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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사조영웅 2

by Casey,Riley 202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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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小說 英雄門   第 1 部   蒙古의 별    第 二 卷


                         저자 : 김  용



第 十八 章. 향기로운 편지


옥양자 왕처일은 완안강이 보낸 과자 등을 받고 목역이 거처하고 있는 여관을 물어 
확인한 뒤 안으로  들어섰다. 목역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침대  위에 
누워 있고,  그의 딸은  침대곁에  걸터앉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가  왕처일과 
곽정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왕처일이 목역의 두 손의  상처를 
보니 손등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깊이 팬 것이 뼈가 다 들여다보일 지경이다. 마치 
병기에 부상당한 것처럼  퉁퉁 부어 올랐다.  금창약(金創藥)만 발랐지 곪을까  봐 
매지는 않았다. 왕처일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완안강의 무술이나 솜씨로 보아  틀림없이 구사형(丘師兄)에게 배운 것인데  그래 
우리 전진파 가운데 어디  이렇게 악랄하고 무서운 수법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틀림없이 무슨 곡절이 있을게야.)
고개를 들려 소녀를 건너다보며 입을 연다.

[색시의 이름이 어떻게 되오?]
[저는 목염자(穆念慈)라고 해요.]
[아버님 상처가 가볍지 않으니 잘 치료해 드려야 하오.]

품에서 두어 냥의 은자를 꺼내 책상 위에 을려 놓는다.

[내일 다시 오리다.]

목역과 목염자가 고맙다는  인사도 할 새  없이 곽정의 손을  잡고 여관을  나서니 
비단옷을 입은 수명의 수종들이 나서며 인사를 올린다.

[저희들 왕자께서 기다리고 계시오니 도사님과 곽나리께서 함께 가 주십시오.]

왕처일이 고개를 끄덕인다.

[도사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곽정이 말을 마치고 여관으로 달려가 완안강이 보내온 과자 상자를 열고 네댓 개를 
골라 손수건에 싸서 품안에 쑤셔 넣고 달려 나왔다. 네 명의 수종과 왕처일의 뒤를 
따라 함께 왕부로 왔다. 조왕부의 대문에 당도하니 두개의 깃대가 하늘을 찌를  듯 
구름위로 솟아 있고 옥돌을 쪼아 만든  사납게 생긴 돌사자가 빨간 대문의  양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백옥으로   다듬어진 계단이  저끝까지  가지런하다.  대문 
가운데에 조왕부(趙工府)란 세 개의 금글자가 뚜렷하다.
조왕(趙王)이라면 바로  대금국의  육대자인 완안열이다.   곽정은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떤다.
(설마, 이  왕자라는 사람이  완안열의  아들은 아닐  테지? 완안열은  내  얼굴을 
아는데 여기서 만나게 된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막 생각에   잠겼는데 풍악  소리가  울리며 머리엔   금관을, 몸엔  홍포를  입은 
완안강이  옥대를   번쩍이며 나와   반긴다.  왕처일은   그의 호화로운   차림이 
못마땅한지 가볍게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완안강은 왕처일을 상좌에 앉힌다.

[도사님과 곽형이 이렁게 왕림해 주시니 삼생의 영광이옵니다.]

왕처일은 그가 무릎을 꿇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이마를 조아리는 것도  아니며, 
또 자기를 보고 사숙(帥叔)이다고 부르지도 않는 태도에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다.

[그래 자넨, 사부님께 몇 해나 무예를 익혔는가?]
[저 같은 게 무슨 무예를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께 이 년 동안  배웠을 
뿐입니다. 세 발 가진 고양이 같은 서툰 재주를 너무 놀리지 마십시오.]
[전진파의 무공이 비록 훌륭하달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세  발 가진 고양이  같은 
그런 서투른 재주는 아닐세. 자네 사부께서 일간 여기로 오실텐데 알고 있는가?]
[제 사부께선 지금 여기 계십니다. 만나시렵니까?]

왕처일은 깜짝 놀란다.

[아니 어디에?]

완안강이 가볍게 손바닥을 두 번 두드리고 수종에게 이른다.

[상을 차려라!]

뭇 수종들이 차례로 전갈을 한다. 완안강이 왕처일, 곽정 두 손님을 모시고 안으로 
안내를  한다.  회랑을  돌고  돌아   한참이나 걸었다.   곽정이 어디서   이렇게 
으리으리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던가! 눈이 어지러울 지경으로 호화찬란한  광경에 
그만 입이 벌어진다. 게다가 만일 완안열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어 
조바심만 더해진다.  화청(花廳)에 당도하니   그곳엔 6,7명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이마에 혹이  세 개나 불끈 솟아 있는 것이 바로  삼두교 
후통해가 아닌가? 곽정을 보더니 눈알을 뒤집고 쏘아 본다.
곽정이 가볍게 놀라기는 했지만  왕처일이 옆에 있는데  전들 어쩌랴 싶어  마음을 
놓는다. 완안강이 만면에 웃음을 띄고 왕처일을 향해 말문을 연다.

[도사님,  여기  계신  분들이  오래   전부터 도사님의   위명을 흠모하며   뵙고 
싶어했습니다. 여기 이 분이 팽채주, 두 분께서는 벌써 만나셨지요.]

둘은 서로 예를 표했다. 완안강이 다시 홍안의 백발 노인을 가리킨다.

[이분은 장백산 삼선인 양자옹 노인이십니다.]

(아니, 이 노괴가 어찌 또 여기에 나타났을까?)
왕처일이 놀라는데 양자옹이 먼저 인사를 한다.

[철각선 왕진인을 뵙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이번 나들이가 헛되지  않군요. 
여기 이분은  서장밀종의 대수인   영지상인이올시다. 우리 하나는  동북에서,  또 
하나는 서남에서 만 리를 멀다않고 왔는데 이거 참 무슨 인연이 있는가 봅니다.]

이 삼선노괴 양자옹은 아주 달변이다. 왕처일이 영지상인을 향해 고개를 숙이니 그 
장승은 두 손으로 합장을 한다. 이때 걸찍하게 목쉰 소리가 울렸다.

[이제 보니 강남 칠괴를 믿고 그렇게 방자하게 까불고 다녔구만.]

왕처일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번쩍이는 대머리에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이제라도 툭 불거져 나을 것 같은 험상궂은 인상이다.

[아, 혹시 귀문용왕이신 사(沙)선배가 아니신지?]
[그렇소, 전부터 날 알고는 있었구먼.]

벌컥 화를 낸다. 왕처일은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우리 강물이 우물물을 긴드릴 수 있나? 뭐 잘못한 일도 없을 텐데?)
온화한 낯빛으로 부드럽게 대했다.

[사선배님의 존함을 늘 존경해 왔습니다.]

그 귀문용왕의 이름은  사통천(沙通天)이다. 무공은  사제(師弟)인 후통해와  비할 
처지가 아니다. 후통해보다 수십 배 홀륭하다. 다만 그의 성질이 난폭하여  무예를 
전수할 때도 늘  성질만 사납게  부린다. 그래서  일신에 지니고  있는 그  훌륭한 
무공도 네 명의 제자가  겨우 열에 두서넛 배웠을까  말까 한 처지다.  황하사귀가 
몽고의 일전에서 곽정에게  패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듣고  사통천은 몹시  성질을 
부리고 닥치는 대로  그 넷을 두들겨  패 호통을 치고  사제인 삼두교  후통해에게 
명령을 내려 곽정을 잡아 오도록 했지만 웬걸, 황용의 놀림감만 되고 말았다.
그는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져 체면이고 뭐고  살필 겨를도 없이 손을 뻗어  곽정의 
멱살을  집으려고  대들었다.  곽정이  뒤로  한  발  물러서자  왕처일이  도포의 
소맷자락으로 그 사이를 막았다.

[아니, 정말 저 개만도 못한 녀석을 감싸고 돌겠소?]

벌컥 화를 내며 장풍으로  왕처일의 가슴을 향해 쉭  하고 친다. 왕처일은  공격의 
흉악함을 느끼며 자기도 장풍을 날린다. 서로와 손바닥이 마구치는 순간 옆에서 한 
사람이 쏜살같이  나서서 왼손으론  사통천의 팔목을  잡고, 오른손으론  왕처일의 
팔목을 잡아 가볍게 밖으로  떼 놓았다. 왕처일과 사통천은  들 다 당세  무림에선 
가장 유명한 인물들이다. 그들 둘의 장풍이야말로 평생의 절학(絶學)이다.  상대가 
상대니만큼 조금이라도   소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전광석화와 같이  순간에 
나타나 이렇게 가볍게 이 두 고수를  떼 놓을 수 있다니 놀라운 솜씨다.  왕처일도 
깜작 놀라 믈러서고 사통천의 분통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도내체 누구란 말인가? 둘은 서로 그를 바라다보았다. 하얀 옷에 가벼운 가죽외투, 
잘생긴 얼굴에 나이는 35,6세, 두 눈썹이 길고 준수한 풍채가 수재나 재상과  같고 
몸에 걸친 복식이 또한 부귀한 왕손 같다. 완안강이 웃으며 소개한다.

[이분은 서성곤룬(西城崑崙) 백타산(白駝山) 산주인  구양공자(歐陽公子)이십니다. 
중원(中原)에 와 본 적이 없으시니 여러분께서도 초면일 겁니다.]

아닌 밤둥에 흥두깨격으로 나타난 인물이다. 왕처일과 곽정만 처음 보는 게 아니라 
팽련호, 양자옹까지도  서로  모르는 처지다.  여러  사람들이 그의  무공을  보고 
마음속으로 흠모했지만  백타산이란 이름은  금시 초문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무림의 명수들이라 그들은 각각 생각해 보았지만 이 사람의 
이름을 들어 본 기억은 없었다.
그 구양공자가 공손하게 손을 마주 잡고 말문을 열었다.

[제가 벌써 연경(燕京)에  도착했어야 할  텐네 오는  도중 다른  일이 생겨  며칠 
지체되었습니다.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곽정은 완안강이 그를 백타산  산주라고 소개하는 말을  듣자 노상에서 자기  말을 
뺏으려고 대들었던 흰옷의 여자들이 생각났다.
(혹시, 이 사람이 내 여섯 분 사부님들과 싸운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생각까지 든다.

왕처일은 상대방 하나 하나가 모두 쟁쟁한  고수들임을 알자 적이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만일  여기서 싸움이라도   벌어진다면 큰일이다. 1대1로  한대도  승패를 
예측할 수 없을텐데, 그들이 한꺼번에 공격을 한다면 어떻게 상대를 한단  말인가? 
즉시 완안강을 향해 묻는다.

[자네 사부는 어디 계신가? 어째서 여기로 모시지 않지?]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돌려 한 수종에게 이른다.

[사부님을 모셔 오너라!]

수종이 대답을 하고 물러나자 왕처일은 안도의 숨을 내쉰다.
(구사형이 여기 계신다니,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이젠  당해 낼  수 
있겠지!)
잠시 후 신발 끄는 소리와 함께 몸집이  뚱뚱하고 비단 옷을 입은 무관이 문  밖에 
나타났다. 아래턱에 수염이 텁수룩한 40여 세 정도의 인물로 무인다운 풍채를 하고 
있었다. 완안강이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사부라고 불렀다.

[이 도사께서 사부님을 뵘고 싶다고 벌씨 몇 차례나 물으셨습니다.]

왕처일은 어이가 없었다. 화가  불끈 치밀어 올랐다.  완안강을 항해 벌컥  소리를 
질렸다.

[아주 건방진 녀석이로구나, 그래 날 놀릴 셈이냐?]

그러자 그 무관이 나선다.

[도사님, 그래 내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  내 평소 도사니, 스님이니 하는  것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데.]

왕처일도 어이없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소. 내 나으리께 시주 좀 하라고 왔소. 천 냥만 시주하구료.]

그 무관은 탕조덕(湯祖德)이라 하는  사람인데 조왕 완안열 수하의  친병대장이다. 
완안강이 어렸을 때 무예를 가르친 일이 있었다. 그래서 조왕부 안에선 모두  그를 
사부라고 부른다. 이제  왕처일이 내뱉듯  천 냥이나 시주하라는  말을 듣고  놀라 
책망올 하려고 하는데 완안강이 먼저 도사의 말을 받았다.

[그야 물론 시주를 해야지요.]

수종을 향해 분부를 내린다.

[여봐라, 빨리 나가 천 냥을 준비했다가 도사님 가실 때 드리도록 해라.]

탕조덕이 이 말을 듣고 벌린 입을 다물 생각도 않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발끝에서 
머리 위까지 왕처일을 훑어본다.

[자 이제들 자리에 앉으십시다. 도사께선 처음이시니 이 상석에 앉으세요.]

완안강이 권하자  왕처일은 몇  번  사양하다가 그대로  앉았다. 술이  서너  순배 
돌아간 후 왕처일은 서서히 얘기를 꺼내 놓는다.

[오늘 무림의 선배들이 이렇게 다 한자리에 모이셨으니 한번 생각들 해  보시지요. 
목가 성을 가진 부녀의 일은 어떻게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까?]

어떻게 대답이 나오는가  궁금하여 뭇 사람들의  시선이 완안강의 얼굴에  쏠린다. 
완안강이 잔에 술을 따라 몸을 일으켜 세우며 두 손으로 받쳐 왕처일에게 권한다.

[우선 이 술이나 받으십시오. 그 일은 도사님이 시키시는 대로 따라 하겠습니다.]

왕처일은 이렇게 시원한 대답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쪽에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래서 손에 든 잔을 쭉 비웠다.

[좋소! 그럼 그 목씨를 이리로 모셔다가 얘기를 합시다.]
[마땅히   그래야지요.  수고스러우시지만   곽형이   가서   모셔  오도록   함이 
어떠하올지?]

완안강의 말에 왕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곽정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왕부를 
나왔다. 고승 여관에 도착하여 목역이  묵고 있있던 방으로 들어서니 목역  부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옷보따리 등도 보이지 않아 심부름꾼에게 물어 보니 방금 
어떤 사람이  나타나 데리고  나갔는데  방값, 밥값을  치르고 갔으니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까지  들러준다.  곽정은  누가  와서  데리고  나갔느냐고  물었지만 
심부름꾼의 얘기만으론  종잡을 수가  없다. 걸음을  재촉하여 조왕부로  돌아오니 
완안강이 내려와 반긴다.

[곽형, 주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목선생은?]

곽정이 경위를 설명했다. 완안강이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되면 내가 큰실례를 하게 되는데...., 이봐라. 여러 사람이 나가 사방으로 
수소문해서 그분을 찾아 모셔오도록 하거라.]

수종들이 대답을 하고 몰러나갔지만 왕처일은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누가 무슨 장난을 치는지는 몰라도 세월이 가면 다 드러날 테지.]
[도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왕처일의 빙소 섞인  말에 완안강도  맞장구를 친다. 그  탕조덕이란 자는  도사가 
못마땅해 견딜 수가 없었다. 말 한마디에 은자 천 냥을 뺏겼을 뿐만 아니라 왕자를 
대하는 태도에도 예의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 도사께서  어느  도문에 속하신   분인 줄은  몰라도 뭘   믿고 여기  와서 
큰소리만 치시는 게요?]
[이 장군은 어느 나라 사람인데 무얼 믿고 여기 와서 관리를 지내는 게요?]

왕처일은 그가 틀림없는 한나라  사람인데 금나라에 와서  관리를 지내는 것  같아 
조롱을 한 것이다. 탕조덕은 누가 자기를 보고 한나라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자신은 무예도  훌륭하고 또 금나라 일이라면 충성을  다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군대를 통솔하여 업적을  남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원통했었다. 관직이  낮은 편은 아니라  하지만, 20여 년  애쓴 보람이  있어 
여전히 조왕부 안에서 한직에만 눌러  앉아 지내고 있었다. 왕처일의 말은  그대로 
그의 아픈 곳을 찌르고  말았다. 금방 낯빛이 새파랗게  질려 불끈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양자옹과 구양공자를 가운데 둔 채 주먹으로 왕처일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장군께서 먼저 그런 얘기를 꺼내시곤 왜 또 손찌검까지 하려고 하오?]

웃으며 손을   뻗어 젓가락으로  그의 팔뚝을   집었다. 그러자  탕조덕의  주먹이 
허공에서 멎는다.  몇  번이나 힘을  줘  보았지만 요지부동이다.  놀랍기도  하고 
분통도 터진다.

[아니, 이놈의 도사가 요술을 부려!]

있는 힘을 다해  손을 움츠리려  해도 여전  그 모양이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양자옹이 그의 옆에 앉아 있다가 웃는다.

[장군, 화내지 마시고 앉아 술이나 드십시다.]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눌러 앉힌다. 왕처일은 젓가락의 힘만 가지고도 탕조덕쯤의 
팔목을 잡고있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양자옹이 탕조덕을 눌러 앉히는  그 
힘을 이겨 내기에는 부족했다. 젓가락을  놓으며 그릇에 있는 닭다리를 집어  얼른 
탕조덕의 입에 쑤셔 넣었다. 탕조덕은 막 입을 벌려 욕을 하려다가 닭다리를  가득 
입에 문   채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분하고 부끄러워  일어나  내실로 
달아났다. 이 꼴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어 폭소가 한바탕 장내에 터졌다.
잠시 후 사통천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전진교야말로 남북에 그 명성을 날리고 있는데 과연 헛소문이 아닌 줄 믿고 있소. 
그런데 도사께 한 가지 여쭈어 봅시다.]
[네, 무슨 말씀이든지 해 보세요]
[내가 전진파와는 아무 원한도 없는 처지인데 도사는 어째서 강남 칠괴를 도와  내 
입장을 난처하게 하십니까? 전진파는 사람도 많고 나는 별 재주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오.]
[사선배님, 그건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오해를  하고 계시군요. 저도 강남  칠괴의 
이름은 들어 알고 있지만 한 번도 만나 본 일은 없습니다. 제 사형(師兄) 한  분이 
그들과 좀 알고  있는 모양이지만 무슨  강남 칠괴를 도와  선배님을 난처하게  한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좋소, 저 어린 녀석을 내게 넘겨 주시오.]

벌떡 일어나 곽정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왕처일은 곽정이 피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만약 잡히기만 하면 크게  부상을 입을 것은 당연하다. 먼저  대들어 
왼쪽 어깨로 곽정을 슬쩍  밀자 그대로 의자에서 몸이  떴다. 우지직 소리를  내며 
의자가 부러져 나갔다.  사통천이 의자를  틀어 잡은  것이다. 그의  외문(外門)의 
내공이 벌써  극치의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는 솜씨다.  비록  그것이 
혹풍쌍쇄의 구음백골조처럼 악랄하고  무서운 것은 아니지만  무림에서 보기  드문 
놀라운 재주다. 사통천은 왕처일의 방해에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그래도 저 녀석을 두둔하고 감쌀 셈이오?]
[아닙니다. 이 아이는 제가 왕부로  데리고 들어왔으니 잘 데리고 나가야  합니다. 
사선배께서 오늘은 참으시고 다음에 화풀이 하심이 어떠 하올지?]

그러자 구양공자가 나섰다.

[이 소년이 사형께 무슨  죄를 지었는지 어디 말씀을  해 보시죠. 우리 함께  들어 
봅시다.]

사통천은 생각했다. 보아하니 구양공자의 무공이 결코 자기만 못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형제 둘이 이까짓 어린 녀석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도움을 
청하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았다. 자리로 돌아와 다시 술 한 잔을 비웠다.

[말을 하자면, 나도 이 녀석과 무슨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게  못난 
제자가 네뎃 있는데  조왕부를 마라 몽고에  들어가 무슨 일을  하려다가 이제  막 
성공을 하러는 순간 저 녀석이 방해하는 바람에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 
일 때문에 조왕부에 대한 면목을 잃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이까짓 
어린  녀식  하나를  어떻게  해치우지  못하고서야   무슨 큰   일을 해   낼  수 
있겠습니까?]

좌중에서 왕처일과 곽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왕부에서 비싼  이물로 초빙해  온 
사람들이다. 완안강은 바로 조왕의 세자다. 사통천의 말을 돋고는 모두 그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곽정을  잡아 조왕에게 넘겨  처리케 하러는 눈치들이다.  왕처일은 
좌중의 시선이 곽정에게 쏠리는 것을 보고 초조해졌다. 어떻게 해서라도 몸을 빼야 
한다. 그러나 이  강적들 앞에서 무슨  수를 써야 할지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무예를  익히고 하산한  이래  얼마나 많은  싸움을 보고  겪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많은  강적과 겨룰  방법은 없었다.  지금 와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다만 이  순간을 질질  끌면서 각자의  허실이나 살펴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러분의 명성은 오래 전부터  흠모해 왔습니다. 오늘  인연이 있어 이렇게  뵙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형언할 수 없습니다.]

말을 멈추고 곽정을 가리킨다.

[이 소년이 하늘  높고 땅  넓은 줄 모르고  조왕께 득죄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소년을  머무르게 하려고   하시는데 저 혼자   반대할 수  없는 
입장임을 너무나   잘 압니다.  다만 외람된   요구이오나 여러분의  재주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 이 소년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싶은 마음 간질합니다. 제가  힘을 
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소년을  도울 마음은  간절하오나 능력이  없어서 
그럽니다.]

삼두교 후통해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에 앉아 있다가 왕처일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긴 옷을 어루만지며 나섰다.

[그럼 제가 먼지 도사와 겨루어 보겠소.]
[저 같은 둔한 재주로 어찌 감히  여러분과 겨룰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후형께서 
절기(絶技)를 보여 주심으로  해서 저도 좀  배우고 또 이  소년에게 본때를  보여 
줌으로 해서 하늘  높은 줄도  알고 사람 위에  사람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하여 
다시는 망동함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후통해는 왕처일의 언중유골의  말을 들으면서  화는 나지만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믓거린다. 사통천은 아무래도 전진파의 도사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호동해를 건너다보며 말을 이었다.

[여보 사제.   설리매인(雪裏埋人)의 재주를  왕진인에게  보여  드리고  가르침을 
받구료.]

이때도 눈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후통해는 마당으로 내러가 양  팔을 
허위적거리며 눈을 쓸어  모아 3자(尺)  정도의 눈무더기를  쌓아 을렸다.  그리고 
나서 다시 발로 다져 놓고는 뒤로 서너 발짝 물러섰다가 몸을 날러 머리는 땅으로, 
발은 하늘을 향한 자세로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눈무더기 속으로 처박는다. 흰 눈이 
그대도  가슴   높이밖에  차지   않는다.  곽정은   그게  무슨   재주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다만 그가 머리를  눈 속에 거꾸로 박은  채 꼼짝하지 않는  것만이 
이상스러울 뿐이다. 사통천이 완안강의 수종들을 향해 부탁을 한다.

[여러분께서 귀찮으시겠지만   저 후형  머리 부분에   있는 눈을  단단하게  다져 
주시오.]

뭇 수종들이 재미있다는 듯 시시덕거리며  대들어 사방의 눈을 꼭꼭 다졌다.  원래 
이 사통천과 후통해는  황하에서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기 때문에  수상(水上)의 
무공은 훌륭했다. 물의 성질을 잘 알고 있어서 물 속에 잠수를 하면서도 숨을 쉬지 
않고 견디는 재주가 남달리 뒤어난 데가 있었다. 그래서 후통해는 눈 속에  머리를 
박고도 호흡을 멈춘 채 버티고 있어도 괜찮은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칭찬을 하다가 오랜만에  후통해가 손을 뻗고  머리를 눈 속에서  빼는 것을  보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곽정도 소년이라 박수를  치면서 덩달아 좋아했다.  후통해는 자리로 들아와  술을 
마시면서도 계속 곽정을 노려본다.

[제 사제의 재주가 별 것 아니다 공연한 웃음거리만 되고 말았습니다 그려.]

사통천은 이렇게 말하면서 손을 뻗어 접시  위에 있는 호박씨를 주워 들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퉁긴다. 호박씨는 선을 그리며 튀어 나간다. 호박씨 하나 하나가  화청 
앞에 있는 흰 벽에  가 꽂힌다. 순식간에 벽  위에 요(耀)자가 새겨진다. 그  벽은 
좌석에서 서너 장 거리나 떨어져  있었다. 호박씨는 가볍고도 연한 것인데  어떻게 
저렇게 날아가 박힐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놀라운 솜씨다. 왕처일은 생각했다.
(귀문용왕이 황하를   독점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런 비범한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로구나!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벽에는 또  무(武)자가  생겼다. 다음엔  양(揚)자,  보아하니 
요무양위(耀武揚威)라는 네  글자를 새길  모양이다. 팽련호는  이를 보면서  몸이 
근질근질한 눈치다.

[사형,  사형의  귀신  같은  재주엔  정말  탄복했습니다.  우리  다같이  동업을 
합시다그려. 이 도사께서 우리 재주를 끝까지 시험해 보실 눈치니 사형 덕에  어디 
나도 체면이나 세웁시다.]

몸을 번쩍 날러 벌써  문쪽에 나가 섰다. 이때  사통천은 마지막 남은  위(威)자를 
반이상 새겨  놓고 있었다.  팽련호는  두 손을  오므렸다 펐다  오므렸다  하면서 
사통천이 쏜 호박씨를 허공에서 받아  버렸다. 호박씨는 작고 속도도 빨랐는데  한 
개도 흘리지 않고  모두 받아 버린  것이다. 그는 받아든  호박씨를 입 안에  털어 
넣는다. 곽 깨무는가 하는 순간 벌써 빈 껍질을 뱉아 놓았다. 한 사람은  계속해서 
퉁기고 한  사람은  계속 받아  먹고  뱉아 낸다.  어찌나  빠르게 뱉는지  꼭  물 
떨어지는 것과   흡사했다. 여러  사람의 환호성   가운데 팽련호가  웃으며  말을 
꺼낸다.

[아이구, 난 이제 더 못 먹겠어요.]

펄쩍 뛰어 제자리로 돌아오고 사통천은  남은 위(威)자를 마저 새겨 놓았다.  만일 
다른 사람이 중간에 나섰더라면  가만 보고 있을  사통천이 아니었지만 그들  둘은 
벌써 2,30년   사귄 우정이라  그냥  웃고 넘긴   것이다. 사통천이  고개를  돌러 
구양공자를 건너다본다.

[어디 이번엔 구양공자께서 희한한 재주를 좀 구경시켜 주십시오.]

구양공자는 그의 말투에서 어딘가 가시 돋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때 
시중드는 사람이 달콤한  음식을 바꾸어 놓으며  젓가락도 새것으로 갈아  놓았다. 
양념한 음식을 먹던 젓가락을 치우는 것이다. 구양공자는 거둔 젓가락을 받아 쥐고 
휙 하니 밖으로  뿌린다. 20개의 젓가락이  일시에 눈 속에  꽂힌다. 그런데  그냥 
꽂히는 게 아니라 얌전한 네 송이의  매화를 그린 것이다. 젓가락쯤 눈 속에  꽂는 
일이야 어린애들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한꺼번에 20개를   뿌려 이런  도형을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솜씨는 정말 오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곽정이나  완안강은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만 왕처일이나   사통천 등이   사믓 
마음속으로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왕처일은 계속해서 자리를 피할 궁리만 하고 있었다.
(무림 가운데의 고수라면 평소 단 한  사람을 만나 보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 다들 이곳에 모이게 됐을까? 백타산 산주라든가 영지상인, 삼선노괴 
등은 이 중원에 잘 나타나는 인물들이 아닌데 어째서 이 연경에 함께 와 모였을까? 
여긴 분명 어떤 곡절이나 음모가 있는 것이다.)

이 궁리  저  궁리 몰두하고   있을 때 삼선노괴   양자옹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청 앞에 놓인 돌북(石鼓) 옆으로 다가선다. 허리를 가볍게 숙인 
채 오른손을 석고의 허리에 턱 얹고 번쩍 집어 던진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손에 
마치 끈끈이가 묻어  있는 것처럼  7,80근이나 되는  무겁고도 미끈미끈한  석고를 
살짝 손에 붙여 허공으로 두어 장  높이로 집어 던지니 말이다. 그는 석고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몸을  바람처럼 날리며 양  손을 움직여 또다른  두 개의  석고를 
먼저와 같이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이때 맨 먼저 던졌던 석고가 떨어져 내여왔다. 그가 재빨리 대들어 이마로  석고를 
반으니 석고가 이마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여러 사람들의 갈채와 환호성 속에 
두번째 석고가 맨 먼저의 석고 위에  내려앉아 돌고 다시 세번째의 석고도  내려와 
돈다. 그는 세 개의 석고를 이마에 인  채 여러 사람을 향해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고 서서히 걸음을 옮겨 마당으로 내려가 풀쩍 뛰며 왼발을 더듬어 구양공자가 눈 
속에 꽂아 둔  젓가락 위에 올라타고  회중포월(懷中抱月)이며 납궁식(拉弓式)  등 
연청귄(燕靑拳)의 묘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 위엔 200여  근이 넘는 세  개의 
석고를 이고도 발길을 사뿐사뿐 옮겨  뾰족한 젓가락 위만 밟고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은으로   된  젓가락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가늘고   약한  물건임엔 
틀림없는데도 기울어지거나 구부러지지도 않고 서 있는 것이 더욱 놀라운 일이다.

이 연청권 일로를 다 보여 주었는데도  쓰러진 젓가락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정말 
묘기백출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양자옹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머리를  갸우뚱, 세  개의 석고를  동시에 내려  놓고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다.  왕처일은  강호를  두루  돌아다니며  거리에서  마술을  하는  사람들이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돌리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지만 양자옹과 같은 이런 재주는 
본 일이 없었다. 이것으로 보아 그의  경신 무공이 어떠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곽정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이 희한한 재주에 혀만 찰 뿐이다.

이제 주석(酒席)도 거의  끝나는 판이라  심부름꾼들이 금으로  된 대야에  따뜻한 
물을 가져다 손님들의 손을 씻게 했다. 왕처일은 마음속으로 또 생각해 본다.
(영지상인만 아직 재주를 보여 주지 않고 있는데 그가 재주를 보이면 함께  대들어 
곽정에게 손을 쓰겠지.)
비스듬히 그 장승을 건너다보니 아무 일도 없다는듯 손만 씻고 있었다. 다들  손을 
씻은 지  오랜데 그는   아직도 내야에 두  손을  담그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태연자약한 태도에 의아한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왕처일과 구양공자는   그가 손을 담고  있는  대야에서 한  가닥  김이 
피어오르고 있음을 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대야 속에선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다가 
마침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왕처일은 정말 놀랐다.
(내공을 이용하여 체내의 열기로 대야의 물을 끓이다니, 더 기다리다가는 큰일나고 
말겠구나. 무슨 수를 써야 한다.)
왕처일은 다급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큰일이다 싶어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왼손을 써서 완안강의  맥문(脈P玗)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여러 사람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을 때에는  왕처일이  벌써 완안강의  혈도를  찌르고 
왼손을 그의 등에 얹어 놓고 있었다. 사통천 등 모두가 놉랍기도 하고 화도 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왕처일이 오른손에 술주전자를 들고 말을 꺼냈다.

[방금 여러분의  신기(神技)를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자, 수고하신  여러분에게 
술을 따라 올리겠습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지도  않고 주전자를 든 채  일일이 술을 따랐다.  술따르는 
것쯤이야 예삿일이지만  저렇게 따르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다.  손만  추켜들면 
주전자 입에서 술이 쏟아져  내려와 각자의 술잔에 차는  것이 아닌가? 그  술잔이 
멀든 가깝든 똑같은  자세로 따르고  있는데도 공교롭게도  분수처럼 묘하게  술이 
떨어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술잔은 바닥이 빈 채요, 반만 차있는 술잔도 있는데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당히  따르면서 한   방울도 넘치거나  흘리지도  않는다. 
영지상인 등 모두가 그의 내공의 심오함을 알았다. 오른손으로 그렇게 술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왼손은  여전히 완안강의  등에 올려놓은  채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완안강의 폐나 내장은 부서지고 만다.
여러 사람들은 눈을  멀거니 뜬  채 속수 무책이다.  왕처일은 마지막으로  곽정과 
자기의 잔에 술을 채우고 들이마신다.

[제가 여러분과는  아무 원한이  없습니다. 또  이 곽  소년은 제   제자도 아니오 
친척도  아닙니다.  다만  그의  마음이  어질고  착함을  보았기  때문에  이러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간곡히 청하오니 제  체면을 보아 오늘만은 그냥 무사히  나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여러 사람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묵묵 부답이다.

[오늘 여러분께서 이 소년을  용서해 주신다면 저도  이 왕자를 풀어  주겠습니다. 
하나는 금지옥엽 같은  왕자요, 하나는 평범한  백성이니 결코 여러분께서  손해를 
보시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양자옹이 대답을 한다.

[왕도장께서 시원스럽게 말씀하시니 그냥 그렇게 합시다.]

왕처일은 아무 의심도 없이 팔꿈치로 완안강의 허리를 쳐 혈도를 풀고 자리에 앉게 
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명색이  일종 일파(一宗一派)의  우두머리들이다. 
마음이 아무리 악독하고 음흉하다 하더라도 기왕  약속을 한 이상 식언할 수  없는 
체면들이다. 왕처일은 여러 사람들을 향해 일일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곽정의 
손을 잡았다.

[자, 이제 그만 작별하겠습니다. 후일 뵙겠습니다.]

독 안에   든 쥐를  그대로  내보내는 격이다.   분하고 원통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완안강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도사님, 기회 있으시면 또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잘 지도해 주십시오.]
[흥, 무슨 면목으로 또 만난단 말이냐?]

왕처일과 곽정이 화청(花廳) 문어귀에 이르자 영지상인이 다시 입을 연다.

[도사의 공력은 정말 오묘하여 탄복했습니다.]

합장을 하여  인사를 하다가  돌연 쌍장을  뿌리니 맹렬한  바람이 왕처일을  향해 
분다. 왕처일도 이것 큰일났구나 싶어 답례를 하면서 손바닥에 힘을 모은다.  수십 
년 동안 익힌 내공으로  쌍장의 습격을 분쇄하러는 것이다.  두 줄기 강한  바람이 
부딪치자 영지상인은  돌연 내력(內力)을  외공(外功)으로 바꾸며   오른손 바닥을 
뻗어 왕처일의  팔뚝을 잡는다.  상대의 공격도  빨랐지만 왕처일의  변초(變招)도 
신속하기 짝이 없다. 두 사람의  팔뚝이 순간적으로 엉켰다 떨어진다.  영지상인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놀랍습니다!]

펄쩍 뛰어 뒤로 물러선다. 왕처일도 가볍게 미소를 보낸다.

[대사는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데 왜 약속을 어기십니까?]

영지상인도 노하여 소리를 지른다.

[내 저 곽가를 잡으려는 게 아니고 당신을 잡으려고....]

왕처일의 장력에  놀라 부상을   입었으면 잠시 쉬었다가  호흡이나  조절했더다면 
발작하지 않았으련만 빈정거리는 말을 듣고 노기 충천했다가 그만 말도 채  끝맺지 
못하고 입으로 피를 토한다. 왕처일은 더  머뭇거릴 수 없어 곽정의 손을 잡은  채 
황급히 대문을 빠져  나왔다. 사통천, 팽련호  등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약속을  한 
바요, 또 영지상인이 피를 토하는 것을 보고는 섬찟하여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왕처일은 조왕부의  내문을 벗어나  모퉁이를 돌자  뒤를 살펴본  뒤 낮은  소리로 
곽정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너, 나를 업고 여관으로 가자.]

곽정은 그의 말소리에 아무  기력도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얼굴이  창백한 
것이 병색이 완연하지 않은가?

[도사님, 혹시 부상을 입으신 게 아닙니까?]

왕처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틀비틀  몸을 가누지  못한다. 곽정이  무릎을  꿇어 
왕처일을 들쳐업고 큰 여관을 찾아 문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다.

[아냐...., 조용한...., 조용한 여관으로....]

등뒤의 왕처일이   신음하듯 중얼거리자  곽정도 눈치를   챘다. 만일  상대방에서 
중상을 입은 것을 알고 찾아오는 날에는 끝장이 나는 것이다. 곽정도 서투른  길을 
이리 찾고   저리 돌아  가까스로  여관 하나를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등뒤의 
왕처일의 호흡이 더욱 가빠지며 약해진다. 겨우 구들장 위에 그를 내려 놓았다.

[빨리...., 커다란 항아리를 찾아...., 물을 가득 채우게.... 맑은 물로....]
[또 무얼 준비할까요?]

왕처일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손을 휘저어 곽정을  재촉한다. 방에서 나온  곽정은 
여관의 심부름꾼에게 두둑하게 돈꾸러미를  주면서 당부를 했다. 심부름꾼은  입을 
함지박처럼 벌린 채 서둘러 준비를 했다.

[잘했구나. 얘야,  나를 안아서  항아리 속에  넣고 음....,  다른 사람  접근하지 
못하도록....]

이유도 따져   물을 새  없이  곽정은 왕처일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히  했다. 
왕처일은 눈을 감고 조용히  항아리 속에 앉아 있다.  가쁜 숨이 가라앉고  서서히 
항아리 속의  물이 새까맣게  변해  버렸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날 좀 부축해 일으켜 다오. 그리고 맑은 물로 갈아 주렴.]

이렇게 일곱 번이나 항아리의  물을 갈자 이제 까만  물이 보이지 않았다.  상승의 
내공으로 체내에 있던 독기를 세척해 낸 것이다.

[이제 괜찮다.]

왕처일이 웃으며 항아리를 짚고 빠져나오며 숨을 길게 내쉰다.

[그 장승의 무공이 독하기도 하구나!]

곽정도 안심이 되어 기뻤다.

[그 장승 손에 독이 있었나요?]
[그렇단다. 독사장(毒砂掌)이라는   것이다. 내  생전에 적지   않이 이  독사장을 
보았다만, 원 이렇게 지독한 독사장은 처음인걸. 하마터면 죽을 뻔했구나.]
[무어 잡숫고 싶은 게 있. 으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사 오겠습니다.]

왕처일은 벼루와 붓을 가져오게 하고 자기의 약처방을 써내려갔다.

[내 생명엔 아무 지장이 없지만 내장에 든  독기는 씻어 내지 못했다. 열 두  시간 
내에 제거하지 않으면 잘못하다 평생 병신이 되느니라.]

곽정은 약 치방을 받아들고 나는 듯 밖으로 나섰다. 이 첩약은 빨리 먹을수록 좋은 
것이다. 길 건너편에 약방이 보여 얼른 들어가 약처방을 내놓았다.

[손님, 처방의   혈갈(血竭)이니, 우칠(牛七)이니  하는 약은   없고 웅담도  마침 
떨어졌군오. 미안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집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예닐곱  집을 
뒤져 보았지만 모두 허탕이다. 큰 집이고 작은 집이고 할 것 없이 성 안의  약방은 
모조리 훑었지만 헛일이다.  원래는 많았는데 공교롭게도  방금 다른 사람이  와서 
모조리 걷어 갔다는 것이다.
곽정은 그 말을 듣고야 짐작이 갔다. 원래 조왕부에서는 왕처일이 중독이 되어  이 
약을 찾을 줄  알고 사람을 풀어  싹 쓸어가버린 것이다.  정말 악독하기 이를  데 
없는  소행이다.  곽정은  기가  팍  죽어  머리를  파묻은  채  여관으로  돌아와 
왕처일에게 경과를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왕처일은 탄식의 한숨을 내쉬고 곽정은 
책상에 엎드러 훌쩍거리고 있었다.

[인명은 재천이니라. 살았다고  크게 기뻐할 일도  아니요, 죽는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낸들 죽지 않으란 법이 있겠느냐? 울지 말아라!]

곽정이 눈물을 거두고 멍하니  왕처일을 바라다본다. 왕처일은 하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일어나 앉아 무릎을 꿇고  내공을 쓰기 시작했다. 곽정은 조용히  일어나 
여관 밖으로 나와 생각에 잠긴다.
(부근의 시골 마을에 가면 혹시 그 약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다시 기쁨이 샘솟는다.  사람을 찾아 지리를  물어야겠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여관집 심부름꾼이 달려와 봉투를 전한다.
<곽형 친전(郭兄親展)!>   글씨가 예쁘다.  편지를 받아드니   향기가 물씬  난다. 
도대체 누가 내게 편지를 보냈을까? 궁금하여 봉투를 뜯는다.
<성 밖  서쪽으로 십  리에 있는  호수에서 기다리니  속히 오시오.   상의할 일이 
있습니다.>
이름은 없고 히히 웃고 있는 황용의 초상화가 거기에 그러져 있었다.

[이 편지 누가 주더냐?]
[길 저쪽에서 누가 줬어요.]

곽정이 여관으로 다시 돌아오니 왕처일은 손과 발을 움직이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도사님, 제가 부근 시글 마을에 가서 약을 구해 보고 오겠어요.]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면 그들도 다 생각이 있었셌지. 가 봐야 소용없다.]

그렇다고 곽정이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황용은 아무래도 나보다 영리하니 어디 
한번 상의나 해 볼 일이다.

[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 제가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하면서 편지를 보인다. 왕처일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입을 연다.

[너 어떻게 그를 알게 됐느냐?]

곽정은 그를 만나게 된 경위를 들려주었다.

[삼두교 후통해를  놀리던  솜씨를 내   다 보았다. 그   아이의 몸놀림이  어딘가 
이상한데가 있더라.]

정색을 하고주의를 시킨다.

[그러나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 아이의 무공이 너보다 훨씬 위야. 이상한  점이 
많던데 내 그 까닭을 알 수가 없구나!]
[절내로 저를 해칠 친구가 아니에요.]
[그런 게 아냐. 네가 인제부터 그를 알았느냐? 하여튼 조심해야 한다.]

곽정은 황용에 대하여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도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황용이란 위인을 몰라서 하시는 거겠지.)
침이 마르게 황용을 칭찬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하여튼 가 보고 오너라.]

왕처일은 황용이 정파(正派)의 인물은 아니라고 단정을 내렸다.



第 十九 章. 왕부(王府) 안의 포석약


곽정은 더 말할 수 없는 형편이라 처방문을 품속에 넣고 걸음을 재촉하며 성  밖을 
향해 달려나갔다. 성문을 벗어나니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앞을  내다보니 
온천지가 은빛으로 하얗게 덮여  있고 사람의 발길은 끊긴  지 오래다. 10여  리를 
달리니 과연 앞에 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날씨는 별로 춥지 않아 호수는  얼어붙지 
않았다. 하얀 눈송이가 수면에 떨어져  녹고 있었고 호숫가의 나무 위에는  설화가 
만발해 있었다. 곽정이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다가 오지 않아서 먼저 돌아가 버렸나?)

[황용, 황용....]

큰 소리로 불러 보았지만  후루룩 두 마리의 물새만  놀라 날아가 버린다.  곽정은 
실망이 앞서 다시 두어 번 황용을 불러 보았다.
(아직 오지 않았는지도 몰라. 여기서 기다려 봐야지!)
호숫가를 거닐며 설경만 구경하고 있었다.  밥 한 사발이나 먹었을까 하는  시간이 
흘렸는데 간드러진 웃음 소리를 내며 일엽편주가 호숫가에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나타났다. 뱃머리엔 긴 머리가 치렁치렁 등을 덮은 한 소녀가 흰 옷을 입고 
머리엔 금빛 띠를 두르고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곽정이 보니 나이는  15,6세, 
선녀같은 자태가 비할 데 없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소녀 였다.
곽정은 눈앞이  황흘하여 다시  더 바라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돌려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소녀는 배를 호숫가에 대고 곽정을 부른다.

[곽정 오빠, 배에 오르세요.]

곽정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소녀는 얼굴에 봄바람 같은 미소를 머금고 손짓을 
한다. 옷깃이 바람에 살랑  흔들린다. 곽정은 꿈인지  생시인지 몰다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다본다.

[왜 그래요? 날 모르겠어요?]

소녀는 웃기만 했다. 곽정은 그 목소리를  듣고 황용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더럽고 남루한 남자 거지가  갑자기 선녀로 변할 수  있을까? 미심쩍어 자기  눈만 
의심했다.

[내가 바로 황용이에요. 그래 그렇게 날 몰라봐요?]

곽정이 다시 눈을 비비고 살펴보니 과연 이목구비가 황용을 닮았다.

[아아니? 이게....]
[나는 원래 여자었어요. 빨리 배에 올라요.]

곽정은 어리벙벙한 채로 그가 시키는 대로 배에 올랐다. 황용은 배를 호심에 댄 후 
술과 안주를 꺼내 놓는다.

[우리 여기서 술이나 들며 눈 구경을 해요.]

곽정은 이제야 좀 정신이 들었다.

[난 정말 멍청해,  남자인 줄  알았지 꿈에나  여자일 줄  생각이나 했나요?  이젠 
이름도 함부로 부를 수 없겠군요.]
[그냥 용아(蓉兒)라고 불러요.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부르시는 걸요.]

곽정은 품안에 지니고 있던 과자를 생각했다.

[여기 과자를 가지고 왔는데....]

완안강이 보냈던 과자를 품속에서 꺼냈다. 그런데 찌그러지고 부서져 말이 아니다. 
곽정은 얼굴을 붉히고 황용은 그것을 보며 가벼운 미소를 띄었다.

[먹을 수가 없게 돼 버렸는걸.]

과자를 집어 호수에 던지려 하자 황용이 일른 뺏아 입에 넣는다.

[좋아요. 그냥 먹을래요.]

과자를 집어먹던 황용의 눈에서 갑자기 두 줄기 눈물이 좌르르 흘러 내린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계시지 않아  그 누구도 날 이렇게까지 위해 준  일이 
없었어요....]

하얀 손수건을 꺼낸다. 눈물을 닦으려나 했는데 일그러진 과자를 손수건에 곱게 싸 
품안에 챙겨 넣는다.

[천천히 아껴 먹겠어요.]

곽정은 이런 황용의 태도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하고 뭐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지?]
[아니, 내가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려고 했는데 그게 중요한 일이 아녜요?]

미소를 머금은 황용의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예뻤다.

[그렇게 예쁜 사람이 뭣 때문에 거지 행세를 했지?]
[그래, 내가 예뻐 보여요?]

황용은 고개를 살짝 돌린다.

[물론이지. 설산(雪山)에 서 있는 선녀 같은걸.]
[그래 선녀를 본 일이 있어요?]
[아니, 본 적이 있으면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나?]
[그건 또 왜요?]
[노인들한테 들었는데, 누구든지  선녀를 보기만  하면 집에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넋을 잃고 바다다보다가 죽는다던데.]
[그럼 큰일났군요. 나를 보았으니 이제 넋을 잃을 것 아녜요?]

배 위에서 술과 안주를 나누는 황용은 웃고 곽정은 얼굴을 붉힌다.

[우리야 친구니까 다를 테지!]

황용이 고개를 까딱거리고 정색한다.

[정말 내게 잘해 준다는 걸 잘  알아요. 내가 남자든 여자든 그게 무슨  상관예요. 
내가 이렇게 고운 옷을 입고 나서면  누구든지 내게 친하게 굴 테지요. 내가  거지 
노릇을 할 때 잘해 준 게 진심인 걸 분명히 아는데요.]

황용은 한없이 즐겁기만 했다.

[내가 노래를 부를 테니 들어 볼래요?]
[아냐 아냐, 노래는 다음날 듣기로 하고 우선 왕도사를 위해 약을 구해야 돼.]

즉시 조왕부에서  있었던 일이며  왕처일이  부상당한 일,  약을 구할  수  없었던 
경위를 들러주었다.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이  약방   저  약방 
뛰어다니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바로 그 일 때문이었군요.]

곽정은 그제서야 황용이 자기 뒤를  밟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자기가  어느 
여관에 들었는지를 알았겠지.

[내가 준 그 홍마를 빌어타고 약을 구하러 가고 싶은데....]
[그야 어렵지 않아요.  그 말은 내  말이 아니잖아요. 정말  내가 그 말을  달라고 
했겠어요? 어쩌나 보려고  해서 그래 본  거예요. 그런데 부근을  다 뒤져도  약을 
구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어쩌면 왕처일이   생각한 것과   똑같은 말을  할까?  곽정은  다시  초조해졌다. 
그런데도 황용은 태연자약한 채 노래를 부르겠다는 고집이다.

[노래는 서서히 듣기로 하고 약 구할 방법을 생각해야지.]
[내 말을 들어요. 좀더 놀다가 가도 급할 것 없어요.]
[아냐, 열 두시간 안에 그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대.]
[글쎄, 내가 책임지고 약을 구하면 되잖아요. 아무 걱정 말고 이 술이나 들어요.]

곽정은 정말 어처구니  없었다. 하지만  서두른다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요, 자기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총명한 황용의  말을 그대로   믿기로 했다. 
황용은 어떻게 해서 황하사귀를 나무에 매단 얘기며 후통해의 분통을 터뜨렸는지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둘은 서로   허리를 잡고  웃었다.  어둠이  호수에  내리기 
시작했다. 황용이 서서히 손을 뻠어 곽정의 손을 잡고 속삭인다.

[이젠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요.]
[어째서?]
[우리 아빠가 날 싫다고 해도 나를 버리진 않겠지요?]
[그야 물론이지, 나도 이렇게 즐거운 날은 없었는걸.]

황용이 곽정의 가슴에  자기 몸을  가볍게 묻었다. 곽정은  난초향기 같은  그윽한 
향내가 피어오름을  느꼈다. 향기는  넓은 호면에  퍼져나가며 천지에  가득해지는 
듯했다. 둘은 손에 손을 잡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침묵이 오래오래 계속되었다. 황용이 한숨을 내쉰다.

[여기 정말 좋군오. 그런데 우린 떠나야 해요.]
[왜?]
[아니, 약을 구해다 왕도사를 구해야 하잖아요?]
[아 참, 그런데 어디 가 구한담?]
[약방에 있는 약들이 모두 어디로 갔지요?]
[틀림없이 조왕부 사람들이 거두어 갔을 거야.]
[그래요. 틀림없어요. 그리로 가요.]

곽정이 깜짝 놀랐다.

[조왕부로?]
[그래오.]
[안 돼. 갔다가는 우리 둘이 죽게 돼.]
[그럼 왕도사가 평생  병신이 되길  바란단 말이에요?  상처가 대단해서  자칫하면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몰라요.]

곽정은 자기도 모르는 용기가 솟아났다.

[좋아, 그럼 내 갈 테니 황용은 그만 둬.]
[왜요?]
[위험해!]
[정말 좋은  오빠예요.  날 끔찍이도  아껴  주시는군요. 괜찮아요.  위험한  일을 
당한다면 그래 나 혼자 남아 살 수 있겠어요?]

곽정의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감격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용기  백배, 
그따위 사통천이며 팽련호가  뭐 무섭단  말이냐? 천하에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해도 내 겁내지 않으리라.

[그래, 우리 둘이 갑시다!]

그들은 배를   언덕에 대고  일로  조왕부를 항해   달렸다. 둘은  조왕부의  담을 
뛰어넘어 후원으로 들어갔다.

[곽정 오빠, 경신의 무공이 정말 놀랍군요.]

곽정은 담장 밑에 엎드린 채 원내의  동정을 살피고 있다가 자기를 칭찬하는  말을 
듣자 마음이 흐뭇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발자국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왕자가 그 여자를 여기 숨겼는데 왜 그런지 아나?]
[원 꼴 같지 않은 것이, 그러다가 괜히 목 달아날라.]

둘이 시시덕거리며 주고받는 얘기다. 곽정은 생각에 잠겼다.
(원래 완안강이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나?  그래서 그 목아가씨를 맞이하지  않으려 
했었는가? 하지만 왜 여자를  집에 감금하지? 혹시  말을 듣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몰라.)
두 사람과의 거리가 점점더 가까와졌다. 한 사람은 손에 초롱불을, 다른 한 사람은 
식기를 들고 있다. 둘 다 파란 모자의 하인 차림이다. 식기를 든 녀석이 웃는다.

[사람을 가두어 놓고  또 굶어 죽을까  봐 이렇게 늦은  밤에 밤참을 갖다  주라니 
원.]
[이건 풍류를 즐기는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알뜰살뜰 위해 바치는 것도  아니오, 
어떻게 그 미인의 마음을 사겠다는 건지.]

둘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멀리 사다져갔다. 황용은 호기심이 발동하는 눈치다.

[우리 한번 슬그머니 쫓아가 봐요. 어떤 미인이 갇혀 있나 보게.]
[약을 훔쳐내는 일이 더 급해.]
[난 미인 구경부터 먼저 할래요.]

곽정은 어쩔  수 없이  황용의 고집에  따랐다. 조왕부의  뜰은 넓기  그지없었다. 
꼬불꼬불 한참이나 따라가자  어둠침침한 건물 앞에  당도했다. 황용과 곽정은  한 
쪽으로 몸을 숨기고 지켜본다. 두  하인과 간수를 보는 친병이 수군거리고  나더니 
그제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황용은 돌을 들어 쉭 하고  풍등(風燈)을 
깬다. 곽정의 손을 더듬어 잡고 하인들보다  먼저 바람처럼 문 안에 들어섰다.  두 
하인과 친병은 투덜거리며 부싯돌을 찾아 다시 불을 붙인다.
두 명의 하인이 다시  앞에 있는 쪽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서고 황용과  곽정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철책의  난간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게 영락없는  감옥이다. 
난간 저쪽에 두 사람이  웅크린 채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하나는 남자요,  다른 
하나는 여자다. 하인 하나가 촛불에 불을 붙이고 손을 뻗어 그 안에 밀어  넣었다. 
촛불이 두  사람의  얼굴을 밝힌다.  곽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자는  수염이 
텁수룩하고 얼굴에 노기를 띤 것이 낮에 만났던 목역이요, 고개를 푹 숙인  묘령의 
소녀는 목역의 딸인 목염자가 아닌가?
(아니, 완안강 그 녀석이 무엇 때문에 이들 부녀를 감금했을까?)
두 명의   하인이 밤참으로   내온 먹을  것들을  한  접시씩  꺼내  철책  안으로 
늘어놓는다. 목역이 그 중 하나를 집어 던지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꼼짝없이 네놈들   손에 갇혔으니  죽일 테면   죽일 일이지  무엇때문에  이따위 
짓들이냐?]

욕소리가 꺼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문 밖의 친병들이 인사하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왕자님, 안녕하십니까?]

황용과 곽정이 서로 바라다보다가 문 뒤로 몸을 숨겼다. 완안강이 재빠른 걸음으로 
들어서며 호통을 친다.

[어느 놈이 목나으리의 화를 돋우었느냐? 좀 있다가 다리를 분질러 놓으마!]

두 명의 하인이 땅바닥에 꿇어 엎드린 채 머리를 조아린다.

[용서하십시오!]
[물러들 가거라.]
[네. 네.]

몸을 일으켜 세우고 나가며 서로  혀를 내밀어 휘두른다. 완안강은 그들이  나가고 
문을 닫자 부드러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제가 두분을  이리로 모신  것은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죄인 다루듯 이곳에 가두고 모셨다니 그게 말이냐?]
[네 네,  죄종합니다. 두  분께서 잠시만  참아 주십시오.  제 마음도   지금 몹시 
괴롭습니다.]
[이놈아, 세 살 먹은  어린애라도 안 속겠다. 말이면  다 말인 줄 아느냐?  고얀놈 
같으니라구....]

완안강이 몇  번 입을   열려고 했지만 목역이  퍼부어  대는 욕에  눌리고  만다. 
완안강은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으로 화도 내지 않고 웃고만 있다.
목염자가 한참 듣다가 아버지를 만류한다.

[아버지, 뭐라고 하나 좀 들어 보기나 하세요.]

목역이 코방귀를 뀌고 그제야 입을 다문다.

[따님같이 훌륭한 아가씨를 제가 싫어할 리 있겠습니까?]

목염자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군다.

[다만 저는  왕작(王爵)의  세자로 있는  신분입니다.  가훈도 엄한데  만일  제가 
강호의 영웅과 무슨 혼약을 했느니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 보세요.  부왕께서 
책망하심은 물론 성상 폐하께서도 엄한 꾸중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딴은 그럴 듯도 했다.

[그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냐?]
[제 생각은,  불편하시지만 우선   여기 머무르시면서 상처나  치료하시고  고향에 
내려가 계셨으면 합니다. 한 일 년이 지난 뒤 풍문이 잠잠해지면 그때 제가 댁으로 
찾아뵘고 청혼을 하든지 아니면 직접 목나으리께서 따님을 모시고 제 집에  오셔서 
결정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목역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이 일을 지금 부왕께서 아시게 되면  혼사만 그르치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 
잘못으로 부왕은 몇 차례나 성상의  책망을 들으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당분간 
비밀을 지키고 참아 주세요.]
[자네 말대로다면 내 딸은 평생토록 슴어 살란 말이나 같지 않은가? 떳떳한 부부가 
아니니 말일세.]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달리  배려를 하겠습니다. 장래 조정의 대신께  청해 
중매를 서시게 하면 일이 자연히 잘 풀릴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 염려 마십시오.]

목역은 얼굴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그럼 자네 어머님을 이리로 모셔다가 함께 언약을 하도록 하세.]
[저의 어머님을 어떻게 이리로 모십니까?]

이 말을 들은 목역은 단호하게 버틴다.

[자네 어머님을 뵙기 전에는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겠네!]

다시 술주전자를 집어  던진다. 목염자는  완안강과 무예를 겨룬  후 벌써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그린데 이제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데도  아버지가 
공연히 화를 내시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완안강이  소매를 뒤집어 주전자를  받아 
다시 제자리에 올려 놓는다.

[그럼, 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간다.  곽정은 옆에 숨어  완안강의 말을 다들었다.  그에게도 
물론 고충은 있을 것이다. 또 그가 제시한 방법이 가장 타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서 권고를 해야겠구나.)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어느새 황용이 그의 옷을 잡아 끌며 문밖으로 빠져  나왔다. 
완안강이 하인 하나를 보고 묻는다.

[가져 왔느냐?]
[네, 여기 있습니다.]

손을 들어 한 마리의  토끼를 내민다. 완안강이 그것을  받아 즉석에서 두  다리를 
분질러 품속에  숨기고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난다.  토끼는  바둥거린다. 
곽정과 황용은 이상하다고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멀찌기 떨어져 그의 뒤를  밟았다. 
대나무 울타리를 도니 하얀  벽에 까만 기와지붕을 이은  세 간짜리 조그만 집  한 
채가 보었다. 이는 강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옥이다. 이렇게  호화롭고 
웅장한 왕부의  으리으리한 저택  가운데  이런 집이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다. 
완안강은 이 집의 판자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며 소리를 지른다.

[어머니!]

안에서는 다정한 여자의 대답이 들렸다.

[그래.]

황용과 곽정은 뒤꼍으로 돌아  창 앞에 서서 안을  훔쳐본다. 중년의 여자  하나가 
책상 앞에서 턱을 손으로 괴고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듯 앉아 있었다. 나이는 40여 
세, 수려한  용모에 수수한  옷차림, 머리  위엔 한  떨기 흰  꽃이 꽂혀  있었다. 
완안강이 다가가 손을 잡는다.

[어머니, 오늘 어디 불편하세요?]
[늘 네 일 때문에 걱정이 아니냐?]

한숨을 길게 내쉰다.

[저 이렇게 얌전하게 여기 있잖아요.]

몸을 자기 어머니에게 기대며 사뭇 어리광 섞인 말투로 응석이다.

[오늘 일, 네  아버지가 아신다 해도  별 상관 없다.  그러나 만일 네  사부님께서 
아시게 된다면 그건 보통 일이 아니야.]
[어머니, 오늘 중간에 나서서 만류했던 그 도사가 누군지 아시기나 하세요?]

완안강이 웃으며 하는 말이다.

[그래 누구기에 그러느냐?]
[바로 사부님의 사제예오.]

여자는 깜짝 놀란다.

[큰일났구나, 내가 네 사부님 화나신 걸  본 일이 있는데 살인을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으시단다.]
[사부님이 살인하는 걸 보셨어요? 어디서요? 무엇 때문에 살인을 했어요?]

그 여자는 고개를 들고  촛불을 응시한다. 정신을 잃은  듯 멍하니 한참  동안이나 
침묵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뗀다.

[아주 먼 옛날의 얘기란다. 아이, 옛날 일 이제 나도 거의 다 잊어버렸다.]

완안강은 더 묻지 않고 득의 양양하게 말문을 연다.

[그 왕사숙이 우리 집에까지  와서 그 혼사를  어떻게 하겠느냐구 물어요.  그래서 
대답해 버렸어요. 그 목씨들을 찾아와서 하자는 대로 하겠노라구요.]
[그래 네 아버님께 여쭈어 보았느냐? 허락하실 것 같으냐?]
[어머니는 너무  순진하셔서 탈이야.  벌써 그  목씨 부녀를  속여 후원에  가두어 
버렸어요. 왕사숙이 어디 가서 그들을 찾아낼 것 같습니까? 어림없는 일이지요.]

완안강은 재미있다는  태도요, 밖에서  듣고 있는  곽정은 몸을  부르르 떤다.  그 
여자는 못마땅하다는 눈치로 아들을 나무란다.

[네가 다른 집  규수를 희롱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집에 가두다니  말도 안  된다. 
어서 내보내도록 해라.  은자나 두둑이 주면서  사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어머닌 모르세요. 그 같은 강호의 인물들은 돈 같은 거 대단하게 여기지  않아요. 
그들이 나가서 소문이나 퍼뜨려 보세요. 금방 사부님 귀에 소식이 들어가게요?]
[그럼 넌 일평생 그들 부녀를 여기에 가두겠단 말이냐?]
[그게 아녜요.  잘 달래서  고향에  내러가게 하면  돼요. 가서  평생  기다리거나 
말거나 그건 제가 알 바 아니구요.]

곽정은 듣다 못해 몸을  부르르 떨며 번쩍 주먹을  치켜들고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런데 부드러운 손길이 어느새  자기 입을 막았다. 동시에  다른 한 손이  허공에 
치켜든 자기 손을 휘감아 내렸다.

[화 내면 안 돼요.]

황용이 가볍게 곽정의 귀에 입을 내고 속삭이고 있었다. 곽정은 황용을 바라다보며 
가벼운 미소를 보내고 눈길을 다시 방안으로 돌렸다. 완안강이 어머니를 향해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목가 영감이 어찌나 교활한지 잘 말려들지 않아요. 며칠 더 가둬  두면 
그땐 말을 듣겠지요.]
[내가 보기엔   그 아가씨   인품이 그만하면  훌륭하더다.  차라리  네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결혼을 해 보자. 그럼 아무 일 없이 깨끗하지 않겠니?]
[어머닌 또 쓸데없이 그러시네오. 우리 집안의 체면으로 보아 어떻게 그런  비천한 
여자와 결혼을   합니까! 아버지께서  늘 훌륭한   집안과 사돈을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버지와 성상이 친형제만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렇지만 않다면   공주를 아내로  맞을 텐데   말입니다. 그럼  부마가  아녜요. 
어머니!]

그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아무 말이 없다.

[어머니 글쎄, 그  목가가 말에요,  어머니를 뵙겠다는군요.  어머니 말을  들어야 
믿겠다나요.]
[난 부도덕한 일은 못 한다. 그런 일에 나설 수야 없다.]

완안강이 허허거리며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며 몇  바퀴나 돈다.  황용과  곽정이 
방안의 살림을 살펴보니 탁자며  걸상이 모두 조잡한  나무로 만든 것이고  침대나 
기타 다른 용구도 모두  강남의 농가 그대로다. 벽에는  철창(槍) 하나와 밭갈  때 
쓰는 보습이 걸려 있고 방 한 귀퉁이에는 물레까지 놓여 있다. 두 사람은 한결같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는 왕비의 귀한 신분인데 어꺼면 거실에 저런 것들을 가져다 놓았을까?)

이때 완안강이 자기 가슴을 두어 번 누른다. 찍찍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냐?]

그 여자가 묻자 완안강이 대답한다.

[아, 깜박 잊을 뻔했군요. 돌아오다 길에서 다친 토끼 한 마리를 보고 주워 왔는데 
어머니가 치료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면서   품속에서 아까  숨겼던 흰토끼를   꺼내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다리가 부러진 토끼다.

[참 착하구나!]

그 여자는   아들을 칭찬하며  약을  찾아 토끼를   치료해 준다.  곽정은  이제야 
완안강의 인격을 확실히  알 듯했다.  어질고 착한 자기  어머니까지 이렇게  속여 
가면서 칭찬  한 마디  듣겠다고 애매한  토끼 다리까지  부러뜨릴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음흉하고 악랄한 위인이겠는가? 어디까지나 제 잘못을 은폐하려는 수작임은 
불문가지다. 황용은  곽정에게 몸을  기대고  서 있다가  부르르 떨고  있는  그를 
슬그머니 잡아당겨 그 자리를 피했다.

[지금 그까깃 것 상관할 때가 아녜요. 어서 약이나 찾으러 가요.]
[그 약이 어디 있는지 알아?]

황용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찾아야 해요.]

곽정은 생각했다. 이렇게 큰 왕부의 그  어디에 약이 있는지 알고 찾는단  말이냐? 
잘못하다가 사통천 같은 자들에게  들키게나 된다면 이건  수습할 수 없는  큰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황용과 상의해  보려는데  불빛이  번쩍이더니 
저쪽에서 한 사람이 초롱불을  들고 흥얼흥얼 노래를  읊조리며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곽정이  나무 뒤로 몸을 숨기려  하는데 황용은 오히려  앞으로 
나선다. 그자가  깜짝 놀라  누구냐고  물으려 하자  황용은 벌써  시퍼런  칼날을 
그자의 목에 가져다 댔다.

[누구냐?]

조용히 묻는 황용의  목소리가 차디차다. 그자는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다가 
한참 만에야 우물쭈물 대답이다.

[네네...., 저는 왕부에서 집안 살림을 말아 보는 간(簡)집사입니다.]
[그래 집사라면  더욱  잘됐다. 오늘   왕자가 너희들을 시켜   성안을 뒤져  약을 
사왔지? 그래 그 약이 어디 있는지 알겠구나?]
[모두 왕자께 갖다 드렸을 뿐 어디 두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황용은 왼손으로 그자의 팔뚝을 비틀며 칼 귄 손에 살짝 힘을 준다.

[말을 할 테냐? 안 할 테냐?]
[저는 정 말 모릅니다.]

황용이 왼손을  뒤집자 녀석의  팔뚝이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녀석의 모자를 벗겨 입 안에 쑤셔 박았다. 녀석이 기절을 하며  비명을 
질렀지만 입 안에 물린 모자 때문에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곽정은  예쁘기만한 
황용의 수법이  이렇게까지 독하게  나올줄은 몰랐다.  황용이 왼손으로  두어  번 
그자의 옆구리를 찌르자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이번엔 다시 모자를 빼 머리  위에 
뒤집어 씌우며 묻는다.

[어때? 이쪽 성한 팔뚝도 마저 분질러 주랴?]

그자는 눈물을 좔좔 흘리며 땅에 꿇어 엎드려 애걸한다.

[소인은 정말 모르는  일이습니다. 아가씨께서 소인을  죽이신다해도 소용이  없을 
줄로 아룁니다.]

황용은 이자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그럼 네가  지금 왕자께  가서 이렇게  아뢰어라. 잘못  넘어져 팔이  부러졌는데 
의사의 말로는 혈갈(血竭)과  우칠(牛七), 웅담등이 있어야  치료를 할 수  있는데 
지금 북경성 내에서는 구할 수가 없으니 불쌍히 여기시고 조금만 주십사고 말이다. 
알겠느냐?]

그자는 황용이 무서워 시키는 대로 허리를 굽실거리며 연방 대답을 했다.

[왕자는 지금 왕비의 거처에 있다. 빨리 가라. 만일 잘못하다가 탄로라도 나면  네 
목을 비틀고  두 눈을   뽑아 버리겠다. 나도  너를  따라갈 테니  조심하여  착오 
없으렷다.]

그자는 아픈  것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일어나  왕비의 거처로  갔다.  완안강은 
그때까지 어머니 앞에서 이 얘기 저 얘기 늘어 놓고 있다가 눈물 콧물이  뒤범벅된 
집사가  달려와  황용이  시킨  그대로  하는  말을  들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조왕비(趙王妃)는 천성이 어진  사람이라 측은한 생각이  들어 아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빨리 주라고 성화같이 재촉이다. 완안강이 이마를 찌푸리고 대답을 했다.

[그  약은  모두  양(梁)선생이  달라고  해서  주었으니  네가  거기가서  얻도록 
하려무나.]

그 집사는 울상이 되어 말한다.

[그럼 왕자님께서 쪽지라도 한 장 써 주십시오.]

조왕비가 서둘러 문방 사우를 챙겨 놓자 완안강은  할 수 없이 약을 주라고 몇  자 
적어 주었다. 집사는 계속해서 이마를 조아리며 사례를 한다.

[빨리 가 보아라. 상처가 나은 뒤에 와 이마를 조아려도 늦을 것 없다.]

조왕비가 오히려 더욱 급하게 서두른다. 집사가 물러나와 몇 발짝 걸어가자 차디찬 
칼날이 어느새 뒷덜미에 와 닿는다.

[양선생이 묵고 있는 곳으로 가자.]

집사는 몇십 보 걷다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비틀비틀 쓰러지려 했다.

[약을 손에 넣지 못하면 네 왼팔도 성하지 못하리라.]

집사는 깜짝   놀라 식은땀을  흘린다.  어디서 생긴   힘인지 앞을  향해  힘차게 
걸어간다. 도중에  7,8명의 하인배들을   만났지만 그들은 예사로  여기고  그대로 
지나쳐 버리고 만다.
양자옹이 묵고 있는 관사에  이르러 그자가 들어가 보니  문이 밖으로 잠겨  있다. 
다시 밖으로   나와 하인에게   물으니 화취각(華翠閣)에서  지금  조왕을  모시고 
연회중이란다. 곽정은  그 집사가  불쌍해 보여  옆구리릍 받쳐  부축하고  셋이서 
나란히 화취각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얼마 가지 않으면 화취각이다. 파란  청의를 
입은 남자 둘이 길을 막는다.  그 중 하나는 손에  칼을 들고 다른 하나는  채찍을 
쥐고 있었다.

[게 섰거라. 누구냐?]

그  집사가  완안강이  적어  준   쪽지를 내보이니   불빛에 비쳐   보고  그대로 
통과시킨다. 그리곤 다시 곽정,황용 두 사람에게 묻는다.

[우리 일행이오.]

집사의 대답이다. 불빛에  비친 그  청의의 두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황하사귀 
가운데의 심청강과  마청웅이다. 그들  둘  다 황용에게  몇 차례니  골탕을  먹은 
처지지만 소녀로  변한 그를  알아볼  리 없었다.  그러나 곽정을  발견하자  칼과 
채찍을 들고 대들려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순간적으로 갈비가 뜨끔거리며  꼼짝할 
수가 없었다. 황용이 귀신도 모르게 그들의 혈도를 눌러 버린 것이다. 곽정은 그의 
옆에 서 있었으면서도 언제 손을 썼는지 눈치도 못 챘다. 다만 그의 재빠름에 놀라 
입을 벌리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그날 장자구의  술집에서 여자들이  대들어  내 보마를  뺏으려 할  때도  그들의 
혈도를 찍어 땅에 누인 채 꼼짝못하게 만든 것도 바로 황용의 솜씨였구나.)
황용은 멍청하게 서 있는 그를 바라다보며 웃는다.

[무얼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심,마 두 사람을 끌어다 나무  뒤에 누이고 곽정의 손을  잡은 채 그 집사의  뒤를 
따라 화취각에 당도했다. 황용이 그의 등을 밀어 안으로 들여보낸 뒤 곽정과  함께 
몸을 날려  지붕으로 올라가  처마  끝을 잡고  안을 살펴보았다.  촛불이  휘황한 
방안에는 잔치상이 차려져 있었다. 곽정은 식탁주변의 사람들을 휘둘러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낮에  자리를 함께 했던  백타산주 구양공자, 귀문용왕  사통천, 
삼두교 후통해, 삼선노괴 양자옹, 천수인도  팽련호 등 거물급 고수들이 앉고,  그 
밖에 대금국 육황자(六皇子) 조왕(趙王) 완안열이 의젓하게 거기 함께 있었다.

거물급 고수들이   둘러앉은 옆에   커다란 의자엔  두꺼운  방석을  깔고  대수인 
영지상인이 앉아 있었다.  눈을 내리감고  얼굴이 백지장 같은  것이 결코  경상이 
아닌 모양이다. 곽정은 마음속으로 슬그머니 기뻤다.
(네놈이 왕도사를 해치려 들더니 오히려 고소하게 됐다.)
그 집사가  안으로 들어가  양자옹을 향해   절을 한 뒤  완안강이 써   준 쪽지를 
내밀었다.  양자옹이  쪽지를  다  읽고  집사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완안열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왕자님의 친필이 틀림없습니까?]
[그렇군요. 양공이 알아서 선처하시오.]

양자옹은 자기 뒤에 서 있는 청의의 동자를 바라다본다.

[오늘 왕자께서 보내신 약 가운데 이것들을 챙겨 저자에게 한냥씩만 주어라.]

동자가 대답을 하고 집사를 데리고 나온다.

[빨리 가요. 저 사람들 하나 하나가 모두 대단한 인물들이오.]

곽정이 황용의 귀에  내고 소곤거렸다.  황용은 웃으며  살레살레 머리를  흔든다. 
황용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곽정의 얼굴을 스치며 간질간질하게 했다. 곽정이  몸을 
솟구쳐 아래로 뛰어내리려 하자 어느새 황용이  그의 팔을 잡고 두 발을  낚시처럼 
구부려 처마끝에 걸친 후 몸을 수그려 곽정을 땅으로 살머시 내려 놓았다.
곽정은 집사와   동자의 뒤를  따랐다.  뒤를 돌아보니   황용은 여전  그  자세로 
처마끝에 매달린 채 방 안을 살피고 있었다. 하늘하늘 황용의 하얀 옷깃이  바람에 
날린다. 한 송이 백합꽂이 어두운 밤에 활짝 핀 모양 그대로다.

황용은 계속해서 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때 팽련호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그 
번쩍이는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황용은  몸을 움츠리고 귀를 기울였다.  목 
쉰 듯한 사람의 말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왕처일이 오늘  중간에 끼어든   것은 무의식중이었을까요? 아니면  고의로  나선 
것일까요?]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무슨   상관이 있겠소?   어쨌든   오늘  영지상인에게 
얻어맞았으니 죽지 않으면 병신이 될 게요.]

누군가가 대답하는  소리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황용이  살펴보니  키가 
작달막하고 눈빛이 번쩍이는 팽련호다.

[전 서역에서 전진 칠자의 명성을  들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영지상인이  그가 
떠날 때 그 대수인(大手印)으로 때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오늘 우리가 
창피당할 뻔했습니다.]

맑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의 말이다.

[구양공자는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다  망신을 한 것이나 다름없소. 이기고 진  게 
없는 게요.]

그러자 구양공자라고 불린 사람이 다시 말을 받는다.

[아무래도 저쪽은  죽지 않으면  병신이 될  것은 뻔한  일이고, 영지상인은  며칠 
정양하시면 낫겠지요.]

말소리가 멎고 서로 술만 권해 마신다.

[여러분께서 불원 천리 찾아 주셨으니 어쨌든 영광스럽습니다. 이는 저희 대금국의 
복이올시다.]

조왕인 완안열의 인사말이다. 좌중의 사람들이 몇 마디 겸양을 하자 완안열이 말을 
계속했다.

[영지상인은 서장에서  득도하신 고승이시요.  양노인은 관외   일파의 종사이시며 
구양공자는 줄곧   서역에서 명성을   떨치고 계시니  세  분  다  중원에는  처음 
오셨습니다. 팽채주께서도 중원에서 이름을 날리시며 황하를 무대로 활약하고 계신 
분입니다. 다섯  분 중에서  단 한  분만 칼을  뽑고 도와  주신다 해도  대금국의 
대사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렇게 다섯 분이 일시에 나오시니, 하하하.]

득의 만면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자 양자옹이 말을 받는다.

[사람을 보내   부르셨으니 무슨  분부를 내리신다   하더라도 견마지로를  다  할 
생각이오. 하하하.]

그들 모두 수십 년 동안 제 나름대로 천하를 종횡했다는 사람들이라 자존 자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말투 가운데도 은근히 자기를 드러내겠다는 저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완안열이 다시 또 여러 사람들에게 술잔을 권한다.

[제가 여러분을 오시라고 한 것은 물론 생각한 바 있어서 그랬습니다.  여러분께서 
아신 뒤에라도 결코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이 점을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완안열이 말은 비록 간곡하고 은근하게 하지만 기실 비밀을 지키라는 엄포였다.

[그  점은  안심하십시오.  이곳에서  나온   말은 절대   밖으로 새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각자 모두   완안열이 많은  돈을  들여 사온   사람들이다. 만약  중대한  음모가 
아니라면 그렇게 많은 힘과 재물을  써서 데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말을 꺼내지 않았고 그들도  묻기가 거북했었는데 이제  그 중대한 기밀을  꺼내니 
호기심도 생기고 긴장도 되었다.

[대금 태종(大宗) 천회(天會) 삼 년. 그러니까 조관(趙官) 휘종(徽宗)  선화(宣和) 
칠 년이군요. 우리 금나라는 점몰갈(粘沒喝), 간이부(幹離不) 두 원수에게  군대를 
통솔시켜   송나라를  정벌케   하여   송나라  휘종(徽宗),흠종(欽宗)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금나라 군사는 더 할 나위 없이 막강해졌습니다.  그때 
우리 금나라의 세럭으로 말하면 능히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백 년, 조관(趙官)은 아직도 항주에서 황제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모인 사람들은 국가대사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약간 놀라왔다.

[그 점은 직접 말씀을 해 주셔야지요.]

양자옹이 말하자 완안열은 한숨을 내쉰다.

[우리 금나라가 악비(岳飛)에게 연패를 당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입니다.  우리 
대금국의 원수인  올출(兀朮)이 용병에   능했지만 악비만 만나면  지리  멸렬하고 
말았습니다. 뒤에 악비는 우리  대금국의 수명을 받은 진회(秦檜)에게  살해되기는 
했지만 금나라 군사들은  사기가 크게 떨어져  다시는 남정할 기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이 일을  달성시켜 대금국 성상을  워한 충성을 표시하고  싶은데 
여러분의 도움 없이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듣고 각자 서로 전너다보며 그의 의도를 파악 못 하는 눈치들이다.
(아니, 우리를 보고 군대를 인솔하고  남정을 하란 말인가? 그런 전쟁이라면  우리 
무림의 고수들은 모두 문외한인데.)
완안열은 십분 득의 만면하면서도 말투는 어딘가 떨려 나왔다.

[몇 달 전 제가 궁중에서 우연히 전조(前朝)의 문서 한 통을 발견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악비가 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구가  이상야릇했습니다. 몇 달  동안 
곰곰 생각해 보고야  비로소 그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악비는  자기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가 정충  보국(精忠報國)의 충신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  이름이 헛되지  않았음니다. 평생에  걸쳐 배운  행군(行軍)  출진(出陣) 
연병(練兵) 공벌(攻伐)의  비결을 상세하게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후세에 전하여 언제든지 우리 대금국에 대항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진회라는 이자도 만만치 않아 혹시 악비가 외부와 어떤 내통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철통  같은  감시를  했습니다.  옥중의  관리나  옥졸들을  모두  자기 
심복으로만 채웠습니다. 그래서 악비는 죽는 날까지 이 병서를 아무에게도  전하지 
못했지요.]

여러 사람들은  얘기에  정신이 팔려   술 마시는  것도 잊고   있었고 황용  역시 
재미있는 이 얘기를 치음부터 끝까지 뜩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악비는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몸에 숨기고  한  통의  유서만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 유서의 문리(文理)가 엉망 진창이에요. 진회가 장원 재상의 
재주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유서를 보고 난 뒤 그 뜻을 알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 
그 유서를   금나라에 보냈웁니다.  금나라에서는 그것을   궁중의 비밀  문서함에 
보관했지만 아무도  그 뜻은  파악하질 못했습니다.  다만 악비가  죽을  무렵이다 
분통이 터져  정신이 돌았던  게  아니냐고들 했지요.  하지만 그  가운데  굉장한 
수수께끼가 숨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은 완안열의 재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만일   그 병서만  손에  넣게 된다면   대금국이 천하를  통일하는  것은 
여반장일 겝니다.]

(원래 우리를 보고 도굴에 가담하라는 얘기였구나.)
이제야 그들은 완안열이 자기들을 청해 온 의도를 알게 되었다.

[재 생각으로는 그 병서가 반드시 악비의 무덤에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대영웅이시며 대호걸들이신데 설마하니 도굴에 가담해 달라고야 할 리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 악비가 우리의 원수이기는 하지만 그의 충성을 천하 사람들이  흠모하고 
숭상하는데 어떻게 그의 묘지를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일 때문에 여러 해 
동안 고심해 오면서 남조(南朝)의 밀정들이  수차례에 걸쳐 보내온 정보를  종합한 
결과 다른   실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원래   당시 악비는  풍파정(風波亭)에서 
살해되어 부근의  중안교(衆安橋)에  매장되었습니다. 뒤에  송나라  효종(孝宗)이 
그의 시체를 서호 옆으로  옮겨 안장하고 사당을  지었는데 그의 외관이나  유물은 
다른 곳에  보관되었습니다. 역시   송조의 서울인 임안(臨安)에  있었습니다.  이 
병서를 입수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방에도 재주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만에 일이라도 그들에게  탄로되어 빼앗기게  되는 날에는  대금국 국운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하여 특별히 여러분을  모시고 
도움을 청하게 된 것입니다.]

듣고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머리를 끄덕거렸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악비의 의관과 유물을  옮길 때 혹시 어떤 사람이 그  병서를 
가져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나 또 곰곰 생각해 보면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송나라 사람들이 그렇게나 악비를 숭앙하는데 어찌 그의 유지도 없이 
함부로 유물에 손을 대었겠습니까? 우리가 그곳에 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이 일이 어렵다고 느끼십니까? 어렵다면 한없이  어렵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생각해  보면 또 쉽게  해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유물이 있는 곳은....]

여기까지 말했는데 갑자기 대문이 벌컥 열리며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양자옹 앞으로 달려가 소리를 지른다.

[사부님....]

여럿이 놀라 바라다보니 양자옹이 약을  가져오라고 보냈던 청의의 동자가  얼굴에 
파랗게 멍이 들어 달려온 것이다.



第 二十 章. 뜨거운 상봉


어쨌든 곽정은 그 심부름꾼과 청의의 동자  뒤를 따라 약을 구하기 위해  꼬불꼬불 
한참 동안이나 걸어갔다. 곽정은 한 손으로 여전히 그 심부름꾼의 옆구리를 받치고 
걸었다. 첫째는  그가  탈진하여 쓰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을 해서요,  둘째는  짹 
소리도 지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셋이서 모퉁이를 몇  개나 돌고  나서야 
양자옹이 거치하는 관사에 당도했다. 동자는 문을 열고 들어가 촛불을 밝혔다.
곽정이 사방을 휘둘러보니  책상 위며  침상이며 방바닥에  여러가지 약재가  널려 
있고, 크고 작은 병이며 항아리에도 가득 가득 약재가 담겨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양자옹이 조제와 환약  등을 만들기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 
손님으로 잠시 머무르면서까지도 자기의 취미는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 동자도 약에 대해선 약간 알고 있는 듯 네 가지 약을 챙겨 백지에 나누어 싸 그 
심부름꾼에게 넘겨 주었다. 곽정이  그것을 받아 쥐고  방에서 나왔다. 약은  이제 
손에 넣었겠다, 심부름꾼과는 볼 일이  끝난 것이다. 더 거들떠볼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놈의 심부름꾼이  어찌나 교활했던지   중상을 입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방에서 나올 때 고의로 뒤에 처졌다가 곽정과 동자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촛불을 끄고 문을 안에서 걸어 잡아당기며 소리를 질렀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당황한 곽정이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밀어 보았지만 요지 부동이다. 청의의  동자는 
나이가 어리기는 하지만 다년간  삼선노괴 양자옹을 따라다닌 몸이다.  심부름꾼의 
고함 소리를 듣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곽정이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려고 하는   틈을 다서  곽정의 손에   든 약을  채뜨려 옆에   있는 연못  속에 
집어던졌다. 곽정이 두어 번 쥐어박았지만 살짝살짝 피해 버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곽정이  쌍장에 내럭(內力)을  집중하고 기합을  넣자 문이  부서져  나갔다. 
번개같이 달려들어  왼손 주먹으로  심부름꾼의 아래턱을  후려 갈겼다.  아래턱이 
부서져 나갔으니 소리를 지를 수가 없다.  다시 문 밖으로 나와 보니 동자는  벌써 
멀찌기 달아나고 있었다. 곽정은 뒤이어  경신의 내공을 집중하여 몸을 날리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동자의 뒤로  와 뒷덜미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동자는 
뒷덜미의 바람 소리를 듣고  몸을 살짝 낮춘다. 녀석이  만약 큰 소리라도  친다면 
약재를 구하지 못함은 물론이요,  황용과 자기는 이제  끝장이다. 인정 사정  돌볼 
계제가 아니다.  분근착골수(分筋錯骨手)의  묘기를 발휘하여   놈에게 질풍  같은 
공격을 퍼부었다. 동자는 양자옹을 따다다니며 심부름만 해 온 처지라 이렇게 강한 
상대를 만나 본 일은 없었다. 당황한  나머지 얼굴을 얻어맞고 말았다. 곽정이  이 
틈을 다 다시 녀석의 천령개(天靈蓋)를 내리치니 그냥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지고 
만다. 곽정은   왼발로 그를  길  옆의 풀숲   가운데로 밀어넣고  방으로  돌아와 
부싯돌을 쳐 촛불을 밝혔다. 아래턱이 말아난 심부름꾼은 땅에 쓰러진 채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곽정은 자신의 불찰에 혀를 찼다.

[방금 동자가  약을 챙길  때 어디  신경을 쓰기나  했나? 왕도사에게  필요하다는 
영약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야지?]

거기 놓인  병이나  항아리 위에   씌인 글씨는 모두   관외의 여진(女眞)  문자라 
꼬불꼬불한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 자도  알아볼 재간이  없다.  난처하기 
그지없을 뿐이다.

[할 수 없다. 아까 그 녀석이 여기  서서 약을 꺼냈으니 부근에 있는 약이란  약은 
하나도 빼지 말고 고루고루 다 가져가자. 돌아가 왕도사에게 고르시라고 해야지.]

그래서 손에 백지를 한 무더기나 들고 거기 있는 약재들을 한포씩 싸기  시작했다. 
방금 심부름꾼이 지른 소리에 혹시 누가 나타나지 않을까 조바심을 하니 일은 더욱 
더디기만 하다. 가까스로 약병들 가운데서 약을 한 가지씩 꺼내 싼 뒤 품속에 챙겨 
넣고 돌아서 나오려다  잘못하여 팔꿈치로  옆에 있는  대나무 광주리를  건드리고 
말았다. 광주리가 넘어지며  그 안에서  은홍색의 핏빛 구렁이  한 마리가  곽정의 
얼굴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며  대들었다.  깜짝 놀란   곽정이 뒤로  서너  발짝 
물러서며 바라다보니   뱀이 몽둥이만큼이나  굵다. 아직도   반신은 광주리  안에 
있으니 그  길이가  얼마나 긴지  알  수가 없다.  더욱  괴상한 것은  몸  전체가 
주홍빛인데 날름거리는 혓바닥이 양쪽으로 갈라진 것이다. 몽고처럼 추운 지방에는 
뱀이 원래  작다. 이렇게  샛빨갛고 괴상한  뱀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다. 놀란 
나머지  몇  발짝  뒤로  물러서다  그만  등으로  책상을  받고  말았다.  촛불이 
넘어지면서 방이 캄캄해 졌다.

약은 벌써 입수했겠다, 더  머뭇거릴 것 없이 문쪽을  향해 달리다가 거의  문앞에 
당도했을 때 뱀은 벌써 곽정의 몸을 칭칭 감아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 
봐도 꼼짝달싹할  수가 없다.  왼손만 그런대로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허리를 
더듬어 징기스칸이 하사한 금으로 만든  단도를 뽑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가닥 진한 약냄새와 비린내가 뭉클  코속으로 스며든다. 얼굴에 차디찬 무엇이  와 
닿는다. 뱀이 곽정의 볼을 핥은 것이다. 이 위급한 찰나에 어디 칼을 뽑아  휘두를 
여가가 있으랴? 왼손을 번쩍 들어 뱀의  목을 틀어잡았다. 뱀의 힘도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다. 곽정의 팔을 감아 죄면서 입을 벌리고 곽정의 머리를 물려고 대든다.
곽정은 팔뚝을 치켜들고 버틴다. 그러나 잠시 후 발목에 맥이 빠지고  뻣뻣해진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호흡이  곤란해진다. 내력(內力)을  다해 버티니  순간적으로 
홀가분해지다가 다시 꽉 죄어왔다. 동시에 왼손의 힘이 점점 빠진다. 뱀의  입에서 
풍기는 냄새가  역겹다 못해  구토까지  나오려 했다.  잠시 더  버티니  정신까지 
혼미해진다. 더 버틸 힘이 없어 왼손을 풀자 뱀은 한 입에 물겠다고 대든다.

이때 그 청의의 동자는  곽정에게 얻어맞고 쓰려져  있다가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곽정과  다툰  일에  생각이   미치자 벌떡   일어났다. 사부의   방을 
바라다보니 캄캄한 가운데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벌써 그자가 약을  훔쳐 
가지고 달아났다고 생각한 그는 화취각으로 달려와 숨을 헐떡거리며 양자옹을 향해 
아뢰게 된 것이다. 황용은 문 틈으로 그  동자가 하는 말을 다 들었다. 깜짝  놀라 
기러기가 모래 위에  내려앉듯 가볍게  땅에 내려섰다. 정말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화취각에 모여 있던 이 고수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완안열의 
말을 듣느라고 밖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이때 동자의 말을  듣고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황용이 나뭇잎  내려앉듯 하기는 했지만  팽련호 
등은 즉시 알아차린 것이다. 양자옹이  화살처럼 몸을 날려 황용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를 지른다.

[누구냐?]

황용은 그의 재빠른 동작을 보고는 벌써 자기의 적수가 아님을 깨달았다.

[여기 피어 있는 매화가 정말 곱군요. 가지 하나만 꺾어 주세요.]

애교를 섞어 살살  웃으며 딴전을  피운다. 양자옹은 뜻밖에  나타난 예쁜  소녀를 
보고 어리둥절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매화꽂 한 가지를 꺾어 준다.

[할아버지 고마와요.]

이때 여러  사람들은 화취각   문 어귀에 서서  이  광경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팽련호는 황용이 몸을 돌려 가려고 하는 것을 보고는 완안열에게 묻는다.

[저 아가씨는 왕부에 있는 사람인가요?]

완안열이 고개를 흔들자 팽련호는 왼발 끝을  땅에 찍으며 황용 앞으로 몸을  날려 
길을 막는다.

[아가씨 잠깐만, 나도 매화 한 가지 꺾어 주리다.]

오른손으로 황용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잡으면서 손을 살짝 구부려 황용의 가슴을 
움켜 잡으려고 했다. 어디까지나 상대를  한번 시험해 보겠다는 저의가 숨어  있는 
것이다. 황용은  원래  무예를 모르는체  어물어물  이 자리를  피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팽련호는  하북군도(河北 盜)의 우두머리요  무공이 심오할   뿐만 아니라 
게다가 꾀까지  대단한 위인이다.  자기가  손을 써  봄으로 해서  상대로  하여금 
방어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황용은 가볍게 놀라며 피할 수도  없어 
오른손을 떨치며 새끼 손가락을  살짝 벌린 채  손바닥을 난꽂처럼 곱게  오므리고 
뻗는 자세가 미묘하다. 팽련호는 팔뚝에 있는 곡지혈(曲池穴)이 뻣뻣해짐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팔을 움츠렸다. 하마터면 혈도를 찔릴 뻔했다. 이렇게 되자 놀란  것은 
오히려 팽련호  쪽이다. 이렇게  어린  묘렁의 소녀가  놀랄 만한  기예를  지니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솜씨만 민첩한  게 아니다 혈도를  귀신같이 
찾아내는 것도 이상하거니와  새끼 손가락으로 혈을  찌르려 하다니. 견문이  넓고 
경험이 풍부한 팽련호로서도 이러한 재주는 처음 보는 것이다.

그러나  황용의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는   가전의 절기로서   빠르고  정확하며 
기묘한데다가 자세가 우아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황용의  이 솜씨를 본  사람들도 
모두 의아한 생각을 했다. 그러자 팽련호가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아가씨 성은 무어며, 사존(師尊)은 누구시오?]
[이 매화가 정말 곱지요? 이걸 병에다 꽂으려구요?]

딴전을 부리며 동문  서답이다.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도  정체를 몰라  의아한 
표정들이다. 후통해가 그 중에서 제일 거친 편이다.

[지금 우리가 한 말 다 들었지?]

날카롭게 소리를 질랐다. 

[무슨 얘기를 했는데요?]

오히려 반문이다.  팽련호는  낮에 황용이  후통해를  놀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안광이 예리하다.  딴전을 피우는  황용의 웃는  모습을 바라다보며  문득  생각이 
났다.
(아, 후통해를 곯려 주던 그 거지가 바로 너였구나.)

[여보게, 후통해. 그래 이 아가씨를 몰라 보겠나?]

후통해는 의아하다는 듯 황용의 아래 위를 다시 한 번 훑어본다.

[낮에 반나절이나 서로 숨바꼭질을 하고서도 그래 벌써 잊었나?]

후통해는 멍하니 한참 동안이나 바다다보다가 비로소 생각이 난 모양이다.

[아니 이놈의 거지새끼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대들어 덮쳤지만  황용이 벌써 저만큼  피한 뒤다.  귀문용왕 
사통천이 몸을 번쩍 움직여 어느 틈에 황용의 오른팔을 잡았다.

[어딜 달아나려고?]

황용은그의 금나법(擒拿法)이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다. 왼손을 들어 그의  두 
눈을 노렸다. 사통천이 어떻게 손을 놀렸는지 황용의 왼팔까지 잡아 버렸다.

[체면도 없이 이게 뭐예요?]
[체면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어른이 아이를 놀리고 남자가 여자를 놀리니 이게 체면없는 짓이지 뭐예요?]

사통천은 힐난하는 말을 듣고 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두 손을 놓고  소리를 
질렸다.

[어쨌든 안에 들어가 얘기하자.]

황용도 할 수 없어 문 안으로 들어섰다.

[내 우선 이놈을 병신을 만들어 놓고 얘기를 합시다.]

후통해가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대든다.

[사부가 누군지? 누가 보냈는지 물어 보세.]

팽련호가 말했지만 후통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황용의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는다. 
황용이 살짝 피하며 맞선다.

[정말 이러기예요?]
[달아날까 봐 그런다.]

후통해는 황용이 정말 또 달아날까 두려웠던 것이다.

[정말 나와 함께 무예를 겨루어 보겠다면 그건 좋아요.]

황용은 이렇게 말하고 책상 위에 있는 여섯  개의 빈 그릇을 모아 놓고 거기  술을 
가득히 따랐다. 그 중 한 개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또 두 손에 하나씩 나누어 들고 
후통해를 건너다본다.

[나처럼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
[무슨 개 수작이냐?]

황용은 거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휘둘러본다.

[제가 이 어른과는 아무 원한도 없는데 만약 실수라도 해서 다치기나 하면  미안해 
어쩌지요?]
[뭐라고? 나를 다치게 한다구? 네가?]

후통해는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황용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잇는다.

[나와 함께 서로 머리에 술 석 잔씩 을려 놓고 재주를 져루다 술을 먼저  엎지르는 
사람이 지는 거예요.]

황용은 그들과 더불어 무예를 겨루어  이길 자신은 없었다. 다만 어멓게  해서든지 
시간을 끌다가 우물우물 빠져나갈 궁리를 하면서 꾀를 부리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그래도 후통해가 제일 만만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대결을 한다면 역시 승산은 없는 것이다.

[누가 너와 함께 장난을 하겠다더냐?]

후통해는 화가 가라앉지  않아 시근덕거리다가 소리를  지르며 날카로운  주먹으로 
황용을 내리친다. 황용이 살짝 피하고 웃는다.

[좋아요. 난 술잔 세 개를 가지고 그쪽은 빈 손인데 그래도 한 번 해 봅시다.]

후통해의 나이는 아무래도 황용의 배가 넘는다. 게다가 강호에서의 명성이  사형인 
사통천과 비할 바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래도 꽤 알려진 인물이다. 황용의 이  말에 
더욱 화가 치밀어 더 생각할 여지도 없이 머리에 하나, 두 손에 각각 술잔을  들고 
왼발을 낮추며 오른발을 번쩍 들어 황용을 걷어찼다.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들이 대장부라고 하지요.]

후통해가 대들어 몇 번이나 황용을 걷어찼지만 용케도 피하기만 한다.
양자옹이 보니 황용의 걸음은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과 같이  상반신은 
움직이지도 않고 두발만 긴 치마에  가린 채 사뿐사뿐 미끄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후통해는 커다란 걸음걸이로 쫓고 있는데 하반신의 훈련도 착실히 닦여 있긴 했다. 
하지만 황용은 물러서는 듯하다가도 살짝  대들어 묘한 공격을 편다. 팔꿈치로  쳐 
손에 든  술잔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후통해도  옆으로 피한다.  양자옹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여자의 경신  무공이 대단하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 아무래도  후통해가 
유리하다.)
그러나 자기 방에 놓아 둔 약재에 생각이 미치자 문 밖으로 나왔다.
이때 곽정은 뱀에 칭칭 말려 정신이 아물아물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냄새가 
더욱 짙게  풍긴다. 뱀의  입이 벌써  자기 얼굴에  닿은 것이다.   위급한 나머지 
고개를 숙이고 눈이며 코며  입을 뱀의 몸뚱이에 찰싹  붙였다. 전신은 요지  부동 
꼼짝달싹할 수 없고 이빨만은 그래도 쓸  수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치켜 
세우고 뱀의 몸을 꽉 물었다. 뱀은 아파서  더 꽉 죄어 왔다. 곽정은 계속해서  몇 
번이나 물었다. 약  넴새를 물씬 풍기며  뱀의 피가 입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씁쓸하고 역겹고 독이 있는지 어쩐지도 생각해 볼 여지없이 곽정은 되는 대로 빨아 
마신다. 설마 피가 모자라면 아무래도 괴고  있는 힘이라도 빠질 테지. 뱀의  피를 
얼마나 마셨는지 배가 불러 오고 뱀도 점차 기운이 약해진 듯하더니 마침내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곽정도 지칠 대로 지쳐 땅바닥에 앉은  채 
호흡을 가다듬어 정신을 되찾으려 애를 써 본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몇  번 호흡을 했을  뿐인데 뱃속의 뱀  피가 서서히  사지에 
퍼지는지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게  되고 잠시 후엔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샘솟듯하여 벌떡 뛰어 일어났다. 그는  일어나 품속에 챙겨 넣은 약재가  무사함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제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니  또 
다른 의협심이 발동한다. 곽정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 목역 부녀가 아무 죄도 없이  완안강에게 감금되어 있는데 내 이미 그  사실을 
안 이상 구출하지 않고 그냥 갈 수야 없지.)
문을 나서며 방향을 잡고  곧장 목씨 부녀가 강금되어  있는 곳을 향했다.  그곳에 
당도하니 완안강의 친병들이 순라를 돌며 심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곽정이 몸을 
숨기고 기다려 보아도 쉽게  들어갈 기회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집 뒤로  돌아가 
몸을 날려  마당 안으로  뛰어내렸다.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귀를  귀울여  보아도 
병사들의 인기척이 없다.

[목선배님, 구해 드리려고 왔어요.]

가만가만 속삭여 본다.

[댁은 뉘시오?]

목역의 말소리가 분명하다.

[곽정 입니다.]

목역이 낮에 곽정의 이름을 듣기는 했지만 그땐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어  댔고 
또 부상을 당한 뒤다 변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밤은 깊고  고요한 
시간에 갑자기 <곽정>이란 말을 듣고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뭐? 성이 곽씨라구?]

떨리는 목소리다.

[네, 낮에 완안강과 다툰 바로 그 사람이올시다.]
[자네 아버님의 이름은 뭔가?]
[선친은 소천(嘯天)이라고 했습니다.]

목역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왈칵 흐른다.
(하느님! 이 어인 일입니까?)
철책 사이로 손을  뻗어 곽정의  손을 뜨겁게  잡는다. 곽정은  그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동시에 몇 방울의 뜨거운 눈물이 자기 손등 위에 떨어졌다.

[여기 칼이 있으니 우선 줄을 끊고 나오세요.]
[어머님은 이씨지? 살아계신가 아니면 돌아가셨나?]

곽정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떻게 우리 어머니를 아세오? 어머님은 몽고에 계신데요.]

목역은 떨리는 감동으로 곽정의 손만 잡고 있었다.

[이 손을 놓으세요.]

목역은 놓치면 큰일이라도 생기는지 꼭 쥔 손에 더욱 힘을 준다.

[이렇게 컸구나 응! 눈만 감으면 네 아버님 생각뿐이다.]
[아니, 제 아버님을 아시나요?]
[네 아버님은 내 의형이시다. 친형제보다 다정하게 지냈단다.]

여기까지 말하고 목이  베어 더  말을 잇지  못한다. 곽정은  목역의 말을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목역은  이   이야기의 서두에   나온 
양철심(楊鐵心),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시 관병과 어울려 싸우다 등뒤에 창을  맞고 
풀속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었었다. 다행히도  어두운 밤이라 관병들이  발견하지 
못했었다. 다음날 아침  깨어나 부근의  농가로 기어들어가  1년 동안이나  치료를 
받은 뒤 상처가  아물었다. 그날부터 도처를  헤매며 곽소천의 부인  이평(李萍)과 
자기 아내인 포석약(包惜弱)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때 하나는 벌써 먼  몽고로, 
다른 하나는 이 북경에 와 있었으니 아무리 찾아 보아야 헛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양철심이란 이름을 쓸 수가  없어 양(楊)자를 떼어 목역(木易)이라고  개명을 
했다. 18년 동안  동분 서구  강호를 두루  헤매다가 오늘  고인의 아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으랴!

목염자는 잎에서 주고밤는 말을 듣고 있다가 빨리 여기를 벗어난 뒤 얘기를 하라고 
깨우쳐 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 이제 이곳을 벗어나면 다시는 완안강을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그의 마음은  완안강을  향해 
기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었다. 곽정은  슬그머니 
목역의 손을 놓고  금도(金刀)를 꺼내  수갑에 갖다 댔다.  이때 문틈으로  불빛이 
반짝 비치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문 앞으로 몰려왔다.
곽정은 급히  칼을 거두어  품에 챙기고  문 뒤로  몸을 숨겼다.  문이 열리고  몇 
사람이 안으로 들어선다. 앞에 선 사람이 초롱불을 들고 있다. 완안강의  어머니인 
조왕의 왕비다.

[왕자가 가둔 분들이 바로 이분들이냐?]
[네!]

친병 대장의 대답이다.

[빨리 풀어 드리도록 해라.]

대장이 머뭇거리며 대답이 없다.

[왕자가 묻거든 내가 시키더라고 일러라. 빨리 수갑을 풀어라!]

대장은 거역할  수 없어   수갑을 풀어 준다.  왕비는  두 덩어리의  은자를  꺼내 
양철심에게 건넨다.

[돌아가세요.]

양철심은 은자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왕비만 응시한다. 왕비는 이상하다는  듯 
조용이 소곤거린다.

[제 아들이 잘못했습니다.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양철심은 마음을 바꾼 듯 은자를 받아 품속에 넣고 딸의 손을 잡고 나섰다.

[천한 것들이 왕비께 고맙다는 인사도 할 줄 모르느냐?]

대장이 욕을  했지만 양철심은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곽정은  여러  사람들이 
나가기를 기다려  문을 닫아   버렸다. 왕비가 멀리  간  것을 확인한  뒤  밖으로 
빠져나왔다. 사방을 휘둘러  보았지만 양철심 부녀의  종적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벌써 완전히 밖으로  빠져나갔나 보다고 생각한 그는 화취각으로  가 
황용이나 찾아야겠다고 걸음을 옮겼다.
한참 동안 걷고 있는데  모퉁이에서 불빛이 번쩍이며  두 개의 초롱불이  나타나고 
누가 이리로 오고 있는 것이 보었다. 재빨리 정원 안에 있는 석산(石山) 뒤에 몸을 
숨기기는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누구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몸을  날려 대들어 잡으려 한다.  곽정도 손을 뻗어  막으며 
보니 아뿔사, 바로 왕자인 완안강이 아닌가!
원래 친병대장은 왕비의 명렁에 꼼짝하지 못하고 양철심 부녀를 내보내고 나는  듯 
달려가 완안강에게 아뢴  것이다. 완안강은  깜짝 놀랐다.  괜히 어머니가  마음만 
착해 앞뒤 가리지  않고 그들 부녀를  내보냈지만 만일 이  일이 탄로되어  사부의 
귀에라도 들어가는 날엔 정말 큰일이 나겠구나  싶어 다시 와 확인하고 두  사람을 
잡아   가두겠다고  달려오는   판에  곽정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낮에 그렇게까지  싸웠는데 또 부딪쳐 놨으니  치열한 
공방전이 또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빨리 빠져나가  약을  주어야겠다고 
조급해 하고 또 하나는 차제에 아주 없애 버리고 말겠다고 대드니 낮보다 몇  배나 
더 치옅해질 수 밖에 없었다. 곽정은 그래도 틈만 나면 뛰겠다고 몇번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완안강에게 막히고 만다.

한편 후통해와  황용의 대결도  숨가쁜  고비에 이르고  있었다. 황용이  두  손을 
흔들고 머리를  들자  세 개의   술잔이 동시에  날고 이   틈을 이용해  쌍장으로 
후통해의 가슴을 쪼갠다. 후통해는 손에  술잔을 들고 있으니 어떻게 방어할  수가 
없어 왼쪽으로 살짝 피했다. 황용이 오른손으로 내리치니 후통해는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어 팔뚝을 들어  막았다. 팔과 팔이 부딪치는  순간 후통해가 양손에  들고 
있던 술잔이 쏜아지고 머리  위에 올려 놨던 술잔은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다.
황용은 몸을 살짝 뒤로 빼며 양손으로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숱잔을 받아 쥐고 
다른 하나를 가볍게 머리로 받았다. 세 개의 술잔에서 한 방울의 술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후통해는  얼굴이 붉게  충혈되어 다시  한 번  겨루자고 소리를  지른다. 
황용은 손끝으로 그의 얼굴을 찍으며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놀린다.
사통천은 사제의 창피한 꼴을 보면서 코방귀를 뀐다.

[조그만 계집애가 못된 꾀만 많구나. 도대체 네 사부는 누구냐?]
[내일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그만 가봐야겠어요.]

태연 자약하게 웃는  얼굴이다. 사통천이  무릎을 구부린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발길음을 떼어 옮기지도 않았는데 어느 틈에 문 어귀에 가 황용의 퇴로를 막고  서 
있다. 황용은 아까 그에게  두 손을 긁히고 꼼짝못해  그의 무공이 대단함을  알고 
있었는데 지금 그의 이형환위(移形換位)의 귀신  같은 상승의 무공을 보고는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내색은 전연 보이지도 않고 예쁜 이마를 살짝 
찡그리기만 한다.

[왜 길을 막으세요?]
[누구의 문하인지 알리거라. 또 무엇 때문에 이 왕부에 뛰어들었느냐?]

황용도 눈썹을 치켜 세운다.

[만일 제가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래요?]
[이 귀문용왕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해야 한다.]

황용은 대문이 뒤에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이렇게  되로가 막혔으니 빠져  달아날 
수는 없는 것이다. 양자옹이 발결음을 옮겨 나가려는 것을 보고 하소연을 한다.

[아저씨, 저를 이렇게 막고 집에도 못 가게 하시니 어떻게 해요? 좀 도와 주세요.]

양자옹도 그의 정체가 궁금하지만 부드러운 하소연을 듣고 보니 딱한 생각도 든다.

[사용왕이 물으시는 말에 대답을 하면 보내 주실 테지.]
[전 대답하고 싶지 않은걸요.]

간드러지게 웃으며 하는 말이다.

[저를 나가지 못하게 하시면 제가 뚫고 나갈래요.]

사통천을 보고 하는 말이다.

[재주 있거든 그렇게 하렴.]

여전히 넹랭한 말투다.

[그러나 나를 때리시면 안 돼요.]
[네 길을 막기야 했다만 사용왕 체면에 너 같은 어린 아이를 때릴 수야 있겠느냐.]
[좋아요. 장부 일인이 중천금인데.... 사용왕님 저게 뭐에요?]

왼쪽을 가리키니 사통천의  시선도 자연  그쪽으로 옮겨진다. 황용이  이 틈을  다 
옷깃에 바람을   일으키며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빠져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만만하게 당할 사롱천도 아니다. 어느 틈에 번들번들 반짝이는 대머리로 그의 길을 
막았다. 몇 차례나 계략을 써 보았지만 계속 헛물만 켠다.

[사용왕이 어떤 분이라구, 헛수고 그만 하고 졌다고 말씀드리거라.]

양자옹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 발길을  재촉하여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방  안에 
들어서니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큰일났다 싶어 부시를 쳐 불을 밝히고  보니 
뱀은 죽어 쓰러졌고  약통이며 병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양자옹은 
벌써 짐작이 갔다.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더니 왈칵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원래 이 삼선노괴는 무공이 심오할 뿐만 아니라 약리(藥理)에도 정통했다.  언젠가 
한번 묘한  고방(古方)을 얻었다.  거기엔 신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비결이  씌어 
있었다. 크게 기뻐한 나머지 즉시  각지를 돌아다니며 약재를 수집하고 천신  만고 
끝에 심산의 밀림 속에서 묘한 독을 가지고 있는 큰 살무사(輹蛇)를 잡아다가 여러 
가지   진귀한  약재를   먹여  길렀다.   그  뱀은   원래  회흑(灰黑)색이었는데 
단사(丹砂)와 삼(蓼), 용(茸) 등의 약물을  먹은 뒤 점점 굵어지더니 20여년  후엔 
완전히 샛빨개진 것이다. 양자옹은 요며칠 사이에 뱀의 피를 빨아먹을 예정이었다. 
정력이  왕성해짐은   물론이려니와 장생   불로요,  더욱   신기한 것은   거기에 
내공(內功)을 운행(連行)하게 되면 10여년의  공력을 닦게 되는 것이다.  양자옹이 
이번 관내(關內)에 들어오게 된 데는 그 나름대로의 야심이 만만했기 때문이다.
못호걸들을 누를  결의가 대단했던  것이다. 단순히  무공에만 의지한대도  그렇게 
자신이 없는 것만은  아니었지만 뱀의  피를 북용하게  되는 날에는  내력(內力)이 
왕성해져서 원래의 무공도 즉시 그 위력이 몇 배로 증가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래 
이걸 누가 먹어 버리고 말았으니 기가 막혀 환장할 노릇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뱀의 목에 있는 이빨 자국을 보니 누가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별로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급히  방안을 벗어나 높은 나무 위에 뛰어올라  사방을 
살폈다. 정원 가운데 두 사람이 때마침 엎치락 뒤치락 싸우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마음속의 노기가 불덩이처럼 꿇어오른다. 경공(輕功)과 종줄(縱術)을 펴 눈 깜짝할 
사이에 곽정과 완안강이 싸우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가까이 접근해 보니  곽정의 
옷에서 뱀피   비린내가 풍긴다.  곽정의 무공은   본래 완안강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런데  상대를 해   보니 처음엔 몇  번  수세에 몰리기도  했지만  10여 
초(招)가 지나면서 왠지 모르게 뱃속이  이상하게 뜨뜻하더니 마치 불덩어리  같은 
것이 진신에 퍼지는 듯 온몸에 힘이 샘솟듯 했다. 맹렬하게 공격을 하며 손을 들어 
치니 완안강이 팔을 들어 막다가 비틀거린다.
(아니, 이 녀석이 갑자기 어디서 이런 힘이 생겼을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곽정은 체내에 물이 펄펄 끓듯 하고 목이 타며 온몸이 터질 
듯 간질간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내 이러다가 죽나 보다, 뱀의 독이 발작을 하는 모양이구나.)
멈칫거리는 사이에 두어  번 얻어맞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얻어맞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통쾌하고 시원하다.  오히려 방비를 소홀히  하면서 실컷  맞기로 
했다. 다투고 있는 곽정과 완안강 두 사람 모두 마음속으로 의아한 생각을 했다.
하나는 (어째 저 녀석의 주먹이 솜방망이처럼 가려운 곳만 골라 때려 주나?) 했고, 
다른 하나는 (아니 어째 살수(殺手)를 쓰는데도 꼼짝하지 않을까?)다.

고래(古來)부터 전래해 온  비방에 따르면  뱀피를 복용한  후에는 반드시  온몸을 
고루고루 두들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혈독(血毒)과 울열(鬱熱)을  발산시키는 
것이다. 주먹으로  한  번 두드릴   때마다 공력은 점증하는   것이다. 둘은  서로 
아무것도 모르고 때리고 맞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완안강은 곽정이 약을  복용하고 
연공(練功)을 하는데   조수가 된  격이다. 양자옹이   도착했을때 곽정의  공력은 
증가될 대로 증가된 후다. 제아무리 완안강이 치고 때린다 해도 곽정만 덕을  보는 
셈이다. 양자옹은 이  광경을 보면서  마음도 아프고 화도  치밀어 부들부들  떨고 
있다가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른다.

[이 개 같은 놈아, 누가 그 귀한 뱀을 훔치라고 시켰느냐?]

뱀을 빌어   연공을 하는  방술(方術)은  극비에 속한다.   저 어린  곽정이  설마 
그것까지 알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배후에서 조종한 인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어수룩한  곽정이 그것을  알랴?  어수룩하고 의리만을  찾는  그가 
왕처일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뛰어들었다가 세상에 드문 독사의 보혈을 
얻어마시게 되었을 뿐이다.
곽정이 앙자옹의 말을 듣고 보니 자기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좋소, 그 독사는 당신이 기르는 것이죠?  내 이제 중독이 되었으니 어디 한번  해 
봅시다. 죽기 아니면 살기요.]

나는 듯 대들어 한 주먹에 양자옹을 때려 누인다. 양자옹은 그의 몸에서 풍기는 약 
냄새를 말으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내 독사의 보혈을  마셔 버렸으니 내 즉시  저 놈을 죽이고 피를  빨아 
마셔야 한다.  약효는 아직  그대로  있을 테니  효과가 더욱  좋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잘됐다 싶어 반갑다. 쌍장을 번갈아 날리며 수 초  사이에 
곽정의 팔을 나꿔채 잡았다. 그러나 곽정은 그전의 곽정이 아니다. 살짝  뿌리치고 
그대로 빠져나간다.   양자옹이 다시  대들어 다리를   꼬아 감으니  곽정이  그만 
땅바닥에 나가  떨어진다.  양자옹의 무공은  곽정과  비할 처지가  아니다.  정말 
곽정을 해치우려면 그야 여반장이다.  곽정이 보혈을 마셨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장기적인 내공의 조련이 아직은 부족한 것이다. 양자옹은 곽정의 왼쪽 어깨에 있는 
맥문을 붙잡고 깔아뭉갠 채 입을 벌리고 목을 노리고 내든다.

한편 사통천과 맞서고  있던 황용은 허를  노려 빠져 나오려  했지만 계속  실수만 
거듭했다. 황용은 초조했다.

[사용왕님, 제가 문 밖으로 빠져나가기만 하면 다시는 저를 괴롭히지 마세오,  네? 
약속하실 수 있어요?]
[그래 어디 빠져나가 봐라. 그럼 내가 손을 들지.]
[아이구, 아버지는 내게 문 안에  들어서는 재주만 가르쳐 주셨지, 문에서  나가는 
재주는 전연 가르쳐 주시지 않았만 말야. 속상해.]

꺼질 듯 한숨을 내쉰다.

[뭐야, 문에서 나가고 들어온단 말이냐?]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재주가 대단하지만 제 아버님께 비하면 아직도 멀었어요.]

이 솜씨로 따진다면 사통천 자기를  당할 사람은 없다고 자부하는 처지다.  황용의 
말을 듣고 보니 슬그머니 괘씸한 생각이 든다.

[계집애가 쓰데없이 종알거려. 그래 네 아버지는 누구시냐?]
[제 아버님 이름만  들어도 놀랄걸요. 제게  이 재주를 가르쳐  주실 때  아버지는 
문을 지키시고 난 밖에서 뛰어들곤 했어요. 몇번 해 보아도 뚫을 수가 없었지만요, 
그러나 사용왕님 같은 재주 앞에서 밖으론 어렵지만 밖에서 안으로 뚫기는  식은죽 
먹기예요.]
[안에서 밖으로   뚫으나 밖에서   안으로 뚫으나  마찬가지  아니냐?  그럼  어디 
마음대로 해봐라.]

화가 난 사통천이 길을 비겨 주고 말았다. 황용이 번개처럼 빠져나가서 웃는다.

[호호호, 제 꾀에  속아 넘어가셨죠?  이제 문  밖으로 나왔으니  손 드시고  저를 
괴롭히시면 안 돼요. 자 이렇게 문 밖에 나와 있지 않아요? 그럼 안녕.]

사통천은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한  말은 있겠다,  대머리를 긁적긁적하며  속수 
무책이다. 팽련호는 사통천과 제일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사통천이 당하는  꼴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두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두 꾸러미의  동전을 
쏴뿌렸다. 자고 이래로 전표(錢 )를 쓰는 고수들은 사람의 혈도를 치거나  아니면 
여러 개의  표( )를 동시에  발사하여 위로도  아래로도 피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팽련호의 이름이 천수인도(千手人屠)다. 이 별명만 들어 봐도 그가 
암기(暗器)를 쓰는 명수임을 알 수 있다.
그가 두 꾸러미의  전표를 쏠 때  또 다른 묘한  재주가 나타나는 것이다.  황용의 
머리 위로 날아갔던 것이 방향을 바꾸어  그의 등을 칠 수도 있는 기막힌  재주다. 
전표를 쏠 때 손의 힘은 빠르고도 정확하다. 한 번 쏜 뒤에는 다시 그 힘을 회수할 
수 있는 다른 힘이 거기 쫓아다닌다.  황용은 전표가 쌍쌍이 자기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며 암기의 발사 표적이 어찌 저리도 부정확할까 생각하는데  웬걸 
등뒤에서 바람을 찢고 두 개의  전표가 좌우에서 날아들며 뒤통수를 노린다.  몸에 
방탄복을 입어 전표쯤이 두려운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뒤통수로 날아드는  것을 
보고도 피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급한   나머지 앞을  향해  펄쩍  뛰어 
떨어지려는 찰나 또 다른 전표가  쫓아왔다. 팽련호가 발사한 두 꾸러미의  전표는 
수십 개가   계속해서 쫓는  것이다.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거니와  손을  뻗어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 펄찍펄쩍 뛰어 피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인데 그렇게 
몇 번 뛰다 보면 제자리에 돌아와 있게 마련이다.
팽련흐가 전표를 발사한  것은 바로  황용을 제자리로 유인해  오자는 데  있었다. 
해치려고 발사했다면   황용은 벌써  전표에 맞아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갈채 속에 팽련호가 문 앞을 막고 웃는다.

[무엇 때문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

황용이 입을 삐죽 내밀고 응수한다.

[암기 쓰시는   솜씨가 대단하시군요.   하지만 겨우  저  같은  어린  계집아이나 
골탕먹이는 거 대수로울 것도 없군요?]
[누가 골탕을 먹여? 내가 상처를 입힌 것도 아닌데?]
[그럼 절 보내 주세요.]
[하지만 먼저 말을 해야지. 무공을 가르쳐 준 게 도대체 누구냐?]
[제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배워 가지고 나온 거예요.]

황용이 오히려 태연스레 웃으며 하는 말이다.

[네가 말을 않는다고 그냥 넘어갈 줄 아느냐?]

손바닥을 뒤집어 황용의 어깨를 겨누고  치려고 대들었지만 황용은 피하지도  않고 
막으려고도 않는다. 기왕 이길 수도 없는 형편이라면 꼴이나 구경하자는 속셈이다. 
팽련호의 손등이 그의 어깨를  치려고 하다가 그가  움직이지도 않는 것을  보고는 
손을 거두고 소리만 지른다.

[방어를 하든지  공격을  하든지 해다.   십 초(招) 이내에   네 정체를  밝히고야 
말겠다.]

팽련호는 경험이 풍부한 고수다. 산전수전 겪을 것은 다 겪었다. 10여 초를 겨루다 
보면 상대가  어느 종파나  문호에 속하는  인물인지를 식별해  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십여 초 내에 식별해 내지 못하시면 그땐 어떻게 하실래요?]
[그럼 그땐 내가 보내 주지. 자 받아라!]

왼손의 강풍으로  비스듬히 내리찍음과  동시에 오른손  주먹을 무섭게  휘두르고, 
게다가 오른발로 걷어차기까지  한다. 삼철연환(三撤連環),  말은 비록  1초라지만 
3초나  다름없는   것이다.  황용은  그의   공격이  급박함을  보며   몸을  돌려 
금계독립(金鷄獨立)의 장풍으로 가볍게 받아 응수한다.
(이는 산동제주노가이랑권(山東濟州盧家二郎拳)인데  어디  두어 초   더 해  보면 
본색이 드러날 테지.)
이렇게 생각한   팽련호는 신법을  질풍처럼 날리며   주먹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황용은 왼손의 장풍을  높이 들어올리며 날아드는  주먹의 세례를  외문(外門)으로 
돌리는 내가(內家)의 수법을 써서 방어했다. 팽련호는 슬그머니 놀란다.
(어럽쇼, 이는 강북육합(江北六合)의 팔극식(八極式)으로 이랑권과는 아주  거리가 
먼 건데 그런 걸 다 배웠을까?)
제3초, 제4초,  계속공격을 시도해   보았지만 그때마다 황용은  묘하게  물리치고 
만다.
(계집애라고  깔보다가는  큰일나겠구나.   아무래도 살수를   쓰지않으면  본색을 
드러내지 않겠다.)
팽련호의 네   차례에 걸친   공격이 날카롭기는  했지만  상대의  술수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 그래도 사정을 보아  준 것이다. 제5초의 공격이 쉭  소리와 
함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옆에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도  무시무시한  공격에 
은근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황용은 반격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방어에만 
주력을 했다. 백타산 산주인 구양공자도 그의 기묘한 방어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연발했다. 팽련호의  권법(拳法)은  기민하기도 하려니와   허와 실을  혼용하면서 
여덟번째의 공격을 편다.  그러나 황용의  방어도 허와  실의 빈  틈을 찾아  철통 
같다.
팽련호는 구양공자가 옆에서 지르는 감탄의 소리가 귀에 거슬려 견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조차 조급해졌다.
(내 요놈의 계집애를 죽여 없애고 말겠다.)

그의 별명이  천수인도.  성격이 잔인하기  한이  없는 위인이다.  처음엔  황용이 
나이도 어리고 귀엽다는 생각도  들어 사정을 보았지만  여덟 차례의 공격을  각기 
다른 팔가(八家)의 수법으로 방어를 해 내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9초는 추창망월(推窓望月). 사력을 다해 왼손의 장풍은 음(陰), 로른손의 장풍은 
양(陽)을, 하나는 부드럽게(柔), 하나는 강(剛)하게 하여 동시에 내후리쳤다.
황용은 황급한  나머지 번개처럼   피하려고 하다가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머리를 
낮추고 어깨를 안으로 오므린 채 화살처럼 날아 적의 가슴을 향해 박치기를  했다. 
팽련호는 황용이  멈칫거리는 사이   계속해서 제10초의 공격을  시도하다가  자기 
가슴의 급소를 노리고 박치기를 해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너는 흑풍쌍쇄 (黑風雙煞)의 문하로구나!]

오른쪽 어깨를  떨치니  황용의 몸이  7,8보나  뒤로 미끄러져  나간다.  팽련호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엎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라  두려운  표정을 
나타낸다. 조왕 완안열만  빼고 여기 모인  사람들은 강호의 고수요,  대가들이다. 
흑풍쌍쇄라면 무림에서 활약하는 사람들마다 무서워 피하는 형편이 아닌가? 동시인 
진현풍이 벌써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다.
황용은 팽련호가  어깨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하마터면  뒤로나가 떨어질  뻔했다. 
겨우 땅바닥에  버티고 서기는  했지만 어깨로  얻어맞은 가슴이  은근히  아팠다. 
흑풍쌍쇄의 문하라는 말을 듣고 막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어두운 밤의 고요를 찢고 
놀라 울부짖는  곽정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황용의  예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원래 곽정은   양자옹밑에 깔린   채 손이며  발의  맥문이란  맥문은  모두  눌려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양자옹이  입을 딱  벌린 채  자기 목을  물려고 
대드는   것을   보자   위급한   나머지  어디서   나오는   힘인지는   모르지만 
단전(丹田)에서부터 사지를 향해 뻗어나는 뜨거운  힘을 의지하고 벌떡 일어나  선 
것이다. 곽정이  뱀의 보혈을  빨아  마신 뒤  완안강과 한바탕  어우러져  싸우는 
사이에 약의 효과가 주효하여 기운이 생겼는데 이번엔 양자옹이 몸에 있는  맥문을 
눌러 주는 바람에  오히려 기운이  배나 증가된  것이다. 뱀  피의 약효와  단양자 
마옥이 전수해 준 현문의 정종인 상승의 내공이 결합되어 형언하기 어려운  새로운 
힘이 마침내 솟아난 것이다.

곽정이 떨치고   일어나는 바람에  양자옹의 입이   찢어지고 피가  줄줄  흘렀다. 
놀랍기도 하고 화도 치민 양자옹이 무서운 장풍을 날렸다. 곽정이 앞을 향해  펄쩍 
뛰기는 했지만 양자옹의  장풍이 질풍처럼  날아 퍽 하고  등을 때렸다.  완안강의 
주먹은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강한  것이다.  진통이 골수를  파고든다.  놀란 
곽정이 거기  머뭇거릴 수  있겠는가? 그냥  앞만 보고  내달린다, 경신의  무공이 
원래부터 훌륭했던 그가 뱀의  피를 마신 뒤엔 그  공력이 크게 발전했다.  화원의 
가산이며 화목 사이를 이리 뛰고 저리 달리니 천하의 양자옹으로서도 그 뒤를 쫓아 
잡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곽정이   내빼다 잠시  멈추기만  하면 
어느틈에 달려온  양자옹이 찍  하고  옷깃을 잡아  찢는다. 동시에  할퀸  등뒤에 
핏자국이 맺히고 심한 통증이 뼛속을 파고들었다.
공력이 한층 높은  양자옹의 무서운 추격에  계속 쫓기고 있는  곽정은 놀라  죽을 
힘을 다해   앞만 보고  계속  달린다. 달리다   보니 왕비가  살고  있는  농가가 
나타났다. 이것저것 생각할 여지도 없이 안으로 뛰어들어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어쨌든 이 위험한 고비는 넘겨야 하는 것이다. 담장 밑에 엎드린 채 숨도 크게 쉬
지 못하고 있는데 양자옹과  완안강이 두런두런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가까이 
오고 있었다.

(왕비는 착하니까 어쩌면 날 살려 줄는지도 몰라.)
곽정은 더  생각할 것  없이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방안엔 촛불이  아직도  켜져 
있었다. 왕비는 다른 방에 가 있었던 것이다. 사방을 휘둘러보니 옷이 보인다.  그 
속으로 들어가 안에서  닫아 걸고 칼을  손에 쥔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들려 옷강의 틈으로 내다보니 바로 그 왕비다. 그는 탁자 옆에 앉아 
촛불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면서 무언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잠시  후 
완안강이 들어서며 묻는다.

[어머니, 혹시 누군가가 들어와 놀라시지 않으셨습니까?]

왕비가 고개를 흔드니 완안강은 물러나와 양자옹과 더불어 곽정을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간다. 왕비는 방문을  닫아 걸고 잠자리에  누울 모양이다. 곽정은  생각에 
잠긴다.
(왕비가 불을   끄고 잠이   들면 창으로  빠져  나가야지.  어쩌면  황용은  벌써 
돌아갔을는지도 몰라.)
창문이 삐걱대며  누군가가  창을 열고  들어선다.  곽정과 왕비가  함께  놀란다. 
왕비는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들어온 그 자를 바라다본다.  목역이라고 
자칭하는 양철심이었다. 벌써 자기 딸을 데리고 왕부를 빠져나간 줄 알고 있었는데 
여기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왕비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를 
바라다보면서 말문을 연다.

[빨리 나가세요.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하시고....]
[왕비의 호의는 정말  고맙습니다. 그냥 돌아가면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아 이렇게 직접 찾아뵙게 된 것입니다.]

어딘가 떨리는 목소리가 역연하다.

[그야 뭐 제 아이가 잘못해서 공연히 댁의 부녀만 괴롭혀 드린걸요.]

양철심은 방안을   한 바퀴  휘둘러보면서 착잡하고   괴로운 표정이다.  눈동자가 
붉어지다가 마침내 눈물까지 흘린다.  소매깃으로 눈물을 닦고 벅으로  다가서더니 
거기    걸려   있는    철창(鐵槍)을   내려    만져   본다.    과연   창끝에는 
철심양씨(鐵心楊氏)란 글자가 똑똑히  새겨져 있었다.  양철심은 오래오래  그것을 
어루만지다가 한숨을 길게 내쉰다.

[창끝에 녹이 슬었군요. 오랫동안 쓰지 않았군요.]

왕비는 그의 행동이 이상한 것을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한다.

[그 창은 만지지 마세요.]
[왜요?]
[그건 제게 가강 소중한 물건이랍니다.]
[아! 그래요?]

양철심은 창을 다시 제자리에 걸고 그 옆에 있는 밭 가는 쟁기를 들여다본다.

[쟁기 끝이 무디어졌으니  내일 동촌(東村)의  장목아(張木兒)에게 부탁해서  다시 
두드려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군.]

이 말을 들은 왕비는 몸을 부들부들 떤다.

[아니 당신은? 지금 뭐라고 했어요?]
[난 쟁기 끝이  무디어졌으니 내일  동촌의 장목아에게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한다고 했소.]

왕비는 비틀비틀 의자 위에 쓰러진다.

[아니 당신은 누구요? 어째서 우리 남편이  세상을 떠나던 그날 밤..., 그날  밤에 
한 말을 알고 계시나요?]

이 왕비는  바로 양철심의  아내인 포석약(包惜弱)이었던  것이다. 집안이  망하고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의지할  친척조차 없는 외로운  처지라 완안열의 뒤를  따라 
북방으로 왔다가 그만  그의 아내가  된 것이다.  18년 동안  그녀의 용모는  별로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양철심은  그  동안 강흐를  누비고 다니며  고생을  했기 
때문에 옛날의 모습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몽매에 그리던 자기 
남편을 눈앞에 놓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양철심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방 모퉁이에 놓인 옷장의 서랍을 열어  본다. 옛날 자기가 입던 것과 같은  옷들이 
거기 얌전하게 놓여져 있지 않은가? 그 중 하나를 꺼내 자기 몸에 걸쳐 본다.

[내 옷은 충분하오. 몸도 약하고 아이까지 있으니 이젠 좀 쉴 생각이나 하지  다시 
바느질은 그만 둬요.]

이 말을 들은 포석약은  양철심 곁으로 달려들어 그의  웃옷을 제치고 본다.  과연 
왼쪽 어깨 위에 창 자국이 역력하게 남아 있는 자기의 옛 남편 양철심이  틀림없지 
않은가? 남편을 끌어안고 흐느껴 운다.

[이젠 무섭지  않아오.  저를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요. 아무  곳이라도  좋아요. 
당신만  내  곁에  계신다면  지옥인들  마다하겠습니까?  자  빨리  저를  데리고 
나가세요.]

양철심도 아내를 껴안은 채 아무 말 못 하고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만 흘리고 있다.

[자, 나를 보시오. 사람인가? 아니면 귀신인가를?]

포석약은 더욱 세차게 양철심을 끌어안는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귀신이면 어떻고 사람이면 어떻단 말이에요. 이젠  떨어질 
수 없어요.]

목이 메어 말도 제내로 잇지 못하고 흐느낀다.

[그래 죽지 않으셨단 말이지요. 살아 계셨단 말이군요?]

양철심이 임을 열어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창 밖에서 완안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뭐 속상한 일 있으신가요? 누가 방에 있나오?]
[아니다, 이제 잘란다. 아무 일 없어.]

완안강은 방금   방안에서 어머니가   누군가와 더불어  주고받는  말소리를  들은 
것이다. 아무래도 의심을 풀 길이 없어 문 앞으로 돌아 나와 방문을 두드린다.

[어머니,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래요.]
[내일 얘기하자꾸나. 나 지금 피곤해서 그런다.]
[잠시만요, 몇 마디만 드리고 물러갈래요.]

양철심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창문으로 빠져나가려고  문을 밀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벌써 밖으로부터  잠근 모양이다. 포석약이  옷장을 가리키며 그  안으로 
들어가라는 눈젓을 보낸다. 양철심이 옷장을  열고는 깜짝 놀랐다. 포석약도  거기 
있는 곽정을 발견하고  놀라 비명을  지른다. 완안강은 모친의  비명 소리를  듣고 
혹시 누가  어머니를  해치는게 아닌가   하여 어깨로 문짝을   밀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동시에 곽정도 양철심을 잡아  끌어들이미 옷장 문을 닫았다.  완안강은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할  뿐더러 볼에는  눈물 자국이  뒤범벅인데 방안엔  아무도 
없자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아니다. 속이 좀 괴로을 뿐이야]

완안강은 어머니 품속에 머리를 묻는다.

[어머니,   이젠   괴롭혀드리지   않을께요.   너무   상심하지   마셔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래라. 물러 가거라. 자야겠구나.]
[어머니, 이 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나요?]
[그게 무슨 말이냐?]
[왕부 안에 누가 뛰어들어 왔어요.]
[그래? 빨리 가서 잠이나 자렴. 내 걱정 말고.]
[위병들이 모두 바보 같은 녀석들뿐이라서 걱정이에요. 어머니 좀 쉬세요.]

막 물러서  나오려는데 옷장  틈으로 남자의  옷깃이 삐죽이  드러나보인다.  버쩍 
의심이 생긴다. 아무 눈치도 보이지 않고 의자에 앉아 차를 따라서 천천히  마시며 
생각에 잠긴다.
(옷장 속에 사람이 숨었는데 어머니는 알고 계신 건가? 아니면 모르시는 걸까?)
차를 몇 모금 마시고 일어나 방안을 거닌다.

[어머니, 오늘 내 창 쓰는 솜씨가 어땠어요?]
[다시는 그 따위 짓 하지 말아라.]
[어머닌 그따위 짓이라뇨. 아니 그놈과 그냥 무예를 겨뤘을 뿐인데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슬그머니  벽에 걸린  철창을 내려  휘들러 보다가  갑자기 
옷장을 찌른다. 깜짝 놀란  포석약이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진다.  완안강은 
창끝이 옷장에 가 닿기 전에 창을 거두며 생각한다.
(응, 어머니는 벌써 알고 계셨구나.)
철창을 든  채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키며 옷장  속의 동정을  살핀다.  포석약은 
정신이 드는지 옷장을 바다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쉰다.

[어머니, 난 어머니의 친자식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물론 친자식이고 말고.]
[그럼 왜 어머니는 내게 속이는 일이 그렇게 많으세요?]

포석약은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 녀석에게 모든 걸 툭 털어놔야 속이 후련할  것만 
같다.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다시금 눈물이 흐른다.

[거기 얌전하게 앉아 내 말을 듣거라.]

완안강은 어머니의 말에 따라 앉으면서도 창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

[봐라, 그 창 위의 네 글자를...., 무어라고 씌어 있는지를?]
[제가 어렸을 때 여쭈어 보지 않았습니까? 그때 어머닌 양철심이 누구라는 걸 말해 
주지 않으셨어요.]
[지금 내가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거야.]

양철심은 옷장에 숨은 채 그들 모자간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아니, 지금 자기는 왕비인데 어쩌자고  내 행장을 말하려고 하나. 그러면  오히려 
저 녀석이 나를 해치려고 할 텐데.)

[얘야. 이 창은  본래 강남의  대송(大宋) 임안부  우가촌(牛家村)에 있던  것인데 
내가 사람을 시켜 천 리를 멀다 않고  가져온 게 아니냐? 저 부러진 쟁기며,  여기 
있는 책상, 걸상, 옷장이 모두 임안에서 가져온 것이다.]
[전 정말 모르겠어요. 어머닌 왜 이 지저분한 물전들을 좋아하시는지요? 제가 좋은 
가구를 갖다 드려도 다 싫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뭐, 지저분하다구? 왕부  안에 있는 으리으리한  것들보다 얼마나 좋은지를  너는 
모른다. 넌  정말 복이  없어. 네  친아버지가 에미와  함께 살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어머닌  정말  이상하시군요.  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살 수   있단 
말이에오?]
[불쌍도  하시지,   십팔  년   동안 동분서주   강호에   떠돌아다니시며  고생을 
하시다니.... 편안하게 이런 집에서 사실 수 있었을 텐데.]

완안강은 영문을 몰라 눈을 둥그렇게 뜬다.

[어머닌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거예요?]
[넌 네 친아버지가 뉘신 줄 알기나 하느냐?]
[아버진 황제의 동생인 조왕(趙王)이시지 누군 누구예요?]

포석약은 일어나 철창을 껴안고 비오듯 눈물을 홀린다.

[얘야, 넌 몰라. 하긴 너를 나무랄 수도 없지. 이 창이 바로 네 친아버지가 쓰시던 
거란다.]

창에 씌인 이름을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네 친아버지의 존함이란다.]

완안강이 부들부들 몸을 떤다.

[어머니 아무래도 이상하시군요. 태의(大醫)를 들라하겠어요.]
[뭐라구, 내가 이상하다구? 넌  네가 대금국 사람인  줄 아느냐? 너는  한(漢)나라 
사람이야! 네 이름은 완안강이 아니라 양강(楊康) 이란다!]

곽정은 <양강>이란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어디서 분명히 들어 본 이름이다.  아 
그렇다! 내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비수에 새겨졌던   그 이름임에  틀림없다. 
황산에서 동시 진현풍을 찔러 죽인 그 비수! 그 비수는 진현풍의 몸에 지금도 꽂혀 
있을까? 완안강은 놀라 몸을 돌린다.

[아버님을 모셔야겠군요.]
[아니다, 네 아버님은 바로 여기 계시단다.]

옷장으로 달려가 문을 열고 양철심의 손을 잡아 끈다.

[아니, 당신이!]

완안강이 창끝을 휘두르며 양철심의 목을 겨누고 찌르려고 대든다.

[이분이 바로 네 친아버님이신데, 그래도 못 믿겠느냐?]

머리로 벽을 받고  그내로 쓰러진다.  완안강은 깜짝 놀라  창을 거두고  어머니를 
바라다본다. 이마에선 붉은 피가  철철 흐르며 가쁜  숨을 내쉴 뿐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양철심은 몸을 숙여 아내를 끌어안고 문 밖으로 달려 나간다.

[놓아라! 이놈아!]

완안강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 양철심의 등을 노리고 창을 던졌다.



第 二十一 章. 기억을 더듬다


양철심은 등뒤에서 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손을  휘둘러 완안강이 던진  창끝의 
빨간 구슬을 휘어잡았다. 양가창법은 임전 무퇴, 이 회마창(回馬槍)은 자자 손손이 
전해 내려온 절기다.

[이 창법은   우리 양씨  가문에서도 아들에게만   전했지 딸에게는  전해  주지도 
않았다. 설마 네 사부라고 해서 네게 전해 주었을리는 만무하다.]

구처기의 무공이 제아무리 높다고는 하지만 창법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정통한 편은 
아니다. 더욱 양가창법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는 있다 하지만 비전의 절기까지를 알 
도리는 없는  노릇이다. 완안강도  이 회마창에는  서툴다. 깜짝  놀라는 찰나  두 
사람의 힘이 모였다 홑어지면서 창이 분질러졌다.
곽정이 몸을 날려 앞으로 나서며 대갈 일성이다.

[네 이놈! 친아버님을 뵙고도 머리를 숙이지 않느냐?]

완안강이 주춤하는   사이 양철심은   포석약을 안은  채  목염자와  더불어  담을 
뛰어넘고 집을 뛰쳐나갔다. 곽정도 더 머무를 필요가 없어 집을 벗어나 담을  뛰어 
넘으려는데 암혹 가운데 한 가닥 강한  강풍이 머리 위에서 분다.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지만 장풍이  벌써 코끝을  스쳤다. 얼굴이  칼로 할퀸  듯 쓰리고  아프다. 
장풍도 무서웠지만 도대체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더욱 이상했다.

[이놈, 내 여기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 아닌 삼선노괴 양자옹이다.

이때 황용은 팽련호가 자기를  가리켜 혹풍쌍쇄의 문하라고  하는 말을 듣고  웃고 
있었다.

[어쨌든 내게 졌어요!]

문 밖을 향해 몸을 돌린다. 팽련호가 몸을 바짝 돌려 문을 막아 선다.

[네가 혹풍쌍쇄의  문하임을 안  이상 나도  더 괴롭힐  생각은 없다.   그러나 네 
사부가 무잇 때문에 너를 보냈는지 그건 말을 해라.]
[십 초   이내에 내가  어느  문호나 종파에   속하는지 알아내지  못하면  내보내 
주신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대장부답게 시원하게 내보내 주세요.]
[네 마지막 솜씨는 영오보(靈鰲步)가  틀림없는데 그래도 흑풍쌍쇄에게서 배운  게 
아니란 말이냐?]
[난 혹풍쌍쇄는 본  적도 없고요,  이 따위 재주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 
사부가 될 수 있단 말이에요?]
[네가 거짓말을 해봐야 소용없다.]
[혹풍쌍쇄란 이름, 내 들어본 적은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잔인무도하기로  이름난 
잡것들인데 어째서 팽채주께서는 나를 한패라고 생각하시지요?]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의아한 생각을  한다. 처음엔 황용이  실토하지 
않으려고 그러는 줄 알았지만 아무리 거짓말을 잘하기로서니 제 사부를 다른  사람 
앞에서 욕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팽련호가 옆으로 한 발짝 비켜선다.

[아가씨  그래  아가씨가  이겼소,  내  정말  탄복했소.  아가씨  이름이나  알려 
주시구료.]
[원 별 말씀을 다...., 제 이름은 용아(蓉兒)라고 해요.]
[그럼 성은?]
[성은 없어요.]

여러 사람들 가운데 영지상인과 구양공자만이 아직 황용과 대결해 보지 않았을  뿐 
다른 사람들은 다 한  번씩 겨뤄 본 셈이다.  영지상인은 중상을 입고  꼼짝못하고 
누워  있으니  아무래도  구양공자가  나서야만  할  차례다.  그래  시선이  자연 
구양공자에게 쏠렸다. 구양공자가 천천히 걸어 나오며 미소를 짓는다.

[재주는 별로 없지만 어디 아가씨와 한번 겨루어 보겠습니다.]

황용은 그가 흰옷을 입은 것을 보고 묻는다.

[흰 낙타를 타고 다니는 미모의 아가씨들과 한편이신가요?]
[아! 그들을 보셨군요. 그들이 어디 아가씨만큼 예쁩니까? 어림없지요.]

이 말을 들은 황용이 얼굴을 살짝 붉힌다.

[여기 모인 영감님들이 모두 나를 괴롭히시는데 왜 좀 도와 주지 않으세요?]

구양공자의 무예는 놀랄 만하다. 그래서  서역(西域) 일대가 그의 독무대다.  다만 
천성이 호색하여  사람들을 각처로   보내 미녀들을 모아다가  희첩(姬妾)을  삼고 
지낸다. 한가할 때  그들에게 문사(文事)와  무공을 함께  전수해 준다.  반나절은 
글을 배우고 반나절은  무예를 익히는  것이다. 그래 이들  희첩들은 동시에  그의 
여제자이기도 하다. 이번  조왕의 초청을  받고 연경에 오게  되자 그들을  동반한 
것이다. 모두 흰옷의 남장을 하게 하고 흰 낙타를 타도록 분부를 했다.
그들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무공을 고려해서 몇 대로 나누었다. 그 중 여덟 사람이 
노상에서 곽정과 강남  육괴를 만나게  된 것이다. 묘수서생  주총의 보마에  대한 
말을 듣고 그것을 뺏아 구양공자에게 바치려 했다가 실패를 하고 만 것이다.

구양공자는 자기의 희첩들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거니 했다. 황제의 후궁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황용을  보니 평생 보지도 못한 절세의  미인이라 
벌써 그 황홀함에 정신이  어지러웠는데 이제 은근히  자기를 책망하는 듯한  말을 
듣고 마음속이 나긋나긋하여 할 말을 잊고 있었다.

[전 가봐야겠어요. 혹시 저분들이 내 길을 막더라도 좀 도와 주세요, 네?]
[도와 드릴 주야 있지요. 그러나 날  사부라고 하고 영원히 나를 좇겠다고  약속을 
하십시오.]
[사부로 모시는 거야 할 수 있지만 언제나 쫓아다닐 수는 없을 것 같군요.]
[내 제자는 다른  사람과 달라 모두  여자들이오. 내가 한번  부르기만 하면  모두 
모입니다.]
[못 믿겠는걸요.]

구양공자가 휘파람을 분다. 잠시 후 대문으로 수십 명의 여인들이 몰려온다.  각기 
키가 다르고  용모가 다르지만  복장은 뜩같은  흰색이다. 구양공자가  화취각에서 
술을 마시는  동안 그들은  모두  화취각 주위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팽련호 
등까지도 이 황흘한 염복에 어리둥절하여 부러운 눈치들이다.
황용은 장자구의 주막에서 그들을 만났었다. 그 중 8명을 섬전수(閃電手)의 솜씨로 
혈을 찍어 쓰러뜨렸던  것이다. 그들의 무공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구양공자를 
자극했다가   오히려   일만   번거로와지고  말았다.   슬그머니   기회를   보아 
빠져나가겠다는 이쪽의   속셈을 알아차린  구양공자는  사람의  울타리를  쳐놓고 
황용을 건너다본다. 더욱 예뻐 보이는 황용을 가운데 두고 득의 만면한 표정이다.

[정말 그렇게 홀륭한  재주가 있으시다면 제가  사부님으로 모셔야겠어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나를 괴롭히지 않겠죠.]
[그럼 어디 한 번 재주나 겨루어 보고 나서....]
[좋아요.]
[자 어서 어디  공격을 해 봐요.  무서워할 것  하나도 없소. 나는  반격을 안  할 
테니.]
[왜요? 반격을 안 해도 나를 이길 자신이 있으세요?]
[아가씨 손에 맞는 것도 영광인데 어디다 반격을 합니까?]

뭇 사람들은 그의 경망스러움에 웃으면서도 한편 속으로는 의아한 생각을 품는다.
(아니, 이  여자의 무공이  보통이 아닌데  설렁 이  여자보다 십배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반격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무슨  요법(妖法)이라도 
있단 말인가?)

[반격하시지 않겠단 말씀을 믿을 수가 없군요. 두 손을 뒤로 묶기 전에는요.]

구양공자가 허리띠를   끌러 황용에게   넘겨 주고  됫짐을  진  채  다가와  뒤로 
돌아선다. 황용은  그의 자신  만만한 태도를  보면서 겉으로는  웃었지만  내심은 
은근히 걱정이 된다.
(이 사람이 호의로 이러는 게 아닌데 잘못하다가 걸려들면 죽는 것보다 비참해지는 
것이 아닐까? 어디 가는 데까지 가 볼 수 밖에 없다.)
허리띠를 받아 잡아당겨 본다. 금실로 짠 것이라 끊어질 것 같지 않다. 구양공자의 
손을 꼭꼭 묶고 웃었다.

[어떻게 하면 지는 거예요?]

구양공자는 오른발을 뻗어  땅에 대고  왼발을 축으로 삼아  하나의 원을  그린다. 
멱돌 바닥 위에 반 촌(寸) 길이의 홈이 파지면서 둥그런 원을 그렸다. 이렇게 원을 
그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으로 보아  그의 하체의   무공이 어떻다는 것쯤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사통천이며 팽련호까지도  탄복을 금치  못했다. 구양공자가  원 안으로  들어서며 
말문을 연다.

[누가 이 원 밖으로 나가느냐? 나가는 사람이 지는 걸로 합시다.]
[그러다 두 사람이 동시에 나오게 되면요?]
[그럼 내가 지는 걸로 하지요.]
[만일 지게 되면 다신 날 괴롭히지 않으시겠죠?]
[그야 물른이지요. 하지만 내게 지면 얌전하게 내 말에 따라야 합니다.]
[좋아요!]

황용도 원 안으로 들어섰다.
왼손은 회풍불류(廻風拂柳), 오른손은 성하재천(星河在天), 하나는 가볍게, 하나는 
무겁게, 하나는 부드럽게, 하나는 강하게 장풍을 날려 본다. 구양공자는  피하지도 
않고 몸을 비스듬히 하여 황용의 이 쌍장을 몸으로 받아 치는 것이다. 장력과 몸이 
부딪치는 순간 황용은  이제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양공자의 내공은  정말 
보통이  아니다.  반격을  하지  않겠다고   말해 놓고,   반격은 하지   않으면서 
차력(借力)을 타력(打力)으로 역이용하여 역습하는  것이다. 즉 황용이 세게  치면 
세게, 부드럽게 치면 부드럽게 다시 역습하는 것이다. 구양공자가 손을 움직이거나 
발을 든 것도 아닌데 비틀비틀 황용만  원 내에서 원밖으로 쓰러질 뻔했다. 두  번 
다시 공격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가겠어요. 원  안에서 나와서  나를 쫓으면  안 돼요.  두 사람  다 원  밖으로 
나오게 되면 자신이 지는 것으로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구양공자가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찰나 황용은 벌써 원 밖으로 나왔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이롭지 않을  것 같아 길을  재촉하여 문 밖을  향한다. 머리 위의  금환이 
번쩍이고 몸에  걸친  하얀 비단   옷자락을 나풀거리며 문   가까이 집근해서  막 
나가려는데 갑자기 전면에 커다란  물체가 공중으로부더 떨어져 내려온다.  황용이 
몸을 비스듬히  하여  발길을 멈추고   보니 태사(太師)의 의자에   앉은 덩지  큰 
장승(藏僧)이 홍포를 입은 채  의자째 날아든 것이다. 황용이  막 입을 열어  말을 
꺼내려 하는데   영지상인이 벌써  홍포 안으로부터   한 쌍의  동발(銅鉞,바라)을 
꺼낸다. 두 손을 모으는 순간 꽝 하는 소리가 나며 귀가 멀 것만 같다. 깜짝  놀라 
보니 눈앞이 번쩍이더니 동발 두개가 상하로 자신을 겨누고 날아든다. 동발의 끝이 
번쩍번쩍하는게 에리하기 짝이 없다.  맞는 날에는 몸이  세 토막이 나는  것이다. 
당황한 순간이라 피할 겨를도 없었다.

두 발로  땅을 찍어  앞으로 대들면서  오른손바닥으로 동발의  밑을 치켜  올리며 
왼발로는 다른 동발을 누르면서  두 동발 사이를  뚫고 빠져나갔다. 2개의  동발을 
가까스로 피하기는 했지만 몸은 허공을 나느라고 영지상인 가까이 접근하게  됐다. 
영지상인이 거대한   장풍을 일으키며  대수인으로 그의   몸을 후려친다.  황용은 
발길을 멈추지 못하는 듯 여전히  앞으로 날아들며 적의 가슴을 파고든다.  모였던 
사람들이 놀라 소리를 지른다. 꽃 같은 소녀가 무시무시한 영지상인의 장풍에 이제 
박살이 나는 것이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영지상인의 장풍이 그의 등을  후려치고 
황용은 마치 줄 끊긴 연처럼 집 밖으로 날아나갔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영지상인의 오른손바닥에  선혈이 낭자하고  10여  군데 
구멍이 나 있는 것이 보인다. 팽련호 등이 놀라 소리를 지른다.

[아니 저 계집애가 연위갑(軟蝟甲)을 입었구나. 그건 동해(東海) 도화도(桃花島)의 
보물인데!]
[아니 저렇게 어린 계집애가 어떻게 그 연위갑을 구해 입었지?]

사통천도 몹시  놀란 듯  소리를 지른다.  구양공자는 호색한이라  그래도  황용의 
안위를 염려하고   있다가 문  밖으로 달려가   사방을 휘둘러본다.  밖은  캄캄한 
어둠만이 짙게 깥려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는  휘파람을 
불어 여러 희첩들에게  추적하라고 명렁을 내리면서도  마음속으론 오히려  흐믓한 
미소를 머금는다.
(달아난 것을 보니 아무래도 부상은 입지  않은 모양이지, 어쨌든 내 품에  들어올 
날이 있겠지.)

[사형(師兄), 연위갑이란 무엇입니까?]

후통해가 궁금하다는 듯 팽련호에게 묻는다.

[고슴도치를 본 적이 있나?]
[그야 물론이죠.]
[그 계집애가 옷 속에  연갑(軟甲)을 입었는데 이 연갑은  창이나 칼로 뚫을  수도 
없거니와 가시가 많아 꼭 고슴도치처럼 상대방을 찌른다네. 때리거나 차거나  하는 
쪽만 골탕을 먹지!]

이 말을 들은 후통해가 혀를 내두른다.

[큰일날 뻔했군요. 그래도 제가 용케 때리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황용을 찾아 나선다.
이때 조왕도 탕조덕(湯祖德)에게 명령을 내려 군사를 이끌고 황용을 잡으라  했다. 
왕부는 벌집 쑤셔 놓은 듯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이때 곽정은 담장 밑에서 양자옹과  맞부딪치고 놀라 동서남북 살필 겨를도  없이 
컴컴한 구석을 향해 달아나고 있었다. 양자옹은 곽정을 잡아 선혈을  빨아먹겠다는 
일념에 필사적인 추적을 했다. 그러나 곽정의 공력이 여간 대단해진 것이  아니요, 
게다가 캄캄한 밤이라 쉽게 잡히지 않는다. 한참 달아나다 보니 온통 가시넝쿨이요 
울퉁불퉁한  돌자갈이  칼날처럼  깔려  있었다.  왕부  안에  이렇게  험한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달아나고 있는 곽정이 또한 그런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있겠는가? 갑자기 다리에 가시가 찔려 뜨끔 하는 찰나 한 발이 쑥  빠진다. 
아차하는 순간 몸이 허공에 뜨며 수십 장이나 떨어져 내려간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굴 속이다.  곽정은 그래도  허공에서 자세를 가다듬었기에  낙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발 아래에 미끈미끈한 둥그런 물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그만 자칫 
잘못 밟아   나둥그러지고 말았다.  몸을 일으켜   앉으며 손으로  더듬어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둥그런 물체들은 모두가  사람의 해골이 아닌가? 보아하니  이 
동굴은 조왕부가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버리는 장소인 듯했다. 양자옹이 위에서 
올라오라고 외친다. 그러나 올라갈  만큼 미련한 곽정도  아니다. 그는 손을  뻗어 
사방을 더듬어 본다.  다른 물건은  없는 것  같아 뒷걸음으로  구석을 향해  몸을 
움츠린다. 양자옹이 뛰어들기라도 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양자옹은 몇 번이나 욕을 퍼붓는다.

[네놈이 염라내왕에게 도망을 친다 해도 내 기어이 쫓아가고 말겠다.]

몸을 날려 뛰어내린다. 곽정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친다. 몸을 숨길 만한  장소의 
여유가 있었다. 그는 몸을 돌리고 두 손을 뻗어 앞을 더듬어 가며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해 보았다. 원래 그 굴속에는  지하도가 있었다. 두어 장이나 걸어  나갔을까? 
양자옹도 지하도가 있음을 발견한 모양이다. 그는 무예도 뛰어나거니와 또  대담도 
했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도 곽정의  돌격도 겁내지  않고 쫓아온다.  곽정은 
조바심이 난다.
(이러다가 길이 막히면 나는 이제 끝장이다.)

양자옹은 두 팔을 벌려 지하도의 양쪽  벅을 더듬으며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온다. 
곽정이 또 수장이나 피했다. 앞이 훤한 것이 지하도가 끝나고 하나의 토실(土室)이 
나타났다. 양자옹은 득의 만만하게 웃는다.

[요놈아, 또 어디로 달아나겠느냐?]

그런데 갑자기 왼쪽 구석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누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느냐?]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 킴컴한  동굴 속에  사람이 
있다니? 곽정의 머리끝이 뻣뻣하게 선다. 양자옹도 산전수전 수많은 경험을 했지만 
모골이 송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굴에 들어서면  죽음이 있을 뿐,  삶은 없다. 너희가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모양이로구나?]

여자의  목소리다.  말하는  숨소리가   가쁘기만 하다.   중병이라도 걸려   있는 
모양이다.

[전 잘못해서 동굴에 떨어졌습니다. 누가 저를 잡으려고 쫓아와서요....]

채 말도 끝맺지 않았는데 양자옹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소재를 파악하여 손을 뻗어 
잡으려고 대든다. 곽정은 그의  장풍 소리를 들으며  급히 뒤로 피했다.  양자옹은 
일격이 어긋나간 것을 알고 계속 장풍을 날리고 곽정은 요리조리 묘하게 피한다.

[누가 감히 이곳에서 사람을 잡으려 하는가?]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귀신인지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놀라 달아날 것 같으냐? 어림없는 수작이다.]

양자옹의 목소리다.

[흥! 여보 젊은이. 여기 나 있는 데로 와서 숨어요.]

숨을 헐떡이며 곽정을 부른다. 곽정은 그의 말을 듣고 그 쪽으로 달려갔다. 차디찬 
손이 자기의  팔뚝을  잡아당긴다. 보통  힘이  아니다. 비틀비틀  앞으로  넘어져 
볏짚더미 위로 쓰러졌다.

[지금 당신의 장풍 솜씨를  보니 보통은 아니군.  혹시 관외(關外) 무림의  인물이 
아닌지?]

여자가 숨을 할딱이며 양자옹을 향해 묻는다. 양자옹은 또 한번 깜짝 놀랐다.
(나는 보이지 않는데 저쪽에선 어떻게 내 정체를 알았을까? 암혹 속에서도  사물을 
볼 수 있는 형안을 가지고 있나? 틀림없는 강적이다.)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양자옹의 말씨가 부드러워진다.

[저는 관동삼객(關東參客), 성은 양(梁)이올시다. 이 어린 것이 내 귀중한  물건을 
훔쳐 쫓아온 것이니 막지 마십시오.]
[아, 삼선인 양자옹의 왕림이시군. 다른  사람이 모르고 내 집에 뛰어들었다  해도 
그 죄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인데, 양노괴 당신은 일파의 종사이면서도 그래  무림의 
예의도 모르다니 그게 말이나 되오?]
[귀하의 존함을 여쭙지 못했습니다.]
[나....,나요....]

곽정은 그 여자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신음하듯 하는 소리를 들으며  측은하다고 
생각한다.

[몸에 병이라도 있으신가요?]

양자옹은 곽정의   말소리를 듣고   어깨를 움직여  쌍장을  날리며  전광석화처럼 
대든다. 곽정의 앞가슴을  할퀴려고 하는  것이다. 곽정의  옷깃이 손에  잡히려는 
순간 팔에 강한 힘이 와 닿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왼손을 번쩍 들어  상대의 
어깨를 잡는다.

[꺼져라!]

여자의 외침과   함께 장풍이  양자옹의  등을 후려쳤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양자옹이 서너   발짝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내공의 덕으로  부상은  입지 
않았다. 양자옹도 화가 나는 모양이다.

[아니 이 계집이! 어디 맛 좀 봐라.]

양자옹은 여자의 할딱이는  숨소리며 신음 소리를  듣고 안심했다. 서서히  상대를 
향해 돌격을 하려는데  쉭 하며 긴  채찍이 날아 자기  다리를 칭칭 감으려  한다. 
깜짝 놀란   양자옹이 채찍   끝을 따라  몸을  허공에  날리며  오른발로  여자를 
걷어찬다. 그의 발놀림은  무림에선 유명한  것이다. 20여  년 동안이나  관외에선 
명성을 날렸다. 걷어차이기만 하면 그냥 뻗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발끝이 채 
여자의  몸에  닿기도  전  공손혈(公孫穴)이  뻣뻣해지며  아프다.  이  공손혈은 
복사뼈와 종아리가  접합하는 곳에  있다. 마혈(麻穴)에  속하며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이다.
(아니, 암혹 속에서도 귀신같이 혈을 찾아내는구나! 보통사람이 아니다.)
재빨리 발을 움츠리고 허공에서 한  바퀴 물구나무를 서며 반격의 장풍을  날렸다. 
상대가 상대라  십분 조심을  하면서 평생의  절학을 총집중한  것이다.  호흡조차 
곤란한 사람이 어멓게 막아 낼 수 있으랴? 그런데 그게 아니다. 갑자기 쉭쉭  적의 
팔이 길게 뻗으며 날카로운 손끝이 자기 어깨 위에 와 닿는다. 양자옹이  왼손으로 
막는다. 적의 팔이 차디찬 것이 아무래도 피와 살로 만들어진 사람의 육체가  아닌 
것 같다. 감히 다시 맞설  엄두가 나지 않아 땅바닥을  한 바퀴 구르고 손과  발을 
움직여 동굴 밖으로 빠져나와 긴 숨을 내쉰다.
(수십 년 동안 이렇게 괴이한 일은 당해 본 적이 없다. 정말 귀신이 있나?  조왕은 
이 사연을 알고 있겠지.)
이렇게 생각한 양자옹은 화취각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곽정은 그가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며 엎드려  여자를 향해  세 번이나  절을 
했다.

[제자는 생명을 구해 주신 은혜에 어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자는 양자옹과 대결을 한 뒤라 가쁜 숨을 내쉬다가 한바탕 기침을 했다.

[그 노괴가 왜 너를 죽이려고 했느냐?]
[왕도장께서  부상을   당해 약을   구해다가  치료해   드리려고 제자가   왕부에 
왔다가....]

혹시 조왕부에 사는 완안열 일당이 아닐까? 의심이 들어 말꼬리를 흐린다.

[응, 그래서  노괴의 약을  훔쳤구나.  나는 그가  약물에 대해  정통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네가 훔친 약이 그럼 영약이겠구나.]
[어디 부상이라도 당하셨나요? 제자가  여기 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칠(田七)과 
혈갈(血竭), 웅담과 몰약(沒藥)입니다. 왕도장께서도이렇게까지 많이는 필요없으실 
테니 혹시 필요하시면....]
[뭐 야? 누가 부상을 당해? 시건방진 녀석이로구나!]

여자가 벌컥 화를 내는 바람에 곽정이 오히려 쩔쩔맨다.

[네 네!]

그래도 계속 기침이 멈추지 않는 것을 보고 곽정은 참지 못한다.

[혹시 보행이 불편하시다면 제가 노인을 업고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누가 늙었다더냐?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어째서 내가 늙은 줄 아느냐?]

곽정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그냥 나갈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불안하다.

[그럼 뭐 필요한 물건이 있으시면 말씀하세오. 제가 나가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용기를 가다듬어 무엇이든지 도와 주려고 했다.

[그래도 네놈이 고분고분 사람은 좋은 모양이로구나.]

여자는 차디차게 웃으며  왼손을 뻗어 곽정의  어깨에 걸치고 잡아당겼다.  곽정은 
어깨가 너무 아파  비틀거리다 그의 면전으로  쓰러지듯 끌려갔다. 고개에  차디찬 
물건이 와 닿아 섬쩟한데 여자의 어깨가 벌써 목에 와 걸친다.

[나를 업고 나가라!]

그렇지 않아도 업으려고 생각했던 곽정이라 그를 업고 몸을 돌려 한 발짝 한  발짝 
지하도를 걸어나온다.

[내가 강제로 업으라고 해 억지로 업은 것이면 그만 두어라. 공연스레 남의 도음을 
받고 싶지 않다.]

곽정은 그제야  여인의 괴퍅한  성질을  알 듯했다.  동굴의 입구로  하늘의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곽정은  단양자 마옥에게서 절벽을  오르내리는 수련을  익혔다. 
우물처럼 깊은 동굴이었지만 힘 안 들이고 빠져 나왔다.

[네 그 경공은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빨리 말해라!]

목에 댄 팔에 힘을  주니 곽정은 숨이 막힐  것 같다. 곽정은 놀랍고도  당황했다. 
내력을 움직여 막으려고 했지만 여인은 고의로 그의 공력을 시험이나 해 보려는 듯 
더욱 꽉 죄다가 한참만에야 풀어 주며 묻는다.

[너 현문(玄門)  정종(正宗)의  내공까지 쓸   줄 아는 걸   보니 보통이  아니다. 
왕도장이 부상을 당했다고 말했는데 왕도장 이름이 뭐냐?]
[왕도장의 이름은 왕처일, 사람들이 그를 옥양자라고 불러요.]

등뒤 여인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한참이나 할딱거리다가 다시 묻는다.

[그럼 넌 전진  문하의 제자겠구나. 왕처일은  어떤 사람이냐? 네가  도장이라고만 
부르지 사부나 사숙이라고는 하지 않는구나.]
[제자는 전진 문하가 아니올시다. 다만  단양자 마옥 마도장께서 제자에게  호흡의 
토납(吐納)만을 전주해 주셨을 뿐입니다.]
[그럼 네 사부는 누구냐?]
[제자의 사부는  일곱  분이 계신데  사람들이  모두 강남  칠협이라고들  합니다. 
대사부께선 비천편복(飛天騙幅) 가(柯)씨입니다.]

여인의 기침 소리가 다시 자지러진다.

[그럼 가진악이로구나1]
[네.]
[넌 몽고에서 왔지?]
[네.]

대답을 하면서도 이상한 생각이 든다.
(어떻게 내가 몽고에서 온 것을 알까?)

[네 이름이 양강(楊康)이지? 그렇지?]
[아닙니다. 제자의 성은 곽이옵니다.]

여인은 한참 동안이나 침묵에 잠긴다.  손을 뻗어 품안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내보인다. 천인지 종이인지 분간할 수 없는 거죽을 벗기니 희미한 별빛 아래  반짝 
한 자루의 비수가 나온다. 곽정이 보니 몹시 눈에 익었다. 손에 들고 보니  한광이 
번쩍이는 비수 자루에는<양강(楊康)>이란 두  글자가 역력히 새져져 있지  않은가? 
자기 자신이 동시(銅屍) 진현풍(陳玄風)을찔러 죽인 바로 그 칼이다.
원래 곽소천과  양철심이  장춘자 구처기로부터  비수  한 자루씩  받고는  이렇게 
약속을 했었다. 뒷날 부인들이 아기를 낳아 둘 다 남자면 의형제를, 둘 다  여자면 
의자매를, 만약 하나는 남자요, 다른 하나가 여자라면 부부로 맺어 주기로 했었다. 
그래 둘은 서로 칼을 바꾸어  가짐으로써 맹세를 했었다. 그래서 양강이라고  새긴 
비수가 곽정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곽정이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 
여인이 칼을 채뜨려 갔다.

[이 비수를 알겠느냐?]
[네, 압니다. 제자가 어렸을 때 이 비수로 어떤 악한을 찔러 죽인 일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이 칼이....]

곽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이 꽉 죄어 와  질식할 것 같다. 위급한  나머지 
어깨를 구부리며  팔을 뒤로  뻗어 때리려고  했지만 벌써  여인의 왼손에  잡히고 
말았다. 여인이 왼손을 풀며 몸이 스르르 미끄러져 땅바닥에 내려앉는다.

[내가 누군지 똑똑히 보아라!]

어두운 밤공기를 찢는  목소리가 처참하고 무시무시하다.  곽정은 그가 목을  죄는 
바람에  눈앞에  별이  왔다갔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눈을   비비고 
바라다보니 그  여인의 긴머리가  어깨를 엎고  얼굴이 백지장처럼  흰 것이  바로 
흑풍쌍쇄 가운데의 철시인  매초풍이 아닌가? 혼비  백산하여 왼손을 힘껏  뿌리쳐 
보았지만 다섯 손가락에 꽉 잡혀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원래 흑풍쌍쇄가  당년 강남  칠괴와  더불어 황산의  밤에 싸우던  날,  진현풍은 
소미타 장아생을   살해하고 자기는   곽정의 비수에  그만  연문(練門)을  찔리고 
말았다. 매초풍은 두  눈이 먼 채  폭우가 내리는 그  밤 남편의 시체를  끌어안고 
황산에서 달아났다.

매초풍은 땅에 앉은 채 한 손으론 곽정의 목을 껴안고 다른 손은 그의 팔목을 잡고 
있었다. 10여  년이나 찾아  헤매던 남편의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고  보니 
반갑기도 하거니와 착잡한 감정이 조수처럼 밀려들며 자기 생애에 있었던 이 일 저 
일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천진 난만한 소녀였었다. 온종일  부모의 사랑 속에서  즐겨 뛰놀던 일.  그러다가 
갑자기  부모가  세상을  떠나  설움을  받고  자랐다.  사부인  황약사(黃藥師)의 
구원으로 도화도로 들어가 학예를 배웠다. 짙은 눈썹에 눈이 큰 젊은이의 그림자가 
갑자기  그녀   앞에  나타났다.   사형인 진현풍이다.   함께   무공을  익히면서 
가까와졌다. 어느 닫듯한 봄밤 복숭아꽃  만발한 나무 아래서 그는 갑자기  그녀를 
꼭꼭 껴안은 것이다.

한가닥  홍조가  매초풍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곽정은  가빠지는  그녀의 
숨소리를 들으며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매초풍은,  진현풍과 자기가  사부의 
책망이 두려워   몰래 달아나  어떻게 부부가   되었던가를 생각해  본다.  남편은 
그녀에게 반 부의 구음진경(九陰眞經)을 훔친 경위를 들려주었다. 그 뒤엔  심산의 
고련이 있었고,  산에서  나온 뒤  천하를  횡행하며 무수한  영웅호걸을  꺾었다. 
어떻게  하다가  비천신룡(飛天神龍)   가벽사(柯群邪)를 때려   죽이고  비천편복 
가진악의 눈을 멀게 해 철천지 원수가 되고 말았다.
남편 진현풍의 속삭이는 말이 귀에 맴돈다.

[여보, 구음진경은 하반부밖에 훔치지 못했소. 상반부 가운데 내공의 기초를  닦는 
비결이 쐬어 있는데 그걸 모르니 어떻게 수련을 해 나가지?]
[뭐 방법이 없잖아요.]
[우리 다시 도화도로 들어가 봅시다.]

(내 어떻게 거길  다시 들어간단 말인가?  우리 부부의 공력이  10배로 는다  해도 
사부의 두 손가락을 당하지 못할 텐데 말이다.)
남편도 생각하니 무서운 눈치다. 그러나  진경에 씌어 있는 여러 가지  기기묘묘한 
무공을 익힐 수 없는  사정이고 보니 포기할 수도  없었다. 마침내 남편은  결심을 
굳히고 말았다.

[여보, 우리가 천하 무적이 못 되면 당신은 과부가 되고 말 거요.]

과부야 될 수  없는 일  아닌가? 우리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도화도에 
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사부는 우리  둘이 달아난  것 
때문에 화가 나서 나머지 제자들의 다리를 분질러 내쫓고 섬에는 다만 그들 부부와 
몇 명의 하인들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섬에 도착하여  기괴한 일을 여러  번이나 
당했었다. 원래 사부의 강적이 사부를 찾아 성에 찾아든 것이다.
이때 서로 겨루는 무예를 보면서 우리는 간이 콩알만 해 있었다.

[여보, 우린 안 되겠어요. 달아나고 맙시다.]

남편에게 권했지만 끝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리는 사부가  그 강적을  잡아 
제압하고 그의 다리를  분지르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사모님이  내게 극진히  대해 
주시던 은혜를 생각하며 창 틈으로라도 바라다보려고 생각했지만 보이는 것은 다만 
그녀의 위패를 모신 영당(靈堂)만 보였다.  사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나는 몹시 괴로왔다. 그런데 그 영당 옆에 두 살이나 먹었을까 해 보이는 계집애가 
의자에 앉은 채 나를 보고 웃었다.  어쩌면 저리도 사모님을 닯았을까? 그의  딸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난산 때문에 죽은 것일까?
(남편이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해야지, 아기를 낳을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부는 우리의   말소리를 들었다.  영당에서  날듯 
달려나왔다. 아, 그때 나는 놀라 맥이 탁 풀어지며 꼼짝달싹할 수도 없었다.

[아빠! 안아줘요!]

계집애의 웃는 소리가 꽃처럼  피겼다. 두 팔을 벌린  채 아빠를 향해 대든다.  이 
계집애가 우리의 생명을  건져 준  것이다. 사부는 딸이  넘어지지나 않을까  해서 
손을 뻗어 안아 준 것이다. 남편은 나를 끌고 달렸다. 배에 올라타고도 두근거리는 
가슴이 가라앉지 않았었지.

이때 차디찬  바람이  불어왔다. 멀리서  부엉이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매초풍은 여전히 과거의 회상에 잠겨 있었다. 남편은 사부의 이 대전을 구경한  후 
포기하고 말았다.

[사부의 재주를 반도 배우지 못했는데 그 상대로 우리 재간 가지고는 어려운걸.]

그래서 우리는 중원을  떠나 멀고  먼 몽고의  사막에까지 가  있었다. 남편은  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진경을 누가  훔쳐가지나 않을까  근심하면서 내게조차  보여 
주지 않으려  했다. 기실  나는  그가 그것을  어디에 숨기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래요. 내가 안 보면 되잖아요.]
[다 당신을 위해서 그러는 게요. 당신이 보게 되면 꼭 수련을 하겠다고 우길 텐데, 
내공도 모르면서 수련을 하다가는 몸을 상하게 된다오.]
[그래요, 그런데 무얼 그걸 가지고 자꾸만 신경을 써요?]

그래서 남편은  내게  구음백골조와 최심장(催心拿)을   가르쳐 주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날 밤 황산에서 강남 칠괴가 나를 포위했던 것이다.

[내 눈! 내 눈!]

진통의 연속이있다. 내 운기로 독약을 제어하여 목숨만은 잃지 않았지만 눈이 멀고 
남편을 잃었다. 그것은 인과응보다. 장아생을  죽이고 가진악의 눈을 멀게  만들지 
않았던가?
매초풍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두 손에 자기도,  모르는 힘이 주어졌다.  곽정은 
당황했다.
(이러다간 내 오늘 죽고 마는가보다. 어떤 잔인한 방법으로 나를 죽일지 몰라?)

[여보세요, 나도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죽기 전에 부탁이 있으니  이것만은 
들어주세요.]

매초풍을 향해 애걸해 본다.

[그래 무슨 요구인지 말해 봐라!]

매초풍의 차디찬 대답이다.

[그래요. 제 몸에 약이 있는데 이걸 서성 밖의 안우(安寓) 객점에 계신 왕도장에게 
전해 주세요.]
[내 평생 착한 일 해 본 적 없다!]

자기 생애에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헤아릴 수  없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았는지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  밤 황산의  일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하여 별 하나 볼 수 없었지. 남편은 말했다.

[나는 틀렸소! 진경의 요결은 이 이 가슴....]

그가 남긴 최후의 말이었다. 갑자기 큰 비가 퍼부으면서 강남칠괴는 맹렬하게 나를 
공격했다. 그러다가 등에 장풍을 맞았다. 어찌나 센 내력인지 뼛속까지  아팠었다. 
나는 남편의 시체를 안고  산 아래로 피해  달아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었지! 
이상하게도 그들은 내  뒤를 쫓지 않았있다.  아 참! 비가  그리도 억세게  내리고 
있었으니 그들도 나를 볼 수 없었딘 것이다.
나는 빗속을 뛰었다. 그때  남편의 몸은 그래도  따뜻한 체온이 있었지!  그러다가 
점점 식어지고 말았다.  그땐 내 마음도  꽁꽁 얼어붙는 듯  했었다. 나는  전신을 
바들바들 떨었었다. 정말 추워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여보, 정말 죽은 거예요? 당신과 같은 절세의 무공을 지니고서도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것인가요?]

나는 그의 배꼽에 꽂힌 비수를 뽑았다. 선혈이 낭자하게 뿜어나왔다.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  사람을 죽이려면  피를 봐야지!  나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던가?
(이젠 끝장이다. 나도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해! 여보라고 다정하게 불러 줄  사람도 
없는 쓸쓸한 세상 살아 무얼 한담!)
비수의 날카로운 끝이 내  목에 와 있었다. 그곳은  내 연문이 있는 곳이다.  그때 
나는 비수에 새겨진 글씨를  만지게 된 것이다. 자세히  더듬어 보니 양강이란  두 
글자였었다.
음, 내 남편은  양강이란 사람이  죽인 것이다. 이  원수를 갚지  않을 수야  없는 
일이었다. 양강을 죽이기 전에 내 어찌  먼저 죽는단 말이냐? 그래서 나는  남편의 
가슴을 더듬어 진경의 비밀을 찾으려  했다. 아무리 더듬어 봐야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빈틈없이 더듬어 보다가 마침내 그의 가슴의 피부가 이상함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떠올린다. 곽정은 소름이 끼치는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매초풍의 마음은 여전히 사막을 헤매고 있었다.

큰비를 맞고 전신이 훔뻑  젖어 있었다. 그러나  몸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자세히  더듬어 보았다.  그의  가슴엔 바늘로  찌른 무수한  글자와  도형이 
수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음진경의 비결이었다.
(진경을 누가 훔쳐갈까 봐 이렇게 몸에 새기고 원경은 태워 버렸군요.)
그랗다. 사부같이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우리에게  빼앗겼는데,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그 누가 훔쳐가지 말란  법은 없겠지? 당신의  생각은 
그랬군요.
(사람이 진경 속에 있으니 사람이 죽으면 진경도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비수로 그의  가슴의 가죽을 도려 낸  것이다. 이걸 잘 보관해야  해. 
썩으면 곤란하니까. 그래서 나는 늘 그것을 간직하고 다녔다.
이때 나는 상심하지도 않고 웃으며 당신을 내 두 손으로 깊숙이 묻었었지.  당신이 
일러 준 구음백골조. 나는 그 재주를  발휘해 땅을 파고 당신을 안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강남  칠괴에게 발각되지  않을까  해서 산골에  숨었었다.  지금은 
그들의 상대가 아니다. 내가 무공의 수련을 끝낸 다음, 흥! 내 본때를 보여 주고야 
말리라! 내공을 모르면 몸을 상한다? 상하면 상하라지, 언제고 나는  연공(練功)에 
성공하고야 말리라.
이틀이 지났다.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대대의 인마가 지나는  소리가 
들렸었지. 그들은  대금국의  여진(女眞) 말을  했다.  나는 걸어나와  먹을  것을 
달라고  구걸했다.  부대를  인솔하고  가던  왕이  나를  불쌍히  여기고  거두어 
중도(中都)의 왕부로   데리고 왔다.  뒤에야 알았지만   원래 이  왕은  대금국의 
육태자인 조왕이었던 것이다. 나는 후원의  꽃밭을 청소해 주며 밤에만 몰래  숨어 
무공을 익혔다.  이렇게 몇  년을 계속해도  아무도 몰랐지.  그들은 불쌍한  장님 
하인으로만 알았다.

그날 밤, 아이 어쩌다 그 까불이 왕자가 밤에 후원에 새알을 꺼내러 나왔다가 그만 
보고 만   것이다. 내가  은채찍을  익히는 것을   보고 졸라  대니  견딜  재간이 
있어야지. 서너 개의 솜씨를 가르쳤는데  금방 배웠다. 어찌나 총명한지  가르치는 
사람이 신바람이 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했던 것이다.
계속 무공을 가르쳐  주었다. 만일 왕이나  왕비에게라도 발설하는 날에는  왕자의 
천령개를 찔러 죽일 생각까지 했다.
다시 몇 년이  지난 뒤 조왕이  몽고에 간다는 소식을  왕자가 내게 전해  주었다. 
그래서 남편의 묘지를 찾아  제사나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결국 
왕자의 애원을   받은 조왕은  마침내  허락을 내렸다.   물론 남편의  뼈가  어디 
묻혔는지 알수 없는 일이다. 다만 강남 칠괴를 찾아 원수를 갚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재수 사납게도  전진교 칠자는  모두 몽고에 있었던  것이다. 눈먼  장님이 
어떻게 그   7명을 상대해   싸울 수  있었겠는가?  단양자  마옥의  내공은  정말 
훌륭했었다. 전연 힘도 들이지 않고 목소리를 멀리멀리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몽고행이 허탕만은 아니었다. 그  마옥이 내가 묻는 말에 엉겁결에  대답해 
준 한 마디가  내공의 진곁(眞訣)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이다. 아이,  이 
내공은 정말 혼자 익혀서는  안돼. 혼자 맹렬히 익히다가  그만 자칫 실수를  범해 
단전(丹田)으로 올라온 기운(氣運)을 되돌려 내려 보내지 못하고 반신 불수가 되고 
만 것이다. 그  뒤 나는  왕자가 나를 찾아오는  것을 피했다.  만약 곽정이  동굴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굶어  죽고 말았을 것이다.  흥! 이건 남편의  혼백이 
곽정을 시켜 나를 구출케 해 주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자기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말이야. 하하하, 아하하 하하!



第 二十二 章. 나타난 강남 육괴


남편의 원수를  비로소  갚게 된   매초풍은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몸을  떨다가 
오른손에 힘을  주어 곽정의  목을 비튼다.  곽정도 죽느냐  사느냐의  고비길이라 
매초풍의 손을 잡아 나꿔챘다. 수년동안이나 마옥의 현문 정종을 익혔고 게다가 뱀 
피를 복용한 뒤라 곽정의 솜씨도 옛날의 그것이 아니었다. 매초풍의 오른손이 풀려 
나갔다.
(아니, 이 녀석의 공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세 차례나 곽정을 틀어잡으려 했지만 쉽게 잡히지 않는다. 매초풍이 길게 휘파람을 
불며 무서운  장풍으로 곽정의  정수리를 내리친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유명한 
최심장(催心掌)이다. 곽정의 공력이  아무래도 매초풍을 따를  수는 없다.  게다가 
왼손을 잡히고  있으니 행동이  부자유스럽다. 혼신의  기력을 오른손에  집중하고 
막는다. 손과   손이 부딪치는  찰나 매초풍은   어깨가 뜨끔함을  느끼며  전신이 
달아올라 즉시 손을 거둔다.
(나는 선생도 없이 혼자  내공을 익히다가 반신 불수가  되고 말았는데 이  녀석은 
정통파의 내공을 익혔으니 어디 한 번 물어나 보자.)
다시 손을 뻗어 곽정의 목을 껴안는다.

[네가 내  남편을 죽었으니  살려 줄   수는 없다. 그러나  내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하면 고통없이 죽이겠거니와 만일 거짓을 아뢰면 비참하게 죽이리라.]

곽정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다.

[단양자가 네게 내공을 전수할 때 취한 자세는 어떤 것이냐?]

(아! 내게 내공을  전수해 달란  수작이구나.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이  요부의 
공력을 높여 줘? 어림없다.)
눈을 감고 묵묵 부답이다. 매초풍이 왼손에 힘을 주자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뼛속을 
파고든다.

[현문의 진전(眞傳)을 배우고 싶은 눈치지만 그만 두시오.]
[내 그 약을 꼭 왕처일에게 보내 생명을 구하도록 하마.]

손의 힘을 늦추며 목소리조차 부드러워진다.

[좋아요. 그러나   내게 맹세를  해야  합니다. 그럼   내 마도장께서  전수해  준 
법문(法門)을 말하리다.]
[그래 그래, 전진교 내공의 법문을 들려준 뒤에도 내가 왕처일에게 약을 전해 주지 
않을 것 같으면 나는 병신이 되어 평생토록 고생할 것이다.]

이렇게 맹세를 하는데 10여 장 떨어진 곳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요놈의 계집애, 나와서 내 손에 죽어라!]

들어 보니 삼두교 후통해의 목소리다.

[그 계집애 이 근처에 있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달아나지 못할 테니.]

또다른 사람의 목소리다. 이렇게 말을 주고받으며 저쪽으로 사라진다. 곽정은 깜짝 
놀란다.
(용아가 아직도 여기 어디 있는 모양이로구나.)
그래서 매초풍을 향해서 다시 말을 건다.

[또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만일 대답해 주지 않으면 아무리 나를 괴롭힌다 해도 그 
비결을 알려 주지 않을래요.]
[또 무슨 일이냐?]

매초풍이 벌컥 화를 낸다.

[내 친구가 하나 있는데 여자예요. 지금 저 두 사람이 바로 내 친구를 쫓고 있는데 
좀 구해 주세요.]

매초풍이 <흥> 하고 코방귀를 뀐다.

[그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알 수가 있느냐? 잔소리 말고 빨리 얘기를 해라!]

다시 손에 힘을 준다. 곽정은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살리고 안 살리는 건 당신에게 달렸지만, 말을 하고 안 하고는 내게 달린걸요.]
[그래 좋다. 네 녀석 말을 들어주마. 이 매초풍이 천하를 횡행하다가 오늘 네 녀석 
앞에서 오금을 못 쓰는구나.]
[용이 이쪽으로 와요. 용이....]

곽정이 목소리를 높여 황용을 부른다. 이때 황용이 옆에 있는 찔레꽃 틈에서  빠져 
나왔다.

[나 벌써 여기 와 있었는걸요.]

곽정은 반가왔다.

[용이 빨리 와. 이분이 구해 주시겠다고 했어. 아무도 괴롭히지 못할 거야.]

황용은 찔레꽃  숲속에서 곽정과  매초풍의 얘기를  다 엿들었다.  생명의  위험도 
돌보지 않고 자기를 걱정해  주는 곽정이 고마와 두  줄기 눈물이 볼 위에  뒹굴고 
있었다.

[매약화(梅若華), 빨리 손을 놔요.]

매초풍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매약화는  매초풍의  어렸을 때의  본명이다.  이 
강호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수십  년 동안  들어 보지  못했던 이름을  들은 
것이다. 매초풍은 기절 초풍이다.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린다.

[넌 도대체 누구냐?]
[비단구러미 속에도 칼은 숨겨 있는 법, 내 성은 황이오.]

매초풍은 더욱 놀란다.

[뭐라구? 네가...., 네가....]
[왜    그래요?     동해    도화도.     적취봉(積翠峯)이며,    퇴운동(堆雲洞), 
시검정(試劍亭)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겠죠?]

이곳들은 매초풍이 무예를 배우며 뛰놀던 곳이다.

[황약사, 황사부는 너와 어떤 관계냐?]
[아직도 제 아버님을 기억하고 계시군요. 우리 아버지도 아직 당신을 잊지  못하고 
계시죠. 그래서 직접 보러 오셨어요.]

애초풍은 벌떡   일어나 서려고  했다. 그러나   하반신이 불구라  꼼짝도  못하고 
혼비백산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빨리 그를 놔줘요.]

황용이 재촉하는 소리다.

[흥, 사부가   도화도를 떠나  본  일이 없는데   어떻게 여기  나타난단  말이냐? 
어림없는 소리다.]

황용은 그너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자 왼발로   땅을 찍으며  1장여나  뛰어올라 
허공에서 두 바퀴나 맴을 돌고 장풍을 날려 매초풍의 머리를 노렸다. 바로  최심장 
중의 붕박구소(鵬搏九 )라는 것이다.

[당신이 진경(眞經)을 훔쳤으니 이 재주도 배웠겠지?]

이를 본 매초풍은 더 의심할 수 없었다. 손을 들어 막으며 말을 꺼낸다.

[사매(師妹), 할 말이 있거든 말로 할 일이지, 그래 사부님은?]

황용은 땅으로 떨어져  내리며 곽정을  끌어 당겼다. 황용은  원래 도화도  도주인 
황약사의 무남독녀다.   어머니는 황용을  낳을 때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고  또 
황약사가 제자들을 섬에서 축출한 뒤 그들  부녀 두 사람만 서로 의지하고  외롭게 
지냈다. 황약사가 워낙  딸을 애지  중지 사랑했기 때문에  어딘가 모르게  버릇이 
없어 보인다. 그녀는  총명하기 그지없지만 무예에  대해선 그렇게 열심히  배우려 
들지 않았다. 또 나이도 아직은 어린 편이다. 그래서 부친은 일대의 종주요,  무공 
또한 지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딸은 아직 입문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날 그녀는 섬 안을 이리저리 뛰놀며 다니다 부친의 적이 갇혀 있는 굴  어귀에 
왔다가 그와 말을 주고받게 되었다. 그녀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술을 좀  가져다가 
준 것이 부친께 발각되고 말았다. 부친은 엄하게 그녀를 책망했다.
황용은 여태까지   이렇게 심한  꾸지람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서럽다  못해 
아버지가 미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뗏목을  훔쳐 타고  도화도를  빠져나와 
가난한 거지 소년으로 번장하고 이곳저곳 다니다가 장자구에서 곽정을 만나 친하게 
된 것이다. 황용은  아버지로부터 진현풍과  매초풍의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자기의 공력이 매초풍에게 미치지 못함을  자신도 안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온 
것처럼 꾸며 말했다. 매초풍은 그 말을 듣고 엉겁결에 곽정을 잡았던 손을 놓고 만 
것이다. 매초풍은 생각했다.
(사부가 여기에 오셨다니 어쩌면 나를 죽이실지 몰라.)
황약사의 성격이 난폭하고 수단이 악랄한  것에 생각이 미치자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고   전신이 바들바들  떨렸다.  눈이 멀어   앞은 보이지  않지만  꼭 
황약사가 노란 두루마기를 입고 어깨에 칼을 맨  채 자기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것만 같다.  전신이 나긋나긋하고  맥이 탁  풀려 땅에  꿇어 엎드린  채 두  손을 
비빈다.

[제자의 죄 만  번 죽어 마땅하오나  사부님은 제자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두 
눈은 멀고 게다가 반신불수까지 되었나이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옵소서.]

곽정은 매초풍이 황용의 아버지  이름을 듣고 이렇게  쩔쩔매는 꼴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황용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곽정의 손을  잡은 
채 담 밖을  가리켰다. 둘이  담을 넘어  왕부를 뛰쳐  나가려고 하는데  등뒤에서 
휘파람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부채를 든 구양공자다.

[이젠 내 안 속지!]

황용은 구양공자의 무공이 대단함을 안다.  정말 자기를 잡으려 든다면 자기는  독 
안에 든 쥐다. 순간적으로 생각을 돌려 매초풍을 향해 말문을 연다.

[매사자(梅師姉)! 아빠는 내 말을 제일 잘 들으셔요. 내가 대신 용서를  구할께요. 
그러나 공로가 있어야죠. 그럼 아빠께서 용서하실 거예요.]
[무슨 공로를 세우면 되지요?]
[못된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데 내가 지는  척할 태니 나서서  쫓아 보내  주세요. 
잠시 후 아빠가 오셔서 나를 돕는 걸 보시면 기뻐하실 거예요.]

매초풍이 이 말을 들으니 살 것만 같았다. 이때 구양공자가 벌써 4명의 여제자들을 
데리고 그들 앞에  다가왔다. 황용은  곽정을 잡아당겨  매초풍의 등뒤에  숨었다. 
그가 구양공자와 다투는 틈을 다 달아날 생각이다. 구양공자는 땅바닥에 앉아 있는 
거무튀튀한 매초풍쯤  안중에도 없었다.  부채를 휘두르며  대들어 황용을  잡으려 
했다. 이때 돌연 강풍이 자기 가슴을  엄습했다. 땅바닥에 앉은 노파가 손을  뻗어 
할퀴려 든다. 어찌나 빠르고 매서운지 평생 당해 본 일 없는 돌격이다. 깜짝  놀라 
부채를 뻗어 그의 완골(腕骨)을  찌르며 몸을 번쩍  날려 피했다. 뿌지직,  아이쿠 
비명소리가 들렸다.  구양공자는  놀랍고도 창피했다.  옷깃이  한 쪽  북  찢기고 
부채는 벌써 두동강이 나고 만 것이다.
4명의 여제자들이 땅에 뻗어 쓰러져 있다. 몸을 숙여 살펴보니 벌써 죽었다.  모두 
천령개(天靈蓋)가  구음백골조(九陰白骨爪)에  할퀴었다.   5개의 손가락   자국이 
깊숙이 박혔다. 적의 솜씨가  어찌나 빠르고 악독한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기가 
막힌 재주다. 사실 구양공자의  무공도 보통은 넘는다.  방금 방어에 신경을  쓰지 
않아 실수를 했을 뿐이다. 물론 그의 재주가 매초풍에 비할 바는 아니라  하더다도 
매초풍이 하반신을 쓰지 못하기 때문에  둘의 실력은 엇비슷한 처지다. 화가  치민 
구양공자는 독특한   신타설산장(神駝雪山掌)을 펴  사면팔방으로  매초풍을  향해 
진격했다.

매초풍의 구음백골조도  숙달될 대로  숙달되었다. 두  팔꿈치를 마음대로  줄였다 
늘였다 자유자재다.   골격에서 나는  우두둑 소리를   들으며 구양공자도  함부로 
접근을 못하고 있다.  황용이 곽정을 잡고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후통해의 쌍강장 날아왔다. 그는 황용이 연위갑(軟蝟甲)을 입은  줄을 
알기 때문에 주먹으로 얼굴을 공격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통천, 양자옹, 팽련호 
등이 속속 몰려왔다.  이때 완안열도  아들의 급보를 듣고  왕비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친병들을 소집, 부자  둘이 왕부를 벗어나  수색을 폈다. 조왕부는  안팎으로 
벌컥 뒤집히고 만 것이다. 양자옹은 구양공자의 옷이 찢어지고 중의가 드러난 것을 
보며 방금 굴 속에서 당한  분풀이라도 하려는지 소리를 지르며 공격에  가담했다. 
사통천 등은 매초풍의 무시무시한  재주를 보고 옆에서  눈치를 보아 대들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황용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요리조리  피하고 있으니  후통해는 
연방 헛손질이다. 옆에 있는 매초풍은 동시에 2명의 고수들의 진격을 받고  수세에 
몰리다가 팔꿈치를 돌려 곽정의 등을 잡았다.

[내 두 다리를 안아 줘!]

곽정은 왜  그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얼른 매초풍의  다리를  껴안았다. 
매초풍은 왼손으로 구양공자의 장풍을 막으며 오른손은 양자옹을 향해 내뻗는다.

[나를 안고 저 양가를 쫓아라!]

(아!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그랬구나!)
눈치를 챈 곽정이 어깨 위에 매초풍을 앉힌 채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섰다 하며 적을  맞아 싸운다. 곽정의 경신술이 원래  훌륭한데다 
매초풍의 몸이 무겁지  않아 어깨  위에 을려 앉히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매초풍이 고지에서 아래로 공격하는 곁과가 되어 더 한층 유리했다. 매초풍은 
그래도 내공의 비결이 궁금한지 적과 싸우면서도 곽정에게 묻는다.

[내공을 익힐 때 자세는 어떻게 취하는 것이냐?]
[정좌(正坐)를 하고, 오심(五心)은 하늘을 향해야 해요.]
[오심이 하늘을 향하다니 무슨 말이냐?]
[두손의 장심(掌心), 두발의 장심, 머리 위의 두심(頭心)을 오심이라 해요.]

매초풍은 기뻤다. 정신을 가다듬어 양자옹의 어깨를 잡아 할퀴니 선혈을  낭자하게 
흘리며 펄쩍 뛰어 피한다.  어깨 위에 매초풍을 앉힌  채인 곽정이 계속  양자옹을 
추적하며  보니  귀문용왕  사통천이  후통해를  도와  황용을  잡으려  뒤쫓는다. 
매초풍을 어깨에 앉힌 채 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달린다.

[우선 저 둘을 해치워요!]

매초풍이 왼쪽 팔을 뻗어  후통해의 둥을 할퀴려 든다.  깜짝 놀란 후통해가  몸을 
움츠리며 한 자나 뒤로 피했다. 그러나 매초풍은 팔을 엿가락처럼 마음대로 뻗었다 
오므렸다 하는 것이다.  원숭이가 팔을  놀리듯 움츠린 후통해의  등을 따라  팔을 
뻗어 움켜잡고 말았다. 번쩍 치켜  들면서 오른손 다섯 손가락을 그의  천령개에다 
꽂으려 한다. 후통해는 전신이 뻣뻣해짐을 느끼며 옴쭉달싹 못 했다.
깜짝 놀란 사통천이  몸을 날려  매초풍의 공격을  막는다. 두  사람의 팔과  팔이 
접촉하는 순간  둘  다 깜짝   놀란다. 서로의 팔이   뻣뻣해졌기 때문이다.  이때 
왼쪽으로부더 쉭쉭  소리를 내며  팽련호가 날린   금전연표(金錢連鎌)가 매초풍을 
향해 날아왔다. 매초풍은  후통해를 전표가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집어  던진다. 
<아이쿠!>하는 비명 소리에 후통해가 전표에  맞았다. 이를 본 사통천이  후통해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  묵사발이 될 것을  우려하면서 훌쩍 몸을  날리며 손을  뻗어 
후통해의 허리를   받쳤다. 후통해의  몸이 연처림   날아오르다 가볍게  땅  위로 
내려앉았다.

매초풍이 후통해를 집어 던진 것이나 사통천이  사제를 구해 준 것이나 모두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후통해의 몸이 아직도 허공중에 머무르고 있는 사이 
팽련호의 전표가 속속 날아오고 동시에 구양공자, 앙자옹, 사통천이 앞 뒤  옆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매초풍은 날아오는  수십 개의  전표를 손톱으로  퉁겨  구양과 
양,사,팽 네 사람에게 되날려 보내며 곽정에게 묻는다.

[찬족오행( 簇五行)이란 무슨 뜻이냐?]
[동혼지목(東魂之木) 서백지금(西魄之金) 남신지화(南神之火)  북정지수(北精之水) 
중의지토(中意之土)를 일컫는 말이오.]
[그럼 화합사상(和合四象)과 오기조원 (五氣朝元)이란?]

곽정은 아는 대로 다 들려준다.
<화합사상> <오기조원>  등에 행공(行功)의  관건이 달려  있는 것이다.  구음진경 
가운데 흔히 나오는 말이지  구체적인 설명은 씌어 있지  않다. 매초풍이 10여  년 
동안 곰곰 생각해 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마.  이제 곽정이 일러  주는 
말을 듣고 나니 이해가 간다. 하늘을 날듯 기뻐 죽을 지경이다.

[그럼 삼화취정(三花聚頂)은?]

무공을 익히다 하반신  불수가 된  것도 바로  이 점을  몰랐기 때문이다.  곽정의 
대답에 온 신경을 모았다.
아뿔싸! 그의 적수 네  사람이 모두 뛰어난  고수들이다. 매초풍의 신경이  곽정의 
대답에 쏠린  사이  왼쪽 어깨와   팔이 구양공자와 사통천이   날린 장풍에  맞고 
말았다. 비록 횡련(橫練)의  무공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무서운 통증이 견딜  수 
없이 몰려왔다.  황용은 원래  매초풍이  그들과 상데하는  틈을 다  곽정과  함께 
빠져나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곽정이 저렇게 움쭉달싹할  수 없으니 조급해  발만 
동동 구른다. 다시 수초를 겨루었지만 매초풍은 완전히 수세에 몰리고 있다.

[어째서 이렇게 대단한 고수들을  건드려 놓구 나를  곤란케 만드는 거야?  도대체 
사부님은 어떻게 되셨지?]

매초풍은 난처했다. 차라리  지금쯤 사부라도 오셔서  자기가 황용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을 보시면 4명의  상대를 쫓아보내 주시련만, 소식도 없다.  그러나 
또 한편 사부의 위인이나 성품을 생각하게 되면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한다, 다시는 
만날까 늘 두려워한 사부가 아니던가?

[곧 오실 거예요. 여기  네 사람이 뭐 상대가  되나요? 땅에 앉아서 해봐요.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텐데 공연히 서서 애를 먹어요.]

황용이 매초풍을 이렇게 추켜세운다. 혹시 그 말을 믿고 곽정을 놓아 주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나 매초풍은 여전  곽정을 곽잡은 채다.  다시 또 한참이나  싸우는데 
양자옹이 대갈 일성 반공에 뛰어오른다. 매초풍은 좌우의 들격을 받으며 두 어깨와 
팔목을 휘두른다.  그런데 그의  긴 머리를  양자옹이 틀어  잡고 당긴다.  황용이 
매초풍의 위급함을 보자 장풍을 날려 양자옹의 뒷 등을 쳤다. 양자옹은 손을  돌려 
막으며 왼손은 여전히 매초풍의 머리를 틀어 잡아당겼다. 매초풍이 다섯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한 번 긋자  긴머리가 칼로 자른 듯  잘려 나간다. 순간 장풍을  날려 
양자옹을 친다. 양자옹은 반공 가운데 몸을 비스듬히 날려 피한다.
팽련호는 그를 몇 차례 공격하는 가운데 그가 바로 혹풍쌍쇄 가운데의  매초풍임을 
알았다. 뒤에 또 황용이 그를 도와 공격하는 것을 보고 욕을 한다.

[계집애가 흑풍쌍쇄의 문하가 아니라고 하더니 새빨간 거짓말이었구나.]
[그래 매초풍이 내 사부란  말이에요? 어림없는 소리. 백  년을 더 공부해도  나를 
따를 수 없어요.]

팽련호는 그녀의   무공이나 재주가  매초풍과 비슷함을   보았다. 그러나  말투가 
불경하기 짝이 없다. 까닭을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다.

[사람을 쏘려면 우선 말부더 쏴야한다(射人先射馬)!]

사통천이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곽정을 발길로 찬다. 매초풍이 깜짝 놀란다.
(이애의 무공이 아직 서툰데, 걷어차여 다치는 날엔 난 꼼짝할 수 없게 된다. 그럼 
만사는 끝장이다.)
몸을 숙여 사통천의 다리를  할퀴려 든다. 그가 몸을  숙이는 것을 본  구양공자가 
장풍으로 그의 등을 후려친다. 매초풍이 <흥>하고 코방귀를 뀐다. 오른손을  턴다. 
백광이 번뜩이며 독룡(毒龍)처럼 긴 채찍을 내둘러 춤을 추기 시작했다. 네 사람이 
동시에 몰린다. 팽련호는 생각했다.
(이 눈먼 할망구를 먼저 해치워야지, 그의 남편이 오는 날에는 더 시끄러워진다.)
원래 진현풍이 황산에서 죽은 일을 대 중원의 무림에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매초풍의 독룡은편(毒龍銀鞭)은   무시무시한 외문(外門)의  병기이다.  6장(六丈) 
내에서 얻어맞기만   하면 즉사한다.  그러나  사통천,팽련호,양자옹,구양공자  네 
사람이 어떤 인물이냐? 순간적으로 몰리기는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편법(鞭法)의 
위험한 소재를  파악했다. 팽련호가  휘파람을 불고  땅에 엎드려  데굴데굴  굴러 
접근해 들어간다.   매초풍은 세  사람을 상대하느라   미처 땅바닥으로  굴러오는 
상대를 의식하지 못했다.
곽정이 놀라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알아차렸다. 그대로 방치할 매초풍이  아니다. 
즉시 왼팔을 길게 뻗어 팽련호를 할퀴려 든다.
황용은 위급한 매초풍을 위해 손을 써보고 싶었지만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다들 손을 멈추고 내 말 좀 들으세요.]

소리릍 질렀지만 팽련호  등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다시 목소리를 높여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이때 담 위에서 웬 사람의 말소리가 들러왔다.

[다들 손을 멈추고 말을 들으시오.]

깜짝 놀란 황용이 고개를  돌리니 높고 낮게 여섯  사람이나 담위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캄캄한 밤이라 얼굴은 식별할 수  없었다. 팽련호 등도 누군가가 온  줄은 
알았지만 손을 거두려 하지는 않았다.
담 위의  두 사람이  펄쩍 뛰며  내려왔다. 하나는  손에 부드러운   채찍을, 다른 
하나는 멜대(扁擔)를   들고 구양공자를  향해 돌격이다.   부드러운 채찍을  쓰는 
땅딸보가 먼저 입을 연다.

[이 색마야, 어디로 달아나겠니?]

말소리를 들은 곽정이 반가와 어쩔 줄 모른다.

[사부님! 빨리 이 제자를 구해 주셔요.]

이 여섯 사람은  다롭아닌 강남 육괴었던  것이다. 그들이 북도(北道)에서  곽정과 
작별을 한 뒤, 백타산(白駝山)의 여덟 여자의 뒤를 밟았었다. 그날 밤  구양공자는 
희첩들을 데리고 양가집 규수를 겁탈하려고 대들었다. 의협심이 강한 강남  육괴가 
방관할 리 없다. 그래서 한바탕 악전 고투가 벌어졌다. 구양공자의 무공이  그들에 
비해 손색은  없지만  6명을 당해  낼  도리는 없었다.  가진악(柯鎭惡)의  암기에 
얻어맞고 주총(朱聰)의 발길에 걷어차이고 나서 거의 손에 넣었던 규수를 포기하고 
달아났다. 그를 돕던 희첩들  가운데 2명이 남희인(南希仁)과  전금발(全金發)에게 
살해당했다. 월녀검(越女劍) 한소영(韓小瑩)이 규수를  업고 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뒤 그들은 계속해서 구양공자의  뒤릍 쫓았다. 그런데  종내 그를 찾지  못했다. 
육괴는 단독으로  구양공자와 맞설수  없음을 알고  분산하지 않고  함께  다녔다. 
그러나 흰 낙타를 타고 다니는 그들의 복장이 너무나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였다. 
그래서  길에서  계속  물어  가며  이  왕부까지  쫓아오게  된  것이다.  캄캄한 
밤이라지만 구양공자의 흰옷이 너무나  또렷했다. 그래서 한보구와 남희인이  대든 
것인데 곽정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독룡은선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철시 
매초풍이 아닌가?  그는  곽정의 어깨에  올라단  채다. 한소영의  매초풍에  대한 
복수심은 바다보다 깊다.  칼을 빼들고 대들고  전금발도 땅바닥으로 굴러  들어가 
곽정을 구출하려고 든다.  팽련호 등은  갑자기 나타난 여섯  사람이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구양공자에게도  대들고 또  매초풍에게도 공격을  퍼부으니 
도대체 적인지 친군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팽련호는  곤을 멈추고  굴러서 
빠져 나오며 소리를 지른다.

[다들 손을 멈추고 내 말을 들으시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큰 종을 치는 듯 듣는 사람들의 귀가 윙윙 울리기까지 한다. 
양자옹과 사통천이 우선  물러섰다. 가진악도 그의  목소리를 듣고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생각하고 소리를 지른다.

[자, 우리도 손을 멈춥시다!]

한보구 등도 큰 형님의  말을 듣고 물리서고, 매초풍도  채찍을 거두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황용이 매초풍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건다.

[이번에 정말 공로를 세웠군요.]

동시에 곽정을 향해 매초풍을 집어 던지라는 손짓을 했다. 곽정도 눈치를 했다.

[기화위신(氣化爲神)이요, 신화위허(神化爲虛)예요. 분명히 기억하세요.]

두 손으로 매초풍을 번쩍 집어 멀리 던지며 날쌔게 몸을 뺀다. 그의 몸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번쩍번쩍  갈고리가   낚시처럼 구렁주렁   매달린  독룡은편이 
날아든다.  깜짝  놀란  한보구가  금룡편(金龍鞭)을  내휘두른다.  2개의  채찍이 
얽혔는가 하는  순간 어이없게도  금룡편이 독룡은편에  말려 손에서  빠져나갔다. 
매초풍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순간  손을 뻗어  가볍게 땅바닥에  내려섰다.  그는 
가진악의 목소리 등으로 그들이 강남 칠괴임을 알았다. 증오가 불다오르며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딘 원수들이  나타났구나!  다른  날이라면  얼마나 
좋으랴만 오늘  내  강적의 협공을   받고 있는  이 마당에   일곱 명의  마귀까지 
끼어들어 놨으니 내 이제 오늘 죽는가보다!)
이를 부드득 갈며 결심을 내렸다.
(양자옹 등과 내가 철천지  원수가 아닌 바에야 강남  칠괴와 더불어 생사를  겨룰 
수밖에 없다.)
손에 독룡편을 쥔 채 칠괴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칠괴 가운데 육괴만 온 모양인데 하나는 어디 숨어 있을까?)
소미타가 자기의 남편에게  살해된 줄  모르는 매초풍이다.  강남 육괴와  사통천, 
곽정 등이  모두 그의  독룡편이 무서운  것을 알고  멀찌기 떨어진   채 순간적인 
정적만 흘렀다. 묘수서생 주총이 귀엣말로 곽정에게 묻는다.

[곽정아, 왜 저들이 싸우고 있느냐? 그리고 넌 어째서 저 요부를 돕고 있느냐?]
[저들이 저를 죽이려 하고 이 여자가 나를 구해 주고 있었어요.]

주총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팽련호가 먼저 말을 꺼낸다.

[뉘신데들 이 밤 왕부에 뛰어들었습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제 성명은 가진악이라 하오. 우리 일곱 형제를 강호에선 강남칠괴라 릅니다.]
[아! 강남 칠협, 반갑습니다.]

팽련호가 이렇게 말을 받자 사통천이 벌컥 괴성을 발한다.

[칠괴가 저절로 찾아들었으니  이 사통천이  별러 왔느니라.  칠괴의 위명이  정말 
어떤지 구경 좀 하자.]

그는 칠괴라는  말을 듣자  4명의 제자가  곤욕을 당했던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서 팽련호의 앞을 막고 나섰다.  구양공자와 육괴 그리고 매초풍은 서로  원수 
사이다. 한쪽은 자기의 남편을 잃었고 다른 한쪽은 희첩을 둘이나 잃었다. 옆에 선 
채 기회를 보아 살수(殺手)를 뻗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사통천이 큰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서며 보니  가진악은 장님에  한 발은  절고, 
한소영은 여자요,  전금발은  비쩍 마른데다   난장이이고, 한보구는  땅딸보에다, 
주총은 꾀죄죄한   꼬락서니가 무림의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남산초자 
남희인만 그런대로 인물다와 보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 다 제치고 남희인의  목을 
노리고 장풍을 쪼갰다.
사통천과 대결하게  된 남희인은   멜대를 꽂은 채  아무  말 없이  맞섰다.  그의 
남산장법(南山掌法)이 절묘하지만  수초를 다투어  보니 역시   귀문용왕의 적수는 
아니었다. 한소영은 장검을 비껴들고, 전금발은 저울대를 치켜 들고 함께  대든다. 
팽련호의 대갈일성에   우수수 나무  위에 쌓였던   적설이 쏟아진다.  몸을  날려 
전금발이 쥐고 있는 저울대를 뺏으려 한다.
요시협은 전금발의 저울대는 변화무쌍하다. 팽련호가 뺏으려 드는 품으로 보아서도 
보통의 강적이 아님을 알았다. 저울대를 움츠리며 저울추와 고리릍 동시에 날렸다. 
팽련호는 경험이 풍부한 편이지만 이런  괴상망측한 병기는 일찌기 본 일이  없다. 
괴망번신(怪燐翩身)의 재주를 부려 좌우로 대드는 병기를 피했다.

[이건 도내체  뭘  하는 물건이야?  시장바닥에서  물건이나 다는  저울로  사람을 
치다니?]
[바로 너 같은 돼지를 때려잡아 다는 저울이다.]

팽련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쌍장을  무섭게 날린다. 전금발로서는 당해 낼  수 
없는 무시무시한 장풍이다.  한보구는 여섯째 아우의  위급함을 보고 비록  채찍은 
잃었지만  주먹과  발길질로  협공을  한다.  사통천과  팽련호는  과연  만만찮은 
강적이었다. 육괴가 2대 1로 상대를 하면서도 수세에 몰리니 말이다.
가진악은 복마강(伏魔杖)을 휘두르고 주총은 백규선(白 扇)을 펄럭이며 합세한다. 
가진악이나 주총의  무공은  그래도 육괴   중에서는 제일 나은   편이다. 3대  1, 
그런대로 공세를 취한다.  저쪽에선 후통해와  황용이 또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후통해의 무공이 황용보다  우월하지만 황용이  연위갑을 입은  것을 알고는  겁을 
먹고 대들지도 못하고  또 황용이  교묘하게 피하다가도  기회만 포착하면  무섭게 
역습을 하니 몰리는 쪽은 오히려 후통해다.
구양공자는 생각했다.
(우선 이놈의   육괴부터 해치워야지.   이 요부야  달아날  수  없을테니  천천히 
처리해도 된다.)
자기의 무공을   자랑하고 싶어   두 발로  땅을  찍으며  신타설산장(神駝雪山掌) 
가운데의 순식천리(瞬息千里)라는 상승의 경공을 펴 눈 깜짝할 사이에  가진악에게 
접근하며 소리를 지른다.

[왜 시건방지게 남의 일에 나서느냐? 네 이 못된 봉사놈에게 공자님이 본때를 보여 
주리라!]

오른손을 번쩍 들자  가진악은 복마장의  끝을 번쩍 치켜  든다. 그런데  왼쪽에서 
바람 소리를  내며 구양공자의  왼손 장풍이  불어왔다. 가진악이  머리를  숙이자 
장풍은 허공을   찢고 만다.  가진악이 복마장으로   내리쳤지만 구양공자는  벌써 
저쪽으로 달려가 남희인과 붙어 싸운다.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좌충  우돌로 
육괴를 향해 살수를 쓴다. 양자옹의 눈초리는 시종 일관 곽정만 주시했다.  육괴가 
구양공자에게 패할 것 같아 즉시 두 손을 벌리고 곽정에게 대들었다. 곽정은  그의 
상대가 아니다. 수초를 겨루는 동안  앞가슴을 잡히고 말았다. 양자옹이  오른손을 
더듬어 곽정의 배를 찢고 피를  빨아먹으려 대든다. 당황한 곽정이 배를  움츠리자 
쭉 하고 옷이 찢어지며 가슴속에 챙겨 넣었던 약 봉지가 나왔다. 양자옹은  냄새를 
말고 약인 줄 알자 얼른 품속에 챙겨 넣고 다시 대들었다. 곽정은 있는 힘을  다해 
양자옹의 손을 떨쳐 버리고 매초풍 쪽을 항해 달린다.

[좀 구해 주세요!]

매초풍은 생각에 잠긴다.
(현문 내공에 대해서 아직도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아야 해.)

[빨리 나를 안아라. 그 영감 무서워할 것 없다.]

이번에 다시 그를  안았다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을  곽정도 안다.  그래서 
접근하지 않고 그 둘레만 빙빙 돈다. 양자옹은 매초풍이 쓰는 독룡편의 범위에  와 
있음을 알고 곽정의 뒤를 바짝  쫓으면서도 조심을 한다. 매초풍은 곽정의  소재를 
파악하고  채찍을  뻗어  두  발을  감아  잡아당기려고  한다.  황용은  후통해와 
싸우면서도 곽정에 대해  신경을 쓴다.  방금 양자옹에게 잡혔을  때 거리가  멀어 
도와 주지도 못하니 마음만 탔다. 이제 채찍이 날아 곽정의 두 발을 휘감으려 하자 
급한 나머지 채찍을 향해 자기 몸을 날렸다.
전광석화처럼 대든 황용의 허리를 독룡편이 칭칭 감아 버리고 말았다.

[매약화! 감히 내게 손을 대요?]

황용이 허공에서   지르는 소리다.  매초풍은 황용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 내 채찍엔 온통 가시와 갈고리뿐인데 이놈의 계집애를 건드려 놨으니  이를 
어쩐다? 사부가 알면 난 끝장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여 없애고 말자!)
긴 채찍을 휘감아  황용을 끌어다  놓는다. 갈고리와  가시가 벌써  그의 살  속에 
깊숙이 박힌   줄 알았다.   그러나 황용은  도화도의  보물인  연위갑을  입었다. 
갈고리는 황용의 겉옷만 찢있을 뿐 다치지는 않았던 것이다.

[내 옷을 찢어 놨으니 물어 내야해요!]

황용의 웃는 소리에 매초풍은 또 한 번 놀랐다.
(아, 사부님의 연위갑을 입고 있었구나!)

[내가 잘못했어요. 좋은 걸로 물어 줄께요.]

황용은 손짓으로   곽정을 불러  매초풍에게서  좀 떨어진   곳에 서  있게  했다. 
양자옹은 매초풍이 무서워 대들지 못했다.
저쪽의 육괴는 한덩어리로 뭉쳐  등을 서로 댄 채  사통천,팽련호,구양공자,후통해 
네 사람과 맞서고 있다. 이렇게 되면 뒤는 방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후통해의 
무공이 가진악,   주총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통천이나  팽련호,  구양공자는 
힘겨운 상대다.  한보구는 방금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진(陳)에서  빠져나가면 
큰일이 난다. 그러면 6형제는 끝장이  나기 때문이다. 이를 악물고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알고있는 팽련호는 계속 한보구만 노리고 독수를 편다. 이를 본 
곽정이 몸을 날리며  쌍장으로 팽련호의 등을  후려친다. 팽련호가 냉소를  머금고 
반격하려는 순간 수풀 속에서 누가 황망히 뛰어나온다.

[여러 사부님들, 손을 멈추새요. 아버님께서 급한 일로 납시랍니다.]

머리  위의  번쩍이는  금관이  바로  완안강이다.  얼마나  급한지  어깨로  숨을 
헐떡인다. 팽련호가 듣고 생각한다.
(조왕이 중금을 내 우리를 초빙했는데 급하다는데 아니 갈 도리가 없지.)
각각 손을 멈추고 물러선다.

[저의 모친께서 납치당했습니다. 구출해 주십사는 아버님의 분부십니다.]

밤은 어둡고 또 걱정이 되어 매초풍이 땅에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완안강이다. 
왕비가 납치됐단 말을 듣고 완안강의 뒤를 따라 총총 물러난다. 양자옹이 맨  뒤에 
처져 가면서도 곽정의  피를 빨아먹지  못한 것이 못내  섭섭한 모양이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론 도저히 어떻게 해볼 재간이 없다.

[여보, 그 약은 주고 가시오!]

곽정이 지르는  소리에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손을 번쩍  들어  투골정(透骨釘) 
하나를 곽정의 뇌문을 항해 던진다. 강풍이 쇳소리를 따라 흘렀다. 주총이 한 발짝 
나서며 규선(膠扇)자루로 투골정을 치자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주총이 집어 들고 냄새를 말는다.

[아, 견혈봉후(見血封喉)의 투골정이로구나.]

양자옹은 그가 자기의 암기(暗器) 이름을 대자 깜짝 놀란다.

[뭐라구?]

주총이 쫓아가 손바닥에 올려놓은 투골정을 내보이며 웃는다.

[자, 되돌려 드리리다!]

양자옹이 태연하게 받는다.  주총이 흉계를 쏜다  하더라도 처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총은 그의 왼손 소매에 잡초와 흙이 묻은 것을 보고 털어 주었다.

[아니, 누가 털어 달랬나?]

양자옹이 벌컥 화를  내며 되돌아간다.  곽정은 난처했다.  그냥 돌아가자니  온밤 
헛고생만 한 것이다.  약을 잃었으니 이  밤의 고생은 아무  보람도 없는  것이다. 
달려들어 뺏자니 혼자 힘으론 도저히  안 된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가진악이  입을 
연다.

[다들 돌아가자.]

몸을 날려 담 위에 올라서니 오괴도 그 뒤를 따른다. 한소영이 매초풍을  가리키며 
묻는다.

[큰오빠! 어떻게 하죠?]
[마옥 마도장과 이미 그의 목숨은 살러 주자고 약속하지 않았니? 그냥 가자!]

황용은 시시덕거리며 육괴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몸을 날려  담 저쪽에 가  선다. 
매초풍이 소리를 지른다.

[황용, 사부님은?]

이 말을 들은 황용이 허리를 잡고 웃는다.

[아버지요? 물론  도화도에 계시죠.  집을 떠나  보신 일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물어요?]

매초풍은 화도 나고 기가 막혔다.

[아니, 곧 오실 거라고 그러지 않았어?]
[그래요, 하지만 누가 곽정을 놓아 주라고 했나?]

이 말을 들은 매초풍은 더  참을 수 없었다.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벌떡  일어나며 
황용을 향해   날아 덮쳤다.  원래  그는 내공을   익히기 위해  맹훈련을  하다가 
단전(丹田)으로 몰린  운기(運氣)를 되돌려   보내지 못해 하반신  불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화가  치민 그는 앞뒤  가릴 여유도 없이  덤벼든 것이다.  무아의 
경지 속에서 완전히 자기를 잊은 것이다. 황용은 그가 대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담을 뛰어내려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매초풍은 생각했다.

[아니, 내가 걸을 수 있다니? 이게 웬일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두 발이  뻣뻣해지면서 나가 떨어지며 정신을 잃었다.  이때 
육괴가 매초풍을  해치우려 든다면  그건 식은죽  먹기다. 그러나  마옥과의  약속 
때문에 그냥 곽정의 손을 잡고 왕부를 벗어나고 말았다.
한소영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곽정아! 어째 네가 여기 있었니?]

곽정은 왕처일이 구해 준 일이며 연회장에서 중독(中毒)된 일, 약을 훔치다 실수한 
일, 땅굴 속에서 매초풍을  만났던 일들을 설명했다.  양철심 부처와 부자의  상봉 
등은 미처 들려주지 못했다.

[응 그랬구나, 우리 빨리 왕도장 계신 곳으로 가보자!]

주총이 재촉했다.
이때 양철심은 오매불망 찾아 헤매던 부인을 만나고 보니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포석약을 안은  채 왕부를  뛰쳐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목염자는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여자 하나를 안고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 그게 누구예요?]
[네 어미다. 빨리 가자!]
[뭐요, 제 어머니요?]
[쉿, 이따 말해 주마.]

포석약을 안고  달린다.  한참 달리니  포석약이  정신을 차리는  모양이다.  날이 
부옇게 새기 시작했다.  여명의 희미한  빛 가운데  자기를 안고  가는 그리던  옛 
남편! 꿈인지 생신지 알수가 없다. 손을 뻗어 남편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여보, 내가 죽은 거지요?]

양철심은 기뻐 왈칵 눈물이 솟았다.

[안심하오. 이젠 아무 일도....]

채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뒤에서 함성이 터지며 횃불을 든 일표 인마가 창과  칼을 
들고 대들었다.

[왕비를 납치한 반적은 게 섰거라!]



第 二十三 章. 부부 장례


양철심이 사방을 휘둘러보니 숨을 곳이 없다.
(하늘도 무심하구나, 하필이면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아내와 만난 날 죽게 되다니!)

[얘야, 네가 어머니를 안으렴.]

딸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포석약은  18년 전  임안부 우가촌을  떠나던  그날의 
광경이 생각났다.  남편은  자기를 안고  달렸다.  어두운 밤에  적병들의  함성이 
들렸다. 그후 18년,  굴욕과 상심의  세월이었다. 다시 또  처참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해서  남편의 목을  껴안은 손에  더욱 힘을  준다. 양철심은  뒤쫓는 
병사들을 보면서 잡히느니보다는 차라리 싸우다 죽기로 결심했다. 아내의 두  손을 
풀어  목염자의  품에  밀어놓고는  몸을  돌려  대든다.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화창(花槍) 하나를 뺏았다. 창이 손에 있으니1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준 셈이다.
병사를 인솔하던 친위내장  탕조덕이 창에 맞고  말에서 떨어진다. 병사들이  놀라 
사방으로 홑어졌다. 양철심은 말 한 필 뺏지 못한 것이 섭섭했다.
셋이서 또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때 날이 활짝  밝았다. 포석약은 남편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 자국을 보며 놀란다.

[부상했군요.]

양철심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아내의  하는 말을 듣고  나니 손등이  아팠다. 
아까 완안강이 손톱으로 할퀸 자리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빼기에 바빠  잊고  있었을 뿐이다.   이젠 두  어깨까지 아파   견딜 수  없다. 
포석약이 상처를 싸매 주려고 하는데 다시 함성이 들리며 무수한 군마가  쫓아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싸맬 것 없소!]

고소를 머금고 다시 목염자를 바라다본다.

[얘야, 너 혼자만이라도 달아나렴, 난 네 에미와 여기서....]

목염자는 아무 말이 없다. 울지도 않는다.

[우리 셋이 여기서 함께 죽어요.]
[쟤가...., 어째서 우리 아인가요?]

양철심이 대답을 하려는데 병사들이 바짝 따랐다. 고개를 쳐드니 그 앞에 두  명의 
도사가 이리로 오는 것이 보인다. 그 중 하나는 백발에 흰 수염, 자애로운  표정이 
감도는 얼굴이다.  다른  하나는 긴  수염이  회색빛이다. 등엔  장검을  짊어지고 
있었다. 양철심은 깜짝 놀라면서도 반갑기  짝이 없었다. 양철심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말을 건넸다.

[구도장님, 여기서 뵙게 되는군요.]

그들은 옥양자  왕처일과 함께  이곳에 모여  강남 칠괴와  무예를 겨루는  문제를 
상의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총총 이곳으로  왔는데 뜻밖에도 양철심  부부와 
만나게 된 것이다. 구처기는 내공이 심오한  까닭에 전연 늙지 않고 18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이다. 다만  귀밑 머리만  희끗회끗할 뿐이다.  그가 양철심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눈길을 돌려 자세히 보았지만 전연 모를 얼굴이다.

[십팔 년 전 임안부 우가촌에서의 일을 구도장께서는 잊으셨단 말입니까?]
[그럼 댁은?]
[제가 바로 양철심이올시다. 그간 구도장께서는 별고 없이 지내셨습니까?]

말을 마치자  땅에 엎디어  절을  한다. 구처기도  급히 답례를  하면서도  의아한 
눈치다. 원래  양철심은 그때  부상을  입고 강흐를  떠돌며 고생만  했기  때문에 
옛날의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었던  것이다. 양철심은 그가 의아한 눈치를  보이고 
또 그를  쫓는 병사들이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얘기를 주고받을  여유가 
없었다. 화창(花槍)을  비껴  들고 봉점두(鳳點頭)의   재주를 부려  홍영(紅纓)을 
나부끼며 창끝을 구처기의 가슴에 내고 소리를 질렀다.

[구도장님,   나를   잊으실  리는   없으실   텐데,   설마하니  이   양가창법을 
몰라보시겠습니까?]

구처기는 그제야  18년 전의  눈  내리던 그날의  양철심 모습이  생각났다.  그는 
뜨거운 피가 끓는  의협 영웅이다.  고인을 만나고 보니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아, 양선생! 아직도 살아계셨군요.]

양천심이 그제야 창을 거두었다.

[구도장님, 저를구해 주세요!]

구처기는 양철심을 쫓는 인마를 바라다보고 웃는다.

[사형, 오늘 또 피를 봐야겠군요. 화내시지 마세요.]
[너무 많이 죽이지 말고 겁주어 쫓아 보내도톡 하오.]

구처기는 너털웃음을 터뜨려고  보폭을 길게 하며  달려가 말등에서 2명의  마군을 
끌어내려 뒤에 있는 2명의 마군을 향해 집어던진다. 구처기의 행동은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8명을 집어  던져 여덟놈을 쓰러뜨렸다.  나머지 사람들이 놀라  말머리를 
돌려 흩어졌다.  이때  갑자기 마군  뒤로부터  한 장한이  달려나온다.  대머리가 
번쩍번쩍 빛난다.

[어디서 굴러온 잡놈이냐?]

몸을 번쩍 날려  구처기 앞에  접근하며 장풍으로 구처기를  친다. 구처기는  그의 
재빠른 행동을 보며  손을 들어  막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둘  다 뒤로  3보 
물러선다. 구처기는 깜짝 놀랐다.
(아니, 여기도 무공의 고수가 있었구나!)
그가 이렇게 놀라는데  귀문용왕 사통천도 팔목이  은근히 아팠다. 놀랍기도  하고 
화도 났다. 그래서 계속  주먹을 휘두르며 대들었다.  구처기도 소흘히 상대할  수 
없었다. 쌍장을 번갈아  날리며 10여  합이나 싸웠다.  마침내 사통천이  구처기의 
다섯 손가락에 긁혀  머리 위에  다섯 줄의  핏자국이 생겼다.  그는 빈  주먹으로 
상대할   대상이  아님을   알고   허리춤에서  철장(鐵漿)을   빼내  힘을   주어 
소진배검(蘇秦背劍)의    재주로    구처기의    어깨를    내리쳤다.    구처기는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刀)의 수법을 써서 그의 병기를 뺏으려 했다. 그러나 사통천의 
이 철장은  수십  년이나 수련한  무공이다.  땅에서는 호랑이를,  물에서는  용을 
때려잡던 무시무시한 재주다. 쉽게 빼앗길 리 없다.
구처기가 의아하게  생각하며 이름이나  물으려고 했다.  이때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전진 문하의 누구시오?]

목소리는 들을 가르듯 쩌렁쩌렁 울린다.  구처기가 옆으로 피하며 고개를  돌렸나. 
거기 네 사람이 서 있었다.
팽련호,양자옹,구양공자,후통해들이다. 구처기가 고개를 숙인다.

[제 성은 구요.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구처기의 명성은 남북에 떨친다. 다섯 사람이 서로 바라다본다.
(어쩐지 보통이 아니라 했더니 과연 명성이 헛되지 않았구나!)
팽련호는 생각했다.
(우리가 이미 왕처일에게 부상을 입힌 이상  전진파와 잘 지낼 수는 없다.  기왕에 
벌어진 일,  힘을 합쳐  이 구처기까지  해치워야 후환도  없을 게고....,  어쨌든 
천하에 이름을 날릴 좋은 기회로구나.)

[자, 다같이 공격을 합시다.]

큰   소리를  치고   허리춤에서   판관쌍펄(判官雙筆)을   꺼내  들고   구처기의 
견유혈(肩儒穴)과 백해혈(白海穴)을 노린다. 구처기는 생각했다.
(이 난장이, 용감도 하구나! 몸놀림이 보통이 아닌걸.)
쉭 소리와 함께 장검을 빼들었다.  칼끝으로 그의 오른손 손가락을 찍으며  칼날로 
사통천의 허리를 긋는다. 창검을  회수할 때 칼자루는 후통해의  장문혈(章門穴)을 
노린다. 동시에 세 사람을  공격하는 비상한 재주다. 듣도  보도 못 한 귀신  곡할 
검법이다. 사,팽  두  사람은 병기를  휘둘러  막았지만 후통해는  혈도를  찔리고 
말았다. 가까스로  몸을 움츠려  피했지만  또 한  번 궁둥이를  발꿈치에  채이고 
말았다. 양자옹도 혀를 내두르며 합세했다.

구양공자는 사통천과   팽련호의 공격을   받고 구처기가  수세에  몰리고  있는데 
앙자옹까지 왼쪽에서 합세하는  것을 보고 기회를  포착했다는 듯 대든다.  왼쪽의 
장풍은 허(虛)를 치며 오른손의  철선(鐵扇)으로 계속 구처기의 등뒤  봉미(鳳尾), 
정촉(精促), 척심(脊心)의 3혈을  노린다. 구처기가 매우  위급하게 되었다.  이때 
옆에서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번쩍 하더니 손을 뻗어  철선을 친다. 원래  마옥은 
옆에 서서 구경을 하다가 위급한 구처기를 돕기 위해 철선을 뺏으려 대든  것이다. 
구양공자가 깜짝 놀라 몸을  날려 피하며 허공에서  내려다보니 흰 수염에  백발의 
도사다.
(아, 이 사람도 전진 칠자 가운데의 한 사람이었구나.)
허리를 펴면서 땅에 내려섰다.

[도대체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평소에 잘  알지도 못했는데  무슨 오해가  있는지 
우선 얘기를 나눠 봅시다.]

마옥의 말이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이면서도 한   마디 한마디  사람들의 
고막에 찍히는  말소리다. 각자  서로  싸움에 열중하다가  이 말을  듣고  옆으로 
비켜서며 마옥을 훑어봤다. 구양공자가 먼저 입을 연다.

[도장은 뉘시오니까?]
[제 성은 마올시다.]
[아, 단양진인 마도장이시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팽련호의 말이다.

[여러 가지로 미흡한 저에게 진인(眞人)이란 말씀은 과분합니다.]

팽련호는 말은 공손하게 하면서도 혼자 생각해 본다.
(우리가 전진교와 잘 지내기는 벌써 틀렸다.  둘 다 모두 전진교의 주축  인물이니 
이 자리에서  해치우는 것이  뒷날을  위해서도 나을  게다. 하지만  부근에  이들 
칠자가 다 모었는지도 모른단 말야.)
사방을 휘둘러보아도 양철심 일가 세 사람뿐 도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진 칠자의  명성을 오래  전부터  홈모했습니다. 다섯  분은 어디  계신지?  이 
자리에서 뵈올 수 있다면 인사라도 올리겠습니다만....]
[저의 명성은 허명일  뿐입니다. 우리  일곱이 모두  각성의 도관(道觀)에  흩어져 
지내고 있습니다. 좀처럼 모이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 둘이 중도(中都)에  온 
것은 왕사제를 찾아보기 위해서 입니다.  방금 거처하는 곳을 알고 찾아가는  길에 
뜻밖에도 여러분을 뵙게 된  것입니다. 천하의 무술은  다 마찬가지. 서로  친구로 
사귐이 어떠하올지요?]

그는 성격이  중후하여 팽련호의  의도도 모르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팽련호가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달리 도와  줄 사람도  없거니와 왕처일과도   만나지 못한 
모양이라 차제에 해치울 생각을 했다. 그래 빙그레 웃으며 말을 꺼냈다.

[두 분 도장께서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여간 고맙지 않습니다. 제 성은 삼(三)이요 
이름은 삼혹묘(三黑猫)라 합니다.]

마옥과 구처기는 어리둥절했다. 
(이 사람 무공이  대단해서 강호에는  꽤 알려진 인물인  줄 알았는데  삼흑묘라니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전연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팽련호는 판관필을 거두어 허리에 꽂고 마옥 앞으로 다가가 웃으며 말을 건다.

[마도장, 이거 아주 반갑습니다.]

오른손을 뻗으며  장심(掌心)을 아래로  해 그와  악수를 청했다.  마옥은  호의로 
받아들이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런데 뜨끔하면서 손이 죄어 왔다.
(아하, 내 공력을 시험해 보는구나.)
미소를 머금고 손에 힘을 주어 팽련호의 장심을 비틀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섯 손가닥 끝이  몹시 아프다.  마치 강침(鋼針)으로  살 속  깊숙이 찌르는  것 
같다. 깜짝 놀라  손을 뽑으니  팽련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벌써 저만큼  피해 
있었다. 마옥이 손을 들여다보니 다섯 손가락 끝에 5개의 구멍이 뚫렸다. 살  가죽 
깊숙이 뚫린 구멍 속으로 다섯 가닥의 흑선(黑線)이 안을 파고든다. 팽련호는 원래 
판관필을 허리에   꽂을 때   슬그머니 자기의  독특한  암기인  독환대(毒環帶)를 
오른손에 꼈던 것이다. 이 독환대는 가늘기가 실 같다. 그 위에 5개의 독침이 있고 
독침에는 자기가 만든 극약이 묻어 있다. 살을 뚫어 피만 보면 6시간 내에  생명을 
잃는다. 팽련호는 삼흑묘란 가짜 이름을 대주고 둘이 어리벙벙해 있는 순간 대들어 
살수를 쓴 것이다.

무림의 인물들이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승복하지도 않고 또 함부로 손을 쓸 수 없을 
때에는 악수를  하기 마련이다.  얼굴엔  피차 친한  표정을 하지만  이때  상대의 
공력을 시험하는 것이다. 무공이 약한 사람은 이런 때 뼈가 으스러지거나 부어올라 
용서를 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마옥은 그의 흉계도 모르고 손을 내밀었다 걸려든 
것이다. 깜짝 놀라 장풍을 날렸지만 팽련호는 벌써 멀찌기 떨어진 뒤다.  구처기는 
사형이 다른 사람과 악수를 하다가 얼굴빛이 변하는 것을 보고 묻는다.

[왜 그래요?]
[내게 살수를 뻗었어.]

말을 하딘서 팽련호를 향해 덥친다. 사형인 마옥은 전진파 가운데서도 제일 수양을 
많이 닦은 사람이다. 10여 년 등안 누구와 더불어 다퉈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지금 
전진파  무공  가운데서도   제일 무시무시한   삼화취정장법(三花聚頂掌法)을  쓴 
것이다. 정말 화가 났음이 분명하다.  구처기도 요리조리 뚫고 들어가  팽련호에게 
접근, 쉭쉭쉭 세 번이나 장검을 휘두른다.  이때 팽련호도 벌써 쌍필을 손에  쥐고 
두 칼을 피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칼이 판관필의 끝을  쳤다. 불꽂이  번쩍이는 
순간 철필이 두  토막으로 분질러지고 말았다.  구처기가 오른손의 장검과  왼손의 
장풍으로 계속 파고든다.  팽련호가 당해  내지 못하고  비틀비틀 뒤로  물러선다. 
오른쪽 어깨가 따끔거리며 뻣뻣해진 것이다.
이때 사통천과 양자옹은 마옥을 막고  구양공자와 후통해는 좌우로 공격을  하다가 
팽련호를 도우려 대든다. 구처기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어디서 이런 고수들이 모여들었을까?)

당시 가흥대전에서 강남 칠괴와 무예를 겨룬  뒤 18년 동안 시원한 상대를  만나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강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며  장풍을 
쉭쉭 날려  본다. 검광을  번쩍이며 신이  나 싸운다.  이쪽의 구처기는  1 대  3, 
그래도 수세에 몰리지는 않는데 저쪽의  마윽은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오른손이 
퉁퉁 부어으르고 시큼시큼,  간질간질 독기가  점점 퍼져  오르는 것이다.  마옥도 
강침에 독이  묻은 줄은  알았다. 그러나  그 독기가  이렇게까지  지독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격전을 벌일수록 피가 빨리 돌기 때문에 독기는 더욱 빨리  퍼지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땅에 앉은 채  단장(單掌)으로 방어하면서 내력으로 독기가  올라오는 
것을 막는다. 양자옹이 쓰고 있는 병기는  자루가 긴 가위다. 어떤 때는  찌르다가 
오므렸다 폈다 때리고 휘두르며 변화 무쌍하다. 사통천의 철장(鐵漿)도 무시무시한 
강풍을 날린다. 수십 초(招)를 다투는  사이 마옥의 숨결이 더욱 가빠지고  방어의 
범위가 점점   좁아진다. 안으론   독기와 싸우고  밖으론  2명의  강적과  맞서기 
때문이다. 비록 공력이  깊고 두텁다  하지만 내외의 협공에  견디지 못하고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며 기운이 빠지는 깃이다. 구처기는 사형이 땅에 앉은 채 머리에선 
무럭무럭 열기가 올라오는 것이 마치 만두 찌는 솥에서 김 나오듯 하는 것을  보고 
놀란다. 빨리 상대를 무찌르고 달려가  사형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3명의  적수는 
무예가 뛰어난 고수들이다. 후통해가 약간 뒤떨어 질뿐 구양공자는 내외  겸통하여 
팽련호보다 우위다. 몸을 뺄래야  뺄 재간이 없다.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어느덧 
수세에 몰린다.
양철심은 자기의 무공이 그들과는 상대가 되지 못함을 알면서도 마옥이나 구처기의 
위급함을 보고 화창을 들고 대들어 구양공자의 등을 찌르려 한다.

[양형! 대들지 마오. 공연히 목숨을 잃게 되오.]

말이 끝나기도 전 구양공자가  왼발로 화창을 차  분지르고 오른발로 양철심을  차 
쓰러뜨렸다. 바로 이때 말발굽 소리도  요란스럽게 일표 인마가 달려온다.  앞장을 
선 두 사람은 바로 완안열, 완안강이다.
완안열은 멀리서   땅에 앉아  있는  자기 아내를   발견하고 기뻤다.  앞장을  서 
대드는데 바람을 가르며  칼날이 번쩍  했다. 완안열이 몸을  옆으로 피하며  보니 
빨간 옷을 입은 소녀다. 완안열 수하의 친병들이 목염자를 향해 대들었다.
혼전하는 가운데 저쪽의 완안강은  자기 사부가 공격에  포위된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

[다들 한 식구요. 손들을 멈추시오!]

큰소리로 몇 차례나 외치자 팽련호  등이 듣고 물러선다. 완안강이 구처기를  향해 
절을 한다.

[사부님, 제가 소개하겠습니다. 이분들은 아버지께서 예의를 갖추어 모셔온 무림의 
선배들입니다.]
[음, 그러냐!]

구처기가 대답을 하고  사형에게 시선을  돌린다. 손등이  새까맣다. 소매를  걷고 
보니 팔뚝도 마찬가지다. 깜짝 놀라 외친다.

[아니, 무슨 독약이 이렇게 지독한가?]

고개를 돌려 팽련호를 노려본다.

[해약(解藥)을 가져오시오!]

팽련호가 멈칫거리며 생각한다.
(머지 않아 죽을 텐데, 도대체 구해 줘야 하는 건가?)
마옥은 외적이 없어지자 내력이 점증했다. 독기를 내력으로 막아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새까만 혹기(黑氣)가 내려갈 추세다. 완안강이 모친께 달려간다.

[어머니, 우리가 어머니를 찾았군요.]
[나를 왕부로 데려가려고 하지만 그건 절대로 안 된다.]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다. 완안열과 완안강이 듣고 동시에 놀란다.

[왜요?]

포석약은 양철심을 가리킨다.

[내 남편은 죽지 않았어요! 이 세상 어디든 그를 따라가야 해요.]

완안열이 깜짝 놀라며  양자옹을 향해  입을 삐죽 내민다.  양자옹이 눈치를  채고 
손을 들어 3개의 투골정을 양철심의 급소를  노리고 날렸다. 그 중 하나라도  맞는 
날에는 즉사하는 것이다. 이를  본 구처기가 깜짝  놀랐다. 달려가 구출할  여유도 
없는 급박한  순간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조왕부의  친병을 잡아  채  양자옹과 
양철심의 중간에  집어 던졌다.  <악!>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3개의  투골정이 
친병을 때렸다. 투골정은 양자옹의 평생의 절학(絶學)이다. 3개를 동시에 날렸는데 
안 맞을 리  없다. 그런데  구처기가 대들어 방해를  한 것이다.  화가 치민  그가 
구처기를 향해 덮쳤다.
이를 본 팽련호는  해약(解藥)을 주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우선 왕비부터  뺏아 
와야겠다고 생각한 그가 손을 뻗어  포석약의 어깨를 잡고 나꿔채려고 했다.  순간 
구처기의 칼날이  두 번  반짝인다. 양자옹을  찌르고 팽련호를  치는 것이다.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동시에 뒤로 피했다. 구처기가 완안강을 보고 소리를 지른다.

[이  무지한  녀석아,  십팔  년이나  가짜  의부를  섬긴  것도  억울한  일인데, 
친아버지를 뵙고도 이게 무슨 수작이란 말이냐?]

완안강은 본래 어머니의  말을 듣고  반신 반의했는데, 이때  사부의 호통을  듣고 
보니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 시선을 양철심에게 돌리니 남루한  옷차림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쪽의 완안열은   화려한 복장에  기품이  넘쳐 
흐른다. 완전히 하늘과 땅 차이다.
(부귀와 공명을 버리고 저  가난뱅이의 뒤를 따라  강호를 헤맨단 말인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큰 소리로 외친다.

[사부님, 저자의 헛소리를 듣지 마시고 제 어머니를 구출해 주세요!]
[정말 짐승만도 못한 녀석이로구나.]

구처기는 또  한 번  호통을 친다.  팽련호 등은  그들 사제의  파경을 보자  더욱 
험악한 공격을  퍼붓는다. 완안강은  구처기의 위급함을  눈으로 보면서도  만류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 짐승만도 못한 너석아, 내 오늘 맛 좀 보여 주마.]

구처기는 완안강을 보며 벌컥  화를 냈다. 완안강은  이 사부를 제일  두려워한다. 
은근히 팽련호 등이 그를  즉여 후일의 후환을 제거해  주기를 바랐다. 한참  동안 
어우러져 싸우다 양자옹의 긴 가위에 그만 구처기의 오른쪽 어깨가 찔렸다. 중상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선혈이 줄줄 흐른다. 마옥은 품에서 하나의 유성(流星)을 꺼내 
붙을 붙었다.  파란 연기가  천공으로 난다.  이는 그들  전진파 사이에  주고받는 
신호다.

[저 늙은이가 도움을 청한다.]

팽련호는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구처기를 비리고   사통천과 더불어   마옥을 
공격한다. 이때   서북쪽의 멀지   않은 곳에서도  파란  연기가  하늘로  솟았다. 
구처기는 뛸 듯 반가왔다.
(왕사제가 멀지 않은 곳에 있구나.)
칼을 왼손에 바꾸어  쥐고 7,8번이나 살수를  편다. 다른 사람들이  뒤로 몇  발짝 
물러셨다. 마옥이 서북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른다.

[저쪽으로 가자!]

양철심은 목염자와 함께  병기를 휘둘러 포석약을  호위하며 그쪽을 향해  달린다. 
마옥이 그 뒤를 쫓고 구처기는 용맹스럽게 장검으로 맞서며 달렸다. 사통천이 연방 
이보환형(移步換形)의 절기(絶技)를 써 포석약에게 접근하려고 들었지만  구처기의 
장검에 막히지 않으면 마옥의 장력에 눌려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얼마 가지  않아 
그들 일행은 왕처일이  묵고 있는  객점 앞에 당도했다.  구처기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어째 왕사제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지?)
이때 왕처일이 대나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걸어  나왔다. 세 사형제가  서로 
보고 깜짝 놀란다. 전진파 가운데 무공이  제일 센 세 사람이 모두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객점 안으로 후퇴합시다.]

구처기가 지르는 소리를 듣고 완안열이 나선다.

[왕비를 이리로 보내 주면 목숨만은 살려 주리다.]
[누가 금나라 짐승들에게 목숨을 구걸한다더냐?]

구처기는 이렇게 욕을 퍼부으며 여전히 칼을 휘두른다. 팽련호 등도 부상당한 그의 
칼솜씨에 속으로 탄복해 마지않는다. 양철심은 곰곰 생각에 잠겼다.
(우리로 인해 구도장이 생명을 잃을 수는 없는 것이다.)
포석 약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선다.

[여러분, 잠시 손을 멈추시오. 우리 부부가 여기서 세상을 버리겠습니다.]

창끝을 자기  가슴에 대고  푹  찔러 피를  흘리며 뒤로  나가자빠진다.  포석약도 
처참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양철심의 가슴에 박힌 창을 뽑아 쥔다. 창자루를  땅에 
꽂고 완안강을 본다.

[이래도 네 친아버님이 아니란 말이냐?]

몸을 솟구쳐  창끝에 던졌다.  이 처참한  광경 앞에  모두들 잠시   손을 멈춘다. 
완안강은 대경 실색하여  <어머니!>를 부르며  대들었다. 창끝이  가슴 깊이  박힌 
프석약의 몸이 축 처진다.

[어머니! 어머니!]

완안강이 대성 통곡한다.  구처기가 달려들어  두 사람의  상처를 살펴본다.  이젠 
끝난 것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의술로도 살릴  가망이 없다. 완안강은  어머니를, 
목염자는 양철심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통곡을 한다.  구처기가 양철심을  향해 
말을 건다.

[양형, 부탁할 말이 있거든 하시오. 내 최선을 다하겠소.]

양철심이 입을 우물우물하며  말을 꺼내려  하는데 뭇  사람들의 등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다. 고개를 돌리니 강남 육괴와 곽정이 총총 달려오고 있었다.  강남 
육괴는 사통천 등을 발견하고  각자 병기를 꺼낸다. 가까이  접근해 보니 땅  위에 
1남 1녀가 부상을  입고 누워 있다.  서로 바라다보며 의아한  표정이다. 거기  서 
있는 구처기와 마옥을 보고 더한층 놀란다. 곽정은 땅 위에 쓰러진 양철심을  보고 
놀라 대든다.

[숙부님, 이게 웬일입니까?]

양철심이 힘없이 눈을 떠 곽정을 바라보며 입가에 가냘픈 미소를 짓는다.

[네 아버님과 당년  서로 이렇게 약속을  했었다. 서로 남녀를  낳게 되면  결혼을 
시키자구...., 내 딸은 없다만...., 이 수양딸은 친딸이나 다름없구나....]

고개를 돌려 구처기를 바라다본다.

[도사님, 이 혼사가 이뤄지도록 해 주세요. 그래야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다.]
[아무 염려 마시오.]

포석약은 남편 옆에 누운 채 그의  팔을 꼭 잡고 있었다. 몽롱한 의식  가운데서도 
남편의 말을 다 들은 것이다. 품속을 더듬어 한 자루의 비수를 꺼낸다.

[이...., 이게 약속이에요....]

얼굴 위에 담담한 미소를 흘리다가 두 눈을 감고 숨을 거두었다. 구처기가  비수를 
받고 보니 당시 임안부 우가츤에서  자기가 주었던 비수다. 비수 위엔  <곽정>이란 
두 글자가 역력히 새겨져 있었다. 양철심이 곽정을 건너다본다.

[또 한  자루는  네 어머님께서   가지고 계시다. 네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이 
아가씨에게 잘해 주어야 한다....]

양천심의 마지막 말이다.

[모든 일 내 알아서 할 테니 안심하시오.]

구처기의 말을 듣고 양철심이 두 눈을  고요히 감는다. 숨을 거둔 것이다.  곽정은 
괴롭고 난처했다.
(황용이 내게 그토록 잘해 주는데.... 아니  또 화쟁 공주는? 대한께서 이미  내게 
말씀이 계셨는데...., 도대체...., 이 일을....)
요 며칠 사이  부쩍, 다정했던 친구  타뢰의 생각이 간절했다.  또한 화쟁  공주의 
모습을 어찌 잊으랴? 늘 뇌리에 자리잡고 있었던 화쟁 공주다. 주총 등은 화쟁과의 
일을 알고 있었지만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유언이요, 또 그 사이의 연유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잠자코 있었다.
완안열은 포석약을 아내로  맞은 뒤 계속  그가 전 남편을  잇지 못해  괴로와하는 
것을 알면서도  다정하게 대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이렇게  비참하게 
끝나고 말았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고개를 돌리고  먼저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사통천   등은 전진  삼자가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강남  육괴까지 
나타났으니 싸워 봐야  이길 승산이 있는  것도 아니라 완안열이  가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그 뒤를 따랐다.

[여보 삼흑묘(三黑猫), 해약(解藥)을 주고 가오.]

구처기가 소리를 지르자 팽련호가 껄껄 웃는다.

[이 채주의 성은 팽가요. 강호에선 천수인도라 하지. 구도장은 눈이 멀었나?]

(어쩐지 무공이 보통이 아니라 했더니 원래 그 사람이었군.)
그러나 사형이 중독되어 있으니 해약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천수고 만수고간에 해약을 주지 않으면 갈 생각 마오.]

칼을 무지개처럼 휘두르자  파란 검광이 팽련호를  덮친다. 팽련호의 판관필은  한 
자루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무예가 정통하니 가볍게 받아 피하고 만다.  주총은 
마옥이 땅에 앉은 채 운기(運氣)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오른손이 새까맣다.

[마도장, 부상을 입으셨군요?]
[저 자와 악수를 했는데 손바닥에 독침을 숨긴 줄 알기나 했나요?]
[그렇습니까? 아무것도 아녜요.]

고개를 돌려 가진악을 바라다본다.

[형님, 제게 마름쇠(毒菱) 하나 주세요.]

가진악은 왜  그러는지  이유도 모르면서  사슴  가죽 주머니에서  마름쇠를  꺼내 
주었다.  주총은  그것을  받아  쥐고  팽련호와  구처기가  싸우고  있는  광경을 
바라다본다. 아무례도 자기의 무공으론 떼어 놓을 수 없는 모양이다.

[형님, 우리가 가서  저 둘을  떼어 놓읍시다.  그럼 제가  마도장을 구할  방법이 
있습니다.]

가진악은 그가  꾀가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총이  대들며 
큰소리로 외친다.

[원래 천수인도이신 팽련호 채주셨군요. 다 같은 식구니 빨리 손을 멈추시오.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주총의 손을 잡아  끌며 두 사람  사이로 뛰어들어 부채와  지팡이를 휘둘러  갈라 
놓았다. 구처기와 팽련호는 주총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의아한 생각을 했다.
(아니 한 식구라니 그 무슨 말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나  보자고 둘  다 손을  멈췄다. 주총이  웃으며 
팽련호를 보고 말을 꺼낸다.

[강남 칠괴와  장춘자  구처기와는 십팔   년 전에 원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 
오형제가  장춘자에게  맞아  부상을  입었습니다.  무림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구도장도 우리들   때문에 죽을  뻔했었습니다. 그   원한은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구처기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구도장, 그렇지 않습니까?]

구처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좋다, 이 틈에 날 해치워 보잔 말이렷다.)

[그래, 어쩌겠단 말이오?]

주총은 계속 말을 잇는다.

[그리고 우리는  또 사용왕(沙龍王)과도   약간의 미묘한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팽채주와 사용왕은  생사를 같이하실  만큼 교분이  두텁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용왕에게 득죄를 했다면 그건 팽채주께 득죄한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주총은 한 식구란 말을 계속 설명해 나갔다.

[원, 별 말씀을 다. 하하하.]

팽련호의 너털웃음이다.

[팽채주나 구도장이 모두 저희  강남 칠괴와 원한이 있으시니  두 분은 한  식구가 
아니고 뭡니까?  하하하, 그런데  뭘 싸우세요.  그렇다면 구도장도  미우니  우린 
팽채주와 또 한식구나 다름없지요. 자, 우리 그러지 말고 잘 지냅시다.]

주총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팽련호는 꾀도  많고 의심도 많은  위인이다. 
주충이 떠벌리는 수작을 들으며 생각해 본다.
(전진파가 칠괴의  제자를 구출하려고  대드는 것을  보더라도 틀림없는  일당인데 
내가 속아 넘어갈  줄 알고? 어림없는  수작이다. 나를 속여  해약을 얻어  보려고 
하지만 안 될걸.)

[아, 그거 좋지요!]

재빨리 판관필을 챙겨 허리에 넣으며 독침을 손에 낀다.

[구형, 조심하오.]

구처기가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주총은 귀가 멀어 듣지 못하고 손을 내민 채  새끼 
손가락을 구부려  팽련호 손바닥에  낀 독침을  슬그머니 뺐다.  팽련호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주총의  손을 잡았다.  둘이 모두 순간적으로  힘을 주는데  팽련호는 
손바닥이 뜨끔함을 느꼈다. 급히 손을 빼 들여다보니 손바닥엔 벌써 구멍이 세개나 
뚫려 있었다. 구멍이  자기 독침에 찔린  것보다 더욱 크다.  구멍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간질간질한   것이 시원하고   아프지도 않다.  팽련호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다. 독약이  극독할수록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상처가  마비되기 
때문에 지각을  잃는 것이다.  놀랍기도 하거니와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고개를 들어보니 주총은 벌써 구처기의 등뒤에 가 숨었다. 왼손에는 자기의 독침을 
들고, 오른손에는   시커먼 능형(菱形)의  물체를 들고   있는데 거기  피가  묻어 
있었다.

주총의 별명이 묘수서생(妙手書生)이다. 손재주가  비범하여 묘기 백출이다.  그가 
팽련호와 악수를 할 때  독침을 훔치고 독능으로 그의  손바닥을 찌른 것이다.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골탕을  먹인 이 재주가 그로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화가  치민 
팽련호가 덮쳤지만 구처기가 칼을 들어 막고 소리를 질렀다.

[왜 이래?]
[팽채주, 이 독능은  내 큰 형님의  독문(獨門) 암기로 누구든지  맞기만 하면  세 
시간을 못 산답니다.]

주총이 이렇게 놀리는데  팽련호는 벌써  손목이 뻣뻣하게  마비되며 이마에  식은 
땀을 흘린다.

[당신은 당신의  독침이  있고, 내겐   내 독능이 있는데   독성이 다르니  해약도 
다르오. 그러니 피차간에 해약을 바꾸면 어떻겠소?]

팽련호는 묵묵 부답이요, 사통천이 나선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해약을 먼저 주구료.]
[형님 주세요.]

주총의 말에 가진악이 뭄속에서 약을 꺼내 건네려 한다.

[주형, 속지 마시오. 먼저 저쪽 것을 받고 주어아 해요.]

구처기의 말에 주총이 웃는다.

[장부 일언은 중천금이오.]

팽련호가 품속을 더듬다 낯빛이 변했다.

[이거 야단났구나, 약이 보이지 않으니.]

구처기가 대노하여 소리를 지른다.

[흥,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주형, 주면 안돼요!]

그러나 주총은 여전히 웃기만 한다.

[가져가시오. 군자 일언이 중천금인데 준다고 했으면 줘야지.]

사통천은 그의 손재주에 놀라 손으로 받지 못하고 철장(鐵杖)을 길게 내밀어  약을 
받았다. 무엇 때문에  주총이 밍설이지도  않고 시원하게 약을  주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사통천은 그 약이 혹시 가짜가 아닌가 해서 의심이 났다.

[강남 칠괴의 명성이  쟁쟁한데 설마하니  다른 약을 주어  골탕을 먹이려는  것은 
아닐 테지?]
[원, 그럴 리가 있겠소!]

주총이 웃으미   독능을 가진악에게   되돌려 주며  품속에서  이것  저것  끄집어 
내놓는다. 수건이며, 전표(錢漂), 잔돈 나부랑이, 그밖에 백색의 담배통도 나왔다. 
팽련호가 어리둥절해 한다.
(아니, 모두 내 물건인데 어째 저자 손에 가 있지?)
원래 주층이 그와 악수를  할 때 벌써 왼손으로  소매치기를 했던 것이다.  주총이 
담배통 마개를 열고  보니 그 안이  2중으로 되어 있다.  한 쪽엔 빨간  가루약이, 
다른 한 쪽엔 회색 가루가 들어 있다.

[이거 어떻게 쓰는 거요?]
[빨간 것은 내복약이고 회색은 상처에 바르는 거요.]

팽련호의 대답을 듣고 곽정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빨리 가서 물 두 그릇만 구해 오너라.]

곽정이 객점으로 달려가 물  두 그릇을 들고 나와  한 그릇을 마옥에게 주어  약을 
마시게 하고 다른  회색약은 상처에  발라 주었다.  그리고 다른  한 그릇의  물을 
팽련호에게 주려고 했다.

[가만. 왕도사에게 드려라.]

주총의 말에 곽정은 어리벙벙한 채 왕처일에게 건네 주었다. 왕처일도 왜 그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대로 받아들었다.

[여보, 당신이 준 이 약은 어떻게 쓰는 거요?]
[잠시 기다리오. 조급할 것 없소. 세 시간 안에는 죽지 않을 테니.]

사통천의 질문에 주총은 이렇게 대답. 마고 다시 품속을 더듬어 10여 봉지의  약을 
꺼내 놓았다. 곽정이 보고 뛸 듯이 기뻐한다.

[그래요, 맞아요. 이게 왕도장님 약이에요.]

한 봉지씩 끌러 왕처일의 면전에 펴 놓는다.

[도장님, 어느 게 맞는 약인지 골라 보세요.]

왕처일도 약물에 대해서는 익히 아는지라  그 중에서 우칠(牛七)과 혈갈(血竭)  등 
네 가지 약을  골라 입 안에  털어넣고 우물우물 씹다가  물과 함께 삼켜  버렸다. 
양자옹은 생각할수록 기가 찼다.
(저 꾀죄죄한 서생의 솜씨가 정말 놀랍구나. 내 옷깃의 먼지를 털어 주는 체하다가 
품속에 간직한 약을 훔쳐갔으니.)
몸을 돌려 긴 가위를 번쩍이며 소리를 질렀다.

[자, 무기를 가지고 우리 한번 승패를 겨루어 봅시다.]
[그야 어디 제가 상대가 됩니까?]

주총이 웃고 받아 넘긴다. 구처기가 입을 연다.

[이분은 팽련호 채주시고 다른 몇 분의 존함은 어쭈어 보지 못했습니다.]

사통천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일일이 소개를 했다.

[아, 그렇군요. 무림의  쟁쟁한 고수들이  다 모였군요.  오늘 승부가  불분명한데 
쌍방에 부상자가 있으니 다른 날 한번 다시 모여야겠군요.]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일시와 장소는 도장께서 정하시오.]

팽련호의 말을 듣고 구처기는 생각에 잠긴다.
(마형과 왕형의 중독이 경하지 않고 담(譚), 유(劉) 두 사제는 각지에 흩어져 있어 
통지를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니 아무래도 몇 달 뒤에나 가능하겠구나!)

[반 년   후 팔월   한가위 달구경도  하면서  무공을  논합시다.  팽채주  생각은 
어떠시오?]

팽련호도 계산을 해본다.
(전진 칠자가 모이고  거기에 강남 칠괴까지  합세한다면 중과부적이다.  아무래도 
합세할 사람을 구해야 한다. 반 년 뒤라면 충분하겠지. 조왕이 강남에 가서 악비의 
유서를 훔치자고 했으니 강남에서 만나도록 하자.)

[중추가절이라.... 벗끼리   만난다. 구도장  생각이 근사하오.   그럼 우리  강남 
칠협의 고향에서 만납시다.]
[그것   참    좋군요.   그럼   우리   가흥부(嘉興府)    남호(南湖)   가운데의 
연우루(煙雨樓)에서 만납시다. 뭐하시다면 몇 분 더 모시고 오시오.]
[자, 그럼 우리 그렇게 결정합시다.]

팽련호의 단호한 말을 듣고 난 후 주총이 입을 연다.

[팽채주, 그 두 봉지 약 가운데 백색은 내복약이고 황색은 상처에 바르시오.]

팽련호의 오른팔은 벌써 뻣뻣하게  마비되어 있었다. 구처기와 말을  주고받으면서 
억지로 버티고 있었는데 주총의 이 말을  듣고 꿀꺽 백색의 약을 삼켰다. 이를  본 
가진악이 냉랭하게 말한다.

[팽채주, 칠칠은 사십구, 사십구일  동안 술도 마시지  말고, 여색도 가까이  하지 
마시오. 중추절, 팽채주 안 계시면 흥이 깨집니다.]
[고맙소이다.]

사통천이 팽련호의 상처에  약을 발라  주고 부축한 채  가버린다. 완안강이  땅에 
엎드려 모친의 시체에 네 번 절하고 다시 구처기를 향해 절을 한 뒤 아무 말  없이 
가려고 했다.

[강아! 네 무슨 뜻으로 하는 절이냐?]

완안강은 묵묵   부답으로 그냥  모둥이를 돌아   사다져 버렸다.  구처기는  한참 
동안이나 멍 하고 서 있다가 가진악과 주총 등을 향해 절을 한다.

[오늘 육협께서 도와 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 삼형제는 죽었을 겝니다. 제 그 못된 
제자 너석은 곽정과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가흥 취선루의 약속은 제가 진  것으로 
하겠습니다.]

강남 육괴는 그의 말을 듣고 마음속이 후련했다. 18년 동안 사막을 누비며  고생한 
일들이 이제  결말이 난   셈이다. 가진악이 몇  마디  겸손의 말을  하고  마옥과 
왕처일을 부축하여 객점으로 들어섰다. 전금발이 나가 관을 사다가 양철심  부부의 
장례를 치렀다. 구처기는 목염자의 애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괴로왔다.

[아가씨, 아버님께서는 이 몇 해 동안 어떻게 지내셨지?]



第 二十四 章. 행복의 절정


목염자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친다.

[십여 년 동안 아버님은 나를  데리고 동분서주하시면서 열흘이나 보름을 한  곳에 
머무른 적이  없었어요.  누구를 꼭  찾아야만  한다고...., 성이  곽씨인  오빠를 
찾아야 한다고....,]

여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떨군다. 구처기가 곽정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음, 네 아버지가 어떻게 해서 너를 거두게 되었느냐?]
[저는 임안부  우가촌 태생이에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숙부댁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숙모님께서 저를  몹시 학대했어요.  다섯 살  되던 그  해 숙모님은  저를 
때리고 밥조차 주시지  않았어요. 제가  문 앞에서  울고 있을  때 이  아버지께서 
지나시다가 저를  불쌍히 보시고  숙부님과 상의하신  후 수양딸로  삼으셨답니다. 
뒤에 아버지께서는 제게  무예를 가르쳐  주시고 곽씨라는  오빠를 찾아야  한다고 
각지를 돌아다니시다가  마침내 비무초친(比武招親)이란  깃발까지 내걸게  되었던 
것입니다.]
[음그랬구나! 그러나 네 아버지의 성은 목씨가 아니라 양씨야. 그러니 너도 양씨로 
바꾸렴.]
[아내요. 저는 여전히 목씨예요.]
[왜?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느냐?]
[아뇨. 하지만 저는 그냥 목씨로 있을래요.]

말소리가 낮아졌다. 구처기는  그가 우기는 것을  보고 소녀가 부끄러워하나  보다 
싶어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염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는 
벌써  완안강에게  마음이  기운지  오랬다.  그녀가  아버지의  친생  골육이라면 
양씨임에 틀림없다. 자기가  만약 양씨로  성을 바꾼다면 이  혼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왕처일은 약을   마신 후  점점  정신이 새로와졌다.   자리에 누운  채  구처기와 
주고받는 말을 들었다.  그는 그와  완안강이 무예를 겨루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네 무공이 네 아버지보다 훌륭하던데 어떻게 된 일이지?]
[제가 열 세 살 되던 해 이인(異人)을 한 분 만난 일이 있어요. 그분께서 사흘동안 
무공을 깨우쳐 주셨는데 원래 둔한 편이라 잘 배우지 못했답니다.]
[아니, 사흘 동안  배웠을 뿐인데  네 아버님보다  낫단 말이냐?  그래 그  이인이 
도대체 누구냐?]
[제가 도장을 속일 마음은 추호도 없사오나 그의 존함을 알리지 않기로 맹세를  한 
바이오라....]

왕처일은 <음>   하고 더  묻지 않았다.   그러나 왕처일은  마음속으로  목염자와 
완안강이 무예를 겨를  때 쓰던 자세와  권법을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의 무공이  어느 파에  속하는지 전연 짐작이  가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의문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 구처기를 향해 묻는다.

[구사형, 완안강에게 한 팔구 년은 무공을 익혀 주었지?]
[구 년 하고도 육 개월이오. 아, 내 어쩌다 그런 못된 놈에게 그랬는지.]
[그럼 참 이상도 하다.]
[뭐가요?]

그러나 왕처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구도장님, 어떻게 해서 양형의 후예를 만나게 되셨습니까?]

가진악이 구처기에게 물었다.

[말을 하자면 공교롭지요. 제가 여러분과  약속을 한 뒤에 여기저기 헤매며  곽,양 
두 집의   뒷소식을 묻고  다니지  않았겠음니까? 몃   년이 지나도  전연  종적을 
몰랐지요.  그래서  전  여러분과의  약속은  제가  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생각했지요. 그렇다고   체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해  다시  임안부  우가촌엘 
들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몇 명의 관인들이 양형집 살림살이를 옮기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알아보니 대금국 조왕부의  친병들이었습니다. 
가장 집물을   하나도 빼놓으면   안된다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면서  의자며  식탁 
철창이며 쟁기까지 전부  가지고 가더군요. 이상하다  생각하며 그들의 뒤를  따라 
중도(中都)에까지 왔습니다 그려.]

곽정은 그제야  조왕부 안의  포석약  방에서 본  집기들의 연유를  알게  되었다. 
구처기는 말을 계속했다.

[밤에 왕부에 숨어  들어갔웁니다. 조왕이 만  리가 넘는 먼  곳에서 무엇  때문에 
그것들을 가지고  왔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아보니 놀랍기도  하고 
기가  찼습니다.  원래  양형의  아내  포씨는  벌써  왕비의  귀한  신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죽이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 시골의 농가  같은 
집안에서 포씨는  양형의  철창을 어루만지며   밤새도록 몸부림치며  울었습니다. 
남편을 잊지 못해 괴로와 우는 그녀를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뒤에 그 왕자가 바로 
양형의 골육임을   알았지요. 몇  년이  지나 그가   장성하는 것을  보고  무예를 
가르치기 시작했지요.]
[아, 그 녀석은 계속 자기 신분을 몰랐던가요?]

가진악의 질문이다.

[저도 몇 번이나 눈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녀석은 부귀나 탐내고 해시 별로  제 
마음에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  곽정과  무예나 겨루게  한 뒤  얘기를  하기로 
결심을 내렸습니다.  후일에 사실을  알리고 그들  모자로 하여금  시골에  내려가 
조용히 여생을 보내도록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양형도 이 세상에 살아 
계셨고 저의 사형 두 사람도 간계에 속아 이 지경이 되고 만것 입니다.]

목염자는 구처기의 말을 듣고 다시 또 얼굴을 가린 채 흐느낀다. 곽정도  양철심과 
만나게 된 경위와 그날 밤 포석약 방에서 일어났딘 일들을 설명했다. 좌중이  모두 
포석약의 신세를 한탄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다시 중추절 무예를  겨룰 일을 상의하기 시작했다.  맨 먼저 주총이  말을 
꺼냈다.

[전진 칠자만 다 모이시기로 한다면 저희야 뭘 걱정하겠습니까?]
[아니오, 그들이 고수를 불러 올 텐네 그렇게 되면 중과부적이오.]

마옥의 말에 구처기도 입을 연다.

[까짓 것 고수들을 불러온다고 해서 뭐 그리 겁낼 것 없지 않습니까?]
[구사제, 모르는 말씀이오.  이 몇  해 동안 구사제의  무공이 크게  진보했다고는 
하지만 젊은 호기만을 믿고 소흘히 다룰 문제가 아니오.]
[그러나 하늘 위에 더 높은 하늘이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기  마련입니다. 
하하하....]

마옥도 따라 웃는다.

[누가 아니라오.   방금 만났던   몇 사람의  무공이  결코  우리에게  뒤지는  게 
아니었소. 그런데  그들이 엇비슷한  고수들을 불러  오기로 한  연우루(煙雨樓)의 
일은 장담 못하오.]
[그렇다고 우리 전진파가 그들에게 지겠습니까?]
[세상일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게  아니오. 방금도 가형이나  구형 등이 도와  주지 
않았다면 전진파의  수십 년  멍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 삼형제는  목숨을 
유지하지 못했을 거요.]

가진악, 주총 등이 겸양을 한다.

[그들의 흉계 때문에 그렇게 된 일, 저희가 무슨 도움이 되었습니까?]

마옥이 다시 한숨을 길게 내쉰다.

[주사숙(周師叔)께서는 선사(先師)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아 그 무공이 우리의  십 
배가 넘는데 심여 년 동안 소식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오. 어쨋든 조심합시다.]

구처기도 사형의 이 같은 말에 더 우길 수도 없었다. 강남 육괴는 마옥의 이  말을 
듣고 궁금했다. 자기들도 모르는 사숙이 계신가 해서다. 그러나 캐묻기도 어색해서 
잠자코 있을 뿐이다. 왕처일은 두 사형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한 마디 말도 없이 
사색에 잠긴 듯  부처처럼 앉아  있었다. 구처기는 눈길을  돌려 곽정과  목염자를 
바라다보고 웃는다.

[가형, 형들이 가르친 제자가 홀륭합니다. 양형도 이런 사위가 있으니 편안히 눈을 
감았을 게요.]

목염자는 얼굴을  붉히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왕처일은 그가  일어나는  것과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고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장력으로   그의 어깨를  내리친다. 왕처일의   솜씨가 전광석화와  같이 
빠르다. 목염자가 깜짝  놀라 비틀비틀하다가 그대로  앞으로 넘어진다.  왕처일이 
다시 왼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추켜 세우니 목염자는 꼼짝없이 끌려 일어나  선다. 
놀랍고도 의아한 표정이다. 왕처일이 웃으며 말문을 연다.

[목아가씨는 놀라지  마오. 공력을  시험해 봤을  뿐이오. 아가씨에게  사흘  동안 
무공을 익혀 준 그 이인이라는 분, 손가락이 아홉에다 거지차림을 했지?]
[그래오. 도장께서는 어떻게 아시나요?]
[그 구지신개(九指神 )  홍(洪)선배는 신출  귀몰하오. 아가씨가   그에게 사흘을 
배웠다니 그건 천재 일우의 기회였소.]
[애석하게도 사흘밖에 배우지 못했을 뿐입니다.]
[왜? 사흘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나? 그  사흘은 다른 사람에게  배우는 십  년보다 
나아요.]
[아! 그랬군요. 그런데 도장께서는 그 홍선배님이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나도 잘 모르지. 이십 년 전  화산(華山)의 정상에서 만났을 뿐, 그 뒤  소식조차 
들은 일이 없는걸.]

목염자는 실망이 되는지 그냥 방 밖으로 걸어 나간다. 한소영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왕도장님, 홍선배란 분이 누구예요?]

왕처일이 미소를 머금고 상좌에 가 앉는다. 그러자 구처기가 말문을 연다.

[동사서독(東邪西毒), 남제북개(南帝北 ), 중신통(中神通)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글쎄요, 들어본 것 같기도 하군요. 그런데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한소영이 이렇게 대답하자 가진악이 황급하게 묻는다.

[그럼 그 흥선배라는 분이 바로 남제북개 가운데의 북개란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중신통이 바로 우리들의 선사이신 왕진인(王眞人)이구요.]

왕처일의  대답이다.  강남  육괴는  그  홍선배라는  분이  전진  칠자의  사부와 
버금간다는 말을   듣고 숙연해졌다.  구처기가 고개를   돌려 곽정을  건너다보며 
웃는다.

[장래  부인  될  사람은  명성이  쟁쟁한  구지신개의  제자니  그  누가  제자를 
업신여기겠나? 하하하....]

곽정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무어라 변명을 하려다 그만 둔다.
한소영이 다시 묻는다.

[왕도장님, 그의  어깨를  한번 눌러  보시고  어떻게 그가  구지신개에게  무예를 
배웠다는 걸 아셨어요?]

구처기가 곽정을 항해 손짓을 한다.

[이리 오려무나.]

곽정이 그 말에  따른다. 구처기가 장심을  그의 어깨에 대고  힘을 주어  누른다. 
곽정은    우선    마옥으로부터    현문   정종의    내공을    익혔고    게다가 
기사보혈(奇蛇寶血)을 마신 뒤 공력이  크게 발전했다. 구처기가 눌렀지만  눌리지 
않는다. 그러자 구처기가 웃는다.

[넌 착한 놈이야!]

누르고 있던 장심의 기운을  갑자기 푼다. 곽정은 원래  기운을 모아 그의  장력에 
버티고 있었다. 구처기의 외력(外力)이 풀리자 곽정의 내력(內力)도 풀어졌다.  이 
순간 구처기는 전광석화처럼 허를 찌른 것이다. 구처기가 가볍게 눌렀는데도  뒤로 
벌렁 나가 떨어졌다. 곽정은 손을 땅에  찍으며 벌떡 일어나 섰다. 모두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곽정아, 구도장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하느니라.]

주총의 말에   곽정이 고개를  끄덕여 대답한다.   그러자 구처기가  다시  말문을 
잇는다.

[천하의 무학을  배우는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은  힘을 받고  지탱하지  못하면 
반드시 뒤로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지신개의 독특한 무공은  반대로 
앞으로 넘어집니다. 이게 바로 허다한 정종 무학과 다른 점이지요.]

육괴가 듣고는 일리  있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전진파의  견문이 넓은  것에 
감탄했다.

[그럼 왕도장께선 구지신개의 무공을 보신 적이 있겠군요?]

주총의 묻는 말에 왕처일이 대답을 한다.

[이십여 년 전 저의 선사와 구지신개, 황약사 등 다섯 사람이 화산의 절정에  모여 
무예를 논할 때 제가 옆에서 모시고 있다가 홍선배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알지요.]
[아, 그럼 그 황약사라는 분은 동사서독(東邪西毒) 가운데의 동사입니까?]

가진악의 질문에 구처기가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또 곽정을 바라다보며 웃는다.

[마사형께서 네게 내공을  전수해 주셨으면서도  사제지간이라 칭하지  않으셨기에 
망정이지 부인 될 사람보다 후배가 될 뻔했구나. 허허허.]
[저는 그 여자에게 장가가지 않을 거예요.]

곽정이 얼굴을 붉히고 하는 말에 구처기가 깜짝 놀란다.

[뭐라구!]

곽정이 다시 한  번 그  말을 되풀이한다.  구처기가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엇 때문이냐?]

난처해진 곽정의 입장을 보고 한소영이 말을 꺼낸다.

[우리는 양철심 선생의 후예가 남자인 줄 알고 몽고에 있을 때 이미 곽정의 혼사를 
결정했습니다. 몽고의 대한 징기스칸이 곽정을 금도부마로 봉했답니다.]

구처기는 이 밀을 듣고 냉소를 터뜨린다.

[그렇겠지. 한 쪽은 공주의 신분이니까. 그러나 네 선친의 유언은 어쩔 테냐?]

곽정은 당황한 나머지 몸둘 바를 몰라 쩔쩔매다가 땅에 꿇어 엎드려 절을 한다.

[제자는 선친을  뵈온  적이 없습니다.  어떤  유언이 계셨는지  듣지  못했사오니 
도창께서 밝히 깨우쳐 주소서.]

구처기도 망연히 실소를 한다.

[과연 너만 나무랄 처지가 아니로구나.]

그래서 18년  전 어떻게  우가촌의 곽,양  두 사람과  알게 된   일이며, 관병과의 
싸움이 벌어졌던 일, 곽,양 두 사람을 찾아헤매던 일, 강남 칠괴와 싸우게 된 동기 
및 장래 두 사람의  무예를 겨루어 승부릍 가리자고  약속한 일 등을 하나도  빼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들려주었다.
곽정은 오늘에야 비로소 자기 신세를 알게 된 것이다. 땅에 엎드린 채 흐느껴 울며 
선친의 비참한 최후를 생각해 본다. 아직도 원수를 갚지 못했으니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것이다. 사부님의 은혜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어 분골 쇄신한다 하더라도 
보답할 길이 막막했다.

[남자가 부인이 셋이건 첩이 넷이건 무슨 상관 있겠니? 장래 이러한 사연을 대한께 
알리고 둘 다 아내로 맞으면 될 게 아니냐?]

한소영의 부드러운 말에 갈피를 못 잡던 곽정은 눈물을 닦는다.

[화쟁 공주를 아내로 맞지 않겠어요.]
[그건 또 왜?]
[그녀를 아내로 맞고 싶지 않군요.]
[넌 늘 그애와 다정하게 지내지 않았느냐?]
[네, 저는 그냥 오누이처럼 친구처럼 대해 왔을 뿐인걸요. 아내로 맞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구처기는 곽정이 여간 대견스럽지 않았다.

[착하구나. 지기가 있이. 대한이 무슨 상관이며  공주면 뭘 하느냐? 넌 네  선친과 
양선배의 뜻에 좇아 저 아가씨와 결혼을 해야 한다.]

곽정의 말을  들은 뭇  사람들은  의아한 생각을  했을 뿐이요,  한소영은  여자라 
그래도 눈치가 빠른 편이다.

[네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그렇지?]

곽정은 얼굴을 붉히고 잠시 뒤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누구냐?]

한소영과 구처기가 동시에  물었지만 곽정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한소영은 
어젯밤 왕부에서 매초풍, 구양공자 등과 싸울 때도 황용을 유심히 보았다.  눈처럼 
흰옷의 아리따운 모습, 즉시 어제의 황용이 생각났다.

[어젯밤 흰옷을 입고 있던 그 아가씨냐?]

곽정이 얼굴을 더욱 붉히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처기가 답답한지  한소영을 
보고 묻는다.

[그게 누구요?]

한소영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전 매초풍이   그녀를 사매(師妹)라고  부르는 걸   들었고 또  그녀의  아버지를 
사부라고 하는 것 같던데....]

구처기와 가진악이 동시에 벌떡 일어나 서며 외쳤다.

[그럼 황약사의 딸이란 말이냐?]

한소영이 곽정의 손을 잡고 다시 묻는다.

[곽정아, 그 아가씨 성이 황씨냐?]

곽정이 고개를 끄덕여 그렇다고 대답한다. 한소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이번엔 주총이 입을 연다.

[그래 그 여자의 아버지가 허락했느냐?]
[전 그분을 만나본 일도 없고 또 누군지 알지도 못해요.]
[그럼, 너희들 맘대로 결정했단 말이냐?]
[뭐 서로 그런 말한 적도  없어요. 또 말할 필요도  없구요. 저도 그애 없으면  안 
되고 황용도 제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서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한보구는 일평생 애정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지내  온 사람이라 지금  곽정의 
하는 말을 듣고 나니 못마땅했다.

[그게 무슨 돼먹지 않은 말이냐?]

주총이 다시 부드럽게 타이른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살인을  하고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는 마귀의  두목이야, 
알겠니? 그가 만약  네가 황용을  꾀인 줄 아는  날에는 넌  죽어. 매초풍이  그의 
재주를 십분지 일도 배우지 못했는데  그래도 무섭지 않으냐? 그 도화도주가  너를 
죽이려 든다면 그 누가 너를 구해 줄 수 있단 말이냐?]
[황용이 그토록  착한 걸  보면...., 그  아버지도 악인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놈아!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지껄이느냐? 여기서  맹세를 해라. 다시는  그 
요괴 같은 계집과 만나지 않겠다구.]

한보구가 듣고 있다가  벌컥 화를 냈다.  강남육괴는 흑풍쌍쇄가 소미타  장아생을 
살해했기 때문에 쌍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부인 황약사에 대한  원한도 
골수에 사무쳐  있었다. 곽정은   난처했다. 사부들의 은혜도  막중하지만  어떻게 
황용을 만나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천성이  어질기 때문에 감정이  풍부하고 
인정에 끌리는 곽정이다. 무섭게 노려보는  사부들의 시선 앞에 마음이 괴로와  두 
무릎을 꿇은 채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을 뿐이다.
한보구가 한 발짝 다가서며 몰아 세운다.

[빨리 말을 해라.]

이때 갑자기 창 밖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니 무엇 때문에 그를 괴롭히는 거예요?]

뭇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곽정 오빠, 빨리 나와요.]

다른 사람   아닌 황용이었다.   반갑고도 놀라와  그대로  달려  나간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밝은  표정  그대로 마당에   서 있는데 한손엔   곽정의 보마를  잡고 
있었다. 말은 곽정을 보고 반가와 달려든다. 한보구,전금발,주총,구처기 네 사람이 
창 밖으로 나왔다.

[삼사부(三師父), 바로 이 여자예요. 요괴가 아닙니다.]

곽정이 한보구를 향해 외친다. 이를 본 황용이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꼴 같지 않은 땅딸보가 그래 날 보구 요괴라구?]

다시 주총에게 삿대질을 한다.

[아니, 더럽게 생겨먹은 작자가 감히  우리 아버지를 욕해요? 뭐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는 마귀 두목이라구요?]

주총은 평생 이런 소녀와 상대를 해 본 경험이 없는 위인이다. 과연 미인이로구나. 
곽정이 반할 만도 하다고 여겨 빙그레 웃고만 있는데 한보구는 화가 치밀어 입가의 
수염까지 곤두세우고 야단이다.

[빨리 꺼지지 못해!]

그런데 황용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손뼉을 치며 놀려 댄다.

[호박처럼 생겨 둥글둥글하군요. 발길로 차면 데굴데굴 잘도 굴러가게 생겼네.]

그러자 곽정이 말린다.

[황용아, 까불면 못 써. 이분은 내 사부님이야.]

한보구가 앞으로 다가서며 황용을 민다.

[호박처럼 데굴데굴....]

갑자기 손을  뻗어 곽정의  허리를 받치고  잡아당겨 두사람이  동시에 홍마  등에 
올라탄다. 고삐를 나꿔채자 말은 쏜살처럼 달린다. 한보구가 제아무리 빠르다 해도 
이 쏜살같이 달리는 홍마의  뒤는 도저히 따를 수  없다. 곽정이 정신을  가다듬고 
뒤를 바라다보았을 때  한보구 등은  까맣게 멀리 보일  뿐이다. 순식간에  달려온 
거리가 꽤나 멀다. 귓가에 바람 소리만 윙윙 울리고 있었다.
황용은 오른손으로 고삐를 어루만지며 왼손으로 곽정의 손을 끌어 잡았다.  반나절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오렛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들 같다. 곽정은 생각했다.
사부들의 곁을 이렇게  훌쩍 떠난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황용을 버리고 일생 동안 만나지 못한다면 그건 차라리 자기의 
목숨을 뺏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홍마가 한시간은 달렸을까? 벌써 중도(中都) 연경(燕京)에서 근 100여 리나 떨어진 
지점에 와 있었다.  황용은 이때야  비로소 고삐를  늦춰 말을  멈추게 하고  땅에 
뛰어내렸다. 곽정도 그를  따라 말에서  내렸다. 홍마는  목덜미를 곽정의  허리에 
비비며 반가와  했다.  둘은 손에   손을 잡고 마구   바라다보고 있었다.  마음과 
마음으로 오가는 정에 말이 필요없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이렇게 서로 바라다보다가 황용이 슬그머니 곽정의 손을 놓고  말안장에 
매달린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 시냇물에  적셔 곽정에게  주며 얼굴을  씻으라고 
했다. 곽정은 멍하니 황용을 바라다볼 뿐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황용, 우리 이러면 안 돼!]

황용이 깜짝 놀랐다.

[왜 그래요?]
[우리 돌아가자구. 가서 사부님들을 만나요.]
[뭐라구요? 함께 돌아가자구요?]
[응, 우리  손을 잡고  함께 돌아가  여섯 분  사부님과 마도장   그분들께 확실히 
말씀드려오. 이 사람이 바로 황용이라구. 요괴가 아니라구....]

부드럽고 가냘픈 황용의 손을  잡고 힘을 준다. 가진악  사부나 마옥 도장  앞에서 
얘기를 해야지.

[사부님, 사부님들의 은혜는 태산보다 높아 이 제자가 분골쇄신한다 하더라도 갚을 
길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나 그러나 황용은...., 요괴가 아니에요. 아주 
착하디 착한 아가씨랍니다....]

단호하게 말씀드려야지.   그러나 착하디   착한 아가씨....,  밖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황용은 처음 우습게 듣고 있다가 뒤에는 감동이 되었다.

[곽정 오빠, 사부님들이  날 그렇게 미워하는데  말해 봐야 소용없어요.  돌아가지 
말아요. 심산 유곡이든지 아니면  외딴 섬에라도 가서  한평생 살도록 해요.  그럼 
그들도 못 찾겠지요?]

곽정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정색을 하고 말한다.

[안 돼! 우린 돌아가야 해.]
[그들은 틀럼없이 우리를 떼어 놓을 거예요. 그럼 우린 다시는 만나지 못해요.]
[우린 죽어도 떨어질 수 없어.]

황용의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쓸쓸했었다.  그러나 이제 곽정의  말을 듣고  보니 
천언 만어의 맹세보다  더 힘이 있었다.  천하의 어떤 힘이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있단 말이냐? 곽정이 더 할 나위 없이 믿음직해 보였다.
(최악의 경우라야 죽음밖에 더 있으랴? 죽음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겠지.)

[곽정 오빠. 영원히 오빠의 말에 따를께요. 죽어도 우린 헤어지지 않는 거예요.]

곽정은 기뻤다.

[그래서 내 원래부터 착한 아가씨라고 그러지 않았나?]

황용은 밝게 웃었다. 가죽 주머니에서 쇠고기를 꺼내 물에 씻고 나뭇가지를 주워다 
불을 피운다.

[홍마를 좀 쉬게 한 뒤 돌아가도록 해요. 네?]

둘은 맛있게  쇠고기를 구워  먹고  홍마는 배불리  풀을 뜯었다.  말머리를  돌려 
객점으로 돌아왔을  때는 신시(申時)가  넘어 있었다.  곽정이 황용의  손을  잡고 
객점에 들어서니 점원이 반긴다.

[이제 돌아오시는군요. 그분들은 다 떠나셨어요.  뭐 잡수실 것을 준비해  올까요? 
분부만 하세요.]

곽정이 놀란다.

[뭐라구? 다들 떠났다구? 하시는 말씀이 없더냐?]
[없었어요. 그분들은 남쪽으로 떠나셨어요. 아직 두 시간도 채 못 되는걸요.]
[자, 우리 쫓아가지]

곽정이 황용을  보고 재촉하는  말이다.  둘은 객점을  벗어나 말등에  탄채  일로 
남쪽을 향해 달렸다. 저녘때가 다 되었는데도 육괴의 종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사부님들이 다른 길로 가시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머리를 되돌렸다. 과언 홍마는 보통 말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탔는데도 
여전히 하루 1천 리는  달린다. 조금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길에서 계속  물어 
봤지만 강남 육괴나 전진 삼자 비슷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는 대답만 들었다.
실망한 곽정을 보고 황용이 위로한다.

[팔월 중추절에는   가흥의 연우루에서   뵈올 수  있을  텐데  뭘  그래요.  그때 
사부님들도 꼭 오실 텐데요.]
[중추절이면 아직도 반 년이나 남았는걸.]
[반 년 동안 우리, 천하의 명승이나 두루 구경하면 좋지 않아요?]

곽정도 구경이라면 사양하고  싶지 않았다.  또 마음에 드는  황용까지 곁에  있지 
않은가! 만족스런 기분으로 좋다는 대답을 한다.
둘은 조그만 마완의  객점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백마 한  필을 더  샀다. 
곽정은 백마를  타겠다고 우긴다.  어쩔  수 없이  황용은 홍마를  타고  말머리를 
가지런히 하고 구경을  다닌다. 어떤  때는 황야에서 어깨를  맞대고 자기도  하고 
객점의 한   방에서 묵기도  했다.  황용도 어색하게   여기지 않았고  곽정  또한 
그러려니 했다.
하루는 그들이  경동서로(京東西路) 습경부(襲慶府)  태령군(泰寧軍)  지계(지금의 
산동성)에 당도했다. 때는 바야흐로  단오절이라 햇볕이 따가왔다. 황용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보인다. 서늘한  곳을 찾아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어디서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황용이 말에서   내려 달려가  보더니  환호성을 
지른다. 곽정이  쫓아가  보니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시냇물  양쪽의  수양버들 
가지가 맑은 물에 씻긴다. 떠노는 고기들이 시원해 보인다.
황용이 겉옷을 벗고 물  속에 텀벙 뛰어든다. 곽정이  깜짝 놀라 달려가니  황용이 
번쩍 두 손을  치켜 들었다. 양  손에 자치가 넘는  청어(靑魚)를 두 마리나  들고 
있다. 꼬리를 흔들며 빠져나가려 야단이다. 황용이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지른다.

[자,받아요.]

언덕 위에 던지는 고기를  금나법(擒拿法)으로 받는다. 어찌나 미끄러운지  손에서 
빠져나가 땅바닥 위를  펄떡펄떡 뛰어오른다. 황용이  꽂가지 같은 허리를  흔들며 
웃는다.

[내려와오. 아주 시원한데 헤엄을 쳐요.]

곽정은 사막에서 자랐기 때문에 헤엄을 칠 줄 몰라 고개를 흔든다. 황용은 두 손을 
벌리며 즐거운 듯이 소리쳤다.

[내 가르쳐 줄께요. 어서 내려와요.]

곽정은 그가 물  속에서 흥겹게 노니는  것을 보고 겉옷을  벗고 한 발  한 발  물 
속으로  들어갔다.  황용이   그의 다리를   잡아당기니  벌렁   물 속에   넘어져 
허우적거리며 물을 킨다. 황용이 웃으며  잡아 일으켜 세우고 헤엄치는 법을  알려 
준다.  두  시간도  못  돼  자유  자재로  떴다  가라앉았다  오르락  내리락  제 
마음대로다.
둘은 흥겨운   나머지 상류로  상류로 헤엄쳐   올라갔다. 그런데  물소리가  더욱 
요란하게 울린다. 산 모퉁이를 돌아서니 10여 장 높이의 폭포가 장관이다.  주렴을 
드리운 듯 높은 꼭대기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물이 시원하다.

[곽정 오빠, 우리 폭포를 타고 저 위로 올라가요.]
[좋지. 어디 한번 해볼까. 그런대 그 방신(防身) 연갑(軟甲)을 입지 그래.]
[필요 없어요.]

둘은 폭포 속을 뚫고 들어갔다. 어찌나 물이 급하고 센지 올라가기는커넝 서  있을 
수도 없다.  몇 차례  역류를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다. 곽정은   이런 때 
물러서지 않는 고집이 있다.

[황용, 우리 오늘밤 푹 쉬고 내일 다시 와서 해 보자구.]
[그래요.]

다음날 그들은 또 왔다. 그런대로 1여 장이나 뚫고 올라갈 수 있었다. 둘다 경신의 
무공이 뛰어났기에 미끄러져  내려와도 다치지는 않았다.  둘이 서로 물의  성질에 
대해 의논하며 날마다  폭포에 와서  놀았다. 8일째  되던 날,  곽정은 마침내  그 
꼭대기에 기어오를 수 있었다. 손을 뻗어 황용도 끌어 올렸다. 둘은 기뻐 미칠  것 
같았다. 손에 손을 마구 잡고 폭포를 타고 앉아 미끄럼질로 내려왔다.
이렇게 10여 일이 흘렀다. 곽정은 이제 수성(水性)에도 정통하게 된 것이다.  비록 
황용처럼 재치 있게  맨손으로 고기를  잡지는 못했지만  물에서의 재주가  빠지는 
편은 아니었다. 둘은 흥이  사라질 때까지 즐기다가 11일째  되던 날 비로소  다시 
말에 올라 남행(南行)을 했다.

이날 양자강가에   당도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보니 호연지기가  구름처럼 
일어나는 것 같다. 멀리 흘러가는 깅물 따라 시선도 흘려 보넨다.

[건너면 건너는 거예요.]
[물론이지!]

둘은 서로  이렇게 몇  달을 함께  보냈다. 말은  없어도 피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친해진 것이다. 황용은 그의 눈동자를 바라다보고 그의 마음을 알았다.
곽정은 백마의 고삐를 풀어 준다.

[넌 필요 없어. 너 갈 대로 가거라]

다시 홍마의 엉덩이를 철썩 때려 물속으로 밀어넣고, 자기들도 강심을 향해 헤엄을 
쳤다. 홍마가 앞장서 나가고 곽정과  황용도 가지런히 그뒤를 헤쳐나간다.  강심에 
이르니 홍마는 벌써 저만큼 멀어지고 하늘의 뭇 별만이 반짝이며, 출렁이는 물결만 
보일 뿐 고요한 정적 속에 오직 그들 둘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다시 또  한참을 헤쳐  나가다 보니  갑자기 검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번갯불이 
번쩍이더니 소나기가 쏟아지며 우뢰소리가 우르르 머리 위를 때린다.

[황용! 무섭지.]
[아뇨. 함께 있어서 그런지 무섭지 않아요.]

여름날의 폭우는 변덕이 심하다.  둘이 언덕에 닿았을  때는 비온 뒤의  쾌청이다. 
밝은 달만이 반공에  뜬 채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곽정은 마른  나믓가지를 
주워다 불을 피우고 젖은 옷을 말렸다.
어느 새 잠이 들었는지 강가의 초가집  수탉 울음 소리에 눈을 떴다. 동녘  하늘이 
부옇게 밝아 오고 있었다. 황용이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켠다.

[배가 고파요.]

말을 마치고 초가집 쪽으로 딛려가 수탉 한 마리를 안고 나왔다.

[우리 멀찌기 가서 잡아먹어요. 주인에게 들기면 근일이에요.]

황용은 수탉을 죽이고 진흙을  구해 반죽을 한 뒤  닭몸뚱이에 바른 후 흙과  함께 
불에 구웠다. 진흙이 말라 가며 고기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흙이 다 마르니  이제 
흙을 떼내기 시작한다. 닭털이 흙과 함께 떨어져 나가고 하얀 닭고기가  드러났다. 
입안에 침이 괴기 시작한다. 닭다리를 뜯으려고 하는데 사람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 몫으로 나눠요. 닭 엉덩이는 내게 주고.]

둘은 깜짝 늘랐다. 둘  다 청각이 예민한데 어째서  등뒤에 다가서는 인기척도  못 
들었을까? 급히 고개를 돌리니 중년의 거지 하나가 거기에 서 있었다. 거지가 입고 
있는 옷은 여기  한쪽 저기  한쪽 각기 다른  천으로 꿰맨  것이지만 헌  누더기가 
아니다. 천조각 하나하나가 모두 새것이라 마치 희극에 나오는 거지차림 그대로다. 
손에는 죽장을   짚고 등뒤에는   주홍빛의 호로병을  차고  있는데  표정은  태연 
자약하며 천연덕스러웠다.
곽,황 두  사람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그들의  맞은편에 와  앉으며 등에  멘 
호로병을 꺼내 마개를 연다. 물씬 술  냄새가 향기롭게 풍졌다. 꿀꺽꿀꺽 몇  모금 
마신 뒤에 곽정에게 건넨다.

[너도 좀 마시렴.]

곽정은 무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행동이 기괴하고 이상해 공손하게 대했다.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노인장이나 더 드세요.]

거지는 다시 황용을 바라다본다.

[좀 마시겠나?]

황용이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며 보니  호로병을 든 오른손 손가락이 넷밖에  없다. 
객점의 창 밖에 서서 왕처일과 구처기가 주고받은 말을 들은 생각이 났다. 혹시 그 
구지신개가 아닐까? 어디 한번 떠 보자.  이렇게 생각한 황용이 침을 삼키고  있는 
그에게 닭을 반  이상 찢어  주었다. 거지는  반가운 듯  닭고기를 채뜨려  입안에 
쑤셔넣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닭뼈까지 삼켜 버렸다.

[아, 참 맛좋다. 이렇게 맛있는 닭고기는 생전에 처음 먹어 보는 걸.]

황용이 미소를 머금고 남은 닭 반 마리를 또 그에게 주었다.

[원 그럴 수야 있나? 둘은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말로는 사양을 하면서도 벌써 손을 뻗어  받아서 입 안에 쑤셔넣고 우물우물  삼켜 
버리고 있었다. 거지는 자기 뱃가죽을 두어 번 두드려 본다.

[뱃가즉아 뱃가죽아! 이렇게 맛있는 닭고기는 처음이렷다.]

황용이 킥킥 웃음을 참는다. 거지는 품속에서 은전(銀錢)을 꺼내 곽정에게 준다.

[돈은 필요 없어요.]

거지는 난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다.

[원 그럴 수가. 내가 거지질은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쳐 본 일은 없는걸.]
[닭 한 마리가 무슨 폐랄 게 있겠음니까? 게다가 이 닭은 우리도 훔쳐온 건데요.]
[아주 재미있구나. 내 맘에 든다. 무슨 소원이 있거든 내 들어줄테니 말해 봐라.]

거지는 기쁜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곽정이  채 대답도 하기  전에 황용이  먼저 
입을 연다.

[제가 음식을 좀  만들 줄  아니 잡숴 보시겠어요?  그럼 우리와  함께 앞에  있는 
장터로 가 보시지요.]
[그것 좋지!]
[그런데 영감님의 존함은?]

곽정이 묻자 그 거지가 대답한다.

[내 성은 홍(洪)이요, 일곱째니까 나를 홍칠공(洪七公)이라 부르면 돼.]

황용은 그의 성이 홍가라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과연 그 사람이구나. 그런데 아주 젊은데 어떻게 해서 전진 칠자의 사부와 친구가 
될까?)
세 사람은 남쪽을 향해 내려오다가 강묘진(姜廟鎭)이라고 하는 시골 장터에 이르러 
객점에 들었다.

[제가 나가서 장을 보아 올 테니 두 분은 좀 쉬세요.]

황용이 이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자  홍칠공은 그의 둥뒤를 바라다보다가  곽정을 
보고 웃는다.

[색신가?]

곽정은 얼굴만  붉히고 어물어물  대답을 못한다.  홍칠공은 너털웃음을  더뜨리고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시간이 좀 지나자 황용이 장을  보아 
왔다. 부엌으로 들어간 그녀를 따라  곽정이 따라 들어가려 했지만 웃고  사양하는 
바람에 그냥 물러 나온다.  또한 반 시간쯤  지났을까? 홍칠공이 기지개를  켜면서 
잠에서 깨어나 코를 벌름거린다.

[냄새 좋다. 지금 무슨 요리를 만드는 거지?]

고개를 길게 내밀어 주방  쪽을 본다. 침을 삼키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양을  보고 
곽정은 빙그레 웃었다.  주방에선 냄새만  풍길 뿐 황용은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난 음식을 탐내는 버릇이 있어. 냄새를 말으면 오금을 못 쓴단 말야.]

그는 오른손을 곽정에게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고인의 말에, 식지대동(食指大動)이라더니  틀림없어. 다른  사람이 산해  진미를 
먹는걸 보면  이놈의 식지가   펄떡펄떡 뛴단 말야.  내  화가 치밀어  칼로  잘라 
버렸다네...., 그런대도 음식을 탐하는 버릇만은 종내 고치지 못하겠으니....]

막 여기까지 말을  하는데 황용이  커다란 쟁반을  들고 나왔다.  쟁반 위에는  두 
그릇의 쌀밥과  술잔, 그  밖에 두어  접시의 반찬이  놓여 있었다.   그가 접시를 
식탁에 챙겨 놓는데 향기가 그럴듯했다. 한  접시에는 구운 고기, 다른 한  접시엔 
파란 청탕(淸湯)에 빨간 앵두를 띄운 국이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황용이 잔에 술을 따라 홍칠공 면전에 놓으며 웃는다.

[칠공, 어디 제 솜씨가 어떤지 맛 좀 보세요.]

황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홍칠공은 벌써 잔을 비우고 두어 점 고기를  집어다 
입에 넣고 씹는다. 어찌나 맛이 고소한지  평소 먹어 보지 못했던 진미다.  고기는 
네 조각을 붙여 산적을 만든 것이다. 두 눈을 살며시 감고 맛을 음미한다.

[음, 하나는 새끼 양의 볼기 살이고, 또 하나는 돼지 새끼 갈비고, 하나는  송아지 
다리 고기고, 나머지 하나는...., 잘 모르겠구나.]
[알아맞히시면 굉장한 미식가라고 할께요.]

황용이 입술을 닦으며 웃었다.

[그래 그래, 노루 다리 고기에 토끼 고기를 섞었군 그래?]
[그래요! 아주 굉장하시네요.]

홍칠공은 기쁜지 숟가락을 들어 국을 떠 먹는다.

[이 국은 연잎에 죽순을 넣고 끓였구나.]

홍칠공은 입맛을 쩍쩍 다시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놀랐다. 정말 놀랄  만한 솜씨다. 십여  년 전 황제의  대내어주(大內御廚)에서도 
앵두국을 먹어 봤는데 맛이 이만 못했다.]
[그래, 황제의 어주에는  또 어떤  음식들이 있었어요? 제게  말씀해 주시면  어디 
한번 만들어 볼 테니 잡숴 보시겠습니까?]

홍칠공은 먹기에 바빠 대답할 겨를이  없다. 거의 바닥이 드러나자 서서히  말문을 
연다.

[그야 물론 많지. 그러나 지금 여기서 먹는 음식들만은 못해.]
[칠공, 그래 황제가 청해서 대접을 받았나요?]

곽정이 묻자 홍칠공이 껄껄 웃어 댄다.

[그렇지, 황제가 청해다 대접했지. 그러나 황제는 몰랐단 말일세. 허허허.  어주의 
대들보에 숨어 석  달을 훔쳐먹었으니  황제가 먹는 음식  내가 다  먼저 먹어  본 
게야. 맛있으면 접시째 갖다 먹었으니까. 어주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귀신이  먹은 
줄 알았으니까 말일세. 하하하.  그러나 저러나 자네는 장가  한번 잘 갔네,  복이 
많은걸. 음식 솜씨가  천하 제일이야. 젠장,  내가 젊었을 땐  왜 이런 색시  하나 
없었는지, 억울하구나.]

황용은 웃으며  곽정과 함께   밥을 먹있다. 황용은  식사  양이 적어  한  공기면 
충분하지만 곽정은 네 공기나  먹는다. 반찬이 맛이 있건  없전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그였다. 홍칠공은 국을 한 그릇 다 비우고 배를 문지른다.

[너희 둘이 무예를 하는 줄 내가 벌써 알았다. 제가 얻어먹었으니 답례로 몇  가지 
재주나 일러 주마, 나를 따라오려무나.]

호로병을 짊어지고 죽장을 겊은채 앞서 나간다. 곽정과 황용이 그의 뒤를 따라  들 
밖의 송림 가운데로 들어섰다. 홍칠공이 곽정을 향해 묻는다.

[그래, 뭘 배우고 싶으냐?]

곽정이 머뭇거리자 황용이 먼저 나선다.

[칠공! 저 사람의 무공이 제게  미치지 못해 늘 화를  내요. 꼭 저를 이기고  싶은 
거예요.]
[아니? 내가 언제 화를 내....]

황용이 눈치를 보내자 곽정이 입을 다문다.

[내가 보기에는 내공이  기십 년은 됐는데  너만 못하다니? 어디  한번 둘이  서로 
겨뤄 보렴.]

황용이 소리를 지르며 비스듬히 장풍을 날린다.

[이 후배의 재주 미거하오니 잘 좀 지도해 주세요.]
[몇 가지야 못 가르칠 리 있겠느냐? 다 알려 주면 큰일나라구.]
[자!]

곽정이 손을 들어 막는데 황용은 벌써 장풍을 거두고 발을 날려 하체를 공격한다.

[과연 훌륭하구나!]

홍칠공의 감탄이다.

[조심해요. 정말 때리는 거예요.]

황용이 소곤거리자 곽정은 정신을 가다듬고 남희인에게 배운 남산강법(南山掌法)을 
쓰기 시작했다. 쌍장이 쉭쉭 바람을 일으킨다. 이 장법은 원래가 오묘하다. 게다가 
곽정이 사혈(蛇血)을 마신 뒤 공력이 크게 진보하고 위력이 몇 배나 더  증가했다. 
황용은 상하 좌우로 치밀한 방어에 열중이다.
한참 싸우다  황용이 권법(拳法)을  바꾸어 황약사의   독창인 낙영장(落英掌)으로 
맞섰다.   어깨가  바람을   타고   춤을  추듯   사면  팔방이   장영(掌影)이요, 
오허일실(五虛一實) 혹은 팔허일실(八虛一實),  도원에 광풍이 일어  만화(萬花)가 
일제히 쏟아지는 듯했다.
곽정의 눈앞이   어질어질 더  견디지  못하고 퍽퍽퍽   양쪽 어깨,  가슴과  등을 
계속해서 얻어맞고 말았다. 황용이 웃으며 물러나고 곽정은 탄복을 했다.

[용이, 정말 훌륭해!]



第 二十五 章. 눅죽장(綠竹杖)의 위력


황용이 장풍을 거두고 물러나는 것을 본 홍칠공이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의 무공이 그토록 훌륭한데 무엇 때문에 내게 더 배우겠다고 하느냐?]

황용이 깜짝 놀랐다.
(아버지의 낙영장(落英掌)은 독창적인 것인데 어떻게 알았을까?)

[칠공, 제 아버님을 아시나요?]
[물론이지. 아버지는  동사(東邪)요, 나는  북개(北 )인데 모르겠느냐?   몇십 년 
동안 우리는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아버지와 싸우고도 죽지 않았다면 보통 인물이 아닐 게다.)

[그런데 어떻게 저를 알아 보셨어요?]
[네 얼굴을 거울에 비춰 봐라. 네 눈씹이 꼭 네 아버지를 닮았구나.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다 했는데 장법을 보고 생각이 났다.]
[그럼 제 아버님의 무공이 제일 훌륭하시다 이거죠?]

황용이 웃는다.

[물론 훌륭하지. 그렇다고 천하 제일은 아니야.]
[그럼 틀림없이 칠공이 천하 제일이시겠군요.]

황용이 손뼉을 친다.

[그렇지도 않다.   이십여 년   전, 우리  동사(東邪),  서독(西毒),  남제(南帝), 
북개(北 ), 중신통(中神通) 이렇게  다섯사람이 화산(華山)의  정상에 올라  꼬박 
칠일 낮 칠일 밤 무예를 겨룬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중 중신통이 제일  흩륭했다. 
우리 넷은 그가 천하 제일이라고 승복하고 말았지만.]
[중신통이 누군데요?]
[네 아버지가 말씀 안 하시더냐?]
[아뇨. 아버지는 나를  욕하고 좋아하지 않으셔요.  그래 슬그머니 집에서  달아난 
거예요. 영원히 아버지를 만나지 않을 거예요.]
[그놈의 늙은 요괴가 정말 돼먹지 않았구나.]
[저의 아버질 욕하지 마세요.]

황용의 말에 홍칠공이 껄껄 웃는다.

[거지라고 업신여기고 아무도 내게 시집을  오려고 하지 않는 일이  원망스럽구나. 
너같이 착한 딸을 그래 집에서 내쫓다니. 원 그럴 수가 있나?]

황용이 또 한 번 예쁘게 웃는다.

[글쎄 말이에요. 저를 쫓으시면 누가 칠공께 음식을 대접하죠?]
[글쎄 말이다.]

그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뗀다.

[중신통은 전진교 교주인 왕중양(玉重陽)인데 그가 죽은 후 그 누가 천하 제일이냐 
하는 것은 단언하기 어렵게 됐다.]
[전진교요? 구(丘) 모라는 사람과  왕(王)이라는 도사가 있잖아요. 그들의  무공이 
홀륭하지 않은가요?]
[모두 왕중양의 제자들이지.  일곱 제자  가운데 구처기라는  사람의 무공이  제일 
뛰어나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사숙인 주백통(周佰通)에게는   미치지 못할 
거야.]

황용은 주백통이란 이름을 듣고 살며시 놀랐다.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하다가 입을 
닫아 버린다. 곽정은 계속 그들이  주고받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말참견을 
한다.

[음, 원래 마도장 그분들에게는 사숙이 한 분 계셨어요.]
[주백통은 전진교 도사가 아냐. 무공만 왕중양에게 배웠지. 음, 그러나 저러나  네 
장인은 너처럼 명청한 녀석은 좋아하지 않을텐데?]

곽정은 뜻밖의 말을 듣고 어리벙벙하여 우물쭈물 대답을 못한다.

[저희 아버지를  만나본  적도 없어요.  영감님께서  좀 깨우쳐  주시기만  한다면 
체면을 봐서라도 좋아하시겠죠.]
[아니, 요 계집애가. 저희  아버지 무공은 하나도 배우지  못하고 못된 것만  골라 
배웠구나. 난 누가 내  보비위하는 것 아주 질색이다.  내 원래 제자 하나  거두지 
않은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멍청한 것들 거두어  뭘 하겠니?  너같이 꾀도  많고 
귀여워야 그래도 쓸 만할 텐데 말이다.]

한참이나 투덜거리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가 버린다. 멍청하니 앉아 있던  곽정이 
그제야 입을 연다.

[황용! 그 영감님 이상한 데가 있지?]

황용의 청각은  유난히 예민했다.  머리 위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홍칠공이 벌써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 영감님은 아주 좋은 분예요.  그분의 무예가 우리 아버지보다 몇  배나 
훌륭해요.]
[아니, 무공을 보지고 못하고 어떻게 알아?]

곽정이 이상해서 물었다.

[아버지께 그분 말씀을 들었어요.]
[뭐라고 하셨는데?]
[아버지 말씀이 자기의 무공을 능가할 사람은 오직 구지신개 홍칠공  한분뿐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행방이 묘연해서 뵈올 수가 없다구요.]

원래 홍칠공은 멀찌기 갔다가  즉시 절정의 경신술을  발휘하여 숲속을 돌아  나무 
위에 을다가 숨어 그들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황용이 전하는 황약사의 말을 듣고 보니 흐뭇했다.
(그놈의 황약사,  면전에서는 승복하지   않더니 마음으론 그래도  나를  존중하고 
있었던가 보구나.)
황용이 거짓으로 꾸며 하는 말인  줄 알 리 없는  그였다. 황용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간다.

[아버지의 무공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이 후회가 돼요. 공연히 놀기만  탐하다가 
잘 배우지도 못했으니  말이에요. 가까스로 뵈온  홍선생님께 배우는 것보다  훨씬 
나을  텐데....,  말을  실수해서  괜히  그분의  심사를  건드려  가시게  했으니 
어쩌지요?]

말을  마치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기짓으로  울었지만  곽정이 
부드럽게 달래는 말을  듣고는 정말 흐느끼민서  눈물까지 흘린다. 홍칠공은  나무 
위에 숨은 채 듣고 있다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황용이 한참 울고 나서 또  입을 
뗀다.

[아버지 말씀에 구지신개의 권법(拳法)이 하나 있는데 그건 천하 무적이요, 고금의 
독보라 하셨어요.  심지어 전진교의  왕중양까지도 무서워   떤다던데...., 뭐라고 
하시더라...., 응 뭐라더라...., 아니 어째 생각이 안 나지? 내 방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오빠께 가르쳐   주십사고 부탁을 드리려  했는데....,  참 
이상도 하다. 그 권법 이름이...., 뭐라더라....]

기실 황용도 모른다.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홍칠공은 더 
참을래야 참을 도리가 없어 벌컥 소리를 지르고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다.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이라고 하는 게다!]

황용은 반가와 어쩔 줄 모른다.

[그래 맞아요.  어쩜 그렇게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아버지께서  늘 
강룡십팔장을 칭찬하셨어요.]
[네 아버지가 말만은 그래도  사실대로 했구나. 나는  왕중양이 세상을 떠난  뒤엔 
자기가 천하 제일이라고 뽐내고 다니는 줄 알았구나.]

홍칠공은 곽정을 바라다본다.

[네 기초가 결코 저 아이에게 뒤지는 것은 아냐. 권술이 아직 부족해.]

다시 황용을 바라다보며  먼저 객점에  가 있으라 한다.  황용은 홍칠공이  권법을 
곽정에게 전수해 주려고 하는 줄 알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되돌아섰다.
홍칠공은 곽정을 향해 정색을 하고 말을 꺼낸다.

[너 땅에 꿇어앉아 맹세를  해야 한다. 내 허락  없이 내가 전수하는 무공을  다른 
사람에게 일러 주면 안 된다. 네 꾀 많고 귀여운 아가씨에게도 마찬가지다.]

곽정은 심히 난처했다.
(만일 황용이 알려 달라면 안 가르쳐 줄 수 없는 일 아닌가?)

[저, 배우지 않으렵니다.]
[아니, 왜 그러느냐?]
[황용이 배우겠다면 안 가르쳐 줄 수가 없습니다. 안 가르치면 황용에게 미안하고, 
가르쳐 주면 영감님께 득죄하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홍칠공이 껄껄 웃는다.

[바보 같은  녀석,  마음이 어지간히  착하구나.  하나밖에 모르니  말이다.  그럼 
이렇게 하자.   제가 네게   항룡유회(亢龍有悔)의 재주를  전해  주마.  설마하니 
자만심이 강한  황약사가 제아무리  마음속으로 흠모한들   어깨너머로 배우겠다고 
덤비지는 않을 테지. 자기도 체면이 있을 테니까.]

말을 마치자 왼쪽 다리를 오므리고 오른쪽 어깨를 안으로 구부려 오른손  장풍으로 
원을 그리며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내미니 먼전에 서 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우지끈 부러져 두 토막이 되고 말았다. 곽정은 깜짝 놀랐다. 가볍게 한 번  밀었을 
뿐인데 저렇게 강한 힘이 숨어 있다니 정말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이 나무는 서  있는 나무지만  만약 산 사람이라도  당해 내지  못할 게다.  진퇴 
유곡일 때 한 번 쓰기만 하면 상대는 저 소나무나 마찬가지지.]

즉시 자세를 두어 번 취해 곽정에게 보여 준다. 내력을 밖으로 쏟는 방법과  공격, 
수세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이 재주   하나를 가르치는데도  한  시간 이상   걸렸다. 곽정의  내공은  기초가 
튼튼하다. 이와 같은 장법(掌法)을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무공의  기초가 
잘 닦여 있을수록  배우기 쉬운  것이다. 곽정은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에 
열중했다. 두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자세를 완전히 익힌 것이다.

[네 아가씨 장법으로 말하면 허와 실  가운데서도 허를 많이 쓰는 편이다.  그래서 
대결을 할 때 허인 줄  알고 방심하면 실이 나오고,  실인 줄 알고 공격하면  허로 
나오기 때문에 늘 당하기 마련이다.]

곽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홍칠공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말인데, 그의 장법을 깨는 유일한 법문(法門)은 허든 실이든 관계치  않는 
게야. 다만  지금  배운 항룡유회만   쓰게 되면 꼼짝못하게   되는 거란  말이다. 
알겠느냐?]
[그 뒤는 어떻게 하지요?]
[그 뒤에 어떻게 하다니? 바보 같은 녀석! 제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네 
이 솜씨는 당해 내지 못한단 말이다.]

곽정은 더 물을 수가 없었다. 자세를  취한 뒤 가늘고 긴 소나무를 골라  홍칠공이 
가르쳐 준 대로 한 번 해 봤다. 소나무는 몃 번 흔들릴 뿐 부러지지 않았다.

[야,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소나무를 흔들어  뭘 하자는  게야? 다람쥐를  잡니, 
아니면 솔방울을 줍니?]

곽정은 책망을 듣고 얼굴이 흥당무가 됐다.

[이 놈아! 내가 말해 주지 않더냐?  상대가 물러설 수도 없고 이쪽에서 피할  수도 
없을 때 쓰는  게라고. 지금 네  힘이 부족했던게 아니야.  소나무가 흔들리면  네 
힘이 어디로 가겠느냐? 우선 소나무가 꼼짝할 수 없도록 만들어 둔 뒤에 쳐야지.]
[아, 이제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상대가 미치 방어할 틈을 주지말란 말씀이지요?]

홍칠공은 눈을 하얗게 뜨고 흘겨본다.

[바로 그 말이다. 이놈아!]

곽정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수십 번이나  계속했다. 치음에는  마구  흔들리던 
소나무가 이제 점점  가만히 있다.  이제 진경(進境)에  가까와진 것이다.  곽정은 
기뻤다. 손언저리가 시뻘겋게 부어 올라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했다. 홍칠공은 
답답했던지 땅에 누운 채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곽정은 신이 났다.  정신을 집중하여  전광 석화처럼  자세를 취해본다.  소나무가 
이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단전(丹田)에 모았던 숨을 몰아 내쉬며 치니 
우지끈 소나무가 부러져 나갔다.

[참멋져요!]

갈채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황용이 찬합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홍칠공은 
눈도 채 뜨기 전에 황용이 찬합에 담아 오는 음식 냄새를 말고 코를 벌름거린다.

[냄새가 좋구나.]

벌떡 일어나 찬합을 뺏듯이  가져다 뚜껑을 연다. 맛있게  구운 개구리 다리가  한 
접시요, 팔보채   오리고기에다가 눈처럼   흰 만두에서는  김이  오르고  있었다. 
홍칠공은 환호성을 지르며 두  손을 바쁘게 오르락  내리락 연방 입에  집어넣으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릇이 거의 비워지자 그제야 비로소 곽정이 
아직 먹지 않은 것을 생각한 모양이다. 미안했던지 겸연쩍게 한마디 던진다.

[얘, 이리 오너라. 이 만두 맛이 괜찮겠구나. 팔보채 오리고기보다 흴씬 맛이 있어 
보인다.]

황용이 킥킥 웃음을 참는다.

[칠공, 제가 제일 잘 만드는 음식을 아직 잡숴 보지 못하셨어요.]
[아니 무슨 요린데 그래?]
[어떻게 그걸  단번에 말할  수 있나요?  예를 들자면  튀김이라든가 두부찜  같은 
것들이지요.]

홍칠공은 미식가라, 정말 솜씨 좋은  사람들은 평범한 음식 가운데 자기의  독특한 
솜씨를 발휘하는   것임을 안다.   무림의 고수들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가운데 
신기함이 숨겨 있는 그런 재주가 진짜 재주인 것이다. 황용의 말을 듣고  홍칠공은 
근질근질한 눈치다.

[그래 그래,  그래서 내   아가씨 보고 좋은  사람이라구  하지 않았나.  내  가서 
배추하고 두부를 사 오면 어떨까?]
[그러실 필요없어요. 사오신다 해도 내 마음에 안들거예요.]
[그래 그래, 다른 사람이 사오는 게 마음에 들 리가 있나!]
[방금 저이가 소나무를 자르는 걸 봤는데요, 재주가 이제 저보다 낫겠지요?]

황용의 말에 홍칠공이 머리를 살래살래 흔든다.

[소용없는 얘기야. 일장에 반듯하게 잘라야지 구불구불...., 저게 무슨 재주라  할 
수 있나?]
[그렇지만 저를   저렇게 때린다면   제가 어떻게  당해  내요.  어쨌든  영감님이 
나쁘세요. 앞으로 저를 모욕하고 멸시하면 전 어떻게 하고?]
[그럼 날 보구 어쩌란 말야?]
[저이를 능가할  수 있는  재주를 제게도  가르쳐 주세요.  가르쳐주시면 제가  곧 
음식을 만들어 드릴께요.]
[그래라. 지가   재주 하나  배웠을  뿐인데 까짓   것 문제가  아니다.  그럼  내 
연쌍비(燕雙飛)라는 재주를 가르쳐 주지.]

말을 마치자마자 허공에 뛰어올라 소매를 나부끼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몸놀림이 보통 가볍고 재빠른게 아니다. 황용은 동작 하나하나를 세심히 
관찰하며 기억하고 있었다. 홍칠공이 권법(拳法)을  다 끝내 보였을 때 그는  벌써 
반 이상이나  배웠다. 다시  홍칠공의 설명이  끝난 후  두 시간도  못 돼  육육은 
삼십육의 연쌍비(燕雙飛)를 다 배우고 말았다. 마지막에 가서 다시 홍칠공과  함께 
해보게 되었다.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하나가 왼쪽에서 뛰어오르면 다른 하나는 
오른쪽에서 뛰어오르며 빙글빙글 맴돌다가 둘이 동시에 땅 위로 내려섰다. 한 쌍의 
물찬 제비와  같았다. 곽정은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36개 동작을   끝낸 후 
횡용이 웃는다.

[곽정 오빠, 이제 제가 다시 이기게 됐군요. 장봐가지고 올께요.]
[네 아가씨가 너보다 백 배 총명하다.]

홍칠공이 곽정을 보고 이렇게 말한 뒤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객점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황용은 말한 그대로  한 접시의 배추볶음과 두부찜을 만들어  홍칠공에게 
대접했다. 홍칠공은 황용의 솜씨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곽정과 황용이 각기  자기 방으로 헤어져  들어가는 것을  본 
홍칠공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니, 아직들 신방을 차리지 않았나?]

까불기 좋아하던 황용도 이 말을 듣자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 올랐다.

[칠공, 공연히 쓸데없는 말씀 또 하신다면 다신 음식 만들지 않을 거예요.]
[왜? 내가 말 잘못했나?]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알아차린 모양이다.

[아, 이제야 알겠구나. 너희  둘이 부모의 허락도  없이 몰래 장래를  약속했구나. 
걱정할 것 없다. 이 늙은이가 나서서 중매를 서게 되면 될 게 아니냐? 네 아버지가 
허락치 않으시면 제기랄칠 일이고 칠 일 밤이고 누가 죽고 누가 사나 한번  끝장을 
내고 말테다.]

황용은 그의 호언 장담에 마음이 흐믓해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곽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나무  숲으로 
달려갔다. 혼자  <강룡십팔강> 가운데의  <항룡유회>를 연습했다.   소나무를 너무 
많이 망칠까 두려워 허공을 쳐 본다.  20여 초(招)를 했을까? 전신에 땀이  흐르고 
자신이 생겨 흐믓했다. 이때 갑자기 사람 소리가 들렸다.

[사부님, 한 삼십 리는 달려왔을걸요.]
[이제 너희들 주력(走力)이 많이 발전했다.]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다.  말소리가 몹시  귀에 익어  깜짝 놀랐다.   네 사람이 
숲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앞장서 오는 사람은 백발의 동안인 삼선노괴  양자옹이 
아닌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그냥 달렸다. 그러나 양자옹은 벌써 곽정을  발견한 
것이다.

[어딜 달아나?]

양자옹의 뒤를 따르던  자들은 모두  그의 제자들이다. 사부가  뒤쫓는 것을  보자 
즉시 분산하여 3면으로 곽정을 쫓았다.
(소나무 숲만 빠져나가 객점까지만 뛰면 되겠지.)
나는 듯  달려나간다. 양자옹의  수제자가 퇴로를  막고 있다가  쌍장을  비스듬히 
엇걸고 소리를 지른다.

[이놈, 빨리 무릎을 꿇어라!]

사문의 절기인   관외(關外)의 대력금나수(大力檎拿手)로  곽정의  앞가슴을  틀어 
잡으려 들었다. 곽정은 왼발을 꿇고  오른쪽 팔을 안으로 구부리며 장심으로  원을 
그리는듯밖으로 내뻗었다. 방금  배워 익힌  항룡유회다. 그  수제자는 강한  장풍 
소리를 듣고 팔을 움츠려 막으려 했다. 그런데 우지끈 팔이 부서지며 몸이 5,6자나 
날아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놀란 것은 오히려 곽정  쪽이다. 있는 힘을 다  쏜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위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순간적으로 멈칫 하다가  다시 
달렸다.
양자옹은 놀랍기도 하거니와  화도 치밀어  올랐다. 숲속을 벗어나  한 바퀴  돌아 
곽정의 앞을 막아섰다. 앞을 막고 서 있는 양자옹을 보자 오금이 떨려 더 달릴  수 
없었다. 즉시 팔을 움츠리고 원을 그리며 밖을 향해 밀어붙인다.
예의 항룡유회다. 양자옹이 보니 그의 장법이 생소하다. 그러나 맹렬한  공격이다.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피했다. 곽정은  다만 이 재주  하나에 의지하고  활로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다른 무공을 가지고  그를 상대한다는 것은 무리인 줄  안다. 
길이 트인 것을 보고 그대로 달려나간다.
양자옹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뒤를 쫓았을 때 곽정은 벌써 객점 앞에 이르러,

[용이 웅이! 빨리 칠공께 구원을 청해줘요.]

고개를 내민 황용의 눈에 양자옹이 비쳤다.
(아니,  저  노괴가  어째  여기를  왔지?   마침 잘됐다.   내 어디   새로  배운 
연쌍비(燕雙飛)의 권법을 써 봐야지.)

[곽정 오빠, 노괴를 무서워할 것 없어요. 먼저 손을 써요. 내 도울테니까요.]

(황용은 이 노괴의 지독함을 모른다.)
이때 양자옹은 벌써 자기의  면전에 이르러 있었다.  권풍과 장풍이 세차게  인다. 
도저히 막을  길이  없다. 어쩔수   없이 또한번 항룡유회의   재주를 부려  본다. 
양자옹은 몸을 비틀어 꼬며  1장여나 뛰어 옆으로  피했다. 그러나 오른쪽  팔뚝이 
화끈거리며 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양자옹은  놀랐다.  불과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무공이 이토록 진전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다. 이게 모두 
자기의 뱀을 훔쳐  먹은 탓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울화가  치민다. 몸을  허공으로 
솟구치며 공격하니  곽정은 또  항룡유회로 맞선다.  양자옹은 방어가  곤란해지자 
다시 몸을 솟구쳐 피한다. 연속적인  공격이 뒤따르겠거니 했는데 없다. 옳지,  저 
재주 하나밖에는 없구나 생각하니 두렵던 생각이 사라진다.

[야, 이놈아! 겨우 그 재주 하나밖에 쓸 줄 모르느냐?]

혹시 또 다른 무서운 재주가 있나 해서 물어본 말인데 곽정은 우직해서 넘어간다.

[이 재주 하나만 부려도 막아 내지 못할 거요.]

말을 마치고 또 한 번  항룡유회로 공격을 편다. 양자옹은  또 한 번 몸을  솟구쳐 
피하고 곽정의  등뒤에 반격을  가했다. 곽정이  고개를 돌리고  다시  항룡유회로 
맞서려 했지만 양자옹이  미리 알고  피하여 계속 등을  공격했다. 곽정의  자세가 
흩어지고 불안한 수세에 몰린다. 이를 본 황용이 나섰다.

[곽정 오빠, 내가 상대할께요.]

몸을 날린다.  기러기가 장공을  날아  내리듯 사뿐히  두 사람의  중간에  내려와 
서면서  왼손의  장풍과  오른발로  일시에  공격했다.  양자옹도  몸을  움츠리고 
주먹으로 두 차례나 반격을 한다. 곽정은 두어 발 뒤로 물러선 채 관전을 했다.
황용이 제아무리   기묘한 연쌍비의   권법을 새로  배웠다고는  하지만  공력만은 
양자옹에게 미치지  못한다. 만약  몸에 연위갑(軟蝟甲)을  입지 않았더라면  벌써 
주먹에 얻어맞고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연쌍비 36로를 다  쓰고 나니 더는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양자옹의  두 제자는 중상을 입은  대사형을 부축한 채  관전을 
하다가 사부가 점점 득세하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지른다.
곽정이 막 대들어 가세를 하려는데 창 너머에서 홍칠공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은 악구란로(惡狗爛路)다.]

황용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양자옹은 별써 두  다리를 말 발처럼 벌리고 두  주먹을 
함께 모아 흔들며 악호란로(惡虎爛路)의 자세를 취했다.
황용은 우스웠다. 악호란로를 악구란로라 칭한 해학도 재미있거니와 도대체 어떻게 
다음 나올 자세를 미리 알 수 있을까?

[이번엔 취사취수(臭蛇取水)다!]

홍칠공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영리한    황용은   즉시    알아차렸다. 
청룡취수(靑龍取水)를 취사취수라  한 것이다.  이 재주는  주먹을 뻗으며  앞으로 
공격하는데 이때 등뒤에 빈 틈이 생기는 것이다. 홍칠공의 말이 끝났을 때  황용은 
벌써 양자옹의 등뒤에 돌아가 있었다.  양자옹의 공격 자세는 과연  청룡취수었다. 
그러나 황용이 미리  알고 뒤로 돌아  그의 등을 공격하니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양자옹의 무공이 심오했기에 망정이지 위험 천만이었다.
급히 자세를 바꾸어 땅에서 한 자쯤 떨어져 비스듬히 날아 피하기는 했지만 뒷등을 
얻어맞고 말았다. 그는 발끝으로 땅을 찍으며 땅에 내려섰지만 놀랍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뉘신데 얼굴도 내밀지 않고 야단이오.]

안에 있는 홍칠공은 아무 반응이  없다. 황용은 홍칠공이 안에서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가셔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양자옹이 연방 살수를 쓰자 황용이 
위급하게 몰린다.

[두려워할 것 없다. 그가  난비고후자상수(爛 股 子上樹, 엉덩이 썩은  원숭이가 
나무에 오른다)를 쓰는 게야.]

홍칠공의 말에 황용이 <킥> 하고 웃으며  두 주먹을 상하로 흔들며 맹렬한  공격을 
했다. 양자옹은 영원상수(靈猿上樹)의 재주를 보이고 있다가 즉시 자세를  바꾼다. 
적과 싸울때 이쪽의 술수가 드러나면 아무 소용도 없거니와 잘못 하다간  생명까지 
잃게 되는것이다.  다행히도 그의  무공이 황용보다는  우세하기 때문에  그런대로 
요리해 나갈 수 있었지만 마음만은 착잡했다.
(어째 내 술수를 다 알고 있을까?)
다시 또 수초(招)를 겨루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권(圈) 밖을 빠져나와  소리를 
지른다.

[노형,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 나도 체면 돌보지 않을라요.]

권법을 바꾸어 소나기  퍼붓듯 숨막히는  공격을 한다. 홍칠공이  미처 깨우쳐  줄 
틈도 없이 대들자 황용의 방어 태세가  어지러워졌다. 이를 본 곽정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다가 쏜살처럼  대들어 항룡유회를  쓴다. 양자옹이  오른발로  땅을 
찍으며 화살처럼 날아 뒤로 피한다.

[곽정 오빠, 계속해서 치세요.]

말을  마치자   집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곽정은   자세를 가다듬고   양자옹이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어떤 재주를   부리든 자기는  항룡유회로  맞설  태세다. 
양자옹은 우습기도 하고 화도 치밀어 오른다.
곽정의 만만치 않은 공격을 받고 있는 양자옹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녀석이 어디서 괴상한 것을 배워 가지고 끝끝내 저러나?)
그러나 또 어떻게 해 볼 재간도 없어 둘은 그냥 팽팽하게 버티고 섰을 뿐이다.

[야, 이 바보 같은 녀석아, 맛 좀 보거라.]

욕을 퍼부으며 몸을 날려 덮친다. 곽정이 주먹을 뻗어 내지른다. 그런데  양자옹은 
반공에서 몸을   꺾으며 손을뻗어  세 개의   투골침(透骨針)을 상,중,하로  쐈다. 
곽정이 번개같이 피하기는  했지만 양자옹은  벌써 유리한  공세를 취해  번개처럼 
손을 놀려 왼손으로 곽정의 덜미를 틀어 잡는다. 깜짝 놀란 곽정이 팔꿈치로  그의 
가슴을 내질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꼭  솜뭉치를 때린  것이나  다름없이 
부드럽기만 했다. 역시 양자옹은 양자옹이다. 도저히 곽정의 적수는 아니다.
양자옹이 막 살수를 뻗으려는데 황용의 간드러진 말소리가 들린다.

[노괴(老怪), 이걸 좀 봐요. 도대체 이게 뭐죠?]

양자옹은 혹시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해서  우선 곽정의  견정혈(肩井穴)을 
잡아  꼼짝못하게  만든   뒤 고개를   돌린다.  파란  빛이   마치 비취색   같은 
죽장(竹杖)을 들고 황용이 걸어오고 있었다. 양자옹은 소스라치도록 깜짝 놀랐다.

[아니, 홍...., 홍방주(洪幇主)....]
[그래도 손을 못 놔요?]

황용의 날카로운 질책에 양자옹은  혼비 백산하여 자기도  모르게 곽정을 쥔  손을 
놓았다. 황용과   겨루면서 자기의  술수를  미리 깨우쳐   주는 말을  듣고  반신 
반의했었다. 홍칠공이라면 10여 년 동안 강호에 얼굴을 내민 적이 없다. 설마 그는 
아니겠지 했는데 이제 그의 녹죽장(綠竹杖)을  보니 더 의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황용은 두 손으로 죽장을 잡고 서서히 접근했다.

[칠공께서 말씀하시기를   벌써 자기   목소리를 알아들었을  텐데,  간도  크다고 
하세요. 도대체 무얼 믿고 소란을 부리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이에요.]

양자옹은 두 무릎을 땅에 꿇었다.

[소인은 정말 홍방주께서  친히 왕림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소인이  제아무리 
대담하기로서니 홍방주께 득죄할 리 있겠나이까?]

황용은 마음속으로 의아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저자의 무공이  그토록  대단한데 홍칠공을  보고  고양이 앞의  쥐꼴이  되는가? 
그리고 왜 그를 홍방주라고 부르지?)
그러나 그런 내색은 전연 보이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래, 죄진 것을 안다면 어떻게 할 셈인가?]
[아가씨께서 홍방주께 잘  말씀 올려  주세요. 내, 죽을  죄를 지었지만  목숨만을 
살려 주십사고.]
[음, 그럼 앞으론 절대로 우리 들을 괴롭히지 않으렷다!]
[소인이 미처 몰라 뵙고 그런 것이오니 두 분께서는 널리 용서하여 주십시오.]

황용은 득의  만면했다.  미소가 얼굴에  떠오른다.  곽정의 손을  잡고  객점으로 
들어와 홍칠공 면전에 음식을 차려 놓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칠공, 양노괴가 무릎을 꿇고 꼼짝도 못 하는군요.]

황용이 웃으며 밖에서  벌어졌던 광경을  다시 한 번  설명했다. 홍칠공이  곽정을 
건너다보고 빙그레 웃었다.

[야, 네가  나가서 시원하게  한번  두들겨 주고  오너라. 절대로  반격하지  못할 
테니까.]

곽정은 창 밖으로 시선을 옮졌다. 거기 햇볕이 깽쨍한데 양자옹이 무릎을 꿇은  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앉아  있었고, 2명의 제자  역시 자기들  사부 뒤에  꿇어 
엎드려 있었다. 측은한 생각이 왈칵 든다.

[칠공, 저들을 용서해 주시지요.]
[야, 이놈아, 옳고 그른  것도 모르느냐? 너를 때려  당해 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구해 주었더니 뭐 저들을 용서해 주라구? 그게 무슨 말이냐? 이놈아.]

곽정은 이러한 책망을 듣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다. 황용이 웃으며 
살며시 일어선다.

[칠공, 제가 보내고 올께요.]

죽장을 짚고   객점 밖으로  나간다.  양자옹이 얌전하게   꿇어 앉은  채  황송한 
표정이다.

[홍칠공께서는 못된 짓만 하는 양노괴를  오늘 도륙을 내시겠다고 하셨다.  다행히 
곽정 오빠의 간청이 있어 할 수 없이 용서하시겠단다.]

죽장을 들어 양자옹의 엉덩이를 <퍽> 하고 때린다.

[이제 가 봐요!]

양자옹이 창문을 향해 굽신 절을 했다.

[홍방주, 직접 뵈옵고 고마운 인사를 올리도록 해주십시요.]

객점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할 뿐 아무 대답이  없다. 양자옹은 여전히 꿇어  앉은 
채다. 잠시 후 곽정이 걸어 나오며 떠들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쉿! 칠공께서 지금 잠이 드셨으니 조용히 물러가오.]

양자옹은 그제야 슬며시  일어나 곽정과  황용을 몇 번  쏘아보고는 3명의  제자를 
데리고 물러갔다. 황용은 흐뭇해 견딜 수가 없었다. 방에 돌아오니 과연  홍칠공은 
식탁에 엎드린 채 코를 골고 있었다. 황용은 그의 어깨를 두어번 흔들며 말한다.

[칠공, 칠공, 그만 일어나세요. 그리고 그 보배 같은 죽장 위력이 그렇게 대단한데 
필요 없으시면 제게 주시죠.]

홍칠공은 고개를 들고 하품과 기지개를 켜고 웃는다.

[너, 아주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구나. 이게 바로 내 밥벌이 도구란다. 그래 거지가 
개 쫓는 몽둥이도 없이 되겠느냐?]
[아니, 무공이 그렇게 훌륭하셔서 사람마다  무서워 떠는데 무엇하러 이런  죽장을 
가지고 다니세요?]

못내 탐이 나는 모양이다. 홍칠공이 껄껄 웃는다.

[바보 같으니라구. 빨리  또 음식이나  만들어 칠공께 대접할  생각이나 해라.  내 
서서히 먹어 가며 얘기해 주마.]

황용이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서너 가지 음식을 장만해 쟁반에 들고 들어왔다.
홍칠공은 오른손에  술잔을 든채  왼손으로 연방  돼지 다리를  집어다 입에  넣고 
씹으면서 곽정과 황용을 건너다본다.

[세상에  일당이  없는  것이  없느니라.  돈  좋아하는  부자들도  일당이  있고, 
도둑질하는 녹림(綠林)의 호한들도 일당이 있고, 우리같이 찬 밥 식은 국 얻어먹고 
다니는 거지들도 일당이 있기 마련이지.]
[아, 이제 알겠군요.  그 양노괴가 홍방주(洪幇主)라구  하더니, 원래  칠공께서는 
거지 일당의 우두머리인 방구(幇主)셨군요.]

황용은 역시 영리했다.

[바로 그렇다. 우리 거지들은 다른 사람에게 업신당하고 또 개에게 물리기도  하고 
그러니 일당이 모이지 않으면 어디 살아갈 수 있겠느냐? 이 죽장이나 호로박도  다 
오대 잔당(五代殘唐)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게야. 벌써 여러백 년이 넘었지. 대대로 
거지일당의 방주(幇主)가 지니는 것이다. 마치 황제의 옥새 같은 것이고  관리들의 
금인(金印)과 마찬가지야.]

황용이 혀를 내흔든다.

[그래, 주시지 않길 잘하셨어요.]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아니, 천하의 거지들이 찾아와서 지시를 받겠다면 그 얼마나 귀찮은 일이겠어요?]

홍칠공이 자기 손톱을 한 번 깨문다.

[북쪽의   백성들은  대금국이   관장하고,  남쪽의   백성들은  대송왕(大宋王)이 
관장하지만...., 천하의 거지들로 말할 것 같으면....]
[남북을 막론하고 모두 칠공께서 관장하신다 이거죠?]

홍칠공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양노괴가 그렇게  벌벌 떨었군요.  천하의 거지들이  다 몰려와  괴롭히면 
당할 장사 있겠어요? 그들이  이 한 마리씩만 잡아다  목에 집어 넣으면  근지러워 
죽을 텐데요, 호호호.]

홍칠공과 곽정도 웃음을 터뜨렸다

[양자옹이 나를 무서워하는 건 또 다른 까닭이 있지.]
[무슨 일인데요?]
[아마 한 이십 년은 맸을걸. 내가 관외(關外)에서 그를 보게 되었는데 때마침 못된 
짓을 하려다가 대게 들키고 말았지.]
[무슨 나쁜 짓을요?]

홍칠공이 잠시 머뭇거린다.

[그놈의 노괴가 무슨 채음보양(採陰補陽)인가 하는 사설(邪說)을 믿고 많은 처녀를 
구해다가 그들의 신세를 망쳤지. 뭐, 장생불로 한다던가?]
[어떻게 처녀들의 신세를 망쳤게요?]

황용의 어머니가 황용을  낳다가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황용은  아버지 
품에서 자랐다. 황약사는 또 진현풍과  매초풍 두 제자가 자기를 배반하고  달아나 
화가 난  나머지 남아  있는  제자들을 병신을  만들어 섬에서  축출했던  것이다. 
그래서 도화도에는 몇  명의 늙은  하인만 남아 있었다.  황용은 어려서부터  남녀 
사이의 일을 듣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 15살이 넘은 처녀이면서도 부부간의  일은 
전연 모른다. 그가 곽정과  뜻이 맞아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도 그와 함께  있으면 
형언할 수  없이  즐겁기만 하고   어쩌다 잠시 떨어져   있기라도 하면  쓸쓸하고 
적막함을 느낄 뿐이다. 그는 남녀가 결합하면 부부가 되어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으로 곽정은  자기의 남편이거니  했지  부부 
사이의 규방 일은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질문을 받은 홍칠공의 입장이 난처했다.

[아니, 처녀의 신세를 망쳤다니, 그들을 죽였나요?]

황용의 추궁에 홍칠공이 웃는다.

[아니야, 한  여자가 이와  같은 치욕을  당한다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 
지독할 수도 있지.  뭐라고 할까  응? 이런 말이  있구나. <절개를  잃는 것은  큰 
일이요, 굶어 죽는 것은 작은 일이다.>라구. 바로 그런 뜻이지.]

황용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럼 볼기를 친 건가요?]
[그것도 아냐. 바보같이. 집에 돌아가거든 네 어머니께 여쭈어 보렴.]
[어머니는 벌써 돌아가신 걸요?]
[그래? 네가 장차 이 녀석과 신방을 차리게 되면 자연 알게 된다.]

황용이 얼굴을 붉히고 입을 삐쭉 내민다.

[말하기 싫으시면 그만 두세요.]

마음속으로 은근히 알 듯 모를 듯했다.

[그래, 양노괴와 만났을때 바로  그런 일을 했단 말이죠?  그래서 그 뒤에  어떻게 
됐어요?]
[물론 내가 관여했지. 그 양가놈을 잡아 실컷 두들겨 팼지. 그리곤 그  아가씨들을 
집으로 되돌려  보내고 맹세를  시켰지.  다시 그런  못된 젓을  하다가  발각되는 
날에는 용서하지 않겠다구.]
[그런 일이 있었군요.]

셋은 이제 밥을 다 먹었다.

[칠공, 이제 제게 그 죽장을 주신다  해도 제가 받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한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어요.  칠공께서 평생토록  저희와 함께  계시지는 못할  텐데요. 
만일 다음날 그  양가를 만나게  되는 날 <야  이 녀석,  지난번엔 홍방주가  있어 
꼼짝못하고 죽장에  얻어맞았지만 오늘은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 이렇게  나오면 
우린 어떻게 하지요?]
[야 이놈이, 다시 너희들에게 무공을 가르쳐  달란 수작인 줄 내 모를 것  같으냐? 
얌전하게 음식이나 장만해 잘 대접할 생각은 않고? 그럼 나도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게다.]

황용은 너무나  즐거워 홍칠공의  손을  잡아 꿀고  다시 송림을  찾아  들어갔다. 
홍칠공은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   중의   제2초(招)인   비룡재천(飛龍在天)을 
곽정에게 가르쳐 주었다.
반공에 뛰어올라  아래로  공격하는 것으로,  그  위력이 대단한  재주다.  곽정은 
사흘이나 걸려 완전히 배워  익힐 수 있었다. 사흘동안  황용은 또 하나의  권법을 
배웠고 홍칠공은 10여 가지의 다른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한 달이  채 못  되어 홍칠공은  강룡십팔장 가운대  15장을 곽정에게   전수해 준 
셈이다.    항룡유회(亢龍有悔)로부터    용전어야(龍戰於野)까지   배웠다.    이 
강룡십팔장은 홍칠공 평생의  절학이다. 역경(易經)을 읽고  터득한 무공이다.  그 
초수(招數)는 한계가 있었지만  매초마다 무서운 위력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가 
화산의 절정에서 왕중양,  황약사 등과  무예를 겨룰  때 그는  이 장법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었다. 그러나 왕중양 등은 이  장법을 극구 칭찬했었다. 뒤에 그는  늘 
이 일로 한숨을 쉬곤 했다.  좀더 일찍 역경에 치중했더라면 천하제일의  무공이란 
영예는 혹시 전진교구인 왕중양에게 돌아가지 않고 자기가 차지할 수 있있던  것이 
아닐까 해서였다. 그는 원래 그 중  서너 가지만 곽정에게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그것만 가지고도 호신은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만 황용의 음식 솜씨에 반해 
자기도 모르게 15초의 장법을 가르쳐  주고 말았다. 곽정은 총명한 편은  아니지만 
가르쳐 주는 대로 주야 불문하고 열심히  익혀 완전히 습득한 것이다. 그 동안  한 
달 남짓 곽정의 무공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황용도 그 동안  그로부터 
기기 묘묘한 잡파의 무공을 적지 않게 배웠다.
어느날 아침밥을 먹고 난 후 곽정과 황용에게 홍칠공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우리 세 사람이 한 달을 같이 지냈구나. 이제 헤어질 때가 온 모양이다.]
[아! 안됩니다. 아직도 제가 대접할 음식이 많이 남아 있는걸요.]
[천하에 끝이 없는 잔치란 있을 수 없는 법이야! 내 일생 동안 다른 사람에게 사흘 
이상 무공을  가르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삼십  일이나 가르쳤다.  다시  더 
가르치면 좋지 않아서 그래.]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내 재주를 전부 배우게 될 게 아니냐?]
[끝까지 보살펴 주신다고 나쁠 것 없지 않아요. 십팔초의 장법을 전부 알려 주시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너희 둘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나로 봐선 별로 좋을 것도 없다.]

황용은 조급했다.  어떤 계책을  써서라도  남은 세  가지 재주를  모두  곽정에게 
전수토록 해야지. 그러나 홍칠공은 주섬주섬 표주박을 챙겨 짊어진 채 아무 말없이 
신발을 질질   끌며 나가  버린다.  곽정이 급히   뒤를 쫓았지만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곽정은 송림 사이에  이르러 큰 소리로  불러 
본다.

[칠공, 칠공!]

황용도 쫓아와 함께 불렀다.

[칠공, 칠공!]

소나무 숲 사이로 사람의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홍칠공이 나타나 욕을 한다.

[야 이  바보들아, 그래  나를 붙들어  뭘 하겠다는  거야. 아무리  떼를 써  봐야 
소용없다.]
[그토록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데 제자가 어찌  더 큰 욕심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절도 받지 않으시고 떠나시기에 쫓아온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꿇어 엎드려 꾸벅꾸벅  머리를 조아린다. 홍칠공이 낮빛을 달리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만 해라. 내가  네게 무공을 가르쳐  준 것은 음식을  얻어먹은 대가로  지불한 
게야. 우린 사제의 명분이 아니란 말이다.]

자기도 업드려 곽정을 향해 절을 했다. 곽정이 당황하여 다시 얼른 엎드려 또 절을 
한다.  홍칠공이 손을 뻗어 곽정의 혈도를  눌러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또 
네 번 절을 한 뒤에야 막한 혈도를 풀어 준다.

[절대로 내게 절을 한 것도 아니요, 또 내 제자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곽정은 그제야 그의 괴퍅한 성질을 알고 입을 닫았다. 홍칠공이 몸을 돌리며  <어> 
소리를 내더니 몸을  숙여 풀속에서 두어  자가 넘는 파란  청사(靑蛇) 한  마리를 
집어든다.

[뱀!]

황용이 놀라 부르짖는데 홍칠공이 손바닥으로 그녀를 1장여 밖으로 밀어붙였다.



第 二十六 章. 굳은 약속


풀 속에서는 또 몇  마리의 뱀이 기어나왔다. 홍칠공이  연방 죽장을 휘둘러  뱀을 
걷어 집어 던진다. 머리  위의 칠촌(七寸) 부근을  치기만 하면 영락없이  뻗는다. 
황용이 재미있다고 갈채를 하는  순간, 소리도 없이 두  마리의 뱀이 뒤로  나타나 
혀를 날름거리며 물려고 대들었다.

[빨리 비켜!]

홍칠공이 놀라 외치는 소리와  함께 두마리의 뱀이  번개처럼 대들어 황용을  물고 
말았다. 이런 청사(靑蛇)는  비록 믐은  작은 편이지만 독기는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한번  물리기만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죽고  만다. 그런데   그것도 한 
마리에게 물린 것이 아니라 두  마리에게 동시에 물려 놨으니 큰일이다.  그런데도 
10여 장 밖에 1만 마리도 넘는 뱀 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홍칠공은 한 손으로 곽정의 허리를 틀어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황용의 덜미를 잡은 
채 급히 송림을 빠져나왔다. 객점 앞의 넓은 곳에 이르러 황용을 보니 아무 이상도 
없어 보인다.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좀 어떠냐?]
[아무렇지도 않아요.]

황용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곽정은 뱀이 황용을 무는  것을 보고 엉겁결에  뱀의 
꼬리를 잡고 나꿔챘었다. 그러나 뱀은 머리에  피가 묻은 채 무참히 죽어  있었다. 
이를 본 홍칠공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금방 그 까닭을 알아차렸다.
(그렇겠지, 제 아버지의 연위갑(軟蝟甲)을 입고 있었으니까.)
두 마리의 뱀은 모두 연위갑에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에 머리가 찔려 죽은  것이다. 
곽정이 다시  손을 뻗어   다른 뱀 한  마리를  나꿔챘다. 송림  가운데서는  다시 
계속해서 뱀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때  홍칠공은 품속에서 한 덩어리의 검은  약을 
꺼내 입안에 넣고 씹고  있었다. 이때 벌써 수천  수만의 뱀들이 계속해서  그들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칠공, 우리 빨리 여기를 떠나지요?]

곽정이 재촉을 했지만  홍칠공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등에  진 호로병을  내려 
마개를 열고 술을 한 모금  마신 뒤에 우물우물 씹고 있던  약과 섞은 후 그  술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세   사람의 면전에  일직선으로 
약주를 뿜어 놓았다. 맨  앞에서 기어오던 뱀이 술냄새를  말고 쓰러진 채  꼼짝도 
못한다. 뒤를   따르던 뱀들도   더 접근하지  못하고  멈칫거린다.  그러나  그뒤 
송림에서는 계속   장사진을 이룬   채 몰려오다가  자기들끼리  어지럽게  얽히고 
설킨다.
이를 본 황용이 재미있다고 손뼉을 치는데 송림 속에서 괴상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3명의 흰 옷을  입은 남자들이 나타났다.  손에는 두어 장이  넘는 작대기를  들고 
휘파람을 불며 뱀을 몰고  있었다. 목동들이 양떼를  모는 것과 흡사하다.  황용은 
처음엔 재미있게 구경을 하다가 수없는  뱀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다가  구역질을 
하더니 마침내 토하기 시작했다.

홍칠공이 죽장으로 땅에  있는 뱀  한 마리를  들고 손에  잡는다. 왼손의  식지와 
중지로 뱀의 머리를 누르고 오른손 새끼 손가락 손톱으로 뱀의 배를 쭉 짼다. 파란 
뱀의 쓸개를 찾아 떼내어 황용에게 준다.

[이걸 꿀꺽 삼켜라. 씹지 말고 그냥 넘겨야지, 굉장히 쓰단다.]

쓸개를 삼키고 난 황용은 속이 후련해졌다. 고개를 돌려 곽정을 바라다본다.

[곽정 오빠, 하나 먹어 볼래요?]

곽정이  고개를  흔든다.  복사(輹蛇)의  보혈을  마셨기  때문에  백가지  독약이 
그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었다.  송림에서 기어나온  청사도 홍칠공과  황용에게만 
대들지 곽정의 몸에서 나오는 냄새 때문에 오히려 접근을 피하고 있었다.

[칠공, 이런 뱀을 사람이 기르나오?]

황용의 물음에 홍칠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만면에 노기를 띤 채 흰 옷을 입은 3명의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세 사람도 홍칠공이 뱀 쓸개를 꺼내 황용에게  먹이는 
것을 보고 화가 나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를 벌컥 질렀다.

[아니, 들토끼 같은 것들이, 그래 살고 싶지 않단 말이냐?]
[그렇다. 들토끼 같은 것들이 그래 살고 싶지 않단 말이냐?]

황용이 그들의  말을  흉내내어 되받자  홍칠공은  대견하다는 듯  황용의  어깨를 
쳐주며 웃는다. 셋은  더 참을 수  없었던지 그 중  얼굴색이 노란 중년의  남자가 
작대기를 들어  황용을 찔렀다.  바람  소리를 내며  찌르는 품으로  보아  무공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홍칠공이 죽장을 뻗어  걸치자 딱 멈춘다. 그자가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작대기를 잡고 뒤로 빼려고 했다. 그런대 그 작대기는 마치 죽장에 못을 
박아 놓은 것처럼 요지부동이다. 또 한 번 깜짝놀라 온 힘을 단전(丹田)에  모으고 
안간힘을 썼다. 홍칠공이 냉소를 머금고 손을 한 번 흔들었다.

[가보지!]

콩 튀기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녀석이  가지고 있던  두어 장이   넘는 작대기가 
여나문 토막으로 분질러지며 뒤로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이 바람에 10여  마리의 
청사가 깔려 죽었다. 나머지 두 사람이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

[형님 어떠십니까?]

나가 떨어진 그자가 리어타정(鯉魚打挺)의 자세를 취하고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어찌나 세게   넘어졌던지 전신이   말을 듣지  않아  반쯤  일어섰다가  다시  또 
주저앉는다. 10여 마리의  청사가 또 깔려  죽었다. 이렇게 되자  그들 세  사람은 
대항도 할 수  없어 한쪽으로  겸연쩍게 물러서고 말았다.  방금 넘어졌던  사람이 
겨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요? 이름이나 압시다.]

홍칠공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꾸도 하지 않고 황용이 나섰다.

[당신들은 누구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독사를  몰고 다니며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거예요?]

셋이 서로 건너다보며 대꾸를 하려는데 송림 가운데서 흰옷을 입은 서생이  나타나 
손에 쥔 부채를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서는 것이 보였다. 곽정과 황용은 그가  바로 
백타산 산주인  구양공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보았다.  그가 뱀  무리를  뚫고 
다가오는데 뱀들이 오히려 분분히 길을 비켜 주었다. 그들 세 사람이 구양공자에게 
접근하여 몃 마디 귀엣말을 주고 받는다. 그 중 한 사람이 여나문 토막으로 부러진 
작대기를 주워들고 무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방금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구양공자는 순간적으로 놀라는 기색을 보이다가 표정을 바꾸고 절을 한 뒤 
웃으며 말을 건넨다.

[방금 이 친구들이  무지하여 선배님께  실례를 한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다시 고개를 돌려 황용을 바라다본다.

[아가씨께서도 여기 계신 줄 모르고 찻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황용은 거들떠볼 생각도 않고 오히려 홍칠공을 바라다보았다.

[칠공, 이 사람 아주 좋지 않은 사람이니 버릇 좀 고쳐 주세요.]

홍칠공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구양공자가 정색을 한다.

[뱀을 기르는데도 지계(地界)가 있기 마련이요.  규칙이 있는 것인데 도대체  누굴 
믿고 못된  짓들이오?  이 뱀들은   먼 곳에서  와서 지금   배가 고프단  말이오. 
나로서도 더 이상 관리할 자신이 없소.]
[그래 지금까지 몇 사람이나 물게 했소?]

홍칠공의 힐난이다.

[우리는 광야에서 이 뱀들을 길렀기 때문에 지금까지 몇 사람 물지는 않았소.]

홍칠공이 두 눈을 무섭게 부라리며 코방귀를 뀐다.

[몇 사람 물지 않았다구! 흥, 당신 성이 구양이렷다? 그렇지?]
[그렇소! 이 아가씨가 벌써 얘기를 했을 태니 알 게 아니오? 그런데 영감,  도대체 
뉘시오?]
[아니, 당신의 더러운 이름을 누가 입에 올린단 말이에요? 이 영감님의 존함도  알 
것 없어요. 공연히 들으면 놀라 자빠지려고?]

황용이 나서서 쏘아 붙였지만 구양공자는 화도 내지 않고 오히려 황용의 아래 위를 
홅어보는 눈초리가 매우 고약했다.

[네가 구양봉(歐陽鋒)의 아들이렷다, 그렇지?]

구양공자가 대답도 하기 전 뱀을 몰던 세 사람이 한꺼번에 화를 벌컥 내며 대든다.

[아니, 이   거지 영감이  아래위도  없나? 감히   우리 노산주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게.]

홍칠공이 또다시 너털웃음을 더뜨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부를 수 있단 말이다.]

셋이 다시 욕을 퍼부으려는 순간 홍칠공은 죽장 끝으로 땅을 찍고 몸을 날려  그들 
앞을 덮치며   철썩철썩 따귀를  안겼다.  몸이 채   땅에 떨어지기도  전  죽장에 
의지하여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서 버린다.

[아니, 그렇게 훌륭한 재주를 왜 우리들에겐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어요?]

황용이 이렇게 말하며  그들 셋을 바라다보니  모두 아래턱을 잡은  채 찍  소리도 
못하고 서 있다.  홍칠공이 그들의  따귀를 때릴 때  분근착골수로 아래턱  관절을 
빼버린 것이다. 홍칠공이 놀랄 만한, 쉽지 않는 무공에 구양공자가 적이 놀라 그들 
셋 앞으로 다가가 빠진 관절을 다시 맞춰 준다.

[선배님께서는 제 숙부님을 아십니까?]
[아, 구양봉의 조카였구만. 내 이십여 년 간 그 독물(毒物)을 만나 보지  못했는데 
그래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단 말인가?]

구양공자는 아니꼬와   견딜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단번에  요절을  내고 
싶었지만 방금의 재주로 보아 보통의 고수가  아닌 것 같고 게다가 자기  삼촌까지 
안다면 틀림없는 선배 고인(高人)일 것이라 생각되어 일단 참았다.

[숙부께선 친구들이 다 죽기 전에  자기가 먼저 세상을 하직하고 귀천(歸天)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홍칠공이 앙천 대소를 한다.

[아니,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젊은 녀석이 슬그머니  욕할 줄도 아는군.  그러나 
저러나 이따위 뱀들을 끌고 다니며 무슨 수작을 하자는 게냐?]
[후배는 계속   서역(西域)에만 있다가  이번 중원(中原)   구경을 오게  되었는데 
심심할 것 같아서 데리고 나왔을 뿐입니다.]
[거짓말! 많은 여자가 당신을 모시는데 그래 심심하다니 무슨 말이에요?]

황용의 말참견에  구양공자는  부채를 펴  두어  번 부치다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황용을 유심히 훑어본다.

[오직 그리워하느니 그대뿐일러라!]

되지도 않은 시경의 몇 구절을 읊조린다.

[누가 그따위 시시한 얘기를 하랬나요?]

구양공자는 황용의 황홀한 모습에 넋을  잃었는지 아무 말이 없고, 홍칠공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숙질이 모두 서역을  횡행하며 못된 짓을 해도  거칠 것이 없었지만  중원에 
와서까지 그따위 버르장머리를 하다간 큰 코 다칠걸. 내 오늘은 자네 숙부  체면을 
봐서 그만 두니 썩 물러가도록 해라.]

구양공자는 이런 책망을  듣고 무어라  한 마디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는 
자기의 적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서자니 너무나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 후배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선배님께서  혹시 몇  해 안에  큰  병이나 
나시지 않고 다른 재난이라도 없으시거든 백타산에 한번 들러 주시면 어떠하올지?]
[뭐라고, 날 보구 한번 오라구? 이 늙은 거지는 아직까지 누구와 약속이란걸  해본 
일이 없다네. 자네 숙부도 나를 무서워 않지만 나 역시 그 사람이 무서울 것 없네. 
우리가 이십여 년  전 한 번  겨루어 봤지만 피장  파장이라 뭐 더  겨뤄 볼  것도 
없다네. 그러나 저러나 썩 물러가지 않고 뭘 우물쭈물하는 게야?]

구양공자는 홍칠공의 호통에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숙부님 무공을 반도 배우지 못했는데 이 사람 말투로 보아 거짓말 갈지는  않으니 
빨리 이 자리를 피하자.)
이렇게 생각한 구양공자가  먼저 홍칠공에게 절을  하고 다시 황용을  바라다본다. 
미련이 가득 찬 눈초리로 흘끔흘끔 되돌아보며 송림 속으로 물러난다. 흰옷을 입은 
세 사람도 괴상한 휘파람을  불며 뱀을 몰아 송림  속으로 들어간다. 순식간에  그 
많던 뱀이 한 마리도 남지않고 깨끗이 없어지고 말았다.

[칠공, 전 이렇게 많은 뱀을 본 일이 없는데 그들이 기르는 건가요?]

황용이 물었지만 홍칠공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표주박을 입에 댄 채  꿀꺽꿀꺽 
술을 몇 모금 마시고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으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큰일날 뻔했다.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겼구나.]

곽정과 황용이 영문을 몰라 동시에 물었다.

[칠공, 왜요?]
[이 독사의 무리들을 내 잠시 물리치기는 했다만 정말 대들기로 한다면 수천  마리 
수만 마리를 어떻게 한꺼번에 당해  낸단 말이냐? 다행히도 저것들이 그대도  세상 
물정을 몰라 속아 넘어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했다. 만일 저 
녀석 숙부인 그 독물이 나타났더라면 너희 둘은 비참하게 되고 말았을걸.]
[우리야 견디지 못하면 뭐 달아나면 그만이죠.]

황용의 말에 홍칠공이 껄껄 웃는다.

[나야 그 사람 두려워 않지만 너희들이 비록 달아난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  독물의 
수중을 벗어난단 말이냐? 어림없는 생각이다.]
[그 사람 숙부가 도대체 누군데 그렇게 무서워요?]
[허,   넌   동사서독(東邪西毒),  남제북개(南帝北 )   중신통(中神通)이란   말 
들어보지도 못한 모양이로구나!]

황용은 창  밖에서  구처기와 왕처일이   이들에 대해 주고받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알아요,  알구   말구요.  영감님은   북개(北 )시구,  전진교   교주  왕중양은 
중신통(中神通)이구요.]
[그렇다. 네  아버지로부더 들은  모양이로구나. 그이는   동사(東邪)요, 구양봉은 
서독(西毒)이니라. 천하제일의 무공인 왕진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남은 우리  네 
사람은  비슷비슷해서   서로를 피하고   있는  처지란   말이다. 그만하면   이제 
알겠느냐?]

황용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겼다가 서서히 입을 뗀다.

[아니, 우리 아버지는 그토록 훌륭하신데 왜 동사(東邪)라고 부르지요?]
[그 사람은  괴상한  데가 많아서   사(邪)란 별명이 붙었지.   결국 따지고  보면 
전진교만이 정통파야. 내 그래서 존경하는 게야.]

여기까지 말하고 곽정을 건너다본다.

[네가 전진파 내공을 익혔지?]
[마옥 마도장으로부터 이 년을 배웠습니다.]
[그럴 테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 달 동안에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을 배울 
수 있었겠느냐?]
[그럼 남제(南帝)는 누구예요?]

역시 황용의 질문이다.

[그분은 황제의 한 분이다.]

곽정과 황용이 모두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황제의 한분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을까?)
홍칠공이 한숨을 쉬고 말을 꺼낸다.

[그가 황제의 한 분이라고  하지만 그의 무공이 훌륭하여  네 아버지나 나도  십분 
그를 두려워하고 있단다. 남화가 서금을 제어(南火剋西金)한다고, 독물인 구양봉의 
철천지 원수란다.]

곽정과 황용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데 홍칠공은 정신을 잃은 듯 무언가  생각에 
골똘해 있었다. 홍칠공이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이마를 찡그린다. 뭔가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는   듯한 표정이다.   잠시 뒤  그는  객점을  향해  안으로  들어간다. 
부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홍칠공의 옷자락이 못에  걸려 찢어졌다. 홍칠공은  옷이 
찢어진 것도 모르는 눈치다.

[제가 꿰매 드릴께요.]

황용이 안으로 들어가 객점에서 바늘과 실을 빌어 가지고 나왔다. 홍칠공이 생각에 
열중해 있다가 바늘과 실을  가지고 다가서는 황용을  보고는 얼른 일어나  바늘을 
채뜨려 가지고 문  밖으로 나간다.  곽정과 황용도 의아하게  생각하며 뒤를  쫓아 
나갔다. 홍칠공이 손을 번쩍 휘둘러 바늘을 쏜다.
바늘이 날아가   땅에 꽂히며  메뚜기  한 마리를   찍었다. 황용이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홍칠공이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 뵀다. 바로 이렇게 하면 되는 걸....]

곽정과 황용이 멍하니 그를 바라다본다.

[구양공, 그놈의 독물이 독사와 독충을  기르기 좋아한단 말야. 이렇게 많은  뱀을 
마음대로 몰고 다닌다는 게 손쉬운 일이 아니지.]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잇는다.

[내 보기엔   구양공자란 그  녀석이  별로 좋은   사람 같이  보이지  않던데  제 
숙부놈에게 좋게 말할  리 없지.  만일 우리  둘이 부딪치게  되는 날엔  아무래도 
독사나 독충을 물리칠 방법이 있어야 되겠단 말야.]
[그러니까 바늘로 이렇게 독사를 찍겠단 말씀이군요.]

황용이 아는 체를 하자 홍칠공은 눈을 하양게 뜬다.

[아니, 조 약아빠진 게  다른 사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제가 먼저 해  버린단 
말야.]
[아니, 아까 쓰시던 약이 있지 않아요?  술과 함께 뿜으면 독사가 꿈쩍도 못  하던 
약 말이에요.]
[그거야  잠시   주춤하게  만들   뿐이야.  잔소리   그만  하고   있거라.  지금 
만천화우(滿天花雨)의 재주를 한 번 부려 보자. 바늘을 사용할 수 있는지 어떤지를 
시험해 봐야겠다.]
[그럼 제가 나가서 바늘을 사 올께요.]

말을 마치고 시장 쪽으로 달려나간다.

[약삭빠른 영감이라 이렇게 약삭빠른 딸이 있구나!]

홍칠공은 황약사가 부러운지 한숨을 내쉰다.
밥 한 사발이나 먹었을까 하는  시간이 흘렀다. 황용이 시장바구니에 두  보자기가 
넘는 바늘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내가 이 시장 안에 있는 바늘이란 바늘은 몽땅 털어 왔어요.]

홍칠공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흐뭇한 표정이다.

[자! 우리 재주를 익히러 가자꾸나.]

황용이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 나간다.

[칠공, 저는 배우지 않으렵니다.]

곽정의 엉뚱한 말이다.

[왜?]
[영감님께서 잘 가르쳐 주시지만 제가 다 익히지 못할 것 같습니다.]

홍칠공은 무슨 뜻인지를  알았다. 자기가  더는 가르쳐 주지  않겠다는 말을  먼저 
한데다가 워낙 곽정이 순박해서 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석 심지가 꽤 착하군!)

[자, 우리 나가자!]

홍칠공은 황용의  손을 잡은  채 사라지고  곽정은 혼자  뒷산에 올라   새로 배운 
강룡십오장(降龍十五掌)을 연습해 보았다. 연습을  할수록 장 가운데 위력이  무궁 
무진함을 느끼게 되어 몹시 기분이 좋았다.
10여 일이 지나자 황용은 만천화우척금침(滿天花雨擲金針)을 다 배우게 되었다. 한 
손으로 10여 개의 바늘을 동시에 발사하여 상대의 급소를 찌를 수 있는  재주였다. 
다만 한 번 날려 여러 명을 동시에 칠 수 있는 재주는 아직 연습이 부족한  탓인지 
익숙치 못했다.

이날 연습이 끝난 후 홍칠공은 소나무  아래에 누운 채 쿨쿨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얼마 안 있으면 헤어져야 할 그에게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생각으로 황용은 
장바구니를 끼고   시장을 찾았다.  왼손에 바구니를   든 채  객점으로  돌아오는 
도중에도 오른손은 계속 만천화우(滿天花雨)의  재주를 연습해 본다. 객점이  이제 
멀지 않았는데  방울  소리를 울리며  큰길  저쪽에서 한  필의  청총마(靑 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말 위에는 소복을 입은  여자가 타고 있었다. 객점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간다.
황용이 보니 양철심의  수양딸인 목염자다. 목염자와  곽정이 혼약을 맺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슬그머니 질투심이 난다.
(저 여자가 뭐 그리  잘났다구? 강남 육괴와  전진파의 도사들이 성혼을  시키려고 
야단들이지?)
생각할수록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화풀이나 할까보다.)

바구니를 든   채 객점으로  들어섰다.  이때 목염자는   식탁 앞에  수심에  잠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객점의 점원이 무엇을 들겠느냐고 묻는다.

[국수 한 그릇 삶아 주고 쇠고기나 좀 썰어 줘요.]

점원이 대답을 하고 물러난다.

[쇠고기가 뭐 맛이 있다구 그래요?]

황용의 말참견이다. 목염자는 황용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북경에시 곽정과 함께 
홍마를 타고 사라진 그 여자가 아닌가? 벌떡 일어나 아는 체를 한다.

[언제 여기 왔어요? 자 여기 앉아요.]
[그 도사들과 땅딸보들이랑 함께 왔나요?]
[아뇨, 나 혼자예요.]

황용은  구처기  등이  마땅치  못했었다.  그런데  혼자  왔다는  말을  듣고보니 
반가왔다. 웃음을 머금고 목염자의 아래 위를 훑어본다. 몸에는 소복을 입고  머리 
위에도 하얀  꽃을 꽂고  있었다.  얼굴은 지난  번보다 수척해  보였지만  어딘가 
가련한 모습이 더한층 아름다왔다. 허리에는 한 자루 비수가 꽂혀 있었다.
(아, 저 비수는 곽정 오빠의 아버지와  저 여자의 아버지가 약혼 예물로  주고받은 
것이로구나.)
목염자가 허리에 찬 비수를 가리키며 황용이 말했다.

[그 칼 좀 보여 주세요.]

이 비수는 포석약이  숨을 거둘 때  몸에서 꺼낸 유물이다.  양철심 부부가 둘  다 
세상을 떠났으니  비수는 자연  목염자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때  황용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보고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거절할 수도 없는 처지라 칼집째 건네 
주고 말았다.
황용이 칼자루를 보니 그 위에 <곽정>이란 두 글자가 역력히 새겨져 있었다.
(이건 곽정 오빠의 물전인데 되돌려줄 수야 없지!)
비수를 뽑아 드니 일진의 한기가 얼굴을 향해 엄습한다.
(좋은 칼이로구나!)
칼집에 다시 꽂고 품속에 챙겨 넣는다.

[이 칼 곽정 오빠께 드릴래요.]
[뭐라구요?]
[비수에 곽정이라  씌어 있지  않아요? 그러니  그의 물건이  틀림없지요.  이따가 
만나면 주겠어요.]
[아니, 이건 내 부모가 남기신 유일한 유물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빨리 이리 
줘요.]

목염자는 화가 나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재주 있거든 뺏아가구료.]

이렇게 말하면서 객점을  빠져나와 밖으로 달렸다.  홍칠공은 지금쯤 송림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것이요, 곽정은 뒷산에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왼쪽을 향해  달렸다.  목염자는 초조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만약  홍마에 
올라타기만 하면 뒤쫓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큰소리를 지르며 날듯 뒤를 쫓는다.
황용은 몇 번이나 모퉁이를 돌았다. 높은 버드나무가 서 있는 숲속으로  들어왔다. 
사방을 휘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웃는다.

[나를 이기면 금방 되돌려 주지요.]
[농담하지 말아요. 나는 그 비수를 부모님 대하듯 하는데, 그래 가지고 가서  무얼 
하겠다는 거예요?]

황용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갑자기 몸을 바람처럼 움직이며 목염자를 향해  장풍을 
날렸다.  목염자가  번개처럼  피하기는  했지만  황용의  낙영강(落英掌)은  변화 
무쌍하고 오묘하기 비할 데 없는 창법이라 퍽퍽 옆구리를 두 번이나 얻어맞았다.
통증이 뼛속을 파고들어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왼쪽으로  빠져나오며 몸을  돌려 
주먹으로 쳤다. 전광 석화처럼 빨랐다.

[이건 뭐 파옥권(破玉拳)이로군. 하나도 겁나지 않아.]

목염자는 황용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이건 홍칠공께서 내게만 가르쳐 주신 독특한 무공인데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데 황용은   왼손 주먹을  휘두르며 오른손   주먹으로 직공(直攻)을  해온다. 
모두가 파옥권을  깨는 권법이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펄쩍 뛰어  피하며 
외친다.

[잠깐만. 이 권법을 누구에게서 배웠어요?]
[내 스스로 생각해 낸 거예요. 이 따위 시시한 무공 뭐 그리 대단할 것이 있어요?]

황용은  웃으며  말을  끝내고   연속해서 파옥권을   깨는  석파천경(石破天驚)과 
개천벽지(開天闢地)로 공격을 했다. 목염자는 마음속으로 더욱 이상하게  생각하며 
한편으로 방어를 하면서도 계속 물었다.

[홍칠공을 알아오?]
[내 친구인데 모를 리가 있나오? 그분께  배운 재주로 대들지만 난 내  공력만으로 
해 볼래요. 이기는지 지는지 끝까지 해봐요.]

웃음을 머금고 말은 부드럽게 했지만 손은 매섭게 놀리며 육박했다. 황용의 무예는 
황약사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목염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또  홍칠공으로부터 수십  가지의 무공을  배워 놨으니  더욱더 정진을  한 
것이다. 목염자가 어디  그의 상대가  되겠는가? 빼앗긴  비수를 되찻아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도중에 피해  달아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상대의  왼손이  번쩍 
들리는 순간 한 자루의 단도와 같이 비스듬히 자기를 향해 내리친다. 장풍이  쉭쉭 
날카롭기 짝이  없다. 몸을  옆으로 살짝  피하기는 했지만  목덜미가  뜨끔하더니 
뻣뻣해 왔다. 황용의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가 벌써  목덜미 추골(椎骨)에  있는 
대추혈(大椎穴)을 찌르고 만 것이다. 여기를 찔리면 순식간에 온몸에 마비  현상이 
온다. 황용이  다시 한  발짝  대들며 손을  뻗어 허리에  있는  환도혈(環跳穴)을 
찌르자 목염자는 벌렁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황용은 비수를   뽑아들고 그의  얼굴을  향해 몇   번이나 찌르는  시늉을  했다. 
슬쩍슬쩍 피부를 스쳤을 뿐 추호도 건드리지는 않았다. 목염자는 두 눈을 감은  채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얼굴 위로  차디찬 한기만  오락가락하지  전연 
아프지가 않았다.   두 눈을  뜨고  보니 시퍼런   칼날이 귀  옆으로  살짝  비켜 
미끄러지는 것이 아닌가?

[죽이겠으면 빨리 죽일 일이지 무엇 때문에 놀리는 거냐?]
[원수진 일도 없는데 뭣  때문에 죽인단 말이에요. 내게  한 가지 맹세를 하면  놔 
주지요.]

황용은 웃고 말했지만 자존심이 강한 목염자가 그 말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죽이겠으면 마음대로 죽이지, 뭘 맹세를 받고 싶단 말이냐. 어림없는 수작이다.]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젊은 나이에 죽다니 그 무슨 쓸데없는 말인가요?]

목염자는 두  눈을 감은  채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황용이 
가볍게 소곤거렸다.

[곽정 그 오빠는  정말 나하구 친해요.  만약 그와 곁혼을  하려고 생각한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에요. 그가 결코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요.]
[뭐라구?]
[맹세를 하기 싫으면 그만 두세오. 그가 당신을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니까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에요.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가 누구에게  시집을 
간다는 거예요?]
[곽정 그 오빠, 곽정 말이에요.]
[무슨 일이 있든지 그에게 시집가지 않겠다는 것 말이에요.]

목염자가 미소를 띄었다.

[칼을 내 목에 갖다 대고 결혼을 하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인걸요!]

황용은 반가왔다.

[정말이에요? 왜 그래요?]
[내 의부의 유명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말을 이었다.

[의부께서 잠시 착각을 하신 거예요. 벌써  나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기로 하신  걸 
깜빡 잊으셨던 거지요.]
[아, 정말 미안하게 됐군요. 공연히 내가 오해를 했나 봐요.]

급히 그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뻣뻣해진 그의 수족을 동시에 주물러 주었다.

[언니라구 할께요. 그래, 누구에개 시집가기로 했나요?]

목염자는 두 볼을 붉힌다.

[아마 본 일이 있는 사람일 거예요.]
[제가 만난 일이 있다구요? 누굴까? 도대체 어떤 남자가 언니처럼 훌륭한 아가씨와 
어울릴 수 있을까?]
[그럼 천하에 곽정 오빠만 훌륭한 줄 알았나요?]

목염자도 빙그레 웃는다.

[언니, 혹시 언니가  그에게 시집가지  않겠다는 것, 곽정  오빠가 둔하기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아니, 그가 왜 둔한가요? 마음씨가 어질고 순박하고, 전 정말 탄복했어요.]
[그럼 방금 왜 칼을 목에 대고 그와 결혼하라 해도 할 수 없다고 했어요?]

목염자는 황용의 천진 난만한  물음과 곽정에 대한  깊은 연정에 감동되어  황용의 
손을 꼭 잡았다.

[동생, 마음속에 곽정  한 사람뿐인데  이 다음 그보다  인격이 몇백  배 몇천  배 
훌륭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애요?]
[그야 물론 안 되지요. 그리고 또 그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을라구요?]
[곽정 오빠가 이런 말 들으면 얼마나 흐믓할까? 그날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북경에 
와서 비무초친(比武招親)할때 어떤 사람이 나를 이겼는데....]
[아, 이제   알겠군요. 마음속으로  사모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왕자인  완안강 
그이로군요.]
[그가 왕자면   어떻고 거지면   무슨 상관이  있나요?  내  마음속에는  그  사람 
하나뿐인걸요. 좋은  사람이라도 그렇고  또 나쁜  사람이라도 할  수 없어요.  전 
아무래도 그 사람 것인걸요.]

말은 가볍게 하면서도 의지만은 굳건해 보었다. 황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손에 
손을 마주잡은 채 버드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이것 도로 받으세요.]

황용이 목염자에게 비수를 준다.

[이건 곽정 오빠의 물건이니 그냥 가지고 있어요.]
[고맙군요.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군요. 그런데   혼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뭐 도와 드릴 일이라도 있으면 서슴지 말고 말씀하세요.]

목염자는 얼굴을 붉히고 낮은 소리로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한다.

[그럼 저하고 함께 홍칠공을 뵈러 가요.]
[아니, 홍칠공이 여기 계신가요?]

황용이 고개를 끄덕이고 목염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는데 머리위에서 나뭇잎 하나가 
떨어져 내려왔다.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열을 지어   서 있는  버드나무  위로 
필쩍펄쩍 뛰어 멀어져 간다. 나뭇잎을 주워 보니 바늘로 찌른 글자가 보인다.
<두 아가씨가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게  좋아. 황용이 다시  야료를 부리면  때려 
주려고 했는데.... >
이름도 없이  표주박이  새겨져 있었다.  홍칠공이  쓴 것이  틀림없었다.  맹세를 
요구한  일까지도  모두  홍칠공에게  들키고  말았다고  황용은  생각했다.  둘이 
송림으로 찾아왔지만 홍칠공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곽정은 벌써  객점에 
돌아와 있었다.  황용이 목염자와  서로  손을 마구잡은  채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의아한 생각을 했다.

[목세자(木世姉)! 내 사부님을 만나셨던가요?]
[전 그 사부님들과 헤어진걸요. 모두들  팔월 중추절 가흥의 연우루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사부님들 다 별 일 없으시죠?]
[걱정하지 마세요. 그분들 화내지 않으셨어요.]

목염자가 웃으며 안심하라고 했지만  곽정은 불안했다. 사부님들은 틀림없이  크게 
화를 내고 계실 것이다. 차도 마실 마음이 없었다. 목염자는 황용에게 어떻게 해서 
홍칠공을 만나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황용이 자세히 그 전말을 들러주었다.

[정말 복이  많군오. 영감님을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모시고  지낼 수  있었으니 
말이에요. 나 같은 건 한 번 뵙기라도 했으면 하는데도 그렇게나 힘이 드는데.]
[그래도 슬그머니  뒤에서  보살펴 주시지  않았어요?  방금도 제가  정말  언니를 
해치우려 대들었다면 그분이 나타나 구해 주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목염자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서서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던 
곽정은 의아한 표정이다.

[황용이 방금 뭐 목세자(木世姉)를 해치우려고 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부끄러워 말 못 할 거예요.]

목염자가 돌려다  보니 자신의  일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고  만다. 
황용이 간지럽게 그의 허리를 건드리며 놀린다.

[아, 말씀하시지 그래요? 할래요, 안 할래요?]

목염자가 혀를 길게  뽑으며 고개를  내젓고 허리를 잡고  웃어댄다. 이들의  친한 
모습을 바라다보는 곽정도  흐뭇해서 더  묻지 못하고 만다.  식사를 끝내고  그들 
셋은 송림 속을 거닐며 정담을 나눴다. 목염자에게 어떻게 해서 홍칠공에게 무예를 
배우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땐 내가  아주 어렸을  때예요. 어느  날인가 아빠를  따라 변량(卞梁)에  오게 
되었거든요. 우린 객점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나는 객점  앞에서 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두 명의 거지가  거기 쓰러져 있었어요. 온몸이 피투성이라  사람마다 
더럽다고 거들떠보지도 않더군요.]
[아, 그래서 착한 마음에 그들을 치료해 주셨군요.]
[치료는 무슨 치료예요.  내가 치료할  줄 아나요? 그냥  불쌍하고 딱해서  그들을 
부축해다 아빠 방에  뉘고 상처를  씻은 후 그냥  천으로 싸주었을뿐인걸요.  뒤에 
아빠가 밖에서 돌아오셔서 이걸 보시고 잘했다구 칭찬을 해 주셨어요. 엣날 아내도 
꼭 나처럼 그랬었다고 말씀하시며 한숨을 다 내쉬시더군오. 아빠가 그들을  치료해 
주시고 몇 냥의 노자를 주자 그들은 고맙다며 가버렸어요. 몇 달이 지난 뒤 우리가 
양주(楊州)에 갔는데 거기서 그들 거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요.]

목염자는 황용에게 계속해서 무예를 배운 계기를 자상히 설명했다.

[그때 그들은 상처도 다 아물었어요. 우리를 안내해서 어떤 낡은 절을  찾아갔는데 
거기서  홍칠공을  뵙게   되었어요. 홍칠공께서   몇  마디   칭찬을 해   주시고 
파옥권법(破玉拳法)을 가르쳐  주시는데 사흘에  다 배웠답니다.  나흘째 되는  날 
다시 그  절에 갔더니  영감님은 벌써  떠나신 후고,  난 다시는  그분을 뵈올  수 
없었답니다.]
[칠공께서 제게 여러 가지 재주를 가르쳐 주셨는데 언니께서 배우고 싶으시거든 한 
보름 여기  함께 머무르시면  제가 가르쳐  드릴께요. 칠공께서  아신다  하더라도 
책망은 안 하실 거예요.]
[고맙군요. 그러나 지금 저는 급한 일이 하나 있어요. 그래서 틈을 낼 수  없군요. 
다음에 안 가르쳐 주신다 하더라도 제가 떼를 써서 배우지요.]

황용은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더  묻지 
못했다. 오후 미시(未時) 전후  해서 혼자 밖에  나갔다. 저녁때 돌아온  목염자는 
희색이 만면해 있었다.
저녁밥을 끝낸 뒤 목염자와  황용은 한 방에 묵게  되었다. 황용이 먼저  잠자리에 
누워 자는 체하면서  목염자를 훔쳐  보았다. 목염자는  턱에 손을  괸 채  촛불을 
바라다보며 무인가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는 보퉁이를 끌러 무언가 
꺼내 들고  입에 갖다  댄다. 표정이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그 물건은  비단으로 
수놓은 손수건과 같았다. 몇 송이의 꽃 같은 수가 놓여진 천이다.
목염자는 어루만지고 있던 천을 홀쩍 천정 위로 던진다. 황용이 깜짝 놀라 눈을 꼭 
감았다.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방안에 바람이 인다.  목염자가 그 천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눈을 뜨고 보니 그것은 수건이 아니라 찢어진 옷자락이다.
(아니, 저건 왕자와 무예를 겨룰 때 그의 비단 외투에서 찢어낸 옷자락이 아닌가?)
그러나 목염자는  가냘픈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다. 무언가  아름다운  추억에 
사로잡힌 듯한 표정이 분명했다. 저토록 완안강을 사모할 수 있을까?
목염자는 자고 있는 황용을 내려다보는 모양이다.

[어쩌면 이렇게 예쁘담!]

혼자 중얼거리며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담을 뛰어넘어  사라진다.  황용은 
호기심이 일어나  더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뒤를 
밟았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서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황용은 경신술을  쓰면서 
그 뒤를 바싹 쫓았다.
황용의 무공이 목염자보다  훌륭했기 때문에  금방 쫓아갈 수  있었다. 10여  장의 
거리를 두고 발걸음을  늦춰 서서히  쫓기 시작했다. 혹시  발각되지 않을까  해서 
조심하는 것이다. 목염자는 시내에 들어와 어떤 커다란 집 지붕 위로 뛰어 올랐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남쪽에 있는 제일  큰 집채로 뛰어간다. 황용은 매일  장을 
보러 다녔기 때문에 이 집이  당지의 수부(首府)인 장씨(蔣氏)의 저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시, 노자가 떨어져 돈을 훔치려고 그러는 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목염자의 뒤를 밟는다. 
황용이 대문  쪽을 바라다보니  불빛이  대낮처럼 밝게  켜져 있었다.  등  위에는 
<대금국사신(大金國使臣)>이란 5개의 금 글자가 역력했다. 4명의 금나라  군사들이 
요도를 차고 파수를 보고  있었다. 목염자는 후원을 한  바퀴 돌아 가볍게  담장을 
뛰어  넘는다.   거기도  화원이다.  화원   안의  가산에  몸을   숨기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목염자가 촛불이 비치는 동상(東廂) 쪽으로 접근한다. 창호지  위에 
남자의 그림자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아마도 방안을 거닐고  있는  모양이다. 
목염자는 두  눈이 뚫어지도록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듯  아무 
동정도 없다. 방안에  있는 그림자는  여전히 방안을  서성기리고 있었다.  오히려 
황용이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저 인니는 무얼  저렇게 꾸물거리고 있담.  답답하게도 시간만 끌고  있네. 
방안으로 뛰어들어 혈도를 눌러 버리면 꼼짝도 못 할 텐데.)

즉시 다른 쪽 모퉁이로 돌아 그 자리를 피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대신 수고를 해줄까  보다. 저 사람을 쓰러뜨리고  숨어 버리지, 놀라나  안 
놀라나 구경 좀 하게.)
막 방으로 뛰어들려는 찰나 안에서 방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으리, 방금 역마가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남조(南朝)에서 사신을  영접하는 
명마 지휘사인 단(段) 장군께서 내일 모레 여기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냐!]

방안의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사람은 다시 물러 나간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금나라 사신인  모양인데, 그럼 목언니가 노자를 훔치러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정이  있는가 보군. 그렇다면 내가  함부로 중간에 나설  일이 
아니지.)
손끝에 침을 발라 창호지에 대자  구멍이 뚫린다. 안을 들여다보니 금나라  왕자인 
완안강, 바로 그  사람이 거기에  서 있었다. 놀랍고도  반가왔다. 완안강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어루만지며 방안을 거닐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가 촛불 가까이 
갔을 때 유심히  보니 어루만지고 있는  물건은 다른 것이  아니라 녹슬고  부러진 
창이었다. 황용은 이 부러진 창이 그의 생부인 양철심의 유물이란 사실을  모른다. 
다만 그것이   목염자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거니  생각하니  반갑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아니,  하나는   옷깃을 어루만지고,   다른  하나는   창끝을 어루만지며   서로 
그리워하고만 있다니. 지척이 천 리라더니 정말 그렇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끽> 하고 웃고 말았다.
완안강은 깜짝 놀라 촛불을 끄고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이때 황용은 벌써  목염자의 뒤로  접근해 있었다.  두 손을  둥글게 말고  왼손은 
밖에서 안으로 오른손은 위에서  아래로 놀리며 목염자의  급소가 있는 곳을  눌러 
꼼짝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는  72금나수(擒拿手) 가운데  역나법(逆拿法)이다. 
목염자가 저항을 하려고 했지만 저항할 틈이 없었다.

[언니 가만히 계셔요. 내가 좋아하는 분께 보내 드릴께요.]

완안강이  방문을  박차고  뛰어   나오려고 하는데   간드러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하는 사람이 가니까 잘 받으세요.]

완안강이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어느   틈에 부드러운 여체가   자기 팔에  안겨 
있었다. 영문을  몰라 어리벙벙한데  먼거  말을 한  여자는 벌써  담을  뛰어넘고 
있었다.

[언니, 어떻게 내게 고맙다고 할래요?]

은방울 굴리는 듯한 목소리가 점점 멀리  사라지고 팔에 안긴 여자는 스르르  빠져 
내려왔다. 완안강은 그가 혹시 자기를 해치지 않을까 해서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누구요?]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목염자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아, 당신은?]
[그래요. 바로 저예요.]
[누구와 함께 왔소?]
[방금 왔던 사람은 제 까불이 동생이에요. 저도 그가 쫓아오는걸 몰랐군요.]

완안강이 방으로 들어가 촛불을 밝혔다.

[자, 들어오세요.]

목염자가 고개를 숙인 채  방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할 말은 떠오르지  않고 
가슴만 할딱할딱 두근거린다. 완안강은 물끄러미 목염자를 바라다보았다. 놀랍고도 
반가운 표정이다.  하얀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고  소며 특유의  수줍음이  더한층 
귀여웠다.

[깊은 밤에 무엇 때문에 찻아왔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목염자는  고개를 파묻은 채 묵묵부답이다.  완안강은 
생부모의 참사에 생각이 미치자 목염자가 가련해 보였다.

[누이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으니 앞으로는  우리집에 와  살도록 해요.  내가 
친누이처럼 잘 대해 줄 테니.]
[저는 어머님의 수양딸이지 친딸이 아니에요....]
[아참, 그렇군요. 우리 두 사람은 혈통으로 봐서는 아무 관계가 없군요.]

손을 뻗어 목염자의 오른손을 잡고 미소를 짓는다. 목염자는 얼굴을 붉힌 채  떨군 
고개를 더욱 파묻고 손을 빼려고 했지만 빠지지 않았다. 완안강이 다시 손을  뻗어 
목염자의 어깨를 끌어안고 귀엣말로 소곤거렸다.

[세번째 안아 보는군요. 맨 처음엔 무예를 겨룰 때고 두번째는 방금 문  밖에서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군요.]

목염자도 코속으로  <응> 하고  대답한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달콤한  순간은 
처음이다. 완안강은 소녀의 몸에서 풍기는 살 냄새에 취해 황홀한 모양이다.

[어떻게 나를 찾아냈지요?]
[서울에서부터 계속   쫓아왔어요. 밤마다   이렇게 창  밖에서  그림자만  바라다 
보았답니다. 감히 들어을 수가 없어서....]

완안강은 그가 이토록이나  자기를 사모하는 것에  감동이 되었다. 고개를  숙이고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끼어안은 손에 더욱  힘을 
준다. 길게길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저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계시지 않아요. 저를 버리지 마세요.]

목염자의 속삭임이다. 완안강이 그의 머리채를 어루만진다.

[걱정 마오! 엉원히 내 사람이오. 나도 영원히 당신의 것이오!]

목염자는 기뻤다. 고개를  들고 완안강의  두 눈을  바라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완안강은 그의 볼그레한 두 볼이 귀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숨을 몰아쉬고  촛불을 
꺼버렸다. 번쩍   안아 침대에  누이고 왼손으로   어루만지며 오른손으로  옷깃을 
헤쳤다. 목염자는 화끈화끈  달아오른 불  같은 손이 자기의  살갗에 와닿자  깜짝 
놀란다. 벌떡 일어나 완안강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이러시면 안 돼요.]

완안강이 달려들어 다시 껴안는다.

[나는 반드시 당신을 아내로 맞이하겠소. 내 마음이 변하면 천벌을 받을 게요.]

목염자는 손을 뻗어 완안강의 입을 막는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저만은 믿으니까요.]

완안강이 팔에 힘을 준다.

[그럼 내 말에 따라야지.]
[안 돼요. 안 돼...., 안....]

완안강은 불같이 대들어  그의 옷을  벗긴다. 목염자는  있는 힘을  다해 두  손을 
밖으로 뿌렸다. 무공을  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므로  목염자를 놓치고  말았다. 
목염자가 벌떡 뛰어 일어나며 책상 위의 철장을 집어 들고 자기 가슴에 댔다.

[저를 더 괴롭히시면 이 자리에서 죽고 말겠어요.]

완안강의 뜨거웠던 마음이 싸늘하게 식고 말았다.

[할 말이 있거든 말로 할 것이지, 뭐 이렇게까지 나올 거야 없지 않소?]

목염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가 비록 강호에 떠도는  풍진의 소녀이기는 하지만  이러실 수는 없어요.  정말 
저를 사랑하신다면 저를 존중하셔야 해요. 제  평생 다른 생각은 있을 수  없어요. 
어떤 고난이나 위협이 닥친다하더라도 당신만을 좇겠어요. 장래 신방에 들면  그땐 
마음대로 하셔도 좋아요. 그러나 오늘 저를 건드리시겠다면 저는 죽고 말겠어요.]

낮은 소리로 속삭이듯 하는 말이지만 그 결의가 보통이 아니다.

[누이, 화내지 말아요. 내가 잘못했어.]

다시 촛불을 밝혔다. 목염자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제가 임안부 우가촌 의부의  옛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께요. 아무 때고  사람을 
보내 불러 주세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다시 말을 이었다.

[한평생 오시지 않으시더라도 죽는 날까지 기다리고 있으렵니다.]

완안강의 목염자에 대한 사랑이 다시 한 번 불타오른다.

[누이는 너무 의심치 마오. 자, 다른 얘기나 나눕시다. 여기 앉아요.]

그러나 목염자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고 밖으로   사라진다. 담을  뛰어  넘어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완안강의  가슴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살랑거리는 미풍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하늘에는 별만  깜빡이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오니 철장  끝에 아직도  목염자의 눈물  방울이 남아  있었고,  베갯머리에는 
아직도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꿈을 꾼 것 같았다. 베갯머리에  여자의 
긴 머리칼이 몇 개 흩어져 있었다. 방금 실랑이를 할 때 떨어진 것이다.  완안강이 
그것을 주워 향낭에 집어넣는다.
그가 맨 처음 목염자와 무예를 겨룰  때는 다만 장난삼아 해 보았을 뿐이다.  결코 
그를 아내로 삼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깊은 정을  알고 
보니 감동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고결한 몸가짐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미소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엎치락 뒤치락 이불깃 스치는 소리만이 가끔 들려올 뿐이다.



第 二十七 章. 오호(五湖)의 육장주(陸莊主)


황용은 객점으로 돌아와 핀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무언가 한가지 일을 해치운  것 
같은 생각에 마음까지 후련했다. 달콤하게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어제  있었던 
일을 곽정에게 들려주었다. 곽정도 그동안  그 둘사이를 위해 노력을 했기  때문에 
황용의 말을 듣고 기뻐했다. 둘이 객점에서 이 얘기 저 얘기 주고받다가  점심까지 
먹었는데도 목염자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릴 것 없이 우리 떠나요.]

황용의 말에 좇아 그들은 장터에 나가 한필의 나귀를 또 샀다. 장씨(蔣氏) 집 저택 
문앞에 이르러 보니 문앞에 걸려 있던 <대금국사신>이라는 초롱도 보이지  않았다. 
완안강이 벌써 떠난 모양이다. 황용도 다시 남장을 하고 둘은 산천 경개를  즐기며 
일로 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했다. 홍마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새로  산 
나귀도 잘 달렸다.  뭐 급한 볼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두  필의 말이  어찌나 
빠른지 이날  벌써 의흥(宜興)에   당도했다. 의흥은 도자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동쪽을 향해   얼마 가지않아  태호(太湖)에 이르렀다.   이 태호는  삼주(三州)에 
둘러싸인 호수로 둘레가  5백 리라, 옛날에는  오호(五湖)라 불렸다. 곽정은  평생 
이렇게 큰 호수를 본 적이 없었다.
황용의  손을  잡고  호수가에  선  채  광대  무변한  하늘과  물을  바라다본다. 
72봉(峰)의 울창한  나무들이 3만6천  경(頃) 파도위에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호연지기가 샘솟듯 했다.

[우리 호수로 가 봐요.]

황용의 말에 그들은 어촌을 찾아들었다. 홍마와 나귀를 어촌에 말기고 배를 한  척 
빌어 타고  호심으로 저어  나갔다. 둘은  노를 저어  멀리멀리 들어갔다.  사방은 
안개가 자욱했다. 도대체 천지가 호수 안에 있는지 아니면 호수 안에 천지가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황용의 옷깃과 머리카락이 미풍에 살랑거린다.

[옛날 범대부(范大夫)가 서시(西施)를  데리고 오호에서  뱃놀이를 했다더니  정말 
현명했나 보죠?  늙어서도 그냥   여기서 즉었다던데 얼마나  멋있었겠어요?  평생 
관리로 보내는 것보다 얼마나 멋이 있어요?]
[아니, 범대부가 누군데?]

그래서 황용은 범려(范蠢)가 어떻게 월왕(越王)인 구천(句踐)을 도와 공을 세웠고, 
그 뒤 은퇴해서  서시와 더불어 태호에서  노닐었다는 고사를 한바탕  들려주었다. 
원래 말재주가 뛰어난데다가 고사 자체의 내용이 감동적이라 곽정은 멍하니 정신을 
잃고 듣고 있었다.

[뭐 그렇게 아는 게 많지?]
[아는게 뭐 있어요. 어려서 아버지가 늘  공부하라고 야단을 치시는 바람에 책  좀 
읽었어요.]

곽정은 한숨을 쉰다. 공부를 했더라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저는 후회 막급예요. 아버지께서 만일 공부해라, 그림을 그려라, 뭐 또  거문고를 
배워라, 이렇게  잔소리 안  하시고 그냥  무예만 익혔더라면  그까짓  매초풍이나 
양노괴 같은 사람들 무섭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

이렇게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에 벌써 10리 이상이나 저어 온 셈이다. 
이때 10여  장 밖에  일엽 편주가   하나 떠있고 거기  어부 한   사람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  폭의 산수화에  나오는 그런  풍경이다. 
황용과 곽정이 스쳐 지나간 뒤에도 그  어부는 단정하게 뱃머리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 사람 참을성이 어지간하군요.]

황용이 웃었다.   미풍이 불어온다.  물결이 뱃전을   찰싹찰싹 때리고  밀려간다. 
황용은 노를  저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수룡음(水龍吟)에 나오는  가사의 
일절이다. 황용은 목소리도 구슬프게 일절을 불랐다. 곽정이 그를 바라다보니 눈에 
눈물이 괴었다. 왜 우느냐고 물으려고  하는데 처량한 노래 소리가 저쪽  호면에서 
들려왔다. 곡조는 황용이  부른 것과  같은 수룡음의 2절이다.  노래 소리를  따라 
멀리 눈길을 보내니 일엽 편주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그 어부다.
황용은 노래 소리를 들으며 넋을 잃고 있었다.

[왜 그래?]
[이 노래는 아버지가 늘 즐겨 부르시던 곡조인데 정말 이런 호수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군요. 우리 한번 가 봐요.]

그들이 노를 저어 가는데 어부도 낚싯줄을 거두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호수에서 이렇게 훌륭한 손님을 만날 줄은 몰랐군요. 이쪽으로 건너오셔서 한  잔 
나누시지 않으시렵니까?]

어부의 말씨가 공손하고도 예의바르다.

[혹시 방해나 되지 않을는지?]
[괜찮습니다. 반가운 손님 같은데 이리로 오세요.]

두 배가 서로 가지런히  만났다. 황용과 곽정이 뱃머리로  가서 끈으로 이쪽  배를 
저쪽 선미에 매달고 그 배로 건너갔다. 피차 수인사가 오간다.

[저는 다리가 불편해서 일어날 수가 없으니 두 분께서 널리 용서하십시요.]
[사양하실 것 없습니다.]

둘이 이렇게 인사를  하고 어부를 바라다보았다.  나이는 40여세 안팎에다  깡마른 
표정이 중병에  걸린 사람같다.  키는 큰지  앉은 키가  곽정보다 더   커 보인다. 
선미에 앉아   있던 동자  하나가  부채질을 해   술을 데운다.  어부와  배  안을 
두리번거려 보니 보통 어부가 아닌 것 같다.

[이 형님은 곽씨요, 제 성은 황이올시다. 뱃놀이를 하다가 흥이 나서 고성  방가를 
했는데 혹시 선배님의 흥을 깨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제  성은  육(陸)이라 합니다.  두 분께서는  이  태호가 
처음이신 모양이지요?]
[네, 처음입니다.]

곽정의 대답이다. 어부는 동자에게  술과 안주를 챙겨  손님께 권하게 한다.  네댓 
가지 안주 맛이  그럴 듯하고 숱잔과  기명이 아무래도 예사집  물건 같아  보이지 
않는다.
두어 순배 술이 돌아가자 어부가 먼저 말을 꺼넨다.

[방금 부르신 수룡음의 가사는  비분 강개한 지기가 깃든  노래인데 젊은 분이  참 
잘도 부르십니다. 정말 보통이 아니십니다.]

황용은 그의 나이 많은 듯하는 말씨를 듣고 빙그레 웃는다.

[송실(宋室)이 남도(南都)한 이래 시인 묵객 그 어느 누구 하나 나라 걱정 안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 어부가 고개를 끄덕이고석  잔술을 따라 마신 뒤  다시 권한다. 황용과  어부는 
의기 투합했는지 피차 시사(詩詞)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곽정은 시사를 모른다. 옆에서 잠자코  들으며 마음속으로 부러워할 뿐이다.  놀이 
짙어지고 뉘엿뉘엿 황혼이 호면에 깔리기 시작했다.

[저의 집이 호반에 있는데 며칠 쉬어 가시면 어떠하올지?]
[곽정 형님, 어떻게 할까요?]

황용의 말에 곽정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어부가 먼저 말을 꺼낸다.

[저의 집 부근에  경치 좋은 산도  있습니다. 두 분께서  산천 경개를  유람하시는 
중이시라니 사양하지 마세요.]

곽정은 정중한 그의 말을 물리칠 수 없었다.

[황용, 그럼 우리 육선생댁에 폐를 끼치기로 하자.]

어부는 즐겁다는 듯 동자에게 빨리 돌아가자고 재촉이다. 호반에 이르자 날은 벌써 
어두워졌다.

[저희가 먼저 돌아가  배를 되돌려 주어야겠습니다.  또 말도 두  필을 거기  맡겨 
놓았으니까요.]

곽정의 말에 어부가 웃는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저를 잘 압니다.  저 
동자를 시킬 테니 염려 마세요.]
[아닙니다. 제가 타는 말, 성질이 고약해서 제가 끌고 가야 합니다.]
[그러시다면 저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노를  젓는다. 일엽  편주는 버드나무가 드리운  숲속 깊숙이  사라져 
갔다. 동자만 남아 곽정과 황용이 배를 되돌려 주고 말을 찾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 물을 안내한다. 꼬불꼬불한 길을 몇  리 걷자 눈앞에 고루 거각이  나타난다. 
엄청나게 큰 대장원(大莊園)이다. 나무다리를 건너 장원 앞에 이르렀다. 곽,황  두 
사람은 어부의  집이 이토록   큰 데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둘이  채  대문에 
당도하기도 전에 벌써  20여 세  먹어 보이는  소년 하나가  4명의 하인을  데리고 
그들을 맞으러 나왔다.

[가친께서 이곳에 기다리고 있다가 모시고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곽정이 두   손을 읍해  답례를 했다.   소년은 몸에  숙라장삼(熟羅長衫)을  입고 
있었다. 얼굴 모습은 그 어부와 비슷했지만 체격이 건장해 보인다.

[육형(陸兄)의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조카(姪)의 이름은 관영(冠英)이라 하옵니다. 그런데 두 분의 존함을 여쭈어 보지 
못했습니다.]

곽정의 물음에 깍듯이 존대를 한다.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셋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안으로  들어섰다. 곽정과 황용은 장원 안의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린다. 으리으리한   건물이 호화롭다.  북방의  웅대한  장원과는  어딘가 
다르다. 3개의 정원을 지나 뒷채에 다다랐다.

[자 어서들 오십시오.]

아까 만났던 어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친께선 다리가 불편하셔서...., 지금 동쪽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육관영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미안하다는  듯 사과를   한다. 셋이  함께  병풍을 
돌아서자 서재의 문이 활짝 열려 있고 거기 그 어부가 침상에 앉아 있었다. 어부의 
차림이 아니라 서생의 복장을 한 채  손에는 깨끗한 부채를 들고 웃음으로  그들을 
맞았다.
곽,황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지만 육관영은 감히 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비스듬히 
옆에 서  있었다. 서재  안도 으리으리한  것이 모두  시서(詩書)와  전적(典籍)이 
가득하고 책상  위에는 동기(銅器)   옥기(玉器)가 즐비하게 놓여  있는데  모두가 
골동품이다. 벽에는 한 폭의 대련(對聯)이 걸려 있었다. 황용이 보고 깜짝 놀란다.

 綺羅堆裏埋神劍
 蕭鼓聲中老客星

황용의  아버지  황약사가  늘  입안에서  읊조리던  시구들이다.  대련  아래에는 
<오호폐인병중도아(五湖廢人病中塗鴉)>란 낙관이 찍혀 있다. <오호폐인>이란 4자는 
아마도 장주인 어부의 호(號)인 듯싶었다.
육장주는 황용이 대런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자 말문을 연다.

[저 대련의 글씨가 어떤지 한 번 평해 주시오.]
[제가 감히 어떻게 평을 합니까? 공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괜찮아요. 느끼신 그대로 말씀하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장주께서 저  대련을 쓰실  때 혹시  격분(激憤)해 계셨던  건 아닌지요?  필력이 
웅건하면서도 어딘가 서슬은 흩어진 것 같군요.]

육장주가 듣고 한숨만 쉴 뿐 아무 말이 없다.

[어린 제가 아는 것도 없이 지껄인 말, 잘못되었으면 용서해 주세요.]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  심정을 들킨것 같아서  그럴 뿐입니다. 제  평생 
이런 지기는 오늘 처음 만나뵙는 것 같군요.]

고개를 돌려 아들에게 분부를 내린다.

[빨리 술상을 차리도록 일러라.]

곽정과 황용이 사양을 했지만 막무가내다. 육관영은 벌써 방 밖으로 물러나갔다.

[정말 놀라운  식견이십니다. 가정  교육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댁의  가친은 
유명한 선비이시겠는데 존함을 여쭈어 보아도 괜찮겠습니까?]
[제가 무얼 안다고 그렇게까지 칭찬을  하시나요. 가친은 시골에서 서당을  차리고 
계신 무명의 선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장주는 황용의 재주를 시험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황노제(黃老弟), 이렇게  만났지만 오래  전부터 사귀던  친구 같습니다.  글씨나 
그림 한 폭 써 주시면 가보로 여기겠습니다.]
[아이구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 글씨로 공연히 귀 장원만 더럽히려요.]

육장주는 그의 말투에서  그런 대로 써  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급히  동자를 
시켜 책상   위에 지필묵을  챙겨  놓게 하였다.   황용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듯하더니 즉시 육장주가  마련해 내놓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중년의 
서생이 달밝은  밤,  정원에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는 풍경이다.  어딘가  쏠쓸한 
감회가 떠도는 그림이다. 그림을 끝낸 후 악비(岳飛)가 지은 <소중산(小重山)>이란 
글을 좌우에 써  넣었다. 그림 가운데의  서생이 칼자루에 손을  대고 있다.  먹을 
많이 묻히지는 않았지만  그림 속에는 장지(壯志)를  품은, 그러나 그것을  이루지 
못해 안타까와하는 듯한 영웅의 기상이  살아 있었다. 육장주는 크게 기뻐하며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황용은 끝으로 <후학황생경작(後學黃生敬作)>이라는 
6자의 낙관을 했다. 육장주는 한참 동안이나 그림을 감상했다.
술좌석이 끝난 후 다시 서재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

[여기 장공(張公)과 선권(善卷)이란  두 굴이  있는데 천하의  절경입니다. 두  분 
손님께서는 며칠   묵으시며 천천히  구경을 하세요.   날도 저물었으니  아무래도 
쉬셔야겠습니다.]

곽정과 황용이 몸을 일으키자 2명의 하인이 등불을 들고 그들을 안내했다.  황용이 
나오다 문득  고개를 드니   서재의 문설주 위에  8개의  철편이 박혀  있는데  꼭 
팔괘(八卦) 형상이다.   깜짝 놀랐지만  눈치를 보이지   않고 하인의  뒤를  따라 
객방으로 나왔다.
객방의 설비도   우아하거니와 두   개의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고  이부자리와 
베개까지 모두가 정결했다. 하인들이 차를 들여 놓고 편안히 쉬시라고 했다.

[무슨 분부가 있으시거든  여기 침대 잎에  있는 끈을 잡아  흔드세요. 그럼  즉시 
저희가 오겠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는 밤중에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부를 끝내고 물러간다. 황용이 가만히 소곤거린다.

[곽정 오빠,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나 보죠. 우리 보고 밤에 나가지 말라고 하지 
않아요?]
[그야 이 장원이 너무 크고 또 길이 꼬불꼬불해서 우리가 나갔다가 길을 잃을까 봐 
그러는 거겠지 뭘.]
[오빠 보기엔 육장주가 어떤 인물 같아요?]
[글쎄, 은퇴한 군관이 아닐까?]
[그래요, 틀림없이  무예를  할 거예요.  뿐만  아니라 아주  고수같던데요.  서재 
문설주에 꽂힌 팔괘의 철편을 보았어요?]
[팔괘의 철편이라니? 그게 뭔데?]
[그전 벽공장(擘空掌)을  익힐 때   쓰는 물건이에요. 아버지께서  제게도  가르쳐 
주셨는데 답답해서 몇 달 하다가  집어치웠거든요. 그런데 글쎄 그걸 여기서  보게 
되다니 정말 이상하군요.]
[육장주가 우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하니까 우리는  모르는  체하면 
그뿐이야.]

황용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장풍을 날려 촛불을 꺼버렸다.

[솜씨가 훌륭해. 그게 바로 벽공장이라는 건가?]
[그냥 해  본 거예요.   장난삼아 해 보지만  싸울  때는 소용없는  걸요.  배우다 
말았으니까요.]

황용이 웃으며 대답을 하고 둘은 이내 잠을 청했다.
깊은 밤이었다.   갑자기 멀리서   붕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공을  익히는 
사람들은 특별히 청각이 발달해 있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니 누군가가 나팔을 불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다시 나팔 소리가 울린다. 이곳과 저곳에서 결코  혼자 
부는 나팔이 아니다. 쌍방이 서로 신호로 응답하는 것 같았다.

[곽정 오빠, 우리 나가 봐요. 네?]

황용의 속삭임이다.

[나갈 필요 없지 않을까? 공연히 일만 저지르려구.]
[누가 일을 저질러요? 그냥 구경만 하자는 거예오.]

둘은 살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  틈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마당에는  여러 
사람이 초롱불을 챙기고  그밖에 여러 명이  바쁘게 오락가락하고 있았다.  어쩌다 
황용이 고개를 드니 지붕 위에도  시커먼 그림자 서넛이 웅크리고 있었다.  등불이 
움직일 때마다  그들이 손에  쥔  병기가 번쩍이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그들 
장객(莊客)이 모두 밖으로 나간다. 황용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곽정을 끌고 서쪽 창문으로 와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살짝  빠져나왔다. 
둘 다 경신의 무공이 흘듕하여 지붕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황용은 곽정에게 손짓을 하고  반대 방향으로 뛰자고 했다.  장원 안의 길은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모퉁이를 돌   때마다  건물의  양식이   비슷했다. 몇   바퀴 
돌아보았지만 도대체 동서남북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황용은 자기  집 
드나들듯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분명히 길이  없는 것  같은데도  가산(假山)을 
지나거나 숲속을 뚫고 나가면  용케 길이 나오곤 했다.  길이 막혔는가 하고  보면 
병풍 뒤나  그림 뒤에  다시  조용한 장소가  나타난다. 곽정은  뒤를  쫓아가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이 장원의 길이 괴상한데 어떻게 그리 잘 알지.]

황용이 손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다는  시늉을 해 보인다. 7,8개의 모퉁이를  돌고 
나니 후원의 담장 밑에 와 있었다. 황용은 지세를 살펴보고 손끝으로 뭔가  계산을 
해 본다. 다시 발자국을 떼며 중얼거린다.

[진일(震一), 둔삼(屯三), 이오(碩五), 복칠(復七), 곤(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황용은  여기까지 세고난  후 빙그레  미소를 
띈다.

[여기로 나갈 수 있어요. 다른 곳엔 무언가 함정이 있어요.]

말을 마치자 펄쩍 뛰어 담을 넘는다. 곽정도 황용이 하는 대로 뛰어 넘었다.

[이 장원은 복희회(伏羲) 육십사괘(六十四卦) 방위에 따라 지은거예요. 이와  같은 
기문(奇門)의  팔괘지술(八卦之術)에  대해   아버지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계세요. 다른 사람은 걸려들지 몰라도 나는 어려울걸요.]

아주 자신 만만한 말투다.
둘은 강원 뒤에  있는 언덕에  올라섰다. 동쪽을 바라보니  불빛이 한줄로  호반을 
향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황용과 곽정은 경신의 제종줄(提縱術)을 발휘하여  그 
뒤를 쫓았다. 가까이 접근하게 되자 그돌은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바라다보았다. 
호수가에는 어선들이  열을 지어  머무르고 있었고,  사람들은 개미떼처럼  차례로 
배에 오르면 즉시 불을 껐다. 두  사람은 맨 마지막 사람들이 배에 오르고  호변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슬그머니 따라가  가장 큰 배의  선미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삿대를 걷고  배가 출발하려는  순간 올라탔다.  대나무 거적  사이로  들여다보니 
중앙에 젊은 장주인 육관영이 앉아 있었다.

배가 몇  리를 저어  나가자 저쪽에서  다시 나팔  소리가 붕붕  울렸다. 이쪽  배 
위에서도 한 사람이 선수로 나가 나팔을  분다. 다시 몇 리를 더 나가니  호면에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작은 배들이 개미떼처럼 운집해 있었다.
육관영이 타고 있는 배의  나팔수가 붕붕 세 번을  불고 닻을 내려 정박하자  10여 
척의 작은  배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곽정과  황용은 영문을  몰라  답답했다. 
도대체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는 것인가?  그러나 육관영은 태연 자약한 것이  전연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배들이 접근하자  어떤  배에서는 1,2명이,  또 어떤  배에서는  3,4명이 
큰배로 오른다.  각자  큰배에 오르면  육관영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드린다. 
좌석도 미리 배정이 된 것인지 각기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 서열이 다르다.  모두 
신체가 건강한 것이 보통 어부 같아 보이지 않았다.
육관영은 그들이 좌정하기를 기다려 손을 들고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장형(張兄), 그래 무슨 소식을 들었나요?]

좌중에서 깡마른 사나이 하나가 일어났다. 

[금나라 사신은 내일 아침 도착할 예정이고 단(段) 지휘사는 두 시간 후에  이곳에 
온답니다. 그런데 그는 금나라 사신을  영접한다는 구실로 오는 도중 계속  금품을 
수탈하느라 늦어지는 것이랍니다.]
[그래 얼마나 수탈을 했답디까?]
[지나는 현과 주에서 모두 거둬들었다는  소식이고 그 휘하의 병졸들도 계속  시골 
마을에까지 들어가 약탈을 한다는데  그가 배에 탈  때 수종들이 묵직묵직한  상자 
20여 개를 가지고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병마는 얼마나 데리고 다닙디까?]
[마군이 이천입니다.   호수를 건너는  군사는 모두   보군뿐입니다. 선박이  적기 
때문에 배에 탄 병사는 천여 명이 될 것입니다.]
[그럼, 여러 형를 의견은 어떠하시오.]
[장주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일제히 소리를 질러 대답한다. 육관영은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말한다.

[백성의 고혈을 빨아 모은 부당한  재물이 태호를 지나는데 빼앗지 않고  놔둔다는 
것은 하늘의 뜻을 어기는 것이오. 있는 대로 다 뺏아다가 반은 근처의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반은 우리가 각채별로 나누어 갖도록 합시다.]

모인 사람들이 와와 함성을 지른다.
곽정과 황용은  이제야  비로소 이들  무리가  태호의 도적  괴수들이며  욱관영이 
각채의 총두령임을 알았다.

[지체할 필요  없이 즉시  행동을 개시합시다.  장형은 다섯  대의 소선을  이끌고 
앞으로 나가 정탐을 해 주시오.]

깡마른 그자가 명령을 받고 먼저  나간다. 육관영은 계속해서 누구는 선봉을  서고 
누구는 접응에 나서며  누구는 헤엄 잘  치는 사람들을 이끌고  배 밑으로  들어가 
적선을 뒤집어 엎고,  또 누구는  재물을 뺏고, 누구는  적 수뇌를  잡을 것  등을 
일일이 치밀하고도 세심하게 분담시켰다.
곽정과 황용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옆에서 시중을 들   때의 문약한  육관영의 
인상에서 그냥 보통 서생의 자제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위풍 당당하게 뭇 
수렁들을 지휘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놀랐다.
육관영이 분부를 끝내고 각자  자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뜨려고  하는데 
좌중의 한 사람이 일어나며 냉랭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가 밑천도 안 드는 장사를 하면서 부호나 큰 장사꾼 것만 털어먹어도  충분한 
처지에 그래 이렇게 관가에 대들었다가 후환이 없을까요?]

곽정과 황용이 듣고 나니  목소리가 몹시 귀에 익다.  유심히 살펴보니 원래  그는 
사통천의 제자요,  황하사귀 가운데의  탈백편(奪魄鞭) 마청웅(馬靑雄)이다.  아니 
저자가 또 언제  여기 끼어들었나? 심히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육관영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하고  막 대답을  하려는데  수뇌들 가운데  두서너  사람이 
일제히 그를 질책한다. 육관영이 먼저 입을 연다.

[마형께서는 처음 오셔서 이곳 규칙을 잘 모르실 테지만 여기서 일단 결정을  내린 
이상 전군이 몰살을 당할망정 후회는 없는겝니다.]
[좋소. 그럼 당신들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끼어들지 않으리라.]

마청웅이 이렇게 내뱉고 몸을 돌려 선창을 벗어나려고 했다. 체격이 우람한 사람이 
그의 앞을 막고 소리를 지른다.

[마형!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 동생동사하기로 맹세하지 않으셨소!]

마청웅이 양 손을 뿌리치며 소리친다.

[비키지 못해!]

두 사람이   옆으로 나가  떨어진다. 마청웅이   선창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순간 
등뒤에서 무서운  장풍 소리가  바람을 짼다.  마청웅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며 
왼손은 벌써 발목에 숨기고 있던 단도를 뽑아 들고 뒤를 향해 찔렀다.
그러나 육관영은 오른손을 뻗어 단도를 쥔  마청웅의 팔목을 침과 동시에 한  발짝 
나서며 다시 강풍을  날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마청웅의 등심을  적중시키고 
말았다. 입에서  선혈을  뿜으며 즉시  죽어  넘어진다. 태호의  군도들이  갈채를 
보내며 마청웅의 시체를 텀벙 호수에 집어 던졌다.

[중형들, 우리 용감하게 전진합시다.]

육관영의 외침에 군도들이 함성으로 대답하고 각자 자기 배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그 많은 배들이 동쪽을  향해 노를 저어 나가기  시작했다. 한참 전진하니  눈앞에 
10여 척의 큰 배들이 불빛도 휘황하게 서쪽으로 오고 있었다.
작은 배에서 붕붕 나팔  부는 소리가 울렸다. 곽정과  황용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쌍방을 지켜 보았다. 양쪽 배가 부딧치는  순간 고함 지르는 소리, 병기와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  몸이 텀벙  물속에  빠지는 소리와  어울려 일대  혼전이  벌어진 
것이다.
도적과 관병의  배들이 혼전을  벌인다.  잠시 후  관선에 불길이  치솟고  사방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곽,황 두사람은 벌써  이쪽이 승리를 거둔 것을 알았다.  과연 
몇 척의 작은 배가 육관영이 타고 있는 이쪽 배를 향해 달려오며 소리를 지른다.

[관병은 전멸했고, 병마지휘사도 사로잡았습니다.]
[중형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우리 대금국 사신을 잡으러 갑시다.]

육관영은 기뻐 소리를  질렸다. 작은 배  속에서는 다시 한  번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뱃머리를 돌리고 돛을 매단다. 때는 여름철이라 강한 동풍이 불고  있었다. 
돛마다 바람을 가득 안고 서쪽을 향해 쏜살처럼 내달린다. 육관영이 타고 있던  큰 
배는 원래  뒤에 있다가   지금은 선두에 와  있었다.  곽정과 황용은  돛대  위를 
가로지른 횡목에  앉아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등뒤에서 불어온다.  하늘  위의 
뭇별이 깜박이고  호면에는 옅은  안개가 깔려  있었다. 사람만  없다면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기분이다.  뒤를 쫓던  작은 배들이  앞을 다투어  큰배 앞으로  먼저 
전진해 나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호면이 점점   밝아지며 두 척의   쾌선이 날듯  달려왔다. 
뱃머리에 서 있던 사람이 붉은기를 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금나라 선박을 발견하고 하채주(賀寨主)가 먼저 공격에 나섰습니다.]

육관영이 이쪽  배의 선수에  나서서 보고를  듣는다. 잠시  뒤 또  한 척의  배가 
달려와 보고를 한다.

[금나라 사신의 손이 어찌나 매운지 하채주는 부상을 입었고 지금 팽(彭),  동(董) 
두 분 채주께서 협공을 하고 계십니다.]

두 명의 졸개가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하채주를  부축해 큰배에 옮겨  실었다. 
육관영이 하채주의 상처를 보살피는데  또 몇척의 배가 팽,동  등 부상을 입은  두 
채주를 실어 오고 또 표묘봉(  峰)의 곽두령(郭頭領)이 금나라 사신의 창에 찔려 
호수에 빠져 죽었다는 보고도 했다.
육관영이 화가 나서 벌컥 소리를 지른다.

[개 같은 금나라 녀석들이 이토록 날뛰고 있으니 내 직접 나서서 해치우겠다!]

곽정과 황용은  완안강이 무참하게  자기 동포를  살해하는 것이  마땅치  못했다. 
그러나 또 한편 완안강이 태호의 군도들에게 중과부적으로 살해되는 경우 목염자의 
장래가 또한 걱정스럽다.
그래서 황용은 곽정의 귀에 대고 소곤거린다.

[우리 완안강을 구출해 줄까요?]
[그의 생명은 구해 주되 개과천선하도록 타일러야지.]

황용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같았다.  이때 
육관영은 자기 수종의 삼첨양인도(三尖兩刀刀) 한 자루를 뺏아들고 몸을 날려 큰배 
옆에 있는 작은 배로 뛰어올랐다.

[우리도 저 옆에 있는 작은 배를 타요.]

황용이 곽정에게 속삭인다.
둘이 막 작은 배를 향해 몸을 날리는 순간 갑자기 군도들의 함성이 터졌다. 그쪽을 
바라다보니  금나라  사신들이  탄  배가  하나  하나  침몰한다.  물속에  뛰어든 
잠수부들이 배 밑창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붉은 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두  척의 
쾌선이 달려왔다.

[금나라 개들이 탄 배가 물 속에 빠졌기에 모두 사로잡았습니다.]

잠시 후 나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금나라 사신이며 위병, 수종들이 묶인 채  큰 
배로 끌려왔다. 곽정과 황용이 보니 완안강은  두 손과 발이 꽁꽁 묶이고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모양이 물을 꽤나 킨 것 같았다.
이때 날은 활짝  밝았다. 햇빛이  동쪽에서 비쳐 만경창파에  금물이 들어  뱃전에 
찰싹거리고 있었다.

[각채 채주는  귀운장(歸雲莊)으로  모여 잔치에   참석하시고 두령들은  부하들을 
인솔하여 각채에 돌아가 있다가 논공행상을 기다리도록 하오.]

육관영의 호렁에 군도들이 함성을 지른다. 크고 작은 배들이 서쪽으로 흩어져 안개 
속에 파묻히고 호면에는 갈매기만 오락가락 흰돛 위를 수놓고 있었다. 이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언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한바탕  멀어졌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배들이 언덕에  닿고 사람들이  강원으로 향한  뒤 곽정과  황용도 슬그머니  돛대 
위에서 내려왔다.   군도들은 승전의  기쁨에 싸여   즐거운 나머지  그들이  숨어 
있었으려니 생각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황용은 밤에  뛰어넘었던 
지점을 찾아  확인한  뒤 곽정과   함께 후원의  담장을 넘어   자기 방으로  찾아 
들어왔다. 시중을  들던 하인들이  몇  번이나 와  봤지만 그들이  전날  유쾌하게 
노느라 피곤해 늦잠을 자는 줄 알았다.
곽정이 방문을 열자 두 명의 하인이 나타나 문안을 드리고 아침 상을 내왔다.

[장주께서는지금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침 식사를  드신  후  그리로 
건너가세요.]

둘은 내온  국과 국수를  어물어물  마시고 그들을  따라 서재로  왔다.  육장주는 
침상에 앉은 채 웃음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호수가의 바람이 심해 파도가 쳤는데 잘 주무시지 못하셨죠?]

곽정은 무언가 눈치를 채고 하는 말 같아서 뜨끔했다.
그러나 황용이 받아 넘긴다.

[밤중에 나팔 소리가  들리던데 혹시 스님이나  도사들이 무슨 법사(法事)를  가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육장주는 웃기만 한다.

[제 집에  약간의 서화(書畵)를  수장하고  있는데 두  분께서 감정을  해  주시면 
어떨는지?]
[보여 주신다니 고맙기 한이 없습니다. 장주께서 수장하고 계신 것이라면 틀림없는 
진품들이겠지요.]

육장주는 동자에게 명하여  서화를 내오게 했다.  황용은 하나씩 하나씩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밖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몇 사람이  떠드는 
소리로 보아 누구를 쫓는 모양이다.

[귀운장으로 들어왔다  달아나려고!  어림없는 수작이다.   하늘로 날아  올라가기 
전에는 안 될걸.]

황용이 육장주의 표정을 훔쳐 보았지만 태연자약한  게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 
같은 표정이다.

[본조(本朝)의 서화는 소(蘇), 황(黃), 미(米), 채(蔡) 네 사람 것을 치는데 이 네 
대가 중 황노제는 어느 것을 제일 좋아하시나요?]

황용이 막 대답을  하려는 순간, 서재  문이 꽝 하고  열리며 난데없이 물에  흠뻑 
젖은 사람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바로 완안강 그   사람이다. 황용이  곽정을 
끌어당긴다.

[서화만 보고 아는 척 말아요.]

둘은 등을 돌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서화만 골똘히 들여다보는 체했다.

완안강은 헤엄을 칠 줄 몰랐다.  태호에 떨어지자마자 무예가 소용없었다.  헛물만 
켜다가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손발이  꽁꽁  묶여 
있었다. 장원에 이르러 육관영이  중앙에 앉은 채  그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내공의    힘을   써서    손끝으로   묶은   끈을    잡고   대갈일성하여 
구음백골조(九陰白骨爪)의 무지무지한 공력을  쓰자 끈이  끊기고 말았다.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대들어 묶으려 했지만 그 중 두 사람이  완안강에게 
다치고 말았다. 완안강은 그냥  앞만 보고 달렸다.  아무리 달려도 어디가  어딘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귀운장의 건물은  기문의 팔괘를  따라 지은  것이다. 
안내하는 사람이  없으면 빠져  나갈  재간이 없다.  혹시 기문의  팔괘에  능통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포기하는 편이 현명한 것이다.  완안강은 
당황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재로 뛰어든 것이다.

육관영은 그가 달아나지 못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묶은 끈은  풀어졌지만 
어디로 달아나랴 싶어 태연자약했다. 그런데 그가 서재로 뛰어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 자기  아버지가 다치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재빨리 자기  아버지가 
앉아 있는 침상 앞을 막아섰다. 뒤에는 각채의 채주들이 혹은 병기를 들고 혹은 빈 
손으로 문을 막고 있었다.
완안강은 달아나기에 바빠  미처 곽정과 황용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육관영만 
보고 욕질이다.

[이 간악한 도둑아, 정정당당하게  나서지 못하고 흉계를  꾸며 배 밑창에  구멍을 
뚫다니, 그래 강호상의 호환들이 비웃을 것도 몰랐느냐?]

육관영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네놈은 금나라의 왕자 신분인데 그래  우리 녹림의 호걸들 앞에서 무슨  <강호>가 
어떻다고 주제넘게 야단이냐?]
[내 북경에 있을 때  강남 호객의 대명을 익히  들어 훌륭한 인물인 줄  알았더니, 
흥! 오늘 보니 아무것도....]
[뭐라구!]
[소인배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다, 이놈아.]

태호 군웅의  영수인 육관영이  나이 비록  젊으나 강남  무림 가운데서는  쟁쟁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터에 이런 모욕을 받고 그냥 참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단독으로 대결해서 진다면 죽어도 원망하지 않겠다 이 말인가?]

냉소를 머금고 하는 말이다. 완안강이 노린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귀운장의 어느 한 사람이라도 무공으로 나를 이겨 묶는다면 내 더 말하지 않겠다. 
도대체 누가 나서서 대결을 하려는가?]

말을 마치고  뭇 사람을  한 번  훑어본다. 손을  뒷짐진 채  거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다. 이  말에 화가  치밀어 나선  사람은 태호  막리봉(莫釐峯)의  철배(鐵背) 
금오석(金鰲石) 채주였다. 그는  성질이 불 같아  평소에도 누구에게 양보를  하는 
위인이 아니다.

[이 영감이 네놈에게 본때를 보여 주마.]

종고제명(鍾鼓齊鳴)의 쌍권(雙拳)으로 완안강의 양쪽 태양심(大陽心)을  두드렸다. 
완안강은 몸을 비스듬히  피해 그의 주먹이  허공을 치게 한  후 오른손을  뒤집어 
그의 덜미를 나꿔챔과 동시에  번쩍 치켜들고 문 밖을  향해 집어 던졌다.  뚱뚱한 
체격이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멀찌기 나가 떨어졌다.
육관영은 그의  손이 매서운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흠칫 놀랐다.  각채의  채주 
가운데 완안강을 당해 낼 장사가 없음을 알았다.

[과연 훌륭한 무공이오. 그럼 이제 나하고 겨뤄 봅시다. 장소를 옮겨 밖에  나가서 
해봅시다.]

그는 완안강이  강적임을 간파했다.  싸우는 도중  권풍이나 장력에  혹시  무예를 
모르는 자기 부친이나 손님이 다치지 않을까 염려해서 장소를 옮기자고 한 것이다.

[무예를 겨루는 마당에 장소가 문제요?  여기서 그냥 합시다. 먼저 장주가  공격을 
하시오!]

말하는 투가 두서너 번이면 끝장이 날  것을 가지고 무엇 때문에 장소를  옮기자고 
하느냐고 깔보고  뭉개는 수작이  역연했다. 육관영이  눈치를 채고  화는  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당신이 손님이니 먼저 공격을 하시오.]

완안강이 왼손바닥을 뻗으며 오른손으로 육관영의 앞가슴을 할퀴려 들었다. 언제나 
써보는 구음백골조의 솜씨로 상대의 급소를 노린 것이다.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내 오늘 젊은 장주의 맛을 보여 주리라.)
이렇게 생각한   육관엉은 앞가슴을   움츠릴 뿐  뒤로  물러서지도  않고  오른손 
주먹으로 상대방의 팔꿈치를 직공하며  왼손 두 손가락으로  적의 두 눈을  노리고 
찌른다.
완안강도 그의 공세가 민첩함에 깜짝 놀란다.
(아니, 이런 시골에도 인물은 있었구나.)
급히 반   보를 물러서며   팔목을 뒤집어  금나수(擒拿手)로  적의  어깨를  틀어 
잡으려고했다.  육관영이   허리를  왼쪽으로   비틀며  양팔을   벌리고  대든다. 
회중포월(懷中抱月)의 자세다.  완안강은  그의 손재주가   비범함을 보고  깔보던 
마음이 사라졌다. 즉시 정신을 가다듬고 신중을 기해 계속 공격을 폈다.

육관영은   원래    임안부   광효사(光孝寺)    고목대사(枯木大師)의   수제자로 
법화종(法華宗)  외가권법(外家拳法)에  정통했다.  지금  강적과  상대하며  무척 
조심을 하면서  공격 태세에  따라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는  완안강의  무공이 
보통이 아님을 알았다. 그의 손끝이 몸에 와 닿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두  손으로 
방어를 하면서 기회를  노려 뛰어들 자세다.  외가의 기격(技擊)에서는 늘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먹에 삼 분, 발에 칠 분.>

<손은 두 문과 같으니 발로 차야 한다.>
육관영은 외가의  고수라 발재주가  놀라왔다.  둘은 죽을  둥 살  둥  사생결단을 
벌이고 있다.  서재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난무하는  가운데 벌써  백여  초(招)나 
겨뤘지만 승부를   가릴 수가  없었다. 곽정과   황용이 곁눈으로  관전을  하면서 
육관영의 몸놀림에 마음속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완안강은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하고 불안했다.
(질질 시간을  끌면 이쪽만  불리해진다. 설령  이긴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또 
나서면 당해 낼 기력이 없지 않겠는가!)
완안강은 무공이  원래 지금  대결하고 있는  육관영보다 우월했다.  다만  호수에 
빠지는 바람에 물을 켜고 기운이 빠진데다 또 자기는 단신이요, 적중에 포위당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 위축이 되었기 때문에 1백여 초나 끌게 된 것이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손에 힘을  집중하여 맹렬한  공격을 재개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육관영이 어깨를 맞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 틈을  노려  공격하는 완안강의   그림자를 의식하는 순간   왼발을 번쩍  들어 
완안강의 가슴을 향해 힘차게 걷어찼다. 회심퇴(懷心腿)라는 재주다. 전광  석화와 
같은 반격이 무섭기 짝이 없다.

완안강은 뜻밖의 반격에 미처 방어할 겨를도 없이 가슴을 채이고 말았다. 회심퇴는 
육관영이  어려서부터  익혀  온  절기이다.  완안강은  가슴이  뜨끔함을  느끼며 
순간적으로 왼손을 구부리고  다섯 손가락을  육관영의 종아리에  꽂은 채  오른손 
바닥을 그의 사타구니에 밀어넣고 집어 던겼다.
육관영의 몸이 침상에 앉아 있는 부친의 몸에 부딪치는 찰나 육장주는 왼손을 뻗어 
아들의 등에 댄 채 가볍게 받아 내려 놓았다. 그런데 아들의 종아리에서는  선혈이 
낭자하게 흐르고 있었고 서서 완안강과 싸우던 장소에서 의자 앞까지 피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혹풍쌍쇄와 너는 어떤 관계냐!]

화가 난 육장주의 외치는 소리였다. 방금 보인 그의 솜씨며 지금 완안강에게  하는 
질문을 듣고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완안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각채의 
채주까지도 그가   무공을 쓰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친아들인 
육관영까지도 어려서부더  아버지는  두 다리가  병신이  되어 매일  글이나  읽고 
거문고나 뜯는  것으로 알았지   무예에까지 능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육관영을 받아  내리는 솜씨를 보아  보통의 무공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황용은 그의 서재 문설주에 박힌 팔괘의 쇳조각을 보고  그것이 
벽공장을 익히는 도구라는 것을 알았다.
내공과 외공에  도통하지  않고 벽공장을   익힌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못  할 
노릇이다. 자기도 어려서 일시 배워  보기는 했지만 기초가 확고하지 못해  도중에 
포기하고 만 것이다.  곽정도 어젯밤  황용의 말을 듣고야  육장주가 몸에  절기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놀라지 않은 것은 다만 황용과 곽정 두 사람뿐이다.
완안강은  육장주가  흑풍쌍쇄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혹풍쌍쇄가 뭐하는 물건이오?]

원래 매초풍이 그에게 무예를 전수해 주기는 했지만 자기의 신분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 비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자기의 성명도 알려  준 일이 없어서  흑풍쌍쇄란 
말을 알 리 없는 완안강이다. 육장주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를  속이려구?  어림없는  수작이다.  그럼  이  악독한  구음백골조는  도대체 
누구에게서 배웠단 말이냐?]
[이 나으리는 지금 그따위 잔소리를 들을 틈이 없소. 이만 실례하오.]

몸을 돌려 문 밖으로  향한다. 뭇 채주들이 각기  병기를 들고 그 앞을  막아선다. 
완안강이 두 눈썹을 치켜세우고 육관영을 쏘아본다.

[사전의 약속을 어찌할 테냐?]

욱관영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손을 내흔든다.

[우리 태호의   군웅은 신의로  산다. 여러   형님들 그냥  가도록  내버려두시오. 
장형님께서 그를 안내해 밖으로 나가도록 해 주십시오.]

채주들은 못마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젊은 장주의 분부가 내린 이상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를 따르시오. 혼자 나가 봐야 소용없소, 길을 못 찾을 테니까.]

장채주가 앞장을 서며 내뱉는 소리다.

[그럼 내 수종과 위병은 어쩔 테냐?]
[함께 내보내도록 하시오.]

육관영의 근엄한 명렁이 떨어졌다.

[과연 군자 일언이오. 자, 여러 채주님들 다음 기회에 만납시다.]

완안강이 엄지손가락을 뻗어  보이며 육관영을 향해  하는 말이다. 그리고는  다시 
주먹을 마주 잡고 읍을 한 뒤 득의 양양하게 걸어 나간다.

[잠깐만!]

육장주가 외치는 소리다.

[왜 그러십니까?]
[내 부족하지만 그 구음백골조의 맛 좀 봅시다.]

완안강이 빙그레 웃는다.

[그것 좋지요.]

육관영은 효성이 지극한 효자다.

[아버님, 이런 젊은이와 맞서면 안 됩니다.]
[걱정할 것 없다. 내 보아하니 저자는 구음백골조를 아직 다 배우지 못했구나.]

두 눈으로 완안강을 뚫어지게 바라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두 다리가 불편하여 걷지 못하니 이리로 오시오.]

완안강이 웃으며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다.
육관영은 다리의 상처가  몹시 아프기는  했지만 아버지와  완안강이 맞서  겨루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몸을 날려 중간에 끼어들었다.

[이번에는 아버님을 대신해 겨뤄 보고싶소!]
[그것 좋소. 그럼 다시 한 번 겨뤄 보도록 합시다.]
[영아. 물러나거라.]

육장주의 근엄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오른손으로  앉아 있던  침상을  누름과 
동시에 그   힘을 이용하여   몸을 솟구쳐  일으키며  왼손의  장풍으로  완안강의 
정수리를 향해 쪼갰다. 뭇 사람들의 놀라 울부짖는 소리 속에 완안강이 손을  들어 
막았지만 팔목이 시큰하며 오른팔을 상대에게 잡히고 말았다. 눈앞에 장영(掌影)이 
번뜩하는 순간  상대의 오른팔  장풍이 다시  어깨를 내리쳤다.  완안강은  이렇게 
기민한 금나법은 생전 처음  당해 보는 것이다. 손을  뻗어 막으며 잡힌  오른팔을 
잡아 빼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육장주는 땅끝을 밟지도 못하고 체중을  완안강의 
잡은 팔에  의지한 채  몸을 반공에  띄우고 오른팔의  장풍을 이용하여  번개처럼 
4,5번이나 살수를 뻗었다. 완안강이 필생의  기력을 다해 육장주를 밖으로  흔들어 
나꿔채려고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오른발을 뻗어   걷어찼지만 헛발길질만  하고 
말았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놀랍고도 반가왔다. 두 사람이 맞붙어 다투는 것을 보니 승부는 
이제 끝이 난  셈이다. 육장주가  다시 장풍을 쪼개는데  완안강이 다섯  손가락을 
뻗어 그의 장심을 찌르려고 대들었다. 그러나 육장주의 팔꿈치가 번쩍 들리는 순간 
완안강의 견정혈(肩井穴)을 치고 말았다. 완안강은 반신이 뻣뻣해짐을 느끼며 점점 
맥이 풀어지고 있었다. 잡힌 팔은 더욱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우지끈 하는  소리가 
두 번 나며  두 팔의 관절이  탈골이 되고 말았다.  육장주의 손이 어찌나  빠른지 
왼손으로 완안강의 허리를 푹 찌른다.  오른손으로 곽정의 어깨를 누르고 그  힘을 
이용해 몸을 날려 침상으로 되돌아가 편안하게 자기 자리에 가 앉는다.
완안강은  두  다리가  나곳나긋  맥이   풀어져 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각채의 채주들이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한참이나 있다가 뒤늦게 갈채를 
보낸다.



第 二十八 章. 부채춤 추는 구양공자


육관영은 아버지가 앉아 계신 침상으로 다가섰다.

[아버님, 괜찮으셔요?]
[나는 괜찮다. 녀석의 재주가 보통이 아니로구나.]

육장주도 빙그레   웃는다. 2명의  두령이 완안강을   결박지었다. 이때  장채주가 
나서며 말문을 연다.

[그 병마지휘사라는  단(段)대인의 행낭  가운데 강철로  만든 그럴  듯한  수갑과 
족쇠가 있던데 그놈을 갖다가 저녀석을  채우지요. 그래도 녀석이 끊고 달아날  수 
있나 구경 좀 하게요.]

모두들 그릴 듯하다고 찬성이다. 그 중  한 사람이 나는 듯 달려가 족쇠를  가지고 
와서 완안강의 손발에 쌍으로 채웠다.

[이놈들, 그것을 백성들  괴롭히는 데  쓰려고 준비했다가  오히려 제놈들이  쓰게 
됐군그래. 어디 맛이 어떤가 보라고 하게.]

육장주가 낄낄 웃는다.
완안강의 이마   위에선 쿵알만한  땀방울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그러나  입술을 
악물고 참으며 신음 소리조차 대지 않고 있었다.

[그를 이리 데려오너라.]

육장주의 명령에 2명의 두령이 그를 끌어다 침상 앞에 꿇리자 육장주는 손을  뻗어 
그의 미척골(尾脊骨)과   왼쪽 가슴의  혈도를 눌렀다.   완안강은 통증이  멈추자 
마음속에 분노가 이글거리면서도 또 한 번 놀랍기도 했다. 
(이 사람 손 쓰는 것이 사부와 비슷한데 서로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육관영이 명령을  내려 감금시키고  각채 채주들도  모두 
물러갔다. 황용과  곽정이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우자 육장주는  웃으며  말문을 
연다.

[아이들이라 다투기를  좋아하는데 두   분 손님께는 미안스럽게  됐습니다.  너무 
허물치 마십시오.]

황용은 그가  쓰는 장법과  점혈(點穴)을 하는  방법이 자기가  배운 것과  너무나 
비즛해서 부쩍 의심이 일었지만 전연 그런 내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장원에 무얼 훔치러 들어왔나요?]

육장주는 껄껄 웃는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재물을 적지 않게 훔쳤지요. 자, 그 얘긴 그만 하고 
우리 서화나 감상합시다. 공연히 그녀석 때문에 흥만 깨져 버렸군요.]

육관영이 서재에서  물러나고 세  사람만 남아  다시 서화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곽정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육장주와 황용은 한 폭 한 폭 펴 
놓고 그에게 설명을 해준다. 산수가 어쩌고, 인물이 어떻고, 깃털과 벌레는 어떻게 
잘 그렸다는 등의 얘기다. 서화를 보게 되면서 곽정도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화 가운데의 휙 하나하나나 필봉의 힘찬 움직임 등이 어딘가 검법과 비슷한 데가 
많았다. 그러나   곽정과 황용은  전연  무예를 아는   체하지 않기  위해  내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점심이 끝난 후 육장주는  그들을 장공(張公),선권(善卷)의 두 동굴로  안내하라고 
심부름꾼에게 분부를 내렸다. 그 두 동굴은 정말 천하의 명승이었다. 동굴  속에는 
기기 묘묘한 경치가 널려 있었다. 둘은 날이 어둡도록 구경을 하다가  되돌아왔다. 
저녁 잠자리에 든 후 곽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용이, 어떻게 하지? 그를 구해 주나, 아니면 그냥 놔 두나?]
[우리 여기 며칠 더 묵어 가면서  보아요. 도대체 육장주가 어떤 사람인지  정체를 
알 수 없군요.]
[그의 무공이 아무래도 황용과 비슷한 일파에 속하나 봐.]
[글쎄, 그 점이 바로 이상해요. 그가 매초풍을 아나 보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귀가 듣는다고,  혹시 누가 들을까  봐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촛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잤을까? 지붕 위에서 나는 바스락 소리에 눈을 떴다. 누가 땅 위에  가볍게 
내려서는 기척이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살펴보니  과연 검은  그림자 
하나가 장미꽂   덤불 뒤로  숨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동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조심스런  태도로 보아  외간에서 뛰어들어온  인물임에 
틀림없다.
황용은 이 귀운강이 다만 태호군웅들이  모이는 평범한 곳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육장주의 솜씨를 보고 나니 그의 과거가 복잡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정체를  파악하고야 말겠다는  작정을 했다. 그래서  곽정의 손을  잡고 
슬그머니 창문을 빠져나와 그 사람의 뒤를 바짝 쫓았다.
몇십 보를 쫓았을까? 별빛  아래 살펴보니 여자가  틀림없다. 게다가 무공도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황용이 대담하게 좀더가까이 접근해 옆모습을 살퍼보니  그 
여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목염자다. 황용은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군, 사모하는  사람을 구출하려고  왔군. 어디  어떻게 구하나  구경이나  해 
보자.)
목염자는 정원 안을  동으로 왔다,  서로 갔다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벌써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장원 안의 배치에 대해 황용은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훤했다. 사람을 가두는 
장소는 서남방에 있는 명이(明夷)  아니면 무망(无妄)이다. 이는 주역의  팔괘에서 
나온 것으로 그녀의  아버지 황약사는  주역에 통달하여  가끔 그녀에게  들려주곤 
했었던 것이다.
이 장원의 건물 배치가 주역의 원리에  어딘가 어긋나 있어 정통한 사람의  눈에는 
서툴러 보이는 것이다.
도화도의 오묘한 배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황용은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간 백 년을 찾아도 못 찾을걸.)
그래서 허리를 굽혀 한 줌의 흙덩이를 손에 쥐고 목염자가 머뭇거릴 때 왼쪽  길을 
향해 던지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쪽으로 가요.]

목염자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풀 숲에  납작 엎드려 숨었다.  목염자는 
놀다 풀 숲에  엎드린 채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칼을 빼들고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덮쳐들었지만  황용과 곽정의 경신술이  그에게 
발각될 리 있겠는가?

목염자는 몹시 당황한 눈치다.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다. 호의일까?  아니면 악의로 그럴까?  길도 찾을 수  없을 
바엔 시키는 대로 가보기나 하자.)
그래서 흙덩이가 떨어진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흙덩이가  떨어지며 방향을   제시한다. 꼬불꼬불  한참 
동안이나 가다  보니  이번엔 흙덩이가   멀리 날아가 조그만   건물의 창에  맞고 
떨어진다. 눈앞이  번쩍 하는  순간 2개의  검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스쳐  지나가 
버린다. 금방 어디로 갔는지 종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목염자는 짐작이 가서  그 건물을 향해  달려가 보았다. 건물  앞에 2명의  장한이 
눈을 뜬 채 그를  멀거니 바라다보고 있다. 손에는  각기 병기를 들고  있으면서도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꼴이  벌써 누구에겐가 혈도를 눌린 모양이다.  목염자는 
자기도 모르는 어떤 고수가  드와 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볍게 문을  밀치고 
들어가 귀를 기울였다. 과연 사람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안강 오빠예요?]

완안강은 그때 벌써  파수꾼 둘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목염자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보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나요. 나.]

목염자는 기뻤다. 어둠 속에서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접근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두 분의 고수가 나를 도와 주었어요. 자, 우리 빨리 나가요.]
[그 비수를 지금 몸에 지니고 있겠죠?]
[칼은 무엇에 쓰시게요?]

완안강이  가볍게  몸을  움직이자  수갑과  족쇠가  부딪치는  금속성이  울렸다. 
목염자가 대들어 더듬어 보고는 후회 막급한 모양이다.
(쇠를 자르는 그 비수를 황용에게 주지 말아야 하는 건데.)
황용과 곽정은 집 밖에 숨은 채 그들이 주고받는 얘기를 엿듣고 있었다. 
(좀더 조급해지면 그때 비수를 되돌려 줘야지.)
목염자는 초조해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제가 가서 열쇠를 훔쳐올께요.]
[누이, 가지마.  장원 내의  적들의 솜씨가  여간 무섭지  않아요. 공연히  들키는 
날에는 일만 그르치고 말 텐데.]
[그럼 제가 업고 밖으로 나가지요.]
[그들이 쇠사슬로 나를 기둥에 묶어 놔서 업고 나갈 수도 없는걸.]

목염자는 초조하다 못해 이겐 눈물이 왈칵 나온다.

[그럼 어떻게 해요?]

흐느끼는 소리다. 그러나 완안강은 웃는다.

[내게 입을 맞춰 줘요.]
[아니, 지금 남은 급해 죽을 지경인데. 그래 그런 장난이 지금 나와요?]
[누가 장난을 한답디까? 우리 사이에 그보다 중요한 일이 또 있나?]

목염자는 대꾸도 하지 않고 그를 구할 궁리에만 열중했다.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소?]
[계속 뒤를 쫓아왔어요.]

완안강은 감격했다.

[누이, 내 곁에 와 앉아요. 할 말이 있어요.]

목염자는 땅바닥에 깔린 멍석 위에 앉으며 몸을 기댔다.

[나는 대금국의 사신이오. 그들은  함부로 내 몸에 손을  대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여기 갇혀 있다간 부왕께서 분부한 군국대사(軍國大事)를 그르치고 말 테니 도대체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누이가 내 대신 한 가지 일만 처리해 주어야겠소.]
[무슨 일인데요?]
[내 목에 걸린 금인(金印)을 풀어 줘오.]

목염자는 손을 뻗어 그의 목에 걸린 금인을 더듬어 끈을 풀었다.

[이것은 사신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금인이오.  이것을 가지고 빨리 임안부로  가서 
송나라의 사미원사승상(史彌遠史丞相)을 만나보시오.]

목염자는 살며시 놀라 묻는다.

[나 같은 보통 여자를 사승상께서 만나 주실까요?]
[그가 이 금인만 보면 허겁지겁 영접하기에 바쁠 텐데 뭘 걱정이오. 그를 만나거든 
내가 태호의  도적들에게 감금되었다고  하시오. 그리고  만일 그를  직접  만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분명히 한가지만은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소.  몽고에서  오는 
사신이 임안부에 도착하거든 만나지도 말고 그들을 잡아 즉시 참수하라는 것이오.]
[그건 왜요?]
[이러한 군국대사는 말해 줘야 모를 게요. 내 내신 이 몇 마디 말만 전해 줘도  큰 
일을 처리해 주는 셈이오. 만약에  몽고의 사신이 먼저 임안부에 도착해서  송나라 
군신과 만나는 날에는 우리 대금국의 입장이 매우 불리해지는 것이오.]
[무슨 우리 대금국이 어쩌구 저쩌구 하세요? 나는 당당한 대송국 백성이오. 분명히 
말해 주시지 않으면 난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목염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완안강이 미소를 머금고 말을 잇는다.

[아니, 그럼 장래 대금국의 왕비가 되기 싫단 말인가?]

목염자가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선다.

[내 의부는 당신의 친아버지예요. 그리고 당신은 당당한 한족(漢族)이구요. 그런데 
정말 금나라의 왕이 될 생각이에요? 나는 다만...., 다만....]
[왜 그래요?]
[나는 줄곧 당신은  지용을 겸비한  호남아로만 알고  있었어요. 고의로  금나라의 
왕자 행세를 하다가 기회만 오면 송나라를 위해 일을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끝끝내 도적을 아버지로 삼을 생각이었던가요?]

완안강은 그녀의 말투가 싹 변했을 뿐만 아니라 비분강개한 어조에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대송의 금수강산이   오랑캐에게 반   이상 빼앗겼고,  또  우리  한족이  금나라 
오랑캐들에게 그토록   짓밟히고 있는데   그래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에요?  응! 
정말...., 정말....]

여기까지 말하고 목이 메어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손에 쥐고 있던 금인을  땅바닥에 
집어 던지고 얼굴을 가린 채 나가려고 한다.

[누이 누이, 내가 잘못했소. 이리 돌아와요.]

목염자가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왜요?]
[내가 지금 여기서 벗어나기만 하면 다신 사신이니 뭐니 그따위 짓 않겠소. 그리고 
금나라로 돌아가지도 않겠소. 누이와 더불어 숨어서 농사나 짓고 살려오.]

목염자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잠자코 있었다.  원래 그녀는  완안강과  무예를 
겨루고 난 후부터 정은  점점 깊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천하제일의  홀륭한 
영웅이요 호걸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완안강이 자기  친아버지를  만나고도 
아버지라 하지 않을 때도 다른 깊은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고, 그가 금나라 
사신으로 출타를 할 때도 그만은 남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가  능력 
있는 자리에서  기반을 닦고  후에 대송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울   날이 언젠가 
반드시 있을 것으로 믿고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여자의 어리석은 정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된  것이다. 무슨  영웅이니 호걸이니  할  인물이 
아니라 부귀만을   탐내는 염치없는   인물일 줄이야  꿈에라도  생각해  본  일이 
있었겠는가?
목염자는 이렇게 생각하자 상심이 되었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듯  허무해지고 
말았다.

[누이. 왜 그래?]

완안강이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목염자는 묵묵 부답이다.

[내 어머니께서   누이의 의부가   내 친아버님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분명히 
여쭈어볼 새도 없이 두 분이 다 세상을 떠나고 마셔서 상심한 나머지 어리석어졌나 
보지.]

목염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정말 자기의 신분을  모르고 있었다면 너무 그만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일 
거야.)

[금인을 가지고  사승상을 만나러  가란 말  다시는 꺼내지  말아요. 내가  황용을 
찾아가 비수를 달래다가 구해 드릴께요.]

황용은 비주를 목염자에게 되돌려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금  완안강이 
금나라의 군국대사를 위한단 말을 듣고 생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내  아버지는  금나라  사람을  제일  미워하는데  그냥  며칠  여기  갇혀  있게 
내버려둬야지.)

[이 장원 안의 길이 아주 묘하던데 어떻게 나를 찾아냈지?]
[어떤 고수가 나도 모르게  도와 주셨는데 그가  누군지를 모르겠어요. 시종  일관 
얼굴을 나타내지 않거든요.]

완안강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입을 연다.

[누이, 다음에 찾아오다가 잘못하면 공연히 장원 안의 고수에게 발각되고 말  테니 
차라리 나를 구해 주려거든 사람을 하나 찾아 줘요.]
[싫어요. 그 사승상인가 하는 사람은 찾아가지 않을래요.]
[승상이 아니라 내 사부님이요.]
[아. 그래요?]
[내   여기    허리띠에   있는    금환(金環)에   칼로   글씨를    새져   줘요. 
완안강유난(完顔康有難)   재태호서반귀운장(在大湖西畔歸雲莊)  이라구.   이것을 
가지고 소주(蘇州)의 북쪽 삼십 리에  있는 황산(荒山)에 올라가 봐요. 그럼  거기 
아홉 개의 해골이 포개져 있을 게요.  포개놓은 모양은 위에 하나, 가운데 세  개, 
그리고 맨 아래에 다섯 개가  있을 것이오. 이 허리띠를  맨 위에 있는 해골  밑에 
놔두기만 하면 돼요.]

목염자는 들을수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요?]
[내 사부는 두눈이 멀었소. 그가 허리띠의 금환에 새긴 글자를 찻게 될 거요. 그럼 
금방 달려와 나를 구할수 있소. 누이는 허리띠를 놓은 후 절대로 거기 머물러 있지 
말고 즉시 그  자리를 피해야 해요.  내 사부의 성질이  괴퍅해서 해골 옆에  누가 
있는 것을 알게  되면 혹시 누이를  해칠지 몰라요. 그는  무소불능이오. 꼭  나를 
구해 줄 것이오. 그럼 누이는 소주의 현묘관(玄妙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돼요.]
[그러나 한 가지  제 앞에서 맹세를  하셔야 해요. 다시는  그 도적을  아버지라고 
하지 마시고 또 나라를 팔고 백성을 괴롭히지 않겠다구요.]

완안강이 이맛살을 찌푸린다.

[지금 나보고  맹세를 하라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일을 다   끝내면 내 
양심에 비추어 행동하리라.]
[그래요, 그럼 내 가서 전하지요.]

그녀는 완안강의 허리띠를 끌렀다.

[누이 갈래요? 여기 와서 입이나 좀 맞춰 주고 가요.]
[안 돼요.]

단호하게 말을 뱉고 문 밖으로 걸어나간다.

[사부가 오셔서 구해  주기 전에 저들이  먼저 나를 죽일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우린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해요.]

이 말을 들은 목염자의 마음이  누그러진다. 한숨을 내쉬고 걸어와 완안강의  품에 
기댄다. 완안강이  그의 얼굴에  입을 맞춘다.  그러자 목염자는  결단을 내린  듯 
단호하게 말을 꺼낸다.

[장래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당신 앞에서 죽어 버리고 말테예요.]

완안강은 부드럽게 목염자를 애무하고 있는 판에 이런 말이 나오자 멍하니  그녀를 
바라다보았다. 이때 목염자는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나가버린다.
나올 때도 황용이 여전히 흙덩이를 던져 길을 인도해 주었다. 목염자는 담장  밑에 
이르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배님, 누구신지   모르오나 소녀는   허공을 향해서라도  고마운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졀을 올리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땅에 꿇어 엎드려 세 번 머리를 조아렸다. 간드러진 웃음 소리와 함께 
맑은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아이구,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요.]

목염자가 고개를 쳐드니 하늘엔 뭇 별만  반짝이고 땅엔 꽃그림자만 깥려 있을  뿐 
사람의 그림자라곤 찾아몰  수가 없었다.  목염자는 매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를 들어봐서는  황용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황용이 이곳에  와 있을  리도 
없다. 설령 와 있다 하더라도 이 장원 안의 기기 묘묘한 길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걸어가면서도 계속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을 더듬어 보았지만 뭐가  뭔지 
종내 풀리지 않았다. 10여 리 남짓 걸었을까?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배를 타고 태호를 건너 소주땅으로 들어갔다.

소주는 동남의  번화한 곳이다.  물론  경성 항구에  비할 바는  아니라  하더라도 
비단같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그러나 목염자로서는 지금 산천 경개를 즐길  계제가 
아니었다. 국수집을 찾아들어가 어물어물 한그릇을 비웠다. 하늘을 보니 이제 해도 
서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국수집을 나와  북쪽을 향해  걸어가며  완안강이 
가리켜 준   길을 따라  그의  사부를 찾아가는   것이다. 걸어갈수록  길은  더욱 
황량해졌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지고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자 멀리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큰 길을  벗어나 산골  지름길을 
찾아들었다. 날이 어두워 갔지만 해골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부근에 인가가 있다면 하룻밤 쉬고 밝은  날 다시 찾아볼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마루턱으로 달려가 보았다.  사방을 휘둘러보니  서쪽으로 건물이  한 채  보였다. 
어찌나 반가운지 단숨에  그리로 달려갔다.  가보니 그곳은  낡아빠진 암자요,  문 
위의  현판에는   약왕묘(藥王廟)란 세   글자가  보였다.   가볍게 문짝을   미니 
<꽝>소리를 내며 뒤로 나가 떨어지고  먼지가 풀썩 인다. 아마도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어졌던 모양이다. 암자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불상은 이리저리 쓰러져 있고 
그 위에  거미줄까지 얽히고   설켜 있었다. 불상  앞에  놓인 탁자를  만져  보니 
그런대로 성한 편이다. 풀을 뜯어다가 깨끗이 닦은 후 쓰러진 문을 일으켜  세우고 
마른 음식으로 요기를 한 뒤 보따리를 베개삼아 누운 채 잠을 청했다.

마음속이 조용해지자 완안강의 위인됨이  생각났다. 부끄럽기도 하고 상심도  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르르 눈물이  볼을 적신다. 그러나  그와의 달콤한  정을 
생각해 보면 미소가  눈물 젖은 볼  위에 피어나기도 했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겨우 2경이나 되어 살며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몽롱한 의식  가운데 쏴쏴 괴상한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도 아니요 물  흐르는 소리도 아니다. 등골이 오싹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다.  문앞으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밝은 달빛 아래 수천 수만의 청사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비린내가 확  풍겨 왔다.  한참  지나자 청사들이  점점 적어지더니  이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흰옷을 입은 남자  셋이 긴 장대를  들고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목염자는 문 뒤에 몸을 웅크린 채 다시 더 바라다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혹시 그들에게 발각될까  두려워서였다.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가자 다시  고개를 
들고  문틈으로   밖을 내다본다.   청사떼는  어디로   갔는지 사방이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방금 본 끔찍한 정경이 도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서서히 부서진 문을 밀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청사떼가 몰려간  쪽으로 
몇 발짝 걸어 본다. 흰옷을 입은 남자들의 뒷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다시 암자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먼 곳의  바위 
위에 달빛이  비치고  뭔가 회백색  물건이  희미하게 보였다.  모양이  괴상했다. 
목염자가 서서히 다가가 보고는  가볍게 놀란다. 해골  무더기였다. 하나 둘  세어 
보니 완안강이 말한 그대로 9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온종일 찾아다니던 9개의 
해골더미를 심야에   발견한 것이다.   반가운 생각에  무서움도  잊었다.  품에서 
완안강의 허리띠를 찾아 들고 맨 위에 놓인 해골을 들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손끝이 해골위에  가닿자 자기의  다섯 손가락이 그대로  해골 위에  뚫린 
5개의 구명 속에 쑥 박히고 만다. 해골이 입을 벌리고 자기의 다섯 손가락을 곽 문 
것이다. 깜짝 놀라 손을  뿌리치자 해골이 그대로  끌려 올라온다. 비명을  지르며 
두어 발짝 달아나다 생각하니 실소가 터진다. 공연히 스스로 놀라고 만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허리띠를 다시 3개의 해골 위에  올려 놓고 맨 위에 있던 것을  거기에 
눌러 놓았다.
(그이의 사부가 어지간히 괴상하군. 어제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해골을 쌓아 둔담.)
그날 매초풍이 조왕부 안에서 여러 사람과 고투를 하고 있을 때 목염자는 의부모를 
따다 왕부를   탈출해 나왔기  때문에  그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해골을 
제자리에 놓아 둔 뒤 조용히 고개를 떨구고 이렇게 빌었다.
(사부님, 빨리  그이를 구해  주시고 개과  천선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 
주옵소서.)

수갑과 족쇠를  끼고있는  완안강의 모습을  그리고  있을때 누군가가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기절초풍하도록 놀란 목염자는 고개를 돌려 바라다볼 생각도  못 
하고  두  발로  땅을  찍으며   해골더미를 훌쩍   뛰어넘고 쌍장으로   앞가슴을 
보호하면서 휙 몸을  돌렸다. 그러나  상대도 목염자의 행동을  따라서 벌써  그의 
등뒤에 와 있었던  모양인지 그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또 한  번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목염자가 5,6차나 몸을  돌렸지만 등뒤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귀신인가  요괴인가? 정말  귀신곡할 노릇이다.  목염자의 등줄기에  식은 
땀이 좍 흘렀다.

[누구예요?]

묻는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려  나왔다.  뒤에 있던   그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목염자의 목에 코를 댄 채 냄새를 말아 보는 모양이다.

[향기가 근사한데.]

목염자가 고개를 홱 돌리니  서생차림의 선비 하나가 손에  부채를 든 채 거기  서 
있었다. 보기 드문 귀공자다. 북경에서  자기의 의부모를 자살하게 만들었던  흉한 
가운데의 한 사람인 구양공자 바로 그 사람이었다. 놀랍고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자기의 상대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아는 목염자는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열 발짝도 달아나지 못해 구양공자가 전면에서 양팔을 벌린 채  히히거리며 
껴안으려고 떡 막고  있었다. 목염자는  걸음을 멈추고  왼쪽으로 피해  달아났다. 
10여 장도 가지 못해 또  그가 앞을 막고 기다리고  서 있었다. 몇 번이나  방향을 
바꿔 달아나 보았지만 여전 그 모양이다.
구양공자는 놀란 목염자가  더욱 귀여운  모양인지 하얗게  질려있는 그를  단번에 
잡을 수 있으련만 사나운 고양이가  귀를 놀리듯 하고 있었다. 목염자는  위급함을 
느끼며 허리에 찬 유엽도(柳葉刀)를 끌러 그의 머리를 향해 쉭쉭 내휘둘렀다.

[아이구, 사람 다치라고 왜 이래요?]

구양공자는 웃으며 몸을 죽이고 오른손을  뻗어 목염자의 어깨를 끌어  잡아당기며 
왼손으로 그의 가는  허리를 껴안았다. 목염자가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팔목이 뜨끔하며 손에  쥔 칼이 땅에  떨어진다. 막 자기  몸이 빠져 나오는  순간 
구양공자가 다시 꽉  틀어 잡았다.  황용이 완안강이 머무르고  있던 숙소를  향해 
자기를 집어던질 때처럼 두 손으로 자기의 맥문을 눌러 온몸이 뼛뻣해지면서  꼼짝 
달싹할 수가 없었다. 구양공자의 웃음 소리가 경박하기 짝이 없었다.

[나를 사부로 모신다면 내 금방 놔 드리지.]

구양공자는  그를   껴안은 채   오른손으로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징그러움에 소름이 끼쳐 목염자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사이에 희미하게나마 정신이 깨기  시작했다. 
온몸이 나른한데 누가  자기를 꼭  껴안고 있었다. 몽롱한  의식 가운데  완안강의 
품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살며시 두  눈을 떠보니  자기를 안고  있는 
사람은 완안강이  아니라 구양공자다.  부끄럽기도 하고  급하기도 해서  몸부림을 
쳤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르려고  입을 벌리니  수건으로 꼭  묶었다. 
구양공자는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초조하고  불안하고 긴강된  표정이다.  좌우를 
살펴보니 흰옷을  입은 8명의  미녀가 각기  손에 병기릍  든 채  바위 위에  있는 
해골을 주시하며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목염자는 이상한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그들이  무슨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다가 또  한번 소스라치게  놀란다. 
구양공자의 뒤에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청사떼가 땅에 엎드린 채 빨간  혀만 
날름거리고 있었다. 청사떼 가운데 흰옷을 입은 3명의 남자가 긴 장대를 들고 뱀을 
지휘하면서 뭔가 기다리고 있는 눈치들이다. 목염자는 고개를 돌려 다시 그  9개의 
해골과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는 금환의  허리띠를 바라다보며 언뜻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이들이 그이의  사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구나. 이렇게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기다리는데 만일 그이의  사부가 나타난다 하더다도  혼자 어떻게 이  많은 
사람과 뱀을 상대해 낸단 말인가?)
마음이 몹시 초조했다. 차라리 이럴 바엔 완안강의 사부가 오지 말았으면 했다. 반 
시간쯤 지나자 달이 점점 중천에 높이 떠올랐다.

(그이의 사부는 달이  중천에 오르면  오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나타나는 
것일까?)
밝은 달이  소나무 가지에  걸리고  하늘은 맑기  끝이 없었다.  사방에서  풀벌레 
소리와 먼 곳에서 우는 부엉이 울음  소리만 들릴 뿐 주위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구양공자는 다시 한번 중천에 걸린 달을  바라본 후 목염자를 옆에 있는  여자에게 
넘겨 주었다. 부채를  꺼내 오른손에  쥐고 산모퉁이를  지켜본다. 목염자도  이제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상대가 곧  나타날 것이라고 직감했다. 따라서 마음은  더욱 
초조해지고 불안해졌다.

무덤처럼 고요한 정적 가운대  갑자기 먼 곳에서  날카롭고 처참한 휘파람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다가 순식간에 머리 위에서  다시 들렸다. 번쩍하는 순간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가 산모퉁이에  나타나다가 우뚝 발길을  멈춘다. 무언가 눈치를  챈 
모양 같았다. 목염자는 완안강의 사부가 어떤 사람일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나타난 인물은 괴상한 여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원래 매초풍은 조왕부에서 곽정으로부터 몇 마디 내공을 익히는 비결을 들은  뒤에 
혼자 연마에 연마를 거듭하여  한 달도 채  못되어 두 다리를  자유 자재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강남 육괴가  벌써 강남으로  돌아간 것을  알고 그들을  쫓아 
복수할 결심을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런   완안강이 부명을  받고  사신의 
자격으로 남행하게  되자 자기도  따라  나선 것이다.  그는 매일  밤  구음진경의 
비법을 익혀야 하는데 사람들이  많아 불편하기 때문에  혼자 길을 떠나  소주에서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완안강이 태호의 군웅들에게  잡히고 
게다가 구양공자가 자기의 희첩들을 죽인 복수를 하기 위해 청사떼를 몰고 와 숨은 
채 자기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의 청각은  예민하기 짝이  없다.  산모퉁이를 돌면서  벌써 여러  사람의  호흠 
소리를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즉시 발길을 멈췄다.
게다가 그에게는  사람의 숨소리가  아닌 괴이한  소리까지 들린것이다.  청사떼의 
호흡 소리였던 것이다. 구양공자는 그가 멈칫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지독한 할망구로구나.]

부채를 흔들며 몸을  일으켜 세우고  덮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비탈길 뒤에서 다른 한 사람이 나타났다. 구양공자는 즉시 그  사람을 
주시했다. 키가 삐쩍 마른 체구에 청색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방건(方巾)을 쓴 
문사(文士)차림인데 얼굴은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그가 
걸을 때 전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이다. 매초풍처럼  무공이 높은  사람도 
걸음을 옮길 때는 소리가 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구름을 타고 다니는지
발바닥이 땅에 닿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 사람은 구양공자  등을 한 번  훑어보고 
매초풍의 뒤에   가 섰다.  구양공자는 그의   얼굴을 바라다보다가  머리가  쭈삣 
곤두섬을 느꼈다. 그의 용모가 괴이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눈만  움직이고 
있을 뿐 시체의  얼굴과 똑같다.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듯 아무 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차디찬 얼굴이다.

구양공자가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매초풍은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서고  있었다. 
구양공자는 그의 손이 무서운  줄을 알고 있었다. 차라리  선제 공격을 펴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 판단하고 왼손을 흔드니 뱀을 몰던 세 남자가 일시에 휘파람을 불며 
청사떼를 몰았다. 흰옷의 여자들은 얌전하게 그자리에 앉아 있는대도 뱀들이  모두 
그들을 피해서 간다. 아마도 뱀이 싫어하는 약물이다도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매초풍은 청사떼가  움직이는 소리에  깜짝 놀다  몸을 날려  여러장 밖으로  뛰어 
피했다. 매초풍이  날랜  솜씨로 피하자  뱀을  모는 남자들이  장대를  휘두른다. 
그러자 수천 수만 마리의 뱀들이  산개를 한다. 그중 한놈에개라도 물리기만  하면 
목줌을 잃는 것이다.  목염자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매초풍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그가 몸을  돌리며 
은빛 찬란한  긴 채찍을  들고  휘둘러 춤을  추면서 전신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전후 좌우 사방으로 뱀들이 포위를 하고 말았다. 
몇 마리의 청사가  휘파람 소리를  듣고 파고들었지만  매초풍이 휘두르는  채찍에 
맞고 퉁겨 나왔다.

[이 매요괴야, 목숨만은 살려 줄 테니 구음진경을 빨리 내놔라. 그러면 이  공자가 
길을 비켜 주마.]

구양공자가 먼저 욕을  퍼부었다. 매초풍은 거들떠볼  생각도 하지 않고  맹렬하게 
채찍만 휘두르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천 가닥 만 가닥의 은광이 퉈었다.

[한 시간만 더 춤을 추어 봐라. 날이 밝아도 내놓지 않고 배기나 보자.]

매초풍은 내심으로 초조해져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  보아도 
사방이 뱀  소리뿐이었다. 한  발짝 움직일  수도 없는  처지다. 자칫   잘못 발을 
옮기다 뱀을  밟는 날에는  물리고  만다. 제아무리  홀륭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구양공자는 땅바닥에 앉은 채 득의 만면해서 다시 입을 연다.

[이 매요괴야. 그 구음진경은  원래 훔친 것이 아니냐?  이십 년 동안이나  가지고 
있었으니 배울  것은 배웠것다,  죽어라 끼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냥 
빌려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럼 우린  친구가 되는 거지.  지나간 일은  피차에 
따질 것도 없구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럼 이 뱀부터 철수를 시켜라.]
[무슨 소릴! 우선 진경부터 이리 던져라.]

구음진경, 비록  반쪽밖에 되지  않지만 매초풍은  자기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죽으면 죽었지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뱀에게 물리게만 되면 진경을 찢어 버려야지.)
목염자는  나무위로  기어오르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수건에  묶인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매초풍은 눈이 멀어 물건을  보지 못한다. 왼쪽에 큰 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다만  자기의  무공이 
탁월함을 믿고 달아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손을 뻗어 품속에서 무언가 꺼내  들고 
소리를 지른다.

[나는 다 배웠으니 가져가거라.]
[던지기나 해라.]

매초풍이 다시 소리를 지른다.

[자, 받아라!]

번쩍 손을 치켜 들자 구양공자가  뒤로 넘어진다. 목염자는 쉭쉭쉭 날카롭고  가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옆에  있던 2명의  여자가 쓰러졌다.  구양공자는  위급한 
가운데 땅바닥을 한  바퀴 굴러  매초풍의 무서운 암기를  피하기는 했지만  2명의 
희첩이 목숨을  잃고 쓰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의 무공이  뛰어난  덕택으로 
그녀의 독수에  걸려들지는 않았지만  식은땀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좍  흘렀다. 
놀랍기도 하거니와 화도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딪 발짝 뒤로 물러서며  소리를 
지른다.

[이놈의 요괴 할멈, 내 오늘 죽이고 말겠다.]

매초풍은 방금  3개의 무형정(無形釘)을   발사한 것이다. 전광  석화처럼  빠르고 
무시무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는 용케  피하고  말았다. 그의  잽싼  행동에 
속으로 탄복을 하면서도 더한층 초조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구양공자의 두 
눈이 그의 양손을 쏘아보고 있었다.
은채찍을 휘두르는 손에  허만 보이면 청사떼를  돌격시킬 태세다. 이때  매초풍의 
주변에는 벌써 수십 마리의 독사가 죽어 자빠져 있었다. 그러나 수천 수만  마리도 
넘는 뱀의 포위망을  뚫을 수는  없는 것이다. 구양공자도  그의 은채찍이  무서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또 한시간은 버티고 있었을까? 달이 서쪽으로 기울고 매초풍은  초조할대로 
초조해 있었다.  채찍을  휘두르는 힘이  처음처럼  힘차지 못했다.  그의  공력이 
심오하지만 시간을 끌수록  지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휘두르던 채찍의  범위가 
점점 좁아져 갔다.  구양공자는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점점  뱀을 몰아  포위망을 
좁혀 간다.   그러면서도 구양공자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매초풍이  죽기로 
굴복하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 진경을  파손해 버린다면 헛수고가  아닌가? 
파손하기 전에 달려들어 뺏아야하는 것이다. 뱀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진다.
매초풍은 손을 품속에 넣이 진경을 어루만진다. 얼굴 표정이 처참하도록  일그러져 
있다.
(원수를 갚기도 전에 오늘 내 여기서 죽고마는 것이 아니냐?)
바로 이때에 갑자기 반공에서  봉이 울고 옥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은은한 통소 소리가 부드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땀을  흘리며 
맞서고 있던  찰나라 깜짝들  놀란다. 구양공자가  고개를 쳐드니  아까  나타났던 
청의의 괴인이  높은 소나무  위에 걸터앉은  채 옥통소를  손에 들고   불고 있는 
것이었다.
구양공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기의 시력이 예민하기 짝이 없는데 달빛이 
대낮처럼 밝은데도   그가 언제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가  앉아  있는 소나무   끝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도 태연  자약 
단정하게 앉아 있는  것이다. 자기도 어려서부터  숙부의 지도로 경공을  익히느라 
무진 애를 먹었지만 그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 단정하게 앉아  있을 
자신은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계속해서 통소 소리는 울려 퍼지고 있었다. 구양공자는 몸이 근질근질하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은몸이 화끈화끈  달아올라 춤이라도  한바탕 덩실덩실  추어야 
속이 후련할 것만 같았다.  그가 막 손과 발을  들어올리려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진정을 해 본다. 그러나  청사떼는 벌써 앞을 다투어  나무 주위를 맴돌며  고개를 
번쩍 쳐든 채 퉁소  소리를 따다 빙글빙글 원무를  추고 있었다. 뱀을 몰던  3명의 
남자와 구양공자의 10여  명 여제자들도 소나무를  끼고 돌며 마친  듯 손과  발을 
휘둘러 난무를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자기 옷을 찢고 머리채를 끌어  잡아당기는 
광태에 빠져 있었다. 얼굴엔 바보스런 미소를 흘리며 미쳐 돌아가는 것이다.
구양공자는 대경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밤 뜻밖에도 강적을 만난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어  가며 주머니를  뒤져  6개의 은으로  만든 북(梭)에  독을  먹인 
암기를 꺼내들고 그 사람의 머리와 가슴,  배를 겨누고 전력을 다해 집어  던졌다. 
그의 이 암기는  백발 백중 실수를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가볍게 통소 끝으로 받아 땅에 떨어뜨리면서도 계속 그치지 않고 통소를 불고 있는 
것이다. 가락이 꺾어지는 통소 소리를  들으며 구양공자도 더 참지 못하고  부채를 
펴든 채 부채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의 무공은 뛰어난 편이라  의식적으로 
춤을 멈추어 보려고 안간힘을 써본다. 그러나 마음만 조급할 뿐 멈춰지지  않았다. 
통소 소리가 멈추거나 아니면 지쳐  쓰러질 때까지는 계속 추어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아직 정신은 멀쩡하기만 하다.

(옷을 찢어 귀를 틀어막으면 저 소리가 들리지 않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뻣뻣한 손을 올려 옷깃을 찢기는 했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도저히 그것을 귀에 틀어막을 재간이  없다. 놀랍고 무서운 생각에 계속  식은땀이 
흘렀다. 매초풍도 무릎을  땅에 꿇고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죽을 힘을  다해 
참고 있는 모양이 분명했다. 구양공자의 여제자들 가운데 벌써 몇 명은 더  견디지 
못하고 땅에 쓰러진 채 이리 딩굴 저리 딩굴 구르고 있었다.
목염자만 혈도를 눌려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통소 소리에 마음은 울렁거리고 
있었지만  수족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까닭에  단정히  누운  채  그대로다. 
구양공자는 두   볼이 붉게  상기되고  목이 타   견딜 수가  없었다.  내심으로는 
이러다가 오늘밤  목숨을 잃겠다고  걱정을 하면서  혀를 내밀고  있는 힘을  다해 
이빨로 꽉 깨물었다. 지독한 통증에  통소 소리의 유혹이 순간적으로  감소되었다. 
목염자를 끌어안고  앞을 향해  죽어라 네달렸다.  몇 리를  달렸을까? 이제  통소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온다. 지칠대로  지쳐 
기진 맥진해 있었다.  온몸에 흠뻑 땀이  배이고 한 차례  중병에 시달리고 난  것 
같았다. 무서워 더 쉴래야 쉴 수도  없었다. 목염자의 혈도를 풀고 그를  위협하여 
일로 소주성 안을 향해 달렸다.

황용과 곽정은 목염자를 떠나보낸 후 방으로 돌아와 그 밤을 편안히 잤다.  다음날 
낮에도 태호 호반을 거닐며  산천 경개를 구경했고  저넉엔 다시 육장주와  더불어 
서화를  감상하며  한가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곽정은  은근히  마음속으로 
걱정되는 일이 있었다. 목염자가  갔으니 매초풍은 불일간  올 것이요, 그가  오게 
되면 그 무서운  재주를 당해  낼 사람이 없을  테니 귀운장에  있는 사람이  많이 
다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었다. 그래서  그는 옆에 아무도 없을 때 황용과  이 
일을 가지고 의논을 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매초풍의  일을 육장주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완안강을 풀어 주면 장원의 사람들이 매초풍의 독수에서 벗어나게 말이야.]

황용이 손을 내젓는다.

[그럴 것  없어요.  나도 처음엔   완안강이 호인인 줄   알았는데 목염자  언니와 
주고받는 말을 듣고  실망했어요. 며칠  더 고생하게  내버려두고 보세요.  그래도 
개과천선할 희망이 없어 보이거든 차라리 우리가 한칼에 없애 버리고 말죠.]
[그러다가 매초풍이 오면 어떻게 하지?]
[홍칠공에게서 배운 재주가 있잖아요.  차제에 그 재주를  매초풍을 상대로 해  써 
보지 뭘 그래요.]

황용은 아무   걱정도 없다는듯웃으며  말한다.  황약사의  별명이  동사(東邪)다. 
황용은 그의 무남  독녀 외동딸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영향만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성격이나 하는 짓이 괴상한데가  많았다. 곽정은 그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말려 봐야 소용없는 줄도 안다. 그냥  웃고 말면서도 계속 걱정이 된다.  육장주가 
이토록 호의로 대해  주는데 장원에 무슨  위급한 일이 일어나게  되면 전심  전력 
도와 주지 않을 수 없다고 결심을 한다.
이틀이 또 지났건만 그들은 가겠다는 말도 꺼내지 않는다. 육장주도 그들이 머물러 
주는 것이 흐뭇하기만  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육장주는  때마침 곽,황  두 
사람과 더불어 서재에  앉아 육유(陸遊)의 시(詩)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때 육관영이 총총 들어서는데 그 표정이 이상했다. 육관영의 뒤로 장객이 한  명 
따라 들어왔다. 그는 손에 쟁반을 받쳐 들고 있었는데 그 위가 불룩 솟아올라 있고 
위를 파란 보자기로 덮어 씌웠다.

[아버님, 방금 어떤 분이 이것을 보내 왔습니다.]

보자기를 쳐들자 백골의  해골이 드러나  보인다. 거기 다섯  개의 구멍이  뚫어져 
있는 것이 분명 매초풍의  짓이다. 곽정과 황용은 조만간  그가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육장주의 표정은 대번 변했다.

[이...., 이걸 누가 보냈더란 말이냐?]

부들부들 떨리는 복소리로 말을 하면서 손끝에 의지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第 二十九 章. 뜻밖의 방문객


육관영은 보내 온 해골을  보고 이상한 생각은 했지만  담이 세고 또 명색이  태호 
군웅의 우두머리인지라 그냥  예사의 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  아버지가 
놀란 나머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보니 천만 뜻밖의 일이었다.

[방금 어떤  사람이 이걸  상자에  넣어 가지고  왔는데 장객들은  선물로  보내는 
예물인 줄 알고 자세히 뭅어 보지도 않고 그냥 받았답니다. 끌러 본 뒤에야 해골인 
줄 알고   급히 나가   가져온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더래요. 그래 아버님, 여기 무슨 곡절이 있는 것입니까?]

육장주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손을 뻗어 해골 위에 뚫린 다섯 개의 구멍을 만져 
본다. 손가락 다섯  개가 그  안에 꼭 낀다.  육관영도 그걸  보고 이상해서  다시 
묻는다. 육장주는 비통한 미소를 입가에 띄고 곽정과 황용을 바라다보았다.

[제가 두 분을 만나  요 며칠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오래 머물러  주십사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어렵게  됐군요. 일찌기  지독한 두 사람과  원수를 진  일이 
있었는데 이제 그들이 곧 복수를 하려고 을 것 같습니다. 제가 더 모시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귀운장에 큰 재앙이 닥치고 있습니다. 제가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또 
뵈올 날이 있을 줄 믿습니다.]

고개를 들려 옆에서 모시고 서 있는 동자를 건너다본다.

[아니, 그 구멍은 손가락으로 뚫은 건가요?]

육장주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침묵에 잠긴다.

[사람을 시켜 가벼운 살림이나 챙겨 네 어머니를 모시고 호수 가운데 조용한  곳에 
가 숨어 있으라고 일러라. 그리고 각채 채주들에게도 사람을 단속해서 3일  동안은 
채  안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도록  하라고  해라.  귀운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불이  나더라도  절대로 구하러  오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시켜야 
한다.]
[아버님,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육장주는,

[사십 냥의 황금을 가져오너다.]

하고 이른다.
동자가 금을 가지러 나가고 육관영은 아버지의 분부대로 일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동자가   황금을 내오니 육장주는   두 손으로  공손히 
곽정에게 건넨다.

[여기 이 아가씨는 재색을  겸비하고 있어 곽형과는  정말 천생 연분인가  합니다. 
변변치 못한 것이오나 다일 결혼하실 때의 예물로 드리오니 성의로 알고  물리치지 
마십시오.]

황용의 얼굴이 금방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정말 눈치가  빠르구나. 진작부터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가  보다. 
그러나 저러나 어떻게 우리가 아직 성혼하지 않은 것까지 알았을까?)
곽정은 물리칠 수도 없어  몇 번이나 고맙다며 받았다.  육장주는 다시 침상  옆에 
놓여 있는 자기로  된 병을  가져다가 그 안에서  수십 개의  주흥빛 환약을  꺼내 
깨끗한 종이에 쌌다.

[저는 다른 재주라고는 별반 없고 과거에 은사로부터 의도와 약리(醫道藥理)를  좀 
배웠을  뿐입니다.  몇  개  안  되는  이  환약을  만드느라  제딴엔  무진  애를 
먹었습니다. 복용하면 불로 장생한다고들 하는데 우리 피차에 서로 알게 된 정표로 
이렇게 드립니다.]

환약을 쏟을 때 맑은  향기가 풍겼다. 황용은 냄새를  말고 그것이 진귀하기  짝이 
없는 구화옥로환(九花玉露丸)임을 알았다. 그가  어렸을때 아버지를 도와  9가지의 
꽃잎과 맑은 이슬을 받아다  만들어 본 일이 있는데  여간 공이 들지 많을  뿐더러 
천시와 계절이 제대로 맞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가 내주는 수십 개의 환약은 이만저만한 성의가 아니면 내놓을 수 없는 양이다.

[구화옥로환은  만들기  어려운  약인데   주시는 성의로   두 알씩만   받겠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육장주는 가볍게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아가씨께서는 어떻게 이 환약의 이름을 아시지요?]
[제가 어려서 몸이 너무 약했는데 어떤 유멍한 고승이 세 알을 주셔서 먹고 효과를 
본 일이 있어요. 그래서 이 환약을 알게 되었답니다.]
[두 분께서는 너무  사양치 마십시오. 낟겨  두어도 이제 제게는  아무 소용  없게 
되었답니다.]

황용은 그가 이미 즉을 결심을 내린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사양하지 않고  그대로 
받고 말았다.

[배를 한척 준비해 놨으니 두 분께서는 빨리 타고 떠나십시오. 도중에 무슨 이상한 
일이 생기더라도 개의치  마십시오. 각별히  조심하시고 제가 한  말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투가 여간  신중하지 않았다.  곽정은  여기 남아  무슨 일이든지  도와  드리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황용의 눈치가 그렇질 않아 잠자코 있었다.

[제가 외람되게도 한 가지 여쭈어 보아도 괜찮겠습니까?]

황용의 말에 육장주는 그윽히 바라본다.

[아가씨, 말씀을 해 보세요.]
[육장주께서는 이제   원수가 복수를  하기  위해 온다는   것도 아시고  또  그를 
상대해서 이길 자신도 없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면서도 왜 잠시 피하실 생각은  안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군자는 늘 눈앞의 위험은 피한다고들 말하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고 육장주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쉰다.

[그 두 사람이 제게 준 고통이 여간  대단한 게 아닙니다. 반신불수가 된 것도  다 
그들 때문이지요. 이십  년 동안  저는 보행이  불편한 것  때문에 그들을  찾아가 
복수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이 찾아 준 하늘이 내리신  기회인가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듣고 황용은 생각에 잠긴다.
(아니, 왜  두 사람이라  할까. 옳지.  동시 진현풍이  아직도 살아있는   줄 아는 
모양이로구나. 그런데  이 사람이   어째서 그들과 원수가  되었을까?  물어보기도 
거북한 일이지. 그런데 또 한 가지 알 수 없는 일이 있단 말야.)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다시 묻는다.

[육장주께서 제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을 아신 것은  그렇다 해도  어떻게 
제가 저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까지 아셨나요?   우리는 줄곧  한  방에 
거처했는데요?]

질문을 받은 육장주는 난처한 표정이다.
(아니 그럼 제가 처녀인지 아닌지 그것도 구별 못할 줄 알았더냐? 그림과 글씨에는 
정통하면서도 이런 건 숙맥인 모양이로군.)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육관영이 밖에서 돌아왔다.

[아버님 분부대로 영(令)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장(張), 고(顧), 왕(王),  담(譚), 
네 채주는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목을 베시는 한이 있더라도  귀운장에 
남아 있겠답니다.]

육장주가 또 한 번 한숨을 내쉰다.

[정말 의리 있는 사람들이야. 너 빨리 이 두 분 손님을 배웅해 드려라.]

황용과 곽정은   육장주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육관영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장객들이 벌써 홍마와 나귀를 배 안에 태워 놓고 있었다. 곽정이 황용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배를 타나?]
[가다가 다시 돌아와요.]

육관영이 빨리 이 손님들을 보내고 적을 맞아야 한다는 성급한 생각 때문에 이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도  몰랐다. 곽,황 두  사람이 막 배에  오르려는 순간  황용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호변 저쪽 먼  곳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머리에 굉장히 큰 항아리를 이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괴상했다.
이 사람은  발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오고 있었기에  곽정과 육관영까지도  보게 
되었다. 가까이  오는 것을  보니 백발의  노인이다. 몸에는  황갈색 짧은  웃옷을 
걸치고 오른손에 커다란 부채를 흔들며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는데 항아리를  보니 
무쇠로 만든 것이요, 아무래도 수백 근이  넘을것 같다. 그노인은 육관영 등이  서 
있는 옆을 지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태연하게 스쳐  지나갔다. 몇  발짝 
가다가 기우뚱거리더니 항아리  속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항아리 속에  물까지 
채웠다면 이건   물 무게만도   1백근이 넘을텐데,  다늙은  노인이  무쇠로  만든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 무공은 보통이 아닌 것이다. 육관영은 
순간적으로 마음이 써늘해졌다.
(혹시 저 영감이 아버지의 상대가 아닐까?)
위험을 무롭쓰고 즉시 그의 뒤를 따랐다.  곽,황 둘도 서로 바라다보고 그의  뒤를 
따른다. 그 노인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몇 리는  온 
것 같다. 육관영의 경공도 보통은 넘는 편이라 그의 뒤를 따라갈 수 있었다.  머리 
위에 이고 있는 무거운 항아리를 보면서  두려운 생각을 했고, 곽,황 둘도  의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곽정은  일찌기 사부님들로부더   당시 가흥의  취선루에서 
구처기와 무예를 겨룰 때 구처기가 구리로 만든 항아리를 공기 놀리듯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무쇠 항아리는 구처기가 던졌다는 항아리보다  휠씬 
더 큰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노인의 무공은 만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장춘자 
구처기보다 더 상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노인이 가는 길은 외딴 길이다. 육관영이 이곳에서 자라났지만 가 본 일이 없는 
곳이라 슬그머니 겁이 났다.
(저 노인 한  사람도 나로서는 당해  낼 수 없는데  만약 동행이라도 숨어  있다면 
독수에 걸리고 마는 것이다. 슬그머니 달아니는 게 상책이다.)
발길을 멈추고 되돌아가려고 하는데 앞에 냇물이 나타났다.
(다리도 없는데 어디로 가나, 구경이나 해 보자.)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입이 딱 벌어지는 광경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노인은 
발길을 멈추지 않은 채 그냥 물  위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다. 물이 겨우  무릎 
위까지 차고 만다. 저쪽 언덕 위로 을다간 노인이 항아리를 산모퉁이 풀 위에 내려 
놓고 몸을 날려 다시 수면 위로 한 발짝 걸어 되돌아오는 것이다.

황용과 곽정도  평생 듣도  보도  못 한  진귀한 광경이었다.  세상에  각가중파의 
무공에 대한 얘기를 수없이 들어 봤지만 머리 위에 무거운 항아리를 인 채 물 위를 
자유 자재로 걸어다닌다는 말은 들어 본  일이 없다. 빈 몸으로 물 위를  걷는다는 
말은 들어 보기는 했지만 그야 지나가는  얘기일 뿐이지 정말 세상에 그린  재주를 
가진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사실은 꿈이 아닌 생시인 것이다. 입을 벌린채 그 노인의 재주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노인이 백발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큰 소리로 웃고 육관영을 바라다보았다.

[자네가 태호 군웅의 우두머리인 육관영인가?]
[네 그렇습니다만, 노인은 뉘신지요?]

그 노인이 다시 곽. 황 두 사람을 가리킨다.

[저 두 분은 뉘시오? 이쪽으로 오시지 않고?]

육관영은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곽,황  두 사람을 발견하고 적이 놀라는  눈치다. 
황용과 곽정의  경신줄이  높아 뒤를   따르면서도 아무 기척을   내지 않았고  또 
육관영은 육관영대로 앞에만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곽,황 두 사람이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

[노인께 인사를 올리나이다.]

노인은 유쾌하다는 듯 껄껄 웃으며 겸양을 한다.

[그만들 두시오.]

다시 육관영을 바라다본다.

[여기는 말할 만한 장소가 아니니 다른 데로 옮겨 앉읍시다.]

육관영은 잠시 마음속으로 머뭇거린다.
(도대체 이 분이 아버지의 상대인지 아닌지 모르겠구나.)
어쨌든 그도 군웅의 수령이라 성격이 호방한 편이다.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노인께서는 제 가친을 아시나요?]
[육장주라? 아직 만나 본 일이 없소.]

육관영은 그의 말투로 보아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늘 가친께시 괴상한 예물을 받았는데 노인께서는 그 일을 알고 계셨습니까?]
[괴상한 예물이라니?]
[다섯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죽은 사람의 해골입니다.]
[그것 참 해괴한 일이로군. 누가 자네 아버님께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닐까?]

육관영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영감의 무공이 보통이 아닌데 만약 아버지를 해치러 왔다면 정정 당당하게 찾아들 
것이지 비겁하게  거짓말을 해  가며 나서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내가  장원으로 
모시고 가서 도움을 청한다면 어떨까? 도와만 준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육관영은 백발의 노인에게  친근감을 
느끼며, 초청의 말을 건넨다.

[물리치지 않으신다면 저의 장원으로 모시고 가서 차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괜찮겠지.]

육관영은 기뻤다. 정중하게 그를 모시고 앞장을  섰다. 노인이 다시 한 번  곽정을 
가리킨다.

[저 두 분도 장원의 사람인가요?]
[저 두 분은 제 가친의 손님이올시다.]
[아, 그래요?]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앞장을 선  채 걸어나가고 곽,황  둘도 그들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귀운장에 도착하자 육관영은 노인을 바깥채에 기다리게 해 놓고, 나는  듯 
달려가 아버지께 이  사실을 알렸다.  좀 지나자 육장주를  대나무로 만든  침상에 
앉힌 채 두  명의 장정이  메고 나타났다.  육장주는 두  손을 공손하게  합장하고 
인사를 한다.

[고인의 왕림을 몰라 뵙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노인도 미소를 머금고 가볍게 허리를 굽한다.

[뭐 그렇게까지 겸양할 것은 없소이다.]
[감히 존함을 여쭈어 보아도 실례가 안 될지?]
[내 성은 구( )요, 이름은 천인(千 )이라 하오.]
[아니,  그럼  강호에서   모두들 철장수상표(鐵掌水上飄)라고   하는  구선배님이 
아니십니까?]

육장주는 놀라고 구천인은 미소를 머금었다.

[기억력이 좋으시군, 아직도  내 별명을  잊지 않으셨으니. 한  이십여 년  강호에 
나타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두 나를 잊은 줄 알았는데.]

철장수상표의 명성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만 해도 강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뒤 어떻게 된 일인지 소식이 뚝 끊기고 종적을 감추었던 것이다. 
육장주는 이러한 그가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난 사실에 적이 의아한 생각을 했다.

[구선배님께서 이렇게  누추한 곳을  찾아 주셨는데  무슨 분부라도  내리실  일이 
있으신지? 이 후배 견마지로를 다해 받들겠습니다.]

구천인이 수염을 어루만지며 빙그레 웃는다.

[뭐, 별로 대단한 일은  없소. 말을 꺼넨다면 무림의  친구들이 웃을 일인데.  응, 
뭐랄까? 조용한 장소에서  수련이나 할까  한다는 얘기인데,  우리 저녁에  자세히 
얘기를 나눕시다.]

말투로 보아서는 악의가 없어 보였지만 육장주로서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여기 오시는 도중에 혹시 흑풍쌍쇄를 만나시지는 않았는지?]
[혹풍쌍쇄라니? 그것들이 그래 아직도 죽지 않았단 말이오?]

이 말을 듣고 보니 육장주로서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관영아! 구선배님을 내 서재로 모셔 쉬시도록 해라.]

아들에게  분부를  내리니,  육관영이  앞서고  구천인은  여러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뒤를 따른다. 육장주가 비록 구천인의 무공을 본 바는 없지만  그의 
명성만은 익히  들어 알고있었다.  당시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  다섯 
사람이 화산의 절정에서  무예를 겨를 때  구천인도 초청을 받았었다.  공교롭게도 
다른 긴급한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지만  어쨌든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무공이 탁월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설사 그들 다섯 사람과 비교해 
뒤진다 하더라도 버금가는  인물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한 그가 여기  있어 
주기만 하면  흑풍쌍쇄가 함부로  날뛰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곽정과  황용을 
바라다보며 말문을 열었다.

[두 분이 아직 떠나시지  않기를 참 잘  하셨음니다. 구선배의 무공으로  말한다면 
속인들로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고명한 분인데  오늘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찾아 주셨으니 내 누굴  두려워하겠습니까? 두 분께서는 아무 염려  마시고 
편안히 주무시기나 하세요. 밖에만 나오시지 않으면 됩니다. 오늘밤만 지나면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요.]

황용이 간드러지게 웃으며 말을 꺼낸다.

[오늘 구경 좀 하도록 해 주세요?]
[걱정스러운 것은 상대의 인원이  많을까 하는 것입니다.  잘못 보살펴 드려서  두 
분이 다치시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런  실례가 어디 있겠습니까? 정 그러시다면  제 
옆에만   계셔  주세요.   구선배님이  계신   이상  설마하니   제놈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전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어요. 그날 금나라  왕자를 혼낼  때도 
얼마나 재미가 있었는지.]

황용은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오늘밤의 상대는 바로  그 왕자의 사부랍니다.  재주가 보통이 아니에요.  그래서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아가씨, 무공에  관한 일은  잘 모르실  테지만 그  왕자가 손가락으로  자식놈의 
다리를 다치게 한  것이나 손으로 해골에  다섯개의 구멍을 뚫는  것이나 다  같은 
계통의 솜씨랍니다.]
[아, 이제   알 것  같군요. 소동파의   글씨가 황산곡(黃山谷)의  글씨와  다르고 
도군황제(道君皇帝)의 그림이 서회(徐熙)의 그림과 다른 것과 같은  모양이로군요. 
아는 사람들은 누구의 서화가 어느 파에 속하는지 아는 것처럼요.]
[정말 아가씨는 총명하시군. 바로 같은 이치랍니다.]

육장주는 빙그레 웃었다. 황용이 곽정을 잡아 끈다.

[자, 우리 그 노인이 뭘 하는지 가서 구경을 해요.]
[아이구, 그렇게 하면 안 돼요. 방해가 되면 큰일납니다.]

육장주가 놀라 만류했지만  황용은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며 가 버린다.  육장주는 
의자에 앉은채 행동이 부자유스러워 마음만 조급했다.

[그놈의 아가씨 꽤 까부는구먼. 어떻게 몰래 구경할 수 있다고 야단이지?]

장객에게 명하여 대나무로 만든 침상을 둘러메고 서재로 가자고 재촉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황용과 곽정을 막아야하는 것이다.  멀리서 바라다보니 곽,황 두  사람은 
벌써 허리를 구부린 채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황용은 장객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려 일으켜 세우며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고 육장주 보고 빨리  와서 
구경을 하라는 눈치를  보냈다. 육장주는 난처했다.  공연히 황용을  만류하다가는 
구천인에게까지 방해가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조용히  침상을 내려 놓게  하고는 
장객들의 부축을 받아 황용이  뚫어놓은 문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구천인이  단정하게 앉아  두  눈을 감은  채 입안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장주도 무학 명가의 제자다. 동시에 절학의 무공을 지닌 고수다. 각 파의 무공을 
전부 다 보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일찌기 사부를 통해서 많은 얘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내공이 탁월한  고수라 하더라도 입안에서  연기를 
내뿜을 수 있다는 얘기는 일찌기 들어  본 일이 없었다. 다시 더 바라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곽정의 옷깃을 잡아 당기며 그만 보자는 눈짓을 했다. 곽정은 구인의 
입장도 존중해야  함은 물론  다른 사람의  비밀을 훔쳐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여겨져 몸을  일으켜  세우고 황용을  끌어당기며  육장주와 함께  내당으로  물러 
나왔다. 황용이 웃으며 먼저 말을 꺼낸다.

[아니, 그 노인 정말 재미있군요. 배에서 장작불을 때는가 보지요?]
[그건 모르시는 말씀이오. 그것은 지독하기 그지없는 일종의 내공이라오.]
[그럼 입안으로 불을 뿜어 사람을 태워 죽인단 말이에요?]

바보스러운 질문이  아니라 구천인의  이 같은  괴상한 재주는  듣도 보도   못 한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물어 본 것이다.

[불이야 뿜을 수 없을 테지만 내공이 무섭단 말이겠지요.]

육장주는 구천인의 이와 같은 내공을 보니 적이 마음이 놓인다. 육관영에게 분부를 
내려 호면이나  각  도로에 나가   순라를 돌다가 괴상한   행인을 발견하면  즉시 
장원으로 모셔오도록  시키고 또  장원의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영접할  채비를 
하라고 일렀다. 저녁이  되자 귀운강의  대청에 수십  개의 촛불을  밝혀 놓고  그 
가운데 주석을 마련해 놓았다. 육관영이  구천인을 모셔다 상석에 앉혔다.  곽정과 
황용이 다음 자리에, 육장주와 육관영이 말석이 배석해 앉았다.
육장주는 술을 권하면서도 구천인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지도 못하고  풍토며, 
인정이며 한담만을 주고받고 있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구천인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육노제(陸老弟)의 귀운장은 태호 군웅들의 집결지이니 무공이 평범하지 않을 텐데 
한두가지 재주를 보여 주시면 어떠할까요?]
[후학의 미천한 재주를 가지고 어떻게 감히 대선배님 앞에서 추태를 부리겠습니까? 
그리고 또 저는 불구가  된 지 오래라 은사로부더  배운 한두 가지 무공도  손에서 
뗀지 오래 되었습니다.]
[은사란 누구신지? 말씀하시면 혹시 아는 사람일 수도 있을텐데.]

이 말을 들은 육장주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표정이 어딘가 쓸쓸해진다.

[후배의 과오로   인하여 사문의  용납도 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라  부끄럽기만 
합니다.]

옆에서 모시고 앉아 있는 육관영도 생각에 잠겨 있다.
(원래 아버님은  사부로부더 축출을   당하섰던가 보다. 그래서  여태까지  무공을 
드러내 보이신 적이 없었군. 친아들인 나까지도 그가 무학의 고수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으니. 그렇다면 아버님의 생애 가운데 말 못 할 괴로움이 있으셨겠지.)
이렇게 생작하니 자기 아버지가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구천인이 또 먼저  말을 
꺼낸다.

[육장주의 춘추로  보아 아직은  혈기 왕성하시고  게다가 군웅의  영수이시니  이 
기회를 이용해  혁혁한 업적을  세워 그들  사문의 선배들에게  한 번   나보란 듯 
나서시지 않으시렵니까?]
[후배는 불구인데다가  덕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선배님의  가르치심이  금석 
양언(金石良言)인 줄 아오나 힘이 부족하습니다.]
[육장주는 너무 겸양하지 마시오.  제가 보기에는 밝은  길이 하나 있는데  장주의 
의견이 어떤지 모르겠구료.]
[선배님의 지도를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구천인은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 음식만  먹을 뿐  좀처럼 닫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육장주는 수십  년 동안  은거하던 이 사람이  갑자기 강남에  나타났다면 
필시 사연이 있어서 왔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선배  고인인데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물어 볼  수도  없는 
입장이라 그의 입에서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육장주께서 사문(師門)의 사람들을 밝히기 싫다시면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귀운장의 명성이 쟁쟁한데 그 주인이야 명문의 제자에 틀림없으시겠지요.]

육장주는 고요히 웃었다.

[귀운장의 일은 자식놈인 관영이가 하는 일입니다. 이애는 임안부  광효사(光孝寺) 
고목대사(枯木大師)의 문하입니다.]
[아,  고목은  법화남종(法華南宗)의  장문인(掌門人)인데,  외가(外家)의  무공이 
흘륭하지요. 그럼 젊은 장주의 솜씨라도 보여 주심이 어떨까?]
[구선배님께서 미숙한 점을 지도만 해 주신다면 그보다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육관영은 이와 같은 고인이 미숙한 점을 지적해 주고 또 한두 가지 재주라도  배워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생각하고 안뜰로 내려가 섰다.

[그럼, 좀 지도해 주십시오.]

자세를 취하고 평생의 절학인 나한복호권(羅漢伏虎拳)의 솜씨를 보이기  시작한다. 
권풍이 쉭쉭, 발  그림자가 번쩍번쩍거렸다.  과연 명가의  제자로서 손색이  없는 
재주다. 뒤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며 절정에 이르자  호랑이가 울부짖듯  촛불이 
펄럭이고, 사방에 바람이 인다. 장객들이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구경에 열중이다.
위풍  늠름함이  영락없이  호랑이다.  이  권법은  오묘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나한맹호쌍형(羅漢猛虎雙形) 맹호전박(猛虎剪撲) 나한박격(羅漢搏擊) 등 여러 가지 
자세를 동시에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육관영은  안  뜰에서  또  한참이나   이리 치고   저리 치다가   목소리가  점점 
가냘퍼지는듯 하는가 싶더니 손놀림이 숨막히게 가빠지다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을 치자  벽돌이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육괸영이  몸을 솟구쳐  일어나  서며 
왼손을 치켜들고 오른발로 땅을 짚고 서니 꼭 나한불상(羅漢佛像)이 우뚝 서  있는 
모습 그대로다. 곽정과  황용이 갈채를  보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육관영이 
자세를 풀고 구천인을 향해 읍을 한뒤 자리에 가 앉는다.
얼굴도 상기되지 않았고  가쁜 숨도 내쉬지  않는 것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다. 구천인은 가타부타 반응도 없이 미소만 머금은 채 그대로 앉아 있다.

[제 자식놈의 권법이 보실 만합니까?]
[그런대로 쓸 만하군요.]

육장주의 질문에 대한 구천인의 대답이다.

[미숙한 점을 선배께서 지적해 주십시오.]
[자제님의 권법이 강신건체(强身健體)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적을  무찌르는 
데는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곽정은 생각했다.
(젊은 장주의 무공이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소용없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 
텐데.)

[선배님께서 지적해 주신 점 각별히 명심하겠습니다.]

육장주가 아들을  대신해 인사를  한다. 구천인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마당으로 
내려가 부서진 벽돌  조각을 주워 들고  와 앉는다.  그가 두 손에  힘을 주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부석부석 벽돌 조각이  부서지다가 마침내 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것을 본 네 사람이 동시에 깜짝 놀란다.
구천인이 손에  묻은 가루를  옷에 문지르며  다시 마당으로  내려가 털고  돌아와 
앉으며 입을 열었다.

[젊은 장주가 단주먹으로 벽돌을 부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적은   결코 벽돌이   아닙니다. 뻣뻣하게  서서  상대가  자기를  치도록 
내버려둘 리가 있겠습니까?  무학의 도에서 적을  제어하려면 기선을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옛고인도 말씀하신  바와 마찬가지로 처녀처럼  조용히, 뛰는  토끼처럼 
날렵하게 하라는 것과 같은 이치랍니다.]

육관영은 묵묵히 듣고 있었고 구천인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무학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정말 무공이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에 불과하지요.]
[누구 누군데요?]

황용이 먼저 물었다. 

[무림의 사람들이 늘 손꼽고 있는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 이 다섯 사람의 
무학이 제일 높다고 할수  있지요. 내 다들  만나보기는 했습니다. 공력의  심후를 
가지고 말한다면 중신통 왕중양이 제일인자요,  그 밖의 네 사람도 각기  독보적인 
경지에 도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거기 단점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그들의 단점을 파악하고 허를 노린다면 그들을 제압하는 일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요.]

이 말이 떨어지자 육장주, 황용, 곽정 셋은 깜짝 놀랐다. 육관영이야 원래 이 다섯 
사람의 명성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놀랄  리도 없었다. 황용은 구천인이 무쇠로  된 
솥에 물을   가득히 담아  이고가던 일이라든지,   수면 위를  마음대로  걸어다닌 
일이다든지, 입안에서 연기를 뿜는 것  등의 묘기를 보고 마음속으로 탄복해  마지 
않고 있다가 이제 자기  아버지를 포함한 고수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말투를 
듣자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노인께서 그 다섯 사람을 하나 하나 해치우고 명성을 떨치시면 되겠군요.]
[왕중양은 이미 세상을 머났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게고. 그 해 화산에  모여 
무예를 겨룰 때 나는 공교롭게도 집안에  일이 생겨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천하 
무공 제일의 명성을 전진교 교주가 차지하게 되고 말았지. 그때 다섯 사람이  서로 
한 부의 구음진경을 가지고 누가  차지하느냐고 다투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무공이 
제일 높은 사람이 갖기로 결정하고 7일 낮 7일 밤을 겨룬 결과 동사, 서독,  남제, 
북개는 모두   승복하고 말았다오.  그  뒤 왕중양이   세상을 떠나자  또  파란이 
일어났는데 내가  듣기로는 왕중양이  세상을 떠날  때, 그  진경을  사제(師弟)인 
주백통(周伯通)에게 주었다는데 동사인 황약사가  이를 알고 대들었는데  주백통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해  반부의 진경을 빼앗기고 말았다오.  그런데 그뒤 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단 말이오.]

곽정과 황용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런 곡절이 있었구나. 그 반부의 진경을 흑풍쌍쇄가 훔쳐 갔군.)

[그럼 노인의 무공이 천하 제일이니 그 진경은 마땅히 노인의 소유가 돼야겠군요.]

황용이 추켜세우자 구천인이 대답을 한다.

[나는  누구와  다투기가  싫어서  큰일이오.  동사,  서독,  남제,  북개가  모두 
비슷비슷한데  이  몇십  년  동안   서로들 천하   제일의 명성을   차지하겠다고 
야단들이지. 2차 화산투쟁은 아마 볼만할게야.]
[아니, 그럼 또 한 번 화산에 모여 겨루게 되나요?]
[이십오 년이 일세(一世)니까. 늙은 사람은 죽고 젊은 영웅이 나타나기  마련이지. 
다시 한 해가  지나면 화산에 모이게  되오. 그런데 또  겨룰 사람들은 우리  몇몇 
늙은이밖에 없단 말야.  계승할 사람이 없어  야단이오. 한 대  한 대  내려갈수록 
무학도 쇠퇴한단 말야.]
[그럼 내년에 또  화산에 가신단 말이에요?  가시게 된다면 저도  좀 데리고  가서 
구경 좀 시켜 주세요. 나는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더라.]
[허참, 그게 무슨  싸움인가? 나는  가고 싶지도 않다오.  이제 곧  땅 속에  묻힐 
사람이 허명은 얻어 무얼하나? 그렇지만 한  가지 큰일이 남아 있단 말이오.  내가 
안일만 탐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있으면 만민이 도탄에 빠져 허덕일 게고 그 재앙을 
수습할 수 없게 된다오.]

내 사람은 말뜻을 이해할 수 없어 왜 그러시냐고 묻는다.

[이건 아주  큰  비밀인데, 곽,황  두  분은 강호  인물이  아니니 듣지  않는  게 
좋을걸.]

이 말을 듣자 황용이 궁금한지 제일 먼저 웃으며 말한다.

[육장주는 저하고 제일 친한데 그분께 말씀을 해도 결국 제 귀에 들어오고 말아요. 
그러니 말씀하세요.]

육장주는 이 아가씨가  나서는 것이 얄밉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면전에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잠자코 있었다.

[그렇다면 내 얘기는  꺼내지만 일이  성사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면  안 
돼요. 알았지?]

곽정은 생각했다.
(별로 그들과 친한 사이도 아닌데 비밀이라면 안 듣는 편이 낫지.)
그래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을 꺼냈다.

[저는 이 아우와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황용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했다.

[두 분이 육장주와 친한 사이라면 결코 외인이 아니니 그냥 앉아계시요.]

구천인이 오히려  만류하며 곽정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눌러  앉힌뒤 일어나서  네 
사람을 향해 술을 한 잔씩 권했다.

[반 년이 못 가 대송조(大宋朝)에는 큰 재앙이 있을 텐데 여러분은 알고 계신지?]

이 말을 듣고 모두들 긴장을 했다. 육관영은 손짓을 해 장객들을 멀리 나가 있으라 
하고 줄  시중을 드는  동자  보고도 들어오지  말라고 이른다.  구천인이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내가 들은 얘기는 아주  정확한 소식인데 육 개월  이내에 금나라 병사들이  대거 
남하해 온다고  하오. 대송의  강산을 지키기  어려울 것  같아요. 시운이  그러니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소.]

곽정이 깜짝 놀라 입을 연다.

[그렇다면 구선배님께서 빨리 대송의 조정에 이를 알려 방비토록 하셔야지요?]

구천인이 곽정을 향해 하얗게 눈을 흘긴다.

[자네가 무얼 안다고 나서나?  송나라 병사들이 방비를  하면 재난은 더욱  커지고 
마는걸.]

곽정과 황용은 말뜻을 몰라 잠자코 있었다.

[나도 오랫동안 노심초사해 봤지만  백성들로 하여금 안빈낙도케 하고  금수강산을 
초토로 만들지 않으려면 길은 딱 한 가지가  있지. 이 늙은 게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깅남으로  달려온 것도  바로  이 일을  위해서요. 지금  귀운장에  대금국의 
왕자와 병마지휘사  단대인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도  함께 이  자리에  불러다 
상의해 보면 어떻겠소?]

육장주는 이 노인이 어디서 그런 소식을  듣고 왔는지 몰라 장객들에게 명을  내려 
그들을 불러오게 한 후 수갑과 족쇠를 풀어주고 말석에 앉게 했다.
곽정과 황용이 완안강을  보니 며칠  사이에 얼굴이  초췌해졌고 그  단대인이라는 
자는 나이가 50여 세 전후, 만면에 수염이 가득한데 두려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구천인이 완안강을 보고 묻는다.

[왕자님, 놀라셨지요?]

완안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곽,황 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여기 와  있는  걸까? 그리고  목염자는  도대체 
허리띠를 사부에게 전하기나 했는지?)
구천인이 다시 육장주에게 눈길을 돌린다.

[귀운장의 눈앞에  크나큰 부귀(富貴)가  있는데 장주께서는  그걸 보고도  춰하지 
않으시니 그 무슨 까닭입니까?]
[이 후배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데 부귀란 무슨 말씀이신지?]
[금나라 병사들이  남하하여  교전을 하게   되면 많은 인명   피해가 있을  게요. 
육장주가 강남의 호걸을 모아 이번 병화를 멈추게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야 확실히  큰일이지요. 제  힘을 기울여  백성을 도탄에서  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후배도  마음속으로는  충의를  지키고  있사오나  조정이 
불명하여 간신배만 우글거리고 있으니 밝은 길로 인도해 주시기만 한다면 그  은혜 
백골난망이겠습니다.]

구천인이 수염을 어루만지며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입을 얼어 말을 하려고  하는데 
장객 한명이 나는듯 달려와 이렇게 아뢴다.

[장(張)채주가  호수에서   여섯 분의   이인(異人)을  모시고   장원앞에  이르고 
있습니다,]

육장주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며 빨리 모셔들이라고  재촉을 했다. 육관영이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앞서 나가는대 횃불이  비치는 가운대 크고 작은 여섯  사람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여자다. 곽정은  놀랍고도 반가왔다. 한  달음에 
달려가 땅에 꿇어 엎드렸다.

[사부님들, 그 동안 별고 없이 지내셨습니까?]

들어선 여섯 사람은 다름아닌 강남  육괴었던 것이다. 그들이 북에서 떠나  남쪽을 
향해 내려오다가 태호를 지나게  되자 갑자기 몇 명의  강호 인물이 배 위에  올라 
은근한 접대를 했다. 육괴는  고향을 등진 지 오래라  강남 무림의 실정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들의 신분을 숨긴  채 주총만이 강호의 은어(隱語)로 몇  마디 
응수를  했을  뿐이다.  배에  올라탄  사람들은  원래  귀운강에  예속되어  있는 
장채주였다.  그는   육관영의 명을   받고  호수에   나가있다가 정탐을   나갔던 
부하로부터 강남  육괴의  괴상한 행색을  듣고  내심으로 은근히  경계를  하면서 
그들을 맞아들인 것이다.
육괴는 뜻밖의  장소에서 곽정을  발견하자 더욱  놀란다. 한보구가  먼지  욕부터 
한다.

[이녀석아, 그 여우 같은 계집은 어떻게 했느냐?]

그래도 한소영의 눈치가 빠른  편이라 남장을 한  황용을 먼저 발견하고  한보구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런 일은 천천히 물어도 돼요.]

육장주는 상대가 나타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들어서는 사람들은 전혀 안면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곽정이 사부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보니 훨씬 마음이 놓인다.
또 다른 진객들을 모시게 된 육장주는 말을 이었다. 

[제 다리가 불편해 걷지 못하니 여러분께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손을 모아 읍을  하며 장객에게  술상을 다시 마련하라는  분부를 내린다.  곽정이 
여섯 분 사부의 존함을 일일이 소개했다. 육장주는 반갑고 기쁜 모양이다.

[오랫동안 여섯분의  존함을 흠모해  왔는데 오늘  뜻밖에 이렇게  뵙게되니  여간 
반갑지 않습니다.]

그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가  보통이  아니다. 구천인은  상석에 앉은  채  육괴의 
이름을 듣고는 미소만  띄운 채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한보구가 궁금했던지  맨 
먼저 묻는다.

[이 분은 누구신가오?]
[아마 육협께서도 알고  게실 것입니다.  이분은 무림의  거물로서 천하에  이분의 
무공을 따를 사람이 없습니다.]

육괴가 모두 깜짝 놀다고 한소영이 말문을 열었다.

[그럼 혹시 도화도의 황약사신가요?]
[아니면 구지신개?]

한보구도 거기에 끼어든다.

[도화도주와  구지신개의  무공이  높다고는  하지만  철장수상표  구선배님에게는 
미치지 못할걸요.]

육관영의 말에 가진악이 놀란다.

[그럼 구천인 선배님이란 말씀인가요?]

구천인이 하하하 앙천 대소를 터뜨린다. 기왓장이 다 들먹이는 듯했다.
이때 장객들이 다시 차린 식탁을 들여 오고 육괴는 순서대로 좌정을 했다.  곽정은 
사부님들의 식탁   말석을 차지하고   앉으며 황용을  건너오라고  했지만  황용은 
웃으면서 머리를 흔들 뿐 육괴와 동석하려고 하지 않았다.
육장주가 웃으며 곽정을 향해 말한다.

[나는  곽  노제(老弟)께서는  무공을  모르시는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명문의 
제자이시군요. 제가 미처 몰라 뵈어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자의 무공   불민하기 짝이   없습니다. 훌륭한  사부님들을  모시고도  천성이 
우둔하여 잘 배우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가진악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며  이제 곽정도 겸양을  할 줄  알게까지 
되었다고 내심으로 흐뭇한 생각을 했다.
이때 구천인이 입을 연다.

[육협께서는 강남무림의 영웅들이신데 마침 잘 되었습니다. 이 늙은이 큰일이 하나 
있는데 육협의 도움만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습니다.  우리가 
몸은 비록   무림에 담고   있지만 의리와  충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자랑이 
아니겠습니까? 백성이 도탄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구출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것이 
마땅한 일인 줄 압니다. 이제 금나라 대병이 머지 않아 남하할텐데 송나라  조정은 
우매하여  대세도   파악하지 못하고   투항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싸움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무고한 생명의 희생만 있을 텐데 말입니다.  옛말에도 
있듯이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흥하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늙은이가  이번 남쪽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강남의  호걸들과 
함께 힘을 모아 금나라 군사와 내의 호응하여 송나라를 친다면 송나라는 진퇴 유곡 
꼼짝못하고 항복하고 말  것입니다. 이  일만 성사된다면 부귀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백성들은 감지 덕지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남 육괴의 표정이 험악해지고 한(韓)씨 남매는 발작을  할 
태세다. 전금발이 그들  중간에 앉아 있다가  옷깃을 잡아당기며 주인인  육장주가 
어떻게 나오나 보라는  눈짓을 했다.  육장주는 구천인을  흠모해 왔었다,  그런데 
지금 꺼낸 말을 듣고보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억지로 웃음을 띄고 응수한다.

[후배,  비록  불초하고  몸은  초야에   묻혀 있으나   충의지심만은 잊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금나라 병사들이 남하해 우리 백성을 해친다면 후배는 마땅히  강남 
호걸들의 뒤를  따라 죽기로  싸울  각오입니다. 방금  하신 말씀은  고의로  저를 
시험해 보시려고 하신 말씀으로 압니다.]
[아니, 육장주는 어째 그리 시야가 좁으오? 그래 조정을 도와 금나라에 항거한다면 
무슨 득이 있단 말이오. 예를 들어 악무목(岳武穆)을 보시오, 처참하게 죽고  말지 
않았소?]

육장주는  놀랍기도  하거니와  화도  치밀어  올랐다.  도움을  청해  흑풍쌍쇄를 
제거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대 그게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후배는 오늘 제 원수가 복수를 하러 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본래 선배님의 도움을 
청할까 했었으나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함께 일을  도모할 수가 없겠군요.  그만 
물러가 주시기 바랍니다.]

손을 흔들어  나가 달라는  시늉을 했다.  강남 육괴와  곽정, 황용이   이를 보고 
감탄을 했다.
구천인은 미소를  머금은  채 아무   말 없이  왼손으로 술잔을   잡고 오른손  두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다 손바닥을 펴 <탁> 하고 치니 술잔의 중간이 톱으로 썬 
것처럼 떨어져 나갔다. 내공을 써서 술잔을 자른 놀라운 솜씨었다.
육장주는 이러한 그의 태도가 자기를 위협하려는 수작인 줄 알고 어떻게  응수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저쪽의 마왕신 한보구가 벌써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지른다.

[염치없는 늙은이 같으니라구, 어디 한 번 나하고 겨뤄 보자.]
[내 강남  칠괴의  명성을 오래   전부터 들어  왔는데 마침   잘됐소. 그  명성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해 봅시다. 여섯 분이 함께 대들어 보구료.]

육장주는 한보구가 결코 그의 적수가 아님을 알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여섯이  함께 
공격하라고 저쪽에서 말을 꺼내자 그런 대로 마음이 놓였다.

[강남 욱협은 여태까지 늘 함께 뭉쳐 다녔습니다. 한 사람을 상대할 때도 여섯이요 
천군 만마와 대적할 때도 여섯 사람입니다.]

주총은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좋습니다. 우리 육형제, 오늘  무림의 고수를 모시고 한  번 재주를 겨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손을 흔들자   다섯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천인은  의자를  들고 
중앙으로 나와 앉으며 왼다리를 오른 다리 위에 걸치며 의연하게 말한다.

[그럼 이렇게 앉은 채 어디 장난이나 해 볼까.]

가진악 등의   간담이 서늘해진다.  절정의 무공을   지니지 않고는  이렇게  자신 
만만하게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곽정은 구천인의 괴상한  재주를 여러  차례나 보았다. 여섯  분 사부는  구천인의 
적수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사부님들의 은헤가 태산같이 높고  하해같이 
깊거늘 가만히 앉아 좌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나서 본대야  죽지 
않으면 다칠 것은 뻔한 일이었지만 이 긴박한 사태 아래 이것 저것 생각할  여지는 
없는 것이다. 육괴 앞을 막아서며 구천인을 향해 공손히 읍을 했다.

[우선, 이 후배가 한번 모시고 겨루어 볼까 합니다.]

구천인이 의외라는 듯 껄껄껄 웃어 제친다.

[아니, 부모가 자네를  키우느라고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 
헛되이 목숨을 버리려고 드나?]

가진악 등이 놀라 동시에 비켜 서라고  소리를 질랐지만 곽정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왼쪽  무릎을  살짝 굽히며  오른손바닥으로  원을 그리며  <획>하고  장풍을 
날렸다.



第 三十 章. 사투(死鬪)


곽정의  공격은   바로  강룡18장(降龍十八掌)   가운대의  항룡유회(亢龍有悔)다. 
한달동안이나 열심히 수련을 한 탓으로 위력이 홍칠공에게 처음 배웠을 때보다  몇 
배나 더 증가되었다. 구천인은 한보구 등의 무공도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제자라면 뭐 그리 대단하겠느냐고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공세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두발끝으로 땅을  찍으며 
반공을 향해 솟구쳐 울라 피했다. 그런데 와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앉아 있던 
자단목(紫檀木) 의자가 부러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정말 놀라운 위력이었다.
구천인은 땅에 내려와 서며 화가 나 벌컥 소리를 지른다.

[어린 놈이 예의도 모르는구나!]

곽정은 공격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약간  조심스러운 생각이  있어  연속적인 
공격은 펴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선배님께서 공격을 하세요.]

황용은 구천인의 주의를 어지럽히고 싶었다.

[곽정 오빠, 그따위 늙어빠진 영감에게 예의차릴 것 없어요.]

늙어빠진  영감이라니?  구천인이  이름을날리기  시작한  이래  누가  감히  그의 
면전에서 이런   말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었겠는가? 화가  치미는  것으로 
보아서는 당장 요절을  내고 싶었지만  자기의 신분이나  체통으로 보아서도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냉소를 머금고 오른손을  뻗어 긁어 잡아당김과  동시에 왼손의  마미장(摩眉掌)을 
폈다. 곽정의 몸이 옆으로  피하는 것을 보는 순간  즉시 손을 갈고리처럼  오므려 
긁어 잡아당기며 그 여세를  몰아 마미장을 뻗으며  몸을 빙그르르 돌리고  무릎을 
꿇는 찰나 다시 한 번 전광석화처럼 오른손을 뻗어 답장(榻掌)으로 공격했다.
이를 지켜 본 황용이 또 아는 체를 한다.

[뭐, 그렇게  신기할  것도 없군요.   통비육합장(通臂六合掌) 가운데  여덟번째인 
고안출군(孤雁出群)을 가지고 야단이에요.]

구천인이    방금   쓴    장법은    역시    통비육합장이었던   것이다.    이는 
통비오행장(通臂五行掌)에서 변화한 것이다.  황용의 말대로 초수(招數)가  신기할 
것은 없다 하더라도 그는 수십 년  동안 이 장법에 정력을 기울일 만큼  기울였다. 
이른바 통비라 하는 것은 바로 쌍비(雙臂)를 한 힘으로 연결한다는 것이지, 왼팔을 
오므려야 오른팔에 힘이  가고 오른팔을  움츠려야 왼팔에  힘이 더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이쪽 손을 뻗을 때  저쪽 손의 힘이 이쪽으로  모이고 저쪽 손을 뻗을  때 
이쪽 손의 힘이 저쪽으로 몰려다니며  연속적인 공격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곽정은 우선 구천인의  명성에 눌리고 또  상대와 겨룰 때  자세히 상대의  술수를 
관찰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만 겁을 믹은 채 반격도 방어도 하지 못하고 슬금슬금 
뒤로 몰리기만 했다.

구천인은 생각해 보았다.
(이 소년이 단주먹에 의자를 부순 것은 힘이 세서 그런 것이지 무공이 뛰어나 그런 
것은 아니다.)
즉시 천장벽섬(穿掌劈閃), 요음장( 陰掌),  과호등산(跨虎 山) 등으로  정신없이 
두들겨 댄다. 황용은  곽정이 수세에 몰리자  조급했던지 슬그머니 다가가서  틈을 
노려 협공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곽정이 번개처럼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거기 서 있는 황용의 표정이 이상함을 느꼈다. 웬일인가, 걱정을 하는 
순간 구천인이 날카로운  솜씨로 백사토신(白蛇吐信)의  재주를 부리며  대들었다. 
<퍽퍽퍽> 곽정이   가슴을 얻어맞았다.   황용과 강남육협,  욱씨  부자가  동시에 
놀랐다. 구천인에게 저렇게 가슴을 맞았다면 죽지 않으면 부상이기 때문이다.
얻어맞은 곽정도 깜짝 놀랐다. 양팔을 휘둘러  보아도 별로 아픈 것 같지  않았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노틋이다. 황용은 그가 멍하니 넋을 잃고 있는 듯한 표정을 
보고 장력에 놀라 기절했는가 싶어 재빨리 대들어 그를 부축하며 묻는다.

[곽정 오빠, 왜 그래요?]

마음이 더 급한지 두 눈엔 벌써 눈물이 왈칵 괴어 떨어지고 있었다.

[아냐, 아무 일도 없어. 내 다시 한 번 맞아 봐야겠는걸.]

가슴을 내민 채 구천인의 면전에 바짝 다가선다.

[당신은 철장(鐵掌) 영웅이신데 어디 다시 한번 실컷 쳐 보시오.]

구천인도 화가   나서 있는  힘을  다해 곽정의   앞가슴을 두들겨  댔다.  곽정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사부님들, 육장주, 황용.  이 영감은  무공이 뭔지도 모르는  가짜 고수요.  나를 
때리지만 않았어도 속을 뻔했는데 공연히 때리다가 발각이 됐군요.]

말을 마치고 왼팔을 휘둘러 구천인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어디 내 주먹 맛 좀 보구료.]

구천인은 그가 왼팔을 휘두르며  주먹 맛 좀 보라는  말을 듣고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싼 채   오히려 곽정을  향해 대들었다.   그러나 곽정의  육룡어천(六龍御天)은 
강룡십팔장 가운데서도 가장 오묘한 재주로서 허와 실을 겸비하고 있는 것이다.
곽정의 무서운 공격에 맥을 못 쓰는 구천인이 왼팔을 막아 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어느  틈에 오른손이  번쩍  들리고 <펑>  소리와 함께  구천인이  가슴을 
얻어맞고 줄 끊어진 연처럼 밖을 향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라 외치는 소란  가운데 문밖에 한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한 
손에 구천인의 옷깃을 틀어 잡은 채  대청으로 들어서더니 그를 내려 놓고  차디찬 
표정으로 우뚝 선다. 긴  머리칼을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서  있는 그는 다른  사람 
아닌 매초풍이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가슴이 싸늘하게 식어  가는데 매초풍의 뒤에는  또 다른  낯 
모를 사람 하나가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후리후리한 키다. 청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는 그의  표정이 괴이하기  짝이  없다. 어찌된  일인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더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 만다.
육장주는 천하에   명성을 날리던   구천인이 그렇게까지  어이없는  인물일  줄은 
몰랐다. 입으로만 큰소리를  치고 있다가 곽정의  일격에 무참하게 날아가  버리는 
것을 보니 우습기도 하거니와 기가 막혔다. 그런데 또 이제 눈앞에 홀연히  나타난 
매초풍을 보니 말할  수 없는  감회가 감들았다.  완안강은 사부가  온 것을  보고 
반가운 나머지 달려가 넙죽 절을 힌다. 목염자의 소식이 몹시 궁금했다.  육장주가 
두 손을 마구 잡고 인사를 한다.

[매사자(梅師妹), 이십 년 전  헤어졌다가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반가운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래 진사형(陳師兄)께서도 안녕하십니까?]

육괴와 곽정은  그가  매초풍을 사자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서로  건너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가진악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호랑이  굴로 잘못  들어오고 말았구나.  매초풍 한사람도  당하기가 
어려운데 여기 사제(師弟)까지 있으니 큰일이다.)
황용은 그제서야 내심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장주의   무공이나 학문이  꼭  아버지를 닮아   우리 집과  무슨  관련이 
있겠구나 했더니 과연 아버지의 제자였구나.)
매초풍이 냉랭한 목소리로 받는다.

[말씀하시는 분은 혹시 육승풍(陸乘風) 육사제가 아니오?]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 그 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나는 두 눈이 멀고, 당신의 현풍(玄風) 사형은 심이 년 전 살해당하고  말았다오. 
이만하면 마음이 홉족하시겠지?]

육승풍은 놀랍고도  반가왔다. 천하를  횡행하던 혹풍짱쇄를  상대해 처치할  만한 
고수가 있었다는 점에서 놀랐고, 이제 강적이 하나 줄었을 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상대는 병신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반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옛날 도화도에서 함께 
무예와 학문을 닦던 일을 생각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래 진사형을  살해한 그자는   누구입니까? 그럼 사자(師妹)께서  벌써  원수를 
갚으셨겠군요?]
[내 지금 그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오.]
[그렇다면 우선 제 미력이나마 기울여 본문(本門)의 원수를 갚은 뒤에 우리 사이의 
원한을 풀기로 합시다.]

매초풍이 <흥> 코방귀를 뀐다.
한보구가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매초풍, 네 원수가 바로 여기 계시다.]

전금발이 왈칵 그를 잡아당겼지만 매초풍은 벌써 이 말을 듣고 어리벙벙해 있었다. 
곽정에개 얻어맞은  구천인은 정신을  차림  수 없이  아팠었다. 그러나  이제  그 
통증이 점점 사라졌다.

[무슨 원수를 갚느니 마느니 야단들이오?  자기들의 사부가 살해된 것조차  모르는 
주제에 무슨 사문이 어쩌고 저쩌고들 하고 있소?]

매초풍은 손을 뒤집어 그의 팔목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오?]

구천인은 잡힌 팔목이 으스러지는 듯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빨리 이 팔목이나 놔요.]

매초풍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촉이다.

[뭐라고 말했소?]
[도화도 도주 황약사가 살해되었단 말이오.]
[아니, 그게 정말이오?]

육승풍이 놀라 부르짖는다.

[그럼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단 말이오?  황약사는 왕중양  문하의 전진  칠자에게 
살해되었소.]

이 말을 듣자  매초풍과 육승풍은  방성 대곡을  하고, 의자에  앉아 있딘  황용은 
그대로 털썩 쓰러져  기절해 버린다.  그 밖의 사람들은  황약사가 절세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대 설마하니  누구에게 살해되었겠느냐고 반신  반의하고 있다가  전진 
칠자에게 살해되었다는 말을 듣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마옥이나 구처기  왕처일 
등이 함께 공격을 했다면 천하의 황약사라도 당해 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곽정은 황용을 끌어안고 어쩔 줄을 모른다.

[황용, 정신을 차려요. 정신을....]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겁을 먹고 야단이다.

[사부님, 사부님, 황용을 살려 주세요.]

주총이 달려와 살펴본다.

[겁낼 것 없다. 슬픔 때문에 충격을 받아 기졀한 것이니 죽지는 않는다.]

그의 장심에  있는 노궁혈(勞宮穴)을  몇 번이나  힘껏 문질러  주자 황용이  눈을 
뜬다.

[아빠, 아빠, 지금 어디 계세요?]

이렇게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육승풍은 깜짝 놀랐다.
(그럼  그렇지.  사부님의   따님이 아니고야   어떻게  구화옥로환(九花玉露丸)을 
알았겠는가?)

[아가씨, 정신을 차려요. 우리 전진교를 찾아가 복수부터 해야지요. 매초풍!  함께 
갈거요, 안갈거요? 안가겠다면 우선 나하고 이 자리에서 사생 결단을 합시다.]

황용과  매초풍을  번갈아  바라다보며  하는  육승풍의  말이다.  육관영은  자기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비통해 하고 격분하는 것을 보자 붙들고 흔든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진정하셔서 잘 생각해 보셔야 해요.]

그러나 육승풍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다.

[매초풍! 그래 우리를  이렇게까지 괴롭힐  수가 있소? 남자가  그립거든 그냥  그 
남자나  쫓아갈   일이지 그래   무엇  때문에   구음진경까지 훔쳐간단   말이오? 
사부님께서는 화를 견디지 못하시고 우리 형제 네 사람의 다리를 분지르고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아  도화도에서 내쫓고 말았다오.  그래도 나는 언젠가는  사부께서 
마음이 풀려 다시  우리를 찾으시겠거니  바라고 있었는데  이제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으니, 그래 이렇게 원통하고 분한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이오?]
[아니 내 전에도 지기(志氣)가 없다고 욕을 했지만 어째 지금도 그래 그 모양이오. 
그동안에도 몇  차례나 우리를  괴롭혀 살곳이  없이 헤매게  해서 몽고로  쫓겨가 
고생을 하다가 남편까지 잃었는데  지금 와서는 사부의  원수는 갚을 생각도  않고 
울고불고 야단만 하고 있으니 한심하구료. 다 집어치우고 우리 그놈들 전진 칠자를 
찾아 나섭시다. 걷지 못하면 내 업고라도 갈 테니 말이오.]
[매사자(梅師妹), 육사가(陸師哥), 가서서 아버님 원수를 갚아주세요. 그리고 곽정 
오빠, 우리 아버지 뵈오러 가요.]

황용은 이렇게 말하며 아미강자(蛾肩鋼刺)를 빼들고 자기 목을 찌르려 했다.
눈치 빠른 주총이 재빨리 뺏는다.

[아가씨, 우선 다시 한 번 분명히 물어보고 생각할 일이오.]

구천인의 면전으로 걸어가 그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준다.

[제 어린 제자 무지하여 선배님을 몰라 뵙고 득죄하였으니 널리 용서해 주십시오.]
[내 이제 늙어 눈이 어두워 실수를 했지만 어디 다시 한 번 겨뤄 봅시다.]

주총이 가볍게 그의 어깨를 치며 왼손으로 악수를 청하며 웃는다.

[선배님의 무공이 고명하신데 무얼 다시 겨뤄 보겠습니까?]

다시 자기   자리로 물러와   앉으며 왼손으로  술잔을  집어  들고  오른손의  두 
손가락으로 술잔 위를 누르며 빙글빙글 돌리다가 갑자기 오른손 바닥을 펴  밖으로 
뿌렸다. 손바닥 끝이 술잔 위를 치자 <퍽>하는 소리와 함께 반 촌 높이의 반지같이 
둥그런 사기조각이 날아가 책상 앞에 떨어졌다. 그가 왼손으로 술잔을 식탁에 내려 
놓을 때 보니 술잔의 윗부분이 반이나 잘려 나가고 말았다.
그의 손 늘리는 재주가 완전히 구천인과 같은 손재주다,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선배님의 무공이 과연 홀륭하십니다. 이  후배 잠시 훔쳐 가지고 해  보았습니다. 
이거 여간 죄송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주총이 웃으며  하는 말에  구천인의  표정이 대번  변해 버리고  만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거기 무슨 곡절이 숨어 있는 줄로 눈치는 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주총이 다시 입을 연다.

[곽정아, 이리 오너라.  이 사부가  방금 보인 재주를  알려 주마.  너도 이  다음 
사람을 속여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곽정이 주총 앞으로 다가갔다. 주층이 왼손에서 반지를 빼 보여 준다.

[이건 구선배님의 것인데 방금 내 빌린 것이다. 이걸 끼어라.]

구천인은 늘랍기도 하거니와 화도 났다.
도대체 분명 자기 손에 끼고 있던 것인데  어떻게 해서 저자의 손에 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곽정은 주총이 시키는 대로 그것을 받아 손에 낀다.

[그 반지에는  금강석이 붙어  있다. 힘껏  술잔을 쥐고  금강석에 댄   채 술잔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곽정이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제서야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  곡절을  알게 
되었다. 육관영 등은  실소를 터뜨린다.  곽정이 오른손으로  술잔을 치자  술잔의 
윗부분이  날아가  떨어진다.  무공이고  뭐고  얘기할  거리도  못  되는  어린애 
장난이다. 울고 있던 황용까지 미소를 머금다가 다시 운다.

[아가씨, 울지 말아요. 이 구선배라는 분 사기꾼이니 그의 말 믿을 게 못 돼요.]

주총이 황용을 달래는 말이다. 그러나 황용은 영문을 몰랐다.

[아가씨, 아버님의   무공은 절세에   뛰어난 것인데  누가  감히  그를  살해한단 
말입니까? 게다가 전진 칠자로 말하면 모두 점잖은 분들이요, 또 아버님과  원수를 
진 일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그를 살해하겠습니까?]
[틀림없이 구도장 그분들의 사숙인 주백통(周伯通) 때문일 거예요.]
[뭐라구!]

주총의 질문에 황용은 울기만 한다.

[모르실 거예요.]
[어쨌든 이 영감의 말은 믿을 수 없단 말이오!]
[그럼 저분이 거짓...., 거짓말을....]
[그렇소, 거짓말이오. 저자의  옷소매 속에는 여러  가지 지저분한 물건들이  숨겨 
있었는데 그게 어디 쓰는 것인지 알겠어요?]

하나씩 하나씩 책상  위에 꺼내 놓는다.  거기서 두 장의  벽돌도 나왔다.  벽돌은 
띠로   꼭꼭  매여   있었고  그   밖에  한   조각의  화융(火絨)과   화도(火刀) 
부싯돌(火石)도 나왔다. 황용이 벽돌을 들어 눌러 보니 금방 부서진다. 다시  비벼 
보니 가루로  변한다.  이제야 주총의   말이 이해가 갔다.   슬프던 생각도  잠시 
잊어버리고 웃음이 나왔다.

[이사부(二師父), 이 벽돌은 밀가루로 만든 것이로군요. 방금 벽돌을 부숴  가루로 
만든 상승의 내공이 바로 이것이었군요.]

구천인의 표정은 붉으락 푸르락하다가 마침내 백지장처럼 질려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창피해서 더 참을 수 없었던지 소매를 내휘두르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매초풍이 틀어잡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소리를 질렀다.

[내 은사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 말이 사실이오, 거짓이오?]

구천인은 어찌나 세게 내동댕이쳐졌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용은 벽돌을 맸던  띠에 타다 남은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무언가 
짐작이 가는 듯한 눈치다.

[이사부, 이 마른  띠에 불을 붙이고  소매에 숨긴 뒤  연기를 들이마셨다  내뿜어 
보세요.]

주총은 황용이 시키는  대로 해 본다.  눈까지 지그시 감은  채다. 황용이  손뼉을 
치면서 웃는다.  황용은 구천인의 어처구니없음을 알고 한 마디 했다.

[곽정 오빠, 방금 이 영감이 내공을 익힌다고 혼자 앉아 수작을 부리던 것이  바로 
이거 아니예요?]

그는 구천인의 옆으로 다가가 웃었다.

[일어나시지.]

손을 뻗어 부축해  일으키며 난화불혈수(蘭花佛穴手)로 그의  등뒤 다섯번째  척추 
아래에 있는 신당혈(神堂穴)을 건드려 놓고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우리 아버님이 살아 계신 건가요? 아니면 돌아가신 건가요? 만약 죽었다고 
말하면 나도 당신을 죽여 버리고 말겠어요.]

손을 뒤집자 날카롭게  번쩍이는 아미강자가  벌써 그의 가슴에  가 있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황용의 묻는 말이  우습게 들렸다. 소식을 물으면 물었지  황약사가 
죽었다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구천인은 아픈 것도 아픈 것이려니와 거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혹시 죽지 않았는지도 모르지요.]

떨리는 목소리로 하는 대답을 듣고 황용은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면 내, 당신을 용서하리다.]

그의 결분혈(缺盆穴)을 몇 번 눌러 막한 혈도를 풀어 주었다.
육승풍은 생각하고 있었다.
(사매(師妹)가 묻는 말이 도대체 요령 부득이군.)
그래서 자기가 나서서 다시 한 번 묻는다.

[우리 은사님이 전진 칠자에게 살해되었다고  말했는데 직접 목격한 거요?  아니면 
소문으로 들은 거요?]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누구한테 들은 얘기요?]
[홍칠공에게서 들었소.]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하는 대답이다.

[언제 그런 얘기를 하던가요?]

이번엔 황용이 나서며 물었다.

[한 달 전이오.]
[그래 홍칠공이 어디서 그런 말을 합디까?]
[태산(泰山)에서요. 내가 그 사람과 무예를 겨루었는데 그가 내게 지고 무의식중에 
그런 얘기를 했소.]

황용은 기뻤다. 앞으로  대들어 왼손으로 그의  가슴을 움켜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수염을 잡아 뽑았다.

[아니 홍칠공이 당신  같은 엉터리 엉감에게  지다니 어림없는 수작이오.  매사자, 
그리고 육사가, 이 사람 거짓말 들을 필요도 없어요....]
[거짓말이라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물었다.

[한 달 전이라면 나와 곽정 오빠가 홍칠공을 모시고 지낼 땐데. 곽정 오빠 이 영감 
맛 좀 보여 줘요.]
[그러지!]

곽정이 대답을 하고 믐을  날려 덮치려 했다. 구천인이  깜짝 놀라 달아나다  보니 
매초풍이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즉시 방향을 바꾸고 안으로 뛰었다. 
육관영이 대들어 막으려 했지만 구천인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벌렁 나가  자빠지고 
말았다. 구천인이 비록  위장으로 한  몫 보아 명성을  날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무공이 전연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전연 아무  무공도 지니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배짱이 두둑하다고  하더라도 
육괴나 곽정에게 감히  대들수는 없는 것이었다.  육관영은 아무래도 그의  적수는 
아니었다. 황용이 몸을 날려 대들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머리에 쇠항아리를 이고 수면 위로 걸어간 것은 무슨 무공이오?]
[그것은 나의 독특한 등평도수(登萍渡水)라는 경신술이오.]
[아니,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그래 그렇게  거짓말을  떡 먹듯  할래요.  말을 
할래요? 안 할래요?]
[내 나이가   들어 무공은  전만  같지 못하지만   그래도 경신의  무공만은  잊지 
않았다오.]
[그럼 좋아요. 바깥 마당에 큰 어항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한번 등평도수의 재주를 
부려 구경을 시켜 줘요. 아까 들어을  때 못 봤어요? 왼쪽 계화(桂花)나무  아래에 
있는 어항 말이에요.]
[아니, 어항의 물을 가지고 그래 무슨 재주를 부리란 말이오?]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눈앞이 번쩍여 다리가 들리는가 싶었는데 벌써 몸이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매초풍이 벌컥 소리를 지른다.

[아니, 곧 죽을 텐데도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려 대.]

언제 꺼냈는지 독룡은편을 휘둘러  구천인을 반공에서 감아  매단 채 황용이  말한 
계화나무가 있다는 쪽으로 집어 던졌다. 텀벙하는 소리와 함께 큰 어항 속에  틀어 
박혔다. 황용이 쫓아가 아미강자를 <번쩍> 하고 내민다.

[솔직히 고백하지 않으면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해요.]

구천인이 두   발로 어항   바닥을 찍으며  뛰어  나오려고  했지만  벌써  황용이 
중수법(重水法)을 써서 그를 내리누르자 다시 한 번 물 속에서 미끄러 넘어진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고개를 쳐들고 우는 소리를 한다.

[그 쇠항아리는 얇은 쇠로  만든 것이오. 항아리 윗부분을  막아 물은 세 촌  두께 
이상을 담을 수 없도록 특별히 만든 것이오. 개울을 건너던 재주로 말할 것 같으면 
물 속에 징검다리를 나무로 놓았는데 다섯 촌 깊이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도록 되어 있는것이오.]

황용이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리고 다시 대청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은 뒤 다시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구천인이 그제야  어항 안에서 뛰어나와 고개를 파묻은  채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매초풍과 육승풍은 울고 웃고  스란을 피우는 바람에  피차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어색한 감정이 상당히 누그러져 있었다.

[육승풍, 내  제자를 풀어  줘요.  사부님 체면을  보아서라도 옛날  일을  가지고 
다투지는 말기로 합시다.]

육승풍이 한숨을 길게 내쉰다.
(남편도 죽었다지. 눈도 멀었다지. 세상에 혼자 쏠쏠하게 살아가는데 그래도  나는 
두 다리가 병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내가 있고 아들이 있고 집과 사업이 있으니 
나은 편이요,  이제  나이도 오십,   같이 늙어  가는 치지에   묵은 원한을  들춰 
뭘하겠는가?)

[그럼 그 제자를 데리고 가시오. 저는 내일 도화도로 은사를 뵈오러 떠날 생각인데 
가시겠습니까?]

매초풍이 떨리는 소리로 어떻게 가겠느냐고 묻는다.

[은사의 허락도 없이  도화도로 들어간다는 것어  대규(大規)를 범하는 일인  줄은 
알지만 방금 구천인  영감의 말을 듣고  보니 불현듯 은사님을  뵙고 싶은  생각도 
나고 또 걱정도 되는군요.]
[우리 모두 함께 가서 아버지께 용서를 빌지요.]

황용이 하는 말이다. 침묵에 잠겨 있던 매초풍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제가 무슨 면목으로 은사를  뵈을 수 있겠습니까?  은사는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해 주시고 키워 주셨는대 결국 배은 망덕하고 말았으니....]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소리로 울부짖듯이 뱉는다.

[남편의 원수를 갚은  뒤에 다시  찾아 뵙도록  할래요. 강남  칠괴! 용기  있거든 
대들어 보시오. 오늘 저녁 내가  끝장을 보고 말겠어요. 육사제, 황사매는  옆에서 
구경만 하세요. 누가 죽건 말건 절대로 나서면 안 돼오. 알아들었지요?]

가진악이 대청 중앙으로 나서며 철매(鐵枚)를 꺼내 먹돌 위에 집어 던진다. 땡그렁 
소리가 멀리멀리 은은하게 사라진다.

[매초풍, 당신은 나를 볼 수 없고 나는 당신을 볼 수 없으니 차라리 잘 됐소. 그날 
황산에서 싸우던 날 당신의 남편은 비명에 횡사하고 우리 다섯째 아우인  장아생은 
당신들 손에 살해되었소. 알고 있소?]
[아, 그럼 육괴만 남으셨군.]
[우리는  마옥  마도장의  말씀을  따라  다시는  복수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었는데, 오늘   오히려 당신이   우리를 찾아왔으니  차라리  잘  됐소.  천지가 
넓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인연이 있어 도처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하늘은  육괴와 
매초풍 당신이 함께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걸 원하시지  않는 모양이로군요.  해 
봅시다.]

매초풍이 냉소를 머금고 말한다.

[여섯 사람이 동시에 대드시오.]

주총 등은 가진악이 매초풍과 더불어 말을  주고받을 때 벌써 큰형님 주위에  모여 
그가 독수를 쓸  때 호위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서로  병기를 꺼내 들었다.  먼저 
곽정이 나섰다.

[일이 있을 땐 제자가 먼저 나서야 하는 것이오니 제가 먼저 상대 하겠습니다.]

육승풍은 매초풍과  육괴 등  쌍방이  태세를 갖추는  걸 보자  몹시  난처해졌다. 
자기가 중간에 나서서  만류하고 싶었지만  우선 무공도  그들을 능가하지  못하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걱정을 했는데 곽정이 이렇게 나서는 걸 보자 한 가지 꾀가 
생각났다.

[여러분, 잠시 참아 주십시오.  제가 한 마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매사자와 
육괴 쌍방이 원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벌써 양쪽에 모두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오늘은  그냥 승부만 가릴  것이지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할 것 같습니다.  육협께서도 6대  1로 겨루신다고 하시면  과거에도 그렇게  해 
오셨지만 아무래도 공평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냥 매사자와 곽형이 서로  한번 
재주나 겨루고 끝내면 어떻겠습니까?]
[내 어떻게 이름 없는 어린 것과 겨룰 수 있단 말이오?]

매초풍이 냉소를 머금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남편은  내가  살해했는데  그게  우리  사부님들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씀이오?]

매초풍은 슬픔꽈 분노가 동시에 터져 소리를 질렀다.

[참 그렇군! 내, 네놈부터 먼저 해치워야겠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  방향을 확인했는지라  왼손의 다섯  손가락을 갈퀴처럼  뻗어 
곽정의 천령개(天靈蓋)를 향해 꽂았다.
곽정이 필쩍 뛰어 피했다.

[매선배, 이 후배 당시 무지했기 때문에 실수를 해서 진선배를 살해했으니 그 책임 
물론 저 혼자 당해야 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죽이고 싶으시면 죽이실  일인지라 
내 결코 피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밀씀드릴 것은 일후  절대로 
우리 사부님들을 찾아 더 귀찮게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놈이 정말 달아나지 않겠단 말이냐!]
[정말입니다.]
[그렇다면 좋다. 강남 육괴와의 일은 내 다시  꺼내지 않을 테니 어디 한 번  나서 
보아라.]

이때 황용이 중간에 나섰다.

[매사자, 그는 호남아예요. 강호의 영웅들에게 웃음거리가 될거 예요.]
[뭐라구 하는 게야?]
[그는 강남 육협의 유일무이한 제자예요. 육협의 무공도 옛날같지 않아요.  그들이 
만약 매사자의  생명을 노린다면  그건 여반장이죠.  오늘 그래도  특별히  관용을 
베풀고 있는데 매사자는 그것도 모르고 큰소리만 치고 있군요.]

매초풍은 더욱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지른다.

[흥, 아니 그들이 관용을 베풀어 나를 용서한다구? 육괴! 무공이 크게  진보했다면 
어디 한번 나서 보시오.]
[그분들이 무엇 때문에 직접 나서요? 그분들  제자 혼자 나서도 당해 내기  어려울 
텐데요.]

황용의 이죽거리는 말에 매초풍은 더욱 사납게 날뛴다.

[세 번 공격하는 동안 저 녀석을 죽이지 못하면 내 당장 자살하고 말겠다.]

그는 일찌기 조왕부에서  곽정과 겨루어 본  일이 있기 때문에  그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이 몇  달동안 곽정이 구지신개에게  절기를 배워 무공이  또 한 번  크게 
진전했음을 알 리 없는 그였다.
황용이 웃으며 다시 입을 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분명히 들으셨지요. 세 번의 공격은 너무 적으니 열  번의 
공격으로 하지요.]
[매선배님의 공격을 열 다섯 번까지 받아들이겠습니다.]

곽정도 자신 만만한 어조다.

[그럼 육사가와 당신을 모시고  들어온 그 손님이 함께  숫자를 헤아려 증인이  돼 
주시지요?]

황용의 말에 매초풍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 혼자 뛰어 들어왔는데 도대체 누가 나와 함께 왔단 말이오?]
[아니, 그럼 뒤에 서 계신 분은 누구란 말이에요?]

매초풍이 손을 뒤로  돌려 보이지  않는 사람을 잡아채려고  했다. 전광  석화처럼 
재빠른 동작이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언제 그  청외를 입은  사람이 빠져  피했는지 똑똑히  보지도 
못했다. 어쨌든 매초풍의 손에 걸려들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행동이  민첩하기 
귀신과 같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매초풍은 그날 밤 어떤 사람이 피리를 불어 
뱀떼를 쫓아  준 뒤  허공을 향해   고마운 인사를 했지만  아무 반응도   들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자기의 뒤에  이상한 어떤  동정이 있다는  것을 계속  느껴 
오면서 확인하려고 애를 써 봤지만  허사였다. 혹시 자신이 어떤 환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 황용의 말을  듣고 
보니 대경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무엇 때문에 계속 내 뒤를 밟고 계신가요?]

그 사람은 듣지 못했는지  전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매초풍이 앞을  향해 
덮쳤다. 그 사람이  몸을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매초풍은  또 허탕을  친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평생 듣도 보도 못 한 괴상한 무공이다.

[멀리 제 집까지  찾아오셨는데 나가 영접도  못 해 죄송합니다.  기왕 저희  집에 
오섰으니 모시고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어떠하올지?]

육승풍의 간곡한 말을  듣자 그는  몸을 돌려  표연히 사라지고  만다. 잠시  뒤에 
매초풍이 묻는다.

[피리를 불어 나를 구해 주신 분이 아닙니까?]

구경하던  사람들도   괴이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초풍의   예민한 
청각으로서도 그가 나가는 기척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매사자, 그분은 벌써 가버렸어요.]

황용이 일깨워 주는 말에 매초풍이 또 한 번 놀란다.

[아니, 벌써 가 버렸어요?]
[빨리 쫓아가 찾아보기나 하세오. 쓸데없이 여기서 지체하지 말구요.]

매초풍은 멍하니 넋을 잃은 듯 한참이나 서 있다가 표정이 처참하게 변한다.

[이 곽가 녀석아 받아라!]

두 손을  번쩍 들어   열 손가락을 뻗는다.  춧불  밑에서 시퍼렇게  빛을  발하는 
손가락이다.

[나 여기 있어요.]

매초풍은 그가 <나>라고  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오른손이 번쩍하는 찰나,  왼손의 
다섯 손가락이 벌써  곽정의 면상을  할퀴었다. 곽정은 그의  공격이 무섭게  빠른 
것을 보고   몸을 옆으로  살짝  피하면서 왼쪽   팔뚝을 뒤집고  장풍을  날렸다. 
매초풍이 바람소리를 듣고 피하려는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를  얻어맞고 
말았다. 매초풍은  지독한  통증을 느끼며  뒤로  3보 피하기는  했지만  매초풍의 
무공도 탁월한  편이다  몸은 벌써  권외로  빠져나왔으면서도 질풍  같은  역습을 
시도했다. 곽정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틈에 오른팔의  내관(內關), 
외관(外關), 회종(會宗) 등 세 곳의 혈을 잡히고 말았다.

곽정은 평소  사부님들로부터 매초풍의   구음백골조는 상대방이 결코  공격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렸을 때 기습해 오는 것이라 피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 매초풍과 대결하려고 할 때부터  이 점에 대해서 각별한 주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술수가   이렇게까지 변화 무쌍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자기에게 얻어맞고도 오히려 역습을 펴 자기의 맥문을 틀어 잡고 말았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곽정은 <큰일났다>고   생각하는 사이  벌써  반신이 
뻣뻣하게 굳어짐을   느꼈다. 위급한  가운데 오른손을   들어 식지와  중지를  펴 
반권반장(半拳半掌)으로 상대방의  가슴을 내질렀다.  이것은  잠룡물용(潛龍勿用) 
가운데의 반 초(半招)다. 본래는 왼손이 동시에 나가 휘어잡아야 하는 것으로 적은 
꼼짝달싹 못하고 당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곽정은  왼팔이 붙들렸기  때문에 반  초밖에 쓰지  못했다.  강룡십팔장의 
위력이 보통이 아니다. 비록 반 초에 지나지 않지만 무서운 것이다. 매초풍은 바람 
소리를 들으며   괴이하다고 생각했다.  장풍도  아니요,  그렇다고  권풍(拳風)도 
아니었다. 급히 몸을 피하기는 했지만 또  한 번 어깨를 얻어맞고 말았다.  어찌나 
지독하게 아프고  힘이 센지  뒤로 나가  떨어지며 손을  휘둘러 있는   힘을 다해 
곽정을 밀어붙였다. 둘  다 있는  힘을 다했기  때문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등이 동시에  대청에 있는  기둥에 부닥치고 말았다.  다행히도 워낙  굵은 
기둥이라 부러지지는   앉았지만 지붕  위의 기왓장이며   멱돌, 흙덩이가  우수수 
쏟아졌다.  옆에서  시중을  들던  장객들이  놀라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몰려 
달아났다.
강남 육괴는 서로 바라다보며 놀랍고도 흐믓한 표정들이었다.
(곽정이 어디서. 이렇게 무지무지한 공력을 배웠지?)
한보구는 황용을 건너다보며 틀림없이 저 여자에게 배웠거니 생각했다.

이때 곽정과 매초풍은 평생의 절학을 총동원하여 어우러져 싸우고 있었다.  장풍과 
권풍이 얽히고  설켜 대청  안에는  바람 소리만  이리저리 공기를  찢고  있었다. 
매초풍은 이리저리 날뛰며 사면 팔방으로  진공을 했다. 곽정은 적의 술수에  따라 
방어를  펴다가는   손해만  보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홍칠공이   당시  황용의 
낙영장(落英掌)을 깨는  비결을 알려   준대로 상대의 술수가  천변  만화하더라도 
자기는 오직  강룡십팔장 가운데의  십오장만 연속적으로  펴며 맞섰다.  과연  이 
비결은 적중했다.  둘이 어우러져  싸우기 4,50여  초(招), 매초풍은  반 보도  더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용의 얼굴에  함박꽃  웃음이 퍼지고,  육괴도  혀를 
내흔든다. 육씨 부자는  눈이 어질어질한  모양이다. 육승풍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사자의 무공이 저토록 정진해 있는데  내가 만약 상대하기로 했더라면 십  초도 
못가 생명을 잃을 삔했구나. 곽노제는  저토록 젊은 나이에 어디서 저렇게  훌륭한 
무공을 익혔지?  그래도 다행한  것은  내 극진한  예의로 대접을  하면서  실례를 
범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 황용이 큰 소리로 외쳤다.

[매사자, 육십여 초를 겨루고도 그냥 계속 싸울래요? 창피하지도 않은가요?]

매초풍은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수십 년  수련을 쌓고도 이  어린 것  하나 
시원하게 해치우지 못하다니, 더 무섭게  공격을 감행했다. 사실 매초풍의  무공과 
곽정의 무공을 가지고 따진다면 매초풍이 갑절은 우월한 편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우선 두 눈이 멀었고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 때문에 초조한 나머지  무학의 
금기를 범하고 갈팡질팡 날뛰고 있었고, 곽정은 전진파의 현문 정종 내공을 익혔을 
뿐만 아니라 복사의 보혈을  마셨고 강룡십팔장 등을  배웠기 때문에 서로  치열한 
공방전을 펴면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거의 1백여 초나 다툰  셈이다. 매초풍은 이제  곽정의 강룡십오장에 대한  술수도 
어느 정도 파악한 셈이다. 다만 그의 강법의 위력이 대단하여 접근전을 펴지  못할 
뿐이다. 즉시  공격을 멈추고  방어 태세를  취하며 곽정이  지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곽정의 내력이  보통의 수준은 넘었다  하지만 강룡십팔장을 편다는  것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끝수록 곽정 쪽이 불리해진다.
매초풍도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두 어깨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구음백골조의  술수에 
최심장(催心掌)까지 섞어  재공격을  감행했다. 황용은   더 싸움이  계속되다가는 
곽정만 불리할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매사자! 백 초가 넘어 이백 초가 다 되는데 아직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군요.]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매초풍은  듣지 못했는지   더욱 공격만  맹렬해졌다. 
황용은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꾀가  하나 떠올랐다.  몸을 날려  기둥 옆으로  가 
소리를 질렀다.

[곽정 오빠, 나를 보세요.]

곽정은  계속해서  이섭대천(利涉大川)과   입어유곡(入於幽谷)의 재주를   부리며 
매초풍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며 고개를  들어 바라다보았다.  황용이 기둥을  끼고 
맴돌고 있는 것이  보인다. 황용이  암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즉시 몸을 되돌러 세우며 기둥 옆으로 가 섰다.
매초풍이 다섯 손가락으로 할퀴려  들자 몸을 움츠려 기등  뒤에 가 숨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매초풍의 다섯 손가락이 기둥에 가 깊숙이 꽂혔다. 그는 두 눈이 
멀어 사물을 보지  못한다. 다만  상대방의 권풍이나 발자국  소리를 들어  위치를 
확인할 뿐이다. 기둥은 고정되어 있고 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곽정이 
기둥 뒤로 몸을 숨긴 것을 그가 알 리 없다. 깜짝 놀라는 순간 휙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곽정의 장풍이 기둥 뒤에서 날았다. 매초풍도 왼손의 장풍으로 반격을 하면서 
재빨리 기둥에  박힌 손가락을  뽑았다.  피차의 공방에  쌍방이 모두  주춤  뒤로 
물러선다.

매초풍은 치미는 분노를  억제할 길이  없었다. 곽정이 미처  자세를 안정할  틈도 
주지 않고 번개처럼 덮쳤다. <부지직> 소리와 함께 곽정의 옷깃이 찢어져  나간다. 
어깨를 긁히기는 했지만  다행히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순간  식은 땀이  전신에 
흘렀다. 다시 한번  장풍을 날려 본다.  3초를 더 견디지  못하고 다시 기둥  뒤로 
숨는다. 또 한 번 매초풍의 다섯 손가락이 기둥 깊숙이 박힌다.
곽정은 이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도 공격을 하지 않았다.

[매선배님, 제   무공으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만  사정을  보아 
주세요.]

구경하딘 사람들은  곽정이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는데다가 기둥을  끼고  돌며 
상대를 한다면 지지도  않을 텐데 이렇게  하는 말을 듣고  그가 매초풍의  체면을 
세워 주자는 의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공을 겨루는 것으로 친다면  세 초 이내에 너를  이기지 못하면 지는  것이라고 
말했으니 벌써 내가 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무공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복수를 
하는 것이다. 내 벌써 지기는 했다만 오늘 나는 너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차디차게 한마디 하고는 양쪽 어깨를 움직이며 왼손으로 세 번, 오른손으로 세  번 
연속해 장풍을  날리다가 마지막에  큰 소리를  지르며 쌍장을  마구 잡고  대들어 
쳤다. 우지끈 기둥 허리가 분질러졌다.
대청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무공을 지닌 사람들이라 재빨리 빠져  나왔다. 
육관영은 자기   아버지를 얼싸안고  마지막으로 빠져   나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며   건물의 반쪽  이상이 내려앉았다.   다만 송나라의  병마  지휘사인 
단대인만이 미처 피하지 못하고 두 다리가  커다란 대들보에 눌린 채 살려  달라는 
고함을 질렀다. 완안강이  달려들어 대들보를  일으켜 세우며 그를  끌어낸 후  이 
틈을 이용해 달아나자는 눈치를 했다. 그들이 막 몸을 뒤로 돌리려는 순간  등뒤가 
뻣뻣해지고 말았다. 누군가에 의해 혈도를 동시에 찔린 모양이다.

매초풍은 온 신경을 곽정에게만  쏟고 있다가 그가  밖으로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 
자기도 그 뒤를  쫓았다.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희미한 
별빛 아래 곽정과 매초풍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계속해서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장풍이 이는  바람  소리와 매초풍이  운공(運功)을  할 때마다  골격이  움직이는 
소리가 어우러져 들려왔다. 오히려 대청 안에서 싸울 때보다 더 격돌을 펴고  있는 
듯했다. 곽정이  원래 약세인  입장에다 어둠  속에서의 싸움이라면  더욱  불리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위험한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긴다. 매초풍이   한 쪽 
다리를 휘둘러  걷어차려고 하자  곽정도  즉시 오른발을  높이 들어  차  버린다. 
쌍방의 다리가 부닥치기만  하면 누구의 것이든  부러져 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매초풍은 고의로   허세를 부린  것이다.  그냥 그래   본 것이지  사실은  곽정을 
유인하자는 동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리를 들어올리는 척하다가 뒤로 펄쩍  뛰며 
왼팔로 곽정의 다리를 긁어 잡아당긴 것이다.

육관영이 옆에서 위험해진  곽정을 보다가 놀라  <조심하라>고 일깨워 준다.  그날 
자기가 완안강에게 당할 때도 꼭 이 같은 술법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순간에 곽정은  벌써 위험을  느끼고  왼팔을 뻗어  매초풍의 팔을  막는다.  이미 
공격이나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동작을 바꾼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 
천만한 일이다. 행동은  민첩할지 몰라도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매초풍이  어떤 
인물이라고? 그와 손과  손이 부닥친다고 느끼는  순간 손바닥을 뒤집어  버렸지만 
매초풍의 새끼 손가락과 무명지,  중지가 벌써 그의  손등을 긁고 말았다.  곽정도 
위급한 나머지  다시 한  번 <쉭!>  하고 오른손의  장풍을 날렸다.   상대가 막아 
내지만 못한다면   결과는 피장파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초풍은 몸을  돌려 
피하며 길게 웃는다.

곽정은 손등이 화끈화끈 달아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여 상처를 살펴보니 
세 줄기 할퀸 자국이 꺼멓게 변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몽고의 그 높디높은  절벽 
위에 가지런히 쌓여 있던 9개의 해골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친다.
마옥은 매초풍의 손끝에  늘 극약이  묻어 있다고  말했있다. 방금  할퀼 때  뼈는 
상하지 않아 아직  약효는 퍼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제 불행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황용, 나 중독이 되었어.]

이렇게 외친 후  대답도 들으려 하지  않고 몸을 허공에  솟구치며 쌍장의  장풍을 
날린다. 죽는   마당이다면 매초풍을  잡아 해약이라도   뺏아야만 그래도  살아날 
방법이 있는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초풍은 바람  소리를 의식하고 벌써  그 
자리를 비겨 있았다.
황용은 곽정의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진악이  철장을  휘두르자 
육괴와 황용이 매초풍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쌌다.

[매사자, 벌써 졌는데 왜 계속 공격을 하는 거에요? 빨리 해약이나 꺼내 놓아요.]

매초풍은 곽정의 장법이 무서워 긴강을 풀지  않고 있다가 이제 황용이 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기뻤다.
(옳지, 네놈이 힘을 쓰면 쏠수록 독성은 빨리 퍼지게 되어 있는데 잘됐다. 내 오늘 
여기서 죽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마침내 남편의 원수를 갚겠구나!)
곽정은 이때 벌써 머리가  어질어질 눈앞이 희미해지며  전신이 나른해 더  버티고 
견딜 수가 없었다. 만약 그가 복사의 보혈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벌써 죽었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황용은 그의 표정이 이상해지는 것을 보고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며 
아미강자를 뽑아 들고 매초풍을 덮치려 했다.

곽정은 황용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왼손의 장풍을 다시  한 
번     힘없이     날린다.     이는     강룡십팔장     가운데의     제십일장인 
시승육룡(時乘六龍)이라는 것이다. 그는  왼쪽 팔이 시고  힘이 없어 내뻗는  손에 
맥이 없었다. 황용, 한보구, 남희인, 전금발  등 네 사람이 동시에 매초풍을  향해 
공격하려는 순간 곽정의 맥없는 장풍이 매초풍의 어깨에 가 맞았다.
매초풍은 바람  소리를 듣지  못해 피하지  않았다가 그대로  얻어맞고 벌렁  나가 
넘어지고 말았다.   우습고도 놀라운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시승육룡의  묘기인 
것이다. 원래 매초풍이 적과 상대를 할 때는 청각에 의해서만 행동을 하기  때문에 
미처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황용이 어리벙벙해  있는데 한,남,전  세사람이 쓰러진  매초풍을 동시에  덮쳤다. 
그러나 그녀가 팔을  휘두르는 바람에  한보구와 전금발이  얻어맞고 저만큼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손을 다시  오므려 남희인을  할퀴려고 했다.  남희인이 
깜짝 놀라 땅에 몸을 기댄 채 뒹굴어 피해 빠졌다. 매초풍이 이 틈을 이용해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다시 한  번 곽정의 일장에  얻어맞고 쓰러졌다.  이번에도 
역시 소리 없는 공격이다.
곽정도 어질어질한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매초풍 옆으로 넘어지려고  비틀거린다. 
황용이 달려가 부축을 한다.  매초풍이 바람 소리를 의식하며  몸을 누인 채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곽정을 깊숙이 찔렀다. 그런데 손가락이 이상하게 아프다. 황용이 
입고 있는  연위갑의 날카로운  가시를 누른  것이다. 급히  이어타정(鯉魚打挺)의 
솜씨로 일어나 서는데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걸 받아라.]



第 三十一 章. 부녀 상봉


주총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람 소리가 일며  괴상한 물건이 날아들었다.  매초풍이 
오른팔을 휘두르자 우지끈하며  부려지는 것은 다른  물전 아닌 의자였다.  의아한 
생각을 하는데  또 한  번 바람이  일며 보다  큰 물건이  자기를 향해  날아온다. 
왼손을 뻗어 받아 쥐고 보니 미끄럽고 딱딱한 책상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속수 무책이었다. 원래  주총이 자단목(紫檀木)으로 만든  둥근 책상 뒤에  있다가 
집어 던진 것이다.  그 책상은  집이 무너질 때  깔려 두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주총은 매초풍의 손이  매서운 것을  보기 위해 남아  있는 두  다리를 잡고  그의 
면전을 향해 집어 던진  것이다. 매초풍이 발을 번쩍  들어 책상을 걷어차는  순간 
주총이 번개처럼 대들며 손을 뻗어 무언가를 그의 목뎔미 속에 쑤셔 넣었다.
매초풍은 갑자기 차고 매끄러운 물체가  자기 가슴속에서 팔딱거리자 놀란  나머지 
식은땀까지 흘린다.
(도대체 무슨 괴상한 암기람? 무슨 마술이며 요법이지?)
급히 손을 넣어 잡고 보니 그것은  바로 살아 있는 금붕어다. 옷속을 더듬다  그는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품속에 지니고 다니던  해독 약병도  없어졌거니와 
비수며 비수에 말아 간고 다니던 구음진경의 원문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앞이 캄캄하고 하늘이  노오래져 그만 그  자리에 우뚝 서로  말았다.  세 마리의 
금붕어는 집이 내려앉을 때 어항이 깨져 흘러나온 것이다. 주총은 매초풍의 지각이 
너무나 예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그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놀라게  해 
주려고 집어 넣은  것이다. 그리고는  이 틈을  노려 그의  품속에 있는  물건들을 
소매치기한 것이다. 주총이 약병의 마개를 열고 가진악의 코 밑에 갖다 대며  낮은 
소리로 묻는다.

[어때?]

가진악은 독물에 대한 전문가라 냄새를 말아 보고 즉시 고개를 끄덕인다.

[내복으로도 쓰고 외상에 바를 수도 있는 약이오.]

매초풍이   말소리를   듣고   몸을    솟구치며   허공에서   덮친다.   가진악은 
항마장(降魔杖)을 들어 막고 한보구의 금룡편과 전금발의 저울대, 남희인의 멜대가 
동시에 매초풍을   공격한다. 매초풍도  허리에 두른   독룡편을 끌러  손에  쥐고 
흔든다. 공기가 이리저리 찢기는 소리  속에 한소영의 장검이 자기 팔뚝을  찌르려 
하자 손을 뒤집어 방어한다. 저쪽의 주총이 해약을 황용에게 건네 준다.

[이 약을 먹이고 상처에 발라 줘요.]

다시 매초풍의 품속에서 훔쳐 낸 비수를 곽정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건 원래 네 비수니까!]

혈을 찌르는 철산을 치켜들고 매초풍을  향해 협공을 시도한다. 이들 일곱  사람은 
10여 년 동안 수런을  거듭하여 공력이 크게 진보해  있었다. 지금의 악전  고투는 
당시 황산의 밤에 벌어졌던 싸움보다 더 치열하고 격렬했다. 육승풍 부자는 옆에서 
관전을 하면서 눈이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매초풍의 무공도 보통이 아니지만 강남 칠괴의 명성도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여러분, 잠시 손을 멈추시고 제 말씀 한 마디만 들어주시오.]

육승풍이 소리를  질렸지만 격돌에  여념이  없는 그들이  손을 멈출  리  없었다. 
곽정은 황용이 주는 약을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 
약은 빨리 효력을 나타냈고 독기가 쉽게 감퇴되기도 했다. 상처가 아프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어깨를 움직일 수도 있었다.
비수를 옷주머니에 챙겨  넣고 황용의 품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매초풍의  허를 
노리고 장풍을 날렸다. 소리 없이 퍼지는 장풍의 위력이 매초풍의 신변에 당도하는 
순간 내공의 징력에 의지하여 다시 한 번 힘을 준 것이다.
매초풍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위력이 무시무시한 뇌동만물(雷動萬物)의  묘기에 
걸려든 것이다. 몸을 가누지 못하다 벌렁 나자빠지고 만다. 한보구와 남희인이  이 
절호의 순간을  노려 결정적인  공격을 했지만  쏜살같이 대든  곽정의 손에  둘의 
병기가 잡히고 말았다.

[사부님들, 이 여자를 용서해 주세요!]

강남 육괴가 뒤로 물러선다.  매초풍은 자기의 두 눈이  멀어 상대를 바라다볼  수 
없기 때문에 곽정의  이러한 공격은 당해  낼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독룡편만을 휘두르며 호신을 하면서 접근을 막고 있었다. 곽정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오늘 이만 끝냅시다. 더 괴롭히지 않을테니 그냥돌아가시오!]

매초풍이 은채찍을 거두며 대꾸한다.

[그럼 그 경문을 되돌려다오.]

주총이 어리벙벙해서 묻는다. 

[경문이라니? 나는   당신의 경문을  가져온 일이   없소. 강남  칠괴는  아직까지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다오.]

그도 비수를  쌌던  그 인피(人皮)가  바로  구음진경의 비결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초풍은 강남 육괴가 비록 자기와는 원수지간이기는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솔직  담백한  위인들로서 결코  거짓말을  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점은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금  곽정과 겨를  때 잃어버린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몸을 숙이고   여기저기 땅바닥을 더듬기  시작한다.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경문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눈먼 여자가  부서진  기왓장을 
헤집으며 허둥지둥 무언가 찾는 모습은 처절한 광경이다.

[매사자, 여긴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혹시 길에서 잃은 것이 아니오?]

육승풍이 보다 못해  이렇게 말을  한다. 매초풍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계속 
더듬기만 한다. 이때  또 갑자기  매초풍의 뒤에  그 청포를  입은 괴상한  인상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둥작이  어찌나 신출 귀몰한지  도대체 언제 그가  어디서부터 
들어왔는지 본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가 손을 뻗어  매초풍의 등덜미를  잡고 
번쩍드는가 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벌쩌 장원 밖의   수풀 속으로  사라지고 
밀았다. 매초풍의  대단한 공력에도   불구하고 잡히자마자 꼼짝달싹도  못  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이없어  서로 바라다볼 뿐 말을  잊고 있었다. 호수의  파도 
소리만 칠석철썩 들리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들리곤 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 가진악이 비로소 맨 먼저 말문을 연다.

[저희들 불초한 제자와 그 요부가 싸우는 바람에 귀 장원의 화려한 건물을  이렇게 
망쳐 놨으니 죄송한 말씀 드릴 바가 없습니다.]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육협과 곽형이  왕림해 주서서  제 장원의  재앙을 
물리쳐 주셨으니 오히려 제가 고마운 인사를 드려야 옳을 텐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되려 송구스럽습니다.]

가진악의 말에 육승풍이 겸양을 했다.

[여러분, 모두 뒤채로 들어가 쉬시지요. 곽형, 상처가 아직도 아프십니까?]
[괜찮아요.]

육관영의 물음에 막 곽정이 대답하는 순간, 눈앞에 파란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어느 
틈에 그 칭의의 괴객과 매초풍이 또다시 나타났다. 매초풍이 손을 마구 잡고 섰다.

[야, 이   곽가 성의  어린  녀석아, 네가   홍칠공께 배운  항룡십팔장으로  나를 
때렸는데 내 두  눈이 멀어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이  늙은이가 살면  얼마를 
살겠느냐? 승부 같은 것을 따지고 싶지 않다만 만일 강호에 소문이 퍼져  매초풍이 
늙은 거지에게 배운  제자로부터 얻어맞았다면  내 도화도  은사의 명성은  도대체 
어떻게 된단 말이냐? 자 그러니 또 한 번 겨루어 보자.]
[제가 원래 당신의 적수가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두 눈이 불편하신  것 
때문에 내  겨우  목숨을 잃지   않고 있을  뿐이지 벌써   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매초풍은 뜻밖에 뛰어난 곽정의 무공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강룡십팔장이 모두 십팔 초(招)인데 너는 어찌하여 전부 쓰지않느냐?]
[제가 우둔해서 다....]

곽정이 여기까지 말을 하는데 황용이 연방 손짓과 눈짓으로 자세히 말할 것 없다는 
시늉을 했지만 결국 다 말해 버리고 만다.

[홍선배님이 십오 장(掌)까지만 전수해 주셨습니다.]
[겨우 십오  장밖에 배우지  않았는데 매초풍이  졌단 말이렷다.  홍칠공 그  거지 
영감이 그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아무래도 안되겠다. 다시 한 번 겨루자!]

그의 말투는 이제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그런  집념이 아니라 황약사와  홍칠공의 
명성을 가지고 따지는 것처럼 들린다.

[황용과 같은 어린  소녀의 적수도  못 되는  저를 가지고  어떻게 당신과  비한단 
말입니까? 도화도의 무공은 벌써부터 경탄해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이 나오자 황용까지 그 사이에 끼어든다.

[매사자,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천하에 그래  우리 아버지보다  센 
사람이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쨌든 한 번 더 겨뤄 보지 않으면 안 되겠어!]

말을 마치며 한손을 뻗어 잡으려 들었다. 곽정도 이제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기왕 그러시다면 어디 한번 겨루어 보십시다.]

<쉭> 하고 장풍을 날린다. 매초풍도 손바닥을 펴 막는다.

[무성장(無聲掌)으로 공격 해, 유성장을 가지고는 어림 없을테니.]
[우리 가(柯) 은사님도 눈이 불편하신대  만일 다른 사람이 이와 같은  무성장으로 
은사님을 기만한다면 내  증오도 아마  골수에 사무칠 겁니다.  이심 전심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제 어찌 무성장으로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방금  중독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무성장으로 제 생명을 지켰습니다. 무예를 겨룰 때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이 얼마나 떳떳하지 못한 일입니까? 선배님 분부는 사양하겠습니다.]

매초풍은 곽정의 이 같은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 소년이 꽤 착하구나.)

[제가 무성장으로  공격하라는 건  자신이  있기에 하는  말인데 뭐  그리  미주알 
고주알 잔소리가 많으냐?]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곽정은 청의의 괴객을 한번 건너다본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매초풍에게 무성장을  파(破)하는 무슨  방법이라도 
알려 주었단 말인가?)

[그럼 매선배님과 십오 초(招)만 모시고 겨루겠습니다.]

그는 강룡십팔장 가운데 십오강을 다시 한번 써 볼 생각이었다. 결정적인 치명상을 
노리고 대들 필요도 없고 오직  호신에만 열중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즉시  앞으로 
뛰어나가며 장풍을  날렸다. 그런데  옆에서 <쉭>  하는 소리가  나더니  매초풍의 
낚시바늘 같은  손이 어느새  자기  어깨를 향해  덮쳐드는 것이  보인다.  깜깜한 
가운데인데도 정확히 두 눈으로  보고 대드는 것 같다.  깜짝 놀란 곽정이  왼손을 
급히 움츠리고  왼쪽으로  다시 한  번  대들며 이섭대천(利涉大川)의  솜씨를  펴 
공격했다. 그의   손이 몇  촌(寸)  뻗어 나가지   않았는데 매초풍은  벌써  그의 
진공(進攻)과  초수(招數)의  방위를  알고  대들어  선제  공격을  폈다.  곽정이 
하마터면 걸려들 뻔했다. 놀랍고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장풍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아는 것도 이상하지만 내가 공격도  하기 
전에 먼저 선제 공격을 하다니?)
제삼  초는  더욱   정중하고 진지하게   공격했다.  그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항룡유회(亢龍有悔)다. 그런데 또 <쉭>하는 소리와 함께 매초풍의 강철 같은  다섯 
손가락이 또 한 번 자기 팔을 긁어 잡아당기려 뻗어 왔다.
곽정은 그 관건이 <쉭> 하는 소리에 달려 있음을 알았다. 제사초의 공격을  펴면서 
청의의 괴객을  바다다보니 과연  그가 손끝을  퉁기자 조그만  돌 하나가  공중을 
난다.
(아, 지이가 돌로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구나. 내가 동쪽을 치면 동쪽을 알려 주고, 
서쪽을 치면 서쪽을  제시하고 있었군.  그러나 저러나 어떻게  내 장법의  방향을 
미리 알고 있을까? 아참,  그렇지, 그날 황용과 양자옹이  서로 싸울 때  홍칠공이 
그의 권로(拳路)를 알려 준  것도 바로 이 이치였구나.  어쨌든 십오 초까지만  다 
쓰고 졌다고 하면 그만이겠지.)
강룡십팔장에 무슨 변화가  무쌍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곽정이 완전히  통달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초마다 위력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매초풍이 먼저  공격의 
방향을 알고 있으니 별 효과가 없었다. 다시 수초를 대결하는데 그 청의의  괴객이 
연속적으로 세  개의 돌을  퉁겼다.  매초풍이 방어  태세를 공걱  태세로  바꾸며 
연거푸 세 번이나 살수를 뻗는다.  곽정이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두 번이나  장풍을 
날렸다. 이때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청의의 괴객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두 사람의  대결이 더욱  사나와진다. 장풍과  권풍이 
날고 자르는  소리 속에  돌  퉁기는 소리가  어지럽게 엇갈리고  있었다.  황용은 
뇌리에 꾀가 하나 스쳐 지나갔다. 땅에서 기왓강 부서진 조각을 주워 들고  허공을 
향해  집어  던진다.  첫째는   매초풍의 주외를   교란시키자는 것이요,   둘째는 
매초풍으로 하여금 청의의 괴객을 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그 괴객이 손에 
힘을 주었는지 나는 돌의 힘이 더욱 세차지며 황용이 던지는 조각을 허공에서 맞혀 
떨어뜨리고 만다.

육씨 부자와 강남 육괴는 어리벙벙해 바라다보고 있었다.
(손가닥의 힘만으로 어떻게 저렇게까지  돌을 발사할 수  있단 말인가? 쇠로  만든 
것이라 해도 저렇게  위력이 대단할 수는  없을 텐데..., 누구든  맞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죽고 말겠구나.)
황용도 슨을 멈춘 채 그 괴객을 멍하니 바라다볼 뿐이다. 이때 곽정은 수세에 몰려 
곰짝도 못 하고 매초풍만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살수를 날리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붕붕  소리가 두 번  울리며 두 개의  돌이 허공에서 날아왔다.  앞의 
것은 느리게 날고 뒤의 것이 쫓아와 공중에서 <펑>하고 부딪치며 불곶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돌가루가 어지럽게 쏟아져 내려왔다. 매초풍이 이 위세에 힘입어  곽정을 
향해 덮쳐 들었다. 곽정은 그 공세가 너무나 무서워 피해 달아났다.

[아빠!]

황용이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청의의  괴객을 향해 딛,려가 품안에 안기며  울음을 
터뜨린다.

[아빠, 아빠의 얼굴이 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네?]

곽정이 고개를 돌리니 매초풍이 자기 면전에 선 채 귀를 기울이고 돌 나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있으랴? 즉시 손을  뻗어 
서서히 그녀의 어깨를 향해  내리쳤다. 있는 힘을  다한 것이다. 오른손의  장풍이 
내리누르고 오르는  순간 왼손이  또  한 번  번쩍 올라갔다  내려왔다.  매초풍은 
곤두박질을 치며 땅바닥에 쓰러진 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육승풍은 황용이 청의의 괴객을 보고 아버지라 부르는 소리를 듣고 희비가  교차해 
자기의 하체가 부자유스럽다는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 달려가려다 그대로 땅바닥에 
나뒹굴고 만다. 그 청의의  괴객은 한 손으로 황용을  어루만지며 다른 한  손으로 
서서히 얼굴에  쓰고 있던  가죽을 벗었다.  즉시 원래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인피(人皮)로 된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름끼치는 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용이 눈물 젖은 눈에도 환호성을 지르며 가면을 주워  자기 
얼굴에 뒤집어쓰고 다시  아버지의 품속에  파고들며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그 
청의의 괴객이 바로 도화도 도주인 황약사였던 것이다.

[아빠, 그래 어떻게 오신 거예요? 아까  그 구( )가 성을 가진 영감이 아빠  욕을 
할 때도 그냥 내버려두시구.]
[아니, 내가 어떻게 오다니? 너를 찾아오지 않았겠니!]
[아빠, 그럼 소원을 푸시고 마음을 바꾸셨나요?]

황용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마음을 바꾸고 말고가 어디 있겠느냐? 내 너를 찾아 나서는데 말이다.]

황용은 괴로왔다. 아버지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굳게 맹세한  일이 
하나 있었다.  도화도에서 <구음진경>에  기록된 모든  무공을 완전히  익혀  천하 
무적의 고수가 되고야 말겠다고 했다.  그런데 하반부의 경문을 진현풍,  매초풍이 
훔쳐 달아났다. 미처  상반부도 채 익히지  못했을 때다. 화가  난 나머지  다시는 
도화도 밖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겠노라고 맹세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경솔로 말미암아 고집이 세기로 유명한 아버지의 맹세가 허물어지고 만 것이다.

[아빠, 이젠   아빠 말씀만  곱게  따를래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빠  말씀만 
듣겠어요.]

황약사는 애지중지하는  딸이 무사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했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말을 듣고 보니 더욱 기뻤다.

[네 사자(師妹)를 부축해 일으키렴.]

황용이 다가서서   매초풍을 부축해   일으키자 육관영도  자기  아버지를  부축해 
세웠다. 매초풍과 육승풍이  다시 황약사  앞에 부복했다.  황약사가 한숨을  길게 
내쉰다.

[승풍이 잘 지냈나? 일어나게! 그래 내 성질이 너무 급해 자네를 나무랐지.]
[사부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육승풍이 흐느끼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은사에게 절을 한다.

[별고없이 지내고 있었다네.]
[아빠, 여기   계신 몇  분을  소개해 드릴께요.   이분들은 강호에  유명한  강남 
육괴신데, 곽정 오빠의 사부님들이에요.]

황용이 나서서 강남  육괴를 소개했지만  황약사는 그들을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외인을 알고 싶지 않다.]

강남육괴는 오만불손한 황약사의 태도에 발끈 화가 치밀었지만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의 앞이라 감히 대들 수도 없는 처지였다.

[뭐 챙길 물건이 있거든 속히 챙겨라. 집으로 가자!]
[가지고 갈  물건이  뭐 있나요.  육사가(陸師哥)에게  되돌려 드릴  물건이  있을 
뿐이에요.]

황용이 웃으며 품에서 구화옥로환을 꺼내 육승풍에게 되돌려 준다.

[육사가, 이 환약들은 조제하기가 쇰지 않은  것인데 저와 곽정 오빠는 두  알씩만 
갖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더 할 나위 없이 고마운걸요.]

그러나 육승풍은 받으려고도 하지 않고 황약사를 올려다본다.

[제자, 오늘 이렇게  은사를 뵙게  되오니 한량없이 기쁩니다.  이 환약은  마땅히 
은사님께 바쳐야   할 것입니다.  은사님께서 며칠   제 장원에  머물러  주신다면 
더욱....]

황약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육관영을 가리켰다.

[자네 아들인가?]
[네 그렇습니다.]

육관영은 부친의 분부도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나서며 정중하게 네 번 절한다.

[조사(祖師)님께 인사드리나이다.]
[그만 두거라.]

그러나 일어나라는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왼손을 뻗어   그의 등덜미를  잡아 
일으키며 어깨를 한 번 내리친다.

[은사님, 제겐 이 아들놈 하나뿐입니다.]

육승풍이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육괸영은 벌씨 비틀비틀 뒤로 7,8보나  물러서다가 
나동그라진다.

[자넨   역시   훌륭했군.  무공을   전수해   주지   않았으니  말일세.   저애는 
법화종(法華宗) 문하인가?]

육승풍은 이제야 사부께서 자기 아들의 공력을 시험해 본 줄 알았다.

[사문의 규율도 엄하거니와  제 자식이라고는 하지만  은사의 허락도 없이  함부로 
전수할 수 없었습니다. 저 아이는 법화종 고목대사(枯木大師)의 문하입니다.]

황약사가 냉소를 머금었다.

[고목의 그만한  공력을  가지고 대사라니  무슨  말이냐? 내일부터  자네가  직접 
전수해 수도록 하게.]

육승풍은 스승 황약사의 이 한 마디에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빨리 조사님의 은혜에 고맙다는 인사를 올려라.]

육관영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한 번 황약사를  향해 네 번이나 절을  했지만 
황약사는 거들떠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육승풍이 옛날 도화도에서 익힌 일신의 무공은  그가 비록 두 다리가 병신이  되어 
쓰지 못하고 있는 오늘에 있어서도 수상(手上)의 공력만은 아직도 대단한  것이다. 
또 자신이 무학의 정의(精義)에 깊이 통달해 있으면서도 자식의 고련(苦練)을 보는 
마음이 여간 안타까운  것이 아니었다.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해 진보에  유한이 
있는 것을 볼  때 자기가 직접  전수해 주고 싶은  충등을 여러 번이나  느꼈었다. 
그러나 사문의  규율이  엄해 자기의  무예를  아들에게조차 전수해  주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 사부의 허락을 얻고 보니  여간 기쁘고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칫째, 
자기가 다시 은사의 문하에  들어가는 것 같아 기뻤고  둘째, 아들의 무공이  크게 
진보할 수  있기 때문에  반가운  것이었다. 고마운  인사를 몇  마디라도  사부께 
드리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누가 자네 보구 구화옥로환을 달라던가? 이거나 받게!]

황약사는 눈을 하얗게 흘기며  손을 번쩍 들자 두  장의 백지가 앞뒤로 그를  향해 
난다. 그와 육승풍의 거리는 1장 정도, 나뭇잎과 같은 두 장의 얇은 종이가 사뿐히 
날아간다. 마치 바람에 날아가는 듯, 던진 힘이 강한 것도 아니지만 교묘하기 짝이 
없었다. 강남 육협은 옆에서  이를 보며 마음속으로  혀를 내두른다. 황용이  득의 
만면하여 곽정에게 속삭인다.

[곽정 오빠, 우리 아빠 무공이 근사하지요?]
[아버님 무공은 사람의  솜씨가 아닌  것 같아. 용이,  집으로 돌아가거든  놀려고 
하지만 말고 열심히 배워요.]
[함께 가는 거예요. 왜? 안가려구요?]

황용은 급하게 물었다.

[나는 내 사부님들을 쫓아가야지. 세월이 지난 뒤에 대 한 번 찾아갈께.]
[안 돼요, 안 돼. 우리 서로 떨어지면 안 돼요.]

곽정도 이제 곧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섭섭한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담담하게 
웃고 말했다. 육승풍이 날아오는 두장의 백지를 받고 보니 희미한 글씨가  보인다. 
육관영이 장객의 손에서 횃불을 받아 비쳐 주었다. 육승풍이 보니 두 장에  씌어진 
글씨는 모두 연공(練功)을 익히는 데 필요한 구결(口訣)과 요지들이다.
황약사의 친필도 20여 년 보지 못하는 세월 속에 명필이 다 되어 있었다. 첫  장의 
왼쪽   머리에는   소엽퇴법(掃葉腿法)이란   네    글자가   씌어   있었다.   이 
소엽퇴(掃葉腿)와   낙영장(落英掌)은    사부께서   일찌기    독창하신   득의의 
무기(武技)라는 것을 육승풍은 안다. 그리나 6명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에  이것을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자기는  배울 
수가 없으니 소용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자식에게나마 전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역시 사부의 은혜는 고맙기 그지없는 것이다.  즉시 
소중하게 접어 품안에 간직하고 꿇어 엎드려 절을 했다.

[이 퇴법(腿法)은   내가 그전에   독창한 깃과는  아주  다르다네.  초수(招數)는 
마찬가지지만 이번  재주는 내공부터  익히기 시작해야  되는 걸세.  자네가  매일 
요결대로만 익혀  진경(進境)이  빠르기만 하면  오룩  년 뒤에는  지팡이  없이도 
나다닐 수 있을 게야.]

황약사의 말에 육승풍의 마음은 희비가 교차하며 만 가지 감회가 새삼 감돌았다.

[자네 발의 불구를 고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내 오늘 알려 준대로만 한다면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의 보행은 어렵지 않을 게야. 아이....]

그는 당시 자신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죄도 없는 4명의 제자에게 너무  가혹하게 
벌을 내렸다고 내심으로는 후회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 성미였다.

[자네가 세 명의 사제도 모두 찾아다가 이 요결을 전수해 주기 바라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곡령풍(曲靈風), 곡사제(曲師弟)의 소식은  들어 
본 일이 없고, 무(武),풍(馮) 두 사제는 세상을 떠난 지 벌써 오래되었습니다.]

황약사는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픈  모양이다.  번쩍이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매초풍을 쏘아본다.  매초풍이야 보지를  못하니 알리  없겠지만 잎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초풍아, 네 큰 죄를  지었지만 고생도 많이 했구나.  방금 그 구( )영감이  나를 
욕할 때 그래도 넌 내 명예를 위해  대들려고 했다. 내 특별히 용서하니 몇 년  더 
세상에서 살아 보렴.]

매초풍은 사부가   이렇게 쉽게,  이렇게 시원스럽게   자기를 용서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기쁜 나머지 즉시 땅에 엎드려 이마를 조아렸다.

[그래, 그래.]

황약사는 이렇게 말을  하며 손을 뻗어  가볍게 매초풍의 등을  세 번이나  두드려 
주었다. 매초풍은 등뒤에 따끔하게 아픔을 느끼며 깜짝 놀랐다.

[사부님, 제자의 죄 만 번 죽어  마땅한 줄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죽이시는 
한이 있더라도 부골침(附骨針)의 고형(苦刑)만은 면하게 해주십시오.]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려   나왔다.  그는   일찌기   진현풍으로부터  사부에겐 
부골침이라는 독문의  암기가 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었다. 다만  손을  뻗어 
상대의 몸을  가볍게 치기만해도  그 침은  살속 깊이  파고들어가 골격의  관절에 
꽂힌다고 했다. 침에는 독이 묻어 있는데 약효는 서서히 발작해서 매일 6번 혈맥을 
따라 운행하는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고 했다. 단번에 죽는 것도  아니요, 
4,5개월 뒤에나 죽는다고  했다. 무공이  훌륭한 사람이  내공으로 막아  보겠다고 
하면 할수록 그  고통은 더욱 가중한다고  했다. 매초풍은 그  침 한 방만  찔려도 
인간 지옥에 빠진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제 세 방이나 찔려 놨으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독룡편을 자기   머리를 향해  휘갈겼다.  그러나  이때  황약사가 
번개처럼 손을 써 독룡편을 뺏고  말았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어떻게 뺏아  갔는지 
똑똑히 보지도 못했다.

[뭐 그리 서두를 것이 있느냐? 죽는 일도 그리 쉬운 게 아니야!]

황약사의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매초풍은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었다.
(사부께서는 나를  고통스럽게 죽이실  모양이로구나. 쉽게   죽게 내버려두시지도 
않으실 게고.)
처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곽정이 있는 쪽을 바라다본다.
(고맙군, 한 칼에 내 남편을  찔러 즉였으니...., 그이는 나보다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구나.)

[부골침의 약효는 일 년 후에 나타난다. 이 일 년 동안 내가 네게 세 가지  명령을 
내릴 테니 성공하거든 도화도로 찾아오너라. 그럼 내 다시 침을 뽑아 주마!]

황약사의 말에 매초풍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화약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들라 하셔도 뛰어들겠어요.]
[내가 무슨 명령을 내릴 줄 알고 그렇게 선뜻 나서는 게냐?]

황약사의 차디찬 말소리에 매초풍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머리만 조아릴 뿐이다. 

[첫째, 네가  구음진경을 잃어버렸으니  그것을 찾아오너라.  누가 만약  보았거든 
그를 즉여야 한다. 한 사람이 보았다면 한 사람을 죽이고, 백 사람이 보았다면  백 
사람을 죽여야 한다. 아흔 아흡 명을 죽었다 하더라도 나를 찾지 못한다.]

옆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의  간담까지  서늘해지는  말이다.  황약사의  별호가 
동사(東邪)라 했다. 위인이며 하는 짓이 악독하다고 강남 육괴는 생각하고 있었다.

[무(武), 풍(馮), 곡(曲) 세 사제는 모두  너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네가 
영풍(靈風)을 찾아와야 한다.  그리고 무,풍  두 사람에게  후사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 보아라. 만약에 있거든 이 귀운장으로 오도록 하고, 승풍이가 부양을 하거라. 
이것이 두 번째 명령이다.]

매초풍은 대답을 하고 육승풍은 생각했다.
(이 일이라면 능히 할 수 있겠구나.)
그러나 사부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황약사는 고개를  들어 
하늘 위의 북두칠성을 바라다보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구음진경은 너희 스스로 가져간  것이요, 경문 가운데의  무공도 내 가르쳐  줌이 
없이 너희 스스로 익힌 것이니 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것이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세번째 명령이니라.]

매초풍은 사부님의 말뜻을 몰라 어리벙벙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두 가지  일을 끝낸  후에  제자 스스로  구음백골조와 최심장의  무공을  버리란 
말씀인가요?]

한참 만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음.]

황약사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곽정은 무슨 뜻인지 몰라 황용의 옷소매를 잡아 끌며 
눈짓으로 물었다. 황용은 오른손을 들어 자기의 왼손을 자르는 시늉을 해 보인다.
(원래 자기의  손을  잘라 버리라는   뜻이었군. 매초풍이 비록   못된 짓을  많이 
했다지만 형멀이   너무 가흑하지  않을까.  그런 건   용이가 대신  용서를  구해 
줘야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황약사가 손짓을 하며 묻는다.

[네가 곽정이냐?]

곽정이 앞으로 나서며 절을 했다.

[제자 곽정 황 노선배님께 인사드리나이다.]
[내 큰 제자 진현풍을 네가 죽였것다, 재주가 대단한 모양이로구나.]

곽정은 호외로 묻는 말이 아님을 직감하자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때 제자는 나이가 어려 아무것도  몰랐음니다. 진선배님께 잡혀 당황한  나머지 
그만 실수를 했을 뿐입니다.]

황약사가 <흥> 하고 코방귀를 뀐다.

[진현풍이 비록 배은 망덕한 제자라  하지만 우리 문중에서 죽일 일이지  도화도의 
문인을 외인이 감히 죽일 수 있단 말이냐?]
[아빠, 그때 이이는 겨우 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무얼 알았겠어요?]

황용이 황급하게 이렇게 말했지만 황약사는 들은 체도 안했다.

[홍노괴가   평소  제자를   거두지  않는   사람인데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강룡십팔장을 네게 십오장이나 전주해  준 것으로 보아  네겐 분명히 다른  사람이 
미치지 못하는 장점이 있겠구나. 그렇지  않다면 네 간교한 말로 홍노괴의  환심을 
샀거나 말이다. 네가 홍노괴에게서 배운 재주로 내 문하의 제자를 치다니? 흥, 흥, 
다음에 노괴가 나를 만나면 그래도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아빠, 간교한 말이 있기는 했지만 저이가 한 게 아니라 제가 했어요.]

황약사는 상처를 한 뒤 이 딸 하나만 의지하고 살았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딸을 
어딘가 버릇없이 키운  건 사실이다.  어리광만 부리며 제멋대로  자라서 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마는  성질이다. 그날도 몇 마디  꾸지람을 듣고 끝내  도화도에서 
도망을 치고 말았다. 황약사는 딸이 강호에 떠돌며 초췌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만나고  보니 옛날보다   더욱 예뻐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곽정과는 언제  그리 친해졌는지  하는  말마다, 수작마다  그를 끼고  도는  것에 
은근히 샘이 났다. 그래서 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곽정만을 쏘아 봤다.

[노괴가 네게 무공을 전수해 준것은 우리 문하에 사람이 없음을 비웃는  수작이다. 
내 제자 하나하나가 너만 못할까 봐서....]

황용은 아버지의 성미를  너무나 잘 알았다.  곽정이 강룡십팔장으로 매초풍을  친 
것이 몹시 비위를 건드려 못마땅했던 것이다.

[아빠, 누가  도화도 문하에  사람  없다고 했어요?  그가 매사자의  눈이  보이지 
않음을 기화로 해서 장법을 유리하게 볓  번 썼다고 대단할 것은 없지 않아요?  이 
딸이 아빠 대신 분풀이를 할께요.]

몸을 날리며 곽정을 향해 대들었다.

[어디 한번 겨뤄 봐요.  내 아버지께 배운  보통의 무공으로 홍칠공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장법과 어느 쪽이 우세한지 한번 보게요.]

그는 지금 곽정의  무공이 그와  엇비슷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둘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몇  번 대결해  보이면  아버지의 기분도  풀어지리라  믿었던 
것이다.
곽정도 황용의 저의를 알아차렸고, 황약사가 만류하지 않는 것도 보았다.

[내 계속 이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다시 몇 번 얻어맞기로 하지요.]

왼손을 번쩍 들며 먼저 나선다.

[자 받아요!]

황용이  먼저  에쁜   손을 비스듬히   내리치니  <쉭쉭>   바람이 일었다.   바로 
낙영장법(落英掌法)     가운데의    매화점점(梅花點點)이다.     곽정은    역시 
강룡십팔장으로 맞서고  있으면서도 혹시   황용이 다치지나 않을까  해서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려 한다.  강룡십팔장은 어디까지나 강한  힘과 맹렬한 공격에  의해 
승리를 얻는   것이다. 초수(招數)의  오묘함이나 변화   무쌍한 점으로  따진다면 
낙영장법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벌써 몇  차례나 얻어맞을  수  밖에 
없었다.  황용은  아버지의  화를  풀어  드리기  위해  힘껏  때렸는데도  곽정은 
근골강장(筋骨强壯)이라 끄떡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도 굴복하지 않아요?]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도 계속  손을 멈추지  않았다. 황약사는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보지 않았는대 어느 틈에 그들 두 사람 옆
으로 접근하여 둘의 뒷덜미를 나꿔채 솨우로 집어 던졌다. 물론 똑같이 집어  던진 
것이기는 하지만 딸은 살짝 옆으로 제친  것이요, 곽정을 집어 던진 것은 어디  한 
번 맛 좀 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곽정은 허공에서 별로 힘도 쓰지 않고 비틀비틀 
뒤로 넘어지는  듯하더니 발끝으로  땅을 살짝  찍는 순간  꼿꼿하게 그냥   선 채 
넘어지지 않았다. 그가  만약 나가  떨어지며 멍이  들고 부어  오른 채  쩔쩔매고 
일어나지 못했더라면 오히려 괜찮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황약사는 아니 이놈 좀 
봐라! 하는 생각과 함께 오히려 아까보다 더 근화가 치밀어올라 왔던 것이다. 

[아니, 무슨 강난을 하고 있는 게냐? 이리 오너라. 나는 제자가 없으니 어디  한번 
나하고 겨루어 보자.]
[제자가 어찌 감히 모시고 겨를 수 있겠습니까? 천부당 만부당한 분부이십니다.]

곽정이 허러를 굽히고  공손히 하는  말이있지만 황약사는  여전히 냉소를  머금은 
채다.

[흥, 무슨  말을 지껄이는  게야? 내  여기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테니 
네놈은 강룡십팔장을 가지고 어디 나를 향해 공격을 해 봐라. 만일 내가  피하거나 
손을 들어 막거나 하면 내가 지는 것으로 하겠다. 알겠느냐?]
[제자, 감히 어떻게 공격을 하오리까?]
[쓸데없는 수작 그만 두고 공격이나 해라.]

곽정은 혼자 생각에 잠긴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할   수  없다.  공격이나   해보자. 그가   만약 
차력(借力)을 타력(打力)으로 이용한다면 몇 번 넘어지면 되겠지.)

[아니, 무얼 우물쭈물하고 있는 게냐?  만일 네놈이 공격하지 않는다면 제가  먼저 
치겠다.]
[선배님의 분부가 그러하시니 제자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자세를 가다듬어 몸을 죽이고 원을 그리며 1장을 날렸다. 정말 황약사가  다치지나 
않을까 염려도 되었고  또 전력을  썼다가 타력(打力)으로  되돌아오면 또  자신이 
다칠 것도 같아 적당한  힘으로 공격을 한 것이다.  그런데 공격의 힘이  황약사의 
가슴에 집중되자 살그머니 미끄러져 싱겁게 빠지고 만다.

[아니 이놈아, 네가 나를 업신여기는가 보구나. 왜? 내가 신묘하고도 맹위가  있는 
강룡장을 당해 내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느냐?]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 2  장은 인정  사정 볼  필요가 없었다.  숨을 깊속이   들이마셨다가 내뿜으며 
왼손을 내미는 체하다가  오른손을 왼손 밑에서부터  들어올리며 황약사의  복부를 
노리고 쳤다.

[진작에 그렇게 나와야지.]

당시 홍칠공이 곽정에게 소나무를 상대로 시험을 해 보라고 했을 때 그는 소나무를 
흔들리지 않게 한 뒤에 결정적인 찰나를  노려 공격을 함으로써 그 소나무를  자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때 그는  자기가 천신  만고 수련에  수런을 거듭했던  그 
당시의 기술을   가지고 손끝이  황약사의  옷깃에 가   닿는 찰나를  이용,  힘을 
집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우지끈> 소리와 함께 팔꿈치가 탈골이 
되고 말았다. 지독한 퉁증을 느끼는 순간  식은땀이 확 등골에 흘렀다. 펄쩍  뒤로 
뛰어 피했다.

[제자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탈골이 된  한쪽 손은  들 수도  없었다. 강남  육괴는 황약사가  정말 피한  것도 
아니요, 반격을 한 것도 아닌데 1초(一招) 사이에 그만 곽정의 팔의 관절이 탈골된 
것을 보자 감탄과 근심이 동시에 몰려왔다.

[너도 이제 한번  내 맛을 보아야겠다.  늙은거지 영감의 강룡십팔장이  대단한가, 
아니면 도화도의 장법이 위대한가 뜩똑히 알아야지.]

황약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풍의 바람소리가 먼저 일어났다. 곽정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으며 몸을  날려  옆으로 피했다.  그런데 황약사가  어느  틈에 
장풍이 채 미치기도 전에 발을 뻗어 잡아당기자 곽정이 벌렁 나가 넘어지고 만다.

[아빠, 그를 때리면 안 돼요.]

황용이 놀라 울부짖으며  쏜살같이 대들어 곽정을  감싸고 엎어진다. 황약사가  한 
손을 뻗어 딸의 등덜미를  잡아 일으키며 왼손 장풍을  내려 쪼겠다. 맞기만  하면 
그자리에서 죽고 마는 것이다.
강남 육괴가 일시에 대들었다. 전금발이  가장 가까이 서 있다가 저울대에  매달린 
철추로 그의 왼팔을 쳤다. 황약사는 딸을  한 쪽에 내려 놓고 어느 틈에  전금발의 
저울대와 한소영의  장검을 뺏아  들고 장검으로  저울대를 치니  그만  4토막으로 
분질러지고 말았다.

[아빠, 차라리 그를 죽이세요. 저도 영원히 아버지를 만나지 않으렵니다.]

울며불며 태호로 달려가  호수 속을  향해 풍덩 몸을  던진다. 황약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딸인 황용이 수영을 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동해의 파도 속에서 고기나 자라와 함께 놀며 자라난 황용이다. 어떤 때는  하룻밤 
하루낮을 바다에서 놀면서 언덕에 올라오지  않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또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급히 호변으로  달려  나와 
보았지만 컴컴한 어둠속에  한 줄기 직선이  호심을 향해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황약사는 한참 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  주총이 
곽정의 팔을 접골해 주고 있는 것을 보자 다시 그들을 향해 화풀이를 하려고 든다.

[당신들 일곱 사람, 차라리  자살을 하시오. 공연히 내  손에 걸려들어 고생할  것 
없소!]
[남자 대장부 죽는 것도 두렵지 않는데 고생쯤 무서워하겠소?]

가진악이 칠장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강남 육괴가  이미 고향에  되돌아왔으니 오늘  오호(五湖)에 뼈를  묻음에  무슨 
여한이 있으리오.]

주총의 말에 이어 여섯 사람은 각기 병기를 들거나 공수로 대들 태세를 취했다.
곽정은 생각했다.
(여섯 분 사부는 그의 적수가 아니다. 공연히 헛된 생명만 잃는 것이다. 나 때문에 
사부님들까지 이 꼴을 당하시는구나.)
급히 앞으로 나오며 말문을 연다.

[진현풍은 이 제자가 죽인 것이지 여섯 분 사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오니 
제 한 명의 생명만으로도 족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대사부, 삼사부, 칠사부 모두들 성질이 불길 같은데 내 죽는 걸 보면 그냥 
계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싸움이 벌어지는 날에는 결과는 마찬가지다.)

[한 가지 부탁의 말씀이 있습니다.  제자는 아직 부친의 원수를 갚지  못했습니다. 
한 달의   여유만 주십시오.  삼십  일 후   제자 친히  도화도로  생명을  바치러 
가겠나이다.]

이때 황약사는 화도  어지간히 식어가고  있었다. 딸의  일이 걱정일  뿐 더  이상 
그들과 상대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손을 휘저으며 몸을 돌려 가 버렸다.
곽정의 이 말 한 마디에 쉽게 가버린 황약사의 태도가 이상해 거기 있는  사람들은 
서로 바라다볼 뿐이었다.

[여러분, 뒤채에 가셔서 좀 쉬십시다.]

육승풍의 권유에 매초풍이 하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두 소매를 휘두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매사자, 당신의 제자를 데리고 가셔야죠.]

육승풍이 매초풍이 사라진 쪽을 향해 외쳐 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육관영이 
완안강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혈도를  눌려 꼼짝도   하지 못하고  두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내 이미 자네 사부에게 대답을 한 것이니 그만 가 보게.]

육승풍이 이렇게   말을 하며  완안강의 혈도를   살펴본다. 본문(本門)의  수법이 
아니었다. 물론 눌린  혈도를 풀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예의가 아니다.  누가 
그랬을까? 주위를 휘둘러보는데  주층이 나서서 그의  허리를 만지고 등을  두드려 
막힌 혈도를 풀어 주었다.
(이 사람의 손재주가 보통이 아니로구나. 완안강의 무공도 약한 편이 아닌데  언제 
혈도를 눌렀지?)
육승풍이 이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주총은  대청이  무너져 내려올  때  완안강이 
단(段)대인이라는 자를  끌고 빠져  나오는 것을  보며 혈도를  눌러 놓고  있었던 
것이다. 완안강은 창피했던지 인사도 하지 않고 가려고 했다.

[이분이 뉘신지 데리고 가지 그래.]

주총이 이렇게 말하며  병마지휘사 단대인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그  단대인이란 
작자는 꼭 죽는 줄 알고 있다가 살려  주는 것을 보자 반가운 나머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살려 주신 은혜 이 단천덕(段天德)은 평생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곽정은 <단천덕>이란 이름을 듣자 귓속이 <웡> 하고 울리는 것을 느꼈다.

[당신...., 당신이 단천덕이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무슨 분부라도 계시오니까?]
[십팔 년 전 임안(臨安)에서 무관을 지냈것다?]
[그런데, 어떻게 아십니까?]

그는 방금 육승풍이 자기 아들 육관영이 고목대사의 제자라고 하는 말을 들었었다.

[저는 고목대사의   조카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한 식구나  다름이  없군요. 
하하하!]
[육장주님, 잠시 뒤채를 빌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곽정이 육승풍을 향해 말했다.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곽정은 단천덕의 팔을 잡고 뒤채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강남 육괴는  서로 
바라다본다. 천망이 회회(天網恢恢)한데 여기서 이 단천덕을 만나게 되다니!  그가 
만약 자기의 이름을 대지 않았더라면 당시  7형제가 만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찾아 
헤매던 이자를 어찌 알아 볼 수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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