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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움베르토 에토-푸코의 진자 2-2

by Casey,Riley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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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글리에에 따르면, 우리를 놀라게 할 두 
번째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가공원을 떠나 산속으로 차를 
몰았다. 
  45분 정도 올라갔을까? 아글리에가 숲 가장자리에 우리가 탄 자동차 두 
대를 세우게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관목 숲을 헤치고 공터로 
올라가야 했다. 거기서부터는 도로도 산책로도 없었다. 
  우리는 관목과 덩굴을 헤치며 올라갔다. 썩은 낙엽과 미끄러운 나무 
뿌리 때문에 구두가 벗겨지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아글리에는 손전등을 
켰다가도 곧 꺼버리고는 했다. 우리가 올라가고 있는 걸 비의 
참가자들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디오탈레비가 볼멘 소리를 
했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빨간 두건 소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자 아글리에가 잔뜩 긴장된 목소리로 조용히 하라고 했다. 
  관목 숲을 거의 벗어났을 즈음 사람들이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터 가장자리에 이르러 보니 멀리 공터를 비추고 있는 불빛이 보였다. 
횃불 같기도 하고, 제등 같기도 했다. 지면 가까이에서 비치는 갸냘픈 은색 
불빛이었는데, 싸늘하게 화학적으로 연소되는 가스등처럼 풀밭에다 비누 
방울 같은 걸 뚝뚝 떨구고 있었다. 아글리에는 우리에게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말고 관목 숲을 은폐물 삼아 숨어서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 있으면 제니들이 올 겁니다. 드루이드교의 여사제 들이지요. 오늘 
밤의 제사는, 위대한 우주의 성 처녀신 미킬을 초혼하는 제삽니다. 이 
미킬을 기독교도들 구미에 맞도록 각색한 게 바로 성 미카엘은 양성 
구유가 됨으로써 여신의 지위를 겸할 수 있는 것이지요"
  "도대체 어디에서 온 사람들입니까?"
  디오탈레비가 목소리를 죽이고 물었다. 
  "방방곡곡에서요. 노르망디, 노르웨이, 아일랜드 등지에서... 매우 특별한 
행삽니다. 그리고 이 공터야말로 이 특별한 행사에 딱 어울리는 
곳이고요..."
  "그건 왜 그렇습니까?"
  가라몬드 사장이 물었다. 
  "곳에 따라 주력도 다르답니다. 이곳은 주력이 드센곳이지요."
  "뭘 하는 사람들입니까?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하군요."
  "오합지중이지요. 비서, 보험 외판원, 시인... 저 사람들, 내일 다시 
만난다고 해도 여러분은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공터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 몇몇이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제서야 그 푸르스름한 불빛이, 제니들이 들고 있는 작은 
등잔불빛이라는 걸 알았다. 불빛이 지면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은 
그 공터가 우리의 시점보다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아래쪽에서 올라간 듯한 제니들은 이윽고 정상의 작은 고원같은 
공터로 접근하고 있었다. 제니들은 산들바람에도 살랑거리는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제니들이 원을 그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원 
안에는 의식의 집전을 맡은 세 제니가 서 있었다. 
  "저들이 바로 리슈, 끌롱마끄노아 그리고 삐노뜨리네제에서 온 
제니들입니다."
  이글리에가 설명했다. 
  "아니 어떻게 단언할 수가 있습니까?"
  벨보가 물었다. 
  "더 이상은 묻지 마세요. 우리는 쥐죽은 듯이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북구 주술의 제의와 그 위계는 몇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것은 여기까지밖에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비밀을 비공개한다는 맹세는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공터 한가운데엔 멘히르(선돌)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모여 
있었다. 바로 그 일군의 바위 덩어리 때문에 그 공터가 제장으로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참례자 중 하나가 선돌로 올라가 
나팔을 불었다. 몇 시간 전 영상으로 본 나팔에 견주면 훨씬 더 
트럼펫다워서 흡사 오페라 '아이다'에서 개선 행진곡을 연주하는 트럼펫 
같았다. 그러나 거기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소음기에 가려진 듯한 
야상곡조여서, 우리와 트럼펫까지의 거리가 먼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득히 먼 데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벨보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저거 램싱일세. <투그 단원> 들이 신성한 반얀 보리수 아래서 불던 
각적이라고..."
  "신통력이라면 봄바르돈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뿔싸... 내 응수는 그에게 잔혹하게 들렸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벨보가 그 나팔로 인한 다른 개인적인 연상을 억누르려고 그런 농담을 
했다는 걸 까맣게 몰랐던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의 상처에다 칼을 박고 
휘저어 놓은 셈이었다. 
  "저 사람들도 어쩌면 봄바르돈이 싫어서 여기에와 있는지도 모르지."
  벨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벨보가, 자기의 개인적인 꿈과, 그즈음에 그에게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날 밤이었을까?
  아글리에가 우리의 속삭임을 알아들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우리가 
속삭이고 있다는 건 알았던지 우리의 말허리를 잘랐다. 
  "경고의 나팔소리도 신호 나팔소리도 아니고 지중 음파와의 접촉을 
시도하는 초음파와 같은 겁니다. 보세요. 둥그렇게 둘러선 드루이드 
제니들이 손을 맞잡잖아요? 저들은 지구의 진동을 모으고 집중시키는 
일종의 살아 있는 집음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겁니다. 곧 구름이 
나타나겠군요."
  "무슨 구름요?"
  내가 가만히 물었다. 
  "전승에 따르면 초록 구름이지요. 기다려 봅시다..."
  설마 녹색 구름이랴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땅에서 
부드러운 김이 솟아올랐다. 좀더 진하고, 균일했더라면 안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짙은 데도 있고 옅은데도 있어서 마치 켜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바람이 불자 켜를 이루고 있던 김이 솜사탕처럼 덩어리가 되어 
떠올라 옆으로 이동하는가 싶더니 그 순간 이동한 자리에서 덩어리가 
되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 덩어리 때문에 뒤에 있는 나무들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가 하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는 했다. 그동안 공터 
중앙으로 솟아오른 김의 덩어리는 시시각각으로 커지고 짙어지면서 제니들 
모습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달빛만 김의 너울에 가린 공터 
가장자리를 비칠 뿐이었다. 김의 덩어리, 혹은 구름의 덩어리는, 
변덕스러운 바람의 희롱에 복종하여 종잡을 수 없이 일렁거렸다.
  문득 화학 약품이 일으킨 조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공터가 
해발 6백 미터나 되는 곳에 있었던 만큼 진짜 구름 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제니들은 그런 구름이 산꼭대기 공터에 생길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구름을 일으켰던 것일까? 제니들은, 때에 
따라 김이 그 산꼭대기의 지표 가까운데서 생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오래지 않아 구름은 그리 넓지 않은 풀밭 한가운데를 모두 가렸다. 솟고, 
오르고, 나뉘는 구름은 달까지 가릴 기세였다. 그러나 공터 가장자리는 
여전히 밝았다. 한 드루이드 제니가 구름 속에서 나와 팔을 쳐든 채 
소리를 지르며 숲 쪽으로 달려갔다. 우리를 보고,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제니는 우리의 몇 미터 전방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돌아서서 구름 주위를 빙글빙글 돌더니 구름의 왼쪽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오른쪽으로 나왔다. 덕분에 가까이서 그 제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단테의 코를 연상시킬 정도로 큰 코, 흉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얇은 
입술... 입은 해저에서 핀 꽃처럼 활짝 열려 있었다. 두 개의 앞니와 양쪽의 
송곳니를 제외하면 이빨이 없었다. 날카롭게 번쩍거리는 눈의 안광은 
어둠을 찌를 듯했다. 제니가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게일 어인 듯한 일련의 
언어에 섰인 라틴 어 주문이었다. 내 기억이 어쩌면 정확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그때의 기억에 다른 기억을 보태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은 주문을 들었던 것 같다. 
  "오 뻬니아(오, 에 오!) 에트 에에에 울루마!!!"
  바로 그 순간 안개가 걷히고 공터가 훤하게 드러났다. 놀랍게도, 언제 
왔는지 공터에는 돼지 떼가 몰려와 있었다. 돼지의 목에는 풋사과를 잘라 
만든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나팔을 들고 있던 제니는 여전히 선돌 위에 
서 있었다. 제니는 언제 빼들었는지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제 가시지요. 끝났습니다."
  아글리에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공터를 가리던 안개는 어느 새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일행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었다. 
  "아니, 끝나다니요? 내가 보기에는 진짜 구경거리는 이제 마악 시작되는 
것 같은데요?"
  가라몬드 씨가 볼멘소리를 했다. 
  "끝낫다는 것은, 여기까지밖에는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부터는 
구경이 허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 의식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가시지요."
  아글리에는 다시 관목 숲속으로 들어가더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우리는 덜덜 떨면서 관목 숲속으로 들어가 
낙엽에 미끄러지면서 진동한동 산을 내려갔다. 주차한 곳에 이르렀을 때는 
흡사 패잔병 꼴이었다. 두 시간만 달리면 밀라노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가라몬드 사장의 자동차에 오르기 직전에 아글리에는 우리에게 작별 
인사삼아 이렇게 말했다.
  "구경을 중도에 이렇게 막아서 미안합니다. 양해해 주세요. 나는 
여러분이 오늘 본 것을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이런 사람들의 믿음을 다루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의식을 잠깐이나마 구경시켜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이런 의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 의식의 
관계자와, 절대로 의식을 방해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더 있었으면 의식에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돼지들은, 그 돼지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벨보가 물었다. 
  "할 수 있는 대답은 다 했습니다."
  아글리에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63

  
  나는, 로렌짜에게 욕망을 느낀 데 심한 죄 의식을 느끼면서 
피에드몬트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리아를 보는 순간, 그 동안 나를 괴롭혀 
오던, 로렌짜에 대한 욕심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이 여행은 나에게 흉터 하나를 남겼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당시에는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할 수 없었는데, 바로 이 고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지금 나를 착잡하게 한다. 피에드몬트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나는 <금속의 경이로운 모험>에 들어갈 도판을 장별로 최종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문득 리오에서 경험했던, 사물과 사물이 유사하다는 
기이한 느낌이 고개를 들었다. 리오에서 경헙했던 것 이상으로 나는 이런 
느낌에 시달렸다. 가령, 1750년에 레오뮈르가 발명한 원통형 난로는 계란 
부화실, 혹은 정체 불명의 금속을 연금하는 태반이자 암흑의 자궁인 이 
17세기의 아타노르가 똑같아 보여서 나는 이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 
설명해 낼 수가 없었다. 재가 보기에는 한 주일 전에 방문했던 
피에드몬트의 저택은 도이치 박물관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내게는 마술의 세계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정교한 사실의 세계를 
구별하기가 날이 갈수록 어려워져 갔다. 학교에서, 수학적, 물리학적 
계몽주의의 선구자들로 배웠던 인물들이 미신의 어둠 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나고는 했다. 그들은 한 발은 카발라에 담근 채 실험실에서 과학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가라몬드 출판사를 중심으로 
배회하는 <귀신 떨거지>의 눈으로 역사를 다시 읽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그러나 반드시 그랬다고는 몰 수 없다. 실증주의의 시대의 
과학자들도 대학문을 나서기가 바쁘게 세앙스나 점성학회 같은 곳을 
드나들었고,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 것은 은비주의적인 권능을 
믿고 장미 십자단의 우주관을 연구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꽤 권위 있는 
책도 인정하고 있었다.
  나는 늘 의심이야말로 과학자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야흐로 
의심할 것을 가르친 대가들을 의심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어쩌면 암파로와 이렇게 똑같은가... 암파로가 그랬듯이 나는 믿지 
않는 것에도 굴복한다... 그렇다. 나는 믿지 않으면서도 대피라미드의 
높이가, 지구 태양간 거리의 10억 분의 1이며, 켈트 신화와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가 유사하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동시에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 집, 가게의 간판, 하늘이 구름, 도서관에서 찾아낸 
판화... 이런 것들에 대해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의미가 아니라, 이들이 
숨기고 있을 터인 궁극적인 의미를 요구했다. 나는 이런 사물들이 
신비주의적인 유사성의 원리를 통해 보다 깊은 의미를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시적이기는 하나, 리아가 나를 구해 주었다.
  나는 리아에게, 피에르몬트에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혹의 거의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당시 나는 거의 매일 밤 <금속의 경이로운 모험>에 
들어갈 상호 참조 자료를 모아 귀가하고는 했다.
  "먹어야 해요.당신은 바지랑대처럼 말랐어요."
  귀가할 때마다 리아로부터 듣던 소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리아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처럼 가운데 가르마를 탄 덕분에 리아는 머리카락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두 손을 무릎에 올려 놓고 앚아 있는 
품이 제법 가정 주부스러웠다. 나는 리아가, 치마가 팽팽하게 당길 정도로 
무릎을 벌리고 앉은 리아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우아하지 않은 
자세라고 나는 생각했다. 리아의 상기된 표정은 내 눈이 다 부실 
지경이었다. 그날 밤, 나는 왜 리아의 말을, 내심 존경스럽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그토록 경청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핌, 마누찌오 일 때문에 당신이 이러고 다니는 거, 나 안 좋아요. 
당신은 애들이 조개 껍질 모으듯이 이런저런 역사적 사실을 수집하고 
있더니, 이번에는 복권 번호 훑듯이 눈 빠지게 그 목록을 훑어 내리고 
있군요."
  "이번에는 나 자신이 즐기게 된 것뿐이야. <귀신 떨거지들>이 하는 
생각이나 하는 짓거리를..."
  "즐기는 게 아니에요. 사로잡힌 거지. 즐기는 것과 사로잡히는 것은 
달라요. 조심하세요. 조심하지 않으면 조만간 <귀신 떨거지> 때문에 돌아 
버릴지도 모를 테니까."
  "과장하지 마. 돌아 버리는 건 내가 아니라 놈들이야. 정신 병원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도는 사람 봤나?"
  "두고 볼 일이네요."
  "리아, 당신도 알겠지만 나는 사물과 사물 사이의 유사성을 연상하는데 
흥미가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이게 좀 심해져서 유사 연상의 잔치라도 
벌어진 느낌이야. 유사 연상의 코니 아일랜드, 유사 연상의 모스끄바 메이 
데이, 바야흐로 추론의 희년 축제 라고나 할까... 그런데 내가 걱정스러운 
것은 별 이유도 없이 사물과 사물간의 유사성을 추론하는데 집착한다는 
거야..."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당신의 파일을 봤어요. 당신의 그 <귓신 
떨거지들>이 발견했다는 게 뭔지 몰라도 그거 다 우리 주위에 있다고요. 
어디 나 좀 잘 봐요..."
  리아는 이러면서 자기 배와 허벅지와 이마를 토닥거리더니, 치마가 
팽팽하게 당길 정도로 다리를 벌리고는 앉음새를 고쳐, 젖이 잘 나는 
믿음직스럽고 건강한 유모처럼 앉았다. 날씬하고 나긋나긋한 리아가 젖 잘 
나는 유모처럼 보이는 것도 별일이었다. 리아의 화창한 지성은 리아 
자신을 빛나게 하는 동시에 리아가 지닌 모성에 어떤 권위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 핌, 원형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육체뿐이에요. 
이 아랫배 속은 아름다워요. 왜냐? 아기가 여기에서 자라고, 당신의 귀여운 
꼭지가 영광과 환희에 떨면서 찾아 들어가고, 기름지고 맛나는 음식물이 
내려가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예요.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석굴이, 갱도가 
아름답고 소중해 보이는 거예요. 미로가 아름답고 소중한 것도, 미로라는 
것이 원래 우리 내장과 닮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요. 누구든지 아름답고 
소중한 걸 발명하려면 거기에서 시작하는 수밖에 없어요. 왜냐? 당신도 
거기에서 나왓으니까... 생육이라는 것은 항상 공동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태초에는 혼돈과 부패가 자리하던 곳... 아, 그런데 보세요, 여기에서 
인간이 태어나고 대추야자나무가 자라고, 여기에서 바오밥나무가 
자란다고요.
  높은 건 낮은 것보다 낫지요. 왜냐? 사람이 머리를 아래로 하면 피가 
머리로 몰려서 못 쓰거든요. 머리에서는 냄새가 별로 안 나지만 발은 
냄새가 너무 나거든요. 땅 속으로 들어가 구더기의 먹이가 되기보다는 
나무에 올라가서 과일을 따는 게 낫거든요. 위에 이쓴ㄴ 것에 다치는 일은 
별로 없거든요. 떨어져 잘 다치는 사람은 다락방에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에요. 바로 이 때문에 천사는 위에 있고 악마는 밑에 있는 거예요.
  하지만, 조금 전에 내가 아랫배에 대해서 한 말도 옳기 때문에, 결국은 
아래 안쪽에 이쓴ㄴ 것도 아름답고, 위 바깥쪽에 있는 것도 옳기 때문에 
둘 다 참이에요. <메르쿠리우스>(메르쿠리우스의 그리스 이름인 
<헤르메스>는 <연금술>이라는 말의 어원이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연금술>)니 <마니카에니즘>(마니교. 마니가 제창한 종교로, 그노시스 파 
기독교, 불교, 조로 아스터교의 사상이 망라되어 있다. 삶을 광명 
(선,신,정신>과 암흑 <악,악마,육체>의 이원적인 대립으로 파악한다.)이니 
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요. 불은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주지만 
추위는 기관지염이나 폐렴의 원인이 되기도 하죠. 더구나 4천 년 전 
사람에게 불의 존재가 얼마나 신비스러워 보였겠어요? 그래서 불은 락을 
요리하는 데 요긴할 뿐만 아니라 갖가지 신비스러운 힘을 가진 존재로 
보였던 거죠. 하지만 추위는 닭을 보존하는 데 여간 요긴하지 않은 반면에 
불을 잘못 만지면 이만한 물집이 생기는 수도 있죠. 알겠어요? 그래서 
뭔가를, 지혜 같은 것을 보존하는 데는 산이나 높은  데(높은 건 
좋으니까...), 요컨대 석굴 (좋고말고...)이나 티벳의 만년설 (금상첨화죠...)이 
필요했던 거예요. 지혜가 스위스의 알프스에서 오지 않고 동방에서 오는 
까닭은 우리 조상들이 아침에 깨어나 비가 오지 말고 해가 제대로 솟아 
주었으면 하고 바라면 서 바라보는 방위가 동쪽이었기 때문이라고요..."
  "알았으니까 그만해. 엄마처럼 굴지 말고..."
  "아이고 착하지... 그러니까 잘 들어요. 해가 왜 좋아요? 햇빚이 우리 
몸에 좋은 데다 날마다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한번 없어진다고 
해서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 되돌아 오는 건 좋은 거예요. 간 길을 
되밟지 않고 처음 있던 자리로 되돌아오는 방법 중 제일 좋은 방법은 
둥그렇게 원을 그리면서 걷는 거 아니겠어요? 둥글게 몸을 꾸부릴 수 있는 
동물이 뭐예요? 뱀이지요? 뱀에 대한 신화나 미신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요. 악어를 가지고, 몸을 꼬부린 형상을 만들어 태양의 재생을 
상징하는 도형으로 삼을 수는 없으니까... 태양제를 지내면서 의례적으로 
태양 운행을 체현한다고 칩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원을 그리면서 도는 
방법밖에 없어요. 왜냐? 직선으로 걸으면 제장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의식을 오래 계속할 수 없거든... 원이라는 게 어떤 의식에도 잘 
어울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심지어는 장거리에서 불 먹는 마술을 
부리는 사람도 원이 얼마나 유용한가를 잘 알아요. 원형으로 구경꾼을 
배치해야 많은 사람들 눈에 뜨일 수가 있거든요. 군인들처럼 오와 열을 
지어 일렬로 서버리면 맨 뒤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안 보이죠. 원과 
원운동, 또는 주기적인 회귀가 비의나 일반적 의례의 기본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닥요."
  "알았어요, 엄마..."
  "당신이 읽는 책 저자들이 그토록 좋아하느 수비학 쪽으로 옮겨 가 
볼까요? 당신은 둘이 아니라 하나예요.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성기는 
하나밖에 없고, 코와 심장도 각각 하나씩이에요. 자, 하나가 중요한 이유를 
아시겠죠? 그런데 우리의 눈, 콧구멍, 내 젖가슴, 당신의 고환, 다리 ,팔, 
엉덩이는 둘씩이에요. 그러니까 둘도 소중한 거예요. <3> 이 신비로운 
까닭은, <3>이 비로소 우리 몸을 떠나기 때문이에요. 우리 몸에는 세 개 
있는 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3>에서 모든 민족은 신을 연상한답니다. 
따져 볼까요? 당신의 꼭지와 내 것이 결합하면... 저리 못 가요? 
장난꾸러기 같으니... 제 3의 개체가 생겨나고, 그래서 우리는 셋이 되죠. 
그러니까 지상의 모든 민족이 지닌 삼중 구조, 삼위 일체의 신활ㄹ 알기 
위해 대학 교수가 되거나 컴퓨터를 두드릴 필요는 없는 거에요.
  그런데 두 다리와 두 팔을 합치면 넷이 되죠? 넷도 아름다운 
숫자랍니다. 짐승은 네 다리로 기어다니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도 
나오듯이 아기도 네 발로 기어다니죠. 다섯이 신성한 이유는 말 안해도 
알겠죠? 손을 보세요. 손가락이 다섯 개... 두 손의 손가락을 합치면 또 
하난의 신성한 숫자 <10>이 되죠. 모세의 십계명이 12계명 아니고 
십계명인 이유도 목사에게 손가락이 열 개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12계명이 
되었더라면 목사들이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11계명, 12계명을 셀 때는 
부목사의 손을 빌어야 했을 테니까.
  이제 당신 몸을 가지고 생각해 봐요. 몸에서 튀어나오면서 자라는 걸 
한번 세어 보세요. 양팔, 양다리, 머리카락, 성기... 이렇게 해서 여섯 개죠? 
그런데 여자의 경우는 일곱 개가 된답니다. 그래서 당신이 애독하는 
저자들은 이 <6>이 라는 걸 <3>의 배수라는 정도로 홀대하는 거예요. 
남성에세 <6>이라는 숫자는 지극히 친근한 숫자라서 별로 주의를 안 
기울여요. 그러나 <7>은 신성한 숫자로 취급된답니다. 왜냐? 여자들에게는 
이 <7>이라는 수 역시 친근한 숫자라는 걸 모르거든요. 여자의 젖가슴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죠.
  8... 8... 잠깐만 기다려 봐요. 8의 정체는 뭘까요? 발과 다리를 각각 
하나로 세지 말고, 팔꿈치와 무릎의 관절 부분을 각각 둘로 세면, 우리 
몸퉁에는 밖으로 뻗은 뼈가 모두 여덟 개가 있는 셈이군요, 여기에 머리를 
더하면 아홉이 되고, 몸통까지 덧붙이면 열이 되네요. 사람의 몸만 가지고 
헤아려 봐도 모든 숫자가 다 있다고요. 구멍도 있고..."
  "구멍?"
  "그래요. 사람의 몸에 구멍이 몇 개난 뚫려 있는지 알기나 해요?"
  "눈구멍, 콧구멍, 입구멍, 항문... 모두 여덟 개군."
  "그렇죠? 그래서 <8>이라는 숫자가 또 한 번 아름답고 소중한 
거라고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홉 개예요. 당신은 자기가 태어난 
구멍은 세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8>보다는 <9>가 훨씬 신성한 
거라고요. 당신이 애독하는 필자들, 걸핏하면 선돌의 해부 어쩌고 하지요? 
당신에게도 선돌처럼 일어서는 게 있잖아요? 사람은 낮에는 서 있다가도 
밤이 되면 눕죠. 당신에게도 섰다가 누웠다가 하는 게 있군요. 아니, 그게 
밤에 무슨 짓을 하는지 꼭 말해야겠어요? 중요한 것은 일할 때는 서 
있다가 쉴 때는 눕는다는 거예요. 그래서직립은 곧 생명을 뜻하죠. 태양을 
향하고 있으니까... 오벨리스크를 보세요. 나무처럼 꼿꼿하게 서 있지... 
반면에 누운 자세와 밤은 수면과 죽음을 상징하죠. 모든 문화가 선돌, 
고인돌, 피라미드, 기둥 같은 걸 숭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발코니나 
계단 손잡이에다 대고 절하는 사람 봤어요?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직립해 
있는 것이 사람들 눈에 골고루 잘 띈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직립해 
있는 구조물을 숭배할 경우, 숭배객이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잖아요? 
하지만 수평으로 누워 있는 돌을 숭배하는 경우를 상상해 봐요. 맨 앞 줄 
사람들 눈에만 띌 테니,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뒤에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으로 나오려고 아우성을 칠테지요. 의례가 이 꼴이 되어서야 
말이 아니죠."
  "그럼 강은?"
  "강이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은 그게 수평으로 프르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물이 있기 때문이에요. 물과 사람의 몸과의 관계야 더 말할 나위도 
없겠죠? 요켠대, 민족은 달라도 숭배의 대상은 비슷한 까닭, 서로 수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도 만들어 낸 상징은 서로 비슷한 까닭은 여기에 
있어요. 어차피 몸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비슷한 건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그래서 유식한 사람에게 뜨뜻한 연금로를 보여주면 대뜸 태아가 든 모태를 
생각하는데, 당신제 <귀신 떨거지들>만 유독 예수를 잉태한 성모를 
보면서 이걸 연금로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거라고요. 당신네 <귀신 
떨거지들>이 수천 년 동안 무슨 계시를 고대해 왔다고요? 그건 그 사람들 
코앞에 있어요 .거울만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걸 가지고 왜들 그런대요?"
  "당신 없었으면 어쨌을까 몰라... 그래, 당신은 나의 <거울에 비친 나>, 
<당신에게 비친 나>야. 자, 그러면 우리 몸이 감추고 있는 그 은밀한 
원형을 한번 샅샅이 탐험해 볼까나..."
  우리가 <원형 탐험>이라는 말을 발명한 것은 그날 밤이었다. 우리는 
친밀한 정교를 <원형탐험>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마악 잠이 드는 데 리아가 내 어깨를 건드리면서 속삭였다.
  "깜빡 잊을 뻔했네... 나 아기 가졌어요."
  
  리아의 말을 들을 것을... 리아는 나에게 그날 생명과 탄생의 지혜를 
송두리째 들려주었던 것을... 우리는 아가르타의 지하도를 찾아 들어가면서, 
<너울 벗은 이시스>의 피라미드를 찾아 들어가면서 사실은, 공포의 
세피라인 <게부라>로 들어간 셈이었다. <게부라>는, 악의 공포가 이 
세상에 현현하는 세피라에 속한다. 나는 <소피아>의 사상이 나를 
유혹하기를 기다렸던 셈이다. 코르도베로 사람 모세는, 여성은 속성상 
좌익이어서 <게부라>를 지향하게 되어 있다고 쓴 적이 있다. 말하자면 
남성이 바로 이러한 속성을 이용해서 자기 <신부>를 사랑하고, 우익, 즉 
선을 지향하게 해주지 않는 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욕망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고삐에 몪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게부라가 
최후의 심판을 주장한다. 그러면 암흑의 세상, 악마의 우주가 된다.
  욕망을 다스린다... 움반다 제장에서는 나도 욕망을 다스렸다. 나는 
아고고를 쳤고, 춤판에 들어가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탈혼 
망아의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다. 나는 리아와도 그랬다. 나는 <신부>에게 
경의를 표함으러써 내 욕망을 조절해 낼 수 있었다. 이로써 나는 내 
아랫배로 축복을 받은 것이다. 내 씨앗에 강복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엄격하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나는 <티페렛>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으므로...
  
      64
  
  <게부라>가 악과 공포의 세피라인데 견주어 <티페렛>은 아름다움과 
조화의 세피라이다.
디오탈레비의 말마따나 <티페렛>은 이해의 빛이고 생명의 나무다. 그것은 
기쁨이며 정정한  외양이며, 율법과 자유의 화합이다.
  우리 세 사람에게 그 해는 환희로움이 넘치는 한 해, 진빈농반으로 
우주의 위대한 텍스트를 역전시키고 <전통>과 <전자 기기>의 결혼식을 
축하한 해이기도 하다. 우리는 창조했고, 창조를 재미로 누렸다. 이 해는 
우리가 <계획>이라는 것을 발명해 낸 해이기도 하다. 
  벨보와 디오탈레비 역시 나와 같은 양감의 행복을 느꼈는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참으로 행복한 한 해였다. 리아의 뱃속에 
있는 아기는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었고, 가라몬드 출판사와 나의 개인 
사무실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사는 것도 여유로웠다. 그때까지도 공장 
건물을 개조한 아파트의 내 사무실은 건재했다. 그러나 우리는 리아의 
아파트를 수리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거기에서 보냈다.
  <금속의 경이로운 모험>은 식자와 교정 단계에 있었다. 가라몬드 
사장의 머릿속에 태풍이 분 것은 그 즈음이었다.
  "도판 마술사와 도판 연금술사를 만듭시다. <귀신 떨거지들>이 대고 
있는 자료, 당신네 세 사람이 가진 지식... 여기에 아글리에의 놀라운 
박학을 동원하면 가진 지식... 여기에 아글리에의 놀라운 박학을 동원하면 
1년 이내에 천연색 도판이 든 4백 쪽짜리 대형 기획물을 펴낼 수 있을 
겁니다. 금속사에서 쓴 도판도 재창해 가면서 말이오."
  "주제가 다르지 않습니까? 사이클로트론 사진 가지고 마술사나 
연금술이라..."
  "그럼ㄴ 그 사진으로 뭘 할 생각인가요? 까소봉, 상상력, 상상력을 
동원하세요. 그 원자력 장비, 메가트론의 양전자니 뭐니 하는 기계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요? 물질이 융해된다는 것 아니오? 스위스 
치즈를 집어 넣고 돌리면 하트론 구성 입자인 쿼크, 블랙 홀, 교반 된 
우라늄이 나온다지 않소! 마술이 별 건가요? <헤르메스>와 
<알케르메스>는 남남이 아니잖아요? 왼쪽 페이지에는 파라켈수스, 금빛 
벽면을 배경으로 연금술의 시험간을 들고 서 있는 이 케케묵은 연금학자의 
동판 초상을 넣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행성상 천체, 중수를 교반하는 
에너지 원, 은하 속에서 중력 렌즈 효과의 원인이 되는 물질 등등의 
사진을 싣는 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진짜 마술사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눈을 벌겋게 까뒤집고 설치는 늙은이가 아니라, 무한한 우주의 
비밀을 캐내는 과학자란 말이오. 우리 주위에 잇는, 신기한 것은 모두 찾아 
모읍시다. 팔로마 산 천문대는, 지금까지 공개한 것 이상의 훨씬 많은 
정보를 감추고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겁니다."
  나를 결려하느라고 그는 내 월급도 상당한 수준으로 인상세켰다. 나는 
트리스모진의 '리베르 솔리스'(유일의 서)와 가짜 룰루스의 '무투스 
피베르'(무의 서)의 세밀화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중세에는 부적으로 
쓰이던 오망성, 세피로트의 나무, 황도 12궁의 36생성주의 도판을 모아 
파일을 만드는 한편, 도서관의 제일 외진 구석을 쑤시고 다니기도 하고, 
왕년에는 문화의 혁명을 주도했을 고서상으로부터 자료도 여남은 권 
사들였다.
  <귀신 떨거지들>에 관한 한 나는, 자기 병원의 캐적한 뜰에서 불어오는 
미풍을 즐기면서 호감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는 정신과 의사였다. 나는 
그들과의 교우를 즐겼다. 정신과 의사 같으면, 환자들이 자기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채, 처음에는 착란 상태에 대해서 글을 
쓰다가 이윽고 착란 상태에 빠진다. 이런 착란 상태에 빠진 순간 정신과 
의사는 자기야말로 예술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계획>의 아이디어도 
이런 수순을 밟으면서 생겨난 것이다. 
  디오탈레비도 여기에 가담했다. <계획>이 디오탈레비에게는 기도의 한 
형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야코포 벨보도나 못지않게 이런 일을 즐기는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줄긴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손톱 여물을 
썰고 있던 것으로 보아, 늘 초조한 가운데 여기에 참가했기가 쉽다.
  어쩌면 그가 이 <계획>에 참가한 것은, 수많은 미지의 주소중 하나, 
각광이 없는 무대를 찾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꿈>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의 파일에는 이런 것에 대한 그의 언급이 나온다. 강림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천사를 위한 대용 신학이었으까?
  
    #파일 명: 꿈
  
  한 꿈속에서 다른 꿈을 꾸었는지, 두 꿈을 연달아가면서 꾸었는지, 
아니면 하루는 오늘은 이 꿈, 내일은 저 꿈 하는 식으로 교대로 꾸었는지 
기억해 낼 수 없다.
  나는 한 여자... 내가 아는 한 여자를 찾고 있다. 나와는 뜨겁고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여자다. 이런 관계가 왜 소원해졌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여자에게 계속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잘못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그대로 흘려 보냈다니, 정말 이해가 안 단다. 나는 그 여자를 
찾고 있다. 아니다. 그 여자들인지도 모르겠다. 한 여자가 아니라 여러 
여자다. 여럿이었다. 나는 여자들을 모두 같은 이유로 잃었다. 내가 
무심했던 탓이다. 지금 나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다. 하나만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여자들을 잃음으로써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꿈속에서는 여자의 전화 번호가 쓰인 수첩을 찾을 수가 없거나, 
내 수중에서 사라지거나, 있는데도 펼 수가 없게 되고는 한다. 심지어는 
펴기는 펴는데, 원시가 되는 바람에 이름을 읽을 수 없게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나는 그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생긴 
곳인지 모를 뿐, 그곳이 어디인지는 안다. 계단, 고비, 혹은 층계참에 대한 
내 기억은 선명하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을 찾기 위해 온 도시를 쑤시고 
다니지 않는다. 그저 고민에 빠진 채 얼어붙은 듯이 죽치고 있다. 나는 
여자와의 관계가 소원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로)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던 이유, 마지막이 되어버린 그 자리에 나가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하면서 내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 여자는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임에 분명하다. 아, 이름이라도 알았으면... 나는 그 여자가 누군지 잘 
안다. 단지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도 그릴 수 없을 뿐이다.
  때로는 꿈꾼 뒤의 비몽사몽간에 꿈과 싸우기도 한다. 너는 모든 것을 
샅샅이 기억하고 있다. 너는 감정적 찌꺼기까지 말끔히 청산했다.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네가 모르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꿈속의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므로...
  그런데 의혹이 인다. 아무래도 나는 무엇인가를 잊은 것 같다. 
무엇인가를, 평소에 내가 이끼던 것 속에다 쳐박아 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 수표나 중요한 메모를 바지 주머니나 헌 윗도리 
주머니에 넣어 두고 있다가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문득 깨닫게 되듯이...
  꿈에 본 도시의 이미지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파리다. 나는 세느 강 
서안에 있다. 강을 건너면 보쥬 광장 같이 생긴 광장에 이른다... 아니 보쥬 
광장보다 훨씬 트인 곳이다. 광장 끝에 마들렌 성당 같은 거대한 건물이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광장ㅇ르 지나 성당 뒤로 돌아 나가면 구석에 
고서점가가 나온다. 거리는 오른쪽으로 꼬부라지는데, 따라가면 좌우로 
분명히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의 바리오 고디꼬 같은 골목이 있다. 끝에는, 
가로등이 밝은 가로수 길이 나올 것이고, 이 가로수 길 오른편의 막다른 
골목에는 극장이 있다. (이 장면은 사진 보듯이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 극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히 
재미있으면서도 조금은 수상한 것, 가령 나체 쇼 같은 것이 공연되고 있을 
게다. 아무래도 나체 쇼일 것 같아서 나는 물어보지도 못하고, 마음만 들뜬 
채로 돌아선다. 하릴없다. 샤담 로 쪽으로 가면 길이 아주 복잡해진다.
  낭패감과 함께 깨어난다. 만남은 실패로 돌아간다. 무엇은 잃기는 
잃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궁금해서 잊어버릴 수가 없다.
  시골집에 가는 꿈도 꾼다. 집이 크다. 내가 알기로 그 집에는 분명히 
옆채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옆채에 이르는지 그걸 잊고 말았다. 흡사 
길이 벽 속으로 말려 들어가 벌린 것 같다. 그 옆채에는 방이 부수하다. 
언젠가 그 방을 모두 불러본 적이 있다. (다른 꿈에서 그 방 꿈을 꾸다니 
불가사의하다.) 고가구, 퇴색한 판화, 구멍 뚫린 마분지로 만들어진 
19세기의 장난감 극장을 떠받치는 선반, 수놓인 덮개에 덮인 안락 의자, 
책이 가득 꽂힌 서가... 책 중에는 삽화가 든 '도판 여행기'도 있고, '육지 
여행과 바다 여행' 전집도 있다. 하도 읽어서 닳아 없어졌을 리도 없고 
어머니가 고물 장수에게 넘겼을 리도 없다. 대체 누가 복도와 계단을 
엉망으로 만들었틀까. 내가 고서의 향기 속에다 <부엔 레티로 (꿈의 
성)>를 만들기로 한 곳인데...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하는 꿈은 꾸지 못하는 
것일까.
  #
  
      65
  
  나는, 꿈을 미화함으로써 벨보는 다시 한 번 자기의 과거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으로 믿는다. 그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생각, 그래서 
단념하기로 맹세했던 과거에 매달리고 있었으며, 그 <순간>(만일에 그런 
것이 있었다면)을 붙잡는데 실패했다는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 즈음의 벨보는 자기의 사적, 허구적 순간의 재구를 재개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계획>이라는 것도 사실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런저런 자료가 있느냐고 묻자 벨보는 책상 위에 쌓인 원고 
더미를 뒤적거렸다. 그의 책상은 부피와 크기에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쌓아 
올린 아슬아슬한 원고 더미에 묻혀 있었다. 벨보는 자기가 찾던 자료가 
눈에 띄자 원고 더미에서 그것을 뽑아 내려고 했다. 그 바람에 원고 
무더기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허름한 자료철에서 자료가 쪽쪽이 
취어나와 사방으로 날렸다.
  "위에 있던 원고 더미를 내려놓고 뽑았으면 이런 일이 없죠."
  내가 싫은 소리를 했다. 벨보는 일을 늘 그런 식으로 하는 사람인 만큼 
하나마나한 소리였다.
  "오늘 저녁에 구드룬이 정리할 건데 뭐. 어차피 구드룬에게도 할 일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안 그러면 존재 가치를 못느낄 테니까..."
  여느 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벨보의 대답이었다.
  회사의 일원이 된 이상 원고의 안전 관리는 나에게도 이해 관계가 있게 
된 셈이었다. 그래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드룬이 정리하면, 처음 그대로 정리할 수 있겠어요? 이 자료철에 저 
자료를 끼우는 등등, 엉망으로 해놓을 텐데요."
  "디오탈레비가 당신 말 들었으면 좋아하겠다. 이 자료철에다 저 자료를 
끼우고, 저 자료철에다 이 자료를 끼운다... 이거야말로 책을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겠어. 이름하여 두루뭉수리 서, 무작위 서... <귀신 
떨거지들>이 지닌 놀 리가 바로 이거 하닌가?"
  "그러다가는, 정확한 조합을 찾는답시고 천 년 세월을 허비한 
카발리스트 짝이 날 걸요. 회사에서는 구드룬을 원숭이로밖에는 못 부리고 
있어요. 영원히 타이프라이터 앞을 못 떠나는 원숭이요... 구드룬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진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 
업무상의 진보는 하잘 것 없어요. 이 일을 대신해 줄 프로그램이 
아불라피아에 들어 있다면 또 모르지만요..."
  이런 대화를 나누고 이쓴ㄴ데 디오탈레비가 들어왔다.
  벨보가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면서 내 말에 대답했다.
  "그런 프로그램? 물론 내 아불라피아에 들어 있네. 그리고 이론상, 이 
프로그램에는 2천 항목까지 입력시킬 수가 있어. 필요한 것은 데이터와 
우리의 의도라네. 자, 시를 예로 들어볼까? 프로그램은, 몇 행을 
원하느냐고 물을 걸세. 그럼 10행이면 10행, 20행이면 20행, 1백 행이면 
1백 행, 결정만 하면 되네. 그러면 프로그램은 행 번호를 무작위로 뒤섞어 
버리네. 어제 나는, <보리수 잎이 바람에 나부낀다>, <너, 재수 없는 
알바트로스여>, <고무나무는 자유롭다>, <내 그대에게 나의 목숨을 
바친다>, 이런 등등의 시구를 입력시켰네. 보게, 이게 내가 어제 애를 쓴 
결과라네."
  
    #
  나는 밤을 샌다. <시스트룸>은 울리고...
  죽음이여, 네가 이겼다,
  죽음이여, 네가 이겼다.
  고무나무는 자유롭다.
  꼭두새벽에 나타난
  너, 재수 없는 알바트로스여.
  (고무나무는 자유롭다...)
  죽음이여, 네가 이겼다.
  
  보리수 잎이 바람에 나부낀다.
  나는 밤을 센다. 시스트룸은 울리고.
  후투티 새는 나를 기다린다.
  보리수 잎이 바람에 나부낀다.
    #
  
  "반복 어구가 많기는 하지만, 반복 어법이야말로 시적이 아닌가?"
  "고거 재미있네...."
  디오탈레비가 반색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 이제 보니 자네 이 쇠뭉치도 괜찮은 물건이군, 그래. 우리가 '토라'를 
통째로 입력시키고, 전문 용어고 거 무엇이냐, 응, 무작위로 섞어 버리라고 
하면, 프로그램이 '토라'의 구절을 재결합시켜서 진짜 <테무라>를 만들어 
낸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암, 문제는 시간이야. 몇 세기가 좋이 걸릴 테니까..."
  내가 끼여들었다.
  "만일에 말이죠, <귀신 떨거지들>의 작품에서 추출한 몇가지 아이디어, 
가령, 성당 기사단은 스코틀랜드로 도망쳤다거나, '연금술 대전'은 1460년 
피렌테에 도착했다는 등등의 아이디어에, <분명한 사실은... >, <... 임을 
입증한다>... 이런 연결 어구를 입력시키면요? 뭔가 눈에 번쩍 띄는 게 
나오는 게 아닐까요? 뭐가 나오면, 공백은 적당하게 메우고, 예언이나 
경고같이 보이도록 반복 어구를 조 삽입하면, 적어도, 일찍이 출판된 적이 
없는 미증유의 마술사 한 장은 되지 않겠느냐고요."
  "당신은 천재야. 당장 시작하세."
  벨보가 소리쳤다.
  "안 돼요. 일곱 시가 된 걸요. 내일 하죠."
  "나는 오늘 밤에 당장 시작하겠어. 잠깐만... 몇 분간만 날 좀 도와주게. 
자, 사무실 바닥에 떨어진 자료를 무작위로 집어 올려, 첫 문장만 일겅 
주게. 내가 입력시킬 테니까..."
  나는 자료쪽을 집어 들고 읽었다. 
  "<아리마태아의 요셉은 성배를 프랑스로 가지고 갔다.>"
  "좋고 말고... 다 쳤네. 계속하게."
  "<성당 기사단 전승에 따르면, 고드프로아 드 부이용은 예루살렘에다 
시온 대싡ㄴ을 건설했다.>"
  나는 계속해서 자료쪽을 주워 첫 문장을 읽어 나갔다.
  "<드뷔시는 장미 십자단원이었다.>"
  디오탈레비가 끼여들었다.
  "잠깐만 실례하네... 여기에 가치 중립적인 자료도 좀 넣어야 하지 
않을까? 가령, 코알라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산다커니, 빠뺑이 압력 솥을 
발명했다커니..."
  "미니 마우스는 미키 마우스의 애인이다."
  "지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만 못하답디다."
  "아니야. 좀 지나칠 필요가 있네. 이 우주의 사상치고, 우주의 신비를 
드러내지 않는 것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연금 철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순간이니까."
  "맞습니다. 미니 마우스도 넣는 게 좋겟어요. 지극히 기본적인 공리를 
한마디 집어 넣을까요? 성당 기사단은 모든 것고 관련이 있다..."
  "당연지사..."
  디오탈레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셋이서 말장난을 하고 있다 보니 밤중이었다. 벨보는, 자기 혼자서 
작업을 계속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퇴근하라고 했다. 구드룬이 들어와, 
사무실을 잠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벨보는, 일을 더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바닥에 떨어진 서류 쪽이나 서류철을 찾아 정리해 달라고 말했다. 
구두룬은 어미 굴절이 없는 라틴 어 같기도 하고, 우랄 계 볼가 어군에 
속하는 체르미쉬 어 같기도 한 기묘한 언어로 무슨 소리인가를 냄으로써 
불만과 낭패감 같은 것을 표명하는 것 같았다. 구드룬은 이로써 아담 
시대의 언어에서 갈라져 나온 세계의 모든 언어에 보편적인 친족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었다. 구드룬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서류쪽을 
모아, 어떤 컴퓨터보다 더 잘 섞어 놓았다.
  
  다음날 아침에 만난 벨보는 의기 양양했다.
  "됐네. 기대 이상이야."
  벨보는 이러면서 우리에게 컴퓨터 자료의 인쇄물을 내밀었다.
  
    #
  성당 기사단은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
  다음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예수는 본티오 빌라도의 명에 따라 십자가에 못박혔다.
  현자 오무스가 이집트에서 장미 십자단을 창설했다.
  프로방스에도 카발리스트가 있다.
  가나의 혼인 잔치는 누구의 결혼식이었나?
  미니 마우스는 미키 마우스의 애인이다.
  논리적으로 보아 다음과 같다.
  만약
  드루이드교 신자들이 흑성모를 섬겼다면 
  그렇다면 
  시몬 마구스는 띠로의 창녀 소피아와 일치한다.
  가나의 혼인 잔치는 누구의 결혼식이었나?
  메로빙가 왕조는 왕권 신수설을 선언했다.
  성당 기사단은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
    #
  
  "좀 모호한데..."
  디오탈레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벨보가 그 말에 대답했다. 
  "행간의 상호 관련성을 읽지 못하니까 그렇게 보일 수 밖에... 게다가 
자네는 두 번씩이나 되풀이되는, <가나의 혼인 잔치는 누구의 
결혼식이었나>의 중요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네. 이 반복 어구야말로 
수수께끼의 열쇠가 된다네. 이 자료에다 다른 자료는 물론 내가 보충했네. 
진실에다 또 다른 진리를 보충하는 것이야말로 비법 전수자의 특권이니까. 
내 해석은 이러하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성당 기사단에서는 십자가를 부정한다, 아리마태아의 전설은 
보다 시무언한 진실을 감추고 있다. 프로방스의 카발리스트들 손에 들어간 
것은 성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세계의 
제왕>을 나타내는 메타포, 진정한 장미 십자단의 창설자이다... 예수는 
혼자 왔는가? 아니다. 아내가 동행했다... 복음서에 가나 혼인 잔치의 혼인 
당사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에수 
자신의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예수 자신의 결혼식인데 왜 혼인 당사자에 
대한 언급이 누락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신부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창녀 
막달라 마리아가 바로 신부였으므로... 시몬 마구스로부터 기욤 포스텔에 
이르기까지 예지라면 내노라 하는 현자들이 창가에서 심원한 여성의 
진리를 찾으려 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예수는 프랑스 
왕가의 시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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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듯하다만,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것 같지 않다."
  디오탈레비의 반응이었다.
  나는 벨보의 기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 반대일걸요? 수십 만권 팔릴 겁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성배의 
신비와, 레느 르 샤또의 비밀을 다룬 책에, 내용에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벌써 공개되어 있습니댜. 원고만 읽고 앉아 계실 것이 아니라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도 좀 읽으셔야겠어요."
  "이런 빌어먹을! 그럼 이 쇳덩어리는 겨우 우리가 다 아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거잖아?"
  디오탈레비는 맥이 풀리는지 밖으로 나가 버렸다.
  벨보는 그런 디오탈레비의 말을 언잖아 했다.
  "저 친구 뭐라고 하는거야? 내 아이디어가 결국은 남의 아이디어라는 
말인데...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그거야 말로 언필칭 문학의 다원 
발생성이라 거 아닌가? 가라몬드 사장이 이 소리를 들으면, 디오탈레비 저 
친구의 핀잔이야말로 내 말이 옳은 증거라고 할걸세. 다른 사람들은 
거기에 이르는데 수십 년이 좋이 걸렸을 테지만 나와 이 기계는 그걸 
하룻밤에 해치웠으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기계, 좋고말고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귀신 
떨거지들.의 원고에 나오지 않는 자료도 넉넉하게 넣어야 할 것 같은데요? 
문제는 드뷔시와 성당 기사단 사이의 은비학적 고리를 찾는 게 아니라, 
가령, 카발라와 자동차의 스파크 플러그 사이의 은비학적 고리를 찾는 
것일 테니까요."
  나는 그저 나오는 대로 지껄였을 뿐인데더 벨보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얻어 내는 눈치였다. 며칠 뒤에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 말이 옳아. 어떤 사상이든,다른 것과 관련을 맺을 때 비로소 
중요성을 획득하는 법일세. 관련성이야말로 우리의 시각을 바꾸거든. 
관련성이라는 것 때문에 세계의 드러나는 모든 사상, 우리가 보거나 들은 
것, 씌어지거나 언표된 사상은 표면상의 의이 이상의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 의미를 통해 우리에게 궁극적인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나. 
문제는 간단하다네. 의심하라, 오로지 의심하라. 의심하면 <빈 깡통을 
버리지 마시오>라는 교통 표지판에서도 언외언을 읽을 수 있는 것이네."
  "그렇고 말고요. <빈 깡통을 버리지 마시오>야 말로 카타리 파의 
도덕률이었지요. 종종 번식에 대한 지독한 혐오..."
  "어젯밤에 우연히 운전자르 위한 자동차 교범을 들여다보게 되었네. 
주위가 어두컴컴해서 그래쓴ㄴ지, 당신이 내게 한 말 때문에 그랬는지, 
교범이 내게 <전혀 다른>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 같더라고. 자동차가 
창조 행위를 메타포로 설명하기 위해 행긴 물건이라고 가정해 보게. 
외장이나 계기판의 표면적인 현실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든 것까지... 
아래데 든 것. 위에 있는 것. 이거야말로 <세피로트 나무>가 
아니겠느냐고..."
  "설마..."
  "이 말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기계 자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구동축은 <세피로트 나무>의 둥치에 해당하지? 각 부분을 한번 
세어 보자고... 엔진, 앞바퀴 두 개, 클러치, 트랜스미션, 차축 두 개, 차동 
장치, 뒷바퀴 두 개... 모두 몇 개야? 열 개지. <세피로트 나무>의 10개의 
세피라가 아닌가."
  "배열은 다르잖아요?"
  "배열이 다르다니? 디오탈레비에 따르면 어떤 세피로트 판본에서는, 
<티페렛.은 제 6의 세피라가 아니래. <네짜>와 <호드> 다음의 제 
8세피라라는 것이지. <세피로트 나무>가 아니라면 차축을 나무로 삼는 이 
나무는 이 벨보의 나무, 즉 <벨보트 나무>라  하면 되겠군."
  "말 되네요."
  "나무의 변증범을 논법으로 삼고 진행시켜 보세. 정점에는 엔진이 있네. 
<옴니아 모벤스>가 아닌가. 엔진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세만, 
엔진이야말로 창조적인 힘의 근원일세. 바로 이 엔진에서 나온 창조적인 
힘이 두 개의 앞 바퀴, 즉 비교 우위론적인 앞바퀴에 전달되는데 이 
앞바퀴야말로 <지성의 바퀴>와 <지식의 바퀴>가 아닐 것인가?"
  "전륜 구동차라면 그런 논법도 일단은 가능하겠네요."
  "이 <벨보트 나무>의 장점은 형이상학적인 양자 택일에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걸세. 전륜 구동이라는 것은 일종의 유심론적 우주 같은 
것이네. 엔진의 의지가 비교 우위적인 앞바퀴로 직결되거든. 유물론적으로 
해석하자면, 엔진이라는 것은 두 개의 비교 열세에 놓인 바퀴에도 
에너지를 분배하는 타락한 우주인 셈이네. 심충으로부터 우주적인 발산을 
통하여 사물의 비천한 힘을 방사하거든."
  "엔진이 뒤에 달린 후륜 구동차라면요?"
  "악마주의적이지. 천상계와 지상계의 결탁. 이 경우 하느님은 조악한 
물질의 운동가 동일시되네. 하느님은 신성에 대한 영원한 좌절의 열망과 
동일시되네. 그 결과가 <용기의 폭발>일 테지."
  "머플러의 폭발은 아니고요?"
  "그건 우주가 낙태되었을 경우에 해당되네. 이렇게 되면 아르콘님네들의 
독기 어린 숨결이 에테를르 채우게 될 테지. 하지만 본론을 이탈하지 
말자고. 엔진과 두 바퀴 사이에는 클러치가 있네. 이 클러치는 나무의 
나머지 세피라로 통하는 사랑의 통로로 <숭고한 에너지>를 끊기도 하고 
잇기도 하는 일종의 <은총의 세피라>라고도 할 수 있네. 클러치가 
원반으로 되어 잇으니까, 다른 만다라를 애무하는 또 하나의 만다라라고 
할 수도 있네. 이번에는 변속을 주도하는 상자를 한번 보세. 
실증주의자들은 이것을 <기어 박스> 혹은 <트랜스미션>이라고 
부르네만... 이건 악의 원리라네. 왜냐? 일정하게 방사되는 전달 속도의 
에너지의 완급을 인간ㄴ의 의지에다 맡기는 셈이거든. 자동 변속기가 달린 
자동차가 더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네. <지상ㅇ 평형>의 원칙에 맞추어 
속도를 결정하는 <나무> 자체가 내장되어 있으니까... 이번에는 유니버셜 
조인트, 차축, 구동축, 그리고 차동 장치를 보세. 엔진의 실린더가 4행정을 
통하여 반목과 반복을 계속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하네. 이렇게 반목과 
반복을 되풀이하는 것은 차동 장치(小 케테르)는 이 운동을 지상의 바퀴에 
전해 주어야하기 때문이네. 이로써 차동 장치가 지닌, 차등을 드러내는 
세피라적 기능이 확연해지네. 결국 차동 장치는, 웅대한 미적 감각으로 
우주적인 에너지를 <영광의 바퀴>와 <승리의 바퀴>로 배분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타락하지 않은 우주<전륜 구동>는, 비교 우위에 있는 바퀴가 
배분한 운동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네." 
  "조리 있는 해석이기는 합니다. 그러면 엔진의 중심에는 절대 불가분한 
<일자>의 자리, 즉 왕관이 자리하고 있겠군요?"
  "오의 전수자의 눈으로 보아야 하네. 최고 귄위를 지닌 기관인 엔진은 
흡입과 배기라는 일련의 운동을 통하여 그 생명이 유지되네. 이 
복잡하고도 신성한 호흡은, 실린더<기하학적 원형임에 분명한>라는 것에 
의해 기본적으로 주도되는 주기적인 운동이네. 자동차에는 이 실린더가 
원래 두 개밖에 없었는데, 이 주기적인 운동이 제3실린더의 수요를 
자극하게 되고, 이 세 개의 실린더가 서로 바라보면서 서로 사랑하다 보니 
뭔가가 미진하니까 제4실린더의 영광이 창조되는 것일세. 이 호흡은, 
제1실린더(제1실린더라고 해서 다른 실린더보다 비교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피스톤의 놀라운 교호 작용이 제일 먼저 일어나기 때문에 
붙은 이름에 지나지 않아) 안에서 있는 피스톤(어원은 <피스티스 
소피아>이 상사점에서 하사점으로 내려오면서 실린더에 순수한 에너지를 
가득 채우게 되면서 시작되네. 나는 여기에 문득 천사의 위계가 개입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단순화하고 있네.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운전자를 위한 자동차 교범이, <배전기 조절판이 개폐함에 따라 혼합 
가스가 기화기로부터 흡입관을 통하여 실린더 내부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고 하기 때문이네. 요컨데 엔진의 중추는 이러한 중개 장치에 의해 
처음으로 자동차라는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상호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 참람을 떨고 싶지 않네만, 내가 보기에는 이거야말로 <일자가 
지닌 원초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이치가 아닌가 싶더군. 왜냐... . <일자>가 
창조에 임하자면 상궤 이탈에 의존 하지 않으면 안 되었거든... . 
여기에서부터는 교범을 좀더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네. 실린더에 
에너지가 가득 차고 피스톤이 하사점에 내려가면 에너지는 더할 나위 없이 
압축되네, 한계 상황... . 그런데 보라, 꽝! 영광의 빅뱅! 연소와 팽창! 
스파크가 튀고, 혼합 가스에 불이 붙으면서 터진다... . 교범은 이것을 
피스톤 왕복 운동의 한 활성 단계라고 하더군. 슬픈 일이 아닌가. 만일에 
혼합 가스에 <켈리포트>라고 하는 예의 조개 껍질, 간단하게 말해서 
물이나 코카콜라 같은 불순물이 혼입되었더라면 팽창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발육 부전의 노킹 밖에 더 있겠는가 말일세... ."
  "<조개 껍질>이나 <켈리포트>나 똑같은 뜻 아닙니까? 앞으로 이 
표현은 더 이상 안 쓰는 게 좋겠어요. <성처녀의 젖>이라고만 합시다."
  "어디 검토해 보세. <칠자매의 음모라고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네. 이 
칠자매는, 창조의 진행 과정을 통제할 목적에서 지상으로 내린 존재거든. 
하여튼 폭발 뒤에는, 신성의 방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배기 행정이 
오네. 말하자면 피스톤이 다시 상사점으로 오르면서 연소가 끝난, 무형의 
물질을 내보내는 것이지. 새 행정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이 순화의 과정이 
연달아 진행되어야 하네. 이 점에 유의 한다면, 이것은 <추방>과 
<귀환>이라는 신 플라톤주의의 메커니즘이라고 할만하네. 신플라톤주의의 
메커니즘이라고 할만하네. 신플라톤주의 <상승의 길>과 <하강의 길>의 
변증법 말일세."
  "<쿠안툼 모르탈리아 페크토라 케아카에 녹티스 하벤트>가 빈말 
아니었군요.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도 물신 섬기느라고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 테니까요."
  "연금술에 나오는 <철인의 돌>과 타이어 상표인 <파이어스톤>의 
관계도 몰랐을 테지."
  "내일은 전화 번호부를 신비주의적인 관점에서 분석해 봐야겠네요."
  "우리의 까소봉 씨는 언제 보아도 야심만만하다니까... . 전화 번호부를 
분석하자면 <일자>와 <다자>라고 하는 불가해한 문제에 먼저 도전해야 
할 걸. 그보다 세탁기 분석으로 시작하지 그래?"
  "그건 너무 쉬워요. 흑에서 백보다 더 흰 백을 향한 연금술적 전환... ."

  67

  의혹의 눈길을 던지면 실마리는 잡히기 마련이다. 자동차 동력 기관과 
<세피로트의 나무>에 대한 벨보의 환상적인 추론을 들은 뒤부터 나는 
모든 사물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읽어내려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브라질에서 사귄 친구들과는 귀국한 뒤에도 계속 연락이 있었는데 바로 
그즈음 브라질 친구들로부터 초청장이 날아왔다. 포루투갈의 코임브라에서 
고대 로마의 속령이던 루지타니아 지방 문학학회가 열린 것인즉 
합류하자는 것이었다. 나의 전문 지식에 경의를 표하고자 하는 초청이 
아니라 단지 나를 만나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를 부른 것이었기가 쉽다. 
리아는 같이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임신 7개월 째라 체중이 불어 
영락없이 플랑드르 화파의 그림에 나오는 성모 같아 보일 거라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옛 친구들과 코임브라에서 사흘 밤을 신나게 보냈다. 코임브라에서 
버스 편으로 리스본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에는 파티마를 들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토마르에는 성당 기사단이 박해를 피해 
은거해 있던 성이 있었다. 포루투갈의 성당 기사단은, 왕과 교황이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개명시킨 덕분에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로서는 성당 기사단이 은거하던 성을 지나칠 수 없었다. 다행이도 
친구들 역시 파티마를 경유하는데 그다지 열성을 보이지 않아 일단 
토마크를 경유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지어졌다.
  장소가 토마르라면, 나도 성당 기사단의 은성을 하나 발명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토마르 성은 이상적인 성이었다. 성 입구에는 성 외각의 
능보를 둘러싼 요새화한 도로가 있었다. 능보는 십자형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성문을 들어서자 벌써 십자군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스도 
기사단이 수세기 동안이나 융성했던 성다웠다. 전승에 따르면 항해왕 
엔리코와 콜롬버스도 그 교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실제로 이 그리스도 
기사단이 바다를 정복함으로써 포루투갈을 융성시켰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속한다. 기사단이 오래 한자리에서 번영을 누렸으니 당연항 
일이겠지만, 성은 그동안 여러 차례 증개축을 되풀이해 왔던 것 같았다. 
중세식 성에 여러 개의 르네상스 식, 바로크 식 익성이 덧붙은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성당 기사단 
교회에 들어서고는 감격하고 말았다.  저 예루살렘의 성묘를 복원한 
팔각형 신전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교회 
내부에서 본 성당 기사단 십자가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그 전에 성당 기사단의 복잡한 도상학을 
연구하면서 부딪친 문제이기도 했다. 말타 십자단의 십자가는 대동 
소이한데 왜 성당 기사단의 십자가는 때와 장소의 전통에 쉽게 동화되고 
마는 것일까. 성당 기사단 사냥꾼들이, 특정 장소에 특정 십자가만 
발견되어도 그곳을 대뜸 성당 기사단의 은서지로 보고 바짝 긴장한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었다.
  안내인은 우리에게 마누엘 대왕 시대에 융성하던 양식으로 꾸며진 
창문을 보여 주었다. 이것은 <자넬라>라고 불리던 것에 상응하는 일종의 
선조 세공으로 창에 아로새겨진 것은, 당시 해상이나 해저에서 흔히 
발견되던 해초, 조개 껍질, 닻, 그믈, 쇠사슬 등, 당시의 대 해원을 누비던 
기사단 활약상을 상상하게 하는 것들의 콜라주였다. 유리창 양쪽의 두 
설주는 두 개의 탑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 탑에는 가터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영국의 훈장 모양이 포루투갈 교단의 성채에 
새겨진 경위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안내인에게 물어보았지만 그 
역시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 탑의 동북쪽을 보았더니 거기에는 
또 금양모피 기사단의 문장으로 보이는 무늬도 새겨져 있었다. 나는 
가터와 금양모피, 금양모피와 아고르 선, 아르고 선과 성배, 성배와 성당 
기사단을 잇는 일련의 맥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덴티 대령이 
하던 말과, <귀신 떨거지들>의 원고를 생각하면서 안내자를 따라 
옆방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궁륭꼴 천장에 박힌 
쐐깃돌이 여러개 박혀 있었는데, 거의가 장미꽃 모양으로 되어있는 쐐깃돌 
사이에 털보 염소 얼굴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포메트였다!
  이어서 우리는 지하 납골당으로 내려갔다. 일곱 계단을 내려가니 
후진으로 통하는 맨돌 바닥이 나왔다. 후진에는 제단이나, 기사단 사령관의 
보좌가 놓였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가 있었다. 입구에서 후진에 이르기까지 
천장에는 모두 일곱 개의 쐐깃돌이 박혀 있었다. 모두 장미 문양이었다. 
그런데 이 장미 문양은 첫 번째 쐐깃돌에서 차례로 커지다가 일곱 번째 
쐐깃돌은 어찌나 큰지 커지다 못해 천장과 벽에 걸칠 정도였다. 장미 
십자단이 생기기 전에 지어진 성당 기사단의 은성에 십자가와 장미가 
공존한다... !
  나는 안내인에게 연유를 물어 보았다.
  안내인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도대체 이곳을 순례하는 은비학 연구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이 
방이 입단 의례실이라고 불릴 정도랍니다."
  우연히, 먼저 앉은 가구 몇 점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놓인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방바닥에는 커다란 합지 상자가 놓여 있었다. 합지 상자 
속을 뒤적거리다 보니, 히브리 어 책에서 떨어져 나온 쪽지가 있었다. 
17세기에 출판된 책의 한 페이지 같았다. 토마르에 유대 인이라니. 
안내인은 당시의 기사단은 그 지역의 유대 인 지역 사회와 친분 관계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에게 창 밖을 내대보라고 했다. 창 밖으로 
프랑스 식 미로를 본뜬 조그만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안내인은, 18세기의 
유대 인 건축가 사무엘 슈바르츠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예루살렘에서의 두 번째 약속... 그렇다면 첫 번째 약속 장소는 토마르 
성이었던 것일까? 프로뱅의 밀지가 이렇게 해석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앙골프가 발견한 밀지에 기록된 성이라는 것은, 기사담에 등장하는 
전설상의 극복의 땅 아발론의 몬살바트가 아니었던 것일까... 아니었을지도 
모근다. 원탁의 기사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읽는 것보다는 영지 다스리는 
데 더 힘을 쏟았던 프로뱅의 성당 기사들에게 첫 번째 약속 장소로 적합한 
것은 전설상의 몬살바트가 아니라 실존하는 성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기사단의 토마르 성이었을 것이다. 토마르 성이야말로 
그 교단의 잔당들이 완벽한 자유를 구가하던 곳, 지속적인 안전을 
보장받은 곳, 따라서 두 번째 추밀단원들과 합류하기로는 이상적인 곳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들뜬 기분으로 토마르를, 그리고 포르투갈을 떠나 밀라노로 
돌아왔다. 아르덴티가 우리에게 보여 준 밀지의 일부를 더 이상 비웃을 
수가 없었다. 밀지에 따르면 성당 기사단은, 비밀 결사로 전락하여 지하로 
들어가자, 향후 600년 간 지속되다가 우리 세기에 끝날 어떤 계획을 
수립한 셈이었다. 성당 기사단원들은 진중한 사람들이어서 그들이 
성이라고 했다면 그것은 성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 계획은 
토마르에서 발진한 것임에 분명했다. 다섯 차례에 걸치게 될 일련의 
나머지 회합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토마르 성보다 더 나은 곳은 있을 
성부르지 않았다. 성당 기사단이 믿을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고, 그의 
동아리들이 있는 곳... 토마르 성이었다. 아르덴티 대령은 스톤헨지와 
아발론과 아가르타 운운했지만 그것 헛소리였다. 처음부터 다시 밀지를 
해독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포르투갈에서 돌아오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다짐을 주었다.
  "이것은 성당 기사단 비밀을 캐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만들어 내기 위한 
작업이다."
  
  벨보는, 아르덴티 대령이 남긴 문서로 되돌아가자는 나의 아이디어에 
기가 꺾인 눈치를 보였다. 그는 마지못해 하면서 미적미적 서랍을 뒤져 
문제의 쪽지를 꺼냈다. 그는 놀랍게도 그 쪽지를 깊이 간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실로 수년 만에 프로뱅 밀지를 다시 읽을 수 
있었다.
  밀지는 트리테미우스의 암호 체계에 따른 <<fp 36 이뉘이지블 쎄빠레 
앙 씨쓰 방드(여섯 무리로 나뉘어진, 서른여섯명의 보이지 않는 
자들)>이라는 암호문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본문은 아래와 같다.
  
  a la... Saint Jean
  36 p charrete de fein
  6... entires avec saiel
  p... les blancs mantiax
  r... s... chevaliers de Pruins pour la... j. nc.
  6 foiz 6 en 6 places
  chascuneest foiz 20 a... 120 a...
  iceste est l'ordonation
  al donjon li o premiers
  it li secunz joste iceus qui ... pans
  it al refuge
  it a Nostre Dame de l'altre part de l'iau
  it a l'ostel des popelicans
  it a la pierre
  3 foiz 6 avant la freste... la Grant Pute.
  
  성 요한의 밤
  건초 수레 사건으로부터 36년 되는 해
  봉인으로 밀봉된 6가지 밀지
  흰 망토를 두른 성당 기사들을 위하여
  복수하기 위한 프로뱅의 공술 번복자들
  계획은 이러하다
  6개 소에 6 곱하기 6
  각 회 20년씩 120년
  제 1진은 성으로 
  120년 뒤 제 2진은 빵가진 사람들과 합류할 것
  다시 은신처로 
  다시 강 건너 있는 노뜨르담으로
  다시 돌이 있는 곳으로
  위대한 창부의 잔치 전에 3 곱하기 6(666)
  
  "건초 수레 사건으로부터 36년이 지난 해인 1344년의 성요한의 밤에 
조락한 프로뱅의 공술 번복자 성당 기사들인 흰 망토를 두른 기사들은 
밀봉된 여섯 통의 밀지에 따라 복수전을 펼칩니다. 여섯 곳에서 6명이 
6회에 걸쳐... 1회에 20년이니까 모두 해서 120년 간격으로... 이것이 이들의 
계획입니다. 처음에는 <성>에서, 다음에는 <빵>을 가진 사람들과 
합류해서, 다음에는 <은신처>에서, 다음에는 <강가에 있는 
노뜨르담>에서, 그 다음은 <포펠리칸이 묵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돌>에서... 박사께서도 보시다시피 이 기록에 따르면 제 1진은 1344년에 
성으로 가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사단은 1357년 
토마르에서 조직되었지요. 그렇다면 두 번째 추밀단원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박사 같으면 제2진을 조직하기 위해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
  "글세... 만일에 건초 수레를 타고 있던 자들이 스코틀랜드로 도주한 게 
사실이라면... 그런데 왜 하필이면 스코틀랜드에서 <빵>을 가진 사람들과 
합류하는 것일까?"
  그즈음 나는 연상의 명수가 되어 있었다. 어디서 시작해도 상관없었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 드루이드교 의식... 성 요한의 밤... 하지... 성 
요한의 날 베풀어지는 불의 제전... 황금 가지... 여기까지 연상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를 읽은 덕분이었다.
  나는 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탁이 있는데... '황금 가지'를 뽑아, 성 요한의 날 베풀어지는 불의 
제전에 대한 부분 좀 읽어 줄래?"
  리아는, 이런 일에는 적격이었다. 시간이 걸릴 것도 없었다. 
  "뭘 일고 싶은 거예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베풀어지던 굉장히 유서 
깊은 의식이라는데? 태양이 황도대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베풀어진대요. 
성 요한이라는 이름은, 이 의식을 기독교화하면서 붙여진 이름이고..."
  "스코틀랜드의 경우 이 의식 때 빵을 먹나?"
  "잠깐만요... 아닌 것 같은데... 아, 여기 있다! 성 요한 축제 때는 안 
먹는데, 5월 1일... 원래 드루이드교에서 유래한 <벨테인 축일> 밤에 
먹는대요. 특히 하이랜드 스코틀랜드에서요..."
  "좋았어! 그런데 어떤 빵인데?"
  "밀가루와 귀리를 반죽ㅎ서 잿불에 구운 거라는데... 이걸 먹고 난 
뒤에는 고대의 인신 공희제 비슷한 의식을 치르고... 빵의 이름은 
<비녹>이라는군요?"
  "뭐야? 철자는?"
  리아가 철자를 불러 주었다.
  "고마워, 나의 베아뜨리체, 나의 <모건 르 페이>(아더 왕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더 왕과 피를 나눈 요녀)."
  나는 리아에게 이것 말고도 내가 아는 찬사라는 찬사는 다 붙여 주었다.
  내가 가설을 세워 보려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비밀 집단은 로버트 
더 브루스 왕이 다스리고 있든 스코틀랜득로 피신했다... 여기에서 성당 
기사들은 왕을 도와 <바녹번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공을 세웠다... 그 
공훈을 기려 왕은 그들에 의한 새로운 스코틀랜드의 성 안드레아 기사단 
창설을 지원한다...
  나는 서가에서 두꺼운 영어 사전을 찾아 <비녹>을 찾아보았다. 중세 
영어로는 <바녹>, 앵글로 색슨 어로는 <바넉>, 게일 어로는 <바나크>... 
보리나 귀리 같은 곡물로 만들고 석쇠나 석판에 올려 놓고 굽는 일종의 
과자... <번.은 강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스코틀랜드에 있던 프랑스의 성당 기사단원들이 프로뱅에 
있는 동아리에게 소식을 전하면서 이 <바녹번>이라는 말을 번역한다면 
<과자의 강>, <빵 덩어리의 강> 혹은 <빵의 강. 비슷한 역어가 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결국 이 빵을 먹은 사람은 <빵의 강>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브리튼 섬 곳곳에 퍼져 있던 스코틀랜드 
주재 성당 기사단 무리일 수밖에 없다. 포르투갈에서 영국까지... 
논리적으로 깔끔한 설명이 된 셈이다. 아르덴티가 주장하던, 북극에서 
팔레스티나에 이르는 경로에 견주면 훨씬 가까운 지름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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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된다! 이 경우, 그럼 은신처는 어다가 되는 건가?"
  벨보가 물었다.
  "6진이 6처에 정착하는데 이 중에서 <은신처>라고 불리는 것은 한 
곳뿐입니다. 이상하죠? 이것은 분명히 포르투갈이나 영국 같은 타지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은신처에서는 완벽하게 숨어 살아야 하는데 견주어 
포르투갈이나 영국 같은 곳에서는 이름만 바구면 비록 달라진 이름이기는 
해도 박해받지 않고 존속할 수 있거든요. 내가 보기에는 파리의 성당 
기사단이 기사단 본부를 떠난 직후 포르투갈이나 영국으로 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국이라면 프랑스에서 가까우니까요. 하지만, 그보다 더 가까운 
곳도 없지 않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 성당 기사단이 영국보다 훨씬 가까운 
곳으로 갔을 가능성을 상정하면 왜 안 되느냐는 거죠. 파리르 떠나는 
척하면 바로 파리에다 은밀한 은신처를 마련하고 있었다면요? 정치적으로 
머리가 상당히 깨어 있던 집단이니까. 한 2백 년쯤 지나면 정치 상황도 
바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백주에도 활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아니냐는 겁니다."
  "그러면 파리라고 가정하고... 그러면 제 4처는?"
  "아르덴티 대령은 샤르뜨르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나, 우리가 만일 
파리를 제 3처로 가정한다면 샤르뜨르를 제 4처로 상정하는데는 무리가 
있어요. 왜냐? 이 계획이라고 하는 것은 유럽의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우리 작업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궤적을 더듬어야 
하는 것이지 신비주의적인 궤적을 더듬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까지의 결과로 밀어 보아 이들의 동선은 사인 곡선을 그립니다. 
따라서 독일의 북부를 고려에 넣어야 합니다. <강 건너 있는>... 이건 라인 
강 건너편일 가능성이 있어요. 강 건너 있는 <노뜨르담> 교회가 아니라 
<노뜨르담> 도시... <노뜨르담>은 <성모> 아닙니까? 단치히 부근에 
성모의 도시가 있어요. 이름하여 <마리엔부르크>(성모 마리아의 마을) 
사이는 개와 고양이 사이였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 병원 
기사단은 성당 기사단이 박해받을 때를 호시탐탐 노린 기사단입니다. 성당 
기사단의 재산을 차지하려고요... 튜튼 기사단은 성당 기사단을 경계할 
목적으로 독일의 황제가 조직한 기사단입니다. 원래 조직된 곳은 
팔레스티나였습니다만 당시 프로이센 야만인의 침략을 저지한답시고 
유럽에 와 있었죠. 이 튜튼 기사단은 세력은 그로부터 두 세기에 걸쳐 
크게 융성, 발트 해 연안의 전 지역을 손에 넣는 국가로 발돋움한 뒤로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그리고 리보니아를 안방 넘나들 듯합니다. 
쾨니히스베르크를 세운 것도 이들입니다. 이들의 패전 기록은, 
에스토니아에서 알렉산드로 네프스끼와의 전투, 딱 한 번뿐입니다. 성당 
기사단이 파리에서 박해를 받고 있을 즈음 튜튼 기사단은 마리엔부르크를 
수도로 삼고 있었어요. 따라서 당시 기사도 정신에 입각해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집단이 있었다면, 그것 당연히 성ㅇ당 기사단과 튜튼 
기사단이었지요."
  "당신 말이 옳은데 내가 무슨 말을 보태겠어? 그러면 제 5진은? 
포펠리칸들은 어디에 있는거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에이, 까소봉, 이거 낙심천만이잖아? 아불라피아에게 물어볼까?"
  "안 됩니다. 아불라피아는 자료를 연결시킬 수 있을 뿐,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포펠리칸은 실제로 존재하던 엄연한 하나의 <사실>이지 
<관계>가 아닙니다. <사실>이라면 여기에 있는 이 샘 스페이드의 장기 
아닙니까? 며칠만 여유를 주세요."
  "좋아, 두 주일을 주지,. 두 주일 안에 포펠리칸에 대한 설명을 마련하지 
못하면 12년 짜리 발렌타인 한 병 사야 하네."
  
  12년짜리 발렌타인...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무리였다. 한 주일 뒤, 나는 
술욕심꾸러기 벨보에게 포펠리칸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까리합니다. 내 논지를 잘 따라와야 합니다. 우리는 4세기의 
비잔티움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4세기라면 마니교로부터 영감을 받은 
교파들이 지중해 전역으로 퍼지고 있던 때입니다. 우선 카파르바루하의 
페트로 (이름 한번 거창하지요)라는 사람이 아르메니아에다 설립한 아르콘 
파에서 시작합시다. 아르콘 파는 그노시스 계열인 동시에 반 셈 
계열입니다. 아로콘 파에서는 악마를 사바오트와 동일시합니다. 사바오트가 
누굽니까? 유대 인들의 이른바 제 7천에 사는 신입니다. 아르콘 파에서는, 
제8천에 있는 <광명의 태모 여신>에 이르자면 마땅히 사바오트와 세례를 
거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여기까지 이해했습니까?"
  "좋아, 거부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아르콘 파는 사실 본질적으로 나쁜 교파가 아니에요. 그런데 
5세기에 이르자 <맛실리우스 파>가 나타납니다. 이 맛실리우스 파는 
실제로 11세기까지도 트라키아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이 
밧실리우스 파는 이원론자가 아닌 단일신론자들이면서도, 지옥의 권세를 
부렸다고 합니다. 실제로 어떤 문헌은 이들을 <보르보로스>, 즉 ,부정한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건 이들이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짓들을 했기 때문이랍니다."
  "가령?"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짓이라면 뭐겠어요? 남녀가 손에다 정액이나 
생리혈을 묻히고는 하늘을 향하게 하고는 이걸 그리스도의 성테라면서 
빨아먹었답니다. 뿐인가요? 여자가 애를 배면 손을 넣어 태아를 꺼내고, 
이걸 꿀, 후추와 함께 절구에 찧어 먹었다고도 하더군요."
  "꿀과 후추... 생각만 해도 비위가 상하는군..."
  디오탈레비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사실이 그랬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이들을 <스트라티오스 파>, 
<피비오스 파>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나하쉬 파>와 
<페미오스 파>가 습합된 <바르벨로 파>로 정의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나 초대 교회의 교부들 입장에서 보면, 바르벨로 파는 후기 그노시스 
파에 속합니다. 따라서 이뤈론자들, <태모 베르벨로>를 숭배하던 무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들의 비의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등장합니다. 
<휠리크>, <프쉬코스>, <프네우마티코스>가 그것입니다. 여느 신도인 
<보르보로스>는 <휠리크>라고 불렸는데 이것은 <물질인>이라는 
뜻입니다. 곧 물질의 자식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물질인>은 그 상위 
개념인 <프쉬코스>, 즉 <심령인>과도 구분되고, 홀로서기를 완성시킨 
<프네우마> 즉 <영령인>과도 엄격하게 구분됩니다. 말하자면 얼치기와 
로타리 클럽 회원될 만한 사랃을 구별하는 겁니다. 어쨌든 <스트라티오스 
파>는 미트라교에서 말하는 <물질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던 듯합니다."
  "이거 정신 없이 헛갈리는군..."
  벨보의 말이었다.
  "당연하지요. 그런데 이들은 자료를 일체 남기지 않았어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자료는 모두 이들을 원수 삼던 자들에 의한 험구의 
기록이랍니다. 하지만 상관없어요. 내가 두 분에게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은 
이 시절의 중동 아시아가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나 하는 것이니까요. 가령 
파울로키아누스 파가 등장하는 단계를 좀 볼까요? 원래 이 파울로키아누스 
파는, 알바니아에서 쫓겨난 우상 파괴자들로 구성된, 파울로키아누스의 
추종 세력이었어요. 8세기부터 이 파울로키아누스 파는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면서 교파에서 공동체, 공동체에서 군대, 군대에서 어느 한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치 세력으로 커나갑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세력을 심상찮게 여긴 동로마 제국 황제들이 군대를 파견하여 이들을 
공격하게 했을 정돕니다. 파울로키아누스 파는 아랍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유프라테스 연안까지 세력을 확장하는가 하면, 북으로는 비잔틴 제국의 
영토였던 흑해에 이르기까지 식민지를 확보하는 ed 17세기까지도 
건재했지요. 결국 예수회로 개종하게 되었지만 발칸 반도 근방에는 
지금까지도 파울로키아누스 파 지역 사회가 잔존한답니 . 자, 이제 
파울로키아누스 파의 교리가 궁금하겟지요? 하느님을 믿기는 했어요. 삼위 
일체로서의 하느님을요. 단, 세상을 창조한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데미우르소스(조물주)>라는 겁니다. 그것도, 하느님에게 반항하느라고요. 
말하자면 잘못 만들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파울로키아누스 파는 구약 
성서를 거부하고, 성찬을 거절하며, 십자가를 혐오하고, 성모를 홀대합니다. 
왜? 그리스도는 천상에서 바로 인간으로 화신한 존재라는 겁니다. 
마리아의 몸을 거치기는 거쳤으되, 파이프 속을 지나듯이 그렇게 거친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보고밀 파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마리아도 모르는 사이에 한쪽 귀로 들어갔다가 반대쪽 귀를 
통해 나왔다는 겁니다. <파울리키아니>, 즉 파울로키아누스 파는 태양과 
악마를 숭배하고, 성찬에 쓰이는 빵과 포도주에 어린아이의 피를 섞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지요."
  "당시에야 그런 이단 교파들이 많았지."
  "당시의 이단자들에게 미사의 참례는 고문과 같았을 테죠. 미사에 
참례하느니 회교로 개종하겠다는 무리가 많았다니까요... 어쨌든, 그런 
무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두 분에게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요. 
이원론적인 이단이 이탈리아와 프로방스로 펴져 나갈 당시 이 무리가 
<포펠리카노>, <푸블리카노>, <포풀리카노>라는 이름으로 불렷다는 
겁니다. 아마 <파울리키아니>, 즉 파울로키아누스 파와의 연고권을 
주장하고 싶었던 모양이지요? <갈리께 이티암 디쿤투르 아브 알리퀴스 
포펠리칸트>."
  "그랬구나."
  "그랬던 겁니다. 파울로키아누스 파는 9세가에 이르기까지 비잔틴 
황제의 속을 썩입니다. 결국 바실리우스 황제는, 에페소스에 있는 하느님의 
성 요한 교회를 능멸하고, 성수반의 물을 말에게 먹인 파울로키아누스 
파의 괴수 크리소케이르를 잡겠다는 서원을 세우기에 이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버르장머리구먼."
  벨보의 발이었다.
  "... 서원의 내용이라는 게, 크리소케이르의 대가리에 화살 세 대를 
쏘겠다는 것이었어요. 어쨌든 바실리우스 황제는 황군을 풀어 
크리소케이르를 뒤쫓게 됩니다. 이윽고 황군이 크리스케이르를 잡아 목을 
잘라 오자 황제는 그 머리를 탁자(창틀이나 반암 기둥이었는지도 모르죠) 
위에 올려 놓고는 슉,슉,슉... 화살 세 대를 날랍니다. 두 개는 양쪽 눈에 
꽂히고 하나는 입에 꽂히고 그랬다던가."
  "아무리 전설이라도 좀 심하다."
  디오탈레비의 반응이었다.
  "그러소 싶어서 그랬던 건 아닐거라. 신앙의 문제니까 그랬을 테지. 
계속하게, 까소봉... 우리 디오탈레비 씨께서는 신학적으로 미묘한 문제에는 
이해가 깊지 못하시니까 괘념 마시고..."
  "결론은, 십자군이 이 파울로키아누스 파를 조우하게 된다는 겁니다. 제 
1차 십자군 원정 때 십자군은 안티오키아 근방에서 이들을 만난답니다. 
당시 파울로키아누스 파는 아랍 인들과 나란히 싸우고 있었다지요.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 포위 공격 때도 파울로키아누스 파를 만납니다. 
파울로키아누스 파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적도 잇다니 놀랍지요. 
빌라르 두앙의 저서에 따르면, 필리포폴리스의 파울로키아누스 파는 
프랑스의 약을 올리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을 불가리아의 짜르(황제) 
요안니짜에게 넘겨주려로 했다는군요. 자, 바로 이 대목이, 성당 기사단과, 
우리가 풀고자 하는 수수께끼가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서앋ㅇ 기사단은 카타리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어요. 성당 기사단은 십자군 원정 때 파울로키아누스 
파를 만나 일종의 신비주의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성당 기사단은 이미 
그 이전에 밀교나 회교 종파들로부터도 그런 영향을 받은 전력이 있지요. 
성당 기사단의 족ㅈㄱ만 짚어 봐도 자면 해집니다. 성당 기사단은 발칸 
반도를 거쳐야 했거든요."
  "왜?"
  "왜냐... 제 6의 약속 장소는 예루살렘이었으니까요. 제 6의 약속 장소는 
<돌이 있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회교도들이 섬기는 돌 혹은 바위가 
있는 곳... 신발을 벗어 놓고 보아야 하느 신성한 돌이 어디에 있어요? 
예루살렘에 있는 오마르 사원 중심에 있지요. 이 자리는 한때 성당 
기사단원들이 섰던 자리이기도 하죠. 예루살렘에서 이들을 기다르는 
 드이 누군지,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위장한 채로 존속하고 있던 성당 
기사단 잔당의 핵심 세력인지, 포르투갈과 관련을 맺고 있던 
카발리스트들이었는지... 하지만 이 점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독일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려면 제5진, 즉 파울로키아누스 파가 기다리고 있던 발칸 
반도를 지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제  이 <계획>이 얼마나 대담하고 
합리 정연한지 아시겠어요?"
  "당신 말이 옳다고 할 수밖에... 그렇다면 포펠리카노는 발칸 반도 
어디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나?"
  "물으시니까 하는 말입니다만, 파울로키아누스 파의 당연한 계승 세력은 
불가리아의 보고밀 파였습니다. 그러나 프로뱅의 성당 기사단은,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 불가리아가 터키의 침략을 받고 향후 5세기 동안 그 지배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죠."
  "그렇다면 <계획>은 독일에서 불가리아에 이르는 도중에 중단되고 
말았다는 말 같은데... 그게 언젯적 일이지?"
  "1824년"
  디오탈레비가 불쑥 대답했다.
  "어째서?"
  벨보의 물음에 디오탈레비는 재빨리 다음과 같은 도표를 펼쳤다.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독일  불가리아  예루살렘
  1344      1464  1584    1704  1824      1944
  
  "1344년 여섯 집단의 제1진 대표들은 미리 정해진 여섯곳으  향한다. 
그로부터 120년 동안 각 집단은 6인의 대표에게 차례로 승계되고 1464년 
토마르의 6대 대표는 영국의 6대 대표와 합류한다. 1584년 영국의 12대 
대표가 프랑스의 12대 대표와 합류한다. 이렇게 120년 주기로 연쇄적으로 
전해지던 밀지가 파울로키아누스 파와의 회동 불발로 전해지지 못했다면, 
보라고, 1824년일 수밖에 없잖아?"
  "그렇다고 치고요. 내가 이상스럽게 생각하는 건, 그렇게 용의 주도한 
집단이 밀지의 6분의 4가 확보된 상태인데도 어떻게 그 <계획>이라고 
하는 걸 복원할 수 없었느냐는 겁니다. 불가리아 인들과의 약속이 수포로 
돌아갔다면 왜 그 다음 집단을 접촉하지 않았을까 하는 겁니다."
  벨보가 내 말에 대답했다.
  "까소봉, 당신은 프로뱅의 계획 입안자들을 과소 평가하고 있는 것 같군. 
계획 입안자들은 이 계획을 600년 동안은 숨기고 싶었을 테니,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겠나? 한 집단의 대표는 후계 대표를 만날 
장소만 알고 있었을 뿐, 차후계 대표를 만나는 장소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기가 쉬워. 따라서 독일 대표는, 만일에 불가리아 대표를 만나지 
못하면 그 다음 장소가 예루살렘이라는 걸 알 도리가 없지 않나? 예루살렘 
대표는, 자기네들에게 밀지를 전해 줄 전대표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도리 
없는 것이고... 당신은 정보의 읿부만 있어도 나머지는 추론하면 되는 줄 
아는데, 그건 밀지가 어떻게 나뉘어져 있는가에따라 형편이 달라지네. 
논리적으로 아구가 맞게 되어 있지는 않을거라 그 말이지. 따라서 밀지의 
한 조각이라도 없어지면 밀지 전체의 내용은 해독이 불가능해지네. 물론 
한 조각만 가진 사람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 도리가 없게 되어 있을테지."
  디오탈레비가 보충 설명을 했다.
  "생각해 보라고... 불가리아 회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유럽은 암흑의 무도회장이 되어 있을거라, 한무리가 다른 무리를 찾을 수 
없는 캄캄한 무도장... 이러니 정보 한 조각씩 가진 무리들은 저마다 
세계의 주인 노릇을 하는데 충분하다고 날뛸 게 아니겠나, 까소봉, 
지난번에 얘기한 그 박제사 이름이 뭐랬지? 어쩌면 <음모>는 지금도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도 몰라. 우리 역사라고 하는 것은 잃어버린 
밀지 복원을 위한 전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는거야. 우리가 보지 
못할 뿐, 보이지 않게 놈들은 우리 주위에서 암약하고 있는지도 몰라."
  바로 그 순간, 벨보와 나는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임에 분명하다. 서로 
말을 꺼내는 순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게다가 
우리는 적어도 프로뱅의 밀지 중두 마디 표현, 즉 <여섯 무리로 나뉘어진, 
서른여섯 명의 보이지 않는 자들>과 <120년의 주기>라는 표현은 장미 
십자단에 관한 논쟁에서도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독일인입니다. 장미 십자단 선언문을 다시 읽어 봐야겠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 선언문은 가짜라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요? 우리가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도 가짭니다."
  "하긴 그렇군... 그걸 잊고 있었네..."
  벨보가 중얼거렸다.
   
      69
  
  벨보는 그것을 잊고 있었다. 짧은 데도 종잡기 어려운 다음의 파일은 그 
시기에 씌어진 것인 듯하다.
  
  #파일명: 엔노이아(알글리에가, <신의 여성적인 부분>,<신의 좋은 
부분>이라면서 로렌짜 펠레그리니에게 붙인 별명. <엔노이아>는 그리스 
어로 <사고>, <이성>, <양식>을 의미한다. 벨보는 이 파일이 쓰여질 
무렵, 엔노이아를 상실한 채 심한 착란 증세를 보인다. 그는 까소봉, 
디오탈레비와 함께 장난삼아 재구하고 있는 성당 기사단의 역사를 실제로 
믿기 시작한다.)
  당신은 마약을 들고 갑자기 나타났다. 나는 피우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까짓 풀잎 같은 것으로 내 두뇌의 기능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다 (나는 
담배도 피우고 곡주도 마시고 있으므로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60년대 초, 몇 차롄가, 돌려 피우기 파티에서 강요를 당하다시피 하다가, 
그 침으로 미끈거리는 종이에 닿는 것이 싫어서 집게로 집어서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았을 뿐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당신이 권했다. 나는 그걸 당신이 자신을 내게 바치는 한 
방법으로 여기고 믿는 마음에서 한 모금 삼켜 보았다. 우리는 껴안고 춤을 
추었다. 요즘은 그렇게 꽉 끌어안고 춤추는 사람은 없다. 부끄럽게도 
말러의 교향곡 제 4번이 흐르고 있었다. 내 품안에 든 것은 흡사 늙은 
암양의 번지르르하고 주름진 얼굴을 하고 시시각각으로 부풀어오르는 
태초의 원형질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사타구니 깊은 곳에서 배암이 
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당신의 몸에 내 몸을 미착시키고 있었던 것 
같았다. 상승하기도 하고, 금으로 변하기도 하고, 잠긴 바운을 열기도 하고 
물건을 공중에 떠다니게 하기도 했다.그렇다. <메갈레 아포파시스>(그리스 
어로 <위대한 부정>, 혹은 <위대한 계시>)여, 천사들의 수인이여, 내가 
당신의 캄캄한 뱃속으로 파고들었을 때 당신은 분명히 그랬다.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사람이야말로 당신이 아니던가. 나는 
여기에 있다.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며 여기에 있다. 당신을 알아보지 
못해서 나는 번번이 당신을 잃지 않았던가? 당신을 알아보고도 두려워서 
번번이 당신을 잃지 않았던가? 당신을 알아보고도, 당신을 잃어 버려야 할 
것 같아서 번번이 잃지 않았던가?
  어젯밤에는 어디로 가버렸지? 오늘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려니 머리가 
아프더라.
  #
  
      70
  
  나는 먼저 장미 십자단의 두 선언서인 '파마'('파마 프라테르니타티스' 즉 
'우애단의 명성')와 '콘페시오'('콘페시오 프라테르니타스 로세아에 크루치스 
아드 에루디토스 에우로파에', 즉 ' 유럽의 지성인들에게 보내는 장미 십자 
우애단의 신조')를 읽었다. 이 두 선언서를 기초한 장본인인 것으로 보여 
요한 발렌틴 안드레아에의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적 결혼'도 
읽었다.
  이 두 선언서가 독일에 나타난 것은 1614년에서 1615년이다. 이때는 
프랑스의 성당 기사단과 영국의 성당 기사단이 만나고 나서 30년이 지난 
시점이고, 프랑스 성당 기사단과 독일의 성당 기사단이 만나기 1백여 년 
전에 해당하는 시점이다.
  나는 선언서가 밝히고 있는 것을 믿고자 해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 같아서 그 배후의 숨은 뜻을 파악하기 위해 
선언서를 읽었다. 배후의 의미를 읽기 위해서는 어떤 대목은 그냥 
지나치고 어떤 대목은 다른 대목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독법이야말로 <귀신 떨거지들>이 쓰는 방법이자, 그들의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독법이기도 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이었던가? 정교하나 계시의 시대를 읽기 위해서는 속된 논리적 
추론이나 단조로운 논리 전개를 좇을 필요도 없다는 것 아니던가."
  축자적으로 받아들일 경우 이 두 문서는 실로 어거지와 수수께끼와 
모순의 덩어리였다. 따라서 피상적인 의미만을 좇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선언서는 심오한 정신적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엾은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의 하소연을 전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두 선언서는, 어떤 부분은 가리되 어떤 부분은 드러내게 되어 
있는 어떤 틀을 덮고 읽어야 할, 말하자면 두 문자만 읽어야 하는 
프로뱅의 빌서와 유사한 암호 메시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밀서를 해석할 어떤 실마리도 없었다. 따라서 있다고 가정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나는 오로지 의심하는 자세로 그 문서를 읽어 나갔다.
  
  문서가, <프로뱅의 계획>을 의논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서두는 이렇게 된다. C.R 의 무덤(프로뱅의 <그랑쥬 오 딤므>, 즉 
<십일조 창고> 우화에 따르면 1344년 6월 23일 밤 이후)에는 120년 뒤의 
후세 사람들을 위한 보물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 보물이라는 것이 돈이 
아니 것만은 분명하다. 문서에는 연금학자들의 끝없는 탐욕을 경계하는 
대목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문서는 약속된 내용이 장차 역사의 물길을 
바꿀 것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이 혹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할까 봐, 제2선언문은 <미란다 섹스타에 아에타티스>(여섯 
번째 시대의 기적),즉 여섯 번째의 기적이자 마지막 회동의 기적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선언문은 이 경고를 이렇게 
되풀이하고 있다.
  "... 하느님의 여섯 번째 촉대의 불빛이 우리에게 내림으로서 하느님을 
영광되게 할 수 있다면, 읽어서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다면... 노래(밀지의 
낭독!)를 통하여 우리가 돌 (철인의 돌)을 진주와 보석으로 변용시킬 수 
있다면 좀 좋으리..."
  이 밖에도 선언문에는 난해한 비밀에 관한 언급, 유럽에 세워질 정부, 
장차 성취되어야 할 <큰 사업>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전해지는 바로, C.R은 스페인(포르투갈?)으로 내려가 <미래 세기의 참 
징후를 어디에서 읽을 것인가>하는 문제를 두고 식자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하릴없었다고 한다. 왜 그는 헛수고를 했던 것일까? 혹시 17세기 
초 독일의 성당 기사들이 극비의 밀지를 공개하고, 이로써 밀지 승계 
과정이 사실상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독일의 성당 기사들이 노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디오탈레비다 말한 대로 선언문은 <계획>을 복원시키기 위한 것임에 
분명했다. 선언서에 그 죽음이 언급된 최초의 계승자는 <I.O 형제>였다. 
그는 영국에서 <종말을 맞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첫 
번째 회동 장소로 의기양양하게 나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두 번째 계승, 세 
번째 계승도 언급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롭다. 제 2진인 
영국의 계승자들은 제 3진인 프랑스 계승자를 1584년에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17세기 초두에 씌어진 이 기록은 1,2,3진까지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전하고 있을 뿐이다. 안드레아에가 젊은 시절에 쓴, 다시 말해서 
선언서 (이것이 일찍이 1614년에 나왔다고 하더라도)보다 먼저 씌어진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적 결혼에는, 세 개의 웅장한 교히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세 곳은 이미 항간에 익히 알려져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문서를 꼼꼼히 읽는 과정에서 나는, 두 선언서가 '... 화학적 
결혼'에서 주장한 바를 똑같은 어휘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흡사 이 양자가 쓰여질 동안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던 것 
같았다.
  가령, 원수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획의 실현을 저지함에도 
불구하고 때는 왔다, 그 순간이 왔다는 점을 왜 그렇게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무슨 계획이 실현된다는 것인가?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C.R.의 최종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었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이르지 못했던 것일까? 
아랍 인들은 정보를 교환하는데 독일의 식자들은 상부 상조를 모른다는 
점도 선언서에서는 강조된다. 이게 무슨 뜻일까? <풀밭을 독차지하려는 
규모가 큰 무리>에 대한 언급도 있다. 이것은 사리 사욕을 좇느라고 
<계획> 전체를 뒤엎으려는 무리가 있다는암시, 이 때문에 계혹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암시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 수 있는가?
  '파마...'에는 일찍이 누군가가 난해한 서법(물론 프로뱅의 밀지)을 
고안했다는 말과 함께, <하느님의 시계는 분까지 치는데도 우리의 시계는 
시조차 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하느님의 시계 소리를 놓친 것은 
누구일까? 제때에 특정한 제 장소에 이르지 못한 것은 누구인가? 이 
문서에는 또, 한 무리의 추밀 요원 형제들이 밀지를 공개하레다가 대신 
세계 도처로 뿔뿔이 흩어지기로 했다는 말도 있다.
  선언문은 불안과 의혹과 당혹감으로 가득 차 있다. 제1진에 해당하는 
계승자 형제들은 각각 <그럴 자격이 있는 계승자들>에게 밀지를 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들이 서로 짜고 저희 무덤이 있는 곳조차 비밀에 
붙이는 바람에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는 대목도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일 것인가? 소재 불명의 무덤이란 무슨 뜻일까? 내가 
보기에, 선언서가 쓰여진 것은 중요한 정보가 유실되었기 때문인 듯했다. 
선언서 곳곳에서 나는, 이 정보를 아는  자가 있으면 나오라고 호소하는 
대목을 만날 수 있었다.
  '파마...'의 끝 부분을 읽으면서 내 짐작은 현실이 된다.
  <다시 한 번 유럽의 식자들에게 호소하거니와... 우리의 제안을 면밀히 
가늠하시고... 그들의 의향을 알게 하시라... 지금으로서는 우리의 이름을 
드러내기 어려우므로... 우리에게 이름을 드러내고 싶은 분은 개인적으로 
우리를 접촉하시든지... 혹 거리끼시면... 서면으로도 가할 것이라...>
  이것이야말로 아르덴티 대령이 노리던 것임에 분명했다. 대령은 자기 
이야기를 출판함으로써 그들에게 자기 이름을 알리고, 이로써 그들의 
침묵을 깨뜨리려고 했음에 분명했다.
  그런데 선언서 곳곳에는 논리상의 간극, 탈문, 주석이 붙어 있었다. 
C.R.의 무덤에는, 회동의 간격을 연상시키는 <포스트 120 아노스 
파테보(120년 뒤에 소생하리니)>라는 명문뿐만 아니라, <네쿠아쿠암 
바쿰>이라는 명문도 있었다. <네쿠아쿠암 바쿰>은 <빈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사이가 뜨면 안 된다>로 해석되어야 할 것 같았다. 
사이가 뜨고 말았으니, 마땅히 채워져야 했던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자문하면서 따져 보았다.
  왜 이런 일들이 독일에서 논의되었을까? 독일 성당 기사단 제4진은 그저 
가만히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면 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독일의 성당 
기사들은 1614년에 마리엔부르크에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불평할 수 가 없었다. 마리엔부르크에서의 회동은 1704년에야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으므로...
  가능한 결론은 한 가지뿐이었다. 독일의 성당 기사들이 불평하는 것은 
그 전의 회동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열쇠는 바로 이것이었다! 독일 성당 기사들(제4진)은 영국 성당 
기사들(제2진)이 프랑스 성당 기사들(제3진)들과 회동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열쇠는 바로 이것이었다. 선언서에는 유치할 
정도로 그 의미가 빤한 알레고리가 있었다. 즉, C.R.의 무덤이 개봉되고 
보니, 제1진과 제2진 형제들의 서명은 들어 있는데 제3진의 서명은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포르투갈 성당 기사들과 영국 성당 기사들은 
거기에 있는데 프랑스 성당 기사는 거기에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영국 성당 기사들은 프랑스 성당 기사들을 놓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 성당 
기사들의 소재를 알고 있는 것은 영국 성당 기사들 뿐이었다. 이것은 독을 
성당 기사들의 소재를 알고 있는 것도 프랑스 성당 기사들 뿐이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국 기사들이 프랑스 기사들을 놓쳤기 때문에, 설사 프랑스 
기사들이 1704년에 독일 기사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전할 수 있는 
밀지는 전해야 하는 밀지의 3분의 2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계획>을 복원시키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장미 십자단이 전면으로 나선 것이었다.
  
      71
  
  나는 벨보와 디오탈레비에게, 내가 그동안 알아낸 것들을 보고했다. 두 
사람은 선언서의 밀지가, <귀신 떨거지들>에 의해서도 명백하게 
해석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오탈레비가 말했다.
  "좋아, 밀지의 내용이 분명해진 이상, 이것이 독일 기사들에게서 
파울리키아누스 파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단절되었다는 생각에 매달릴 
필요가 있겠다. 사실상 단절된 것은 1584년 영국에서 프랑스에 이르면서 
단절되었지만."
  "그렇다면 1584년에 영국 기사들이 프랑스 기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일까?"
  벨보가 물었다.
  디오탈레비가 대답을 하지 모하자 벨보는 그 답을 찾는답시고 
아불라피아 앞으로 돌아앉았다. 그리고는 시험삼아 두가지 임의 자료를 
입력시켰다. 그 자료는 다음과 같다.
  
  #
  미니 마우스는 미키 마우스의 애인이다
  9월, 4월, 6월, 11월은 각각 30일씩이다
  #
  
  "어디 보세. 미니 마우스는 미키 마우스와 만날 약속을 했는데, 일이 
잘못 되려고 그랬는지 미니 마우스는 9월 31일에 약속 장소로 나갔다. 
미키 마우스는 어떻게 되겠는가..."
  "담깐만요! 미키 마우스와 1584년 10월 5일에 약속했다고 하더라도 미니 
마우스는 똑같은 실수를 했을 거라고요!"
  "무슨 소린가?"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월력 개혁! 야, 이제 알았다! 1582년은 
그래고리우스 력이 발효한 해입니다. 율리우스 력의 단점을 보완한 
그레고리우스 력! 율리우스 력의 오차를 조정하기 위해 10월 5일부터 14일 
까지, 10일간을 없애 버린 해가 1582년이에요. 그러니까 1582년의 10월 4일 
다음날은 10월 15일이 되었던 거죠."
  "하지만 프랑스에서의 약속은 1584년의 성 요한의 날 전야, 그러니까 
6월 23일인 걸..."
  "맞아요. 하지만, 이제 생각났어요. 이 개혁은 유럽의 모든 국가가 바로 
채택했던 건 아닙니다..."
  나는 서가에 꽂혀 있던 만세력을 뽑아 펴보았다.
  "... 여기 있군요. 그레고리우스 력이 선포된 것은 1582년 맞습니다. 이때 
10월 5일과 14일 사이, 즉 10일간을 없애버린 것은 교황청뿐입니다. 
프랑스가 이 월력을 채택한 것은 1583년의 일입니다. 그때 프랑스는 
12월10일부터 19일 사이 즉 10일간을 없애 버린 겁니다. 다시말해서 12월 
9일 다음날은 12월20일이 온거지요. 독일의 경우는 다소 복잡하군요. 
가톨릭에서는 보헤미아와 함께 1584년에 이 월력을 채태합니다. 그러나 
신교 쪽에서는 근200년 뒤인 1752년에야 이걸 채책하게 됩니다. 
불가리아가 1917년에 이르러서야 이 월력을 채택하고요. 이거, 유념해 둘 
필요가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면 영국은 어떻게 되었나... 영국은 1752년에 
채택합니다. 짐작이 가는군요. 가톨릭이 싫었을 테니... 요컨대 앙글리칸도 
200년을 버티었던 겁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프랑스가 달력에서 10일을 
없앤 것이 1583년이 니까 1584년 6월쯤에는 전국민이 새 갈력에 꽤 
익숙해져 있었을 테죠? 그러나 프랑스 달력의 6월 23일이 영국에서는 
여전히 6월 13일이었던 겁니다. 두 분이 만일에 영국인이라면, 두 분이 
영국의 성당 기사라면 이걸 알았을 것 같아요? 어림도 없어요. 지금도 
자동차를 길 왼쪽으로 몰고 있는 사람들, 수백 년 동안이나 십진법을 
무시하고도 태연한 사람들이 영국인들입니다. 하여튼 영국의 성당 
기사들은 저희 잘력에 맞추어 1584년 6월 24일에 약속 장소인 <은신처>로 
갑니다. 그날은, 프랑스 달력으로는 벌써 7월 3일이죠. 성격상, 이 모임이 
팡파르가 울리는데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지 않을 터임에 분명합니다. 
은밀한 모처에서 모시에 열리는 듯. 마는 듯, 그렇게 가만히 열리게 되어 
있었을 테죠, 자, 프랑스 기사들은 6월 23일 약속 장소로 나갑니다. 
그리고는 하루를 기다리고 이틀을 기다리고 사흘을 기다리고 한 주일을 
기다리다가, 이윽고 무슨 변이 생긴 모양이구나, 하고는 그곳을 떠나 
버립니다. 어쩌면 7월 3일 전야에 포기하고 돌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요컨대 두 사령관은 숨바꼭질을 한 겁니다."
  "끝내 준다! 그랬겠어. 그런데 왜 독일의 장미 십자단이 나서고 있나? 
영국의 장미 십자단이 나서지 않고?"
  벨보가 물었다.
  
  나는 하루를 더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날 오후부터 카드 색인을 뒤져 
자료를 찾아낸 나는 다음날 의기 양양하게 사무실로 달려갔다. 내게는 
실미리가, 여느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터인 실마리가 있었다. 내가 
누구던가? 샘 스페이드가 아니던가... 샘 스페이드의 독수리 눈에 하찮은 
자료, 무의미한 자료는 있을 수 없는 법... 1584년을 전후해서 마술사이자 
카발리스트이며 영국 여왕의 점성술 자문관인 존 디이는 율리우스 력을 
그레고리우스 력으로 개혁하는 문제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영국의 성당 기사들은 1464년 포르투갈의 성당 기사들을 만납니다. 그 
이후로 브리튼 섬은 카발리즘의 열기로 시끌시끌해집니다. 어쨌든, 영국의 
성당 기사들은 프랑스 기사들과의 회동을 준비하면서, 포르투갈에서 배워 
온 카발리즘을 공부합니다. 존 디이는 바로 이런 마술과 연금술 
르네상스를 선도한 장본인입니다. 그의 개인 장서만도 4천권이나 되었고, 
그 장서의 대부분이 프로뱅 성당 기사단 정신에 관한 것이었다니 
대단하지요? 디이의 
'보나스 히에로글리피카 (우의화의 세계)는 연금술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타불라 스마락디나(에메랄드 총서)'에서 직접 영감을 받고 쓰여진 
책입니다. 1584년부터 디이는 트리테미우스의 '스테가노그라피아'를 
읽습니다. 물론 원고 상태에서 읽었을 겁니다. 이 책이 활자화한 것은 
17세기 전반의 일이니까요. 당시 디이는 불발로 끝난 회동의 영국 측 
대표로서, 회동이 이루어지지 못한 까닭을 연구하고 있었지요. 천문학에도 
밝았던 그는 어느 날 활연히 깨닫고 이마를 칩니다. 아이고, 이런 
머저리같으니, 내가 왜 진작에 그 생각을 못했다고...! 엘리자베드 
여왕한테서 영지를 받은 디이는 자기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그레고리오스 
력을 연구합니다. 물론 때가 늦었던 거지요. 디이로서는 프랑스 쪽 기사를 
만나기는 만나야 하는데 어떻게 만나야 할지 알 도리가 없었어요. 그런데 
<미텔오이로페이이세>에는 디이가 접촉할만한 인사가 있습니다. 당시 
루돌프 2세 치하의 프라하는 거대한 연금술 실험실을 방불케 하고 
있었어요. 디이는 프라하로 가서 쿤라트를 만납니다. 바로 저 유명한 
'암피테아트룸 사피엔티아에 아에테르나에(영원한 예지의 원형 극장)'의 
저잡니다. 쿤라트의 우의적인 판화는 안드레아에와 장미 십자단 
선언문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죠. 하지만 디이가 프라하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그것은 나도 모릅니다. 하여튼 디이는 회동 불발로 인한 
실의에 빠져 있다가 1608년에 사망했어요.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런던에는, 성당 기사단의 중흥을 위해 
노력하는 또 하나의 디이가 있었으니까요. 저서 '새 아틀란티스'에서 장미 
십자단을 언급한 사람... 바로 프랜시스 베이컨입니다."
  "아니, 베이컨이 정말 장미 십자단을 언급하고 있나?"
  벨보가 물었다.
  "엄격하게 말하면 베이컨이 언급하고 있는 건 아니고요... 존 
헤이든이라는 사람이 '성지'라는 제목으로 '새 아틀란티스'를 개작하는데 
거기에 장미 십자단이 언급됩니다. 하지만 그게 그겁니다. 베이컨은, 
우리가 익히 아는 어떤 이유 때문에 조심하느라고 부러 언급하지 않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언급한 거나 사실은 다를 것이 없죠."
  "안 믿는 자에 복이 없다나..."
  "그렇습니다. 영국 기사단과 독일 기사단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노력은 베이컨에서 시작됩니다. 1613년, 제임스 1세의 딸 엘리자베드는 
라인 지역의 선거후인 프리드리히 5세와 혼인합니다. 그런데 루돌프 2세의 
사후, 프라하는 이상적인 연금술의 도시가 못 되었어요. 반면에 
하이델베르크가 부상하게 됩니다. 선거후와 공주의 결혼 축하 행사가 
있었을 때 이 생사를 주관한 사람이 바로 베이컨입니다. 베이컨은, 언덕 
위로 기사들이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기사도의 알레고리를 공연합니다. 
이로써 베이컨이 디이의 후계자가 된 것은 명백해집니다. 영국 성당 
기사단의 사령관이 된 것이죠..."
  "하기야 베이컨이 세익스피어 희곡의 진짜 필자니까... 세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다시 읽어 봐야겠네. <계획>이라는 측면에서 말일세. 성 요한의 밤 
전야라는 건, <한여름 밤의 꿈>일 테지..."
  벨보의 말이었다.
  "6월 23일이 한여름인가요, 뭐?"
  "시인의 특권이라는 걸세. 사람들이 왜 이 명백한 단서를 간과하고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이렇게 명명백백한 것을..."
  "밤낮 하는 말이지만, 합리주의적인 사고 때문에 인류는 길을 잃은 
거라고..."
  디오탈레비의 말이었다.
  "까소봉에게 이야기를 계속하게 하려면 김 좀 빼지 마. 이친구, 
광장한데, 놀랐어..."
  "계속할 게 있어야 계속하죠... 런던에서 축하 행사가 있은 뒤에 
하이델베르크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있게 됩니다. 피에드몬트에서 본 
가공원 기억하고 있겠지요? 살로몽 드 꼬오가 선거후를 위해서, 우리가 
피에드몬트에서 본 것과 비슷한 가공원을 설계해 준 것도 그땝니다. 이 
행사에는 상징적인 내용이 담긴 무대 마차가 등장합니다. 신랑인 선거후를, 
아르고 원정대장 이아손에 견주기 위해서지요. 무대 마차에 실린 두 척의 
모형 원정선 마스트에는 금양모피와 가터의 상징이 각각 내걸립니다. 두 
분은, 내가 포르투갈의 토마르에서 본 기둥에도 금양모피와 가터가 새겨져 
있었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아구가 척척 맞아 들어가지요? 그러다 
세월이 흐르자 장미 십자단 선언문이 나옵니다. 독일의 성당 기사단이 
영국의 성당 기사단에게, 도와줄 테니까 일사불란한 <계획>에 따라 
유럽을 재통일하자는 것이죠."
  "그렇다면 독일인들이 노린 것은 정확하게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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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언문을 공표한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지요. 프랑스 성당 기사단에 
협조를 호소하는 동시에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 지리멸렬해 있던 
독일 의 성당 기사단을 재결집시키는 것이었지요. 사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엉망진창인 곳이 독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선언문이 공표되고부터 
1621년까지 무수한 답신이 장미 십자단으로 밀려듭니다."
  나는 장미 십자단 선언과 관련해서 그 뒤로 출판된 무수한 소책자들을 
예로 들었다. 암파로와 함께 살바도르로 여행했을 때 내가 읽은 것도 그런 
소책자 중의 하나였다.
  "... 그 많은 책자 중에는 밀지의 요체를 아는 사람의 작품도 있을 수 
있고, 선언서를 글자 그대로 믿는 바람에 광신과 환상의 바다를 
허우적거리는 미치광이의 작품도 있겠지요. 장미 십자단의 작전을 
봉쇄하려는 앞잡이나 사기꾼의 책도 물론 있을 수 있고요. 하여튼 영국의 
성당 기사들오 이 논쟁에 가세하여 물꼬를 트려고 합니다. 영국의 성당 
기사였던 로버트 플러드가 한 해에 무려 세 권에 달하는 책을 써서 선언서 
해석의 오류를 바로잡으려 했던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죠. 하지만 
선언서의 반응은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빠집니다. 30년 전쟁이 발발한 
거죠. 팔라틴 선거후는 스페인에 대패하고, 선거후의 영토와 
하이델베르크는 약탈당합니다. 보헤미아는 화염에 휩싸이고요. 영국의 성당 
기사들은 프랑스로 돌아가 프랑스에서의 사업 추진을 꾀합니다. 1623년에 
장미 십자단이 파리에 나타나 과거에 독일 성당 기사단에 그랬듯이 
이번에는 프랑스 성당 기사단을 회유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파리의 
장미 십자단을 중상하는 자들의 글 기억하시죠? 장미 십자단을 불신하는 
자들, 장미 십자단의 계획을 사전 보쇄하려던 자들의 글 말입니다. 중상 
모략하려는 세력에서는 장미 십자단원들을 악마 숭배자들이라고 했어요. 
그러나 중상 모략이기는 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어요. 
장미 십자단이 마레 지구에서 회동한다는 암시가 있었으니까?"
  "무슨 말인가?"
  "파리의 지리 잘 아시잖아요? 마레 지구는, 성당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자 우연찮게도 유대 인 게토 지역이기도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중상 
모략하는 세력은 장미 십자단이 이베리아의 카발리스트 교파인 
<알룸브라도스 파>(광명파) 와 접촉한다고 주장합니다. 장미십자단을 중상 
모략하는 세력은 명목상으로는 36명의 보이지 않는 추밀단원들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이 노리는 것은 이들에 대한 방패막이 
노릇입니다. 추기경 리슐리와의 사서를 지낸 가브리엘 노데는 
'엥스트뤽시옹 아 라 프랑스 쒸르 라 베리떼 드 리스뜨와 르 데 프레르 드 
라 로즈 - 크롸'(프랑스 독자들을 위한 장미 십자단사 지침)를 쓰지요. 이 
지침이 뭐라고 했지요? 노데는 성당 기사단 제3진의 대변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장미 십자단과는 상관 없는 일에 끼여든 모험가였을까요? 노데는 
장미 십자단을 미치광이 악마 숭배자들의 집단으로 매도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장미 십자단원들이 실재한다는 암시를 독자들에게 던집니다. 
그럴 수밖에요? 제3진을 제외하고도 3개진이 더 있었으니까요. 노데는, 
장미 십자단의 한 진영은 바다 위로 떠오른 인도의 어느 섬에 있다는 둥, 
동화 같은 소리도 더러 하고 있지만, 그 중의 한 진영은 파리의 지하에 
있다는 놀라운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30년 전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군?"
  벨보의 질문.
  "물론이죠. 리슐리외는 노데한테서 독점 정보를 입수합니다. 리슐리외는 
여기에 한몫 끼고 싶어서 손을 쓴 것은 좋은데 그만 악수를 쓰고 맙니다. 
군대를 동원함으로써 일을 그르친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 두 가지 더 있습니다. 하나는 1619년에 그리스도 기사단이 
포르투갈의 토마르에서 46년간의 침묵을 깨고 회동햇다는 점입니다. 그 
전의 회동이 이루어진 것은 1573년인데, 이것은 1584년이 오기 11년 
전입니다. 1573년의 회동은 영국의 성당 기사들과 함께 파리 회동을 
준비하기 위한 예비 회합이었을 테죠. 그런데 장미 십자단 선언이 나온 
뒤에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회동합니다. 왜? 영국 기사단에 합류할 
것인지, 독자적인 노선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회합이었을 
겁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미궁에 빠진 사람들 같군. 한 무리는 이리 가자고 
하고 또 한 무리는 저리 가지고 하고. 귀에 들리는 구원 요청의 화답이 
엉뚱하게도 적의 음성이거나, 저희들 목소리의 메아리거나 할 경우 대책이 
없지. 암중모색할 도리밖에... 그동안 파울리키아누스 파와 예루살렘 
기사단에서는 뭘 하고 있었을까?"
  벨보의 질문에 디오탈레비가 대답했다.
  "그거야 모르지... 하지만 이 시대가, 이츠하크 루리아의 카발라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용기의 폭발> 이론이 유행했고... '토라'가 
불완전하다는 소문이 나돌던 시대라는 것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거라. 
폴란드의 하시디즘 문서 중에는, 다른 사건이 터지면 새 문자 조합이 
탄생할 거라고 주장하는 문서도 있었다는군. 하짐나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은 카발리스트들의 태도라고, 독일인들이 날뛰는 걸 카발리스트들이 
좋아할 리 없지. 토라 조합의 적법한 계승은 극비 중의 극비라고... 거룩한 
그분밖에는 모르는 일이니, 하느님을 찬양할진저... 이 친구 때문에 내가 
객쩍은 소리를 하고 있지 않나... 내 말은 이 <계획>에 카발라가 
개입했더라면..."
  "<계획>이 실재하는 이상 뭔들 개입하지 않았겠나? <계획>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그러니까 자네 말마따나 객쩍은 소리 말라고. 
까소봉이 지금 실마리를 풀어 가고 있잖아."
  벨보가 핀잔을 주었다.
  "맞습니다. 일련의 정황 증거가 있지요. 1584년의 회동이 실패로 
돌아가기 전에 벌써 존 디이는, 지도 연구와 해양 탐험 지원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누구와 손잡고 일했는지 아십니까? 포르투갈 왕실의 우주 
형태학자 페드르 누네스... 바로 그 사람입니다. 디이는 중국에 이르는 서북 
항해로 개척에도 관여한 바 있는가 하면, 프로비셔라는 사람의 탐험에 
경비를 대기도 합니다. 포로비셔는 북극 근처까지 가서 에스키모를 하나 
데리고 온 사람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에스키모를 몽골인이라고 했지요. 
프랜시스 드레이크를 부투겨 새계 일주 항해를 감행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디이는 탐험대를 동쪽으로 보내는데 전력을 기울입니다. 
왜? 동방이야말로 모든 은비학 지식의 원천이었거든요. 무슨 
탐험대였는지는 잊었습니다만, 디이는 탐험대의 출발에 즈음해서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느라고 천사를 부르는, 초혼식 비슷한 의식도 거행한 
모양입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가?"
  "내 생각입니다만 디이가 탐험에 그토록 관심을 기울인 까닭은 미지의 
세게에 대한 탐험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디이의 진짜 목적은 지도 
제작에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디이는 당시는 당시의 위대한 지도 
제작자들이었던 메르카토르나 오르텔리우스 같은 사람들과 공동 연구도 한 
모양이니까요. 디이는 자기 손에 들어온 밀지 쪼가리를 접하고는 나름대로, 
밀지 문제는 어차피 최종 단계에서는 지도의 완성이 불가결하다고 보고 
지도를 통해 밀지를 해명하려고 했던 거죠. 이런 의미에서 디이는 우리 
가라몬드 사장과 흡사한 데가 있어요. 디이 같은 당대의 학자가 율리우스 
력과 그레고리우스력 사이의 오차를 모르고 있었을 리 없어요. 어쩌면 
디이는 다른 진영을 배제한 상태에서 밀지를 복원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계획>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마술적인 혹은 과학적인 
수단을 통하여 밀지를 복원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성질이 급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고나 할까요. 디이의 출현은 
부르주아 정복자의 탄생과 같은 겁니다. 바야흐로 기사도를 지탱하던 
연대의 원리가 와해되고 있었던 거지요. 디이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러 
있었다면 베이컨의 생각은 능히 상상할 수 있겠지요? 요컨대 디이를 
시발점으로 해거, 영국인들은 신학문의 비밀을 이용해서 단독으로 그 
밀지를 찾으려고 하 겁니다."
  "그럼 독일인은?"
  "독일인들은... 독일인들은 전통에 붙잡혀 있었다고 봐야죠. 지난 두 
세기의 철학사만 가지고도 이것을 설명할 수 있어요. 앵글로 색슨의 
경험주의 철학 대 독일의 낭만주의적 관념론 철학..."
  "한 장 한 장, 우리는 세게의 역사를 복원하는 셈이군. 하느님의 책을 
다시 쓴다.... 좋지, 좋고말고..."
  디오탈레비가 중얼거렸다.
  
      73
  
  야코포 벨보는 이날 이후로 장미 십자단 관계 서적에 파묻혀 있었던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동안 확보한 자료를 놓고 토론할 때마다 그는 
지극히 피상적인 개요만을 공개했다. 그러넫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피상적인 개요에서 귀중한 시사를 얻어 내고는 했다. 이제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아불라피아에다 풍부한 이야기를 창작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에는 그의 사적인 신화와 이 책 저 책에서 끌어들인 인용문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이야기를 꾸미고 잇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귀띔한 일은 한번도 없다. 그는 허구의 영역에 대한 자기 재능을 
용감하게 시험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어쩌면 그는 <쉬신 떨거지>처럼 
자기가 왜곡시키는 대하소설에다 자기 자신을 정의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파일명: 디이 박사의 밀실
  
  오랫동안 나는 나 자신이 탈보트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자신을 
켈리(1968년에 토리노에서 출판된 안젤로 마리아 리뺄리의 저서 '프라가 
마기카'에는 존 디이와 조수 에드워드 켈리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와 있다. 
벨보의 파일을 읽는데 필요한 켈리의 신상을 요약한다.
  켈리는 1555년 영국 태생의 강신술사, 별명은 <탈보트>. 1580년 증서 
위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랭카스터의 사형 집행인에 의해 양쪽 귀가 
잘렸다. 켈리는 <탈보트>로 이름을 바꾸고, 귀가 있던 자리를 덮을 수 
있도록 머리를 기르고는 랭카스터에서 도망친다. 방랑 중 웨일즈에서 
필사본 고서를 한 권 입수하게 된다. 연금술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철인의 돌>과 무슨 관계가 있는 책임을 알아본 켈리는 이것을 가지고 
당시 모틀레이크에 있던 존 디이를 찾아가 조수가 된다.
  뒷날 존 디이와 함께 프라하로 간 켈리는 루돌프 2세에게 마술과 
연금술을 시범하고 기사 칭호를 받음으로써 부와 명에를 누린다. 그러나 
1591년 결투하다가 왕의 신하를 죽이게 되고 이 때문에 옥탑에 유폐된다. 
탑에 유폐되어 있을 동안 이 탑을 탈출하다 한쪽 다리를 잃고 이ㅢ족을 
쓰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자유의 몸이 되나, 오래지 않아 다시 빚 때문에 
모스뜨 성에 유폐된다. 여기에서 다시 도주를 시도하다 성한 다리까지 
잃은 켈리는 1597년 음독 자살했다.
  벨보의 파일에서는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고스트라이터로 등장한다.)라고 
부르기로 작정한 순간부터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한 짓이라고는, 
흔히들 그러듯이 몇 건의 서류를 위조한 것뿐이다. 그런데도 여왕의 
부하들은 무자비했다. 그루터기만 남은 귀를 가리려면 나는 정수리가 
뾰족한 이 검은 모자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나를 손가락질하면서 
사람들은 마법사라고 욕한다. 하라지... 마법사로 소문난 디이 박사도 
멀쩡하게 사는데 어떠랴...
  나는 그를 만나러 모틀레이크로 갔다. 그는 지도를 읽고 있었다. 
교활하고 어딘가 악마 냄새가 풍기는 늙은이였다. 교활한 눈가로 심술기가 
번뜩거렸다. 그는 앙상한 손으로 염소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이건 로저 베이컨의 원고인데, 루돌프 황제가 내게 빌어 준 것일세. 
자네 프라하를 아나? 당부하거니와 프라하에 한번 가보게. 자네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게 거기에 있네. <타불라 로코룸 레룸 에트 
테사우로룸 아브릇콘디토룸 메나바니>(연금술 대전 있는 곳이 표시된 
지도와 소몰이의 비보)...
  그의 모습을 곁눈질하고 있는데 문득 암호문으로 쓰인 글이 눈에 
뜨였다. 그러나 내가 훔쳐보는 순간 박사는 노랗게 바랜 종이 더미 아래로 
그 원고를 감추었다. 종이가 노랗게 바랜 종이 더미 아래로 그 원고를 
감추었다. 종이가 노랗게 바래는 시대를 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설사 종이가 제지공의 손을 떠나는 순간에 노랗게 마래 버린다고 
하더라도...
  나는 디이 박사에게 내 작품을 보여 주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어서 
찬연하고, 세월의 그늘이 진데다 내게서 아득히 멀어져서 검게 퇴색한 
암흑의 여왕에 대해 쓴 시, 비극의 초고, 소설 '칠해의 정복자 짐', 소설 
'칠해의 정복자 짐'에서, 짐은 월터 롤리 경과 함께 영국으로 귀환한 
다음에야 근친 상간을 범한 형 헨베인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디이 박사의 독후 소감.
  "켈리, 자네 재능이 있군 그래. 게다가 자네는 돈이 필요하지? 자네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사람이 젊은 사생아가 하나 있는데 마침 나는 이 
젊은이를 돕고 싶던 참일세. 이 젊은이를 도와 명예와 영광의 사다리를 
오르게 하고 싶은 것이네. 그런데 이 젊은이에게는 별로 재능이 없어. 
그러니까 자네는 은밀하게 이 젊은이의 영혼이 되어 주게. 쓰게. 쓰면서 이 
젊은이 영광의 그늘에 살아라, 그 말이야. 그러나 그 영광이 자네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와 켈리 자네 뿐일 것이네."
  이렇게 해서 나는 여러 해에 걸쳐, 여왕과 잉글랜드의 모든 독자들을 
위해서, 그 창백한 젊은이의 이름으로 쓰고 또 썼다. <이프 아 하브 시인 
퍼더, 잇 이즈 바이 스탠딩 온 예 쇼울더 오브 어 드워프>(이탈리아 어 
원서에 영어로 나와 있는 이 문장의 의미는, <내가 다른 사람에 견주어 
세상을 좀더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난쟁이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 루키아누스, 사르뜨르의 베르나르, 아이작 뉴턴, 죠지 
하버트 등이 인용한 바 있는 명구.)... 내 나이 서른... 어느 개자식이 나이 
서른 살 때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 창백한 젊은이에게 말했다.
  "윌리엄, 자네 머리카락을 길러 보게, 귀가 덮일 때까지... 잘 어울릴 
것이네."
  내게는 한 가지 계획이 있었다(나와 그의 입장을 바꾸어 버리는 계획).
  내가 어떻게 이 <창을 휘두르는 자>(영어로 하면 <스피어 셰이커>. 
<셰이커 스피어>... 두 단어의 순서를 바꾸어 읽으면 발음이 
<셰익스피어>와 비슷해진다)를 미워하면서 살 수 있겠는가? 실재로 
이자가 바로 나인데... <댓 스위트 디이프 위치 소울리 롭스 프롬 
미>(나를 이용해서 살고 있는 이 나약한 도적놈을.)...
  디이 박사가 나에게 이른다.
  "<컴 다운>(진정하게) 켈리, 그늘에서 자라는 거... 그거 세계 정복을 
준비하는 사람의 특권일세. <키이페 아 로웨 프로파일>(중세 영어로 되어 
있는 이 말의 뜻은, <정체를 드러내어서는 안되네>)... 윌리엄이 우리 
얼굴을 가려 주는 방패 노릇을 할 테니까...
  그는 나에게 <우주적인 음모>를 (한 부분이나마) 들려주었다. 성당 
기사단의 비밀을...
  "성당 기사단을 태워 죽일 화형대는요?"
  내가 물었다.
  "글로브 극장.( 세익스피어의 극이 전문적으로 상연되던 극장.)"
  디이가 대답했다.
  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는 했는데, 어느 날 한밤중에 나는 
디이 박사의 개인 금고를 뒤져 무슨 주문 같은 것을 찾아내었다. 나는 
디이 박사가 보름달 밤에 그러듯이 그 주문으로 천사를 불러 보려고 했다. 
나는 대우주의 한가운데 채찍을 맞고 쓰러진 모습으로 디이박사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그때 내 이마에는 솔로몬의 오망성이 찍혀 있었다. 
그래서 모자를 당겨 눈이 가려질 때까지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네에게는 아직 무리야. 조심하게. 조하지 않으면 코까지 잘라 벌리 
테니까. <아이 윌 쇼우 유 퓌어 인 어 핸풀 오브 더스트>.(나는 자네에게 
한 줌의 먼지 안에 깃든 공포의 실체를 보여 줄 수도 있네)"
  그는 앙상한 손을 쳐들고는 무시무시한 주문을 외웠다.
  "가라몬드!"
  순간 온몸이 내연하는 불길에 타는 것 같았다. 나는 도망쳤다. 
(밤속으로)
  디이 박사는 한 해 뒤에야 나를 용서하고 자기 '신비의 서' 제 4권에다 
<포스트 레콘칠리아티오넴 켈리아남>, 이렇게 써서 내게 주었다.
  그 해 여름 나는 정체 모를 격정에 사로잡힌 채로 지냈다.(켈리와 
화해한 뒤에) 이렇게 써서 내게 주었다.
  그 해 여름 나는 정체 모를 격정에 사로잡힌 채로 지냈다.(에리오 
비톨리니의 소설 '시칠리아의 대화'의 첫줄에 나오는 문장이기도 하다.) 
디이 박사는 나를 모틀레이크로 불렀다. 모틀레이크에서는 윌리엄과 나, 
스펜서, 핼금거리기를 잘하는 젊은 귀족 하나가 자리를 같이했다. 이 
귀족의 이름은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히 해드 어 탤리킷트, 라이블리, 
헤이즐 아이, 닥터 디이 톨드 미 잇 워즈 라이크 디 아이 오브 어 
바이퍼>.(그의 눈은 가늘고, 초롱초롱했고, 색깔은 연갈색이었다. 디이 
박사는 나에게, 꼭 독사의 눈 같다고 말했다.)
  디이 박사는 <우주적인 음모>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주적 음모>의 성사 여부는, 파리에서 프랑스 쪽 성당 기사단을 만나, 
두 쪽으로 나눠 지도를 맞추어 보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디이 
박사와 스펜서(에드먼드 스펜서. 영국 시인. 대표작은 12권으로 이루어진 
우의 시집 '선녀왕'.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바쳤다.)는 페드로 누네스와 
동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나와 베이컨에게 서류 몇 장을 넘겨주었다. 
우리는 그의 지시에 따라, 일행이 귀환에 실패한 경우에만 개봉하겠다고 
선서했다.
  두 사람은 돌아왔다. 서로 상대에게 욕지거리를 해대면서...
  디이 박사가 이랬다.
  "어림도 없었어. <계획>은 수학적이야. 나의 '모나스 히에로글리피카' 
만큼이나 천문학적으로 정교하더라고. 성요한의 날 전야에 프랑스 
친구들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말이야..."
  순진하게 내가 물었다.
  "성 요한의 전야라면, 우리 계산으로 말인가요, 아니면 저들의 계산대로 
말인가요?"
  디이 박사는 제 이마를 철썩 때리면서 성욕지거리를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프롬 왓 파우어 하스트 도우 디스 파워풀 마이트?>"(그대는 무슨 
능력에 의지하관대 이러한 권능을 부리느뇨.)
  창백한 윌리엄은 이 문장을 받아 적었다. 표절자답게 머뭇거리면서... 
디이 박사는 월력과 연감을 살피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이런 썩을놈의... 내가 이런 병신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니... 녕색이 우주 형상학자라는 자가..."
  이어서 디이는 누네스와 스펜서에게도 욕을 퍼붓고는 이런 저주를 
덧붙였다.
  "... <아마나시엘 조로바벨>!"
  그러자 누네스는 염소 뿔에 받히기라도 한 듯이 배를 움켜쥐더니 낯색을 
잃고 비틀거리다 땅바닥에 꼬꾸라졌다.
  "병신.
  디이는 꼬꾸라진 누네스를 보고 중얼거렸다.
  스펜서의 얼굴도 창백했다. 그는 몹시 힘겹게 디이를 달랬다.
  "미끼를 한번 던져 봅시다. 내 시가 완성 단곕니다. 동화속에 나오는 
선녀와의 우의를 비벼 넣으면 어떨까요? 적십자 기사를 집어 넣으면요? 
진짜 성당 기사들은 저희들끼리는 알아보는 법이니까, 우리가 저들을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우리와 접촉하려고 할 겁니다."
  "무슨 장난을 칠 셈인가? 자네가 시를 탈고하고 사람들이 자네 시를 
읽으려면 5년 세월이 후딱 지나갈 텐데. 하지만 미끼를 던지자는 생각은 
나쁘지 않겠다."
  "박사님, 왜 박사님의 천사닐들을 통해 대화를 시도해 보지 
않으시고요?"
  내가 물었다.
  "멍청한 사람같으니라고... 자네는 트리테미우스의 책도 안 읽었어? 
수신인의 수호 천사는, 스신인이 편지를 받았을 때만 나타나 그 뜻을 풀어 
준다. 내 천사들은 말 타고 다니는 우체부가 아니라고. 프랑스 놈들과의 
소식은 끊어진 거야. 하지만 내게도 계획이 있다. 독일 쪽과 연락하는 길을 
알고 있으니까. 나 아무래도 프라하로 가야 할까 보다."
  그때 무슨 소린가가 들려 왔다. 무거운 능직 휘장이 걷히는 소리였다. 
먼저 하얀 손이 나타나더니 이어서 그분이 보였다. <오만한 
처녀왕>이었다.
  "폐하!"
  우리는 모두 무릎을 꿇었다.
  여왕이 디이에게 일렀다.
  "디이는 듣거라. 나는 무소부지한 사람이다. 우리 조상들이, 전세계의 
영지나 내려 주려고 저 기사들을 살려 둔 줄 아느냐? 잘 듣거라. 내 
이르거니와, 비밀은 왕자만의 것인 즉 시행에 착오가 없도록 하여라."
  "폐하, 저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 비밀을 손에 넣고자 합니다. 
폐하를 위해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그러자면 이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자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름길입니다.저들이 어리석게도 저희 아는 
것을 저에게 털어놓는다면, 저들을 없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검으로도 없이할 수 있고 청산가리로도 없이할 수 있습니다."
  여왕의 얼굴 위로 무서운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현신 디이여, 그만하면 되었다. 나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절대 
권력을 요구할 뿐... 이 일을 잘  무리하면 가터 훈장을 내리마. 그리고 
윌리엄..."
  여왕은 요염하게 웃으면서. 기생충 같은 윌리엄을 향해 말을 이었다.
  "... 너에게도 가터 훈장을 내리마. 금양모피 혼장을 내리마. 나를 
따르라."
  나는 윌리엄의 귀에다 입술을 대고 속삭여 주었다.
  "<퍼포오스 아이 앰 다인, 앤 댓 이즈 인 미>.(나는 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안에 있다.)"
  윌리엄은 고맙다는 듯이 매끌매끌한 얼굴에 웃음을 개어 바르면서 나를 
보더니, 곧 여왕을 따라 휘장 뒤로 사라졌다.
  <쥬 땅 라 레느!>(여왕은 내 거야)
  
  <황금의 도시>로 나는 디이 박사와 동행했다. 우리는 유대 인 전용 
묘지 옆의 비좁고 냄새가 고약한 골목을 지났다. 디이 박사는 
조심하라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회동이 불발로 끝났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다른 진영은 각기 독자 
노선을 걸으려고 할거라. 유대 인을 조심해야해, 이 프라하에는 예루살램 
진영의 정탐꾼들이 좌악 깔려 있거든."
  밤이었다.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유대 인 거주 지역의 입구에는 
크리스마스 시장의 조그만 좌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좌판 한가운데 
있는 것은 붉은 천으로 천박하게 꾸민, 인형 극장의 무대가 횃불의 조명을 
받고 있었다. 우리는 돌로 쌓은 홍예문을 지났다. 홍에문 가까이 있는 청동 
분수대는 창살과 흡사한, 길다란 고드름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분수를 
지나니 또 골목길이 있었다. 골목 가의 낡은 대문에는 도금한 사자 
머리상이 달려 있고, 사자의 이빨에는 청동 고리가 걸려 있었다. 건물 벽이 
가볍게 떨리는 듯하더니, 나지막한 처마 밑에서 나는, 무엇인가가 부르르 
떨리는 소리는 내 귀에는 들리락말락했다. 하수관으로 물이 지나가는 소리 
같았다. 집집은 원리의 생명을 은폐시키고 유령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집은 원리의 생명을 은폐시키고 유령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낡은 외투 차림의 늙은 고리 대름장이가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였던 것 같다.
  "아타나시우스 페르나트를 조심하시오."
  디이 박사가 응수했다.
  "안 무서운 아타나시우스가 어디에 있나."
  우리는 어느새 금세공소 골목에 들어 서 있었다.
  또 한 골목의 아두운 어구에, 내 낡은 모자 속에서는 내 귀가 떨고 
있었다. (글허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지, 사실 내 귀는 그때 이미 잘려져 
나가고 없었다.) 골목 어구에 거인이 하나 나타난 우리 앞을 막았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표정이 없는 잿빛 거한, 옹이가 많은 백단향 지팡이를 
짚고 헌 이 거한은 녹청색 옷을 입고 있었다. 허깨비같은 그의 몸에서 
백단향 냄새가 풍겨 나왔다. 우리 앞을 막고 선 그 거한을 보는 순간 
전율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무서웠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괴물의 어깨에 올라앉아 있는 구름처럼 흐릿한 공 모양의 형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그 얼굴은 탐욕스럽기로 이름난 이집트 
<이비스>(고대 이집트의 영조였던 따오기)의 얼굴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뒤로도 무수한 얼굴이 보였다. 내 상상과 내 기억에 등장하던 무수한 
인쿠비(몽마. <인쿠부스>는 잠자는 여자를 범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남몽마. <수쿠부스>는 잠자는 남자를 범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여몽마. 
복수는 각각 <인쿠비>, <수쿠비>)의 얼굴이었다. 그 골목 어구의 어둠 
속에서, 허깨비 같은 거인의 몸은 느릿하고 활기 없는 일호 일흡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무서운 중에도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눈을 딛고 선 것은 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핏기 없는 회색빛 무형의 살덩어리 두 개로 불어났다. 
고깃덩어리가 제풀에 오그라들고 있었던지 끝은 뭉쳐 있었다.
  아, 그것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나의 탐욕스러운 기억력이여.
  "골렘이다."
  디이 박사가 두 팔을 들면서 외쳤다. 소매가 넓은 그의 검은 외투가 땅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흡사 하늘로 들어올린 손과 지표면 혹은 명부 혹은 
대지를 대상의 탯줄로 이으려는 듯이 두 손을 든채로 그가 외쳤다.
  "<제제벨, 말쿠트, 스모크 겟츠 인 유어 아이즈>...(이세벨이여, 말쿠트여, 
너희 눈에 연기가 들어가기를...)"
  그 순간, 골렘은 돌풍 맞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더니 자옥한 먼지가 
되어 우리의 시야를 가렸다. 먼지는 원자처럼 대기 속으로 퍼져 나갔다. 
오래지 않아 우리 발치에는 한줌의 재밖에 남지 않았다. 디이 박사는 
허리를 구부리고 그 앙상한 손가락으로 재를 휘저어 조그만 두루말이 
하나를 수습하고는 이것을 품안에 넣었다.
  어둠 속에서 이번에는, 검은 모자를 쓴 늙은 라비 하나가 걸어 나왔다. 
내 모자만큼이나 개기름에 절여진 모자였다.
  라비가 말했다.
  "<닥터 디이, 아이 프리쥼.>"(디이 박사,짐작은 했지요.)
  "<히어 컴즈 에브리바디!>(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알레뷔 선생 
아니오? 이거 반갑소이다."
  "혹시 이 근방에서 요상한 물건 못 보셨소?"
  라비가 물었다.
  "요상하게 생긴 물건이라니? 그게 무슨 물건이오?"
  "시치밀 떼실 요량이군요, 디이 박사, 나의 골렘이오."
  "선생의 골렘? 골렘이라니 금시초문이오."
  "조심하시오, 디이 박사. 박사는 지금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어요. 
그것도 혼자 몸으로 적진에서..."
  "알레뷔 선생,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내가 여기에 온 것은 
황제를 위해 금이나 몇 근 연금할까 해서랍니다. 우리는 이래봬도 싸구려 
마법사는 아니랍니다."
  "좌우지간에 그 두루말이나 돌려주시오."
  라비는 애원하다시피 했다.
  "무슨 두루말이?"
  디이 박사는, 무서울 정도로 능청스럽게 반문했다.
  "디이 박사... 그대에게 저주 있으라... 진실로 진실로 그대에게 말하노니, 
그대는 새 세기의 새벽을 보지 못하리로다..."
  라비 알레뷔는 구투로 박사를 저주하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자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기이한 
언어였다. 성자와 악마의 언어였다!
  디이 박사는 골목길 옆의, 축축한 벽에 몸을 기대면서 웅크렸다. 얼굴이 
창백하고,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라비 알레뷔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다. 나느 그레고리우스 
력으로 1608년 8월 5일에 죽을 게다. 그러니까 켈리 자네가 나를 
도와주어야 이 계획을 완결시킬 수 있다. 너는 이 계획을 완성시킬 사람 
중의 하나다. <길딩 페일 스트림즈 위드 헤븐리 알킬미>.(창백한 시대를 
거룩한 연금학으로 꾸미거라.) 이것을 명심하라."
  
  말은 그것뿐이었다. <유리창에 등을 문지르고 있던 희뿌연 안개와, 
유리창에 등을 문지르고 있던 누런 연기가 혀끝으로 가각을 핥고 
있었다>.(T.S. 엘리어트의 시 '프루프록의 사랑'에 나오는 한 구절.) 우리는 
어느새 다른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다. 희끄무레한 수증기가 창살 사이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창살 사이로, 벽이 기우뚱한 궁상스러운 골방이, 
회색조 일색의 방안이 언뜻언뜻 들여다보였다. 노인 하나가 낡은 프록 
코트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묘하게 기울어진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오고 
있었다. 디이 박사는 그를 보더니, <칼리가리!>(독일의 영화 감독 
로베르토 베이네가 1919년에 만든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주인공. 
벨보가 쓴 이 파일의 제목도 바로 이 영화 제목에서 취한 것이다.)하고 
소리쳤다.
  "저자 역시, 저 유명한 천리안의 소유자 소소스트리스 부인 댁에 와 
있구나...(엘리어트의 '황무지'에 나오는 한 구절) 어서 가세."
  우리는 걸음을 재촉하여, 조명이 빈약해서 어두컴컴하고 어쩐지 
음산하고 어쩐지 유대적인 골목의 한 오두막집 앞에 이르렀다. 
  문을 두드리기가 바쁘게, 흡사 안에서 마술이라도 쓴 듯이 문이 열렸다. 
우리는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칠지 촉대, 돋을새김한 십곔명판, 
성체 안치기 같은 다윗의 별도 있었다. 정방형 탁자 위에는 오래된 그림에 
나오는 듯한 바이얼린 몇 대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천장에는 박제된 
악어가 매달린 채, 희끄무레한 빛을 받으면서 흔들리고 있었다. 등이 한 개 
매달려 있는지 두 개 매달려 있는지, 아니면 아예 없는지 내 눈에는 띄지 
않았다. 방 안쪽에는 휘장 혹은 천개 아래의 성소에서 한 노인이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를 하고 있는지 독신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노인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이름 일흔두 가지를 되뇌고 있었다. 
문득 예지의 문이 열린 덕분에 나는 그 노인이 바로 하인리히 쿤라트라는 
걸 알았다.
  기도를 끊고 돌아앉으면서 그가 말했다.
  "디이, 요점만 말하게. 바라는 게 뭔가?"
  그는 어찌 보면 박제된 아르마딜로 같고 어찌 보면 태고적부터 살아온 
이구아나 같았다.
  "쿤라트, 세 번째 회동이 이루어지지 못했소."
  디이 박사의 말에, 쿤라트가 지독한 욕지거리를 퍼붓더니 물었다.
  "<라피스 엑실리스!>(하늘에서 떨어진 성석. 혹은 유랑하는 돌 이라는 
뜻이나 문맥 속의 정확한 의미는 미상) 이번에는 또 뭔가요?"
  "쿤라트, 당신 같으면 미끼를 좀 던져 줄 수 있어요. 독일 진영과의 
접선을 좀 주선해 주시오."
  "어디 봅시다. 마이어에게 부탁해 볼 수도 있지요. 마이어는 궁중에 발이 
넓으니까, 대신 내게 <처녀의 젖>의 비밀, <철인들의 극비전 연금로>의 
비밀을 일러주어야 하오."
  디이 박사는 웃었다. <소포스>(소피아의 남성형)의 거룩한 미소. 디이 
박사는 순간, 기도라도 하듯이 정신을 집중시키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승화 수은을 물이나 <처녀의 젖>으로 변화시키고 싶으면 승화 수은을 
얇은 금속판 위에 올려, 술잔 위에 올리고, 거기에다 잘게 빻은 <그 
물건>을 넣으시오. 덮으면 안 됩니다. 덮지 말고, <그 물건>이 열풍에 
충분히 중창이 되게 하면 되니 석탄 세 개면 될 것이오. 그 상태로 
여드레를 둔 뒤에, 꺼내어 대리석판에 올려놓고 끈적끈적해질 때까지 
빻아야 하오. 다음에는 이걸 유리 용기에 넣고, 용기는 물은 채운 가마솥에 
넣어 <발네움 마리아에 (마리아의 목욕)> 처방법에 따라 증류하시되 
용기가 집적 물에 닿아서는 안 되니, 용기와 물 사이는 손가락 두 개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하오. 그러니까 공중에 매단 채로 가마솥 밑에 불을 
은은하게 지펴 증류해야 하는 것이오. 이래야 불에 직접 닿진 않은 
<은>이, 이  따뜻하고 축축한 자궁 속에서 액화하는 것이오..."
  쿤라트는 무릎을 꿇고, 핏줄이 환히 드러난 디이 박사의 앙상한 손에다 
입을 맞추면서 중얼거렸다.
  "스승이여, 오 스승이여, 그리하리다. 스승께서도 바라시는 바를 이루실 
것이오. 장미와 십자가... 이 두 마디에 유념하세요. 장미와 십자가가 
스스로 입을 열 것입니다."
  디이 박사는 망토 같은 외투로 몸을 감쌌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악의로 번뜩거리는 그의 눈 뿐이었다.
  "켈리, 가세, 이 양반은 이제 우리 사람이 되었네. 그리고 쿤라트. 우리가 
런던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 골렘은 우리에게 범접하지 못하게 해주시오. 
연후에 프라하에다 불을 놓아 화장터로 만드시오."
  디이 박사가 돌아섰다. 무릎 걸음으로 다가온 쿤라트가 디이 박사의 
외투 자락을 잡고 말했다.
  "언제 그대를 찾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오. 찾아가서는 그대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고 할 것이오. 그 사람을 벗해 주어야 하오."
  "내게 <권능>만 안겨 주시오. 벗해 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니."
  디이 박사는 앙상한 얼굴에다 기묘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대답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대서양 위로 저기압이 모스끄바를 향하여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이 문장은 로버트 무질의 소설 '특징 없는 
사나이'의 첫 문장이기도 하다.)
  "모스끄바로 갑시다."
  내가 박사에게 권했다.
  "안 되네. 런던으로 돌아가야 하네."
  "모스끄바로, 모스끄바로..."
  나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이것은 안톤 체홉의 '세 자매 이야기'에 
나오는 문장이다.)
  켈리. 못 간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 런던탑이 너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래...
  
  런던으로 돌아오자 디이 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저들은 우리를 앞질로 밀지를 복원해 낼 심산이다. 켈리, 자네는 
윌리엄을 대신해서 글을 좀 써야겠다. 악마가 되어 저들을 음해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마귀의 뱃심으로, 나는 그런 글을 썼다. 그런데 윌리엄이 무대를 
프라하에서 베니스로 바꿈으로써 원전을 망쳐 놓고 말았다. 디이 박사는 
걷잡을 수없이 화를 내었다. 그러나 약삭빠른 윌리엄은, 여왕의 
기둥서방이라서 그랬는지 태연했다. 윌리엄은 내가 쓰는 글에 만족할 줄을 
모랐다. 걸작 소네트를 한 편씩 넘겨줄 때마다 윌리엄은, 후안무치도 
유분수지, 나에게 <그 여자>는 누구냐, <그대>는 누구냐, <암흑의 
여왕>은 누구냐는 식으로 꼬치꼬치 캐묻고는 했다. 아, 끔찍하여라. 광대의 
입에 그대의 이름을 오르게 하다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윌리엄, 저주를 
받아 어차피 남의 영혼을 대신 살게 되어 있는 이 윌리엄은 베이컨을 위해 
내 원고에 손을 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그만 쓰겠네. 음지에서 자네의 여광을 쌓는 일에 이제 지쳤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자네가 직접 쓰게."
  "그럴 수가 없네. 그 양반이 내가 직접 쓰게 할 것 같나?"
  윌리엄이 원귀 보고 온 사람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그 양반이라니? 디이 박사 말인가?"
  "아니, <베룰람>(프랜시스 베이컨의 별칭. 베이컨은 영국의 국왕 제임스 
1세로 <베룰람 남작>과 <성 올반스 자작>의 작위를 받은 바 있다.) 
말이야... 당신은 이 양반이 지금 실세라는 것도 모르나? 이 양반은 지금 
나를 윽박질러 글을 쓰게 하고는 나중에 그걸 자기 작품이라고 주장할 
참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켈리? 나는 진짜 베이컨이야. 후세 사람들은 
죽어도 모르지. 오, 기생충 신세여... 당신은 모를걸세, 내가 저 지옥의 전갈 
같은 자를 얼마나 혐오하는지를...
  "베이컨은, 돼지나 다름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재능은 있네. 왜 자기가 
직접 쓰지 않는다나?"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일년 뒤, 독일이 장미 
십자단의 광기에 휘말린 뒤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산재하는 참고 자료를 
조각조각 모으고, 선언서의 문장을 이리 끌어다 붙이고 저리 끌어다 붙여 
본 뒤에야 장미 십자단 선언서가 베이컨의 작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요한 발렌틴 안드레아에.라는 가명으로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이 감방의 어둠에 같히고 보니, 머리는 <돈 이시도로 
파로디>(보르헤스의 작품의 등장 인물)의 머리보다 더 맑아진 것 같다. 
이제야 안들레아에가 누구를 위해 글을 썼는지 알 것 같다. 나는 감방 
동기이자 전 포르투갈 성당 기사인 소아페스로부터 들은 말이 있다. 
안드레아에는, 다른 감옥에 갇혀 있는 한 스페인 인을 위해 기사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소문이 저 악명 높은 베이컨의 
귀에 들어갔다. 베이컨은 라 만차 기사 모험담의 대필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가 소원이었다. 그래서 베이컨은 안드레아에에게 은밀히 자기를 
대신해서 소설을 쓰는 흉내를 내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베이컨은 신비에 가려진 진짜 작가인 척,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거둔 
성공의 그늘에서 은근히 즐기는 척한답시고 그런 짓을 한 셈이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거둔 승리의 그늘에는 즐거움 
같은 게 있을 리 없다는 것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지하 감방이 추워서 엄지손가락이 곱다. 나는 지금 이 지하 감방의, 
사위어 가는 희미한 등불 밑에서 필경은 윌리엄의 손으로 넘어갈 마지막 
작품을 쓰고 있다.
  
  "빛을, 더 많은 빛을."(임종 때 꾀테가 한 것으로 알려진 말.)
  디이 박사는 죽어 가면서 이렇게 말하고, 이쑤시개를 달라고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것이다.
  "... <쿠알리스 아르티펙스 페레오!>"(재주가 승해서 나는 죽는다.)
  그를 죽인 것은 베이컨이었다는 것이다. 여왕이 죽기전 그러니까 정신이 
왔다갔다하고 있을 몇 년 사이에 베룰람은 기어이 여왕을 유혹하고 
말았다. 여왕의 풍채는, 베룰람과의 이 일이 있은 다음 급격히 변했다. 
해골처럼 뼈만 남게 된 것이다. 여왕은 음식은 흰 빵 한 조각과 치커리 국 
한 그릇으로 연명했다.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여왕은 옆에 칼 
한자루를 두고 있다가 격노할 때면 휘장이든 아라스 벽걸이든 마구 
찌르고는 했다. (그 뒤에서 누가 엿듣고 있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그런데 지금 내 형편은? 쥐가 엿들어? 좋아, 켈리, 이거 아주 상황이 
재미있으니까 비망록에 적어 두었다가 써먹으라고...")(세익스피어의 
'헴릿'에 실제로 이런 장면이 있다. 햄릿은 여왕의 방 아라스 벽결이 
뒤에서 자기 말을 엿듣고 있던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이렇게 찔러 죽인다.) 
여왕이 이 모양이었으니 베이컨이 여왕의 기둥서방인 윌리엄 행세하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베이컨은 장님이나 다름없는 여아 앞에 양가죽을 쓰고 
나타나고는 했다.(손에 염소 새끼 가죽을 두르고, 장님이 된 이삭을 속여 
에서의 복을 가로챈 야곱을 연상시킨다.) 베이컨이 썼으니 여느 양가죽이 
아니라 금양모피였을 터이다. 베이컨이 왕관을 노린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그가 노린 것은 왕관이 아니다. 그는 <계획>을 
장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가 세인트 올반스 자작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위치가 강화되자 디이 박사를 제거한 것이다.
  
  여왕은 죽었으니, 임금님 만세... 그런데 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다. 어느 날 밤, 베이컨은 나를 관목 숲으로 데려갔다. <암흑의 
여와>을 기어이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왕은, 내 품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헛것이 보이게 하는 약초 때문에 여왕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쪼글쪼글한 얼굴이 흡사 늙은 암양 같은 나의 소피아는... 그런데 
베이컨이 무장한 경호병들을 데리고 들어오더니 검은 띠로 내 눈을 
가리라고 명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함정이었구나! 베이컨은 웃었다. 
베이컨은 웃었다. 그리고 여왕도! 아니, 웃다니... <암흑의 여왕>이 아니라 
회전 당구장의 여자가 아닌가(<길디드 호노 쉐임풀리 미스플레이스트 
앤드 메이든 버추러들리 스트럼피티드!>)(허울뿐인 영광을 차지하더니 
천의 순결이 매춘부로 타락하는 구나.) 탐욕스러운 베이컨이 손을 내밀자 
여왕은 베이컨을 <시몬>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왼손에 입을 맞추었다...
  "탑으로 데려가라, 탑으로 데려가라."
  베룰람은 웃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여기에 갇혀 있다. 이름이 
<소아페스>라고 하는 깡마른 인간 작대기와 함께... 죄수들은 나를 
<칠해의 정복자 짐>으로밖에는 알지 못한다. 나는 감옥에서 철학, 법학, 
의학, 불행히도 신학까지, 미친 듯이 공부했다. 나는 여기에 가련한 
미치광이로 갇혀 있어도, 내 머리에 든 것은 여전하다.
  
  창틈으로 왕실의 성혼 대례를 구경했다. 붉은 십자가 그려진 제복 
차림의 기사들이 트럼펫 소리에 맞추어 구보로 말을 몰고 있었다. 
체칠리아를 위해 내가 거기에서 트럼펫을 불었어야 했는데... 역시 
트럼펫은 내 차례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트럼펫을 불고 있는 것은 
윌리엄이었다. 나는 음지에서, 그를 위해 쓰고 또 썼다.
  "복수할 방법, 가르쳐 드릴까?"
  소아페스가 속삭였다. 그날 그는 정체를 밝혔다. 몇 세기 전에 바로 그 
지하 감옥에 파묻힌 보나파르트 파 수도원장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소?"
  내가 물었다.
  "글쎄요, 만일에..."
  그는 대답할 듯하더니 입을 다물고는 숟가락으로 벽을 툭툭 쳤다. 
그러면서 트리테미우스한테 암호 전하는 법을 배워, 자기는 소리를 
통해서도 알파벳을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벽을 두드림으로써 옆방에 
있는 죄수에게 암호 연락을 한다는 것이었다. 옆방에는 몬살바트 백작이 
있다고 했다.
  
  몇 년이 흘렀다. 그동안 소아페스는 계속해서 숟가락으로 벽을 두드렸다. 
나는 이제 와서야 그가 누구를 위해서 무슨 목적으로 벽을 두드렸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노포 데이. <데이>와 ,디이>가 울림이 비슷한 
것은 대체 무슨 조화인가! 이 데이가 소아페스의 사주를 받고 베이컨을 
탄핵한 것이다. 그는 내게 말했다. 이유는 모르오만, 며칠 전에 베룰람이 
투옥되었소. 혐의는 비역질이랍니다. 그 말이 사실일까 봐서 내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소문에 따르면, <암흑의 여왕>, 드루이드교의 <흑성모>, 
성당 기사단의 <흑성모>는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 아니라, 거 
누구더라, 거 누구더라. 하여튼 그자의 손재주가 만들어 낸 영원한 
어지자지라는 것이다. 그게 누구인지 이제 알겠다. 당신의 애인 생 제르맹 
백작이다. 하지만 생 제른맹이 베이컨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일 수 있단 
말인가? 소아페스는 별걸 다 안다. 환생을 거듭하는 이 기분 나쁜 성당 
기사는...
  
  베룰람은 감옥에서 풀려나 마법을 이용하여 왕의 총애를 되찾았다. 
윌리엄이 전해 주는 이야기에 따르면, 베룰람 남작은 템즈 강변의 술집 
필라데에서, 놀라 출신의 이탈리아 인이 발명한 요상한 기계에 흠뻑 빠져 
있다고 한다. 남작은 이 사나이를 런던으로 불러 이 기계에 대한 비밀을 
송두리째 캐고는 로마로 보내어 화형주에 매달아 버렸다고 한다. 이 
사나이가 발명한 기계는, 휘황찬란하게 빛나면서 무한한 우주 속을 미친 
듯이 가로지르는 조그만 구체를 잡아먹는, 일종의 천문학적인 
장치(실제로는 회전 당구의 일종인 핀볼 기계. 손잡이를 당기면 구슬이 
튀어 오르면서 유리로 된 사면을 떨어져 내리는데, 구슬이 떨어져 내리는 
도중에 핀을 쓰러뜨리거나 구멍에 빠지면 꼬마 전구에는 불이 들어오고 
점수가 가산된다.)라고 할 수 있다. 베룰람은 이 기계의 틀에 사타구니를 
붙이고 음탕하게 기계를 공략한다. 흡사 자신만만한 태도로 기계를 
수간하는 듯하다. 그는 이로써 36장로들의 고유 영역인 하늘의 세력권에서 
벌어지는 일을 흉내내고, 이 흉내를 통하여 이 장치의 궁긍적 비밀과 '새 
아틀란티스'의 비밀을 이해하려는 듯하다. 베룰람은 이 기계를 
안드레아에가 쓴 선언문의 신성한 언어를 풍자하는 <고틀립('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자'라는 뜻을 지닌 독일어. 라틴 어로는 '아마데우스', 그리스 
어로는 '데오필로스')의 기계>라고 부른다. 아, 이제 깨달아 한탄하나 때가 
늦어 하릴없다. 내 가슴은, 코르셋 레이스 아래서 쿵쾅거린다. 베룰람은 
그래서 내 트럼펫과 호부와 부적과, 마귀도 능히 부릴 수 있는 나의 
우주적인 권능을 앗아 간 것이다. 베이컨은 솔로몬의 전당에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 아, 너무 늦은 것이다. 베이컨의 세력은 
지나치게 팽창해 있다.
  
  베이컨이 죽었다는 소문이 나돈다. 소아페스는,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다언하낟. 그의 시신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가명으로 헤세 
백작의 영지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미 극비의의 전수를 끝내고 
<계획>과의 최후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 이름으로 그 계획을 
송두리째 좌지우지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컨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뒤, 윌리엄이 나를 찾아왔다. 
철창도 그의 위선적인 웃음을 가리지 못했다. 그는 '소네트3'에다 왜 
나염장이 이야기를 썼느냐면서 내가 구절을 인용했다.
  "<투 왓 잇 워크스 인, 라이크 더 다이어스 핸드...>."(날염쟁이 손에 
들어간 옷감이 그렇듯이, 그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나는, 그런 것을 쓴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이 구절은 베이컨이 
사라지기 전에 삽입한 구절임에 분명했다. 그는 이로써 떠돌이 날염 
전문가 생 제르맹 백작을 환대하는 사람들에게 일조으이 소식을 전한 
것이었다. 이때 이미 나는 베이컨이 머지않은 장래에 사람들에게, 
자기야말로 윌리엄이 쓴 작품의 진짜 필자라고 주장할 것임을 간파했다. 
아, 지하 감옥의 어둠 속에 앉아 있으면 세상사가 훤히 보이는 법이다.
  
  <웨어 아트 도우, 뮤즈, 댓 도우 포겟스트 소 롱?>(예신들이시여, 어디에 
가셔서 이리 더디 오시는가요,) 나는 늙고 병들었다. 윌리엄은 내게서, 
글로브 극장의 무대에 올릴 어릿광대 극의 대본이 안오기를 기다린다.
  소아페스는 쓰고 있다. 어깨 너머로 본다. 해독이 불가능한 메시지이다.
  "<리버런, 페스트 이브 앤 아담즈...>"(이브와 아담의 땅으로 강물이 
흐르고)
  소아페스는 쓰던 것을 감추고, 유령의 얼굴보다 더 창백한 얼굴로 나를 
보면서 내 눈 속에서 죽음을 읽는다. 그리고는 속삭인다.
  "영면하시라. 두려워 마시라. 내가 그대를 대신해서 쓸터인즉..."
  그래서 그는 쓰고 있는 것이다. 가면에 가려진 나를 가면삼아 쓰고는 
내가 써야 할 것을 쓰고 있다. 나는 스러져 간다. 그는 내게 남은 마지막 
빛인, 저 어둠의 빛까지도 앗아 내어 글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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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보는 침착한 어조로, 자기가 꾸며 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나 자기가 슨 것을 직접 우리에게 읽어 준 적은 없다. 그는 자기 개인 
신상과 관계된 이야기는 늘 무질러 버리고는 했다. 그는 요컨대, 
아불라피아가, 입력시키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무관해 보이던 여러 가지 
자료에 상호 광련성을 부여하더라고 주장하고 싶어했다. 베이컨이 장미 
십자단 선언문의 필자라는 아이디어는 그가 어디에서 읽은 것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말 중에 내 귀에 쏙 들어오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베이컨이 세인트 올반스의 자작이라는 대목이었다.
  이 한 대목은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오래 전에 
세운 가설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었다. 나는 그날 밤새도록 
내 카드 파일을 뒤졌다.
  다음날 아침에는 내 연상의 공모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엄숙하게 선언할 
수 있었다.
  "두 분, 내 말씀 잘 들으셔야 합니다. 이제 상호 연관성을 발명해 내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1164년 생 베르나르가 
트로와에서 성당 기사단을 합법화시킬 공의회를 출범시킬 무렵, 이 
공의회의 조직 업무를 맡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세인트 올반스 
수도원장이었어요. <세인트 올반>이 누구인지 아시겠어요? 브리튼 섬을 
복음화 시킨 영국 최초의 순교잡니다. 이분은 생전에 베룰라미움에서 
살았지요. 그런데 이 베룰라미움이 후일 베이컨의 영지가 됩니다. 베이컨이 
베룰람 자작이 되니까요. 세인트 올반은 켈트 인이었으니까, 틀림없이 
드루이드교도였을 겁니다. 생 베르나르가 드루이드교도였듯이 말이지요."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벨보가 미심쩍어 했다.
  "내가 드리는 말씀, 더 들어 보세요. 이 세인트 올반스 수도원장은 바로 
생 마르땡 데 샹 수도원장입니다. 후일 프랑스 국립 공예원이 들어서는 
바로 그 수도원입니다."
  "세상에!"
  벨보의 반응이 그제서야 달라졌다.
  "뿐만이 아닙니다. 국립 공예원 아이디어는 베이컨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구상된 겁니다. 프랑스 혁명력 제 3년, <브뤼메르>(프랑스 공화력의 
제2월, 10월 22일에서 11월 21일 까지를 가리킨다.) 월 25일, 국민 의회는 
공교육 연구 위원회에 베이컨 전집 출판의 권한을 위임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외 포도월(프랑스 공화력의 제1월, 9월 22일에서 10월 21일 까지를 
가리킨다.) 월 25일, 국민 의회는 공교육 연구위원회에 베이컨 전집 출판의 
권한을 위임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의 포도월(프랑스 공화력의 제 1월, 9월 
22일에서 10월 21일 까지를 가리킨다.) 18일, 국민 의회는, 베이컨이 '새 
아틀란티스'에다 묘사한 <솔로몬의 전당>을 그대로 본뜬 국립 공예원 
설립에 필요한 법안을 가결시킵니다. 국민 의회의 아이디어에 따르면, 
인류가 이룩한 발명의 산물은 모조리 거기에다 전시하자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디오탈레비가 의자를 앞으로 당기면서 물었다.
  "푸코의 진자가 바로 이 공예원에 있지..."
  벨보의 말이었다. 이 말에 대한 디오탈레비의 반응으로 보아, 벨보는 
디오탈레비에게 일찍이 푸코의 진자 이야기를 한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성급하시기는, 푸코의 진자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발명되어 거기에 
전시됩니다. 그러니까 이건 건너뛰자고요."
  "건너뛰다니... 당신은 존 디이의 '모나스 히에로글리피카의 세계' 우주의 
모든 지혜가 함축되어 있다는 부적(실제로 이 그림이 나오는 책은 요한 
발렌틴 안드레아에의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적 결혼이다)도 못 
봤어? 그게 꼭 진자같이 생기지 않았더냐고..."
  "좋아요. 연관성이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세인트 올반스에서 
진자까지의 관계는 어떻게 논증할까요?"
  나는 벨보에게 물어보았으니 그는 뾰족한 대답을 내어 놓지 못했다.
  나는 며칠을 여기에 더 매달려 있다가, 그 전의 설명에다 새로운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다면 세인트 올반스의 수도원장이 곧 생 마르땡 데샹 수도원장이 
되고, 바로 이 수도원이 성당 기사단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베이컨은 
자기 영지가 세인트 올반스라는 것을 이용해서 바로 이 세인트 올반스의 
드루이드 교도들과 접촉하고요... 이 대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베이컨이 영국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기욤 
포스텔은 프랑스에서 찬밥 신세가 됩니다."
  순간 벨보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지극히 짧은 순간의, 지극히 미세한 
경련이었다. 나를 리카르도의 전람회에서 벨보와 로렌짜 사이에서 오가던 
대화를 생각했다. 로렌짜의 입에서 기욤 포스텔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는 
순간부터 벨보는 문득 자기에게서 로렌짜를 빼앗아 간 사람이 생각났던 
것이었다. 벨보의 얼굴ㅇ에 경련이 인 것은 지극히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 포스텔은 히브리 어를 공부하면서 히브리 어야말로 모든 언어의 
모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고, '조하르'와 '바하르'를 
번역했고, 카발리스트들과 교우했고, 독일의 장미 십자단원들과 비슷한 
취지에서 총체적인 평화의 계획 수립을 주창했고, 프랑스 국왕을 설득해서 
회교국의 국왕과도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역설했고, 그리스, 
시리아, 소아시아를 여행했고, 아랍어를 공부했습니다. 요컨대,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측가 걸은 길을 그대로 답습한 것입니다. 이런 포스텔이 몇몇 
문서에다 <로시스 페르기우스>, 즉 <이슬을 뿌리는 자>라는 이름으로 
서명한 일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삐에르 가쌍디는 '엑자멘 
필로소파아에 플러다나에' (플러드 철학의 검증)에서, <로젠크로이츠>라는 
말은 ,로사>, 즉 <장미>라는 말에서 온 것이 아니고 <로스>, 즉 
<장미>에서 온 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원고에서는, 때가 되기 
익기 전까지는 비밀이 공개되어서는 안 된 다면서,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주어서는 안 된다>고 쓰고 있어요. 그런데, 이 성구가 또 어디에서 
인용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성구가 또 어디에서 인용되고 있는지 
아십니까? 놀랍게도 '... 화학적 결혼'의 속표지랍니다. 마랭 메르센느 
신부는, 장미 십자단원인 로버트 플러드를 고발하면서, 플러드를, 포스텔에 
못지 않는 <아테우스 마그누스>(거물급 무신론자.)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뿐입니까? 존 디이와 기욤 포스텔은 1550년에 만났을 가능성이 
있어요. 단지 그로부터 30년 뒤인 1584년에 서로 만나기로 되어 있는 이 
<계획.의 두 기둥이라는 것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포스텔은, 잘 들으셔야 합니다, 이런 주장을 하지요. 프랑스 왕은, 노아의 
장자의 직계 후손이라는 겁니다. 노아가, 켈트 족의 선조이자, 드루이드 
문화의 개조인 만큼 프랑스 왕이야말로 세계의 제왕의 자리를 합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겁니다. 포스텔은 감히 
<세계의 제왕>이라는 말을 입에 올립니다. 그것도 생 띠브 달베드르가 
태어나기 300년 전에요... 포스텔이 <조안나>라는 할마시와 사랑에 빠져, 
조안나야말로 하느님의 한쪽 부분인 <소피아>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접어 
두기로 합시다. 그때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던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에게는 강적이 많았어요. 강적들느 포스텔을, 개라느니 더러운 
괴물이라느니, 이단의 괴수라느니, 악마 군단에 들린 자라느니, 별의별 
비방을 다 했지요. 조안나 사건이 있은 뒤에도 종교 재판은 포스텔을 
이단으로 모는 대신 괴짜 늙은이 정도로 치부하고 맙니다. 이유가 
뭐겠어요? 교회는 포스텔의 배후에 막강한 조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감히 
손을 대지 못한 겁니다.
  디오탈레비 선생이 흥미를 느낄만한 대목도 있어요. 포스텔은 동방 
여행을 한 적도 있고, 이츠하크 루리아와 동시대인이엇다는 대목입니다. 
결론을 한번 내려 보세요, 마음대로... 재미있는 결론이 나올 만하지 
않아요? 하여튼, 1564년, 존 디이가 '모나스 히에로글리피카'를 쓴 그 해에 
포스텔은 이단적인 신학관을 철회하고 은거합니다... 어디로 은거했을까요? 
바로 생 마르땡 데 샹 수도원입니다! 포스텔은 이 수도원에서 무엇을 
기다렸을까요? 그것은 물론 1584년의 회동입니다."
  "굉장하다, 까소봉!"
  디오탈레비가 소리쳤다.
  나는 설명을 계속했다.
  "그럼 여기까지는 모두 인정하시는 거죠? 결론으로 몰고 갑시다. 기욤 
포스텔은, 영국과의 회동 약속을 기다리는 프랑스 쪽 대표였던 겁니다. 
하지만 포스텔은 1581년, 회동을 3년 앞두고 세상을 떠납니다. 결론. 하나, 
1584년의 회동이 불발로 끝난 것은 포스텔 같은 당대의 걸물이 그 
중차대한 시점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왜냐? 포스텔 같은 인물이 
그레고리우스 력과 율리우스 력의 차이를 모르고 있을 턱이 없기 
때문이다. 둘, 생 마르땡 수도원은, 제3의 회동을 좌지우지할 인물이 
버티고 있는 곳, 따라서 성당 기사단이 안전하게, 편안하게 은거해도 좋은 
곳이었다. 요컨데, 생 마르땡데 샹은 성당 기사단의 은거지였던 겁니다."
  "모자이크처럼 척척 들어맞는구나."
  디오탈레비가 다소 부주의하게 말했다. 
  "더 들으셔야 합니다. 자, 회동이 실패로 돌아간 해, 베이컨은 겨우 
스물세 살입니다. 하지만 1621년에는 세인트 올반스의 자작이 됩니다. 
베이컨이 이 새로운 영지 세인트 올반스에서 선대 유물을 발견했을 것 
같지 않습니까?그건 아무도 모르지요. 그러나, 바로 이 해에 베이컨이 독직 
사건으로 기소되어 한동안 옥살이를 한 일이 있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베이컨은 누군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만한 뭔가를 찾아내었던 
겁니다. 누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을 수 있는 자료였을까요? 
이즈음은 베이컨이 이미, 생 마르땡이 요주의 수도원이라는 걸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된 시점입니다. 섬광처럼 그의 머리에, 생 마르땡에다 
솔로몬의 전당을 세우고, 실험실이라는 명목으로 연구소를 만들고 
<계획>의 비밀을 캐내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이컨의 추종자들과, 18세기 혁명 세력의 연관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디오탈레비가 물었다. 
  "프리메이슨이, 대답이 안 될까?"
  벨보가 물었다. 
  "탁견입니다. 실제로 아글리에가 그 괴상한 저택에서 암시한 바도 
있지요."
  "그렇다면 그것도 재구해 내도록 하세. 당시 이 프리메이슨 동아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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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모하게도 일을 만들어 몇 가지 연구에 착수했다. 그러나 
시작하는 순간 바로 후회했다. 시작하고 보니 책의 수렁에 빠진 
형국이었다. 무수한 자료 중에서 역사적인 사실과 연금학적 가설을 구분해 
내는 작업, 믿을 만한 자료를 신비주의자들의 잠꼬대에서 갈라 놓은 
작업부터가 지난했다. 일주일을 기계처럼 일한 뒤에야 나는 여러 교파, 
지부, 밀회소 등에 대한 어지럽기 짝이 없는 자료를 대충 정리할 수 
있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이름이 비밀 결사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노란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메모해 둘 가치가 있는 연대기적 우연의 
일치도 숱했다. 나는 이 자료를 나와는 공범인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1645 런던 :애쉬몰이 장미 십자단 운동의 영향을 받고, <보이지 않는 
학원>을 설립.
  1660 <보이지 않는 학원>에서 <영국 학사원>이, 그리고 이 학원에서 
저 유명한 <프리메 이슨>이 탄생.
  1966 파리 ;<아카데미 르아얄 데 시앙스 (과학 아카데미)>가 설립됨.
  1707 끌로드 루이 드 생 제르먕 (실존 인물이라면) 탄생.
  1717 런던에 <그랜드 로지> 발족.
  1721 앤더스이 <영국 프리메이슨 헌장>을 기초. 같은 해 뾰뜨르 대제가 
런던에서 가입하고 러시아 지부를 설립.
  1730 런던을 여행 중이던 몽떼스끼외가 가입함.
  1737 램지가 프리메이슨은 성당 기사단에 그 뿌리를 둔다고 주장. 
이로써 <스코틀랜드 의례>가 갈라지면서 럳넌의 대지부와 대립하게 됨.
  1738 프로이센 황태자 프리드리히가 가입하면서 백과 전서파을 후원함.
  1740 프랑스에 지부가 속속 설립됨. <스코틀랜드 신앙회>(뚤루즈), 
<최고 평의회>, <프랑스 그랑 로지의 스코틀랜드 로지 대본산>, <성당 
기사 대법원>(까르까손느), <나르본느 우애회>, <장미 십자단 
참사회>(몽뻴리에), <참 지고 선민회>.
  1743 생 제르맹 백작이 공석에 모습을 나타냄. 리옹에서는 성당 
기사단의 복수를 담당하게 될 <슈발리에 카도쉬(복수의 기사)>의 위계가 
확립됨.
  1753 윌레르모가 로지 <파르페뜨 아미띠에 (완전한 우애단)>을 설립.
  1754 마르띠네스 드 빠스꾸알 리가 <엘뤼 꼬엔(선택받은)의 신전>을 
설립(1760년이라는 설도있음.)
  1756 폰 훈트 남작이 <성당 기사 감독회>를 창설(혹자의 주장에 따르면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3세의 명에 따라). <미지의 초인들>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논의됨. 이  <미지의 초인들>은 프리드리히 왕과 볼떼르를 
지칭한다는 주장이 대두됨.
  1758 생 제르맹 파리에 출현. 연금술사로, 날염 전문가로 왕에게 봉사할 
뜻을 비침. 마담 뽕빠두르와 친교를 맺음.
  1759 <동서 제왕 평의회>라는 결사가 조직된 것으로 추정됨. 이 결사는 
3년 뒤 <보르도 법규>라고 불리는 의례집을 기초하는데 이것이 <고제 
공인 스코틀랜드 의례>의 원형이 됨(단 <스코틀랜드 의례>가 공식 
발표된 것은 1801년).
  1760 생 제르먕, 목적 불명의 외교 사절의 일원으로 네덜란드로 파견됨. 
모종의 문제를 일으키고 수배당한 끝에 런던에서 체포되었다가 석방됨. 돔 
J. 뻬르네띠가 <아비뇽 일루미나시옹을 설립. 마르띠네스 드 빠스꾸알 
리가 <슈발리에 마송 엘뤼스송 엘뤼스 두니베르(전세계 선발기사 
메이슨)을 설립. 
  1762 생 제르맹, 러시아로.
  1763 카사노바가 벨기에에서 생 제르맹을 만남. <수르몽>이라고 
변성명한 생 제르맹은 동전으로 금을 연금해 보임. 윌레르모, <장미 십자 
검은 독수리의 기사 최고 참사회>를 설립. 
  1768 윌레르모, 빠스꾸알리의 <엘뤼 꼬엔>에 합류함. 예루살렘에서 
위서, '가면을 벗은 프리메이슨, 혹은 장미 십자단 고위층으로만 전해지는 
최고 기밀'이 출판됨. 이 출판물은, 장미 십자단의 지부가 에딘버러에서 
90마일 떨어진 헤레돈 산정에 있다고 폭로. 빠스꾸알 리가 루이 끌로드 드 
생마르땡을 만남. 생 마르땡은 후일 <은현자>라는 명성을 얻음. 돔 
뻬르네띠, 프로이센의 왕립 도서관장이 됨.
  1771 샤르뜨르 공작(후일 필립 에갈리떼로 유명해짐) 이 <대동방회의 
사령관을 거쳐, 프랑스 대동방회의 최고 사령관이 되어 프랑스 국내 
지부의 통합을 꾀하나 <스코틀랜드 의례>를 준수하는 지부가 여기에 
저항함.
  1772 빠스꾸알리, 산토 도밍고로 향발. 윌레르모와 생마르땡이 <최고 
의결 기관>을 설립함으로써 <스코틀랜드 대지부>의 모체를 마련함.
  1774 생 마르땡이 <은현자>로 물러나, <성당 기사 감독회>의 대표러 
윌레르모와 협상함. 오베르뉴에 <스코틀랜드 간부회>가 탄생하고 이 
간부회에서 <수정> 스코틀랜드 의례>가 태동함.
  1776 생 제르맹, <벨당 백작>이라는 이름으로 프리드리히 2세에게 
화학과 관련된 계획을 제안함. 연금학자들을 규합하기 위한 <필라데뜨 
협회>가 탄생함. <뇌프 수르> 지부가 설립되고, 기요틴, 카바니스, 볼떼르, 
프랭클린이 입회함.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바바리아 일루미나티>를 
창설. 일설에 따르면 바이스하우프트는 이집트에서 돌아오는 도중 
<콜머>라고 하는 덴마크 상인으로부터 비의를 전수받았다고 함. 
<콜머>는 수수께끼에 쌓인 까끌리오스뜨로의 스승 알토타스인 것으로 
추정됨.
  1778 생 제르먕, 베를린에서 돔 뻬르네띠를 만남. 윌레르모, <성도 자선 
기사단을 창설>. <성당 기사단 감독회>와 <대동방사>가 <수정 
스코틀랜드 의례>를 공인할 것을 합의함.
  1782 빌헬름스바트에서 지부 총궐기 집회.
  1783 토메 후작이 <스베덴보리 의례>를 설립.
  1784 생 제르먕이 헤세 백작의 영지에다 염료 공장을 건설하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1785 까글리오스뜨로가 <멤피스 의례>를 설립. 이것이 후일 <멤피스 
미스라이움 고대 원시 의례>가 되면서 90 고위계제를 확립하게 됨.
까글리오스뜨로가 주동이 된 이른바 <여왕의 목걸이 사건>이 발발. 
뒤마가 소설에 이 사건을, 왕권 군주제를 와해시키려는 프리메이슨의 
음모로 그림.
<바라리아 계명 결사>가 혁명 기도 혐의로 박해를 받음.
  1786 미라보가 베를린에서 <바바리아 계명 결사>에 가입함. 
까글리오스뜨로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장미 십자단 선언서가 런던에서 
발표됨. 미라보가 까글리오스뜨로와 라파터에게 서한을 보냄.
  1787 프랑스 지부만 7백 개에 이름. 바이스하우프트가 '나흐트락'을 발표. 
이로써 단원들은 오직 차상급자 밖에는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비밀 결사의 
조직 구조를 해명함.
  1789 프랑스 혁명 발발. 프랑스 지부 위기에 처함.
  1794 포도월 8일, 그레고아르 의원이 국민 의회에 공예원 건설 기획서를 
제출. 1799년 5백 인 회의의 의결을 거쳐 생 마르땡 데 샹 수도원 부지 
내에 세워지게 됨.
브룬스비크 공작, 지부 해산을 촉구함. 지부가 일부 과격파 위험 분자에 
의해 완전히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 그 이유.
  1798 로마에서 까글리오스뜨로가 체포됨.
  1804 찰스턴에서 33위계의 <고제 공인 스코틀랜드 의례> 설립이 
정식으로 선포됨.
  1824 비엔나 궁전에서 프랑스 정부로 문서를 보내어 <절대당>, 
<독립당>, <알타 벤디타 카르보나라 당>등의 비밀 결사가 실재하고 
있음을 통고함.
  1835 카발리스트 외땅제가 파리에서 생 제르맹을 만났다고 주장함.
  1846 비엔나의 작가 프란츠 그라퍼가, 자기 아우가 1788년과 1790년 
사이에 생 제르맹을 만났다는 내용의 책을 출판함. 생 제르맹은 
파라켈수스의 책을 읽으면서 내객을 맞았다고 함.
  1865 <소시에타스 로지크루시아나 인 앙글리아(영국 장미 십자 
결사)>:가 발족 (1860년, 1866년, 1867년에 발족했다는 주장도 있음). 장미 
십자단 소설 '짜노니'의 저자 불워 리튼이 합류함.
  1868 바꾸닌이 <국제 사회 민주 동맹>을 결성함. <바바리아 계명 
결사>의 영향을 받고 셜성했다는 주장이 있음.
  1875 엘레나 페드로브나 블라바츠키, 헨리 스티일 올코트와 합작으로 
<신지학회>를 설립. 블라바츠키의 '너울 벗은 이시스' 가 등장함. 
세페달리에리 남작, <고독한 산 형제회>, <고제 복원 마니교 계명 
우애단>, <마르띠니스 계명 우애단> 대지부의 단원이라고 공언함.
  1877 마담 블라바츠키, 생 제르맹의 신지학적 역할을 밝힘. 생 제르맹은, 
로저 베이컨, 프란시스 베이컨, 로젠크로이츠, 프로클러스, 세인트 올반으로 
환생했다고 주장함. 프랑스의 <대동방회>, 우주의 위대한 건설자에 대한 
기원을 폐지하고 완전한 양심의 자유를 선언함. 이로써 영국의 대지부와 
결별하고, 세속적이고 급진적인 비밀 결사의 길을 걷게 됨.
  1879 미합중국에 <장미 십자 결사>가 창설됨.
  1880 생 띠브 달베드르가 활동을 개시함. 레오폴트 엥글러가 <바바리아 
계몽 결사>를 재편성함.
  1884 교황 레오 13세, 회칙 '후마눔 게누스'(인류의 기원)를 통해 
프리메이슨을 비난함. 가톨릭교도는 탈퇴하고 합리주의자들이 입회하는 
새로운 풍조가 생김.
  1888 스타니슬라스 데 가이타가 <장미 십자 카발라 교단>을 설립함. 
영국에서는 <황금의 새벽 은비교단>이 결성됨. 위계는 신참자에서 
<이프시시무스>에 이르기까지 11단계, 최고 사령관은, 후일 베르그송의 
처남이 되는 맥그리거 메터스.
  1890 조셈 펠라당, 가이타의 결사를 탈퇴함으로써, <성당과 성배의 
가톨릭 장미 십자단>이라고 불리던 가이타 파와 펠라당 파의 분쟁을 
야기시킴.
  1891 파퓨스, '은비학 계보'를 발표. 신비주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침.
  1898 알레이스터 크로울리, <황금의 새벽>에 입회. 후일 <텔레마 
교단>을 설립하게 됨.
  1907 <황금의 새벽>에서 후일 예이츠가 입단하게 되는 <스텔라 
마투티니(새벽별 교단)>이 탄생함.
  1909 미합중국에서는, 스펜서 루이스가, <안티쿠스 미스티쿠스 오르도 
로사에 크루치스(고대의 신비 장미 십자단)>의 각성을 환기, 1916년 
호텔에서 아연 조각을 금으로 연금하는 데 성공함. 막스 하인델, <장미 
십자 우애단> 설립. 이어 <장미 십자 연구회>, <장미 십자 형제회>, 
<은비학 혀에회>, <장미 십자 신전>이 창설되나 연대는 불명.
  1912 마담 블라바츠키의 제자 아니 베상뜨가 런던에서 <장미 십자 신전 
교단>을 설립.
  1918 독일에서 <뚤레 협회>가 결성됨.
  1836 프랑스에서 <고올 대신전>이 결성됨. '북극성 우애단 회지'를 통해, 
엔리꼬 꼰따르디 로디오는 생 제르먕 백작의 방문을 받았다고 주장함.
  
  "도대체 이게 다 뭔가?"
  디오탈레비가 기가 박힌다는 듯이 물었다.
  "난들 알겠어요? 자료가 더 필요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붑니다."
  "아글리에와 상의해 봐야 할 것 같군. 아무리 아글리에지만, 이 많은 
조직을 다 알고 있으려고?"
  벨보의 말이었다.
  "내기 할래요? 이 정도는 아글리에가 일용하는 양식일걸요. 이 기회에 
어쩌는가 한번 보는 것도 좋겠지요. 여기에다, 엉뚱한 조직 하나 끼워 
넣읍시다. 존재하지도 않는 걸로. 혹은 극히 최근에 이르러 조직된 
것으로..."
  순간, 데 안젤리스가 내게 던지던 기묘한 질문이 생각났다. 데 
안젤리스는 나에게, <트레스>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트레스>를 아느냐고 물어봅시다."
  "그게 뭔데?"
  벨보가 물었다.
  "<트레스>가 두문자만 모은 단어라면, 뜻이 통하도록 해야지. 의미 없는 
말 가지고는 아무리 라비들이라도 <노타리콘> 같은 건 이용할 수 
없으니까... 어디 보자. <템플리 레스르겐테스 에쿠이테스 
시나르치키>(부활한 성당 기사단에 의한 세계 과두 정부). 어때, 자네 
마음에 들어?"
  셋 다 마음에 들어 했다. 우리는 이 이름을 표 맨 끝에다 덧붙였다.
  "수도 없이 많은 단체에다 하나 더 붙이니 표도 안 나는군 그래."
  디오탈레비가 맥이 빠진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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