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세르비뉴, 라파엘 스테방스 지음 / 에코리브르
이 책은 붕괴에 대한 연구는 인간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라면서, 여전히 초보 단계인 붕괴
론을 파헤친다. 저자들은 붕괴란 기본적인 필요(물, 음식, 에너지 등)가 법으로 규제받는 서비스를 통
해 인구 대다수에게 더 이상 합리적 비용으로 제공되지 않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라면서, 붕괴라는 단
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고 환상과 사실을 구별하는 것이 붕괴론의 목표 중 하나라고 역설한다.
붕괴의 사회정치학
파블로 세르비뉴, 라파엘 스테방스 지음
▣ 저자 파블로 세르비뉴, 라파엘 스테방스
파블로 세르비뉴 -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태어났으며, 농업경제학자이자 생물학 박사이다. 붕괴, 전환,
농생태학 및 상호 원조 메커니즘 문제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위기의 시기에 유럽을 먹여
살리다』 등이 있다.
라파엘 스테방스 - 생태학 전문가이자 사회 생태 시스템의 회복력 전문가이다. 컨설팅 회사인
Greenloop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 Short Summary
최근 카카오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현대의 시스템적 생활이 얼마나 취약하고, 세상이 얼마나 쉽게 마
비되고 혼란에 빠질 수 있는지 절감했는데,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었다. 한편 태풍, 홍수, 꿀벌 개체 수
감소, 주가 하락, 전쟁 등 몇몇 재앙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두고 ‘지구 차원의 위기’를
선포하거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주장한다면, 이것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선 심각한 환경, 에너지, 기후, 지정학, 사회
및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우리 문명의 붕괴를 심각하게 생각할 때다.
그런데 붕괴는 세상의 종말이나 묵시록이 아니다. 그리고 단순한 위기도 아니고, 몇 달 만에 잊어버리
는 일회성 재난도 아니다. 붕괴란 기본적인 필요(물, 음식, 주택, 의복, 에너지 등)가 법으로 규제받는
서비스를 통해 인구 대다수에게 더 이상 합리적 비용으로 제공되지 않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다. 따라
서 이것은 세상의 종말처럼 돌이킬 수 없는 대규모 과정이다. 물론 종말이 아니라는 점은 빼고 말이다.
아울러 길게 이어질 것으로 예측할 뿐 어떻게 진행될지 알 방법도 없다.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이어질까? 누가 영향을 받을까? 가장 가난한 나라들? 부유한 나라? 선진국? 서
구 문명? 인류 전체? 아니면 일부 과학자가 예고한 것처럼 대다수 생물 종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명
확한 답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들’은 이 모든 범주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석유의 고갈은 산업화한 세
계 전체와 관련이 있지만, 기후 변화는 인류 전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살아 있는 종을 위협한다.
이 책은 붕괴에 대한 연구는 인간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라면서, 여전히 초보 단계인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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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론을 파헤친다. 저자들은 붕괴란 기본적인 필요(물, 음식, 에너지 등)가 법으로 규제받는 서비스를 통
해 인구 대다수에게 더 이상 합리적 비용으로 제공되지 않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라면서, 붕괴라는 단
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고 환상과 사실을 구별하는 것이 붕괴론의 목표 중 하나라고 역설한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우리 사회와 지구 시스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가
정말로 위기에 처해 있는지, 이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면서, 세계적
붕괴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미래학이라는 위험한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2부에서는 이러한 미래를 고려할 수 있게 해 주는 단서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한다.
3부에서는 붕괴 개념에 구체적인 깊이를 부여하면서 다음의 질문을 던지고 살펴본다. 왜 우리는 붕괴
를 믿지 않을까? 고대 문명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까? 이 과정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된다면, 우리는 사회적 존재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러한 사태
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인간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고려해야 할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는데도 붕괴가 발생할 수 있을까? 그런 경우라도 심각하게 붕괴할까?
▣ 차례
머리말: 붕괴, 비선형적 현상
서론: 언젠가 반드시 다루어야 할 주제
1부 붕괴의 시작
01 자동차의 가속
02 엔진 끄기(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
03 고속 도로 출구(넘을 수 있는 경계)
04 방향이 막혀 있을까
05 점점 더 취약해지는 운송 수단에 갇히다
1부에 대한 종합 평가
2부 그렇다면 언제인가
06 미래학의 어려움
07 전조 신호를 감지할 수 있을까
08 모형은 무엇을 말하는가
3부 붕괴론
09 조사해야 할 모자이크
10 그리고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인간은?
결론: 기근은 시작일 뿐이다
아이들을 위하여 / 추천의 글 / 감사의 글
후기: 6년이 지난 후 /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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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붕괴의 사회정치학
파블로 세르비뉴, 라파엘 스테방스 지음
서론: 언젠가 반드시 다루어야 할 주제
위기, 재앙, 붕괴, 쇠퇴…… 뉴스에서 세상의 종말을 암암리에 읽을 수 있다. 항공기 추락, 태풍, 홍수,
꿀벌 개체 수 감소, 주가 하락, 전쟁 등과 같은 몇몇 재앙은 현실적이라 뉴스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실패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하거나 ‘지구 차원의 위
기’를 선포하거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주장한다면, 이것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디어에서 쏟아 내는 재앙 선포는 받아들이면서, 주요 재앙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재앙주의자’로 취
급하는 것은 모순이다! 예로 IPCC가 2014년 기후 변화에 대한 새 보고서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새 기후 시나리오에 대해, 또는 이것이 사회 변화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지에 대해 실질적으로 토론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재앙이다.
어쩌면 우리는 나쁜 소식에 지쳤을 수도 있다. 게다가 지구 종말에 대한 위협은 항상 존재하지 않았던
가? 최악의 모습으로 미래를 보는 것은 유럽이나 서구의 전형적인 자기애적 현상이 아닐까? 재앙주의
는 자금이 부족한 녹색당(환경 보호주의자) 지도자나 과학자들이 만들어 낸, 대중을 위한 새로운 아편
이 아닐까? 그러니 프랑스인 여러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우리는 ‘위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재앙, 실제로 지속적인 재앙이나 현실의 속도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재앙에 대해 말
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아닐까? 우리는 이제 우리가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선 심각한 환경, 에너
지, 기후, 지정학, 사회 및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이러한 모든 ‘위기’는 상호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오
늘날 우리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시스템으로 인해 우리의 이웃(심지어 공동체 내의 모든 사람)이 생
존 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는 능력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엄청난 양의 증거와
단서를 가지고 있다.
1부 붕괴의 시작
자동차의 가속
자동차에 비유해 보자. 산업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자동차가 등장했다. 몇몇 국가들이 자동차에 올라탄
채 시동을 걸었고,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다른 국가들도 여기에 합승했다. 우리가 산업 문명이라고
부르게 될 이 자동차에 올라탄 국가들은 모두 매우 특별한 길을 걷는다. 단계적으로 천천히 시동을 걸
었지만 이 자동차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 속도를 냈고, ‘대가속’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파르
게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 엔진이 과열되었다는 몇몇 징후가 나타났고 속도계의 바늘
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속도를 계속 높여야 할까? 안정시켜야 할까? 다시 낮춰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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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지수 함수의 세계: 우리는 기하급수적 성장을 상상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물론 우리는 위를 향해 뻗
어 가는 곡선, 즉 성장 곡선을 자주 접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까! 사람들은 산술적 성장,
예를 들어 한 달에 1센티미터씩 자라는 머리카락은 쉽게 상상하지만 기하급수적 성장은 상상하기 힘들
어한다. 참고로 수학에서 지수 함수는 하늘까지 상승한다.
현실 세계, 즉 지구에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천장이 있다. 생태학에서는 이 천장을 생태계의 수용 능
력(K로 표시)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시스템이 지수에 반응하는 방식은 3가지가 있다. 초원
에서 번식하는 토끼 개체군을 예로 들어 보자. 이 개체군은 천장에 닿기 전 천천히 안정되어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환경과 균형을 이루거나, 개체군이 초원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 한계치를 초과한 다음
그 초원을 가볍게 파괴하는 범위 내에서 안정되거나, 또는 천장을 뚫고 계속해서 증가해 초원을 초토
화하고 뒤이어 토끼 개체군이 붕괴한다.
앞의 3가지 이론적 도표는 세 시대를 설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첫 번째 도표는 1970년대의 정치 생
태계를 나타내는데, 그 당시 우리는 여전히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경로를 따라갈 시간과 가능성이
있었다. 두 번째 도표는 1990년대의 생태계를 나타내는데, 생태 발자국이라는 개념 덕분에 우리는 지구
가 전체적인 수용 능력을 초과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후 매년 인류가 ‘하나 이상의 행성을 소비’할
만큼 생태계는 악화하고 있다. 세 번째 도표는 2010년대의 생태계를 나타내는데, 20년 전부터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면서 우리를 수용하고 버텨 내는 지구 시스템을 훨씬 더 꾸준한 속도로 파괴하고 있다. 낙
관론자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분명 붕괴의 범위에 들어가 있다.
전반적인 가속화: 우리는 사회의 수많은 매개 변수와 지구에 가하는 충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인구수, GDP, 물과 에너지 소비, 비료 사용, 엔진 또는 전화기 생산, 관
광,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 홍수 빈도, 생태계 훼손, 산림 파괴, 종의 멸종률 등 그 목록은 끝이 없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이 ‘계기판’은 인류가 지구 시스템의 주요 생물 지구 화학적 순환을 엉망
으로 만드는 세력으로 부상한 시기를 가리키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폭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몇 인류세 전문가는 인류세의 시작을
산업 혁명 기간인 19세기 중반으로 추정한다. 이 시기에 석탄과 증기 기관이 널리 보급되어 1840년대
에는 철도가 급성장했다. 그 후에 최초의 유전이 발견되었다. 열-기계와 기술 과학의 시대는 농업과 수
공업의 시대를 대체했다. 빠르고 저렴한 운송 수단의 출현으로 무역로가 열리고 거리감이 사라졌다.
산업화한 세계에서 자동 생산 라인의 지옥 같은 속도가 보편화하고, 물질적 편리함의 수준이 전반적으
로 서서히 높아졌다. 공중위생, 식품 및 의약품의 혁신은 수명을 연장하고 사망률을 극적으로 감소시
켰다. 그 결과 지난 8000년 동안 약 1000년마다 2배씩 증가했던 세계 인구가 단 1세기 만에 2배로
늘어났다! 1830년 10억 명이던 인구가 1930년에는 20억 명이 된 것이다. 그런 다음 가속도가 붙어 인
구가 또다시 2배가 되는 데는 4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970년에는 40억 명, 오늘날에는 70억 명으로
늘었다. 20세기가 진행되는 동안, 에너지 소비는 10배, 산업 광물 채취는 27배, 자재 사용은 34배 증
가했다. 우리가 불러일으킨 변화의 규모와 속도는 역사상 유례가 없다.
이런 엄청난 가속화는 사회적 차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독일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는
이러한 사회적 가속화의 세 가지 측면에 대해 설명한다. 첫 번째는 기술의 가속화다. “이동 및 통신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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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도의 증가는 ‘공간 축소’라는 현대적 시간 경험을 가능케 했는데, 공간적 거리는 그걸 가로지르는 것이
더 빠르고 단순해짐에 따라 실제로 더 짧아진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는 사회적 변화의 가속화, 즉 우
리의 습관, 관계 유형이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웃이 이사 왔다가 점
점 더 빨리 이사 가고, 직장 동료나 인생 파트너와 함께하는 기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우리는
진정한 ‘현재의 축소’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생활 속도의 가속화다. 이는 기술 및 사회적 가속화에 대한 반응으로 더 빨리 생활하기 위
해 노력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해야 하는 (또는 하고 싶어 하는) 일이 계속 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
서 “극심한 ‘시간 부족’은 현대 사회의 영구적인 상태가 되었다.” 그 결과는? 행복에 대한 상실감, 번
아웃 및 우울증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리고 진보의 절정에서,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감당하
고 있는 이 사회적 가속화는 더 이상 우리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려는 야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단지 현상 유지에 기여할 뿐이다.
한계는 어디일까: 따라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천장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
계속 가속할 능력이 있을까? 기하급수적 성장에 한계가 있을까? 그렇다면 붕괴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았을까? 앞에 언급한 자동차에 대한 단순한 비유는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위기’라고 부
르자)를 명확하게 구별하게끔 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2가지 유형의 한계, 정확하게는 한계와 경계
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계는 열역학 법칙에 부딪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연료 탱크의
문제다. 한편 경계는 건널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우리는 이미 그 경계를
지나치고 나서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차량의 속도와 핸들링의 문제다.
우리 문명의 한계는 재생 불가능한 ‘비축’ 자원(화석 연료 및 광물)의 양과 재생 가능하지만 재생할 시
간을 갖기엔 지나치게 꾸준한 속도로 고갈되고 있는 ‘유동’ 자원(물, 목재, 식량 등)의 양에 따라 정해
진다. 엔진은 항상 충분히 효율적일 수 있지만, 연료 부족으로 인해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한편 우리 문명의 경계는 그 문명을 유지하는 시스템, 즉 기후, 지구 시스템의 거대한 순환 생
태계 등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파괴할 위험이 있어 넘지 말아야 할 문턱을 나타낸다. 자동차가 너무
빠른 속도로 달리면, 더 이상 도로의 세부 사항을 인식할 수 없어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이러한 위기들은 본질적으로 그 속성이 완전히 다르지만, 모두 속도를 높이고 있는 자동차라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각각의 한계와 경계는 그 자체로 문명을 심각하리만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문제는 동시에 여러 한계에 부딪히고 이미 여러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자
동차 그 자체는 수십 년이 지나면서 완벽해졌다. 훨씬 더 넓고 현대적이며 편안해졌지만, 그러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속도를 줄이거나 선회하는 것이 불가능한 데다 가속 페달이 바닥에 고정되고
조향 장치가 막혀 있다 더 곤란한 점은 자동차 내부가 극도로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우리 사회, 즉 열-산업 문명이고, 우리는 그 안에 타고 있다. 그리고 GPS는 햇볕이 잘 드는
목적지를 향해 맞춰져 있다. 그리고 휴식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자동차 실내에 편안하게 앉아
서 속도를 잊은 채, 길을 건너다 자동차에 치이는 생명체, 소모하는 엄청난 에너지, 배출하는 배기가스
의 양을 무시한다. 당신도 잘 알겠지만, 고속 도로를 타고 나면 중요한 것은 도착 예정 시간, 에어컨
온도, 라디오 프로그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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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1부에 대한 종합 평가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 정리해 보자. 우리 산업 문명은 재정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을 피하고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속도를 높이고 복잡해졌다. 에너지 관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화석 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에 부채를 기반으로 극도로 불안정한 성장을 이룬 경제가 결합하
면서, 산업 문명은 폭발적으로 팽창해 왔다. 그러나 이제 지구 물리학적 한계나 경제적 한계로 인해
산업 문명의 성장이 멈추고 생산성이 감소하는 국면에 이르렀다. 한계를 밀어내기 위해 오랫동안 사용
해 온 기술은 더 이상 빠른 성장을 보장하지 못하고 혁신적 대안을 방해함으로써, 지금의 산업 문명을
지속 불가능한 궤도에 가두고 있다.
이와 동시에 경제 및 생태계의 복합적인 시스템은 특정 한계를 넘어서면 사전에 알 수 없었던 새로운
평형 상태로 갑자기 떨어지거나 심지어 붕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
는 몇몇 ‘경계’를 사회 차원에서, 그리고 종 차원에서 이미 넘어섰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고 있다.
지구 기후 시스템, 수많은 생태계 시스템, 지구의 생물 지리 화학적 대순환 시스템은 우리가 알고 있
던 안정적 범위를 벗어나 거대하고 급격한 혼란을 겪을 것이며, 이는 다시 산업 사회와 인류 그리고
다른 종들까지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시대의 특징일 수도 있는 모순 어쩌면 문명이 한계를 향해 돌진하고 경계를 넘었던 모든 시대
의 특징일 것이다 은 문명이 강력할수록 더 무너지기 쉽다는 것이다. 인류의 절반 이상이 누리며 살
고 있는 현대의 세계화한 정치ㆍ사회ㆍ경제 시스템은 자원을 심각하게 고갈시키고, 기후와 생태계 시
스템을 교란한다. 과거에 성장을 가능케 했으며 오늘날 안정성을 보장해 주고 생존을 가능케 해 주는
조건들마저 위험할 정도로 파괴하고 있다. 동시에 점점 더 세계화하고 상호 연결된 우리 문명의 구조
는 시스템 안팎의 사소한 혼란에도 매우 취약해져 시스템 붕괴의 역학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다. 아주 심각한 기후 및 생태계 교란(종을 위협하는 유일한 요
인)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려면, 이제 엔진을 꺼야 한다. 위험 요소를 없애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유
일한 길은 화석 연료의 생산과 소비를 중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 그리고 아마도 정치적
ㆍ사회적 붕괴를 초래하거나, 심지어 열-산업 문명을 끝장나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산업 문명의 엔진을 보존하려면,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경계를 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계속 탐
사하고 발굴하고 생산하고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필연적으로 기후, 생태, 생물 지구
물리학적 전환점으로 이어지고 자원의 정점에 부딪혀 궁극적으로 경제적 붕괴라는 동일한 결과를 초래
한다. 인류, 그리고 살아 있는 거의 모든 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음 사실을 확신한다. ① 우리 사회의 물리적 성장은 가까운 장래에 멈출 것이다. ②
우리는 지구 시스템 전체를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바꾸어 놓았다. (적어도 지질학적 차원에서는 그러
하다.) ③ 우리는 매우 불안정하고 ‘비선형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이 미래에는 대규모 혼란
이 일상화할 것이다. ④ 우리는 이제 잠재적으로 글로벌 시스템 붕괴를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많은 경제학자, 기후학자, 물리학자, 농업경제학자, 생태학자, 군인, 언론인, 철학자, 심지어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사회가 붕괴할 수 있다고 추론한다. 다시 자동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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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비유하면, 우리는 가속 페달을 이렇게 세게 밟은 적이 없었다. 연료 표시등에는 이미 경고 표시가 들
어왔다. 속도에 취한 채 우리는 표지가 설치된 경로를 벗어나 장애물로 가득 차서 시야가 거의 확보되
지 않는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고 있다. 일부 승객은 자동차가 매우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운전대는 그들의 손에 있지 않다. 운전자는 계속해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위기’를 하나 혹은 여러 개씩 따로 떼어 내지 않고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보면, 우리 시대를 훨씬 수준
높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예는 흥미롭다. (괄호는 해당 위기를 나타낸다.) 숲의
파괴(생물 다양성)는 바이러스(건강)의 확산에 유리했지만, 다수의 사망자와 일자리를 잃은 사람과 봉
쇄 조치로 인해 경제 활동(경제)을 지연시켰고, 공급망(기반 시설)과 수확(식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
했다. 그 결과 전염병이 시작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서아프리카에서 100만 명 넘는 사람이 기아
의 위협을 받았고, 기니의 보건 시스템은 매우 취약해졌다(기반 시설).
산업 보건 시스템이 더 이상 대응을 하지 못하면, 전염병은 어떻게 될까? 이와 마찬가지로, 피크 오일
과 같은 경고에 직면했을 때,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는 과학 등의 분야에서는 자발적
으로 ‘해결책’을 찾고자 했지만, 그것이 종종 인접한 ‘위기들’과 양립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모
든 영역 간의 상호 연결성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러한 함정을 피하거나 더 많은 에너지와 원자재를
소비해 상황이 악화하는 걸 막을 기술적 ‘해결책’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이 방대하고 압도적인 그림은 일부 연구가들의 결론이 우연히 틀렸거나 수치가 잘못되었거나 해석에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거의 동일한 추론을 유지한다. 이상적인 세상을 상상해 보자. 그곳에서 우리는
금융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이것이 허리케인의 빈도, 석유의 고갈, 공급망의 길이 또는 동물 종
의 멸종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우리가 내일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발견한
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인산염 광물의 고갈, 인구 이동, 글로벌 시스템의 위험을 피할 수 있을까?
산업 문명의 모습을 몇 년 더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아마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질 것이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모든 ‘위기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위기가 일종의 거대한 ‘도미노 효과’ 같은 연쇄 효과로
다른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좌절감과 놀라움뿐만 아니라, 얇
은 얼음으로 뒤덮인 거대한 호수 표면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지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 멈춰 서면, 사람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칠 것
이다. “계속해! 뛰어! 속도를 높여! 멈추지 마!”
하지만 재앙 관련 뉴스가 아무리 쏟아지더라도 세계 경제 시스템, 하물며 열-산업 문명 또는 지구 시
스템은 아직 붕괴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위기를 통해 성장하고 강해지는 성향이 있다.
의심의 여지가 남아 있을 때 붕괴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다. 그리고 이
것은 사실이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살아남는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심리학적, 정치적, 고고학적
성격의 많은 질문을 제기한다. 그 전에 우리는 시간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모든 게 붕괴할 거라고 말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한 사건이 임박했다는 증거는 여전히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문명은 언젠
가 붕괴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현세대인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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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2부 그렇다면 언제인가
전조 신호를 감지할 수 있을까
예측 불가능한 변화는 의사 결정자나 전략 전문가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선택은 일
반적으로 사건을 예측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한 예측 없이는 재정적으로나
인도적으로 또는 기술적으로 적시에 적절한 장소에 투자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재
앙적 변화의 전조 신호를 감지해 이를 예측하고 적시에 대응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스템에서 극도로 취약한 부분이 어디인지, 시스템의 어느 부분이 ‘작은 불씨’,
즉 티핑 포인트에 접근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조한 지중해 목초지
를 공중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초목이 불규칙한 덩어리 형태로 보인다면, 이 생태계가 머지않아 복구하
기 힘든 사막화 상태가 되리라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조기 경보 신호를 연구하는 분야는 계속 성
장하고 있다.
붕괴하려는 시스템의 ‘소음’: ‘위기에 처한’ 시스템에서 자주 관찰할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작은 장애
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어떤 충격 후 회복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회복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임계 감속’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시스템의 취약 정도와 전
환이 임박했음을 나타내는 일시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수학적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초기 경보 신호 분야는 상호 작용 네트워크 전문가들이 이루어 낸 대단한 발전 덕분에, 다양
한 종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네트워크가 교란에 노출될 경우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꽃이 만발한 풀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종의 수분 매개체(꿀벌, 파리, 나비 등)와 모든 종의
수분 식물 사이의 거대한 관계망을 상상해 보자. 여기 (한 꽃만 수분하는) 전문 종들과 (여러 꽃을 수
분하는) 일반 종들이 있다. 상호 작용하는 이 복잡한 네트워크는 교란(예를 들면, 살충제로 인한 특정
수분 매개체의 소멸)에 대해 매우 회복력 있는 구조다. 하지만 관찰과 실험을 통해 이러한 네트워크는
그 네트워크를 갑자기 붕괴시킬 수 있는 임곗값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좀 더 일반적으로 복합적인 네트워크는 구성 요소들 간의 이질성과 연계성에 매우 민감한 것으로 나타
났다. 이질적 요소들의 모듈식 네트워크(독립적인 부품들로 약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충격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견딜 것인데, 이 네트워크는 부분적 손실만 입으면서 서서히 약해진다. 반대로 균질한 요
소들이 긴밀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는 요소 간 연계성을 통해 부분적 손실을 흡수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변화에 저항한다. 하지만 교란이 길어지면 폭포 효과로 인해 재앙적 변화를 겪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균질한 요소들의 연계성 높은 시스템이 보여 주는 회복력은 속임수일 수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은 그것이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떡갈나무처럼 저
항력이 강하지만, 압력이 지나치게 커지면 부러지고 만다. 반대로 이질적 요소들이 모듈식으로 구성된
시스템은 탄력적이기 때문에 구부러질 뿐 부러지지 않는다. 이러한 시스템은 갈대처럼 적응한다.
이와 같은 자연 시스템과 인간 시스템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다. 이런 발견은 특히 금융 및 경제 분야
에서 탄력적인 사회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네트워크 이론이 큰 도움을 준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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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도, 신뢰할 수 있는 경보 신호를 찾기 전에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많다. 현재 지표는 사회 시스템의 복
합성을 감안할 때 그 전환점을 예측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조기 경보 신호를 개발하려는 시도
는 지금으로서는 실패했거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상황이 ‘정상’일 경우라면 경
제 펀더멘털에 관련 지표를 이용할 수 있지만, 임곗값에 도달하면 아무것도 평가할 수 없다. 금융 시
스템의 심각한 침체 징후를 찾아보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대신, 아직 일반화할 수 없는
다른 단서들을 찾아냈다. 요컨대 금융 위기에 대한 경보 신호를 연구하면 그 작동 방식을 더 잘 이해
하는 데 도움은 되지만, 그것이 전환점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늘 불확실성이 남을 것이다: 붕괴론에서, 우리는 모든 걸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전반적 붕괴가 임박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 회의론자들은 항상 이를 근거로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반면 과학자들은 우리가 이미 경계를 심
각하게 넘지 않았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즉, 오늘날 인류가 살고 있는 공간이 안정적이고 안전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증할 수 없다. 따라서 비관론자가 끼어들 여지는 항상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2009년 라퀼라 지진을 기억하는가. 과학자들은 잠재적 지진의 가능성을 추정하지 못했다는 이유
로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앙은 측정 장비와 상관없이 발생한다.
또한 2008년 금융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매우 통찰력 있는 일부 논평가들이 경보를 울렸지만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미국 부동산 시장의 투기 거품이나 전통적으로 안
전 자산 역할을 하던 금값의 급등 같은 위기가 임박했다는 많은 징후를 직관적으로 포착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재앙은 측정 장비 없이 발생
했고, 내부 고발자의 직감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아내야 할까? 그리고 누구를 믿
어야 할까?
경제적 계산이나 비용-이익 분석은 쓸모가 없다! “우리가 한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우리는 처벌도
받지 않고 생태계를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불해야 할 비용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이익이다!
그리고 장피에르 뒤피가 지적했듯 “위태로운 한계에 근접하면 비용-이익 분석은 웃음거리일 뿐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한계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 하지만 한계가 어디인지조차 모른다
는 사실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무지는 과학적 지식을 쌓아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복
합적인 시스템의 본질 그 자체에 내재해 있다. 즉, 불확실한 시대에는 직관이 중요하다.
3부 붕괴론
그리고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산업 문명의 붕괴가 제기하는 진정한 문제는 정확한 날짜나 기간, 속도를 넘어 개인적 차
원에서 우리가 예측하는 방식으로 고통을 겪거나 죽을지 여부다. 또 사회적 차원에서는 우리 후손, 그
리고 심지어 우리 ‘문화’가 지속할 수 있을지의 문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예상보다 더 빨리 멈출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붕괴, 그리고 붕괴에 대한 연구는 인간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초보 단계인 붕괴론의 각 분야, 즉 인구통계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이라는
문을 통해 이 주제에 대해 살펴보아야 하는데, 정치학이라는 문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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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믿게 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붕괴의 정치학): 건설적 행동, 가능하다면 비폭력적 행동은 개
별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특정 심리적 단계를 거친 후에야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자. 행동
을 취하기 전에 모든 사람이 슬퍼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첫째,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
이고, 둘째, 인간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동은 과정의 끝이 아니라, ‘내적 전
환’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매일 만족감을 주고 낙천적 태도를 유지하게 함으로써 의식하기 시작하
는 순간부터 느끼게 되는 불편한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해 주는 것은 바로 행동이다.
처음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작은 행동으로 시작하지만, 그로 인해 얻은 만족감이 그다음에 좀 더 실질
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행동할 때, 우리의 상상은 변화한다. 각자의 선호도와 개인사에 따
라 우리 중 일부는 폭력적 봉기(어느 정도 해방을 위한 것이다)를 선택하고, 또 일부는 정체성을 감추
거나 도망가는 방법을 선택하고, 또 다른 일부는 비폭력적 대안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상상 때
문이다. 이렇게 해서 ‘붕괴의 모자이크’는 온갖 색상을 띤다.
우리가 어떤 단계에 있든, 그 단계에 포함된 모순과 무력감을 느끼며 ‘어제의 세계’에 몸을 담그고 계
속 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붕괴가 진행되는 사회적 환경에 따라 붕괴를 생각하고 행동할 기
회를 발견할 것이다. 일단 본질적인 것은 붕괴를 믿는다고 해서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이 고통과 불확실성의 시기를 거쳐 가기 위해 감정적, 정서
적 위로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환: 예측과 회복력] 붕괴에 대한 상상에 기반을 둔 정치 운동은 많지 않다. 그중 가장 건설적이고
평화적인 정치 운동은 전환과 탈성장 운동이다. 전환과 탈성장의 원칙은 재앙을 앞서감으로써 이를 깨
뜨리는 것이다. 화석 연료의 고갈, 기후 교란, 식량 공급의 중단 등을 앞서가는 것이 ‘전환’이나 성장
반대 프로그램의 사례다. (두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부류는 종종 같은 사람들이다.) 지속 가능성에 바탕
을 둔 안정적 국가 경제를 구축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해도, 지역 차원에서 경제적 충격을 더 잘 견
딜 수 있는 작고 탄력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결코 너무 늦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환 이니셔티브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2006년 영국에서 시작된 전환 이니셔티브(이전의
‘전환 도시’)는 10년도 안 되는 동안 5개 대륙에서 수천 개로 늘어났다. 많은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이
운동은 이미 관련된 사람들의 삶에 가시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생산을 위한 시민
협동조합, 지속 가능한 지역적 식량 시스템, 새로운 협력 경제 모델 등 많은 예가 있다.
전환 이니셔티브는 재앙주의와 낙관주의의 입장을 동시에 취한다. 즉, 통찰력이 있으며 실용적이다.
통찰력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재난에 대해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
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영원한 성장의 신화와 묵시록의 신화를 포기한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이미 구체적 대안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영토 차원에서 전환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f: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 또는 중심 사상)는 ‘지역적 회
복력’, 즉 매우 다양한 조직적 교란(식량, 에너지, 사회 질서, 기후 등)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지역
공동체의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거시 경제적 차원에서는 더 이상 부채 시스템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
라 자발적 절제, 공정한 분배, 혹은 배급(앞의 두 가지가 혼합된 형태) 같은 훨씬 더 합리적인 패러다
임에 기반을 둔 ‘에너지 감축’ 경제 또는 탈성장 경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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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한편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초기 단계에 있으며, 어떤 것도 미리 얻을 수 없다. 실제로 경제 성장 없이
유연하고 자발적인 방식으로 경제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 사회가 장기
간에 걸쳐 자발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것 역시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붕괴를 피하기 위해 사회가 자
발적으로 제약을 가한 역사적 사례는 극히 드물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인용한
태평양의 작은 섬 티코피아(Tikopia)다. 이곳 주민들은 나무에 대한 숭배와 극도로 엄격한 산아 제한
정책 덕분에 섬의 수용력 한계보다 3000년 이상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경제적ㆍ
사회적 충격이 처음으로 나타나자마자 내일의 세계를 미리 보여 주는 항의/창조 운동 같은 대안이 그
리스ㆍ포르투갈ㆍ에스파냐 등지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전환의 개념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이는 진보가 계속될 것이라는 상상을 근본적으로
막지는 않지만, 재앙주의적 통찰력을 펼칠 수 있게끔 한다. 이를 통해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공동의
실천 방식을 다시 찾아내고 긍정적인 상상을 공유할 수 있다. 전환주의자들은 정부가 나서기를 기다리
지 않고 붕괴를 비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지금부터 찾고 있다.
[위대한 플러그 뽑기 정책] 전환은 궁극적으로 ‘플러그 뽑기’라고 볼 수 있다. 산업 시스템으로부터 스
스로 플러그를 뽑는 것은 결핍을 견뎌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기 전에 그 사업 시스템이 제공하는 모든
것(가공식품, 의류, 빠른 이동, 잡화, 전자 제품 등)을 미리 포기하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너무 빨리 플
러그를 뽑아 버리는 것 역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실제로 부유한 나라의 국민 중
산업 시스템의 도움 없이 음식을 먹고, 집을 짓고, 움직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문제는 플러그를 뽑기 전에 생존 수단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식과 기술을 준비하는 데 있다.
이때부터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은 반드시 집단으로 이루어진다. 화석 연료가 없을 때 그 부족
을 벌충하기 위해 제공해야 하는 노동량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석유 1배럴은 약 2만 4000시간의 인간
노동력에 해당한다.) 로테크라는 자율적이고 좀 더 탄력적인 작은 시스템에 일단 ‘플러그를 꽂으면’ 전
환주의자 집단은 추락하면서 그들을 휩쓸고 갈 위험이 있는 대형 시스템으로부터 더 차분하게 ‘플러그
를 뽑을’ 수 있다. 더 이상 슈퍼마켓에 가지 않고, 가족당 자동차를 한 대씩 구입하지 않고, 중국산 옷
을 구입하지 않는 것. 이는 작은 실천적 승리이지만 위대한 상징적 승리에 해당한다.
[전쟁에서처럼 사람들을 동원하라] 전환 운동을 대규모로 강력하게 조직한다면 이점을 얻을 수 있다.
1990년대 생태 농업으로 전환한 쿠바의 놀라운 예는 대규모 전환의 속도와 위력에 있어 당국의 역할
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쿠바 정부는 ‘특별 기간’을 지정해 재난의 규모를 파악하고 전환에 찬
성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유럽과 다른 주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것이 여전히 가능할까? 유
럽 주요 기관에 대한 민간 기업의 로비 위력을 알고 있는 우리 세대는 조직적인 대규모 변화가 가능했
던 사례를 충분히 찾지 못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중에는 분명히 이런 일이 가능했다. 정부
는 공동의 목표, 즉 적을 격멸하기 위해 상당한 힘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1940년대에 미국은 전쟁
에 엄청난 노력을 들이느라 “소비와 낭비의 문화를 잠시 포기”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후 재앙과 에너지 및 경제적 충격이 정
치 시스템에 반드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국가 신용도가 하락하고 임금과
연금을 더 이상 제때 지급하지 못하거나 식량 부족이 너무 심각해지면, 정치 체제가 유지된다는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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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이 없다. 참고로 탈성장 지지자와 전환주의자는 그들이 지역적 규모로 행동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참
여적이면서 협력적인 거버넌스(governance) 관행을 개발하며 민주주의적 이상을 보존할 수 있을지 매
우 우려하고 있다.
정치학자 뤽 세말이 분석하듯 이러한 운동의 독창성은 “재앙주의적 방침이 지역적 정치 논쟁을 차단하
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통제된 방식으로 공평하게 분배된 지역 에너지 절감의 실천 방식에 대해 다
시 논쟁할 수 있게끔 하는 기회로 여겨진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테고, 다른 사람들은 그걸 더욱 민주
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테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게 모든 불행의 원인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붕
괴의 정치학’이라는 이 이론적이고 실용적인 분야에서 민주주의 문제는 확실히 가볍지 않다. 이런 측
면에서 참여 및 직접 민주주의, 노동자 자주 관리, 연방주의 및 자치 등의 정치적 경험은 이러한 전환
네트워크에 매우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이론적 질문은 아직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소규모의 지역 민주주의로 이루어진
모자이크가 여전히 민주적 프로젝트일 수 있을까? 재앙주의적 태도가 민주적 절차와 양립할 수 있을
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재난의 시기에 활동하는 동안 우리의 재산을 여전히 충분히 소유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가 설명한 문제들, 즉 민주적 행동과 재앙의 긴급함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도록 평온하고 침착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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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사회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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