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저자명: 시애틀 추장 외 여러명의 인디언
이 책을 읽기 전에
늙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만날 때면 그들이 갖춘 위엄과 지혜 때문에 마치 겨울 삼
림 속을 산책하는 것 같은 그 무엇을 느끼게 한다.
-프레데릭 레밍턴
말과 침묵, 자연과 문명, 삶과 죽음... 그리고 마음과 영혼에 대하여 이처럼 가슴을
울리는 지혜의 말들을 만나기란 흔치 않은 일이다.
-스탠 스타이너
자연인! 그것이 내가 인디언을 처음 만났을 때 받은 느낌이다. 그들은 우아하고 열
정적으로, 그러나 결코 장황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말들로 진리를 이야기했다. 마치 숲
속을 거닐듯이... 자연 속에서 태어나 그 품안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현자들이었다.
-윌리엄 펜
그들은 세상을 사랑했고, 세상의 품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이름으로 가득
찬 세상이 그들의 꿈을 가득 채웠다.
-셜리 힐 위트
삶은 끝없는 변화 그 자체다. 우리 자신과 이 세계는 순간마다 변화한다. 그래서 모
든 세대는 과거 세대와 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
소리, 어떤 책은 세월이 흘러도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빛을 잃지 않는다. 그러한 책들
을 모아 우리는 <<뉴월드 클래식 지혜 총서>>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아메리칸 인
디언의 지혜를 다룬 책은 다른 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적이고 감동적이며 울림
이 크다. 지구별의 어떤 부족이더라도 이 아메리칸 인디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샥티 가웨인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의미, 그리고 그토록 빨리 세상을 떠나야 하는 이유에 대한 해
답...
-루이스 에드리치
아메리칸 인디언의 오랜 침묵의 목소리는 대지 그 자신의 소리 없는 목소리이다. 인
디언들의 목소리는 우리의 삶이 자연성을 되찾는 데 필요한 약과 같다.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프레데렉 터너 3세
20세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의 지혜가 새롭게 주목받는 데는 까닭
이 있다. 우리의 문명은 중심을 잃었다. 삶의 중심을 잃었고, 대지와의 관계도 깨어졌
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에 바탕을 둔 지혜의 말에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그들의 말은
단순하고, 목소리는 부드럽다.
-켄트 넬번
인디언들에게는 문명인들이 자연에 있는 모든 것-숲과 새, 짐승, 풀이 우거진 늪과
물과 흙 그리고 공기까지도 미워하는 듯이 보였다.
-디 브라운
누구도 대지의 소유자가 될 수 없으며, 누구도 한번뿐인 삶의 소유자가 아니다. 사
람이든 나무든 벌레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시각이 바
로 아메리칸 인디언이 가진 시각이며,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들이다.
- 스티브 데이비슨
문명 비판서이면서 동시에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지혜서! 또한 아름다운 시편과도 같
은... 그 글귀들은 평원의 말잔등에 불도장이 찍히듯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비를 내리는 나무 - 세상의 모든 아침을 여행하는 인디언들의 지혜
어느 날 꿈에서 인디언처럼 생긴 한 남자가 나타나 내게 '비를 내리는 나무'를 주었
다. 그리고는 그것의 사용법을 자세히 설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 무렵 나는 내 아들
미륵이와 함께 두 달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을 여행중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기 일주일 전, 나는 명상서적류를 판매하는 파사데나의 알렉산
드리아 뉴에이지 서점에 들렀다가 꿈에서 본 그 '비를 내리는 나무'를 발견했다. 인디
언 남자가 내게 준 것과 모양도 같고 크기도 비슷했다. 나는 신기한 마음이 들어, 친
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다섯 개를 샀다.
비를 내리는 나무는 위아래로 기울이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곤 했다. 굵은 갈
대나무를 지팡이 크기로 잘라 만든 것으로, 갈대 속에는 씨앗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기울일 때마다 그것들이 갈대의 홈을 타고 굴러떨어지면서 빗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고즈넉한 평원에 내리는 빗소리 같기도 했고, 천막 위로 떨어지는 지나가는
비처럼 들릴 때도 있었다.
비를 내리는 나무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첫번째로 문제를 일으켰
다. 시애틀 공항에서였다. 내가 탄 서울행 노스웨스트 항공기는 이륙을 위해 활주로
쪽으로 달려가다 멈추고, 또다시 달려가다가 멈추더니 비행기 점검을 이유로 한 시간
이 넘도록 정지해 있었다. 마침내 기장은 기내방송을 통해, 비행기 화물칸에서 들리는
어떤 소음 때문에 이륙이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시간은 마냥 지체되고, 승객들의 짐가방을 일일이 확인한 끝에 마침내 범인을 찾았
다. 바로 내가 갖고 탑승한 비를 내리는 나무였다. 비행기가 활주로 위로 이동할 때마
다 그것이 한켠으로 기울어지면서 요란하게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냈던 것이다.
마침내 비행기는 이륙을 했고, 그러는 동안 맑게 개었던 하늘에는 갑자기 검은 비구
름이 몰려와 비행기 창문에다 점점이 빗방울을 떨구었다. 나는 그것이 우연의 일치라
고 생각했다.
돌아온 다음날, 나는 어느 서점에서 주최한 작가 사인회 행사에 참석했다. 내 시집
과 산문집, 그리고 그동안 번역한 명상서를 읽은 독자들이 찾아와 인사를 나누고 내
사인을 받아갔다. 나는 그들의 얼굴과 시선에서 영적인 세계를 갈망하는 순수한 열정
을 발견했으며, 메마른 삶의 편린들을 두들겨 일깨우는 빗방울 소리를 들었다.
행사가 끝난 직후, 나는 여행의 피곤함을 핑계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곧장 제주도의
내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 가뭄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제주도의 산과 바다는 푸르름 일
색이었다. 나는 며칠을 잠만 잤다. 그리고 꿈 속에서 또다시 인디언처럼 생긴 그 남자
를 만났으며, 그는 태양춤(선댄스)을 추며 나를 향해 끝없이 비를 내리는 나무를 흔들
어대는 것이었다. 나도 그를 따라 드넓은 평원에서 태양춤을 추었다.
문득 잠을 깨면 내 아들 미륵이가 머리맡에서 비나무를 흔들며 놀고 있었다. 그러면
밖에서는 어김없이 비가 퍼부었다. 나는 다시 잠들면서, 그것이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
고 중얼거렸다.
여름이 다가오고 마침내 우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장마전선은 제주도 남쪽 해상에
머물러 있다가 미륵이와 내가 인디언 샤먼처럼 비를 내리는 나무를 흔들어댈 때만 북
상해서 비를 뿌리고 다시금 물러나곤 했다. 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우연의 일치라
고만 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비나무를 흔들지 않는 일주일 동안은 태양이 바다 위를
명랑하게 순례했다.
미국 여행에서 내가 갖고 돌아온 것이 단지 '비를 내리는 나무'만이 아니라는 걸 나
는 깨닫는다. 여행기간 동안 나는 주로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정신세계를 배우려고 애
썼고, "대지는 인간의 한 부분이며 인간은 대지의 한 부분"이라는 그들의 목소리가 늘
내 머릿속을 울렸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만난 그 인디언 남자가 내게 어떤 영감을 주려고 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가 내게 보여 주고자 한 것은 단순히 비를 내리는 나무가 아니라, 인간의 마
음과 행위는 세상 전체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 내가 나무 한 그루를 흔들면 우주 전체
가 그것에 화답하고 그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고, 나의 꿈이 삶 전체의 질서와 어우러
질 때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욕망의 길이 아닌 마음과 혼이 담긴 길
을 걸어야 한다는 인디언들 특유의 깨달음의 세계였다.
그런 계기로 해서 나는 이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여기저기 책과 문헌 속에 흩
어져 있는 인디언들 자신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수집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 글
들 대부분은 그들이 '얼굴 흰 사람'이라고 부르는 백인들, 어떤 것은 인디언들의 대표
적인 저서 내지는 구술서 속에 수록된 글들이다.
미국에서조차 인디언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않고 그나마 있는 자료도
신빙성이 의심가는 터에,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는 꿈속에 나타났던 그 인디언
남자-인디언식으로 말한다면 '길잡이 늑대(가이딩 울프)'-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는 저마다 길잡이 늑대의 인도를 받
아 자기만의 길을 걸어 생을 여행하고 있음을 나는 느낀다.
또한 나는 기원하지 않을 수 없다. '비를 내리는 나무'가 구름을 흔들어 비를 내리
듯이, 세상의 모든 아침을 여행하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지혜가 우리의 일상적인 마
음을 흔들어 감동의 비를 뿌려주기를...
-류시화
차례
이 책을 읽기 전에
옮긴이의 글
세상의 다른 이름 - 시애틀 추장/수콰미쉬 족과 드와미쉬 족
마음의 계절 - 얼굴에내리는비/훙크파파 족
소중한 것들 - 작은나무/체로키 족
삶의 방식 - 네자루의총/오글라라 수우 족
말과 침묵 - 서있는곰/테톤 수우 족
마음과 영혼 - 작은나무/체로키 족
흐르는 강물처럼 - 와헤니/히다차 족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구름처럼붉은/오글라라 수우 족
세상을 보는 방식 - 조셉 추장/네즈 페르세 족
나는 왜 거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가 - 머리맡에두고자/블랙푸트 족
평원에서 생을 마치다 - 열마리의곰/얌파리카 코만치 족
세상의 모든 아침 - 상처입은가슴/델라웨어 족
겨울 눈으로부터 여름 꽃에게로 - 구르는천둥/체로키 족
마음이 담겨 있는 길 - 돈후앙/야키 족
날마다 좋은 날 - 동쪽에서온사람/샨티 수우 족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 - 동쪽에서온사람의삼촌/샨티 수우 족
믿는다는 것 - 빨간윗도리/이로콰이 족
세상은 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 - 느린거북/왐파노그 족
대지의 꿈 - 구르는천둥/체로키 족
부록 - 인디언 달력
이 책의 편집에 사용한 원서와 참고서적들
세상의 다른 이름
시애틀 추장 - 수콰미쉬 족과 드와미쉬 족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
의 일부분이다."
워싱턴의 얼굴 흰 대추장이 우리에게 우정의 표시와 안부를 전해 왔다. 무척이나 친
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는 우리의 우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의 부족은
숫자가 많다. 그들은 초원을 뒤덮은 풀과 같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적다. 마치 폭풍
이 휩쓸고 간 다음에 드문드문 서 있는 들판의 나무들과 같다.
위대하고 훌륭한 백인 추장은 아울러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는 제의를 해왔다. 그러
면서 우리에게는 아무런 불편없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당신의 제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백인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어떻게 우리가 공기를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 판단
말인가? 우리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우리로부터 사들
이겠단 말인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 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
든 곳, 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 부족의 기억과 가슴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에
서 솟아오르는 수액은 우리들 붉은 얼굴 가진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
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고, 순록
과 말과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의 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
간의 땀은 모두 하나이며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따라서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의 땅을 사겠다고 한 제의는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요
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우리의 누이와 형제와 우리 자신을 팔아넘기는 일과 다
름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문명인이 우리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함을 안다. 그에게는 우리의 땅
조각이 다른 땅조각들과 똑같은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땅을
손에 넣기 위해 밤중에 걸어오는 낯선 자이다. 대지는 그의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
는 대지를 정복한 다음에 그곳으로 이주를 한다. 그는 대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개의
치 않는다. 어머니인 대지와 맏형인 하늘을 물건처럼 취급한다. 그의 욕심은 대지를
다 먹어 치워 사막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 우리의 방식은 당신의 방식과 다르다. 우리의 대지를
팔아야 한다면, 그 공기 또한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숨결을 불어 보내는 것이 공기이며, 세상의 모든 아침마다 우리가 맞이
하는 것이 그 공기이다. 바람은 나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과 마지막 숨을 주었다. 그
바람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명을 불어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묶여 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
은 대지의 아이들에게도 일어날 것이다. 사람이 삶의 거미집을 짜 나아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람 역시 한 오라기의 거미줄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그가 거미집에 가하
는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그대로 되돌아 온다. 당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
다.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 조상들의 육신과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대지를 존중하도
록 해야 한다. 대지가 풍요로울 때 우리의 삶도 풍요롭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가르치듯이, 당신도 당신의 아이들에게 대지가 우리의 어
머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대지에게 가해지는 일이 곧 대지의 아들들에게 가해
진다. 사람이 땅을 파헤치면 곧 그들 자신의 삶도 파헤치는 것이 된다.
이것을 우리는 안다. 대지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며, 인간이 오히려 대지의 소유물
이다. 그것을 우리는 안다.
머지않아 당신의 부족이 홍수 뒤의 강물처럼 이 대지를 온통 뒤덮을 것이다. 반면에
나와 나의 부족은 썰물과도 같은 운명이 되었다. 이러한 운명은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는 하나의 신비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아스라한 별을 지켜보듯이 우리의 소멸해 가는
운명을 지켜볼 뿐이다.
얼굴 흰 사람들의 꿈을 우리가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들이 마음 속으로 어떤 희
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으며, 긴 겨울밤에 자기의 자식들에게 그려 보이는 내일의 모습
이 어떠한가를 우리가 알 수 있다면... 하지만 우리는 야만인들이고, 문명인들의 꿈은
우리에게 가리워져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며, 얼굴 흰 형제들에게 그 책임을 묻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며 우리들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니까.
당신의 부족과 나의 부족은 기원도 다르고 운명도 다르다. 이 두 부족 사이에는 공
통점이란 없어 보인다. 우리에게는 우리 조상들의 유해가 더없이 성스러우며, 그들이
휴식하고 있는 장소는 신성한 곳으로 모셔진다. 그러나 당신들은 당신 조상의 무덤 위
를 마구 돌아다니며, 그럼에도 후회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들의 조상은 무덤의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자기가 난 이 땅과 당신들을 사랑하기를 그치고 먼 별들 아래를
헤맨다. 그리고는 금방 잊혀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의 죽은 혼들은 자기를 태어나게 한 아름다운 세계를 결코 잊지 않는다. 육체를
떠나서도 구불거리는 강과 숨은 골짜기, 이 거대한 산과 호수들을 변함없이 사랑한다.
저마다 외로운 사냥꾼들인 살아 있는 우리에게 부드러운 애정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
으며, 그래서 자신들이 가 있는 저 '행복한 사냥터'로부터 돌아와 종종 우리를 방문하
고 위로하고 길을 인도하는 것이다.
밤과 낮은 한 집에 살 수 없다. 얼굴 붉은 사람들은 떠오르는 아침녘 해에 새벽 안
개가 달아나듯이 문명인들이 다가오면 뒤로 달아날 수밖에 없다. 남은 날들을 어디에
서 보내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남은 날들도 많지 않으니까.
우리에 대한 당신의 제안을 공정한 것이라고 나는 여긴다. 그리고 나는 나의 부족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당신이 제공하는 인디언 거주지역 안으로 물러날 것이라 생각한
다. 그곳에서 우리는 얼굴 흰 대추장의 명령을 짙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대자연의
목소리라 여기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이다.
몇 번의 달이 더 기울고, 몇 차례의 겨울을 더 넘기고 나면 한때 이 드넓은 대지 위
를 뛰어다니던, 한때 위대한 정령의 보호를 받으며 행복한 가족을 이루고 살던 힘센
부족의 아들들은 모두 무덤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한때는 당신들보다 더 강하고 더
희망에 넘쳐 있던 한 부족의 아들들이.
하지만 내가 왜 내 부족의 운명에 대해 슬피 여길 것인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한 부
족이 가면 한 부족이 오고, 한 국가가 일어나면 한 국가는 물러난다. 바다의 파도와
같은 것이다. 한 차례의 눈물, 한 번의 타마나우스, 즉 한 번의 만가와 더불어 그들은
우리의 눈앞에서 영원히 떠나간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이다. 슬퍼할 필요가 없는 것이
다.
당신의 부족이 스러질 날이 지금으로선 아득히 먼 훗날의 일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날은 틀림없다. 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문명인들이라 해도 공통된 운명에서 예외일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곧 알게 될 것이
다.
당신의 제안에 대해 우리는 깊이 생각할 것이며, 결정이 나는 대로 알려 주겠다. 하
지만 우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
는 바이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당신에게 팔더라도 항시 자유롭게 우리 조상의 무덤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친구와 아이들의 무덤도 마찬가지다.
우리 부족에게는 이 대지의 모든 부분이 똑같이 신성한 것이다. 모든 언덕빼기, 모
든 골짜기, 모든 평야와 숲덤불이 우리에게는 아득히 사라져간 날들의 슬프고 기뻤던
사건들을 간직하고 있다. 고즈넉한 해안을 따라 태양 아래 죽은 듯이 입다물고 있는
바위들조차도 우리 부족의 삶과 연결된 사건들에 대한 추억으로 몸을 떨고 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이 흙도 우리 부족의 발이 닿으면 훨씬 더 다정하게 반응한다. 이 흙
은 우리 조상들의 뼈로 이루어졌고, 당신들의 구두 신은 발보다 우리의 맨발에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짧은 계절 동안 이곳에서 삶을 누렸던 흩어진 전사들과 그리운 어머니들, 마음씨 좋
은 아줌마들은 아직도 이곳의 장엄한 침묵을 사랑한다. 설령 최후의 얼굴 붉은 사람이
사라져서 우리 부족에 대한 기억이 백인들 사이에 하나의 신화로 남을지라도 이 해안
은 우리 부족의 보이지 않는 혼들로 가득할 것이다. 따라서 먼 훗날 당신의 아이들이
황야에서, 슈퍼마켓에서, 고속도로 위에서 또는 고요한 산림 속에서 자기가 혼자라고
느낄지라도 결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우리 부족의 보이지 않는 혼들이 대지를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므로.
이 모든 대지 위에 자기 혼자라고 할 만한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의 마을과
도시의 거리들이 밤이 되어 고요해지고 당신은 황량하다고 느낄지 몰라도 아직도 이
아름다운 땅을 사랑하는 우리 부족의 숨결이 모든 곳에 가득하다. 문명인들은 결코 고
독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죽은 자라 해서 아무런 힘을 갖지 않은 것이 아니므로,
당신은 우리 부족에게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그들은 다만 세상의 다른 이름
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 내가 '죽은 자'라고 말했던가? 그렇지 않다.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만이 있을 뿐이다.
마음의 계절
얼굴에내리는비(레인 인 더 페이스) - 훙크파파 족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행복한 것인가..."
나의 이름은 얼굴에내리는비(레인 인 더 페이스)이다. 나와 함께 온, 지금 당신들
앞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이 사람들은 나의 부족이며 나는 그들의 추장이다.
우리는 이곳에 왜 왔는가? 연어떼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올해의 첫 연어떼가 강물로
거슬러올라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연어는 우리의 주된 식량이기 때문
에 연어떼가 일찌감치 큰 무리를 지어 강의 위쪽으로 거슬러오는 걸 보는 일만큼 우리
에게 즐거운 일은 없다. 그 숫자를 보고서 우리는 다가오는 겨울에 식량이 풍부할 것
인가를 미리 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더없이 기쁜 까닭은 그 때문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
은 연어떼가 햇살에 반짝이며 춤추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 또 한
번의 행복한 겨울이 우리를 찾아올 것을 짐작한다.
우리가 무리를 이루어 몰려왔다고 해서 마치 전투를 벌일 양 온 것으로 생각하진 말
아달라. 나는 당신들이 우리의 땅에 온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 당신들과 우리는 모
두가 이 대지의 아들들이며, 어느 한 사람 뜻없이 만들어진 사람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이 땅에 와서, 이 대지 위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가? 어떤 꿈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들려 주는가?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그저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고 나무들을 쓰러뜨릴 뿐이다. 그래서 행복한가? 연어
떼를 바라보며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행복한 것인가?
문명인들의 도시 풍경은 얼굴 붉은 사람의 눈에는 하나의 고통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이 야만인이라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당신들의 도시에는 조용한 장소라는 곳이 없다. 봄의 나뭇잎 소리를 듣거나 곤충의
날개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아마도 내가 야만인이라서 이해를 못하
기 때문일 테지만, 당신들의 도시에서 들리는 소음은 귀를 욕되게 할 뿐이다.
인디언은 물웅덩이의 수면으로 내리꽂히는 바람의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한다. 한낮
에 내린 비에 씻겨진 바람 그 자체의 냄새를 좋아한다. 미국산 소나무의 향내도 마찬
가지다. 얼굴 붉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기는 더없이 소중한 것! 그것은 동물이든 나
무든 사람이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똑같이 숨결을 나누어갖기 때문이다.
죽은 지 며칠이 지난 사람처럼 당신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악취에도 아무런 반응
이 없다.
이런 식으로 당신들 자신의 잠자리를 계속 파헤치고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인가 당
신들은 스스로의 폐허에서 숨이 막혀 깨어날 것이다.
들소는 모두 죽임을 당하고, 야생마들은 모두 길들여지고, 숲의 은밀한 구석까지 사
람들의 냄새로 가득하다. 그리고 산마다 목소리를 전하는 전선줄이 어지럽게 드리워져
있다. 덤불숲은 어디에 있는가? 없어져 버렸다. 독수리는 어디에? 사라져 버렸다.
들짐승이 사라진다면 인간이라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들짐승들이 저 어두운
기억의 그늘 속으로 모두 사라지고 나면 인간은 혼의 깊은 고독감 때문에 말라죽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짐승에게 일어나는 일은 똑같이 인간에게도
일어난다.
당신들이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러니 사냥이니 날쌘 동작이니 하는 것에
대해 굳이 작별을 고할 필요가 무엇인가? 이제 삶은 끝났고, '살아남는 일'만이 시작
되었다.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는 더없이 풍요로웠지만, '살아남는 일'에
있어서는 더없이 막막한 곳일 따름이다.
연어떼를 보았으니 이제 나와 나의 부족은 행복한 얼굴로 돌아간다. 어쩌면 또 한번
의 행복한 겨울은 짐작에 그칠 뿐, 나의 부족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꿈일지 모른
다. 당신들 문명인들에게 밀려, 살아남기 위해 고통받아야 할 막막한 겨울 들판으로
뿔뿔이 떠나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본 연어떼의 반짝이는
춤을 나의 부족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 내 말을 마친다.
소중한 것들
작은나무(리틀 트리) - 체로키 족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를 사랑하는 일도 불가능하며, 또한 신
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을 사랑할 수도 없다..."
나의 이름은 작은나무(리틀 트리)이고, 나는 체로키 족 출신 인디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 년 만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나는 다섯 살
이었고, 그날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날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버스를 타고 할아버지의 오두막이
있는 테네시 산중으로 갔다. 버스를 내려서도 긴 띠처럼 풀이 자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갔는데, 멀리 우뚝 솟은 산이 보였다. 그때 내 뒤에서 오시던 할머니가 말씀
하셨다.
"여보, 작은나무가 지친 것 같아요."
그 말씀에 저만치 앞에 가시던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셨다. 할아버지는
나를 내려다보셨다. 큰 모자에서 드리워진 그림자 때문에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소중한 걸 잃었을 때는 녹초가 되는 것도 괜찮지."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몸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이제는 할
아버지를 따라잡기가 좀 쉬웠다. 할아버지의 걸음이 느려졌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역시 지치신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걸은 뒤 우리는 이번에는 차도 다닐 수 없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곧
장 산의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가다가는 꼭 그 산과 부딪칠 것만 같은 기분
이었지만 우리가 계속 걸어감에 따라 산은 소리없이 열리면서 우리를 제 품안에 맞아
들였다.
할아버지의 집에 도착한 이튿날 아침 나는 서둘러서 바지를 입고 윗도리의 단추를
채운 뒤 할아버지와 함께 산 위쪽으로 산칠면조 사냥을 나갔다. 밖은 아직 어둡고 추
웠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새벽바람조차도 나뭇가지를 흔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고 오솔길 한쪽을 가리키셨다.
"여기를 보렴. 산칠면조가 지나간 자국이 보이지?"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은 채, 흙 위에 찍힌 작은 새발자국을 여럿
찾아냈다.
"덫을 놓기로 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오솔길을 벗어나 얼마쯤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구덩
이 하나를 찾아내셨다.
우리는 구덩이 안에 들어찬 낙엽을 걷어냈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와 나는 둘이서 구
덩이 속의 흙을 밖으로 퍼내기 시작했다. 내 키 높이만큼 구덩이가 깊어졌을 때 우리
는 나뭇가지와 낙엽을 끌어모아 구덩이를 위장했다.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는 구덩이
있는 데서부터 아까 산칠면조 발자국들이 있는 곳까지 좁다란 길을 내셨다. 길이 완성
되자 할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붉은 인디언 옥수수 알들을 꺼내 그 길 위에 점점이 뿌
려 놓으셨다. 구덩이 안에도 한 줌 던져 넣으셨다.
그런 다음 우리는 다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흙을 뚫고 솟아오른 얼음
들이 우리의 발 아래서 부서졌다. 이윽고 아침해가 건너편 산 위에서 솟아올라 눈부신
빛으로 대기를 가득 채웠다. 얼음으로 덮인 나뭇가지들이 그 빛을 반사하는 바람에 눈
이 아렸다. 이제 산은 일시에 깨어 일어나 대기중에 엷은 숨을 내뿜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 광경을 지켜보셨고, 나무들 사이로 나직하게 휘파람
을 부는 아침 바람소리와 더불어 점점 뚜렷해져 가는 산의 숨결에 귀 기울이셨다.
"산이 살아나는구나."
할아버지는 여전히 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래요, 할아버지. 산이 살아나고 있어요."
이렇게 할아버지의 말씀을 받는 그 순간 나는 알았다. 할아버지와 내가 사물에 대한
똑같은 이해의 순간을 체험했다는 것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으나 문득 바라보니 한 귀퉁이에서 작은 점 하나가 날아오
고 있었다. 그것은 점점 커져갔다. 커다란 새였다. 새는 자기 앞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으려고 해를 마주보는 자세로 날아오다가 번개같이 산허리의 풀밭으로 돌진하기 시
작했다. 그러더니 날개를 반쯤 접은 채 화살처럼 메추라기떼를 향해 내리꽂혔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셨다.
"저게 늙은 매 탈콘이다."
메추라기들은 혼비백산 숲 속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그런데 그 중의 하나가 동작이
굼떴다. 매는 그놈을 강타했다. 깃털이 공중에 흩날리면서 메추라기는 바닥에 나동그
라졌다. 조금 뒤 매는 메추라기를 두 발로 움켜쥐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산등성이 너머
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슬픈 표정까지 어찌할 순 없었다. 이런 나를 보더니 할아버지
는 말씀하셨다.
"슬퍼할 필요없다. 작은나무야, 이것이 자연의 이치란다. 매는 느린 놈을 잡았고,
그 때문에 느린 놈들은 자기를 닮은 느린 자식들을 세상에 내보낼 수 없게 되는 것이
다. 또 매는, 빠른 놈의 알이거나 느린 놈의 알이거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메
추라기 알을 먹어치우는 들쥐 수천 마리를 잡아먹지. 이런 식으로 매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고 있다. 어느 면에서는 메추라기를 돕고 있는 거야."
할아버지는 칼로 흙 속에 묻힌 어떤 달콤한 식물 뿌리를 캐내어 절반을 잘라 나한테
주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필요한 만큼만 갖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사슴 사냥을 할때도 가장 훌륭하고
멋진 놈을 잡아선 안 된다. 그중 작고 느린 놈을 잡아야지. 그러면 사슴들은 더욱 강
해지고, 그래서 늘 우리에게 고기를 마련해 주게 되지. 표범이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너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자연의 이치를 지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소리내어 웃으셨다.
"그런데 꿀벌만이 저한테 필요한 것 이상을 모아둔다. 그러니까 결국은 곰이나 사람
한테 꿀을 빼앗기고 말지. 인간들 중에도 그런 자가 있다. 제 몫 이상을 저장하고 저
혼자만 잘 먹고 지내려는 자들이지. 결국은 빼앗기기 마련이야. 그 때문에 전쟁도 하
게되고... 그들은 필요도 없는데 제 몫 이상을 차지하려고 별별 허튼 소리를 다 늘어
놓는다. 또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자기가 더 많이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사
람들은 그런 명분과 허튼 소리 때문에 목숨까지 잃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다고 해서
자연의 이치가 바뀌어지진 않아."
할아버지와 나는 산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우리가 산칠면조 덫 있는 데 도착했을 때
는 이미 해가 중천에 와 있었다. 덫을 들여다 보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산칠면조들이
내는 소리로 그것들이 그 안에 잡혀 있음을 알았다. 산칠면조들은 놀라서 산칠면조 특
유의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푸드덕거렸다.
"할아버지, 나가지 못하게 막는 문도 없는데 왜 저것들은 머리를 낮추고 기어나오지
않을까요?"
내가 묻자, 할아버지는 구덩이 안으로 한껏 팔을 뻗어 연신 꽥꽥거리며 난리를 치는
큼직한 산칠면조 한 마리를 끌어냈다. 가죽끈으로 그 놈의 다리를 묶은 다음 할아버지
는 날 쳐다보며 씩 웃으셨다.
"이 늙은 산칠면조는 어딘가 사람을 닮은 구석이 있지. 이 놈들은 제가 뭐든지 다
안다는 듯이 생각하고는 고개를 낮추어 네 주위를 살펴보려고 하는 법이 없어요. 언제
나 목에 힘을 주고 뻣뻣하게 대가리를 치켜세우고만 있으니 무얼 알 턱이 없지. 그렇
게 하고 다니자면 그 머리가 여간 무거운 짐이 되지 않지. 우리 체로키 부족이야 우리
머리가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지만 말이다."
할아버지는 또 다른 산칠면조들을 꺼내 다리를 묶고는 땅바닥에 눕혔다. 모두 여섯
마리였다. 할아버지는 그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모두 나이가 비슷하다. 머리 벼슬의 두께를 보면 금방 알 수가 있지. 작은나무야,
우리는 세 마리밖에 필요없으니 네가 한번 골라 보거라."
나는 퍼덕이는 산칠면조들 주위를 돌면서 살펴보다가 마침내 그중 작아보이는 세 마
리를 골라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나머지 세 마리의 다리에서 가죽끈을 끌러 주기만 하셨
다. 풀려난 놈들은 날개를 휘저으며 허겁지겁 산비탈을 굴러내려갔다. 할아버지와 나
는 칠면조를 어깨에 둘러메고 산길을 내려갔다. 산칠면조는 꽤 무거웠지만 어깨에 닿
는 그 감촉에 마음이 여간 뿌듯하지 않았다. 겨울의 늦은 오후였고 바람은 잔잔했다.
나는 이 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나는 이미 자연의 이치를 하
나 터득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산짐승들의 생활을 위협하는 일이 결코 없었다.
짐승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짐승들을 '쫓아야 할'목표물로서가 아니라 '더불어'사는 존재들로 보셨
다. 그러나 얼굴 흰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은 매우 거칠고 무례한 자들이었
지만 할아버지는 그들의 존재를 잘 참아내셨다. 도시인들은 사냥개들을 끌고와서는 시
끌벅적하게 온 산을 들쑤시며 다니곤 했다. 그 바람에 산짐승들은 그들만 나타나면 숨
을 곳으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들은 열두 마리의 산칠면조를 봤다 하면 그 열두 마
리를 모조리 잡아죽이려고 덤벼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직성이 제대로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네가 드나드는 산에 점점 짐승들의 씨가 마른다고 연신 불평을
해댔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더러 머리를 흔든 적은 있었으나 언
제나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내게만은 말씀해 주셨다. 그들은 체로키 부족의 이치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나 나는 무척이나 말주변이 없었고 말에 대
한 감각이 둔한 편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경우 예외가 있다면 산이나 사냥, 또는
날씨 등에 관해 말씀하실 때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말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면 시끄럽고 골치
아픈 일들도 훨씬 덜할 거라고 하셨다. 어느 세상에나 똥 같은 자식들이 있기 마련이
어서, 말썽을 불러일으키는것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들을 열심히 만들어 내고
있다고 내 생각에도 할아버지의 말씀이 옳은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말이 갖고 있는 의미보다는 그 말이 갖는 '소리'를 더 높이 치셨다. 다
시 말해 어떤 말이 어떤 의미를 지녔느냐보다는 그 말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느냐
에 더 관심이 있으셨다. 할아버지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끼리라도 음악소리를
들을 때는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것에 대해선 할머니도 같은 의견이
셨다. 두 분이야말로 대화할 때 말뜻보다는 말소리에 의해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분
들이셨으니까.
나는 어느 날 밤 늦게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아이 킨 예(I kin ye)."라고 말씀하
시는 걸 들었다. 이 말은 그 속에 담긴 느낌으로 볼 때 "당신을 사랑해."라는 말이었
다.
또 할머니는 말씀 도중에 할아버지에게 곧잘 "두 유 킨 미?"라고 물으실 때가 있었
으며, 이에 대해 할아버지는 "아이 킨 예."라고 대답하곤 하셨다. 이때의 킨은 '이해
한다'는 뜻으로 할아버지의 말씀을 다르게 표현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I under
stand you)."라는 뜻이었다. 이렇듯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사랑과 이해는 하
나로 통했다. 할머니는 곧잘, 이해할 수 없으면 사랑할 수도 없다, 그리고 만일 우리
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다면 그를 사랑하는 일도 불가능하며, 또 신을 이해하지 못
하면 신을 사랑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를 진실로 이해하셨고 따라서 서로가 사랑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이해의 도가 더욱 깊어져 간다고 하셨으며, 그러한 이
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이해의 개념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그것은 또한 설명도 불가능한 것이라고 하셨다. 바로 그러한 이해의 상태
를 그분들은 '킨'이라는 말로 표현하셨다.
할아버지는, 옛날에는 혈족, 친척이라는 뜻을 가진 '킨폭스(kinfolks)'라는 말이 원
래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또는 '함께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
며, 그것은 또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란 뜻을 담고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으로 되다 보니 본래의 의미와 무관한, 그저 피를 나눈 사람들이
라는 정도의 뜻으로 굳어지고 말았지만 그건 절대로 그런 정도의 하찮은 뜻을 담은 말
이 아니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추한 일들이 생기는 것은 바로 사람들 서로가 '킨'
이 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정치가들이야말로 세상에서 '
킨'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이요, 말썽거리를 불러일으키는 장본인들이라 말씀하셨
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네가 지나간 일을 모른다면 네게는 앞으로의 일도 없으며, 네
조상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면 네 부족이 앞으로 어디로 갈지도 모르게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에게 우리 부족의 과거를 알려주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에
게서 그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서리가 옥수수 알을 단단하게 만드는 계절이 되면 체로키 족이 사는 마을에서는 추
수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은 겨울 사냥 채비를 시작했으며, 자연
의 이치를 따르겠다는 서약을 했다.
그들이 이렇게 평화롭게 살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얼굴 흰 사람들이 쳐들어와서는
종이쪽지를 내밀며 서명을 하라고 다그쳤다. 그 종이쪽지가, 이 땅에 새로운 백인 정
착민들이 들어올 것인데 결코 체로키 족의 땅을 빼앗지도, 가까이 접근하지도 않을 것
임을 다짐하는 문서라고 하면서.
이 종이쪽지에 체로키 족들이 서명을 하자 이번에는 더 많은 숫자의 얼굴 흰 사람들
이 길다란 대검을 꽂은 총으로 무장을 한 채 다시 몰려왔다. 그 군인들은 먼젓번 서류
에 적힌 내용이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내용인즉슨 이제 체로키 족들은 새로운 조약에
의해 지금까지 살던 골짜기와 집과 산들을 몽땅 내놓고 정보가 체로키 족을 위해 마련
한 다른 땅으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해가 지는 머나먼 땅, 백인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황무지 땅으로.
문명인들은 총칼로 모든 체로키 족을 골짜기 안에 몰아넣은 다음에 말과 포장마차들
을 가져다 주면서 체로키 사람들에게 해가 지는 땅끝으로 갈 때 그걸 타고 가도 좋다
고 했다. 그러나 체로키 사람들은 마차를 거부했다. 이제 체로키 사람들은 집과 땅을
빼앗긴 빈 껍질 뿐인 존재들이었으나, 군인들이 준 마차를 타지 않음으로써 무엇인가
를 소중히 지킬 수 있었다. 그건 볼 수도, 입을 수도, 먹을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어
쨌든 그들은 그걸 지켜냈다. 모두 군인들의 마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갔다.
말을 탄 군인들이 총을 들고서 체로키 사람들을 앞뒤에서 호위하듯 포위한 채 따라
왔다. 체로키 사내들은 똑바로 앞만 보고 걸을 뿐 땅바닥을 내려다보지도 군인들을 쳐
다보지도 않았다. 체로키 여자들과 아이들 역시 옆으로 시선 한번 주지 않은 채 앞선
어른 남자들만을 묵묵히 따라갔다.
행렬의 맨 뒤에서 하등 쓸모가 없어진 빈 포장마차들이 요란하게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뒤따라왔다. 체로키 사람들은 그깟 포장마차 때문에 영혼까지 빼앗기지는 않았
다. 비록 땅과 집은 빼앗겼지만 말이다.
얼굴 흰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얼굴 흰 사람들은 체로키 부족이 지나
가는 광경을 구경하려고 길가에 떼지어 몰려나왔다. 그들은 체로키 사람들이 마차도
타지 않고 맨발로 걸어가는 광경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러나 체로키 사람들
은 그들의 비웃음에도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꼿꼿하게 걸어가자 그들의 웃음소리는
이내 멎어 버렸다.
자기네가 살던 산악지대로부터 점차 멀어지면서 체로키 사람들은 하나둘씩 육체를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죽지도 약해지지도 않았다. 처음에 백인들은
시신이 나올 때마다 행군을 멈추고 파묻을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날이 가면서 하나둘
이 죽는 정도가 아니라 몇 백, 몇 천이 연속해서 죽어 넘어지자 그대로 행군을 계속했
다. 시체는 빈 포장마차에 실으라는 명령이 내려졌지만 체로키 사람들은 그 명령을 거
부했다. 그 대신 그들은 시신을 두 팔로 안거나 들쳐업은 채 걸어갔다. 나중의 이야기
지만 결국 이 수난의 길에서 전체 체로키 족의 삼 분의 일 이상이 사망했다.
때로는 이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백인들 중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체로키 부족의 사람들은 울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문명인들 앞에서 자기네의 영
혼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장마차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얼굴 흰 사람들은 이 길을 '눈물의 여로'라고 불렀다. 그러나 체로키 사람들이 울었
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인 건 아니었다. 체로키 사람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으니
까. 그들은 '눈물의 길'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체로키 부족의 행진은 죽음의 행진이었고, 이러한 행진에 낭만
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 백인들은 1만 3천 명의 체로키 부족을 집단으로 오클라호마의 수용소(우리가 '인
디언 보호구역'으로 잘못 알고 있는 곳)로 강제 이주시켰다. 1천 3백 킬로의 행군중에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사망자가 속출해 그 숫자는 4천 명에 달했다. 수용소에 도착해
서도 나머지 절반이 사망했다. 이것은 다른 인디언 부족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강제 이주로 미국 연방정부는 인디언 말살정책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지만, 아메
리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큰 오점을 남겼다.
삶의 방식
네자루의총(포 건스) - 오글라라 수우 족
"진실이 담긴 말은 그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어 영원히 기억된다. 그러면 그는 결코
그것을 잊는 법이 없다."
나는 일전에 워싱턴에 있는 문명인 대추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들의 만찬에도 참
석했었다. 그런데 그들의 방식은 우리의 방식과 다르다. 침묵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조용히 담배를 피운 뒤 헤어지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다. 그것이 우리를 초대한 사람에
대한 예의다.
얼굴 흰 사람들의 방식은 다르다. 그들은 음식을 먹고 난 뒤 어리석은 우스갯소리를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떠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초대한 사람도 기분이 좋아
진다.
문명인들의 방식에는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나를 초
대한 사람(인류학자 클라크 위슬러)은 우리 인디언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이야기
들을 여러 권의 노트에 깨알같이 적어 놓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사람들의 방식이
다. 그들은 뭐든지 글로 기록하며, 그래서 항상 종이를 갖고 다닌다.
그들이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워싱턴에는 그들이 우
리 인디언들에게 했던 약속을 기록한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그들 중 누구 하
나 그걸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를 초대한 주인은 그렇지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자신이 여러 권의 노트에 열심
히 적어 놓은 우리 인디언의 이야기들을 그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현대 문
명인들이 그것을 읽게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그렇긴 해도 우리는 당황스럽게 짝이 없다. 도대체 왜, 그들은 무엇이든지 종이에
적어 놓으려고 하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문명인들이 나타났다
하면 항상 종이에 적는 일이 시작된다. 우리가 설탕이나 차를 사러 가도 백인 장사꾼
은 장부에다 열심히 기록한다. 의사들까지도 환자가 옆에 앉으면 종이에 뭔가를 기록
하려고 연필부터 집어든다.
나는 야만인이라서 이해가 안 가는 것이겠지만, 문명인들은 종이에 어떤 신비한 힘
이 있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것들이 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것임에 틀림
없다.
인디언은 종이에 기록할 필요가 없다. 진실이 담긴 말은 그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어
영원히 기억된다. 그러면 인디언은 결코 그것을 잊는 법이 없다. 반면에 문명인들의
경우는 한번 서류를 잊어버렸다 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심지어 어떤 목사는 설교
하기를, 위대한 책 속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까지 말하
는 것이었다.
말과 침묵
서있는곰(스탠딩 베어) - 테톤 수우 족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삶을 살았다. 첫 숨부터 마지막 숨까지..."
나는 테톤 수우 족의 추장이다. 우리 수우 족에는 여러 지파가 있었으며, 서쪽에 사
는 지파를 통틀어 라코타 족이라 불렀다. 나는 나의 아버지들 외에는 누구로부터도 가
르침을 받지 않았으며, 나의 아버지들은 대지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당신이 당신의 신을 갖고 있듯이 나의 부족은 위대한 정령 와칸탕카를 믿었다. 와칸
탕카는 이 세계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나의 라코타 부족의 신이었다.
위대한 정령 와칸탕카께서 이 세계의 모든 산 것들에게 생명의 힘을 심었다. 평원에
핀 꽃, 그곳에 불어가는 바람, 바위와 나무와 새, 들짐승 - 이 모두가 똑같은 생명의
힘을 나누어 갖고 있었다. 그리고 똑같은 힘이 최초의 인간에게도 숨을 불어넣었다.
우리는 그것을 '위대한 신비'라 불렀다.
모든 것은 한 부족이었다. 대지와 하늘 사이에서 숨쉬는 모든 생명체가 한 혈족이었
다.
우리는 이른 새벽마다 미명을 헤치고 들판으로 나가서 지켜보곤 했다. 들짐승과 새
의 세계에는 형제의 감정이 존재했다. 그들 사이에서 나의 라코타 족이 안전하게 살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라코타 족은 언제나 이들 날개 달리고 털 달린 친구들
에게 형제애를 갖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며, 그들과 하나의 언어로 말했다.
동물들은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보호를 받을 권리, 삶을 누릴 권리, 번식할
권리, 자유로울 권리, 그리고 인간의 어깨에 기댈 권리를 갖고 있었다. 이 권리를 알
고 있었기 때문에 라코타 족은 결코 동물을 노예처럼 부리지 않았으며, 음식이나 의복
에 필요한 것만 제외하고는 함께 삶을 공유했다.
라코타 족은 바로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생명과 생명의 관계를 바로 그러한
마음으로 보았다.
이 마음은 라코타 족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심어 주었다. 그것은 그의 존재 안을 삶
의 기쁨과 신비로 채웠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모든 생명을 외경심으로 보도록 만들었
다. 라코타 부족과 함께라면, 생명 가진 모든 것은 이 대지와 하늘의 틀 안에서 저마
다 똑같은 중요성을 갖고 저마다의 살 장소를 차지할 수 있었다.
라코타 족은 어떤 창조물도 속일 줄 몰랐다. 모두가 같은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
위대한 신비'로 채워진 한 혈족이기 때문이었다. 라코타 족은 영혼이 겸허하고 온유했
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는 대지를 물려받을 것이다.' - 이것이 라코타 족에
게는 진실이었다. 그리고 대지로부터 그들은 오래 전에 잊혀진 비밀들을 물려받았다.
그들의 종교는 지극히 건강하고, 자연적이고, 인간적이었다.
인디언의 대지에 뿌리내린 이 '위대한 신비'에 대해 문명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그들의 파괴의 손길을 막지 못한다. 베어넘기지 않은 숲, 우리 안에 가둬
넣지 않은 들짐승, 네 발 달린 인간에게 착취 당하지 않은 대지에 대해서 그들은 참지
못한다. 문명인들에게는 그것들이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나의 라코타 부족에게 야생이란 없다. 나의 라코타 족에게 자연은 위험한 것
이 아니라 더없이 우호적인 것이었으며, 금지된 구역이 아니라 한 형제였다. 라코타
족의 철학은 그만큼 건강했다. 두려움과 독단적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여기서 나는 인디언 부족과 백인 부족의 신앙의 큰 차이를 발견한다. 인디언 신앙은
인간과 환경과의 조화를 추구했다. 반면에 백인 신앙은 환경의 지배를 추구했다.
나눔으로써, 모두를 사랑함으로써 인디언 부족은 자연적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얻었다. 반면에 백인 부족은 두려워함으로써 정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인디언 부족에게 있어서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백인 부족에게는
이 세상이 다른 세상으로 갈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 온갖 죄와 추악함으로 가득 찬
곳이다. 다른 세상에 가면 그들은 날개를 달고서 반은 인간처럼 반은 새처럼 살게 된
다고 믿는다.
백인 부족은 신에게 이 세상을 바꾸라고 끝없이 요구한다. 이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
가? 신이 만들었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부
족 중의 악한 사람을 벌하라고 신에게 끝없이 애원한다. 또한 지상으로 신의 빛을 보
내 달라고 끝없이 조른다. 하지만 나의 라코타 족은 이 지상이 늘 와칸탕카의 빛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았다. 새벽의 빛, 낮의 빛, 밤의 빛으로 가득 차 있음을. 우리가 눈
꺼풀을 열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 빛을 신비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따라서 백인 부족
은 인디언 부족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라코타 부족은 지혜로웠다. 우리는 자연에서 멀어진 인간의 마음은 금방 딱딱해지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잃으면 자연 속에 살아 있는 것들 역
시 인간을 존중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라코타 부족은 아이들을 늘 자
연에 가까이 가도록 해서 딱딱하지 않은, 부드러운 심장을 갖도록했다.
인디언 부족은 동료 피조물들에 대해 적대감을 가질 틈이 없었다. 라코타 족에게 있
어서 산과 호수, 강, 실개천, 계곡, 덤불숲은 모두 그 자체로 완성된 아름다움이었다.
바람, 비, 눈, 햇빛, 낮, 밤, 계절의 변화 등은 끝없는 매혹 그 자체였다. 새, 벌레,
들짐승들은 인간의 지식에 조금도 뒤지지 않은 놀라운 지식과 이해로 자기들의 세계를
채우고 있었다.
라코타 족은 진정한 자연주의자,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라코타 족은 대지
를 사랑했으며, 대지 위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 애착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더 깊
어지곤 했다. 늙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흙을 사랑했다. 그들은 땅 위에 앉거나 땅에
기대곤 했다. 어머니의 힘에 더 가까이 간다는 느낌으로.
대지에 맨살이 닿는 것은 좋은 일이다. 늙은 라코타 족 사람들은 모카신(인디언들이
신는 뒤축 없는 신)을 벗고 맨발로 신성한 땅 위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천막(티피)을 흙 위에 세웠으며, 제단 역시 흙으로 만들었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대지 위에 내려와 날개를 쉬듯이, 대지는 모든 산 것들의 최종적인 휴식처였
다. 흙은 부드럽고, 힘 있으며, 정화의 힘과 치료의 힘을 갖고 있었다.
늙은 인디언들은 의자에 앉기를 거부했다. 흙 위에 그대로 앉았다. 의자에 앉으면
생명을 주는 대지의 힘으로부터 그만큼 멀어지기 때문이었다. 얼굴 흰 문명인들은 그
것을 야만과 무지라 여겼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땅 위에 눕는 일이 인디언에게는 더 깊이 생각하고, 더 깊이 느끼기 위함이었다. 그
렇게 함으로써 그는 삶의 신비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으며, 자기 주위의 다른 생명들
에게 더 가까운 혈족임을 느낄 수 있었다.
백인 부족은 강제로 나의 인디언 부족을 변화시켰다. 그 결과 큰 혼란이 찾아왔다.
이유가 무엇인가? 대지의 근본 법칙, 영적인 법칙을 백인 부족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
이다.
인디언 거주지역에 몰아넣어진 날로부터 '문명'이라는 것이 우리를 덮쳤다. 그것은
나의 정의감, 삶의 권리에 대한 나의 존경심, 진리와 정직과 자비에 대한 나의 애정,
또는 라코타 족의 신 와칸탕카에 대한 나의 신앙의 어떤 것에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모든 위대한 종교들이 끝없이 설교를 하고 해설을 하지만, 위대한 학자들이 수없이
들춰내지만, 또 좋은 책에 아름다운 언어와 멋진 표지로 표현되지만 인간은, 인디언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여전히 위대한 신비 앞에 서 있을 뿐이다.
얼굴 흰 문명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메리카 대륙과 인디언 부
족의 오랜 역사에 비하면 얼굴 흰 부족이 이 땅에 들어온 것은 불과 하루 이틀의 시간
에 지나지 않는다. 얼굴 흰 부족의 나무 뿌리는 아직 바위와 흙을 움켜쥐지 못했다.
문명인들은 아직도 원시적인 두려움과 싸우고 있다. 아직도 대륙을 개척한다는 위험
의식을 갖고 있다. 아직도 의심하는 눈초리와 더듬는 발걸음을 버리지 못했다.
문명인들은 여전히 떨고 있다. 뜨거운 사막과 금지된 산꼭대기 위에 서 있던 자신의
조상들의 기억 때문에 몸을 떨고 있다. 유럽에서 이 대륙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아직도
외국인이고 이방인이다. 아직도 그들은 이 대륙을 횡단하려고 길을 묻는 자들을 미워
한다.
하지만 인디언은 아직도 대지의 혼과 하나가 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 혼의 맥
박을 느끼고, 그것을 신성하게 여기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대지에 소속되
려면 인간은 탄생과 죽음을 무수히 반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육체가 그들 조상
의 뼈와 먼지로 만들어져야 한다.
칭찬이나 아첨, 과장된 매너, 또 세련되고 목청 높은 말 따위를 나의 라코타 족은
더없이 무례한 것으로 여겼다. 지나친 예절은 진실하지 못한 것으로 여겼으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야만적이고 사려 깊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두 사람이 만나자마자 곧바로 대화가 시작되는 법이 없었다. 바쁘게 시작되는 대화
는 금물이었다. 먼저 침묵의 대화가 앞섰다.
아무리 중요한 경우라도 성급히 질문을 하지 않았으며, 대답을 강요하는 법이 없었
다.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대화를 시작하거나 진행하는 인디언 부족의 예의였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예의는 말보다 행동에 있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모닥불 앞이나
나이 먹은 어른들과 방문객 앞을 가로질러 다니는 것을 금지시켰다. 또한 불구자나 못
생긴 사람을 놀리지 못하도록 가르쳤다. 만일 한 아이가 생각없이 그렇게 하는 경우엔
부모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 자리에서 아이를 바로잡았다.
백인 부족이 너무나 가볍게, 또 쓸데없이 자주 사용하는 '미안하다' '고맙다' '실례
한다' 등의 말은 라코타 족의 언어에는 없었다. 모르고서 다른 사람을 치거나 가로막
았으면 '와눈헤쿤'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모르고 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일부러 무
례하게 군 것이 아니며, 우연한 실수임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라코타 족의 예의범절 아래서 자란 젊은이는 절대로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끝없이 떠
들어대거나 상대방과 동시에 떠들어대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일 뿐 아
니라 바보스런 일이었다. 나의 라코타 족은 마음의 조화를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으
며, 침묵은 마음의 조화의 표현이었다.
라코타 부족에게 있어서 침묵은 언제나 우아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불편하거나 당황
스런 것이 전혀 아니었다.
침묵은 라코타 족에게 의미 깊은 것이었다. 라코타 족은 대화를 시작함에 있어서 잠
시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을 진정한 예의로 알았다. '말 이전에 생각이 먼저다'라는
것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슬픈 일이 닥쳤거나, 누가 병에 걸렸거나, 또는 누가 죽었을 때 나의 부족은 먼저
침묵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떤 불행 속에서도 침묵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유명하
거나 위대한 사람 앞에서도 침묵은 곧 존경의 표시였다. 라코타 부족에게는 말보다 더
힘있는 것이 침묵이었다.
라코타 부족이 말과 행동을 엄격히 절제하는 것을 보고 얼굴 흰 문명인들은 그것을
극기라고 잘못 해석했다. 그들은 라코타 족 사람들을 벙어리이고, 어리석고, 무관심하
고, 느낌이 없는 사람으로 판단했다.
사실은 라코타 족이야말로 가장 느낌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감정의
깊이와 진실성의 조화를 잃지 않았다.
라코타 족은 침묵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침묵은 진리의 어머니다."
왜냐하면 침묵하는 사람은 신임받을 수 있지만, 언제나 입을 열어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진지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말할 때 라코타 족의 어른들은 땅 위에 한 손을 얹고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우리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자. 어머니로부터 우리 모두가 나왔으며, 다른 모든
생명체들도 나왔다. 우리는 곧 떠날 것이지만 우리가 지금 앉아서 쉬고 있는 이 장소
는 영원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땅 위에 앉거나 눕는 법을 배웠으며, 수만 가지 모습으로 우리 주위
에 있는 생명들에 대해 자각했다.
때로 우리 부족의 소년들은 가만히 앉아서 새들을 지켜보곤 했다. 작은 개미들을 관
찰하곤 했다. 또는 작업중인 어떤 작은 동물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근면함과 지혜를 배
웠다. 아니면 우리는 바닥에 누워서 멀리 하늘을 응시하곤 했다. 별들이 나타나면 여
러 집단으로 모양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모두 생명체가 인격을 갖추고 있었다. 오직 모습에 있어서만 우리와 다를 뿐이었다.
모든 것들 속에 지혜가 전수되어져 있었다. 세상은 거대한 도서관이었으며, 그 속의
책들이란 돌과 나뭇잎, 풀, 실개천, 시와 들짐승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지의 성난 바람과 부드러운 축복을 나눠 가졌다. 자연의 학생만이 배울 수 있는 것
을 우리는 배웠는데,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이 그것이었다. 우리는 결코 폭풍이나 난폭
한 바람, 차가운 서리와 폭설에 악담을 퍼붓지 않았다. 따라서 무엇이 우리 앞에 오든
지 우리는 필요하다면 더 많은 노력과 힘으로 우리 자신을 적응시켰다. 하지만 불평하
지 않았다.
번개조차도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것이 가까이 올 때마다 모든 천
막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모닥불 속에 삼나무 이파리를 던졌으며, 그 마술의 힘이 위
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켰다. 밝은 날과 어두운 날은 둘 다 위대한 신비의 표현이며, 인
디언 부족은 위대한 신비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기뻐했다.
관찰은 분명히 그 보상을 가져다 주었다. 흥미와 놀라움과 경탄의 마음이 커지고,
생명 현상은 단순히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수천 가지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놀라
운 그 무엇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라코타 족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삶은 생동감있게 맥박쳤으며, 세
상에는 우연하거나 진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인디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삶을 살
았다. 첫 숨부터 마지막 숨까지.
마음과 영혼
작은나무(리틀 트리) - 체로키 족
"다행히 당신이 영혼으로 이르는 문을 열었을 경우 이때부터 당신은 이해의 길에 들
어서게 되며..."
실개천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이 숨쉬고 있다.
만일 당신이 거인이라서 실개천 구석구석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면, 당신은 그
곳이 거대한 생명의 바다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바로 그 거인이었다. 키가 육십 센티가 넘는 나는 거인처럼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실개천 물이 휘어도는 작은 물웅덩이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개구리들이
알을 까놓았다. 속에 검은 점들이 무수히 찍혀 있는 투명한 덩어리들... 그 점들 하나
하나는 부화되어 밖으로 나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실개천 속에는 열목어들이 수면을 가로지르며 흩어지는 물방개들을 사냥하기 위해
번개처럼 날쌔게 움직인다. 물방개를 잡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그것은 정말로 짙
은 향내를 발산한다.
어느 날 나는 물방개를 잡느라 한나절을 고스란히 바쳤다. 그렇게 애썼지만 호주머
니 속에 들어 있는 건 몇 마리 되지 않았다.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
가 향기로운 냄새를 좋아하신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물방개를 갖다 드렸다. 할머니는
잿물비누를 만들 때도 늘 거기다 인동꽃을 섞으시곤 했으니까.
내가 그걸 갖다 드리자 할머니는 나보다 더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이렇게 향기로운
냄새는 생전 처음 맡아 본다며, 향기나는 물방개가 있다는 걸 왜 이제까지 잊고 지냈
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저녁식사 시간에 할머니는 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할아버지께 물방개 얘기를
꺼내셨으며 그렇게 향내가 짙은 물방개는 생전 처음 본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도 얘기
를 들으시더니 놀라운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그 물방개를 갖다 드리고 냄
새를 맡아 보시게 했다. 할아버지는 칠십 평생을 살았지만 그렇게 희한한 냄새는 처음
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좋은 것을 얻게 되면 먼저 곁에 있는 사람과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 그렇
게 하면 그 좋은 것은 말없이 퍼져가게 된다." 라고 하시면서 내가 좋은 일을 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나는 하루 종일 실개천 속을 첨벙거리고 다녔기 때문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것에 대해선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체로키 부족은 아이들이 숲 속에
서 아무리 심한 장난을 치고 놀아도 절대로 그걸 갖고 나무라는 일이 없었으니까.
나는 때로 실개천 위쪽으로 한참 거슬러올라가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가 그 비밀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은 실개천 너머 산 쪽으로 약간 올라가는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월계수나무들
로 빙 둘러싸여 있었다. 그다지 넓지는 않았으나 사방에 풀들이 자라고, 특히 허리가
굽은, 향내나는 늙은 고무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그곳을 처음 발견한 순간 나
는 그곳을 나만의 비밀장소로 정했으며 그 뒤로도 곧잘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으로 갈 때면 나는 으레 늙은 개 마우드를 데리고 가곤 했다. 마우드 역시 그곳
을 좋아했으며, 우리는 늙은 고무나무에 기대 앉아 사방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귀 기
울이는가 하면 또 여기저기를 바라보곤 했다. 마우드는 그 비밀장소에만 가면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우드 역시 그곳이 비밀장소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늦은 오후, 나와 마우드가 고무나무 아래 앉아 여기저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문
득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였다. 할
머니가 내 비밀장소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을 지나가고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할
머니는 내 비밀장소가 그곳에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신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무슨
말이고 나한테 한 마디 건네셨을 테니까.
할머니는 속삭임 소리보다도 더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숲 사이를 걸어다
니실 수 있었다. 뒤를 따라가 보니 할머니는 식물 뿌리를 캐시는 중이었다. 나는 할머
니 일을 거들어 드리기 위해 곧장 할머니를 따라잡았다.
나와 할머니는 바닥에 쓰러진 통나무 위에 걸터앉아 뿌리들을 분류했다. 나는 비밀
을 지키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서 결국은 참지 못하고 할머니께 내 비밀장소에 관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할머니는 내 얘기를 들으시고도 전혀 놀라지 않으셨다.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놀라게 했다.
할머니는 체로키 부족의 사람들은 모두가 비밀장소를 하나씩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
다. 그 점에 있어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할머니
는 할아버지께 할아버지의 비밀장소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다만 숲 속
오솔길을 한참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산꼭대기 어디쯤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사람은 누구나 비밀장소를 하나씩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사람들을 붙잡고 일일이 물어본 적이 없어서 자신할 순 없지만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나도 비밀장소를 하나 갖고 있다
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마음의 하
나는 육신의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들과 관계된 것이다. 우리는 그 마음을 사용해 먹
을 것이나, 잠잘 곳, 그리고 그밖에 우리의 육신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얻는 방법을
생각해 낸다. 남녀가 짝을 짓고 아이를 갖는 등의 행위를 하는 데도 그 마음이 필요하
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생존해 나가려면 당연히 그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일들과 전혀 무관한 또 다른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것을 바로 영적인 마음, 곧 영혼이라는 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육신의 삶을 담당하는 마음만을 발달시켜 탐욕스럽고 천박한 생각에만
몰두한다면, 또 만일 우리가 항시 그 마음을 통해 남을 공격하고 남에게서 물질적인
이익을 취할 방법을 계산하는 데만 몰두한다면...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우리의 영
적인 마음은 히코리 열매의 크기로 쪼그라들고 말 것이다.
우리의 육신이 죽으면 우리 육신의 삶과 관계된 마음도 함께 소멸되어 버린다. 그리
하여 만일 당신이 평생 동안 육신의 마음으로 삶을 이끌었다면 당신에게 남는 것은 히
코리 열매만한 영혼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다른 모든 것이 죽을 때 결국 살아
남는 것은 영혼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다음에 또 다른 육체로 태어날 때
- 모든 인간은 다시 태어나게끔 되어 있다 - 당신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제대로 이해
하지도 못하는, 히코리 열매만한 영혼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
만일 다시 태어나서도 육신의 삶과 관계된 마음이 여전히 당신의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면 영혼은 다시 완두콩 크기만큼 쪼그라들어 버리거나 아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
는 일이다. 그럴 경우 당신은 당신의 영혼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만다.
그 결과 당신은 살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죽은 인간이 된다. 할머니는 우리
가 죽은 인간들을 손쉽게 가려낼 수 있다고 하셨다. 죽은 인간들은 눈이 멀었기 때문
에 여자를 볼 때도 추잡한 것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타인을 볼 때도 나쁜 면밖에
볼 줄 모르고, 나무를 볼 때도 아름다움은 잊은 채 목재나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이득
밖에 볼 줄 모르게 된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세상을 걸어다니지만 사실은 죽
은 인간들이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영혼과 관계된 마음은 근육과 똑같은 성질을 지녔다고 한
다. 우리가 그것을 자주 사용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강해진다. 영혼을
크고 강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를 갖는 것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언제까지나 육신의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계속하
고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한, 영혼으로 이르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다행히 당신이 영혼으로 이르는 문을 열었을 경우 이때부터 당신은 이해의 길에 들
어서게 되며, 당신이 이해의 길을 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당신의 영혼과 관계된 마음
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이해와 사랑은 손바닥과 손등처럼 함께 따라가는 것들이다. 그 둘은
다른 것일 수가 없다. 흔히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사랑하는 척하는데, 이런 이율배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랑과 이해가 따로일 수가
없다.
나는 앞으로 내가 눈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리라는 걸 직감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히코리 열매의 크기만한 영혼을 갖고서 삶을 살아가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할머니는 나의 영혼이 더욱 크고 깊어지게 되면 어느 날엔가 내 과거의 육신들이 거
쳐온 삶의 과정을 남김없이 알게 될 것이며 차츰 육신의 죽음에 대해서 초연할 수 있
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내 비밀장소에서 그러한 과정의 일부를 엿볼 수 있으리라고 하셨다.
얼음이 풀리고 봄이 되어 만물이 탄생할 때면(그리고 하나의 생각이 탄생할 때도 그렇
지만, 모든 것이 새로 탄생할 때는 항시) 거기에는 당연히 진통과 소동이 뒤따른다.
피와 고통 속에서 아이가 탄생하듯이 봄에는 봄의 폭풍우가 찾아오기 마련인 것이다.
할머니는 그러한 폭풍우는 영혼이 다시 물질적인 형태 속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일
어나는 필연적인 소동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여름이 오면서 우리의 삶은 성숙 단계에 이르게 되고, 다시 가을이 그 뒤를 이
으면 우리는 나이가 들어 늙은이가 된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우리의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가리라는 늙은이들 특유의 느낌을 갖게 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감정을 향수 또
는 슬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윽고 겨울이 되면 우리의 육신이 죽듯이 세상 만물은
죽거나 또는 죽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봄과 더불어 어김없이 다시 소
생한다. 할머니는 체로키 부족의 사람들은 그러한 이치를 알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그러한 이치를 터득했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때가 되면 내가 내 비밀장소에 있는 향기로운 고무나무 역시 영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고 하셨다.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나무의 영혼을... 할머니는
할머니의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아버지 이름은 '갈색매(브라운 호크)'였다.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그분
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차츰 세상 만물을 깊이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
서 나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번은 할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갈색매는 마음의 산에서 자라는 흰 떡
갈나무들이 몹시 흥분해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갈색
매는 평소에 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또 흰 떡갈나무 숲으로 자주 산책을 다녔다.
그 나무들은 키가 크고 줄기가 곧았으며 무척 아름다웠다. 또한 이기적이지 않았다.
산에서 사는 뭇짐승들의 먹이를 대주는 감나무나 히코리 나무, 밤나무들이 자기네들
틈에서 한데 어울려 살도록 자리를 내줄 만큼 마음이 넓고 너그러웠다. 이렇게 이기적
이지 않은 태도를 지닌 탓으로 떡갈나무들은 하나의 영혼을 갖게 되었고, 그 영혼은
크고 강해졌다.
할머니의 아버지 갈색매는 흰 떡갈나무들이 너무나 걱정이 되어 밤에도 나무들 주위
를 거닐곤 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닥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해가 산 능선 위로 고개를 내밀 때쯤 해서 갈색매는 백인 벌
목꾼들이 흰 떡갈나무 숲을 분주히 오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들은 베어낼 나무마다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를 하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나무를 베어낼 방법을 궁리하
고 있는 중이었다. 갈색매의 말에 의하면 얼굴 흰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자 흰 떡갈나
무들은 슬피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갈색매는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갈색매는 주의 깊게 벌목꾼들을 지켜보았다. 다음날 그들은 차가 다닐 수 있게 떡갈
나무 숲이 있는 곳까지 도로를 닦았다.
갈색매는 체로키 부족에게 이 사실을 전했으며 이에 그들은 흰 떡갈나무들을 위기에
서 구해 주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밤에 벌목꾼들이 산을 떠나 읍내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산으로 몰려가 도로를 마구 파헤치고 또 차가 다닐 수 없도록 도로 한복판에
깊은 구덩이를 파놓았다. 여자와 아이들까지도 이 일에 힘을 합했다.
이튿날 아침 다시 산으로 올라온 백인 벌목꾼들은 망가진 도로를 고치느라 하루를
다 허비했다. 그러나 밤이 되자 체로키 사람들은 다시 도로를 파헤쳐 버렸다. 이런 일
이 이틀이나 더 계속되자 참다 못한 벌목꾼들은 총을 든 경비를 세워 밤에도 도로를
지키게 했다, 그러나 몇 사람이서 모든 도로를 다 경비할 순 없었으며, 체로키 사람들
은 감시의 눈이 닿지 않는 곳마다 골라가며 나타나서 도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몹시 힘겨운 싸움이어서 며칠을 하다 보니 체로키 사람들도 지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벌목꾼들이 도로를 고치고 있는데 갑자기 거대한 흰 떡갈나무 한 그루
가 그들이 몰고온 차 위로 쓰러져 버렸다. 그 바람에 노새 두 마리까지 깔려 죽고 차
는 완전히 파손되었다. 그 흰 떡갈나무는 아직 싱싱하고 건장해서 전혀 쓰러질 이유가
없었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벌목꾼들은 도로를 내는 일을 포기했다. 거기다 봄비마저 내리기 시작했고...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달이 꽉 차 환한 보름달이 되었을 때 흰 떡갈나무들은 노래를 부르고 서로서로 가지
를 비벼댔으며 체로키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나무들은 다른 떡갈나무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그 흰 떡갈나무를 기리는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는 그때 크나
큰 감동을 받아 그곳의 산을 떠난 다음에도 그 감동이 오래도록 마음 속에서 메아리쳤
다고 했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작은 나무야, 얼굴 흰 사람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하나
도 도움이 안 될 테니 이런 얘기는 그저 가슴 속에만 묻어 두거라. 하지만 너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너한테 얘기해 주는 거란다."
그제서야 나는 우리가 벽난로를 지필 때 영혼이 떠난 통나무만을 사용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숲의 생명에 대해서 눈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산의 생명에 대해서
도.
할머니는, 갈색매가 그렇게 깊은 이해의 경지에 다다랐으므로 그분이 강해졌으리라
는 것을 알고 계신다고 했다. 그래서 갈색매는 다음 생을 육신의 삶 속에서도 깊은 이
해심을 갖고 살아가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기도 머지않아 자기의 아버지만
큼 강해지기를 소망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되면 할머니는 그분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두 분의 영혼이 서로를 알아보게 될 테니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스스로 의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이해의 경지에 많이
접근하고 있다고 하셨고, 두 분의 영혼은 항시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늘 함께 머물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할머니께 여쭤 봤다. 나 또한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지를. 그래서 나만
홀로 뒤에 남겨진 채 잊혀진 아이가 되는 일은 없겠는지를.
할머니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산길을 걸어내려오
기만 했다. 이윽고 할머니는 입을 열어 나더러 항시 이해하려고 애써 보라고 하셨다.
나 역시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며 어쩌면 내가 이해하는 면에 있어서 할머니보다
더 앞설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나는 세상에서 누구를 앞서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고 그저 앞서 가는 사람을 잃어
버리지 않을 정도로만 뒤쫓을 수 있어도 좋겠다고 말했다. 뒤에 홀로 남겨져 잊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은 언제나 쓸쓸한 일이니까.
흐르는 강물처럼
와헤니 - 히다차 족(북부 다코타 족)
"그것들은 곧 흘러가고 마는 물방울과 같은 것이며, 그 밑바닥에는 영원히 변치 않
는 흐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리라고..."
나는 늙은 인디언 여자다. 들소떼와 검은 꼬리 사슴들은 사라졌고, 우리 인디언의
삶의 방식도 거의 사라졌다. 어떤 때는 한때 내가 그것들과 함께 살았었다는 것이 스
스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내 아들은 얼굴 흰 문명인들의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책을 읽을 줄 알고, 자신의
소유로 된 가축떼와 농장을 갖고 있다. 이제 내 아들은 우리 히다차 부족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사람들이 문명인들의 방식을 따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아들은 나한테 잘 대해 준다. 우린 이제 더 이상 옛날처럼 땅바닥에 세운 인디언 천
막 속에서 살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집에는 굴뚝이 있으며, 내 아들이 결혼한 여자는
화덕 옆에서 음식을 만든다.
하지만 나로서는 아무리 해도 우리 부족이 누렸던 옛날의 방식을 잊을 수가 없다.
여름날이 되면 나는 종종 이른 새벽에 일어나 옥수수가 자라는 들판으로 몰래 나가
곤 했다. 그곳에 서서 나는 옥수수 줄기를 붙잡고 노래를 부른다.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 했던 것처럼. 이제는 아무도 우리 부족의 옥수수 노래에 관심 갖지 않는다.
때로 저녁 나절이면 나는 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다. 해는 기울고 저녁 어스름이
물 위에 번진다. 그 어스름 속에서 나는 자주 우리의 옛 인디언 마을을 본다. 인디언
천막마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리고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강물에서 사라진 전
사들의 고함소리며 아이들과 늙은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우리 부족은 강에서 조금 떨어진 들판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나는 일곱 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 강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떤 날 나는 내 나이 또래의 친구
와 함께 마을 앞쪽의 잡목 숲으로 열매를 따라갔다가 처음으로 그 강을 발견했다.
나와 내 친구는 그날 하루 종일 그 강에서 놀았다. 그리고 강가에는 우리가 한번도
만나지 못한, 어떻게 보면 다른 세상에서 온 듯한 남자가 인디언 천막을 짓고 혼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남자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우리는 저녁 어스
름이 안개와 함께 밀려오는 강물 아래쪽을 바라보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우리에게 말했다. 세상 모든 것은 흐르는 강물처럼 덧없는 것이라고. 어떤 것
도 영원하지 않으며, 한 순간에는 반짝이지만 다음 순간에는 헤엄치는 사람보다 더 빠
르게 흘러가 버린다고. 하지만 흐름 그 자체는 영원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가
아직 어리지만 강물을 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렴풋하게나마 그걸 이해하게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걸 이해하게 되면 인생에서 아무리 슬픈 일이나 고통스런 일이 닥쳐와
도 그것들이 곧 흘러가고 마는 물방울과 같은 것이며, 그 밑바닥에는 영원히 변치 않
는 흐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되리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사람들이 세상의 일에 매달리는 것은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
며, 그 순간의 일을 전부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꿈에 매달려
쫓아가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 나와 내 친구는 마을의 어른들에게 우리가 마을 동쪽
의 강에 놀러간 얘기며, 그곳에서 만난 신비한 남자에 대한 얘기를 했다. 하지만 어른
들은 모두 우리더러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그런 강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더구나 신비
한 남자 따위의 얘기는 우리가 지어낸 얘기라는 것이었다. 어떤 어른은 아마도 우리가
독성이 있는 열매를 잘못 먹고 환각 상태에 빠졌던 게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나와 내 친구는 억울하기도 했지만 정말로 우리 두사람이 환각 상태에 빠졌던 것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우리는 마을의 어느 누구도 그 강의 존재
에 대해서 말하는 걸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강이 정말로 거기에 있다면 강에 다녀
온 사람들이 없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나는 혼자서 들판으로 또 열매를 따러 나갔는데 또다시 강을 발견했
고 그곳에 인디언 천막을 짓고 사는 남자도 다시 만났다. 나는 마을 어른들이 나와 내
친구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 것이 억울해서 그 남자에게 나와 함께 마을로 가서 자
신의 결백을 증명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마을 어른들의 말이 옳다고... 내가 갔던 그 강은
세상에 존재하는 강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 강이냐고 내가 묻자
남자는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이 강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
며, 바로 내 마음 안에 존재하는 강이라고. 그리고 강가에 인디언 천막을 짓고 살고
있는 자기는 바로 내 마음의 목소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기만의 강을 갖고 있고 또 강가의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나는 아직 어려서 그러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마음의 세계를 사람들에게 자랑한 것이며, 또 자기만의 강에 대해선
누구에게도 자랑해선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을 어른들이 일부러 우리에게 거짓말쟁
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마음의 세계란 비밀로 간직할 때 더욱 아름답게 반짝이고 더
욱 깊고 푸른 강이 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자기만의 강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간혹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
래서 그러한 사람은 마음이 공허하고,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재물을 모으거나 권력을
얻는 데 그토록 열중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사람일수록 어쩌다 발견한 실개천
같은 것을 큰 바다인 양 부풀려서 떠들게 마련이고, 그렇게 하면 그 실개천마저도 금
방 말라붙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앞으로의 인생에서 힘들 때나 고요히 있고 싶을 때면 강으로 찾아와 그
남자를 만나겠노라고 내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아직 어린 나이의 경험이었지만 그 경
험은 한낱 인디언 여자에 불과한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흘러가는 것들에게 마음이
붙잡히지 않게 해주었고, 나이가 들수록 삶의 흐름 자체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모든 것이 다만 한 늙은 여자의 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을 바라보면 또다시
저녁 어스름 속에서 인디언 마을이 나타나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내 눈에선 눈
물이 흘러내린다. 나는 안다. 우리 인디언의 삶의 방식은 영원히 가버렸다는 것을. 그
러나 생명의 흐름 그 자체는 영원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구름처럼붉은(레드 클라우드) - 오글라라 수우 족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되는 일이다. 우리 자신의 자유, 우리 자신의 깨
달음이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친구들! 나는 오글라라 수우 족의 추장으로 '구름처럼붉은(레드
클라우드)'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위대한 정령께서 우리 두 부족을 만드셨다. 그분은 우리 부족에게도 대지의 한 조각
을 주셨고 당신들에게도 대지의 한 조각을 주셨다. 그런데 당신들은 우리 부족이 가진
대지의 한 조각 속으로 낯선 자처럼 걸어들어왔고 우린 당신들을 형제처럼 맞이했다.
위대한 정령께서 당신들을 만드실 때 그분께서는 당신들을 흰색으로 만드셨으며 좋
은 옷을 해 입히셨다. 허나 우리를 만드실 때는 붉은색 피부와 가난을 주셨다. 당신들
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우린 숫자가 무척 많았고 당신들은 얼마 안 됐었다. 그러나
이제 당신들은 숫자가 많고 우린 적다.
당신들은 지금 당신들 앞에서 연설하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이 사람은 이 대륙에 처음부터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대표로 이 자리에 서 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당신들이 우리에 대해 듣고 있는 소문
은 전부 사실이 아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살인자와 도둑으로 알고 있다. 우린 그런 사
람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땅이 더 있었다면 기꺼이 당신들에게 주었겠지만 이제 우리에게 남은 땅은
아무것도 없다. 우린 당신들에게 내쫓겨 섬처럼 작은 땅에서 죄수처럼 생활하고 있다.
위대한 정령께서는 우리 부족을 가난하고 무지한 종족으로 만드셨지만, 당신들에게
는 지혜와 부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기술을 주셨다. 당신들에게는 길들
인 동물을 주셨고 우리에게는 야생의 사냥감을 주셨다.
미국 서부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에게나 물어 보라. 우린 당신들
에게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당신들도 대지의 아들이고, 우리 역시 대지의 아
들이다. 그 사실을 우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상해라, 당신들은 그렇지 않다. 우린 당신들과의 약속을 지키는데 당신들
은 지키지 않는다. 나는 오늘 이 말을 하고 내일 저 말을 하는 '점박이 꼬리'가 아니
다. 나를 보라. 나는 가난하고, 몸에 걸친 옷조각도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한 부족
의 추장이다.
우리는 부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을 바르게 키우는 일
이다. 사람답게 키우는 일, 그것말고 바르게 키우는 일이 또 있을 것인가? 그리고 우
리 인디언에게 있어서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란 인디언답게 키우는 일이다. 우리가 원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되는 일이지 당신들처럼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
은 당신들의 자유, 당신들의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자유와 우리 자신의 깨달음
이다.
부라고 하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 되지 못한다. 우린 저 세상에 그걸 함
께 갖고 갈 수가 없다. 우린 부가 아니라 사랑과 이해를 원한다.
당신들의 목사 한 사람도 우리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갖고 있는 재산은
다음 세상으로 갈 때 갖고 갈 수가 없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해라, 그 목사를 포
함한 문명인들 모두가 이 세상의 부를 우리에게서 강탈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
나는 어린시절을 상인들 틈에서 보냈다. 처음에 상인들이 이 대륙에 들어왔을 때 그
들은 우리와 좋은 여름을 보냈다. 그들은 우리에게 옷 입는 법과 담배 피우는 법을 가
르쳐 주었다. 그러나 워싱턴의 문명인 대추장은 서서히 종류가 다른 사람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끝없이 속임수를 쓰고 술에 취해 살았다. 너무도 질이 나빠서 대추
장이 다른 마을로 추방한 자들처럼 보였다.
나는 얼굴 흰 대추장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으나 그 편지들은 전달되지 않았다. 도중
에서 다 증발해 버렸으며, 그래서 오늘 이 말을 전하려 얼굴 흰 대추장 앞에 내가 먼
길을 직접 찾아온 것이다.
오늘 나는 나의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우리 부족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당신들
이 보내 주기를 희망한다. 오늘 여기에 올 수 있어서 나는 기쁘다. 당신들은 대지의
동쪽에 속해 있고 나의 부족은 대지의 서쪽에 속해 있다. 내가 이곳에 옴으로써 우리
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또한 내 얘기를 들어 주어서 대단히 감사하
다.
오늘 오후에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내가 말한 것에 대해 당신들이 잘 생각해 보기
를 바란다. 우리는 곧 이 대지를 떠날 것이지만 대지 그 자체는 영원하다. 우리가 그
영원함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다해 작별인사를 남기는 바이다.
세상을 보는 방식
조셉 추장(하인모트 투얄라케트) - 네즈 페르세 족
"이 대지, 내가 선 이 자리를 나는 세상 어느 것보다도 사랑한다..."
어떤 얼굴 흰 자가 나한테 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조셉, 난 당신이 가
진 말들이 좋아. 그 말들을 몽땅 사고 싶네."
난 그에게 말한다. "그런 소리 말게. 내 말들은 무엇보다 소중해. 그러니 팔지 않겠
어."
그러자 그 친구는 내 이웃에게로 가서 말한다. "조셉이 좋은 말들을 갖고 있는데,
내가 사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팔지 않겠다지 뭐야."
이웃사람이 말한다. "나한테 말 값을 지불하게. 그러면 내가 당신한테 조셉의 말을
팔지."
그 얼굴 흰 자는 나에게 다시 와서 말한다. "조셉, 난 당신이 가진 말들을 이미 사
버렸네. 그러니 내가 가져가야겠어."
백인 정부가 우리 땅을 돈 주고 샀다고 하는데, 그들은 바로 이런 식으로 빼앗아간
것이다.
나의 이름은 '하인모트 투얄라케트'이며 그 뜻은 '고산지대로 달려가는 천둥(썬더
고잉 투 더 하이 마운틴)'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들 나를 조셉 추장이라고 부른다.
한때 나의 아버지 월로가 기독교로 개종해 조셉이라는 이름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말을 듣고 또 들었다.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좋은 말'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다. 좋은 언어가 죽은 사람을 살려내진 못한다. 문명인들은 말만 늘
어놓고 아름다운 언어에 매혹되기만 할 뿐 실천하지 않는다.
아무런 결과도 없는 '말뿐인 말들'에 나는 지쳤다. 그 많은 좋은 언어들과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생각할 때마다 내 가슴엔 찬바람이 분다. 세상에는 말할 자격이 없는 사
람들이 너무도 많은 말을 떠들고 있구나.
우리가 가슴을 좀 더 열어 보인다면 고통과 슬픔은 사라질 것이다. 이제 나는 인디
언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 당신에게 설명하고자 한다. 문명인들은 인디언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많은 법률을 내려주셨다. 그들은 그것들 그들의 아버지
에게서 배웠다. 그 법률들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것들이었다.
그 법률은 우리에게 가르쳤다. 상대방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으로 우리 역시 그들을
대하라고. 우리가 먼저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가
장 사람답지 못한 행위이며, 우리는 오직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또한 아무런 보상도
없이 남의 아내나 재산을 가로채는 것을 부끄럽기 그지없는 행위라고 그 법률은 가르
쳤다.
우리는 위대한 정령이 세상 모든 일을 보고 듣고 계시다는 것을 믿도록 배웠다. 위
대한 정령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결코 잊지 않으며, 그것에 따라 모든 인간에게 영
혼이 쉴 집을 주신다.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집을, 나쁜 사람에게는 나쁜 집을.
이것을 나는 믿으며, 나의 부족 전체도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
모든 인간은 대추장이신 위대한 정령의 손으로 이 세상에 내보내졌다. 그러므로 모
두가 한 형제다. 대지는 모든 인간의 어머니이며, 모든 인간이 대지 위에서 살아갈 동
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모두에게 삶을 누릴 기회, 성장할 기회를 똑같이 주어야 한
다.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을 울타리 안에 가두고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자유
를 막아 버린다면 그 사람은 행복할 리가 없다. 그 사람에게 행복을 강요한다면 강물
을 거꾸로 되돌리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말을 마구간에 매어 놓기만 한다면 그 말이 야생의 생명력을 갖겠는가? 인디언을 '
보호구역'이라고 이름 붙인 좁은 면적 안에 가두고서 그곳에서 살기를 강요한다면 어
떤 인디언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인디언도 삶을 누리지 못할 것이며, 성장하
지 못할 것이다.
나의 종족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도 안다. 문명인들이 설치는 이 세상에서 현
재의 모습을 간직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에게도 똑같이
삶을 누릴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는 바이다.
나를 자유로운 사람이게 해달라. 여행할 자유, 휴식할 자유, 일할 자유, 내가 원하
는 장소에서 장사할 자유를 달라. 나의 영적 스승을 내 스스로 선택할 자유, 내 아버
지들의 종교를 따를 자유, 내 자신을 위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자유를 내게 달라.
인디언들이 다른 사람을 대하듯이 문명인들도 인디언을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야 한
다. 그러면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고, 모두가 한 하늘 밑, 한 대지 위의 형제가
될 것이다. 그때 우리를 내려다보는 대추장 위대한 정령께서도 미소를 지을 것이며,
비를 뿌려 대지에 얼룩진 핏자국을 씻어 보낼 것이다. 그렇게 될 날을 우리 인디언들
은 기다리고 있다.
상처받은 여인, 상처받은 남자의 울음소리가 대추장 위대한 정령의 귀에 더 이상 들
리지 않기를 나는 희망한다. 모든 종족이 인간이라는 바탕 위에 한 형제가 되기를.
내가 문명인들의 학교를 마다하는 이유가 있다. 학교를 세우면 문명인들은 교회를
세우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끝없이 하느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가
르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곳 네즈 페르세 인디언 주거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이듯이 어느
곳엘 가나 가톨릭은 개신교와 끝없이 싸운다.
우리는 그런 걸 원치 않는다. 우리는 이 땅에 있는 걸 갖고는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위대한 정령에 대해선 건드리지 않는 법이다. 우린 그런 걸 배우고 싶지 않다.
우리는 위대한 정령이 만물을 만들어 놓은 대로 세상의 것에 만족하고 손대지 않는
다. 그러나 문명인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강이나 산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
구 바꿔 버린다. 그들은 그것을 창조라고 부르지만 우리의 눈에는 철없는 파괴로 보일
뿐이다.
대지를 적시며 흐르는 강, 이 대지, 내가 선 이 자리를 나는 세상 어느 것보다도 사
랑한다. 자기 아버지가 묻힌 대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들짐승보다 못한 자이다.
나는 왜 거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가
머리맡에두고자(슬리핑 바이 히즈 필로우) - 블랙푸트 족
"알 수 없어라, 남자들이란 것은..."
나는 본래 검은발(블랙푸트) 족 인디언 전사의 아내였다. 나는 현재 그와 헤어져 이
곳 네즈 페르세 족의 인디언 천막으로 와서 살고 있다.
나는 남편을 잘 섬긴 여자였다. 그 사람만큼 자기 아내로부터 섬김을 받은 남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 그 사람의 인디언 천막만큼 깨끗하고 잘 정돈된 천막이 또 있을까?
이른 새벽이면 나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불 피울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고, 집안에
는 항상 물이 떨어지지 않게 했다. 나는 그 사람이 외출하면 들판 멀리까지 나가 그가
귀가하기를 기다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 음식을 대령했다. 그의 손짓 하나, 눈
짓 하나에도 나는 신경을 썼다. 또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미리 알아, 굳이 그가
말하는 수고를 덜도록 했다.
그의 심부름으로 다른 인디언 부족을 만나러 가면 그 부족의 추장과 전사들이 나에
게 유혹의 미소를 지어 보였으며, 어떤 용기 있는 자는 은밀히 들꽃과 부드러운 말을
바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발은 한 번도 길 아닌 길로 들어선 적이 없으며, 내 눈에는
그 사람 이외의 다른 남자가 어른거린 적이 없다.
그가 사냥을 떠나거나 전투에 나설라치면 나말고 누가 그 모든 채비를 맡았겠는가?
그가 돌아올 때면 나는 문간에 기다리고 서 있다가 총을 받아들었다. 그는 뒷마무리를
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쉴 수가 있었다. 그가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사이에 나는 말을
마구간으로 데려가 묶어 놓고 장비를 내린 다음 곧바로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의 모카신이 젖었으면 벗기고 다른 따뜻한 신발을 신겼으며, 늘 새 옷을 대령했
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슴과 영양과 들소를 사냥했으며, 적이 오나를 관찰했다. 그밖의 일은 모두가
내가 도맡아서 했다. 우리 부족이 다른 캠프로 대이동할 때도 천막을 거두고 말들을
관리하는 것은 나의 임무였다. 그 사람은 그냥 자기 말 위에 올라타고 앞서서 떠날 뿐
이었다.
그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자유로웠다. 그는 집안일에 대해선 손 하나 까
딱하지 않았다. 대이동 중에 저녁이 되어 휴식을 취할 때면 그는 다른 어른들과 담배
를 피울 뿐, 천막을 세우는 것은 나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늦지 않게 식사를 대령하고
잠자리를 정리했다. 그가 잠들면 나는 늘 그의 머리맡에서 새우잠을 잤다.
나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남편을 섬겼다. 그런데 알 수 없어라, 남자들이란 것은.
그렇게 해서 나한테 돌아온 보상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언제나 눈썹에 비구름을 달
고 살았고, 입에서 나오는 것은 날카로운 번갯불뿐이었다. 나는 그 사람의 개였지, 그
의 아내가 아니었다. 내 몸의 흉터는 누가 만들었는가? 바로 그 사람이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떠난 것이다. 어느 날 새벽 나는 첫번째 지빠귀 울음소리와
함께 블랙푸트 족의 캠프를 떠나 여기에 있는 다른 부족에게로 도망쳐 왔으며, 그 이
후 자유롭게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
평원에서 생을 마치다
열마리의 곰(텐 베어스) - 얌파리카 코만치 족
"우리는 다만 이 평원 위에서 방랑하다가 생을 마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이곳에서 당신을 만나니 내 가슴은 기쁨으로 날아오를 듯하다. 마치 대지 위에
봄이 찾아와 눈 녹은 물이 시내를 가득 채운 것처럼. 또한 한 해의 시작에서 새 풀이
자라나 망아지들이 기뻐하는 것처럼... 당신이 온다는 소식을 여러 날 전부터 들었지
만 우리는 가난하기에 이렇게 누추한 자리밖에 마련하지 못함을 이해해 달라.
나는 이 대지 위의 풀들이 사람이 흘린 피로 물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이 대
지가 순수하고 정결하기를 원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평화롭게 우리 부족과 만날 수 있
고 평화롭게 헤어질 수 있다.
나의 부족은 얼굴 흰 자들에게 먼저 화살을 당기거나 총을 쏜 적이 한번도 없다. 당
신과 우리들 사이에 줄곧 다툼이 있어 왔지만 한 번도 우리가 먼저 시작한 적이 없다.
맨 먼저 군인들을 보낸 것도 당신이었고, 그 다음에 군인들을 보낸 것도 당신이었다.
우리 코만치 족은 허약하지 않다. 그 어떤 인디언 부족보다 강하다. 또한 열 살 먹
은 개처럼 눈이 어둡지도 않다. 코만치 족은 야생마처럼 강하고 들판 멀리까지 볼 줄
안다.
그런데 오늘 당신이 나에게 한 말에 대해 나는 실망을 감출 수 없다. 그것은 설탕처
럼 달지 않고 호리병박처럼 쓰다.
당신은 우리더러 인디언 주거지역 안으로 옮겨가서 살라고 한다. 그곳에 집을 짓고
보건소를 세우라고 한다. 난 그러한 것들을 원치 않는다. 나는 평원에서 태어난 사람
이다. 그곳에선 바람이 자유롭게 불고 햇빛 줄기를 부러뜨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가로막힌 것 없고 끝없이 자유의 숨을 들이쉴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태어났다.
나는 그곳에서 죽고 싶을 뿐, 벽 속에 갇혀 죽고 싶지 않다. 육체와 정신의 자유가 없
다면 삶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곳 평원의 모든 강물 줄기와 모든 나무들을 난 알고 있다. 나는 그곳에서 들짐승
을 사냥했고, 그들과 더불어 살았다. 나 이전에 살다간 나의 아버지들처럼 나는 살았
고, 나 또한 그들과 다름없이 행복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우리더러 이 강과 이 태양, 이 바람을 떠나 집안에 갇혀 살라고
요구하는가? 우린 길들인 양을 위해 야생의 들소떼를 포기할 순 없다.
당신들 문명인들이 침입해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늘 평화로웠을 것이다. 당신이 지
금 우리에게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택하라고 말한다. 우린 그럴 수 없다. 당신들
은 이 평원의 무성한 식물들과 삼림을 다 차지해 버렸다. 우리에게는 당신들이 대지
위의 모든 것 - 숲과 새, 강과 나무, 심지어 공기까지도 미워하는 듯이 보인다.
우리가 그것들을 아직도 갖고 있다면...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우린 안다. 우리
가 사랑하던 대지는 당신들의 손에 들어가 있고, 우리는 다만 죽을 때까지 이 평원 위
에서 방랑하다가 생을 마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
상처입은가슴(운디드 하트) - 델라웨어 족
"누구나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특히 이른 아침이면 홀로 깨어..."
우리 인디언은 나무와 풀, 짐승과 사람, 별과 모래 같은 것들이 한결같이 위대한 정
령의 품에서 나왔으며,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면 다시금 그 품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것이고, 누구도 타인의 길을 지시하거나 명령할 수 없다는 것
이 우리의 생각이다.
평원을 걸어가다가 만난 들쥐는 들쥐만의 세계에서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비록 그
가 이 생에서 약간의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위대한 정령은 그것을 하나의 배움의 과정
으로 여기실 것이다.
나뭇가지에서 노려보는 찌르레기는 찌르레기만의 세계에서 열심히 살아갈 것이고,
설혹 그가 다른 나무에 앉은 찌르레기에게 약간의 미안한 행동을 했다 해도 그것 역시
배움의 과정에 포함될 것이다.
들쥐는 찌르레기에게 들쥐의 믿음을 강요하지 않고, 찌르레기는 들쥐에게 찌르레기
의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 인디언들 역시 누구에게 자신의 믿음을 선전하고 강
요하는 것을 금기고 삼고 있다.
위대한 정령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경우, 우리 인디언은 홀로 평원의 오솔길
로 나아가 그곳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묵상에 잠긴다. 사방이 고요하고 가끔씩 들리는
찌르레기 울음소리나 풀섶에서 들쥐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외에는 방해꾼이 없기 때문
에 자기 자신의 내면과 가장 잘 만날 수 있는 곳이 평원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홀로 사방이 고요한 곳에서 자신과 만나고 위대한 정령과
만나는 일에 익숙해 있다. 자연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악한 자가 될
수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 속에서 세상의 근본
이 무엇인가를 배워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대지 전체가 어머니의 품이고, 그곳
이 곧 학교이며 교회라고 믿는다. 대지 위의 모든 것이 책이며 스승이고 서로를 선한
세계로 인도하는 성직자들이다. 우리는 그밖의 또 다른 교회를 원치 않으며, 우리를
무조건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것에 답답함을 느낄 따름이다.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전사가 입술이 하얗게 되고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듯
이, 홀로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오랫동안 갖지 못한 사람은 그 영혼이 중심을 잃
고 헤매게 된다. 그래서 인디언은 아이들을 키울 때 자주 평원이나 삼림 속에 나가 홀
로 있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한다. 한두 시간이나 하루 이틀이 아니라 적어도 열흘씩
인디언들은 최소한의 먹을 것을 가지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장소로 가서 자신의 목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문명인들은 그것을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
것은 한 인간이 이 대지 위에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기 확인의 과정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인간은 신 앞에서 겸허해진다. 자연만큼 우리에게 겸허함을 가르
치는 것도 없다. 자연만큼 순수의 빛을 심어 주는 것은 없다. 자연과 멀어진 문명인들
은 문명화되는 속도만큼 순수의 빛을 잃었다.
목이 마를 때 물을 찾듯이 우리는 영혼의 갈증을 느낄 때면 평원이나 들판을 걸어나
간다. 그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는 홀연히 깨닫게 된다. 혼자만의 시
간이란 없다는 것을. 대지는 보이지 않는 혼들로 가득 차 있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곤
충들과 명랑한 햇빛이 내는 소리들로 가득 차 있기에. 그 속에서 누구라도 혼자가 아
니다. 자신이 아무리 혼자뿐이라고 주장해도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원의 한 오솔길에서 귀를 기울인다. 부산한 소리들 너머에서 평소에는 듣지 못하
던 어떤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그것을 강의소리라고도 하고 신성한 산의 소리라고도
한다. 그 소리는 곧 자기 자신의 소리이며, 위대한 정령의 소리다. 물론 우리 인디언
들 사이에도 문명인들처럼 자기가 그 신성한 산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다고 주장
하는 사람이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누구나 두려움을 헤치고 자기 희생을 통
해 그 산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각자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는 것이다.
그가 인디언이든 아니든, 누구나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도 자주. 특히
이른 아침이면 홀로 깨어 평원에 어리는 안개와 지평의 한 틈을 뚫고 비쳐오는 햇살
줄기와 만나야 한다. 어머니인 대지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가만히 마음을 열고 한 그
루 나무가 되어 보거나 꿈꾸는 돌이 되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자기가 대지의 한 부분
이며, 대지는 곧 오래 전부터 자기의 한 부분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인디언 천막을
열면 들판으로 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겨울 눈으로부터 여름 꽃에게로
구르는천둥(롤링 썬더) - 체로키 족
"사람은 저마다 그 자신만의 모습을 갖고 있으며, 이 세상에 온 그만의 목적을 가지
고 있다."
나는 조금 전에 소개받은 대로 체로키 족의 주술사 '구르는천둥(롤링 썬더)'이다.
영적인 문제를 놓고 문명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나로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여기 오는 걸 망설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의 인디언들은 영적인 문제를
놓고 밤새워 대화를 나눈다. 허나 미리 말해 두겠지만, 오늘 나는 비밀로 지켜야 할
의식이나 명상법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
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은 아직 세상에 드러내지 않은 비밀
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나는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해서는 어떤 영적인 것도 말할 수 없었
다. 문명인들이 이 대륙을 차지한 이후로 그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암호로써 그것들을 주고받았고, 암호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랐다.
삶의 방식은 변하기 마련이어서, 6년 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약간의 가능성
을 보았다. 우리는 문명인들의 세계 속으로 여행도 떠나고 그들과 섞이기도 했다. 그
러면서 함께 대화를 나룰 수 있는 가슴을 지닌 사람들을 찾곤 했다. 처음에 말한 대로
나로서는 외부 세계에 나와서 영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다. 그만큼 상황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젊은 문명인들은 과거 세대와 많이 다르다. 그들은 인디언을 좋아하고 인간을 좋아
하며 우리에게로 와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나는 인디언 주술사로 태어난 사람이다. 인디언 세계에서 주술사(medicine man)란
단순히 주술 행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가사의한 영적인 힘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
그는 샤먼이기도 하면서 치료사이고 의사이며 영적 상담자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어떻게 하면 주술사가 될 수 있는가 묻는다. 주술사란 아무나
마음 먹는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거나 학교를 다녀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술사는 그런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치료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몇
명 만나 본 적이 있는데, 이것을 분명히 밝혀 두고 싶다. 무엇보다도, 주술사가 되려
면 주술사로 태어나야 한다. 그럼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자신이 주술사로 태어났는
가를 아느냐고? 꿀벌에게 물어 보라, 어떻게 여왕벌을 아느냐고 인디언은 그냥 알 뿐
이다.
우리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어떤 것을 행하지 않는다. 구경거리로 무엇을 하진
않는다. 세상의 돈을 다 갖고 와도 전통적인 인디언 주술사를 살 순 없다. 한참 전에
한 백인 친구가 비행기를 타고 내가 사는 곳까지 날아온 적이 있다. 그는 뉴욕에 있는
큰 회사의 사장 아들이었다. 그는 전용비행기를 타고 와서 나에게 1만 달러를 내밀었
다. 등 전체에 난 붉은 피부병 반점을 치료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치료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렇다. 치료할 수
있다."
그는 그렇다면 치료해 주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지금은 안 된다. 1년쯤 뒤
에 다시 오라. 다시 올 때는 선물로 담배를 가져올 것이며, 나의 협력자(약초)들에게
먼저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나는 말했다. "당신이 꺼내 놓은 1만 달러는
도로 집어넣으라."
문명인들은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될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 삶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몇 가지의 것들이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바로 그
기준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내가 원했다 해도 나는 1만 달러를 꺼내 놓은 그
사람을 치료할 수 없었다. 치료를 시도했다면 내 스스로 대가를 치뤄야만 했을 것이
고, 내가 잘못된 행위를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나는 전신마비에 걸린 한 노인을 치료했다. 그는 몇 해 동안 그 병을 앓
았는데 의사들도 포기한 환자였다. 노인은 치료의 대가로 내 이름이 새겨진 이 목걸이
를 나에게 선물했다. 이것을 나는 1만 달러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가 인디언이든 아니든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 자기를 정화하는 과
정을 거쳐야 한다. 또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
나는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면 그는 인디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우리 인디언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자연에 자신의 모습을 자주 비추곤 한
다. 자연의 숨결과 자신의 숨결을 동일시하고, 대지의 맥박과 자신의 심장을 한 박자
로 여긴다. 문명인들은 인간의 힘이 자연을 다스리고 변형시키는 데 있다고 여기며 그
것이 곧 생존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힘과 진정한 생존은 자신을 자연
의 한 부분으로 여겨 대지의 모든 생명들과 조화를 이루는 일에 있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의 초기에는 대지가 마구 흔들리고 열기로 가득 차서 사
람들이 걸어다닐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도 인간이 존재했지만 오늘날과는 다른 모습
이었다. 그 첫번째 부족의 후손들이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되는 큰발(빅 푸트) 족
이나 티벳의 예티(설인) 족이다. 어떤 부족은 남태평양 한가운데의 바다로 침몰하는
대륙(사라진 대륙)에서 배를 타고 피난해 오기도 했다. 그들의 후손이 아직도 이곳 아
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으며, 우린 그들이 누구인가를 안다.
인디언들의 얼굴 모습이 제각기 다르고 또한 유럽인이나 어떤 민족과도 비슷하지 않
은 까닭이 거기에 있다. 우리는 아직도 1년에 한 차례씩 호피 족의 키바*에서 회합을
갖는다. 모든 부족의 대표들, 주술사와 추장들이 그곳에 모여 우리의 신성한 문서를
돌려 읽고 해석을 가한다.
*키바란, 푸에블로 인디언에게서 볼 수 있는 구조물로 반지하 형식이 많으며, 보통
둥근 형태로 되어 제사의식, 회의를 위한 장소로 쓰인다.
우리 인디언은 부족도 다르고 언어도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인디언들 사이에는 의사
소통의 문제가 전혀 없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대화 방법을 갖고 있으며, 당신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캐나다의 퀘벡 주에서 온 인디언 주술
사를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대화 없이 통하는 상태가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가능했다. 이것은 서부 인디
언이나 아프리카 사람들과 동양인 사이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영적 차원이 비슷한 높
이에 이르면 굳이 대화가 필요없어진다.
옛날에는 두 인디언 추장이 들판의 오솔길에서 몇 번이나 마주쳐도 아무런 말이 오
가지 않았다. 내 어린시절의 기억으로는 노인들 몇 명이 햇살 아래 하루 종일 앉아 있
어도 말이 필요 없었다. 언어 없이도 그들은 내면적으로 서로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
이다. 때로는 오늘날의 우리들보다 훨씬 더 잘 통했다. 그들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디언은 우리가 사용하는 약초를 협력자라고 부른다. 약초를 캐러 가면 우리
는 약초를 발견하기 전에 이미 그것이 어디쯤에 있다는 걸 안다. 때로는 필요한 약초
들이 스스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문명인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식물을
잡초라 부르는데, 세상에 잡초란 없다. 모든 풀은 존중되어야 할 목적을 갖고 있고,
쓸모 없는 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풀들도 인간처럼 가족을 이루고 살고, 부족과 추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약초를 캐
러 가는 사람은 그 약초의 추장에서 선물을 바쳐 존경심을 표시해야 한다. 그런 다음
실제로 그 풀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풀만 채취해 갈 것이고 그것도 좋은 목적에 사용
하리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문명인들은 그러한 순서를 잊어버렸다. 그들은 목적만을 추구한 나머지 인간과 자연
의 관계를 무시하고 말았고 나아가 '자기를 아는 일'로부터 멀어지고 말았다.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닌데, 다른 지역에 사는 한 남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날 찾아
왔다. 그는 인디언의 관습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담배 선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것
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병으로 고
통받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치료를 해주었고, 그는 병이 나았다.
그러나 청년은 자기도 주술사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물론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3일간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인디언들은 어떤
것을 결정할 때 대개 3일의 시간을 갖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이 청년을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래서 3일의 여유를 준 것이다.
하루하고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서 청년은 나를 찾아와 자기에게 의통을 전수할
것인지 물었다. 대단히 참을성이 없는 친구였다. 지금은 세상 사람 모두가 이처럼 끝
없이 서두른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니다. 난 너에게 인디언 의술을 가르치지 않을 것이
다. 배운다 해도 넌 마법사 정도밖에 못 될 것이고, 결국 너 자신과 네 주위 사람들을
해칠 것이다."
청년은 무척 화를 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오직 주술사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내가 치료하는 방식을 모방하기 시작했고, 우리 인디언들이 사용하지 않는 방법
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몸 속의 기운이 치받쳐 그는 머리카락과 눈썹이 다 빠
졌으며, 그것은 하나의 경고였다. 결국 그는 서둘러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만 했다.
문명인들은 모든 것을 서둘러 원하며, 많은 노력 없이 그것을 얻기를 원한다. 그렇
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더 많은 걸 놓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사물에 대한 이해를
놓치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해에 필요한 만큼 충분히 그 세계 속에 몸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당장 쉽고 빠른 대답을 원한다.
삶의 가르침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단순히 자리에 앉아서 진리에 대해 토
론한다고 해서 진리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리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당신은 진
리를 살아야 하고, 진리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진리는 깨닫기가 어렵
다. 진리는 아주 천천히, 점진적으로 다가오며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문명인들은 자연에 고삐를 채우고, 자연을 정복하고, 자연을 인간의 하인으로 만드
는 일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문명인들이 자연의 방식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를
말해 준다. 또한 오늘날의 자연환경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있다. 대기오염을 두려워하고, 방사능과 더러워진 물을 두려워한다. 대지는 오염되고
자원은 사라졌거나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너무 늦은 게 아닐까 걱정
하고 있다.
자연을 길들이려는 어떤 장치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연의 의식세계를
통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그 사람의 본성
과 존재 목적에 반해서 어떤 한 개인의 길을 결정짓거나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처
음에는 가능할 것처럼 보이나 결과는 비극적이다. 결국 모두가 두려워하고 위험스럽게
생각하는 길로 향해 갈 뿐이다.
치료행위에 있어서도 우리는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진정한 치료사는 치료받는
사람의 카르마(업)와 운명을 충분히 고려한다. 더불어 진정한 치료사는 각 사람의 영
혼이 걸어나가야 할 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것만이 보다
실제적인 치료를 가능케 하며, 인간을 그가 처한 고통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
자연은 고귀한 것이며, 인간 내면의 자연 역시 고귀하다. 자연은 언제 어디서나 존
중되어야 한다. 모든 생명,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우리 인디언은 모든 것에는 필요한 때와 장소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말하기는 쉬
워도 이해하기는 어렵다. 삶을 통해서 당신은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인디언은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삶을 살고 삶 속에서 그것과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약
초를 구하는 때와 장소를 안다.
약초뿐 아니라 해와 땅, 구름, 모기, 식물, 사람과 동물이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
는다. 우리는 해가 떨어진 다음에는 약초를 채집하지 않으며, 필요한 때만 약초를 수
집한다. 어떤 풀을 뽑아서 그냥 내버리는 일이 없으며, 재미로 무엇을 죽이는 법이 없
다. 우리에게는 잡초라는 것도, 모기에 물리는 것도, 원하지 않는 비도 없다. 바람과
비, 모기와 뱀이 모두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나면
겨울의 눈도 우리 자신이고, 여름의 꽃도 우리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본질은 우주의 본질과 하나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본성을
배울 수 있다. 문명인들의 삶은 자연이 아닌 것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나무와 새로부
터, 곤충과 동물로부터, 변화하는 날씨로부터 아득히 멀어져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참된 본성으로부터도 멀어졌다. 그러한 나머지 문명인들은 자연스러운 것과 마
주치면 낯설어하고 어색해한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책임을 져야 하며, 생각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어떤 특정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 때 인디언은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먹을 필요가 없듯
이, 생각에 떠오르는 것마다 말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하는 말
을 잘 관찰하며, 오직 좋은 목적을 위해서만 말을 한다. 원하지 않는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맑게 가져야 할 때가 있다. 그때를 위해서 우리는 꾸준히 자신을 훈련시킨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생각이나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연습
이 필요하다. 당신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꿈과 생각과 관념에 대해 당신 자신을 비난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을 억압하거나 생각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 다만 자신이 생각과
말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생각이 줄
곧 떠오를 경우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라. "난 이런 생각들을 선택하지 않겠다."
라고 말한 뒤 그 생각을 혼자 내버려 두면 곧 사라져 버린다.
인디언 전사와 같은 인내심으로 그것을 해나가면 언젠가는 몸과 마음이 정결한 상태
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대지 위에서의 삶을 충분히 살고 나면 우리는 다시는 이곳으
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 할 일이 있고 이뤄야 할 목적이 있는
한 우리는 이곳의 삶을 계속해야 한다.
따라서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떠나는 것은 자신에게 거짓된 일이고, 어머니인 대지
에게도 거짓된 일이다. 어떤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은 그것이 아직 우리의 성장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일이 그곳에 있는 한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지 말 것이
며, 그 길을 따르고 그 길을 존중하고 그 길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모든 병과 고통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것들은 늘 지나간 어떤 것, 다가올 어
떤 것에 따른 보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병과 고통에 대해 아무런 치료행위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왜 그 일이 일어났는가를 깊이 이해하는 일이 중
요하다. 문명인 의사들은 그것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인디언 주술사의 역할이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어떤 것의 결과이며, 또 다른 어떤 것의 원인임
을 안다. 그것은 하나의 사슬처럼 이어진다. 때로 어떤 병과 고통은 그것이 최선의 방
법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그것을 사라지게 하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자신은 그것을 모를지라도 그의 영혼은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자를 치료하
기 전에 3일 동안의 시간을 갖는 것이며, 그 결과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육체의 고통은 좋든 나쁘든 어떤 이유를 갖고 있으며, 그것들은 언제나 영적인 차원
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어떤 질병에 감염된다는 것은 영적으로 순수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육체에 일어나는 일은 그것으로 전부가 아니며, 따라서 치료사는 육체 이상의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문명인 의사들은 환자가 찾아오면 질병만 관찰한 뿐 사람을 관찰하지 않는다. 그래
서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약을 주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든지 신체
의 어느 부위를 잘라 쓰레기통에 버린다. 어쩌면 그것은 불필요한 일일 수도 있고, 전
혀 치료가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인디언은 신체적인 고통에 무척 관심이 높으며, 자연적인 수단으로 고통을
없애는 데 관심이 크다. 우주 안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영적 차원이 있다. 자연 속
의 모든 물질은 그 나름의 영적 차원을 갖고 있으며, 우리가 어떤 약초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것은 바로 그 약초의 영적 차원의 협력을 얻는 일이다. 단순히 화학 물질의 합
성만으로 치료가 가능하진 않다.
나는 우리 모두가 가슴 안에 자기만의 교회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당신도 자기만의
교회를 가슴 안에 갖고 있다. 당신이 그 교회를 따를 때 당신은 위대한 정령의 가르침
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세상의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해도 자
기 가슴 속의 교회를 잃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우리 인디언이 가르침 받는 방식이다.
사람은 저마다 그 자신만의 모습을 갖고 있으며, 이 세상에 온 그만의 목적을 갖고
있다. 또한 저마다 그만의 모습, 그만의 목적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그 자신만의 길을
갖고 있다. 따라서 누구도 그 길을 방해해선 안 된다.
마음이 담겨 있는 길
돈 후앙 - 야키 족
"오직 당신 자신에게만 이 한가지를 물어 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
어떠한 길도 다만 하나의 길에 불과한 것이며, 당신의 마음이 원치 않는다면 그 길
을 버리는 것은 당신 자신에게나 다른 이에게나 전혀 무례한 일이 아니다... 모든 길
을 가까이, 세밀하게 관찰하라.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시도하라. 그런 다음 오직 당신
자신에게만 이 한 가지를 물어 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느냐?' 그렇다면 그 길
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소용없는 길이다. 한쪽 길은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며, 그 길을 계속 걸어가면 당신은 그 길과 하나가 될 것이다. 다른 쪽 길은
당신으로 하여금 인생을 저주하게 만들 것이다. 한쪽은 당신을 강하게 해주고, 다른
쪽은 당신을 힘없는 인간으로 만든다.
지자가 되는 길은 전사의 길과 같다.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면 서툴고 나약해져
서 결국 실패하고 만다. 지자가 되기 위해선 가볍고 유동적이어야 한다.
진정한 지자는 '보는 것'과 '바라보는 것'의 차이를 안다.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세
상을 지각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평범한 방식을 뜻하는 반면, 보는 것은 세상에 존
재하는 것들의 본질을 지각한다는 뜻이다.
우리 인간은 이 세계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얼
마나 보잘것없으며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본다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보는 것'을 편애한다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나는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지. 지자는 보는 것을 통해서만 앎에 이르고 있
기 때문일세."
"어떤 것을 본다는 겁니까?"
"모든 것."
"하지만 나는 지자가 아닌데도 역시 모든 것을 보는 걸요."
"아니. 자네는 보는 게 아닐세."
"나는 본다고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자네는 보지 못하네."
"돈 후앙,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자네는 단지 사물의 표면만을 바라볼 뿐이지."
"그렇다면 지자들은 모두 자기가 바라보는 것을 실제로 그 본질까지 꿰뚫어본다는
뜻입니까?"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닐세. 지자는 자기가 편애하는 것이 있다고 전에도 말
한 적이 있지. 다만 내가 편애하는 것은 '보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앎에 이른다는 것
이라네.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것을 행하지."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죠?"
"내 친구 사카테카의 예를 들어볼까. 그는 지자인데, 그가 편애하는 것은 춤추는 것
이지. 그는 춤을 통해 앎에 이른다네."
"그렇지만 춤추는 것이 어떻게 사카테카가 무엇을 알게 되는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세. 그가 춤추는 것은 자네가 춤추는 것과 같다기보다는 내가 '보
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는 당신이 보는 것처럼 보기도 합니까?"
"그렇지. 그는 내가 '보는 것'처럼 춤을 추지."
"사카테카는 어떻게 춤을 춥니까?"
"그것을 설명하기 어렵네. 앎에 이르기 위해 춤을 출 때면 그는 아주 특이한 방법으
로 추지.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네가 지자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
는 한 춤추는 것이나 보는 것에 대해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이야."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든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
보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우리 눈이 그것을 보게끔 훈련시킨다. 우리
는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미리 가지고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우리
는 우리가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진정으로 보는 법을 배우게 되면, 그는 이제 더 이상 자기가 바라
보는 것에 대해 생각을 앞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생각을 버리고 바라볼
때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웃기 위해서는 사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대상
을 바라볼 때만 이 세상의 우스운 것들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 눈이
진정으로 보게 된다면, 모든 것이 다 똑같기 때문에 우스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돈 후앙,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겁니까?"
"그것을 알려면 보는 법을 배워야 하지. 내가 말해 줄 수는 없는 걸세."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입니까?"
"아닐세. 그저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
"왜지요?"
"설명해도 자네는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한번 설명해 보십시오. 어쩌면 내가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니야. 자네는 그것을 스스로 알아내야 하네. 자네가 일단 앎에 이르게 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지."
"그렇다면 당신은 더 이상 세상의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진 않겠군요."
"나는 양쪽으로 다 볼 수 있지. 세상을 그저 바라보기를 원할때면 나도 자네가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다네. 그러나 내가 어떤 것을 진정으로 보겠다고 원하면 나는 내가
아는 방법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다른 식으로 그것을 지각하게 되는 것이지."
"당신이 바라볼 때마다 사물을 항상 똑같이 보입니까?"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네.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이 변할 뿐이지...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마다 사실은 그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네. 우리는 사물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것을 그저 바라볼 뿐이지. 자네의 눈은 단지 겉모양을 바라보는 법만
배웠을 뿐이야."
인간으로서 우리의 숙명은 배우는 것이며, 지식(지혜)을 배우려는 자세는 마치 전투
에 나가는 전사와 같아야 한다. 세상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절대
적인 신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지자의 삶에는 공허함이란 것이 없다. 모든 것은 넘칠 정도로 가득 차 있으며, 모든
것은 동등하다. 나에게는 승리도 패배도 그리고 공허함도 없다. 지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는 아이가 아니라 전사가 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거나
불만을 늘어놓거나 머뭇거려선 안 되며, 그때가 되면 이 세상에 중요한 것이라고는 아
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욕심을 무로 낮추는 법을 배움으로써 가능하다. 자신이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한 그의 삶은 지옥과 같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원하
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무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을 배운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얻게 될 가장 작은 것도 진정할 선물이 될 것이다. 가난하다거나 부
족하다는 것은 단지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미움이나 배고픔, 또는 고통받는 것 역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나는 그 기술을 터득했다. 그 힘이야말로 우리가 세속적
인 물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 힘이 없다면
우리는 쓰레기일 뿐이다. 바람에 날리는 먼지에 불과한 것이다.
백인들이 와서 나의 아버지를 죽였을 때 나는 그들을 파멸시키고야 말겠다고 맹세했
었다. 나는 수년 동안 그 약속을 간직했다. 그러나 이제 그 약속은 바뀌었다. 나는 누
구를 파멸시키는 데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평
생을 두고 지나가는 수많은 과정들은 모두가 똑같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가해자와 피
해자는 결국 가서 만나게 되며, 오직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인생이 그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도 짧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슬프다고 느끼는 것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
가 그렇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슬프게 느끼는 것은 그들이 인디언이었다는 사
실이다. 그들은 인디언처럼 살았고 인디언처럼 죽었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다.
'보는 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해준
다. 세상은 정말로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는 불가해하고
물리칠 수 없는 세력들에 둘러싸인 무력한 존재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무지하기 때
문에 그러한 세력들이 설명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
게 할 수 있는지는 모르면서도 인간의 행동이 조만간에 그것들을 설명해 주고 변화시
켜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우리는 끝없이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실, 이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우리 자신과의 대화이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 자신에게 말
하기를 멈춘다면 세상은 비로소 그것이 지녀야 하는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지혜
로운 자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스스로에게 이 세계에 대해 말하는 것을
멈추려고 노력한다.
지자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멈추자마자 세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세상이 이런저런 모습인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세상의 모습을 그렇게 말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세상이 이렇고 저렇다고 말하는 것을 멈춘다면,
세상은 더 이상 이런저런 모습이 아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서서히 세상과 연결된 자
신의 끈을 풀기 시작해야 한다.
세상은 불가해하다. 우리는 세상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비밀들
을 절대 파헤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대해야만 한다.
완전한 신비 그대로!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세상은 결코 신비한 것이 아니
며, 그들은 나이가 들게 되면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확신하게 된
다. 자기가 세상을 소모해 버린 게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하는 일을 소모해 버렸을 뿐
인데도! 그렇지만 어리석기 때문에 그는 세상이 자기에게 더 이상 신비스러운 것을 제
시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지자는 이런 어리석음을 알고 있으며, 사람들이 행사는 일이 어떤 상황 아래서도 이
세상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지자는 이 세상을 끝이 없
는 신비로, 그리고 사람들이 행하는 일을 끝이 없는 어리석음으로 여기는 것이다.
날마다 좋은 날
동쪽에서온사람(오히예사) - 샨티 수우 족
"모든 영혼은 아침의 태양과 만나야 한다. 그 위대한 침묵 앞에 홀로 서야 한다..."
인디언은 생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종교적이다. 아이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
는 첫날부터 젖을 떼는 두 살 무렵까지 아이에게는 어머니의 영적인 영향이 대단히 중
요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인디언 어머니는 아이를 임신하는 그 순간부터 순결한 언행과 은밀한 명상을 통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열려 있는 영혼에게 그가 모든 창조물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친다. 인디언의 아이 교육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래서 장차 어머니가 될
여성은 사람들로부터 떨어진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첫번째 규칙으로
삼는다.
그녀는 거대한 삼림의 정적 속에서, 또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평원의 가슴 위에서
홀로 산책을 한다. 그리고는 시적인 마음을 통해 장차 위대한 영혼이 자신의 몸에서
태어나리라고 상상한다. 원시의 숨결이 어린 대자연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이
다. 아무도 그 상상을 방해하지 않는다. 가끔씩 들리는 소나무의 한숨소리나 먼 거리
의 폭포소리만이 그녀의 상상을 일깨울 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의 삶에 새로운 순간이 열리고, 또한 새로운 삶이 그녀를 통해
지상에 나오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 그
녀는 혼자서 새 생명을 받을 몸과 마음의 준비를 다했다. 인디언 어머니는 그것을 자
신의 가장 신성한 의무라 여긴다.
인디언은 아이의 출산은 어머니 혼자서 맞이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라 여긴다. 타인
의 호기심은 방해만 될 뿐이다. 대자연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소리친다. "이것
은 사랑의 힘이다! 이것은 생의 완성이다!"
아이를 인디언 천막으로 데려오면 어머니의 영적인 가르침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침묵으로 이루어진다. 손가락으로 아이에게 자연 속의 사물들을 가리켜보일
뿐이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새처럼 노래를 속삭여 준다. 어머니와 아이는 새를 사
람과 똑같은 존재이며, '위대한 신비'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는 존재로 여긴
다.
아이가 성급하게 행동할라치면 어머니는 부드럽게 주의를 준다. "그렇게 하면 영혼
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자작나무가 수런대는 소리, 사시나무의 은빛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밤이면 소리없이 길을 여행해 가는 별들의 대장정을 손짓해 보인다.
침묵, 사랑, 경외감 - 이것이 아이 교육의 세 가지 기준이며, 아이가 좀더 성장하면
자비심, 용기, 순결성의 기준이 뒤따른다.
인디언은 무엇보다도 겸허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친다. 특히 영적인 자만심은 인디언
의 성격이나 가르침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인디언은 자신의 말솜씨가 뛰어나
다고 해서 문명인들처럼 상대방을 '어리석은 야만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디언은 침묵의 힘을 믿으며, 그것을 완전한 평정의 표시로 여긴다. 침묵은
육체, 정신, 영혼의 절대적인 조화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영
혼이 흔들림없이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 - 나무 이파리 하나 떨리지 않고 물결 하나 일
지 않듯이 지식에 물들지 않은 현자의 마음을 갖는 것을 인디언은 생의 목표로 삼는
다.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삶을 사는 인간이라 여기는 사람은 누구라도 인디언
과 한 부족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에 가까운 학생들이다. 인디언은 문명인들이
책을 갖고 공부하듯이 자연 속의 여러 행동방식들을 통해 배운다. 인디언 아이들은 같
은 부족의 어른들을 지켜봄으로써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배운다.
야생의 평원에 사는 아이들만큼 오감을 잘 사용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누구보다
도 잘 보고 듣고 냄새 맡는다. 또한 깊이 느끼고, 깊이 맛본다. 야생의 생활만큼 기억
력을 발달시키는 생활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침묵과 과묵함을 배웠다. 이것들은 인디언의 성격을 특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다. 사냥꾼과 전사가 되기 위해선 그것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
며, 또한 인내심과 자기를 다스리는 힘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디언 아이들은 문
명 국가의 아이들이 법률가나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하듯이 용기 있는 인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정을 간직하는 것, 그것이 인디언에게는 삶 속의 가장 중요한 시험이다. 가족과
친척에게는 누구라도 쉽게 신의를 지킬 수 있다. 같은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또한 남
자와 여자 사이의 애정은 짝짓기의 본능에 기초하고 있으며 욕망과 자기 중심적인 태
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친구를 갖는 것,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친구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사람됨의 표시이다.
소유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라는 것이 우리 인디언의 믿음이
다. 물질적인 길을 뒤쫓으면 영혼이 중심을 잃는다. 따라서 인디언은 어렸을 때부터
자비심의 미덕을 배운다.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남에게 주도록 가르침 받으
며, 그래서 일찍부터 주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된다.
인디언들은 말 그대로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친구나 다른 부족에서 온 손님에게 나
누어 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난하고 늙은 사람에게 먼저 나누어 준다. 그리고는
절대로 돌려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나는 남에게 베푸는 법을 알았다. 그런데 문명인이 된 다음부터 그 아름
다움을 잊어버렸다. 그때는 자연스런 삶을 살았으나 지금은 인위적인 생활을 하고 있
다. 그때는 조약돌 하나도 가치 있게 여겼으며, 나무를 봐도 놀라워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문명인들과 더불어 액자에 넣어진 풍경화 앞에서 그 가치를 돈으로 환
산하고 있다니! 바위를 갈아서 생긴 돌가루로 벽돌을 만들고 그 벽돌로 문명사회의 인
위적인 벽을 쌓듯이, 내 안에 있던 인디언은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사냥을 나간 인디언은 너무도 아름답고 장엄한 대자연에 말을 잃을 때가 있다. 바위
산 위에는 검은 먹구름과 함께 무지개가 드리워지고, 푸르른 계곡 심장부에서 하얀 폭
포가 쏟아져내린다. 그런가 하면 드넓은 평원에는 석양빛이 하루의 작별을 고한다.
그러기에 인디언은 굳이 일주일 중의 하루를 신성한 날로 정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
는 모든 날이 곧 신의 날이기에!
모든 영혼은 아침의 태양과 만나야 한다. 그 새롭고 부드러운 대지, 그 위대한 침묵
앞에 홀로 마주서야 한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동쪽에서온사람의삼촌(이스트맨스 엉클) - 샨티 수우 족
"우리에게는 삶이 곧 진리이며, 진리가 곧 삶이다."
문명인들은 가슴을 갖고 있지 않는 게 분명하다. 그들은 자기 부족의 어떤 사람을
하인으로 부린다. 그렇다, 사람을 노예로 만든 것이다.
우리 인디언은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데 문명인들은 그렇게 한다. 그들은 하인들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오래 전에
그들의 몸에 검은 물감을 칠한 것 같다. 그래서 이제 하인들은 그들과 똑같은 피부색
의 아이들만 낳게 된 것에 틀림없다.
문명인들은 삶의 목표를 오로지 더 많이 소유하는 것, 더 큰 부자가 되는 것에 두고
있다. 그들은 온 세상을 저 혼자 차지하려고 한다.
지난 30년 동안 그들은 끝없이 우리에게 땅을 팔라고 요구해왔다. 마침내 우리가 말
을 듣지 않자 군인들을 보내 강제로 땅을 빼앗아 버렸으며, 우리는 아름다운 땅으로부
터 추방되었다.
문명인들은 정말로 특이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하루를 여러 시간으로 나누
고, 한 해를 여러 날로 쪼개었다. 사실 그들은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나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 가치를 따지고, 끝까지 이익을 추구하며, 마침내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쓰레기라 여긴다. 그들은 아마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은행이라는 큰 집에 돈을 맡기고 가끔씩 이자를 붙여 찾아간다. 그러나 우리
인디언에게는 은행이라는 것이 없다. 우리는 돈이나 담요가 남으면 그것을 부족의 다
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필요할 때는 그들에게서 얻어다 쓴다. 주는 것, 그것이 우
리에게는 은행인 셈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삶의 기준을 돈에다 두고 있으며, 진실과 거짓조차 돈 앞에선
그 위치가 바뀌고 만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우리 인디언들과 사뭇
다른 종족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진리에 대해 잘 설명하고, 진리가 적혀 있다는 책
을 늘 지참하고 다닌다. 그러나 그들만큼 진리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자들도 없다.
만일 인디언 부족 내에 그러한 자가 있었다면 당장에 부족 밖으로 추방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책'이라는 것을 가져본 역사가 없으며, 누가 어떤 진리를 말했다고
해서 그것을 책에다 적어 놓고 찬양하고 다니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삶이 곧 진리이
며, 진리가 곧 삶이다. 진리로부터 멀어진 삶은 죽음이며, 그러한 삶을 사는 자에게는
진리의 책도 아무 소용없다.
믿는다는 것
빨간윗도리(사고 요 와타) - 이로콰이 족
"당신은 말한다. 이 길만이 신을 믿는 유일한 길이라고. 이 길밖에는 다른 길이 있
을 수 없다고."
내 이름은 사고 요 와타이다. 그 뜻은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흔히들 나를 '빨간윗도리(레드 재킷)'라고 부른다.
나의 친구여! 오늘 우리가 만난 것은 신의 뜻에 의해서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신
의 뜻이라는 것이 우리 인디언들의 믿음이다. 신은 우리의 만남을 위해 이처럼 화창한
날씨를 주셨다. 태양을 가리고 있던 자신의 윗도리를 걷어 버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
명랑한 햇살을 비춰 주시는 이여! 우리는 눈을 열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본다. 또한
귀를 열고 당신이 말하는 내용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이 모든 것을 신에게
감사드린다.
나의 친구여! 당신은 문명인들이 보낸 한 사람의 선교사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이
만남은 당신의 요청으로 이루어졌으며, 우리는 귀를 기울여 당신이 말하는 것을 잘 들
었다. 당신은 또 우리에게 자유롭게 말할 것을 요청했다. 이보다 기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당신 앞에서 우리의 생각을 분명히 전할 수 있게 됨을 큰 기쁨으로 여기는 바
이다. 우리 모두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이제 모두를 대신해 내가 일어섰다.
한때는 우리들의 조상들이 이 드넓은 대지를 소유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이 지어 놓
은 인디언 천막들이 해가 뜨는 곳에서부터 해가 지는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신은 인
디언을 위해 이 대륙을 만드셨으며, 들판 가득히 들소와 사슴 등 많은 동물을 뿌려놓
으시고 땅에선 옥수수가 자라게 하셨다.
그러나 힘겨운 날들이 찾아왔다. 당신의 조상들이 큰 강물처럼 이 대지 위로 몰려오
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숫자가 많지 않았고, 우리는 그들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대했다. 그들은 설명하기를, 자신들이 박해자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누리기 위
해서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작은 땅만 내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그들을 동정해 그 청을 받아들였으며, 그래서 그들은 우리와 더불어 이 대지 위에 정
착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옥수수와 물고기를 베풀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에게 독화살을 날려 보냈다.
우리 인디언이 대대로 살아 오고 있던 신비의 대륙을 발견한 문명인들은 꼬리에 꼬
리를 물고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거부하지 않았다. 우린 그들을
친구로 맞이했으며, 그들 역시 우리를 형제라고 물렀다. 그들을 믿고 우리는 더 넓은
지역을 내주었다. 머지않아 그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었고, 그들은 더 많은 땅을 원했
다. 나중에는 아예 우리가 살고 있는 대륙 전체를 손에 넣으려고 했다. 우린 눈이 번
쩍 뜨였으며, 마음이 몹시 편치 않았다. 곧이어 전쟁이 일어났다. 그들은 인디언을 매
수해 다른 인디언들과 싸우게 했으며, 그 결과 많은 인디언 부족이 멸종되었다. 그들
은 또한 독한 술을 들여와 우리더러 마시게 했다. 그 결과 또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친구여! 한때 우리 부족의 자리는 넓었고, 당신들의 자리는 좁았다. 그러나 이제 당
신의 부족은 거대해졌으며, 우리에겐 담요 한 장 펼칠 땅밖에 남지 않았다. 당신들이
우리의 대지를 다 차지한 것이다.
그런데 당신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제 우리에게 당신들의 종교를 강요하고
있다.
당신은 말한다. 당신 자신이 우리에게 신의 마음에 들도록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파견된 사람이라고. 그리고 만일 이 시간 이후로 문명인들이 믿는 종교를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척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당신은 말한다. 당신들의 종교는 옳고, 우리의 것은 틀리다고. 그 말이 맞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가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들었다. 만일 그 책의 내용이 당신들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면 신은 마땅히 우리에게도 그 책을 내려주셨을
것이 아닌가? 아니,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에게도 그 책에 대한 지식과 올바른
이해를 심어 주셨을 것이 아닌가? 우리는 다만 당신의 말을 통해 그것에 대해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문명인들에게 수없이 속아온 우리가 그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또한 당신은 말한다. 이 길만이 신을 믿는 유일한 길이라고. 이 길밖에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고. 만일 그런 식으로 단 하나의 종교만이 존재한다면 왜 당신들 문명인
들은 끝없이 종교 싸움을 벌이는 것인가? 당신들 모두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텐데 왜
서로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것인가?
당신은 당신의 종교가 당신들의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
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종료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또한 종교를 갖
고 있으며, 그것 역시 조상 대대로 그 아들들에게 전해져 왔다. 그 종교는 우리 인디
언에게 세상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치고, 서로 사랑하라 이르며, 나무
들처럼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한다고 일깨웠다. 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쳤다. 우리 인디언은 종교에 대해 결코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신은 당신과 나 모두를 만드셨지만 우리 둘 사이에 큰 차이를 두셨다. 얼굴도 다르
게 만들고 관습도 다르게 만드셨다. 당신들에게는 기술 문명을 주셨지만, 신은 그것에
대해선 우리의 눈을 띄워 주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다른 많
은 것들에게도 신은 차이를 있게 하셨다. 따라서 종교 역시 그렇지 않겠는가? 신은 우
리 인디언에게는 인디언의 세계에 어울리는 종교를 주셨다. 신께서 잘못 판단하실 리
없다. 신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무엇이 가장 적합한가를 알고 계시며, 우리는 그 판단
에 만족해 왔다.
친구여! 우리는 당신의 종교를 파괴할 의도가 전혀 없다. 당신에게서 종교를 빼앗으
려는 생각도 없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의도를 가져선 안 된다.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의 종교를 원할 뿐이다.
당신은 이 장소에서 얼굴 흰 사람들에게 줄곧 설교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
리가 한번 지켜보겠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며, 우린 그들을 잘 알고 있다. 당신의
설교가 그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당분간 지켜보고 있겠다. 그래서 그들이
정직성을 되찾고 더 이상 인디언들을 속이려 들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당신이 우리에
게 말한 내용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다.
이것으로 당신은 우리의 답변을 들었으며, 이것이 현재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이다. 이제 당신과 우리는 헤어져야 한다. 당신의 형제들에게로 돌아가는 여행길
에 위대한 정령께서 당신을 잘 보호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바이다.
세상은 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
느린거북(슬로우 터틀) - 왐파노그 족
"세상은 그러한 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
열네 살 때 나는 인디언 이름을 받는 의식을 거쳤다. 와시피 왐파노그 족의 어른들
은 나에게 '느린거북(슬로우 터틀)'이란 이름을 주었다. 그것은 내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반응이 무척 느리고 동작 또한 굼뜨기 때문이리라. 인디언들은 그것을 무척 지혜로
운 행동으로 여긴다. 거북은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항상 목을 빼어 주위를 살핀 다음
에 걸음을 옮겨 놓는다.
인디언들은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정할 때 그런 식으로 한다. 그 사람의 성격, 그
사물이 세상에 차지하고 있는 위치 등을 기준으로 이름을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디
언 세계에서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한결 쉽다. 그 사람의 성격과 특징
이 곧바로 이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것에 비하면 당신들의 이름은 기억하기도 어
렵고 별다른 의미도 없다. 인디언에게는 이름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것은 한 개인을 부르는 호칭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의 고유한 영혼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러한 이름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여덟 명의 자식을 낳았고, 열두 명의 손자를 보았는데 맨 마지막으로 나온 손
자는 '오타쿠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것은 우리 인디언 말로 '이젠 끝'이란
뜻이다. 어떤 사람은 비를 싫어하지만, 비를 유난히도 좋아한 어느 인디언은 '빗속을
달려(런 인 더 레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그는 늘 비만 오면 소리를 지르며 평
원을 내달리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막 안에 앉아서도 그 비명소리를 듣고 밖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어떤 일의 징조처럼 폭우가
쏟아지더니 곧이어 폭설로 변해 평원 전체에 쏟아지기 시작했고, 빗속을달려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명을 지르면서 평원을 달려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빗속을달려의 가족들은 평원에 나가서 몇 날 며칠을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사
라지고 말았는지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이름이 그러하듯이,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영혼을 갖고 있으며 그 삶의 길 역시 저
마다 다르다는 것이 우리 인디언들의 믿음이다. 빗속을달려는 평원에 내리는 비 속을
달려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이 그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민주주
의를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똑같은 길을 걸으라 하고, 똑같은 기도문을 외라
고 한다. 당신들의 교회에 가보면 그걸 알 수 있다. 당신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똑같은 기도문을 외고 있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저마다의 영적인 길이 따로 있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기도를 말한다. 스스로 자신의 기도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내 기도문을 사용해선 안 된다. 그것은 나를 모독하는 일이기 때
문이다. 내 기도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언어들로, 당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넣어
서 스스로의 기도문을 만들어야 한다. 비속을달려의 길이 특이하다고 해서 모두가 비
내리는 날이면 평원을 개들처럼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인디언은 또한 남이 써놓은 경전을 잃으면서 "이것 봐! 이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
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경전이 필요치 않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식으
로 모든 날이 새로운 날임을 이해한다. 그리고 생명은 영원한 것이며 결코 멈추지 않
는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당신들은 힘의 구조를 갖고 있다. 당신들의 정부는 피라미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
다. 그러나 이 땅에 살아온 원주민인 우리에게는 정부 형태라는 것이 언제나 하나의
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결코 계급 구조라는 것이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어
디서나 서로를 평등한 존재로 깨닫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높거나 낮
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직업이 무엇이고 하는 일이 무엇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추장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위대할 게 하나도 없었으며, 나 스스로
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위치일 뿐이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고, 자연히 질투나
경쟁심리도 없었다. 저마다 하나의 이름을 갖고 있듯이 이 세상에서 하나의 위치를 갖
고 있었으며,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두려움이라는 것도 없었다. 자기가 어떤 위치
에 있다고 해서 그 위치에 오르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언젠가는 자기를 밀쳐 내리
라는 두려움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문명인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왔을 때 그
들 중의 몇몇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매혹되었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지배하
거나 통제하지 않고 모두가 공동체 안에서 동등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회제도를 그
들에게 가르쳐 준 것도 우리들이었다. 그것이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이었다. 모두가 자
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동등한 의사표시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명인들은 그러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통제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제도를 견뎌내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새로운 일이었고, 그래서 결국 또다시 계급사회로 돌아가고 말았다.
원을 그리고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원을 그리고 앉아서 가슴
속의 말들을 나누어 갖는 것이다. 그것은 문명인들이 즐겨 하는 워크숍이나 세미나와
는 성격이 다르다. 원은 우주의 상징이며, 모든 생명체를 이끌어가는 힘의 상징이다.
우리는 그 원 속에서 큰 배움을 얻는다. 자기 자신과 함께 있는 법, 그리고 타인과
함께 있는 법을 배운다. 자기 자신과 함께 있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과도 함께 있지 못
한다. 자기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정직하고 솔직하다는 뜻이다.
원을 그리고 앉아서, 우리는 솔직하게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는다. 그러면 모든 사람
이 모든 각도에서 그 특별한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따라서 원을 그리고 앉는다
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함께 앉아서 누군가의 문제를 이야
기하며 각자의 관점에 따라 의견을 내놓는다.
그 자리에서는 장황한 이론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다만 자신이 보는 대로 진실을
이야기하면 된다. 사람들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상대방을 속이는 연습을 어려서부
터 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힘들 것이다. 눈물을 보이거나 당황한
표정을 짓는 것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인디
언 사회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전혀 약점이 아니다. 우는 것은 웃
는 것과 똑같은 것이며, 우는 것이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며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이 독특한 존재이며, 모두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개성을 지
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을 네 가지 형태라거나 열 가지 형태로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다. 나는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의 얼굴과 목소리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당
신이 아무리 그럴싸한 말을 꾸며낸다고 해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감출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자연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것이 곧 당신의 독특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신들은 어떤 사람을 따르면서 그 따르는 행위로 인
해서 자신들도 우월한 입장이 되었다고 착각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패거리를 만들고,
다른 패거리에 속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공격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일이다. 인디언의 창조 설화에
서는 사람마다 여행할 길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 다른 여행길에서 자기만이 가진 선물
을 나누어 갖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그 설화는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말한다. 신은 모두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셨으며, 모든 사람이 다 특별하다
고. 또한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특별한 선물이라고. 왜냐하면 사람
마다 나누어 가질 특별한 어떤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부 형태가 원으로
되어있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여를 하게 된 까닭도 이러한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
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되려고 진정으로 노력해 본 적이 없고, 또 자기 자
신이 되게끔 허용하지도 않는다. 항상 누군가에게 자신을 통제하도록 내맡긴다. 부모
가 당신에게 학교와 교회를 선택해 주고, 삶의 모든 방식과 규칙을 정해 놓는다. 따라
서 당신은 결코 당신 자신이 될 수가 없었다. 그런 다음에는 사회가 당신을 이탈하지
못하도록 금을 그어 놓는다. 그러면서 당신들은 자유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당신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끝없이 시계를 보며 생활하고, 배고프지 않
아도 시간만 되면 밥을 먹는다. 그러한 부자유는 우리 인디언으로선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곧 삶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다.
대지의 꿈
구르는천둥(롤링 썬더) - 체로키 족
"인간은 대지를 소유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이 대지의 소유이다."
우리 인디언은 대지를 지키는 자이다. 우리는 우리가 대지를 소유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인간은 대지를 소유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이 대지의 소유이다. 어떤 사람은
문서를 작성해 자신이 그 땅의 소유자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
이다. 우리는 대지의 소유자가 아니며, 누구도 그렇게 될 수 없다.
대지의 소유자는 위대한 정령이며, 다만 우리에게 그 권한이 부여되었을 뿐이다. 우
리는 대지를 보호하는 자이다. 이 대륙의 어느 곳을 여행하든지 그곳에 아직도 인디언
들이 생존해 있다면 당신은 삶과 땅과 공기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
다.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
우리 인디언은 어머니 대지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들의 편에 서서 일할 뿐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문명인들에게 유럽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하지 않는
다. 어떤 인디언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주고 함께 삶
을 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이 한 장소를 더럽히면 그 더러움은 전체로 퍼진다. 마치 암과 종양이 신체의
여러 부위로 번지는 것과 같다. 대지는 지금 병이 들었다. 인간이 대지를 잘못 대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많은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큰 자연재해가 일어날
지도 모른다. 그러한 것들은 대지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대지 위에 세워진 많은 것들이 대지에 속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신체에 침투
한 바이러스처럼 대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이물질들이다. 당신들은 아직 문제의 심각
성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으나, 머지않아 대지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시도
로 크게 몸을 뒤흔들 것이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구는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
체이다. 지구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의지를 가진, 보다 높은 차원의 인격체
이며, 따라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가 있고 병들 때가 있다. 사람이 자
신의 신체를 존중해야 하듯이 지구도 마찬가지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 상처
를 가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가하는 일이며,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가하
는 것이 곧 지구에게 상처를 가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문명인들은 이것을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해란 책이나 선생이 가르치
는 어떤 사실을 아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해는 사랑과 존중하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그것은 위대한 정령을 존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위대한 정령은 풀
이나 바위나 나무 등 세상 만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 그 자체이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의 느낌이나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우
리 자신과 주위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의무이다.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야만인들이 아니다. 미국의 헌법은 뉴욕에 살던 이로콰이
족 인디언의 헌법을 기초로 작성되었으며, 문명인들이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약품들도
인디언들에게서 얻어간 것이다. 테레빈, 키니네, 장뇌, 코카인 등이 그것이다. 페니실
린조차도 우리가 참나무에서 추출한 것이며, 문명인들이 이 대륙에 들어오기 훨씬 오
래 전부터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 왔다. 그밖의 많은 비법들을 우리는 아직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태양을향해춤추다(썬댄스)'라는 이름의 늙은 인디언 주술사가 살았었다.
그는 문명인 의사들도 고치지 못하는 암과 당뇨병 치료의 일인자였다. 모르몬교 목사
들을 비롯해 유타 주 전역에서 환자들이 그를 찾아왔으며, 그는 많은 사람을 치료했
다. 그러자 미국 의학협회에서 소송을 걸어 그에게 다른 주로 떠나든지 감옥에 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당시 그는 여든일곱 살이었다.
법정에는 그를 변호하기 위해 구름떼처럼 사람이 모였지만 판사는 단 한사람도 증언
대에 세우지 않았다. 이제 그 노인은 세상을 떠났으며, 백인들은 노인이 사용하던 약
품을 전부 수거해 두 대학에서 연구와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대지의 법칙은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한 형제라고. 우리는 가치 있는 것들
을 나누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때가 되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비법들을 세상
과 나눌 것이다. 문명인들이 어리석은 법률로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않는다면 그
시기는 더욱 빨리 찾아올 것이다.
문명인들의 삶은 남을 희생시켜 자신의 이익을 얻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그것
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그들은 자연을 자연의 방식이 아닌,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 몰두한다. 그들에게서 영적인 힘이 주어진다면 결과는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인디언 스승들이 아직까지 많은 비밀들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문명인들은 자신들이 대단히 앞선 문명을 갖고 있다고 여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문명의 기준에서는 그들은 훨씬 뒤떨어진
문명을 살고 있다. 그들은 기본적인 진리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삶의 기본 진리란 남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생명이 포함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간섭하고 통제하고 지배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모든 존재는 고귀한 것이고, 또한 생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서 스스로 자기를 다스리는 힘이 필요한 것이며, 그것이 곧 영적인 힘이다. 인디언 부
족의 아이들은 열두 살이 되면 특정한 장소로 가서 금식을 행하고 명상에 잠긴다. 그
렇게 함으로써 삶이 자기에게 준 목적을 깨닫는다.
지금 문명인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려고 애쓰고, 삶에서의 자신의 장
소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나는 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서도 노
력하지만 타인의 삶을 위해서도 깨달음을 높여갈 것이다. 가치 있는 것을 남과 나누는
일 - 이 삶에서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 그것이다.
우리 인간 모두는 많은 생을 산다. 모두가 수많은 전생을 거치면서 다양한 형태의
생을 산다. 그리고 때로는 지나온 과거의 생들을 다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흘러가며, 따라서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
이란 형태를 바꾸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문명인들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믿는다. 전에는 그러한 것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
들이 그렇게 믿음으로써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당신
이 어떤 것을 줄곧 믿으면 그것은 하나의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식으로 그들은
천국과 지옥이라는 믿음을 이 대륙에 가져왔지만 우리 인디언은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을 우리는 거짓된 가르침이라 부른다. 그들은 우리에게 내세에 대
해 두려움을 심으려 한다. 두려움이 깊어지면 결국 정신병자밖에 되지 않는다.
몇 해 전 오클라호마에서 인디언들의 모임이 있었다. 대륙 전역에서 온 추장들과 주
술사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며, 더러는 남아메리카에서도 왔다. 그런 대규모의 영적 모
임은 1백 년 만에 처음이었다. 모임의 마지막 날 참석자들은 큰 원을 그리고 앉았다.
원은 위대한 정령의 상징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의 원이다. 세상도 하나의 원이고,
원자도 원의 형태이다. 바위에 적힌 고대문자에서도 원이 발견되며, 모든 형태 속에
원이 깃들여 있다.
오클라호마에 모인 우리는 인디언 부족의 대표들로 하나의 큰 원을 그리고, 태양에
게 평화의 담배를 바쳤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했다.
"오늘 우리의 모든 부족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부족의 대표들은 원을 그린 상태에서 손을 잡았다. 그것은 형제애와 우정의 상징이
었다. 이 원은 곧 세상 전체로 퍼져나갈 것이다. 개민들레 풀씨가 바람에 날리듯 그
원은 세상 모두에게로 퍼져나가 마음의 진정한 평화를 심어 줄 것이다.
부록
인디언 달력
인디언들은 달력을 만들 때 그들 주위에 있는 풍경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을 주제
로 그 달의 명칭을 정했다. 이 명칭들을 보면 인디언 부족들이 마음의 움직임과 마음
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에 대해 얼마나 친밀하게 반응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외
부 세계를 바라봄과 동시에 내면을 응시하는 눈을 잃지 않았다. 1월을 '마음 깊은 곳
에 머무는 달'이라고 부르거나 12월을 '무소유의 달'이라고 부른 것이 그것이다.
또한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살았던 그들의 삶이 이 달력을 통해 잘 드러난
다. 그들은 4월을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이라 이름을 정했으며, 11월을 '모
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불렀다.
그러나 여기에 적힌 것처럼 그들이 한 해를 정확히 열두 달로 나눈 것은 아니었으
며, 달의 주기가 대략 28일로 정해졌기 때문에 열세 달 정도가 한 해를 이루었다.
1월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아리카라 족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수우 족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오마하 족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쥬니 족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바람 부는 달/체로키 족
2월
물고기가 뛰노는 달/위네바고 족
너구리 달/수우 족
홀로 걷는 달/체로키 족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오마하 족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새순이 돋는 달/키오와 족
3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체로키 족
연못에 물이 고이는 달/퐁카 족
암소가 송아지 낳는 달/수우 족
개구리의 달/오마하 족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아라파호 족
4월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블랙푸트 족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체로키 족
거위가 알을 낳는 달/샤이엔 족
얼음이 풀리는 달/히다차 족
옥수수 심는 달/위네바고 족
5월
말이 털갈이 하는 달/수우 족
들꽃이 시드는 달/오사지 족
뽕나무의 달/크리크 족
옥수수 김 매주는 달/위네바고 족
말이 살찌는 달/샤이엔 족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아라파호 족
6월
옥수수 수염이 나는 달/위네바고 족
더위가 시작되는 달/퐁카 족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황소가 짝짓기 하는 달/오마하 족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체로키 족
7월
사슴이 뿔을 가는 달/키오와 족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달/유트 족
옥수수 튀기는 달/위네바고 족
들소가 울부짖는 달/오마하 족
산딸기 익는 달/수우 족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크리크 족
8월
옥수수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달/퐁카 족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쇼니 족
노란 꽃잎의 달/오사지 족
기러기가 깃털을 가는 달/수우 족
건조한 달/체로키 족
9월
검정나비의 달/체로키 족
사슴이 땅을 파는 달/오마하 족
풀이 마르는 달/수우 족
작은 밤나무의 달/크리크 족
옥수수를 거두어 들이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10월
시냇물이 얼어붙는 달/샤이엔 족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키오와 족
양식을 갈무리하는 달/퐁카 족
큰 바람의 달/쥬니 족
잎이 떨어지는 달/수우 족
11월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크리크 족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체로키 족
강물이 어는 달/히다차 족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작은 곰의 달/위네바고 족
기러기 날아가는 달/키오와 족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아라파호 족
12월
다른 세상의 달/체로키 족
침묵하는 달/크리크 족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수우 족
큰 뱀코의 달/아라카라 족
무소유의 달/퐁카 족
큰 곰의 달/위네바고 족
늑대가 달리는 달/샤이엔 족
이 책의 편집에 사용한 원서와 참고서적들
CHIEF SEATTLE
David Buerge
Sasquatch Books
HOW CAN ONE SELL THE AIR?
- A Manifesto For the Earth
Steef I. Davidson
Ekologische Uitgeverij Amsterdam & Aktie Strohalm
SEVEN ARROWS
Hyemeyohsts Storm
Ballantine Books
THE WAY
- An Anthology of American Indian Literature
Shirley Hill Witt, Stan Steiner
Vintage Books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Forest Carter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I HAVE SPOKEN
- American History Through the Voices of the Indians
Virginia Irving Armstrong
Ohio University Press
PROFILES IN WISDOM
- Native Elders Speak about the Earth
Steven McFadden
Bear & Co.
THE WAY TO RAINY MOUNTAIN
N. Scott Momaday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THE INDIAN AND THE WHITE MAN
Wilcomb E. Washburn
Doubleday and Company
OBORIGINAL AMERICAN ORATORY
- The Traditions of Eloquence Among the Indians
Louis Thomas Jones
Southwest Museum
BLACK HAWK
Donald Jackson
University of Indian Press
AN OLD INDIAN DAYS
Charles Eastman
The McClure Co.
THE LIFE AND TIMES OF SA-GO-YA-WAT-HA
William Stone
J. Munsell
ROLLING THUNDER
Doug Boyd
Bantam Books
NORTH AMERICAN INDIAN
Davis Christopher
Hamlyn House
NEVADA INDIANS SPEAK
Jack Forbes
University of Nevada Press
CRYING FOR A DREAM
- The World Through Native American Eyes
Richard Erdoes
Bear & Co.
THE TEACHINGS OF DON JUAN
- A Yaqui Way of Knowledge
Carlos Castaneda
Penguin Books
A SEPARATE REALITY
Carlos Castaneda
Penguin Books
BLACK ELK SPEAKS
- Being the Life Story of a Holy Man of the Oglala Sioux
John G. Neihardt
Bison Books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 An Indian History of the American West
Dee Brown
Holt, Reinhart & Winston
LISTEN FOR A LONESOME DRUM
Carl Carmer
Farrar, Reinhart Inc.
GREAT INDIAN CHIEFS
Albert Britt
McGraw-Hill Books Co.
THE WINGED SERPENT
- An Anthology of American Indian Prose and Poetry
John Day Co.
Margot Astrov
INDIAN TRIBES OF NORTH AMERICA
Thomas Blaine
D. Rice & Co.
* 훙크파파 족 얼굴에내리는비(레인 인 더 페이스)의 연설은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이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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