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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김용 녹정기07

by Casey,Riley 2023.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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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79章. 신나는 도박판


오삼계와 위소보는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삼계는 
구난이 말 위에 올라 바짝 뒤따르는 것을 보고 여승의 무공이 출신입화
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그녀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잘 해결되니 천만다행이다. 내가  여승과 이 꼬마 망나니를 죽
이고 이자성과 반적들을 죽였다  해도, 흠차대신을 해쳤다는 죄명은 너
무도 커서 반드시  반란을 일으켜야 했을 것이다.  바깥의 원군은 아직 
바라기 어려운 상태이고 경황이 없으면 일에 만전을 기할 수 없다. 흥, 
훗날 북경으로 쳐들어가면 잘난 체하는  이 꼬마 망나니가 어디로 도망
치는지 두고보겠다.)
그는 안부원으로 가서는 공주를 만나 곧장 곤명성 밖까지 전송했다. 군
사들은 왕야가 무사한 것을 보자 영을  받들어 일을 처리할 뿐 다른 움
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위소보는 수하의 병마와 사람들을 점검해 보았다. 아가는 자기 곁에 있
었고 천지회와 목왕부의 사람들,  시위 관병들도 모자라는 사람이 없었
다. 그는 오삼계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왕야께서 멀리 성문 밖까지 전송해 주시니 정말 깍듯하십니다. 이번에 
왕야께 후한 대접을 받았으니 훗날 왕야꺼l서 북경에 오시면 소장이 후
하게 갚도록 하지요.]

오삼계는 껄껄 웃었다.

[그때는 반드시 위 자작 나으리께 폐를 끼치겠소.]

두 사람은 작별을  고했다. 오삼계는 공주의 가마  앞으로 가서 인사를 
드리고 작별을 고한 후에 오응응의  가마 안으로 고개를 디밀고 뭐라고 
한동안 당부하더니 군사를 이끌고 성으로 돌아갔다.
위소보는 오삼계의  군사들이 돌격해 올 뜻이  없음을 알았으나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말했다.

[저 녀석은 변덕이 심하니 우리들은 빨리 떠나도록 합시다. 곤명성에서 
멀리 갈수록 좋을 것이오.]

십 여 리 이상 가도록 추격병이  없는 것을 보고 그들은 걸음을 늦추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자성은 구난에게 말했다.

[공주, 구원의 손길을 뻗쳐 대매국노의  손 아래서 저를 구하시니 무척 
고맙게 생각하오. 이제 그대는 손을  쓰시오. 나는 그저 죽음을 기다릴 
뿐 항거하지 않겠소.]

구난은 싸늘히 냉소를 흘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나의 아버님을  죽인 원수이니 내 어찌 이  원한을 갚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그가 순순히 죽음을  당하려 하니 손을 쓸  수가 없구
나.)
구난은 고개를 돌려 아가를 바라보더니 이자성에게 말했다.
[아가는....그대의 딸이었군요.]

아가가 큰소리로 말했다.

[그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에요.]

구난은 노해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너의 어머니가  친히 시인했다. 그런데도 가짜란 말
이냐?]

위소보는 재빨리 말했다.

[이 분은 물론 그대의 아버님이외다.  그와 그대의 어머니는 이미 나에
게 그대를  마누라로 삼아도 좋다고  허락하셨소. 이것이야말로 부모의 
명이니....]

아가는 가슴 가득 끓어오르는 분노를 발산할 곳이 없던 차라 몸을 솟구
치더니 냅다 한 대의 주먹을 갈겼다. 위소보는 정통으로 콧잔등을 얻어
맞고 대뜸 코피를 주르륵 흘렸다. 위소보는 어이쿠, 하고 부르짖었다.

[남편을 죽이려 하는구나!]

구난은 분노하여 외쳤다.

[못된 연놈들 같으니, 어디서 함부로 놀아나느냐?]

아가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상기된 얼굴로 이자성을 노려보며 노성
을 질렀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야! 그 여자 역시 나의 어머니가 아니야!]

이어서 구난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그대는....그대는 나의 사부님이  아니야! 그대들은....그대들은 모두 
나쁜  사람들이고 나를  못살게 굴었어!  나는....나는  당신들이 미워
요....]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대성통곡을 했다. 구난은 한숨을 내쉬
었다.

[맞다. 나는 너의  사부가 아니다. 나는 너를  오삼계의 곁에서 유괴해 
왔는데 처음부터 나쁜 마음을  품었다. 너는....너는 스스로 갈길을 가
도록 해라. 그러나 너의 친부모는 인정해야 된다.]

아가는 발을 굴렀다.

[나는 인정할  수 없어요. 저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물론 사부님도 
없어요.]

위소보가 말했다.

[그대에게 남편인 나만 있어도 충분하오.]

아가는 극도로 화가 나서 돌멩이를  하나 집어들고 위소보를 향해 힘껏 
던졌다. 의소보가 몸을 날려 피하자  아가는 몸을 홱 돌리고 작은 길을 
따라 서쪽으로 달려갔다. 위소보는 외쳤다.

[이봐요. 이봐요. 어디 가는 거요, 마누라!]

아가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리더니 소리를 질렀다.

[언젠가는 그대를 내 손으로 죽이고 말 거예요.]

위소보는 감히 쫓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눈을 멀거니 뜨고 그녀가 떠
나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구난은 울적했다. 그녀는  이자성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 보이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위소보는 말했다.

[장인 어른, 우리 사부님께서는  그대를 죽이지 않으셨소. 그대는 빨리 
떠나도록 하시오.]

이자성은 위소보를 노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위소보는 그의 눈
빛에 두려움을 느끼고 뒤로 두 걸음을 물러섰다. 이자성은 땅바닥에 침
을 뱉더니 몸을 돌려 샛길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가는 부모마저 인정하지 않으니 어찌 남편을 인정하랴?)
고개를 돌리니 서천천과 고언초가 무기를  들고 등 뒤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이자성이 갑자기 흉악한 짓을 하여 위 향주를 해치려 하는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 서천천은 말했다.

[저 사람은 옛날 천하를  발칵 뒤집어놓고 대명나라의 강산을 찬탈했었
는데 늙어서도 여전히 영웅의 기개를 잃지 않았군.]

위소보는 혀를 낼름 내밀고 말했다.

[정말 대단하오.]

그는 이어서 물었다.

[한첩마를 데리고 왔소?]
[그는 중요한 인물이니 감히 소홀히 다룰 수 없죠.]
[잘했소. 두 분은 유의해서 그가 도중에 도망치지 못하게 하시오.]

일행은 북쪽을 향하여 나아갔다. 위소보는 목검성과 유대홍에게 다가가 
인사말을 했다. 목검성은 생각했다.
(우리의 목숨은 그가 살려 준  것이다. 이제 목왕부는 천지회와 자웅을 
다툴 명분이 없다.)
유대흥은 그런 사실을 털어놓고 말했다.

[위 향주, 오삼계를 거꾸러뜨리는 일에  있어서 우리들은 더 이상 천지
회와 내기를 할 수 없소.  아무쪼록 그대가 진 총타주에게 말씀드려 주
시오. 목왕부는 천지회에게 졌음을  시인한다고 말이오. 위향주가 구해 
준 은덕을 한평생 잊지 못할 것이오.]
[유 노영웅께서는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모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
진 것이 아닙니까?]

유대홍은 한맺힌 어조로 말했다.

[유일주, 이 도적놈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죽여야지.]

위소보는 말했다.

[그가 밀고한 것입니까?]
[그가 아니면 누구겠소? 그 녀석은....그 녀석은....]

그는 울화가 치밀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는 오삼계 편인가요?]

목검성이 말했다.

[그럴 것이오. 유 사부께서 그를  내보내 소식을 염탐하게 했는데 오삼
계의 부하에게 잡혀 갔소. 그날  밤 병마가 우리들의 거처를 에워쌌소. 
우리들은 매우 은밀한 곳에 숨어  있었는데 그가 말하지 않았다면 오삼
계가 어떻게 알았겠소?]

거기까지 말하고 긴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오 형이 나라를 위해 죽은 것이 아깝구려.]

그는 위소보에게 포권했다.

[위 향주, 천지회에서 시키실 일이  있으면 이 목가는 언제라도 목숨을 
다하여 받들겠습니다.  청산은 변함이 없고 녹수는  언제나 흐르는 법, 
우리는 훗날을 기약합시다.]
[이곳 역시 대매국노의 지역이니  모두들 함께 있으면 사람들의손이 그
만큼 많아지는 법입니다. 운남을  빠져나간 후에 우리 헤어지도록 하지
요.]
[위 향주의 호의는 고맙소. 그러나 다시 대매국노에게 사로잡히면 우리
는 다시는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할 것이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목왕부는 이미 당할 만큼 당했다.  다시 오랑캐 관병의 호위를 받는다
면 무슨 체통이 서겠는가?)
그는 작벌 인사를 하고 목왕부의 사람을 데리고 떠나갔다. 목검병은 가
장 나중에 떠나며 몇 걸음 옮기다가 몸을 돌리고 말했다.

[저는 가요. 그대....그대는 몸조심하세요.]
[그대도 몸조심하시오.]

이어서 나직이 말했다.

[그대는 오라버니를 따라가고 신룡도로  돌아가지는 마시오. 나는 매일
같이 그대를 생각할 것이오.]

목검병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역시 마찬가지에요....]

위소보는 자기가 타고 온 말의 고삐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말했다.

[이 한 필의 말을 그대에게 드리겠소.]

목검병은 눈가를 붉히며 고삐를 잡더니  말에 올라 목검성의 뒤를 쫓아
갔다.
며칠을 가니 곤명에서 상당히  멀어졌다. 오삼계의 군사가 쫓아오는 기
미가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점차 마음을 놓았다. 그들은 곡정(曲靖)에 
도달하였다. 해질 무렵 네 필의 말이 맞은 편에서 달려왔다. 한 사람이 
말에서 훌쩍  내리더니 효기영의 선봉에게 긴급한  군사 정보가 있어서 
흠차대신에게 보고하겠다고 했다. 위소보는  그 전갈을 받고 즉시 그들
을 만나 보았다. 앞장선  사람은 체구가 왜소했으며 얼굴이 거무튀튀했
다. 위소보는 어떤 군사 정보냐고 물었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전노
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대는 광형이 아니시오?]

그 사람은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형제는 광천웅이외다. 전형, 그 동안 안녕하셨소?]

위소보가 전노본을 바라보자 전노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말했다.

[우리쪽 사람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매우 좋소. 광 노형은 수고가 많았소. 우리 뒤에 가 앉아서 이야기 합
시다.]

그들은 뒤로 갔다. 등 뒤에서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천지회 사람
들이었다. 전노본은 말했다.

[광 형제, 이분은 바로 우리 청목당의 위 향주이시오.]

광천웅은 포권하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천부지모, 반청복명. 적화당 고(古)  향주의 속하 광천웅이 위 향주와 
청목당의 여러 형님들께 인사올립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적화당의 광형이었구려. 반갑소. 반가워.]

전노본은 광천웅을 호남성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어 즉시 광천웅을 이력
세, 기청표,  풍제중, 서천천, 현정 도인,  마언초 등에게 소개시켰다. 
광천웅이 데리고 온  세 사람 역시 적화당의  형제였다. 사람들은 며칠 
내로 귀주성 경내로 들어서게  되는 형편이었다. 적화당이 귀주성을 담
당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고 향주와 경기  일대에서 헤어진 후 줄곧 만나지  못했소. 고 향주는 
모든 일에 있어 순조롭지요?]
[고 향주는 잘 계십니다. 그는 속하에게 위 향주와 청목당의 여러 형님
들에게 안부를 여쭈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위 향주와 뭇 형님들
이 최근 큰일을  많이 해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부러워했지요.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두들 한 집안의 형제들인데 너무 겸손한 말을 하시는군요. 우리들은 
며칠 내로 귀성(貴省)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고 향주와 다시 만
나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랍니다.]
[고 향주는 속하에게 분부하시면서 위 향주에게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동쪽으로 나가시되 귀주를 거쳐가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지요.]

위소보와 군웅들은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광천웅은 말했다.

[고 향주께서는 위 향주와 여러 형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역시 광서성 경내에서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요?]
[우리들이 들은 소식에 의하면 오삼계가 명마를 보내 선위(宣威), 홍교
진(虹橋鎭), 신천보(新天堡) 일대에 흩아져 위 향주와 여러 형님들에게 
불리한 행동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청목당의 군웅들은 모두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위소보는 놀람과 분노
에 휩싸여 욕을 했다.

[빌어먹을, 간악한 도적은 패배를  시인하지 않는구나. 자기 아들의 목
숨마저도 버리겠다는 것인가?]

광천웅은 말했다.

[오삼계는 매우 악독하지요. 그는 많은 고수들을 보내 위 향주 곁에 있
는 무공이 가장 고강한 사태를 붙잡고 늘어지게 한 후에 그의 아들, 오
랑캐 공주, 위  향주, 세 사람을 사로잡아 가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죽여 입을 봉하려는  것입니다. 곡정과 점익(霑益) 사이의 송소
관(松韶關)은 이미 관문이 봉해져 있는  형편이며 그 누구도 통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 네 사람은 산의 소로를 돌아서 달려왔지요. 혹시 위 향
주가 소문을 듣지 못해 그 대매국노의 함정에 빠지게 될까봐 밤을 새워 
달려온 것입니다.]

위소보는 네 사람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것이 피로가 극에 달해 있음
을 알았다.

[세 분 형님, 수고하셨소.]
[때늦지 않게 전갈해서 대사를 망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광천웅은 매우 흡족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위소보는 여러 사람을 둘러
보며 물었다.

[여러 형들, 어떻게 생각하시오?]

전노본은 말했다.

[광 형은 오삼계가 매복시킨 병마가 모두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오삼계는 곤명에서 군사를 파견하지 못하고 전서구로 운남성의 북쪽과 
귀주성 남쪽의 병마를 움직였는데 모두 삼만 명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욕을 했다. 위소보가 데리고 온 부하들은 이천여 
명에 불과했다. 상대방의 일  할도 되지 않으니 그야말로 중과부적이었
다. 전노본은 다시 물었다.

[고 향주는 우리와 광서성 어디에서 만나자고 했소?]
[고 향주는 이미 광서성의 가후당 마(馬) 향주에게 사람을 보내 알렸답
니다. 만약 위 향주께서 허락하신다면  세 분 향주는 바로 광서성 서쪽 
로성(潞城)에서 만날 것입니다. 이곳에서  로성으로 가는 길은 아주 험
하고 멉니다. 하지만 만약 오삼계의 병마가 지키지 않고 가후당의 형제
들이 중도에서 접응을 하면 별다른 사고는 없을 것입니다.]

위소보는 오삼계가 삼만여 명을 보내  길을 막는다는 말에 가슴이 서늘
해졌다. 고 향주가 적절한 조처를  취했고 마 향주도 사람을 보내 접응
을 한다는 말에 정신이 버쩍 들어 말했다.

[좋소. 우리는 로성으로 갑시다.  오삼계라는 늙은 녀석은 언제라도 한
번 꼴보기 좋은 날이 있을 것이오.]

그는 즉시 영을  내려 동남으로 길을 바꾸었으며 광천웅  등 네 사람은 
커다란 수레 안에서 휴식을 춰했다. 군사들은 오삼계가 병마를 보내 앞
길에 매복했다는 말을 듣고 놀라고 분노했다. 모두들 위험에 처해 있음
을 알고 즉시 길을 재촉했다. 이렇게 되자 길을 가면서도 매일 밤 황량
한 교외에 군막을 치고 잠을 자야 했다.
며칠 후 로성에 도달했다. 천지회의  가후당 향주 마초흥, 적화당 향주 
고지중, 그리고 두 당의 부하들 가운데 손꼽히는 형제들은 모두 로성에
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 당의  형제들이 만나니 자연 서로 다정한 말이 
오고갔다. 이날 밤 마초흥은 크게 연회를 베풀고 위소보와 청목당의 군
웅들을 맞아 여독을 풀게 해주었다. 그 자리에서 군웅들은 목왕부가 이
제 천지회에게 패했음을 시인했다는 말을 주고 받으며 흥겨워했다.
연회석이 파한 후 적화당의  염탐꾼이 보고했다. 오삼계의 부하들은 위
소보가 길을 바꾸어 광서성으로 들어간 것을 알고 군사를 급히 몰아 쫓
아왔으나 광서성 변경에 이르러 감히  더 쫓아오지 못하고 급히 곤명에 
보고를 올렸다는 내용이었다. 마초흥은 웃었다.

[광서성은 오삼계의  관할이 아니지요. 그 간악한  도적이 만약 군사를 
거느리고 경계선을 넘으면 그것은  반란을 일으키는 셈이죠. 그가 군사
를 도적으로 분장시킨다면 그 책임을  광서성에 미룰 수 있겠으나 너무 
촉박해서 그러기는 힘들 것입니다.]

일행은 로성에서  하루를 묵었다. 위소보는  운남성에 가깝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계속 동쪽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고지중과 적화당의 형제들은  작별을 하고 대를 
통솔하여 동쪽으로 나아갔다. 마초흥과 가후당의 형제들은 줄곧 동행해 
주었다. 운남성에서 갈수록 멀어지게  되자 위소보는 점차 마음을 놓았
다.
며칠이 지나자 광서성 중부에  이르렀다. 뭇 시위들과 관병들은 가까스
로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못된 습성이 고개를 쳐들어 관아로 들어가 폐
를 끼치면서 돈을 갈취했다.
어느 날 그들은 유주(利似∥)에  이르렀는데 지부는 공주가 도달했다는 
것을 알고 공손히 맞아들였으며 그야말로 분수에 넘치는 물건들을 공물
로 바쳤다. 어전시위와  효기영의 관병들도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성안 
곳곳에서 질탕하게 마시고 놀았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 무렵 위소보가 방에서 마초흥과 천지회의 뭇 형제
들과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어전시위  장강년이 총총히 달려 들어와 외
쳤다.

[위 부총관!]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매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위소보
는 그의 왼쪽 뺨이 부풀어 있고  오른쪽 눈이 시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전시위가 사람을 때리지 못하면 남들의 야유를 받는 법인데 누가 이
토록 대담하게 그를 때렸을까?)
위소보는 어전시위가 천지회의 형제들 앞에서 체면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아 마초홍에게 말했다.

[마형,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위 자작 나으리께서는 어서 다녀오시구려.]

위소보는 방에서 나왔다. 장간년이 따라 나와 말했다.

[부총관께 알립니다. 조 둘째 형이 억류되어 있습니다.]

조 둘쩨 형이란 어전시위 조제현이었다. 위소보는 욕했다.

[제기랄, 누가 이토록 대담하단 말이오? 유주의 수비요, 아니면 지부나 
관가에서 한 일이오? 그는 무슨 일을 저질렀소? 사람을 죽였소?]

사람을 죽인 사건이 아니면 관가에서 어전시위를 억류하지 못하리라 생
각했던 것이다. 장강년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관가에서 억류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바로 도박장에 억류되어 있
습니다.]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제기랄, 유주성의 도박장에서 감히 어전시위를 억류하다니, 별 희한한 
소리가 아닌가? 돈을 잃은 것이오?]

장강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일곱 형제들은 도박을  하였는데, 제기랄, 그 도박장에는 도깨비
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연달아 열세  번이나 졌지요. 우리 일곱 명은 이
미 천 냥 이상 은자를 잃게  되었어요. 열네 번째에 이르러 조 둘째 형
과 나는 이번에야말로 돈을 딸 줄 알았죠.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들은 
부총관님을 모시고 노름을 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와 같은 속임수에 
넘어가고 말았지요. 우리  일곱 명은 몸에 지니고  있는 은자와 은표를 
모조리 꺼내고 다시 걸었으나  다시 지고 말았지요. 보관(寶官)은 은자
를 거두어 가려고 하고 우리들은 허락하지 않았죠. 도박장 주인이 나와 
말리면서 이번만큼은 따지지 않기로 하고  서로 따지도 잃지도 않은 것
으로 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조 둘째 형이 안 된다고 했지요. 이번에는 
우리가 이기게 되었는데 보관이  속임수를 썼다고 했지요. 그는 우리들
이 이미 많은 돈을 잃었다가 이번에 크게 이기게 되었는데 어쩨서 따지
지 않을 수 있느냐고 했지요.]
[제기랄, 그대들은  정말 염치가  없군. 분명히 지고서  억지를 부리다
니.]
[그 도박장의 주인도 그와 같이 말했지요. 그러나 조 둘쩨 형은 북경성
의 천자가 다스리는 땅에는 그와  같은 규칙이 없다고 했지요. 그가 신
경질을 부리니 나도 칼을 뽑아들었지요. 도박장 주인은 놀라 안색이 창
백해졌고 '여러 시위 대인들께서 예쁘게 보시고 찾아오셔서 몇 수 놀아 
보려 한 것에 불과하시니 우리가 어찌  감히 여러 대인들의 돈을 딸 수 
있겠소'라고 하며 '대인들이 얼마나  돈을 잃었습니까?' 하고 물으면서 
'소인이 모조리 돈을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했지요. 그러자 조 둘째
형은 좋다고 하면서 '우리는  지지 않았으나 속임수에 삼천일백오십 냥
의 은자를 잃었으니 우수리는  그만두고 삼천 냥만 되돌려주면 된다'고 
했지요.]

위소보는 껄껄 웃으며 화원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그렇게 된다면 횡재하는 것이 아니오? 그가 배상을 해줍디까?]
[도박장의 주인은 시원시원했습니다.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의리를 
앞세운다면서 그 자리에서 삼천 냥의  은자를 조 둘째 형에게 건네주었
지요. 조 둘째 형은 받아들더니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않고, '눈이 맑아 
사람을 제대로 알아본 것은  그야말로 그대의 운수가 좋았던 셈'이라고 
말하며 '다음에 다시 농간을 부려 사람을 속이는 일이 있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죠.]

위소보는 눈살을 찌푸렸다.

[조제현이 잘못했군. 상대방에서는 체면을 세워 주었고 허연 은자를 들
고 떠나도록 해주었소. 체면도 세웠고 돈도 생겄는데 어째서 그와 같은 
말을 했단 말이오?]
[그렇지요. 조 둘째 형이 고맙다는 말을 했다면 아무 일 없었을 것입니
다. 그러나 그는 은자를 들고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말을 했지요....]
[맞았소. 우리는 강호에서 밥을 빌어먹을 때 훔치거나 빼앗거나 유괴를 
하거나 속이는 한이 있어도 친구에게 죄를 짓지는 말아야 하오. 다음과 
같은 속담이 있지 않소. '홀아비는 대나무를 쪼갤지언정 죽순은 상하게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오.]

장강년은 대답했다.

[옳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분명히 궁 안에서 벼슬을 하고 있고 그대는 벼슬이 흠차대신에
다 일등  자작에 봉해졌는데 어째서 강호에서  밥을 빌어먹는다고 하는 
걸까?)
위소보는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하다가 싸우게 되었소? 그  도박장 주인의 무공이 매우 고강합
디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일곱 명이 은자를  가지고 도박장을 나서려고 
하는데 도박하는 사람  가운데 갑자기 누가 욕을  했지요. '제기랄, 돈 
벌기가 이토록 쉬운데 우리가 도박을 해서 뭐해? 차라리 모두들 황궁으
로 들어가 황제를 모시는 게  좋겠소.' 부총관, 더군다나 이 반적은 황
상을 들먹이며 입으로 불경스러운  말을 내뱉었죠. 하지만 저로서는 감
히 그 말을 옮길 수가 없습니다.]
[알겠소. 그 녀석의 담이 적지 않은 모양이구려.]
[우리들은 그 소리를 듣자 울화가 치밀었죠. 조 둘째 형은 은자를 탁자 
위에 내던지고 칼을 뽑아 왼손으로  그 사람의 가슴팍을 움켜잡으려 했
지요. 그 사람은 퍽, 하니 한 대의 주먹으로 조 둘째 형을 때려 기절시
켰지요. 나머지 여섯 사람도 일제히  손을 썼지요. 그 도적놈의 무공은 
정말 대단해서 주먹을 한 대  얻어맞고 도박장 밖으로 나가떨어져 천지
가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나중
에 깨어나 보니 조제현과 다섯  명의 형제들은 모조리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어요. 그 사람은 발로 조  둘째 형의 머리를 짓누르고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이 여섯 마리의 짐승들은 이천 냥의 은자에 한 마리씩이다. 
너는 빨리 가서 은자를 가지고 와 바꿔 가라. 두 시간을 기다려도 은자
가 보이지 않으면, 나는 이들을 죽여 조금씩 살을 떼어내겠다. 열 냥의 
은자에 한 근으로, 장사가 잘 되면  저 한 마리 짐승에 역시 천여 냥의 
은자를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위소보는 우습고 놀라워 물었다.

[그 녀석이 도대체 어떤 내력을 지녔는지 알아보았소?]
[그 사람은 매우  키가 크고 우람했으며 주먹은  밥그릇보다도 더 컸지
요. 얼굴에 희끗희끗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며 다 해지고 더러워진 옷
을 입었으며 마치 늙은 거지 같았지요.]
[그에게 동료들이 있었소?]
[그건....그건....속하는 제대로  알 수 없군요.  도박장에서 도박하던 
사람들은 십칠팔  명이 되었는데 그와 한패거리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
다.]

위소보는 그가 얻어맞고 도망치기 바빠서 제대로 보지 못했으리라 짐작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 늙은 거지는 틀림없이 강호의  호걸일 것이다. 시위들이 노름을 하
다가 억지를 부리자 참지 못하고  손을 썼을 뿐이고, 정말 그들을 죽여
서 고기를 한 근씩 잘라 팔지는  않을 것이다. 그 누구도 열 냥의 은자
를 내놓고 조제현의 살코기 한  근을 사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인마를 
이끌고 가서 그 한 사람을 때린다면 결코 호걸의 행위가 아니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늙은 거지는 무공이  뛰어나니 사부님에게 부탁해서 상대하라고 한
다면 자연히 잡을 수가 있겠지만  사부님이 어찌 황궁의 시위들을 위해 
힘을 쓰겠는가? 이 일을 마  향주 일행에게 알리면 나의 부하들인 시위
가 너무 멍청하다고 비웃을 것이다.)
풍제중이나 서천천 등을 보내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갑자기 그
는 두 사람이 머리에 떠을라 말했다.

[서두를 것 없소. 내 친히 가 보기로 하겠소.]

장강년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예, 예. 제가 사람을 불러오죠. 백 명 정도면 층분할 것입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많이 데리고 갈 필요 없소.]
[부총관, 역시 조심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 늙은 거지의 솜씨는 대단
했어요.]
[두려워 마오. 내가 있지 않소?]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와 한 웅큼의 은표와 수십 덩어리의 황금을 호주
머니 안에 넣고 동쪽 편방 밖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고 말했다.

[두 분은 이곳에 계시오?]

방문이 열리면서 육고헌이 마중을 나왔다.

[안으로 드시죠.]
[두 분은 나를 따라오시오. 우리들은 가서 한 가지 일을 해야겠소.]

육고헌과 반두타 두 사람은 효기영  군사의 복장을 하고 위소보를 모시
고 곤명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한 
적이 없었다. 혹시나 남에게  정체가 탄로나게 될까봐 온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매우 답답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위소보가 할 일이 있
다고 하자 신이 나서 따라 나왔다.
장강년은 위소보가 두 명의 효기영 군사를 데리고 가는 것이 못내 불안
하여 입을 열었다.

[부총관, 속하가 시위 형제들을 불러와 부총관을 시중들도록 하지요.]
[그럴 필요 없소.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귀찮아져요.  백 명을 데리고 
갔다가 만약 그에게 모조리 잡힌다면 일천 냥의 은자를 주고 한 사람씩 
되찾아 오려면 모두 십만 냥을  써야 하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아까
운 노릇이겠소?]

장강년은 그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두 명의 군사만 
데리고 위험한 곳에 가는 것이 너무 겁이 없다는 생각에 말했다.

[예, 예. 하지만 그 도둑놈의 무공은 매우 고강합니다.]
[좋소. 내 그와 한 빈 겨루어  보겠소. 진다고 해도 그가 내 고기를 잘
라서 한 근에 열 냥씩 받고 팔지만 않으면 별일은 없을 것이오.]

장강년은 이마를 찌푸리고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는 이 효기영의 
두 군사가  무림에서 제일가는 인물이라 도박장의  그 무뢰한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 해도 신룡교의 고수가 처치하지 못할 리 없다는 사실을 모
르고 있었다. 장강년의 안내를 받온 위소보는 도박장으로 향했다. 도박
장 입구에 이르자 안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칠 점짜리요. 대단하지 않소?]

다른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나는 마침 팔 점이 나왔구려.]

곧이어 탁, 하는 소리가 났다. 먼젓번의  그 사람이 패를 탁자 위에 내
동댕이치는 것  같았다. 위소보는 장강년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생각했
다.
(어떻게 안에서 다시 도박을 하게 되었을까?)
위소보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장강년은 목을 움츠리고 그의 뒤
를 따랐다. 육고헌과  반두타 두 사람은 객청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었
다. 위소보의 지시를 받으려는 것이었다. 객청에는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고 네 패거리가 사면의 모퉁이에 나눠 앉아 한창 도박을 벌이고 있었
다.
조제현과 다섯 명의 시위는 여전히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동쪽에 앉
아 있는 사람은 털보인데 옷이 다  해어져 뚫린 구멍으로 숭숭 검은 털
이 드러나 있는 것이 바로 그 늙은 거지인 것 같았다. 남쪽에는 외모가 
준수하게 생긴 젊은 서생이 앉아 있어서 위소보는 어리둥절해 졌다. 그
는 그 서생이 이서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북경성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무공이  무척 뛰어났으나 한때 진근남의 응혈신
조에 붙잡힌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줄곧  대면하지 못했는데 뜻밖에도 
이 유주의 도박장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서쪽에는 시골 농사꾼 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오십 세 정도의 나이였
고 울상을 하고  눈을 내리뜨고 있는 것이 이미  모조리 날리고 고개를 
쳐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북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얼굴 생김새가 아주 특이했다. 키는 작으면서
도 뚱뚱해서 살덩이가 똘똘 뭉친  듯한데 옷차림은 매우 화려해 장포와 
마괘 등이 모두 비단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 사람의 오관은 한데 모여 
있어서 마치 그 누구에게 억지로  찌그러져서 한데 뭉친 것 같았다. 이 
땅딸보의 손에는 두  장의 골패가 쥐어져 있는데 한  쌍의 눈을 가늘게 
뜨고 조심스럽게 패를 내리고 있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서화가 나를 알아보는지 알 수  없구나. 오랜 시일이 흘렀고, 또 오
늘 나는 관복을 입고 있으니  십중팔구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
러니 미리 아는 체할 필요는 없다.)
그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네 분 친구들은 매우 흥이 나셨구려? 나 역시 한 번 끼고 싶은데 괜찮
겠소?]

그는 가까이 다가갔다. 탁자 위에는 오륙천 냥의 은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 농사꾼 앞에 가장 많이 쌓여 있었다. 그는 크게 돈을 땄는데도 크게 
진 사람처럼 처량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정말 이상했다.
그 땅딸보는 똥똥한 손가락으로  천천히 패를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그
가 아, 하고 큰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위소보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는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묘하군, 정말 묘해. 이번에야말로 지지 않았겠지.]

그는 팍,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장의 패를 탁자 위에 던졌다. 바로십점
의 매화(梅花)였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손 안의 다른 한 장의 패도 십중팔구 매화일 것이다. 매화 한 쌍
이면 아주 높은 것이니 크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땅딸보는 웃음을 떠올리며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장의 패를 탁
자 위에 던졌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걸 보고  모두 어리둥절해 하다가 
곧 소리내어 웃었다. 그것은 한 장의 사육(四六)이었는데 역시 십 점이
었다. 십 점에 십 점을  보태면 바로 별십이다. 패구(牌九) 가운데서는 
더 적을래야 적을 수 없는 숫자였다. 게다가 그는 전주가 아니다. 전주
가 별십을 쥐었다면 별십이 별십을 먹게 돼 있어 전주가 이기는 것이었
다.

그 시골 농사꾼은 여전히 울상을  짓고 있었다. 위소보는 그의 앞에 놓
인 패를 바라보았다. 한 쌍의 구(九)였다. 그가 전주 노릇을 하고 있으
니 땅딸보의 패와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가장 무서운 도박꾼이
로구나.)
땅딸보는 물었다.

[뭐가 그리 우습소?]

그는 시골 농사꾼에게 말했다.

[내 한 쌍의 십 점은 그대가 가지고 있는 한 쌍의 구 점을 이기는 것이
니까 일백 냥의 은자를 빨리 내놓도록 하게.]

그 시골 농사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대가 졌네.]

땅딸보는 크게 화를 내며 부르짖었다.

[도대체 그대는 이치를 아는 사람인가? 그대가 헤아려 봐. 구가더 큰지 
십이 더 큰지 말이야.]

위소보는 장강년을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땅딸보는 어전시위가 되면 적당하겠다. 이기면 돈을 가져가고 지면 
억지를 부리니.)
그 시골 농사꾼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것은 별십이니 그대가 졌네.]

땅딸보는 노기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히려 키가 작아지는 것이 아닌가? 실은 그가 걸상
에 앉아 있을 때 두 다리가  허공에 떠 있었다. 그래서 앉아 있는 키가 
오히려 땅에 선 키보다 켰던  것이다. 그는 통통한 손으로 시골 농사꾼
의 코를 가리키며 호통을 내질렀다.

[내 것은 별십이고 그대의 것은 별구가 아닌가? 별십이 자연 그대의 별
구보다 큰 게 아니겠는가?]

그 시골 농사꾼은 말했다.

[나는 구이고 그대는 별십이야. 별십이라는 것은 점수가 하나도 없다는 
뜻일세.]

땅딸보는 말했다.

[이것은 분명히 사람을 업신 여기는 것이겠지?]

위소보는 더 참지 못하고 불쑥 입을 열었다.

[노형, 그대의 것은 한 쌍을 이룬 게 아니외다.]

그는 어지러이 널려져 있는 패에서 한 장의 매화, 한 장의 사륙을 찾아
서 다른 두 장의 매화, 사륙과 한 쌍을 이루게 해놓고 말했다.

[이래야 한 쌍이 되는 것이외다. 그대의 두 장의 십점은 꽃무늬가 다르
니 한 쌍이 아니오.]

땅딸보는 그 한 쌍의 구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이 두 장의 구 점은 꽃무늬가 같다는 말이오? 한 장은 모조리 검
고 한 장은 붉은 색이 섞여 있지 않소? 그러니 역시 십 점이 구 점보다 
큰 것이오.]

위소보는 이 사람이 억지를 쓴다고 느꼈으나 일시에 잘 설명을 할 수가 
없어 말했다.

[이것은 패의 규칙이외다. 언제나 이런 것이외다.]
[이치에 닿지 않는 규칙은 틀린 것이오. 세상에 아홉이 열보다 큰 법이 
어디 있소?]

이서화와 늙은 거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앉아 있었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도박을 할 때는 규칙을 따져야 하오. 규칙이 없다면 어떻게 노름을 할 
수 있겠소?]
[좋아, 내 꼬마에게 묻겠다. 어째서 나의  이 한 쌍의 십 점이 그의 한 
쌍의 구 점을 이길 수 없다는 거지?]

그는 두 장의 매화를 들고 포개서 내려놓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 조금 전에는 이 두 장의 패가 아니었는데?]

땅딸보는 분노가 치밀어오르는지 버럭 호통을 질렀다.

[후레자식, 이 두 장의 패가 아니라고?]

그는 한 쌍의 매화를 들고  아무렇게나 뒤집더니 다시 탁자를 탁, 치고 
다시 뒤집어놓더니 말했다.

[조금 전 내가 후려치며 자국을 남겼다. 잘 보아라.]

탁자 위에는 패의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다.  한 쌍의 매화패가 
새겨져 있는데 우둘두둘한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로 미루어 그의 필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위소보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을 
못했다. 그 시골 농사꾼은 말했다.

[맞았소. 노형이 이겼소. 자, 이것은 일백 냥의 은자요.]

그는 하나의 은으로 만든 원보를 땅딸보의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다
시 서른두 장의  패를 뒤집고 패를 한동안  섞더니 나열하기 시작했다. 
여덟 장이 한 줄을 이루어 모두 넉 줄이었는데 모두 가지런했다.

그는 가볍게 한 무더기의 패를 탁자 한복판으로 밀었다. 위소보는 이미 
탁자 위에 서른두 장의 자국이 새겨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 패 
자국은 그 한  쌍의 매화 패의 깊이만큼 나지는  않았고 그저 담담하게 
있는 듯 마는 듯했지만 이와 같은 수법으로 미루어 보면 무공은 땅딸보
에 못지않은 것  같았다. 그는 은자를 밀어 그  패 자국이 난 대부분의 
곳을 가려 버렸다.
위소보가 흘끗 보니 이미 한  쌍의 천패와 지패, 그리고 인패를 한쪽에 
나열한 것이 보였다. 그 시골  농사꾼이 몰래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었다. 그 땅딸보는 이백 냥의 은자를 천문(天門)에다 걸고 말했다.

[주사위를 던지시오. 주사위를 던져!]

그는 이서화와 늙은 거지에게 말했다.

[돈을 거시오. 왜 이리 우물쭈물하오?]

이서화는 웃었다.

[노형이 이토록 성질이 급하시니 그대들 두 사람이 노름을 하시구려.]

땅딸보는 말했다.

[매우 좋소.]

그는 고개를 돌리고 늙은 거지에게 물었다.

[그대는 돈을 걸겠소. 걸지 않겠소?]

늙은 거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걸지 않겠소. 별십이 별구를 이기는 패구는 할 줄 모르오.]

땅딸보는 화를 내며 물었다.

[그대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이오?]

[나는 나 자신이 모른다고 했지, 그대가 잘못했다고는 말하지 않았소.]

땅딸보는 화가 났는지 상소리를 했다.

[제기랄, 모두 좋은 것들이 아니군.  이봐, 너 꼬마는 이곳에서 잔소리
만 했지 도박은 할 줄 모르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전주를 돕도록 하지요. 이분  형님께서는 저와 한패가 되어서 전
주를 하시는 것이 어떻소?]

그는 품속에서 여덟 개의 작은 금덩이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그 빛
이 찬란한 것이  적어도 천 냥은 나갈 것  같았다. 시골 농사꾼은 말했
다.

[좋소. 소형제는 복이 많고 명이 긴 사람이니 반드시 이길 게요.]

땅딸보는 노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언제나 진다는 것이오?]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가 지는 것이 두렵다면 돈을 적게 걸면 되오.]

땅딸보는 크게 노해서 말했다.

[다시 이백 냥을 보태야지.]

그는 다시 두 개의 원보를 걸었다. 시골 농사꾼은 말했다.

[소형제는 손재주가  좋을 것  같으니 그대가 주사위를  던지도록 하시
지.]
[좋소.]

위소보는 주사위를 손에 들고 가늠해 보았는데 순간 그는 납을 섞은 것
임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
(이 도박장의 주사위도 속임수를 쓰도록 만들었구나.]

그는 주사위 던지는  것을 오랫동안 연습을 하지 않아  수에 있어 약간 
생소해지지 않았을까 두려워했는데 납을 넣은 주사위를 들자 대뜸 자신
이 생겼다. 그는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천지신명과 도박신과  보살님께서는 가장 신령하시죠.  주사위의 소귀
(小鬼)는 원보를 들고 문 안으로 들어오너라. 모두 죽어라!]

입으로 호통을 내지르며 손가락을 빙글 돌려 주사위를 던졌다. 칠 점이 
나왔다. 천문에 건 사람이 첫 번째 패를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위소보
는 이미 탁자 위에 찍혀 있는  자국을 보았는지라 땅딸보가 쥔 것이 한 
장의 사륙과 한 장의 호두(虎頭)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니까 한 점
빡에 되지 않은 셈이지만 이쪽에서는 한 쌍의지폐를 가진 셈이었다. 그
는 시골 농사꾼에게 말했다.

[노형, 나는 주사위를 던질 테니  그대는 패를 보시오. 이기고 지는 것
은 천명에 달렸소.]

그 시골 농사꾼은 패를 들고 만져 보더니 합쳐서 탁자 위에 놓았다. 땅
딸보는 얏, 하는 소리를 내더니 다시 한 장의 사륙을 뒤집어 놓고 말했
다.

[십 점이니 매우 좋소.]

그는 다시 얏, 소리를 내더니 한 장의 호두를 뒤짚어놓고 말했다.

[일이삼사오륙칠팔구십 십일, 십일 점이군요. 매우 좋아.]

그는 손을 뻗쳐 다른 패를 뒤집고 말했다.

[일이삼사, 모두 넉 점이군. 나는  십일 점이고 그대는 넉 점이니 내가 
이겼소.]

위소보와 그 시골 농사꾼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땅딸보는 말했다.

[내놓으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점수가 많으면 이기고  점수가 적으면 무조건 지는  것이고, 천공, 지
공, 한 쌍인지, 한 쌍이 아닌지를 따질 필요도 없다는 것이오?]

땅딸보는 말했다.

[설마 하니 점수가 많은 것이 점수가 적은 것에게 진단 말이오? 그대의 
넉 점으로 나의 십일 점을 이기겠다는 것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매우 좋소. 그런 방법을 택합시다.]

위소보는 네 개의 조그만 금덩어리를 내놓으며 말했다.

[한 덩어리의 황금이 은자 백 냥에 해당된다고 합시다. 그대는 다시 돈
을 거시오.]

땅딸보는 크게 흐뭇해 했다.

[사백 냥을 걸지. 너무 많이 걸면 상대방이 겁을 낼 테니까.]

위소보는 탁자 위에  난 패 자국을 보고 주사위를  던져 오 점을 냈다. 
전주가 먼저 패를 던졌다. 그것은 한 쌍의 천패였다. 땅딸보는 한 장의 
장삼(長三)과 한 장의 판등(板橙)을 가졌다. 두 장의 패를 합한다 하더
라도 한 장의 천패만큼 점수가  많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땅딸보는 입
으로 중얼중얼 욕을 하면서 졌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다시 사백 냥의 은자를 걸었다. 세 번 패를 나누어 가지고 도박을 
하자, 땅딸보는 깨끗이 패했으며 한 푼의 은자도 남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변했는데 마치  피로 만들어진 공 같았다. 두 개
의 짧고 통통한  손으로 몸을 이리 만지고 저리  만졌으나 걸만한 것을 
찾아낼 수 없었다. 갑자기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조제현을 들어올
리며 말했다.

[이 녀석은  어쨌든간에 몇 백 냥은  되겠지. 내가 이  자를 걸기로 하
지.]

그는 조제현을 탁자 모서리에  내려놓았다. 조제현은 혈도를 짚혀 있어
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第80章. 남편 위소보를 죽이려는 못된 아가


늙은 거지가 말했다.

[잠깐, 이 몇 명의 어전시위는  불초가 잡은 것이오. 노형이 함부로 가
져가 도박을 해도 된단 말이오?]

땅딸보는 말했다.

[빌립시다.]

늙은 거지가 말했다.

[지게 되면 어떻게 되돌려줄 참이오?]

땅딸보는 말했다.

[지지 않을 것이오.]

늙은 거지가 말했다.

[만약 노형의 재수가 좋지 않아 다시 지게 된다면?]
[걱정 마오. 이곳 유주성 안에는  어전시위들이 적지 않소. 내가 몇 명 
잡아서 그대에게 돌려드리지.]

늙은 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안심했소.]

땅딸보는 재촉했다.

[주사위를 던지시오.]

위소보는 그 시골 농사꾼에게 말했다.

[노형께서는 패를 섞고 세우십시오.]

그 시골 농사꾼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서른두 장의 골패를 탁자 위
에서 한참 동안  섞더니 네모꼴로 나란히 쌓아  올렸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탁자  위에는 새로이 난 패 자국을  발견할 수 없었다. 
패 자국도 그가  암암리에 돋군 내공을 써서 패를  섞는 바람에 깨끗이 
지워지고 오로지 종횡으로 수십 가닥으로  새긴 자국만 남아 다시는 점
수를 알아볼 수 없었다. 만약에 땅딸보가 금이나 은을 걸었다면 위소보
는 염려할 필요도 없었고 이 시골 농사꾼이 땅딸보와 노름을 해서 누가 
이기고 지든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러나  이때 천문에 건 
것은 조제현이니 이번에는 전주 노릇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큰 
패가 어느 쪽에 쌓여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주사위로 농간을 부려도 아
무런 쓸모가 없게 되었다.

[두 사람이 노름을 하는데 패구로 노름을 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차
라리 주사위를 던져서 점수가 크면 이기는 것으로 하지요.]

땅딸보는 동그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는 패구로 노름을 좋아한다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패구를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좋아하게 됐소?]

땅딸보는 대노해서 위소보의 멱살을 붙잡고 들어올리더니 말했다.

[제기랄! 내가 패구를 모른다구?]

위소보가 그에게 잡혀 한차례 흔들리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
가 외쳤다.

[손을 놓으시오. 그러면 안 되오!]

바로 반두타의 음성이었다.
그 땅딸보는 오른손으로 위소보를 높이.허공에 쳐들더니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어, 자네가 어떻게 왔지. 어째서 안 된다는 거지?]

이때 육고헌의 음성이 들렸다.

[그분....위....위 대인은 크게 내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죄를 지어서는 
안 되네. 빨리 손을 놓게나.]

땅딸보는 기뻐서 말했다.

[이 자가....이  자가....위....위....제기랄! 위소보란  말이지? 하하
하, 정말 잘되었군.  정말 잘되었어. 나는 그렇지  않아도 이자를 찾고 
있었는데, 하하하, 이번에야 찾게 되었군.]

그는 몸을 돌리고 문 밖으로 걸어나가려 했다. 오른손에 여전히 위소보
를 들고  있었다. 반두타와 육고헌은 일제히  그를 막아섰다. 육고헌이 
말했다.

[수두타, 그대는 이미 위 대인의  내력을 알면서 어째서 이토록 무례한 
행동을 하지? 빨리 내려놓게.]

땅딸보는 말했다.

[설사 교주가 친히 온다 해도 나는 놓지 않겠다. 해약을 가지고 온다면 
몰라도.]

반두타는 말했다.

[터무니없는 짓을 빨리 그만두지 못하오? 그대는 표....그 알약을 먹지
도 않았는데 해약을 무엇에 쓴다는 것이오?]

[흥, 자네가 무얼 안다고 그래? 빨리 비켜.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대에
게 어떤 짓을 할지 모르네.]

위소보는 몸이 허공에  떠 있었으나 세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이 땅딸보가 바로 반두타의 사형인 수두타였구나. 그러니 이토록 
살이 찌고 난쟁이 똥자루처럼 키가 작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구나.)
그 날 자녕궁에서 살코기로 빚은 공 같은 괴물이 가짜 태후의 이부자리 
안에 숨어 있다가  알몸으로 그녀를 안고 궁중에서  달아난 바 있었다. 
위소보는 나중에  반두타와 육고헌에게 물어 보고  그가 반두타의 사형 
수두타인 것을 알았었다.  그날 그가 너무 빨리  도망쳐 버렸기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따라서 그와 반나절 동안 노름을 하면서
도 그를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다시 생각했다.
(반두타는 과거에 자기와  수두타 두 사람이 교주의  명을 받고 해외로 
나가 일을 처리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기간 안으로 돌아올 수 없어 
표태역근환의 독성이 퍼져 반두타는 키가  크고 비쩍 마르게 되고 수두
타는 오히려 땅딸보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 두 사람은 해약을 먹었지
만 원래의 몸매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 땅딸보는 해약을 
또 달라고 해서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아,
그렇군. 가짜 태후 늙은 갈보가 먹은 표태역근환의 독성이 아직도 풀리
지 않은 상태이다. 이 수두타가  그녀와 한 이부자리에서 잔 것을 보면 
서로 좋아하는 사이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한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표태역근환의 해약을 갖고 싶다면 빨리 나를 내려놓으시오!]

수두타는 표태역근환이라는 말을 듣자  비계살을 부르르 떨면서 위소보
를 내려놓고 왼손을 내밀며 외쳤다.

[내놓아라!]
[그대가 나에게 이토록 무례한 행동을  하는데 흥흥, 방금 그대는 뭐라
고 했소?]

수두타는 몸을 날려 앞으로 다가오더니 왼손을 위소보의 등에 갖다대고 
호통을 질렀다.

[해약을 꺼내라!]

그의 두툼한 손바닥이 누른 곳은 바로 대추혈이었다. 장력을 쏟아 내면 
위소보는 즉시 절명할 것이다. 반두타와 육고헌은 동시에 외쳤다.

[안 되오!]

그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수두타의  몸에 세 개의 손바닥이 와 닿
았다. 늙은 거지의 손바닥은 그의 머리에 있는 백회혈(百會穴)
에 닿았으며 이서화의 손바닥은  그의 뒤통수에 있는 옥침혈(王枕穴)에 
닿았고, 그 시골 농사꾼의 손바닥은  바로 그의 얼굴을 눌러 식지와 중
지 두 손가락을 그의 좌우  눈꺼풀 위에 갖다대고 있었다. 백회와 옥침 
두 혈도는 요혈이었다.  더욱이 그 시골 농사꾼이  두 손가락에 조금만 
힘을 주면 그의 눈알을 뽑아 낼 수 있었다.
수두타는 너무나 키가 작아서 위소보의 가슴에 올 정도였다. 그래서 세 
사람이 동시에 손을 쓰게 되었을 때 자연히 그의 동그란 머리통에다 손
을 갖다대었고 가슴팍이나 등줄기에 있는 혈도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반두타와 육고헌은 세 사람이 손을  뻗쳐내는 것을 보자 무학의 고수라
는 것을 알았다. 세 사람이  동시에 힘을 내쏟으면 즉시 수두타의 커다
란 머리통은 박살이 나고 말 것 같아 일제히 외쳤다.

[안 되오!]

늙은 거지는 말했다.

[땅딸보, 빨리 손을 놓게.]

수두타는 말했다.

[그가 해약을 준다면 놓겠소.]

늙은 거지는 말했다.

[손을 놓지 않는다면 내가 힘을 내쏟겠네.]

수두타는 말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동귀어진(同歸於盡)할 수밖에....]

별안간 반두타는 오른손을 늙은 거지의 옆구리에 갖다댔고 육고헌은 이
서화의 뒷덜미를 눌렀다.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은 다 효기영의 군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늙은  거지와 이서화는 그들 두 사람이 수
두타와 알고 있는 사이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두 사람이 이토록 무공이 
고강할 줄은 몰랐던 관계로 일 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반두타와 육고
헌 두 사람은 말했다.

[일제히 손을 놓읍시다.]

그 시골 농사꾼은 갑자기 수두타의 얼굴에서 손을 떼더니 두 손을 나누
어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의 등에 갖다대고 말했다.

[두 분이 먼저 손을 놓으시지!]

이서화는 웃었다.

[하하하, 정 말 가소롭군.]

그는 손을 떼더니 번개와 같이 뻗쳐내며 어느덧 그 시골 농사꾼의 머리 
위에 손을 갖다댔다. 이렇게 되자 위소보, 수두타, 육고헌, 반두타, 시
골 농사꾼, 늙은 거지 일곱 명은 서로 제압당하여 몸에 있는 요혈이 다
른 사람의 손바닥 아래에 놓이고 말았다.
삽시간에 일곱 명은 모두 흙으로  빚거나 나무로 조각해 놓은 사람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그 가운데 오로지 위소보만이 제압당했을 뿐 다른 사
람을 제압할 수 없었다. 갑자기 위소보가 외쳤다.

[장강년!]

이때 도박장 한 모퉁이에 웅크리고 있던 장강년이 즉시 대답했다.

[예.]

그는 휙, 하니 허리에 찬 칼을 뽑았다. 수두타는 외쳤다.

[이 개 같은 시위야, 사내라면 이리 다가오너라!]

장강년은 칼을 빼들고 땅딸보가 위소보에게  상처를 입히게 될까 봐 감
히 한 걸음도 다가가지 못했다. 위소보의 몸은 한가운데 에워싸인 상태
였다. 그는 한평생 이번처럼 희한한 일을 겪은 적이 없었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땅딸보, 그대가 일장에 나를 죽이는 것도 상관없
고 그대 자신이 죽는 것도  상관없지만 표태역근환의 해약을 그대는 한
평생 손에 넣지 못하게 될걸?  그렇게 된다면 그대의 늙은 정부는 전신
의 살덩어리가 썩어문드러질 것이고 먼저 머리카락이 모조리 뽑혀 대머
리가 된 후에....]

수두타는 호통쳤다.

[말하지 마라!]
[그녀의 얼굴은 다시 썩어 커다란 구멍이 뻥뻥 뚫리게 될 것이며....]

여기까지 이야기하였을 때 객청 입구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이곳에 있다!]

곧이어 한 사람이 말했다.

[모두 잡아랏!]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객청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하얀 
광채가 번쩍이는 가운데 한 사람이 장검을 손에 들고 사람들 주변을 빙
글빙글 맴돌았다.
사람들온 등, 옆구리, 허리, 어갯죽지 등 각처의 요혈이 즉시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어느덧 혈도를 짚힌  것이었다. 삽시간에 하나 둘 땅바닥
에 맥없이 쓰러졌다.  객청 입구 쪽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외쳤다.

[아가, 그대 역시....]

그는 말을 하다말고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녀 곁에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왼쪽은 이자성이었고 오른쪽에는 바로  그가 한평생 가장 
혐오하는 정극상이 아닌가?
동쪽의 한 사람은  어느덧 장검을 칼집에 꽂고 두  손을 허리에 갖다댄 
채 냉소를 흘리는데 바로 일검무혈 풍석범이었다.
수두타, 늙은 거지, 이서화, 반두타,  육고헌, 시골 농사꾼 등 여섯 명
의 고수들은 서로 경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는데 그때 
갑자기 한 명의 고수가 와서 힘들이지 않고 사람들의 혈도를 모조리 짚
어 버렸고 장강년도 일검에 혈도를 짚히고 말았던 것이다.
수두타는 땅바닥에 주저앉았으나 앉아 있는  키는 서 있을 때와 비교해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그는 노해 소리쳤다.

[너는 무엇인데 감히 나의 양관혈(陽關穴)과 신당혈(神堂穴)을 짚는 것
이냐?]

풍석범은 냉소했다.

[그대는 무공이 그럴싸하군. 자기가 어느 혈도를 짚혔는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수두타는 노해 외쳤다.

[나의 혈도를 풀어 주어 그대와  한바탕 싸우도록 해주시오. 이와 같이 
암습을 가한다면 제기랄....어찌 영웅호걸이라 할 수 있소?]

풍석범은 웃었다.

[그대가 영웅호걸인가? 제기랄....땅바닥에 쓰러져서 꼼짝도 못하는 영
웅호걸이 다 있나?]

수두타는 노해 말했다.

[나는  땅바닥에 앉아  있는 것이지  쓰러져 있는  것은  아니야! 제기
랄....너는 눈깔도 없냐?]

풍석범은 왼발을 들어 그의  어깻죽지를 걷어찼다. 수두타는 벌렁 뒤로 
자빠졌다. 그러나 그의 엉덩이에  비계살이 유난히 많았고 전신의 무게 
중심은 바로 그 엉덩이였다. 뒤로 벌렁 쓰러지게 되자 즉시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나 앉았다. 정극상은 껄걸 웃었다.

[아가 누이, 저것 보시오. 저 오뚝이는 꽤 볼만하군!]

아가는 미소지었다.

[정말 재미있네요.]

정극상은 말했다.

[그대가 저 꼬마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끝내  소원을 풀게 되었
소. 우리는 이제 그를 잡아 천천히 요리해야 하나, 아니면 일검으로 찔
러 죽여야 하나?]

위소보는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꼬마라면 나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설마 하니 아가가 나를 죽이겠다
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죽을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
아가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나는 저 사람을  보기만 해도 화가 나요. 일검으로  죽여 버리는 것이 
깨끗하겠어요.]

그녀는 휙, 하니 검을 뽑아들고 위소보 앞으로 다가왔다. 수두타, 반두
타, 육고헌, 늙은 거지, 이서화, 장강년 여섯 사람은 일제히 외쳤다.

[죽여선 안돼!]

위소보는 말했다.

[사저,나는....]

아가는 노해 외쳤다.

[나는 이미 그대의  사저가 아니에요. 이 작은  귀신, 그대는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서 나를 해치고 나를 욕보이려고 했겠다?]

그녀는 냅다 검을 들어 그의  가슴을 찔렀다. 사람들은 일제히 놀라 비
명을 질렀다. 그런데 갑자기 장검이 륑겨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
는 몸에 보의를 입었기 때문에 검이 찔러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아가가 
흠칫 놀랄 때 정극상이 외쳤다.

[그의 눈을 찌르시오.]
[맞아요!]

그녀는 검을 들어 다시 찌르려고 했다.
이때 한 모퉁이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달려나와 위소보를 자기 몸으로 
덮었다. 일검은 그 사람의 어깻죽지를  찔렀다. 그 사람은 위소보를 안
고 데구르르 한  모퉁이로 굴러갔다. 그는 위소보의  몸에 지니고 있는 
비수를 뽑아들었다. 이 사람 역시  효기영 군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솜씨가 민첩하고 체구가 왜소했는데 얼굴은 흙으로 더럽혀져 있어 똑똑
히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위소보를 대신해서 일검을  몸으로 받는 것을 보고 하나
같이 생각했다.
(이 사람은 꽤나 충성스럽군!)

풍석범은 장검을 뽑아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는 별안간 장검을 떨쳐
내며 수십 송이의 검화를 뿌려냈다.
별안간 쨍,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풍석범의 손에 들린 장검은 
두 토막이 나고  말았다. 그 효기영 군사의  어껫죽지에서 피가 샘솟듯 
흘러나왔다. 원래 그는 위소보의 비수로 상대방의 손에 들린 장검을 잘
라 버린 것이었다. 만약 비수가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물건이 아니었
다면 아마 지금쯤 그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풍석범은 안색이 시퍼래지더니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잘라진 검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위소보는 외쳤다.

[하하하, 일검무혈 풍석범, 그대는 나의 부하인 한 군졸을 찔러 이토록 
많은 피를 흘리게 했으니 그대의 별호를 고쳐 불러야겠소. 마땅히 반검
유혈(半劍有血) 풍석범이라 해야 되겠구려?]

그 효기영의 군사는 왼손으로 어깻죽지의 상처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위
소보의 가슴과 등에 있는 혈도를  한차례 어루만져 그의 봉해졌던 혈도
를 풀어 주었다.
반두타와 수두타,  육고헌, 이서화 등은 서로  견제하고 있다가 갑자기 
암습을 당하는 바람에 혈도를 찔렸으므로 마음속으로 불만을 느끼고 있
었다. 그러던 중 위소보가 그와  같이 통쾌한 말을 해주자 모두들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그 늙은 거지는 큰소리로 말했다.

[반검유혈 풍석범이라! 매우 좋다, 매우 좋아. 천하에서 몰염치한 자로
서는 귀하가 둘째일 것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그가 어째서 두 번째인지 가르침을 받고 싶군요.]
[오삼계에 비하면 이 반검유혈이 약간 뒤떨어지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
오.]

여러 사람은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이서화는 말했다.

[내가 볼 때 백지 한 장 차이밖에 되지 않는 것 같구려.]

풍석범은 자기의 무공에 대해서  매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
이 이토록 비웃는  것을 보자 그만 울화가 치밀어  전신을 부르르 떨었
다. 이때 다시 검을 바꾸어  그 효기영의 군사를 공격한다면 물론 그를 
해치기는 쉽겠지만 자기의 신분과 명성을 생각해야 했다. 그는 그 효기
영의 군사를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너의 이름은 뭐냐? 오늘은 네  목숨을 빼앗지 않겠다. 다음에 나의 손
에 걸리면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을 당하도록 해주마.]
[나는....나는....]

그 사람의 음성은 매우  간드러지고 부드러웠다. 위소보는 놀라고 기뻐
서 말했다.

[아, 그대는 쌍아였군! 나의 보배 쌍아여....]

그는 팔을 뻗쳐 그녀의 머리에 씌워진 모자를 벗겼다. 그 순간 길고 탐
스러운 머리채가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위소보는 왼손으로 그녀의 허
리를 껴안으며 말했다.

[그녀는 나의 시녀요. 이봐, 반검유혈  풍석범, 그대는 나의 어린 시녀
도 이겨내지 못했는데 무슨 큰소리를 치는 것이오?]

풍석범은 극도로 분노하여 왼발로 객청의 노름판에 사용하던 탁자를 차 
버렸다. 그 바람에 탁자 위의  한 무더기 은자와 원보는 물론이고 모서
리에 얹혀  있던 조제현도 덩달아 허공으로  솟아올라 천장에 부딪치고 
말았다. 은자와 골패가 사방으로  날아오르더니 수두타 등의 머리와 몸
에 우수수 떨어졌다. 사람들은 다투어 욕을 했다. 풍석범은 더 아무 말
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걸어나갔다.

[비켜!]

그는 두 손으로 밀어내었다. 두 사람은 손을 들어 그의 공격을 막았다. 
순간 세 사람은 동시에 신음소리를 냈다. 두 사람은 뒤로 몇 걸음 밀려
나가다가 벽에 무겁게 부딪혔다. 풍석범은 몸을 비틀 거리다가 깊이 숨
을 들이마시고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 두 사람은 왁, 하니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냈다. 원래 그들은 풍제
중과 현정 도인이었다. 위소보는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풍제중을 부
축하고 현정 도인에게 물었다.

[도장, 괜 찮습니 까?]

현정은 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괜찮소. 위....괜찮소이다. 위....위 대인, 별일 없으신가요?]
[아직 괜찮은 편이오.]

그는 고개를 돌려 풍제중을  바라보았다. 풍제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억
지로 웃어 보였다. 그의 무공은 현정 도인보다 훨씬 고강한 셈이었으나 
조금 전 일장을 맞받게 되었을  때 풍석범의 오른손과 부딪쳤기 때문에 
그가 받은 장력은 현정 도인보다 심하여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이서화
는 말했다.

[위 형제, 그대의 효기영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 적지 않구려.]

원래 풍제중과 현정 도인이 입고 있는 것 역시 효기영 군사의 복장이었
다. 위소보는 말했다.

[부끄럽소이다, 부끄러워.]

이때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전노본, 서천천, 마언초 세 사
람이 걸어들어왔다. 아가는 위소보의  부하가 점점 많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이자성과  정극상에게 도망치자는 눈빛을  보냈다. 이때 이자성은 
위소보의 앞으로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선장으로 힘껏 땅바닥을 찍으
며 날카롭게 외쳤다.

[사내대장부는 은원이 분명해야 한다. 그날  네 사부는 나를 죽이지 않
았으니 오늘 나 역시 너의  목숨을 살려준다. 이제부터 네가 다시 나의 
딸을 넘보거나 한 마디의 말이라도  건넨다면 너의 몸을 짓이겨 버리겠
다.]

위소보는 화가 치밀어올라 말했다.

[사내대장부의 한마디는  중천금이라고 했소. 그날  삼성암에서 그대와 
그대의 정부 진원원은 아가를  나의 처로 주겠다고 약속하지않았소? 그
런데 시치미를 뗄 생각이오?  그대는 나보고 마누라를 한번 바라보지도 
못하고 말도 한 마디 건네지 못하게  하는데 천하에 이와 같은 장인 어
른이 어디 있소?]

아가는 화가 치밀어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버지, 우리  가요. 그 녀석의 터무니없는  소리에 상관하지 말아요. 
개 입에서 상아가 돋아나지 않는 법이니 무슨 좋은 말이 나오겠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좋아, 그대는 끝내 그를  아버지로 인정하는구먼. 부모의 명령을 그대
는 듣겠소, 듣지 않겠소?]

이자성은 대노해서 선장을 쳐들고 날카롭게 호통쳤다.

[이 개잡종, 아가리 닥치지 못하겠느냐?]

전노본과 서천천은 동시에 달려들어 칼로 일제히 이자성의 등을 내리쳤
다. 이자성은 획, 하니 선장을 들더니 창,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자루의 
강철 칼을 밀어냈다. 마언초는 어느새 칼을 뽑아들고 위소보의 앞을 가
로막고 호통을 질렀다.

[이자성, 곤명성 안에서 그대 부녀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 누구냐? 배은
망덕하고 의리를 저버리는 소인배야, 정말 염치가 없구나.]

이자성은 과거에 천하를 석권한 적이  있었고 나라를 세우고 황제의 칭
호까지 들었었다. 마언초가 그의  이름을 들먹이자 대청의 늙은 거지와 
수두타 등은 모두 놀라 소리를 내질렀다. 이서화는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당신이 바로  이자성이오? 당신이 아직  죽지 않았단 말이오? 
좋아, 좋아, 좋아!]

그 말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이자성은 그를 한번 노려보더니 말
했다.

[왜 그러느냐? 그대는 누구지?]
[나는 너의 살을 뜯어먹고 너의  가죽을 벗겨서 이불을 삼아 잠을 자고 
싶을 정도로 너를 증오하는 사람이다.  나는 네가 이미 죽은 줄 알았는
데 하늘이 나에게 보내주셨구나. 정말 잘되었다.]

이자성은 냉소했다.

[흥, 나는 파리 목숨처럼 사람을  죽여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죽
여 원한을 갚으려고 했지만 나는  밀쩡하게 살아 있지 않느냐? 네가 원
한을 갚기란 수월한 노릇이 아닐 것이다.]

아가는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나직이 말했다.

[아버지, 우리 가요.]

이자성은 선장을 들어 땅바닥을 한번 치더니 몸을 돌려 대문을 나섰다. 
아가와 정극상도 따라나갔다. 이서화는 외쳤다.

[이자성, 내일 이 시각에  이곳에서 너를 기다리겠다. 네가 영웅호걸이
라면 이리 와서  나와 일대일로 싸워 사생결단을  내도록 하자! 그만한 
용기가 있느냐?]

이자성은 고개를 돌리고 그를 한번  바라보더니 얼굴 가득 멸시의 빛을 
띠며 말했다.

[내가 천하를 주름잡을  때 네 녀석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지도 않았
다. 내가 영웅호걸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자격은 네게 없다.]

그는 선장으로 땅을 치더니  걸어나갔다. 사람들온 서로 쳐다보며 침묵
을 지켰다.
이자성은 사람을 파리 목숨처럼 죽였으며 세상 사람들은 그를 칭찬하기
보다는 비판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는 한때는 천하를 소유했던 인물이
었다. 그는 이미 늙었으나 여전히  위풍이 당당했다. 대청에 있는 사람
들은 무공이 약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강호에서 실력을 쌓은 사람들이었
으나 그의 시선을  받자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이 치솟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위소보는 욕을 했다.

[빌어먹을, 분명히 자기 딸을 나의  마누라로 주겠다고 허락해 놓고 이
제 와서 잡아떼기야? 나는  당신을 개도적이라고 했으면 했지 영웅이라
고는 하지 않겠다.]

그는 쌍아를 향해 물었다.

[쌍아, 여기엔 어떻게 왔지? 정말 공교롭게 나타나 나를 구해주었구나.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의 마누라는 남편을 모살하거나 최소한 눈을 찔러 
멀게 했을 거야.]
[저는 줄곧 상공의 곁을 따르고  있었어요. 다만 상공이 몰랐을 뿐이에
요.]

위소보는 크게 의아했다.

[줄곧 내 곁에 있었다고?]

수두타는 외쳤다.

[이봐, 빨리 나의 혈도를 풀어 주고 해약을 가져와. 그렇지 않을 때는, 
흥, 흥....나는 즉시 너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말겠다.]

별안간 대청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위소보의 부하들은 키가 작
고 뚱뚱한 녀석이 혈도가 봉해져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주제에 입으
로 위협하는 말을 하는 걸  보자 웃음을 참지 못했던 것이다. 수두타는 
노해 외쳤다.

[당신들은 왜 웃소? 뭐가 우습소?  나중에 나의 혈도가 풀어졌을 때 그
가 나에게 해약을 주지 않는다면  내가 그의 머리통을 박살내지 않는지 
두고 보면 알거요.]

전노본은 칼을 들고 웃으면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지금 내가 그대의 머리에 세  번 칼질을 하면, 제에미! 노형의 머리에 
꽃이 피겠소, 안피겠소?]

수두타는 노해 부르짖었다.

[물을 필요도 없다. 꽃이 피겠지 뭐.]

전노본은 웃었다.

[그대의 혈도가 풀어지기  전에 나는 먼저 그대의  머리통을 박살 내겠
소. 그러면 나중에 그대의 혈도가 풀어지게 되어도 우리 주인의 머리를 
박살내지 못할 것이 아니겠소?]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다시 확,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수두타는 노해 
외쳤다.

[나의 혈도는 그대가 짚은 것이  아니니 그대가 남의 공에 편승하여 나
의 머리통을 박살낸다면 영웅이라고 할 수 없지.]
[나는 본래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칼을 쳐들었다. 반두타는 외 쳤다.

[위....위 대인, 저의 사형이 위엄을  거슬린 점을 아무쪼록 용서해 주
십시오. 속하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사형, 빨리 사죄하시오. 위대인이 
그대의 윗사람인 것을 모른단 말이오?]

수두타는 말했다.

[그가 나에게 해약을 준다면  사과는 물론이고 큰절이라도 하겠으며 그
의 소나 말이  될 각오가 되어 있네. 하지만  해약을 주지 않으면 그의 
머리통을 쳐서 박살내겠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늙은 갈보의 무엇이 좋길래  저 사람은 그녀를 저토록 돌보려고 하
는 것일까?)
그가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 갑자기  그 시골 농사꾼이 두 손을 한 번 
떨치더니 사람들 틈에서 걸어나와 말했다.

[여러분, 실례하겠소.]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덟 명은  풍석범에게 혈도를 짚혔다. 
위소보는 쌍아에 의해 혈도가 풀렸으나  나머지 일곱 사람은 움직일 수
가 없었다. 풍석범이 내력을 검의 끝에 주입시켜 혈도 안으로 밀어넣는 
수법은 무척 무서운 것이었고 무공이  제아무리 높은 사람도 한두 시진 
동안은 행동할 수  없었다. 이 시골 농사꾼 차림을  한 사람은 조금 전 
패구를 섞을 때 패가 탁자에 틀어박히도록 해서 자국을 내어 이미 고강
한 내공을 드러낸 바 있지만 이 짧은 시간에 스스로 혈도를 풀 수 있었
으니 실로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는 신발을 질질 끌며 걸어나갔다. 위
소보는 전노본에게 말했다.

[우리 형제들의 혈도를 풀어 주시오.  이분....이 선생 역시 우리 편이
외다.]

그는 이서화를 손가락질했다. 전노본은 응답했다.

[예.]

그는 칼을 꽂고 이서화의 혈도를  풀어 주려고 했다. 그러자 늙은 거지
가 갑자기 말했다.

[명복청반(明復淸反), 모지부천(母地父天).]

전노본은 아, 했다.
서천천이 달려와 그 늙은 거지의  혈도를 몇 번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
의 앞에서 두  손으로 엄지손가락을 그의 얼굴  쪽으로 구부려 보였다. 
천지회의 형제들은 사람 수가  많아 서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천지회에 
가입한 사람들은 천부지모, 반청복명이라는 여덟 글자를 회원의 암호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외부 사람이 옆에 있고 기밀을 누설할 수 없을 때
는 그 여덟 글자를 거꾸로  말했다. 외부 사람들은 갑자기 들으면 어리
둥절해지게 마련이었다.  서천천이 그 늙은  거지에게 손가락을 구부린 
것은 절을 한 셈으로 이것 역시 외부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었다.
전노본과 서천천 두 사람은 곧이어  이서화, 반두타, 육고헌 세 사람의 
혈도도 풀어 주었다. 수두타 한 사람만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호통을 내
질렀다.

[사제, 빨리 나의 혈도를 풀어 주지  않고 뭐해? 제기랄! 무엇을 또 기
다린단 말이야?]

반두타는 말했다.

[혈도를 풀어 주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위 대인에게 무례한 행동을 해
서는 안 되오.]

수두타는 노해 외쳤다.

[그가 해약을 내놓지 않는 것이 탈이지  뭐! 그가 나의 반감을 산 것이
고 내가 그에게 죄를 지은 것은 아니야. 그가 해약을 주면 나에게 사과
를 한 셈이라고 할 수 있으니 나는 과거의 일을 따지지 않겠다.]
[그렇다면 곤란하오.]

늙은 거지가 호통을 내질렀다.

[땅딸보가 저토록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으니, 위  형제가 해약을 주지 
않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해약을 준다고 해도 나는 다시 빼앗
을 수밖에 없다.]

그는 오른손의 손가락을 쳐들어 한  줄기의 세찬 지풍을 수두타에게 내
쏘았다. 곧이어 다시  두 손가락을 찔러 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찍
찍, 하는 소리가 인달아 일어나더니  수두타의 혈도가 대뜸 풀렸다. 별
안간 커다란 살로 빚어진 공 같은 것이 땅바닥에서 퉁겨올라 곧장 위소
보에게 덮쳐들었다. 늙은 거지는 획, 하니 일장을 후려쳤으며 수두타는 
허공에서 몸으로 일 장을 받았는데 그 바람에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
랐다. 그의 무공은 역시 대단했다.  허공에서 아래로 덮쳐들면서 두 손
으로 이번에는 늙은 거지의 머리를내리쳤다.
늙은 거지는 왼발을 쳐들어 그의 허리를 걷어차려고 했다. 수두타는 즉
시 손을 내려쳤다.  장력과 상대방 다리의 힘이  서로 부딪치니 비대한 
몸뚱어리가 다시 날아올랐다. 그의 몸이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은 그야말
로 커다란 가죽  공을 연상시켰다. 늙은 거지는  손으로 후려치고 발로 
찼으나 시종 땅딸보의 몸을 적중시킬 수가 없었다. 땅딸보의 모양이 미
련해 보였고 우스꽝스러웠으나 손  씀씀이는 지극히 민활하였으며 발을 
땅에 닿지도  않았는데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서화와 천지회의 
군웅들은 견문이 넓었다. 그러나  수두타처럼 야릇한 수법은 한평생 보
지 못했다. 반두타와 육고헌은 온 정신을 쏟아 늙은 거지가 손 쓰는 것
을 바라보았다.
늙은 거지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세차고 날카로웠다. 수두타의 이백여 
근이 넘는 몸뚱이는 늙은 거지의 힘을 빌어 허공에서 춤추 듯 너울거리
며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싸움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권
풍과 장력은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을 밀어내 모두 다 등을 벽에 기대야 
했다. 별안간 수두타가 호통소리를 내지르며 오정개산(五丁開山)이라는 
초식을 펼쳐 왼손을 먼저 뻗쳐내고  오른손 주먹을 곧이어 아래로 뻗쳐 
늙은 거지의 머리를 후려쳤다. 늙은 거지는 호통을 질렀다.

[좋다!]

그는 몸을 웅크리더니  천왕탁탑(天王托塔)의 초식으로 마주 쳐올렸다. 
두 줄기의 거대한 힘이 서로  맞부딪치자 수두타는 불끈 위로 솟아올라 
등이 대들보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 순간 우지끈, 뚝, 하는 소리가  나면서 지붕 위의 기왓장과 흙이 우
수수 쏟아졌다. 대청은 흙먼지로 가득  찼다. 이때 수두타가 재차 덮쳐 
내려왔다. 늙은 거지는 몸을 움츠려  피했다. 수두타는 허공을 덮친 격
이 되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심하게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늙은 거지가 껄껄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끝나기 전에 수두타는다시 몸
을 퉁겨 신속하게 커다란 머리통을  앞으로 내밀고 늙은 거지의 가슴팍
을 향해 부딪혀 왔다. 그가 이와 같이 부딪쳐 오는 기세는 실로 흉악하
기 짝이 없었다. 늙은 거지는  몸을 옆으로 돌려 피하는 동시에 오른손
을 그의 볼기짝에 갖다대고 힘을 쏟아내며 일성을 대갈했다.

[얏!]

수두타는 늙은 거지의 내공에  얻어맞자 급격히 날아갔다. 머리통이 벽
에 가 부딪히면 즉시 두개골이 깨어져 즉사할 것만 같았다.



第81章. 강물 위의 혈투


사람들이 놀라 부르짖는 가운데 반두타가  옆에 서 있는 도박장의 사환
을 잡고 냅다 던졌다. 그 사환의 몸이 먼저 날아와 벽을 막아서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수두타의  머리통은 그의 아랫배에 부딪혔다. 그 
커다란 머리통은 그 사환의 뱃가죽을 뚫고 들어가 벽에 박혔다. 수두타
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머리통은 그 사환의 피와 살덩이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마구 훔쳐내며 외쳤다.

[제기랄! 이게 뭐야?]

늙은 거지는 호통쳤다.

[그래도 싸우겠느냐?]

수두타는 말했다.

[과거 나의 몸이 우람했을 적에 너는 나의 적수가 되지 못했을게다.]
[그럼 지금은?]
[지금은 내가 이길 수 없다. 그만 두자. 그만 둬.]

그는 별안간 몸을  솟구쳐 벽 쪽으로 맹렬히 부딪혀  갔다. 우르릉 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더니 그는 그 사환의 시체
와 더불어 그 구멍을 빠져나갔다. 반두타는 외 쳤다.

[사형, 사형!]

그는 그 구멍을 통해 달려나갔다. 육고헌은 말했다.

[위 대인, 제가 가 보고 오겠습니다.]

그는 다리를 앞으로 머리를 뒤로 하고 몸을 수평으로 날려 그 구멍으로 
날아갔다. 그러면서 허공에서 두  손을 포권하고 위소보에게 읍을 했는
데 그 자세가 멋들어져 사람들은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서천천과 전노
본은 생각했다.
(위 향주는 어디서 저런 두  명의 부하를 거두어들였을까? 무공이 대단
히 뛰어나구나. 우리들보다 열 배는 고강할 것 같다.)
이서화는 두 손을 맞잡고 말했다.

[이만 실례하오.]

그는 대문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위소보는 늙은 거지에게 두 손을 
맞잡아 예를 표했다.

[형씨, 저 사람들을 어쩔 셈이오?]

그는 조제현을 손가락질했다. 늙은 거지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실례가 많았소.]

그는 조제현  일행을 잡아 일으키는 사이에  시위들의 혈도를 삽시간에 
풀어 주었다. 위소보는 인사했다.

[고맙소.]

그는 장강년과 조제현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분부했다. 서천천은 쌍아를 
힐끔거리더니 물었다.

[이 소저는 위 향주의 심복입니까?]
[그렇소. 우리들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든 속일 필요가 없소.]
[이 소저는 나이는  어리지만 그 충성심과 용기는  다른 사람이 따르기 
어려울 것이오. 조금 전에 그녀가 자기의 목숨을 걸고 주인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위 형제의 눈동자는 보존할 수 없었을 것이오.]

위소보는 쌍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맞습니다. 그녀가 저를 구했어요.]

쌍아는 두 사람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칭찬하자 그만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감히 사람들을 쳐다보지 못했다. 서
천천은 한걸음 나서며 늙은 거지에게 말했다.

[오인분개 일수시  (五人分開一首詩), 신상홍영  무인지 (身上洪英無人
知).]

그러자 늙은 거지는 말했다.

[자차전득중형제(自此專得衆兄弟  ),   후래상인단원시  (後來相認團圓
時).]

위소보가 처음 천지회에 가입했을 때 천지회의 형제들이 서로를 알아보
는 갖가지 암호를  그에게 전수해 주어서 그는  암기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구절은 무척 속되었다.  천지회의 형제들은 태반이 강호의 사내들
이라 위소보처럼 글을  한 자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암호가 
심오하면 형제들이 어찌 기억할 수 있겠는가?
이때 늙온 거지가 서로 알아보는 시구를 읊자 위소보는 이렇게 읊었다.

[초진홍문결의형 (初進供門結義兄), 당천명서표진심(當天明誓表眞心).]

그러자 늙은 거지가 읊었다.

[송백이지분좌우(松柏二枝分左右), 중절홍화결의형(中節洪花結義兄).]

위소보가 말했다.

[충의당전형제재(忠義堂前兄弟在), 성중점장백만병(城中點將百萬兵).]

늙은 거지가 이어 말했다.

[복덕사전래서원 (福德祠前來誓願), 반청복명아홍영(反淸復明我洪英).]

위소보는 말했다.

[형제 위소보는 지금 청목당의 향주로 있습니다. 형씨의 존성대명은 어
떻게 되며 어느 당에 속해 있고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지요?]

늙은 거지는 말했다.

[형제는 오륙기(吳六奇)라고  하며 지금  홍순당 홍기향주(紅旗香主)로 
있소이다. 오늘 위 향주와 여러 형제들과 만나게 되니 매우 기쁘오.]

사람들은 그가 바로 천하에서 이름이 알려진 철걸(鐵乞) 오륙기라는 말
을 듣자 놀라고 기뻐 일제히  공손하게 예를 갖추었다. 서천천 등은 각
자 이름을 밝혔다. 오륙기는 벼슬이 광동성의 제독이었으며 한 성의 대
군을 장악하고 있는 큰 장군이었다. 그는 사윤황의 권고를 받아 반청복
명의 뜻을 품었고 암암리에 천지회에 가담하여 흥기향주의 직책을 맞은 
것이었다.
천지회에서는 홍(洪)  자를 무척 중시했다. 명  태조의 연호가 홍무(洪
武)였고 홍 자는 한(漢)에서 토(土)  자가 없어진 글자이기도 했다. 그
러니 한나라  사람이 땅을 잃고 오랑캐가  금수강산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천지회의  형제들은 스스로 홍영(洪英)이라 일컬으며 
명나라를 잃지 않고 옛땅을 되찾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홍기 향
주는 다른 향주들과 직책이 달랐으며  본 당의 형제들을 몸소 이끌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지위는 정직향주(正職香主) 이상이었으며 천지회에
서는 매우  존귀하고 숭고한 직분으로서  총타주 다음이었다. 오륙기가 
천지회에서 흥기 향주의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은 매우 은밀하여 서천천, 
전노본 등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륙기는 위소보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
했다.

[위 향주, 그대가 운남으로 가서  대매국노 오삼계를 상대할 때 총타주
께서는 명령을 내려 우리 광동,  광서, 운남, 귀주 사성의 형제들이 기
회를 보아 접응하라고 했소. 나는  명을 받들어 도움이 될만한 열 명의 
형제들을 운남으로 보내  몰래 도와 드리도록 했소.  그런데 위 향주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시고 청목당의 뭇형제들 재간이  뛰어나 모든 일에 
있어서 위험에서 벗어나 편안해졌기 때문에 우리 홍순당에서는 어떤 도
움을 드리지도 못했소. 그런데 며칠  전에 들으니 위 향주와 뭇 형제들
이 광서성으로  온다기에 형제는 변장을 하고  달려와 여러분을 모시게 
된 것이외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그랬었군요. 저의 은사 어르신께서 그토록 돌보아 주시고 오 향주께서 
그토록 호의를 베풀어 주시니 저는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  향주의 대명은 사해(四海)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원래 우리 회의  형제셨군요. 이것이야말로 정말 '지화자 좋
구나'입니다.]

기실 오륙기의 이름을 그는 오늘  처음 들었다. 서천천 등이 그 이름을 
듣고 매우 존경하는  태도를 보이고 기쁜 빛을 띠는  것을 보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몇 마디 해본 것에 불과했다. 오륙기는 웃었다.

[위 형제가 대간신 오배를 찔러 죽인 사실이야말로 사해에 모르는 사람
이 없는 일이지요. 모두들 한 집안의 형제이니 겸손의 말은 더 할 필요
가 없소. 내가 위 형제의  부하 시위들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
에 이렇게 그대롤 이곳으로 모실  수 있었소. 이 점에 대해서 양해하시
구려.]

위소보는 웃었다.

[제기랄! 그 녀석들은 정신이  나갔어요. 돈을 잃고 억지를 부렸다면서
요? 오 형이 그들에게 쓴맛을  보여 주고 버릇을 가르쳐 놓으셨으니 앞
으로는 도박을 하더라도 얌전하게 할  것이니 저는 오히려 고맙게 생각
합니다.]

오륙기는 껄껄 웃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 앉았다. 오륙기가 운남의 
일에 대해서 묻자 위소보는  간단히 대답했다. 오륙기는 이미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려는 증거를 잡았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 끊임없이 칭
찬의 말을 했다.

[그 간적이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킨다면 반드시 광동성으로 들어
오게 될 것이오.  이번에 그와 한바탕 크게 싸워  봐야지. 그리하여 그 
간적을 쳐부순  후에 우리들은 다시 군사를  돌이켜 북쪽으로 쳐들어가 
북경을 공략해야 할 것이오.]

말을 하는 동안 가후당의 향주  마초홍이 전갈을 받고 달려와 오륙기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 전 도박장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논하게 되자 오륙기는 풍석범이  음흉하고 비열한 자이니 
반드시 그와 한바탕 싸워야  되겠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풍석범이 북경
에서 진근남을 죽이려고 했던 일을 이야기했다. 오륙기는 손을 뻗쳐 노
름판의 탁자를 힘껏 내리치며 말했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그를 죽였어야 했소. 첫째로 관부자의 원한을 갚고 
둘째로 총타주의 심복대환을 없애고 셋째로  오늘 그가 암습을 한 복수
를 했어야 했소!]

그는 한평생 적수를 만난 적이 드물었는데 이번에 풍석범에게 제압당해
서 꼼짝할 수 없자 실로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았다. 마초흥은 말했다.

[이자성은 승정 천자를 해쳐 죽게  한 대역적입니다. 그자가 유주에 왔
으니 우리는 가볍게 놓아줄 수 없습니다.]

천지회는 명나라에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숭정은 이자성의 핍박을 받
아 매산에서 목매달아 죽은 것이 아닌가? 천지회는 자연히 이자성을 적
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대만의 정씨  역시 대명나라의 깃발을  세우고 있는데도 정극상이라는 
녀석은 이자성과 한 패거리가 되었소.  그 역시 역적이 된 셈이니 우리
들은 이왕  내친 김에 그마저 해치우고  총타주의 심복대환을 없애도록 
합시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하지 못했다. 천지회는 대만 정씨
의 부하인 풍석범을 죽이는 것은 상관  없지만 정 둘째 공자는 죽일 수
가 없었다. 더군다나 위소보가  정극상을 죽이려는 것은 공무를 핑계로 
사사로운 감정을 풀겠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륙기는 화제를 
돌려 반두타와 수두타 등의  내력을 물었다. 위소보는 애매하게 대답했
다.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은  강호의 친구들이며 자기가 그들 두 사
람에게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에 그들  두 사람이 자기에게 충성을 다한
다고 말했다.
오륙기는 스스로 혈도를 푼 그 시골 농사꾼에 대해서 매우 탄복하는 모
양이었다.

[형제는 한평생 남에게  승복한 사람이 없는데 그  노형의 무공은 정말 
고명하기 이를 데  없더구먼! 이 형제는 스스로  그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소. 무림에서  그와 같이 훌륭한 무공을 쌓은 사
람은 얼마 되지  않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
소.]

사람들은 한동안 의논하여 이자성,  풍석범 등이 머무는 곳을 알아내기
로 했다. 이어서 풍제중, 현정 도인, 쌍아 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 주
었다. 위소보는 쌍아에게 어떻게 자기 뒤를 따르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위소보와 헤어진 후  곳곳을 찾아다녔었다. 나중에 청량사의 화
상들로부터 그가 이미 북경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북경으로 찾아갔
다.
그때 위소보는 남쪽으로 내려간 후였다. 그녀는 곧 뒤를 쫓아가게 되었
으며 하북성을 나서기 전에 뒤쫓을  수 있었다. 그녀는 마음 속으로 또 
다른 걱정거리가 없지 않았다.  위소보가 오랑캐의 큰 벼슬아치가 되었
으니 자기가 시중을 들지 못하게  될까 봐 염려한 것이었다. 그녀는 감
히 앞에 나서서 자기가 왔노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효기영 군사의 옷을 
훔쳐 입고 효기영의 군사들 속에 몸을 숨겨 줄곧 운남성, 귀주성, 광서
성까지 따라왔다. 그러다가 아가가  위소보의 눈을 찌르려고 했을 때야 
나타나 구출한  것이었다. 위소보는 너무나  고마워서 그녀를 얼싸안고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며 웃었다.

[이런 바보! 내가 어째서 그대의  시중을 받지 않겠어? 나는 한평생 그
대의 시중을 받을 거야. 그대  스스로 나의 시중 들기를 싫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지 않는 한 말이야.]

쌍아는 기쁘고 부끄러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나는....나는 시집을 가지 않아요.]

그날 밤 마초흥은 유주의 어느  기녀원에 크게 연희석을 차리고 오륙기
를 대접했다. 술을 마시고 있을  때 회의 형제가 달려와 이자성 일행의 
종적을 알아냈다고 보고했다. 이자성  등은 유강(柳江)의 뗏목 위에 설
치된 조그만 집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목재로  멧목을 만들어 유강을 
경유하면 동쪽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따라서 유강에는 뗏목들이 부지
기수였고 뗏목 위에 만들어진 집들  속에 처박혀 몸을 감추면 알아내기 
힘들었다. 만약 천지회의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좀처럼 알아낼 수 없었
을 것이다. 오륙기는 탁자를 치며 일어섰다.

[우리 빨리 갑시다. 술은 나중에 마십시다!]

마초홍은 말했다.

[아직 이르니 천천히 술을 마시지요. 이 형제가 먼저 안배를 하여 그들
이 떠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나가서 부하들에게 일을 처리하도록 분부했다.
이경이 되었을  때 마초흥은 뭇사람들을 데리고  유강의 강가로 나아가 
두 척의 조그만 배를 빌려 탔다. 세 향주는 한 배에 탔다.
그 조그만 배의 사공은 배를 저어  강물에 띄웠으며 그 뒤로 칠팔 척의 
조그만 배들이 멀밀리서 뒤따랐다. 강에서 약 칠팔장 정도 나아가자 조
그만 배는 멈추었고 한 명의 사공이 머리를 선실 안으로 디밀며 나직이 
말했다.

[세 분 향주님께 말씀드립니다. 그 사람들은 맞은편 뗏목에 있습니다.]

위소보는 밖을 내다보았다. 뗏목 위에 한 칸의 조그만 집이 있고 그 조
그만 집에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변 위에는 동쪽에 한 척, 서
쪽에 한 척, 조그만 배들이 적어도  삼사십 척 떠 있었다. 마초흥은 나
직이 말했다.

[그 조그만 배들은 모두 우리 것이외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한 척의 조그만  배에 열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면 삼사백 명은 될 
것이 아닌가? 이자성과 풍석범이  제아무리 무섭다 해도 도망치긴 힘들
겠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강언덕을 따라 달리며 외쳤다.

[이자성....이자성....머리를  움츠리고  어디에  숨어  있느냐!  이자
성....나설 용기가 없느냐? 이자성....]

바로 이서화의 음성이었다. 뗏목 위의 조그만 집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호통쳤다.

[누가 거기서 시끄럽게 굴고 있느냐?]

강 언덕에 있는 검은 그림자가  몸을 날리더니 뗏목 위에 내려섰다. 손
에 들린 장검은 차가운 달빛을  받아 싸늘한 광채를 내쏟았다. 뗏목 위
의 조그만 집안에서  한 사람이 머리를 숙이고  기어나왔다. 바로 손에 
선장을 들고 있는 이자성인데 그는 냉랭히 말했다.

[삶에 염증을 느꼈느냐? 이  늙은이에게 저승으로 보내주십사 부탁하러 
왔느냐?]
[오늘 너의 목숨을 빼앗으면 죽어도  영광이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
느냐?]
[나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을 죽였는데 어떻게 일일이 이름을 알 수 있
겠느냐? 덤벼라.]

덤벼라, 하는  한 마디는 천둥소리처럼 강물  위로 멀리멀리 퍼져갔다. 
호통소리와 더불어 선장을 휘둘러  이서화를 공격해 갔다. 이서화는 몸
을 기울여 피하고 몸을 날려 허공에서 검을 아래로 찔렀다.
이자성은 선장을 허공으로 찔러 갔다. 이서화는 허공에서 미처 피할 수
가 없어 왼발로 선장 한쪽 끝을  살짝 딛는 순간에 반탄력을 빌어 재주
를 넘고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질 때  한 발이 뗏목 위에 걸쳐졌다. 오
륙기는 말했다.

[가까이 다가가 봅시다.]

마초흥은 뱃머리에 있는 한 명의 사공에게 말했다.

[명령을 내리게.]

그 사공은 말했다.

[예.]

그는 선실에서 붉은 등불을 꺼내더니 돛대 위에 걸었다. 그러자 사방의 
조그만 배에서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잇따라 외쳤다.

[정말 묘하군, 정말 묘해!]

그는 무공이 형편없어 일대일로 싸우는  데 대해서는 별다른 홍미를 느
끼지 못했다. 지금 수백 명이나  되는 무리들이 상대방 두 사람을 포위 
공격하는 것을 보자 이거야말로 다 이긴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이와 같
은 싸움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쪽 사람들은 모두 
다 자맥질에 정통하니 뗏목 아래로  기어들어가 뗏목을 묶은 끈을 잘라 
놓아 뗏목이 흩어지게 만든다면  상대방은 영락없이 자기편 사람들에게 
잡힐 것이 아닌가?
그는 뗏목이 흩어진다는 점을 생각하자 재빨리 말했다.

[마형, 저 조그만 집 안에  있는 소저는 이 형제의 미혼처입니다. 그녀
가 물에 빠져 죽으면 곤란합니다.]

마초흥은 웃었다.

[위 형제는 안심하시오. 나는 이미 안배를 해놓았소. 물 속으로 들어간 
형제 가운데 십여 명은 전문적으로 그대의 부인을 구하기로 되어 있소. 
이 십  명의 형제들은 자맥질에 능통한  사람들이며 살아있는 고기라도 
잡아올릴 수 있는 실력이니 결코 어떤 사고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잘되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극상을 물 속에 빠뜨려서 죽게 한다면 가장 좋겠다.)
그러나 정극상을 구하지 말라는 명렁을 입밖에 낼 수는 없었다. 조그만 
배는 천천히 다가갔다. 뗏목 위에서는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륙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자성온 내공을 연마하지 않아 팔 힘으로 지탱하고 있구려. 삼십초가 
되기 전에 이서화의 검 아래 죽게 될 것이오. 일대의 효웅이 이 유강에
서 목숨을 잃다니, 뜻밖이군!]

위소보는 두 사람이 싸우는  상황을 똑똑히 살펴볼.수는 없었고 이자성
이 뒤로 물러나는 것만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조그만 집 안에서 아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정 공자, 빨리 풍 사부께 청하시어 저의 아버님을 도와 주세요.]

정극상온 말했다.

[좋소. 사부님, 저 녀석을 쫓아보내 주십시오.]

조그만 판자문이 열리면서 풍석범이  검을 들고 나섰다. 이자성은 이미 
상대방에게 밀려 뗏목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었다. 다시 한 걸음만 물
러서면 강물 속으로 떨어질 듯했다. 풍석범은 호통을 질렀다.

[이 녀석아! 나는 너의 등에 있는 영대혈을 찌르겠다!]

그는 장검을 빠르게 찔렀다. 이서화가  막 검을 돌려 막아 내려고 하는 
순간 별안간 그 조그만 집의 지붕 위에서 누군가 호통을 쳤다.

[이 녀석아! 나는 너의 등에 있는 영대혈을 찌르겠다!]

하얀 광채가 번뜩이더니 한 사람이  비조처럼 덮쳐들어 손에 들고 있던 
무기로 풍석범의 등을 질풍같이 찔렀다.  그 조그만 지붕 위에 달리 사
람이 잠복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풍석범은 깜짝 놀랐
다. 풍석범은 이서화를 공격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상대방의 무기를 떨
쳐냈다. 창, 하는 소리가 나며 웅웅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일었다. 나
타난 사람의 손에 들린 것은 한 자루의 칼이었다. 두 자루의 무기가 부
딪치자 두 사람은 각기 한 걸음씩 물러났다. 풍석범은 호통을 쳤다.

[너는 누구냐?]
[나는 네가 반검유혈 풍석범인 것을 알아보는데 너는 나를 모른단 말이
냐?]

그 사람은 무명 옷을 입고 머리를 하얀 베로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허
리에는 푸른 베로 만든 넓적한  띠를 두르고 발에는 짚신을 신었다. 바
로 낮에 도박장에서 스스로 혈도를 풀었던 그 시골 농사꾼이었다. 그는 
풍석범의 암산을 당한  데 대해 속으로 분통이 터져  그 일검의 치욕을 
갚으려고 하는 듯했다. 풍석범은 싸늘히 말했다.

[그대는 이름도 없는 잡배가 아닌 듯한데 어째서 머리를 움츠리고 남의 
눈을 피하려고 하는가?]
[무명지배라 해도 반검유혈보다는 나은 편이지.]

풍석범은 대노해서 검을 찔렀다. 그 시골 농사꾼은 피하지도 않고 막지
도 않았다. 오히려  칼을 들어 풍석범의 머리를 쪼개  갔다. 그의 칼은 
나중에 뻗쳐낸 젓이지만 먼저  목표물에 도달할 정도로 빨랐다. 풍석범
의 장검 끝운 아직도 상대방과 한  자 정도나 남았는데 적의 무기는 이
미 그의 정수리에 닿으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그는 급히 왼쪽으
로 몸을 날렸다. 그 시골 농사꾼은 즉시 칼을 옆으로 휘둘러 그의 허리
를 공격해 갔다.  풍석범은 즉시 검을 들어 막았다.  그 시골 농사꾼의 
손에 들린 칼은 갑자기 날렵하기 이를  데 없이 방향을 바꾸어 그의 왼
쪽 어깨를 내리쳐  갔다. 풍석범은 몸을 옆으로  기울여 피하고 일검을 
반격했다. 그 시골 농사꾼은 여전히  막지 않고 칼을 휘둘러 그의 손목
을 공격해 들어갔다.
두 사람이 삼초를 주고받는 동안에 그 시골 농사꾼은 삼초를 공격한 셈
이었다. 그의 얼굴  모습은 어느 정도 바보같은  면이 있었으나 도빕의 
날카롭고 매서운 점은 무림에서  보기 드물었다. 오륙기와 마초홍은 모
두 희한한 노릇이라고 여겼다. 풍석범은 갑자기 외쳤다.

[잠깐!]

그는 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혹시 귀하는 백승(剖券)....]

그 시골 농사꾼은 호통을 내질렀다.

[싸우려면 싸우는 것이지 말이 많다!]

말과 함께 몸을  날려 앞으로 다가오더니 쉭쉭쉭, 세  번 칼질을 했다. 
풍석범은 말을 할 겨를이 없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상대방의 공격
을 해소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풍석범은 검법에 깊은 조예를 쌓고 있어서 정신을 차리고 막자 그 시골 
농사꾼은 우세한 국면을 차지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칼과 검은 갑자
기 빨라졌다가 갑자기 느려지곤 했으며, 때로는 잇따라 수십 번이나 쩽
그랑거리미 부딪쳤고, 때로는 빙글빙글 몸을 돌리는 데 그럴 때면 춤추
듯 허공에서 칼과 검이 난무했으나 서로 부딪치지 않았다.

이자성과 이서화는 여전히 싸움을  하고 있었다. 정극상과 아가는 무기
를 들고 이자성의 곁에 서  있었는데 기회를 보아 도와 줄 생각이었다. 
이자성은 선장을 휘둘러댔는데 그 기세가 강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서화의 검법이 정묘하기는 했으나  일시 가까이 달겨들지 못했다. 이서
화는 갑자기 손과  발을 한데 움츠리더니 몸을 데굴데굴  굴려 적의 발 
밑으로 다가들었다. 검의 끝을  위로 비스듬히 치켜올려 이자성의 아랫
배를 겨누고 호통을 내질렀다.

[죽어랏!]

이 일초의 와운번(臥雲飜)은 송나라  때 양산박의 호걸인 연청(燕靑)이 
사용하던 절초인데 매우 정교하고 쾌속하여 도저히 방비할 수 없다. 아
가와 정극상이 깜짝  놀랐을 때 이자성은 이미 제압을  당해 구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이자성은 별안간 눈을 부릅뜨고 크게 호통을 내질렀
다. 그 호통소리에 고막이 웅웅거릴 정도였다. 그 호통소리는 그야말로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이서화는  그만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장검
을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  이자성은 왼발을 들어 이서화를 걷어차 뗏
목 위에 넘어 뜨리고 곧이어 선장  끝으로 그의 가슴팍을 눌러 대뜸 이
서화를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자성이 선장을 내리찍기만 하면 이
서화의 늑골이 모조리 부러지고 심장과  폐가 터져버려 살아남을 수 없
을 것이다. 이자성은 호통쳤다.

[네가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나를 죽여라. 부친의 원수를 갚지 못하니 무슨 면목으로 이 세상을 살
아갈 수 있으랴?]

이자성은 길게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좋다.]

그는 두 팔에 불끈 힘을 주어 선장을 내리치려 했다. 이때 맑고 싸늘한 
달빛이 그의 배후에서 흘러나와  이서화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다. 그의 
얼굴은 평화롭기만  했고 미소마저 띄우고 있었는데  전혀 두려운 빛이 
없지 않은가? 이자성은 속으로 흠칫해서 호통을 내질렀다.

[혹시 자네는 하남 사람으로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우리 이씨 가운데 그대와 같이  마음이 좁은 비겁자가 나타난 것이 애
석할 뿐이다.]

이자성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이암(李岩), 이 공자는 그대와 어떤 관계가 있소?]
[당신의 짐작대로일 것이다.]

이자성은 선장을 거두며 물었다.

[그대는 이 형제....형제의 아들인가?]
[아직도 우리 아버님을 형제라고 일컫다니 정말 철면피로군!]

이자성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형제가 후손을 남겼구나. 그대는....그대는 홍 낭자가 낳았겠지?]

이서화는 날카롭게 외쳤다.

[손을 써라! 잔소리가 많구나!]

이자성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내 한평생 지은 잘못 가운데 가장 큰 잘못은 바로 그대의 아버님을 해
친 것이네. 그대가 나를 마음이 좁아 큰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비겁자라
고 욕했는데 맞네, 틀림없는 말이네.  그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하
는 것은 당연하네. 이자성은  한평생 사람을 부지기수로 죽였지만 한번
도 개의치 않았네. 그러나 그대의 아버님을 죽인 것은 내가....내가 진
정으로 가책을 느끼고 있네.]

갑자기 그는 왁, 하니 한 모금의 선혈을 뿜어 냈다.
이서화는 이와 같은 변고가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는 
몸을 벌떡 일으키면서 장검을  집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자성의 허연 
수염은 선혈로 물들어 있지 않은가?
이서화는 말했다.

[그대가 마음속으로 가책을 느낀다면  일검으로 그대를 찔러 죽이는 것
보다 낫소.]

그는 몸을 훌쩍 날려 발로 뗏목  위에 연결된 커다란 밧줄을 연달아 몇 
번 딛더니 언덕  위로 올라가 몇 번 몸을 날린  후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아가는 외쳤다.

[아버지!]

그녀는 이자성의 곁으로 다가가  부축하려 했다. 이자성은 손을 내저으
며 뗏목 옆으로 다가가더니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아가는 놀라 외
쳤다.

[아버님 ..아버님 ....제 발....]

사람들은 강 수면에 아무런 동정이 엿보이지 않은 것을 보고 그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자결한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아연실색했다. 그런데 잠시 
후 이자성은 머리를 강물 위로 내미는 것이 아닌가?
원래 그는  숨을 멈추고 강 밑바닥에서  걸음을 옮겨놓았는데 철선장이 
매우 무거워 몸뚱어리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머리와 어깻죽지가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그는 한걸음 한걸음 언
덕 쪽으로 걸어갔다. 언덕 위로  오르더니 그는 철선장을 질질 끌며 힘
없는 발걸음으로 멀리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아가는 몸을 돌리고 말했다.

[정 공자, 저의 아버님께서....떠나....떠나셨어요.]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와  정극상의 품에 안겼다. 정극상은 왼손으
로 그녀를 안고 오른손으로 가볍게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대의 아버님은 떠났지만 내가 있지 않소?]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별안간  발 아래의 목재가 한 바퀴 구르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외쳤다.

[어이쿠!]

그 순간 둘은 강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천지회의 가후당에서 자맥질에 
정통한 고수들이 강물 속으로 들어가  뗏목을 이어놓은 밧줄을 잘라 버
려 목재들이 흩어졌던 것이다.
풍석범은 급히 몸을 날려 커다란  통나무 위에 가볍게 내려섰다. 그 시
골 농사꾼도 뒤쫓아가며 머리 위에서부터  획, 하니 한 칼로 내리쳤다. 
풍석범은 검을 들어 막았다. 두  사람은 그 커다란 통나무 위에서 계속 
싸웠다. 이번 싸움은  조금 전 뗏목 위에서 싸우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어려웠다. 통나무는 끊임없이  물 위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 발을 
딛고 제대로 서 있기가 어려웠고  힘을 빌릴 곳도 없었다. 그런데도 풍
석범과 그 시골 농사꾼은 똑바로 서서 칼과 검을 휘두르고 있는데 조금
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둥근 원목이 강물을  따라 아래로 점점 
흘러내려갔다. 오륙기는 갑자기 외쳤다.

[아, 이제야 생각나는군.  백승도왕(百勝刀王) 호일지(胡逸之)로군. 그
는....그는....그는 어쩌다가 저 모양이  되었지? 빨리 뒤쫓으시오. 빨
리 배를 저어야겠소.]

마초홍은 의아하여 물었다.

[호일지라구요? 그는 의모가 준수하여 미도왕(美刃王)이라고 하지 않습
니까? 그 사람은 준수하여  과거에 무림의 제일 미남자라고 일컬어졌는
데 놀랍게도 멍청한 시골 늙은이 행세를 하고 있다니.]

위소보는 연달아 물었다.

[저의 마누라를 구했나요?]

오륙기는 얼굴에 불쾌한 빛을  띄우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백승도왕 호일지가 강적을  만나 물 위에서 목숨을  걸고 싸움을 하고 
있는데 즉시 달려가 도와 주지는 못할망정 여자만 생각하고 있으니, 색
을 중시하고 친구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로다. 너는 영웅이라고 할 수 
없다.)
마초흥은 외쳤다.

[영을 내리게. 좀더 많은 사람들을 보내 반드시 그 소저를 구하도록 하
게.]

홀연 강물 속에서 두 사람이  불쑥 솟아오르면서 물에 흠뻑 젖은아가를 
받쳐들고 외쳤다.

[여자는 잡았습니다.]

곧이어 왼쪽의 한 사람이 정극상을 끌어을리며 말했다.

[남자도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껄껄 웃었다. 위소보는 마음이 놓여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우리 빨리 가서 백승도왕을 도웁시다. 그가 반검유혈과 어떻게 싸우는
지 보도록 합시다.]

교교한 달빛 아래  하얀 광채가 번뜩였다. 두  사람은 여전히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두 사람의 무공은 원래  막상막하였다. 그러나 풍석범은 낮에 풍제중과 
현정 도인 두 사람과 싸웠었다.  풍제중의 반격이 대단하여 그 당시 풍
석범은 이미 가슴 속의 기혈이 유통되지 않는 것을 느꼈는데 지금 한참 
싸우다 보니 오른쪽 가슴이 은근히 아파 오는 것이었다.
백승도왕 호일지의 도법은 초식마다 아슬아슬했고 칼질마다 매서웠으며 
공격만 했지 수비는 하지 않았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이와 같은 수법을 
무공이 평범한 사람이 펼치면 오히려 위험을 초래하기 마련이었으나 호
일지의 도법은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어 공격이 곧 수비였다. 그의 무
공은 본래 정묘하고 기이하며 날카로웠다. 매섭게 몰아세우니 풍석범은 
두려움을 느꼈다.

한 척의 조그만 배가 다가왔다.  뱃머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서 있고 놀
랍게도 낮에 도박장에서  만났던 늙은 거지도 그 안에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호일지가 일성을 대갈하더니 왼쪽으로  한 번 칼질을 하고 오른쪽
으로 두 번 칼질을 하고 곧이어 위로 한 번 아래로 두 번, 잇따라 여섯 
번의 칼질을 해대며 공격해 왔다.



第82章. 정에 미친 늙은이


오륙기는 칭찬의 말을 던졌다.

[훌륭한 도법이다. 훌륭한 검법이다!]

호일지는 다시 칼을 휘둘러 곧장 내리쳤다. 풍석범은 한 걸음 물러나더
니 몸을 뒤로 젖혀 피하고 장검을 흔들어 몸 앞을 방비했다. 이때 그의 
왼발은 굵은 원목의 끝을 밟고 발뒤꿈치는 물 속에 잠겨 조금도 물러설 
수 없었다. 호일지가 다시 세 번 칼을 휘두르자 풍석범은 세 차례나 검
을 휘둘러 막았는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호일지는 일성을 대갈하더니 칼을  들고 곧장 내리쳤다. 풍석범이 몸을 
옆으로 돌려 피하는 순간, 호일지의 칼은 곧장 내리쳐져 팍, 하는 소리
와 함께 커다란 원목을 토막냈다.
풍석범이 선 곳은  바로 커다란 원목의 끝  부분이었다. 커다란 원목이 
잘리자 그는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물 속으로 처박혔다.
호일지는 풍석범을 향해 칼을 던졌다. 풍석범은 물 속에서 몸을 제대로 
피할 수가 없었다. 강철칼이 날아들자  급히 장검을 휘둘렀다. 칼과 검
이 쨍, 하는 소리를 내면서 허공에서 부딪히더니 수없이 불똥을 튀기며 
멀리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풍석범은 물 속으로 그대로 잠수해 들어가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호일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의 자맥질이 저토록 뛰어나니 방금 내가 그와 함께 물 속에 떨
어졌다면 그에게 당했을 것이다.)
오륙기는 낭랑히 말했다.

[백승도왕은 과연 명불허전이구려. 오늘 그와 같은 신기를 대하니 실로 
크게 시야를 넓혔소. 이 배 위로 올라와 함께 한잔하는 것이 어떻소?]

호일지는 말했다.

[그럼 실례하오.]

호일지는 훌쩍 몸을  날려 배 위로 올라왔다.  뱃머리가 약간 내려앉는 
기미만 보였을 뿐 선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위소보는 경신술에 대해 잘 몰라  가만히 있었지만 오륙기와 마초흥 등
은 크게 놀랐다. 오륙기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말했다.

[불초는 오륙기라 하오. 이분은  마초흥 형제이고, 이분은 위소보 형제
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천지회의 향주입니다.]

호일지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오 형, 그대가 천지회에 몸을 담고 있다는 사실은 철저한 비밀이 아니
겠소? 만약에 그 사실이 누설되면 전 가족의 목숨을 보존할 수 없을 것
이오. 오늘 처음 만났는데 놀랍게도  저에게 조금도 숨기지 않으니, 그
와 같이 호방한 기상에는 정말 탄복하지 않을 수 없구려.]

오륙기는 웃었다.

[백승도왕을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소?]

호일지는 크게 기뻐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 몇 년  동안 이 형제는 은거하여 채소를  심으며 강호의 일을 묻지 
않았소. 그런데 오늘 철걸개 오륙기  같은 훌륭한 친구를 사귈 수 있으
니 크나큰 영광이오.]

그는 오륙기의 손을 잡고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마초흥과 위소보
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을 뿐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그가 
정극상의 사부를 패배시키자 탄복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여 말했다.

[호 대협께서 풍석범을 강물 속에 빠뜨렸으니 강물 속의 자라 새끼들이 
그를 물어뜯어 전신을 피투성이로 만들 것입니다. 반검유혈은 그야말로 
무검유혈(無劍有血)이 되겠군요. 하하하!]

호일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위 향주, 그대의 주사위 던지는 재간은 정말 대단했소.]

이 한 마디의 말온 본래  비웃은 것이었다. 그의 무공이 형편없지만 주
사위를 던질 때는 속이는  재주가 뛰어나다고 비웃은 것이었다. 위소보
는 속도 모르고 의기 양양하게 말했다.

[호 대협께서 패를 가르는 잔재간은  더욱 뛰어나더군요. 우리 형제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전주가 되어 그 땅딸보의 적지  않은 은자를 따냈지
요. 호 대협께서 반을 갖고 싶다면 나중에 나눠 드리겠습니다.]
[위 향주가 다음에 전주가 되었을 때 이 형제는 역시 전주를 도와 주도
록 하겠소. 그대와 마주 보고 노름을 하면 반드시 지고 말것이오.]
[좋습니다. 좋은 의견이십니다.]

마초흥은 부하들에게 술잔과 음식을  가져오라 이르고 조그만 배안에서 
술을 마셨다. 호일지는 몇 잔의 술을 마시더니 말했다.

[우리들이 오늘  만났는데 일견여고(一見女做)하니, 형제의  일을 더는 
감출 수 없구려.  말하기 부끄럽지만 이 형제는  이십여 년간 강호에서 
물러나 곤명성 교외에서 은거해 왔는데 그것은 한 여자 때문이었소.]

위소보는 말했다.

[진원원의 노래에 영웅은 다정하다는 한 마디가 있었지요. 영웅은 자연
히 정이 많은 법이 아니겠습니까?]

오륙기는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애는  언제나 터무니없는 소리만 지껄이는구나.  저 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저럴까?)
뜻밖에도 호일지는 위소보의 말에 감개무량해진 듯 한숨을 내쉬고 천천
히 말했다.

['영웅은 어쩔 수 없이 다정해지는구나' 하고 읊은 오매촌의 이 시구는 
정말 훌륭하오. 그러나 오삼계는 결코 영웅이라 할 수 없소. 그는 그저 
호색한에 불과할 뿐이오.]

그는 나직이 원원곡 가운데 두 시구를 흥얼거렸다.

[여인이 어찌 큰일에 상관할 수 있겠는가? 영웅은 어찌할 수 없이 다정
해지는구나.]

이어서 그는 위소보에개 말했다.

[위 향주, 그날 그대는 삼성암에서 진  소저가 그와 같은 한 수의 노래
를 부르는 것을 들었으니 그야말로  귀로 듣는 복이 많다고 하겠소. 나
는 그녀의 곁에서 이십삼 년 동안  살아왔지만 그 곡의 일부분을 세 번 
들었을 뿐이며 최후의 한 구절은 그대 덕택에 들을수 있었소.]

위소보는 의아하여 말했다.

[그대는 그녀의 곁에서 이십삼  년이나 지냈다구요? 그대....그대 역시 
진원원의 정....정인인가요?]

호일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그녀....흐흐흐, 그녀는  한 번도 나를  쳐다본 적이 없다오. 
나는 삼성암에서 채소를  가꾸고 땅을 쓸며 나무를  하고 물을 길었소. 
그녀는 내가 시골 농사꾼인 줄로만 알고 있소.]

오륙기와 마초흥은 아연하여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사람은 반
드시 진원원의 미색에 빠져서 기꺼이  그녀의 하인 노릇을 한 모양이었
다. 이 사람의 무공의 고강함과 명망의 두터움은 과거 무림에서 손꼽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기꺼이 천한 노릇을 했으니 실로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호일지를 살펴보니  그는 백발이 성성했으며 수염도 검은 
것이 적고 허연 것이 많은 데다가  온 얼굴은 주름살로 뒤덮혀 있고 피
부는 거무튀튀하여 어느 모로  보나 준수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이상하
다는 듯 말했다.

[호 대협, 그대의 무공이 이토록  뛰어난데 어째서 대뜸 진원원을 안고 
떠나지 않았소?]

호일지는 그 말을 듣더니 얼굴에 노기를 띄우고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
을 내뿜었다. 위소보는 그만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놓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술잔이 떨어져  깨지면서 몸에 술이 
튀었다. 호일지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어느 날 나는 사천(四川)의 성도(成都)에서 우연히 진 소저를 한번 보
게 되었소. 아! 그것은 전생의 업보였소. 이후부터 혼백을 빼앗겨 정신
을 차릴 수가 없게 되었소. 위  향주, 호 아무개는 정말 못나고 아무런 
큰뜻도 지니지 못한 사내요. 과거  진 소저가 평서왕부에 계실 때 나는 
왕부에서 원예사 노릇을 하며 그녀를  위해 꽃을 심고 잡초를 뽑아주곤 
했소. 그녀가  삼성암으로 옮기자 나도 따라가서  일꾼이 되어 주었소. 
나는 다른 뜻이 없었소. 그저  아침 저녁으로 그녀를 보기만 하면 만족
할 수 있었소. 어찌....어찌 조금이라도 가인(佳人)에게 당돌한 행동을 
할 수 있었겠소?]

위소보는 물었다.

[그대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사모하면서 이십여  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그녀는 시종 그 사실을 몰랐단 말씀입니까?]

호일지는 쓰디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나의 신분이 노출될까 봐 평소 하루에 세 마디 말도 하지 않았으
며 그녀의 앞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소. 이십삼 년이라는 세월 동
안 그녀와 겨우 서른아흡 마디의 말을 나누었을 뿐이며, 그녀는 나에게 
쉰다섯 마디를 건넸을 뿐이오.]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는 꽤나 잘 기억하는군요.]

오륙기와 마초흥은 호일지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오륙기는 위소보가 쓸
데없는 말을 하여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얼른 말했다.

[호형, 우리들은 모두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겠소? 어떤 사람들은 
무공을 배우는 데 미치다시피 하고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기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도박을 좋아하오. 진원원은  천하제일의 미녀인데 그대가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주위를 맴돌기만 할  뿐 그녀와 순결한 관계를 그
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니 실로 어려운 노릇이며 존경심이 솟아나는군요. 
형제가 당돌하나마 한마디 권하고 싶은데 받아들일 수 있겠소?]

호일지는 말했다.

[오형은 말씀하시오.]

[진원원으로 말하면 과거에는 아름답기 이를 데 없었소. 그러나 지금은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소. 생각컨대....]

호일지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더 들으려 하지 않고 말했다.

[오 형, 사람마다 각기 품은  뜻이 다르오. 형제는 커다란 멍청이외다. 
그대가 만약 나를 우습게 여긴다면 우리 이대로 헤어지도록 합시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위소보는 말했다.

[잠깐, 호 노형, 진원원의 아름다움은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물며 그야말
로 하늘의 선녀와 같습니다. 오  향주와 마 향주가 그녀를 보지 못했기
에 망정이지 만나 보았다면 십중팔구  기꺼이 그녀를 위해 채소를 심고 
물을 긷게 되었을 것이니 우리 천지회에서는 두 분의 향주를 잃었을 것
입니다.]

오륙기는 속으로 욕을 했다.
(제기랄! 저 꼬마 녀석이 제멋대로 씨부렁거리는구나!)
위소보는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친히 보았지요. 그의 딸  아가는 그녀의 반밖에 아름답지 않습니
다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미 작정을 하고 있답니다. 즉, 천갈래 만갈
래 찢어지고 몸이 가루로 변한다  해도 반드시 그녀를 마누라로 삼겠다
고요. 어제 도박장에서 그녀는 나의  눈을 찌르려 했습니다. 그 악랄한 
수법에도 저는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이것은 노형이 친히 목격한 것
이니 결코 거짓이 아니외다.]

호일지는 그 말을 듣자 대뜸  동명상련의 감회가 크게 끓어올라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보기에 아가라는 여인은 위 형제에 대해서 정말 유수무정(流水無
情)하더구려.]
[유수무정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뼈에 사무치도록 나
를 미워합니다. 제기랄! 호 노형,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저 아무
렇게나 상소리를 한 것이지 그녀의  어머니인 진원원을 욕한 것은 아닙
니다. 그 아가는 나의 가슴에 일검을  찔렀지 않습니까? 그 후 다시 나
의 눈을 찌르려고 했습니다. 만약에 내 운수가 좋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이미 남편을  모살한 꼴이 되었을  겁니다. 그녀는....그....그....흥! 
대만의 그 정 공자에게 빠져서 한마음 한뜻으로 그와 부부가 되려 하는
데 공교롭게도 그 정가는 강물 속에 빠졌는데도 아직 죽지 않았군요.]

호일지는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소형제, 인간세상에 정이라는 물건은  억지로 할 수가 없다오. 그대가 
아가를 만나 사저  사제의 명분이 생긴 것만  해도 만족해야지, 반드시 
부부가 되려고 욕심을 내면 안되오. 그대는 이미 그녀를 많이 보아왔으
며 그녀와 많은 말을 주고받았을 것이오. 그녀가 그대를 욕하고 때리고 
칼로 찌른 것은 바로 그녀의  마음속에 그대라는 사람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니 그야말로 하늘처럼 커다란 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은 옳습니다. 그녀가 만약에  나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이 세상
에 나와 같은 사람이 없는  듯이 행동했다면 더욱 비참할 것입니다. 나
는 차라리 그녀가  나를 때리고 욕하고 칼로  나를 죽이기를 바랍니다. 
그저 내가 그녀에게 죽지만 않으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호일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설사 그녀에게 죽는다 해도 매우  좋은 힐이오. 그녀가 그대를 죽인다
면 아무래도 죄책감을 느껴 밤중에 꿈을 꿀 때 어쩌면 꿈속에서 그대를 
만나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소? 낮에도 할 일이 없을 때는 그
대를 생각할 것이오. 이것이야말로  마음속에 그대라는 존재가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소?]

오륙기와 마초홍은  그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연해지고 말았다. 
한결같이 이 사람이 정말 정 때문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하는 생각
이 들었다. 만약에 조금 전  그와 풍석범이 싸워 무공이 출신입화의 경
지에 도달한 것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정말 그가 바로 지난날 사해에 명
성을 떨치고 풍류를 알고 준수한  미도왕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
다. 위소보는 그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 노형, 그대의 말은 정말 더없이 지당합니다. 나는 예전에는 생각하
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 이상 반드시 그녀
를 마누라로 맞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그대처럼 참을성이 없습니다. 아
가가 정말 나에게 채소를 심고 물을 길며 그녀를 한평생 모시라고 한다
면 나는 물론  해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  정 공자가 그녀 곁에 
있다면 나는 반드시 그의 가슴에 흰  칼을 찔러 붉은 칼이 나오도록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호일지는 말했다.

[소형제, 그대가 그 여자를 좋아한다면  그녀를 위해야지 결코 그대 자
신을 위하면 안 된다오. 만약에  그녀가 정 공자에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면 그대는 백방으로 꾀를 짜서  그녀를 도와 소원을풀어 주도록 해
야 할 것이오. 만약 그 누가  정 공자를 해치려고 한다면 그대는 그 사
람을 위해서 전력을  다해 정 공자를 보호해야 할  것이며 설사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거야말로 큰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겠소? 밑천을 날리는 짓은 절대
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호 노형, 이 형제는 그대에 대해 매우 탄복하
고 있으며 그대를 사부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대의 도법을 배우고
자 하는 것이 아니고 그대의  진원원에 대한 일편단심의 순정을 배우고 
싶소이다. 저는 그대에 비해 이 한 가지 재간이 훨씬 떨어진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호일지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사부로 모실 필요까지는 없고, 우리 형제 두 사람이 서로 격려하는 것
은 상관 없을 것이네.]

오륙기와 마초흥은 여자를 안중에  두지 않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자는 
기녀원에 얼마든지 있고 그자 허연  은자를 쓰기만 하면 얼마든지 데리
고 놀 수  있다고 여겼다. 아무래도 이 두  녀석은 실성한 게 틀림없어 
보였다. 한편 호일지와  위소보는 한 사람은 늙고  한 사람은 어린데도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의기투합하여 늦게 만난  것을 한탄할 지경이었
다.
위소보는 아가를 처로 맞이하리라 내심으로  작정한 지 이미 오래라 어
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달라붙을 결심이었으므로 호일지의 일편
단심과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진원원에 대해서 정
이 깊었고 한 사람은 진원원의 딸을 반드시 손에 넣기로 결심하고 있었
는데 두 사람의 마음 씀씀이는 전혀 달랐으나 공통점이 없지 않아 있었
다. 더군다나 호일지는 그와 같은  깊은 정을 마음속에 숨겨놓은 지 이
십삼 년이나 되었지만 한 번도  남에게 토로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제 한껏 하소연하게 되었는 바  놀랍게도 옆에서 다른 사람이 맞장구를 
쳐 주니 마음속의 통쾌함은 그야말로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지경이었
다.

마초흥은 호일지와 위소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으
며 점입가경이라 두 사람의 흥취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바라보기만 했
다. 처음에 몇 마디 말은 참고 들을 수 있었으나 갈수록 귀에 거슬리는 
말들뿐이라 오륙기와 함께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위 향주는 어린애이니 사리를 모른다고 치자. 그러나 호일지로 말하면 
늙어 망녕이 들어 남의 귀한 아들을 타락시키고 있구나.)
그들은 참지 못하고 멸시의 빛을 얼굴에 드러냈다. 호일지는 갑자기 말
했다.

[소형제, 그대와 나는 일견여고하네. 이 세상에서 가장 얻기 어려운 것
이 바로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네. 흔히 한 사람의 
지기를 얻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호 아무개는 
많은 사람들을 두루 만나 보았으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
었네. 오늘 이렇게 인연이 있어  그대와 만나게 되었으니 우리 두 사람
이 의형제를 맺는 것이 어떤가?]

위소보는 크게 기뻐 말했다.

[정말 좋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망설였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만약에 장래 그대와 제가  각기 소원대로 그대는 진원원을 맞아들이게 
되고 저는 아가를 맞아들이면 그대는 저의 장인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
겠습니까? 서로 형제로 칭호한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오륙기와 마초흥은 그 말을 듣자 그만  참을 수 없어 껄껄 소리내어 웃
고 말았다. 호일지는 약간 화가 나서 말했다.

[아, 그대는 아직도 진 소저에 대한 나의 뜻을 잘 알지 못하는군. 나는 
한평생 결코 손가락 하나 그녀의  옷깃에 닿지 않도록 할 작정이네. 만
약 거짓이 있을 때는 바로 이 탁자처럼 될 것이네.]

그가 왼손을 뻗치더니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조그만 탁자 한 모퉁이를 
뜯어내 두 손으로 비볐더니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오륙기는 칭찬했다.

[훌륭한 재간이오.]

호일지는 그를 한번 흘겨보더니 속으로 생각했다.
(무공이 뭐가 중요한가? 나의 이 깊은 정이야말로 얻기 어려운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대는 나의 지기가 아니다.)
위소보는 나무를 잡아 가루로 만드는 재간이 없는지라 비수를 뽑아들고 
가볍게 조그만 탁자의 한 모릉이를 잘라서 탁자 위에 놓고 비수로 아무
렇게나 몇 번 잘라 몇 조각을 낸 후에 말했다.

[위소보가 만약에 아가를 마누라로 삼지 못한다면 이 차 탁자의 모퉁이
처럼 남에게 여덟 조각이 나서 죽을 것입니다.]

모두들 그 비수가 그토록 예리한 것을 보고 놀라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호 노형, 그렇다면 저도 한평생 그대의 사위가 되지는 않겠군요. 그렇
다면 우리들은 이제 형제의 의를 맺도록 합시다.]

호일지는 껄껄 웃더니 그의 손을 잡고 뱃머리로 다가가 달을 향해 무릎
을 꿇고 말했다.

[호일지는 오늘 위소보와 형제의 의를 맺게 되었으며 차후로 복이 있으
면 함께 누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함께 맞겠나이다. 만약 이 맹세를 저
버린다면 나로 하여금 강물 속에 빠져 죽게 하주십시오.]

위소보 역시 그와 같은 맹세의 말을  했다. 그러나 최후의 한 마디는 '
나로 하여금 이 유강(柳江) 속에  빠져 죽게 하소서'라는 말로 고쳤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결코 호 노형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문제가 생겨 다시  이 광서성으로 오지 않는 한,  결코 이 유강에 빠져 
죽는 일이 없을 것이다. 다른  강물과 냇물은 맹세 속에 포함되지 않는
다.)
두 사람은 껄껄 웃으며 손을 잡고 선실로 돌아왔는데 그 모습이 지극히 
다정스러웠다. 오륙기와 마초흥은 두 사람을 축하해 주고 네 사람이 잔
을 들어 함께 마셨다. 오륙기는 이 한 쌍의 정에 미친 결의형제가 다시 
진원원과 아가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말했다.

[우리 이만 돌아갑시다.]

호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마 형, 위 형제, 한 가지 부탁이 있소. 그 아가 소저는 내가 곤
명으로 데리고 가야겠소.]

마초흥은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지만 위소보가  깜짝 놀라 왜냐고 
묻자 호일지는 대답했다.

[진 소저가 삼성암에서 그녀의 딸과  서로 만난 그날 밤 그녀는 병들어 
눕게 되었네. 그녀는  '아가, 아가, 너는 어째서 이  에미를 만나 보러 
오지 않느냐?' 하고 중얼거리는가  하면, '아가, 이 에미에게는 너라는 
귀여운 딸 하나밖에 없다. 이  에미는 네가 무척 그립구나.' 나는 차마 
안되어 아가 소저를 뒤따라온 것이라네. 길에서 나는 아가 소저에게 돌
아가 어머니를  모시자고 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로  안 된다는 것이었
네. 억지로 힘을 사용할 수도  없고 해서 암암리에 뒤따르며 그녀를 설
득하여 마음을 돌릴  날이 있기를 기대했지. 이제  그녀는 잡힌 몸이니 
만약 마 향주가 그녀에게 곤명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만나뵐 것이면 놓
아주겠다고 하면 그녀는 그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의다.]

마초흥은 말했다.

[이 일에 대해서 불초는 아무런 이견이 없습니다. 위 향주가 알아서 처
리할 일이지요.]

호일지는 목멘 음성으로 말했다.

[형제, 그녀를 처로 삼고 싶다면  날은 얼마든지 있네. 그러나 만약 진 
소저가 병으로  쓰러져서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는 그녀의 딸을 
만나 보지 못할 것일세. 이거야말로 한평생 한이 되지 않겠는가?]

오륙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영웅 기개가 깡그리  사라지고 없구나. 오삼계의 애첩을 위
해 이토록 정신과 혼백이 빠졌으니  어찌 사내대장부의 기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진원원은 대명나라 강산을  청나라에 넘겨준 원흉 가운데 한 
명이다. 다음에 내가 군사를  이끌고 곤명으로 쳐들어가면 먼저 그녀를 
한칼에 죽여 버려야지.)
위소보는 말했다.

[형님이 그녀를 곤명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형님에게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저는 그녀를 정식으로 매파를 두
고 맞아들였으며 이미  천지신명께 절을 한 바도  있습니다. 중매를 선 
사람은 바로  목왕부의 요두사자 오립신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누라가 
나와 부부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정 공자에게 개가하려 하고 있습
니다. 그녀가 나와  부부가 된다고 응낙해야 그녀를  놓아줄 수 있습니
다.]

오륙기는 더 참을 수 없어  탁자를 힘주어 내려쳤다. 그 바람에술 주전
자와 술잔이 모조리 엎어졌다. 오륙기는 큰소리로 말했다.

[호 노형, 위 형제, 그 나이 어린 아가씨가 어머님을 만나러 가지 않으
려고 하는 것은 크게 불효한 것이오. 그녀가 위 형제와 혼례를 올려 이
미 부부의 명분이 있는데도 정 공자를 따른다는 것은 크게 부정한 것이
오. 이같이 불효하고 부정한 여자를  이 세상에 남겨 두어 어디에 쓰겠
소? 모습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인품이 더럽고 못된 모양이니 나
는 곧 그녀의 목을 잘라버리겠소. 제에미!]

이어서 날카로운 어조로 사공에게 재촉했다.

[저어라. 빨리 저어!]

호일지와 위소보, 마초흥 세 사람은  서로 쳐다보았다. 그가 이처럼 살
기등등하여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것을 보고 노기가 극도에 달한 것을 짐
작할 수 있어  그 누구도 감히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타고 있는 배가 
점점 언덕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오륙기는 외쳤다.

[그 일남일녀는 어디에 있느냐?]

한 척의 조그만 배 위에서 그 누가 대답했다.

[이곳에 묶어 두었습니다.]

오륙기는 그 사공에게  손짓을 했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배는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그 한 척의  조그만 배 쪽으로 저어갔다. 오륙기는 위소보
를 향하여 입을 열었다.

[위 형제, 그대와 나는 천지회의  형제이니 정은 골육과 같소. 이 형은 
그대가 미색에 현혹되어 장래를 망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오늘 
그대를 대신해 일을 결정하려는 것이오.]

위소보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 일은....역시....역시 잘 상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륙기는 날카롭게 외쳤다.

[더 상의할 게 남아 있다는 것이오?]

두 척의 배는 점점 가까워졌다. 위소보는 애간장이 타서 부득이 마초흥
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형, 오형을 좀 말려 주시구려.]

오륙기는 말했다.

[천하에 좋은 여자들이 무척 많소. 그 점, 이 형이 책임지겠소. 그대가 
만족할 만한 신부감을 구해 드리겠소. 하필이면 그같이 천한 년에게 미
련을 둘 것이 무엇이오?]

위소보는 얼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건....이건....]

이때 별안간 휙,  하는 소리가 났다. 한 사람이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맞은편의 뱃머리로 달려갔다. 바로  호일지였다. 그는 선실로 기어들어
가더니 곧이어 모습을 드러냈는데 두 손에는 이미 한 사람이 안겨져 있
었다. 그의 신법은 신속하기 이를 데 없어 즉시 언덕 위로 오르더니 몇 
번 몸을 날리지 않아 이미 수십 장 밖으로 사라졌다. 그의 음성이 멀리
서 들려왔다.

[오형, 마형, 위  형제,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훗날 찾아뵙고 사죄를 
올리겠으며 처분대로 벌을 받겠소.]

말소리는 똑똑히 들려왔다. 오륙기는  분노에 휩싸여 몸을 날려 뒤쫓아
가려고 했다. 그러나 호일지는 이미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
다가 호일지의 멍청한 짓거리를 생각하자  참지 못하고 껄껄 웃고 말았
다. 위소보도 덩달아 손뼉을 치며 웃어댔다.

[참 잘되었다. 잘되었어. 하하하!]

연인이 죽는 것보다는 잠시 헤어져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第83章. 진근남에게 바쳐진 사십이장경

천지회의 형제들이 정극상을 배로 밀어 보내자 위소보는 욕을 했다.

[제기랄 놈아! 너는 천지회의 형제들을 죽이고 천지회의 총타주를 해치
려고 했으니 배를 갈라 오장을  꺼내 살펴보아야 되겠다. 빌어먹을, 너
는 분명히 아가가 내 마누라인  것을 알면서 그녀를 농락했겠다? 이 우
라질 놈의 새끼!]

그는 재빨리 다가가 두 손으로 철썩철썩 정극상에게 네 대의 따귀를 갈
겼다. 정극상은 강물을 잔뜩 마셔  맥이 쭉 빠져 있다가 위소보가 흉악
하게 나오자 정신이 퍼뜩 들어 애걸했다.

[위 대인, 제발 우리 아버님의 체면을 봐서라도 나의 목숨을 살려 주시
오. 이후부터 나는....다시는  아가 소저에게 한 마디  말도 걸지 않겠
소.]

위소보는 말했다.

[만약에 그녀가 민저 그대에게 말을 건다면?]
[그래도 나는 대답하지 않겠소. 그렇지 않으면....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말을 잇지 못하자 위소보가 말했다.

[이 새끼, 개방귀 뀌는 소리 작작해라. 먼저 너의 혓바닥을 잘라아가에
게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그는 비수를 뽑아들고 호통을 내질렀다.

[혀를 썩 내밀지 못할까?]

정극상은 깜짝 놀라 재빨리 말했다.

[나는 결코 그녀와 말하지 않겠소. 만약 한 마디라도 한다면 나는 후레
자식이 될 것이오.]

위소보는 진근남에게 벌을 받을까봐 그를 죽이지는 못하고 엄포를 놓았
다.

[네가 또다시 감히 천지회의  총타주와 형제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고 
또 나의 마누라와 놀아난다면 나는 일검으로 네 놈의 머리통을 푹 찌르
고 말겠다.]

그는 비수를 들어 가볍게 던졌다.  그 비수는 뱃머리로 날아가서 푹 꽂
히는 것이 아닌가?
정극상은 재빨리 말했다.

[하지 않겠소. 하지 않겠소. 다시는 하지 않겠소.]

위소보는 고개를 돌리고 마초흥에게 말했다.

[마형, 이  사람은 가후당에서 잡은 것이니  그대가 알아서 처리하십시
오.]
[국성야께서는 정말 영웅이시오. 그런데  손자가 이토록 못났으니 큰일
이오.]

오륙기는 말했다.

[이 사람이 대만으로 돌아 가면  반드시 총타주를 괴롭힐 것이오. 차라
리 한칼에 두 토막을 내어 영원히 후환을 없애는 것이 좋겠소.]

정극상은 깜짝 놀라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저는 대만으로 돌아가서 아버님께 말씀을 드려 진영화, 
진 선생에게 높은 벼슬을 내리겠소. 커다란 벼슬을 내리도록 하겠소.]

마초흥은 말했다.

[흥, 총타주께서 언제 큰 벼슬을 바라셨던가?]

그는 작은 소리로 오륙기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정 왕야의 공자이니 만약 우리가 그를 죽인다면 총타주께서 
주인을 시해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쓰게 될까봐 두렵군요.]

천지회는 진영화가 정성공의 명을 받들어 창립한 것으로 진영화가 천지
회의 수렁이지만 대만 연평군왕부의 휘하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천지
회의 형제가  연평왕의 아들을 죽인다면 진영화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륙기는 할 수  없이 정극상을 묶은 밧줄을 잘라내고 그를 
번쩍 들어 내던지며 호통을 질렀다.

[꺼져라!]

정극상은 허공으로 훌쩍 날면서  버럭버럭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 나가
떨어지게 된다면 반드시 뒈띠가  부러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볼기
짝이 먼저 땅바닥에 닿으며 풀밭 위에 떨어져 주르르 미끄러졌다. 전신
이 아파 오기는 했으나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그는 재빨리 일어나 황
급히 도망치고 말았다. 오륙기와 위소보는 껄껄 웃었다. 마초흥은 말했
다.

[저 녀석이 조상의 체면을 깎는군.]

오륙기는 물었다.

[저 녀석은 어떻게 본 회의  형제를 살상했으며 진 총타주를 함정에 빠
뜨려 해치려고 했소?]

위소보는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길지요. 우리 언덕으로 올라갑시다.]

그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말했다.

[저쪽에 검은 구름이 잔뚝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비가 내리겠
습니다. 우리는 빨리 언덕으로 올라갑시다.]

이때 한바탕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으로 각자의 옷자락이 펄럭펄럭 
나부꼈다. 오륙기는 말했다.

[이번 풍우는 아무래도 대단할 것 같군. 우리가 배를 강 한복판으로 몰
고 가 커다란 바람과 커다란 빗속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한다면 꽤 재
미있을 것 같구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말했다.

[이 조그만 배는 바람을 이기지  못할 텐데 만약 뒤집힌다면 큰일이 아
닙니까?]

마초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 점은 걱정하실 것 없소.]

그는 사공에게 몇 마디 분부했다. 사공은 뱃머리를 돌려 돛을 달았다.
이때 바람의 기세는 퍽이나 대단했다. 돛배는 바람을 안고 화살처럼 강 
한복판으로 미끄러졌다. 강물은 어느덧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고 조그만 
배는 둥실 떠올랐다가 아래로 내려가곤  했으며 강물이 곧장 선실 안으
로 뿌려지곤 했다.
위소보는 소백룡이라는  벌호를 지니고 있었지만 자맥질도  할 줄 몰랐
다. 그는  나중에는 안색마저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사실  그는 용
(龍)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오륙기는 웃었다.

[위 형제, 나 역시 자맥질을 할 줄 모른다오.]

위소보는 크게 의아하여 말했다.

[헤엄칠 줄 모르신다구요?]
[한 번도 익힌  적이 없소. 나는 물만 보면  머리가 어지럽고 띵해집니
다.]
[그럼....그럼 그대는  어째서 배를 강  한복판으로 나아가도록 했습니
까?]
[무서운 일일수록 나는 더욱 더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요. 기껏
해야 커다란 파도에 배가 뒤집혀서  모두들 물귀신이 되기 밖에 더하겠
소? 더군다나 마형의  별호가 서강신교(西江神蛟)이니 자맥질에 얼마나 
뛰어나겠소? 마형, 미리 말해 두는데  나중에 배가 뒤집히면 그대는 먼
저 위 형제를 구하고 두 번쩨로 나를 구하도록 하시오.]

마초흥은 웃었다.

[좋지요. 약속하겠습니다.]

위소보는 그제서야 마음이 약간 놓였다. 풍랑은 점점 거세졌다. 조그만 
배는 파도를 따라 별안간 일  장이나 쑥 솟아올랐다가는 별안간 허공에
서 강물 속으로 처박힐 것처럼 떨어지곤 했다.  위소보는 그 바람에 훌
쩍 떠올랐다가 쿵, 하니 세차게  선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곤 했다. 그
는 다급하게 외쳤다.

[앗! 야단났구나!]

돛대 위에서 후두둑, 하는 소리가 나면서 큰 비가 쏟아졌다. 곧이어 일
진의 광풍이 불어닥쳐 뱃머리와 배  뒤쪽의 등불을 모조리 꺼버리고 말
았다. 선실 안의 등불도 꺼졌다. 위소보는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앗, 야단났다!]

선실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강변에는 허연 거품을 내뿜는 물결이 거세게 
넘실거리고 바람소리와 폭우가 엄청나게 휘몰아쳤다. 마초흥은 말했다.

[형제, 두려워 마시오. 이 풍우는 정말 대단하군. 내가 가서 키를 잡도
록 하겠소.]

그는 배 뒤쪽으로 가서 호통을 질러 사공들을 독려했다. 바람의 기세가 
엄청나게 커지자 두  명의 사공이 막 돛대에 이르렀을  때 그만 바람에 
날려 강물 속으로 떨어질 뻔했다.  커다란 풍랑에 그 조그만 배는 갑자
기 옆으로 기울어졌다.  위소보는 왼쪽으로 내동댕이쳐지면서 날카롭게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속으로 욕을 했다.
(제기랄! 늙은 거지가 이상한 생각을 해서 이 모양이많아? 그대 자신도 
헤엄칠 줄  모른다면서 하필이면 커다란 풍우가  몰아치는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난을 치다니!)

광풍은 폭우를 대동하고 몰아치는데 한  차례씩 선실 안으로 억수 같은 
빗줄기를 퍼부었다. 그 바람에 위소보는  온몸이 흠삑 젖었다. 그때 별
안간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돛이  아래로 떨어지고 배가 한쪽으로 기울
었다. 위소보는 몸이 다시 오른쪽으로  쏠리며 쿵, 하니 조그만 탁자에 
머리를 부딪히자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호 형님과의 맹세를 어기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오늘 유강 속
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이쿠, 그렇구나. 내가 맹세를 할 때 
좋지 못한 마음을 품고 어느  날엔가는 그를 속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옥황상제시여,  십전염왕(十殿閻王)이시여, 그리고 관세음보살
이시여! 위소보가 성심성의로 말씀드리는데  호 형님과 복이 있으면 함
께 누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함께 맞도록 하겠나이다. 그런데 복을 함께 
누리겠다고 했는데  그가 만약 진원원을 맞아들이게  된다면.... 나 역
시....)
풍우소리 가운데 갑자기 오륙기가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
다.

강변을 걸으며 가슴 가득 끓어오르는 분노와 한을 누구에게 말할까?
오랜 눈물은 바람에 날려 날아가고 의로운  성 홀로 남아 구원을 눈 빠
지게 기다리며 남은 병사들 마지막 힘을 다해 싸우는구나. 겹겹이 에워
싸인 포위망에서 벗어나 고국에 돌아가기를 바라건만!
노래가 끝나고 연회석이 끝나자 텅 빈  자리만 남을 줄 그 누가 알았으
리?
장강 줄기는 오나라 머리에서부터 초나라 끝까지 삼천 리나 되나니!
모조리 남의 나라 땅이 되는 변을 당했구나!
싸늘한 파도 동쪽에서 휘몰아치니 만사가 연기되어 흩어지노라.

노랫소리는 강 위에서 멀리까지 퍼져나가 풍우소리가 대단했지만 그 소
리를 억누르지 못했다.

[정말 멋지구려.]

위소보는 그의 노랫소리가 격앙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문장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어 속으로 욕을 했다.
(제기랄! 그토록 좋은 목청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쩨서 연극무대에 올라
가 노래를 하지 않았지? 늙은 거지는 목청을 뽑아 다음과 같이 크게 부
르짖어야 제격이지. '나으리, 마나님,  찬밥이나 찌꺼기라도 보태 주십
시오.')
갑자기 멀리 강 위에서 누군가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천년이 된 남쪽 나라의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마음이 서글퍼 산천에 
피눈물을 뿌리노라!]

그 소리는 매우 멀리서 들려왔으나 커다란 풍우가 휘몰아치는데도 똑똑
히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그 사람의 내공이 매우 심후한 것을 알 수 있
었다. 위소보가 어리둥절해 할 때 마초흥이 외쳤다.

[총타주이십니까? 형제 마초흥이 이곳에 있습니다.]
[그렇소. 소보도 그곳에 있소?]

과연 진근남의 음성이었다. 위소보는 놀람과 기쁨에 크게 소리쳤다.

[사부님,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광풍이 휘몰아치는 속에서 그의  음성이 어찌 울려퍼질 수 있겠
는가?

[위 향주는 이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홍순당의 오 향주도 계십니다.]
[매우 잘되었소. 강 위에서 부르는 노랫소리가 구름처럼 높이 솟아올라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지.]

그 소리에는 매우 기뻐하는 빛이 깃들어 있었다.

[속하 오륙기, 총타주님께 인사드립니다.]
[다 한집안 형제들인데 겸손할 것 없소이다.]

풍우는 여전히 휘몰아치고 있었다. 위소보가 선실에서 바깥쪽을 내다보
니 강물 위는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는데 한 점의 붉은 빛이 천천
히 강물 위에서 이쪽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진근남의 배에 등불이 켜져 
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불빛이 가까운 곳으로 옮겨지고 뱃머리가 살
짝 아래로 가라앉는다고 느끼는 순간 진근남은 이미 배 위로 올라왔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이 오셨으니 죽지 않게 되었구나.)
그는 재빨리 선실 입구 쪽으로  마중을 나갔으나 어둠 속에서 진근남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어 큰소리로 사부님, 하고  부르짖고 다시 말을 
하려고 했다. 그때 진근남이 그의  손을 덥석 잡더니 선실 안으로 들어
가며 웃었다.

[비바람이 정말 대단하구나. 너는 놀라지 않았느냐?]
[괜찮습니다.]

오륙기와 마초흥은 안으로 들어와 인사를 했다. 진근남은 말했다.

[그대들이 강물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나섰소. 그런데 뜻밖에도 
이 커다란 비바람을 만나게 되었구려.  만약 오 형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정말 찾기 힘들 뻔했소이다.]
[속하가 일시 흥에 겨워  노래를 불렀습니다. 총타주께서는 웃으셨겠군
요.]
[모두들 형제로 칭하도록 합시다. 오 형이 노래를 부른 것은 도화선(桃
花扇) 가운데의 침강(沈江)이라는 한 귀절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이 한 수의  노래는 사각부(史閣部)가 적에게 항거하다가 
강물에 떨어져 순사하게 된 것을 노래하고 있죠. 형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랍니다. 강 위의  풍우가 크게 몰아치니 그만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정말 노래를 잘 불렀소. 정말 멋있었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이것은 연극무대에서 부르는  노래로 침강이라고 하는 것이었군. 
그런데 하필이면 좋은 노래를 다 놔두고 왜 재수없는 노래를 불렀다지? 
그대가 강물 속으로 빠지려고 한다면  나는 미안하지만 함께 빠져 죽을 
수 없소이다.)
진근남은 말했다.

[언젠가 절강성 가흥의 배 안에서  황종의 선생과 여유량 선생, 그리고 
사윤황 선생 등 세 분의 강남 명사가 오 형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
고 형제는 무척 탄복했소이다. 그대와 나는 비록 같은 회의 형제이지만 
저의 일이 너무나 바빠 줄곧  광동으로 가 뵙지를 못했소이다. 오 형의 
신분이 남과 다르니 북으로 올라올  수 없었는데 뜻밖에도 오늘 이곳에
서 모이게 되었으니 진정 반가운 일입니다.]

오륙기는 말했다.

[형제는 천지회에 가담하게 된 이후 총타주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지 않
는 날이 없었습니다. 강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지요. '진근남을 만
나지 못하면 영웅이라 일컬어질 수  없다.' 오늘부터 나도 영웅이라 일
컬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그 모두 강호의 친구들이 높이 사주신 덕택인데 정말 부끄럽기만 하오
이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아꼈고 의기투합해서 마음놓고 한평생의 포부
를 주고받았으며  밖에서 몰아치고 있는  풍우를 잊어버렸다. 진근남은 
오삼계의 일을  물었다. 위소보는 일일이  이야기했고 아슬아슬한 곳에 
이르러서는 있는 것 없는 것 다 보태게 되었다. 여러 가지 경과는 마초
흥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진근남은 몽고의 사자 한첩마라는 증인을 사로잡았다는 말을 듣고 오삼
계가 이제 크게 불리하게  되었다며 매우 좋아했다. 나찰국이 북쪽에서 
오삼계와 호응하여 관외의 커다란 땅 덩어리를 탈취하려고 한다는 대목
에 이르자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위소보
는 말했다.

[사부님, 나찰국 사람들은 붉은 털에 파란 눈을 가지고 있으나 별로 두
렵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으면 될 것이 아
닙니까? 그러나 그들의 화기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총으로 한번 탕, 쏘
기만 하면 어떤 영웅호걸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 역시 그 일 때문에 걱정이다. 오삼계와 오랑캐가 서로 싸워 쌍방에
서 상처를 입는다면 우리 한나라 산천을 되찾을 좋은 기회를 하늘이 내
려주신 거라고  할 수 있지만 앞문으로  호랑이를 쫓아냈는데 뒷문으로 
이리를 끌어들인다는 격으로, 오랑캐를 내쫓자마자 오랑캐보다 더 흉악
하다는 나찰국 사람들이 다시 달려들어 우리 금수강산을 차지하면 어떻
게 하지?]

오륙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찰국의 화기를 당해 낼 방법이 없습니까?]
[두 분은 이 사람을 만나 보도록 하시구려.]

진근남은 선실 입구 쪽으로 가서 불렀다.

[흥주(與珠), 이리 오시오!]

조그만 배 안에서 누군가가 대답을 했다.

[예.]

그 사람은 이쪽 배로 건너뛰어  선실로 들어서서 진근남에게 살짝 허리
를 굽혀 보였다. 나이는 사십 세 정도 되어 보였는데 체구는 왜소한 편
이었지만 얼굴은 다부져보였다. 진근남은 말했다.

[오 형과 마 형에게 인사를 드리시오. 그리고 이쪽은 나의 제자 위소보
라 하오.]

그 사람은 포권의 예를 갖뒀다. 오륙기 등은 몸을 일으켜 답례했다. 진
근남이 말했다.

[이 임흥주(林與珠) 임 형제는 줄곧 대만에서 나를 따라 일을 처리했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요. 과거 국성야께서 홍모귀(紅毛鬼)들을 쫓
아내고 대만을 공략하여 차지하는 데 임 형제가 큰공을 세웠소.]

위소보는 웃었다.

[임 형이 홍모귀와 싸운  적이 있다니 정말 잘되었습니다. 나찰귀(羅刹
鬼)들에게는 창포라는 화기가 있고 홍모귀에게도 창포라는 화기가 있으
니 임 형에게도 방법이 있었겠군요?]

오륙기와 마초흥은 동시에 손뼉을 치며 말했다.

[위 형제의 머리는 잘도 돌아가는군.]

오륙기는 본래 위소보에 대해서  별로 감탄하지 않았다. 그저 총타주의 
제자이니 청목당의 향주라는 높은 직책을 맡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
다. 청목당이 근년에 이르러 많은  공을 세우긴 했지만 이 꼬마 덕택이
라고는 보지 않았으며 또 그가 아가에게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멸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만큼은 약간 탄복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꼬마는 매사를 꿰뚫어보는 지혜가  있구나. 어느 정도의 재간은 있
는 것 같군.)
진근남은 미소지었다.

[과거 국성야께서 대만을 공격하실 때 홍모귀의 포화는 정말 당해 내기 
어려웠네. 우리들은 그 당시 흙으로 제방을 쌓아 몇 천 명이나 되는 홍
모귀들을 성 안에 가두고 성  안으로 공급되는 물줄기를 차단하여 그들
로 하여금 마실  물이 없게 했지. 홍모귀 군사들은  참고 견뎌 낼 수가 
없자 달려나와  공격했는데 우리들은 대낮에는 싸우지  않고 밤이 되면 
그들과 근접전을 벌였지. 홍주, 당시 어떻게 싸웠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도록 하시오.]
[그것은 군사(軍師)의 신기묘산이었지요....]

진근남이 정성공을 위해 계책을 헌납하여 공격케함으로써 큰 공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군중에서는 그를  군사(軍師)라고 불렀다. 위소보는 
말했다.

[군사라구요?]

그는 임흥주가  진근남을 쳐다보고 있고 사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고 즉시 알아차리고 말했다.

[아, 원래  사부님께서는 제갈양이셨군요. 제갈  군사는 등갑병을 크게 
무찔렀는데 진 군사께서는 홍모귀의 군사들을 크게 무찌르셨군요.]

임흥주는 말했다.

[국성야께서는 영력 십오 년 이월 초하룻날 강가에서 절을 올리고 문무
백관과 군사들을  이끌고 전함(戰瑥)을 타고  과라만(科羅灣)에서 배를 
띄우게 되었는데  스무나흗 날에 팽호(澎湖)에  이르게 되었지요. 사월 
초하룻날에 대만 녹이문(鹿耳門)에  도달하였습니다. 녹이문 밖에는 낮
은 언덕이 수십 리나 뻗어 있었고 흥모병들이 배를 격침시켜 항구를 막
아 놓고 있었습니다. 우리 전함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어
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조수가 크게 밀어닥쳤죠. 군사
들과 장수들은 천지가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고 전함들은 용감하게 안
으로 밀고 들어갔죠. 홍모병들은 총을 가지고 공격을 해왔지요. 국성야
꼐서는 모두에게 '만약 우리가  한 걸음이라도 물러선다면 바다로 밀려
나가 뼈를 묻힐 곳이 없어진다'고 말씀하셨죠. 홍모귀들의 창포가 무섭
긴 했지만 모두들 용감하게  앞으로 진군했지요. 군사와 장수들은 일제
히 명을 받들었고 군사는 친히 우리들을 이끌고 돌진해 갔습니다. 별안
간 저의 귓가에 수천 수만 번의 벼락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눈앞은 
안개로 가득 차게 되었는데 앞의  형제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것이 아니
겠습니까? 모두들 당황하고 어지러워 도망쳐 물러나고 말았죠.]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처음으로 홍모귀의 총소리를 들었을 때도 깜짝 놀라 귀가 멍멍해
지고 말았습니다.]

임홍주는 말했다.

[나는 마치 머리 없는 파리처럼 손발이 어지러웠는데 이때 군사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었지요.  '홍모귀들은 총을 쏘았다.  화약을 재고 총알을 
다시 장탄해야  하니 모두들 돌진하라!' 저는  재빨리 형제들을 이끌고 
돌진해 갔습니다. 아니나다를까, 흥모귀들은  일시에 총을 쏘지 못했습
니다. 그러나 막 그들 앞으로 돌진해 갔을 때 홍모귀들은 다시 총을 쏘
았으며 나는 즉시 땅바닥에 몸을 굴려 피했는데 적지 않은 형제들이 죽
음을 당하게 되어 달리 방법이 없길래 부득이 물러나고 말았지요. 홍모
귀들은 감히 뒤쫓아오지 못했습니다.  그 싸움에서 전사한 형제들은 수
백이나 되었고, 모두들 맥이 빠져 어쩔 줄 몰라했으며 홍모귀들의 총과 
포를 생각만 하면 그만 간이 떨어질 정도가 되었죠.]

위소보는 말했다.

[그 후 군사께서 묘책을 생각해 내셨군요.]

임흥주는 외쳤다.

[그렇소. 그날 밤  군사께서는 나를 불러서 물었소.  '임 형제, 그대는 
무이산(武夷山) 지당문(地堂門)의 제자가 아니오?' 저는 그렇다고 말했
지요. 군사께서  말했습니다.'낮에 홍모귀들이 총을  쏘았을 때 그대는 
즉시 땅바닥에 굴러 쓰러지던데 그대의 신법이 매우 민첩하더군.' 나는 
매우 부끄러워서 말했지요. '군사,  삶을 탐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내일 싸움터에  나가면 결코 땅에 굴러  피하여 우리 대명나라 
관병의 위풍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군사께서
는 저의 머리를 자르도록 하십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임 형, 나의 짐작이지만 군사께서는  그대가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
워했다고 탓하셨던 게 아니고 그대의 땅에 굴러 피하는 방법이 무척 좋
다고 칭찬을 하고 그대로 하여금 형제들에게 전수하도록 하려고 하셨던 
게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진근남은 그를 바라보고 얼굴에 미소를 띄웠는데 가상하다는 표정이 서
려 있었다.
임흥주는 무릎을 치며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지요. 그대는  군사의 제자답군요. 과연  명사에 고제자가 난다고 
하더니....]

위소보는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그대는 우리 사부님의 부하이니 과연  강한 장수 밑에 약한 병사가 없
다는 말이 맞구려.]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임흥주는 말했다.

[그날 밤 군사는  정말 그와 같이 분부했지요.  '그대는 오해하지 마시
오. 내가 보기에  그대의 연청십팔번(燕靑十八飜)과 송서초상비(松鼠草
上飛)의 신법이 매우 합당하다고 느껴졌소. 그야말로 적의 앞으로 굴러
가서 칼로 그들의 발을 자르면 되겠더구먼. 그런데 그 지당도법(地堂刀
法)을 어느 정도로 연마했소?' 나는  군사께서 내가 담이 크지 못해 죽
음을 두려워한다고 꾸짖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그제야 안심을 하고 말
씀을 드렸죠.  '군사, 지당도법은 소장이 연마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사부님께서는 싸움터에 나갔을 때 몸을 굴려 적의 팔다리를 자뤽 수 있
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홍모귀는 말을  타지 않으니 아마 쓸 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군사는 말씀했죠. '홍모귀는 말을 타지 않았으니까 우리
들은 그들의 발을 자르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그 말을 듣자 
확연히 깨닫고는 잇따라 말씀을 드렸죠. '예, 예. 소장의 머리가 잘 돌
아가지 않아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위소보는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의 사부는 그대에게 그 도법으로  말의 다리를 자를 수 있다고 했
는데도 그대는 사람의 다리를 자를  수 없다고 여겼으니 노형의 머리는 
정말 제대로 잘 돌아가지 않는군.)
임흥주는 말했다.

[당시 군사께서는 저에게  그 도법을 한 번 펼쳐  보라고 했지요. 저의 
도법을 보시더니 군사께서는 저에게  제대로 연마했다고 하시더니 다음
과 같이 말씀하셨죠. '그대의 지당문의  도법과 신법은 십여 년간 연마
하지 않았다면 그 정도까지 연성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내
일 바로 싸움을  해야 하며 모두들 연마해야 하니  때늦은 감이 있군.' 
그래서 저는 말했죠. '예, 이 지당문의 도법을 소장은 제대로 연성하지 
못했습니다만 확실히  십여 년간 연마했습니다.'  군사께서는 말씀하셨
죠. '우리가 흙 제방을 재빨리  쌓고 궁전(弓箭)으로 지킬 테니까 그대
는 재빨리 가서 병사들과 장수들에게  데굴데굴 굴러 앞으로 나아가 칼
로 발을 자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도록 하시오. 그저 몇가지 초식만 가
르쳐서 모두들 익숙해지면 된다오.  지당문의 심오한 무공을 모조리 가
르칠 필요는 없소.' 저는 군사의 명령을 받고 그날 밤 본대의 사병들을 
먼저 가르쳤죠. 이튿날 이른 아침 흥모귀들이 돌격해 왔을 때 우리들이 
한 차례 화살을 쏘아  격퇴시켰지요. 본대의 사병들은 지당도법의 기본 
다섯 초를 연마해서 다시  다른 관병들에게 전수했지요. 군사께서는 모
두에게 나뭇가지를 잘라서 방패로 만들어 홍모병의 납으로 만든 탄환을 
막도록 분부했습니다. 나흘쩨 되는 날  아침, 흥모명은 다시 대거 공격
을 해왔는데 우리들은  마중 나가 싸우게 되었고,  땅을 데굴데굴 굴러 
앞으로 나아가 공격을 하는 바람에 홍모귀들은 낙화유수처럼 무너져 전
장에 수백 개나 되는 털이 숭숭한 다리를 남겨 놓게 되었지요. 그 바람
에 적감성(赤嵌城)을 지키던 홍모귀  우두머리의 왼쪽 다리도 잘라지게 
되었죠. 이 홍모귀의 우두머리는 투항해 왔습니다. 그 후 재차 위성(衛
城)을 공격할 때도 역시 이 방법을 사용했지요.]

마초흥은 말했다.

[이후 나찰귀들과 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 지당도법으로 상대하면 되겠
군요?]

진근남은 말했다.

[그러나 사정이 좀 다르오. 과거  대만의 홍모병들은 삼, 사천 명에 불
과하였는데 나찰국의 군사들이 침범해 온다면  적어도 수만 명이 될 것
이고, 그들이 끊임없이  몰려오면 죽여도 죽여도 다  죽이지 못할 것이
오. 더군다나 지당도법은 근접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소. 나찰국의 군사
들이 만약에 대포를 쏘아댄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오.]

오륙기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군사의 의견으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는 진근남이 임흥주를 소개할 때에  자기 자신을 향주라고 부르지 않
는 것으로 보아 임흥주가 천지회의  사람이 아니라고 짐작하고 자기 역
시 진근남을 총타주라고 부르지 않은 것이다. 진근남은 말했다.

[우리 증국은 땅이 넓고 사람이  많소. 만약 매국노가 내응하지 않으면 
외국 사람들은 쳐들어오기가 지극히 어렵소.]

여러 사람이 말했다.

[그렇지요. 오랑캐가 우리 강산을 점령한  것도 모두 다 매국노 오삼계
가 안내했기 때문이죠.]
[이제 오삼계는 다시 나찰국과 결탁하려  하고 있소. 그가 군사를 일으
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우리가  단숨에 그를 쳐부쉬 버린다면 나찰국에
서는 내응이 없어지므로 경솔히 침범해 오지 못할 것이오.]

마초흥은 말했다.

[그러나 오삼계가 너무 빨리 무너진다면 그와 오랑캐가 싸워 우리가 어
부지리를 얻는 일이 없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도 맞소. 그러나 이해득실을 따져 볼 때 나찰국 사람들은 오랑캐
보다 더 무섭소.]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지요. 오랑캐 역시 누런 피부에 검은 눈동자, 납작한 코를 가지고 
있어 우리들과 다름없으며 말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도깨
비들은 붉은 털에 파란눈을 지녔고 말하는 것도 자기들끼리 씨부렁거리
니 그 누가 알 수 있단 말입니까?]

국가대사를 논하는 동안 날이 점차 밝아왔고 풍우도 이미 그쳐 있었다.  
마초흥은 말했다.

[모두들 옷이 젖었으니 바로  언덕으로 올라가 한잔하면서 한기를 몰아
내도록 하죠.]

진근남은 말했다.

[무척 좋소.]

이번에 몰아친 풍우에 조그만 배는  삼십여 리 밖으로 흘러내려가 있었
다. 유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오 무렵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언덕
에 올랐다. 이때 한 사람이 급히 달려와 소리쳤다.

[상공, 그대....그대가 돌아오셨군요.]

바로 쌍아였다. 그녀는 전신이 흠뻑  젖어 있었으나 얼굴 가득 기쁜 빛
이 어려 있었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대가 어떻게 이곳에 있지?]
[어젯밤 크게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그대가 배를 타고 나갔기에 마음
이 놓이지 않아 상공께서 무사히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대는 줄곧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오?]
[예, 저는....저는 걱정이 되어서....]
[내가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을까봐 걱정했소?]
[나는 그대가 크게 복을 타고났기  때문에 타고 있는 배가 가라앉지 않
으리라 믿었어요. 하지만....하지만....]

부둣가의 한 사공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 도련님께서는 어젯밤 야심한 삼경쯤 풍우가 가장 심하게 몰아칠 때 
우리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가 사람을 찾겠다며 먼저  오십 냥의 은자를 
주려고 했었지요. 그러나  가려는 사람이 없자 그는  다시 일백 냥으로 
늘렸습니다. 장노삼이 돈을 탐내어 응낙했지요. 그러나 막 배를 띄우려
고 했을 때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바람에 돛대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 누구도  감히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지요. 
그는 초조해져서 큰소리로 울기만 하더군요.]

위소보는 속으로 감동하여 쌍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쌍아, 그대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군.]

쌍아는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일행은 마초흥의 거처로 가서  옷을 바꾸어 입었다. 진근남은 마초흥에
게 명해 정 공자와 풍석범의 행방을 수소문하도록 했다. 마초흥은 대답
을 하고 나가 사람을 보내 조사한  후 곧 들어와 가후당의 사무에 대해
서 보고했다. 마초흥은 연회석을  차리고 진근남에게 가장 윗자리에 앉
도록 했다. 그 다음에 오륙기가  앉았고 세 번째 자리에 위소보를 앉히
려고 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임 형이 대만을 공격하고  깨뜨리는 데 있어서 지당도법으로 홍모귀들
의 다리를 잘라 큰 공을 세웠으니  형제는 그와 함께 술을 마시는 것만
으로도 만족하고 즐겁소이다. 이와 같은 영웅호걸을 두고 이 형제가 어
찌 그의 윗자리에 앉을 수 있겠소?]

그는 임흥주를 잡아당겨 세 번째 자리에 앉혔다. 임흥주는 크게 기뻐했
으며 속으로 군사의 이 제자가  나이는 어리지만 그야말로 의리가 대단
하다고 생각했다. 연회를  파한 후 천지회의 네  사람은 다시 상방에서 
일을 의논했다. 진근남은 분부했다.

[소보, 너는 큰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몸이니 이번에도 함께 오래 머물 
수 없겠다. 내일 곧장 북쪽으로 올라가거라.]
[예, 저는 이번에 오 형의  영웅적인 무용담을 들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오삼계를 물리친 후에 다시 오 형의 이야기를 듣기로 하지요.]

오륙기는 웃으며 말했다.

[이 형제에게는 영웅적인 행적이 없소. 평생에 나쁜 일을 많이 지은 셈
이지요. 만약 사윤황 선생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오늘까지도 나는 여
전히 오랑캐의 앞잡이가 되어 개처럼 충성하고 있었을 것이네.]

위소보는 오삼계가 선물한 단총을 한 자루 꺼내며 오륙기에게 말했다.

[오 형, 먼  길을 달려 이 몸을 보러  오셔서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나찰국의 단총인데 저를 만난 기념으로 삼아 주십시오.]

오삼계는 그에게 두 자루의 단총을  선물했는데 그중 한 자루는 위소보
가 목검병을 구해낼 때 하국상에게 건네주었다. 그 후 총총히 운남에서 
떠나느라고 미처 받지 못한 상태였다.
오륙기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단총을 받아서  화약과 철탄을 장진하고 
불을 당겨 정원을 향해 한 번  쏘았다. 불빛이 번쩍하며 탕, 하는 소리
가 크게 울려퍼지면서 정원의  청석판의 돌가루가 마구 날렸다. 사람들
은 깜짝 놀랐다. 진근남은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찰국의 화기가 이토록 위력적이니  군사를 일으켜 침범해 온다면 정
말 대항하기 어렵겠구나.)
위소보는 오천 냥이 나가는 은표를 넉 장 꺼내 마초흥에게 주고 웃으며 
말했다.

[마 형, 수고스럽지만 귀당의 형제들에게 술이나 사시지요.]
[이만 냥의 은자를 말이오? 너무 많소.  삼 년 동안 술을 마셔도 다 마
시지 못하겠소.]

그는 고맙다는 인사말을 하고  거두어들였다. 위소보는 무릎을 꿇고 진
근남에게 인사를 하고 작별을  고했다. 진근남은 손을 뻗쳐 일으키더니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웃었다.

[너는 정말 잘했다. 이 진근남의 제자로 부끄럽지 않다.]

위소보는 그와 가까이 서자 똑똑히  진근남의 얼굴을 살펴볼 수가 있었
다. 그의 귀밑머리는 이미 반백이  다 되었고 안색은 매우 초췌해져 있
었다. 아마도 몇 년 동안 강호를 떠돌아다니면서 풍상을 겪었기 때문에 
늙어 버린 것  같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다.  그는 뭔가 사부님께 
드릴 물건이 없을까 생각했다.
(사부님꼐서는 은자를 마다하실 것이다.  구슬이나 보물 따위도 좋아하
시지 않는다. 사부님은 무공이  뛰어나시니 나의 비수나 보의도 대단하
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다.)
별안간 그는 끓어오르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말했다.

[사부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어르신께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오륙기와 마초흥은 그들 사도간에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밖으로 
나갔다.
위소보는 손을 뻗쳐  속주머니에서 한 봉지의 물건을  꺼냈다. 그는 그 
봉지를 싸매고 있는  줄을 풀고 한 겹의 기름  먹인 베를 풀어 헤쳤다. 
그리고 두 겹의 기름 먹인 종이를  풀고 여덟 권의 사십이장경 겉장 안
에서 꺼내 온 그 조각난 양피지들을 드러내 보이며 말했다.

[사부님, 제자는 사부님에게 효성을 다할 물건이 없습니다. 이 한 무더
기의 조각난 양피지들을 거두어 주십시오.]



第84章. 대포를 만드는 강희제


진근남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여 물었다.

[그게 무어냐?]

위소보는 조각난 양피지에 얽힌 내력을 이야기했다. 진근남은 위소보의 
말을 들을수록 얼굴 표정이 진지해졌다.  태후, 황제, 오배, 서장 대라
마, 여승인 독비신니(獨臂神尼) 구난, 신룡교 교주 등 유명한 인물들이 
온갖 계략을 다해 이 양피지  조각을 얻으려 하고, 양피지에 청나라 오
랑캐의 용맥과 숨겨 놓은 보물에 관한 비밀이 얽혀 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세히 캐어물었고 '위소보는 그 동안 보고 들은 
바를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신룡교 교주가 초식을 가르쳐 준 일
과 구난을 사부로 모신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진근남은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사십이장경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두 사람이 천지회의 형제들을 이끌
고 오랑캐의 용맥을 파헤쳐 보물을  꺼낸 후에 군사를 모집하여 봉기하
면 불세출의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즉시 대만으로 
돌아가 왕야를 배알해야 한다. 내가 이 물건을 가지고 바닷길을 왔다갔
다하다가는 분실할 우려가 있으니 네가 지니고 있는 것이 좋겠다. 내가 
대만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너를 만나러 북경으로 가겠다. 그때 함께 대
사를 도모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사부님께서는 하루 빨리 북경으로 돌아오십시오.]
[안심해라. 조금도 지체하지 않겠다. 소보야, 너의 사부가 한평생 분주
하게 움직인 이유는 바로 명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었다. 시
일이 흐를수록 백성들은 명나라를 점점 망각하고 있으며 오랑캐의 소황
제는 정치를  잘하기 때문에 명나라를 일으키는  대업이 힘들어지고 있
다. 그러던 차에  뜻밖에도 오삼계가 반란을 도모하고  있고 네가 이런 
중요한 보도(寶圖)를 얻었으니 이제 절호의 기회가 도래한 것이다.]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가슴 가득  근심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때만큼은 정신이 버쩍 드는지 밝은 표정을 보여서 위소보는 마음속으
로 매우 기뻤다.

[너는 중독되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느냐?]
[이 제자는 신룡교의 홍 교주가  준 해독약을 먹어서 이제는 말끔히 나
았습니다.]
[참 잘됐다. 너는 두 어깨에 반청복명이라는 만 근이나 되는 무거운 짐
을 지었으니 각별히 몸조심하거라.]

그는 두 손으로 위소보의 어깨를 살짝 눌렀다. 위소보는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 제자가 이 조각난 양피지를 얻은 것은 운이좋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노름을  하다가 운이 좋으면 천공(天공=木+貢)이 
천공을 누르고 별십이 별십을 먹는 것처럼 이 일은 정말 재수가 좋았습
니다.]
[너는 북경으로 돌아가거든 밤중에  방문을 잠그고 이 양피지들을 합쳐
서 하나의 지도를  만들어 보아라. 그 지도를  머릿속에 기억하여 줄줄 
외울 수 있을 때 다시 이  조각난 양피지들을 마구 뒤섞어서 여러 봉지
로 나누어 각기 다른 곳에 숨겨 두어라. 소보야, 사람의 운수란 언제나 
순풍에 돛 단 듯 잘 풀려  가는 건 아니란다. 이런 대사를 언제나 운에 
맡길 수는 없단다.]
[사부님의 말씀이 백번 지당하십니다. 노름을  할 때 계속해서 여덟 번
을 따다가도 한 번 지면 모조리  털리는 수도 있지요. 이 조각 난 양피
지 조각을 빼앗긴다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되고 두 손은 물론 두 발을 들
어야 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연달아 여덟 번을  이긴 후에는 노름을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진근남은 속으로  위소보가 도박에 매우 심취해  있다고 느끼고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 이치를 알고 있으니 잘되었다. 노름을 해서 이기고 지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도모하는 일은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어도 
이루어야 하는 큰일이다. 이 한  봉지의 물건에 천하의 운명이 걸려 있
으니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요. 노름에서 이긴 후에는 은자를  집으로 가져가 침대 밑에 묻
어 놓고 손가락을 잘라 다시는 노름을 하지 못하게 해야지요.]

진근남은 창가로 가 하늘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소보야, 이제야 반청복명의 회망이 보이는 것 같다. 나는 내일 죽을지
라도 지금은 마음이 여간 기쁘지 않구나.]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옛날에 사부님은 언제나 원기왕성했는데 왜 이번에는 자꾸만 죽는다는 
말을 하는 거지?)
그는 물었다.

[사부님, 사부님은 연평군왕의 왕부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별로 내키
지 않으신가 봅니다.]

진근남은 몸을 돌려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저는 사부님이 우울해 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려
운 일도 사부님은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강호의 영웅호걸들은 누구
나 사부님을 앙모하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황제마저도 두려워하지 
않고 천하에서 정 왕야 한 사람만이 사부님을 걱정스럽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근남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왕야께서는 나에게 언제나 예의를 다해 대해 주시며 나를 매우 의지하
고 계시다.]
[그럼 정 둘째 공자란 녀석이 사부님을 못살게 구는 모양이군요.]
[과거 국성야께서는  나에게 태산 같은 은혜를  베푸셨다. 나는 일찍이 
죽음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기로  맹세했다. 정씨 집안의 일이라면 나는 
몸과 정성을 다 바쳐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할 것이다. 정 둘째 공자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 그러니 옳지  못한 짓을 한다고 해도 나는 마음에 
두지 않는다. 왕야의 세자는 똑똑하고 억조창생을 사랑하시지만 애석하
게도 서출(庶出)이란다.]
[서출이 뭡니까?]
[서출이란 왕비의 자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 그럼 왕야의 작은 마누라가 낳은 아들이군요.]

진근남은 그의 말이 속되다고 느꼈으나 위소보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없
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하며 말했다.

[그렇다. 과거 왕태비(王大妃)께서는 세자를 좋아하지 않으시어 국성야
께 간하여 둘째 공자를 세자로 세우라고 하셨단다.]

위소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둘째 공자는 멍청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니  안 됩니다. 그 녀석은 멍청
이에 허수아비이며 제기랄....후레자식입니다.  그날 그는 사부님을 죽
이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진근남은 엄숙한 표정으로 꾸짖었다.

[소보야, 말조심해라. 너의 그 같은 말은 왕야를 욕하는 게 아니냐? 아
들이 후레자식이면 그 아버지는 뭐가 되지?]

위소보는 아, 하더니 말했다.

[저는 죽어 마땅합니다. 후레자식이라는  말을 아무데나 쓰면 안되는데 
깜빡했습니다.]
[두 분 공자를 비교해 보면  둘째 공자는 확실히 여러모로 그의 형님보
다 못하다. 다만 외모가 멀쑥하고  입으로 듣기 좋은 말을 잘하여 할머
니의 환심을 얻었을 뿐이다.]

위소보는 무릎을 탁, 쳤다.

[맞습니다. 여자들은 아무것도 모르지요. 아첨을 잘하고 멀쑥하게 생긴 
녀석만 보면 그런 놈을 보배처럼 여기죠.]

진근남은 그가 아가를  가리켜 하는 말인 줄 모르고  고개를 가로 저었
다.

[왕야께서는 세자를 바꾸는 일을  싫어하신다. 문무백관들도 왕야께 세
자를 바꾸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리하여 두 분 공자는 형제간의 
우애를 잃었고 태비와 왕야 모자지간에도 이것 때문에 다투고 있다. 태
비께서는 울화가 치밀면 우리들을 불러 한바탕 꾸지람을 하시지.]
[그 늙은....]

그는 하마터면 '그 늙은 갈보'라는 말을 내뱉을 뻔했으나 즉시 그 말을 
삼키고 말했다.

[늙은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멍청해지는 모양이에요. 사부님, 정왕야의 
집안일을 사부님께서 처리하실 수 없고 또 그들에게 죄를 지을 수도 없
다면 아예 그들 스스로 자기 집 문 앞의 눈을 쓸도록 하시고 그들의 기
와지붕 위에 서리가 내리는 것을 상관하지 마십시오.]

진근남은 한숨을 쉬었다.

[나의 목숨은 내 것이 아니고 이미 국성야에게 바쳤다. 사람이 살아 생
전에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 옛날 국성야께서는 나를 
국사(國士)로 대접했으니 나는 마땅히  국사다운 보답을 해야 한다. 지
금 왕야의 곁에서 인재들이 차츰  멀어지고 있는데 나까지도 그분을 내
버려두고 떠날 수가 없구나. 아,  대업을 성취하기란 너무나 어려워 보
인다. 그러나 힘 닿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구나.]

진근남은 쓸쓸한 얼굴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위로의 말을 하
고 싶었으나 어떤 말을 해야 될지 몰랐다. 그는 잠시 후에야 입을 열었
다.

[어제 우리들은 정극상을 이렇게....]

그는 손을 들어 일장을 내리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한칼에 두 토막을 내어 깨끗이 결말을 내려고 했었지요. 그러나 마 향
주가 그렇게 하면 사부님이 사람  노릇을 하기 어렵고, 또 뭐라더라 시
주( =才+其+斥,主)의 죄를 짓는 셈이라고 하던가요?]
[그런 말이 아니고  시주(殺主)하는 것이다. 마 형제의  그 말이 옳다. 
만약에 어제 정 공자를 죽였다면 내  무슨 면목으로 왕야를 뵐 수 있겠
느냐? 훗날 죽은 후에도 저승에서 국성야를 대할 면목이 없을 것이다.]
[사부님, 언제 저를 데리고  정씨 집안의 왕태비를 뵙도록 해주십시오. 
저는 그런 늙은 할망구를 상대하는 재간이 몇 가지 있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짜 태후 늙은  갈보를 요리했으니 왕태후를 요리하는 것
쯤은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근남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는 그만하거라.]

그는 위소보의 손을 잡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즉시 위소보는 사부와 오
륙기, 마초흥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오륙기와 마초흥은 그를 대문까지 
전송해 주었다. 오륙기는 말했다.

[위 형제, 쌍아와 나는 이미 의남매를 맺었다오.]

위소보와 마초흥은 깜짝 놀라  쌍아를 바라보았다. 쌍아는 고개를 숙이
고 두 뺨을  빨갛게 물들이는데 매우 겸연쩍어  하였다. 위소보는 웃었
다.

[오 형님은 정말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농담이 아니오. 나의 이 의누이는  충성심이 깊고 의리가 높아 남자보
다 더 뛰어나니  협의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네. 이 
형은 그녀를 매우 존경하오.  나는 그대가 백승도왕 호일지와 의형제를 
맺는 것을 보고 쌍아와 의남매를 맺었다오. 그녀는 응하지 않으려 했고 
분에 넘치는 일이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일개 늙은 거지애 불과한데 뭐
가 분에 넘칠 게 있느냐고  했소. 내가 반드시 의남매를 맺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니까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응하더구먼.]

마초흥온 말했다.

[조금 전 두 분께서 저쪽 방에서 말씀을 하고 계시더니 의남매 맺을 일
을 상의하셨군요.]
[그렇소. 쌍아 누이는 나보고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소. 하하하! 의
남매를 맺는 것은 광명정대한 일인데 무엿이 부끄럽겠소?]

위소보는 잠시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어서 오륙기를 바라보다가 
다시 쌍아를 바라보곤 했다. 오륙기는 말했다.

[위 형제, 이후부터 그대는 나의 의누이 동생에 대해서 달리 봐야 한다
오. 만약 그녀에게 죄를 짓는다면 그대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오.]

쌍아는 재빨리 말했다.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상공께서는....상공께서는 저에게 무척 잘 
대해 주시는 걸요.]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에게 이런 오라버니가 있어 뒤를 보아주니 옥황상제나 염라대왕도 
죄를 짓지 못하겠군.]

세 사람은 껄껄 웃으며 작별했다. 위소보는 자기가 머무르는 곳으로 가
서 쌍아에게 의남매를 맺게 된  경과를 물었더니 쌍아가 매우 부끄러워
하며 말했다.

[그분 오....오 나으리....]
[뭐가 오 나으리야? 설마 하니  의남매를 맺었는데도 없었던 것으로 한
다는 말이오?]
[그분은 반드시 저와 의남매를 맺겠다고 했어요.]

그녀는 품속에서 나찰국의 단총을 꺼내며 말했다.

[그는 몸에 지닌 마땅한 물건이  없어서 한 자루의 단총을 저에게 선물
로 주겠다고 했어요. 상공, 상공께서 이걸 가지고 몸을 보호하세요.]
[그것은 그대의 오라버니가 그대에게 준  것이오. 어찌 나에게 다시 준
단 말이오?]

그는 오륙기가 일을 이상하게 처리한다고  느끼고 혀를 차며 다시 생각
했다.
(그의 이름이 륙기이니 즉 여섯  가지 기이한 점이 있을 것이 아니겠는
가? 그런데 다른 다섯 가지 기이한 점은 무엇일까?)
일행은 천천히 북경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구난은 위소보에게 한 가
지 검법을 가르치고 매일  연습하라고 했다. 그러나 위소보는 경박하고 
게을러서 정성들여 배우려 하지 않았다.
한번은 구난이 그에게 가르쳐 준 무공을 펼쳐 보이라고 했는데 그가 펼
치는 자세에서 진짜 무공은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
다.

[너와 나는 사제지간이라는 명분이 있기는 하나 너는 너무 게으르고 자
질이 뒤떨어져 무공을 배울 인재가  못 된디.. 그러니 이렇게 하자. 천
하에서 우리 철검문에만  신행백변(神行白變)이라는 무공이 있다. 이것
은 나의 은사 목상 도인(木桑  道人)께서 창안하신 것으로 경신법 가운
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너에게 한 가지 재간도 없다면 위험에 부딪
혔을 때 곤란할 것이다. 그래서 너에게 도망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니라.]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사부님께서 도망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면 그 누구도 쫓아오지 못
할 것입니다.]

구난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신행백변은 이 세상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경신법으로 과거 무림에
서 위세를 떨친 바 있다. 나는 그 방법 이의에는 네가 배울 수 있는 재
간으로 전수해 줄 것이 없다.]
[사부께서 저같이 못난 제자를 거두어 들인 것은 재수없는 일이겠군요. 
하지만 도박에서 지고 이기는 때가 있듯이 사부님께서도 이번에 운수가 
불길하여 저와 같은 제자를 거두어들였다고 생각하십시오. 훗날 사부님
의 위세를 떨칠  수 있는 여러 명의 훌륭한  제자들을 거두어들이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공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네
가 무공 배우기를 싫어하는 것은 타고난 것이니 억지로 되지는 않을 게
다. 아첨 잘하고 경박한 점만 고친다면 너도 훌륭한 제자라고 할 수 있
다.]

위소보는 크게 감동하여 그 양피지  조각들을 꺼내서 구난에게 줄까 생
각했으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이 양피지들은 이미 남자 사부님께 드렸으니 다시 여자 사부님께 드릴 
수야 없지. 다행히 두 분  사부님은 모두 다 오랑캐를 내쫓고 한나라의 
강산을 되찾으려고 하니 누구에게 주건 마찬가지이다.)
구난은 신행백변에서  내공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약간의 신법과 보법을 
위소보에게 가르쳐 주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여느 검법과 장법에 대해
서 위소보는 맛보는 정도로만 배우면  즉시 그만두곤 했으며 열심히 연
마하려 하지 않았는데 이 도망치는  방법만은 크게 흥미를 느끼고 길을 
가는 동안 쉬지 않고 익히는 것이 아닌가? 여가만 있으면 연습했다. 어
떤 때는 경신법이 탁윌한 서천천에게  뒤에서 쫓아오도록 하고 그 자신
은 동서로 마구  도망쳤다. 서천천은 그의 기묘한  신법에 크게 탄복했
다. 처음 몇 번은 따라갈 수 있었으나 구난이 그에게 새로운 요결을 전
수해 주니 경기 지방에 이르렀을 때는 서천천도 위소보를 쫓아갈 수 없
었다.
구난은 그가 신행백변이라는 경신법과  연분이 있는 것을 보고뜻밖이라
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너는 뺑소니치는 재간을 타고난 모양이구나.]
[제자가 신행백변을 연마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발바닥에 기름을 
바르는 신행말유(神行抹油)는 연성했으니 어쨌든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는 물었다.

[사부님, 사조이신 목상 도인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으니 당금 천하
에서 사부님의 무공이 제일가겠죠?]
[아니다. 천하 제일을 감히 누가 함부로 사칭할 수 있겠느냐?]

그녀는 창 밖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천하 제일의 고수는 따로 있다.]
[누구입니까? 제자가 반드시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그는....그는....]

구난은 갑자기 눈가를 붉히며 아무 말이 없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 선배님은 누구십니까? 제자가 이후에  만날 인연이 있어 뵙게 되면 
그에게 공손하게 큰절을 올리겠습니다.]

구난은 손을 내저으며 위소보에게  나가라고 했다. 위소보는 무척 이상
하게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나오며 생각했다.
(사부님의 안색이 정말 이상하구나. 설마하니 천하 제일의 고수라는 사
람이 그녀의 옛 정부란 말인가?)
구난이 이때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멀리 해외로 떠나간 원
승지(袁承志)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원승지를  그리워하다가 위소보의 
말을 듣자 마음이 괴로웠던 것이다.
이튿날 위소보가 구난의 방으로 가서  문안을 여쭈려고 하니 그녀는 이
미 떠나고 다만 한 장의  쪽지만 남아 있었다. 위소보는 그것을 가져가
서 서천천에게 읽어  달라고 했다. 종이 쪽지에는  노력하라는 네 글자 
<好自爲之>가 쓰여져 있을 뿐이었다. 위소보는 허전함을 느꼈다.
(어제 나는 사부님에게 누가 천하에서 무공이 제일가느냐고 물었다. 혹
시 그 한 마디에 사부님은 화가 나신 게 아닐까?)

며칠 후 일행은 북경에 도착했으며  건녕 공주와 위소보는 함께 황제를 
배알했다. 강희는  누이동생과 위소보를 대하자 무척  기뻐했다.  건녕 
공주는 대뜸 강희를 얼싸안고 대성통곡을 하며 입을 열었다.

[오응웅 그 녀석이 나를 못살게 굴었어요.]
[그 녀석이 감히 내 누이동생의  비위를 건드렸단 말이냐? 나중에 내가 
그의 볼기짝을 때려 주마. 그가 너를 어떻게 업신여기더냐?]
[소계자에게 물어 보세요. 그는 저를 못살게 굴었단 말이에요. 황제 오
라버니가 저를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주셔야 되겠어요.]

그녀는 훌쩍거리는 한편 연신 발을 굴렀다. 강희는 웃었다.

[좋다. 우선 너의  처소로 돌아가 쉬도록 해라.  내가 소계자에게 물어 
보겠다.]

건녕 공주는 이미 위소보와 상의해 놓았다. 강희 황제를 뵈오면 오응웅
이 어떻게 무례한 일을 저질렀는지를 아뢰기로 했던 것이다. 공주가 물
러나자 위소보는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강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아무 말 없이 다 듣고 나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소계자, 너는 정말 대담하구나.]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말했다.

[소신이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너는 공주와 한통속이 되어 감히 나를 속이려는 게 아니냐?]
[아닙니다. 소신이 어찌 황상을 속이겠습니까?]
[오응웅이 공주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데 그대는 친히 보았느냐? 그
런데 어째서 공주의 말만 듣고 나에게 아뢰는가?]

위소보는 생각했다.
(야단났구나. 소황제는 이 가운데의 빈틈을 알아채셨구나.)
그는 재빨리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황상께서는 만리 밖을 훤히  내다보십니다. 오응웅이 공주에게 무례한 
행동을 어떻게 했는지 소신은 친히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주의 거실 밖에 있었기 때문에 모두 친히
귀로 들은 바 있습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짓을 했어. 오응웅이라는  사람은 나도 두 번이나 만
난 적이 있다.  그는 똑똑하고 재간이 있다. 그는  그렇게 젊은 나이도 
아닌데 아름다운 희첩이 없겠느냐?  어찌 참지 못하여 대담하고 당돌하
게 공주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겠느냐? 흥, 공주의 성깔을 내가 모를 줄 
알고? 틀림없이  그녀가 오응웅에게  시비를 걸어 언쟁을  벌이다가 그
의....제기랄, 불알을 잘랐겠지.]

거기까지 말하다가 참을 수 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 위소보 역시 웃으
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일을 공주께서 자세히 말씀하실  수는 없었을 겝니다. 소신 역시 
자세히 물어 볼  수 없었습니다. 공주님의 분부에  따라 소신은 아뢰는 
수밖에 없었지요.]
[오응웅이라는 녀석은  억울한 일을 당한 셈이다.  그대가 성지를 내려 
그들 두 남녀가  북경에서 혼례를 올리도록 주선하라.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에 운남으로 되돌려 보내라.]
[황상, 혼례를 올리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오삼계 그 늙은 녀석은 반란
을 도모하고 있으니 공주를 운남으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강희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무슨 증거라도 있느냐?]

위소보는 오삼계가 서장, 몽고,  나찰국, 신룡교와 결탁하고 있는 사정
을 일일이 이야기했다. 강희는 엄숙한 얼굴로 듣고 있다가 깊은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그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 간적이 놀랍게도 많은 외부 사람과 결탁했구나.]

위소보는 이 일이 매우 중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강희는 잠시 후에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위소보는 몽고 왕자의 사자를  잡아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했ㄷㅏ 자기가 
어떻게 오삼계의 작은아들로 가장해서  진상을 알아냈으며 오응웅이 어
떻게 한첩마를 빼앗아 가려고 공주의  거처에 불을 지르고 공주의 침실
을 수색하다가 고환을 잘리는  변을 당했는지, 자기는 어떻게 부하들을 
왕부의 시종으로 변장시켜 기녀원에서 한첩마를 찔러 죽이는 연극을 했
는지 등 모든 사정을 이야기했다.  강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연신 고개
를 끄덕였다.

[참 잘했다. 무척 신났겠구나.]

그는 다시 말했다.

[오삼계라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부황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
이 전해지자 오삼계는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북경으로 와 빈소에 예를 
올리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를 한번  만나 보려 했으나 몇 명의 고명대
신(顧命大臣)들이, 그가 군사를 이끌고 북경으로 들어오면 어떤 변고가 
날지 모르니 북경성  밖에 따로 빈소를 차리고 예를  올리게 하라고 했
지. 그래서 그가 북경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서성거리며 말했다.

[오배라는 녀석은 정말 멍청하단 말이야.  성지를 내려 그들 부자로 하
여금 북경성으로 들어와 예를 올리도록  하고 대군은 성 밖에 머물도록 
했다면 오삼계가 무슨 짓을 할  수 있었겠느냐? 그가 감히 북경성 안으
로 들어서지 못한다면 그 자신이  충성을 다하지 못한 셈이 되지. 북경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지. '
우리들은 너희 대군을 겁내고 있으며  네가 북경으로 들어와 반란을 일
으킬까봐 두려우니 들어오지 말아라.' 그야말로 우리는 약첨을 보인 셈
이지. 조정에서 자기를 의심하고 두려워 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가 어
찌 반란을 도모하지 않을 리가  있겠느냐? 그가 역적 모의를 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을 게야.]

위소보는 강희의 분석을 듣고 마음속으로 탄복했다.

[그 당시 그가 황상을 뵈옵게  되었다면 황상의 감화를 받아 그는 반란
을 일으킬 마음을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나이가 어려 국가대사를  모르고 있었다. 그를 만나 보았어
도 특별한 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니  그는 나를 업신여겨 오히려 더 빨
리 반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는 오삼계의 모습과 행동거지를 상세히  물어 보고 다시 질문을 던졌
다.

[그의 서재에 하얀 호랑이 가죽이 있을 텐데?]

위소보는 강희가 그 하얀 호랑이 가죽에 대해서 묻는 것을 듣고 의아하
여 말했다.

[황상께서는 그처럼 사소한 일까지 알고 계십니까?]

강희는 미소를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오삼계의 병마와 사람을 
쓰는 일, 그리고  십대 총병의 성격과 재간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오삼계 휘하의 장수  가운데 누가 돈을 탐내고 누가  색을 밝히고 누가 
용감하고 누가 멍청한지 자세히  알고 있었다. 위소보는 탄복해서 말했
다.

[황상, 황상께서는 운남에 가 보시지 않고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
는군요.]

그는 갑자기 깨달은 듯 말했다.

[아, 그렇군요. 황상께서는 첩자를 보내셨군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아니겠느냐? 그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우리들은 가만히 있어서야 될 말이냐?  소계자, 그대의 이번 공로는 무
척 크다. 오삼계가 서장, 몽고, 나찰국과 결탁했다는 사실을 밝혀 냈으
니 말이다. 이와  같이 중대한 사실을 내가  밀파한 첩자들은 알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조그만 일을 알아냈을 뿐 큰일은 알아내지 못했단 
말이야.]
[그것은 모두 황상께서 복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한첩마를 궁 안으로 데리고 와라. 내가 그를 친히 심문하겠다.]

위소보는 열 명의 어전시위를  대동하고 한섭마를 서재로 데려왔다. 강
희는 한첩마를 보자 몽고말로  물었다. 한첩마는 몽고말을 듣자 놀라는 
한편 친밀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감히 속이지 못하고 자초지종을 모
두 털어놓았다. 강희는 두 시진을  두고 심문했다. 몽고와 오삼계가 결
탁한 상세한 사정, 몽고의  명력과 부서, 전량(戰糧)과 물산(物産), 산
천지세 및 풍토인정(風土人靑), 몽고 각기(各旗)의 왕공들 가운데 누가 
똑똑하고 누가 평범하며 서로간의 원한 관계에 대해서도 물었다.
위소보가 옆에서  보니 한첩마는 매우 탄복했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매우 두려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끝내 그는 무릎을  끓고 연신 큰절을 
올리는 것이 황상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 같았다. 강희는 어전시위에
게 한첩마를 데리고 나가 감금시키라고 명했다.
소태감이 한 그릇의 인삼탕을 가져왔다. 강희는 받아 마시고 나서 소태
감에게 말했다.

[위 부총관에게도 한 그릇 올리도록 해라.]

위소보는 큰절을 한  후에 인삼탕을 마셨다. 이때  서재 밖에서 발걸음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소태감이 들어와 보고했다.

[황상 폐하, 남회인(南懷仁)과 탕약망(湯若望)이 황상을 알현하기를 청
하고 있습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태감이  나가자 우람한 체구의 두 외국인이 
들어와 무릎을  꿇으며 강희에게 큰절을  올렸다. 위소보는 의아스러워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외국 도깨비들이 궁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지? 정말 이상한 노
릇이다.)
두 사람의 외국인은 큰절을 하더니  품속에서 한 권씩의 두루마리 책을 
꺼내 강희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나이가 비교적 젊은 사람은 남회인
이라고 불렸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황상, 오늘 우리들은 다시 대포가 발사되는 이치를 설명해 드리겠습니
다.]

위소보는 그가 북경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어, 
하는 소리를 내며 속으로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희한한 노릇이다. 도깨비들도 방귀를 뀔 줄 아는구나.)
강희는 위소보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이더니 고개를 숙여 탁자 위의 두루
마리 책을 내려다보았다. 남회인은  강희의 옆에 서서 손으로 두루마리 
책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강희는  알아듣지 못하는 대목에 이르면 즉시 
질문을 던졌다.
남회인이 이와 같이  반 시진을 설명하고 나서 다른  하얀 수염의 늙은 
외국인 탕약망이 천문과 역법에 대해서 반 시진 동안 이야기했다. 이윽
고 두 사람이 큰절을 하고 물러갔다.
강희는 웃었다.

[외국인이 우리 중국말을 하는 것을 보고 매우 회한하게 생각하지 않았
는가?]
[처음에 소신은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만  나중에 자세히 생각해 
보니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거룩하신 천자를 백신(百神)이 보호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찰국에서 불측한  마음을 품고 일을 꾀하니 하늘에
서는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서양 도깨비를 내려보내 황상을 위하여 총과 
포 같은 화기를 만들어 나찰국을 소탕하도록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대의 생각은 정말 기발한 데가  있어. 하지만 서양 도깨비들이 중국
말을 하는 것은  배우고 익힌 탓이야. 그  늙은이는 명나라 천계(天啓) 
연간에 중국으로 왔으며 일이만(日耳曼)  태생이지. 그 젊은 사람은 비
리시(比利時) 사람으로 순치 연간에  온 사람이지. 그들은 모두 예수교
의 선교사로 중국에  와서 선교를 하고 있지.  선교를 하려면 중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하지.]
[그랬군요. 소신은 줄곧 나찰국의 화기가 무섭다는 것만 걱정하고 있었
습니다. 오늘 외국  사람들이 대포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나찰국 사람도 사람이고 우리 역시  사람이야. 그들이 총과 포를 만들
어 냈다면 우리도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아직까지 그 
방법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과거 우리가 명나라와 요동땅에서 싸움
을 벌일 때 명나라 군사에게 대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많은 고통
을 당했었지. 태조 황제께서는 포화에 상처를 입고 돌아가셨다. 그러나 
결국 명나라의 천하를 우리가 차지하지 않았는가? 이로 미루어 보아 총
과 포는 사람이 이용하기  나름이야. 사용하는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총과 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쓸모없는 것이지.]
[명나라에도 대포가  있었다구요? 그 대포가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가져가서 오삼계 그 늙은 녀석을 쏘아서 단 한 방에 죽여버리고 
다시 한 방을 더 쏴서 가루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강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명나라의 대포는  몇 대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오문(澳門)의 홍모인
(紅毛人)들에게 산 것이지.  그 도깨비들의 총과 포를  사서 쓸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해. 만약 그  도깨비들과 싸움을 벌이다가 그들이 팔지 않
으면 야단이 아닌가? 우리들 스스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옳습니다. 황상께서는 그 예수교  선교사들이 가짜를 만들어 속일까봐 
직접 그 이치를 아시려고  하는군요? 이제부터는 그 도깨비들이 아무리 
속이려고 해도 황상을 속일 수는 없겠군요.]
[나의 생각을 잘 알아맞혔다. 총과  포를 만드는 이치는 정말 복잡하고 
어렵다. 무쇠를 제련하는 것만 해도 수월한 노릇이 아니지.]

위소보는 용감하게 말했다.

[황상, 제가 황상을 대신해서 북경성 안팎의 대장장이들을 모조리 불러
모으겠습니다. 모두 풀무질을 하여 몇 백만 근이나 되는 무쇠를 달구어 
놓도록 하지요.]

강희는 웃었다.

[그대가 운남에 있을 때 나는 십여  만 근의 질 좋은 무쇠를 이미 달구
어 놓았다. 탕약망과 남회인은 지금 한창 대포를 만들고 있다. 언제 함
께 구경을 가자.]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그것 참 좋습니다.]

그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말했다.

[황상, 외국의 도깨비들은 나쁜 마음을 품고 있으니 우리들은 경계해야 
합니다. 대포를 만드는 곳에  화약과 철기(鐵器)가 있으니 위험합니다. 
황상께서는 가지 마십시오. 소신이 감독하겠습니다.]
[그건 걱정할 것 없다. 이 일은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다. 내가 친히 보
지 않으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남회인은  층성스럽고 정직한 사람이
다. 탕약망은 내가 목숨을 구해 준 적이 있어 여간 고마워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결코 딴 마음을 품지 않을 것이다.]
[황상께서 도깨비의 목숨을 구해 주셨다니 그것 참 회한하군요.]

강희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삼 년 전, 탕약망은  흠천감(欽天監)이 일식(日蝕)을 잘못 계산했다고 
하면서 흠천감의 한나라 출신  관리와 언쟁을 벌이게 되었다. 흠천감인 
한관(漢官) 양광선(楊光先)은 그를 모함했지. 그는 상소문을 올려 탕약
망이 만든 대청시헌력(大靑時憲曆)은 이백  년밖에 헤아려 보지 못한다
고 했지. 그런데 우리 대청나라로 말하면 하늘이 보우하사 거룩하신 천
자의 대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며 수만  년을 두고 이 강산에 군림할 것
이다. 그런데 탕약망은 겨우 이백 년밖에 헤아려 보지 못했으니 그것은 
우리 대청나라가 이백 년 동안만 천하를 통치할 수 있다고 저주한 것이
라고 탕약망을 모함했었다.]

위소보는 혀를 내밀며 말했다.

[정말 무섭군요. 외국의 늙은 도깨비는  천문지리를 헤아려 볼 줄만 알
았지 벼슬아치들의 중상모략은 혜아리지 못했군요.]

강희는 말했다.

[그렇다. 그때는 오배가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이 녀석은 멍청하게
도 탕약망이 우리 조정을  저주했으니 능지처참해야 된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 내막을 헤아려 보았지.]

위소보는 말했다.

[삼 년 전이라면 황상께서는 십여 세밖에 되지 않았을 때 아닙니까? 그
런데도 그 깊은 속임수를 알아보셨으니 그야말로 거룩하신 천자이시며, 
총명하시고 지혜스러워 고금을 통틀어 보기 드문 성군이신가 합니다.]



第85章. 녹정산의 비밀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아첨은 그만해라. 사실 그 이치는  매우 쉽다. 나는 오배에게 물었지. 
그 대청시헌력을 언제 만든 것이냐고.  그는 모른다고 하더군. 그는 물
러가서 알아보더니 다시  돌아와서 순치 십 년에 만든  것인데 그 당시 
황제께서는 성지를 내려 칭찬을 하시고 그에게 통현교사(通玄敎師)라는 
작위를 내렸다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내가 육, 칠 세 때 이
미 서재에서 대청시헌력을 보았소. 이 역서는 만든 지 이미 십 년이 지
났는데 어쩨서 그 당시에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었소? 이제 그와 다
투어 이길 수 없으니까 해묵은 일을 들추어내자는 것이 아니오? 그것은 
공평하지 못한 일이오.' 오배는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는지라 
그를 죽이지 않고  뇌옥 속에 가두어 두었다. 나는  그 일을 깜박 잊고 
있었는데 최근 남회인이 들먹이는 바람에  생각이 나서 성지를 내려 그
를 석방한 것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소신이 그에게 가서 한 권의 대청만년력(大淸萬年曆)을 만들어 내라고 
하겠습니다.]

강희는 껄껄 웃더니 정색하고 말했다.

[나는 명나라의 역사책들을 읽어 본  적이 있다.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
는 임금은 반드시 오랫동안 나라를  유지하게 될 것이고 백성을 못살게 
구는 임금은 결국 망하게 되어  있지. 자고로 사람들은 황제를 만세(萬
歲)라고 불렀는데  만세는커녕 일백 세의 수명을  누린 황제도 없었지. 
뭐가 만수무강이야? 모두 거짓말이지. 그래서 부황께서는 여러 번 나에
게 영원히 세금을 올리지 말라는  유시를 내린 것이 아니겠느냐? 내 곰
곰이 생각해 보니 그 한 가지만  잘 지킨다면 대청의 강산은 무쇠로 만
들어진 것처럼 튼튼할 게야.  서양인의 대포나 오삼계의 명마는 걱정할 
필요가 없지.]

위소보는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잘 모르므로 연신 대답만 했다. 그는 
오삼계에게서 훔쳐 온 한 권의 정남기 사십이장경을 꺼내 두 손으로 바
치며 말했다.

[황상, 이 경서는  오삼계 그 늙은 녀석이  가로챘더군요. 소신이 그의 
서재에서 찾아내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드리는 바입니다.]

강희는 크게 기뻐했다.

[매우 좋아, 매우 좋아! 태후께서는  언제나 이 일을 걱정하셨다. 내가 
그 어르신께 바치고 그 어르신께서  다시 태묘(太廟)로 가지고 가 불살
라 버린다면 그  안에 어떤 비밀이 있든간에 다시는  아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일세.]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태우는 게 가장 좋지. 이것이야말로  시체를 없애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내가 그 경서 속에서 찾아낸 양피지의 비밀
온 영원히 발각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 처소로  돌아왔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는  문에 빗장을 걸고 
그 한 봉지의 양피지 조각들을 꺼낸 후 쌍아를 불렀다.

[한 가지 수고를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내 대신 이걸 해줘야겠소.]

그는 그녀에게 수천 조각이나 되는  것들을 원래대로 맞추어 보라고 했
다. 쌍아는 탁자  위에 엎드려 가위질한 흔적을  따라 천천히 조각들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조각 한조각 맞추어  나갔다. 그러나 수천 
조각이나 되는 양피지 조각들이 마구  뒤섞여 있어 원래의 모습대로 맞
추는 것은 걸코 수월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처음에는 탁자 옆에 앉아
서 동쪽에 한 조각 붙여 보고 서쪽에서 한 조각 떼어내는 등 맞추는 것
을 도왔다. 그러나 한참을 애써  보았지만 서로 맞닿는 두 조각도 찾아
낼 수 없었다. 그는 맥이 빠져  잠을 자러 갔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바깥 방에 여전히 촛불이  켜져 있었다. 쌍아는 한 조각의 양피지
를 손에 들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위소보는 그녀의 등 뒤로 다
가가서는 왕, 하니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쌍아는 깜짝 놀라 펄쩍 뛰
어 일어나더니 웃으며 말했다.

[잘 주무셨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그 일은 참을성을 요하는 일이오. 내가 빨리 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
데 그대는 어째서 한잠도 자지 않았소? 빨리 가 주무시오.]

쌍아는 말했다.

[우선 치우고요.]

위소보는 탁자 위의 커다란 백지 위에 이미 수놓는 침으로 십여 조각을 
꿰어맞춰 놓은 것을 보고 기뻐서 말했다.

[그대는 이미 몇 조각을 찾았구려.]

쌍아는 말했다.

[처음엔 아주 어려웠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이치를 알게 되었어요. 이
제부터는 좀더 빨리 맞출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조각들과 그  커다란 하얀 베를 함께 상자  안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 조각들은 매우 중요하니 절대 남에게 도둑맞으면 안 되오.]
[저는 하루 종일  이곳에서 반 걸음도 떠나지 않겠어요.  다만 잠잘 때 
사고가 날까봐 두렵군요.]
[걱정하지 마시오. 효기영 군사들을 몇 명 데리고 와 집 밖에서 그대를 
보호하도록 하겠소.]

쌍아는 웃었다.

[그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예요.]

위소보는 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이 붉게 충혈된 것을 보고 어젯밤 그녀
가 무척 고생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말했다.

[빨리 가서 자요. 내가 그대를 안아서 침대 위에 눕혀 드리지.]

쌍아는 부끄러워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연신 손을 내저었다.

[싫어요.싫어요.]
[뮈가 싫다는 것이오? 그대가 나를  돕기 위해 밤새워 고생했는데 내가 
그대를 안아 침대에 눕힌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소?]

위소보는 손을 뻗쳐 그녀를 안으려고 했다. 쌍아는 킥, 하고 웃으며 그
의 팔 아래로 빠져나갔다. 위소보는 몇 번이나 쌍아를 안으려고 했으나 
매번 허공을 껴안고 말았다. 그는 자기의 경신법이 그녀보다 훨씬 못한 
것을 알고 의기소침해서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앉았다. 
쌍아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가까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상공께서 세수하고 아침식사하는 것을 시중든 후에 가서 자겠어요.]

위소보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하지  않았다. 쌍아는 그가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자 불안해져서 나직이 말했다.

[상공, 그대는....화가 나셨나요?]
[화를 내는 것이  아니고 나의 경신법이 너무  형편없어서 그러는 것이
오. 사부님은 나에게 많은 요령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나는 제대로 배우
지 못했으니 한심스럽소. 그대와 같은 작은 아가씨도 잡지 못하니 무슨 
쓸모가 있겠소?]

쌍아는 미소지었다.

[상공께서 저를 껴안으려고 하니까  제가 죽어라 도망치는 것이 아니겠
어요?]

위소보는 갑자기 몸을 솟구치며 말했다.

[반드시 그대를 잡겠다!]

두 손을 활짝 벌리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쌍아는 깔깔 웃으면서 몸을 
옆으로 돌려  피했다. 위소보는 일부러 왼쪽으로  덮쳐 들었다. 그녀가 
오른쪽으로 도망을 치자 냅다 손을 뻗쳐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 쌍아
는 아, 하고 놀라 부르짖었다.  그러나 옷자락이 찢어질까봐 감히 힘주
어 뿌리치지는 못했다.
위소보는 두  팔로 그녀를 껴안았다.  쌍아는 간지러워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위소보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무릎 뒤를 받치고 그녀를 안아 자
기 침대 위에 눕혔다. 쌍아는 얼굴이 빨개져서 불렀다.

[상공,그대는....그대는....]

위소보는 웃었다.

[내가 어떻다는 것이오?]

그는 이불을 당겨 그녀의 몸을 덮어 주고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맞춤
을 했다.

[빨리 눈을 감고 자요.]

그는 몸을 돌려 방을 나서서 문을 닫아 주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계집애는 내가 화를 낼까봐 일부러 나에게 잡혀 준 것이다.)
그는 대청으로  가서 친위명에게 명령을 내려  일대의 효기영 군사들로 
하여금 자기 방을 지키도록 했다.

며칠 동안 그는 운남에서 가지고 온 금은과 예물을 나누어 궁중의 비빈
들과 왕공대신, 시위, 태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만약 오삼계가 선물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늙은 녀석
에게 빚을 진 셈이다. 차라리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는 오삼계의 수십만 냥이나 되는  금은을 흠차대신 효기영 도통 위소
보가 주는 예물로 만들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무척 많았다. 그러
므로 자연 위소보를 칭찬하는  말이 자자하게 퍼졌다. 궁중이나 조정의 
대신들은 모두 이 젊은 도통이 똑똑하고 마음이 넓다고 칭찬했다.

이 며칠 동안 쌍아는 매일같이  그 조각난 양피지들을 맞추었다. 꼭 맞
아떨어지는 조각들을 찾아 수바늘로 꽂아 놓곤 했다. 위소보는 매일 밤 
들여다보곤 했는데  짜맞추는 지도가 점점 커지자  그림에 그려져 있는 
산천의 지세와 구불구불한 글자를 볼 수 있었다.  쌍아는 말했다.

[이 글자들은 모두 외국 글자들이라 저는 알아볼 수가 없어요.]

위소보는 그것이 만주 글자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역시 한 자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글자에 대해서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십팔 일째 되는 날  밤, 위소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쌍아
는 얼굴에 기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아래턱을 어루
만지며 물었다.

[무슨 일로 기분이 좋아졌지?]

쌍아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상공, 어디 한번 맞쳐 보세요.]

어젯밤 잠을 청하면서 위소보는 이  양피지 조각들을 맞추기가 점점 쉬
워진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맞추는 일은 한쪽을 맞추면 나머지가 한 
조각 적어지는 만큼 점점 더  쉬워지는 것이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어
려워서 한 시진 동안에 한 조각도 맞추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점점 신속
해졌다. 그는 쌍아가 이미 모든 지도를 짜맞추었기 때문에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모르는 척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짐작해 볼까? 음, 그대는 반드시 몇 개의 호주(湖州) 종자( =米+
宗,子)를 만들어서 나에게 주려는 것이겠지?]

쌍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렇다면 방바닥에서 보배를 주웠나?]
[아니에요.]
[그대의 오륙기 오라비가 광동에서  좋은 물건을 가져와 그대에게 선물
을 했나?]
[아니에요. 길이 그토록 먼데 벌써 왔겠어요?]
[그럼 장씨 집안의 셋째 작은 마님께서 편지라도 보내 온 것인가?]

쌍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나직이 말했다.

[아니에요. 정말 장씨 집의 셋째  작은 마님께서는 잘 계신지 모르겠네
요. 저는 종종 생각이 나요.]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아! 이제야 알았소. 오늘이 그대의 생일이군.]
[아니에요. 저의 생일은 오늘이 아니에요.]
[그럼 언제야?]
[구월 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잊어버렸어요.]
[거짓말. 자기 생일을 어떻게  잊는단 말이오. 맞았소. 맞았소. 그대가 
소림사에 있을 때 그 노화상  친구들이 생일을 축하하러 그대를 찾아간 
적이 있었지.]

쌍아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공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정말  우스꽝스럽군요. 저에게 무슨 소림사
의 늙은 화상 친구가 있겠어요? 그대에게나 있겠죠.]

위소보는 머리를 긁적긁적하며 섕각해 보는 척하고 말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니,  정말 짐작하기 어렵군. 그렇다면 그
대가 양피지 조각을 다 짜맞춘  것이 아닌가. 하지만 어젯밤에 보니 삼
백 조각이나 남아  있더구먼. 아무리 빠르다 해도  대엿새는 더 지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

쌍아는 두 눈에 기쁜 빛을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만약에 오늘 모두 짜맞추었다면요?]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짓말, 나는 믿을 수가 없는걸?]
[상공, 이것 보세요. 이게 뭐죠?]

위소보는 그녀를 따라 탁자 곁으로 갔다. 탁자 위의 커다란 흰 베 위에 
수천 개나 되는 수놓은 바늘이 꽂혀 있었고 수천 조각이나 되는 양피지
들이 짜맞추어져 한 폭의  완전무결한 지도를 이루고 있었다. 위소보는 
크게 소리치며 쌍아를 덥석 안고는 외쳤다.

[대성공이다! 대성공. 뽀뽀나 한번 하자!]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려고 하자 쌍아는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돌렸다. 위소보의 입술은 그녀의  귀에 닿았다. 순간 쌍아는 전
신이 시큰하고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놀라 부르짖었다.

[싫어요, 싫어요!]

위소보는 웃으며 그녀를 놓아주고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아 어깨를 나란
히 하고 지도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칭찬의 말을 던졌다.

[쌍아, 만약 그대가 이 일을 해주지 않고 나 혼자서 이 일을 했다면 삼 
년하고도 육 개월을 두고 짜맞추어도 불가능했을 거야.]

쌍아는 말했다.

[그대는 큰일을 많이 처리해야 될  몸인데 어느 겨를에 이런 미련한 일
을 하겠어요?]

위소보는 말했다.

[이것이 미련한 일인가? 이것은 천하에서 가장 총명한 일이야.]

쌍아는 위소보의 말에  무척 흐뭇해 했다. 위소보는  지도를 보며 말했
다.

[이것은 높은 산이고 이것은 큰 강물이군.]

그는 손가락으로 커다란 강물이 구비 도는 곳에 네 가지의 빛깔이 나는 
둥근 원이 여덟 개 모여 있는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한 폭의 지도는 모두 검은  먹물로 그린 것이지만 이 여덟 개의 조
그만 원은 붉고, 희고, 노랗고, 파랗고,  어떤 것은 노란 원에 붉은 가
장자리를 하고 있군. 아, 그렇지.  이것은 만주인들의 팔기야. 이 여덟 
개의 조그만 원이 표시된 곳에는 반드시 이상한 점이 있을 것 같다. 그
런데 이 산이 무슨 산이고 이 냇물이 무슨 냇물인지 모르겠군.]

쌍아는 한 응큼의 엷은 면지(棉紙)를 꺼냈다. 모두 삼십여 장이나 되었
다. 그런데 장마다 구불구불한 만주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그것
을 위소보에게 내주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게 뭐지? 누가 쓴 것이지?]
[제가 쓴 거예요.]

위소보는 놀라고 기뻐서 말했다.

[그대는 만주 글자를 알고 있었군.  그런데 며칠 전에는 나에게 거짓말
을 했었군.]

그는 두 팔을 벌려 안으려고 했다. 쌍아는 급히 물러서며 웃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저는 만주 글자를 몰라요. 이것은 엷은 종이를 위
에 놓고 한획 한획 베껴쓴 거예요.]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정말 잘되있군. 정말 잘되었어!  나는 만주 사야(師爺)보고 가르쳐 달
라고 해야지. 중국말로 번역을 해  놓으면 그림 속에 쓰여진 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겠군. 좋아. 쌍아.  보배 같은 쌍아, 그대는 정말 섬세
하군. 이 지도가 중대한 것을 알고 만주 글자를 수십 장에 나누어 쓰다
니. 내가 여러 사람에게 묻는다면 이 기밀은 누설 되지 않겠지.]

쌍아는 미소지었다.

[정말 흘륭하시고 총명하신 상공이네요. 그대는  한 번 보고 저의 뜻을 
알아차리셨네요.]

위소보는 웃었다.

[대성공을 했으니 입이나 한번 맞추자구.]

쌍아는 그 말을 듣고 몸을  날려 밖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위소보
는 대청으로 와서 친위병을 시켜 효기영의 만주 필첩식(筆帖式)을 불렀
다. 그는 한 장의 편지를 건네주며  그에게 이 몇 개의 만주 글자가 무
슨 뜻인지 물었다. 그 필첩식은 말했다.

[도통대인께 말씀드립니다. 이 액이고납하(額爾古納河), 정기리강(精奇
里江), 호마이와집산이라는  곳은 모두 만주땅의 큰  강과 높은 산입니
다.]
[제기랄! 무슨 놈의 발음이 그토록 괴상하지? 어디에 있는 지역이오?]
[도통대인, 그곳은 관의에서도 북쪽 끝에 있는 땅이랍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기뻐했다.
(과연 만주인들이 보물을 숨겨 놓은 곳이로구나. 그들은 금은보화를 관
외로 가져가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숨겨 놓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
다.)

[그대는 그 지역의 이름을 모두 한자로 써주시오.]

필첩식은 그 말에 따라 써주었다.  위소보는 다시 한 장의 편지를 꺼내
더니 물었다.

[이것은 무슨 강과 무슨 산이오?]

필첩식은 말했다.

[도통대인, 이것은 서리목적하(西里木的河), 아목이산(阿穆爾山), 아목
이하(阿木爾河)입니다.]
[제에미!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야릇하군.]

필첩식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주 말로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습니다요.]
[좋소. 그대는 한자로 옮겨서  적어 주시오. 나중에 그대가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지 않았는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겠소.]

필첩식은 말했다.

[예, 예. 비직이 하늘만큼  담이 크다해도 도통대인에게 터무니없는 소
리를 감히 지껄이겠습니까?]
[허! 하늘만큼 큰 담을 지녔다구?]
[아닙니다, 아닙니다. 비직의 담은 쥐새끼처럼 작습니다.]

위소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게 누구 없느냐? 오십 냥의 은자를 담이 쥐새끼처럼 작은 이 친구에게 
내리도록 해라. 이것 보오. 그대가  만약 밖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면 즉시 오십 냥의 은자를 도로 빼앗을 뿐
만 아니라 이자까지 쳐서는 모두 백오십 냥의 은자를 변상하라고 할 테
니까 그리 아시오.]

필첩식은 크게 기뻐했다. 그의 한  달 향은(餉銀:봉급)은 십이 냥의 은
자에 불과한데 도통대인이 대뜸 오십  냥의 은자를 내리니 그는 고맙다
는 인사를 했다.

[비직은 결코 함부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본전이 오십 냥인데 이자가 일백 냥이라니, 맙소사. 정말 대단한 이자
로구나. 나의 머리를 자를지언정 그 이자는 못 물어내겠다.)
며칠 동안 위소보는 수십 군데의  지명을 알아냈다. 네 가지 색으로 이
루어진 여덟 개의 조그만 원은  흑룡강 이북에 있었으며 바로 아목이하
와 흑룡강이 합류하는 곳이었다. 보물의 소재지인 그곳은 호마이와집산
의 정북쪽이자 아목이산의 서북쪽인 곳에 위치해 있었다. 여덟 개의 조
그만 원 사이에 쓰여진 두 개의  황색 만주 글자를 한문으로 옮기고 보
니 바로 녹정산(鹿鼎山)이라는 세 글자였다.

위소보는 지도와 지명을 머릿속에  기억해 놓고 쌍아에게도 기억하도록 
했다. 그는 이 조각들을 남에게 빼앗기면 비밀이 누설될 염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각들을 화로에 넣어 불태웠다. 불길이 거세게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보며 그는 마음속으로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몇  봉지로 나누어서 다른 곳에  숨기라고 했다. 그래도 
남에게 도적질당할 위험이 있다 이제  내 마음속에 새겨 두었으니 설사 
나의 염통을 긁어낸다 하더라도 그  지도는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하
지만 내 소중한 염통을 누가 긁어내면 안 되지.)
고개를 돌려 보니 불빛에 비친  쌍아의 얼굴이 발그레하여 무척 간드러
지고 예뻐 보여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의 쌍아는 정말 아름답기 이를 데 없구나.)
쌍아는 그의 눈길을 받고 부끄러움을 느낀 듯 고개를 숙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쌍아, 그대와 나는 지도도  짜맞추었고 지명도 알아냈으며, 제기랄 놈
의 희한한 지명도 모조리 외웠으니 그야말로 큰 공을 세운 것이 아니겠
소?]

쌍아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째서 아니란 말이오?]

쌍아는 웃으면서 문을 열고 달려나가며 말했다.

[저는 몰라요!]

위소보는 쫓아 가며 말했다.

[그대는 몰라도 나는 알고 있지.]

이때 갑자기 한 명의 친위병이 총총히 달려오더니 말했다.

[도통대인꼐 알립니다. 황상께서 빨리 듭시라는 전갈이십니다.]

위소보는 쌍아에게 살짝 눈을  흘겨주고 입궐했다. 대궐문 입구에는 신
하들이 줄지어 서 있고 강희의 어가가 궁중에서 나오고 있었다. 위소보
는 의장(儀丈)의 뒤로  돌아가서 길 옆에 꿇어앉아  절을 했다. 강희는 
그를 보자 웃으며 말했다.

[소계자, 나와 함께 외국인들이 포를 작동하는 것을 보러 가자.]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정말 잘되었습니다. 대포를 정말 빨리 만들었군요.]

일행은 좌안문(左安門) 내에 있는 용담포창(龍潭포=火+包,廠)에 이르렀
다. 남회인과 탕약망은 길가에 끓어엎드려서 어가를 맞았다. 강희는 말
했다.

[일어나시오. 일어나시오. 대포는 어디 있소?]

남회인은 말했다.

[황상께 아룁니다. 대포는 바로 성 밖에 있습니다. 삼가 어가를 옮기시
어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좋소.]

강희는 수레에서  걸어나왔다. 전후에서 시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는 
좌안문을 나섰다.  그곳에는 삼문(三門)의 대포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
다. 강희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대포는 번쩍번쩍 검푸른 빛이 감돌
고 포신은 굵고 컸으며 포륜(抱輪)과 승축(承軸) 등은 지극히 단단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강희는 흐뭇하여 입을 열었다.

[매우 좋소. 시험삼아 몇 번 쏘아 보시오.]

남회인은 친히 대포의 포신 안에 화약을 넣고 쇳조각으로 꾹꾹 누른 후 
한 알의 포탄을 집어넣고 몸을 돌렸다.

[황상께 아룁니다. 이 포탄은  일리(里) 반까지 날아갑니다. 과녁은 이
미 저쪽에 세워 두었습니다.]

그가 손가락질하는 곳에는 흙으로 만들어 놓은 열 개의 둔덕이 저 멀리 
나란히 서 있었다. 강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쏘시오.]

남회인은 말했다.

[황상께서는 십 장 밖으로 옮겨 주십시오. 만전을 기하려는 것입
니다.]

강희는 빙그레 웃고 물러났다.  위소보는 자진해서 용감하게 나서며 말
했다.

[첫 번째의 대포를 소신이 쏘도록 해주십시오.]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대포 옆으로 가서 남회인에게 말했
다.

[외국에서 오신 노형, 그대가 겨냥하시오. 내가 불을 당기겠소.]

남회인은 이미 포구의 높낮이를 겨냥해  놓았었는데 다시 한 번 맞추어 
보았다. 위소보는 횃불을 받아서 포에  있는 화약선에 불을 당긴 후 급
히 뒤로 물러나 횃불을 던져 버리고 두 손으로 귀를 꼭 막았다. 화광이 
번쩍 하더니 쾅,  하는 커다란 음향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멀리 흙으로 만들어 놓은 둔덕이 하나 터져 나갔으며 
불기둥이 치솟았다. 그 둔덕에 대량의  유황을 묻어 놓았던 것이다. 그
리하여 포탄이 떨어지자 즉시  타오르게 되어 위세가 놀라웠다. 군사들
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강희를 향해 크게 부르짖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삼 문의 대포는 연달아 포탄을 쏘았는데 모두 열 번을 쏜 결과 일곱 개
의 둔덕을 적중시킬 수 있었다. 다만 세 개의 둔덕은 겨냥이 약간 잘못
돼 적중되지 않았다.  강희는 매우 기뻐서 남회인과 탕약망에게 칭찬의 
말을 해주고 즉시 남회인을  흠천감의 감정(監正)으로 벼슬을 올려주었
다.
탕약망은 원래의 벼슬이 태상사경(大常寺卿), 통정사(通政使)였고 작위
가 통현교사였는데 오배에 의해서 파면당했으나 강희는 성지를 내려 그
의 벼슬을 회복시켜 주고 통미교사(通微敎師)의 작위를 내렸다. 강희의 
이름이 현엽이어서 현 자를 기피하였던 것이었다. 삼 문의 대포는 이름
을 신무대포(神武大畑)라고 지었다. 궁으로 돌아온 강희는 위소보를 서
재로 불러놓고 싱글벙글 웃었다.

[소계자, 우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둘러 몇백 문의 신무대포를 만
들어 한일 자로 늘어 세우고 오삼계 그 늙은 역적을 겨냥하여 쾅, 하고 
쏜다면 그가 반란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어디 그대가 말해 보아라.]

위소보는 웃었다.

[황상은 귀신이 감탄할 만큼 신기묘산이 뛰어나시니 신무대포가 아니라
도 오삼계라는 그 늙은 녀석을 대뜸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
무대포가 있다면 더욱더....용에 날개가 돋친 격이라고 하겠지요.]

그는 호랑이에  날개가 돋친 격이라고 말하려  했으나 황제를 호랑이에 
비유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아서 용이라는 말로 고친 것이다.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그 한 마디에  무식함이 드러났군. 용은 하늘을 날  수 있는데 날개가 
왜 필요하겠느냐?]

위소보는 웃었다.

[예, 예. 대포가 없다 해도 황상께서는 오삼계를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
다는 뜻입니다.]

강희는 웃었다.

[그대는 언제나 잘 둘러댄단 말이야.]

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군. 오삼계가 몽고, 서장, 
나찰국과 결탁하고 신룡교와 손을 잡고 있다며? 그 대역무도한 늙은 갈
보 가짜 태후는 바로 신룡교에서 궁 안을 어지럽히기 위해 파견한 사람
이란 말이지?]
[바로 그렇습니다.]
[그 반역도를 잡아서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죽이지 않고는 모후께서 피
살되신 한과 태후께서 감금된 욕됨을 설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이를 갈며 분노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황제는 나보고 늙은 갈보를 잡으라는  것이구나. 그 늙은 갈보는 키가 
작고 뚱뚱한 수두타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그녀를 잡기란 수월한 노릇이 아니다.)
그는 약간 망설이며 감히 자청할 수 없었다.

[소계자, 이 일은 기밀에 속하니 그대를 보내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예, 그 늙은 갈보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르겠군요. 그녀의 정부, 한 
무더기의 살로  빚어진 공 같은 놈은  요술을 쓸 줄  아는 것 같았습니
다.]
[늙은 갈보가 황량한  산속에 숨어 버렸다면 그녀를  찾기는 쉽지 않겠
지. 하지만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있다. 사람들을 이끌고 먼저 신롱교라
는 사교(私敎)를 토벌하여 없앤 후 그 사교의 한 패거리를 잡아와 일일
이 고문을 한다면 십중팔구 늙은 갈보의  행적을 알아낼 수 있을 것 이
다.]

그는 위소보가 난처한 빛을 띠는 것을 보고 다시 말했다.

[나 또한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대는 능력이 있고 
행운이 따르는 복장(福將)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처리하기 매우 어려
운 일도 그대의 손에 넘어가면  단숨에 성공을 하거든. 나는 시일을 두
지 않겠다. 먼저 그대를 관외로  보내 몇 가지 일을 처리하도록 하겠으
니 관외로 나가서 봉천(奉天)에서 인마를 움직여 기회를 보아 신룡도를 
쳐부수기 바란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황제가 나에게 아첨을 하니 응낙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는 말했다.

[소신의 복은 모두 황상께서 내리신 것입니다. 황상께서 저에게 특별히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니 저의 복이 따라서  커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도 황상의 홍복 덕택으로 늙은 갈보를 잡아 올 수 있으면 좋겠습
니다.]

강희는 그가 이 일을 맡으려 하자 무척 기뻐하며 그의 어깨를 다독거렸
다.

[원한을 갚는 것은 큰일이나 국가 사직에 비하면 작은 일이다. 늙은 갈
보를 잡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더욱 중요한 일은 역시 신룡도를 쳐부수
는 일이다. 소계자, 관외는 우리  대청나라가 크게 기세를 떨친 발상지
이다. 신룡교가 옆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나찰국의 사람들과 손
을 잡고 관의를 차지하면 대청나라는 근본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대가 
신룡도를 쳐부수는  것은 나찰국 사람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것과 같은 
일이다.]

위소보는 웃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던 그는 갑자기 언성을 높여서 부르짖었다.

[아라오(阿羅烏)! 고로호(古魯呼)!]

그는 오른손을 쳐들고서는 끊임없이 소리쳤다.

[갑자기 무슨 짓이냐?]
[나찰국 놈들이 손가락이 잘렸으니  아파서 비명을 지를 것이 아니겠습
니까?]

강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대를 일등 자작으로  올려주었는데 다시 그대에게 파도로(巴圖
魯)라는 작위를 내리도록 하지. 봉천에 주둔시키고 있는 병마를 움직여 
신룡도의 반란을 토벌하도록 해라.]

위소보는 털썩 엎드리며 말했다.

[소신은 벼슬이 높아질수록 복이 그만큼 더 많아진답니다.]
[그러나 이 일을 너무 크게  벌여서 오삼계나 상가희 일당이 미리 알면 
안돼. 그들은 불안해서 일찌감치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니 귀
신도 모르게 갑자기 신룡교를 토벌해야 돼. 이렇게 하자. 나는 내일 그
대를 장백산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러 보낸다고 하겠다. 장백산은 우
리 애신각라(愛新覺羅) 집안의 원 조상이 강생(降生)한 성지(聖地)이니 
내가 그대를 파견하여 제사를 올리게  한다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황상의 신기묘산에 신룡교주는 수여층제(壽與蟲齊)가 될 것입니다.]
[수여 충제가 뭐야?]
[신룡교 교주의 수명이 작은 벌레와  같으니 얼마 살지 못할 것이란 말
씀입니다.]

그는 강희 앞에서 그 일을 하겠다고 말했으나 신룡교 홍 교주의 무공이 
탁월하고 교에 고수들이 구름처럼 많온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이나 휘두를 줄  알고 활이나 쏠 줄 아는  군사들을 이끌고 신롱도를 
공격하다가는 위소보  자신의 생명이 수여충제할  가능성이 컸다. 그는 
궁에서 나와 무척 답답해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신룡도엔 결코 가지 않겠다. 소현자가  나에게 잘 대해 주기는 하지만 
그를 위해 헛되이 목숨을 버릴 필요는 없다. 나의 이 벼슬길도 이제 막
다른 골목에 이른 것이다. 차라리  관외로 가서 기회를 노려 흑룡강 북
쪽에 있는 녹정산으로 가서 보물을 파내  크게 한 밑천 잡자. 그 후 때
를 잡아 운남으로 가서 아가를  마누라로 맞아들이고 숨어 살면서 매일
같이 도박을 하고 연극을 본다면 그 얼마나 멋지고 즐거운 일인가?)
이와 같이 생각하니 마음속의 번뇌가 말끔히 가셨다.
(싸움에 임해서 도망친다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소현자의 무거운 부탁
을 저버리는 일이 될지언정 내 목숨을 버릴 수는 없지. 보물을 파낸 후 
만주인의 용맥을 끊어 놓지만 않으면 소현자에게는 미안할 것이 없다.)



第86章. 황제의 밀명을 받은 위소보


이튿날 그가 조회에 나아가니 강희는  성지를 내려 위소보의 벼슬을 올
려주고 그를 장백산으로 보내 하늘에 제사를 올린다고 발표했다. 그 발
표가 있고 황제가 물러가자  왕공대신들은 다투어 축하해 주었다. 색액
도는 그와 교분이 남달라  특별히 자작부로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위소보가 의기소침한 것을 보고 말했다.

[형제, 장백산으로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물론 국물이 많은 
자리는 아니지. 운남으로 가서 평서왕을 두들겨 한밑천 잡는 것과 비교
한다면 천지 차이가  있으니 그대가 흥이 나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닐
세.]

위소보는 말했다.

[형님, 이 아우는  남방 사람이라 추위를 많이  탑니다. 관외의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땅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몸이 떨려와요. 오늘 밤에는 세 
개의 화로를 갖다놓고 따뜻한 불을 실컷 쪼여야 하겠습니다.]

색액도는 껄껄 웃으며 위로의 말을 던졌다.

[걱정 말게. 내가 화초(火招)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구해 주겠네. 
교자에 몇 개의 숯불을 피운 향로를 넣어 두면 별로 춥지 않을 것이네. 
형제, 관외로 나가도 역시 돈이 생길 구멍은 있을 것이네.]

위소보는 말했다.

[요동 지방은 사람의 코가 얼어붙는다는데 어떻게 재물을 긁어 모을 수 
있겠어요? 저는 형님에게 가르침을 받아야겠어요.]
[요동 지방으로 말하면 세 가지의 보물이 있네.]

위소보는 말했다.

[그래요? 세 가지의 보물 가운데 한  가지만 얻어도 실컷 쓸 수 있겠군
요?]

색액도는 웃었다.

[우리 요동에는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보겠는가? 그것은 '
관동에 삼보(三寶)가  있는데 인삼,초피(貂皮), 오랍초(烏拉草)로다'라
는 말이 라네.]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군요. 인삼과 초피는 모두 귀중한 물건입니
다. 그런데 오랍초는 어떤 보배입니까?]
[오랍초는 형편없는 보배이지.  관동지방은 추워서 땅이 얼어붙는다네. 
가난한 사람들은 초피 가죽으로 만든 옷도 입지 못하고 가마를 탈 수도 
없다네. 사람들의 발이 모두 얼어터진다면 그 누가 위형제의 교자를 들
어 주겠는가? 오랍초는 관동지방 곳곳에 있네. 그저 한 응큼 뜯어서 햇
빛에 말린 후 신발 속에 집어넣으면 발이 매우 따뜻해진다네.]
[아, 그렇군요. 오랍초라는 보물은  우리에겐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이
고. 하지만 인삼은 몇 지게 정도  마련해야 되겠고 초피 역시 천 장 정
도는 장만해서 친한 친구들에게 나누어 쥐야겠어요.]

색액도는 껄껄 웃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친위병이 와서 보고
했다. 복건성의  수사제독(水師提督)인 시랑(施琅)이  인사하러 왔다는 
것이다. 위소보는  그날 정극상이 한 말이  떠올랐다. 시랑은 무이파의 
고수이고 정극상에게 무공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후에 대청나라에 투항
한 인물이라고 하였다.
위소보는 시가가 정극상의 부탁을 받고  자기를 괴롭히러 온 것이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석범이  그토록 흉악한 것을 보면 이 시가라
는 사람도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닐 것 같아 친위병에게 말했다.

[그가 왜 찾아왔지? 나는 만나지 않겠네.]

그 친위병은  대답하고 나가 손님을  거절했다. 위소보는 여전히마음을 
놓을 수 없어서 다른 한 명의 친위병에게 말했다.

[빨리 가서 아삼(阿三)과 아륙(阿六) 두 사람을 부르도록 하게.]

아삼과 아륙은 바로 반두타와 육고헌의 가명이었다. 색액도는 웃었다.

[시정해(施靖海)는 위 형제와의 교분이 어떠한가?]

위소보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시.... 시정 뭐라구요?]
[시 제독의  작봉(爵封)은 정해 장군(靖海 將軍)일세.  위 형제는 그와 
잘 모르는 사이인가?]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이 다가와 등 뒤에 섰다. 위소보는 등 뒤
에서 이대 고수가 보호하자 약간 마음이 놓였다. 친위병이 대청으로 들
어오더니 쟁반을 받쳐들고 말했다.

[시 장군께서 자작대인에게 드리는 예물이랍니다.]

쟁반 위에는 뚜껑이 열려 있는 비단  상자가 놓여 있고 상자 안에는 백
옥으로 만들어진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 그릇에는 몇 줄의 글자 문양
이 있었다. 옥으로 만든 그릇은 매우 깨끗했고 따뜻했으며 윤기가 나는 
것으로 보아 옥의  질이 지극히 상품인 것 같고  세공도 정교한 듯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나에게 예물을  주는 것을 보니 나를  적대시하는 것은 아니로구
나. 그러나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
색액도는 웃었다.

[이런 예물은 정말 대단하군. 시가는 적지 않은 심혈을 기울였군.]

위소보는 물었다.

[아니 뭘 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옥 그릇에 노제(老帝)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가관진작(加官晋爵)이라
는 넉 자가 새겨져 있지 않은가? 그 아래쪽에는 권만생시랑경증(眷晩生
施琅敬贈)이라는 글이 있군.]
[그 사람은 나와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이토록 깍듯하게 대해 주다니, 
좋지 않은 뜻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색액도는 웃었다.

[늙은 시가의  속셈은 더없이 명백하네. 그는  한마음 한뜻으로 대만을 
공격하여 부모와 처자의 복수를 하려는 것일세. 이 몇 년 동안 그는 우
리들에게 늘어붙어 황상에게  말씀을 올려 달라고 했네.  이 일 때문에 
쓴 은자만도 십오만 냥은 족히  될 것일세. 그는 형제가 황상에게 가장 
총애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길을 터 볼 속셈이겠지.]

위소보는 마음이 놓여 말했다.

[아, 그랬군요. 그는 어째서 대만을 공격하려는 것이지요?]
[늙은 시가는  정성공의 부하 대장이었지. 후에  정성공이 그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의심하여 그를  체포했는데 그는 도망쳐 버렸지. 정성
공은 화가 나서 그의 부모와 처를 모조리....]

그는 오른손을 왼쪽으로 휘둘러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이 사람은  물 위에서 싸움하는 재간이  대단하지. 대청나라에 항복한 
후 정성공과  싸운 적이 한  번 있는데 놀랍게도  정성공을 패배시켰다
네.]

위소보는 혀를 쑥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정성공 같은 영웅호걸도 그의 손에  패한 적이 있다니 이 사람을 만나 
보지 않을 수 없군요.]

그는 친위병에게 말했다.

[시 장군이 아직 가지 않았으면 내가 곧 나간다고 여쭈게.]

그는 색액도에게 말했다.

[형님, 우리 함께 나가서 만나 보도록 하지요.]

그는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의  보호를 받고 있었으나 시랑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색액도가  조정의 일품 대신이니 
그가 옆에 있는 한 시랑도 감히 경솔하게 손을 쓰지 못하리라 생각되었
다. 색액도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대청
으로 들어갔다. 시랑은 가장 아래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다가 발걸음 
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이 내당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보자 
즉시 앞으로 몇 걸음 다가와 인사를 하고 낭랑히 말했다.

[색 대인, 위 대인, 비직 시랑이 인사드립니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장군이고 나는  조그만 도통에 불과한데 
어찌 그와 같은 인사를 차리시오? 어서 앉으시오. 너무 겸손해 하실 것 
없소이다.]

시랑은 공손히 말했다.

[위 대인께서 이토록 겸손하시다니  정말 탄복했습니다. 위 대인께서는 
일등 자작이시며 작위에 있어서  비직보다 훨씬 높습니다. 더군다나 위 
대인께서는 젊어서 작위를 받으셨으니  공작이나 후작에 봉해지는 것은 
문제없는 일이며 십 년 안에 왕에 봉해질 것입니다.]

위소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그대의 그  말씀 덕분이겠죠.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구려.]

색액도는 웃으며 말했다.

[시형, 북경에서 몇 년 머무르는 동안 입에 발린 소리를 많이 배우셨구
려. 처음 북경으로  왔을 때처럼 걸핏하면 남에게  반감을 사던 때와는 
전혀 달라졌구려.]

시랑은 말했다.

[비직은 거친 무부(武夫)라 법도를 모릅니다. 비직은 이미 옛날의 과오
를 크게 뉘우쳤습니다.]

색액도는 웃었다.

[그대는 이제  요령이 좋아졌구나. 놀랍게도 위  대인이 황상에게 가장 
총애받는 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 말일세. 이쪽 길을 뚫는다면 그
야말로 다른 열 분이나 백 분의 왕공대신에게 부탁하는 것보다 나을 것
이네.]

시랑은 공손히 두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말했다.

[모두 두 분  대인이 돌봐 주신 덕택이지요. 비직은  영원히 그 은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위소보는 그 사람을 훑어보았다. 나이는 오십 세 정도였고 근골이 튼튼
해 보였으며 두 눈에는 형형한 안광이 빛나는 것으로 보아 무척 똑똑하
고 용감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얼굴이 초췌한 것이 풍상을 겪은 
빛이 역력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시 장군께서 나에게 준 옥그릇은 귀중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오. 그러
나 한 가지만은 좋지 않소.]

시랑은 즉시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비직이 멍청하여 그 옥그릇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대인께
서 가르쳐 주십시오.]

위소보는 웃었다.

[잘못은 없소. 하지만 너무나 훌륭한 명기라서 밥을 먹을 때 손에 들면 
두 손이 벌벌 떨릴 것이고  잘못하다가 떨어뜨려 밥 그릇을 깨뜨릴까봐 
두렵소. 하하하하!]

색액도는 껄껄 웃었다. 시랑은 옆에서  헛웃음을 몇 번 터뜨렸다. 위소
보는 물었다.

[시 장군은 언제 북경으로 오셨소?]
[비직이 북경에 온 지 삼 년이 되었습니다.]

위소보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시 장군은 복건의 수사제독인데 복건으로 가서 군사를 이끌지 않고 북
경에서 놀고 있으니 그것은  무엇 때문이오? 아, 알겠소. 시장군께서는 
북경에서 어떤 색시를 알게 돼서 떠나기가 아쉬웠던 게로군요?]

시랑은 말했다.

[위 대인께서는 농담을 잘하시는군요.  황상께서는 비직을 북경으로 부
르셔서 대만을 평정할 수 있는 책략을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비직은 언
변이 없고 멍청하여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비직은 북경에 머
무르면서 바로 황상의 성지를 삼가 기다리는 중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황제는 매우 똑똑하다.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큰일은 삼번
을 평정하는 일 이외에도 어떻게 대만을 공격하여 손에 넣을까 하는 것
이다. 네가 말주변이 없었을지라도  좋은 방법이 있다면 황상께서는 반
드시 응낙해 주셨을 것이다. 이에는 반드시 달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는 색액도가 한 말을 생각하고 다시 생각했다.
(이 사람은 적지 않은 공로를  세워서 매우 교만방자해졌을 것이다. 황
상께서 그를 북경으로 부르셨을 때  그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
고 뻣뻣하게 나왔기 때문에 권세 있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서 많은 사람
들이 일부러 그를 괴롭히는 것일 게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황상께서는 총명하기 이를 데 없소.  만약에 시 장군으로 하여금 북경
에서 성지를 기다리도록 하셨다면 반드시 깊은 뜻이 있을 것이외다. 그
대는 너무 성급히 생각하지 마시오. 서둘러 봐도 쓸모없는 일이외다.]

시랑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위 대인께서 이렇게 가르쳐 주시니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비
직은 삼 년 동안 줄곧 마음속으로 황송하게 여겼으며 그저 황상의 뜻을 
거슬리지 않았는가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황상께서  따로 깊은 뜻이 
있다니 비직은 이제  안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 대인께서 이토록 
깨우쳐 주시니 정말 그 은덕을 어떻게 감사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비
직은 이제부터 밥도 먹을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소보는 아첨을 잘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에게 아첨하는 말은 곧
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부하니 역시 흐뭇
했다.

[황상께서는 사람이 너무 교만해지면  쓸모가 없어지므로 반드시 그 교
만한 기운을 꺾어 놔야 한다고 하셨소이다. 황상께서 그대의 벼슬을 강
등시키지 않았으니 다행이거니와 설사  그대를 군졸로 만들거나 뇌옥에 
감금하더라도 그것은 그대를 키우겠다는 뜻에서일 것입니다.]

시랑은 연신 그렇다고 말했다. 색액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소. 위 자작 나리께서는 정말  말씀 한번 잘했소. 옥은 깎지 않으
면 그릇이 되지 않소. 그대가 선물한 그 옥그릇 역시 갈고 닦지 않았다
면 그저 조잡한 돌멩이에 지나지 않아 아무런 쓸모가 없었을 것이 아니
겠소?]

시랑은 대 답했다.

[예,예.]

위소보는 말했다.

[시 장군, 어서 앉으십시오. 소문을 들으니까 그대는 옛날 정성공의 부
하로 있었다는데 무슨 일로 그와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나요?]
[대인께 말씀드리죠.  비직은 본래 정성공의  부친인 정지룡(鄭芝龍)의 
부하였습니다. 후에 정성공의 통솔하에  있게 되었지요. 정성공은 군사
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는데 비직은  사태를 잘 알지 못하고 멍청하게 
정성공을 따라 일을 했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음, 그대가 반청복....]

그는 반청복명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말할 뻔했다. 평소 천지회의 형
제들과 자리를 함께할 때 그런 말을 종종 했기 때문에 하마터면 입버릇
대로 그 말을  할 뻔하다가 다행히 재빨리 멈출  수 있었다. 그는 말을 
돌려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그 해에 정성공은 복건에서 싸움을  하게 되었지요. 그의 근거지는 하
문(厦門)이었는데 대청나라 군사가 갑자기 기습을 가해 와서 하문을 함
락시켰습니다. 정성공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후퇴할 수도 없
는 진퇴양난의 낭패한  꼴을 당했지요. 비직은 그때  만번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야말로 왕사(王師)에  충성을 해야 된다는 것을 모
르고 군사들을 이끌고 하문을 공격하여 다시 탈환했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정성공을 위해 큰 공을 세운 것이 아니오?]
[정성공은 그 일이 있고나서  비직의 관직을 올려주었으며 적지않은 보
물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후에 사소한 일로 층돌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일이오?]
[비직의 부하 가운데  소교(시木) 한 명이 있었는데  비직은 그를 보내 
적정을 염탐해 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로서 밖으로 나간 후  산에서 며칠 밤을 잔 다음 돌
아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였습니다.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이 뭔가 잘
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자세히 물어  진만상을 조사해 내어 그를 가두고 
이튿날 참수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소교는 교활하기 이를 데 없었
습니다. 야밤에 정성공의 부중으로  도망쳐서 정성공의 부인인 동 부인
에게 내가 그에게 억울한 죄명을 씌웠다고 울며 하소연했습니다. 동 부
인은 인정에 약했지요. 사람을 저에게 보내 그 소교를 용서하라는 것이
었습니다. 사람이 필요한 이때  함부로 부하들을 죽여 병사들의 사기를 
꺾어 놓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소보는 동 부인이라는 말을  듣자 진근남의 말이 생각났다. 동부인은 
두 번째 손자인 정극상을 좋아하여 몇 번이나 그를 세자로 세우려 했던 
것이다. 위소보는 노기층천해서 욕을 했다.

[늙은 갈보 같으니! 군중의 일을 계집년이 뭘 안다고 그래? 제기랄! 천
하의 대사는 바로 이와 같은  늙은 갈보들 때문에 망치고 만단 말이야! 
부하 장수가 군법을 어겼다는데도 참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군법을 
어기게 될 것인데 그래 가지고서야 어찌 군사들을 이끌고 싸움을 할 수 
있겠소? 그 늙은  갈보는 멍청하기만 한 것이  멀쑥하게 생긴 남자들만 
좋아하는 모양이군.]

시랑은 그가 이토록 분개하자 지기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어 무릎을 치
며 말했다.

[위 대인의 말씀이 더없이 옳소이다!  위 대인께서도 군법이 산과 같이 
무거워야 적을 제압하고, 군율이  엄해야 승리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군요.]
[늙은 갈보의 말을 그대는 아랑곳할  것 없소. 소교이든 노교이든 간에 
잡아서 목을 싹둑 잘라야 했소.]
[비직의 생각도 위 대인과 똑같았습니다.  저는 동 부인이 파견한 사람
에게 시가는  국성야의 부장이라 그저 국성야의  명렁만 받들 뿐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동 부인의 부장이  아니니 부인의 명을 받들 수 없다는 
것이었죠.]
[지극히 옳은 말씀이오. 그 누구든  늙은 갈보의 부장이 된다면 그야말
로 운수가 불길해 지는 셈이죠.]

색액도와 시랑은 그가 동 부인을 늙은 갈보라고 크게 욕하는 것을 보고 
우스꽝스럽게 생각했다. 그들이 어찌 위소보에게 사사로운 감정이 있다
는 것을 알 수가 있겠는가?
시랑은 말했다.

[그 늙은....동 부인은 비직의 말에  화가 나서 그 소교를 부중의 친위
병으로 삼고 사람을 보내와서 재간이 있으면 그 소교를 잡아가 죽여 보
라는 것이었습니다. 비직은 일시 성질을 누르지 못하고 직접 가서 한칼
에 그 소교의 목을 잘라 버렸습니다.]

위소보는 손뼉을 치며 크게 칭찬의 말을 했다.

[잘 죽였소! 정말 멋지게  죽였소! 정말 깨끗하고도 속시원하게 죽였구
려.]
[비직은 그 소교를 죽인 후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깨닫고 정성
공에게 가서 사죄했습니다. 저는 제가  큰 공을 세웠고 또 부하가 군법
을 어겼으니 그를 죽인 것에는 큰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성공은 부인의 말을 듣고 제가  윗사람의 위엄을 거슬리는 죄를 지었
다면서 즉시 저를 감금시켰습니다. 저는 국성야께서 영웅이시고 호방하
시니 일시 화를 내어 나를 며칠간  감금하더라도 곧 풀어 줄 것으로 생
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르자 저의 아버지와 동생, 그
리고 처까지도  모조리 잡아들여 뇌옥으로  처넣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자 저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정성공이 나의 목을 
자르려 한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리하여 지키고 있는 사람이 방비를 소
홀히 하는 틈을 타서 도망쳤습니다.  얼마 후 들은 소식에 의하면 정성
공은 저의 전 가족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모두 동 부인이라는 그 늙은 갈보의 잘못이오.]

시랑은 이를 부드득 갈며 말했다.

[정씨 집안과 저는 바다같이 깊은 원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성공이 너무 일찍  죽어 이 원한을 갚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비직은 
눈물을 삼키며 맹세했습니다. 언젠가는 저 역시 정씨 집안의 전 가족을 
잡아서 모조리 몰살시키겠다고 말입니다.]

위소보는 시랑이 정씨 집안을 다 죽이겠다고 말하자 자연 그의 큰 적수
인 정극상까지 포함하는지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죽여 마땅하오. 죽여 마땅하오. 그대가 그 원수를 갚지 않는다면 영웅
호걸이 아니오.]

시랑은 강희에게 부름을 받아 북경으로 온  이후 황제를 딱 한 번 만났
을 뿐이었다. 그 후로 북경에서 한가한 세월을 보냈는데 벼슬은 여전히 
복건성의 수사제독이었고 작위 역시 정해 장군이었다. 그러나 북경에서 
하는 일 없이 향은만 받아 먹고  있을 뿐 부하가 없는 형편이어서 순천
부(順天府) 아문(衙門)의 졸개의 위세보다도 못했다. 웅심이 큰 사내가 
이와 같이 매일 하는 일 없이 놀고 먹으니 뜨거운 손 위의 개미처럼 안
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삼 년 동안 며칠에 한 번씩 병부(兵部)로 가서 알아보곤 했다. 그
리고 선물을 보내기 위해 돈을 적지  않게 쓴 까닭으로 그 동안 축적해 
온 은자를 모조리 북경의 관계(官界)라는  밑 빠진 독에 쏟아붓게 되었
다. 그러나 황제는 여전히 그를 부르지 않았고 복건성으로 돌아가서 직
책을 다하라는 유시도 내리지  않았다. 나중에 명부에서는 시랑의 이름
만 들어도 골치아파했다. 시랑이 궁해지고 돈이 없어 선물도 하지 못하
자 그 누구도  그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위소보가 자기 마음에 
맞는 말을 하자 그는 대뜸 복건성으로 돌아갈 희망이 생겼다고 느껴 얼
굴에 흥분의 빛을 띠었다. 색액도는 말했다.

[시 장군, 정성공이 그대의 전  가족을 다 죽인 것은 잘못이오. 하지만 
그대 역시 그로 인해서 전화위복이  되고 어둠에서 벗어나 밝음을 찾게 
되지 않았소?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는  지금까지 대만에서 대청나라에 
항거하면서 반역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일을 돕고 있었을 것이오.]

시랑은 말했다.

[색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위소보는 물었다.

[정성공이 그대의 전 가족을  몰살시키자 그대는 분노하여 대청 나라에 
귀의하게 된 것이오?]
[그렇지요. 돌아가신  선제께 태산과 같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비직이 
의거를 일으키자 선제께서는 저를 복건으로 보내 일을 처리하게 하셨습
니다. 비직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몸을  돌보지 않았으며 약간의 
공을 세운 결과 복건의 동안부장(同安副將)으로 승진하였지요. 그때 마
침 정성공이 군사를 이끌고 공격을 해와 비직은 그와 목숨을 걸고 싸웠
으며 선제의 홍복 덕택으로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선제는 크게 은
혜를 베푸시며  저를 동안총병(洞安總兵)으로  벼슬을 올려주셨습니다. 
그 후에 하문과 금문(金門), 그리고 오서(梧嶼)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다시 한 때의 홍모병들과 연합해 배를  타고 서양 총과 서양 포를 이용
하여 정성공을 공격해서 정성공이  황망히 바다로 도망치도록 만들었지
요. 이에 선제께서는 비직을  복건성 제독으로 올려주셨으며 다시 정해 
장군에 봉하셨습니다.  기실 비직의 공로는 반  푼도 없습니다. 첫째는 
우리 대청나라 황상께서 복이  크시고, 둘째로는 조정의 여러 대인들이 
제대로 가르치신 덕택이었지요.]

위소보는 미소했다.

[그대는 옛날 정성공의 군중에 있었고  복건성에서 그와 몇 번 크게 싸
움을 벌였으니 대만의 사정을  잘 알겠구려. 황상께서 그대를 부르시어 
대만을 공격할 책략을 물었을 때 그대는 어떻게 말씀하셨소이까?]
[비직은 황상에게  말씀을 올렸죠. 대만은 바다를  격하고 떨어져 있기 
때문에 수비하기는 쉬워도 공격하기는 어렵다고 했지요. 대만의 장수와 
군사들은 모두 정성공을 따라 수백  번 싸움을 치른 정예병들이니 대만
을 공격하려면 군사를 통솔하는 사람은  전권을 위임 받아야 하며 제동
을 거는 사람이 없어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대 한 사람만 호령을 내리도록 해달라는 것이오?]
[비직은 감히 그토록 건방진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만을 
공격하려면 반드시 그들이 방비하지 않는 틈을 타야 합니다. 북경과 복
건성은 수천 리나  떨어져 있습니다. 만약 대만을  공격할 좋은 기회를 
포착하였을 때 황상에게 상주하고 조정에서 천천히 허락을 내린다면 그 
기회는 이미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대만의 장수들 가운데 다른 사
람은 몰라도 진영화라는 자는  지모가 크게 뛰어납니다. 거기다가 유국
헌이라는 자는  그야말로 용감하고 싸움에 능하여  실로 강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경솔하게 출병을 했다가는 필승하기 어렵습니
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황상께서는 영명하기 이를 데  없으니 결코 그대의 
그와 같은 말이 잘못되었다고 탓하지는 않을 것이의다. 그대는 또 무슨 
말씀을 하셨소?]

시랑은 말했다.

[황상께서는 다시 대만을 공격할  책략을 하문하셨습니다. 그래서 비직
은 말씀드렸지요. 대만의 군사들은  정예병들이긴 하나 수효가 많지 않
기 때문에 대청나라에서 대만을 공격하려면  마땅히 두 가지 계책을 써
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우선 이간질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내부가 서로 
화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유언비어를 
퍼뜨려 진영화가 군주를 폐하고 스스로  왕이 될 마음이 있으며 유국헌
과 함께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말해야 되겠지요. 정성공이 의심을 일으
켜 어쩌면 진영화와  유국헌 두 사람을 죽일지도  모르죠. 설사 죽이지 
않는다 해도 그들을 중용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 두 사람의 권한을 약화
시킬 수 있을 겁니다. 진영화와  유국헌은 한 사람은 재상이고 한 사람
은 장수인데 대만의 두 기둥이라 할 수 있지요. 두 사람이 일제히 물러
나면 말할 수 없이 좋은 기회죠. 그러나 한 사람만 없앤다 하더라도 나
머지 한 사람은 외기둥으로 큰 집을 지탱할 수는 없죠.]

위소보는 속으로 놀랐다.
(제기랄! 너는 우리 사부님을 해치려 하고 있구나.)
그는 물었다.

[일검무혈 풍석범은 어떻소?]

시랑은 크게 놀라 의아한 어조로 말했다.

[위 대인께서는 풍석범까지도 알고 계시는군요.]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께서 한담을 하실 때 들먹이는 것을 들었소이다. 황상께서는 대만
의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고 계시오. 황상께서는  동 부인이 멀쑥하게 
생긴 손자  정극상을 좋아하고 세자 정극장을  좋아하지 않아 아들에게 
세자를 바꾸라고 종용하고 있다고 하셨소. 그와 같은 일이 있었소?]

시랑은 탄복했다는 듯 말했다.

[거룩하신 천자께서는 정말 영명하시고  슬기롭군요. 정말 천고에 드뭅
니다. 깊은 궁궐 안에서도 만 리 밖의 일을 밝게 살펴보시는군요. 황상
의 그 말씀은 절대 틀림이 없습니다.]
[그대는 대만을 공격하는 일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소. 한 가지 
방법은 계책을  써서 진영화와 유국헌을 죽이는  것이라고 했는데 다른 
한 계책은 무엇이오?]
[다른 한 계책은 수군을 이끌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한 곳만 공격해서
는 쉽게 성공하기  힘드니 반드시 세 갈래로 일제히  공격을 해야 합니
다. 북으로 계룡항(鷄龍港)을  공격하고 기운데로 대만부(台灣府)를 공
격하며 남으로 타구항(打狗港)을 공격해야  합니다. 그중 한 곳만 성공
한다면 상륙하여 발붙일 수 있어 대만의 인심이 크게 동요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세는 그야말로 파죽(破竹)과 같을 것입니다.]
[수군을 거느리고 바다에서 싸움을 하는 것에 대해서 그대는 잘 알겠구
려?]
[비직은 한평생을 수군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해전에 대해서는 잘 알
고 있는 편이죠.]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정씨 일가를  몰살시키고 정극상이라는 녀석을 해치우는 것
은 괜찮은 일이다. 그러나 정성공은 영웅호걸인데 그의 전 가족을 몰살
한다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더군다나 대만을 공격하는 것은 바로 나의 
사부님을 해치는 것이니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사람이 해전
에 뛰어나다니 이번 신룡교를 토벌하는 일에 그를 파견한다면 일거양득
이 되겠구나.)
그는 색액도에게 물었다.

[형님,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상께서는 영명하시고 멀리 내다보시며  세우신 방책이 빈틈이 없네. 
우리 신하들은 모든 점에서 황상의 분부에 따라 일을 처리하면 될 것이
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는 정말 교활하기 이를 데  없군. 전혀 책임을 지지 않으려하는구
나.)
위소보는 찻잔을 들었다. 시중을 들던 시종이 소리 높여 외쳤다.

[손님을 전송하여라!]

시랑은 몸을 일으켜 허리를 굽히고  절을 한 뒤 물러갔다. 색액도 역시 
한동안 농담을 하고 떠나갔다. 위소보는 궁 안으로 들어가 황제를 뵙고 
시랑이 대만을 공격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강희는 말했다.

[먼저 삼번을  없앤 후에 대만을 평정하는  것이 순서이다. 시랑이라는 
사람은 재주있는 사람이야.  나는 그가 복건성으로 돌아간  후 에 급히 
공을 세우고 원한을 갚으려고  경거망동할까 두렵네. 그렇게 된다면 오
히려 대만의 정가가 더욱 방비를  철저히 할 게 아닌가? 그래서 북경에 
붙잡아 둔 것이네.]

위소보는 황연히 깨닫고 말했다.

[옳습니다. 옳습니다. 시랑이 복건성으로 내려가기만 한다면 반드시 급
히 전선을 만들고 병마를 조련시키는 등 그야말로 풀을 건드려 뱀을 놀
라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대만을 공격하려면 반
드시 귀신도 모르게 해야 하며  모든 사람들이 공격하지 않으리라 여길 
때 갑자기 쳐서 그 정가 녀석의 손발이 어지럽도록 해야 합니다.]
[용병에 있어서 허실의 도리를 잘 말했다. 내가 시랑을 북경에 남겨 둔 
것은 그가 기운을 전혀 쓸  데가 없어 답답해 죽도록 만들려는 것이야. 
그런 후에 파견한다면 충성을 다할  것이고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
을 것이 아니겠는가?]
[황상의 계책은 제갈양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신은 정군산
(定軍山)이라는 연극을 본 적이 있는데 제갈양이 늙은 황층을 자극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도록 만든 끝에  황충이 한칼에 그 춘하추동인가 뭔가 
하는 녀석을 베도록 했조]

강희는 미소지었다.

[하후연(夏候淵)일세.]
[그렇습니다. 황상께서는 기억력이 무척 좋으셔서 연극을 보신 후에 그 
사람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강희는 웃였다.

[그 사람의 이름은 책에 씌어 있네. 그런데 시랑은 그대에게 어떤 예물
을 주었는가?]

위소보는 깜짝 놀라 말했다.

[황상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군요. 시랑은 저에게 옥그릇 하나를 
선물했습니다만 저는 별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옥그릇이 뭐가 나쁜가?]
[옥그릇은 진귀하지만 때리면 깨질 것이 아닙니까. 소신이 황상을 따라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두 손으로 받쳐드는 것은 천 년이 가도 깨어지지 
않고 만 년이 가도 녹이 슬지 않는 황금 밥그릇이어야 합니다.]

강희가 껄껄 웃는 것을 보고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 소신은 갑자기 한 가지를 생각해 냈습니다. 황상께서 능히 처리
할 수 있을지 한번 알아봐 주십시오.]
[무슨 일인가?]
[그 시랑은 수군을 통솔해 왔으며 해전에 매우 능하다고 했습니다.]

강희는 왼손으로 탁자를 한 번 두드리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다! 좋은 생각이야! 소계자, 그대는 정말 총명해. 그를 데
리고 요동으로 가서 신룡도를 공격하도록 하게.]

위소보는 속으로 아연해져서 강희를 쳐다보다가 잠시 후 말했다.

[황상께서는 아무래도 신선이 속세로 내려오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소
신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바를 이미 알고 계십니까?]
[아첨은 그만 떨도록 하게. 소계자, 이 방법은 아주 좋아. 나는 그렇지 
않아도 그대가 신룡도를 공격하는 것이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가 없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시랑은 해전에 있어서 귀신이다. 그에게 
먼저 신룡도로 가서 연습을 쌓도록 해야지. 하지만 미리 소문을 퍼뜨리
면 안돼.]

위소보는 재빨리 말했다.

[예,예.]

강희는 즉시 사람을 보내 시랑을 들게 하고 그에게 말했다.

[짐은 위소보를 장백산으로 보내 하늘에  제사를 드리려 하네. 그는 애
써 그대를 천거하며 그대가  일을 잘 처리하니까 데려가겠다고 하는군. 
하지만 짐은 그의 말을 믿고 있지는 않네.]

위소보는 속으로 웃었다.
(제갈양이 늙은 황충을 자극하는구나.)
시랑은 연신 큰절을 하며 말했다.

[신이 위 도통을  따라 일을 처리하는 동안  목숨을 바쳐 충성함으로써 
황상의 하늘 같은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강희는 말했다.

[좋아, 이번에 그대를  시험해 보기로 하지. 정말  쓸모가 있다면 훗날 
그대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하겠네.]

시랑은 크게 기뻐서 큰절을 했다.

[황상의 천은(天恩)이 망극합니다.]

강희는 말했다.

[이 일은 기밀에 속하는 일로써  조정에서 위소보 한 사람 이외에는 아
무도 알지 못하네. 그대는 위소보의  지시롤 받들도록 하게. 이만 내려
가 보게나.]

시랑은 큰절을 하고 물러나려 했다. 이때 강희가 넌지시 말했다.

[위 도통이 그대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그대는 커다란 황금 밥그
릇 하나를 그에게 선물하도록 하게.]

시랑은 대답을 했으나  속으로 크게 의혹을 느꼈다.  황상의 뜻을 몰라 
곁눈질로 쳐다보니  황상은 무척 즐거운 표정인지라  속으로 결코 나쁜 
일은 아닌가 보다고 생각했다.  위소보가 자작부에 돌아오니 시랑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위소보
는 말했다.

[시 장군, 좀  억울하겠지만 그대가 나의 군영  중에서 조그만 참령(參
領) 벼슬을 하여 다른 사람이 이 기밀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야겠소이
다.]

시랑은 크게 기뻐서 말했다.

[모든 점에 있어서 저는 도통대인의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그는 위소보가  자기에게 일을 시키면 시킬수록  더욱더 자기를 한집안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니 장래에 출세할  길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생각
했다. 위소보가 그를 친위병쯤으로  여기고 데리고 다닌다면 더욱 좋겠
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했다.

[황상께서는 비직에게 황금  밥그릇을 만들어서 도통대인에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도통대인께서 어떤 모양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알아
야 솜씨 좋은 장인에게 주문하여 밤을 새워 만들 것이 아니겠습니까?]

위소보는 웃었다.

[아무려면 어떻소? 우리 신하들이 금으로  만든 밥그릇을 들고 밥을 먹
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바로 황상의 은혜가 아니겠소?]

시랑은 연신 그렇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본래 도망을 치려고 했으며 벼슬을 버리려 했다. 그런데 나를 대
신해서 죽어 줄  사람을 찾았구나. 가장 좋기로는  네가 홍교주와 서로 
싸우다 함께 죽는 것이다. 그대  두 사람의 목숨이 벌레처럼 짧기를 빌
겠다.)
시랑이 간 후에 위소보는 이력세,  풍제중, 서천천, 현정 도인 등 천지
회의 형제들을 불러와 있었던  일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이력세가 입을 
열었다.

[이 시가 도적은 국성야를 배반한 자이고 대만을 공격해서 총타주를 함
정에 빠뜨려 죽이려 하는데 다행히  위 향주의 손에 걸려들었으니 우리
가 그를 어떻게 요리했으면 좋겠습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신룡교는 오삼계와 결탁하고 있소. 황제는 나에게 시랑을 데리고 가서 
신룡교를 토벌하라고 했소. 그  시가가 신룡교와 세상이 발칵 뒤집히도
록 싸우게 해서  양쪽 다 상해를 입었을 때  우리가 어부지리로 얻도록 
합시다.]

여러 사람들은 일제히 좋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다시 말했다.

[시가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 나는 그의 힘을 빌려 신룡교를 공격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그를 죽일  수는 없소. 여러 형제들은 조심해서 그가 
어떤 빈틈도 알아내지 못하도록 하시오.]

마언초는 말했다.

[우리들은 모두 효기영의 분장을 하고 평소에 그와 만나지 않도록 하겠
습니다. 만난다  하더라도 그는  오랑캐에게 죄를 짓지는  못할 것입니
다.]

이튿날 오후에 시랑은 비단 상자를 들고 자작부로 와서 뵙기를 청했다. 
위소보가 비단 상자를 열어 보니  과연 커다란 금으로 만든 밥그릇으로 
적어도 여섯, 일곱 냥중은 될 듯했다. 시랑은 말했다.

[비직은 좀더 크게  만들려 했으나 아무래도....아무래도 도통대인께서 
사용하기 불편하실 것 같아 이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위소보는 왼손으로 금 밥그릇을 손에 들어보고 웃었다.

[상당히 무겁구려. 시 장군, 이 많은 글자들은 무엇이라 쓴 것이오?]

시랑은 말했다.

[중간의 커다란 글자는  공충체국(公忠體國)입니다. 위의 조그만글귀는 
'흠사영내시위부대신(欽賜領內侍衛副大臣), 겸효기영정황기도통(兼驍騎
營正黃旗都統), 사천황마괘(賜穿黃馬掛),  파로도용호(巴魯圖勇號), 일
등자작위소보(一等子爵韋小寶)'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작은 글자는 '신
정해장군시랑봉지감조(臣靖海將軍施琅奉旨監造)'입니다. 그  뜻은 황상
께서 위 도통대인께 내리시는 것인데  저는 다만 성지를 받들어 만드는 
것을 감독했을 뿐이라는 내용입니다.]

위소보는 웃었다.

[고맙소. 고마워.]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 이 금 밥그릇은 황상께서  내린 것이다. 네가 나에게 무슨 금
으로 만든 밥그릇을 하사할 수 있겠느냐? 이 시가는 멍청이는 아니로구
나.)



第87章. 초토화된 신룡도


이틀 후에 강희는 유시를 내렸다. 위소보에게 십 문의 신무대포를 이끌
고 대고(大沽)에서 바다로 나아가 요동만을 건너 북쪽으로 올라가 요해
(遼海)에 제사를 지내고 다시 요동의  장백산으로 가서 대포를 쏘아 하
늘에 제사를 지내라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유시를 받들었다. 위소보는 
신룡교를 공격하는 것이니 반두타와 육고헌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생
각하여 그들 두 사람을 북경에  남겨 두고 쌍아와 천지회의 형제들, 그
리고 효기영의  인마들을 통솔하고 천진에  이르렀다. 그곳의 관원들은 
흠차대신을 극진히 영접했으며 온갖 아첨을 떨었다. 오직 한 명의 텁석
부리 무관만은 표정이 오만했으며 절을  할 때도 얼렁뚱땅 넘기고 위소
보를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위소보는 크게  노해서 화를 내려고 
했으나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
(황상께서 분부하시기를 이번에는 모든  점을 은밀히 하고 쓸데없는 사
건을 일으켜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 말라고  하셨다. 네가 나를 
업신여긴다면 너 텁석부리를 가만 놔 둘 줄 아느냐? 우리 두 사람이 겨
루어보자. 누가 더 큰 벼슬을 하게 되는지.)
한 벼슬아치는 위소보가 친히 오배를  죽인 영웅적인 일을 크게 칭찬했
다. 위소보는 의기 양양해져서  다시는 그 텁석부리를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이 날 밤 위소보는 천진의 수사영(水師營) 총병을 불러 강희의 
밀지를 전했다.  그 수사영 총병은  황보(黃甫)라는 자였는데 밀지에서 
수사영 관명과 배를 이끌고 흠차대신의  지휘를 받아 중요한 임무를 처
리하라는 내용을 발견하자 그는 허리를 굽혀 훈시를 받으려 했다.
위소보는 수사영에는 관병이 얼마나 되며  배가 몇 척이나 되는지를 물
었다. 그는 시랑을 불러와서 시랑으로 하여금 황보와 함께 바다로 나아
가는 일을 논의하도록 하고 자기는 뒤쪽에 있는 군영으로 가서 여러 장
수들과 패구 노름을 시작했다.
천진에서 사흘을 머문  후에 수사영에서는 양식, 물,  탄약, 화살 등을 
구입해서 배 위로 올렸다.  위소보는 수사영과 효기영의 관병들을 이끌
고 대전선 열  척, 이호 전선 서른여덟 척을  이끌고 닻을 올려 바다로 
나아갔다.

대고를 떠나 바다에 이르자  위소보는 그제서야 성지를 선포했다. 우리
는 이번에  신룡도를 소탕하러 가는 것이니  아래위의 관병들은 반드시 
충성을 다할 것이며 성공한 후에는 각기 벼슬이 오르고 후한 상을 받게 
되리라고 말했다. 관병들은 자기 쪽의 인원수가 많고 또 흠차대신이 십 
문의 서양 대포를 지니고 있으며  신룡교는 기껏해야 한 떼의 해적들이 
웅크리고 있을 뿐이니까,  대포를 몇 방 쏘아  붙이면 해적쯤은 모조리 
몰살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공을 세우고 반드
시 벼슬이 오르리라 생각하고는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야단들이었다.

위소보는 주함(主艦)에  올라 지난 번 방이에게  속아서 신룡도로 갔던 
일을 상기했다. 그 당시 방이는 교활하기는 했으나 며칠 동안 바다에서 
함께 지냈던 부드러운 맛을 되씹어 보니 매우 그리워졌다.
(섬에 이르러 대포를 마구 쏘아 신룡교의 무리들을 대부분 죽이고 수천 
명의 관명이 우르르 몰려든다면 홍  교주의 무공이 제아무리 높다 해도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다가 혹시라도 방이라는 계집애가 
대포에 맞아 죽으면 큰일이 아닌가? 설사 죽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포탄
에 맞아 팔이라도 한쪽 떨어져  나간다면.... 그는 홍 교주를 무서워하
여 만나기만 하면 뺑소니치는 것이 상책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제 시랑이 일을 이끌어 가고 수십  척의 대전선이 바다 위에 돛을 올리
고 나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 만든 십  문의 신무대포를 가지고 
있으니 이번  싸움온 이겼으면 이겼지 패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
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방이를 무사하게 보호하고  신룡교를 멸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이윽고 그는 시랑을 불러 섬을 공격하는 계책을 물
었다. 시랑은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펼치더니  그 안에서 커다란 
지도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쳐 놓고 바다에 그려진  조그만 섬을 가리켰
다.

[이것이 신룡도입니다.]

위소보는 시랑이 신룡도에 이미 붉은 원을 그려놓고 세 개의 붉은 화살
촉이 동쪽, 북쪽, 남쪽 세 갈래에서  붉은 원 쪽을 겨냥하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탄복해서 말했다.

[그대는 이미 신룡도를 공격할 계책을 마련했구려. 나는 대고에서 떠난 
후에야 황상의  밀지를 선포했는데 그대는 어떻게  미리 지도를 준비할 
수 있었소?]
[비직은 대인께서 대고에서 바다를  거쳐 요동으로 간다기에 이 일대의 
해도를 준비한 것입니다. 비직은  바다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
문에 해도를 뒤적거려 보는 버릇이 있죠.]
[그랬구려. 우리는  이번 일전에서 배가 도달하는  즉시 대번에 승리할 
수 있을 것 같구려.]
[그것은 황상의 성덕(聖德)이고 위 대인의 덕택이지요. 비직의 얕은 의
견으로는 세 갈래로 군사를 나누어, 섬의 북쪽과 동쪽, 그리고 남쪽 세 
갈래 길로 공격을 하고 서쪽의 한  갈래만 공격하지 않고 놓아 두는 것
입니다. 한 차례 대포를 쏘면  섬의 도적들은 감당할 수 없어 십중팔구 
섬의 서쪽 바다로 뛰어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섬 서쪽 삼십 리 밖
의, 이 조그만 섬 뒤쪽에  스무 척의 배를 매복시켰다가 비적들이 도망
을 치게 되었을 때 스무 척의  전선들을 일제히 몰고 나아가 길을 막고 
대포를 쏘아 대면서 북쪽, 동쪽, 그리고 남쪽의 세 갈래 길을 전선으로 
에워싸는 겁니다. 즉 해적들의 배를 한복판에 몰아넣는 것이죠. 그러면 
해적들은 일망타진될 것이고 한 명의 해적도 살아서 도망칠 수 없을 것
입니다.]

위소보는 손뼉을 치며 연신 묘책이라고 소리쳤다. 시랑은 말했다.

[대인께서는 중군을 거느리시고 이름도  없는 뒤쪽의 작은 섬에 좌정하
시어 독전하시되 걸코 싸움에 뛰어들지 않도록 하십시오. 중군(中軍)이 
위치하는 곳은 태산과 같이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통솔자의 함선이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고 큰 바람이  불어 돛대라도 부러지면 군심이 동
요합니다. 비직이 전선을 통솔하여 세 갈래로 공격하겠습니다. 황 총명
은 복병을 통솔하여 길을 막기로  하지요. 그리고 열 척의 조그만 소정
(小艇)이 왔다갔미하며 상호 연락을 맡도록  하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
가는 대인께서 수시로 명령을 내리십시오. 비직과 황 총병이 받들어 행
하겠습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라는 사람은 정말 눈치 빠르기 이를 데 없군. 내가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 것을 알고는 삼십 리  밖의 조그만 섬에 앉아 있도록 만드는군. 
설사 그대들 전군이 멸망당한다 해도  나는 재빨리 쾌선에 오를 여유가 
있을 것이고 뺑소니를 칠 수  있을 것이니 정말 묘책이다. 정말 묘책이
야.)
그는 시랑을 크게 칭찬해 주었다. 시랑은 말했다.

[비직은 오래 전부터 위 대인의  위엄을 들어 왔으며 위 대인께서 과거 
친히 만주 제일 용사 오배를  죽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만
주와 한나라를 통틀어 제일 용사의 영광을 얻으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께서는 파로도라는  칭호를 내리셨으며 그야말로 무
용(武勇)을 천하에 떨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비직으로서는 
한 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습니다. 대인께서 황은에 보답하기 위해 싸움
에 임하게 되었을 때 몸을  돌보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만약 포화에 
대인의 새끼손가락이라도 상처를 입게  된다면 황상께서는 저에게 크게 
꾸지람을 하실 것입니다.  비직이 일생 동안 쌓아  온 공로가 물거품이 
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대인이 저를 뽑아서 크게 등용해 주신 은혜를 
저버리게 되니 비직으로서는  만 번 죽어도 속죄할  길이 없게 됩니다. 
그라니 대인께서는 양해하시고 만금지체를 보존하도록 하십시오.]

위소보는 짐짓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배를 타고 싸운다는 것은 꽤 재미있는 노릇이 아니겠소? 나는 본래 친
히 나서서 돌격하여 신룡교의 교주를 잡으려고 했소. 그러나 그대가 그
와 같이 말하니 그 일은 그대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구려.]
[예, 예. 대인께서 저의 고충을 양해해 주시니 비직으로서는 고맙기 이
를 데 없습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는 북경에서 삼 년 동안  썩는 바람에 이미 벼슬아치의 요령에 정통
했구나. 나는 본래  너를 해치우려고 했는데 너의  그와 같은 기민함을 
보니 차마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만주와 한나라의 제
일 용사라는 칭찬은 오늘 차음으로  들어보는 것인데 정말 잘도 생각해
냈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말했다.

[그 신룡도에는 수백 명의 소저들이 있소. 그 가운데 몇 사람은 궁에서 
도망쳤는데 황상께서는 반드시 그녀들을 사로잡아 오라고 분부했소. 섬
을 공격할 때 반드시 조심하고  대포를 함부로 쏘지 않도록 하시오. 만
약에 대포를 쏘아서 그 몇  명의 궁녀들이 죽는다면 황상께서는 반드시 
꾸지람을 하실 것이오. 그대의 공로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 과실을 
메꾸지 못할 것이오. 이것이 제일 큰일이외다.]

시랑은 깜짝 놀라 말했다.

[만약 대인께서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더라면 비직은 하마터면 큰 화를 
불러일으킬 뻔했습니다. 이번에 섬을 공격함에 있어서 여자들이라면 살
상을 하지 않고 모조리 체포해서 대인께서 몸소 처리하시도록 조처하겠
습니다.]
[바로 그렇소. 이 몇 명의 궁녀들은  내가 본 적이 있으니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이와 같은 황궁  안의 비밀을 그대가 알게 
되었구려.]
[예, 대인께서는  아무쪼록 안심하십시오. 비직은  병마개처럼 입을 꼭 
다물고 있겠습니다. 궁 안의 사정을  제가 어찌 함부로 발설할 수 있겠
습니까?]

전선은 동쪽과 북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마침 역풍이  불어 배는 무척 
느렸다. 바야흐로  전선은 신룡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시랑은 앞쪽의 조그만 섬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곳이 바로 도통대인께서 주둔할 곳입니다. 이 조그만 섬은 아직까지 
붙여진 이름이 없는데 대인께서 이름을 내려 주십시오.]

위소보는 머리를 긁적긁적하며 말했다.

[나보고 이름을 생각하라는 것은 그야말로 내 목숨을 달라는 것과 마찬
가지외다. 음, 이번에 내가 전주가  되고 그대는 전주의 조수가 되어서 
우리 함께 패구 노름판을  벌이게 되었으니, 어쨌든 신룡도를 깨끗하게 
먹어치워야 할 것이오. 그러니 이 조그만 섬을 통째로 먹는다는 뜻에서 
통흘도(通吃島)라고 합시다.]

시랑은 웃으며 말했다.

[정말 멋집니다.  위 대인께서 통흘도에서 독전한다는  것은 크게 길한 
일입니다. 적군이 아무리 완강하고  무섭다 하더라도 어쨌든 모조리 먹
어치울 것입니다.]

위소보는 껄껄 웃고는 호통을 내질렀다.

[장병들이여, 군사를 통흘도로 상륙시켜라!]

이 한 마디는 그가 연극을 보며 배운 것이었다. 이때 위소보가 그와 같
이 호통을 지르니 제법 위풍이 늠름하고 사뭇 위엄이 있어 보였다.
수십 척의 전선은 앞뒤에서 기함(旗艦)을  호위한 채 천천히 통흘도 쪽
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한 척의  조그만 배 위에서 병사들이 소리를 지
르며 다가왔다. 그들의 보고에 따르면  바다에서 한 구의 떠 있는 시체
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출사가 불리하다. 떠오른 시체를 만나다니 모조리 죽는 게 아닐까?)
시랑은 말했다.

[대인께서 단번에  승리의 기쁨을 누리시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아직 
대포와 화살을 쏘기도 전인데 적이  이미 한 명 죽었으니 이것이야말로 
큰 길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직이 가 보겠습니다.]

그는 조그만 배로  뛰어내렸다. 잠시 후 시랑은  기함으로 올라와 말했
다.

[도통대인에게 알립니다. 그 떠오른 시체는  손발이 뒤로 묶여져  있습
니다. 아마도 해적이 재물을 약탈하고 목숨을 해친 후 바다에 밀어넣은 
것 같습니다.]

막 여기까지 말을  했을 때 조그만 배에서 다시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
다. 다시 두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위소보는 안색이 확 일
그러졌다.
이때는 시랑 역시 길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조그만 배로 
뛰어내려가서 살피더니 기함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얼굴 가득히 기쁜 빛
을 띄우고 말했다.

[대인께 말씀드립니다. 떠오른 시체들은  비직이 보기에 신룡도 사람들 
같습니다.]
[그대가 어떻게 아시오?]
[첫 번째의 시체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시체들은 틀림없는 해적입니다. 체구가  건장할 뿐 아니라 틀림없이 몸
에 무공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신룡도에 내분이 일어났다는 말이오?]
[바람이 신룡도 쪽에서 불어오고 있고  이 세 구가 떠내려온 것을 보면 
십중팔구 바람을 따라 흘러온  것입니다. 만약 적이 내분을 일으켰다면 
위 대인께서 이번 전주가 되신 것은 그야말로 홍소두부(紅撓豆腐)를 먹
는 것처럼 한번 깨물 필요도 없이 한입에 집어삼킬 수가 있겠습니다.]

위소보는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물안개가 가득 피
어올라 신룡도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해면 위에 고무공 같
은 물건이 두둥실 흘러오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요?]

시랑은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 물건은 정말 약간 이상하군요.]

그는 조그만 배에 분부하여 가까이 저어가서 그것을 건져 오도록 했다. 
한 척의 조그만 배는 명을 받들어 가까이 다가가서 건져 올렸는데 조그
만 배의 군관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또 한 구의 시체입니다. 이번엔 땅딸보군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그일까?)
그는 말했다.

[이리 옮겨 와서 나에게 보여 주도록 하게.]

세 명의 수병이 그 떠오른 시체를  기함에 떠메고 와서 갑판 위에 내려
놓았다. 땅딸보 시체의 손발은 모조리 소가죽으로 만든 줄에 묶여 있었
다. 위소보가 보니 과연 수두타였다.  그는 지극히 뚱뚱한 데다가 이때 
물을 잔뜩 먹었기  때문에 배가 불룩하게 솟아 있어  마치 커다란 공과 
같았다. 바닷물이 그의 입에서 꿀럭꿀럭  솟아나왔다. 한참 후에 그 커
다란 배가 불룩불룩해지면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관병들은 일제히 부
르짖었다.

[시체가 부활했다!]

시랑은 수두타를 뱃머리의 닻을 감는 쇠 말뚝에 걸쳐놓았다. 이렇게 되
자 머리가 배보다 얕아져서 입 속에서 바닷물이 콸콸 흘러내렸다. 잠시 
후에 수두타는 갑자기 몸을 튕기듯 일으키며 욕을 했다.

[제기랄!]

그러나 손이 묶인  바람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몇몇 관병들은 깜짝 
놀랐으나 곧 껄껄 웃었다. 수두타는 두 손을 와락 잡아챘다. 그러나 소
가죽으로 만든 줄은 물에 젖은 탓에 더욱 질겨져 끊을 수가 없었다. 그
는 고개를 들더니 두 눈에 흉칙한 빛을 띄우고 말했다.

[제기랄! 이곳이 용궁이냐, 아니면 저승이냐?]

위소보는 웃었다.

[이곳은 용궁이고 나는 해룡왕(海龍王)이시다.]

관병들은 다시 소리내어 웃었다.  수두타는 가느다란 눈을 뜨고 위소보
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대는....그대...., 그대가 어떻게 이곳에 있지?]

위소보는 그가 자기의 은밀한 사정을 누설할까봐 즉시 말했다.

[이 사내의 괴상한 꼴을 보니  어쩌면 신룡도의 내력을 알고 있을지 모
른다. 빨리 나의 선실로 데리고 가서 신문하도록 해라!]

두 명의 친위병이 수두타를 위소보가 기거하고 있는 선실로 끌고 갔다. 
위소보는 분부했다.

[그대들은 밖에서 지키도록 하고 부르지 않는 한 들어오지 말아라.]

친위병은 선실 문을 닫고 나갔다. 위소보는 물었다.

[수두타, 그대의  무공은 매우 고강한데 어찌하여  남에게 잡혀 바다로 
던져지게 되었소?]

수두타는 말했다.

[나의 무공이 천하 제일이 아닌데 남에게 묶여서 바다로 던져지지 말라
는 법이 어디 있는가?]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아, 그대는 교주를 이기지 못했군.]
[그대는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가? 누가 교주를 이긴단 말인가?]
[그대는 어쩌다 교주에게 죄를 지었지?]
[누가 감히 그 어르신에게 죄를  짓는단 말이냐? 홍 부인께서는 모동주
가 궁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교주를 속였다고 하면서 그녀를 신룡
굴에 던져 용의 먹이를  만들겠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나
는....나는....]

거기까지 말하자  그의 눈이 붉어지고 이빨을  드러냈는데 그야말로 그 
통통한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그날 밤 자녕
궁에서 가짜 태후 늙은 갈보가 그의 사부 구난에게 자기가 명나라의 대
장 모 아무개의 딸이며 이름은  모동주라 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위소
보는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황궁에서 모동주와 한 이부자리에서 잤으니 퍽 즐거웠겠군.]

수두타는 얼굴에 의기 양양한 빛을 띄우고 말했다.

[그야 물론이지!]
[그대의 목숨은 내가 구한 것이 아니겠소?]
[그렇다고 해 두지.]
[아니 얼버무릴 셈이오? 만약 그대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
면 그대를 처리할 좋은 방법이 있지.]
[좋은 방법이 뭐지?]
[내가 다시 그대를 바다 속으로 밀어넣는다면 내가 그대의 목숨을 구하
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

수두타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안 돼, 안 돼! 그대가 나를 물에 빠져 죽게 하는 것은 관계 없지만 그
러면 우리 동주 누이도 살아 남지 못해!]
[그녀가 죽건 살건 내가 알게 뭐야?]

수두타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안 돼, 안 돼!]
[내가 그대를 놓아 준다면 그대는 어떻게 할 작정이지?]
[그렇다면 내가  그대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나는  신룡도로 가서 우리 
동주 누이를 구해야 한단 말이오.]

이제서야 그의 말이 약간  공손해졌다. 위소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
우며 칭찬의 말을 했다.

[그대는 정도 있고 의리도 있구먼.]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황상께서 늙은 갈보를 잡으라고 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도 어디 가서 
그녀를 찾을까 하고 걱정했다. 이 땅딸보를 이용한다면 늙은 갈보를 반
드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의 무공이 고강하니 일단 
그를 놓아 준다면  호랑이를 놓아 주는 꼴이다.  호랑이를 놓아 주기는 
쉬워도 다시 잡기는 어렵다. 어쩌면 오히려 나를 물려고 덤빌지도 모른
다.)
수두타는 말했다.

[지금 신룡도에서는 대판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 다시 가서 사람을 구
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지.]

위소보는 그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어 재빨리 물었다.

[신룡도에서는 무엇 때문에 대판 싸운단 말인가?]
[오룡문이 서로 치고 박은 지 이미  십 년이나 되었소. 그 누구든 상대
방에게 잡히면 손발이 묶여서 해룡의 먹이가 되지.]
[어째서 싸우게 되었소?]

수두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돼지처럼  살이 찐 머리통을 쳐들고 곁
눈질로 위소보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대는 본교의  백룡사로서 오룡령을 관장하고  있다고 하던데 어째서 
그것도 모르시오?]
[나는 교주의 명을 받들어 중원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떠났으니 섬의 
사정을 알 수가 없었지.]

수두타는 갑자기 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두 걸음 
물러섰다. 문 밖에 있던 네 명의 친위병이 그 괴상한 소리를 듣고 땅딸
보가 도통대인을 해치는가  싶어 손에 칼을 든 채  일제히 달려 들어왔
다. 그러나 땅딸보가 손발이 여전히  묶여 바닥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겨우 안심을 했다. 위소보는 손을 내저었다.

[그대들은 나가게. 여기는 아무 일도 없네.]

친위병들은 물러갔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왜 괴상한 소리를 내질렀소?]
[야단났소. 그대는  교주와 부인의 심복인데 내가  모든 일을 그대에게 
이야기했구려.]

위소보는 웃었다.

[내가 그대를 구하지 않은 걸로 생각하면 될 것이 아니오? 그대가 바다 
위를 두둥실 떠내려가며 꿀꺽꿀꺽 바닷물을 마시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
지.]
[제기랄! 그 짠물은 정말 마시기가 거북하더군.]
[그대가 짠물을 마시고 싶지  않다면 솔직히 나에게 이야기하도록 하시
지. 오룡문은 어째서 서로 싸우게 되었소?]
[나와 동주 누이가 신룡도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이미 며칠 동안 싸우
고 있던 참이었지.  내가 사람들에게 물으니 청룡사  허설정이 어느 날 
밤에 갑자기 누구에게  살해당했으며 방 안에 한 자루의  피 묻은 칼이 
던져져 있더라고 했지.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피 묻은 칼은 바로 
적룡사 무근 도인의 큰 제자 하성(何盛)의 것이었다고 하더구먼.]

위소보는 허설정이 피살되었다는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
(십중팔구 홍 교주가 사람을 시켜 죽인 것이다.)

[교주께서는 크게 진노하시어  하성에게 어째서 허설정을 암살했느냐고 
다그쳤으나 하성은 실토를 하지 않았으며 자기가 허설정을 죽이지 않았
다고 우기는 것이었지. 그 후에 청룡문의 문하 제자가 원수를 갚는다고 
하성을 죽였고 이리하여 적룡문과 청룡문은 서로 싸우게 된 것이오.]
[그것은 단지 청룡과 적룡의 일이  아니오? 어째서 그대는 오룡문이 일
제히 싸움을 벌렸다고 했지?]
[흑룡문은 청룡문을 도왔고 황룡문은 적룡문을 도와 네가 날 죽이고 내
가 너를 죽이는 식으로 그야말로 한창 신이 나서 싸우고 있는 판이지.]
[그렇다면 우리 백룡문은 어떻게 되었소?]

수두타는 눈을 부릅떴다.

[그대가 백룡사인데 어째서 자기 문중의 일도 모른단 말이오?]
[내 그대에게 말하지 않았소? 나는  섬에 없었으니 자연히 모르고 있다
고.]
[그대 문하는 두 파로 나누어졌소.  노형제들은 한 파가 되어 청룡문을 
도우고 젊은 제자들은 다시 한 파가 되어 적룡문을 도우고 있소.]

위소보는 눈살을 찌푸렸다.

[오룡문이 크게 싸움을 하는데 교주께서는 상관하지 않는단 말이오?]
[모두들 신이 나서 싸우니 교주도 진압할 수 없는 모양이오.]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갑자기 배가 멈추고  선상의 수병들이 호통을 
질렀다. 쇠사슬이 철거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다로 던져졌다. 이미 통
흘도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위소보는 뱃머리에 올라갔다. 그 섬에는 나
무가 무성했고 별로 높지 않은 산줄기가 사방으로 뻗쳐 있는 것이 제법 
그럴듯한 경치였다. 그는 시랑에게 말했다.

[신룡교에는 도처에  독사가 있소. 그대가 먼저  사람을 위로 올려보내 
통흘도에 뱀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시오.]

 시랑은 명령을 받고 물러갔다. 곧 열 척의 소정이 통흘도 쪽으로 저어
갔다. 수병들은 섬에 상륙하자 숲속으로 들어갭륫 수색을 벌였다. 얼마 
후 횃불 신호가 들어왔다. 섬에는  아무 일도 없으며 적의 종적도 독사
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즉시 선봉대가 상륙하고 중군장의 군막
을 세웠다. 그리고  한쪽에 위(韋)자를 새긴 원수의  깃발이 군영 앞에 
세워졌다. 위소보는 그제서야 소정에 옮겨 타고 시랑과 황 총병의 호위
를 받는 가운데  통흘도에 올랐다. 호각소리와 북  치는 소리가 일제히 
울려퍼지는 가운데 군사들은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위소보는 가슴을 편 채 중군의  군막 안으로 들어가 좌정했다. 그는 친
위병에게 수두타를 감금한 후 술과 고기를 먹이되 그 손발을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 놓지 말고 다시 몇 가닥의 쇠사슬로 묶어 만전을 기하라고 
일렀다. 그는 다시 명령을 내려 시랑으로 하여금 30척의 전선을 이끌고 
신룡도의 동, 북, 남 세  방면에서 공격하고, 황 총병은 나머지 전선을 
이끌고 통흘도 서쪽에 숨어 있다가 시랑이 신호로 대포 쏘는 소리를 듣
는 즉시 배를 저어 나와  접응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이어서 자세한 전
술을 알려주었다.  황 총병과 수사영의  부장(訓卒), 참장(刻予), 수비
(守備), 효기영의 참령, 좌령 등  대소 군관들은 도통대인이 나이는 어
리지만 수전의 책략에 대해서 깊이 알고 있고 계책이 치밀할 뿐만 아니
라 지휘가 뛰어난 것을 보고  탄복해 마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는 시랑
이 짠 것이고 이 도통대인은 시랑이 시키는 대로 그럴듯하게 연극을 했
을 뿐이었다.

이날 밤 군사들은 배불리 밥을 먹었다. 해질 무렵이 되어 한 떼의 전선
이 앞으로 저어 나갔다. 이튿날 묘시(卯時)에 세 방면에서 공격을 하기
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위소보는 군사들이 세운 관망대에 올라 동
쪽을 살폈다. 은연중 멀리서  대포소리가 들리고 불빛이 번쩍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해면에서 무더기로 짙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시랑이 이미  대포를 쏘아 대며 공격을  개시했다는 것을 알았다. 
불현듯 그는 방이의 안위가 걱정됐으나 시랑이 일을 조심스럽게 처리할 
것이고 자기가 두 번 세 번  당부하이 섬의 여자들을 해치지 않도록 했
으니 그가 틀림없이 유의할 것이라고 안위했다. 그는 관망대 위에서 한
참 동안 서  있었다. 이윽고 다리가 아파오자  중군장으로 돌아와 여섯 
알의 주사위를 들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 만약에 전승을 거둘 것이면 만당홍(滿堂紅)이 나와라!)
그는 주사위를 던졌다. 그런데 모두  검은색이고 한 알도 붉은 것이 없
었다. 그는 욕을 했다.

[제기랄! 너는 나를 방해하는구나.]

이번에는 여섯 알  주사위의 삼 점이 위로 오르도록  하는 요령을 피워 
가볍게 돌려 던졌다. 이번에는 과연  다섯 알의 주사위는 붉은 사 점짜
리였는데 하나만 검은 빛의 오  점이 나왔다. 그는 자기가 수작을 부린 
결과였지만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쌍아가 차(茶)를 들고 들어오며 말
했다.

[상공, 안심하세요. 이번에는 반드시 크게 이길 거예요.]
[그대가 어떻게 아시오?]
[우리가 그 많은 대포를 쏘아 대는데 상대방에서 어찌 막아 낼 수 있겠
어요?]
[자, 쌍아. 우리 주사위를 던지도록  합시다. 그대가 이기면 내 손바닥
을 때리도록 하고 내가 이기면 크게 성공을 한 것으로 여기고 축하하는 
의미에서 그대의 엉덩이를 때리기로 하지.]

쌍아는 얼굴을 붉히고 재빨리 말했다.

[저는 싫어요, 싫어요.]

위소보는 웃었다.

[그렇다면 우리 돈내기를 할까? 내가 이기면 그대는 일 전의 은자를 바
치고 그대가 이기면 내가 한 냥의 은자를 주도록 하지. 이렇게 하면 그
대가 득을 보는 셈이 아니겠소?]

쌍아는 웃었다.

[저는 은자가 없어요.]
[그대에게 은자가 없다 해도 방법이 있소.]

그는 한 줌의 은표를 꺼내  그녀에게 쥐어 주었다. 쌍아는 웃으며 말했
다.

[저는 은자가 필요없어요.]
[아, 그대는 노름을 하고 싶지  않은가 보군. 차라리 그 땅딸보를 나오
도록 해서 그와 노름판을 벌이도록 해야겠다.]

그때 갑자기  신호로 터뜨리는 대포소리가  울려퍼졌다. 위소보는 펄쩍 
뛰어 일어나 냉큼 쌍아를 얼싸안고 말했다.

[대성공이야! 입이나 한번 맞춥시다.]

쌍아는 웃으며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위소보는 그녀의 뒷덜미에 두어 
번 입맞춤을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목덜미는 정말 희군.]

이때 호각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는  중군장에서 나와 관망대 위로 올라
섰다. 그러고 보니 멀리 신룡도에서  세 개의 커다란 불기둥이 곧장 구
름을 뚫고 하늘 높이 피어오른  것이 아닌가! 신룡도 전체는 이미 검은 
연기에 휨싸여 있었다. 신룡도는  이미 대포에 초토화된 것이 틀림없었
다. 그리고 한 척의 전선이 동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시랑이라는 이 녀석은 제법이로구나. 일을 헤아림에 있어서 귀신 같지
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헤아려 보았구나.)
바다 위의 전선들이 오고가는 것이 무척 느려 보였다. 그는 관망대에서 
반나절 동안 서 있었으나 신룡도에서 어떤 배도 탈출해 나오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시랑과 황 총병이 동쪽과 서쪽에서 협공을 하는 것도 볼 수 
없었다. 이윽고 그는 중군장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했다.

두 시진을 기다리니 친위병이 보고를 했다. 조금 전에 연화신호(烟花訊
號)를 보았는데 도통대인에게 승첩을 보고했다는 것이 아닌가!
외소보는 크게 기뻐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 큰 싸움에서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이기게 되었다. 아무쪼록 방
이라는 계집애의 머리카락 한 가닥도 포화에 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한 시진 정도 흐르자  날이 어두워졌다. 친위병이 몇 척의 조그만 
배가 포로들을 압송해서 통흘도  쪽으로 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위소보
는 크게 기뻐서 벌떡 일어나  해변가로 달려갔다. 과연 다섯 척의 조그
만 배가 섬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위소보는 친위병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들을 잡았는가?]

조그만 배에서는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배에 탄 것들은 모두 계집애들이고 남자들은 뒤에 있습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뻤다.

[시랑이 일을 잘해주었구나.]

그는 눈을 들어 살펴보았다. 그는 방이의 아리따운 모습이 눈에 들어오
기를 바랬다. 물론 늙은 갈보를  사로잡고 또한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홍 부인마저 잡아서  매일같이 그녀를 바라만 볼 수  있어도 기쁜 일일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기다리니  다섯 척의 배가 언덕에 닿았고 효기영
의 관병들이 호통소리를 내지르며 이백여 명이나 되는 여자들을 데리고 
올라왔다. 위소보는 하나하나 확인했다.  모두 적릉문 문하의 소녀들인
데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맥  빠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떤 여자들
은 옷이 찢겨져 있었고 어떤  여자들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방
이는 보이지 않았다.  위소보는 약간 실망해서 물었다.

[또 다른 여자들은 없소?]

한 명의 좌령이 말했다.

[도통대인께 보고드립니다. 뒤에 또  있습니다. 아직도 세 부대의 군사
들이 수색하고 있는데 독사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수색이 좀 늦어지고 
있습니다.]
[신룡교의 교주는 잡았는가? 이번 싸움은 어떻게 한 것이지?]

좌령은 말했다.

[도통대인께 보고합니다.  오늘 이른 아침 서른  척의 전선이 해변가로 
다가가서 일제히 포를  터뜨렸습니다. 모두 대인의 분부에  따라 세 번 
포를 쏘고 좀 멈추도록 했으며  포탄이 떨어지는 곳은 섬의 빈터였습니
다. 섬 사람 중에서 누가 나와 항거하고자 할 때 다시 포를 터뜨렸습니
다. 도통대인은  정말 귀신과 같이 일을  예측하셨습니다. 이 방법으로 
세 번을 쏘아  대자 신룡교의 비적들 사오백  명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일대의 젊은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을 해왔으
며 입으로 '홍 교주는 백전백승이며  수명은 남산과 같으리라' 하고 부
르짖었지요....]



第88章. 또다시 방이에게 속다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틀렸다. '홍 교주는 영원히  선복(仙福)을 누리실 것이며 수명은 하늘
처럼 길다'는 말이 아니더냐?]

좌령은 말했다.

[예, 도통대인은 신룡교의 무리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 알고 계셨군
요. 그러니 대군이 나서자마자  그야말로 파죽지세를 이룬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신룡교의 비적들이 부르짖는 소리는 확실히 수명은 하늘처럼 
길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직이 말을 잘못했습니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그 젊은이들은 미친 것처럼  해변가로 달려오더니 조그만 배에 올라탔
습니다. 우리들의 큰  배로 노를 저어 오더니  대포를 빼앗으려 했습니
다. 우리들은 처음엔 내버려두었다가  수십 척이나 되는 조그만 배들이 
일제히 노를 저어왔을 때 대포를 쏘아댔지요. 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삼십여  척의 조그만 배들은 일제히 바다에 가라
앉았으며 삼천여 명이나 되는 소년들은 하나같이 바닷속에 가라앉고 말
았습니다. 그  젊은 비적들은 죽어가면서도 여전히  '홍 교주의 수명이 
하늘처럼 길다'라고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는 거짓  보고를 하고 있구나. 신룡교의  소년들은 기껏해야 팔구백 
명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삼천여  명이나 된다는 것이냐? 적을 많이 죽
일수록 공로가 커지니까 그러는구나. 좋다.  그가 사천 명 아니라 오천 
명으로 늘려서 보고한다고 해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좌령이 말했다.

[신룡교의 소년 비적들을 모조리 없애자 한 떼의 사람들이 섬의 서쪽으
로 달려가 배를 타고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우리의 여러 전선들은 도통
대인의 계책대로 뒤를 쫓아갔지요.  비직은 군사를 이끌고 섬으로 올라
가 수색을 하였는데 남자와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삼사백 명을 잡았습
니다. 시 대인께서는 먼저 이 여자들을 통흘도로 보내 도통대인께서 조
사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에서  이긴 것은 확실했으나 방이를 발
견하지 못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대포를 쏘아댔을 때 그녀는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다시 그 한 떼의 여자
들을 살피다가 둥근 얼굴의 한 소녀를 볼 수 있었다. 대뜸 떠오르는 기
억이 있었다. 그  날 교주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집회를 열었을 때 그 
소녀는 자기에게 반두타의 사생아가 아니냐며 자기의 입을 살짝 꼬집고 
볼기짝을 걷어차지 않았던가! 그  일을 생각하니 장난기가 불쑥 치밀었
다. 위소보는 그 소녀 곁으로 다가가서 손을 뻗쳐 그 소녀의 얼굴을 힘
주어 한 번 꼬집어 주었다. 그 소저는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
다.

[개 같은 오랑캐!]

위소보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그대는 아들을 잊었소?]

그 소저는 크게 의아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살폈다. 얼굴이 익
은 감이 없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그가 바로 백룡사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지?]

소녀는 말했다.

[빨리 나를 죽여요. 그대가 무엇을  묻는다 하더라도 나는 한마디도 대
답하지 않겠어요.]
[좋아! 대답하지 않는다고? 게 누구 없느냐?]

수십 명의 친위병이 일제히 대답을 했다.

[예!]
[이 계집애를 데려가 옷을 발가벗겨 곤장 백 대를 때리도록 해라.]

친위병들은 다시 일제히 대답했다.

[예!]

그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그녀를 끌고 가려 했다. 소녀는 놀라서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며 재빨리 말했다.

[아니오, 아니에요. 말하겠어요.]

위소보는 손을 흔들어 친위병들을 말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지?]

그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저는...., 저는 운소매(雪素梅)라고 해요.]
[너는 적룡문의 문하이지? 그렇지?]

운소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대답했다.

[예.]
[적룡문에는 방이라는 소저가 있는데 나중에 백룡문으로 옮겨가게 되었
다. 너는 그녀를 알고 있느냐?]
[예, 알고 있어요. 그녀는 백룡문으로 들어간 후 이미 소대장으로 승진
했어요.]
[좋아, 벼슬이 올랐군. 그녀는 어디에 있지?]
[오늘 오전에 그대들....그대들이 포화를  쏘았을 때 저는 방이 언니를 
볼 수 있었어요.  그 후....그 후 혼란스러워지고  나서부터는 다시 볼 
수 없었어요.]

위소보는 방이가 오늘까지 섬에 있었다는  말을 듣고 조금은 마음이 놓
였다. 그는 네가 나의 볼기짝에  발길질을 했으니 이번에는 그 빛을 갚
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등 뒤로 돌아가서 발을 들어 그녀
의 엉덩이를 차려고 하는데 친위병이 새로운 보고를 했다.

[도통대인께 보고드립니다. 또 한 떼의 포로들을 데려왔습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기뻐서 발길질을  멈추고 해변가로 달려갔다. 과연 한 
척의 조그만 배가 돛을 올리고 다가왔다. 그는 친위병에게 고함쳐 물었
다.

[포로는 여자인가? 남자인가?]

처음에는 간격이 멀어서 상대방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잠시 후에 전선
이 다가옴에 따라 뱃머리의 한 군관이 부르짖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소이다.]

잠시 후에 위소보는  뱃머리에 서 있는 서너 명의  여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멀리서 보기에도 방이  같았다. 그는 크게 
기뻐서 곧장 해변가로 달려갔다.  바닷물이 무릎까지 차올라 오는 곳까
지 내려가서 살펴보니 그 여자는  정말 방이였다. 그는 크게 기뻐서 부
르짖었다.

[빨리, 빨리 이쪽으로 대라.]

별안간 그 한 척의 전선이 흔들하더니 한 바퀴 맴을 돌았다. 그리고 배 
위의 수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이쿠! 암초에 걸려 꼼짝하지 않는구나.]

별안간 방이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소보, 소보. 그대예요?]

위소보는 이때 자기가 도통대인의 신분이란 것을 돌보지 않고 부르짖었
다.

[누나, 나요. 소보가 이곳에 있소.]

방이는 외쳤다.

[소보, 빨리 와서 나를 구해  줘요. 그들은 나를 묶어 놓았어요. 소보, 
소보 빨리 와요.]

위소보는 말했다.

[걱정하지 마오. 내 그대를 구해 내겠소.]

그는 몸을 날려 한 척의 군정을  전해 받는 소정에 올라 수병에게 분부
했다.

[빨리 저어 가도록 하라. 빨리, 빨리.]

소정의 수병들은 달제히 노를  들고 젓기 시작했다. 갑자기 언덕위에서 
한 사람이 몸을 날려 소정으로 올라왔는데 바로 쌍아였다. 쌍아는 말했
다.

[상공, 제가 가 보겠어요.]

위소보는 흐뭇해져서 말했다.

[쌍아, 그대는 저 사람이 누군지 아시오?]

쌍아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알고 있어요. 저분은 상공의 마누라라고 하지 않아요. 언젠가 나는 마
나님이라고 부른 적도 있어요. 하지만....하지만 저 마나님은 응락하지 
않았어요.]

위소보는 웃었다.

[그녀는 부끄러웠던 것이오. 이번에 그대가 다시 부른다면 그녀는 반드
시 기뻐할 것이요.]

그 전선은 여전히 맴을 돌고  있었다. 소정은 신속히 노를 저어 가까이 
다가갔다. 방이는 불렀다.

[소보, 과연 그대였군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위소보는 외쳤다.

[바로 나요.]

그는 그녀 곁에 있는 군관에게 호통을 내질렀다.

[빨리 소저를 풀어주도록 하게.]

군관은 말했다.

[예.]

군관은 몸을 구부리고  방이의 손을 묶은 밧줄을  풀었다. 방이는 팔을 
좌우로 벌리고 위소보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서로 가까워지자 전
선 위의 군관이 말했다.

[도통대인께서는 조심하십시오.]

위소보는 몸을 날렸다. 군관은 손을  뻗쳐 그를 붙잡아 주었다. 위소보
는 뱃머리로 올라서자마자 방이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누나, 정말 보고 싶어 죽을 뻔했어요.]

두 사람은 꼭 껴안았다. 위소보는 방이의 부드러운 몸뚱어리를 안고 그
녀의 몸에서 풍겨  오는 향긋한 내음을 맡자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난 번 그가 방이를 따라 신룡도에 이르렀을 때만 
해도 남녀의 일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 후에 운남으로 
가면서 건녕 공주와 실컷 즐겼는지라  이번에 다시 방이를 품속에 안자 
그만 호흡이 거칠어졌다. 별안간 배가 흔들거렸다.
위소보는 방이를 안은  채 한사코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뒷덜미가 바짝  조여들었다. 누구의 손아귀에 잡혀 몸이 
들어 올려진 것이다. 곧이어 간드러지기 이를 데 없는 음성이 들렸다.

[백룡사! 잘 있었소? 이번에  그대가 사람들을 데리고 신룡도를 쳐부쉈
으니 정말 적지 않은 공로를 세운 셈이군요.]

위소보는 홍 부인의 음성임을  깨닫고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일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힘주어 바둥거렸다. 그러나 방이가 꽉 껴안고 있어
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곧이어 허리께가  아파왔다. 이미 상대방에게 
혈도를 짚힌 것이었다. 이 변고는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위소보는 혹시 꿈이 아닌가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속
았다는 한 마디였다.
(야단났구나! 야단났어! 방이에게 또다시 속고 말았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쳤다.

[게 누구 없느냐? 빨리 나를 구해다오.]

방이는 가볍게 그를 놓아 주고  한 걸음 물러섰다. 위소보는 혈도를 찍
혀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자기
가 올라탄 배는 이미 돛을 올리고 북쪽으로 질풍과 같이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자기가 타고 왔던 그 한  척의 소정은 이미 십여 장 밖에 있었
고 은연중 언덕 위의 관병들이  큰소리로 부르짖고 호통치는 소리가 들
려 왔다. 그는 속으로 빌었다.
(천지신명께 기도드립니다. 시랑과 황 총병이  빨리 빨리 배를 보내 막
도록 해주십시오. 하지만 절대로 대포는 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통흘도의 관병들이  부르짖는 소리는 점차 멀어졌고  끝내는 들을 수가 
없었다. 그가 눈을 들어 사방을 보니 끝없이 펼쳐진 바다만 보일 뿐 한 
척의 배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거느린 전선은 많았으나 모조리 신
룡도를 공격하는데  파견했다. 더군다나 대장이  사로잡힌 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니 어찌  뒤쫓아올 수 있겠는가? 그는  갑판에 앉아서 천천히 
머리를 쳐들고 살폈다. 몇 명의 효기영 군사들이 그에게 냉소를 던지그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제
서야 하나하나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추하기 이를 데 없는 둥근 얼굴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바로 수두타였다.  비쩍 마른 얼굴을 하고 있는 육
고헌의 모습도 보였다. 기다란 말상을  한 반두타도 있었다. 그는 짙은 
의혹을 느꼈다.
(호박처럼 생긴 수두타는 중군장 뒤에 묶여져 있었다. 틀림없이 육고헌
과 반두타가 구해 낸 것이겠지.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분명히 북경에 
있었는데 어떻게 이곳에 있지?)
고개를 돌리니  아리따운 얼굴이 있었다. 바로  홍 부인이었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위소보를 바라보더니 손을  뻗쳐 그 얼굴을 살짝 꼬
집었다.

[도통대인, 어린 나이에 정말 무서운 일을 하시는군요.]

위소보는 말했다.

[교주와 부인께서는 영원히 선복을  누리실 것이며 수명은 하늘처럼 길 
것입니다. 조카는 이번 일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했으니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홍 부인은 웃었다.

[교주 어르신께서는 그대를 크게  칭찬하셨어요. 그대가 청나라 군사를 
이끌고 신룡도를 폭격하여 섬 위의  집들과 나무들이 모두 갯더미로 변
했어요. 그 어르신께서는 언제나  귀신처럼 일을 헤아려 왔는데 이번에
는 잘못 짐작한 거예요. 그는 그대에게 무척 탄복하고 있어요.]

위소보는 이 지경이 된 이상 목숨을 구걸하긴 틀렸다고 생각했다. 터무
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다가 기회를 보아  뼁소니를 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교주 어르신께서는 편안하신지요? 저는 정말 그리웠습니다. 속하는 이 
며칠 동안 부인을 떠올리며 부인이 갈수록 젊어지고 예뻐지기를 빌었습
니다. 그리하여 교주 어르신께서  그대와 더불어 영원히 선복을 누리기
를 바랬습니다.]

홍 부인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네 녀석은 정말 뚱딴지 같구나.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죽을지 
살지 모르고 주둥이를 나불거리다니, 너는 내가 점점 더 젊어지고 예뻐
졌다고 생각하느냐?]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부인, 그대는 정말 잘도 속였군요.]

홍 부인은 웃으며 물었다.

[내가 무엇을 속였단 말인가?]
[조금 전에 청나라 군사들이 한 떼의 자매들을 잡아왔는데 모두 적룡문
의 젊은 소저들이었어요.  그 후에 또 한  떼의 자매들이 들이닥친다고 
말하기에 저는 해변가에서 두리번거리다가 부인을 보았지요. 일시 알아
보지 못하고 속으로 그저 다음과 같이 생각했지요. '야! 적룡문에 언제 
저렇게 나이가 젊고 아름다운 소저가 새로 왔을까? 교주 부인의 누이동
생이 아닐까? 저 같은 미인이라면  빨리 다가가서 봐야지.' 부인, 저는 
마음이 어지러워지고 당황하여 서둘러 배 위로 올라와 아름다운 여자애
를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 어린 여자아이가 바로 부인인 줄
을 제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홍 부인은 그 말을 듣고  마구 웃으며 몸을 비틀어댔다. 그녀는 효기영 
군관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매력적인 몸매는 여전히 감출 수 없었다. 
수두타는 기가 차서 호통을 내질렀다.

[이 꼬마 색골아, 부인 앞에  감히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다니! 내 너
의 힘줄을 뽑고 가죽을 벗길 테니 두고 봐라.]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정말 멍청하기 이를 데 없군. 나는 그대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소.]

수두타는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어째서 멍청하다는 거냐? 너야말로 멍청하기 짝이 없다. 내가 바
다 위에 떠서 시체처럼 가장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나를 구해서 신
룡도의 사정을 물어 보려고 했다. 나는 교주의 분부대로 터무니없는 말
을 지껄였는데 너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第89章. 다시 사로잡힌 위소보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멍청하다. 멍청해. 위소보, 네 녀석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어째서 수
두타의 내공이 심후하여 물에 떠오른  시체로 가장하는 것쯤은 쉬운 줄 
모르고 바보처럼  그의 말을 의심치 않았으며  신룡도에서 정말 내분이 
일어났는 줄 알았느냐?)
이렇게 생각한 그는 말했다.

[나는 교주와 부인의 계책에  말려들고 말았으니 멍청한 녀석임에 틀림
없소이다.]

수두타는 말했다.

[흥! 멍청하지 않다면 네 자신이 총명한 줄 알았냐?]
[나는 물론  매우 총명하오. 하지만 천하에서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도 
교주와 부인 앞에서는 그 누구도  빛이 나지 않는단 말이오. 교주와 부
인께서 어떤  계책을 세우시면 빈틈이 없기  때문에 파죽지세로 이기고 
대성공을 한단 말이외다.]

그가 대성공이란 말을 하게 되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미미하게 떨리고 
있는 앵두같이 조그마해서  한 입 깨물어 주고 싶은  홍 부인의 입술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홍  부인은 환히 웃으머 고른 치아를 드러내
며 말했다.

[백룡사, 그대는 역시 수두타보다 영리하군. 수두타가 그대와 입씨름을 
해서 이길 순  없지.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수두타가 멍청하다는 것이
지?]
[부인, 이 수두타는 이미 부인의 선녀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구든
지 부인을 한 번 보면 다른 여인을 볼 생각이 나지 않죠. 제가 그를 멍
청하다고 한 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다른 여인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
기 때문입니다. 수두타, 그 여자가 누구인지 내가 말해야겠소?]

수두타는 호통을 내질렀다.

[말하지 말아라.]

위소보는 웃었다.

[말하지 말라면 안 하지. 그대의 사제는 그대보다 고명하기 이를 데 없
소. 그는 부인을 본 후  다시는 다른 여자에게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고 
했지.]

반두타는 말상의 얼굴을 붉히며 나직이 말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위소보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없다구? 그럼 정말로 그대는 부인을 본  이후 다시 다른 여인을 볼 생
각이 납디까?]

반두타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나는 출가인으로 육근(六粮)이  청정(淸淨)하며 마음속에는 이미 남녀
의 구분이 없다.]
[쯧쯧쯧! 노화상이 염불하듯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군. 그대의 사형 
역시 두타이오. 그런데 어찌하여  매일같이 그가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
하지?]

그는 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했다.
(나는 분명히 그와 육고헌에게 북경에서 나를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두 사람은 홍  부인과 함께 이곳에 있을까?  이상한 노릇이
다.)
반두타는 말했다.

[사형은 사형이고 나는 나야. 두 사람을 한데 묶어 논할 수는 없네.]
[나는 그대들  두 사람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오.  그대 사형의 위인됨은 
멍청한 면이 있으나 그래도 그대는 똑똑한 편이오. 하지만 그대들 사형
제 두 사람은 교주와 부인의 큰일을 망쳤으니 실로 지은 죄가 엄청나지 
않을 수 없소.]

반두타와 수두타는 일제히 외쳤다.

[터무니없는 소리! 우리가 어쩨서 교주와 부인의 큰일을 망쳤다는 것이
냐?]

위소보는 냉소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꺼번에 두 사람을 모함할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바다 쪽을 바라보았
다.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나  한 척의 배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
다. 간혹 멀리서  터뜨리는 포성을 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시랑과 황 
총병이 여전히 전선(戰船)을 이끌고 신룡교 쪽의 도망치는 배들을 에워
싸고 섬멸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육고헌은 그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말했다.

[부인, 저 녀석은 본교의 큰 죄인입니다. 교주께 보고하여 그를 바다속
으로 처넣어 해룡의 먹이로 만듭시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이 소백룡은 가짜이다. 가짜 백룡이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목숨이 없어
지고 말지.)
홍 부인은 말했다.

[교주께서 그에게 물어 볼 말이 있대요.]

육고헌은 대답했다.

[예. 알겠 습니 다.]

그는 위소보의 등을 밀며 말했다.

[교주님을 뵈러 가자!]

위소보는 속으로 야난났다고 생각했다.
(부인 앞에서는 교묘한 말을 하여 그녀를 기쁘게 할 수가 있다. 처음부
터 교주가 이 배에 타고 있었구나. 만약 지금 이 소백룡이 용궁으로 뛰
어들지 않는다면 하늘의 뜻을 어기는 격이 되겠구나.)
그는 고개를 돌리고 방이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했
으며 기뻐하거나 노하는  빛도 전혀 없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욕을 했
다.
(썩어 문드러질 갈보 같으니. 못된 계집애!)
그는 말했다.

[방 소저, 축하하오.]

방이는 말했다.

[무슨 축하를 한다는 거예요?]
[그대는 본교를 위해  큰 공을 세웠으니 교주께서  그대의 직위를 올려 
주시지 않겠소?]

방이는 흥, 하고 코웃음을 한 번 쳤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홍 부
인은 말했다.

[모두들 들어오게.]

육고헌은 위소보의 등을 붙잡고 그를 선실 안으로 끌어당겼다.
홍교주는 놀랍게도  선실에 있었다. 위소보는  그를 보자마자 큰소리로 
외쳤다.

[교주와 부인께서는 선복을 영원히  누리실 것이며 수명이 하늘처럼 길 
것입니다. 속하 백룡사, 교주와 부인께 인사드립니다.]

육고헌은 그를 내려놓고 방이 등과 함께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교주께서 선복을 영원히 누리시며 수명이 하늘처럼 길기를 바랍니다.]

그들 역시 홍 부인에게 잘 보이고  싶었으나 이 한 마디는 언제나 버릇
이 되어 있었고 또 얼굴 가죽도  두껍지 못하여 부인이라는 말을 더 보
태지 못했다. 홍 교주는 선실  밖의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못들은 척하
고 있었다. 교주 옆에는 네 사람이  서 있는데 바로 적룡사 무근 도인, 
황룡사 은금, 청룡사 허설정,  흑룡사 장담월이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느끼는 바가 있어 고개를 돌리고 수두타에게 호통쳤다.

[그대라는 사람은 어째서 터무니없는 요언을 만들어 냈소? 어째서 나더
러 교주와 부인께서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냔 말이오? 나는 모든 것
을 돌보지 않고 구하려고 왔는데  알고보니 교주와 부인께선 아무 일도 
없지 않소? 그리고 몇 분의 장문사가 언제 반란을 일으켰단 말이오?]

홍 교주는 냉랭히 말했다.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속하는 교주와 부인의 명을 받들고  황궁으로 숨어 들어가 두 권의 경
서를 얻었습니다. 그 후 운남  오삼계의 평서왕부에서 다시 세 권의 경
서를 얻었습니다.]

홍 교주는 두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다섯 권의 경서를 어쨌다고? 그 경서들은?]
[황궁에서 얻은 두 권은 속하가  이미 육고헌을 보내 교주와 부인께 바
치도록 했습니다. 교주와 부인께선 속하가 일을 잘 처리한다고 해서 육
고헌을 통해 선약(仙藥)을 내리시지 않았습니까?]

홍 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운남에서 얻은 세 권은 속하가  북경의 어느 은밀한 곳에 놔두고 반두
타와 육고헌에게 지키도록 했습니다....]

반두타와 육고헌은 안색이 크게 변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은....없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소? 교주 어르신께선 이 
녀석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경서는 모두 여덟 권이 있는데 속하가 단서를 얻게 되어 다른 세 권도 
십중팔구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모조리 손에 넣은 
후 함께 신룡도로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얻은 경서 중 세 
권은 남이 훔쳐갈까 두려워 벽돌을  빼내고 벽에다 감춰 두고 육고헌과 
반두타에게 한 걸음도 떠나지  말라고 분부했습니다. 육고헌과 반두타, 
집안에서 경서를 지키며 외출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대들 두 사람은 
어찌하여 이곳에 이르게 되었소?  만약 경서를 잃어버려 교주와 부인의 
큰일에 차질을 빛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진단 말이오?]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후 육고헌이 입을 열었다.

[그대가 벽에 경서를 숨겨  두었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우리들이 어떻게 
알겠소?]

위소보는 말했다.

[교주와 부인께서 분부하신 일들은 비밀로  할수록 좋은 것이오. 한 사
람이 더 알게 되면 그만큼  누설되기 쉬운 것이외다. 솔직히 말해서 난 
그대들 두 사람을 별로 신임하지  않았소.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면 큰소리로 '교주님과 부인께서  선복을 영원히 누리시고 수명이 하늘
처럼 길지어다' 하고  말했으며 매번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도 한 
번씩 읊었소. 그러나 그대들 두  사람은 신룡도를 떠난 후 교주의 신통
력이 광대하며 오생어탕보다 못하지 않음을 한번도 말한 적이 없었소.]

그는 요순우탕이 황제를 칭송할 때 사용하는 말인 것도 모르고 불쑥 지
껄였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  오생어탕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육고헌
과 반두타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하며  속으로 여간 놀라지 않았다. 사
실 신룡도를 떠난 후 그들 두 사람은 한 번도 '교주께서 영원히 선복을 
누리시고 수명이 하늘처럼 길지어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데 뜻밖에도 외소보라는 꼬마 녀석이 그 같은 약점을 잡고 늘어질 줄은 
생각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위소보라는 이 녀석은 
언제 그와 같은 귀절을 읊은 적이 있었던가?
육고헌은 말했다.

[그대는 하늘같은 큰 죄를 지어 놓고 이제 와서 입을 놀려 교주와 부인
에게 아부를 하여 목숨을 구걸하려 하지만 우리 섬의 늙고 젊은 형제들
이 이번에 많은 살상을 당했고 교주께서 수십 년간 고심하여 경영해 온 
위업이 모조리 너에 의해 결단나고 말았다. 어찌 목숨을 구하기를 바라
느냐? 꿈도 꾸지 말아라.]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의 말은 틀렸소. 우리가 교주와  부인께 투신한 이상 목숨은 벌써 
자기 것이 아니오.  교주와 부인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을 시키면 모든 
사람은 충성을 다할 뿐이고 만 번 죽어도 사양할 수 없었소. 교주와 부
인께서 우리보고 죽으라면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할 것이오. 우리보고 살
라고 하면 우리는  모두 살아야 할 것이오. 뭐라구?  내가 아부를 한다
고? 그럼 당신은 진정으로 하는 말이 아부로 들렸단 말이오? 당신은 겉
으로만 아부를 해 왔다는 것이오?]

홍 교주는 그의 말을 듣고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
였다. 그는 반두타와 육고헌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백룡사가 수군을 이끌고  본교에 불리한 행동을 하려고 한다
고 했는데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육고헌은 교주의 말 가운데 약간 불쾌한  빛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재
빨리 말했다.

[교주님께 아룁니다.  저희 두 사람은 명을  받들고 백룡사를 감시하며 
그의 일거일동을  유의하면서 일각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 황제께서 그의  관직을 올리고 시랑이 방문했을 때  속하는 그들 두 
사람이 말하는 것을 자세히 들었고 그 사실을 이미 교주께 품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백룡사는 시랑을  데리고 떠나면서 시랑을 효기영의 조
그만 벼슬아치로 변장시키고 속하와  반두타보고 따라오지 말라고 했으
므로 속하는 마음속에 많은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좋아. 교주가 그대들 두 사람을 보내 날 감시했었구나.)
육고헌이 다시 말했다.

[며칠 전 속하는 백룡사의 방에서 내버린 물건들을 조사하기 위하여 쓰
레기통을 뒤지다가 많은 종이조각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맞춰 봤더
니 만주나라와 한나라의 글로  쓴 요동 지방의 이름이었습니다. 백룡사
는 글자를 모르거니와  만주의 글은 더욱더 모릅니다.  그러니 그 같은 
지명은 자연히 황제가 그에게 써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알아 보니 
이번 출행에 많은 대포를 가져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속하 두 사람은 상
의한 끝에 백룡사가 황제의 명을 받고 요동 일대로 가는데 수군의 장병
들과 대포까지 대동한 것을 보면 자연히 본교에 불리한 행동을 할 것이
라고 생각하고서 백룡사가 북경에서 떠나자마자 속하 두 사람은 쾌마를 
타고 밤낮으로 달려와 보고를  하게 된 것입니다. 부인께서는 백룡사가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만 사람의 
얼굴만 보고 마음까지 알 수는  없는 겁니다. 백룡사가 이토록 개 같은 
심보를 지니고 교주님의 신임을 저버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육 선생, 그대는 스스로 총명하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결코 
교주와 부인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오. 내 그대에게 말하는데 나는 잘못
했소. 오로지 교주와 부인만이 영원히 옳은 것이외다.]

육고헌은 노해 말했다.

[그대는 터무니없는....]

그러나 그 한 마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대뜸 알아차리고는 즉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인다는 것이오? 오직 교주와 부인만이 영
원히 옳은 것인데 그대는 이에 대해 승복할 수 없단 말이오? 설마 하니 
교주와 부인께서 잘못이 있고 오로지  육 선생 그대만이 영원히 옳다는 
것이오?]

육고헌은 얼굴을 붉혔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니오. 그것은 그대가 말한 것이지  나는 말한 적이 
없소.]
[교주와 부인께서는 이 백룡사가 충성심이 강해 결코 배반하지 않을 것
이라고 말씀하셨소. 그들 두 분 어른께서는 일을 신같이 헤아리는데 어
찌 틀림이 있다는 것이오? 내  그대에게 말해 두지만 황제는 나에게 수
군과 대포를 거느리고 멀리  요동으로 가라고 말했소. 그리고 장백산으
로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라고 선포했으나 기실....기실은....흥! 
그대가 무엇을 알겠소?]

그는 속으로 재빨리 생각을 더듬었다.
(황제가 나를 보내 무엇을 하라고 했다고 말해야 할까?)
홍 교주는 말했다.

[어디 말해 보게. 황제는 그대를 무엇 하러 보냈지?]
[이 일은 워낙 은밀한 일이라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습니다. 누설하
면 황제께서 반드시 저의 머리를 자를 것입니다. 하지만 속하는 마음속
으로 교주와 부인께선 황제보다도 백  배나 더 높으시다고 생각하고 있
습니다. 그가  만세라면 교주님께서는 백만세입니다.  그가 만만세라면 
교주님께서는 백만만세입니다. 교주께서 저보고 말하라니 자연 감출 수
가 없지요.]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말해야 교주와 부인을 속일 수 있을까?)
홍 교주는  위소보가 아첨의 말을 마구  지껄여대는 줄 알면서도조금도 
낯간지러워하지 않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의기 
양양한 모습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교주와 부인께 아룁니다. 황제의 곁에는 두 명의 붉은 털이 난 외국인
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탕약망이라고 하고 한 사람
은 남회인이라고 하는데 벼슬에 봉해졌지요.]

홍 교주는 말했다.

[탕약망이라는 이름은 나도 들은 적이  있네. 소문에 들으니 그는 천문
지리와 음양력수(陰陽曆數)에 능통해 있다고 하더구먼.]

위소보는 칭찬의 말을 했다.

[교주님께선 문을  나서지 않고도 능히 천하의  일을 알고 계시는군요? 
탕약망은 이리저리 헤아려 본 끝에 북방의 나찰국이 대청나라에 불리한 
일을 하리라는 것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홍 교주는 두 눈썹을 꿈틀하며 물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지?]

위소보는 몽고인 한첩마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오삼계와 나찰국, 
그리고 신룡교가 결탁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오삼계는 멀리 운남에 있
으니 그를 끌어들일  수는 없는 일이고 나찰국은 바로  요동 옆에 있지 
않은가? 과연 나찰국이라는  석 자를 들먹이자 홍  교주는 표정이 대뜸 
굳어졌다.  위소보는  자기의 말에 상대방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속으로 크게 기뻐서 말했다.

[소황제께선 그 말을 듣자 마음에 근심을 하였고 곧 탕약망에게 계책을 
짜내 바치라고 했습니다. 탕약망은  상주했지요. '신이 돌아가 밤에 천
문을 보고 해를 따져 음양을  계산하여 자세히 헤아려 보겠습니다.' 그
리고 며칠 후  그는 황제께 상주했지요. 나찰국의  용맥이 바로 요동에 
있으며 무슨 호타마라는 산과 무슨  아마아라는 강이 있는 곳이라고 했
습니다.]

홍안통은 오래 전부터 요동에서 살아 그곳의 산천지리에는 무척 익숙하
여 위소보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부인, 저 녀석의 말이  우습지 않소? 호마이와집산을 호타마산이라 부
르고 아목이하를 아마아의 강이라고 하는군. 하하하!]

홍 부인 역시 깔깔 웃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교주께선 모르는  것이 없으니 속하는 탄복해  마제않는 바입니다. 그 
붉은 털의 괴물들이 몇 번 말을 했지만 속하는 기억할 수가 없군요. 소
황제는 만주나라 글과 한나라 글로 써서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속
하는 글자를 몰라 이 호타마인가 뭔가 하는 산과 아마아인지 뭔지 하는 
강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겠군요.]

홍 교주는  껄껄 웃더니 고개를 돌리고  육고헌을 매섭게 노려보았는데 
그 시선이 매우 날카로웠다.  육고헌과 반두타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
각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 탕약망은 말했지요. 반드시 십  문의 홍모(紅毛) 대포를 만들어 바
닷길로 요동에 운반하여 그 무슨 산과  무슨 내를 향해 연달아 이백 번
을 쏴 나찰국의  용맥을 뒤집어 놓는다면 그 후  이백 년간 대청나라는 
태평무사하리라 했으며 포 한 방에  일 년의 평안함을 보장한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소황제는 말했지요. '그렇다면 천방을 쏘면 천 년 동
안 평안함을 보장할 수 있지 않겠느냐.' 탕약망은 너무 많이 쏘면 오히
려 부작용이  생기고 또 천기는 누설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황도(黃道) 
흑도(黑道)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반나절을 이야기했는데  속하는 반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어 그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홍 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탕약망이 편찬한 대청시헌력이라는 책이 있는데 확실히 이백년의 역법
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청나라의 기운이 기껏해야 이백 년에 불
과할 것 같군.]

위소보는 거짓말을 하는 데 남다른 요령이 있었다. 모든 세세한 부분을 
조금도 싫증을 내지 않고 상세히, 게다가 사실과 거의 다름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대목은 터무니없는 말로 때우는 것이다. 이것
은 그가 기녀원에서 배운 요령이었다. 교주 홍안통 역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고 탕약망이  지었다는 대청시헌력의 내용을 알고 
있었던 관계로  위소보의 그 같은 거짓말은  완전히 맞아떨어진 셈이었
다. 홍 부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소황제는 그대를 요동으로 보내 대포를 쏘라고 했는가?]

위소보는 짐짓 놀랍다는 듯 말했다.

[부인께선 어떻게 아셨습니까?]

홍 부인은 웃었다.

[그대의 말은 진실하다고 할 수  없군. 소황제가 그대를 요동으로 보냈
다면 그대는 어째서 신룡도로 왔지?]
[그 외국인은 나찰국의 용맥은 한 마리의 해룡이기 때문에 이십문의 대
포를 해상으로 옮겨 그 용의 입구를 겨냥하고 시간을 맞추어 그 해룡이 
막 바닷물을 들이키려고 할 때 즉시  쏜다면 그 용은 중상을 입고 움직
이지 못한다고 했지요. 만약 육지에서 포를 쏜다면 그 용은 포 한 방에 
즉시 하늘로 날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포 한 방에 일 년의 
평안함을 빌 수 있을 뿐이니 명년에  다시 포를 한 번 쏴야 하는, 귀찮
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그가 우리를  시켜 대포를 해상으로 
운반하게 한 것도 따지고 보면 길을  돌아서 가는 셈인데 그 역시 용맥
을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풍수감여지설(風水堪與之設)에 의해  용맥이 중시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형이 용처럼 생겼다는  것뿐이지 결코 진짜 용이 있다
는 것은 아니었다. 용맥을 놀라게  해서 도망치게 한다는 등의 말은 위
소보가 완전히 지어낸 말이었다. 홍안통은 그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위소보는 눈치를 살피며 그가 의심을  하는 것을 알아채고 재빨리 말했
다.

[그 외국의 도깨비들은 중국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몇 장의 그
림을 그려서 소황제께 보여  주었으며 자로 이리저리 재곤 하였습니다. 
줄을 긋고 어째서 용맥이  도망을 치는가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속하
는 너무 우둔하여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소황제께선 매우 흥미진진하게 
들으셨습니다.]

홍안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속으로 외국인이 풍수를 보는데는 어
떤 특별한 재간이 있으며 중국의 풍수보다 뛰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
다. 위소보는 그가 인정하자 느긋해져서 생각했다.
(이 고비만 넘기면 이후의 거짓말은 막힘 없이 술술 풀려 나가겠구나.)
그는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말을 이었다.

[어느 날  소황제는 흠천감에게 황도 길일을  선택하도록 하고, 성지를 
내려 저를 장백산으로 보내  하늘에 제사를 올리도록 했습니다. 복건성 
수사제독 시랑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대만에서 투항해 온 사람
이고 정성공이 한때 그에게 패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바
다 위에서 포를 쏘는 데 남다른  재주를 가져서 소황제는 그를 딸려 보
내며 천번 만번 비밀을 지키라고  당부했으며 이번 일을 누설하면 큰일
을 망치게 되어 어쩌면 나찰국에서  선박을 보내 막을지도 모른다고 했
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천진에서  바다로 나서게 되었으나 멀리 빙글 
돌아 살그머니 요동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후 바다에 시
체들이 떠오른 것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진짜도 있있고 가
짜도 있었습니다. 가짜는 바로 수두타였습니다. 저는 좋은 마음으로 그
를 바닷속에서 끄집어 냈지요.  그는 신롱도가 발칵 뒤집히도록 싸움이 
생겼고 교주께서 사람을 보내 청롱사 허설정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수두타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거짓말입니다. 나는 교주께서 청룡사를 죽였다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
다.]

홍 부인은 아름다운 눈으로 그를 한 번 노려보더니 말했다.

[수두타, 교주 앞에서 큰소리를 지르지 마세요.]
[예.]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청룡사가 누구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지 않았소.]

수두타는 말했다.

[그렇다. 교주께선  나에게 그같이  말하여 그대를  속이라고 분부하셨
다.]
[교주께서 그대를 시켜 나에게 잘못 말할 수도 있는 것이겠으나 그대는 
교주가 원수를 갚기 위해  청룡사를 죽였다고 했소. 교주께서는 대공무
사(大公無私)하시고  대인대의(大仁大義)하신 분이니  결코 부하들에게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오.]

그가 한마디 할 때마다 수두타는 부르짖었다.

[거짓말!]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교주가 복수를 하기  위해서 청룡사와 적룡사를 죽였다고 말했
소.]
[거짓이오! 난 말하지 않았소.]
[교주께선 대공무사하신 분이오.]
[거짓말이오.]
[대인대의하신 분이오.]
[거짓이오.]

위소보는 말했다.

[결코 부하에게 감정을 갖고 원수를 갚지는 않소.]

수두타는 말했다.

[거짓말이오.]

육고헌은 수두타가 고지식하고 성질이 급해 이미 위소보의 함정에 빠져
들어 연신 거짓이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을 알았다. 매번 한 번씩 부르
짖을 때마다 교주의 안색은 한 푼 정도씩 일그러졌다. 육고헌은 수두타
가 한 번만 더 부르짖는다면 교주가  성질을 낼 것이고 그렇게 되면 수
습할 길이 없게 된다는 것을  알고 수두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
다.

[그가 교주께 말씀드리는 것을 얌전히 들으며 그의 말을 가로채지 말도
록 하시오.]

수두타는 말했다.

[저 녀석은 터무니없는 말만 지껄이고 있는데 그냥 듣고만 있으란 말이
오?]

육고헌은 말했다.

[교주께선 총명하고 지혜로워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분이 아니시오? 
그대는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교주께선 이미 다 알고 계시오.]

수두타는 말했다.

[홍, 그렇지 않을걸....]

그 한 마디를 내뱉고 나서야 그는 갑자기 입을 벌리고 얼굴에 당황하고 
곤혹스런 빛을 띠었다. 위소보는 그를 노려보고 있다가 용용 죽겠지 하
는 얼굴을 지었다. 수두타의 키는  위소보보다 더욱 작은 편이었다. 위
소보가 고개를 숙이고 용용 죽겠지 하는 표정을 지으니 다른 사람은 그
의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수두타는 똑똑히 볼 수 있어 즉시 화를 터뜨리
려고 했다. 하지만  교주를 격노케 할까봐 억지로  성질을 누르고 참고 
있자니 자연 얼굴이  일그러졌다. 선실 안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고 
수두타의 씩씩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홍 교주가 위소보에게 물었다.

[그는 또 무슨 말을 했느냐?]
[교주님께 아룁니다. 그는 교주가 일을 꾸며 적룡문을 이간질시켜 청룡
문을 공격했다고 했습니다....]

수두타는 부르짖었다.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홍교주는 그를 노려보더니 호통쳤다.

[아가리 닥쳐라! 네가  한 번만 더 괴성을 질러대면  나는 너의 제기랄 
놈의 동그란 대갈통을 두 쪽으로 쪼개버리겠다.]

수두타는 온 얼굴이 시뻘겋다 못해 자주색으로 변하였고 육고헌과 반두
타는 아연실색했다. 사람들은 홍  교주의 심기가 매우 깊어 희노애락을 
좀처럼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이토록 거친 말을 하며 
신경질을 부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고 수두타를 크게 꾸짖고 욕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극도로 분노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뻤다. 수두타가 입을 열고 말을 하치 못한다면 자기가 
아무리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여도 그는  좀처럼 반박할 수 없을 것이었
다.

[교주님께선 노여움을 푸십시오. 수두타는  교주님을 모욕하는 말을 별
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교주님께서  속이 좁다고 했을 뿐입니다. 지
난 번에 모두들 모반을 꾀하였으나  일을 이루지 못했는데 속하라는 한 
명의 어린애 때문에 큰일을 망치게  되어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 분노를 
느끼고 있는데 교주께서는 그 기희를  빌어 원수를 갚으려 했다고 하더
군요. 그는 교주님이 하성이라는  사람을 시켜 일을 저지르도록 했는데 
그 사람은 무근 도인의 제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본교에 그 같
은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가 말해줘서 비로소 알았지요.]

홍 부인은 말했다.

[하성이란 사람은 있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것이지?]

위소보는 속으로 짐작했다.
(하성은 무근 도인의 제자이니 젊은 녀석일 것이다.)

[수두타는 하성이 부인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이 몇 년 동안 부인과 어
쩌구저쩌구 했다는 등 해괴한 말을 많이 했습니다. 속하는 대노했지요. 
그가 등 뒤에서  부인에게 불경스러운 짓을 하는 것을  보자 화가 나서 
그의 주둥이를 후려쳤습니다. 그때 그는 소가죽 끈으로 묶여 있었기 때
문에 반항할 수 없어 십여 차례  매를 맞은 후에야 비로소 아가리를 닥
쳤죠.]

홍 부인은 치미는 울화 때문에  안색이 새파래져서 매서운 얼굴로 말했
다.

[어째서 나를 끌어들였지?]

수두타는 말했다.

[저....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교주께서 그대보고 입을 열지 말라고 했으니 그대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하시오. 내 그대에게 묻겠는데  그대는 하성이란 사람이 있고하지 않았
소? 있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없으면 고개를 가로저
으시오.]

수두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하성이 허설정을 죽이자 부인께서 매우기뻐했으며 교주는 아무
것도 모르고 계신다고 했소.  그대는 청룡사가 하성에게 죽음을 당했으
며 방안에는 한 자루의 칼이 던져져 있었고 그 칼은 하성의 것이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 말을 했소, 아니했소?]

수두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앞쪽의……]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이미 말한 적이 있었으면 됐소.]

기실 수두타가 말한 것은 뒤의 말이고 앞쪽의 반 토막은 위소보가 보탠 
것이다. 그런데 수두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말을  수두타가 전부 한 
셈이 되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청룡문,  적룡문, 황룡문, 흑룡문,  그리고 우리의 백룡문까지 
모두 난잡하게 얽혀  싸우게 되었고, 교주는 이미  권세를 잃어 진압할 
능력도 없다고 하지 않았소?]

수두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가 말했다.

[그대는 신룡도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교주와 부인마저 사로잡았으
며 부인은 옷을 다 벗기어 뭇사람들 앞에서 나신으로 걸어 보이는 행동
을 했다고 했소. 그리고 교주의  수염은 다른 사람에 의해 모조리 뽑혀
지게 되었고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이미  사흘 밤낮을 물 한 모금 마시
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한다고 했소. 이 같은 말을 그대는 인정하지 않
겠지?]

 이 한 마디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도, 고개를 가로저을 수도 없어 
수두타는 온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 살갗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대는 그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겠지?]

수두타는 노해 말했다.

[나는 말한 적이 없소!]
[그대는 그대가 교주와  손을 쓰게 되었으며 그대는  교주를 두 번이나 
차고 교주에게 석 대의 따귀를 갈겼지만, 교주의 무공이 그대보다 고강
해서 그대가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교주에게 오히려 던져져 바다에 떨
어지게 되었다고 하지 않았소? 그리고 그대는 본교가 이미 발칵 뒤집혀
서 크게 소란을  피우고 있다고 했소.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주에 의해 
바다로 던져졌다고 했소.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 죽고 죽이고 있다고 했
소. 교주와 부인은 이미 지극히  낭패한 지경에 도달해 있어 지금은 죽
지 않았다 해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소?]
[나는....나는....나는....]

수두타는 위소보의 수작에 그만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골이 빠개지는 것 
같아 어떻게 대답할 줄을 몰랐다.  그는 확실히 교주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교주에 의해  바다로 던져졌다고 했으며 또 신룡도의 
오룡문이 서로 죽고 죽이는 등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고 말했으나 위소
보의 말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교주님께 아룁니다.  속하는 본래 수군과 배를  이끌고 요동으로 가서 
나찰국의 용맥을 대포로 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이르렀
을 때 속하는 교주와 부인을 생각해 냈으며 또한 방이 소저도 생각났습
니다. 속하는 본래....본래 그녀를 처로 맞아 들이려고 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역시 그녀를 만나고 싶었으며  교주와 부인께서 그녀를 제가 데
려가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천천히 항해하
도록 했으머 멀리서 섬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
니다. 그리고 만약 교주와 부인을 한 번 뵈올 수만 있다면....]

홍 부인은 미소를 띄웠다.

[사실은 방이 소저를 볼 수만 있다면이겠지?]
[예, 속하가  사사로운 욕심을 가지고 한마음  한뜻으로 교주와 부인께 
충성을 다하지 않았으니 실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교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던 말을 계속해라.]
[바닷속에서 수두타를 구해 냈는데  그는 교주와 부인을 저주하는 것이
었습니다. 속하도 멍청하지요. 그 같은 말을 듣고 손발이 어지러워져서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신롱도로  달려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으며 교
주와 부인 곁에 서서  반역도들과 결사일전을 벌이고 싶었습니다. 속하
는 그 당시 크게 욕을 했지요. 그날 교주께선 지나간 일을 다시 따지지 
않기로 하셨고 들먹이지도 말라고 분부했는데 어찌 감정을 품고 교도들
을 배반하겠느냐고 물었지요. 속하는 교주와 부인의 위험만을 생각하여 
교주가 반역도들에게 잡혀 거꾸로 매달려 있으며 부인께서 그들에게 옷
을 벗기운 채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일각도 지체할 수 없다
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말  멍청해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교주께서 
신통력이 넓으시니 만약 누가 배반한다면 교주께서 손가락만 뻗쳐 내도 
그들을 개미처럼 눌러 죽일 수 있어서 반역도들에게 욕을 당할 리 없다
는 사실을 미처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속하는 마음속으로 초조해져 즉
시 모든 전선에게 명하여  신룡도를 공격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
게 말했지요. 섬에  살고 있는 좋은 사람들이  모조리 나쁜 사람들에게 
잡혀 있으니 만약 누가 나서서  저항하면 너희들은 포를 쏴서 공격하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덕 위로  오르는 즉시 한 분의 위풍이 늠름하고 
풍채가 당당하시며 옥황상제를 닮은 신선보살과 같은 어르신을 찾아라. 
그분이 바로 신룡교의 홍 교주이시니 모두들 그분을 잘 모셔 오라고 말
했습니다. 그리고 속하는 섬의 모든 여자들에게는 일절 죄를 짓지 말라
고 명했으며 옥과 같고 아름답기 이를 데 없으며 하늘의 선녀가 내려온 
것 같은 여인이 바로 홍 부인이니 반드시 공경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홍 부인은 깔깔거리며 말했다.

[그대의 말대로라면 그대가 병사를  보내 신룡도를 공격한 것은 교주에
게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이군. 그렇다면 그대는 잘못이 없고 오히려 공
이 있는 셈인가?]
[속하는 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교주와 부인께서 평안하시고 
사람들이 층성심이 강하여 교주와 부인을 잘 모시고 있는 것을 보니 마
음이 여간 기쁘지 않습니다. 속하가  첫 번째로 바라는 것은 바로 교주
와 부인께서 영원히 선복을 누리고  수명이 하늘처럼 길게 되는 것입니
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바라는  것은 본교의 모든 사람들이 진충보국(盡
忠報國)하고 교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 말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세 번째는....]

홍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세 번째는 방이 소저를 마누라로 삼겠다는 것이겠지?]
[그것은 조그만 일에 지나지 않으며 속하는 마음속으로 이미 작정한 바
가 있습니다. 애써  일을 처리하여 교주와 부인의  환심을 사면 교주와 
부인께서는 속하를 소홀히 대접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홍안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는 정말 말도 잘한다. 그러나  나와 부인을 염려했다면 어째서 스스
로 군사들을 이끌고 신룡도로 올라오지 않았지? 어째서 사람을 시켜 포
를 마구 쏘게 하고 그대 자신은 멀리 뒤에 숨어 있었지?]

그 한 마디의 말은 급소를 찌르는 말인지라 위소보는 일시 입을 벌리고 
대답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그는  이 한 마디를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
면 교주도 의심을 하게 될 것이고  먼저 한 거짓말은 모조리 들통이 날 
뿐 아니라 목숨마저도 보전할 수 없게 될 것임을 알았다.

[속하는 만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실로 교주와 부인에 대한 충성심
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수두타가  섬의 사람들이 그토록 흉악하게 날뛰
며 교주와 부인마저 잡아갔다고 하는 말을 듣고 무척 무서웠습니다. 지
난 번....지난 번 그들이 교주를 배반하려 했을 때도 속하가 그들의 음
모를 저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판국에 그들에게 다시 잡히면 제 힘줄
을 뽑으려 들  것이고 저의 가죽을 벗기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속하는 
죽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뒤에 숨어 수하 장수와 군사들을 보내 교
주와 부인을 구하도록 한 것입니다. 저는....저는....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第90章. 사슴을 타고 도망치는 위소보와 쌍아


홍 교주와 부인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 
어린애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
다. 홍 교주는 말했다.

[네가 지금 한 말이 정말인지  거짓인지 천천히 알아보겠다. 만약 거짓
말을 했다면 잘 알고 있겠지?]

위소보는 말했다.

[예. 교주와 부인께서 어떻게  처벌하시든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절
대로 속하를 반두타나 수두타, 육고헌 등에게는 넘기지 마십시오. 이번
에....이번에 그들은 교묘한 계책으로  청나라 군사로 하여금 신룡도를 
폭격하도록 하여 적지 않은  형제 자매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속하가 
볼 때 육고헌은  교주가 되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운남에 있을 
때 들은 얘기인데 자기는 선복을  영원히 누리고 싶지도 않으며 수명이 
하늘처럼 길기를  바라지도 않고 그저  오십 년만 더  살면 만족한다나
요.]

육고헌은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는....그대는....]

그는 위소보의 등을 후려쳐왔다. 무근  도인이 한 걸음 쓱 나서며 손을 
뻗어 일 장을  후려쳤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육고헌은 충격을 받고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무근 도인은 호통을 내질렀다.

[육고헌, 감히 교주님 앞에서 사람을 해치려 하는가?]

육고헌은 창백한 안색으로 허리를 굽혔다.

[교주께선 용서해 주십시오. 속하는 저  녀석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듣
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예의에 어긋나는 짓을 했습니다.]

홍 교주는 코웃음을 치더니 위소보에게 말했다.

[그대는 우선 내려가 있게.]

그는 다시 무근 도인에게 말했다.

[그대는 친히 그를 돌보며 다른  사람이 해치지 못하도록 하게. 그러나 
그가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하게.  그리고 그와 말을 하지 말게. 
저 애는 잔꾀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일세.]

무근 도인은 허리를  굽히고 대답했다. 며칠 동안  위소보는 밤낮 무근 
도인과 한 선실에서 묵으며 매일 해가 오른쪽에서 떠올라 왼쪽 뱃전 너
머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배는 북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시랑과 수군이 달려와 자기를 구해 주기를 바랐지만 나중
에는 그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번에 지걸인 거짓말을 교주와 부인은 구할 정도 믿고 있다. 하
지만 내가 군사를 이끌고 신룡도를  뒤죽박죽으로 폭격한 것은 결국 죄
를 면할 수 없다. 다행히 그 동과처럼 생긴 동그란 놈이 떠내려와 나를 
속였지만 그것은 교주가 생각해 낸 계책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대
노해서 뚱뚱이와 나를 함께 죽여 한 솥에 삶아 소보동과탕(小寶冬瓜湯)
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배가 북쪽으로 나가는데 혹시 요동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그는 무근 도인에게 몇 번이나 물었으나 무근 도인은 언제나 똑같은 대
답을 했다.

[모르네. 교주께서 자네와는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네.]

그는 위소보가 선실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외소
보는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방이라는 계집애는 분명 이 배 안에 있는데 내 곁으로 와서 이 답답한 
마음을 풀어 줄 생각도 하지 않는군.)
이번에 사로잡힌 것이 방이에게 유혹당했기 때문임을 상기한 그는 속으
로 생각했다.
(이번에 이 위험에서 벗어난  후에 방이라는 계집애를 다시 상대한다면 
나는 위씨 성을  갈겠다. 두 번이나 속았는데 어찌  세 번씩 속을까 보
냐?)
그러나 방이의 아리따운 용모와 부드럽고 온순한 태도를 상기하자 가슴
이 쿵쿵 뛰어 금방 생각을 고쳤다.
(성이 위씨가  아니면 그만이지. 나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지 않는
가? 나의 성이 무엇인지 그 누가 알겠느냐 말이다.)
배는 계속해서  북쪽으로 나아갔으며 날은  점점 추워졌다. 무근도인은 
내력이 심후해서 벌로 추위를 타지  않았으나 위소보는 몸이 떨릴 지경
이었고 이빨이 마주쳐서 따다닥, 하는  소리가 났다. 다시 며칠이 지나
자 북풍이 불고 하늘이 음울해지더니 갑자기 큰 눈이 내렸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이제 얼어 죽게 생겼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색액도 형님이  나에게 초피로 만든  포자(袍子)를 주었는데 중군장에 
놔두고 가져오지 않았구나. 아, 진작  방이라는 계집애가 나를 속일 줄
을 알았다면 초피로 만든 포자를  입고 그녀를 안았을 텐데.... 그렇게 
했다면 이 배 안에서 얼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얼음
으로 변한 백룡사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나.)
배는 야밤에도 나아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쨍그랑, 쨍, 하는 소리가 들
려왔다. 위소보는 자세히 귀를 기울이고 들어 보았다. 그제서야 위소보
는 배가 바닷속의 조각난 얼음들과 부딪치는 소리인 것을 알고 깜짝 놀
라 부르짖었다.

[아이쿠! 야단났다! 이 배가 바다 한복판에서 얼어붙으면 어떡하지?]

무근 도인은 말했다.

[바닷물은 짜서 얼음이 얼지 않아. 우리는 곧 언덕에 닿게 될 것이네.]
[요동에 도달했소?]

무근 도인은 흥, 하고 코웃음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선실의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시야는 온통 희뿌옇기만 
한데 바다 위엔 온통 떠다니는 얼음조각뿐이었다. 얼음 위에는 하얀 눈
이 쌓여 있었다.  아스라히 육지가 보였다. 이 날  밤 전선은 언덕가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보기에 이튿날  아침이면 작은 배를 타고 뭍에 오
를 것 같았다.  이 날 밤 위소보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홍 
교주가 도대체 자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홍 교주는 
자기의 말을 믿는 것도 같고  믿지 않는 것도 같았다. 빙천설지(水天雪
地)로 온 목적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꿈속
에서 방이가 자기 곁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대뜸 그녀를 끌어
안았는데 어렴풋이 그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터무니없는 짓은 하지 말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이 죽일 마누라야! 나는 터무니없는 짓을 해야 되겠다.]

방이가 자기 품속에서 몇 번 몸을 비틀었다. 그는 잠결에 품속의 그 사
람이 나직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상공, 우리 빨리 가요.]

아무래도 쌍아의 음성  같았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대뜸 정신을 차렸
다. 품속에는  확실히 부드러운 몸뚱이가 안겨져  있었다. 어둠 속이라 
누구인지 잘 보이지 않아 속으로 생각했다.
(쌍아냐, 방이냐, 아니면 홍 부인이냐?)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누구든 입을 맞추고 보자. 우선 재미좀 보자구.)
그는 품속의 사람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 사람은 나직이 
소리내어 웃으며 고개를  돌려 피했다. 그 웃음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는데 바로 쌍아였다. 위소보는  놀람과 기쁨에 얽혀 그녀의 귓가에 
입을 대고 나직이 물었다.

[쌍아. 그대가 어떻게 왔지?]

쌍아는 말했다.

[우리 빨리 가요. 천천히 얘기해 드릴게요.]
[나는 얼어 죽겠소. 그대는 빨리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나의 몸을 좀 따
뜻하게 해주구려.]
[상공은 장난이 심해요. 지금이 어느 때인지 생각해 보세요.]

위소보는 그녀를 꼭 껴안고 물었타.

[어디로 도망을 친단 말이오?]
[우리는 배 뒤로 빠져나가서 작은 배를 저어 뭍으로 오르도록 해요. 그
들은 우리를 발견해도 뒤쫓아오지는 못할 거예요.]

위소보는 크게 기뻐 나직이 부르짖었다.

[묘책이군. 묘책이야! 아! 그 도사는 어떻게 되었소?]
[내가 몰래 선실로 들어와 그의 혈도를 짚었어요.]

두 사람은 살그머니 선실에서  빠져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자 위
소보는 전신이 얼어붙을 것 같아 재빨리 몸을 돌려 선실 안으로 들어가 
무근 도인의 몸에 걸친 도포를 벗겨서 뒤집어썼다. 이때는 검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해 별도 달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커다란 눈송이만 펄펄 내
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배  뒤로 가서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배는 이미 닻을 내리고 키잡이도 선실로 들어가 잠이 든 것 같
았다. 쌍아는 위소보외  손을 잡고 살금살금 배  뒤로 다가가며 나직이 
말했다.

[내가 먼저 내려갈 테니 그댁는 따라오세요.]

그녀는 가볍게 배 뒤에 묶여 있는 소정으로 내려섰다. 위소보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두침침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즉시 눈을 감고 뛰어
내리니 쌍아는 두 손을 들어 그의 등과 엉덩이를 받쳐들고 소정 한가운
데서 조그만 원을 그려 떨어지는  기세를 해소시킨 후에 그를 내려놓았
다. 홀연 선실에서 호통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바로 홍 교주의 목소리였다. 위소보와 쌍아는 깜짝 놀라 소정의 밑바닥
에 웅크리고 앉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탁, 하는 소리가 나고 선
실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쌍아는 홍 교주가 불을 켜서 살피려 
한다는 것을 짐작하고  재빨리 소정에 놓여 있는 나무로  된 노를 힘껏 
저었다. 두 번을 저었을 때 홍 교주는 이미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물었
다.

[게 누구냐? 꼼짝마라!]

소정이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소정을 매어 놓은 
밧줄을 풀지 않았던 것이다. 위소보는 재빨리 손으로 밧줄을 풀려고 했
으나 손에 와닿는 것은 차가운 쇠사슬이었다. 이때 전선에서 및 사람이 
부르짖고 있었다.

[백룡사가 보이지 않는다.]
[그 녀석이 어디로 도망쳤지? 빨리 쫓아라! 빨리, 빨리.]

위소보는 신발목에서 비수를 꺼내서 힘주어 내리쳤다. 창, 하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은 잘려지고 소정은 즉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 소리가 울려
퍼지자 홍 교주, 홍 부인, 반두타, 육고헌 등이 차례로 배 뒤로 달려왔
다. 희뿌연 눈과 얼음의 빛을 빌어  소정이 이미 큰 배에서 수 장 정도 
떨어져 나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홍 교주는 손을 뻗더니 배에서 한  조각 나무를 뜯어내 힘주어 소정 쪽
으로 던졌다. 그의 내공이 강하기는 했으나 나무는 너무 가벼워 소정과 
두 자 정도 떨어진 곳까지  날아오더니 곽,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닷속으
로 떨어졌다. 처음에  육고헌과 반두타 등은 교주의  뜻을 몰라 함부로 
암기를 던지지 못했다. 혹시 백룡사가 상처를 입으면 오히려 벌을 받게 
될까봐 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주가 뱃전에서 뜯어 낸 나무조각을 
던지자 그제서야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몸에 지니고 있던 암기롤 꺼내 
던졌다. 그러나 잠시 지체하는 사이에  소정은 다시 앞으로 이 장 정도 
나아갔기 때문에 보통의 가늘고 작은  암기들은 소정이 있는 곳에 미치
지 못했다. 여러 사람들이 수전(袖箭),  독침 등을 던졌으나 모두 바다
로 떨어졌다.
수두타는 말했다.

[저 녀석이 교활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진
작 한 칼에 죽여 버려야 했습니다. 그를 살려 둔다는 것은 스스로 번거
로움을 자초하는 것이죠.]

홍 교주는 그렇지 않아도 분노가 극도로 차 있었는데 수두타가 그와 같
이 비꼬는 말을 하자 자기를 비웃는  것 같아 왼손을 뻗어 수두타의 뒷
덜미를 잡고 외쳤다.

[빨리 가서 그를 잡아 오너라.]

왼손으로 수두타를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이어 오른손으로 그의엉덩이
를 철썩, 치며 호통쳤다.

[빨리 가!]

앞으로 번쩍 내던지니 수두타의 살코기로  빚어 만든 공 같은 몸뚱이가 
곧장 소정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쌍아는 힘주어 노를 저었다. 위소
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아이쿠! 야단났다. 사람 포탄이 떨어진다.]

그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수두타는 바닷
속으로 떨어졌다. 그가 바닷속으로 떨어진 곳은 소정과 몇 척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수두타는 와락  몸을 솟구치며 왼손으로 소정의 가장자리
를 잡았다. 쌍아는 노를 들어  힘주어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수두타
는 고통을 참고 흥,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손을 재차 뻗어 소정을 잡았
다. 쌍아는 크게 당황하여 힘주어  다시 노를 내리쳤다. 팍, 하는 소리
와 함께 노가 두 토막으로  부러졌다. 이렇게 되자 소정은 대뜸 바다에
서 맴돌게 되었다.

수두타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고개를 한차례 흔들어댔다. 위소보는 비수
를 꺼내서 사정없이 내리찍어 그의  오른손 네 손가락을 모조리 잘라버
렸다. 수두타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오른손을  놓고 말았다. 그러자 
그의 몸뚱이가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 시작했다. 그는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 댔다.
쌍아는 남은 한  자루의 노를 힘주어 저었다.  소정은 다시 언덕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잠시 더 저으니  큰 배와는 꽤 멀어졌고 큰 배에서는 
뒤쫓아 잡을 수 없었다. 큰 배에는 한 척의 소정밖에 없었던 것이다.
홍 교주 일행의 무공은 높았지만 이  뼈를 에는 듯한 추운 날씨에 감히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쳐 쫓아오지는  못했다. 더구나 헤엄을 쳐서 소정
을 뒤따라 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위소보는 소정에 놓여 있는 한 조각의 나무 판대기를 가지고 배젓는 것
을 도왔다. 큰 배 위에서  사람들이 노하여 부르짖는 소리와 욕하는 소
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그러나 북풍은 끝내 그 소리를 집어삼키고 말았
다.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천지신명께 감사드립니다. 끝내 도망쳐 나오게 되었군요.]

두 사람은 반 시진을 저은 후에야 겨우 언덕에 도달할 수 있었다. 쌍아
는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닷물은 무릎 있는 곳까지 찼다. 그녀는 소
정의 뱃머리에 걸려 있는 반 토막의 쇠사슬을 잡고 소정을 언덕 쪽으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됐어요.]

위소보는 몸을 훌쩍 날려 언덕 위에 올라서며 말했다.

[대성공이다.]

쌍아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헤헤, 웃었다.

[상공, 쓸데없는 장난은 하지 마세요. 우리는 빨리 가야 해요. 홍 교주 
일당이 뒤쫓아오면 안 돼요.]

위소보는 깜짝 놀라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기는 어떤 곳이지?]

사방을 둘러봐도 하얀 눈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 더군다나 어둠 속
이라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쌍아는 말했다.

[이곳은 정말 어딘지 모르겠군요.  상공, 우리는 어느 쪽으로 도망가야 
옳을까요?]

위소보는 추워서 벌벌 떨며 욕을 했다.

[제에미! 방이라는 죽일 계집애가 우리를 이 눈 덮인 곳에서 얼어 죽게 
만들었구나.]
[우리 어서 가요. 움직이면 몸이 따뜻해질 거예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눈 덮인  땅을 걸어갔다. 눈은 이미 한 자 정도나 
쌓여 있어 무릎까지  빠져 걷기가 무척 힘들었다.  위소보는 길을 걷는 
것이 고생스러웠으나 홍 교주는 신통력이 높아서 반드시 뒤쫓아 뭍으로 
올라올 거라고 생각했다. 발자욱이  남게 되었으니 어디로 도망을 치겠
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은 도망칠 수  있어도 십중팔구 추격을 
당할 것 같아  머뭇거리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그는 쌍아에게 어떻게 
그를 구했는지 물었다.
위소보가 방이를 발견하고 혼이 나간 사람처럼 달려가 이야기를 나누려
고 하자 쌍아는 소정을 타고 뒤를 따랐다. 그가 붙잡히자 눈치 빠른 쌍
아는 즉시 뱃머리로 숨어 들었다. 이  한 척의 전선은 홍 교주 등이 청
나라 군사로부터 빼앗은 것인데 키잡이와 사공들은 모두 청나라 병사였
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효기영 관병의 복장이라 관병 속에 섞이자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전선이 언덕에 거의 다 이르자 야
음을 틈타 위소보를 구한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난 위소보는 그녀의 총
명함을 칭찬했다.

[방이라는 그 죽일 계집애는 언제나  나를 속이고 해치려고 드는데, 쌍
아라는 착한 보배는 언제나 나의  목숨을 구해 주는군. 나는 방이 대신 
그대를 내 마누라로 삼아야겠어.]

쌍아는 깜짝 놀라 그의 손을 놓고 재빨리 물러서며 말했다.

[저는 그대의 하녀에 불과해요.]
[내가 그대와 같은 나이 어린 하녀를 둔 것은 전생에 열일곱 개나 스물
여덟 개의 목탁을 모두 두드려  부수고 스물한 권의 사십이장경을 모두 
뒤적여 닳아버렸기  때문에 이승에서 이런 복덩어리를  얻게 된 모양이
오.]

쌍아는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상공께서는 참 재미 있어요.]

두 사람은 날이  밝을 때까지 걸어 해변가에서는  꽤 멀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눈 덮인 땅 위에 두 줄기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있고 멀리까
지 뻗쳐 있었다.  앞을 바라보니 평원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홍 
교주 등이 조만간  뒤따라올 것 같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걱정을 하며 
말했다.

[우리들이 열흘  낮 열흘 밤을  두고 걸어도 그들에게 잡히고  말것 같
소.]

쌍아는 오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숲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숲속으로 들어가요. 그러면 홍 교
주가 우리를 쉽게 찾지 못할 거예요.]
[숲이라면 좋겠으나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두 사람은 눈으로 뒤덮인 언덕 쪽을 향해서 걸음을 재빠르게 옮겨 놓았
다. 약 한 시진 정도  걸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대평원에서 솟아오른 
조그만 산등성이였고 숲이 아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저 언덕 뒤쪽으로 가 봅시다.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있을지 모르오.]

그는 지쳐서 숨을 헐떡이고 걸음을  옮겨 놓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 다
시 반 시진을 걸어서 조그만 언덕 뒤에 이르렀다. 그쪽 역시 희뿌연 평
원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보기에 백설로 뒤덮여  있는 바다와 같아 
숨을 만한 곳이 없었다. 위소보는  피곤하고 배가 고파서 눈 위에 쓰러
지며 말했다.

[쌍아, 그대가 나를 껴안고 입맞춤해 주지 않으면 더 이상 걸음을 옮겨 
놓을 기운이 없구려.]

쌍아는 얼굴을 붉히며 망설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
가 들렸다.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일곱, 여덟 마리의 커다란 사슴
들이 언덕 뒤쪽에서 돌아나오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기뻐했다.

[배가 고파서 죽겠소.  그대는 저 사슴을 잡을  방법이 없겠소? 죽여서 
사슴 고기를 구워 먹도록 합시다.]

쌍아는 말했다.

[제가 시험해볼게요.]

그녀는 갑자기 몸을 날려 몇 마리 큰 사슴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매
화록(梅花鹿)의 네 다리는 무척 길어 뛰어가는 것이 나는 것 같아 순식
간에 수십 장 밖으로 달려가 더 쫓을 수가 없었다. 쌍아는 고개를 흔들
며 말했다.

[뒤쫓아 잡을 수가 없어요.]

이곳의 매화록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쌍아가 걸음을 멈추자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들이 땅바닥에 쓰러져 죽은 척해 봅시다. 사슴이 가까이 다가올지
도 모르니.]

쌍아는 웃었다.

[좋아요. 시험해 보지요.]

그녀는 눈 위에 비스듬히 누웠다.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이미 죽었소. 나의 마누라 착한 쌍아도 역시 죽었소. 우리 두 사
람은 이미 땅  속에 묻혀서 다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소. 나와 쌍아는 
여덟 명의 아들과 아흡 명의 딸을 낳았소. 그들은 모두 무덤 앞에서 울
고 있으며 큰소리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르고 있소....]

쌍아는 키득키득 웃으며 조그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말했다.

[누가 그대의 그처럼 많은 아들 딸을 낳아준대요?]
[좋아. 여덟 명의 아들과 아홉 명의 딸이 많다면 아들 셋에 딸 셋만 낳
기로 하지.]

쌍아는 웃었다.

[싫어요....]

몇 마리의 매화록이 천천히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동물 가운데 사
슴의 지능은 낮은 편에 속해 개, 말, 여우 등에게 미치지 못한다. 속담
에도 우둔하기가 사슴이나 돼지 같다는 말이 있다. 몇 마리의 매화록은 
고개를 숙여 위소보와 쌍아의 얼굴에 입을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아 보고 
몇 번 핥아 보기도 했다. 위소보는 외쳤다.

[올라타자! 적청항룡(狄靑降龍)이다!]

위소보는 훌쩍 몸을 날려 사슴의 등에 올라타고 두 손으로 사슴의 뿔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쌍아 역시  날렵하게 한 마리의 매화록등에 올라탔
다. 사슴들은 깜짝 놀라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쌍아는 부르짖었다.

[빨리 비수로 사슴을 죽이세요.]

위소보는 말했다.

[서두를 것 없소. 사슴을 타고  멀리 도망칩시다. 그러면 홍 교주는 뒤
쫓아오지 못할 것이오.]
[정말 그렇네요. 하지만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요.]

그녀는 두 마리 사슴이 한 마리는 동쪽으로 달아나고 한 마리는 서쪽으
로 달려갈까봐 겁이 났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 아닌가! 다행히 매화록
은 떼 지어 살기를 좋아하여 여덟  마리의 큰 사슴은 한데 모여 달려갔
다. 잠시 달리자  다시 일곱, 여덟 마리의 커다란  사슴이 달려와 합쳤
다. 매화록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달리는  속도가 준마에 못지않았
다. 그러나 등에 타고 있으려니 심하게 흔들렸다.
한 떼의 사슴들은 서북쪽을 향해  단숨에 수십 리를 달려가더니 그제서
야 걸음을 늦추었다. 등에 사람을  태운 두 마리의 사슴은 껑충껑충 뛰
었다. 두 사람을 떨궈뜨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위소보와 쌍아는 
사슴의 뿔을 꼭 잡았다. 위소보는 외쳤다.

[사슴의 등에서  일단 내려가면 올라타기 쉽지  않을 것이오. 우리들은 
멀리 도망치면 칠수록 좋소. 이것이 바로 사내대장부의 한 마디가 나오
면 살아 있는 사슴이 뒤따라오기 힘들다는 것이지.]

두 사람은 배가 고파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이 가물가물했으나 여전히 
사슴의 목을 껴안고  사슴의 뿔을 잡은 채 끝없이  펼쳐져 있는 설원을 
달려갔다. 두 사람은 사슴때가 일각이라도 더 달리면 그만큼 홍 교주와 
멀어지는 것이며 눈 덮인 땅 위에  두 사람의 발자국도 남기지 않게 된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질 무렵이 되자  사슴떼는 숲속으로 들어갔
다.  위소보는 말했다.

[되었소. 내려오시오.]

그는 비수를 뽑아 타고 있던 숫사슴의 목을 찔렀다. 그 사슴은 몇 걸음 
달려가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쌍아는 말했다.

[한 마리의 사슴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타고 온 사슴
은 죽이지 말도록 해요.]

그녀는 사슴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위소보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전신의 뼈마디가 모조리 흩어지는 것 같아 땅바닥에 누워 한참 동안 숨
을 헐떡였다. 한참 후에야 그는  숫사슴의 목에 입을 대고 따뜻한 피를 
마시고 소리쳤다.

[쌍아, 그대도 마셔 봐.]

사슴 피를 어느  정도 마시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몸에 뜨거운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쌍아는 사슴의 피를 마시고 비수로 사슴
의 다리를 잘랐다.  마른 나믓가지들을 주워 불을  피운 후 사슴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녀는 말했다.

[사슴아, 네가 우리의 목숨을 구해  주었는데도 우리는 너를 구워 먹으
니 정말 미안하구나.]

두 사람은 사슴 다리를 구워 먹자 더욱 기운이 나고 신이 났다. 위소보
는 말했다.

[쌍아, 나와 그대가 이 숲속에서 한 쌍의 사냥꾼 지아비와 마누라가 되
어 살면서 북경에 돌아가지 말도록 합시다.]

쌍아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상공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뒤따르며  시중을 들겠어요. 그대가 북경으
로 돌아가 큰 벼슬아치가 되어도  좋아요. 저는 언제나 그대의 작은 하
녀예요.]

위소보는 불빛  아래 드러난 그녀의 발그레하니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웃었다.

[그럼 우리는 이제 혼례를 올려야 할 것이 아니겠소?]

쌍아는 어머, 하더니 훌쩍 몸을  날려 머리 위의 소나무 위로 올라서며 
웃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두 사람은 모닥불 옆에 응크린 채 하룻밤을 잤다. 이튿날 잠이 깨자 쌍
아는 다시 사슴고기를 구웠다. 두  사람은 배불리 먹었다. 위소보의 모
자는 어제 낮에 사슴을 타고  달릴 때 떨어뜨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쌍
아는 사슴의 가죽을 벗겨서 모자를 만들어 주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제 우리가 사슴을  타고 하루를 달려왔으니 홍  교주 일행은 좀처럼 
우리를 찾기 힘들 것이오. 하지만 아직도 위험하오. 가장 좋은 것은 매
화록을 타고 북쪽으로 사흘이고  나흘이고 달려가는 것이오. 그러면 위
소보 교주와 쌍아 부인은 영원히 선복을 누리게 될 것이고 수명이 하늘
처럼 길게 될 것이오.]

쌍아는 웃었다.

[뭐가 쌍아 부인이에요? 정말 듣기 거북하네요. 사슴을 타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아요. 저기 보세요. 사슴떼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요.]

과연 이십여 마리의 커다란 사슴과  조그만 사슴들이 동쪽에서 눈을 밟
으며 이쪽으로 달려와 목을 길게 빼고 나무의 부드러운 잎들을 먹었다. 
사슴들은 두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쌍아는 말했다.

[저 사슴들 정말 착하기 이를 데  없군요. 그들의 생명을 더 다치게 하
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어제 잡은 이 한 마리 사슴으로 우리들은 열흘
을 먹고도 남을 거예요.]

쌍아는 죽은 사슴의 몸에서 커다랗게 몇 조각의 살코기를 잘라낸 후 그
것을 사슴 가죽으로  만든 끈으로 묶어서 각자  등에 짊어졌다. 그들은 
천천히 사슴떼에게로 다가갔다. 위소보는  손을 뻗쳐 한 마리의 커다란 
사슴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 사슴이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핥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말했다.

[어쭈! 이 사슴은 나를 좋아하는군!]

쌍아는 킥,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먼저 올라타세요.]

두 사람은 다시 사슴 등에 올라탔다. 두 마리의 사슴은 놀라 앞으로 달
려갔다. 두 사람은 사슴의 뿔을  잡고 방향을 조종했다. 곧장 북쪽으로 
나아가게 해서 홍 교주와 될  수 있으면 멀어지도록 했다. 위소보는 이
미 사슴을 타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을 깨닫고 두 시진 정도 타고 나서 
곧 쌍아와 함께 땅바닥에 내려서  사슴들이 제멋대로 가도록 내버려 두
었다. 이같이 십여 일 동안 사슴을 타고 달렸다. 사슴떼들을 만나지 못
하면 천천히 걷기도 했고 배가 고프면 사슴고기를 구워 먹었다.
두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은 이미 숲속의 가시나무에 걸려 찢어지고 해져 
걸레 조각처럼 되었다. 두 사람은  쌍아가 새로 만든 사슴 가죽으로 만
든 옷과 바지를 입었고 신발도 사슴 가죽으로 만들어 신었다.
어느 날 숲속에서 벗어나자 갑자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을 
가니 커다란 강가에 도달했다. 강물이  거세게 흘러가고 있었다. 두 사
람은 밀림에서 십여 일을 보내다가 갑자기  이 같은 큰 강을 만나니 가
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강을 따라 북쪽으로 몇 시진쯤 가자  몸에 사슴 가죽을 걸친 세 사내를 
만났다. 그들은 손에 곡괭이와  철차(鐵叉)를 들고 있는데 사냥꾼 같았
다. 위소보는 오랜만에 사람들을  보니 기뻐서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세 분 형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사십여 세쯤 돼 보이는 사내가 말했다.

[우리들은 모란강(牡丹江)으로 장 보러 가오. 그대들은 어디로 가오?]

그의 중국어는 무척 생경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아이쿠! 모란강이 저쪽으로 가는  것인가요?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군
요. 그럼 세 분 형님을 따라가는 것이 제일 낫겠군요.]

위소보는 세 사람과 함께 길을 가며 자꾸 말을 걸었다. 세 사람은 통고
사(通古斯) 사람으로 사냥을 하고 인삼은 판매하였다. 종종 모란강으로 
장을 보러 갔으며 한인들과 거래하기  때문에 한어를 할 줄 알았다. 모
란강에 이르니 꽤 큰 고을에 장이 서고 있었다. 위소보는 몸에 한 묶음
의 은표들을 줄곧 지니고 있었다.  그는 세 명의 통고사 사람을 술집으
로 데리고 가 술을 대접했다.  갑자기 옆의 탁자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
려 왔다.

[자네의 이 인삼은 물론 훌륭한  것이지. 지난 달 호마이와집산에서 내
려온 사람을 보니까....]

위소보와 쌍아는 호마이와집산이라는 말을  듣고 흠칫해서 말하는 사람
을 바라보았다. 두 늙은이가  잎사귀가 달린 인삼을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위소보은 한  덩이의 은자를 꺼내 주모에게  주며 술과 고기를 
더 가져오라고 분부하고  한 쟁반의 쇠고기와 두 근의  백주를 옆의 두 
노인에게 갖다 주도록 했다. 두 명의 늙은 심마니들은 이상하게 생각했
다. 나이 어린 사냥꾼같은 위소보가 왜 호의를 보이는지 몰라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위소보는 그쪽으로 다가가 술을 몇  잔 따라 주고 두세 
마디 나누는 사이에 호마이와집산의  소재지를 알아낼 수 있있다. 이곳
에서북으로 이, 삼천 리 올라가면 호마이와집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두 
늙은 심마니들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위소보는 쌍아에게 지도에 있는 다른 산천 이름도 들먹이도록 했다. 두 
명의 늙은 심마니들은 자세히 알려  주었는데 그 멀고 가까움은 지도에 
씌어져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술과 밥을 배불리 먹고는 통고사 사
람과 심마니에게 작별을 고했다.
(녹정산은 이곳에서 몇 천리가 떨어져  있구나. 한가한 몸이니 가서 보
물을 캐오는 것도 괜찮겠다.)
그는 보물을 캐는 것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여전히 홍 교주와 수두타 
패거리와 만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홍 교주 등은 남쪽에 있으니 다시 
북쪽으로 이, 삼천  리를 올라가면 홍 교주는 그를  잡지 못할 것 같았
다.
(내가 쌍아와 팔 년이고 십 년을 기다린다면 홍 교주는 반드시 죽고 말
겠지. 제기랄 그가 정말, 수명이 하늘처럼 길겠어?)

그는 피혁점으로 가서 훌륭한 담비가죽으로 만든 옷을 두 벌 사서 쌍아
와 나누어 입었다.  혹시나 홍 교주에게 추적을  당하게 될까봐 초피옷 
밖에는 여전히 거친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걸쳤다. 얼굴에는 석탄 
가루를 칠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했다. 그들은 한 대의 커다란 
수레를 빌어 북쪽으로 향했다. 수레 속에서 쌍아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
끔 크게 성공했다는 말을 들먹이니 무척 재미있었다. 수레를 타고 이십
여 일을 가는 동안 북으로  갈수록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길은 얼음으
로 덮여 있고  눈까지 내려서 큰 수레는 통행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마필로 바꿔 탔는데 나중에는  마필도 타고 갈 수 없었다. 그들은 
밀림의 설원에서는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위소보는 보물을 찾겠다는 
것은 구실이고 피난을 하려는 뜻이  있어서 험악한 산이나 물을 만나고 
사방에 아무도 없으면  마음이 더 놓였다. 쌍아의  기억력은 무척 좋아 
지도에 그려져 있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북쪽으로 나아갔다. 사냥꾼이
나 심마니들을 만나면  그 지방의 이름을 알아보았다.  지도에 네 가지 
빛깔로 그려져 있는 여덟 개의 조그만 원이 바로 녹정산이 위치한 곳인
데 그곳은 두 커다란 강이  합류한 곳이다. 두 사람은 녹정산이 이곳에
서 별로 멀지 않다고 느꼈다.  두 사람은 커다란 소나무숲을 손을 잡고 
걸어갔다. 별안간 동북쪽에서 탕,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바로 
화기를 쏘는 소리였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이쿠! 야단났다! 홍 교주가 쫓아온 모양이오.]

그는 쌍아의 손을 잡고 잡초 더미  속에 몸을 숨겼다. 조금 후 십여 명
이 울부짖고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다가오더니 곧
이어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위소보가 두려워한 것은 바로 홍 교주가 쫓아와서 그를 잡아 힘줄을 뽑
고 가죽을 벗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리를 들어 보니 홍 교주와는 관
계가 없어서 약간 안심이 되어  고개를 내밀고 살폈다. 십여 명의 통고
사 사냥꾼들이  미친 듯 부르짖으며 달려가고  있었다. 곧이어 탕탕탕, 
하는 소리가 잇따라 울리고 몇  명의 사냥꾼들이 땅바닥에 쓰러져 죽어 
갔으며 몸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위소보는 쌍아의 손을 잡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외국 귀신들의 화창이다.)

말발굽 소리가 나고 칠, 팔 명의  말을 탄 사람들이 달려왔다. 말을 탄 
사람들은 노란 수염에 파란 눈을 지닌 외국 관병이었다. 하나같이 체구
가 우람했고 표정이 흉악했는데 어떤  사람은 화창을 들고 어떤 사람은 
구부러진 만도를 마구 휘둘러댔다. 그들은 삽시간에 통고사 사냥꾼들은 
모조리 쳐죽였다. 외국 관병들은  껄껄 웃더니 말에서 뛰어내려 사냥꾼
들의 몸에서 물건들을 뒤적여 몇  장의 초피와 은빛 여우가죽을 가져가
며 좋아했다. 위소보와 쌍아는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자 잡초 속에서 걸
어나와 사냥꾼을 살펴보니  한 사람도 살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죽은 
사람은 눈에 공포의 빛을 띄우고 있었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이 외국놈들은 강도였군.]

쌍아는 말했다.

[강도들보다 더 흉악하네요. 물건을 빼앗고도 사람까지 죽였으니.]

위소보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말했다.

[어째서 외국 강도가 날뛰지? 설마  하니 오삼계가 이미 반란을 일으킨 
것일까?]

그는 오삼계가 나찰국과 연맹하여  운남에서 출병하면 나찰국은 북으로 
공격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외국인을 
보게 되자 혹시 십여 일 동안에  오삼계가 이미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삼계 휘하에 병마가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소현자가 걱정되었다. 쌍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냥꾼들은 너무 불쌍하군요. 집에서는 부모와 처자들이 그들이 돌
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위소보는 갑자기 말했다.

[나는 소황제를 만나러 가야겠소.]

쌍아는 크게 의아하여 물었다.

[소황제를 만나려구요?]
[그렇소.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켰다면 소황제는 많은 일을 나와 상의해
야 할 것이오. 우리는 북경으로 돌아갑시다.]



제91장. 나찰국의 공주를 애무하는 위소보


[녹정산에는 가지 않을 거예요?]

쌍아가 물었다.

[이번에는 가지 않겠소. 다음에 갑시다.]

그는 재물 욕심이  대단했으나 지니고 있는 재물도 평생  다 쓰지 못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녹정산에 소현자의 용맥이 있다고 생각하니 보물을 
캐내고 싶지 않았다. 보물을 캐냈다가 소현자를 해치면 어떻게 하나 걱
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여덟  권의 사십이장경 속에 들어 있는 조각
난 양피지들을 꺼내서 지도를 짜맞추고 산천의 이름들을 알아 때까지는 
매우 열의가 있었다. 그러나 녹정산에 이르니 두려운 생각이 들었고 무
슨 구실을 찾아서라도 녹정산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그것은 강희
에 대한 의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녹정산의 보물을 캐내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다. 만약 수천 명이나 되는 효기영의 관병들을 데리고 있
었다면 큰소리로 외쳤을 것이다.

[제기랄! 군사들은 녹정산으로 출발하라!]

쌍아는 순순히 따랐다. 위소보는 말했다.

[북경으로 돌아가되 외국 강도들과  맞부딪치지 않도록 강을 따라서 갑
시다. 배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봅시다.]

그는 즉시 숲속에서  나와 동쪽으로 향했다. 오후  내내 걸어서 커다란 
강 가에 이르니 멀리 성채가 보였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생각했다.
(성에 도달하면 배를 빌려 타는 것도  좋고 말을 빌려 타는 것도 좋다. 
돈만 있으면 될 일이다.)
그는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수  리를 갔더니 다시 커다란 강이 서
북쪽에서 구불구불 흘러내려와 거센 파도가  이는 큰 강과 합류하는 것
이 보였다.

[상공, 이곳이 바로  아목이하와 흑룡강이에요. 그러면 저....저....저
곳이 바로 녹정산이에요.]

쌍아가 손가락으로 그 성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는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쌍아는 말했다.

[지도에는 확실히 그렇게 그려 놓고  있어요. 하지만 지도에는 여덟 개
의, 빛깔이 다른 원이 그려져 있었고 성채가 있다는 말은 없었어요.]
[녹정산에 성채가 있다니 정말 이상야릇한 일이군. 내가 볼 때 저 성채
는 녹정산이 아닌 것 같소. 우리는 역시 가지 않는 것이 좋겠소.]
[믿을 수 없군요?]
[저것 보시오. 성채의  머리에 한 떼의 음산한 구름이  감돌고 있지 않
소? 내가 보기에 성 안에는 요괴가 있을 것 같소.]

쌍아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어머! 저는 요괴가 가장 두려워요. 상공, 빨리 가요.]

바로 이때 말발굽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퍼지더니 수십 필의 말이 큰 
강을 따라 남쪽에서  올라왔다. 사방은 모두 평원이라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어 위소보는 쌍아를 끌고 허겁지겁 강변의 커다란 바위 뒤에 몸
을 숨겼다. 얼마 후 한 떼의 말을 탄 사람들이 질풍처럼 지나쳐 가는데 
말 위에 탄 사람들은 모두 외국 관병이었다.
위소보는 혀를 내밀고 그 한 떼의 외국 병사들이 성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말했다.

[내 말이 맞지 않소? 저 성  위의 구름이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외국
의 구름이었군.]
[우리는 간신히  녹정산을 찾았는데 외국  강도에게 점거되었으니 정말 
뜻밖이네요.]
[아이쿠! 야단났어!]

쌍아는 그의 안색이 크게 변하는 것을 보고 재빨리 물었다.

[왜 그러죠?]
[외국의 강도들은 반드시 지도의 비밀을 알았을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곳까지 찾아왔겠소?  그 숨겨져 있는 보물과  용맥을 보존할 수 
없게 되었소.]

쌍아는 한번도 보물과 용맥에 대해 들은 적이 없었다. 다만 한 폭의 지
도가 그토록 짝을  맞추기 힘든 것을 볼 때  녹정산에는 반드시 중요한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눈살을 잔뜩 찌푸리자 쌍
아는 위로의 말을 했다.

[상공, 외국의 관병들이 찾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외국의 강도
들은 화기가 있고 흉악하기 이를 데  없으니 우리 두 사람은 그들을 이
길 수 없어요.]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것 참 이상하군.  우리가 지도를 다 맞춘 후  태워 버렸는데 어째서 
기밀이 누설되었을까? 저 외국 강도들이 이미 숨겨 놓은 보물을 파내고 
소황제의 용맥을 깨뜨리지 않았는지를 반드시 알아내야하오.]

조금 전 외국 관병들이 숲속에서  사람을 죽이던 흉악하고 잔인한 모양
을 머리에 떠올리자 소름이 끼쳐 다시 말했다.

[나는 녹정산으로 가서 살펴보고  싶지만 위험하니 방법을 강구하지 않
을 수 없소. 쌍아, 우리는 날이 어두워진 후에 갑시다. 그러면 쉽게 발
각되지 않을 것이오.]

두 사람은 사슴의 고기를 말려 만든 육포를 먹고 강변에서 휴식을 취하
고 있다가 이경 무렵 슬그머니 성채 쪽으로 걸어갔다. 사방은 조용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달빛은  무척 밝았다. 그 성채는 커다란 목
재와 커다란 돌조각으로 쌓아올렸는데 그  둘레가 꽤나 넓은 것이 결코 
일조일석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이 성채는 옛날부터 이곳에 세워져 있었다. 누가 우리 지도롤 훔쳐 보
고 나찰국의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 이곳에 이런 성을 쌓은 것은 아니구
나.)
그는 자기와 쌍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고 몸을 부르르 떨
었다. 만약 나찰국의  병사가 성문에서 지키고 있다가  총을 쏘게 되면 
위소보는 그만 위사보(韋死寶)가 될  것이다. 즉시 쌍아의 소매를 잡고 
몸을 웅크리며 사방의 동정을 살폈다. 성채의 동남쪽에 조그만 나무 집
이 있었는데 창문에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을  보아 그곳은 성을 
지키는 병사가 거처하는 곳인 듯했다. 위소보는 쌍아의 귓가에 입을 대
고 나직이 말했다.

[우리 저쪽으로 가 봅시다.]

두 사람은 천천히  나무집으로 기어갔다. 막 창가에  이르니 갑자기 집 
안에서 여자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웃음
소리는 무척 음탕했다. 위소보와  쌍아는 서로 한번 쳐다보고 하나같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여자가 있지?)
위소보는 목을 길게 빼고 창틈으로 안을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곳
은 날씨가 춥고 바람이 세기  때문에 창틈을 밀봉하고 있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안에서는 끊임없이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자와 
여자 목소리인데 말을 하기도 하고 신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위소보는 한 쌍의 나찰국 남녀가 운우의  정을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
었다. 마음이 격동되어 쌍아를 품에  안았다. 쌍아는 집 안에서 들려오
는 음탕한 신음소리에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끼고 있는 중에 위소보에
게 안기자 집안에 있는  사람에게 발각될까봐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위소보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왼팔에  더욱 힘을 주어 껴안았고 오른손
으로 가볍게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쌍아는 몸에 맥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 그의 품에 몸을 던졌다. 땅바닥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으나 위소
보는 황홀하여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어 발을 잘못 움직이다가 미
끄러져 쿵, 하고 머리를 창문에 부딪히고 아이쿠, 하는 비명을 질렀다. 
집 안에서 나던 소리가 갑자기 멈추고 남자의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위소보와 쌍아는 땅바닥에 엎드려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이때 빗장을 뽑는 소리가 들리더니 창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손에 등불
을 들고 바깥쪽을 비춰 보았다.

위소보는 번개처럼 몸을 일으켜 비수로 그의 가슴을 찔렀다. 그 사람은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즉사했다. 쌍아는 재빨리 집 안으로들어갔다. 
방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아무도 보이지 않아 이상해서 말했다.

[어? 그 여자는 어디로 갔지요?]

위소보도 곧 뒤따라 들어갔다. 집 안의 한쪽은 방이었고 한쪽에는 나무
탁자와 나무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곰의 기름을 짜 내
어 만든 초가 한 자루  켜져 있는데 여자는 온데간데 없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빨리 찾아봅시다. 그 여자가 남에게 알리면 안 돼.]

방 안에는 방문  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었다.  그는 시체를 끌어들이고 
방문을 닫았다. 죽은 사람은 외국 병사인데 바지를 벗고 있어서 하체가 
드러나 있었다. 위소보는 고개를  들어 대들보 위를 쳐다보았으나 아무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 반드시 이 안에 있겠군.]

그는 상자 겉으로 다가가 상자 뚜낑을  열며 몸을 옆으로 날려서 그 나
찰 여인이 상자 안에서 총 쏘는 것에 대비하려고 했다. 그러나 상자 안
에서도 아무런 동정을 엿볼 수 없자 쌍아가 말했다.

[상자 안에도 없어요. 정말 이상하군요.]

위소보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상자 안에는 털가죽들이 잔뜩들어 있
었다. 손을 집어 넣어 뒤적여도 밑바닥까지 털가죽이었다. 그런데 갑자
기 향긋한 냄새가 났는데 그것은 틀림없는 여자의 지분 향기였다.

[아무래도 수상해.]

그는 털가죽을 집어들고 방바닥에  던졌다. 그러자 상자 밑바닥에 커다
란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기뻐서 말했다.

[이곳에 있군.]
[원래 이곳에 지하도가 있었군요?]
[빨리 그 나찰국 여자를 가로막도록  합시다. 그녀가 전갈하면 많은 외
국 강도가 몰려올 테니 야단이 아니겠소?]

즉시 위소보는 신속하게 몸 위에 걸치고 있던 두터운 가죽옷을 벗고 손
에 비수를 들고 그 구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는 외국의 병사에 대해
서 무척 두려움을 느꼈으나 외국 여인들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 지하도는 비스듬히 아래쪽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어서 기어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왜소하고 민첩했기 때문에 지하도를 무척 빠르게 기
어갈 수 있었다.  약 십여 장쯤 기어나가자  앞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
다. 그는 손발에 힘을 주어 더욱 빨리 기어가서 손을 내밀어 힘주어 잡
았다. 그러자 매끈한 다리가 잡혔다.  그 여자는 나직이 부르짖더니 재
빨리 앞으로 도망쳤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칼로 너를 찔러 죽인다면  영웅호걸이 아니다. 훌륭한 남자는 여
자와 싸우지 않는다. 중국의  훌륭한 남자는 나찰국의 도깨비같은 여편
네와 싸우지 않는다. 외국의 남자 도깨비들은 많이 보았지만 외국의 여
자 도깨비는 어떤 모양인지 어디 한번 잘 살펴봐야지.)

그는 비수를 검집에 꽂고 앞으로 일  장 정도 달려나가 다시 두 손으로 
그 여자의 다리를  잡았다. 지하도에서는 몸을 일으킬  수 없으므로 그 
여자는 죽어라 하고 앞쪽으로 기어가려고 했다. 그 여자의 힘은 엄청나
게 세어 위소보는 그녀를 끌어당길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녀에게 
잡아당겨져 일 장 정도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위소보가 두 발을 벌려 지하도 양쪽의  흙벽에 꼭 갗다 대자 앞으로 끌
려가지 않을 수  있었다. 갑자기 그 여자가 힘을  불끈 썼다. 위소보는 
그녀의 다리를 놓치고 말았다.  여자는 신속히 앞으로 나가는데 위소보
는 훌쩍 덮쳐들어 대뜸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갑자기 머리 위가 텅 
빈 것 같아  바라보니 비교적 넓은 곳에 와  있었다. 그 여자는 나직이 
소리내어 웃더니  고개를 돌리고 그에게 입맞춤을  하는데 어둠 속이라 
위소보의 코에다가 입맞춤을 하는 것이었다.
위소보의 코에 와닿은  것은 짙은 향기였고 품속에 안고  있는 것은 그 
여자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였다. 그 여자는 자기를 얼
싸안는 것이  아닌가? 그는 황홀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쌍아가 나직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공, 어떻게 되었어요?]

위소보가 대답하려고 하는데 품속의 그  여자가 입술로 그의 입을 막아 
말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총독이 아극살(雅克薩)에 온 것을 알고 만나러 온 것이다.]

그 한마디 말이  귀에 들어오자 위소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하는 
사람은 바로 신룡교의 홍 교주가  아닌가? 어째서 홍 교주가 머리 위에 
있는 것일까? 자기의 품속에 안겨  있는 이 나찰국의 여자는 어째서 이
토록 음탕하고 다정할까? 그는  품에 보드랍고 따뜻한 여자의 몸뚱이를 
안고 마음속으로는 홍 교주가 자기의  힘줄을 뽑고 가죽을 벗기지 않을
까 두려워했다.
그는 급히 품속의 여자를 놓고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를 
꼭 껴안고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크게 초조해져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기리고노! 희리화랍! 호리호도!]

그 여자는 나직이 웃더니 그의  귀에 입을 대고 나직이 뭐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곧 손을 뻗어 그의 뺨을  한 번 꼬집었다. 바로 이때 머리 위
에서 한 남자가 뭐라고 외국 말을  했다. 그 소리가 멈추자 다른 한 사
람이 통역을 했다.

[총독 대인께서는 신룡교의 교주가  왕림해 주셔서 환영하는 바이며 영
접하지 못한  점 실례했으니 홍  교주께서는 용서하시라고 말씀하셨소. 
그리고 총독 대인께서는 홍 교주가  백 살까지 사시고 다복하시기를 바
라며 매사가 뜻대로 되기를 바라고 홍 교주와 좋은 친구가 되어 합심협
력하여 함께 큰일을 도모하자고 하셨소.]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통역을 하는 사람은 학문이 짧구나.  영원히 천복을 누리고 수명이 하
늘처럼 길지어다라는 말을 백 살까지 살고 다복하라는 말로 바꾸었군.)
이때 홍 교주가 말했다.

[불초는 나찰국의 황상께서 만수무강 하시기를 빌며 총독대인께서 수복
을 누리시고 평안하시기를 바라고  높은 벼슬에 오르시기를 빕니다. 불
초는 성의를 다해 협럭하고 있으며 나찰국과 합심협력하여 큰일을 함께 
이루려 합니다. 이제부터 복이 있으면 함께 누리고 어려움이 있으면 함
께 당하도록 하겠으며 쌍방은 영원히 맹약을 저버리지 않도록 합시다.]

그 통역관은 나찰국 총독에게 말했다. 그러자 총독은 잇달아 뭐라고 씨
부렁거렸다. 외소보는 그 여자의 곁에서 나직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시오? 어째서 옷을 입지 않으셨소?]

그 여자는 나직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누구지? 어째서 옷을 입었지?]

그녀는 위소보의 내의를 벗기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순간에 풍류를 
즐길 마음이 생기겠는가? 그는  탕약망과 남회인이 중국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라 이때 그 여자가 중국말을 하는데도 별로 이상하
게 생각하지 않고 재빨리 말했다.

[이곳은 위험하기 짝이 없으니 빨리 나갑시다.]

그 여자는 나직이 말했다.

[움직이지 말아요. 움직이지 말아요. 움직이면 소리가 들려요.]

그녀가 말하는  것은 중국말이긴 하지만 어조가  매우 서툴고 딱딱해서 
듣기에 매우  거북했다. 위소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홍 교주와 
나찰국의 총독이 상의하는 말을 들으니 그들은 오삼계가 운남에서 어떻
게 군사를 일으키고 쌍방이 어떻게 청나라를 협공하는지를 말하고 있었
는데 그들이 정해  놓은 방책은 그 몽고인 한첩마가  말한 것과 똑같았
다. 나중에 홍 교주가 다시  한 계책을 올렸는데 그것은 나찰국이 요동
에서 공격하려면 길이 멀고 연도에  청나라 군사들의 방비가 엄하니 차
라리 바다길로 해서 천진에 상륙하되  화기와 대포로 곧장 북경을 공격
하면 오삼계보다 먼저 북경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나찰국의 총독은 크게 기뻐서 좋은  계책이라고 말했고 홍 교주가 충성
심이 그토록 강하니  장래 반드시 중국의 몇 성을  잘라서 그를 왕으로 
세워야 하겠다고 했다. 홍 교주는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놀
람과 분노에 휩싸여 생각했다.
(홍 교주 이  녀석 역시 대매국노로 오삼계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의 계책은 악랄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빨리 소황제에게 이야기를 
하고 천진 바다 쪽의 입구에 대포를 많이 설치해서 나찰국의 병선이 공
격해 올 때 쾅쾅 폭격을 하도록 해야지.)
이때 홍 교주가 말했다.

[총독 대인께서 멀리 중국으로 오셨는데 총독께 바칠 좋은 물건이 없구
려. 이곳에 대동주(大東珠)  백 알과 초포 백 장,  인삼 백 근이 있소. 
이것을 총독 대인께 드리는 바이며 나찰국의 황상께는 달리 공품(貢品)
을 바칠 것입니다.]

위소보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늙은 개가 그토록 많은 예물을 구하다니 제법 신통력이 있구나.)
갑자기 그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여자가 뺨을 붙여오는 
것이었다. 곧이어  그녀가 손으로 자기의  사타구니를 어루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그대가 나를 만지니 사양하지 않겠소.]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주물렀다. 여자는 킥, 하고 웃었다. 이
렇게 되자 그  웃음소리를 홍 교주가 듣게  되었다. 그러나 총독대인의 
방 안에 여자 하나쯤 숨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라 못들은 척했다. 몇 
마디 인사치레의 말을 하고 내일 다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 후 
인사를 하고 나갔다.
위소보는 갑자기 머리  위에서 팍, 하는 소리가  들리고 눈앞에 눈부신 
광채가 빛나는 것을 느꼈다. 자기와  그 여자는 서로 얼싸안은 채 커다
란 나무상자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는데 상자  뚜껑이 열어젖혀진 것이
다. 그 여자는 히히덕거리고 웃으면서 나무상자에서 뛰어나가더니 옷을 
집어 몸 위에 걸치고 위소보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나와요,나와요.]

위소보는 천천히 나무상자 안에서  걸어나갔다. 체구가 우람한 외국 군
관이 검을 들고 상자 옆에 서 있었다. 그 여자는 웃었다.

[또 하나 있지!]

쌍아는 본래 상자 안에 숨어 있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위소보에게 위험
한 일이 닥치면  방법을 강구해 구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와 
같이 말하자 부득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위소보는 그 여자의 황금빛 금발이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고 한 쌍의 눈
동자가 파란 것을 보았다. 피부의 색깔은 눈처럼 희었으며 용모는 무척 
아름다웠으나 코가 너무나 높고 키도 자기보다 훨씬 컸다. 위소보는 외
국 여자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이
나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고  이십여 세쯤 되었으리라 짐작했다. 그녀는 
싱글싱글 웃으며 위소보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대 같은 어린애가 나를 만지다니, 히히히.]

그러자 총독은 얼굴을  찌푸리고 뭐라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했다. 그 
여자 역시 뭐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그 총독은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구부리고 인사롤 했다. 그 여자가 다시 위소보를 손가락질 했다.
총독은 문을 열고 다시 중국인 통역관을 불러 들어오게 했다. 위소보는 
집 안에 적지 않은 털가죽이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침대 위에
도 금빛이 나는 여자 옷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 여자는 희디흰 
젖가슴을 반쯤 드러내고 있었다. 두 다리의 피부색이 곱고 윤기가 흐르
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조금 전 내가 저 여인을 품에 안고 있었을 때 왜 얼렁뚱땅 몇 번 만지
고 끝냈을까? 좋은 기회를 놓쳤군.  나야말로 홍 교주에게 놀라서 멍청
이가 된 것이야.)
그 통역관이 입을 열었다.

[공주와 총독께선 그대에게 물으십니다. 그대는 누구냐고?]

위소보는 기이하여 말했다.

[그녀가 공주요?]

그 통역관은 말했다.

[이분은 나찰국 황제의 누님으로서  소비아 공주 전하이시고 이분은 고
리진(高里津) 총독 각하이시니 빨리 끓어 엎드려서 절을 하시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공주 전하가 어째서 그토록 형편 없다지?)
그는 즉시 강희의 누이동생인 건녕  공주가 형편없기로는 이 나찰 공주
에게 지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했다. 황제의 누이나 누나는 모두 아름다
우면서도 형편없는 짓을 곧잘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공주는 
틀림없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히히덕거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공주 전하, 안녕하시오? 그대는 정말  아름답기 이를 데 없구려. 마치 
하늘의 선녀가 내려온 것 같소이다. 우리 중국에서는 그대와 같은 미녀
가 없었소.]

소비아는 약간의 간단한 중국말을 알고 있었다. 위소보의 말을 듣고 흐
뭇해서 말했다.

[어린애. 무척 좋아. 상을 주겠어.]

그녀는 탁자 곁으로 가더니 서랍을 열고  열 몇 냥의 금화를 집어서 위
소보의 손에 쥐어주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고맙소.]

촛불 아래서 보니 공주의 다섯  손가락은 옥을 다듬은 것같이 아름다워 
위소보는 손을 뻗쳐  그녀의 손을 잡고 입가로  가져가 입맞춤을 했다. 
그 통역관은 깜짝 놀라 호통을 내질렀다.

[무례한 행동은 하지 마시오.]

손에 입맞춤하는 인사법은 서양에서 성헹하는 예의였다. 고귀한 여자들
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위소보는 아무것도 모르고  제대로 한 셈이 
되었으나 손등에 해야 하는데 소비아  공주의 손가락에 매우 급하게 입
을 맞춘 것이었다. 소비아는  간드러지게 웃으며 손을 뿌리치려고 하지 
않았다. 소비아는 웃으며 물었다.

[어린애, 무엇 하는 사람이지?]
[어린애. 사냥꾼.]

돌연 문 밖에서 한 사람이 낭랑히 소리쳤다.

[그 어린애는 중국 황제의 흠차대신이니 그에게 속아서는 안 되오.]

바로 홍 교주의 음성이었다.  위소보는 그만 깜짝 놀라 혼비백산했으며 
쌍아의 소맷자락을 잡고 문 밖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문을 열자
마자 홍 교주가 두 팔을 벌려 문 입구를 막아 서는 것이 아닌가?
쌍아는 몸을 날려  주먹을 한 대 내질렀으나 홍  교주는 왼손으로 밀어 
내고 오른손을 들어 그녀의 허리를 짚었다. 쌍아는 윽, 하는 소리와 함
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홍 교주 어르신께서 선복을 영원히 누리시고 수명이 하늘처럼 길기 바
랍니다. 부인께선 어떻게 되셨습니까? 부인께서도 오셨나요?]

홍 교주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왼손으로 그의 뒷덜미를 잡고 방 안
으로 끌어들이며 말했다.

[공주 전하와 총독 대인께 말씀드립니다. 이 사람은 위소보라고 하는데 
소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대신이며 황제의 시위  부총관, 효기영 도통, 
흠차대신에다가 일등 자작에 봉해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 통역관은 그의 말을 옮겼다.  소비아 공주와 총독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린애, 대신 아니다. 대신 가짜다.]
[불초에게 증거가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분부했다.

[그 녀석의 옷을 가지고 오너라.]

육고헌이 보따리 하나를 들고  들어와 펼쳐 놓았다. 놀랍게도 위소보가 
입고 있던 복장이었다. 위소보는 놀람과 의아함을 느꼈다.
(이 의복이 어찌하여 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지? 홍 교주는 정말 신
통력이 대단하구나.)

홍 교주는 육고헌에게 분부했다.

[그에게 입혀 쥐라.]

육고헌은 대답하고 옷을 들더니 위소보에게 입혀 주기 시작했다. 그 옷
들은 황마괘까지 모두 숲속의 가시나무에 찢겨지긴 했으나 몸에 걸치자 
꼭맞았다. 모자를 쓰고 깃털을  꽂자 아니나다를까 청나라 조정의 대관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다. 이 옷들과 모자가 만약 위소보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세상에 이처럼 작게 만들어진 대관의 복색이 있을 수 없
었다. 위소보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홍 교주, 그대의 재간은 적지  않구려. 나는 길을 오면서 옷을 내버렸
는데 그대는 따라 오면서 주웠구려.]

홍 교주는 육고헌에게 분부했다.

[그의 옷을 뒤져 보게. 혹 다른 물건이 있는가 없는가?]
[그대가 수색할 필요는 없소. 내가 꺼내서 보여 주지.]

그는 품속에서 한 묶음의 은표를  꺼냈다. 그 액수는 엄청났다. 총독은 
요동에 있은 지 오래 되어 은표를 알아보았다. 몇 장 뒤적여 보더니 크
게 놀람과 의아함을 나타내고  공주에게 뭐라고 수군거렸다. 그것은 마
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어린애는 정말 내력이 있소이다.  몸에 이토록 많은 은자를 지니고 
있구려.]
[이 꼬마는 교활하기 이를 데 없으니 그의 몸을 살펴보게.]

육고헌은 위소보가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들을 모조리 꺼냈다. 그 가운
데는 강희가 친필로  쓴 비밀의 유시가 들어  있었다. 유시에는 다음과 
같은 명령이 있었다.
<흠차대신(欽差大臣)  영내시위부대신(領內侍衛副大臣) 겸효기영정황기
만주도통(兼驍騎營正黃旗滿州都統) 흠사파도로용호(欽賜巴圖魯勇號) 사
천황마괘(賜穿黃馬掛) 일등자작위소보전부요동일대공간(一等子爵韋小寶
前赴遼東一帶公幹) 연도문무백관(沿途文武百官) 청후조견(聽候調遣).>
유시의 내용은, 흠차대신이며 영내시위부총관에다가 효기영의 정황기도
통에다가 파도로라는 호를 하사 받고  황마괘를 하사받은 일등 자작 위
소보가 황제의 명을 받고 요동으로  가서 일을 처리하니 연도의 문무백
관들은 그의  지시를 따르라는 내용이었다.  그 유시에는 어보(御寶)가 
찍혀 있었다. 통역관은 나찰국 말로 통역을 했다.
그러자 소비아 공주와 고리진 총독은 혀롤 차며 희한해 했다.

[웃으실 일이 아닙니다. 중국의 황제는 어린애라서 어린애에게 큰 벼슬 
주기를 좋아합니다. 이 어린애는  중국의 소황제와 유희를 하며 장난을 
치고 또 아첨을 잘하고 허풍을 잘  떨기 때문에 소황제는 이 녀석을 좋
아하고 있습니다.]

소비아는 아첨을 하고 허풍을 떤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라 통역관
에게 물어보고 히히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이 허풍을 떨며 아첨하는 것을 좋아해요. 당신도 그
렇지 않나요?]

위소보는 낄낄 웃었다. 홍 교주의  안색이 확 일그러졌다. 소비아는 다
시 물었다.

[중국 소황제, 몇 살?]

위소보는 말했다.

[중국 대황제, 열일곱 살.]

소비아는 웃었다.

[나찰의 대사황(大沙皇)인 나의  동생 역시 어린애, 스무  살. 쟁이 영
감, 아니야.]

(뭐가 쟁이  영감이야? 그렇군! 그녀가 잘못  얘기를 했군. 영감쟁이를 
쟁이영감이라고 했구나.)
그는 손가락질하면서 말했다.

[나찰의 아름다운 공주. 쟁이영감 아니다. 매우 좋다.]

그는 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중국의 대관, 쟁이영감 아니다. 무척 좋다.]

그는 홍 교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중국의 나쁜사람, 쟁이영감이다. 좋지 않다. 좋지 않다.]

소비아는 깔깔거렸다. 나찰국의 총독 역시 삼십 여 세의 젊은이라 큰소
리로 웃었다. 홍 교주는  온 얼굴이 시퍼러죽죽해져서 단칼에 위소보를 
죽이고 싶었다.

[중국 어린애 대관, 이곳에는 무엇하러 왔지?]
[중국 황제는 나찰국의 대인이 요동에  온다는 것을 알고 나를 보내 만
나 보라고 했소. 황상은 나찰국의  황제 역시 쟁이영감이 아닌 것을 알
고 나찰 공주가 선녀처럼 예쁜 것을 알고 소인을 보내 선물하게 했는데 
그 선물이 바로 대동주 이백  알과 인삼 이백 근이외다. 그런데 뜻밖에
도 길에서 이 대강도를 만나서 예물을 빼앗겼소....]

위소보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홍 교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듯 
오른손을 쳐들어 위소보의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위소보는 홍 교주가 
적지 않은  진귀한 예물들을 총독에게 준다는  말을 들었는지라 일부러 
배나 더 불려서  황제가 선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잔뜩 정신을 차리고 홍 교주를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손을 쳐
들자마자 즉시  구난이 전수해 준 신행백변의  경신법을 펼쳐서 소비아 
공주의 등 뒤로 돌아가 숨었다. 그 순간 우지끈, 뚝, 하는 커다란 소리
가 들리면서 나무의자 하나가 홍 교주의 장력에 부서져 넘어졌다. 고리
진은 깜짝 놀라서 단총을 뽑아들고  총구를 홍 교주에게 겨냥하며 함부
로 움직이지 말라고 호통을 내질렀다.  조금 전 위소보가 한 말은 너무
나 길어 공주가 알아듣지 못해  통역관을 시켜 말을 전하도록 했다. 그 
말을 전해 듣자 공주는 홍 교주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의 예물은 어린애의 것을 빼앗은 것. 자기가 반을 차지한다는 것, 
좋지 않아요.]

홍 교주는 다급히 말했다.

[아니오. 저 녀석은 터무니없는 말을 잘 지껄여 대니 공주께선 저 녀석
의 말을 듣지 마오.]

그는 나찰 총독이 단총을 들고  자기를 겨누는 것을 보았다. 서양의 화
기가 무섭다고 하지만 그는 무공을 믿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
나 대사를 도모하려는 이때 나찰국의 큰 세력에 도움을 의지해야 할 판
이었고 일시의 분노를 참지 못해 총독의 비위를 건드려서는 안 되기 때
문에 천천히 문 가로 물러났다.
고리진은 단총을 거두며 몇 마디의 말을 했다. 통역관이 말했다.

[총독 대인께선 홍 교주께 성을 내지 마시라고 했소. 그는 이 어린애가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소비아 공주는 비밀
리에 동쪽으로 온  것이니 중국 황제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오. 또한 
중국 황제가 나찰국 황제에게 예물을 드릴 리도 없소.]

홍 교주는 노기가 가라앉아 미소지었다.

[총독 대인께선 정말 영명하시어 냉정히 보시는군요. 역시 저 녀석에게 
기만을 당하시지는 않는군요.]

고리진은 위소보의 내력을 물었다. 홍 교주는 그가 어떻게 오배를 죽이
고 어떻게 황제의 누이동생을 운남으로  데리고 가서 혼례를 올리려 했
으며 어떻게 아첨을  하고 허풍을 떨었으며 또 얼마나  많은 못된 짓을 
하여 강희에게 총애를 받게 되었는지를 있는  말 없는 말 다 보태서 이
야기했다. 그리고 최후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 녀석은 소황제의 오른손이라고 할 수 있소. 우리가 이 녀석을 죽이
면 소황제는 틀림없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오. 우리가 군사를 일
으켜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훨씬 빨리 성공할 수있을 것이외다.]

그가 말하면 옆에 있는 통역관이 끊임없이 통역을 해주고 있었다. 싱글
벙글 웃으면서 위소보를 바라보는 소비아  공주는 그에게 큰 흥미를 느
끼는 것 같았다.  홍 교주가 위소보를 나쁘게  묘사할수록 그녀는 더욱 
재미있어했다. 고리진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홍 교주에게 물었다.

[중국 황제는 이 어린애를 매우 좋아하오?]
[그렇소. 그렇지 않다면 어린애에게 어찌 그처럼 큰 벼슬을 내렸겠소?]
[이 어린애는 죽일 수 없소.  편지를 중국 황제에게 보내어 금은주보를 
많이 가져와서 바꿔 가도록 해야겠소.]

소비아 공주는 크게 기뻐서 고리진의 뺨에 입맞춤을 하고 몇 마디 말을 
했다. 이 몇 마디의 말을 통역관이 옮기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를 총명하다고 칭찬한 것 같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기뻐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 좋다. 소황제가  금은보화를 가지고 와서 
내 몸을 되돌려 받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홍 교주의 안색은 언짢아 보였으나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위소보는 그 
한 묶음의 은표를 세 묶음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한 묶음은 소비아 공
주에게 주었고 다른 한 묶음은  고리진에게 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 묶
음에서 일백 냥짜리를 두 장 꺼내서 통역관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 품
속에 집어넣었다. 소비아, 고리진,  통역관은 매우 기뻐했다. 소비아는 
통역관에게 혜아려 보라고 하며 그에게  사람을 보내 은자로 바꾸어 오
라고 당부했다. 은표를 헤아려 보니 십만 냥 남짓해서 큰 횡재를 한 셈
이라 소비아는 흐뭇해진 나머지 위소보를 안고 그의 뺨에 연신 입을 맞
추며 말했다.

[은자는 충분하군! 이 애를 돌려보내요.]

위소보는 지금 자기를 놓아 준다면 반드시 홍 교주에게 다시 붙잡혀 가
죽이 벗겨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재빨리 말했다.

[나는 이처럼 아름다운 공주를 본 적이 없소. 그러니 며칠 더 머물면서 
보고 싶소.]



第92章. 나찰국에서 있었던 일


소비아 공주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우리는 내일 막사과(莫斯枓:모스크바)로 돌아가요.]

위소보는 막사과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말했다.

[아름다운 공주가 막사과로 간다면 이  어린 대관도 막사과로 가고, 아
름다운 공주가 하늘나라 달나라로 간다면  이 어린 대관도 하늘나라 달
나라로 갈 것이오.]

소비아는 그가 말하는 것이 영리하고  정말 남의 환심을 사는지라 고개
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대를 막사과로 데리고 가지.]

고리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반대하다가  끝내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매우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는 홍 교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홍 교주는 부득이 작별을 고하지 않
을 수 없었다. 그는 문을 나서며 위소보를 한 번 노려보았다. 위소보는 
그에게 혀를 쑥 내밀어 보이고 용용  죽겠지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 후
에 말했다.

[홍 교주께서는  영원히 복을  누리시고 수명이 하늘처럼  길기 바랍니
다.]

홍 교주는 극도의  분노에 차서 육고헌 등을  데리고 황급히 떠나갔다. 
나찰국의 황제는 사황이라 칭했으며 금년 이십 세로, 이름은 서오도(西
奧圖) 삼 세라고  했고 소비아는 바로 그의 누님이었다.  이 서오도 삼 
세는 태어날 때부터 병이 있어서  국가대사를 종종 침대 위에서 처리하
곤 했다.

나찰국의 풍속은 중화의 예의지방(禮義之邦)과  크게 달라 남녀의 관계
가 매우 난잡했다.  소비아는 성격이 방종한 데다  또 아름답게 생겼기 
때문에 조정의 왕공 장군들과 정을 주고받았다. 고리진 총독만 해도 외
모가 준수하고 풍채가 뛰어나 공주의 환심을 사고 있었다. 고리진은 명
을 받고 동쪽으로 오게 되었으며, 니포초(巳布楚) 아극살(雅克薩)두 곳
에 성을 쌓고 몽고와 요동을 침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아극살 
성이 위치한 곳은 바로 만주  팔기가 보물을 숨겨 둔 곳이었다. 이곳은 
커다란 두 강이 합류하는 요충지인데 만주 사람과 나찰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곳을 선택했던 것이다.

공주는 활동하기를 좋아하고 놀기를 즐겼다. 동방이 신비하고 야릇하다
는 말을 듣고 애인이 그리워서  만리길도 멀다하지 않고 막사과에서 달
려온 것이다. 소비아는 고리진을 좋아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만 정절
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 이  날 그녀는 고리진의 침실에 하나의 지하도
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생겨 아래로 내려가기에 이르렀다. 이 
지하도는 아극살 성 밖으로 통하게  되어 있으며 보초의 초소와 이어져 
있었다. 본래 이 지하도는 총독이 성 안에 무슨 변고가 있을 때 도망치
기 위해 준비해 둔 것이었다.

소비아는 보초병이  자극적인 말로 희롱하는지라 그와  배가 맞아서 그 
짓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소보가 자기를 따라서 막사과로 간
다는 말을 듣고 재미있게 생각한 그녀는 그와 쌍아를 데리고 가기로 마
음먹었다. 일대의 이백  명이나 되는 카자흐병(哥薩克兵)들이 소비아를 
호위했다. 어떤 사람은  말을 타고 어떤 사람은  썰매를 탔으며 끝없이 
펼쳐진 대설원 위에서 매일같이 서쪽으로 향했다.
이와 같이 이십여  일을 가자 아극살성과 상당히  멀어졌다. 홍 교주는 
다시 뒤쫓아을 수가 없었다.  위소보는 막사과에 언제 도달하느냐고 물
었는데 넉 달 남짓 걸린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말했다.

[사 개월을 더 간다면 중국 어린애는 영감이 되겠소.]

소비아는 말했다.

[그대는 북경으로 되돌아가고 싶나요? 이제 나 보기가 싫어졌나요?]
[아름다운 공주는 천 년 만 년을  두고 봐도 싫지 않소. 하지만 그토록 
먼길을 가려니 갑자기 무서워졌소.]

소비아는 그 동안  그와 말을 주고받아 많은  중국말을 배우게 되었다. 
위소보 또한 총명하여 역시 적지  않은 나찰말을 배우게 되었다. 두 사
람은 먼길을 여행하느라고 무척  심심했다. 여자는 정숙한 여자가 아니
었고 남자 역시  군자가 아니었다. 두 남녀는  자연히 육체관계를 맺었
다. 소비아는 그가 북경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알고 아쉬워했다.

[나는 그대가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어요. 그대는 나를 막사과까지 
따라와서 일년 동안 나와 함께 있어요. 그 후에 보내 드리겠어요.]

위소보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이 며칠 동안 지내는 사이에 이
미 공주의 성격이 매우 괴팍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그녀의 말
을 듣지 않고 북경으로 간다면  그녀는 십중팔구 카자크 병사들을 시켜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는 얼굴에 기쁜 빛을 띄우고 잇
따라 매우 기쁘다는 말을 했다.  해질 무렵이 되자 그는 살그머니 쌍아
에게 가서 상의하여 몸을 빼내어 달아날 기희가 없느냐고 물었다. 쌍아
는 말했다.

[상공께서 지시하시면 저는 분부대로 하겠어요.]

위소보는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두 사람이 도망칠 때 충분한 양식을 지니지 않으면, 소비
아가 사람을 보내 뒤쫓아오지 않아도  이 커다란 설원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것이다. 요동의 숲속 설원은 황량하고 추웠지만 그래도 사냥
을 해서 옴식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들은 참새 한 마
리도 보지 못했다. 꼬박 하루를 두고 달려도 눈으로 뒤덮인 땅에 한 마
리 야수의 발자국도  찾아볼 수 없으니 매화록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할 수 없어 그는 소비아를 따라 자꾸 서쪽으로 향했다.

위소보는 처음에는 소황제가 어찌 지내는지 염려되었다. 오삼계가 반란
을 일으키지 않았는지, 아가라는 그  예쁜 계집애는 잘 지내고 있는지, 
홍 교주와 방이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넓은 설원을 다시 
한 달 남짓 가게 되자 그런  생각은 떨쳐 버리게 되었다. 이 같은 빙천
설지에서는 머리통마저도 얼어붙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는 성격이 쾌
활한 편이고 근심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때때로 소비아와 육체관계를 
맺고 쌍아를 상대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적적하지는 않았
다.

마침내 막사과 성 밖에 이르렀다.  때는 이미 사 월이라 기후는 따뜻해
지고 얼음과 눈도 녹기 시작했다. 막사과의 성벽은 두텁고 견고하며 엄
청나게 컸지만 매우 조잡스러웠다. 멀리서 성 안의 집들을 봐도 더럽고 
누추하머 단순했다. 북경은 말할 것도 없고 양주같은 성에도 비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원 땅의 중간에  들거나 작은 성에 드는 곳보다 훨
씬 못할 것 같았다. 몇 채의 둥근 지붕을 지닌 뾰족탑의 교회당은 그래
도 규모가 웅장한  편이었다. 위소보는 이 같은  광경을 보고 나찰국을 
업신여기게 되었다.
(개방귀 같은 나찰국이군! 뭐가 대단해? 우리 중국에 옮겨 놓는다면 이
런 곳은 소나 돼지를 키우는  곳이다. 그런데도 공주는 길을 오면서 막
사과가 번화하다고 허풍을 떨었지.)
막사과를 수십 리 남겨 두었을 때  공주의 호위대는 이미 나는 듯 성으
로 들어가 보고를 하였다.  호각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성안에서 한 
패의 화창병(火槍兵)들이 말을 타고 달려나왔다.

나찰국의 사람들은  남의 것을 빼앗기  좋아하고 합병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국토가  그토록 넓었고 동쪽에서 서쪽까지  수만 리나 되었으며 
인종도 복잡했다. 나라의 정예군대  중의 하나는 카자흐 기병들이었다. 
이들은 동쪽을 정벌하고 서쪽으로 옮겨 싸우면서 성을 공격하고 빼앗았
으며 각 부족민을 핍박했다.  다른 한 정예병은 화창영(火槍營) 부대라 
할 수 있으며 화기가 날카롭고 수도의 사황을 지키는 친위병이었다.
화창수(火愴手)들이 가까이 달려오자 소비아가 깜짝 놀랐다. 관병의 머
리 위에는 모두  흑색의 깃털을 꽂고 있었고 화창에도  한 조각씩 검은 
천을 달고 있지 않은가? 이는 국상이 났다는 표시였다.
소비아는 재빨리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가면서 소리쳐 물었다.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화창영의 대장이 말에서 내려 앞으로 나와 허리를 굽혔다.

[공주께 알립니다. 황상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미 나라와 인
민에게서 떠나 천당으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소비아는 슬픔을 금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그게 언제의 일인가?]
[공주께서 사 일만  일찍 돌아오셨다면 황상과 작별을  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소비아는 사황 아우가 몸이 약해서  명이 길지 않으리라 내다보고 있었
으나 갑자기 흉보를 듣자 슬픔을 금할 수 없어 그만 말 위에 엎드려 소
리내어 울었다.  위소보는 공주가 갑자기 울부짖자 통역관에게 둘었다. 
그제서야 나찰국의 황제가 죽었음을 알고 속으로 기뻐했다.
(나찰국의 황제가 선복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으니 나라 안이 한동안 시
끄러워지겠구나. 군대를  보내 중국을 공격한다는  것은 그렇게 수월한 
노릇이 아니겠다.)
소비아 일행이 화창영 대장을 따라 성 안으로 들이가려 하자 대장이 말
했다.

[황태후께서 분부하셨습니다. 공주께선 아무쪼록 성 밖의 엽궁(獵宮)으
로 가서 쉬십시오.]

소비아는 놀람과 분노에 호통을 쳤다.

[무슨 황태후란 말인가? 어느 황태후가 나에게 명령한단 말인가?]

그 대장은 왼손을 한번 휘둘렀다. 화창수들이 화창을 쳐들고 공주를 호
송해 온 위사들을 겨누더니 칼과 창을 모조리 압수하고 뭇 위사들을 말
에서 끌어내렸다. 공주는 화가 나서 말했다.

[그대는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인가?]

대장은 말했다.

[황태후께서는 공주가 서울로 돌아온  후 새로운 황제의 유시를 받들지 
않을까봐 소장에게 명하여 공주를 보호하도록 하였습니다.]

소비아는 놀라며 말했다.

[새로운 황제? 새로운 황제는 누구냐?]
[새로운 황제는 피득(彼得) 1세 폐하입니다.]

소비아는 앙천대소했다.

[피득이라고? 피득은 열 살 먹은 어린애에 불과하다. 그가 어떻게 사황
이 된다는 말이냐? 그대가 말하는 황태후는 바로 나달여아(娜達麗亞)이
겠구나.]
[바로 그렇습니다.]

소비아의 부친 아래극수사(阿萊克修斯) 미해락유지(米海洛維支)
사황은 두 분의 황후를 맞아들였다. 첫째 황후는 자녀가 무척 많았으며 
전 황제 서오도 황제와 소비아 공주는 그녀의 소생이었다. 그리고 나이 
어린 아들 이범(伊凡)이 있었다. 그런데 둘째 황후 나달여아는 매우 젊
었는데 아들 하나밖에 두지 않았다.  그 아들이 바로 피득이었다. 소비
아는 말했다.

[그대는 나를  궁 안으로 안내하라. 나는  나달여아와 도리를 따져야겠
다. 나의 아우 이범은 나이가 피득보다 많다. 어째서 그를 사황으로 세
우지 않는가? 조정의 대신들은 무엇을 했는가? 도리를 모른단 말인가?]
[소장은 그저 황태후와 사황의  명령을 받았을 뿐이니 공주께선 탓하지 
마십시오.]

그는 소비아가 타고 있던 말교비를 잡더니 방향을 동쪽으로 꺾었다. 소
비아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그 누가 감히 그녀에 대
해 이처럼 무례한 행동을 했었던가? 그녀는 채찍으로 대장의 머리를 후
려갈겼다.
대장은 빙그레 웃더니 몸을 날려  피하고 말 등에 오르더니 화창수들을 
이끌고 공주를 모신 채 위소보와  쌍아까지 데리고 함께 성밖의 엽궁으
로 들여보냈다. 화창수들은 궁 밖에서 엄히 지켰으며 그 누구도 나오지 
못하게 했다. 소비아공주는 미친 듯  화가 나 날뛰며 침실의 가구와 물
건들을 모조리 박살냈다.
엽궁의 요리사가 시간  맞춰 술과 음식, 그리고  물을 가져다 주었으나 
모두 다 소비아가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며칠을 이렇게 보냈지만 엽궁 
밖에서 지키는 사람들은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소비아는 대
장을 불러서 그에게 자기를  언제까지 감금시킬 것인가를 물었다. 대장
은 말했다.

[황태후께서 분부하셨습니다. 아무쪼록 공주께선 이곳에서 쉬시라고 했
습니다. 피득 일 세께서 등극한  지 오십 주년을 맞아 경축행사를 하게 
될 때 공주를 석방하여 그 기념식에 참가하도록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소비아는 대노해 말했다.

[너는 뭐라고 했느냐? 피득이 등극한  지 오십 주년을 경축한다면 나를 
오십 년간 이곳에 감금시키겠다는 것이냐?]
[소장은 금년 나이 사십입니다. 아마도 오십 년간 공주롤 시중들 수 없
을 것입니다. 십  년이고 십오 년이 지난 후  반드시 젊은 대장이 와서 
교대하리라 생각합니다.]

소비아는 자기가 이곳에서 오십 년  동안 감금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
니 그만 온몸이 싸늘히 식어 옴을 느끼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이리 다가오시오. 그대는 정말 준수하게 생겼구려.]

그녀는 미색으로 유혹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장은 허리를 굽히고 인
사를 하더니 한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공주께선 용서하십시오. 황태후께서 분부를 내리시기를 화창병의 관병 
가운데 만약 그 누가 공주의 손가락 하나라도 만지면 즉시 머리를 자르
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장을  죽여서 부대장을 대장으로 올리게 될 
것이고 부대장을 죽이게 되면 제  일 소대의 소대장을 대장으로 삼겠다
고 했습니다. 모두들 벼슬이 오르기 바라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감시한
답니다.]

황태후는 평소부터  소비아가 아름답고 방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같은 규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녀를 가둬두지 못할 것이라
고 생각했다. 대장이  물러나자 소비아는 도리가 없어  그저 침대 위에 
엎드려 통곡을 했으며 끊임없이 황태후를 욕했다.
위소보는 엽궁에서 며칠을 갇혀  보냈다. 공주는 매일같이 신경질을 부
리고 엽궁을 지키는  화창수들 역시 거칠기 이를  데 없으며 무례했다. 
그는 속으로 도깨비 나라라 역시  도깨비다운 데가 있다고 생각하며 몇 
번이나 쌍아와 상의를 했다. 상의를 할 때마다 엽궁에서 도망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데 다만 중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
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안내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반드시 대설원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어쩔 도리가 없자 위소보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
여 쌍아를 웃기며 무료함을 달랬다.
어느 날 그는 당승(唐僧)이 손오공과 사오정 저팔계를 데리고 서천으로 
불경을 가지러 간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위소보는 말했다.

[내 그대와 내기를 해야겠소. 당승이 가 본 서천은 틀림없이 이 막사과
처럼 멀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니 나는 당승보다 더 무섭다 이 말이오. 
그대가 만약 믿을 수 없다면 무슨 내기를 해도 좋소.]

쌍아는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상공께서 당승보다 무섭다먼 무섭다고 해 두세요. 저는 상공과 노름을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저는 저팔계만큼 무섭지는 않아요.]

돌연 공주의 방에서 다시 물건을 던지고 침대를 차며 발을 구르고 울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소보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내가 가서 달래 봐야지. 울기만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

그는 공주 방으로 가서 말했다.

[공주, 울지 마시오. 내가 우스운 얘기를 들려 드리지.]

소비아는 침대에 엎드려 두 발로 마구 허공을 차며 울부짖었다.

[난 듣고 싶지 않아요. 듣고  싶지 않아요. 나는 황태후가 지옥으로 들
어가기를 바래요. 나는 나달여아가 지옥으로 가기를 바래요.]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중국의 황태후는 늙은 갈보라오. 역시 매우 나쁜 계집이었지. 후에 나
는 방법을 강구해서 그녀를  황궁에서 내몰았소. 황제께서는 매우 기뻐
하시며 나를 중국의 대관으로 봉하셨던 것이오.]

소비아는 크게 기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앉으며 물었다.

[그대는 무슨 방법을 썼나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늙은 갈보를 내몰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가짜 태후였기 때문이
었다. 그대의 나찰국 늙은 갈보는 진짜 태후가 아닌가? 나의 그 방법은 
물론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나의 방법은 소황제와 짜고 중국의 태후를 상대한 것이오.]

소비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피득은 그의 어머니를 매우 사랑해서 나의 말을 듣고 태후를 반대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맨발로  융단 위를 서성이며 입술을 깨
물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 중국에는 여자 황제도  있었소. 그녀는 무측천(武則天)이라고 했
소. 이 여황제는 많은 남자  황후와 남자 마누라를 맞아들여 즐겁게 세
월을 보냈소. 공주, 내가 보기에  그대는 그녀와 비슷한 데가 많소. 그
러니 차라리 그대가 여황제가 되어 보시오.]

나찰국에서는 한 번도 여황제가 없어서 그녀는 여자가 사황(황제)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중국에  여황제가 있었다면 나찰국에는 
어째서 여사황이 없었을까?
그녀는 엽궁에 갇히게 된 후 놀람, 공포, 분노에 휩싸여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이 궁에서 빠져나갈까 하는 것이었고, 다시 아극살로 가서 고리
진 총독과 함께 있는 편이  황태후에게 감금당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었다. 이때 갑자기 위소보로부터 여사황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눈앞에 새로운 신천지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몸을 돌렸다. 그녀의 두  눈에서는 광채가 떠올랐다. 두 손으로 
위소보의 어깻죽지를 잡고 그의 왼쪽  뺨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더니 미
소지었다.

[내가 만약 여사황이 된다면 그대를 황후로 봉하지.]

위소보는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야말로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재빨리 말했다.

[나는 중국 사람이오. 그러므로 나찰국의 남자 황후가 될 수 없으니 나
를 그저 큰 벼슬에 봉해 주시오.]
[그대는 황후도 되고 대관도 되는 거예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당장 목숨을 건지기 힘든 판에  어찌 좋은 것만 찾아서 할 수 있
겠는가? 나를 황후로 봉하고 큰 벼슬도 내리겠다고?)
소비아는 말했다.

[그대는 빨리 방법을  강구해 봐요. 어떻게 하면 내가  여사황이 될 수 
있겠어요?]

위소보는 눈살을  찌푸렸다. 국가대사에 있어서  그의 견식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강희 황제와는 천지 차이가  있었으며 진근남과 색액
도, 그리고 오삼계 등에도 미칠 바가 못 되었다.

[공주, 이 같은  일은 매우 어려워 나는 생각해  낼 수가 없구려. 나는 
즉시 북경으로 돌아가 소황제에게 물어서 그로 하여금 방법을 강구하도
록 하겠소. 그런 후에 나는 한 떼의 재간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
와서 나찰국의 늙은 황후 갈보를 잡고 또 피득 사황을 잡으면 대성공을 
하게 되는 것이오.]

대성공이라는 말을 하자 그는 참을 수 없어 소비아를 안고 그녀에게 입
맞춤을 했다.
소비아는 아, 하고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안 돼, 안 돼. 그대가  북경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막사과로 오려면 일 
년으로 부족해요. 그때 나는 이미 죽어 천당에 있을걸.]

위소보가 생각해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어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름다운 공주가 천당으로 올라가면  중국의 어린 대관도 천당으로 올
라가게 될 것이오.]

소비아는 가볍게 그를 꼬집고 말했다.

[중국 어린애는 거짓말 잘하고 남을 즐겁게 잘 꼬이는데 그밖에는 쓸모
가 없어. 그저....아첨이나 잘하고 허풍만 떠는걸.]

위소보는 아첨이나 잘하고 허풍만 떤다고 하자 껄껄 웃었다. 그러나 그
녀의 얼굴에 멸시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보자 화가 났다.
(무슨 방멉을 써서 그녀를 여사황으로 만들까? 무측천, 그 여황제는 어
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이곳은 북경과 너무 멀고 소황제나 
색 형님에게 물어 볼 도리가 없구나.)
위소보의 지식은 태반은 이야기꾼에게 들은 것이고 나머지는 연극을 보
아 알게 된 것이었다. 큰 벼슬을 한 후 이야기꾼의 얘기는 듣지 않았고 
많은 연극만 보게 되었는데 무측천이 어떻게 여황제가 되었는지에 대해
서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넋을 
잃었다. 속으로 이야기꾼의 이야기와 연극의 줄거리를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여황제는 모르지만 남자 황제는 어떻게 황제가 되었지? 주원장은 싸워
서  천하를 얻었는데  그의 휘하에는  서달, 상우춘,  목영  등이 있었
다....)
이것은 대명영렬전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자성이 군사를 이끌고 북경으로  쳐들어가자 우리 사부의 아버지 숭
정 황제는 목을 매달아 죽었고  이자성은 새 황제가 되었다. 청병이 이
자성을 쳐서 달아나게 만들자 순치 노황야가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오
삼계가 황제가 되려고 한다면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 황
제가 되려면 군사를 이끌고 큰  싸움을 해야 하며 흙먼지가 휘몰아치도
록 사람을 죽여서 피가 냇물을 이루고 시체는 산처럼 쌓여야 한다.)
싸움을 생각하자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가 이곳에 갇혀 무슨 군사를 이끌 수 있겠으며 무슨 싸움을 할 수 
있겠는가? 싸움을 하지 않고 황제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무슨 방법이 
있을까 없을까?)

그는 중국 역사에 관한 지식에  한계가 있었다. 싸움을 하지 않고 황제
가 된 것은 강희 소황제 한  사람만 알고 있었으며 그것은 노황야가 출
가하여 자리를 그에게 양보해 준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방법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는 다시 생각하다가 많은 연극 가운데 한 토막의 참황포(斬黃袍)라는 
연극을 생각해 냈다. 송나라 황제 조광윤(趙匡胤)이 대장 정은(鄭恩)을 
죽이자 그의 처가 군사를 일으켜  지아비를 위해 원한을 갚는 내용이었
다. 조광윤은 지게 되자 목숨을 구걸하며 황포(黃袍)를 벗어 그녀로 하
여금 한 칼에 황포를 두 토막을  내어 화풀이를 하도록 했고 황제는 크
게 못난 꼴을 보이게  되었다. 또 녹대한(鹿台恨)이라는 연극이 있었는
데 주왕(紂王)이 무도하여 강태공(姜太公)이 주무왕(周武王)을 도와 군
사를 일으켜 주왕을 녹대(鹿台) 위에서 불타 죽도록 몰아세우고 주무왕
이 황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위소보는 그때까지 황제가 없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조조라는 간신은 어떻게 황제가  되었는가도 생각해 보았다. 소요진(逍
遙津)이란 연극에서 보았는데 조조가  군사를 데리고 한 무엇이라는 황
제를 핍박해서 죽게 하고 그  스스로 황제가 되었는데, 그의 수하 대장
으로 장 무엇이라는 장수와 허  무엇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모두 무서
운 사람들이었다.
(위소보는 기억을  잘못하고 있었는데  조조는 황제가 된  것이 아니었
다.)
유비는 어떻게 황제가 되었더라? 잘 모르지만 반드시 관우, 장비, 그리
고 조운이 싸워서 그가 황제에  오르도록 도와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
다. 황제가 되려면 반드시 싸워야 했다. 설사 황제가 된다 해도 상대방
을 이길 수 없다면 자리를 빼앗기며  못난 꼴과 사나운 꼴을 보이게 되
는 것이었다. 이야기꾼이  말하기를 수호전에 나오는 임교두(林敎頭)가 
왕륜(王倫)을 상대로 죽자 사자  싸움을 벌였으며 조개(晁蓋)는 강도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임충(林沖)과 결탁하고 양산박의  원래 우두머리인 
왕륜을 죽이지 않았던가.  이로 미루어 볼 때  강도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도 싸워야 했다.
소비아는 그가 입술을 깨물고 이를 갈며 주먹을 불끈 쥐고 때리려고 하
는 자세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지?]

위소보는 깊은 생각 속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황제가 되려면 반드시 싸워야 하오.]

소비아는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

[싸워? 누구와 싸워?]
[물론 나찰의 늙은 갈보와 싸우는 것이지.]

소비아는 그가 몇 번이나 나찰의 늙은 갈보라고 하는 말을 들었으나 늙
은 갈보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막 물어보려 하는데 갑
자기 방문이 밀어 젖혀지며 화창영의  대장이 안으로 들어와 대뜸 위소
보의 멱살을 잡고 뭐라고 한참 지껄이더니 그를 밖으로 내몰며 그의 엉
덩이를 한번 걷어찼다.  대장은 껄껄 웃으며 다시  두 번째의 발길질을 
하려고 했다. 위소보는 몹시 화가  나서 갑자기 몸을 솟구쳐 대뜸 재주
를 넘고 어느덧 그 대장의 목에 올라탔다. 이것은 바로 홍 교주가 전수
해준 영웅 삼 초 가운데  하나인 적청항룡이었다. 이 일초는 그가 익숙
하게 연성할 수 없어서 무학의 고수를 상대했다면 못난 꼴을 보였을 것
이나 나찰국의 대장이 어찌 중원의 무공을 알겠는가? 위소보는 홱 몸을 
뒤집어 올라타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성공을 한 셈이었다. 곧이어 그는 
두 손의 식지로 그의 두 눈을 누르며 호통을 쳤다.

[움직이지 마라. 눈이 죽는다!]

그는 나찰국 말로 '꼼짝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눈을 뽑겠다.'라는 
말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눈이 죽는다고  한 것이다. 대장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크게 놀라 즉시 동작을 멈추었다. 위
소보는 오른손으로 그의 오른쪽 귀를 비틀며 외쳤다.

[가자!]

그는 목말을 타고 공주 방으로 돌아가서 부르짖었다.

[문을 닫고 화창을 뺏어요.]

소비아는 놀라고 기뻐 재빨리 문을  닫고 대장의 몸에서 단총을 뽑아들
고 그의 등을 겨누었다.  위소보는 어깻죽지에서 뛰어내려 그의 허리띠
를 풀어서 두 발을 묶고 다시 바지에 달려 있는 허리띠를 풀어 그의 두 
손을 뒤로 묶었다.  그 대장의 바지가 아래로  흘러내려 다리가 드러났
다.
소비아와 위소보는 소리내어 웃었다.  그 대장은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 
지극히 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방문이 가볍게 열리머 쌍아가 고개를 
디밀고 물었다.

[상공, 별일 없나요?]

위소보는 손짓으로 그녀를 들어오게  하고 방문을 닫았다. 쌍아는 대장
의 낭패한 꼴을 보고 웃었다. 소비아는 위소보에게 물었다.

[대장을 잡아 뭘하지?]

위소보가 이 대장을 잡은 것은 그냥 잠시 화가 나서 그런 것이었다. 어
디에 쓸 것인가는 생각해 보지 못하다가 소비아의 말을 듣자 갑자기 좋
은 영감이 떠올라 말했다.

[그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오.]

그는 나찰말의 반란이라는 말을 할 줄 몰라서 중국말로 했다.

[그에게 태후와 사황을  죽이게 한 다음 그대가  여자 사황이 되는것이
오.]

소비아는 중국말의 반란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태후를 죽이고 사황을 죽이고 여사황이  된다는 말을 듣자 크게 기뻐서 
대장에게 뭐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위소보는  두 사람이 나찰말을 
하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대장은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
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그가 말올 듣지 않으면 죽이시오.]

그는 신발목에서 비수를 뽑아 그 대장의 왼쪽 뺨을 슬쩍 긁었다.
싹, 하는 소리가 나면서 한 웅큼의 수염이 떨어져 나갔다. 소비아는 웃
었다.

[매우 예리한 단검이군.]



第93章. 충용백에 봉해진 위소보


놀라움으로 얼굴이 흙빛이 된 대장은 생각했다.
(이 꼬마 녀석은 단검을 가죽신발 속에 숨겨 놓았었군. 정말 이상하다. 
어째서 몸을 수색할 때 찾아내지 못했지?)
소비아는 물었다.

[도대체 나에게 투항하겠느냐, 안 하겠느냐? 나를 여사황으로 모시겠느
냐?]

대장은 말했다.

[내가 공주를 옹호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부하들이 결코 그 명령을 
좇지 않을 것이오. 막사과에는 이십여 화창영이 있는데 우리는 일영(一
營)밖에 되지 않소. 설사 반란을 일으킨다 해도 나머지 십구 영을 이기
지 못할 것이오.]

소비아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소보에게 설명
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 그녀는  이십 영의 화창대를 표현하기 위해 열 
손가락도 모자라 신발을 벗고 발가락까지 사용하여 이십이라는 수를 채
웠다. 위소보는 간신히 알아차렸다. 그는  이 일은 꽤 까다롭다고 생각
하며 침대에 앉아 생각해 보았다.
(대장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한 그를 죽여봤자 소용없다.)
그는 소비아에게 말했다.

[대장이 싫다면 부대장을 불러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시오.]

소비아는 말했다.

[부대장?]

위소보는 말했다.

[부대장을 불러 오시오.]

소비아는 대장을 문가로 밀어 내며 화창으로 그의 등을 겨누고 말했다.

[부대장을 불러 와. 그대가 만약 다른  짓을 한다면 나는 즉시 총을 쏘
겠다.]

대장은 할 수 없이 큰소리로  부대장을 불러서 들어오게 했다. 잠시 후 
부대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쌍아는  이미 문 뒤에 숨어 있다가 부대
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손가락으로  그의 등에 있는 혈도를 찍어 
꼼짝 못하게 했다. 쌍아는 즐거운 듯 말했다.

[상공, 외국 귀신의 혈도도  매일반이군요. 저는 귀신들의 혈도는 다른 
줄 알았어요.]

위소보는 웃었다.

[외국 귀신도 똑같이 눈이 있고 코가 있으며 손과 발이 있으니 자연 혈
도가 있겠지]

그는 부대장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으며 소비아에게 말했다.

[그대는 부대장에게 대장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라고 하시오. 그가 응
하지 않는다면 소대장을 불러서 그를 죽이도록 하시오.]

소비아는 그 계책이 무척 묘한지라 부대장에게 말했다.

[그대가 대장을 죽이고 화창영을 이끄는 대장이 되어 나의 명령을 듣도
록 해라. 그대가 대장이 되지  않으려 한다면 나는 소대장을 시켜 그대
와 대장을  죽이고 소대장을 대장으로 삼겠다.  그대는 죽이겠느냐, 못 
죽이겠느냐?]

위소보는 말했다.

[쌍아, 그대는 그의 혈도를 풀되 다리의 혈도는 풀지 말아요.]

쌍아는 그 말에 따라 읫몸의 혈도만을  풀어 주고 차고 있던 칼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소비아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대장은 크게 욕지거리
를 하며 위협적인 말을 했다. 부대장은 평소 대장과 감정이 많았다. 그
는 군사를 데리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 대
장이 욕하는 소리가 너무 악독하여 불끈 화가 났다.
(내가 너를 죽이지 않는다면 소대장이 대장이 되려고 반드시 너와 나를 
죽일 것이다.)
그는 즉시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대장의 머리를 잘랐다. 한칼로 목을 자
르자 소비아와  위소보, 쌍아 세 사람은  일제히 잘했다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소비아가 부르짖은 것은 나찰말의 혁랍소(赫拉笑)이고 위소보와 
쌍아가 부르짖은 것은 중국말로 띵호아였다.
소비아는 부대장의 손을 잡고 잇따라 그가 용감무쌍하고 승부욕이 강하
다고 칭찬했으며 즉시 화창영의 대장으로 승진시켜 주며 말했다.

[그대는 앉으시오. 우리 자세히 상의합시다.]

부대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위소보와 쌍아를 가리켰다.

[이 두 명의 어린애가 마술을  사용하여 나는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소
이다.]

소비아는 위소보에게 말했다.

[그대는 마술을 풀어 주시오.]

쌍아는 빙그레 웃고 부대장의 하반신 혈도를 풀어 주었다. 소비아는 부
대장에게 분부했다.

[그대는 삼 소대의 소대장과 부소대장들을 들어오라고 하시오. 나는 중
국 어린애들에게 마술을 써서 모든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겠소.]

그녀는 위소보와 쌍아에게  그 말을 전했다. 부대장은  명을 받고 나갔
다. 잠시 후 여섯 명의 정부  소대장들이 문 밖에 나란히 섰다. 부대장
은 하나하나 방안으로 불러들였고 쌍아는  차례로 여섯 명의 허리에 있
는 지사혈(志舍穴)과 허벅지에  있는 환도혈(環跳穴)을 찍었다. 소비아
는 말했다.

[부대장은 나를 여사황으로 옹호할 것을 결심했소. 우리들은 군사를 데
리고 나가 태후를 죽일 것이오. 그대들은 복종하겠소, 못하겠소?]

여섯 명의 정부 소대장은 대장의 시체가 나뒹구는 것을 보고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비아의 그 같은 말을 듣자 더욱 간담
이 서늘해져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감히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
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청나라가 중국의 강산을 가로챌 때 오랑캐들은 양주십일이라는 사건을 
일으켰다. 살인과 방화는 말할  것도 없고 간음과 노략질을 일삼았으며 
노황야는 그로 인해 황제가 되었다. 제기랄! 나는 그들에게 막사과십일
을 일으키도록 해야겠다.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면 어지러워질수록 좋
은 것이 아닌가? 무법천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황제
의 자리를 가로챌 수 있겠는가?)
그는 소비아에게 말했다.

[그대는 여러 사람들에게 막사과의  성으로 들어가 싸움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도록 명령하시오. 그들에게 장군이나 큰벼슬아치를 죽
이라고 명하시오. 그러면 많은 금과 은을 내리겠으며 눈에 띄는 미녀를 
마구 가로채서 마누라로 삼아도 좋다고 하시오.]

소비아는 생각해 보니 그럴듯하여 부대장에게 말했다.

[그대는 가서 전체 화창수들을 불러  모으시오. 내 그들에게 말을 하겠
소.]

육백여 명의 화창수들은 엽긍의 광장에 모였다. 부대장은 열두 명의 화
창수들을 데리고 들어와 혈도가 짚힌  여섯 명의 정부 소대장들을 광장
으로 떠메고 나가게 했다. 소비아는 계단 위에 서서 큰소리로 말했다.

[화창수들이여! 그대들은 모두 나찰국의  용사들이며 나라를 위해 커다
란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대들의  월급은 너무나 적었다. 또한 그대들
에게는 아름다운 여인은 물론 돈조차 없고 마실 술도 부족하며 살고 있
는 집도 너무 비좁고 불편하다. 막사과 성 안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있
는데 그들은 좋은 집에서 살고 있으며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고 아
름다운 여인을 많이 데리고  있으나 그대들에게는 없다. 이것이 공평한
가?]

화창수들은 그 소리를 듣자 일제히 부르짖었다.

[불공평하오! 불공평하오!]

소비아는 말했다.

[돈 있는 자들은 뚱뚱하고 우둔하며  처먹기만 해서 돼지 같다. 따라서 
만약 그대들과 무공으로 겨룬다면 그대들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그 
부자들의 총 쏘는 재간이  그대들보다 뛰어난가? 그들의 도법이 그대들
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들은 나라를 위해, 사황을  위해 공로를 세운 
적이 있는가?]

그녀가 이 같은 질문을 던지자 화창수들은 큰소리로 대답했다.

[연특(年特).]

위소보는 화창수들이 연특, 연특하며 소리 지르는 것을 들었다. 나찰말
로 연특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알고 있었지만 소비아가 한 말을 이
해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공주가  화창수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라고 
하는데 모두들 말을 듣지 않는 줄 알고 근심을 했다. 소비아는 다시 말
했다.

[그대들은 모두 마땅히 장군이 되어야  하고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대
들은 하나같이 벼슬이 오르고 재물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화창수들은 큰소리로 환호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소비아 공주,  그대는 무슨 방법이 있어서  우리들의 벼슬이 오르도록 
하고 또 재물을 긁어모을 수 있다고 하시오?]

소비아는 말했다.

[그대들은 장군이 되고 싶지 않은가?]

화창수들은 부르짖었다.

[되고 싶소.]
[그대들은 많은 돈을 가지고 싶지 않은가?]
[물론 가지고 싶소.]
[그대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품에 안고 싶지 않은가?]

화창수들은 와, 하고 환호성을 터뜨리며 부르짖었다.

[갖고 싶소. 갖고 싶소.]
[좋다. 그대들은 모두 막사과 성안으로  들어가 다른 십구 영의 화창수
들에게 이 소비아 공주가 곧 여사황이며 전 나찰국에서는 모두 나의 말
을 듣게 되었다고 해라. 그대들  모든 화창수들이 돈 있는 집을 선택하
여 그 똥돼지 같은 부자와 더불어  무공을 겨루어 그를 죽일 수 있다면 
그 부자의 커다란  집과 금과 은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마차, 준마, 
의복, 하인, 시녀,  맛좋은 술 등 모든 것은  용감한 화창수의 것이 될 
것이다. 그대들에게는 용기가 있는가?  사내 대장부인가? 아닌가? 감히 
사람을 죽여 돈을 빼앗고 여자를 빼앗을 수 있는가?]

화창수들은 일제히 소리내어 부르짖었다.

[할 수 있소!  할 수 있소! 사람들을 죽여  돈을 빼앗고 여자를 빼앗는 
것을 어찌 할 수 없겠소?]

소비아는 크게 기뻐서 부르짖었다.

[그렇다면 매우 잘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대들이 겁쟁이로서 감히 큰일
을 저지르지 못할까봐 걱정이다.  빨리 복특가(伏特加:보드카 술)를 가
져오너라. 이봐,  그대들은 지하실로 가서 가장  좋은 복특카를 모조리 
가져오너라.]

이 사황 엽궁의 지하실에는 수십 년 묵은 술들이 저장되어 있었는데 명
귀하기 이를 데 없어 사황,  황후, 공주, 왕자 및 왕공대신들만 마시는 
것이었다. 이런 화창수들은 맛볼 수  없는 것이었다. 소비아의 명이 떨
어지자 병사들은 와, 하고 크게  기뻐하며 대뜸 수십 명이 달려가 술을 
가져왔다. 병사들은 삽시간에 저장소에서  보드카 병을 들어 내와 다투
어 마셔대기 시작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소비아, 소비아 여사황, 오랍(烏拉),  오랍, 오랍, 소비아 여사황, 오
랍, 오랍, 오랍!]

나찰말로 오랍은 바로 만세라는  뜻이었다. 위소보는 잘 몰랐으나 병사
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통쾌히 술을 마시며  끊임없이 '소비아 여사황 
오랍'이라고 부르짖자 열과 성의를  다해 옹호한다는 뜻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소비아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들에게 여섯  명의 소대장들을  죽이게 하여 물러서지  않도록 하시
오.]

소비아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낭랑히 부르짖었다.

[나찰국의 건장하고 준수한 용사들이여! 모두들 들어라! 나는 그대들에
게 부자를 죽이고 돈을 빼앗고 여인을 가로채도록 분부했다. 그러나 태
후는 허락하지 않고 이 나쁜 자들을 보내와 그대들의 죄를 다스리려 했
다.]

그녀는 여섯 명의 정부 소대장을  손짓했다. 그 즉시 십여 명의 화창수
가 차고 있던 칼을 뽑으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나쁜 자식들을 죽이자!]

그들은 십여 자루의 긴 칼을 휘두르더니 즉시 여섯 명의 정부 소대장을 
쳐죽였다. 나찰국의 사람은 본래  성질이 급하고 사나우며 조야한 편인
데 보드카를 마시자 전신이 후끈 달아올라 여섯 명의 소대장의 피와 살
이 륑기는 것을  보자 더욱 그 성질을 누르지  못해 큰소리로 부르짖었
다.

[나쁜 자들을 죽이러 가자! 돈을 빼앗자! 여자를 가로채자.]

소비아는 말했다.

[그대들은 막사과 성 안으로 들어가 십구 영의 화창수들에게 말해서 모
두 함께 일을 처리하도록 해라.  어느 대장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면 즉
시 죽여라. 어느 귀족 장군  대신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즉시 죽이고 그 
집안의 금과 은, 아름다운 처와  딸을 모조리 데리고 와서 나누어 가지
도록 해라. 나쁜 놈들의 집은 불태워 버려라.]

병사들은 큰소리로 환호성을 지르며 다투어  긴 칼을 뽑아들고 등 뒤에 
화창을 메고 말을 끌어내 올라타고 잠시 후에는 말발굽소리도 요란하게 
떼를 지어 막사과 성으로 달려갔다. 소비아는 부대장에게 말했다.

[그대도 가서 빼앗도록 하시오. 겸손할  것 없소. 가장 중요한 것은 다
른 화창병들과 충돌하지 말고 함께 빼앗는 것이오. 그대는 사람들을 데
리고 극리모림(克里姆林:크리믈린)  궁으로 달려가서  사리찰과 피득을 
잡으시오. 궁의 금은보화와 아름다운  궁녀들은 모두 빼앗도록 하시오. 
그것들은 모두 내가 그대에게 내리는 것이오.]

부대장은 크게 기뻐서 명을 받더니 말을 타고 떠나갔다. 소비아는 한숨
을 내쉬며 전신의 기운이 쭉 빠지는  것을 느끼고 계단 위에 앉아서 말
했다.

[정말 피곤하구나.]

위소보는 말했다.

[내가 그대를 부축해 방으로 모셔가지.]

소비아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잠시 후에 말했다.

[우리 망루(望樓)로 올라가 봐요.]

이 엽궁은 마석(麻石)을 쌓아 만든 것이었다. 망루는 높이가 팔, 구 장
이나 되었으며 원래 적의 형세를 살필 때 사용했었다. 나찰국이 나라를 
세우기 전에 막사과는 하나의 대공국(大公國)이었으며 막사과의 대공작
이 군웅들을 모조리 무찔러  스스로 사황이 되었다. 전조(前朝) 사황은 
사냥을 할 때 적이 암습을 해올까봐 막사과성 밖에 이 같은 한 채의 엽
궁을 만들어 적을 막고 원군을 기다리려 했던 것이었다. 소비아는 위소
보와 쌍아를 데리고 주루로  올라가 서쪽을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막사
과 성 안에 등불이 점점이 켜  있는 것이 보였지만 어두운 밤이라 매우 
조용했다. 소비아는 걱정을 하며 말했다.

[어째서 싸우지 않을까? 그들이 두려움을 느꼈을까?]

위소보는 위로의 말을 했다.

[두려워 마오, 두려워 마오.]

소비아는 다시 물었다.

[그대는 병사들에게 살인을 하며  돈을 빼앗고 여자를 가로채게 한다면 
곧 태후를 죽이고 피득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중국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해왔소.]

그는 과거 양주성에 있을 때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청나라 군사들이 
성을 공격해 왔을 때의 일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청나라 군사들
이 입관(入關), 즉 산해관 안으로 들어온 후에 강소성 등지에서 한인들
의 맹렬한 저항을 받았고 양주는  더욱더 한인들이 굳건히 지켜 함락되
지 않았다. 청나라 장수는 사병들에게 성을 깨뜨린 후 간음과 노략질을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날이 열흘 동안이라고 미리 허락했다. 
이리하여 양주십일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실로 참혹했다.
위소보는 어려서부터 양주에서 커 왔기  때문에 청나라 군사가 성을 공
격하다가 함락하지 못하자 장수가 어떻게 부하들에게 돈을 빼앗고 여자
들을 빼앗도록  허락했으며, 청나라 군사들이  어떻게 공격을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나중에  북경에서 다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과
거 이자성의 부하가 어떻게 북경에서 돈을 빼앗고 여자들을 능욕했으며 
장헌층(張獻忠)
등이 먼저 부하들에게 성을 함락시킨  후 사흘 동안 노략질을 허락했다
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반란을 일으켜 성공하려면 반드시 천하가 어지러워야 하며 천하를 어지
럽게 하려면  반드시 병사들로 하여금 돈을  빼앗고 여자를 강탈하도록 
해야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화창영의 사병들이 감히 반란
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자 돈을  빼앗고 여자를 강탈하는 비결을 말하게 
된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나찰의 병사들 역시  중국의 병사들과 다를 
바가 없어서 그 한 마디의  비결은 귀신처럼 맞아 떨어졌다. 한참을 기
다리자 갑자기 막사과 성 안 어둠 속에서 한 무더기의 불꽃이 피어올랐
다. 소비아는 크게 기뻐서 부르짖었다.

[시작했다!]

그녀는 위소보를 껴안고 입맞춤을  하며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위소보
는 기뻐했다.

[그들이 불을 질렀군. 그러면 됐소. 살인과 방화는 반드시 함께 행해져
야 하오.]

얼마 후 막사과 성 안에서는  불꽃이 사방에서 일었다. 동쪽에서 한 가
닥 검은 연기가 오르고 서쪽에서는 한 무더기의 화광이 피어올랐다. 소
비아는 손뻑을 치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모두들 살인 방화를 하고 있군. 소보, 그대는 정말 총명해. 계책이 정
말뛰어나군.]

위소보는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살인 방화와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 중국 사람들의 재간이며 그대
들 나찰 귀신들보다 백 배나 더 뛰어난 편이지. 그와 같은 계책이 뭐가 
희한하다고 그래?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해왔는데.)
소비아는 말했다.

[그대가 소대장을 죽이도록 했기 때문에 부득이 끝까지 일을 해낼 수밖
에 없으며 다시  돌아서려고 해야 돌아설 수도  없게 되었지. 어린애가 
정말 총명해. 중국 대관은 정말 대단하다고!]

위소보는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투명장(投名狀)이지.]

소비아가 물었다.

[무슨 뜻이지?]

위소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목숨을 떼어 놓고 달려든다는 뜻이오.]

그는 나찰국  사람들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중국 사람들이 녹림으로 
떨어져 도둑이 되려고 할 때 괴수는 새로 가입한 형제들에게 사건을 저
질러 한 사람을 죽이게 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 후에는 밀고하지 않
기 때문이었다. 수호전에서 임충이  양상박의 패거리가 되고자 했을 때 
그는 사람을 죽이는 사건을 저질러야 했던 것이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기 때문에 그 같은 계책을  알고 속으로 생각했
다.
(우리 중국 사람들의 방법을 나찰  귀신들은 하나도 모르고 있다. 내가 
보기에 나찰 군사들은 흉악하고 거칠기 짝이 없지만 상대하기는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소비아는 막사과 성 안의 불길이  점점 거세게 치솟고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보고 걱정했다. 화창수들이 마구 약탈하고 사람을 죽이면 어떤 광
경이 벌어지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 위소보에게 물었다.

[살인, 방화와 돈을 빼앗고 여자를 강탈하게 된 후에는 어떻게 되지?]

위소보는 멈칫했다. 그는 반란을  일으키려면 사병으로 하여금 살인 방
화와 돈을 빼앗고 여자를 강탈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지 그 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것 말이오? 충분히 빼앗지 않으면  멈추지 않고 충분히 죽이지 않으
면 멈추지 않지요.]

소비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러나 일시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세 사람은 한참을 지켜보다가 
침궁으로 들어가 조용히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튿날 이른 아침, 
그 화창영의 부대장이 일소대의 인마를 거느리고 엽궁으로 달려와 소비
아에게 보고했다. 이십 영의  화창대가 어젯밤 여사황의 명령을 받들어 
하룻밤 동안 금은과 미녀를 무수히  빼앗고 이미 태후 나달여아를 죽였
다는 것이었다. 소비아는 크게 기뻐서 벌떡 일어서며 부르짖었다.

[나달여아를 죽였다고? 피득은?]
[어린 피득은  이미 잡아서  극리모림 궁의 지하실에  감금해 놓았습니
다.]

소비아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혁랍소. 혁랍소!]

이때 말발굽소리가  울려퍼지며 다시 많은  인마가 달려왔다. 소비아는 
안색이 변해 놀라 물었다.

[무슨 사람들이지?]

부대장은 말했다.

[막사과 성 안의 왕공대신 장군들이 일제히 폐하를 모시고 가서 나찰국
의 여사황으로 등극케 하려고 오는 것입니다.]

소비아는 그 말에 흐뭇해져서 대뜸  위소보를 얼싸안고 그의 양쪽 뺨에 
잇따라 입맞춤하며 부르짖었다.

[중국의 어린애! 정말 훌륭한 계책이군.]

곧이어 말발굽소리가 엽궁에서 멈추는 것을 들을 수 있었고 가죽신발이 
땅을 밟는 소리가 저벅저벅 나면서  한 때의 사람들이 궁안으로 들어왔
다. 앞장을 선 사람은 대신 파다니자(波多尼玆) 친왕이었다. 그는 소비
아 앞으로 걸어오더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왕공귀족과 대신  장군들은 의결했습니다. 아무쪼록  소비아 공주께서 
궁 안으로 들어가 대국을 이끌어  주시고 난동을 평정하여 평화를 되찾
도록 해주소서.]

소비아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띄우고  고개를 끄덕여 그 말을 받아들이
고 물었다.

[반역도의 수령인 나달여아는 죽였소?]

파다니자 친왕은 대답했다.

[나달여아는 국가를 소란스럽게 하고 층신들을 살해하며 사사로이 권세
를 농락하는 등  엉큼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상제의 뜻을 
받들어 처단했는데 모두들 시원하다고 한답니다.]

소비아는 말했다.

[좋소. 우리는 극리모림 궁으로 갑시다.]

대신들과 화창영의 병사들은 벌떼처럼  소비아를 모시고 막사과 성으로 
달려갔다. 삽시간에 엽궁에는 위소보와  쌍아 두 사람만이 덩그러니 남
게 되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울화가 치밀어 욕을 했다.

[제기랄! 이 나찰 공주는  다리를 지나가자마자 판대기를 뜯는 격이군. 
그리고 새 사람이 침대 위로 오르자 중매쟁이를 담장 너머로 던지는 격
이야. 그녀가 여사황이 되었으니 우리가 필요없다는 것이겠지.]

쌍아는 미소했다.

[그대는 여사황이 그대를 남자 황후로 봉해 주기를 바라는 거죠?]
[아! 그대는 나를  조롱하는군. 어디 내가 그대를  잡지 못하는지 두고 
보자.]

그는 쌍아에게 달려들었다. 쌍아는 쳇,  하고 웃으면서 몸을 날려 피했
다. 이때는  초여름이라 날씨가 따뜻했다. 엽궁의  많은 꽃들은 화사한 
비단처럼 활짝 핀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자랑했고 수많은 새들은 다투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나찰국의 꽃과  벌레, 그리고 새들은 중원의 것
과 크게 달랐다. 꽃은  화사하나 향기롭지 못했고 새소리는 괴이하면서
도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위소보는 시정잡배라 이 같은 차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쌍아와 더
불어 엽궁에서 노닥거렸는데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서 꽤 흐뭇하
게 지낼 수가 있었다.
이와 같이 칠, 팔 일이 지난 후 소비아는 갑자기 병사를 보내 두사람을 
긍 안으로 맞아들였다.
위소보가 소비아의 침궁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
으며 발로 가구를 차 펑펑, 소리가 나도록 만들고 있었다. 신경질을 부
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위소보가 들어오자 대뜸 기쁜 빛을 띄우며 
말했다.

[중국 어린애 빨리 와! 방법을 강구해 봐.]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가 만약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지 않았다면 나를 생각지도 못했겠
군. 이번에는 한밑천 두둑하게 잡아야지.  이토록 쉽게 상대를 도와 계
책을 생각해 낼 수는 없지.)
그는 물었다.

[여사황 폐하, 무슨 어려운 점이 있소?]

소비아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여사황이 아니야. 그들은 내가 여사황이 되는 것이 싫다고 해.]

반나절을 얘기하고 나서야 위소보는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원래 나
찰국의 법도에 의하면  여자는 사황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황태후 
나달여아는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장군들이 나이 어린 사황 
피득을 옹호하고 있었다.
이때 성 안의 난은 이미 평정되었고 소비아는 화창영의 옹호를 받고 있
었지만 대신들온 이미 손을 써서 카자흐 기병들을 움직여 막사과 성 밖
에 주둔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들을 성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 소비아가 다시 화창영의  군사들을 불러서 난을 일으키는 것은 
이미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극리모림 궁에서는 연일 회의가 열렸는데 왕공대신들은 두 파로 나뉘어
져 있었다. 한 파는 소비아를  옹호했고 한 파는 피득을 옹호하면서 서
로 다투느라고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사황 피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모두 손에 실권을 귀고 있는 장군대신들로서 여사황이 등극하여 새로운 
사람들이 권좌에 앉을까봐 두려워했다. 소비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주
로 출세하지  못한 귀족과 군인들인데 그들은  새로운 주인이 등단하여 
자기들에게 국물이 흘러들어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소비아는 다행히 
화창영의 옹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병권을 손에 쥘 수가 있어서 황제
를 옹호하는  보황파(保皇派)에서도 감히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보황파는 카자흐 기병들을 지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실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두 파가 만약  전쟁을 일으키면 승패는 말하기 어려울 지
경이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같은 국가대사를 나는 잘  모르는데 무슨 개방귀 같은 계책을 생각
해 내라는 말인가? 제기랄! 짠물에 담가 놓은 오리알을 굴리는거다. 그
래야 그들 두 파에서 혼전이 벌어지게  되었을 때 이 소보가 총탄에 맞
아 나찰국의 젓갈이 되는 것을 면할 수 있다.)
그는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

[그거야 쉬운 노릇이며 방법도 있소. 하지만 나는....나는 한밑천 잡아
야겠소.]

그는 대신 조건이 있다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나찰외 말을 몰라서 아예 
중국말로 한밑천 잡아야겠다고 말했다. 소비아는 물었다.

[한밑천이 뭐지?]

위소보는 말했다.

[한밑천 잡는다는 것은....이것은....나의  방법을 그대에게 공짜로 줄 
수는 없다는 것이오. 그대가 나에게  물건을 많이 주면 내가 방법을 그
대에게 알려주는 것이오.]

소비아는 크게 기뻐서 재빨리 말했다.

[무척 좋아. 좋구 말구. 한밑천  잡자고? 우리 한밑천 잡자! 그대가 무
잇을 요구하든 난 모두 응낙하지.  그대는 나의 남자 황후가 되려고 하
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깜짝 놀라서 속으로 생각했다.
(마누라를 삼으려면 아가가 그대보다는 훨씬 낫고, 설사 쌍아라는 나이 
어린 하녀만 하더라도 그대같이 전신에  털이 부숭부숭 난 나찰의 여자
보다는 한결 낫지.)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의 남자 황후가 되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러면 그대는 여자 사황
이 될 수 없다오.]

소비아는 재빨리 그 이유를 물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왜냐하면....이건 빌어먹을! 꽃이 피지 않기 때문이오.]

그는 설명을 할 수 없자 아무렇게나 양주 지방의 상소리를 마구 지껄였
다. 소비아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다시 물었다.

[혹시 중국 남자가 황후가 되면 나찰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인
가?]

위소보는 재빨리 말했다.

[그렇소. 나찰국의 남자들은 스스로  자기가 준수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들이 남자 황후가 되지 못하면 그대를 미워하고 때릴 것이오.]

소비아는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나찰의 남자들이 틀림없이 질
투를 하리라 생각하며 말했다.

[그대가 나의 남자 황후가 되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을 요구한다면 내가 
응낙하겠어.]
[첫째, 나는 나찰국의 대관이 되어야겠소.]
[그건 수윌한 노릇이야. 내가 여사황이 된 후 그대를 백작으로 봉해 동
쪽의 타타르족을 다스리도록 하겠어.  그대는 싯누런 얼굴이고 코가 납
작한데 타타르 사람들  역시 누런 얼굴에 코가  낮아. 그들은 그대에게 
잘 복종할 것이야.]
[두 번째는 그대와 중국 황제가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그대는 편
지를 쓰시오.  내가 그 편지를 북경으로  가져가겠소. 나찰의 여사황과 
중국 황제가 친구가 되어 입맞추고 껴안아야 하오. 중국 병사들은 매우 
무섭소. 하나같이 마술을 할 줄 알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나찰의 병사들은  움직이지 못할 것이오. 싸우면  나찰인이 죽소. 나는 
그대를 좋아하는데 그대가 죽으면 나는 울 것이오.]

소비아는 그의 말을  듣고 크게 감동하였다. 쌍아가  손을 써서 혈도를 
짚자 화창영의 부대장과 여섯 명의  정부 소대장이 즉시 움직이지 못하
는 것을 소비아는  친히 목격한 바였다. 그녀는  중국의 무공이 배우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위소보 역시 모르고 있었지만 중국 사
람들은 하나같이 그와 같은  마술에 뛰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러니 중국 황제와 싸우면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중국 어린
애가 자기에게 진실을 토로하는 것이  가상하게 여겨져 그녀는 즉시 그
를 껴안고 그의 입에 입맞춤을 하고 말했다.

[중국 어린애, 나 역시 그대를 좋아해. 무척 좋아해. 나찰 병사는 중국 
군사를 이기지 못해. 모두 싸우지 말고 친구가 되자.]

소비아는 쪽, 하고 다시 그에게 입맞춤을 하고 물었다.

[또 무슨 한밑천이 있나? 다시 잡아도 좋아.]

위소보는 잠시 생각해 보고 나서 말했다.

[없소.]
[좋아. 그대는  나에게 빨리 여사황이 되면  어떻게 통치를 해야하는지 
가르쳐 줘.]

위소보는 이 일이 수월한 노릇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녀는 조정의 일들
을 물었다. 위소보는 좋은 계책이 떠오르지 않아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척했다. 소비아는 그가  요령을 부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에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대가 나를 속인다면 나는 그대를 죽이겠어.]

위소보는 초조해서 재빨리 말했다.

[속이지 않소. 절대 속이지 않소.]
[그렇다면 내가 여사황이 되는데 좋은 방법이 뭐지?]

위소보는 말했다.

[이거....이거....]

소비아는 화가 나서 말했다.

[뭐가 이거야? 조정의 한 파는 나를  옹호하고 또 다른 한 파는 반대하
며 두 파에서 싸움을 하려는 거야. 만약 우리 파가 지면 어떻게 해?]

위소보는 갑자기 소황제로부터 들은 말이 떠올랐다. 만주의 태종황제가 
과거 네  명의 패륵을 세웠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패륵은 대선(代善), 
두 번째 패륵은 아민(阿敏),  세 번째 패륵은 망고이태(망=初-刀+遞- ,
褥古爾泰), 네  번째 패륵은 황태극(皇大極)이었다.  위소보는 물론 네 
패륵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 네 명의 패륵은 당시 모두 다 권세
를 쥐고 있었고 많이 다투었다.  그후 넷째 패륵이 대패륵의 지지를 받
아 상대방을  압도하고 대위(大位)를 이어받았다.  그래서 대선 집안의 
자손들은 퍽이나  권세를 누리게 되었는데 강친왕  걸서는 바로 대선의 
후예였다. 그는 이 일이 생각나서 말했다.

[싸우지 말고 천천히  해요. 그대와 피득이 모두  사황이 되는 것이오. 
그리고 장래 그대를 반대하는 대신과  장군들을 하나 하나 천천히 제거
하는 것이오. 그대가 기회를 보아  피득을 죽인 후 재차 여사황이 되는 
것이오.]

소비아는 그 계책이 무척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신들은 여자
가 사황이 될 수 없다는 말을 계속 하고 있으니 정말 울화통이 터질 지
경이라고 말했다. 위소보는 청나라 개국 초에 순치 황제는 여전히 소황
제였는데 대권은 모두 섭정왕  다이곤(多雨袞)의 수중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말했다.

[그대가 여사황이 될 수 없다면 먼저 섭정왕이 되시오.]

소비아는 물었다.

[섭정왕이 뭐야?]
[섭정왕은 사황이 아니오. 그러나 명령을 내려서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볼기를 치도록 할 수 있으며 돈을 줄 수도 있고 그들의 벼슬을 올릴 수
도 있소. 사황은 가짜이고 힘이 없소. 섭정왕이 진짜이고 힘이 있어 사
람을 죽일 수도 있고 볼기를 때릴  수도 있으며 사람의 벼슬을 올릴 수
도 있고 돈을 하사할 수도 있으니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모두 섭정왕
의 말을 듣고 사황의 말은 듣지 않소.]

소비아는 크게 기뻐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혁랍소, 혁랍소!]

소비아를 옹호하는 왕공장군들은 사람수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소비
아는 그 중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사람들을 불러들여 위소보가 바친 계
책을 가지고  상의했다. 소비아는 막사과의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등극하여 여사황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선례가 없었다
는 사실 때문이었다. 대신들은  섭정왕을 세우자는 계책이 모두 훌륭하
다고 생각하며 대권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사황이 되고 안 되고는 별
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한참 동안 상의를 한 후 한 가
지 방법을 강구했다. 그것은  소비아의 친동생인 이범을 대사황이 되도
록 하는 것이다.  대소 사황을 나란히 세워서  피득을 옹호하는 일파의 
반대를 없애고 소비아 공주는 섭정 여왕이 되어 모든 조정의 일을 처리
한다는 것이었다.  계책이 정해지자 소비아는  즉시 화창영의 군사들을 
모으고 다시 전체 왕공대신들을 불러서  그 새로운 법을 모두에게 선포
했다.

그녀는 대신들을 임의로 파면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으며 
그녀의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벼슬을 올려 주고 상금
을 내리겠다고 했다. 왕공대신들은  자기의 권세와 이익에 손상이 없고 
선조의 규칙을 깨뜨리지 않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소비아를 옹호
하는 파가 앞장 서서 소비아  섭정왕에게 절을 하자 나머지 왕공대신들 
모두 그 뒤를 따랐다. 소비아는  크게 기뻐서 사람을 시켜 친동생인 이
범을 불러오고 다시 소사황 피득을  술창고에서 석방하여 두 사람이 대
소 사황이 되도록 했다.  그녀 자신은 두 아우의 아래쪽에 앉아 백관의 
벼슬을 올리고 상을 내리는가 하면  쫓아내고 파면하는 일 등을 하기로 
했다.

이때 이범은 열여섯 살이었고 피득은 열 살이며 나이 어리고 지식이 얕
아 모두 누님의  주장을 들었다. 소비아는 대권을  쥐자 중국의 어린애 
대관이 아주 커다란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교묘하기 이를 
데 없는 방법을 강구해내지 않았다면  지금 자기는 여전히 엽궁에 갇혀 
있으리라. 그녀는  즉시 위소보를 불러서 크게  칭찬을 했다. 위소보는 
그 방법들은 중국인의 눈으로 볼 때 조금도 대단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
으며 자기는 중국에 있어서는 못난  가죽 제품을 만드는 장인에 불과했
지만 나찰국에 와서는 제갈양으로 변했으니 정말 웃긴다고 생각했다.

그는 몇 마디의  허풍을 떨려고 했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찰 공주가 나찰의 제갈양이 되라고 하면서 자기를 
옆에 붙잡아 두고 돌려 보내지 않으면 그것도 야단이었다.

[섭정왕 마마, 그대가 섭정왕이 되었으니  장래 여사황이 되는 것은 수
윌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외다. 단지 한 가지 일만 지킨다면 모든 사람
들이 그대에게 복종할 것이오.]

소비아는 물었다.

[무슨 일인데? 빨리 나에게 들려줘.]
[일단 한 마디가 떨어지면 삼두마차를 가지고도 쫓아갈 수 없다는 것이
오.]

원래 나찰의 마차들은 세 필의 말을 매달아 끌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네 
필의 말이 끌게 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사마난추라
는 말을 삼두마차라고 고친 것이었다. 소비아는 이해할 수 없어서 물었
다.

[삼두마차가 쫓아갈 수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오. 우리 중국에서는 황제의 입을 
금구(金口)라고 하는데 이것은 한번 말한 것은 저버리지 않는다는 뜻이
오.]

소비아는 웃었다.

[내가 그대에게 약속한 것을 저버릴짜봐 두려운 것인가? 사랑스런 중국
의 어린애! 나찰 섭정왕이 보석 같은 입으로 한 말이니 그대들 중국 황
제의 금으로 만들었다는 입보다 더욱 귀중하다.]

그녀는 즉시 대소 사황의 이름으로 유시를 내렸다. 위소보를 동방의 타
타르 지방을 관리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백작에 봉하고 다시 대신에
게 명해서 한  통의 국서(國書)를 써서 중국 황제  앞으로 보내면서 이 
국서를 위소보가 전하도록 했다. 거기다 다시 한 명의 사신을 파견하되 
기병들이 호송토록 했으며 금은 재물도 적지 않게 내렸다. 위소보가 그
녀에게 뇌물로 준 십여 만  냥의 은표도 찾아서 모조리 되돌려 주었다. 
이 밖에도 중국 황제에게 보내는  많은 예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초피와 
보석 등 나찰국의 귀중한 특산물이었다.
이때 소비아는 이미 몇 명의 준수한 남자들을 뽑아서 주변에 두었기 때
문에 더 이상 위소보에게 다정하게 굴지 않았다. 그러나 위소보가 작별
을 고하는 날 소비아는 몇 달 동안의 정을 생각하고 또 그가 제의한 계
책으로 큰 공을 세웠으므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뜻에서 뜨거운 밤을 보
냈다.

러시아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화창수들이 난을 일으킨 것은 오 월 십오 
일에서 십칠 일까지의 삼일 동안이었다.  오 월 이십구 일 화창영은 소
비아의 지시 아래 글을 올려 이범과 피득이 나란히 사황이 되고 소비아 
공주가 섭정왕이  되어 군국대사를 처리해  달라고 간하였다. 그러므로 
큰 소란이 평정된 것은 유 월 중순 경이었다.
이때 날씨는 매우 따뜻했다. 위소보는  준마를 타고 2대의 카자흐 기병
의 호위를 받아  서백리아(西伯利亞:시베리아) 대초원의 동쪽에서 질풍
같이 말을 몰게 되었는데 잔잔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으며 말발굽 소리
는 귓가에 울려퍼졌다. 왼쪽으로는 예쁜 하녀 쌍아가 눈같이 희고 고운 
살결과 앵두같은 입술을 하고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파란 눈에 노란 수
염을 한 나찰국의 사신이 동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초피와 재물을 잔뜩 
실은 수레들이 뒤를 따르고 있으니 의기양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길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진 셈인데 조그만 목숨을 보전하였을 뿐 
아니라 나찰 공주를 도와 큰 공을  세웠으니 이 모두 내가 평소 이야기
꾼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연극을 많이 본 덕택이 아닐 수 없구나.)

중국은 나라를 세운 지 수천  년이나 되었으며, 황제의 자리를 놓고 반
란을 일으켜 서로 죽이고 죽는 경험이 풍부하여 온 세계를 통틀어도 견
줄 수 있는 나라가 없었다.
위소보는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약간의 지식밖에 몰랐으나 놀랍게도 
그 알량한  지식으로 외국땅에서 위세를 떨치고  소비아를 도와 황제의 
자리를 빼앗았을 뿐 아니라  나라를 안정시킨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일은 희한할 것도 없었다.
청나라 개국공신들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었고 학문이라고
는 별로 없었다. 군사를 통솔하여  싸우는 여러 가지의 모략은 주로 삼
국연의(三國演義)라는 소설에서 얻은  것이었다. 과거 청태종이 반간계
로 숭정  황제를 속여서 만리장성을 스스로  망가뜨리듯 원숭환을 죽인 
것은 바로 삼국연의 가운데 주유가  계책을 써서 조조로 하여금 자기의 
수군도독의 목을 베어 죽이는  고사를 응용한 것이었다. 실제로 주유가 
조조를 속여 수군도독을 죽인 사실은  역사에 없는 일로 소설가가 만들
어 낸 것이었다. 소설가의 말이 후세에 이르러 사실처럼 되고, 그 얘기
가 중국 수백 년 동안 영향을 미쳤으니 세상일은 소설보다 더욱 이상하
다고 하겠다.
만주인들이 입관한  후 강토를 개척하여 중국의  국토는 명나라 때보다 
세 배나 되었고 멀리 한나라와 당나라가 크게 성하게 되었을 때보다 훨
씬 큰 편이었다. 그런  여음(餘蔭)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야기꾼
의 공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위소보는 나찰국의 사신을 데리고 이윽고 북경에 도달하였다. 강친왕과 
색액도 등 왕공대신들은 그가 돌아온  것을 보고 놀람과 기쁨에 휩싸였
다. 그날 그가  수군을 이끌고 바다로 나간 이후  종적을 알 길이 없어 
조정에서는 수 차례  사람을 보내어 조사해 보았으나  한 척의 병선도, 
한 명의 사병도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강희는 커다란 바다에서 태풍
을 만나 모두 사망한 줄 알고 언제나 울적해 했다. 따라서 위소보가 돌
아은다는 소식이 궁 안에 전해지자  강희는 즉시 불러서 만나기를 청했
다.
위소보는 강희가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고 있는 것을 보고 큰절을 하며 
지나간 일을 대충 이야기했다.

강희가 이번에 그를 바다로 내보낸  주요 목적은 신룡교를 섬멸하고 가
짜 태후를 잡으려는 것이었다. 신룡교는 이미 공격하여 깨뜨렸다. 가짜 
태후는 잡지 못했으나 나찰국과  친구 사이가 되었다. 강희는 몽고에서 
곤명에 파견한 사신 한첩마를 심문한 후 오삼계가 나찰국, 몽고, 서장, 
세 곳의 강한 세력들과 결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근심을 했었
다. 따라서 상,경의  두 번왕 및 대만의 정씨에  대해서는 오히려 둘째 
문제로 치게 되었다.
그는 위소보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는데 나
찰국의 사신이 수교를 하려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더 기뻐서 자세
한 사정을 물었다.
위소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했다. 어떻게 소비아를 시켜 화창영의 
병사들을 꼬여 반란을 일으켰으며 어떻게 그녀를 섭정왕이 되도록 했는
지 이야기하자 강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제기랄! 그대는 우리 대청나라의 요령을 배워 나찰여귀(羅刹女鬼)에게 
가르쳤구나.]

이튿날 강희는 조례  때 나찰의 사신을 불렀다.  조정에서 나찰의 말을 
아는 사람은 위소보 한 사람뿐이었다. 나찰의 말은 배우기가 매우 힘들
어서 위소보가 짧은 몇 달간  배운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나
찰 사신의 한바탕 칭송하는 말 열  마디 가운데 아흡 마디 반은 이해하
지 못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자기 나름대로 멋대로 
씨부렁거렸는데 과거  육고헌이 지은 비석문의  글을 도용하게 되었다. 
천 년이 지나도록 대청나라가  유지될 것이라느니, 위엄과 영기를 함께 
받으니 위세와 능력이 놀랍더라는 등 몇 마디를 그대로 써먹었다. 그는 
한 마디를 말하면서 한 번씩 강희의 안색을 살폈다.
강희는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그 비석문의 글이 효과가 있다
고 생각하여 낭랑히 읊었다.

[요마를 항복받으니 그 존재는 떠오르는 해와 같더라. 아랫사람들이 보
좌하여 옛 것을 물리치고 새  것을 채용하리라. 줄기 줄기 뻗은 상서로
운 기운은 온누리에 뻗뻗치리라. 온 세상이 존경하고 선복을 영원히 누
릴 것이며 수명은 하늘처럼 길고 문무에 뛰어난지라 인자하고 거룩하여
라. 이는 하늘이 인정하니라....]

이런 말을 한참 동안 거기까지 지껄이다가 말머리를 돌렸다.

[나찰국의 소사황과  섭정 여왕은 삼가 중국  대황제 만세야의 성궁(聖
躬)이 만강하심을 여쭈나이다.]

이 말들은 본래 육고헌이 홍  교주를 칭송하기 위해 지은 글이었다. 이
때 위소보가 읊자 약간 잘 맞지  않은 대목이 있었으나 온 세상이 존경
한다는 등,  문무겸전하고 인자하고 거룩하다는  등의 낱말은 칭송하는 
글들이라 대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강희는 위소보에게 학문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아름다운 문장과 고아한 귀절은 결코 그가 아무렇게나 옮길 수 없
는 것이니 나찰국의 사신이 그런 소리를 했을 거라고 믿었다.
나찰국의 사신은 곧 예물을 바쳤다. 나찰국은 요동보다 추운 곳이라 그
곳의 특산물인 현호(玄狐)와 수초(水貂)따위의 털가죽은 요동에서 나는 
것보다 더욱 화려하고 따사로워  보였다. 만주의 대신들은 물건을 알아
보고 모두 칭찬을 했다.
강희는 즉시  위소보에게 접대사신(接待使臣)을 맡겨  나찰국의 사신을 
대접하게 하는 한편 중화의  예물을 사신들에게 내렸다. 조정에서 물러
나자 강희는 탕약망과 남회인 두  사람을 불러서 그들이 나찰의 사신을 
만나도록 했다.  남회인이 말하는 언어는  법란서(法蘭西:프랑스) 말과 
같았는데 나찰 사신은 프랑스 말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언어가 서
로 통했다.
남회인이 강희가 똑똑하고 인자한 분이며 고금에 보기 드문 제왕이라고 
칭송하자 그 사신은 크게 탄복했다.
이튿날 강희는 탕약망과 남회인 두 사람을 시켜 남원(南苑)에서 대포를 
시험하도록 했다. 그리고 위소보로  하여금 나찰 사신을 데리고 관람케
했다. 그 사신은 폭발력이 크고  사격이 정확한 것을 보고 탄복해 마지 
않았다. 그들은 남회인에게 청하여 나찰국의 섭정여왕이 중국과 수교하
여 영원히 형제의 나라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의 말을 전했다.

나찰의 사신이 작별을 고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간 후 강희는 위소보가 
출정하여 한꺼번에 오삼계의 강한 동조자를 없애 버렸으니 공로가 적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성지를 내려서 위소보를 일등 층용백(忠勇伯)으
로 봉했다.  왕공 대신들은 외소보에게 축하의  인사를 했다. 위소보는 
시랑과 황 총병 등이 한 사람도 살아 돌아와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았다. 황제의 가장 총애를  받는 원수격인 자기가 바다에서 실
종되자 황제가  진노하여 그들을 처벌할까 두려워  통흘도 부근의 섬을 
떠돌아다니며 감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만주가 군사를 처음 일으켰을 때는 군율이 지극히 엄했다. 싸움을 하여 
우두머리가 전사하고 그 부하들이 퇴각하면 종종 전원을 죽이곤 했는데 
강희 때만 해도 과거의 법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청나라 병사
들은 무척 용맹하여 적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위소보는 두 명의 사자를 
통흘도와 신룡도에 파견하여 시랑 등을 북경으로 돌아오게끔 조치를 취
했다.
이 날 강희는 위소보를 서재로 불러서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세통의 상
소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계자, 이 제 통의 상소문은 세  곳에서 온 것인데 그대는 누가 올린 
상소문인지 짐작해 보게.]

위소보는 목을 길게 빼고 세  개의 상소문을 들여다보았으나 뾰족이 단
서를 얻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

[황상께서 약간의 실마리를 주셔야  소신이 알아맞추기 쉬울 것 같습니
다.]

강희는 빙그레 웃으며 오른손을 쳐들고 내리쳐 잇따라 세 번 목을 자르
는 시늉을 한 것이었다. 위소보는 웃었다.

[아, 그렇군요. 바로 대....때간신 오삼계, 상가희, 경정충, 세 녀석이 
올린 상소문이군요.]

강희는 웃었다.

[그대는 총명하기 이를  데 없군. 그대는 이 세  상주문에 무슨 내용이 
담겨져 있는지 짐작을 해보게.]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세 상주문이 함께 온 것입니까?]
[어떤 것은 먼저  오고 어떤 것은 뒤에 왔지만  날짜는 크게 차이가 없
네.]
[세 대간신들은 좋은 뜻을 품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마도 똑
같은 심산이겠지요. 소신은 그들이  하는 말이 거의 비슷하리라 생각합
니다.]

강희는 손을 내밀어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바로 그렇네. 첫 번째 상소문은  상가희 늙은 녀석이 올린 것인데, 그
는 자기의  나이가 많으니 이제는 요동으로  돌아가서 은거하고 싶으며 
자기의 아들 상지신(尙之信)을 남겨 괌동을 지켰으면 하는 내용을 적었
네. 나는 허락을 내리는 동시에 상가희가 요동으로 되돌아갈 때 아들을 
광동성에 남길 필요가 없다고 했네. 오삼계와 경정층은 그 소식을 듣고 
차례로 상소문을 올렸네.]

강희는 하나의 상소문을 들고 말했다.

[이것은 오삼계 늙은 녀석이 보낸 것인데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네. 
'신이 한평생 황은을  받은 것을 돌이켜볼 때 이  몸을 다 바친다 해도 
보답하기가 어렵사오나, 이제는 다  늙은 몸이라 번왕의 자리에서 물러
나고자 하며 감히  청하오니 저의 두 어깨의 짐을  내려 놓게 해주시기 
바라옵니다. 오늘 들으니 평남왕 상가희가 진정을 해서 이미 허락을 받
아 군사를 모조리 철수하기로 했다는군요. 크게 인자하신 점을 믿고 감
히 귀에 거슬리는 말씀을 드리오니 아무쪼록 번왕에서 물러나게 하시어 
편안한 삶을 살도록  해주십시오.' 흥! 그는 나를  시험해 보려는 것일
세. 감히 내가 그를 번왕에서  물러나도록 할 것인지 아닌지 보려는 것
이지. 그는 상가희와 경정충 세 사람과 짜고 세 사람이 함께 나를 놀라
게 하려는 것이지.]

강희는 다른 한 장의 상소문을 들고 말했다.

[이것은 경정충의 것인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네. '신은 작위를 
두 번이나 받았으나 마음은 황제의 궁궐에 있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기
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혜아릴 길이  없어 감히 군사를 거두자는 제의
를 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보니 평남왕 상가희는 상소문을 올려서 허
락하시는 성지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신의 부하 관병들이 남쪽을 정벌
한 지 이십 년이나 된 점을 살피시어 황송하옵게도 황제의 인자함을 간
청하는 바이오니 아무쪼록 불러 주시어 평안한 삶을 살도록 해주시옵소
서.' 한 사람은  운남에 있고 한 사람은 복건성에  있으니 그야말로 만 
리를 격하고 있는데  어째서 두 상소문의 말이  비슷할까? 군사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슬쩍 비추면서  철수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
하지 않는가? 이 녀석들이 어찌 나를 안중에 두고 있다 하겠는가?]

그는 기분이 상했다는 듯이 상소문을 탁자 위로 던졌다. 위소보는 말했
다.

[그렇군요. 이 세 개의 상소문은 대역무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기실
은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전서(戰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황상, 우리
는 곧 군사를  보내 세 명의 반적들을 모조리  서울로 붙잡아 올리도록 
하지요. 그리고 온 가족을....온 가족을 전 집안의 남자들은 죽이고 여
자들은 공신들에게 내려 노예로 삼도록 하십시오.]

그는 본래 만문초참(滿門抄斬)이라는 말,  즉 온 가족을 몰살하자고 주
장하려다가 갑자기  진원원을 생각하고 중도에서 말을  슬쩍 바꾸게 된 
것이었다. 강희는 말했다.

[우리가 먼저 군사를 내려 보낸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내가 공신들을 죽
인다고 할 것이고, 새들이 사라지니 화살을 숨기고 토끼가 죽으니 개를 
잡아 먹었다고 욕할 것일세. 그러니 차라리 번왕에서 물러나도록 한 이
후 세 사람의 동정을 엿보는  것이 좋겠네. 만약 성지를 반들어 번왕에
서 물러나고 공손히 명령을 받든다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군
사를 보내 토벌한다면 명분이 설 것이 아니겠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께선 귀신처럼  일을 혜아리시니 소신은  탄복해 마지않는 바입니
다. 이것은 연극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황상께서는 다음과 같이 물
으셨습니다. '아래 끓어 엎드린 자는 누구냐?' 그러면 오삼계는 대답하
지요. '신 오삼계가 삼가 배알합니다.'  황상께선 호통을 치죠. '이 대
담한 오삼계야! 어째서 고개를  들지 않느냐?' 오삼계는 말하죠. '신은 
죄가 있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합니다.' 황상께선 호통쳐 물으시조 '너
는 무슨  죄를 지었는가?' 오삼계는 말하죠.  '신은 번왕에서 물러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황상께서는  호통을 치시죠. '쳇! 
대담한 것 같으니! 위소보!' 그러면 저는 한 걸음에 달려나와 엎드려서 
대답하겠죠. '소신이  여기 대령했나이다.' 그러면  황상께선 외치시는 
거예요. '영전(令箭)이 이곳에 있다.  그대에게 십만 대군을 내려 반적 
오삼계를 토벌할  것을 명하노라.' 그러면 소신은  영전을 받고 외칩니
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발을 들어 오삼계의 엉덩이를 걷어차
서 그가 오줌과 똥을 마구 갈기면서 '오호, 애재라!' 하고 죽도록 하는 
것이죠.]

강희는 껄껄 웃으며 물었다.

[하하! 그대는 군사를 거느리고 오삼계를 공격하고 싶은가?]

위소보는 그의 눈초리에 야유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소황제가 장
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소신이 어찌 어린 나이에 재간도  없이 대군을 거느릴 수 있겠습니까? 
가장 좋기로는 황상께서 친히 대원수가 되시고 저를 황상의 선봉장으로 
세우시면 산을 만나면 길을 닦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세우면서 당당히 
운남으로 공격해 가는 것이죠.]

강희는 그의 말에  약간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친히 오삼계를 
정벌하는 것은 퍽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했다.

[나증에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기로 하겠네.]

이튿날 이른 아침 강희는  왕공대신들을 불러서 태화전(太和殿)에서 군
국대사를 상의하게  되었다. 위소보는 연달아  계급이 오르기는 했지만 
조정에서는 여전히 직위가 낮은 편이라 태화전에 나가서 군국대사를 논
할 자격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  강희는 특벌히 유시를 내려 그가 사신
이 되어 운남으로 갔었기 때문에 오삼계 번왕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므
로 태화전에 참석하도록 했다.

소황제는 한가운데의 용의(龍椅)에 앉고 친왕, 군왕, 패륵, 패자, 대학
사, 상서 등 대신들이 차례로 서게 되었다. 위소보는 대신들의 가장 아
래쪽에 섰다.
강희는 상가희, 오삼계, 경정충 등이 보낸 상소문을 중화전(中和殿) 대
학사겸 예부상서인 파태(巴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세 번왕이 상소하여 번왕에서  물러나게 해주십사 청하는데 어떻게 했
으면 좋을지 여러분들이 각기 말씀을 해주기 바라오.]

왕공대신들은 서로  돌아가면서 상소문을 읽었다.  강친왕 걸서가 먼저 
말했다.

[황상께 아룁니다. 소신의 의견으로는  세 번왕이 번왕에서 물러나겠다
고 청을 한 것은 본심이 아니고 아무래도 조정의 뜻을 알아보려고 하는 
수작 같습니다.]

강희는 물었다.

[어째서 그러하오? 경이 먼저 설명해 보시오.]

걸서는 말했다.

[세 상소문에서는 모두  그곳의 군무가 무거워 함부로  떠날 수 없다는 
말을 비추고 있습니다. 군무가 그토록 바쁘다면서 번왕에서 물러나겠다
고 요청하니 모순이 아니옵니까?]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화전(f封口殿) 대학사 위주조(衛周祚)는 백발에 허연 수염으로나이가 
무척 많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의 의견으로는 조정에서 마땅히  좋은 말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왕의 공로가 뛰어나 황상께서 의지하고 중
시하고 있으니 마땅히 애써 일을 처리하고 왕실의 울타리 노릇을 해 달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번왕에서 물러나도록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
다.]

강희는 말했다.

[경이 볼 때 세 번왕을 물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위주조는 말했다.

[성상께서 굽어살피옵소서. 노자(老子)께서 일찍이 가병불상(佳兵不祥)
이라 했습니다.  즉 아무리 좋은 싸움이라  해도 불길하다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가(佳) 자를 유(惟)  자의 잘못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사옵
니다. 그렇게 되면 유병불상(惟兵不祥)이 되니 더욱 분명하게 설명되는 
셈이지요. 또 노자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병(兵)이란 불길한 
그릇이며 군자의 그릇이 아닌 즉 부득이할 때 사용할 뿐이다.']

위소보는 속으로 답답하게 생각했다.
(저 늙은이는 정말 당돌하구나. 황상의  앞에서 감히 노자가 어쩌고 저
쩌고 하는구나. 그런데도 황상께서는 화를 내지 않는군.)
이 노자라는 말은 강호에서 스스로 자기를 올려 말할 때 쓰는 용어이기
도 했다. 위소보는  위주조가 말하는 노자가 바로  옛날의 성인인 이이
(李耳)를 말하는 것인 줄 모르고  시정 무뢰배들이 자기를 높여 부르는 
말로 잘못 알고 있었다.



第94章. 털보 조양동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정벌을 시작하면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것을 면할 수 없소. 경
들은 짐이 부드러운 말로 달래  주고 번왕에서 물러나지 않도록 하라고 
하는데, 그럼 이 일을 이대로 끝내야 되겠소?]

문화전(文華殿) 대학사 대객납(押客納)이 말했다.

[황상께서 혜아려 살피옵소서. 오삼계가 운남을 지킨 이래 그곳이 편안
해지고 오랑캐가  소란을 피우지 않아 본조(本朝)에  와서 남방은 아직 
아무런 변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요동으로 옮겨 놓는다면 운남
성과 귀주성 일대에 어떤 변고가 생길지 모르는 일입니다. 조정에서 번
왕을 제거하지  않으면 오삼계는 감격해서 보답을  할 것이고 경정충과 
상가희 두 번왕과 광서성 공씨  집안의 군사들도 황은에 감격할 것이며 
천하는 태평해질 것입니다.]

강희는 말했다.

[경은 번왕들을 물러나게 하면  서남쪽에 대군이 없어지므로 어쩌면 변
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오?]

대객납은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오삼계의 군사는 정예부대이며  평소 위세를 떨치고 있
으므로 오랑캐들이 겁을 먹고  순종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을 움직인
다면 화가 될 것인지 복이  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소신의 의
견으로는 한 가지라도 일이 많아지는  것보다 적어지는 것이 좋다고 생
각합니다.]

호부상서(戶部尙書) 미사한(米思翰)이 품했다.

[자고로 거룩하신 왕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중시하는 것은 황로지술
(黃老之術)이라고 했습니다. 서한(西漢)이 천하를 다스리게 된 것은 바
로 나라 안의 정치를 잘하고  전쟁을 하지 않는 데 있었습니다. 황상께
서는 거룩하고 밝으시며 덕망에  있어서 삼황(三皇)에 못지않으시며 한
나라나 당나라 때 위세를  떨치던 황제들도 좀처럼 견주기 어렵습니다. 
황상께서는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오르시고 정사를 살피신 이래 백성들과 
동고동락하시며 사방의 오랑캐들과 잘  지내오셨으니 천하가 그 은덕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신의 천박한 견해로는 세 번왕의 일은 옛 규칙대로 
처리하되 따로 죄를 물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풍우가 잔잔해
질 것이고  국태민안(國泰民安)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천자(聖天
子)께서 삼가 정성을  다하여 나라를 다스리니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봅니다.]

강희는 대학사 두립덕(杜立德)에게 물었다.

[경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두립덕은 말했다.

[세 번왕을 세운 것은 본디 그 공로를 치하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
늘날까지 세 번왕은 큰 과오가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을 제거한
다면 혹시 사정을 잘 모르는  자들이 조정이 선조의 공신들을 용납하지 
못했다고 말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혹시 황상의 밝은 정사에 금이 
갈까 걱정이 됩니다.]

왕공대신들은 서로 설왕설래하였으나 모두가  주장하는 것은 세 번왕을 
그대로 두자는 의견이었다. 위소보는  여러 사람들의 하는 말이 문자를 
쓰는 말들이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주장들이 하나같이 번
왕을 철수시키지 말자는 데 있는 것을 알고 속으로 초조하게 생각했다. 
재빨리 색액도에게 눈짓을 하면서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이
것은 그에게 다른 사람들과 반대되는 말을 하라는 뜻이었다.
색액도는 그가 고개를 흔드는 것을 보고 그 뜻을 오해했다. 그는 세 번
왕을 철수시키는 데 반대하라는 줄로 잘못 알았다.
그는 황상의 참된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위소보일 뿐이고 또 
강희가 여러 사람들의 의논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을 보자 소
황제가 감히  오삼계와 싸움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말했다.

[오삼계와 상가희, 그리고 경정충 세  사람은 모두 용병술에 뛰어난 인
물들입니다. 만약 조정에서 세  번왕을 철수시킨다면 세 번왕은 항명하
여 운남, 귀주, 광동, 복건, 광서  등 다섯 성에서 동시에 군사를 일으
킬지도 모르며, 어쩌면 다른  반역자들이 출병하여 그에 호응할지도 모
르는데 그렇게 된다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신이 볼 때 오삼계
와 상가희는 나이가  많아 이 세상에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니 차라리 
몇 년 더 기다려서 두 사람이  수명을 다해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좋
을 듯합니다. 세 번왕을 따라 수없이 싸움을 해 은 늙은 병사들과 장수
들도 태반이 죽게 될 것이며 그때 가서 번왕을 철수시키기는 쉬울 것입
니다.]

강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경은 신중을 기하자는 것이군.]

색액도는 황상이 칭찬의 말을 하는  줄로 알고 절을 하며 사은(謝恩)의 
말을 했다.

[소신은 국가대사에  충성을 다하기 위하여  생각하고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희는 대학사 도해(圖海)에게 물었다.

[경은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고 삼도육략(三埇六略)에 깊이 통달했을 뿐 
아니라 용병술에 뛰어난 사람이니 이  일을 어떻게 보시는지 말해 보시
오.]
[소신은 재주와 지혜가 평범한데  황상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이끌어 주
시었습니다. 황상께서는 만 리 밖을 밝게 내다보시지 않습니까? 조정의 
병마들은 매우 뛰어나 세 번왕이 만약 불측한 마음을 가진다 해도 큰일
을 이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세 번왕이 거느리고 있는 수십만 명
이나 되는  사람들을 일제히 요동으로  옮기는 것은 조금  걱정이 됩니
다.]
[뭐가 그렇게 걱정이 된다는 것이오?]
[요동은 우리 대청나라의 근본이 되는 곳이며 역대 조상들의 능침이 있
는 곳입니다. 세 번왕이 만약  신하로서 복종할 뜻이 없어 수십만 명이 
요동에서 반란을 일으킨다면 방비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해는 다시 말했다.

[세 번왕이  군대를 원위치에서 철수시킨다면  조정에서는 따로 병마를 
운남, 광동, 복건성으로 보내  주둔시켜야 할 것입니다. 수십만이나 되
는 대군이 동쪽으로 올라오고 또  수십만 명의 대군이 남쪽으로 올라오
게 되면 많은  군비가 들 것이고 지방을 시끄럽게  할 것이 틀림없습니
다. 세 번왕이 거느리고 있는  군사들과 그곳의 백성들은 잘 지내고 있
고 어떤 충돌이 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광동과 복건성의 언어
는 매우 야릇하고 특이해서 새로운 군사를 보내면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습관이나 풍속이 달라서 어쩌면 백성을 자극하여 반란을 일으킬지
도 모르니, 이렇게 되면  황상께서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시는 거룩한 
뜻을 손상시키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들으면 들을수록 다급해졌다. 그는 소황제가 번왕을 물러나도
록 할 결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왕공대신들은 하
나같이 담이 적고 큰일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자기는 관직이 
낮고 나이가 어린  까닭에 조정에서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입장이었
다. 강희는 병부상서(兵部尙書) 명주(明珠)에게 물었다.

[이 일은 병부에서 관리할 일인데 경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명주는 말했다.

[성상께서는 하늘이 내리신  총명함을 지니고 계실 뿐  아니라 먼 일을 
내다보시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신하들보다 백배나 뛰어나십니다. 소
신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  번왕을 철수시키는 것은 그것대로 이득이 
있고 철수시키지  않으면 또한 그것대로 이득이  있어 마음속으로 정말 
결정하기가 힘들어 며칠  동안 계속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갑자기 한 가지 사실을  상기하고 마음을 놓게 되었으며 어젯밤부터
는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소신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황상께서 
생각이 치밀하시고 상세하여 일을 헤아림에 있어서 실수가 없다는 사실
입니다. 조정의 신하들이 생각하는  일은 이미 황상께서 짐작하고 계실 
것입니다. 소신들이  생각하는 계책이라는 것이  아무리 고명하다 해도 
황상의 가르침만 못합니다. 소신은  그저 황상께서 분부하시는 대로 일
을 처리하며, 황상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면 죽어라 하고 받들어 앞으로 
나아가며 용기있게 일을 처리한다면,  최후에 가서는 반드시 크게 길하
고 크게 덕을 볼 것이며 만사가 뜻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소보는 그 말을 듣자 탄복하여 속으로 생각했다.
(조정의 문무백관들 가운데 벼슬아치  노릇을 하는 재간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이 사람을 따를 수 없구나. 이 사람의 아첨을 떠는 재간은 정말 
대단하다. 나는 그를 사부로 모셔야겠다.  이 녀석은 이후 크게 출세할 
것이며 부귀공명은 혜아릴 수 없을 정도겠다.)
강희는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나는 경의 생각을 말해 보라고 했지 내 덕을 칭송하는 말을 듣고 싶었
던 것이 아니오.]

명주는 절을 했다.

[성상께서는 밝게 살피옵소서. 소신은 공덕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있
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병부에서 세 번왕이 불온하다
는 소문을 들은 후 소신은 주야로 걱정을 하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생각해 왔습니다. 만일 군사를  쓰게 된다면 어떻게 군사들을 움직이고 
장수들을 파견해야 이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했으며, 주군으로 하여
금 조금도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리 생각해  봐도 주군께서는 너무나 거룩하시고  밝으신 반면 소신들은 
형편없는 사람들이지요.  우리들이 애써서 생각해  낸 방책은 황상께서 
아무렇게나 생각해 내시는 것에  결코 미칠 바가 못됩니다. 성천자께서
는 하늘 위의 자미성이 하강하신  것이라 우리와 같은 범속한 신하들로
선 미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소신은 황상께서 분부하신 일이라면 하늘
이 도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사 소신들이 일시 알아차리지 못한
다 해도 애써서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 나중에는 끝내 확연히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대신들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아첨하는 그가 너무나 뻔뻔하다고 속으로 
욕을 했다. 그러나 다른 신하들  역시 입으로는 그 말에 찬성하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강희는 입을 열었다.

[위소보, 그대는 운남에 가 보았으니  그대가 말해 보게나. 이 일을 어
떻게 하면 좋지?]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께서 밝게 살피시옵소서. 소신은 국가대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
습니다. 다만 오삼계는 소신에게 한마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위 도통, 이후 어떤  변고가 있다해도 그대는 
걱정을 하지 마시오. 그대의 도통  직위는 오로지 올라갈 뿐 아래로 내
려가지는 않을 것이오.' 소신은 이해할  수 없어 그에게 물었습니다. '
이후에 어떤 변고가 있습니까?' 오삼계는 말했습니다. '때가 되면 자연
히 알게 될  것이오.' 황상, 오삼계는 반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입니
다. 이 일은 절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아마 지금쯤 용포(龍袍)도 만
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맹호에 비유했으며 황상을 꾀
꼬리에 비교했습니다.]

강희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뭐가 맹호고 꾀꼬리인가?]

위소보는 절을 한 후 말했다.

[오삼계 그 녀석은 대역무도한 말을 했습니다. 소신은 감히 그 말을 그
대로 옮길 수가 없습니다.]

강희는 말했다.

[말하도록 하게. 그대가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위소보는 말했다.

[예, 오삼계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습니다. 그는 그 세 가지 보물이 
좋기는 하나 애석하게도 부족한 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의 보배
는 비둘기알만한 커다란 흥보석(紅寶石)인데 마치 닭의 볏처럼 붉은 그 
보석을 모자에 박고 그는 말했습니다. '보석은 매우 크지만 애석하게도 
모자가 너무 작구려.']

강희는 코웃음을 쳤다. 대신들은 서로 쳐다보며 하나같이 생각했다.
(보석은 매우 크지만  애석하게도 모자가 너무 작다는  말은 바로 머리 
위에 황곤(皇冠)을 쓰고 싶다는 말이 아닌가?)
위소보는 말했다.

[그의 두 번째 보물은 하얀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는 하얀 호랑이 가죽
이었습니다. 소신은 궁 안에서 황상을 시중들었지만 한 번도 하얀 호랑
이 가죽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삼계는 이와 같은 하얀 호랑이는 수백 
년만에 한 번 볼까말까하며 과거 송태조 조광윤이 잡은 적이 있고 주원
장도 잡은 적이 있으며 조조와  유비도 잡은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는 하얀 호랑이의 가죽을 의자 위에 깔아놓고 말했습니다. '이 하얀 호
랑이 가죽은 구하기 힘든 물건이지만  애석하게도 이 의자가 너무 평범
한 것 같구려.']

강희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우습게 생각했다. 그는 위소보가 제멋대
로 오삼계를 모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학문이 
없기 때문에 조조가 황제까지 한  줄로 여기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위
소보는 그런 사정을 모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세 번째 보물은  대리석 병풍인데 거기에 그려진  그림에는 몇 마리의 
작은 꾀꼬리들이 나무 위에 앉아  있고 나무 아래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오삼계는  말했지요. '병풍은 매우 진귀한 것이나 
애석하게도 맹호가 나무 아래에 앉아  있고 작은 꾀꼬리들이 높은 가지 
위에 앉아 있구려.']

강희는 말했다.

[그의 말은 비유에 지나지 않으며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마음이 있다고
는 볼 수 없지 않을까?]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께서는 너그러운 마음과 커다란 아량으로 신하들을 아끼고 사랑하
십니다. 오삼계가 만약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었다면 그 은혜를 고맙게 
여기고 보답을 할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애석하게도 조정의 
왕공대신들에게 예물을 줄 줄만  알고 있습니다. 이분에게는 황금 일천 
냥을 주고 저분에게는 백은 이만  냥을 주는 등 씀씀이가 크지요. 그런
데도 그 세 가지 보물을 황상께 바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의 그런 물건을 탐내는 것이 아니네.]

위소보는 말했다.

[그렇지요. 오삼계는 언제나 조정에 향은을 달라고 하고 군사들에게 포
상할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은자를 손에  쥐면 태반은 북경에 
남겨 두고 문무백관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래서 소신은 말했습니다. '
왕야, 그대가 금을 조정의 대관들에게 선물하는데 그 씀씀이가 너무 커
서 내가  왕야를 대신해서 배가 아플  지경입니다.' 오삼계는 웃었습니
다. '소형제, 이 금과 은은  잠시 그들의 집에 맡겨두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같이 나를 도와 좋은 말을  하도록 하려는 것일세. 몇 년이 지나면 
그들은 자연히 이자까지 보태서 나에게 되돌려줘야 할 것일세.' 소신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물었습니다.
'왕야, 재물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간 이상 어찌 왕야에게 되돌아온다
는 것입니까? 이것은 왕야가  스스로 그들에게 선물한 것이고 상대방은 
왕야에게 빌린 것도 아닌데 어쩨서 이자까지 쳐준다는 말입니까?' 오삼
계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저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고 조그만 비
단 주머니를 저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소형제, 이것은 소왕이 그대에
게 주는 조그만 뜻일세. 아무쪼록  그대는 황상 앞에서 나를 위해 좋은 
말만 해주게. 황상께서 번왕을 철수코자 할 때 그대는 번왕을 철수시켜
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씀드려 주게나. 하하하!  그대는 안심하게. 이 
물건들은 내가 장래 그대에게 되돌려 달라고 하지 않겠네.']

위소보는 말을 하면서 품속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 손에 들더니 높이 
쳐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주머니에 평서왕부라는 붉은 글자가 수놓
아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위소보는 그 주머니를 풀어혜치더니 거
꾸로 들었다. 그러자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진주, 비취, 미옥(美
王) 등 수십 개나 되는 진품(珍品)들이 대전에 흩어져서 주광보기(珠光
寶氣)가 눈부시게 빛났다. 이 구슬  가운데는 오삼계가 선물한 것도 있
지만 어떤 것은 위소보가 다른  곳에서 뇌물로 받은 것이다. 그런데 다
른 사람들이 어찌 분간할 수 있겠는가?
강희는 웃었다.

[운남에 한 번 갔다오더니 많이도 얻었군 그래.]
[이 진주는 소신이 감히 가질  수가 없으니 황상께서 다른 사람에게 하
사하도록 하십시오.]

강희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오삼계가 그대에게 준  것인데 내가 어찌 다른  사람에게 내린단 말인
가?]
[오삼계가 소신에게 준 까닭은  황상 앞에서 결코 번왕을 철수시켜서는 
안 된다는 거짓말을 하라고 준 것입니다. 소신은 황상을 향한 충성심이 
강하기 때문에 하찮은 금은재보를  욕심내어 반적을 충신이라고 말씀드
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오삼계의 물건을 받고 그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천하의 금은재보는 모두 황상
의 물건입니다. 황상께서 누구에게  하사하시든 황상의 은덕이니, 오삼
계가 이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환심을 사도록 할 필요는 없는 것
입니다.]

강희는 껄껄 소리내어 웃고 말했다.

[하하하! 그대는  짐에게 충성을 다하는군.  그렇다면 그 진주보석들은 
내가 그대에게 다시 하사한 것으로 하게나.]

강희는 주머니에서 서양 용수철로 만들어진 금시계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대에게 또 다른 서양 보물을 내리도록 하겠네.]

위소보는 재빨리 꿇어엎드려 큰절을 하고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서 두 
손으로 금시계를 받아들었다.
눈치가 빠른 대신들이  두 군신의 이와 같은 짓을  보고도 어찌 강희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대신들은  모두 오삼계의 뇌물을 받은 적
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의 예물들은 위소보가 건네준 것이 아닌가?
그들은 마음속으로 자기들이 혹 분수를 모른다면 위소보가 운남에서 준 
물건이 얼마얼마였다고 털어놓게 될 것이고, 그러면 황상께선 진노하시
어 바깥쪽의  번왕들과 내왕하며 불측한 일을  도모했다는 죄명을 씌울 
것이며 결국 감투를 잃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위소보가 오삼계를 
모함하는 말들은 실로 유치하여 가소로울 지경이었다.
오삼계가 진짜 반란을 일으킬 마음이 있다 해도 결코 황제가 보낸 흠차
대신 앞에서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조정대신들에게 준 금과 
은을 장래 밑천과 더불어 이자까지 합쳐 거두어들인다는 생각을 하더라
도 자기가 이후 반란을 일으켜 성공을  하게 되고 황제가 되었을 때 각 
대신들에게 금과 은을 되받겠다는  암시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야말로 세상을  모르는 어린애 생각이지,  오삼계같이 노련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 어찌 약간의 금과 은을 선물한 것을 따지겠는가?
위소보의 그와  같은 말을 단번에 반박하여  위소보를 곤경에 처하도록 
할 수는 있었지만 위소보의 뒤를 황상이  밀어 주고 있는 이 마당에 그 
누가 감히 쓴맛을 자초하여 나서겠는가?
명주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라 즉시 입을 열고 말했다.

[위 도통은 젊은 영재로서 모든  일을 명백히 예견하며 또 황상에 대해
서는 층성을  다하여 오삼계의 소굴로 깊이  들어가 진상을 캐내었으니 
진정 탄복할 일입니다. 만약  황상께서 먼저 통찰하시고 위도통을 친히 
보내 알아보도록 파견하지 않았다면, 서울에서 일을 처리하는 우리들이 
오삼계 그 늙은 것이 나라에 깊은 은혜를 입고도 속으로 반란을 일으킬 
작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이 한 마디의 말은 강희와  위소보를 추켜올리는 동시에 자기와 조정백
관들을 슬쩍 변명해 주는 한편, 오삼계의 죄를 확실히 했다고 할 수 있
었다. 태화전의 모든  사람들은 이 몇 마디의  말이 모두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대신들은 가슴이 서늘해져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제서
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강친왕과 색액도는 원래 위소보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
들은 자연히 위소보의 뜻을 알고  우물에 떨어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듯 
오삼계의 허물을 크게 들추어내 떠들었다.
대신들도 너나없이 한마디씩 하게 되었고 모두 번왕을 철수시켜야 한다
고 했으며 스스로 자기가 멍청했다고  크게 꾸짖는 한편 다행히 황상께
서 깨우쳐 주시어 구름을 헤치고  햇살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방책을  내놓기까지 했다. 번왕들을 어떻게 철수
시키고 오삼계를 어떻게 잡아서 북경으로 데려와야 하며, 또 어떻게 그
의 가산을 몰수해야 하는가를 말하기도 했다.
오삼계의 재물은  한 나라와 버금가니 그의  가산을 몰수한다면 대단히 
국물이 많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느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볼 때 그 
일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걱정했다. 그 일에 나섰던 사
람들이 그 가산을 몰수하기 전에 오삼계가 먼저 그 사람의 머리를 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강희는 사람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말했다.

[오삼계는 비록 불측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행
동을 드러내지도 않았으니, 이곳에서  오늘 있었던 말들은 한마디도 누
설하지 않도록 하시오.  그에게 잘못을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될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오.]

대신들은 일제히 황은이 망극하다고 했으며 진정 인자하기 이를데 없다
는 등의 말을 했다. 강희는 품속에서 누런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이 유시가 적절한지 그대들이 한번 봐 주시오.]

파태(巴泰)가 허리를  굽히고 받아 두 손으로  받쳐들고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봉천승운황제조왈(奉天承運皇帝詔曰), 자고제왕평정천하(自古帝王平定
天下)  식뢰사무신력(式賴師武臣力) 급해우녕밀(及海宇寧謐)  진려반사
(振旅班師) 휴식사졸(休息士卒) 비봉강중신(卑封疆重臣) 우유이양(優游
吏養) 상연혁세(賞延奕世) 총고하산(寵固河山) 심성전야(甚盛典也)!]

그는 여기까지 읽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대신들은 일제히 웅성거리며 
혀를 차는 소리를 냈다. 황상의  뛰어난 문장을 칭송하는 소리였다. 파
태는 나직이 기침을 하더니 마치 한(韓), 유(柳), 구(歐), 소(蘇)
의 절묘한 문장을 감상이라도 하는 듯  음성을 길게 빼며 다시 읽기 시
작했다.

[왕숙독충정(王夙篤忠貞)  극터유략(克攄猶略) 선로육력(宣勞戮力)진수
암강(鎭守巖彊) 석짐남고지우(釋朕南顧之憂) 궐공무언(厥功懋焉)!]

그는 여기까지 읽더니 잠시 여유를 두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훌륭한 문장이군!]

색액도가 말했다.

[오삼계가 조금이라도 인성(人性)이 있는  사람이면 이 유시를 받아 읽
었을 때 황상의 천은에 감복하고 말 것입니다.]

파태는 다시 읊었다.

[단념왕년치이고(但念王年齒已高) 사도폭로(師徒暴露) 구주하황(久駐遐
荒) 권회양절(眷懷良切)  금이지방저정(禁以地方底定) 고윤왕소청(故允
王所請) 반이안삽(搬移安揷)  자특견모모(玆特遣某某) 모모(某某) 전왕
선유짐의(前往宣諭朕意)  왕기솔소속관병(王其率所屬官兵) 취장북래(趣
裝北來) 위짐권주(慰朕眷注)  서기단석구지(庶幾旦夕購止) 군신해락(君
臣偕樂)  영보무강지휴(永保無疆之休) 지일응안삽사의(至一應安揷事宜) 
이칙소사칙비주상(巳飭所司飭庇周詳)  왕도일(王到日) 즉유녕우(卽有寧
字) 무이위념(無以爲念) 흠차(欽此).]

파태는 음조가 낭랑한  편이었고 더구나 유시를 읽을 때  높고 낮게 잘 
띄어 가면서 읽었다. 낭독이 끝나자 신하들은 모두 칭찬해 마지않았다. 
명주는 말했다.

[단석구지 군신해락이라는 여덟 글자는 정말 사람을 감격하게하는군요. 
그 유시를 들으니 소신들의 마음까지 훈훈해집니다.]
[가장 좋기로는 오삼계가 명을 받들고 조정에 귀의하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전쟁의 재난을 면할  수 있게 될 것이오. 그러므로 반드
시 말을 잘하는 사람을 운남으로 보내 유시를 선포하고 짐의 뜻을 전해
야 할 것이오.]

대신들은 황제의 말을 듣고 모두 다 위소보를 바라보았다. 위소보는 사
람들의 시선을 받고 당황해서 속으로 생각했다.
(야단났구나. 이 일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지난 번 며느리를 데려
갔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이번에 번왕을 철수시킨다는 임
무를 띠고 가면 오삼계가 어찌 흠차대신을 죽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운남으로 가면  아가를 만나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편 그는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
다. 명주는 위소보의 안색이 흙빛이 되는 것을 보고 그가 감히 갈 엄두
를 못 낸다는 사실을 알고 말했다.

[황상께서는 굽어 살피십시오. 말 잘하는 사람으로는 도통 위소보가 가
장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 도통의 위인됨은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오삼계가 황상께 불경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뼈속까지 미워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중
팔구 오삼계를 만나게 되면 대뜸 그를 꾸짖어 일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소신의 의견으로는 차라리 예부시랑(禮部侍郎) 절이긍(折雨肯), 한림원 
학사 달이례(達爾禮)  두 사람을 운남으로 보내  유시를 선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두 사람은 점잖고 덕망을 갖추고 있으니 고집스러운 오
삼계를 감화시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강희는 그 말을 듣자 무척  마음에 드는지라 즉시 절이긍, 달이례두 사
람에게 운남으로 가서 유시를  선포하도록 일렀다. 대신들은 황제가 번
왕을 철수시킬 뜻을 이미 굳히고 유시도 미리 써서 몸에 지니고 있었다
는 사실을 알고 오삼계를 좋게 평가했던 것을 깊이 후회해 마지않았다. 
이제 사람들은 말투를 바꾸어 오삼계의 있지도 않은 죄상을 늘어놓으면
서 오삼계는 그야말로 간악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오삼계가 나쁘기는 하나 그 정도로  나쁘지는 않을 것이오. 모두들 매
사에 증거를 찾도록 하고 일을 조심스레 처리하도록 하시오.]

그는 몸을 일으켜  위소보에게 손짓을 한 후 그를  데리고 후전으로 갔
다. 위소보는 황제의 뒤를 따라  어화원으로 갔다. 강희는 웃으며 말했
다.

[소계자, 그대는  정말 대단해! 만약  그대가 진주보배를 꺼내서바닥에 
늘어놓지 않았다면 제기랄! 그  늙은 녀석들은 여전히 오삼계에게 좋은 
말만 하고 있었을 것이네.]
[황상께서 먼저  번왕을 철수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을 하시기만한다면 
모두 하나같이 번왕을 철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할것입니다. 하
지만 그들 스스로  그와 같은 말을 하도록 하는  것이더 재미있는 일이
죠.]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늙은녀석들은 매사에  신중을 기하려는 것이니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야 없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오삼계는 언제나  손을쓰고 싶을 때 
손을 쓰게 될 것이고 모든 것은  그가 내키는 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
니 우리에게는 크게 불리한  일일세. 우리가 먼저그를 번왕에서 물러나
게 한다면 그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셈이 되지.]
[그렇지요. 오삼계로 하여금 전주가  되도록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황상께서도 몇 번 주사외를 던져야죠.]
[그 비유는 맞았네. 자꾸만 그에게  전주 노릇을 시킬 수는 없지. 소계
자, 우리들은 이번에 주사위를 던진 셈이네. 그러나 오삼계라는 녀석은 
정말 상대하기 어렵단 말일세. 그 휘하의 장수나 병졸들은 모두 전쟁에
서 많은 경험을 쌓은 무서운 인물들이네. 그가 군사를일으켜 반란을 도
모하고 만약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호응한다면 야단이 나는 것
일세.]

위소보는 근년에 각지로 떠돌아다니면서  한인들이 오랑캐를 욕하는 말
을 숱하게 들어왔으며 한인들의 사람 수가 많아 백 명의 한인에 만주인
은 한 사람도 되지 않는  사실도 알았다. 만약 한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다면 만주인들은 수를  쓰더라도 감당할 수 없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랑캐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기는 했지만 오삼계를 욕하는 사람
들은 더욱더 많았다. 그는 이 점을 생각하고 말했다.

[황상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천하의 한나라  사람들 가운데 오삼계를 좋
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자기의 심
복 외에는 아무도 그를 받드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 점을 생각했었지. 전에 명나라 계왕이 면전으로 도망을 쳤
을 때 오삼계가 그를 잡아서 죽였네.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야
말로 한나라를 일으켜서 만주 사람들에게 대항한다고 말할 수 없지. 그
러므로 청나라를 반대하고 무찔러서 명나라를 세우겠다는 말은 하지 못
할 것이네.]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했다.

[명나라 숭정 황제가 언제 죽었지?]

위소보는 머리를 긁적긁적하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건....소신이 그때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라 잘....잘 모르겠군
요.]

강희는 껄껄 웃었다.

[그야말로 맹인에게 길을 물은 셈이군.  그때 나도 세상에 태어나지 않
았네. 그렇군. 그의 제삿날이 되면 나는 몇 명의 친왕과 패륵들을 보내 
숭정의 능을 찾아가서 제사를 지내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나에게 고맙
게 생각하도록 하고 속으로 오삼계를 통한히 여기도록 하겠네.]
[황상의 신기묘산입니다. 그러나 숭정 황제의 제삿날이 되기도 전에 오
삼계가 먼저 반란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하지요?]

강희는 몇 걸음 서성거리더니 미소를 짓고 말을 바꾸었다.

[그 동안 그대는 성지를 받들어  일을 처리하면서 적지 않게 고생을 했
네. 오대산, 운남, 신룡도, 요동  등 그리고 최후에는 나찰국까지 갔다
오지 않았는가? 이번에 나는 그대를 좋은 지방으로 보내서 기분을 전환
시켜 주겠네.]
[천하에서 가장 좋은 곳은 바로 황상의 곁입니다. 황상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고 황상을 쳐다볼 수만 있으면  저는 온몸에서 기운이 
솟아나고 마음속이 말할 수 없이  편안해진답니다. 황상, 이 말은 결코 
아첨을 떠는 것이 아닙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사실이네. 나와 그대, 우리 군신 사이는 정말 의기투합하고 있
으니 이 또한 연분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대와 더불어 어릴 적부터 싸
우면서 사귄 적이 있기 때문에  남들과는 다르지. 나 역시 그대를 만나
면 무척 기쁘다네. 소계자, 반 년 동안 그대의 소식을 듣지 못했을 때, 
그대가 바다에 빠져 죽은 줄로 알고  나는 줄곧 그대를 위험한 곳에 보
내 모험하게 한 것을 후회하며 여간 슬퍼하고 괴로워하지 않았다네.]

위소보는 마음속이 뿌듯하여 말했다.

[아무쪼록....아무쪼록 제가  한평생 황상을 시중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음성은 어느덧 목이 메어 있었다.

[좋아, 나는 육십 년간 황제 노릇을 할 테니 그대는 육십 년 동안 대관 
노릇을 해주게. 우리 군신 두  사람은 그야말로 서로 은혜를 베풀며 의
리를 지켜 끝까지 변함이 없도록 하세.]

황제가 신하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희귀한 일이었다. 
강희는 나이가 어려 말하는 것이 솔직했고, 그와 위소보는 역시 총각지
교(總角之交)인지라 서로가 진정으로 대하고 있었다.

[황상께서는 백 년  동안 황제가 되십시오. 전 백  년 동안 심부름꾼이 
되겠습니다. 대관이 되고 안 되고는 개의치 않습니다.]
[육십 년간 황제 노릇을 하는 것도 부족하다는 것인가? 소계자, 사람은 
적당히 만족할 줄 알아야 하네.]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말했다.

[소계자, 이번에 나는 그대를  양주로 파견하겠네. 그대로 하여금 금의
환향하도록 해주겠네.]

위소보는 양주로 보낸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물
었다.

[뭐가 금의환향인가요?]
[그대가 북경에서 대관이 되었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친척이나 친구들을 
만나 보며 위세를 떨치는 것도 좋고 특히 고을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대를 부러워하게 만든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대가 부하를 시켜 
상소문을 한 장 올리도록 한다면 그대의 부친이나 어머님께도 조정에서 
어떤 직책을 내리게 될 것이니 매우 그럴싸하지 않은가?]
[황상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강희는 그의 안색이 겸연쩍어지는 것을 보고 물었다.

[왜 그대는 싫은가?]

위소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무척 좋습니다. 하지만....하지만  저는 저의 친아버지가 누군지
도 모른답니다.]

강희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자기의 부친이 오대산에서 출가한 것을 
생각하고 자기와는  어느 정도 동병상련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대가 양주로 가거든 천천히 찾아보도록 하게. 어쩌면 하늘이 불쌍히 
여겨서 그대 부자로 하여금 해후토록 해줄는지도 모르지. 소계자, 이번
에 양주로 내려가서 할 일은  정말 수월한 일일세. 나는 그대를 파견해 
충렬사(忠烈祠)를 하나 짓게 할 참이네.]

위소보는 머리를 긁적긁적하더니 말했다.

[충렬사라니요? 황상께서 사당을 짓고  싶으시다면 어디든지 지어도 될 
것이 아닙니까? 하필 많고많은 곳을  남겨 두고 양주로 가서 세울 것은 
없지 않습니까?]

강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제기랄! 소계자는 역시 학문이 없단 말이야. 충렬사라는 것은 아무 곳
에나 세우는  것이 아니야. 그곳에서  층신이나 열사(烈士)가 나와야만 
세우는 것일세.]

위소보는 웃었다.

[소신은 우둔해서  잘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결국은 관제묘(關帝廟)와 
같은 것을 세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청나라 군사가  중원으로 들어온 이후 양주와 가정(嘉
定)에서 너무나 심한 살육을  하여 양주십일과 가정삼도라는 말이 생겨
나지 않았는가? 나는 이 일을 생각하기만 하면 마음이 불안해진단 말일
세.]

위소보는 말했다.

[그때는 정말 매우 비참하게 사람들을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양주성 안 
도처에 시체가 뒹굴었고 십 년이  지난 후에도 우물이나 냇물에서 죽은 
사람의 해골과 뼈를 볼 수 있었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아직도 이 세
상에 태어나기  전이고 황상께서도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니 우리 탓은 
아닙니다.]
[말은 그렇지만 나의 조상들이 한 일이니 역시 내가 한 일이지.
당시에 사가법(史可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데  그대는 들은 적이 있
는가?]
[사각부(史閣部) 사 대인은 양주를  사수한 분으로서 그야말로 아주 훌
륭한 충신입니다. 우리 양주의 어르신들은 그를 들먹일 때 언제나 눈물
을 흘리지요. 우리 기녀원에서도  그분의 영위를 모시고 있는데 거기에
는 구문룡사진지영위(九紋龍史進之靈位)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초
하루와 보름에 모두 그 영위를  향해 절을 하지요. 사람들에게 들은 이
야기인데 기실은 그 영위가 사각부의  영위인데 그저 관가를 속이기 위
해 그렇게 쓰여 있다고 했습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층신 열사는 언제나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서 사랑을 받고 있지. 원래 
백성들이 구문룡 사진의 영위를 모시고  향을 태우고 배례를 올리는 것
은 실제로 사가법을 기리는 것이었군.  소계자, 그 기녀원은 어느 기녀
원이지?]

위소보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황상, 이 일을 말하자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저의 집에서는 여춘원이
라는 기녀원을  차리고 있는데  양주에서는 첫째  가는 대기녀원이랍니
다.]

강희는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말 끝마다 시정잡배의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내 이미 그대가 선비 집안
의 출신이 아님은 알았다. 그러나  네 녀석은 나에게 꽤나 충성스럽다. 
그와 같이 추악한 일도 속이지 않는군.)
사실 기녀원을 차렸다는 것은 위소보가  크게 허풍을 떨고 있는 것이었
다. 그녀의 모친은 그저  기녀에 불과했지 기녀원의 안주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강희는 말했다.

[그대는 나의 유시를 받들고 양주로 가서 사람들이 듣도록 낭독하는 것
이네. 나는 사갑법이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을 했으며 군주에 충성을 
다하며 백성을 사랑했으니 그야말로  훌륭한 층신이며 커다란 호걸이라
고 칭찬의 말을  하겠네. 우리 대청나라는 충신과  의사들을 높이 사며 
반역도와 역적을 업신여기네. 나는  사가법을 위해 훌륭한 사당을 지어 
주고 양주에서 그 당시 성을 지키다가 죽은 충신과 용장들을 모조리 그 
사당에다가 모시도록 하겠네. 그리고 다시 삼십 만 냥의 은자로 양주와 
가정 두 성의 백성들을 구조하도록  하겠네. 그 다음 다시 성지를 내려
서 그 두  지방으로 하여금 삼 년 동안  전량(顚糧)을 면하도록 해주겠
네.]

위소보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황상, 이번에야말로 제게 정말  커다란 은혜를 베푸시는군요. 저는 황
상께 진정으로 큰절을 몇 번 해야겠습니다.]

그는 땅에 엎드려서 쿵쿵 소리가 나도록 세 번 절을 했다. 강희는 웃으
며 물었다.

[그대는 옛날 나에게 큰절을 하였을 때 진정으로 한 것이 아니었나?]
[어떤 때는 진심과 성의를 다했고 어떤 때는 얼렁뚱땅 넘겼습니다.]

강희는 껄껄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를 향
해 큰절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백 명이면 아마도 구십구 명은 얼렁뚱땅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은  오로지 소계자만이 할 수  있을 것이
다.)

[황상, 황상의 이  계책은 그야말로 화살 하나로 두  마리의 새를 쏘는 
격이군요.]

강희는 웃었다.

[뭐가 한 대의 화살로 두 마리의 새를 쏘는 것인가? 그것은 일석이조라
고 해야 돼. 그런데 어째서 두 마리의 새를 잡는다는 것이지?]
[그 충렬사를 짓는다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황상께서 백성에게 잘 대
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오랑....청나라 
군사들이 양주와 가정에서 한나라 사람을  마구 죽인 데 대해서 황상께
서 미안하게 여기시고 방법을 강구해서 보답을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
겠죠. 그래야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거나 혹은 상가희와 경정충 등이 
반란을 일으켜서 명나라인가 뭔가 하는 것을 찾겠다고 한다면 백성들은 
청나라가 뭐가 나쁜가? 황제께서는 매우 훌륭하시지 않은가? 하고 말하
게 될 것입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대의 말이 맞네. 소인의 신분으로 군자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군. 사
실 내가 양주십일과 가정삼도의 사건을  생각해 볼 때 확실히 측은하게 
느끼는 바가 없지  않네. 구혈금을 내리고 전량을  면하는 것도 인심을 
수습하는 방법이지. 그런데 두 번쩨의 새는 어떤 것이지?]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께서 그 사당을 짓는다면  모두들 층신의사는 훌륭한 사람임을 알
게 될 것이며 반역질을 꾀하는 사람들을 좋지 않다고 볼 게 아니겠습니
까? 그렇게 되었을 때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바로 반역이
니 백성들은 업신여기게 될 것입니다.]

강희는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깻죽지를 두드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맞았네. 충성을 다해 국민에게 보답하는 사람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
을 크게 떠벌려야 하네. 천하의  백성들 가운데 어느 누가 그걸 부인할 
사람이 있겠는가?  오삼계가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몰라도 군사를 
일으킨다면 아무도 그 뒤를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네.]

위소보는 말했다.

[저는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자고로 가장 뛰어난 충신
의사로 두 분이 계신데, 한 분이  바로 악비 나리이시고 또 한 분은 관
제 왕야라고 했습니다. 황상, 이번에 우리가 양주에서 충렬사를 세우게 
된다면 악비와 관왕의 묘도 수리를 헤주는 것이 좋겠군요.]

강희는 웃었다.

[자네는 정말 꼼꼼하군. 그러나 애석하게도 글공부를 싫어해서 탈이야. 
관제묘를 수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 관우는  정말 충성을 다해 
군주에게 보답을  했고 의리를 지킨 셈이니  나는 그에게 봉호(封號)를 
내리도록 하겠네. 악비가 싸운 상대는 금(金)나라 군사들일세. 우리 대
청나라는 본래  후금(後金)이네. 금이 바로  청나라이고 금나라 군사는 
바로 청나라 군사지. 그러니 이 악왕묘(岳王廟)
는 아랑곳할 필요가 없네.]
[그랬군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그대들 오랑캐는 김올출과 합미치(哈迷蚩)의 후예들이군. 그대들
의 조상은 정말 형편없었지.)

[하남성의 왕옥산에는 오삼계가 매복해 놓은 한 떼의 병마가 있었지?]

위소보는 조금 어리둥절해져서 대답했다.

[그렇지요.]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일을 그대가 만약 들먹이지 않았다면 나는 잊을 뻔했구나.)

[당시 그대는 오삼계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사람을 
보내 상소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대를  한바탕 꾸짖었는데 그대는 그 이
유를 알고 있는가?]
[아마도 우리가 오삼계를 상대할 계휙을 제대로 짜놓지 못한 때라서 황
상께서는 일부러 믿지 않는 척함으로써 타초경사의 누를 범하지 않으려
고 한 것이겠죠.]

강희는 웃었다.

[맞았네. 타초경사라는 말은 제대로 사용했군. 조정에는 오삼계가 잠복
시켜 놓은 심복이 있을 것이니 우리의 일거일동을 그 도적은 똑똑히 알
고 있을 것이네. 왕옥산 사도백뢰의  일을 그 당시 내가 조사를 하였다
민 오삼계는 즉시 알아차리고 마음속으로  깜짝 놀라 즉시 군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을지도 모르지. 당시 조정의 허실을 그는 모조리 다 알고 
있었고, 그의 병력과  부서가 어떻게 된 것인지  나는 조금도 몰랐으니 
싸움을 하게 되었다면 우리들이  반드시 패할 것이 아니겠는가? 반드시 
지피지기해야만 백전백승할 수 있는 것일세.]
[황상께서 당시 사람을 보내 저를  크게 꾸짖었던 일은 온 군영의 군관
들이 모조리 알게 되었습니다. 오삼계가 만약에 첩자를 저의 군영에 보
냈더라면 그 첩자가 반드시 그  늙은 녀석에게 보고하여 알렸을 것입니
다. 그 늙은 녀석은  어쩌면 마음속으로 황상께서 멍청하다고 웃었는지
도 모를 일이죠.]
[그대가 이번에 양주로 갈 때 오천 명의 병마를 거느리고 하남 제원(濟
源)에 이르게 되면 갑자기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고 왕옥산의 도적굴을 
소탕하게. 오삼계의 이 한 떼의  복병은 서울과 너무도 가까이 있기 때
문에 심복지환일세.]

위소보는 기뻐했다.

[그것 참 잘되었습니다. 황상께서 차라리 친히 정벌하여 오삼계로 하여
금 겁을 집어먹도록 위세를 떨침이 어떠합니까?]
[왕옥산은 겨우 일, 이천 명의 도적들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 태반은 노
약자와 부녀자들일세. 그 원가라는  녀석은 과장해서 삼만여 명이나 된
다고 했는데 그것은 거짓말일세. 내  이미 사람을 산 위로 보내 똑똑히 
알아봤네. 천여 명의  도적들을 상대로 내가 친히  정벌을 한다면 남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일세. 하하하!]

위소보는 강희를 따라서 헛웃음을  웃었다. 그는 속으로 소황제는 정말 
너무나 똑똑해서  거짓으로 숫자를 크게 불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
다.

[왕옥산의 도적들을 어떻게 소멸할 것인지 물러가 잘 생각해 보고 하루
나 이틀 뒤에 상주하게.]

위소보는 물러나와 생각했다.
(나는 군사를 움직이고 싸움을 하는 일은 잘하지 못한다. 그 날 수전에
서는 시랑에게 의지했는데 육지에서의  싸움온 누구에게 의지해야 옳을
까? 옳지, 광동성  제독 오륙기를 불러 조수로 삼고  그의 말을 들으면 
될 것이다. 그는 싸움에 능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는 생각을 다시 고쳐먹지 않을 수 없었다.
(황상께서는 나에게 방책을 강구해서  하루 이틀 안으로 상주하라고 했
다. 광동으로 사람을 보내 오륙기를 데려오더라도 한 달은 걸릴 것이니 
시간이 안 맞는다. 북경성에 싸움에 능한 자가 있을까?)
그는 한참 동안  생각해 보았다. 북경성 안에는  훌륭한 무장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만주의 대관들이었다. 이미 공작이나 백
작에 봉해진 사람이 아니면  장군이고 제독이었다. 조그만 일개 도통으
로서 그들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었다. 그의 작위는 이미 백작에 봉해져 
있었다. 청나라 직관제도에 있어서  자작은 일품이고 백작 이상은 초품
(超品)으로 열거되어 대학사나  상서에 비할 때 그  직위는 더 높았다. 
그러나 그것은 칭호에 불과한  것으로 존귀하기는 하나 내실이 없었다. 
그가 어린 나이에 유명한 신하들과  용장들을 데리고 명령을 내려서 듣
도록 한다는 것은 수윌한  노릇이 아니었다. 그는 방안에서 서성거리며 
생각했다. 그리고 탁자 위의  시랑이 선물한 옥그릇을 바라보며 생각했
다.
(시랑은 북경성 안에서 어떻게 해볼  수 없게 되자 나에게 부탁을 하러 
왔다. 북경성에서 출제하지 못한  무관들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 아니겠
는가? 그러나 출세하지 못했으면서도  재간이 있는 사람을 일시에 모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재간이  없으면서도 크게 출세한 사람들은 북경성에
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위소보만 하더라도 그중의 한 분이
지. 하하하!)

그는 탁자로 다가서서 옥그릇을 손에 들고 생각했다.
(가관진작이라는 네 글자를 새겼는데 이 말은 정말 들어맞았구나. 그가 
나에게 옥그릇을 선물하였을 때 나는 자작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백작으
로 올라갔지  않았는가? 내가 무슨 재간으로  가관진작을 하게 되었지? 
가장 큰 재간은  바로 아첨을 떠는 것이다. 아첨을  떠는 것 외에 나의 
재간이라고는.... 제기랄! 하나도 없다. 무릇 재간이 있는 사람은 아첨
을 떨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고개를 들고 알고 있는 무관  중에 누가 아첨을 떨지 않는가를 생
각해 보았다.
천지회의 영웅호걸들은 물론 함부로  아첨을 떨지 않았다. 그러나 사부 
진근남과 오륙기 외에는 모두  내공이나 외공만 알았지, 군을 통솔하고 
싸움은 할 줄 몰랐다. 사부의  부장인 임흥주는 전쟁을 할 줄 알았으나 
애석하게도 그는 이미  대만으로 돌아간 후가 아닌가?  갑자기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날 그가 시랑을 데리고 천진으로 가서 
바다로 나아갔을 때, 수사총병  황포는 자기를 매우 떠받들었는데 천진
위(天津衛)의 한 털보 무관은 자기에게 눈살을 찌푸리고 입술을 삐쭉이
며 업신여기는 표정을 짓고 한마디의 아첨도 하지 않았었다. 그 녀석은 
누구일까? 당시에도 그는 그  군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더더욱 생각해 낼 수 없어 그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아첨을 떠는 사람은 재간이 없다. 그 털보는 아첨을 떨고자 하지 않았
으니 반드시 재간이 있을 것이다.)
그는 즉시 병부상서 아문(衙門)으로  가서 상서 명주를 찾았다. 그리고
는 그에게 빨리 천진위에 있는 한  명의 털보 군관을 북경으로 불러 주
십사 하고 청했다. 그 털보의 계급은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고 부장(副
將)이 아니면 참장(參將)쯤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주는 이상하게 여겼다. 이름도 없고 성명도 없는 털보를 어떻게 데려
오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소보는 지금 가장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사람이니, 천진위로 사람을 보내서 한 명의 무관을 데려오는 것은 
물론, 설사 열 배나 더 어려운 일이라 해도 방법을 강구하여 일을 처리
해 줘야 했다. 명주는 그 즉시  대답했으며 친히 븟을 들어 한 장의 육
백리가급문서(六百里加急文書)를 작성해서 천진위의 총병에게 전달하도
록 했다. 그 천진위 총장 휘하의 모든 털보 군관을 일제히 북경으로 올
라오게 하여 병부상서 아문으로 들어와 인사를 올리도록 한 것이다.

이날 정오 무렵 위소보가 점심밥을 먹자마자 친위병이 달려와서 병부상
서 대인이 뵙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위소보는 대문으로 마중을 나갔다. 
그러고 보니 명주의 등 뒤에는 이십 명의 털보 군관들이 서 있었다. 어
떤 군관들은 검은 수염이었고 어떤  군관들은 허연 수염이었으며 또 어
떤 군관들은  반백의 수염이었다. 하나같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명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위 백작, 나오시오. 그대가 말한  사람을 한 무더기 찾아왔소. 아무쪼
록 그대가 보아 합당한 사람을 뽑도록 하시구려.]

위소보는 갑자기 이토록 많은 털보 군관들을 대하자 어리둥절해 졌으나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상서 대인, 저는 그저 한 털보를 찾아 달라고 했을 뿐인데 상서대인께
서는 정말 치밀하게 일을  처리하시는군요. 대뜸 이십여 명이나 찾아내
다니 말이외다. 하하하!]
[사람을 잘못 부르게 되면 나으리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 아니겠소? 
그것이 염려스러워 여러 사람을 불렀던 것이오.]

위소보는 다시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천진위의 총병 휘하에 이토록 많은 털보들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 틈에서 갑자기 누가  우뢰 같은 소리로 
호통을 내질렀다.

[털보가 어쨌다는  것이오? 그대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데리고 
장난을 치는 것이오?]

위소보와 명주는 깜짝 놀라 일제히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의 체구는  우람했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가 한  개 더 있을 
정도였다. 그는 얼굴 가득히 노기를 띠고 있었다. 위소보는 어리둥절해
졌으나 곧 기뻐서 말했다.

[맞았소. 바로 노형이오. 나는 바로 그대를 찾고 있었소.]

그 털보는 더욱 화를 냈다.

[지난번 그대가 천진에 왔을 때 나는 그대의 비위를 거슬렸소. 그때 이
미 그대가 보복할  것을 알고 있었소. 나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소. 
억지로 나에게 죄를 씌우는 것은 결코 수월한 노릇이 아닐 게요.]

명주는 꾸짖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어쩨서 상관 앞에서 이토록 무례한가?]

그 털보는 조금  전 병부의 아문에 이르렀을 때  이미 명주에게 인사를 
올린 바 있고  명주는 그의 직속상관일 뿐만 아니라  상관 중에서도 큰 
상관이니만큼 함부로 반박할 수 없어 허리를 굽혔다.

[대인께 알립니다. 소장은 천진부장 조양동(趙良棟)이라고 합니다.]

명주는 말했다.

[이분 위 도통께서는 벼슬이 높고 작위도 존귀하신 분으로 위인됨이 너
그럽고 인자하여 본관과는 절친한  친구인데, 그대는 어째서 그의 위엄
을 거슬리려고 하는가? 어서 앞으로 나와 사과를 하도록 해라.]

조양동은 화를 삭이지 못하고 못마땅한 눈초리로 비스듬히 위소보를 곁
눈질하며 생각했다.
(젖비린내 나는 녀석에게 내가 어째서 사과를 해야 한단 말인가?)
이때 위소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조형, 너무 탓하지 마시오. 이 형제가 그대의 비위를 거슬렸으니 마땅
히 그대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이오.]

그는 고개를 돌리고 군관들에게 말했다.

[형제는 조 부장과 한 가지 상의할  일이 있었소. 그러나 일시 그의 존
성대명을 기억할 수 없어 병부  대인으로 하여금 여러분들을 일제히 북
경으로 초청해 오도록 한 것이오. 여러분들은 밤을 도와 길을 재촉하느
라고 수고를 했는데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그는 연신 두 손을 모아  공수했다. 군관들은 재빨리 반례했다. 조양동
은 그가 겸손하고 온화하게  말하자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가슴속의 울화가 대뜸 사그러져 위소보에게 말했다.

[소장이 죄를 지었습니다.]

위소보는 두 손을 맞잡고 웃었다.

[너무 겸손해 할 것 없소이다.]

그는 명주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대인, 왕림하셨으니 아무쪼록 안으로 들어가 앉으시지요. 형제가 술을 
올려 사의를 표명하겠습니다. 천진위의 친구들도 모두 들어갑시다.]

명주는 위소보와 사귀고 싶었던 심정인지라 기꺼이 응해서 안으로 들어
갔다.



第95章. 아첨을 하지 않아야 능력 있는 사람이다.


위소보는 연회석을 크게 차려 명주를  맨 윗자리에 앉히고 조양동을 그 
다음 자리에 앉혔다. 자기는 주인석에 앉아서 그들을 상대했다. 그리고 
다른 천진위 무사들은 세 탁자에 나누어 앉혔다.
백작부의 주연은 매우 푸짐했다. 술이  세 순배 돌자 창극을 하는 사람
이 연희석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에 서울로 들어은 천진위의 무장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하찮은 파
총(把總) 벼슬에 있었을 뿐인데  털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백작부에서 
병부상서와 백작대인을 모시고 함께 술을 마시며 창극을 구경하게 되니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인연이었다.
조양동은 성질이  뻣뻣하긴 해도 위인됨이  대단히 똑똑했다. 위소보가 
주석에서 어떤 일을  상의할지 들먹이지 않자 그 역시  입을 열지 않았
다. 그저 위소보가 나찰국의 기이한  풍속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생
각했다.
(어린애가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있구나.  남녀가 어찌 여러 사람이 보
는 앞에서 껴안고 춤을 춘단  말인가? 천하에 그토록 수치를 모르는 사
람이 있겠는가?)

명주는 몇 잔의 술을 마시고 한  토막의 창극을 구경한 후에 몸을 일으
켜 작별을 고했다. 위소보는 그를 대문까지 바래다 주고 대청으로 돌아
와 창극이 끝날 때까지 무관들과 더불어 구경을 하며 술과 밥을 배불리 
먹었다. 그런 후  조양동을 안쪽 서재로 데리고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
조양동은 서가에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존경심이 우러나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어린애가 나이는 어리지만 학문은 꽤나 깊구나. 그야말로 우리같이 
조야한 사람보다는 훨씬 고명한 편이겠다.)
위소보는 그가 서적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 웃었다.

[조형, 솔직히 말해서 이 책들은 모두 장식용으로 갖다놓은 것이오. 형
제가 알고 있는 글자는 전부  합쳐도 열 자가 되지 못하오. 위소보라는 
내 자신의 이름 석 자만 해도 함께 쓴다면 어찌되었든 알아보지만 따로 
때어놓는다면 알 수가 없다오. 그렇기 때문에 책이라고 하면 나는 그저 
눈뜬 장님이외다.]

조양동은 껄껄 웃으며  다시 마음이 느긋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젊은 도통이 성격이  매우 솔직하고 시원하며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위 대인, 소장이  먼젓번 위엄을 거역한 데 대해서  너무 탓하지 말아 
주십시오.]

위소보는 웃었다.

[어찌 탓하겠소? 그대와 나는  형제로 칭호하도록 합시다. 그대가 나이
가 더 많으니 나는 그대를 노형이라  부르고 그대는 나를 위 형제라 부
르도록 하십시다.]

조양동은 재빨리 일어나 인사를 하고 말했다.

[도통 대인께서는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그것은 소인의 수명을 단축시키
는 일입니다.]
[어서 앉으시오. 나는 그저 운이 좋아 우연히 황상의 마음에 드는 일을 
몇 가지 했을 뿐이오. 그대는 내가  정말 무슨 재간이 있는 줄 아시오? 
내가 이 벼슬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나는 정말 부끄럽게 생각하오. 조
형이 칼과 창으로 피땀을 흘려  세운 공로가 진짜지, 나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것이오.]

조양동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위 대인, 저는 조야한 사람입니다.  그대에게 어떤 일이 있다 하면 아
무쪼록 분부를 내려 주십시오. 소장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목
숨을 걸고 해치우겠습니다. 설사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노
력하겠습니다.]

위소보는 흐뭇해 했다.

[나에게도 뭐 별다른 일이 있는  것은 아니오. 그저 지난번 천진위에서 
조형을 만났을 때 조형의 모습이  당당하고 재주가 있어 보여 인재라고 
여긴 것이오.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아첨을 떨었지만 유독 조형만은 내 
체면을 세워 주려고 하지 않았소.]

조양동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장은 거친  무인이라 상관을 추켜올리는 데  능하지 못합니다. 결코 
일부러 흠차대신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탓하지  않았소.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대를  찾지도 않았을 것이
오. 나는 무릇 재간이 없는  사람들은 아첨을 떨어서 벼슬이 오르고 재
물을 긁어모을 수 있기를 바라고,  아첨을 떨 줄 모르는 사람들은 반드
시 어떤 재간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소.]
[위 대인께서 하시는 말씀은 정말 시원시원하기 짝이 없습니다. 소장은 
재간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허풍을 치고 아첨을 떠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민답니다. 그리하여  상관에게 죄를 짓고 동료들과 언쟁
을 벌여 벼슬이 오르지 않았는데 이  모두 저의 황소 같은 고집 때문이
죠.]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가 아첨을 떨지 않는 것을 보면 반드시 재간이 있을 것이오.]

조양동은 입을 벌리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를 낳으신 자
는 부모이지만 정말로 나를 아는 사람은 위 대인이라고 느껴졌다. 위소
보는 서재에서 주석을 베풀도록 분부했다. 두 사람은 대작을 하면서 환
담을 나누었다. 조양동은 자기의  내력을 말했는데 그는 협서성 사람이
었고 군대 출신으로, 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등 공을 세워 부장에 올랐다고  했다. 위소보는 그가 전쟁에 능한 것을 
알고 무척 기뻤다.
(내가 과연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았구나.)
그는 즉시 군사를 거느리고 산 위를 공격하는 방법을 물었다. 조양동은 
병서를 읽지 않았으나 전쟁터의 오랜  경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위
소보가 묻는 말을  듣고 즉시 자기의 재간을  시험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많은 설명을 하면서 한창 흥이 나 서가에 꽂혀있는 사서오경 등의 
책을 한권 한권 옮겨서  산봉우리와 산골짜기, 그리고 냇물이나 도로의 
형태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 어느 곳에다 매
복을 하고, 어느 곳에서 공격을  하는척 가장하고, 어느 곳에서는 어떻
게 가로막고 나서며, 어떤 곳에서 돌격을 하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것은  쌍방의 병력이 대등했을 때의  전법이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위소보는 물었다.

[만약 적에게는 천여 명이 있고  우리에게는 오천 명의 병마가 있을 때 
어떻게 공격해야 반드시 승리할 수 있겠소?]
[싸움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것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병력이 적보다 몇 배 더 많을  때 만약 소장이 이끌고 싸운다면 그야말
로 필승입니다. 적을  모조리 사로잡아 한 사람도  빠져 나가지 않도록 
합니다.]

위소보는 하인에게 수천 문의 동전을 가져오라고 해서 동전으로 병마를 
삼았다. 그리고  조양동에게 진법을 펼쳐 보도록  했다. 위소보는 그의 
말을 마음속에 기억한 후 그날 밤 그를 백작부에서 머물도록 조처했다.
그 이튿날 강희를 만나러 가서  서재에다가 똑같이 진을 쳐 보였다. 위
소보는 감히 함부로 서재의 책을 움직일 수 없어 조잡한 기구들을 가지
고 비슷한 규모를 만들어 보였을 뿐이었다.
강희는 잠시 동안 생각해 보더니 물었다.

[이 방법은 누가 그대에게 가르쳐준 것이지?]

위소보는 속이지 않고 조양동의  일을 이야기했다. 강희는 명주가 밤을 
도와 스무 명이나 되는 털보  군관들을 천진에서 불러와 그에게 선택하
도록 했다는 말을 듣고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조양동에게 재간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가?]

위소보는 털보가 아첨을 하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은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지난번 황상께서 소신을 천진으로 보냈을 때 저는 털보가 군사를 이끌
고 조련을  익히는 것이 퍽이나 흘륭하다고  생각하고 언젠가 오삼계를 
상대로 군사를 사용하게 되면 이 털보가  대단한 인재가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느꼈습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오삼계를 상대하겠다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니, 그
것 정말 장한 노릇일세. 조정의 그 늙은이들은, 그저 어떻게 하면 오삼
계에게 빌붙을까 하는 것만 염두에 두고 어떻게 뇌물을 받아 낼까 하는 
점에만 신경을 쓰고 있단 말이야. 그 조양동은 지금 부장이라고 했으니 
그대는 돌아가서 그에게 약속하게.  그의 벼슬이 오르도록 천거를 하겠
다고 하란 말일세. 그러면 내가  적절히 성지를 내려 그를 총병으로 올
려 그로 하여금 그대에게 빛을 지도록 하고 이후 진심으로 그대의 일을 
도와 처리하도록 만들겠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황상께서 신하를 돌보심에 있어서 정말 알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는 백작부로 돌아와서 조양동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며칠이 지
나자 병부에서는 과연 빙장(憑狀)을 보내 왔는데 조양동을 총병으로 올
리며 도통 위소보로 하여금 조양동을 지휘토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조양동은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는 속으로 이 젊은 상사를 따른다면 아
첨을 떨지 않아도  벼슬이 무척 빠르게 오를 것이니  이는 실로 인생에 
있어서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다.

이 며칠 동안  조정 안의 대신들은 세 번왕이  성지를 받들어 번왕에서 
물러나느냐 아니면 군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느냐 하는 소식에 귀기울
이며 모두들 속으로 불안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어느 날 위소보가 조양
동과 함께 백작부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누가 뵙기를 청했다. 알
고 보니 바로 부마 오응웅이 자기  집으로 와서 주연을 함께 하자는 청
이었다.
손님을 청하러 온 그 심복은 말했다.

[부마께서는 오랫동안 위 대인을  뵙지 못해 매우 그리워하며 아무쪼록 
위 대인께서 얼굴을 보여  주시기를 기다리십니다. 부마께서는 위 대인
이 중매를 서 주셨는데도 아직 술 한턱을 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이제 부마 나으리는 유명무실한데 뭣하러 중매쟁이에게 사의를 표한다
는 것일까? 하지만 사의를 표하려 한다면 너희들 오가는 나에게 한잔의 
술을 사는 것으로 끝낼 수는 없을  데니 한번 가 보는 것도 좋겠지. 그 
바람에 돈이나 잔뜩 생긴다면 나쁠 것도 없지.)
즉시 그는  조양동과 효기영의 친위병들을 데리고  부마의 저택으로 갔
다. 오응웅과 건녕 공주는 혼례를 올린 이후 저택을 하사받았기 때문에 
먼젓번 잠시 거처하던 상황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오응웅은 몇 명의 군관들을 데리고  나와 대문에서 그를 영접하며 말했
다.

[위 대인, 우리들은 한집안의 형제와 다름없지 않소? 오늘 모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또 그렇다고  외부의 손님도 없답니다. 지금 운
남에서 몇 분의 친구들이 왔는데 그들로 하여금 조 총병을 상대로 술을 
마시게 하면 될 것이외다.]

몇 명의 군관들은 서로 통성명을  하고 소개를 받게 되었다. 수염을 기
르고 겉모양이 위풍당당한 사람은 바로 운남의 제독 장용(張勇)이었다. 
다른 두 사람은 부장이었는데 매우  다부지게 생긴 사람의 이름은 왕진
보(王進寶)였고, 온화하고  공손하게 생긴 사람의  이름은 손사극(孫思
克)이라고 했다. 위소보는 처음 보는 왕진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왕형, 그대 이름에도 보 자가 들어  있고 내 이름에도 보 자가들어 있
소. 하지만 그대는 대보(大寶)이고 나는 소보(小寶)요. 우리 두 형제가 
그야말로 보물 한 쌍이니 돈을 땄으면 땄지 잃지는 않겠구려.]

운남의 세 장수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위소보의 성질이 활달한 것을 
보고 모두 좋게 생각했다. 위소보는 장용에게 말했다.

[장형, 지난번 형제가  운남에 갔을 때 어찌하여 세  분을 만나지 못했
소?]

장용은 말했다.

[그때 왕야께서는 마침 소장들 세 사람을 내보내 각 지방을 순찰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남에서 위 대인을 시중들지 못했지요.]
[아! 무슨 대인이고 소장이오? 그러지 말고 시원스럽게 나는 그대를 장
형이라 부르고 그대는 나를 위 형제라고 부르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형제들끼리  서로 잘 지내는 것이고 만난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겠소?]

장용은 웃었다.

[위 대인께서는 그와 같이 말씀하시지만 저희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
니까?]

사람들이 웃으며 대청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집안 사람들이 차를 날
라왔다. 다른 하인이 다가와 오응웅에게 말했다.

[공주께서는 부마에게 위 대인을  모시고 들어와 뵙도록 하라고 하셨습
니다.]

위소보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공주를 만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옛날 그녀와 함께 운남으로  가는 동안 감미롭던 정경을 상기하
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그들은 신혼부부처럼 행세하지 않았던가? 그
런 일들을 떠올리자 그만 피가 끓어오르며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오
응웅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공주는 종종 우리의 인연은 위  대인께서 만들어 준 것이니 반드시 크
게 한턱내어 사의를 표해야 한다고 하셨소이다.]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장용 등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편히 앉아 계시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위소보를 데리고 내당으로 들어갔다. 대청을 지나 한 칸의 상방
에 이르자 오응웅은  손을 뒤로 돌려 문을 닫고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 대인, 이번 일은 반드시 그대가 도와 줘야 하겠소이다.]

의소보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생각했다.
(고자가 되어 공주에게 남편 노릇을 할 수 없으니까 나보고 좀 도와 달
라는 것인가?)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건....이건....여간 겸연쩍은 일이 아니오.]

오응웅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만약 위 대인이 의리로 도움의  손길을 뻗쳐서 이 다급한 어려움을 풀
어 주지 않는다민 그 누구도 그와 같은 능력이 없을 것이외다.]

(틀림없이 공주가  그를 몰아세워 나에게 부탁을  하도록 한 것일게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나에게 반드시  도와 달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은 
안 된다고 하겠는가?)
오응웅은 위소보의 안색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그가 도움의 손길을 뻗
쳐 주려고 하지 않는 줄 알고 말했다.

[이 일에 대해서 나 역시 매우 처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소이다. 
이 일이 성공하면 부왕과 형제는 위 대인이 우리에게 베푼 호의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어째서 오삼계마저도 나에게 고마워한다는  것인가? 아, 그렇구나. 오
삼계는 손자가 없으니까 나에게 그를  도와 손자를 태어나게 해 달라는 
것이겠군. 그러나 손자를 낳고 못 낳는 것은 그 누구도 정확을 기할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위소보는 말했다.

[부마 나으리, 이 일은 자신이 없소이다. 왕야와 그대가 미리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만약 해내지 못하면 미안한 노릇이 아니겠소?]
[상관없소이다. 위 대인께서 그저 힘만  써 주신다면 우리 부자는 똑같
이 고맙게 생각할 것이며 공주 역시  고마워 어쩔 줄 모르게 될 것이외
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대가 나에게 힘을 쓰라고 하는데 한번 써봅시다.]

그는 다시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러나 성공 여부를 제쳐 두고  나는 반드시 입을 꼭 다물겠으니 왕야
와 부마 나리께서는 백이십 번이라도 안심하십시오.]
[그거야 물론이죠. 누가 감히 조금이라도 누설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
찌되었든 위 대인께서 도와 주셔서 일이 빨리 성사될수록 좋습니다.]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겠소?]

(아이쿠! 큰일났다. 내가 그를 도와  아들을 낳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그들 부자 두  사람이 반란을 일으키면 그들 온  가족이 몰살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내 아들마저도 단칼에  참수형을 받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다시 생각했다.
(소황제는 건녕 공주까지 죽이지는  않겠지. 공주의 아들이라면 자연히 
이런저런 면을 봐서 용서하실 수도 있겠지.)
오응웅은 그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펴졌다  하는 것을 보고 한걸음 나서
며 나직이 말했다.

[부왕을 번왕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일은 아직 운남에 전해지지 않았소
이다. 장제독 일행도 모르고 있소.  만약에 위 도통이 서둘러 황상에게 
말씀을 드려 부왕을 번왕에서  물러나도록 하겠다는 명령을 거두어들이
고 육백리가급문서(六百里加急文書)로 운남으로  달리면 부왕이 번왕에
서 물러나도 좋다는 유시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오.]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

[그대는....그대의 부왕이 번왕에서  물러나라고 하는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그렇소. 지금 그보다 큰일이 어디  있소? 황상은 위 대인의 말은 그야
말로 어떤 말이라도 듣는 편이  아니오? 그러니 위 대인이 나서야 기울
어지는 대세를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이외다.]

(나는 완전히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정말 웃긴다.)
그는 참을 수 없어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오응웅은 아연해졌다.

[위 대인께서는 어쩨서 웃으시오? 내가 말을 잘못했소?]

위소보는 재빨리 말했다.

[아니외다. 아니외다. 미안하오. 나는 갑자기 다른 우스꽝스런 일이 생
각나서 웃었소이다.]

오응웅은 얼굴에 노기를 띠고 이를 갈았다.
(지금은 네가 기고만장하도록 놔두고 있지만 부왕이 파죽지세로 북경으
로 공격해 올 때 네 녀석을 붙잡아서 천갈래 만갈래로 죽이지 않는다면 
나는 성을 갈 것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부마 나리, 내일 아침 일찍이 나는 긍으로 들어가 황상을 뵈옵고 평서
왕은 황상의  존친(尊親)이니 가관진작을 시키지는  않는다해도 존친의 
작위를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야말로 그것은 공주에게 미안한 
노릇이라고 말씀을 드리겠소이다.]

오응웅은 무척 기뻐했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위 대인께서는  정말 머리가 빨리 돌아가십니다. 
일시삼각에 마땅한  이유까지 생각해 내셨군요.  모든 것을 부탁드립니
다. 자, 그러면 우리는 공주를 뵈러 가도록 하지요.]

그는 위소보를 데리고 공주의 방 밖에서 뵙기를 청했다. 공주의 방에서 
궁녀가 나오더니 위소보에게 방  옆의 화청(花廳)에서 기다리라는 분부
를 내렸다. 얼마 후 공주가 화청에 이르러 큰소리로 호통을 내질렀다.

[소계자,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나를 찾아와 주지 않다니, 죽고 
싶은가? 빨리 이리 굴러오지 못하겠어?]

위소보는 인사를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공주께서는 그 동안 옥체만강하셨습니까? 소계자는 매일같이 공주님을 
생각했습니다만 황상께서 저를 공무로  파견했기 때문에 나찰국까지 갔
다가 며칠 전에야 겨우 돌아왔습니다.]

공주는 눈가를 붉히며 말했다.

[그대가 매일같이 나를 생각했다고? 엉터리 소리. 나는....]

그러더니 그녀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위소보는 공주의 얼굴이 야위
었으며 신색이 초췌해진 것을 보고  그녀가 오응웅과 혼례를 올린 이후 
외롭게 지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응웅이라는 녀석은 태감인데 태감에게 시집을 갔으니 즐거움이 있을 
수 없겠지.)
공주가 그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옛날의 정이 끓어올라 
측은해지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공주께서 황상을  염려하시고 황상께서도 공주를  염려하고 계십니다. 
며칠 후 공주를 궁으로 불러들여서  남매의 정을 나누도록 하겠다는 말
씀이 계셨습니다.]

이것은 그가 거짓으로  성지를 내린 것이었다. 강희는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건녕 공주는 이 몇 달 동안 부마의 저택에서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위소보의 그 말을 듣자 매우 기
뻤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대가 황제 오라버니에게  내일 내가 그를 보러 가
겠다고 전해줘요.]
[좋습니다. 부마 나리께서 한 가지  일을 저에게 부탁하여 내일 황상께 
어쭈도록 하셨는데 나는 그때 황상께  청하여 공주를 궁 안으로 모시고 
오라고 말씀올리지요.]

오응웅 역시 기뻐서 말했다.

[공주가 옆에서 도우면 황상께서는 반박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흥! 나는 그저 황제 오라버니와  일상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이지, 그대를 도와 국가대사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오응웅은 웃으며 말했다.

[좋소.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하시오.]



第96. 말괄량이 건녕 공주


공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웃었다.

[소게자, 그대를 오랫동안  볼 수 없었는데 그 사이에  키가 많이 컸군
요. 소문에 들으니 그대는 나찰국에서 도깨비 같은 아가씨와 사귀게 되
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위소보는 웃었다.

[그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벌안간 철썩, 하는 소리가 나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느덧 공주에게 
따귀를 얻어맞은 것이다.

[아이쿠!]

그는 펄쩍 뛰었다. 공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솔직하지 못하군요. 감히 나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그녀는 다시 손을 들고 일  장을 후려치려고 했다. 위소보는 급히 고개
를 돌려 피했다. 공주는 오응웅에게 말했다.

[나는 소계자에게 심문할  일이 있으니 그대는 이곳에  더 있을 필요가 
없어요.]
[좋소. 나는 밖으로 나가서 무관들을 상대로 술을 마시고 있겠소.]

그는 위소보가 얻어맞는 꼴을 자신이  본다는 것이 위소보의 체면상 좋
지 않다고 생각되어 화청에서  물러났다. 공주는 손을 뻗치더니 위소보
의 귀를 비틀어 잡고는 호통을 내질렀다.

[이 죽일 꼬마야! 너는 나를 잊었지?]

그녀는 힘주어 비틀었다. 위소보는 아파서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재빨리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나는 이렇게 그대를 보러 오지 않았소?]

공주는 다리를 들어 그의 배를 한번 걷어차더니 욕을 했다.

[이 양심도 없는 것! 내가 그대를  차 죽이지 못할 줄 알고? 내가 만약 
그대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대는 삼 년이  더 지난다 해도 나를 보러 오
지 않았을걸.]

위소보는 화청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는 손을 뻗쳐 그녀를 껴안고 나
직이 말했다.

[손짓 발짓은 그만 하시오. 내일  그대와 황궁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
도록 하겠소.]

공주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거예요?]

그녀는 그의 이마에 팍, 하고 꿀밤을 먹였다. 위소보는 그녀의 두 손을 
힘주어 잡고 말했다.

[나는 쌍용창주(雙龍愴珠)라는 일초를 펼치겠소.]

공주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물러났다. 위소보가 말했다.

[이곳에서 우리가 다정하게 군다면 부마 나리의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니 
내일 궁에서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공주는 두 뺨을 붉혔다.

[그가 무엇을 의심한다는 거예요?]

그녀는 그를 곱게 흘겨보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앙증스러운 꼬마야, 빨리 꺼지기나 하시지!]

위소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청으로  돌아왔다. 오응웅은 네 명의 무
장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조양동과 왕진보는 다투고 있었는지 두 
사람 모두 얼굴이 시뻘개져 있었고 음성도 높았다. 두 사람은 위소보가 
나타난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위소보는 웃으며 물었다.

[두 분은 무엇 때문에 다투시오? 나에게 이야기해 주면 안 되겠소?]

장용이 말했다.

[우리들은 마필을 논하고 있었지요. 왕  부장은 말을 보는 눈이 독특해
서 그가 선택한 말은 틀림없이  좋은 말입니다. 왕 부장은 운남의 말이 
좋다고 칭찬했지요. 조 총병은 그것을 믿지 않고 사천성과 운남에서 나
는 말은 다리가 짧아서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왕 부
장은 사천성이나  운남성에서 나는 말은 지구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십 
리 안에서는 다른 말보다 못하나  달리면 달릴수록 기운을 내게 된다고 
말했지요.]
[그렇소! 이  형제에게 몇 필의 말이  있는데 왕 부장이  잘 좀 봐주시
죠.]

위소보는 친위병에게 백작부로 돌아가서  마구간의 말들을 끌고 오도록 
했다.

[위 도통의  좌기(坐騎)는 강친왕이 선물한  것으로써 유명한 대완양구
(大宛良駒)이며 옥화총이라고 하지 않소?  우리 운남의 말과 어찌 비교
할 수 있겠소?]

오응웅의 말에 이어 왕진보는 말했다.

[위 대인의 말은 물론 좋은 말이지요. 대완에서 좋은 말이 많이 난다는 
것을 비직 역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직이  감숙성과 협서성에 있을 
때 적지 않은 대완양구를 타본  적이 있지요. 짧은 거리에서 독주를 할 
때에는 매우 빨라 어떤 말도 견줄 수 없답니다.]

조양동은 말했다.

[그렇다면 장거리를  달려갈 경우엔 어떻게 되오?  설마 대완에서 나는 
말이 운남에서 나는 말보다 못하단 말이오?]

왕진보는 말했다.

[운남 말은 본래 뛰어나지 못하지요.  하지만 지구력과 버티는 힘이 뛰
어나답니다. 비직은 몇 년 동안 운남성 북쪽에서 말을 기르며 사천성에
서 나는 말과 운남에서 나는 말을 교배시키게 되었는데 그 새로운 종자
의 말은 더욱 뛰어나지요.]

조양동이 큰소리를 쳤다.

[노형, 그것은 문외한의 말이외다. 말은 언제나 순종을 따지는 것이오. 
순종일수록 더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잡종이 오히려 좋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소이다.]

왕진보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말했다.

[조 총병, 나는 잡종말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오. 마필은 용
도에 따라 다르오. 어떤 것은 공격하여 적진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하고 
어떤 것은 짐을 싣는 데 사용하는 것이오. 그리고 군마(軍馬)를 보아도 
크게 다르오. 어떤  것은 백리마이고 어떤 것은  천리마인데 긴 거리와 
짧은 거리에 따라서 달라진다오.]
[흥! 잡종을 좋아하니 놀랍군!]

조양동의 말을 듣고 왕진보는 더욱 화를 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대는 지금  나보고 잡종이라고 욕하는 것이요?  그렇게 더러운 말을 
함부로 해도 되는 거요?]
[나는 말을 지칭한 것이지 사람을 말한 건 아니외다. 종자가 순종이 아
니라는 것에 대해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함부로 성질을 부릴 것까지는 
없지 않소?]
[이곳은 부마부의 저택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흥흥!]
[흥흥,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그대는 나와 손을 써서 싸우겠다는 것
이오?]

장용이 말렸다.

[두 분은 처음 만난 사이인데  어째서 짐승들의 일을 가지고 화를 내시
오. 자자자, 내가 두 분을 모시고  한잔낼 테니 서로 다투지 말도록 합
시다.]

그는 제독으로 계급이 조양동이나  왕진보보다 높았다. 두 사람은 그의 
체면을 섕각해 함께 술을 마셨지만 서로를 노려볼 뿐, 말이 없었다. 만
약 상관이 자리에 있지 않다면 당장에 싸움을 할 것만 같았다.
얼마 후 친위병과 마부가 좌기를 끌고 도달했다. 사람들은 함께 마구간
으로 가서 말을 살피게 되었다. 왕진보는 정말 말을 잘 감별했다. 첫눈
에 그는 모든 말들의 장점과 결점을 말했으며 심지어 그 성질까지도 칠
팔 할 정도 알아맞혔다.
위 백작부의 마부들은 모두 탄복했으며 왕 부장의 안력(眼力)이 뛰어나
다고 크게 칭찬했다. 마지막으로 위소보가 타고 다니는 말 옥화총을 보
게 되었다. 이 말은 다리가  길고 통통해서 겉모양이 그럴듯했다. 전신
의 하얀 털은 그야말로 연지를 찍어  놓은 듯 윤기가 흘러 아름답기 이
를 데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칭찬했으나 왕진보는 아무 말도 하지 않
고 한참 동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 말은 본래 매우 좋은 말이었으나 애석하게도 잘못 길렀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째서 잘못 길렀다는 것이오? 가르침을 받고 싶구려.]

왕진보는 말했다.

[위 대인의 이 말은 그야말로 천하에서 보기 드문 준마입니다. 이런 좋
은 말은 매일 타고 십리 길은  빨리 달리고 수십리 길은 천천히 달리도
록 하는 등  단련을 시킬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위 대인께서는 너무나 
아까워해서 말을 제대로 타지 않으셨습니다. 이 짐승은 너무나 편한 나
날을 보내며 일 년에 한두 번도 제대로 달리지 못했습니다. 아! 애석합
니다. 애석합니다! 그야말로 부잣집 귀한  자제가 총애를 너무 받는 바
람에 망치게 된 것과 같습니다.]

오응웅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변해서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위소
보는 이 같은 광경을 보고 왕진보의 마지막 몇 마디가 오응웅의 비위를 
거슬린 사실을 알고 생각했다.
(이 기회에 이들을 이간질시켜  운남의 장수들이 화목하지 못하도록 만
들어야겠다.)
그는 말했다.

[왕 부장의 말은  아마도 반밖에 맞지 않는 것  같구려. 부잣집의 귀한 
자제도 재간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있소이다. 예를  들자면 오 부마 
나으리는 그대들 왕야의 세자로서 어릴  적부터 금 밥그릇에 밥을 담아 
먹고 옥그릇에 국을 담아 마셔 왔지만 망친 일은 조금도 없지 않소?]

왕진보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재빨리 말했다.

[예, 왕야의 세자는  물론 다릅니다. 비직은 결코  부마 나으리를 두고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조양동은 냉랭히 말했다.

[그대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야.]
[조 총병! 그대는 어째서 자꾸 나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려고 하는 것
이오? 이 형제는 그대에게 잘못한 것이 없소.]

위소보는 웃었다.

[좋소, 좋아. 그까짓  사소한 일 때문에 서로의  감정을 상해서야 되겠
소? 무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조정의 나이 젊은 대신들을 업신
여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오.]
[도통대인께 말씀드립니다. 비직은 감히  도통대인을 업신여긴 적이 없
습니다.]

왕진보의 말에 조양동이 대꾸했다.

[그대는 부마 나으리를 업신여겼겠지.]

왕진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 일은 없소.]

위소보가 말했다.

[왕 부장, 그대가 키운 좋은 말들은 애석하게 모두 운남에 남겨 두었구
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들도 한번  구경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
오.]
[제가 키운 말들은....예, 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무엇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일까?)
조양동이 말했다.

[어찌되었든 왕 부장의 말들은 모두  운남에 있어 대질할 수가 없는 것
이 아니겠습니까? 위 도통, 소장은 관외에서 수백 필의 좋은 말들을 키
운 적이 있습니다.  그 말들은 낮에 삼천 리를  가고 밤중에 이천 리를 
갔었지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너무 멀리  있어서 도통대인께서 구경을 
하실 수 없군요.]

사람들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모두 다 그가 일부러 왕진보를 비웃는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왕진보는 치미는 울화에 안색이 시퍼래졌다. 그
는 왼쪽의 마구간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말했다.

[저 수십 필의  말들은 바로 이번에 내가 운남에서  끌고 온 것이외다. 
조 총병, 그대가 열 필의 말을  선택하고 내가 키운 저 말들 가운데 열 
필을 아무렇게나 뽑아서 어느 말들의  발걸음이 빠른가 시합을 시켜 보
도록 합시다.]

조양동은 운남성의 말들이 비쩍 마르고  털이 벗겨진 데다 가죽이 메말
라 있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이 따위 말들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는 말했다.

[말은 꽤 많지만 약간 폐병기가 있는 모양이군. 위 도통 저택에서 아무
렇게나 끌고 온 말이라 해도 왕 부장이 친히 키웠다는 그 보배 같은 말
은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오.]

위소보는 웃었다.

[모두들 서로 다투어  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오.  부마 나으리, 우리 
각기 열 필의 말을 뽑아서 시합을  가지기 전에 쌍방이 내기를 걸면 어
떻겠소?]

오응웅은 말했다.

[위 도통의 대완양구를 운남의 작은  말들이 어떻게 뒤쫓을 수 있겠소. 
시합할 것 없소이다. 당연히 우리가 지는 거지.]

위소보는 왕진보가  시무룩하니 얼굴 가득히 승복할  수 없다는 표정을 
띤 것을 보고 말했다.

[부마 나으리께서 졌음을 시인한다 해도 왕 부장은 승복하지 않는구려. 
이렇게 합시다. 내가 만 냥의 은자를 걸 터이니 부마 나으리도 만 냥의 
은자를 걸고 말들을 바로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달리게 합시다. 그래
서 어느 쪽이든 여섯 번을 이기게 된다면 그 이후는 더 비교할 것도 없
겠지요. 어떻소?]

오응웅은 계속 사양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
다.
(이 녀석은 나이가 젊어 승부욕이 강하다.  내가 일부러 져 주어 이 녀
석이 기뻐하도록 해야겠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위 대인, 그대가  지게 된다 해도 화는 내지 마
시오.]

위소보는 웃었다.

[만약에 이길 경우 멋지게 행동하고  지게 되면 훌훌 털어 버려야지 어
찌 화를 내겠소?]

힐끗 보니, 왕진보의 두 눈에 기쁜 빛이 완연했다.
(아이쿠! 저 왕  부장의 표정을 보니 자신이 대단한  것 같다. 혹시 이 
폐병쟁이 같은 말들이 정말 지구력이 대단한 것이 아닐까? 안 되지, 안 
돼. 반드시 수작을 부려 봐야겠다.)
그는 한평생 도박을 하면서 수작 부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이번 시합에
서 반드시 이긴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나쁜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오늘 당장 시합을 가지면 수작을  부릴 여유가 없다고 생각되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왕 내기를 걸고  시합을 한다면 나는 좋은 말  열 필을 뽑아 와야겠
소. 내일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떻겠소?]

오응웅은 시합에서 져 주려고 작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시합을 하
나 내일 시합을 하나 관계가  없어 승낙을 했다. 위소보는 부마의 저택
에서 술을 먹고 창극을 들었으며 다시는 말 시합에 관해 들먹이지 않았
다. 그러다 저녁 무렵이 되자  오응웅과 장용, 왕진보, 손사극 네 사람
을 자기 집으로 초청해서 술을 마시자고 했다. 오응웅이 기꺼이 응했으
므로 일행은 바로 위소보의 백작부로 가게 되었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실 때 위소보가 말했다.

[잠깐 실례하겠소. 형제는 가서 음식을 준비해야겠군요.]

오응웅은 웃었다.

[모두 한집안 사람인데 겸손해 할 것 없소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래도 귀한 손님이  왕림하셨는데 너무 초라한 꼴을  보일 수는 없지
요.]

그는 후당으로 들어가 총관에게  창극하는 사람들을 준비하도록 분부했
다. 그리고 백작부의 마구간 책임자를 불러서 그에게 삼백 냥의 은자를 
건네주며 말했다.

[나의 옥화총과 다른 말들이 아직도  부마 댁에 있으니 그대가 가서 끌
고 오고, 부마 댁의 마부들에게 술을 한턱 사서는 제기랄! 곤죽이 되도
록 마시게 하게나.]
[그런데 말에게 무엇을 먹여야 다리에  맥이 빠져서 달릴 때 기운이 없
게 될까? 하지만 죽여서는 안 돼.]

마구간 책임자는 의아해 하였다.

[백작 나으리께서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는지 모르겠군요. 분부를 내리
신다면 소인이 애써서 시헹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대에게는 말해도 상관이 없겠지. 부마에게 말들이 있는데 그것은 최
근에 운남에서 데리고 온 것이라더군. 그런데 그 말들의 지구력이 대단
히 좋다고 칭찬을 하길래 내일  우리 말과 시합을 하기로 했네. 우리가 
져서 창피를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부 책임자는 대뜸 알아차리고 웃었다.

[백작 나으리께서는 부마의 말에게 무엇을 먹여 내일 시합 때 우리들이 
이기도록 하자는 것입니까?]
[맞았네. 그대는 매우 총명하군. 내일  말 시합을 가질 때 내기를 걸기
로 하였으니, 이기면 그대에게 상금을  나눠 주기로 하지. 그러니 그대
는 살그머니 일을  처리하되 결코 부마 댁의 마부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되네. 이 삼백 냥의 은자는 가서  술을 사는 데 쓰도록 하고 도박을 하
거나 기녀집에 가든지 제기랄! 무슨  짓이든 해도 좋네. 그들을 어리벙
벙하게 만들어 놓고 약을 쓰는 거야.]
[안심하십시오, 나리. 절대 틀림없습니다. 소인이 가서 수십 근의 파두
(巴豆)를 사서 먹이에 섞어 오 부마의 말에게 먹이겠습니다. 그 말들은 
모두 밤새도록 설사를 하게 될 것이며  내일 시합 때는 거북이도 그 말
들보다 빠르게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즉시 대청으로 나가서 오응웅 등을 상대로 해서 술을 마셨다. 
그는 오응웅 등이 돌아가고 왕진보가 다시 말을 살피게 되었을 때 어떤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될까봐 은근히 접대하면서  끊임없이 술을 권했
다. 조양동은 주량이 대단해서  왕진보와 술 시합을 하였는데 심야까지 
마시자 위소보와 오응웅 등 네  사람은 모조리 술에 곯아떨어지고 말았
다.
이튿날 아침, 위소보는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배알했다. 강희는 웃음을 
가득 띄우고 무척 기분이 좋은 듯 이렇게 말했다.

[소계자, 그대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주지. 상가희와 경정층은 모두 조
서를 받고 번왕에서 물러나기로 했네. 일간 출발하여 서울로 오게 될걸
세.]
[황상께 축하드립니다. 상가희와 경정충 두 번왕이 조서를 받들게 됐다
면 오삼계라는 늙은 녀석이 한 손으로 손뼉을 쳐봤자....]

강희는 웃으며 위소보의 말을 받았다.

[고장난명(孤掌難嗚)이지.]
[맞습니다, 고장난명입니다. 우리는 그를 낙화유수처럼 때려부술 수 있
을 것입니다.]

강희는 웃었다.

[만약 그 역시 조서를 받들어 번왕에서 물러난다면?]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물론 좋은 일이지요. 그가 북경에  온다면 황상께서 그를 둥글게 만들
려 하면 그는 결코 납작해지지 못할 것이고, 황상께서 납작하게 만들고
자 하신다면 둥글게 되지 못하겠죠.]
[그대도 그만한 도리는 알고 있었구먼.]
[그때 그는  마치 용이  모래 벌판에  갇히고 호랑이가  평지로 떨어지
듯....]

거기까지 말한 그는 혓바닥을 내밀고  자기의 이마에 꿀밤을 한대 쥐어
박았다. 강희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호랑이가 평지에 들어서자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셈이지. 그
때 그가 감허 나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는 것은 물론, 그대에게도 꼼짝 
못하게 될 것이네.]

위소보는 말했다.

[예, 그거야말로 더없이 재미있는 노릇이 될 것 같습니다.]
[양주 층렬사를 세우게 할 글은 이미 내가 지어 놓았으며 한림학사에게 
정리해서 쓰라고 했으니,  그 글을 그대는 양주로  가져가 비석에 새겨 
두도록 하게. 좋은 날짜를 잡아서 출발하도록 하게.]
[예, 그런데 세 번왕이 모두 조서를 받들어 번왕의 직에서 물러나게 된
다 해도 충렬사는 여전히 세우시겠습니까?]
[오삼계가 조서를 받들어  행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
가? 더군다나 충렬의 일을 널리  알리고 칭찬하는 것은 본래 좋은 일이
네. 설사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해도 충렬사는 세워야 한다
네.]

위소보는 강희와 한담을 나누게 되자  건녕 공주가 보기를 원한다는 사
실을 이야기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태감에게 분부하여 건녕 공
주를 즉시 불러들이도록 했다.
강희는 기분이 무척 좋은  듯했다. 위소보에게 나찰국의 풍토와 인물에 
대해서 상세히 물었다. 당시  화창수가 어떻게 반란을 일으켰으며 소비
아 공주는  어떻게 난을 평정하고 대소  사황을 어떻게세웠는가를 물었
다. 한참 동안 이야기하고 있는데  공주가 서재에 이르렀다. 공주는 대
뜸 강희의 발치에 엎드려서 그의 다리를 얼싸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황제 오라버니! 나는 이제부터 궁에서  황제 오라버니를 모시고 살 거
예요. 다시는 나가지 않을래요.]

강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 부마가 너를 못살게 굴더냐?]
[그가 어찌 감히 그러겠어요. 그는....그는....]

그녀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강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그의 고환을 잘라 냈으니 그가  너의 남편 노릇을 할 수 없는 일
이다. 이것은 네 스스로 자초한 셈이 아니냐?)
그는 그녀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하고 달랬다.

[좋아, 좋아. 울지 말아라. 너는 나와 같이 밥을 먹자.]

황제가 식사를 하는 것은 일정한  시간이 없었으며, 그가 하고 싶을 때
에 언제든지 밥상을 차리게 할  수 있었다. 즉시 어선방의 태감이 수라
상을 차렸다. 위소보는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그는 비록 황제의 총애
를 받고 있었으나 함께 식사를 할 수는 없었다.
강희는 그에게 열몇 그릇의 찬을 내리고 태감을 시켜 그의 자작부로 보
내 집으로 돌아간 후에 먹도록 해주었다.
공주는 몇 잔의 술을 마시자 얼굴이 불그레졌으며 두 눈에 물기를 담고 
위소보를 힐끗 쳐다보았다. 황제  앞이라 위소보는 감히 무례한 행동을 
할 수가 없어 내내 공주의  시선과 맞닿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가슴이 
매우 두근거렸다.
(공주가 술을 마신 후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를 하여 황제가 알아차리
게 된다면 나의 이 머리통은 제대로 붙어 있지 못할 것이다.)
그는 성지를  받들어 공주를 호송하여 운남으로  데려간 것인데 공주를 
지켜 줘야 할 그가 사사로운 정을 맺게 되었으니 이 죄명이야말로 엄청
난 것이다. 그는 속으로 후회막급이었으며 황제에게 공주가 배알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소계자, 나에게 밥을 담아 줘요.]

그녀는 빈 밥그릇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너의 먹성은 팬찮은가 보구나.]
[황제 오라버니를 만나자 식욕이 당기네요.]

위소보는 밥을 담아서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들고 공주 앞의 탁자에 내
려놓았다. 공주는 왼손을 내려뜨리고  힘주어 그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위소보는 아팠으나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고 얼굴에 띄우고 있던 웃음
을 거둘 수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욕을 했다.
(이 죽일 갈보 같으니! 언젠가는 내가 너를 심하게 꼬집어 갚을데니 두
고 봐라.)
그가 욕을 다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머리가 뒤로 제쳐졌다. 바로 공주
가 등 뒤로 손을 뻗어 그의 땋은 머리를 힘주어 잡아당긴 것이다. 강희
도 그 광경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공주는 시집을 갔는데도 여전히 장난이 심하구나.]

공주는 위소보를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그는....그는....]

위소보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알 수가 없어 불안했다. 그러나 다행
히 공주는 그저 깔깔거리고 몇 번 웃더니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  황제 오라버니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지더군요. 저는 
궁 안에서는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운남에  갔다오는 동안 백성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오라버니가 황제가 된 이후 천하의 백성들이 태
평성대를 만나게 되었다고들 했어요. 그리고 저 녀석은 말이에요....]

그녀는 위소보를 흘겨보며 말했다.

[벼슬이 갈수록 높아지지 않아요? 그런데 오직 황제 오라버니의 누이동
생만 갈수록 팔자가 사납게 되는군요.]

강희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건녕  공주의 이 몇 마디는 그를 추켜세우
기 위해 한 말이었다.

[너는 시집간 몸으로 남편을 따라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냐? 오
응웅 그들 부자  두 사람이 순순히 말을 듣고  번왕에서 물러나 천하가 
태평해진다면 그의 벼슬을 올려 줄 것을 약속하마.]

공주는 작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가 오응웅이라는 녀석의 벼슬을 올리든 올리지않든 저와
는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 저는  황제 오라버니가 저의 벼슬을 올려 뒀
으면 좋겠어요.]
[너는 무슨 벼슬을 하고 싶으냐?]
[소계자는 나찰국의 공주가 무슨  섭정여왕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황제 
오라버니는 저를 대원수에 봉하셔서 오랑캐 나라를 치도록 해주세요.]

강희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여자가 어떻게 대원수가 되겠느냐?]
[옛날 번이화, 여태군(余太君), 목계영(穆桂英) 같은 여자는 모두 대원
수였어요. 그런데 어째서 그녀들은 대원수가 될 수 있고 저는 될 수 없
다는 거예요? 황제 오라버니, 저의 무예가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서로 견주어 보도록 해요.]

그녀는 싱글싱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강희는 웃으며 말했다.

[너는 책을 읽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소계자와  똑같이 학문이 없고 
그저 연극 이야기만 알고 있구나.  옛날에 여자가 원수가 된 적이 있었
던 것은 사실이지. 당태종  이세민의 누이는 평양(平陽) 공주라고 하는
데 그녀는 당태종을 도와 천하를 평정했지. 그녀가 원수였을 때 통솔하
던 한 떼의 군사를 낭자군(娘子軍)이라고 불렀으며 그녀가 군사를 주둔
시킨 관구(關口)는 낭자관(娘子關)이라고 했는데 대단히 무서웠지.]

공주는 손뼉을 쳤다.

[바로 그거예요!  황제 오라버니, 황제  오라버니는 이세민보다 뛰어나
요. 그러니까 저는 평양 공주의 흉내를 내도록 하겠어요. 소계자, 그대
는 무엇을  하고 싶지? 고력사(高力士)를 본뜨고  싶어? 아니면 위층현
(魏忠賢)을 본뜨고 싶어?]

강희는 껄껄 웃으며 연신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또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소계가의 태감 노릇은 가짜야. 더군
다나 고력사와 위충현은 모두 바보  황제의 태감들로 네가 그렇게 말하
는 것은 나를 욕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미안해요, 황제 오라비니. 너무 탓하지 마세요. 저는 몰랐어요.]

그녀는 소계자의  태감 노릇이 가짜라는 말을  생각하며 슬쩍 위소보를 
쳐다보았는데 마음속이 크게 설레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마땅히 태후에게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강희는 어리둥절해져서 속으로 생각했다.
(가짜 태후는 이미 진짜 태후로 바뀌었으며 너의 어머니는 궁에서 도망
쳤다.)
그는 이 누이동생을 귀여워했기 때문에  그녀가 창피한 꼴을 당하는 것
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말했다.

[태후께서는 이 며칠 동안 몸이 편찮으시니 그 어르신을 번거롭게 하지 
말고, 자녕궁 밖에서 큰절이나 하고 문안이나 올리도록 해라.]
[황제 오라버니, 그러면 저는 자녕궁으로 가 보겠어요. 나중에 다시 이
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소계자, 그대는 나를 따라 나와요.]

위소보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희는 곁눈질을 하며 방법을 강구
해서 공주를 저지하여 태후를 만나지 못하도록 하라는 뜻을 비췄다. 위
소보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공주를 모시고 자
녕궁으로 갔다. 위소보는 소태감에게 먼저 달려가서 자녕궁에 통보하도
록 했다. 아니나다를까 태후는  분부를 내리셨는데 몸이 불편하니 인사
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공주는 오랫동안 모친을 뵙지 못한 터
라 여간 그립지 않아 말했다.

[태후께서 몸이 편찮으시다면 더더욱 문안을 드려야지.]

그녀는 다짜고짜 태후의 침전으로 달려들어가려고 했다. 태감들과 궁녀
들이 어찌 그녀의 앞을 막을 수 있겠는가? 위소보는 다급해 졌다.

[전하, 태후 어르신께서는 감기가 들으셔서 찬바람을 쏘이시면 안 됩니
다.]

공주는 말했다.

[나는 천천히  들어가겠어요. 바람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어
요.]

그녀는 침전의 문을 열고 휘장을 들췄다. 그곳에는 비단 휘장이 드리워
져 있고 태후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는데, 네  명의 궁녀가 침대 앞에 
서 있었다. 공주는 나직이 말했다.

[태후, 딸이 태후께 인사를 올리러 왔어요.]

그녀는 무릎을 꿇고 가볍게 몇  번 큰절을 했다. 태후는 모기장 안에서 
음음, 하는 소리를 냈다.  공주가 침대가에 다가가서 손을 뻗쳐 휘장을 
들추려고 하자 한 명의 궁녀가 말했다.

[전하, 태후께서는 그 누가 와도 깨우지 말라는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공주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휘장을 살짝 들추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태후는 얼굴을 안쪽으로 하고 누워  있었는데 깊이 잠이 든 것 같았다. 
공주는 나직이 불렀다.

[태후마마.]

태후는 대답이 없었다. 공주는 어쩔 수 없어 휘장을 내려놓고 살그머니 
물러섰으나 마음이 쓰려 눈물을 흘렸다.  위소보는 그녀가 진상을 제대
로 알아보지 못한 것을 보고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고 말했다.

[공주께서는 이 북경에  살고 계시니 때때로 긍  안으로 들어와 문안을 
드릴 수 있겠지요. 태후께서 병이 완쾌되시면 이후 다시 자녕궁으로 오
도록 하시지요.]

공주는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끼고는 즉시 눈물을 닦고 말했다.

[내가 거처하던 곳이 어떤지 모르겠구나. 한번 가 봐야지.]

그녀는 옛 자기의 침궁 쪽으로  걸어갔다. 위소보는 그 뒤를 따를 수밖
에 없었다. 공주가 예전에 거처하던 건녕궁은 바로 자녕궁의 옆에 있어
서 삽시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공주가 시집간 후에도 태감과 궁녀들이  먼지를 털고 비질을 하며 지키
고 있었기 때문에 전과 다름이  없었다. 공주는 위소보가 침전의 문 옆
에 이르러 싱글벙글 웃기만 할  뿐, 들어오려는 눈치를 보이지 않자 얼
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 죽일 놈의 태감, 그대는 어째서 들어오지 않지?]

위소보는 웃었다.

[이 태감은 가짜이니 공주의 침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공주는 손을 뻗쳐 그의 귀를 붙잡고 호통을 쳤다.

[진짜 태감이라면 들어올 필요도  없다. 가짜니까 들어오라는 거야. 그
대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대의 개 같은 귀를 비틀어 놓겠어.]

공주는 힘주어  잡아당겨 그를 안으로 끌어들이고는  침실의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위소보는  놀라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끼며 나직이 
말했다.

[공주, 궁에서는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소이다. 나는....나는....이렇
게 되면 목이 잘리게 되오.]



第97章. 도망치는 오응웅


공주의 두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했다.

[위 백작 나으리, 저는 그대의  종이에요. 제가 그대의 시중을 들어 드
리겠어요.]

두 팔을 뻗치더니 그를 꼭 껴안았다. 위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안 돼. 안 돼요.]
[좋아요. 나는 황제 오라버니에게, 그대가 지난 번 나를 능욕하고 나를 
시켜서 오응웅 그 녀석을 고자로  만들도록 했는데 지금은 나를 아랑곳
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겠어요.]

그녀는 손을 뻗쳐 그의 사타구니를 어루만졌다. 위소보는 몸이 후끈 달
아올라 참지 못하고 그녀를  으스러져라 껴안고 뜨거운 정을 나누었다. 
한참 후에야 두 사람은 침전에서  나왔다. 공주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
고 말했다.

[황상께서 나찰국  공주의 일을 나에게  들려주라고 분부했는데 어째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예요?]
[소신은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이야기할  기운이 없어지고 말았습니
다.]
[그러면 다음에 다시  와서 요동에서 여우 요정을  잡던 일을 이야기해 
줘요.]

위소보는 곁눈질로 그녀를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소신은 더 말할 기운조차 없습니다.]

공주는 깔깔 웃더니  냅다 손을 들어 철썩, 하고  그의 따귀를 갈겼다. 
건녕궁의 태감과 궁녀들은 모두 옛날 사람들이라 평소 공주가 간드러지
면서도 거친 성격임을 알고 있는지라 그녀가 손을 써 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생각했다.
(공주는 시집을 갔는데도 옛날 성질을  조금도 바꾸지 못했구나. 위 백
작 나으리는 황상께서 가장 총애하는 대신인데 감히 그를 때리다니.)
두 사람은 서재로 돌아와 강희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날은 이미 어
두워져 있었다. 강희는  맞은편 탁자 위에 커다란  지도를 펴놓고 한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황제 오라버니, 태후의 몸이 불편해서 뵙지 못했어요. 며칠 후에 다시 
문안드리러 오겠어요.]

강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음에 황태후께서 너를 보려고 전갈을 할 때 다시 오려므나.]

그는 오른손으로 지도를 손가락질하며 위소보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귀주에서  운남으로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광서성으로 나왔
지. 그런데 어느 길이 가기가 더 쉽던가?]

그는 운남의 지세를 연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운남의 산은 매우 높아서  귀주에서 들어가든 광서에서 들어가든 모두 
험난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산길은 수레가 통과하지 못할 
정도였으며 공주는 가마를 타야 했고 소신은 말을 타야 했습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생각이 난 듯 태감에게 분부했다.

[병부거가사랑중(兵部車駕司郎中)을 불러 들여라.]

그리고 고개를 돌려 공주에게 말했다.

[너는 돌아가거라. 부마가 기다리겠다.]

공주는 조그만 입술을 뻐죽거리며 말했다.

[그는 저를 기다리지 않아요.]

그녀는 위소보와 몇 마디의 말이라도 더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황제가 
신하를 불러들이고 어떤  국사의 일에 질문할 일이 있는  것 같아 말했
다.

[황제 오라버니, 밤이 어두웠어요. 그런데도 나라의 큰일을 걱정하시는
군요. 옛날  부황께서도 황제 오라버니처럼  이토록 정무에 바쁘시지는 
않았어요.]

강희는 부황이  오대산에 외롭게 출가해 있음을  상기하고 속이 쓰라린 
것을 느꼈다.

[부황께서는 총명하고 지혜로우시다. 그분께서는 한 시진이면 할 수 있
는 일을 나는 세 시진은 해야 끝낼 수가 있구나.]
[모두에게 듣기로 황제 오라버니는 하늘이 내리신 똑똑한 사람으로, 천
고에 드물대요. 모두들 감히  황제 오라버니가 부황보다 뛰어나다는 소
리는 직접 하지 않았지만, 보기 드문 훌륭한 황제라고 했어요.]

강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중국 역대의 훌륭한 황제들은 많기도  하지. 요순우탕은 말할 것도 없
고 한문제(漢文帝), 한광무(漢光武), 당태종(唐太宗) 같은 명군은 정말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심을 금치 못하게 하지.]

공주는 강희가 말을 할 때 여전히  눈 한번 돌리지 않고 지도를 바라보
는 것을 보고, 위소보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위소보를 가리키다가 다
시 자기를 가리켰다. 그것은  위소보에게 수시로 자기를 찾아와 달라는 
뜻이었다. 위소보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공주는 강희에게 절을 하며 작별을  고했다. 잠시 후 강희는 고개를 들
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든 대포는 너무  무겁고 커서 산길로 운반할 수 없
을 것 같구나.]

위소보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곧 강희가 대포를 운남으로 가져가서 
오삼계를 공격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신은 멍청해서  그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좋기로는 
작은 포들을 많이 만들어 두 필의  말이 끌 수 있도록 한다면 운남으로 
들어가는 것이 한결 수윌해질 것입니다.]

강희는 말했다.

[산지(山地)에서 싸움을 하면 천군만마가  일제히 돌진할 수 없으니 보
병이 기마병들보다 더욱더 중요하네.]

얼마 후 병부거가사(兵部車駕司)에서 세  명의 만랑중(滿郎中)과 한 명
의 한랑중(漢郎中)이 왔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강희가 물었다.

[마필은 준비되었는가?]

병부거가사가 관리하는 것은 역마로 문서를 전달하고 말을 돌보는 일이
었다. 즉시 그들은 그 내용을  상세히 상소했으며, 이미 서역과 몽고에
서 얼마나 많은 말들을 구입했으며 관외에서 더 많은 마필들을 옮겨 왔
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미  팔만오천여 필의 좋은 말을 구해 놓
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해서 구입하여 기르고 있다고 했다.  강희는 무
척 기뻐하며 몇  마디 칭찬의 말을 했다. 네  명의 낭중은 큰절을 하며 
고맙다는 인사말을 했다. 위소보는 갑자기 입을 열고 말했다.

[황상, 소문에 들으니까 사천과 운남성의 말들은 관외나 서역의 말과는 
달리 몸집이 작으나 지구력이 있어  산길을 잘 탄다고 하는데 정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강희는 네 명의 낭중에게 물었다.

[그게 사실인가?]

한인 출신의 낭중이 대답했다.

[황상께 알립니다. 사천성과 운남성의 말은 참을성이 많고 무거운 짐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구력이 매우 강합니다. 산길을 가는 
데는 정말 좋지요. 하지만 평지에서 돌격을 하고 적진을 때려부수는 데 
있어서는 구마(口馬)와 서역마(西域馬)들에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그
렇기 때문에 군중에서는 사천성의 말이나 운남성의 말은 사용하지 않습
니다.]

강희는 위소보를 한번 쳐다보더니 낭중에게 물었다.

[혹시 우리가 사천성과  운남성의 말을 몇 필이나  가지고 있는지 아는
가?]

그 낭중은 말했다.

[황상께 알립니다. 사천성과 운남에  주둔하고 있는 군에서는 사천성의 
말과 운남성의 말이 많습니다만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드물답니다. 호
남에 주둔하고 있는 군에 오백여 필 정도가 있을 것입니다.]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 보게.]

그는 신하들에게 자신이 직접 운남성을 치려고 한다는 계획을 누설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네 명의 낭중이 물러간 후에야 위소보에게 
말했다.

[그대가 깨우쳐 줘서 천만다행이야. 내일 바로 성지를 내려서 사천성의 
총독으로 하여금 급히 서천성의  말들을 구입하도록 해야겠군. 이 일에 
관해서는 밖으로 말이 새어서는 안 되네.]

위소보는 갑자기 혜벌쭉 웃으며 매우 의기 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강희
는 물었다.

[왜 그러는가?]

위소보는 웃었다.

[오 부마에게 한 떼의 운남성 말들이 막 운남에서 옮겨져 왔습니다. 그
는 그 말들이 오랫동안 달리며  힘이 무척 좋다고 했습니다. 소신은 믿
을 수가 없어 그와 말  시합을 하기로 하고 내기를 걸었습니다. 사천말
이 정말 지구력이 있는지 나중에 시합을 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그와 한번 시합을  해보게. 그런데 어떻게 시합을 하
는 거지?]
[우리들은 모두 열 번을 겨루기로  했는데 먼저 여섯 번을 이기면 이긴 
것으로 정했죠.]
[열 번의 시합만으로는 운남성의 말이 좋은지 알아내기가 힘들걸? 그대
는 그들이 몇 필의 운남성 말을 가져왔는지 알고 있는가?]
[제가 보기에 그의  마구간에는 오륙십 필의 말이  있었으며 모두 새로 
옮겨 온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그와 대여섯 번을 겨루도록 하게. 먼길을 달릴 수 있
는가 없는가를 시험해 보려 한다면 산길을 달리게 하는 방법이 가장 좋
을걸세.]

그는 위소보의 얼굴이 약간 이상야릇한 것을 보고 말했다.

[제기랄! 못나게시리 왜 궁상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가? 만약 지게 된다
면 그 내기에 건 돈은 내가 대신 내줌세.]

위소보는 황제에게 오응웅의 마구간에다 이미  수작을 부려 놔 이번 시
합에서 자기가  십중팔구 이기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합을 하여 황제가 운남성의 말이 쓸모없는 말이
라고 단정하게 된다면 장래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을 할 때 큰일을 그르
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것은 결코 내기에 건 돈 때문이 아니라....]

강희는 갑자기 어, 하더니 말했다.

[운남의 말이 지구력이 있다면 오응웅이라는 그 녀석은 그토록 많은 운
남의 말을 북경으로 데리고 와서 무엇을 한다지?]

위소보는 웃었다.

[아마도 뽐내기 위해서겠지요. 그리고 자신의 운남 말을 자랑하고 싶었
기 때문일 겁니다.]

강희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틀렸네. 그....그 녀석은 도망치려는 것일세.]

위소보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도망을 쳐요?]
[그렇지.]

강희는 큰소리로 외쳤다.

[게 누구 없느냐?]

그리고 태감에게 분부했다.

[즉시 성지를 내려 아흡 개의 궁 문을 꼭 잠그고 아무도 성을 빠져나가
지 못하게 해라. 그리고 부마  오응웅을 궁으로 불러들여 짐이 그를 만
나야 한다고 전해라.]

몇 명의 태감들이 즉시 대답하고 나가서 성지를 전했다. 위소보는 얼굴
이 약간 변해서 물었다.

[황상, 오응웅이라는 녀석이 그토록 대담하게 도망을 치려고 한단 말씀
입니까?]

강희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아무쪼록 나의 짐작이 틀리기를 바라네. 그렇지 않다면 즉시 오삼계를 
상대로 군사를 일으켜야  하네. 그러나 우린 아직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단 말일세.]
[우리가 아직 준비를  하지 못했다면 오삼계 역시  준비를 다했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강희는 얼굴에 깊은 근심의 빛을 띠고 말했다.

[아닐세. 오삼계는 운남으로 가기도 전에  이미 군사를 모으고 말을 샀
으며 반란을 일으킬 작심을 했네. 그는  이미 십여 년 동안 그 일을 해 
왔지만 나는 겨우 이 년밖에 준비를 하지 못했단 말일세.]

위소보는 즉시 위로의 말을 했다.

[하지만 황상께서는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시니 일 년 준비로 오삼계가 
이십 년 준비한 것과 맞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강희는 발을 들어 그에게 발길질을 하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내가 그대에게 한 번 발길질을 하면 오삼계 그 늙은 녀석이 나에게 스
무 번 발길질을 하는 것과  맞먹을 수 있겠는가? 제기랄! 소계자, 그대
는 오삼계를 얕잡아 보지 말게.  그 늙은 녀석은 싸움에 있어서 용병술
을 잘 알고 있네. 이자성처럼 무서운 자도 그에게 지지 않았는가? 조정
에는 그의 적수가 될 만한 장군이 없네.]
[우리들은 많은  인원수로 이기는 것입니다. 황제께서  열 명의 장군을 
내보내 열 명이 그 한 사람을 공격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래도 능력 있는 대원수가 있어야  하네. 나의 수하에 서달이나 상우
춘, 혹은 목영 같은 장수가 있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황상께서 어가로 친정(親征)하신다면 서달이나 상우춘, 목영보다 뛰어
나실 겁니다. 당년 명태조가  진우량(陳友諒)을 공격할 때 역시 어가로 
참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대는 그저 아첨만 떠는군. 정말 똑똑하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알
아야 한다네.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을  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야. 나는 
한 번도 싸움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어찌 오삼계의 적수가 되겠는가? 수
십만의 병마를 한 번이라도  잘못 지휘하면 일패도지할 것일세. 명나라 
토목보(土木堡)의 변고만  해도 황제가 태감 왕진의  말을 믿고 어가로 
친정했다가 수십만의 대군이  멸망당하지 않았는가? 황제까지도 적에게 
잡혀갔었지.]

위소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말했다.

[황상, 소신은 가짜 태감입니다.]

강희는 껄껄 웃었다.

[그대는 두려워할 것 없네. 설사 그대가 진짜 태감이라고 해도 나는 명
나라 영종(英宗)과  같은 혼군이 아니니 어찌  그대가 터무니없는 짓을 
하도록 내버려두겠는가?]
[맞습니다, 맞습니다. 황상의 신기묘산은 대단하지요. 연극에서도 말하
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천리 밖이라고 하던가요.]

강희는 웃었다.

[그 말은 너무 어려워 그대에게 기르쳐 주지 않겠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태감이 와서 구문제독(九門提督)이 이
미 성지를 받들고  성문을 닫았다는 전갈을 했다.   강희가 안심하려는 
순간 다른 한 명의 태감이 곧이어 와서 상주했다.

[부마는 성 밖에 사냥을 하러 간 후 돌아오지 않았으며 성문은 이미 닫
혔으니 성을 나가 불러들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강희는 탁자를 한 번 내리치더니 벌떡 몸을 일으키며 부르짖었다.

[정말 떠났군.]

그는 물었다.

[건녕 공주는?]
[황상께 알립니다. 공주 전하께서는 아직도 궁 안에 계십니다.]

강희는 분노한 어조로 말했다.

[그 녀석은 부부의 정도 전혀 없구나.]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 소신이 가서  그 녀석을 잡아오겠습니다. 그는  오늘 소신과 말 
시합을 가지기로 했는데 갑자기 사냥을 나가다니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강희는 그 태감에게 물었다.

[부마는 언제쯤 성을 빠져나갔는가?]
[황상께 아룁니다. 소신이 부마 댁으로  가서 성지를 전할 때, 부마 댁
의 총관은 오늘 이른 아침 부마께서 성을 나서서 사냥을 갔다고 했습니
다.]

강희는 코웃음을 쳤다.

[이 녀석은 틀림없이 이른 아침 상가희와 경정층이 성지를 받들어 번왕
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의 아비가 즉시 반란을 일으
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재빨리 뺑소니를 친 것일세.]

그는 고개를 돌려 위소보에게 말했다.

[그가 떠난 지 이미 대여섯 시간이 되었으니 쫓아가지 못할 것일세. 그
는 운남에서 사십 필이나 되는  말들을 데려왔으니 말을 바꿔가며 곤명
으로 도망치고 있을 것일세.]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황상께선 정말 귀신처럼 일을 헤아리시는구나. 그가 운남의 말을 많이 
데려왔다는 말을 듣고 그가 뺑소니칠 것을 짐작하셨구나.)
그는 강희의 안색이 좋지 못한  것을 보고 함부로 아첨을 떨지 못했다. 
그러나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말했다.

[황상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어쩌면 그  녀석을 잡아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방법이 있는가?  터무니없는 소리! 만약에 운남의 말이 
정말 지구력이 강해서 이미 북경을 떠나 멀리 가서 옷을 바꾸어 입는다
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일세.]

위소보는 말을 관리하는 책임자가 오응웅의 운남 말들에게 파두를 먹였
는지 먹이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어  감히 황제 앞에서 큰소리를 칠 수
는 없었다.

[임금님의 녹을 먹게 된다면 충성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소신이 이대로 
쫓아가도록 하지요. 정말 쫓아갈 수  없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
니다만.]

강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는 붓을 들고 신속히 한 장의 유시를 써서 옥쇄를 꾹 눌러 찍고 구명
제독에 명하여 성문을 열어  위소보를 내보내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말
했다.

[그대는 효기영의 군사를 많이 데려가도록 하게. 오응웅이 만약에 항거
한다면 손을 써서 공격하도록 하게나.]

그는 군사를 움직일 수 있는 금부(金府)를 위소보에게 건네주었다.

[영을 받들겠습니다.]

그는 유시를 받들고 나는 듯 밖으로 달려나갔다. 공주는 궁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위소보가 재빠른 걸음으로 달려나오는 것을 보고 불렀
다.

[소계자, 뭐하는 거예요?]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야단났소! 그대의 지아비가 도망쳤소!]

그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더욱 빨리 달렸다. 공주는 욕을 했다.

[이 죽일 놈의 태감 같으니. 버릇없이! 빨리 거기 서요.]
[나는 공주를 대신해서 공주의 지아비를 잡으러 가는 것이외다. 끓는물 
속이라도 마다하지 않겠으며 밤길을 도와 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그는  이미 멀어져 가고 있었다. 위소보
는 궁 밖에 이르자 즉시 말에 올라타고 백작부로 말을 몰았다. 집 안에 
들어서니 조양동이 장용 등 세 장수와 더불어 대청에서 술을 마시고 있
었다. 그는 즉시 몸을 돌려서 수십 명의 친위병들을 불러서 장용 등 세 
명의 장수를 사로잡으라고 호통을  내질렀다. 친위병들은 즉시 세 장수
를 포박했다. 장용이 늠름하게 물었다.

[도통대인, 소장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의 유시가 이곳에 있네. 자네와 더 말할 여가가 없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유시를 쳐들어 보이고 명령을 내렸다.

[효기영 군사 천 명과 어전시위 오십 명을 불러라. 마필을 준비해라.]

친위병은 즉시 영을 받고 물러갔다. 위소보는 조양동에게 말했다.

[조 총병, 오응웅이라는 녀석이  도망을 쳤소.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
려고 할 것이오. 우리는 서둘러 그를 잡아와야 하오.]
[그 녀석은 정말 대담하군요. 비직은 아무쪼록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장용과 왕진보, 손사극  세 사람은 깜짝 놀라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
다. 위소보는 친위병에게 말했다.

[이 세 사람을 잘 지켜라. 조 총병, 갑시다.]

장용은 부르짖었다.

[위 도통,  우리는 서량(西楮) 사람이며 대청나라의  벼슬을 하고 있는 
것이지, 한 번도 평서왕의 직계가 돼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삼 개월 
전만 해도 감숙성에서 무관으로 지냈는데 후에 운남으로 옮겨져서 일을 
보게 되었으나 줄곧 오삼계의 배척을 받아왔습니다. 그가 우리 세 사람
을 운남에서 떠나게 한 것은 바로  우리 세 사람이 역모에 참가하지 않
을 것을 알고 그의 큰일을 그르칠까 두려워서입니다.]
[내가 그대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소?]

손사극은 말했다.

[오삼계가 작년에 저의  목을 자르려는 것을 장  도독께서 애써 보장해 
주셨기 때문에 이  머리통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 속으로 
그 늙은 후레자식을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하고 있습니다.]

장용도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이 만약 오응웅과  함께 모의를 했다면 어째서 함께 도망
치지 않았겠습니까?]

위소보는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좋소. 그대들이  오삼계와 한 패거리가 아니라면  나중에 다시 자세히 
심문을 하겠소. 조  총병, 사람을 뒤쫓는 것이  중요하니, 우리는 갑시
다.]
[도통대인, 왕 부장은 말 발자국을 살펴보는 데 뛰어납니다. 그는 운남 
말의 말발굽형을 대번에 알 수 있답니다.]

장용의 말에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재간은  꽤 쓸모가 있겠구려. 하지만  그대들을 데려갔다가 도중에 
만약 훼방이라도 놓는다면 나는 그대들에게 크게 당할 것이 아니겠소?]

손사극은 낭랑히 외쳤다.

[도통대인, 그대는 소장을 이곳에 묶어 두고 장 제독과 왕 부장을 데리
고 쫓아가도록 하십시오.  그들 두 명이 만약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그대가 돌아와 한칼에 소장을 죽이도록 하십시오.]
[좋소. 그대는 꽤나 의리가 있군. 이 일은 내가 어떻게 결정을 할 수가 
없구만. 자, 장  제독. 내가 그대와 세 번  주사위를 던지도록 하겠소. 
그대가 이기면 그대의  말을 듣도록 하고 만약 내가  이기면 부득이 세 
분의 머리통을 빌려서 사용하는 수밖에 없소.]

그는 장용이 다른 말을 하기 전에 즉시 큰소리로 외쳤다.

[게 누구 없느냐? 주사위를 가져오너라!]

왕진보가 말했다.

[소장의 몸에 주사위가 있습니다. 밧줄을 느슨하게 해준다면 소장이 그
대와 내기를 하겠습니다.]

위소보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친위병에게 그의 밧줄을 느슨하게 
해주라고 명령을 했다. 왕진보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세 개의 주
사위를 꺼내서 사르락 소리가 나도록  흔들더니 탁자 위에 던졌는데 그 
수법이 무척 숙련되어 있었다. 위소보가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주사위를 가지고 다니지?]
[소장이 한평생 좋아하는 것은 도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사위는 항
상 지니고 다니지요. 같이 도박할 사람이 없으면 왼손과 오른손이 겨룬
답니다.]

위소보는 크게 흥미가 솟구치는 것을 느끼고 물었다.

[자기의 왼손과 오른손으로 도박을 하게 된다면 잃고 지는 것을 어떻게 
따지지?]
[왼손이 지게 되면 오른손이 왼팔을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오른손이 지
면 왼손이 오른팔을 한 대 갈기는 거죠.]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 그것 재미있군. 재미있어! 노형은  내 뜻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
아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오. 자, 두  분 장군을 풀어 드려라. 왕 부장, 
나는 세 번을 던지겠소. 그리고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그대는 나
를 따라 오응웅을 잡도록 하시오. 만약 내가 이긴다면 조금 전 세 분에
게 무례하게 대한  것을 보상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리고 만약 그대가 
이긴다면 내가 세 분에게 큰절을 하고 사과를 드리도록 하지.]

장용 등 세 사람은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똑같이 말했다.

[하하! 그것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위소보가 주사위를 들고 던지려 할  때 친위병이 달려들어와 보고를 했
다. 효기영의 군사와 어전시위들이  모두 모여서 영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주사위를 거두고 말했다.

[일을 지체하면 안 되니 빨리 오응웅을 쫓아야겠소. 이보다 더 급한 일
이 어디 있겠소? 네 분의 장군도 같이 떠나도록 합시다.]

그는 장용, 조양동  등 네 사람을 거느리고  효기영 군사와 어전시위를 
확인한 후 남문으로  성을 나가 추격을 시작했다.   왕진보는 앞장서서 
수 마장을 뒤쫓아가더니 말에서 내려 길에 난 발자국을 보고 말했다.

[도통대인,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일행은 방향을 꺾어 동쪽으로 
갔군요.]
[그것 참 이상하군. 그가 운남으로 도망치려고 한다면 마땅히 남쪽으로 
가야 옳지 않겠소? 좋소, 모두들 동쪽으로 갑시다.]

조양동은 속으로 의심이 이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동쪽으로 도망친다는 것은 너무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혹시 왕진
보라는 녀석이  일부러 길을 잘못 선택하도록  해서 오응웅으로 하여금 
도망치게 하자는 것이 아닐까?)
그는 말했다.

[도통대인, 소장은 다른 한 떼의  인마를 데리고 남쪽으로 쫓아가면 어
떻겠습니까?]

위소보는 왕진보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노기가 번진 것을 보
고 말했다.

[그럴 필요없네. 모두들 왕 부장의 안내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사천 말은 그가 키운 것이니 그가 잘못 알 리가 없을 것이오.]

그는 친위병들에게 분부하여 무기를 장용  등 세 사람이 선택하도록 했
다. 장용은 한 자루의 큰 칼을 들고 말했다.

[도통대인께서는 나이가 젊으시지만 아량이 정말 대단하시군요. 우리는 
운남에서 온 군관이고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도통대인께
서는 놀랍게도 우리들에게 허심탄회하게 대할 뿐 아니라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는군요.]
[그대는 칭찬하지 마시오. 나는 이번에  모든 은자를 다 건 셈이오. 이
기면 크게 이기는 것이고, 또한  오응웅을 잡게 된다면 그대들 세 분과 
같은 절친한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이 아니겠소? 그리고 져도 기껏해야 
노형에게 한 번의 칼질을 당하기밖에 더하겠소?]

장용은 크게 기뻐서 말했다.

[우리 서장의 사내들은 영웅호걸 사귀기를 가장 좋아한답니다. 위 도통
께서 그렇게 봐 주시니 이 장가는 한평생 그대를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칼을 땅바닥에 던지고  위소보에게 큰절을 했다. 왕진보와 손사극 
역시 큰절을 했다. 위소보는 말에서  내려 큰길에 엎드려 반례를 했다. 
네 사람은 절을 한 후에 몸을 일으켜 서로 마주 보며 껄껄 소리내어 웃
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조 총병, 그대 역시 이리로 오시오. 모두들 함께 절을 합시다. 그러면 
이후에는 형제와 같은  사이로 맺어지게 될 것이고,  복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어려움이 있으면 함께 당하게 될 것이오.]

조양동이 말했다.

[저는 왕 부장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오응웅을 잡으면 그때 가서 
그와 의형제를 맺도록 하지요.]

왕진보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내 비록 계급이 낮기는 하나 떳떳한 사내대장부요. 내 어찌 그대와 의
형제 맺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겠소?]

그는 말에 오르더니 질풍같이 앞쪽으로 추격해 갔다. 동쪽으로 십여 리
를 달려가더니 말에서 내려 길에 난  발자국과 말이 갈긴 똥을 살핀 후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군. 이상해.]

장용이 재빨리 물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왕진보가 대답했다.

[말의 똥이 죽 같군요. 어떻게 된 연고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운남성 말의 똥 같지가 않습니다.]

위소보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서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맞았소. 이것은 틀림없는  진짜요.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오
응웅의 말들이오.]
[말 발자국은 틀림없습니다만 말똥이 너무나 이상합니다.]
[이상할 것 없소.  이상할 것 없소. 사천성의  말이 북경성에 올라오자 
물이 달라졌기 때문에 설사를 하는  것이오. 어쨌든 칠팔 일 간은 설사
를 해야 나을 것이오. 말똥이  물죽 같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운남성 말
이외다.]

왕진보는 위소보를 한번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빛이 이상야릇하고 웃는 
듯 마는 듯한 것을 보자 반신반의하였으나 계속 앞으로 추적해 나갔다. 
다시 한동안 달리자 발자국이  동남쪽으로 꺾어져 들어갔다. 장용이 말
했다.

[도통대인, 오응웅은 당고(塘沽)에서 바다로 나갈 작정인가 봅니다. 그
는 해변에 배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바닷길을 통해 광서로 갔다가 다시 
운남으로 돌아 들어가면 길에서 관군에게  잡히는 것을 면할 수가 있습
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소. 북경에서 곤명으로 가는 길은  수십만 리나 되는 길이라 관병
에게 저지당할 우려가 있으니 역시 바닷길로 가는 것이 한결 편안할 것
이오.]
[우리들은 빨리 뒤쫓아가야겠습니다.]

장용의 말을 듣고 위소보가 물었다.

[어째서요?]
[북경성에서 해변까지는  수백 리에 불과합니다. 그는  말의 힘을 아낄 
필요가 없으니 목숨을 걸고 빨리 달아날 것입니다.]
[그렇소, 그렇소. 장형은 귀신처럼 일을 혜아리는군. 과연 대장수가 될 
만한 재질을 지니셨소.]

장용은 그가 자기를 형이라고 불러 주자 속으로 아주 기뻐했다. 위소보
는 고개를 돌려  명령을 내렸다. 일대의 효기영이  재빨리 달려가 당고 
입구의 수군들에게 영을 내려 해상의  어구를 봉쇄하도록 하고 모든 배
들을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한 명의 좌령(佐領)
이 그 명령을 받들어 군사들을 이끌고  달려갔다.  얼마 후 길 옆에 두 
필의 말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운남성 말이었다. 장
용이 기뻐서 말했다.

[도통대인, 왕 부장이 뒤쫓아온 이 길은 정말 틀림이 없었소이다.]

왕진보는 울상에다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위소보가 물었다.

[왕 셋째 형, 어째서 즐거운 얼굴이 아니시오?]

(나는 셋째가 아닌데 어째서 셋째 형이라 부를까?)
왕진보는 이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소장이 기른 운남성의 말들은 그야말로  모두가 천 마리 중에서 한 마
리를 뽑은 훌륭한  말인데 어찌해서 설사를 하고 길  옆에 쓰러져 죽어 
있는지 모르겠군요. 설사 오응웅이 죽어라 하고 길을 재촉한다 해도 말
들이 이토록 형편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말 애석하군요. 정말 애석해
요.]

위소보는 그가 말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감히 파두를 먹인 사실을 
들먹일 수 없어서 말했다.

[오응웅이라는 녀석은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좋은 말들을 지쳐
서 죽게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왕  셋째 형의 심혈을 헛되게 했구려. 제
기랄, 그 녀석은 사람이 아니외다.]
[오삼계의 집안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이  없습니다. 군사가 되어서 
말을 아끼지 않는다면 결국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왕진보는 한숨을 내쉬며 아쉬워했다. 몇  리도 가지 않아서 다시 세 필
의 말이 깊 옆에 쓰러져서 죽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가면 갈수록 
죽은 말들이 더욱 많아졌다.
장용은 갑자기 말했다.

[도통대인, 오응웅의 말은 나쁜 것을 먹고 제대로 뛰지를 못합니다. 그
러니 그가 말에서 내려 마을로 도망쳐 숨는 것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장형은 어떤 일이든 한 수  앞을 헤아려 내다보는군요. 형제는 탄복했
소이다.]

그는 즉시 효기영에 영을 내려  사방으로 흩어져 에워싸듯 하고 나아가
도록 만들었다. 과연 몇 마장  가지 않아 북쪽의 효기영 군사들이 큰소
리로 환호했다.

[오응웅을 잡았다!]

위소보는 기뻐서 소리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멀리서 보니 큰길가에 밭
이 있는데 그 밭을 수백 명의  효기영 군사들이 한 무더기가 되어 에워
싸고 있었다.  이 일대는 전날 비가 왔기 때문에 밭이 진흙투성이었다. 
위소보가 말을  달려 가까이 다가가자 군사들은  온몸이 이미 진흙으로 
더럽혀진 몇 사람을 붙들어 왔다.
앞장을 선 사람은 바로 오응웅인데 몸에 무명 베옷을 걸치고 있어서 도
저히 의젓하고 화사한 금마옥당(金,男王堂)의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위소보는 말에서 내려 그에게 인사를 하고 웃었다.

[부마 나으리, 연극을 하십니까? 황상께서는 갑자기 생각이 나신 듯 창
극을 듣고자 하시면서 소인에게 부마 나으리를 불러오라고 분부를 내렸
소이다. 그대는 이대로 가서 황상께  연극을 해보이면 꼭 알맞겠소. 하
하! 그대가 분장한 것은 거지 모습이니 이것이야말로 금옥노봉타박정랑
(金王奴捧打薄靑郎) 중의 막계(莫稽)가 아니겠소?]

오응웅은 놀라  전신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위소보가 희롱하는 말을 
듣고서도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위소보는 신이 나서 오응웅을 압송
하여 북경으로 돌아왔는데 황궁에 도착하니 이미 이튿날 점심 무렵이었
다. 강희는 이미 어전시위가 보고해서 사실을 알고 있다가 즉시 위소보
를 불러들였다.  위소보는 흙먼지를 얼굴에  가득 뒤집어썼으나 일부러 
닦지 않았다. 강희는 그런 위소보를  보자 이 사람이 정말 충성을 다해
서 일을 처리하므로 공도 많고 수고도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손을 
뻗쳐 위소보의 어깻죽지를 툭툭 두드리며 웃었다.

[제기랄! 소계자, 도대체 그대에게  어떤 재간이 있어서 놀랍게도 오응
웅을 잡아올 수 있았지?]

위소보는 속이지  않고 말에게 파두를 먹인  내막을 강희에게 이야기했
다.

[소신은 본래 일만 냥의 은자를  따서 그로 하여금 자랑을 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소신에게 여유 돈이 있어  황상을 위해 일을 처리할 때 탐
관오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 것이죠. 그런데 뜻밖에도 황상의 홍복은 하
늘처럼 커서,  소신의 터무니없는 짓거리가  오삼계의 간계가 들통나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들었군요. 이로 미루어 보아 그 늙은 녀석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틀림없이 대패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강희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으며 역시  이 일에는 남모르는 하늘의 뜻이 
깃들여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자기의 복이 역시  적지 않다고 생각했
다.

[나는 복이 있는 천자이고 그대는  복이 있는 장수일세. 이제 내려가서 
씻도록 하게.]
[오응웅이라는 녀석은 이미 어전시위들의  손에 넘겨서 손을 보도록 했
으니 황상께서 알아서 처분하십시오.]

강희는 잠시 생각해 보고 말했다.

[우리는 당분간 아무런 기색도 드러내지 않고 여전히 그를 부마부로 돌
아가 있도록 해야겠네. 그리하여  오삼계가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봐야
겠네. 가장 좋기로는 그가 아들이 잡혀왔는데도 내가 그를 죽이지 않았
다는 사실을  알고 고맙게 여겨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네.]
[황상의 너그러우신 아량은 정말 오생어탕이십니다.]
[그대는 일대의 효기영 군사들을  파견해서 부마부의 문을 철저히 지키
도록 하고 누가 출입을 하든간에 자세히 묻도록 하게. 부마부의 말들을 
모조리 끌어내어 한 필도 남기지 않도록 하게.]

강희는 이어서 말했다.

[이번에 공을 세운 사람들은 그대가  알아서 이름을 올리도록 하게. 각
기 벼슬을 올려 주고 상금을 내리겠으며 그 파두를 먹인 마부 책임자에
게도 조그만 벼슬을 할 수 있도록 하겠네. 하하하!]

위소보는 꿇어엎드려서  성은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장용과 조양동, 
왕진보, 손사극 네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장용 등 세 사람의 장수는 운남의 장령들인데도 황상께 충성해야 한다
는 것을 알고서 애써 오응웅을 잡아들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오삼
계가 만약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의  휘하 장수들도 다투어 투항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강희는 말했다.

[장용과 그 두 부장이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다니 매우 잘된 일이네. 장
용은 본래 감숙성의 제독이고 다른  두 명의 부장도 십중팔구 오삼계의 
부하는 아닐 것일세.]
[황상께서 밝게 헤아리셨습니다.]

위소보는 궁에서 나와 친히 오응웅을 부마부로 모시고 가서 말했다.

[부마 나으리, 나는 황상 앞에서 그대를 위해 좋은 말을 간하여 간신히 
그대의 머리통을 보전할 수  있었소. 그런데도 그대가 다시 도망친다면 
나의 머리통도 보전할 수 없을 것이오.]

오응웅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으나 속으로는 욕을 해댔다. 수십 필
의 좋은 말들이 어찌하여 길에서 잇따라 죽어 거의 성공하다시피 한 일
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는지 시종 이해할 수 없었다.



第98章. 금의환향한 위소보

며칠 뒤 조정에서는 성지를 내렸는데  위소보와 장용 등을 격려하고 각
기 한 계급씩 올려 준다는 내용이었다. 강희는 이 일을 크게 떠들고 싶
지 않았다. 오삼계를 자극하여  어떤 변고가 일어날까 두려웠기 때문이
다. 응웅이 도망을 친 사건이 발생하자 강희는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키
는 것이 눈앞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오응웅이 잡힌 일이 오삼
계에게 겁을 주어 반란을 일으키는  일이 좀더 늦추어지기를 바랄 뿐이
었다.
강희는 며칠 동안 군사들을 움직이고  장수를 파견하는 한편 대포를 만
들고 말을 사들이면서 매우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고방(庫房)
에 쌓아 둔 은량이 퍽이나 부족한 것을 느꼈다. 만약 세 번왕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키고 잇따라 대만, 몽고,  서역 세 곳에서 군사를 일으킨다
면 동시에 여섯  곳의 병마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군비가 
엄청나게 많이 필요할 것이고 일을  지탱해 내기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닐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라도 늦어질수록 그만큼 향은을 준
비하고 양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강희는 위소보가 신룡도를 깨뜨리고 
다시 나찰국을 포섭한 것이  크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신룡도는 대수
로울 것이 못되지만 나찰국은 실로 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위소보라는 
인물은 학문을 배우지 않은 것이  흠이지만 복을 타고난 장수임에는 틀
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시를 내려 위소보에게 양주로 달려가 충렬사를 세우도록 명령하
고, 그러는 가운데 몰래 남쪽으로  내려가서 길을 돌아 하남으로 가 왕
옥산 사도백뢰의 도적들을 소탕하라고 일렀다. 그렇게 함으로써 심복지
환을 없애려는 것이었다. 소보는 황상에게 상주하여 장용 등 네 장수를 
자기 휘하에 두게 해 달라고  청했고 강희는 그 청을 받아들였다. 소보
가 장용 등 네 장수들을 데리고  양주로 출발하려고 하는 날 갑자기 시
랑과 황보, 그리고 천지회의  서천천, 풍제중이 일제히 도달했다. 이들
은 서로 만나자 모두들 크게 기뻐했다.

위소보가 홍 교주의 미인계에 빠졌을 때  시랑 등은 결코 겁이 나서 돌
아오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배를 타고  각처의 섬들을 뒤지며 
위소보를 구해 내기 위해 애썼던  것이다. 그리고 서천천 등은 서로 헤
어져 요동성, 직예성, 산동성 등 세 곳의 연안과 육지를 더듬으며 위소
보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위소보가 북경에서  보내온 전갈을 받고서야 
북경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위소보는 자신이 사로잡히게 된 경위
를 말하지 않고 얼렁뚱땅 얼버무렸다. 시랑 등은 속으로 믿지 않았으나 
감히 더 묻지 못했다.

위소보는 다시 황제에게 나아가 시랑 등의 공적을 아뢰고 각기 상을 타
게끔 해주었다. 서천천 등은  천지회 형제들이라 청나라 조정의 관록을 
받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위소보는 그들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았다. 사
람들은 북경에서 하룻동안 큰 잔치를 고 이튿날 모두 양주를 향해 출발
하였다.

며칠 후 왕옥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 위소보는 천지회 형제들에게 사도
백뢰를 섬멸하라는 황제의 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러 사람들은 깜짝 놀
랐다. 이력세는 말했다.

[위 향주, 이 일을 해서는  아니 되오. 사도백뢰의 뜻은 명나라를 다시 
세우는 데 있는 만큼 매우  커다란 영응호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 만약 왕옥산을 뒤엎어 놓는다면  그야말로 오랑캐를 위해 힘을 쓰게 
되는 꼴이외다.]

위소보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이 그렇게 되는구려. 내가 보기에도 사도 늙은이의 제자들은 영웅기
개가 있는 것 같았소. 그러나  나는 이미 성지를 받들어 왕옥산으로 토
벌하러 온 셈이니 이 일은 정말 어렵게 되었구려.]
[위 향주의 벼슬이 나날이 커지니 아무래도 좋지 않은 것 같소이다. 내 
의견은, 우리가  사도백뢰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좋겠구
려.]

현정 도인의 말을 듣고 기청표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우리의 가장 큰일은 오랑캐의  손을 빌어 오삼계라는 대매국노를 상대
하는 것이오. 위  향주가 만약 이때 반란을  일으킨다면 오랑캐 황제는 
다시 오삼계와 손을 잡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다된 밥에 재를 뿌
리는 격이 아니겠소?]

위소보는 강희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그 말을 듣고 
재빨리 말했다.

[맞았소, 맞았소. 반드시 오삼계를 처치한  후에 다시 논할 수 있는 것
이오. 그것이야말로 으뜸가는 큰일이  아니겠소. 사도백뢰는 그저 수백 
명이 왕옥산에 모여 있을 뿐으로  조그만 무리에 지나지 않소. 작은 일 
때문에 큰 것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오.]

서천천은 말했다.

[문제는 위 향주가 오랑캐 황제에게 얼버무리는 것이외다. 더군다나 오
랑캐 황제는 양주에 충렬사를 짓고자  하는데 이 일에 대해서 우리들은 
반대하지 않소.]

사씨는 충성을 다한 사람으로 나라를  위해 순사한 몸이라 천하의 영웅
호걸들 중에 그를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천지회의 군웅들은 
서천천의 그와 같은 소리를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다. 
황제께 어떻게 얼버무리느냐는 것은 그 누구도 위소보의 재간에 미치지 
못하는지라 뭇사람들은 모두 그를 쳐다보며 그가 어떤 방책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위소보는 웃었다.

[왕옥산을 공격할 수 없다면 우리들은 사도 노형에게 전갈을 보내서 그 
노형으로 하여금 도망치게 합시다.]

사람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그 계책이 그럴 듯하다
고 생각했다. 위소보는 그날 주사위를 던지며 목숨을 걸었던 사실을 상
기했다. 왕옥파에는 나이 어린 소저 증유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갸름
한 얼굴에  커다란 눈망을이 무척 아름답고  귀여웠다는 생각이 떠올랐
다.
(나도 사도 늙은이와는 아무런 교분이 없다. 베풀려면 역시 증소저에게 
인정을 베풀어야지.)

바로 이때였다.
장용과 조양동이 사람을 보내 보고를 해왔다. 이미 왕옥산을 겹겹이 에
워싸고 사방의 통로를 모조리  막았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하남성 일
대에 들어오자마자 왕옥산을 에워싸고  토벌하라는 유시를 장용과 조양
동 등 네 장수에게 명했었다.그들은 병마를 이끌고 왕옥산 아래 곳곳의 
길목을 지키며 산을 공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네 장수는 오응웅을 잡는 일을  해치움으로써 벼슬이 오르자 모두 고마
워했으며 이번에도  힘을 써서 공을 세우려고  각처의 통로마다 함정을 
파고 반마삭(絆馬索)을  잔뜩 깔아 놓았다.  그리고 궁전수와 구겸창수
(鉤鎌槍手)로 하여금  사면팔방에서 지키도록 했다.  산 위의 사람들을 
모조리 사로잡아 한 사람도 놓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네 장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천 명이나 되는 관병으로 산 위의 천 명밖에 안 되는 도적들을 공격
해서 이겨도 대수로울 게 없다.  그러니 한 사람도 놓치지 말고 사로잡
아야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도백뢰 일당을 모조리  잡는다 해도 큰 공이라 할  수 없다. 더구나 
천지회의 형제들은 지극히 반대하고  있다. 강호의 호걸들은 의리를 가
장 중시하는데, 친구들에게 죄를 짓지 말아야지.)
그는 어떻게 하면 증유에게 편지를 보내 왕옥산의 사도들을 놓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동쪽에서 북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군사들의 
함성이 크게 일었다. 곧이어 첩보병이  산 위에서 누가 공격해 오고 있
다고 전갈을 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삼군(三軍) 앞에서 사람을 놓아주라는  명령을 내릴 수는 없으니 잡은 
후에 천천히 방법을 강구해서 석방하는 것이 좋겠다.)
그는 명령을 내렸다.

[모두 사로잡되 한 사람이라도 살상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

친위병은 즉시 영을 전달했다. 위소보는 다시 한 마디를 보댔다.

[여자들은 더욱이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는 서천천과 전노본 등의 표정을 힐끗 보고는 그만 얼굴을 살짝 붉히
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대들은 안심하시오. 이번에는 신룡도에서처럼 미인계에 빠져 사로잡
히지는 않을 것이오.)
그는 천지회의 군웅들을 데리고  동쪽 산길로 향하면서 싸움을지켜보았
다. 흘연 산허리께에서 백여 명의 무리들이 질풍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관병들은 원수의 명령을 받아 감히 활을 쏘지 못하고 우르르 몰려가 막
으려고 했다. 호통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울려퍼지는 가운데 달려온 사람
들은 하나하나 함정에 빠져들어 구겸창수들에 의해 잡히고 말았다.
위소보는 증유  역시 잡히지 않았는지 살펴보려고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별안간 한 사람이 나는 듯 커다란  나무 사이로 몸을 날리면서 달려 내
려왔다. 관병이 앞으로 나아가 막으려고 했지만 그 사람이 민첩하기 이
를데 없어서 놀랍게도 앞을 막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현정 도인은 칭찬했다.

[훌륭한 솜씨다!]

그 사람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다시 수십  장을 돌진해 내려온다면 
산 밑에 이를 것이었다. 전노본이 말했다.

[저 사람의 무공이 매우 뛰어난  것을 보니 그가 혹시 사도백뢰가 아닐
까요?]

서천천은 말했다.

[사도 노영웅 외에 다른 사람은 저와 같은....]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손사극이 별안간 부르짖었다.

[저 사람은 오삼계의 위사 같습니다.]

그 말을 하는 사이에 그 사람은  어느덧 수 장이나 더 가까워지고 있었
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먼저 그를 잡은 후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천지회의 군웅들은 다투어 그 사람을 에워쌌다. 그 사람은 손에 강철칼
을 들고 있었는데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의 군사를 찔러 눕혔다. 
손사극은 장창을 들고 앞으로 뻗어내며  마주 나가서 똑똑히 얼굴을 보
고 부르짖었다.

[파랑성(巴朗星), 그대는 이곳에서 무엇하는 것이오?]

그 사람은 바로 오삼계의 심복 위사인 파랑성이었다. 그는 큰소리로 부
르짖었다.

[나는 평서친왕의  명령을 받고 조정을 위해  반적 사도백뢰를 죽였소. 
그대들은 어째서 나를 막는 것이오?]

서천천 등은 깜짝 놀랐다. 그자의 허리에는 피투성이가 된 머리가 하나 
매달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와 그를 에워쌌다. 손사극은 
말했다.

[위 도통이 이곳에 있으니 무기를  놓고 인사를 하시오. 그리고 도통대
인의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시오.]

파랑성은 말했다.

[좋소.]

그는 칼을 칼집에 꽂더니 재빠른 걸음으로 위소보에게 다가가 큰소리로 
말했다.

[도통대인께 인사드립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는 이곳에서....]

파랑성은 갑자기 몸을 펄쩍 날리더니  두 손으로 위소보의 안면과 가슴
팍을 움켜잡으려 들었다. 위소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아이쿠!]

그는 몸을 홱 돌려 도망쳤다. 파랑성의 무공은 정묘하고 고강하기 이를 
데 없어 꽉,  하는 소리와 함께 왼손으로 위소보의  등을 찢었다. 다시 
오른손이 위소보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찰나 갑자기 오른쪽에서 발길질
이 세차게 걷어차  오는데 그 기세가 너무나  빨랐다. 파랑성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피했고 곧이어 그 사람이 뻗쳐 오는 일 장을 맞받았다. 그 
사람은 풍제중이었다.  파랑성이 손을 들어 막는  순간 몸이 흔들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뒷허리가 바짝 조여왔다. 이미 서천천에게 잡힌 것
이었다. 전노본이 손가락을 뻗쳐 그의 가슴팍을 찌르려고 했을 때 파랑
성은 흥, 하고  살며시 코웃음을 쳤다. 풍제중의 왼쪽  팔이 그를 치자 
파랑성은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넘어졌다. 전노본은 그를 힘주어 내리
눌렀고 친위병이 달려와 그를  묶어서 위소보 앞으로 끌고왔다. 파랑성
은 큰소리로 말했다.

[평서왕의 대군이 곧 도달할 것이오.  그때 당신들로 하여금 죽어 뼈를 
묻힐 곳이 없게 만들 것이오. 분수를 안다면 빨리 투항하시오.]

위소보는 웃었다.

[평서왕이 반란을  일으켰소? 나는 모르고  있었는걸? 그 어르신께서는 
편안하시오?]

파랑성은 위소보의 얼굴 모습과 태도가  호의적인 것을 보고 일시 그의 
의도를 몰라 말했다.

[흠차대신은 곤명에 가 본 적이 있으며 평서왕은 흠차대신을 매우 중시
하고 있소. 그대는 총명한 사람인데 어째서 오랑캐의 노예가 되려고 하
시오? 그대 역시 빨리 평서왕에게 귀순하도록 하시오.]

서천천은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호통을 내질렀다.

[오삼계라는 대매국노는 비열하고 몰염치하기 짝이 없다. 네가 그의 노
예가 되었다니 더더욱 몰염치한 일이다.]

파랑성은 대노해서 고개를 돌리고  서천천에게 침을 탁 뱉었다. 서천천
은 몸을 옆으로 돌려서 피했다. 침은 그 바람에 한 명의 친위병 얼굴에 
떨어지게 되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파 노형, 우리 좋은 말로 하고 화를 내지 맙시다. 그대는 나에게 평서
왕에게 항복하라고 했는데 좋게 상의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겠소? 그런
데 그대는 무슨 일로 왕윽산에 찾아왔소?]

파랑성은 말했다.

[그대에게 말해도 상관이 없소. 어찌되었든 사도백뢰는 내가 이미 죽였
으니 말이외다.]

그는 허리에 있던 수급을 한번 내려다보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평서왕은 그를 죽이고자 했소?]
[그대는 나와 함께 평서왕을 만나러  갑시다. 그러면 그 어르신께서 그
대에게 이야기해 줄 것이오.]

서천천 등은 대노해서 주먹으로  그를 후려치려고 했다. 위소보는 재빨
리 눈짓으로 제지하고 친위병을 시켜  파랑성을 군중 속으로 데리고 가 
심문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 사람은 매우 굳건했으며 오삼계에 대해
서 지극히 충성스러웠다. 그저 위소보에게 투항하라고만 할 뿐 그 밖의 
말은 한 마디도  실토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몸을 수색하자 커다란 
붉은색 도장이 찍힌 한 통의  유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위소보가 다른 
사람을 시켜 읽어 보았더니 오삼계가  쓴 가짜 유시인데 사도백뢰를 개
국장군(開國將軍)에 봉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문서의 내럭을 그
에게 물었으나 파랑성은 눈을 부릅뜨며 대답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아무런 결과도 얻어낼 수 없자, 그를 꿇어엎드리게 하고 잡아
온 나머지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했다.  심문을 한 결과 끝내 한 사람이 
아픔을 견디지 못해 실토했다.
오삼계는 며칠 안으로 군사를 모으고  반란을 헐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
다. 그리하여 심복인 파랑성으로  하여금 일 소대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옛 부하인 사도백뢰를  찾아가 그가 호응해 줄  것을 간청하라고 했다. 
동시에 그는  파랑성에게 분부하기를, 사도백뢰가  만약에 명을 받들면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를 죽여 밀모(密謀)가 누설
되는 것을 방지하라고 일렀다.

사도백뢰는 군사를 일으켜 청나라에 반란을 일으킨다는 말을 듣고 매우 
좋아했으며 즉시  함께 의거에 가담하겠다고  응낙했다. 그러나 자세한 
사정을 알고 보니 오삼계가 명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것이 아니
고 자신이 황제가 되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도백뢰는  가짜 유시를 받들려고  하지 않았고, 파랑성에게 
돌아가 오삼계에게 알리되 만약에 명나라 황제의 후손을 옹호한다면 그
가 선봉에 설 것이며 만번 죽더라도 사양치 않겠다는 말을 전하도록 했
다. 그러나 오삼계는  과거 계왕을 죽였고 자기가  다시 황제가 되고자 
했으므로 명나라에 충성을 했던  지사들은 결코귀의하거나 붙으려고 하
지 않았다. 파랑성은 몇 마디의 말로 권고했으나 사도백뢰는 오히려 탁
자를 치며 크게 욕을 했다.

[오삼계는 한나라 강산을 없앤 장본인으로서 온갖 악한 일을 저지른 용
서받지 못할 사람이다. 옛날 과오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기 위해 나
선다면 그래도 공을 세워 속죄할  길이 있겠으나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나는 반드시 그의 살을 뜯고 그의 가죽을 벗겨서 이부자리로 삼겠다.]

파랑성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날 밤 사도백뢰가 방비하지 않는 틈을 
타서 갑자기 그를 찔러 죽이고 그의  목을 잘라 함께 데리고 온 패거리
들과 더불어 산 아래로 도망쳐 내려왔다. 왕옥파의 제자들은 뜻밖의 일
을 당하여 뒤쫓아올  수가 없었다. 바로 이때에  관병이 산을 호위하고 
있었던 터라 오삼계의 부하들은 그만 일망타진되고 말았던 것이다.
파랑성이 갑자기 위소보를 습격한 것은  원수를 사로잡은 뒤 인질로 삼
아 도망을 치려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자세한 사정을 알아내자 천지회
의 군웅들을 모아서 밀의를 거듭했다. 이력세는 말했다.

[위 향주, 사도 노영웅으로 말하면 충성심과 의리가 깊은 사람이었습니
다. 불행히 간악한 자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우리들은 그를 성
대히 장사지내 줘야 할 것입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나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있소.]

그는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계책을 말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고 
좋아하며 즉시 헤어져서 준비를 했다. 이날 관병은 산을 공격하지 않았
다. 왕옥파의 사람들도 우두머리격이며 사부격인 사람이 피살됨에 따라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그저 산 입구를  엄히 지키기만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위소보는 천지회  군웅과 일대의 효기영 관병들을 데
리고 여러 가지  물건을 준비하여 산 중턱에  이르렀다. 그는 관병에게 
그곳에서 주둔하여 영을 기다리도록 하고  그 자신과 서천천 등은 친위
병들을 데리고 산 위로 오르게 되었다. 일 마장쯤 나아갔을 때 십여 명
이나 되는 왕옥파의 제자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길을 가로막았다. 서천
천은 홀로 앞으로 나아가 두 손으로  한 장의 하얀 종이에 쓰여진 배첩
을 올렸는데 배첩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후배 위소보가 이력세, 기청표, 현정 도인, 풍제중, 번강, 전노본, 마
언초 등을 데리고 삼가 사도 영웅의 영전에 명복을 빌고자 왔소이다.]

왕옥파의 제자들은 나타난 사람들이 적의가  없는 것 같았고 뒤쪽의 여
러 사람들이 한 구의 관을 들고 있을 뿐 아니라 향초, 지전등의 물건을 
갗추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이상하게 생각해서 말했다.

[여러분들은 잠깐 기다리시오. 불초가 위로 올라가 보고를 하리다.]

한 사람이 나는  듯 산 위로 올라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여전히 산길을 
지키고 있었다. 위소보 등은 수십  걸음 뒤로 물러나서 바위 위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얼마 후 산  위에서 수십 명이 내려왔는데 앞장선 사람
은 바로 옛날에 만난 적이 있던 사도학이었다. 그는 사도백뢰의 아들인
데 그의 아버지이며 사부인 사도백뢰가 세상을 뜨자 왕옥파에서는 그를 
우두머리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위소보는 눈동자를 굴려 사도학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한 아리따운 몸매의 소녀가 서 있었는데 머
리에는 하얀 꽃을 꽂고 있었다.  바로 증유였다. 위소보는 속으로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사도학은 낭랑히 말했다.

[여러분들이 이곳에 온 것은 무슨 뜻인가요?]

그러면서 그는 허리에 차고 있는 칼자루에 손을 댔다. 전노본은 앞으로 
나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저의 윗사람인 위군(韋君)께서 사도 노영웅이 불행하게도 간악한 자에
게 해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애통해 하며 불초들을 데리고 노
영웅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빌고자 하오.]

사도학은 멀리서 위소보를 한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는 오랑캐 조정의 관원으로  관병을 데리고 산을 포위했으며 호의를 
품지 않고 있는 것에 틀림이  없소. 그대들은 간계를 쓰려고 하지만 우
리들은 그대들의 그와 같은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오.]

전노본은 말했다.

[실례지만 사도 노영웅을 죽인 흉수가 누구요?]

사도학은 이를 갈며 말했다.

[오삼계의 외사  파랑성이오. 그리고 그의 수하인  한 떼의 악적들이외
다.]

전노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 소협이 우리들의 호의를 믿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니외다. 우리
가 먼저 제품(祭品)을 올리리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명령했다.

[이리 데려오너라!]

두 명의 친위병이 한 사람을 천천히 끌고 왔다. 이 사람의 손과 발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머리에는 한 조각 검은 베를 씌워놓고 있었다. 
왕옥파의 제자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으며 상대방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의아해 했다. 그 사람이 전노본의 등뒤에 왔을 때 친위병들은 
쇠사슬을 잡고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전노본은 말했다.

[사도 소협은 잘 보시구려.]

그가 손을 뻗어 그 사람의 머리에 쐬웠던 검은 베를 벗겨내자 다름아닌 
파랑성이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왕옥파의 제자들은 그를 보자 다투어 노갈을 터뜨렸다.

[간적이다. 빨리 그를 죽여라!]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각자가 무기를 들고 파랑성을 
난도질하려고 하였다. 사도학은 두 손을 들어 여러 사람을 저지하고 말
했다.

[잠깐!]

그는 포권을 한 이후 전노본에게 물었다.

[귀하가 간악한 자를 잡았는데 어떻게 처치할 것인지 모르겠군요.]
[우리 윗사람께서는 평소 사도 노영웅을 우러러보던 바였소. 그날 사도 
소협과 일면지식의 인연을 맺지 않았소이까? 오늘 흉악한 짓을 한 간악
한 자를 잡았으니 그가 데리고 온 악적들과 더불어 모조리 사도 노영웅 
앞에서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죽여  하늘에 계신 노영웅의 영혼을 위로
하고자 하오.]

사도학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파랑성을 바라보며 속으로 반신반의하면
서 생각했다.
(오랑캐는 교활하니 반드시 간계가 있을 것이다.)
파랑성은 갑자기 크게 욕을 퍼부었다.

[제기랄! 떡을칠!  어째서 나를 자꾸만 쳐다보느냐?  너의 아비는 바로 
나에게 살해되었다....]

전노본은 오른손으로 그의 등을 후려치고 왼발로 그의 엉덩이를 걷어찼
다. 파랑성은 손발이  묶여 있는지라 피하기 어려워  몸을 곧장 앞으로 
날아가듯 달려가게 되었고 결국은 사도학의 옆에 쓰러져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것은 저의 윗사람이 보내는 조그만  예물이오. 그 간악한 자는 귀하
가 알아서 처리하시오.]

전노본은 고개를 돌리고 부르짖었다.

[모두 데리고 오너라!]

일 대의 친위병들이 몸에 쇠사슬이 묶여 있는 백여 명이나 되는 범인들
을 앞세우고 왔는데  모든 범인의 머리 위에는 검은  베가 씌워져 있었
다. 검은 베를 벗기자 얼굴 모습이 드러났는데 모두 파랑성의 부하들이 
아닌가? 전노본은 말했다.

[아무쪼록 사도 소협께서 함께 데려가도록 하시구려.]

이렇게 되자 사도학은 더욱더 의심할 수 없어 위소보를 향해 멀리서 허
리를 굽히고 말했다.

[귀하의 성의에 대해서 정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우리에게 이와  같이 크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일을 시키려고 그러는 것일까?  설마 하니 우리들에게 오랑캐에게 투항
하라는 것일까? 그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위소보는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 반례하며 말했다.

[그날 사도 형과 증유 소저와 함께 주사위 노름을 한 사실을 줄곧 뇌리
에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저 언젠가  다시 한번 놀아  보기를 원했소이
다.]

그는 등뒤의 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도 노영웅의 유체는 바로 이 관 안에 있으니 아무쪼록 산 위로 모시
고 가 몸에 붙여 꿰매도록 한 이후 안장토록 하시구려.]

사도백뢰의 머리와 몸뚱이는 두 쪽으로 나누어지고 수급은 이미 파랑성
이 가지고  산을 내려가 왕옥파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통분해 마지않았
다. 그런데 이제 위소보의 말을  듣게 되자 사도학은 여전히 어떤 수작
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관으로 다가와서 살펴보니 관 뚜껑
에 못질을 하지 않은 상태라  관을 열어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부친의 
수급이 놀랍게도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만 대성통곡을 하며  땅바닥에 엎드려 울부짖었다. 나머지 제자
들도 그의 행동을 보더니 일제히 땅바닥에 엎드려 슬피 울었다. 사도학
은 몸을 일으키더니 네 명의 사제를  불러서 관을 들고 산 위로 올라가
도록 하고 위소보에게 말했다.

[아무쪼록 귀하께서는  선친의 영전에  한 대의 향이라도  피워 주십시
오.]
[당연히 노영웅의 영전에 절을 올려야죠.]

위소보는 친위병들을 산 입구에서 기다리도록 하고 쌍아와 천지회 형제
들만 이끌고 사도학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갔다.  위소보는 증유의 곁에 
다가가서 나직이 말했다.

[증 소저, 안녕하셨소?]

증유의 얼굴은 눈물  자국이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로  두 눈은 울어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측은한  모습으로 그녀는 고개를 들고 흐느끼며 
말했다.

[그대는....그대는 화차....화차화차 장군이신가요?]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그대는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소?]

증유는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녀의 얼굴이 그같이 붉어
지자 위소보는 대뜸 마음이 설레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어째서 나를 보자 얼굴을  붉혔을까? 여인이 얼굴을 붉히는 것
은 마음속으로 남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혹시 그녀는 나를 그녀의 지아
비로 삼으려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녀에게 준 주사위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는 나직이 물었다.

[증 소저, 지난 번 내가 그대에게 준 물건을 아직도 가지고 있소?]

증유는 얼굴을 다시 한번 붉히며 고개를 돌리더니 물었다.

[무슨 물건인가요? 저는 잊었어요.]

위소보는 크게 실망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증유는 고개를 돌리더니 나
직이 웃으며 대답했다.

[별십?]

위소보는 매우 기뻐서 그만 속이  다 근지러울 지경인지라 정겹게 속삭
였다.

[나는 별십이고 그대는 지존이외다.]

증유는 다시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더니 
사도학의 곁에서  산을 걸어을라갔다. 왕옥산의  사면은 깎은 듯했으며 
그 형태가 마치 임금님의 수레지붕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름
이 붙여졌고, 가장 높은  곳은 천단(天壇)이라 했는데 동쪽으로는 일정
봉(日精峯)이 있고 서쪽으로는 윌화봉(月花峯)이있었다.
일행은 사도학을  따라 천단 이북의  옥모동(王母洞)에 이르렀다. 길을 
오는 동안 우거진 소나무와  백나무들이 어우러져 산경치는 고즈넉하고 
아늑했다. 왕옥산은 그야말로  도가의 서적에서 청허소유동천(淸虛小有
洞天)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며 천하의 동천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히는 
곳으로서, 전해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황제(黃帝)가 왕모(王母)를 이곳
에서 만났다고 했다.  왕옥파의 사람들은 떼를 지어  왕모동과 그 부근 
각 동굴에서 살고 있었는데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집보
다 한결 나은 편이었다. 사도백뢰의 영위는 바로 왕모동에 차려져 있었
다. 제자들은 수급과 몸뚱이를 꿰매서 염을 했다.
위소보는 천지회의 형제들을 데리고 영전  앞으로 나아가 향을 올려 경
의를 표하고 나서 끓어엎드려 큰절을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증 소저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는 슬퍼하면 슬퍼할수록 좋겠다.)
위소보는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본래 거짓으로 우는 것은 그가 자랑
하는 장기였다. 그는 궁중에서  수차례에 걸쳐 늙은 갈보에게 구타당했
던 참혹한 일들과 홍 교주에게  잡힌 후 아슬아슬했던 광경, 그리고 거
듭 방이에게 속아서 운수 사납게 되었던 일, 아가가 정극상을 사랑한다
는 억울한 사실들을 생각하자 그만 진정으로 설움에 복받쳐 대성통곡을 
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애를 썼으나  일단 울기 시작하자 그 울음은 갈
수록 비통해졌다.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사도 노영웅, 이 후배는 어려서부터 그대가 충신의사이며 매우 커다란 
영웅호걸임을 알았소이다.  과거 아드님의 검법을  보고 더욱더 그대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고 그저  그대의 문하로 들어가 제자가 되
거나 사손이 되어서 몇 초의 무공을 익혀 강호에서 이름을 드날릴까 생
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은  간악한  자에게  해침을 당했으니,  엉
엉....엉엉....정말 사람의 창자를 끊어 놓는군요.]

사도학과 증유 등은 그렇지 않아도 정말 죽고 싶도록 슬퍼하고 있는 터
에 그가 그와 같이 울부짖자 대뜸 왕모동 안은 곡소리가 진동하게 되었
다. 서천천과 전노본은 애초에는 울지 않으려 했으나 그만 위소보와 여
러 사람들의 슬픔에 동화되어서 몇 방울의 눈물을 뿌리지 않을 수 없었
다.
위소보는 가슴을  치며 발버둥을 치는 등  대성통곡해 오히려 왕옥파의 
제자들이 수없이 달래고 위로해서야  겨우 눈물을 거두었다. 그는 파랑
성을 한쪽으로 끌고와 한 자루의  강철칼을 사도학의 손에 건네주며 말
했다.

[사도 소협, 그대가 이 간적을 죽여 영존의 원한을 갚도록 하시오.]

사도학은 한칼에 파랑성의 수급을  베어서 홍탁 위에 올려놓았다. 왕옥
파의 제자들은 일제히 위소보의  커다란 은혜에 사의를 표했다. 위소보
같이 어린 나이에 사람의 인심을 얻는 계책을 생각해 내는 것은 예삿일
이 아니었다. 이 방법을 그는 와룡조효(臥龍弔孝)
라는 한 토막의 극에서 배운 것이었다. 주유가 제갈양에 의해 울화통이 
터져 죽은 이후 제갈양은 친히 시상구(柴桑口)로 가서 제례를 올렸으며 
슬피 울면서 절을 하였는데 그 바람에 동오의 장수들은 매우 고맙게 여
기게 되었다. 다행히 극중의 제갈양이  읽은 제문은 너무나 길고 또 그 
구절이 너무나 고아하여 위소보는 한 마디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렇
지 않았다면 왕옥산 위에서도 똑같이 읊어댔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즉시 본색을 드러내게 되었으리라.

사태가 이렇게 되자 왕옥파의 사람들은 자연히 그의 은덕을 고마워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위소보는 사도학  등을 사로잡았을 적에 은자를 주면
서까지 석방시켜 주는 등 크게  정을 베푼 적이 있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는 청나라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인데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
지 사람들은 시종 이해할 수 없었다.
전노본은 사도학을 한쪽으로 불러 자신들은 바로 천지회의 청목당 형제
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위소보는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는 만큼 그의 
신분을 결코 토로할 수가 없었다. 일단 누설되면 큰일을 그르치기 쉽기 
때문에 그저 애매하게 말하고 위소보의 위인됨이 지극히 의리가 있으며 
몸은 조조의 군영에 있으나 마음은  한나라에 있을 뿐 아니라 형제들은 
모두 그를 좋은 친구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사도학은 그 말을 듣고
는 확연히 깨닫게 되었고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때 그의 말은 지성에서 우러난  말이라 조금 전 반신반의했던 때와는 
또 다른 점이 있었다. 곧이어 왕옥파의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도학은 왕옥파에서 이와 같은  커다란 변고를 맞고, 큰 장례
를 치러야 할 판인 데다 관병이 산을 에워싸고 있으니만큼 앞으로의 일
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노본은 살짝 망명할 뜻을  비췄다. 천지회는 강호에서 지극히 위명을 
펼치고 있었고 은연중 그 당시 반청복명의 영도자적 위치를
굳히고 있었기 때문에 왕옥파에서는  천지회를 우러러보고 있었고 또한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도학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는  크게 기뻐서 왕옥파의 명숙들과 사형
제들과 더불어 상의를 하였는데 모든  사람이 이 의견에 찬성하고 나섰
다. 그는 즉시 전노본에게  천지회에 가맹시켜 달라고부탁했다. 전노본
은 이때서야 그에게 위소보가 실제 청목당의 향주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날 오후 천지회의 청목당은 바로 왕모동에서 향당(香堂)을 크게 열고 
왕옥파의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향주에게 인사를 올리고 모두 
다 위소보의 부하가 되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기뻐서 결맹주(結盟酒)를 
마신 후 노름판을 벌여서는 새로이  가입한 형제들과 더불어 크게 한번 
놀아 보고 싶었다. 이력세 전노본 등은 재빨리 말렸다. 신이 나서 노름
판을 벌인다는 것은 이제 막  세상을 뜬 사도백뢰에게 불경스러운 일이 
된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노름을 할 수 없자 약간 흥이 깨졌다. 왕옥파
의 뒷처리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이력세는 말했다.

[왕옥산은 산서와 하남성이 맞닿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청
목당의 관할이 아닙니다. 본희의  규칙에 따르면 경계를 벗어나 형제를 
거두어들여 가입시키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각 당의 형제들은 그 관할
지역을 벗어나 일을 처리할 수 없으니 가장 좋기로는 사도 형제와 여러
분들이 직예성(경기 일대)으로 옮겨 가서 사는 것입니다.]

전노본은 말했다.

[오랑캐의 황제가  위 향주에게 왕옥산을  공격하도록 분부했는데 사도 
형제 여러분들이 왕옥산에서 사라진다면 위 향주로서는 이 일을 보고하
기가 쉬워집니다.]

사도학은 말했다.

[그렇소이다. 소제는  삼가 여러  형님들의 분부를  받들도록 하겠습니
다.]

위소보는 말했다.

[사도 형, 이제 나는 양주로  가서 사각부의 충렬사를 지어야 하오. 그 
사당을 다 만들어 놓은 후에 모두 함께 오삼계를 공격하러 갑시다.]

사도학은 몸을 일으키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위 향주께서 오삼계를 공격한다면 속하는 선봉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리고 사형제들을 이끌고 오삼계라는 악적과 사생결단을 내어 선친의 원
한을 갚도록 하겠소이다.]

위소보는 기뻐서 말했다.

[그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오. 여러분들은 곧 나와 함께 양주로 갑시다. 
그러나 반드시 오랑캐의 관병으로 분장을  해야 할 것이니 억울해도 좀 
참도록 하시오.]
[오삼계를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더 큰 억울함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
다. 위 향주께서 오랑캐의  벼슬아치가 되었으니 우리도 당연히 오랑캐
의 병졸이 되어야겠지요. 더군다나  이형과 서형, 여러분들도 오랑캐의 
군졸로 가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날 밤 사도백뢰를 안장한 후  짐을 챙겨서 산을 내려왔다. 무공을 아
는 남자들은 위소보를 따라 양주로 갔다. 그리고 노약자와 부녀자들 및 
어린애들은 보정부(保定府)로 가서는 안거할 땅을 찾도록 했다. 그곳에
는 천지회 청목당의 분타가 있기  때문에 자연히 접응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위소보는 장용 등에게 말했다.

[왕옥산의 비적들은  대군이 에워싼 것을 보고  겁을 먹고 투항해왔소. 
나는 그들을 초안(招安)하여 관병으로 삼았소.]

장용 등은 일제히 그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도통이 군사들에게 피를 
뿌리지 않게 왕옥산의 용감한 비적들을 평정하였으니 그야말로 큰 공을 
세웠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이 모두가 네 분 장군의 공이외다. 만약 그대들이 겹겹이 에워싸지 않
았다면 그들 역시  투항하지 않았을 것이오. 나중에  이 형제가 조정에 
알려서 제각기 상을 받게 하겠소.]

네 장수는 크게 기뻐했다. 그들은 병부상서 명주가 위소보를 지극히 떠
받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 도통이 보고하는 공로에 대
해서 병부에서는 반드시 특별히 우대하여  품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
었다. 위소보는 처음 증유가  왕옥파의 부녀자들을 따라 보정부로 가서 
안거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그녀를 따로 지정해서 함께 양주로 
가자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남장을 하고 사도
학과 더불어 동행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길을 가면서도 그는 기회가 생기는 대로 그녀에게 다정히 굴려
고 했다. 그러나 증유가 왕옥파의 사형들과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았고 
그와 눈이 마주치면 그저 겸연쩍어하는 미소만 띄울 뿐 말을 하지 않았
다.
위소보는 그녀와 몇 마디의 다정한 말을 나누고 싶었으나 시종 그 기회
를 찾지 못해 그만 속이  근질근질해졌다. 만약 그가 청나라 군사의 대
장 직책이라면 공무를 빙자해서 나이  어린 여자 친위병을 군영 안으로 
끌어들여 시중을 들게 했을 것이지만  그의 신분이 천지회의 향주인 데
다가 천지회의 형제들이 부녀를 희롱하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어서 마
른침을 삼키며 기회를 기다렸다.
연도의 관원들이  그들을 환영하고 전송을 했으며  풍성한 뇌물을 안겨 
주었다. 위소보는 언제나 주는  것을 거절하거나 사양하지 않았으니 남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자연히  봇짐이 날로 무거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천지회의 형제들에게 자기들이  오랑캐 벼슬아치들의 기강을 흐트
러뜨리고 뇌물을 받아들이는 것이 많을수록 백성들은 더욱더 청나라 조
정을 원망하게 되고 각처의 관원들에  대한 평판이 나빠져 장래에 군사
를 모으고 반란을 일으킬 때 더욱 쉽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천
천 등은 그 말을 깊이 믿어 의심치않았다.

며칠 후 양주에 도달하였다.  양강(兩江)의 총독 마를길(痲勒吉), 강녕
순무(江寧巡撫) 마우(馬佑) 및  포정사(布政使), 안찰사(按蔡使), 학정
(學政), 회양도(淮揚道) 양도(糧道), 하공도(河工道)의 도태(道台), 양
주부(揚州府)의 지부(知府) 지현(知縣)  그리고 각급(各級)의 무관들은 
이미 전갈을 듣고 수 마장 밖으로 나와 영접했다.
흠차행원(欽差行轅)이 희양도 도태(道台)의  아문에 설치되었으나 위소
보는 구속받는 게  싫어 저녁밥을 먹은 후 도태에게  다른 곳으로 옮겨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행원의 소재지를 옛날 여춘원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
했다. 그러면 금의환향하는 셈이니 자연히  뽐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
러나 흠차대신이 행원을 기원에 설치한다는  것은 역시 말이 되지 않았
다. 옛날 양주에 있을 때 그의  웅심과 큰 뜻은 커다란 기녀원을 몇 채 
경영하는 외에 바로 선지사(禪智寺)  앞의 작약포를 망가뜨리는 것이었
다.
양주의 작약은 천하에 명성이 알려져  있었고 선지사 앞의 작약포는 더
욱 규모가 웅장해서 유명한 종자가 수천 수백 가지에 이르렀고 꽃이 사
발만큼 컸다.
위소보는 열세 살 나던 해에  한 떼의 장난꾸러기들과 이곳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작약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두 송이를 꺾어서 
손에 들고 놀다가 절간의 화상에게 들켜 꽃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따귀
까지 두 대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위소보는 그렇게 되자 발길로 차고 
물고늘어지면서 그 화상과 소란을 피우게  되었고 결국 그 화상에 의해 
땅바닥에 내팽겨쳐져 몇 번 발길질을 당하였다.
장난꾸러기들은 와, 하고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작약을 마구 뽑아 내동
댕이쳤다. 그 화상이  소리를 내지르자 절에서 한  떼의 화상들과 화공
(火工)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손에  곤봉을 들고 장난꾸러기들을 내쫓았
다.
위소보는 그 장난꾸러기들의 대장격이라 해서  몸에 적지 않게 곤봉 세
례를 받아 머리에 혹을 크게  달고 여춘원으로 돌아갔는데 모친은 그에
게 벌을 내린답시고 밥을 한  끼도 먹이지 않았다. 그는 주방에서 음식
을 배부르게 훔쳐먹기는 했지만 선지사  앞에서 꽃을 꺾다가 욕을 당한 
그 사건을 가장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게 되었고 다음날 그는 절 앞으로 
가서 멀찍이 서서 여래보살의  어머니에서부터 화상의 딸에 이르기까지 
욕을 했으며, 그 스스로 언젠가는 자기가 이 절 앞의 작약을 모조리 뽑
고 냄새나는 그 절간을 똥오줌을  채워 두는 구덩이로 만들어 놓겠다고 
맹세했다. 그리하여 절 안의 화상들이 쫓아나올 때까지 욕을 했고 쨍소
니치면서까지 계속 욕을 했었다. 몇  년이라는 세윌이 흘러 그 일은 벌
써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날 양주에 돌아와 행원으로 삼을 만한 곳을 
찾다 보니 선지사가 생각났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희양도의 도태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속으로 선지사와 작약포를 한번 짓밟아 보고 싶은 생
각이 들었다.
그 도태는 속으로 생각했다.
(선지사는 불문의 성지로서 천 년의  고찰이다. 흠차가 그 안으로 들어
가 살게 된다면 발칵 뒤집어엎는 꼴이 될 것이다.)
그는 말했다.

[대인께 말씀을 올리지요. 선지사의 풍경은 정말 훌륭하기 짝이 없습니
다. 대인의  고견에 대해서 폐직은 감탄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하지만 
절간에서 비린 것과 술을 먹게 된다면 아무래도 불편할 것 같습니다.]

위소보는 말했다.

[뭐가 그렇게 불편하겠소? 절간의 보살들을 옮기면 될 것 아니겠소?]

그 도태는 보살을 옮겨야 한다는 말을 듣고 더욱 놀라 이번에야말로 화
를 불러일으켜 양주성 안의 모든  백성들이 공분을 일으키게 된다면 처
리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하고 즉시  웃음을 짓고 새삼스럽게 인사를 
한 후 나직이 말했다.

[대인께 말씀드립니다. 양주의 여인들이  아름답다는 것은 천하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대인께서는 길을  오시느라고 고생이 많았고 공도 크
신데, 이곳에 이른 이상 폐직이  마땅히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할 것이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문고  잘 튕기고 노래 잘 부르는 예
쁜 여인네들을 뽑아서 대인께 감상을 시켜 드릴까 하고 있습니다. 그러
니 절간 안의 딱딱한 침대와 딱딱한 걸상에 눕거나 앉는다면 크게 살풍
경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그 말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고 웃었다.

[그렇다면 행원은 어디에다 설치했으면 좋겠소?]
[양주의 염상(鹽商)으로 하(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의 집은 
하원(何園)이라고 불리우고 있지요. 그는 흠차대인께 호의를 갖고 있어 
이미 모든  것을 적절히 조치해 놓고  대인께서 왕림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그의 공명이 너무  적어 감히 입을 열어 청하지를 못하
고 있지요. 대인께서 만약  초라하다고 생각지 않으시다면 그곳으로 가 
보시는 것도 상관이 없겠습니다.]

하가는 소문난 부자였다. 위소보는 어릴  때 그 집의 높은 담장을 지나
칠 때마다 담장 안에서 들려오는  풍악소리를 듣고 매우 부러워 했으나 
한 번도 안으로 들어가 볼 만한 인연을 맺지 못한 터라 즉시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며칠간 묵도록 하지. 만약에 불편하다면 그때 다시 옮
기도록 합시다. 양주의 소금 밀매업자들은 우리가 며칠간 실컷 먹고 마
셔도 곤궁해질 사람들이 아니니까 말이오.]

그 하원은 집들이 즐비했으며  샘물과 바위들도 아늑하게 만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정자와 집들이 운치있게 꾸며져 있었다. 그야말로 건축의 구
성이 정교하여 아름답다고 할 수  있었다. 첫눈에 한자의 땅에 적지 않
은 황금과 백금을 뿌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소보는 매우 만족하였고 친위병과 시종들을 모조리 하원 안으로 불러
들여 머물도록 했다. 장용 등  네 장수는 관병들을 거느리고 나누어 부
근 관사와 민가에 묵었다.

이때 양주는  매우 번화하여 천하에서 으뜸가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나라 시대에도  이미 '십리주렴(十里珠簾)에 이십사교풍월
(二十四橋風月)'이라는 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청나라 초기에는 
강서성과 안휘성의 염상들이 모조리 이곳에 모여 더욱 흥청거리게 되었
다.
역사책에 실려 있는 기록을 보면 명나라 말 양주부의 인구는 모두 구십
칠만오천여 정(십육 세 이상의 남자)이나 되었는데 청나라에 이르러 양
주가 청나라 군사에게 도살을 당하게 된 순치 삼 년에는 겨우 육천삼백
이십여 정만 남게 되었다. 강희 육 년에 이르러 다시 삼십구만칠천구백
여 정으로 불어나 비단 원기가  완전히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옛날보다 
더욱더 번화해졌다.
이튿날 아침 양주성의 크고 작은  관리들은 줄을 지어 흠차행원으로 와
서 인사를 드렸다. 위소보는 그들을  접견한 이후 성지를 읽었다. 그는 
글을 모르기 때문에 이미  사야(師爺)에게 익숙해지도록 가르침을 받았
는데 한자 한자 외운 셈이었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그의 기억력은 무척 
좋았다. 때로는 촉망중에 그것을 거꾸로 들기도 했으나 다른 사람은 이
를 발견하지 못했다. 관원들은 황제께서 성지를 내려 양주부에 속한 각 
현에 삼 년 동안 전량을 감면해  줄뿐 아니라 청나라를 세울 때 병란으
로 과부가 된 사람들을 구혈하고  충렬사를 지어서 사가법등 충신을 제
사지내겠다는 말에 모두가 크게 소리내어 만세를 부르며 황제의 넓으신 
은혜에 사의를 표했다. 위소보는 성지를 다 읽고 나서 말했다.

[여러 대인들, 형제가 북경에서 나설 때 황상께서는 강소성의 출산품이 
매우 풍성하지만 근년에 이르러  벼슬아치들의 다스림이 해이해지고 군
사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이 형제로 하여금 잘 살펴서 정리하
라고 일렀소. 황상께서는 양주의  백성을 이토록 사랑하고 아끼시니 우
리 벼슬아치들은 마땅히 정성을 다해 성은에 보답해야 할 것이외다.]

문부백관들은 일제히 그렇다고 말했으나  위소보는 불현듯 속으로 걱정
을 했다. 기실 이 몇 마디의 말은 색액도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위소보는 상대방에게 뇌물을 받고 싶으면 상대방이 어떤 것을 바라도록 
만들고 또 상대방에게  부담을 지워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강소성의 문무관원에게 한바탕 위협적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몇 마디의  말은 너무 가볍지도 않고 
적당한 것이라야 하고 또한 의젓하고  위엄이 서려 있어야 했으므로 반
드시 색액도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위소보가 벼슬아치의 의젓한 수작을 하게 되면 자연히 곤계의 관원들이 
충렬사를 모실 곳을 찾아내어 충렬사를 세울 것이고, 구혈을 해줄 사람
들을 찾아내서 명부책을 만들 뿐 아니라, 사람을 시켜서 사방의 고을에
다가 황상이 전량을 면하게 해준다는  창자 뒤집히는 소리를 선포할 것
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들은 일조일석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
다. 그는 돈을  막 뿌려 대는 양주에서 일시  복을 누려 보자는 것이었
다. 수일 동안 충독과 순무가 잔치를 열어 주었고, 포정사와 안찰사 등
도 잔치를 열었으며, 각 지방의 도태들도 잔치를 벌였다. 그 잔치는 으
리으리한 진수성찬으로 호사함을 다했다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
다.

위소보는 여춘원으로 가서 모친을 만나 보고 싶었으나 매일같이 찾아오
는 벼슬아치들을 상대하느라 그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차대
인의 어머니가 양주의 기녀라는  사실을 들춰낼 필요는 없었다. 위소보 
개인의 창피는 오히려  작은 일이고 조정의 체통을 잃게  되는 것이 더 
큰일이었다. 더군다나 위소보는 조정의  커다란 벼슬을 한 지 오래됐으
나 줄곧 어머니를 북경으로 모시고 가서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로 커다란 불효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사
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위에 대고 한 마디 하게 된다면 황제라도 그
를 변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속으로 나중에 안정이 되었을 때 살그
머니 차림을 바꾸고 여춘원으로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위
병으로 하여금 모친을 북경으로 보내  편안한 삶을 누리도록 하되 반드
시 귀신도 모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발밑에 기름을 바
르고 여차하면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었고 뭔가 잘못되었을 때는 즉시 
발에 채찍질을 가해서 멀리  도망칠 심산이었다. 그런데 벼슬은 갈수록 
높아지고 가면 갈수록 기분이  좋아져 어머니마저 서울로 모셔와야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인데 이는  바로 벼슬을 오랫동안 해나갈 뜻이 있
음을 비춘 것이라 하겠다.



第99章. 성대한 연회석


며칠이 지나자 양주부의 지부  오지영(吳之滎)이 잔치를 벌여서 흠차를 
환영했다. 곧이어 도태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흠차가 선지사를 행원으
로 삼으려고 했다고 하는지라, 선지사의 가장 멋진 점은 절 앞에 한 개
의 작약포가 있으니  흠차대인이 그 절에 머물려고 한  것은 아마도 꽃 
구경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지라 이미 수일 전에  작약포 옆에 하나의 
화붕(花棚)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솜씨가 뛰어난 장인으로 하여금 소
나무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나무의 가지와 잎들이 그대로 달려 있는 채
로 세우게 했다. 화붕 안의  탁자와 의자는 모두 천연적인 나무와 돌을 
사용했고 화붕에도 꽃나무와 푸른 화초를  잔뜩 심어서 다시 대나무 토
막으로 물을 끌어들여서 화붕 안  사방을 돌며 흐르도록 만들어서 졸졸
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했다. 그러니만큼 지극히 교묘한 생각을 짜낸 것
이라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잔치를 벌인다는 것은 마치 
산속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것은 부유한 사람이 옥
을 깎아서 대들보를 세운 화려한  객당에서 술을 마시는 것과는 또다른 
흥취가 있었다. 그러나 위소보는 용렬하고 범속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
이라 화붕에 이르자 첫 번째 한 마디가 다음과 같았다.

[어째서 차일이 쳐져 있지? 아,  그렇군! 절의 화상들이 법사를 하려고 
세워서 이곳에서 배고픈 거지들에게 밥을 먹여 주려고 하는 모양이군.]

오지영은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였으나 헛되게 되자 그만 얼굴이 겸연쩍
게 되었다. 그는 흠차대신이 일부러  자기를 비웃는 줄 알고 웃음을 지
으며 말했다.

[폐직의 견문이 좁고 얕아서 이곳을 대인의 뜻에 들도록 꾸미지를 못했
으니 실로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위소보는 손님들이  이미 엄숙히 서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라 즉시 
인사말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양강의 총독은 위소보를 상대로 며칠 
동안 술도 함께하고 말도 나누어  보았는지라 이미 강녕의 자기가 다스
리는 곳으로 가고 없었다. 그런데 강소성의 순무와 포정사 등은 다스리
고 있는 곳이 바로 소주인지라 모두 다 양주에 남아서 흠차대신을 모시
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귀빈은 명사가 아니면 공을 세운 염상들이었
다.
양주의 연회석은 절차가 번거로운 만큼 또한 화려했다. 술 마시기 전에 
올라오는 다과와 간식만 해도 수십 가지나 되었다. 위소보는 이 고장의 
토박이였지만 그것들을 다 알지는  못했다. 한동안 차를 마시자 햇살이 
서쪽으로 점점 뉘엿뉘엿 기울어졌다. 햇살은 이제 화붕 밖의 수천 그루
나 되는 작약을 비추게 되어 그 찬란한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비단을 펼
쳐 놓은 것 같았다.
위소보는 보면 볼수록 화가 났다. 어린 시절 승려들에게 구타당하고 모
욕당한 일이 생각나 대뜸 작약을 모조리 뿌리채 뽑아서 태워야 속이 후
련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반드시 구실이 있어야 그와 같이 손을 쓸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순무인 마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위 대인, 대인의 말투로 미루어  아마도 이 희양(准揚) 일대에서 지낸 
적이 있는가 보군요. 희양은 물과  땅이 좋아서 인재가 나고 또한 좋은 
꽃도 난답니다.]

관원들은 흠차가 정황기 만주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순무는 
이 며칠 동안 그의 말을 듣고  양주의 말씨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
하며 이 기회에 그를 추켜세운 것이었다. 위소보는 이때 한창 선지사의 
승려들이 괘씸해 죽겠다고 섕각하고 있던 터라 불쑥 말했다.

[이 양주 땅은 다 좋은데 오직 화상들만 고약합니다.]

순무는 어리둥절해져서 그의 참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포
정사 모천안(募天預)은  눈치가 빠르고 학문이 있는  사람이라 그 말을 
받았다.

[위 대인이 보시는 바가 무척  옳습니다. 양주의 화상들은 시세의 흐름
을 매우 잘 타는 편으로  관부의 사람이라면 추켜올리고 평범한 사람이
라면 업신여기는데 그것은 옛날부터 그렇답니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웃었다.

[그렇소이다. 모 대인은 독서하는 사람이라  책에 쓰여 있는 것을 알고 
있었구려.]
[당나라 왕파(王播) 벽사농(碧紗籠)의  이야기만 하더라도 바로 양주에
서 일어났던 일이 아니겠습니까?]

위소보는 옛날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편이라 재빨리 물었다.

[뭐가 황포비사룡(黃布比沙龍)의 이야기요?]
[이 이야기는  바로 양주 석탑사(石塔寺)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나라 
건원(乾元) 연간에는 석탑사를 목란원(木蘭院)이라고 했는데 시인 왕파
는 젊었을 때 집안이 가난해서....]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이 사람은 왕파라고 한 것이고 한 조각의 황포가 아니었구나.)
그는 모천안이 계속하는 말을 들었다.

[목란원(木蘭院)에서 기거하게  되었지요. 절간의 화상들은  밥을 먹을 
때 종을 쳐서 알렸는데  왕파도 종소리를-듣고 역시 반당(飯堂)으로 가
서 밥을 먹었죠. 화상들은 그를  싫어해서 한번은 모두들 밥을 먼저 먹
고 난 후에야 종을 쳤습니다. 왕파는 종소리를 듣고 반당으로 들어갔는
데 이미 승려들은 흩어지고 없었고 밥과 찬도 이미 깨끗이 먹어치운 후
였죠....]

위소보는 앞에 놓인 탁자를 두드리며 노여워했다.

[제기랄! 화상이 고약하군.]
[그렇지요. 밥 한 끼의 비용이 얼마나 되겠소이까? 당시 왕파는 속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벽에다 다음과  같이 쓰게 되었지요. '상당기료각서
동(上堂已了各西東) 참괴도려반후종( 愧 黎飯後鐘)']

위소보는 물었다.

[도려는 어떤 녀석이오?]

벼슬아치들은 그와 며칠 상대를  해보았는지라 이 흠차대인은 독서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만주 귀인의 공명부귀는 책을 읽어서 얻
는 것이 아니므로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천안은 말했다.

[도려는 바로 화상이지요.]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화상은 바로 땡초였군. 그 후 어떻게 되었소?]
[후에 왕파는 큰 벼슬아치가 되었고 조정에서는 그를 보내 양주를 지키
도록 했는데 그는 재차 목란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화상들은 자
연히 그를 크게  떠받들었지요. 그는 과거에 남긴  시가 아직도 있는지 
보려고 했는데 그 벽에 써 놓은 그의 두 구절의 시에 값진 벽지를 붙여
서 잘 보존시키고  있었습니다. 왕파는 매우 감격하여  다시 두 마디의 
시를 읊었지요. '삼십년전진토면(三十年前塵土面) 여금시득벽사농(如今
始得碧紗寵).']

위소보는 말했다.

[그는 그 땡초들을 잡아서 볼기를 쳤겠구려.]
[왕파는 풍류를 알고 멋을 아는  선비인지라 두 마디의 시를 써서 약간 
비웃어 주고는 그만두었지요.]

(만약 나였다면 어찌 그토록 쉽게 손을 떼겠는가? 하지만 날 보고 시를 
쓰라 한다면 나에겐 그만한 재간이 없다. 나는 그저 똥을 쌀 줄만 알았
지 시를 쓸 줄 모른다.)
이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를 물리고 술이 올라왔다. 위소보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왕진보가 옆자리에서 술을 한모금 시원스럽게 마
시고 있는지라 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어서 말했다.

[왕 장군, 그대는 전마(戰馬)가 작약을 먹으면 특별히 건장해진다고 말
한 적이 있지 않소?]

말하면서 그는 눈짓을 했다. 왕진보는 그 뜻을 몰라 말했다.

[그건....]

위소보는 말했다.

[황상께서 유명한 종자의 좋은 말을  뽑아서 사용하고 계시지 않소? 무
슨 몽고의 말, 서역의 말,  사천성의 말, 운남성의 말들이 있는데 황상
께서는 우리들에게 조심해서 키우라고 분부하지 않았소?]

강희가 말을 기르려고 한다는 사실은 왕진보도 알고 있는 터였다.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대는 말의 성질을 잘 알고  있어서 북경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전마
에게 작약을 먹인다면  두 배나 빠르게 된다고  하지 않았소? 황상께서 
그와 같이 말을 사랑하시니 우리들 신하된 자는 마땅히 성상의 뜻을 살
펴야 할 것이오. 만약 이곳의  작약꽃을 뽑아서 북경으로 보내 병부 거
가사의 사람들로 하여금 말에게  먹이도록 한다면, 황상께서 아시고 반
드시 크게 기뻐하실 것이외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다 하나같이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작약꽃이 말을 건장하게 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리고 왕진
보가 우물쭈물하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고 다만 
공공연하게 반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위소보는 입만 벙
긋하면 황상 황상 하면서 황제를  내세우니 누가 감히 조금이라도 이의
를 달겠는가? 그야말로 천여 그루나 되는 유명한 종자의 작약이 모조리 
그의 손에 의해  망가지게 될 판이고 양주는 이후부터  명승지 한 곳을 
잃게 될 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위 대인이 어째서 그토록 작약을 
미워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
을 하지 못했다. 지부 오지영이 말했다.

[위 대인께서는 정말 학식이  풍부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탄복하게 
하는군요. 이 작약의 뿌리는 적작(赤芍)이라고 하는데 본초강목(本草綱
目)에서 들먹이고 있지요. 그 효능은  응어리를 풀어 주고 피를 순환시
키게 한다고 했습니다. 작약의 명칭에  약자가 있는 것을 보면 옛날 사
람들은 바로 그 작약을 좋은 약으로 생각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
이 작약을 먹게 된다면 피가  잘 순환되어 자연히 나는 듯 달리겠지요. 
대인께서 북경으로 돌아가실 때 폐직은 사람들을 시켜 이곳의 작약꽃을 
모조리 뽑아서 대인께서 북경으로 가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벼슬아치들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오지영이 비열하고도 몰염치하게 상
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양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망가뜨리려 한다고 
욕을 했다. 위소보는 손뼉을 치고 웃었다.

[오 대인은 정말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훌륭하구려. 정말 좋소! 좋아!]

오지영은 매우 영광스럽게 여긴 듯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
고 말했다.

[대인께서 칭찬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포정사 모천안은 화붕에서 걸어나가 작약포의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 송
이의 대접만한 작약꽃을 꺾어서 자기 자리로 되돌아와 두손으로 위소보
에게 바치며 웃었다.

[대인께서 아무쪼록 이 한 송이의  꽃을 모자에 꽂으십시오. 폐직은 대
인께 들려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소보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꽃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그 한 송이 작약꽃은 꽃잎이 아주  짙은 붉은색이고 꽂잎 가운데 한 가
닥의 노란 선이  그어져 있어서 무척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그는 즉시 
모자 위에 꽂았다. 모천안은 말했다.

[대인께 축하드립니다.  이 작약은 금대위(金帶圍)라는  명칭이 있으며 
매우 드문 명종입니다.  옛날 책에 기록되어 있는  바로는 이 금대위를 
본 사람은 이후 재상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럴 리가 있소?]
[이 고사는  바로 북송(北宋) 연간에 비롯되었답니다.  그 당시 한위공
(韓魏公) 한기(韓琦)가 양주를 지키게 되었는데 바로 이때 선지사 앞의 
작약포에서 갑자기 한 그루의 작약이 네 송이의 큰 꽃을 피우게 되었지
요. 꽃잎은 짙은 붉은빛이었고  가운데에 금빛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바
로 이 금대위였습니다. 이와 같은 작약은 일찍이 없었던 것으로써 매우 
진기한 일이었지요.  그리하여 아랫사람이 보고를  하자 한위공은 즉시 
왕림하여 구경을 하게 되었고 매우 즐거워했답니다. 그런데 꽃이 네 송
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세 분의 손님을 청해 함께 꽃을 감상하려고 생
각했습니다.]

위소보는 모자에서 그 꽃을 내려서  다시 보니 아니나다를까 붉고 노란
빛이 서로 얽혀 더욱더 찬란해 보였다. 그 한줄의 금빛은 가로로 난 무
늬여서 여느 꽃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모천안은 말했다.

[그때 양주에는 명성이 높은 두 인물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왕규(王圭)
였고, 또 한  사람은 왕안석(王安右)인데 모두 다  재주가 있고 학문이 
깊으며 견식이 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한위공은 속으로 꽃은 네 송이
인데 사람은 세 사람뿐이니 아름다움  중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
고 달리 한 사람을 청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그 사람의 명망은 그만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주저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 누군
가 찾아왔습니다. 찾아온 사람은  바로 진승지(陳升之)로서 그 역시 한 
분의 명사였지요. 한위공은 크게 기뻐서 이튿날 이 작약포 앞에서 크게 
연회를 차려 네  송이의 금대위를 뽑아서는 각기 머리  위에 한 송이씩 
꽂게 되었습니다. 이  고사는 사상잠화연(四相簪花宴)이라고 하는데 후
에 이 네 사람은 모두 재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위소보는 웃었다.

[그거 재미있구려! 그 네 분 형씨들은 모두 유명한 독서인이고 시를 쓰
거나 문장을 지을 줄 알았지만 형제는 감히 그분들에게 견줄 실력이 못 
되오.]
[그렇지 않습니다.  북송 때만 하더라도  선비들이 재상을 했습니다만, 
우리 대청나라는 싸워서 천하를 얻었기 때문에 황상께서 가장 중시하는 
사람은 용기와 지략이 있는 영웅호걸입니다.]

위소보는 용기와  지략이 있는 영웅호걸이라는 칭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분이 좋아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천안은 말했다.

[한위공은 위국공(魏國公)에 봉해졌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왕안석
은 형국공(荊國公)으로 봉해졌고, 왕규는 기국공(岐國公)에 봉해졌으며 
진승지는 수국공(秀國公)으로 봉해졌습니다. 네 분의 명신들은 모두 재
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모두 국공(國公)으로 봉해졌습니다. 그런데 대
인께서는 젊어서 이미 출세하여 지금은  백작에 봉해졌으니 다시 한 계
급 더 오르면 후작이고 거기에서  더 오르면 공작이 될 것입니다. 그러
니 왕에 봉해지고 친왕에 봉해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아무쪼록 모 대인의  금쪽 같은 말씀처럼 이곳의  모든 분들이 벼슬이 
오르고 부자가 되기를 바라겠소이다.]

모든 관리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술잔을 들고 말했다.

[삼가 위 대인께서  가관진작(可官進爵)하시기를 바라며 공후만대(公侯
萬代) 되시기를 축하드립니다.]

위소보는 몸을 일으켜서는 관리들과 한 잔의 술을 건배했다. 그리고 속
으로 생각했다.
(이 벼슬아치는 학문이  있고 또 구변이 뛰어나  이야기를 잘해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구나. 만약 그로  하여금 북경으로 가서 일을 처리하도록 
한다면 수시로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이야기
꾼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는가? 이 사람은 타고난 아
첨대왕으로서 이름마저도 모천안이라고 하여  조정의 황상을 뵈옵고 싶
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모천안은 다시 말했다.

[한위공은 후에 군사를 거느리고  서강(西疆)을 지키게 되었지요. 서하
(西夏)나라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해서 감히 군사를 이끌고 침범하지 못
했습니다. 서하인들은 당시 송나라  조정의 두 분 대신을 두려워했는데 
한 분은 바로 한위공 한기였고  다른 한 분은 범문정공(范文正公) 범중
엄(范仲淹)이었습니다. 당시 두 마디의 말이 퍼져 있었지요. '군중유일
한(軍中有一韓), 서적문지경파담(西賊聞之驚破膽)' 장래 위 대인께서는 
군사를 거느리고 서강을 지키게 되면 다음과 같은 말이 떠돌게 될 것입
니다. '군중유일위(軍中有一韋), 서적견지망하궤(西賊見之忙下蒜)'!]

위소보는 매우 즐거워서 말했다.

[서적이라는 두 글자는 정말 잘 썼소이다. 평서왕의 이 서....]

그러다 갑자기 속으로 생각했다.
(오삼계는 아직 군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니 서적이라고 부
를 수가 없다.)
그는 재빨리 말투를 바꿨다.

[평서왕이 서강을 지킨 이후 태평무사함으로 매우 공로가 크오이다.]

오지영은 말했다.

[평서왕은 지용을 겸비하고 노고도 크지만,  공을 크게 세워 친왕에 봉
해지게 되고 세자는 부마가 되었지요. 장래 위 대인께서는 크게 부귀영
화를 누리게 되고 수명은 남산처럼 높아 반드시 평서왕과 다를 바가 없
게 될 것입니다.]

위소보는 속으로 크게 욕을 했다.
(이런 빌어먹을! 너는 나를 오삼계라는 대매국노와 견주어 똑같이 얘기
하고 있구나. 그 늙은 자라는 머리통이 곧 이사를 가게 되는데 너는 내
가 그와 같이 되라는 것이냐?)
모천안은 평소부터  조정의 동향을 애써 짐작해  보려고 하던 터였는데 
일전에 저보에 난 것을 보면, 황상께서 번왕들을 직위해제할 뜻을 비췄
다고 했는지라  오삼계가 매우 운수불길하게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 위소보의 안색이  확 변하는 것을 보고 즉시 마음
속으로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위 대인께서는 황상께서 친히  끌어올리신 대신이라 바로 성상의 심복
이요. 조정의 주석이며 국가의  동량(棟梁)입니다. 평서왕은 지금 관직
이 높지만 끝내 위 대인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 지부의 그
와 같은 말은 약간 맞지 않지요. 위 대인의 조상인 당나라 조정의 충무
왕(忠武王) 위고(韋旱)는 토번(吐蕃)군사 사십팔만 명을 쳐부숴서 서쪽 
변경에서 위세를 떨쳤습니다. 과거 주체(朱砒)
가 반란을 일으켜 사람을 보내  위 충무왕에게 함께 군사를 일으키고자 
청을 했습니다. 충무왕은  황제께 충성을 다하여 두  가지 마음을 품지 
않은지라 어찌 그와 같은 대역무도한 일을 했겠습니까? 즉시 반적의 사
절을 참하고 군사를 내보내 조정을  도와 반적을 평정하여서 대공을 세
우게 되었지요. 위  대인의 풍모가 의젓하신 것을보면  복이 커서 견줄 
데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응당 위 충무왕에 견주어야 마땅하지요.]

위소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자기의 성이 뭔지도 모르
고 있는 판이었다. 다만  모친을 위춘방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인데 위씨 성을 가진 사람 가운데 이와 같이 큰 내력이 있
는 인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터였다. 그런데 이 포정사가 억
지로 자기의 조상이라고 말하니 그것은  자기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격
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의 말뜻을 들어 보건대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
키려고 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사람의 재
주와 지혜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오지영은 모천안이 그와 같이 반박
하자 속으로 못마땅했으나 감히 공공연하게  상사와 언쟁을 할 수가 없
어서 말했다.

[소문에 듣건대 위 대인은 정황기인(正黃旗人:기인은 만주인)이라고 들
었습니다.]

그 말뜻은 물론 그는 만주인이니  어찌 당나라의 위고와 비교할수 있느
냐 하는 것이었다. 모천안은 웃었다.

[오 지부는 한 가지만 알았지  두 가지는 모르는구려. 지금 성천자께서 
제위하시어 천하 만민에 대해서 똑같이 보고 계시므로 만주인이나 한인
은 한집안 같은데 어찌 만인이니 한인이니 하는 차이를 두겠소이까?]

이 몇 마디의 말은 실로 억지를  쓴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지영
은 감히 변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속으로 또 몇 마디의 말을 했다가는 
어쩌면 흠차에게 죄를 짓게  된다고 생각하고 잇달아 그렇다고만 했다. 
모천안은 말했다.

[평서왕은 우리 양주부의 고우(高郵)  사람이지요. 오 지부는 평서왕과 
한집안이 아니시오?]

오지영은 결코  양주 고을 사람이 아니었으며  원래 오삼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이때  오삼계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는지
라 그는 본래 세도가에게 아부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자기의 성이 오
가임을 퍽이나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관계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족보의 서열로 볼 때 폐직은  평서왕보다 한 항렬이 낮아 마땅히 왕야
를 아저씨라고 불러야 한답니다.]

모천안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위소보에게 말했다.

[위 대인, 이 금대위라는 작약은  송나라 때만큼 드물지는 않지만 이와 
같이 활짝 핀 것을 보면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공교롭
게도 위 대인께서 이곳에 와서 꽃구경을 하게 되었을 때 활짝 피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우연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폐직에게 조
그만 의견이 있는데 대인께서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위소보는 말했다.

[모형께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구려.]

모천안은 말했다.

[가르침이라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 작약꽃의 뿌리는 약재를 
파는 가게에 가면 있습니다.  대인께서 말에게 먹이신다면 약재 가게에
서 다듬고 익힌 것이 더욱더  효력이 클 것입니다. 폐직은 대량으로 구
입해서 북경으로 보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의 작약꽃은 
대인에게 좋은 일이 있고 또 공을 세우리라는 사실을 알렸다는 점을 감
안하여 잠시 남겨 주실 수  없겠습니까? 훗날 위 대인께서 원수가 되시
어 도적을 깨뜨리고 또다시 재상이  되거나 왕에 봉해지게 되었을 때는 
바로 한위공이나 위 충무왕처럼 되어서  재차 이곳에 와서 꽃구경을 하
시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때 금대위가 활짝 피어 귀인을 맞아들이
게 된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폐직이 생
각하건대 훗날  반드시 연극무대에도  올려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
다.]

위소보는 신이 나서 말했다.

[그대는 연극하는 자들이 나로 분장하여 노래를 한다는 것이오?]
[그렇지요. 그야  물론 준수하고 우아하며 멋진  젊은이가 위 대인으로 
분장하겠지요. 그리고 하얀 수염에  검은 수염을 단 사람과 얼룩무늬를 
칠한 얼굴에다 하얀 코의 광대들이  있어 오늘 우리와 같은 벼슬아치들
의 역할을 해내겠지요.]

관리들은 모두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그러면 그 한 토막의 연극은 뭐라고 부르는 것이오?]

모천안은 순무인 마우에게 말했다.

[그건 무태대인(撫台大人)께서 연극 이름을 붙여 주시도록 하십시오.]

그는 순무가 줄곧 말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를 흔자 내버려 두어 
외롭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마우는 웃었다.

[위 대인께서 장래 왕으로 봉해지신다면 이 연극을 위왕잠화(韋王簪花)
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소?]

벼슬아치들은 일제히  칭찬의 말을 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흐뭇해져서 
다시 과거의 원한을 마음에 두지 않게 되었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재상은 될  수 없지. 그러나 서적을 크게  깨뜨리고 왕야가 되어 
노닥거리는 것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들 작약들을 뽑아 버린
다면 조짐이 좋지 않을 거야.)
그가 밖을 내다보니 작약포에는 금대의가 적어도 수십 송이는 될 것 같
아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저토록 많은  재상이 생겨날 수가 있나? 설마  하니 이 사람들 
모두 재상이 된다는 것일까?  무태와 번태(藩台)들은 희망이 있다고 할
지 모르나 이 오지영과 같은 사람은 아무래도 그럴듯하지 않구나. 장래 
연극무대의 하얀 코를 가진 광대는 반드시 이 자가 맡게 될 것이다.)
그는 포정사가 이리저리 말을 돌려서  섕각하고 생각한 끝에 말을 했던 
것은 바로 선지사 앞의 수천 그루나 되는 작약들을 보전하려는 데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벼슬아치의 요결은 모두들 잘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알록달록한꽃가마는 모든 사람이 
떠메고 갈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대가 나를 추켜
올리는 이상 나 스스로도 또한 고집스럽게 일을 처리해서 양주 전체 성
의 관리들 체면을 떨어뜨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한 것이었
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작약 일을 들먹이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장래 그와 같은  한 토막의 연극이 정말  있게 될지라도 우리들로서는 
모두 볼 수 없을 것이오. 그러니 차라리 지금 당장 노래나 먼저 듣도록 
합시다.]

관리들은 일제히  그렇다고 말했다. 오지영은  이미 준비하고 있던터라 
분부를 내렸다. 그러자 화붕  밖에서 장식품이 쨍그랑거리는 소리와 더
불어 일진의 향긋한 냄새가 풍겨  왔다. 위소보는 정신이 번쩍 들어 속
으로 생각했다.
(미인을 보게 되었구나.)
아니나다를까 한 여자가 사뿐사뿐  화붕 안으로 걸어들어와 위소보에게 
절을 하더니 간드러진 어조로 입을 열었다.

[흠차대인과 여러 대인들께서 만안하시기를  빌며 소녀가 노래를 한 곡 
불러 시중을 들까 합니다.]

이 여자는 삼십여 세쯤 되는  나이로 옷차림은 화려했으나 자색은 평범
했다. 피리를 부는 사람이 피리를  불자 그녀는 곧 노래를 부르기 시작
했다.

푸른산은 물결 속에 일렁이고
가을이 깊어가니 강남의 초목이 시드네.
이십사교라는 다리에 명월이 밝게 비추는 밤
어여쁜 님은 어디에서 퉁소를 불까?
실의에 잠겨 강남에서 술이나 마시고 다니다가
허리는 한손에 잡힐 듯 가늘어졌구나.
십 년 동안 양주에서 놀던 기억은 꿈만 같은데
돌아다보니 기녀원에 보잘것없는 이름만 올랐구나.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두목(杜牧)의  양주시 두 수였다. 피리소리는 고
즈넉했고 노랫소리는 부드러워 듣기가 좋았다. 위소보는 그 노래를부르
는 기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약간  불쾌한 심정이 되었다. 그 여자의 노
래가 끝나자 다시  한 명의 가기(歌妓)가 들어왔다.  이 여자는 삼십오 
세 정도의 나이인데 행동거지가 매우 우아했으며 목청은 더욱 숙련되어 
아무리 높낮이의 변화가 있어도 매우  부드럽게 높였다 내리는 등 변화
가 많았다.
그녀가 부른 노래는 진관(秦觀)의  망해조(望海潮)였다. 이 한 수의 노
래는 정말 잘  불렀다고 할 수 있었으나 위소보는  큰소리로 하품을 했
다.
그 망해조의 노래는 이때 겨우  반 토막밖에 부르지 않았지만 오지영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흠차대인이 별로  흥취를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
고 손을 내흔들자 그 가기는  즉시 노래를 멈추고 절을한 후 물러갔다. 
오지영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위 대인, 이 두 명의 가기는  모두 양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그
녀들은 양주의  즐거운 행사 때만 노래를  부르는데 대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위소보는 노래를 듣는 데 세  가지 조건이 구비되어 있어야 했다. 첫째
는 노래 부르는  사람이 젊고 아름다워야 했고,  둘째는 부르는 노래가 
풍류적이고 경쾌한  가락이어야 했으머, 셋째는  음탕한 가사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지난날 진원원은  그녀의 경국지색의 아름다움과 함께 설
명과 노래를 곁들여 가며 줄곧 해석을  했기 때문에 그로 하여금 한 곡
의 원원곡을 다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가기의 자
색은 평범하고 표정도 딱딱했으며 노래  부르는 가사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하품을 한 것만 해도 매우 겸손한 노릇이었다. 그는 
이때 오지영이 묻는 말을 듣고 말했다.

[노래는 괜찮소. 다만  너무나 늙었구려. 이와 같이  오래 묵은 것들에 
대해서 이 형제는 별다른 입맛을 느끼지 못하겠구려.]

오지영은 말했다.

[예, 예. 두목지(杜牧之)는 당나라 때 사람이며 진소유(秦少遊)는 송나
라 사람인데 정말 오래 되었지요. 한 수의 새로운 시가 있는데 한 신진
의 시인이  만든 것인바 이 사람은  사신행(査愼行)이라고 하며 명성을 
떨친 지는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묘사하는 것은 양주의 전가녀(田家女)
의 풍운(風韻)을 묘사한 것으로 신선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가 손짓을 하자 시중을 들던 사람이  말을 전하게 되었고 다시 한 명
의 가기가 들어섰다. 위소보가 오래  된 것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가기
를 가리킨 것인데 오지영은 그가  가사나 시가 진부하다고 하는 줄로만 
알았다. 이때 위소보는 그가 말한 두목지니 진소유니 하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몰랐고 그저 양주 전가녀의 풍운을 묘사한 것으로서 신선하
기 이를 데 없다는 그 한 마디만 이해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신선하기 이를 데 없는 양주의 여자라면 어디 한번 볼 만하겠구나.)
그런데 그 가기가 화붕 안으로  들어서자 위소보는 보지 않았으면 좋았
을 텐데, 일단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만 노기가 끓어올라 고약한 
마음이 저절로 고개를 쳐들어 대뜸 화를 터뜨리려고 했다.
이 가기는 사십 세는 넘어  보였으며 머리카락은 이미 희끗희끗했고 이
마에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리고  마땅히 커야 할 눈은 오히려 실눈
이었고 입은 작아야 하는데 오히려  컸다. 이 가기가 손에 비파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위소보는 더욱더 노기가 끓어올라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감히 진원원을 흉내내겠다는 것이냐?)
그 가기가 비파의 줄을 륑기자 그야말로 옥을 굴리는 듯한 소리가 났고 
제비들이 재잘거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져 매우 듣기가좋았다. 이어서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는  청아했으며 한 마디의 구절마다 비
파의 운율과 짝이  되어 때로는 마치 물이 졸졸거리며  흐르는 것 같았
고, 때로는 은방울이 딸랑거리는 것  같았다. 최후의 한 마디 청군예장
폭(靑裙曳長幅)이라는 그 한 마디를 부르게 되었을 때 비파소리는 울리
는 듯 마는 듯했다.



第100章. 여춘원에서 만난 아가


관리들은 모두 그 노랫소리에 취한 듯 어떤 사람은 눈을 감았으며 어떤 
사람은 고개를  흔들며 곡조에 맞추었다.  비파소리가 멈추자 관원들은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모천안은 말했다.

[시도 좋고 곡도 좋고 비파소리도  좋구먼! 정말 무명 저고리가 천향국
색(天香國色)을 감추지 못하는 격이로다. 시는 물론이고 노래소리 또한 
담아(淡雅)하고 자연스러우니 그야말로 일류 솜씨라 할 수 있겠노라.]

위소보는 코웃음을 치고 그 가기에게 물었다.

[홍! 그대는 십팔막(十八幕)이라는 노래를  부를 줄 알겠지? 한곡 들려 
주게나.]

관리들은 그 소리를 듣고 모두  깜짝 놀랐다. 그 가기는 별안간 안색이 
크게 변해서는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더니  몸을 홱 돌려 냅다 달려나갔
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비파가 땅에 떨어졌다. 그 가기는 비파를 주
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껄껄 소리내
어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노래를 부를  줄 모른다 해도 나는  그대를 벌하지 않았을텐데 
어째서 그토록 놀라서 야단이지?]

십팔막이란 지극히  음탕하고 천박한 노래로써 여자의  몸 열여덟 곳을 
노래부르는데 매번 한 가지 비유를 들어 형용하고 있었다. 관리들은 사
실 모두 예전에 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 이와 같이 성대한 연회석에서 
그것도 우아한 사람들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어찌 공공연히 들먹일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벼슬아치들을 크게  욕하는 격이 되지 않겠는가 말
이다. 그 가기는 비파와 목청으로 양주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날렸었다. 
비단 시를 부르는 데 능할 뿐 아니라 그녀 스스로도 시를 지을 줄 알아 
이름이 공경대부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양주의 부호나 거상 등 
여느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대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따라
서 위소보가 그와  같이 한 마디 한 것은  그녀에게는 커다란 모욕이었
다. 모천안은 나직이 말했다.

[위 대인께서 소곡(小曲)을 듣기  좋아하신다면 언제 우리가 노래를 부
를 줄 아는 사람을 찾아 한번 들어 보기로 하지요.]

위소보는 말했다.

[십팔막도 부를 줄 모른다면 저  늙은 갈보는 너무나 형편이 없는 것이
외다. 언제 내가 그대를  청해서 명옥방(嗚王坊) 여춘원으로 가서 노래
를 듣도록 해주지. 그곳의 갈보들 가운데에는 그 곡을 부를 줄 아는 여
자들이 얼마든지 있소이다.]

이 말을 해 놓고 나서 그는 아차, 하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여춘원은 내가 청해서 갈 수는 없다. 다행히 양주
에는 기녀원이 무척  많고 구대명원(九大名院)과 구소명원(九小名院)이 
있으니 아무 집이라도 찾아들면 즐겁게 놀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술잔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

[자, 술을 듭시다, 술을 들어.]

관원들은 그의 말이 너무 조야하고  속된 것을 보고 하나같이 겸연쩍어
했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척하면서 그 말은 못들은 척했다. 그러나 몇 
명의 무장들은 얼굴에 기쁜 빛을  띄우고 하나같이 흠차대인은 모든 면
에서 자기들과 뜻이 같고 길이 같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때 한 명의 허
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서 걸어나갔다. 위소보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었다.
(저 사람의 뒷모습이 눈에 익은데 누굴까?)
그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은 다시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잠시 지나자 
위소보는 그 일을 잊어버렸다. 다시  몇 잔의 술을 마시게 되자 위소보
는 그저 이 문관들을 상대로 술을 마신다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라는 생
각이 들었다. 연극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노름판도 벌이지 않는지라 
실로 무료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그 십팔막이라는 노래를 흥
얼거렸다.
(한 번 만지고 두 번 만져서 누나의 머리카락을 만지게 되었노라....)
더 참을 수가 없어진 그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형제는 이미 술을 잔뜩 마셨으니 그만 가 볼까 하오.]

그는 순무와 포정사, 안찰사 등  몇몇 관원들에게 두 손을 맞잡아 보이
고 걸어나갔다. 대관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나와 그가 교자에 들어가는 
것을 전송했다. 위소보는  행원으로 돌아가자 친위병에게 쉬어야겠으니 
어떤 손님이 오더라도 모두 물리치라고  이르고 방안으로 들어가 한 벌
의 다 해진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것은 수일 전 쌍아로 하여금 시장에 
가서 사 오게 한 헌옷인데 사 온  후 일부러 구멍을 몇 군데 내어 땅바
닥에 놓고 짓밟았으며 다시 기름을  쏟아 기름때가 잔뜩 묻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모자와 신발, 버선은 말할 것도 없고 땋은 머리에 
사용하는 끈까지도 오래 된 물건들로 갗추어 놓은 판이었다.
그는 아궁이에서 재를 한 웅큼 가져다가  물에 타서 얼굴과 손 위에 마
구 문지르고 나서 거울에  비춰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옛날 여춘원에서 
심부름하던 때의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쌍아는 그가  옷을 바꿔 입는 
것을 시중들면서 웃었다.

[상공, 연극 무대의 흠차대신  포룡도(包龍圖)가 옷차림을 바꾸고 미행
하게 되었을 때 바로 이 모양이었지요?]
[거의 비슷하오.  하지만 포룡도는 태어날 때부터  시커먼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일부러 검정을 묻힐 필요는 없었지.]
[제가 따라가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그대 혼자 가다가 어려운 일을 만
난다면 도와 줄 사람이 없잖아요.]
[내가 가는 그곳은 아름다운 소녀가 갈 곳이 못 된다오.]

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만지고 두  번째로 만져 우리 쌍아의  얼굴을 만지게 되었노
라....]

그러면서 손을 내밀어서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 쌍아는 얼굴을 붉히고 
웃으며 피했다. 위소보는 한 웅큼의 은표를 가슴속에 집어넣고 다시 한 
봉지의 은자를 가지고는 쌍아의 얼굴에  가볍게 입맞춤을 한 후 뒷문으
로 빠져나갔다. 뒷문을 지키던 친위병이 호통을 치며 물었다.

[뭐하는 사람인가?]
[나는 하씨 집안 유모 아들의  외사촌에게 매부가 되오. 당신이 상관할 
수 있겠소?]

그 친위병은 어리둥절해져서 속으로 그의 친척관계를 곰곰이 생각해 보
았다. 위소보는  이때를 이용해 문을 나서서  사라지고 말았다. 양주의 
큰 거리나 골목길에  대해서 그는 익숙할 대로  익숙했다. 눈을 감고도 
틀리지 않게 찾아갈 정도였다. 이윽고 그는 수서호(瘦西湖)가의 명옥방
에 이르렀다. 각처의 문 안에서 풍악을 울리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
고 그런가 하면 노래를 부르는  소리도 들렸고 노름판을 벌이며 호통을 
치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들이 귀에 들어오자 그야말로 하늘에서 들
려오는 선악(仙樂)보다도 열  배는 더 듣기 좋아 속으로  말할 수 없는 
흐뭇한 감을 느꼈다.
여춘원 밖에 이르르니 그곳의 광경은  여전했으며 과거 그가 떠날 때와 
별다른 점이 없었다. 그는  살그머니 여춘원 옆문으로 돌아가서 옆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발걸음소리를 죽이고서  모친의 방을 살펴보니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모친이 손님을 모시고 있는가 보다 짐작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빌어먹을! 어느 망할 녀석이 지금  우리 어머니를 끼고 노닥거리며 나
의 의붓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침상의 이부자리는  여전히 옛날 그대로인데 
그저 좀더 헌 것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는 장사가  되지 않아서  나의 의붓아버지들이 많지  않은가 보
다.)
고개를 돌려 보니  자기가 자던 조그만 침대가 아직도  옆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침대 앞에는 자기가 신던 한 쌍의 신발이 놓여 있
고 침대 위의 이부자리는 뜻밖에도 깨끗이 빨아 풀을 먹인 상태로 있었
다.
그는 다가가서 침대 위에  앉았다. 자기가 입던 청죽포(靑竹布) 장삼이 
곱게 개어져 침대  모서리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제기랄! 내가 북경에서 
넉넉한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을 시켜 어머니에게 돈을 부치지 않았으니 
나는 실로 효자가 못되는구나.)
그는 비스듬히 침대 위에  누워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기녀원
의 규칙에 의하면 하룻밤 묵고 가는 손님을 유숙시키는 곳은 따로 깨끗
하고 큰 방이  있었다. 그리고 기녀들이 거처하는  조그만 방은 퍽이나 
간결하고 초라했다. 하지만 젊고 아름다운, 인기 좋은 기녀들이 거처하
는 방은 비교적 나은 편이었다. 위소보의 어머니 위춘방처럼 나이가 많
고, 찾아오는 손님이 별로 없는 사람에 대해서 주모는 소홀히 대접했고 
거처하는 곳은 한 칸의 엷은 판자로 만든 방이었다.위소보는 한동안 누
워 있었는데 갑자기 옆방에서 누가 날카롭게호통치며 욕하는 소리가 들
렸다. 바로 주모의 음성이었다.

[이 천한 년아! 허연 은자를 주고 너를 샀는데 너는 이러쿵저러쿵 변명
하면서 손님을 받으려 하지 않는구나!  흥! 너를 관세음보살처럼 이 집
에다 모셔 놓고 구경만 시키려고 산  줄 아느냐? 때려 쥐라, 실컷 때려 
주란 말이다!]

곧이어 채찍으로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고  아프다는 비명소리, 그리고 
울부짖는 소리, 욕하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들렸다. 이와 같은 소리
를 위소보는 어릴 적부터 들어왔다. 주모가 젊은 소저를 사와서 그녀에
게 손님을 받도록 핍박을 하고 한  차례 매질을 가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만약  나이 어린 소저가 고집을 피우며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바늘로 손톱을 찌르고  불에 달군 쇠로 살을 지지는 등 
여러 가지 혹독한 형을 차례차례 사용했다. 이런 기녀원에서는 흔히 듣
게 되는 소리였는데, 그는 오랫동안  떠나 있다가 다시 이 소리를 들으
니, 옛날의 꿈을 다시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뿐 그 나이 어린 
소저가 가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나이 어린 소녀는 울부짖었
다.

[나를 때려 죽이도록 해요. 나는 손님을 받지 않겠어요! 머리를 부딪혀 
죽을 거예요.]

주모는 귀노(龜奴:기녀원에서 일하는 남자)에게 분부했다. 다시 이삼십 
번의 채찍이 가해졌으나 나이 어린 소저는 여전히 울부짖으며 굴복하지 
않았다. 귀노는 말했다.

[오늘은 더 칠 수가 없습니다. 내일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주모는 말했다.

[이 어린 계집년을 끌고 가도록 해라.]

귀노는 나이 어린 소저를 부축해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방으로 들
어왔다. 주모는 말했다.

[그 계집년이 강요해도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우리가 부드러운 수작을 
써야 한다. 그녀에게 미춘주(迷春酒)를 먹이도록 해야겠구나.]

귀노는 말했다.

[그녀는 그래도 한사코 술을 마시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모는 말했다.

[바보! 음식 속에 미춘주를 섞으면 될 것이 아니냐?]

귀노는 말했다.

[예, 예. 일곱째 누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위소보는 판자벽 사이에 난 틈에 눈을 갖다대고 저쪽 방의 광경을 살폈
다. 그러고 보니 주모는 궤짝을 열고 한 병의 술을 꺼내 술을 따르더니 
귀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했다.

[위춘방이 술 시중을 들고 있는 그  두 공자로 말할 것 같으면 몸에 지
니고 있는 돈이 적지 않은 것 같구나. 그들은 오늘 밤 이곳에서 자면서 
친구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같이 나이가  젊은 햇병아리들은 춘방에게 
정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내가 가서 그들에게 조금 전 그 계집애
의 머리를 틀어올려  달라고 청을 하겠다. 그렇게  되어 운수가 좋다면 
삼사백 냥의 은자쯤 긁어 내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귀노는 웃으며 말했다.

[일곱째 누님, 재물을 얻게 된  데 대해 축하드립니다. 나 역시 누님의 
덕택으로 도박에서 진 빛을 갚게 되었습니다.]

주모는 욕을 했다.

[길바닥에 쓰러져 죽을 천한 것 같으니! 고생고생해서 번 몇 냥의 은자
를 모조리 서른두  장의 골패에 부리다니,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너의 자라 꼬리를 자르고 말 테니 조심스럽게 처리하거라.]

위소보는 미춘주가 모종의 약을 탄 술로, 그것을 마신 사람은 인사불성
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각처의 기녀원에서는 손님을 받지 않으려
는 햇병아리 기녀들에게 이 약주를 사용하는데, 옛날에는 그와 같은 이
야기를 처음 듣고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술에다가 
몽혼약을 탄 것으로서 흔하고 흔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나의 의부 노릇을 하는 자는  두 소년 공자라고 했겠다. 어떤 녀
석들인지 가봐야겠구나.)
그는 부상이나 호객을 접대하는  감로청(甘露廳) 밖에 이르러서 언제나 
버릇처럼 서 있던 둥근 석돈(石墩)  위에 섰다. 그리고 눈을 창문 틈에 
갖다대고 안을 살폈다.  매번 호객이 올 때 그는  반드시 이 둥근 석돈 
위에 서서 방안을 엿보곤 했다.  이곳의 창틈은 너무나 커서 감로청 안
의 광경을 한눈에 환히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손님은 옆으로 앉아 있
었기 때문에 창 밖의 사람  그림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과거에 몇
백 번이나 엿보았지만 한 번도 발각된 적이 없었다.

감로청 안은 붉은 초가 은은히 타오르고 있었고 어머니는 온 얼굴에 지
분을 잔뜩 바르고 분홍색 비단 적삼을  걸치고 머리에 한 송이 붉은 꽃
까지 꽂고서 웃음을 지으며 두 손님에게 술을 따르고 있었다. 위소보는 
어머니를 자세히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가 많이 늙으셨구나. 그러니 이  같은 장사는 얼마 하지 못하겠
다. 오로지 눈 먼 녀석들만이 그녀를 불러 술시중을 들게 하겠구나. 거
기다가 어머니는 노래부르는 솜씨도 별로 좋지 않다. 만약에 내가 기녀
원에 놀러 온 사람이고 만약 그녀가 나의 어머니가 아니라면 나에게 일
천 냥을 보태준다 해도 그녀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때 그의 어머니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 공자께서는 이 잔의 술을 마셔 주세요. 저는 상사오경조(相思五
更調)를 불러 두 분이 술을 들도록 흥을 돋우워 드리겠습니다.]

위소보는 몰래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의 소곡은 언제나 불러 봐야  몇 가락밖에 되지 않는다. 상사오
경조가 아니면 일근자죽직묘묘(一粮紫竹直苗苗)이고, 그렇지 않으면 일
파선자칠촌장(一把扇子七寸長), 일인선풍이인량(一人扇風二人凉)이라는 
것들이다. 어머니는  몇 마디의 노래를 더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갈보 노릇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다시 생각해 보다가 그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나 역시 무공을 배우려고 애쓰지 않는다. 원래 나의 게으른 성질은 바
로 어머니에게서 이어받은 것이었구나.)
갑자기 간드러지고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그럴 필요없네.]

그 한 마디가 떨어지자, 위소보는 전신을 흠칫 하며 하마터면 석돈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는 자세히 곁눈질을 하고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떤 섬섬옥수가 술잔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 섬섬옥수의 소맷자락을 
따라 위를 쳐다보니 아리따운 옆 얼굴을 한 남자가 보였는데 바로 아가
가 아닌가!
위소보는 속으로 깜짝 놀랐으며 놀람과 기쁨을 좀처럼 억제하기 어려웠
다.
(아가가 어찌하여 양주에 도달했을까? 어째서 여춘원으로 와서 나의 어
머니에게 술시중을 들게  하는 것일까? 그녀가 남장을  해서 이곳에 와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고 유독 우리 어머니를 부른 것을 보면 틀림없이 
나를 보고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그래도 양심이 있어 내가 
그녀와 천지신명에게 알린 지아비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아하! 
정말 묘하다. 정말  묘해. 그대와 나 우리 부부가  이제 만나게 되었고 
오늘에서야 동방화촉을 밝히게 되었구나.  나는 그대를 두 손으로 품에 
안고서....)
그런데 갑자기 한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오(吳) 아우님, 잠시 마시는 것을 멈추시고 그 몇 분의 몽고 친구들이 
도래하는 것을 기다려서....]

위소보는 귀가  윙윙해짐을 느끼며 즉시 뭔가  잘못 돌아간다고 생각했
다. 그야말로 눈에 비친 사물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고 잠깐 동
안 눈으로 사물을 분별할 수조차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정
신을 차린 이후에 눈을 떠 보았다.
아가의 옆에 앉아 있는 그 소년  공자는 바로 대만의 둘째 공자 정극상
이 아닌가? 위소보의 어머니 위춘방은 입을 열었다.

[소상공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대상공께서 한 잔  더 마시도록 하세
요.]

그리고 정극상에게 술 한 잔을  따르고는 털썩 그의 품에 안겼다. 아가
는 말했다.

[이봐요, 좀 점잖게 놀아요.]

위춘방은 웃었다.

[어머! 소상공은 얼굴이  여려서 이런 멋을 내는  데 익숙하지 않군요. 
그대는 이후 매일같이 이곳에 들어오면 누구나 풍류남아가 아니라고 아
쉬워할 거예요. 소상공, 나이 어린  소저를 불러서 그대를 모시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아가는 재빨리 말했다.

[싫어! 싫어! 싫어! 그대는 앉아 있도록 하시오.]

위춘방은 웃었다.

[아! 그대는 질투를 하는군요? 내가 대상공만 모시고 그대를 상대해 주
지 않는 것을 탓하고 있군요?]

그녀는 몸을 일으키더니 아가의 품속에 안겼다. 위소보는 그와 같은 광
경에 화가 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어찌 이토록 기이한 일이 있단 말인가? 나의 여편네가 우리 어
머니를 데리고 놀려 하다니.)
이때 아가가 손으로 위춘방을 와락 밀쳐 버리자 그녀는 제대로 앉지 못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위소보는 화가 나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갈보년이  시어머니를 밀다니! 이토록  아래위가 없어서 어떻게 
한단 말이냐?)
위춘방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히죽 웃으며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소상공은 그저 부끄럼만 타는군요. 그대가  이리 와서 나의 품에 안기
도록 하는 것이 어때요?]

아가는 싫다고 대답한 후 정극상에게 말했다.

[나는 가겠어요. 남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얼마든지 있는데 어째서 이
런 곳으로 정했어요?]

정극상은 말했다.

[이곳에 약속을 정하고서 만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소. 나 역
시 이곳이 이같이  더러운 곳인 줄 몰랐소. 이봐요,  그대는 좀 얌전히 
앉아 계시오.]

최후의 이 한 마디는 위춘방에게 말한 것이었다. 위소보는 생각하면 생
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속으로 생각했다.
(그날 강서성 유강가에서 너는 애걸복걸하면서 개 같은 목숨을 살려 달
라고 빌며 결코  나의 마누라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는데, 오늘 감히 둘이서 우리 어머니를 데리고 놀고 있다니! 우리 어
머니를 데리고 노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너는 나의 마누라와 몇 천 마디 
몇 만 마디를 했는지 모른다. 그날 너의 혓바닥을 자르지 못한 것은 실
로 나의 커다란 실책이 아닐 수 없구나.)
위춘방은 용기를 내어 손을  뻗쳐서 정극상의 목을 얼싸안았다. 정극상
은 그녀의 팔을 밀어 내며 말했다.

[그대는 밖으로 나가 계시오. 우리 형제 두 사람이 몇 마디 할 말이 있
소. 나중에 내가 다시 부를 때 들어오도록 하시오.]

위춘방은 어찌할 수 없다는 듯 감로청에서 나왔다. 정극상은 나직이 말
했다.

[아가 누이, 조그만 일을 참지 못하면 커다란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이
오. 큰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우리들은 부득이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
소.]

아가는 말했다,

[그 갈이단 왕자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어째서 그는 그대를 이곳에
서 만나자고 했지요?]

위소보는 갈이단 왕자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몽고의 후레자식도 왔구나. 좋아, 정말 잘되었다. 너희들은 반란을 일
으키는 것을 상의하겠지. 나는 군사들을 움직여 너희들을 일망타진하고 
말겠다.)
정극상은 말했다.

[이 며칠 동안  양주성 안은 수색이 매우 심하오.  객점이나 주막에 든 
손님들이 낯익지  않은 사람일 때 아문의  포졸들이 이러쿵저러쿵 묻고 
따진단 말이오. 만약에 정체가 탄로나면 큰일이 아니겠소? 이 기녀원에
는 포졸이 와서  시끄럽게 굴지는 않소. 그러니  우리가 이곳에 머물면 
매우 평온하게 보낼  수 있소. 나와 그대뿐이라면  또 모르지만 갈이단 
왕자 일행은 몽고  사람의 모양을 그대로 하고 있으니  남의 이목을 끌 
것이오. 더군다나 그대는 하늘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
소. 만약 객점에 투숙하게 되었을  때 양주의 사람들이 모조리 와서 그
대를 구경하려고 한다면 조만간 반드시 변고를 일으키게 될 것이오.]

아가는 엷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대가 입에 침을 바르며 비위를 맞출 필요까지는 없어요.]

정극상은 팔을 뻗쳐 그녀의 어깨를 얼싸안더니 그녀의 입에 쪽 하고 입
맞춤을 하며 웃었다.

[내 어찌 입에 침 바르는 소리를 하겠소. 만약에 하늘의 선녀가 그대처
럼 아름답다면 여순양(呂純陽),  철괴리(鐵拐李)니 하는 사람들이 속세
로 뛰어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오. 그리고 나머지 신선들도 하늘에 남
아 눈 한번 돌리지 않고 나의 귀여운 보배 같은 사람을 보고 있을 것이
오.]

아가는 쳇, 하고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위소보는 노기가 충천해서 참
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을  뻗쳐 비수를 만지며 곧장 달려들어가 사생
결단을 내려고 하다가 곧 생각을 돌렸다.
(저 녀석의 무공은  나보다 고강하다. 아가가 또 그를  도와 주고 있지 
않은가? 내가 만약 들어가게 되면  간부와 음부는 반드시 제 남편을 모
살하게 될 것이다. 천하의 어떤 사람이든 다 닮아도 괜찮지만 수호지에 
나오는 무대(武大)만은 닮아서 안 된다.)
그는 억지로 노기를 거두고 눈을 감고서 두 사람이 다정하게 구는 꼴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이때 아가가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도대체....]

이 오라버니라고 다정히 부르는 소리에 위소보는 더욱더 질투심이 북받
쳐올라 생각했다.
(제기랄! 정말 염치도 없구나.  오라버니라는 말을 마구 부르기 시작하
는구나.)
위소보는 화가 나서  그 뒤의 몇 마디 그녀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때 정극상이 말했다.

[그는 밝은 곳에 있고 우리는 어두운 곳에 있소. 갈이단 수하의 무사들
은 정말 무섭소.  내가 책임을 지겠소. 이번에는 반드시  그의 몸에 몇 
개의 구멍을 뻥 뚫어 놓고 말 것이오.]

아가는 말했다.

[그 녀석은 사람을 너무 업신여겨요. 이  원한을 갚지 않는 한 나는 평
생 즐겁지 못할  거예요. 나는 본래 아버지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어
요. 다만 그가 나를 위해  원한을 갚겠다고 응낙하고 여덟 명의 고수들
로 하여금 나를 따라 함께 일을 행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그를 아버지
로 인정한 거예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누가 그녀에게 죄를 지었을까? 그대가  원한을 갚고자 한다면 이 지아
비에게 말하면 못 해낼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오삼계 
같은 대매국노를 아비로 인정하느냔 말이다.)
정극상은 말했다.

[그를 찢어 죽인다는 것도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오. 다만 오랑캐 관병
의 경계가 삼엄해서 손을 쓴 후에 무사히 빠져나온다는 것이 쉽지가 않
은 노릇이외다. 우리는 어찌됐든지 만전지책을 강구한 후 손을 쓸 수밖
에 없소.]
[아버지가 나에게  사람을 보내면서까지 그  사람을 죽이겠다고 약속한 
것은 전적으로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아버지는 군사를 일으켜 오
랑캐를 공격하려고 하는데 이 사람이 아주 커다란 방해가 되지요. 그래
서 나는 아버지에게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그대는 그대의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소?]

아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이와 같은 일은  은밀할수록 좋아요. 어쩌면 어머니께서는 말
리려고 할지도 몰라요. 내가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것도 좋지 
않은 노릇이고 해서,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을 찔러 죽이려고 할까? 그 사람은 또 어째서 오삼계
가 군사를 일으키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일까?)
이때 정극상이 말했다.

[이 며칠 나는 그가 밖으로 나가고 들어가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확실히 
삼엄하게 지키고  있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어렵기 이를 
데 없었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녀석은 호색한이니까 만약 누군가가 
가기처럼 분장한다든가 하면 그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
오.]

(호색한이라고?)
아가는 말했다.

[저와 사저 두 사람이 가장을 하면 모르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같은 천
한 여자로 꾸밀 수가 없어요.]

정극상은 말했다.

[차라리 방법을 강구해서 요리사를 사서 그의 술에다 독약을 타는 것이 
낫겠구려.]

아가는 매서운 어조로 말햇다.

[그를 독살해서는 저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가  없어요. 나는 그의 
손을 자르고  터무니없이 나에게 지껄인  혓바닥을 잘라 놓아야겠어요. 
그 꼬마는 진정....가증스럽기 이를 데 없어요.]

꼬마라는 한 마디가 흘러나오자 위소보는 그만 머리가 띵해졌고 잇따라 
확연히 깨달은 바가 있어 속으로 생각했다.
(친남편을 모살하려고 하는구나.)
그는 아가가  한마음 한뜻으로 정극상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이처럼 이를 갈며 자기를 미워할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
한 터라 깜짝 놀라 다시 속으로 생각을 했다.
(내가 도대체 너에게 어떤 잘못을 했느냐?)
이와 같은 의문은 삽시간에 해답을  얻을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정극상
의 말 때문이었다.

[아가 누이, 그 녀석은 그대에게 반해서 그대에 대해서는 반 푼 어치도 
죄를 짓지 못하고 있소. 그대가 그를 죽이려 하는 것은 일시 나를 위해 
화풀이를 해주려는 것임을 알고 있소. 그대의 그와 같은 정에 나는....
나는 진실로 어떻게 보답해야 될지 모르겠구려.]

아가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가 그대를 업신여기는 것은 나를 업신여기는 것보다 한결 더 통한스
러운 거예요. 그가 만약 나를  때리고 욕을 한다면 나는 사부님을 봐서
라도 그 화를 눌러 참을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가 그대에게....
그대에게....그토록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을 떠올리기만 하면 그야말로 
미워서 당장에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버리고 싶어져요.]

정극상은 말했다.

[아가 누이, 내 이제 그대에게 보답을 해 드리는 것이 어떻겠소?]

그는 오른팔을 뻗더니 그녀를 안았다. 아가는 온 얼굴에 부끄러운 빛을 
띄우고 머리를 그의 품에  기댔다. 위소보는 가슴속으로 그야말로 질투
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또 한편으로는 노기가 북받치는가 하면 여간 
입이 쓰지 않았다.  그런데 별안간 머리가 바짝  조여드는 것을 느끼는 
순간 땋은 머리를 그 누구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는 깜짝 놀라 소리도 
지르기 전에 귀마저 붙잡혀 비틀어지게 되었다. 막 소리를 지르려고 했
을 때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나직이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후레자식! 나를 따라오너라!]

이 한 마디의 욕을 위소보는 이  사람에게 수백 번 수천 번을 들었는지
라 순순히 따라갔다. 그의 땋은  머리를 잡고 귀를 비튼 사람의 손짓은 
익숙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또한 한평생 몇 번이나 그의 귀를 잡고 비
틀었는지 모를 일이었는데 바로  그 사람은 그의 어머니 위춘방이었다. 
두 사람이 방안에 들어서자 위춘방은  냅다 방문을 발로 걷어차서 닫더
니 위소보를 놓아 주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머니! 제가 돌아왔어요!]

위춘방은 한참  동안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갑자기 그를 얼싸안고 
한없이 울었다.



第101章. 아가를 강간하려는 위소보


위소보는 웃었다.

[제가 돌아와서 어머니께 인사드리지  않아요? 그런데 어찌하여 어머님
은 우세요?]

위춘방은 흐느끼며 말했다.

[너는 도대체  어디에 갔었느냐? 나는 양주성  안팎을 두루 찾아다니며 
신과 부처님에게  얼마나 많이 빌었는지 모른다.  소보야, 네가 끝내는 
이 어미 곁으로 돌아와 주었구나.]

위소보는 웃었다.

[제가 어린애가  아닌 이상  밖으로 놀러나가는 것쯤  걱정하지 마십시
오.]

위춘방은 눈물이 가득  찬 눈을 들어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이미 
많이 컸고 또한 여간 건강해 보이지  않아 속으로 흐뭇하지 않을 수 없
었다. 그녀는 다시 울며 욕을 했다.

[이 후레자식! 밖으로 놀러가면서 이  어미에게 말도 없이 그토록 오래 
가 있었더란 말이냐? 이번에 너에게 순초육(筍炒肉)을 먹여주지 않는다
면 네 녀석은 이 늙은 어미의 무서움을 모를 것이다.]

순초육이라 하는  것은 대나무 조각으로 볼기를  치는 것인데 위소보는 
오랫동안 맞아 보지 못한 터라 그 같은 말을 듣고는 그만 참을 수 없어
서 웃었다. 위춘방 역시 웃으면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얼굴에 묻은 흙
먼지를 닦아 주었다. 그런데 몇 번 닦아 주고 고개를 숙여 보니 자기의 
비단 새 옷의 앞섶자락이 눈물과 콧물로 얼룩져 있을 뿐만 아니라 아들
의 얼굴에도 많은 검정이 묻어 있지 않은가? 그만 가슴이 아파 온 그녀
는 철썩 그의 따귀를 한 대 갈기고 욕을 했다.

[나에게는 새 옷이 한 벌밖에 없다. 재작년 설 때 마련한 것으로 몇 번 
입지도 않았다. 후레자식! 너는 돌아오자마자  좋은 일을 하지 않고 이 
어미의 새 옷을 더럽혔으니 내가 어떻게  손님 시중을 들 수 있단 말이
냐?]

위소보는 어머니가 새 옷이 아까워서 얼굴을 붉히며 노발대발하는 것을 
보고 웃었다.

[어머니, 아까워할 것 없습니다. 내일 제가 어머니를 위해 새 옷 백 벌
을 지어 드리도록 하조 이 옷보다  열 배나 더 좋은 옷감으로 해드릴게
요.]

위춘방은 더욱 화를 냈다.

[후레자식, 너는 여전히 허풍만 떠는구나. 너에게 무슨 개방귀 같은 재
간이 있었더냐? 너의  그 꼬락서니로 보아 바깥에서  큰 돈벌이를 하고 
돌아온 것 같지는 않구나?]

위소보는 말했다.

[뭐 부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노름판에서 운이 좋아 약간의 은자를 땄습
니다.]

위춘방은 아들이 노름할 때 수작을  부리는 재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믿음이 가는지라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져오너라! 너는 반  시진도 못 되어서 그 돈을  모두 써 버릴테니까 
말이다.]
[이번에 저는 많이 이겼기 때문에  어떻게 하더라도 다 쓸 수가 없었어
요.]

위춘방은 다시 손을 들어 그의 따귀를 때리려고 했다. 위소보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찌검을 피하머 속으로 생각했다.
(나를 보자마자 손을 뻗쳐 나를  때리려고 하는 사람은 북쪽에는 공주, 
남쪽에는 어머니가 계시는구나.)
그가 품안에 손을 집어넣어 은자를  꺼내려고 했는데 밖에서 귀노가 불
렀다.

[춘방, 손님이 그대를 부르니 빨리 가 봐요.]

위춘방은 말했다.

[가요!]

그녀는 탁자 위의 거울에 모습을 한  번 비춰 보더니 총총히 다시 지분
을 바르면서 말했다.

[너는 이곳에 누워 있거라.  에미가 돌아와 너를 단단히 심문해야겠다. 
너는....너는 가지 말아야 한다.]

위소보는 어머니의 두 눈이 걱정스러운 빛으로 가득 차 있고 또한 자기
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웃었다.

[가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위춘방은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했으나 얼굴에 기쁜 빛을 띄우고 옷매무
시를 고치고 걸어나갔다. 위소보는  침대 위에 누워서 이불을 끌어당겨 
덮었다. 잠시  후 위춘방이 들어왔는데 손에는  주전자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아들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안심을 한 듯 몸을 돌려 
다시 나가려고했다. 위소보는 정극상이 그녀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분부
한 것을 알고 갑자기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손님에게 술을 더 권하려고 하는 건가요?]

위춘방은 말했다.

[너는 얌전히 누워 있거라. 이  어미가 맛좋은 것을 너에게 갖다주도록 
하마.]

위소보는 말했다.

[술을 갖다 준다면 제가 몇 모금 맛을 보도록 하지요.]

위춘방은 욕을 했다.

[이 먹보 같은 녀석아, 어린애가 무슨 술을 마신단 말이냐?]

그러면서 그녀는 술주전자를 들고  나갔다. 위소보가 재빨리 판자벽 틈
바구니로 살펴보니 옆방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그는 즉시 옆방으
로 들어가 궤짝을 열어 젖히고  늙은 주모의 미춘주를 꺼내, 자기 방으
로 가져와 이부자리 안에 숨기고 병마개를 뽑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정극상이라는 그 후레자식이 나의 술에다 독약을 타겠다고 했지. 내가 
너에게 먼저 선수를 치겠다.)
얼마 되지 않아 위춘방은 술을 잔뜩 담은 주전자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
오며 말했다.

[빨리 두 모금만 마셔라.]

위소보는 침대 위에서 술주전자를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 위춘방은 
아들이 놀러온 표객(錞客)의 술을 훔쳐  마시는 양을 보고는 자기도 모
르게 측은하고 사랑스럽다는 빛을 얼굴 가득 띄웠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머니의 얼굴에 검정칠이 많이 묻었군요.]

위춘방은 재빨리 거울 앞으로  가서 얼굴을 닦았다. 위소보는 술주전자
를 들어서 이불 속에다 약간 술을  쏟고 미춘주를 반 병이나 주전자 안
에 쏟아넣었다. 위춘방은  얼굴에 검정칠이 묻어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대뜸 아들이 수작을 부려 자기를 한눈팔게 하고서 술을 다 처먹으려 한
다는 것이라 생각하고 즉시 몸을 돌려 슬주전자를 빼앗으며 욕을 했다.

[후레자식! 너는 이 에미의 뱃속에서  나은 녀석인데 내가 너의 잔꾀를 
모를 줄 알고? 흥! 옛날에는 술  마실 줄 모르더니 이번에 밖으로 나가 
떠돌아다니는 동안 온갗 나쁜 짓은 모조리 배웠나 보구나.]

위소보는 말했다.

[어머니, 그 상공은 성질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어머니께서 어떻게 하
더라도 그에게 술을 더 마시게끔  하세요. 그가 취해서 아무 소리도 못
할 때 다시 그 상공을 속여 은자를 가로채는 것은 쉬운 노릇이에요.]

위춘방은 말했다.

[이 에미가 한평생 이 장사를 해왔는데, 그런 수작을 네게 배워야 하겠
느냐?]

그러나 그녀는 속으로 아들의 생각이 매우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후레자식이 집으로 돌아온 것은 그야말로  매우 기쁜 일이다. 오늘 밤 
어떤 망할 놈이 나에게 밤을  함꼐 새우자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늙은 에미는 너와 함께 잠을 자고 싶구나.)
그녀는 술주전자를 들고 총총히  나갔다. 위소보는 침대에 누워 의기양
양하여 생각을 했다.
(나는 정말 복을 타고난 장수이다.  정가라는 못난 도적은 왜 하필이면 
데리고 놀 사람이  없어서 나의 의붓아비 노릇을  하려고 했을까? 오늘 
내가 일검을 찌르고 그 위에다가 화시분을 뿌려 놓지않나 두고 봐라.)
정극상의 상처에 화시분을  뿌리면 얼마 되지 않아 한  줌의 노란 물이 
되어 아가가 깨어 나서 그녀의 오라버니가 종적도 없이 사라진 것에 당
황해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녀로서는 머리가 깨지도록 생각한다 해도  어찌된 노릇인지 알 수 없
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기랄! 그대는 오라버니 하고 몇  번 불러 보려무나. 앞으로는 더 이
상 그를 부를 수 없을 데니.]

그는 생각할수록 신이 나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감로청 밖으로 
가서는 안을 살펴보았다. 정극상은 이때 막 술잔을 비우고 있었으며 아
가는 술잔을 들어 입에 막 갖다대고 한 모금 살짝 마시고 있었다. 위소
보는 크게 기뻐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다시 정극상의 잔에다 술을 
따랐다. 정극상은 손을 내저었다.

[나가시오, 나가. 그대가 시중들 필요는 없소.]

위춘방은 대답을 하더니 술주전자를 놓으며 옷 소맷자락으로 슬쩍 접시
의 화퇴편(火腿片)을 가렸다. 위소보는 빙그레 웃으며 생각했다.
(나는 곧 화퇴를 먹을 수 있겠구나.)
그는 재빨리 어머니의 방으로 되돌아갔다. 얼마 후 위춘방은 그 화퇴편
을 가지고 들어오며 웃었다.

[후레자식, 네가 밖에서 죽었다면 이토록  맛좋은 것을 먹을 수 있었겠
느냐?]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침대가에 앉아서 아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먹는 것보다 더 기뻐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술을 마시지 않았나요?]
[나는 이미 몇 잔의 술을 마셨기  때문에 더 마시면 취할 것이다. 그러
면 네 녀석이 다시 뼁소니치지 않겠느냐?]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가 취해 쓰러지지 않는다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나는 가지 않겠어요. 어머니, 저는 오랫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잠
을 자지 않았군요. 오늘 밤 어머니는 그 염병할 두 사람을 모시지 말고 
이곳에서 저와 함께 자도록 하세요.]

위춘방은 크게 기뻐했다. 아들이 자기를 이토록 염려해 주는 것을 보니 
그가 옛날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위소보가 밖에 나
가서 고생을 하고 나자 마침내 에미가 좋은 것을 깨닫게 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위춘방은 환히 웃으며 말했다.

[좋다. 오늘 밤은 이 에미가 우리 아들과 함께 잠을 자도록 하겠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머니, 저는 밖에 있었지만 하루도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
었어요. 자, 제가 어머니의 옷을 벗겨 드릴게요.]

그의 아첨떠는 재간은 황제, 교주, 공주, 사부에게 이미 커다란 효험을 
본 바가 있었다.  그 아첨을 친어머니에게 쓰자  놀랍게도 즉시 기이한 
효과를 가져왔다.
위춘방은 표객들을 많이  상대해 온 만큼 남자의 손이  몸에 와닿을 때 
그야말로 그 남자가 목석처럼 여겨질 뿐이었다. 그러나 아들이 손을 뻗
쳐 자기의 옷고름을 풀어 주자 그만 전신이 시큰거리고 맥이 빠지는 것
을 느끼며 킥킥 웃었다. 위소보는 어머니의 겉옷을 벗겨 주고서 그녀의 
허리띠를 풀어 주려고 했다. 위춘방은  쳇 하더니 그의 손을 가볍게 뿌
리치며 웃었다.

[내 스스로 벗지.]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바지를 벗었다. 그리고 
그 바지를 꺼내 이불 위에  놓았다. 위소보는 두 덩어리의 은자를 꺼냈
다. 모두 삼십여 냥이나 되는 은자를 어머니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어머니, 이것은 제가 어머니께 드리는 거예요.]

위춘방은 너무나 기뻐서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내....너를 대신해서  잘 간수하마. 그리고 몇  년이....몇 년이 지난 
후 너의 마누라를 맞아들이는 데 쓰자구나.]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제 잠시 후 마누라를 맞으러 간답니다.)
그는 촛불을 입으로 불어 끄고 말했다.

[어머니, 빨리 주무세요. 저는 어머니가  잠든 것을 보고 난 후에 자겠
어요.]

위춘방은 웃으며 욕을 했다.

[후레자식, 정말 수완이 늘었구나.]

그녀는 눈을 감았다. 온종일 피곤해진  몸에다 다시 몇 잔의 술을 들이
키고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았기 때문에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음이 안정되어 깊은 잠에 빠졌다. 위소보는 그녀
의 코 고는  소리를 듣자 손발을 살금살금  움직여서 문가로 다가갔다. 
그러다 마음속에  움직이는 바가 있어서 다시  돌아와 어머니의 바지를 
모기장 위에 던져놓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깨어나시게 되었을 때 바지가 없어진 것을 알면 나를 
잡으러 오지 못할 것이다.)
그는 감로청 밖으로  걸어가서 안을 살폈다. 정극상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뒤로 하고 누워 있는 상태였고 아가는 탁자 위에 엎드려서 꼼짝
도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크게 기뻐하며 잠시 기다렸다. 두 사람이 여
전히 움직이지 않자 곧바로 감로청 안으로 들어가 손을 뒤로 하여서 문
을 닫으려다가 곧 생각을 바꾸었다.
(문을 급히 닫을 필요는 없다. 만약  저 녀석이 일부러 춰한 척하고 있
는 거라면 문을 닫아 두면 도망치지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비수를 뽑아들고 가까이 다가가서 두 손을 뻗쳐 정극상을 밀었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미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는 다시 아가를  밀어 보았다. 그녀는 음음 두  마디를 했을 뿐 몸을 
일으켜 앉지 못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가는 술을 적게 마셨기 때문에 얼마 후에 깨어날 것이다. 그러면 매
우 위험하지.)
그는 비수를 신발목에 다시 꽂고 그녀를 똑바로 앉도록 부축했다. 아가
는 두 눈을 꼭 감고 애매하게 말했다.

[오라버니, 저는....더 마실 수가 없어요.]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누이, 한 잔 더 하시구려.]

술을 잔에 가득 따라서 왼손으로 그녀의 조그만 입을 벌리고 술을 쏟아
부었다. 아가가 흐릿한 상태에서 그 미춘주를 마시는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너와 더불어  중매를 가운데 두고 정식으로  천지신명께 절을 했
다. 그런데 너는  이 지아비와 동방화촉을 밝히려  하지 않고 여춘원에 
와서 갈보 노릇을  하며 이 지아비가 염병할 녀석이  되어 너의 머리를 
얹어 주도록 만들었으니 너야말로 진정으로 천한 개뼈다귀구나.)
아가는 본래 술에 약했다. 그녀는 술이 취한 데다 촛불 아래서 보니 더
욱더 간드러지고 화사해 보였다. 위소보는 크게 음심이 동하는 것을 느
끼고 정극상이 죽있는지 살았는지,  취했든 아니면 깨어 있든 상관하지 
않고 아가를 비스듬히 안아들고 감로청  옆에 있는 커다란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커다란 방은 바로 호객(豪客)이  유숙하는 데 사용했다. 
커다란 침대는 폭이 여섯 자가 되있고 비단 금침으로 꾸며져 있어 화려
했다. 위소보는 아가를 침대 위에 가만히 눕히고 되돌아와서 촛대를 가
지고 들어가 침대 머리맡의 탁자 위에 놓았다. 아가의 얼굴이 불그스름
한 것이 자기도 모르게 욕정이  불끈 솟구쳤다. 몸을 굽히고 그녀의 장
포를 벗기자 몸  안에 걸치고 있는 엷은 녹색의  내의가 드러나게 되었
다. 그가 손을 뻗쳐 그녀의 내의 단추를 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뒤에
서 발걸음소리가 들리며 한  사람이 달려들어왔다. 막 고개를 돌리려고 
했을 때 땋은  머리가 바짝 조여지면서 귀를  다시 위춘방에게 잡혔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어머니, 빨리 손을 놓으세요!]

위춘방은 욕을 했다.

[후레자식! 우리가  가난하기는 하지만 기녀원의 규칙을  어길 수는 없
다. 양주의 구대명원에서 어느 누가  손님의 돈을 훔치더냐? 빨리 나가
자!]

위소보는 급히 말했다.

[나는 남의 돈을 훔치려는 게 아니에요.]

위춘방은 힘을 써서 그의 땋은 머리를 잡아당기고 죽어라 하고 그를 끌
고서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욕을 했다.

[네가 손님의 돈을 훔치지 않겠다면 남의 옷을 풀어서 무엇하려고 했단 
말이냐? 이 수십 냥이나 되는  은자는 반드시 도둑질을 해온 것이겠지? 
고생해서 키워 놓았더니 결국 너는 도적이 되고 말았구나!]

위춘방은 그만 자기의 신세가 고달픈  것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며 침
대 머리맡의 두 덩어리  은자를 땅바닥에 내던졌다. 위소보는 설명하기
가 어려웠다. 만약 그 손님이 남장한 여인이고 기실은 자기의 마누라라
는 것을  설명하려면 첫째로 말이 길어지고  둘째로 어머니가 곧이들을 
것 같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째서 남의 돈을 훔치겠습니까? 이것 보십시오. 저의 몸에는 이
처럼 많은 은자가 있습니다.]

그는 품속에서 한 웅큼의 은표를 꺼내며 말했다.

[어머니, 이 은자들은 제가  모두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했었어요. 그러
나 어머니가 너무 놀라서 잘못될까 봐 천천히 드리려고 한 거예요.]

위춘방은 기백 냥이나  되는 은표가 수십 장이나 되는  것을 보고 그만 
놀라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것....이것은, 이 좀도둑아, 네가....네가....네가 역시 그 두 상공
의 몸에서 훔쳐 낸 것이 아니냐? 네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 하더라
도 이 많은 은자를 벌 수는 없으니 빨리 되돌려 주어라. 우리들은 기녀
원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고, 재간이 있으면 바가지를 씌워 십만 냥이든 
팔만 냥이든 벌 수 있다.  하지만 염병한 녀석들이 스스로 바치는 것을 
받을 뿐이다.  남의 것을 조금이라도  훔친다면 이낭신(二娘神)이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내세에 다시 좀도둑질을  하게 될 것이다. 
소보야, 이 모두 너를 위해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음성마저도 부드럽게 하고서 다시 말했다.

[그 사람들이 내일 깨어나서 이 많은 은자가 없어진 것을 알았을 때 어
찌 떠들지 않겠느냐? 아문의 포졸 나리들이 조사를 하게 되어 발각된다
면 너는 피가 터지고 살이 썩도록 곤장을 맞지 않겠니? 소보야, 우리는 
남의 은자를 가질 수는 없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그저 어떻게  해서든 아들이 돈을 되돌려줘야 한다
는 말이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가 이렇게 붙잡고 늘어지니 어떻게  설명을 할 수도 없구나. 만
약 일이 시끄러워지고 주모와 귀노까지 알게 되면 큰 소란이 일어날 것
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을 그르친다.)
문득 그는 마음속으로 움직이는 바가 있어 말했다.

[좋아요. 좋아요. 어머니, 어머니의 말씀을 듣도록 하지요.]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감로청으로 가서 한 웅큼의 은표를 모
조리 정극상의 품에 집어넣고 자기의  주머니를 다 뒤집어 보이며 말했
다.

[제게는 한 냥의 은자도 없어요. 이제 안심하셨지요?]

위춘방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좋다,그래야지.]

위소보는 어머니의 방으로 돌아갔다.  어머니가 옛날 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쳇 하고 웃었다.  위춘방은 주먹을 가볍게 쥐고 그의 이마에
다 꿀밤을 한 대 먹이더니 욕을 했다.

[내가 일어나 소변을  보려고 바지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네가 좋지 
않은 일을 하러 간 줄 알았지.]

그녀는 참지 못해 웃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아이쿠! 야단났어요! 대변이 마렵군요. 막 쏟아지려고 해요!]

그리고 그는 배를 감싸안고  총총히 걸어나갔다. 위춘방은 그가 감로청
으로 달려갈까 봐 걱정을 했으나 그가 후원 변소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
서야 안심을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다시 화청으로  나가게 된다면 이 에미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위소보는 측문으로 걸어와서 나는  듯 화원으로 되돌아갔다. 문을 지키
던 친위병은 손을 뻗쳐 막으며 호통을 내질렀다.

[뭣하는 사람이냐?]
[나는 흠차대인인데 너는 나를 몰라보느냐?]

그 친위병은 깜짝 놀라  자세히 바라보니 아니나다를까 흠차대인인지라 
재빨리 말했다.

[예예, 대인....]

위소보는 그 친의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
어가서 말했다.

[쌍아, 빨리 나를 도와 흠차대인의 모습을 되찾도록 하주시오.]

그는 애를 써서 장삼을 벗었다. 쌍아는 그가 얼굴을 씻고 옷을 바꿔 입
도록 시중을 들고 웃으며 물었다.

[흠차대인께서는  미행하셔서 조사한  결과 진상을  알아내시게 되었나
요?]
[알아냈소. 이제 우리들은 가서 사람을 잡기만 하면 되오. 그대는 빨리 
친위병의 옷을 입고 다른 여덟  명의 친위병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
오.]
[서천천 나으리들을 불러야 하나요?]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극상과 아가는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으니 잡는 데 조금도 힘
들 것이 없다. 서천천 일행이 뒤따라간다면 또다시 나에게 그 정가라는 
못난 녀석을 죽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친위병을 데리고 가서 거드름을 
피우며 나의 어머니와 주모와 귀노를 놀라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는 말했다.

[그럴 필요 없소.]

쌍아는 친위병의 복장을 하고 말했다.

[증 소저를 불러 함께 가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친위병들 가운데 오로지 그녀와 증유  두 사람만이 여자인데 남장을 하
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소녀는 이미 며칠 동안 함께 지내게 되자 
매우 친밀해져 있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가를 안아서 이곳으로 옮겨오려면 그녀 혼자서는 힘들고, 반드시 두 
사람이 떠메고 와야 한다. 흠차대인이 아랫사람들 앞에서 손을 쓸 수는 
없고 또한 친위병의 냄새나는 손으로  내 마누라의 향기나는 몸을 만지
게 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는 말했다.

[매우 좋소. 그녀를 불러 함께  가도록 하시오. 그러나 왕옥파의 그 사
람들은 부르지 않도록 하시오.]

증유는 몰래 친위병의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삽시간에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위소보는 두 소녀와 여덟 명의 친위병을 이끌고 다시 여춘원으
로 갔다. 두 명의 친위병을  앞세워 문을 두드리며 호통을 크게 내질렀
다.

[참장 대인께서 오셨다. 빨리 문을 열고 영접하라.]

친위병들은 당부를 받아 위소보가  참장이라고 꾸며서 말했다. 늙은 주
모와 귀노들을 놀라게 하는 데 참장이면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
참 문을 두드리자 그제서야 대문이 삐거덕 하고 열리면서 한 명의 귀노
가 나와 전전긍긍하며 말했다.

[손님, 어서 오세요.]

그가 위소보를 알아볼까 봐 감히  쳐다보지 못하도록 한 명의 친위병이 
호통을 내질렀다.

[참장 나으리께서 왕림하셨다. 늙은 주모는 시중을 잘 들도록 해라.]

위소보가 대청에 이르자 늙은  주모가 나와서 맞아들였다. 그녀는 위소
보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으리께서는 화청에 오르시어 차를 드시도록 하십시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나를 쳐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볼 필요도 
없다. 다만  그들에게 분부해서  아가와 정극상을 떠메고  가도록 해야
지.)
늙은 주모는 평소 손님들을 접대함에 있어서 매우 치밀했다. 그리고 관
리들이 나서면 더욱더 공손하고 깍듯이 대했다. 그는 감로청 안으로 들
어갔다. 그리고  보니 주석은 아직 치워지지  않은 상태였고, 정극상은 
여전히 의자에 반쯤 누워 있는 자세 그대로였다. 그가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 옷차림이 화려한 한 사람이 걸어오더니 입을 열었다.

[위 대인, 안녕하셨소?]

위소보는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알아보지?)
그 사람을 쳐다본 순간 위소보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얼른 허리
를 굽혀서 신발목의 비수를 뽑으려고  했으나 갑자기 손목이 바짝 조여
드는 것을 느꼈다. 등뒤에서 누군가 그의 손목을 잡고 냉랭히 말했다.

[얌전하게 앉아. 손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소!]

그리고 왼손으로 그의 뒷덜미를 잡고  그의 몸을 들어올려 의자에다 밀
어붙였다. 위소보는 속으로 야단났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쌍아의 날카
로운 호통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그 사람을 향해  덮쳤다. 증유 역시 
앞으로 나아가 협공을  했다. 그때 옆에 있던  한 금의(錦衣)의 공자가 
손을 들어 그녀를  후려치자 두 사람은 즉시  싸우게 되었다. 위소보는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  그 금의의 공자는 원래  여자인데 역시 남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아가의 사저 아기였다.
쌍아와 싸우는 사람은 키가 크면서도 야윈 몸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서
장의 라마 상결이었다. 그는 평복 차림을 하고 있었고 머리에는 모자를 
눌러쓰고 뒤통수에는 가짜 땋은  머리를 내려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옷
차림이 화려한 사람은 바로  몽고 왕자 갈이단이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정말 멍청하구나. 분명히 정극상이 갈이단 왕자와 이곳에서 만나
기로 약속했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어째서 이를 방비하지 못했을까? 나
는 아가만 보면 그만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내 성이 뭔지도 잊어버린다. 
제기랄! 나의 성이 무엇인지는 본래 모르는 것이니 탓할 수도 없구먼.)
이때 쌍아가 아이쿠! 하는 비명을  질렀다. 어느덧 상결에 의해 혈도를 
짚히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때  증유는 여전히 아기와 매섭게 싸우고 
있었는데 아기의  초식은 정묘했으나 손씀씀이에 힘이  실리지 않아 몇 
번 증유를 적중시키기는 했지만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상결이 가까
이 다가가더니 금세 증유를  쓰러뜨렸다. 두 명의 친위병들은 상결에게 
혈도를 짚혀 쓰러지거나 갈이단에게 맞아 죽었으며 대청 밖 뜰 안에 내
동댕이쳐졌다. 상결은 냉소를 흘리더니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위 대인, 그대의 사부는 어디 계시오?]

그리고 두 손을 뻗쳐 곧장  위소보의 코앞에 갗다댔다. 그러고 보니 그
의 열 개 손가락은 모조리  한 토막씩 없어진 상태였다. 본래 손가락은 
세 마디인데 지금  그의 손가락은 두 마디밖에 남아  있지 않아 지극히 
이상야릇하고 몸서리쳐지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위소보는 속으로 야단
났다고 생각했다.
(그날 그는 경서를 펼치다가 내가  뿌린 독에 손가락이 닿았구나. 죽었
으리라 생각했는데 이 사람은 악랄하게도  자기의 열 개 손가락을 모조
리 잘라 내고 살아났구나. 오늘 내가 이자의 손 안에 있는 이상 보답을 
받게 될 것이고,  그는 나의 열 손가락을 모조리  한 토막씩 잘라 내겠
지. 그것은 상관이 없다만 나의 머리통을 한 토막 잘라 낼까 봐 두렵구
나.)
상결은 그가 놀라 멍청해진 것을 보고 무척 의기 양양해져 말했다.

[위 대인, 그날 나는 그대가 어린애인 것을 보고 그대가 조정에서 아주 
귀하신 분이라는 것을 몰라뵈었소. 실례 많이 했소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감당할 수 없소이다. 그날 저 역시 그대를 그저 평범한 라마로 생각했
지 대단하신 영웅인 줄 몰라뵈었습니다. 정말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상결은 코웃음치더니 물었다.

[흥! 그대는 어떻게 내가 영웅인 줄 알았소?]

위소보는 말했다.

[그 어떤 자가  경서에다 극독을 뿌려 우리  사부님을 해하려고 했는데 
우리 사부님께서는  그것을 간파하시고 손을  뻗쳐 만지지 안했소이다. 
그대가 그 경서를 꼭 봐야 한다기에 우리 사부님은 어찌 할 수 없어 그
대에게 준 것이외다. 대라마, 그대가  손가락이 중독된 이후 즉시 결단
을 내려 독수의 손가락을 잘라 낸  것을 보면 정말 알 수 있지요. 자기
의 목을 잘라  자살하는 것은 쉬워도 자기의 열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대영웅도 하지 못한 노릇이 아니
겠소? 과거 관운장이 뼈를 깎고 중독된  독을 치료할 때 눈살 한 번 찌
푸리지 않았다고 하나, 그것 역시  다른 사람이 그의 뼈를 깎아낸 것으
로 그 자신으로 하여금 손가락을 자르라고 했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
했을 것이외다. 그대는 관운장보다  더 무서우니 자고로 천하 제일가는 
대영웅이 아니겠소?]

상결은 그가 아첨을  떨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와 같은 말을 
듣는 순간 꽤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날 그 자신
은 모질게 마음을  먹고 열 개의 손가락을 잘라내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두 손은 물론  병신이 되었고 무공도 많이 약해졌다. 
그러나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자기가 그토록 용기있게 일을 처리
한 것은 그 자신이 생각해토 자랑스러웠다.
그가 열두 명의 사제를 데리고 중원으로 들어와서 사십이장경을 빼앗으
려고 한 결과 열두 명은 모조리  목숨을 잃었고 자기는 두 손이 불구가 
되었다. 물론 이와 같이 운수 사나운 일을 그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들
먹이지 않았고 또한 그 누구도 감히 그에게 어찌하여 열 개의 손가락이 
잘렸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소보의 그와 같은 말
은 처음 듣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상결 대라마는 음침한 얼굴에 자기
도 모르게 몇 가닥의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위 대인, 우리들은 그대가 양주로  왕림하신다는 것을 알고 모두들 약
속을 하고서 그대와 만나고자  한 것이외다. 그대는 전문적으로 평서왕
의 일에 훼방을  놓고 그 어르신의 큰일들을  많이 그르치게 했소이다. 
부마가 운남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뵙고자  한 것을 저지한 사람도 그대
가 아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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