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시선의 체제와 주체의 시선
1.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특정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라캉(J. Lacan)의 분석으로 유명해진 홀바인의 <프랑스 대사들>에는 두 대사들 사이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그려져 있다(그림 1). 그것이 무언지를 알려면 그림의 하단에서 화면과 거의 평행한 각도에서 눈을 찡그리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해골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 보려고 하지 않았다. 대개는 그것을 시야에서 생략한 채 그림을 본다. 즉 그것을 안 보이는 것으로 간주하고, 전면에 있는 대사들과 그 뒤에 있는 물체를 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눈 앞에 있는 것을 보지 않는다.
밀레의 저 유명한 그림 <이삭줍기>에서는 이삭을 줍는 세 사람 저편으로 너른 지평선이 있고, 그 위로 뉘엿뉘엿 지는 해가 노을로 남아 있다. 지평선, 그것은 저 멀리 있고, 그 뒤에는 또 무한한 하늘이 알 수 없는 깊이로 물러서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우리는 그다지 순진하지 않아서 실제로 그런 먼 거리와 깊이가 그림 화면 안에 실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끝없는 저편의 무한한 깊이를 본다. 여기서 우리는 눈 앞에 없는 것을 본다.
이처럼 우리의 눈은 있는 것은 언제나 보는 것이 아니며, 없는 것은 결코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지/못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밀레의 그림에서 깊이와 거리를 보는 우리의 눈을 의사나 과학자는 결코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도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더욱더 기이한 일이다. 의사나 과학자도 없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있는 것을 못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하나의 시점에서 통일적으로 볼 수 있게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없는 것을 보는 이유도 분명하다. 그것은 거리감을 표시하는 규칙에 따라 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는 사람 역시 그런 규칙에 따라 보기 때문이다. 이 규칙을 알다시피 ‘투시법’ 혹은 ‘원근법’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그림을 볼 때, 우리는 이 규칙에 따라서, 투시법의 선을 따라서 본다. 그 방식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있어도 보지 않으며, 그 방식에 적합하면 없는 것도 본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특정한 방식으로만 본다.
시각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확고하고 유별나다. 문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만으론 확신할 수 없어서 우리는 문 위의 작은 구멍으로 내다 본다. 냄새만으로는 좋아하는 친구도 식별하기 힘들다. 목소리만으론 긴가민가 하다가도 눈으로 보면 확실하다고 믿는다. 정말 우리는 보는 것을 믿는다. 그런데 우리의 눈이 특정한 방식으로만 볼 뿐이라면, 또한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만 인식하고 믿게 되리란 것을 뜻하지 않을까? 나아가 우리의 행함이 이러한 인식과 믿음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 분명할진대, 결국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만 행동하게 됨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점에서 시선 내지 시각을 다룬다는 것은, 볼 수 있는 것(le visible)과 볼 수 없는 것(l'invisible)을 가르고, 보야야 할 대상과 보는 방식을 정의하며, 그에 따라 특정한 방식으로 보도록 만드는 체제(regime)의 문제다. 나아가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매우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이는 특정한 양상으로만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게 한다는 점에서 권력(pouvoir)의 문제기도 하다. 시선의 체제(정권)와 그 안에서 작동하는 시선의 권력.
2.두 가지 투시법
근대적인 시선의 체제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은 아마도 투시법(perspectiva)의 성립과 발전이다. 투시법은 알다시피 곧은 평행선이 만나는 소실점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직선들을 따라 사물의 형태를 표시한다. 이런 점에서 종종 ‘직선적 투시법’이라고도 불린다. 1425년, 르네상스 초기의 유명한 화가이자 건축가인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는 피렌체의 조그만 광장에서 투시법에 따른 그림이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을 했다. 같은 해 마사치오(Masaccio)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벽화 <삼위일체>에 엄밀한 투시법에 따른 원통 볼트(barrel vault)를 그림으로써, 최초의 투시법적 회화를 남겼다(그림 2). 그로부터 10년 뒤 초기 르네상스의 이상적 만능인이었던 알베르티(Alberti)는 수학 및 광학 이론을 통해 브루넬레스키의 실험이 과학적임을 보여주는 책을 썼다. 당시 한창 발전 중이던 활판 인쇄술은 이 책과 더불어 투시법을 유럽 전역에 보급하는 수레 역할을 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자연스럽고 과학적이라고 당연시하는 투시법이,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흔히 진화론적 역사철학이 가정하듯이 과학으로 개화하기 이전의 야만과 암흑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유명한 미술사가 파노프스키(Panofsky)가 지젓했듯이, 르네상스의 직선적인 투시법은 하나의 ‘상징형식‘인 것이고, 그런 만큼 역사적으로 가변적인 일종의 ’시선의 체제‘인 것이다. 특정한 방식으로 보고 그리게 하며, 특정한 방식으로 재현된 것을 보게 하는 규칙이자 습속(習俗)으로서 투시법.
투시법 자체 또한 상이한 변환의 점을 통과한다. 르네상스 화가나 건축가들은 소실점의 위치를 이상적인(ideal) 시점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실제 보는 시점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 상이한 태도를 갖고 있었다. 르네상스의 투시법은 이상적 시점이 강조된 것이었다. 그래서 소실점은 그림의 가장 중심적이고 전체 균형과 비례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자리에 배치된다. 예를 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소실점은 예수의 두 눈 사이에 있으며, 그 점은 그림 전체의 가장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그 점으로 모이는 선들을 따라 마루와 테이블, 벽, 천정은 점점 단축된다. 건축도 마찬가지여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또 다른 대가 브라만테(Bramante)가 만든 성 피에드로 성당의 템피에토는 어느 점에서 보아도 건물의 전체 상이 한 눈에 잘 들어오도록 만들어졌다(그림 3).
반면 바로크의 투시법에서는 상이한 위상적 가치를 갖는 두 개의 시점이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르네상스 기와 달리 실제 시점의 위상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는 건축의 경우 뚜렷이 드러난다. 즉 르네상스와 달리 어느 점에서 보든 이상적인 형태가 한 눈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시점마다 달라지는 이미지를 중요시한다. 동시에 그 상이한 시점과 이미지들이 통일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점을 설정하는데, 이로 인해 파사드(facade; 건물의 정면)가 특권화된다.
예를 들어, 바로크의 대건축가인 보로미니(Boromini)의 작품 산 카를로(San Carlo alle Quattro Fontane) 성당(그림 4)은 타원과 원이 뒤섞인 평면을 갖고 있으며, 돔도 타원형으로 되어 있어서, 보는 시점에 따라 상이한 상(像)이 만들어진다. 외관을 보면 물결치듯 요동치는 벽체를 갖는 파사드에 비하면 옆의 벽들은 밋밋하기 그지없다. 여기서도 보는 데 따라 상이한 상이 만들어지지만, 건물의 가장 중요한 상은 ‘튀어도 심하게 튀는’ 전면의 파사드다. 이런 점에서 르네상스의 그림이나 건물이 정적(靜的)이고 안정되어 있다면, 바로크의 그림이나 건물을 동적이고 운동감이 흘러넘치고 있다.
3.몇 가지 시선의 체제
여기서 투시법을 전후한 시기의 몇 가지 상이한 시선의 체제를 (지면이 제약되어 있기에) 그림을 통해서 비교해 보자.
1)고딕적 체제
(그림 5)는 1340년경 로렌제티(Lorenzetti)가 그린 중세 도시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건물의 수직성이다. 즉 건물 지평면의 길이와 폭은 매우 축소되어서 정상적이라고 하기 힘들만큼 축소된 반면, 높이는 매우 과장되어 있다. 그 결과 건물의 수직성은 그림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난다. 물론 중세 도시에 이처럼 탑처럼 생긴 높은 집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보이는 수직성은 그것의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렇다고 화가가 그림을 잘 못그려 그런 것도 아니다. 로렌제티는 부분적으로나마 투시법적 일관성을 선구적으로 보여준 중세의 화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직주의는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보이듯이, 건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며, 성당을 둘러가며 조각된 조상(彫像)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수직주의에서 하늘을 향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신이 지배하던 세계, 신의 창조가 존재를 설명하고, 신의 계시가 인식을 대신하며, 신의 말씀이 도덕을 의미했던 시대. 이 그림에서 보이는 수직주의는 아마도 이런 시대에 사람들의 시선이 사물을 포착하던 ‘상징형식’이며, 시선이 조직되던 방식이었을 것이다. 수직적인 시선의 체제, 이를 고딕적인 체제라고 부르자.
2)르네상스적 체제와 바로크적 체제
(그림 6)은 티치아노(Titiano)의 유명한 그림이다. (그림 7)은 마찬가지로 비너스를 그린 벨라스케즈의 그림이다. 앞의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이고, 후자는 바로크 시대의 그림이다.
우선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뚜렷한 윤곽선을 갖고 있는데 반해, 벨라스케즈의 비너스는 명암을 표현하는 어둠으로 윤곽선이 묻히고 있다. 전자는 비너스 신체의 모든 부분이 누락된 것없이 다 그려져 있으며, 뒤에 있는 여인을 포함해 각각의 세부가 동일한 정도로 섬세하고 치밀하게 그려져 있다. 반면 후자는 손이나 팔이 신체에 가려져 있거나 프레임에 잘려져 있으며, 얼굴도 거울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려진다. 비너스의 신체의 끄트머리는 어둠 속으로 묻히는 만큼 생략되어 그려지며, 거울에 비친 얼굴이나 거울을 든 천사의 얼굴도 대강만 그려져 있다. 각각의 세부는 치밀함이 다른데, 특히 멀고 눈에 세밀하게 잘 안보이는 곳은 그런 만큼 희미하게 묘사되어 있다. 구도도 앞의 것은 대칭적으로 그려진 수평선과 수직선을 통해 정적인데 반해, 후자는 사선으로 흐르는 선들로 인해 동적이다. 나아가 전자는 그림의 각 부분이 독립적인데 반해, 후자는 비너스와 거울상과 천사가 하나로 엮여 있다.
여기서 전자는 그림의 중심이 그려진 장면 안에, 그 한 가운데 있다. 반면 후자는 그리는 사람, 혹은 그에 맞추어 보는 사람의 시점을 기준으로 희미한 것은 희미하게, 자세한 것은 자세하게 그린다. 이런 점에서 그림의 중심은 그림의 외부에 있는 시점에 있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두 가지 투시법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 더불어 빛을 이용하는 법도 다르다. 전자의 경우 빛은 대상이나 장면을 잘 보게 해주는 조건이며, 따라서 전체적으로 고르게 되어있다. 반면 후자에서 빛은 그 자체가 어둠과 더불어 보고 그려지는 대상이다. 따라서 빛과 어둠의 대비가 매우 강렬하고, 그 대비의 효과를 통해서 형태나 깊이감, 질감, 분위기 등이 표현된다.
이런 차이는 뵐플린(Wolfflin)이 잘 보여주었듯이 두 장의 그림 내지 두 사람의 화가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르네상스와 바로크라는 두 시대의 차이다. 그것은 그림만이 아니라 건축에서도, 조각에서도 보이는 차이다. 이는 그 시대의 사람들--적어도 그 시대의 예술가들--의 눈이 빛과 어둠을 통과하는 방식, 사물을 포착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차이에 대해 두 가지 상이한 시선의 체제를 대응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르네상스적 시선의 체제와 바로크적 시선의 체제.
4.바로크적 시선의 체제와 근대적 주체
바로크적 투시법에서 다수의 시점들이 인정되는 동시에 그것이 갖는 다양성을 통일시키는 하나의 단일한 중심이, 특권적 시점이 마련되었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있다. 대상 전체가 가장 잘 보이는 점. 이제 대상 세계를 올바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그 특권적인 시점으로 이동해야 한다. 다시 말해 대상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고 올바로 영유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주체의 자리에, 대상을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포착하고 영유할 수 있는 그 유일한 중심점에 서야 한다. 필요와 유용성에 의해 스스로 주체의 규범적 자리에 서게 하는 근대적 권력의 다이어그램이, 시선과 동선의 메카니즘으로서 바로크적 투시법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바로크적 투시법과 데카르트적 주체는 분명한 상관성 내지 동형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체화’하는 권력의 배치로서 근대적 시선의 체제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배치는 카메라의 발전과 더불어 ‘기계화’된다. 카메라는 렌즈의 초점에 시선의 초점을 일치시키는 기계적 장치로 인해 시선의 동일성(idenite)을 만들어낸다. 이로 인해 사진을 보는 것은 나요, 언제나 내가 보는 것이라는 가상이 만들어진다. 영화는 아마도 이런 동일시의 메카니즘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장치일 것이다.
5.투시법 해체 이후의 시선
르네상스 이후 서양 미술을 장악하고 있던 투시법은 후기 인상주의에 이르면서 붕괴되기 시작한다. 고호의 그림에서 투시법적 시선을 찾기는 쉽지 않다. “손에 잡힐듯한 어둠”을 그리려던 초기의 그림을 제외하면 투시적 깊이감을 묘사하려는 관심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고호의 그림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격렬하게 요동치는 표현적 흐름이고, 그 흐름을 묘사하는 강렬한 점과 선이다.
한편 세잔은 형태와 색채의 관계를 정확히 묘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명시적이거나 의식적으로 투시법을 깨려 하진 않았지만, 필요한 경우 종종 투시법을 무시한 채 형태를 그려냈다. 즉 그의 그림에서는 추상적 입체의 형태가 투시법의 제약을 넘어서고 있다.
이를 좀더 밀고나가 투시법 자체를 해체하고 추상화된 형태를 그림의 새로운 단위요소로 독립시킨 것이 바로 피카소와 브라크였다. 나아가 다수의 시점에서 본 형상을 하나의 평면에 그림으로써 투시적 시선 자체를 해체했다. <아비뇽의 여인들> 이후 입체파의 그림은 이런 점에서 투시적인 시선의 체제 모두로부터 시선을 해방시켰다. 이는 이후 20세기 미술의 전제처럼 된다. 다른 한편 독일에서 주로 번성한 표현주의는 보는 자의 감정과 느낌을 대상에 이입한다. 이런 맥락에서 빌헬름 보링거(W. Worringer)는 ‘추상과 감정이입’을 입체파 이후 현대 미술의 가장 중요한 두 양상을 포착하는 개념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혁신들은 이후 서로 섞이면서 새로운 예술의 장을 창출한다. 그것은 분명히 근대적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시선의 체제, 새로운 시각적 장(場)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시대에 특징적인 어떤 새로운 일관된 시선의 체제를 구성하는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한 것같다. 이런 이유에서 그것은 다만 근대적 시선의 체제에 대한 비판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투시법을 깨고 나온 이 새로운 시선의 체제에 어떤 하나의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한편 바로크적 시선의 체제에서 스스로 주체화하게 하는 메카니즘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바로 동일한 이유에서 투시적 배치의 ‘주체화 체제’를 깨뜨리려는 시도는 주목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카피톨리네 광장은 사다리꼴을 이용해 투시적 효과의 명료성을 교란시킨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동일시하는 시선-기계를 이용해 주체화 체제를 동요시킨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Wish you were here> 역시 이런 사례의 훌륭한 경우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브레히트와 이들이 만나는 지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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