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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본)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by Casey,Riley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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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정민 지음
▣ Short Summary
나의 첫 창업은 1997년 IMF 사태가 터질 무렵이었다. 다들 위기가 기회라고 했지만 성공한 소호 창업
가로 각종 미디어에 소개되면서 매출도 꽤 괜찮았다. 그즈음 닷컴 버블이 정점에 달했지만, 상황은 좋
아졌다. 2000년 1월 파트너사로부터 1억 원을 투자받았다.
여느 벤처 기업들처럼 계속 성장할 것 같았고, 큰돈을 벌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 예상대로 사업은 순조로웠고, 기술력 있는 업체와 합병하면서 서울 테
헤란로에 입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덫이 되고 말았다. 2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접
어야 했다. 모든 것을 잃었고, 그때부터 빚을 갚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됐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2012년 다시 창업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제서야 ‘잘나가던 사업이 왜 실패했을
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때 얻은 해답은 역량과 기술 부족이라는 사실이었다. 기회가 된
다면 역량과 기술을 습득하고 싶었다.
지난 10년간 1인 창조 기업가로 수많은 창업가를 만났고, 그들을 대상으로 창업 기업의 운영 기술과
전략을 강의하기도 했다. 때론 실패를 후유증 없이 극복하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기업
3개를 창업해 존속시켰다. 시간이 갈수록 경영에 관련한 경험이 쌓이고 사업에 필요한 기술을 체득하
게 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쌓은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힘 빼고 그냥 잘해라! 그래야 오래간다.” 이 말은 내가 창업 관련 강의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성공하기 위해 너무 잘하려 하면 욕심과 함께 엉뚱한 곳에 힘이 들어갔다. 때론 성공의 기미가 보이는
순간 기력이 욕심으로 변한다. 욕심은 욕망과 집착으로 바뀌게 된다. 기업가의 욕망은 기업을 성공으
로 이끌기도 하지만 지나친 욕망은 실패를 부르기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너무 잘하려 하면 안
된다. 그냥 잘하면 된다.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한 발 한 발 나가면 된다. 너무 잘하려는 것
과 그냥 잘하는 것과의 차이는 바로 힘에 있다.
운동하다 보면 “힘 빼라.”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게 된다. 그래야 기술이 제대로 걸린다. 골프도 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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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가지다. 채를 가볍게 쥐고 힘을 뺀 후 어깨 스윙만으로 쳐야 한다. 살다 보면 힘을 빼고 행동할 때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첫 창업의 성공으로 인해 힘이 너
무 들어가 사업에 필요한 기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창업 성공의 핵심은 생존이다. 생존해야 성장과 함께 성공도 따라온다. 오래 존립하는 것이 우위에 있
어야 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 창업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업
을 오래 존속시키는 것이 성공이라는 사실이다. 나 역시 기업을 오래 존속시키는 기업가가 되고 싶다.
성공한 기업가들도 처음에는 부족하게 출발했다. 운영 능력과 역량도 부족했다. 그러나 생존하면 할수
록 다양한 역량과 기술을 익히고 필요에 따라 힘도 조절할 수 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바로 내가 주고 싶은 메시지다.

▣ 차례
프롤로그 _ 1인 스타트업의 생존과 성공은 운영 기술에 있다
1장 하필 왜 1인 창업인가?
01. 위기는 기회다 / 02. 세상은 반전에 열광한다 / 03. 스토리는 경쟁력이다
04. 깡은 훌륭한 사업 밑천이다 / 05. 나는 다동인(多動人)이다 / 06. 인생 지도는 그리는 것이다
07. 어려움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 08. 절실함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09. 인생은 고(苦), 고(苦)는 고(go)로 응수한다 / 10. 그래서 다시 1인 창업이다
2장. 1인 기업가, 그들의 성공 기술
01. 망하지 않는 게 먼저다 / 02. 런치 십 (1) / 03. 런치 십 (2) / 04. 최초와 최고가 아니라 틈이다 05.
돈에는 대가가 따른다 / 06. 답은 실행이다 / 07. 연결이 바로 경쟁력이다
08. 작은 일도 크게 본다 / 09. 목표를 제어하는 게 목표다 / 10. 노브랜드와 브랜드
11. 부캐와 본캐
3장. 1인 기업가, 그들의 성공 자세
01. 빠르다 / 02. 무모하다 / 03. 시간을 리드한다 / 04. 배운다 / 05. 지속한다
06. 심플하다 / 07. 버텨라. 존버면 성공한다 / 08. 화내지 않는다 / 09. 얽매이지 않는다
10. 명확하다 / 11. 되돌아본다
4장. 1인 기업가, 그들의 생존법
01. 새로운 관점으로 본다 / 02. 오래가는 힘 에너자이저 / 03. 기억되어야 오래간다
04. 특별하고 남다르게 보여요 / 05. 귀인을 만나라 / 06. 전조 현상을 읽어야 한다
07. 관계의 크기와 부탁의 크기는 비례한다 / 08. DNA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회춘한다
09. 관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10. 내가 아니면 안 된다? / 11. 베푸는 사람이 오래 생존한다
에필로그 _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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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정민 지음

1장. 하필 왜 1인 창업인가?
위기는 기회다
“귀 막고 1년, 눈 막고 3년, 입 막고 5년만 버텨라!” 건설 회사에 갓 입사한 나를 진정한 건설 역군으
로 키우겠다고 한 첫 사수의 말이다. 그는 입사 1년, 3년, 5년 차에 위기가 온다며 이때가 가장 힘든
시기니 잘 넘겨야 한다고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 할수록 사수의 말은 옳았다. 실제로 입사 1년 차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동기 중에도 몇 명은 이때 사표를 냈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 상사에게
불만이 있어서 이유도 여러 가지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핏대를 세우며 말한 첫 사수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표를 던지고 퇴사했다.
어설픈 사회 초년생이 사수 없이 일한다는 건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것과 같다. 맨땅에 헤딩하듯 3년
을 버텨 냈지만 결국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다시 토목 회사에 입사했지만 3년 차에 IMF
외환 위기가 왔다. 경제 환란의 희생자들이 여기저기 즐비했다. 난 다시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사실 위기라는 단어에는 “위기가 있으면 기회가 있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평범한 생활
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 위기는 절대적 위험이다. 특히, IMF 외환 위기는 직장인에게는 위태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도 누군가는 위기와 맞서 판세를 뒤집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위기 속
에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IMF 외환 위기 때 여기저기서 명예퇴직 바람이 불었다.
그는 20여 년을 성실하게 근무한 은행에 과감히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여행이나 하
면서 남은 인생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사표를 내고 유유자적하면서 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공장형 커피숍’이란 콘셉트를 내세운 테라로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커피가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IMF
때 은행을 그만둔 것은 가장 큰 행운 중 하나였고, 커피를 만난 것은 나를 변화시킨 근본적인 요소 중
하나였다.”라고 그는 말했다. 어려운 상황이 오히려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던 것이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를 만난 건 대우에 입사했을 당시 신입 사원 교육에서다.
IMF 외환 위기로 인해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직장을 그만둔 그가 3년 뒤 옛 동료와 세운 회사가 셀
트리온이다. 그는 위기에서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했기에 지금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가 될 수 있었다.
나 역시 직장을 다니면서 소호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집이나 작은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비
롯한 다양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들을 ‘소호족’이라 불렀다. 지금
의 1인 창조 기업과 같다.
내가 정보 제공 사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건설 현장에서 근무할 당시 책상에 있던 컴퓨터 때문이었
다. 업무용이었지만 때론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나의 경우 스타들의 패션을 소개하는 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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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회 시솝 활동을 했다. 동호회 시솝으로 있을 때 “가수 유승준의 은색 셔츠를 구할 수 없을까?”라는 메
시지가 왔다. 1997년 화려하게 데뷔했던 그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그때 유행하기 시작했다. 메시지를
받고 유승준의 소속 기획사 전화번호를 어렵게 알아내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무대 의상을 사겠다는
말에 기획사 실장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며칠 뒤 청담동에 있는 기획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실장이자 매니저는 소속 가수가 휴식기에 들어간
터라 무대 의상들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의상 몇 벌을 손에 쥐게 되었다. 기획사 대표와 매니저
들을 만날수록 그들은 의상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대 의상은 일반 옷과는 달리
화려하다. 활동 시기가 끝나면 폐기 처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대 의상은 가수의 시그니처와 같
다. 무대 의상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1998년 1월 잘 다니던 회사를 과감히 그만두었다. 퇴직금으로 받은 300만 원으로 데이터뱅크라는 정
보 통신 회사를 설립했다.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기획사와 무대 의상 구매 계약을 맺고 탄생
한 것이 <스타 소장품> 정보였다. IMF 시기에 회사를 그만둘 때 입사 동기들은 미친놈이라 했다. 당시
안정적 직장을 스스로 그만둔다는 것은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때 사표를 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입사 동기들처럼 몇 년 지나지 않아 자
의든 타의든 회사를 떠나는 처지에 놓였을 것이다. 그들보다 빠른 판단 덕에 새로운 기회를 볼 수 있
었다. 때로는 위기를 맞는 순간 새로운 기회의 순간도 찾아온다.
깡은 훌륭한 사업 밑천이다
그런 나의 첫 사업은 처절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인생 끝났다’는 생각이 들 만큼 무너졌다.
신용 불량자, 노숙자의 삶은 막다른 인생 그 자체였다. 나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9억 원에 달하는 막
대한 채무였다. 삶을 포기할 정도로 절망적인 채무였지만 해결해야만 했다. 8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피
나게 노력했다. 그리고 빚을 갚아 나가는 과정에서 반전을 만들어 냈다.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하던 중 택배 일을 하면서 김 소장을 만났다.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택배
일은 밑천 없이 할 수 있지만, 깡 없이 하기 힘든 일입니다. 새벽 5시부터 엄청난 양의 택배 물건을
분류해서 매일 150곳 이상을 배달해야 겨우 먹고 삽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두 배로 일이 늘어납니다.
배달하기 위해서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에 무거운 것을 배달하
고 나면 이 일을 하게 된 것에 후회가 들기도 합니다. 점심은 거르기 일쑤요, 저녁은 건너뛰어야 새벽
전에 배달을 마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웬만한 깡다구 없이는 하기 힘든 일입니다.” 택배 일을 처음
시작한 날 그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이혼하고 맨몸으로 아이 셋을 키웠다. 주위에서 그런 모습을 보
고 붙여준 별명은 ‘깡순이’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어린 자녀들을 혼자 힘으로 키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자녀 양육에 관한 어떤 도움도 이혼한 남편으로부터 받지 못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다. 경제적으로 무척 빈곤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시절 사진을 보면 동생들
과 나의 옷차림이 꽤나 세련되어 보였다. 양장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 모습도 세련됐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매일 먹었던 기억도 있다. 당시 바나나는 비싼 과일이었다. 어려웠지만 풍족하게
산 것 같아 나는 늘 그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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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내가 얻은 답은 어머니의 깡다구였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닥치는 대로 일
했다. 이른 새벽 채소 공판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어머니는 공판장 일과
함께 생선 좌판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를 마치고 나면 저녁에는 춤까지 가르쳤다. 고등학교 때 무용을
전공한 어머니의 꿈은 무용가였지만 결혼과 이혼을 하면서 이루지 못했다.
대신 무허가 교습소에서 지르박, 차차차 등 다양한 춤을 가르쳤다. 때론 교습소가 단속에 걸려 문을
열지 못하는 날이면 방 한 칸이 전부였던 집에서 춤을 가르쳤다. 심지어 나의 담임 선생님도 어머니의
춤 제자였다. 담임 선생과 학부모 사이는 원래 어려운 사이다. 웬만한 깡다구 없이는 못 하는 일이다.
어머니의 깡다구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30대 이혼녀가 자식들을 별 어려움 없이 키워 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깡다구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홀로 되어 내 편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깡이 있어야 한다. 깡 없이 어
정쩡한 정신을 하고 있다가는 시쳇말로 한 방에 훅 간다. 깡이 있으면 어디에서도 지지 않는 정신이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 무너진 삶을 반전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다. 이는 깡이 부족해서다. 깡은 기어이 하고 마는 의지이고 집념이다. 깡이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든 악착같은 강한 뚝심이 있다. 그런 끈기와 용기로 불가능을 기어이 가능하게 만든다.
나 역시 그랬다. 사업을 하면서 진 빚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통의 빚 독촉 전화를 받았다. 그런 날이
밤낮으로 계속되면서 빚 때문에 죽는 사람을 이해하게 됐다. 깡이 없었다면 결코 견뎌 낼 수 없는 삶
이었다. 신용 불량자라 취직도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 우유 배달, 신문 배달, 택배 기사
와 정수기 수리 기사 단순직 일 4가지였다.
하루에 18시간씩 일을 하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러나 잠시 외출한 정신도 금방 돌아오게 만드
는 것이 있다. 바로 깡이다. 8년 동안 오로지 빚을 갚기 위해 나와 아내는 깡으로 버텼다. 그리고 마침
내 빚을 모두 갚았다. 하지만 후유증도 남겼다. 아내는 심한 탈모가 왔고 나는 40대 나이에 20개나 되
는 치아를 잃었고, 그 자리는 지금 틀니가 대신하고 있다.
나는 다동인(多動人)이다
여러 가지 다른 일을 하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을 나는 다동인(多動人)이라 부른다. 나는 다동인이다.
공업 고등학교에서 기계를 전공해 평생 ‘공돌이’로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전공대로 살아지
던가? 어쩌다 보니 대학에서 건축 관련 분야를 공부했다.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건설 회사에서 기술
업무와 행정 업무를 두루 거치며 직장 생활을 했다.
30대 초반에는 창업과 동시에 파티 플래너, 프러포즈 기획자, 웨딩 컨설턴트, 웹 기획자, 방송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생계형 일용직 직업 4개를 동시에 가졌다. 40대 중반 다시 창업해 지금
은 문화와 교육, 컨설팅 등 3개의 기업체를 운영하며 기업체 두 곳의 사외 이사를 겸하고 있다.
“재주가 여럿인 사람은 1가지 재주만 가진 사람보다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1가
지 일에 숙련된 전문가가 되면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여러 개의 재주
를 가진 사람이 주목받는다. 한 분야의 일을 잘하는 사람도 좋지만, 오히려 창업에서는 여러 가지 능
력을 갖춘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런 면에서 여러 분야의 능력을 끊임없이 키워 나가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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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창업가라면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능력을 갖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오래전부터 의도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해 왔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그랬다. 우유와 신문은
새벽 배달도 있지만 한 달에 몇 번은 휴일 낮에 수금도 한다. 이때는 확장 영업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우유를 마시는 고객에게 신문 구독을, 신문 구독자에게 우유를, 확장 한 건당 2만 원의 수당
을 받는다. 그렇게 매달 두 달 치의 수입을 벌었다.
창업 후에도 하루에 몇 가지 일을 같이하곤 한다. 각각 다른 업이라 불리는 일들이다. 오전에는 소상
공인 컨설팅과 함께 지자체 문화 행사 관련 계약을 체결한다. 오후에는 게임 업체에 들러 새로 출시된
게임의 마케팅 회의를 진행한다. 때로는 지자체 도시 재생 기획을 하면서 직장인들과 학생들에게 커리
어 코치를 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웨딩 연출과 연극 연출을 하기도 한다. 여러 개의 업(業)을 동시에
수행하지만 이를 관리하는 1가지 핵심 역량이 있다. 바로 기획이다.
인생은 고(苦), 고(苦)는 고(go)로 응수한다
인생은 만만치 않다. 아픔과 상처도 많다. 고통은 숙명처럼 따라다닌다. 고통은 삶의 본질이다. 해가
뜨고 지듯이 자연스러운 거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어려운 일이다. 즐겨
찾는 사찰의 스님은 “고통이 내 안에서 해소되면 고통이 아닌 게 된다.”고 말했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애써 받아들이면 고통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고통의 크기가 줄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래저래 고달픈 인생인데 ‘굳이 해결하려고 애쓸 게 뭐 있나?’라는 생각을 할 수
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만 있으면 발전이 없다. 발전 없는 고통은 고난일 뿐이다.
택배 일을 할 때 작업장이 등산로 중간에 있어, 등산객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산을 오르는 사
람들 중에 유독 시선이 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목발을 짚고 산을 오르는데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
었다. 하루는 그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어 한동안 환상지통에 고생했다고
한다. 지금은 의족 속에 감춰진 다리에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통증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고 말하는 내게 그는 이렇게 답했다.
“통증이 없으니 살 것 같았지만 날이 갈수록 불안했습니다. 통증에 시달릴 때는 고통을 없애기 위해
몸도 움직이고 했었는데, 아픈 것이 사라지니 오히려 무기력해졌습니다. 고통보다 힘든 건 의욕이 없
다는 것입니다. 의욕 없는 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무기력은 자살을 시도할 만큼 무섭습니다. 산
을 오르게 된 건 의욕을 불어넣기 위해서입니다. 불편한 다리로 산을 오르고 나면 숨이 차서 고통스러
운데 그때 ‘아, 내가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
습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나 역시 움직임으로써 고통을 이겨 냈다. 사업에 실패한 후 정신적인 고통, 결핍의 고통, 그리고 실패
에 따른 온갖 고통에 시달렸다. 많은 채무를 해결하지 못하니 고통의 강도는 더 했다. 삶의 의욕마저
잃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육체적 고통은 약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정신적 고통
을 치료하는 약은 없다. 이러다간 죽는 걸 행동으로 옮기겠다 싶어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루 18
시간 이상 일에 몰두하면 딴생각이 들지 않는다. 심적 고통의 특효약은 움직이는 것뿐이다.
당신은 지금 고통스러운가? 고통을 참지 못할 만큼 힘든 상태인가? 그렇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
는 의미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고통에 대한 안목은 그때 생긴다. 당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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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고통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태도이다. 인생은 고(苦)다. 고(苦)는 고(go)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1인 창업이다
잘해 오던 생계형 일을 모두 그만두었다. 다시 창업하기 위해서였다. 같이 일하던 택배 소장들은 “그
렇게 고생하고도 또다시 사업하고 싶으냐?”, “지금 하는 일이나 잘하지!”, “아직 고생 덜했네.”라며 한
마디씩 했다. 사업에 망해 고생해 본 사람이라면 사업 언저리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고잡이
는 다르다. 하고 싶은 일은 어떡해서든 한다. 실패했어도 또 일을 벌인다. 난 하고잡이다.
그런데 왜 다시 1인 창업인가? ‘실패 지점에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지론이
다. 실패는 일생에 단 한 번이면 충분하겠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실패는 수시로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실패 지점에서 그대로 좌절하지만, 어떤 사람은 꿋꿋하게 일어선다. 좌절을 딛고 일어서
는 사람은 재기의 근육이 탄탄해서다. 사업에 망해 본 사람은 재기의 근육을 만들기 좋은 상태다. 쉽
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만든 근육은 아무리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튼튼한 근육이 된다. 나
는 8년간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낸 최고의 근육을 만들었다. 하고잡이의 근육이다.
누군가 “사업으로 진 빚 때문에 마음고생 했는데, 다시 1인 창업이 당신 인생에서 최적의 솔루션인
가?”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렇다.”라고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1인 기업을 할 수 있는 근육이 내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인 창업을 할 수 있는 근육은 무엇일까? 바로 실패를 이겨 낼 근육이다. 실
패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 그 결과물로 의지의 근육이 단단해진다.
“1인 기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창업하면 길이 보인다.”라고 창업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는 사
실이 아니다. 물론 누구나 1인 기업을 창업할 수는 있지만 성공한 1인 기업가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
한 조건이 있다. 바로 다양한 경험을 했느냐다. 기업가는 성공하기 위해 지식과 경험, 내공이 필요하다.
1인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늘 고비가 온다. 이때만 넘기면 수월할 듯하지만 다시 새로운 고비가 밀려
온다. 고비는 파도처럼 다가온다. 경험이 축적되지 못한 기업가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반면 경
험이 축적된 기업가는 파도 타듯 어려움을 잘 넘긴다.
인맥, 자본, 기술 등 1인 기업으로 성공하기에 필요한 다양한 조건들이 있다. 물론 이러한 조건들 모
두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조건을 갖추어 창업하더라도 망하는 기업은 있다. 그런 점에서 1인 기업의
성공 조건은 하고자 하는 의지다. 당신의 의지는 강한가? 의지를 뒷받침할 근육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라.

2장. 1인 기업가, 그들의 성공 기술
망하지 않는 게 먼저다
첫 창업이 망했을 때 직원들의 밀린 급여를 주기 위해서 돈이 될 만한 집기는 모두 처분했다. 정리하
고 남은 건 부서진 낡은 집기 몇 개뿐이었다. 그 후부터 아껴 쓰고, 고쳐 쓰는 것이 몸에 뱄다. 1인 기
업 10년 차, 지금도 될 수 있는 대로 집기 사는 것을 자제한다. 망하고 나니 모든 것이 쓰레기에 불과
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여러 창업 센터 등을 이용하면서 내 돈 들여 구매한 비품은 3
가지가 넘지 않는다. 그것도 재활용 판매처에서 산 것들이다.
간혹 주위에선 이런 얘기를 한다. “그 정도 벌고 그러면 차도 바꾸고, 좋은 사무실도 얻어야 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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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아냐?” 물론 다들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한 번 망하고 나면 낡은 가방을 들고 다녀도, 사무실이나 비품
이 볼품없어도, 사업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겉모습만 요란하게 꾸며
대는 사업체를 보면 걱정이 된다.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실제 잘나가는 건 다르다. 고급 차나 사무실 외형이 번듯하다고 해서 성
공한 건 아니다. 창업가에게는 화려한 성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성공했다가 쓸쓸히 망
해 가는 기업들을 더 많이 봐 왔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망하지 않는 것이다. 건설 회사에서 근무할
때 건물 폭파 해체 작업에 투입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건물을 완공하는 데는 2년이 걸렸지만, 바닥에
나뒹구는 시멘트 덩어리가 되는 데는 2분이면 충분했다. 세상에 모든 것들은 쌓아 올리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하지만 무너져 내리고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연결이 바로 경쟁력이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우주의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 연결성도 입증했다. 연결성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선연과 악연이 그것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좋은 씨를 뿌리면 선연의 관계가 형성된다. 1인 기업가는 선연의 연결 고리를 맺어
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이 생긴다.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남다른 결혼식을 원하는 예비부부를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왜 남다른 결혼식을
원하느냐?”는 물음에 다른 사람 신경 써 가며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란다. 요즘 세대의 결혼관을 엿볼
수 있는 대답이다. “특별한 신랑과 신부만 있을 뿐 특별한 결혼은 없다.” 이 말은 결혼 업계의 전설처
럼 내려오는 말이다. 특색 있는 결혼을 꿈꾸기는 쉬우나 가족들의 설득이 어려워 생긴 말이다.
예비부부는 최고의 결혼보다는 자신들이라서 할 수 있는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모델 하우스 전시장에서 하는 결혼식을 추천했다. 업무차 몇 번 가 본 아파트 견본 전시관이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예식을 치르기에 손색없을 만큼 내부 인테리어도 좋았다. 이미 알고 있는 건설 회사라
대관도 어렵지 않았다. 단순한 주택 전시관이었던 장소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색다른 결혼식장이 되
었다. 그 후 모델 하우스에선 강연, 파티, 전시, 공연 등 다양한 것을 기획할 수 있었다. 기획자가 건
설사 주택 전시관과 결혼이라는 연결 고리를 만드는 순간 결혼 피디, 문화 마케터라는 새로운 경력을
가지게 되었다.
1인 기업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을 연결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연결 능력을 통해 기회
를 잡고, 성장하고 발전한다. 다양한 기업과 연결 관계를 맺느냐가 성공의 척도가 된다. 같은 업종 간
의 연결, 다른 업종 간의 연결, 연결을 잘 짓는 기업일수록 성공한다. 예상치 못한 연결은 좋은 기회를
가져다준다. 그런 연결이 쌓이고 쌓여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1인 기업가는 연결을 통해 협업에 필
요한 것을 기획하고 사례를 꾸준하게 만들어야 한다. 협업은 확장을 기반으로 한 연결성이다. 그런 연
결성은 또 다른 연결을 만들어 내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간다.

3장. 1인 기업가, 그들의 성공 자세
무모하다
무모하다는 건 이래저래 따져 보지 않는 거다. 상식과 규칙의 틀에서 벗어나는 거다. 그래서 후에 일
어날 일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자신을 믿지 않고서는 무모해질 수 없다. 무한한 믿음이 있어야 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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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도전 정신이 생긴다. 무모하다고 해서 도전하지 않으면 가능성마저 없다.
나는 틀에 박힌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 무모하다.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싫어한다. 신중하게 생각
도 하지 않는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미칠 지경이다. 그렇기에 늘 변화를 주려고 노력
한다. 직장 생활하면서 일부러 다양한 보직을 경험했던 것도 나의 이런 성향 때문이었다. 그래서 건설
에서 토목으로 옮길 때 동기들은 무모하게 다른 분야로 옮기냐고 걱정했다. 잘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
를 냈을 때도, 전공과 무관한 일로 창업했을 때도 무모했다. 어쩜 지금처럼 다양한 일을 하게 된 것도
앞뒤 가리지 않는 나의 그런 성향 덕분일 것이다.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많은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때로는 무모하지만 과감한 도전도 필요할 때가
있다. 첫 창업과 함께 팬클럽 행사만 기획하던 내가 음악 방송 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가 그
랬다. 팬클럽 행사에 사회를 보기로 한 출연자가 출연할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진행하게 되었다.
수백 명의 팬 앞에 서니 눈앞이 캄캄했고, 말문도 막혔다. 진행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 사회를 봐야 하는 이 상황이 난감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행사를 어떻게든 마무리를 짓기 위해 무대에 올라야만 했다. 처음은 어렵고 헤맸
지만 이후 자주 무대에 오르면서 진행도 자연스러워졌고, 가수들과 농담할 만큼 자신감도 얻었다. 덕
분에 진행에 눈을 떴고, 음악 방송 진행자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무
모함이 지금 하는 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기업가는 이성적 보다 본능적 자세가 앞서야 한다. 무모함은 본능적일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야
상식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정 관념에서 탈피해야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다. 방송을 전혀 해 보
지 않았던 내가 2년 넘게 방송을 진행했고, 대본을 직접 쓰며 수많은 스타를 직접 섭외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더 놀라웠다.
만약 그때 방송 진행 권유를 거부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런 재능을 모른 채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이처럼 기업가는 자신의 새로운 재능을 알기 위해서는 무모하게 일을 저질러 봐야 한다. 창업한 기업
가는 신중함만으로 과감한 도전을 절대 할 수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기업가인지 알기 위해
서는 무모해야 한다.
다산네트웍스 남민우 회장은 “창업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다. 과감하게 맨땅에 헤딩하고, 무모
하게 일단 저지른 후 창조적으로 사태를 수습하면서 자리를 잡아 가는 것이 창업이다.”라고 말했다.
기업가에게 가장 큰 위험은 무모하지 않은 상태다.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건 성장 가능성이 없다는 것
이다.
기업은 성장하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보다 무모할 만큼 대책 없이 저질러야 한다. 무모함이 수반
되는 행위에는 기대감이 있다. 새로운 일, 낯선 사람들과의 조우에서 설렘을 주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물론 무모함의 결과가 좋은 쪽으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
나 이 또한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다.
버텨라. 존버면 성공한다
1인 기업 모임에 가면 기업 대표들의 첫인사는 하나같이 “요즘 어떻게 버티세요?”다. 심지어 헤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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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때조차도 존버하라고 서로 응원한다. 요즘과 같은 어려운 환경에서는 남다른 버텨 냄이 필요하다. 어
려움 속에서 끝까지 버텨야 하는 것은 1인 기업가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명제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위기를 경험하며 버텨 냈다. 다시 겪는다 해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창업
후 1년 동안은 수익이 전혀 없었다. 할 수 없이 새벽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다. 1인 기업이지만 자리
잡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1년이 지났을 무렵 겨우 인건비 수준의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창업한 기업들의 생존은 불과 1~2년 안에 판가름 난다. ‘죽음의 계곡’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면 기업은 소멸한다. 대부분 그 기간에 포기하고 접는 기업들을 많이 봐 왔다.
그러나 그 시기를 지나면서 깨달았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따뜻한 봄이 온다는 것을. 이런 자
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시야가 넓으면 버텨 나갈 힘이 생긴다.
1인 창업 기업자들에게 조언하거나 그들을 상대로 강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어렵
지만 버티는 것이 우선이다. 버텨야 기회가 온다.” 이 말은 상투적인 말이지만 그래야 한다. 어렵더라
도 기회를 기다리고 준비하면서 버텨야 한다. 기회는 견디는 자에게 반드시 온다. 성공은 그다음이다.
적어도 생존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가만히 마냥 뻗대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건 가장 미
련한 방법이다. 기업뿐 아니라 경영자를 퇴보하게 만든다.
상황이 어려운 상태에서도 굽히지 않고 맞서 이겨 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버틸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 타인의 단점을 짚어 내듯, 자신에 대해서도 냉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
하면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과 부족한 것을 알지 못한다. 깨우치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다. 자
신을 알아야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긍정적으로 해결하고 버틸 수 있다.
나는 첫 창업 후 사업을 확장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족하고 아는 것도 없었다. 촉이 있으
니 마냥 잘될 것으로 생각했다. 정보 제공 사업의 성공 경험에 들떠 나 자신을 과대평가했다. 성공의
경험은 때로는 자신을 냉철하게 파악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자
신에게 냉정하지 못하면 위기가 찾아왔을 때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다시 창업하면서 스스로 냉철해지기 위해 무엇이든 배우려 했다. 익히면서 냉정한 시각으로 자신을 보
려고 노력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다.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이 필
요하다. 1인 기업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탐구를 통해 정확히 자신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
야 오래 버틸 수 있다.

4장. 1인 기업가, 그들의 생존법
베푸는 사람이 오래 생존한다
1인 기업을 창업하고 지금까지 많은 1인 기업가들을 만났다. 그들의 경영 방식에는 두 부류가 있다.
바로 이기적 경영과 이타적 경영이다. 그런데 10년 동안 같이 생존해 있는 기업들을 보면 이상하게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가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이다. 그들은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일에서 얻어지는
수익이나 영향력을 사회에 되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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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이타적 경영은 손해라는 위험을 동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공의 힘을 발휘한다. 데일 카네기는 이렇
게 말했다. “이타적인 사람이 경쟁에서 승리한다. 세상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넘쳐 난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타적인 마음으로 타인을 도우려 노력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경쟁 상대 또한 드물어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내가 본 기업가들 중에 윤소그룹의 윤형빈 대표야말로 최고의 기부자다. 개그맨이자 격투기 선수인 그
는 이타적인 기업가다. 그는 최근 또 다른 브랜드 사업인 하이키친(반찬, 밀키트 전문 매장)을 런칭했
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게 된 이유는 코로나19로 수익이 줄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개그맨 후배들을
돕기 위해서다.
그의 후배를 위하는 마음은 남다르다. 나에게 항상 자신보다 후배들을 자주 섭외해 달라는 요청을 한
다. 자신보다 후배들을 먼저 챙긴다. 그의 아내인 정경미는 “후배들을 돌보느라 제 새끼는 안 키운다”
라는 말을 할 정도다. 후배들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떠한 노력이라도 할 태세다. 주는 것
역시 아끼지 않는다.
몇 년 전 그와 기획 공연을 했을 때였다. 적은 출연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기꺼
이 공연하겠다고 했다. <개그콘서트> 팀이 가세했기에 출연료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기획 회
의에서 오히려 무료 공연을 기획한 나를 더 걱정했다. 공연 당일 지역 청소년과 부모 등 수백 명이 초
대되었다.
관객들을 입장시키기 위해 공연장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가 입구에서 후배
개그맨들과 함께 입장하는 모든 관객에게 저녁 식사와 선물을 나눠 주고 있었다. 공연 기획자로 다양
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기획자든 공연자든 제 몫 챙기기에 바쁜 것이 이 업계다.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출연료보다 몇 배의 금액을 지출한 것이다.
순간 이런 사람과 평생 재미있는 일들을 기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세상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오
해가 있다. 그것은 ‘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빼앗기는 것,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는 것은 자신의 잠재 능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다. 주는 행위 자체에서 나의 힘, 나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 내면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베풂을 실천하는 기업가는 자신보다 남들의 이익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손해
를 보지만 결과는 손해가 아니다. 오히려 베풂으로써 베풂의 가치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런 반복적
경험을 통해 타인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정신적 에너지가 긍정적 방향으로 바뀐다. 남을 이롭게 하면
서 자신의 이익을 모색하는 방법도 알아 간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이기적인 기업가보다 사회적이고 관계 지향적인 이타적 기업가가 생존할 확률
이 더 높다. 심리학자이자 경영사상가인 다니엘 골먼 박사는 그의 저서 『SQ 사회지능』에서 “이기적
유전자가 성공을 이끄는 시대는 지났다.”라고 말한다. 21세기에는 이기적 성향의 사람보다 타인의 감
정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능력인 SQ가 높은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것이다. SQ 능력은 후천적으로 길러
지는 능력이기에 이기적인 사람들 보다는 이타적인 사람에게 더 많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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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다니엘 골먼 박사의 명제에 가장 부합하는 기업가는 아마도 일본 교세라 그룹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
오 회장일 것이다. 그는 말했다. “이타심으로 경영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경영의 진정한 의미는 틀림없
이 이타에 있다. 직원들이 기뻐할 일을 한다면 그들은 회사를 위해 더욱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고객
이 기뻐할 일을 한다면 고객은 회사를 더욱더 응원해 줄 테고, 회사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물론 기업가가 이타심을 갖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1인 기업 경영의 근간은 협업에 있다.
1인 기업가는 다양한 역량의 사람들로 구성된 협업 중심의 업무 체계를 갖추어야 성공할 수 있다. 내
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공동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협업 시스템을 구성하면 자기 잠재력을 극대화해 성
공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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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으로 다시 창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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