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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움베르토 에토-푸코의 진자 1

by Casey,Riley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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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코의 진자 [1]
 움베르토 에코

  케테르
1. 
  내가 진자를 본 것은 그 때였다.
  교회 천장에서 고정된, 긴 철선에 매달린 구체는 엄정한 등시성의 
위엄을 보이며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진자가 흔들리는 주기는 철선 길이의 제곱근과 원주율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원주율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력이 미치지 않는 
무리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고도의 합리성이 구체가 그려 낼 수 있는 
원주와 지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기야 그 고요한 
호흡의 비밀을 접하고도 그걸 모를 사람이 있으랴). 그러니까 구체가 
양극간을 오가는 시간은, 구체를 매달고 있는 지점의 단원성, 평면의 
차원이 지니는 이원성, 원주율이 지니는 삼원성, 제곱근이 은비하고 있는 
사원성, 원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완벽한 다원성 등속의, 척도 가운데서도 
가장 비시간적인 척도 사이의 은밀한 음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다.
  나는 바닥의, 지점과 수직을 이루는 것에 설치되어 있는 자력 장치가 
구체의 중심부에 내장되어 있는 원통형 철주를 밀고 당김으로써 연속 
동작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도 알아내었다. 그러니까 이 장치는 진자 
자체의 존재를 실증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점과의 마찰도 없고 
공기 저항도 없는 진공의 공간에, 무게도 없고 신축성도 없는 끈에 매달린 
물건은 영원히 규칙적인 진동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구체로 된 동추는 커다란 채색 유리는 통해 들어온 석양에 빛나면서 
흔들릴 때마다 그 빛을 되쏘았다. 동추가 되쏘는, 일렁이는 빛살은 
창백했다. 바라보고 있노라니, 옛날에도 그랬을 터이지만 동추가 한번씩 
오고 갈 때마다 교회 바닥에 깔린 축축한 모래의 켜에는 희미한 이랑이 
만들어지고는 했다. 이랑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방향을 바꾸거나 퍼져 
가면서 이윽고 좌우대칭의 방사선 무늬가 되어 가고 있었는데, 그 무늬는 
만다라의 도상, 펜타쿨룸, 별, 비교의 장미와 흡사했다. 아니 그보다는 
무수한 유목 대상들이 막막한 사막 위에다 남겨 놓은 역사의 흔적, 혹은 
무 대륙을 떠난 아틀란티스 백성들이 그랬듯이 태즈매니아에서 
그린란드까지, 전갈자리에서 게자리까지,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스발바르 
까지 떼를 지어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수천년 동안 이주를 계속한 
백성들의 이야기와 흡사하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동추는 우리에게, 한 
빙하기에서 다음 빙하기까지 신드르이 밀사들이 거쳐온 여로를 되밟고,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여정을 아주 짧은 시간에 
우리에게 되돌려 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동추는 사모아 제도에서 노바야 
제믈랴로 가는 여로에서 세계의 중심인 아가르타를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거기에 그려지는 단 하나의 무늬가 극북의 땅 
아발론과 남방의 사막에 수수께끼로 잠든 에이어스 바위를 하나로 
아우른다는 것을 알았다.
6월 23일 오후 4시, 진자는 한 쪽에서 천천히 다가와 중심으로 게으르게 
날아갔다가는 진동의 중심에서 다시 힘을 얻어 스스로의 종언을 운명으로 
타고난 평행 4번형에 감추어진 힘을 서슴없이 강타했다.
  만일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는 채 거기에서, 희미한 원호의 대극점을 
응시하면서 허공
중에 대각선을 그리고 있는 저 새의 머리, 저 창 끝, 더 둔두형 투구, 
진동면으로 평평한 타원을 그렸다가, 그 타원의 중심 주위를 위도의 
정현에 대하여 균등한 각도로 회전하면서 돌아오는 그 진자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환각에 사로잡히고 말았을 것이다. 만일에 그 
진자가 솔로몬 신전의 궁륭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면 그 회전하는 모습은 
어떠했을까. 어쩌면 성당 기사단도 저희들 성당의 천장에 그런 진자를 
하나 매달고 싶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봐야 궁극적인 의미인 그 
수치는 달라질 것이 없다. 그래봐야 궁극적인 모르기는 하지만 생 마르땡 
데 샹 수도원 교회야말로 바로 솔로몬의 신전일 테니까. 어쨌든 이 실험은 
극점에서만 완벽하게 될 터이다. 극점은, 지축의 연장선상에 있는 또 
하나의 축인 진자가 24시간만에 일회전 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진자의 법칙이 일찍이 예견하고 있듯이, 이런 법칙이 잠시 
깨어지거나, 정률을 일탈한다고 해서 진자가 지닌 경이로움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것, 내가 지구와 함께, 생 
마르땡 데 샹 교회와 온 파리가 나와 함께 돌고 있다는 것, 우리 모두가 
그 진자 밑에서 돌고 있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진자는 그 진동면을 
바꾸지 않는다. 진자를 매달고 있는 교뢰 천장의 철선 위로, 저 먼 은하계 
너머로 영원히 부동하는 <고정점>이 있을 것이므로.
  따라서 내가 주목한 것은 지구가 아니라, 절대 부동의 신비에 싸여 있는 
하늘이었다. 진자는 나에게 모든 것(가령 지구, 태양계, 성운, 블랙홀, 
광막한 우주의 무수한 식구들)은 움직여도 단 한 점만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이 한 점은 우주가 회전축으로 삼는 굴대, 
빗장, 혹은 고리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그 엄청난 궁극적인 체험에 
가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눈에는 그 불멸의 존재. 그 흔들림, 그 
확실한 약속이 보이는 것이었다. 물체도 아니고, 모양도, 무게도, 질량도, 
질감도 없고, 영혼도, 지성도, 상상력도, 의견도, 순서도, 질서도, 척도도 
아닌, 찬란한 수수께끼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둠도 빛도, 오류도 
진리도 아니었다.

  나는 안경을 쓴 청년과 유감스럽게도 안경을 쓰지 않은 처녀가 나누는 
무신경한 이야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푸코의 진자라고 하는 것이야. 첫 실험은 1851년 지하실에서 있었고, 그 
다음에는 옵세르바뚜아에서 선보였다가 빵떼옹의 궁륭 천장 밑에서 다시 
공개되었지. 당시 실험에는 길이 67미터짜리 철선과 무게 28킬로그램짜리 
구체가 쓰였대. 그러다 1855년부터는 축소형으로 제작해서 이렇게 늑재 
한가운데 구멍을 뚫고 거기에 매달아 놓은 거라."
  청년의 말이었다.
  "이게 어쨌다는 거야? 그저 매달아 둔 거야?"
  "지구가 자전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지, 지점은 움직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왜 안 움직여?"
  "응, 저 점...중심점 말이야, 그러니까 저기 보이는 저 중심에 있는 점이 
바로...기하학적인 점이라는 건데 보이지는 않을 거야. 기하학적인 점에는 
용적이 없으니까. 용적이 없는 것은 좌우로든 상하로든 움직이지 못해. 
따라서 지구와 함께 돌지 않는 거지. 알아듣겠어? 자체가 공전할 수도 
없어. <자체>라는게 아예 없으니까."
  "지구는 돌잖아?"
  "지구는 돌지, 그러나 저 점은 안 돌아. 묘한 거지, 내 말 믿어도 돼."
  "그거야 진자의 사정일 테지."

  병신. 제 머리 위에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부동점, 판타 레이의 
신고로부터 유일한 피난처가 자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건 제 사정이 
아니라 진자의 사정이란다. 잠시 후 두 젊은이, 즉 책권이라 읽는 바람에 
희한한 것을 희한한 것으로 알아보는 능력이 마비된 청년과 타성에 
젖어버린 무한한 것에 대한 전율에 무감각해진 처녀는 밖으로 나갔다. 둘 
다, 저희들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절대 
불가분인 <하나>, 엔 소프와 의 조우라고 하는 경이로운 체험에 눈치채지 
못했다.
  아, 이 확신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그냥 나가 버릴 수 있다니!

  나는 경외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진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야코포 벨보가 옳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나는 그가 
지나친 미학적 집착 때문에 진자를 두고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진자에 대한 생각에서 그가 보여 준 상상력의 비약이 무형의 암적인 
존재가 되어 그의 영혼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가 
부지불식간에 유희를 현실로 변용 시켜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진자에 관한 그의 말이 옳다면, <계획>이니, <우주적인 
음모>니 하는 것도 헛소리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내가 하지 전날 밤에 
바로 그 곳에 있게 된 것도 잘한 일인 셈이다. 야코포 벨보는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그는 유희를 통하여 진실을 발견한 셈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미노제(거룩한것)의 체험이 사람을 착란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데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그제서야 시선을 옮겨 보려고 했다. 나는 시선으로 반원꼴로 
늘어선 열주 머릿기둥에서 홍예에서 늑재로 이어지는 궁륭형 맞보의 
신비를 그대로 보여주는 곡선을 좇았다. 궁륭의 맞보는, 허공을 타고 앉은 
극도로 정적인 위선이었다. 바로 이 맞보 때문에 열주는 거대한 늑재를 
위로 떠받치고, 늑재는 열주를 아래로 매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궁륭형 천장은 이 전부를 거느리는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말하자면 결과인 동시에 원인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궁륭 
천장에 늘어뜨려진 진자의 존재를 무시하고 천장을 본다는 것은 수원을 
무시하고 하류의 물을 마시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을 터였다.
  생 마르뗑 데 샹 교회는 진자가 의지하고 있는 바로 그 존재 이유에 
의존하고 진자는 교회가 의지하고 있는 바로 그 존재 이유에 의존하고, 
진자는 교회가 의지하고 있는 바로 그 존재 이유에 의존하여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을 주었다. 무한으로 도망침으로써 한 
무한에서 도피할 수 없는 일이며 설사 한 무한으로 도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무한과 만난다는 것은 환상이며 그 두 개의 무한이 곧 
동일한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도피가 이미 하릴없는 것이라고...

   여전히 궁륭 천장의 쐐깃돌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나는 거기에 
들어가자마자 길을 익혀 둔 덕분에 발길로 더듬어 가면서 물러나올 수 
있었다. 통로 양쪽으로는 쇠로 만든 거북이 줄지어 서 있었다. 거북들은 
눈꼬리로 보는데도 시야에 들어올 만큼 위풍당당했다. 밖으로 나오려다 
중앙통로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천장에 매달린 무수한 전시품들이 나를 
내려다 모고 있었다. 썩어가는 캔버스의 천, 철사로 얽어 만든 선사 시대의 
무시무시한 조상새, 심술궂어 보이는 잠자리도 천장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전시 품목은 교육적인 구실로 제작되었다기보다는 그 
자체로서 이미 의미심장한 지식의 메타포였다. 진자가 그 궤적을 좇고 
있는 알레고리인 쥐라 기의 곤충 무리와 파퉁류는 성난 아르콘 같았고, 
브레게 불레리오, 에스노의 비행기, 그리고 뒤포의 헬리콥터는 아르콘이 
겨냥하는 조상새 부리처럼 생긴 화살 끝 같았다.

  파리에 있는 <꽁세르바뚜아르 데 자르 에 메띠에(국립 공예원)> 
전시실로 들어가려면 우선 18세기에 조성된 안뜰을 지나 오래된 수도원 
교회를 지나야 한다. 이 교회는 원래는 수도원 경내에 있던 건물이나 
지금은 현대적인 건물인 국립 공예원의 일부가 되어 있다. 누구든지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천상적인 구조물인 궁륭 맞보의 엄장한 우주와, 
휘발유를 고래처럼 들이키는 현대의 기계들로 이루어진 지상적인 세계가 
엄정한 음모 아래 병존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게 된다.
  바닥에는 자전거, 말이 필요 없는 마차인 자동차, 증기 기관 같은 육상 
교통 기관이 전시되어 있고, 천장에는 날틀이 매달려 있다. 이러한 기계 중 
일부는 세월의 풍상이 칠이 벗겨지고 부식된 데가 있기는 하나 대부분은 
대치로 말짱하다. 자연광과 전들의 불빛 덕분에 기계 표면에는 바이올린 
광택제인 파티나를 칠한 것 같다. 뼈대나 굴대, 연접봉이나 크랭크만 
매달려 있기도 한데 이러한 전시품들은 견딜 수 없이 잔인한 고문실을 
연상시킨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피의자를 고문대에 묶어 놓고 맨살을 
꼬챙이로 푹푹 쑤시면서 기어이 자백을 받아 내는 악질 관리의 고문 
현장이 보이는 듯 하다.
  한때는 움직였으나 지금은 움직이기는커녕 그 정신마저 녹슬어 그저 
관광객의 구경거리나 되고 싶어서 안달을 부리는 기계 공학적 자존심의 
견본에 불과한 이러한 옛날 기계 너머에는 성가대석이 있다. 성가대 
왼쪽에는 바르톨디가 신 세계를 위해서 제작한 자유의 여신상을 축소시킨 
모형이 있고, 오른쪽에는 파스칼 상이 있어서 흡사 성가대석을 위요하고 
있는 것 같다. 흔들리고 있는 진자 둘레엔 정신이 이상해진 곤충학자들의 
악몽(집게, 아래턱, 더듬이, 편절, 날개) 그리고 시체가 되어 있기는 하나 
언제든 호시절이 오면 부르릉 거리면 돌아갈 것 같은 기계 (자석식 
발전기, 단상 변압기, 터빈, 변류기, 증기 기관, 다이나모 발전기)의 묘지가 
있다. 그 뒤쪽의 회랑에는 한때는 항공기의 엔진이었을 터엔 아시리아나 
칼데아나 카르타고의 우상, 지금도 배가 시뻘겋게 달아 있는 듯한 바알 상, 
가슴에 못 자국이 남은 뉘른베르크의 처녀도 보인다. 이제 이 모든 물건은 
진자를 섬기기 위해 그 자리에 높인 환상의 왕관이다. 이곳은 따라서 
<전통>과 <지식>의 상징 그 자체를 영원히 파수해 온 <이성>과 <빛>의 
자손들을 처단하는 형장이다.

  입구에서 입장료 9프랑(일요일은 공짜)은 지불하고 들어 온 구경꾼들은 
설명문에 그렇게 나와 있다시피, 19세기의 점잖은 신사들( 수염은 
니코틴에 누렇게 절고, 구겨진 옷깃에는 기름때가 묻고, 검은 넥타이와 
프록 코트에서는 촛불 그을음내가 나고 손가락에는 산성염료 얼룩이 묻고, 
직업적인 질투심을 어쩌지 못하면서도 겉으로는 서로 <박사님>을 
호칭하는, 호색, 풍자 희극의 망령에 들린)이 부르주아와 급진적인 
납세자들을 만족시키고 진보 지향적인 과학에의 화려한 격정을 고무한다는 
원대한 희망 아래 그런 것을 전시했을 것으로 믿을 것이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이다. 생 마르땡 데 샹은 수도원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 건물이 
혁명적인 박물관이 된 것은 뒷날의 일이고, 항공기니 자동차니, 전동성 
골조 따위의 일풍이 전시되어 있는 것은 그 자체의 전시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신비스러운 어떤 것을 드러내기 위한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대화를 듣고도 이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먹을 수 없었다.

  설명서는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술과 교류의 전당을 만들고 
싶어하는 의회의 점잖은 신사분들 덕분에 사업의 결실이 가능했다고 
장황하게 생색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업의 결실을 서술하는 데 
사용된 언어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새 아틀란티스'에서 솔로몬의 전당을 
묘사하는데 사용한 바로 그 언어였는데 내가 어떻게 그걸 믿을 수 
있겠는가.
  나, 야코포 벨포, 디오탈레비, 이렇게 셋이서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밤만 거기에서 지내면 답이 마련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면 문을 닫는 시각에 박물관에 눌러앉아 여기에서 밤을 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야코포 벨보와 디오탈레비도 들어오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로서는 그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파리의 지하 수로망이 박물관의 지하 수로와 생 
드니 문 근처에서 만날지도 모르기는 했다. 그러나 내게는 일단 그 곳을 
떠났다가는 다시 들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어떻게 하든지 그 
안에 숨어 있어야 했다.
  넋 놓고 볼 때가 아니었다. 나는 냉정한 눈으로 다시 회중석 복도를 
바라보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직관이 아닌 정보였다. 문 닫을 시각이면 
경비원들이 박물관에 잔류하는 도둑이 있지 않을까 해서 박물관을 모조리 
점검할 터였다. 따라서 다른 박물관에 숨어서 그들의 눈을 피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회중석 복도에는 기계가 빼곡이 들어차 있어서 
하룻밤 숨어 있기로는 안성맞춤일 성 싶었다. 산 사람이 죽은 기계 사이에 
숨는다...기왕에 지겹한 한 놀리, 한번쯤 더 하는 것도 미상불 괜찮을 듯 
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을 주었다. 
  힘을 내어라. <지혜>같은 것은 생각지 말라. 오로지 <과학>에서 도움을 
구하라.

2.
  나는 신경의 고삐를 다잡아 상상력을 억제했다. 며칠 전처럼,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하면 될 터였다. 며칠 전에도 상대의 보조에 조금도 휘말리지 
않고 너끈하게 해내지 않았던가. 바야흐로 박물관. 극도로 약게 지극히 
명석하게 처신해야 했다.
  나는 그 때 이미 내 눈에 익은 항공기들을 올려다보았다. 복엽기의 
동체로 올라가 뢰종 도 뇌르 훈장이 탐이 나서 금방이라고 영불 해협을 
건널 듯한 자세를 취하고 밤이 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박물관 바닥에 
진열되어 있는 자동차들의 이름은 향수를 자아내기에 넉넉한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1932년 형 <히스파노 수이자>는 맵시도 있고 들어가 
있기도 좋았지만 경비원의 책상과 너무 가까이 있었다. 내가 만일에 
곱슬머리에는 나팔모자를 쓰고 가느다란 목에는 기름한 분홍 스카프를 
두른, 분홍빛 옷차림의 숙녀에게는 길이라도 비켜 주느라고 통로 한 
켠으로 점잖게 물러서는, 골프 바지와 노퍽 재킷 차림의 신사였더라면 
경비원 앞을 통과하는데 무슨 무리가 있었으랴, 1931년 형 시트로엥 C64는 
차체가 반쪽이나 잘린 채 횡단면을 보여 주고 있어서 교재로는 훌륭할 
터이나 내가 몸을 숨기기에는 도무지 적당하지 않았다. 냄비 아니면 
가마솥같이 생긴 퀴뇨의 거대한 증기 자동차고 고려의 대상으로는 
실격이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르 누보 취향의 커다란 바퀴가 달린 
벨로시피드와 외발 스케이트 막대기 같은 손잡이가 달린 드레지엔느가 
있었다. 보고 있으려니 벨로시피드는 굴뚝모자를 쓴 신사, 드레지엔느는 
불로뉴 숲을 누비는 신식 기사들 모습이 떠올랐다.
  벨로시피드 맞은 편에는 보존 상태가 썩 좋고 들어가서 숨어 있기에 
좋아 보이는 자동차들이 있었다. 1945년 형 판하트르 다나비아는 속이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데다 유선형이라서 차체가 협소했지만, 몸체가 
우아하고 내부가 규방처럼 아늑해 보이는 1909년 형 푸조는 차체가 크고 
높아서 은신처로서는 그만이었다. 푸조 안으로 들어가 가죽 의자에 몸을 
파묻으면 감쪽같을 터였다. 그러나 그 차안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바로 이 차 맞은 편 긴 의자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리에는 
가죽 각반을 차고 머리에는 하양모자를 쓴 차림으로 공손하게 그 차의 
문을 열어 주는 경비원의 모습과 털깃 코트를 어색하게 차려 입고 그 
문으로 들어서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다음으로 기어가 달린 것으로는 프랑스 최초로 만들어진 1872년 형인 
12인승 오베이상뜨를 눈여겨 보았다. 푸조가 아파트라면 오베이상뜨는 
빌딩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오베이상뜨에 오르기는 
난망이었다. 거기에 들어가 숨기는 전람회장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숨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터였다.
  다시 전시장을 가로질러 보았다. 끝이 뾰족한 뱃머리 모양의 높이가 
2미터 가량 되는 대죄에 놓인 <에클레랑 르 몽드(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었다. 대죄 안에는 초소 비슷한 공간이 있는데, 여기게 들어가 
총안 같은 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 보면 뉴욕항의 전경 그림이 보이게 되어 
있었다. 대죄는 뒤로는 발명가 그람의 거대한 석상에 가려 있고, 
왼쪽으로는 성가대석, 오른쪽으로는 회중석으로 트여 있어서 밤에는 
은신처로는 그만일 성 싶었다. 그러나 어두워지기까지는 대좌 밑으로 
들어가 봐야 밖에서도 훤하게 보일 터였고 관람객들이 돌아가면 경비원이 
틀림없이 그 대좌 속을 확인할 것이므로 은신처로는 역시 부적당했다.
  시간이 없었다. 박물관은 5시 30분에 문을 닫을 터였다. 나는 재빠르게 
눈길로 복도를 훑어 보았다. 탈 것 중에는 은신할 만한 것이 없었다. 
파도가 삼켜버린 <루시타니아> 호의 잔해인, 복도 오른편의 거대한 
기선의 기관도, 톱니바퀴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르누아르의 
어마어마하게 큰 가솔린 엔진도 숨을 데로 마땅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잿빛 창으로 들어오던 눅눅한 빛살도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괴물이 내가 
쥔 손전등 불빛에 되살아나 어둠 속에서 툭 불거져 나올 것을 생각하니 
온몸이 으시시해져 왔다. 헐떡거리는 괴물의 무겁고도 악취 풍기는 숨결, 
살점 하나 붙어 있지 않은 뼈대, 검은 윤활유를 잔뜩 묻히고도 삐걱거리는 
내장이 무서웠다. 디젤 생식기와 터빈으로 움직이는 음부, 밤이 되면 한창 
때처럼 불길과 증기를 내뿜으며 식식거릴 터인, 더할 나위 없이 무신경한 
울대를 가진 저 불결한 기계 사이에서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생식기와 음부는 밤이 되면 한창 때처럼 불길과 증기를 내뿜으며 식식거릴 
터인, 더할 나위없이 무신경한 울대를 가진 저 불결한 기계 사이에서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생식기와 음부는 밤이 되면 찌그러뜨리고, 
썰고, 흔들고, 부수고, 토막내고, 가속하고, 충돌하는 오로지 추상적인 
기능만을 구현하고 있는 자동 인형 사이에서 장수하늘소처럼 붕붕거리거나 
매미처럼 울어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재수없는  망석중이처럼 발작하고 
치고 있던 북을 뒤집어 엎고, 변덕을 부려 동작의 주기를 바꾸고, 전압을 
바꾸고, 플라이휠을 돌려 대면 어떻게 하는가? 이런 것들이, 창조의 실패를 
증명하는 증거물(하계의 지배자들이 섬기는 우상 아니면 허섭쓰레기)로 
이런 것들을 이용하는 이 세게 지배자들의 사주를 받고 나를 공격하면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벗어나야 했다. 거기에서 도망쳐 나와야 했다. 미친 짓이었다. 나는 
야코포 벨보를 미치광이로 만들고 만 바로 그 함정에 빠져 들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의심이 많던 내가...

  이틀 밤 전에 박물관으로 숨어 든 것이 잘한 것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숨어 들지 않았으면 나는 이야기의 시작은 
알았어도 끝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숨어 들지 않았으면 지금 저 아래 
골짜기의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며 홀로 이 언덕에서 이게 정말 끝인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움직이기로 했다. 나는 교회를 버리고 그람의 
조상에서 왼쪽으로 돌아 다음 전시실로 들어갔다. 철도 교통 기관에서 
전시실로 들어갔다. 철도 교통 기관 전시실이었다. 천연색 기관차 모형과 
객차 모형은 흡사 인형의 나라 마두로담 아니면 디즈니랜드에서 가져 온 
장난감 같았다. 나는 번갈아 가면서 불안과 자신감, 공포와 회의(병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 이런 정신 상태에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던가)에 마음을 
맡기는 데 어느 정도 훈련되어 있었다. 내가 교회에서 본 것들에 기가 
죽었던 것은, 야코포 벨보의 글, 꾸며서 쓴 것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그 
내용을 해독하기 위해 그토록 번다하게 잔재주를 부렸던 바로 그 글의 
마력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결국 이것은 기술 공예 박물관에 지나지 않는다. 너는, 조금 단조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정직한 박물관에 들어와 있는 제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기는 하나, 이 죽음은 무해하다. 
박물관이 어떤 것인지는 너무 잘 알지 않느냐? 탐미주의자들에게야 
모나리자는 양성 구유의 메두사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 모나리자가 여느 
구경꾼을 잡아먹을 일이 있다더냐? 기능 만능주의와 코린트 식, 품위의 
눈물겨운 절충인 기계의 조종간과 건물의 기둥머리, 증기 기관의 보일러와 
전시실의 원주, 기계의 바퀴와 건물의 삼각면은 과장 좋아하는 신고딕 풍 
신사들에게야 도깨비로 보일 테지만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이 사람을 
잡아먹는 거 봤어? 야코포 벨보는 원격 조종으로 자기가 빠져 들었던 
환각의 올무 속에서 너를 몰아넣은 데 지나지 않아. 따라서 과학자답게 
굴어야 한다. 화산학자가 엠페도클레스처럼 불에 타죽기라도 한다던가? 
프레이저 경이 발광해서 네메아 숲으로 도망쳤다던가? 너는 샘 
스페이드다. 더러운 거리를 헤집고 다니는 것, 그게 네 일이다. 네 마음을 
빼앗는 여자는 결국 죽어야 한다. 그것도 네 손에. 안녕. 에밀리. 너와 함께 
한 시간은 굉장했다. 하지만 너는 로봇에 지나지 않았다. 심장이 
없었으니까.

  수송 기관 전시실은 공교롭게도 라브와지에 실 바로 옆에 있었다. 
라브와지에 실 바로 앞은 이층으로 통하는 중앙 계단이었다.
  양 옆으로 유리 용기가 진열되어 있는 라브와지에 실 중앙은 연금술 
제단을 방불케 했다. 마쿰바 의례가 18세기 문명에 의해 세례를 받은 것 
같은 방이었다. 우연한 배치가 아니라, 상징적인 혹은 전략적인 배치였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거울, 거울 앞에 서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제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들여다보면, 
들여다보는 사람의 눈 앞의 송간 한 곳에 있는 거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여기에 있군. 그대는 역시 그대야.'
  거울 앞에서 목을 길게 빼보기도 하고, 몸을 뒤틀어 보기도 하지만 
허사다. 왜냐, 라브와지에의 거울은 오목거울이 되었든 볼록거울이 되었든 
보는 사람을 실망하게 한다. 보는 사람을 조롱한다. 조금 물러서면, 잠깐 
모습이 사라지고 만다. 이 경상 극장은 일단 거울 앞에 선 사람의 정체를 
박탈하고, 그 자신에게 대해서는 물론 그 사람과 거울 사이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버리게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거울은 마치, <그대는 
진자가 아니다. 진자 곁에 있는 것도 아니다>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이 
거울 앞에 서면, 거울을 보고 있는 사람에 대한 확신 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거울 사이에 존재하는 사물에 대한 확신도 불가능하게 된다. 
물리학은 오목거울이 사물(이 경우는 청동 용기에 든 증류기)이 반사한 
빛을 모았다가 되쏨으로써 상을 만들되 그 사물이 거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울 밖에 유령처럼 공중에 거구로 떠 있어 보이게 만드는 경위와 
이유, 조금만 옆으로 물러서도 이미지가 희미해지다가 급기야는 사라져 
버리는 경위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문득 내 모습이 거울 속에 거꾸로 보였다.
  견질 수가 없었다.
  라브와지에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던 것일까? 국립 공예원의 설계자가 
연출하고 싶어한 것은 무엇이었을가? 우리는 중세 이래로, 알하젠 이래로 
거울의 장난을 익히 알고 있었다. 굴곡이 진 거울 면이 보는 사람을 
환상의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백과전서>의 
시대로, 계몽주의 시대로, 대변혁 시대로 되돌아가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앞의 거울이 사람을 환상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이라면 여느 
거울에 비치는 것 역시 환영이다. 아침에 면도할 때마다 영원한 
왼손잡이가 되어 버리는 한 인간을 생각해 보라. 이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치기 위해 굳이 이런 방을 하나 따로 만들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아니면 이 전시실이 우리에게 전하려 하는 메시지는 따로 있는 것일까? 
말하자면 계몽주의 시대의 화학과 물리학의 발전을 자축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는 듯한 유리 용기와 수많은 기구는 눈요기감에 불과하고, 
실제의 메시지는 다른 데 있는 것이어서 우리가 따로 해독해야 것일까?
  연소 실험에서 얼굴을 보호하기 위한 청동제 방면 마스크, 실험용 유리 
용기 아래서 촛불을 들고 실험에 열중하던 점잖은 신사가 눈이 좀 부신게 
귀찮다고 시궁쥐 대가리 혹은 루주의 침략자의 추구 같은 그것을 
썼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자상도 하셔라. 라부와지에 씨! 정말 
기체의 운동 이론을 연구하고 싶었다면, 이집트 사제들이 말하는 이른바 
석상 따위의 신비를 논파하기 위해 헤론이 그노시르 시대에 만들었던 
<에폴로필레> 같은 것을 재구하는 수고는 왜 하지 않으셨소?
  괴저성 발효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1781년에 고안했다는 이 기구는 또 
무엇이오? 구린내 나는 사생아를 거느린, 타락한 데비우르고스의 산뜻한 
은유올시다. 수많은 유리관에 의해 연결된 두 개의 유리 항아리, 삼지창 
모양의 바늘 위에 올라앉은, 거품이 끓는 자궁 같은 플라스크, 이 
플라스크와 도관을 통해 뱀의 똬리 같은 진공 상태의 유리관으로 한 
방울씩 흐르는 액체... 발네움 마리아에, 수은의 승화, <신비의 결합>, 
이른바 불사약의 정제 장치던가요?
  포도주 발효를 연구하는 데 쓰인 이 장치는 또 무엇인가? 화로에서 
화로로, 이 증류기에서 저 증류기로 이어지는 유리도관의 미로, 조그만 
외알안경, 꼬마 모래시게, 검전기, 렌즈, 설형 문자골 실험용 칼, 손잡이가 
달린 주걱, 유리칼, 점토로 빚어진, 호문클루스를 구워내기 위한 
3센티미터가 될까 말까한 도가니 (극도로 미세한 무성 생물을 빚어 내기 
위한 작디작은 자궁). 해독 불가능한 문자가 잔뜩 씌어져 있는 양피지, 그 
양피지에 싸인, 시골 약종상의 하얀 약봉지 같은 봉지가 잔뜩 든 
상자(광물 견본이 들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성 바실리데스의 성수의 
조각, 헤르미스 트리스메기수투스의 포경같은 것들이 든 성보상자. 최후의 
심판을 알릴 때 심판을 알릴 때 쓰이거나 아발론의 꼬마 엘프들이 제 
5원소의 경매를 알릴 때 쓰는 의사봉 같은, 손잡이가 가죽에 싸인 갸름한 
망치도 있다. 석유의 자연 연소 시료를 분석하는데 쓰이는 보기에도 
즐거운 조그만 기구, 제 잎 클로버 꽃잎처럼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유리 
소구체, 소구체 중에는 금제 도관에 연결된 것도 있고, 청동 실린더에 
다음으로는 금제 및 유리 실린더,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실린더, 
마지막으로는 그 아래에 진자처럼 매달린 고환, 분비선, 갑상선종, 볏 같은 
것에 연결된다... 이런 것을 근대 화학이라고 한다! 이런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친 자는 이로써 무엇을 창조한 일이 없고 파괴한 일이 없어도 
단두대에 올려야 마땅하다. 라부와지에는 사실, 이런 사기 행각이 탄로나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죽음과 함께 침묵한 것이 아니던가.
  공예원의 라부와지에 길은 실제로는 하나의 고해이다. 국립 공예원은 
<이성의 시대>의 오만을 조롱하면서 잡다한 신비를 속삭이고 있다는 
뜻에서 기호로 이루어진, 박물관의 상징인 암호로 된 고해이다. 이성이 
벌써 오류라고 하던 야코포 벨보의 주장은 이성적으로 보아서 대체로 
옳다.
  서둘러야 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미터와 킬로그램 같은 도량형 
원기, 이 허위의 보증서 옆을 지났다. 아글리에는 내게 미터 단위 대신 
고대의 큐비트 단위로 재었더라면 피라미드의 비밀은 풀렸을 거라고 하지 
않던가. 언필칭 계량의 승리라고 일컬어지나 사실은 수의 마성을 
드러내는데 지나지 않은 계수기의 발명은 허브리 율법사들이 저희 땅에서 
도망쳐 유럽의 드넓은 회귀하는게 아닌가. 천문학, 시계, 로봇 따위의, 
신세기적 계시 사이를 어술렁 거리는 일은 위험 천만이었다. 나는 
합리주의의 극장 꼴을 한 은밀한 메시지의 중심을 파고 들었다. 나는 
박물관 전시실 문이 닫히고부터 한밤중까지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알게 될 터였다. 해가 서산에 기울면 거기에 있는 기계들이, 기계 그 
자체가 아닌, 저희가 상징하는 바 진면목을 드러낼 터였다. 
  나는 동력 기계와 전기 기기 전시관을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에도 숨을 곳은 마땅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상황에서만은 그랬다. 
나는 수많은 전시품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그 
많은 전시품들이 오래지 않아 저희들의 목적을 은밀히 드러낼 터이고, 
그것을 숨어서 바라보아야 할 터인데, 숨을 곳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서 문득 불안스러웠다. 나는 시계에 쫓기고 숫자의 맹공에 쫓기는 
듯이 민활하게 움직였다. 지구는 돌아 약속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서둘지 않으면 그곳에서 쫓겨 나기 십상이었다.

  전기 장치 전시장을 가로지르고 보니 유리 전시실이었다. 궁금했다. 
박물관 당사자들은 어떤 논리적인 이유에서, 수천 년 전의 페니키아 
인들도 익히 알고 있던 유리 기술 전시실을 가장 진보한 현대의 정신이 
이루어 낸 가장 값비싼 전시실 옆에다 배치했는지 궁금했다. 온 방안이 
뒤범벅이었다. 중국의 자기, 랄리크의 양성 기형적인 화병, 마욜리카 
도자기, 파양스 도자기, 무라노의 유리 제품이 놓여 있는가 하면 그 
뒤쪽으로 펼쳐진 엄청나게 큰 진열장 안에는 뱀의 습격을 받은 등신대의 
입체 사자상이 놓여 있었다. 사자상을 전시한 것은 분명히 그 사자상을 
전시한 것은 분명히 그 사자상의 재료인 유리 때문일 터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다 깊은 의도가 숨어 있는 것임에 분명했다. 나는 그 사자상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었다. 어디더라? 그렇지. 그제서야 생각났다. 그 
사자상은 데미우르고스인 얄다바오드, 소피아가 창조한 최초의 추악한 
아르콘이었다. 갈등이 지배하도록 이 세상을 창조한 장본인 데미우르고스 
얄다바오드야말로 뱀과 사자 형상을 아우르는 형상으로 눈에서는 불길이 
일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박물관은 데미우르고스가 창조한 세상이 
타락해 가는 과정을 상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아이온을 
통하여, 최초의 충만인 진자, 그 다음은 플레오마의 빛, 그리고 이 빛이 
사위고 아이온에서 아이온의 과정을 지나면서 옥도아도스가 허물어지고 
이윽고 악마가 우주의 영역을 다스리는 과정을 상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뱀과 사자가 뒤엉킨 조상은 나에게 내 입문의 
여행(그나마 길을 잘못 든)은 이미 끝났으며 조만간에 새 세상, 이상적인 
새 세상이 아니라 필연적인 새 세상을 보게 될 것임을 일러주고 있는 
셈이었다.
  오른쪽 구석에는 입초막 같은 전망경실이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내 앞으로는 넓은 유리창이 있어서 나는 흡사 기선의 조타실로 
올라가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 창을 통하여 좌우로 일렁이는 희미한 
스크린 이미지를 바라보았다. 도시의 전경이었다. 영상은 내 머리위에 있는 
스크린에서 투사되고 있어서 그 스크린에는 모든 것이 거꾸로 비치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내 머리 위에 있는 제 2의 스크린은 두 개의 
상자를 둔각으로 이어 붙인 초보적인 전망경의 접안경이었다. 두 개의 
상자 중 긴 것은 내 머리 위로 파이프처럼 솟아올라 창에 닿아 있었다. 
바로 창과 닿는 부분에 있는 일련의 광각 렌즈가 외부의 빛을 모아들이고 
있는 셈이었다. 거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지나오면서 본 것을 더듬어 본 
결과, 나는 그 전망경이 생 마르땡 후진 꼭대기의 채색 유리창에서 밖을 
내다보는 것과 똑같은 영상을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목매달린 사람이 최후로 이 세상을 보고 있듯이 나도 진자와 함께 
진동하면서 그 도시를 바라보는 셈이었다. 잿빛 영상에 눈이 익자 교회 
바로 아래에 있는 보깡소 가, 회중석과 병행하는 꽁떼 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꽁데 가는, 오른 쪽으로는 몽골삐에 가, 왼쪽으로는 뒤르고 가로 
나뉘고 있었다. 그 모퉁이에 있는 르 윈엔드 바와, 라 로똥드 바도 보였고, 
맞은편 건물의 박공에 걸린, <레 끄레아송 작송>이라는 간판도 읽을 
만했다.
  문제는 전망경이다. 나는 광학 기구 전시실에 있어야 할 전망경이 유리 
전시실에 있어야 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유리 전시실이라고 
하는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바깥의 풍경을 본다는 것은 실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어째서 그 자리가 선택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어째서 쥘 베른의 소설에나 튀어나올 법한 실증주의적 
과학의 산물이 뱀과 사자가 뒤엉킨 조상 옆에 있어야 하는가.
  어쨌든 배짱을 부려 거기에서 한 두 시간만 더 버티면 야간 근무자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나는 그 해저 아닌 해저에, 상당히 길게 느껴질 만큼 숨어 
있었다. 박물관을 나서는 마지막 관람객의 발자국 소리, 마지막 순찰자의 
발자국 소리를 들은 곳도 그 곳이었다. 조타실 같은 데 쪼그리고 앉아 
전망경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서 있어야, 순찰자에게 
발각되는 경우라도, 전시품에 정신을 빼앗긴 나머지 문이 닫히는 줄도 
모르고 대중없이 전시실 안을 돌아다닌 관람객으로 비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오래지 않아 전기가 나가면서 전시실은 어두컴컴해졌다. 그러나 
스크린에 연접해 있어서 입초막 안은 바깥만큼은 어둡지 않았다. 나는 
전망경을 바라보았다. 전망경은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가장 좋기는 서서 버티는 것이었다. 그러다 다리가 아프면 쪼그리고 
앉아서도 두어 시간은 버틸 수 있을 터였다. 관람객에게 적용되는 폐관 
시각은 직원의 업무 종료 시작과 같지 않았다. 문득 두려웠다. 청소 담당 
직원들이 마지막으로 전시실을 점검하느라고 입초막으로 올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어서 생각해 보니 박물관 개관 
시간은 정오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청소 담당직원들은 밤을 도와 전시실을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날 아침에 하기가 쉬웠다. 적어도 2층만은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으로 보였다. 2층에서는 직원들의 발자국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씩 아주 멀리서 사람들이 웅얼거리는 소리, 창문 
닫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10시에서 11시 사이, 
아니면 11시 직후에 교회로 돌아가도 되는 만큼 시간은 충분했다. 이른바 
세계의 지배자들은 자정 직전가지는 거기에 나타나지 안을 터였다.
  술집 라 로똥드에서 한 무리의 젊은 이들이 나오고 있었다. 꽁데 가를 
걷다가 몽골피에 가로 접어드는 처녀 하나가 보였다. 별로 바빠 보이는 
걸음들이 아니었다. 이 지루한 세계를 내려다 보면서 자정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전망경이 하필 여기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좀 
생각하고 있으면 안 될까... 소변이 마려웠다. 그러나 무시했다. 나는 오줌 
마려움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셈이었다.
  전망경실 안에 숨어 있자니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선복 같은 데  
숨어 먼 나라로 가는 질항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령 
뉴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는 밀항자의 심정도 
졸릴지도 모른다. 존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아니다. 그러다 제 
시간에까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최악의 사태는 불안의 엄습일 터였다. 불안이 기정 사실화 하면 비명을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전망경, 잠수함, 해저에 유폐,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심연의 흑어가 주위를 맴도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모르고 겨우 
공기가 희박해지는 것만 걱정하는 사태...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 정신 통일, 이런 시각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겨우 세탁소에 보낸 옷가지 품목을 확인해 보는 일, 사살 그 자체, 원인과 
결과에만 매달릴 것, 나는 이런 이유에서 , 저런 이류, 그리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기에 있다...
  기억, 분명하고, 또렷하고, 질서 정연한 기억. 미친 득이 날뛰던 지난 
사흘간의 기억, 지난 2년간의 기억, 야코포 벨보의 전자 두뇌를 뚫고 
들어가서 찾아낸 40년 묵은 기억.

  나는 지금, 우라 세 사람이 만들어 낸 시행착오적 혼란에 방향성을 
부여하기 위해 지난 일들을 기억해진대. (그 때도 그랬듯이) 나는 내 
마음의 한 구석으로부터 그 때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그 구석으로 
물러 앉는다. (전망경실에서 기다리면서 그랬듯이) 진자도 그러하다. 
디오탈레비는 나에게, 제 1세피라인 케테르, 곧 왕관은 비롯됨이자 한 
터음의 공이라고 헸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 터음에 <그 분>은 한 점을 
창조했는데, 이 점을 <사상>이 되고, 형상 있는 모든 것은 여기에서 
나왔다. <그 분>은 존재한 분인 동시에 존재하지 않은 분이기도 하다. 
<그 분>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고 불리지 않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이름도 없었을뿐더러 이름으로 불리고자 하는 욕망도 없었다...<그 분>은 
하늘에 박힌 것을 기호를 좇았다. <그 분>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에서, 한 
줄기 어두운 광휘가 뻗어 나왔다. 이 안개 같은 것이 퍼져 나가자 그 
중심에서 불길이 모양을 잡았다. 이 불길은 아래로 흘러 내려가 하계인 
세피로트를 비추고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이윽고 <말후트>는 곧 왕국에 
이른다.
  디오탈레비는 말했다. 저 낮아짐, 낮아짐의 세계, 자 고독한 우리의 
세계에는 이미 회귀의 약속이 전제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호흐마
3.
  이틀전, 그러니까 목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일어날까 말까 망설이며 
침대를 뭉개고 있었다. 나는 이틀 전인 화요일에 돌아와 내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디오탈레비는 여전히 병원이 있었는데 구드룬의 말투는 
비관적이었다. 사태에는 변화의 조짐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몸을 일으켜 디오탈레비를 찾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벨보는 없었다. 구드룬은 말했다. <벨보가 전화를 걸어, 집안 일로 어딜 
좀 다녀오겠다고 하더라고...> 집안이라니? 이상한 일은 벨보가 자기 워드 
프로세서(벨보는 제 워드 프로세서를 <아불라피아>라고 불렀다) 와 
프린터를 가지고 갔다는 점이었다. 구드룬은 벨보가 일을 끝마친다면서 
자기 집에다 컴퓨터를 차리고 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니, 무엇 , 
때문에 그렇게 복잡을 떨어? 사무실에서는 왜 못해? 
  문득 혼자만 남은 기분이었다. 리아와 아기는 그 다음주까지 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전날밤에는 술집 필라데에 들른 바 있지만 거기에도 아무도 
없었다. 
  전화가 잠을 깨웠다. 벨보였다.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감이 
멀었다. 
  "젠장, 어디 있는 거에요? 밀림에서 길이라도 잃은 거요?"
  "농담 말게, 까소봉, 심각한 일이라고, 여기 파리야."
  "파리라고요? 파리 국립 공예원 박물관에 가 있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닙니까?"
  "이런 빌어먹을...농담 말라니까. 술집의 공중 전화 부스야. 길게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동전이 떨어졌거든 수신자 부담으로 거세요. 나 여기에서 대기할 
테니까요."
  "문제는 동전이 아니야. 문제가 생겼어."
  그의 말은 내가 끼여들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있었다. 
  "...그 <계획> 말이야. <계획>은 사실이었어, 나는 알고 있으니까 자네는 
아무 말 말아. 놈들이 따라 붙었어."
  "놈들이라니, 누구 말이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까소봉, 이런 빌어먹을 놈, 성당 기사단 말이야, 자네는 믿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이야, 놈들은 내게 지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수를 써서 나를 
파리로 꼬인 거야. 토요일 자정에 공예원에서 나를 만나자고 한다. 토요일, 
알겠어? 성 요한절이브..."
  횡설수설이라 나로서는 그 뜻을 종잡을 수 없었다.
  "...가고 싶지 않아. 까소봉, 나는 도망치고 있는 중이야. 놈들은 날 죽일 
것 같아. 데 안젤리스에게 말해 봐야 소용없어, 경찰이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게 좋겠어."
  "나더러 어쩌라는 겁니까?"
  "나도 모르겠어, 아불라피아를 이용해서 내 플로피 디스크를 읽어 줘. 이 
달에 일어난 일들을 비롯, 그 동안의 사정을 요 며칠 동안 몽땅 거기에다 
쏟아 부어 놓았어. 자네도 옆에 없고, 이야기를 할 사람도 마땅찮고 해서 
말이야. 사흘 밤 사흘 낮을 썼네... 잘 들어. 사무실에 가서 내 책상서랍을 
열면, 열쇠 두 개가 든 봉투가 있을 거야. 열쇠 두 개 중 큰 것은 필요 
없을 거야. 시골에 있는 우리 집 열쇠니까... 하지만 작은 것은 밀라노에 
있는 내 아파트 열쇠야, 내 아파트로 가서, 내가 입력시켜 둔 걸 읽어 보고 
당신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나중에 이 문제를 놓고 나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이런 빌어먹을, 도대체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한다지..."
  "알았습니다만, 우리, 어디에서 만나지요?"
  "글세, 나는 매일 호텔을 바꾸고 있네, 이 일은 오늘 좀 해주게.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는 내 아파트에 있게, 가능하면 그리로 전화할 테니까, 
그리고 내 파일 암호는..."
  이상한 소리가 끼여들었다. 벨보의 음성은 가까워졌다가는 멀어지고는 
했다. 누군가가 벨보의 손에서 송수화기를 빼앗으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벨보 박사, 어떻게 된 겁니까?"
  "놈들이 왔네, 내 파일의 암호는..."
  총성 같은 날카로운 울림,. 송수화기가 벽이나 공중전화기의 받침대에 
부딪치는 소리 같았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소리...그 소리에 이어 송수화기가 
전화기에 제대로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벨보가 거는 소리가 아닌 
것임에 분명했다. 
 
  재빨리 샤워로 머리를 식혔다. 어떻게 되어 가는 영문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계획>이 진짜라니...웃기는 소리였다. 그 <계획>이라는 건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벨보를 해코지하는 사람들은? 장미 
십자단원들? 생 제르땡 백작? 오흐라나? 성당 기사단의 기사들? 
암살교단의 단원들? 도무지 있을 성 부르지 않은 이런 것들이 만약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도무지 일어날 성 부르지 않은 일도 일어날 수 있기는 
했다. 아무래도 벨보는 너무 깊이 들어간 것 같았다.
  벨보는 근자에 와서 지나치게 긴장해 있는 것 같았다. 로렌짜 
펠레그리니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날이 갈수록 그 <계획>이라는 이름의 
자기 작품에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 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다. 
그렇다. 작품이다... 실제로 그 <계획>은 우리의 작품이었다. 벨보의 
작품이자 나의 작품이자, 디오탈레비의 작품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놀이로 여기지 않고 여기에 강박적일 정도의 관심을 보이는 것은 
벨보뿐이었다. 그 <계확>은 더 이상 정신을 쏟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사무실로 갔다. 구드룬은, 일은 혼자 하게 생겼다는 투의 
비아냥거리는 인사로 나를 맞았다. 벨보의 책상 서랍에는 열쇠 든 봉투가 
있었다. 나는 벨보의 아파트로 달려 갔다. 

  담배 꽁초의 퀘퀘한 냄새. 재떨이에는 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주방의 설거지대에도 지저분한 접시가 잔뜩 쌓여 있었다. 쓰레기통에도 빈 
깡통이 수북했다. 서재의 서가에는 빈 위스키 병에 세 개나 놓여 있었다. 
네 번째 병에는 위스키가 손가락 두 마디쯤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일에 중독된 사람처럼 쓰러진 지경이 되지 않으면 아예 먹는 것을 
전폐하고, 쉬는 것은 고사하고 며칠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미친 듯이 
일을 하던 사람의 아파트였다.
  방은 모두 두 개였다. 어느 방이든, 구석구석에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서가 칸은 책의 무게로 휘어 있었다. 컴퓨터, 프린트, 
디스켓 상자가 놓인 책상, 서가에 가려지지 않은 빈 벽면에 걸린 몇 장의 
사진, 책상 맞은 편의 정성껏 액자에까지 끼워서 걸어 놓은 17세기의 
복제화, 알레고리인 모양이지만, 휴가 떠나기 전에 내가 맥주를 마시러 
갔을 때는 본 적이 없는 그림이었다.
  책상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유치한 글귀를 덧쓴 로렌짜 펠레그리니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언뜻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과 눈, 가장자리에 
드러나 표정이 차분하지 못했다. 공연한 심술이 동해서(아니면 
질투심이었을까) 나는 얼굴이 아래로 향하도록 사진을 뒤집어 버렸다. 
사진에 씌어진 글귀를 읽고 싶지 않았다. 서류철이 있었다. 서류철을 
펴보았지만 흥미를 끌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계산서와 출판 견적서 
나부랭이뿐. 그런데 이런 서류 속에 뜻밖에도 컴퓨터 파일의 인쇄물이 
들어 있었다. 인쇄물에 찍힌 날짜로 보아. 벨보가 워드 프로세서를 
시험하면서 찍어낸 것인 듯했다. 제목은 <아부>였다. 나는 워드 프로세서 
<아부>. 즉 아불라피아가 벨보의 사무실에 처음으로 선보이던 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벨보는 어린아이같이 좋아했고, 구드룬은 
구시렁거렸으며, 디오탈레비는 빈정거렸던 것 같다. 이불라피아는, 외부의 
중상에 대한 대응이라고 해봐야 풋내기 대학생의 낙서와 같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일련의 글에서는 만년필에서 워드 프로세서로 전향한 벨보의, 
기계에 대한 복잡한 열정만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아불라피아로 부터 
나온 인쇄물 속에는 언젠가 음산하게 웃으면서, 자기는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심각한 동기가 없어진 셈이고, 심각한 동기가 
없어지고 말았으니까 글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글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주인공이 되는 대신에 지적인 방관자가 되겠노라고 한 벨보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벨보는 나에게, 글을 쓰기는 하되 작가로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좋은 편집자들이 그렇듯이 남의 책을 다시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벨보에게, 기계는 환각제와 같은것이었다. 
그러므로 벨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 같은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흡사 낡은 피아노로 "행복한 농부"를 연주하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미친 
듯이 기계의 키보드 위를 내달을 수 있었다. 그는 자기에게 창조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서 쓰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쓰면 서도 사실은 쓰는 
것이 아니라 전자 기기의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자주 놀라고는 
했다. 말하자면 손가락 체조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글쓰기와 관련해서 
자주 그를 괴롭히던 악령을 극복한 뒤부터 벨보는 워드 프로세서와의 
장난이 50대의 중년에게 새로운 사춘기를 맞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그의 대명사가 되고도 남을 선천적인 염세주의나, 과거와 결코 
타협하지 않는 그의 무서운 고집은, 그 무기물적이고, 합목적적이고, 
순종적이고, 무도덕적이고, 반도덕적이고, 삶에 대한 고질적인 신경증을 
잊게 할만큼 인간적인 것 같으면서도 인간적이지 못한 이 기계와의 대화를 
통해 빠른 속도로 완화되어 가고 있었다. 

# 파일 명: 아부 

11월 말의, 오, 아름다운 아침!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여신이여, 나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주세요.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바야흐로 불만의 겨울입니다. 마침표, 줄 바꾸고. 
시험 중, 파라칼로, 파라칼로 시험 중. 프로그램을 제대로 이용하면 
아나그램 만드는 것도 가함. 남군의 영웅 레트 버틀러와 스칼렛이라는 
변덕쟁이 처녀 이야기를 소설로 썼으면, 이번에는 마음을 다시 먹고, 키를 
두드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아부는, 전체적으로 레트 버틀러는 안드렝이 
공으로, 스칼렛은 나스따샤로, 애틀란타는 모스끄바로 치환해 준다 
놀랍게도 "전쟁과 평화"를 썼구나.
아부, 이번에는 다른 걸 한번 해보자. 벨보는 아부에게 모든 단어에서 
<a>는 <ulla>로 치환하여 이 문장을 핀란드 어 문장 같도록 만들 것을 
명한다.
(Abu fa una casa : batto questa fasta, doordine ad Abu 야 cambiare 
ciascun <a> con <akka> e ciascun <o> con <ulla>, e ne verr fuori un 
brano quasi fin-nico.)

Abu fakka ullakka unakka cullakkasakka: bakkattullakka questakka 
frakkase, dullakka ullakkardine akkad Abu di cakkambiakkare 
ciakkascun <akka> cullakkan <akkakkakka> e ciakkascun <ullakka> 
cullakkan <ullakka>, e ne verr fuullakkari un brakkanullakka 
quakkasi  finnicullakka.

오, 이 재미. 이 새로운 변화의 현기증, 가장 플라톤적 불면증에 시달리는 
나의 플라톤적 독저 겸 작가여, 피네간의 경야여, 오 참하고 순한 
짐승이여. 이 기계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대를 도와주기는 한다. 그대가 이 기계 대신 생각해야 하므로,,,정말로 
영적인 기계. 거위 깃털로 글을 쓰려면 종이가 긁힐뿐더러 잉크를 
찍느라고 자주 쓰는 손길을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생각은 
아파오는 손가락보다도 더 빨리 달린다. 타이핑하면 글자가 서로 
달라붙기도 하고, 자간이 비좁아도 견디어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도 우리 
신경의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놈 (혹은 이년)과 같이 일하면 
손가락은 꿈을 꾸고 마음은 자판 위에서 노닐어 흡사 황금 날개를 달고 이 
세상에 태어난 듯할 터이니 마침내 이 기계와 처음으로 만나는 행복감과 
함께 지극히 이성적인 광명과 마주하게 된다.

가마안 있자. 내가 무엇을 하아고 있나... 오자 난 단어를 뽑어내고, 기계에 
명령하여 이것을 뽁사하게 하고, 다음에는 임시 파일을 만들어 이것을 
기억시키고, 이것을 지옥의 변방으로부터 스끄린으로 불러낸다. 

나는 되는 대로 위의 문장을 두드렸다. 그러나 두드린 다음에는 오자가 
많은 문단은 블록을 잡고 기계에 명령하여 이것을 복사하게 하고, 이렇게 
복사된 것에다 교정 명령을 내렸다. 그제서야 완벽한 글이 되어 화면에 
떠올랐다. 똥 속에서 순수한 글을 추출한 것이다. 초고를 지워 버릴까 
하다가 그러지 않았다. 뒤에 후회하게 될 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것을 지우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이 스크린 위에는 
<이다>와 <이어야한다>가 우연과 필연이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글귀를 스크린에서 지워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기계의 메모리에서 지워버릴 수는 없다. 그러니까 
나는 지워도 좋은 자료를 쌓아 나감으로써 이로써 내 억압의 기록을 
만들고 이로써 무엇이든 억압으로 해석하는 프로이트 학파와 눈을 
화등잔같이 뜨고 오류를 찾아 헤매는 문헌학자들로부터 직업적인 기쁨이나 
학문적 영광을 박탈할 수 있는 것이다.
기계의 메모리는 우리 머리에 든 진짜 기억보다 낫다. 그 까닭은 우리의 
진짜 기억이 그토록 힘겨운 노력을 기울여 배우는 것은 잊는 법이 아니라 
그 기억을 환기시키는 법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구약 시대에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로 도망친 유대인의 후손답게 살빛 거무튀튀한 디오탈레비는 
우람한 계단이 있고 연약한 여자를 위해 더없이 고상한 공적을 쌓은 
용사의 동상이 있고 하나같이 음산해서 언제든 허깨비가 툭툭 튀어나오고, 
이상한 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미라가 걸어다니고, 한 개의 
복도가 수백 개의 방을 하나로 연결하는 미궁 같은 궁전에 미쳐 있다. 
그는 기억속의 이미지에 자리잡고 있는 영원에다, 사상을, 꼬리표를, 
카테고리를, 우주적인 내용을, 삼단 논법을, 푸짐한 궤변을, 일련의 경구를, 
대화법의 사슬을, 연계 어법의 총원명부를, 히스테론프로테론의 춤을, 명제 
논법을, 영혼의 위계를, 춘추분의 세차를, 본초학을, 나수행자의 계보 같은 
것들을 부여한다. 오 라이문도여, 오카밀로여, 그대들은 그 대들 마음을 
환상에 투사시키는 것만으로 애증에다 고귀한 존재의 사슬을 복원시킬 수 
있었다. 우주에서 흩어져 있던 모든 것도 그대들 마음에서는 한 가닥으로 
얽혀들 수 있었으므로, 그대는 프루스트를 보고 웃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디오탈레비와 나 역시 그날 아르스 오불리비오날리스를 배우고자 
했으나, 힘이 닫지 못하여 망각의 법칙도 깨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도무지 
가능하지 않았다. 숲 속의 엄지동자처럼 덧없는 실마리를 붙잡고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서기는 쉬우나, 되찾은 시간을 읽어버리기는 어려운 것. 
그래서 엄지동자는 늘 강박 관념처럼 귀향한다. 망각에는 법칙이 없다. 
우리는 뇌일혈이나 기억 상실증 같은 자연의 법칙. 마약 중독, 알코올 
중독, 자실 같은 자기 간섭에는 무방비 상태다. 그러나 아부는 정확한 자살 
방법, 즉석에서의 기억상실증, 고통 없는 실어증에 이르는 방법을 알고 
있다. <L, 어젯밤에 너는 어디에 있었니?>

경솔한 독자들이여, 그대들은 모를 것이다. 비어 있는 반행의 공간은 내가 
쓴, 그러나 쓰지 않았으면 좋았을, 씌어지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긴 문장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키를 눌렀다. 이 숙명적이고도 불운한 행은 뿌연 안개에 
덮였다. 나는<삭제>키를 눌렀다. 오호라, 모든 것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로써 끝난 것은 아니다. 자살의 문제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을 
때 더러 발생한다. 즉 6층과 7층 사이를 떨어질 때쯤 마음이 변하는 
순간에...아, 다시 올라갔으면 좋으련만...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된다. 퍽! 
그러나 아부는 자비롭다. 아부는 여러분에게 마음을 바꾸어 먹을 권리를 
보증한다. <회복> 키를 누르면 삭제된 부분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기억하고 싶은 것은 언제든지 기억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나는 마음먹고 잊는다. 다시는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방황하지도 않으려니와, 외계의 괴물이 나를 쳐부수려 하기 
전에는 예광탄으로 외계의 우주선을 치지 않으리라.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여기에서 그대들이 쳐부수는 것은 생각이지 외계인이 아니다. 
스크린은 오와 열을 맞춘, 흰색과 초록색의, 수백만 개에 이르는 소행성 
은하계다. 그런데 이 소생성군을 만든 것은 바로 그대들이다. <피아트 
룩스(빛이 있으라!)>. 빅뱅, 7일 , 7분, 7초 ...우주는 그대들 눈 앞에서 
탄생한다. 우주는 부단히 변전한다. 시간과 공간을 긋는 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메루스 클라우시스도 여역학의 속박도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자는 거품처럼 나른하게 수면으로 떠오른다. 문자는 
무에서 와서 고분고분 무로 돌아간다. 요컨대 심령체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부드럽게 이어졌다가는 끊어지고, 끊어졌다가는 다시 이러지는 
해저의 교향악, 노란 잠수함에 든 노란 물고기처럼 자신을 먹는 달의 
끈적끈적한 춤, 손가락만 대면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 굶주린 문자를 덮쳐 
후루룩 삼키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대들이 손을 쓰지 않으면 
문자가 저 자신을 삼켜, 체셔 고양이의 블랙 홀처럼 부재로써 저 자신을 
살찌우기도 한다.
써서 안 될 것을 쓸 경우에도 이 자료는 고스란히 플로피 디스크에 
들어간다. 그대들은 여기에다 암호를 설정할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이 자료를 읽을 수 없다. 정보원은 자료를 작성하고, 이를 디스켓으로 읽어 
들인 뒤, 디스켓을 주머니에 꽂고 밖으로 나온다. 아무리 냉혹 무비한 
토르퀘마다라도 그대들이 작성한 자료를 읽어낼 수는 없다. 자료는 
그대들과 그것 사이에 존재한다. 고문을 당할 경우 그대들은 자백 받는 척 
한다. 그리고는 암호를 입력시키면서 미리 준비해 둔 비밀 키를 누른다. 
그러면 자료는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헛손질을 했어요, 이건 사곱니다. 이제 자료는 
지워지고 말았어요. 그 자료의 자용이 무엇이냐? 잊어버렸습니다요. 별 거 
아니었습니다요. 내게도 여기에 남길 만한 자료는 없다. 하지만 나중에 
남겨 놓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4.
  인쇄되어 있는 파일은 이것뿐이었다. 아무래도 디스켓을 컴퓨터에 걸어 
보아야 할 모양이었다. 디스켓은 번호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물론 
번호순으로 걸어 볼 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벨보가 말하던 암호가 
마음에 걸렸다. 벨보는 아볼라피아의 암호에 강한 집착을 보이던 
사람이었다. 
  디스켓을 거는 순간 화면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암호를 아십니까?"
  명령문은 아니었다. 벨보는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다.
  기계는 나에게 자원 봉사할 뜻이 없는 것임에 분명했다. 암호를 넣어야 
하는 것이었다. 암호가 없으면 기계는 내게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기계는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 암, 당신이 알고 싶어하는 것? 다 내 뱃속에 있고말고. 와서 파보셔. 
파보시라니까. 두더지같이... 하지만 아무리 파봐도 헛일일걸..."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오냐, 어디 한 번 해보자. 디오탈레비의 
순열과 조합 놀음에는 놀아나지 않겠다. 나는 술판의 샘 스페이드니까... 
야코포 벨보의 말마따나, 매를 찾는 거다...

  아불라피아에 들어갈 암호는 숫자가 되었든 문자가 되었든 7개 내외가 
될 터였다. 알파벳으로 짤 수 있는 7개의 문자무리는 몇 개가 
될까...<카다브라cadabara>같은 문자 무리도 없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같은 
문자가 중복해서 들어가는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나는 이 경우의 수를 
구하는 공식을 알고 있었다. 약 60억 가지에 이르는 경우의 수가 나올 
터였다. 초당 백만 단위로 60만 가지를 처리할 수 있는 대형 컴퓨터가 
있어도 소용없다. 아불라피아에 넣을 때는 한번에 하나씩 넣는 수밖에 
없다. 아불라피아에 하나의 암호를 넣고 그것이 그 암호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데는 10초가 걸린다. 그렇다면 60억 개의 암호를 모두 확인하는 
데는 6백억 초가 걸린다. 1년은 3천 백만 초가. 3천만 초로 어림잡고 
계산해 본다. 60억 개의 암호를 모두 확인하자면, 맙소사 2천년이 걸린다.
  귀납적 추리를 해볼 셈이었다.
  자, 벨보는 무슨 말을 골라 암호를 삼았을 것인가. 기계를 들여놓을 
때부터, 말하자면 처음부터 암호를 쓴 것일까? 아니면 그 뒤에 디스켓이 
위험하다는 것, 자기의 놀이가 더 이상 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 암호를 쓴 것일까? 전자의 경우와 후자의 경우는 달라도 엄청나게 
달랐다.
  나는 후자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벨보는 그즈음 들어 부쩍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한(그는 전화를 통해 내게 그렇게 말한 바도 있다) 
그 <계획>이라는 것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그렇다면 암호는 우리 둘 다 
아는 이야기와 관계가 있는 말일 터였다.
  그러나 아닐 수도 있었다. 그 <구비 전승과 관련된 말이라면<놈들>도 
알 터이기 때문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에 놈들이 이 
아파트로 쳐들어와 디스켓을 복사해 가지고 지금 이 시각 어이에선가 
순열과 조합을 짜맞추고 있다면? 카르파티아 산맥 어딘가에 있는 고성에서 
대형 컴퓨터를 돌리고 있다면?
  그러나 그럴 리는 없기가 쉬웠다. 그들은 컴퓨터를 쓸만한 사람들일 
리가 없었다. 그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토라'는 디스켓으로 여기고 
로타리콘, 게마트리아, 테무라는 컴퓨터로 삼고 있기가 쉬웠다. 그렇다면 
그들이 암호를 알아내는 데 걸릴 세월은 '세페르 예시라'가 씌어지고 나서 
흐른 세월보다 더 길 터였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놈들>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 역시 카발라적인 방법을 썼을 
것이고, 벨보가 <놈들>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다면 벨보 역시 그들의 
방법을 좇았을 것이었다. 
  에멜무지로 10세피로트, 즉 케테르 , 호흐마, 비나, 헤세드, 게부라. 
티페렛, 네짜, 호드, 에소드, 말후트를 차례로 입력시켜 보았다. 물론 되지 
않았다. 10세피로트는 누구든 벨보의 컴퓨터 앞에 앉는다면 생각해 볼 
법한 것일 터였다.
  벨보가 쓴 암호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명백한 단어, 이 문제와 관련해서 
쉽사리 머리에 떠오른 단어일 터였다. 그 까닭은 벨보처럼 지난 며칠 
전부터 강박적일 정도로 그 일에 매달린 사람이라면 다른 것은 생각해 볼 
나위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벨보 같은 사람이 미친 듯이 <게획>같은 
데 사로잡혀 있는 와중에 <링컨>이라든지 <몸바사> 같은 암호를 쓰는 
일은 전혀 있을 성 부루지 않았다. 암호는 그 <계획>자체와 어떤 관련이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어떤 단어를 썼을 것이냐...
  나는 벨보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다. 그는 글을 쓸 때면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계속해서 며칠씩이나 마셔대고는 했다.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단 하나뿐인 깨끗한 술잔을 가졌다. 마지막 한 잔 남은 위스키를 
따르고는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아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두 발을 책상 
모서리에다 대었다. 술을 마시면서 (샘 스페이드가 그랬던가, 필립 
말로우가 그랬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위스키를 말끔히 비운 뒤에는 눈을 감았다가 한참 뒤에야 다시 떴다. 
17세기의 판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장미 십자단의 알레고리인 판화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시대 프라테르니타들이 좇았을 법한 
암호메시지가 풍부하게 깃들린 판화였다. 르제상스 시대의 성상 표현 
기법에 어울리는 돔이 있고 그 위로 첨탑이 선, 장미 십자단의 성전을 
그리고 있음에 분명했다. 교회는 오마르 회교사원의 양식을 토대로 재건된, 
기독교적, 유대교적 양식을 그대로 좇은 예루살렘 성전과 흡사했다.
  첨탑 주위의 풍경은 서로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궁전이 있고, 
앞마당에 개구리가 있고, 등집을 진 노새가 있고, 기사로부터 공물을 받는 
왕이 있어서, 등장 인물과 동물이 서로 싸개가 맞지 않는 숨은 그림찾기 
판의 그림과 비슷했다. 판화 왼쪽 아랫부분에는 첨탑 안쪽에 매달린 
우스꽝스러운 도르래를 타고 우물에서 나오는 신사가 있었다. 도르래의 
밧줄은 동그란 창 밖으로 나와 있었다. 판화 오른쪽에는 커다란 닻을 
지팡이처럼 들고 무릎을 꿇은 순례자가 있고, 오른쪽에는 커다란 닻을 
지팡이처럼 들고 무릎을 꿇은 순례자가 있고, 오른쪽 가장자리, 그러니까 
첨탑 맞은편에는 벼랑이 있었으며, 벼랑에서는 칼 든 사람이 하나 
떨어지고 있었다. 별아 뒤쪽에는 아라랏 산, 산 꼭대기에는 방주가 얹혀 
있었다. 판화 위쪽의 양 모서리는, 별빛을 받고 있는 구름이었다. 별빛은 
뱀과 뒤엉켜 있는 발가벗은 사람과 백조를 비추고 있었다. 위쪽 
중앙으로는 성광이 보였다. 성광 아래엔 <ORIENS>라는 단어와 몇 개의 
히브리 문자가 그려져 있었다. 히브리 문자에서는 하느님의 손이 불쑥 
튀어나와 첨탑으로 이어지는 줄을 붙잡고 있었다.
  첨탑은 바퀴가 달린 가동식이었다. 사각기둥 꼴인 탑의 중심부에는 첨탑 
위로는 네 개의 감시탑이 딸린 통랑이 보였다. 각각의 감시탑 위에는 한 
손에는 종려나무 잎, 다른 한 손에는 히브리 문자가 새겨진 방패를 든 
병사들이 있었다. 이들 중 셋의 모습은 보였으나 나머지 하나는 팔각 
기둥꼴 돔 뒤에 있어서 나로서는 그 모습을 상상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팔각기둥꼴 돔 위에는 한쌍의 날개가 달린, 역시 팔각기둥 꼴인 등잔이 
있었다. 날개 달린 등잔 위로는 조그만 지붕 창이 하나 보였는데 그 지붕 
창 위에 또 하나의 지붕 창이 있었다. 맨 꼭대기 지붕 창틀 사이로는 종이 
보였다. 꼭대기에 있는 네 개의 아치 모양의 들보로 받쳐진 돔은 하느님 
손에 잡힌 줄에 묶여 있었다. 돔 양 옆으로는 <Fa/ma>라는 글씨, 그 
위에는 <콜레기움 프라테르니타티스>라고 씌여진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었다.
  기묘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첨탑 왼쪽에 뚫린 둥근 창에서는 
그림 전체의 비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굵은 팔 하나가 
튀어나와 있었다. 팔 끝에 달린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손의 임자는 
첨탑에 갇힌 날개 달린 천사인 듯 했다. 오른쪽의, 비슷한 창 밖으로 난 
거대한 나팔이 튀어나와 있었다. 나팔은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첨탑에 뚫린 숫자가 나의 흥미를 끌었다. 우선은 장이 너무 많은 것이 
이상했고, 돔에 뚫려 있는 것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견주어 그 
아래쪽에 뚫린 것은 규칙 바르지 못한 것이 이상했다, 화면에서 첨탑은 
반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원근법에 충실한 좌우 대칭 화면인 것을 
미루어, 첨탑 뒤쪽에도 같은 숫자의 창이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종탑의 돔에는 네 개의 아치꼴 보가 있고, 아래쪽 돔에는 여덟 
개의 창, 감시탑과 동면 및 서면에는 분이 네 개씩, 북면 및 남면에는 열 
네 개가 있는 셈이었다. 나는 그 수를 모두 더해 보았다.
  서른 여섯 개였다. 그 <36>은 근 10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혀 온 수였다. 
<120>을 <36>으로 나눈 값을 일곱자리까지 나타내면 <3.333333>이 된다. 
지나치게 완벽한 숫자였다. 시도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해보았다. 실패였다.
  문득 여기에다 <2>를 곱하면 <666>, 성서에 등장하는 짐승의 숫자였다. 
그러나 이 역시 억측이었다.
  그 때였다. 판화 중앙에 있는 하느님 보좌의 성광이 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씌어진 히브리 문자는 아주 굵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보일 
정도였다. 벨보의 아불라피아는 히브리어를 찍어낼 수 없다는데 생각이 
미쳐, 다가서서 찬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는 
것도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요드, 헤, 바브, 헤...테트라그라마톤, 하느님의 
이름인 야훼였다.

5.
  하느님의 이름이라... 옳거니! 문득, 아불라피아가 사무실로 들어오던 
날벨보와 디오탈레비 사이를 오가던 대화가 생각났다. 
  그날 디오탈레비는 자기 방문 앞에 있었다. 지극히 너그러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디오탈레비에게는, 뭔가를 참고 있을 때는 굉장히 
너그러운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벨보는 
오불관언이었다. 벨보 역시 그런 디오탈레비를 참아 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자네에게는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 같은데... 읽지도 않는 그 
원고 , 설마 다시 쓰려는 것은 아닐 테지?"
  "파일을 만들고, 편집 계획을 잡고, 원고 목록을 최신식으로 짜려고 들여 
놓은 거라네. 만일에 내가 이 물건으로 책을 쓴다면, 그건 남의 책이 
아니고 내 책이 될거라."
 "자네는 글 같은 건 쓰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하지 않았나?"
  " 내 원고로 세상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한 것은 사실이네. 
나라는 인간에게 세상의 주인공 노릇할 세월은 오지 않을 거라는 결론이 
났으니까."
 "자네는 지적인 방관자에 머물기로 결심한 것으로 아는데... 그 결심과 이 
기계는 무슨 관계가 있나?"
 "지적인 방관자가 음악회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날 들은 교향곡 
2악장의 주제를 콧노래로 부른다고 하세. 그 사람이 카네기 홀에서 
지휘봉을 잡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겠나?"
  "하면 다시는 안 쓰겠다는 결심을 확인하는 뜻에서 문학을 콧노래로 한 
번 해보고 싶은 것이로군?"
  "정직하게 말하면..."
  "그러셔..."
  디오탈레비나 벨보나 다 피에드몬트 사람이다. 이들은 훌륭한 
피에드몬트 사람에게는 남의 이야기를 정중하게 들어 주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가령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면,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보면서 
그러셔, 하는데 그 말투가 어찌나 진지한지 웬만한 상대는 금방 항복해 
버리고 만다. 이들은 나를 교양 없는 뜨네기라고 부른다. 나는 
자기네들처럼 섬세하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따금씩은 싫은 소리를 해주기도 한다.
  "교양 없는 뜨네기라고요? 우리 집안이 발 다오스타 토박이가 
아니었다면 나도 밀라노에서 태어날 수 있었다고요."
  그러면 두 사람은 이렇게 반박한다.
  "실없는 소리 작작하게. 아무나 피에드몬트 사람이 되는 줄 아나? 회의 
할 줄 알아야 피에드몬트 사람이지..."
  "나도 꽤나 회의적인 사람이라고요..."
  "아니야. 자네는 믿지 못할 뿐이야. 의심꾸러기일 분이야. 회의할 줄 
아는 사람과 의심꾸러기는 달라도 많이 다르지..."
  나는 디오탈레비가 아불라피아에 회의적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는 
워드 프로세서가 철자의 순서를 바꿀 줄 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텍스트로 쓰이는 말을 엉뚱한 것으로 바꿈으로써 그 진의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벨보는 이런 식의 
설명을 시도하고는 했다.
  "순열의 장난이라는 것이네. 테무라? 그걸 <테쿠라>라고 하지? 신심 
좋은 율법학자를 <광휘의 문>으로 인도하는 것을?
  디오탈레비가 그 말을 받았다.
  "이것 봐. 자네 그래 가지고는 뭘 알기 틀렸어. 토라가, 우리 눈엔 
토라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시어 열턴사에게 내리신 영원한 토라 문자의 
가능한 순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옳아. 수세기 동안 우리는 
이 책에 나오는 문자를 재배치해 왔는데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원래의 
토라로 다시 돌아갈 날이 오게 되는 것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발견이 
아니라 탐구야. 사람으로 하여금 기도와 말씀의 바퀴를 돌림으로써 진리에 
조금씩 다가가게 하는 것은 신심이야. 만일에 이 기계가 자네에게 
즉석에서 진리를 가르쳐 준다면 자네는 그 진리를 인지하지 못해. 
진리라고 하는 것은 오랜 찾아 헤매기를 통한 자기 정화의 과정을 거친 
사람의 가슴에만 인지되는 것이야. 하물며 사무실에서 그런 찾아 헤매기의 
자시 정화 과정이 이루어질 턱은 없지, 천만에,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집단 
수용소의 곳간 같은 데서 나날이 묵상해야 하는 것이야. 자네는 먼저, 곳간 
같은 데서 두 손을 엉덩이에 딱 붙여 성서 든 손과 책장 넘기는 손의 
간격을 최대한 죽이는 방법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 되네. 손가락에 침을 
묻힐 때도 그래.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 가되, 수직으로 가져가야 하네. 
무교병 먹을 때 부스러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손으로 떡을 집어 입까지 
수직으로 가져 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성서의 말씀도 
무교병을 씹듯이 천천히 씹어야 하네. 삼키기 전에, 삼키고 삭여서 자네 
것을 만들기 전에 먼저 이 말씀을 자네 혀끝에서 녹아 나게 해야 하네.이 
말씀이 자네의 옷자락에 묻지 않도록 조심 또한 다해야 하네. 한 자의 
말씀이라도 옷자락에 묻어 버리면 자네와 저 높은 세계를 잇게 될 실은 
끊어지고 마는 것이야. 바로 이 실을 마련하느라고 아브라함 아불라피아는 
평생을 썼고, 자네의 그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섯 가지 길을 통하여 
하느님을 찾으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친 것이야. 
  아브라함 아불라피아의 "호흐마스 하-제룹"은 문자 결합에 관한 한 
지혜의 서이자 정신 정화의 과학적 결산이라네, 소용돌이 꼴로 영원히 
윤회, 변전하는 문자 무리... 이 신비주의적인 논리의 세계는 그대로 축복의 
세계이자 사상의 음악이야. 하지만 조심해서, 아주 천천히 여기에 접근해야 
해. 까딱 잘못하면 자네 기계가 자네에게 안기는 것은 접신의 황홀이 
아니라 망상의 환각일 수 있으니까. 아불라피아의 제자들 대다수는 
하느님의 이름을 묵상하는 일과, 이적 베푸는 일 사이로 난 길을 아주 
반듯하게 걸을 수가 없었어. 말하자면 하느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던 
거야. 하느님 이름을 저희든 몸에 지니는 부적으로 삼는데 모든 사물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도구로 썼던 것이야. 각각의 문자가 그 문자로 
이루어진 사물에 딸려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자네 역시 그것도 모르면서 
이 기계를 다루려고 하지만). 그 문자의 힘이 그 문자로 드러나는 사물의 
전후좌우에 바로 그 자리에 혹은 그 성격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지도 모른 채 제멋대로 자음의 위치를 바꾸고 있었던 것이네. 하지만 
문자는 잘못 다루는 사름의 형상을 일그러뜨려 아주 괴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네. 물리적으로는 평생, 정신적으로는 영원히...
  벨보가 디오탈레비의 말허리를 잘랐다.
  "이것 보게. 그런다고 내가 기죽을 사람인가? 나는 아불라피아를 , 이 
기계를 아불라피아라고 부르기로 했네만, 아불라피아를 부리네, 선현들이 
골렘을 부렸듯이 나는 이 아불라피아를 부리네, 골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불라피아는 조심스럽고, 고분고분하고, 아주 점잖다네, 그런데 문제는 
하느님의 이름을 구성할 수 있는 문자의 경우의 수였지? 이 기계의 베이직 
프로그램에는 제 개의 문자로 가능한 시퀀스를 모두 뽑아 내는 작지만 
예쁜 프로그램이 장착되어 있다네. <YHVH>를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 
같지 않나? 자, 그럼 한 번 실행시켜 볼까나."
  벨보는 디오탈레비에게 프로그램을 보여 주었다. 디오탈레비도 명령어를 
내려다 보면서 아닌게 아니라 카발라 같군, 했다.

  "자네가 직접 한번 입력시켜 보게. 기계가 요구하는 대로 Y, H, V, H를 
차례로 입력시키고 나서 <실행>키를 때리는 걸세만 실망할걸,. 이 네 
문자로 가능한 경우의 수는 스물 네 개 밖에 안 될 테니까."
  "맙소사! 하느님의 이름이 겨우 스물 네 개야? 우리 유대의 현자들이 이 
정도 계산도 못 한줄 아는 모양인데...'세페르 예시라' 제 4장 16절을 어디 
한 번 보세. 그 분들에게는 컴퓨터도 없었는데도 이런 구절이 나와.
  "두 개의 초석으로는 두 채의 집을 짓는다. 세 개의 초석으로는 여섯 
채의 집을 짓는다. 네 개의 초석으로는 스물 네 채의 집을 짓는다. 다섯 
개의 초석으로는 1백 20채의 집을 짓는다. 여섯 개의 초석으로는 7백 
20개의 집을 짓는다. 일곱 개의 초석으로는 5천 40 채의 집을 짓는다. 어디 
이것뿐이겠느냐? 사람이란 무릇 입이 말할 수 없고 귀가 들을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요새 말로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아? 인자 분석이라고 한다. 
유대의 구비 전승은 사람들에게 이 이상의 계산은 금하고 있는데, 자네 그 
까닭을 아나? 하느님의 이름이 여덟자로 되어 있다면 변환 가능한 경우의 
수는 40,320가지, 열 자로 되어 있으면 변환 가능한 경우의 수는 무려 
3,628,800...  자네 이름, 그 이름과 성만으로 이루어 지는 수는 자그마치 
4백만이나 된다. 미국인들처럼 미들 네임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그 때의 경우의 수는 4억이 넘어. 만일에 하느님의 이름이 스물 일곱자 
(히브리 알파벳에는 모음이 없기는 하지만 스물 두 개의 자음과 다섯 개의 
변형자를 더하면)로 되어 있다면 이로써 짤 수 있는 이름의 경우의 수는 
스물 아홉자리나 되는 셈이네. 여기에다 반복되는 음절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왜냐, 하느님의 이름이라고 해서 알렙이 스물 일곱 
번이나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이 경우에는 인자 분석이 
통하지 않아. 반복이 가능하다면 그 경우의 수는 무려 27억의 27누승, 즉 
4440억의 10억 배의 10억 배의 10억 배인 셈이야. 결국 4곱하기 10의 
39승이 된다 그 말이야.
  "자네 나 겁주려고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데... 자네의 그  '세페르 
예시라'라는거 나도 읽었네. 여기에 나오는 기본적인 글자는 모두 스물 두 
개야. 하느님은 바로 이것으로써 만물을 창조했네."
  "하찮은 걸 미주알고주알 따지지 말자고. 이 거대수의 세계에서 스물 
둘이니 스물 일곱이니 하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아. 자네는 27의 27누승이 
아니라 22의 22주승이라고 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그 수는 
자그마치 3400억의 10억 배의 10억 배에 이르네. 우리 인간의 머리로 
헤아릴 때는 그게 그거야. 하나, 둘, 셋, 넷, 이런 식으로 1초에 하나씩 
세어 나갈 경우, 10억을 세는 데만도 32년이 걸려, 뿐인가, 하느님의 
이름은 이보다 훨씬 복잡해. 카발라라고 하는 것은 '세페르 예시라'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뿐만 아니라 토라는 진짜 순열이 스물일곱 자로 
이루어졌다고 볼만한 근거는 얼마든지 있어. 어미에 쓰이는 다섯 개의 
문자도 때로는 어미 이외의 위치에도 들어가는 수가 얼마든지 있으니까 
스물 두 자라고 볼 수도 있기는 하지.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야. 가령 
'이사야' 9장 2절을 보면, 우연의 일치겠지만 <곱한다>는 뜻을 지닌 
<레마르베>즉, <LEMARBAH>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 쓰인 
<멤M>은 단어의 한가운데 있어도 실은 어미에만 쓰이는 <멤>이라네..."
  "그건 왜 그런가?"
  "모든 글자는 다 숫자에 대응한다. 평상음 <멤>은 40, 어미 <멤>은 
600이다. 이 경우, 순열 조합을 다루는 테무라로는 안 돼. 게마트리아. 
말하자면 글자와 숫자의 관계를 규명하는 방법이 씌어져야 한다. 그 
말이야. 어미 <멤>이 들어 있는 단어 <레바르베>는 따라서 277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837을 나타내는 것이지. 937에 대응하는 말은, 
<ThThZL>.곧 <타트잘>에 해당되네. <무한히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지. 
자, 이제 자네도 왜 우리가 스물일곱 자를 따로따로 검토해 봐야 하는지 
그 까닭을 알겠지? 하나하나의 글자는 소리값 구실만 하는게 아니라 
수값도 하기 때문이네. 나도 계산 이야기를 한마디 해야겠군. 우리가 
계산해야 하는 것은 자그마치 40억의 10억 배의 10억배의 10억배 분의 1에 
해당하는 확률이야. 이것을 계산하자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기계를 
사용한다고 치고... 자네의 그 웃기는 꼬마 계산기를 말하는 게 아니야. 
초당 하나씩의 순열을 점검할 경우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70억 곱하기 
10억 곱하기 10억 곱하기 10억 곱하기 10억 시간. 혹은, 14조 곱하기 10억 
곱하기 10억 년, 1천 4백억 곱하기 10억 곱하기 10억 세기...가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너무 기죽을 것은 없어. 자네에게 초당 백만 개의 
순열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게. 전자 기기로 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게. 그러면 14조 곱하기 백 억 세기면 충분할 테니까.
  하느님의 이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모르는 그 이름은 토라 전문 
만큼이나 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순열을 모조리 계산해 낼 기계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겠나? 토라 자체가 벌서 반복되는 문자를 무수히 거느린 
것이니까. 테쿠라는 우리에게, 토라에게 나오는 하나하나의 글자를 바꾸어 
보기는 하되, 우리가 가진 스물 일곱 자모 자체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네. 왜? 하나한의 자모는 그게 어떤 쪽 어떤 줄에 있든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문자이거든. 무슨 말이냐 하면 <YHVH>라는 이름에는 
<헤H>가 두 차례나 들어가 있지만 이걸 같은 <헤>로 보지 말고 각기 
다른 <헤>로 보라는 것이야. 이제 토라 전문에 들어있는 모든 글자의 
다르게 배치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계산하려면 이 세상의 제로라는 
제로는 다 끌어와도 안 되는 이유를 알겠나? 하고 싶다면 한 번 해봐. 
하지만 그런 것을 계산할 수 있는 기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자네의 그 실리콘 밸리에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 말이야. 율법학자들은 수세기 동안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왔지만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 같지도 않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카발라를, <구비전승>을 일컬어 거룩하다고 하는 것이야.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순열과 조합의 기진 하면 그 계산의 결과는 
미궁에 빠질 것이고, 계산의 결과가 미궁에 빠지면 우주는 그 순행을 끝낼 
것이고, 우주가 순행을 끝내는 바로 그 순간에 다천사의 영광은 우리를 
휘황찬란하게 감싸게 될 것이야.
  "아멘"
  야코보 벨보가 중얼거렸다.
  디오탈레비는 벨보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갔었는데, 나는 그 때의 일에 
유념할 필요가 있었다. 업무가 끝난 뒤에도 사무실에 남아 컴퓨터 앞에서 
디오탈레비의 계산 결과를 검산하는 벨보를 본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벨보는 노란 양피지에다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제로가 발전되기 이전인 
노아의 홍수 시대의 수리 계산과, 아불라피아에 의한 계산이 얼마나 
다른지 디오탈레비에게 보여 주고 깊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불라피아는 
누승 지수로밖에는 나타내지 못했다. 따라서 벨보는 화면에 그려진 끝없는 
제로의 행렬을 보야 줌으로써, 순열 조합의 우주, 가능한 모든 세계가 
폭발하는 창백한 시각적 이미테이션을 보여 줌으로써 디오탈레비의 기를 
꺾을 수는 없었다.

  벨보가 컴퓨터 앞에서 고심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장미 십자단의 판화를 바라보고 있을 때는 아무래도 벨보는 암호를 
고르면서 하느님의 이름은 쓰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에 
벨보가 36이라든지 120이라든지 하는 숫자에 집착하고 있었다면 이런 숫자 
역시 암호가 될 수 있기는 했다. 그러나 문자에 관한 한, <네 가의 
초석으로는 스물 네 채의 집 밖에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벨보가 네 개의 히브리 문자를 조합하여 암호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러나 두 개의 모음이 든 이탈리아 식 철자를 사용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었다. 여섯 글자, 즉 <야흐베흐Iahbeh>라면 720개의 순열을 
만들 수 있었을 터였다. 글자가 반복해서 쓰인 것은 마음을 쓰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디오탈레비의 말마따나 같은 <헤H>라도 쓰인 곳이 
다르면 각각 다른 글자일 터이기 때문이었다. 벨보는 720개의 순열 중에서 
36번째 순열, 혹은 120번째 순열을 암호로 삼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내가 벨보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11시였는데 이것저것 궁리하다 
보니 1시였다. 나는 여섯 글자의 아나그램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네 글자의 아나그램에 썼던 프로그램은 손질하기로 했다.
  시원한 바람을 좀 쏘이고 싶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 먹을 것과 위스키 
한 병을 샀다. 
  다시 벨보의 아파트로 돌아온 나는 샌드위치는 구석으로 밀어 놓고 
위스키를 마시면서 컴퓨터에다 베이직 프로그램을 디스켓을 물리고 일을 
시작했다. 몇 차례 실수하고, 이 실수를 바로 잡는 데 반시간이 족히 
걸렸다. 두 시 반에는 프로그램이 먹히면서 720개에 이르는 하느님의 
이름이 화면에 나타났다.

  프린터에 인쇄 용지를 뜯어낼 겨를이 없었다. 나는 용지를 당겨 토라 
두루마리를 읽듯이 읽어 보았다. 맨 먼저 서른 여섯 번째 이름을 
읽어보았다. 조금 뒤에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손가락으로 120번째 
이름을 짚어 보았다. 역시 이거다 싶은 것은 아니었다.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이미 야코포 벨보의 입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벨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나의 확신부터가 오류, 오류치고도 터무니없는 사소한 오류일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생각에 접근해 가고 있는 셈이 아닌가? 
혹시 벨보는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거꾸로 센 것은 아니었을까?
  까소봉, 이런 머저리 같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거꾸로 센 것이 
분명했다. 거꾸로 세었다는 것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세었다는 뜻이다. 
벨보는 하느님의 이름을 컴퓨터에 입력할 때 라틴어 자모로 바꾸어서 
모음과 함께 입력한 것임에 분명했다. 따라서 원말이 히브러 어라고 해도 
라틴 어 식으로 말하자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LAHVEH>가 아니라 <HEVHAL>가 될 터였다. 그렇다면 순열도 
바뀌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거꾸로 세어 보았다.
  역시 소득이 없었다. 
  되는 것이 없었다. 
  겉모양만 근사했지 실은 아무 소용에도 닿지 않은 가정에 매달려 있었던 
셈이었다. 하기야 우수한 과학자들에게도 그런 오류에 빠지는 일이 더러 
있다지 않던가.
  아니, 우수한 과학자들을 들먹거릴 것도 없다. 사람이면 누구나 그런 
오류를 범하는 법이다. 한 달 전에만 하더라도 우리는 주인공이 컴퓨터로 
하느님의 진짜 이름을 추적하는 세 권의 신간 소설, 자그마치 세 권이나 
되는 신간 소설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벨보는 그 소설의 
주인공들보다 훨씬 독창적일 수도 있었다. 암호를 고를 때만 해도 그렇다. 
암호를 고를 때 사람들은 기억하기 쉬운 것, 생각만 해도 자동적으로 터억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고른다. <IHVHEA>같은 것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그러나 벨보라면 이것을 암호로 삼는데 맍고하지 않고 노타리콘을 
테무라에게 적용시키고 이로써 기억하기 좋도록 두운시 같은 것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있었다. 가령, 이멜다(I)는 일찍이(H) 변론하였으니(V) 그것은 
바로 히람(H)의 사악한(E) 암살 행위(A)였다 ... 하는 식으로.
  그러나 벨보가 디오탈레비의 전유물인 카발라 용어에 집착햇을 가능성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벨보는 당시 그 <계획>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가령 장미 십자단, 시나르키가, 호쿤쿨루스, 진자, 탑, 
드루이드교, 엔노이라 같은 개념을 온통 이 <계획>을 설명하는 데다 
버무려 넣고 있었다.
  인노이아, 나는 로렌짜 펠레그리니를 생각했다. 손을 내밀어 벨보가 
편집한 로렌짜의 사진을 집어 들고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문득 
피에드몬트에서 어느 날 밤에 있었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사진에 
씌여 있는 그루기를 읽어 보았다.
  <나는 처음이자 끝이요, 귀한 자이자 천한 자이며, 성인이자 갈보로다. 
소피아.>
  리카르도의 파티가 끝나고 로렌짜 펠레그리니가 썼던 모양이었다. 
소피아 SOPHIA. 여섯글자...왜 이 여섯글자가 사진에 휘갈겨져 있는 
것일까? 나는 간단한 것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가, 자 
생각해 보자. 벨보는 로렌짜를 사랑한다. 왜? 로렌짜가 너무나도 
로렌자답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로렌짜가 바로 소피아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렇다면 소피아가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어쩌면 로렌짜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벨보 역시 매우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문득 디오탈레비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제 2 세피라에서 어둠에 휩싸여 있던 알렙(A)은 광휘의 알렙이 된다. 
바로 그 암흑의 일점에서 토라의 말씀이 쏟아져 나온다. 자음은 육신이고 
모음은 숨결이다. 이 자음과 모음이 찬미의 노래를 반주한다. 찬미가 다음 
찬미로 이어지면 자음과 모음에도 다라 흐르고 바로 여기에서 <호흐마>가 
용솟음친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창조의 비밀과 함께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 그것이 호흐마이다. 호흐마는 거기에서 분화되어 나오는 모든 창조의 
질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다면 수수께끼의 파일을 암장하고 있는 아불라피아는 무엇인가? 
벨보가 아는 것. 혹은 안다고 생각하던 것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상자 
아닌가. 혹은 안다고 생각하던 것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상자 아닌가. 
벨보의 소피아가 아닌가. 그렇다면 벨보는 소피아라는 암호명을 통해서 
그가 사랑하던 유일한 존재인 아불라피아로 들어갔던 것일까? 그러나 
아불라피아를 사랑하면서도 벨보는 로렌짜를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자면 벨보에게는 아불라피아를 소유하는데 필요한 암호 뿐만 아니라 
로렌짜를 사랑하는데 필요한 암호. 아불라피아의 심장을 뚫고 들어가는 데 
필요한 암호뿐만 아니라 로렌짜의 가슴을 열고 들어가는데 필요한 암호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불라피아가 남들에게 접근이 허용되지 않듯이 
로렌짜도 벨보에게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벨보는 
아불라피아로 들어가, 아불라피아의 본질을 알아내고, 아불라피아를 
정복하듯이, 로렌짜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로렌짜의 본질을 알아내고 
마침내 로렌짜를 정복하는 희망에 사로 잡혀 있었음에 분명했다.
  나는 암호에 접근한 것 같았다. 암호에 대해서 내가 마련한 설명은 그 
<계획>과 같았다. 그 <계획>이라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희망사항을 
현실로 바꾸어 내는 것이 아니던가.
  술 취한 태 키보드 앞에 앉아 나는 <소피아SOPHIA>를 두드려 넣었다. 
기계는 정중하게 물었다.
  "암호를 아십니까?"
  빌어먹을 놈의 기계 같으니, 로렌짜가 들어가는 데도 아무 느낌이 
없다니...

6.
  아불라피아로부터 <암호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받는 그 순간, 몹시 
짜증스러웠던 나는, <모른다, 왜NO>를 두드려 넣었다.

  그런데 화면에 낱말, 선, 코드 등등의, 말하자면 의미 전달 수단의 
홍수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기어이 아불라피아의 방어망을 깨뜨리고 들어간 것이었다.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하고 많은 말 가운데 벨보가 왜 그 단어를 암호로 
선택한 까닭 같은 것은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나는 벨보가 어떤 깨달음에 이른 순간에 내가 지금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리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으리라는 것까지 안다. 그러나 지난 목요일, 
나는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
  어찌나 좋던지 나는 손뼉을 치고 춤을 추면서 흘러가 군가를 불렀다. 
한동안 그런 다음에야 욕실로 들어가 얼굴을 씻었다. 욕실에서 나온 
뒤에는 벨보의 파일을 마지막 파일부터 역순으로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파일은 벨보가 파리로 떠나기 직전에 작성한 것이었다. 프린터가 
돌고 있을 동안 나는 음식도 더 먹고 술도 더 마셨다.
  프린터가 멎자마자 벨보의 파일을 읽었다. 기절 초풍할 노릇이었다. 
문재의 명문인지, 미친 사람의 횡설수설인지 나로서는 가늠할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내가 야코포 벨보라는 사람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던가...2년 
동안 거의 매일 붙어 지내다시피 해왔으면서도 나는 이 사람에 대해 대체 
무엇을 알고 있었던가? 사흘 동안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대체 무엇을 알고 
있었던가? 사흘 동안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유리시킨 채 알코올과 담배와 
공포의 안개 속에서 쓴 이 사람의 글을 나는 도대체 어디가지 믿어야 한단 
말인가.
  
  주위는 어두워져 오고 있었다. 6월 21일 목요일. 눈이 짓물러 있었다. 
아침부터 그 시각까지 화면을 보면서 프린터 돌아가는 단속적인 소리를 
듣고 있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내가 읽은 기록은 사실일 수도 있고 
엉터리일 수도 있었다. 문득, 아침에 전화를 걸겠다던 벨보의 말이 
생각났다. 따라서 나는 거기에서 전화를 기다려야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침실로 들어가 옷을 입은 채로, 손질도 안 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8시쯤 숙면에서 깨어났다. 잠을 깨고도 한동안은 어디에 와 있는지 
가늠이 안 잡힐 정도의 숙면이었다. 다행히도 거피가 있어서 몇 잔 거푸 
마실 수 있었다.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그동안에 벨보로부터 전화가 
걸려 올까 봐 걱정스러워 뭘 좀 사러 나갈 수도 없었다.
  다시 기계 앞으로 돌아가, 작성 일자 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다른 
디스켓의 자료를 프린트 하기 시작했다. 입력한 자료 중에는 게임을 한 
흔적도 있고, 자판 두드리는 연습의 흔적도 있고, 나도 알고 있는 어떤 
사건을 벨보의 시각에서 기록한 것도 기록한 것도 있는가 하면, 일기투의 
단상, 고백,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고집스럽게 작성한 소설 메모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사람을 묘사한 글도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내가 본 그 
사람의 얼굴과는 달리 몹시 험상궂게 그려져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의 
단편적인 모습을 잘못 읽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내가 그 사람의 단편적인 
모습을 잘못 읽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벨보가 최근에 읽은 것 중에서 필요한 것을 모조리 베낀 것도 있었다. 
몇 달동안 여러 권의 같은 책을 돌려 가면서 읽던 참이라 인용문의 출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용문에는 번호가 붙어 있었다. 모두 해서 
120개... 의도적으로 선택할 수일 가능성이 높았다. 우연의 일치일 경우 
내가 더 꺼림칙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왜 그 인용문만?
 
  오늘, 벨보의 파일을 재해석한다. 인용 파일 전체가 암시하는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이교도의 묵주 알 굴리듯이 입 안에 
넣고 굴려 본다. 벨보에게 몇몇 인용문은 구원의 희망을 주는 경구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나 역시, 상투적인 문장과 외통수 문장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나의 재해석에다 믿음을 기울이려고 애쓴다. 그러나 
최근에, 오늘 아침이던가, 나는 누군가로부터 미친놈이란 소리를 들었다. 
벨보가 아니라 내가 비쳤다는 소리를...

  브리코 너머 지평선으로 달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다. 빌어먹에 큰 
집에는 바스락거리는 쇨가 끊일 새가 없다 흰 개미인지, 새앙쥐인지, 
아니면 아델리노 까네빠의 유령인지... 현관 쪽으로 가보고 싶지만 용기가 
안 난다. 그저 벨보의 까를로 아저씨 서재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본다. 
이따금씨, 누가 올라오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테라스로 나가 본다. 흡사 
내가 영화에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아이고 끔찍해라. <악당들이 
몰려온다...>

  그러나 오늘 밤따라 언덕이 조용하다. 완연한 여름 밤이다. 
  이틀 전 5시부터 10시까지 전망경실에서 선 채로, 다리가 저려 오지 
않도록 아프리카 풍의 브라질 리듬에 따라 다리를 흔들어 대면서 기다릴 
동안, 시간을 보내느라고, 혹은 정신을 온전히 가누느라고, 내가 재구성해 
본 사건들을 얼마나 황당하고 수상쩍고, 얼마나 헛갈리게 하는 것이었던가.
  그날 나는 아타바퀘즈의 미친 듯한 연타를 들으면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몇 년 동안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나는 기계적인 춤처럼 시작된 우리의 환상이 그 기계의 전당에서 
의례로, 신들림으로, 허깨비로, 엑수 신의 영토로 변해 가고 있는 듯한 
환상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전망경실에 있을 당시, 나에게는 벨보의 자료에서 출력한 것으로부터 
내가 알아낸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어떤 증거도 없었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회의에 몸을 맡기고 있었던 셈이다. 자정만 되면 나는, 
파리로 와서 도둑처럼 그 죄 없는 기계 박물관에 숨어 있는 까닭이 과연, 
어리숙하게 페르푸마도레스의 최면술과 폰토스의 율동에 최면당함으로써 
순진한 관광객을 위해 마련되 그 마쿰바 춤판에 끼여들었기 때문인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게 될 터였다.
  기억의 단편들을 다시 짜맞추고 있으려니 기분이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마법에서 풀려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차츰 의혹에 대한 연민이 
되살아났다. 나는 지금도,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한 지금의 이 정신 상태를 
벗고, 신비스러운 환영과 함정의 예감 사이를 헤매던 저 우유부단의 
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있기를 바라고는 한다. 저 우유부단의 순간으로 
전날에도 읽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파리로 날아가면서 미친 듯이 다시 
읽으면서 그 기록을 두고 하던 복잡한 생각을 다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세상을 다시 쓴 벨보와 디오탈레비와 나는 얼마나 무책임했던가. 
디오탈레비의 말마따나 경전에 까막 벌레 같은 글씨가 이룬 검은 행간에다 
백열로 각인한 의미를 재해석하려던 우리는 얼마나 무책임했던가. '토라'를 
뛰어넘고자 한 우리는 얼마나 무모했던가.
  그로부터 이틀 동안 희망사항이기는 하지나 어지간히 평정을 회복하고 
팔자 소관이려니 하게 되었으니 저 전망경실에서 그토록 열심히(그러나 
진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재구성한 이야기, 이틀 전 벨보의 아파트에서 
읽게 된 이야기, 술집 필라데의 위스키와 가라몬드 출판사의 먼지 
구덩이에서 12년 동안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내 입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나
7.
1968년을 시점으로 1,2년 뒤에 대학에 들어가기는 1793년에 생 시르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하는 것과 흡사했다. 요컨대 생년월일이 잘못된 거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나보다 자그마치 15년 연상인 야코포 
벨보는 뒤에 나에게 어떤 세대에 속하건 사람은 언제나 이런 느낌을 
경험하는 법이라고 확언해 준 바가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태어나는 
시대는 다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시대인 만큼 이 시대를 제대로 
살아 나가려면 사주를 맨날 다시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우리들의 아버지가 은연중에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우리는 아주 
작은 지혜의 단편들에 의해 다듬어진다. 내 나이 열살 때, 아버지에게 
위대한 고전 문학을 만화로 편집하는 주간지의 정기구독을 신청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노랑이여서가 아니라 만화 잡지라는 것을 
신용하지 않는 분이었기 때문에 내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나는 그 
잡지의 광고문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졸라 보았다.
  "이 잡지의 목적은, 아주 재미있게 읽는 동안에 독자로 하여금 아주 
중요한 걸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요."
  그러나 아버지는 읽고 있던 신문에서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이렇게 잘라 
말했다. 
  "네가 말하는 잡지든 다른 잡지든 다를 게 없다. 잡지를 내는 목적은 
되도록 많이 파는 데 있는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매사를 미심쩍어 하게 되었다.
  나는, 회의주의자가 된 것을 여러 차례 후회했다. 마음의 원에 나 자신을 
맡기지 못하게 된 것을 후회했다. 이게 바로 경신이다. 
  의심 많은 사람이란, 무엇이든 믿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한꺼번에 믿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사람은 근시안적이고 
방법론적이어서 거시안적이기를 기피한다. 이런 사람은 의심이 풀려야 
사물을 믿고 첫 번째 사물과 똑같아야 두 번째 사물을 믿는다. 이 두 
가지가 똑같지 않으면 좀체 믿으려 들지 않는다. 이 두 사물 어딘가에 이 
두 사물을 연결시키는 제 3의 함정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게 바로 
경신이다.
  의심은 호기심을 죽이지 않는가. 오히려 부추긴다. 나는 관념의 논리적인 
연맥은 재미없게 생각하지만 관념의 대위법은 좋아한다. 우리가 믿지 
못하면 두 관념(둘 다 헛것인)의 충돌은 중세에는 <디라볼루스 인 
무지카>, 곧 악마적인 음계라고 불리던 기분좋은 불협화음을 지어낸다. 
나는 사람들이 목을 달아매는 사상이나 관념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별로 존중하지 않는 두세 가지 사상이나 관념은 훌륭한 멜로디, 
재즈라면 듣기 좋은 장단을 지어내기는 한다. 
  만난 지 몇 해가 되었을 때 리아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겉껍질을 살고 있는데 지나지 않아요, 꽤 깊어 보일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수많은 겉껍질을 모라 들여 깊고 그윽한 인상을 
만들어 내려고 하기 때문일 거예요, 당신이 일으켜 세우려고 하면 그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아요,"
  "피상적이다. 사람들이 심오하다고 하는 것, 그건 사실 태세락트, 곧 
4차원적의 입방체일 뿐이에요, 한 쪽으로 들어가서 다른 한 쪽으로 나오는 
거죠.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우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우주는 
당신과 공존이 안 돼요."
  (리아,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로 하여금 심연이, 연약한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 바로 그 심연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만들고 말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15년 전,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일까.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살던 나는,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 세상에 믿음을 
기울이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심한 죄의식을 느끼고는 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우익에 속하는 것으로 보일 때부터 나는 세상을 
긍정적인 눈으로 보기로, 아스피린을 먹기로 결심하는 것처럼 그렇게 
결심했다. 아스피린이라는 것은 먹기가 고통스러운 것도 아닐뿐더러 먹고 
나면 몸이 거뜬해질 테니까.
  나는 <혁명>의 와중에, 혹은 경탄할 만한 모조 혁명의 와중에 있었다. 
나는 그 와중에서 정말 내가 믿음을 기울일 말한 것을 찾아 헤맸다. 가령, 
군중 대회나 시가 행진에 참가하는 것이라면 명예로운 일에 속했다. 나는 
군중과 함께, <파시스트의 쓰레기들아,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고 외치고 
다녔다. 보도 블록 조각이나 볼 베어링 같은 것을 던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경찰의 추격을 받고 대도시 뒷골목을 도망 다닐 때는 
도덕적인 흥분을 맛볼 수 있었다. 나는 신성한 의무를 다한 것 같은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모임에도 더러 참석했지만, 동아리끼리의 
의견이 확연하게 엇갈릴 때는 어느 한 쪽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렇게 
동조하다 보면, 핵심이 되는 말 몇 마디에 따라 결국 이편에서 저편으로 
옮겨가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서로 다른 의견을 구성하는 그 몇 
마디의 핵심이 되는 말을 찾아내는 일을 즐기고는 했다. 그 몇 마디의 
핵심이 되는 말을 찾아내는 일을 즐기고는 했다. 나는 내 목청을 늘 
적절하게 가다듬었다.
  시위 때도 나는 늘 뒤쳐진 채, 내가 관심 있어 하던 여학생에게 끌려 
다니고는 했다. 그렇게 끌려 다니면서 나는, 상당수의 내 동료들에게 정치 
활동은 성적 충동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했다. 따라서 
나에게 정치활동은 어울리지 않았다. 섹스는 결국 정열인데, 내가 원한 
것은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수준이었다. 그것은 그랬다. 나는 성당 기사단의 
역사 및 이들에게 가해진 모진 박해의 역사를 읽는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것은 온갖 행위를 통해서야 영혼을 육욕에 대한 정열로부터 해방시켜 
원초적인 순수의 세계로 되돌릴 수 있으므로, 우리가 우주를 지배하는 
천사들의 참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마땅히 우리들 자신에게 진 빚을 
먼저 청산해야 한다는 카르포크라테스의 공언을 만난 바 있다. 나는 그 
<계획>이라는 것의 입안에 참여하면서 오컬티즘, 즉 은비주의에 중독된 
많은 사람들은 자기 계발을 촉진하는 한 방법으로 그 길로 나선다는 
사실을 알아내기도 했다. 전기 작가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가장 음탕했던 
자이자, 신도들을 상대로 남녀를 불문하고 온갖 음행을 일삼았던 
알레이스터 크로울리는 남자나 여자 중에서 가장 못 생긴 사람들만은 골라 
타락의 상대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사랑이 불완전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느지막이 의심한다.
  권력에 대한 갈증과 성적 음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나는 
마르크스를 좋아했다. 나는 마르크스와 예니의 성생활은 순조로웠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의 부드러운 산문을 읽으면서 특유의 유머 감각을 
접해 보면 누구든 이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학교 복도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줄창 끄루쁘스까야 같은 여자에게 시달리다 보면 
누구든 "유물론과 경험 비판론"같이 시시한 책밖에는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몽둥이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따따르 식으로 수염을 
기른 키다리 친구 하나는 나는 보고 파시스트라고 했다. 그 친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뒤에 머리카락을 밀어 버렸는데 지금은 농촌 
공동체에 들어가 바구니를 짜고 잇다.
  이 시대의 내 심리 상태를 설며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라몬드 출판사를 
드나들면서 야코포 벨보를 사귈 때의 내 심리 상태를 재구해 보아야 한다. 
당시의 나는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로 토론이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원고 교정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아야 하는 입장에 있었다. 가령 
누가 <나는 나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거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쉼표를 과연 인용 부호 안에 넣어야 하느냐 밖으로 뽑아 내어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내가 문헌학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시절 문헌학을 공부하기 
가장 좋은 곳은 밀라노 대학교였다. 전국의 학생들이 강의실을 점거하고 
교수들에게 프롤레타리아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고 우기던 시절이었다. 
우리 대학의 경우, 극소수의 과격파를 제외하면 학생들 사이에 대체로 
합리적인 강화(혹은 영토 분할 협정)가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운동장, 
강당, 강의실 같은 데서는 혁명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고, 복도나 2층 
강의실 같은 데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전통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전에는 1층에서 프롤레타리아 무제를 토론하고 오후에는 
2층에서 부르주아에게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는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두 세계는 나란히, 아주 유쾌하게 공존했다. 우리 역시 아무 모순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평등 사회가 오고 있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그런 사회일수록 가령 열차 운행 같은 것은 훨씬 더 잘할 만한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믿음은, 당시의 군부는 석탄을 제대로 
퍼넣고, 스위치를 제대로 조작하고, 다이어그램을 제대로 짜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열차 운행 체제를 제대로 
인수할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스탈린이 된 기분이었다. 스탈린 같으면 참담한 기분을 억누르고 
속으로 웃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 테니까.
  <볼셰비키 아저씨들, 잘 해보시라고, 나는 뜨빌리시의 이신학교에서 
공부나 하고 있겠네만, 글쎄. 5개년 계획을 누가 제대로 달성하나 두고 
보세..>
  오전에 광기 어린 주장들에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겠지만 오후가 되면 
공부가 시들하게 여겨지고는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단순한 의견에 
머무는 수준을 넘어, 자료를 통해 완벽하게 증명해 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별 뾰족한 이유도 없이 중세사를 등록하고 논문의 주제로는 성당 
기사단의 재판을 선택했다. 성당 기사단 재판은 자료를 눈을 대는 
순간부터 나를 매료시킨 주제였다. 군부의 권력 구조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던 시절이라서 나는, 정황적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증거물을 
앞세워 성당 기사들은 화형주에 매단 당시 종교 재판 당사자들의 처사에 
걷잡을 수 없이 분노했다. 나는 일련의 자료를 통하여 이들이 화형을 
당한지 몇 시게 동안이나 수많은 은비주의자들이 이들이 역사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이들을 
찾아 헤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비주의자들의 망상은, 거의 모든 
사물에 대해 회의적인 내 구미에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신비의 
사냥꾼에게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결심을 했다. 나는 성당 
기사단 자체를 파고들 생각이었다. 성당 사단은 수도원의 기사단이었고, 이 
수도원이 속하는 종단은 바로 교회가 승인한 종단이었다. 그렇다면 만일에 
교회가 종단을 해체한다면, 실제로 7세기에 그런 일이 있었지만, 성당 
기사단은 더 이상 존재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런 단체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존속해 왔다면 그것은 성당 기사단이 아닌 셈이었다. 
나는 백여 권의 문헌을 모아 들였다. 그러나 독파한 것은 서른 권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1972년 말 술집 필라데에서 야코포 벨보를 만나게 된 것도 이 성당 
기사단 문제를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8.
그 시절의 술집 필라데는 뱀자리 성단의 외계인 침략자들이, 반 앨런 
방사능대를 순찰하는  제국군 군병글과 평화롭게 팔꿈치를 맞댈 수 있는 
은하계의 술집, 말하자면 자유 무역항이었다. 밀라노 운하의 지류 중 
하나를 등지고 선, 아연 카운터가 있고 당구대가 있는 낡은 술집이었다. 
팔라데는 전동차 기관사들이 아침마다 들러 백포도주를 한잔씩 마시고 
가는 술집이기도 했다. 68년부터는 정치 운동가들이 우익 신문 기자들과 
카드놀이를 할 수 있는 일종의 주류 전문 카페이기도 했다. 신문 기자들은 
원고를 써 넘기고, 트럭이 제도권의 공인된 거짓말이 잔뜩 담긴 이 신문을 
가판대에 배포하는 시각이면, 그 카페로 위스키를 마시러 오고는 했다. 
술집 필라데로 오는 기자들 역시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 이념의 일관 
작업대에 코가 꿰인 잉여 동포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운동권 
학생들도 거기에서만은 기자들을 무죄 판결했다.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는 젊은 출판업자, 건축가. 문화부 기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건 기자. 브레라 미술관의 복원에 종사하는 모사화가, 
중에도 소에도 못 가는 소설가들, 나 같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알코올에 의한 최소한의 자극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그 집의 
불문율이었다. 전동차 기관사들이나 상류 계층의 단골 손님을 위해 
상당량의 백포도주를 비축하고 있는 그 집 주인 필라데 씨는 지식인들 
앞에는 알코올 성분이 없는 가짜 맥주나 상표 하나만은 반듯한 뻬띨랑 
와인을 섞은 크림 소다. 혁명가들 앞에는 조니워커 빨간 딱지를 내어 
놓고는 했다. 나는 그즈음 손님들 앞에 놓이던 빨간 딱지 조니워커가 12년 
짜리 발렌타인에서 싱글 몰트로 바뀌던 사태만으로도 한 편의 정치사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낡은 당구대에서 화가들과 기관사들이 도전과 응전을 거듭하고는 했다. 
그러다 단골 손님이 몰려 들면 팔라데 씨는 핀볼 기계를 열었다. 
  나는 공놀이에는 쑥맥이었다. 처음에는 정신이 딴 데 가 있거나. 
손재주가 없어서 그렇거니 했다. 그러나 로렌짜 펠레그리니를 만난 뒤에야 
진짜 이유를 알았다. 로렌짜 펠레그리니는 처음에는 내 시야에는 
들어오지도 않던 여자였는데, 어느 날 밤 내가 벨보의 시선을 눈길로 
좇다가 그 끝에 있는 여자가 로렌짜라는 것을 알고 부터는 내 시선의 
초점으로 돌아왔다.

  벨보는 그저 행인들 사이를 지나가려는 사람 같은, 아주 독특한 자세로 
바 앞에 서 있고는 했다.(그는 자그마치 10년 단골이었다) 이따금씩 
카운터에 좌석 같은데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대개는 
가만히 있다가 불쑥 한 마디를 던지고는 했는데, 사람들의 화제가 무엇이 
되었든 벨보가 던지는 이 한마디는 자주 사람들을 머쓱하게 만들어 
버리기가 일쑤였다. 그에게는 사람을 머쓱하게 만드는 또 한가지 재주가 
있었다. 여러 사람이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한 사람이 열을 올리면서 
어떤 사건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경우, 벨보는 마시는 걸 아예 잊은 듯이 
술잔을 엉덩이 근처에다 댄 채, 뻥한 얼굴로 그 화자를 보면서, 사실이오, 
아니면, 정말이오, 하고 묻는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를 경청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화자까지도 갑자기 이야기 내용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말하자면 자기의 말까지도 아주 수상쩍게 만들어 버리거나 
비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벨보의 피에드 몬트 식 물타기가 잇다. 
피하는 척 하면서 대화 상대자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이 그것이다. 
벨보의 시선이 그 대화 상대자의 이야기를 끊는 것은 아니다. 벨보는 
이로써,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화제 공간의 막연한 한 점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러면 대화 상대자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열심히 
지껄이고 있었다는 기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의 시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벨보는 사소한 몸짓, 짧은 감탄사 같은 
것으로도 상대를 머쓱하게 만들고는 한다. 자, 누군가가 근대 철학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혁명을 완성한 철학자가 바로 칸트라는 접을 
역설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도 이 화자는 이것을 
역설하는 데 온 힘을 다 기울이고 있다. 이런 이야기 도중에 벨보는 
화자의 맞은편에 앉아 눈을 반쯤 감은 채 에트루리아 식으로 웃으면서 
갑자기 자기 손과 무릎으로 시선을 떨구어 버리거나, 입을 벌린 태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면서 시선을 천장으로 던지고는 <아. 칸트가 
그랬던가>하고 중얼거린다. 때로는 <당신 정말 칸트가 그런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이러면서 벨보 자신이 아니라 화자의 말을 
잘못하기라고 한 것처럼 아주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계속하게, 계속해, 
틀림없이 뭔가가 있을 테지. 칸트에게도 정신이라는 게 있었을 테니까> 
하는 식으로 화자를 격려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벨보도 화가 나면 마음의 평정을 잃고는 했다. 평정을 잃는다는 
것... 벨보는 남이 마음의 평정을 잃는 일은 주로 술 집 안에서 일어나는 
지극히 국지적인 사건이다. 화가 나면 입술을 비죽이 내밀고 눈은 치켜 
떴다가는 내리깔고, 머리는 왼쪽으로 꼬고는 천연덕스러운 음성으로 <마 
가브떼 라타나, 마개를 뽑아 김을 좀 빼라, 이 말이야.>하고 설명해 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화가 잔뜩 나 있는 사람, 머리 뒤꼭지의 코르크 마개가 
아주 빡빡하게 막혀 있어서 머리 혈압이 아주 놓아져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소리쳐 주는 것이다. 모르크 마개를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벨보의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아주 덧없는 것으로 보게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나는 그의 그런 말투가 재미있었다. 그러나 나는 꽤 
오랫동안 그의 이런 태도를, 타인의 진실을 진부한 것으로 여기고 극도로 
경멸하는 태도로 오래하고 있었다.
  아불라피아의 비밀과 함께 벨보의 영혼을 들어온 뒤부터 그의 인생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사람에게는 마땅히 환상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나름의 인생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벨보에게 이 두가지가 바로 우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지적인 방약무인은 절대자에 대한 절망적인 갈증의 위장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벨보의 태도, (무책임, 주저. 무관심이 
어우러진)가 도무지 종잡기 어려운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따금씩은 
오불관언하는 듯하면서도 대화를 즐기는가 하면, 웃으면서도 극단적으로 
모순되는 주장도 천연덕스럽게 하고는 했기 때문에 바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벨보와 디오탈레비는 불가사의 소사전을 만드는가 하면 도착의 
세계. 기형학의 문헌 목록을 구미는 등 종작없는 일을 자주 했다. 벨보가 
라블레적 소르본느라도 꾸며 낼 듯이 수다를 떠는 것을 본 사람들도 
실제로 신학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방황하는 자신의 처지를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터였다.
  그런 수다는 들을 때마다 나는 교묘하게 무시하고는 했다. 그의 수다는 
자체가 실수이며, 아무리 그런 소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가 느끼는 
상실감에 대한 보상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불라피아에서 벨보가 암호를 걸어 놓은 여러쪽의 가짜 일기를 
발견했다. 그는 이런 글에서도 이미 내가 여러 차례  이 세상에 대한 
방관자로 남겠다는 맹세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날짜가 꽤 오래된 
파일도 있었다. 기억에 대한 향수를 이기지 못해, 혹은 나중에 재탕할 
목적으로 컴퓨터에 입력시킨 것 같았다. 나머지 대부분은 아불라피아를 
사들인 뒤에 쓴, 비교적 최근의 것들이었다. 그의 글은 기계적인 유희, 
자기가 범한 오류에 대한 쓸쓸한 성찰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창작>은 
아니었다. 창작이라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사랑을 견디지 
못해서, 쓴 글이어야 창작이다.
  그러나 벨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루비콘 강을 건너고 있었다. 
말하자면 창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불행히도... <계획>에 대한 그의 
열망은 책을 쓰겠다는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책이 오류, 지독하게 
의도적인 오류만으로 씌여진다고 해도 그는 개의치 않을 터였다. 사람은 
완벽한 자기 공허 속에 들면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만남을 누리고 있는 
척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진흙 덩어리든 전자 기기든 창조와 관련된 것을 
손에 드는 순간부터 조물주가 된다. 그리고 세상의 창조와 관여하는 
순간부터 부패와 사악함과는 무관해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와 같다 : 뚜드 레 팜 쓰 제 랑꽁트레 쓰 드레스 오 조리종 - 
아베크 레 제스뜨 삐뢰 에 레 르가ㅡ 트리스뜨 데 세마포르 쑤 라 플쉬 

벨보여, 높이 겨냥하라. 첫사랑, 고귀한 축복을 받으신 동정녀, 어머니는 내 
나이가 자장가를 드를 나이가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무릎에 올려 놓고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그 노래는 내가 청한 것이다. 어머니의 목소리고, 
젖가슴에서 풍기는 라벤더 향수 냄새가 하도 좋아서 내가 청한 것이다. 
<아름답고 정결하신 천상의 여왕이시여, 나의 첫사랑이 내 것도 아닌 것은 
당연지사, 단언하거니와 그것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나는 나 없이도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인 그녀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어서 마릴레나(매랄레나? 마리 레나?) 그 서정의 황혼, 그 금발, 길고 
푸른 눈썹, 콧구멍이 드러나게 얼굴을 들고 벤치 앞에 서 있는 나. 분홍빛 
허벅지를 팔랑거리는 치마로 가린채 벌린 두 팔로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외줄타기 광대처럼 벤치 등받이 위를 걷던 마릴레나...
높아서, 높아서, 내 손에는 닿지 않는...
스케치: 같은 날 밤, 어머니는 내 누이의 분홍빛 살갗에 활석 가루를 
뿌린다. 나는 마마에게 물었다. 내 누나의 거시기는 언제 다 자라느냐고, 
어머니의 대답인 즉 계집아이의 조그만 거시기는 자라지 않는단다. 그대로 
있는 거란다. 문득 레나가 나타났다. 파란치마 밑으로 보이는 하얀 속옷. 
마리 레나가 금발인데다 몹시 건방진 여자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종족이 달라서.
세 번째 여자, 심언에 풍덩 빠지면서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잠자다가 
죽었다. 관가 꽃다발 속의 순결한 오필리아, 사제가 망인을 위해 
기도하는데 오필리아가 관대 위로 벌떡 일어나 앉는다. 창백한 얼굴, 
원한에 맺힌 듯이 잔뜩 날이 선 눈매, 손가락질하며 소리치는 오필리아의 
목소리가 둥굴같이 허허하다. <신부님, 나 때문에 기도하지는 말아요, 
어젯밤  잠들기 직전에 난생 처음 음탕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주를 
받은 거라고요.> 나와는 처음으로 영적인 친교가 이루어졌던 책. 그런 
삽화가 있었다. 내가 상상한 것인가? 오필리아는 내 생각을 하다가 
죽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내 손에 닿지 안는 마리 레나, 나와는 인종도 
다르고 운명도 다른 마리레나를 놓고 음탕한 생각을 했다. 그녀가 저주를 
받은 것은 나 때문이다. 많은 여자들이 저주받은 것은 다 나 때문이다. 
내가 이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다 이 여자들을 
두고 음탕한 생각을 한 벌이다.
나는 첫사랑을 잃었다. 천국으로 가버려서, 나는 두 번째 여자는 잃었다. 
제 것이 될 수 없는 거시기를 탐낸 죄로 연옥으로 가버려서, 나는 세 번째 
여자를 잃었다. 지옥으로 가버려서, 신학적으로 완벽한 균형,
그런데 체칠리아 이야기도 있다. 체칠리아는 여기 이 땅에 있다. 나는 
잠들기 전에 이따금씩 체칠리아 생각을 했다. 젖 짜러 가는 길에 언덕을 
오르고는 했다. 건너편 언덕의 방호 울타링 뒤에서 유격대원이 총을 
쏘고는 했다. 나는 무기를 휘두르며, 파시스트 산적 패거리로부터 
체칠리아를 구하는 광경을 상상하고는 했다. 마리 레나의 것보다 고운 
금발, 석관에 든 여자 이상으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여자, 동정녀 
마리아보다 더 정결하고 근직한... 체칠리아. 아직은 내 손이 미칠 수 
있는...
쉽게 말을 걸 수도 있었다. 나와는 같은 인종인 것이 확실해서, 실제로 
나와는 인종이 같았다. 그 친구 이름은 파피, 숱이 적은 금발, 조그만 
대가리, 나보다 한 살 많은 그 친구에게는 색소폰이 있었다. 내게는 
트럼펫도 없는데 체칠리아와 파피가 함께 있는 것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주일 학교 애들은 모두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놀려대었다. 사랑을 
했다고. 꼬마 염소같이 맹랑한 촌것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신부이자 왕비인 마릴레나 체칠리아)에게라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다는 촌것들의 말은 옳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이미 접근해서 
해치웠을 것이다. 어쨌든( 네 번째 경우 ) 나는 대상에 들어 있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에 피했던 여자들에 관한 소설...내가 가질 수도 
있었던 여자들에 관한 소설, 그게 그거구나...
어떤 소설을 쓸 것인지 가늠이 잡히지 않으면 철학 서적 편집에 매달려도 
좋은 거지.
#

9.
  이 파일에서 나는 나팔이 언급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틀 전 
전망경실에 있을 때는 이 단어의 중요성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파일에는 단 한차례 언급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지나가는 말 같은...
  가라몬드 출판사 편집실에서의 지루한 오후, 원고 검토에 시달리던 
벨보는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자리에 앉아 있는 나의 주의를 
환기시키고는, 내가 보이는 관심이 지나치게 진지하다 싶으면 재빨리 
시선을 떨어뜨리고 회상에 잠겨 들고는 했다. 이따금씩은 공허감을 
메우려는 듯이 자기가 과거에 경험한 특정한 광경을 떠올리기도 했다.
  " 이것들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이지?"
  어느 날 그가 이런 질문을 했다.
  "서구 문명의 황혼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황혼? 황혼은 태양의 소관이네, 그게 아니고... 우기 작가들 말이야. 
이번 주만 해도 이게  세 번째 원고야. 첫 번째는 비잔티움 법전에 관한 
원고. 두 번째는 오스트리아의 종언, 그리고 세 번째는 로체스터 백작의 
시... 세 원고의 주제가 각양각색이야. 자네 생각은 어때?"
  "그렇네요."
  "그런데 이 세 원고 모두 <욕망> 혹은 <욕망의 대상>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아. 이거 무슨 유행인가. 로체스터 백작의 시에 욕망이 
등장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 하지만 비잔티움의 법전이라니?"
  "돌려보내고 말죠 뭐."
  "그럴 수가 없네. 세 원고 모두 국립 학술 진흥원의 기금을 받고 씌어진 
것들이거든. 그리고 원고가 그리 나쁘지도 않아. 세 저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부분은 삭제해 달라고 해야  할까봐. 욕망 어쩌고 해봐야 모양이 
안 좋을 테니까."
  "욕망의 대상과 비잔티움 법전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요?"
  "억지를 쓰자면 만들지 못할 것도 없지. 비잔티움 법전에 욕망의 
대상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친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 
거야. 절대로."
  "어째서요?"
  "자네는 잘 알고 있을 걸세. 다섯 살 땐가 여섯 살 땐가, 나팔 하나 갖는 
게 꿈이었네. 금빛 트럼펫. 꿈도 많이 꾸었어. 어릴 때는 왜 핏줄 속으로 
꿀이 흐르는 것 같은 꿈도 더러 꾸잖는가? 자네도 잘 알걸세. 사춘기 
전후에 꾸는 유정몽 같은 것이지. 꿈에서 깨어나서는 내게 나팔이 없다는 
걸 알고는 울기도 많이 울었네. 하루 종일 우는 거지, 전전, 그러니까 38년 
전쯤일 것이네. 참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아닌가? 내게 아들이 있고, 내 
아들이 그렇게 빼물고 있는 꼴을 본다면 당장 이럴거야. <오냐, 알았다. 
나팔 하나 사주마> 하고, 내가 갖고 싶어했던 나팔은 장난감 
나팔이었다네. 몇 푼 가지도 않았어. 하지만 부모님들에게는 나팔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었네. 그 시절 돈을 쓴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었거든. 게다가 우리 부모님은 자식 교육에 상당히 엄격했네. 어린 
것이 갖고 싶은 것을 어떻게 다 갖느냐고 할 법한 그런 분들이었네. 
언젠가는 내가 <배춧국 먹기 싫어 죽겠어요>하고 투정을 부린 적이 있네. 
정말 싫었네. 배춧국만 보아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거든. <그럼 오늘은 
배춧국 먹지 말고 고기만 먹어라> 이러시면 좀 좋아? 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네. 가난하기는 했지만 세 끼니와 과일 같은 건 먹을 수 있었어. 늘 
그랬던 것은 아니어서 대충 식탁 위에 오르는 건 뭐든지 먹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네. 내가 워낙 싫다니까 할머니가 내 국그릇에서 배추 건더기를 
하나씩 하나씩 건져내기는 했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국물만 먹어야 
하는데 이건 더 먹기가 힘들었네. 아버지는 이나마도 봐주지 않을 
눈치더군..."
  "나팔은 어떻게 되었어요?" 
  내가 다그치자 벨보는 망설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반문했다. 
  "자네가 나팔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뭔가?"
  "관심을 기울이는 게 아니에요, 나팔 이야기를 먼저 꺼냈잖아요? 욕망의 
대상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각각이라면서..."
  "응, 나팔... 어느 날 저녁 모모한 데 살던 백부 내외가 왔네. 두 
분에게는 자식이 없었어. 그래서 조카인 날 아주 귀여워했지. 그런데 이 
분들이 내가 나팔로 노래를 부른다는 걸 알고는 어떤 것이든 사주겠다고 
하더군, 없는 게 없는 백화점의 장난감 가게로 날 데리고 가서 내가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나팔을 사주겠다는 것이었네. 그 말을 들은 그날 
밤에는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더군. 그 이튿날 아침이 되니까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고... 오후에 나는 백부 내외를 따라 백화점으로 
갔네. 갔더니 세 종류의 나팔이 있더군, 아주 작고 귀여운 장난감이었네만, 
내 눈에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들고 나가도 손색이 없을 만한 진짜 
악기로 보였네. 군용 신호 나팔, 미끈한 트럼본, 키는 색소폰 키가 달려 
있어도 마우스피스만은 진짜 마우스피스가 달린 금빛 트럼펫이 유난히 
눈에 띄더군. 어느 걸 골라여 할 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네. 그래서 
하염없이 보고만 있었을 거야. 마음 같아서는 셋 다 가지고 싶었지만 어디 
그럴 수야 있나...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내지 못한 
듯한 인상을 주었던 모양이야. 내가 이러고 있을 동안 백부 내외는 가격표 
딱지를 보았던 게지. 두 분은 노랑이가 아니었네. 값은 은색 키가 달린 
베클라이트 클라리넷이 가장 싸더군, <이게 젤 마음에 드는 거지?> 
백부가 클라리넷을 집어 불어보았네. 소리가 썩 괜찮았네만 그걸 덥석 
집을 수가 없었네. 트럼펫은 너무 비싸니까, 두 분은 내가 클라리넷을 
샀으면 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었을 것이네. 누가 뭘 사주려고 하면 
처음에는 <고맙습니다 괜찮습니다>하고 그래도 권하면 손을 내저으면서 
<고맙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하고 그래도 상대방이 <제발 하나 골라 
보아라>하고 우기면 그제서야 못 이기는 척 하고 다가서야 한다고 배운 
내가 부모도 아닌 친척에게 그렇게 엄청난 돈을 쓰게 할 수는 없었지. 
모르기는 하나 나는 아마 <트럼펫 같은 건 없어도 괜찮아요. 두 분이 
괜찮으시다면 클라리넷을 갖겠어요>했을거야. 하지만 그래 놓고도 혹시 
트럼펫을 고르라고 하지 않나 싶어서 두 분을 쳐다 보았네. 아무 말도 
않더군. 나는 두 분에게 클라리넷을 갖게 되어서 대단히 기쁘다고 했네.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이라면서... 어째 볼 도리가 있어야지. 그래서 
클라리넷을 갖게 된 것이네..."
  벨보는 눈꼬리로 나를 바라보면서 덧붙였다. 
  "... 나팔 꿈을 계속 꾸었는지 궁금하지 않나?" 
  "궁금한데요? 욕망의 대상이었을 테니까."
  벨보가 원고 쪽으로 시선을 거두어 가면서 대답했다.
  "자네 역시 욕망의 대상에 집착하고 있군 그래.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내게 트럼펫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세. 당시에는 정말 
행복했을테지. 까소봉, 자네 생각은 어때?"
  "그랬더라면 이번에는 클라리넷을 꿈꾸게 되었을테죠."
  "클라리넷은 내 것이 되었지만 한 번도 불어본 적은 없네."
  "불지 않았다는 겁니까? 꿈꾸지 않았다는 겁니까?" 
  "불지 않았다니까."
  그가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면서 대답했다. 나는 이런 저런 이유에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10.
  벨보와 처음 만날 당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이야기를 그 때로 
되돌려야겟다. 우리는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필라데에서 몇 마디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벨보에 대해서, 작지만 진지한 출판사인 가라몬드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나는 대학에서 이미 
가라몬드 출판사 책을 몇 권 접하던 처지였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지요?"
  어느 날 밤 잔뜩 들뜬 손님들에게 밀리는 바람에 각기 아연 카운터에 
어깨가 닿을 듯이 기대 선 꼴이 되었을 때 그가 물었다. 그는 
<당신>이라는 정중한 대명사를 썼다. 그 당시 우리는 서로를 흉허물없이 
<뚜>라고 불렀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도 심지어는 필라데 단골들 
사이에서도 이 <뚜>가 2인칭 대명사로 통했다. 파카 차림의 대학생이 
주요 일간지의 주필에게도 <뚜, 술 한 잔 사시지요.> 할 수가 있던 
시절이었다. 젊은 쉬끌로프스끼가 설치던 시절의 모스끄바 분위기와 
비슷했다. 우리는 모두 마야꼬프스키였다. 우리 사이에 지바고는 하나도 
없었다. 벨보도, 상대가 <뚜>라고 불러오면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벨보는 이 인칭 대명사를 상당히 경멸적인 썼다. 그는 이로써, 속어에는 
속어로 응수하기는 하겠지만, 친한 척 하는 것과 진짜 친한 것 사이에는 
심연이 하나 가로 놓여 있다는 암시를 던지고는 했다. 나는 몇 안 되는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실제로 이 <뚜>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상대란 디오탈레비나 여자 한둘에게 국한되고 있었다. 대신 자기가 
존중하는 사람이나 안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을 부를때는 꼭 정중한 인칭 
대명사를 썼다. 그는 나와 함께 일할 동안 내내 아주 정중한 표현법을 
쓰고는 했는데 나도 그 편이 좋았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라고 했지요?"
  그가 다시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벨보에게 그건 꽤 친밀한 말투였다. 
  "진짜 인생살이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이 가설 극장에서 말씀이신가요?"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반문했다.
  "진짜 인생살이에서?"  
  "공부합니다."
  "대학에 다닌다는 것이오, 아니면 연구한다는 것이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그 두 가지는 상호 배타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성당 기사단에 대한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입니다."
  "골치 아픈 주제로군...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그런 주제로 논문을 쓰는 
줄 알았어."
  "아닙니다. 진짜를 정식으로 공부하고 있는 걸요. 성당 기사단의 재판 
기록입니다. 성당 기사단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는가 보군요."
  "나는 출판사 일을 하오.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의 글도 다루고, 정상적인 
사람의 글도 다루지. 그런데 한참 일하다 보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을 바로 
알아 볼 수 있게 돼. 성당 기사단 관련 원고를 가지고 온 사람이 
있다...그러면 그 사람 틀림없이 이상한 사람이야."
  "글쎄요. 성당 기사단은 하나의 군단입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성당 
기사단 원고를 가지고 오는 수는 있어도 정신이 이상하다고 해서 다 성당 
기사단 원고를 들고 오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것은 그렇고 이상한 사람과 
정상이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지요?"
  "설명해 드리지. 그런데 당신 이름이 뭐지?"
  "까소봉이라고 합니다."
  "까소봉이라... '미들마치'의 등장 인물이 아닌가?"
  "모르겠네요. 르네상스 시대의 문헌학자 중에 까소봉이라는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만, 우리 집안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한 잔 사지, 이봐요, 필라데, 여기 두 잔 더. 좋아요. 하던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이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들이 있네. 백치, 
얼간이, 바보, 미치광이... 이렇게 네 종류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적용되나요?"
  "암, 당신과 나도 물론... 당신이 싫다면 적어도 나는 틀림없어. 잘 
관찰하면 모든 사람이 다 이 네 범주에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네. 우리는 
때로는 백치가 되기도 하고, 얼간이가 되기도 하고, 바보가 되기도 하고, 
미치광이가 되기도 하는 것일세. 정상인이란, 이 네 가지 구성요소 혹은 
이상형이 아주 적당하게 뒤섞인 인간이라고."
  "이데알티펜(이상형)이라..."
  "암, 그런데 당신 독일어를 하나?"
  "문헌 목록 읽는 정돕니다."
  "우리 학창 시절에는 독일어 하는 친구들 중에 졸업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었어. 독일어 하느라고 학창 시절을 탕진하거든. 요즘은 중국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제 독일어 실력은 형편 없으니까 아마 졸업하는데 지장은 없을 겁니다. 
그것은 그렇고 그 유형론으로 돌아가 볼까요? 가령 아인슈타인은 
어떨까요?"
  "천재는 다른 구성 요소를 연료로 삼으면서 한 가지 요소를 기가 막히게 
이용하는 사람이지..."
  그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는 지나가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 안녕하신가, 미녀, 자살은 아직도 보류 중이시고?"
  "아직요, 집단으로 시도해 보려고요. "
  여자가 지나가면서 대답했다.
  "좋았어..."
   벨보는 이러고는 돌아서서 내게 하던 말을 계속했다. 
  "... 암, 집단 자살을 시도하지 말라는 법도 없는 짓이지."
  "미치광이 이야기로 돌아가시죠."
  "이것 보게. 내 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게, 우주의 교통 순경에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니까. 나는 출판인의 입장에서 본 미치광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아. 말하자면 내 견해는 아드 호크(임기 응변)의 
정의라고나 할까."
  "어쨌든 좋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사지요."
  "좋았어. 이봐요, 필라데. 얼음 좀 작작 넣어. 얼음 너무 많이 넣어 
마시면 혈류가 빨라져서 못 써, 하던 이야기로 되돌아가서...백치 말인데, 
백치는 말을 하지 않아. 더듬더듬, 우물쭈물...아이스크림 콘을 이마에 
쳐바르는 자, 회전문을 반대쪽으로 쳐들어가는 자... 이게 다 그런 백치야."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백치는 그래. 하지만 백치는 관심 없어. 출판사에 나타나는 법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백치는 잊어버리세."
  "그러죠."
  "얼간이는 좀 더 복잡해, 사회적인 행동 양식에 문제가 있는 자들이야. 
얼간이는 술잔 밖에서 말을 하는 멍텅구리들이야." 
  "그게  무슨 뜻입니까?"
  "이런 거..."
  그는 술잔 바로 옆에 있는 카운터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얼간이는 술잔 속에 든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게 안 돼. 쉽게 
설명하자면, 입에다 발을 집어 넣는 자가 바로 얼간이야. 가령, 마누라 
도망친 사람에게 자기 마누라 예쁘다고 자랑이나 늘어놓는 자가 바로 
얼간이야."
  "그런 사람이라면 나도 몇 알고 있어요."
  "얼간이의 수요는 폭발적이야. 특히 사교계에는... 얼간이는 만나는 족족 
사람을 황당하게 만들지만 늘 화젯거리를 공급하지. 얼간이 중에서도 
적극적인 유형은 외교관이 돼. 누군가가 우물쭈물할 때, 술잔 바깥에서 
이야기를 하면 화제를 바꾸는 데 아주 요긴하지, 하지만 이 얼간이 역시 
관심 밖이야. 도무지 창조적이지 못하거든. 이들의 재능은 중고품이기 
때문이지, 이런 중고품이 출판사에 원고를 맡기는 일은 없어. 얼간이도, 
고양이가 짖는다고는 주장하지는 않거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개 
얘기를 하면 슬쩍 고양이 이야기를 꺼내지. 말하자면 대화의 규clr 같은 걸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 거야. 하지만 제대로 무시하는 순간, 굉장한 일을 
저지를 수고 있어. 얼간이... 이 부르주아 미덕의 화신이 불행히도 멸종되어 
가는 중이야.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베르뒤랑 살롱이나 게르망뜨의 
저택인데 말이야...  대학생들 요즘도 이런 걸 읽나?"
  "<나>는 읽어요."
  "얼간이의 전형은 휘하 장교를 사열하는 요아힘 뮈라 장군이야. 뮈라 
장군이,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마르티니크 출신 장교에게 뭐라고 
하는지 아나? <자네 흑인이지?>...장교가 <네, 장군>하고 대답하면 뮈라 
장군은 <좋아, 좋아 계속 근무하게>이러는 거지. 당신 내 말 알아듣겠지? 
나는 오늘밤 사실 내 인생의 역사적인 결정을 자축하고 있네. 그 동안 
술을 끊었었거든. 한잔 더 할까? 대답하지 말게. 당신 때문에 자꾸 죄 
의식을 느끼고 있는 중이니까... 필라데!'
  "바보는 어떤가요?"
  "응, 바보...바보의 행동에는 절대 틀림이 없어. 단지 판단을 틀리게 
했으면 했지, 개는 다 애완 동물이다. 그러므로 고양이도 짖는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들이 바로 바보야. 이런 주장을 하기도 하지... 아테네 시민들은 
때가 되면 죽는다... 피라에두스 시민들도 때가 되면 죽는다. 그러므로 
피라에우스 시민들은 모두 아테네 시민이다..."
  "말인 즉 맞군요. 피라에우스는 아테네의 항수이니까요."
  "그건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아. 바보가 옳은 소리를 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이것이 엉터리 추론의 결과라는데 있네."
  "그렇다면, 추론만 제대로 된 것이라면 그른 소리를 해도 좋다는 
건가요?"
  "물론, 그렇지 않으면 이성적인 동물이 되느라고 수고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위대한 유인원은 모두 하등 동물에서 진화했다. 인간은 하등 동물에서 
진화했다... 따라서 인간은 위대한 유인원이다"
  "나쁘지 않군. 그 추론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당신도 알지? 
하지만  무엇이 왜 잘못되었는가를 따지기는 쉽지 않아. 바보는 속임수를 
써. 얼간이를 식별하기는 아주 쉽네(백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 그러나 바보는 당신처럼 합리적으로 추론할 줄 알아. 얼간이와 
바보의 차이는 실로 머리카락 한 올이지. 바보는 파랄로기즘의 도사들인데, 
이게 편집자들에게는 골칫거리야. 편집자들은 영원히 바보를 알아볼 수 
없어. 그래서 수많은 바보들의 책이 출판되고 있는 걸세, 언뜻 보면 
근사하거든. 편집자에게는 바보를 식별하는 능력이 굳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야. 국립 학술 진흥원에 그런 능력이 없는데 왜 편집자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어야 하나?"
  "철학자들에게도 없어요. 그러니까 가령 성 안셀르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은 바보의 논증이었던 거군요, 성 간셀르무스는 하느님을, 하느님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 분은 존재 문제를 비롯,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존재라고 믿으므로... 이렇게 논증했지요. 이 성인은 사고 속에서의 
존재와 현실 속에서의 존재를 혼동하고 있는 거지요."
  "암 , 고닐롱의 논박 역시 바보의 논박이었어. 섬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나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을 생각할 수 있다... 고닐롱은 우연히 
생각하게 되는 것과 필요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은 혼동하고 있었네."
  "바보들의 결투인가요?"
  "그렇고 말고. 하느님은 바보들 노는 꼴이 되데 재미있었을 거라. 
하느님은 안셀르무스와 고닐롱이 바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당신은 
논증 불가능  쪽을 선택했던 것이네,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 하느님이 
당신의 의지를 드러낸 행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우주적인 
바보들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었네." 
  "요컨데 도처에 바보들이군요?"
  "나와 당신을 제외하면 모두 다 바보야. 당신만 제외한다 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괴델의 논증도 이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군요,"
  "알고 싶지도 않아. 나는 백치니까. 이봐요, 필라데!"  
  "내가 시킬 차례입니다."
  "퍼마시고 나중에 찢으세. 크레타 사람 에피메니데스는 크레타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했네. 사실이었을 거라. 에피메니데스는 크레타 
사람이라서 제 고향 사람들을 잘 알았을 테니까."
  "그게 바로 바보의 추론 아닙니까?"
  "성 바울로가 쓴 '디도 서'를 생각하게, 그런데 말이야. 에피메니데스를 
거짓말쟁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생각하기로,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지. 그러나 크레타 사람은 크레타 사람을 안 믿어, 왜? 크레타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니까. 따라서 크레타에는 에피메나데스를 거짓말쟁이라고 
부를 사람은 없는 셈이지."
  "역시 바보 같은 생각이군요?"
  "그건 당신이 판단하게. 바보 알아보기가 아주 어렵다고 했지? 그래서 
바로가 노벨상을 받는 일도 있네."
  "잠깐만요... 하느님이 이레 동안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의 일부는 정통 원리주의자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느님이 이레 동안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 중 일부는 
정통 원리주의자들일 수 있다. 따라서 하느님이 이레 동안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정통 원리주의자들이 있을 
수 있다....자 이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맙소사... 모쥐스트(적확한 표현)를 한 번 써본다면 알고 싶지 않아. 
바보 같은 논법인지 아닌지."
  "사실이든 아니든 바보 같은 추론입니다. 삼단 논법의 원칙 하나는 어긴 
셈입니다. 특수한 전제에서 보편적인 결론을 끌어낼 수 없는 법이죠."
  "당신 역시 바보라면 어쩌겠나?"
  "쓸만한 바보가 되는 거죠, 한 바보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바보,"
  "당신 말이 옳아. 우리와 다른 논리 체계에서는 우리의 바보 같은 
논법이 지혜로운 탁견 노릇을 하는 수도 있을 테지...논리학의 역사는 온통 
바보만 수용할 것 같은 개념을 정의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네. 참으로 
방대한 작업이었네. 위대한 사상가 치고 누군가의 바보 노릇을 하지 않은 
사상가가 어디 있던가?"
  "조리가 닿는 바보 같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네."
  "어렵군요, 벌써 2시. 필라데는 곧 문을 닫을 터인데 미치광이에는 아직 
입문도 못했군요."
  "입문하고 있는 중이네. 미치광이는 식별이 쉬워, 미치광이는 요령을 
모르는 바보라고, 바보는 자기 논제를 증명해 낼 수 있네. 아무리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인 것이라도 바보에게는 나름의 논리라는 게 있거든. 
하지만 미치광이는 논리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어, 단견으로 만사를 해결할 
뿐. 미치광이는 이것으로 저것을 증명하고 저것으로 이것을 증명하네. 
미치광이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만나는 것이 무엇이든 그 광기로 
확증하고 말아. 미치광이 식별은 간단해. 상식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자, 
섬광과 같은 영가에 지나치게 기대는 자, 게다가 성당 기사단 문제를 들고 
나오면 틀림없는 미치광이지."
  "틀림없이요?"
  "성당 기사단 문제를 들고 나오지 않는 미치광이도 있네. 그러나 성당 
기사단 문제를 들고 나오는 미치광이야말로 위험해. 처음에는 멀쩡해 
보이다가 갑자기..."
  벨보는 위스키를 시키려다 말고 마음을 바꾸어 계산서를 부르고는 말을 
이었다.
  "... 성당 기사단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며칠 전에 어떤 친구가 
내게 이 문제에 관한 원고를 맡기고 간 일이 있네. 멀쩡한 사람의 얼굴을 
가진 미치광이였네. 시작은 아주 논리 정연해 보였고... 당신 언제 한 번 
보겠나?"
  "보고 싶군요, 이용할 만한 자료가 있을 지도 모르겠고요."
  "글세. 그런 게 있을 것 같지는 않구먼. 반시간 할애할 여유가 있거든. 
신체로 레나토 가 1번지, 찾아오면 득을 보는 사람은 아마 당신이 아니라 
나일거라. 원고의 싹수가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내게 그걸 귀띔해 줄 수 
있을테니까."
  "뭘 믿고 보여 주시려는 겁니까?"
  "누가 당신을 믿는다고 했어? 하지만 우리 편집실에 들르면 믿도록 
하지. 나는 당신의 호기심을 믿어."
  분노로 일그러뜨린 학생 하나가 술집으로 뛰어 들어와 외쳤다.
  "동지들, 파시스트 놈들이 운하 옆을 지나갑니다. 쇠사슬을 들고 
지나갑시다!"
  "때려잡읍시다! 갑시다, 동지들!"  
  끄루쁘스까야로 나를 겁준 적이 있는 따따르 수염이 소리쳤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루루 밖으로 몰려 나갔다. 
  "어떻게 하실 셈이죠? 우리도 가봐야 하지 않아요?"
  나는 죄의식을 느끼면서 벨보에게 물었다.
  그러자 벨보가 대답했다.
  "그럴 거 없어, 필라데가 손님을 쫓아내려고 수작을 부리는 거라네. 
당신과는 첫 술자리인데 기분이 그저 그만이군 그래. 금단 현상이 
사라져서 그런가. 내가 지금까지 당신에게 얘기한 거. 사실은 전부 
거짓말이라네. 잘 자게, 까소봉."

  11.
필라데에서의 대화를 통해 벨보는 공인으로서의 자기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주의 깊게 관찰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거니와, 그 야유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곧 우수였다. 그의 야유는 가면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가 들려준 개인적인 고백이야말로 가면이었을 것이다. 우수 자체가, 더 
깊은 우수를 은폐시키기 위한 가면이었거나...
  다음날 내가 가라몬드 출판사로 갔을 때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작업의 
내용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여기에, 그가 자기 작업 자체를 소설화하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이는 자료가 있다. 이 자료를 보면 그가 얼마나 
깐깐하면서도 정열적인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자기 작품에 
대한 열망에 사로 잡혀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남의 글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어야 하는 편집자의 절망 같은 것이 드러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능력이 없음을 자인하면서도 창작에 이르기를 바라는 자신에게 
엄정한 도덕적 질책을 가하는 대목도 있다. 비록 자기의 욕망을 
음울하면서도 화려한 색조로 드러내고 있지만, 나는 이토록 자기 모멸로 
자기를 연민할 수 있었던 사람을 알지 못한다.

  #파일명: 칠해의 정복자 짐

내일 젊은 친티를 만난다. 
1. 학술적인, 어쩌면 너무 학술적인, 그러나 좋은 논문.
2. 결론 부분에서 카툴루스와 신체시파와 전후파를 비교하는 대목이 
일품이다.
3. 이것을 도입부로 삼으면 어떨까?
4. 설득해 보자. 이런 상상의 비약은 문헌학 학술 총서에는 걸맞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상당히 권위 있는 서문을 직접 쓸 것임에 분명한 
자기 담당 교수를 당황하게 만들까봐 겁을 
먹고 있다. 마지막 두 페이지의 뛰어난 견해는 주목받지 못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첫부분은 지나치게 튄다. 그래서 전체의 학술적인 
분위기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5. 학술적이 기술은 그렇다 치고, 이 부분은 담화 형식으로 처리하면 
어떨까? 가설을 가설로만 남겨 두면 진지한 주장은 훼손을 면할 수 있다. 
그러면 독자들을 단숨에 끌어들일 수 있다. 독자들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이 책에 접근할 것이다.
아니, 나는 그로 하여금 자유 의사에 따라 책을 쓸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를 이용해서 내 책이 쓰여지기를 바라는 것인가?
동초 서초한 자료를 통한 책 쓰기, 타인의 작품을 자기 작품의 창조주. 
말랑말랑한 점토로 내 것을 빚는 대신 남들이 이미 빚어 놓은 조상의 다 
굳은 점토 토닥거리기. 망치로 모세 상에 일격을 가하면 모세 상은 말을 
할 테지.
윌리엄 S씨와의 만남,
"당신 작품을 읽어 보았는데요, 나쁘지 않습디다. 긴장이 있고 상상력이 
있더군요. 이게 첫 작품이던가요?"
 "아뇨, 다른 비극도 썼습니다. 이것은 베로나에서 있었던 두 연인의 
정사를 그린 것인데요 이 처녀 총각은..."
 "S씨, 이 작품 이야기를 먼저 합시다. 무대를 왜 프랑스로 했을지 
궁금하군요. 내 생각에는 덴마크가 좋을 것 같은데... 그러자면 힘이 많이 
들겠지요? 인명과 지명 몇 개만 바꾸고, 샬롱 쉬르 마르느 성을 뭐랄까, 엘 
몇 개만 바꾸고, 샬롱 쉬르 마르느 성을 뭐랄까, 엘시노어 성으로 
바꾼다든지...키에르베고르 식으로, 말하자면 실존주의적 뉘앙스에 북유럽 
프로테스탄트 분위기를 풍기게 하면..."
"당신 말이 옳은지도 모르지요."
"나도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은 약간의 문체상의 수정이 필요합니다. 
대수술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이발사가 거울을 들이밀기 전에 아주 가벼운 
가위질 같은 것입니다. 가령 부친의 망령이 그렇습니다. 왜 끝 부분에 
나와야 합니까? 나는 이 망령이 처음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망령의 경고가 젊은 왕자의 행동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젊은 
왕자는 이 때부터 어머니와 갈등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좋은 생각입니다. 한 막 정도는 바뀌겠군요."
"그렇습니다. 다음에는 문체의 문젭니다. 왕자 관객 바라보면서, 
행동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독백하는 대목, 훌륭한 독백입니다만, 
왕자의 고민이 제대로 반영된 것 같지 않습니다. <행동하느냐 마느냐 
이것이 골치로다>...이렇게 되어 있지요? <골치로다>를 <문제로다>로 
바꾸는 게 좋겠어요, 이것은 개인적인 골칫거리라기 보다는 보편적인 
전재의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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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제 자식으로 가득 채워 놓아도, 그 자식들에게 당신의 성을 
붙여 놓지 않으면 아무도 그게 당신의 자식인 줄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흡사 미복한 하느님 같은 거지요, 당신은 하느님입니다. 당신은 이 
도시 저 도시를 두루 돌아다니며 하느님인 당신에 관한 사람들의 온갖 
말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렇다느니, 하느님은 저렇다느니, 이 
우주의 아름다움을 어디에다 견주겠냐느니, 중력의 법칙이 얼마나 
절묘하냐느니. 그러면 당신은 가짜 수염 뒤에서 웃겠지요(참, 가짜 수염은 
달고 나가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수염을 달면 하느님이라는 게 금방 
들통날 테니까요). 당신은 독백합니다 (하느님은 원래 맨날 독백한답니다). 
나, 하느님이 여기에 있는데도 이것들은 알지 못하는구나, 하고요. 길 가던 
사람이 당신과 거리에서 꽝 부딪쳐도, 당신을 모욕해도 오히려 당신은 
아주 정중하게 사과하고는 가던 길을 갑니다. 당신은 하느님이고, 따라서 
손가락만 까딱해도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될 터인데도 말이지요. 하지만 
당신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오래 참을 수 있는 겁니다.
미복한 하느님에 관한 소설. 불가능. 내가 생각할 정도라면 어느 놈이 벌써 
썼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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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작가다. 자기의 작가적 역량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작가. 사랑하던 
여자가 당신을 배반한다. 당신에게 기 세상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어느 날 당신은 여자를 잊기 위해 <타이타닉 호>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이 배가 남태평양에서 파선된다. 통나무 배를 타고 
지나가던 원주민이 당신을 구한다. 당신은 유일한 생존자다. 당신은 외부와 
단절된 채 파푸아인들만 사는 이 섬에서 여러 해를 살게 된다. 섬 
처녀들은 매혹적인 노래로 진주 목걸이와 푸아 꽃에 파묻힌 젖가슴으로 
당신을 유혹한다. 섬 사람들은 당신을 <짐>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밤 
호박빛 살빛이 유난히 고운 원주민 처녀가 당신의 오두막으로 들어와, <나 
당신 거, 나 당신과 함께>라고 말한다 .횡재 아닌가, 처녀는 옆에서 
부채질을 하고 당신은 베란다에 누워 남십자가성을 쳐다보는 밤은...
당신은 오르지 일출과 일몰의 순환 주기를 살 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네덜란드 인들은 실은 배가 이 섬에 온다. 
네덜란드 인들은 당신을 문명 세계로 데려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당신은 
거절한다. 당신은 사업을 시작한다. 야자무역을 하고 대마 수확을 
감독하는가 하면 온 바다, 온 섬을 누빈다. 원주민들은 당신을 위해 
일한다. 이윽고 섬 사람들은 당신을 <칠해의 정복자 짐>이라고 부른다. 술 
때문에 신세를 망친 포르투갈 모험가가 와서 당신의 일을 돕다가 크게 
개심해서 참사람이 된다. 이 즈음 순다 제도 사람들 중에 당신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된다. 당신은 다이야크 족을 정복하러 떠나는 
부루네이 왕의 보좌관이 된다. 당신은 티포 사히브 시대의 대포를 한 문 
찾아내어 이것을 훌륭하게 고쳐 내는가 하면, 인도 후추 잎을 어찌나 
씹었는지 이빨이 새까만 말레이 인들을 훈련시켜 특공대를 편성하기도 
한다. 산호 화초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당신은 역시 인도 후추 잎을 하도 
씹어 이빨이 새까만 삼판 노인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된다. 삼판 노인이 
당신을 겨냥하고 날아오는 화살을 자기 몸으로 막은 것이다. 오, 칠해의 
정복자 짐이여, 당신을 위해 죽다니 영광입니다. 잘 가게, 삼판. 내 
친구여...
당신은드디어 수마트라에서 뿌르 드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떨친다. 
영국과 무역도 한다. 다윈 섬에 있는 항만 관리국에는 쿠르츠라는 
이름으로 등록된다. 이로써 당신은 사람들에게 쿠르츠라는 이름으로 
알려진다. 당신을 <칠해의 정복자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원주민들 
뿐이다. 어느 날 밤의 일이다. 북극성과 사뭇 다른 남십자성이 유난히 
빛나는 밤, 베란다에서 아름다운 처녀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던 당신은 
문득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잠깐만이라도, 옛날에 떠난 
고향의 모습기 보고 싶어진 것이다.
당신은 마닐라로 떠나는 배를 탄다. 마닐라에서 프로벨러 비행기로 발리 
섬까지 가고, 여기에서 사모아 제도, 애드미럴티 네도, 싱가폴, 테네라이프, 
팀북투, 알레포, 사마르칸트, 바스라, 몰타를 거쳐서 드디어 당신의 고국에 
이른다.
18년만에 돌아가는 고향 산천이다. 당신의 얼굴에는 세월의 풍상이 
아로새겨져 있다. 얼굴은 사나운 무역풍에 검게 그을려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거나, 훨씬 미남으로 보인다. 고국에 돌아간 당신은, 서점이라는 
서점은 모조리 당신에 관한 책을, 그것도 개정판으로 팔고 있고, 당신의 
모교 박공에는 당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위대한 시인, 시대의 양심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당신은 
로멘틱한 처녀들이 수없이 당신의 빈 무덤 앞에서 자결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내가 당신을 만나는 것은 바로 이 때다. 비록 눈가는 주름져 있고, 
얼굴을 쓰디쓴 추억과 달짝지근한 회한으로 다소 그늘져 있었으나 당신의 
모습은 참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보도에서 우리는 지나칠 뻔한 일도 
있다. 나는 당신에게서 겨우 몇 자 안 되는 거리를 두고 당신을 지나치고 
있었고, 당신은 행인들의 그림자 너머로 누군가를 찾는 듯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건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긴긴 
세월을 소거해 버리고 당신에게 말을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 하러? 
내게도 성취한 것이 있지 않은가?  피조물 줄 하나가 될 수 없어서 
하느님처럼 고독하고, 하느님처럼 허망하고 하느님처럼 절망적이다. 
피조물은 나의 빛 가운데서 살지만 나는 그 빛의 근원인 견딜 수 없는 
어둠 가운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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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윌리엄 S씨, 잘 가시기를, 유명해서, 당신은 스쳐 지나가면서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나 자신을 향하여 속삭인다. 죽느냐, 사느냐...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벨보여, 잘했구나, 수고했구나. 윌리엄 S씨. 잘 
가시어 영광의 열매를 거두시라. 창조한 사람은 당신뿐이다. 나는 몇 줄을 
고쳤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창조하는 것을 옆에서 거드는 우리 산파들은 배우들이 
그렇듯이 성별된 무덤으로부터 거절당해야 마땅하다. 우리와 배우들 
사이에 다른 것이 있다면, 배우들은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더불어 
사는데 견주어 우리는 잡다한 위장과 무한 우주에서의 무한한 존재의 
가능성을 산다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어디, 이런 범용한 것들에게 그렇듯이 휘황찬란한 상을 
줄만큼 관대한 것이던가?
#

12.
  다음 날 나는 가라몬드 출판사를 찾아갔다. 신체로 레나토가 1번지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한길로 열려 있었다. 길에서 안마당과 밧줄 가게가 
보였다. 들어서고 보니 오른쪽으로 산업 고고학 박물관에서 뛰쳐나온 듯한 
승강기가 있었다. 올라타자마자 승강기는 도무지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듯이 심하게 삐걱거렸다. 그래서 기겁을 하고 달려나와 먼지가 
풀풀 나는 소용돌이 꼴 계단을 두 층이나 올랐다. 뒤에 안 일이지만 
가라몬드씨는 피리의 출판사와 분위기가 흡사하다고 해서 그 건물을 
대단히 좋아한다고 한다. 계단을 오르자 <가라몬드 출판사>라는 금속제 
현판이 보인다. 문이 열려 있어서 로비가 들여다보였다. 로비에는 전화 
교환기도 없고 수위도 없었다. 그러나 입구에 조그만 사무실이 있어서 그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기는 불가능 해 
보였다. 아닌게 아니라 나도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그 사무실 사람을 
거쳐야 했다. 나이는 종잡기 어려우나 여자인 것 같았고, 완곡어법으로 
말하자면 키는 평균치를 밑돌았다.
  그 여자가 귀에 익은 외국어로 나를 맞아 주었는데, 한참 듣고서야 그 
여자가 하는 말이 이탈리아 어, 그것도 모음은 싹 빼먹고 하는 이탈리어 
어라는 것을 알았다. 벨보를 만나러 왔다고 하자 여자는 나를 목도 끝에 
있는 뒷방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벨보는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온다더니 정말 왔군. 어서 들어와요."
  벨보는 나에게 자기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나와 벨보 사이에 있는 
책상은 그 방안의 집기 모두가 그렇듯이 몹시 오래된 거 같았다. 책상 
위에는 원고 더미가 쌓여 있었다. 벽을 등지고 선 서가에도 원고가 쌓여 
있었다. 
  "구드룬이 당신 기를 죽여 놓은 건 아니겠지?"
  "구드룬이라뇨? 저기 저... 시뇨라?"
  "시뇨라가 아니라 시뇨리나야. 아가씨 본명은 구드룬이 아니야. 외모가 
니벨룽겐의 분위기인데다 발음이 튜튼 족 같아 그렇게 부르지.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 빨리 하는 재주가 있지. 모음을 몽땅 빼먹으니까 시간 절약이 
될 수밖에. 하지만 유스타시아 아에쿠아트릭스(평등의 정신)는 잘 알고 
있어. 말할 때는 모음을 빼먹지만 타자할 때는 자음을 빼먹기도 하거든"
  "여기서는 무슨 일을 하는데요?"
  "별걸 다하지. 불행하게도... 출판사라는 곳에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꼭 하나씩 있다네. 창조 작업에 파묻힌 사람들 사이에서 이것저것 
일거리를 챙겨서 도와주는 사람...그런데도 원고가 분실되는 일이 생기면 
그게 누구 짓인지 우리는 알지."
  "아가씨가 원고를 잃어 먹기도 하나요?"
  "출판사라는 데서는 늘 원고를 잃어버려. 어쩌면 원고를 전문적으로 
잃어버리는 데가 출판사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속죄양이라는 거 한 마리쯤 
필요한 거 아니겠어? 내 불만은 저 아가씨가, 좀 잃어버려 주었으면 하는 
원고는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거야. 프랜시스 베이컨이 '지식의 
진보'에서 말하는 이른바 <꽁뜨레땅(불의의 사고)>이라는 거지 뭐."
  "어떤 식으로 잃어버리나요?"
  벨보가 두 팔을 벌리고는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용서하게만, 아주 못난 질문이네. 어떤 식으로 잃어버리는지 알면 
잃어버리지 않게?""
  "그렇군요. 그런데 내가 여기저기서 본 가라몬드 출판사 책은 아주 잘 
만들어졌던데요? 도서 목록도 충실하고요. 그게 모두 여기에서 만들어진 
것인가요? 직원은 모두 몇 명이나 되죠?"
  "복도 건너편에 제작부 직원들 방이 있네. 바로 옆방은 내 동료 
디오탈레비가 있고...디오탈레비라는 친구는 주로 장기 계획에 따라 입안된 
입문서를 만들어, 제작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하지만 만들어 놓으면 
수명이 아주 길지. 나는 대학물 편집을 담당하고 있네. 그렇게 힘드는 일은 
아니야. 말이 대학물 담당이지 사실은 이런저런 일에 다 끼여들어. 하지만 
대체로 편집이든, 학술이든, 재정이든, 별로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아. 
모모한 연구 기관이나 대학의 그늘 아래서 학회지나 논문집 같은 걸 주로 
내거든. 저자가 신출내기 저자는 원고를 교정하고, 인용문과 각주를 일일이 
교열하지만 인세는 못 받아. 책이 교재로 채택되면, 몇 년 사이에 몇 천 
부는 나가게 되고, 그러면 회사 경비는 빠져. 놀라겠지만, 적자 같은 것은 
안 봐."
  "그럼, 편집자는 뭘 하는 데요?" 
  "별걸 다하지. 가령 자체 경비로 하는 일로는, 지명도가 있는 외국 
작가의 저서를 번역하게 하는 일... 도서 목록의 구색을 맞추자면 필요한 
일이지. 필자가 싸들고 와서 문간에 다 놓구 가는 원고도 있어. 출판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 편집자가 읽어야지. 읽어 
보지 않고는 모르거든."
  "그런 일 좋아하세요?"
  "좋아하느냐고? 배운 도둑질이 그것밖에 없는 걸."
  벨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두어 사이즈 큰 자켓 차림의 40대 
남자가 다가왔다. 짙은 금빛 눈썹 위로 헤싱헤싱한 머리카락이 흘러 
내려와 있었다. 그는 아리를 타이르기나 하는 듯이 가만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납세자의 바데 메쿰', 이거 사람 죽이구먼.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골치 아파. 대화에 방해가 되었나?"
  "이 양반이 디오탈레비라네."
  벨보가 우리를 서로 소개했다.
  "성당 기사단 자료를 보러 오셨군. 가련한 청춘이셔. 이것봐, 야코포, 
좋은 생각이 났는데 말이야. <집시를 위한 도시 계획>, 어때?"
  "좋군. 내게도 하나 있어. <무용지물 학과>나 <아디나타학과>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어디보세..."
  벨보는 서랍을 뒤져 종이 몇 장을 꺼내면서 말을 이었다.
  "...무용 과학이라..."
  그는 잔뜩 황당해 하는 내 표정을 확인하고는 디오탈레비에게 말했다.
  "...무용 과학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거, 가령 어떻게 하면 국을 잘 
젓느냐, 뭐 그런 거 아닌가. 안 돼, 어림도 없어. 이건 학과의 이름이 
아니라 수업 과목의 이름같은걸세. 
<아붕쿨로그라툴레이션>이나<필로카타바시스>처럼...<테트라필록토미>학
과에 수업 과목으로 집어 넣으면 되네."
  "<테트라..>, 뭐라고요?"
  "응 <테트라필록토미>? 머리카락 한 올을 네 올로 쪼개는 방법, 뭐 
그런 걸세. 아무 쓰잘데없는 기술을 가르치는 쓰레기 같은 거지. 가령 
<아붕쿨로그라툴레이션>은, 장님인 전당포 주인을 위해 안경을 만들어 
주자는 것일세. 하지만 이<필로카타바시스>는 어디에 넣어야 할지 
모르겠군. 머리카락을 이용해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하는 시술인 
모양인데 말이야... 어찌 보면 반드시 무용지물인 것만은 아닌 것도 같고..."
  "그만들 해 두세요. 내가 손을 들겠어요. 대체 두 분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으니까요.?"
  "디오탈레비와 나는 고등 교육을 개혁하는 일련의 교제를 계획하고 
있네. 쓸모없는 것 불가능한 것만 가르치는 <비교무관학교>... 학교의 설립 
목적은 엄청나게 늘어나는 불필요한 과목을 다루어 낼 수 있는 학자들을 
양성하는 것이라네" 
  "학과는 몇 개나 있나요?"
  "지금으로서는 네 학과, 하지만 이 정도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지학이라는 인지학은 다 가르칠 수 있을거라. 테트라필로토미 학과는 
일종의 교양과정인데 이로써 우리는 노리는 것은 서로 아무 연관도 없는 
것들이 상화연관성을 가르치자는 것일세. 또 하나의 중요한 학과가 바로 
아디나타 혹은 임포시발리아 라네 가령, <집시를 위한 도시계획> 
이라던지 <아즈텍의 경마술> 같은 것일세. 수업의 주안점은 사물이 지닌 
불합리한 비관련성의 의미와 이유를 이해시키는 것이야. 이밖에도 
얼마든지 있네. <모르스부호의 형태학> <남극 농경술> <몬테소리 교육의 
학력고사 제도> <이스터섬의 회화사> <수메르의 현대 문학> 
<아시리아와 바빌론의 우표연구> <신대륙이 발견되기 이전에 제국의 
차륜학> <무성영화의 음성학> ..."
  "사하라 사막의 군중 심리학은 어때요?"
  "굉장한데?"
  벨보가 혀를 내둘렀다. 
  디오탈레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자네 우리에게 합류하게. 야코포 이 친구 정말 소질이 대단한 친구인데 
그래?"
  "첫눈에 알아봤다네. 어젯밤에는 바보 천치론을 펴는데 굉장하더라고. 
하지만 계속하세. <옥시모로닉스>에는 뭘 넣기로 했더라? 메모해 
두었는데 찾을 수가 없군."
  디오탈레비는 주머니에서 종이 쪽지를 꺼내 들고는, 친밀하게 생색을 
내는 듯한 눈길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이름이 암시하거니와 <옥시모로닉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가 
당착이야. 내가 <집시를 위한 도시 계획>을 여기에 집어 넣자고 한 것도 
그 때문이라네."
  "안 돼. <유목민의 도시 계획>이면 또 몰라도. <무용 과학>은 경험적인 
불가능성을 다루지만 <옥시모로닉스>는 술어상의 모순을 다루는 
학과거든."
  "일 리가 있기는 하네만, 그럼 <옥시모로닉스>에는 뭘 넣는 다지? 
그래... 여기있다. <혁명의 전통>, <민주주의적 독재정치>, 
<파르메티데스적 역동성>, <헤라클리토스의 전략>, <스파르타 식 
쾌락주의>, <동어 반복의 변증법>, <불리적 기호 논리학적 
논쟁>...어떤가?"
  "어법 위반의 문법은 어때요?"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멋지다"
  두 사람이 이구동성을 반기면서 메모까지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군요."
  "뭔데?"
  "두 분의 계획이 일반에 알려지면, 이런 원고를 들고 출판사로 구름같이 
몰려올 겁니다."
  "야코포, 이 친구 굉장히 날카롭군. 우리가 걱정했던 것도 바로 그 
접이네. 사실은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도 우리는 이상적인 신학문의 
커리큘럼을 한 번 짜본 것에 지나지 않아. 불가능성의 필요성을 보여 
줬으니까 됐어. 따라서 이제 입을 다물 때가 된 거지. 나는 가봐야겠는 
걸."
  "어딜?"
  "금요일 오후 아닌가?"
  "맙소사.."
  벨보는 내 쪽으로 돌아앉으면서 말을 이었다.
  "...길 건너편에는 진짜 유대인들이 사는 집이 몇 채 있네. 자네도 알지? 
까만 모자, 가만 수염, 구레나룻. 밀라노에 는 유대인들이 별로 많지 않아. 
오늘은 금요일... 해질녘에 안식일이 시작된다네. 그래서 오후가 되면 길 
건너편에 있는 집에 모여서 안식일 맞을 준비를 하는데... 촛대를 닦고, 
음식을 준비하지. 말하자면 다음날 불을 피우지 않고도 굶어 죽지 않을 
준비를 하는 것이네. 이들은 안식일에는 밤새도록 텔레비전을 켜두지. 
채널을 바꾸는 것은 괜찮다나. 디오탈레비에게는 쌍안경이 하나 있어. 
디오탈레비는 이 쌍안경으로 유대 인들을 보면서 길 건너편에 가 있는 
기분을 내는 거지."
  "왜요?"
  "디오탈레비 군은 자기가 유대 인이라고 생각한다네."
  디오탈레비가 발끈했다.
  "생각하다니?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나는 유대 인이야. 까소봉, 나는 
유대 인이다, 이의 있나?"
  "물론 없지요."
  "디오탈레비는 유대 인이 아니야."
  벨보가 쐐기를 박듯이 단언했다.
  "아니라니? 내 이름을 들어 보고도 모르나? 그라찌아디오나 
디오시아콘테 같은 이름과 뭐가 달라... 히브리 어에서 이탈리아 어로 
번역되었다 뿐이지 게토 같은 데서 지어진 전형적인 유대 인 이름 아냐? 
숄롬 알레이헴 같이?"
  "<디오탈레비>는 <하느님이 그대를 길러 주시기를> 바라는 뜻으로 
시청 직원이 버려진 고아에게 잘 지어 주는 이름일세. 자네 할아버지가 
기아 아니셨나."
  "암, 유대 인 기아이셨지."
  "디오탈레비, 자네 살갗은 분홍빛일세. 백인종이라는 뜻이야."
  "백변종 토끼도 있는데 백변종 유대 인이 없으라는 법이 있어?"
  "디오탈레비, 이 사람아. 사람이 우표 수집가가 되듯이, 여호와의 증인이 
되듯이 그렇게 유대 인이 될 수는 없는 법이네 유대 인은, 유대 인으로 
태어나야 유대 인일세. 이제 그걸 인정하라고. 자네는 우리와 마찬가지인 
이방인이야."
  "할례까지 받았다."
  "이것 보게, 위생상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포경수술을 하는 세상일세. 
할례는 칼 든 의사만 있으면 누구든지 받을 수 있어. 그래 자네, 할례라는 
걸 도대체 몇 살 때 받았나?"
  "말 장난하지 말자."
  "암, 하지 말아야지. 유대 인 장난도..."
  "우리 할아버지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는 건 아무도 증명하지 못해."
  "물론 없겠지, 암, 고아였으니까 뭐든 마음대로 될 수 있었겠지. 
비잔티움의 왕위 계승자가 될 수 있었고, 합스쿠르크가의 사생아도 될 수 
있었을 테지."
  "우리 할아버지가 고아가 된 것은 포르티코 독타비아 근처에 있는 
로마의 게토여서였다."
  "하지만 자네 할머니는 유대인이 아니잖아? 유대인 핏줄이 모계 
계승이라는 것도 모르나?"
  "기록상의 누락도 있을 수 있고, 시청의 호적계가 잘못 읽을 수도 
있지만 피는 속이지 못해. 내 몸 속을 흐르는 피가, 내 사상이 지극히 
탈무드적이라고 속삭이는 것을 어떻게 하나? 이방인도 나처럼 탈무드적일 
수 있다고 주장할 모양인데, 자네 그러면 지독한 인종주의자밖에 안 돼."
  디오탈레비가 방을 나간 뒤에 벨보가 중얼거렸다.
  "신경 쓰지 말게. 거의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논쟁이니까. 실인즉 
디오탈레비는 카발라 신봉자라네. 하지만 기독교도 중에도 카발라 
신봉자는 얼마든지 있네. 하기야 디오탈레비가 죽어도 유대인이라고 하는 
바에, 내가 앞을 막고 설 이유는 없지."
  "그래요, 마음대로 하는 세상인데요."
  "하긴 그래."
  그는 담배를 붙여 물었다. 나는 그제서야 왜 재가 거기에 와 있는 
이유를 기억해 내었다.
  "성당 기사단에 관한 원고 이야기를 하셨죠?"
  "그래... 어디보세... 인조 가죽표지였지 아마.."
  그는 산더미처럼 쌓인 원고 한가운데서 가죽 표지 원고를 뽑아내려고 
했다. 위에 쌓인 원고가 쏟아지지 않게 그것만 뽑아낸다는 것은 대단한 
손재주를 요하는 작업이었다. 벨보는 가죽 표지 원고를 내밀었다. 
  나는 목차와 서문을 일별했다.
  "성당 기사들의 체포에 관련된 기록이군요, 1307년에 공정왕 필립은 
프랑스에 있던 성당 기사들을 모조리 체포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필립 
왕이 체포령이 떨어지기 이틀 전에 황소가 끄는 대형 짐수레가 건초를 
잔뜩 싣고 파리에 있던 성당 기사들의 소굴을 떠났다는 전설이 있어요, 
물론 그 수레의 목적지는 아무도 몰랐지요. 전설에 따르면 이 수레의 건초 
속에는 오몽이라는 사람이 이끄는 한 무리의 성당 기사들이 숨어 
있었답니다. 이 기사들은 파리를 무사히 빠져 나간 뒤 스코틀랜드로 숨어 
들어가서는, 킬 위닝에서 석공 무리와 합류합니다. 여전히 전설입니다만, 
이들이 바로 프리메이슨 조직의  핵심이 됩니다. 프리메이슨 조직은 
홀로몬 신전의 비밀 수호자를 자처하는 무리지요. 아, 여기에 있군요, 있을 
줄 알았죠, 이 글의 필자 역시 석공 조합, 말하자면 프리 메이슨의 효시를 
스코틀랜드로 숨어 든 성당 기사들로 보고 있군요, 아무 근거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울궈먹은 이야깁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와 비슷한 주장이 담긴 문서라면 쉰 종도 더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주목할 만한 대목이 나오는군요, 아무렇게나 넘겼는데도...
  들어보세요, <...성당 기사들이 스코틀랜드로 탈출했다는 것은, 그로부터 
6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의용 성당 기사단 전설에 귀를 기울이는 
세계의 비밀 결사가 있다는 것만 보고도 알 수 있다. 바로 그 성당 
기사단의 밀지가 계승되어 온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이 글이 주장하는 요지는, 
<고양이가 장화를 신고 시중을 들었다는데 어떻게 카라바 후작은 이 
세상에 존재한 흔적도 없는 사람이라고 우길수 있겠는가...> 바로 
이겁니다.
  "좋아. 성당 어쩌고 하는 게 재미있는 데다 일단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남에게 넘기지 않는 주의이기는 하네만, 이 원고만은 당신에게 넘기지, 
그런데 당신 성당 기사단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들이 많은데 말타 기사단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이 없지? 지금 설명할 것은 없네. 노무 늦었으니까. 
디오탈레비와 나는 조금 있다가 가라몬드 사장과 저녁을 함께 하기로 되어 
있네. 열 시 반이면 끝날걸세, 디오탈레비를 꾀어 필라데 술집으로 나감세, 
디오탈레비는 초저녁 잠이 많은 데다 술을 잘 안마시기는 하네만...거기에 
가 있겠나?"
  "딴 데가 없잖아요? 나는 마침 로스트 제네레이션이라서.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만 만나면 그만 마음이 푸근해진답니다."
    20  
   '그렇다면, 여기에는 성배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까.' 
  벨보가물었다. 
  '당연하지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나뿐인 것은 아닙니다. 선생은 
공부를 많이 한 분이니까 성배 전설을 여기에서 되풀이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지요. 원탁의 기사.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술잔으로 믿어지는, 따라서 
기적을 일으키는 이 물건을 찾아 떠나는 신비스러운 모험...이 성배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프랑스로 가져 간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가져 간 것은 성배가 아니라 
마력이 깃 든 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배는, 섬광을 
방사하는 발광체였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한한 에너지의 원천인 
불가사의한 권능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 발광체는, 주린 자는 먹이고 병든 자는 낫고, 눈먼 자는 뜨게 하고, 
죽은 자는 살립니다. 
  혹자는 이것을, 연금술사들이 말하는 철인의 돌과 동일시합니다만. 
만일에 그렇다면 철인의 돌이라는 것이 우주적 에너지의 상징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 수 있겠습니까 이 신비스러운 돌을 소재로 삼았던 문학 
작품을 꼽자면 한이 없습니다만, 선생 같은 분은. 그 상징적인 의미가 
별것이 아닌 경우와 반박이 불가능한 경우를 쉬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물지팔에 따르면 성배는 성당 기사단의 성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에센바흐는 성당 기사단에 입문한 사람이었을까요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멋대로 떠벌진 경솔한 인간이었을까요 뿐만 
아닙니다. 성배는 라피스 엑실리스, 즉 하늘에서 떨어진 하늘의 돌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라피스 엑실리스라는 말이 하늘에서엑스 코엘리스 떨어진 
돌이라는 뜻인지, 아니면 엑사일. 즉 바빌론귀양지의 돌을 뜻하는 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를 지니건, 굉장히 먼 곳에서 온 
돌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을 두고 유성친로이었을 거라고 하는 
사람도없지 않습니다. 요컨대.성배의 정체가무엇이던지 간에,성당 
지사들에게는 목적, 혹은 재획의 궁극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잠깐만 실례합니다. 밀지에 따르면 기사들이 여섯 번째로만나는 곳은 
돌에서 가까운 곳, 흑은돌 위로 되어 있는데요. 돌을 찾으라는 뜻은 아니지 
않을까요나는그의 장광설에 제동을 걸었다.'
   '또 하나의 다의적을은또인 표현, 말하자면 또 하나의 명쾌하고 
신비스러운 아날로지올시다. 그래요. 여섯 번째 집회는 돌 가까이서 열리게 
되어 있어요. 그것이 어디에 있는 돌인지는 곧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바로 
이 돌 옆에서 계획의인수 인계가 이루어지고 밀지의 봉인이 개봉되어야 
기사들은 비로소 그 돌의 소재를 알게 됩니다. 신약 성서에 나오는 
동음이의 종류별의 말장난 같은 거지요. 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나는 이 반석 위에다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지요. 요컨대 돌 위에서 돌의 
소재를 알게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 만합니다. 계속하시지요. 여보게, 까소봉, 말씀하시는 
도중에 툭툭 불거지지 말게. 나머지 말씀이 궁금해서 죽겠는데 당신 
도대체 왜 그래.' 
  벨보가 나를 나무랐다. 대령은 말을 이었다.
  '계속하지요.나는 오랫동안 성배의 정체를 두고, 기사들이 어마어마한 
보물로 여기고 그토록 찾아 다닌 성배는 혹시 외계에서 날아 온, 방사능을 
띤 물질이 아닐 것인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가령 말이지요. 암포르타스 
왕의 전설에 나오는 낫지 않는 상처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전설에 
따르면 암포르타스의 상처는, 방사능에 장시간 노출된 사람의 증상과 
흡사합니다. 그 상처에 접촉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왜 접촉하면 안 
되었을까요. 사해변료에 이르렀을 때 성당 기사들은 소금의 농도가 높아서 
들어간 사람의 몸이 코르크 마개처럼 둥둥 뜨는 것을 보고 얼마나 
홍분했을 것인지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이 물에는 치료 효과도 있습니다. 어쩌면 성당 기사들은 
팔레스티나에서 라듐이나 우라늄의 광산을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어요 당시 팔레스티나에서는 발견되어 봐야 별 볼일이 없는 
광상이겠지만요, 성배, 성당 기사단, 그리고 카타리 파의 관계가 한 용감한 
독일군 장교에 의해 과학적으로 검토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유럽과 
아리안 족 성배 전설의 본질에 대한 엄밀하고 학술적인 연구에 평생을 
바친 독일군 친위대의 오버슈투름반쥐러 돌격대 대장 오토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양반은 1939년에 죽었는데 이 양반이 죽게 된 까닭과 
경위는 다 아실 테니까 재론 않겠습니다. 몇몇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맙시다. 하지만 앙골프에게 있었던 일은 잊어버릴 수가 없군요. 아무튼 
오토란은 아르고나우타이가 찾으려했던 금양모피와 성배 사이에 분명히 
어떤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배 전설과 철인의 돌과, 
히틀러의 추종자들이 개전 초부터 종전 막바지까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무한한 에너지 원이 무관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 아르고나우타이 
이야기 판본에 따르면. 아르고나오타이는 빛의 나무가 있는 세계의 산에 
술잔이 하나 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술잔이라는 것에 유념하세요. 이 
아르고나오타이가 금양모피를 발견하는 순간 이들이 탄 배 아르고 호는 
불가사의하게도 남쪽 하늘의 은하수 속으로 날아들어 갑니다. 남쪽 
하늘이라면 영원한 하나님의 빛나는 본질이 남십자성, 삼각좌, 제단성으로 
현현하는 방위가 아닙니까. 잘 아시다시피 심각성은 성삼위 일체를 십자는 
사랑의 희생을 제단은 부활의 술잔이 놓여 있던 최후의 만찬을 
상징합니다. 켈트와 아리안 족의 신화에 나오는 이러한 상징의 의미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대령은 독일군 돌격대 대장이야 어떻게 되었든. 장엄한 희생을 각오하고 
있던 자기 오버슈투름운트드랑 시대 제3제국 시대의 영웅적 자아 도취에 
젖어 하늘에라도 오르고 것 같았다. 따라서 누군가가 대령의 다리를 잡아 
지상으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었다. '도대체 이 이야기는 어디에서 
끝납니까.'
  내가물었다.  
  '시뇨르 까소봉, 당신이 한번 끝내어 보지 그래요 성배는 
루키페로스뽀고의 돌이라고도 불렸는데, 루키페로스는니까 바포메트 
아닙니까 성배는 힘의 근원이고, 성당 기사들은 신비에 싸인 에너지 원의 
수호자들입니다. 그래서 성당 기사들은 에너지원을 수호할 계획을 
수립합니다. 자. 성당 기사단의 지부호붐가 어디에 세워지겠습니까 어디겠
어요, 여러분...' 
  '아르덴티 대령은 우리가 공모자이기라도 한 듯이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쌔게는 그걸 추적해 볼 만한 단서가 
있었어요. 잘못짚은 것으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헛수고는 아니었지요. 
1797년, 모종의 밀지에 접근한 것임에 분명한 샤를르 루이 까데가시꾸르는 
자끄 드 몰레의 무덤 전지전능을 바라는 자들과 결탁한 음모가 들의 
비밀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겠지만 이 
양반의 책이 바로 앙골프의 서재에 있었어요. 이 양반은 몰레가죽기 전에 
파리, 스코틀랜드, 스톡흘름, 나폴리에다 네 개의 비밀 지부를 
설립했었다고 주장합니다. 왕권을 요절내고 교황권을 도륙하기 위해서 
설립했다는 거지요. 가스꾸르라는 사람도. 밀교적 성향이 어지간한 
사람이었어요. 나는 이 사람의 착상을, 성당 기사단의 비밀 지부 추적의 
실마리로 삼았습니다. 이런 실마리도 없이 밀지의 수수께끼를 풀 수는 
없는 것이지요. 나는 여러 가지 근거 자료를 토대로, 성당 기사단의 정신이 
켈트적 드루이드적 연원에서 출발한다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이 정신은 북방 아리아니즘의 정신입니다. 
  북방 아리아니즘은 북극 지방의 전설적인 문화의 터전인아발롱 섬과 
전통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많은 역사가들이 
이 아발롱섬을, 혜스페리데스의 낙원. 혹은 울티마 뚤레, 또는 금양모피가 
있는 콜키스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그 규모가 가장 컸던 
기사단이 라또아송 도르, 즉 금양모피 기사단인 것은 우연일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밀지가 성이라고 지칭한 것의 정체가 분명해집니다. 
이 성은 다름 아닌 히페르보레이아. 즉 극북4좌에 있는 성입니다. 그러니까 
성당 기사들은 바로 이 성에다 성배, 혹은 신화적인 몬살바트를 감추어 
두고 있다는..' 
  그는, 우리가 자기 말의 요지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잠시 뜸을 들였다. 
우리는 그의 의도대로 뜸을 들였다가 다시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이 밀지에 나오는, 두 번째 봉인 관리할 추밀 요원문제로 
되돌아갑시다. 그 봉인의 수호자는 빵과 관련된 곳으로 가야 하는데, 
이로써 이 밀지의 의미는 분명해집니다. 성배가 그리스도의 피를 담은 
술잔이라면 빵은 그리스도의 살이 아니겠어요 빵과 관련된 곳은. 최후의 
만찬 현장입니다. 그게 어딥니까 예루살렘이지요. 성당 기사단은, 사라센이 
예루살렘을 수복한 뒤에도 은거지는 계속해서 유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계획의 유대적 요소에 아리안 신화가 깊이 개입되어 있는 
데 적잖게 당황했습니다만, 오래지 않아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지요. 
우리는. 로마 교회가 항용 그렇게 주장해 왔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종교에서 나온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당 기사들은 예수의 
신화가 사실은 켈트 신화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난해한 연금술적 알레고리템 촛인데 이걸 쉽게 풀어 
버리면 결국 대지의 품속에서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인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연금술사들의 불로 불사약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삼위 일체가 아리안 족의 개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드루이드 교도였던 생 베르나르가 초안한성당기사단 
3라는 숫자에 그렇게 강한 집착을 보였던다...' 
  대령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 치 목소리는 벌써 끝이 갈라져 있었다.  
  '...이제 세 번째 행선지, 즉 세 번째 은거지가 문제로 떠오릅니다. 세 
번째 은거지는 티벳입니다.'
  '어째서 티벳입니까'  
  '왜냐첫째. 에센바흐에 따르면 성당 기사단은 유럽을 떠나면서 성배를 
가지고 인도로 갑니다. 인도는 아리안 족의 요람이지요. 성당 기사들의 
은거지는 아가르타입니다. 여러분도 아가르타 이야기를 들어 보셨겠지요 
아가르타는 세계를 다스리는 왕의 보좌, 세계의 지배자들이 인류 역사를 
관리하고 그 나아갈 길을 인도하는 지하 도시입니다. 그래서 성당 
기사들은 저희들 영성 룹탈의 근원인 아가르타에다 비밀 본부를 세운 
것입니다. 이 아가르타와 시나르키아죠죠땀레의 관계를 아시겠지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나는 몰랐습니다. '
  벨보가 대답했다. '몰랐어도 상관없습니다. 아가르타와 시나르키아의 
공통점은... 비밀을 아는 자는 죽인다는 것입니다. 역시 이야기가 옆길로 
새고 말았군요. 아무튼 아가르타는 지금부터 6천년 전, 그러니까 칼리 
유가가 초기 성립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칼리 유가에 
속해 있지요. 대부분의기사단들은 이 아가르타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싶어했습니다. 말하자면 동방의 지혜와 서양의 지혜를 잇는. 살아 있는 
관계를 갖고 싶어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네 번째 회동이 
이루어지는 곳은 명백해진 셈입니다. 어딜까요 드루이드교의 성지, 그리고 
성처녀의 도시에 있는 사르뜨르 대성당입니다. 프로뱅에서 보면 사르뜨르 
대성당인 일 드 프랑스를흐르는 가장 큰 강, 즉 세느 강 맞은편에 
위치합니다. '
  황당무계...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잠간만요... 아니. 사르뜨르 대성당이 젤트 족이나 드루이드교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관념이 어디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하시오 유럽에 맨 처음 
등장하는 성모는 켈트 족의 흑성모톤로톨올시다. 소싯적에 생 베르나르는 
생 보아를르 교회에서 흑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러자 
흑성모는 젖을 세 방울 짜서 미래에 성당 기사단을 창설할 인물의 입에 
떨어뜨려니다. 성배 전설은 바로 이 사을 계기로 생겨납니다. 십자군의 
원래 임무는 성배를 찾는 것이었는데, 성배 전설이 생겨남으로써 십자군의 
임무에는 베일이 드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 베르나르의 베네딕트 
수도회가 드루이드교의 유산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아는 얘깁니다. '
  '그러면 흑성모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흑성모들은, 북방 신화와 켈트 족의 전승쎌친을 와해시키고 나자렛의 
마리아 신화를 유포함으로써 이를 지중해적 종교로 변용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 손에 파괴되고 말았지요. 아니면, 지금까지도 일반의 광신적인 
의례에 등장하는 수많은 흑성모로 변형되거나 왜곡되거나 했지요. 위대한 
풀카넬리가 그랬듯이. 지금이라도 성당에 있는 성상을 주의깊게 관찰해 
보세요. 그러면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다시말해서 켈트 족의 흑성모, 
연금술의 전승. 성당 기사단의 상징이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온 가지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성배와 철인의 돌이 동일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확인된 셈이지요 그렇다면 흑성모는 영웅들이 찾아 헤매는 
성배의 프리마 마테리아제 질료를 상징합니다. 연금술사들은 바로 이 
프리마 마테리아를 통하여 철인의 돌에 이르고자 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이 철인의 돌과 성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드루이드교에 입문했던 또 하나의 위대한 인물인 마호메트는 이른바 
메카의 검은 돌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섬기는데. 그가 어디에서 영감을 
받고 이러한 상징을 조작하게 되었는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사르뜨르 대성당에는 지하 납골당이 있는데, 이 납골당은 지하의 다른 
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누군가가 벽을 쌓아 납골당에서 지하의 다른 
방으로 내려가는 계단문을 막고 말았습니다. 왜요 지하 납골당의 
아랫방에는 진짜 이교신 상류 있었거든요. 아직까지도 있습니다. 볼 수 
있다면 여러분도 이 성상이 바로 오딘을섬기는 자들이 조각한 노뜨르담드 
필리에, 즉 흑성모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흑성모는 
오른손에는 오딘교 고위 여사제의 주술적인 원통, 왼손에는 주술적인 
달력을 들고 있는데, 이 달력에 새겨져 있던 상징은 이제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내가 있던이라고 하는 것은, 오딘교의 성수들이었던 개, 
독수리, 사자, 백곰, 낭인의 그림이 불행하게도 그리스 정교회교에 의해 
인멸되었기 때문입니다. 뿐입니까 고딕 시대의 학자들 치고, 사르뜨르 
대성당을 보면서 술잔, 즉 성배를 든 여신상을 눈여겨보지 않은 학자가 
없습니다. 사르뜨르 성당은, 관광 가이드가 소개하는 대로 보면 안 됩니다. 
관광가이드야 사르뜨르 대성당을 두고, 로마적이다. 가톨릭적이다, 
사도적이다. 할 테지요. 그러나 그렇게 보면 안됩니다. 제대로 종교 전승을 
보는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아발롱 섬에 있는 에이어스 바위가 
스스로 입을 열고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됩니다. '
  '드디어 포펠리칸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들은 대체 누굽니까'
  카타리 파 이단자들이지요. 포펠리잔 혹은 포펠리칸트라는 것은 
기독교도들이 붙인 이교도의 많은 별칭 중 하납니다. 프로방스의 카타리 
파는 철저히 토벌되고 맙니다. 나는 그들이 여전히 몽세귀르의 폐허 
위에서 회동하는 모습을 상상할 만큼 순진한 사람이 아닙니다. 카타리 
파는 철저하게 토벌되고 말았지요. 그러나 이단의 종파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지하로 들어간카타리 파의 근거지라면 그위치까지도 나와 
있습니다. 바로 이 카타리즘이 단테와 돌체 스틸 누오보휴 시인들로 
하여금 비밀 결사 페델리다모르 사랑의 신봉자에 입회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다섯 번째의 회동 장소는 따라서 북이탈리아 아니면 
남프랑스일 것입니다. '
  '마지막 회동 장소는요' 
  켈트 족의 문화가 남긴 돌의 문화 유산이 있는 곳 중에서 가장 유서 
깊고, 가장신성하고, 가장 오래 남은 유산이 있는 곳이 어딥니까 마지막 
밀지의 실천을 앞두고 회동한 프로뱅 성당 기사단 후계자들이 그때까지 
일곱 봉인에 의해 가려져 있던 비밀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선택할 만한 태양신의 성지로 됐가 어디겠습니까 마침내 성배를 손에 넣은 
이들이 무한한 힘의 원천에 이르는 비법을 알게 되는곳이 어디있습니까 
당연히 잉글랜드이 33지요. 스톤헨지의 석주 환열3 여기 아니면 
어디겠어요' 
  오 바스타 라 벨보가 중얼거렸다. 피에드몬트 토박이가 아니면 공손하게 
자기 놀라움을 나타내는 이 말의 뜻을 알아 먹을 수 없다. 다른 나라 
말이나 사투리로 바꾸면 논 미 디카, 디 동, 아유키딩, 혹은 누굴 놀리는 
거요가 될 테지만, 이런 표현으로써는 화자에 대해 확고하게 드러내는 
극단적인 무관심과 체념의 분위기를 전할 수 없다. 벨보는 화자를, 
경조부박하기 짝이 없는 조물주의, 구제가 불능한 자식이라고 
야유하고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령은 피에드몬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벨보가 자기 말에 맞장구를 친 것이거니 여기고 말을 이었다.  
  '아무렴요, 그렬습니다. 이렇게 놀랍도록 단순하고. 놀랍도록 앞뒤가 
한결 
같은 계획입니다. 그러나 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유럽과 아시아 
지도를 꺼내어. 이 계획이 시작된 북유럽의 성에서 예루살렘, 예루살렘에서 
아가르타, 아가르타에서 사르뜨르, 사르뜨르에서 지중해 해변, 그리고 
지중해 해변에서 스톤헨지를 선으로 이어 보세요. 그러면 다음과 같은 
북유럽의 고대룬 문자꼴이 될 겁니다. '
  '그래서요.'
  벨보가물었다. 
  '이 룬 문자 꼴의 문장이 공교롭게도 성당 기사단이라는 밀교단의 
중요한 근거지를 지날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미엥. 생 베르나르외 
본거지였던, 동방의 숲 가장자리의 트로와. 랑스, 사르뜨르, 르네 레 샤또 
그리고 고대 드루이드교의 중심지였던 몽 생 미셀을 지나는 겁니다. 이 룬 
문자꼴은 처녀좌 같기도 하고요...'
  디오탈레비가조심스럽게 끼여들었다. 
  '천문이면 나도 좀 관심을 가져 봤는데요. 처녀좌의 모양은 이것과 좀 
다른 것으로 아는데요 처녀좌에는 별이 열 한개가 있지 않습니까.' 
 대령은 크게 생색을 내는 듯이 웃었다. 
  '줄을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여러분도 
압니다. 선을 긋는 데 따라 수레 모양을 그릴 수도 있고 곰 모양을 그릴 
수도 있는 거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별이 확실하게 그 성좌에 속하는지 
속하지 않는지 그것도 분명하게는 말할 수 없는 법이고요. 처녀좌를 다시 
한 번 보세요. 처녀좌의 일등성인 스피카 성을 맨 아래쪽으로 가도록 하고 
이걸 프로방스 해변이라고 생각하면 나머지 별 다섯 개를 보세요. 그러면 
이 룬 문자꼴 그림과 아주 비슷한 데 놀랄테니까요.'
  '어떤 별은 빼고 어떤 별은 넣고... 그래야 한다는 겁니까.'
  벨보가물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
  '납득할 수가 없군요. 회동이 이미 계획대로 이루어졌을 가능성 혹은 
기사단이 해체되었을 가능성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는 겁니까'
  나 자신도 그 징후를 확실하게 읽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유감스럽다고 하는 걸 양해해 주세요. 계획은 도중에 방해를 받았는지도 
모르지요. 밀지의 대단원을 마무리하기로 되어 있는 기사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지요.36명의 기사들이 세계적인 참사에 휘말려 
분산되고 말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정신을 계승한 다른 무리, 
조상들의 밀지를 제대로 배운 무리가 이 밀지의 실마리를 이어갈 만한 
무리를 찾고 있는지도 또한 모르는 일이지요. 그 무리가 어떤 무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여기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나는 의로운 사람을 찾고자 
합니다. 의로운 사람을 찾아 그들의 노력을 격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책을 
출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 나로 하여금 이 전설절인 
학문 체계의 미로로부터 빠져 나갈 방안을 마련해 줄 사람과 접촉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바로 오늘, 이 방면의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선각자임에는 분명하나, 내게 도움말을 들려주기에는 역부족이더군요. 내가 
쓰는 이야기에 관심을 표명하고 내 책의 서문은 기꺼이 써주겠다고 
합디다만...'
  벨보가 물었다. 
  '미안합니다만, 대령께서 이 신사분을 믿고 원고의 내용을 설명해 버린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가 아닐까요 오늘 대령께서는 앙골프의 실책이 
무엇이었는지 우리에게 들려주셨습니다만...'
  '그만 합시다. 앙골프는 하수였어요.내가지금 접촉하고 있는 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학잡니다. 이분 같으면 섣부른 결론은 내리지 않지요. 
이분은 나에게, 원고를 출판사 관계자에게 읽히는 걸 자제해 달라고 
하더군요. 논리적으로 상호 모순되는 문제를 해결한 연후에 보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는 그분에게 더 이상 심려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오늘 
여기에 온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이해하실 겁니다. 내가 
이렇게 서두르는 까닭을요... 그 신사분...내 입이 왜 이렇게 
방정스러울까...그래요, 나는 더 이상 그분의 이름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이름을 숨김으로써 공연히 뭔가 뻐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분은 라꼬스끼라는 분입니다. '
  그는 잠시 말을꿀고 우리의 반응을 살폈다. 
  '라꼬스끼가 누구지요.' 
  벨보가그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라꼬스끼... 그 유명한 라꼬스끼 박사를 모르십니까 전승 연구의 
권위자랍니다. 편집인을 지내신 분입니다. '
   '아, 그 라꼬스끼였군요. 알지요, 알고 말고요.' 
  '원고를 최종 정서할 때는 이분의 충고를 들을 생각입니다만 지금을 
서둘 필요가 있습니다. 서둘러 선생들의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싶은 
겁니다. 조금 전에다 말씀드렸다시피 나는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겁니다. 새로운 정보도 더 모아들여야 하고요.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만 아는 사람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1944년을 전후해서, 
히틀러는 전세계를 만회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부터, 이 전세를 
한꺼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무기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사람들은 히틀러를 미친놈이라고 했지요. 그러나 만일에 히틀러가 
미친놈이 아니었으면 요내 말무슨 뜻인 지 아시겠지요...'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수염은 고양이 수염같이 뻣뻣해 
보였다. 
  '...어떻게 되든 미끼를 던져 보는 겁니다. 누가 이 미끼를 무는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고요.'
  그때까지 내가 보아 왔고 생각해 온 가늠으로, 나는 벨보가 점잖은 말로 
대령을 내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대령을 내보내지 않았다. 
그는 대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출판사와 계약하시든 다른 출판사로 가지고 가시든,이 원고 
자체가 
대단히 흥미로운 것만은 분명합니다. 10분 정도만 시간을 더 내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까소봉, 늦었네. 당신을 너무 늦게까지 잡아 둔 것 같군.'
  내일 만날까나는 쫓겨나고 있는 셈이었다. 디오탈레비가 내 어깨를 
치면서 같이 가자고 말했다.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대령은 디오탈레비와는 
악수를 나누면서도 내게는 냉담한 미소와 함께 눈인사만 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디오탈레비가 설명했다. 
  '벨보가 왜 자네를 먼저 내보내는지 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자네를 
박대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벨보는 대령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려는 것이야. 아주 미묘한 사안이지. 
왜 미묘하냐 하면. 시뇨르 가라몬드의 경영 지침을 따라야 하는 것이라서 
미모한 것이야. 우리는 거기에 있어 봐야 벨보의 짐밖에 될 것이 없어.'
  뒤에 알게 되었지만, 벨보는 대령을 마누찌오 출판사의 도서 목록에 
쳐넣으려 했던 것이었다. 디오탈레비를 졸라 술집 필라데로 갔다. 나는 
깡빠리를, 디오탈레비는 알코올 성분이 없는 루트 비어를 마셨다.  
  '루트비어에서는 어쩐지 수도원같이 고리타분하고 고색 창연한맛, 
결국은 
성당 기사단 맛이 난단 말이야...'
  디오탈레비가 중얼거렸다. 나는 그에게 대령을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일찍 오느냐 늦게 오느냐가 문제지, 이 세상의 얼간이들은 어차피 
한번씩은 출판사를 찾아오게 되어 있지 그렇지만 이 세상의 얼간이들 
중에는 최고신의 지성을 번뜩이는 얼간이도 있는 법이야. 그래서 현자들도 
얼간이들 앞에서 더러겸손을 떨어 대는 법이지 ...'
  머뭇머뭇하다가그가 미안해 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만 가볼까 오늘 밤에는 모임이 있거든.'
  나의 경솔한 질문이 당혹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그가 모임의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조하 즘, 즉 광휘의 서촐 독회작품인데, 문제는 레하야.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전한 메시지인데... 안풀리는 구절이 수두룩해...'
  
    21
  대령이라는 인물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가 하는 이야기만은 내 흥미를 
자극하기에 넉넉했다. 청개구리도 한참 관찰하다 보면 재미가 나는 법. 
나는 이미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는 독물을 한 방울 맛보고 있던 
셈이다. 다음날 오후 나는 벨보를 만나러 사무실로 갔다. 우리는 전날 
만났던 아르덴티 대령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벨보는 대령이 
어쩐지 황당 무계한 과대 망상증 환자 같더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라꼬스끼인지 로스트로포비치인지 하는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 대령의 
태도를 봤지 무슨 칸트라도 되는 것처럼 인용해 썻더라고...'
  '하지만 누가 하든 똑같이 그렇고 그런 옛날 이야기 아닙니까 앙골프는 
그런 이야기를 믿는 미치광이였고, 아르덴티대령은 앙골프를 믿는 
미치광이인 거지요.'
  '과거에는 앙골프를 믿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을 믿고 있는 
것 같더군. 그 양반, 우리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내가 다른 출판사를 
소개해 주고 그쪽 사람과 만날 시각까지 약속해 주었네. 출판물 선택하는 
데 우리처럼 까다롭지도 않고, 특히 자비 출판이면 뭐든지 찍어 주는 인심 
좋은 출판사를... 그 양반 되게 좋아하더군. 하지만 조금 전에 알았어. 그 
출판사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라... 게다가 그 밀지에 나온다는 사진 
복사물도 안 가져 갔어. 성당 기사단 밀지의 핵심이라는 걸 이렇게 
아무데나 내박쳐도 되는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서 황당 무계한 
몽상가들이라는 게 원체...'
  그때 전화 벨이 울렸다. 벨보가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가라몬드 출판사의 벨보올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어제 오후에 다녀 갔었죠. 책을 내겠다면서요... 미안합니다. 그건 
대외비리가 되어놔서요... 실례지만...'
  한동안 전화통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가 낮색을 잃고 나를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대령이 살해당했다는군... 내 말은 죽었다는 걸세...'
  그러다 다시 송화기에 대고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어제 대령과 얘기를 나눌 때 동석했던 우리 출판사 
상담역 
시뇨르 까소봉과 잠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네. 아르덴티 대령은 우리 
사무실로 와서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성당 기사단의 보물에 
관한 것이었던 듯한데, 내용이 다순 황당 무계합디다만... 성당 기사단요 
아, 중세의 기사단의 이름인데...'
  벨보는 성당 기사단을 말할 때는 본능적으로 송화기를 손으로 가렸다가 
내가 옆에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던지 손을 치웠다. 그는 머뭇거리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데 안젤리스 경위님 대령은 자기가 쓰려는 책 얘기를 
하더군요. 딱 부러지게 어떤 책이 될 것이라고 짐작하기는 어렵더군요... 
우리 둘 다 말인가요 지금요 알았습니다. 주소를 일러주시겠습니까.'
  벨보는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고 
있다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하네, 까소봉. 당신을 엉뚱한 일에다 끌어들인 것 같구먼. 하지만 
내게는 지금 뭘 생각하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네. 데 안젤리스라는 
경찰관일세. 대령은 호텔에 있었던 모양인데... 누군가가 어젯밤에 대령이 
죽어 있는걸 보았다고 주장했다는군...'
  '주장해요 그럼 경위라는 사람은 대령이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모른다는 
말인가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모른다는군. 대령의 메모지에서 내 이름과 어제의 
약속 시간의 메모를 보고 전화를 한 모양이네. 단서가 될 만한 건 
그것밖에 없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하겠나. 함께 좀 가보세.' 
  우리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 안에서 벨보는 내 어깨를 껴안고 이런 말을 
했다. 
  '까소봉, 잘 듣게. 이건 무슨 우연의 일치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 거야.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거나... 어쩠든 내 
고향에는, 무슨 짓을 어떻게하고 돌아다니든 남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말라는 말이 있네. 어린 시절에는 곧잘 우리 고향 사투리로 공연되는 
그리스도의 강탄극을 보고는 했는데, 분위기가 엄숙하면서도 재미도 
만만찮은 소극이었지. 그런데 이 극에 베들레헴의 목자로 나오는 녀석이 
엉뚱한 실수를 했지. 극중의자기가 있는 곳이 베들레헴인지. 타나로 
강둑인지, 포 강둑인지 그만 깜빡한 것이네. 동방박사들이 나타나 이 목자 
소년에게. 주인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이 멍청한 녀석이, 젤린도 
어른이라고 대답한 거라. 이렇게 되자 객석에서 진짜 젤린도가 뛰어나와 
목자를 무대에서 끌어내려면서 왈, 이 자식아, 남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말랬잖아... 자네가 괜찮다면 대령은 앙골프라든지, 프로뱅의 밀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한 것이 없네...'
  '앙골프처럼 실종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지요'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다 
헛소리야. 공연히 끼여들지 않는 게 좋은 판도 있는 법이지.'
  나는 그런 문제에 관한 한 벨보의 의견을 좇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목하의 사안룰촌은 그것이 
아니지만 나는 어떻게 되었던 시위전력이 있는 학생 신분이었다. 경찰이 
거북살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래지 않아 우리는 출판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호텔에 이르렀다. 고급 호텔은 아니었다. 밖에 
있던 경찰관중 하나가 우리를 이른바 대령의 방으로 안내했다. 계단에도 
경찰이 깔려 있었다. 27호였다. 2 더하기 7은 9...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계단을 올랐다. 조그만 탁자가 놓인 현관. 찬장이 놓인 주방, 샤워 시설이 
되어 있는 욕실... 샤워실에는 커튼이 없었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틈으로 욕실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곳에 온 손님들이 최소한의 요구 
사항이었을 터인 비데가 보이지 않았다. 우중충한 가구. 정성을 기울인 
구석이 없는 방... 그런데 그나마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누군가가 서랍과 옷장을 뒤진 모양이었다 경찰이 그랬을 수도 있었다. 
사복을 포함해서 십여 명의 경찰관이 그 방에 있었다. 잘 생긴 장발의 
젊은 사복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내가 데 안젤리스입니다. 벨보 박사와 까소봉 박사지요.'
  '저는 박사가 아닙니다. 아직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좋지요. 부지런히 하시오. 학위가 없으면 경찰 시험 보기도 힘들거든요. 
온갖 불이익을 다 당하거든요...'
  초조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요식 행위부터 이게 이 방에 투숙한사람의 여권입니다. 아르텐티 
대령이라는 이름으로 들었는데요, 사람 맞습니까.'
  벨보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아르덴티... 하지만 먼저 어떤 상황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전화 통화 내용만으로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아르덴티 씨는 
죽을려니까, 살아 있는 겁니다.' 
  안젤리스 경위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그걸 가르쳐 드릴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하여튼 좋습니다. 두 
분은 우리보다 아시는 게 많을 테니까요. 시뇨르 아르덴티, 혹은 아르덴티 
대령은 나흘 전이 이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보셨으니까 아시겠지만. 고급 
호텔은 못 됩니다. 프런트 직원은 11시에 잠자리에 듭니다. 투숙객에게 
정문 출입구 열쇠가 있으니까요. 호텔에는, 아침에 출근해서투숙객의 
잠자리를 치우는 여직원이 둘 있고, 알코올 중독자인 노인이 하나 
있습니다. 이 노인은 투숙객들이 벨을 누르면 술 심부름 같은 일을 도맡아 
하는, 일종의 심부름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인은 알코올 중독 
증세뿐만 아니라 동맥경화증 증세도 보입니다. 프런트 직원에 따르면. 
노인은 이따금씩 허깨비를 보았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투숙객들을 더러 
귀찮게 하기도 한답니다. 프런트 직원은, 대령이 어젯밤 10시를 전후해서 
두 사나이와 함께 호텔로 들어와 자기방으로 올라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 호텔은 한 투숙객이한 소대쯤 되는 변태 성욕자들을 몰고 2층으로 
올라가도 감쪽같을, 그런 곳입니다. 데스크 말로는, 아르덴티와 함께 
들어온 사람들은 억양이 이곳 사람들과 다소 달랐을 뿐, 별로 이상하게는 
보이지 않더랍니다. 10시 30분. 아르덴티는 알코올 중독자 노인을 불러 
위스키 한 병과 광천수 한 병, 술잔 세 개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1시와 1시30분 사이에, 노인은 27호에서 난 듯한 이상한 소리를 듣습니다. 
아침에 증언할 때의 모습으로 보아 노인은 어젯밤에도 싸구려 술을 몇 잔 
한 것 같습디다. 아무튼 노인은 2충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립니다. 
묵묵부답... 그래서 노인은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열쇠로 문을 땁니다.
  방은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것과 같이 잔뜩 어질러져 있고 대령은 침대 
위에 쓰러져 있습니다 전선에 목이 졸려 죽은 채 말이지요. 눈은 뜨고 
있더랍니다. 노인은 기겁을 하고 1층으로 내려와 프런트 직원을 깨웁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바로 2층으로 올라가지는 못합니다. 겁이 났던 
거지요. 두 사람은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전화선이 잘린 것 같더라고 
하는군요. 오늘 아침에는 감쪽같이 통화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만, 일단 두 
사람의 말을 믿기로 해야지요. 프런트 직원은 길 모퉁이에 있는 
공중전화로 달려가 경찰에 신고하고 노인은 길 건너편에 있는 병원으로 
의사를 부르러 갑니다. 긴 이야기 짧게 하지요. 이들은 약 20분 동안 
현장을 비운 셈입니다. 그런데 호텔로 돌아온 뒤에도 두 사람은 무서워서 
2층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층에서 기다립니다. 경찰과 의사는 같은 
시각에 도착해서 2층으로 함께 올라갑니다. 그러나 침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무도 없다뇨'
  '시체가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의사는 하릴없이 병원으로 돌아가고 
경찰은 보시다시피 이 꼴이 된 방에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두 분께 한 이야기는 문제의 알코올 중독자 노인과 프런트 직원에게 들은 
걸 그대로 옮긴 겁니다. 자, 10시를 전후해서 아르덴티와 함께 들어온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들은 10시에서 1시까지는 이 방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만. 여기에 있는 것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노인이 
들어 왔을때 이들이 이 방에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도 모릅니다. 노인이 이 
방에 머문 시간은 불과 1분도 안 됩니다. 물론 주방과 욕실을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도 없는 상태였지요. 그러면 이 두 사내는, 프런트와 노인이 
각각 경찰서와 병원에 연락하러 간 동안에 사라진 것일까요 시체를 
둘러메고 사라진 것일까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이 호텔에는. 마당으로 
통하는 바깥 계단이 있습니다. 이 마당에서, 거리 쪽으로 난 문을 통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침대 위에 
정말시체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겁니다. 
  대령은 자정 무렵에 두 사내를 따라 나가고 없는데 노인이 헛것을 본 게 
아니냐는 겁니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노인은 헛것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는 발가벗은 채 목을 매고 죽은 여자를 보았다고 
난리를 피웠는데, 반시간 뒤에 그 여자가 팔팔 날아갈 듯이 차려 입고 
외출했다가 돌아오더랍니다. 직원은 이 일이 있은 뒤 노인이 방에서 심령 
과학 잡지 나부랙이가 나구는 걸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모르는 
일이라는 겁니다. 노인이, 열쇠 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다가 어둠 속에서 
엉뚱한 것을 보고 시체라고 우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방에는 아르덴티가 없다는 겁니다. 말을 
너무 많이 했군요, 벨보 박사. 이제 박사의 차켈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발견한 것이라고는 저 조그만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메모지 뿐입니다. 오후 
2시, 라꼬스끼. 호텔프린시페 에 사보이아 오후4시. 가라몬드 출판사의 
벨보 박사... 이게 전붑니다. 박사께서는 대령이 박사를 만나러 왔더라고 
했습니다. 그때의 정황을 들려주십시오.'
  
    22
  벨보의 증언은 간단했다. 그는 전화를 통해 경위에게 말한 바 있는 
증언만 되풀이했다. 대령은 프랑스에서 발견한 어떤 문서에서 읽었다면서, 
어디어디에 굉장한 보물이 묻혀 있다는, 다소 뜬구름 잡는 소리를 했다. 그 
보물 자체에 관해서는 별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위기로 
짐작하건대 그 비밀을 안다는 것 자체 때문에 그 외 신상은 위험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랬겠지만 그는 그 비밀을 공개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그 비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공유함으로써 그 위험 부담을 
나누려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에 앞서 그 비밀을 접한 사람들 중에는 
종적을 감춘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출판을 약속하면 원고를 
보여주다고 했지만 우리는 원고를 보기 전에는 출판 약속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만나자는 막연한 약속만 하고는 혜어졌다. 대령은 
라꼬스끼라는 사람을 만났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라꼬스끼는 편집자라고 했다. 대령은 라꼬스끼에게  
원고를 출판할 경우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한 것 같고, 라꼬스끼는 
대령에게 출판을 연기할 것을 권했던 것 같다. 
  대령은 이 라꼬스끼에게, 우리 가라몬드 출판사 관계자를 만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벨보의 증언은 이것이 전부였다. 데 안젤리스 경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박사께 어떤 인상을 주던가요'괴짜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과거 이야기를 하는데 도무지 과거의 일 같지 
않더군요. 감정이 묻어 있지 않은 것 같더라는 말입니다. 외인 부대 
이야기를 할 때도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
  그는 박사께 진실을 말했을 겁니다. 진실의 전부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요... 우리는 사실, 벌써 상당한 기간 동안 이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상황이 아주 많지요. 먼저. 
아르덴티라는 이름인데. 이건 이 사람의 본명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합법적인 프랑스 여권이 있습니다. 그 여권으로 몇 년 전부터 
이따금씩 이탈리아에 나타나는데, 우리가 알기로 이자는,1945년의 귈석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아르코베지 대위입니다. 나치 친위대에 부역한 
혐의지요. 이자는 몇 사람인가를 실제로 다하우 수용소로 보낸 이력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도 이자는 요시찰 인물로 찍혀 있지요. 프랑스 
국내에서는 사기 혐의로 기소되자 국외로 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아르덴티가 어떤 경우에는 파소티라는 이름을 쓰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짐작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작년에 
페스키에라 보로메오의 한 중소 기업가가 사직 당국에 고발할 때의 이름이 
파소티입니다. 이 파소티, 혹은 아르덴티는 이 중소 기업가에게, 전설적인 
파시스트 부자인 동고의 보물이 아직 코모호쌘 바닥에 가라앉아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는 그 위치까지 안다고 사기를 치고는. 그 중소 기업가로부터 
잠수부 둘을 고용하고 동력선을 빌리는데 필요하다면서 수천만 리라를 
갈취한 뒤에 자취를 감춘 자입니다. 따라서 이자가 보물에 미쳐 있는 사람 
같아 보이더라는 박사의 증언은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 
라꼬스끼라는 사람은요'
  '이 사람에 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블라지미르 라꼬스끼라는 사람이 
프린시페 에 사보이아 호텔에 묵고 있더군요. 아주 점잖은 신사라는 게 
호텔 쪽의 말입니다. 이 호텔의 데스크 직원이 우리에게 한 증언과도 
일치합니다. 알리탈리아 항공에 조회해 보았더니, 이런 이름을 씌는 승객이 
오늘 아침 첫 비행기로 파리로 갔다는 군요. 그래서 인터폴에도 연락을 
취해 두었습니다. 아눈찌아타, 파리에서 연락 온 거 없는가.'
 '없습니다, 경위님.'
  '알겠네... 파소티가 되었건 아르덴티 대령이 되었건, 이사람은 나흘 전에 
밀라노로 왔습니다. 처음 사흘간 무엇을 했는지 우리로서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나흘째 되는 날, 그러니까 어제가 됩니다만. 호텔에서 라꼬스끼를 
만났습니다. 라꼬스끼에게는 박사를 만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흥미롭군요. 아르덴티는 어젯밤에 라꼬스끼로 보이는 사람과 또 하나의 
정체 불명의 사내를 대동하고 이 호텔로 들어왔습니다. 이 두 사람이 
아르덴티를 죽이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을 뒤지기는 했을 겁니다. 
무엇을 찾으려 했을까요 대령이 밖으로 나갔다면, 혹은 끌려 나갔다면 
분명히 셔츠 바람이었을 겁니다. 왜냐... 여권이 든 윗도리는 이 방에 
있거든요. 있어 봐야 무슨 뽀족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노인은 대령이 
윗도리를 입은 채로 침대 위에 쓰러져있더라고 했으니까요. 다른 윗도리가 
또 있었을까요 이거. 뭐가 뭔지 모르겠구먼... 어디까지 얘기했던가요 
그렇지, 그 윗도리까지 했지요. 윗도리 주머니에는 돈이 들어 있더군요. 
너무나 엄청나게 많은 돈이... 
  따라서 그자들이 노린 것은 돈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런데 두 분은 
나에게 다른 단서를 주시는군요. 분명히 대령은 문서가 있다고 하던가요 
어떤 문서던가요.' 
  '갈색 서류 가방을 가지고 다니더군요.'
  벨보가 대답했다. '빨간 가방 같습디다만...
  '내가 다른 의견을 말했다.'
  '갈색일걸... 하지만 내가 잘못 보았을 수도 있지.'
  '갈색이든 빨간색이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어젯밤에 대령과 함께 
들어온 자들이 그걸 가져 갔을 겁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여기에 있는 이 옷가방 뿐입니다. 까자이 궁금하실 겁니다만, 
아르덴티에게는 출판 의사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그에게, 뭔가 
라로스끼를 협박할 꼬투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출판 계약 
어쩌고 하는 것은 라꼬스끼에 대한 압력 수단이 될 수 있었던
것이죠. 이자의 스타일이 늘 그랬거든요. 따라서 몇 가지 추리가 
가능합니다. 두 사람은 아르덴티를 협박한 뒤 호텔을 나갔고, 겁에 질려 
있던 아르덴티는 옷가방을 남겨 둔 채 서류 가방만 들고 밤을 도와 
도망쳤을 것입니다. 도망치면서, 어떤 이유에서, 노인의 눈을 속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죽은 것처럼 생각하도록 말이지요. 소설같이 
아귀가 딱 맞기는 하는데. 방이 이렇게 어질러진 이유는, 이로써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게 아니고 두 사람이 정말 아르덴티를 죽이고 서류 가방을 
빼앗아 갔다면 뭣 하러 시체를 가져 갔냐는 겁니다. 미안합니다만 두 분의 
신분증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그는 내 학생증을 살펴보고는 중얼거렸다. 
  '운동권이시로군.'
  '우리 학교에는 아주 많습니다. '
  '너무 많지. 성당 기사단 공부를 하신다고 성당 기사탄의 배경을 좀 
공부하려면 무슨 책을 읽어야하오.'
  나는, 상당히 널리 하지만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책 두 권을 소개해 
주고는, 다른 자료는 억측의 산물에 불과하고 믿을 만한 것은 재판 기록이 
고작일 것이라는 말을 보탰다. 
  '자네 전공이 성당 기사단인데 또 성당 기사단 이야기가나와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겠네. 성당기사단이라... 내게는 초면인 단체인걸.
  '아눈찌아타라고 불리던 경찰관이 다가와 데 안젤리스 경위 앞에 전보 
용지를 내밀었다. 
  '파리에서 온 회신입니다. 경위님.' 
  데 안제리스 경위는 돌아서서 전문을 읽고는 되돌아섰다. 
  '좋았어. 파리에는 라꼬스끼라는 사람이 없답니다. 여권은2년 전에 
분실된 것이고요. 뭔가가 되어 가는 모양입니다. 무슈라꼬스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이름이다...무슨 잡지의 편집자를 지냈다고요 그 
잡지 이름이 뭐라고 하셨지요 벨보가 잡지 이름을 말하자 경위는 받아 
적고는 말을 이었다.' 
 '...조사는 해보았습니다만 이런 잡지는 처음부터 없었거나 있었다칠 
하더라도 오래 전에 폐간되었기가 쉽습니다. 두 분,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뒤에 다시 번거롭게 해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지요. 아르덴티가 혹시 무슨 정치 조직과 
끈이라도 탕는 것같이 굴던가요.'
  '아니오, 보물 때문에 정치와는 담을 쌓은 사람 같던데요'
  '배짱 한번 좋구나...'
  경위는 이러면서 내가 물었다. '당신은,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것 같던데 스타일이 달라서요. 그러나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해서, 전깃줄 
같은 것에 목이라도 졸려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닙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
  '당연하지. 걱정 마시게, 시뇨르 까소봉. 나는 학생은 무조건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경찰관은 아니야. 행운을 비네, 자네와 자네가 쓰고 
있는 논문에 두루...'
  '실례지만 경위님은 살인 사건 전문 수사관입니까, 아니면 정치 사건 
전문입니까.' 벨보가 물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어젯밤에는 살인 사건 전문인 내 동료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르덴티의 기록에서 여죄수가 자꾸 나오니까 내 
동료는 이 사건을 내게 떠넘긴 겁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정치 담당입니다. 
그러나 내가 우익인지 좌익인지 그건 나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은 간단하지 
않더군요. 탐정 소설이 아니라서요.'
  '그건 나도 압니다. '
  벨보가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대답했다. 우리는 호텔을 나섰다. 속이 
찜찜했다. 데 안젤리스가 마음에 걸렸던 것은 아니다. 그는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마음이 찜찜했던 것은, 난생 처음으로 찝찜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나 벨보는 경위 앞에서 위증을 
한 셈이었다. 벨보와는 가라몬드 출판사 앞에서 헤어졌다. 그 역시 마음이 
무거웠던 모양이었다. 변명처럼 그가 말했다. '
  '우리는 나쁜 짓을 한 게 아널세. 경찰에게 앙골프니 카타리니 
미주알고주알 주워섬겨 봐야 달라질 게 엄네. 어차피 미궁으로 빠지기는 
마찬가지일 테니까. 아르덴티는 사라질 이유가 있어서 사라지겠지. 이유야 
수천 가지도 있을 수 있고... 라꼬스끼는 묵은 죄를 처단하는 이스라엘의 
비밀 정보부 요원인지도 모르는 일이고... 어쩌면 대령이 배신한 어떤 
거물이 보낸 자객, 이것도 아니면 아르덴티가 원한 살 짓을 했던 외인 
부대 전우였는지도 모르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알제리아 
암살단원인지도 모르는 일이고... 성당기사단 운운한 것은, 대령이 벌인 
사기 행각 중에서 정말 하찮은 것인지도 물라. 그러니까 잊어버리세. 갈색 
가방이 되었건 빨간 가방이 되었건 가방은 사라졌네. 
  당신이 나와 반대되는 증천을 한 것은 좋았어. 우리가 가진 정보가 
지극히 빈약하다는 반증이 될 테니까...'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벨보는 다소 
허둥대는 인상을 주고있었다. '...당신 내가 또 도망친다고 생각하겠지. 
시위가 있던날 라르가 가에서 도망쳤듯이...'
  '천만에요. 우리는 별로 잘못한 것도 없잖아요 두고 봐야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공연히 벨보에게 미안했다. 내 시선 때문에 그랬을까 그는 자신을 
려쟁이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나는 
학교에서, 경찰과 마주설 때는 거짓말만 해야 한다는 걸 배운 사람이었다. 
그것은 원칙이었다. 그러나 죄 의식이 우정을 해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 뒤로 나는 오랫동안 벨보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죄 
의식을 느꼈고. 그 역시 나에게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나는 한 해를 더 공부하고, 성당 기사단 재판에 관한 타자용지 2백 50장 
분량의 논문을 썼다. 나는 =I때 가서야 대학원생은 학부 학생보다 당국의 
감시를 훨씬 적게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나라에 
대한 상당한 충성심을 가진 증거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논문을 쓸 동안 부지런한 조국 건설의 역군 대접을 받고 
있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몇 달 뒤부터 학생들은 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옥외에서의 군중 시위 시대는 종막을 고하고 있었다. 나는 이상주의자가 
못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한 나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나는 
제3세계를 상대로 그러듯이 암파로에 대한 사랑에 빠져 들었다. 암파로는 
브라질 국적을 가진 마르크스주의자로 대단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혼혈아 
미녀 암파로는 당시 우리 학교에 와 있던 연구원이었다. 나는 암파로에게 
지성과 욕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파티 장에서 만난바로 그 날 나는 
내 충동에 충실했다. '미안하지만 당신을 갖고 싶은데 ...'
  '더러운 남성 우위론자로군요.'
  '그래서 미안하오.'  
  '괜찮아요. 나는 더러운 여성 우위론자니까...'
  암파로가 브라질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암파로를 잃고싶지 않았다. 
암파로는, 마침 이탈리아 어 강사 하나를 찾고있던 리오 대학교와 접촉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었다 리오 대학교는 갱신한다는 약정을 묶어 2년 
계약을 제안해 왔다. 이탈리아에 정을 붙일 수 없던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신세계에서는 성당 기사단 
같은 것들과는 놀지 말자...박물관의 전망경실에 웅크리고 있던 그 토요일 
밤 내가 내린 결론은, 놀지 말자고 다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같이 놀게 된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가라몬드 출판사 편집실 계단을 오르던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성당 
기사단 본부에 들어서 버린 셈이었다. 디오탈레비의 말이 떠올랐다. 
비나(지성)는 시원의 한 점에서 확산되면서 형성되는 호흐마(지혜)의 
궁전이다... 호흐마가 수원이라면 비나는 거기에서 흘러나온 강의 흐름이고, 
이 흐름은 이어 수많은 지류를 이루다가 마지막 세피라에서 바다로 흘러 
든다. 그러나 만물의 형상이 빚어진 것은 이 비나 안에서다...  
  
    23
  나는 암파로가 좋아서 브라질로 갔다가. 그 브라질이 좋아서 거기에 
주저앉았다. 나는, 인디오와 수단 계표와 통흔한 네덜란드 계 레시페 
정착민의 자손이고, 얼굴은 자마이카 사람 같고 교양은 파리 사람 같은 
암파로에게 스궤인 어 이름이 붙은 내력을 이해할 수 얼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는 브라질 인들 이름의 내력은 들구지 않는다. 이들의 이름은 
모든 종류의 인명 사전에 도전한다. 
  사실 이런 이름 체계는 오로지 브라질에만 있다. 우리 고향에서 
개숫대에 물을 부으면 물은 시계 방향으로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면서 
하수구로 빠져 나간다. 그러나 암파로의 말에 따르면, 브라질이 있는 
지구의 남반구에서는 물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면서 
하수구로 빠져 나간다. 시계 방향과 시계 반대 방향... 나는 이것을 거꾸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다. 고향에서 눈여겨 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사실 
우리 북반구 사람 중에 이걸 실제로 실험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브라질에서는 이걸 여러 차례 실험해 보았다. 그러나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이유로는. 첫째, 하수구 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물의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고 .둘째 
소용돌이가 도는 방향은 그 속도와 각도와 개숫대 모양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적도에서는 어떻게 될까 
수직으로 좌악 빠져 나가거나, 소용돌이가 전혀 생기지 않거나. 물이 전혀 
빠져 나가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이 어디로 어떻게 빠져 나가든, 
브라질에서는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전망경실에 있던 그 5일 
밤, 나는 지구의 자전 방향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푸코의 진자가 이 모든 비밀을 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암파로는 
믿음에 관한 한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종종 이런 말을 하고는 했다.
  '경험적인 특정 사건은 문제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이상적인 상태에서 
검증되는 이상적인 원리인데... 이런 것이 존재 할 리 없죠. 그러나 이게 
참이에요.'
  밀라노에서의 암파로의 지성은 육윽을 유발하는 매력의 하나였다. 
그러나 브라질에서는 달랐다. 조국의 강산성 토질로부터 자콕을 받기라도 
한 듯이 암파로는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변해 갔다. 암파로는 
어찌나 공상 지향적인지 지하적인 요소까지도 합리적으로 설명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 내부에 잠들어 있던 고대의 정서에 눈뜨면서도 그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그 유혹을 거부하고자 하는 금욕과의 갈등이 
암파로를 감상적인 여자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동료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암파로의 이러한 
모순되는 일면을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모임은 대개, 몇 장의 포스터, 
민속 공예품, 레닌의 초상 및 아메리카 인디언의 우상, 브라질 북동부의 
자칭 과격파 단체인 깡가세이로스의 테라코타 인형 따위가 주렁주렁 걸린 
조그만 오두막에서 열리고는 했다. 그 나라가 정치적으로 가장 불안 할 때 
이탈리아에 있던 나는, 이탈리아에서 정치적 격동기를 체험한 뒤라서 
이데올로기 문제에 한차례 매달려 보기로 했다. 내가.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보기로 한 까자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암파로 동아리의 사고 방식이나 표현 방식은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나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그 동아리의 대부분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겉보기에는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지만 이들이 다루는 주제는 사뭇 달랐다. 이들은 계급 
투쟁을 두고 설전을 벌이다가도 느닷없이 브라질 원주민의 식인종 
풍습이나, 혁명에서의 아프리카 계 종교의 역할이 등장하는 등, 하여튼 
주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기가 일쑤였다. 이들로부터, 다른 것은 
몰라도 잡종 종교 밖 이야기를 들을 때만은 남반구의 경우 이념이라는 
물이 북반구에서와는 반대 방향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자주 나라 안을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이주민에 
관한 파노라마를 그려 보이고는 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북쪽의 무산 
계급은 산업 지대인 남쪽으로 내려와 스모그가 자욱한 대도시의 떠돌이 
프롤레타리아 되었다가 절망을 안고 다시 북쪽으로 이주하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남하하고야 마는 악순환을 되풀이한다는 것이었다. 이 이주민들 
중 상당수는 악순환의 과정 중에 대열을 이탈. 지나치게 비대한 토착 
종교에 흡수되어, 신령애경도 되거나 아프리카신들에게 의지하는 현상이 
논의의 대상이 될 때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한 한 암파로의 동패들도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동패 중에는 이러한 현상을, 백안 세계에 저항하는, 
뿌리 되는 문화로의 회귀 현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사교 집단은 통치 계급에 이용됨으로써, 잠재 혁명 세력을 다스리는 데 
유용한 아편 노룻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이러한 사교야말로 
백인과 인디언과 흑인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데 필요한 훌륭한 
잡탕찌개 냄비 노릇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잡탕 
찌개 냄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좋은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암파로의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암파로에게, 
종교라고 하는 것은 벌써 인민의 아편이었고, 브라질의 가짜 민속 종교는 
아편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었다. 그러나 에스콜라스 데 삼바 축제에서, 
사람을 견딜 수 없게 하는 타악기 리듬을 따라 장사진을 이룬 인파에 
휘말려 암파로의 허리를 껴안았을 때, 나는 암파로가 여전히배와 가슴과 
머리와 콧구멍이라는 관능적인 근육에 의지해서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암파로는 그 뒤로도. 카니발에 사람들이 기울이는 
종교적 열정을 비판하고. 그 종교적 열정이 지니는. 주신제를 방불케 하는 
혼음 난교의 성격을 냉소적으로 혹은 격렬하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 
앞장서고는 했다. 암파로는, 그런 종교관은 무산자들의 전투적 에너지와 
저항 정신을 무디게 하는 주술사의 놀음판 같은 종족적 푸닥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못 혁명 전사에게 어울리는 경멸을 실어 이러한 현상을 
비판했다. 암파로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의 본뜻을 알아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절신 돈제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런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채 주문이나 외우고 요술이나 부림으로써 온갖 잡신들을 
다 불러 사후의 평화를 구하는 행위는 사람들을 나날이 비현실적인 세계로 
빠져 들게 했다는 것이다. 
  나는 브라질에서 모순을 자각하는 능력을 나날이 상실해 강에 따라 
오래지 않아 이 유서 깊은 잡종의 천국에 사는 잡다한 종족을 구분해 
보려던 시도도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역사의 진보와 혁명이 잠들어 
있었던 곳을 일으켜 세우려던 노력을, 또는 암파로의 동패들이 표현했던 
것에 따르자면 자본주의의 음모를 밝혀 보려던 노력을 포기했다. 한때 
어떤 유럽 인에게 브라질 극좌 세력의 희망이 노르데스뿐 지역의 한 
주교에게 달려 있다고 가르쳤던 내가 어떻게 유럽인으로서의 사고를 
계속할 수 있었겠는가 그 주교가 어떤 위인이던가 소싯적 나치에 부역한 
혐의를 받고 있던 인물, 그런데도 불구하고 믿음 체 의지하여려 없이 
혁명의 기치를 높이 올림으로써 바티칸을 진노케 하고, 조심성이 많기로 
소문난 월 스트리트의 탐식가 바라쿠다 무리들을 혼란에 빠뜨린 장본인, 
일곱 가지 고뇌에 잠긴 채, 고통받는 인민을 내려다보던 아름다운 성모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프롤레타이아적 신비주의 무신론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장본인이다. 
  어느 날 오전, 나는 암파로와, 떠돌이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구조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한 뒤 자동차로 해변을 달리고있었다. 우리 눈에, 해변에 
간소하게 차려진 제물이 보였다. 촛불, 하얀 제의같은 것들이었다. 
암파로의 말에 따르면, 물의 여신 예만자에게 드리는 제물이었다. 우리는 
자동차를 세웠다. 암파로는 자동차 밖으로 나가 가만가만 모래밭을 걷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암파로에게 그 여신을 믿느냐고 물어보았다.
  '내가어떻게 그런 걸 알아요...'
  암파로는 화를 발칵 내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이따금씩 나를 이 해변으로 데리고 나와 여신에게 
기도했어요. 나를 예쁘게 자라도록 해달라고, 행복하게 살도록 해달라고, 
검은 고양이와 산호 빛 뿔 이야기를 한 이탈리아 철학자가 누구였죠 그 
사람은, 이것은 참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믿는다고 했죠 나는 이 
여신을 믿지 않아요. 그러나 이것은 참이에요.'바로 이날 나는 돈을 
절약해서 바이아로 여행 떠날 결심을 했다. 내가 유사 연상을 말하자면 
만물은 신비스럽게도 다른 것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상호 유추를 
능가한다는 감정 습관에 나 자신을 맡겨 버리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이날이었다. 됫 날 유럽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이 애매한 형이상학적 
개념을 하나의 역학적인 줄거리로 바꾸었는데, 내가 이렇듯이 올무에 걸려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브라질에 있을 당시의 나는, 모든사물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이는, 
말하자면 내 감각의 황혼 같은 것을 살고 있었다. 나는 인종주의자라도 된 
것처럼 강자는. 타인의 믿음을 저희들의 무해한 백일몽의기회로 이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거기에서 몸과 마음을 한 덩어리로 만드는 삼바의 
리듬을 배웠다. 전망경실에 있던 날 밤, 나는 마비되어 가는 내 사지의 
감각을 유지하려고 브라질에서 아고고를 두드리듯이 사지를 흔들면서 나 
자신에게 타일렀다. 알겠지 미지의 권능으로부터 빠져 나가려면, 그것을 
믿지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려면. 그 권능이 행사하는 마법을 받아들여야 
한다. 서원을 세운 무신론자처럼 밤이면 악마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이것을 이성적으로 논증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은 환상이다... 소화 불량 때문에 헛것이 보이는 
것이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악마는, 저 자신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악마는 나와는 정반대 되는 신학을 믿는다. 그런 것을 믿고있는 악마라면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성호만 그어도 악마는 회벽 틈으로 사라진다. 당시 
나에게 일어났던 일은 오랜 세월 식인 풍습을 연구해온 현학적인 
인종학자에게도 일어날 법한 일이다. 인종학자는 식인 풍습을 절대로 믿지 
않는 백인들에게 관심을 환기시키느라고. 실제로 사람의 살은 참 맛있다는 
주장을 편다. 그런데 어느 날 이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이 학자를 대상으로 
학자 자신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확인해 보려고 한다.  
  학자는 토막 나서 이들에게 먹힌다. 그러나 학자는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먹히면서도 자기고기가 맛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식인종들의 제의적 인육 정당성이 증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망경실에 있던 날 밤. 나는그 계획을 실재하는 것으로 믿어야 했다. 
실재하지 않는다면 나의 2년 세월은 허망한 악몽의 세월이 될 터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악몽보다는 현실을 좇아야 했다. 계획의 일부가 실재하는 
것이라면 계획은 실제하는 것일 터였다. 따라서 내 책임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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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사 연상의 기묘한감정 습관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던 즈음 벨보.로부터 
한 장의 편지가 날아왔다. 
  친애하는 끼봉
  당신이 브라질에 가 있는 줄은 정말 몰랐네. 연락이 끊기는 바람에 나는 
당신이 졸업한 것도 몰랐다네 늦게나마 졸업을 축하하네. 필라데에 갔더니 
당신 친구 중 하나가 주소를 가르쳐 주더군. 그래서, 저 재수 없는 
아르덴티 대령 사건의 최근 상황을 당신에게 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를 쓰네. 벌써 2년이나 된 일이네만. 내 다시 한 번 당신에게 
사과하네. 나에게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네만 어쨌든 당신을 이 일에 
엮어 들게 한 것은 바로 내가 아니던가. 최근까지 그때 일을 거의 잊은 
채로 살았네. 그런데 두주일 전에 자동차를 몰고 몬데펠트로 지역을 
지나다 산 레오 요새에 잠간 들르게 되었네. 이 요새는, 교황 치하에 있을 
때인 18세기 교황이 끼 글리오스뜨로를 여기에다 연금시킨 것으로 유명한 
요새일세. 문은 아예 있지도 않았고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내려가면 그게 
마지막이었다네, 창이라고는 마을의 교회 두 개가 바라다 보이는 조그만 
환기창 하나밖에 없더군. 나는. 까글리오스뜨로가 잠을 잤고.
  마침내 누워서 숨을 거둔 침상 위에 장미가 한 다발 놓인 것을 보았네. 
관리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순교를 기려 그곳을 순례한다고 했네. 
까글리오스뜨로의 유적을 순례하는 신도들 중 가장 열렬한 신도들이 
누군고 하니, 바로 밀라노 대학생들의 은비주의 연구 단체인 피카트릭스 
회 회원들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이 단체는 피카트릭슨라는 이름의 잡지도 
발간하고 있다고 하네. 대단한 상상력의 소산 아닌가 .내게, 이런 동아리가 
벌이는 짓거리를 퍽 궁금하게 여기는 버릇이 있다는 것은 당신도 잘 알 
것이네. 그래서 밀라노로 돌아가는 즉시 피카트릭를 한 권 구해 보았네.
 잡지에는 마침, 며칠 뒤에 까글리오스뜨로의 열린다는 기사가 나와 
있더군. 날짜를 맞추어 달려가 보았네 초혼제 현장의 벽면에는 카발리즘의 
상징, 온갖 종류의 올빼미, 이집트 인들이 신성시하던 투구풍뎅이와 섭금류 
참룰뜸의 새들, 족보가 불분명한 동방의 신들이 잡다하게 그려진 깃발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네 .뒷벽에는 강단, 통나무에 묶은 횃불을 가지런히 
세운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뒤로는 삼각 제구프때눈쥬와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소상씬이 놓여 있었네. 아누비스의 소상이 즐비한 
제실툰로에는 까글리오스뜨로의 초상이 걸려 있었네 그것이 
까글리오스뜨로의 모습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의 모습일 수가 있겠는가. 
이 방에는 이 밖에도 금박을 입힌 이집트 쿠프 왕의 미라,24지 촉대 두 개. 
곧추 선 두 마리의 뱀의 조상 사이에 걸린 징이 있었고, 열주의 
기단위에는 상형 문자 무의의 사라사 천에 덮인 독경대 두 개의 왕관, 두 
개의 삼각 제구, 운반이 가능한 소형 석관 보좌, 모조품임에 분명한 17세기 
의자, 노팅엄 집정 장관들의 잔치에나 어울릴 듯한, 견줄 데없이 
호화스러운 의자 네 개, 신령스럽게 번쩍거리는 큰 촉대와 작은 촉대. 
서원을 세울 때 쓰이는 물 그릇도 보였데 .묘사가 길어졌네만 내친 
걸음이니 계속하겠네. 먼저 빨간 제의를 입고 손에 횃불을 든 일곱 
제동뚠로이 들어왔고, 
  이어서 분홍빛 제의 차림의, 피카트릭스 회 회장인 듯한 제관이 제관을 
브람빌라라고 했네 이 들어왔네. 이제 관 뒤로는 수련자. 영매를 떤, 
어쩐지 빙 크로스비를, 시적으로 한번 말해 보자면 인풀라를 쓴 빙 
크로스비를 연상시키는 백의의 견습제관이 따라들어왔네. 브람빌라는, 
반달이 그려진 삼중관을 쓴 채, 제검을 집어 들고는 강탄에다 이상한 
상징적 무의를 그리더니 이윽고 천상에 있는 신령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네. 재있게도 이름이 모두 엘자로 끝나더군. 이 신령들의 이름을 
듣는 순간 앙골프의 메모에 나오던, 수많은 가짜히브리 신들 이름이 
생각났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것도 잠간... 이어서 벌어진 광경은 
참으로 어이없는 것이었네. 강단에 설치된 확성기는 튜너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기묘하게도 이 튜너는, 공중의 전파를 임의로 바꾸어가면서 잡게 
되어 있었던 모양이네. 
  그런데 이 튜너를 다루는 사람이 실수를 했는지 처음에는 격렬한 디스코 
음악이 올려 나오더니 곧 라디오 모스로 바러었네. 브람빌라는 석관을 
열고 경문을 꺼내 들더니, 향로 위로 이것을 흔들면서, 주여, 주의 왕국이 
가까이 왔나이다하고 소리를 치더군. 그러니까 정말 브람빌라의 말대로 
주의왕국이 가까이 왔는지 라디오 모스끄바의 소리가 뚝 그치는 거라. 
정말 짧지만 극적인 순간이더군. 그런데 갑자기 소리가 바뀌면서 이번에는 
술 취한 까자끄가 부르는 듯한 노랫소리가 흘러 나왔네. 왜 까자인들이 
발로 땅을 박차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부르는 노래 있잖은가... 
브람빌라는 클라비쿨라 살로모니스 솔로몬의 열쇠주문을 왼 다음 삼각 
제기에다 양피지를 태우고는 카르나크 신전의 신들을 불러, 감히 자신을 
출애굽기에 나오는 예소드의 입방석으로 인도하기를 기도한 다음 보호령 
불렀네. 
  브람빌라가 보호령을 부르는 순간제사 마당이 물을 끼앉은 듯이 
조용해졌던 걸 보면 그 제사의 참례자들 대부분은 이 보호령과 친교하고 
있는 것 같았네. 그때였네. 망아 탈혼이 된 듯한 여자 하나가 눈을 뒤집어 
까고 흰 창만을 번득거리며 달려 나왔다. 사람들은 의사를 부르려 했지만 
브람빌라는 펜타쿨룸표본토의 권세를 불렀네. 그러자 17세기풍의 가짜 
골동품 의자에 앉아 있던 수련 사제들이 몸을 비틀면서 신음하기 
시작했네. 브람빌라는 여자에게 다가가 몇 가지 질문을 던지더군 하지만 
여자에게 던졌다기보다는 보호령에게 던졌던 것일세, 그제서야 나는 그 
보호령 39가 곧 까글리오스뜨로라는 것을 깨달았네. 여자가 고통으로 
몸부림치기 시작하면서 제사 마당은 바로 난장판이 되었네. 여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비명을 질러 대는가 하면, 땀을 뻘뻘 쏟으면서,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신전을 열고 문을 열어야 한다고 고함을 질러대었네. 
불길이 인 만큼. 거기에 있는 참례자 모두가 그 불길의 소용돌이를 타고 
피라미드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고함을 질러 대었네. 
  그러자 강단에 서 있던 브람빌라도 흥분하기 시작하더군. 흥분한 
브람빌라는 징을 치면서 큰 소리로 이시스 여신을 불렀네. 나는 이 야릇한 
난장판을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여자가 문득 한숨을 쉬면서 여섯 
개의 봉인, 120년간의 기다림, 36명의 보이지 않는 기사...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겠나 의심할 여지없이 여자는 프로템 성당 기사단의 밀지 
이야기를 하고있었던 것일세. 더 들어 보고 싶어서 기다렸네만. 여자는 푹 
꼬꾸라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마는 거라... 브람빌라는 이 여자의 
이마를 쓰다듬고는 향로를 흔들어 참혜한 대중을 축복한 뒤 파제꾼을 
선언했네. 약간 무섭기도 했네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나는 여자에게 다가가려고 했네. 여자는 정신을 차리고는 외투를 
째어 입고는 뒷문을 통해 나가고 있더군. 내가 달려가 여자의 어깨를 
낚아채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는 거라... 돌아다보았더니, 
놀람계도 데 안젤리스 경위더군. 데 안젤리스 경위는 나에게, 여자를 
보내주라고 했네. 어디에 사는지 자기가 알고 있다는거라. 그러면서 커피나 
한 잔 하자고 하더군, 따라갔네. 못된 짓을 하다가 들킨 심정이었네만 경위 
역시 그쳤을거라. 경위는 나에게, 거기에서 뭘 하고 있었고, 여자에게는 왜 
접근했느냐... 이런 걸 묻는데. 기분이 언짢더군. 그래서 그랬어. 내게는 
누구에게든 접근할 자유가 있다... 경위는 기분을 상하게 해서 
미안하다면서 아르델티 사건의 진전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네. 수사에는 
별 진전이 없고, 경찰은 아르덴티가 가라몬드 출판사에 오기 전에, 
라꼬스끼를 만나기 전에 밀라노에서 이틀 동안 무엇을 했느냐,
  그걸 조사하고 있노라고... 경위의 설명에 따르면, 아르덴티가 종적을 
감추고 나서1년 뒤 어떤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정신이 약간 이상해 
보이는 여자와 피키려스 회 사무실을 나오는 아르덴티를 보았다는 걸세. 
그러면서 경위는, 자기가 이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 여자가 바로 
마약계에서는 이름만 대어도 파르 떨게하는 알 만한 사람과 동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네. 나는 경위에게, 초혼제 현장에는 우연히 들른 것이지만 
여자로부터 여섯 봉인 어쩌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는 대령으로부터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던 터라 적잖게 놀랐다고 했네. 그랬더니 경위는 
내가,2년 전에 아르덴티로부터들은 말을 그토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 경위를 만났을 당시에는 성당 기사단 보물 이야기는 
거의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것도 자기에게는 이상하게 보인다고 했네. 
어쩌는가 나는 대령으로부터 여섯 개의 봉인이 붙은 보물 이야기를 듣기는 
했어도, 보물의 전설에는 으레봉인이니 7중 봉인이니, 황금충이나 하는 
것이 등장하는 만큼 건성으로 들었노라고 할 수밖에... 경위는, 보물 
전설이라는 게 다 그렇고 그렇다면 여자의 말이 왜 내귀에 않게 
들리겠느냐고 물었네, 내가. 사람을 그렇게 용의자 다루 듯하면 안 된다고 
했더니 경위는 웃으면서 화제를 바꾸더군 경위는 이런 말을 했네.'
  여자가 그런 횐소리를 하는 것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 는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아르델티와 접촉했다면 르덴티는 틀림없이 여자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아르덴티는 분명히 그 여자를. 이 동아리 말마따나. 
영교로 이용하려고 했을 테니까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스폰지 
같은 것, 무의식의 사진 건판같은 겁니다. 피카트릭스 동아리들은 오랫동안 
이 여자를 세뇌시켰을 겁니다. 이 여자는 광신자인 데다 대단히 솔직하고 
정신까지 살짝 이상합니다. 이런 여자는 탈혼 망아 상태에 아주 쉽게 
이릅니다. 말하자면 이 여자는 탈혼 망이상태에서, 아르델티에 의해 
무의식에 새겨져 있던 걸 발설한 셈이지요...'
  그로부터 이틀 뒤 경위는 내 시무실에 들러 이상한 이야기를 했네. 
초혼제 이틀 뒤에 여자를 찾아가 보았더니, 없더라는 것일세. 초혼제 
끝나고 나서부터 이 여자를 본 사람도 없더라는 것이네. 경위가 이 여자의 
아파트로 쳐들어가 보았더니, 이불과 구겨진 신문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고 있고, 사람이라는 사람은 죄다 텅 비어 있고 적을 감춘 것이네. 
동거하던 자와 함께 경위는 내게, 여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털어 놓으라고 했네. 내 신상에 이로울 거라면서...
  '여자가 잠적한 경위가 내게는 미심쩍군요. 나는 여자가 잠적한 까닭을 
두 가지로 생각해 봅니다. 첫째, 여자는 누군가로부터 내가 접근하고 
있다는 귀뜸을 받고는 잠적했을 가능성 둘째는 벨보 박사가 접근하려 했기 
때문에 잠적했을 가능성... 그 날 여자가 접신 상태에서 한 말은이 사건 
해결에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릅니다. '
  경위는, 아르띤티 실종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성당 
기사단 관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렸고, 막상 여자의 입을 통해 
일부가 알려지자 여자에게까지 손을 깼을 것이라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네.
  '...경찰이. 박사가 여자를 살해했을 것이다. 이렇게 의심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요 우리는 한 배를 탄 겁니다. '
  '골이 나더군.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자주 골을 내는 사람이 아니잖은가 
집에 없다고 해서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건 무리가 있지요.'
  '대령 사건을 보고도 모르시겠습니까'여자가 납치 당했든 살해 당했든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그 날 밤에 경위와 함께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함께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건 자정까지만 그렇습니다. 그 
뒷일이야 아무도 모르지요.' 
  '아니, 진정으로 하시는 말씀이오'
  '탐정 소설도 못 러어 보셨습니까 히로시마에서 터진 원자 폭탄만큼이나 
환한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은 모두 용의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만일에 
새벽 1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내 
머리를 장기 은행에 기증하지요.'
  '까소봉, 이러는데 내가 어쩌겠나 대령이 우리에게 한말을 미주알고주알 
경위에게 했어야 했을까 하지만 우리 피에드몬트 사람은 내친 걸음은 
되돌리지 않네. 내가 당신 주소를 안 이상 데 안젤리스도 조만간 알아낼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를 쓰네. 그 사람과 연이 닿더라도 내 방침을 알고 
따라 주었으면 하네만, 내 방침이라는게 지금 갈팡질팡이니... 당신은 당신 
생각대로 하게. 지금 내 정신이 아닐세. 미안하네, 진짜 용의자가 되어 
버린 기분이군. 노력을 하기는 하네만, 혐의를 아주 말끔하게 벗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네. 촌놈이기 때문일 것이네. 우리 고향 사람들, 지독한 
촌놈들이거든 .만사가 독일 말마따나 으스스하네. 몸조심 하시계 야코포 
벨보.'  
  
    25
  편지 때문에 한동안 언짢았다. 데 안젤리스는 북반구에, 나는 남반구에 
있었던 만큼 꼬리를 말하는게 두려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가 
언짢았던 것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이유에서였다. 당시 나는, 뒤에 남겨 
두고 온 세계가내 뒤로 몰려오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거니 여겼다. 그러나 
아니다. 나는 요즘 들어서야 그것을 깨닫는다. 나를 괴롭힌 것은 또 하나의 
유사 연상,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은 몇 개의 유추 실을 통해 상호 관련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비록 편지를 접한 데 
불과하지만 벨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 역시 나를 괴롭혔다. 
벨보와 그의 끝없는 죄 의식은 늘 짐스러웠다. 나는 암파로에게는 편지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틀 뒤 벨보로부터 또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이 두번째 편지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벨보는 정신병자 건이 아주 그럴듯하게 끝났다고 쓰고 있었다. 당시 
경찰이 정보원으로부터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여자의 애인은 마약을 
선적하는 일에 관계되어 있었는데 이자가 마약을, 약값 지불한 사람에게 
넘기지 않고 소매하고 말았다. 마약 밀매자들의 세계에서 이것은 
대역죄였다. 따라서 여자의 애인은 살기 위해서라도 종적을 감추지 않으면 
안 되었고, 종적을 감추면서 여자를 데려간 것이었다. 이들이 살던 
아파트의 신문 더미에서 데 안젤리스 경위는 피카트릭스 회의 정기 
간행물을 찾아내었는데, 일련의 기사에는 붉은 줄까지 그어져 있었다.
  붉은 줄이 그어진 기사 중에는 성당 기사단의 보물 이야기도 있었고. 
보이지 않는 36기사를 자칭하면서 포스트라는 현판까지 건 채 은거하던 
비밀 결사 장미 십자단의 보물 이야기도 있었다. 데 안젤리스는 이로써 
진상을 추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정신병자도 대령과 비슷한 종류의 
기록이나 문서 읽기는 즐겼는데, 초혼제에서 탈혼 망아의 접신 상태에 
이르면서 그 정보가 의식의 수면으로 떠올랐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껄인 것이었다. 데 안젤리스가 맡았던 그 사건은 그 대목에서 
마약 수사반으로 넘어갔다... 벨보의 편지를 읽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데 안젤리스의 설명은 지극히 경제적이었다. 전망경실에 웅크리고 있던 
날 밤, 나는 사건의 진상은 실제와 전혀 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일에 그 정신병자가 아르덴티로부터 들은 것을 인용해서 지껄인 
것이라면, 이 설명에서 빠져 있던 잡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도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피카트릭스 회의 일원이 만일에 대령을 
제거했다면. 바로 이 일원은, 벨보가 이 여자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여자를 제거했을 수도 있었다. 여기에다 여자의 애인까지 
제거하고는 경찰 정보원에게 여자와 애인이 도망쳤다는 정보를 흘렸다고 
해도 수사는 종결되었을 터였다. 원대한 계획에 따라 진행된 일이었다면 
참으로 단순한 계획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계획된 일이었을 까닭이 
없다. 계획이라는 말은 바로 우리가 만든 말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우리가 
만든 계획은 허구이고. 
  만일에 우리의 배후에 그런 음모가 있다면 그것은 현실이다. 그런데 
현실이 허구의 세계를 뒤쫓고. 이것을 선행하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허구가 빚어 낼 재난을 보상하기 위해 현실이 허구를 앞서가는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가능하다면 먼 후일에나 가능할 터이다...이런 것은, 
브라질에서 벨보의 두 번째 편지를 받았을 당시에 했던 생각은 아니다. 
나는 당시에도 늘, 이것은 저것과 유사하다는 식의 유사 연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바이아로 가야겠다고 다짐하고도. 그 전까지는 본 척도 하지 
않던 책방이나 주물가게를 기웃거리면서 오후를 보냈다. 
  그 날 오후 나는 잡신의 조상과 우상이 가득가득 쌓인 가게로 들어가 
신비스러운 향기와 함께 연기를 뿜어 대는 예민자 향, 향료, 예수의 거룩한 
심장이라는 딱지가 붙은 방향 스프레이, 싸구려 액막이 같은 것을 샀다 
책방에는 사교의 신도들을 위한 책, 연구자들을 위한 책, 코모 아디빈하르 
오 푸투오 나 볼라 데 크리스탈 86 같은 점술 안내서, 문화 인류학 입문서 
둥도 있었다. 장미 집자단에 관한 전공논문집도 있었다. 그런데 문득 모든 
것이 내게는 유사하게 보였다. 예루살램 성전의 무어적 또 혹 마술 
아프리카 계 브라질 인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아프리카 식 무의도감, 120년 
이라는 세월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프로뱅의 밀지, 장미 십자단의 
120년...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거의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갖가지 술을 
섞어 마시는 재주나 가진 인간 교반기가 된 기분이었다.
  아득한 옛날에 꼬여 버린. 색색의 가느다란 전선 다발로 흐르는 전류를 
일거에 단락시키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 있다가는 아르델티 대령과 
세뇌당한 그 정신병자라도 만날 것 같아서 나는 장미 십자단 관련 책자 한 
권만 사들고 가게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암파로에게 쾌나 사무적인 
말투로. 이세상에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암파로가 
나를 위로해 주는 바람에 그 날은 무난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게 1975년 말이었다. 나는 세상 걱정은 접어 두고 공부만 하기로 했다. 
나는 이탈리아 어를 가르치러 와 있던 것이지 장미 십자단을 가르치려고 
브라질에 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르네상스 철학자들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중세의 암혹기를 아슬아슬하게 살아 남은 당시의 세속적인 
현실주의자들에게, 마음을 기울여 섬길 만한 것 중에는 카발리즘이나 주술 
이상 가는 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능을 꼬드겨. 
  그 본능으로서는 전혀 할 의사가 없는 일을 시키려 드는 
신플라톤주의자들 인문주의자들과 2년을 보냈을 때 나는 이탈리아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옛날의 내 급우 같은자들 실제로 급우도 몇 명 포함되어 
있는 이 저희들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들에게는 할 의사가 
조금도 없는 짓을 시키려고 총을 쏜다는 소식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제3세계의 일원이고 싶었다. 그래서 바이아로 갈 결심을 했다. 나는 
오랫동안 한 번도 펼쳐보지도 않은 채 서가 위에다 올려 두었던 르네상스 
문화사와 장미 십자란 연구서를 꾸려 바이아로 떠났다.  
  
    26
  
  나는 살바도르를 보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3백60개의 교회를 거느린, 
검은 로마라고도 할 수 있는 살바도르 다 바이아 데 토도스 오스 
산토스랄포갈의 구세주... 아프리카의 만신들이 섬겨지는 교회는 만에 면한 
일련의 구릉, 흑은 둥우리에 나란히 서 있었다. 암파로는, 커다란 목판에다 
중세의 세밀화똔룸딘 같은구약과 요한의 묵시록의 상징적 이미지, 고대 
이집트의 콤트와 비잔티움의 요소를 복잡하게 어울어지게 그리는 그 지방 
화가 찬 사람을 알고 있었다. 마르크스주의자인 그는 우리에게, 입으로는 
다가올 혁명의 시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는 노쏘 센호르 도 봄핌 
교회의 성물실딘썬로에서 백일몽에 잠긴 몽상가에 지나지 않았다. 
성물실은 말하자면 그 화가를 호로르 바쿠이로부터 구해 주는 방인 
셈이었다. 성물실 천장과 벽에는 무수한 봉물이 걸려 있었다. 은으로 
교묘하게 만든 심장, 나무로 깎은 팔다리, 인간이 기기한 폭풍과 
소용돌이와 해일로부터 구조를 받는 장면을 그린 그림들... 그는 우리에게, 
야카란다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가 빽빽하게 들어 있는 성물실도 구경시켜 
주었다.  
  '누구를 그린 것이죠 아일랜드의 수호 성인 성 게오르기우스 아닌가요.' 
  암파로가 성물설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성물실 
관리인은 의미 심장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우리도성 게오르기우스라고 합니다. 그렇게 안 부르면 목사님에게 
흔나거든요. 하지만 저 양만은 옥소씨 님이랍니다. '
  이틀 동안 그 화가는 우리를, 교회 뒤련에 딸린 수많은 방과 복도로 
안내했다. 방 앞에 붙어 있는 은판뽄은 까맣게변색되어 있었다. 우리가 
방방을 돌아다닐 때면 주름살 투성이의 절름발이 관리인은 반드시 우리를 
배행했다. 관리인은 금, 백랍, 무거운 상자, 값비싼 그림틀을 역겨워했다. 
벽면에는 유리 상자가 즐비하게 서 있었다. 유리 상자에는 등신대 옷의 
성인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성인들이 이승에서 얻은 상처에서는 피가 뚝뚝 
듣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피에 젖은 사지를 비틀고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들... 나는 후기 바로크 시대 금 세 공법으로 빛은 듯한 
에트루리아 풍의 천사들, 로마 풍의 괴물, 기둥머리에서 우리를 노려보는 
동방의 사이렌을 보았다. 
  나는 고풍스러운 거리를 걸으면서 거리거리의 이름을 되뇌어 보았다. 
가만히 발음해 보면 하나같이 노래 같았다. 루아 다 아고니아, 아베니다 
도스 아모레스, 트라베싸 데시코 디아보... 우리가 살바도르를 찾은 것은 
마침 정부, 혹은 정부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던 집단이 그 도시를 중건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따라서 만만한 유곽이 집중적으로 폐쇄의 변을 당하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한창 중건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의 살바도르를 찾아간 셈이었다. 어쩐지 악마 냄새가 풍기는, 수많은 
골목길을 긴 살 풍경한 교회 앞에는 열다섯 살 바기 창부들이 들끓고 
있었다. 길 양 옆으로는 부인네들이 냄비를 걸어 놓고 김이 무럭무럭나는 
아프리카 요리를 팔고 있었다. 
  뚜쟁이로 보이는 젊은것들은 근처 술집에서 흘러 나오는 트랜지스터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글씨 해독이 어려운 문장이 걸린 
포르투갈 식민주의자들의 고택옴촌이 창가로 변해있었던 것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 화가 안내인은 우리를 그 도시의 고지대쪽, 그러니까 중건이 끝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거리 양옆으로는 골동품상이 즐비했다. 그 화가 
안내인은 그 날, 그림을 사겠다는 한 이탈리아 신사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악마 군대와 싸우는 천사 장수를 그린 자그마치 가로세로가 각각 
3미터,2미터나 되는 그림을, 그나마 화가가 부른 값에서 한푼도 깎지 
않는다고 했다니 대단한 신사일 터였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시뇨르 아글리에를 만났다. 그는 그 더위에도 
줄무늬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금테 안경까지 끼고있었다. 머리카락은 은발. 
살갗은 장미 빛이었다. 그는, 숙녀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법으로는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밖에 모른다는 듯이 암파로와는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는 
샴페인을 불렀다. 화가가 먼저 자리를 떠야 할 계제가 되자 아글리에 씨는 
여행자 수표를 한 뭉텅이 쥐어 주면서 그림은 자기가 묵고 있는 호텔로 
보내 달라고 했다. 우리는 거기에서 한 동안 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글리에 씨는 포르투갈 어를 정확하게 했다. 리스본에서 배운 포르투갈 
어가 분명해 보였다.
  그의 포르투갈 어 억양을 들었을 때 어쩐지 그가 아득히 흘러간 옛날의 
신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지고는 했다 그는 우리의 내력을 궁금하게 
여겼다. 내 이름을 들었을 때는 제네바와 관계가 있느냐고 했다. 암파로의 
집안 내력도 궁금해했다. 그러나 자기 집안의 내력에 관해서는 잘 모
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 집안의 내력을 모르는데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랍니다. 내 핏줄에는 수많은 종족의 피가 
흐릅니다. 이름은 이탈리아 이름이지요. 선조 중 한 분이 위로부터 영지로 
받았던 땅 이름에서 연유한 듯 합니다. 양반이었던 모양이지만. 요즘 누가 
그런 걸 따집니까나는 호기심 때문에 브라질로 온 사람입니다. 나는 
브라질의 문화 양식에 홀딱 반한 사람이랍니다...
  '그는 우리에게. 몇 년 동안 비우고 있는 밀라노의 자기 집 서재에는 
종교학 책이 왜 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
  귀국하거든 한번 놀러 오시오. 아프리카 풍의 브라질종교 제의 
발에서부터 로마 제국 시대의 이시스교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자료가 왜 
되지요.'
  '이시스교의 의식... 저, 그거 재미있어 해요. 자료가 많으니까 굉장히 
많이 아시겠죠.'
  암파로는, 자신이 있는 여자들이 흔히 그러듯이 부러 멍청한 여자인 
척했다. 
  '이시스 의식, 구경은 했지만 많이는 못 해서요.' 
  '하지만 2천 년 전의 의식인데... 그걸 어떻게 보셨다는거지요'
  나는 두분같이 젊지 못하답니다. 
  '내가그에게 농담을 던졌다. '
  그렇다고 해서 연세가 까글리오스뜨로만큼 되시는 것도 아니지요. 
까글리오스뜨로였지요 십자가 옆을 지나면서 제자가 들으라는 듯이, 유대 
인을 조심하라고 그 날 저녁에 그렇게 일렀건만 그예 변을 당했구나...이런 
소리를 했다는 사람이 아글리에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버릇없이 군 것 
같아서 사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푸짐한 웃음으로 손을 내저었다.  
  '까글리오스뜨로는 사기꾼이었어요. 그 양반이 살던 곳, 그 양반이 살던 
시절에 사람이 그렇게 장수할 수 없었다는 건 상식입니다. 
까글리오스뜨로는 허풍을 한번 쳐보았던 거지요.'
  '저도 그랬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까글리오스뜨로는 허풍을 한번 쳐본 겁니다. 그러나 여러 대를 사는 
신선 같은 사람이 영 없었던 것은 아니지요. 지금도 있고요. 현대 과학도 
노화 현상의 비밀에 대해서는 별로 알아낸 게 없어요. 그러나 인간이 때가 
되면 죽는 것은 무지탓입니다. 까글리오스뜨로는 허풍장이였지만 생 
제르템 백작은 아닙니다. 생 제르템 백작이. 고대 이집트 문화에서 인간의 
노화 현상에 관한 화학적 비밀을 알아내었다고 주장한 것 알아요 하지만 
누가 믿었나요 그 양반은 사람들을 무렴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농담을 
하고다니는 척했지요.' 
  '진실을 말씀하시는 데도 저희들이 믿지 않으니까, 선생님도 농담하시는 
척하시는 거군요.'
  암파로가 정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미모에다 놀라운 감성까지 놀랍습니다. 하지만 당부 드리거니와. 나를 
믿지 마세요 내가 여러 세기를 산 고색 창연한 사람이라는 게 확인되면 
아가씨의 그 아름다움도 빛을 잃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겁니다. '  
  암파로는 그의 말에 홀딱 반하고 만 것 같았다. 절투심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화제를 교회 이야기로, 얼마 전에 보았던 성 게오르기우스와 
옥소씨 쪽으로 틀었다. 아글리에는 칸들블레 의식을 구경해야 한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돈을 요구하는 칸들블레 판은 안 됩니다. 제대로 된 칸들블레 판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제대로 된 것을 보여 줍니다. 신자가 될 필요도 
없어요. 그러나 삼가는 마음으로 참례해야합니다. 두 분 같은 불신자 3촐를 
받아들이는 참례자들은 너그러운 사람들이지요. 여러분도 믿음에 대한 
같은 정도의관용을 그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언뜻 보면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에 나오는 사람들 같지만 사실은 바티칸의 신학자들 이상으로 
종교 문화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랍니다. '
  '구경하게 해주세요. 아주 오래 전에 움반다 칸돔블레를본 적이 있지만 
다 기억은 못해요. 엄청난 격동의 경험밖에는...
  '암파로는 이러면서 아글리에의 손을 텁석 잡았다. 아글리에는 이 
물리적인 접촉에 당혹해 하는 것 같았지만 손을 뽑지는 않았다. 이때 
아글리에는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하고 묘한 짓을 했다. 그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조그만 상자를 꺼냈다. 금은으로 세공한 상자의 뚜껑은 
마노로 되어 있었다. 코담뱃값 아니면 약상자 같았다. 탁자 위에는 촛불이 
있었는데 아글리에는 무심하게 그러는 것처럼 상자를 촛불 가까이 가져 
갔다. 불 가까이 가자 마노 뚜껑에서는 마노의 색깔이 사라지면서 아주 
정교하게 그려진 조그만 그림이 나타났다. 초록과 노랑과 푸른 선으로 
그려진, 꽃바구니를 든 목녀였다. 
  아글리에는 묵주 신경이라도 외는 사람 모양으로 아주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그 상자를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고는 멎쩍게 웃으면서 그 물건을 옆으로 밀어 놓았다. 
  '격동의 경험이라고 했나요, 아가씨 하지만 아가씨 같은 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곳이랍니다. 놀라운 감성에다 절도 있는 감수성까지 갖춘 
아가씨에게는... 기품파 지성까지 갖춘다면 굉장하겠어요. 하지만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도 모르고,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도 모르는 채 특정한 
장소를 기웃거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어요. 게다가 
움반다와칸돔블레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진짜 칸돔블레는 토속적이면서도 
아프리카 풍의 브라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움반다 칸돔블레는 
토속적인 것에다 유럽 문화의 이단적인 요소가 끼여들고, 여기에 또 성당 
기사단 풍의 신비주의가 접합되면서... 나는 거기에서 또 성당 기사단을 
만난 것이었다. 나는 아글리에에게, 성당 기사단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기연군요. 남십자성 밑에서 젊은 성당 기사를 만나다니... 묘한 
인연입니다. '  
  '성당 기사단의 광신도로 여기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만...'
  '시뇨르 까소봉, 이 분야가 얼마나 황당한 분야인지 알고는 있을 
테지요1'알고 있습니다. ' 
  '좋아요, 조만간 우리 다시 한 번 만납시다. '
  우리는 다음에 만나면 항구에 면한 시장 구경을 함께 하기로 했다. 
다음날에는 시장에서 만났다. 도메기 어시장 해독이 불가능하리 만치 
맹독에 중독된 성일의 저잣거리였다. 악령과 돌팔이와 술사와 손바닥의 
성혼도 선명한 카푸친 수도승들이 나란히 전을 벌린 루르드의 시장을 
방불케 했다. 기도문을 자수한 돈지갑, 귀금속으로 조각한, 가운뎃 
손가락만 세운 손의 조상 산호로 만든 나팔, 십자가상, 다원의 별, 원시 
유대교의 성적인 상정물 흔들 침대. 응단, 스핑크스. 보로로족의 화살통. 
조개 껍질로 만든 목걸이... 노예들의 머리에다 요상한 밀교의 지식을 
주입시키고 이들을 타락케 한 것은 바로 유럽의 정복자들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피부색은 흘러간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아글리에가 설명했다. 
  '어때요 민족학 교과서가 브라질의 싱크레디즘이라고 부르는 게 바로 
이겁니다. 다분히 관료주의적인 용어지요. 그러나 이 용어의 고상한 면을 
드러내어 말한다면 싱크레티즘은 모든 종교, 모든 지식, 모든 철학의 
자양을 골고루 받은 문화 전통일 수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종족은 
멸종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종족은 그 뿌리가 어디에 탕아 있건, 다른 
문화의 좋은 것을 모조리 받아들이고 이를 가꾸어나가니까요. 나는 
브라질에 살고 있는 노예의 자식들이 소르본느의 민족학자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아가씨는 내 말을 이해할겁니다. 어때요, 
아름다운 아가씨.' 
  '마음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금은 이해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표현을 
써서... 생 제르맹 백작 같으면 이렇게 야한 표현은 하지 않았을 텐데요. 
무슨 뜻이냐하면, 나는 이 땅에서 태어났습니다만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어디에선가 그 
설명을 마련해 준다...그런 뜻입니다. ' 
  '아. 저 갈보리 산 위에서 죽을 수 있다면... 람베르티니 추기경이, 
뭉클한 
첫 무덤 위로 다이아몬드 십자가를 건 귀부인에게 한 말이랍니다. 내 귀에 
그 추기경의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두 분께 
사죄해야 할 차례군요. 나는 아름다움을 예찬하면 그 값으로 저주를 
받아야 하는 시대 사람이랍니다. 두 분만 계시고 싶겠지요. 자주 
연락합시다. '
  암파로의 손을 잡아 노점상 쪽으로 끌면서 내가 나무랐다. 
  '저 양반, 당신 아버지뻘이야.' 
  '고조부 델이면 어떻고 이야기를 들어 보니 천 살은 먹은것 같은데, 
당신 
파라오의 미라를 놓고 질투하는 거예요' 
  '당신 머리에 불이 번쩍번쩍 들어오게 하는 상대면 누구든 질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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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도 상당 기간 나는 살바도르에 빠진 채로 나날을 보냈다. 
호텔에서 보낸 시간은 따라서 얼마 되지 않지만 장미 십자단 관련 서적의 
색인을 뒤적거리다가 생 제르템 백작에 대한 언급을 만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나는 무릎을 쳤다. 뚜 스 띠앙질긴 인연이군. 볼례르는 생 
제르템 백작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인물. 
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인물. 그러나 프리드리히 대왕의 생각은 
다르다. 
  농담하려고 태어난 백작이다. 호레이스 월포을은 백작을, 멕시코에서 
한밑천을 잡았지만 홀랑 날리고 아내의 금붙이를 래돌려 콘스탄티노플로 
된이탈리아 인이거나 스페인 인 아니면 폴란드 인이라고 했다. 백작에 
대한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자료는 뽕빠두르 백작 부인의 팜므 드 
샹브르측근였던 마담 오세의 회고록에실려 있다남의 말을 잘 안 믿는 
암파로까지도 믿을 만한 자료라고 했다. 오세 부인의 회고록에 따르면 
백작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브뤼셀에서는 슈르플, 
라이프치히에서는 벨도베이라는 이름을 쓴다. 이 밖에도 아이마르 후작. 
베드마르 혹은 벨마르 후작, 솔티로프 백작으로 불리기도 한다. 1745년에는 
런던에서 체포되었으나, 살롱을 전전하면서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음악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3년 뒤 파리에서는 염색 
전문가로 변신, 루이 15세를 섬기면서 샹보르 성에서 기거했다. 루이 
2세로부터 외교특사 임명을 받고 네덜란드로 간 그는 여기에서도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면서 다시 런던으로 달아났다. 1762년에는 러시아에, 그 
다음해에는 벨기에에 나타난 것으로 되어 있다. 백작이 카사노바를 만난 
것은 벨기에에 있을 때이다. 카사노바는 백작이, 동전으로 금화를 만들어 
내더라는 기록을 남기고 했다. 1776년에 다시 프리드리히 대왕의 궁전에 
나타난 백작은 대왕에게 화학과 관련된 모종의 제안을 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는 년 뒤, 술궤스비히에 있는 혜세 백작의 영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술레스비히에서 염료 공장을 건설하고있을 때의 일이었다. 
별로 놀라울 것도 없는, 18세기의 전형적인 모험가의 편력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카사노바 같은 사랑도 없고, 사기 행각도 까글리오스뜨로에 
견주면 보잘 것이 없다. 몇 가지 자질구례한 가십 거리를 남기기는 했지만 
그는, 공업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연금술적 기적을 약속함으로써 몇몇 
명망가들로부터는 신임을 누리기도 했다. 한 가지 회귀한 것이 있다면 
그가 불사를 누리고 있었다는 소문인데, 이 역시 그가 만들어 퍼뜨린 
것이었기가 쉽다. 귀족의 살롱에서 그는 먼 옛날의 일들을 마치 자기 
눈으로 본 듯이 전하고는 했을 것이고 이러면서 자기에 관한 전설을 
암암리에 아주 그럴듯하게 키워 나갔기가 쉽다. 
  이 책은 조반니 빠삐니의 뜬곤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었다. 이 
인용에 따르면 소설의 주인공 곡은 어느 날 밤 대서양을 건너는 객선의 
갑판에서 생 제르템 백작을 만난다. 라삐니의 묘사에 따르면 천 년이라는 
세월과, 뇌리에서 소용돌이치는 무수한 기억에 짓눌린 그의 어조는 흡사 
보르혜스의소설 ' 메모리오소 기억에 등장하는 푸네스를 연상시키더라고 
했다. 생 제르템 백작이나 푸네스는 둘 다 기억의 대가들이다. 푸네스는 
옛날 사람이지만, 빠삐니가 생 제르템백작 이야기를 하는 연대는 
1930년인데, 이건 놀라운 일이다. 백작은 곡에게 이렇게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의 운명을 선망의 대상일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두 세기만 
살아 봐라. 그러면 치유 불가능한 권태가 불사의 운명을 타고난 비참한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한다. 세상은 단조롭기 그지없고, 인간은 아무것도 
배은않고, 오직 그전세대의 오류와 악몽을 되풀이한다. 사건은.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것같이 모두 엇비슷하다...
  신기한 일도 없고 놀라운 일도 없고, 새롭게 드러나는 일도 없다. 비로소 
고백하거니와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흥해 뿐이다. 이 영생 
불사가지루해서 견딜 수 없다. 이 땅에 내가 캐내어야 할 비밀은 이제 
없다. 인간에 대한 희망도 이제는 남은 것이 없다...
  '묘한 인물이군 우리의 친구 아글리에는 백작 흉내를 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쓸 돈 있겠다. 여행할 수 있는 시간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초자연적인 것에 맛을 들인, 머리가 살짝 이상해진 노신사...'
  내 말에 암파로가 맞장구를 쳤다. 
  '퇴폐주의에 빠질 배짱을 갖춘. 시종일관 시대에 역행하는 반동분자... 
하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보다는 이런 영감이 모성 본능이라는 거. 그거 
굉장하지. 하지만 손등에 키스하라고 남자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모성 
본능은 바닥이 드러나고 말아.'
  '오랜 세월을 당신네 남성들이 여성을 그렇게 길들여 왔으니까... 이제 
여성도 여성을 해방시켜 나가야죠. 하지만 그 할아버지에게 시집가고 
싶다고는 안 했어요.' 
  '잘 됐군.' 
  다음 주일 아글리에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그날 밤에 칸돔블레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하겠다는 것이었다. 제니뚠 얄로릭사가 관광객을 
의심하기 때문에 우리는 본제에는 참례할 수 없지만, 우리가 가면 
얄로릭사가 직접 우리를 접대하고. 서제 정도는 보여주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아글리에는 우리를 자동차에 싣고 언덕 너머 있는 빈민가를 
뚫었다. 자동차는 차고 같은 초라한 건물 앞에 멎었다. 문 앞에 서 있던 
흑인은, 재계랍시고 우리 몸을 연기에 쏘였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아무런 
장식이 없는 안뜰에는 종려나무 잎으로 만든 바구니가 무수히 놓여 
있었다. 바구니 속에는 설탕을 쏟아 넣다시피 해서 만든 음식인 제물 
코미다스 데 산토가들어 있었다. 우리는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갖가지 그림, 참례자들이 바친 공물, 아프리카의 가면이 무수히 걸려 
있었다.
  아글리에는 방안의 가구 배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뒤쪽의 긴 의자는 국외자용이고, 연단의 긴 의자는 연주자용이며, 
나머지 의자는 오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오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신자는 아닙니다만 이 의식을 존중하는 
아주 
점잖은 사람들이지요. 여기 이 바이아에서는 조르제 아마도가 오가로서 
제당눈초을 주장한답니다. 조르제 아마도는 전쟁과 바람의 여신인 얀사의 
간택을 입은오가랍니다.'  
  '오늘 제사를 흠향룬벨하는 신들은 내력이 어떻게 되는 신들입니까 내가 
물었다. 
  '왜 복잡해요. 첫째, 노예 제도 초창기에 이곳 북부에서 득새 했던 수단 
분파가 있어요. 오럭사스의 칸들블레, 다시 말해서 아프리카 신들은 모두 
수단 분파에서 유래합니다. 남부에서는 반 투 분파를 볼 수 있는데, 이 
양자가 뒤섞이면서 아주 복잡해지는 것이지요. 북부 분파들은 아프리카 
종교에 충실한 채로 남아 있는데 견주어 남부에서는 원시적인 마쿰바가 
움반다로 발전하고. 여기에 가톨릭. 카르데시즘, 유럽의 신비주의가 
가세합니다. ' 
  '오늘 밤의 의식은 그럼 성당 기사단과는 무관한 겁니까' 
  내가 성당 기사단 얘기를 한 것은 은유의 수단이었어요. 성당 
기사단이라니... 오늘 밤에는 그런 거 없어요. 하지만 제파의 통합 과정은 
아주 미묘합니다. 제물눈똔로 차려 놓은 코미다스 데 산토 근처에서. 
쇠스랑을 든 악마의 철제 조상을 보셨소 발치에 제물이 차려져 있지 
않습디까 그게 바로 엑수라고 불리는 신인데, 이 움반다에서는 아주 
막강한 존재이지만 칸돔블레에서는 그렇지 못해요. 칸돔블레에서도 일종의 
타락한 메르쿠리우스혜르메스로 섬기기는 하지란... 움반다에서는 이따금씩 
사람들이 엑수에 접신하는 일이 있어도 이 칸돔블레에서는, 액수에게 
호의적 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랍니다. 칸동블레가 액수에게 
호의적인 까닭은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것은 그렇고, 저기 저 벽 쪽을 좀 
보세요...'
  아글리에는 갈색인 인디오 나신상과, 횐 옷을 입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흑인 노예상을 가리키면서 말을이었다. 
  '카보클로쁠와 프레토 벨리요톤룡라고 불리는 것으로 망자온욜의 
혼령들입니다. 움반다 의식에서는 중요한 존재들이지만 여기에서는 그저 
제물을 흠향하는 데 그칩니다. 칸돔블레가 오로지 아프리카 신들만을 
섬기기 때문에 여기에서 알뜰살뜰한 대접은 받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없애 버리지도 않는 걸 보면 재미있지요.' 
  '여러 분파에 공통되는 점은 없나요' 
  '글세라... 아프리카 계 브라질 분파의 경우 공통되는 점이 있다면 의식 
도중에 참례 자들이 접신한다는 것 정도이겠지요. 하지만 칸돔블레의 
경우는 또릭사스들이고 움반다의 경우는 망자의 혼령이라는 뜻에서 서로 
달라져요.' 
  '내 나라내 겨레를 잊어도 너무 잊고 있었군요. 한줌도 안되는 유럽, 
한줌도 안 되는 사적 유물론에 빠져, 내 겨레의 모든 것, 심지어는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까지도 잊고 있었군요.'
  암파로가 탄식하듯이 말했다. 아글리에는 웃었다 
  '사적 유물론이라... 어디서 많이 들은 소리로군. 독일의 트리어 지방에서 
횡행하는 묵시록적 종파 같은데, 내 말맞소.' 
  '자책하기는...'  
  나는 암파로의 어깨를 껴안았다. 
  '심했어.'
  암파로가 중얼거렸다. 아글리에는 속닥거리는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제파 혼교주의의 힘은 막강합니다. 제파 흔교주의가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아시오 법적으로는. 노예들이 19세기에 해방되었지요 
그러나 노예 제도의 오명을 찾는 작업에서, 노예 매매에 관련된 공문서가 
깡그리 소각되고 말았지요. 그래서 노예들은 형식적으로는 자유를 얻게 된 
셈이지만 자유를 얻는 순간 과거는 송두리째 소각당하고 만 것이오. 
이들은 어떤 종족적 아이덴티티교도 획득하지 못한 가운데 집단적인 
과거를 복원하려고 애를 썼지요.
  당신네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제도권 문화에 저항하는 한 
방법으로말이오.' 
  '하지만 유럽의 종파 역시 혼교주의의 일부를 이룬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청렴이라고 하는 것은 사치품이었어요. 해방된 노예들은 하고 
싶은 짓은 다했어요. 복수를 통하여 한도 풀었지요. 아마 두 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백인을 죽였을 겁니다. 원래의 아프리카종파에는 약점이 
있었어요. 지역 지향적 종족지향적인 근시안적인 시각이 바로 그 
약점이었지요. 그러나 정복자들의 신화를 만나면서 해방된 노예들은 
고대의 기적을 재생해 냅니다. 말하자면 쇠락해 가는 로마 제국이, 
페르시아, 이집트. 원시 유대교 시절의 팔레스티나에서 유래한 광기의 
도가니 앞에 노출되고 있던 2.3세기 즈음에 지중해 근방에서 발호하던 
밀교적인 종파를 재현해 낸 겁니다. 
  로마제국의 말기에, 아프리카는 온갖 지중해 종교의 영향을 흡수하고 
이것을 응축시켜서 휴대가 간편하게 포장해 버리지요. 이로써 유럽은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타락의 길을 걷게 되지만, 이집트가 지식의 
보고를 보존하고 전파했듯이 아프리카는 이 지식의 보고를 보존,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오. 당시에 아프리카가 이 지식의 보고를 그리스에게 
넘겨주는 바람에 그리스 인들에 의해 엉망진창이 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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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의 보고라니요
  '그리스도 이후 2,3세기가 얼마나 위대한 시절이었는 지아시오저무는 
제국의 장려함 때문에 위대했던 것이 아니라 당시 지중해 유역에서 싹트고 
있던 사상 때문에 위대했던 것이오. 로마에서는 확실 근위대가 황제들의 
목을 차례로 자르고 있을 동안. 지중해에서는 아플레이우스의 시대가 오고 
이시스의 비의쑨탈가 들어오고, 저 신분 플라톤주의나신 그노시스 파의 
위대한 정신이 부활하는 축복의 시대를 맞고 있었던 것이오. 이 시대는, 
기독교인들이 권력을 휘두르면서 이교도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기 직전의 
행복한 시대였지요. 노우스예지가 살아 있던 찬란한 시절, 접신이 다반사로 
이루어지던 황출한 시절, 초자연적인 존재와 마귀와 천사 군단이 사람들과 
나란히 살던 시대였지요. 내가 말라는 지식이라는 것은 아득한 예로부터 
하나로 통합되지 않고 난만하게 유포되어 있던 지식이오. 
  그 기원으로 말하자면 피타고라스를 넘어 인도치 바라문교, 히브리 
인종교 ,조로아스터교, 인도치 나수자템옌욜의 종교, 심지어는 아득히 먼 
북방의 이민족 종교인 갈리아나 브리타니아 제도의 드루이드교 보다도더 
오래된 것이오. 그리스 인들이 이방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른 것은. 
지나치게 교육을 많이 받은 그리스 인들 귀에는 그들의 언어가 개 짖는 
소리처럼 들렸고, 그래서 그리스 인들은 그들에게는 저희 생각을 표현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 야만인들이야말로, 
저희 언어가 그리스 인들에게 이해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그리스 
인들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오. 오늘 밤의 이 제사에서 무희들은 노래를 부르고 주문을 월 터인데. 
당신은 무희들이 이 노래의 의미. 주문의 의미, 수많은 신명체 추의의미를 
알 것이라고 생각하오 다행히도 그들은 알지 못하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노래와 주문의 한 마디 한 마디, 하나하나의 이름이 일종의 호흡 
훈련과 같은 밀교적인 발성법이 되는 것이 오저 안토니우스 황제. 
아우렐리우스 황제, 코모디우스 황제 로 이어지던 시대... 그 시대는, 이 
세상의 만물이 서로 얽히고 설키되 경이로운 연관성과 정치한 유사성으로 
충실한 시대였어요. 이 연관성과 유사성을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꿈이나 
탁선르이나 주술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소. 오로지 꿈이나 탁선이나 
주술만이 우리를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연과 그 자연의 힘에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어요. 이런 것들에 견주면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덧없고 허무한 것이오. 그 시대를 위압했던 신들이 모두 헤르메스였던 
까닭이 여기에 있소. 헤르메스가 누구던가요 권모술수의 발명가. 갈림길을 
지키는 나그네의 수호신이자 도둑들에게는 수호신이기도 하오. 뿐인가요, 
헤르메스 신은 글쓰기를 가르침으로써 교묘한 구실 끌어다 붙이기와 
위장하기를 가르친 신이자. 항해술을 기펀침으로써 인간을. 지평선이나 
수평선의 끝, 이 세상의 만물이 흔연 일체로 녹아 있는 경계의 한계까지 
인간을 데려다 놓은 신이기도 하오. 경계의 한계가 어디던가요 기중기가 
땅에서 돌을 들어올리는 곳, 무기가 산자를 죽은 자로 둔갑하게 하는 곳, 
양수 펌프가 무거운 물체를 허공으로 부양시키는 곳이오. 헤르메스는 또 
흑세 무민과 곡학아세의 원흡인 철학을 만든 신이기도 하오...그런 
헤르메스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바로 여기에 있소.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두 분은 헤르메스 옆을 지나왔소. 엑수라는 이름의, 신들의 
사자, 중매인이지 상인인 신이오. 액수의 세계에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소...그는 반신반의하는 우리 모습을 재미있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두 분은 내가, 장사꾼의 신 헤르메스가 물건 이름 읊어 대듯이 신들의 
이름을 거침없이 주워섬기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요. 하지만 이 책을 좀 
보아요. 오늘 아침에 텔로우리뇨치 한 자그마한 서점에서 산 거랍니다. 성 
키프리아누스의 마술과 비의에 관한 것인데요. 여기에는 사랑을 얻을 때 
외는 주문, 원수를 해코지하는 주문. 천사나 여신에게 가호를 비는 주문 
같은 게 실려 있어요. 살갗이 검은 사람들의 비의에는 반드시 필요한 대중 
문학 같은 거랍니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성 키프리아누스는 
안티오키아의 성 키프리아누스 바로 그분인데, 이분에 관해서는 은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대한 문헌이 있어요. 그의 부모는 아들을 
멀고먼 나라로 보내어 땅과 하늘과 바다의 만물을 배우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비전라는 비전은 모두 접하게 했소. 키프리아누스는 약초가 
자라고 시드는 까닭, 이 세상의 동식물이 간직하고 있는 치유 능력의 정체, 
자연계의 역사, 아득한 옛날의 전승의 바닥에 잠든, 점성술, 마술, 연금술 
등의 은비 과학을 습득했소. 키프리아누스는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 
몸 붙이고 뱀을 이용한 점술, 심지어는 미트라 비의를 습득하게 되고, 약관 
열다섯 살 때는, 올림포스 산정에서 열다섯 대신관음의 안내를 받아 
세계의 제왕을 초흔하는 의식에 참가함으로써 세계의 재왕이 바라는 바를 
이해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르고스에서는 혜라의 비의를 전수받았고, 
프리기아에서는 양의 간장으로 점을 치는 기술을 익힘으로써, 마침내 땅과 
바다와 하늘을 무지하게 되지요. 말하자면 환각은 물론 지식의 대상까지, 
모든 종류의 비책까지. 심지어는 마법을 써서 기왕에 쓴 것의 내용을 
바꾸는 기까지 무불통달하게 되는 겁니다. 멤피스의 지하 신전에서는 
마귀들이 어떻게 지상의 만물과 연락을 주고 받는지, 그 마귀들의 호불 
호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마귀들이 어떻게 어둠에서 사는지, 지상의 
지배에 어떻게 반격하는지 무슨 수를 써서 영혼과 육체를 손에 넣는지, 
이들이 어떻게 해서 최고의 지식과 기억과 공포와 환각의 효과와. 어떻게 
지상의 감정적 흐름을 창조함으로써 지하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기술을 
획득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까지 배운 것이오...아, 그런데 그 
키프리아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해 버렸소. 그러나 그가 익힌 지식의 일부는 
다행히도 후대로 전해졌으니. 두 분은 우상 숭배자들이라고 할 터인, 
누더기 차림의 제니들 입을 통해서 마음을 통해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그것이오. 아가씨는 나를, 혁명으로 작위를 박탈당한 한심한 구학다리 
귀족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았소. 과거를 사는 한심한 늙은이 보는 눈으로 
나를 보았소. 하지만 우리 중 누가 과거를 살고 있는지 볼까요 이 
나라에다 격동하는 산업 시대의 쓰레기들을 안기는 당신들일 까요, 아니면 
우리의 가엾은 유럽도 하루빨리. 이 노예의 자손들이 지니고 있는 소박한 
믿음을 회복하기를 소망하는 나일까요.'
  '아시잖아요 그게 바로 이 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 지금 이 
상태를 조용히 방치하는 방법의 하나라는 걸 제가 아는데 설마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암파로가 불편한 표정을 하고는 먹은 것을토해 내듯이 뱉었다. 
  '만족하는 상태가 아니오. 기대에 부푼 상태이지...대하지 않는 자에게 
낙원은 없다는 건 바로 당신네 유럽이 우리에게 가르쳤던 것 아닌가요.'  
  '아니. 제가 유럽 인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중요한 것은 피부색이 아니라 
전통에 대한 믿음이지요.,이 노예의 자손들이 번영으로 아주 마비되어 버린 
서구인물에게 또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면 아마 혹독한 값을 치러야 거든요. 
이 때문에 고통을 받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아직 이은 자연의 뭇 정령들의, 
대기의. 바람의 말을 알아들을 줄니다.'
  '유럽 인들은 그것조차 빼앗으려 하겠지요. 그래요.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교훈을 얻었을 턴데요 우리는 배불리 먹겠죠.' 
그리고는...암파로는 웃음은 천사같이 웃으면서도 그 아름다운 손을 목줄에 
갖다대고는 수평으로 가차없이 자르는 시늉을 했다. 나에게는. 암파로의 
치아까지도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드라마틱한 손짓이군...' 
  주머니에서 코담뱃자을 꺼내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면서 글리에가 말을 
이었다. 
  '...아가씨는 내가 누군지 알아낸 게로군요. 그러나 110년에 수많은 
모가지가 굴러 떨어지게 한 것은 노예들이 아니라, 당신이 지긋지긋하게 
싫어할 터인 신흥 부르주아 계급 있었답니다. 뿐인가요 생 제르템 백작은 
수세기를 살면서 수많은 모가지가 굴러 떨어지는 것도 보았고, 그 
모가지들이 다시 제 자리에 덜커덕 올려 붙은 것도 보았답니다... 잠깐 
마이 데 산토뚠초얄로릭사가 오는군요....'
  그날의 제주 노룻을 하게 되어 있는 제니뚠활 얄로릭사와 우리의 만남은 
차분하고 정중하고 품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극히 민속적 이었다. 
제주는 눈부시게 웃을 줄 아는 덩치가 큰 흑인 여자였다. 처음에는 가정 
주부 같았지만, 한참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야 나는 어떻게 그런 여자들이 
살바도르의 문화를 지배하는가를 알았다. 
  '오릭사스라고 하는 것은 인간입니까, 아니면 어떤 권능같은 것입니까.' 
내가 얄로릭사에게 물었다. 얄로릭사는, 오릭사스는 물, 바람,나뭇잎,무지개 
같은 것의 권능이라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여느 사람은 그 권능이라는 것을 전사 올나 특정한 여인이나 
가톨릭 성자로 인식하려고 할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인지요.'
  유럽 인들도 특정한 우주적인 권능을 동정녀 마리아 형태로 섬기고 있지 
않은가요 알로리시꽈 대답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권능을 공경하는 
것이다... 권능의 모습은 특정한 인간의 이해 능력에 알맞는 형식을 취하는 
것뿐이다... 이런 뜻인 모양이었다. 알로리샤는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 뜰에 
있는 사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뜰에는 오릭사스들의 사당이 있었다. 
바이아 민속의상으로 차려 입은 한 무리 흑인 처녀들이 제사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여러 기찰에 이르는 오릭사스의 사당은, 성구의 
교회당처럼, 뜰 가장자리로 둘러 가면서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각 사당 
밖에는 그 사당의 임자에 해당하는 오릭사의 얼굴이 참배객에게 잘 
보이도록 놓여 있었다 사당 인d서는 거기에 바쳐진 꽃들의 화려한 빛깔이, 
오릭사스의 조 및 제물로 바친 음식의 빛깔과 심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옥살라에게는 횐 꽃, 예만자에게는 푸른 꽃과 t흥 꽃, 쌍고에게는 
흥백 꽃, 오군에게는 노랑꽃... 하여튼 꽃이 많았다. 참배객들은 무릎을 
꿇고. 이마와 귀가 닳도록 허리를 구부리고는 사당 문턱에 입을 맞추었다. 
나는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예만자는 수태갖를 고지받은 성모 마리아근아닌가요쌍고는 성 
히에로니무스인가요, 아닌가요'난처한 질문은 하지 마오...' 
  아글리에가 우리 둘 사이를 막고 나전다
  '...움반다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니까. 외관상으로 옥살라는 성 
안토니우스와 성 코스마스와 성 타미의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오. 
예만자는 인어, 수정 바다와 강의 카보클로, 뱃사람, 뱃길 인도하는 별의 
역할 오리엔트가 관장하는 것은 힌두교도 의사, 과학자, 이아 인, 모로코 
인, 일본인, 중국인, 몽고인, 이집트 인, 아즈카 인, 잉카 인, 카리브 인, 
로마 인이오. 옥소써가 관장하는 것은 태양, 달, 그리고 폭포의 카보클로, 
그리고 혹인의 보클로 오군이 관장하는 것은 오군 베이라 마르, 롱늘마또, 
야라. 메제, 나루애가 관장하는 것과 겹치기도 하지 한마디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라오.' 
  '아이고, 예수님 ...'  
  암파로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예수님이 아니고 욱살라겠지.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니까...'
  나는 귀에다 입술을 갖다대면서 암파로를 위로해 주었다. 얄로릭사는 입 
문자들이 사원으로 가져 오고 있는 일련의 가면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짚으로 만든 커다란 도미노가면으로, 가면이라기보다는 영매가 접신하고 
신들의 포로가 될 때 쓴다는 두건 같은 것이었다. 얄로릭사는, 가면을 쓰는 
것은 신들에 대한겸양의 표시라고 했다. 얄로릭사의 말에 따르면, 지역에 
따라서 간혹 간택을 입은 영매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맨 얼굴로 
춤을 춤으로써 저희들의 격정을 참례자들에게 남김없이 보여 주는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지역에서만은. 접신의 환희와 은총을 골고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영매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가면을 쓰게 
한다고 했다. 얄로릭사는 칸돔블레가 국외자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혹 알아요 엉뚱한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 
  얄로릭사의 말이었다. 얄로릭사는 우리에게 제물을 맛보고 가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제상에 차려진 코미다스 데 산도를 맛보라는 것이 
아니었다. 주방으로 가서 시식해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얄로릭사를 따라 
사당 뒤로 갔다. 얄로릭사의 주방에서는 아프리카 향신료의 야릇한 향기와 
열대 특유의 얼큰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피멘타 열매. 야자, 아벤도임, 
젠지브레, 모께까데 시리 몰리. 바타파, 에포, 카루루, 파로파를 곁들여 
검은콩으로 만든 진수성찬이었다. 우리는 어쩔 수없이 그 음식을 맛본 
뒤에야 그 음식이 고대 수단의 신들의는 것을 알았다. 
  '...당연히 들어 보셔야지요. 우리는 모두, 알든오릭사스의 자손이니까요.'
  얄로릭사가 말했다. 
  '그럼 나는 누구의 자손인 것 같습니까'
  내가물었다. 얄로릭사는 처음께는 딴청을 부리다가 내 손금을 본 뒤에야 
대답했다. 
  '욕살라의 자손이군요.'  
  듣고 보니 색 자랑스러웠다. 긴장이 풀린 암파로는, 아를리에가 누구의 
자손인지 알아보자고 했다. 그러나 아글는 모르는 편이 낫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암파로가이런 말을했다. 
  '아글리에의 손금 봤어요 생명선 대신에 뚝뚝 끊어진 선이 여러 개 
있었어요. 바위에 걸려 몇 줄기로 나뉘었다가 합류하고는 하는 
냇물처럼...그건 분명히 여러 번 죽었던 사람의 손금이라고요.' 
  '윤회 릴레이의 세계 챔피언이로군.' 
  '넘겨짚지 마시라고.'
  암파로가 웃었다. 
  
    29
  
  디오탈레비는, 혜세드는 자비와 사랑, 하얀 불꽃과 남풍의 세피라라고 
했다. 전망경실의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날 밤, 나는 암파로와 바이아에서 
함께 보낸 나날은 바로 헤세드에 속하던 나날이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몇 시간을 지내다 보면 별별 일들이 다 생각나는 법이다. 
나는 그 전망경실 어둠 속에서, 암파로와 마지막으로 보낸 저녁을 
떠올렸다. 우리는 발이 아파 올 때까지 수많은 골목길과 광장을 걸었다. 
그래서 호텔로는 일찍 돌아왔다. 그러나 자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암파로는 베개를 괴고 흡사 태아 같은 모양으로 웅크린 채, 내 책 중에서 
움반다에 관한 소책자 하나를 무릎 위에 올려 놓고 건성으로 위고 있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등을 바닥에 대고 벌렁 드러눕고는 책은 배 위에 올려 
놓은 채로 내가 장미 십자단 관련 책자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는 
했다. 나는 암파로 의심을 장미 십자단 쪽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나는 
장미 십자단 관련 책자에서 재미있는 것을 속속 찾아내고 있었던것이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글쓰기에 지친 벨보가 문서 일에다 썼듯이, 바람의 
한숨소리밖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 밤이었다. 우리는 허세를 좀 
부려 고급 호텔에 든 침이었다. 창 밖에는 바다가 있었고, 조명이 은은한 
주방에 놓인, 우리가 그 날 새벽 4시에 샀던 과일 바구니는 안락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 책에 따르면 1614년 독일에서 저자가 불명한 책이 한 권 
발견되는데... 들어 볼래 부제까지 합하면 제목이 아주 길군 그래. 
  '알게마이네 운트 게네랄 레포르마치온보편적 총체적 세계 개혁을 위해, 
경애하는 장미 십자단의 파마 프라테르니타티스우애단의 명성를 받들어 
유럽의 학식 있는 사람들과 뭇 군주들에게 호소하다가 예수회 일파에 의해 
투옥당했고, 그 뒤에는 족쇄를 찬 채 노예선까 자랐던 하젤마이어 님의 
간략한 항소 이유를. 이제 여기에 이렇게 인쇄하여 지성인들에게 알리고자 
카셀의 빌헬름 베셀 13판사를 통해 출판...'
  '역시 길군요.'
  '17세기에는 대부분의 제목이 이 모양이었던 모양이야. 리나 
베르트뮬러의 영화 제목 같잖아 어쨌든 이건 트라이러노 보칼리니의 
파르나소스 정보를 베껴 쓴 듯한, 인류의 보편적 개혁에 대한 풍자적인 
동화라고 할 수 있겠어. 하지만 이 책에는 약 12쪽짜리 선언서 비슷한 
파마프라테르니타가들어 있는데, 이 문서는 1년 뒤 라틴 어로 된 또 하나 
선언서 콘페시오 프라테르니타티스 펄세아에 크루키스 아드 에루디토스 
에우로파에와 함께 단독으로 재출판되고 있어. 두 선언서가 이구동성으로 
장미 심자단의 존재를 소개하고, 그 창시자인 불가사의한 인물 C. R.의 
행적을 다루고 있어. 그런데 다른 문서를 통해 이 C. R.은 
크리스티안로젠크로이츠라는 사람 이름의 두 문자라는 게 추정되기에 
이르지 .'
  '어째서 이름을 제대로 안 쓰고 약자로 쓴 거죠.'
  '약자 천지야. 장미 십자단과 관련된 문서는 단원의 이름을 제대로 안 
써. 단원들은 대개 G. G. M. p 1.로 불리는데 그 중에는 0. D. 같은 애칭도 
있더군 어쨌든 선언문에는 C. R.이 언급되고 있는데, 문서에 따르면 
로젠크로이츠는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성묘 및 표를 찾아 예루살렘으로 
갔고, 다음에는 다마스쿠스로 갔다가 이집트로 옮겨 가고, 이집트에서는 
페즈로 간 것으로 되어 있어. 페즈라면 당시 이슬람 종교 문화의 성역 
가운데 하나였던 도시아냐 그 이전에 이미 그리스 어와 라틴 어를 알고 
있던 로젠크로이츠는 동방의 모든 언어, 물리학. 수학, 자연 과학을 
습득하는 한편 아라비아와 아프리카에서는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온갖 카발리즘 자료와 마술의 자료를 긁어 모으는 데 그치지않고 
신비스러운 책 리베르 촙를 라틴 어로 번역가지 함으로써 대우주와 
소우주의 온갖 비밀을 꿰뚫어 공부했대. 동방의 것이면, 특히 불가사의하면 
불가사의할수록 유럽에서 대 유행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야. 두 
세기가 더 된 거지...' 
  '유럽 인들이란... 욕구 불만 때문에 합리주의의 좌절때문에 동방에 눈이 
열려서 바야흐로 미스터리 칵테일이 슬슬 오르는군...자, 여기 
있어요...암파로가 내게 마리화나 담배를 건넸다.'
  '...채화요. 좋은 거니까.'
  '바로 이거야. 당신도 살짝돌고 싶어하는 거야.' 
  '나는 달라요. 화학 반응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따라서 
신비스러울 건덕지가 없는 거죠. 히브리 어를 몰라도 오를 건 다 
오르니까... 자, 해봐요.'
  '잠깐... 로젠크로이츠는 여기에서 스페인으로 간다. 스페인에서 
은비학이라는 은비학, 신지학이라는 신지학은 다 흡수한 로젠크로이츠는 
마침내 자기야 말로 지식의 핵심에 다가가고 있노라고 주장한다. 당대의 
지성에게는 일종의 전지전능의 수행 과정이었을 이 일련의 여행을 통해 
로젠크로이츠는, 유럽에 필요한 것은 통치자들을 지혜와 선홈의 길로 
인도할 이상 사회의 건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아주 독창적이로군요. 역시 그동안 공부 헛 한 게 아니었어. 하지만 
나는 차가운 마마이아가 먹고 싶은데...'
  '냉장고에 있어. 나좀 봐주는 셈치고 당신이 가서 찾아 먹어. 나는 
일하고 있잖아.'
  '일만 하면 그건 개민데... 착한 개미는 먹을 것도 잘 마련해 준다더라.'
  '마마이아 먹는 거. 그건 쾌락이다. 그러니까 베짱이가 가야지. 아니면 
내가가고 당신이 읽으셨어요. 백인의 미신은 질색이야. 차라리 내가 가고 
말지.'
  암파로는 호텔에 딸린 조그만 주방으로 갔다. 나는 등불을 등지고 선 
암파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각설하고 독일로 돌아온 로젠크로이츠는 
그동안 배운 연금술로 화금석을 만드는 대신 그동안 모아들인 방대한 
지식으로 영혼의 개혁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단체를 설립하고, 장차 
올 형제들이 대물림 할 지혜의 기반이 될 마법의 언어와 서법 출판을 
고안했다. 
  '이러지 마. 책에다 쏟아. 내 입에 넣어 줘. 옳지. 장난하지 말고, 
바보같이... 옳지, 그렇게...고마워. 맛있어. 역시 마마이마야. 장미 십자단, 
어디로 갔어 ...그렇지. 로젠크로이츠가 처음 몇 년 동안 쓴 것만 해도 
세계를 계몽하고도 남음이 있었다는 거야...''그게 무슨 뜻이에요 도대체 뭘 
썼길래.'
  '그게 수상해. 선언서에는 언급이 없거든. 군침만 들게 만들고는 끝 ... 
중요한 너무나 중요한 것이니까 비밀로 해두자...'
  '놀고들 있네 .'
  '말조심해. 수가늘어남애 따라 장미 십자단원들은 세계의 구석구석으로 
조직을 확장시키기에 이른다. 치료비도 안 받고 병을 낳고, 옷을 입되 현지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정체가 드러날 만한 옷은 절대 입지 않고, 일 
년에 한 번씩 만나서, 백 년 동안은 절대 비밀을 지키기로 서원까지 
세운다...'
  '뭘 개혁하자는 건데 개혁할 건덕지가 없지 않았어요 루터는 뭘 하고 
있었어요 똥싸고 있었나...'
  '틀렸어. 종교 개혁 훨씬 전의 얘기야. 여기에 실린 각주 때작에 따르면, 
파마명성과 콘패시오신조를 주의 깊게 읽으면 그것을 에빈체할 것인 바'
  '에빈체가 뭔데요'
  '보여 주다, 증거하다... 엉뚱한 질문 좀 하지 마. 나 지금 장미 십자단 
이야기를 하고 있어 심각한 거라고.'
  '표정이 증거하고 있군요.'
  '로젠크로이츠는 1378년에 태어나 1484년에. 106세의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이 비밀 결사가, 1615년에 백 주년을 기념한 종교 
개혁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않지. 실제로 루터의 
문장신호에는 장미 하나와 십자가 하나가 들어 있거든.' 
  '상상력의 비약 아닌가요' 
  '그럼 루터가 불타는 기린이나 축 늘어진 시계를 문장에 다 그려 넣은 
줄 알아. 우리는 모두 우리 시대의 자식들이야. 내가 누구의 자식인지를 
실증한 이상 계속 읽을 테니까 입 다물고 들어 줘 1604년 장미 십자단은 
저희들의 궁전 혹은 비을 개축하다가 큼지막한 못이 왕창 박힌 명판을 
발견하게 돼. 못을 뽑자 명판이 박혀 있던 벽의 일부가 허물어지면서 문이 
하나 나타나지. 문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이렇게 쐬어져 있고... 포스트 
아노스 파테보... 세상에...'  
  '나는 벨보의 편지를 통해 이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뭔데요'
  '이건 성당 기사단 밀지와 같아. 당신한테는 한 적이 없는 얘긴데... 한 
대령이...'
  '그게 뭐 놀랄 일인가요 성당 기사단이 장미 십자단 문구를 베긴 
것이겠지요, 뭐.'
  '하지만 성당 기사단이 먼전데...'
  '그럼 장미 십자단이 성당 기사단을 베꼈거나.'
  '당신 없었으면 어쨌을까 물라.' 
  '아글리에가 당신을 조져 놓은 거예요. 천계을 찾아 다니는 병에 걸린 
거라고요.' 
  '내가나는 뭘 찾아 다니는 사람이 아니야.'
  '안심이군요. 인민의 아편을 조심할지어다...' 
  '엘 푸에블로 우니도 하마스세라벤시도.'
  '웃어요. 계속 웃으라고 요. 그것을 그렇고,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어요 
그 얼간이들은 어떻게 되었다고 살고 있어요.'  
  '이 얼간이들의 지식 몽땅 아프리카에서 습득한 것이라고. 뭘 듣고 
있었어. 그러니까 그 얼간이들이 아프리카에서 우리 흑인을 포장해서 
이리로 보낸 거군요.' 
  '고맙게 여겨. 안 그랬더라면 당신은 어쩌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레토리아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그 문을 열고 보니, 인공 
조명을 받고 있는 칠면 칠각은의 무덤이 있더라는 거야. 중앙에는 원형 
제단이 있고, 이 제단에는 각양각색의 비명과 장식이 있었고... 가령 
네쿠아후암 바꿈... 같은...'  
  '적꽥거리다니 누가 도날드 덕인가요.' 
  '그게 아니라 라틴 어야 공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외워 두면 약이 되겠군요. 무지는 공포의 씨앗이라니까.'  
  '아니물라 바굴라 블란둘라, 봐주는 셈치고 선풍기나 좀 틀어 줘.'
  '겨울인데. 엉뚱한 반구뚜에 사는 당신네들에게나 겨울이지. 내게는 
7월이야. 선풍기 좀 틀어 줘. 당신이 여자래서 시키는게 아니야, 가까이 
있으니까 시키는 거지. 고마워 어쨌거나 이 얼간이들은 제단 밑에서 
원상태로 보존된 로젠크로이츠의 시신을 발견했어. 로젠크로이츠의 손에는 
어마어마한 지식의 보고인 서촐가 들어 있더라나...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그 책을 읽을 수 없어 선언서에는 그렇게 나와 있군. 그렇지 않고 
세상이 이걸 해독했다면... 꿀꺽. 와아, 이리 퍽, 저리 퍽...' 
  '아이고 아파.'
  '선언서는 대우주와 소우주 간의 관계에 관한 무시무시한 계시로 
시작되어 어마마한 보물이 발견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끝나고 있어. 
그런데 이들이 겨우 우리에게 금 만드는 거나 가르쳐 주겠다고 나서는 
천박한 연금술사들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금 만드는 법이나 가르치는, 
가짜 연금술사들과는 달라서 이들의 목표는 높고도 원대했대. 선언서에 
따르면 이 다섯 언어로 유포되었고 콘페시오 역시 그렇게 배포되었다니까 
머지않아 영화를 통해 신판이 공개될지도 모르겠군. 장미 십자단 형제들은 
이렇게 파마와 콘페시오를 배포해 놓고는 세계의 유무식쟁이들로부터 
날아을 반응과 비평을 기다렸다는 거지 우리는 이 비밀을 공개할 수 
없지만 편지나 전화를 주세요, 이름을 알려 주세요, 그러면 당신에게 
비밀을 공유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수브움브라알라룸 투아룸 예호바'
  '무슨 뜻인가요'
  '편지 말미에다 쓰는 관용구야. 이만 쓰겠습니다. 이거지. 하여튼 장미 
십자단원들은 저희들이 배운 것을 풀어 먹고싶어서 근질근질한 판이지. 
그래서 비밀을 공유할 사람들을 찾아 나섰던 것 같아. 하지만 비밀을 한 
자락도 안 드러내는데 누가 찾아와 비행기에서 보았던 광고의 등장 인물 
같군요. 내게 10달러만 보내 주시면 백만장자가 되는 방법을 일러 
드리겠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정말 방법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나처럼...' 
  '계속 읽기나 하는 게 좋겠군요. 당신은 꼭 내가 초면인 것처럼 굴어.' 
  '당신 앞에 앉으면 항상 초면 같은걸.' 
  '나는 초면인 사람과는 못 어울려요. 하여간에 당신 재산도 이제 
어지간한 것 같네요. 성당 기사단, 장미 십자단 레하노프는 안 읽어요'
  '안 읽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한 120년 뒤에는 그 양반무덤이 
발견될지도 모르니까. 스탈린이 트랙터로 밀어 버리지 않았다면 바보같이. 
나 목욕이나 하겠어요.'
  
    30
  
  이야기는 후반부가 재미있는 법이다. 나는 목욕하고 나온 암파로에게 이 
놀라운 사건의 맛보기를 보여 줄 수 있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얘기야. 이 두 선언서는, 그런 종류의 인쇄물이 쏟아져 나을 당시에 
나왔다. 모든 사람들이 개혁과 황금 시대와 정신의 카케인을 부르짖던 
시대에... 이 시대에는 마술서에 빠진 사람들, 금속을 녹여 금으로 
정련하려던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마음대로 운성을 조종하려는사람. 
비문과 만국 공통어를 만들어 내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프라하에서는 
루돌프 2세가 궁전을 아예 연금술 실험실로 개조해 놓고는, 코메니우스와. 
당시에 룰나스 이에로글리피라는 제목의 몇 쪽 되지도않는 책을써서 
우주의 비밀을 모두 밝혔노라던 영국 왕실의 점성가인 존 디를 초청했다
  '당신 내 말 듣고 있었어'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루돌프 왕의 전의 이름은 미하엘 마이어인데. 이 양반은 나중에 시각적 
상징과 음악적인 표상이 한데 어우러진 아탈란타 푸기를 펴내었는데. 이 
책은 철학자의 알, 제 꼬리를 문 용, 스핑크스의 향연을 방불케 했어. 
그런데 이런 상징을 해독해 보면 그 의미가 그렇게 명료할 수가 없어. 
말하자면 모든 사물은 다른 특정 사물의 상형문자라는 것이지. 어디 한번 
생각해 보라고.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돌멩이를 떨어뜨리고, 
리슬리외가 전매 특허를 낸 듯이 유럽의 반쪽을 들었다 놓았다 하던 
시절이었어, 그런데 이 엉뚱한 자들은 우주의 비밀을 읽어 보겠다고 눈을 
까뒤집고 설쳤어. 그것도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세상만물의 발바닥 
밑에는 아니면 위에는 뭔가가 있다... 우리가 아는 것과는 판이한 
무엇인가가... 그게 무엇일까 뭔지 궁금해 한마디로 
아브라카다브라헛소리지. 토리철리가 기압계를 발명하고 있을 동안 엉뚱한 
것들은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선거의 뜰에서 춤과 물놀이와 불놀이로 
장난질을 치고 있었어.30년 전쟁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르는 채...'
  '억척어멈들은 되게 재미 있었겠군.' 
  '하지만 이들에게도 그게 놀이와 장난이었던 것만은 아니었어. 1619년에 
선거후는 보혜미아의 왕관을 받아 쓰게 되는데. 이건 저 마법의 도시 
프라하를 다스려 보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이었을거라. 그러다 
바로 그 다음해 합스부르크 왕가는 선거후를 프라하 교외의 백산에다 
연금하게 돼. 그동안 프라하에서는 프로테스탄트들이 학살을 당하고, 
코메니우스의 짐과 서재는 잿더미가 되는 데다 처자식도살해당하고 말아. 
이렇게 되자 코메니우스는 장미 십자군의 사상이 얼마나 회방에 가득 찬 
사상인가를 선전하면서 이 궁전 저 궁전을 전전하게 되지.' 
  '불쌍한 사람이군요. 당신 생각에는, 코메니우스가 어떻게 했어야 잘한 
건데요토리첼리의 기압계 발명에 만족하고 있었어야 했어요잠간만... 이 
가엾은 여자에게 생각할 시간좀줘요. 선언문은 누가쓸 것이죠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인데... 몰라. 어디 한번 생각래보자고... 당신 내 장미 십자 좀 
긁어 주겠어아니... 견갑골 사이... 위로 조긍 더 올라가서... 왼쪽으로... 
거기야, 거기, 시원하다. 그런데 말이야, 독일이 저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요상한 사람들이 몇 등장하게 돼. 솔로몬 신전의 측정에 관한 신비스러운 
논문인, 나오메트리아의 저자 시몬 스투디온, 알례고리로 가득한 
암피테아트룸 사피엔티아에 아이테르나에 저자 하인리히 쿤라트가 바로 
이런 사람들에 속하는데 특히 히브리 문자와 카발리즘의 미궁을 방불케 
하는 쿤라트의 책이 파마 저자들에게 영감을주지 않았을까 싶어.  파마의 
저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무수한 꼬마 유토피아 비밀결사 
단원들의 친구였을 것이거든. 항간에는 두 선언서의 저자가 요한 발랜틴 
안드레아에얼 것이라는 소문이 횡행한 일도 있기는 해. 한 해 뒤에 
안드레아에가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적 결혼이라는 책을 
출판했었거든. 
  사실 이 책은 안드레아에가 소실적에 써둔 것이었어. 그러니까 장미 
십자단의 사상에 상당한 기간 동안 경도되어 있었다는 얘기가 되지 당시 
튀빙겐에는, 크리스니아노폴리스 공화국을 꿈꿀 정도로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에 경도된 장신도 들이있었어. 떠돌던 장미 십자단원들이 
튀빙겐에서 합류했던 것인지도 모르지.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 귀에는 장미 
십자단원들의 이런 주장이 장난처럼, 농담처럼 들리는 데 있었어. 그러니까 
장미 십자단원들은 저희들이 복마전의 귀신들을 풀어놓으면서도 전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거라. 안드레아에는 두 선언서를 루수스 
못된 장난, 루디블리움 거짓, 프랑크라는 말로 매도하고는 자기가 그 
선언서를 쓰지 않은 것을 석명하는 데 여생을 보내게되지. 이 일로 인해 
자신의 학문적 명예가 더렵혀졌다고 생각한 그는 대로 옷한 나머지, 
만일에 장미 십자단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 단원들은 모두 사기꾼일 
것이라는 극언도 망설이지 않았어. 하지만 별무효과... 선언서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걸 손에 넣으려고 했으니까... 
유럽의 많은 식자들은 장미 십자단으로 글을 보냈어. 보내자면 주소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없으니까 말하자면 공개 서한 형식이나 인쇄물 형식을 
빈 것이지.
  같은 해마이어는 아르카나 아르카니시마를 출판하는데, 이 책에는 장미 
십자단의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는 것은 아니었어. 그런데도 독자들은 
그가 바로 장미 십자단 이야기를 그 책에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자는 그 책에 쓴 것 이상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지. 
독자 중에는 원고 상태의 파마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었어. 그 시절에는 책을 출판하기가 쉽지 않았어. 특히 판화가 
들어가는 책은... 하지만 1616년 로버트플러드이 사람은 쓰기는 영국에서 
쓰고 출판은 네덜란드의 라이든에서 했으니까, 교정쇄가 배를 타고 
왔다갔다하는 시간을 한번 상상해 보라고는, 당시 장미 십자단원들이 받고 
있던 중상 모략의 의혹으로부터 형제들을 변호하기 위해, 아폴로기아 
콤펜디아리아 프라테르니타템 데 로세아 루체 수스피키오니스 에트 
인파미이스 마쿨리스 마스페르삼, 베리타템 쿠아시 플룩티부스 아블루엔스 
에트 아브스테르겐를 발표하게 돼. 이게 뭘 말하겠어 보혜미아,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지에서 기마 전령을 통해서든 순회 학자를 통해서든 장미 
십자단 논쟁이 격렬하게 오고 갔다는 뜻 아니겠어
  그러면 당사자인 장미 십자단의 단원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지. 
포스트 아노스 파테보 120년 뒤에 소생하리니... 진공 상태인 궁전에서 
애의 주시할 뿐...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말이야, 그들의 이런 침묵이 
사람들을 걷잡을 수 없이 흥분하게 만든 것 같아. 대응하지 않는 것을, 
사람들은 존재하는 증거로 받아들였던 것이지. 1617년 플러드는 
트락타투스 아플로게티주스 인태그리타템 소시에타티스 데 로세아 크루체 
데펜델I수를 썼고, 어떤 사람은 데 나주라에 세크레티스라는 책에서 장미 
십자단의 비밀이 백일하에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지.' 
  '그래서 백일하에 드러났어요. 어떤 놈이 괴상한 계산 결과를 내어 놓는 
바람에 훨씬 복잡해지고 말았어.1618년에서 장미 십자단이 약속하고 있는 
158년을 얼마나 남아 1430년이지이 해는 라또아송도르, 즉 금양모피 
기사단 출부로이 창설된 해야.' 
  '이게 무슨상관이 있나요'  
  '188년이라는 게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아. 내가 생각하기에는 120년이 
되어야 하는데 왜 188년인가 말이다. 하지만 신비주의자들의 더하기 
뻐기는 우리 생각과는 늘 다르더라고... 그 다음은 금양모피 기사단이라는 
건데... 이건 다른 게 아니고 바로 아르고나우타이, 다시 말해서 아르고 
원정대야. 그런데 믿을 만한 근거에 따르면 이 금양모피 기사단은 분명히 
성배 전설과 관련이 있고 따라서 성당 기사단과도 관계가 있어. 그런데 
여기에서도 끝나지 않아. 홀러드는 바바라 캐틀랜드보다 훨씬 다작이었어. 
1611년부터1619년까지 플러드는 자그마치 네 권의 책을 써내게 되는데. 그 
중에는 장미와 십자그림 삽화가 군데군데 넣어지면서 우주에 관한 암시가 
기술되고 있는 우트리우스줴 코스미 히스토리아가 있어. 이렇게 되자 
마이어는 있는 힘을 다해 실랜티움 포스트 클라모레슨를 써내게 돼. 
마이어는 이 책에서 우애단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 딴만 아니라, 자기는 
신분이 미천해서 가입 허가를 받을 수 없을 뿐이지 이 비밀결사는 
금양모피 기사단은 물론 가터 기사단과도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게 돼. 
유럽 학자들의 반응을 한 반 상상해 봐. 장미 십자단이 마이어 같은 
사람까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마어마한 계급만을 상대하는 배타적인 
집단이라는 뜻이 아니겠어 이렇게 되자 익명의 저자들이 이 익명의 비밀 
결사에 가입하려고 무진 애를 쓰게 돼. 다른 말로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장미 십자단의 존재를 시인하게 되는 셈이 아닌가. 
  그러나 장미 십자단원을 목격했다는 사람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 
하고많은 사람들이 장미 십자단의 모임 비슷한 것을 조직하고 감언이설로 
청중을 모아 들이려 했을 뿐 막상 내가 바로 장미 십자단원이오 하고 나선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거지. 혹자는, 자기에게 접근해 오지 않는 걸 보면 
그런 비밀 결사는 없는 것임에 분명하다고 주장했고, 혹자는 자기에게 
접근해 왔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주장했지. 그런데도 장미 십자단원은 
종무소식이고 쥐새끼처럼 조용했어.
  '아. 해봐요. 많이먹여 줄게.'
  '아... 그 동안에 30년 전쟁이 시작되었고, 요한 발랜틴안드레아에는, 
가짜 
그리스도의 무리가 그 해 안에 패배할 것을 장담하면서 바벨합을 써냈고, 
이레네우스 아그노스투스는 띤티나불룸 소또론썼다...'
  '틴티나불룸... 딸랑딸랑딸랑... 재미있네.'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이야... 하여튼 바로 이런시기에 캄파넬라가, 
흑은 캄파넬라 행세를 대신하던 사람이 스페인 군주제에 관하여에서, 장미 
십자단에 관련된 모든 소문은 타락한 인간들의 놀음의 소산이라고 쐐기를 
박아 버렸어, 그리고 그걸로 끝... 1621년에서 1623년까지 아무도입을 열지 
않았으니까. 물려 버렸던 거지. 비틀즈의 노래에 물리듯이, 하지만 
독일에서만 그랬어, 이 독구름은 이번에는 프랑스로 떠갔지.1623년의 어느 
맑은 아침, 파리의 단 건물 벽에는 장미 십자단의 선언서가 나볼었어. 
파리의 선량한 시민에게, 우애단의 본부가 고위 간부들과 함께 파리로 
옮겨 와 입회 신청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했노라는 대자보가 나붙은 
거지, 
  일설에 따르면 그 선언서는 세계 전역에 흩어져 있는, 6명씩 동아리를 
지은 36명의 보이지 않는 간부들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다는군. 이 
36명의 간부들에게는 자기네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언금과 함께...보라고,또 36이라고.' 
  '36이 뭔데요'
  내가 가지고 있는 성당 기사단 문서에 나오는 숫자..
  '장미 십자단원들, 상상력이 아주 모자라는 사람들이군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집단적인 광기가 분출하지. 장미 십자단을 옹호하는 사람,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사람, 악마주의다. 연금술이다, 이단이다, 해가면서 대놓고 
비난하는 사람... 백인 백태의 난장판이 벌어지지. 개중에는 장미 십자단은 
아스타르테힘을 빌어 돈 있는 자. 힘있는 자와 저희 동아리만을 다른 
장소로 전송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생겨나는 형편이었어 요컨대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었던 셈이지.' 
  '똑똑한 데도 있구먼. 자기 선전에 파리 만한 데도 없으니까.' 
  '옳아. 다음 이야기가 재미있어. 데카르트가 말이야...맞아, 다른 누구도 
아닌 데카르트가 말이야... 장미 십자단을 찾아 독일로 간 적이 있대. 전기 
작가와 말에 따르면 데카르트는 장미 십자단을 찾는데 실패하고 말아. 
장미 십자단이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었거든. 데카르트는 파리로 돌아왔어. 
그러나 그가 돌아온 것은 이미 선언서가 파리에 나타난 뒤였어. 파리로 
돌아온 뒤에야 데카르트는, 파리 사람들이 자기를 장미 십자단원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당시분위기로 봐서, 장미 십자단으로 몰리는 게 
데카르트에계는 치명적일 수도 있었어. 이 일은 데카르트의 가까운 친구 
메르센의 입장을 아주 난처하게 만들고 말지. 메르센은 일찍이 장미 
십자단을 철면피, 불온 분자, 마법사, 이단의 씨를 뿌리는 마술적인 
카발라의 집단으로 매도한 바 있거든. 데카르트는 어떻게 하든지 장미 
십자단원이라는 누명을 벗어야 했을 테지. 어떻게 하면 벗을 수 있을까
  그냥 사람들 앞에 자주 나타나면 돼. 사람들이 데카르트의 모습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으면 데카르트는 장미 십자단원이 아니게 되는 셈이거든. 
진짜 단원이라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니까...'
  '당신도 좀 배워 두는 게 좋겠군요.'
  '물론. 부인해 봐야 부인이 안 되었어. 그때는 말이지, 누가 당신에게, 
나는 장미 십자단 단원입니다 하고 말하는 사정이 있다면 그건 아니라는 
뜻이지. 자부심이 강한 장미 십자단 단원이 자신을 단원이라고 내세우는 
일은 절대로 없었거든. 진짜 단원은 숨을 거둘 때까지 그걸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부인하는 사람은 모두 단원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없잖아요 
누가 날 보고 묻는다면 나는 부인하겠죠. 부인한다고 해서 내가 장미 
십자단원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내 말은 부인 자체가 혐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지.'
  '엉터리. 자. 여기 장미 십자단원이 하나 있다고 쳐요. 그런데 사람들이, 
단원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단원으로 믿어주지 않고. 부인하는 사람만 
의심한다는 걸 이 단원이 알았다고 해봐요. 그러면 이 단원은 어떻게 
하겠어요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자기는 단원이라고 할 테죠. 자, 
그런다고해서 이 사람이 단원 아닌가요'
  '이런 젠장...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특정인을 향하여, 저 사람은 
단편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 특정인은 진짜 단원이 되어 버리는군 
아니야, 우리가 이러면 안 돼, 암파로. 놈들이 파놓은 논리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돼. 놈들의 밀정은 도처에 있어. 이 침대 밑에도 있을거야. 
그래서 놈들은 우리가 저희들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래서 
우리를 만나면 절대로 아니라고 할거라.''당신 지금 날 겁주고 있는 
거예요.'
  '걱정 마. 내가 여기에 있으니까. 나는 단순해. 만일에 단원이면서도 
아니라고 하는 놈이 있다면 내가 가면을 확 벗겨버리었어. 가면이 벗겨진 
단원은 별것 아니야. 신문지를 말아 훅 불어 버리면 창 밖으로 날아가 
버릴 거야.'
  '아글리에는 어떨까요. 아글리에는 우리가 자기를 생 제르맹 백작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데, 이건 그럼 생 제르템 백작이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이러는 걸까요 그렇다면 아골리에도 단원이네. 아닌가 암파로, 잠이나 좀 
자두자.'
  '띨어. 나머지를 듣고 싶은 걸.' 
  '나머지는 뒤죽박죽이야. 단원 아닌 사람이 없게 되니까. 1627년에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 아틀란티슨가 출판되었을때 사람들은 베이컨이 장미 
십자단의 나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 알았을 정도야. 베이컨이 장미 
십자단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가엾은 요한 발랜틴 
안드레아에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자기는 장미 십자단원이 아니라고 
변명하다가 세상을 떠났어. 만일에 안드레아에가 당당하게 단원이라고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에이, 농담마세요. 했겠지. 요컨대 장미 
십자단원은, 장미 십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도처에 존재하고 있었어.' 
  '하느님처 럼 '
  '그 말 잘했군. 들어 볼 데이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은 뛰어난 
재담꾼들로, 언제 어디에서 만나 한판불어 보기로 한다. 한 인물을 
설정하고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에 합의한 다음, 각자 그 합의된 것으로 
마음대로 이야기를 꾸미고, 나중에 만나 누가 잘 꾸몄는지 겨루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씌어진 글이 평론가로 행세하는 몇몇 친구들 
손아귀로 들어가게 돼. 평론가는 평론하겠지. 마태오는 상당히 
사실적이지만 메시아 사업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마르코도 나쁘지는 
않지만 다소 감상적이다... 
  루가가 적당한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요한은 지나치게 철학적이다... 이런 장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 
네 권의 책은 상당히 매력 있는 것이어서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게 된다 네 
저자가 이걸 알았을 때는 때늦은 뒤... 바울은 벌써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그리스도를 만난뒤였고. 플리니우스는 근심에 잠긴 황제의 명을 받아 
조사를 시작하고... 4인조의 줄거리를 가지고 무수한 위작가촌들은 아는 
체하면서 써대고... 뜨와너희, 아포리프렉뙤르, 몽 상블라블, 몽 프레르 
바울로로서는 청천벽력일 수밖에. 바울로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게 
돼. 거기에다 요한은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위협하고... 그래서 베드로와 
바울로는 요한을 꽁꽁 묶어 파트모스섬으로 보내 버리지. 가엾은 요한은 
헛것을 보게 돼. 사람 살려. 메뚜기 메가 내 침대를 뒤덮고 있어요, 저 
나팔 소리 좀 멎게해주...
  아니 이 피는 도대체 어디에서 흐르는 거야사람들은 요한이 술에 
칠했거나 동맥 경화증 말기 증세를 보인다고 했고... 누가 알아 정말 
이랬던 건지'그랬을 거예요. 당신, 아무래도 그 쓰레기 같은 성당 기사단 
책보다는 포이어바흐를좀 읽는 게 좋겠어요.'  
  '암파로. 해가 뜨는군.' 
  '우리 둘 다 돌았나봐요.'  
  '새벽의 장미 십자 손가락이 부드럽게 파도를 어루만지면...'
  '좋아요, 계속해 봐요. 예만자군요. 들어 보세요. 예만자 여신이 오고 
있어요.' 
  '당신의 루디브리아 웃음가 필요한데...'
  '오, 틴티나볼룸... 딸랑딸랑...'
  '당신은 나의 아탈란타 푸기엔스..' 
  '당신은 나의 불끈 솟은 투리스 바벨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의 
아르카나 아르카니시마 양모피, 빨 에 로즈끝 엉 꼬찔라주 마랭 이 
실랜티움 포스트 플라모레스...' 
  암깍로가 속삭였다. 
  
    31
  
  우리는 리오로 돌아갔다. 나는 일을 계속했다. 어느 날 삽화가 많은 
잡지에서. 리오에는 고대 수도회 및 공인을 시킬장미 십자단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는 암파로에게 한번 가 보자고 했다. 암파로는 
마지 못해 하면서 나를 안내해 주었다. 본부 사무실은 골목에 있었다. 
두꺼운 판유리 전시장에는 석고로 만든 루프 왕, 네페르티티.123스핑크스의 
작은 조상이 있었다. 바로 그 날 오후에 장미 십자단파 움반다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연사는 유럽 장미 십자단 최고회의 
의장이자, 로도스. 말타. 테살로니카 지구 대수도원 비밀기사라는 브라만티 
교수였다. 우리는 들어가 보기로 했다. 왜냐 누추한 방은 탄트라 밀교의 
세밀화로 장식되어 있었다.
  성당 기사들이 선배의 궁둥이에다 입을 맞춤으로써 그토록 잠을 
깨우코자했던 사신 쿤달리니 그림도 있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보면서. 그 
정도의 신세계를 보려고 대서양을 횡단해 온 것을 후회했다. 그런 
것들이라면 밀라노에 있는 피카트릭스 회사무실에서도 구경할 수 있을 
터였다. 브라만터 교수는 빨간 상보에 덮인 탁자 뒤에 앉아, 자리를 
드문드문 메우고 금방이라도 졸 듯한 청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체격도 컸거니와 어찌나 살이 쪘는지 흡사 맥똔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들어간 것은 강연도중이었다.
  말투는 약간 허풍스럽고 그래서 더 웅변적이었다. 18왕조 아하메스 1세 
치하의 장미 십자단에 머물고 있는것으로 보아 이야기가 오래 진행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베일에 가려진 네 대성츠로이. 테베가 건설되기 
2천5백 년 전에 벌써 사하라 문명을 일으킨 종족의 진화를 지켜 왔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집트인들이 지금까지도 태고적의 지혜를 
수호하고 있는 것은 네 대성의 가르침을 받고 아하메스 1세가 창설한 태백 
우애단호트호럇템덕 분이었다. 그는 자기에게는, 역사적으로 카르나크 
신전의 현자들과 그 비밀 문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자료속인들에게는 
당연히 접근 불가능한 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수는. 장미와 
십자의 상징은 일찍이 파라오 아케나톤의 착상으로 시작된 것이고 실제로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파피루스 고문서가 있기는 하지만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밝힐 수 없노라고 말했다.
  '태백 우애단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절체절명의 사명을 띠고 있었다는데 
그 대상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프린스턴 신학교의 그노시스 파에도 이에 못지 않은 영향을 미친 
체르메스 트리스베기스투스, 서사 시인 호메로스. 갈리아의 드루이드 
승려들, 솔로몬 대왕, 현자솔론, 기하학자 피타고라스, 칠학자 플로티누스, 
에세네 교단의 신학자들, 의사들, 성배를 유럽으로 가져갔던 아리마태아의 
요셉, 말쿠인, 다고베르트 왕. 성토마스 아귀나스. 베이컨. 세익스피어.  
  스피노자, 야를 뵈메,드뷔시. 아인슈타인...네로 황제. 캄브론느, 제로니모 
추장, 판초 빌라, 버스터키튼만 빠졌잖아...'
  '암파로가 소근거렸다. 초기 장미 십자단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을 
언급하는 대목에 이르자브라만터 교수는, 강연의 분위기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는 청중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린 것은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외 주장에 따르면 태백 우애란의 현자들이야말로 
일찍이 솔로몬 왕 시절에 최초로 프리메이슨 단의 로지지방 집회소를 
설립한 장본인들이기도 했다. 작품이 증거하고 있듯이 단테는 장미 심자단 
단원이자 프리메이슨 단원인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는 일이고 토마스 
아퀴나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단테 띤곤의 띤국편 24시편과25시편에 등장하는 
장미 십자의 왕이 하는 삼중의 키스, 펠리칸과 하얀 두루마기 요한의 
묵시록의 장로들이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가 등장하고, 프리메이슨 교회가 
믿음, 소망, 사랑을 삼덕으로 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장미 
십자단을 상징하는 꽃30시편과 31시편의 장미은 로마 교회에 의해 
구세주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꽃으로 채택되었고, 그래서 연도걀릴에 로자 
미스티카신비의 장미라는 말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장미 십자단의 전통이 중세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왔던 것은 성당 기사단 
사상이 성당 기사단에 침윤한 것으로, 또는이보다 더 명백한 문서를 통해 
충분하게 입증된다는 것이 브라만터 교수의 설명이었다. 브라만티는 
19세기에 키이제베터라는 사람이 장미 십자단원들이 중세에 작센의 
선거후보쀼튿들을 위해서 반 톤에 가까운 금을 만들어 주었다고 주장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 분명한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1613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출판된 쎄아트룸 케미쿤lu을 들추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월리엄 텔 전설에서 장미 십자단적 요소의 언급한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이 전설 역시 장미 십자단 적이다. 월리엄 텔은 겨우 
살이 나무를 잘라 화살을 만드는데 이 나무는 아리안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나무이고, 월리엄 텔이 쏘아 맞히는 사과는 사신 쿤달리니가 
촉발시키는 제3의 눈이다. 아리안 족이 인도에서 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인도는, 장미 십자단이 독일을 떠난 뒤에 일시 
은거했던 땅이다. 태백 우애단의 후예를 자처하는 대개 유치하게 
집단중에서 브라만티가 적법하다고 인정하는 집단은 막스 하인델의 장미 
십자 우애 단이다. 브라만티가 이 단체를 인정하는 것은 알라인 
카르데크가 바로 이 단체 언저리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브라안티에 
따르면 카르데크는 강령설의 아버지인데, 사자롤의 영혼과의 접촉을 
연구하는 그 외 신지학은 위대한 브라질의 영광인 움반다 강신술을 
형성시킨다. 이 카르데크의 신지 학에서 움반다의 원형은 아움 반다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 아움 반다는 다름아닌 신성한원리와 생명의 근원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 어다..
  '또 우리를 속였구나... 움반다라는 말조차도 우리 것이 아니라니... 이 
단어에서 아프리카적인 것은 그 울림밖에는 없다는 건가...1암파로가 
속삭였다. 브라만티가 말을 이었다. '
  '아움 반다의 뿌리는 아움 혹은 움입니다. 이것은 바로 불교의 옴이며, 
아담의 언어에서는 하느님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움이라는 음절을 
제대로 발음하면 진언즐으로 변하는데 이 진언은 즉 전두부의 신경총을 
통해 우리 영혼에다 지극히 유동적인 조화의 흐름을 이루어 
냅니다...''전두부 신경총이 뭐야 불치병인가...'암파로가 소근거렸다. 
브라만티는 장미 십자단파 태백 우애단의 진짜 후계 단체와, 자신이 
과분하게도 대표를 맡고 있는 고대 수도회 및 공인 장미 십자단같은 진짜 
비밀 결사인 장미 십자단파, 그럴자격도 없이 오로지 사리사욕 때문에 
결성된, 이름뿐인 장미 십자단과는 큰 차이가 있다면서 청중들에게 장미 
십자단의 형제를 자칭하는 장미 십자단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
했다. '그게 그거지 뭘 그래...'암파로가내 귀에 속삭였다. 청중 중에서 조금 
엉뚱한 사람이 하나 일어나, 브라만티교수는 어째서 태백 우애단의 
묵언계랄및를 어겨 가면서까지 자기 교단의 정통성을 주장할수 
있느냐고따져 물었다. 그러자 브라만티 교수가 결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나는 이 자리에 무신론적 유물론자들에게 고용된 
앞잡이가 침투해 있다는 걸 몰랐군요. 이런 상황 아래서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위엄을 보이며 걸어 나갔다. 그날 밤 아글리에에게서 
전화가결려 왔다. 그는 안부를
묻고는 드디어 우리가 다음날에 열리는 그 의식43겻f에 초대받게 
되었다면서 한잔 하지 않Tf느냐고 했다. 암파로는 친구들과의 정치적인 
모임이 있었다. 나는 흔자 아글리에를 만나러 갔다. 
  
    32
  
  아글리에가 나를 데려간 곳은 늙도 젊도 않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방법에 
다라토속주 바티다를 양조하는 곳이었다. 카르멘 미란다125의 영화여 
나오는 문명 사회에서 몇 걸음 만에몇 명의 원주민들이 소시지같이 굵은 
엽권련을 빨아 대는 어두운 방으로 들어간 셈이었다. 담배는, 넓고 투명한 
잎사귀를 굵은 밧줄처럼 말고, 이걸 손가락으로 매만진 다음에 기름종이로 
싼 것이었다. 담뱃불이 계속 꺼졌다. 월터 롤리 경이 처음으로 피웠을 때의 
담비 꼴이 어떠했을지 알 만했다. 나는 아글리에에게 그날오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이번에는 장미 십지단이오 당신의 지식욕도 어지간하군 요. 그런 
미치광이들. 이제 그만 모른 척하세요. 어느 누구도문서를 만들지 않았는데 
도 불구하고 그자들은 늘 반박의 여지가 없는 문서... 운운하지요. 
그브라만터라는 사람. 나도 알아요. 밀라노 사람이지만 온 세계로 
돌아다니면서 자기 복음을 전파하지요. 아직도 키이제베터를 믿고 있는 게 
흠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무해한 사람이오. 자칭 장미 십자단 단원이면 
누구나 테아트룸 케미, 키에제베터가 연금사술에 성공했다는 대목이 
있다면서 인용해 먹지만 실제로 그 책을 보면... 밀라노의 내 작은 
서재에도 그 책이 한 권 있어서 조심스럽게 덧붙여서 말해도 좋다면... 그 
책에 그런 인용문은 없어요.'
  '그렇다면 키에제베터는 광대였군요.'
  '어쨌거나 많이 인용되는 사람이기는 해요. 문제는 말이지요, 19세기의 
은비주의자들까지도, 한사물은 그것이 증명될수 있을 때만 참이라고 하는, 
이른바 실증주의 정신에 회생되고 있었다는 것이오. '
  '코르푸스 헤르메티쿠스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을 생각해 봐요. 
15세기 유럽에서 이 문서가 발굴되었을 때 피코 델라 미란돌라, 피치노를 
비롯한 당대의 석학들은, 그 문서야말로 고대 이집트. 심지어는 
모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 최고틀 옴의지혜가 담긴 문서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지요. 뒷날 플라톤파 예수에 의해 표현될 
사상까지도 아우르고 있었거든요.' 
  '뒷날이라뇨 이건 단테가 프리메이슨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브라만터 
교수가 썼던 논법과 비슷하군요. 만일에 코르푸스가 만일에 플라톤이나 
예수의 사상을 되풀이하고 있다면 그건 후대에 씌어졌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당신 역시 그러고 있군요. 그게 바로 현대 문헌학자들이 코르푸스에서 
보여 준 추론 방법이오. 문헌학자들은 코르푸스가 2, 3세기에 쓰여졌다는 
것을 증명할 생각에서 장황한 언어학적 분석까지 가세 시켰어요. 그게 
뭡니까 트로이아의 멸망을 예언했으므로, 카산드라는 호메로스 이후 
사람이라고 추론하는 것과 같아요. 시간을 인식하는 것, A에서 B로 
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믿음은 현대인의 환상이지요. 사실 시간은 
B로부터 A로 흐를 수도 있고, 결과가 원인을 야기시킬 수도 있는 
거랍니다. 선행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후속한다는 말은무슨 뜻일까요'
  '당신의 절세 미녀 암파로는 인종적으로 혼교된 조상을 선행하나요, 
후속하나요 아버지 랠이 되고도 남을 사람이 담담하게 의견 개진하는 걸 
용서한다면 한 말씀드리겠소만, 암파로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워요. 
그러니까 암파로는 조상을 선행하는 거요. 말하자면 암파로는, 암파로라는 
여자를 창조하는데 쓰인 모든 것의 신비스러운 발생 근원인 것이오.'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는 바로 이 점이라는 사고 방식이 잘못 핀 거요. 
점이라는 것은 파르메니데스 이후 과학이 설정한 것으로, 찬 곳에서 다른 
곳을 향한 사물의 움직임을 정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나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업어요. 오로지 한 점이 있을 뿐이고 그 
점으로부터 모든 점이 생겨나는 것일 뿐이오. 19세기의 은비학자들은, 우리 
시대의 은비학자들이 그러고 있듯이. 과학적인 허위를 방편으로 해서 
사물의 참을 증명하려고 애를 썼어요. 대상이 어떤 것이든. 그 시대의 
논리에 따라서 논증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따라야 하는 것은 전통인 것이지요. 모든 시대는 각기 다른 시대의 
상징이 됩니다. 따라서 장미 십자단의 신전은 어떤 시대에도 존재합니다. 
더구나 그것은 당신이 말하는 역사의 순리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인 것으로 
존재합니다. 최종적인 계시의 때는 시계로 재어지는 시간이 아니오. 그 
시간은, 선후의 문제를 중시하는 과학에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 섬세한 
역사에 의해 정해지는 시간이랍니다. ''요컨대 장미 십자단이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적인 바보들이지요. 왜냐 증명하지 않고 알아야 하는 것을 굳이 
증명하러 들기 때문이오. 당신은 내일 밤에 한 무리의 신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오만, 카르데크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진위를 그들이 증명해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은 그냥 알아 버릴 뿐이오. 어떻게 알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만일에 우리에게도 은비술을 쓴것을 받아들이는 그런 능력이 
있다면, 찬란하게 드러나는 것들에 눈이 부셔서 견딜 수가 얼을 것이오. 
알기를 소원할 것도 얼어요. 그저 알려고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요.'
  '진부하게 굴어서 죄송합니다만, 결국 장미 십자단 단원 은이 세상에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습니까'
  '존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요' 
  '여쭈웠으니까 설명해 주시죠.' 
  '장미 십자단이라고 불러도 무방하고 성당 기사단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만 일단 태백 우애단이라고 합시다. 태백 우애단은, 영원한 지식의 
정수를 보존하기 위해 인류의 온 역사를 관류하는 소수의, 극소수의 
현인들 집단이오. 역사는 그저 생기는 게 아니에요. 역사는 세계의 이러한 
대성이 빚는 것이오. 어느 누구도 이들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요. 세계의 
대성들은 당연히 비밀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지요. 바로 이런 이유에서, 
대성을 자칭하거나, 장미 십자단원을 자칭하거나 성당 기사단원을 
자칭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 대성은 그런 사람들 
가운데엔 없어요.' 
  '그럼 그 이야기는 끝도 없이 계속되겠군요.' 
  '그래요. 대성의 주도 면밀함이지요.' 
  '대성들은 사림들이 뭘 알기를 바랄까요' 
  '비밀이 있다는 것만... 사물이 눈에 보이는 대로라면 사는 게 재미없지 
않겠어요' 
  '그 비밀은 뭘까요' 
  '드러난 종교가 드러낼 수 없는 것... 비밀은 그 너머에 있지요.'
  
    33
  
  약속된 밤이 왔다. 살바도르에서 그랬듯이 아글리에가 자동차로 우리를 
데리러 왔다. 의례, 혹은 강신제가 열릴 텐다 천막가 선 제당 운초은 
마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을을 싸안는 흡사 땅의 혀 같은 
구릉이 굽이치면서 뻗어 나가다가 이윽고 바다에 이르자 바다를 핥은 것 
같았다. 저녁 노을에 물든 마을은, 위에서 내려다보자 너무 흡사 
원형탈모증으로 정수리의 털이 빠져 버린 머리 같았다. 
  '오늘 밤의 의례는 칸돔블레가 아니라 움반다라는 걸 잊지 마세요. 
따라서 오늘 참례 자들이 접신하는 신령은 오릭사스가 아니라 사자의 
영신인 에군이랍니다. 바이아에서 엑수 신체이야기를 잠간 한 적이 있지요 
오늘 밤의 참례 자들이 접신하는 신은 아프리카의 혜르메스라고 할수 있는 
액수와 그 반려자인 폼바 지라인 것이지요. 액수는 요루바 족친의 신으로 
대단히 짓궂고 심술궂은 신령이랍니다. 아메리카토인의 신화에도 
장난꾸러기 신은 있어요.'
  '사자의 영신이라면...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지요'
  '프레토 벨리요론공와 카보클로지요. 프레토 벨리요는 원래 노예 시대에 
백성을 이끌던 현자들이었지요. 롱고왕이나 아고스띠뇨 신부와 그 성격이 
비슷합니다. 말하자면 노예 제도가 완화된 시대의 추억 같은 존재이지요. 
이들을 통해서 흑인들은 처음으로 저희들은 짐승이라는 인식을 벗고한 
식구라든지 백부라든지 할아버지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카보클로는 
인디오의 신령, 원시 자연의 순수를 상징하는, 더러움을 모르는 힘입니다. 
움반다에서는. 가톨릭 성인들과 완전히 잡탕이 된 아프리카의 오릭사스는 
원전으로 물러나고 오로지 프레토 벨리요와 카보클로만이 실체가 됩니다. 
이런 실체를 통괘 마침내 오릭사스까지도 드러나는 것이지요. 탈혼 망아 
상태를 유도해 내는 것도 바로 이 신령들입니다. 춤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카발로말라고 불리는 영매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들리면서 
자각과 의식을 잃어버립니다. 
  카발로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떠날 때까지 춤을 추다가 말짱해진 
정신으로 깨어납니다. 이렇게 깨어났을 때의 밝아졌다는 느낌, 
정화되었다는 느낌은 굉장한 것이지요. 영매가 부럽군요.
  '암파로가 중얼거렸다. 부러울 만도 하지요. 어머니 대지와의 만남을 
성취한 셈이거든요. 이 의례의 참례자들은 대부분 어머니 대지에서 뿌리 
뽑혀, 대도시의 끔찍한 잡탕 냄비 속으로 던져졌던 사람들입니다. 슈펭글러  
말마따나, 위기를 느낀 서구의 장돌뱅이 정신은 결국 대지의 나라로 
되돌아오는 겁니다.'
  제당이었다. 천막인데도 밖에서 볼 때는 흡사 여느 건물같았다. 이 
제당도 뜰을 지나게 되어 있었다. 바이아의 뜰보다는 좀더 단정했다. 
일종의 창고 같은 바라크 문 앞에는 엑수의 조그만 조상이 봉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암파로가 나를 한쪽으로 끌었다. 
'생각났어요. 지난번 강연회에서 맥안같이 생긴 교수가 아리안 시대 
이야기하던 거 기억나요 그런데 아골리에 이 양반은 서구의 몰락을 
이야기하잖아요 블루트 운트 보덴피와 대지... 아골리에, 이 양반, 이거 순 
나치주의자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대륙이 다르잖아.'
  '가르쳐 줘서 고맙군요. 그런데 태백 우애단원이 된 건가... 그럼 당신 
오늘 저녁 식사로 하느님을 먹게 될 텐...'
  '하느님을 먹는 건 가톨릭교도야. 달라도 한참 다르지.'
  '다를 게 뭐 있어요 못 들었어요 피타고라수 단테, 성모 마리아, 
프리메이슨... 하나같이 흑인을 속여 온 것들 아닌가요 사랑을 할게 
아니라움반다를 해야할것 같아...'
  '당신 역시 잡탕 아닌가 가서 구경이나 하자고. 이 또한 문화니까.'
  '문화는 하나밖에 없어요. 마지막 장미 십자단원의 창자로 마지막 
가톨릭 
신부의 목을 졸라 죽이는거...'
  아글리에가 우리에게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바깥은 추래했는데 
안에서는 격렬한 색채의 화염이 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네모 번듯한 넓은 
방이었다. 구석에는 영매인 카발로의 춤판이 따로 있다. 방의 한쪽끝에 
있는 제단 앞에는 제단과 회중석을 가르는 울타리가 있고 울타리 뒤로는 
아타바케스라고 불리는 큰북 두드리는 연주대 같은 것이 마련되어 있었다. 
제단은 비어 있었지만 회 중석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참례자들, 그냥 호기심으로 기웃거리는 사람들, 흑인과 백인이 뒤섞여 
있었다. 맨발인 사람들도 있고. 테니스 화를 신은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제단 앞의 조상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다채로운 빛깔의 깃털을 단 프레토 
벨리요와 카보클로 무리와 엄청나게 크지 않았더라면 과자방인형으로 
오인하기 알맞았을 성인들이 있었다. 
  반짝거리는 홍판을 붙이고 붉은 망토를 입은 성 게오르기우스, 성 
코스마스와 성 타미아누스, 칼끝에 젤린 성모, 코르코바도 산정에 선 
구세주의 거석상처럼 두 팔을 벌리고 선, 창피할 정도로 인간적인 흑백의 
그리스도상... 오릭사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 모인 
사람들의 얼굴, 사탕수수 냄새와 음식의 얼큰한 냄새. 더위와 곧 시작될 
강신제의 흥분으로 인한 땀법새에서 오려사스를 느낄 수 있었다. 파이 데 
산토툰초가 앞으로 제단 잎 앉았다. 그 자리에서 제주는 참례자들에게 
짙은 담배 연기를 뿜어 냄새가 배게하고 복을 내리고 성체 배령식 때 
그러듯이 술을 한잔씩 따라 주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동행들과 술을 
마셨다. 술병에서 깡보네를 따르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뒤보네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관없었다. 나는 영험 있는 불로불사 주 마시듯이 음미해 가면서 
천천히 마셨다. 단위에서는 박력 있는 아타바케스 타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소리에 맞추어 참례자들은 일제히 액수와 폼바 지라의 분노를 삭일 
노래를 열창했다. 
  '세우트랑카루아스 에 모주바, 에 모주바, 에 모주바 세테 
엥플루질리야다스에 모주바, 에 모주바, 에 모주바 세우 마라레 에 모주바 
세우티리리 에 모주바, 엑수 벨루도 에 모주바, 아폼바지라 에 모주바,'
  제주는 짙은 연기를 뿜는 향로를 혼들어 인디오 향내를 홀뿌리면서 
옥살라와 노사 세뇨라성모에게 바치는 기도문은 읊었다. 아타바케스의 
박자가 빨라지자 영매들이 제단 앞 공간으로 몰려 나가 북소리에 취한 
듯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여자들이었다. 암파로는 여성이 
보이는 그런 측면이 창피한 듯이, 아무래도 여성이 이런 데는 민감하니까, 
이러면서 영매들을 이죽거렸다. 여자들 중에는 유럽 여자들도 더러 있었다. 
아글리에가 한 유럽 여자를 가리켰다. 몇 년째 움반다 강신제에 참례하는 
독일의 심리학자라고 했다. 독일 여자는 그동안 강신을 체험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신령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하는 한 것은 불가능했다. 
독일 여자에게, 탈흔 망아의 접신 상태는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춤추고 있을 때 유심히 보니 초점이 흐려진 여자의 시선은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아타바케스 소리는 그 독일 여자의 신경에도 우리 신경에도 
숨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코를 얼얼하게 하는 냄새가 방안 자옥이 퍼지면서 참례자와 구경꾼들의 
정신을 멍멍하게 만들었다. 나부터 위장에 이상이 생기기나한 것처럼 속이 
메슥거렸다. 리오의 에스꼴라스 데 쌍바에서도 경험한 일이어서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나는. 디스코텍에서 토요일 밤의 열기를 빚어 내는 
음악과 소음의 심리학적인 힘을,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독일 여자는 
눈을 홉뜨고 있었다. 그의 신경질적인 몸놀림은 차라리 접신을 구걸하는 
몸짓에 가까웠다. 다른 신령의 딸들은 황흘경에 들어. 고개를 젖히고 
유동체처럼 흐물거리면서 망각의 바다를 유영하고 있었다. 독일 여자는 
잔뜩 긴장한 채로 눈물겹게 몸을 뒤틀고있었다. 
  오르가즘에 도달하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뒤트는데도 애액출을 방출하지 
못하는 여자의 표정이었다. 자제력을 무너뜨리려고 애를 쓰면서도 번번이 
무의식중에 그것을 되찾고 마는 불쌍한 튜튼 여자... 너무나 조율이 
잘편클라비코드 소리의 메스꺼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선택받은 여자들은 
벌써 눈을 초점을 무너뜨리고 뻣뻣한 사지로 진공 상태로 돌입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몸짓은 자동화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몸놀림이 바로 그들에게 깃든 
신령의 영역을 반영하기 때문이었다. 선택받은 여자들 중에는 수영하는 
것처럼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천천히 양 옆으로 움직이는 여자도 있었고 
허리를 구부리고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는 여자들도 있었다. 제니들이 하얀 
린네르 보자기를 가지고 나와 접신한 여자들의 몸을 가렸다. 고위 흘린한 
신령을 접신했다는 증거였다. 
  대부분의 영매는 격렬하게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프레토벨리요론촛를 
접신한 영매들은, 이빨이 빠져 앙상한 턱을 쑥 내밀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걷는 늙은이처럼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흥흥거렸다. 카보클로에 
접신한 영매들은 귀청을 을 듯한 무사의 기합소리를 히야호. 히야호 
연발했다. 제니들은 영매들 사이로 다니면서 은총의 격렬함을 견디지 
못하는 영매들을 부축하고는 했다.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지는 북소리가 
향연으로 무거워진 제당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나는 암파로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암파로의 손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암파로의 입술도 열려 
있었다. 
  '기분이 안좋아. 가고 싶어.'
  암파로가 속삭였다. 아글리에가 나를 거들러 왔다. 우리는 암파로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밤 공기를 마시고 암파로는 정신을 차리는 
것같았다.  
  '괜찮아졌어요. 뭘 잘못 먹었나 봐요. 냄새와 그 열기가...'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던 제주가 암파로에게 말했다. 
  '아니오. 당신에게는 영매의 자질이 있소. 당신의 몸은 북소리에 일일이 
반응합디다. 주욱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만두세요... 암파로는 이렇게 쏘아붙이고는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덧붙였다. 나는 제주의 낮빛이 변하는 걸 보았다. 이로써 
나는, 공포에 질리면 혹인들의 낮색도 잿빛으로 변한다는 모험가들의 
보고를 확인한 셈이다. '
  이걸로 충분해요. 속이 안 좋았던 것뿐이라고요. 안 먹어야 할걸 먹은 
거예요. 자. 안으로 들어 가세요. 나는 밖에서 바람 좀더 씌었어요. 혼자 
있는 게 좋겠어요. 이래뵈도 약골은 아니랍니다. 
  '우리는 암파로의 말대로 돌아섰다. 그런데 밖에서 맑은 공기를 쐰 
우리에게, 제당 안의 냄새와 북소리와 땀 냄새는 오래 금주한 빈속에 
단숨에 털어 넣은 한 잔의 술 노룻을 했다. 눈두덩에 손을 대고 있으려니 
한 노인이 나에게. 방울이 달린 트라이앵글 같은 타악기와 채를 
건네주었다.' 
  '계단으로 올라가서 쳐보시구려. 도움이 될 거니까...'
  '노인의 충고에는 이열치열의 지혜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북소리 
박절에 
맞추려고 애쓰면서 아고고를 내렸다. 오래지 않아 제장의 열기에 빠져 
들고, 그 분위기의 일부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자제를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다리와 발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했다. 나는 주위의 분위기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 동시에 그 
분위기에 도전하고 그 분위기를 얼싸안았다. 내가 이런 것을 체험하지 
못했더라면 아글리에가 설명하는 아는 사람과 행하는 사람의 차이를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매들이 탈흔 방아의 접신 상태에 빠지자 
제니들은 이들을 옆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파이프 담배를 권했다. 
접신하는데 실패한 참례자들은 그들에게 달려가 발치에 무릎을 꿇고 
귀속말로 뭔가 속닥거리고. 충고를 듣고 하다가는 위안을 받은 얼굴로 
다시 춤판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접신의 문터에서 오락가락하는 영매도 
있었다.
  제니가 달려가 뭐라고 부추기면 이들은 자신이 생긴 얼굴을 하고 다시 
춤판 속으로 뛰어들고는 했다. 춤판에는 접신과는 인연이 없는 참례자들이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독일 여자 역시 부자연스럽게 몸을 
뒤틀면서 강신을 기다리는 것 같았지만 하릴없었다. 개중에는 짓궂은 영신 
엑수에 들려, 짓궂고, 교활하고, 약아빠진 얼굴을 하고는 경련하는 
참례자도 있었다. 내가 암파로를 본 것은 그때였다. 
  이제 나는 혜세드가 사랑의 세피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 
디오탈레비의 말마따나 혜세드는 신성한 물질이 팽창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주변을 향하여 무한히 확산되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자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람들의 배려이다. 그러나 사자에 대한 살아 있는 사람의 
배려는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사자의 배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간파한 
사람도 있을 터이다. 음악에 나 자신을 맡긴 채 아고고를 치느라고 나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암파로는 적어도 
10분 전에 다시 제당으로 들어와 내가 그보다 조금 전에 한 것과 똑같은 
경험을 했을 터였다. 그러나 암파로에게 아고고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암파로에게는 아고고가 처음부터 불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명부류의 소리에 부름을 받고, 자신의 모든 방어력과 자제력과 의지의 
사슬을일거에 끊어 버릴 수 있는 암파로에게는...나는 암파로가 춤판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암파로의 얼굴과 목털미는 더 이상 긴장해 있지 
않았다. 암파로는 모든 기억을 방기한 상태에서 두 손으로 자기 육신을 
송두리째 바치는 시뇽을 해보이면서 요염한 사라방드를 추기 시작했다.
  '아품바지라, 아폼바지라... 누군가가 이 기적에 놀라 함성을 질렀다. 
그날 
밤에 암파로가 연출하는 마녀는 나타난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참례자들이 
한 목소리가 되어 외쳤다. 
  '오세우 만토에 데 벨루도. 레보르다도토도 엠 아우로 오세우가르또 에 
데 프라타. 무이토그란데에 세우 데소우리 ...폼바지라다스 알마스, 벰 
토마초 초...감히 다가갈 수 없었다. 나는 내 여자 암파로. 혹은 암파로가 
접신한 토착의 신령과 하나 되려고 미친 듯이 아고고를 치고 있었을 
것이다. 제니들이 암파로에게 다가가 제의 뿐를 입히고 기다리다가 
암파로가 짧으나 더없이 강렬한 탈혼 망아의 접신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는 
가만히 부축해서 의자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땀에 젖은 암파로는 쑴도 
겨우 쉬고 있었다. 참례자들이 도움말을 얻으러 왔지만 암파로는 거부했다. 
그러다 울기 시작했다. 강신제는 끝나 가고 있었다. 나는 제단에서 내려와 
암파로에게 달려갔다. 아글리에가 벌써 달려와 암파로의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있었다. 
  '이렇게 창피할 수가‥‥ 믿어지지 않아요. 원하지도 않았고요. 
내가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요.'
  암파로가 울먹였다. 
  '그런 일이 더러 있지요, 있고말고요.' 
  아글리에가 부드럽게 말했다. 
  '이럴 수가 없어요. 이러면 절망적인 거잖아요 나는 아직도 노예인 
셈이잖아요 가세요...' 
  그리고는 나를 향해 짜증을 부렸다.  
  '...나는 더러운 깜둥이 여자야. 내게 주인을 하나 모셔다줘. 노예에게는 
주인이 있어야 하니까...'
  '금발의 아카이아 인에게도 흔히 있던 일이오. 인간이란원래 그런 
거니까...'
  아글리에가 암파로를 위로했다. 암파로는 화장실을 물었다. 강신제는 
끝나 가고 있었다. 독일 여자는 여전히 텅 빈 춤판 한가운데서 외로이 
춤을 추고 있었다. 허세를 부리고 있는 듯했지만 힘이 전 같지 못했다. 
독일 여자의 시선은부러운 듯이 암파로를 좇고 있었다. 제주와 작별을 
고하고 있는데 암파로가 돌아찼다. 제주는,사자의 세계와 우리 사이에 
성공적인 접촉이 이루어진 것을축하한다고 했다. 아글리에는 입을 꾹 다문 
채 어둠 속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우리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암파로는 
나에게, 혼자 올라가고 싶다고 했다. 
  '당신은 산책이라도 좀 하는 게 어떻겠어요 나 잠든 
뒤에올라오세요.수면제 좀먹어야겠어요.미안해요, 두분다... 못 먹을 걸 
먹었었나 봐요. 오늘 밤 거기에 왔던 여자들이 다그랬을 거야. 나,내 
나라가 싫어졌어요.안녕...'  
  아글리에는 불편해 하는 내 마음을 이해했던 모양인지 코파카바나에 
철야술집이 있으니까 함께 가자고 했다. 바에 이르러서도 내게는 별로 
할말이 없었다. 아글리에는내가 잔을 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침묵을 
깨뜨렸다. 
  '인종은 우리 인류의 무의식 중 일부를 구성하지요. 당신은 문화를 
좋아하니까 종족이라는 말 대신에 문화라는 말을써도 좋겠지요. 나머지 
일부를 구성하는 것은 아키타이프랍니다. 이 아키타이프는 모든 세기의 
모든 인류의 공동 유산이지요. 오늘 밤의 그 분위기, 그 열기는 우리의 
경각심을 무너뜨렸어요. 이런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난 일인만큼 당신도 
아마 느꼈을 것이오. 그런데 암파로는 오릭사스를발견했어요. 암파로 
자신은 가슴에서 송두리째 뿌리뽑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암파로의 
자궁에는 그게 살아 남아 있었던 거예요. 당신은 내가 이걸 긍정적인 
조짐으로 본다고 여기면 안 돼요. 기억할 거예요. 나는 당신에게, 우리 
주위에서 용솟음치고 있는 초자연적인 에너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접신 같은 걸 특별히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비법 전수자와 접신자는 달라요. 비법을 전수하는 과정. 다시 말해서 
이성으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직관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대단히 
심원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혼과 육체 자체가 서서히 변합니다. 이게 
변하면 엄청난 권능을 행사하는 수도 있고 불로불사에 이르기도 합리다. 
하지만 이 과정은 지극히 은밀하게 진행되지요. 그래서 외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아요. 삼가는 사람. 투명한 사람, 해탈한 사람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비법 전수자들언 세계의 대성로들기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는 
소이연이 여기에 있어요. 대성들에게, 신비주의자는 노예나 다름이 없지요. 
대성들에게 신비주의는 누미노제가 현현하는 마당, 비밀이 그 징조를 
드러내는 마당에 지나지 않아요. 비법 전수자들은 신비주의자를 
충동질하고 이용합니다. 우리가 장거리 통화를 하기 위해 전화기를 
이용하고 화학자가특정 물질의 작용을 알아내기 위해 리트머스 시험저룰 
이용하듯이 말이지요. 신비주의자는 유용하오. 눈에잘 띄거든. 
신비주의자는 광고를 하고 다닙니다. 그러나 비법 전수자는 같은 비법 
전수자의 눈에만 보여요. 신비주의자들이 체현하는 힘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바로 비법 전수자들이에요.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오늘 영매들이 
체현한 접신은성 데레사 데 아빌라나, 성 후안 델라 크루즈가 체험한 
법열과 다를 것이 없어요. 신비주의는 타락한 현실의 접션인 반면에 비법 
전수는 마음과 정신의 기나긴 아스케시스의 열매랍니다. 신비주의는 
선동적일 정도로 민주적인 현상이오만, 비법 전수는 귀족주의적인 
현상이지요.' 
  '육체에 견주어지는 정신 같은 것인가요. 어떤 의미에서 당신의 
암파로는, 정신은 끊임없이 경계하면서도 육체는 경계하지 않았던 것이오. 
문외한들은 우리보다 약해요.'
  늦도록 마셨다. 아글리에는 브라질을 떠날 것이라면서 라노의 주소를 
주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암파로는 잠들어 있었다. 가만히 암파로
곁에 누웠으나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내 옆에 미지의 존재가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침에 암파로는 친구 만나러 페트로플리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어색하게 해어졌다. 암파로는 캔버스 가방과. 
정치 경제학 책 한 권만 옆구리에 끼고 떠났다. 몇 달 동안 암파로는 
소식을 보내지 않았고 나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짤막하고 내용이 애매한 
편지가 날아왔다.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내게는 정열도. 질투도. 그리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텅 빈기분이었다. 머리가 깨끗이 빈 그런 기분이었다. 
느낌도 없었다. 알루미늄 냄비 같은 상태였다.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면서 
브라질에는 1년을 더 머물렀다. 아글리에도, 암파로의 친구들도 만나지 
못했다. 나는 길고 긴 시간을해변에서 일광욕하는 데 깼다. 연을날렸는데, 
브라질 연은 대단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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