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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요약본)부산 탐식 프로젝트

by Casey,Riley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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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 지음 / 산지니
음식 문화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여행하듯 부산을 떠돌며 음식을 탐구(탐식探食)한다. 그렇게 탐구
한 총 50가지 음식을 지역에 따라 ‘낙동강, 기장, 원도심, 골목’ 총 4부로 엮었다. 낙동강 지역에
서는 강과 바다가 뒤섞인 물에서 자라 기막힌 맛을 내는 낙동김과 구포시장의 명물 구포국수를,
기장 지역에서는 바다의 향긋함을 품은 설치와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철마 한우를 만난다. 원
도심권에서는 한국 전쟁 당시 피란민들에 의해 탄생한 서민 음식들을 소개한다.

부산 탐식 프로젝트

▣ Short Summary
『부산 탐식 프로젝트』의 저자 최원준은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더 행복해진다.”라는
신념을 가진 부산 사람이다. 한때 질풍노도의 젊은 시인이었던 그는 무작정 부산의 구석구석을 오래도
록 걸어 다니던 날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 산재해 있던 음식 속 부산의 역사와 사회상, 문화 일
반을 접하게 되었고, 이를 독자와 공유하기 위해 글로 쓰게 되었다. 지금은 다양한 매체에 칼럼, 방송,
강좌 활동 등으로 음식 인문학과 음식 문화사의 대중화에 노력하고 있는 음식 문화 칼럼니스트로서 자
리매김하였다.
저자는 언제나 그랬듯 여행하듯 부산을 떠돌며 음식을 탐구(탐식探食)한다. 본서에서는 그렇게 탐구한
총 50가지 음식을 지역에 따라 ‘낙동강, 기장, 원도심, 골목’ 총 4부로 엮었다. 낙동강 지역에서는 강
과 바다가 뒤섞인 물에서 자라 기막힌 맛을 내는 낙동김과 구포시장의 명물 구포국수를, 기장 지역에
서는 바다의 향긋함을 품은 설치와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철마 한우를 만난다.
또한 원도심권에서는 한국 전쟁 당시 피란민들에 의해 탄생한 서민 음식들을 소개한다. 두투, 양곱창
등 시대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탄생했지만,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음식들의 이야기는 부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서글펐던 역사까지 품는다. 그 외에도 원래 부산 음식이 아니었던 밀면, 돼지국밥
이 어떻게 부산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 속에 담긴 음식의 탄생 배경, 전래 과정, 조
리법 등을 소개한다.
이 책에는 ‘맛집’ 정보는 없다. 그러나 음식과 관련된 문화와 사람, 사회학적 부문을 함께 조명한 ‘맛나
는 글’이 있다. 항구 도시로서, 한국 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거처로서 격동기를 거친 부산의 사회와 문
화, 사람, 역사를 음식을 통해 담은 ‘음식 인문학’ 도서인 것이다. 『부산 탐식 프로젝트』와 함께 따뜻
한 ‘부산’의 맛을 찾아 함께 ‘슬로우 여행’을 떠나보자.

▣ 차례
들어가는 글_음식으로 읽는 부산
1부 섬을 품고 흐르는 낙동강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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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소박하면서도 깊은 맛_낙동김
아삭한 첫맛, 달큰한 뒷맛, 명지 염전터에서 피어오르다_명지대파
새벽을 여는 재첩국 아지매_재첩
임금님께 진상한 귀한 몸, 낙동강 봄 별미_하단포 웅어
독특하게 회 쳐 먹는 명지사람들의 가을 별미_전어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맛이 좋아 맛조개_개맛
갈매기 부리 닮은 주황 속살_갈미조개
봄 바다의 전령, 원기 돋우는 초봄 별식_도다리
쫄깃쫄깃 아릿한 풍미_큰구슬우렁이
혀에 착착 감기는 짭조름한 면발_구포국수
가을 한 철 어획하는 낙동강 대형 게_청게
낙동강 하구의 담박한 건강식_민물생선
겨울의 고소한 진객_다대포 방어
물김에 무쳐 먹고 꼬시래기 살로 쌈 싸 먹고_꼬시래기
생선계의 갑(甲) 시원한 국물이 일품_대구
2부 바다를 품은 땅, 기장의 맛
기장의 이파리쌈과 곰삭은 젓갈의 만남_산호자 멸치젓갈 쌈밥
조리법은 다채롭고 가격은 착한 서민 음식_방게
갖은양념 털어 넣고 끼니로 대용했던 우무_기장우묵
고소한 추억 한입_메뚜기볶음
기장의 앞바다의 향긋함이 푸들푸들 살아 오르는_미역설치와 몰설치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기장의 대표 음식_매집찜
싱싱한 비린내와 곰삭은 풍미_대변 멸치
힘이 불끈불끈 바다의 보양 식재료_붕장어
입안에서 피어나는 선홍빛 꽃잎_철마 한우
영양가 높은 추억의 구황음식_먹장어
말똥처럼 생겼지만 최고급 ‘바다의 에피타이저’_앙장구
기장 대표 보양식, ‘바다 십전대보탕’_말미잘 요리
씨알은 작아도 다양한 입맛의 쓰임새_기장 갈치
3부 역사를 품은 곳, 원도심의 맛
부산을 닮아 따뜻한 음식_부산 어묵
자갈치시장 서민 음식_두투
디아스포라의 음식_화교밥상
열린 맛의 실크로드_초량 외국인거리 요리
부산은 물회 전시장_물회
부산 바다를 건져 올리다_해녀촌
부두 노무자들이 영양 보충하던 노동식_초량 돼지갈비
부산 문화지식인들의 참새 방앗간_국제시장 통술집
부산의 부엌, 조선 최대 공설시장 식도락의 성지가 되다_부평깡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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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한 점씩 씹을 때마다 펼쳐지는 맛의 향연_자갈치시장 고래고기
감칠맛의 궁극, 전문가용 생선회_선어회
부산 앞바다 깊은 수심 속 ‘전설의 물고기’_돗돔
국내 최대 양곱창 골목, 일본인도 반해 찾아오는 맛_양곱창
4부 구석구석 골목골목, 부산의 맛
바다 식재료로 만든 이색 보양식_추어탕식 생선국(바다추어탕)
부산의 대표 생선, 다양한 풍미의 조화로움_고등어회
부산의 소울푸드_돼지국밥
뜨거우면서도 시원한 부산 사람 성정을 닮은 맛_복국
못생겨도 맛은 그만_아귀
대구와 쌍벽을 이루다, 겨울 식도락의 향연_물메기
이북의 장떡, 부산에 오다_장떡
부산이 선물하는 공유와 배려의 음식_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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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부산 탐식 프로젝트

1부 섬을 품고 흐르는 낙동강의 맛
임금님께 진상한 귀한 몸, 낙동강 봄 별미_하단포 웅어
웅어. 바다에서 올라와 갈대밭에서 산란을 하고, 갈대밭에서 많이 잡힌다고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
어(葦魚)’라고 부르는 물고기. 꼬리 끝이 칼처럼 생겼다고 도어(魛魚)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 서
남해안 강을 중심으로 봄철에 많이 잡히는 회유성 어종으로, 몸빛은 은백색으로 빛이 난다. 지역에 따
라 ‘우여’, ‘웅에’, ‘우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살이 부드럽고 뼈가 물러 뼈째 먹는 생선으로, 주로 회로 먹는다. 그 맛이 달고 고소하여 많은 사람들
이 좋아하고 즐겨 먹었던 어류이다. 조선 시대에는 웅어를 잡아 임금께 진상하던 위어소(葦魚所)를 둘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라, ‘가을의 진미’ 전어와 더불어 ‘봄의 진미’로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4~5월이
제철이다.
매년 초봄이면 서해 중부에서부터 웅어가 강 하류로 거슬러 올라와 갈대밭에 산란을 하는데, 2월 말
김포를 시작으로 3월 중순에는 금강, 3월 말에는 영산강, 낙동강은 4월 초에 비로소 웅어가 잡히기 시
작한다. 원래 웅어는 보리누름 철인 4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그 맛이 절정이라 낙동강의 웅어가 전국
에서도 제일 맛이 좋다.
때문에 낙동강 웅어의 전진 기지인 ‘하단포’에서 잡히는 웅어가, 전국에서 제일 맛있기로 손꼽히고 있
다 한다. ‘하단 어촌계’에서는 주로 4월에서 6월 초까지 조업을 하는데, 한 어선당 하루 약 50~100kg
정도를 어획한다고.
하단포 웅어는 낙동강 하구언을 중심으로 다대포 앞바다에서 주로 잡히는데, 웅어를 전문적으로 조업
하는 어민들만 25명 정도이다. 이들이 순번을 정해 하루에 한 번씩 하구언 동서쪽 구역에서 웅어를 어
획하고 있다.
웅어는 ‘걸그물’이라는 자망(刺網)으로 어획하는데, 물고기가 지나다니는 바다 속 조류를 따라 그물을
띠처럼 길게 펼치고는, 웅어가 그물코에 박히거나 걸리도록 장치하여 어획하는 방법이다.
70m 그물을 4~5폭으로 이은 350m의 그물을 하루 두 군데 치는데, 총 700m에 걸쳐 그물을 치고 조
업을 한다. 하단 어촌계 어민들은 “가을 전어와 봄철 웅어로 거의 일 년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전한
다.
하단 어촌계를 찾았다. 어민들의 얼굴이 밝지 못하다. “괴정천 하천 정비 공사 때문에 뻘이 내려와 올
해는 웅어가 전멸입니더. 27~29일 ‘웅어 축제’를 하기로 했는데 이것도 취소됐심니더.” 이춘식 어촌계
장의 말이다. “아이고 말도 마이소. 작년만 해도 하루 100kg 잡았는데, 어제는 제가 2kg 잡았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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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베테랑 어부 신경남 씨가 말을 받았다.
웅어는 이들에게 소득원이기 이전에, 두고두고 먹었던 식량이자 추억의 식재료였다. “한 철 잡아 일 년
내내 냉장고에 얼려 두고 꺼내 먹는데 일 년 후에 꺼내 먹어도 그 맛 그대로입니다. 아주 별미지요.” “웅
어 20여 마리 구우면 참기름 병으로 1병 정도 웅어 기름이 나옵미더. 이 웅어 기름으로 잔치 때 식용유
대신 부침 기름으로 사용했다 아입미꺼. 음식 해 놓으면 음식이 너무 고소하고 맛있었지예.”
“그뿐인가? 배에서 바로 잡아 대가리, 내장 떼고 통째로 고추장이나 된장에 푹 찍어 씹어 먹으면 얼매
나 맛있다고.” “그것도 하얗게 핀 고추장에 찍어 먹어야 제대로 아이가. 식은 밥 한술에 찌개 해서 먹
어도 쥑이지~”
“우리 하단 웅어를 중국에도 수출합니더. 중국에는 웅어가 멸종 위기종이라 아주 귀한 생선이라네요.
고급 식당에서 주로 찌거나 튀겨서 ‘탕수 생선’으로 먹는데, 한 마리에 10만 원 정도 하는 귀한 생선입
니더.” 웅어를 중국에 수출하는 하용수산 이상찬 대표의 말이다.
하단포 부근에는 웅어 생산지답게 웅어 관련 음식점이 열대여섯 집 영업을 하고 있다. 그중에도 웅어
요리로는 대표 격인 식당에 웅어 음식을 몇 가지 부탁했다.
“예전에는 하단포, 아니 우리 부산 웅어를 잡는 족족 창녕 남지나 삼랑진으로 다 올려 보냈어요. 그쪽
사람들 봄에 ‘도다리 먹을래? 웅어 먹을래?’ 하면 ‘웅어 먹을란다.’ 할 정도로 웅어를 좋아해요. 부산
생선을 부산에서 알아주지 않는 게 못내 서운하데요. 그래서 저라도 부산 사람들에게 ‘웅어 맛 좀 알리
자.’ 해서 하단포에서 처음으로 웅어 음식을 시작했지요.” ‘외딴집’ 이건우 대표의 말이다.
그때부터 이 대표는 하단포 웅어라면 자신이 뺏어서라도 가져와 음식을 준비할 정도로 웅어에 큰 관심
을 가지게 된다. “모든 게 생산지에서 먹어야 제맛이잖아요. 특히 웅어는 성질이 급해 그물에 걸리면
바로 죽기 때문에 선도가 좋을 때 먹어야 제맛이 납니다.”
식탁에 ‘웅어회’, ‘웅어회무침’, ‘웅어구이’, ‘웅어 젓갈’ 등이 한상 푸짐하다. 회 한 점 먹어 본다. 구수한
맛이 입안 가득 돈다. 병어회 맛과 비슷하고 전어회 맛과도 흡사하다. 씻은 김치에 싸서 먹는다. 웅어
젓갈로 담은 김치라 그 맛이 깊어, 짭조름하면서도 기분 좋은 군내에 군침이 돌고 돈다.
웅어 젓갈에 살짝 찍어 회 맛을 본다. 칼칼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오래도록 입에 남는다. 웅어 젓갈은
웅어 대가리와 내장 등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는데, 이곳은 대가리로만 숙성시켜, 뒷맛이 깔끔하고
잡내가 없이 개운하다.
상추와 민들레, 방아 등속과도 싸 먹으니 바야흐로 무르익은 봄이 입에서 알콩달콩하다. 회무침도 한
젓가락 크게 입에 넣는다. 웅어와 오이, 홍당무, 배, 새싹, 땡초, 깻잎, 마늘 등을 넣어 신선하고 상큼
함이 입맛 되돌리는 데 그저 그만이다.
횟밥도 한술 뜬다. 웅어가 씹힐 때는 고소하다가 채소가 씹힐 때는 아삭아삭하여, 입속에서 각각의 재
료들이 어우러져 춤을 춘다. 구이도 한 점 집어 본다. 모양이 갈치와도 비슷해서인지 장만해서 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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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놓으니 그 맛 또한 비슷하다. 구수하지만 기름지지 않은 맛이다. 바싹 구운 조기 맛도 난다.
이 ‘웅어’로 출출할 때 국수 삶아 회 국수로 먹어도 좋고, 고추장 풀고 채소 넣어 끓인 매운탕에 소주
한 잔 곁들여도 좋으며, 웅어 살을 걸러 만든 추어탕의 짙고 구수함을 즐기는 것도 참 좋단다. 보글보
글 짭짤하니 조린 웅어 조림은 밥도둑이고, 웅어 살로 완자를 만들어 탕수 소스에 찍어 먹는 웅어 탕
수육도 최근 개발한 이색 음식으로 인기란다.
이처럼 다양한 음식의 식재료로 광범위하게 쓰이던 ‘하단포 감초 생선, 웅어.’ 웅어는 낙동강 하구 사
람들에게는 보리누름 철 배고팠던 시절을 고소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 준 고마운 생선이었다. 그만큼
우리 부산이 지켜야 하고, 우리 시민들이 먹어야 할 식재료이자, 그 맛을 오래도록 보존하고 기록해야
할 향토 음식이기도 하다.

2부 바다를 품은 땅, 기장의 맛
기장의 이파리쌈과 곰삭은 젓갈의 만남_산호자 멸치젓갈 쌈밥
“어머니, 예전에 장안사 근처 골짜기서 나무 이파리 따서 쌈 싸 먹은 적 있잖아요?” “그래, 산호자 나
무.” “그 나무 요새도 있을까요?” “모르지. 요즘은 그쪽으로 잘 가질 않아서…. 잘은 몰라도 예전에 있
던 나무들이 지금이라고 어디 가겠니?”
“요즘 기장시장에 아낙들이 조금씩 가지고 나와 파는 것을 보면, 요즘도 그 나무가 있는 게지.” 아버님
말씀이시다. “왜? ‘탐식 프로젝트’에 쓰려고?” “예~” “그럼 소풍 삼아 한번 가보자꾸나. 오랜만에 메기
매운탕에 산호자 쌈도 싸 먹어 보고.”
한때 장안사 부근 단골 식당엘 가면 매번 찾던 음식이 있었다. ‘산호자 묵(묵은)나물’이다. 산호자 나무
어린잎을 삶아서 말려 두었다가, 밥과 멸치젓갈에 쌈을 싸 먹는 것이다. 멸치젓국의 웅숭깊은 맛에 산
호자 잎의 쫀득쫀득한 식감이 어우러져, 입안이 개운하고 오래도록 즐겁게 여운이 남는 ‘봄나물 쌈’이
었다.
이 ‘산호자 멸치젓갈 쌈’은 봄이 익으면 익을수록, 마음속 ‘봄의 음식’으로 새삼 그리워지는 음식이었다.
봄을 맞으면 봄을 맞았다고 기분 좋게 쌈밥을 싸 먹고, 여름철 입맛이 없으면 입맛이 없다고 찬밥을
물에 말아 젓갈에 무친 산호자 나물을 얹어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장안사 근처 식당들이 산호자 잎을 상에 내놓지 않는 것이다. 물어보니 사람들이 즐겨 찾
지 않아 손님상에 내놓지 않은 지 꽤 됐단다. 봄이면 마대 자루 하나씩 채취하여 묵나물을 만들어 일
년 내내 제공하던 식당들인데 참으로 아쉬운 마음이 크다.
이 ‘산호자’ 나무는 나무껍질이 하얗고 매끈매끈하여 ‘사람 살결처럼 생겼다’고 원래 이름이 ‘사람주나
무’다. 나무껍질이 희다고 ‘여자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감나무 잎처럼 생긴 이파리도 사람 피부처럼 보
드랍다. 잎을 따 보면 하얀 즙이 나온다. 낙엽소교목으로 ‘신방나무’, ‘쇠동백나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해안 산골짜기나 산 중턱에 자생하는데, 경상남도 양산과 부산 동부 기장의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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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산에도 많이 서식한다. 6~7월에 꽃이 피는데, 꽃이 피기 전 나무에서 어린잎을 따 끓는 물에 살짝 데
쳐 쌈을 싸 먹거나, 햇볕에 말린 다음 나물로 무쳐 먹고, 두고두고 묵나물로 먹기도 한다.
5월 중순부터 채취가 가능한데, 하순경의 잎이 쌈거리로 먹기에 적당하다. 이를 멸치젓국에 곁들여 쌈
을 싸 먹으면, 봄이 입에서 기껍게 노니는 것이다.
신록이 한창 푸르른 기장의 봄 산행 중 산골짜기를 중심으로 몇몇 사람들이 나뭇잎을 따고 있다면, 거
의 산호자 잎을 채취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산호자 잎으로 즉석에서 젓국이나 쌈장으로 밥을 싸 먹
으면, 아주 만족스러운 ‘도시락 쌈밥’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산호자 잎은 멸치젓갈과 함께해야 더욱 근사하고 흔쾌한 맛을 낸다. 멸치젓갈이 쫀득쫀득한 산호자
잎의 식감과 어울려 그 맛을 더욱 살려 주기에 그렇다. 데쳐 놓으면 잡내가 없고 봄나물 특유의 향이
적어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도 좋아하는 나물 식재료이다.
두릅이나 엄나무 등 다른 봄나물들은 겨울을 굶주린 동물들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약간의 독성과
강한 향을 발산한다. 이를 사람이 먹으면 나른한 몸을 긴장시켜 춘곤증을 이겨 내는 음식이 되는 것이
다.
그러나 산호자 잎은 그 맛이 순하고 부드러워 벌레마저도 주식으로 삼아 잘 먹는다. 때문에 봄 산호자
어린 이파리마다 애벌레들이 꼬물꼬물 집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나무의 성정이 유순하고
담박한 것이다.
이 산호자 잎에 잘 익은 멸치젓갈의 풍성함까지 더하면, 나른한 봄날의 조촐한 밥상이 풍성하게 보이
는 것이다. 특히 ‘산호자 쌈’의 젓갈은 꼭 기장 대변의 멸치젓갈을 써야 그 풍미가 제대로 완성이 된다.
지역의 음식은 지역의 식재료와 궁합이 맞기에 그렇다.
부모님과 한나절 산을 뒤져 따 온 산호자 잎으로 ‘산호자 멸치젓갈 쌈밥’을 해 먹는다. 흰 쌀밥을 고슬
고슬하게 짓고, 산호자 잎을 끓는 물에 삶는다. 곧이어 진한 풀 냄새가 폴폴폴 난다. 초록색 잎이 짙은
녹색으로 변할 때까지 2~3분 정도 삶으면 된다.
대변 멸치젓갈로 젓국장을 만든다. 콤콤하고 구수한 젓국 냄새가 사람 입맛을 제대로 자극한다. 멸치
젓국에 고춧가루와 간 마늘, 땡초 두세 개 송송 썰어 넣고 뒤섞어 준다. 그 위에 통깨를 솔솔 뿌려 주
면 젓국장 완성이다.
산호자 잎을 넓게 펴고 고슬고슬하게 지은 흰 쌀밥을 얹는다. 그 위에 멸치젓국장을 넉넉하게 올린 뒤
쌈을 싸서 입에 넣는다. 한 입 씹자 젓국장의 구수한 풍미가 터져 오른다. 그리고 산호자의 쫀득쫀득
한 식감이 밥알과 젓국장과 어우러지며 씹을 때마다 절정의 미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산호자는 자기만의 독특한 향이 없기에 어느 양념과도 잘 어울린다. 때문에 어느 조미 양념에 무치고
어느 젓갈에 얹어 먹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다양한 음식으로 변신 가능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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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여기에다 멸치젓갈 하나 얹어 먹으면 더 이상의 궁극의 쌈은 필요치 않다. 여기서 중요한 관점 하나,
부산 지역에서 멸치젓갈은 음식 맛을 더해 주는 보완재가 아니라, 어엿한 음식의 한 종류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만큼 부산 대표 식재료로서 멸치의 가치와 위상은 남다르다.
제철의 싱싱한 멸치와 좋은 소금, 담그는 사람의 짭조름한 손맛이 들어간 기장 대변 멸치젓갈. 음식의
간을 맞추기도 하고 밑반찬으로 직접 상에 오르기도 하는 대변 멸치젓갈은 부산의 간판 음식이다. 깊
고 풍성한 ‘곰삭음’의 진미는 밥상 위에서 강렬한 식욕을 동반하는 자극제이기도 하다.
사람이나 음식이나 오래될수록 깊은 맛이 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담뿍 내어놓을 때 사랑을 받는다.
자신의 몸을 펄펄 끓여 내 속 깊게 발효시키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이롭게 하는 음식이기에 우리는
젓갈을 기꺼이 곁에 두는 것이다.
기장은 경남 양산에서 부산으로 편입된 지역이다. 때문에 원 부산의 식생이나 문화와는 조금씩의 차이
가 있다. 식문화에 있어서도 특색 있고 보존 가치가 높은 식재료와 기록해 놓아야 할 음식 및 조리법
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감나무 잎을 닮은 산호자 나뭇잎이다. 대변 멸치젓갈도 마찬가지다. 늘 눈여겨
보고 먹어야 할 부산의 귀중한 식재료들이다.

3부 역사를 품은 곳, 원도심의 맛
부산을 닮아 따뜻한 음식_부산 어묵
어묵. 다양한 요리로도 변주되고, 남녀노소 건강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웰빙 식재료이며, 그 나라의
정체성을 대표하기도 하는 소울푸드. 이 어묵의 발상지는 동아시아로, 고래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서 다양한 레시피로 존재해 왔다.
그중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진나라 때이다. 당시 권력자였던 진시황(기원전 247~210년 재위)은 평
소 생선 요리를 즐겨 먹었는데, 요리에서 생선 가시가 나오면 요리사를 바로 처형시켰다. 이에 한 요
리사가 가시를 제거한 생선살로 시황에게 ‘생선 완자 요리’를 만들어 바치자 매우 흡족해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도 고훈 시대(3~7세기)부터 두부와 생선살 등을 꼬챙이에 붙여 구워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
나라도 조선 숙종(1674~1720년 재위) 때 『진연의궤(進宴儀軌)』와 『산림경제』 등에 ‘생선숙편’과 ‘생
선완자탕’의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는 오래전부터 생선살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법
으로 음식을 해 먹은 것이다.
‘부산 어묵’은 문헌상으로 부산 부평시장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일본의 ‘가마보코(蒲鉾, かまぼこ)’라는
음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선살을 으깨고 반죽해서 튀기거나 찌거나 구운 생선묵 형태의 음식을 말한
다.
1915년 부산부청 발간 ‘부평시장월보’에 따르면, 주요 거래 점포 중에 ‘가마보코’ 전문 점포 3곳을 최
초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의 시장’에서는 “부평시장은 쌀, 가마보
코, 채소, 청과물 등이 주종”이라고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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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일제 강점기 부평시장서 시작된 어묵(가마보코)은 부평동 부근에 들어선 대좌부(貸座敷)란 요정을 중심
으로 소비되던 고급 식재료였다. 이 가마보코는 해방 전후로 해서 ‘음식 문화의 대중화’ 과정을 거친다.
일본인들이 남겨 두고 간 어묵 설비와 기술로 우리 실정에 맞게 어묵을 생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45년 한국인으로는 부산 최초로 부평동 시장에서 어묵을 생산했던 동광식품(창업자 이상조)이 그 시
작이었다. 김동리의 소설 『해방』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앞으로 조선이 독립이 되면 일본말뿐 아니라 옷이던 음식이던 일본 것은 모
조리 못 쓰게 된다는 소문이었다. (중략) “아니, 정말이여. 신문에까지 났다는듸. 저 가마보꼬는 참 일
본 음식이 아니겠지? 조선 사람들도 잘만 먹으닝께.” 하면 “그렇지 않을 것이여! 아니, 우리는 가마보
꼬가 없으면 밥을 먹는같잖은듸.” (중략) “그것도 본데는 다 일본 음식이지.” “아니, 그럴 리가 있을라
고? 우리 조선 사람들도 만 가지 요리에 다 쓰고 있는듸. 잔치에 안 쓰나 제사에 안 쓰나?”
소설 내용에 따르면 당시 어묵은 이미 우리 식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한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지
금의 ‘부산 어묵’ 형태는 그 시절 일본식 기술과는 다른 환경과 제조 방법으로 탄생되었다. 시대적 배
경은 한국 전쟁기. 부산이 피란 수도로 피란민들의 의식주를 책임지던 시절, 다양한 피란 음식이 부산
에서 탄생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들이 돼지국밥과 밀면, 꼼장어, 부산 어묵 등이다.
그중 부산 어묵은 자갈치시장을 중심으로 널리 보급됐다. 당시 시장에서 위판되고 남은 생선이나 상품
가치가 없는 생선을 ‘대수리’라는 돌절구에 함께 넣고 통째로 갈아 정어리기름이나 고래기름 등에 튀겨
내 어묵을 만들었다.
때문에 ‘부산 어묵’의 원형은 한국 전쟁 시절 ‘막갈이’와 ‘덴뿌라’로 크게 구별된다. ‘막갈이’는 생선을
통째로 ‘갈아 내는 것’을 말하고, ‘덴뿌라’는 깡치(조기 새끼)나 풀치(갈치 새끼) 등 잡어를 갈아 미군
드럼통으로 만든 기름 가마에 넣고 ‘튀겨 내는 생산 방식’을 말한다.
이렇게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부산에는 튀김 중심의 값싸고 영양가 높은 어묵이 탄생되고 호황을 누리
게 된다. 대표적인 국민 음식 ‘부산 어묵’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1950년대에는 영도 봉래시장의
삼진식품(창업자 박재덕)과 영주동시장의 환공어묵 등이, 1960년대 이후에는 초량시장의 영진어묵(창
업자 박병수)을 비롯해 미도, 효성, 대원 어묵 등이 부산 어묵의 서민화를 선도했다.
이 시기에 어묵은 주로 밥반찬으로 널리 애용되었지만, 부산의 문화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안주로도
자리 잡는다. 한때 남포동, 중앙동 등지에는 ‘부산 어묵’으로 만든 오뎅탕의 따뜻한 국물에 정종 한 잔
마실 수 있는 대폿집들이 많았다. 이들은 부산 문화 예술인들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했는데, 특히 비
오는 날이나 유난히 추운 날, 삼삼오오 모여 예술을 논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당시 부산 어묵, 스지, 토란, 곤약, 삶은 달걀 등이 푸짐하게 들어간 ‘스지오뎅탕’은 따끈한 정종과 최
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일품요리였다. 다양한 식감의 오뎅 재료들과 진하고 시원한 오뎅 국물로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이 대폿집들은 대부분 계산을 바둑돌로 했는데, 검은 돌과 흰 돌을 나누어 ‘돌 하나’에 ‘정종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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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오뎅 한 접시’ 등으로 계산을 했다. “약병 같은 병뚜껑에다 바둑돌이 들어갈 구멍을 내고, 마신 대폿잔
과 안주 수대로 바둑돌을 집어넣는 거예요. 돌을 하나둘 넣을 때마다 딸그락딸그락 바둑돌 쌓이는 재
미가 꽤나 쏠쏠했지요.” 부산민학회 주경업 회장의 말이다. 참 낭만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계산법이 아
니던가?
현재 전국은 부산발 어묵 열풍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어묵 로드’ 여행을 위해 부산을 찾고, 어묵 체험
역사관에는 연간 100만 명이 다녀가며, 부산 곳곳의 어묵 매장에서 부산 어묵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오
래도록 서고 있다.
이는 부산의 어묵 회사가 주축이 되어 ‘어묵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기에 그렇다. 대도시 기차역에 직
영점을 두고 다양한 ‘베이커리 어묵’으로 대박을 치는가 하면, 대형 백화점 등에 입점하여 어묵을 베이
스로 하는 다채로운 고급 식품 개발로 그 부가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
그 대표적인 제품들이 빵의 형식을 갖춘 ‘어묵 고로케’와 면의 형식을 갖춘 ‘어묵 우동’ 등이다. 이들은
부산 어묵이 가야 할 방향을 실험하는 제품들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
이들의 맛을 본다. 어묵 고로케는 생선 연육 안에 치즈, 땡초, 새우, 카레, 고구마 등 각종 소가 들어
가 있어 간식으로나 한 끼 식사 대용으로도 충분하겠다. 부드러운 연육이 말랑말랑 씹히고 뒤이어 각
종 소가 짭조름하게 함께 어우러지며 한입 가득 든든하다.
어묵 우동 국물을 맛본다. 가다랑어 국물의 달작하고도 진한 감칠맛이 참 좋다. 어묵으로 면을 만들어
탱탱한 면의 식감도 생각보다 재미있다. 이와 함께 회처럼 간장 고추냉이에 찍어 먹는 ‘어묵 회’도 색
다른 맛을 전해 준다. 이처럼 ‘어묵의 고급화’와 ‘다른 음식으로의 응용’ 등이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자
극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어묵계의 일각에는 “부산의 어묵 회사들이 ‘부산 어묵’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성장을 해 왔음
에도, 정작 어묵의 원료는 수입 냉동 연육을 사용하고 있다.”며 “부산 어묵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
는 부산에 냉장 연육(생육) 가공 공장을 설립하고, 우리 연근해의 신선한 생선으로 부산만의 특화된 어
묵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린내가 적어 다양한 음식 재료로 적용이 용이한 냉동 연육과 부산 어묵이 가지는 구수하고 깊은 풍
미를 내는 국산 생육, 다양한 ‘부산 어묵의 구현’을 위해서는 둘 다 장단점이 있겠다. 때문에 부산시와
부산 지역 어묵 가공업체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부산 어묵이 가지고 있던 부산 향토 음식으로의 정체성과, 우리 국민들을 먹여 살렸던 그 시절
의 ‘부산 어묵’ 레시피는 필히 보전해야겠다. 그래야만 ‘부산 어묵’이란 고급 브랜드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중 값싸고 양 많고 영양 풍부한 음식으로, 그 시절 대한민국 식탁을 책임진 ‘공유의 음식’이자 ‘배
려의 음식’이었던 부산 어묵. 비록 ‘최선의 음식’이 아니라 ‘차선의 음식’이었고 ‘대체의 음식’이었지만,
부산 어묵은 부산 사람을 닮아 ‘늘 따뜻하고 착한 부산 음식’이었다. 그 마음, 잘 보존하고 발전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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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일이다.

4부 구석구석 골목골목, 부산의 맛
부산의 소울푸드_돼지국밥
외지인들에게 부산은 ‘돼지국밥의 도시’이다. 그렇다면 부산 사람들에게 있어 돼지국밥은 어떤 존재일
까? 부산 사람들에게 돼지국밥은 세 가지 키워드로 풀어 볼 수가 있겠다. 첫째는 공유의 음식, 둘째는
통합의 음식, 세 번째는 실용의 음식으로 규정된다.
돼지국밥은 부산의 역사와 문화, 부산 사람의 기질 등 부산의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대표 음식이면서
부산 사람들의 소울푸드이기에 공유의 음식이다. 돼지국밥은 오랜 시간 진득한 정성으로 끓여야만 맛
있어지는 음식이다. 국밥의 여러 재료들을 가마솥에 한데 넣고 펄펄 끓여 내어 하나의 음식으로 만들
어 내기에, 통합의 음식이다. 국밥 한 그릇으로 고소한 돼지고기도 먹고, 진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도 먹
고, 밥도 말아 설렁설렁 끼니도 때우는 음식으로, 구수하게 진하면서도 시원하게 개운한 뒷맛을 맛볼
수가 있기에, 실용의 음식이다.
원래 부산 돼지국밥의 원조는 오래전 부산, 경남에서 먹어 왔던 국물이 맑은 고깃국이었다. 살코기만
으로 국물을 내고 무와 고춧가루, 파 등을 넣고 끓여 낸, 맑고 시원한 국으로 먹어 왔던 것. 그러나 한
국 전쟁 이후 부산에 정착한 피란민들에 의해 여러 지역의 음식 문화가 섞이면서 국밥에 돼지 대가리
와 내장 등 돼지 부산물을 섞고 사골로 육수를 내는 등 현재의 부산식 ‘돼지국밥’ 형태로 변형되어 왔
다.
또한 부산의 산업화 과정과 장터 문화가 섞이면서 식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국에 밥을 말고, 그 위에
정구지, 마늘, 땡초, 양파, 김치 등 반찬을 한데 섞어, 간소하고 급하게 ‘허벅허벅’ 퍼먹는 형태의 식문
화로 변화 과정을 거쳐 온 것이다. 그러하기에 부산의 돼지국밥은 각 지역의 음식 문화를 반영하여 완
성됐다. 이는 부산이 토박이보다 타지에서 유입된 이주민들에 의해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한국 전쟁을 전후로 부산은 다양한 지역의 음식 문화가 함께 뒤섞여 ‘부산의 음식’으로 재탄생한다. 돼
지국밥 또한 부산의 역사와 문화, 부산 사람의 기질 등과 함께 발전해 온 부산의 대표 음식이다. 이는
부산 돼지국밥의 ‘독립된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이라는 음식은 한 가지 조리법
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때문에 다양한 지역의 섭생이 부산의 돼지국밥에 끈끈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국밥에 사용되는 고기 고명의 부위나 육수 재료, 상을 차려 내는 법 등 모든 것들이 각각의 특징을 가
진다. 가게마다 나름의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는데도, 모두 부산 돼지국밥이라는 범주 아래 함께하고
있다. 이는 부산 사람들의 정체성과도 많이 닮았다. 부산 사람들의 윗세대 중 많은 숫자가 전국 팔도
에서 부산으로 흘러들어 와 정착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후손들은 부산에서 나서 부산에서 살고
있는 부산 사람이다. 팔도의 입맛을 가진 부산 사람들이 모여 부산 음식의 다양성을 이끌어 내고 있는
데, 이는 돼지국밥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육수부터 살펴보자면 국물이 뽀얀 육수와 조금 연한 육수, 맑은 육수가 모두 부산 돼지국밥에 적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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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고 있다. 뽀얀 육수는 돼지 사골로 육수를 뽑는데 국물이 진하고 구수한 맛을 낸다. 제주의 몸국과 일
본 규슈의 사골 라면인 돈코츠와 닮았다. 조금 연한 육수는 주로 돼지 뼈와 고기, 내장 등을 함께 쓰거
나 돼지 대가리를 통째 넣고 육수를 낸다. 깊은 맛과 감칠맛이 뛰어나다. 이북 피란민들이 부산에 정
착해서 이북 조리 방식에 돼지 대가리를 재료로 활용했는데, 상업화된 부산 돼지국밥의 원형쯤 된다.
맑은 육수는 살코기만을 삶아서 육수를 낸다. 서부 경남의 돼짓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맛이 깔끔하고
정갈하다.
국밥 안에 들어가는 고기 고명도 살펴보자. 돼지 대가리에 붙어 있는 돼지 뽈살을 사용하는 곳이 있는
가 하면, 돼지 부산물인 돼지 내장, 순대 등을 함께 쓰는 곳, 돼지 다리 목살과 다리 살, 최근에는 고급
화 과정을 거치면서 삼겹살, 항정살, 갈빗살 등을 쓰는 곳까지 다양하다. 돼지국밥을 차려 내는 방법도
다양한데, 원래 부산의 돼지국밥은 국과 고기 고명이 밥과 함께 한 그릇에 담겨 토렴 후 상을 내는 방식
이다. 이후 다른 지역 사람들이 부산에 정착하면서 고향의 밥상 문화까지 부산에 정착시킨다.
대구 반상 문화 중 탕반 문화가 흡수되면서 국과 밥을 따로 내는 따로국밥이 자리 잡고, 서울, 경기 지
역의 순대국밥이 흡수되면서 순대 돼지국밥이, 제주 돼지 국수의 영향으로 다양한 면을 활용한 돼지
국수가 활성화되었다.
부산 ‘돼지국밥’은 이렇듯 다양한 지역의 특색을 가진 섭생을 수용하면서도, 부산 음식의 특색으로 잘
발현된 음식이다. 하여 ‘돼지국밥’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자리 잡은 다양한 조리법의 돼지국밥이 바
로 부산 ‘돼지국밥’인 것이다. 따라서 ‘돼지국밥’이야말로 우리 부산의 정체성과 제대로 부합되는 대표
적인 음식이다.
또 부산의 돼지국밥은 부산의 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며 변화하고 다양한 분화 과정을 거친다. 한국 전
쟁 시기엔 돼지 대가리와 부산물들이 국밥의 주재료였고, 부산의 산업화 시대인 1980년대 전후로 돼
지 사골을 활용한 육수가 정착했으며,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기점으로 다양하고 고급화된 메뉴들의
돼지국밥이 정착하게 된다. 때문에 부산의 돼지국밥은 부산 사람처럼 다양한 개성과 각각의 맛을 지니
고 있는 것이다.
돼지국밥집에 들어선다. 무쇠솥에서는 한창 뽀얀 육수가 끓어오르고 있다. 구수한 국물에 토렴 잘한
국밥을 받아 든다. 돼지고기 넉넉한 뚝배기에 슬슬 끓는 국밥이 옹골지다. 뜨끈한 국물 한술 떠먹는다.
국물이 진국이다. 걸쭉하여 입에 달라붙을 정도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사골을 정성 들여 끓여 냈다는
뜻이다.
국밥도 한 술 뜬다. 밥알에 사골 국물이 배여 간간하면서도 진한 구수함이 입안을 즐겁게 한다. 정구
지를 한 젓가락 국밥에 푹 넣어 함께 먹는다. 정구지의 알싸하고 향긋함이 국밥과 어우러지며 개운한
맛을 낸다.
뜨거운 국물과 밥이 조화로워 속이 든든해지고 몸도 따뜻해진다. 맛이 든 깍두기는 아삭아삭하고 배추
김치는 새콤하게 입맛을 더욱 돋운다. 토렴이 잘된 국밥에다 정구지, 파, 마늘 등속을 한데 섞어 먹으
니, 어느새 한 그릇 뚝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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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부산을 대표하기에 부산에 오면 꼭 먹어 보는 부산의 돼지국밥. 그러나 부산을 찾는 이들은 왜 부산이
돼지국밥의 도시인지를 간과하고 있다. ‘지역의 음식’은 그 무엇이건 그 유래와 역사적 배경을 알고 먹
어야 한다. 그러면 그 음식의 맛은 배가 되고, 식사 시간 내내 음식의 가치를 체험하는 기꺼운 자리가
될 것이다.
활기찬 장터의 도시이자, 야성의 도시인 부산. 그 정체성과 걸맞은 음식이 돼지국밥이라는 것이다. 때
문에 돼지국밥이 부산 사람을 하나로 뭉치는 매개로 작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질적인 다양한 것들
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 부산 사람들의 정신이라고 볼 때, 돼지국밥은 그러한
부산 사람들의 정신, 그리고 부산 음식의 정점에 서 있다고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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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탐식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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