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적 배치의 미시정치학
I
공간은 대기처럼 우리를 감싼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삶은 그 대기와도 같은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경험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험적 조건으로서 공간. 이 점에서 칸트는 분명히 옳았다. 하지만 대기가 그 이질적인 기체들의 혼합과 빛과 어둠, 색채의 혼합으로서 우리를 감싼다면, 공간은 구획되고 경계지워짐으로써만 우리를 감싼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호흡하는 공간은 그것이 구획되는 양상과 공간을 형태짓는 요소들의 배열을 통해서 상이한 것으로 된다.
예를 들어 공간의 내부와 외부를 구획하는 경계가 얼마나 강하게 닫혀 있는가, 그 경계가 어떻게 열리고 닫히는가에 따라 그 공간은 그 안에 있는 우리로 하여금 다르게 판단하고 활동하게 만든다. 저 넓은 평원과도 같이 멀리 물러선 경계는 자유로운 활동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 활동의 양상은 다양한 형태를 향해 열려 있다. 그 대신 안정감은 사라진다. 반면 손과 발에 닿을 듯 가까운 공간은 그 공간의 폭보다 협소하게 가능한 활동의 폭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갇혀 있음을 언제나 느끼게 한다. 넓은 축구장과 좁디좁은 감옥의 독방. 그것은 분명 동일한 사람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사유와 활동, 전혀 다른 경험을 하도록 만드는 조건이다. 그것은 전혀 다른 인성을 만들어낸다.
공간의 경계가 열리고 닫히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그 공간은 전혀 다른 경험의 조건을 형성한다. 벽이 공간의 경계를 구획하고, 그 경계를 사이에 둔 두 공간을 불연속적인 것으로, 많은 경우 이질적인 것으로 만든다면, 문은 그 경계를 열고, 내부와 외부를 연결한다. 이런 점에서 문은 분명 열리기 위해 있는 것이다. 문이 닫힌다는 것은 문이 벽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물쇠 내지 빗장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문을 벽으로 되돌리는 장치다. 그렇기 때문에 자물쇠나 빗장이 어느 방향에 달리는가는 공간의 성격을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든다. 그것이 내부에 달린다면, 그 공간은 내부에 있는 자에 의해 통제되는 공간이 되지만, 밖에 달리면 그 반대가 된다. 침실과 감옥, 그 차이는 공간의 크기보다는 차라리 공간의 경계가 열리고 닫히는 방향에 의해 정의된다.
공간적 구획의 강도 또한 공간의 성격을 다르게 한다. 17세기 이전에는 지금과 달리 서양에서도 집과 작업장(workshop)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작업장은 홀이었고,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곳이기도 했다. 반대로 집 내지 작업장과 외부의 거리 간 경계도 강하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은 물론 종종 걸인들도 쉽게 드나는 곳이 집이었고, 어른이나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담소하거나 뛰어노는 것이 거리였다. 하지만 17세기 중반 이후 집과 거리 간에는 점차 강한 경계선이 그어졌으며, 작업장은 집과 분리되었고, 집은 기능에 따라 구별되는 다수의 공간의 분할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세기에 이르기도 전에 이미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의 구별이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프라이버시(privacy)라는, 지금은 누구에게도 확고한 것으로 간주되는 관념은 이러한 공간적 구획, 경계선의 강도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간은 대기가 우리의 호흡을 감싸듯이 우리의 경험을 감싸지만, 언제나 특정한 형태에 의해, 특정한 배열을 통해 특정한 방식으로만 감싼다. 그리고 공간이 우리를 감싸는 방식들의 차이가 우리의 경험과 사유, 삶을 상이한 방식으로 배열한다. 이 점에서 칸트는 분명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중의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 경험의 조건이 되는 공간은 데카르트가 생각했던 추상적 공간이나 뉴튼이 생각했던 우주적 공간으로서보다는 차라리 벽에 의해 특정한 양상으로 둘러싸인 집으로서, 혹은 거리들이 특정한 양상으로 배열된 도시로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다시 말해 공간은 외연이 표시되는 좌표적인 어떤 추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특정한 양상으로 배열된 구체적 형태로서 주어진다. 그것은 경험에 선행하여 경험을 조건짓지만, 경험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분리된 어떤 초월적인 것은 아니란 것이다. 둘째, 공간이 배열되는 특정한 양상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상이하게 형성되는 것이다. 프라이버시라는 당연시된 통념을 낳는 집이라는 사적 공간은 17-18세기 서양의 귀족이나 부르주아의 집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침실조차 언제나 사람들이 법석대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공간은 분명히 경험에 선행하는 조건이지만,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역사적 선험성.
II
인류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관계에 따라 상이하게 느끼고 사용하는 ‘거리공간’을 추출하려고 했다. 인류학자 홀(Edward T. Hall)은 미국 사람들의 관계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거리공간에 대해 치밀하게 추적한 바 있다. 그는 가족이나 매우 친한 친구들에게 허용되는 거리로서 ‘친근 거리’, 낯선 사람들에 대해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거리로서 ‘개인 거리’, 사회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거리로서 ‘사회적 거리’, 서로 간에 개입이 회피될 수 있는 거리로서 ‘공적 거리’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한다.
많은 경우 이러한 태도들은 심리학적 이유에 의해서 설명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심리적 특성이라는 인간학적 원리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보통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에 의해 형성된 일종의 습속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신체에 부딪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로 근접하기만 해도 ‘미안’이라는 말을 하는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과, 급하면 상대방을 강하게 밀치고 나가면서도 굳이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나이든 한국의 아주머니들은 서로 상이한 거리공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개인 거리의 수치만이 아니라 차라리 그런 거리가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엘리아스(N. Elias)는 서양에서 매너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러한 거리공간이 근대에 이르러 개인들 사이에 생긴 거리감의 산물이라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별도의 사적 공간이 없었던 서양의 중세인들 사이에 놓여 있던 거리공간 또한 지금의 그것과 매우 다른 것이었을 수 있으리란 추론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사회의 사람들이 대략적으로 공유한다고 보이는 거리공간이나 공간감각은, 역사적으로 상이하게 형성되는 공간적 배치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심리학적 내지 인간학적 특질을 통해 ‘거리 공간’을 정의하는 것은 현존하는 공간감각을 인간 자체의 특징으로 절대화할 위험, 그런 점에서 칸트의 잘못을 또 다시 반복할 위험을 갖는 것은 아닐까?
III
공간적 배치는 그 배치의 양상에 따라 고유한 효과를 갖는다. 예를 들어 근대에 이르러 형성된 학교의 배치, 그리하여 오늘날 한국의 모든 학교에서 이용되고 있는 교실의 배치를 보자. 교실은 교단에 의해 크게 두 부분으로 양분되어 있다. 교단으로 돋워올린 자리에 상대적으로 수직성을 강하게 갖는 교탁이 있다. 여기가 교사의 자리다. 반면 교단의 아래는 책상과 의자들로 학생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책상과 의자는 하나같이 교단 위에 마련된 교사의 자리를 향하고 있다. 이 배치는 교사의 시선과 학생의 시선이 마주하면서 교사의 자리로 학생들의 시선을 모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교단 및 교탁을 통해 학생과 교사 사이의 불연속성이 공간적으로 가시화되고 물질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는 교사의 위치가 학생들의 위치보다 높은 곳에 있음을 가시화한다. 18세기 계몽주의자의 말을 빈다면, 이는 이성을 대변하는 교사와, 그것에 의해 계몽되고 교육되어야 할, 아직은 비이성인 학생들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교사를 향해 학생의 시선을 모으는 책상과 의자의 배치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성을 향해야 하는 계몽적 기획을 물질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로 이루어지는 교실에선 피할 수 없는 배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서양의 경우에도 17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학교에 도입된 배치다. 그 이전에 학교는 마스터와 도제 간의 관계에 잇닿아 있었으며, 학생들은 8세부터 30세를 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질적으로 뒤섞여 있었고(사형, 사제!), 교사 역시 그러한 이질성의 연속적 일부분이어서, 학생과 근본적으로 단절된 관계를 취하지 않았다. 가장 뛰어난 제자가 스승의 뒤를 잇는 식의 연속성이, 어린 사제에서 나이든 사형에 이르는 연속성에 이어져 있었던 셈이다.
학교의 공간적 배치도 이런 관계과 동형성을 갖고 있었다. 교사와 학생은 어떤 단절적 평면으로 구분되지 않는 동일한 평면 위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17세기에 이르러 도입되기 시작한 교단과 교탁은 원래 5세기 경 바실리카라고 불리던 초기 기독교 교회에서 사용되던 것이었다. 로마 시대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예전에는 비밀스런 집회를 통해 예배하던 기독교인들은 이제 공공연하게 다수의 대중을 모아 예배를 조직할 필요가 있었고, 그럴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전에 그리스에서 사용하던 신전은 그러한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기에 기독교의 ‘신전’으로 이용할 수 없었다. 대신 로마 시대 대중 집회장소로 사용되던 바실리카라는 공회당을 예배당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기독교는 일반 신도와 신의 역할을 대행하는 성직자 간의 불연속성과 위상의 구별을 가시화할 필요가 있었다. 성직자의 위치를 돋우는 교단과 교탁이 배치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17세기에 학교에 도입되어, 지금까지 대개 사용되는 학교의 배치는 이러한 계보학적 ‘기원’을 갖는다. 그것은 이전에 성직자와 일반 신도 사이의 단절과 위계를 표시하던 장치를 학교 안에 도입한 것을 뜻한다. 높이 선 자로서 교사를 우러르고, 교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이성의 대행으로서 받아들이게 하는 배치, 동시에 학생들의 감시하며 통제하려는 시선이 방사되는 지점, 그리하여 교사가 보든 않든 스스로 교사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하게 만드는 장치. 이러한 배치를 통해 학생들은 교사 내지 학교가 규범으로 정의한 규칙에 따라 훈육되고, 올바른 ‘주체’가 되기 위한 ‘습속의 도덕’을 자신의 신체에 새기게 된다.
이런 점에서 학교/교실의 배치는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는 전형화된 태도의 집합을 형성시키며, 어느 정도 일관된 행동의 도식, 삶의 도식을 작동시킨다. 그것은 근대적 행동방식과 근대적 태도를 학생들의 신체에 새기는 권력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공간적 배치가 야기하는 효과를 권력과 결부시키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계몽주의적 도식에 따른 교사와 학생 간의 일방적인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도식은 정녕 불가피한 것일까? 근대의 한계가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되고 있는 지금이라면, 혹은 수 많은 학생들이 성공하는 소수를 위해 더 이상 들러리서기를 거부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그리하여 학교가 학생들을 설득하는데 빈번히 실패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저 일방적인 공간의 배치를 변환시켜야 하는 것은 아닐까?
IV
남의 집에 가서 침실을 들여다 보는 것은 요즘의 우리 사회에서도 거의 일반화된 암묵적 금기에 속한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사적 공간을 엿보는 것이고, 사적 공간에 부당하게 침입하는 것이며,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스스로 그런 행위에 대한 거리낌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는 근대화가 앞서 진행된 나라일수록 대개는 더 강하게 요구되는 ‘매너’기도 하다.
이러한 사적 공간 역시 17-18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모두 아는 바다. 그것도 아직 확고하진 않아서, 예컨대 베르사이유 궁전의 방들도 복도가 따로 없이 방과 방이 연결되는 식으로 통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떤 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걸친 모든 방을 빠짐없이 통과해야 했다. 이는 유럽의 바로크 식 건축물 모두에 대개는 공통된 특징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당연시된 사적 공간의 절대적 구획이 사생활이 적극 추구되던 그 시기에도 확보되지 못했던 것이다. 민중이나 노동자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용할 수 있는 방이 기껏해야 하나나 둘인데, 기능적으로 방을 구분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사치였음이 틀림없다. 위생과 통치같은 지극히 상이한 요인들이 개제하긴 하지만, 어쨌든 적어도 20세기 초반이 지나면서 주거 공간이 사적 공간으로서 확립된 것은 분명하다.
근대화는 이질적이고 복합적인 공간을 명확하게 구획하며 진행된다. 집과 거리 사이에 어떤 근본적 단절의 선이 그어진다. 집은 사적 공간이어서, 거리의 아이들을 그대로 끌고 들어오는 아이나, 일터의 일감을 그대로 끌고 들어오는 사람은 가족 모두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침실은 그 사적 공간 안에서도 가장 사적인 공간이다. 절대화된 사적 공간.
프라이버시 뿐만 아니라 근대인을 특징짓는 개인주의가 이러한 사적 공간의 절대화와 무관하지 않으리란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우리의 근대적인 삶의 방식과 무관하지 않으리란 것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공간적 배치란 바로 생활과 활동이 특정한 방식으로 반복하여 조직되는 ‘형식’이요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사적인 공간은 근대적 삶을 전복하려는 시도, 새로운 공동의 삶을 꿈꾸며 자본주의적 관계를 전복하려는 시도가 좋든싫든 부단히 마주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오웬(R. Owen)이나 생시몽(Saint Simon), 푸리에(Ch. Fourier)처럼 유토피아로서 공산주의를 꿈꾸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공동의 집합적 삶이 이루어지는 집합주택에 대해 구상하고 실험하려 했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 자연스러워 보인다. 알다시피 푸리에주의자 고댕(Godin)은 푸리에의 팔랑스테르(Phalnstere) 구상에 따라 파밀리스테르(Familistere)라는 집합주택을 실제로 건축했다. 주거와 생산, 육아와 교육 등이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집합주택. 그것은 분명 선구적인 새로운 시도였다.
하지만 부르주아는 공동의 생산과 공동의 생활을 그로부터 분리시키고, 조합적 소유를 사적 소유로 변환시킴으로써, 집합주택을 사적 주거의 단순한 집계(集計)로 변형시킨다. 거세. 그리고 이는 이후 국가와 ‘박애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노동자들의 집합주택--프랑스의 값싼 주택(habitation a bon marche), 독일의 사회적 주택(Sozialwohnung) 등--의 모델이 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자본주의에서 이루어지는 근대적 삶의 공간을 전복하거나 대체하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에 부합하는 또 하나의 모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아파트들.
하지만 이러한 거세와 변형이 가능했던 것은 사적인 주거에 다른 요소들을 부가했지만, 사적 주거 자체를 변환시키지는 못했다는 근본적 한계와 결부된 것은 아닐까? 이는 각각의 사람들을 언제나 사적인 개인으로 자신을 설정하고, 사고와 행동이 언제나 그 주위를 맴돌게 되는 근대적 주체로 재생산하는 주거 공간의 배치가 근본적으로 변환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개개인을 근대적 주체로 만들어내는 권력의 도식.
V
아마도 여기서 우리는 공동의 삶을 위한 공간은 사적인 공간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는데, 사적인 공간, 사적인 삶을 부정하는 방식으로는 공동의 주거공간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딜레마를 발견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적 주거의 개념을 넘어선, 근본적으로 새로운 주거의 개념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 새로운 주거의 개념에 부합하는 새로운 공간적 배치는 불가능한 것일까? 사적인 공간을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주거 공간을 사적 공간으로 절대화하지 않는 것, 그것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르페브르(H. Lefebvre)는 일찍이 ?공간의 생산?이라는 책에서 사회주의 사회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건축 양식조차 창조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는 사람들의 삶이 일상적으로 조직되는 방식에서 어떤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내는데 실패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집이나 학교의 공간적 배치에 대해 이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로 한없이 함몰되어 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 개개인을 사로잡고 있는 권력을 전복하는 문제인 것이다. 공간적 배치의 미시정치학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위와 같은 질문을 통해서 시작하는 새로운 사유의 영역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광기와 권력 (0) | 2023.03.10 |
|---|---|
| 광개토대왕 [한국위인전집] (0) | 2023.03.10 |
|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 무라카미 류 (0) | 2023.03.09 |
| 고선지 [한국위인전집] (0) | 2023.03.09 |
| 고독한 오아시스 [파제터] (0) | 2023.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