정하였는지라 훌륭히도 대성통곡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우는 것은 과거 그가 양주에 있을 때 특기로 삼았던 것이다. 어머
니가 대나무 판대기로 미처 볼기짝을  때리기도 전에 그는 하늘이 무너
지고 땅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울음을 터뜨렸었다. 결코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눈물을 쫙쫙 흘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진짜로 우
는 것인지 가짜로 우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강희는 한동안 울더니 울음을 거두고 물었다.
[나는 부황이 그리워서 운다만 그대는 왜  나보다 더 슬피 우는가?  그
것은 무엇 때문이지?]
[저는 황상께서 슬피  우는 것을 보고 다시  노황야의 부드럽고 인자한 
태도와 나에게 연신 칭찬을 하시며  제가 목숨을 돌보지 않고 노황야를 
지켜 주었다고 무척 저를 귀여워하시던  일을 상기하게 되어 그만 마음
속의 슬픔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흐느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황상께서 걱정을 하시고 또  빨리 돌아와 보고를 해야 한다는 사
실을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정말 오대산에서 노황야의 시중을 들며 노
황야께서 나쁜 사람들에게 업수히 여김을 당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입니
다."
"소계자, 너는 정말 훌륭하구나. 내 반드시 크게 상을 내릴 것이니라."
위소보는 그래도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면서 말했다.
"황상께서는 이미  저에게 잘 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아무런 
상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노황야께서 편안하시기만 한다면 무척 기
쁘게 여길 것입니다."
그는 신룡도에 한 번 갔다 오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소리 높이 '교주
께서 선복을 영원히 누리고  수명은 하늘처럼 길 것입니다'라고 외치는 
말을 하면서도 전혀 쑥스럽게 여기지 않는 광경을 본 이후로 더욱더 낯
가죽이 두텁게 되고 아첨을 떠는 재간도 크게 증진하였다. 그리하여 남
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더욱더 과장해서 아첨을 떨 수 있었다.
강희는 그 말을 정말로 알아듣고 말했다.
"나도 정말 부황께서 돌보실 사람이 없는 게 걱정이 된다. 그대는 행전 
화상이 집돼지같이 매우 조잡하고  우둔하다고 했지. 부황의 곁에 힘을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정말  나로 하여금 마음을 놓을 수 없게 
하는구나. 소계자, 부황께서 그토록 그대를 좋아하셨다니......"
위소보는 이 같은 말을 듣게 되자  그만 입이 딱 벌어져 다물지를 못했
다. 그리고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어이구, 어이구, 이번에야말로 재수없게  걸리게 되었구나. 과장을 한
다는 것이 그만 너무 지나치고 말았구나.)
강희는 계속해서 말했다.
"......본래 내 곁에서 그대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지. 하지만 아들
된 도리로 부친에게  효성을 다하자면 손 곁에 있는  물건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택해서 아버님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냐. 그대야말로 내게 가
장 도움이 되는  수하인이 아닌가? 나이는 어리지만  매우 재능이 있고 
또 우리 부자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니......"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부르짖고 있었다.
(아이구, 야단났구나! 엄마야, 오대산에  보내져서 노화상들과 함께 있
을 바엔 차라리 감옥속으로 들어가 앉아 있는 것이 낫겠다.)
강희는 말했다.
"이렇게 하지. 그대는 오대산으로 가서  출가하여 화상이 된 다음 바로 
청량사에서 보황을 돌보시도록 하게나."
위소보는 형세가 매우 다급해지는 것을  느끼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
다. 비단 노화상을 모셔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또 화상이 되어야 한
다면 그야말로 일이 크게 잘못되는 형편이 아닌가?
그리하여 강희황제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재빨리 말했다.
"노황야를 모시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저보고 화상이 되
라고 하시는 것은...... 나는 하지 않겠소이다."
강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그대에게 영원히 화상이 되라는 것은 아닐세. 그저 부황께서 
한마음 한뜻으로 도를 닦고 계시니까  그대가 화상이 되어 시중을 든다
면 좀더 편리할 게 아닌가 말일세. 장래...... 장래...... 그대가 환속
을 하고자 한다면 물론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지."
그 말은 이후 순치황제가 늙어서 극락세계로 가게 되었을 때 네가 화상
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막지 않으리라는 뜻이었다.
아무리 위소보의 임기응변이 뛰언나다고 하지만 이때만은 속수무책이었
다. 그는 황제가  자기에게 무척 잘 대해 주고  있으나 시킬 일을 이미 
언급한 이상 고집을 피우고 응낙하지  않는다면 여지껏 쌓은 공이 수포
로 돌아가게 되고,  어쩌면 황제는 얼굴을 붉히며  즉시 자기의 머리를 
자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위소보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저는...... 저는 황상의 곁을 떠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왁 하니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 
진짜로 우는 것이었다. 물론 이번에 우는 것은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겠
다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화상이 되고 싶지 않아서 우는 것이었다.
강희는 크게 감동되어 가볍게 그의 어깨죽지를 두드리며 부드러운 어조
로 말했다.
"이렇게 하도록 하지. 그대가 가서 몇  년 동안 화상이 되어 부황을 모
셔 주게. 그런 연후 내가 달리 사람을 보내 그대와 교대시켜 그대를 나
의 곁으로 불러오면 되지 않겠는가? 부황께서는 나보고 만나러 오지 말
라고 했다지만 나는  반드시 가야겠네. 그때 그대는  다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네. 소계자,그대는 순순히 나의 말을 들어. 그러면 장래에 그대
에게 나는 큰 벼슬을 내리도록 하지."
그런데도 위소보가 울음을 멈추지 않자 다시 위로의 말을 했다.
"그대는 절에서 여가가 있으면 책을  읽고 글을 익혀 이후 커다란 벼슬
아치가 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장래 큰 벼슬아치가  되고 안 되고는 상관할 것이  없다. 그러나 당장 
화상이 되는 것은 뻔한 일이로구나.)
그는 다시 생각을 돌렸다.
(내가 오대산으로 가서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여 노황야로 하여금 나를 
되돌려 보내도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황제께서 나의 
시중을 받지 못해 밥을 못 먹었으며 이번 한두 달 떠나 있는 사이에 살
이 쭉 빠졌다고 한다면 노황야께서는  아들을 사랑한 나머지 반드시 나
보고 궁으로 되돌아가라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계책이 떠오르자 위소보는 천천히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황상께서 어떤 일을 시킨다 하더라도 저는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끓는 
물 속이나 타는 불길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더라도 사양하지 않을 것입
니다. 화상이 되라는 것은  고사하고 후레자식이 되라 하더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황상께서는 안심하십시오. 나는 반드시 진심과 정성을 다
해 노황야를 모시겠으며 노황야께서  몸이 편안하여 백세까지 사시도록 
하겠소이다...... 그리고......  영원히 복을 누리고  수명이 하늘처럼 
길도록 하겠소이다."
강희는 크게 기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서울을 떠난 지 몇 달  동안에 학문도 늘어서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구나. 그런데 오대산에서 어찌하여  이토록 지체했지? 좀처럼 노황야를 
만날 수 없었던가 보군?"
위소보는 속으로 신룡도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청량사의 주지방장이나 또 그 옥림 노법사께서는 무슨 말
을 하더라도 그 절간에 노황야게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
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갈파할 수도 없어서 이 절에서 저 절로 왔
다갔다하며 법사를 하도록 했지요.  오늘은 현통사에 가서 불공을 드리
고 내일은 다시 불광사로 가서  시주를 하곤 했습니다. 오대산 위의 수
천 명이나 되는 크고 작은 화상들 가운데 나는 적으도 천 명은 알게 되
었죠. 만약 그 고약한 라마들이 노황야를 시끄럽게 하지 않았더라면 오
늘날까지도 승려들에게 시주를 하며 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강희는 웃었다.
"이번에야말로 많은 돈을 썼겠군. 쓴 돈은 내무부(內務部)로 가서 모조
리 찾도록 하게나."
그는 액수를 묻지 않았다. 위소보가 이렇게 큰 공을 세웠고 또 화상 노
릇을 하고자 하니 그가 얼마만큼 돈을 크게 불려 이야기 하더라도 좋다
는 생각에서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에게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지난 번 황상께서  나를 보내 오배의 
가산을 몰수하게 하셨을 때 소신은 득을 좀 보았습니다. 당시는 보고드
리기가 겸연쩍어  말씀을 드리지 않았지요.  그런에 이번에 오대산으로 
가 노황야를 뵙게 되었을 때 그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아 황상에 대해서
는 어떤 나쁜  일을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번 얻은 은자를 모조리 절에다 시주를 했습니다.이는 소신이 황상
을 도와 음덕을 쌓자는 것이며  부처님이 보살피셔서 노황야와 황상 두 
분께서 하루속히 만나게 해달라고 기원을  한 셈이죠. 그 돈은 본래 황
상의 것이니 다시 더 탈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속셈은 그대들  부자가 일찌감치 만나게 된다면 자
기 자신이 며칠이라도 화상 노릇을  덜하게 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었
다. 동시에 그와 같은 말을  함으로써 이후 누가 위소보가 오배의 가산
을 몰수하게 되었을 때 거액의 액수를 집어 삼켰다고 고발을 한다 하더
라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준비를 해놓자는 것이었다.
"나는 일찍이 황상을 대신해서 오대산 위에서 시주를 했는데 이제 와서 
캐묻는다니 어찌 된 노릇입니까?"
강희는 그와 같은 위소보의 말을 듣고는 더욱 기뻐서 연신 고개를 끄덕
이며 물었다.
"오대산은 놀기가 좋더냐?"
위소보는 즉시 오대산의 풍경을  이야기했다. 강희는 매우 흥미있게 듣
고 난 다음 말했다.
"소계자, 그대가 먼저 가게. 그러면  나는 얼마 후 뒤따라가겠네. 우리
들은 방법을 강구해서 부황을 궁으로 모시도록 해야 하네. 그 어르신께
서 만약 굳이 환속을 하고 황제 자리에 오르시는 것을 마다한다면 궁에
서 도를 닦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그것은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서재  밖에서 신발 끄는 소리가 나면서  한 맑은 여인의 
음성이 들렸다.
"황제 오라버니, 황제 오라버니, 그대는 어째서 아직도 나와 무공을 겨
루지 않고 있죠?"
그러면서 쿵쿵 하니 힘주어 문을 열었다. 강희는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문을 열어 주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누구일까? 설마하니 건녕공주(建寧公主)일까?)
그는 문가로 가서 빗장을 뽑고  서재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붉은 비단
옷을 입은 소녀가 일진의 바람처럼 달려들어오면서 말했다. "황제 오라
버니, 나는 한참 동안 기다렸단 말이에요. 여지껏 소식이 없는 것을 보
면 아마 내가 두려웠던 모양이죠? 그런가요?"
위소보는 이 소녀의  나이가 십 오륙 세 정도  되었으며 갸름한 얼굴에 
엷은 입술을 하고 있고 눈썹과  눈동자가 민활하게 움직이는 것이 꽤나 
깜찍하다고 생각했다.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누가 너를 두려워했다는 것이냐? 내가  보기에 너는 나의 제자조차 이
기지 못할 것 같은데 무슨 자격으로 나와 손을 쓰겠다는 것이냐?"
소녀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오라버니는 제자를 거두어들였나요? 그가 누구죠?"
강희는 왼쪽 눈을 위소보에게 찡긋해 보이며 말했다.
"이 자는 바로 나의 제자  소게자이다. 그의 무공은 내게 배운 것이지. 
빨리 사숙인 건녕공주에게 인사를 드려라."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건녕공주였군.)
그는 노황야에게 여섯 명의 딸이 있었는데 다섯 명의 딸은 일찍이 요절
을 하고 이 공주만이 남았으며 이  공주는 또한 황태후가 친히 낳은 딸
임을 알고 있었다.
위소보는 지극히 황태후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평소에는 자녕궁으로 가
까히 다가가지도  않는데다가 공주마저 황제의 서제로  잘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에야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는 강희의 말을 듣고 그
들 남매가 장난치는 것을 거들어 줄 겸 싱글벙글 웃으면서 앞으로 나가 
문안을 드렸다.
"사질 소계자가 사숙 어르신에게 인사 드립니다. 사숙께서는 만복을 누
리시기를......"
건녕공주는 히히 하고 웃더니 갑자기  한 발을 들어 위소보의 아래턱을 
걷어찼다. 이 발길질은 사정을 전혀 두지 않았는데다가 위소보가 한 다
리를 꿇고 그녀의 발치에 몸을 구부리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피할 수
가 없었다. 그의 한 마디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아래턱이 갑자기 발길
에 걷어채여 위로 올려지는 바람에  그만 입이 다물어지게 되었고 대뜸 
혓바닥을 깨물게 되었다. 아픔에 그는  아! 하는 소리를 크게 내질렀고 
입을 벌리자마자 흘러나온 선혈로 앞섭자락은 피로 물들고 말았다.
강희는 놀라 부르짖었다.
"너는...... 너는....."
건녕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 그대의 제자는  무공이 형편없군요. 나는 발길질로 한 
번 그의 재간을 시험해 보았는데 그는 피하지도 못했잖아요. 내가 보기
에 그대 자신의 무공도 그 정도에 불과할 것 같네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 깔깔거리고 웃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분노가 치밀어올라 마음속으로  몇 수 십번이나 
못난 계집 이라는 욕을 했다.
강희는 위소보에게 위로의 말을 던졌다.
"어떤가? 혓바닥을 깨물었는가? 아프지 않을까?"
위소보는 쓰디쓰게 웃었다.
"그런 대로 괜찮습니다. 그런 대로 괜찮아요."
혓바닥에 상처가 났기 때문에 말하는 것도 똑똑하지 못했다.
건녕공주는 그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했다.
"그런 대로 괜찮아요, 그런 대로 괜찮아요."
그리고 다시 웃으며 강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자, 우리 무공을 겨루러 가요."
지나간 일이지만 공주는 황태후가 강희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재미있게 여거ㅕ다. 그래서 모친에게  자기에게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황태후는 그녀에게 약간의 무공을 가르쳐 주는 척 했다.
호기심이 강한 그녀는 어머니가 자기에게 얼렁뚱땅 하며 오라비를 가르
치는 만큼 마음을 전혀 쓰지  않는지라 궁중의 시위들에게 권법을 가르
쳐 달라고 청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몇수 배우고 저기에서 몇 
식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와 같이 삼년 동안 연마하는 사이에 어느 정도
의 성과가 있었다. 며칠 전  몇 수의 금나수법을 배워 시위들과 시험을 
하게 되었는데 모두들 양보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하나같이 소공주가 자신들을 내던지면 그럴싸하게 낙화유수처럼 
나가떨어지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녀는 뭇시위들이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그런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재미없게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황제  오라버니에게 무공을 겨루자고 
청을 하게 되었다.
강희는 오랫 동안 위소보와 무공을  겨루지 못했던 터라 손발이 근질근
질하던 참이었는데  누이동생의 그와 같은 청을  받고 한바탕 어울리게 
되었다.
두 사람은 바로 그 조그만 전각에서 손을 썼다. 강희는 반은 진짜고 반
은 가짜로, 그리고 반은 양보하는 척했으나 반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상태로 그녀를 상대했다. 그리하여 다섯  번을 겨룬 결과 네 번을 이기
게 되었다.
건녕 공주는 화가 난 나머지 다시 모친에게 초식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
다.
황태후는 중상을 입은 이후 가까스로 치유되었으나 심기가 크게 불편해
져 있었으므로 이  말을 듣고는 대뜸 그녀를  내쫓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부득이 시위를 다시 찾아가 몇  수의 금나수를 배우고 이 날 다
시 강희와 싸우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위소보가 궁으로 돌아와 기다란 이야기를 늘어놓는 바람에 강희는 그만 
그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부황의 소식을 접하게 되니  슬픔과 기쁨에 얽혀 정신이 오락가락 
하게 되었는데 어찌 누이동생과 장난질을 할 흥미가 나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입을 열었다.
"지금 나는 요긴한 일이 있어서 너와  놀 여가가 없다. 너는 다시 가서 
연마를 해라. 며칠 후에 다시 겨루도록 하자."
건녕공주는 초승달 같은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말했다.
"우리의 약속은  강호에서 영훙호걸들이 무공을  겨루자는 약속과 다를 
바 없어요. 그야말로 만나지 않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죽음의 약
속이에요. 그런데 그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천하의 영웅호걸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겠어요? 그대가 무공을 겨루러 오지 않는 것은 그거야
말로 졌다는 것을 시인하는 거예요."
이와 같은 강호의 말투는 시위들이 그녀에게 가르쳐 준 것이었다.
"좋아, 내가 졌다고 인정하지.  건녕공주는 무공이 천하제일이지. 주먹
으로 남산의 호랑이를 후려치고 발로는 북해(北海)에 웅크리고 있는 고
룡(蛟龍)을 걷어찼다고 해두지."
건녕공주는 웃었다.
"발로 북해에서 웅크리고 있는 털이 난 벌레를 찼다고나 해두죠."
그리고 그녀는 다시 발을 들어서는 위소보를 걷어차려고 했다.
위소보는 몸을 날려  옆으로 피했다. 그렇게 되자  그녀는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한 꼴이 되었다. 그녀는 황제가 오늘 자기와 무공을 겨루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시큰둥해졌다.
시위들은 체구가  우람해서 정말 싸우게 된다면  자기가 반드시 진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이 젊은 태감은 나이나 키가 
자기와 비슷하고  솜씨 또한 민활한지라 무공을  겨루는 상대로 삼으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대의 사부가 나를 두려워하여 감히 손을 쓸 수 없다면 그대가 
나를 따라와요."
강희는 언제나 이 활발하고 영리한 누이동생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그녀의 흥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분부했다.
"소계자, 그대가 공주를 상대로 놀아  줘. 그리고 내일 다시 와서 시중
을 들도록 하게나."
건녕공주는 갑자기 부르짖었다.
"황제 오라버니, 이 일초를 받아요."
그리고 그녀는 희고 작은 주먹으로 종고제명(鐘 齊鳴)이라는 일초를 펼
쳐 강희의 양쪽 태양혈을 노리고 후려쳐 왔다.
강희는 소리쳤다.
"훌륭하다!"
그는 팔을  들어 막으면서 몸을 옆으로  비틀었다. 동시에 추창망월(推 
望月)이라는 초식으로 변화시켜 그녀의 등을 가볍게 밀쳤다.
그렇게 되자 공주는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고 바깥 쪽으로 몇걸음 밀려
나게 되었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쳇 하고 웃었다. 공주는 수치가 분노
로 변해 욕을 퍼부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왜 웃어!"
냅다 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귀를 잡고 서재에서 끌어내었다. 위소보가 
만약 막거나 피하려고 했다면 공주는 그의 귀를 잡아당길 수 없었을 테
지만 감히 무례한 행동을 할 수가  없어 그녀가 붙잡고 비트는 대로 내
버려 둔 것이었다.
건녕공주는 그의 귀를 단단히 쥐고 기다란 낭하를 따라 걸어나갔다. 서
재밖에 서서 시중을 들고 있던  줄줄이 늘어선 시위들과 태감들은 이를 
보고 모두 우스꽝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위소보의 권세를 염두에 두
고 어느 누구도 소리 내어 웃는 사람이 없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됐소. 이제 손을  놔주시오. 그대가 가자는 대로  내가 따라 갈테니까 
말이오."
"이 무법천지로 날뛰는 도적 두목을  오늘 내가 잡았는데 쉽게 놓아 줄 
리가 있느냐?  내 먼저 그대의  혈도를 짚은 이후에 다시  말하기로 하
자."
그리고 그녀는  식지를 뻗쳐내더니 그의 가슴팍과  아랫배를 힘주어 몇 
번 찔렀다. 그러나 그 몇 번의 수작은 그야말로 헛손질에 불과했ㄷ.
위소보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혈도를 짚혔다!"
그리고는 털썩 주저앉아 눈을 멍청하니 뜨고 입을 헤 벌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는 발끝으로 가볍게 그를 한 번 차
며 호통을 내질렀다.
"일어나!"
위소보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공주는 자기가 어떻게 하다가 정말
로 그의 혈도를 짚은줄 알고 말했다.
"내 그대의 혈도를 풀어 주지."
그리고는 발을 들어 위소보의  허리를 걷어찼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
했다.
(이 계집애는 나의 혈도를 풀지 못하니까 또 걷어차려고 하는구나.)
그 즉시 그는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벌떡 뛰어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공주, 그대의  점혈수법이 정말로 고명하구려.  아마 황상까지도 그와 
같은 점혈수법은 모를 것이외다."
공주는 말했다.
"나이어린 태감이 정말 교활하기 이를  데 없군. 내가 언제 점혈수법을 
배웠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녀는 위소보의 눈치가 빠른 것을 보고 역시 기뻐하며 말했다.
"나를 따라와요."
위소보는 그녀를 따라 그와 강희가  무공을 겨루던 집으로 들어가게 되
었다.
공주는 말했다.
"문을 걸어요. 남들이 와서 훔쳐 배우지 못하게."
위소보는 웃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까짓 얄팍한 무공을 누가 훔쳐 배운다는 것이야?)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 문을 닫았다.
공주는 빗장을 들고서는 그에게 건네 주는 체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
다. 위소보는 정수리에 한 차례 격렬한 통증을 느끼면서 그만 인사불성
이 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자 공주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양손으로 허리를 
짚고 버티어 선 채 이렇게 말했다.
"밥통 같으니, 무공을 배우는 사람은  눈으로 여섯 갈래를 지켜보고 귀
로는 팔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그대
에게 한 대 후려치는데도 그대는 어찌하여 방비하지 못하는 것이냐? 그
래가지고 무슨 무공을 배우겠다는 것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나는......"
머리가 빠개지듯 아팠다. 갑자기  왼쪽 눈이 끈적끈적해지면서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코에는 피비린내가 풍겼다. 그제서야 그는 빗장에 얻어
맞어 머리가 깨져 피가 흘러내리고 있음을 알았다.
공주는 빗장을 흔들며 호통을 내질렀다.
"사내라면 빨리 일어서서 다시 덤벼!"
그리고 휙 하니 다시 빗장으로 그의 어깻죽지를 때리려고 했다.
위소보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공주는 빗장을 휘
둘러 그의 발을 치려고 했다.  위소보는 몸을 돌려 피하는 동시에 손을 
뻗쳐 빗장을 낚아채려 들었ㄷ.
공주는 부르짖었다.
"훌륭하군!"
그리고는 빗장을 번쩍 쳐들더니  그의 가슴팍을 내지르려고 했다. 그런
데 그 빗장을 훽 뒤집어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힘주어 그의 오른쪽 뺨
을 때리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눈앞에 불똥이 마구 튀는 것을 느끼고 몇 걸음 휘청거렸다.
공주는 부르짖었다.
"이 녹림의 도적놈 같으니! 내 너를 반드시 죽여야겠다."
그리고 빗장을 힘주어 옆으로  쓸어쳐왔다. 위소보는 철썩 땅바닥에 엎
드려 피했다.
공주는 크게 기쁜듯 빗장을 들어 그의 뒤통수를 맹렬히 후려쳤다. 위소
보는 뒤통수에서  바람소리가 세차게 이는 것을  느끼고 깜짝놀라 급히 
몸을 뒹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빗장은  바닥을 치고 말았다. 공주는 큰소리로 부
르짖었다.
"어이쿠!"
이번에는 너무 힘을 주었기 때문에  그녀의 손아귀에 격렬한 통증을 느
꼈던 것이다.
크게 노한 그녀는 위소보의 허리를 향해 힘주어 발길질을 해왔다. 위소
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투항이오! 투항! 싸우지 않겠소이다."
그러나 공주는  막무가내였다. 빗장을 들고  다시 내려치는데 이번에는 
그의 아랫배를 퍽  하니 후려쳤다. 그런데 다행히  그의 품속에 숨기고 
있는 오룡령 위를 때려서 아프지는 않았다. 막 일어나려고 하던 위소보
는 다시 그 바람에 쓰러지고 말았다.
공주는 빗장을 들어  다시 한 번 후려치는가 하면  또 내려치면서 욕을 
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내가 때리고 있는데 감히 피해?"
공주의 힘은 그렇게 센 편이 아니었으나 손을 쓰는 데 있어서는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는 것이 금방이라도  그를 때려 죽일 것만 같았다. 위소
보는 놀람과 분노에 얽혀서는 힘주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공주는 빗장을 들고 곧장 후려쳐 왔다. 위소보는 왼손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 그러자 우지끈 하는 소리가 나면서 팔뼈가 하마터면 분지러질 뻔
했다.
그는 급히 속으로 생각했다.
(공주는 나와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어째서 나를 죽이려
고 하는 것일까? 아, 그렇다.  그녀는 황태후의 당부로 나의 목숨을 빼
앗으려고 하는구나.)
그와 같은 생각이 들자 결코 그녀가 마음대로 구타하는 것을 내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오른손의 식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뻗쳐서는 쌍룡
창주(雙龍 珠)라는 일초를 펼쳐 공주의 눈을 찔러갔다.
공주는 어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한 걸음 물러섰다. 위소보는 왼발을 
옆으로 걷어찼다.
공주는 털썩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정말 치기냐?"
위소보는 두 손으로 빗장을  비틀어 빼앗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를 
내려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공포와 분노의 빛이 떠오르는 것
이 아닌가!
그는 속으로 깜짝 놀라서 생각했다.
(이곳은 황궁의 내원이다. 내가 이 빗장을 내려친다는 것은 대역무도한 
짓이다. 그녀를 죽여서 화시분으로 녹여 버리지 않는 이상 후환이 따를 
것이다.)
이와 같이 주저하는 바람에 손에  높이 쳐들었던 빗장을 끝내 내려치지 
못했다.
공주가 소리쳤다.
"이 죽일 태감같으니, 빨리 나를 붙잡아 일으키지 못해?"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정말 나를  죽이려 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즉시 왼손을 뻗쳐 그녀를 잡아 일으켜 주었다.
공주는 말했다.
"그대의 무공은 나만 못해요. 나는  그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쓰러
졌을 뿐이에요. 조금 전 그대는 투항한다고 소리치고서 어째서 또 덤벼
든 거지?  사내대장부가 어째서  무림의 규칙을 지키지  않느냔 말이에
요?"
위소보는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바람에 눈마저  제대로 뜰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는 소맷자락으로 닦아내려고 했다.
공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졌어요.  형편없는 것 같으니.  자, 내가 그대의  피를 닦아주
지."
그리고 품속에서 한 조각의 하얀 손수건을 꺼내더니 몇 걸음 다가왔다.
위소보는 한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소신은 감당할 수 없소이다."
공주는 말했다.
"우리들은 강호의 영웅호걸이니 응당  복이 있으면 함께 누리고 어려움
이 있으면 함께 당해야 하잖아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 주었다.
위소보는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기를 맡고 가슴이 크게 설레
이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이때 두 사람의 간격은 너무나 가까웠다.
위소보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하얀  피부를 대하게 되자 속으로 생
각했다.
(이 나이어린 공주는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
공주는 말했다.
"몸을 돌려봐요. 내 그대의 뒤통수의 상처가 어떤지 봐 드리겠어요."
위소보는 그 말대로 몸을 돌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에 나는 너무나 의심이 많았구나.  원래 이 공주는 정말 장난삼아 
한 짓이었다. 다만 승부욕이 강해서 사정없이 손을 썼을 뿐이다.)
공주는 손을 뻗쳐 가볍게 그의 뒤통수의 상처를 어루만지더니 웃으면서 
물었다.
"매우 아픈가요?"
위소보는 대답했다.
"괜찮은 편이오......"
별안간 위소보는 등에 격렬한 아픔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발로 거는 바람에 땅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본래 공주
는 살그머니 신발 속에 감추어 두었던 단도를 꺼내 느닷없이 암습을 가
해온 것이었다. 그리고 위소보가 엎어지자 왼발을 들어 그의 등을 밟고
는 단도를 들고서 그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각각 한 번씩 찌르
며 웃었다.
"매우 아픈가요?  그대는 그런 대로  괜찮다고 했으니까 좀더  찔려 봐
요."
위소보는 그만 깜짝놀라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제야말로 나는 정말 죽게 되었구나.)
그런데 등에는 보의가 몸을 지켜  주고 있었기 때문에 단도가 들어가지 
않았다. 다리의 두 곳 상처도 중상은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죽을 것처럼 
아파왔다. 그는 홍부인이 가르쳐 준 제2초 소련횡진이라는 수법을 써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첫째로 먼저 상처를 입은데다가  기력이 없었고 둘째로는 그 일
초를 익숙하게 연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바둥거리면서 그녀의  사타구니 아래쪽으로 기어들어가  그녀의 등뒤에 
가 서려고 했지만 행동이 너무  느려 몸을 움직이자마자 엉덩이가 다시 
칼질을 당하게 되었다.
비수를 한 번 찌를 때마다 그녀는 깔깔거리고 웃었다.
"매우 아픈가요!"
위소보는 말했다.
"매우 아프군요. 공주의 무공이 고강하여 소신은 결코 어르신의 적수가 
될 수  없습니다. 강호의......호한이나 대영웅은  사람을 잡게 되었을 
때 반드시 목숨을 살려 준답니다."
공주는 웃었다.
"죽을 죄는 면할 수 있지만 살아서 당하는 고통은 용서받기 어렵지."
그리고 몸을 웅크리고 그의 엉덩이에 걸터 앉더니 호통을 내질렀다.
"그대가 움직이기만 하면 나는 단칼에 그대를 죽이고 말겠어요."
"소신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공주가 마침 앉은 곳이 바로  상처가 나 있는 곳이라 그는 아파
서 크게 신음을 내뱉게 되었다.
공주는 그의 허리띠를 풀더니 그의  두 발을 묶었다. 그리고 칼로 그의 
옷자락을 찢어 내더니 다시 두 손을 뒤로 해서 묶으며 말했다.
"그대는 나의 포로예요. 우리는 다시 일 초의 무공을 연마하도록 해요. 
이것은...... 이것은 제갈량의 칠금맹획(七擒孟獲)이라는 거예요."
청나라 황종들은 모두 다  삼국고사에 대해서 익숙했다. 삼국연의를 그
녀는 이미 세 번이나 통독했던  것이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연극을 본 
적이 있는지라 재빨리 말했다.
"그렇죠. 그렇지요. 제갈량이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번 놓아 주
었지요. 그러나 건녕공주께서 이  소계자를 사로잡았으니 그저 한 번만 
놓아 주시기만 하면 된답니다. 그대가  나를 놓아 준다면 나는 결코 배
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제갈량보다 일곱 배나  더 무서우니까
요."
공주는 말했다.
"안돼요. 나 제갈량은 불로써 등갑병( 甲兵)을 불태우겠어요."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말했다.
"소신은......등갑을 입지 않았소이다."
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의 옷자락을 태워도 마찬가지에요."
위소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안돼오! 안돼오!"
"뭐가 안 된다는 것이에요? 제갈량은  태우고자 할 때 태웠으며 등갑병
은 말이 많으면 못 써요."
그러다가 탁자 위 촛대 옆에 화도와  화석이 있는 것을 보고 즉시 화도
와 화석을 쳐서 촛불에 불을 당겼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제갈량은 맹획을  불태워 죽이지 않았소? 그대가  나를 태워 죽인다면 
제갈량이 아니고 그대는 조조가 되는 것이오."
공주는 그의 옷자락을 들치고는  촛불을 가져가 불태우려고 했다. 그러
다가 그의 윤이 도는 새카맣게 딴 머리롤 보자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서
는 촛불로 그의 딴 머리 끝을 태우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지극히 쉽게 불에 타들어가는 물체이다. 한 번 불을 당기자
마자 즉시 타오르기 시작했으며 찍찍  하는 소리와 함께 집안은 머리카
락 타는 냄새로 가득차게 되었다.
위소보는 혼비백산해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목숨만 살려주시오! 목숨만 살려주시오! 조조가 제갈량을 불태워 죽이
게 되었소."
공주는 끊임없이 낄낄 소리내어 웃었다.
"호호호, 이것은 일종의 횃불이네. 정말 재미있군."
위소보는 삽시간에  온머리가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위급한 
중에 힘이 크게 불어난 그는 몸을 퉁기듯하여 일어났다.
그리고는 머리를 들어 공주의 품속으로 부딪쳐 갔다. 공주는 어이쿠 하
는 소리를 지르며 미처 피하지  못하였고 위소보의 머리는 그녀의 아랫
배에 부딪쳤다.
그 바람에 머리에 붙었던 불길이  꺼지고 말았다. 공주는 두 손으로 옷
자락에 묻은 탄 재와 끊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털어냈다. 그런데 아랫
배가 몹시 아팠다.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발을 
들어 위소보의 머리를 마구 걷어찼다.  몇 번 발길질을 하지 않아 위소
보는 기절하고 말았다.
흐릿한 상태  속에서 위소보는 전신의 상처가  격렬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자기는 눕혀져 있었고 가슴팍을 드
러낸 상태였다.  옷과 잠뱅이, 그리고 내의가  모두 끌어올려진 상태였
다. 그리고 공주는 왼손에 한 웅큼의 하얀가루를 들고 있었고 오른손의 
단도로 그의 가슴팍에 한 가닥 삼사  푼 정도 길이의 상처를 내고는 그 
하얀 가루같은 것을 상처에 뿌렸다.
위소보는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물었다.
"무엇하는 것이오?"
공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시위들은 그들이 강도나  악적을 잡게 되었을 때  그 도적들이 제대로 
실토를 하지 않으면 상처에다가  소금을 뿌린다고 했어요. 그러면 크게 
아파 그들은 목숨을 살려 달라고 실토를 한다고 하더군요. 그렇기 때문
에 나는 전문적으로 그대와 같은  강호의 대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언제
나 몸에 소금을 지니고 다녔어요."
위소보는 상처가  난 곳으로부터 그야말로 온몸이  떨리는 듯한 아픔이 
전해져 오자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목숨만 살려주시오. 목숨만 살려주시오. 실토를 하겠소"
공주는 히히덕거리고 웃었다.
"이 밥통같으니. 이토록 빨리 실토를 한다면 무슨 재미가 있어요? 그대
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해요. '나는 오늘 너의 손에 떨어졌으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  눈살 한 번 찌푸린다면  나는 호한이 아니다.' 
그러면 내가 다시 그대의 몸에 몇  가닥의 상처를 내고 소금을 좀더 많
이 뿌리게 될 거예요. 그럴 때 다시 그대가 용서를 빈다면 재미있게 되
지 않느냔 말이에요."
위소보는 대노하여 욕을 했다.
"제기랄, 이 냄새나는 계집애......  이봐요, 나는 그대를 욕하는 것이 
아니오. 나는...... 나는 호한이 아니니 실토를 하겠소. 실토해요."
공주는 소금자루를 뿌리려고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고는 정색하
며 말했다.
"나는 건녕파(建寧派)의 장문이다. 무공이 천하에 제일 가며 그대와 같
이 온갖 못된 짓을 하는 대도적을 사로잡았으니......"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좋아. 나는 강호의 대도적이오. 오늘 무예가 남만 못하여 천하에
서 무공이 제일가는 건녕파의  장문인에게 사로잡혔으니 죽어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불초가 승복했으니 더 따지지 맙시다."
공주는 그가 강호 사내들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하는 것을 듣고 장강년 
등의 몇몇  시위가 그녀에게 들려준 것과  같은지라 속으로 재미있어서 
칭찬의 말을 던졌다.
"진작 이랬어야 했어요. 이왕 놀 바에야 좀 그럴싸하게 놀아야지 될 것
이 아니겠어요?"
위소보는 속으로 냄새나는 계집애니 썩어빠진 계집애니 하는 욕을 마구 
하고 있었다. 그러나 뼈속에까지 스미는 아픔은 욕을 한다고 해서 경감
되지 않았다. 일시 그녀가 도대체 태후의 명으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강호의 호걸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 이 못난 계집애가  이토록 악랄하니 설사 자기를 상대로 
해서 장난을 치는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한 목숨을 그녀의 손 아래에
서 사라지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옛날 목검병을 
혼내 주었던 계책이 퍽이나 효험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나이어린 처녀애들은 모두 다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던가.
그는 즉시 고통을 억지로 참고는 말했다.
"나는 갑자기 또 승복할 수가 없어졌구만. 장문인, 그대가 용기가 있다
면 나를 풀어 주시오. 우리 다시 한 번 겨루어 봅시다. 그대가 만약 나
의 무공이 고강하다고 생각하여 감히 손을  쓸 수 없다면 아예 나를 죽
이도록 하시오. 나는 죽어 원귀가 되어서 대낮에는 그대의 등뒤를 쫓아
다니고 밤에도 그대의 이부자리로  기어들어가서는 그대의 목을 움켜잡
고 피를 빨아 마실 테니......"
공주는 아! 하고 큰소리로 부르짖더니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왜 그대를 죽여야 하나요?"
"그렇다면 빨리 나를 풀어 주시오."
"풀어주지 않겠어요. 이 죽일 태감 같으니. 나를 놀라게 하다니!"
그리고 촛대를 들고서는 촛불로 그의 얼굴을 지지려 들었다.
촛불이 볼에 와닿자 찍 하는  소리가 났다. 위소보는 아파서 뒤로 고개
를 젖혔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로 그녀의 팔에 부딪쳐 갔다. 공주의 팔
이 충격을 받고 촛대가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촛불이 꺼지고 말았다. 그
녀는 대노하여 빗장을 들고서는 마구잡이로 위소보의 머리통을 치기 시
작했다. 위소보는 고통을 감당하기  어렵고 또 지독한 두려움에 휩싸여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살아남을 수 없겠구나.)
그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나는 죽었다!"
그리고 죽은 척하고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주는 노해 부르짖었다.
"죽은 척하는군. 빨리 깨어나요. 나와 함께 놀아요."
위소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공주는 가볍게 그를 한 번 찼다. 그러나 
그가 꼼짝도 하지 않자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되었어요. 내 그대를 때리지 않을테니 죽지 말아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죽고 나면 끝장나는 것인데 어떻게  죽지 말라는 것인가? 사리에도 닿
지 않는 말을 하는구나.)
공주는 머리카락에 꽂아 둔 비녀를  뽑아서는 그의 얼굴과 목에대로 몇 
번 찔렀다. 위소보는 고통을 꾹 참으며 꼼짝하지 않았다.
공주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제발 부탁이에요. 그대는...... 그대는......  나를 놀라게 하지 말아
요. 나는...... 나는 그대를 때려  죽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그대와  무공을 겨루면서 놀려고 한  거예요. 그런데 그대가..... 
그대가  이토록  밥통인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나를  이기지  못해
서......"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위소보의 코에서 경미한 숨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속으로 기뻐해서는 그의 심장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지 않는가.
그녀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죽일 태감같으니.  원래 죽지 않았군요. 이번엔  그대를 용서해 줄 
테니 빨리 눈을 떠요."
위소보는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공주는 다시 속아 넘어가지 않고 호통을 내질렀다.
"나는 그대의 눈알을 뽑겠어요. 그리하여 죽은 후 눈먼 귀신이 되어 나
를 찾지 못하게 할 거예요."
그리고는 그녀는 단도를 들고 단도의  끝을 그의 오른쪽 눈꺼풀에 갖다 
댔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몸을 굴려 피했다.
공주는 노해 부르짖었다.
"이 나쁜 꼬마녀석 같으니, 또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나는...... 그대
의 눈을 반드시 찔러 눈을 멀게 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훌쩍 다가들며 발을 뻗쳐 그의 가슴팍을 밟고는 단도를 들어 그
의 오른쪽 눈을 노리고 재빨리 찔러갔다.
이것은 그야말로 찌르는 시늉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몸과 함께 단도를 
내려찌르는데 그 단도의 기세가 너무나 세찼다. 비단 그의 눈뿐만 아니
라 찌른 단도가 골수를 뚫고는 뒤통수로 나올 지경이었다. 위소보는 두 
다리를 급히 움츠렸다가 무릎으로  그녀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공주는 휘청하더니 맥없이 쓰러졌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는  몸을 웅크리고 손을 뻗쳐 신발  속에 감춰 둔 
비수를 뽑았다. 그리고는 먼저 두  다리를 묶고 있는 허리띠를 잘랐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이어 공주의  머리를 힘주어 한번 걷어찼다. 일
시 그녀가 깨어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비수를 탁자 
다리에 꽂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서는 두손을 묶고 있는 옷자락을 칼날
에 갖다 대고 가볍게 문질렀다.
두어 번 문지르자 묶였던 옷자락이 동강이 났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죽음에서  목숨을 건진 셈이라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러나 몸에는 상처투성이라 여간 아프지 않았다.
(이 냄새나는  계집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로다. 그녀의 말투로 미루어 볼  때 정말 나와 장난을 치려고 했을 
것 같은데, 만약에 태후의 명으로  나를 죽이려 했다면 내가 죽은 척하
자 왜 두려워했겠는가. 그러나 어린애들이 장난하는 것 치고 이토록 흉
악할 수가 있나? 그렇군!  그녀는 공주이다. 애시당초 태감이나 궁녀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태감이나 궁녀가  죽던 살던 갓에 
그녀는 그저 한 마리의 개미를 눌러 죽이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그녀의 가슴팍에 다시한번 발길질
을 했다.
그런데 그 발길질에 그녀의 막혔던 숨통이 순조롭게 된 모양이었다. 공
주는 길게 신음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욕을 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위소보는 그렇잖아도 잔뜩 화가 나 있던 참이라 대뜸 손을 들어서는 철
썩 철썩 하고 그녀에게 두  대의 따귀를 갈겼다. 그리고는 가슴팍에 한 
대의 주먹을 내지르고 오른발을  옆으로 쓸어찼다. 공주는 다시 쓰러졌
다. 그든 대뜸  달려 올라가서는 그녀의 등을 타고  눌렀다. 그리고 두 
주먹으로 북치듯 그녀의 허벅지와 등, 볼기짝을 두들기며 부르짖었다.
"이 죽일  계집애, 냄새나는 계집애. 갈보가  낳은 계집애 같으니라구! 
내 너를 때려 죽이겠다."
공주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때리지 말아요. 때리지 말아. 그대는 예의도 모르는군요. 나는 태후에
게 말해서 그대를 죽이라고  할거예요. 그리고...... 황제로 하여금 그
대를 죽이라고 할 것이며 능...... 능지처참 시키겠어요."
위소보는 가슴이 서늘해져 손을 멈추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했다.
(이왕 손찌검을 한 것이니 아예 통쾌하게 때려 주자.)
그는 주먹을 쥐고 다시 몇 대를 때린 뒤 욕을 했다.
"너의 십팔대 조상까지 때려 죽이고  말테다. 너 이 냄새나는 계집애를 
때려 죽이고 말겠다."
몇번 후려치게 되었을 때 공주는  갑자기 쳇 하고 웃었다. 위소보는 매
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내가 그토록 힘주어 때렸는데도 그녀는 울지 않고 오히려 웃어?)
그리고 그는 탁자 다리에 꽂혀 있는 비수를 뽑아서는 그녀의 목에 갖다
대고 왼손으로 그녀의 몸을 뒤집으며 호통을 내질렀다.
"왜 웃지?"
그녀는 실눈을 가늘게 뜨고 온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정
말 기분이 매우 좋은 것 같았으며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토록 심하게 때리지 말아요. 그러나 너무 가볍게도 때리지 말아요."
위소보는 어리둥절했다. 혹시나 그녀가  갑자기 간계를 쓰는 것이 아닌
가 생각했다. 그리하여 힘주어  오른발로 그녀의 가슴팍을 밟고는 호통
을 내질렀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거야? 나는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겠다."
공주는 몸을 바둥거렸다. 그리고 코로 음음 하더니 몸을 일으키려고 했
다.
위소보는 호통을 내질렀다.
"꼼짝하지 마."
그리고 그녀의 이마를 힘주어 물었다. 공주는 다시 쓰러졌다. 위소보는 
상처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노기가 다시 끓어올라 철썩 철썩 그녀의 양
쪽 따귀를 네 대나 갈겼다. 공주는 다시 음음 하는 소리를 내었으며 숨
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 표정은  여전히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는 빛으로 가득차 있지 않은가.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내  얼굴을 때리지 말아요. 상처를 입게되어 태
후가 묻는다면 속일 수 없잖아요."
위소보는 욕을 했다.
"이 냄새나는 계집애.  이 천박한 것아! 너는  맞으면 맞을수록 기분이 
좋은 모양이지?"
그리고 손을 뻗쳐 그녀의 왼팔을  힘주어 두 번 꼬집었다. 공주는 아이
쿠 아이쿠 하는 소리를 몇번 내지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눈동자
에는 여전히 웃음이 맴돌고 있었다.
위소보는 다시 물었다.
"제기랄, 기분이 좋아?"
공주는 아무 대답도 않고 갑자기 눈을 감더니 갑자기 한발을 들어 위소
보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바로 그녀의 단도에 상처를 입은 곳이었다.
위소보는 아픔을  느끼는 순간 공주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양쪽 어깨를 
눌렀다. 그리고 그녀의 팔과 어깻죽지, 가슴팍, 아랫배 등을 힘주어 꼬
집었다.
공주는 깔깔거리고 웃으며 부르짖었다.
"이 죽일 태감 같으니, 소태감 같으니, 좋아. 공공, 아니 오라버니, 나
를 용서해 줘요. 나는...... 나는...... 감당할 수 없어요."
그녀가 그와  같이 부드러운 어조로 부르짖자  위소보는 갑자기 가슴이 
설레이는 것을 느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부르니 방소저가 배  안에서 나와 정이 가득 담긴 말을 
주고받을 때의 모양과 흡사하구나.)
그는 대뜸 노기가 크게 사그러졌다. 그러나 그녀가 도대체 어떤 꿍꿍이
속을 가지고 있는지 실로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공주가 
앞서 했던 것과 똑같이 그녀의 허리띠를 풀어서는 그녀의 두 다리와 두 
손을 묶었다.
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이 죽일 꼬마 같으니. 그대는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야?"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로 하여금 나쁜 마음을 품고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
오."
그리고 몸을 일으키며 식식거렸다.  전신이 아파와서 금방이라도 곧 기
절할 것 같았다.
공주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계자, 오늘 정말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대는 또 나를 때릴거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나를 때리지 않는다면 내 어찌 감히 그대를 때리겠소?"
"나는 움직일 수가 없어요. 그대가 다시 나를 때린다 하더라도 난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위소보는 침을 뱉고 말했다.
"그대는 공주가 아니오. 그대는 그야말로 천박한 계집이외다."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를 발로 한 번 찼다.
공주는 어이구 어이구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물었다.
"다시 노는 거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의 장난에 내 목숨이 반쯤 달아나고 말았는데 놀기는 뭘 더 놀아? 
이제 나는  제갈량이 되어 역시 등갑병을  불태우듯 그대의 머리카락과 
옷을 모조리 태우겠소."
공주는 다급해져서 말했다.
"머리카락을 태우면 안돼요......"
그리고 헤벌죽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나의  옷을 태우도록 하세요. 전신에  물집이 생긴다 하더라도 
나는 두렵지 않아요."
위소보는 침을 탁 뱉었다.
"쳇, 그대는 죽음이 두렵지 않겠지만  나는 그대와 더불어 실성한 짓은 
하지 않겠소.  나는 가서 상처를 치료해야겠소.  상처에 소금이 뿌려져 
있어서 따가와 죽을 지경이오. 정말 재미있는 줄 아시오?"
이제서야 그는 공주가 결코 자기를  살해할 뜻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손발에 묶었던 허리띠를 풀어 주었다.
공주는 말했다.
"정말 놀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내일 다시 와요. 좋죠?"
그녀의 어조에는 애원하는 듯한 뜻이 서려 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만약 태후와 황상께서 아신다면 나의 목숨이 붙어 있겠소?"
공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태후와 황상께서 어떻게 아시겠어요? 내일 그대
는 나의 얼굴을 치지 말아요.  몸에는 상처가 아무리 많아도 상관이 없
어요."
위소보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일은 올 수 없을 것이오. 나는  그대에게 너무나 많이 맞아 한두 달 
동안 상처를 조섭해야 할 것이오."
공주는 말했다.
"흥, 그대가 내일  오지 않겠다구요? 조금 전 나에게  무슨 욕을 했죠? 
우리 십팔대 조상까지 때려  죽이겠다고 했죠? 우리 십팔대 조상이라면 
바로 황제오라버니의  십팔대 조상이고, 황제  아버지의 십칠대 조상이
며,  태종황제의  십육대  조상이고,  또  태조황제의  십오대  조상이
고......"
위소보는 그만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이 딱 벌어져서는 속으로 야단
났다고 생각했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2. 맞을수록 좋아하는 여자

"그대는 노황야의 딸이 아니니 내가 그대의 조상을 욕한다 해도 황상과 
노황야, 그리고 태종황제와 태조황제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오."
공주는 대노해 입을 열었다.
"내가 어째서 노황야의 딸이 아니란 말이에요? 이 죽일 놈의 태감이 말
을 함부로 하는군. 내일 오후  나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어요. 죽일 
태감, 만약 그대가 오지 않는다면 나는 태후에게 그대가 나를 때렸다고 
고자질할 테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옷자락을 걷어올렸다.  눈같이 희고 고운 팔은 시커멓
고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모두 위소보가 비틀거나 꼬집어서 
생긴 자국이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전 나는 왜 이렇게 심하게 싸웠을까?)
공주는 다시 말을 이었다.
"흥! 내일 오지 않는다면 어디 목숨이 붙어 있게 될지 두고 봐야 할 거
에요."
이 같은 상황에 이르자 위소보로서는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나는 내일 그대를 상대로 놀아 주기는 하겠소. 하지만 그대는 나를 다
시는 때리지 마시오."
공주는 크게 기뻐했다.
"그대가 온다니 좋아요! 내가 그대를  다시 때리면 그대도 나를 때리면 
되잖아요? 우리는 강호의 호걸들이니 은원은 분명히 해야 해요."
위소보는 쓰디쓰게 웃었다.
"그대에게 다시 매를 맞게 된다면 이 호한은 악귀가 되고 말것이오."
공주는 웃었다.
"안심해요. 나는 결코 그대를 때려서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봐야 그대를 반쯤 죽여놓기밖에 더하겠어요?"
그러다가 그의 안색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함박 웃으며 간드러진 소
리로 말했다.
"소계자, 궁안에는  많은 시위 태감들이 있으나  나는 그대만을 좋아해
요. 다른 녀석들은 너무 뼈대가 없어요. 설사 나에게 맞아 죽는다 해도 
감히  나에게 냄새나는  계집애니,  천박한 계집애니  하는 욕은  못하
죠......"
그리고 그녀는 위소보가 욕을 하는 음성을 흉내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갈보가 난 망나니 계집애! 헤헤헤! 그 누구도 한 번도 나에게 이런 식
으로 욕ㅇ르 한 적이 없어요."
위소보는 우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대는 욕을 얻어먹는 것을 좋아하시오?"
공주는 웃었다.
"그대처럼 나를 욕하는 것이 좋아요.  태후가 정색을 하고 꾸지람을 할 
때와 나보고 예의를 다하라고 가르칠  때는 같은 욕이지만 정말 듣기가 
싫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여춘원으로 가는 것이 가장 좋겠군"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가서 갈보가 된다면 너를 욕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주모도 너
를 욕하고 때릴  것이고 놀러운 사람도 성질이 나면  너를 때리고 욕할 
것이다.)
공주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 물었다.
"여춘원은 어떤 곳이죠? 거기는 좋은가요?"
위소보는 속으로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매우 재미있는 곳이라오. 하지만 강남땅에  있으니 그대는 갈 수가 없
소. 그대가 여춘원에서 삼 개월만  산다면 정말 좋아서 죽을 지경이 된
다고 보장할 수가 있소. 아마 공주도 하기 싫어질 것이오."
공주는 한숨을 내쉬더니 여춘원이 매우 가고 싶은 듯 말했다.
"내 나이가 들면 반드시 가봐야겠어요."
위소보는 정색을 했다.
"좋소, 좋아.  장래 나는 그대를 반드시  데려가 주겠소. 사내대장부의 
일언은 중천금이라 하지 않았소?"
그는 사마난추(駟馬難追)라는 말을 제대로 기억해 내지 못했다. 대장부 
일언은 중천금이라는 말을 배운  다음에는 사마난추라는 말으 ㄹ대신해
서 쓰게 되었다.
공주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그들 시위들이나 태감들과  겨루게 되면 누구든지 내게 양보하기 
때문에 조금도 재미가 없어요. 어제 황제 오라버니와 무공을 겨루게 되
었을 때야 삼푼 정도 진짜로 겨루게 되었죠. 하지만 그 역시 아프게 매
질을 하거나 나를 비틀어 아프게  하지 않았어요. 소계자, 오로지 그대
만이,그대만이 나를 때린 거예요.  그대는 마음을 놓아요. 나는 절대로 
그대를 때려 죽이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갑자기 그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고 나서 얼굴을 붉히며 나는 듯 
방을 뛰쳐나갔다.
위소보는 순식간에 하늘이 빙빙돌고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아 그만 털썩 
주저앉아 생각했다.
(이 공주는 약간 실성한 것  같다. 내가 그녀를 때리면 때릴수록, 욕을 
하면 할수록 그녀는 더욱더 기뻐하는 구나. 제리랄! 늙은 갈보가 난 계
집애가 정말 이 가짜 태감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녀의 아리따운 얼굴을  생각하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는 몸
을 일으켜 가까스로 자기의 처소로  돌아갔다. 그러고 난 후 그는 지칠
대로 지쳐 침대 위에 쓰러져서 잠이 들고 말았다.그는 다섯시간을 꼼짝
하지 않고 잠을 잤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런데 전신의 곳곳이 아파와서 참을 수 없어 신음소리를 내질
렀다. 몸을 일으켜 상처에 뿌려졌던 소금가루를 씻어내려고 했다. 그러
고 보니 상처는 이미 피가 엉켜서 옷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래서 옷
을 잡아당기자 다시 한 번 극렬한 아픔이 찾아들어 그는 다시 한 번 더 
냄새나는 계집애, 썩은 계집애니 하며  마구 욕을 해댔다. 그리고 소금
을 씻어내고 금창약을 발라ㅆ.
이튿날 소황제를 만나게 되었다. 강희는 그의 코가 시퍼렇게 멍들고 눈
이 부어 있을 뿐 아니라 머리카락과 눈썹마저도 크게 그을린 것을 보고 
대뜸 그의 보배와 같은 누이동생의 짓이라는 것을 알고 물었다.
"공주가 때린 것인가? 상처는 심하지 않은가?"
위소보는 쓰디쓰게 웃었다.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사부님,이 제자가 어르신의 체면을 잃게 했으니 
앞으로 삼 년 동안 고된 연마를 쌓아 다시 이 욕됨을 씻고 어르신의 체
면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강희는 본래 그가 노기충천해서 자기보고 나서서 화풀이를 해달라고 할 
줄 알고 은근히  걱정을 했다. 사실 그의  누이동생이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주인된 몸으로 노복과 다름이 없는 신하들을 구타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강희는 만약  위소보가 그 같은 청을 해올 때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혹시나 그가 오대산으로 가 자기의 부황을 시중들 
때 정성을 다하지 않을까봐 걱정되어 정히 난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소보가 그같이 말하며 이일에  대해 결코 원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바탕 장난을  친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아  크게 기뻐하며 웃었
다.
"소계자, 그대에게 정말 훌륭한 상을 내려야겠는데 그대는 무엇을 가지
고 싶은가?"
"사부님께서 제자의 무예를 꾸짖지 않으신 것만 해도 제자는 이미 고맙
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무슨 상을 또 바라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사부님께서 이 제자에게 몇 수의 고초를 전수해 주신다면 이후 위험한 
일을 겪더라도 남에게 당하지 ㅇ을 것이니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강희는 껄걸 소리내 웃었다.
"하하하! 좋아. 좋아!"
그는 즉시 태후가 전수해 준 무공  가운데서 몇 수의 절묘한 초식을 뽑
아서 그에게 전수해주었다. 이 몇 초의 금나수법은 퍽 비범했으나 홍교
주 부부가 전수해 준 육  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위소보는 옛
날 그와 무공을  겨룰 때 그 몇수를 그가 사용한는  것을 본 적이 있었
다. 그런데 이 때 소황제가 직접 지도까지 하면서 펼쳐 보이자 얼마 후 
대충 알게 되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옛날 그와 씨름을 할 때는 친구와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는 
황제이고 나는 신하이다. 이 친구관계는 어찌 되었든 오래가지 못할 것
이다. 내가 북경에 돌아와 보니  소황제는 키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위
풍이 있어 보인다. 소현자라는 석  자를 다시 내뱉을 수 없으니 차라리 
칭호를 바꾸는 방법도  또한 아첨을 하는 비결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땅바닥에 엎드려서는 쿵쿵  여덟 번의 큰절을 하면서 말했
다.
"사부님, 절 받으십시오, 제자 위소보는 어르신의 개산대제자(開山大弟
子)입니다. 
강희는 어리둥절했으나 곧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첫째로 매우 재미있
게 느껴졌고, 둘째로 그가 다시 소현자라는 칭호로 부르는 것도 확실히 
기뻐할 일이 못 되는 지라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황제는 장난의  말은 하지 않는다네. 내가  그대의 사부라고 말했으니 
그대를 제자로 거둬들일 수밖에   없군."
그리고 큰 소리로 불렀다.
"게 아무도 없느냐?"
두 명의 태감과 두 명의 시위가 서재로 달려 들어왔다.
강희는 말했다.
"몸을 돌려라"
네 사람은 대답했다.
"네"
그러나 규칙에는 신하들이 황제 앞에서  등을 돌리지 못하게 되어 있었
다. 등을 돌린다는 것은 지극히  불경스러운 태도였다. 네 사람은 강희
의 뜻을 모르는지라  허리를 굽히고 몸을 슬쩍 옆으로  돌렸을 뿐 감히 
몸을 돌리지 못했다.
강희는 탁자 위에서  한 자루의 가위를 들고 네  사람의 등뒤로 돌아갔
다. 네 사람은 다시 약간 몸을  돌렸다. 강희는 네 사람의 땋은 머리를 
내려다 보았다. 그 가운데 한 태감의 머리가 가장 윤기가 나고 까맣다. 
그는 왼손으로 머리채를 잡더니 싹하고 머리를 잘라냈다. 그 태감은 그
만 혼비백산 해서 즉시 무릎을 꿇고 연신 큰절을 했다.
"신하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신하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강희는 웃었다.
"두려워 말게. 그대에게 열 냥의 은자를 상으로 내리지. 모두 나가게."
네 사람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그저  강희황제의 기분을 예측하지 
어렵다고 생각하고 뒤로 물러났다.
강희는 잘라낸 머리를 위소보에게 건네 주며 웃었다.
"그대는 곧 가서 화상이 되어야 하는데 공주가 그대의 머리카락을 태운 
것을 보면 이것도 하나의 뜻이  아닌가 하네. 하늘이 공주의 손을 빌어
서 그대에게 삭발하여  중이 되도록 분부를 내린  것이네. 그대는 먼저 
이 머리를 꼬아서 머리에 달도록  하게. 그렇지 않으면 보기가 흉할 것
일세."
위소보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네, 사부님의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  정말 알뜰하기 이를  데 없습니
다."
강희는 웃었다.
"그대가 나를 사부로 모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겐 이야기하지 말게. 나
는 자네의 입이 무겁고 행동이  조심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응낙한 
것일세. 만약 밖에서 그런 소리를 함부로 내뱉고 다닌다면 이 장문인은 
즉시 그대의 무공을 제거하고 문파에서 그대를 축출하겠네."
위소보는 잇달아 말했다.
"네, 네. 제자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강희가 그와 무공을 겨루고 씨름을 한 사실은 태후와 해대부 외에는 궁
중에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속으로 그를 제자로 거두어
들인 사실을 그저 밖으로 소문만  내지 않는다면 황제의 체면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성격이 꼼꼼한 편이라 한 번 더 
당부하기를 잊지 않았다.
강희는 자리에 앉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태후는 음흉하고 악랄하다. 나에게  무공을 가르쳤지만 결코 진정으로 
모든 심혈을 기울인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을 때
려 뼈마디를 동강내는 무서운 재간에  대해서는 어째서 반초도 내게 전
수해 주지 않았느냔 말이다. 사실  나는 사부가 되었지만 기실 이 녀석
에 비한다면 별로 강한 편은  못된다. 따라서 고명한 무공을 전수해 줄
만한 것이  없다. 소림사의 화상들은 무공이  지극히 고강하다. 이번에 
부황께서 어려움에 처하셨을 때 역시 그들이 구해 주었으니....."
이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말했
다.
"그대는 가서 상처를 조섭하도록 하게.  그리고 내일 다시 나를 만나러 
오게나."

위소보는 자기의 처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수하의 태감을 시켜 어의를 
불러와 약을 바르고 상처를  치료하도록 했다.상처가 아프긴 했으나 살
갗에 입은 상처라 근골을 다치지는 않았다. 어의는 열흘이나 보름쯤 조
섭하면 즉시 낫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점심밥을 먹은 후  공주와의 약속대로 공주를 찾아나섰다. 그런데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다. 그녀를  다시 만난다는 것이 두렵기도하고 기
쁘기도 했다.
문을 열자마자 공주는 크게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위소보는 이
미 방비를 하고 있던 터라  왼팔로 막고 오른발로 걸었다. 그리고 오른
손으로 공주의 뒷 등을 잡고 그녀를 눌러 몸을 굽히도록 만들었다.
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죽일 태감 같으니, 오늘은 어떻게 무서워졌네요."
위소보는 그녀의 왼팔을 잡고 뒤로 비틀며 나직이 말했다.
"그대가 나를 훌륭한 계자나  오라버니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
의 이 팔을 부러뜨려 놓겠소."
공주는 욕을 했다.
"쳇, 이 죽일 태감 같으니!"
위소보는 공주의 팔을 힘주어 비틀며 호통을 내질렀다.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면 그대의 이 팔을 비틀어 놓겠소."
공주는 웃었다.
"그래도 난 부르지 않을래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계집애는 정말 천박하구나! 내가  때리면 때릴수록 더 좋아하는 구
나)
그리고 왼손으로 철썩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한 번 내질렀다. 공주는 몸
을 한 번 펄쩍 뛰는 듯했으나 깔깔거리며 웃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제기랄! 그대는 원래 맞는 것을 좋아하는군!"
그리고 힘주어 다시 몇 대의 주먹을 내질렀다.
공주는 아파서 땅바닥에 엎드린  채 일어나지 못했다. 위소보는 그제서
야 손을 멈췄다. 공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요.이제는 내가 그대를 때릴 참이에요."
위소보는 고개를 한들었다.
"아니오. 나는 그대에게 맞지 않겠소."그는  속으로 이 계집애의 손 씀
씀이가 매우  악랄하니 만약 맘ㅈ기 시작한다면  언제라도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크게 성질을 부리며 달려들더니 마구 
때리고 물려고 했다. 그러나 위소보는   몇 대의 따귀를 갈기고 땅바닥
에 쓰러뜨린 후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다시 한 차례 볼기를 때려댔다. 
그는 속으로 볼기마저 때렸으니 이제 더 겸연쩍어 할 필요가 없다고 생
각하고 손을 뻗쳐 그녀의 전신  곳곳을 마구 비틀었다. 공주는 그의 다
리에 매달려서는 그의 두 다리를 얼싸안고 얼굴을 그의 다리 사이에 끼
우고 가볍게 문지르며 간드러지기 이를 데 없는 코먹은 소리로 말했다.
"훌륭한 계자,훌륭한 오라버니 나에게  한 번만 맞아줘요. 내가 아프게
는 때리지 않을께요."
위소보는 그녀가 마치 조그만 새가 바람에 의지하듯 하는 양과 또 다정
히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자 그만 가슴이 설레어 대답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공주가 다시 말을 했다.
"훌륭한 오라버니, 나는 그대의 몸에서  피가 나오는 거승ㄹ 보았을 때 
무엇보다도 좋았어요."
위소보는 깜짝 놀라 노해 부르짖었다.
"안 돼!"
그리고 왼발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한 대 걷어차 버렸다.
"놔요. 나는 가겠소. 그대와  함께 어울리다가는 언젠가는 그대의 손에 
죽게 될 걸."
공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는 나와 놀지 않겠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너무 위험하오. 시시각각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으니까 말이오."
공주는 깔깔거리고 웃더니 몸을 일으켰다.
"좋아요. 그렇다면 나를 부축해서 나의 방으로 데려다 줘요. 난 그대에
게 맞아 걸음도 옮겨놓을 수 없게 되었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부축하지 않겠소."
공주는 벽을 붙잡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그러면서 말했다.
"계자,내일 다시 와요, 좋죠?"
공주는 갑자기 왼발의 무릎을 절룩거렸다. 하마터면 쓰러질 것 같아 위
소보는 재빨리 다가가 부축을 했다.
공주는 말했다.
"훌륭한 계자, 수고스럽지만 두 명의  태감을 불러 나를 데려가게 해줘
요."
위소보는 속으로 태감을 부르게  된다면 태후에게 알려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공주가 어떻게  상처를 입게 되었나를 따지게 되고 
자기가 그랬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알려지게 된다면 목을 잘리는 죄명
을 뒤집어 쓰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어쩔 수  ㅇ벗어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내가 그대를 부축해 방으로 데리고 가도록 하죠."
공주는 웃었다.
"좋아요 계자,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서쪽으로 향했다.
공주의 거처는 자녕궁의 서쪽인 수강궁(壽康宮)옆이었다. 두 사람은 자
녕궁의 화원에 이르게 되었다.  위소보는 황태후의 태도를 상기하고 마
음을 졸였다.
두사람이 기다란 난가넹 이르게 되었을  대 공주가 갑자기 귀에다 가볍
게 숨을 불어내는 것이 아닌가?
귀소보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그러지 마세요......"
공주는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왜요? 내가 그대를 때리는 거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그녀는 위소보의 귓볼을 가볍게 물고는 혓바닥을 살짝 내밀어서 
천천히 핥았다. 위소보는 간질간질해져 참을 수 없어 나직이 말햇다.
"당신이 만약 나의 귀르 ㄹ물어 다치게  한다면 나는 그대를 다시는 만
나지 않을 것이요.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했소."
공주는 본래 갑자기 그의 귓볼을 깨물어 한 조각 살이라도 뜯어낼 충동
을 느꼈으나 그 같은 말을 듣자 감히 더 깨물지 못하고 그저 코먹은 소
리로 웃으며 말했던 것인데 그  웃음소리를 듣고 위소보는 얼굴을 시뻘
겋게 붉히지 않을 수 없었고 동시에 온몸이 나른해졌다.
공주의 침궁에 이르게 되었을 때 위소보는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공주가 말했다.
"이리 들어가요. 내 그대에게 재미있는 물건을 보여 줄께요."
이 때 건녕궁의 네 명의 태감과  네 명의 궁녀가 문밖에서 시중을 들기 
위해 서 있었다. 공주는 그의 손을 잡고 곧장 자기의 거실로 들어갔다. 
두 명의 궁녀가 따라들어왔다. 그리고 뜨거운 물수건을 올렸다. 공주는 
한조각의 수건을 들고 위소보에게  내밀었다. 위소보는 얼른 받아서 얼
굴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두 명의 궁녀는 공주가 태후나 그 외의 사람에게 이처럼 공손하게 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  나이어린 태감이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
드는 것을 보고 무례하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어리둥절해지
고 말았다.
공주는 그 같은 광경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무엇이 보기 좋아 그렇게 넋을 잃고 바라보느냐?"
두명의 궁녀는 대답했다.
"네,네."
그들은 허리를 굽히고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그런데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공주는 손을 뻗쳐 가까이에 있는 한 명의 궁녀의 눈을 찔렀다. 
궁녀는 살짝 피한다고 피했으나 그만 참담한 비명소리만 질렀을 뿐이었
다. 눈알이 뽑혀지지는 않았으나 얼굴은 선혈로 물들게 되었다. 눈썹위
에서 아랫턱까지 네 개의 손자국이 드러나 있었다.  두 명의 궁녀는 혼
비백산해서 재빨리 물러나고 말았다.
공주는 웃었다.
"자, 저것봐요. 저 못난 것들은 그저 용서를 비는 고함소리밖에 내지를 
못해요. 그러니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위소보는 그녀의 손 씀씀이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속으
로 이 작은 갈보는 흉악한 점에  있어 그녀의 어머니인 늙은 갈보와 비
슷하니 역시  이곳에서 일찌감치 빠져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공주, 황상께서 내게 일을 시키셨으니 나는 곧 가봐야 겠소이다."
"무엇이 그리 급해요?"
그녀는 얼른 문을 닫고는 빗장을 질렀다.
위소보는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그녀가 무슨 이상한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공주는 웃었다.
"내가 이 궁의  주인 노릇을 한 지 십 오  년이 되었어요. 남의 시중만 
받다보니 재미가 없어요. 우리는 입장을 바꾸도록 해요. 그대가 주인이 
되고 내가 종이나 신하가 되겠어요."
위소보는 두 손을 들어 마구 흔들었다.
"안돼요, 안돼. 나는 그와 같은 복이 없소이다."
공주는 예쁜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대는 하지 않겠단 말인가요?  나는 큰소리로 부르짖을 거예요. 나는 
그대가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으며 나의 온몸을 푸른 멍이 들도록 때
렸다고 말하겠어요."
그리고 갑자기 소리내어 부르짖었다.
"아이구 아파라!"
위소보는 연신 읍을 하며 말했다.
"소리지르지 마시오!  소리지르지 마시오! 내  그대의 분부를 따르도록 
하겠소"
이곳은 공주의 침실이었다. 그리고  밖에는 많은 태감들과 궁녀들이 서
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그저 몇 번 부르기만 한다
면 즉시 사람들이 몰려올 판이었다. 그야말로 무공을 겨루는 집 주위에
는 아무도 없어 상관이 없었지만 이 곳은 그곳과는 달랐다.
공주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쳇, 천박한 것  같으니라구! 내가 좋은 말로 할땐  듣지 않고, 반드시 
경의로 바치는 술은 마시지 않으면서 벌주만 마시려 하는 군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야말로 비천한 여자다. 주인노릇을 하지 않고 종 노릇을 하겠다니!)
공주는 이때 한쪽 무릎을 꿇고 공손히 문안을 드린 후 입을 열었다.
"계패륵(桂貝勒)그대는 주무시려고 하시는가요? 소신이 그대의 옷 벗는 
시중을 해드리죠."
위소보는 살며시 코웃음을 쳤다.
"흥! 나는 자지 않겠다. 너는 나의 다리를 주물러 다오."
"예"
공주는 땅바닥에 앉아 그의 오른발을 들어 자기의 무릎 위에 얹고 천천
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정말 세심하고 알뜰했으며 전혀 그의 상처를 건
드리지 않았다.
위소보는 칭찬의 말을 했다.
"정말 훌륭한 신하로군! 그대는 정말 근사하게 시중을 들어 주는구나."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공주는 크게 기뻐서 나직이 말했다.
"주군께서는 너무 과찬이십니다."
그의 오른쪽 신발을 벗기고  그의 발가라긍ㄹ 가볍게 주물렀다. 그러더
니 발을 바꾸어 안마를 하고 신발을  벗긴 후 다시 발가락을 가볍게 주
물렀다.
"계패륵, 침대위로 가서 누우시죠. 제가 등을 두드려 드리겠어요."
위소보는 그녀의 안마에 매우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는 속으로 이 천박
한 계집애가 실컷 종노릇을 하지  않고는 자기르 ㄹ놓아주지 않을 것이
라 생각하고 침대 위로 올라와 비스듬히 누웠다. 그러자 코속으로 그윽
한 향기가 스며들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천박한  계집애의 침대는 이토록 화려하구나.  여춘원의 제일 가는 
갈보들도 이 같은 요나 이불은 갖고 있지 못했지)
이 때 공주는 엷은 이불을 잡아당겨 그에게 덮어 준 후 가볍게 등을 두
드리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한창  계패륵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을 때 
갑자기 문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태후께서 왕림하셨소!"
그는 그만 깜짝  놀라 재빨리 일어나려고 했다.  공주는 당황한 나머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달아나기엔 늦었어요.  움직이지 말고 빨리 이불  자락 속으로 숨으세
요."
위소보는 머리를 움츠리고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잠시  후 은연 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놀라서 기절을 할 지경이었다.
공주는 침대 휘장을 내려놓더니 몸을 돌려 빗장을 뽑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태후가 성큼 안으로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
"대낮에 문을 왜 닫아놓고 있느냐?"
공주는 웃으며 말했다.
"또 무슨 별 희한한 짓을 하며  놀았지? 어째서 얼굴에 핏기가 전혀 없
느냐?"
"저는 매우 피곤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태후가 고개를 숙여 보니 침대 앞에 한 쌍의 신발이 놓여 있고 또 비단 
모기장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속으로 이상함을 느끼
고 태감과 궁녀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 있어라."
뭇사람들이 나가자 그녀는 입을 열었다.
"문을 닫고 빗장을 걸어라!"
공주는 웃었다.
"태후께서는 무슨 이상한 놀음을 할 모양이죠?"
그녀는 태후의 말대로 문을 닫고  태후가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
다. 신발을 발견하고는 그녀는 그만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녀는 얼른 변명을 했다.
"나는 지금 막 남장을 해보려던  참이에요. 남자 녀석으로 분장을 해서 
태후에게 보이려던 참이었어요. 제가 남장을 하면 그 모습은 퍽 준수하
겠지요?"
태후는 냉랭히 말했다.
"침대 위의 저 녀석의 모습이  준수한지 그렇지 않은지 어디 두고 봐야
겠다."
그리고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공주는 깜짝 놀라 태후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태후, 저는 그와 장난을 하고 있는 거예요......"
태후는 손으로 그녀를 뿌리쳤다. 그리하여 그녀를 몇 걸음 밀어 내고는 
즉시 모기장을 걷어올리고 이불을  들췄다. 이어 냅다 위소보의 옷깃을 
잡고 들어올렸다.
위소보는 침대 안쪽으로 얼굴을 돌린 상태로 있었다. 감히 그녀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으나 크게 놀란 그는 전신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공주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태후, 이 사람은 황제  오라버니가 가장 좋아하는 태감이에요! 태후께
서는......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마세요!"
태후는 살며시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손을 돌려 위소보의 얼굴을 후려
갈겼다.
철썩철썩 따귀를 갈기고는 호통을 내질렀다.
"꺼져라! 다시 네가 공주와 놀아나는 것을......"
그녀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크게 놀라 물었다.
"너였구나."
위소보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는 아니에요."
그 한 마디는  정말 아리송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같이 간이 바들바들 
떨리는 상태에 놓여있는데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태후는 그의 뒷덜미를 꼭 잡고 나직이 말했다.
"천당에는 길이 있는데도 가지  않으면서 지옥에는 문이 없는데도 뛰어
들어 왔구나! 네 녀석이 공주에게  감히 무례한 행동을 했으니 오늘 나
를 원망하지는 못할 것이다.:
공주는 다급해 외쳤다.
"태후, 제가 그에게 이곳에 누우라고 했어요! 그를 탓할 수는 없어요."
태후는 왼손을 들더니 위소보의  정수리를 가볍게 후려쳤다. 그리고 왼
팔을 쭉 뻗고 운기행공하여 악랄한  수법으로 그의 정수리를 내려쳐 일
장으로 그를 요절내려고 했다.
위소보는 위급한 가운데 갑자기 홍교주가 가르쳐 준 적정항룡이라는 일
초를 상기했다. 두  손을 뒤로 뻗어 태후의 가슴을  한 번 거머쥐었다. 
태후는 깜짝 놀라 가슴을 움츠리며 말했다.
"죽고 싶으냐?"
그 순간 위소보는 두 발로 침대가를  차며 훌쩍 재주를 넘어 어느덧 태
후의 목에 목말을 타듯 하면서 두  손의 식지로 그녀의 눈을 눌렀고 엄
지 손가락으로 그녀의 태양혈을 눌렀다.
그리고 호통을 내질렀다.
"그대가 움직이기만 한다면 나는 그대의 눈알을 뽑아내고 말겠소!"
그의 이 일초는  숙련되지 않아 본래 펼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그는 
침대 위에 있었고 태후는 땅바닥에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높은 위치에 
있고 한 사람은  낮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목말을  타는 것이 손쉬웠
다. 그러나 본래 눈을 뽑는데는 중지를 사용해야 했는데도 식지로 눌러 
대고 뒤로 훌쩍 재주를 넘게 되었을 때 발끝으로 모기장을 걷어 올렸었
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초는 어정쩡한 것이었으며 낭패한 몰골이라 홍
교주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반쯤 울화통이  터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
다. 하지만 수법이  잘못되기는 했어도 초식은 실로  교묘하기 이를 데 
없어 태후는 즉시 제압당하고 말았다. 너무 졸지에 일어난 일이라 그녀
로서는 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주는 깔깔 소리내어 웃으며 부르짖었다.
"호호호! 소계자, 무례한 행동을 해서는 안 돼요! 빨리 태후를 놔 주세
요."
위소보는 오른쪽 다리를 들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태후의 등을 겨눈 후  그제서야 그녀의 뒷덜미에서 미끄러져 아
래로 내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오색 찬란한 물건
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바로 신룡교의 오룡령이었다.
태후는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이건.....이......물건은 어디서......온 것이지?"
위소보는 태후가 가짜 궁녀나 유연 등과 몰래 결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어쩌면 이 오룡령이 그녀로 하여금 순순히 말을 듣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이것은 본교의 오룡령인데 그대가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이오? 정말 당
돌하군."
태후는 전신을 흠칫 하더니 입을 열었다.
"네. 네."
위소보는 그녀의 말이 공손해지는 것을 보자 의기양양해졌다.
"오룡령을 대할 때는  교주가 친히 왕림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해야 하
오. 홍교주께서는 홍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며 수명은 하늘처럼 길 
것이외다."
태후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홍교주께서는 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며 수명은  하늘처럼 길더
라."
그리고 몸을 구부리고 오룡령을 집어들더니 머리 위로 높이 쳐들었다.
위소보는 손을 내밀어 오룡령을 받으며 말했다.
"그대는 나의 명령을 듣겠소? 듣지 못하겠소?"
태후는 말했다.
"듣겠어요. 삼가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교주의 보배와 같은 가르침을  시시각각 마음속에 새겨둘지어다. 적을 
제압하고 이기게 되는 등 성공하지 않는 일이 없을지어다."
태후는 따라서 공손히 읊었다.
"교주의 보배와 같은 가르침을  시시각각 마음속에 새겨둘지어다. 적을 
제압하고 이기는 등 성공하지 않는 일이 없을지어다."
이때서야 위소보는 겨우 한숨을  내쉬고는 비수를 거두었다. 그리고 의
젓한 걸음걸이로 침대가에 걸터앉았다.
태후는 공주에게 말했다.
"너는 밖으로 나가거라. 그렇지 않다면 너를 죽이고 말 것이다."
공주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네."
그녀는 위소보를 한 번 바라보다가  가슴 가득히 끓어오르는 의혹을 금
할 수 없어 입을 열었다.
"태후, 혹시 황제 오라버니의 성지인가요?"
강희는 나이가 들게 되자 위엄과 권세가 점점 불어났다. 태감과 궁녀들 
그리고 어전 시위들은 황상을 이야기할 때 두려워하고 동경하는 표정이 
날로 더해갔다. 그렇기 때문에 공주는 태후가 황제에 대해 퍽 어려워하
고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 알게 된 터였다.
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는 황제의 심복이시다.  요긴한 일로 나와 이야기하려고 하
는 것이니 너는 절대로 이야기하지 말아라. 더욱더 황제 앞에선 들먹이
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황제가 너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
다."
"네, 네, 저는 그토록 우둔하지 않아요."
그리고 방을 나간 후 방문을 닫아 주었다.
태후와 위소보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각자  마음속으로 의심을 품고 
있었다.
갑자기 태후가 입을 열었다.
"벽 저쪽에 귀가 있을지도 모르니 이곳은 이야기할 곳이 못 됩니다. 자
녕궁으로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그녀의 말투가 깍듯해지고 또 상의하는  투로 나오며 감히 함부로 결정
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위소보는 더욱더 마음이 느긋해졌다.
그러나 곧 다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 늙은  갈보는 마음이나 심보가 악랄하다.  나를 자녕궁으로 데려간 
후 어떤 간계를 써서 해를 입힐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나는 본교에서 새로 임명된 백룡사외다. 홍교주의 명령을 받고 오룡령
을 손에 들고 나온 것이외다."
태후는 대뜸 숙연해져 우러러보는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굽혀 절했다.
"속하가 백룡사께 인사드립니다."
위소보는 태후가 신룡문의 부하제자들과 결탁한 것을 보면 홍교주에 대
해서 매우 존경하리라고 짐작했다. 따라서 이 오룡령은 어느 정도 그녀
를 꼼짝할 수 없게 만드는  위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
코 그녀 자신이 바로 신룡교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짐작
하지 못했었다.
그는 태후의  신분이라면 천하에서 해내지 못할  일이 없는데 놀랍게도 
신룡교에 가입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의 지위가  자기보다 훨씬 낮은 
것을 보고  정말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녀가 공손하게 
절을 하는 것을 보자 그만 아연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태후는 그가 잠자코 말이 없는 것을 보자 아직도 옛날의 원한을 기억하
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놀람과 두려움을 느끼고 나직이 말했다.
"속하는 전에 미처 백룡사의 신분인  줄 모르고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황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무쪼록 백룡사께선 너그
러운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위소보가 나이가 어린데도 교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끝내 완전히 믿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는 근년에 이르
러 교주와 부인이 신진소년들을 대거 끌어올려 중용하게 되었으며 교에 
몸을 담고 있는 노형제들은 도살당하거나 혹은 의심을하여 권세를 차츰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어린애
가 백룡사에 임명되었다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녀는 다시 머리를 굴렸다.
(설사 그가 정말 백룡사라 하더라도 내가 지금 그를 죽인다면 교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꼬마녀석은 내게  증오심을 깊이 느끼고 
있을 것이니 그가 살아 있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은 후환이 무궁해질 것
이야.)
살기를 떠올리자 눈에는 자기도 모르게 악독한 빛이 드러나게 되었다.
위소보는 즉시 알아차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야단났다. 이 늙은 갈보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내가  그대를 사로잡을 때 쓴 수법은  누가 전수한 것인지 아
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3. 태후를 수하로 삼다

태후는 깜짝 놀랐다. 아닌게 아니라 조금전 위소보가 펼치던 수법은 신
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초로  자기를 제압한 것을 보면 바로 교주의 
수단 같았다.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혹시...... 혹시 교주께서 친히 전수하신 것이 아닙니까?"
위소보는 웃었다.
"교주께서는 삼십 초의 살수를 나에게 전수하셨고 홍부인께서는 나에게 
삼십 초의 금나수법을 전수해 주셨소. 비교한다면 교주의 수법이 더 무
섭지. 하지만 그 어르신의 초식은  손을 쓰기만 한다면 사람 목숨을 빼
앗는 것이오. 내가 그대를 죽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부인이 전수한 비
연회상(飛燕廻翔)이라는 일초를 썼을 뿐이외다."
흰소리를 하는 데 밑천이 드는 것은  아닌지라 그는 초식을 십 배로 불
려서 이야기했다.
태후는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홍부인이 펼치는 많은 초식
은 확실히 고대 미녀들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라 
그만 등줄기에 흐르고 있는 식은땀을 느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홍부인이 전수한 초식으로  나를 상대했기에 망정이지 교주가 전
수한 초식으로 나를 상대했다면 지금쯤 나는 죽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태후는 조금도 위소보를  해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가 없
어 공손히 말했다.
"백룡사께서 저를 죽이지 않은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위소보는 득의양양해서 말했다.
"내가 그대의 눈알을 뽑지 못한 것은 부인이 전수해 준 초식에서 삼 푼 
쯤 손에 힘을 뺏기 때문이오."
이 말은 사실이었다. 조금 전  위소보는 태후의 눈알을 뽑을 수도 있었
다. 그러나 그녀도 전력을 다해 방어했다면 역시 위소보의 목숨을 빼앗
을 수 있었다.
태후는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치솟아 말했다.
"손에 사정을 두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속하는 매우 감격하고 있
으며 반드시 백룡사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위소보는 본래 태후를 보기만 하면  쥐가 고양이를 보듯 전신을 바들바
들 떨었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도 그녀를 고분고분하게 제압하게 되었
을 뿐 아니라 그녀가 당황하고 황송하다는 듯 자기면전에 서 있는 걸을 
보니 마음속으로 느끼는 의기양양한 기분은  정말 형용할 수 없을 지경
이었다.
그는 왼다리를 들어 몇 번 흔들흔들 하다가 나직이 말했다.
"이본에 본사(本使)를 따라 신룡도에서  서울에 온 사람은 반두타와 육
고헌 두 사람이오."
태후는 대답했다.
"네, 네"
그녀는 속으로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은 신룡교 내의 고수인데 놀랍
게도 위소보의 조수가 되어 있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리고 속으로 조금  전 경솔하게 행동해서 만약 그를  때려 죽인 사실을 
교주가 알고 나중에 따지고 든다면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반두타와 육고
헌 두 사람이 찾아온다 해도 그녀 자신은 죽는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
고 조금 전 손을 쓰지 않았던 사실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보니 위
소보의 뺨에는 손가락  자국이 완연했다 바로 자기가 조금  전 때린 두 
대의 따귀 때문에 남겨진 손자국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속하가 과거 여러 가지 저지른 죄는 정말 만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백
룡사 대인께서 너그럽게 아량을 베푸셨으니 후에 무궁한 복을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백룡사 종지령이 교주를 배반했기 때문에 교주와 부인은 이미 그를 죽
였소. 그리고 나보고 백룡문을 이끌어 가도록 명했소. 흑룡사 장담월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힘을 기울이지  않아 교주와 부인께선 매우 화를 
내고 있소. 그래서 경서를 취하는  일을 나에게 맡겨 처리하도록 한 것
이오."
태후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네, 네."
그녀는 몇 권의 경서를 얻었다가 다시 잃어버린 사실 때문에 이 며칠간 
조바심을 치고 있었는데 끝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일을 이야기하자면 길지요. 백룡사께서는 자녕궁으로 옮기도록 하시지
요. 속하가 자세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는 속으로 이 일 가운데는 모르는  곳이 무척 많아 정히 알아보지 않
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몸을  일으켰다. 태후는 몸을 돌려 빗장을 뽑아
내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옆으로 비켜서서 그가 먼저 나가도록 양
보하려고 했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태후께서 나가시오!"
태후는 나직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먼저 문을 나갔다. 위소보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수십명의 태
감들과 궁녀들은 멀리서 따라왔다.
두 사람은 자녕궁에 이르렀다. 태후는 그를 와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궁녀들을 물리치고 문을 닫았다. 그녀는 친히 한 그릇의 인삼탕
을 따라서는 두 손으로 바쳤다.
위소보는 그 삼탕을 받아 몇 모금 마시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나의 위치는 과거 순치 노황야와 비교할 수 있겠군! 살사 소황제
라 하더라도 태후는 이토록 공손하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크게 우쭐해졌다.
태후는 상자를  열어젖히더니 조그만 비단상자를  꺼냈다. 그리고 상자 
뚜껑을 열고 한 조그만 자기병을 꺼내더니 입을 열었다.
"백룡사께 말씀드리죠. 이 병에는 서른 알의 설삼옥섬환(雪參玉蟾丸)이 
들어 있는데, 아주 신기하기 이를  데 없으며 복용한 이후에는 몸을 건
강하게 하고 백독이  침범하지 못하게 된답니다. 이  가운데 열 두알은 
교주에게 올리시고 열 알은  교주 부인에게 올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여덟 알은 백룡사께서 잡수시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이것
은 속하가 보여 드리는 조그만 성의입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그러나 이 알은 표태역근환(豹胎易筋丸)과 상충되지는 않소?"
"실로 상충되는  점은 없습니다. 백룡사께서  교주로부터 표태역근환을 
하사받으신 데 대해서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그런데 속하가 금년
에 복용할 해약을 교주께서는 백룡사를 통해 보내시지 않으셨나요?"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다.
"금년에 먹을 해약이라고?"
그러나 곧 알아차렸다. 태후 역시 표태역근환을 먹은 것이 틀림없었다. 
교주가 매년 해약을 내리는 것을 보면 그 해약이 철저하지 못해 반드시 
매년 그 해약을 복용해야 약기운이 퍼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
으면 그녀가 깊은 궁궐 안에 틀어박혀 있어도 시위들이 많이 있으니 교
주가 아무리 재간이 높다 해도 그녀를 제압할 수는 없으리라.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와 나는 모두 표태역근환을 먹었으니 해약을 자연 내게 맡겨 보낼 
순 없지 않겠소?"
태후는 말했다.
"네, 하지만 백룡사께서는 교주의 은총을  입고 계신데 어찌 속하와 견
줄 수 있겠습니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이토록 무섭게 겁을 집어먹고 있으니 그녀에게 몇 마디의 위로
의 말이라도 해줘야겠다.)
그는 입을 열었다.
"교주와 부인께서는 그대가 진심으로  교주에게 충성을 다하고 다른 마
음을 품지 않은  채 정성을 다해 일을 처리하면  결코 그대에게 소홀히 
대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소. 그 점에 있어선 안심하시오."
태후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교주의 은덕은 태산과 같습니다. 속하가 만 번 죽는다 해도 보답할 길
이 없군요. 교주께서는 홍복을  영원히 누리실 것이고 수명은 하늘처럼 
영원할 것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는 본래 황후이고 이제는 황태후이다. 당금 천하에서 황제외에 네가 
가장 큰 대인이다. 교주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결코 너와는 비할 수도 
없는데 너는 어째서 신룡교에 가입을 하고 교주의 명을 받고 있는 것이
지? 이것이야말로 지독히 천박한 행동이 아니겠는가? 그렇군, 십중팔구 
너ㅓ는 너의 딸처럼 천박한 뼈다귀라서 남에게 욕을 얻어먹고 짓밟힘을 
당해야만 기분이 좋아지는가 보구나.)
그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역시 세상에 대해 아는  바에 한도가 있었
다. 따라서 일시에 그 부녀의 문제점이 어디 있는지 짐작하지 못했다.
태후는 그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그가 다음에 경서를 손에 넣
는 일에 대해서 물어 보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먼저 말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그 세 권의 경서는 속하가 등병춘과 유연에게 줘서 교주에게 바치도록 
했습니다. 그 어르신께서는 이미 받아 보셨겠지요?"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가짜 궁녀 등병춘은 도고모님에게  살해되었고 유연은 방소저의 검 아
래 죽음을 당했는데 무슨 경서가 있어 교주에게 바친단말인가?)
그는 그녀가 말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세 권의 경서를 교주에게 바쳤다고 했소? 그 일에 대해서는 들
은 적이 없는데, 교주께서는 흑룡사가 이토록 오랫 동안 일을 했는데도 
아무런 소득이 없다고 매우 화를  내시며 하마터면 그로 하여금 자살하
도록 할 뻔했소."
태후는 얼굴에 의아한 빛을 띄우며 말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속하는 분명히 등병춘과 유연 두 사람에게 세 권
의 경서를 가지고 신룡도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물론 유연이 백룡
사께 죽음을 당하기 전이죠."
위소보는 말했다.
"아, 그런일이 있었소? 등병춘이라고? 바로  그대의 그 대머리 사형 말
씀이오?"
"그렇습니다. 백룡사께서 이후 신룡도에 돌아가게 되셨을 때 물어 보시
면 모든 사실을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위소보는 갑자기 깨달은 바가 있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구나. 등병춘이 도고모에게 죽음을 당한  사실에 대해 이 늙은 갈
보는 내가 전혀 사정을 모르고 있는 줄 안다. 그녀가 세권의 경서를 잃
어버리게 되어 교주에게 책벌을 당하게 될까봐 모든 책임을 죽은 두 사
람에게로 미루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죽어서  대질할 사람이 없으니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처사가  아니겠는가? 헌데 세 권의 경서가 바로 
나의 수중에 들어 있으니 그 누가 알겠는가? 이 같은 거짓말로 다른 사
람을 속인다면 그야말로 통하겠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지. 나는 잠시 
동안 너의 그 간계를 들춰내지 않고 덮어 두기로 하겠다.)
그는 말했다.
"그대가 이미 세 권의 경서를 손에 넣었다면 그 공로는 적지 않은 것이
외다. 나머지 다섯 권도 다시 정성을 다해 찾아보도록 하시오."
"네. 속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언제나 어떻게 하면 다른 다섯 권의 경
서를 손에 넣어 교주의 은덕에 보답할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매우 훌륭하오. 기실 그대가 그토록 충성심을 다한다면 그 표태역근환 
가운데 숨어있는 독성을 해독시켜 주어도 무방할 것이오. 얼마 후 내가 
교주를 만나게 될 때 반드시 그대를 위해 좋은 말을 해드리리다."
태후는 크게 기뻐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후 말했다.
"백룡사의 은혜, 속하는 영원히  잊지 않겠어요. 속하가 백룡문으로 들
어가 백룡사로부터 직접 가르침과 직위를 받는다면 더욱 다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거야 쉬운 일이오. 하지만 그대가 교에 들어가게 된 모든 경위를 나
에게 상세히 말하되 조금도 속임이 없어야 할 것이오."
"네. 속하는 본문의 좌사에게 결코 반 마디의 거짓말도 드리지 못할 것
입니다......"

갑자기 문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 궁녀가 기침을 한 번 하
더니 입을 열었다.
"태후께 알립니다. 황상께서 계공공을  부르십니다. 급한 볼 일이 있다
고 즉시 달려오라는 분부이십니다."
위소보는 머리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
"그대는 모든점에 있어 안심하시오. 이후 다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태후는 나직이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어 그녀는 낭랑히 소리쳤다.
"황상께서 그대를 부르니 그대는 가보도록 하오."
"네. 태후께서는 편안하시길 빕니다."
문을 나서자 여덟  명의 시위가 자녕궁 밖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 아닌
가. 그는 속으로 약간 놀랐다.
(무슨 사고가 난 것이 아닐까?)
재빠른 걸음으로 강희의 서재로 들어섰다.
강희는 기뻐서 말했다.
"좋아. 별일 없었군!  나는 그대가 늙고 천한  것에게 끌려갔다는 말을 
듣고 혹시 그녀가 그대를 해치게 될까봐 정말 걱정했다네."
"사부님께서  걱정을 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그 늙은......  늙
은...... 그녀는 그 동안  어디를 갔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노황야의 
일을 절대  말씀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산서성과 오대산도 들먹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도 제대로 할 수 없
었지만 그녀에게 다그침을 받게 디자 갑자기 떠오르는 김에 황상께서는 
소신을 강남으로 보내어 무슨 재미있는 물건이 있는가 알아보라고 했으
며 있으면 사서 궁안으로 가져오라고 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황상께서는 태후께서 황상이 황제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어린애의 성질
을 버리지 못했다고 하실 것이니 절대 말씀을 올리지 말라는 분부가 있
었다고 했습니다."
강희는 껄걸 소리내어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좋네. 그 늙고 천한 것이 여전히 내가 어린애처럼 
놀기 좋아하는 줄로 여긴다면 나를 경계하지 않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
런데 그대는 거짓말을 잘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퍽 근사하게 잘하는구
만."
"그런 대로  잘 하는 것입니까? 소신은  그같이 말씀드렸다가 황상께서 
불쾌히 여기지 않을까 두려워서 조마조마했습니다."
"좋아 좋아. 조금전 나는 그 늙고  천한 것이 그대를 해치게 될까봐 이
미 여덟 명의 시위를 자녕궁 밖으로 보내 지키도록 했네. 만약 늙은 것
이 그대를 보내 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로 하여금 안으로 달려들어가 
그대를 빼앗아 오도록  할 참이었네. 정말 그녀와  얼굴을 붉힌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
위소보는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황제 사부님께 태산과 같은 은혜를 입었으니 신하이며 제자인 저는 몸
이 가루가 된다해도 보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대가 노황야를 잘 시중들기만 한다면 바로 내가 그대에게 베푼 은혜
를 보답하는 것이네."
"네, 알겠습니다."
강희는 탁자 위에서 한 통의 밀봉된  누렇고 큰 봉투를 들며 입을 열었
다.
"이것은 소림사 뭇승려들에게 내리는 유시일세. 그대는 사십 명의 어전
시위를 뽑고 이천 명의 효기영(驍騎營)관병을 데리고 소림사로 가서 유
시를 알리고 일을 처리하도록 하게.  어떤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은 유시
에 씌어 있으니 소림사로 간 이후  뜯어서 그대가 그 유시를 받들어 행
하기만 하면 된다네.  이제 나는 그대의 벼슬을  올려서 그대를 효기영 
정황기부도통(正黃旗副都統)에 임명하네.  이것이야말로 정이품의 대관
일세. 그대는 본래 한나라 사람이었으나 나는 그대를 만주 사람으로 만
든 것이네. 정황기는 황제가  친히 거느리는 기병(旗兵)일세. 효기영으
로 말하면 황제의 정예  친위병이지. 그리고 어전시위 부총관의 벼슬도 
여전히 겸임하게나."
그는 위소보가 글공부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른  재간도 없고 또 
나이도 어리고 해서 정말 커다란 벼슬아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
두 차석의 지위를 내린 것이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저 황제 사부를 곁에서 언제나  모시게 된다면 벼슬이 크고 작고 간
에 이 신하 제자는 결코 개의치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힘주어 큰절을 올리며 은혜에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멀쩡한 한나라 사람인데 이제부터 만주오랑캐가 되고 말았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황제 사부께서는 나에게 서둘러  청룡사로 가서 소화상이 되도록 하지 
않고, 먼저 군사를 이끌고 소림사로 가서 노황야를 구하느라고 공을 세
운 여러 승려들에게 상을 내리게 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거드름을 피
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일게다. 이것이야말로 처음은 달콤하고 뒤에
는 쓰디쓴 맛이로구나. 먼저 나리의 행세를 한 이후 나중에는 볼기짝을 
치는 격이군!)
강희는 효기영 정황기도통  찰이주(察爾蛛)를 불렀다. 그에게 소계자는 
기실 태감이 아니고 어전시위 부총관이며 진짜 이름은 위소보라고 하는
데 오배를 잡아  죽이기 위해 가짜 태감 노릇을  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기인(旗人)이라는 신분을 내렸으니 바로 정황기에 속하는 사람일 뿐 아
니라 효기영 정황기부도통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찰이주느 오배가 정권을 쥐고 흔들  때 크게 곤혹을 당하곤 했었다. 본
래는 옥에 갇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는데 다행히 오배의 일이 들통
나게 되고 그가 옥에 갇히자 그제서야 찰이주는 석방되었다. 그렇기 때
문에 오배를 잡아 죽인 위소보에 대해서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황상으로부터 그를  자기의 부장으로 삼는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기뻐 즉시 축하의 말을 했다.
"위형제, 우리 형제 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다시 
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 않구만! 그대는 과연 영웅ㅇ니 우리 효기영
은 이제야 크게 위엄을 떨칠 수 있게 되었네."
위소보는 겸손의 말을 했다. 찰이주는  이미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위
소보가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만큼 직위는 자기의 부장이라ㅏ고 하
나 기실 자기가 그의 부장 노릇을 해야 된다고. 그래서 그의 환심을 사 
두면 나중에 지위가  더 높아지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강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위소보에게 시킬 일이 있다네. 그러니 두 사람은 가서 인마를 점
검하도록 하게. 위소보는 오늘밤 즉시 북경에서 떠나되 작별 인사를 하
러 올 필요는 없네."
그는 효기영의 병마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금패령(金牌令)을 위소보에
게 건네 주었다.
위소보는 금패를 받아들고 큰절을 한 다음 작별을 고했다.
(늙은 과부가 어째서  신룡교로 가야 했는지 이유를  아직 조사해 내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겠지. 아마도 천한 짓을 하고 싶어서 였겠지. 다
음에 다시 궁으로 돌아와서 그녀에게 물어봐야지.)
그는 다시 생각했다.
(어제 공주에게 얻어맞는  바람에 전신이 아파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자느라고 도고모님을 만나뵈러 가지 못했구나. 도고모님은 궁에서 어떻
게 지내고 계시는지 다음에 궁으로 되돌아오면 꼭 그녀를 한 번 만나봐
야지.)
그 즉시 위소보외 찰이주 두 사람은 어전총관 다륭을 만났다. 위소보는 
먼저 어전시위 부총관에 임명한다는 황제의 유시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다륭 역시 연신 축하의 말을 했다.
"위형제, 시위들을 뽑으려면 얼마든지 뽑게나. 황상께서 고개만 끄덕인
다면 나까지도 그대를 모시고 함께 가도 괜찮네."
"그거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황상을 보호하는 일을 책임지셔야 
합니다. 총관께서 경성을 나서 놀러가는  것은 아마 그리 쉽지 않을 것
이오."
다륭은 웃었다.
"다음에 황상께 청을 드려 우리 형제들끼리 한 번 교대를 하자구. 그대
가 정부통관이 되고 내가 부부통관이 되어서 경성을 나가 매부 좋고 누
이 좋은 일을 벌여 보자구!"
위소보는 장강년과 조제현 두 사람의 시위를 뽑았다. 그리고 두 사람에
게 친근한 시위들을 불러모으게 했다. 찰이주는 이천 명이나 되는 효기
영들을 모았다. 각 참령(參領)과 좌령(佐領)이 부도통에게 문안을 드렸
다. 황제는 소림사 승려에게 내리는 하사품을 모두 갖추어서 수십 개의 
수레에 싣게 했다.  황제가 무슨 일을 할 때는  물론 즉시 호령을 내려 
거행하도록 했으니 두 시진도 되지 않아 모든 준비는 끝났다.
위소보는 본래 효기영의 융장을 입어야 했다. 그러나 그토록 치수가 적
은 장군의 융복은 즉시 준비하기가 힘들었다. 찰이주는 생각이 매우 치
밀했다. 자기의 융장 한 벌을 그에게 주었으며 네 명의 솜씨 좋은 재봉
사들을 딸려 보냈다. 그리고 수레 안에서 재빨리 고치도록 명하여 재봉
사들은 저녁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옷을 다 만든 이후에야 다시 경성으
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게으름을 피운다면 무거운 벌을 내
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편 위소보는 여가를 틈타 골목길로 들어가 육고헌과 반두타에게 말했
다.
"오늘 이미 궁안으로 잠입하게 되었소.  경전을 훔치는 일은 어느 정도 
단서가 보이오."
그는 두 사람에게 조용히 집안에서 소식을 기다리라고 분부하고 비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함부로 바깥 출입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육고
헌과 반두타 두 사람은 그가 일을 순조롭게 처리했을 뿐 아니라 이틀만
에 어느 정도 단서를 찾았다는 말을 듣고 하나같이 기꺼워하며 연신 고
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쌍아에게 서동으로 옷차림을  바꾸고는 자기와 동행하도록 했
다.
위소보가 출발을 하게 되었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러나 강희는 그날로 떠나야 한다고 했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북경성에
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영정문(永定門)을 나서서 이십 리
를 간 이후에 천막을 치고 하룻밤을 묵었다. 효기영은 황제를 호위하는 
친위병(親衛兵)이었다. 모두 다 만주 귀족들의 자제였으며 먹는 것이나 
입는 것도 여느  병사들보다도 십 배는 많았다.  모두들 경성에서 오랫 
동안 지체했기  때문에 경성을 나서서 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하나같이 
기뻐했다. 더군다나 싸움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하남으로 공무를 띠
고 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조정에서 돈을 써가며 그들에게 산
천 유람을 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위소보는 술과 밥을 먹은 이후 너무 일찍 자기도 뭣하여 장강년과 조제
현 등의 뭇시위들을 불렀다. 그리고 효기영의 참령과 좌령 중에서 뽑은 
군관들을 일제히 중군장(中軍帳)에 모았다.
뭇사람들은 하나같이 생각했다.
(황상께서는 위부통에게 어떤 큰일을 맡기셨는지 모를 일이다. 그가 우
리들을 불러모은  것은 반드시 어떤 특별한  지시를 내리기 위해서겠구
나!)
각자 인사를 나눈 연후에 위소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형제들, 할 일도 없고 하니  빌어먹을, 모두들 노름이나 한 판 벌이도
록 합시다. 내가 전주가 되지."
뭇군관들은 그만 어리둥절해졌다. 여전히 그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품 속에서 네 알의 주사위를 꺼내더니 나무상자 위에 던지
지 않는가? 주사위는 데구르르 굴렀다. 뭇사람들은 그제서야 우뢰와 같
은 환호성을 질렀다.
무릇 군사들 가운데  노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행군을 
하거나 출정을 하게 되었을 때는  도박을 금하여 군심이 흔들리는 것을 
막아 큰일을 그릇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위소보가 그같은 일
을 어떻게 알  리가 있겠는가? 효기영의 참령과  좌령들은 군율을 알고 
있었으나 이번 일은 싸우는 것도  아니니 부도통의 흥취를 돋구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위소보는 다시 품 속에서 한 묶음의 은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족히 오륙 천 냥이나 되는 은자였다.
"어느 누가 재간이 있다면 따가도록 하시지?"
뭇군관들은 다투어 자기의 천막으로 달려가 은자를 가져왔다.
효기영의 군사들은 직위가 낮은 사람도  대부분 집안의 재산은 매우 풍
족한 편이었다. 위부도통이 전주가 되어 도박을 한다는 말을 듣고 모두 
다 중군장 안으로 들어왔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노름판에 끼어드는 데 있어서 크고  작음을 상관하지 않으며, 그저 은
자나 원보만을 따기로 하지.  영웅호걸은 잃으면 잃을수록 웃음을 짓고 
후레자식은 돈을 따면 도망을 치는 것으로 하자구!"
그리고 네 알의 주사위에 훅 하고  숨을 한 번 내불고는 냅다 주사위를 
던졌다.
그는 양주에 있을 때 도박장에서  전주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고 얼마
나 부러워했던가? 무슨 부총관이고  부통관이고 하는 것은 대수롭게 여
기지 않았다.
그는 오늘 수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이끌고 전주가 되는 대노름판을 벌
리게 된 데 대해서 그야말로 한평생 가장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
다.
뭇군관들은 다투어 돈을  걸었다. 어떤 사람은 땄고  어떤 사람은 잃었
다. 한참 동안 노름을 하니 흥취가 일었고 거는 돈도 점차 커지게 되었
다. 그리고 뒤쪽으로 물러섰던  군사들까지도 슬금슬금 앞으로 나와 은
자를 꺼내서 돈을 걸기 시작했다.  시위 조제현과 한 명의 만주 좌령이 
위소보의 곁에 서서 그를 도와  내기돈을 거두어들이든가 진 돈을 내주
든가 했다. 중군장 안은 그야말로  땡이니 뭐니 하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고 땄다 망했다  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완전히 커다란 도박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반 시진  가량 노름을 하게 되었을 때 도박판
의 탁자 위에는 이미 이만여  냥이나 되는 은자가 쌓였다. 어떤 사람은 
돈을 모조리 잃고는 자기의 천막으로  가서 노름을 하지 않는 동료들에
게 돈을 빌어와 다시 밑천을 찾으려고 덤벼 들기도 했다.
위소보는 주사위를 내던졌다.  네 개의 주사위가 모두  붉은 점이 나왔
다. 이렇게 된다면 모조리 잡아먹는 셈이었다. 뭇사람들은 무척이나 낙
담하는 표정을  지었고 어떤 사람들은 신음소리를  입에 담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제현은 손을 뻗쳐 그가  건 돈을 모조리 
거둬들이려고 했다.
이때 위소보가 부르짖었다.
"잠깐! 오늘 처음으로 군사들을 이끌고  전주가 되었으니 이번에 건 돈
은 내가 먹지 않고 뭇친구들에게 돌려 주기로 하지."
뭇군사들은 크게 환호를 내지르며 일제히 부르짖었다.
"위부통은 정말 영웅이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자, 걸 사람은 거시지."
각자는 한 번 걸었던 몫이 영락없이 빼앗길 돈인데 자기 수중으로 되돌
아온 것을 보고 하나같이  운수대통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투어 돈
을 걸게 되었고 탁자는 은자로 가득 차게 되었다.
갑자기 한 사람이 낭랑한 음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천문(天門)에 걸도록 하지!"
그리고 수박 같은 둥그런 물건을 천문 쪽에 걸었다. 뭇사람들은 자세히 
쳐다보는 순간 그만 놀라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도박판위에는 놀랍게
도 피와 살로  얼룩져 있는 머리가 놓여 있었다.  그 머리 위에는 관모
(官帽)가 씌워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한 명의 어전시위가 아닌가?
조제현은 놀라 부르짖었다.
"갈통(葛通)!"
원래 이 머리는 갈통이라는  어전시위의 머리통이었다. 그는 당직이 되
어 초막 밖에서 순시를 돌고 있었는데 상대방에 의해 목이 잘려진 것이
었다.
뭇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하여 사방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중군장 한구
석에 남삼을 입은 사람들이 각기  장검을 들고 서 있었다. 뭇 군관들은 
한결같이 노름에만 신경을 쓰고 있던 참이라 그 누구도 이 사람들이 언
제 들어왔는지 모르고 있었다.
중군장의 뭇군관들은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시 어떻게 할
지를 몰랐다. 도박판  가운데 이십 오륙 세 되어  보이는 한 소년이 서 
있었는데 두 손은 맨손이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고 물었다.
"도통대인, 건 것을 받으시겠소? 안 받으시겠소?"
조제현은 부르짖었다.
"쳐라!"
대뜸 몇 명의 어전 시위가  그 젊은이에게 달려들었다. 그 젊은이는 두 
팔을 벌리더니 두 사람의 가슴팍을 와락 잡고 한 가운데로 모았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면서 두 사람의 머리가 서로 부딪치더니 두 사람은 즉시 
기절해 버렸다. 곧이어 하얀 광채가 번쩍이는 가운데 두 자루의 장검이 
뻗어나가 다른 두 명의 시위를  찔렀다. 두 명이 커다란 소리를 내지르
며 즉시 땅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검을 떨친 남삼을 입은 사람은 중년 
사내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검을  뽑더니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쌍검
을 일제히 날려서 팍!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도박판 위에 꽂았다.
중년인은 검을 꽂으며 부르짖었다.
"상문(上門)에 걸겠소!"
도사가 부르짖었다.
"하문(下門)에 걸겠다!"
두 자루의 장검은 영락없이 상문과 하문에 나뉘어 꽂혔다.
그 젊은이는 왼손을 휘둘렀다.  네 명의 남삼인이 앞으로 달려나오더니 
네 자루의 장검으로 위소보의 좌우 요혈을 겨누었다.
조제현은 떨리는 음성으로 일갈했다.
"당신들은 뭣 하는 사람인가?  당...... 당돌하다. 관리를 죽이고 군영 
안으로 뛰어들다니. 머리를 참수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검으로 위소보를 겨누고 있던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쳇 하는 웃음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두렵지 않소. 당신은 두렵소?"
듣고 보니 그것은 간드러진 여자의 음성이었다.
위소보는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보니  십 오륙 세 되는 소녀였다. 
얼굴은 약간 둥근 편이었고 얼굴  모습은 매우 예쁘게 생겼다. 한 쌍의 
커다란 눈망울은  칠흙 같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입가에는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본래 그는 이미  놀라 혼이 달아난 듯한 상태였으니 아
름다운 소녀를 대하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자연히 용기가 크게 일어나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저 한 사람이 검으로 나를  겨누기만 해도 나는 큰 두려움을 느꼈을 
텐데......"
소녀는 장검을 약간 뻗어내며 검의 끝을 그의 어깻죽지에 대고 말했다.
"그대는 두렵다면서 왜 웃죠?"
위소보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나는 여자의 말을 매우 잘 듣는 편이라오. 소저가 웃지말라면 나는 웃
지 않겠소.
아니나 다를까 그는  얼굴에 조금도 웃음을 띄우지  않았다. 그 소녀는 
그가 하는 양을 보고 참지 못하겠다는 듯 쳇 하고 웃었다.
그 사람들을 인솔해 왔던 젊은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냉소했다.
"만주 오랑캐들도 이제 운수가 다 된 모양이다. 이 같은 젖비린내 나는 
꼬마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게 하다니.  이것 보시오. 두 자루의 보검과 
하나의 머리통이 걸리지 않았소?  그런데 어째서 그대는 주사위를 던지
지 않지?"
위소보는 곁에  아름다운 소저가 있고 또  그로부터 주사위를 던지라는 
말을 듣고 놀란 가슴을 약간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물었다.
"내가 지면 무엇을 물어내야 하는 것이오?"
그 젊은이는 말했다.
"그것을 물을 필요가 있소? 검을  잃게 된다면 검을 내놓으시고 머리를 
잃게 된다면 머리를 내놓도록 하시오."
그러면서 그 젊은이는 이 나이어린  장군이 반드시 용서를 빌며 투항하
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소보는  싸우거나 무공을 겨루는 데 있어서
는 투항을 하면 했지 도박판에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허수아비나 멍
청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곁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있지 않은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찌  아름다운 소저 앞에서 
창피스런 꼴을 당하겠는가? 그는 다시 생각했다.
(저 사람들 네 명은 검으로 이미  나룰 겨누고 있다. 나를 죽이려고 하
는 판이니 지든  이기든 죽이려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입으로 손해를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는 즉시 주사위를 들고 말했다.
"좋소. 검을 잃게 된다면 검을 내놓고 머리를 잃게 된다면 머리를 내놓
지. 그리고 바지를 걸고 지면 바지를 벗기로 하지. 먼저 그대가 던지시
오!"
그 젊은이는 소년 장군이 이토록 담이  큰 것을 보고 약간 어리둥절 해
졌다.
중년의 사내가 나직이 말했다.
"대군이 밖에  있으니 너무 지체하지  말라. 다른 변고가  있을지 모르
오."
그러니까 그 젊은이에게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얘기였
다. 이천 명이나 되는 만주의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든다면 그렇게 쉽게 
처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젊은 위소보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전혀 두려워하는 빛이 없자 입을 열었다.
"내가 그대와 더불어 이 한판  노름을 하지 않는다면 죽어도 승복할 수 
없겠지?"
그는 주사위들  받아서 던졌다. 여섯 점이  나왔다. 도사와 중년사내도 
각기 던졌다. 모두 8점이 나왔다.
위소보는 주사위를 들고 그 소녀의 앞으로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소저 입김을 한 번 불어 주시오."
그 소녀는 미소했다.
"무얼 하자는 거죠?"
그러나 숨을 한 번 훅 내뿜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됐다. 미녀가 입김을 불어 주었으니  오로지 모조리 다 잡아먹는 일만 
남았을 뿐 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주사위를 몇번 흔들었다가 던지려고 했다.
이때 조제현이 입을 열었다.
"잠간! 위도통, 그들에게...... 그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 
보시구려."
그는 위소보가 주사위를 던졌다가 6점 이하가 나오게 된다면 목숨을 잃
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 위소보가 자기의 머리를 내놓지 않고 
이 조제현의 머리를 내놓겠다면 어찌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다.
그 젊은이는 냉소했다.
"만약 무섭다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시지."
위소보는 말했다.
"후레자식만이 두려워하는 것이오."
그는 손으로 약간 수작을 부리려고  했다. 그러나 속으로 놀라 간이 떨
리는 판이라 속임수를 그렇게 매끄럽게 쓸 수가 없었다.
네 알의 주사위가 던져지고 몇 번 데구르르 구르더니 멈추었는데 한 쌍
의 천패는 나오지 않고 바로 6점이 나왔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6점은 6점을 먹을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이겼고  상문과 하문은 내가 
졌다."
그리고 그는 갈통의 수급을 들어서 자기  앞에 놓은 후 다시 입을 열었
다.
"조형, 두 자루의  검을 가지고 와 상문과 하문에  건 사람들에게 주시
오."
조제현은 대답했다.
"네."
그리고 그는 중군장 입구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한 명의 남삼을 입은 사내가 검을 뽑더니 그의 가슴팍을 찔러대
며 소리쳤다.
"게 서시오."
위소보가 말했다.
"검을 가지러 가지 말라는 뜻이오? 그것도 괜찮지. 한 자루의 보검마다 
천 냥의 은자로 계산합시다."
그는 앞의 은자  무더기 중에서 2천 냥을 꺼내  나누어 장검 곁에 놓았
다.
이 한떼의 호걸들은 중군장으로  뛰어들어 주장을 제압했는데도 군관들
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의 무공이 고강하기도 했거니와 단번에 사람을 
죽이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지라 자기 쪽의  군사들이 많다고 하나 
모두 다 중군장밖에    있어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나중에 혼전이라도 벌어지게 된다면  중군장 안의 뭇사람들은 아무래도 
모조리 목숨을 잃게 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벌벌 떨고 있는데 위소보
는 적과 목을 걸고 주사위를  던지면서 태연히 담소를 하지 않는가? 그
들은 그의 용기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린애니까 땅이 얼마나 두텁고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모른다. 이 비
적들이 너와 장난질을 치고 있는 줄 아느냐?)
이때 그 젊은이가 다시 냉소했다.
"우리가 두 자루의 보검이 겨우 그대의 2천냥밖에   딸 수 없다는 말인
가? 노름판에 나온 모든 은자를 거두어들이시오."
육칠 명의  남삼을 입은 사내들이 다가오더니  노름판의 은자와 은표를 
모조리 거둬들였다. 그 젊은이는  한 자루의 장검을 잡아들더니 위소보
의 목을 겨누며 호통을 내질렀다.
"이 나이 어린 종놈아! 너는  만주 사람이냐? 한나라 사람이냐? 이름은 
뭐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투항을 하려  했다면 당신네들이 들어왔을 때  이미 항복을 했을 
거다. 이제 굴복을 한다는 것은 너무 용두사미격으로 앞에서 세운 공을 
모조리 저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냐? 사내 대장부는 버틸려면 끝까지 버
티는 거야.)
그는 껄걸 소리내어 웃으며 입을 열었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4. 주사위에 목숨을 걸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정황기 부도통으로 이름은 화차화차소보(花差花
差小寶)라는 사람이오. 당신이 나를 죽이든 살리든 도박을 하려면 도박
을 합시다. 허허허, 어른이 되어  어린 사람을 못 살게 굴다니, 호걸이 
아니군!"
최후의 한 마디는 실로 용서를  비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영웅의 기개가 좀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 젊은이는 빙그레 웃었다.
"어른이 되어 어린 사람을 못 살게  구니 영웅이 아니라고? 그 한 마디
의 말은 그럴싸하군! 소사매, 그대의  나이가 그와 비슷하니 그를 상대
로 한 번 싸워 보시구려."
그 소녀는 웃었다.
"좋아요."
그리고 검을 들고 나서며 웃었다.
"이봐요, 화차화차소보 장군, 내가 그대의 고초를 가르침 받겠어요."
위소보를 겨누던 세장검이 옷자락을 건드리며 일제히 말했다.
"이리 나와 손을 쓰시오!"
젊은이는 손을 한 번 내저었다.  그러자 한 자루 장검이 날아와 위소보 
앞에 놓인 탁자 위에 꽂혔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검술을 조금도 모르니 이 소녀를 이기지 못할 게 뻔하다!)
그는 말했다.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과 겨룬다는 것은 호걸이 할 짓이 못되요. 나
는 소녀보다 큰데 어찌 그녀를 못 살게 굴 수 있겠소?"
그 젊은이는 대뜸 그의 목덜미를 잡아 올리더니 호통을 내질렀다.
"감히 검으로 겨룰 수 없다면  우리 소사매에게 큰절을 하고 용서를 비
시지."
위소보는 웃었다.
"좋소. 절을 하라면 절을 하지.  남아의 무릎 아래는 황금이 있으니 매
일같이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지."
그리고 그는 두 무릎을 꿇고서 소녀에게 큰절을 올렸다. 뭇 남삼인들은 
모두 왁자하니 웃었다.
별안간 위소보는 몸을 한쪽으로 눕히더니 어느덧 빙글 돌아서 젊은이의 
등뒤를 돌아갔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비수로 그의 등을 겨누며 웃
었다.
"항복하겠소? 항복하지 못하겠소?"
이 기이한 변화는 너무도  느닷없이 일어났다. 젊은이의 무공이 고강하
다고는 하나 미처 방비할 틈도 없이 등의 요혈을 그에게 제압당하고 만 
것이다. 원래 위소보는 신룡도에서 배운 6초의 국명초수를 아직도 익숙
하게 익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희죽거리고 웃는가 하면 내
숭을 떨며 어릿광대처럼 가장하여 적이  그의 못난 꼬락서니를 보고 모
두 히히덕거리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엎드리게 되었을 때 손을 뻗쳐 비
수를 뽑아들게 되었고 별안간 비연회상이라는 일초를 써서 오히려 형세
를 역전시키고 만 것이다. 만약 그가 어른이었다면 상대방은 반드시 경
계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고 또 위소보는 이 일초를  반쯤 익혔을 뿐 
완전하게 익히지 못한 상태라 비슷하면서도 실제는 완전한 초식이 되지 
못해 반드시 효과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일초를 펼
치자 매우  교묘하게 되어 제대로 완전하게  펼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커다란 위력을 갖추게 되었다. 다시 말한다면 그 젊은이로서는 이 어릿
광대와 같은  소년이 이 같은 교묘한  초식을 펼쳐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그만 그 술수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뭇 남삼인들은 깜짝 놀랐다. 7,8자루의 장검으로 일제히 위소보의 몸을 
겨누며 크게 호통을 내질렀다.
"빨리 놓아라!"
그러나 위소보의 비수는 이미 상대방  젊은이의 등을 정확히 겨누고 있
었다. 6,7자루의 검은 하나같이 위소보를 찔러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비수가 가볍게 그의 앞으로  디밀어지기만 한다면 그 젊은이 역시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을 면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검의 끝
으로 위소보의 몸과 한 자 정도  되는 곳까지는 찔렀으나 감히 더 앞으
로는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웃었다.
"놓으라면 놓지 뭐가 대단하오?"
그는 비수를 한 번 휙 휘둘렀다. 창창창 하는 소리가 일면서 육칠 개의 
장검이 모조리 잘려나갔다. 비수의 끝은 다시 그 젊은이의 등을 겨누고 
있었다. 뭇 남삼인들은 깜짝 놀라 조금씩 물러섰다.
위소보는 말했다.
"은자를 내려놓으시오. 그렇다면 나는  그대들의 우두머리를 용서해 주
지."
손에 은자를 들고 있던 남삼인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은자와 은표
를 탁자 위에 놓았다.
이때 중군장 밖에서는 백여 명이 일제히 부르짖었다.
"비적들을 놓치지 마라!"
"빨리 투항하라!"
원래 조금 전 혼란이 빚어지게 되었을 때 중군장 안의 두 명 군관이 도
망쳐 나가 부하들을 불러 중군장을 에워싼 것이었다. 그 도인이 호통을 
내질렀다.
"나이 어린 오랑캐부터 죽여 버리자!"
그리고 노름판 위에 꽂혔던  장검을 뽑아들더니 하얀 광채를 번쩍였다. 
팍 하는 순간 어느덧 위소보의  가슴을 찔렀다. 그의 일검은 매우 정확
하게 계산된 것이었고 빠르기 이를데 없었다. 그는 위소보가 검에 맞았
으니 몸뚱아리가 반드시 뒤로 젖혀지며  비수는 자연히 그 젊은이의 등
에서 떨어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장검이  부러지면서 뚝 하고 두 동강이  나는 것이 아닌
가.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아이쿠! 나를 찔러 죽이지는 못했군!"
뭇 남삼인들은 칼과 창이 그의 몸을  찌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멍
해지고 말았다. 그 도사는 그의 검끝이 부드러운 것에 부딪쳤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결코 강철로 만들어진  갑옷 위를 찌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일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다. 그로서는 위소보가 안에 
몸을 보호하는 보의를 입고 있어  예리한 칼날로도 상처를 내기 어렵다
는 사실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중군장 안에는 이미 수백 명의 군사들이 달려들었다. 창과 커다란 
칼을 들고서 사방에서 빽빽히  에워쌌다. 뭇시위들과 군관들 역시 부하
들의 손에서 무기를 받아들었다. 십여 명의 남삼인들은 제 아무리 무공
이 고강해도 겹겹이 싸인 포위망을  뚫고 달아날 수 없게 되었다. 거기
다 몇 개의 장검은 이미 부러졌고 우두머리도 제압당한 상태가 아닌가? 
본래 크게 승세를 굳히고 있었으나 삽시간에 형세가 역전된 것이었다.
그 젊은이는 소리 높이 외쳤다.
"모두들 상관하지 말고 스스로 뚫고 나가시오!"
뭇시위들과 군관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리고 7,8명이 한 사람을 에
워쌌다. 이렇게  되자 이 남삼인들은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난도질을 
당하고 시체가 토막나는 화를 입을 판이었다. 부득이 무기를 버리고 묶
일 수밖에 없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무공이 뛰어나다. 그리고  조정과 맞서는 것을 보면 천지회
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른다.  내 어떤 꾀를 써서 그들을 놓아보내야
지.)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노형, 조금 전 그녀는 본래 나를  죽일 수 있었으나 나에게 손을 쓰지 
않았소. 만약 내가 지금 그대를 죽인다면 그대에게 밑천을 찾을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니 영웅호걸이라 할 수  없지 않겠소? 후레자식으로서, 
이기고 나서 도망치는 꼴이 아니냔  말이외다. 이렇게 합시다. 우리 다
시 머리를 걸고 싸우도록 합시다."
이때 이미 칠팔  가지의 무기가 그 젊은이를  겨누게 되었다. 위소보는 
비수를 거둬들이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자기 자리에 와 앉았다.
그 젊은이는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는 나를 죽이려면 죽이시오! 나를 데리고 희롱할 생각은 그만두시
오."
위소보는 네 알의 주사위를 들며 웃었다.
"내가 전주가 되겠소. 그리고 그대들의 머리통을 걸기로 하지. 한 사람
씩 나와서 던지시오. 어느 누구든  이기면 즉시 떠나는 것이오. 거기다 
백 냥의 노잣돈을  붙여 드리겠소. 주사위를 던져  지는 사람이 있다면 
조형이 한 자루의 장검을 쥐고 있다가  단칼에 그 사람의 목을 잘라 우
리 갈통형의 원수를 갚아 주도록 하시오."
그는 상대방  사람들의 수를 헤아렸다. 모두  19명이었다. 그는 일일이 
은자를 열 아홉 무더기로 만들었는데  한 무더기의 은자마다 백 냥씩이
었다.
그 남삼인들은 관군을 죽이고 난을  일으키려 했다가 잡힌 몸이니 이제 
하나같이 죽을 뿐이지 요행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년
장군이 호걸을 자처하며 한가닥 살  길을 열어 주지 않는가? 만약 주사
위를 던져 진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 도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매우 좋소. 사내 대장부의 한마디라면......"
위소보는 그 말을 받았다.
"중천금이 아니오?  이 화차화차소보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 결코 남의 
덕을 입지 않소.  이 분 나이 어린 누나인지  아니면 누이인지 조금 전 
나를 도와 주사위에 입김을 불어넣어  나의 목을 보전하게 했으니 그대
는 도박을 할 필요가 없소. 그대의 조그만 머리는 내가 이긴 이후 그대
에게 나누어 주는  상여금으로 합시다. 그러니 먼저  이백 냥의 은자를 
가지고 이 중군장에서 나가도록 하시오. 그리고 명을 내려 밖에서 지키
는 사람들로 하여금 붙잡지 않도록 하시오."
한 명의 좌령이 큰 소리로 영을 전했다.
"부도통께서 명을 내리신다. 중군장에서 내보내는 사람은 모두 자기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되 붙잡지 않도록 하라."
중군 밖에서 지키고 있던  군사들은 큰소리로 대답했다. 위소보는 50냥
이나 되는 원보를 그 소녀의 앞으로 밀었다.
소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고개를 흔들면서 나직이 말했다.
"나는 싫어요. 우리들......우리들 동료 열아홉 사람과 생사를......같
이 하겠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그대는 매우 의리가 있군! 생사를 같이 하겠다면 한 사람 한 사
람 나누어 도박을 할 필요가 없소. 소저 그대가 나와 한수 놀음을 합시
다. 내가 지게 된다면 열 아홉 사람이 함께 은자를 가지고 떠나도록 하
시오. 만약 이기게 된다면 열  아홉 명의 머리통을 일제히 잘라내겠소. 
이제 시원하시오?"
그 소녀는 젊은이를 바라보며 그의 지시를 기다렸다.
그 젊은이는 매우 망설이는 듯 했다 만약 열 아홉 명이 나누어 이 나이 
어린 장군과 도박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이기는 사람도  있고 또 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의 말이 정말이라면 열 아홉 명 가
운데 반수는 목숨을 건질 수 있으니 이후에 다시 방법을 강구해 원수를 
갚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소사매가 나서서 주사위를 던지되 
이기게 된다면 모두 무사히 물러날 수 있으나 지게 된다면 전부 몰살당
할 판이니 너무나 위험한 노릇이었다. 그는 눈길을 들어 동문들을 일일
이 훑어보았다.
한 명의 남삼 대한이 큰소리로 말했다.
"소사매의 말이 맞소! 우리는 생사를 같이 하기로 했소. 소사매가 주사
위를 던지는 것이 좋겠소. 그렇지 않을 때 내가 이긴다해도 나는 살 생
각이 전혀 없소."
칠팔 명이 그 소리를 따라 외쳤다.
위소보는 웃었다.
"좋소, 소저가 먼저 던지시오!"
그리고 그는 주사위를 담은 접시를 그 소녀 앞으로 밀었다.
그 소녀는 그 젊은이를 바라보며 그의 눈짓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고 했
다. 그 젊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사매,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오. 그대는 대담하게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 좋겠소. 우리는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하지 않았소?"
그 소녀는 손을  뻗어 주사위를 담은 접시에서 네  알의 주사위를 들어 
올렸다. 기다란 속눈썹이 아래로 드리워졌다. 그런데 갑자기 고개를 쳐
들며 위소보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주사위를  든 손을 미미하게 
떨었다. 갑자기 그녀가 손을 놓았다. 네 알의 주사위가 접시 아래로 떨
어지면서 맑은 소리를 냈다.
소녀는 눈을 감고 감히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자 귓가에 부르짖는 소리
가 들렸다.
"삼! 삼! 삼! 삼점이다!"
거기다가 뭇시위들과 군관들과 군사들이  웃으며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
다.
소녀는 주사위를  던지는 방법을 몰랐으나 적이  환호성을 치며 떠드는 
것을 보고 자기가 형편없이  던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나다를까 뭇
동료들의 안색은 하나같이 창백해져 있었다.
네 알의 주사위를 던져서 가장  큰 점수는 지존이라고 했다. 그 다음이 
천대, 지대, 인대, 화대, 매화,  장삼, 판등, 우두 등등으로서 이 삼점
은 열가운데 이미  아홉은 진 셈이었다. 설사  위소보가 똑같은 구점을 
던진다 해도 그는 전주이니 구점으로 삼점을 먹을 수가 있었다. 그러니
까 역시 19명의 머리통을 벨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 명의 남삼인이 갑자기 부르짖었다.
"나의 머리통은 내 자신이 도박에 걸겠소! 다른 사람이 던지는 것을 계
산에 넣을 수가 없소."
그 도인은 노해 부르짖었다.
"사내 대장부가  어찌 그토록 삶을 탐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우리 왕옥파(王屋派)의 위명을 더럽히는군!"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은 왕옥파의 사람이오?"
그 도인은 말했다.
"어찌 되어도 죽은 사람들이니 그대에게 이야기해도 상관이 없겠지."
그 남삼의 사내는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 낳으셨소.  우리 아버지 외에는 그 누구
도 나의 생사를 정할 수 없소."
그 도인은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 소사매가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는 말을 않고 있다가 그녀가 삼점
을 던진 후에야 입을 열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우리 왕옥파에는 그
대와 같이 못난 인물은 없네."
그 사내는 목숨이 더욱 중요하다는 듯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오부(五符)사숙, 나는  왕옥파의 문하제자가 되지  않는다해도 좋소이
다!"
다른 한 명의 사내가 냉랭히 말했다.
"그대는 그저 살고 싶으니 나머지는 상관하지 않겠다. 그것이지?"
그 사람이 말했다.
"저 소년장군은 우리들 개개인보고 그와 노름을 하라고 했소. 소사매가 
대신 주사위를  던진 데 대해  그대들은 동조했지만 내가  언제 응낙했
소?"
그 남삼의 젊은이는 싸늘히 말했다.
"좋소. 원(元)사형, 이제부터 그대는  왕옥파의 문하제자가 아니오. 그
대 스스로 그와 도박을 하시오."
원가가 말했다.
"아니면 아니라구 해두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의 성이 원씨요? 이름은 뭐라고 하시오?"
그 원가는 약간 주저하더니 동문이  이미 자기의 원수가 되었으니 자기
가 만약 가명을 말한다면 반드시 들통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입을 열
었다.
"불초는 원의방(元義方)이라고 합니다."
그 젊은이는 코웃음을 쳤다.
"흥, 귀하는 이름을 원방(元方)이라고 고치는 것이 더 좋을 걸세."
위소보는 말했다.
"어째서 이름을 고쳐야 하오? 음, 원방, 원방이라, 의(義)자가 하나 적
어진 셈이군. 그렇다면 당신이 의리가  없음을 욕하는 말이군. 이것 보
시오. 왕옥파의 여러 친구들, 또 어느 분이 직접 나와 도박을 하겠소?"
그는 눈을 들어 뭇남삼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두 사람이 입술을 
약간 움직였다. 마치 스스로 도박에 응하고 싶다는 표정 같았으나 잠시 
망설이더니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매우 좋소. 왕옥파의 문하제자들은  모두 영웅호걸들로서 매우 의리가 
있소. 이 원형으로 말하면 어찌 되었든 왕옥파가 아니니 그에게 의리가 
있든 없든 왕옥파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오."
그 젊은이는 빙그레 웃었다.
"정말 고맙소."
위소보는 말했다.
"자, 오너라! 누가  술을 따라라! 나는 이곳의 열  여덟 분의 친구들과 
한잔 나누겠다. 나중에 누가 이기고 지든 간에 어찌 되었든 생리사별이 
아닌가. 이같이 열 여덟 분의 의리가 깊은 친구들은 사귀지 않을 수 없
구나."
수하의 군사가 열 아홉 잔의 잔에  술을 따라 위소보의 앞에 한잔 놓았
다. 18명의 남삼인들은 각기 한잔씩  들었다. 그 사람들은 앞장을 섰던 
그 젊은이가 받아들자 역시 모두 다 받아들었다.
그 젊은이는 낭랑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만주 오랑캐와 결코 친구로  사귀지 않소. 다만 그대의 위인됨
이 시원시원하고 또 우리 왕옥파를 매우 중시하니 그대와 더불어 이 한
잔의 술을 나누는 것은 상관이 없는 일이라 하겠소."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건배합시다."
그는 단숨에 들이켰다.  18명의 남삼인들도 모두 술을  마신 후 다투어 
술잔을 땅바닥에 던졌다. 원의방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돌리며 보지 
않으려고 했다.
위소보는 호통을 내질렀다.
"열 여덟 자루의 칼을 들고 내려칠  준비를 해라. 내가 이 주사위를 던
져 삼점 이상이 나올 때 이 18분 친구들의 머리통이 모두 잘려나가도록 
해라."
뭇 군관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18명의 군관들이 칼과 검을 들고 18명
의 등 뒤로 다가섰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 주사위에다 수작을 부려서 일점이나 이점이 나오도록 하는 것
은 본래 어렵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연습이 부족하여 손재간이 
아무래도 시원찮을 것 같다. 조금  전 한 쌍의 천패를 던지려고 했으나 
육점이 나오지 않았는가?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게 된다면 그만 이 열 
여덟 사람의 목숨을  없애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냄새나는 남자들이야 
상관이 없지만 이 꽃송이 같은  소녀가 죽는다면 애석한 노릇이 아니겠
는가?)
그는 네 개의 주사위를 들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흔들어 자기의 숨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가볍게 손가락을 굴리며 던졌다. 그 즉시 왼손으로 
주사위를 던진 그릇 위를 덮었다.  그러자 주사위가 몇 번 구르는 소리
가 들렸고, 곧이어  멈췄다. 그는 자신이 없었다.  손가락을 살짝 돌려 
눈을 갖다대 보았다. 그러고 보니 네 개의 주사위 가운데 두 개는 이점
이었다. 한 개는  일점이고 한 개는 오점으로서  합하게 된다면 알맞게 
별십(霰十)이 됐다. 점수가  없는 점이어서 더 적을래야  적을 수 없는 
점수였다. 그는 본래 자기 멋대로 작정을 하고 던졌다. 만약 손이 매끄
럽지 못해 삼점 이상이 나오게  된다면 대뜸 이점이라고 말하고 그릇을 
흔들어 주사위를 헝클어 놓을  참이었다. 그러면 누구든 증인으로 나설 
사람이 없으니 상대방은 크게 기뻐할  것이고 자기 편의 부하들은 기껏
애야 의심만 할 뿐 공공연히  나서서 우기지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
같은 생각으로 수작을 부렸는데 성공을 하자 크게 기뻐서 욕을했다.
"제기랄! 나의 이 손은 마땅히 잘라내야겠군!"
그리고 왼손으로 자기의 오른손 등을 힘주어 내려쳤다.
뭇사람들은 주사위를 보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별십이다, 별십!"
그 남삼인들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게 되자 그만 참을 수 없어 환호성
을 내질렀다. 그 도인과 젊은이는 위소보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만주의 오랑캐들은 신의를 따지지  않는다던데 그가 말한 것에 책임을 
질지 모르겠구나.)
위소보는 노름판 위의 은자를 밀어내며 말했다.
"이겼으니 은자를 가져가시오. 설마 또 도박을 하시겠소?"
그 젊은이는 말했다.
"은자는 감히 가져갈 수 없소. 귀하는 한마디에 신의를 지키니 정말 영
웅이오. 훗날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그리고 두 손을 맞잡은 후  몸을 돌려 떠나가려고 했다. 위소보는 말했
다.
"이것 보시오. 이겼는데도 돈을 가져가지 않는다니, 이 화차화차소보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오?"
그 젊은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몸이 위험한 곳에 있으니 더 지체해서는 안되겠다.)
"그렇다면 정말 고맙소."
열 여덟 사람은 함께 은자를 들고 몸을 돌려 중군장에서 나갔다.
위소보는 한 쌍의 눈동자를 들어 줄곧 그 소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
다. 그녀는 은자를 얻은 이후 참을  수 없다는 듯 위소보를 한 번 바라
보았다. 네 개의 시선이 맞부딪치게  되었다. 소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
더니 빙그레 웃으며 나직이 말했다.
"정말 고마와요."
그리고 두 걸음 옮기더니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소장군, 그대의 이 네 개의 주사위를 저에게 줄 수 없겠어요?"
위소보는 웃었다.
"돼오. 어째서 안되겠소? 그대는  가져가서 그대의 사형들과 노름을 하
시겠소?"
그 소녀는 미소했다.
"아니에요. 저는 잘 보관을 하겠어요.  조금 전엔 정말 나의 목숨을 반
쯤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깜짝 놀랐어요."
위소보는 네 알의  주사위를 들어서 그녀의 손에  놓아 주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틈타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살짝 꼬집어 주었다. 이 같은 득
을 볼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그 소녀는 다시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재빨리 중군장에서 나갔다.

원의방은 뭇동료들이 중군장에서 나서자 뒤따라 나서려고 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봐. 나는 그대와 노름을 끝내지 않았어."
원의방은 대뜸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고 말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
다.
(이번일은 정말 잘못했다. 진작 그가 별십을 던지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왜 헛되이 소인이 되어야 하느냔 말이다.)
"장군께선 주사위가 없으시오. 나는......그래서 도박을 하기 싫어하는 
줄로 알았소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째서 도박을 하지 않는단 말이오.  무엇이라도 가지고 도박을 할 수
가 있소. 가위  바위 보로 하는 도박도 있고  동전을 굴려 하는 도박도 
있소."
그리고 그는 대뜸 한 묶음의 은표를 잡고 말했다.
"그대가 짐작해 보시오. 이것은 모두 몇 냥의 은자나 되겠소?"
"그것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위소보는 탁자를 두드리며 호통을 내질렀다.
"이 도적놈! 본 장군에게 무례하다니, 끌어내어 목을 쳐라!"
뭇군관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원의방은 금방 얼굴이 흙빛이 되더니 두 무릎을 털썩 꿇고 엎드리며 말
했다.
"소......소인이 감히 어찌 무례할 수 있겠습니까? 대장군......대장군
께서는 목숨을 살려 주시오."
위소보는 크게 즐거웠다.
(이 녀석은 나보고 대장군이라 부르는군!)
그는 호통을 내질렀다.
"내가 그대에게 물을 때 한마디  솔직이 털어놓도록 해라! 만약 조금이
라도 감추는 일이 있다면 너의 머리통을 잘라내겠다."
원의방은 연신 대답했다.
"네, 네."
위소보는 사람들을 시켜 족쇠와  수갑을 채우도록 했다. 그리고 은자를 
잃은 뭇군관들은 밑천을 찾아서  물러가도록 했다. 그렇게 되자 중군장
에는 장강년과 조제현 두 명의 시위와 효기영의 참령인 춘부(春富)만이 
남게 되었다. 그 즉시 장강년이 심문을 하게 되었는데 원의방은 한마디 
물을 때마다 한마디를 대답했고 아니나다를까 조금도 숨김이 없었다.
원래 왕옥파의 장문인은  사도백뢰(司徒伯雷)였다. 본래는 명나라의 부
장(副蔣)으로서 산해관 총병 오삼계의  부하에 예속되어 있었는데 만주
인들이 침략을 해오게  됨에 매우 용감하게 싸웠고  공도 많이 세웠다. 
그 후에 이자성(李自成)이 북경을 깨뜨리고 오삼계가 청병을 이끌고 입
관하게 되자 사도백뢰는 군사를 이끌고 이자성과 용감하게 싸웠으며 적
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우고  북경을 탈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 당시 청병이 입성하게 되었을 때 순정황제의 원한을 갚아 준 것으로 
알았었다. 그런데 청나라 군사들은  그 기회에 한나라 사람들의 강산을 
차지하게 되었고 오삼계는 대  매국노가 되는 것이 아닌가? 사도백뢰는 
크게 노해 즉시  벼슬을 버리고 왕옥산에 은거했다.  그는 옛날 부하들 
가운데 청나라에 투항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모두 왕옥산으로 불러들였다. 사도백뢰의  무공은 본래 고강했다. 그리
하여 한가한 날을 보내며  무공을 옛 부하들에게 전수해주었다. 시일이 
차츰 흐르게 되자 자연스럽게 왕옥파가 이루어졌다. 사도백뢰에 대해서 
장강년도 들은 바가 있었다.
원의방은 그 앞장을 섰던 그 젊은이가 바로 사도백뢰의 아들 사도학(司
徒鶴)이라고 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동문 사형제라 했으며 또 몇 사람
의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사숙으로 칭하는  사람들이라 했다. 그 
소녀의 이름은 증유(曾柔)라고 했는데 그녀의 부친은 사도백뢰의 옛 부
하였다. 하지만 이미  수년 전에 세상을 떠나  임종시에 그녀로 하여금 
옛 상관의 문하제자로 들어가게끔 한 것이었다.
그들은 최근에 오삼계의 아들 오응웅이 북경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도백뢰는 그들을 보내  오응웅과 만나도록 한것이었다. 그런
데 그들은 이곳을 지나가다가 청나라 군사의 군영이 서 있는 것을 발견
했다. 사도학은 젊은이라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군
영 안으로 뛰어들어 염탐하게 되었는데 뭇사람들이 크게 노름판을 벌이
고 있는지라 손을 써 도박판의  돈을 약탈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그 
목적은 돈과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주 군사들의 기염을 꺾어 놓자
는 데 있었다.
위소보가 나서서 물었다.
"너희들이 오삼계의 아들을 만나 보려는 것은 무엇 때문이지?"
원의방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방법을 강구해 그를 사로잡아 왕옥산으로 데
려오라고  분부했지요.  그렇게  하면 오삼계를  위협하여  그로  하여
금......그로 하여금......"
"그를 핍박하여 반란을 일으키자는 것인가?"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이며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소인은 대
청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결코  반란에 가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인은 
오늘날 왕옥파의 사람들과 관계를  완전히 끊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역
모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어둠속에서 밝음을 되찾자는 것이죠!"
위소보는 한 발로 그를 걷어차며 웃으면서 욕을 했다.
"빌어먹을! 그렇다면 너는 아주 대단한 충신이구나!"
원의방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의  발길질을 고스란히 받아 들이며 말
했다.
"네. 네. 모든 것이 장군 대인께서 키워 주신 덕택입니다. 소인은 이후 
장군 대인의 하인이 되고 종놈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충성을 다해 끓
는 물속이나 타는 불속에 들어가라 해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위소보는 상대방에게  이번에 3명의 어전시위를  죽였는데 자기는 사도
학, 증유  등을 놓아주었으니 장강년과  시위들이 승복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자기가  던진 주사위의 실력이 너무 형편없었다
고 탓할 것이다.  따라서 눈앞의 이 사건은  어찌되었든 모든 사람에게 
이득을 나누어 주어야만 전주가 되었던 자기 체면을 세울 수 있다고 생
각했다. 그래서 그는 잠자코 얼마동안  생각해 본 끝에 좋은 생각이 떠
올라 손을 뻗쳐 탁자를 힘주어 두드리며 호통을 내질렀다.
"너 이 대담한 역적 같으니!  분명히 오삼계와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키
려 했으면서도 그의 아들을  사로잡겠다고? 너는 오삼계에게 얼마나 득
을 보았길래 그를 위해 숨기고자 하는가? 빌어먹을 자식 같으니. 게 아
무도 없느냐? 이리 와서 매우 치도록 해라!"
중군장 밖에서 7,8명의 군사가 들어와 원의방을 땅바닥에 엎어 놓았다. 
그리고 곤장을 때리기 시작했다. 가죽이 터지고 살점이 튀며 피가 흘렀
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래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할까? 너는 오삼계의 아들을 사로 잡겠다고 
하면서 어찌  우리 군영으로 들어와  어전시위를 죽였는가? 어전시위와 
효기영의 군사는 황상께서 가장  가깝게 하시고 믿는 사람들이다. 너희
들이 어전시위와 효기영의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다는 것은 바로 황상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 것이란 말이다."
장강년과 춘부 등은 그 말을 듣자 크게 흐뭇해져 일제히 소리치며 위협
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 녀석은 교묘한 언변으로 거짓말을 날조해서 사람을 속이려 드는군. 
이 같은 간적은 맞아야만이 비로소 진실을 토로한다오. 다시 쳐라!"
뭇군사들은 일제히 호통을 내지르며 곤장을 마구 갈겨댔다.
원의방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때리지 마시오! 때리지 마시오! 소인이 실토를 하겠소."
"너희들 왕옥산에 사는 사람은 모두 몇 명이나 되느냐?"
"모두 4백 명은 됩니다."
"가족과 함께 쳐서 말이냐?"
"그러면 2천 명은 됩니다."
위소보는 탁자를 두드리며 욕을 했다.
"제기랄! 어떻게 그렇게 적을 수가 있단 말이냐? 다시 쳐라!"
원의방은 부르짖었다.
"그만 때리십시오!  그만 때리십시오!  약......약...... 4천......5천 
명은 됩니다."
위소보는 크게 욕을 했다.
"이런 18대 조상까지  떡을 칠 녀석 같으니, 왜  말하는 것이 시원하지 
못하냐? 9천이면 9천이지 어째서 4천과 5천으로 나누어 말하느냐?"
"네, 네, 9천 명이나 됩니다."
"너희들 같은 반적이 언제 바른 대로 말한 적이 있느냐? 9천 명이라 한
다면 적으도 만 삼천은 되겠다."
그리고 쿵 하고 탁자를 내리치며 호통을 내질렀다.
"왕옥산에 모여서  반란을 도모하는  사람은 도대체 몇  사람이나 되느
냐?"
원의방은 그의 말투를 듣고서 사람 수를 많이 말하면 많이 말할수록 소
장군이 기뻐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했다.
"소문에 들으니......소문에 들으니까 아마 3만명은 된다고 하더군요."
위소보는 기뻐했다.
"그렇겠지. 이번에야말로 거의 비슷하구나."
그리고 고개를 돌려 참령 춘부에게 말했다.
"이 천한 뼉다귀는 때리지 않으면 실토를 않을 모양이오."
춘부가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더 무섭게 매질을 해야겠습니다."
원의방은 부르짖었다.
"때리지 마시오! 장군 대인께서 무엇을 묻든지 소인은 실토하리다."
그는 이미 작정을 한바 있었다.  어쨌든 간에 이 나이어린 장군의 말투
를 따라 대답을  하게 된다면 육체의 고통을 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너희들 3만 명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예를 연마했다지?  조금 전 그 
소녀는 15,6세의  나이에 불과한데도 무예를  연마했다. 너희들은 모두 
오삼계의 옛날 부하이다. 나이 적은 사람들은 그 부하들의 자녀가 되겠
지?"
"네, 네, 모두 모두......무예를 익혔습니다. 모두 오삼계의 옛날 부하
들입니다."
"너희들 수령인 사도백뢰는 이전에 오삼계가 사랑하던 부하가 아니겠느
냐? 그리고 싸움도 무섭게 잘하지 않았느냐? 그는 우리 만주 사람을 모
조리 죽이겠다고 했다면서?"
"그것은 그가 대역무도한 말을 한 것이죠.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가 너희들을 북경으로 보내  오삼계의 아들과 어떻게 반란을 일으키
라고 상의했느냐? 어째서 운남으로  가서 직접 오삼계와 상의하지 않았
지?"
"그건......그건......아무래도......아무래도 달리  원인이 있을 것입
니다."
실제로 그들은  오응웅을 잡아가기로 했기 때문에  위소보의 그 말에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노해 부르짖었다.
"이런 빌어먹을 녀석 같으니, 무슨 원인이 있다는 것이냐? 사도백뢰 자
신이 이미 운남으로 달려가 오삼계와 모든 것을 의논했겠지, 그렇지 않
느냐?"
"아마도......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뭐가 아마도 그렇다는 것이냐?  빌어먹을! 그러면 그렇고 아니면 아니
라고 해야지."
"네...... 그렇습니다. 간...... 간 적이 있습니다."
장강년, 조제현, 그리고 춘부 세  사람은 위소보가 슬슬 달래며 반란을 
꾀한 대역무도한 사람을 평서왕 오삼계에게  옮겨 가는 것을 보고 그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속으로 걱정을 했다. 도대체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다시 물었다.
"사도백뢰는 오삼계가 사랑하는 장수인데  3만이나 되는 정병을 이끌고 
어째서 운남에 주둔하지 않았지? 왕옥산은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
"하남성 제원현(濟源縣)에 있습니다."
위소보는 하남성 제원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말했다.
"그곳은 북경과 매우 가깝지?"
"그리 멀지 않은 편이죠."
위소보는 욕을 했다.
"제미랄 놈! 가까우면 매우 가깝지 뭐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냐?"
"네, 네, 매우 가깝습니다. 매우 가깝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북경과 매우  가까운 곳이로군! 너희들과 같은 반적들
은 의도가 정말 악독하구나!  경성 부근에다 일지의 정예병을 매복시켜 
두다니. 오삼계가 운남에서 반기를  들게 된다면 너희들은 즉시 산속에
서 공격해 나와 곧장 북경으로 덮쳐들겠지? 그리고 우리 어전시위와 효
기영의 친병들을 하나같이 무우자르듯 죽여서 핏물로 내를 이루고 시체
로 산을 이루게 될 것이며 흙먼지가 휘날리게 되고 똥오줌을 마구 갈기
도록 만들겠지? 그렇지 않느냐?"
원의방은 큰절을 했다.
"그것은  오삼계와 사도백뢰  두 간적의  대역무도한  음모이지 소인과
는......소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위소보는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네 녀석은 정말 눈치가 빠르구나.)
그는 물었다.
"너희들 왕옥파에는 오삼계 아래 군관이나 군졸이 누구 누구 있는지 모
두 실토를 해라."
"사람들의 수는 대단히 많습니다."
그리고 즉시 많은 사람의 이름을 들먹였다. 그것은 결코 날조가 아니었
다.
위소보는 말했다.
"매우 좋다. 너는 그 사람들의  성명을 모조리 적어 내라. 그들이 이전
에 오삼계의 밑에서 어떤 관직을 했는지 일일이 분명하게 써 넣도록 해
라."
"어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은 소인이 자세히 모릅니다."
위소보는 되물었다.
"네가 자세히 모른다고? 그러면 다시  30대의 곤장을 안기면 똑똑히 알
아내겠지?"
원의방은 재빨리 말했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5. 중이 된 위소보

"아닙니다... 때릴 필요가 없습니다.  소인은 모조리... 기억해 냈습니
다."
군사가 종이와 붓을  가지고 왔다. 원의방은 즉시  명단을 쓰기 시작했
다. 위소보는 그가 한참이나 써도 다 쓰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귀찮은 생
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장강년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구술한 것을 사야(師爺)로 하여금 받아쓰도록 하시오."
그리고 원의방에게 호통을 내질렀다.
"너는 사야에게 이야기하도록 해라. 한마디라도 거짓이 있다면 너의 목
을 자르겠다. 데려가거라."
두 명의 군관이 그를 끌고 나갔다.
위소보는 히죽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세 분 노형, 우리들은 이번에 운수대통하게 되었소. 이같이 커다란 반
역 사건을 적발하게 되었으니 우리 네 사람은 반드시 크게 벼슬이 오르
게 될 것이오."
장강년 등 세 사람은 놀람과 기쁨에 얽혔다. 조제현은 말했다.
"이것은 모두 도통대인께서 명철하신  혜안과 영단을 내린 탓이지 속하
들이야 무슨 공로가 있겠습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목격한 사람에겐 모두 한몫씩 돌아가는 법이 아니겠소. 모든 사람에게 
공로가 있기 마련이지요."
장강년은 말했다.
"평서왕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말하는데 증거가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이 한떼의 왕옥산의 반적들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은 결코 거짓
이 아니지. 그들이  북경에 가서 오삼계의 아들을  만나보고 다른 무슨 
좋은 일을 해낼 수 있겠소?"
"그 원가는 그들이 평서왕의  왕세자를 인질로 사로잡아서 평서왕이 반
란을 일으키도록 강요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평서왕은 아마도 사
전에 어떤 연락을 받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장형은 평서왕의 사람들과 빈번한 내왕을 갖고 있으니 그 안의 사정을 
많이 알 것이  아니겠소? 만약 그들이 반란에  성공하게 되고 평서왕이 
황제가 된다면...... 허허허!"
장강년은 그의 어조가 곱지 못한 것을 알고 깜짝 놀라 재빨리 말했다.
"평서왕부의  사람들  가운데  저는  한  사람도  모릅니다.  도통대인
의...... 말씀이  옳습니다. 오삼계 그  녀석이...... 역모를 꾸몄으니 
우리들은 즉시...... 즉시 황상에게 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세 분은 가셔서 사야와 상의를  하시오. 그리고 상소문은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 의논을 하도록 하시오."
장강년 등 세 사람은 군중에서 서류를 담당하고 있는 사야로 하여금 상
소문을 쓰도록 하고 위소보에게 들려 주었다. 내용은 원의방이 말한 그
대로였다. 그리고 왕옥산 속에 있는 옛날 오삼계의 부하들의 명단도 그 
뒤에 첨부해 놓고 있었다.
상소문에는 있는 말 없는 말을 보태서, 위소보가 낮에 반적을 발견하고 
밤중에 군영 안에서 방비하지 않은  척 가장하여 그들이 습격을 해오도
록 유인을 해놓고 있었는데 반적들이  흉악하기 이를 데 없어서 위소보
는 무리를 이끌고  애써 싸웠을 뿐 아니라 군사들이  앞장을 서서 먼저 
적의 괴수인 원의방을 사로잡아  역모를 적발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
고 어전시위 갈통 등 세 사람은 직무를 수행하다가 죽음을 당했으니 황
상께서는 은혜를 베푸시어 세 사람의  가족을 돌봐 주시라는 내용도 들
어 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부참령과 장, 조 두 분의 시위께서  세운 공로도 몇 마디 적도록 하시
오."
부춘 등 세 사람은 크게 기뻐서 희색이 만면했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다시 몇 마디 덧붙이도록 하시오.  우리가 14명이나 되는 반적을 모조
리 잡았으나 반적들은 그 누구도  실토하려고 하지 않았기에 내가 황상
께서 먼저 전수해 주신 책략에 의거하여, 일부러 18명의 반적을 석방한 
이후에야 모든 역모를 분명히 알아냈다고 말씀드리도록 하시오."
세 사람은 일제히 말했다.
"18명의 반적을 놔 준 것은 원래 황상께서 내리신 방책이십니까?"
"그거야 물론이오. 이 어린 나이에 내가 어찌 그토록 총명하겠소? 만약 
황상께서 선견지명을 지니고 계시지 않았다면 이 대역모를 어찌 알아낼 
수 있었겠소?"
위소보가 말한 것은 얼마 전  강희가 그에게 오립신과 오표, 유일주 세 
사람을 내보냄으로써 자객이 궁안으로  들어와 역적질을 하려했던 진상
을 밝히려는 사실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런데 장강년 등은 왕옥파에서 공격해 올 일을 이미 황상께서 알고 계
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오삼계를 모함하는 것도 역시 황상께
서 먼저 그 뜻을 비춘 것이 틀림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대 부귀
공명이 자기들 머리 위에 떨어지게  되었는지라 모두 다 크게 기뻐했고 
위소보에게 몇 번이나 그 은혜에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청나라 규칙에 의하면 장군이 출정함에  있어 만약 황제의 부르심을 받
지 않을 때는 함부로 되돌아  갈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북경에서 불과 
20리도 되지 않는 곳에 있었지만  그 스스로 궁으로 되돌아가 황제에게 
친히 상주할 수 없었다. 즉시  두 명의 좌령과 열 명의 어전시위들에게 
3백 명의 팔기병을 이끌고 상주케 했다.
(이번에야말로 오삼계는 비참하게 되겠지?  목왕부는 우리 천지회와 겨
루자고 했다. 누가 먼저 오삼계를  쓰러뜨리는지 두고 보자고 했다. 내
가 오늘 두 분 사부에게 모두 큰공을 세우게 되었으니 천지회의 진사부
도 즐거워하시고 황제 사부 역시 기뻐하실거야.)
이튿날 위소보는 군사를 이끌고 천천히 남쪽으로 내려갔다. 정오 무렵, 
두 명의 어전시위가 북경에서 쾌마로 쫓아와서 말했다.
"황상께서 밀지를 내리셨습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했다. 즉시  뭇시위들을 불렀다. 뭇시위들과 효기영
의 군관들을 불러 중군장에서 밀지를 받도록 했다.
그 밀지를 읽는 시위는 한중간에 서서 낭랑히 말했다.
"효기영, 정황기 부도통 겸  어전시위 부총관 위소보는 들으시오. 짐은 
그대가 소림사에  가서 일을 처리하라고 했지  중도에서 쓸데없는 일을 
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소인의  터무니없는 말을 듣고 공신을 모함하다
니, 이같이 멋대로 일을 처리하니  어찌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
가? 그같이 터무니없이 떠드는 말들은  다시는 들먹이지 말라. 만약 한
마디 말이라도  누설한다면 모두 머리통을 들고  북경으로 돌아와 짐을 
만나도록 하라."
위소보는 그 소리를 듣자 그만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릴 지경이
었다. 그저 큰절을 하고 황상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말을 했다. 중군장 
안의 모든  사람들은 얼굴이 창백하게 되었고  여간 부끄러워하지 않았
다. 춘부와 장강년 등은 달리 더  무슨 말을 하지 못했다. 속으로 어린
애가 터무니없는 짓을  한 것에 대해 황상께서 죄를  내리지 않는 것만 
해도 잘 대해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위소보의 기분이 매우 언
짢은 이때 옆에 있다간 핀잔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각기 인사
를 하고 나가버렸다.
그 밀지를 가지고 왔던 시위는  위소보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나직이 말
했다.
"황상께서는 그대에게 모든 일을 조심하도록 분부하셨소이다."
"네, 황상의 은전에 소신 위소보는 매우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4백 냥의 은자를 꺼내 두  명의 시위에게 나누어 주었다. 시위 두 
사람이 떠나간 후 그는 매우 답답했다.
(설마 황상께서는 내가 오삼계를  모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인
가? 아니면 원의방 그 녀석이  북경에 들어가게 된 이후 다시 실토했던 
바를 뒤집어엎고 내가  때려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한 것일까? 아무래도 
황제는 오삼계에게 너무 잘 대해 주는 것 같다. 오삼계를 쓰러뜨린다는 
것은 쉬운 노릇이 아니로구나.)
해질 무렵이 되어 원의방을 압송해  갔던 시위와 효기영의 관병들이 달
려왔다. 이미 모두들 도박을 하는  것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리하여 
길을 가는 동안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며칠이 되지 않아 숭산 소림사에 
이르게 되었다.

주지는 성지가 도달했다는 보고를  받고 뭇승려들을 데리고 산아래까지 
내려와 위소보 일행을 접대하여 절 안으로 모셨다.
위소보는 성지를  꺼냈다. 그리고 장강년으로 하여금  읽게 했다. 그는 
장황하게 많은 글을 읽게 했다.  좋은 일을 많이 해서 황실을 보좌한다
느니 숭악(嵩嶽)아래의 소실봉에 있는  풀잎마다 선로(仙露)가 맺혀 있
고 숲 위에는 부처님의 해가 떠오르며 뭇승려들을 밝혀 주신 대로 명철
한 승려가 나오더라는 말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소림사의 주지 회총(晦
聰)을 호국우성선사(護國佑聖禪師)에  임명하며 모든  오대산에서 공을 
세운 승려들에게는 상을 내린다는  대목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
은 다음과 같았다.
"이에 효기영, 정황기 부도통 겸  어전시위 부총관이자 짐이 내린 황마
괘를 입은 위소보를 발령하니  도첩(度牒) 법기(法器)를 하사하는 바이
니, 즉시 삭발시켜 드리시오."
앞의 점잖은 말들은  네 글자나 모아 한 구절로  만들고 있어 위소보는 
들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뒤의 한마디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는 얼굴빛이  크게 변하고 말았다. 황제가 그에
게 오대산으로 가서 화상이 되라고 한 것은 그가 응낙한 바 있었다. 그
러나 그는 소림사에서 삭발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이 성지는 그가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는 읽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본다 해도 그 가운데 무엇
이 씌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회총선사는 뭇승려들을 이끌고 황은에 보답하려고 했다. 뭇군관들은 포
상할 물건들을 나누어 주었다.
회총선사는 입을 열었다.
"위대인이 황상을 대신해 출가를 하시니 이는 본사의 영광입니다."
그는 체도(剃刀)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위대인께서는 황상 대신이니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 아니할수 없소. 설
사 노납이라 하더라도 감히 그대의  사부가 될 수 없소. 노납은 선사를 
대신해 그대를 제자로 거두어들이겠소. 그대는 노납의 사제이며 법명은 
회명(晦明)이오. 소림사의 승려들 중 회 자 항렬에 드는 사람은 그대와 
노납 두 사람밖에 없소이다."
위소보는 일이 이렇게 되자 눈에  눈물을 머금고 꿇어앉아 삭발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회총선사는 먼저 체도를  가지고 그의 머리 위를 세 번 
밀어 머리카락을 깍아 내렸다.  그러자 삭발을 해주는 승려가 나서더니 
위소보의 머리카락, 그렇지 않아도 타서 듬성듬성해진 머리카락을 싹싹 
밀어 대머리가 되도록 만들었다.
회총선사는 말했다.
"속세의 영화는 옛날의 어두움이니 오늘에서 밝음을 찾으셨소이다."
그러더니 황제께서 하사하신 도첩을 꺼내  회명이란 두 글자를 그 도첩
안에 적어 넣었다. 그리고  위소보에게 꿇어앉아 여래에게 절을 하도록 
했다. 뭇승려들은 일제히 불호를 외쳤다.
위소보는 속으로 여간 화가 나지 않아 욕을 퍼부었다.
(이 늙은 중대가리! 18대 조상까지도  덕을 쌓지 못하고서 나의 머리카
락을 삭발하는구나! 당신이 한  번 아미타불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속으
로 빌어먹어라 하고 욕지거리를 하겠다.)
그는 갑자기 설음이  복받쳐 올라 소리내어 통곡했다.  대전에 가득 서 
있던 군관들은  모두 놀라 어리둥절해졌다.  뭇승려들은 불호를 외우며 
그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한참 울고나서야 눈물을 거두었다.
"사제, 불사의 승려들은  지금 대각관회(大覺觀晦) 징정화엄(澄淨華嚴) 
8자로 항렬을 삼고 있네. 본사의  관칭선사는 이미 28년전에 원적을 했
네. 절에 있는 징 자 항렬의 뭇승려들은 모두 그대의 사질이 되는 것이
라네."
그 즉시 뭇 승려들은 차례로 나가 인사를 했다. 그 가운데 징심, 징광, 
징통 등은 모두 그와 상당한 교분이 있는 사이였다.
위소보는 백발이 은빛으로 물들어 있는  징 자 항렬의 노화상들이 모두
들 자기를 사숙으로 부르고 정 자  항렬 역시 적지 않은 화상들도 나이
가 무척 늙었는데도 놀랍게도 그 자신을 사숙조라 부르는 것을 보고 오
히려 재미있어 했다.  그런데 화 자 항렬의  뭇승려들도 3,40세는 되었
다. 그런데 그들은 인사를  할 때 놀랍게도 태사숙조(太師叔祖)라고 부
르지 않는가? 그만 참을 수 없어 그는 껄걸 소리내 웃었다. 뭇사람들은 
아직 그의 얼굴에 눈물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소리내 웃는 것을 
보고 웃음을 금치못했다.
강희가 어전시위와 효기영의 친병들을 소림사로 보낸 것은 원래 위소보
를 호송해서 삭발하여 출가시키는 데  그 뜻이 있었다. 그러나 황제 대
신이 어찌 흔히 있는 일이겠는가?  만약 이같이 크게 일을 벌이지 않는
다면 어찌 뭇승려들의 마음속에 이  일이 그토록 융성하고 중대는 일로 
새겨지겠는가 말이다.
효기영의 참령인 춘부와 어전시위 조제현 그리고 장강년 등은 위소보에
게 작별을 고했다. 위소보는 3백  냥의 은자를 꺼내 장강년으로 하여금 
산 아래서 민가를 빌어 쌍아가 거주하도록 했다.
소림사는 언제나 여시주를 안으로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에 쌍아가 남장
을 했다고는 하지만 달마원 십팔나한은 모두 쌍아가 위소보의 하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로 하여금 산 아래에서 기다리도록 한 것이
다. 위소보는 성지만 전하고 상으로  내린 물건들만 전해 주면 즉시 서
울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가 소림사에서 출가하리라고 그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위소보는 황제의 대신이고 또한 회  자 항렬의 고승이니 절에서의 신분
은 존귀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방장은 한 채의 커다란 선방을 그에게 내
주었다.
"사제께선 절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하시오.  아침 저녁의 공부도 편리한 
대로 하시오. 살생과  절도, 음란, 거짓말, 음주의 다섯  큰 계율 외의 
나머지 작은 계율들은 지켜도 좋고 지키지 않아도 좋소이다."
이어서 그는 오계(五戒)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설명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계 가운데 거짓말이라는 일계는  나로서는 도저히 지킬 수가 없겠는
걸?)
그리하여 물었다.
"노름은 끊지 않아도 됩니까?"
회총방장은 되물었다.
"무슨 노름이오?"
"돈을 걸고 따먹는 노름이외다."
회총은 빙그레 웃었다.
"오대 계율  가운데는 노름을 금지하는 계율은  없소이다. 다른 사람은 
지켜야 하겠지만 사제는 편리한 대로 하십시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제기랄! 나 혼자 지키지 않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담! 설마 하니 내가 
나를 상대로 해서 도박을 한단 말인가?)
절에서 며칠을 지나게 되었는데 여간 무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속
으로 생각했다.
(소현자가 나에게 노황야를 시중들라고 해놓고서 이 소림사에서 출가토
록 할 줄 몰랐다. 그런데 언제쯤 오대산으로 가게 해줄까?)
이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발길 떨어지는 대로 나한당 밖으로 갔다. 
이때 징통이 6명의 제자를 데리고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뭇승려들은 
그가 다가가자 일제히 허리를 굽히고 절을 했다.
위소보는 손을 내저었다.
"예를 차릴 것 없네. 그대들은 계속 무술을 연마하도록 하게."
그러나 징 자  항렬의 6명이 전개하는 권각법은  매우 정묘하고 은밀했
다. 손 씀씀이가 매서우면서도 민첩했다.  그리고는 대련을 하게 될 때
는 변화도 대단했다. 사숙조라는 자신과  견주어 볼 때 훨씬 고명한 편
이었다. 이는 징통이 지도를 하고 있었다. 이 한 대의 주먹은 강맹하기
는 하나 끈질긴  힘이 부족하다느니 또는 이 발길의  부위가 어느 정도 
기울어졌으며 너무 높이 찼다느니 하는 말들이었는데 위소보는 전혀 알
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자 몸을 돌려 그 자리
를 떠나려 했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종종 들은  것인데 소림사의 무공은 천하제일이라고  했다. 내가 절에 
와서 화상이 된 지금 무공을 익히지 않는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별안간 확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다.
(아이쿠! 그렇구나. 해대부 늙은  폐병쟁이가 나에게 가르쳐 준 무공은 
모두 가짜다. 아무 쓸모가 없다.  소현자가 나로 하여금 소림사에 출가
토록 한 것은 소림파의 진짜  실력을 익혀서 노황야를 제대로 보호하자
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의 사부님은 벌써 28년 전에 돌아가
셨으니 누가 나에게 무공을 가르친다?)
그는 잠시 생각해 보고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주지 노화상이 나에게 그의 사제가  되라고 한 것은 본래 나에게 사부
가 없도록 한 조처였다. 그러고보니  이 늙은 땡초는 정말 교활하기 이
를 데 없구나. 음, 그렇다.  그는 내가 황제의 심복이고 만주의 커다란 
벼슬아치라는 것을 알고 상승의 무공을 이 나이어린 오랑캐에게 전수해 
주지 않겠다는 것이겠지. 흥! 그대가  나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해서 내
가 보아서 배우지 못할 줄 알고?)
무림에서는 무공을 연마할 때 다른  사람이 옆에서 구경하는 것을 크게 
꺼리고 있었다. 그러나 회명선사로 말하면 소림사의 선배 고승이다. 본
파의 제자나 자손들이 무공을 전수하고  익히는 것을 그가 옆에서 보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는 절안의 각 전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어떤 사람이  무공을 익히고 있으면 그 자리
에 서서 한참 동안 구경하곤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위소보라는 고승
은 기초가 너무  형편없었다. 그날 해대부가 그에게  가르쳐 준 무공은 
진짜 실력이라 할 수 없었고 진근남이  전수한 그 내공도 그는 며칠 연
마하지 못한 상태였다. 소림파의 무공은 박대(博大)하면서도 정심했다. 
이같이 아무렇게나 본다고 해서  무슨 깨우침이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
는 오랫 동안 지켜 볼 참을성도 없었다.
소림사에서 한달 남짓 돌아다니며 놀았으나 무공은 조금도 배울수 없었
다. 그의 성질은 '아무려면 어때'하는 편이었고 또 친구를 사귀기를 좋
아했다. 그리하여 절안의 위치와 배분이  방장 다음 가는 선배가, 항렬
이 낮은 사람을  사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승려들은 
그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이 날은 봄바람이 부드럽게 불어 오고 날씨도 화창했ㄷ. 위소보는 온몸
이 나른했다. 절 안에 남아서  화상들과 짝이 되다니 실로 재미없는 노
릇이었다. 그는  사문을 나서 걸음내키는 대로  산을 내려갔다. 속으로 
오랫 동안 쌍아를 못 만났으니  조그만 계집애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
해서 그녀를 찾아 볼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절안에서 매일같이 푸른 채
소와 두부만 먹는데 신물이날  지경이었다. 그는 쌍아에게 닭이나 오리 
그리고 물고기들을 사와서 배불리 먹어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런데 그가 소림사 밖 영객정(迎客亭)에  이르게 되었을 때 갑자기 다
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속으로 기뻤다.
(잘됐다! 잘됐어! 그 누가 싸우고 있군!)
그는 재빨리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몇 사람의  남자들 목소리 가운데 
여자의 맑은 음성이 들려 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정자 안에서 젊은 여자가 소림사의  네 명 승려와 
한참 언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네 승려는 위소보를 보자 일제히 말했다.
"사숙조께서 오셨으니 이번 일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해봅시다."
그들은 정자에서  물러나와 합장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그를 맞이했다. 
이 네 명의  승려는 모두 '정'자 항렬이었다.  위소보는 그들의 직책이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니만큼 평소에 말도 잘하고 또 태도마저 부드러운 
편인데 어인 일로 두 젊은 여자와 언쟁을 벌이고 있는지 궁금하게 여겼
다. 그런데 두  여인을 보니 한 명은 20세  전후로 몸에 남삼을 걸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나이는  좀적어 불과 16,7세로 보였는데 몸에 담
록색 의상을 걸치고 있었다.
위소보는 그 담록색 의상을 입은 소녀를  보게 되자 가슴이 쿵 하고 뛰
었다. 가슴팍은 마치 망치에 심하게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그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딱 벌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죽었군! 나는 죽었구나!  어디서 이처럼 아름다운 미녀가 왔다는 
말이냐? 이 미녀가 만약 나에게  시집을 와서 마누라가 되어 준다면 소
황제가 나와 자리를 바꾸자고 해도 나는 바꾸지 않겠다. 위소보는 체면
을 따지지 않는 망나니가 아닌가? 위로 하늘을 오르고 아래로는 땅으로 
기어들어갈 뿐 아니라, 숲처럼 창이  나열된 곳은 물론이고, 화살이 빗
발처럼 쏟아지는 곳이나 화산이나 기름가마에 뛰어드는 한이 있어도 저 
소저를 내 마누라로 삼아야겠다.)
두 소녀는 네 명의 승려가 나이  어린 중에게 사숙조라 부르고 또 매우 
깍듯이 예를 차리는 것을 보자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삽시
간에 그의 두 눈이 멍청해져 못박힌 듯 녹의소녀를 쳐다보는 것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보통 남자라고 해도 그 같은 행동은 매우 무례한 행동
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출가한 승려가 아닌가? 녹의소녀는 얼굴을 붉히
며 고개를 돌렸다. 그 남삼의 소녀는 얼굴 가득히 노기를 띠고 있었다.
그런데도 위소보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어째서 고개를 돌리는 것일까?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 미미하게 
붉어지니 여춘원의 백 명이나 되는  낭자들을 함께 세운다 해도 그녀의 
눈썹 하나 만큼도 예쁠 것 같지  않구나! 그녀가 한 번 웃을 적마다 난 
그녀에게 만 냥의 은자를 준다 해도 손해볼 것 같지 않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방소저, 소군주, 홍부인, 건녕공주, 쌍아, 그리고 그 주사위를 던졌던 
정소저 등 이 많은 사람들을 함께  보탠다 해도 눈앞의 이 선녀와 같은 
소녀의 아름다움에는 견줄 바가  못되는구나. 이 위소보는 황제는 싫고 
신룡교 교주가 되는것도 싫으며 천지회의 총타주가 되는 것도 싫다. 그
리고 무슨 황마괘니 삼안화령(三眼花翎)에 일품이고 이품이라는 대관도 
더욱더 마음에 두지 않는다. 나는...... 나는 반드시 이 소저의 지아비
가 되어야겠다.)
삽시간의 그의 마음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오락가락했다. 설사 끓는 
물속이 아니라 불길속에 들어가게 되고  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불사
하겠다는 결심을 내리게 됐고 그 얼굴의 표정이 이상야릇하게 변했다.
네 승려와 두  소녀는 그가 갑자기 벙긋 하니  웃음을 띄웠다가 갑자기 
이를 가는 등 마치 실성한  듯한 태도를 보이자 눈살을 찌푸렸다. 정제
(淨濟)와 정청(淨淸)은 몇 번이나 위소보를 불렀다.
"사숙조, 사숙조!"
그러나 위소보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그는 꿈속에서 깨어
난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남의소녀는 처음에는 그가 호색하고 경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데 그의 안색으로 볼 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따라서 ㅂ기에는 소화
상이 십중팔구 백치일 거라고 생각했다.
속으로 우스꽝스러워 물었다.
"이 소화상이 그대들의 사숙조란 말인가요?"
정제는 재빨리 말했다.
"소저는 하시는  말씀에 예의를 차리도록 하시오.  이 고승의 법명으로 
말하면 회명으로서 본사 두분 회자 항렬의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시며 바
로 주지 방장의 사제이외다."
두 명의 여인은 약간 놀랐다.  곧 우스꽝스럽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믿
으려 하지 않았다.
녹의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사저,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 속임수에 넘어갈 수 없
죠. 이 나이어린...... 나이어린  법사가 어찌해서 고승이 된단 말이에
요?"
이 몇 마디의 말은 매우 카랑카랑하면서도 간드러졌고 나직하면서도 부
드러워 사람을 녹일 것 같았다.
위소보는 혼이 반쯤 달아남을 느끼고 참지 못하고 그 말을 흉내냈다.
"이 나이어린...... 나이어린 법사가 어찌해서 고승이 된단 말이에요?"
그 한 마디 말을 흉내내게 되자 천박하고 망나니다운 태도가 여지 없이 
드러나게 되었다.
두 소녀는 즉시 얼굴을 굳혔고 네  명의 정자 항렬의 승려들도 이 소사
숙조가 너무 실례했다고 느끼며 무척 부끄럽게 여겼다.
그 남의소녀는 살며시 코웃음을 치더니 물었다.
"그대가 소림사의 고승인가요?"
위소보는 말했다.
"승려는 승려이나  고승은 아니오. 그대들이 보기에도  나의 키는 작지 
않소? 그러니 왜승(矮僧)에 불과하오."
남의소녀는 두 눈썹을 꿈틀하더니 말했다.
"소문에 듣기에는 소림사가 천하무림의 총집산지라고 하며 72종류의 절
예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 자매 두 사람은 마음속
으로 흠모한  나머지 특별히 달려와 우러러보고자  한 것인데 뜻밖에도 
무공이 보잘 것  없을 뿐 아니라 절안의 화상은  더욱더 규칙을 지키지 
않고 번지르르하게  아무 말이나 내뱉으니 시정잡배와  다를 바가 없어
요. 실로 실망했어요. 사매, 우리가자."
그녀는 몸을 돌리더니 정자에서 나섰다.
정청은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여시주는 소림사에 와서 흉악하게  사람을 때리고 그냥 떠나겠다는 것
이오? 설사 가더라도 존사의 명호를 남겨 놓고 가시오."
위소보는 흉악하게 사람을 때렸다는 말을 듣자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그녀들은 사람을 때렸구나. 그러니  정청 그들이 언쟁을 벌인 것
도 무리는 아니었구나.)
이때 정청과 정제 두 사람의 왼쪽 뺨에는 붉은 손자국이 나 있었다. 따
귀를 맞은 것 같았다. 위소보는 일찍이 지객승이 무공이 절에서는 가장 
밑바닥에서 맴돈다는 말을 들어 왔다. 방장은 그들의 언변이 좋고 무공
이 낮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절에 와서 불공을 드리는 시주를 접대하
도록 파견하였다. 소림사는 무림에서 커다란 명성을 떨친 지 천여 년이 
지났다. 매달 절로 찾아와서  무공을 가르침 받겠다는 무인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지객승의  무공이 얕아야만 남과 손을 쓰지 않
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을 때 소림사는  싸움을 벌이는 장소가 
되고 말 형편이었다. 그러면 자연  수양을 방해하게 될 것이고 또 부처
님의 남과 다투지 말라는 뜻을 크게  어기는 결과가 될 뿐 아니라 체통
도 서지 않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남의소녀는 이러한 이치를 알턱이  없었다. 대뜸 손을 써서 두 명의 
승려를 때리고 몹시 의기양양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대들의 이까짓 무공으로 이  소저의 사부님의 명호를 알려고 하는가
요? 흥! 그대들에게도 자격이 있나요?"
정제는 조금 전 그녀에게 쓴 맛을 본 경험이 있었다. 자기들 다섯 사람
으로는 그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 소녀가 
산을 내려가게 되고 두 소림사의 승려에게 손찌검을 한 사실을 널리 퍼
뜨린다면 자기는 말할 것도 없고 소림사의 명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생
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네 승려는  시주들을 접대하는 것이 일이라  무공이 약하기 이를 
데 없소. 출가인은  화를 내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데 어찌 
남과 함부로 손을 쓴다는 것이오?  두 분이 폐사의 무공을 가르침 받겠
다면 잠시 더 기다려 주시오.  빈승이 달려가 몇 분의 사백과 사숙들을 
모시고 와서 두 분께 구경을 시켜 드리겠소이다."
그리고나서 그는 절안을 향해 달려들어가려고 했다.
별안간 남색 그림자가 번쩍였다. 정제는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는......"
그러나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곤두박칠쳤다. 남의소녀가 달려들어 
발로 그의 다리를 걸었던 것이다.
정제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노해 부르짖었다.
"여시주, 그대는 어째서......"
그 남의소녀는 깔깔 웃으며 오른 주먹을 뻗었다. 정제는 재빨리 오른팔
을 뻗쳐 막으려고 했다. 남의소녀는  왼손을 한 번 낚아 채더니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오른팔 관절을 뽑아놓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우지끈, 억 하는 소리가 잇달아  울려퍼졌다. 그 소녀는 순식간에 나머
지 세 명 승려의 손목뼈를  탈골시켜 놓았다. 네 승려는 한쪽으로 물러
서게 되었고 이제는 더욱 방어할  기력도 없게 되었다. 정제는 이때 여
전히 단념할 수 없다는 듯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절안으로 들어가 전갈
을 하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놀라 손과  발을 어떻게 놀려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별안간 
뒷덜미가 바싹 조여들었다. 어느새  상대방에게 잡혀 들려졌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올리는 순간 그의 뒷목에 있는 요혈까지 한꺼번에 잡아올리
는 바람에 그의 온 몸뚱이는 맥이 빠져 기운을 쓸래야 쓸 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남의 소녀는  바로 자기 앞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자기의 
뒷덜미를 잡아올린 것은 물론  녹의소녀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는 속으
로 미친 듯 좋아서 크게 부르짖었다.
"이것 참 절묘하군! 절묘해!"
그녀에게 이같이 움켜잡힌 것이 이 세상에 난생 처음 보람이 있는 일처
럼 느껴졌다. 더군다나 그녀가 자기의  몸에다 몇 번 발길질을 하고 머
리 위에 몇 대의 주먹이라도 내질렀으면 더욱 좋을 것 같았고, 즉시 얻
어맞아 죽는다 해도 그 맛이 무궁무진하며 염복이 넝쿨 채 굴러들어 올 
것 같았다. 이때 한가닥의 담담하고 그윽한 향기가 풍겨 왔다.
그는 크게 부르짖었다.
"어, 향기롭군! 향기로워!"
남의 소녀는 노해 부르짖었다.
"이 나이 어린 땡초는 매우  고약하군! 누이, 그의 코를 잘라내도록 해
요."
위소보는 이때  등뒤에서 간드러진 음성이 들려오는  것을 느낄수 있었
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그대는 천천히 뽑으시오. 너무 빨리 뽑지 마시오."
그 소녀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건 무엇 때문이죠?"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이처럼 나를 잡고 한평생  놓지 않고 영원토록 붙잡고 있는 것
이 가장 좋을 것 같소."
그 소녀는 노해 부르짖었다.
"소화상,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나에게 횡설수설하기에요?"
위소보는 갑자기 자기의 오른쪽  눈에 격렬한 아픔이 전해옴을 느꼈다. 
그 소녀는 정말 그의 눈알을 뽑으려고 드는 것이 아닌가? 그는 깜짝 놀
라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가슴 가득히 끓어올랐던 설
레이는 감정마저도 모조리 떨쳐 버렸다. 그리고 두 손을 뒤로하여 허겁
지겁 낚아채려 들었다.  그저 자기의 뒷덜미를 잡은  그 손을 잡으려고 
했다. 이때 그 소녀는 한주먹으로 그의 등을 내리쳤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위소보는 크게 부르짖었다.
"아이쿠! 어머니!"
그는 두 손을  뒤로 돌려서 마구잡이로 허우적거리며  휘둘러 댔다. 그 
바람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홍교주가 전수해 준 반초의 적정항룡이라는 
수법을 펼쳤다. 순식간에 부드럽고 매끄러운 것이 손에 와닿았다. 놀랍
게도 그녀의 가슴팍을 움켜잡은 것이다.
이 일식은 본래 등뒤의 적으로 하여금  몸을 움츠리도록 한 후 훌쩍 재
주를 넘어서 적의 목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대적 경
험이 없어 위소보가 그녀의 가슴팍을 잡게 되리라는 데 대해 전혀 경계
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초식을 펼친 결과는  크게 달라졌다. 그 
적정항룡의 나머지 반초 역시 펼칠 수 없었다.
그 소녀는 놀람과  수치심이 얽혀 두 손을 바깥  쪽으로부터 안 쪽으로 
휘둘렀다. 그리고 위소보의 두 팔을 잡고 비틀더니 우지끈뚝 하는 소리
와 함께 그의 양팔 관절을 뽑아 놓고 말했다. 이 일초는 유연귀소(乳燕
歸巢)였다. 이름은 매우 부드럽고  우아했으나 분근착골수 중의 악랄한 
살수였다. 곧이어 그녀는 발로 위소보를 걷어차 일장 밖으로 나가 떨어
지게 했다. 그래도 그 소녀는  치미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허리에 차고 
있던 유엽도(柳葉刀)를 뽑아 맹렬히 위소보의 등을 내려찍으려고 했다.
위소보는 재빨리 몸을 뒹굴어서 정자  한복판에 있는 돌로 만들어진 탁
자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그러자 그 칼은 땅바닥을 치게 되었고 불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곧이어 그녀는 왼발을 뻗쳐 위소보를 탁아 안에서 나
오도록 걷어찼다. 남의소녀는 부르짖었다.
"사매, 사람을 죽여선 안돼!"
녹의소녀는 전혀 못  들은 듯 다시 한칼에 힘을  주어 위소보의 등뒤를 
내리쳤다. 위소보는 다시 부르짖었다.
"아이쿠! 어머니!"
녹의소녀는 다시 두 번 칼질을  했다. 그렇게 칼부림을 당하게 되자 위
소보는 뼈가 에이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다행히 보의가 있어 몸
을 지켜 주었기에 상처는 입지 않았다.
녹의소녀는 다시 칼질을 하려고  했다. 남의소녀가 칼을 뽑아들더니 창 
하고 그녀의 강철칼을 막고 부르짖었다.
"이 소화상은 살 수 없게 되었어! 우리 빨리 가자!"
그녀는 소림사에서 절안의 승려를  죽였으니 화를 크게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했다.
녹의소녀는 아주 커다란 모욕을 받았고  자기 자신이 이미 소화상을 죽
였다고 생각했다. 놀람과 수치에 얽혀 갑자기 눈물을 두뺨에 주르륵 흘
리더니 팔굽을 구부려서 휘두르던 칼을 자기의 목으로 가져가 내리치려
고 했다. 남의소녀는 깜짝 놀라 급히  팔을 뻗쳐 막았다. 급히 손을 써
서 막는 바람에  그녀의 칼날을 약간 밀어낼 수는  있었으나 칼의 끝은 
어느덧 그녀의 목에 상처를 내게  되었고 녹의소녀의 목에서는 피가 흘
러나왔다.
남의소녀는 놀라 부르짖었다.
"사매......그대......그대는......그대는 이게 무슨 짓이지?"
녹의소녀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끼고 그만 기절하여 쓰러지고 말
았다.
남의소녀는 칼을 버리고 그녀를 얼싸안으며 놀라 부르짖었다.
"사매, 그대는......그대는 죽을 수 없어."
홀연 등 뒤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아미타불, 빨리빨리 치료를 하자."
남의소녀는 울부짖었다.
"구......구하기엔 이미 늦고 말았어요!"
그러자 한 손이 등 뒤에서 뻗쳐왔다. 손가락을 연신 움직이더니 녹의소
녀의 상처입은 주위 혈도를 집고 입을 열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니 소저는 너무 탓하지 마시오."
그리고 찍찍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사람은 옷자락을 찢더니 녹의소녀의 
목을 감았다.  그리고 몸을 구부리고 그녀를  안아 들었다. 남의소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사람을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은 흰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온 노승이었다. 노승은 녹의소녀를 안더
니 재빨리 산위로  달려갔다. 그녀는 당황한김에 그  노승의 뒤를 따랐
다. 그 노승은 그녀의 사매를 안고 소림사의 산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
녀는 다시 노승의 뒤를 따라들어갔다.

위소보는 석탁 아래서 기어나왔다. 두  팔이 이미 자기의 것이 아닌 것
처럼 맥없이 몸 옆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이 소저는 매우 악랄하군. 그런데 왜 스스로 자결하려고 했을
까? 만약 그녀가 정말 죽었다면 어떻게 하지? 나는 역시 뺑소니를 쳐야
겠구나!)
그러나 그 소녀의 절세적인 용모를 생각하니 가슴이 후끈 달아 올랐다.
(도망칠래야 칠 수가 없다. 반드시 그녀에게 가봐야지.)
그는 두 팔이 격렬하게 아파오는  것을 참아 내며 이마로부터 식은땀을 
뚝뚝 흘리면서 억지로 산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10여 걸음 옮기게 되었을 때  절 안에서 이미 10여 명의 승려들
이 달려나와 그와 정 자 항렬의 세 승려를 부축해서 대전안으로 데려갔
다.
그와 네 승려는 모두 관절이  탈골되었다. 삐고 탈골이 된 뼈를 고치는 
것은 원래 소림파의 무공에 있어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즉시 승려가 
그들의 뼈를 맞추어 주었다. 위소보는 급히 그 소녀를 보고 싶어 두 여
시주가 있는 곳을 물어보고 곧장 동원선방(東院禪房)으로 다가갔다. 막 
회랑을 지나게 되었을  때 8명의 승려가 손에  계도를 들고 맞은편에서 
다가왔다.
8명의 승려는 모두 계율원에서  일을 보고 있는 집사승(執事僧)이었다. 
앞장을 선 한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입을 열었다.
"사숙조, 방장대사께서 부르십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래? 나는 먼저 그 소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봐야겠네."
그 승려는 말했다.
"방장대사께선 계율원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숙조께선 즉시 가보시
기 바랍니다."
"제기랄! 나는 그  미모의 소녀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 너는 못들었느
냐?"
그는 평소 성질이 무척 좋은  편이었지만 마음이 다급해지자 그만 절인 
것도 불구하고 상소리를 해댔다.
8명의 승려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감히 막지를 못했다.  그 즉시 네 
승려는 위소보의 뒤를 따르게 되었고 나머지 네 승려는 정제등 네 명의 
지객승을 부르러 갔다.
위소보는 동원선방에 이르러 물어 보았다.
"소저는 죽지 않겠는가?"
한 명의 노승이 대답했다.
"사숙, 상처는 심하지 않은 편입니다."
위소보는 즉시 마음을 놓았다.
그 남의소녀는 바로 옆에 서 있었는데 위소보를 손가락질 하며 욕을 했
다.
"모두 이 소화상이 나빴기 때문이에요!"
위소보는 그녀에게 혀를 쑥 내밀어 보였다. 그리고 망설였으나 끝내 방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지 못하고 몸을 돌려 계율원 쪽으로 걸어갔다. 그
런데 계율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수십 명의 승려들이 몸에 가사를 
걸치고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는데 표정이 매우 엄숙했다.
그를 압송해 온 칼을 든 네 명의 승려가 일제히 말했다.
"방장 스님께 알립니다. 회명 스님을 데려왔습니다."
위소보는 이 같은 그들의 행동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제기랄! 큰 나리께서 심문이라도 한단 말인가? 빌어먹을! 무슨 큰일이
라고 이 지랄들이지?)
그는 커다란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불상 앞에는 수십 대의 촛불이 켜
져 있었다. 그리고  방장 회총선사는 왼쪽 모서리에  서 있었고 오른쪽 
모서리에는 한 분의 노승이 서  있었는데 체구가 우람하여 노기를 띠고 
있지 않았는데도 절로 위엄이  우러나는 사람이었다. 바로 계율원의 수
좌 징식선사(澄識禪師)였다. 정제, 정청등 네 승려는 아래쪽에 서 있었
다. 회총선사는 입을 열었다.
"사제 여래보살게 예를 올리게."
위소보는 무릎을 꿇고 예불을 올렸다. 회총은 그가 몸을 일으키기를 기
다려서 입을 열었다.
"산 아래의 정자 안에서  일어났던 일을 사제가 계율원 수좌(首座)에게 
말씀드리게."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6. 녹의소녀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그들이 언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가 보았습니다. 도대
체 무엇 때문에 언쟁을 벌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제, 자네가 이야기를 
하게."
"네."
정제는 몸을 돌리고 말했다.
"방장과 수좌사숙에게 품하는 바입니다. 제자 네 사람은 정자에서 손님
을 맞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여시주가 절안으로 들어와 예불을 
하겠다고 하길래 제자들은 완곡한  말로, 본사의 지금까지 지켜온 규칙
에 의하면 여시주를 접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나이가 좀 듬직한 여시주가 말했습니다.
'소문에 들으니 소림사는 자칭 무학의 정종이라 하며 72가지 절예는 하
나같이 당대 무적이라고 하기에  우리들은 구경삼아 왔어요. 도대체 어
떻게 무서운지 봐야겠어요.'
제자는 말했어요.
'폐사에선 결코 감히 스스로  무공이 당대 무적이라고 칭하지 못한답니
다. 천하각문각파의 무공은 각기 장점이 있습니다. 소림파에서 어찌 그
런 망발을 하겠습니까?'"
회총방장은 말했다.
"그 말은 그럴 듯하다. 매우 잘한 말 같구나."
"그 여시주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소림파는 그저  헛되이 명성만 떨치고 있을  뿐이고 하잘 것 
없는 권각법은 겨우 가소로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 말이에요'
제자는 말했습니다.
'실례이지만 두 분 시주는 어느  문파에 속하는지요. 어떤 무림 선배의 
고제자입니까'"
회총은 말했다.
"그렇다. 두 젊은 여인이 본사에 와 일을 일으키는 것은 본파의 무공을 
업수이 여기는 것이니만큼 반드시  내력이 있을 것이다. 마땅히 그녀들
의 문파내력을 물어야 했다."
그 여시주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대는 우리들의 문파내력을 알고 싶은가요? 그것은 참 쉬워요. 한 번 
보면 알 수 있어요.'
별안간 제자와 정청 사제의 따귀를  갈겼으나 그녀의 손 씀씀이가 너무 
빨라 제자들은 사전에 방비할 수 없었습니다.
정청사제가 말했습니다.
'두 분은 어째서 함부로 사람을 치는 것이오.'
그 여시주는 웃었습니다.
'그대들에게 우리 문파 내력을 알리기 위해선 손으로 쓰는 무공을 보여 
주면 될 것이 아니에요?'
거기까지 말할 때 회명 사숙조께서 오셨습니다."
징식은 물었다.
"그 여시주가 손을 써서 너를 때리고자 할 때 사용하던 수법은 어떤 것
이냐?"
정제와 정청등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자들은 똑똑히 보지 못했습니다."
징식은 나머지 두 승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얻어맞지 않았으니 그 여시주의 수법과 신법을 보았겠지?"
"그저 철썩철썩 하는 소리만 듣고  두 분 사형이 얻어맞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 여시주들은 마치 손을 쓰거나 옮기지도 않은 듯 
몸도 꿈쩍거리지 않았습니다."
징식은 방장 쪽을 바라보며 그의 계시를 기다렸다.
회총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집사승에게 말했다.
"달마원과 반야당(般若堂)의 두 분 수좌를 모셔오도록 해라."
얼마 후 두 분 수좌가 차례로 도달했다.
달마원의 수좌는 징심이었다. 바로 오대산으로 응원을 갔던 십팔나한의 
우두머리였다. 반야당의 수좌는  징관(澄觀)선사로서 80세 되는 노승이
었다. 두 승려는 방장에게 인사를 했다.
회총은 말했다.
"두 분 여시주가  본사에 와서 시비를 걸었는데  어떤 문파인지 모르고 
있네. 두 분은 박학하고 견문이  넓으니 함께 자세히 연구해 주시기 바
라네."
그리고 그는 즉시 경과를 이야기했다.
징심은 말했다.
"네 명의 사질들이 그녀가 손을 쓰는 것을 못 보았는데도 두 사람은 얼
굴에 각기 따귀를 맞았습니다.  이와 같은 무공은 본파 천엽수(千葉手)
가운데도 있으며 무당파의 회풍장(廻風掌)에도 있으며 곤륜파의 낙안권
(落雁拳),  공동파의 비봉수(飛鳳手)등에도  이와 같은  수법이 있습니
다."
회총은 말했다.
"그저 이장을 쓰는 것으로 보아선  그녀들의 무공문파를 알 수는 없군. 
그런데 자세는 또 어떻게 하다가 그들과 손을 쓰게 되었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남의소녀는 먼저 네명...... 네 명 화상의 팔목을 비틀었습니다."
회총은 네 승려들이  손목과 팔뼈가 부러진 원인을  물었다. 네 승려는 
손짓 발짓을 해가며 연출해  보였다. 징심은 물끄러미 한참동안 바라보
더니 차례로 자세히 그 소녀들의 수법을 물었다.
최후로 위소보에게 물었다.
"사숙께 여쭤 봅니다. 그 소저는 어떻게 사숙의 두 팔을 비틀어서 분질
렀습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이 어르신께서는 뒷덜미를 그  아름다운 소저에게 더럭 움켜잡히게 되
었소. 그리하여 전신이 욱신거리고 맥이 빠지더구려. 그녀는 바로 이곳
을 잡았소."
그러면서 그는 뒷덜미를 가리켰다.
징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대추혈(大椎穴)로서 가장 중요한 요혈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손을 뒤로 돌려 그녀의 팔을 밀어내려고 했소.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의 주먹에 등심을 얻어맞게 되었고 그만 죽을 것 같은 아픔을 느끼
게 되었소. 일이 다급해진  나머지 손을 허위적거리게 되었는데 그녀의 
가슴팍을 한 번 움켜잡게 되었소. 그소녀는 그만 다급해져서 나의 팔목
을 비틀어 놓고 나를 땅바닥에  내던지더니 마구 칼을 휘두르며 내려찍
었소. 빌어먹을! 사람을 죽이는데 밑천이 들지 않는다고 그녀는 오로지 
한마음 한뜻으로  친남편을 모살하여 젊은 과부가  될 작정이었나 봅니
다."
뭇승려들은 그가 입으로 터무니없는 말들을 마구 지껄이게 되자 서로들 
얼굴만 쳐다보았다. 징심은 그의 등뒤로 돌아가 손을 뻗쳐서 시늉을 해
보이자 그의 등심  승복자락에 세 가닥의 칼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그녀는 그대에게  세 번이나 칼질을 했군요.  사숙의 상처는 어떻습니
까?"
위소보는 의기양양해져서 말했다.
"나는 보의가 있어  몸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상처는  입지 않았소. 이 
세 번의 칼질은  다행히 나의 중대가리를 내려치지  않았소. 그 누이는 
칼로 나를 쳤으나  죽지 않은 것을 보고 아마  혼비백산한 모양으로 이 
어르신의 무공이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여긴 나머지 자기의 
목을 자르려고 했소.  기실 나의 무공으로 말하면  형편없는 것이 아니
오? 그녀와 같이 화용월태를 지닌  소녀를 이 어르신은 결코 괴롭힐 생
각이 없었는데......"
회총은 그가 계속 터무니없는 말들을  많이 지껄이게 될까봐 불쑥 입을 
열었다.
"사제, 그만하게. 되었네."
뭇승려들은 그제서야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소녀가 자결을 
하려고 한 것은 가슴팍을 붙잡히게  되어 지극히 커다란 모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위소보는 당시 생사가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의 옷자락에 
난 세 가닥 칼자국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다급한 김
에 손을 뒤로  돌려 마구 허우적거리게 되었으니 적의  몸 어느 부위를 
건드렸다고 해도 무슨  잘못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의 무공이 
형편없이 낮기 때문에 사람에게 사로잡히게 되었을 때 죽어라고 발버둥
을 치게 될 것은 뻔한 노릇이니  그런 순간에 어찌 어떤 규칙을 지키라
고 할수 있겠는가?
징식은 대뜸 안색이 차분해지더니 입을 열었다.
"사숙, 처음 그 여시주가 말끝마다  사숙이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욕
을 하길래 사숙께선 진짜 계율을  어기고 남의 부녀를 희롱하여 상대방
에게 죄를 짓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소이다. 그러고보니 싸우게 되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과실이고,  계율을 어겼다고 할 수는 없군요. 
사숙께선 이리 앉으십시오."
그는 친히 의자를 가져와 회총의  아래쪽에 놓았다. 그 뜻은 계율을 어
기지 않았으니 계율원에서는 당신을 상관할 수 없다, 그리고 당신은 절
안에서 어른이니 마땅히 당신에겐 존경을 표해야 될것이 아니겠는가 하
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히죽 웃으며 앉았다.
징식은 그의 태도가 경박하고 말하는 것도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을 보
고 참을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사숙께서는 색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해도 여시주를 대하게 되었을 때 
마땅히 정중한 행동과 근엄한 얼굴을  해야만 소림 고승의 풍모를 실추
시키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위소보는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회총이 막 뭐라고 권고의 말을 하려고  할 때 반야당의 수좌 징관이 갑
자기 입을 열었다.
"문파가 없소이다."
징심은 의아해 물었다.
"사형은 그 두분 여시주에게 문파가 없다는 것이오?"
"훔쳐서 배운 무공이며, 그녀들  두 사람의 분근착골수 가운데는 무당, 
곤륜, 점창, 공동  사파의 수법이 포함되어 있소.  그리고 사숙의 등에 
한 세  번의 칼질은 이미 청성  그리고 산서성의 육합도(山西六合刀)의 
삼문도법(三門刀法)이 포함되어 있소."
위소보는 크게 의아한 마음이 들어 입을 열었다.
"어! 그녀들의 그와  같은 초식을 보고 그대는 모두  내력을 알수 있단 
말이오?"
위소보는 징관이 8살 때 소림사에 출가하여 70여년 동안 무학에만 몰두
하여 한 번도  절문 밖으로 나간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무학의 전적(典
籍)을 모두 읽어 아는 바가 지극히 높다는 사실을 알턱이 없었다. 소림
사 달마원은 본래 전적으로 소림파의 무공을 연마하는 곳이었고 반야당
은 전적으로 천하 각문각파의  무공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반
야당의 수십 명의 고승들은 하나같이 한  파 또는 여러 파의 무공에 정
통하고 있었다.
소림사의 뭇승려들은 수나라  말기에 이세민(李世民)을 도와 왕세충(王
世充)을 평정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미 위세를 천하에 떨칠 수 있었으
며 천여 년 동안 그  명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에는 
물론 소림파의  무공이 박대하고 정묘하여 깊이가  있다는 것도 원인이 
있었지만 반야당에서 다른 문파의 무공을 착실히 연구했다는 것도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문파의  무공을 통달한 이후, 첫째로 장점
을 키우고 단점을 보완하여 소림파의 무공이 부족함을 구할 수 있었고, 
둘째로는 다른  문파의 고수들과 겨루게 된다면  먼저 상대방의 내력을 
알게 되었으니 자연히 크게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셈이었다. 그리고 소
림사의 제자들은 강호에서 경험을 쌓아  절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는 방
장과 자기의 사부에게 인사를 한 이후 계율원으로 가서 자기 자신은 어
떤 죄를 짓지  않았음을 보고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반야당으로 가서 
자기가 경험한 바와 들은 바를  보고해야 했다. 다른 문파의 무공 가운
데 일초일식이라도  취해야 할 무공이 있다면  반야당에서는 기록을 했
다. 이와 같이 수천 년간  쌓이고 쌓이게 되자 천하각파 무공은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설사 절안에 재지가 탁월하고 걸출
한 인재가 없다 해도 뭇 영웅들의 영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징관은 그저 무학에만 몰두하여 세상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됨이 약간 멍청한 데가 있었다. 그렇지만 각
문각파의 무공에 대해서는 정묘하게  분별할 줄 알았다. 선비들은 글을 
많이 읽고 난 이후 너무나 많은  양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게 되
면 그저 책벌레라는 뜻으로 불리우는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징관선사는 
그야말로 무공을 익히다가 무공벌레가  된 셈이었다. 그는 한평생 동문
과 대련을 한 외에 한 번도 외부 사람과 일초반식을 싸워 본 적이 없었
다. 하지만 무학에 관하여 아는 바는 지극히 넓어 소림사의 뭇승려들을 
그를 당금세상의 제일인자로 간주하고 있었다.
징식은 말했다.
"원래 두 분 여시주께 아무런 문파가 없다니 이 일은 해결하기 쉽게 되
었소. 그저 그 소저만 치료하여 그녀들을 내보낸다면 아무런 후한이 없
을 것입니다."
징식은 말했다.
"그녀들 두 여시주가  서로 사자매라고 칭하는 것을  보면 사부가 있는 
것 같은데요."
"설혹 사부가 있다 해도 명문대파의 고명한 인물은 아닐 것이외다."
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총방장은 말했다.
"두 분 여시주가 나이가 젊어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어
난 시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번 싸움에 있어 우리 쪽은 별로 잘못이 없
다고 하겠네. 그렇지만 역시 예의는 잃지 말아야지. 두 분 여시주를 반
드시 잘 접대하도록 하게. 자, 이제 헤어지지."
그리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징심은 미소했다.
"처음에 저는 무림에서 어느 분의  고수가 나와 두 명의 소녀에게 가르
친 후 일부러  본파를 욕되게 하려고 보낸  것이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소림사는 명성을 천 년이나 누리고  있는데 우리들 손에 와서 곤두박질
치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뭇승려들은 미소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가 볼 때  소림파의 무공은 명성은 대단하나  기실에 있어서는 그저 
그렇다고 보여지는구려."
회총은 문을 나서려고  하다가 그 말을 듣고  아연해져 고개를 돌렸다. 
위소보는 말했다.
"정제, 정청, 자네들은 몇 년동안 무공을 배웠는가?"
정제는 14년을 배웠다고 했고 정청은 12년을 배웠다고 했다. 그러나 모
두 스스로 자질이 낮아 진보가 없어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도 했다.
회총방장은 입을 열었다.
"우리들이 배우는 것은  도를 깨닫고 해탈하자는 데  뜻이 있는 것이지 
무공의 고하는 가장 뒤로 치는 일이라네."
위소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보기에 여기에는 큰 병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두 계집애로 말하
면 나이가 스물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동쪽에서 일초를 훔치고 
서쪽에서 일식을 배워 각문각파의 잡탕쯤되는  무공을 섞어 10여 년 무
공을 쌓은 소림사의 승려로  하여금 당황하여 도망치도록 만들고, 오줌
을 싸면서 전혀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죽어도 몸을 묻
힐 곳이 없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무당파나 곤륜파의 반식은 우
리 소림파의 정통무공보다 훨씬 무섭다고 봐야겠죠."
회총, 징식, 징심 등의 승려들은 매우 겸연쩍어졌다. 위소보의 그 같은 
말이 비록 귀에 거슬렸으나 일시에 변명이나 반박할 수 없어 생각했다.
(정제 등 네 사람의 무공은  형편없다. 어찌 소림파의 정통무공이라 할 
수 있겠는가?)
징관은 이때 고개를 끄덕였다.
"사숙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징식은 의아하여 물었다.
"어찌 일리가 있다고 말씀하시오?"
"상대방의 잡탕무공이 우리 정통무공을 대패시켰으니 이 가운데는 아무
래도 석연찮은 점이 있네."
회총은 말했다.
"각자의 자질과 천분이 다른 것. 정제 등은 원래 무공을 장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잖는가? 그들은  손님들을 접대하는데 바쁘다네. 그거야
말로 불법을 크게  펼치는데 커다란 공덕을 쌓는  일이지. 정제, 정청, 
정본(淨本), 정원(淨源)너희들 네 사람은 지객이라는 직책을 그만 맡고 
이후는 좀더 무공을 연마하도록 해라."
정제 등 네 명의 승려는 허리를 굽혔다.
뭇 승려들은 계율원의 나섰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징관은 눈
살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해 보더니 그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총과 징심은 서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나같이 속으로 생각했
다.
(이 늙은이와 저  젊은이는 모두 멍청한 데가 있으니  아랑곳 할 바 없
다.)
그리고는 자기의 선방으로 되돌아갔다.
징관은 마당에 있는 공손수(公孫手)라는  나무에서 나뭇잎이 천천히 떨
어지는 것을 보고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더니 입을 열었다.
"사숙, 나는 그 여시주를 한 번 만나봐야겠소이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했다.
"그것 참 잘되었구려! 나도 가겠소!"
두 사람은 동원선방에 이르렀다.  그러자 녹의소녀의 병을 간호하던 노
승이 마중나왔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녀는 죽지 않았소?"
"칼의 상처가 깊지 않아 상관이 없습니다.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정말 잘되었습니다. 정말 잘되었습니다."
그리고 선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녹의소녀는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는데 두눈을 꼭 
감고 있었고 안색은  창백하여 투명할 정도였다. 목을  하얀 베로 감아 
놓고 있었다. 오른손은 이불자락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다섯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으며 부드러웠다. 그야말로 백옥으로 깎아 만든 것 같았다. 
손등 위에는 손가락이 끝나는 곳에  다섯 개의 조그맣고 둥근 보조개와 
같은 것이 살짝  패여 있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마음이 설레이는 
것을 느꼈다. 아름답기 그지 없는  조그만 손을 만지고 싶어 입을 열었
다.
"그녀에게 맥박이 아직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손을 뻗쳐 일부러 그녀의 맥을 잡는 척 하려고 했다.
그 남의 소녀는 바로 침대 끝에  서 있었는데 그가 들어오자 이미 울화
가 치밀었던 터라 앙칼지게 호통을 쳤다.
"나의 누이 몸에 손대지 말아요!"
여전히 그가 손을  움츠리지 않자 왼손을 뻗쳐 그의  손을 잡으려 들었
다. 징관은 중지로 그녀의 왼손 손바닥 옆에 있는 양곡혈(陽谷穴)을 튕
기며 말했다.
"그대의 이 일초는 산서성 학( )집안의 금나수이군."
남의소녀는 손을 움츠리며 팔굽을  내밀었다. 징관은 손가락을 뻗쳐 그
녀의 팔굽 밑에 있는 소해혈(小海穴)을 튕기려고 했다.
그 소녀는 오른손을 뒤로 돌려  냅다 치려고 했다. 징관은 다시 중지를 
퉁겨 그녀가 초식을 거두고 한걸음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 소녀는 놀람
과 분노에 얽혀 두 개의  주먹을 질풍처럼 내뻗었다. 삽시간에 7,8권을 
격출했다. 징관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7,8이나 퉁겼다. 그 
소녀는 아이쿠 아이쿠 소리쳤다. 오른팔 청냉연(淸冷淵)이 중지에 튕겨
지게 되자 손과 팔을 꼼짝할 수 없었다.
"죽일 화상!"
징관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살아 있소. 만약 죽었다면 어찌 손가락으로 그대를 퉁겼겠소?"
그 소녀는 그의 무공이 무서운  것을 보자 두려움을 느꼈으나 입으로는
지지 않으려고 욕을 했다.
"오늘은 살았지만 내일은 죽게 될 거예요."
징관은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여시주가 어떻게 아시오? 설마 그대에게 선견지명이 있다는 말이오?"
그 여시주는 살며시 코웃음쳤다.
"흥! 소림사의 화상들은 그저 입만 번지르르하더라!"
그녀는 징관이 자기에게 농담을 하는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 노화
상은 무공은 비록 고강하나 세상일에  있어선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
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한평생 절에서 나가 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가 
절 안의 승려들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계율을 엄히 지키고 있었기 때
문에 그 누구도 그에게 거짓말 한다미 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는 천
하에서 결코  거짓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소림사의 화상들은 입만  번지르르하다고 말을 하자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잿밥 가운데는 참기름을 너무 많이 섞었던가?)
그는 옷소매자락을 들어서 입술가를  훔쳤다. 기름때가 묻지 않는 것을 
보고 혓바닥을 내밀어 한 번 쓱 입술을 훑어 보았으나 여전히 매끄러운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정희 의아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남의소녀가 나직이 호통을 쳤다.
"나가요! 우리 사매를 깨우지 말아요!"
징관은 말했다.
"그러죠. 그러죠...... 사숙, 우리 나갑시다."
위소보는 멍하니 침대 위의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혼이 떠나간 
상태여서 대답은 했으나 걸음은  옮겨지지 않았다. 남의 소녀는 천천히 
그의 등 뒤로 돌아가 갑자기  손을 뻗쳐 맹렬히 밀었다. 위소보는 아이
쿠 하는 소리와 더불어 그녀에게  밀려 곧장 방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
고 쿵 하니 세차게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연신 아이쿠 아이쿠 하면
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징관은 말했다.
"그 일초는  강하일하(江河日下)이군! 본래  노산(勞山)파의 장법이지. 
그런데 여시주는 제대로 펼치지를 못하는군."
그리고 입을 중얼중얼 하면서 방을 나와 위소보를 부축하며 말했다.
"사숙, 그녀가 그 일장을 밀어올 때 열 세가지의 응수하는 방법이 있소
이다. 만약 그녀와 싸우기 싫다면 6가지 피하는 방법이 있는데 어떤 한 
가지라도 사용할  수가 있지요. 만약 반격하려고  한다면, 손목 구부리
기, 팔굽 들어올리기, 손가락  퉁기기, 역으로 혈도짚기, 팔잡기, 비스
듬히 막기, 거꾸로  차기 등 7가지 방법이 있는데  매 한가지마다 모두 
상대방의 일격을 해소시킬 수 있소이다."
위소보는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등과  팔이 아파왔다. 그렇지 않아도 성
이 나 있던 참이라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이제 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소?"
징관은 말했다.
"네, 사숙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모두  이 사질의 잘못입니다. 만약 사
전에 이야기했다면 사숙은 피하기만  했더라도 이렇게 쓰러지지는 않았
을 것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두 소녀는 흉악하기 이를데 없다. 이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들
이 대뜸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 온다면 정말 감당하기 어렵겠다. 이 노
화상들은 두 계집의 무공에 대해서  똑똑히 알고 있는 것 같구나. 그리
고 손가락을 이렇게 퉁기자마자 그녀는 이쪽으로 다가와 사람들을 못살
게 굴지 못했다. 내가 저  계집애를 마누라로 삼게 된다면 반드시 노화
상을 달래서 나를 보호하도록 해야겠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노화상은 이렇게 늙었다.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를 일이다. 만약 내일이
라도 죽게 된다면 야단날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그대가 조금전 손가락으로 퉁기자  그 계집애는 꼼짝하지 못했는데 그
것은 무슨 무공이오?"
"그것은 일지선(一 禪)이라는 재간입니다. 사숙은 모르십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모르오. 그러니 그대가 나에게 가르쳐 주시오."
징관은 말했다.
"사숙께서 명하시니 물론 명을 받들어야지요. 이 일지선의 무공은 배우
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혈도를  정확히 겨냥하기만 하고 손가락의 힘이 
상대방의 혈도를 되찌를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그것 참 잘 되었소. 빨리 나에게 가르쳐 주시오."
그는 속으로 이  무공을 익히게 되면 손가락을 이렇게  몇 번 튕기기만 
한다면 녹의소녀는  꼼짝하지 못할 것이고 그때  그녀를 자기 마누라로 
삼는 것쯤은 수월한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그리고 배우기 어렵지 
않다는 말은 더욱더 귀가 솔깃한 한마디이기도 했다. 그는 천하의 무공 
가운데 이토록 묘한 것은 없으리라 생각하고 삽시간에 싱글벙글 웃으며 
온몸이 근질근질해졌다.
징관은 말했다.
"사숙께서 역근경 내공을 제 몇 층까지 연마했는지 모르겠군요. 사숙께
선 한 번 일지를 퉁겨서 시험해 보십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어떻게 퉁기는 것이오?"
징관은 손가락을 구부리더니  툭 하고 튕겼다. 그러자  찍 하는 소리와 
함께 세찬 기운이  격사되어 나가 곧장 한 잎의  낙엽이 두둥실 떨어졌
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것 참 재미있군!"
그리고 그의 흉내를 내어서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중지를 눌렀다가 
퉁겨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론 아무런 기척도 없었고 먼지 하나 이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원래 사숙은 역근경의 내공을 익히지  않았구려. 이 내공을 익히기 위
해서는 먼저 반야장을 연마해야  한답니다. 나중에 사숙과 반야장을 대
련해 보지요. 사숙의 장력이 얼마나 심오한가를 본 이후 다시 역근경을 
전수하도록 하지요."
"반야장도 나는 모른다오."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염화금나수(염花擒拿手)로 대련을 하
지요."
"무엇이 염화금나수요? 들어본 바도 없고."
징관은 얼굴에 난처한 빛을 띄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다시 더 얕은  것으로 시험해 보도록 하지요. 금강
신장(金剛神掌)을 시험해  본후, 그것도 모릅니까?  그렇다면 바라밀수
(바羅密手)부터 시험해  보기로 하지요. 그것도  모른다구요? 그렇다면 
산화장(散花掌)으로 시험해 보기로 하지요.  그렇군. 사숙의 나이가 아
직 젊어서 그와 같은  장법을 배우지 못한 모양이군요. 위타장(韋陀掌)
은 어때요? 복호권(伏虎拳)? 나한권(羅漢拳)? 소림장권(小林掌拳)?"
징관은 줄곧 권법을 주워섬겼으나 위소보는 그저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
었다.
징관은 위소보가 기초 권법도 모르는 걸 보고 말했다.
"우리 소림파의 무공은 순서에 따라 점진적으로 익히게 되어 있습니다. 
입문한 이후에는 먼저 장권을 익히고  그리고 후에는 다시 나한권을 익
히게 되죠. 그런 연후에야 복호권을  배운 다음, 내외공에 있어서 상당
한 기초를 쌓게 되었을 때 위타장을 배운답니다. 만약 위타장을 배우기 
싫다면 대자대비천수식(大慈大悲千手式)을 배워도 되지요......"
위소보는 입술을 달싹이며 다음과 같이 말하려고 했다.
(그 대자대비천수식은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그는 그 말을 내뱉지 않았다. 해로공이 가르친 그 대자대비천수
식은 대부분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다는 말을 할 수 없
었던 것이다.
징관은 계속해서 말했다.
"위타장을 배우든 대자대비천수식을  배우든간에 총명하고 부지런한 사
람은 칠팔 년  정도면 됩니다. 만약 이해력이  높다면 곧이어 산화장을 
배우게 되지요. 산화장을 배우게  된다면 무림의 다른 문파의 제자들은 
거의 적수가 되지 못한답니다. 다시 바라밀수를 배울 수 있을지는 각자
의 성격이 바라밀수를 가까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지요. 정제와 
정청, 그 몇 명의 사질들으 모두 복호권을 연마하는 데 적합치 않기 때
문에 진도가 매우 느리지요. 어쩌면 다시 십년이 지나야 정청은 위타장
을 연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제는 무공을 배우는 데 몰두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볼 때 역시 전문적으로 금강경이나 읽고 참선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더군요."
위소보는 찬기운을 들이마셔야 했다.
"그대는 일지선이 배우기 어렵지 않다고 했으면서 소림장권부터 연마해
야 된다고 하지 않았소? 그와 같이 한 가지씩 권법과 장법을 익혀 나가
서 일지선을 연마하기까지는 몇 년이나 걸리게 되오?"
징관은 말했다.
"이것은 반야당의 전적(典籍)가운데 기록이 있습니다. 오대(五代)이후, 
후진(後晋)때에 본사에서는 한 분의 법혜선사(法慧禪師)라는 분이 계셨
는데 타고날 때부터 지혜를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입사한 지 36년만에 
일지선을 연성했지요. 그야말로 진전이  신속하여 그 전에 그토록 진전
을 보인 사람이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답니다. 아마도 그는 전생에 반
드시 무학대종사였으며 많은 무공을  전생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그 
다음은  남송(南宋)건염(建炎)간에 영흥(靈興)선사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 역시 39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일지선을 연마하셨답니다. 모두 하
늘이 내리신 총명한  분이시고 백 년에 한 번  얻기도 힘든 기재들이라 
다른 사람들은  탄복하고 있답니다. 선배님들에  대해서 후세 사람들은 
그저 그리워하고 상상할 뿐이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무공을 익히기 시작해서  일지선을 연성할 때까지 몇 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되었소?"
"사질은 11살 때부터 소림장권을 익히게 되었지요. 어찌 되었든 재수가 
지극히 좋아 은사인 회지(晦智)선사 좌하에 들어가게 되어 동문 사형제
들보다 좀더 빨리 배웠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11살때부터  연마해서 53세에 어느정도  터득했다면 모두 함쳐 
42년만에야 연성한 셈이 아니오?"
징관은 의기양양해져 말했다.
"42년만에 일지선을 연마한 것은 본파 천여 년 이래 내가 세 번째에 해
당되는 셈이죠."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의 내력은 수위가 평평해서 만약 지력을 두고 논한다면 아마
도 서열은 70위 이하가 될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그는 약간 의기소침해지는 표정을 지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의 서열이 세 번째이든 70번째이든 간에 나는 전생에 연마를 하지 
못했고 또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어떤  무공을 가지고 나오지도 못한 바
이니 42년이란 세월에 걸쳐 그 일지선을 연마하게 된다면 나의 그 계집
애는 모두 오륙 십 세의 할망구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내가 미
쳤다고?)
그는 말했다.
"상대방 소저는 일이 년 연마한 것에 불과한데 그대는 사오십년 걸려서 
연마하여 간신히 그녀를 이겼으니 실로 형편없는 노릇이군."
징관 역시 그점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줄곧 속으로 헤아려 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우리 소림파의 무공이  그토록 상대방에 비해서 
훨씬 떨어진다는 것은 실로...... 실로......좋지 못한 일이죠."
"뭐가 좋지 못한 일이야? 정말 큰일날 일이지! 우리 소림에선 이번에야
말로 무림의 소귀나 발귀를 잡지 못하게 되었소. 그대는 반야당의 수좌
인데도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천수만의 전대 소림파의 고
승들을 대할 수 있겠소? 그대가  죽은 후 무슨 선사입네 무슨 법사입네 
하는 칭호를 받을 수 있다고 보시오? 나의 사형 혜지선사 등 모든 사람
들이 그대를 꾸짖을 뿐 아니라 그대가 밥 먹고 똥만 쌀 줄 알았지 아무
것도 해내지 못했으며 또 방법을  강구해 소림파의 위명을 보전하지 못
했다고 하면 그것은 부끄러워 죽을 노릇이 아니겠소?"
징관은 주름진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매우 황송하다는 듯 말했다.
"사숙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사질은  돌아가 반야당의 무공전적을 조사
해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무슨 방법을  써서 속성할 수 있는지 알아 보
도록 하겠습니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그렇소. 그대가 만약 조사해내지 못한다면 우리 소림파는 무림의 일에 
다시 끼여들 필요가 없어지오. 차라리 두 분의 소저를 모시고 와 그 큰 
소저를 방장으로 세우고 어린 소저를  반야당의 수좌로 모셔야 될 것이
오. 그녀들 두 사람이 무공을 전수하게 된다면 우리 멍청하고 바보스러
운 무공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 아니겠소?"
징관은 어리둥절해져서는 물었다.
"그녀들 두 분 여시주가 어찌 본사의 방장과 수좌가 된단 말입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그러니까 그대가 무공을 속성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면 큰 
탈이 아니겠소? 방과(<=이거 무슨 소린지 모르겠죠? 근데 책에 그냥 그
렇게 써 있네요. ^^; -빼낀이 주)  그대 자신이 체면을 잃게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소림파는 이후부터  무림에서 발을 딛을 땅마저 잃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되면 본사의 수천 명이나 되는 화상들은 모두 다 그 
두 소녀를 사부님으로 모셔야 할 것이오. 그리고 모두들 십여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소림파의 무공을 배워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할 것
이 아니겠소?  그 소저는 그저  일 년이나 반 년동안  배웠는데 우지끈 
뚝! 우지끈 뚝! 우지끈 뚝!  하면서 소림사 화상들의 손과 발을 모조리 
분질러 버렸소. 모두들 손발을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니 차라리 소저들
을 불러서 반야당의 수좌로 삼는 것이 낫지 않겠느냔 말이오."
이와 같은 말에 징관은 그만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금할 수 없었고 두 손을 마구 부들부들 떨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네 네, 두 분 소저를 모시고  본사의 방장과 수좌가 되게 한다는 것은 
아...... 그것이야말로 정말 창피한 노릇입니다."
"그렇고 말고요. 그때 우리는 소림파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면 무슨파라고 하지요?"
"아예 소녀파(小女波)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오. 소림사를 소녀파
로 고쳐 부르게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산문에 걸려 있는 편액을 내려
서 림 자를 지워버리고 계집 녀 자로 바꾸어 써넣는 다는 말이오. 글자 
한자 고치는 일이니 그것이야 수월한 노릇이 아니겠소?"
징관은 안색이 흙빛이 되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내가......  내가 가서 방법을 꼭 강구해 보도
록 하지요. 사숙, 사질이 모시지 못함을 양해하십시오."
그리고 합장하더니 몸을 돌렸다.
위소보는 말했다.
"잠깐! 이 일은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하오. 만약 절 안의 사람들 가운
데 누가 알게 된다면 결코 좋은 일이 생기기 않을 것이오."
"그것은 어째서인가요?"
"모두들 그대를 믿지 못하게 될  테지만 그대가 그 방법을 강구해 낼지
도 모르는 일 아니오? 거기다 그 두 소저가 아직도 절안에서 상처를 치
료하고 있으니 모두들  크게 놀란 나머지 간이 떨려  우르르 달려가 그 
소녀들에게 큰절을 하고  사부로 모시게 된다면 우리의  이 절, 커다란 
소림파는 그때부터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소?"
"사숙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이 일은 본파의 흥망성쇠와 관계되는 일이
니 절대 말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는 속으로 매우 고맙게 생각했다.  이 나이어린 사숙이 먼 앞길을 크
게 내다볼 줄 알고 또한 선배고  사숙이라 역시 다른 데가 있다고 생각
했다.
위소보는 그가  총총히 달려가는데 소맷자락마저 벌벌  떨리는 것을 보
고, 그가 놀람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노화상이 늙은 목숨을 걸고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가 남과 상의만  하지 않는다면 저 우둔한 화상은 내
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는 침대 위에 누워 쉬고 있는 나이 어린 소녀의 꽃과 같은 얼굴을 생
각해 보았다.  그러자 마음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방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바라보고 싶어 몇  걸음 다가갔다. 그런데 휘장 안에 갑
자기 남색 치마가 흔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남의소녀가 손 씀씀이가 
악랄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더군다나  그의 곁에 징관이 있어 보호를 
하지 못하는 이 마당에 혼자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가는 크게 고통을 당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이었다. 그는 동원선방으로 가 살펴보았다.
병을 치료하던 노승이 말했다.
"사숙께선 일찍 일어나셨군요."
"여시주의 상처는 좀 나았습니까?"
"그 여시주는 야밤에 깨어나 자기가 본사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는 반드시 떠나겠다고  하며 무례한 말을 마구  했습니다. 사질이 좋은 
말로 권했지만 그녀는 결코 소......  소...... 승의 절간에서 죽지 않
겠다고 했습니다."
위소보는 그가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고 소녀가 자기를 소음적이라고 했
든지 아니면 소악승이라고 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사질은 그녀에게 날이  밝은 후 떠나라고 다시  권했지만 그 여시주는 
발버둥치며 몸을 일으켰지요. 그녀의 사저가 그녀를 부축해서 나갔습니
다. 사질은 감히  막을 수 없었지요. 어찌 되었든  그 여시주의 상처는 
생명엔 지장이 없고 해서 그녀들이 가도록 내버려 두었답니다. 이미 이 
일은 방장께 보고를 했습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정말 재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
다.
(이 소저가 떠나갔다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그녀는 이름도 성도 남
기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낸담!)
그는 이 노승이 일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고 탓하며 몇 마디의 원망을 
했다.
(그 두 계집애는 얼굴이 아주 예뻐 여느 사람과는 크게 틀리다. 그리고 
손을 쓸 때는 각문각파의 무공을  다 지니고 있었으니 언젠가는 알아내
게 될 것이다.)
그는 반야당으로 걸어갔다.
징관은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수백  권이나 되는 얇은 
책자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은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생
각에 잠겨 있었다.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는데 하룻밤을 꼬박 새운 것 
같았다. 그의 모양을 보건대 아직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한 것
이 분명했다. 그는 위소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멍하니 쳐다보더니 마
치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듯했다. 놀랍게도 그는 한마음 한뜻으로 애써 
생각하느라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도 느낄 수 없는 모양이었
다.
위소보는 그의 표정이 고뇌에 싸여 있는  것을 보고 몇 마디 위로의 말
을 하려고 했다. 그리고 두  소녀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말하고 지금 
급히 서둘 것은 없다고 말하려다 급히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가 열심히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방법을 강구해  낼 수 있겠는
가? 내가 얘기를 하면 이 노화상은 게으름을 피우게 될 것이다.)
어느덧 한 달  남짓이 흘러갔다. 위소보는 종종  반야당으로 가보곤 했
다. 징관은 비쩍 말랐고 안색은 더욱 초췌해져 있었다. 그리고 말도 하
지 않는 것이  마치 중병에 걸린 사람처럼  멍청해졌다. 때로는 일어나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 보곤  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흔들며 주저앉았
다. 위소보는 이 노화상이 매우  우둔하여 한달 이상을 애써 생각해 보
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방법도 강구하지 못했다고만 생각하고 그 자신은 
소림파의 무공  가운데 어느 한가지라도 기틀을  튼튼히 다져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기실 소림파의 무공은 어느 것이나 차라리 길게 
늘였으면 늘였지 빨리 연성되는 것을 바래서는 안 되는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초조히 속성을 강구한다는  것은 바로 소림파 무공의 금기라고 
할 수 있었다. 징관은 천하무학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바가 없을 정도
였다. 그가 소림파의 금기 조항을 깨뜨리고 달리 속성법을 창안하는 것
이야말로 그가 한평생 배운것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일이었다.

날씨는 점점 따뜻해졌다. 위소보는 절에서 이미 수개월을 보냈다. 이렇
게 나날을 보내는 동안 매일같이 그는 수십 번씩 그 녹의소녀를 생각했
다.
어느 날 그는 너무나 답답해서  은자를 지니고 서쪽으로 소실산을 내려
왔다. 그리고  한 고을로 갔다.  이곳은 담두포(潭頭鋪)라는 곳이었다. 
그는 옷가게에 들러서 한 벌의 옷과 수건, 그리고 신발과 양말을 샀다. 
그리고 곧 밖의 산동굴로  들어가 바꿔입었다. 그리고 승포자락과 승혜
를 보따리에 넣고는 어깨에 짊어지고  개울물에 자기의 모습을 비춰 보
았다. 마치 부자집 자제 같았다.  그는 고을로 되돌아가서 한 주루에서 
닭고기와 오리구이, 그리고 물고기를  시켜서는 배불리 먹고 속으로 생
각했다.
(이번에는 도박장에 가서 한바탕 노름을 해야겠다.)
그는 도박장이 반드시 좁은 골목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거리를 가로
질러 조그만 골목으로 들어서서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골목길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노름을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
를 기울였다. 그런데 일곱 번째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끝내 그 누가 부
르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천구왕(天九王)이다. 다 먹었다!"
이 한마디가 귀에 들어오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흐뭇해지며 기
분이 좋아졌다. 소림사에서 때때로 듣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소리와 비
교해 볼 때 실로 극락세계와 십팔층 지옥의 차이를 느꼈던 것이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손을  뻗쳐 문을 열었다. 한 명의 40여세
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모자를 삐뚤게 쓰고 걸아나와 곁눈질을 하며 물
었다.
"무엇하는 사람이오?"
위소보는 품속에서 은자를 한덩이 꺼내  손에 들고 위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웃었다.
"손이 근질거려 몇 냥의 은자를 잃고 싶어 왔소."
"이곳은 도박장이 아니고  당자(堂子)이외다. 소형제, 그대가 소저들과 
놀고 싶다면 몇 년 더 있다 오시오."
위소보는 이미 오랫동안 노름을 하지 않아 도박에 굶주려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천구왕이다, 다 먹었다 하는 소리를 들은 이후 하늘이 무
너지더라도 노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 었다. 더군다나 기녀원이
라면 바로 옛집으로 되돌아온 셈이니 어찌 떠나갈 수가 있는가?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나를 위해  몇 사람 불러모아 주시오.  오늘 한판 벌여야겠소. 
그리고 오늘밤 이 도련님께서는 가장 비싼 술과 음식을 시켜 먹도록 하
지."
그는 두 냥이나 되는 은자를 그의 손에 쥐어 주며 웃었다.
"이것으로 용돈이나 하시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7. 재회

기녀원에서 심부름을  하는 그 사람은  구노(龜奴)라고 불렀다. 귀노는 
은자를 받고 크게 기뻐했으며 크게  돈을 쓸 호객(豪客)이 왔음을 알고
는 대뜸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그는 기다란 소리로 부르짖었다.
"손님이시오!"
그리고 공손히  그를 맞아 안으로 들어섰다.  주모가 나와서 영접했다. 
그러다 15,6세 된 소년의 옷차림이 화려한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애는 집안의  돈을 훔쳐서 마구 쓰려고 나왔구나.  어찌 되었든 한 
번 뜯어내야겠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이구! 도련님, 우리 이곳의 규칙은 문을 열자마자 이득을 보는 거라
오. 그대가 소저를 만나려 한다면 이곳에서 먼저 행화전을 내야 해요."
위소보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대는 나를 기녀원에도 못가 본  쑥맥으로 여기는 것이오? 나로 말하
면 바로 전문가외다.  우리집에서 바로 이와 같은  영업을 하고 있소이
다."
그는 한 무더기의 은표를 꺼냈다. 약  삼사 백 냥은 되는 것을 탁자 위
에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 소저가 술자리에  앉아 시중을 드는 것은  오전의 은자이고 하룻밤 
자는데는 세 냥의 은자이며,  커다란 찻주전자를 내오는 데는 오전이고 
또한 주모에게도 오전이라는 돈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소? 난 오늘 흥
취가 무척 좋아 일률적으로 두배를 드리겠소."
잇달아 그는 기녀원에서 통하는 말을 했는데 한 마디도 하자가 없었다.
그 주모는 일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알고보니 동업하는 도련님이셨군요. 사람을 잘못 보았소. 그런데 도련
님의 댁에서는 어떤 집을 경영하고 계신가요?"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집은 양주에서  여춘원과 이정원(怡情院)을 열고  있고, 북경세선 
상심루(賞心樓)와 양춘각( 春閣)을 열고 있으며, 천진에서 유정원(柔情
院)과 문국루(問菊樓)등, 모두 여섯 집을 경영하고 있소이다."
기실 여섯 집은 모두 양주의 유명한 기녀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일시
에 그가 어찌 여섯 개의 기녀원의 이름을 들춰낼 수 있겠는가?
주모는 그 말을  듣자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여섯 집을 
경영하는 주인이  크게 장사를 하려고 온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께서는 어떤 소저를 말 친구로 삼으려고 하시오?"
"이같이 조그만 지방에는 소주(蘇州)의  소저가 없겠지? 그런데 대동부
(大同府)의 소저는 있소?"
주모는 얼굴에 부끄러운 빛을 띄우며 나직이 말했다.
"한 사람이 있긴 있습니다만  그것도 가짜입니다. 그녀는 산서 분양(汾
陽)사람입니다. 그저 모를 만한 사람을 속이자는 것이지 전문가를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위소보는 웃었다.
"이 집의 소저들을 모조리 불러오시오. 이 도련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세 냥의 은자를 내리도록 하겠소."
주모는 크게 기뻐서 그 말을 전했다. 삽시간에 재잘재잘대는 소리와 함
께 방안은 소저들로 꽉 찼다.  조그만 곳의 기녀원에는 물론 손이 거칠
고 발이 큰, 속된 지분 냄새를 풍기는 여자들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손
을 잡고 허리를 껴안는 등  애써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 위소보는 크게 
흐뭇했다. 뭇기녀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짙은 눈썹에 광대뼈가 툭 튀어
나왔고, 어떤 사람은 시뻘건 입이 쩍벌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나찰보다
도 더 추악하다고 할 수 있었으나 그는 어려서부터 기녀원에서 크게 한
바탕 노름을 벌이겠다는 뜻을 세워  온 터였다. 그런데 오늘 이같이 평
생의 소원을 풀게 되었으니  의기양양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
는 옆에있는 기녀를  끌어안고서 그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그런데 한 
가닥 파와 마늘냄새인 듯한 고약하기 이를 데 없는 악취가 곧장 풍겨오
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구역질을 할 뻔했다.
그때 별안간 문휘장이 들춰지면서 두 소녀가 다가왔다.
위소보는 입을 열었다.
"좋아.  두  누이는  이리로  오시오. 그리고  먼저  입맞춤부터  합시
다......"
그런데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는 두 소녀의 얼굴 모습을 똑똑
히 보고는 그만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는 크게 한소리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끌어안고 있던 
두 기녀를 밀어뜨려 땅바닥에 쓰러뜨렸다.
들어온 두 여인은 바로 밤낮으로  생각하던 그 녹의소녀와 그녀의 사저
가 아닌가?
그 남의 소녀는 냉소했다.
"그대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우리들은 그대 뒤를 따라왔어요. 그
대가 이곳에 와서 무슨 나쁜 짓을 하려는가 두고 보려고 했던 거예요."
위소보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억지로 웃었다.
"그래요. 그런데  소저 그대......그대  목의 상처는......  목의 상처
는...... 다 나았소?"
녹의소녀는 흥 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의소녀는 노해 부르짖었다.
"우리들은 매일같이  소림파 밖에서 기다리며  그대를 갈기갈기 찢어서 
우리 사매의 원한을 갚고자 했어요. 흥! 어찌 되었든 하늘이 도와서 그
대와 같은 악승이 우리의 손에 걸려들게 되었지요."
위소보는 속으로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오늘 정말 나는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할 모양이구나)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기실......기실......나는 그렇게 죄를......죄를......소저에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그저......이렇게 한 번 잡았을 뿐이외다. 그것
도 상관없는 일이 아니겠소? 내가 보기에는......내가 보기에는......"
녹의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두 눈에 살기를 담았다.
남의소녀는 냉랭히 말했다.
"조금 전 그대는 뭐라고 했지요? 우리보고 어떡하라고 했지요?"
"아, 참  잘못 되었소.  이것, 또한 번거롭게  되었구려! 나는......나
는......그대들 두  분 역시...... 역시  이 기녀원의 기녀인  줄 알았
소."
녹의 소녀가 나직이 말했다.
"사저, 저같이 못된 짓만 하는  땡초중에게 말을 해서 뭐해요? 한 번에 
죽여 버리지요."
그리고 휙 하는  소리와 더불어 하얀 광채가  번쩍였다. 위소보는 크게 
부르짖으며 목을 움츠렸다.  그 순간 머리 위의  모자가 어느덧 그녀의 
유엽도에 베어지고 중대가리가 드러났다.
뭇기녀들은 크게 소란을 떨며 일제히 뾰족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사람 죽인다. 사람을 죽인다!"
위소보는 몸을 낮추고 한 기녀의 등뒤로 피하면서 부르짖었다.
"이것 보시오! 이곳은 기녀원이란  말이오!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갈보
외다! 그대들 두 사람이 빨리 나가지 않고 보든 사람이 알게 된다면 그
야말로......매우 듣기......듣기 거북하게 될 것이오!"
두 소녀는 휙휙 몇 번 칼질을 했다. 그러나 방안에는 십여 명의 기녀들
이 가득차 있어서  마음대로 칼을 휘두를 수  없었다. 칼날은 하마터면 
두 명의 기녀들에게 상처를 입힐 뻔 했다.
위소보는 크게 부르짖었다.
"내가  이  기녀원에서 놀고  있는  것이  뭐가  나쁘다는 것이오?  나
는......나는......옷을 벗겠소. 그리고 바지도 벗겠소."
그리고 옷자락을 벗어서 내던졌다.
두소녀는 극도로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위소보가 정말 망나니처럼 바
지를 벗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  녹의소녀는 그 말을 듣더니 몸을 돌
려 달려나가 버렸다. 남의소녀도  어리둥절해 하더니 역시 달려나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쿵쿵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들어오던 주모와 구노
가 그녀들과 부딪혀 좌우 양쪽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일시에 기녀원에는 고함소리가 진동하게 되었고 욕하는 소리가 땅을 뒤
흔들었다.
위소보는 잠시 동안  한칼에 목숨을 빼앗기는 것은  면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두 소녀가 반드시 문앞에서  지키고 있을 것 같았다. 자기가 이 
기녀원에서 한 걸음만 나가면 즉시 그녀들에게 살해될까봐 그는 부르짖
었다.
"모두들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오! 모든 사람들에게 각기 열냥의 은자를 
드리리다! 모든 사람들에게 드릴 것이며 결코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겠
소."
뭇기녀들은 그 말을 듣자 즉시 조용해졌다. 위소보는 이십 냥의 은자를 
꺼내 구노에게 내주며 분부했다.
"빨리 가서 말을 한 필 준비하여 골목 어귀에 대령시켜 주시오."
그 구노는 은자를 받더니 달려갔다.
위소보는 한명의 기녀를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그대에게 이십냥의 은자를 줄테니 빨리  옷을 벗어 나와 바꿔 입게 해
주시오."
그 기녀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옷을 벗었다. 나머지 기녀들은 이곳저곳
에서 중구난방으로 다투어 물었다.
위소보는 대답했다.
"그 두 명은 나의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인데 나의 머리를 박박 깍아
놓아 기녀원에 놀러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오. 나는 도망쳐 나왔던 것이
외다. 그러니까 그녀들은 나를 죽이러 이곳까지 쫓아왔구려."
주모와 기녀들은 그 말을 듣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녀원에 놀
러오는 손님들의 처가 기녀원으로 달려와 소란을 일으키고 싸움을 벌이
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칼을  들고 죽이겠다는 사람은 
보기 드문  편이었다. 더욱이 처첩이  합심협력해서 남편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기녀원으로 놀러 가지 못하게 했다는 일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위소보는 총총히 기녀의 옷차림으로 바꿔  입고 한 조각 꽃무늬가 있는 
베로 얼굴을 가렸다. 기녀들은 그가 화장을 하고 도망치려 한다는 사실
을 알고는 히히,  헤헤 하며 그를 도와 연지를  바르고 분을 발라 주었
다. 기녀원에서 노름판을 벌이고 있던 손님들도 그 소문을 듣고는 우르
르 몰려와 구경했다.  얼마 후 구노가 되돌아와  말이 준비되었다고 했
다. 그리고 사정을 들은 후 말했다.
"도련님, 이번에야말로 조심하십시오. 그대의 큰 부인께선 뒷문을 지키
고 계시고 작은 부인께서는 앞문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칼을 들고 있어요."
위소보는 크게 거드름을 피우듯 소리쳤다.
"이 악랄한 계집이 지아비를 이토록  엄히 다스리려고 하다니, 정말 해
괴한 일이야! 정말 해괴한 일이야!"
주모는 그로부터 삼십 냥의 행화전을 받게 되자 말했다.
"두 암호랑이가 남의 밥그릇을 깨뜨리려고 하는군! 천하의 여인들이 그
대의 마누라 같다면 우리들은  서북바람을 마시지 않겠소? 이랑신(二郞
神)이시여 그 두 암호랑이가 자손을  낳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시사, 아
이구 도련님, 나는 도련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외다. 그대는 차라리 두 
암호랑이를 내쫓아 버리고 매일같이 이곳에 와서 통쾌하게 놀도록 하십
시오."
위소보는 웃었다.
"그 생각은 그럴싸하구려. 그런데  아주머니, 그대는 앞문쪽에 가서 그 
고약한 마누라를 욕해 주도록 하시오. 하지만 그대는 문뒤에 숨어서 욕
을 해야 하오. 그녀가 성질이  나 칼부림을 해서 그대를 해칠지 모르니
까 말이외다. 그리고 누나와 누이들은 모두 뒷문으로 달려나갑시다. 그
러면 우리 두 악랄한 마누라는 나를 잡지 못할 것이오."
그는 즉시 은자를  꺼내 나누어 주었다. 기녀들은  하나같이 좋아라 했
다. 기녀들은 은자를 보자 하나같이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 위소보를 
도와 주려고 했다.
이때 문앞에서 그 주모가 욕을 하고 있었다.
"이 악랄한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야! 지아비를 똑똑히 지키고 싶다
면 마땅히 그의 말을 들어야 하고 그의 환심을 사야 하지, 그대들 자신
에게 그만한  재간이 없으니 그가 기녀원으로  즐거움을 찾아 놀러오는 
것이 아니겠어? 칼을 들고 그를  죽이려고 한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
냔 말이야. 그대들의  지아비를 말하면 손 씀씀이가  커서 천하 제일의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 마리의 암호랑이는  조금도 그 분과 
어울릴 만한 자격이 없다! 이  늙은 것이 그대들에게 요령을 가르쳐 주
겠는데 빨리 그에게 큰절을 하고  사과를 해라! 그리고 다시 이 늙은이
를 사부로 모시고 침대 위에서 펼치는 재간을 익히고 그를 잘 시중들도
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그는 너희들을 이 늙은이에게 팔아넘겨 이곳에
서 기녀가 되도록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래를 하게 되었는데......
아이구 아파 죽겠네......"
위소보는 그 소리를 듣게 되자 남의소녀가 참지 못하고 손을 써서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급히 말했다.
"모두들 나갑시다."
20여명이나 되는  기녀들이 뒷문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위소보는 그 
안에 섞여 있었다. 녹의소녀는 손에 유엽도를 들고서 문가를 지키고 있
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떼의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달려나오
자 아름다운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떻게 된 일인가
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뭇기녀들이 골목길을 벗어나자 위소보는 대뜸  몸을 날려 말 위로 올라 
소림사로 질풍같이 달려갔다.
남의소녀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즉시 주모를 버리고 몸을 돌려 뒤쫓
아왔다. 뭇기녀들은  골목길을 가득 메우다시피  하고 손으로 잡아끌며 
다투듯 말했다.
"이 암호랑이야. 너의 지아비는 말을  타고 갔으니 쫓아가지 못할 것이
다. 히히! 헤헤!"
남의소녀는 분해 거의 기절할 정도였다. 칼을 들고 위협을 했지만 뭇기
녀들은 그녀가 정말로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천박하고 악
랄한 여인이라느니, 질투심이 많은 처라느니, 고약한 여편네니 하는 욕
으로 응수했다.
남의소녀는 다급해지자 소리 높이 외쳤다.
"사매, 그 도적이 도망을 쳤다. 빨리 뒤쫓아라!"
그러나 말발굽 소리는 어느덧 멀어져 가고 있는데 어떻게 쫓아갈 수 있
겠는가?
위소보는 말을 달리며 옷을  하나하나 벗어던졌다. 그런데 승포를 쌌던 
보따리를 촉망중에 그만 기녀원에 두고 나온 모양이었다. 그는 손에 침
을 뱉어 얼굴의 지분을 닦아내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금년의 운수가 불길하구나. 화상 노릇을 해야 하고 또한 갈보 노
릇까지 해야하다니. 아! 녹의 소녀가 정말 나의 마누라라면 내 손을 자
른다 해도 나는 기녀원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단숨에 소림사로 달려왔다. 그리고 말을 몰라 뒷산 쪽으로 가서는 
말에서 내려  살그머니 걸음을 죽이고 옆문을  이용해 절안으로 들어갔
다. 그리고 즉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달려서 자기의 선방으로 되
돌아갔다. 그는  얼굴에 남은 연지와  미끈미끈한 분가루들을 씻어내고 
승포를 입은 연후에야 다시 마음을 놓고 생각했다.
(큰 마누라와 작은 마누라 등  두 사람이 만약 절안으로 달려들어와 시
끄럽게 군다면 나는 죽자 하고 그런일이 없었다고 잡아 떼야겠지.)
점심 때가 다  되었을 무렵 위소보는 비스듬히 침대  위에 기댄채 누워 
녹의소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생각했다.  그러자 다시 모험을 하고 싶어
졌다.
(어떻게 절묘한 방법을 강구해서 내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지?)
그런데 갑자기 정제가 선방으로 들어오더니 나직이 말했다.
"사숙조, 이 며칠  동안 절안에서 나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일이 약간 
잘못되었습니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그 연유를 물었다.
정제는 말했다.
"주방의 화공(火工)이 조금 전  나에게 말했는데 그가 산가로 다가가서 
나무를 할 때 두 명의 젊은  소저를 만났는데 손에 칼을 들고서 사숙조
에 관해서 묻더랍니다."
"무엇을 물었다는가?"
"그에게 사숙조를 아느냐 모르느냐, 그리고 사숙조가 평소 어느때 나가
며 즐거 가는곳은 어디냐고 물었답니다.  사숙조, 두 소저는 절대 호의
를 품고 있지 않으며 절 밖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숙조께 해를 
입히고자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숙조께서 이 절 안에서 나가
시지만 않는다면 그녀들은 감히 안으로 뛰어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 소림사의 고승이 그녀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절을 나가지 못한다
면 무슨 꼴이 되겠소?"
"사손은 이미 방장께 알렸습니다.  그 어르신께서는 저에게 사숙조에게 
알려 드리고 잠시 동안  그녀들에게 양보하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짐
작컨데 두 소저는 참을성이 없을  테니 며칠 기다렸다가 사숙조를 만나
뵙지 못하게 된다면 자연히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방
장께선 무림의 친구들은 우리들이  대인으로서 커다란 아량을 베풀었지 
결코 당당한 소림사에서 문파가 없는 소녀를 두려워했다고는 하지 않으
리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문파가 없는 소저라구? 흥! 그러나 우리 문파가 있는 대화상들보다 훨
씬 무서운걸."
"그 누가 아니랍니까?"
그는 팔이 탈골된 원한을 생각하게 되자 또다시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방장께선 명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소녀들과 좋게 
해결하자구요."
(어디 징관 노화상에게 가보자. 그가  좋은 요령을 생각해 냈으면 좋겠
구나.)
그는 반야당에 이르렀다. 그러고보니  징관은 두 손으로 머리를 얼싸안
은 채 고개를 젖히고 천정의 대들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방안을 
서성거리며 원을 그리고 있었고 입으로는 뭐라고 중얼중얼 거렸다.
위소보는 그의 생각을 중단시키고 싶지 않아 한참 동안 기다렸다. 그러
나 그는 몇  바퀴를 돌아도 여전히 멈출  기색이 없었다.그리하여 그는 
기침을 몇 번 했다. 징관은 이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소리쳐 불렀다.
"노사질(老師姪), 노사질!"
징관은 여전히 듣지를 못했다.
위소보는 앞으로 달려가 손을 뻗쳐 그의 어깨를 슬쩍 밀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노......"
그런데 손바닥이 그의 어깻죽지에 맞닿게  되었을 때 갑자기 몸이 흠칫 
하더니 대뜸 뒤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그
만 벽에 부딪쳐 숨이 꽉 막혀  입을 쩍 벌리게 되었으나 밖으로 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징관은 깜짝 놀라 재빨리 땅에 엎드려 합장한 채 말했다.
"사질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사숙의 위엄을 거슬렸으니 사숙께선 엄
한 벌을 내려주십시오."
위소보는 한참만에야 숨을 돌리고 웃었다.
"일어나시오. 일어나시오. 예를 차릴 것은 없소이다. 내가 잘못했소."
징관은 여전히 사과를 했다. 위소보는  벽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다
시 징관의 부축을 받아 몸을 제대로 세운 후 물었다.
"그대의 이 무공은 어떤 것이오? 어찌하여 이토록 대단히 무섭죠?"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무공이 만약 연마하기 어렵지 않다면 배우면 꽤 쓸모가 있을 것 같
구나.)
징관은 얼굴에 황송하다는 빛을 띄우며 말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사숙께 말씀드리죠. 이것은 반야장의 호체신공(護體
神功)이라고 합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성의 방법은 생각해 내었소?"
징관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질은 일지선과  역근경의 내공을 이용하지  않고 반야장으로 상대를 
하더라도 두 분 여시주의 무공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었습
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반야장을  연마하는 데도  이삽십 년이 흐른다는  것이 아니겠
소?"
징관은 말을 더듬거렸다.
"이삼십 년이라도 아마......아마......"
위소보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동시에 얼굴에 멸시의  빛을 띄우고 말했
다.
"아마도 반드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오?"
징관은 매우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 말했다.
"사질이 좀더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만약에  염화금나수를 사용할 때 
쓸모가 있을는지 없을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위소보는 이 노화상이 너무나 격식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했다. 일을 행
함에 있어 반드시 서열에 따르니  설사 염화금나수가 쓸모가 있다 하더
라도 10여 년이라는  세월에 걸쳐서야 배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노화상의 내력은 심후해서 홍교주에  못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홍교주는 이미  새로운 초식을 창안해 냈었으며 임기응
변의 수법을 쓰더라도 얼마나 자연스럽던가? 이 노화상은 그 반대로 멍
청한 사람이니 반드시 밝은 길을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노사질, 내가 보기ㅣ에 두 소저의 나이가 젊은 것으로 보아 결코 오랜 
세월을 두고 무공을 익힌 것 같지는 않구려."
"그렇소이다. 바로 그 점이 이상한 점이외다."
"상대방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배운 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한 걸
음 한걸음 착실히 죽어라 하고  배울 것이 없지 않겠소? 그녀들에게 어
찌 그대와 같이  심오한 내공 수위가 있겠느냔 말이오?  내가 볼 때 그 
두 계집애를  상대함에 있어서는 아예 내공을  연마할 필요조차 없소이
다."
징관은 깜짝 놀라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무공을 연마함에 있어서......기틀을 튼튼히 하지 않는다면......그것
은 방문좌도가 아닙니까?"
"그녀들은 비단 방문좌도일 뿐 아니라,  어느 문파 어느 도에도 가입하
지 않았단 말이오. 문파도 없고  어느 도에도 가입하지 않은 무공을 상
대하려면 문파도 없고 도에도 가입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해야 될 것이 
아니겠소."
징관은 얼굴 가득히 곤혹스런 빛을 띄우며 중얼거렸다.
"문파도 없고 도에도  없는 것이라......그건......그건 사질로서는 이
해할 수 없군요."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가 모른다면 내가 그대에게 가르쳐 드리지."
징관은 공손히 말했다.
"사숙께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가 한평생 보아온 회 자  항렬의 사백이나 사숙들은 하나같이 무공이 
탁월한 덕망 높은 고승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속으로 이 나이어린 사
숙이 나이가 어려 내력 수위가  부족하다 할지라도 반드시 뛰어난 점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자기의 사숙이 되었겠느냔 말
이다.
이 며칠 동안 무공의 속성 방법을  애써 생각해 내려 했으나 시종 털끝
만큼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보기에는 10년 20년이 아니라 늙어 죽을 
때 까지 그  어려운 문제를 풀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회자 항렬의 
나이어린 승이 자기의 의문을 풀어  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생각했
다. 불현 듯 그는 놀람과  기쁨에 얽혀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마음이 가
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위소보는 입을 열었다.
"그대는 그 두 소저가 사용하는 것이 곤륜파와 아미파 가운데 일초라고 
했소? 소림파의 무공과 그 잡다한  문파들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강
하오?"
"아무래도 우리 소림파가 좀더 강할  것입니다. 설사 강하지 못하다 해
도 적어도 그들보다 약하지는 않습니다.
위소보는 손뼉을 쳤다.
"그렇다면 쉬운 노릇이오. 그녀들은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일초를 무턱
대고 휘둘러대는 문파의 초식을 쓴  것이니 우리 역시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소림파의 초식을 쓰면 그녀들을 이기게 될것이 아니겠소? 그 무공
이 반야장이라도 좋고 금강신장이라도  좋고 바라밀수라도 좋고 아미타
불 발길질이라도 좋소.  그저 내공을 연마하지 않는다면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징관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미타불 발길질이라는 무공은 본파에는 없습니다. 혹시 다른 파에 있
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만약에  내공을 연마하지 않는다면 본파의 이 
권법과 장법들은 아무런 위력이 없으며  다른 문파의 무공이 고강한 고
수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일초에  얻어맞아 근골이 부러지게  될 것입니
다."
위소보는 소리내 껄껄 웃으며 물었다.
"하하하! 그 두 소저는 내공이 심후한 고수요?"
"아니지요."
"그런데 노사질은 왜 걱정을 하는 것이오?"
그 말 한다미는 꿈속에 있는  사람을 놀라 깨어나게 하기에 족했다. 징
관은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원래 그랬었군! 원래  그랬었군! 사질은 줄곧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어리둥절해 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또다른 어려운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본파의 입문권은 십팔
로(十八路)이고 내외기계(內外器械)는  삼십육문(三十六門)이며 절기는 
칠십 이 가지가 됩니다. 매  한가지의 무공 변화는 적어도 수십 가지가 
되며 많은 것은 천 가지 이상도  됩니다. 이 같은 초식을 모조리 다 깨
우치기란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설사 내공을 익히지 않고 초식만 배운
다 해도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노화상은 정말 우둔하기 짝이 없구나.)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뭐, 다 배워야 한단 말이오?  그저 소녀들이 어떤 초식을 쓰느냐 하는 
것만 알면 되오. 군사가 쳐  들어오면 장수가 나가서 막고 물이 몰려들
면 흙으로 막으라는 말이 있듯이 소녀가 이런 일초를 써서 공격해 오면 
노화상이 이런 일초를 써서 깨뜨린다면 얼마든지 그녀들이 당황하여 도
망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외다."
징관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에 기쁜 빛을  띄웠다. 크게 깨달은 
듯한 표정이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 남의소저는 노산파의 강하일하라는  일초를 썼으며 그대는 여섯 가
지의 피하는 방법이 있고 또 일곱  가지 반격할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
았소? 기실 그렇게 잡다하게 늘어놓을 필요가 어디있느냔 말이오. 그저 
한 가지  방법으로 반격하여 그녀로 하여금  대패하도록 한다면 나머지 
열 두 가지는  배워서 무엇하겠느냔 말이오. 이렇게  된다면 모든 일이 
한결 수월해지는 것이 아니겠소?"
징관은 크게 기뻐서 말했다.
"지극히 옳은 말씀입니다. 지극히 옳은 말씀입니다. 두 분 여시주가 사
숙의 팔을 탈골시켰고, 정제 사질 등 네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 사
용한 것은 분근착골수로서 네 파의 수법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
나 우리 소림파의 무공으로 해소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즉시 그는 먼저 두 소녀가  사용한 수법을 일일이 펼쳐 보였다. 그리고 
다시 매  일초의 깨뜨리는 방법을 설명하고  위소보에게 시늉을 해보였
다.
징관의 상대방 술수를 깨뜨리는 방법은 때로 너무나 복잡하여 배우기가 
힘들었고 때로는 내공을 운용하기도 했다. 위소보는 그에게 조금 더 간
단하고 알기 쉬운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소림파의 무공은 물론 
방대하며 대단히 풍부한 편이었다.  징관으로 말하면 또한 기이할 정도
로 무학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위소보가 배우기 
어렵다고 느끼고 고개를 흔들면 그는  즉시 다른 수를 쓰곤 했다. 그래
도 되지 않을 때는 다시 초식을  바꾸어 위소보가 아무 힘도 들이지 않
고 배울 때까지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징관은 어린 사숙이 반 시진도 되지 않아 그 같은 초식을 다 배우게 되
자 오랫 동안 애써 생각해 낸 어려운 문제가 일단 시원하게 풀려진다고 
느끼며 기뻐서 귀밑을 긁거나 뺨을  어루만지곤 하면서 크게 흐뭇해 했
다.
그는 갑자기 또다른 사실을 상기한 듯 말했다.
"애석하군 애석해!"
그리고 다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위험하군, 위험해!"
위소보는 재빨리 물었다.
"애석한 것은 무엇이며 위험한 것은 무엇이오?"
징관은 말했다.
"사숙 어르신과 정제 그들 네 사람이 나가 두 명의 여시주와 손을 쓰게 
되고 그녀들의  손과 발을 문질러서 치유하기  어려워 이후부터 병신이 
된다면 어찌 애석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만약에 두 분의 여시
주가 손을 악랄하게 써서 놀랍게도 그대들 다섯 분을 죽인다면 그 아니 
위험합니까?"
위소보는 의아하여 물었다.
"어째서 우리 다섯 사람이 나가 손을 써야 한단 말이오?"
"두 분 여시주가 배운 초식은 반드시 그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닐 것
입니다. 사질은 그녀들에게 또 어떤  초식이 있는지 모르니 자연 그 초
식을 해소시키는 방법을 모르지 않겠습니까? 만약 다섯 분이 나가서 얻
어맞으면서라도 그녀들의 초식을 시험해 보지 않는다면 어찌 알아낼 수 
있단 말입니까?"
위소보는 소리내 껄걸 웃었다.
"하하하! 원래  그랬었군. 그것도 방법이 있소.  그대가 가서 그녀들과 
손을 써보기만 한다면 애석할 것도  위험할 것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
소?"
징관은 얼굴에 난처한 빛을 띄웠다.
"출가인은 화를 낼 수 없으며 무단히  남과 손을 쓸 수 없답니다. 그것
은 크게 잘못된 일이죠."
"됐소. 우리 두 사람이 들에  나가 산책을 해봅시다. 만약에 두분 여시
주가 이미 멀리 떠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잘된 일이외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이 나를 침범하지 않으니 내가 다른 사람을 침범하지 않는 격
이지요. 따라서 그녀들에게 달리 어떤 초식이 있는지 더 아랑곳할 필요
가 없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제는 한 번도 절문을 나
선 적이 없습니다. 대뜸 나가자마자 일을 일으킬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세운 뜻이 착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 과거 
녹야원( 野苑)에서 처음으로 법륜(法輪)을 넘겨 주실 때 전수하신 것은 
사성제(四聖제)와 팔정도(八正道)인데 옳바른 뜻이란 바로 팔정도의 하
나로서......"
위소보는 그 말을 가로챘다.
"우리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그저 절 주위를  산책하기만 하면 되오. 
그리고 그녀들을 만나지 않는다면 가장 좋은 일이죠."
"바로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사숙의 마음씨가 인자하고 착하여 
남과 다툼이 없으니  그것이 옳바른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질은 
마땅히 모범으로 삼겠습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우스꽝스러움을 느끼며서 그의 손을 잡고 옆문으로 소
림사를 나섰다.
징관은 절 부근의 숲속을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푸
른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것을 보고 불현 듯 희한하다고 탄성을 지르
며 신이 나서 말했다.
"이 많은 소나무들이 함께 자라  있으니 정말 기이한 구경거리군요. 우
리 반야당의 정원에는 다만 두 그루의......"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등뒤에서 간드러진 호통소리가 들
려왔다.
"조그만 도적 같은 땡초가 여기 있다!"
하얀 광채가  번쩍이는 가운데 한 자루의  강철칼이 위소보에게 떨어졌
다.
징관은 말했다.
"이것은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가운데 맹호하산(猛虎下山)이군!"
그러면서 손을 뻗쳐서 칼을 내려친 사람의 손목을 잡았다. 갑자기 그는 
이 일초가 염화금나수 가운데 한  가지 수법이어서 너무나 어렵다고 느
끼고 말했다.
"안돼, 안 되겠어."
그리고 급히 손을 움츠렸다.
칼을 쓴 사람은 바로 남의소녀였다. 그녀는 징관이 손을 움츠리는 것을 
보고 유엽도를 훽 뒤집더니 그의 허리께를 비스듬히 쓸어왔다. 바로 이
때 녹의소녀가 소나무 밭에서 달려나오더니 칼을 휘둘러 위소보를 베려
고 들었다. 위소보는 황망히 징관의  등뒤로 피했다. 이렇게 되자 녹의
소녀의 칼은 징관의  왼쪽 어깨를 향해 떨어지게  되었다. 징관은 말했
다.
"이것은 태극도(太極刀)의 초식이군! 간단한 방법으로 헤소시키기는 휩
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두 여인의 쌍칼이 일제히 휘둘러지면서 더
욱더 급히 떨어지게 되었다. 징관은 부르짖었다.
"사숙, 안  됩니다. 안돼! 두 분  여시주의 손 씀씀이가  너무 빨라 나
로...... 나로서는 자세히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사숙은...... 사숙은 
빨리 두 분  소저에게 성급히 굴지 말고 천천히  베도록 하라고 하십시
오."
남의소녀는 연신  매서운 초식을 펼쳤으나 시종  노화상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하마터면 몇 번이나 칼을 빼앗길 뻔하게 되었다. 거기
다 그가 크고 작은 소리로 마구 부르짖자 그가 일부러 자기네들을 비웃
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대노하여 더욱더 칼을 급하게 휘둘렀다.
위소보는 웃었다.
"이것 봐요. 두 분 소저, 나의 사질은 그대들에게 너무 성급히 굴지 말
고 천천히 초식을 펼치라고 하는구료."
징관은 말했다.
"바로 그렇소이다.  나의 머리가 민활하게 돌아가지  못해 일시 삼각에 
이르도록 깨뜨리는 법을 생각해 낼 수가 없소이다."
녹의소녀는 지극히 위소보를 미워했다. 그래서 몇 번 칼로 쳤으나 징관
이 막자 다시 칼을 휘둘러 위소보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징관은 손을 뻗쳐 막으며 말했다.
"이 분 여시주, 우리 사숙은 그대의 도법을 깨뜨리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 지금은 그를 내려찍을 필요가 없소이다. 나중에 그가 다 배워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 다시 베려고 해도 늦지 않을 것이
오. 아, 나의 방법은 실로 안되겠구나! 사숙, 지금은 서둘러 기억할 필
요가 없소이다. 지금의 이 방법들은  모두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나중
에 우리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그는 입을 멈추지 않으며 두 손으로 갑자기 잡았다가 낚아챘다가 또 다
시 찔렀다가는 때리곤 했다. 그리하여 두 소녀를 바짝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녹의소녀가 위소보를 죽이고자 했으나 뜻대로 될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이제 위험한 일이 사라진  것을 알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무
에 등을 기대며 자못 흐뭇해  했다. 그리고 한 쌍의 눈동자로 녹의소녀
의 얼굴, 몸, 손, 발 등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 하나하나를 잔뜩 배불리 구경하노라니 그 즐거움은 무궁무진했다.
녹의여인은 위소보가 보이지 않자 이미 도망친 줄 알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는 한 쌍의 눈동자로 자기를 핥듯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
가?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다시 징관을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려서 
칼을 든 채 위소보 쪽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는 이 일지를 일부러 매
우 느리게 찔렀다.  그녀는 이 일지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을 
나누어서 사람을 죽이고자 한눈을 팔았기 때문에 즉시 옆구리 아래쪽에 
손가락을 찔리게 되었다. 한  소리 신음소리와 더불어 그녀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징관은 말했다.
"아이쿠! 미안하게 되었소.  노승의 이 소지천남(笑指天南)이라는 일지
의 지력은 그렇게 무섭지  않소. 여시주가 오호단문도 가운데 악호난로
(惡虎 路)라는 일초를  펼쳐 비스듬히 칼을 들고 막기만  하면 막을 수 
있소. 이 일초를 여시주가 펼치는  것은 보지 못했으나 남의를 입은 여
시주께서 펼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노승은 여시주도 반드시 펼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 그런데  누가 알았겠소......아, 실례했소. 실례했
소."
남의소녀는 극도로 분에 차서 강철칼을 마구 이리 치고 저리 치며 내려 
찍으려 했다. 그 위세는 날카롭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무공
은 징관과 너무나 떨어져 있어  징관의 소맷자락조차도 건드릴 수 없었
다. 징관은 일부러 잔소리를  늘어놓았으나 속으로는 그녀의 초식을 기
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장에는 간단하게 깨뜨리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녀의 도법  초식을 기억했다가 차후에 일초 일초 자세
히 연구해 보리라 작정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녹의소녀 앞으로 다가가서 찬사의 말을 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미녀는 아마 세상에서 그대 혼자뿐일 것이외다. 쯧쯧
쯧! 정말 나는 그대를 보고 혼이 반쯤 하늘 밖으로 달아났구려."
그리고 손을 뻗쳐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한 번 꼬집었다. 그 소녀는 놀
람과 분노에 휩싸여  기절을 하고 말았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다시는 
경박한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온몸을 똑바로 세우고 부르짖었다.
"징관 사질, 그대는 그  여시주의 혈도를 짚어서 쓰러뜨리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각종 초식을 천천히 이야기하도록하여 서로 감정
이 상하지 않도록 하시오."
징관은 의아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적절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같이 손발을 쓴다는 것은  너무 의롭지 못한 일이외다. 그러니 
아무쪼록 그녀에게 말을 시키도록 하는 것이 비교적 점잖은 것이오."
징관은 기뻐서 말했다.
"사숙의 말씀이 옳습니다. 손짓 발짓을  하게 된다는 것은 올바른 도리
가 아니지요."
남의소녀는 이 노화상이 전력을 기울여  펼치게 된다면 자기가 그의 일
초반식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매가 사
로잡혀 있는 몸이니 자기마저 상대방의  손에 잡히게 된다면 그 누구도 
전갈을 하고 구원을 청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즉시 
뒤로 물러서며 부르짖었다.
"그대들이 만약 우리 사매의  털끝 하나라도 해친다면 소림사를 잿더미
로 만들 테니 그리 알아요!"
징관은 어리둥절해졌다.
"우리가 어찌 여시주를 해친단 말이오?  하지만 그녀 스스로 털끝 하나
를 떨어뜨린다면  설마하니 그대는  소림사에다 불을  지르겠다는 것이
오?"
남의소녀는 몇 걸음 달려가더니 고개를 돌리며 욕을 했다.
"늙은 땡초중이 입술만 살아 있군! 작은 땡초중은......"
그녀는 본래 음탕하고 호색한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 같은 말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어서 발로 땅을 차며 숲속으로 달려갔다.
위소보는 녹의소녀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파란잔디 위
의 백옥같이  고운 얼굴과 한 쌍의  백옥관음(白玉觀音)이 잠자고 있는 
모습을 새겨놓은 것 같아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징관은 입을 열었다.
"여시주, 그대의 사저는 돌아갔소. 그대도 빨리 가시오. 그러나 머리카
락 하나도 떨어뜨리지 마시오.  그대 사저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떨어뜨
리게 된다면 우리 절을 불태우겠다고 했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 이 작은 미녀가  나의 손에 들어온 
이상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놓칠 수는 없다.)
그는 합장하며 말했다.
"부처님께서 살피시옵소서.  징관 사질, 우리  부처님은 그대로 하여금 
우리 소림파의 무학을 크게 떨치고 본파의 천여 년이나 되는 위명을 지
키도록 하려고 하는 바이니 그대야말로 본파의 제일 큰 공신이라 할 수 
있소."
징관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사숙은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우리들은 그렇지 않아도 두 여시주가 더욱더 많은 어떤 초식을 펼칠까
봐 번뇌하지 않았소? 그런데 다행히도 부처님이 불쌍히 여기시어 이 여
시주를 보내 우리 절로 찾아오게  해서는 그녀로 하여금 일일이 초식을 
펼쳐 보이도록 해준 것이 아니겠소?"
그리고 그 소녀를 안아들고 말했다.
"갑시다!"
징관은 아연해졌다. 그는 일이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입을 열었다.
"사숙, 우리가  이 여시주를 모시고 절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규율에 
합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규율에 합당하지  않다니 무슨 말이오? 그녀는  소림사로 들어간 적이 
없소? 방장과 계율원의 수좌도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 물론 
규율에 합당한 것이 아니겠소?"
그가 한 번 질문할 때마다 징관은 고개를 한 번씩 끄덕였다. 그의 한마
디 한마디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그의 소사숙
은 승포를 벗어서 그 소녀의  몸 위에 덮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안은채 
옆문으로 해서 절안으로  들어가지 않는가? 징관은 하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얼굴에는 의혹의 빛을  가득 띄우고 있었다. 머리속은 그
저 어지럽기만 했다.
위소보는 가슴이 쿵쿵 크게 뛰었다. 이 소녀의 머리끝에서부터 발 끝에 
이르기까지 승포자락에 뒤덮여 있어서 전혀 밖으로 드러 내놓은 부분이 
없었다. 그러나 만약에 절의 승려들이  보게 된다면 의심을 하게 될 것
은 뻔한 이치가 아닌가? 그는 부드러운 여체를 안아들고 있었으나 마음
속은 여간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반야당은  절 뒤쪽의 외지고 
조용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들어가 어떤 승
려와도 부딪히지  않았다. 반야당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반야당에서 
일을 보던 집사승들은 사숙조가 왕림하고 또 수좌가 그 뒤를 따르는 것
을 보고 공손히 한켠으로 비켜섰다.

징관의 선방으로  들어가서도 그 소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혔다.  손에는 식은땀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그는 두 손바닥을 허벅지에 갖다대고 문지르며 한숨을 크
게 내쉰 후 웃었다.
"이제 됐다!"
징관은 물었다.
"우리 둘이 이 분...... 여시주를 이곳에 모시자는 것입니까?"
"그렇소. 그녀는 그렇다고 뭐  처음으로 본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잖소? 
저번에 그녀는 목에 상처를 입어 바로 동원선방에 머물지 않았소?"
징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하지만...... 하지만 그때는 그녀의 상처를 치료하고...... 
목숨과 관계있는  일이라서 부득이  변칙적인 방법을  사용했어야 했지
요."
"그거야 매우 수월한 노릇이외다."
그리고 그는 다리 쪽에 감아놨던 비수를 뽑아들고 말을 계속했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8. 사랑을 느낀 위소보

"무섭게 그녀를 한 번 베어 그녀로 하여금 다시 목숨을 잃을 우려가 있
도록 한다면 재차  임시변통의 수법을 써서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소?"
그리고 나서 그는 그녀의 몸 앞으로 가 예리한 비수로 그녀의 어디라도 
베려는 시늉을 했다.
징관은 재빨리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내  그대의 말을 듣기로 하지.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만 않는다면 그녀가 각종 초식을  모조리 펼쳐 보인후 우리는 슬
그머니 그녀를 밖으로 내보낼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
녀에게 상처를 입힐 수밖에 없소."
그는 이 소사숙이 일을 처리하는 방법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러나 소사숙이  회자 항렬의 웃어른이고 보니  견식도 반드시 자기보다 
뛰어나리라 생각하고 그의 분부를 듣는  것이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생
각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 여시주는  성질이 매우 굳건하오. 그녀는  그대의 반야당의 수좌를 
빼앗아야겠다고 했소. 그러니 나는 그녀를 잘 타일러야 겠소."
"그녀가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면 사질이 양보를 해 드리면 되죠."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다. 이 화상이 이토록 성격이 담백하리라고는 미
처 예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정말 경쟁심이라고는 전혀 없지 않은가?
"그녀는 우리들의 승려도 아닌데 반야당의 수좌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면 
우리 소림사는 얼굴을 어떻게 들 수 있겠소? 그대가 그 같은 마음을 갖
는다는 것은 바로 소림상 대하여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오."
그는 짐짓 안색을 굳혔다. 그  바람에 징관은 깜짝 놀라서 잇달아 옳은 
말씀이라고 변명을 했다. 위소보는 여전히 얼굴을 굳힌채 말했다.
"그렇군. 노사질은 잠시 나가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시오. 내 그녀를 타
일러 보겠소."
징관은 대답을 하고 나서 허리를 굽히고 나간 후 문을 닫아 주었다.
위소보는 그녀의 머리에 씌웠던 승포를 벗겼다. 그 소녀는 입을 벌리고 
고함을 지르려 했다. 그런데 바로  한 자루 싸늘한 광채가 번쩍이는 비
수가 자기의 코끝을 겨냥하고 있지 않은가? 대뜸 그녀는 입을 벌리기는 
했지만 감히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소저, 그대가 순순히 말을 듣는다면 나는 그대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
으리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대의  코를 잘라 절 밖으로 내놓을 수밖
에 없소. 사람이  코가 없다면 그저 향기나 구린내를  맡을 수 없을 뿐 
별 대단한 일은 아니지 않겠소? 그렇지 않소?"
그 소녀는 놀람과 분노에 얽혀  얼굴에 핏기라고는 전혀 찾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대는 말을 듣겠소?"
그 소녀는 극도로 노해 나직이 말했다.
"그대는 빨리 나를 죽여요!"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 같은 화용월태(花容月態)의 미인을 내 어찌 아까워서 죽일 수 있
단 말이오? 하지만  만약 그대를 놓아 준다면  이후부터 나는 밤낮으로 
그대를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대  때문에 상사병이 걸려 죽게될 것이니 
그것 또한 하늘의 호생지덕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겠소."
그 소녀는 얼굴이 붉어졌다가 곧이어 창백해졌다.
위소보는 말했다.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소. 내가 그대의 코를  자르게 된다면 그대의 
모습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할 것이오. 그러면 나는 상사병에 걸리지 않
게 될 것이 아니겠소?"
그 소녀는 눈을 감았다. 두  알의 맑은 눈물 방울이 기다란 눈썹아래서 
솟아오르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위소보는  마음이 누그러져 얼른 
위로의 말을 던졌다.
"울지 마시오. 울지 마시오. 그대가  순순히 말을 듣기만 한다면 내 차
라리 내 코를 잘랐으면 잘랐지 그대의 코를 자르지는 않겠소이다. 그대
의 이름은 뭐라고 하시오?"
그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었으며 눈물이 더욱더 많이 흘러내렸다.
위소보는 말했다.
"원래 그대의 이름은 고개를 흔드는 고양이라는 뜻으로 요두모(搖頭모)
라는 이름이었군! 그 이름은 그렇게 듣기 좋은 것이 못되는걸?"
그 소녀는 눈을 뜨고 흐느끼며 말했다.
"누가 요두모라고 했어요? 그대아말로 요두모예요."
위소보는 그녀가  대답하는 말소리를 듣고 속으로  크게 흐뭇해서 웃었
다.
"좋소. 내가 바로  요두모라고 해 둡시다. 그러면  그대 이름은 뭐라고 
하시오?"
그 소녀는 노래 말했다.
"말하지 않겠어요."
"그대가 말을 하지  않겠다면 내 그대의 이름을 지어  줄 수밖에 없군. 
그렇지......말  못하는 고양이라는  뜻으로 아파모(啞巴모)라고  합시
다."
그 소녀는 노해 부르짖었다.
"터무니없는 소리, 내가 언제 벙어리였나요?"
위소보는 높이 쌓아놓은 소림 무학전적  위에 올라앉아서 두 다리를 포
개고 가볍게 흔들어댔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은 가득히 노기를 띄우고 
있으나 그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지라  웃으며 입은 열었
다.
"그렇다면 그대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나는 그대와 말씨름을 해서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말하지 않으려
는 거예요."
"내 그대와 상의할 일이 있소. 이름도  없고 성도 없다면 말을 하게 될 
때 매우 거북스럽지 않겠소? 그대가 말하지 않겠다면 나는 그대에게 이
름을 지어줄 수밖에 없소. 음 어떤 이름을 지어 주면 좋겠소?"
그 소녀는 잇달아 말했다.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위소보는 웃었다.
"됐소. 그대는 위문요씨(韋門搖氏)라고 합시다."
그 소녀는 어리둥절해졌다.
"이상야릇하군요. 나는 성이 위씨가 아니에요."
위소보는 정색했다.
"천지신명이어 굽어살피소서. 나는 한평생  칼로 만들어진 산에서 오르
고 기름 가마솥으로  들어가며, 천 갈래 만 갈래  찢겨 죽고, 온가족이 
멸살을 당할 정도로 대역무도하며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극악무도하여, 
남자는 도적이 되고 여자는 창부가 되어 자손이 끊어지게 되고, 하늘의 
벼락을 맞은 온 몸뚱아리에 커다란  부스럼이 난다해도 나는 반드시 그
대를 내 마누라로 삼아야 하겠소."
그 소녀는 그가 단숨에 그토록 저주  어린 맹세를 하는 것을 보고 그만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갑자기 최후의 한마디를 듣고서 얼굴이 새빨개
져서 쳇! 쳇! 하고 코웃음을 쳤다.
위소보는 말했다.
"나의 성씨는 위씨요.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이미 운명적으로 성이 위
씨가 될 것은 정해진 노릇이외다.  나는 그대의 성이 무엇인지 모르오. 
그러나 그대는 고개만 흔드니까 나는 위문요씨라고 지은 것이오."
그 소녀는 눈을 감고 노해 말했다.
"세상에 그대와  같이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는  화상은 없을 거예요. 
그대는  출가인이에요. 그런데  무슨 아내를  맞는다고......하는 것이
죠...... 부처님께서  벌을 내릴까 두렵지도  않으세요? 죽어서 십팔층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거예요."
위소보는 두 손을 합장하고 털썩 꿇어엎드렸다. 그 소녀는 그가 꿇어엎
드리는 소리에 호기심이 일어서 눈을  떴다. 그리고 보니 그는 창문 쪽
을 향해 몇 번 절을 하더니 말했다.
"우리 부처님이신 여래이시여!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
보살, 옥황상제, 사대금강,  염라대왕과 판관 나리들, 무상소귀(無常小
鬼) 모두들 함께 들어 주시오. 이  위소보는 반드시 이 소저를 처로 맞
아야겠소이다. 설사 죽은 이후  십팔층 지옥으로 떨어져 혓바닥이 뽑혀
지고 머리통을  톱질당하며 돌이킬 수 없는  만겁으로 떨어져 환생하지 
못한다 해도 상관이 없소이다.  나는 살아서도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고 죽어서도 아무것도 두렵지  않소이다. 다만 이 마누라만은 어찌 
되었든 반드시 맞아들여야겠소."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9. 납치된 미녀

그 소녀는 그가  엄숙한 태도로 말하는 모습이 조금도  농담을 하는 것 
같지가 않자 오히려 겁이 더럭 나서 빌었다.
"말하지 마세요, 말하지 마세요."
그녀는 잠시 후 한스런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가 응낙을 해도 좋고 응낙을 하지 않아도 좋소. 어쨌든간 나는 이
후 팔십 년 동안 그대를 따르며 그대를 시중들겠소. 설사 그대가 백 살 
먹은 할망구로 변한다 하더라도 그대를 맞아들이지 못한다면 죽어도 눈
을 감지 못할 것이오."
그 소녀는 노해 말했다.
"그대가 그토록 나를 모욕한다면 언젠가는 내 손에 죽게 될 거예요. 나
는 먼저 그대를 죽이고 나서 자살하고 말겠어요."
"그대가 나를  죽이는 것은 괜찮소. 하지만  그것은 친남편을 모살하는 
것이오."
그의 음성을 떨리고 있었다.
그 소녀는 그가 입술을 깨물고 이를  바드득 갈 뿐 아니라 이마에 푸른 
힘줄이 불끈 돋아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두려운 마음이 생겨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위소보는 그녀에게로 몇  걸음 다가갔다. 전신의 맥이  빠져 손과 발이 
덜덜 떨려왔다. 별안간 그녀를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싶었고 경
건하고도 성실한 마음으로 애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한걸음 내딛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를 그대로 목졸라 죽
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 소녀는 거친 숨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그의 눈초리에 기이한 안광
이 빛나는 것을 보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져서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다가 맥없이 주저앉으
며 속으로 생각했다.
(황궁에서 나는 방소저와 소군주를  나의 크고 작은 마누라라고 말했으
며 그때는 히히! 하하!  얼마나 가쁜하고 자연스러웠는가? 그리고 안고 
싶으면 안았고 입을 맞추고 싶을  때는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 계집
애는 분명히 노화상에게 혈도를 짚혀서  꼼짝 못 하는데도 어째서 나는 
그녀의 손 한 번 감히 만지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그녀의 아름다운 섬섬옥수가 황포자락 밑으로 드러나 있었
다. 그는 가만히 한 번 쥐어  보고 싶었으나 그와 같은 용기가 나지 않
았다.
그는 참지 못하고 욕을 했다.
"빌어먹을!"
그 소녀는 이해하지 못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위소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나는 내 자신이 용기가 없어  쓸모가 없다고 욕하는 것이지 그대를 욕
한 것은 아니외다."
"그대는 이토록 무법천지로 놀면서 어째서 용기가 없다고 하세요. 그대
가 만약 용기가 없다면 그야말로 천지신명에게 감사드려야 할 일이죠."
그 말을 듣자 위소보는 호기가 대뜸 크게 끓어올라 몸을 일으키며 말했
다.
"좋소! 나는 무법천지로 놀겠소. 그대의 옷을 벗기리다!"
그 소녀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다시 기절을 할 뻔했다.
위소보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녀의 두 눈동자에 악독한 
빛이 가득 서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만두자, 그만두자.  이 위소보는 그야말로  애비 없는 후레자식으로 
그대에게 투항할 수밖에 없구나. 그리고 감히 그대에게는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마누라를 두려워하게 된  모양이오. 그대를 놓아 
주리다."
그 소녀는 놀람과 두려운 마음이 약간 가라앉았다.
그러자 즉시 노기가 끓어올라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그 고을에서  그들...... 그 나쁜 여인들을 상대
로 무슨  터무니없는 말들을  지껄였죠? 저의 사저와  내가...... 그대
의...... 그대의...... 뭐라고 하면서 그대를 잡아가려고 했다구요? 그
대는......그대는 정말 악인이에요."
위소보는 껄걸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 나쁜 여자들이 무엇을 알 수 있겠소? 장래 내가 그대를 내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었을 때 천하의  천여 군데나 되는 기녀원의 십만 
명이나 되는 기녀들이 줄지어 나의 앞에 서더라도 이 위소보는 그 기녀
들을 힐끗쳐다보지도 않을 것이오.  그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매일 열 두 시간  동안 그저 나의 정다운 마누라 한 
사람만 보고 있을 것이외다."
그 소녀는 급히 말했다.
"그대가 다시 나를 마......  마...... 무엇이라고 한다면 나는 영원히 
그대와 이야기를 하지 않겠어요."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재빨리 말했다.
"좋소, 좋소. 내 그렇게 부르지 않고 그저 마음속으로만 부르리다."
"마음속으로도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내가 마음속으로 몰래  부르게 된다면 그대 역시  모르는 일이 아니겠
소?"
"흥! 내가 왜  몰라요? 그대의 얼굴에 이상야릇한  표정이 떠도는 것을 
보면 그대가 마음속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게 되었을 때부터 나의 얼굴에는 이상야릇한 표
정이 떠올라 있었소. 십중팔구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전부터 이
미 그대를 내 마누라로 삼게 될 운명이었나 보오."
그 소녀는 눈을 감고 다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입을 열었다.
"이것 보시오.  내가 그대를 마누라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어째서 나를 
아랑곳하지 않소?"
소녀는 눈을 꼭 감고 있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좋소. 마누라란 말도 하지 않으리다. 나는 그저 장래 그대의 지아비가 
되기만 한다면......"
그 소녀는 극도로 노해 더욱  힘주어 눈을 감았다. 아무리 위소보가 이
러쿵 저러쿵 말을 붙이며 그녀로  하여금 입을 열도록 유도했으나 그녀
는 대답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자 다음과 같은 말을 하려고 했다.
(그대가 여전히 나를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의 얼굴에 입맞춤
을 하겠소.)
그러나 그 한마디 말은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끝내 내뱉을 수 없었다. 
이 선녀와 같은 미녀를 위협한다는  것은 그녀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생
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는 그대에게 한가지 부탁이  있소. 그대는 나에게 성명을 말하시오. 
그러면 내 그대를 놓아 주리다."
"그대는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내가 다 속이더라도  그대 한사람만은 속이지 
않겠소. 이야말로 대장부의  일언이 한 번 쏟아지게  된 이상 사마난추
(死馬難追)가 아니겠소. 그리고 나이 어린 처가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
은 활마호추(活馬好追)이외다."
그 소녀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뭐가 사마난추이고 활마호추인가요?"
"그것은 우리 소림파의 말이외다. 어찌 되었든간에 나는 그대를 속이는 
말은 하지 않겠소. 그대도 생각해  보시오. 나는 한마음 한뜻으로 그대
의 손자로 하여금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겠다는 것이오. 그런
데 오늘 만약에 내가 그대를  속여 보시오. 그대 아들도 나를 아버지라
고 부르지 않을 것이 아니오?  그렇게 되면 손자야 말해서 더 무엇하겠
소?"
그 소녀는 처음엔 무슨 손자니 할아버지니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궁리를 해보자 그가 말을 빙 돌려서 다시 그 일을 두고 말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직이 말했다.
"나는 그대가 나를 놓아 주는 것도 바라지 않아요. 나는 그대에게 업신
여김을 당했으니 일찍부터 살고싶지 않았어요. 그대는 빨리 나를 한 칼
로 죽여 줘요."
위소보는 그녀의 목에 칼자국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여
간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땅바닥에 엎드려서 쿵쿵쿵! 
하니 그녀를 향해 네 번 큰절을 하고 말했다.
"내가 소저에게 잘못했소."
이어 좌우의 손을 들어 자기의 뺨을 십여 차례나 때렸다. 두 뺨이 금시 
부어올랐다.
"소저, 괴로워하지 마시오. 이  위소보라는 후레자식은 정말 맞아도 마
땅하다오."
그리고 몸을 일으켜서는 방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이것 봐요. 노사질, 나는 저 소저의 혈도를 풀어 주고 싶은데 무슨 방
법을 써야 하겠소?"
징관은 줄곧 선방 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내력은 심후해서 
위소보와 그 소녀가 주고받는 말이  가늘고 또 속삭이는 듯했지만 모조
리 들을 수가 있었다. 그는  그저 이 사숙이 여시주를 유도심문하는 수
법이 높고 깊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무슨 지아비니 마누라니 손자니 할아버지니 하는 것들은 아무래도 무공
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소사숙의 기민한 말 재주나 절묘
한 말 한마디 한마디는 너무나 심오한 반면에 자기는 불도에 대한 조예
가 부족해서 그 말뜻을 터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소사숙이 무
릎을 꿇고 큰절을 한 후 자기의  뺨을 때리는 것을 보고 더욱더 감동하
고 탄복했다.
선종에서는 불법을 전수할 때 제자가  만약 사존이 전수하는 미묘한 말
과 절묘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부는 종종 막대기로 후려치며 일성
을 대갈했다. 막대기로 사람을  때리면서 불법을 전수하는 일은 당나라 
때 덕산선사(德山禪師)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쳐 
깨우치도록 하는 것은 바로 당나라 도일선사(道一禪師)로부터 비롯되었
다.
그리하여 당두봉갈(當頭棒喝)이라는 숙어가 생겼던 것이다. 징관선사는 
과거 고승들이 막대기로 사람을  때리고 깨우치는 것은, 소사숙이 손바
닥으로 자기의 얼굴을 때리고 그 여시주를 깨우치는 것과 같으며,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한다는 점에  있어서 자비의 마음은 앞에서 말한 
사람들보다 더욱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히 감동하고 탄복하여 
찬탄을 하고 있을 때 그가 혈도를  푸는 방법을 묻는 것을 보고 재빨리 
말했다.
"그 여시주의  봉해진 혈도는 대포혈(大包穴)입니다.  바로 족태음비경
(足太陰脾經)에 속하는  것이죠. 사숙께서는 그녀의  다리에 있는 기문
(箕門)과 혈해(血海)두 곳의 혈도를  추혈과궁의 수법을 써서 문지른다
면 즉시 풀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기문과 혈해 두 곳의 혈도는 어디에 있소?"
징관은 옷자락을 걷어올리고 무릎  안쪽의 혈도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가 만져서 틀림이 없도록 부위를 확인시키고는 다시 추혈과궁의 수법을 
가르쳐 주고 말했다.
"사숙은 내공을 익히지 않아 혈도를 푸는 시간이 비교적 오래걸릴 것입
니다. 그러나 약 반 시진  동안 주무르게 된다면 반드시 혈도가 풀어질 
것입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문을 닫고 다시 침대가로 다가갔다.
그 소녀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이미 들었는지라 놀라 부르짖었다.
"그대가 혈도를 풀어 주는 것도 싫어요. 그대가 나의 몸에 손대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어요. 허락하지 않겠어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무릎 안쪽을  반 시진이나 주무른다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
다. 나는 성심성의로 그녀의 혈도를 풀어 주려는 뜻에서 그렇게 하겠으
나 그녀가 반드시 내가 경박한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지아비가 마누라를 좀 주무른다는  것은 천리에 부합되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좋은 기회를 상실하지 말아야 하며 만약 상실한 자는 능지
처참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 계집애의 성질이 매서우니 내가 혈도를 풀
어 주었을 때 그녀가 당장 머리를  벽에 부딪쳐 자살하게 된다면 이 위
소보는 그야말로 자손이 끊어지는게 아니겠는가?)
그는 고개를 돌리며 큰소리로 물었다.
"남녀는 서로 손가락 하나 갖다댈 수 없다고 했소. 더군다나 우리 출가
인은 더욱더 따져야 되지 않겠소?  혹시 주물러 주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은 없소?"
징관은 말했다.
"네. 사숙께서는 정말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시는군요. 이 사질은 탄복
했습니다. 상대방의 몸에  손이 닿지 않도록 하고  혈도를 푸는 방법이 
있습니다. 소맷자락으로 가볍게 한 번 떨치거나 일지선(一指禪)이란 무
공을 펼쳐 허공을 격하고 손가락으로 슬쩍 찌른다면......어이쿠, 잘못 
되었군. 소사숙께서는 내공을 연성하지  않았으니 그와 같은 방법은 쓸 
수 없겠습니다. 이 사질이 한 번 잘 생각해 보기로 하죠."
기실 그는 스스로 방안으로 들어가 소맷자락 끝으로 가볍게 한 번 떨치
거나 일지선의 무공으로 허공을 격하고 손가락을 내찌르게 된다면 즉시 
그 소녀의 혈도를 풀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숙께서 그와 같이 묻는지
라 마땅히 방법을 강구해서 대답을 해야했다.
그러나 몸에 내공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이 손가락으로 주무르지 않
고 혈도를 푼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설사 그가 반 년이나 
일 년 동안을 생각하더라도 어떤 좋은 방법도 강구해 낼 수 없으리라.
위소보는 그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자 방문의 조그만 틈을 열고 바라
보았다. 그리고 보니 그는 고개를 쳐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아마도 세 
시진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이
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몸을 돌렸다. 과거 
황궁에서 목검병의 혈도를 풀어 줄  때 제 일류의 수법에서부터 제구류
의 수법까지  쓰면서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주무르고 때리고 찌르고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는 점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소군주는 정말 군주라는 존귀한 신분이었지만 위소보 자신은 조
금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 눈앞의 이름도 알 수 없는 소녀에 
대해서 어째서 자기가 이토록 전전긍긍하며 천신처럼 공경하는 것일까? 
눈을 돌려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썹은 꼭 닫혀져 
있었고 잔뜩 찌푸리고 있었는데 그 표정은 매우 수심이 어려 보였고 고
달퍼 보였다. 불현 듯 그는 측은한 마음이 크게 일어나 목탁을 치는 방
망이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이 위소보는 그대에게 전생에 빚을 진 것 같소. 이승에서 하늘높은 줄 
모르고 땅이 얼마나 두터운지 모르는 이  몸이 그저 소저 한 사람만 두
려워하게 되었구려. 지금 나는 그대에게 투항을 하겠소. 그리고 그대의 
혈도를 풀어주겠소."
그는 승포자락을 들추엇다. 이어 목탁 치는 방망이로 그녀의 왼쪽 다리 
무릎 안쪽을 가볍게 몇 번 찔렀다. 그 소녀는 조그만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위소보는 다시 몇 번 찌르고 나서 물었다.
"좀 어떠시오?"
"그대는......그대는 그저 망나니와 건달들이  하는 말이나 할 줄 알았
지. 그 밖에는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징관은 내력이 심후해서 가벼운 일지로  내경을 쏟아 그녀의 혈도를 짚
은 것이었다. 그런데  위소보의 목탁 치는 방망이가  찌르는 곳은 매우 
정확한 부위이긴 했으나 힘이 부족하여 봉해진 혈도를 풀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비웃는 말을 하는지라 크게  울화가 치밀어오르게 되었
다. 위소보는 목탁 방망이로 힘 주어 몇번을 찔렀다. 그 소녀는 아! 하
는 소리를 냈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물었다.
"아프시오?"
그 소녀는 노해 말했다.
"나는......나는......나는......"
위소보는 다시 그녀의 오른쪽  무릎 안쪽을 찔렀다. 그러나 손씀씀이가 
너무나 가벼워 몇 번을 찔렀으나 그  소녀는 그저 몸을 몇 번 흠칫했을 
뿐이었다. 
위소보는 기뻤다.
"되었소. 소림파는  본래 칠십 이 가지의  절기가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모두 칠십 세 가지가 되었소.  이 한가지의 절기는 고승 회명선사가 창
안한 것으로서...... 목어추해혈신공(木魚鎚解穴神功)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오. 헤헤헤......"
그가 득의에 차 있을 때였다. 별안간 허리께가 아파왔다. 그 소녀는 벌
떡 몸을 일으키더니 손을 뻗쳐 그의 비수를 빼앗더니 그의 가슴팍을 향
해 찔렀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어이쿠! 친남편을 모살한다......"
그리고는 털썩 주저앉고 말했다.
그 소녀는 재빨리  한 켠에 높은 유엽도를 들더니  방문을 열고 질풍과 
같이 바깥 쪽으로 달려나갔다.
징관은 손을 뻗쳐 막으며 부르짖었다.
"여시주,  그대는......그대는...... 우리  사숙을 죽였소......  그런
데......그런데......"
그 소녀는 왼손의 유엽도를 오른손으로 옮기고 휙휙 하니 잇달아 세 번
의 칼질을 했다. 징관은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그 소녀는 두 다리가 시
큰해지고 마비되는 걸 느끼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징관은 위소보의 곁으로 다가가 오른손의  중지를 잇달아 퉁겨 그의 상
처 부위에 있는 혈도를 봉쇄하고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우리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어서 세 개의 손가락으로 비수의 자루를 잡고 가볍게 뽑아들었다. 상
처에서는 선혈이 뿜어 나왔다. 징관은  피가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
고 재빨리 옷자락을 들추고 바라보았다.  상처는 약 반 치 정도의 길이
였으나 크기는 얼마 크지 않았다.  그는 다시 몇번 아미타불 하고 부르
짖었다.
위소보는 본래 몸에  보의를 입고 있었다. 만약  비수가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아니었더라면 본래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가 없었을 것이
다. 지금 비수는 옷자락을 꿰뚫고 들어가긴 했으나 별로 위력을 발휘하
지 못해 살갗 속으로 약간  들어가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
기 가슴팍에서 피가 흐르고 상처가 무척 아픈지라 목숨을 건질 수 없다
고 생각하고 중얼거렸다.
"친남편을  모살하다니...... 어헉  헉,  친...... 친......  모살하다
니......"
그 소녀는 땅바닥에 쓰러져서 울부짖었다.
"내가 그를  죽였어요! 노화상, 빨리  그대는 나를 죽여요.  그리고 그
의...... 그의...... 원수를 갚도록 해요."
징관은 말했다.
"아! 우리 사숙께서는 그대를 깨우쳐 주려고 했는데...... 여지수는 고
집을 피우고  깨닫지 못했으면 그만이지 그토록  흉악한 짓을 저질렀으
니...... 살인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지나친 일이외다."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나는...... 어떻게 되었소?  아, 친...... 남편을 모살하다
니......"
징관은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듯  방을 나가더니 금창약을 가져와 그의 
상처에 발라주며 말했다.
"사숙께서는 대자대비하옵니다. 흉악하고 완고한 사람을 깨우쳐 주려고 
했을 뿐이고 또 받아야 할 복을 다 받지 못했으니 이대로 원적(圓寂)하
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상처가 심하지 않은 편이니 상관없을 겁
니다."
위소보는 상처가 심하지 않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연 상처는 
기실 그렇게 아픈 것이 아니어서 말했다.
"귀를 이리 가져  오시오. 어이쿠, 나는 죽게 되었소.  나는 죽게 되었
소."
징관은 허리를 구부리고 귀를 그의 입가에 가져갔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그대는 그녀의 혈도를  풀어 주되 그녀가 방을  나서지 못하도록 하시
오. 그녀가 전신에 지니고 있는  무공을 모조리 다 펼치게 되었을 때야
만이...... 때야만이......"
"그때는 어떻게 하죠?"
"그때는...... 그때에야......"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설사 그때가 되어도 그녀를 놓아 줄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말했다.
"바로...... 내가 시키는 대로 해주시오.......빨리......빨리......"
징관은 그가 급히 재촉하자 그뜻을 알지 못했으나 역시 몸을 돌려 손가
ㅏ을 퉁겨 그 소녀의 짚혔던 혈도를 풀어 주었다.
그 소녀는 위소보가 징관에게 뭐라고  속닥속닥한 것을 보고 이렇게 생
각하고 있었다.
(이 나이 어린 고약한 승려는  간계가 많으니 죽을 임시에 어떤 독계를 
안배해서는 나를 벌주려고 할런지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놓아 주
라고 하는 걸까?)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혈도가 막 풀어진 상태였고 혈액이 제대
로 흐르지 않아  두 다리가 아직도 마비되고 힘이  없어 다시 자빠지고 
말았다. 징관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며 끊임없이 염불을 외웠다.
그 소녀는 더욱 놀라고 두려워 크게 부르짖었다.
"빨리 빨리 일장으로 나를 쳐  죽여요!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은 영웅호
걸이 아니에요!"
징관은 말했다.
"소사숙께서는 지금 그대를 놓아 줄 수 없다고 했소. 또한 그대를 해쳐 
죽이는 것도 아니외다."
그 소녀는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나이 어린 고약한 승려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를 아내로 맞아
들이겠다고 했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다고 말
했다. 그렇다면 혹시......혹시......  그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나를 맞아들여서는......뭐야, 마누라를 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몸을 기울여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유엽도를 집어들었다. 그리
고 힘주어 자기의 이마를 향해 내려쳤다.
징관은 소맷자락을 떨쳐 그녀의  칼날을 휘감았다. 그리고 왼쪽 옷자락
으로 그녀의 얼굴을 치려고 했다.  그 소녀는 세찬 바람이 얼굴로 불어 
오는 것을 느끼고  칼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징관은 다시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그러자 유엽도는 쏜살같이 위로  날아가 팍! 하는 소리와 함
께 대들보에 꽂히고 말았다.
그 소녀는 왼발로 땅을차며 바로 징관의 왼쪽으로 비켜 나가려고 했다. 
징관은 손을 뻗어 막았다. 그녀는 오른손 다섯 손가락으로 눈을 할퀴려
고 했다. 징관은 손을 훽! 뒤집어 그녀의 팔목을 잡고 말했다.
"운연과안(雲烟過眼)이군! 이것은 강남땅 장(蔣)씨 집안의 무공이지."
그 소녀는 발길질로 그의 아랫배를 걷어차려고 했다. 징관은 살짝 허리
를 구부렸다. 그러자 그 발길질은 그만 허공을 차게 되었다.
징관은 말했다.
"이 일초는 공곡족음(空谷足音)이로군.  원래는 산서성 진양(晋陽)땅의 
사타인(沙陀人)에게서 비롯된 것이지."
그 소녀는 그의  말에 아랑곳할 여유가 없었다.  주먹으로 치고 발길로 
차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찌르고 팔목으로 걷어올리려  하는 등 잇달아 
무궁무진한 초식을 펼쳐 냈다. 징관은 일일이 분별하고 확인했다. 그런
데 그녀의 손 씀씀이가 무척  빨라서 입으로 설명할 겨를이 없었다. 그
는 손짓하는 대로 상대방의 절초를 해소시키며 일일이 기억해 두었다.
그 소녀는 잇달아  수십 초를 펼쳤으나 모조리  그에 의해 깨뜨려졌다. 
이제 좀처럼 달아나기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자 당황하고 다급한 김
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그녀는  몇 번 몸을 휘청하더니 그만 땅바닥
에 쓰러져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징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시주는 욕심이 많아 각문 각파의 절묘한 초식을 배우기는 했으나 몸
에 내력이 없어서 오랫 동안 싸운 결과 자연 힘을 못쓰게 되었소. 노납
의 의견에는 역시 처음부터 다시  내공을 연마하는 것이 정당한 방법인
가 하오. 이제 싸우기가 싫소. 만약에 그대를 구하게 된다면 다시 싸우
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내상을  입을 것이니 역시 누워서 좀더 휴
식을 취하도록 하시오. 여시주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지만 절대 오해
는 하지 마시오. 노납이 그대가 기절하여 쓰러지는 것을 보고도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더라는 오해는 하지  말란 말이외다. 어이쿠, 노납이 멍
청하군! 그대는 이미  까무러쳐서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을 터인데 
여전히 내가 중얼거리고 있었군!"
그는 침대가로 다가가 위소보의 맥박을 짚어 보았다. 그 맥박은 평온하
고 힘찬 것이 조금도 위험한 증상이 엿보이지 않았다.
"사숙은 걱정하실 것 없소이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 소저가 펼친 초식을 모두 기억했소?"
"그런대로 기억했지요. 그러나 비우기  쉬운 수법으로 상대하려고 하니 
수월한 노릇은 아니더군요."
"그녀의 초식을 기억하기만 하면  되오. 어떻게 사ㅣ대했느냐는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소이다."
"네, 네. 사숙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그녀가 권각법을 모조리 펼친 이후엔 다시 그녀로 하여금 칼을 쓰도록
하여 그 초 식을 기억하도록 하시오."
"맞았습니다. 무기로 펼치는 초식도 기억해야지요. 하지만 한가지 난처
한 일이 있습니다. 그녀의 유엽도는 이미 대들보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녀는 저토록 높이 뛰어올라  칼을 뽑아들지 못할 것 같습니
다."
"그대는 어떠시오? 그대는 위로 올라가서 칼을 취할 수 있겠소?"
징관은 어리둥절하더니 껄걸 소리내어 웃었다.
"사질은 역시 멍청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가 그토록 큰소리로  웃자 대뜸 그 소녀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게 
되었ㄷ. 그녀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훌쩍 일으키더니 문쪽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징관은 왼쪽 소맷자락을 비스듬히 펼쳐 그 소녀의 허리를 때렸다. 소녀
는 휘청하더니 벽에 가서 부딪히려 했다. 징관은 오른쪽 소맷자락을 잇
달아 떠쳐 내어 그녀가 벽에 부딪치지 않도록 했다. 그녀는 어리둥절해
졌다. 자기의 무공이 이 노승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니 계속 싸운다 하
더라도 헛되이 그의 희롱만 당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는 의자에 앉았다.
징관은 의아하여 물었다.
"어! 그대는 싸우지 않을 생각이오?"
소녀는 화를 냈다.
"그대를 이길 수 없는데 무엇하러 싸워요?"
"그대가 손을 쓰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그대가 펼치는 초식을 알 수 
있겠소? 그리고 어떻게  그대의 무공을 깨뜨리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겠소? 그대는 빨리 손을 쓰시오."
그 소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좋아, 원래는 당신이 나를 유인해서  손을 쓰게하여 나의 무공 수법을 
알아내려고 했군. 그렇다면 나는  오히려 그대로 하여금 알아내지 못하
도록 해줘야지.?)
갑자기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두 주먹을 아래위로 올렸다내렸
다 하면서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그리고 두 발로 마구잡이로 걷어찼
다. 어떤 법칙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징관은 크게 의아하여 부르짖었다.
"어, 이상하다! 정말 괴상하군! 어이쿠, 모르겠군! 모르겠어! 이상하고 
야릇한지고!"
그녀의 일초 일초는  그야말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 아닌가. 간혹 
몇 수는 어느 문파의 초식과 비슷했으나 조금 같고 크게 다른 편이었으
며 그런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았다. 그의 머리속이 어지러워졌다.
그는 소녀가 펼치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떤 무공 초식이 아니고 그저 마
구잡이로 두 손을  휘두르고 두 발을 차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
다. 그녀는 자기가 어떠한 수단을  쓰던 노승은 결코 자기를 해치지 않
고 기껏해야 혈도를 짚어 땅바닥에  쓰러뜨려 꼼짝 못하게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마구잡이로  손을 휘두르며 걷어찼던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나의 무공 초식을 알고자 한다면 나는 도리어 
알아내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식이었다.
징관은 천하 각문 각파의 무공에 익숙했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는 무공
을 전혀 배우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녀가 갖가지 기이한  초식을 끊임없이 펼쳐 내는데 하나같
이 한평생 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듣지도 못했던 것이라 그만 당황
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것이다. 그는 한평생 소림사에서만 살아온 
편이고 삭발을 한  이래 한 번도 절문에서  나간적이 없었다. 소림사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권각법을 펼칠 때는 물론 매 일초마다 근거가 
있었다.
그리고 각파의 무공을 논함에 있어서도 자연히 정묘하고 독특한 초식만
을 다루었다. 어린애들처럼 마구잡이로 치고 차는 것을 이 소림사 반야
당 수좌이자 무학에  박학한 징관대사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또 
일찍이 사람으로부터 들은적도 없었다. 그는 다시 십여 초를 보게 되었
을 때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딱 벌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상야
릇한지고라는 감탄사도 입밖으로 내지 못했다.
(이것은 무당장권의 도기룡(倒騎龍)같구나.  그러나 초식을 거두어들이
는 것이 잘못되었다. 설마하니 공동파의 운기용양(雲起龍 )이라는 초식
에서 비롯된 것일까? 어? 이  발길질은 더욱더 이상하다. 이와 같이 곧
장 걷어찬다면  상대방이 아무렇게나 뻗쳐내는 손에  발목을 잡히게 될 
것이다. 아니다. 이 가운데는 반드시  지극히 무서운 뒷수가 있을 것이
다. 아! 이번에 그녀는 두  손으로 나의 머리카락을 잡으려고 했다. 그
러나 나는 분명히  머리 카락이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히 허초이
다. 무술은 허초 가운데 실초가  있기 마련이고 실초 가운데 허초가 있
기 마련이다. 어째서 이 화상의 머리카락을 잡으려고 들었는지 그 가운
데의 깊은 뜻은 자세히 연구해 보지 않을 수가 없구나......"
그런데 그 소녀의 손 씀씀이는 더욱더 어지러워졌다. 징관은 보면 볼수
록 어리둥절해졌다. 그리고 점차  이해를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존경하
고 감탄하는 마음이 생겼고 존경하고 감탄하는 마음이 생겼고 존경하는 
감탄하는 마음이 다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되었다.
위소보는 그  소녀가 마구잡이로 손을 쓰는데  징관은 진지하게 정신을 
가다듬고서 연구하는 것을 보고 그만  참을 수 없어 홧! 하는 웃음소리
를 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웃는 바람에 상처를 건드리게 되어 무척 상
처가 아팠다. 그는 부득이 입술을 깨물며 참지 않을 수 없었다.
징관은 정히 당황하여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위소보가 
웃음소리를 내자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숙은 내가 이 여시주의 기묘한  초식을 모르는 것을 비웃고 있구나. 
아무래도 그녀를 반야당의 수좌로 삼아야겠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위소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저 있지 않은
가. 징관은 더욱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숙은 심기가 착해서 나의 수좌 자리를 이 여시주에게 양보하라는 말
을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것 같구나.)
그런데 그 소녀의 권각법은 갈수록 어지러워졌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옛 사람들은 무공이 절정에 이르게  된다면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했
다. 그리고 명나라 때 한 분의 독고구패(獨孤求敗)대협과 또 한분의 영
호충(令狐庶)대협이 있어서 초식이 없는  초식으로 초식이 있는 초식을 
이겼다고  했으며  그  당시 무적이라고  했다.  설마하니......설마하
니......)
그가 앞으로 나아가서 아무렇게나 한 대의 주먹이나 발길질을 한 번 내
지른다면 그 소녀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무학의 대가가 손을 
쓰는 데 있어서는 먼저 반드시 상대방의 초식을 보고 생각한 이후 움직
여야 했다.
그런데 그 소녀가 마구잡이로 치고 발길질 하는 것을 전혀 모르니 그야
말로 산속에서 갓 나온 호랑이가 노새를 보고 공포감을 느끼는 것과 마
찬가지였다.
그 소녀는 한참 동안 마구잡이로 치고 차고 하다가 손과 발이 시큰거리
고 맥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끝내 이곳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고 생각
하자 마음속으로 서글프기만 했다. 그녀는 별안간 몸을 흔들 하더니 땅
바닥에 주저앉았다.
징관은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옛날부터 이르기를  무공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땅바닥에 앉아서도 
사람을 해칠 수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그의 머리속은 그렇지 않아도 혼란해져 있었는데 당황하고 다급하게 되
자 뜨거운 피가 위로 솟구쳐서 마침내 정신을 잃고 천천히 땅바닥에 주
저앉고 말았다.
그 소녀는 놀람과 기쁨을 함께 느꼈다. 혹시나 그들 두 사람이 어떤 악
랄한 간계를 안배하고 있지 않는가하여  두려운 마음이 앞서서 감히 앞
으로 나와 늙고  젊은 두 승려를 죽이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선방에서 
달려나갔다.
반야당의 뭇승려들은 갑자기 한 소녀가 바깥으로 달려나가는 것을 보고 
놀람과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웃어른의 명령이 없는지라 그 누
구도 앞으로 나가 막지 못하였다.
위소보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저 눈만 멀뚱멀뚱 뜨고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 후에야 징관은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온 얼굴 가득히 부
끄러운 빛을 띠며 말했다.
"사숙, 나는...... 실로 본사의 열대조종(列代祖宗)을 대하기가 부끄럽
습니다."
위소보는 쓰디쓰게 웃었다.
"도대체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소?"
"그 여시주의  무공이 절묘하여 사질은 일초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견문이 좁았던 거죠.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는......그대는 그녀가 마구잡이로  싸움질하는 것을 보고 절묘한 
무공이라고  하는  것이오?  하하!  껄껄걸!  이거,  이거야  가소로워
서...... 우스워 죽을 지경이군!"
징관은 의아하여 말했다.
"사숙,  그것이...... 그것이  마구잡이로 하는  싸움질이라구요? 그러
면...... 절묘한 무공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것은  천하의  모든  어린애들이...... 모든  어린애들이......  모
두...... 알고 있는 것이외다...... 하하하하! 어이쿠...... 우스워 죽
겠군!"
징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속으로 여전히 반신반의했으나 얼굴은 웃음을 
띄웠다.
"정말 마구잡이로 싸우는 것이었소이까? 어째서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죠?"
"소림사에 물론 그와 같은 무공이 있을 턱이 없지 않소?"
징관은 고개를 쳐들고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군! 그  여시주의 그와 같은 권각법은  기이하고 특별했으나 기실 
지극히 깨뜨리기가 쉬웠죠. 그저 소림장권이라는 가장 조잡하고 천박한 
초식이라도 이길  수 있었소이다. 사질은......  천하에 그토록 엉터리 
같은 수법은 없으리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겉으로 볼 때 지극히 천박하
고 쉬운 초식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고심한 무학의 뜻이 담겨 있으리라
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와 같은  권각법이 정말 아무런 고심한 점이 없
습니까? 그것 참 희한하군요!"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10. 금강호체신공(金剛護體神功)

위소보는 웃었다.
"내가 보기엔 별로 이상할 것이  없소이다. 그녀는 새로운 초식을 펼치
지 못하게 되자 아무렇게나 손을 썼던 것이외다. 하하하아아!"
그는 참을 수 없어 다시 소리내어 웃었다.
위소보가 입은 상처는 매우  가벼웠다. 소림사의 금창약은 지극히 영묘
했다. 십여 일을 조섭하게 되자 몸이 거뜬해졌다. 그는 당금 황제의 대
신이라 절에서는 무척 떠받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그가 
행하는 일에 간섭하지 못했다.
그가 상처를 조섭하는 동안 징관은 두 소녀가 펼친 각종 초식을 일일이 
기록하고 그 깨뜨리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는 위소보의 상처가 낫기만 하면 일초 일식을 모두 전수해 줄 작정이
었다.
징관이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잡다하기는 했으나 대체로 염화금나수를 
위주로 하고 있었다. 염화금나수는 소림파의 고심한 무학이었고 순전히 
심후한 내력을 기틀로 했다. 그리고 손 씀씀이에 있어서 조금도 패도적
인 맛이 섞여 있지 않았다. 선종(禪宗)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
는 수법이기도 했다.
과거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영산(靈山)에서 모임을  갖게 되었을 때 손
에 금빛의 연꽃(波羅化)을 들고 뭇사람에게 뭇사람들은 그저 침묵을 지
켰으며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오로지 가섭존자(迦葉尊者)만이 활짝 미
소를 띠었다. 그리하여 석가모니 불조(佛祖)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
셨다.
"나에게 올바른 설법이 있으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열반묘심(涅
槃妙心)은 실상(實相)이고 무상(無相)이다.  미묘한 법문(法門)은 문자
를 사용하지  않고 달리 전수하여  가르치는바 마하가섭(摩하迦葉)만이 
깨달았느니라."

마하가섭은 불조의  십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두타제일(頭陀第
一)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었다. 선종에서는 그를  첫번째의 부처님으로 
모시고 있었다. 소림사는 선종에  속했으며 마음으로 깨닫는 것을 중시
했다. 볼조께서 꽃을 들고 가섭이  미소를 하되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
고 그 오묘한 점을 마음속으로만 깨달으니 그것이야말로 얼마나 초절하
고 오묘한 경지인가? 염화(염花)라는  두 글자를 금나수에 갖다붙여 이
름을 지었던 것이다.
물론 자세나 초식이 고아했으며 흔히 보는 금나수의 손을 낚아 채고 다
리를 움켜쥐려는 것과는 그 취지를 크게 달리했다.
위소보는 전혀 내력의 근기(根基)를 쌓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토록 얌전
하고 우아한 수법을 가지고 고수와 싸울 때 그저 상대방이 가볍게 휘두
르는 손에도 맞아 나가떨어져 몇  번이나 곤두박질을 쳐야 할 형편이었
고, 또한 나가떨어지면서 코에 시퍼런 멍이 들고 눈이 부어오르는 판국
인지라, 미소 운운하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이라  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 두 소녀 역시 전혀  내력이 없었으므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위소보는 과거  해대부로부터 무공을 배울 때  감독하는 사람이 있었고 
또 아울러 배우는 즉시 써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어쨌든간에 조금은 익
힐 수가 있었다. 그 후 진근남에게 무공 도보를 전수받았으나 몇 번 배
우지 않아 어려운 것이 많아서 배우지 않았다.
그리고 홍교주 부부가 그에게 가르쳐  준 목숨을 건지는 육초역시 그저 
얼렁뚱땅 배운것에 지나지 않았고 신룡도에서 떠나온 이후 다시는 연습
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무공을 익히게 된 경우는 상황이 전
혀 달라졌다. 
이번에 무공을 배우는 목적은 그  녹의여인을 잡아 마누라로 삼자는 것
이었다. 만약에 자기가 그녀의 지아비가 되지 못한다면 그저 칼산 위로 
올라가야 하고 기름 가마 솥으로 떨어져야 하며 죽어서는 십팔 층 지옥
으로 떨어질 참이니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애써 배웠
으며 일초 일식마다 징관과 직접 대련하면서 시험해 보았다.
그는 며칠 배우다 말고 다시  게으름을 피우게 되었다. 문득 쌍아가 생
각났다.
(그 나이 어린 여인의 무공이  약하지 않으니 충분히 두 계집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쌍아로  하여금 내 곁에서 나를 보호하도록 하면 
된다. 내 스스로 무공을 배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내 자신의 재간을 펼쳐서  녹의소녀를 붙잡아야만 그녀의 얼굴에 입맞
춤을 하더라도 맛이 좋을 것이다. 쌍아로 하여금 그녀의 혈도를 찌르게 
하고 내가 다시 그녀의 고운 얼굴에 입맞춤을 한다는 것은 사내답지 못
한 행동이니 녹의소녀는 더욱더 나를 업수이 여길 것이다. 더군다나 쌍
아에게 그와 같은 일을 시킨다면  그녀는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마음속
으로 매우 괴로워할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을 시켜선 
안 된다.)
그는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초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징관이 말했다.
"사숙,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이 무공을  배우고 있는데 사실은...... 
사실은 아무런 소용이 없소이다. 그대가  이와 같이 내 몸에 손을 대려
고 했을 때 내가 만약에  내력을 내쏟기만 한다면 그대의 손목은...... 
그대의 손목은 이렇게......이렇게......이렇게 될 것이니......"
위소보는 웃었다.
"나의 손목이 바로 그때처럼 우지끈 하는 소리를 내면서 부러지고 만다
는 것이오?"
"사숙께서는 마음을 편안히 가지십시오. 나는 결코 사숙에서 내공을 사
용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질은 역시 처음부터 소림장권을 배우면
서 순서대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익히는 초식이 어째서 올바른 길이 아니란 말이오?"
"이와 같은 초식에는 내공의 기틀이 없습니ㅣ다. 고수를 만나게 되었을 
때는 아무리  변화가 교묘하다고 하더라도 일패도지를  면할 수 없습니
다. 그저 그 두 분 여시주를 상대할 때나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 참 잘되었소. 나는 바로 그 여시주를 상대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
이외다."
징관은 그를 의혹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는 듯 말했다.
"만약에 금후 사숙께서 다시 그 두분의 여시주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이번에 기울인 심혈은 모조리 헛된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만약에 그  여시주를 만나지 못한다면 반드시  살아 남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니 올바른 무공을 연마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소?"
징관이 말하는 것은 두 분의 여시주였고 위소보가 말하는 것은 그 여시
주였다.
징관은 더욱더 의아하여 물었다.
"사숙은 혹시 그  여시주의 독에 중독되어 반드시  그녀를 찾아 해약을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목숨을 보존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남녀간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인데 이 노화상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
그는 정색하며 말했다.
"그렇소. 그렇소.  나는 그녀의 독에 중독되었소.  이 독은 오장육부와 
전신의 골수에 파고들어 그녀 자신이 아니면 풀수가 없소이다."
징관은 어이쿠 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본사의 징조 사제는 독을 푸는데 뛰어 나답니다. 내가 그를 모셔와 사
숙을 살려 보도록 하죠."
위소보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필요없소. 필요없소. 내가 중독된 것은 만성의 독약이오. 오로지 그녀 
본인만이 해독할 수 있을 뿐이지  다른 사람은 쓸모가 없소. 징조 노화
상은 더욱 쓸모가 없소이다."
징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녀 본인만이 해약을 가지고 있군요."
위소보는 그녀 자신이 바로 해약니라는  뜻으로 말했고 징관은 이를 잘
못 이해하여 오로지 그녀 본인에게만  해약이 있는 줄로 알았다. 한 마
디의 차이지만 그  뜻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노화상은 속으로 걱정이 
되어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 사숙께서는 그 여시주의 독문기독에 중독되었군! 다행히 만성독약
이라......"
위소보는 매일같이 징관과 초식으로 대련을 했다. 종종 그는 허연 수염
의 노승을 녹색 의상을 걸친 소녀로 생각하고 경박한 말을 하면서 초식
을 펼치기도 했다. 
다행히 징관은 그와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그저 소사숙은 불법(佛
法)을 오묘하게 터득하고 선기(禪機)를 깊이 깨우쳤으나 자기는 우둔하
여 그 정묘한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선방에서  두 소녀의 도법(刀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자 반야당의 한 집사승이 문밖에 와서 고했다.
"방장대사께서 사숙조와  사백을 청하십니다. 대전으로  가시어 말씀을 
나누시자고 하십니다."
두 사람은 대웅보전으로 달려갔다.  대웅보전에는 이미 수십 명의 외부
에서 온 손님들이  앉았거나 서 있었다. 방장은  아래쪽에 앉아 있었고 
윗자리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첫 번째 사람은 몸에 몽고 옷차림
을 한 귀인이었는데 이십여 세  남짓해 보였다. 두 번째 사람은 중년의 
라마인데 몸이 비쩍 마른 편이었고  키가 작았으며 살결이 거무 튀튀했
다. 세  번째 사람은 군관이었다. 몸에는  총병(總兵)의 복장을 걸치고 
있었는데 나이는 약 사십여 세 정도 되어 보였다.
세 사람의 등뒤에는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어떤 사람
은 무관이었고 어떤 사람은  라마승이었다. 그리고 십여 명은 평민복을 
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건장하고 날렵하게 생긴 것이 몸에 무공을 지니
고 있는 것 같았다.
회총방장은 위소보가  대전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사제, 귀한 손님이 본사에  찾아왔구려. 이 분은 몽고 갈이단(葛爾丹)
왕자 전하시고 이분은  서장의 대라마이신 창제대법사(昌薺大法師)이시
며 이 분은 운남 평서왕 휘하의 총병인 마보(馬寶)마대인이시오."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려 세 사람에게 말했다.
"이 분은 노납의 사제인 회명선사이외다."
뭇사람들은 위소보가 나이가 어리고  히히덕거리는 것이 경박하기 짝이 
없는 소년인데 놀랍게도 소림사에서는 방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사
라고 하자, 모두들 똑같이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갈이단 왕자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 분 고승은 정말 재미있구려. 하하하, 야릇하군, 야릇해."
위소보는 말했다.
"아미타불, 이 분 대왕자께서는  정말 우스꽝스럽구나. 헤헤헤, 희한하
외다. 희한해!"
갈이단은 노해 물었다.
"내가 어째서 우스꽝스럽고 희한하다는 말이오?"
"소승에게 재미있고  야릇한 것이 있다면  귀하에겐 바로 우스꽝스럽고 
희한한 점이 있소이다. 그야말로  난형난제라고 할 수 있으며 피차일반
이니 어서 앉기나 하시오."
그는 회총방장의 아래쪽에  앉았다. 그리고 징관은 그의  등뒤에 가 섰
다.
뭇사람은 위소보의 말을 듣고 그 심기를 헤아리기가 어렵다고 생각했으
며 속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여겼다.
회총방장이 입을 열었다.
"세 분의 귀인이 누추한 폐사에 왕림하신 것은 어떤 가르침이 있어서이
지요?"
창제라마가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은  길을 오면서 우연히 만나게 된  사이요. 그리고 말을 
나누다 보니  모두 다 소림사가 중원에서  무학의 태산북두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고 매우 앙모하게  되었소이다. 우리 세사람은 외딴 벽지
에 살고 있어 견문이 좁소이다. 그래서 함께 귀사를 구경할 겸, 고승의 
높으신 풍도도 엿볼 겸 해서 오게 되었소이다."
그는 서장의 라마라고는 하나 매우  훌륭한 북경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
었는데, 음성은 똑똑하고 맑았으며 말솜씨 역시 점잖고 의젓했다.
회총은 말했다.
"감당할 수 없소이다. 몽고와 서장,  그리고 운남 세 곳은 평소부터 불
법이 성한 곳이 아니오이까? 세  분이 오래 전부터 불법의 감화를 받았
으니 그야말로 지혜가 명철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소. 아무쪼
록 많은 가르침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창제라마가 말하는 것은 무학이었는데  회총방장이 말하는 것은 불법이
었다. 소림사는 무공으로 천하에  알려져 있으나 절안의 고승들은 모두 
다 부지런히 불법을 닦느 것을 올바른 길로 생각했고 무학은 그저 불법
을 지키고 보존하는 졸렬한 방법이라고 여겨왔다.
갈이단은 말했다.
"소문에 들으니 소림사에 대대로 전해져  오는 무공은 모두 칠십 이 가
지라 하며 천하에 위세를 떨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수가 없다고 하더
군요. 귀사의 여러 고승들께서 일일이 시범을 보여 소왕(小王) 등의 시
야를 넓혀 주는 것이 어떻소이까?"
회총은 말했다.
"전하께 말씀드립니다. 강호의 소문이란  원래 믿을 것이 못됩니다. 폐
사의 승려들은 부지런히 참선의 길을  닦고 닦아 올바른 깨우침을 구하
려고 하는 중입니다. 한가할 때  무공을 익히기는 하나 그저 몸을 건강
히 하자는 것일 뿐입니다. 보잘것없는 잔재주는 입에 담을 것도 못되지
요."
갈이단이 말했다.
"방장, 그대는 너무나 광명정대하지  못하군요. 그대가 칠십 이 가지의 
절기를 펼쳐 보이는 것을 우리는  그저 구경하자는 것이지 훔쳐 배우자
는 것이 아닌데 그토록 속이 좁은 말씀을 하셔야 합니까?"
소림사의 명성은  너무나 높다 보니 찾아와서  무공을 가르침 받겠다는 
사람들은 천여 년  동안 그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물론 성심성의
로, 또 어떤 사람들은 악의로 도전해 오곤 했다.
절 안의 승려들은 물론 언제나  좋은 말로 사양했다. 설사 찾아온 사람
이 매우 건방지고 오만하다고 하더라도 절의 승려들은 반드시 예의로써 
대했으며 상대방과 똑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찾아오는 사람이  무공을 써서 사람을 해칠  때라야 소림사의 승려들은 
부득이 손을 써서  반격했다. 갈이단 왕자 같은  그런 말을 회총방장은 
이미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세 분이 만약 선리(禪理)를  밝혀 설명하고 불법을 강의한다면 노승은 
마땅히 뭇승려들을 소집하여 삼가 가르침을 듣도록 하겠소이다. 무공이
니 뭐니 하는 것은 외부에서 찾아온 시주들 앞에서 펼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갈이단은 두 눈썹을 꿈틀 하고 세우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소림사는  헛된 명성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겠소? 실지로 
절의 승려들의 무공은 개방귀보다도 못하며  한 푼의 가치도 없다는 것
이 아니겠소?"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이 본래  허망한 것이고 근본적으로 
개방귀보다 못하며 한 푼의  가치조차 없는 것이지요. 오은개공(五은皆
空)이라고 색신(色身)이 이미 헛된  것이니 명성은 더욱더 몸밖의 물건
이 아니겠소이까. 전하께서는 폐사에서  헛된 명성만 부질없이 얻고 있
다고 했는데 그 말도 옳습니다."
갈이단은 노화상이 화를 내지 않자  생각지 못한 터라 오히려 어리둥절
해졌다. 그는 몸을 일으키고 껄걸 웃더니 위소보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
다.
"소화상, 그대 역시 개방귀보다 못하고  한 푼의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
오?"
위소보는 헤헤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대왕자께서는 물론 소화상보다 뛰어나십니다. 소화상은 확실히 개방귀
보다 못하며 한 푼의  가치조차 없습니다. 대왕자께서는 그야말로 개방
귀같고 한 푼의 가치가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한수 뛰어나다고 하겠습니
다."
서 있던 뭇사람들  가운데 대뜸 몇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갈이단은 
대노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무공을 쓰려고 하다가 다
시 생각했다.
(이 소화상은  소림사에서 배분이 무척 높다.  아무래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전하께서는 화를  낼 필요가 없소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냄새는 
개방귀가 아니며 사람의 말이 가장 구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을 하면  구린내가 충천하게  되죠. 그야말로......그야말
로......흐흐흐, 예를 들어 설명할 필요까진 없겠지요?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은 가장 천박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천박한 것은 바로 남에게 
몇 천만 몇 백만이나 되는 은자를 빚지고도 딱 잡아떼고 되돌려주지 않
는 녀석들이죠. 전하께서 빚진 것이 있고 없는 것은 스스로 마음속으로 
알고 계실 겁니다."
갈이단은 입을 쩍 벌리고 일시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를 몰랐다.
회총방장이 말했다.
"사제의 말씀은  선기가 매우 깊구려.  탄복했소이다. 매우 탄복했소이
다. 세상일은 인과응보라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기 마련이죠. 
악한 일을 하면 반드시 악한  보답이 있기 마련이라오. 한 푼의 가치조
차 없다는 것은 역시 착한 데도 없고 악한데도 없다는 것으로서 남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지요."
선종의 고수들은 시시각각 선리를 탐구하고 있었다. 위소보의 이 몇 마
디 말은 본래 그저 갈이단을 비웃는 흔히 있는 말에 불과했으나 회총방
장이 들을 때는 그 가운데 깊이 숨겨진 뜻이 있는 것만 같았다.
징관도 방장이 그와 같이 설명하자 대뜸 기분이 좋아져서 찬탄을 했다.
"회명 사숙은 나이가 젊으면서도 덕이  있지요. 그리고 선리를 깊이 깨
달았습니다. 노납은 이 어르신으로부터 몇 달 동안 배운 결과 근래에는 
참선을 할 때마다 머리가 훨씬 더 맑아지는 것을 느끼곤 했죠."
한 소화상이 아무렇게나 지껄인 말에  대해서 두 노화상이 잇달아 칭찬
의 말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갈이단에게 은근히 시비를 거는 것과 같았
다.
갈이단은 온 얼굴이 시뻘개졌다.  갑자기 몸을 벼락같이 날리더니 위소
보를 향해 덮쳐갔다. 손님과 주인 쌍방은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으며 
간격은 이장 남짓했다. 그러나 그의  솜씨가 민첩해서 한 번 몸을 날리
자 위소보 앞에 이르렀다. 그는  두 손을 갈구리처럼 만들어 한쪽 손으
로는 안면을 할퀴려 했고 한쪽 손으로는 앞가슴을 움켜쥐려고 했다.
그러나 손가락이 미처 닿기도 전에 한 줄기의 세찬 바람이 위소보의 전
신을 뒤덮었다. 위소보는 항거하려고  했지만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어 
그저 고스란히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회총방장이 오른손의 소맷자락을  가볍게 떨치며 번개처럼 갈이
단의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갈이단은 한 줄기 맹렬한 기운이 그의 옷자락에 부딪치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가슴  속의 기혈이 끓어 올랐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급히 세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힘주어  자세를 가다듬으려고 했으나 여전히 제
대로 서지를 못하고 다시 세 걸음을 물러서야 했다.
이때 부딪쳐오던 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더니 삽시간에 그 자
신의 힘 역시  종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는 두 무릎에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털썩 주저앉게 되었다.
(야단났다! 이번에야말로 크게 못난 꼴을 보이게 되었구나!)
그런 생각이 막 들었을 때  엉덩이가 딱딱한 판대기에 가 부딪쳤다. 놀
랍게도 자기는 원래의 의자에 돌아와 앉아 있었다.
회총방장이 소맷자락을 들어 한 번  떨친 힘은 부드럽고 가벼웠으며 온
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힘이 만약  조금만 지나쳤더라면 갈이단은 
반드시 앉는 그 기세로 나무 의자를 조각 내면서 뒤로 나가떨어지게 되
었을 것이다.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 무공이 고심한 사람은 그가 가볍게 한 번 떨치는 
가운데 무학의 절대적인 경지를 드러내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어 갈채
를 보냈다.
갈이단은 온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갈채를 보내는 소리까지 듣자 더욱더 울화가 치밀어 올랐
다.
위소보는 가까스로  놀란 가슴을 진정하려고 했으나  좀처럼 되지 않았
다. 회총이 고개를 돌리고 그에게 말했다.
 "사제, 그대의 정력(定力)은 고강하기  이를 데 없군. 바깥쪽으로부터 
거센 기운이 비스듬히 몰려오는 데도  못본 척 아랑곳하지 않으니 말이
네. 대보적경(大寶積經)에서 가로되 '사람이 가시밭 속에 있을 때 움직
이지 않으면 가시에 찔리지 않고  상처를 입지 않는다. 그러나 곧 헛되
이 마음을 움직이게  되면 즉시 많은 가시에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사제는 나이가 어린데도 선정(禪定)의 수위가 이미 무심한 경지에 도달
했고 시시각각 움직이지 않는 지고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그야말로 뿌리
가 심후하고 크게 슬기롭고 크게 지혜롭다고 할 수 있네."
그는 위소보가 피하거나 뒤로 물러날  기미도 드러내지 못한 것은 갈이
단의 달려드는  기세가 너무나 빨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
다.
그런데 회총방장은 위소보가 그 자신의 생사안위를 돌보지 않는 것이라 
보고 탄복한 것이었다.
징관은 칭찬의 말을 던졌다.
"금강경에서 가로되  '무아상(無我相)이면 무인상(無人相)이며, 중생상
(衆生相)이 없으면 수자상(壽者相)도  없다'고 했는데 회명사숙이 벌써 
이런 경계에 이르도록  닦았으니 훗날 반드시 아욕다라삼막삼보리(阿褥
多羅三 三菩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갈이단은 본래 끓어오르는 노기를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화상
이 또 다시 나이 어린 화상을  크게 칭찬하는 것을 보자 즉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합리사파아(哈里斯巴兒), 니마공(尼馬공), 가노비정아(加奴比丁兒)!"
그러자 그의 등 뒤의 무사가 갑자기 손을 번쩍 쳐들었다. 누런 빛이 잇
달아 번쩍이는 가운데 아홉 개의  금표(金 )가 나누어 회총과 징관, 그
리고 위소보 세 사람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었다.
쌍방의 간격은 가까웠다.
회총과 징관은 동시에 부르짖었다.
"어이쿠!"
회총은 여전히 파납공(破衲功)을 썼다.  소맷자락을 떨쳐 어느덧 세 개
의 금표를 휘감아 버렸다. 그리고  징관은 두 손을 합장하듯 하고는 경
례삼보(敬禮三寶)라는 일초를 펼쳐서는 세  개의 금표를 모조리 손바닥 
안에 받아들었다.
위소보에게 쏘아진 세 개의 금표는 팍 하는 소리와 함깨 그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그런데 챙그랑 하는 소리가 몇번 일어나면서 세 개의 금표가 
땅바닥에 떨어쳤다.
위소보는 몸에 몸을 지키는 보의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금표는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대전의 뭇사람들은  즉시 웅성거렸다. 소화상의 나이가 어
린데 이미 소림파 내공의 최고 경지라고 할 수 있는 금강호체신공(金剛
護體神功)을 연성한 것을 보고 실로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
(저 소화상이 소림파 회자 항렬에 낄 수 있고, 소림사의 주지이며 명성
을 떨친 지 이미 수십 년이나 되는 회총방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
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구나.)
회총과 징관이 금표를 받아든 수단  역시 고명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
공이 화경에 도달한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다
만 위소보가 드러낸 재간이 너무나  신묘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그
들 두 노승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뭇사람들이 똑같이 놀라고 탄복하자 창제라마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고승이 금강호체신공을 그 경지까지 연마하기란 정말 수월한 노릇이 
아니었겠군. 하지만 신공에 있어서 아직도 모자라는 점이 있는 것 같구
려. 날아드는 암기를 튕겨 보낼 수 없어 승포자락에 세 개의 조그만 구
멍을 냈으니 말이외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금강호체신공을 절정에 이르
도록 연성하면 몸주위가 한층의 무형강기(無形 氣)로 뒤덮이게 되어 적
이 공격해 오는  무기나 암기가 미처 몸에 닿기도  전에 퉁겨 나간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무림에서 전해지는 전설에 불과할 뿐이며 진짜 그
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연성을 했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창제라마가 그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억지로 상대방의 신가(身價)를 
낮추자는 데 있었다.
위소보는 세 개의 금표를 맞게  되어 가슴팍이 여간 아프지 않았다. 더
군다나 그 가운데 한 개는 바로 상처 부근에 적중되었으므로 뼈를 에이
는 듯한 아픔이 전해졌고 단숨에 숨을  돌리지 못해 말을 할 수도 없었
다. 그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뭇사람들은 그의  수양이 지극히 높아서 창제처럼  이치에 닿지도 않는 
말을 하는 사람과는 쓸데없이 언쟁을  벌이려 하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
각했다. 몇 명은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은 그의  신공이 아직 제대로 연성되지  않았다고 했소? 그렇다면 
내가 당신에게 세 개의 금표를  던져 볼까? 옷자락에 조그만 구멍이 나
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걸.)
갈이단은 위소보가 그토록 무서운 것을 보고는 가슴 가득히 끓어오르던 
노기가 대뜸 사그러지고 말았다.
(소림파의 무공은 정말 대단하구나.)
창제는 다시 말했다.
"소림사의 무공은  우리가 이미 구경을 했소이다.  그야말로 결코 헛된 
명성을 얻은 것도 아니고 개방귀보다 못한 것도 아니었소. 하지만 소문
에 들으니 귀사에 여자를 숨겼다고 하더구려. 이것은 규칙과 계율에 있
어 잘못된 것이 아니겠소?"
회총은 안색을 굳히고 말했다.
"대라마의 그 말씀은 틀렸소이다.  폐사에서는 평소 여시주가 절안으로 
들어와 예불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소. 부녀자를 숨기고 있다니 
무슨 말씀이오?"
창제는 웃었다.
"그러나 강호에서는 떠들썩하게 소문이 났소이다."
회총방장은 웃었다.
"강호에서 떠도는 소문을 상관할 필요가  어디 있겠소? 끝내 회명 사제
처럼 외부로부터 날아들어오는 기운에도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오묘한 이치를 터득한 것이 아니겠소?"
창제라마가 말했다.
"소문에 듣건데 저 소고승은  선방에 한분의 절세미녀를 숨겨두고 있다
더구려. 더군다나 그는 그녀를  강제로 잡아왔다고 하더구려. 설마하니 
회명선사는 그 미인에게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단 말인가요?"
위소보는 이때서야 숨을 어느 정도 돌리게 되었다.
(이들이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는 곧 알아차렸다.
(그렇다. 그  남의를 입은 소녀가 도망쳤으니  자연히 그녀들의 사부나 
어른에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그녀가 데리고 온 구
원병인가 보다. 그리하여 오늘 내  마누라를 구하러 왔구나. 내 마누라
는 도망을 쳤지만 아직 그들과 만나지 못한 모양이군.)
그는 즉시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방안에 여자가 있고 없는 것은 가보면 알 것이오. 여러분들에게 관
심이 있다면 가서 살펴봐도 좋소이다."
갈이단은 큰소리로 말했다.
"좋소. 우리는 가서 모든 것을 밝혀내겠소."
그리고 나서 몸을 일으키더니 왼손을 휘두르며 호통을 내질렀다.
"절을 수색하라!"
그의 수하들이 대전 뒤쪽으로 걸어가려고 할 때 회총이 말했다.
"전하가 본사를 수색하는 것은 누구의 명령을 받은 것이오."
"나 본인이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어찌 남의 명령을 받을 
필요가 있단 말이오?"
"그 말은 틀렸소이다. 전하는 몽고 왕자이오. 몽고에 있다면 물론 어떤 
일이라도 함부로 명령을 내릴 수 있을 것이외다. 그러나 소림사는 몽고 
경내에 있지 않으니 전하의 통치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외다."
갈이단은 마총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조정의 벼슬아치니  그가 영을 내려 수색한다면 되겠구
려?"
그는 소림사 승려들의 무공이 고강하고  사람의 수도 많은지라 만약 싸
우게 된다면  자기쪽은 중과부적이라 적수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말했다.
"그대들이 조정의 명령을 어기게  된다면 그것은 반란을 일으키는 것과 
다름이 없소."
회총은 말했다.
"조정의 명령을 어기는 짓을 소림사는 감히  할 수 없소. 하지만 이 분
은 운남 평서왕 휘하의 무관이외다. 평서왕의 권력이 아무리 크다 하더
라도 하남성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간섭할 수는 없소이다."
회총은 본래 사람됨이 똑똑했다.
창제라마는 웃었다.
"이 분 소고승도 응낙하셨소이다.  방장대사께서 구실을 내세워 저지하
고 막으려 드는 것이오? 설마  하니 그 미녀는 회명선사의 방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바로......바로......방장대사의 선방에  있는 것이 
아니오?"
"아미타불, 죄과로다.  죄과로다. 대사는 어째서 그와  같은 말을 하시
오?"
갈이단의 등 뒤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간드러진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전하, 저의 사매는 분명히  저 소화상에게 잡혀갔어요. 빨리 그들에게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가만 있지 않고 
단번에 불을 질러 소림사를 태우고 말겠어요."
여자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은 남자였다. 그런데 얼굴이 싯
누렇고 뺨에는 구레나룻의 수염이 잔뜩 자라 있었다.
위소보는 그 말을  듣자 즉시 이 사람이 바로  남색옷의 여자가 분장한 
것임을 알아챘다. 얼굴에 노란 초칠을  하고 가짜 수염을 붙여 놓은 것
이다. 그는 속으로 크게 기뻤다.
(이 며칠 간 나는 그렇잖아도 근심을 하고 있었다. 마누라의 문파도 모
르고 성명도 모르는데다가 그녀가 지아비를 등지고 사사로이 도망을 쳤
으니 어디로 가서 찾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그녀들이 몽고 왕
자와 한패거리였군. 매우 좋다. 매우 좋아. 그렇게 된다면 내 손아귀에
서 빠져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회총 역시 알아본 듯 말했다.
"원래 이 분은 바로 그날 폐사에  와서 사람을 해치던 그 소저구려. 다
른 한 분의 소저는 확실히  폐사에서 상처를 치료받은 적이 있소. 그러
나 소저를 따라 함께 가지 않았소?"
그 소녀는 노해 부르짖었다.
"그 후 우리 사매는 다시 저 소화상에게 잡혀서 절 안으로 들어갔단 말
이에요. 저 노화상이 공범이에요. 그가 저의 사매를 쓰러지게 만들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손으로 징관을 가리켰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어이쿠, 야단났구나.  징관 노화상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이 일이 
들통나게 되었구나. 어떻하면 좋지?)
그 소녀는 손으로 징관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말했다.
"노화상, 말해봐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징관은 합장했다.
"영사매, 여시주가 어디로 갔는지  말씀을 해주기 바라오. 우리 사숙께
서는 그녀가 펼친 극독에  중독되었소이다. 오로지 그녀 본인만이 해약
을 지니고  있소. 여시주는 대자대비하시니  아무쪼록 빨리 영사매에게 
부탁하여 해약을  내려 주도록 하시구려.  비록 회명사숙께서는 지혜가 
깊어 생사를 마음에 두지 않고 이  일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고 있소
이다. 소위 생사가 즉 열반이고  열반이 즉 생사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외다. 하지만......아......"
그는 이러쿵 저러쿵 한바탕 늘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말뜻을 완저
ㅓ히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역시 그 소녀가 절안에 없으며 위소보
가 그녀가 쓴 독에 중독되어서 그렇지 않아도 그녀를 찾아 해약을 얻고
자 하며 해약을  얻지 못할 때는 목숨을 건질수  없다는 뜻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뭇사람들은 그의 모습이 매우 소박하고 또 간곡하게 말하는
지라 모두가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었다.
(설사 절안에 정말 부녀자를 숨기고 있고 주지가 사람들에게 수사를 허
락한다 하더라도 소림사는  집이 백여 채나 되고 방이  천여 칸이나 된
다. 일시삼각에 어디 가서 찾아낸단 말이냐?)
이때 그 소녀는 뾰족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사매는 분명히 그대들에게  잡혀서 잘안으로 들어갔어요. 아마도 
이미 그들에게 해침을 당해 죽은 모양이군요. 그대들과 같은 악한 화상
이 천리를 어기고 시체를 없애 흔적을 지웠으니 자연 알아낼 수가 없겠
죠?"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울화도 치밀고 다급해진 나머지 목소리는 흐느끼
는 듯했다.
갈이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무척 옳소. 이...... 소화상은 좋은 사람이 아니외다."
그 소녀는 위소보를 손가락질 하며 욕을 했다.
"이 나쁜 사람, 그날...... 그날 기녀원에서 많은 나쁜 여인과 섞여 지
내면서 나의 사매가 잘생긴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좋지 못한 생각을 품
게 되었지? 그러나 우리 사매가 응하려고 하지 않았을 테지...... 그대
를 따르려고 하지 않자, 그대는 그녀를 죽여 없앤 것이겠지. 그대는 기
녀원까지 출입을 하는데 무슨 나쁜 짓을 못하겠어?"
회총은 그 말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속으로 어찌 그런 일이 있을까 생
각했다. 징관은  더욱더 기녀원이 어떤 곳인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소림사의 계율원, 달마원, 보리원과 같은 곳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소사숙께서는 용맹스럽게 전진하여  부지런히 선법(善法)을 행하고 있
구나. 이것이야말로  육바라밀(六바羅密)가운데의 정진바라밀(精進바羅
密)이다. 기녀원에서 도를 닦는 경지에까지 도달했군!)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11. 황제의 밀지

위소보는 크게 초조해졌다. 혹시나  그녀가 자기가 터무니없이 행한 것
을 모조리 들추어낼까 봐서였다.
그때 홀연 마총병의 등 뒤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는 포권을 하
며 입을 열었다.
"소저, 소인은 저 소선사께서 계율을  엄히 지키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코 기녀원에 출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아무래도 소문
이 잘못된 것 같소이다."
위소보는 그 사람을 바라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 사람은 바로 북경에서 
만난 적이 있는 양익지였다.  양익지는 그날 오응웅을 호위해서 북경으
로 왔었지 않는가. 아마도  오응웅은 이미 운남으로 되돌아간 모양이었
다. 이번에는 마총병을 따라 하남성으로 온 모양이었다.
그 소녀는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가 그를 안단 말이에요?"
양익지는 매우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소인은 저 소선사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자도 저분을 알고 
계시죠. 저 분 소선사는 우리의 왕부에 지극히 커다란 은혜를 베푸셨습
니다. 저 분은 출가하기 전에  본래 황궁의 공공으로 계셨습니다. 그렇
게 때문에 기녀원으로 간다느니 또는 영사매를 강제로 포박했다느니 하
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소저께서는 밝혀 살피십시오."
뭇사람들은 모두 그 말을 듣자  아! 하는 소리를 냈고 하나같이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그가 본래 태감이었다면 자연히 기녀들과 놀러 가지 않았을 것이
고 더욱더 남의 여자를 가로채 절안에 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소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모두들 자기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
을 알고 더욱더 화가 나서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는 어떻게  그가 태감인 줄  아나요? 그가 태감인데  어찌해서 우
리...... 우리  사매를 맞아들여...... 마누라로  삼겠다고 했죠? 결코 
소화상이 실성한 것 같은 말을 한게 아녜요. 저 노화상까지도 번지르르
한 말을 마구 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손으로 징관을 가리켰다.
뭇사람들은 징관을 쳐다보았다. 징관은  나이가 팔순이 넘었다. 그리고 
멍청한 모양을 하고 있지 않는가. 조금 전에도 그는 말을 더듬거렸으며 
그가 하고자 하는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천하에서 그보다 언
변이 능하지 못한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려울 것 같지 않던가? 이렇게 
되자 그 소녀의 말을 더욱더 믿지 않게 되었다.
모두들 오늘 경솔하게 그녀의 희한하기  짝이 없는 말만 듣고 소림사에 
와서 못난 꼴을 보이게 된 데 대해 크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양익지는 말했다.
"소저, 그대는 저 소선사가 출가하기  전에 크게 유명했다는 것을 모르
고 계시는구려. 저 분으로 말하면  바로 대간신 오배를 손으로 잡아 죽
인 계공공이외다. 우리 왕야께서  간악한 자들의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억울한 누명을 쓸 뻔한 것을 이 소선사께서 황상앞에서 애써 변명해 주
었기 때문에 아무 탈이 없었소이다.  그 커다란 덕을 아직도 갚지 못하
고 있소이다."
못사람들은 오배를 죽인 소계자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가 강희가 총애하는 소태감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불현 듯 아, 
하는 소리를 냈고 얼굴에 놀람과 감탄하는 빛을 드러냈다.
위소보는 웃었다.
"양형, 오랫 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대들의 세자께서는 안녕하시오? 옛
날의 조그만 일을 들먹여서 무엇하오?"
양익지가 말했다.
"선사께서는 자비를 품고 계시고 남을  위해 착한 일을 하시니 자연 그 
일을 조그만 일이라고 말씀하시겠지만  우리의 왕야께서는 정말 감격해 
하고 계십니다.  비록 황상께서 어지시고  밝으시어 시비흑백을 끝내는 
가릴 수 있었겠지만 만약 선사께서 일찍이 대신 진상을 밝혀 주시지 않
았더라면......"
"원 별말씀을 다 하시오. 그대들의 왕야께서는 너무나 겸손하시군요."
말을 하면서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야말로 그대들의 왕야라는 매국노를 쓰러뜨리지 못해 한탄하고 
있다. 황상께서  밝으시어 그 스스로 진상을  알아낸 것이었다. 어쨌든 
그 날 좋은 인연을 맺게 되더니  오늘 놀랍게도 이 사람은 곤란한 처지
에서 나를 구해 주는구나.)
갈이단은 그의 아래 위를 한 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원래 그가 바로 오배를 찔러  죽인 소태감이구려. 나는 몽고에 있었지
만 그대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소이다. 오배는 만주의 제일용사라고 일
컬어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대의 무공은 소림사에서 배운 것이 아니겠
구려?"
위소보는 웃었다.
"나의 이 무공이야 형편없는 것으로서 한 번 웃을 가치조차 없다오. 나
에게 무공을 가르친 사람은 적지  않소. 이 분 양형만 하더라도 나에게 
한 수의 횡소천군과 한 수의 고산유수를 가르쳐 주었죠."
그는 몸을 일으켜서는  그 이초를 아무렇게나 펼쳐  보였다. 그는 반푼 
어치의 내공도  쓰지 않았으므로 다른 사람들은  그의 솜씨가 뛰어난지 
어떤지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초식만은 확실히 목가권이었
다.
양익지는 말했다.
"선사께서 이 이초를 황상에게 펼쳐 보이심으로 해서 우리 왕야가 원수
에 의해 모함을 받게 되었다는 진상이 밝혀질 수 있었죠."
그 소녀의 안색은 조금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양형, 이 소...... 이 사람이 정말 본래는 태감이었나요? 정말 평서왕
에게 은혜를 베풀었나요?"
"그렇소이다. 이 일은 북경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답니다."
그 소녀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위소보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가 우리 자매에게......그렇게......그렇게......장난을 
한 것은 혹시 다른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장난을 치지는 않았지만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의도는 그대 사매를 마누라로 맞아들이는 것이지. 하지만 이곳에
는 사람이 많으니 말을 할 수가 없구려.)
그 소녀는 물었다.
"어떤 의도였죠?"
위소보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뭇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나름대로 의도를 가지고 있으니 물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싶지가 않겠지.)
창제는 몸을 일으키더니 합장을 하며 말했다.
"방장대사, 회명선사, 우리들이 경솔했구려. 실례한 점 용서해 주시오. 
이만 작별을 고하겠소이다."
회총은 합장하고 반례하며 말했다.
"귀한 손님들이 멀리서 오셨으니  젯밥이라도 가지고 가시구려. 하지만 
이 여시주는......"
그는 여시주가 남자로 변장해서 절안으로  잠입해 왔으니 그 일을 따지
지 않는 것만  해도 너그러운 편인데 다시 젯밥을  먹인다는 것은 절의 
규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창제라마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고맙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그러나 방장 사형께서 난처하시지 
않도록 그 젯밥을 모두 먹지 않겠소이다."
뭇사람들은 즉시 작별을 하고 절을 나섰다.
방장과 위소보 그리고 징관들은 산문 입구까지 따라가 전송해주었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십여필의 말
이 급히 달려왔다. 말 위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어전시위의 복
색을 하고 있었다. 모두 열 여섯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절앞에 
이르기 전에 일제히 말에서 내리더니 대오를 지어 가까이 다가왔다.
앞장을 선 두 사람은 바로 장강년과 조제현이었다.
"도......도......대인, 어르신께서는 안녕하십니까?"
그는 본래 도통대인이라 부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승포를 입고 있는 
것을 그 한마디 칭호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얼버무렸다.
열 여섯 명은 일제히 위소보에게 절을 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했다.
"여러분은 어서 몸을 펴시오. 더  예의를 차릴 것 없소이다. 나는 그야
말로 매일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갈이단 등은 열 여섯 명이 모두 품급이 낮지 않은 어전시위들인데도 위
소보에게 그토록 공손히 대하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생각했다.
(이 소화상은 정말 어느정도 어떤 내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청나라 제도에서 총병은 정이품관이었고 일등시위는 정삼품이었으며 이
등시위는 정사품이었다.  장강년 등은 계급에  있어서는 총병보다 낮은 
셈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황제의  시위라 외지의 무관들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저 마총병에게 고개를  약간 끄덕여 보임으로써 인사를 대신
했고, 위소보에게만 크게 친밀한 태도를 보였다.
갈이단은 어전시위들이 위소보만을 크게 추켜올리고 받들 뿐 다른 사람
은 아랑곳하지 않는지라, 속으로 울화가 치밀어 싸늘히 코웃음을 쳤다.
"흥! 갑시다. 나는 이런 꼴을 차마 못 보겠구려."
일행은 회총방장에게 공수의 예를 하고 산을 내려갔다.

위소보는 뭇시위들을 절로 모셨다.  장강년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가면서 나직이 말했다.
"황상께서는 밀지를 내리셨습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웅보전에 이르게 되었다. 장강년은 성지를 꺼내 읽었다. 몇마디는 벼
슬아치들이 쓰던 형식적인 문장이었다. 그 내용은 황제가 오천 냥의 은
자를 소림사에 내리니 절간을 고쳐  세우고 불상에 금칠을 하라는 내용
이었다. 그리고 위소보를 보국봉성선사(輔國奉聖禪師)에 책봉한다는 내
용도 있었다. 위소보는 큰 절을 올려 고마움을 표시했다.
장강년은 말했다.
"황상께서는 보국봉성선사께서 즉시  출발하여 오대산으로 가시라는 분
부를 내리셨소이다."
이 일은 이미  위소보가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그는 허리를 구부리고 
대답했다. 
"삼가 성지를 받들겠습니다."
차를 마신 후 위소보는 장강년과 조제현 두 사람을 자기 선방으로 데리
고 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강년은 품속에서 한 장의 밀지를 꺼내 두 손으로 바쳤다.
"황상께서 달리 전할 뜻이 있다고 하셨소이다."
위소보는 꿇어앉아서 절을 하고 두 손으로 받들었다. 그 밀지는 화칠인
(火漆印)으로 밀봉되어 있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황상께서 또 어떤 분부를 내리시려고 하시는지 모르겠구나. 성지에 씌
어진 글은 나를 알아보아도 나는 글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것이 밀지라
면 장강년과 조제현  두 사람이 알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역시 방장 
사형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겠다. 그는 결코 기밀을 누설하지는 않을 것
이다.)
이윽고 그는 밀지를 들고 회총의 선방으로 가서 말했다
"방장 사형,  황상께서는 한 장의 밀지를  저에게 내리셨는데 사형께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그 밀지의 봉투를 뜯었다.  안에는 한 장의 커다란 화선지가 접혀 
있었고 펼쳐 보니 대폭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제일 첫 번째의 그림은 다섯 개의 산봉우리였다. 위소보는 그것이 바로 
오대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남태정(南台頂)북쪽에 한 채
의 절간이 그려져 있었는데 청량사라는 세 글자가 표기되어 있었다. 그
는 청량사에서 며칠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 석 자를 눈에 익히고 있
었다.
다른 곳에 씌어 있었더라면 그는 결코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나 절간 위
에 씌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두 번째의 화폭에는 한 소화상이  한 채의 절간안으로 들어서는 그림이
었다. 그런데 그 절간의 편액에는  청량사라는 세 글자가 씌어 있었다. 
소화상의 등 뒤에는  한 떼의 승려가 따르고  있었다. 뭇승려들의 머리 
위에는 소림사화상이라는 다섯 글자가 씌어 있었다.
앞의 석 자는 위소보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화상이라는 두 글자는 알
아볼 수가 없었으나 짐작할 수는 있었다.
세 번째 화폭의 그림은 대웅보전인데  그 대웅보전에 한 소화상이 한복
판에 앉아 있었다. 히히덕거리는 얼굴 모습이 바로 위소보였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붉은 가사가 걸쳐져  있었고 방장의 법의(法衣)를 입고 있
었다. 그리고  옆으로는 많은 승려들이 시립해  있었다. 위소보는 그림 
속의 소화상이 자기와는 실로 닮은 꼴이라 보면 볼수록 재미가 있어 그
만 웃음소리를 냈다.
네 번째  화폭에는 소화상이 땅바닥에 엎드려서  중년의 승려를 모시고 
받드는 그림이었다. 그  승려의 모습은 매우 청수했는데  바로 출가 후 
법명을 행치라고 바꾼 순치황제였다.
네 폭의 그림 이외에 다른  글자는 없었다. 원래 강희는 단청에 뛰어난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위소보가 아는 글자가 별로 없음을 알고 
있었는지라 그림을 그려 밀지를 보낸 것이었다.
이 네 폭의 그림은 더 없이 명백했다. 그로 하여금 청량사로 가서 주지
가 되어서는 노황제를 잘 받들어 모시라는 내용이었다.
위소보는 처음에는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기뻐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속으로 야단났다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소화상 노릇을 하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방장노릇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이거야말로 야단났구나.)
회총은 미소했다.
"사제에게 축하드리오. 황상께서는  그대를 청량사의 주지로 삼았구려. 
청량사는 정말 장엄한 보찰이외다. 북위(北魏)효문제(孝文帝)때에 세워
진 것으로서 소림사보다  더 역사가 깊소이다. 사제가  큰 절의 주지가 
된다면 반드시 불법을 크게 퍼뜨리게 될 것이고 중생을 보도(普渡)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교를 크게 빛낼 것이외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쓰디쓰게 웃었다.
"이 주지 노릇은 저는 하지 못할 것입니다. 반드시 여러 사람들의 비웃
음을 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청량사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지 가운데의 그림을 보면, 사제로 하여금 한 떼의 본사 승려들을 데
려가라고 했소. 사제 스스로 인선토록  하시오. 모두들 그대가 잘 아는 
후배들이니 자연히 마음을 다해 보필하려  할 것이고 결코 소홀한 점이 
없을 터이니 사제는 마음을 놓으시오."
위소보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곧 그는  확연히 깨달았다. 원래 
소황제는 생각이 치밀한 편이었다.  당시 위소보를 소림사로 보내 출가
시키게 되었을 때 벌써 오늘의  일을 이미 안배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위소보로 하여금 소림사에서 반 년 남짓 머물도록하여 뭇승려
들과 안면을 익히게  한 후 마음에 맞는 승려들을  뽑을 수 있게 했고, 
그런 다음에 그들을 데리고 청량사로 가라고 했던 것이었다.
노황제는 출가한  몸이니 결코 시위나 관병들이  보호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소림의 승려들은  무공이 탁월하니 위소보가 그 소림사의 
승려들을 이끌고 황제를 보호한다면  시위나 관병들이 보호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할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일은  커다란 기밀이 속했다. 황제가  만약 시위나 관병을 
파견하여 오대산의 한 화상을 보호한다면  반드시 소문이 날 것이고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알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뭇시위들 가운데 노
황제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소림사의 한 
승려가 청량사의 주지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옛날 청
량사의 주지인 징관만 하더라도 본래는 바로 소림사의 십팔나한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위소보는 선방으로 돌아가 육천 냥의  은표를 꺼내 장강년 등 뭇시위들
에게 나누어 주었다. 장강년과 조제현 두 사람은 위소보가 화상이 되었
는데도 돈 씀씀이가 이토록 시원시원하자 크게 기뻐 칭찬의 말을 했다.
"자고로 대화상으로서  시위에게 은자를 내리는  사람은 오로지 위대인 
한 분뿐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공전절후(空前絶後)이며 일찍이 그와 같
은 옛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고 후에도 아마 그와 같은 사람은 없을 것
입니다."
위소보는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일찌기 그와 같은 고승이 없었을  것이고 그 후에도 그와 같은 승려가 
없을 것이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겠소?"
장강년은 낮음 음성으로 말했다.
"위대인, 황상께서 그대에게 큰 일을 처리하도록 파견한 내용에 대해서 
우리들은 감히 여쭈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위대인께서 어떤 심부
름을 시키실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분부를 내리십시오. 위대인을 위해 
일을 처리한다는 것은 바로 황상을 위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닙니까? 
모두들 다투어 나설 것입니다."
조제현이 말했다.
"만약 위대인께서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데 일시 거북하게 되었을 때는 
우리들이  조그만 힘이  되어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든다
면......예를 든다면 위대인께서 만약  소림사의 무공비급을 손에 넣으
시려고 우리들에게 절에 불을 지르게하여 크게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시
고 싶으시다면...... 위대인께서는 그 기회를  빌어 손을 쓰실 수도 있
습니다.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장강년은 킥킥거리고 웃으면서 나직이 말했다.
"그렇지. 그것이야말로 불난 것을 기회로 약탈을 하자는 것이고 흙탕물
을 일으켜 고기를 잡는 방법이지!"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으나 곧 그들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군. 그들은 아마도 황상께서 나를 소림사에 보내 화상을 만들고자 
한 것이 도대체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한 모양이구
나. 그리고 이번에 전해온 밀지  가운데 또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황상께서 무공을 좋아하시니까 나를 소
림사로 출가시킨 것이 무공비급을 훔치는 데 있다고 생각한 게로군.)
그는 벙긋 웃으며 나직이 말했다.
"두 분은 마음을 놓으시오. 그것...... 내가 이미 손에 넣었소이다."
장강년과 조제현 두 사람은 크게  기뻐서 일제히 허리를 구부리고 인사
를 했다.
"황상의 홍복이 하늘만큼 큽니다.  그리고 위대인께서는 너무나 똑똑하
시고 부지런하십니다. 이와  같은 큰 공을 세우신  데 대해 축하드립니
다."
조제현은 말했다.
"우리들이 위대인을 대신해서 가지고  나갈까요? 절간의 화상들이 만약 
의심을 한다면 위대인께서는 얼마든지  옷은 헤치고 그들이 수색하도록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소. 그대들은 돌아가서 황상께  위소보가 삼가 성지를 
받드는 바이며 그림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 전하시오. 힘껏 일을 처리할
테니 황상께서는 안심하시라고 여쭙도록 하시오."
"네."
조재현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그 가운데의 이치를 깨달은 듯 말했다.
"원래 그 무공비급들은 모두 다 그림이었군요? 위대인께서는 눈에 익을 
정도로 보신 후 잘 기억하시게 되었군요?"
장강년 역시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그것 참 잘되었습니다! 비급을 훔쳐내 간다면 절안의 화상들이 결국은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지요. 읽고 나서 기억
을 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귀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 또한 
모두 다 위대인께서 타고난 총명함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같은 바
보들은 어떻게 하더라도 기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위소보는 두 사람이 다시 그가  말하는 그림을 소림사의 무공 그림으로 
오해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우스꽝스럽게 생각했다.
"장형, 너무 겸손한 말씀을 하지  마시오. 하루 이틀에 걸려서 될 노릇
은 아니지만 몇 달 동안 보게 된다면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것이오."
이윽고 두 사람은 작별을 하고  떠나려고 했다. 위소보는 한 가지 떠오
른 생각이 있어 물었다.
"조금 전 산문 밖에서 만난  한떼의 사람들이 어떤 내력을 가졌는지 알
고 계시오?"
장강년과 조제현 두 사람은 말했다.
"모릅니다."
"그대들은 빨리  가서 알아보시오. 그 한떼의  사람들이 소림사로 와서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걸로 보아 절의 무공비급을 훔치려는 것 같았소. 
더욱이 그 총병은 누구의 부하인지 모르겠소. 그는 조정에서 임명한 벼
슬아치이면서도 감히 황상의 큰 일을 그릇치게 만들고 있소. 실로 대역
무도한 일이고 반란을 일으킬  심보임에 틀림없소. 그들이 누구의 지시
를 받았는지를 알아내게 된다면 그야말로  큰 공로를 세우게 되는 것이
오."
두 사람은 기뻐했다.
"그거야 수월한 노릇이죠. 그들이 산을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반드시 뒤쫓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총병에게는 이름이 있고 성이 
있을 터이니 알아 본다면 즉시 알아낼 수 있죠."
위소보는 그 마총병이 오삼계의 부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함
을 했고, 짐짓  그의 내력을 모르는 듯  가장하여 어전시위들로 하여금 
조사케하여 황상에게 보고한다면 자기가 무고를 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그 한떼의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들 가운데 한  남장을 한 소녀가 있
소. 그녀와 그 사람들은 바로 또다른 약 십 육칠 세의 아름다운 소저를 
찾고 있소. 이 두 여자로 말하면  이번 역모일과 큰 관계가 있소. 방법
을 강구해서 자세히 알아 보시고 두 소녀의 이름이 무엇이며 출신 내력
이 어떠한지 조사해내도록 하시오.  그리고 조사한 이후에는 편지를 보
내 주시구려."
그야말로 자기의 사사로운 일에 구실을  붙여 공무를 집행토록 한 것이
었다.
어전시위들은 어떤  사건을 조사하게 되면 천하의  관가에서는 모두 다 
그들의 명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토록 매섭게 일을 들추고 조사
를 하게 된다면 단서를 찾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장강년과 조제현 두 사람은 가슴을  두드리며 책임을 지고 반드시 모든 
것을 알아내어 위대인이 추천해 주고 알아 주는 은덕과 돌보는 정에 보
답하겠다고 장담했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12.위소보의 불법 강의

시위들이 떠나간 후 위소보는 방장을  뵙고 황명에 따라 내일 청량사로 
떠나겠다고 말했다.
"응당 그렇게  해야겠지요. 사제는 태어날 때부터  지혜를 타고 났으며 
부처님의 뜻을 터득하고  있소. 사제는 어떤 승려들을  데리고 가려 하
오?"
"반야당의 수좌 징관 사질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나한당의 십팔 
명 사질도 데려가겠습니다."
그는 다시 십여 명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승려들을 뽑았다.
이튿날 이른 아침 위소보는 삼십 육 명의 승려들을 데리고 방장과 고별
했다. 산허리로 내려와서는 홀로 쌍아를 보러갔다.
쌍아는 민가에서 기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위소보가 나타나자 놀람과 
기쁨에 어쩔 줄 몰라했다.  장강년 등으로부터 주인이 이미 소림사에서 
출가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이때 친
히 그가 중대가리에 승포를 걸치고 있는 모양을 보자 다시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쌍아, 어째서 우느냐? 내가 그동안 너를 찾아오지 않았다고 우는 것이
냐?"
쌍아는 울면서 말했다.
"아니......아니에요......그대......그대...... 상공께서 출가를 하셔
서......"
위소보는 그녀의 오른손을 잡고 손 등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며 웃었다.
"바보 같으니, 화상이 된 것은 가짜란다."
쌍아는 부끄러워서 귀밑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위소보는 다시 그녀의 얼굴을 뜯어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초췌한 편이
었고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그러나  키는 훨씬 자라 있었고 몸매도 숙
성해져 있었다.
"그대는 어째서 여위었지? 매일 나를 생각하느라고?"
쌍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되었다. 이제 빨리 남장으로 바꾸어 입고 나를 따라가자꾸나."
쌍아는 크게 기뻐하여 더 묻지도 않고 남장으로 갈아입었다. 여전히 서
동 차림을 했다.
며칠 후 일행은 오대산 아래 이르렀다.
네 명의 승려가 맞은편에서 내려왔다.  앞장을 선 한 명의 노승이 합장
을 하고 물었다.
"여러분들은 소림사에서 오셨소?"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승려는 일제히 절을 하며 말했다.
"선사께서 청량사의 주지로 오신다는 사실을 알고 이미 산 아래서 기다
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징관이 소림사로 돌아간 이후 청량사는 노승 법승(法勝)이 주지승이 되
어 있었다. 강희는  따로이 사람을 보내 법승에게  밀지를 내렸던 것이
다.
위소보 등은 청량사로 들어섰다. 그리고 법승과 임무를 교대했다. 뭇승
려들은 일일이 와서 인사를 했다. 옥림과 행치, 그리고 행전 세 승려는 
오지 않았다.
법승은 이튿날 산을 내려가 서쪽 장안으로 갔다. 위소보는 청량사의 주
인이 되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방장이 되었지만 그런대로 그럴싸하게 
절을 이끌어 나갔다.
그가 청량사에 은혜를 베풀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승려들은 모두 감복하
고 있었는지라 그를 잘 따르고 받들었다. 위소보는 쌍아로 하여금 절밖
의 조그만 집에 기거하도록하여 부르면 즉시 달려올 수 있게 하였다.
청량사의 주지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노황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었다. 그는 지객승에게 물어 옥림과 행치, 행전 세 승려가 여전히 뒷산
의 조그만 절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정심대사와 상의한 후 사람을 시켜 그 조그만 절간과 반마장 떨어
진 동서남북 사방에 각기 한 채의 초가집을 지어서 여덟 명의 승려들이 
차례로 그 초가집에서 세 사람을 지키도록 했다.
모든 일이 일단 정해지자 그는 장강년과 조제현이 전해 줄 편지를 기다
렸다. 녹의소녀의 성명과 내력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몇 개월을 기다
렸으나 전혀 소식이  없었다. 적막할 때면 징관과  초식으로 대전을 했
다. 때로는 쌍아가 거처하는 조그만 집으로 달려가 그녀와 우스갯 소리
를 하고 그녀의 조그만 손을 만져 보곤 했다. 때로는 다음과 같은 생각
도 했다.
(나는 홍교주의 표태역근환을 먹었다. 만약 일 년안으로 한권의 경서를 
신룡도로 보내 주지 않는다면 독성이 퍼지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볼 도
리가 없을 것이다.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무료하여 홀로 오대산 곳곳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그는 그 녹색옷을 입은 소녀를 생각했다. 어느 산개울가에 이르게 되었
을 때 한 그루의 수양버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한 그루의 버드나무가 만약  녹의를 걸친 나의 마누라라면 나는 조
금도 예의를 차리지 않고 다가가서는 대뜸 끌어안고 말겠다. 그러면 그
녀는 반드시 응하지 않을  것이고 일초의 곤륜파의 천암경수(千巖競秀)
라는 수법으로 잇달아 나를 몇 장 후려치겠지. 허나 그것도 별 것 아니
다. 나는 즉시 연문탁발(沿門托鉢)이라는 일초를 펼쳐 점잖게 해소시키
고 말 것이다. 곧이어 지주재악(智주在握)이라는 일초를 써서 왼손으로 
그녀의 왼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그녀의  오른손을 잡아 놓아 주지 않을 
것이며 나의 목을 친다고 해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는 기분이 좋은 김에 손에다  힘을 주고는 일초 일식을 펼쳤다. 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은 각기 하나의 버드나무 가지를 움켜잡게 되었
다. 그리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별안간 한 사람이 거친 음성으로 말했다.
"저것 보게. 저 소화상은 실성한 것 같군!"
위소보는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았다. 세 명의 홍의라마가 정
히 그를 손가락질하면서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얼굴을 붉혔
다.
위소보는 총총히 그 자리를 떴다.
산길을 꺽어 돌자 맞은편에서 다시 몇 명의 라마들이 나왔다. 오대산에
는 라마들의 절이 무척 많은 편이라 위소보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
았다.
한 명의 라마가 입을 열었다.
"위에서 내리는 법지에 따르면  우리들로 하여금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늘 오시 전에  오대산에 올라가야 한다고 했소.  그러나 정작 산위로 
올라와 보니 아무 일도 없구려. 이것이야말로 장난이 아니겠소?"
"위에서 안배한  것이니 이유가 있을 것이외다.  그대는 대동성안의 그 
젊은 계집애와 헤어지기 아쉬워서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오?"
위소보는 생각했다.
(이 라마들은 술을 먹고 계집질도  하는구나. 내가 만약 출가한다면 차
라리 라마가 되었으면 되었지 화상이 되지는 않겠다.)
청량사로 돌아갔을  때 징통이 산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마중을 
나오며 나직이 말했다.
"사숙,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러시오?"
징통이 손짓을 했다. 그리고 위소보는 그와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 절옆
의 조그만 봉우리 위로 걸어  올라갔다. 남쪽에 한 무더기의 무수한 노
란 점 들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그 노란 점들은 바로 몸에 황의를 걸친 라마들
이 아닌가. 천 명은 되지 않아도 구백 명은 될 것 같았다. 삼삼오오 짝
을 지어 나무 숲과 산 바위 사이에 흩어져 있었다.
위소보는 깜짝 놀랐다.
"저 많은 라마들은 무엇을 하려는 것이죠?"
"서쪽에도 있습니다."
위소보는 눈을 돌려 서쪽을  바라보았다. 수천이나 되는 라마들이 무더
기를 이루고서 혹은 앉아 있거나  혹은 서 있었다. 햇살은 동쪽에서 비
춰 죽 있었는데 하얀 광채가 번뜩이는 것이 뭇라마들은 몸에 무기를 지
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군요. 혹시......혹시......"
"사질의 짐작으로도 역시 그럴 것 같습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북쪽과 동쪽으로 돌렸다.
북쪽과 동쪽에도 수백 명의 라마들이 있었다.
"제기랄, 적어도 사오천 명은 되겠군."
"일백 이십  오 명의 두목데다  삼천 이백 팔십 명의  라마들이 있습니
다."
"정말 대단하시오, 그토록 똑똑히 수를 헤아리다니!"
"이제 어떻게 하죠?"
위소보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상대방에서는 삼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
들을 불러 모아 겹겹이 에워싼 것으로 보아 모든 계획을 치밀하게 세운 
듯하지 않은가?
위소보는 징통이 그와 같이 묻자 역시 물었다.
"글세 어떡할까?"
"상대방은 아마도 행치대사를 사로잡아  가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십중
팔구 밤을 기다렸다가 사방에서 포위공격을 해올 것입니다."
"어째서 지금 공격을 하지 않지요?"
"만약 낮에 남들이 보는 앞에서  공격을 해온다면 반드시 여러 청묘(靑
廟)가 청량사를 응원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우리들은 즉시 사람들을  내보내 각 청묘의 주지들에게 통지
하여 그들에게 많은 화상들을 보내 주십사 하고 청하도록 합시다."
"그런데 오대산의 각 청묘에  머물고 있는 승려들의 십중팔구는 무공을 
모른답니다. 설사 무공을 아는 자라 하더라도 그 무공은 평범하게 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응원하러 오지 않겠구려."
"응원을 오는 사람은 있을 것이지만 온다 하더라도 헛되이 목숨만 잃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대로 투항해야 한단 말이오?"
"우리들이 투항하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만 행치대사는 반드시 그들에
게 잡혀갈 것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행치대사의 신분을 소림사의 뭇승려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들이 대거 공격해 와서 행치대사를 사로잡아 가려는 것은 도대체 어
떤 영문일까?"
"행치대사는 반드시  크게 내력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중원 무림의 
흥망성쇠와 관계되는  사람이 아니면 바로 청묘와  황묘의 다툼에 어떤 
중대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겠죠."
위소보는 몸에 황제께서 친필로 내린 어찰(御札)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을 상기했다. 이 어찰만 있으면 문무관원들을 조달할 수가 있었다.
"지금 사정이 다급하게 되었소. 우리 소림사의 무공이 고강하다고는 하
나 중과부적이오. 삼십 칠 명의  화상이 어찌 삼천 명이나 되는 라마들
을 상대해 낼 수 있겠소? 나는 즉시 산을 내려가 구원을 청하겠소."
"아무래도 멀리있는 불로서는 가까이에 난  불을 잡을 수가 없을 것 같
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행치대사를 호송하여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소."
"보기에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빈 틈을 뚫고 달려나간다는 것
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행치대사와 그의 사부  옥림대사가 응하지 않을까봐 두렵구려. 
그들은 생사가 차이가 없으며 도망치나 도망치지 않는것이나 차이가 없
다고 했소."
"그렇다면 사숙께서 아무쪼록 그들에게 권고를 하도록 하십시오."
"행치대사를 권고하여 설복하는  것은 방법이 있소이다만 옥림노화상을 
권고하는 일은 나로서는 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소이다. 이것이야말로 
쥐가 거북이를 잡아당기는 격으로 주둥이를  갖다댈 만한 곳이 없는 형
국이외다."
날이 어두워지기만  하면 삼천여 명이나 되는  라마들이 우르르 몰려들 
형편이다.
이렇게 되면 청량사의 화상들은 그저 우리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옵
소서 하고 부르짖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제기랄! 내가 왜 화상이 되었지?  만약 내가 라마가 되었다면 지금 이
때는 의기양양해서 거들먹거렸을 것이고 조금도 걱정을 하지 않았을 것
이 아닌가? 평시에 고기를 먹고  계집질을 하는 것은 계산에 넣지 않는
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 계집질을 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영감이 번쩍 떠
올랐다.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말했다.
"빌어먹을! 나는 선방으로 가서 한숨 자야겠소."
징통은 아연해져서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위소보는 그를 아랑
곳하지 않고 곧장 조그만 봉우리에서 내려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징심, 징관, 징광, 징통  등 네 승려가 일제히 와서 뵙자고 청
했다. 위소보는  네 사람을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각자의 얼굴에는 
놀람과 당황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는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한후 귀찮다는 투로 물었다.
"여러분들은 내게 무슨 볼일이 있소이까?"
징심은 말했다.
"산 아래에 라마들이 떼를 지어 모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본사에 
대해서 불리한 행동을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방장 사숙의 대응책을 듣
고 싶습니다."
"나는 반나절동안 생각했으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잠을 잘 수밖
에 없었소. 모두들  액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라마들의 칼이 얼마나 
예리한지 한 번 목을 내밀고 받아 봐야 하지 않겠소?"
징심 등 네 승려는 그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
다. 징관은 말했다.
"뭇라마들이 들고 있는  칼들을 보기에 무척 예리한  것 같고 우리들의 
목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숙, 출가인은 세상과 다투지 
않고 어떠한 역경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칼이 들어오
는데 목으로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지나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달마조사께서도 사람에게 칼을 맞으면서  반항하지 말라고 가르친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들 무공을 배울 필요가 없었겠지요."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징관 사질의 의견으로서는 칼이 들어올 때 목으로 받으면 안된다는 것
이오?"
징관은 말했다.
"안 되지요. 그러나 주먹을 질러 올 때 가슴으로 맞이하고 발길질을 해
올 때 배로 받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내공이 매우 심후했다.  내공을 돋구게 된다면 상대방의 주먹이나 
발길질이 되려 튕겨 나가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들 라마들은 모두 다 계도나 선장을 가지고 있소. 무슨 방법을 쓰면 
그들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게 될까?"
징관은 어리둥절해졌다.
"그 라마들을 상대로 이치를 따져  이야기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
들로 하여금 사람 잡는 칼을 내려놓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 참 곤란하게 되었군. 네 분 사질은 어떤 묘책이 없소?"
징심이 말했다.
"지금의 계책으로서는 오로지 모두들 옥림과  행치, 행전 세 분을 보호
하여 빈틈을 뚫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행치대사를 사로잡아 
가려고 할  뿐이니만큼 절안의 승려들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입니
다."
"좋소, 우리는 세 분의 노화상에게 이야기하러 갑시다."
그는 즉시 네  명의 승려를 이끌고 뒷산의  조그만 절간으로 달려갔다. 
옥림 등은 주지가 왔다는 말을 듣고 문을 나서서 맞아들였다. 옥림, 행
치, 행전은 모두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세 승려는 신임 주지 회명선
사는 소림사의  회총방장의 사제이고 또 나이가  무척 젊은 고승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로 위소보가 아닌가?
옥림과 행치는 대뜸 어떻게  된 영문인가를 깨달았다. 황제가 안배하여 
부친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임을 알아챈 것이다.
어쨌든 주지는 한  절간의 주인이었다. 옥림 등은  예의를 다해 인사를 
했다. 위소보는 삼가 공손하게 반례하고 함께 선방으로 들어갔다.
옥림은 그를 중간의 방석에 앉혔고  나머지 사람들은 양쪽에 시립해 서
도록 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흐뭇해했다.
(내가 중간의 자리에 편안히 앉고 노황야마저 옆에서 시중을 들게 되었
으니 소황제보다 더욱 위풍이 있군!)
그는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입을 열었다.
"옥림대사, 행치대사, 두분께서도 아무쪼록 앉으십시오."
옥림과 행치도 앉았다.
옥림이 말했다.
"방장대사께서는 청량사를 이끌어 나가시고  계신데 소승 등이 미처 찾
아가 뵈옵지 못한 첨 양해해 주시구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소납(小衲)은 세 분이 다른 사람의 방해를 좋아
하지 않기 때문에  줄곧 세 분을 뵈로 오지  못했습니다. 만약 오늘 한 
가지 큰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소납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노화상이 스스로를 일컬어 노납이라  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자기
는 나이가  어리니 자연 소납으로  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뭇승려들은 
그가 희한한 발상으로 칭호마저 스스로 만들어 내어부르자 속으로 우스
꽝스럽게 생각했다.
위소보는 말을 계속했다.
"징광사질, 그대가 세 분에게 말씀을 드려 주십시오."
옥림은 새로운  주지의 법명이 회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소림사의 
회자 항렬은 징  자 항렬보다 한 항렬 높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소화상이 개구장이 같은 얼굴을 하고 청량사의 먼저번 주지이고 장엄하
고도 자상한 덕망 높은 노승에게 사질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고 웬지 어
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징관은 공손하게 대답하고 절 주위에  수천 명의 라마들이 겹겹이 에워
싸고 있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옥림은 눈을 감고 한동안 생각하더니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방장대사께서는 어떻게 대응하시고자 하오?"
"그들 라마승들은 본사 주위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데 그저 풍경을 구
경하고 있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곳의 풍경이 
우아하고 조용해서 그들은 산천 구경을 올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행전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만약 풍경을 구경하러 왔다면 본사를  겹겹이 에워싼 채 몇 시진이 되
도록 물러가지 않을 리가  없죠. 틀림없이 그들은 행치사형을 잡아가려
고 하는 것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들이 행치대사를 모셔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세 분 대사를 흠모하여 
세 분을 라마의 절로 모셔가서 불경을 논하고 설법을 들으려 하는 것이
겠죠."
행전은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는 볼 수 없소이다. 그렇다고는 볼 수 없소이다."
징관이 말했다.
"방장사숙, 그렇다면 그들은 어째서 무기를 지녔죠?"
위소보는 합장했다.
"그들은 모두 선장과 계도를 들고 기세등등한데 어쩌면 정말 본사 승려
들의 목을  자르려고 하는지도 모르지요.  부처님께서는 내가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고 누가 지옥으로 들어가겠느냐고 말씀하시지 않았소? 우리
들은 마땅히 칼이 들어오는 것을 목으로 받아야 할 것이오. 이것이야말
로 내가 남에게 목을 베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목이 베어지는 것이 
아니겠소? 생겨나지 않으면 멸하는  것이 없고 더럽지 않다면 깨끗함이 
뭔지 모르는 것이지요.  머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잘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부처님에게 세 가지의  큰 덕이 있는데 대정(大定), 대지(大
智), 대비(大悲)이외다. 뭇라마들이 칼을  들고 오는 것을 우리들이 듣
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또 구경하지도  않는 것은 대정이라고 할 수 있
소이다. 그들은 칼을  들고 내려치고 하는데 우리들이  그 칼을 공이라 
생각하고 공(空)은 바로 칼이라 생각하는 것은 바로 대지이며, 한칼 한
칼이 우리들의 민숭민숭한 대머리를 모조리 베어내어, 오호 애재라! 모
두 이  속된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대비라고  할 것이외
다."
그는 절에 오랫  동안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적잖은  불경을 암송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아무렇게나 내키는  대로 한참 씨부렁거려 본 것이었
다.
징관은 말했다.
"방장사숙, 대비라는 비 자는  자비스럽다고 할 때의 비자이지, 비애라
고 할 때의 비자가 아니외다."
"사질의 말씀도 옳소. 생각해 보시오. 우리 부처님께서는 살을 잘라 독
수리에게 먹였고  몸을 던져 호랑이를 키우려고  했으니 그야말로 실로 
대자대비한 일이 아니겠소? 그들  라마들은 비록 흉악하나 고약한 독수
리나 사나운 호랑이보다는 어쨌든  조금 나을 것이오. 그렇다면 우리들
이 몸을 던져 고약한 라마들의 소원을 풀어 주는 것도 역시 대자대비한 
마음이 아니겠소?"
징관은 합장했다.
"사숙의 지혜는 실로 존경과 탄복을 금할 수 없습니다."
"출가인은 세사와 다투지 말고  거슬리는 일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
니 청량사에 만약  어떤 재앙이 닥친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외
다. 우리들이 고약한 라마들의 칼  아래 원적하게 되고 함께 서방 극락
세계로 간다면 길을 가는 동안  무척 시끌벅적할 것인 즉, 꽤나 재미있
을 것 같구려."
뭇승려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위소보가 불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로지 징관 한 사람만 깊이 믿어 의심치 않
았으며 기뻐하고 또 찬탄했다.
뭇승려들은 잠자코 있었다. 행전이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스스로의 생사는 상관이  없으나 백성들이 그들에게 업수이 여김
을 당하게  되고 압박을 당한다면  커다란 죄업(罪業)이 아니겠습니까? 
사부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못된 짓을 마구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고 하셨소이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의 그와 같은  말은 매우 일리가 있으며  소납의 의견보다는 더욱 
한층 고명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라마의 세력이 크니 우리
들로서는 중과부적이랍니다."
행전이 말했다.
"우리가 사부와 사형을 보호해서  빈틈을 뚫고 나간다면 고약한 라마들
도 감당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면 뭇라마들의 목숨을  해치거나 상처를 입히는 
일이 벌어질까봐 두려운 것이외다.  아미타불, 우리 부처님께서는 호생
지덕이 있소이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면 그야말로 칠층의 불탑을 
쌓는 것보다 낫다고 했소.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야말로 팔층
의 불탑을 부수는  것이 아니겠소? 불가의 계율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계율은 바로 살생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행전은 말했다.
"그들이 달려와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고,  우리들은 부득이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것뿐이외다.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가장 좋지만 
그렇다고 눈을 멀거니 뜨고 그냥 앉아 죽임을 당할 수는 없지 않겠소이
까?"
갑자기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림의 징각(澄覺)이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 들어오더니 말했다.
"방장 사숙에게 말씀드립니다. 산 아래의 라마들이 일제히 산위로 올라
왔습니다. 그러나 약  일백 장 정도 가까이  다가오더니 다시 멈췄습니
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째서 어느 정도 길을 올라왔다가 멈추었을까? 갑자기 우리 부처님의 
감화를 받아 회오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고, 고개를 돌리면 언덕이라는 
구절에 담긴 내용을 깨달은 모양이군!"
행전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외다. 아니외다. 그들은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일거에 공격해 들
어오려는 것이외다."
그는 옛날 정황기의 대장이었다.  그리하여 중원으로 들어올 때 무수한 
싸움을 치루었고 군사를 이끌고 싸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가 후에 순치의 어전시위총관이 된 것이다.
"그들이 본사의 대웅보전으로 들어와 우리 불여래(佛如來)의 장엄한 보
상(寶相)을 대하게  된다면 갑자기 마음이 변해  하려던 것을 멈출지도 
모르는 일이오."
행전은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 소방장께서는 실로 터무니......터무니......아, 그럴 리가 없겠
지."
그는 본래 너무나 터무니 없이  멍청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다가 상대방
은 방장인데 자기가 무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입밖까지 나왔던 말
을 되삼킨 것이었다.
옥림이 끼여들었다.
"행전, 너 자신이야말로 실로 멍청하다. 방장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헤
아려 보고 있으며 계획을 가슴속에  품고 계시다. 네 어찌 쓸데없는 걱
정을 한단 말이냐?"
행전은 어리둥절해졌다.
"아, 본래 방장께서는 이미 묘책을 세우고 계셨군요."
위소보는 갑자기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에게 묘책은 없습니다. 삼십육계가 상책이라고, 모두들 뚫고 나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니  뚫고 나가도록 합시다. 하지만  부득이 할 때가 
아니면 절대로 많은 사람의 인명을 해쳐서는 안됩니다."
행전과 징심 등은 일제히 옳다고 말했다. 위소보가 말했다.
"그렇다면 모두들 물건을 챙기도록 하시오.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그들
이 아직 손을 쓰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달려 내려가도록 합시다. 부평현
(부平縣) 현성(縣城)안으로 달려 들어가게  된다면 그 라마들이 아무리 
고약하다고 하더라도 공공연히 현성을 공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행전 등은 또 모두 좋다고 했다.
행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는 불길한 사람이외다. 지난 번 이미 나 때문에 적잖은 목숨이 사라
졌소. 이번에 위난에서  도망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나를 
단념하지 않을 것이외다."
행전은 말했다.
"사형, 그 고약한 라마들은 그대를  사로잡아 간 다음 천하의 백성들을 
잔인하게 해치려고 한단 말입니다."
행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 세상의  화근이라고 할 수 있네. 그들이  달려오면 내 스스로 
몸을 불살라 그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마음을 단념토록  하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행전이 다급히 말했다.
"황......황...... 아니 사형, 그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외다. 제
가 사형을 대신해서 분신자살을 하겠소."
행치는 빙그레 웃었다.
"자네가 내 대신 분신자살을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들은 나를 
잡아 인질로 삼자는 것이 아닌가?"
옥림은 말했다.
"선재로다. 선재로다. 행치는 이미  커다란 도를 깨달았도다. 이것이야
말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누가 지
옥으로 들어가겠느냐'라는 구절에 담긴 참뜻이로다."
위소보는 속으로 욕을 했다.
(냄새나는 화상같으니!  그가 말하는 것이 참이라면  내가 말하는 것은 
가짜라는 건가?)
옥림은 다시 말했다.
"나중에 뭇라마들이 달려오게 되었을 때 노납과 행치가 함께 몸에 불을 
지를 터이니 방장대사와 뭇사형들은 저지하지 않도록 하시오."
위소보와 뭇승려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모두 다 아연해했다.
행치는 천천히 말했다.
"옛날에 성을 공격하고 곳곳에서 약탈을 일삼고 또한 백성을 도탄에 빠
뜨렸으니 소승은 이미 백 번  죽어도 죄를 사할 수가 없소이다. 백성을 
위해 몸을 던져 옛날의 죄값에  대한 보답을 하려는 것이오. 만약에 이
로써 뭇라마들이 감화하여 악한 마음을  떨쳐 버리고 착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니겠소이까?"
그리고 몸을 일으키더니 위소보와 소림의 다섯 승려에게 합장하고 허리
를 굽혔다.

위소보는 삼십 육 명의 소림  승려들을 불러서는 그 소식을 알렸다. 뭇
승려들은 하나같이 두 분 대사가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태운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때 가서는 무력으로라도 저지를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외다. 모두들 나의 말을 들으시오. 그대들 서
른 여섯 분은 이제 절에서 달려 내려가 일제히 동쪽을 격하시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13. 국가대사에 끼여든 위소보

"산 아래의 포위망을  뚫기가 매우 어려운 척  가장하고 다시 절간으로 
되돌아 올라오도록 하시오. 하지만 그때 사오 십 명의 라마들을 사로잡
아 오시오."
징심은 말했다.
"방장의 뜻은 그 라마들을  인질로 삼아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잡아오는 라마들의  배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지 않겠소이까?"
"대라마들을 잡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쉬운 노릇이 아니고 또 많은 살상
을 면치 못할 것이오. 그러니 우리들은 수십 명의 소라마들만 잡아오면 
충분할 것이오."
뭇승려들은 그의 뜻을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방장의 명이라 모두 
영을 받들어 절을 나섰다.
얼마 후 산 허리께에서 고함 소리가 크게 일었다. 위소보는 고루(鼓樓)
에서 구경을 했다.  서른 여섯 명의 소림사  승려들이 라마떼들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어 칼빛이 번쩍이는 가운데 서로 공방전이 벌어졌다.
삼십 육 명의 승려들은 모두  소림사의 고승들이어서 일반 라마들은 자
연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수십 장을 뚫고 나가자 길을 막는 라마
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다. 징심등은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는가 
하면 손바닥으로 내려치고 손가락으로  찔렀다. 삽시간에 수십 명이 쓰
러졌다.
징심은 소리 높이 외쳤다.
"적의 세력이 너무나 커서 달려 나갈 수 없으니 잠시 절로 돌아가 다시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세!"
그의 내력이 심후해서 이 몇 마디의 고함 소리는 멀리까지 울려퍼져 산
골이 울릴 지경이었다.
징통 역시 소리 높이 외쳤다.
"뚫고 나갈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지요?"
"모두들 라마를 잡아가세."
뭇승려들은 제각기 한두명의 라마를 잡아  몸을 날려 절안으로 달려 들
어왔다.
위소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절문 앞에서  그들을 맞아들였다. 사람의 
수를 헤아려 보니 잡아온 사람들은 사십 칠 명이나 됐다.
문수전 안으로 들어가자 위소보는 입을 열었다.
"이 녀석들의 옷을 모조리 벗기시오.  그리고 사람마다 열 여덟곳의 혈
도를 짚어 후원의 창고 안에 감금하도록 하시오."
뭇승려들은 방장의  이와 같은 지시가 정말  헤아리기 어렵다고 생각했
다. 그러나 즉시 사십 칠  명의 라마들을 발가벗기고 몸의 혈도를 짚고 
감금시켰다.
위소보는 합장하고 말했다.
"이 세상의  뭇색상(色相)은 모두 헛것이고 없는  것이외다. 나도 없고 
사람도 없으며, 화상도 없고 라마도  없는 것이외다. 공이 바로 색이고 
색이 바로 공이외다. 화상이 라마이고  라마가 즉 화상이외다. 여러 사
질께서는 모두 다 가사를 벗으시고 라마의 옷으로 갈아입도록 하시오."
뭇승려들은 모두 다 아연해져서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쌍아, 그대는 이리 와서 나를 소라마로 분장시켜 다오!"
쌍아는 줄곧 대전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대전안으로 들
어왔다. 그리고는 가장 작은 라마의 포자(袍子)를 집어 들고 그에게 바
꿔 입혔다. 위소보의 체구는 왜소해서 그 포자는 여전히 너무 컸다. 그
리하여 비수를  뽑아 포자 아랫도리와 소맷자락을  한 토막씩 잘라내고 
허리를 허리띠로 졸라맸다. 그리고  라마관을 쓰게 되자 그야말로 영락
없는 소라마였다. 위소보는 쌍아에게 말했다.
"그대도 소라마로 분장을 해라."
징광이 물었다.
"사숙께서 라마의 복색으로 바꿔 입는 것은 무엇 때문이죠?"
징관은 말했다.
"설마 하니 우리더러 라마에게  투항하여 황교로 개종하라는 것은 아니
겠죠?"
위소보는 말했다.
"아니외다. 모두들 라마로 분장해서는 우르르 뒤쪽에 있는 조그만 절간
으로 몰려가 옥림과 행치, 행전, 세 화상을 잡아서는 그들의 혈도를 짚
고 다시 그들에게 라마의 옷을 입히는 것이외다......"
징통은 거기까지 듣더니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정말 묘책입니다! 묘책입니다! 우리 수십 명의 가짜 라마가 어둠을 타
고 산 아래쪽으로 내려간다면 뭇라마들은 진짜와 가짜를 분간하지 못할 
것입니다."
뭇승려들은 일제히 좋다고 말했으며  대뜸 환한 얼굴을 지었다. 그런데 
그들은 위소보의 이와 같은 묘책이  바로 가짜 기녀로 분장하여 곤경에
서 빠져나오게 되었던 옛날 지혜를  그대로 써먹은 것임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있었다.
징광은 주저했다.
"하지만 행치대사 등 세 분의 위엄을 거슬리게 되었으니 불경스러운 죄
를 짓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말했다.
"아미타불, 그들 세  분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삼 칠이 이십 
일이라고 이십 일  층의 불탑을 만들어 세우는  것보다 낫지 않소이까? 
조그만 위엄을 거슬리는 것은 뜨거운  불길에 몸을 태우는 것보다 낫소
이다."
징관은 말했다.
"사숙의 말씀이 옳습니다."
뭇승려들은 일제히 승포자락을 벗고 라마들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뭇승
려들은 평소 계율을 엄히 지켜  왔으며 근엄하면서도 장중한 태도를 지
어 왔다. 하지만 이때 그들은  위소보와 더불어 엉터리 같은 짓을 하고 
라마들의 옷을 입게 되자 그 야릇하고 괴상한 모습에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며 킥킥 웃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각자는 승포를 싸서 이 곤란한  처지에서 벗어난 이후 다시 바꿔 입도
록 하시오. 산을 달려 내려가게  되었을 때 만약 흩어지게 된다면 부평
현 길상사(吉祥寺)에서 모이도록 합시다."
그는 쌍아에게 은자와 물건을 찾아 보따리로 만들어 어깨에 짊어지도록 
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기를 기다려 위소보는 말했다.
"모두들 어굴에 재와 흙으 바르도록 하시오. 그리고 각자 몸에 한 통의 
물을 들도록 하시오. 이제 손을 쓰도록 합시다."
뭇승려들은 그 지시를 받자 모두 다 즐거워했으며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말을 좇았다. 즉시  그들은 흙을 집어서는 얼굴에  문지르고는 한 통의 
물을 들고 무기를 갖추었다. 그리고 일제히 산 뒤로 달려갔다.
옥림과 행치, 그리고 행전 세  사람은 이미 분신하기로 결심을 하고 마
당에 장작과 풀들을 쌓아놓고 몸에 향유를 발랐다.
뭇라마들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려 그들에게 자기의 몸을 던져 불태운다
는 사실을 밝힌 후 불을  지르려고 했다. 그런데 사전에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다가 뭇라마들은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그러다가 오로오로(嗚 
嗚 ),화차화차(花差花差)라는 서장말 같기도 한 괴상한 소리가 크게 일
더니 수십 명의 라마들이 바로 절간 안으로 들이닥치는 것이 아닌가?
옥림은 낭랑히 외쳤다.
"여러분들은 잠깐 기다리시오. 노납이 몇 마디 할 말이 있소..."
그런데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의 머리위에 한 통의 냉수가 퍼
부어졌다. 그리고 곧이어 수십 통의  냉수가 다투어 세 사람의 몸에 뿌
려졌다.
쌍아가 달려들어 행전의 혈도를  짚었다. 그리고 행치는 무공을 모르고 
있고 옥림은 무공이 약하지 않았으나  손을 써서 항거하기를 원하지 않
았다. 따라서 혼란 속에 모두 다 혈도를 짚히고 말았다. 뭇승려들은 재
빨리 손을 써서 세 사람의 승포를  벗겨 버리고 라마의 승복을 세 사람
에게 입혔다.
쌍아는 촛대를 들고 마당에 쌓아  놓은 장작더미와 풀더미에 불을 질렀
다. 위소보는 행전의 황금저가 법전 밑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가져 가
려고 했다. 그러나 황금저는 너무나 무거워 들 수가 없었다. 그러자 징
통이 손을 뻗쳐 그것을 잡아쥐었다.
위소보가 손을 내두르자 뭇승려들은 행치  등 세 승려를 가운데 세우고 
동쪽 길로 내려갔다.
수십 장을 달려가자 조그만 절간에서  검은 연기와 화광이 충천하는 게 
보였다. 산 허리께의 라마들은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는 큰소리로 놀
라 부르짖었으며 대뜸 사방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뭇승려들은 어느덧 산 아래에 도달했다. 그 조그만 절간은 이미 지붕까
지 불길이 치솟아 올라 있었다. 징통은 말했다.
"저 조그만 절간이 불길에 완전히 휩싸이게 되고 그들이 또 행치대사를 
찾지 못하게 된다면 행치대사가 이미 조그만 절간 안에서 타죽은 줄 알
고 단념하고 다시 방해를 놓지 않으면 좋을 텐데......"
위소보는 징관에게 행치 등 세 사람의 혈도를 풀어 주라고 말하고 사과
했다.
"정말 실례되는 점이 많았습니다. 아무쪼록 너무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
다."
행전은 큰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정말 묘책이요,  묘책이외다. 모두들 가볍고도  수월하게 도망쳐 나올 
수 있었구려. 방장대사, 그대는  우리들의 목숨을 구했으니 감사하다는 
말을 해도 부족한 판인데 어찌 탓할 수가 있겠소이까?"
행치가 결심을 하고 자기 몸에 불을  질러 이 세상을 등지려고 했을 때 
행전은 충성심이 강한 나머지 주인을 따라 죽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역시 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제 커다란 액겁에서 벗어
나게 되자 자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때 갑자기 맞은편 산길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한떼의 사람
들이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징통이 말했다.
"사숙, 한떼의 라마들이 공격해 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들은 앞으로  달려 나가며 입으로 오랑캐의  말을 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들을 대하게 되었을 때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손을 뻗쳐 산위
를 가리키도록 합시다."
뭇승려들은 행치 등을 가운데 두고 보호한 채 큰길을 따라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때 산모퉁이 저쪽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달려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등롱과 등불이 들려 있었는데 라마들이  아니었고 모두다 산 위로 예불
을 하러 가는 향객(香客)들이었는데 목에는 누런 푸대자루를 매고 있었
다. 그런데 그 푸대자루 위에는 건성진향(虔誠進香)이라는 커다란 글자
들이 씌어 있었다.
이때 향객들 가운데서 한 명의  사내가 걸어 나오더니 큰소리로 호통쳐 
물었다.
"당신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이오?"
이 사람은 체구가 매우 우람했고 음성이 우렁찼다. 위소보는 그를 보자 
크게 기뻤다. 그는 바로 어전시위총관인 다륭이었다.
그는 즉시 달려 나가며 부르짖었다.
"다형, 소제가 누구인지 잘 보시오."
다륭은 놀람과 기쁨에 얽혀 말했다.
"아니...... 위형제가 아니오?  그대가......그대가...... 이곳에는 웬
일이오? 어찌하여 소라마의 모습을 하고 있소이까?"
"다형은 또 어떻게 이곳에 오셨소이까?"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다륭의 등뒤로 다시 한떼의 향객들이 
달려왔다. 앞장을 선 향객들은 바로 조제현이었다. 위소보는 이를 보자 
이 향객들이 모두  어전시위들이 분장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니 그들 가운데 태반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뭇시위들은 그를 
에워싸고 매우 다정하게 굴었다.
위소보는 나직이 다륭에게 물었다.
"황상께서 그대들을 보내셨소?"
"황상과 태후께서 오대산으로 예불을 드리고자 오셨소. 지금 바로 연경
사 안에 계시다네."
위소보는 놀람과 기쁨에 얽혀서 말했다.
"황상께서 오대산에 오셨단 말이오? 그것 참 잘되었소. 정말 잘 되었소
이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늙은 갈보가 이곳에는 무엇하러  왔지? 노황야는 그녀를 죽도록 미
워할텐데......)
얼마 후 다시 한떼의 효기영  군관과 병사들이 달려왔다. 모두 다 향객
으로 분장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물었다.
"이번에 북경에서 오대산으로 온 향객은 모두 몇 명이나 되시오."
다륭이 나직이 말했다.
"우리 어전시위들 이외에도  효기영, 전봉영(前鋒營), 호군영( 軍營)등
이 모두 어가를 따라 이곳으로 왔소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삼사 만의 관병은 되지 않겠소?"
"모두 삼만 사천여 명이나 되오."
"어가를 보호하는 뭇 영(營)의 총관은 누구시오?"
"강친왕이외다."
"그렇다면 옛친구로군."
그는 조제현에게 손짓을 해서 그가 다가오기를 기다려서는 말했다.
"조형, 그대가 가서 강친왕에게  보고를 하시오. 나는 인마를 움직여서 
한 가지 큰일을 해야겠소. 사태가  다급하니 그의 지시를 따를 수가 없
으니 빨리 가서 허락을 받아오도록 하시오."
조제현은 대답을 하고 달려갔다.
곧이어 효기영의  정황기도통령 찰이주 역시  도달했다. 위소보는 말했
다.
"다형. 도통도인, 수천 명의 서장 라마들은 황상께서 예불을 하려 오신
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지금 청량사를 겹겹이 에워싸고 반란을 일으키려 
하고 있소. 그대들  두 분이 즉시 가 그  반적들을 제거하시오. 그렇게 
된다면 커다란 공로를 세우게 되는 것이외다."
두사람은 크게 기뻐서 일제히 위소보에게 사의를 표했다.
"위대인이 우리들에게 공로를 넘겨  주시니 정말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려."
"모두들 충심으로 황상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인데 어찌 너니 나니 나눌 
수 있겠소? 이것이야말로 복이 있으면 함께 누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함
께 겪자는 것이 아니겠소."
두 사람은 즉시 명령을 내려  사방의 산길을 지키도록 했다. 그리고 맹
장들과 정예병을 불러 모아 산 위로 공격해 올라갔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성상(聖上)께서는 인자하시고 영명하시며  호생지덕이 있소이다! 그대
들은 그저 반적만 사로잡고  인명을 더 살상하지는 마시오! 성상께서는 
조생어탕(鳥生魚湯;옛날 요순우탕  등의 어진  제왕들을 가리킴)이시고 
형편없는 황제가 아니기 때문이외다!"
뭇시위들과 친병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그런데 이 몇 마디의 말은 노황제보고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소황제에
게 아첨을 하는 것보다 더욱더  영험하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
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몸을 돌려 행치의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세 분 대사님, 우리들이 옷을 걸치고 있는 모양이 꼴불견이니 우선 앞
의 금각사로 가서 옷을 바꿔 입도록 하십시오."
행치 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금각사에 이르렀다. 위소보는 절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일천 냥의 
은표를 꺼내 주지에게 내밀고 말했다.
"잠시 보찰을 빌려 휴식을 취하도록  하겠소이다. 모든 것은 더묻지 마
시오. 한 마디  질문하는 데 대하여 열 냥의  은자를 제하도록 하겠소. 
한 마디도 묻지  않는다면 이 일천냥의 은자는 모두  향촉비가 될 것이
오."
주지는 갑자기 거금을 얻게 되자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사형께서는......"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입을 멈추고 약간  당황해하더니 말투를 바꾸었
다.
"......차 한잔을 마셔야겠죠?"
그리고 총총히 안으로 들어가더니 차를 들고 나왔다.
위소보는 절을 나와 암암리에 명령을  내려 백 명의 어전시위들로 하여
금 금각사 사방을 지키게 했다.  그리고 또 두 명의 시위에게 당부하여 
황상에게 이렇게 보고토록 했다.
"소신 위소보의 직책이  너무나 중대하여 함부로 떠날  수 없어서 삼가 
금각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두 명의 시위는 응락하고 몸을 돌렸다.

뭇승려들은 옷을 바꿔 입고 앉아서 쉬었다. 이때 산 위에서 고함소리가 
크게 일었다. 시위와 친병들이 어느덧 라마들을 포위한 모양이었다. 한
참동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그 소리가 점점 사그라졌다. 
다시 반 시진이 흐르자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졌다. 한참 후에 수십명의 
발걸음 소리가 멀리서부터 가볍게 들려오더니 절밖에 이르러 멈추었다. 
곧이어 발자국 소리가 나는 가운데 한 떼의 사람이 절안으로 들어왔다.
(소황제가 도달했구나.)
그는 비수를 뽑아서는 손에 들고  행치가 쉬고 있는 승방 밖을 지켰다. 
얼굴은 자연히  충심으로 주인으로 지키고 백  번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십여 명의 간단한 옷차림을 한 시위들이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
리고 손에 등롱을 들고 양쪽으로  늘어섰다. 한 명의 시위가 나직이 호
통을 쳤다.
"빨리 칼을 거두시오!"
위소보는 뒤로 몇 걸음을 물러나 등을 문 쪽에 기대고 비수를 비스듬히 
쳐들었다. 그야말로 한 사람이 지키고 있으면 만 사람이라도 뚫고 들어
갈 수 없다는 기세를 보였다. 그런가 하면 또한 호통을 내질렀다.
"선방 안에는 뭇대사들이 조용히 휴식을  하고 있소! 그 누구도 다가와 
잔소리를 하지 마시오!"
이때 몸에 남색 장포를 걸친 젊은이가 다가왔다. 바로 강희황제였다.
위소보는 그제서야 비수를 갈무리하고는 앞으로 나아가 큰절을 하며 나
직이 말했다.
"황상, 크게 기뻐하십시오.  노......노...... 노법사께서 안에 계십니
다."
강희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가 나를 대신해서...... 통보를 해주게."
그리고 몸을 돌리더니 손짓을 했다.
"그대들은 모두 물러가라!"
뭇시위들이 물러간 이후 위소보는 선방의  문을 두어 번 가볍게 두드리
고 말했다.
"회명이 뵈옵기를 원합니다."
한참 시간이 걸렸으나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없었다. 강희는 참을 수 
없어 한 걸음 다가서며 문을  두 번 두드렸다. 위소보는 손을 내저으며 
아무 소리 말라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되자 강희는 목구멍까지 올라왔
던 부황(父皇)이란 소리를 억지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제서야 행전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장대사, 사형은 이미 공문(空門)으로  뛰어든 몸이라 속세의 인연은 
끝이 났소이다. 그러니 아무쪼록  바깥에 계신 분에게 그의 청수(淸修)
를 방해하지 말라고 전해 주십시오."
위소보는 고개를 돌려 강희를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은 참담했다.
강희는 이미 참을 수 없다는 듯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였다.
위소보는 두 손으로  가슴팍을 크게 몇 번  두들겼다. 그리고는 잇달아 
소리내어 울었다. 한편으로 울음을 터뜨리면서 한편으로는 부르짖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는 고아로구나! 외로운 
신세로서 나를 귀여워할 사람이 없구나! 사람 노릇을 한다고 무슨 재미
가 있으랴. 차라리 머리를 부딪쳐 죽어 버리는 것이 깨끗하겠다."
거짓으로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그가 어릴  적부터 익숙해진 장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고 그의 울음소리는 
매우 슬프게 들렸다.
이때 드륵! 하는  소리와 함께 선방 문이 열렸다.  행전이 문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소시주께서는 들어오십시오."
강희는 슬픔과 기쁨에 얽혀서는 곧장  방안으로 들어가 행치의 두 다리
를 얼싸 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행치는 가볍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바보 같은 아이야, 이 바보 같은 아이야."
그리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옥림과 행전은 고개를 숙인채  선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문을 닫아주었
다.
위소보는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여서 선방  안에서 들리는 행치와 
강희 부자 두  사람이 하는 말소리를 들었다.  강희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부황, 정말 그리워 죽을 뻔했습니다."
행치는 나직이 뭐라고 몇 마디  말을 했다. 그러자 강희가 울음을 멈추
었다. 두 사람이 말하는 소리는  지극히 낮아서 위소보는 한 마디도 들
을 수가 없었다. 그는 호기심이 많았지만 방문 틈을 살짝 열고 귀를 기
울일 수도 없어서 그저 문밖에 서서 기다렸다.
한참 후에야 어렴풋이 강희가 단경황후를  들먹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
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난번 노황야께서는 나에게 소황제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늙은 갈보
를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젖혀 두고 말씀드리지 않았는
데 지금 노황야께서는 마음이 달라졌는지 모르겠구나.)
잠시 후 행치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내가 너와 만난 것은 인연이 지나친 일이다. 차후로는 다시 찾아
오지 말아라."
강희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행치는 다시 말했다.
"네가 사람을 보내 나를 시중들어 주니 너의 효성은 갸륵하다 하겠으나 
출가인은 마겁(魔 )을 누차 겪어야 하는 법이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나직이 뭐라고 말을 주고받더니 행치가 말하는 소
리가 다시 들렸다.
"이제 너는 가보아라. 그리고  몸조심하고 백성을 사랑해라. 백성을 사
랑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 효성을 다하는 것이다."
강희는 그래도 헤어지기가 아쉬운 듯 떠나려 하지 않았다.
끝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행치는 강희의 손을 잡고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부자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서로 마주보았다. 강희는 부친의 손을 꼭 잡
았다. 행치가 말했다.
"너는 정말 훌륭했다.  나보다 훨씬 낫다. 나는  무척 마음이 놓이는구
나. 너는 안심하도록 해라."
이어서 가볍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방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잠
시 후 덜커덕 하더니 문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강희는 문앞에 엎드려 여전히  흐느끼기를 그치지 않았다. 위소보는 한
편에 서서 그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강희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더
니 위소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원 앞 돌계단 
위에 앉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닥았다.
"소계자, 부황께서는  네가 매우 훌륭했다고  하시더구나. 하지만 네가 
시중드는 것을 그만두라고 하셨단다. 부황께서는 신하들이 너무나 치밀
하게 받들고 보호한다면 오히려 그 어르신으로 하여금 출가인답지 않게 
만든다고 하시더구나."
출가인이란 말을 하게 되자 그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위소보는 노황야가 그가 시중을 다시 들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했
을 때 흐뭇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얼굴에는 조금도 기쁜 빛을 띄지 
않았다.
"노황야를 해치려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황상께서는 어쨌든 방법을 
강구하시어 암암리에 보호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겠지. 그 고약한 라마들, 흥! 제기랄! 도대
체 무슨 음모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사부님, 쌍소리가 늘었군요."
강희는 얼굴에 한 가닥 미소를 띄웠다.
"나의 누이가  시위들에게 배워 온 것이야.  그녀와 태후께서도 따라서 
산 위에 오셨다네......"
그러나 곧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부황께서는 그녀들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희는 말했다.
"소계자, 너는 정말 훌륭하다. 이번에 부황을 구했으니 공로가 적지 않
다."
"소신은 별다른 공로가 없습니다.  황상께서 그 누구를 파견하시더라도 
해낼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네. 부황께서는 자네가 그 어르신의 뜻을 잘 받들어서 한 사
람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고 액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칭찬을 하
더군."
"소신은 노황야께서 불을 질러 스스로 몸을 태우려고 하시면서 몸을 던
져 죄업을 가라앉히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깜짝 놀라 혼이 다 나갈 정도
였으며 똥 오줌을 바지에 갈길 정도였습니다."
강희는 놀라 물었다.
"뭐라구? 불을 질러 스스로를 태우겠다고? 그리고 몸을 던져 죄업을 사
하겠다고 하셨단 말인가?"
위소보는 있는 말 없는 말을 보태서 경과를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강희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위소보는 다
시 말했다.
"그저 소신이 다급한  김에 노황야에게 한 통의  냉수를 끼얹게 했으니 
그것이야말로 크게 불경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그대는 주인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잘했네, 잘했어."
그는 선방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노황제께서는 나에게 백성들을  사랑하시라고 하시면서 영원히 세금을 
증가하지 말라고 하셨네. 그 한마디 말은 지난번에도 자네가 나에게 들
려 주었지. 이번에 노황야께서 친히 당부하시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
네."
"도대체 세금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세금이란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이는 돈이  아닌가. 명나라의 
황제들은 지극히  사치를 좋아했다네. 거기다가  군사를 일으켜 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 돈이 모자라면 명령을 내려서 백성들로 하여금 더 많은 
세금을 바치도록  했지. 명나라에는 탐관오리가  많아서 황제가 일천만 
냥의 세금을 거두고자 하면 크고 작은 관리들이 적어도 이천만 냥은 더 
긁어 모았다네. 그렇지  않아도 백성들은 궁하기 이를  데 없는 몸인데 
조정에서는 작년보다 올해에 세금을 더  징수하고 내년에 세금을 더 징
수하니 백성들이 어찌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관가에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핍박한 것일세."
"알겠습니다. 원래 명나라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오히려 황제와 
벼슬아치들이 나쁘기 때문이었군요."
"그렇지 않구? 명나라 숭정(崇禎)연간에 천하의 백성들은 모두 먹을 것
이 없게 되었네. 그래서  동쪽에서도 반란을 일으키고 서쪽에서도 반란
을 일으키게 되었지. 하남에서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게 되면 협서성에
서 다시 반란을 일으켰네. 산서성의 반란을 진압하게 되면 사천성에 또
다시 반란이 일어나곤 했지. 그 곤궁한 사람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떠
돌아 다니며  노략질을 했는데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였지. 명나라는 
바로 이러한 곤궁한 사람들의 손에 망한 것이지. 그들 한나라 사람들은 
떠돌이 도적들이 난을 일으켰다고  했지. 기실은 난민이 떠돌이 도적이 
된 것은 모두 다 조정에서 그렇게 몰아세운 탓이라네."
"원래 그랬군요. 노황야께서 황상에게 영원히 세금을 더 추가하지 말라
고 하셨고 그렇게 된다면  천하에는 떠돌이가 없게 되겠군요? 황상께서
는  조생어탕이시니 철통같은  강산은 그야말로  만세,만세,만만세로군
요!"
"요순우탕의 노릇을 하는 것이 어찌 수월한 노릇이겠나?"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천지회나 목왕부의 사람들은 청나라 오랑캐들이 우리 한나라의 강산을 
차지했다고 해서 하나같이 이를  부드득 갈고 있다. 소황제는 명나라의 
황제가 나쁘다며 오히려 그들 오랑캐의 황제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모릇 사람이라면 자화자찬하기 마련이 아닌
가 말이다.)
강희는 다시 말했다.
"부황께서는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네. 이  몇 년간 그가 조용히 수도를 
하면서 참선한 결과 우리 만주사람들이  옛날에 한 짓과 소행을 생각하
면 종종  부끄러워져서 등줄기에서 땀이  흘러내린다고 하셨네. 명나라 
숭정은 바로 유족(流族)이자성(李自成)이 핍박하는 바람에 죽게 되었는
데 오삼계가 우리 청나라의 군사를  빌어서는 이자성을 때려 부수게 되
었고 명나라 황제의 원한을  갚아주었다. 그러나 한나라 백성들은 대청
나라에 고맙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들을 원수처럼 여기고 있
다. 그대는 이게 무슨 까닭인지 알겠는가?"
"아마도 그들이 멍청한 탓이겠죠. 본래 천하에는 멍청한 사람들이 많고 
총명한 사람들은 적습니다. 아니면  그들이 은혜를 입고도 의리를 저버
렸는지도 모를 일이죠."
"그렇다고는 할 수 없네.  한나라 사람들은 우리들을 오랑캐라고 하며, 
외족(外族)이 그들의 아름다운 강산을 점령했다고 한다네. 청나라 병사
들이 중원으로 들어와 도처에서 살인방화를 일삼고 무수한 백성을 해쳐 
죽였으니 우리  만주인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세."
위소보는 본래 한나라 사람이었다.  그런데 강희는 그에게 정황기의 만
주 사람이라는 자격을 내렸기 때문에 위소보에게 말을 할 때 우리 우리
하면서 그를 만주 사람처럼 대우한 것이다. 기실 국가의 대사를 이야기
하는 데 있어서 위소보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강희는 막 부친과 해
후를 하게 되자 마음이  격동되었고, 부황의 타이르던 당부를 상기하게 
되어 이 나이 어린 심복과 국가 대사를 논하기에 이른 것이다.
"소신이 양주에 있을  때 옛날 청나라 병사들이  사람을 죽였던 참혹한 
일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양주십일(揚州十日)과 가정삼도(嘉定三屠)는  그야말로 부지기수의 사
람을 죽였지. 그것은 우리 대청나라에서  한 아주 못된 짓이었다네. 그
래서 나는 성지를 내려 양주와 가정 사람들이 삼 년동안 세금을 바치지 
않도록 할 생각이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양주의 사람들이 삼 년 동안  전량을 바치지 않게 된다면 모두들 주머
니가 돈으로 두둑해지겠군. 여춘원의  장사가 크게 흥청거리겠는데? 어
떻게 방법을 강구해서 소황제로 하여금  나를 양주로 보내 일을 하도록 
하게 할 수 없을까?)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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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자객의 침입

(엄마보고 갈보 노릇을  그만두라고 하고 내 스스로  세 곳에 기녀원을 
차릴까 보다. 그리고 내가 주인이  되거나 전주가 되어 열흘 동안 크게 
노름판을 벌여서 양주십일이라고 하는 큰 일을 벌여 봐? 막대한 은자를 
가지고 가정으로 가서 크게 빌어먹을 세 번 노름판을 벌이겠다. 그렇게 
된다면 가정삼도(嘉定三賭)가 되지 않겠는가?)
그는 다시 생각했다.
(노황야와 황상께서는 모두 가정삼도에  너무나 많은 살인을 했으며 그
야말로 아주 큰 참혹한 사건이었다고 하시는데 어째서 세 번 노름을 하
는데 적지 않은  사람을 죽이게 되었지? 가정이란  곳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곳인지  모르겠다. 그곳의 사람들은  노름하다가 칼부림을 하는가 
보다. 단단히 조심을 해야겠구나.)
강희는 물었다.
"소계자, 그대의 뜻은 어떤가?"
위소보는 재빨리 말했다.
"좋죠. 무척 좋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모두들 먹을 밥이 있게 되고 돈
이 있어서...... 그 누구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게 되겠지요."
그는 돈이 있어서 노름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
으나 노름을 한다는 말은 쑥 빼버리고 얼버무렸다.
"먹을 밥이 있고 쓸 돈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는 법은 없다.  그대가 서울을 나서게 되었을 때  시위 한 사람을 보내 
와서는 왕옥산의 역적들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이미 친히 그에게 
몇 번 물은 적이 있다네."
위소보는 속으로 깜짝 놀라 황망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황상께서는 소신에게 쓸데없는 일에  다시 뛰어들지 말라고 했는데 이
후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대는 앉게. 그  일은 매우 잘했네. 그것은 등안히  여길 게 아닐세. 
이후에도 역시 나서서 간섭해야 될 일일세."
"네, 네."
그러나 속으로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시위에게 성지를  전해서 그대를 크게 꾸짖은  것은 남의 이목을 
가리자는 것이고 반적으로 하여금 방비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일세."
위소보는 크게 기뻐 몸을 훌쩍  일으켰다가 다시 주저앉으며 나직이 말
했다.
"소신은 이제 알았습니다. 원래  황상께서는 오삼계라는 반적이 알아차
릴까봐 두려워했군요?"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인지  아직은 확정할 수 없네. 하
지만 그는 일찍이 나를 섬기려 하지  않았고 내가 어린 것을 업수이 여
겨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지."
"황상께서 조그만 수단을 펼치시어  그로 하여금 무서움을 알게 하도록 
하십시오. 오삼계같은 빌어먹을 것들이 뭐가 대단하겠습니까? 황상께서 
작은 새끼손가락을 뻗쳐 그를  횡소천군하고 고산유수가 되도록 하십시
오."
강희는 미소했다.
"그 두 마디의 숙어는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했군. 마땅히 손가락을 뻗
쳐서 횡소천군하며 그가 낙화유수(落花流水)가 되도록 공격해야 된다고 
말해야 될 것일세."
"네, 네, 네. 소신은 몇 달 동안 화상 노릇을 했지만 학문은 조금도 진
보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종종 황상을 시중들고 성어(成語)를 사용하여 
횡소천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낙화유수가 되도록 만들겠습니
다."
강희는 껄걸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고보니 우울하던 감정이 약간 가라
앉아 나직이 말했다.
"오삼계는 군사를 잘 쓴단 말일세.  그리고 그의 휘하에는 명장과 정예
병들이 적잖게 있다네. 만약 그가 정말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면 복건성
의 경정충, 광동성의 상가회 세  번왕이 연합하게 될 것이야. 우리들은 
천천히 해야 되네. 반드시 계획을 잘 세우고 움직여야 한다네. 일단 손
을 쓰게 되면, 빌어먹을 오삼계로 하여금 낙화유수가 되어 똥오줌을 바
지 가랑이에 갈기도록 만들어야지."
강희는 부지런하고 또 공부하기를  좋아했다. 매일 친히 정무를 살피고 
나머지 시간은  한림학사들로 하여금 책을  강의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매일 경서와 시, 그리고 글을 읽게 되었는데, 몇 마디의 말에 빌어먹을
이니 똥오줌을  바지가랑이에 싼다느니 하는 말들을  섞어 쓰자 퍽이나 
조화를 이루어 재미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는 슬퍼하던 마당인데 다행히  위소보가 재미있는 말들을하여 우울한 
마음을 풀어주게 되었다. 거기다가  역적을 제거하고 난을 평정하는 큰
일을 논하게 되자 더욱더 가슴속에  품고 있는 웅심이 격발되었던 것이
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정원에서 네 개의 돌맹이를 주워서는 줄
지어 땅바닥에 나열하고는 말했다.
"한군사왕(漢軍四王)은 동쪽과 남쪽, 그리고 서쪽으로 갈라지도록 만들
어 그들이 연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네. 정남왕(定南王)공유덕(孔有
德)이란 녀석은  일찍이 죽었기 때문에 다행이야.  거기다가 딸 하나만 
남겨 두었으니 상대하기가 수월하지."
그러면서 그는 가볍게 발을 들어 돌맹이를 걷어차고 다시 말을 이었다.
"경정충은 용기는 있으나 지모가 없어 걱정할 것이 없네. 그저 그와 대
만의 정씨가 연맹을 맺지 못하도록 하면 된다네."
그는 다시 발을 들어서는 한 조각의 돌멩이를 걷어차고 말했다.
"상가희 부자는 불화하고 있네. 그리고  두 아들은 그야말로 불과 물의 
기세로 서로를 쓰러뜨리려고 하고 있으니  아마 그도 별힘은 쓰지 못할 
것일세."
그는 세 번째의 동멩이마저 차  버렸다. 이렇게 되자 가장 큰 한조각의 
돌멩이만 남게 되었는데 그는 그 돌멩이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황상, 이것이 오삼계입니까?"
강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위소보는 욕을 했다.
"이 간적은 늙어서도 죽지 않아  우리 만세얄 하여금 크게 골치를 썩이
게 하는군요! 황상, 그대가 그의 몸에다가 오줌을 한 번 갈기도록 하십
시오."
강희는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고 동심이 크게  이는지 정말 바지 
가랑이를 내려뜨리고는 그 돌멩이에다가 오줌을 갈기면서 입을 열었다.
"그대도 이리 오게."
위소보는 크게 소리내어 웃으며 역시 돌멩이에다가 오줌을 갈기며 말했
다.
갑자기 그는 책을 들고  이야기꾼이 하던 삼국고사를 상기하게 되었다. 
그 책에서 관운장이 물로 칠군(七軍)을 잠기가 하더라는 대목을 상기하
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소계자가 물로써 칠군을 잠기게 하더라."
강희는 더욱 크게 웃으면서 바지를 끌어올렸다.
"그 언젠가 우리가 이 못난 반적을 잡게 되었을 때는 정말 그의 몸에다
가 오줌을 싸야겠네."
강희는 다시 돌계단 위에 앉았다.
이때 절간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크게 났다. 그러나 떠드는 사람은 없
었다.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이  바깥에 모여 있는 모양이었다. 위소보
는 말했다.
"아마 그들이 고약한 라마들을 모조리 잡아온 것 같습니다. 황상께서는 
그야말로 홍복이 제천(齊天)입니다. 공교롭기 이를데 없이 마침 이때에 
달려와 그 고약한 라마들을 일망타진 할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은 결코 공교로운 일이 아닐세.  나는 그대가 은밀히 전하는 전갈
을 받고 사람을 보내 사찰을  지켰지. 그대의 은밀한 전갈을 전해 들은 
이후 급히 달려왔으나 역시 한 걸음  늦고 말아 그 고약한 라마들로 하
여금 어가를 경동케 했구만!"
위소보는 의아하여 물었다.
"소신이 언제 은밀한 전갈을 보냈다는 말씀입니까?"
"내가 시위들을 소림사로 보내 성지를  전하게 했을 때 그들은 한 몽고
왕자와 몇 명의 라마들 그리고  몇 명의 무관을 보았다고 하더군. 그렇
지 않은가?"
"그렇죠."
"그때 그대는 그들에게 몰래 조사를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 몇 사람
들은 정말 일을 애써서 해주었네. 대뜸 조사를 한 결과 그 몽고 왕자는 
갈이단이라는 것을 알아냈지. 그리고 무관은 마보라는 자로서 오삼계라
는 녀석의 휘하에 있는 총병인  것을 알았지. 그들은 라마와 모반을 일
으키기로 결탁을 하고 부황에게 더욱더 불리한 일을 하려고했네."
위소보는 무릎을 탁 쳤다.
"원래 그랬었군요.  소신은 그들이 슬금슬금 남의  눈치를 보는 행동을 
보고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바로 오삼계의 부하일 줄은 
몰랐습니다."
기실 그 사람들의 성명내력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조제현 등
에게 조사하도록 명한 것은 원래  그 녹의소녀를 찾자는 것이고 덤으로 
오삼계를 모함하자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소황제가 오대산으로 달려오
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었다.
강희는 말했다.
"그 세 패거리의 사람들은 뒤에  서로 헤어지게 되었지. 시위 장강년은 
라마들을 뒤따라가 그들이 크게 사람들을  모아 오대산으로 가서 한 중
요한 인물을 잡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지. 그는 사태가 중대한 
것을 모르고 또  며칠 더 따라가 조사를 한  이후에야 북경으로 돌아와 
상주를 하더군. 나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초조해졌네. 즉시 급히 출발을 
서둘렀지."
"오삼계, 그 반적이 그토록 대담하게스리  수 천이나 되는 라마들을 보
내 노황야에게 죄를  짓다니, 그거야......그거야말로 공공연히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강희는 쉿 하고 말했다.
"작은 소리로 말하게. 나는 그저 그의 휘하 총병이 그들 라마들과 짝을 
지어 동행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네. 그가 정말 그대로 반란을 일으
키려고 하는지 아직도 확실히 모르는 일일세."
"틀림없이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틀림없어요. 만약 그가 좋은 사람
이라면 어찌 휘하의 장수를 보내  그 고약한 라마들과 음모를 꾸며서는 
노황야를 몰래 해치려고 했겠습니까?"
"그는 물론 좋은 사람이 아닐세."
그리고 잠시 속으로 생각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아직도 어리고 군사를 이끌고 싸움을 한다면 아직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네. 그러니까  우리들은 몇 년 더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일세. 내가 좀더 크게 되고 그가 좀더 늙게 되기를 기다려
야 한단 말일세. 소계자, 그대는 너무 성급히 굴지 말게. 하루를 더 보
낼 수 있다면 우리에겐 그만큼 이득이고 그에게는 손해가 될 것이네."
위소보는 다급해져서 말했다.
"만약 그가 늙어서 죽어 버린다면  그에게 덕을 베푸는 결과가 되지 않
겠습니까?"
"그거야말로 운수가 좋은 일이지."
그리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부황께서는 조금 전 나에게 당부하셨네.  될 수 있으면 군사를 이끌고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셨네. 만약 싸움을 하게 된다면 승패
를 막론하고 병졸들이  죽거나 상처를 입는 것은  물론, 천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고초를 당하게 될지 모른다고 하셨다네. 그렇기 때문에 오
삼계가 만약 일찍 죽어 버리고 내가  손을 쓰게 될 때까지 기다리지 못
하게 된다면 물론......"
그가 잠시 여유를 두자 위소보가 그 말을 받았다.
"그야말로 정말 재미없는 노릇이 되죠."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백성과 병졸들에게는 정말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소계자, 그
대가 놀고 싶다면 언제고 한 번  나는 그대롤 데리고 요동에 가서 검은 
곰이나 호랑이를 잡도록 하겠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부르짖었다.
"그거 정말 묘합니다. 묘해요."
"내가 여섯 살 나던 해  부황께서는 나를 데리고 바로 요동으로 사냥을 
가셨지. 그런데 지금......"
그는 천천히 문가로 다가가서는 손으로 나무문을 어루만지면서 그만 울
음을 터뜨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억지로 울음을 참는 듯 했으며 잠
시 후 땅바닥에 엎드려서는 몇 번 큰절을 하고 나직이 말했다.
"부황께서는 보중하십시오. 저는 이제 가보겠습니다."
위소보도 따라서 큰절을 했다.

강희는 대웅보전으로 나아갔다.  강친왕 걸서(傑書)가 효기영의 도통인 
찰이주, 어전시위총관  다륭, 그리고 색액도 등의  어가를 따라온 대신
들, 전봉영 도통, 호군영 도통  등을 데리고 대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황제가 나오는 것을 보자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뭇신하들은 몸을 일으킨 이후 그를 슬쩍 훔쳐 보았다. 소황제의 눈가가 
무척 붉은 것이 크게 한바탕 운 것이 틀림없는지라 모두 의아하게 생각
했다.
그러고 보니 위소보의 얼굴에도 눈물 자국이 있지 않는가? 그리하여 뭇
신하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생각했다.
(틀림없이 위소보 저 어린 녀석이  황상을 울렸구나! 두 소년이 도대체 
어떤 장난을 쳤는지 모르겠군.)
순치가 오대산에서 출가했다는 사실을 강희는 엄밀에 붙이고 있었다.
강친왕이 앞으로 나아가 상주했다.
"황상에게 알립니다. 수천 명의 라마들이 청량사 밖에서 시끄럽게 다투
는 것을 이곳에 잡아왔으니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분부를 내려 주십
시오."
"우두머리 되는 자를 데리고 오게."
찰이주는 세 명의  늙은 라마를 데려왔는데 그들의 발과  손은 모두 다 
쇠사슬로 체워져 있었다.  세 명의 라마는 강희가  바로 당금의 황제인 
줄 모르고 매우 뻣뻣한 태도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입속으로 중얼중얼 
말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강희가 갑자기 ㅆ라ㅆ라 하고 말했다. 뭇신하
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 누구도 황상께서 서장어를 알고  계시리라는 것을 생각지 못했던 것
이다. 기실 이  라마들은 몽고 라마들이었고 결코  서장에서 온 자들이 
아니었다.
강희는 그들에게 몽고말을  했던 것이다. 잠시 동안  이야기를 하자 세 
명의 라마들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강희가 말했다.
"그들을 옆방으로 데리고 가게. 짐이 엄밀히 그들을 심문하겠네."
다륭은 세 사람을  대전의 옆에 있는 한 칸의  불경을 강의하는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강희는 위소보에게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은 그 방으로 들어갔다. 위소
보는 손을 뒤로 돌려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비수를 뽑아 세 명의 라마
들의 눈, 목, 코, 귀 여러곳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강희는 몽고 말로 
큰소리로 몇 마디 물었다. 한 명의 가장 늙은 라마가 공손한 태도로 일
일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 묻고 대답하기를 한참 동안 했다. 위소
보는 강희의 음성이  커지게 되고 약간 노기를 띠울  때면 즉시 비수를 
들고 위협을 했고, 강희의  안색이 약간 부드러워지면 옆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그 라마에게 고개를 끄덕여 격려해 주었다.
강희는 그에게  반 시진 남짓하게 질문을  하더니 그제서야 시위들에게 
세 명의 라마들을 데리고  나가도록 했으며, 위소보에게 문을 닫으라고 
한 이후 입을 열었다.
"그것 참 이상하군!"
강희는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더니 물었다.
"소계자, 부황이 이곳에서 출가한 사실을 몇 사람이나 알고 있는가?"
"황상과 소신 외에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노황야의 사부이신 옥림
대사와 그분의 자세이신 행전대사이지요. 본래 태감 해대부라는 사람이 
있었으나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청량사의 주지 징광대사도 자세한 사
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밖에는 다만 노......노......그 태후뿐이
지요."
"맞아,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부황까지 합쳐서, 그리고 나
와 그대를 포함하여 여섯 사람에 지나지 않아. 그런데 내가 방금 그 몽
고 라마에게 질문을 하니 그는 서장납살 달뢰활불(達賴活佛)의 명을 받
고 청량사로 가서 한 분의  화상을 서장으로 모셔 가려고 했다고 했어. 
나는 자세히 물었지. 청량사의 어느 화상이 어떠한 인물인데 납살의 활
불이 그를 데려가는 것인가 하고  되풀이해서 물었지만 그는 확실히 모
르고 있더군. 그리고 그는 최후로  이 분 대화상이 밀종의 많은 다라니
주어(다羅尼呪語)를 알고 있다더군. 그리하여 활불은 그와 같이 은밀한 
주문을 알아내어 불법을 크게 떨치려 했다는 것일세. 이거야 전혀 터무
니없는 소리겠지만 그의 모양으로 볼 때 거짓말 하는 것 같진 않아. 십
중팔구 상대방에서 그와  같이 속이니까 그는 그 말을  정말로 믿은 것 
같네."
"네, 그 서장 활불이 노황야의 신분을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활불을 꼬드겨 사람을 보내 노황야의  위엄을 거슬리게 한 사람은 아무
래도...... 아무래도 십중팔구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갑자기 두려움을 느끼고 말했다.
"황상, 소신은 정말 입을......입을  딱 다물고 있었습니다. 사태가 중
대하니만큼 꿈에도 반마디의 말도 누설한 적이 없습니다."
"그대가 말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있다네. 옥림과 행전 두 
분도 마찬가지야. 소림사의 회총방장과  징광방장은 설사 어느 정도 짐
작을 했더라도 덕망 높은 고승이니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토로하지 않
을  것이네.  그렇게  된다면  계산해 볼  때  오로지  ......그......
그......늙은 ......늙은 계집년밖에 없군."
"맞습니다. 맞습니다. 반드시 그 늙은.....그 늙은....."
"그녀는 자녕궁에 궁녀로  변장을 한 남자를 몰래  숨기고 있었던 것을 
나는 친히 목격한  바이네. 그녀가 단경황후를 살해한  데 대해 부황은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한 나머지 여전히 해대부를  궁으로 되돌려 보내 
이 일을 조사하도록 하지 않았는가?  그대는 그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
고 또 내 곁에 있지 않은가? 흥흥! 그 늙은 계집이 어떻게 제대로 잠을 
잘 수 있겠는가?  그녀는 손을 써서 부황을 해치려고  할 게 틀림없네. 
부황을 해치고 나를 없앤 후 다시 그대를 죽여야 그녀는 마음이 편안해
지겠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늙은 갈보와 신룡교는 이미 결탁을  하고 있다. 그녀는 이미 노황야가 
죽지 않은 것을  알고 있으니 반드시 홍교주에게  보고를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  라마들이 오대산에 온  것은 홍교주와 관계가  있을 것이
다.)
그러나 그 자신이 신룡교의 백룡사라는  지위에 있으니만큼 이 일을 황
상에게 언급할 수가 없었다. 강희는 그의 얼굴빛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는 물었다.
"왜 그러느냐?"
"소신은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황상의 추측
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반드시 그 늙은...... 태후께서 말한것일 겁
니다. 그녀 이외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강희는 손을 뻗더니 탁자 위를 한 번 심하게 내려치며 이를 갈았다.
"그 계집이 나의 생모(生母)인  모후(母后)를 해쳐 죽이고 또 부황으로 
하여금 출가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내가......내가 그 계집을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죽이지 않는다면 이 가슴속에 맺힌  한을 풀 수가 없다. 그러나 부황께
서는 굳이 나에게  그녀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노황야께서는 그대에게 늙은 갈보를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나에게 죽
이지 말라는 말씀은 없었소이다.)
그는 말했다.
"황상께서는 너무 번거롭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태후는 많은 악한 짓을 
했으니 결국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황상께서는 용목(龍目)을 
뜨시고 용이(龍耳)를 바짝 세우시고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강희는 매우 총명하여 이미 그 뜻을 알아챘다.
"맞았어! 그 계집애는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결코 좋은 꼴을 보지 못
할 것이야."
그는 방안을 서성거리더니 말했다.
"지금의 계책으로서는 반드시 뭇라마들이 다시 부황의 위엄을 거슬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네. 가장 좋기로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보내 
서장의 활불이 되게 하는 것일세.  천하의 라마들은 모두 다 그가 관할
하고 있으니 그때는 전혀 후환이 없을 게 아닌가?"
위소보는 거기까지 말을 듣더니 그만 혼비백산해서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나는 소라마로 가장을 하고 있는데 정말 가짜가 진짜가 될라. 황
상의 입은 금쪽 같다고 했으며 그  금쪽에서 한 번 나온말은 다시 만회
하기 어려우니 내가 선수를 쳐야겠다.)
그는 재빨리 말했다.
"황상, 서장 활불 노릇을 소신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강희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눈치가 꽤 빠르군! 기실  서장 활불이 되는게 뭐가 나쁜가? 그
가 관리하고 있는 곳은 오삼계의 운남성보다 더욱 크다네. 활불이 된다
는 것은 바로 서장왕이 된다는 것이라네."
위소보는 연신 손을 내저었다.
"저는 차라리 황상의 곁에서 시위  노릇을 하겠습니다. 일단 활불이 된
다면 황상과 함께 있기가 어려워집니다."
이 몇마디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는 강희와 오랫동안 사귀어 왔
고 두 사람은 나이가 비슷했다. 그리고 서로 의기가 투합했다. 비록 한 
사람은 소황제였고 한 사람은 소시위였지만 이미 절친한 친구처럼 되어 
있었다.
강희는 방문을 열고 걸어 나갔다. 그리고 찰이주와 다륭에게 말했다.
"그대 두 사람은 힘써서 일을 했으니 상을 내리겠네."
찰이주와 다륭은 크게  기뻐 절을 하며 은혜에  감사했다. 강희는 말했
다.
"위소보는 이곳에서 나를 대신해서는  출가하여 중이 되었을 뿐만 아니
라 크게 공을 세웠네."
위소보 역시 절을 하고 은혜에 감사드렸다.
"이제 위소보는 기간이 이미 찼으니 나를 따라 북경으로 되돌아 가야겠
는데 이번에는 찰이주가 이 년  동안 출가할 차례네. 하지만 화상이 되
는 것이 아니고 오대산의 대라마가  돼야 하네. 그대는 천 명이나 되는 
효기영의 능력있는 군관이나 군사들을  뽑아 함께 라마가 되게. 그리고 
나누어 산 위의 십여 곳의 대라마사에 머물도록 하게. 뭇군사들이 출가
한 기간에는 군량과 은자를 배로 줄 것이며 따로 상을 내리겠네."
찰이주는 어리둥절해졌다. 비록 원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황은에 고맙다
는 인사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착한 일을 남에게  알리게 된다면 정말 착한 일이  아니라고 했네. 이 
일은 뭇사람들에게 입을 꼭 다물고 누설하지 못하도록 하게. 그렇지 않
을 때는 군법에 따라 조금도 용서하지 않겠네. 다륭은 오대산의 뭇라마
들을 모조리 잡아가 북경으로  압송해서는 가두도록 하게. 그리고 사람
을 보내 달뢰 활불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그가 한 마디 말하면 찰이주와 다륭은 꼭꼭 대답을 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뻤다.
(나는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었군! 다시는 화상이 될 필요가 없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그들이 대담하게도 노황야의 위엄을 거슬리게 되었는데도 황상께서 목
을 자르지 않은 것이다. 한평생  가두어 둔다는 것도 그들에게 크게 덕
을 베푸는 것이리라.)
강희가 다시 말했다.
"위소보, 그대는  효기영의 정황기도통 겸  어전시위부총관에 임명하겠
네. 찰이주, 그대가 대라마의 노릇을 잘하면 북경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대를 다시 외성(外省)으로 나가서 제독 노릇을 하도록 해주겠네."
두 사람은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찰이주는 매우 좋아했다. 북경성에는 대관들이 너무나 많았고 효기영의 
도통은 황제의  심복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효기영은 팔기(八旗)에 
제각기 하나의 도통이 있기 마련이었고  그렇게 되니 여덟 개의 도통이 
있는 셈이니 세도가 당당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외성으로 
나가서 제독을  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위풍당당할  뿐만 아니라 재물이 
듬뿍 들어오기 마련이었다.

이때는 이미 새벽이었다. 강희는  청량사로 가서 부처님에게 인사를 드
리겠다고 했다. 청량사밖에 이르자 칼과 창이 땅바닥에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풀 사이와 바위 위에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어젯밤 뭇라마들을 붙잡아갔을 때 한바탕  격전을 벌이게 되었고 그 싸
움은 매우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강희는 청량사로 들어가 여래를 참배
하고 문수보살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뒷산의 순치가 참선을 하고 
있던 조그만 절간으로 가서 살펴보았다. 조그만 절간은 이미 모조리 타
고 없었다. 강희는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부황이 어젯밤 도망치지  못했더라면 바로 이 절간에서 타죽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나는......나는......)
그는 색액도에게 분부하여 백은 이천 냥을 청량사에 시주하여서는 달리 
조그만 절간을 짓도록 했다.
대웅보전으로 돌아오니 소림사의 승려들이 나와서 인사를 올렸다. 그들
은 이 젊은 시주의 시종이 무척  많고 기세가 등등한 것을 보고 자연히 
크게 내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며 어쩌면 친왕이나 패륵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징통 등은 그 향객들로 가장한 시종들 가운데 적잖
은 사람들이 몸에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강희는 부친이 출가한 곳에 오자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말했다.
"나는 보찰에서 사오 일 머무르고 싶은데 괜찮겠소?"
위소보가 말했다.
"대시주께서 머물러 계시겠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라던 일이......"
그 때 별안간 쿵 하는 소리가  커다랗게 일면서 흙과 모래가 다투어 떨
어졌다. 대웅보전의 지붕에 이미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리고 하얀 그림자
가 어른거리는 가운데 한 무더기의 하얀 물체가 곧장 떨어졌다. 놀랍게
도 그것은 몸에 백의를 걸친  승려였다. 그는 손에 장검을 쥐고 질풍과 
같이 강희에게 덮쳐들며 부르짖었다.
"오늘 대명나라 천자의 원수를 갚으리라!"
강희는 급히 뒤로 물러섰다. 다륭과  찰이주, 강친왕 등은 황제의 옆에 
있었으나 모두 무기를 지니지 못한 터였다. 그 사람은 왼쪽 소맷자락을 
한 번 벼락같이 휘둘렀다. 그러자  강맹하기 이를 데 없는 세찬 바람이 
크게 파공성을 일으키며 뻗쳐오는 것이  아닌가? 다륭 등 칠팔 명은 그
대로 서 있지를 못하고 동시에 뒤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징심과 징광 등은 일제히 부르짖었다.
"사람을 해치면 안되오!"
그리고 손을 뻗쳐 막으려고 했다.
그러자 그 승려는 다시 한  번 소맷자락을 떨쳤다. 소림파 징자 항렬의 
승려들은 각기 절기를 펼쳐  해소시켰다. 뭇승려들이 호조수와 용조수, 
그리고 염화금나수, 금룡공 등 등을  펼쳤으나 그 사람을 잡을 수 없었
다.
(천하에 이토록 뛰어난 인물이 있었던가!)
그 백의 승려는 조금도 멈칫거리지  않고 검을 펼쳐서는 강희를 찔러갔
다. 강희의 등이 부처님 앞에  모셔 놓은 공탁에 닿아 뒤로 물러설래야 
물러설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급히 달려들어 강희의 앞을 막았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검
의 끝이 그의 가슴팍을 찔렀다.  장검이 휘청 하고 구부러졌다. 위소보
는 가슴팍이 격렬하게 아픈 것을  느꼈다. 그는 이미 비수를 뽑아 손에 
들고 있었는데 본능적으로 손을 휘둘러  적의 검을 두 토막으로 동강내
고 말았다.
백의의 승려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때 징관이 부르짖었다.
"나의 사숙을 해치지 마시오!"
그리고 왼손으로 백의승려의 오른쪽 어깨를 후려치려고 했다. 백의승려
는 부서진 검을 내던지더니 손을 뒤로돌려 막았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징관은  그 순간 가슴팍에서 뜨거운 기혈이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고 두 눈에 불똥이 튕기는 것을 깨달았다.
백의승려는 칭찬했다.
"훌륭한 재간이군!"
그는 사방에 고수들이 무척 많은 것을 보고 또한 조금 전 일검에 그 소
화상의 가슴팍을  꿰뚫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더욱더 경악해 마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을  쭉 뻗치더니 어느덧  위소보의 앞섭자락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벼락같이 몸을 솟구쳐 대전  위의 지붕에 생긴 뻥뚫린 구멍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야말로 재빠르기 이를 데 없었다.  대전에는 삼십 육 명의 소림사 고
수들이 있었으나 한 사람도 막지를 못했다.
징심과 징광 등은 급히 그  뻥 뚫어진 구멍으로 뒤따라 몸을 솟구쳤다. 
뒷산 쪽에서 하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어느덧 허연 그림자는 
이미 십여 장 밖에서 달려가고 있었다.
이 사람의  경신법의 훌륭함은 실로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뭇승려들은 
뒤쫓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본사의 방장이 사로잡혔으니 뒤쫓
아 잡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쫓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삼십 육 명의 승려들은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뒤쫓아갔을 때는 이미 눈 
깜짝 할 사이에 그 하얀 그림자는 산골짜기를 가로지른 후였다.

{{{{大 河 歷 史 小 說
鹿     鼎     記
}}
}}
15. 태후를 죽여라.

위소보는 구름을 타고 안개 위를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들이 뒤로 스쳐지나 갔으며 갈수록 산 위로 높이 오르고 있
었다. 그는 속으로 여간 두렵지 않았다.
(이 땡초중은 일검으로 나를 찔렀으나  내가 죽지 않은 것을 보고 크게 
오기가 치밀었던 게 분명하다.  그리하여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
먹고 만장의 높은 봉우리 위에서 나를 던져 죽는지 죽지 않는지를 보려
는 게 아닐까?)
과연 그의 짐작대로 백의승려는 갑자기 위소보를 내던졌다.
위소보는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데 곧이어 등이 땅에 닿았다.
백의승려는 그를 바라보더니 냉랭히 말했다.
"소림파에는 호체신공이라는 것이 있어 칼과 창도 그 몸을 뚫지 못한다
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네까짓 소화상이 그것을 알고 있었구
나."
위소보는 그 사람의 음성이 맑은데다가  다소 간드러진 데가 있음을 느
끼고 의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두 눈썹은  초생달 같았다. 그리고 
눈에는 수심이 가득 어려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는 지극히 아름다운 여
자였다. 그리고 나이는  약 삼십여 세 정도 되어  보였다. 머리는 빡빡 
깍았고 정수리에는 계를 받을 때 생긴  향파 즉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
는 것을 보니 그는 본래 여승이 아닌가? 
위소보는 속으로 기뻤다.
(여승이라면 아무래도 화상보다 말하기가 낫지.)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런데  가슴팍이 격렬히 아파왔다. 
조금 전 그녀에게  일검을 찔렀을 때 보의가 몸을  보호해 주긴 했으나 
그녀의 내력이 너무나 심후하여 그에게  심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여
전히 아프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어이구 하는 소리와 함께 다
시 쓰러지고 말았다.
그 비구니는 냉랭히 입을 열었다.
"나는 소림신공이 대단한 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별 게 아니었구나.?"
"솔직이 사태에게 말씀드려서 청량사의 대웅보전에는 삼십 육명의 소림
승려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달마원의 수좌이고 어떤 
사람은 반야당의  수좌입니다...... 어이쿠,  어이쿠...... 소림파에서 
명성이 쟁쟁한 십팔나한도 모두  그 안에 있습니다. 하나같이 소림파에
서는 으뜸가는 고수들이죠. 그들 삼십육  명도 사태 한 사람을 당해 내
지 못했습니다...... 아이쿠......"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진작 이럴 줄  알았더라면 저 역시 소림사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
다. 아이쿠...... 차라리 사태를 사부님으로 모시는 것이 백배나 더 나
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의여승은 싸늘하고도 준엄한 얼굴에 한 가닥 웃음을 띄우고 물었다.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소림사에서는 몇 년 동안 무예를 익혔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황상을 찔러 죽이려 했고 또 대명나라 천자의 원수를 갚겠다고 
말했으니 자연히 반청복명하려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천지회
와 친구인지 적인지 모르니 역시 잠시 실토하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저는 양주에 사는 궁한 집의 고아입니다. 아버님은 오랑캐에게 살해당
해 어릴 적부터 황궁으로  들여보내져 소태감이 되었지요. 이름은 소계
자라고 한답니다. 그 후에......"
백의여승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입을 열었다.
"소태감 소계자라고? 네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구나. 오랑캐 
조정에 대간신 오배라는 자가 있었는데 소태감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했
다. 그는 네가 죽인 것이냐?"
위소보는 오배의 이름에 대간신이라는 석 자가 더 붙는 것을 보고 재빨
리 말했다.
"네, 제가 죽인 것입니다."
백의여승은 반신반의했다.
"정말 네가 죽인 것이냐? 그 오배의 무공은 매우 고강하여 만주 제일용
사라 일컬어지고 있다. 네가 어떻게 그를 죽일 수 있었느냐?"
위소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오배를  잡게 된 경과를 
말했다. 어떻게 소황제가 명령을 내려서  손을 쓰게 되었는가, 또 어떻
게 자기가 오배가 방비하지 않는 틈을 타서 한칼로 찔렀으며 또 어떻게 
하다가 향로의 재를 그의 눈에다  뿌리고, 그 후 어떻게 뇌옥에서 그의 
등을 찔러 죽이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했다.
백의여승은 조용히 듣고 나더니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장씨 집안의 그 과부들은 정말 자네에게 감사
해야겠군."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어르신은 장씨 집안의 셋째 젊은 마나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녀는 
이미 나에게 사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한 하녀까지 저에게 딸려 주었
지요. 그 하녀의 이름은 쌍아라고  합니다. 지금쯤 그녀는 초조해져 죽
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녀는......"
"너는 또 어떻게 하다가 장씨 집안의 사람들을 알게 되었느냐?"
위소보는 그간의 사정을 다 털어놓고 말했다.
"어르신께서 만약 믿을 수 없다면 쌍아를 불러 물어 보도록 하십시오."
"자네가 셋째 작은 마나님과 쌍아를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참말같구나. 
그대는 또 어떻게 하다가 화상이 되었지?"
위소보는 노황야가 출가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숨겨야겠다고 생각하
고 말했다.
"소황제는 저를 자기 대신으로 삼아 소림사로 가서 출가토록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저를  청량사로 보냈습니다. 소림파의 무공  중 제가 배운 
것은 별로 없죠. 기실 또 다시  수십 년을 더 배워, 뭐라더라, 위타장, 
반야장, 염화금나수 등 등을 모조리 다 배운다 치더라도 어르신 앞에서
는 아무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백의여승은 갑자기 안색을 굳히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한나라 사람이라면 어째서 적을 애비로 삼듯 목숨을 걸고서 황
제를 보호하려고 하지? 정말 타고난 노예근성이 아닌가!"
위소보는 가슴속에 서늘해졌다. 이 한마디의 질문에는 실로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백의여승은 냉랭히 말했다.
"만주의 오랑캐들이 우리 대명나라의  천하를 가로채갔다. 하지만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가장 나쁜 사람은 바로 오랑캐의 앞잡
이 노릇을 하는 한나라  사람들이다. 그저 자기의 부귀영화만 바라고는 
어떠한 일이라도 해내는 사람들 말이다."
그녀는 위소보의 얼굴을 쏘아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너를 이 산봉우리 위에서  내던지겠다. 너의 호체신공이 과연 쓸
모가 있을까?"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물론 쓸모가 없지요!  기실 저를 산 아래로  던질 것까지도 없습니다. 
그저 가볍게 나의 머리 위를 치기만 하면 저의 머리통은 즉시 박살나서 
열 일곱 여덟 조각이 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오랑캐 황제의 비위를 맞추고 무슨 이득을 얻으려고 했
느냐?
"나는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소황제는 나의 친구입
니다. 그는...... 그는 영원히  세금을 징수하지 않겠으며 백성을 사랑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강호의 사내들은  의리를 중시하며 백성을 
사랑하고 아낍니다."
기실 그는 강희황제에 대해 확실히 의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
을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백의여승은 얼굴에 한가닥 망설이는 빛을 띄우고 말했다.
"그가 영원히 세금을 가혹하게  징수하지 않겠으며 백성을 사랑하고 아
끼겠다고 했다구?"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몇백 번을  말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는 오랑
캐의 황제가 중원으로 들어온 후 백성들을 많이 죽인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며 양주십일과 가정삼도는 그야말로 짐승들의 짓이었다고 말했습니
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불안해 했으며 그래서...... 그래서 오대산으
로 올라와 부처님에게 예불을 드리게 된 것이고 또한 성지를 내려 양주
와 가정의 백성들이 삼 년 동안 세금을 내지 않도록 면해 주었습니다."
백의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오배 이 대간신은 많은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들을 해쳐 죽였습니다. 
소황제는 그에게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명했으나 그는 한사코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소황제는 크게  노하셔서 저에게 그를 죽이라고 했습
니다. 사태,  만약 사태께서 소황제를 죽인다면  조정의 큰일은 태후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이  늙은 갈보는 너무나 나쁘답니다. 그녀
가 만약 정권을 잡게 된다면  또한바탕 양주십일과 가정삼도 같은 일을 
일으킬 것입니다.  사태께서 오랑캐를 죽이겠다면  역시 태후라는 늙은 
갈보부터 죽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백의여승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앞에서는 그와 같이 막돼먹은 무례한 말은 하지 말아라."
"네, 네. 어르신 앞에서 이후 칠팔십 년 동안 다시는 반 마디라도 천한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백의여승은 고개를 쳐들고 하늘에  둥실 떠 가는 흰구름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야 물었다.
"태후의 어떤 점이 나쁘다는 것이지?"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태후가 한 나쁜  짓은 저 여자와 전혀 상관이  없다. 얼렁뚱땅 죄명을 
만들어야지.)
"태후는 지금은 대청나라의 천하이니  마땅히 대명나라 십 칠팔대 황제
들의 무덤을 파헤쳐 무덤 안에 어떤 보배가 숨겨져 있는지를 봐야 한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천하의 주씨  성을 가진 한나라 사람들을 살려 둬
서는 안 되고 모조리 멸족을 해서 그들이 다시는 대청나라의 강산을 빼
앗지 못하게 해야......"
백의여승은 대노해서 오른손을 들어  옆에 있는 바위를 내려쳤다. 그러
자 대뜸 돌가루가 분분히 날아올랐다.
그녀는 날카롭게 외쳤다.
"그 여인은 정말 악독하구나!"
"그렇지 않구요? 저는 소황제에게 그와  같은 일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
다고 권했습니다요."
"흥, 자네에게 무슨 학문이 있어서 그와 같은 도리를 이야기 할수 있었
고 또 소황제가 자네의 말을 믿도록 전할 수 있었지?"
"저의 방법은 그럴싸했죠. 저는 항상  사람은 어쨌든 간에 죽게 된다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그대들 만주인들이 권력을 쥐고 있
으나, 저승의 염라대왕이 한나라  사람인지 아니면 만주 사람인지 황상
께서 아시냐고 물었죠.  그리고 소귀(小鬼), 우두(牛頭), 마면(馬面)에 
흑무상과 백무상이  한나라 사람이냐 아니면  만주 사람이냐고 물었죠. 
그들은 하나같이 한나라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황상께서 이승
에서 한나라 사람들을 못 살게 굴고 압박을 가한다면 설사 황상께서 백 
살을 넘게 사신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죽을 날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
다. 소황제는 "소계자, 정말  깨우쳐 줘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따라
서 태후의 그와 같은 나쁜 생각을  소황제는 한 마디도 듣지 않고 오히
려 천하에 은자를 내려서는 대명나라  황제의 무덤을 크게 다듬도록 했
으며 홍무(洪武)황제의 무덤부터 고치기 시작해서 숭정황제의 무덤까지 
고치겠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복왕, 노왕, 당왕, 계왕의 무
덤도 고친다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그많은 황제들을 다 기억할 수가 없
군요."
백의여승은 갑자기 눈가를  붉히며 눈물을 흘렸다. 한  방울 한 방울의 
눈물이 그녀의 옷자락에 또르르 굴러 떨어져 풀밭 위로 떨어졌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 너는 비단 아무런  잘못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커
다란 공로가 있다. 하마터면......우리 대명나라 역대 황제들의 능묘가 
모두 다 그......나쁜 여인에게 파헤쳐질 뻔했구나......"
거기까지 말하더니 목이 메어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몸을 일
으키더니 한 벼랑 위로 올라갔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사태, 그대는...... 그대는 결코......  스스로 자결을 해서는 안됩니
다."
그는 달려가 그녀의 왼팔을 잡아당겼다.  그녀와 자리를 함께 한 지 얼
마 되지는 않았지만 위소보는 이  아름다운 여승에 대해서 이미 상당히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아름답고 우아할 뿐 아니라 정숙하
면서도 인자한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평생 본 여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녀를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왼팔을 잡아 끌어당겼으나  빈 소맷자락만 잡혔다.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다. 그제서야 그녀에게 왼팔이 없다는 것을 알았
다.
백의여승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구나. 내가 어째서 자살을 한단 말이냐?"
"저는 사태께서 너무나 슬퍼하시기  때문에 혹시 깨닫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내 스스로 자결을  하게 된다면 너는 황제  곁으로 돌아가게 될것이고 
이후부터 크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니 더 좋지 아니한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소태감이 된 것은 부득이해서 였습니다. 오
랑캐의  군사가 우리  아버지를 죽였는데  제가 어찌  적을  그 무엇이
냐..... 어버이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너는 그래도 양심이 있구나."
그녀는 몸에서 십여 냥의 은자를 꺼내더니 그에게 주며 말했다.
"너에게 노자돈을 줄 테니 너는 양주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해라."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남들에게 은자를 줄 때도  이백 냥이나 최소한 백 냥은 되었는데 
누가 이까짓 돈을 대단하게 여길까봐? 이 사태의 마음은 매우 부드러운 
것 같다. 나는 아예 그녀의 호감을 사도록 해야겠다.)
그는 은자를 받지 않고 갑자기  땅바닥에 엎드려 그녀의 다리를 얼싸안
고 대성통곡을 했다.
백의여승은 눈쌀을 찌푸렸다.
"무엇하는 것이냐? 일어나라, 일어나."
"제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습니다. 한  번도 그 누가 저를 귀여워해 
준 적이 없습니다. 사태, 그대는......  그대는 정말 저의 어머님과 같
습니다. 저는......  혼자 종종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한 분의...... 
한 분의  저를 귀여워 해주는  어머니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요."
백의여승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나직이 꾸짖었다.
"터무니없는 소리. 나는 출가인이야......"
"네, 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눈물 자국으로  얼굴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울
고 싶을 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원래 그의 특기 가운데 하나였다.
백의여승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나는 본래 북경에 가려고 했다. 그렇다면 너를 함께 데리고 길을 떠나
도록 하마. 하지만 너는 소화상이라......"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북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바라던 바다.)
그는 재빨리 말했다.
"이 소화상은 가짜입니다. 산을 내려간  이후 다른 옷으로 바꿔 입으면 
화상이 아니게 됩니다."
백의여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봉우리 아래
로 내려왔다. 험준하고 걸어가기 어려운 곳에 부딪히게 될 때마다 백의
여승은 가볍게 그의 옷자락을 들고 경쾌하게 건너 뛰었다. 위소보는 찬
탄해 마지 않았다. 그리고 소림파의 무공이 천하에 이름은 알려져 있으
나 그녀에게는 도저히 미칠 수 없다는 말도 반복해서 지껄였다.
그 백의여승은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그러다가  위소보가 일곱 여덟 
번 그와 같은 말을 하자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는지 말했다.
"소림사의 무공은 독특한 데가 있다. 어린애야, 제발 우물 안 개구리처
럼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라. 단지  너의 칼과 창이 들어가지 않는 호체
신공만 하더라도 나는 모르고 있다."
위소보는 혓바닥을 낼름 내밀었다.
"저의 호체신공은 가짜입니다."
그는 겉옷을 벗고 보의를 드러내 보였다.
"이 잠방이야말로 칼과 창으로 꿰뚫을 수 없답니다."
백의여승은 손으로 잡아당겨 보았다.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이
와 같이 잡아당기는 힘에는 강철로 만든 철사도 끊어질 판이었다. 그러
나 그 잠방이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원래 그랬었구나. 나는 본래  이상하게 생각했었지. 설사 소림파의 내
공이 정말 뛰어나다 하더라도 자네같이  어린 나이에 그토록 깊은 조예
를 쌓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마음 속의 의문을 풀게 되자 그녀는 무척 기쁜 듯 다시 웃으며 입을 열
었다.
"너라는 어린아이는 말하는 것이 정말 솔직하구나."
위소보는 속으로 웃었다. 한평생  남에게서 솔직하다고 칭찬을 받은 적
이 거의 없었고 희귀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로 솔직하지 못하답니다. 그러나 사태
께 대해서는 한 마디 한 마디 진실을 토로하게 되는군요. 저 역시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십중팔구 저는 사태를 아무래도 저의...... 저
의 어머님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이후부터 다시는 그 말을 들먹이지 말아라. 정말 듣기 거북하구나."
"네, 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이 검끝으로 내 가슴팍을 꽉  찔러서 아직도 아프단 말이오. 내가 
당신보고 이미 몇 마디 어머니라고  불렀으니 그야말로 서로 손해를 보
지 않게 된 셈이외다.)
그가 다른 사람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을 갈보라고 욕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의기양양해진 끝에 그는 다시 백의여승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녀는 우아하고 존귀한 기품에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서부터 존경심
이 우러나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녀를 몇 번이나 어머니라고 불렀
다는 사실이 후회스러웠다.
그는 다시 백의여승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지 않는가? 그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물론 위소보로서는 백의여승이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
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저  잠방이는  내가  진작  생각했어야  했다.  그이......  그이에게
도...... 이와 같은 보의가 하나 있지 않았던가?)

백의여승은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는 동쪽으로 꺽어 들었다. 한 고을에 
이르러서 위소보는 옷을 샀으며 소년 공자 차림으로 분장을 했다.
길을 가면서  그는 객점의 사환들을 시켜  정갈한 소찬으로 백의여승을 
대접하게 했다. 그는 그야말로  백의여승에게 정성을 다해 시중을 들었
다.
백의여승은 반찬에 대하여  좋고 나쁜 것을 매우  따지는 편이었다. 큰 
부자집이나 귀한 집에서 태어난 것 같았다.
위소보에게는 은자가 많이  있었다.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면 인
삼, 연와(燕窩), 은이(銀耳) 등을 따지지 않고 아무리 귀하고 비싸더라
도 돈을 주고 샀다. 그는  북경의 황궁 주방을 관장하고 있었기에 소찬
에 대해서 아는 것이 퍽이나 많았다.
때로 객점의  숙수(요리사)가 어떻게 요리를 하는지  모를 때는 오히려 
그가 주방으로 가 가르쳐 주기도 했으며 그렇게 해서 만든 음식은 황제
께서 드시는 수라상의 음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며칠 후 그들은  북경에 도달했다. 위소보는 한  커다란 객점으로 찾아 
들었다. 그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열 냥의 은자를 행화전으로 내놓았다.
객점의 주인은 여승이 객점에 든 데 대해서 약간 뜻밖으로 생각하는 눈
치였다. 그러나 귀공자의  돈 씀씀이가 헤픈 것을  보고 은근히 환대를 
했다.
점심을 먹은 후 백의여승은 말했다.
"나는 매산에 가 보겠네."
"매산으로 가시겠습니까? 그곳은  숭정황제가 돌아가신 곳이 아닙니까? 
우리 가서 몇 번 절을 하도록 하지요."
그 매산은 바로 황궁 옆에 있어서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산 위에 오르게 되자, 위소보는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를 가리키며 말
했다.
"숭정황제께서는 바로 저  한 그루의 나무 위에서  목 메달아 돌아가셨
죠."
백의여승은 손을 뻗쳐 나무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손과 팔을 끊임없이 
떨었다.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갑자기 그녀는 대성통곡을 하며 땅바닥에 엎드렸다.
위소보는 그녀가 슬피 우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하니 그녀가 숭정황제를 알고 있단 말인가?)
다른 생각도 떠올랐다.
(혹시 그녀는 도고모처럼 대명나라  황궁의 궁녀였는지도 모른다. 그리
고 어쩌면 숭정황제의 비빈인지도 모르겠구나. 아니다. 나이가 틀리다. 
그녀는 늙은 갈보보다도 더욱 젊으니 결코 숭정황제의 비빈이 될 수 없
을 것이다.)
그녀는 매우 슬피 울며 숨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위소보
는 그 광경을 보고 자기도 참을  수 없어 눈물을 흘렸으며 땅바닥에 엎
드려 그 나무를  향해 몇 번 절을 했다.  이번만은 일부러 우는 흉내를 
낸 것이 아니고 정말 진정으로 운 것이었다.
백의여승은 한참 동안 슬피 통곡을  하더니 몸을 일으키고 나무를 얼싸
안았다. 갑자기 전신을 와들와들 떨더니 그만 까무러치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부축하며 부르짖었다.
"사태, 사태! 빨리 정신을 차리세요."
한참 후에야 백의여승은 차츰차츰 깨어났다.
"우리는 황궁으로 가 보자꾸나."
"좋습니다. 우리는 먼저 객점으로  돌아가지요. 제가 가서 태감의 옷을 
한 벌 구해 오겠습니다. 사태가  바꿔 입으십시오. 그러면 제가 사태를 
모시고 궁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백의여승은 노해 부르짖었다.
"내가 어찌 오랑캐의 옷을 입는단 말이냐?"
"네, 네. 그렇다면...... 그렇다면...... 되었습니다. 사태께서는 라마
로 가장하십시오. 황궁에는 종종 라마가 드나든답니다."
"나는 라마로도  분장하지 않겠다. 이대로 궁안으로  들어가 누가 나를 
저지하는지 보겠다."
"네.  그  시위들도  사태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
만...... 그렇게 된다면 크게  살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사태께서는 
그저 사람을 죽이느라고 바쁘셔서 차분하게  정탐을 하실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는 백의여승과 이대로 황궁 안으로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백의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옳아. 오늘밤 어둠을 틈타서 궁안으로 뛰어들기로 하자. 자네
는 객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게. 위험을 당하지 않도록 말이야."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는 함께 가겠습니다. 사태 혼자 궁안으로 들어
간다면 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황궁 안은 제가 저의 집 사정
처럼 잘 안답니다. 그곳 지형에도  익숙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잘 알
고 있죠. 사태께서 보고 싶은 곳이 있으시다면 제가 그곳으로 모시겠습
니다."

이경 무렵이 되었을 때  백의여승과 위소보는 객점에서 나왔다. 그리고 
궁궐 담장밖에  이르렀다. 위소보는 입을 열었다.  위소보는 입을 열었
다.
"우리들은 동북 모퉁이 쪽으로 돌아가기로 하지요. 그곳의 궁담장이 비
교적 낮습니다.  그곳에는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이 거처하는 곳이라 
시위가 순찰을 돌지도 않는답니다."
백의여승은 그가 가리키는 대로 북쪽 열  세 채의 집이 나란히 서 있는 
곳으로 가서 위소보의 허리를 껴안고 가볍게 궁안으로 뛰어들었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낙수당(樂壽堂)과 양성전(養性殿)입니다. 사태께서
는 어느 곳을 구경하시려고 합니까?"
"어떤 곳이든 다 보겠네."
그들은 서쪽으로  향했다. 낙수당과 양성전  사이를 가로지르고 기다란 
낭하를 빙 돌아  현궁보전(玄穹寶殿), 경양궁(景陽宮), 종수궁(鍾粹宮)
을 지나 어화원(御花圓)으로 들어섰다.
백의여승은 어둠속이었나 매우 신속하게  나아갔으며 모퉁이를 돌 때도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시위들과  순라를 도는 야경꾼을 
만나면 집 모퉁이나 숲속에 몸을 숨겼다. 위소보는 크게 이상하게 생각
했다.
(그녀는 어떻게하여 궁중의 사정에 이토록 밝을까? 그녀는 이전에 틀림
없이 궁안에서 살았던 게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녀를 따라 어화원을 지나 계속 서쪽으로 나
아갔다. 그리고 곤녕문을 나서서 곤녕궁밖에   이르렀다.
백의여승은 잠시 망설이더니 물었다.
"황후는 이곳에서 머물지?"
"황상께서는 아직 혼례를 올리시지 않았기 때문에 황후가 없습니다. 옛
날 태후께서는 바로 이곳에 머물렀었지만 지금은 자녕궁으로 가 있답니
다. 지금 곤녕궁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들어가 보자."
그녀는 곤녕궁밖에 이르러 손을 뻗쳐  창틀에 손을 갖다대더니 살짝 힘
을 주었다. 그러자 창틀의 빗장이  우지직 하는 가벼운 음향과 함께 부
서져 나갔다. 창문을 열어 젖힌  그녀는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위소보
는 기어서 들어갔다.
곤녕궁은 황후의 침궁이었다. 위소보는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었다. 그
리고 침궁에는 오랫 동안 사람이 머물지 않았기 때문에 코에 와닿는 것
은 먼지와 매캐한 곰팡이 냄새였다. 희뿌연 달빛이 창호지 사이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어렴풋이 백의여승이 침대위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잠시후 톡톡 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녀의 눈물이 옷자락에 떨어지
는 소리였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구나. 그녀는 십중팔구 도고모님처럼  본래는 궁안의 궁녀였고 명
나라 황후를 모셨던 모양이구나.)
문득 그녀가 고개를 쳐들고 대들보 쪽을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주(周)황후께서는 바로...... 바로 이곳에서 자결하셨다."
"네."
그는 속으로 더욱더 자기의 생각했던  바가 옳다고 확신하고 나직이 물
었다.
"사태께서는 저의 고모님을 만나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너의 고모님이라고? 그녀는 어떤 사람이지?"
"저희 고모님은 성이 도씨이고 이름은 홍영이라고 하죠......"
백의여승은 놀라 나직이 부르짖었다.
"홍영이라구?"
"그렇습니다. 어쩌면 사태께서 그녀를 알아보실지도 모르죠. 저의 고모
님은 옛날 숭정황제의 장공주(長公主)를 모셨던 사람입니다."
"좋다, 좋아! 그녀가 어디 있지? 너는 빨리...... 빨리 가서 그녀를 나
에게 데려 오거라."
그녀는 줄곧 태연자약했다. 그러나 지금 그 말에는 매우 초조해하는 기
색이 담겨 있었다.
"오늘밤은 부를 수 없습니다."
"어째서? 어째서이냐?"
"저희 고모님은 대명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계시며 한때 오랑캐의 태후
를 찔러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찔러 죽이지 못했기 때문에 
궁안에 숨어 있는 형편이지요. 그녀가  오늘 저의 암호를 봐야 내일 밤
에 나를 만날 수 있답니다."
"매우 좋다. 홍영이란 계집애는 정말 지조가 있구나. 너는 어떤 암호를 
쓰느냐?"
"저는 고모님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쓰레기를 태우는 곳의 옆
의 바위 위에  한 대의 나무조각을 꽂아 놓으면  그녀는 즉시 알아보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곧 암호를 만들자꾸나."
그녀는 창밖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위소보의 손을 잡고 융복문(隆福門)
을 나서서 영수궁(永壽宮), 체원전(體元殿), 보화전(保華殿)을 지나 북
쪽의 쓰레기 더미에 이르렀다. 위소보는  한 조각 숯을 집어 나무 판대
기 위에 참새 한 마리를 그린 다음 어지러이 바위들을 쌓고 그 위에 나
무 판대기를 꽂았다.
이때 백의여승이 갑자기 말했다.
"그 누가 오고 있다."
이곳은 궁중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곳인데 깊은 밤에 그 누가 온다는 것
은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위소보는 백의여승의 손을 잡고 커다란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발걸음 소리가 사뿐사뿐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몸을 세우더니 사방을 살폈다. 위
소보가 꽂아  놓은 나무 조각을 보고  약간 어리둥절해하더니 다가와서 
그것을 뽑았다. 그 사람이 몸을 돌리게 되었을 때 달빛이 그 사람의 얼
굴을 비추게 되었다. 위소보는 바로 도홍영임을 알고 속으로 크게 기뻐
서 불렀다.
"고모님,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도홍영은 서둘러 달려오더니 대뜸 그를 끌어안고 기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착한 애구나! 끝내 와 주었구나.  매일 밤, 나는 이곳에 와 본단
다."
"고모님, 한 사람이 고모님을 뵙고자 합니다."
도홍영은 약간 의아하다는듯 그의 몸을 내려놓고 물었다.
"누구냐?"
백의여승은 몸을 똑바로 세우고 나직이 말했다.
"홍영, 너는...... 너는 아직도 나를 알아보겠느냐?"
도홍영은 위소년 외에 다른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해 깜짝 놀
라 뒤로 세 걸음을  물러섰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허리께를 더듬더니 
단검을 손에 뽑아들고 말했다.
"누구......누구지?"
백의여승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나를 몰라보는구나."
"나는...... 나는 너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너는...... 너는......"
백의여승은 몸을 살짝 돌렸다. 달빛이 그녀의 반쪽 얼굴을 비추었다.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너의 모습도 많이 변했구나."
도홍영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는...... 그대는......"
갑자기 그녀는 단검을 내던지고 부르짖었다.
"공주, 그대이십니까? 저는...... 저는......"
풀썩 다가들더니 백의여승의 다리를 얼싸안았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엎
드려 흐느꼈다.
"공주,  오늘에서 만나  뵙게  되었군요. 저는......  이제 즉시  죽어
도...... 여한이 없습니다."
공주라는 한 마디에 위소보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그러나 곧 도홍영
이 들려 주었던 옛이야기를 상기했다. 그녀는 명나라 궁중의 궁녀였다. 
줄곧 장공주를 모시고 있었다.  여진족이 북경으로 공격을 해오자 숭정
황제는 검을 들고 장공주를 죽이려고  했으나 그녀의 팔 하나만을 자르
고 말았고 도형영은 그 혼란 틈에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 주위를 살펴보니 황제와 공주는 모두 보이지 않았다. 대강 
그러한 사연이었다.
위소보는 고개를 쳐들고 백의여승을 한 번 바라본 후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에게 한 팔이 없고 또  궁중의 사정에 대해서 이토록 잘알고 있으
며 또 곤녕궁에서 흐느껴 우는 것을  봤을 때 나는 진작 생각했어야 했
다. 내가 이제서야 깨닫다니 정말 커다란 천치바보이다.)
이때 백의여승은 말했다.
"그 동안 너는 줄곧 이 궁안에 있었느냐?"
도홍영은 흐느끼며 말했다.
"네."
"이 어린 사람이 그러는데 너는 오랑캐의 황태후를 찔러 죽이려고 했다
는데 정말 잘했다. 그러나...... 그러나......"
거기까지 말하더니 그만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도홍영은 말했다.
"공주는 만금지체(萬金之體)이십니다.  이곳에서 지체해서는 안됩니다. 
쇤네가 즉시 공주님을 궁에서 벗어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이미 공주가 아니네."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쇤네의  마음속에 그대는 영원히 공주이며 저
의 장공주이십니다."
백의여승은 처연히 웃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 방울이 완연 했는데 
그 웃음은 더욱 처량한 감을 안겨 주었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영수궁에는 지금도 사람이 거처하고 있겠지? 가 보고 싶구나."
"영수궁은...... 지금 오랑캐의 건녕공주가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며칠 동안 오랑캐의 황제와 태후, 그리고 건녕공주도 모두 궁안에 있지 
않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답니다. 영수궁은 지금  몇 명의 궁녀와 
태감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쇤네가  그들을 죽이고 공주를 모시도록 하
지요."
영수궁은 공주의 침궁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명나라 장평공주(長平
公主)가 옛날 거처하던 곳이었다.
백의여승은 말했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가서 보기만 하자꾸나."
그녀는 장평공주가 이미 초범입성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
고 그저 위소보가 그녀를 데리고  궁안으로 잠입해 들어온 줄로만 알고 
있었다.
세 사람은 북쪽으로 향하다가 다시 서쪽의 철문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꺽어져 동쪽을 향했다. 순정문(順貞門)과 북오소(北五所),차고(茶庫)를 
지나서 영수궁밖에 도달했다.
도홍영은 나직이 말했다.
"쇤네가 들어가 궁녀와 태감들을 몰아내도록 하죠."
"그럴 필요 없네."
그녀는 손을 뻗쳐 문을 밀었다.  문 빗장이 가벼운 소리와 함께 부러지
고 궁문이 활짝 열렸다. 백의여승은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이미 나라는 
바뀌었지만 궁중의 규칙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영수궁은 백의여승의 
옛 거처였다. 그녀는 태감, 궁녀들이  어디에서 잠을 자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뭇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일일이 여러 사람들의 혈도를 짚
어 버리고 공주의 침전으로 들어갔다.
도홍영은 기쁜 어조로 말했다.
"공주, 뜻밖에도 그토록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계셨군요?"
백의여승은 침대가에 앉아 이십여 년 전의 옛일을 생각했다. 그때 자신
은 바로 이곳에서 한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으며 또한 그 사람과 
한 이불 속에서 베개를 나란히 했었다. 그런데 이제 천하는 오랑캐들이 
차지하게 되고 자기의 이 한칸  침실도 오랑캐 공주에게 빼앗기고 말았
으며 그 사람은 만리타국에 갔으니 살아 생전에는 다시 만나 보기 어려
우리라......
도홍영과 위소보는 옆에 시립해 있었으나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한
참 후에야 백의여승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더니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
었다.
"촛불을 켜게."
도홍영은 촛불을 켰다. 그러고 보니  벽, 탁자, 의자 위에는 모두 칼과 
검, 가죽 채찍 같은 무기들이 걸려 있었다. 마치 무사의 거실 같았다.
백의여승은 말했다.
"원래 이 공주 역시 무공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군."
위소보는 말했다.
"이 오랑캐 공주의 성질은 매우  괴상합니다. 비단 사람을 때리는 것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남에게 맞는 것도 좋아한답니다. 그러나 무공은 평
범하기 그지없어 저만도 못하답니다."
그는 침대 위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날 공주의 이불 속에 숨었다가  태후에게 잡혔던 사실을 상기하지 않
을 수 없었다. 만약 그때 오룡령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은 아마 
저승에 가서 소태감 노릇을 하며 염라대왕의 공주를 시중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백의여승은 나직이 말했다.
"나의 그 그림들과 서적들은 모두 그녀가 내버렸는가?"
도홍영은 말했다.
"네. 그 오랑캐 여자는 글조차 알아보지 못합니다. 어찌 단청과 도서를 
알겠습니까?"
백의여승은 왼손을 쳐들었다. 소매가  살짝 흔들리며 촛불이 대뜸 꺼지
고 말았다.
"자네는 나를 따라 궁에서 나가도록 하자."
도홍영은 말했다.
"공주의 솜씨가 그토록 뛰어나니  만약 오랑캐의 태후를 잡는다면 그녀
를 다그쳐서 그 몇 권의  경서를 내놓도록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
게 된다면 오랑캐의 용맥을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경서인가? 오랑캐의 용맥은 또 무엇이지?"
도홍영은 즉시  사십이장경의 내력을 간단히  설명했다. 백의여승은 다 
듣고 나더니 한참 동안 생각한 다음 말했다.
"그 여덟 권의 경서 가운데 정말 그와 같이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고 
오랑캐의 용맥을 깨뜨릴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겠지. 
오랑캐 황태후가 궁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우리 다시 찾아오자."
세 사람은  영수궁에서 나왔다. 그들은 담장을  넘어 궁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객점으로 돌아가 쉬었다.
도홍영과 백의여승은  한방에서 머물렀다. 이십여  년만에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오늘밤 다시 옛날 주인과 한방에서 거처하게 되
니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어찌 잠을 이룰 수가 있겠는가.
위소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섯 권의 경서는 내 수중에 있고  한 권은 황상이 가지고 계시다. 그
리고 다른 두 권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 공주이신 사태께서 늙은 갈보
를 다그쳐서 경서를 내놓으라고 하더라도  늙은 갈보는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한두 마디의 말로  공주 사태가 그녀를 죽이게 된다면 그
야말로 황상과 나의 눈에 박힌 가시를 뽑는 셈이 아니겠는가?)

며칠동안 백의여승과 도홍영은  객점에서 두문불출했다. 그러나 위소보
는 매일같이 나가서 염탐을 했다. 황상이 이미 궁으로 돌아오지 않았는
가를 알아본 것이었다. 이레째 되는 날 오전에 강친왕, 색액도 다륭 등
이 한떼의 어전시위들과 더불어 몇  대의 커다란 교자를 호위해서 궁안
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에 한떼의 친왕들과 패륵, 그리고 각부의 대신들이 잇달아 궁안
으로 들어갔다. 물론 만승천자에게  삼가 절을 하고 편안히 다녀오셨음
을 축하하는 것이리라. 위소보는 객점에 돌아와 이 사실을 알렸다.
백의여승은 말했다.
"매우 좋다. 오늘밤 나는 궁안으로 들어가겠다. 오랑캐 황제가 이미 돌
아왔으니 궁중을 지키는 사람들은 지난번보다  엄밀하고 또 몇 배가 될 
것이다. 그대들 두 사람은 객점에서 나를 기다리도록 하게나."
위소보는 말했다.
"공주사태,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도홍영 역시 말했다.
"쇤네도 공주를  따라가고 싶습니다. 쇤네와 이  아이는 궁안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위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옛날 주인과 다시 만나게  되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백의여승은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이날 밤 세사람은 태후가  거처하는 자녕궁밖에 이르렀다. 사방은 조용
했다. 백의여승은 두 사람을 데리고  궁 뒤로 돌았다. 그리고 위소보의 
허리를 잡고 담장을 넘어 뛰어들었다.
땅위에 내려섰을 때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도홍영이 뛰어내리게 되었
을 때 백의여승은 왼손 소맷자락으로 그녀의 허리를 부축해 주었다. 위
소보는 태후 침전의 옆 창문을  가리키며 바로 태후가 그곳에 거처하고 
있다는 암시를 주고 두 사람을 데리고 후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자녕
궁 궁녀들의  거처였다. 창문에서 담담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백의여승은 방의 창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십여 명의 궁녀들이 나란히 걸상에  앉아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은 고개
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마치 중이  입정한 것 같았다. 그녀는 가볍게 휘
장을 들추고  곧장 태후의 침전으로  걸어들어갔다. 위소보와 도홍영도 
따라 들어갔다.
탁자 위에는 네 대의 붉은 초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나 방안에는 아
무도 없었다.
도홍영은 나직이 말했다.
"쇤네는 세 개의 상자를 열어  보고 서랍 속도 모두 뒤져 보았습니다만 
경서의 그림자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어이구! 누가 오고 있습니다."
위소보는 그녀의 옷자락을 한 번 잠아당기고 재빨리 침대 뒤로 가 숨었
다. 백의여승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도홍영과 함께 역시 침대 뒤에 숨었
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위해서 이 일을 해냈으니 저에게 어떤 상을 주
시겠어요?"
바로 건녕공주의 음성이었다. 그러자 태후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머니가 너에게  시킨 조그만 일을 가지고  상을 바라다니, 지나치구
나."
두 사람은 말을 하면서 방안으로 들어왔다.
건녕공주는 말했다.
"어마! 이게 작은 일이란  말이에요? 만약 황제 오라버니가 조사를하여 
내가 가져간 것을 알게 된다면 크게 화를 낼 것이 틀림없어요."
태후는 앉으면서 말했다.
"한 권의 불경을 가지고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 우리가 오대산으로 가
서 예불을 드린  것은 바로 부처님에게 보호해 주십사  하는 뜻 아니었
니? 그리하여 궁으로 돌아오게 된 이후에는 여전히 불경을 읽고 염불을 
해야 보살께서 좋아하시지 않겠느냐?"
"큰일이 아니라면 제가 황제  오라버니에게 이야기를 하겠어요. 어머니
가 저를 시켜 이 한 권의  사십이장경을 가져와 불경을 읽고 염불을 해
서 부처님에게 황제 오라버니의 나라가  편안하고 백성들이 잘 살게 되
기를 보호해 주십사 빌려고 했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황제 오라버니 만
세 만만세를 부르도록 하죠."
위소보는 속으로 기뻐했다.
(정말 잘되었다. 원래 공주를 시켜 경서를 훔쳐 오게 했구나.)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운수가 좋지 못했다. 만약 이번에 백의여승과 
함께 온 것이 아니라면 그 경서는  충분히 자기 손에 넣을 수가 있겠지
만 지금은 그런 기대를 할 수가 없었다.
태후는 말했다.
"네가 가서 이야기하도록 해라. 황제가  만약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그 
일을 모르겠다고 딱  잡아뗄 것이다. 어린애가 함부로  한 말을 가지고 
어찌 곧이 곧대로 믿는다더냐?"
"어머니, 억지를 쓰시겠다는 거예요? 경서는 분명히 이곳에 있어요."
태후는 쳇 하고 웃었다.
"내가 화로에 집어넣어 불태워 버리면 될 것이 아니냐?"
공주는 웃었다.
"그만두겠어요. 그만 두겠어요. 나는 언제나 어머님을 이길 수 없더라. 
정말 치사하다구요! 상을 내려 주시지  않으려면 그만 두지, 오히려 이 
딸을 못살게 구시는군요."
"너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데 또 무슨 상을 바라는거냐?"
"저에게는 모든 것이 있지만 한 가지만은 없어요."
"뭐가 없느냐?"
"저와 함께 놀아 줄 소태감이 없어요."
태후는 웃으며 말했다.
"소태감이라구? 궁안에는 수백 명이나  되는 소태감들이 있다. 네가 그 
누구에게 너와 놀아  달라고 명령만 내리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그 
소태감이 어딜 가겠느냔 말이다."
"아니엥. 그 소태감들은 너무 우둔해서  함께 놀아도 재미가 없단 말이
에요. 나는 황제 오라버니 곁에 있는 그 소계자를 갖고 싶어요."
위소보는 흠칫했다.
(저 죽일 계집애는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구나. 그녀를 상대로 놀아 
주기란 정말 쉬운 노릇이 아니다.  잘못하다가는 바로 이 한 목숨을 잃
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공주는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황제 오라버니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황제 오라버니는 소계
자를 북경으로 보내 일을 보게  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토록 오래 돌
아오지 않아요. 어머니, 어머니가  가서 황제에게 이야기해 보세요. 그
러면 그는 소계자를 나에게 줄 거예요."
위소보는 속으로 욕을 했다.
(이 계집애가 정말 온갖 수단 방법을  다 쓰는구나! 내가 너의 손에 떨
어지게 된다면 매일같이 전신에 열 일곱 여덟 군데의 커다란 상처가 나
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의 성을 쓰마. 아이쿠! 공주의 성
이 뭐였더라?  공주는 소황제와 똑같은 성이다.  그런데 소황제의 성은 
또 뭐였지? 나는 정말 멍청하구나. 여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이대 태후는 말했다.
"황제는 소계자에게 어떤 일을  처리하도록 내보냈다는데 너는 그가 어
디로 갔으며 무슨 일을 하러 갔는지 아느냐?"
"그건 내가 알고 싶어요. 시위들의  말을 듣건데 소계자는 바로 오대산
에 있다고 하더군요."
태후는 아! 하고 나직이 놀라 부르짖었다.
"그가...... 바로 오대산에 있다구? 그럼  이번에 우리는 어찌 그를 만
나 보지 못했지?"
"저 역시 궁으로 돌아온 이후에야 시위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에요. 그런
데 황제 오라버니가 그를 오대산으로 무엇 때문에 보냈는지 알 수가 없
네요. 시위들의 말을  들으니까 황제 오라버니는 그의  벼슬을 또 높여 
주었데요."
태후는 음 하더니 잠시 동안 생각해 보고 말했다.
"좋다. 그가 궁으로 돌아온다면 내가 황제에게 이야기 하도록 하지."
그런데 그 음성은 매우 떨리고 있었으며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듯한 기
미가 엿보였다.
"이제 늦었으니 너는 돌아가 자거라."
"어머니, 저는 돌아가지 않을래요. 어머니와 함께 자겠어요."
"너는 어린애가  아니다. 어째서 너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느
냐?"
"저의 방에는 도깨비가 나와 무서워요."
"터무니없는 소리, 무슨 도깨비란 말이냐?"
"어머니, 정말이에요. 저의 궁안의 태감과 궁녀들도 모두 말했어요. 며
칠 전 밤에 모든 사람들이  도깨비에게 홀렸대요. 그리하여 이튿 날 점
심 때에 가서야 깨어났으며 하나같이 악몽을 꾸었대요."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이 있겠느냐? 그들이 함부로 지껄인 말을 믿지 말
아라. 우리들이 궁에 없으니까 그들은 내심 무서워서 도깨비 꿈을 꾸게 
된 것이다. 빨리 돌아가거라."
공주는 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잘 주무시라는 인사와 함께 물러갔다.

태후는 탁자가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  턱을 고이고 촛불을 
바라본 채 멍하니 넋을 잃고 있었다. 한참 후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
렸다. 그런데 바로 이때 벽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춤추는 촛불을 따라 
미미하게 어른거리고 있지 않는가? 그녀는 자기의 눈이 가물가물해져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나다를까,  두 개의 그림자였다. 하나는 자기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
기의 그림자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기가 
과거에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자 불현 듯 전신의 
솜털이 올올이 곤두섰다.
아무리 일신에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감히 고개를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도깨비에게는 그림자가 없다고 했다.  그림자가 있다면 도깨비가 아니
다.)
그러나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지만 주위에서는 다른 사람이 들이마시
고 내쉬는 숨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극도로 놀라 전신에 맥이 
빠져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벽에 어른거리는 두 그림자를 바라보
면서 거의 까무라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별안간 침대 위쪽에서 나직이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속으로 기뻐
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한 백의여승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한 쌍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들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용모
가 지극히 아름답긴 하나  표정이 없이 딱딱했다. 사람인지 도깨비인지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태후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당신은 누구시오?  어째서......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
죠?"
백의여승은 냉랭히 물었다.
"너는 누구이지? 어째서 이곳에 있지?"
태후는 그녀의 말하는 소리를 듣자 놀란 가슴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가 있었다.
"이곳은 황궁의 내원이에요. 당신은...... 당신은 정말 대담하군요."
백의여승은 냉랭히 말했다.
"맞았어. 이곳은  황궁의 내원이지. 도대체  당신이 무엇인데 대담하게 
이곳까지 왔지?"
태후는 노해 말했다.
"나는 황태후이다! 당신은 어디서 나타난 요사한 사람이냐?"
백의여승은 오른손을 뻗쳐 태후 면전에  놓인 그 사십이장경 위에 손을 
얹더니 천천히 그 불경을 들었다.
태후는 호통을 내질렀다.
"손을 놔랏!"
휙! 하니 일장을 들어 상대방의  안면을 공격해 갔다. 백의여승은 오른
손을 쳐들고 그녀와 일장을  마주쳐 교환했다. 태후는 몸을 흔들하더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직이 호통을 내질렀다.
"좋아! 알고보니 무림의 고수였군!"
상대방이 도깨비가 아닌  것을 알게 되자 두려운  마음이 모두 가셨다. 
그녀는 달려들어 휙휙 하니  잇달아 사장을 후려쳤다. 백의여승은 의자
에 앉아서 일어나지  않았다. 경서를 품속에 집어  넣고서야 손을 들어 
그녀가 공격해 온 사초를 일일이 해소시켰다.
태후는 그녀가 경서를 집어넣는 것을  보자 놀람과 분노에 얽혀 더욱더 
장력에 힘을 주었다. 삽시간에 잇달아  다시 칠팔 초를 공격했다. 백의
여승은 일일이 해소시켰으나 시종 반격하지 않았다.
태후는 손을 뻗쳐서 오른쪽 다리를 더듬었다. 어느덧 그녀의 손에는 한 
자루의 싸늘한 광채가 감도는 짧은 무기가 들려 있었다. 위소보는 정신
을 가다듬고 바라보았다. 태후의 손에  들린 것은 바로 한 자루의 백금
점강아미자(白金點鋼蛾眉刺)였다. 바로 그날  해대부를 죽일 때 사용한 
무기였다.
그녀는 무기를 손에 들자 더욱더 기세가 등등해져서는 잇달아 백의여승
을 찔러갔다. 손으로 후려치고 아미자로 찌르는 등 침실안은 그저 한줄
기의 하얀 광채가 번개처럼 번뜩이게 되었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내가 나가서  그녀를 멈추게 하겠소. 사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말이오."
도홍영은 그를 잡아당기며 나직이 말했다.
"그럴 필요없네."
그러고 보니 백의여승은 여전히 차분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
른손 식지로 동쪽을 한 번 찌르고  서쪽을 한 번 찌르면서 태후의 날카
롭기 이를데 없는 공세를  일일이 해소시켰다. 태후는 벼락같이 들이닥
쳤다가 벼락같이 물러나곤 했으며 갑자기 몸을 솟구쳤다가는 갑자기 몸
을 웅크리듯 하는데 쾌속하기 이를데 없었다.
촛대의 불꽃이 더욱더 뒤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별안간 방안이 어
두컴컴해졌다. 네 자루의 촛불 가운데 두 자루가 꺼진 것이었다. 몇 초 
더 싸우게 되자 나머지의 두 자루 촛불마저도 꺼져 버리고 말았다.
어둠속에서 그저 장풍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태후의 가
쁜 숨소리만 들려왔다.
별안간 백의여승이 냉랭히 말했다.
"그대는 황태후의 신분으로 이와 같은 무공을 어디서 배웠지?"
태후는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힘써  공격을 했다. 별안간 철썩 하는 맑
은 소리가 네 번 울려퍼졌다. 아마도 태후가 얼굴에 네 대의 따귀를 얻
어맞은 모양이었다. 곧이어 그녀는 아 하는 소리를 부르짖었는데 그 소
리는 분노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어서 쿵!  하는 소리가 한 
번 들리더니 방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어둠속에서 불빛이 번쩍했다. 백의여승은  두 손으로 이미 하나의 화섭
자에 불을 켜 들고 있었다.  태후는 뻣뻣하게 그녀의 앞에 꿇어앉아 있
었는데 꼼짝도 하지 못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오늘은 기필코 저 늙은 갈보를 죽여야지.)
이때 백의여승이 화섭자를 가볍게 위쪽으로 던졌다.



第55章. 태후는 가짜였다.

백의 여승이 한 자루의 화섭자를 던지자 그 화섭자는 소매 바람에 날려 
천천히 촛불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더니 놀랍게도 네 자루의 촛불에 일
일이 불을 밝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허공에서 그 화섭자를 쥐고 
불을 붙이는 것 같았다.
백의 여승은 소맷자락을 안쪽으로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한 줄기의 흡
인력이 화섭자를 빨아당겼다. 곧이어  오른손을 뻗쳐서 그 화섭자를 받
아서는 가볍게 숨을 내불어 불을 꺼뜨리더니 품속에 갈무리했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광경에 그만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딱 벌어졌
으며 진심으로 탄복해 마지 않았다. 태후는 혈도를 짚여 땅바닥에 쓰러
져 있었는데  얼굴이 갑자기 새파래졌다가는  갑자기 창백해지곤 했다. 
그녀는 노해 나직이 부르짖었다.

[빨리 나를 죽여라!]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대가 일신에  사도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니  정말 이상한 노릇이야. 
깊은 궁궐 속의 귀인이 어떻게 신룡교와 관계를 맺게 되었지?]

위소보는 속으로 히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사태가 모르는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따라서 이후 그녀에게 거짓말을  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태후는 말했다.

[나는 신룡교라는 것이  뭔지 모르오. 나의 이  하찮은 무공은 궁의 한 
태감에게 배운 것이오.]

백의 여승은 말했다.

[태감이라구? 궁 안의 태감이 어찌하여 신룡교와 관계가 있지? 그의 이
름이 뭐지?]

태후는 말했다.

[그는 해대부라고 하지만 이미 죽었소.]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웃었다.
(늙은 갈보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만약 그녀가 이곳에 내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감히 그와 같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백의 여승은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해대부라구? 그와 같은 인물이 있다는  것은 들어 보지 못했는 걸. 조
금 전 그대는  나에게 일곱 장을 휘둘렀는데  장력이 음침했다. 그것은 
무슨 장법이지?]

태후는 말했다.

[저의 사부님께서는 무당파의 재간이라고 했죠. 그리고 그 이름은 유운
장(游雪掌)이라고 부르더군요.]

백의 여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이것은 화골면장이야. 무당파는 명문정파인데 어찌 이와 같이 
음흉하고 악랄한 무공을 쓰겠는가?]

태후는 말했다.

[사태의 말씀이  옳습니다. 유운장이란 우리  사부님이 말한 것이지요. 
저는, 저는 모릅니다.]

그녀는 백의 여승의 무공이  절묘하고 심후할 뿐만 아니라 견문이 넓은 
것을 보고 속으로 더욱 두려운 마음이 솟구쳤다. 그리하여 말투도 더욱 
공손해졌다. 백의 여승은 물었다.

[그대는 이 장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쳤는가?]

태후는 말했다.

[저는, 이 후배는  깊은 궁궐에서 자랐고 무공을  익힌 것은 그저 몸을 
건강하게 하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한  번도 사람을 해친 적이 없습니
다.]

위소보는 속으로 욕을 했다.
(정말 낯가죽도 두껍다. 빌어먹을 년! 밑천이 들지 않으니까 멋대로 씨
부렁거리는구나!)
이때 그녀는 다시 입을 열고 말했다.

[사태께서는 밝혀  살피시옵소서. 이 후배는 항상  곁에서 보호해 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평생 남에게  손을 쓴 적이 없습니다. 이 후배가 
배운 무공은 알고 보니 전혀 쓸모가 없군요.]

백의 여승은 빙그레 웃었다.

[그대의 무공은 대단한 편이지.]

태후는 말했다.

[후배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습니다. 오늘 만약 사태의 절세신공을 보지 
못했더라면 어찌 하늘이 높은 것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백의 여승은 오, 하더니 물었다.

[그 태감 해대부는 언제 죽었지? 누가 그를 죽였지?]

태후는 말했다.

[그는, 그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으며 나이가 많아 병들어 죽었습
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대 자신은 악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대들 만주 오랑캐
들은 우리 대명나라 강산을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대명나라 천
자를 죽도록 했다. 그대는 초대  오랑캐 황제의 처이고 두 번째 오랑캐 
황제의 어머니이니 결코 너를 용납할 수가 없다.]

태후는 깜짝 놀라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사, 사태. 당금 황제는 결코  이 후배가 낳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친 
생모는 효강 황후인데 이미 죽있습니다.]

백의 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랬었군. 그러나 그대는 순치의 아내가 아닌가? 순치는 우리 수
천만 한나라 백성들을 잔혹하게 죽있는데 어째서 그대는 한마디도 충고
하지 않았지?]

태후는 말했다.

[사태께서 굽어 살피시옵소서.  돌아가신 황제께서는 그 불여우같은 동
악비만을 총애했습니다. 이 후배는  과거 돌아가신 황제를 한번 만나기
조차 어려웠으니 충고를 드릴래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백의 여승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그대가 하는 말에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오늘 그대를 죽이지 않도록 
하지.]

태후는 말했다.

[사태께서 죽이지  않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후배는 금후 반드시 
매일같이 독경을 하고 염불을 하겠습니다. 그 한 권의 불경은 사태께서 
되돌려 주시기 바랍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이 사십이장경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이지?]

태후는 말했다.

[후배는 경건한  마음으로 예불을 올리려고 합니다.  금후 살아 생전에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독경을 하겠습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사십이장경은 매우 흔한 경전이다.  어느 절간이라 하더라도 열 권 정
도는 갖추고 있다.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반드시  이것을 달라고 하는 
것이지?]

태후는 말했다.

[사태께서는 잘 모르십니다. 이 경서는 돌아가신 황제께서 과거 밤낮으
로 읽던 것입니다. 후배는 옛정을  잊을 수 없어 경전을 돌아가신 황제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렇다면 잘못되었군. 독경을 하고 예불을 드릴 때는 반드시 마음가짐
을 밝게 하고 아무런 잡생각이  없어야 한다. 정이니 인연이니 하는 감
정을 추호도 느끼지 말아야 한다. 그대는 한편으로는 독경을 하면서 한
편으로는 죽은 남편을 생각하고  있으니 독경을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
이 있겠느냐?]

태후는 말했다.

[사태께서 친히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만  이 후배는 우둔하여 
그와 같은 정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백의 여승은 두 눈에 갑자기 신광을 번쩍하더니 물었다.

[도대체 이 경서에는 어떤 야릇한 점이 있는 거지? 그대는 나에게 솔직
히 털어 놓도록 해라.]

태후는 말했다.

[실로 이 후배가  정에 얽매여서 그러는 것이조  돌아가신 황제께서 이 
후배에게 잘 대해 주지는 못했지만 저는 시종 그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
다. 매일 그 한 권의  경전을 대한다면 그리움에 고달퍼지는 심정을 조
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의 여승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가 고집을 피우니 하자는 대로 내버려둬야겠다.]

그녀는 왼손의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소맷자락의 끝이 태후의 어느 곳
을 슬쩍 건드리게 되있다.  그러자 짚혔던 혈도가 대뜸 풀어졌다. 태후
는 말했다.

[사태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나는 무슨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의 화골면장이 다
른 사람의 몸에 적중되면 어떻게 되지?]

태후는 말했다.

[그 태감은 저에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이 장법은 매우 대단하여 
천하에서 능히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으리라고 말했습니
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음, 조금 전 그대가 나에게 일곱 장을 후려치게 되었을 때 나 역시 맞
받아치지는 않았다. 다만 그대의  화골면장의 장력을 모조리 되돌려 보
냈을 뿐이다. 이 장력은 그대의 몸에서부터 나왔으니 그대의 몸으로 되
돌아 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고약한 죄업은 그대 스스로 지은 것이
니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받도록 하되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도록 
해라.]

태후는 그만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그녀는  물론 화골면장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장력을 맞게 된 이후에는 전신의 뼈마
디가 녹아버리며 뼈 마디마디가  부러져 끝내는 온 몸뚱이가 솜처럼 흐
물거리고 손가락 하나 쳐들 힘마저  없어지게 된다. 과거 그녀는 이 장
력으로 동악비 자매와 동악비의  아들인 영친왕을 쳐 죽이지 않았던가? 
세 사람이 죽을 때의 참상을 자기가 친히 목격한 바였다. 이 백의 여승
의 무공이 그토록  뛰어나고, 또한 적의 장력을  적에게로 되돌려 놓는 
수법 역시 무학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고 보면, 그녀의 말이 결코 거짓
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일곱 장의 화골면장을 자기 몸에 때린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된 것이다.
조금 전 손을 쓸 때  그녀는 혹시나 매섭지 못할까봐 한평생 쌓은 힘을 
다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일장이라도 맞으면 견뎌낼 수 없
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잇따라 일곱 장을 후려쳤으니  어떻게 될 것인
가? 삽시간에 그녀는 공포가 극도에 달하게 되어 땅바닥에 꿇어앉아 부
르짖었다.

[사태께서는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백의 여승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업을 스스로 만들었으민 반드시 스스로 풀도록 해야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태후는 큰절을 했다.

[아무쪼록 사태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밝은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백의 여승은 말했다.

[너는 매사를 속이고 사실을 털어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밝은 길은 분
명히 바로 너의 눈앞에 펼쳐져  있건만 너는 굳이 그 길로 가지 않겠다
고 마다했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내 비록 자비심을 가지고 있다 해
도 나는 우리 한나라 동포에게 베풀겠다. 그대는 만주 오랑캐이고 나와
는 깊은 원한이 있는데, 오늘  그대의 목숨을 빼앗지 않은 것으로 이미 
커다란 자비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태후는 이  마지막 기회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
라지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백의 여승이 떠나기만 한다면 자기
는 수일 안으로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동악
비가 죽을 때 고통스러워하며 침대 위에서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던 정
경이 삽시간에 그녀의 망막에 떠올랐다. 그녀는 그만 전신을 부르르 떨
며 부르짖었다.

[사, 사태, 저는 오랑캐가 아닙니다. 저는, 저는..]

백의 여승은 물었다.

[그러면 뭐지?]

태후는 말했다.

[저는, 저는 한인(漢人)입니다.]

백의 여승은 냉소했다.

[이 순간에도 터무니없는 말만 지껄이는구나. 오랑캐 황후를 한인이 하
는 경우가 어디 있다더냐 ?]

태후는 말했다.

[저는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 아닙니다.  당금 황제의 친생모 
동가씨( 佳氏)의 부친 동도뢰( 圖賴)는 한군기 출신으로서 바로 한인입
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녀는 자식 때문에 귀하게  된 어머니이다. 소문에 듣건대 본래는 비
빈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녀는  한번도 황부가 되어 본 적이 없
다고 했다. 아들이 황제가 된  후에 그녀를 황태후로 추봉한 것이 아닌
가?]

태후는 머리를 조아렸다.

[예. 그렇습니다.]

그녀는 백의 여승이  다시 걸음을 옮겨 떠나려는  것을 보자 급히 말했
다.

[사태, 저는 정말 한인입니다.  저는 오랑캐를 죽도록 미워하고 있습니
다.]

백의 여승은 물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지?]

태후는 말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비밀입니다. 저는 원래  말하지 말아야 합니
다. 하지만....]

백의 여승은 말했다.

[말하지 말아야 한다면 말하지 않도록 하게.]

태후는 초조한 나머지 당장  목숨을 구하는 것이 급했으며 나머지는 돌
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저라는 태후는 가짜입니다. 저는....저는 태후가 아닙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백의  여승은 어리둥절해졌으며 침대 뒤에 숨어 있던 
위소보 역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의 여승은 천천히 의자에 
다시 앉으며 물었다.

[어째서 가짜라는 거냐?]

태후는 말했다.

[저의 부모님은 오랑캐에게  해침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랑캐를 죽도록 
미워합니다. 저는 강요에 못 이겨 궁으로 들어와 궁녀가 되있으며 황후
를 시중들게 되있습니다. 그 후에 제가 황후로 가장했습니다.]

위소보는 들으면 들을수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 늙은 갈보는 거짓말하는 데 거리낌이 정말 없구나. 그와 같은 괴상
한 말을 지껄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군. 늙은 갈보는 아직 백룡문에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사부이신  소백롱의 허풍 치는 재간을 모조리 배
운 모양이로구나. 내가 황궁으로 들어와 소태감으로 가장했는데 설마하
니 그녀 역시 정말 궁 안으로 들어와 황후로 가장했다는 말인가?)
태후는 다시 말했다.

[진짜 태후는 만주  사람입니다. 성은 박이제길특(博爾濟吉特)이라하며 
과이심(科爾心) 패륵의 딸입니다. 후배의 부친은 성이 모(毛)씨이며 절
강 항주에  사는 한인으로, 바로  대명나라 대장군 모문룡(毛文龍)입니
다. 후배는 모동주(毛東珠)라고 합니다.]

백의 여승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그대가 모문룡의  딸이라구? 과거  피도(皮島)를 지키던  모문룡 말이
냐?]

태후는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저의 아버님과  오랑캐는 매년 싸웠지요. 저의 부친
은 후에 원숭환(袁崇煥) 대원수에게 살해 당했습니다. 기실, 기실 그것
은 오랑캐의 반간계(反間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백의 여승은 아, 하고 말했다.

[그것 참 희한한 소문이군.  그대가 황후를 가장했는데 오랜 세월이 흐
르는 동안 어떻게 발견되지 않았느냐?]

태후는 말했다.

[후배는 황후를 다년간  시중들었습니다. 그녀의 말하는 소리나 행동거
지를 제가 그럴싸하게 흉내낼 수 있었지요. 저의 이 얼굴 모습 역시 가
짜입니다.]

그녀는 화장대 옆으로 가더니 한 조각의 비단 손수건을 들어 금으로 만
든 곽 안에 넣었다가 꺼냈다. 그 수건은 젖어 있었는데 얼굴 위에 갖다
대고 힘주어 몇 번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뺨에서 두 조각의 사람 가죽
으로 만든 물건을 뜯어냈다. 그렇게 되자 얼굴 모습이 크게 변했다. 본
래 오동통한 둥근 얼굴이 갑자기 수척하고도 갸름한 얼굴이 되었다. 그
리고 눈두덩이 아래는 움푹 꺼져 있었다. 백의 여승은 아, 하더니 매우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대의 얼굴이 정말 크게 달라졌군.]

잠시 생각해 보다가 그녀는 입을 일었다.

[그러나 황후로 조작한다는 것은 역시 수월한 노릇이 아니다. 설마하니 
그대의 곁에서 가까이 모시는  궁녀도 알아보지 못하더란 말이냐? 그리
고 그대의 남편도 알아보지 못하더란 말이냐?]

태후는 말했다.

[저의 남편이라면?  돌아가신 황제께서는 그저 그  불여우 같은 동악비 
한 사람만을 총애했습니다. 이 몇  년 동안 그는 황후의 거소에서 하릇
밤도 머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진짜 황후를 한번도 돌아본 적이 없었
지요. 그러니 가짜 황후임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이 몇 마디 말의 어조는 매우 쓸쓸했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제가 거의 비슷하게 화장한 것은  고사하고 설사 전혀 닮지 않았다 하
더라도 그는 흥, 그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백의 여승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황후를 시중들던  태감과 궁녀들도 설마하니 알아보지못하더
란 말이냐? ]

태후는 말했다.

[이 후배는 황후를 제압하자마자  자녕궁의 태감과 궁녀들을 모조리 새 
사람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저는  밖으로 나갈 때가 지극히 적었습니
다. 간혹 가다 부득이 나서지  않을 수 없을 때는 궁 안의 규칙이 엄해
서 태감과 궁녀들은 감히  정면으로 저를 쳐다보지못했습니다. 설사 멀
리서 힐끔거린다 하더라도 어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백의 여승은 갑자기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린 듯 말했다.

[틀렸어. 그대는 노황제가 그대를  돌보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대는, 그
대는 공주를 한 명 낳았지 않았는가?]

태후는 말했다.

[이 딸은 황제가 낳은 것이 아닙니다. 공주의 부친은 한인입니다. 때로 
몰래 궁 안으로 들어와서  저와 만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궁녀로 가장하
곤 했지요. 그 사람은 얼마 전에 불행히도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도홍영은 위소보의 손을 한 번 꼭 쥐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생각했다.
(가짜 궁녀로 변장한 남자는 정말 있었지. 다만 병사한 것이 아닐 뿐이
지.)
위소보는 다시 생각했다.
(그러니까 공주가 그토록 거칠고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했구나. 원래 그 
가짜 궁녀가 낳은 잡종이었구나. 노황제께서는 매우 자상하시고 온화하
시니 낳은 딸이 결코 그 모양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의 여승은 생각했다.
(그대가 갑자기 아기를 잉태했다가  딸을 낳았으니 노황제가 만약 그대
와 한 방을 같이 쓰지 않았더라면 어찌 의심을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이와 같은 규방의  사사로운 일에 대해서 그녀는 처녀로 출가한 
몸이라 차마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황후로 가장했다가 일단 잉태를 
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자 어찌  되었든 간에 감출 수 있는 방법을 강
구했을 것이니 그와 같은 일을 자세히 알아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대의 말은 그리 진실하게 들리진 않는군.]

태후는 급히 말했다.

[선배님, 이와 같이 부끄러운 일을 저는 솔직히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
니 나머지 일을 무엇하러 속이겠습니까?]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렇다면 그 진짜 태후는  그대에게 죽음을 당했겠군. 그대의 손에 묻
힌 피가 적지 않겠구나.]

태후는 말했다.

[후배는 독경을 하고 예불을  하는 몸입니다. 오랑캐에 대해서 깊은 원
한을 가지고 있지만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진짜 태후는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 있습니다.]

이 한 마디의 말에 침대 앞과 침대 뒤쪽의 세 사람은 모두 다 뜻밖이라
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그대는 비밀이 누설될까 두렵지 않은가?]

태후는 벽에 걸어 놓은 휘장  앞으로 가더니 휘장 옆의 양털로 만든 허
리띠 같은 것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 걸렸던 융단이 천천히 위로 말
려 올라가더니 커다란 장롱이  드러났다. 태후는 품속에서 황금 열쇠를 
꺼내더니 자물통을 열고서는 장롱의  문을 열었다. 한 여인이 드러누워 
있었다. 몸에는 비단 이불을 덮고 있었다. 백의 여승은 놀라 나직이 물
었다.

[그녀가, 그녀가 바로 진짜 태후인가?]

태후는 말했다.

[선배님께서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십시오.]

그녀는 손에 촛불을 들고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갔다. 백의 여승은 
그녀의 용모가 매우 초췌하고 핏기라고는 전혀 없었으나, 그 모습은 확
실히 태후의 얼굴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 여자는 눈을 살짝 떠보더니 
곧 감으며 나직이 말했다.

[나는 말하지 않겠어요. 그대는, 그대는 빨리 나를 죽여요.]

태후는 말했다.

[저는 한 번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는데 어째서 그대를 죽이겠어요?]

그러면서 장롱 문을 닫고 휘장을 내려놓았다. 백의 여승은 물었다.

[그녀를 이곳에 가둔 지 오래 되었는가?]

태후는 말했다.

[예.]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대는 그녀에게 무엇을 물었지? 그녀가 꿋꿋하게 버티며 말하지 않았
기 때문에 오늘까지 살아 있는 게 아닐까? 그녀가 일단 말을 하게 된다
면 그대는 즉시 그녀를 죽였겠지. 그렇지?]
[아닙니다. 아닙니다. 후배는 불문에서 으뜸가는 계율이 살생이라는 것
을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 종종 소채만을 가지고 밥을 먹으며, 결코 그
녀의 목숨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백의 여승은 싸늘하게 코웃음쳤다.

[그대는 나를 세  살 먹은 어린애로 아는가?  내가 그대의 심사를 모를 
줄 알고? 황후를 이곳에 가둬두고 있으니 시시각각 위험을 당할 처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대가 그녀를 죽이지  않는 것은 반드시 
어떤 도모하는 바가 있는 게  틀림없다. 만약 그녀가 장롱 안에서 소리
를 지르면 어쩔 셈이지?]

태후는 말했다.

[그녀는 감히 소리를 지를 수 없답니다.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만
약 이번 일이 들통나면 나는 먼저 노황제를 죽이겠노라고. 노황제가 죽
은 이후 저는 소황제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이 오랑캐 여인은 두 황
제에 대해서 정말 충심이  대단했으며 결코 그들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도대체 그대는 그녀에게 무엇을 다그쳐 물으려고 했지? 그녀가 말하지 
않았을 때 그대는 어째서 황제의 목숨으로 위협을 하지 않았지?]

태후는 말했다.

[그녀는 제가 만약 황제를 해치게 된다면 즉시 음식을 끊고 자결하겠다
고 했습니다. 그녀가 단식을 하지  않는 것은 제가 황제를 해치지 않겠
다고 응낙했기 때문이지요.]

백의 여승은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와 가짜 태후 가운데 한 사람은 단식으로 자결하겠다고 위협을 했
고 한 사람은 황제를 해치겠다고  위협을 했다. 각기 꺼리는 바가 있어 
다년간 대치하고 있었구나. 그런데도 그녀가 진짜 태후가 궁 안에 살아 
있도록 조처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한 가지 중요한 비밀을 캐어내지 못
했고 또 태후가 시종 그  사실을 실토하지 않은 까닭이다. 따라서 비밀
의 중대함도 가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물있다.

[내가 그대에게 묻는 말에 대해서 그대는 언제나 이러쿵 저러쿵 둘러대
며 대답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떤 비밀을 물으려고 했지?]

태후는 말했다.

[예, 예. 이것은 오랑캐의  기운이 크게 일어나느냐 쇠약해지느냐 하는 
커다란 비밀입니다. 오랑캐가 요동에서 크게 일어나서 우리 대명나라의 
천하를 차지한 것은 바로  그들 조상 무덤의 풍수지리가 더없이 훌륭했
기 때문입니다.  후배는 요동 장백산  속에 애신각라(愛新覺羅) 용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저  이 용맥을 파서 끊어 놓는다면 우리
들은 비단 한나라의 산천을  되찾게 될 뿐만 아니라 오랑캐들은 모조리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백의 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으로 그  말을 도홍영의 말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물었다.

[그 용맥은 어디에 있는가?]

태후는 말했다.

[그것이 바로 커다란  비밀입니다. 돌아가신 황제께서 임종시 소황제가 
나이가 어려 철이 없었고  또 돌아가신 황제께서 가장 총애하는 동악비
는 자기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에 이 커다란 비밀을 황후에게 말해 주어 
장성하게 되었을 때 소황제에게 전해 주도록 한 것이죠 그 당시 후배도 
황후를 시중들고 있는 궁녀로서 돌아가신 황제와 황후의 말하는 소리를 
엇듣게 되었으나 모조리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저도 그저 이 큰일을 
알아낸 다음 한 몌의 뜻있는 인사들을 모아 장백산으로 가서 용맥을 파
헤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대명나라는 다시 광명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백의 여승은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풍수와 용맥의 일은 허황묀 일들로서 믿기가 어렵다. 우리 대명나라가 
천하를 잃게 된 것은 역대 조정의 정사가 곱지 못하고 백성을 학대했기 
때문에 관가에서 백성들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한 탓이다. 이와 같
은 도리는  근년에 이르러 내가  천하를 주유하면서  겨우 깨달은 것이
다.]

태후는 말했다.

[예, 사태께서는 사리를 통찰하고 계시니 물론 이 후배가 미칠 수 없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나라 천하를 되찾는 데는 그 풍수설과 용맥에 
관한 일을 믿었으면 믿었지 없다고 불신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용맥을 
파혜쳐서 영험한 효과가  있다면 천하 수천만 백성을  깊은 물 속에서, 
뜨거운 불 속에서 건져내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백의 여승은 갑자기 얼굴 표정이 변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말이 옳다. 도대체  정말 영험한지 모르는 일이지만 설사 무익
하다고 하더라도 결코 손해를 입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 일을 천하
에 알린다면 오랑캐의 군신들은 용맥의 일을 깊이 의심치 않을 것이니, 
그들은 마음속으로 먼저 기가  죽게 될 것이고 우리들은 나라를 되찾자
는 각오를 다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대가 진짜 태후에게 다그쳐 
묻는 것이 바로 이 비밀이었느냐?]

태후는 말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 계집년은 그녀의 자손과 가업에 관련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죽어라 하고 실토하지 않았습니다. 이 
후배가 계책을 써서 속이려 하고 강제적인 수단으로 위협을 하는 둥 이 
몇 년 동안 그야말로  온갗 방법을 동원했습니다만 그녀는 시종 죽었으
면 죽었지 말을 하지 않고 버텨왔습니다.]
[그대가 그녀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나머지 몇 권의 경서가 어디에 있
느냐 하는 것이겠지?]

태후는 깜짝 놀라서는 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선배님은.... 선배님은 이미 알고 계셨군요.]

백의 여승이 말했다.

[그와 같이 커다란 비밀은 바로  이 경서 속에 숨겨져 있지 않는가? 그
대는 몇 권을 얻었지?]

태후는 말했다.

[사태의 법력은 정말 신통광대하셔서 모르는 것이 없군요. 후배는 감히 
속일 수가 없습니다.  본래 저는 이미 세  권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는 
돌아가신 선제께서 동악비에게 내린  것이고 그녀가 죽은 후 이곳에 남
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두  권은 간신 오배의 집에서 몰수한 것입
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누군가가 궁 안으로 들어와 저를 찔러 죽이려
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가슴팍에 한 칼을 찌른  이후 그 세 권의 
경서를 모조리 훔쳐 갔습니다. 사태께서는 보십시오.]

그녀는 겉옷을 벗고 내의를  풀어 헤치더니 가슴팍의 커다란 상처 자국
을 드러냈다. 위소보는 크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더 묻게 된다면 사태는 나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이때 백의 여승이 말했다.

[나는 그대를 찔러  죽이려고 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결코 그대의 세 권 경서를 가져가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 세 권의 경서를 만약 도홍영이 가져갔다면 그녀가 결코 말하
지 않았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태후는 놀라 말했다.

[그 자객이 경서를 훔쳐가지  않았다구요? 그렇다면 그 세 권의 경서는 
누가 훔쳐갔지요? 이건 정말 이상하군요.]

백의 여승은 말했다.

[사태께서는 오랑캐를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하고 있는 데다가 또 법력
이 신통하시니, 이 커다란 비밀을 능히 선배님에게 넘겨서 선배님이 대
국을 이끌어 가도록 하고  오랑캐의 용맥을 파헤치게 된다면, 저로서는 
바라고 바라던 바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후배가 어찌 다시 속이
겠습니까? 더군다나 여덟 권의 경서는 반드시 함께 손에 넣어야 용맥의 
소재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한 권은 이미 사태의 수중에 들어가 
있으니, 후배에게 설사 다른 세  권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
습니다.]

백의 여승은 냉랭히 말했다.

[도대체 그대가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로서도 추측할 
수가 없다. 그대가 바로 모문룡의 딸이라면 신롱교와는 지극히 깊은 관
계가 있겠군!]

태후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그런 관계는 없습니다.]

백의 여승은 그녀를 잠시 노려보더니 말했다.

[내 그대에게 한 가지 화골면장의 독을 해소시키는 방법을 전수해 주도
록 하지.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세 번 그 방법으로써 나무를 후려치되 
81일 동안을 계속하게 된다면  어쩌면 그대의 몸 속에 스며든 화골면장
을 해소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태후는 크게 기뻐서  다시 꿇어 엎드려서 사의를  표했다. 백의 여승은 
즉시 구결을 전수하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로 그대가 내력을 돋구어 손으로 사람을 해치게 된다면 전
신의 뼈마디가 즉시 끊어질 것이고  그 누구도 그대를 구할 수 없을 것
이야.]

태후는 나직이 대답했다.

[예.]

그녀의 표정은 매우 침울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느굿해졌다.
(이후 늙은 갈보를 만나게 되고 설사 나에게 오룡령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그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백의 여승은 옷자락을 떨쳐 그녀의  혼혈을 짚었다. 태후는 대뜸 두 눈
을 까뒤집고는 땅바닥에 쓰러져 기절해 버렸다. 백의 여승은 나직이 말
했다.

[이제 나오너라.]

위소보와 도흥영은 침대 뒤에서 걸어 나왔다. 위소보는 말했다.

[사태, 이 여자는 말을 함에 있어서 삼 푼 정도는 정말이지만 칠 푼 정
도는 가짜이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백의 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서에 숨겨져 있는 비밀은 비단 오랑캐의 용맥에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는 금은  보화도 있건만 그녀는 일부러 들먹이지 않았
지.]

위소보는 말했다.

[제가 다시 찾아 보기로 하죠.]

그는 일부러 이곳저곳을 뒤지는  척했다. 그러다가는 이불과 요를 들추
었다. 그러자 비밀리에 만들어 놓은 상자 뚜껑의 구리 고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기뻐서 부르짖었다.

[경서가 이곳에 있습니다.]

그는 그 비밀리에 만든 격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은밀히 만
들어진 격자 안에는 적많은  보물과 은표가 들어 있었으나 경서는 없었
다.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었다.

[경서가 없군요. 보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백의 여승은 말했다.

[보물을 모두 꺼내게. 이후 의거를 일으키고 명나라의 천하를 되찾으려
면 매사에 돈이 필요하다네.]

도홍영은 보물과 은표를 한  조각의 비단에 싸서 백의 여승에게 건네었
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늙은 갈보는 이번에 크게 손재를 당했군.)
그는 다시 생각했다.
(어째서 지난 번에 은밀히  만든 격자 안에는 은표와 주보가 없었을까? 
그렇지. 지난 번에는 경서를 넣었으니까 다른 물건을 넣어둘 수 없었겠
지. 애석하군. 애석해.)
백의 여승은 도홍영에게 말했다.

[이 여인이 태후로  가장한 것은 십중팔구 달리  도모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대는  은밀히 이 궁에 숨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해
라. 다행히 그녀는 무공을 상실하게 되었으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도홍영은 대답했다. 옛날 주인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재차 헤
어져야 하다니 그녀로서는 매우  아쉬운 노릇이었다. 백의 여승은 위소
보를 데리고서  담장을 넘어 궁을 나섰다.  그들은 객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경서를 꺼내 살펴보았다. 이 경서는 겉장이 노란 비단으로 되
어 있었는데 바로 순치 황제가 위소보에게 내주면서 강희에게 건네주라
고 한 것이다. 백의  여승은 책장을 들추었다. 책장 머리에는 영불가부
(永不加賦)라는 넉 자가 크게 씌어 있었다. 1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위소보에게 말했다.

[오랑캐 황제가 영원히 세금을 추가하지 않겠다는 한 마디는 과연 이곳
에 씌어 있군.]

그리고 한장 한장 펼쳐 갔다. 사실 이 장경의 경문은 무척 짧은 편이었
다. 매 일장마다 그저 간단하게 몇 줄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체가 
매우 컸다. 이 경문에 대해서 그녀는 이미 외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
런데도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읽어 보았다.  원래의 경문과 한 
자도 틀린 것이  없었다. 그녀는 다시 책장을  촛불에 비추어 보았으나 
겹장으로 된 그 안쪽에 글자가  씌어 있는 흔적 역시 발견할 수가 없었
다.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갑자기 맑은 물에 겉장을 담아 적
셨다. 그리고는 가볍게 뜯어내었다.  그러고 보니 안에는 두 겹의 양피
가 있었고 사변은 촘촘하게 실로  봉합이 되어 있었다. 그 실들은 뽑게 
되자 두 겹의 양피 사이에는 백 여 조각의 지극히 엷은 양피가 들어 있
었다. 위소보는 기뻐서 부르짖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이것이 커다란 비밀입니다.]

백의 여승은 그 조각조각난 것들을  탁자 위에 늘어 놓았다. 그러고 보
니 매 조각들은 크고 작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 네모진 것도 있었고 둥
근 것도 있었으며  혹은 세모 꼴의 모양도  있었고 또는 육각의 모양도 
있었다. 그리고 껍질 위에는 많은 구불구불한 붉은 선들이 그어져 있었
고 따로 검은  먹으로 써 놓은 만주 글자가  있었다. 모든 그림과 글은 
이미 가위로 잘려져 완전하지가  않았으며 백 여 조각이나 되었지만 각
기 조각난 양피들은 서로 맞붙일  수 있는 것이 없어 좀처럼 맞출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원래 매 한 권의 경서에는 조각난 양피를 숨기고 있었군요. 여덟 권의 
경서를 모조리 얻어야만이 한 장의  지도를 짜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
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아마도 그런 것 같군.]

그녀는 조각난 양피를 원래의 두  겹의 양피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리
고 비단 보자기에 싸서는 주머니에 갈무리를 했다.
이튿날 백의  여승은 위소보를 데리고 북경을  나서서 서쪽으로 걸어갔
다. 그리하여 창평현(昌平縣)  금병산(錦屛山) 사릉(思陵)에 이르게 되
었다. 이곳은 바로 숭정 황제를 안장한 곳이었다. 능 앞에는 잡초가 우
거져 있어서 그 모습이 무척 황량했다.

백의 여승은 길을 오는 동안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제
는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능 앞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다. 위소보 역
시 엎드려서는 큰절을 했다.  갑자기 옆에 기다란 풀이 움직였다. 고개
를 돌려 바라보니 시야에 와 닿는 것은 녹색의 치마였다. 이 녹색의 치
마를 위소보는 낮에 몇 천만 번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었고 밤에는 꿈에
서 몇 천 번을 껴안고  뒹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
을 발견하게 되자 가슴이 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혹시나 또 꿈
을 꾸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일시 고개를 쳐들지 못했다. 이때 부드럽고 
간드러진 음성이 들려왔다.

[끝내 돌아오셨군요. 저는 이곳에서 사홀을 기다렸어요.]

곧이어 한숨 소리가 들리더니 말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바로 녹의 소녀의 음성이 아닌가.
이 한 마디의 부드럽고도 간드러진 음성이 귀에 와 닿자 위소보는 대뜸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땅이 흔들흔들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너무나 좋
아서 온몸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예, 예. 그대가 이미  저를 사흘이나 기다렸다구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그대의  말을 듣기로 하죠. 나는 슬퍼하지 않겠
소이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먼저 망막에  비쳐든 것은 바로 녹의 소녀의 아름
답기 이를 데  없는 귀여운 용모였다. 그런데  그녀의 부드러운 안색이 
그를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바뀌어지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웃었다.

[나 역시 그대를 얼마나 생각했는지...]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아랫배가  아파왔다. 그 순간 몸이 붕 떠올랐
고 뒤로 일  장여 밖으로 날아가서는 심하게  땅바닥에 떨어졌다. 바로 
그녀에게 발길질을 당한 것이다. 그 소녀는 유엽도(柳葉刃)를 쳐들더니 
그의 머리 위를 내려치려고 했다. 그는 급히 몸을 굴렸다. 퍽, 하는 소
리와 함께 그 칼은 땅바닥을  후려치게 되있다. 그 소녀는 다시 칼질을 
하려고 했다. 백의 여승은 호통을 내질렀다.

[손을 멈추어라!]

그 소녀는 왁, 하니 울음을  터뜨리고 칼을 던지더니 백의 여승의 품속
으로 뛰어들며 울부짖었다.

[저 나쁜 사람은 전문적으로 저만 괴롭혀요. 사부님, 빨리 그를 죽이세
요.]

위소보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으며 또한 겸연쩍기도 해서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그녀는 사태의  제자였구나. 조금 전 두  마디 말은 결코 나한테 
한 것이 아니있구나.)
그는 울상을 지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으며 다시 생각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이상 나는 그저 죽어라 하고 좋은 사람처럼 행동
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사태를  속여 크게 자비심을 베풀게 해서 저 
녹의 소녀를 나에게 짝지워 주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게다.)
그는 몸을 일으켜 앞으로 다가가 그 소녀에게 깊이 읍을 하고 말했다.

[소인은 우인히 소저에게 죄를  짓게 되었으니 소저는 대인의 아량으로 
너무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저가 나를 때리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손을 쓰도록 하시오. 다만 소저는 소인의 목숨만은 용서해 주도록 하시
오.]

그 소녀는 두 손으로 백의 여승을 얼싸안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돌리지 
않았다. 그녀는 뒤로 발을 들어서는 발 뒤꿈치로 위소보의 아래턱을 걷
어찼다. 그는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더니 낑낑 거
리면서 일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아가(阿珂), 너는 어째서  불문곡직하고 이 사람을 만나자마자 두번이
나 발길질을 하느냐?]

위소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서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너의 이름은 아가였구나. 끝내 알아내게 되었군.)
그는 백의 여승을 시중든 지 이미 며칠이 되었기 때문에 그녀가 공손하
고 겸허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의 앞에
서는 더욱더 손해를 볼수록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고 재빨리 말했다.

[사태, 소저의 두 발길질은  원래 제가 걷어채여 마땅하답니다. 실제로 
저의 잘못이기 때문에 소저가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녀가 
저를 다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걷어찬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기 때문이지요.]

아가는 흐느끼며 말했다.

[사부님, 저 소화상은  나쁘기 짝이 없어요. 그는  나를 업수이 여겼어
요.]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가 어떻게 너를 업수이 여기더냐?]

아가는 얼굴을 붉혔다.

[그는, 그는 나를 여러 번 업수이 여겼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사태, 어쨌든 간에 제가  명청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공도 소저보다 
훨씬 뒤떨어졌습니다. 그날 소저는 소림사로 놀러 왔었습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네가 소림사로 갔다구? 여자애가 어찌 소림사로 갈 수 있다더냐?]

위소보는 속으로 다시 기뻐했다.
(그녀가 소림사로  간 것은 원래 사태의  분부가 아니었구나. 그렇다면 
더욱 잘되었다.)
그는 말했다.

[그것은 소저 스스로 간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한 분 사저와 함께 간 
것이랍니다. 소저는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해서 함께  동행을 하게 된 
것이죠.]

백의 여승은 말했다.

[너는 또 어떻게 알고 있지?]

위소보는 말했다.

[그때 저는 오랑캐 황제의 명을 받고 그를 대신하여 소림사에 출가하여 
중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한 분의 소저가 소림사로 걸어오
고 있고 소저가 바로 뒤에서 걸어오는데 내키지 않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아기(阿琪)가 너를 데리고 갔느냐?]

아가는 말했다.

[예.]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것이냐?]

아가는 말했다.

[그들 소림사의  화상들은 흉악하기 이를 데  없었어요. 그들의 규칙은 
여자들에게 절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나요.]

위소보는 말했다.

[예, 예. 그 규칙은 정말 나빴죠. 어째서 여시주들이라고 해서 절로 들
어갈 수 없단 말입니까? 관세음보살도 바로 여자가 아닙니까?]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게냐?]

위소보는 말했다.

[소저는 상대방이 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자 그냥 돌아가자고 했
지요. 그런데  소림사의 네 명의 지객승은  예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함부로 하여 두 분  소저에게 죄를 짓게 되었는데 주제 넘게도 무
공도 훨씬 뒤떨어지는 것들이 거드름을 피운 거죠.]

백의 여승은 아가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상대방과 손을 썼구나?]

위소보는 서둘러 말했다.

[그것은 모두  소림사 지객승의 잘못입니다. 이것은  제가 친히 목격한 
것입니다. 그들은  손을 뻗쳐 두 소저를  밀려고 했습니다. 사태께서는 
생각해 보십시오. 두 분  소저는 천금지체(千金之體)인데 어찌 네 화상
의 더러운 손이 그녀들의 가슴에 닿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두 분 소저
는 자연히 몸을 날려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네 화상은 터무니없
는 손짓을 하다가  그만 손과 발을 산  정자의 기둥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래서 약간의 통증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백의 여승은 싸늘히 코웃음쳤다.

[흥! 소림사의 무공은 무림을  영도할 지경인데 어찌 그토록 형편이 없
더란 말이냐? 아가, 너는 손을 쓸 때 어떤 초식을 썼느냐?]

아가는 감히 속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나직이 설명했다. 백의 여
승은 말했다.

[너희들은 네 명의 소림 승려를 모두 때려 눕혔느냐?]

아가는 위소보를 한번 쳐다보고 나서 증오에 찬 어조로 말했다.

[저자까지 합하면 다섯 명이죠.]

백의 여승은 말했다.

[너희들 정말 간이 적지 않구나. 소림사로 가서 상대방 다섯 분의 소림
사 승려들의 손과 발을 비틀어 관절을 뽑아 놓았다니!]

그녀는 두 눈에 번개와 같은 빛을 띠우고는 아가의 전신 아래위를 훑어 
보았다. 아가는  놀라 얼굴이 더욱더 창백해졌다.  백의 여승은 그녀의 
목에 붉은 상처 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 칼자국은 절의 고수가 낸 것이냐?]

아가는 말했다.

[아, 아니에요. 그.... 그..]

그녀는 고개를 쳐들고 위소보를 흘겨보았다. 갑자기 두 뺨이 빨갛게 물
들더니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는, 그는 정말 저에게  부끄러움과 모욕감을 안겨 주었어요. 제자는 
스스로 칼을 휘둘러 목을 자르려고 했으나 죽지 못했어요.]

백의 여승은 처음 두  명의 제자가 소림사로 올라가서 터무니없는 망나
니 짓을 했다는 말을 듣고  무척 노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에 칼자국 
상처가 매우 기다랗게 나 있는 것을 보고 연민의 정이 끓어 을랐다.

[그가 너에게 어떤 수모를 주있지?]

아가는 왁, 하니 을음을 터뜨렸다. 위소보는 말했다.

[정말 저의  커다란 잘못이있습니다. 저는 말을  함에 있어서 아래위도 
없었고 분수도 없었습니다. 소저는 그저 저를 잡고서 놀려 주려고 저의 
두 눈을 뽑겠다고 말했을 뿐  진짜로 눈을 뽑겠다는 것이 아닌데도, 저
는 간이 적어 그만 혼비백산할  정도로 놀라서 두 손을 뒤로 획 돌려서
는 허우적거리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그만 조심하지 못하고 소저의 
몸에 손이 닿게  되었지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소저가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아가의 예쁜  얼굴은 부끄러움에 새빨개지고  말았다. 그러나 눈초리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빛이 떠올랐다. 백의 여승은 몇 마디 당
시 손을 쓰게 된 초식을 물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이미 짐작
할 수 있었는지 말했다.

[그것은 무심코 저지른 과실이다.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네
가 이미 유연귀소(乳燕歸巢) 일초로  그의 두 팔을 비틀어 놨으니 이미 
그에게 벌을 준 셈이다.]

백의 여승은 아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그는 아직은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는 태감의 신분
인데 뭘 그리 걱정하느냐?]

아가는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이 어째서 어린애란  말이야? 그는 기녀원에 들어가서 나쁜 짓
까지 했는데.)
그러나 그 말은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사부가 다그쳐 묻게 된다
면 자기가 사저를 따라  기녀원으로 들어가 사람을 때리게 되었다는 사
실이 들통나지 않겠는가?
위소보는 땅바닥에 엎드려서는 큰절을 하며 말했다.

[소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다면 다시 나에게  몇 번 발길질을 해서 
화를 풀도록 하시오.]

아가는 발을 구르며 울었다.

[나는 오히려 차지 않겠어요.]

위소보는 손을 들어 철썩철썩, 하니 자기 얼굴에 따귀를 몇 대 때렸다.

[내가 죽을 죄를 지었소이다. 내가 죽을 죄를 지었소이다.]

백의 여승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이 일은 그대의 잘못이라고 할  수가 없다. 아가, 우리들은 너무 사람
을 못살게 굴어서는 안 된다.]

아가는 흐느끼며 말했다.

[그가 나를 업수이 여기고 못살게 군 거예요. 나를 잡아가서는 절 안에 
가두고 놓아주지 않았어요.]

백의 여승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예. 예. 그것은 제가 잘못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소저의 호감을 사
려고 그녀를 절 안으로 모시고 들어간 것이죠. 저는 속으로 이 일은 어
찌 되었든간에  소저가 소림사로 들어와 구경을  하는 데서 비롯되었고 
절의 화상들이 그녀에게 들어가지  못하게 했으니 그녀가 화를 내는 것
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크게 용기를 내어서는 소저
를 모시고 반야당으로  들어가 놀도록 한 것이죠.  그리고 한 노화상이 
소저를 모시고 말동무가 되도록 해드렸습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했구나. 정말 두 어린애가  터무니없는 짓을 했
어. 그 노화상은 누구냐?]

위소보는 말했다.

[반야당의 수좌 징관 대사입니다. 바로 사태께서 청량사에서 그와 일장
을 교환한 바 있죠.]

백의 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 대사의 무공은 정말 뛰어나더구나.]

그녀는 다시 아가의 어깨를 두들기고 말했다.

[좋다. 그분 대사는 무공이 고강할 뿐만 아니라 나이가 많으셨다. 소보
가 그를 모시고 와 너의  말동무가 되게 해주었다고 하는 것은 너를 억
울하게 대접한 것이 아니다. 이 일은 차후 더 말하지 않기로 하자.]

아가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악인은 실로 나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많은 일에 있어서 말하기가 
거북하다. 그렇지 않을 때 사부가  따지고 들게 된다면 사저와 나도 꾸
지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말했다.

[사부님은 모르세요. 그는..]

백의 여승은 그녀를 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숭정의 무덤을 향하여 
앉은 채 멍하니 넋을 잃고  있었다. 위소보는 아가에게 혀를 쑥 내밀어 
보이며 용용 죽겠지 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가는 너무 화가 나서 그
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위소보는 그녀가 설사 화를 낸다 하더라도 아름
답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그는 옆에서 
눈 한 번 돌리지 않고 눈 한 번 깜박하지 않고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았
다. 그녀의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머리카락,  눈썹은 물론, 손가락 
하나 하나 지극히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가는 곁눈질로 그를 힐
끔 쳐다보았다. 그가 멍하니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백의 여승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사부님, 그는 나를 훔쳐 보고 있어요.]

백의 여승은 그저 음,  했을 뿐이있다. 마음속으로는 과거 궁중에서 보
내던 정경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한 마디 말을 전혀 듣지 못하
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앉은 채로 시간을 보내는 중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뉘엇뉘엿 넘
어갔다. 백의 여승은 여전히  부친의 무덤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위소
보는 그녀가 그렇게 열흘이고 보름이고 줄곧 앉아 있기를 바랬다. 그저 
눈을 들어 아가를 볼 수만 있다면 밥을 먹지 않아도 상관 없을 것 같았
다. 아가는  위소보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온 몸이 부자연스러워졌다. 
눈을 돌려 그를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자기의 몸을 훑어보고 있다
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속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했으며 
또 한차례 울화가 치밀기도 해서 생각했다.
(저 소악인은 교묘한 언변으로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사부님
을 속여서 언제나 자기를  감싸도록 하고 있구나. 좋다. 사부님께서 계
시지 않을 때 내가 그를  반드시 혼내 줘야 되겠다. 사부에게 꾸지람과 
벌을 한바탕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가 나를 이토록 부끄럽고 모욕되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다시 한 시간 남짓 흐르게 되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백의 여승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 가자.]

그날 밤 세 사람은 한 농가에서 자게 되었다. 위소보는 백의 여승이 깨
끗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밥을 먹게 되었을 때 
먼저 그녀들 두  사람의 그릇과 젓가락을 뜨거운  물로 씻었다. 그리고 
그녀들 두 사람이 앉은 걸상과  밥 먹는 탁자를 닦아서 티끌 하나 묻지 
않도록 하는가 하면  침대 위도 깨끗이 정돈하는  등 그녀들 두 사람이 
머무는 한 칸의 방을 깨끗하게 치워 주있다.
그는 언제나 게으른  편이었다. 이토록 부지런히 일을  한 것은 한평생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다. 백의  여승은 암암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
로 생각했다.
(저 애는 정말 부지런하구나.  밖으로 나가 돌아다닐 때는 그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오히려 훨씬 편리하겠구나.)
그녀는 열다섯 살 전까지는 깊은  궁궐 안에서 세윌을 보냈고, 어릴 적
부터 궁녀와 태감들의 시중 받는  것이 버릇이 된 몸이있다. 그러나 나
라를 잃고 강호를 떠돌아다니게  되면서 일상의 기거와 음식은 자연 전
과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위소보는  태감 노릇이 몸에 밴 사람이고 또
한 진심으로 비위를 맞추고자  했기 때문에 백의 여승으로 하여금 옛날 
공주였을 때 누렸던 즐거움을 다시 누리도록 할 수 있었다.
백의 여승은 출가하여 불도를  닦게 된 만큼 옛날의 호화스러움에 대해
서는 물론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어릴 적에 어떻게 세월을 보냈
느냐 하는 것은 한평생 깊이 뇌리에 박혀 있기 마련이고 다시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시 공주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으나  위소보는 그야말로 그녀를 
공주처럼 시중 들어 주니  그녀로서는 자연 기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 저녁밥을 먹은 후 백의 여승은 아기의 행방을 물었다. 아가는 말했
다.

[그날 소림사 밖에서 이후 다시 사저를 만나 보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아무래도 이미 그에게 해침을 당해 죽었을 거예요.]

그녀는 눈을 들어 위소보를 홀겼다. 위소보는 재빨리 말했다.

[그런 일이 어디 있어요? 저는 아기 소저가 몽고의 갈이단 왕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몇 명의 라마들과 오삼계 휘하의 총병도 
함께 있었습니다.]

백의 여승은 오삼계의  이름을 듣자 대뜸 안색이  확 변하여 입을 열었
다.

[아기가 어째서 아무 상관도 없는  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다닌단 말
이냐?]

위소보는 말했다.

[그 사람들은 소림사로 오는 길에  아마 아기 소저와 우연히 만나게 된 
모양입니다. 사태, 사태께서 그녀를 찾고자 하신다면 제가 모시고 가도
록 하지요. 그렇게 된다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건 어째서인가?]

위소보가 말했다.

[그 몽고인들과  라마들, 그리고 운남 군관의  얼굴 모습을 저는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일을 처리하기가 쉽
지 않겠습니까?]

백의 여승은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그대는 나를 따라 함께 찾도록 하자.]

위소보는 크게 기뻐하며 재빨리 말했다.

[사태, 정말 감사합니다.]

백의 여승은 의아하여 물었다.

[네가 나를 도와 일을 처리하니 마땅히 내가 너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야 
하거늘 네가 왜 나에게 인사를 하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매일같이  사태를 따르는 것이 더없이  즐겁고 기쁩니다. 영원히 
사태를 곁에서 모시게 되었으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설사 그럴 수 
없다 하더라도 하루라도 더 모시게 되면 하루가 더 기쁠 것 같습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런가?]

그녀는 아기와 아가 두 사람을  제자로 삼게 되었으나 평소 그 두 제자
에 대해서 줄곧 냉랭히 대해  왔었다. 두 소녀는 그녀를 존경하고 두려
워했으며 한 번도 자기네들의 심사를  털어 놓는 적이 없었다. 또한 위
소보처럼 그토록 교묘한 언변에다가  달콤한 혀를 휘두를 수 있는 능력
이 없었다. 백의  여승은 성격이 엄하고 차가운  편이었으나 그와 같은 
말을 들을 때  역시 흐뭇한 노릇인지라 불현듯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아가는 말했다.

[사부님, 그는, 그는, 그는 결코....]

그녀는 위소보가 자기의 사저를  열심히 찾으려고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와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사태를 
따르게 된다면 역시 즐겁고  기쁘며 영원히 사태의 곁에서 모셨으면 가
장 좋겠습니다는 등의 말들은 기실  그 마음속의 참 뜻과 대조를 해 본
다면 마땅히 사태라는 두  글자를 아가라는 두 글자로 바꾸어야만 옳았
다. 백의 여승은 그녀에게 두 눈을 부릅떴다.

[어째서 결코 아니라는 것이냐? 네가 또 어떻게 남의 심사를 안단 말이
냐? 내 예전에 너희들에게 종종 말했지만 강호의 인심이 험악하고 간사
하여 그 사람들의 말을 모조리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어린 
사람은 나를 며칠 동안 따랐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믿을 만
하다. 또한 나이 어린 소년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강호의 사내들과 일
괄적으로 함께 논할 수 있단 말이냐?]

아가는 감히 더 말할 수 없어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가, 훌륭한 마누라야. 너의  낭군은 물론 여느 사람과 다르다. 어찌 
강호의 사내들과 일괄적으로 논할 수 있겠느냐? 너는 너의 사부의 말을 
듣도록 해라. 그러면 결코  손해보지 않을 것이다. 암! 내가 보장하지! 
기껏해야 나에게 시집오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내가 그대를 순순히 놔
줄 줄 아느냐? 아무쪼록 마음을 푹 놓도록 해라.)



第56章. 부상당한 백의 여승

이 날 세 사람은  남쪽을 향해 나아갔고 길을 가면서 아기의 행방을  수
소문했다. 길을 가는 동안 위소보는 두 사람에게 매우  친절하게 시중을 
들어주었다. 마음속으로는  아가가 사랑스러워 죽을 지경이었으나  조금
도 그런 경박하고 오만한 태도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만약 백의  여승이 그와 같은 눈치를 채게 된다면 큰  일이
라고 생각했다.
아가는 그에게 한번도 좋은  말로 대한 적이 없었다. 종종 백의  여승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주먹으로 그를 때리거나 발길질을 해서  그에게 화
풀이를 했다.
위소보는 그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면 만족했고 흐뭇해지는 것을  금
할 수 없었다. 간혹 한두 대 맞기는 했지만 그것도  주먹으로 오면 몸으
로 맞았고 발로 차면 엉덩이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침대 위에
서 그녀가 치고  때리던 정경을 곰곰이 음미해 보면 그야말로  즐거움이 
무궁무진했다. 창주(滄洲)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객점에서 머물게  되
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위소보는 거리에 나가  신선한 소채를 사서  객점의 
사환에게 주어 백의 여승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그는 흥이 나서 총총히  두 근의 배추와 반 근의 부피(腐皮) 등  반찬거
리를 사들고  왔다. 그리고 보니 아가가  바로 객점 문  앞에서한가하게 
이것저것 구경을 하며 웃고 있었다.
그는 즉시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가갔다. 그리고 품속에서 한  봉지의 매
괴송자당(梅鬼松子糖)을 꺼내 주면서 말했다.

[거리에서 그대를 위해 사탕을 한 봉지 샀어요. 이 조그만  고을에도 이
와 같은 사탕이 있더군요.]

아가는 받지 않고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대가 산 사탕은 구린내가 나서 싫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하나만 먹어 보구려. 맛이 정말 괜찮소이다.]

그는 옆에서 살핀  결과 아가가 군것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백의 여승은 그녀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
간혹 조그만 봉지의  콩엿을 맛있게 먹어대는 그녀를 보았기 때문에  그
는 사탕을 한 봉지 사서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한 것이다.
아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 사탕 봉지를 받더니 말했다.

[사부님은 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내공을  연마하고 계세요. 나는  너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군요. 어디 풍경 좋고 조용한 곳이  없을까요? 그
런 곳이 있으면 나와 함께 같이 놀러 가요.]

위소보는 자기의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대뜸 전신에 뜨거운  피가 끓
어올랐다.
그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대는, 그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오?]

아가는 말했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대가 싫다면 나 혼자 가겠어요.]

그녀는 동쪽의 소로를 따라 걸어갔다.
위소보는 황급히 소리쳤다.

[갑니다! 갑니다!  어찌 가지 않을 수  있겠소? 소저가 나에게 끓는  물 
속이나 타는 불 속에 들어가라고 하더라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외다.]

그는 재빨리 그녀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조그만 고을에서 벗어났다. 아가는  동남쪽 수마장 밖의  한 
조그만 산을 가리켰다.

[저쪽이 놀기에 괜찮겠군요.]

위소보는 흐뭇해져서는 재빨리 말했다.

[예,예.]

두 사람은 산길을 따라서 산 위로 올랐다.
이 조그만 산 위에는  빽빽하게 소나무가 서 있었다. 정말 조용하고  인
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풍경은 별로 대단하지 못했다.
그러나 천하에서 가장 황량한 산천이라 하더라도 지금  위소보의 눈에는 
뛰어난 절경으로만 느껴질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경치가 좋고 나쁜  데 
대해서 그가 판가름할 능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즉시 크게 칭찬의 말을 했다.

[이곳의 풍경은 정말 멋지기 이를 데 없군!]

아가는 말했다.

[뭐가 아름답다고  그래요? 그저 어지럽게  널린 바위와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을 뿐, 보기 흉해요.]

위소보는 말했다.

[예, 예. 풍경이라는 것은 본래 별로 보기에 대단할 것은 없죠.]

아가는 말했다.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이곳의 풍경이 정말 멋지다고 말했죠?]

위소보는 웃었다.

[원래 풍경은 별로  아름답지 못하지만 그대의 모습이 어우러지게  되자 
멋지기 이를 데 없는 풍경으로 번하게 된 것이조 이 산 속에  꽃은 없으
나 그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만 송이의  싱싱한 꽃보다더 아름답소.  산 
위엔 새들이 없지만  그대의 음성은 그야말로 천 마리의 꾀꼬리들이  일
제히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도 더 아름답소.]

아가는 싸늘히 코웃음치더니 말했다.

[흥, 내가 그대에게  이곳까지 오자고 한 것은 그대의 터무니없는  소리
를 듣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빨리  내 곁에서 멀리 사라져  달라는 
말을 하려는 거였어요. 이후부터 다시는 내 앞에서  얼씬거리지 말아요. 
만약 다시 나에게 발견된다면 반드시 그대의 눈알을 뽑아 버리겠어요.]

위소보는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 울상을 지으며  입을 
일었다.

[소저, 이후 다시는 그대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하겠소.  아무쪼록 나를 
용서해 주시오.]

아가는 말했다.

[나는 확실히 그대를  용서했어요. 오늘 그대의 목숨을 빼앗지 않은  것
이 바로 용서를 뜻하는 것이에요.]

그러더니 삭, 하고 허리띠에서 유엽도를 뽑아들더니 다시 말했다.

[그대가 나를 따르면서  마음속으로 언제나 엉큼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을 설마하니 내가 모를  줄 알아요? 그대가 그토록 나를 부끄럽게  하
는데 차라리 사부님께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매질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대를 죽이고 말겠어요.]

위소보는 유엽도에서 싸늘한 광채가 번쩍이고 또한 그녀의  꿋꿋한 성격
을 돌이켜 보자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

[사태께서는 나에게  함께 아기 소저를  찾자고 했소이다. 그녀를  찾게 
된 이후 나는 다시는 그대를 쫓아다니지 않도록 하지요.]

아가는 고개를 냅다 도리질했다.

[안 돼요. 그대의 도움  없이도 우리들은 찾을 수 있어요. 설사  찾아내
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사저는 세 살 먹은 어린애가 아니에요.  설마 
자기 혼자 되돌아오지 못하겠어요?]

그녀는 유엽도를 들고서 허공에 대고 몇 번 휘둘렀다. 획획,  하고 바람 
소리가 일었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는 본래 나에게는 매정하기 이를 데 없지 않소? 그러니  상관이 없
소.]

아가는 크게 노해 호통쳤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감히 나에게 실없는 소리를 할 거예요?]

그녀는 말하는 것과  동시에 몸을 날려 앞으로 달려오더니 유엽도를  들
고 위소보의 정수리를 내려치려고 했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급히 몸을 
날려 옆으로 피했다.
아가는 호통쳤다.

[가겠어요, 못 가겠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설사 나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하더라도 나는 악귀가  되어서라도 반
드시 그대를 따르겠소.]

아가는 극도로  치미는 노기에 유엽도를 휙휙획,  하니 세 번을  휘둘렀
다. 다행히 그 초식은  소림사 반야당에서 이미 펼친 적이 있었고  징관 
화상은 일일이 그  도법을 해소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냈던 것이어서  위
소보는 즉시 하나하나 피할 수 있었다.
아가는 그에게  칼질을 했으나 빗나가자  더욱 울화가 치밀어  유엽도를 
더욱 급히 휘둘러 댔다.  다시 몇 초가 흐르자 위소보는 피하기  어렵다
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아가는 놀람과 분노에 읽혀 반 토막이 난 칼을 휘두르며  다짜고짜 그를 
찔러 들어왔다.
위소보는 부득이 비수를 뽑아 들고 창, 하니 그녀의 칼을  두 동강 내고 
말았다.
위소보는 감히 다시 비수로 맞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기의 무공이 
평범하니만큼 자칫 겨냥이 틀어지게 되어 그토록 예리한  비수가 그녀의 
몸에 가볍게 닿기라도 하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
는가. 그는  몇 번 피하다가 부득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쳐서 
산을 내려왔다.
아가는 부러진 칼을 들고 쫓아오며 부르짖었다.

[그대가 내 곁에서 멀찌감치 꺼져 준다면 그대를 죽이지는 않겠어요.]

그녀는 위소보가 고을  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 속으로 다급하게  생
각했다.
(저 소악인이 사부에게 울면서 하소연하게 된다면 큰일이다.)
그리하여 재빨리 진기를  돋우어 질풍과 같이 뒤쫓아갔다. 그녀는  길을 
가로질러 위소보의 앞으로 나가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백의  여승은 그
녀에게 약간의 무공  초식를 전수했을 뿐 내공심법은 전수하지 않은  상
태였다. 그녀의 내공  수위는 위소보와 그저 막상막하여서 시종  뒤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가 객점 안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  다
급해서 눈물을 글썽이게 되었다.
(만약 사부님께서 꾸지람을 하신다면 나는 그가 옛날 나를  회롱했던 사
실을 모조리 말하고 말 테다.)
그녀는 단도를 거두고 천천히 객점 안으로 들어갔다.
객실 안으로 발을 디밀게  되었을 때였다. 별안간 한 줄기의 엄청난  힘
이 방문 안에서부터 밀려나와 그녀를 밀쳤다.
그녀는 대뜸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고 휘청휘청 하니 뒤로 세 걸음  물
러나 털썩 주저앉았다.
아가는 이 순간 자기 몸 아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느꼈다.  바로 어떤 사
람의 몸 위에 앉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오른손을 뒤로 돌려서는  바닥을 
짚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손이 바로 그 사람의 얼굴을  짚게 되고 말았
다. 낭패한 끝에 미처  자세히 생각할 여가도 없이 벌떡 몸을  일으키고
서는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 사람은  바로 위
소보가 아닌가? 그녀는 깜짝 놀라 호통을 내질렀다.

[그대는 뭐하는 거예요?]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그녀는  두 무릎에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서 있을 수가 없어서 털썩 쓰러졌는데 다시 위소보의  위로 쓰러
지고 말았다.

[안 돼, 안 돼.....]

그러나 이미 그의 품속에 쓰러지고 말았으며 네 개의 눈동자는  서로 마
주 쳐다보게 되었는데 그 간격이 몇 치밖에 되지 않았다.
아가는 몹시  다급해졌다. 혹시 이 소악인이  이 기회를 빌어  자기에게 
입맞춤을 하려고 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죽어라 하고 빨리  몸을 일으키
고 싶었으나  어떻게 된 노릇인지  전신에 힘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었
다. 부득이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급히 말했다.

[빨리 나를 부축해 일으켜요.]

위소보는 말했다.

[나 역시 힘이 없소. 이를 어찌 하면 좋소?]

몸 위에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미녀가 엎드려 있으니  마음속은 그야말
로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기운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설사 천하장사라고 해도  그대를 부
축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대가 내 몸  위로 덮친 것이니 어찌  나를 
탓할 수 있겠는가?)
아가는 다급해져서 말했다.

[사부님은 바로 적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어요. 빨리 방법을  강구해서 
그녀를 도와 주세요.]

사실 그녀는 조금 전 문을 들어서는 순간 백의 여승이  땅바닥에 단정히 
앉아서 오른손을 내밀고  왼손의 소맷자락을 휘둘러 적들에게  대항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똑똑히 보지 못했으나 그저 한 사람이  아
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방안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즉시 세찬 바람에  부딪히게 되었
고 그 즉시로 땅바닥에 쓰러졌던 것이다.
위소보는 그야말로 엉덩방아를 찧게 되어 엉덩이가 무척  아팠으며 아가
가 허공에서 그의  가슴팍으로 떨어져 다시 한바탕 격렬한 아픔을  느끼
게 되었으나 마음은 즐겁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저 이 미녀가  영원히 
자기의 품속에  엎드려 있었으면 했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으면  하고 
바랬다. 백의 여승이 어떤  사람과 싸우고 있는가 하는 것에는 전혀  마
음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공력이 신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아무리 무서운  적이라 하더라도 
그녀를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하고 지레짐작을 한 것이다.
아가는 오른손으로  위소보의 가슴팍을 짚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다시 힘을 주어 끝내는 완전히  몸을 일으
킬 수 있었다.
그녀는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는 어쩌자고 쓰러져서 나를 넘어뜨렸죠?]

그녀는 위소보가  자기의 경우와 똑같이 할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의 정경은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
릇이라 참을 수 없어 화를 낸 것이다.
위소보는 입을 열었다.

[예, 그렇구려. 진작  그대가 이곳에 쓰러지리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내
가 마땅히 옆으로 석  자 정도 기어가서 피해야 옳았을 것이외다.  아니 
석 자로도  부족하지. 석 자 정도만  피해 쓰러졌다면 그야말로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누운 꼴이 되었을  것이니 그것도 결코 좋은  꼴은 
아니지 않겠소?]

아가는 혀를 차고는 사부님이 걱정되어 방안을 바라보았다.
백의 여승은 땅바닥에 앉아 장력을 쏟아내고 소맷자락을  휘두르며 적을 
맞아 싸우고 있었다.
그녀를 포위  공격하는 적은 다섯 사람이었다.  모두 몸에 홍의를  걸친 
라마들이었다.
라마들은 제각기 신속하기 이를 데 없이 손을 휘둘러 공격을  하고 있었
으나 백의 여승의 장력에  밀려 하나같이 등 뒤를 방안의 판자 벽에  붙
이고 서서 좀처럼 백의 여승 옆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아가는 한걸음 나서며 그  다섯 사람들 의에 또 다른 적이 있는지  없는
지를 살펴보려 했다. 그러나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세찬  바람이 몸으로 
엄습해와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뒤로 두 걸음을 물러서서 위소보를 한번 걷어차며 말했다.

[이봐요. 어째서 일어나지  않아요? 적이 어떤 내력을 지닌  사람들인지 
알아보란 말이에요.]

위소보는 손으로 등 뒤의 벽을 붙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방안의 광경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여섯 명의 라마들은 모두 나쁜 사람들이군.]

아가는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물론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그대가 더 말할  필요가 어
디 있겠어요?]

위소보는 웃었다.

[나쁜 사람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말할 수가 없소. 예를 들면  나는 좋은 
사람인데 그대는 굳이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 않소? 그 여섯  명의 
라마들이 감히 사태에게 손을 쓰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나보다  훨씬 더 
나쁜 자들이겠지.]

아가는 그를 홀겨보고는 말했다.

[흥, 내가 보기에는 그대와  한 패거리 같아요. 이 여섯 명의  라마들은 
그대가 이끌고 와 사부님을 해치려고 한 것이겠죠?]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사태를  존경하기를 보살처럼 우러러보고  소저를 우러러  보기를 
마치 선녀를 우러러보듯 하는데 어찌 해를 끼칠 리가 있겠소?]

아가는 정신을 가다듬고  방안의 정경을 살폈다. 갑자기 그녀는  나직이 
놀란 소리를 내질렀다.
위소보는 안방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보니 여섯 명의 라마들이  하나
같이 손에 계도를 들고 앞으로 나가 계도를 휘두르려고 했다.
그러나 백의 여승의 소매바람과 장풍에 걸려 다가가지를 못했다.
백의 여승의  머리 위에서는 허연 김이  줄기줄기 뻗쳐 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미 전력이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한 팔밖에 없었다. 혼자의 힘으로 손에 무기를 든  여섯 명의 라
마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좀더 시간이 흐르면 대적해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위소보는 앞으로 나가 도와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무공이  얕
아서 방문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설사 
땅바닥으로 기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백의 여승이  정신만 헷갈
려 그를 돌봐 줘야  할 형편이니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들
었다.
초조한 생각이 들게 되었을 때 갑자기 담장 모퉁이에 한  자루의 빗자루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즉시  달려가 그 빗자루를 들었다.  마당을 쓰는 긴  빗자루였는데 
그는 문 뒤에 몸을 웅크리고서는 빗자루를 뻗쳐서 문 가까이에  있는 라
마의 얼굴을 마구 때리려  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라마의 심신이  헷갈
리게 되고 내력이 순탄하지 못해 백의 여승의 장력에 충격을  받고 죽음
을 당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빗자루를 막 뻗쳐 내게 되었을 때 커다란 호통 소리가  들리면서 갑자기 
빗자루가 가벼워지고 말았다. 그리고 보니 빗자루의  끝이어느덧 라마의 
칼에 잘려져 있었다.
곧이어 방안에서  소용돌이치던 세찬 기운이  곧장 뻗쳐 나오면서  그의 
얼굴 옆을 스치며 몇 가닥의 상처를 내고 지나가는데 얼굴이  여간 아프
지 않았다.
아가는 급히 말했다.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군요. 그래서는 안 돼요.]

위소보는 몸을 방  문의 판자벽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판자
벽이 끊임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객실의 판자벽이  모두 다 칼 바람과  장력에 충격을 받고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어서 위치를 똑똑히  살펴보았
다. 그리고 그는 빗자루를  자른 라마의 등 뒤로 비수를 뽑아서는  판자
벽을 푹 찔렀다.
비수는 예리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판자벽은 불과 한 치 정도의  두께밖
에 되지 않았다.
비수를 찌르니 두부를 자르듯  들어 갔고 대뜸 그 라마의 등을  찔렀다. 
그 라마는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몸을 맥없이 축 늘어뜨리고  판자벽에 
기댄 채 천천히 주저앉았다.
위소보는 그 라마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는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  두 
번째 라마의 뒤로 다가가서는 다시 비수를 찔렀다.
순식간에 그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네  사람을 찔렀다. 비수가  짧아서 
라마의 등을 비수로  찔렀으나 가슴 앞으로 칼 끝이 삐져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방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해서 죽음을  당했는지를 
몰랐다. 나머지의 라마 두 명이 깜짝 놀라서는 문을  박차고 달아나려고 
했다. 백의 여승은 몸을 솟구치며 일장을 들어서는 라마의  등을 후려쳤
다. 대뜸 그에게 큰 충격을 준 듯 그 라마는 피를 왈칵 토하고 죽었다.
동시에 백의 여승은 왼손의 소맷자락을 떨쳐 다른 한 명의  라마의 앞길
을 가로막고  오른손의 손가락을 질풍과 같이  뻗쳐 내어 그의 몸  중에 
다섯 군데의 혈도를 짚었다. 그 라마는 맥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꼼
짝하지 못했다.
백의 여승은 네 명의 라마 시체를 걷어차서는 그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보니 그들의 등  뒤에 각기 비수에 찔린 상처가 있었고 또  판자
벽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보고 겨우 그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
다.

[너는, 너는 어째서.....]

갑자기 그녀는 몸을  흔들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입으로부터  선
혈을 쿨럭쿨럭 쏟아내었다.
여섯 명의 적을 상대했으니 내력이 거의 고갈하다시피 한  것이다. 최후
로 한  번 일장을 후려치고 소맷자락을  떨치자 다시는 더 몸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아가와 위소보는 깜짝 놀라 앞으로 달려가서는 그녀를 부축했다.
아가는 연신 부르짖었다.

[사부님, 사부님 ! ]

백의 여승의 숨소리는 매우  가늘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
지 않았다.
위소보와 아가 두 사람은 그녀를 떠메어서 침대로 옮겼다.  그녀는 다시 
많은 피를 토했다.
아가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그저 눈물만 흘렸다.
객점의 주인과 사환들은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이미 멀찌감치  서 
있었다. 그러다 싸우는  기척이 멎자 다가와서는 고개를 내밀고  방안을 
살폈다. 그러다가 온 방바닥에 핏물이 뿌려져 있고 시체들이  피를 낭자
하게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보자 크게 놀라 부르짖었다.

[사람을 죽였다!]

위소보는 두 손에 각기 한 자루씩 계도를 들고 호통을 내질렀다.

[왜 소리를 지르느냐? 빨리  그 아가리를 닥쳐라! 그렇지 않으면 한  칼
에 하나씩 모조리 찔러 죽이고 말겠다.]

사람들은 시퍼런  계도를 보자 놀라 쩔쩔  매었다. 위소보는 세  덩이의 
은자를 꺼냈다. 각 덩이마다 모두 다섯 냥씩 나갔다.
그는 그 은자를 사환에게 내주며 호통을 내질렀다.

[빨리 가서 두 대의  커다란 수레를 빌려 오도록 하시오. 다섯 냥의  은
자는 그대에게 수고비로 주도록 하지.]

그 사환은 놀람과  기쁨에 나는 듯 달려나가서 삽시간에 커다란  수레를 
빌려 왔다.
위소보는 다시 사십  냥의 은자를 꺼내서 주인에게 내밀며 큰소리로  말
했다.

[여섯 명의 고약한 라마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서로 죽고  죽인 것이
오. 그대들이 친히 목격하지 않았소, 그렇지 않소?]

그 주인이 어찌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이 사십 냥의 은자는 방세와 밥값으로 하시오.]

그는 아가와 힘을 합쳐  백의 여승을 떠메서 수레로 옮겼다. 그리고  이
불 자락으로 그녀의 몸을 감싸 주었다. 이어 사환에게  혈도를짚힌 라마
를 다른 한 대의 수레로 옮기도록 했다.
위소보는 아가에게 말했다.

[그대는 사부를 모시도록 하시오. 나는 그와 함께 수레에 타겠소.]

두 사람은  수레 위에 올랐다. 의소보는  큰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자고 
명을 한 후 속으로 생각했다.
(사태께서는 몸에 중상을 입고 계시는데 다시 라마가 공격을  해 온다면 
큰일이다.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내서는 사태가 조섭을 하도록  해야겠
다.)
그 라마가 혈도를 풀게  되면 위소보는 그 라마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는 걱정이 되어서 밧줄을 구해다가는 그 라마의 손과 발을  꽁꽁 묶었
다. 십여 리쯤 나가게  되었을 때 아가는 갑자기 수레를 세우라고  부르
짖었다. 그녀는 수레에서  달려나와 위소보의 수레 앞으로 오더니  당황
하고 다급한 기색으로 말했다.

[사부님의 숨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아무래도.......]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수레에서 내려가 보았다. 백의  여승의 숨결
은 이미 실낱 같았다.
아가는 매우 슬프게 울면서 말했다.

[효과가 좋은 내상약이라도 있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빨리  의원을 찾아
가도록 하죠. 그런데 이런 곳에는....]

위소보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태후는 자기에게 서른  알의 
알약을 주지 않았던가? 그것은 무슨 설삼윽섬환이라 했으며 이  약을 복
용하게 된다면 몸이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독이 해소되고,  또한 상처를 
치료하는 데 영험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스물두  알
은 홍 교주와 홍 부인에게 전해 주라고 하지 않았던가?
위소보는 즉시 품속에서 그 옥병을 꺼내었다.

[효과 좋은 내상약이 나에게 없지는 않소.]

그는 두 알을  손바닥에 쏟았다가 손가락으로 집어서는 백의 여승의  입
에 넣어 주었다.
아가는 물주전자를 찾아와서 사부에게 두 모금을 먹여 주었다.
위소보는 이 기회를 빌어  백의 여승의 수레 안에 앉아 있는 아가와  마
주보는 꼴이 되자 말했다.

[사태가 약을 먹게 된 이후 어떻게 될 것인지 나는  시시각각 그녀를 지
켜야겠소.]

그는 두 대의 수레를  다시 앞으로 나가도록 명했다. 차 한 잔 마실  시
간이 흘렀을 때 백의 여승은 갑자기 길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눈
을 떴다. 아가는 크게 기뻐서 소리쳤다.

[사부님, 이제 좀 괜찮으세요?]

백의 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재빨리 다시 두 알의 알약을 꺼내고 말했다.

[사태, 알약이 효과가 있다면 다시 두 알을 더 잡수시도록 하십시오.]

백의 여승은 희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이 말했다.

[이미 충분하네. 나는  운기행공하여 그 약기운이 퍼지도록  해야겠으니 
수레를, 수레를 세우도록 하게.]

위소보는 말했다.

[예,예.]

그는 분부하여 수레를 세우게 했다.
백의 여승은 아가에게  자기의 몸을 부축하게 해서는 가부좌를 틀고  앉
아 눈을 감고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아가는 눈  한번 돌리지 않고 사부를  바라보고 있었고 위소보 또한  눈 
한번 돌리지 않고 아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가의 얼굴에 처음에는  깊은 근심의 빚이 보였으나 점점 찌푸렸던  아
름다운 눈썹이 펴지기  시작했고 두 눈에는 환한 광채가 빛나기  시작했
다. 다시 잠시 후 조그만 입가에는 한가닥의 미소마저 떠올랐다.
위소보는 백의 여승을  볼 필요도 없이 그녀가 운기행공하여 상처를  치
료하는 것이 크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잠시 후 아가는 
더욱더 기쁜 빛을 띄웠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수레 안에 사태가 없고 그저 나와 소미녀 두  사람만 있게 되었을 
때 그녀의  얼굴빚이 저토록 기뻐한다면  그야말로, 그야말로  나로서는 
흐뭇해 어쩔 줄 모를 것이다.)
 별안간 아가는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다가 그가 멍하니  자기를 바라보
고 있는 것을 보고는 대뜸 두 뺨을 붉게 물들이며  소리내어 꾸짖으려고 
했다. 그러나 혹시  사부의 운기행공에 방해가 될까봐 목구멍까지  올라
오던 한 마디를 다시 집어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매섭게 위소보를 홀겨 주었다. 위소보는 그녀를 향해  웃어 보이
고는 그녀의 눈길을 따라 백의 여승을 쳐다보았다. 백의  여승의 정신은 
매우 차분해 보였으며 숨소리도 차츰 안정되어 갔다.
백의 여승은 숨을 내쉬더니 눈을 뜨고 나직이 말했다.

[이제 가도 된다.]

위소보는 말했다.

[좀더 쉬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그럴 필요 없네.]

위소보는 다시 다섯 냥의 은자를 꺼내서는 차부(車夫)들에게  나누어 주
고 그들에게 빨리 수레를 몰라고 당부했다.
그 당시만 해도  한 대의 수레를 빌리는  데는 일 전 반이면  충분했다. 
두 명의 차부는 그가  매우 너그러운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연신  고
맙다는 말을 했다.
백의 여승은 천천히 말했다.

[소보, 그대가 나에게 복용시켜 준 것은 어떤 약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그것은 설삼옥섬환이라는  것으로서 약효가 아주 영험하다고  들었습니
다.]

백의 여승은 얼굴에 기쁜 빚을 띠며 말했다.

[설삼과 옥섬, 두 가지 물건은 모두 상처를 치료하고 몸을  크게 보호하
는 성약으로서  기사회생의 공효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뜻밖에도  내가 
그 약을 먹게 되었구나. 이야말로 내 명이 다하지 않은 탓이다.]

그녀는 중상을 입은 후였는데도 말하는 것이 매우  평온한 음성이었으며 
중기(中氣)가 부족한 현상 같은 것은 볼 수가 없었다.
아가는 기뻐서 말했다.

[사부님, 어르신께서는 다 나으셨나요?]

백의 여승은 말했다.

[죽지 않게 되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저에게 아직도 스물여덟 개가 있으니 사태께서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그는 옥병을 건네주었다. 그러나 백의 여승은 받지 않았다.

[이제 기껏해야 두세 알만 더 먹으면 충분해. 그토록 많이 필요없다.]

위소보는 본래 성격이 시원시원한 편이라 속으로 생각했다.
(서른 알의 알약을 그대에게 다 먹여도 무슨 상관이 있겠소?  알약은 늙
은 갈보에게 또 어디 있겠지.)
그는 말했다.

[이 알약은 사태의 몸에 요긴한 듯합니다. 이 환약이 쓸모가  있다면 다
음에 제가 소황제를 보게  되었을 때 다시 그에게 좀더 달라고 하면  됩
니다.]

그는 옥병을 그녀의  손에 건네주었다. 백의 여승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여전히 옥병을 그에게 되돌려 주었다. 다시 한동안 길을 갔다.  백의 여
승은 말했다.

[가다가 조용한 곳이 있으면 수레를 멈추고서 그 라마에게  따져 봐야겠
다.]

위소보는 대답했다.

[예.]

그는 수레를 산골짜기  조용한 곳으로 몰도록 명했다. 그리고는  차부를 
시켜서는 그 라마를 떠메어 땅바닥에 눕히도록 했다.
그 후에 차부들에게 노새를 끌고 산 뒤로 돌아가서는 풀을  먹이도록 하
고 입을 열었다.

[내가 부를 때까지 오지 않도록 하시오.]

두 명의 차부는 대답하고  나서 노새를 끌고 떠났다. 백의 여승은  말했
다.

[그대가 물어 보게.]

위소보는 비수를 뽑아들고는 삭, 하니 나뭇가지 하나를 잘랐다.
그리고는 듬성듬성 비수로 작은 가지들을 쳐냈다.  삽시간에 나뭇가지는 
나무 막대기가 되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 형, 당신은 이와 같은 모양의 사람 막대기로 변하고 싶소?]

그 라마는 그 비수가  그토록 예리한 것을 보고 이미 가슴 속이  서늘해
진 터라 떨리는 음성으로 되물었다.

[나으리, 사람 막대기라는 게 무엇이죠?]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의 두 팔을 자르고, 귀, 코도 자르며, 전신의 울퉁불퉁  돋아난 물
건이 있으면 모조리 평평하게 자르면 사람 막대기가 되지.  매우 재미있
는데 당신 몸으로 한번 시험해 보지 않으시겠소?]

위소보는 비수를 그의 코에  갖다대고 몇 번 문질렀다. 그러자 그  라마
는 급히 말했다.

[목숨만 살려주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결코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오. 매우 재미있소.  당신의 
몸을 한번쯤 시험해도 무방하오.]

라마는 말했다.

[아닙니다. 재미없을 것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당신은 해보지도 않고서  어떻게 재미 없다는 것을 안단 말이오?  우리 
시험해 본 이후 다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그는 비수를 그의 어깻죽지에 갖다대는 척했다.
라마는 애걸했다.

[나으리,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소인이 대담하게 사태의 위엄을  거슬
리게 되었으니 실로 못할 짓을 했습니다요.]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내 한  마디 물으면 당신은 한  마디 대답을 하도록 하시오.  반 
마디의 거짓이라도 섞여  있다면 당신을 나무 막대기로 만들고  말겠소. 
그리고 나는 당신을  이곳에다가 심고는 약간의 비료를 주고 물을  끼얹
겠소. 그렇게 열흘이고  보름이 지나게 된다면 당신의 어깻죽지에서  두 
발과 귀, 그리고 코가 돋아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라마는 말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소승은 솔직히  대답을 하도
록 하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오? 어째서 사태의 위엄을 거슬렸소?]

라마는 말했다.

[소승은 호파음(呼巴音)이라 부르는데 서장의 라마입니다. 대사형  상결
(柔結)의 명을 받아 저분 사태를 사로잡으려고 했습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상결이라는  이름이라면 오대산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물었다.

[저 사태께서는 그냥 가만히  계시고 또 그렇다고 해서 당신의 그  고약
한 사형에게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당신들은 어쩨서 이토록 당돌한  행
동을 한단 말이오?]

호파음은 말했다.

[대사형께서는 우리들의  활불에게 있던 여덟  권의 보경(寶經)을  저분 
사태에게 도적질 아니,  아니 도적질이 아니라 빌려갔기 때문에  사태에
게 되돌려 달라고 요청하려는 것이었소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떤 보경이오?]

호파음은 말했다.

[차엄 고토오경(差奄古吐烏經)이라는 것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무슨 놈의 그런 이름이 다 있단 말이오?]

호파음은 말했다.

[예, 예. 이것은  우리 서장의 말입니다. 한나라 말로서는 바로  사십이
장경이랍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당신네 고약한  사형은 어떻게 사태께서  사십이장경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소?]

호파음은 말했다.

[저도 모릅니다.]

위소보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이 모른다고? 그렇다면 혓바닥을 남겨서 어디에  쓰겠나? 혓바닥을 
내밀어라.]

위소보는 비수를 쳐들었다.
호파음은 혓바닥을 내밀려 하지 않고 애걸했다.

[소승은 정말 모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당신의 고약한  사형이 서장에 있다면 이토록  빨리 당신들을 보낼  수 
있겠는가?]

호파음은 말했다.

[대사형과 우리 및  사람은 본래 모두 북경에 있었소이다. 그러니까  북
경에서 이곳까지 쫓아온 것이죠.]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정도 그 사연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늙은 갈보가 알린 것이로군.)
그는 물었다.

[당신들의 고약한  라마들 가운데 무공에  있어서 당신보다  고강하거나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오?]

호파음은 말했다.

[우리들은 동문 사형제로서  모두 열세 사람인데 사태에게 맞아서  다섯
이 죽었으니 아직 여덟 명이 남아 있죠.]

위소보는 속으로 여간 놀라지 않으며 호통을 쳤다.

[뭐가 여덟 명이란 말이오?  당신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소? 당신은  조
만간 사람 막대기로 변하고 말걸.]

호파음은 말했다.

[나으리께서는 소승을 사람 막대기로 변화시키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셨
지 않습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그 나머지 일곱 개의 사람 막대기들은 지금 어디로 갔소?]

호파음은 말했다.

[우리 대사형의  재간은 고강하기 이를 데  없으니 결코 사람  막대기로 
변하지 않을 것이오.]

위소보는 그의 허리께를 힘껏 걷어차고는 욕을 했다.

[이 고약한 도적  같으니,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도 무슨 큰소리를  치는 
것이냐? 너의  그 고약한 사형의 재간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나는 
사람 막대기 모양으로 가지를 치듯 팔을 잘라내 보여 주겠다.]

호파음은 말했다.

[예,예.]

그러나 얼굴 표정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위
소보는 거듭  한참 동안 질문을 던졌으나  다시 알아낼 만한 것이  없었
다.
그는 수레 안으로  들어가 휘장을 내리고는 나직이 호파음의 말을  전하
고 다시 말했다.

[사태, 또 일곱 명의 라마들이 있답니다. 만약 일제히  공격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상대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평소 같으면  사태께서는 마음에 
두지 않겠지만 지금 사태께서는 몸이 편찮으시니.......]

백의 여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사 내가 무사하다고 하더라도 역시 혼자서 여섯 명을  상대해서 이기
기는 어렵더군. 더군다나  무공이 저 사람들보다 횔썬 뛰어나다는  대사
형이 있지  않은가? 소문에 들으니 상결은  서장 밀종의 제일  고수라고 
하며 대수인신공(大手印神功)은  이미 절정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하더
군.]

위소보는 말했다.

[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다만 너무나 사태의 위풍을  떨어뜨
리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기가 거북합니다.]

백의 여승은 한숨을 내쉬었다.

[촌가인에게 또 무슨 위풍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대에게  어떤 계
책이 있지?]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들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찾아 들어가  농가를 빌려 숨도록  하지
요. 그리고 사태께서는 시골 여자의 옷차림으로 바꾸어 입고는  침대 위
에 누워  상처를 치료하도록 하시구요. 아가  소저와 저는 시골  소저와 
소년의 옷차림을 하고서는 사태의 아들과 딸 노릇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백의 여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가가 말했다.

[그대는 사람이 나쁘더니  생각해낸 계책도 나쁘군요. 사부님은  당대의 
고인이신데 그와  같이 숨는다면 그야말로  상대방을 두려워 숨는  꼴이 
되지 않겠어요?]

백의 여승은 말했다.

[아니다. 그  계책은 쓸만하다. 자네들 두  사람은 나의 조카와  질녀로 
분장하도록 하여라.]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예,예.]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의 조카와 조카며느리로 했으면 가장 좋겠소이다.)
아가는 그를 흘겨 주었다.  사부가 그의 계책을 받아들인 데 대해서  퍽
이나 내키지 않는 얼굴 표정이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 라마를 살려 두게  된다면 우리의 행적이 발각되기 쉬우니 아예  산 
채로 매장을 해버리는 게 어떨까요?]



第57章. 연적 정극상의 출현


백의 여승은 말했다.

[먼젓번에는 사람과 손을  쓴지라 부득이 사정을 두지 못했다. 이  라마
는 이미  항거할 힘도 없는데 다시  그를 죽인다는 것은 너무나  악독하
다. 그렇다고 그를 놓아 주는 것도 안 되니 우리들은  잠시동안 그를 데
리고 다니며 계획을 세워 보기로 하세.]

위소보는 대답했다.

[예.]

그는 차부를 불러 호파음을 수레에 실도록 했다. 그리고는  차부에게 수
레를 몰고 나가도록 했다.
한동안 길을 갔으나 농가는 한 채도 볼 수가 없었다.  혹시나 상결 대라
마가 달려오게  될까봐 여간 두렵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소로길이  나 
있는 것을 보자 길을 돌려서 나가도록 했다.
한참 달려가고 있을 때  돌연 등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울려퍼졌다.  수
십 필의 말들이 급히 쫓아오고 있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야단났다, 야단났어. 고약한 라마들이 수십 명이나 되는구나.)
그는 수레를 좀더 빨리  달리도록 했다. 두 명의 차부는 입으로  재촉을 
하고 채찍질을 가해 급히  노새를 몰았다. 그러나 쫓아오는 말을 탄  사
람들은 더욱더 가까워지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수레 뒤에 이르렀다.
위소보는 수레 안에서 판자 벽 틈 사아로 내다보았다. 그  즉시 그는 크
게 안심을 하고는 숨을 내쉬었다.
원래 그  수십 필의 말들은 모두  청의를 걸친 사내들이 타고  있었는데 
결코 라마들이  아니었다. 삽시간에 수십 필의  말들은 수레 곁을  지나 
달려가더니 수레를 앞지르게 되었다.
아가가 갑자기 부르짖었다.

[정(鄭) 공자!]

말 위에 탄  한 명의 기사가 즉시  말을 세우더니 한 켠으로  비켜섰다. 
그는 커다란 수레를 향해서 가까이 다가오며 부르짖었다.

[진(陳) 소저요?]

아가는 말했다.

[그래요,저예요.]

아가의 대답은 기뻐하는 빚으로 가득차 있었다. 말을 탄  사람은 큰소리
로 말했다.

[뜻밖에도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구려. 그대는 왕(王)  소저와 함께 
있소?]

아가는 말했다.

[아니에요. 사저는 이곳에 없어요.]

그 사람은 말했다.

[그대 역시 하간부(河間府)로  가는 것이오? 마침 잘되었소. 우리와  함
께 동행하면 되겠소.]

아가는 말했다.

[아니에요. 우리는 하간부로 가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은 말했다.

[하간부에는 매우 재미있는  일이 생기게 됐소. 그대 역시 같이  가도록 
합시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레와 말을 몰아 여전히 앞으로  달려가
고 있었다.
위소보는 아가가 두 빰을 붉히며 눈에 가득히 광채를 띠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크게 기뻐하는 양을 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사람을 만난 
표정임을 알아보았다.
그 순간 그는 가슴을  커다란 망치로 심하게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
을 받았다.
(설마하니 그녀가 마음속에 접어두고 있는 사람을 만났단 말인가?)
그리하여 나직이 말했다.

[우리들은 피난이 더욱 급하오. 쓸데없는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
시오.]

아가는 그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하간부에서는 무슨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게 되나요?]

그 사람은 의아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대는 모르시오?]

그는 휘장을 들춰 올리더니 얼굴을 디밀었다.
그 사람은 얼굴이 매우 준수했다. 나이는 한 스물서너 살  정도 되어 보
였는데, 그는 얼굴 가득히 기쁜 빚을 띄우고 말했다.

[하간부에서는  살귀대회(殺龜大會)를 열게  되는데 천하  영웅호걸들이 
모두 참여하니 매우 재미있게 될 것이오.]

아가는 물었다.

[뭐가 살귀대회인가요?  큰 거북이라도 죽이나요?  그게 뭐가  재미있단 
말인가요?]

그 사람은 웃었다.

[맞았소. 큰 거북이를 죽이는 것이오. 하지만 진짜 거북이가  아니고 굉
장히 나쁜 사람이오. 그의 이름 자 중에는 귀 자가 들어 있소.]

아가는 웃었다.

[사람의 이름 자에 어찌  귀 자가 들어갈 수 있어요? 사람을 속이지  마
세요.]

그 사람은 웃었다.

[거북이 귀(龜)  자가 아니오. 음이 같단  말이오. 계화(桂花) 할  때의 
계 자이오. 한번 알아맞춰 보시오. 어떤 사람인지.]

위소보는 깜짝 놀라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름 자  중에 계화 계 자가  있다구? 그렇다면 이 소계자를  죽인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아가는 손뻑을 치며 웃었다.

[알았어요. 매국노 오삼계로군요.]

그 사람은 웃었다.

[바로 그렇소. 그대는 정말 총명하오. 대뜸 알아맞추니 말이오.]

아가는 말했다.

[그대는 오삼계를 잡았나요?]

그 사람은 말했다.

[잡지는 않았소. 모두들  어떻게 그 커다란 매국노를 죽일 것인지  상의
하자는 것이오.]

위소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그렇지. 이  소계자는 나이 어린 소년에 불과하니 그들이  나를 
죽일 리는 없겠지. 설사 죽인다 하더라도 무슨 살귀대회인가  하는 것을 
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빌어먹을, 하필 그 녀석의 이름에도  재수없게 
계 자가 있었군.)
이때 그 사람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아가를 바라보았다. 말발굽  소리와 
수레 소리가 줄곧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 사람은 말 위에 앉아서 몸을 돌리고 수레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을 보
면, 기마술에 매우 정통해 있음이 분명했다.
아가는 고개를 돌리고 백의 여승에게 나직이 말했다.

[사부님, 같이 가시지 않겠어요?]

백의 여승은 무공이  고강했으나 임기응변의 재주는 없는 편이었다.  무
림의 호걸들이 함께  어떻게 오삼계를 주살할 것인지에 대한 계책을  논
하게 된다면 자기도 지극히 그러한 의논들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상결 
등 몇몇의 라마들이 얼마 후면 뒤쫓아올 것이 아닌가?
그녀는 잠시 생각해 본 후 위소보에게 물었다.

[그대의 의견은 어떠한가?]

위소보는 아가가 그  젊은이를 대하는 태도와 어조를 보고 마음  속으로 
말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결코 아가로 하여금 그와  함께 있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재빨
리 입을 열었다.

[고약한 라마들이 뒤쫓아오게 된다면 우리들은 상대해 낼  수 없습니다. 
역시 빨리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젊은이는 말했다.

[뭐가 고약한 라마들이오?]

아가는 말했다.

[정 공자, 이분은 우리 사부님이에요. 우리는 도중에서 한  떼의 고약한 
라마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사부님을 해치려고 했어요.  사부님께서는 지
금 몸에  중상을 입고 계시는데 뒤에  또 일곱 명의 라마들이  쫓아오고 
있는 형편이에요.]

그 젊은이는 말했다.

[그래요?]

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몇 마디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소리가 울려퍼
지자 말을 타고 가던  사람들은 일제히 말을 멈추었다. 두 대의  수레도 
즉시 멈춰 섰다.
그 젊은이는 말  등에서 내리더니 수레의 휘장을 들추고는 허리를  굽혀 
예를 했다.

[후배 정극상이 선배님께 인사드립니다.]

백의 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극상은 말했다.

[칠팔 명의 라마쯤이라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 후배가 대신  그들을 
쫓아보내도록 하지요.]

아가는 놀라는 한편,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어 말했다.

[그들 고약한 라마들은 매우 무서워요.]

정극상은 말했다.

[내가 데리고  있는 동료들은 모두 무예에  뛰어나니 그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외다. 우리가 설사  많은 사람의 수로 적은 수를 이기지  않고 
일대일로 싸운다고 해도  칠팔 명의 라마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
외다.]

아가는 고개를  돌려 사부를 바라보았다. 두  눈에는 사부의 뜻을  묻는 
빚이 역력했다. 그러나 기실  함께 가자는 청을 드리고 싶은 뜻이  묻는 
뜻보다 더 많았다.
위소보가 입을 열었다.

[아니 되오.  사태와 같이 고심한 무공을  지니신 분도 상처를  입었소. 
그대들 이십여 명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아가는 노해 말했다.

[그대에게 묻는 것도 아닌데 왜 그대가 잔소리를 해요?]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사태의 편안함을 걱정하기 때문이오.]

아가는 말했다.

[그대 스스로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사부님이 걱정스럽다고 말해요?  그
대와 같은  소악인은 그저 나쁜 짓만  했지 무슨 좋은 심보를  가졌겠어
요?]

위소보는 말했다.

[저 정가의 재간이 뛰어나오? 사태보다도 고강하단 말이오?]

아가는 말했다.

[그는 이십여 명이나  거느리고 있으며 그들은 하나같이 무예가  고강해
요. 설마하니 이십여 명이 일곱 명의 라마를 두려워할 것 같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어떻게  이십여 명이 하나같이 무예가  고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단 말이오? 내가 보기엔 하나같이 무공이 얕을 것 같소.]

아가는 말했다.

[나는 물론 알고 있어요. 나는 그들이 손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또
한 모두 그대보다는 백 배나 뛰어나단 말이에요.]

백의 여승은  생각에 잠겨 말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라마들은 나 한 사람 때문에 쫓아오고 있는 것이외다.  정 공자, 호
의는 고맙지만 그대는 그대의 갈 길을 가도록 하시오.]

정극상은 말했다.

[사태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길을  가다가 불공평한 일을  보게 
되면 칼을 뽑아  돕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사태께서는 
진 소저의 사부님이십니다.  이 후배가 약간이나마 힘을 다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않겠습니까?]

아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매우  의기양양한 모
습이었다.
백의 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렇다면 우리 함께 하간부로 구경이나 하러 갑시다.  하지만 그
대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 마시오.  나는 성격이 게으른  편이라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오.]

정극상은 기뻐서 말했다.

[예, 예. 마땅히 선배님의 분부를 삼가 받들겠습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정 공자는 어느 문파에 속하시오? 존사는 누구시오?]

그의 사문 내력을 묻는 것은 바로 그의 무공을  알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정극상은 말했다.

[후배는 세  분 사부님에게 무예를  전수받은 적이 있습니다.  첫번째의 
사부님은 성은  시(施)로서 무이파(武夷派)의 고수입니다. 두번째  사부
님의 성은 유(劉)씨로서 복건성 포전 소림사 분타의 속가고수입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음, 그 유 사부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정극상은 말했다.

[그는 유국헌(劉國軒)이라고 합니다.]

백의 여승은  그가 곧장 자기 사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조금도 
공경하는 빚이 없음을 느꼈다. 따라서 약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곧 떠
오른 사람이 있어서 말했다.

[그렇다면 대만의 유 대장군이오?]

정극상은 말했다.

[바로 대만 연평군왕 휘하의 제독 유국헌 유 대장군입니다.]

백의 여승은 물었다.

[정 공자는 연평군왕의 가족이시오?]

정극상은 말했다.

[후배는 연평군왕의 차남입니다.]

백의 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충신의 후손이었군.]

정성공(鄭成功)은 하란인(荷蘭人)들로부터  대만(台灣)을 빼앗았다.  계
왕(桂王)은 정성공을 연평군왕(延平君王) 겸  초토대장군(招計大將軍)에 
봉했다. 영력(永曆) 16년(즉 강희 원년) 5월 정성공은 세상을 떠났다.
그때 세자 정경진(鄭經鎭)이 금문(金門)과 하문(厦門)을 지키고  있었는
데 정성공의  동생인 정습(鄭襲)이 대만에서  그 자리를 이어  받으려고 
했다. 정경진은 대장군  주전빈을 거느리고는 군사를 돌려 대만으로  되
돌아가 정습을 옹호하는  부대를 공격하여 깨뜨리고는 연평군왕의  지위
에 올랐다.
정경진의 장자는  정극장(鄭克璋)이었고 차자는 바로 정극상이었다.  정
성공의 부친 정지룡(鄭芝龍)으로부터  계산을 한다면 정극상은 이미  정
씨 집안의 제4대가 되는 셈이었다.
이때 연평군왕은 홀로 군사를 이끌고 청나라에 대항하여  굴하지 않았으
며 그야말로  외딴 섬에서 대명나라의  정통을 받들었기 때문에  천하의 
인자한 사람이나  뜻있는 인사들은 그를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
다.
정극상은 자기의 신분을 말하면 이 여승이 반드시 엄숙한 얼굴  빚을 하
고 존경의 빚을 보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백의 여승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단 한 마디 '알고 보니 충신의 후손이로군' 했을 뿐  다른 내
색이 없었다.
사실 정극상은 백의 여승이 바로 숭정 황제의 공주였다는  것을 몰랐다. 
그의 사부 유국헌은 그의 부친의 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유국헌
에 대해서  별로 존경하는 빚을 보이지  않았는데, 백의 여승의  눈으로 
볼 때는 정경진 역시 충성스러운 신하에 불과한 셈이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욕을 해댔다.
(제기랄,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 연평군왕이면 대순가?)
기실 그도 연평군왕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의  사부 진근남
이 바로 연평군왕의  부하가 아닌가? 속으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극상이 아가에 대해서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것을 볼 때 위소보는  조
금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심정이었다.
사실 정극상은 커다란 군사를 거느리고 해외 섬을 개척하여 그  땅을 차
지한 군왕의 당당한  공자가 아닌가? 강호의 떠돌이로 변해버린  목왕부
의 사람들과 비한다면 그야말로 함께 논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더군
다나 이 사람의 모습은  자기보다 열 배나 더욱 준수했고 언변 또한  백 
배나 고아한 편이며 나이 또한 자기보다 훨씬 많았다.
무공에 있어서는 어떤지 잘 모르지만 보기에 열 배가 더  고강하지는 못
하더라도 칠팔 배는 뛰어날 것 같았다.
아가가 그에게 흠뻑  마음을 기울이고 있음은 눈 먼 장님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사부 진근남이 자기가 정  공자와 아가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정 공자가 명령을  내릴 필
요도 없이 그저 단 일 장에 자기를 때려 죽일 수도 있는  노릇이라는 생
각도 들었다. 거기다가  사태께서는 또 정극상을 충신의 후손이라고  칭
찬의 말을 했는데 자기는 어떤 사람의 후손인가. 비천한  갈보의 자식에 
불과했다. 백의 여승은 정극상을바라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의 첫 번째 사부는 바로 청나라 조정의  오랑캐들에게 투
항을 한 시랑(施琅)인가?]

정극상은 말했다.

[예. 그 사람은 몰염치하게도 의를 저버린 사람이죠. 이  후배는 벌써부
터 그를 사부로 여기지 않습니다. 훗날 전장에서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내 손으로 그를 죽이겠습니다.]

그는 분개하여 격앙된 말투로 말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너의 사부는  조정에 투항을 했었구나. 그 사람을 다음에  만나게 
되면 주의해서 봐야지.)
정극상은 말했다.

[이 후배는 근 십 년 동안 줄곧 풍 사부를 따라 무공을  익혔습니다. 그
는 곤륜파의  제일 고수로서  별호는 일검무혈(一劍無血)이라고  한답니
다. 사태께서는 아마도 그 이름을 알고 계실 겁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음, 그는 풍석범 풍 협사이시지. 그런데 그의 별호의  내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네.]

정극상은 말했다.

[풍 사부의 검법은 지극히 고강할 뿐만 아니라 기공(氣功)  역시 출신입
화(出神入化)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예리한 검의  끝으로 사람의 
사혈을 짚어  죽이는데 피살당한 사람의  살갗에는 아무런상처도 볼  수 
없고 피도 흘리지 않는답니다.]

백의 여승은 아! 하더니 말했다.

[기공을 그토록. 예리한 데로부터 둔한 경지로 되돌아가도록  연마한 사
람은 당금 천하에서도 몇  사람 되지 않는다네. 풍 협사는 금년에  연세
가 어떻게 되시지?]

정극상은 매우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금년 겨울에 이 후배는  사부의 오십 번째 맞는 생일을 축하해줄  작정 
입니다.]

백의 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오십 세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공이 그토록 정순하다니  정말 훌륭
하시군.]

그녀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대가 거느리는 시종들의 무공은 그런 대로 괜찮소?]

정극상은 말했다.

[사태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저 사람들은 모두 왕부에서 정선된  고수 위
사들입니다.]

위소보가 갑자기 말했다.

[사태, 천하의  고수들이 어찌하여 이토록 많지요?  이분 정 공자의  첫 
번째 사부이신 무이파(武夷派)의  사부님은 무이파의 고수였고 두  번째 
사부는 곤륜파의 고수였으며 데리고 온 시종들도 하나같이  고수라니 아
마도 그 자신도 반드시 고수일 것 같군요.]

정극상은 그의 비꼬는 말을  듣고는 대뜸 크게 노했다. 다만 이  소년의 
내력을 모르고 또 그와 백의 여승, 그리고 아가가 한  수레에 타고 있는 
것을 보고  아마도 그녀들과는 깊은  관계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억지로 참았다.
아가는 말했다.

[명사(名師)에게서 반드시 고제자(高弟子)가 배출된다고, 정 공자는  세 
분의 명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니 그야 물론 뛰어나시죠.]

위소보는 말했다.

[소저의 말이 무척 옳소이다. 나는 정 공자의 무공을 보지  못했기 때문
에 그저 물어본 것이의다. 소저와 정 공자를 비교할 때  어느 분의 무공
이 더 고강하시오?]

아가는 정극상을 한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물론 그가 나보다 훨씬 더 고강하지요.]

정극상은 웃으며 말했다.

[소저께서는 너무나 겸손하시구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보니 그랬었구려. 그대는  명사 밑에서 반드시 고제자가  나은다고 
했는데, 원래  그대의 무공이 고강하지 못한  것은 바로 그대의  사부가 
무공이 낮아서 정 공자의  세 분 고수이신 명사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
이구려.]

사실 말싸움에 있어서 아가는 위소보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단 한 마
디에 그만 위소보에게 꼬투리를 잡히게 된 격이었다.
아가는 조그만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재빨리 말했다.

[내가,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 당신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
고 있군요.]

백의 여승은 빙그레 웃었다.

[아가, 네가 소보와 입씨름을 벌여 봐야 이기지 못할 것이다.  우리, 떠
나도록 하자.]

수레는 휘장을 내렸다.  일행의 수레와 말들은 서쪽으로 꺾어져서  나아
갔다. 정극상은 말을 타고 수레 앞에서 말을 몰았다.
백의 여승은 나직이 아가에게 물었다.

[너는 정 공자를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아가는 얼굴을 붉혔다.

[저와 사저는 하남성  개봉부(開封府)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때  우리
들은 남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우리들이 남자인 줄을 알고  주루에서 
우리들에게 다가와 같이 술을 마시자고 했어요.]

백의 여승은 말했다.

[너희들은 담이 적지  않구나. 두 커다란 계집아이가 주루로 올라가  술
을 마시다니.]

아가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진짜 술을 마신 것은 아니에요. 그저 그런 척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
랬을 뿐이에요.]

위소보는 말했다.

[아가 소저, 그대의 모습이 이토록 어여쁘니 설사  남장을 한다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첫눈에 그대가 아름다운 소저인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
이외다. 저 정 공자로  말하면 내가 볼 때 결코 좋은 마음을 품고  있지
는 않는 것 같구려.]

아가는 노해 말했다.

[그대야말로 좋은  마음을 품고 있지  않아요. 우리가 남자로  분장했을 
때 그는 조금도 알아보지 못했어요. 후에 사저가 그에게  말했을 때에야 
그는 연신 사과를  했단 말이에요. 상대방은 예의 바른 군자예요.  어찌 
그대와 같겠어요.]

일행은 정오  무렵이 되어 풍이장(豊爾莊)에  도달했다. 이곳은  하남성 
서쪽의 큰 고을이었다.
사람들은 한 반점으로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위소보는  수례에서 내
렸다. 그리고 정극상이  훤칠한 체구에 기우가 헌앙한다는사실을 볼  수 
있었다. 키가  자기보다도 머리 하나 반은  더 있는 것 같았다.  불현듯 
그는 열등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정극상은 옷차림까지도  화
려했다.
허리에 차고 있는 검집에는  보석까지 박아 놓아 찬연히 빛이 났다.  그
런가 하면 그의 수하인 이십여 명의 시종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체구가 
우람했고 어떤 사람은 아주 다부지게 보였다. 하나같이 몸에  칼과 검을 
지니고 있었는데 보기에  매우 정신이 또렷해 보였고 기운이 있어  보였
다.
반점 안에  들어서자 아가는 백의 여승을  부축해서 탁자 곁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는 정극상이  비스듬히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위소보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가는 그를 홀겨 주며 말했다.

[자리가 많으니 이곳에 앉지 않는 것이 어때요? 나는 그대를  보기만 하
면 밥이 넘어가지 않아요.]

위소보는 크게 노해서 온 얼굴이 그만 새빨개지고 말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 공자라는 사람이  옆에서 모시고 있으면 그대는 몇 그릇의  밥이
라도 다 해치우겠지. 제기랄, 배가 터지도록 처먹어 봐라.)
백의 여승은 말했다.

[아가, 너는 어째서 소보에게 그토록 무례하냐?]

아가는 말했다.

[그는 나쁜  짓이라면 뭐든 다하는  나쁜 사람이에요. 사부님께서  그를 
죽이지 말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에 그렇지,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위소보를 향해 매섭게 눈을 흘겼다.
위소보는 그야말로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는 스스로 객당 한 모서리의 탁자 겉에 가 앉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
각했다.
(그대는 한마음 한뜻으로 저 빌어먹을 고약한 도적인 정  공자에게 시집
을 가서 그의 마누라가  되겠다는 것인데, 이 위소보가 쉽게 그만둘  성
싶으냐? 네가 나를  죽이겠다고? 그렇게 수윌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계책을 써서 먼저 네가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남자를 죽여  그대로 하
여금 시집을 가기도 전에  먼저 과부가 되도록 한 다음 끝내 나에게  시
집오도록 만들겠다. 내가 네가 과부가 된 후에 개가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 하더라도 너라는 계집애에게 덕을 베푸는 것이다.)
반점의 사환들이 밥과 찬을 날라왔다. 정씨 집안의 시종들은  즉시 게걸
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일곱 여덟 개의 찐빵을 들고는 수레 속에 묶어  놓은 호파음에
게 먹였다. 그는 이  호파음이 정씨 집안의 그 사람보다 훨씬  다정하다
고 생각했다.
그는 자리에 되돌아와 앉았다.  몇 개의 탁자를 격하고 있는 저쪽을  보
니 아가는 환해진 얼굴로 정극상에게 다정하게 굴고 있었다.
위소보는 그야말로 울화가 터져 음식을 삼킬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저 정 공자를 해쳐  죽이는 것은 결코 수윌한 노릇이 아니다. 다른  사
람들로 하여금  전혀 흔적을 찾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를 죽인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아가가 알게 되어, 반드시  친남편
인 나를 모살하여 간부(奸夫) 정 공자의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이다.)
그때 갑자기 한 떼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몇  사람이 말을 
탄 채 고을 안으로 들어와 말에서 내려 가게로 들어섰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바로 일곱 명의 라마들이 아닌가?
위소보는 가슴이 크게 쿵쿵 뛰놀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잘
되었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정 공자는 조금 전까지  큰소리를 치고 허풍을 떨었으며 세 고수인  사
부에게서 무공을 배웠다고 했겠다? 어디 너회들끼리 치고 받는  것을 나
는 한 옆에서 구경만 하면 되니 그야말로 정말 재미있게 되었구나.)
그 일곱 명의 라마들은 백의 여승을 발견하자 대뜸 안색이  크게 변해서
는 뭐라고  자기네들끼리 수군덕거렸다. 그 가운데  한 명은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라마였다.
그 라마가 뭐라고 몇 마디 하자 그들은 일제히 문 앞에 있는  한 탁자에 
앉아서 밥과 찬을 시켰다. 그리고 제각기 눈 한번 돌리지  않고 백의 여
승을 바라보는데 그 표정은 매우 분노에 차 있었다.
백의 여승은 모른 척하고  천천히 음식을 들고 있었다. 그 비쩍마른  라
마는 탁자 앞으로 다가와서는 큰소리로 말했다.

[이것 봐, 여승,  우리 몇 명의 동료들은  모두 당신이 해쳐 죽인  것이
지?]

정극상은 몸을 일으켜서 낭랑하게 말했다.

[당신들은 뭣하는 사람인데  이곳에서 큰소리로 떠들고 야단이오?  이토
록 무례할 수가 있단 말이오?]

그 라마는 노해 부르짖었다.

[너는 뭐냐? 우리는  여승에게 이야기하는데, 너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느냐? 꺼져!]

그러자 획휙, 하는 소리가 나면서 정극상 수하에 있는 네  명 시종이 달
려왔다. 그리고는 일제히 라마를 잡으려고 들있다.
그 라마는  오른손을 들어 두 사람을  막아냈다. 그리고는 다리를  들어 
한 명의 시종을  걷어차서 반점 밖으로 나가떨어지게 만들었다.  곧이어 
한 대의 주먹을  맞은편으로 날려서는 다른 한 시종의 콧날을  쥐어박자 
그는 얻어맞고 땅바닥에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나머지 시종들이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모두 덤비자!]

그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고는 그 라마를 공격해 갔다.
뒤쪽의 다섯 라마들도 각기  계도를 뽑아서는 공격해 갔다. 다만 또  한 
명의 비쩍 마르고 키가 큰 라마만이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삽시간에 
반점의 객당에는 와지끈, 뚝딱 하는 소리가 잇따라 일어나더니  매우 신
나는 광경이 벌어지게 되었다.
사환들과 밥을 먹던 사람들은 갑자기 크게 싸우는 것을 보고  다투어 객
첨 밖으로 달아났다.
정극상과 아가도 장검을 뽑아들고는 백의 여승의 앞을 막았다.
반점의 객당에서는 그릇과 접시들이 마구 날아다니고 탁자와  의자가 뒹
굴었는데, 한 명의 라마가  그 시종들 너댓 명을 너끈히 막아내고  있는 
형편이었다. 갑자기 휙, 하는 소리가 나면서 한 자루의 칼이  위로 날아
오더니 대들보에 가서 탁, 하고 박혔다.
위소보는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았다. 그 순간 다시 하얀  광채가 번뜩이
는 가운데 다시 두 자루의 칼이 솟아오르더니 대들보에  박혔다. 곧이어 
또 서너  자루의 장검이 날아오르자 몇  명의 정씨 집 시종들은  잇따라 
놀람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들은 맨손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런가 하면 획휙거리는 소리가 잇따라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한  자루 한 
자루의 무기가 위로 날아올랐다. 모두 다 대들보나 석가래에  가 박혀서
는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강철 채찍과 철간(鐵杆) 등 무거운 무기는 지붕을 뚫고  기와장 위
에 떨어지기도 했다.
향을 반 대 피울 시간도 못 되어 정씨 집의 이십여 명이나  되는 시종들
은 모두 손에 잡고 있던 무기를 다 놓치고 말았다.
위소보는 놀람과 함께  기쁨을 느꼈다. 좋아하는 마음이 놀람보다는  몇 
푼 더 많은 편이었다.
몇 명의 라마들이 다투어 호통을 내질렀다.

[빨리 꿇어 엎드려서  투항을 해라. 한 걸음이라도 늦게 된다면  너희들
의 머리통을 모조리 잘라내겠다.]

정씨 집안의 시종들은  무기를 잃었지만 결코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맨손으로 주먹을  쓰거나 걸상들을 들어서는  다시 다섯 명의  라마에게 
달려들었다.
여섯 명의 라마들은 일제히 호통을 지르더니 칼을 던졌다. 팍,  하는 소
리가 나면서 여섯 자루의  계도는 모조리 그 비쩍 마르고 키가 큰  라마
가 앉아 있는 탁자 위에 꽂히게 되었는데 질서정연하게 하나의  둥근 원
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여섯  명의 라마들은 사람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어이쿠,  아이
구, 뚝, 소리가 잇따라 있었다.
삽시간에 이십여 명의 시종들은 하나같이 무릎이 탈골이  되어서는 객당
에 가득 쓰러졌다.
이때는 위소보의 심중은  경악이 기쁨을 눌렀다. 그는 속으로  야단났다
고 부르짖었다.
(이제 그들은 곧 사태와 나의 소미녀를 괴롭힐 텐데, 이를  어찌하면 좋
은가?)
여섯 명의 라마들은 두  손으로 합장을 하고 뭐라고 한참 동안 경을  읽
듯이 속삭이더니 다시  탁자 곁으로 다가가서는 탁자에 꽂힌 계도를  뽑
아서 허리에 찼다.
그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라마가 부르짖었다.

[술을 가져 오너라. 그리고 밥과 찬을 가져와!]

호통을 몇 번 질렀으나 사환은 멀리서 보고만 있을 뿐  감히 다가들지를 
못했다.
한 명의 라마가 욕을 했다.

[빌어먹을, 술과 밥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이 가게에 불을  지
르고 말겠다.]

주인이 가게에 불을 지르겠다는 말을 듣고는 재빨리 말했다.

[예, 예, 곧 가져 갑니다. 가져 갑니다. 빨리빨리 술과  음식을 부처 나
으리들께 갖다 드리도록 해라!]

위소보는 백의 여승에게  무슨 대책이 있을까 하고 백의 여승을  쳐다보
았다. 그런데 그녀는 오른손으로 찻잔을 들고서 천천히 차를  마시고 있
었는데 옷자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얼굴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아가는 안색이 창백해지고 두 눈은 두려운 빚으로 가득차  있었다. 정극
상의 얼굴은 푸르게 됐다가 하얗게 변하곤 했다.
그는 검자루를 쥐고 있는데  그 손과 팔이 끊임없이 떨렸다. 일시  앞으
로 나가 달려들어 싸움을 벌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
는 모양이었다.
그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라마는 한소리 냉소를 흘리더니  성큼성큼 다가
가 정극상 앞에 섰다.
정극상은 재빨리 옆으로  피하여 검의 끝으로 그 라마를 가리키며  호통
쳤다.

[당신은, 당신은 뭣 하자는 것이오?]

그 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라마는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다만 이 여승에게 볼 일이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과는 상관이 
없다. 너는 그녀의 제자냐?]

정극상은 대답했다.

[아니오.]

라마는 말했다.

[좋다. 분수를 안다면  빨리 꺼져라. 그러나 이름을 남기도록 하라.  이
후 이후..]

그 라마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젖히고 기다란  웃음을 터뜨렸
다.
위소보는 그 웃음 소리에 귀가 웅웅거리면서 대뜸  머리가 어지러워지더
니 두개골이 불어나는 것 같았다.
그는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고 걸상  위에 주저앉아 탁자 위에  엎드렸
다. 그 라마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나의 본명은 상결이라고 하오. 서장 달뢰라마 활불  좌하의 대
호법이외다. 당신이 이후  어떻게 하겠다고? 아마도 나를 찾아 와  원한
을 갚겠다는 것이겠지?]

정극상은 용기를 내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바로 그렇소!]

상결은 껄껄 소리내어  웃더니 왼손의 소맷자락을 들어 그의 얼굴을  후
려치려고 했다. 정극상은 검을 들어 막았다.
상결은 오른손의 중지를 륑겨 냈다. 짱,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은 날아
올랐고, 곧이어 지붕 대들보에 꽂혔다.
그 라마는 잇따라 왼손을 뻗치더니 어느덧 정극상의  뒷덜미를 잡아서는 
들어올리더니 힘을 주어 의자에다 내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앉으시지 ! ]

정극상은 그에게 뒷목에 있는 대추혈(大椎穴)을 움켜잡히게  되었다. 그
곳은 수족삼양독맥(手足三陽督脈)이 모이는 곳이라 대뜸 전신을  꼼짝할 
수가 없게 되었다.
상결은 흐흐, 하고 냉소를 홀리더니 자기의 탁자로 가서 앉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또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어찌해서 사태에게 손을  쓰
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또 어떤 협조자들이 들어서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그는 사방을 살펴보았다. 반점의 객당 사방은 모두 벽돌  담장이라 이미 
한번 써먹었던 재주를 다시  피울 수 없었다. 비수로 판자 벽을  격하고 
적을 찌를 수는 없는 것이다.
갑자기 그는 수레 안에 묶여 있던 호파음을 상기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야단났다. 그들이  호파음을 구출하기만 한다면  즉시 내가 사태와  한 
패거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어쩌면 네 명의 라마를  내가 죽였다는 
사실도 알게 될지 모른다. 그때 이 위소보는 저승으로 가서  그 네 명의 
대라마들과 머리를  맞대게 될 것이니  아무래도 매우  난처해지겠구나. 
가장 두려운 것은 그들이  먼저 나를 사람 막대기로 만드는 것이다.  이
것이야말로 나의 방법에 내가 당하는 게 아닌가!)
그는 다른 사람이  비수로 자기를 사람 막대기로 깎아서 만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만 전신의 솜털이 곤두섰다.
그는 슬쩍 상결 쪽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상결의 표정이  매우 엄숙했는
데 한편으로 얼굴에는 약간  불안한 빚을 띄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는 대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군. 그는 사태가 중상을  입은 줄 모르고 있다. 사태의 무공이  뛰
어난 걸로 알고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또 어떻게  손
을 써야 좋을지 모르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이때 사환이 술과 음식을  가져왔다. 한 주전자의 술로 라마들 앞에  놓
인 그릇에다가 반쯤 따르자 주전자는 대뜸 비워졌다.
한 명의 라마가 탁자를 치우며 욕을 했다.

[이까짓 술로는 이 부처 나으리 혼자 마셔도 부족하겠다.]

사환은 이미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데 라마가 그 말을  하
자 더욱 두려움을 느끼고 몸을 돌려 술을 가지러 갔다.
위소보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그 사환을  따라서 주방으
로 갔다. 그는 나이 어린 소년이라 그 누구도 그를 유의하지않았다.



第58章. 라마를 찔러 죽여 연인의 환심을 사려고하다


그 사환은  술 항아리를 들고 술을  주전자에 따르고 있었는데 두  손이 
벌벌 떨려서 땅바닥과 탁자 위에 술을 마구 흘리고 있었다.
위소보는 한 덩어리의 은을 그에게 주며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이 돈은 내가 먹은 음식값이니  거스름돈은 당신이 
다 가져도 좋소. 내가 그대를 대신해서 술을 따르겠소.]

그는 술  항아리를 받아 들었다. 그  사환은 비로소 마음이  진정되는지 
웃음을 지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저 라마들은 지극히  흉악하오. 당신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살펴
보고 오시오.]

그 사환은 대답하고 주방 입구로 가서 객당 쪽을  살펴보았다. 위소보는 
그 사환이  안 보는 틈에 품속의  몽한약을 꺼내서 모조리 주전자  안에 
쏟아 넣고 골고루 섞이도록 힘껏 흔들었다.

그 사환은 잠시 후에 다가오며 말했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있을 뿐, 별 짓을 하지는 않고 있소.]

위소보는 주전자를 그에게 내밀며 말했다.

[빨리 가져다 주시오.]

그 사환은 언신 고맙다고 하고는 주전자를 들고 나갔다.
라마들은 술주전자를 빼앗아 잔에 따라 마시더니 호통을 쳤다.

[술이 모자라다. 냉큼 더 가져 오너라!]

위소보는 일곱  명의 라마들이 약을 탄  술을 마시는 것을 보자  속으로 
기뻐했다.
(흉악한 라마들이 무공만 고강했지 강호의 술수를 모르는구나.  정말 웃
기는군.)
사실 그들은 백의  여승을 경계하며 그녀의 동정을 살피느라고 술에  신
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입으로는 술을 마시고 있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술을 마시면서
도 전혀 그 맛을  모를 정도였다. 다섯 명의 사형제들이 참혹한  죽음을 
당한 광경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줄곧 두려움이 치솟았던  것이
다. 만약 반점에서 백의  여승이 서쪽 자리에 편안히 앉아 있지  않았더
라면 대량의 몽한약을 섞은  이 한 주전자의 술을 마시게 되었을 때  알
아차렸을지도 모른다.
한 명의 뚱뚱한 라마는 호색한이었다. 아가의 용모가 뛰어난  것을 보고 
이미 앞으로  나아가 손으로 수작을 걸어  보려고 하던 참이었다.  다만 
백의 여승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꺼려 섣불리 무례한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반 그릇의 술이 뱃속에 흘러들어가자  이미 참을성
이 없어지게  되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약기운이 퍼지게 됨에  따라 
머릿속이 그만 띵해지면서 흐릿해져서 아무것도 돌보지 않게 되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이 어린 소저, 시집갈 곳은 정했소?]

그러면서 큰 손을 내밀어 아가의 얼굴을 한 번 만졌다.
아가는 깜짝 놀라 전신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그녀는 칼을 휘둘러 그를 찌르려 했다. 그 라마가 손을  뻗쳐 그녀의 손
목을 움켜잡고 비틀자 아가의  손에 들린 강철 칼이 땅에 떨어졌다.  그 
라마는 껄껄 웃으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아가는 소리  높이 날카롭게 부르짖으며  죽어라 하고 발버둥쳤으나  그 
라마의 거칠고 커다란  팔은 마치 커다란 무쇠로 만들어진 테처럼  바짝 
그녀를 조이고  있으니 그녀가 발버둥친다고  어찌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백의  여승은 본래 태연자약하니 침착함을 잃지  않았으나 
이렇게 되자 얼굴빚이 변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고약한 라마들이 만약 손을 써서 나를 죽인다면 상관이  없지만, 이
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례한 행동을 한다면 내 즉시  죽는다 하더라
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그때 정극상이 두 손으로 탁자를 짚고 몸을 일으키며 부르짖었다.

[당신은, 당신은..]

그러자 그 뚱뚱하고 큰 라마가 왼손 주먹을 뻗쳐 내더니  퍽, 하는 소리
와 함께 정극상을 땅바닥에 쓰러뜨려 잇따라 두 번 나뒹굴게 만들었다.
위소보는 사랑하는 사람이 모욕을 받게 되자 매우 초조해졌다.
(어째서 몽한약이  아직도 퍼지지 않을까?  설마하니 저 못난  라마에게 
야릇한 무공이 있어서 몽한약이 먹히지 않는단 말인가?)
그 라마가 입을  가져다가 아가의 얼굴에 갖다대고는 마구 냄새를  맡고 
입맞춤하려는 것을 보자 위험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위소보
는 소매  속의 비수를 감춘 채  싱글벙글 웃으면서 다가가서 입을  열었
다.

[대화상, 뭐하는 것이오?]

그는 오른손으로 라마의  왼쪽 등을 건드리면서 손목을 휙 뒤집어  비수
를 소맷자락 속에서 뻗쳐내어 그 라마의 심장에 꽂고는 웃으며  다시 말
했다.

[대화상, 당신은 지금 무슨 장난을 치는 것이오?]

그는 급히 왼쪽으로 물러서서 그가 반격할 것에 방비했다.
비수는 예리하기 이를 데 없어서 살을 파고들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나 정확히 심장을  겨누었던 터라 그 라마의 심장은 즉시  멈추었
다.
그 라마는 그대로  뻣뻣해져서는 움직이지 않았으나 두 손은 여전히  아
가를 안고 놓지 않았다.
아가는 그가 이미 죽은 줄도 모르고 놀라서 그저 날카로운  소리로 크게 
부르짖고 있었다.
위소보는 그 앞으로 다가가 그 라마의 팔을 들어내고 가슴팍을  슬쩍 밀
치며 나직이 말했다.

[아가, 빨리 나를 따라오시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백의  여승을 부축해서
는 객당 밖으로 걸어나갔다.
나머지 라마들은 깜짝 놀라서 다투어 달려들었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꼼짝 마라! 우리  사부님의 신공은 기묘하여 이 라마가 무례한  행동을 
하자 즉시 그를 죽게 만든 것이오. 그 누가 한  걸음이라도 다가서면 하
나같이 즉시 죽음을 당할 것이오.]

라마들이 어리둥절해져 있을 때  쿵, 하는 소리와 더불어 두 사람이  땅
바닥에 쓰러지고 잠시 후 다시 두 사람이 쓰러졌다.
상결은 내공이 심후하여 몽한약으로도 그의 정신을 흐리게  하여 쓰러뜨
릴 수는 없었지만 상결은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느낌과  더불어 어지러
워지면서 몸이 휘청거리고  밟고 있는 바닥이 둥실둥실 떠가는 듯한  느
낌을 받았다. 그는 백의 여승이 정말 이상한 법술이 있어  그러는 줄 알
고 속으로 당황하였으며 정신마저 흐릿해져서는 몽한약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가는 부르짖었다.

[정 공자, 빨리 우리들을 따라 떠나요!]

정극상은 대답을  하고는 몸을 일으키더니  서둘러서 바깥으로  나갔다. 
위소보는 백의 여숭을 부축하여 그 가게를 나섰다.
상결은 두 걸음 쫓아오는 듯했으나 몸을 흔들더니 탁자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우지직,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대뜸 탁자가 부숴져 버리고  말
았다. 위소보는 차부가  이미 어디로 도망쳤는지 보이지 않는지라  기다
리고 있을 수 없어 백의 여승을 부축하고 수레 위로 올랐다.
혹시나 상결 등의  라마가 쫓아나오게 될까봐 아가와 정극상이 모두  수
레에 오르는 것을 보고는 그 자신은 즉시 차부의 자리에  올라 앉아서는 
채찍을 들어 수레를 몰았다.
단숨에 십여 리를  달려가자 지친 듯 노새의 발걸음은 자연  늦추어지게 
되었다.
바로 이때 말발굽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가운데 여러 필의  말들이 뒤
쫓아왔다.
정극상은 말했다.

[아! 애석하게도 말을  타지 못했군.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의  준마
는 좀더 신속하게 달려갈 수 있을 것이고 고약한 라마들이  반드시 쫓아
올 수 없을 텐데.]

위소보는 그 말을 받았다.

[사태께서 어떻게 말을  타신단 말이오? 나는 그대보고 수레 위로  올라
와 달라고 하지 않았소.]

그는 입으로 호통을  내지르면서 채찍질을 해서는 계속 노새를  몰았다. 
정극상은 자기가 실언한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왕부의  공자였고 습
관처럼 언제나 남들에게서 떠받듬을 받아온 지라, 핀잔의 말을  듣자 대
뜸 얼굴에 분노한 빚을 띠었다.
말발굽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위소보는 말했다.

[사태, 우리들은 수레에서 내려 잠시 피하도록 하지요.]

그는 사방을 살폈으나 집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그  오른편 밭에 몇 
무더기의 커다란 보리 짚단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말했다.

[자, 우리들은 저 보리 짚단 안으로 가서 숨도록 하지요.]

그는 노새를 세웠다. 정극상은 노해 부르짖었다.

[짚단 속에 몸을 숨기다니 만일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우리 연평왕부의 
위풍을 땅에 떨어뜨리는 꼴이 될 것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맞았소. 우리 세 사람은 짚더미 안으로 몸을 숨길 터이니  공자는 계속 
수레를 급히 몰아  추격해 오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도록  하시
오.]

그는 백의 여승을 부축하며  수레에서 내렸다. 아가는 일시 어찌 할  바
를 몰랐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아가야, 빨리 오너라.]

아가는 정극상에게 손짓을 하고 말했다.

[그대 역시 숨도록 해요.]

정극상은 세 사람이 보리 짚단 안으로 숨어 버리자 잠시  망설이더니 곧
이어 짚더미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위소보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재빨리 짚더미에서  기어나와 
수레 안으로 다시  들어가 비수를 뽑아서는 호파음을 한칼에 찔러  죽였
다. 그는 다시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어서 그자의  오른손을 손목 
있는 데로부터 잘라내고  다시 노새의 엉덩이에다가 칼을 살짝 갗다  댔
다.
노새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커다란 수레를  끌고는 미친 듯  달려갔다. 
이때 추적해 오는 말들이 점점 가까히 다가옴에 따라 그는  재빨리 다시 
짚더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비수를 신발 속에 꽂고는 오른손으로 그 죽은 사람의  손을 들어서 
아가를 놀려 주려고 했다.
그가 원손을 뻗쳐  더듬어 보았는데 손에 잡히는 것은 땋은  머리인지라 
정극상의 머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다시 손을 뻗쳐서는 더듬었는데 이번에는 가늘고  잘록하며 부드러
운 허리께가 만져졌다.
그것은 틀림없는  아가였는지라 그는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힘주어  두 
번 비틀어 주고는 부르짖었다.

[정 공자, 왜 남의 엉덩이를 만지시오?]

정극상은 말했다.

[나는 만지지 않았소.]

위소보는 말했다.

[홍, 그대는 내가 아가  소저인 줄 알고 있는 모양이구려. 손짓  발짓을 
하다니 너무나 무례하오.]

정 극상은 욕을 했 다.

[터무니없는 소리!]

위소보는 왼손으로 아가의 가슴을 힘주어 비틀고는 즉시  손을 움츠리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이것 보시오, 정 공자! 여전히 손을 놀리고 있구려!]

곧이어 그는 호파음의 손을 아가의 얼굴에 갖다대고서는  이리저리 만지
도록 했고  곧이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그녀의 가슴을 만지도록  했
다. 처음에 그가 아가의  허리께와 가슴을 만질 때 입으로 크게  소리를 
쳤기 때문에 아가는 정말 정극상이 기회를 틈타 무례한 행동을  하는 줄 
알고 부끄러움과 함께 다급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곧이어 다시 
차갑기 이를 데 없는 커다란 손이 자기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는 위소보의 손은  이토록 클 수가 없으니 정극상의 손이  틀림없다
고 생각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사부와 위소보가 들으면 좋은  꼴
이 못되는지라 속으로 애를 태웠다.
그런데도 그 커다란 손은  다시 자기의 가슴을 만지는 것이 아닌가?  그
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정 공자가 이토록 망나니 짓을 하다니!)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울화가 치밀어 몸을 왼쪽으로 조금  옮겼다. 위소
보는 왼손을 뻗쳐서는 철썩 하니 힘주어 정극상의  따귀를갈기고는 부르
짖었다.

[아가 소저, 잘 때렸소. 정 공자는 호색한이외다. 아이쿠, 정  공자, 그
대는 또 나를 만지는구려. 사람을 잘못 알고 만졌소.]

정극상은 그 한 대의 따귀를 아가에게 맞은 줄 알고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가 사람을 앉혀 놓고 병신을 만드는데 감히 나에게  누명을 씌우다
니 ]

아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분명히  커다란 손이었으니 결코 나이  어린 악인의 짓은  아닐 
것이다.)
위소보는 다시  호파음의 손을 들어서는  아가의 뒷덜미를 만지작  거렸
다. 바로 이때 말발굽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원래  상결은 백
의 여승 일행이 반점에서 나가는 즉시 쫓으려고 했으나 전신의  힘이 빠
져 쫓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내공이 심후했기 때문에, 몽한약을 탄 술을 마시긴  했지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지는  않았고 두 가닥  진기를 끌어올리자 내식이  막힘없이 
유통되었는데, 단지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이 가물가물할 뿐이 었다.
그는 대뜸 알아차리고는 부르짖었다.

[냉수를 가져와! 빨리 냉수를 가져와!]

사환은 한 대접의 냉수를 가져다 주었다. 상결은 부르짖었다.

[내 머리에 끼얹어라!]

사환이 어찌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사환은 주저하며  움직
이지 않았다.
상결은 몽한약을 이 반점에서  탄 줄 알고 있었다. 두 손을 쳐들 수  없
자 깊이  숨을 들이키고는 머리통을 그  한 그릇의 냉수 쪽으로  부딪쳐 
갔다. 그러자  한 그릇의 냉수가 모조리  그의 머리에 끼얹어져  머리가 
약간 맑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는 고함을 쳤다.

[냉수,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빨리 !]

사환은 다시 두 대접의  냉수를 떠왔다. 상결은 그 냉수를 자기  머리에 
끼얹고는 다섯 사환에게 물을 한 통 길어 오게 해서는  라마들에게 끼얹
어 정신을 차리게 했으나  그 뚱보 라마는 아무리 해도 일어날 줄을  몰
랐다. 그리고  보니 그의 등에서 피가  나는지라 즉시 상처를  살펴보고 
죽은지 오래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섯 명의 라마들은  미처 객점에다가 불을 지르지도 못하고 말에  올라
타고 큰소리를 내지르며 백의 여승 일행을 쫓아오게 된 것이다.
아가는 그 커다란 손이  다시 자기의 목을 더듬어 오는 것을 느끼고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부르짖었다.

[그만둬요!]

위소보는 냅다 일장을 들어 후려쳤다. 정극상은 짚더미 안에  있었기 때
문에 눈으로  사물을 볼 수가 없어  피하기가 어려웠고 다시 따귀를  한 
대 얻어맞고는 부르짖었다.

[내가 아니오!]

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게 되자 그들의 종적이  라마승들에게 발각당하
고 말았다.
상결은 부르짖었다.

[이곳에 있다.]

한 명의 라마가 말에서 내리더니 짚더미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정극상의 한쪽 발이 바깥으로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보고  그의 발목
을 잡아서는 짚더미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정극상이 반격을  할까봐 
손을 떨치며 그를 수장 밖으로 내던졌다.
그 라마는 다시 손을 뻗쳐서는 짚더미 안으로 넣고 더듬거렸다.
위소보는 있는 힘껏 몸을 움츠렸지만 짚더미가 이미 그 라마에  의해 들
추어졌기 때문에 커다란  손이 안으로 덮쳐 들어와 마구 잡으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다급한 김에 그는 호파음의 손을 그의 손에 쥐어 주있다.  그 라마는 하
나의 손을  만지게 되자 즉시 힘주어  바깥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상대방이 짚더미 안에서  끌려나오는 줄만 알고는 손을 떨치며 와락  잡
아당겼다. 그런데 와락  잡아당긴다는 것이 그만 허공을 잡아당기는  결
과가 되있다.  잘려진 손을 끌어당긴 결과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대뜸 
균형을 잃고 털썩  주저앉게 되었다. 그렇게 주저앉아 자기가  잡아당긴 
손을 똑똑히 보니 죽은 사람의 손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가슴팍의  기혈이 끓어오르면서 그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그는 본래  짚더미 안에서 한 사람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힘을 주어서는 팔을 떨치듯 하며 그 상대방을 메다꽂으려 한  것이고 또 
정극상의 몸무게가 백이삼십 근 정도 되었기 때문에, 두  번쩨 사람에게
도 이백근이나되는 힘을주었던 것이다J더군다나 이번에 잡힌  것은 발목
이 아니라 손이었기 때문에 혹시 힘이 부족하게 되었을 때  되려 상대방
에게 끌려 짚더미  안으로 들어가게 될까봐 더욱더 강력한 힘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큰 힘을 쏟게 된 결과 끌어낸 것은 그저  몇 
냥 중에 불과한 손바닥이니 그 기운은 자연 모조리 그  자신에게로 되돌
아가게 되어 이백여  근이나 되는 장력을 심하게 얻어맞은 것과  다름없
는 꼴이 되었다.
위소보는 그가 주저앉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한 묶음의  보리 짚단
을 그의 얼굴에다 던졌다.
그 라마는 손을  뻗쳐 그것을 들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가슴팍이  아파
왔다. 곧이어 몸을 비틀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 위소보가 그의  시선이 보리 짚단에 가려지는 순간 급히  달려들어
서는 비수로 그의 심장을 찔렀던 것이다.
그는 막  비수를 뽑아낼 때 주위의  몇 사람이 서장말로 크게  부르짖는 
것을 듣고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도망칠  길이 없으리라고 생각한  그는 비수를 소맷자락  속에 
숨기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고개를 쳐들었다.
상결과 나머지 네  명의 라마들이 보리밭에 서 있었는데 짚더미와는  삼 
장이라는 간격이 있었다.
그 라마의 시체 위에는 짚단이 얹혀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죽은 것인지 
상결 일행은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백의 여승이  신공을 펼쳐서는 그를 격살한 것이라 생각하고  즉시 
멀찌감치 피해서는 감히 가까이 다가들지 못했다.
상결이 부르짖었다.

[여승, 그대는  나의 여덟 명이나 되는  사제들을 잇따라 죽였소.  나는 
그대와 그야말로  바다 같은 깊은 원한을  맺게 되었소. 그런데  짚더미 
안에 숨어서 감히 나서지 못하다니 어찌 영웅이라 할 수 있겠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언제 여덟 명의 사제를 죽였다는 거지?)
그가 헤아려 보니 과연 여덟 명이었다. 그 가운데 한  명만이 백의 여승
에게 살해된 것이었다.
상결은 그와 같이 말한  이후 다시 두 걸음을 물러섰다. 아마도  퍽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위소보는 참을 수 없어 말했다.

[우리 사부님의  무공은 출신입화의 경지에  도달하여 천하에서는  다시 
비할 수 없는 정도이의다. 하지만 그 어르신께서는 자비를  근본으로 삼
고 있고 또 호생지덕을 베풀고자 하는 분이라 다시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소이다. 당신네 다섯 명의 라마들의 목숨을 그  어르신께서는 용
서하겠노라고 하시니 빨리 떠나도록 하시오.]

상결은 말했다.

[그렇게 수윌한 노릇이 어디 있소? 젊은 여승, 그대는 그  한 권의 사십
이장경을 순순히 내놓으시오.  그러면 이 부처 나리께서는 그대들이  길
을 떠나도록 하겠소.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 끝까지  도망친다고 하더라
도 이 부처 나리께서는 가만 있지 않을 것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들은 사십이장경을 요구하는 것이오? 그 경서는 절마다  다 있는데 
뭐가 대단한 것이라고 그러시오?]

상결은 말했다.

[우리들은 바로 저 여승이 몸에 지니고 있는 그  사십이장경을 요구하는 
것이오.]

위소보는 정극상을 가리켰다.

[그 한 편의  경서는 우리 사부님께서 이미 저자에게 주었소.  그대들은 
그에게 내놓으라고 하시오.]

이때 정극상은 막  땅바닥에서 기어 일어났을 때였고 제대로 자세를  가
다듬고 서지도 못한 상태였다.
한 명의 라마가  덥썩 그의 두 팔을  잡았고 다른 한 명의 라마는  그의 
옷자락을 찢어냈다. 쫙솩,  하는 소리가 나면서 장삼과 내의가 즉시  찢
어지고 주머니 안의  금은주보가 땅바닥에 떨어졌으나, 경서는 전혀  보
이지 않았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정 공자, 그 한  권의 경서를 어디다 숨겼소?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시
오. 뭐 그리 귀중한 물건도 아니잖소?]

정극상은 극도로 노해서 부르짖었다.

[나는 없소!]

한 명의 라마가 철썩  하니 그의 따귀를 후려쳤다. 하마터면 그는  기절
할 뻔했다. 라마는 다시 호통을 내질렀다.

[어서 말하지 못하겠느냐?]

다시 일장을 후려쳤다. 위소보는 그의 양쪽 뺨이 대뜸  부풀어오르는 것
을 보고 속으로 말할 수 없는 통쾌함을 느끼면서 부르짖었다.

[정 공자, 그대는 이 몇 분의 부처 나리들을 모시고  경서를 찾아내도록 
하시오. 나는 그대가 아까  그 객점의 바닥에 구멍을 파는 것을  보았는
데 혹시 경서를 땅에 파묻은 것이 아니오?]

상결은 기뻐서 의쳤다.

[저자를 압송하라. 객점으로 돌아가 경서를 파내자.]

그 라마는 대답했다.

[예.]

그는 다시 정극상의 따귀를 갈겼다.
아가는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짚더미 속에서 기어나와서는 부르짖었다.

[이 어린애는  전문적으로 거짓말만 하니  그대들은 그를 믿지  말아요. 
이 공자는 경서라는 것은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위소보는 고개를 돌리고 나직이 말했다.

[나는 사태와 그대를 구하기 위해서 정 공자를 이용하는 것이오.]

아가는 말했다.

[그대가 나를 구해 줄 필요는 없어요. 그대는 정 공자에게  억울한 누명
을 씌워 그의 목숨을 해치려는 것이 분명해요.]


위소보는 말했다.

[사태와 그대의 목숨은 정 공자보다도 몇 만 배 더 귀중하오.]

상결은 정극상을 잡은 라마에게 부르짖었다.

[그를 때려 죽이지 마라!]

그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젊은 여승, 그대는 나오시오.  그 두 꼬마와 함께 우리를 따라가서  함
께 경서를 찾도록 합시다.]

이때 아가는 위소보를 노려보며 부르짖었다.

[그대는 자신이 죽을까봐  두려워하면서 사부님을 구하려 한다고?  그대
가 사내라면 저 라마들과 한바탕 싸워 봐요.]

위소보는 가슴 속으로부터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이토록 나를  업수이 여기다니. 내 이 라마들에게 얻어맞아  죽는
다 하더라도 사내대장부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겠다.)
그는 말했다.

[싸우라면 싸우지.  내가 죽는 것은 별것  아니오. 다만 그대와  사태를 
구하지 못하는 것뿐이외다. 그런데 만약 내가 이기게 된다면?]

아가는 말했다.

[흥, 그대는  죽었다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이길 수  없어
요. 그대가 한 명의 라마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면  나는 영원히 그대에
게 승복하겠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한 사람에게 이긴다는 말이 무슨 말이오? 나는 이미 일곱  명의 라마를 
죽이지 않았소?]

아가는 말했다.

[간계를 써서 죽인 것이니 그것은 계산에 넣을 수 없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한 명의 라마만  이기더라도 그대는 나에게 와 내 마누라가  되어 
주시오.]

아가는 노해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그대는  소화상이고 또 소태감인데 어떻게....  어떻
게....]

위소보는 말했다.

[소화상은 환속할 수 있고 소태감도 태감 노릇을 하지 않으면  되오. 어
쨌든 간에 나는 반드시 그대를 내 마누라로 맞아들여야 되겠소.]

아가는 다급해져 말했다.

[사부님, 들어 보세요. 이  순간에도 그는 더러운 말을 함부로 하고  있
어요.]

백의 여승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속으로 지금 형세가  정말 위급하
니 자기 자신은 스스로 경맥을 끊고 죽어 라마들에게 모욕을  당하지 않
도록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소보, 너는 손을 이 짚더미 안으로 뻗쳐라.]

위소보는 대답했다.

[예.]

위소보는 왼손을 짚더미  안으로 넣었다. 그러자 손바닥에는 하나의  조
그만 종이 봉지가 쥐어졌고 곧이어 백의 여승의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이것은 경서 속에  숨겨 두었던 지도이다. 그대는 나를 상관하지  말고 
스스로 도망을 쳐 목숨을  구하도록 해라. 만약에 앞으로 다른 일곱  권
의 경서를 차지한다면 우리 명나라의 산천을 어쩌면 다시 찾을  수 있는 
가망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것이야말로 내 한 사람의 생사보다도  더 중
요한 것이네.]

위소보는 그녀가 자기를  이토록 중시하고, 그 물건을 자기의  제자에게 
주지 않고  오히려 자기에게 내준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들며  용기가 
새롭게 솟아났다.
갑자기 그는 마음 속에  작정하는 바가 있어 그 즉시 자세히 생각해  보
지도 않고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사부님은  당대의 고인이시라 당신들과는  손을 쓰고  싶지않다고 
하시오. 그대들은 한  사람을 내보내 먼저 나와 겨루도록 하시오.  만약 
나를 이길 수  있다면 우리 사저가 그때  나서서 손을 쓰게 될  것이오. 
흥, 흥. 아마 그대들은 감히 나서지도 못하시겠지. 분수를  안다면 빨리 
개꼬리 감추듯 도망을 치시오!]

그는 종이 봉지를 품속에 갈무리했다. 다섯 명의 라마는  소리내어 웃었
다.
그들은 백의 여승에  대해서는 퍽이나 거리끼는 바가 있었으나 이  어린
애에 대해서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한 명의 라마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저 한 대의 주먹으로 너를 열일곱, 여덟 번  곤두박질치도록 만
들겠다. 겨루기는 무엇을 겨룬단 말이냐?]

위소보는 한 걸음 나서며 낭랑히 외쳤다.

[좋소. 바로 당신이 나와 겨루도록 합시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아가에게 말했다.

[내가 이기면  그대는 내 마누라가 되는  것이니 다시 잡아  떼지않도록 
하시오.]

아가는 말했다.

[그대는 이길 수 없어요. 어떻게 하더라도 이길 수 없을 거예요.]

위소보는 말했다.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만 사람이 당하지 못하는  법이오. 그
대를 맞아들여  마누라로 삼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울 수 밖에  없
소.]

그 라마는 몇 걸음 다가오더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정말 나와 겨루려고 하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그럼 거짓말을 할  리 있겠소? 우리 두  사람은 일 대 일로  겨룹시다. 
그대는 안심하시오. 우리  사부님은 결코 손을 쓰지 않을 것이오.  그대
의 네 명 사형제들도 그대를 도우시지 않겠지?]

상결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물론 우리는 돕지 않지.]

위소보는 말했다.

[만약에 내가 한 주먹으로 그를 때려 죽인다면 그대들은  와락 달려들어 
많은 사람의  수로 이기려고 할 것이  아니오? 우리 미리 말해  둡시다. 
만약 당신네들이 한꺼번에 달려든다면 나는 감당해 낼 수가  없소. 그리
고 우리 사부님께서는 부득이 손을 쓰게 될 것이오.]

상결 역시 진정으로 백의 여승이 손을 쓰는 것은 두려웠다.
몇 명의 사제들이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했는데도 저 여승이 사용한  무
공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겠으니,  한 명의 사제로 하여금 먼저 저  어
린애와 일 대 일로  싸우게 한 후 여승의 무공 수법을 알아본다면  크게 
유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그대들 두 사람이 일  대 일로 싸우도록 하게. 쌍방에선 그 누구도  도
와 줘서는 안 되네.]

위소보는 말했다.

[그 누가  도와 준다면 그 사람은  바로 자라의 아들이고  후레자식이외
다.]

상결은 말했다.

[맞아. 그 누가  도와 준다면 그는 바로 자라의 딸이고  후레자식이라고 
할 수 있네.]

상결은 무공에 있어서 지극히 고강했고 또한 매우 교활한  면이 있었다. 
백의 여승과 아가가  모두 여자인 것을 보고는 자라 아들이며  후레자식
이란 말을 자라의 딸이며 후레자식이란 말로 바꾸어서  상대방으로 하여
금 위소보를 돕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다.
위소보는 웃었다.

[매우 좋소. 그대는 매우 똑똑하구려. 불초는 탄복했소이다.]

상결은 말했다.

[자네는 다시 몇 걸음 더 나서게나.]

그는 위소보가 짚단 더미와 여전히 가까운 것을 보고 백의  여승이 그의 
등에 손을  갖다대고 암암리에 공력을  전달하게 된다면 자기의  사제가 
감당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와 같은 요구를 한것이 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 한인들은 광명정대하오. 이기더라도 영광스럽게 이기고  지더라도 
깨끗하게 지는데, 무슨 요령을 피울까봐 걱정이시오?]

백의 여승은 나직이 말했다.

[소보, 자네는 이길 수가 없네. 거짓으로 무공을 겨루는  척하면서 빨리 
말을 가로채서는 도망을 치도록 하게나.]

위소보는 말했다.

[예.]

그는 세 걸음을 다가섰는데 짚단 더미와는 일장 남짓  떨어지게 되었다. 
상결은 백의 여승이 다시는  몰래 도와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고개
를 끄덕여 보였다.
그 라마 역시 몇 걸음 다가와서는 그와 마주서서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겨루지?]

위소보는 말했다.

[문(文)으로 겨루는 것도 괜찮고 무(武)로 겨루는 것도 괜찮소.]

그 라마는 웃으며 말했다.

[문으로 겨루는 것은 어떤 것이고 무로 겨루는 것은 또 어떤 것인가?]

위소보는 말했다.

[문으로 겨루는 것은, 내가 그대를 한 주먹으로 때리고 나면  그대가 다
시 나에게 한 주먹을  때리는 것이오. 그리고 나서 재차 다시  그대에게 
한 주먹을 때리면 그대도  재차 나에게 한 주먹을 때리는 것이오.  칠팔
십 대를 때려 그  어느 쪽에서든 먼저 쓰러지면 시합이 끝나는  셈이오. 
그대가 나를 때릴 때 나는  피할 수 없고 또 손을 써서 막을 수도  없으
며 그저 뻣뻣하게 서서 내공을 돋구어 그대의 한 대  주먹을 맞받아내야 
하오. 내가 그대를 치게 되었을 때 그대 역시 마찬가지의다.  무로 겨루
는 것은, 무기를 쓰든  권각법을 쓰든 간에 자연히 피하거나 막거나  또
는 달리거나 몸을 솟구치거나 할 수 있소.]

상결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장난꾸러기는 몸놀림이 민첩하다. 만약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게 된
다면 사제는 일시 그를 때릴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믿는데가 있는 것처
럼 행동하는  것으로 보아 반드시 간계가  있을 것이다. 십중팔구  그는 
짚단 더미가 있는  쪽으로 기어서는 사제가 쫓아가도록 유인할  것이다. 
그때 짚단  더미 안에서 갑자기 여승의  주먹이 사제의 몸을 칠팔십  번 
내지른다 하더라도 그저 근지럽기만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서장말로 부르짖었다.

[그와 문으로 겨루도록 하되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해라.  될 수 
있으면 오래 싸우면 싸울수록 좋다. 그리하여 그의 무공  수법이 어떤가
를 살펴보도록 하자.]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의 사형이 두려움을  느껴 그대가 나를 이기지 못할까봐  그대에게 
항복하라고 말하는 것이겠지?]

그 라마는 웃었다.

[조그만 꼬마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사형께서는 너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에게 한 대의 주먹으로 너를 때려 죽이지 않도록  하라고 하
시는 것이다. 너의 그 어린 나이로 미루어 볼 때  무기나 권각법에 있어
서나 한도가 있을 것  같구나. 나 역시 그와 같은 득을 보고 싶지  않으
니 우리들은 문으로 겨루도록 하자.]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위소보는 가슴을 펴며 두 손으로 뒷짐을 지고 말했다.

[그대가 먼저 나에게  한 대의 주먹을 치시오. 내가 피하거나  막는다면 
영웅호걸이라 할 수 없을 것이오.]

그 라마는 웃었다.

[너는 어린애이니 물론 네가 먼저 때려야지.]

그는 위소보를 흉내내어 뒷짐을 지고서 가슴팍을 내밀었다.
그는 위소보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얼굴에 싱글
벙글 웃음을 띠고 있었으며 전혀 이 나이 어린 장난꾸러기를  개의치 않
는 눈치였다.  위소보는 왼손 주먹을 내밀었는데  그 주먹이 바로  그의 
아랫배에 닿을락말락 했다. 위소보는 그저 한번 간격을 재보는  듯 주먹
을 한번 뻗쳐 보았다.  다섯 명의 라마들은 그의 조그만 주먹을  보고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내가 치겠소.]

그 즉시 한 가닥 내력을 끌어올려 아랫배에다 힘을 주었다.
위소보는 오른팔의 소맷자락을  벼락같이 떨쳐 내면서 주먹을  소맷자락 
속에 숨긴 상태로 기척도  없이 그의 왼쪽 가슴팍에 한 대의 주먹을  내
질렀다. 상결은 그 한 대의 주먹이 그토록 힘이 없는  것을 보고 또다시 
껄껄거리며 큰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 라마는 몸을  휘청했고 위소보가 
말했다.

[이제 그대가 나를 때릴 차례요.]

그 라마는 갑자기  털썩 앞으로 쓰러져서는 땅바닥에 엎드려 그대로  움
직이지 않았다.
상결 일행은 깜짝 놀라 일제히 달려 나왔다.
위소보는 짚단 더미 쪽으로 물러서며 부르짖었다.

[게 서시오! 누구든지 다가오게 된다면 바로 자라의  아들이며 후레자식
이 되는 것이오.]

네 명의 라마들은 대뜸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데 그 라마는 여전히  꼼
짝하지 않는데 중상을 입은 정도가 아니라 그만 숨이 막혀서  그대로 숨
진 것이 분명했다.
네 사람은 입을 크게 벌리고 경악해서는 말을 하지 못했다.
위소보는 두 주먹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는 말했다.

[우리 사부께서  나에게 가르치신  이 무공은  격산타우신권(隔山打牛神
拳)이라고 하며, 커다란 황소라도 한 주먹에 때려 죽일 수  있는데 그까
짓 조그만 라마쯤이야 뭐가 대수로울 것이 있겠소? 어때, 누가  다시 와
서 맛을 보겠소?]

그는 나직이 말했다.

[아가 마누라, 이제는 잡아떼지 못하겠지?]

아가는 그가 그저 가볍게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그토록  무공이 고강하
고 체구가  우람한 라마가 땅바닥에  엎드려서는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고 또 그 라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자 역시  그지없
이 의아스럽게 여기면서  그의 말에 핀잔을 주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대는 응낙을 했군. 정말 착한 마누라야.]

아가는 노해 부르짖있다.

[아니야!]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또 억지를 부리는군. 그렇다면 영웅호걸이 못되오.]

아가는 말했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에요. 그대가 어쩌겠다는 거예요?]

백의 여승은 위소보가 그 라마의 왼쪽 가슴팍에 한 대의  주먹을 내지르
자 그 라마의 가슴팍에서 피가 흘러내리면서 몸을 몇 번  흔들더니 즉시 
앞으로 푹 고꾸라지는 것을 보았다.
다음 순간 위소보가 소매  속에 몰래 비수를 감추는 것을 보고 그가  바
로 상대방의 심장을 겨누고 찔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비수는 예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람의 몸을 꿰뚫는  것은 말할 것
도 없거니와 왼손  주먹을 내밀어 견주어 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
가 주먹을 사용하려 한다고 여기게 만들고 비수로 찌른 후에는  즉시 비
수를 숨기고 두 주먹을 높이 쳐들어 옆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더 
의심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상결은 그 라마를 몇  번 불렀으나 대답 소리가 들리지 않자 일시  놀람
과 의아함에 사로잡혀 어떤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때 체구가 수척한 한 명의 라마가 계도를 뽑아들고 의쳤다.

[나이 어린 꼬마야! 설사 너의 권법이 고명하다 해서  어떻다는 것이냐? 
이 부처님 나리께서 너와 도법을 겨루어 보겠다.]

그는 속으로 이  어린애가 고명한 내력을 전수받아 내공의 힘은  대단하
지만, 그와 무기를 들고 겨루게 된다면 그의 주먹 힘이  별로 쓸모가 없
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도법으로 겨루어도 좋소. 이리 다가오시오.]

라마는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호통을 내질렀다.

[사내라면 네가 이리 다가오너라!]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사내라면 그대가 이리 다가오시오.]

그 라마는 말했다.

[하나, 둘, 셋! 우리 서로 세 걸음 다가가도록 하세.]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하나, 둘, 셋!]

그는 세 걸음 다가섰다. 그 라마 역시 세 걸음을  다가서서는 계도를 휘
둘러 한 무더기의  하얀 광채를 쏟아내면서 상반신을 보호했다.  그로서
는 위소보가 갑자기  격산타우신권을 펼쳐 낼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위
소보는 웃었다.

[그대는 두려워할 것이 없소. 나는 신권으로 그대를 때리지는 않겠소.]

그 라마는 믿으려 하지 않고 여전히 계도를 휙휙 바람  소리가 일어나도
록 휘둘러대며 부르짖있다.

[빨리 칼을 뽑아라.]

위소보는 웃었다.

[나는 이미 금정문의 호두신공(護頭神功)을 연성했으니 그대가  나의 머
리를 향해 한 칼을  내려쳐 보시오. 그대의 그 커다란 칼이  되튕겨져서 
그대의 민대머리를 오히려 내려치게 될 것이오. 나는 그대가  속지 않도
록 분명히 미리 말해 두겠소.]

그 라마는 반신반의했다.
그가 아무렇게나 한 대의 주먹으로 사형을 때려 죽이는 것을  보고 무공
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한 그는 일시 아니나  다를까 
경솔하게 앞으로 나서지 못했고 더더욱 감히 칼을 들어 그의  머리를 내
려치지 못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의 무공이 너무  얕으니 내 결코 반격하지 않으리다. 하지만  그대
는 나의 머리만 내려쳐야지  나의 가슴팍을 내려칠 수는 없소. 나는  나
이가 어려서 가슴팍의  호체신공은 아직도 연성하지 못했소. 그대가  한
칼로 나의 가슴팍을 베려 든다면 반드시 나를 죽이게 될 것이오.]

그 라마는 곁눈질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대의 머리통을 정말 칼로 내리 찍어도 두렵지 않단 말인가?]

위소보는 모자를 벗고 말했다.

[자, 이것 보시오. 나의 땋은 머리는 이미 무공을  연마하느라고 잘려져 
나가고 말았으며, 머리카락은 무공을 연마하면 연마할수록  더욱더 짧아
지게 되오. 정수리와 목덜미의 신공은 이미 연성하게  되었소. 그리하여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게  되었을 때는 그대가 바로 나의 가슴팍을  내려
친다 하더라도 상관없게 되는 것이오.]

그는 소림사와 청량사에서 출가하여 머리를 빡빡 깎은  터였는데 이때는 
한 치 정도로 길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화상과  타고난 대머리 이외
에 남자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땋아야 했는데 그처럼 한치 정도의  머리
를 기른 사람은 어디서든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第59章. 신기한 철두공과 무시무시한 화시분


무공을 연마하면 인마할수록  머리카락이 짧아진다느니 하는 말은  그가 
강친왕 왕부에서 오응웅이 거느리고 있는 금정문의 시종들에게  들은 소
리였다.
그 라마는 그의 머리통을 보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무림에  확실히 금정
문이라는 문파가 있는데 철두공(鐵頭功)이 매우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
는지라 말했다.

[나는 너의  머리통이 나의 칼에 맞고서도  끄덕없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위소보는 말했다.

[내 충고하는데 그대는 역시 시험해 보지 않는 것이 좋소이다.  그 칼이 
되튕겨지면 그대가 밥 먹는  것을 더 이상 보증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
오.]

그 라마는 말했다.

[나는 믿을 수 없다.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말아라. 내 곧 너를  내
려치겠다.]

그는 계도를 쳐들었다.
위소보는 칼빚이 번쩍이는 것을 보고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
꼈다. 속으로 만약 그가  정말 한 칼로 자기의 머리를 내려친다면  머리
가 둘로 나누어지는 것은  물론, 몸뚱어리도 두 쪽이 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째로 정말 이 라마가  손을 쓴다면 속임수를  쓰는 
이의에는 달리 몸을 빼낼  도리가 없었고, 둘째로 그는 내기 거는  것에 
버릇이 들어 있었다.
그는 라마가 자기가  위협하는 말을 듣고 나면 자기의 머리와  목덜미를 
감히 내려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기를 걸게 되었는데,  이 내기
는 바로 자기 자신의 생명을 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때 자기 자신의 생사는  이 라마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
러나 이기고 지는 것 역시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더
군다나 이 한 번의  커다란 내기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그가  만약 
내기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라마가 칼을 들고 마구  내리치게 된다
면 자기와 백의 여승, 아가 세 사람은 끝내 그의 칼에 죽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아가라는 나이 어린 미녀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자기를 바
라보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위소보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정극상을  한 
번 바라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너는 왕부의 공자이지만  이 갈보의 아들과 비교해  볼 때 그 누가  더 
영웅답단 말이냐?  제기랄, 너는 감히  나처럼 이곳에 서서  상대방에게 
머리를 한 칼로 내려치라고 말 할 수 있느냐?)
상결은 서장어로 말했다.

[그 꼬마는 무척 요사한  데가 있으니 그의 정수리나 목을 치지  않도록 
해 라.]

위소보는 말했다.

[뭐라고 하는 것이오? 그는 그대에게 나의 머리를 치지 말라고  했던 것
은 아니오? 그대들은 음흉하고 교활하여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다
니, 그것은 안 되오.]

그 라마는 말했다.

[아니, 아닐세. 대사형께서는  나에게 그대의 허풍치는 소리를 믿지  말
고 단칼에 그대의 머리통을 두 쪽으로 쪼개라고 했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계도는 허공에서 아래로 뚝 떨어졌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혼비백산했다. 가슴 가득히 끓어오르던 영웅의  기
개는 삽시간에 사라져 버리고 급히 목을 움츠리며 부르짖었다.

[내 목숨은 끝장났구나!]

그 한칼은 그의 정수리에서  석 자 되는 곳에 이르러 이미 변화를  일으
키고 있었다.
계도는 빙글 반원을 그리더니 회중포월(懷中抱月)이라는 일초로  변했으
며, 칼은 회전하여 바깥 쪽으로 휘어지게 되었고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등줄기를 내려치게 되었다.
그 한 칼에 실린 힘은 지극히 컸다. 위소보는 격렬한  아픔 때문에 제대
로 서 있지 못하고 그 라마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오른손의 비수가 즉시 그의  가슴팍을 세 번을 잇따라  찌르게 
되었고, 곧이어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사타구니에서  기어나오며 부
르짖었다.

[어이쿠! 어이쿠! 그대는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군.]

그 라마는  입으로 흑흑 숨을 내쉬는  소리를 내며 계도를 돌렸는데  그 
바람에 그만 자기의 얼굴을 내려치게 되었고,  고슴도치처럼 웅크리더니 
및 번 몸을 뒤틀다가는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위소보는 본래 그가 한칼로 자기의 가슴팍을 내려쳐 주기를  바랐다. 자
기는 보의가  있어서 몸을 보호하기 때문에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네  명의 라마가 놀라서 도망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라마는 그의 가슴팍을 내려치지 않고 등을  후려쳐 
그 자신을 라마의 품속으로 뛰어들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되자  그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비수로 그를 몇 번  찔렀
다. 그러나 이렇게 되자 별수없이 상대방의 사타구니로 기어나올  수 밖
에 없게 되어  너무나 낭패한 꼴을 보이게 되있는데 위급한상태에서  목
숨을 건지자니 영웅이고 개망나니이고 돌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 순간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사부님, 저의 등 뒤에도 역시 신공을 연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 보십
시오. 쿨록, 쿨록,  이 한칼을 되툉겨서 그를 죽였습니다. 정말  묘합니
다. 정말 묘해요.]

계도가 되튕겨서 그 라마의 얼굴에 상처를 낸 것은 사실이나  그 상처는 
무척 가벼운 것이었다.
비수에 세 번 찔린 것이 바로 치명상이었다. 그러나 상결  등 세 사람은 
그 가운데의 내막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정말 계도가 반탄되어  사람
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수 장 밖으로 몸을 날리면서 소리 높이 그  라마의 이
름을 불렀다.
위소보가 몸에 보의를 입고 있어 몸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백의 여
승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아가도 두 번이나  그에게 칼질을 했으나 상처를 입히지 못했던  관계로 
이 점에  대해서는 별로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감히 
정수리를 내밀어 칼에  시험하자고 나선 것에 대해서는 그의 용기에  탄
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위소보는 매우 놀라는 바람에 자기도  모
르게 오줌을 싸 바짓가랑이가 축축히 젖게 되었으나 그 사실을  아는 사
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라마가 휘두른 그 한칼에 실린 힘이 너무나 막중해서  하마터면 그의 
등줄기의 늑골을  분지를 뻔했다. 위소보는  짚더미에 몸을  의지하고는 
참을 수 없어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백의 여승은 말했다.

[빨리 그에게 설삼옥섬환을 먹이거라.]

아가는 위소보에게 물었다.

[알약은 어디 있죠?]

위소보는 말했다.

[내 품속에 있소. 그러나 나는 살 수 없게 되었소.]

아가는 그의  품속에서 옥병을 꺼내 알약을  몇 알 꺼내고 다시  마개를 
막고는 옥병을 그의 품속에 넣어주고 입을 열었다.

[빨리 먹어요.]

위소보는 손을 뻗쳐 받아야  했으나 일부러 손을 쳐들 수 없는 듯  가장
했다. 아가는 어쩔 수 없이 그 알약을 그의 입 속에 넣어 주었다.
위소보는 그녀가 희고 부드러운 손길로 알약을 입 안에 넣는  순간 입을 
내밀고는 그 손에 입맞춤을 했다.
아가는 급히 손을  움츠렸으나 어느새 손등에 입맞춤을 당하게 되자  그
녀는 아야, 하는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저 라마들이 말한  것은 개방귀를 뀌는 것과 같군요. 나의  머
리를 친다고 해놓고서는 저의 등을 후려쳤어요. 이제 세  명이 남았는데 
제자는 이제 격산타우신권을 펼쳐서 그들을 모조리 죽이겠습니다.]

상결 등은 그 말을  듣고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세 명의  라마들
은 몇 마디 상의를 하더니 화섭자를 꺼내서는 몇 무더기의  짚단에 불을 
붙여 짚단 더미가 있는  곳으로 던졌다. 처음 세 개의 짚단은  공교롭게
도 공터에 떨어졌다.
상결은 다시 한 묶음의  짚단에 불을 당겨서는 앞으로 수 장 달려  나오
면서 힘주어 내던지고 두 손을 들어 가볍게 후려치는 시늉을  하면서 몸
을 보호했다.
위소보가 신권을  써서 습격을 할까봐 방비를  한 셈이었다. 그는  즉시 
뒤로 몸을 날려 물러섰다.
상결이 던진 그 짚단이 날아와서 짚단 더미에 떨어지자 즉시  불길이 치
솟았다.
위소보는 백의 여승을  짚단 더미에서 기어나오도록 끌어당기면서  사방
을 살펴보았다.
서쪽 산바위 사이에 동굴이 하나 있는 것 같아 그는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가, 그대는 빨리  사부님을 부축해서 저쪽 산동굴로 가 피하도록  하
시오. 나는 저 라마들을 막겠소이다.]

그는 상결 쪽으로 두 걸음 다가서며 부르짖었다.

[그대들은 정말  대담하구려. 놀랍게도  이 도련님의  격산타우신권이나 
호두금정신공(護頭金頂神功)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니 말이오. 상결,  그
대는 우두머리이니  빨리 달려나와 이  도련님의 주먹을 맛보도록  하시
오.]

상결은 무척  신중을 기했다. 일시  다가들지를 못했다. 그러나  경서를 
손에 넣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군다나 열 명의 사제가 모조리 목숨을 잃었는데 이대로 손을  털고 물러
난다면 한평생 쌓은  위명이 그만 땅에 떨어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우리
라 생각했다.  거기닥가 백의 여승의 발걸음이  완만했고 또한 그  나이 
어린 소저의 부축을  받아 걸음을 옮기는 것을보고는 만약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니 정히 좋은 기회인데 설마  하니 눈앞의 
이 어린애마저도 이길 수  없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어
린애의 무공이 괴이하여 맞는 사람은 족족 쓰러져 죽는 것을  보자 일시 
망설이며 결정하지를 못했다.
위소보는 고개를 돌려서  백의 여승과 아가가 이미 동굴 가까이  다가간 
것을 확인한 다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그대가 감히 나와 무공을  겨룰 수 없다면 내가 달려가 사람을  죽이겠
소. 그래도 그대들은 도망치지 않겠다는 것이오?]

그러나 그  한마디의 말로 마각을 드러낸  꼴이 되었다. 상결은  속으로 
생각했다.
(너에게 정말 재간이 있어  나를 죽일 수 있다면 어쩨서 그대로  달려들
지를 않는단 말인가? 나에게 도망치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마음속으로 나
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는 전신의 뼈마디에서  우두둑 우두둑 하는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한
두 걸음 다가섰다.
위소보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야단났다. 이번에야말로 무슨 간계로 그를 죽이지?)
이때 등 뒤의 짚단  더미는 이미 기세 좋게 타오르고 있어서 불길이  그
의 몸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는 다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먼저 동굴로 숨었다가 다시 천천히 방법을 강구하기로 하자.)
산 동굴  속으로 숨는다고 생각하자 그는  속으로 기쁘기조차 했다.  산 
동굴 안이 만약 어두워서 사물을 볼 수 없다면 다시  아가에게 손장난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곧 그는 허리를 구부리고 그 죽은 라마의 손에서 호파음의  손바닥을 집
어서는 품속에 갈무리했다.
이때 상결이  다시 몇 걸음 더  다가서는 것을 보고 큰소리로  부르짖었
다.

[이곳은 너무 더워  신공을 펼칠 수가 없구려. 그대가 사내라면  저쪽으
로 가서 겨루도록 합시다.]

그는 몸을 돌려서 산  동굴 쪽으로 달려가 동굴 안으로 쑥 기어  들어갔
다.
백의 여승과 아가는 어느덧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  동굴은 기실 
절벽이 움푹 꺼져 있는 곳에 지나지 않았고 몸을 숨길 만한 곳이  못 되
었으며 또 그 안도 생각처럼 어둡지가 않았다.
아가가 바로 백의 여승  겉에 앉아 있어 손짓 발짓을 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지라 위소보는 약간 실망하고 말았다.
상결과 두 명의 라마는  천천히 동굴 앞에 이르렀다. 그러나 삼장의  간
격을 두고서 그 자리에 멈춰섰다.
상결은 부르짖었다.

[그대들은 이미 막다른  길에 들어섰으며 달아날 길이 없게 되었소.  얘
들아 횃불을 가져오너라.]

두 명의  라마가 한 묶음의 보리  짚단을 집어서는 그의 손에  쥐어주었
다.
위소보는 말했다.

[매우 좋소. 그대는 빨리 횃불을 던져 우리가 타죽는지 안  죽는지를 두
고 보시오.  그보다는 사십이장경이 불타게 되는  것이 더 빠를  것이외
다.]

상결은 불붙은 짚단  더미를 높이 쳐들고서는 동굴 입구 쪽으로  던지려
고 하다가 그 말을 듣고는 그 말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사람을 불태워 죽인다면  그 한 권의 경서마저도 불타게 될 것이  아
니겠는가?
그는 횃불을 옆에 내던지고 부르짖었다.

[빨리 경서를  내놓으시오! 부처님 나리께서  자비를 품고 있으니  만큼 
그대에게 한 가닥 살 길을 열어 드리리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우리 사부님께 열여덟 번의 큰절을 하시오.  우리 사부님께서는 
자비를 품고 계시니 그대들에게 한 가닥 살 길을 열어 주실 것이오.]

상결은 크게 노해서는  불붙은 짚단 더미를 집어들어 동굴 앞으로  던졌
다. 한  차례 짙은 연기가 바람을  따라 동굴 안으로 몰아쳐  들어왔다. 
위소보와 아가는  매워서 눈물을 흘리며 크게  기침을 했다. 이때  다른 
두 명의 라마들도 다투어 불붙은 짚단을 던져댔다.
위소보는 말했다.

[사태, 그 경서는 이미 소용이 없게 되었으니 그들에게 내주어  먼저 완
장지계(緩將之計)를 펼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가가 그 말을 고쳤다.

[완병지계(緩兵之計)라고 해야 말이 돼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들은 병졸이 아니잖소?]

아가는 연신 기침을 하여  그와 입써름을 할 수가 없었다. 백의  여승은 
입을 열었다.

[그것도 좋겠지.]

그녀는 경서를 그에게 내주었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경서는 이곳에 한 권이 있기는 한데 내가 내던지겠소. 만약  불에 던져
져 태운다 하더라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오.]

상결은 그가 경서를 내놓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혹시나 경서가 불 속에  떨어져 타게 될까봐 즉시 몇 조각의 커다란  바
위를 들어서는 짚단에 던졌다.
그의 힘은 엄청나고 겨냥 또한 정확하여 불붙은 짚단은 대뜸  돌에 맞아 
불이 꺼지고 말았다.
위소보는 그가 큰 돌을  던지는 힘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어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그가 커다란 돌을  동굴 안으로 던진다면 우리들 세 사람은  모두 
다 얻어맞아 죽게 될  것이지만 경서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
와 같은 생각을 그가 할 수 없게 만들어야지.)
상결은 부르짖었다.

[빨리 경서를 던져라.]

위소보는 말했다.

[좋소, 좋아. 우리  사부님께서는 그대들이 경서를 읽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불문의 훌륭한 제자라고 말씀하시며 나에게 그대를  해치지 말라고 
분부하셨소 ]

그는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비수를 뽑아들고 호파음의 손을  몇 조각으로 
잘라 경서 위에 놓고  품속에서 한 병의 화시분을 꺼내 잘려진 손의  피
와 살이 엉켜 있는 곳에 약간의 가루약을 뿌렸다.
그는 자신의 몸뚱어리로  백의 여승과 아가의 시선을 막아 그녀들로  하
여금 보지 못하도록 하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이 사십이장경을 북경의  황궁에서 가져온  것이라 
매우 귀한 것이라 했소.  소문에 들으니까 이 가운데 커다란 비밀이  숨
겨져 있는데, 연구해서 알아내게 된다면 바로 불교를 크게  일으키게 되
고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을 믿도록 하게 된다고  했으며, 남자들
은 모두 다 화상이 되고 여자들은 모두 다 여승이 될 뿐만  아니라 어린
애들은 소화상과 소여승이 되고 늙은이는......]

그 말을 하는 순간 토막이 난 손은 점차 누런 물로 변해서는  경서 안으
로 스며들었다.
상결은 그 경서가 황궁에서 가져온 것이고 또 그 가운데는  중대한 비밀
이 숨겨져 있다는 말을 듣고는 대뜸 마음이 흐뭇해졌다.
불법을 크게 일으킨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나 혹시  그
가 경서를 내놓지 않을까봐 입으로 그냥 얼버무렸다.

[불법을 크게 일으키고  불교를 크게 빛내다니 그것이야말로 좋은  일이 
아닌가?]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읽어  보셨으나 그 가운데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
소. 이제 이 경서를  그대에게 주니 그대는 잘 생각해 보시오. 만약  이 
가운데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그대는  반드시 천하의 화상들이  머물고 
있는 절간이나 여승들이 머물고 있는 암자에 두루 알려야 할  것이며 절
대로 사사로이  욕심을 차려 그대들의  라마교만 일으키려고 하지  마시
오. 그대는 응낙을 하시겠소?]

상결은 응낙했다.

[물론 응낙하지. 그대 사부님에게 안심하시라고 이르게.]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만약 알아내지  못한다면 소림사로 건네주시오. 소림사의  화상
들이 알아내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청하여 오대산 청량사의  화상들에게 
건네주도록 하시오. 그리고 청량사의 화상들이 알아내지  못한다면 양주
의 선지사(禪智寺)로 옮기도록  청을 드려 주시오. 차례로 건네주되  어
쨌든 경서의 비밀을 알아낼 때까지 건네주도록 하시오.]

상결은 말했다.

[좋아. 반드시 그렇게 하지.]

그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여승은  그저 경서의 비밀이 불법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구나. 그녀가  진상을 모르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녀가 어찌 이렇게  가볍게 내놓겠는가? 흥, 경서를 얻게 된  이후에는 
천천히 방법을 강구해서 너희들을 죽여 주마.)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그대가 이 사십이장경을 읽게 된 후  마음속으로 불
법을 더욱더 닦고  싶어지면 사부님을 찾아오라는 말씀을 남기셨소.  우
리들에게는 아직도  금강경, 법화경, 반야경,  소반야경, 아함경,  노함
경, 소함경이 모두 있소이다 ]

그는 잇따라 십여 권의 불경을 들먹였는데 모두 다 그가  소림사와 청량
사에서 출가했을  때 들은 것이있다. 그  가운데는 물론 적잖은  책들의 
이름을 잘못 말하고 있었다.
상결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있자니 여간 귀찮지 않았다. 백의  여승의 
신공이 두렵기도 하고  또한 그들이 경서를 망가뜨리게 될까봐 겁도  나
서 그저 입으로 얼버무렸다.

[그렇지, 내가 그 경서를  다 읽은 후에 다른 책들도 재차 그대의  사부
에게 빌리도록 하지.]

위소보는 잘려진 손이 이미 다 녹아 없어지고 녹은 물이  경서 안팎으로 
축축히 스며든 것을 보았다.
그 즉시 위소보는 신발을  벗어 손에 끼고 그 경서를 집어 내던지며  부
르짖었다.

[자, 사십이장경이오!]

상결은 크게 기뻐서는  몸을 잽싸게 날려 앞으로 달려나오며 손을  뻗쳐
서는 그 사십이장경을 받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속으로 생각했다.
(이 경서는  매우 귀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토록 가볍게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인가? 혹시  이 가운데 어떤 속임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
무래도 그는 내가 경서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순간에 암기를  내쏠 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주저하는 사이에 두 명의 라마는 이미 경서를 집어들고 말했다.

[사형, 이것이 그 경서입니까?]

상결은 말했다.

[저쪽으로 가서 자세히 살피세. 괜히 가짜 경서를 손에 넣는  일이 없도
록 하세.]

두 명의 라마는 말했다.

[예, 사형의  생각은 매우 치밀하십니다.  그들에게 속아서는  안되겠지
요.]

세 사람은 수 장  밖으로 물러가 황망히 책장을 열어 젖히고는 책을  뒤
적여 보기 시작했다.
상결은 말했다.

[경서가 젖었군. 천천히 뒤적이도록 하세. 종이를 찢으면 안  되니까 말
이야. 이 모양을 보건대  가짜인 것 같지는 않군. 그 사람이 말하던  것
과 정말 똑같은데?]

한 명의 라마가 부르짖었다.

[그렇군요. 대사형, 바로 이 경서입니다.]

위소보는 그들이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서장어라 이해
할 수는 없지만 그  어조에 매우 기뻐하는 심정은 들어서 알것 같아  부
르짖었다.

[이것 보시오. 이것 봐요! 당신네들 얼굴에 엉째서 지네가 기어가지?]

두 명의  라마는 깜짝 놀라 손을  들어서는 얼굴을 몇 번  어루만졌으나 
지네고 벌레고 아무것도 없자 욕을 해댔다.

[짓궂은 녀석이 그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기 좋아하는군.]

상결은 수위가  매우 깊은 편이었고  퍽이나 정력(定力)이 강한  편이었
다. 위소보가 소리를  질렀지만, 얼굴에 벌레 같은 것이 기어다니는  것
을 느낄 수 없자,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그저 정신을 가다듬고서  경
서를 뒤적일 뿐이었다.
위소보는 다시 부르짖었다.

[어이쿠, 어이쿠!  열몇 마리나 되는 전갈이  그들의 옷깃 속으로  기어 
들어 가는구나.]

이번엔 두 명의 라마도 다시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한 라마가 입을 열었다.

[저 장난꾸러기는 우리들이  경서를 손에 넣으니 속으로 달갑지  않아서 
이상한 말을  해대며 사람을 속이려고 하는군.  저 조그만 도적이  우리 
두 사제를 죽였으니 이대로 그의 목숨을 용서해 줄 수는 없지.]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목덜미가 매우 근질근질한 듯 손을  뻗쳐서는 몇 
번 긁었다. 그러나 갑자기  열 개의 손가락 끝이 모두 근지러워져  참을 
수 없을 지경이라 즉시 팔에 대고 몇 번 문질렀다.
이때 상결과 다른 한 명의 라마 역시 손가락이 근지러운  것을 느꼈으나 
일시 별로 주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놀랍게도 참기 어려울  정
도로 근지러워지지  않는가? 손을 쳐들어 보니  열 개의 손가락  끝에서 
노란 물방울이 스며 나왔다.
세 사람은 일제히 부르짖었다.

[이상하다. 이게 무엇이지?]

두 명의 라마는 이때 얼굴도 크게 근지러워 즉시 손가락을  뻗쳐서는 힘
주어 긁었는데 긁으면 긁을수록 더욱더 근지러워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얼굴에서도 누런 물이 스며 나왔다.
상결은 갑자기 깨달은 듯 부르짖었다.

[아이쿠! 야단났다. 경서에 독이 있다!]

그는 힘주어 경서를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보니 자기의  손가락에
서 한 방울 한 방울 노란 물이 마치 땀방울처럼 스며 나오는  것이 아닌
가! 깜짝 놀란 그는  재빨리 흙에다가 얼굴을 몇 번 문질렀다. 두  명의 
사제는 힘주어  얼굴을 마구 핥퀴고  있었는데 그에따라 죽죽  상채기가 
나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가 해대부가 살던 곳에서 얻은 이 한 병의 화시분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만약에 완전한 살결 위에다 묻힌다면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았
다. 그러나 한 방울의  피라도 이 가루에 닿게 되면 피는 그만 노란  물
로 화하게  되는데 그 부식성이 지극히  강해 피와 살이 썩어  들어가게 
되고, 또한  노란 빚깔의 독액으로 변하여  썩어갈수록 그 노란  독액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었다. 이는  바로 화섭자에서 튄 한 점의 불꽃이  커
다란 짚단 더미를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였다.
이 화시분은 피를 만나게 되면 독이 되는 고로 그야말로  천하에서 제일 
가는 독약이라 할 수 있었다. 서역에서 전해졌으며 전해져  내려오는 말
에 의하면 송대(宋代)의  무림 괴걸 서독(西毒) 구양봉(歐陽鋒)이  만들
었다고 했다.
이 독액은 십여  종의 독사와 독벌레의 독액을 합성하여 만들었다고  했
다. 그리하여 그 독의  원료가 일단 만들어지기만 하면 그 이후에는  다
시 더 만들 필요가 없이 그저 그것이 피와 살을 녹여 변한  노란 독액을 
말리면 화시독분(化屍毒粉)이 되는 것이었다.
두 명의  라마들은 얼굴을 긁어 피가  나게 되자 삽시간에 얼굴은  누런 
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그들은 대뜸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아프고 근지러워 땅바닥에  쓰러져서
는 데굴데굴 굴렀다.
상결은 요행히 얼굴은 긁지  않았다. 그러나 열 개의 손가락 역시  뼈에 
사무치도록 간지러웠다.
그는 겉옷을  벗어서는 경서를 싸서 옆구리에  끼고 나는 듯  달려갔다. 
그리고는 물을 찾아 손에 묻은 독액을 씻어 냈다.
두 명의 라마는  너무나 근지러워 정신이 흐릿해져서 머리를 들어  바위
에다가 마구 부딪쳤는데 몇 번 부딪치지 않아 둘 다 기절하고 말았다.
백의 여승과  아가는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모두 다 놀람과  의아함에 
가득 찼다.
위소보는 화시분이 사람의  시체를 녹여 버리는 것은 보았으나 살아  있
는 사람의 몸에 써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를 못했다.
위급한 판이라 그저  한번 시험해 본 것인데 놀랍게도 일거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이 또한 호파음의 그 잘려진 손이 그와  같은 독액을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된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화시분을 경서 위에다 
그냥 뿌렸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본래 그 잘라낸 손으로 아가를 만지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그와 같
은 대공을 세우게 된 것이었다.
그는 상결이 멀리 도망을  치고 두 명의 라마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는 재빨리 동굴에서 달려나와서  각기 한두 번씩 찔러 주려고 했다.  그
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두 라마의 얼굴은 이미 썩어서 뼈가 보일  지
경이었고 자기가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얼마 후에는 두 무더기의  노란 
물로 화하고 말 것 같았다.
그는 즉시 정극상의 겉으로 가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 공자, 나의 이  요사한 방법은 꽤나 영험하구려. 그대도 맛을  한번 
보시겠소?]

정극상은 두 라마의  무섭고 끔찍한 광경을 보고 거기다가 위소보의  그
와 같은 말을 듣게  되자 깜짝 놀라서는 뒤로 급히 물러서며 주먹을  쥐
고 몸을 보호한 채 부르짖었다.

[그대는, 그대는 다가오지 마시오!]

아가는 동굴 안에서 달려나와 위소보를 향해 호통을 쳤다.

[그대는 무엇하려는 거예요?]

위소보는 웃었다.

[그를 놀려 주려는 것이오. 그대가 왜 걱정이오?]

아가는 노해 말했다.

[사람을 놀라게 하지 말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그가 까무러칠까봐 두렵소?]

아가는 말했다.

[왜 멀쩡한 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거예요?]

위소보는 손짓을 했다.

[그대가 와 살펴보시오.]

아가는 말했다.

[나는 보지 않겠어요.]



第60章. 영웅들의 집회


백의 여승은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위소보가 싱글벙글  웃으
면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가 경서에다가 극독을 묻혔음을  알
아차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너의 총명함과 기민함이 아니었다면 오늘 나는 적의  손에 목숨을 
잃는 것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뿐이면 괜찮은데 아마도  모욕
까지 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그토록  기뻐할 것은 
없다.]

위소보는 웃음을 거두고 대답했다.

[예.]

백의 여승은 다시 말했다.

[이와 같이 음독하고 악랄한  방법은 명문 정파의 제자로서 할 짓이  아
니니 위급한 경우에만  사용토록 해라. 차후로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도
록 하여라.]

위소보는 다시 대답을 하고 말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제가 오늘 모두 처음으로 사용해 본  것입니다. 실로 
저의 무공이 너무나 뒤떨어져 그들과는 광명정대하게 한바탕  싸움을 벌
일 수  없었기 때문이조 그렇지  않다면 사내대장부가 이기려면  멋지게 
이겨야지 어찌 이와 같이 엉터리 같은 수단을 썼겠습니까.]

백의 여승은 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너는 소림사와 청량사에 오랜 시일을 두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절의 고
명한 승려나 스님들께서 너에게 무공을 전수하시지 않았단 말인가?]

위소보는 말했다.

[무공은 조금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 후배는 배웠어도 그 요령을  익히
지 못했습니다. 그저  초식의 겉모양만 배웠지 내공을 연마하지는  못했
습니다.]

백의 여승은 아가를 한 번 바라본 후 물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위소보는 말했다.

[미처 연마할 여가가 없었기 때문이죠.]

백의 여승은 다시 물었다.

[미처 배울 여가가 없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위소보는 말했다.

[아가 소저는 제자가 그녀의 위엄을 거슬렸다고 해서 저를  죽이려고 했
기 때문에 그 당시  매우 긴박하게 그저 아무렇게나 몇 초를 배워서  몸
을 보호하고 목숨을 부지하려 했을 뿐이죠.]

백의 여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그대는 그 라마들과 말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사부님이라고 불
렀는데 그것은 또 무슨 뜻인가?]

위소보는 얼굴을 붉혔다. 아가는 서둘러 말했다.

[사부님, 그는 마음  속으로 나쁜 생각을 품고 사부님을 사부로  모시려
고 하는 거예요.]

백의 여승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를 사부로 모시려고 하는 것을 나쁘다고 하면 쓰나?]

아가는 다급히 말했다.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녀는 위소보가 백의  여승을 사부로 삼으려는 참뜻은 그저 온종일  자
기와 함꼐 있고 싶어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와 같은 말을  차
마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다.
백의 여승은 위소보에게 말했다.

[자네가 나를 사부라 불렀는데 자네로 하여금 헛소리를 하도록  할 수는 
없지.]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는 즉시 무릎을 꿇고  공손히 여덟 번의 큰  절을 
올렸다.

[사부님!]

백의 여승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의 문하로  들어온 이후에는 규칙을 지켜야지 멋대로  날뛰어서
는 아니 되느니라.]

위소보는 말했다.

[예, 제자는  나쁜 사람에게만 멋대로  날뛰지 좋은 사람에게는  언제나 
공손하답니다.]

아가는 그에게 눈을 흘겼으며 속으로 여간 울화가 치밀지 않았다.
(저 소악인이 사부님을 사부로 모시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그를  죽일 수
도 없다. 언제나 나의 곁에서 귀찮게 굴어도 쫓아 보낼  수도 없고 걷어
차서 쫓아 보내지도 못할  형편이니 정말 골치 아프기 이를 데 없게  되
었구나.)
처음 백의 여승이 여섯 명의 라마들에게 포위 공격을 당하게  되었을 때 
만약 위소보가 돕지 않았더라면 요행을 바랄 수 없는  처지였었다. 그리
고 그 이후 상결 등  일곱 명의 라마가 쫓아 왔을 때 그녀 자신으로  말
하면 그야말로 순순히 잡힐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으며  그 정세는 
흉악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이미 사십이 넘은 나이였지만 얼굴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으므
로 만약 그 고약한 라마들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다면 기필코  커다란 모
욕을 받았을 것이다.
천만다행히도 위소보라는 소년과 인연을 맺어 적을 모조리  제거하고 몸
을 결백하게 보존할  수 있게 했으니 마음속으로 느끼는 고마움은  실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위소보가 사부로 모시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을 보고 즉시 응낙을 해주었다. 어린애가 짓궂고  턱없이 날뛴
다 하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으며, 속으로 자기의 훈도를 받게 되고  가
르침을 받게  된다면 이후 반드시  강호에서 명성을 떨치리라고  생각했
다. 위소보는 이미 진근남의 문하로 들어간 몸이니 무림의  규칙에 의하
면 사부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달리 다른 분을 사부로 모실 수가  없
었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규칙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설
사 안다고 하더라도 이때는 반드시 상관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의 여승이 그를 거두어 문하로 삼는다는 것은 바로 수시로  아가와 얼
굴을 맞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으니 설사 강희가  그와 자리를 
바꾸어서 그에게 황제 노릇을 하라고 하더라도 그는 마다했을 것이다.

사실 그는 무공을 배우겠다는 마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척  게으른 편
이었다. 그리고 백의 여승에게 무공을 배우게 된다면 십중팔구  고된 수
련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그만 골치가 아파왔다.  그러나 아가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리 고달픈 일이라도 꿀처럼 달콤할  것 같았
다. 그는 여덟 번  큰절을 한 이후에는 흐뭇하게 여겼으며 정말  하늘에
서 떨어진 보물을 주운 것처럼 좋아했다.
백의 여승은 그가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가 정말 명사를 만나 이제  일
신에 상승 무공을 지니게  되어서 그러는 줄로 여겼다. 만약 백의  여승
이 그의 의도를  알았더라면 발길질로 여덟 번 곤두박질을 치게  만들었
을 것이며 즉시 문파에서 축출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가는 조그만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사부님, 그가 이토록 기뻐하는 양을 보십시오. 정말 얼마나  나쁜가 말
이에요.]

위소보는 말했다.

[무공에 있어서 당금  세상에서 제일가는 고인이 나를 제자로  거두어들
이셨으니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소?]

백의 여승은 미소했다.

[나는 결코 무공에 있어서 당금 제일이라고 할 수 없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 나의 법명은  구난(九雜)이라고 하며 우리의 문파는  철검문(鐵
劍門)이라고 한다. 너의 조사께서는 한 분의 도사이시며  도호는 읫자가 
목(木)이고 아랫자가 상(桑)으로서  이미 세상을 등지셨다. 내 비록  여
승이기는 하지만 무공은 도가(道家)에 속하느니라.]

의소보는 말했다.

[예. 제자는 명심하겠습니다.]

백의 여승 구난은 다시 말했다.

[아가, 너는 그와 나이를 따져 누가 더 많으냐?]

아가는 말했다.

[물론 제가 위죠.]

위소보는 말했다.

[제가 위입니다.]

구난은 말했다.

[좋아, 너희들은 다투지  말아라. 먼저 사문으로 들어온 사람이  위라고 
할 수 있으니 이후  두 사람은 '진 사저'니 '위 사제'니 하고  부르도록 
해라. 결코 '아가 소저'니 '소악인'이니 하고 부르지 말도록 해라.]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진 사저!]

아가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사부님 앞이라 감히  꾸짖지는 못하고 
매섭게 눈을 홀겨 주었다.
구난은 말했다.

[아가, 과거의  조그만 일을 자꾸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  위소보는 
너와 나 두  사람의 목숨을 건지는 큰  공을 세웠다. 설사 그가  너에게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보상을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애는  총명하고 영리하나 애석하게도 어릴  때 불행한 일을  당해서 
지금은 태감이 되었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소보는 옛날 남의  압박을 받아서 태감이 되었다. 너는 사저가  되었으
니 마땅히 그의 외로운  처지를 불쌍히 여기고 좀더 돌봐 줘야 할  것이
다. 이러는 것도 좋겠지. 서로 남녀의 분별이 없으니 이후  함께 있더라
도 꺼릴 바가 없어 편리한 점이 많겠다. 그러나 이  일은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아가는 응낙했다. 그리고 이 소악인 태감이 과거에 자기에게  무례한 행
동을 했다 하더라도 별로 중요한 일은 못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울화가 약간 가라앉아서  고개를 돌려 정극상을  불렀
다.

[정 공자, 그대도 상처를 입었나요?]

정극상은 다리를 절룩이고 다가오며 말했다.

[아직, 괜찮은 편이오. 그저 다리의 근육이 약간 비틀렸을 뿐이오.]

그는 조금 전 큰소리쳤던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스스로 몇 명의  라마들을 상대해 내기는 충분하다고 했는데 실제  사태
에 임해서는 일패도지하게 되었고 모두 다 이 나이 어린  위소보의 덕으
로 적을 물리쳤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그만 온 얼굴이 부끄러움에  후끈
해지고 말았다.
아가는 물었다.

[사부님, 우리는 어떻게 하죠? 여전히 하간부로 가시겠어요?]

구난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하간부로 가서 구경을 하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상결 라마가  다시 되
돌아오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지금 나는 행동하기가  여전히 불편
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사부님, 그대들온 이곳에서 잠시 쉬도록 하십시오. 제가 가서  큰 수레
를 불러 오겠습니다.]

위소보는 커다란 수레를  찾아 두리번거렸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
하여 그는 농가에서 소가 끄는 한 대의 수레를 사와서 구난 등  세 사람
을 앉힌 다음에 소가 끄는 달구지를 천천히 몰았는데 다행히  상결은 다
시 나타나지 않았다.
길을 가다 조그만 고을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소가 끄는  달구지를 버리
고 두 대의 커다란 수레를 빌려 옮겨 타게 되었다.
길을 가면서 위소보는  사부에게 설삼옥섬환을 몇 알 더 복용하도록  했
다. 구난은 내력이 심후한  데다가 영약의 도움을 받게 되자 내상의  치
유는 무척 빨랐다.
그들은 이틀 후 정오 무렵에 하간부에 도달하게 되었다.
객점에 투숙을 정한 뒤 정극상은 나가 소식을 염탐하기에  이르렀다. 그
런데 한 시진이  지나서 그는 맥없이 돌아와서는 성안 곳곳에서  살귀대
회에 관한 일을 물었으나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
다.
구난은 물었다.

[살귀대회에 관한 소식을 공자는 어디서 얻어 들었는가?]

정극상은 말했다.

[양하대협(兩河大俠) 풍불파(馮不破)와  풍불최(馮不催) 형제가  천지회
를 통해서  대만으로 전갈을 보냈습니다. 즉  저회 부왕께 사람을  보내 
살귀대회를 주최해 달라는 깃이었지요. 그 대회는 이 달  보름날 하간부
에서 거행한다고 했습니다. 오늘이 열 하루이니 이제 나흘  남은 셈입니
다.]

구난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말했다.

[풍씨 형제? 그들은 화산파의 사람들이 아닌가?]

그녀는 고개를 쳐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옛날의 일을 상기하게  된 것
이다.
정극상은 말했다.

[부왕께서는 저보고 가서 대회를 주최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풍씨 형
제는 반드시 사람을  보내 이곳에서 삼가 기다리고 있다가 마중을  하리
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니 흥!]

그 표정은 매우 화가 나고 울화가 치민다는 빚이 역력했다.
구난은 말했다.

[어쩌면 오랑캐가 소식을 듣고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에  풍씨 형
제가 날짜와 장소를 바꾼 것인지도 모르지.]

정극상은 불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에게 통지를 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정히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점소이가 문 밖에 와서는 말했다.

[정씨 손님, 밖에 누가 뵙자고 합니다.]

정극상은 크게 기뻐서는 급히 달려갔다. 그리고 한참 후에  신이 나서는 
돌아와 말했다.

[풍 형제가 친히  찾아와서는 저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이
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을 데리고 온다고 했기 때문에 이  며칠동안 줄곧 
성 밖에서 영접을 하려고 기다렸으나 뜻밖에도 우리가  귀신도 알아차리
지 못하는 사이에  성 안으로 들어왔기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
다. 우리의 도착을 환영하겠다니 함께 가도록 하시죠.]

구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 공자 한 사람만 가도록 하시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들먹이지 마시오.]

정극상은 약간 흥이 깨졌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태께서 번거로움을 좋아하시지  않는다면 진 소저와 위 형제를  데려 
가도록 해주십시오.]

구난은 말했다.

[그들은 지금  갈 필요가 없네. 대회날  모두 함께 참여하도록 할  것이
네.]

이날 밤 정극상은 술에 얼큰하게 취해서는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이십
여 명이나  되는 동료들이 야밤에 객점을  찾아왔다. 그러나 그들  모두 
손과 발에 나무 판대기를 매고 붕대를 감고 있어서 보기에  무척 우스꽝
스러웠다.
이튿날 이른 아침 정극상은 구난, 아가, 위소보 세 명에게  어젯밤 있었
던 연회에 대해 크게 떠벌였다.
그는 풍씨 형제가  그를 매우 존경하여 그를 으뜸가는 좌석에  앉히고는 
끊임없이 정씨가 대만에서  홀로 의기(義旗)를 세우고 청나라에  대항하
고 있는데 대해 칭송의 말을 했다고 했다.
구난은 어떤 사람들이 와서 대회에 참가하느냐고 물었다.
정극상은 말했다.

[온 사람들은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도 이 며칠 동안 계속하여  더 온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름날 야밤, 바로 성의 서쪽에  있는 괴수평(槐樹
坪)에 모여 대회를  연다는 것입니다. 야밤에 대회를 여는 것은  청나라 
조정의 이목을  경계하려는 것이조 기실  풍씨 형제는 너무나  꼼꼼합니
다. 이곳에 이토록 많은 영웅호걸들이 모여 있으니 설사  청나라 군사가 
떼지어 몰려온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그들을 낙화유수처럼  나가떨어지도
록 공격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난은 연회에 참가했던  영웅호걸들의 성명을 자세히 물었으나  정극상
은 대답을 못하고 그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함께 술을  마신 사람들은 수백 명이나  되었고 우두머리가 되는  수십 
명은 하나같이 저에게  다가와 부왕을 위해 술로 경의를 표했으며  그들 
스스로 문파와 성명을  알렸지만 일시에 그 많은 사람들을 기억할  수가 
없군요.]

구난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 공자는 겉모양만 멀쑥했지 어떤 재간이 있는 것은 아니로구나.)
객점에서 다시 며칠 더  조섭을 하게 되자 구난의 상처는 거의 다  나았
다. 그녀는 아가와 위소보에게 함부로 나가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다. 
무림의 인물들과  부딪혀 쓸데없는 일을  일으키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
다.
정극상은 이른 아침에 나가서는 야밤이 되어야만 돌아오곤  했는데 매일
같이 강호의 호걸들이 연회를 베풀어 모신다는 것이었다.
보름날 저녁이 되었을  때 구난은 위소보가 사온 옷을 입고  중년부인으
로 분장을 했다. 그리고  머리에는 검은 수건을 둘러 쓰고 얼굴에도  분
가루를 묻혔으며  두 눈썹을 비스듬히  아래로 내려오도록 그려서  본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도록 변장했다.
위소보와 아가는  흔히 볼 수 있는  소년 소녀의 옷차림으로 차려  입었
다. 정극상은 한 몸에 비단옷을 입고는 가짜 땋은 머리를  없앴다. 그렇
게 차려  입자 바로 명나라 왕공의  치장을 한 셈이라 매우  영기발랄해 
보였다. 구난은 오래 전부터  이미 옛 나라의 의관을 보지 못하다가  그
의 옷차림을  보고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깊은  감개에 
젖었다. 아가는  그의 옥으로 다듬어 놓은  듯한 풍채를 보고는  더욱더 
넋이 나가는 듯했다.
오로지 위소보만이 열등감을  느끼게 되었고 마음속으로 몰래 열  일곱, 
여덟 가지의 욕을 퍼부었다.
(돼지 얼굴에 꽃을 수놓았군! 똥개에게 비단옷을 입히면 뭘해?)
초경 무렵이 되었을  때 연평왕부의 시종들이 커다란 수레에 네  사람을 
태우고는 괴수평의 모임에 나왔다.
그 괴수평은 많은 산들로 에워싸인 커다란 평지였다. 원래는  시골 사람
들이 장터로 삼든지, 어떤 커다란 모임이나 대회를 가질 때,  또는 어떤 
극을 공연할 때 이용하는 장소였다.
그 평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정극상이 도달하자 사방에서는  환호성이 우뢰와 같이 울려퍼지는  가운
데 수십 명이 마중나와서는 그를 모시고 중간으로 들어갔다.
구난은 아가와 위소보와  더불어 멀리 한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에 앉아 있었다.
이때 동서남북에서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도착하고 있었고 풀밭  위에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다.
위소보는 속으로 말했다.
(오삼계라는 이 간악한  도적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은 정말 많구나.  우
리 천지회에서는 목왕부와  더불어 누가 먼저 그를 죽이는지 내기를  걸
지 않았는가? 오삼계라는  후레자식에게는 원수가 수천, 수만이나  되니 
만약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선수를 쳐서 오삼계를 죽인다면  천지회나 목
왕부의 체면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
바로 이때 둥근 달이  점점 그들의 머리 위에까지 떠오르게 되었다.  잔
디밭에서 체구가 우람한 노인이 허연 수염을 나부끼며  몸을 일으키더니 
포권을 하고 말했다.

[여러 영웅호걸들, 불초 풍난적 인사드리오.]

군웅들은 일제히 몸을 일으켜서는 반례하며 대답했다.

[풍 노영웅도 안녕하십니까!]

구난은 나직이 말했다.

[그는 풍씨 형제의 부친이다.]

이 말을  하면서 그녀는 화산의 절봉에서  그와 만난 옛일을  상기했다. 
그때 그녀는 아구(阿九)라는  이름으로 강호의 호걸들과 만났었는데  불
과 십여 세의 소녀에 지나지 않을 때였다.
그때 풍난적은 장년이었는데 오늘날은 이미 백발이 허옇게  드리워진 늙
은이가 되어 있었다.
그의 사조  목인청(穆人淸)과 그의 사부인 동필산반(銅筆算盤)  황진(黃
眞)은 아마도 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의  사숙 
원승지(袁承志)는 어떻게 되었을까? 원승지에 대해서 그녀는  뼈에 사무
치는 그리운  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십여 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한번도 그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 몇  년 동안 그야말로 오래된 우물처럼 마음속에서는  조금도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오늘 갑자기 옛날 사람들을 대하게 되자  불
현듯 천 갈래  만 갈래의 생각들이 갑자기 그녀에게 물밀듯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는 저 풍 늙은이를 보고 어째서 갑자기 울려고 하실까?  설마 하니 
저 늙은이가  그녀의 옛 정인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가운데  서서 
두 사람을 짝지어 줘야지.  그녀와 옛날 정인이 다시 상봉할 기회를  만
들어 줘야지.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나이가 이토록 젊으시니 저렇게  나
이 많은 늙은이를 좋아할 턱이 없다.)
이때 풍난적은 우렁찬 음성으로 낭랑히 의쳤다.

[여러 친구들, 오늘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은 모두가 바로 한 가지  큰
일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여러분들도 알고 있소. 우리 대명나라의  강산
은 오랑캐에게 정벌당하였는데 그 원흉을 따지자면 열 번 악한  짓을 하
여 용서받지 못하고 그야말로 만번 죽어도 싸다고 할 죄를 지은,]

그러자 사방의 군호들이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다.

[오삼계!]

사람들이 일제히 부르짖는 소리는 그야말로 벽력처럼 울려  퍼지게 되었
고 주위의 산천초목을 떨게 만들었다.
곧이어 누군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대매국노!]

또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자라 새끼!]

어떤 사람은 이렇게 부르짖었다.

[후레 자식!]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십팔 대 조상부터 잡종이었다.]

사람들이 한동안 욕을 하고  점차 그 소리는 점점 낮아지게 되었다.  그
런데 갑자기 어린애의 음성이 크게 부르짖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의 십구 대 할미의 기둥서방이었다!]

군웅들은 본래 분노와 증오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와 같이 난데없는 욕설을  듣자 참을 수 없다는 듯 껄껄 소리내어  웃었
다. 그 욕은 바로 위소보가 낸 것이었다.
아가는 뾰로통해져서는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그토록 듣기 거북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위소보는 말했다.

[모두들 욕을 하는데 나라고 욕을 할 수 없단 말이오?]

아가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거북한 욕을 하지 않았잖아요?]

위소보는 빙그레 웃으며 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보다 열 배 더 듣기 거북한 말도 얼마든지 있다.)
풍난적은 말했다.

[대매국노는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자로서 모든 사람들이 이를 가는  사
람이오. 저분 소형제는  나이가 어리지만 그야말로 그의 생살을  뜯어먹
고 그의 가죽을  요와 이부자리로 삼고 싶도록 미워하고 있으니  가상하
다고 할 수  있소. 오늘밤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 것은 바로  좋은 
계책을 상의하여 어떻게 그 간악한 도적을 죽이느냐 하는 것이오.]

이 말이 끝나자 마자 군웅들은 다투어 계책을 내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모두 함께 운남으로  가서 평서왕부로 쳐들어가 오삼계의 전 가족을  죽
이되 닭이나 개 한 마리도 남기지 말자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오삼계의  휘하에는 군사들이 많으니 정당히  공격해서는 
반드시 성공을 기하기가 어려우니 암살을 하자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만약에 한 칼로 죽인다면 너무나 그에게 덕을  베푸는 것
아니 차라리 그의 눈을  뽑고 두 손을 잘라 그로 하여금 감당하기  어려
운 고통을 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무서운 독약을 사용하여 그의 전신이 썩어  문드
러지도록 만들자고 했다.
그런데 어떤 중년의 흑의 여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좋기로는 오삼계의 전 가족, 남녀노소를 모조리 죽이고 그  한 사
람만을 남겨, 그로 하여금 외롭고 처량한 고통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도
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한 중년 사내가 말했다.

[그가 청나라에 투항하게  된 것은 애첩인 진원원(陳圓圓)을  이자성(李
自成)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니 차라리 진원원을 사로잡아와  그녀로 하여
금 죽고 싶어 할 정도의 고통을 주도록 합시다.]

어떤 사람은 말했다.

[오 도적은 색골이긴 하나,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부귀공명이오. 그
의 부귀공명과 처자들을  모조리 없애서 이 세상에 알거지가 되어  떠돌
아 다니게 만들고 죽이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소.]

수백 명의 호걸들은 큰소리로 갈채를 보냈으며 일제히 말했다.

[그와 같은 벌이야말로 제대로 벌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오.]

한 명의 사내는 말했다.

[청나라 오랑캐들은 그를  매우 총애하고 있소. 그 도적의 관직은  이미 
평서왕에 봉해졌으며 권세가 하늘을 찌를 것 같소. 그의  처자들을 죽이
는 일도  쉽지는 않겠지만, 그의 부귀공명을  제거하는 것 또한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소이다.]

또 한 명의  운남인이 몸을 일으키더니 오삼계가 어떻게 운남의  백성들
을 압박하고 있으며 얼마나 가볍게 사람을 참혹하게  죽이는지를 설명했
다. 그와 같은 말을  듣고 군웅들은 더욱더 의분이 가슴 가득히  끓어오
르게 되었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같이 오삼계로 하여금 운남에서 하루라도  더 권세를 
누리도록 한다면  그야말로 수많은 무고한  백성을 죽이는 것이라고  했
다. 그러나 어떻게 오삼계를 제거해야 될지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참되
고 훌륭한 계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때 풍난적  부자가 준비하여 온  쇠고기, 면병(麵餠), 술들이  잇따라 
나오자 군응들은 환호성을 크게 지른 후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이 호걸들은  술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말하는 소리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게 되었고 별 회한한 생각들을 다 털어 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진원원을 사로잡은 이후 기녀원을 차려  오삼계로 하여금 
진정으로 한 마리 커다란 자라가 되도록 만들자고 했다.
위소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찬동하고 나섰다.

[그 기녀원은 반드시 양주에다 세워야 할 것입니다.]

한 명의 호걸이 웃으면서 말했다.

[소형제의 그와 같은 생각은 그럴싸하군. 그때 그대도 놀러가겠소?]

위소보는 물론 가야 할 것이라고 대답하려 했다. 그러다가  아가가 얼굴 
가득히 노기를 띄우고 있는  것을 홀낏 쳐다보고 차마 그 한 마디의  말
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구난은 말했다.

[소보, 시정잡배들의 말투를 쓰지 말도록 해라.]

위소보는 대답했다.

[예.]

그러나 속으로 생각했다.
(이곳에 수천 명이 있지만  기녀원을 차리게 된다면 아마 나만큼 잘  경
영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한동안 먹고 마시는데 열중해 있는데 풍난적이  다시 일어나더
니 말했다.

[우리들은 모두가 거칠기 짝이 없는 무인이라 한 칼 한  창으로 적을 죽
이고 목숨을 거는 일에는 용감하게 나설 수 있지만 천하의  대사를 논하
는데 있어서는  견문이 좁은 편이오.  그러니 이제 고염무  고정림(顧亭
林) 선생의 가르침을 받도록 합시다.고 선생이야말로 당금  세상의 커다
란 선비로서 나라가 망한 후 그 어르신은 각처로 분주히  떠돌아 다니며 
어진 호걸들과  손을 잡고 한마음  한뜻으로 명나라를 되찾고자  계획을 
세우신 분이니 모두들 매우 존경하실 것이오.]

군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정림을 알고 있었다.  사방에서 대
뜸 우뢰와 같은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군중 속에서 청수하게  생긴 노인이 몸을 일으켰는데 그가 바로  고염무
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아 보이며 입을 열었다.

[풍 대협께서 이토록 칭찬을 해주시니 실로 부끄러워 감당할  수가 없습
니다. 조금  전 여러분들의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하나같이 충과  의를 
마음에 품고 있으며  오삼계와 같은 간악한 자를 주살하고자 하는  결심
이 굳건하다는 사실에 이 형제는 심히 탄복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이 이
르되, '뭇사람이 뜻을 모으면  성을 이룰 수 있다'고 했으며 또  옛말에 
가로되, '정성이 이르는 곳에 금석도 깨어진다'고 했습니다.  모두들 마
음과 힘을 합쳐서  그 원흉을 상대할 결심을 내린다면 그에게  하늘처럼 
커다란 재간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반드시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군응들은 다시 한번 환호를 보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고염무는 말했다.

[여러분들이 내놓은 계책은  하나같이 고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그와 
같은 간악한  도적을 상대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임기응변의 수를  써야 
하며 미리 마련되고  확정된 계책으로는 도모하기 어렵습니다. 이  형제
의 의견으로는 모두들  각기 나누어서 함께 나아가되 기회를 보아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첫째로, 절대 아무 소문도  누설하지 말아야 
하며 그  간악한 도적이 더욱 경계하여  방비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결코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헛
되이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매사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난  이후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모두들 나 같은 절친한 형제이니  서로 
공을 다투어서 스스로 싸우고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
입니다.]

군호들은 모두 다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고 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고염무는 말했다.

[오늘 각  문파의 영웅호걸들이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차후로 
만약 여러 사람들이  제멋대로 행동을 하게 된다면 힘이 너무나  분산될 
것이고, 그렇다고 하나의  커다란 방파를 결성하자면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아 오랑캐와 오 매국노가 지극히 알아차리기가  쉽습니다. 여러분들에
게는 좋은 계책이 없으시오?]

군웅들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한 사람이 입을 열고 말했다.

[고 선생의 고견은 어떠하온지요?]

고염무는 말했다.

[이 형제의 의견으로는 이곳에  천하 십팔 성의 영웅들이 모두 모여  있
으니 우리는 한  성에서 일맹(一盟)씩을 결성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된
다면 모두 열여덟  곳의 살귀동맹을 이루게 되오. 살귀맹(殺龜盟)은  듣
기에 점잖치 못하니  차라리 서간맹(鋤奸盟)이라고 칭하는 것이  어떻습
니까?]

군호들은 다투어 손뼉을 치고 좋아했다.

[선비가 하는 말은 역시  우리같이 거친 사람들이 하는 말과는 크게  다
르군.]

고염무는 하간부의 살귀대회에 참여하기 전에 이미 심사숙고한  바 있었
다. 그는 군응들이 한마음이 되어 오삼계를 주살하기 위해서  모두들 용
감하게 나가 단번에 그를 죽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큰일은  그와 같은 매국노를 죽이는 데 있지  않
고 청나라 오랑캐들을 쫓아내고 명나라 강산을 되찾는 데 있었다.
만약에 한 사람을  주살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살상을 입는다면  그야
말로 원기에 커다란 손상을 입게 되어 오히려  광복대업(光復大業)에 해
가 있을 뿐이었다. 거기다가 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파벌에  대한 선입견
이 지극히 깊어 이 수천 명이나 되는 영웅호걸들을 한  사람이 통솔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모두들 맹주 자리를 쟁탈하기 위해서 알게 모르게 싸우게 될  것이고 그
만큼 간격이  크게 벌어질 것이 뻔했다.  그리하여 실패한 사람이  만약 
조금이라도 마음이 좁은  사람일 경우에는 청나라 조정이나  오삼계에게 
밀고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만약에 십팔성으로 나누어  각기 
맹주를 추대한다면 마구 어지러워져 통솔을 할 수 없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또 성마다 한  분의 맹주를 추대하는 것이 훨씬 수월한  노릇이
었다. 그리고 십팔 성의 서간맹을 장래 점점 더  확충시킴으로써 청나라
를 쳐부수는  의거를 세우는 골간(骨幹)이 되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가 그와 같은 제의를 하자 모든 군웅들은 즉시 찬동했으며  무척 기뻐
했다.
풍난적은 말했다.

[고 선생의 그와 같은 의견은 지극히 고명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이의가 
없는 이상 우리들은  십괄 성으로 나뉘어 각기 서간맹을 조직하되  성마
다 한  분의 맹주를 추대하도록 합시다.  성을 나누는 방법에  있어서는 
각자의 본적에 의지하지 말고 어느 문파나 방회의 근본이 되는  곳이 어
느 성에  있느냐에 따라 나누도록 합시다.  예를 들면 소림사의  승려와 
속가제자들은 요동  사람이라도 좋고 운남  사람이라도 좋으니 모두  다 
하남성에 속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산파의 제자들은 모두  다 
협서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문파와 방회에는  각 
성의 사람들이 다 있으니 각 성으로 나누게 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마구 
실 헝클어지듯 어지럽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우리 천지회에서는  및 성마다 분당(分堂)이  있으며 총타의  소재지는 
언제나 일정하지 않고  옮기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지회는  어느 
성으로 귀속시켜야 합니까?]

위소보는 말하는 사람이 바로 전노본인 것을 알고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그 역시 왔구나. 우리 청목당의 형제들 가운데 몇  사람이나 왔는
지 모르겠다.)
풍난적은 낭랑히 말했다.

[고 선생께서는 천지회의  광동 분타의 여러 영웅호걸들은 광동성에  속
하도록 하고 직예 분타의 영웅호걸들은 직예성에 속하도록  하자고 말씀
하셨소이다. 우리들은 그저 대사를 공히 도모하기  위해 결맹(結盟)하는 
것이지 결코 고유의  문파나 방회를 해산시키자는 것은 아닙니다.  서간
맹의 맹주의 본분은  그저 본성의 영웅호걸들과 연락을 취하여 함께  방
책을 강구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각문 각파와 각방 각회의  일온 여전히 
엣날 그대로 존속시켜야 하며 맹주는 간섭할 권한이 없습니다.  각 성의 
맹주 역시 각 문파의 장문인이나 각 방회의 방주보다 직위가  높은 것은 
아닙니다.]

군호들 중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
다. 혹시나  각 성의 맹주를 추대하면  그들이 자기를 내리누르게  되지 
않을까 하고 염려를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풍난적의 그와  같은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의혹과 근심을 없앨 수 있었다.
그 즉시 각 성마다 모여서는 그들끼리 맹주를 추대하기에 이르렀다.
위소보는 말했다.

[사부님, 우리들은 어느 성에 속하죠?]

구난은 말했다.

[어느 성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홀로  오고 홀로 갈 뿐이니  가맹할 
필요가 없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르신의 신분과 무공으로 봐서는 천하 총맹주 자리가 옳습니다.]

구난은 허, 하는 소리를 내고 말했다.

[그와 같은 말은 다시 꺼내지 않도록 해라. 남들이 들으면  비웃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대회에 참가한  군웅들 가운데 그녀보다 신분상으로 더 존귀한  사람
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명나라의 강산은 본래 그녀 주씨  집안의 것이며, 
무학의 수위에 있어서도  그녀는 철검문의 무공 이외에도 십여 년  전부
터 이미 다른 무공에도 힘을 써서 청출어람(靑出於藍)하게  된 상태여서 
지금 종적이 묘연해진  원승지 이외에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그녀와  대
적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잔디밭에는 군웅들이 열여덟 무더기로 모이게 되었다.  그밖에 드문드문 
칠팔십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다 구난과 비슷한 인사들이어서 맹주가  되고 싶지도, 
남의 호령을 받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었다.
고염무와 풍난적은 이 무림 고인들의 성격과 습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
문에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속으로 그들이 이미 대회에  참가한 이상 
일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자연 몰래 손을 뻗쳐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했
다. 얼마 후 일부 성의 맹주들이 먼저 추대되었다.
하남성은 소림사 방장  회총 선사이고 호북성은 무당파 장문인  운안(雲
雁) 도인이었으며  협성성은 화산파의 장문인 팔면위풍(八面威風)  풍난
적이있다.
운남성에서는 목왕부의  목검성이, 복건성에서는 연평군왕의 둘째  공자
인 정극상이  맹주로 추대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뭇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단번에 아무런 이의 없이 추대되었다.
그밖의 성에서는 약간의  다툼이 있는 듯했고 어떤 곳에서는 서로  다투
며 결정을 내리지  못해 끝내 고염무를 모시고 가서 공평하게  일처리를 
도와 한 명씩의 맹주를 추대하기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세 개의 성은 천지회의 분당 향주가 맹주직을  맡게 되었으니 
천지회에서도 크게 체면을 세운 셈이 되었다.
각 성의 맹주들은 함께  모였다. 그러나 수를 헤아려보니 열 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 회총 선사, 운안 도인 등은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고 
그의 제자들이 사부를 대신해서 참석했기 때문이었다.
풍난적은 낭랑히 말했다.

[이제 십팔 성의 맹주가 추대되있소이다. 그러나 기밀이  누설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 앞에 여러 맹주의 존성대명은  선포하지 
않겠소.]

맹주들이 한동안 상의를 한 이후 풍난적이 다시 말했다.

[우리들은 삼가 고정림 선생과 천지회의 진 총타주 두 분을  십팔 성 서
간맹의 총군사로 모시기로 했소.]

군응들은 우뢰와 같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위소보는 사부가 이토록  군
호들의 추대를 받아 서간맹의 총군사가 되자 매우 우쭐해졌다.
각 성의 호걸들은  어떻게 오삼계를 주살할 것인가에 대해서 상의를  했
다. 그러느라고  동쪽에 한 무더기 서쪽에  한 떼의 사람들이  모여서는 
매우 기세를 올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난은 위소보와 아가를 데리고 객점으로 돌아와서는 이튿날  이른 아침 
수레를 빌려서 동쪽으로 나아갔다.
구난은 군웅들이 각처로 홑어질 것이기 때문에 길에서  반드시 안면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분장한 것을 지우지 않았다.
위소보는 정극상이 다시 뒤따라오지 않자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끊임없
이 어젯밤 살귀대회의 일을 이야기했다.
아가는 그가 한동안 말하는 것을 듣더니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나는 그대가 어째서 좋아하고 있는지를 알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정말 총명하오. 짐작이 딱 맞소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오삼계
를 죽이고자 하니 어찌  성공하지 못할 리가 있겠소? 그러니 나는  물론 
기쁜 것이외다.]

아가는 말했다.

[흥, 그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겠지.  어찌 그대의 마음이  그토록 
곱겠어?]

위소보는 말했다.

[그것 참  회한한 일이군.  그렇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기뻐한단  말이
오?]

아가는 말했다.

[다만 정 공자, 정 공자 때문이겠지.]

위소보는 그녀의 표정이 고뇌에 차 있는 것을 보고는 일부러  그녀를 놀
려주려고 말했다.

[아, 그렇군. 정 공자는  정말 좋은 사람이오. 조금 전 내가 수레를  빌
리러 갔을 때 그가  네 명의 아름다운 소저를 데리고 웃고 떠들고  있는 
것을 보았소. 그는 나를 발견하더니 나에게 사부와 그대에게  안부를 여
쭤 달라고 했소.]

아가는 가슴이 쿵, 하고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대는, 그대는 어쩨서 진작 말하지 않았죠? 그는 또 뭐라고 했죠?]

위소보는 말했다.

[그는 이 몇 분의 소저들이 대만으로 놀러가고자 하니  그녀들을 데리고 
함께 가서는 그 뭐더라 지주(地主)의 도리를 다 한다고 했던가?]

아가는 입술을 깨물었다.

[맞아요. 지주의 예를 다하는 것이조]

위소보는 말했다.

[맞았소. 사저는 매우 기쁜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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