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육계》는 내용이 간략하지만 매우 실용적이라 군사 외에 조직이나 경영에서도 바로바로 활용
할 수 있다. 또한 역대 병법서를 비롯해 다양한 전적에서 전략 전술의 정수들만 추출하여 승전계
(勝戰計)-적전계(敵戰計)-공전계(功戰計)-혼전계(混戰計)-병전계(幷戰計)-패전계(敗戰計)의 여섯 개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도록 체계를 잡은 것도 큰 특징이다. 여기에 역대로 많
은 연구자가 36계 각각에 생생하고 다양한 활용 사례를 보탬으로써 그 분량에 비해 풍부한 실천
이론과 경험을 축적해 온 훌륭한 병법서이자 실용서라 할 수 있다.
삼십육계
▣ Short Summary
병법서로서 《36계》는 오랫동안 정통에서 벗어난 기서로 취급받아 왔다. 그러나 지금은 엄연히 종합적
성격의 병서로 분류된다. 7천여 자에 불과하지만 최근 《36계》는 ‘천하제일의 기만술’, ‘출세를 위한 최
고의 수단’, ‘세계 제일의 심리서’, ‘최고의 비즈니스 지혜’ 같은 별명으로 불릴 만큼 활용도 만점의 실
용서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 《36계》는 남조 시대 송나라의 무장 단도제와 연계해 왔다. 이와 관련해서는 《남사》 <단
도제전>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유송의 정남대장군 단도제가 북위 정벌에 나섰다. 그런
데 먼 길을 행군하느라 병사들은 지치고 식량도 제때 보급되지 않아 상당한 곤경을 치렀다. 역성에 이
르자 마침내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적이 눈치챈다면 큰일이었다. 단도제는 모
래를 가마니에 담아 식량처럼 쌓으면서 병사들에게 ‘양식 가마니 수를 큰 소리로 세게’ 하는 ‘창주양사
(唱籌量沙)’의 모략으로 적을 속이고 무사히 귀환했다. 단도제의 모략적 재능을 잘 보여 주는 본보기이
자 36계의 ‘주위상계’를 연상시키는 기록이다.
그러나 단도제가 체계적인 병법서를 남긴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36책’은 계책이 많다는 뜻이지, 계
책이 36가지라는 뜻은 아니다. 뒷날 완성된 《36계》도 군사 모략이 36개라는 것이 아니라 음양 학설
중 태음에 해당하는 수인 6X6=36이란 뜻으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모략을 비유했을 뿐이다. 《36
계》가 책으로 정리되어 퍼진 것은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 연간으로 추정된다.
《36계》는 내용이 간략하지만 매우 실용적이라 군사 외에 조직이나 경영에서도 바로바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역대 병법서를 비롯해 다양한 기록에서 전략 전술의 정수들만 추출하여 승전계-적전계-공
전계-혼전계-병전계-패전계의 여섯 개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도록 체계를 잡은
것도 큰 특징이다. 여기에 역대로 많은 연구자가 36계 각각에 생생하고 다양한 활용 사례를 보탬으로
써 그 분량에 비해 풍부한 실천 이론과 경험을 축적해 온 훌륭한 병법서이자 실용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36계》를 번역하고 각 계책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역사 사례를 위주로 구성했다. 다만 《36
계》의 원문 전체를 고지식하게 번역하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네 글자 내지 세 글자로 이루
어진 서른여섯 개의 계책과 그에 딸린 짧은 부연 설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오랜 세월 많은 변화를 겪었
기 때문에 굳이 번역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례도 계속 보태져 왔기 때문에 출입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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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게다가 제대로 된 판본이 없기 때문에 원형을 확인할 길이 없다.
따라서 편저자는 서른여섯 개의 계책과 그에 딸린 짧은 설명만 우리 글로 옮겨 첫머리에 제시하고, 그
에 대한 간략한 해설을 통해 각 계책의 인상을 선명하게 남기기로 했다. 이어서 다양한 역사 사례를
제시하고, 필요할 경우 이 사례에 대한 보충 설명을 했다. 다시 사례를 제시하고 전체를 마무리하는
해설로 각 계책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편저자는 여기에 《삼국지》 사례와 경제 경영 사례를 더해 해
당 계책에 대한 인상을 한 번 더 강화하고자 했다. 36개 전략에 함축된 의미심장한 인생 비결과 경영
비책을 발견하여 이를 잘 활용한다면 여러분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차례
서장
1.《36계》는 어떤 병법서인가?
2.《36계》의 기조(基調)와 6계 개관
Ⅰ장 승전계勝戰計
제1계 만천과해瞞天過海 / 제2계 위위구조圍魏救趙 / 제3계 차도살인借刀殺人
제4계 이일대로以逸待勞 / 제5계 진화타겁趁火打劫 / 제6계 성동격서聲東擊西
Ⅱ장 적전계敵戰計
제7계 무중생유無中生有 / 제8계 암도진창暗渡陳倉 / 제9계 격안관화隔岸觀火
제10계 소리장도笑裏藏刀 / 제11계 이대도강李代桃僵 / 제12계 순수견양順手牽羊
Ⅲ장 공전계功戰計
제13계 타초경사打草驚蛇 / 제14계 차시환혼借屍還魂 / 제15계 조호리산調虎離山
제16계 욕금고종欲擒故縱 / 제17계 포전인옥抛塼引玉 / 제18계 금적금왕擒賊擒王
Ⅳ장 혼전계混戰計
제19계 부저추신釜底抽薪 / 제20계 혼수모어混水摸魚 / 제21계 금선탈각金蟬脫殼
제22계 관문착적關門捉賊 / 제23계 원교근공遠交近攻 / 제24계 가도벌괵假道伐虢
Ⅴ장 병전계幷戰計
제25계 투량환주偸樑換柱 / 제26계 지상매괴指桑罵槐 / 제27계 가치부전假痴不癲
제28계 상옥추제上屋抽梯 / 제29계 수상개화樹上開花 / 제30계 반객위주反客爲主
Ⅵ장 패전계敗戰計
제31계 미인계美人計 / 제32계 공성계空城計 / 제33계 반간계反間計
제34계 고육계苦肉計 / 제35계 연환계連環計 / 제36계 주위상계走爲上計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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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Ⅰ장 승전계勝戰計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 방비가 지나치게 주도면밀하면 왕왕 투지가 느슨해지고 전투력이 약해
질 수 있다. 늘 보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음은 양 안에 있지 양의 대립 면에 있지 않다. 지극한 양
이요 지극한 음이다.”
36계 전체의 첫 계인 ‘만천과해’는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는 그 뜻부터가 거창하다. 하지만 그
의미는 대단히 심장하다. 모든 사물의 상대성에 주목하여 이를 음양의 이치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음양은 중국 고대의 전통 철학과 문화 사상의 기점이다. 음양 사상은 거대한 우주부터 먼지와 티끌까
지 미치며, 의식 형태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음양 학설은 우주 만물을 대립된 통일체로 보는
소박한 변증 사상을 나타낸다. 음(陰)과 양(陽) 두 글자는 일찍이 갑골문과 금문에 보이지만 음기와 양
기로서의 음양 학설은 도가의 창시자인 초나라 사람 노자에 의해 제창되었다.
이러한 음양 사상은 군사 방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온갖 요인 때문에 매 순간 바뀔 수 있는
지극히 가변적인 전투 상황에서 그에 적절하게 대처하려면 무엇보다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임기응변의
논리적 근거로서 음양의 변화라는 변증법 사상이 상당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36계는 이런 음양 사상을
가장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만천과해’에서 말하는 음은 기밀이나 은폐를 가리키며 양은 공개나 폭로를 말한다. ‘음은 양 안에 있지
양의 대립 면에 있지 않다’는 대목을 병법에서 보자면, 은밀한 계책은 왕왕 공개된 사물 속에 숨어 있
지 공개된 사물의 대립 면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흔히 대단한 기밀은 완전히 공개된 것 속
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이 모략은 어떤 의도를 실체가 너무도 분명한 사물 속에 감추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보이는 사물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바로 그런 것에 자신의 의도를 숨겨 목적을 달성한다. ‘만천과
해’의 원래 뜻은 ‘하늘(또는 황제)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는 것이다. 이 말과 관련된 이야기는 명나라
때의 《영락대전》 56 <설인귀정요사략>에 보인다.
당 태종이 몸소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장사귀를 사령관으로 삼아 요동을 지나 망망대해에 이르렀다.
여기서 태종은 바다의 위세에 질려 그만 출정을 후회하며 각부 사령관을 불러 놓고는 ‘바다를 건널 작
전’을 물었다. 이때 설인귀와 장사귀는 꾀를 내어 주저하는 태종을 속이기로 했다. 바다의 변화를 잘
아는 노인을 시켜 태종을 지상의 막사와 똑같이 생긴 배로 모신 것이다. 태종은 거기가 배가 아니라
지상인 줄 알았다. 배가 바다로 나가자 이윽고 사방에서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리면서 술잔이 흔
들리고 몸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느낌이 든 태종은 장막을 걷고 밖을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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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신이 망망한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태종은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러자 장사귀가 일어나 “실은 신이 생각해 낸 꾀입니다. 바람의 힘을 얻어 30만 대
군이 바다를 건너 동쪽 연안에 도착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과연 태종은 배 위에 있었고, 30만 병
사도 동쪽 해안을 향해 떠나고 있었다.
‘만천과해’란 바로 이 고사를 개괄한 것이다. 이 계책은 가짜로 진짜를 감추는 ‘의병계’의 일종이며 군
대의 결집, 공격 시기, 공격 장소 등을 위장하는 데 활용된다.
《수서》 <하약필전>에 실린 이야기를 보자. 수 문제 때인 588년, 수나라는 진을 대거 공격했다. 수의
사령관 하약필은 대군을 이끌고 광릉을 나와 과주에서 강을 건너 진을 공격했다. 하약필은 좋은 배를
많이 구입해 숨겨 놓고는 부서진 배 50~60척을 강가에 내놓아 진나라 정찰대의 눈에 쉽게 띄도록 했
다. 이를 본 진의 군대는 수나라 군에 제대로 된 배가 없어 강을 건너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하약필은 전투에 앞서 강가의 수비대를 수시로 교대시키고 재배치하는 한편, 매번 바뀌는 수비대
는 반드시 먼저 광릉에 집결시켜 놓고는 거창하게 사열식을 가졌다. 이런 움직임을 알아챈 진군 쪽에
서는 수군이 진격해 올 것으로 판단하고 총력을 기울여 수비를 강화했다. 그러나 잠시 후 결집한 군대
가 이미 철수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후 수군은 계속해서 부대를 교체했고, 진군도 이제는 이를 예사
로 여겨 더 이상 경계하지 않았다.
진의 경계 태세가 허술해졌음을 안 하약필은 일부 병사들을 보내 강가에서 사냥을 하게 하는 등 일부
러 허풍을 떨며 소란을 피웠다. 이 사실은 이내 진나라 쪽으로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이 행동 역시 진
의 경계 대상이 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역시 무관심해져 버렸다. 강을 지키는 진의 방어 태세도 흩
어진 것을 확인한 하약필은 숨겨 둔 빠른 배로 강을 건너 불의의 기습을 가함으로써 단숨에 경구를 점
령하고 진의 서주자사 황각도 사로잡았다.
‘만천과해’ 계략을 병법에서 운용할 때는 상대가 흔히 보면서도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점과 나태를 드러내게 해야 한다. 그리고 가상을 보여 진짜를 감추어 아군의 군사 행동을 은
폐한 뒤에 적기에 기습 등으로 승리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삼국지》 사례: 관우는 우금이 이끌던 7군을 물에 수장시키고 우금과 방덕을 사로잡는 등 눈부신 전
과를 올렸다. 관우는 적을 깔보기 시작했고, 그의 교만함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동오의 젊은 장수 육손
은 이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는 깍듯한 예의를 갖춰 관우에게 편지를 보내 관우의 자만심을 한껏
부추겼다. 안 그래도 육손을 한 수 아래로 무시하던 관우는 육손의 이런 저자세에 완전히 경계심을 풀
어 버렸다. 그는 강동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한 쪽으로 젖혀 놓고, 형주성에 주둔하는 병력의 대부분
을 번성으로 철수시켜 서쪽과 북쪽에 대비해 병력을 강화했다.
바로 이 틈을 타서 여몽이 형주를 기습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형주성을 접수해 버렸다. 육손은 철
저히 자신을 낮추고 관우를 치켜세우는 ‘만천과해’의 책략으로 하늘(관우)을 완벽하게 속이고 바다(형
주성)를 건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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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천과해’는 일상 속에, 평범함 속에, 같은 것 속에 나의 의도를 감춰서 일을 성사시키는 전략이다.
《손자병법》의 “수비에 능한 자는 땅 깊숙이 잠복하고, 공격에 능한 자는 하늘에서 떨어지듯 공격한
다.”라는 대목이 떠오른다.
Ⅱ장 적전계敵戰計
암도진창暗渡陳倉
“몰래 진창을 건넌다. 나의 (거짓) 움직임을 노출하여 적이 나의 거짓 움직임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내
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암도진창’은 《사기》 <회음후열전>과 《자치통감》 <한기>(권 9~10) 등의 기록에서 나왔다. <회음후
열전>에는 ‘암도진창(暗渡陳倉)’이 ‘겉으로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다’라는 ‘명수잔도(明修棧道)’와 함께
나온다. 이 모략은 정면 공격을 하는 척하거나 움직이는 척하는 양공 또는 양동으로 적을 현혹시켜 공
격 노선과 돌파점을 위장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만 작전이라 할 수 있다.
진나라가 막 무너지자 항우는 파ㆍ촉과 한중 세 군을 유방에게 주어 한왕으로 봉하고, 한중의 남정(지
금의 섬서성 한중)을 도읍으로 삼게 했다. 이렇게 해서 유방을 한쪽으로 치우친 산간 지방에 가둬 놓
고, 관중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에게 항복해 온 장수 장한ㆍ사마훈ㆍ동예에게 각각 줌으로써 유방이
동쪽으로 세력을 뻗쳐 나갈 수 있는 출로를 막았다. 항우는 초패왕이라 자처하고 아홉 군을 차지하는
한편, 장강 중하류와 회하 유역 일대의 넓고 비옥한 땅을 점령하여 팽성을 도성으로 정했다.
천하를 독차지하고 싶은 큰 야심을 가진 유방으로서는 항우의 이런 속셈이 마땅할 리 없었다. 다른 장
수들 역시 자신이 할당받은 좁은 땅덩어리가 불만이었다. 그러나 항우의 위세에 눌려 감히 대놓고 반
항하지 못한 채 자기 지역으로 부임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방도 어쩔 수 없이 병사를 이끌고 서쪽을
거슬러 올라 남정으로 갔다. 그러면서 장량의 계책대로 지나온 수백 리 잔도를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잔도란 험준한 절벽에 나무로 만들어 놓은 길을 말한다. 잔도를 불태워 버린 것은 방어에 유리하기 때
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항우를 현혹하는 데 있었다. 유방이 자기 근거지에서 더 이상 밖
으로 나올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항우의 경계를 늦추려는 것이었다.
남정에 도착한 유방은 소하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들여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았다. 그리고 동쪽으로
세력을 뻗쳐 천하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근거지와 그에 따른 군사 작전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한
신의 첫 단계 계획은 관중부터 차지하여 동쪽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고 초를 멸망시킬 근거지를 마
련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병사 수백 명을 보내 지난번에 불태워 버린 잔도를 복구했다. 관중 서부 지
구를 지키던 장한이 이 소식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하며 “그러게 누가 너희더러 잔도를 불태우라고 했
더냐? 그게 얼마나 큰일인데 겨우 병사 몇백이 달려들다니, 어느 세월에 다 복구하겠는가.”라고 비웃
었다. 장한은 유방과 한신의 행동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장한은 급한 보고를 받는다. 유방의 대군이 이미 관중에 들어와 진창을 점령했다는 것
이다. 장한은 이 보고를 믿지 않으려 했으나 사실로 밝혀지자 허둥지둥 전열을 가다듬어 방어를 서둘
렀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장한은 자살을 강요받았고, 관중 동쪽을 지키던 사마흔과 북부의 동예
도 잇달아 항복했다. ‘삼진’으로 불리던 관중 지구는 순식간에 유방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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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한신이 잔도를 복구하여 출격하려는 태세를 취했지만, 실제로는 유방이 이끄는 주력군이 몰
래 작은 길을 따라 진창을 습격해 장한이 대비되지 않은 틈을 타서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이것이 ‘겉
으로는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면서 몰래 진창을 건넌다’는 ‘명수잔도 암도진창’ 고사의 유래다.
‘암도진창’은 군사상 ‘기(奇)’와 ‘정(正)’의 변증 관계를 말한다. 이 둘은 대립하면서도 관계한다. 손자는
“무릇 전쟁의 수행은 정병(正兵)으로 적과 대치하고 기병(奇兵)으로 승리를 얻는 것이다.”(세편)라고 했
다. ‘정병’이란 병법 중의 정상적 원칙을 말하며, ‘기병’은 정상적 원칙과 상대되는 변칙적 용병법을 가
리킨다. 사실 ‘정’과 ‘기’도 서로 바뀔 수 있다. ‘명수잔도, 암도진창’은 ‘기’에서 ‘정’으로 바뀐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적시의 정면 강공도 ‘기’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삼국지》 사례: 삼국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 유비가 형주를 빌린다는 명목으로 형주를 차지
하자 손권은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손권은 고심 끝에 형주를 다시 찾기 위한 중책을 여몽에게 맡겼다.
여몽은 형주를 지키는 관우가 마침 조조의 번성을 공격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관우는 일부
병력을 형주에 남겨 후방을 단단히 지키게 했다.
여몽은 병을 가장하여 오나라 도성 건업으로 돌아갔다. 관우가 후방에 남긴 병력마저 전부 번성 공격
에 투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관우가 이대로 움직여 준다면 자신은 수로를 이용해 야밤에 몰래
북상하여 비어 있는 형주를 기습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여몽은 ‘중병’을 얻었고, 손권은 공개적으로 문
서를 보내 여몽을 건업으로 불러들였다. 관우는 이를 사실로 믿어서 후방 병력을 야금야금 번성 공격
에 투입하기 시작했고, 얼마 뒤 형주는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때가 왔음을 직감한 손권은 여몽에게 정예병 전부를 통솔하여 큰 전함에 매복시키고, 일부는 흰옷을
입은 백성으로 위장하여 노를 젓게 하라고 했다. 또한 배에 탄 사람은 전부 상인으로 분장시켜 밤낮으
로 배를 몰아 후방을 기습함으로써 순조롭게 형주성을 탈환했고, 맥성으로 도주하는 관우까지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렸다.
경영 사례: 기숙사에서 혼자 컴퓨터 사업을 하던 델은 유통업체를 우회하여 고객에게 직접 판매와 서
비스를 제공했다. 이 같은 전략이 다른 컴퓨터 기업들에게는 기습 공격이나 마찬가지로 속수무책이었
다. 델은 7년 만에 세계적 기업으로 컴퓨터 업계를 선도했다.
또한 일본 악기 회사의 대표 겐이치 가와카미는 서른여덟에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시장과 사업 상황
을 면밀히 분석한 끝에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국 음악 교실에 크게 투자한 것이다. 다양
한 악기반, 등급별 악기반, 연령별 악기반 등을 개설하는 데 적극 지원하는 한편 수준 높은 교사와 좋
은 교재도 함께 제공했다. 그 결과 전국의 악기반 대부분은 이 악기 회사의 악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 회사가 바로 세계 악기 시장, 특히 건반 악기 시장의 독보적 존재인 야마하다.
‘암도진창’의 전략은 전통 경로를 벗어나는 창의적 과단성이 관건이다. 경쟁 상대의 주의력을 분산시킬
수 있는 장치도 함께 마련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Ⅲ장 공전계功戰計
조호리산調虎離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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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호랑이를 유인하여 산에서 내려오게 한다. 자연조건이 적에게 불리할 때는 기다렸다가 적을 포위하여
곤경에 빠뜨리며, 인위적으로 가상을 조작하여 적을 유인하고 기만한다. 직접적인 진공이 어려우면 적
이 나를 공격하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한다.” 요점은 모종의 방법으로 호랑이를 산에서 내려오게 한다
는 것인데, 적을 조종하는 책략을 가리키는 성어가 되었다.
‘호랑이’는 강적을 가리키며, ‘산’은 튼튼한 진지 같은 유리한 조건을 비유하는 말이다. 강적인 데다 지
리적 조건마저 유리하다면 호랑이가 날개를 단 꼴이다. 이런 적을 유인하여 진지를 벗어나게 만든다면
적은 우세한 조건을 잃어버릴 것이다. 실전에서 이 모략을 운용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
는 적을 유인하여 거점을 벗어나 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내가 다음으로
생각하는 방향 또는 적에게 불리한 또 다른 지역으로 적을 유인하여 정면 대결이 초래할 압력을 줄이
거나, 그런 전투 지역이 안고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조호리산’ 모략에서는 ‘조(調)’에 가장 어려움이 있다. 호랑이를 ‘움직이게 만드는’ 어려움이다. 지휘관
의 감정은 새롭게 나타나는 각종 상황에 좌우되기 쉽고, 이 때문에 판단과 결심에 영향을 받는다. 이
모략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적의 착각을 잘 이용하여 각종 가상 현실을 교묘하게 조작해서 그 세의 흐
름을 타고 ‘소의 코’를 꿰어야 한다.
동한 말기 북쪽 변경의 강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조정에서는 우후를 보내 반란을 평정하게 했다. 우후
의 부대는 진창 효곡 일대에서 강족에게 가로막혔다. 강족의 사기는 왕성했고, 지리적으로도 유리한
위치였다. 강공을 취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우후는 강족이 견고한 근거
지를 떠나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전진을 멈추고 군영을 설치하라고 했다. 그리
고 대외적으로는 행군이 저지당해 조정에 구원군을 요청했다고 선전했다.
진군을 멈추고 구원군을 기다리는 우후의 군대를 본 강족은 경계를 늦추고 서서히 근거지를 떠나 근처
에서 재물을 약탈했다. 강족이 근거지를 떠나자 우후는 바로 명령을 내려 하루에 백 리 이상 행군하고
심지어 밤에도 행군을 재촉했다. 행군과 동시에 밥솥의 수를 점점 늘려 나갔다. 구원병이 이미 도착했
다고 적이 오인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근거지를 떠나 세력이 분산된 강족은 함부로 우후를 공격하지
못했다. 우후는 이렇게 하여 순조롭게 진창 효곡을 지나 전선으로 진입했다. 강족은 시간과 공간 모두
수동적인 상황에 놓였고, 머지않아 반란은 평정되었다.
《삼국지》 사례: 동한 말기 조조는 하비성을 공략하기 위해 정욱의 책략을 채택했다. 첫날 밤, 조조는
수십 명의 병졸을 하비성으로 보내 투항시켰다. 관우는 조조의 병력이 흩어져 병사들이 도망쳐 온 것
으로 생각하여 아무런 의심 없이 이들을 받아들였다.
다음 날 하후돈이 5천 명의 병마를 이끌고 하비성 아래로 와서 관우에게 도전했다. 관우는 버럭 화를
내며 2천 명을 거느리고 성을 나와 하후돈과 교전했다. 하후돈은 싸우면서 퇴각했다. 관우는 20여 리
를 뒤쫓다가 아무래도 하비성의 안위가 마음에 걸려 군대를 돌리려 했다. 바로 이때 좌우에서 병마들
이 관우를 급습해 왔다. 급히 하비로 돌아갈 마음에 관우는 힘껏 싸웠으나 어쩔 수 없이 하후돈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전투는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관우는 작은 산 위로 몰렸다. 조조의 군대는
이 작은 산을 포위했다. 관우는 몇 차례 산을 내려오려고 돌진했으나 쏟아지는 화살 때문에 포위를 뚫
지 못했다. 이 무렵 하비성은 이미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관우가 하비성을 비운 틈에 조조가 하비성
을 공략하여 함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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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조호리산’의 관건은 상대를 ‘움직이게 만드는’ ‘조’에 있다. 움직이게 만들려면 조건을 창출해야 한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는 방법과 수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전략은 내 전력이 상대와 비슷하거나 약
할 때 상대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전략임을 유의해야 한다.
Ⅳ장 혼전계混戰計
관문착적關門捉賊
“문을 잠그고 도적을 잡는다. 약한 적은 포위한다. 그러나 성급하게 멀리까지 추격하는 것은 불리하
다.”
《36계》 중 제22계이자 혼전계의 네 번째 계책인 ‘관문착적’은 ‘문을 잠그고 도적을 잡는다’고 표현했
다. 도망쳐 나가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으며, 또 도망쳐 추적하지 못하면 적이
유인계를 쓸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한 것이다.
‘관문착적’에서 ‘적(賊)’은 ‘기병(奇兵)’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기병’은 출입이 일정하지 않고 갑
자기 기습해서 아군을 피로하게 만들 수 있는 병력이나 군대를 말한다. 그런 ‘적’을 포위망을 뚫고 도
망가게 해서 다시 추격하면, 적은 이미 한 번 빠져나왔기 때문에 죽을힘을 다해 싸우려 든다. 따라서
그 퇴로를 차단한 다음 서서히 포위해 들어가야만 틀림없이 제압할 수 있다. 약소한 적은 포위해 들어
가면서 섬멸해야 하는 이유다.
‘관문착적’은 ‘상대를 포위할 때는 반드시 구멍을 남겨 둬라’라는 ‘위사필궐(圍師必闕)’ 모략과 보완 작
용을 한다. ‘관문착적’의 전제는 약소한 적에 대한 조건적 포위와 섬멸이다. 적의 세력이 강하다면 적을
포위해서 섬멸하기란 힘들다. 때로는 궁지에 몰린 짐승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초래
될 수 있다.
‘관문착적’은 일종의 섬멸 사상이다. ‘약소한 적을 궁지에 몬다’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전쟁의 주도
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적과 나의 역량을 비교하여 그 근거를 가지고 적의 주력병을 섬멸하는 데도 활
용할 수 있는 모략이다. 때로는 함정을 파 놓고 적을 그 안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
《자치통감》(권 5)과 《사기》 <백기왕전열전>에는 다음의 사례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원전 260년,
진과 조나라 사이에 벌어진 장평 전투에서 진의 장수 백기는 조나라의 젊은 장수 조괄이 병법서나 지
도를 통해서 용병을 논하는 ‘지상담병’에만 능하다는 약점을 파악하여 함정을 파놓고 조나라 군대를 유
인하는 한편, 2만 5천의 날랜 병사로 조군의 후방을 막아 퇴로를 끊었다. 동시에 기병 5백을 조군 진
영에 박아 두고는 조군의 출격 부대와 진영 수비대를 각각 포위했다. 그런 다음 일찌감치 준비해 놓은
경장비 부대로 계속 조군을 공격하면서 포위망을 좁혀 들어갔다.
조군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공세에서 수비 태세로 작전을 바꿨다. 진군이 조군을 포위하자 진의 왕은
총동원령을 내려 전국 15세 이상의 남자를 참전시켰다. 그리고 재차 ‘포위하되 공격은 하지 않는다’는
전략을 기본 방침으로 정했다. 식량이 떨어지고 구원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자 조의 병사들은 서
로를 잡아먹는 등 극한 상황까지 치달았다. 결국은 무장 해제를 당해 항복하고 말았다. 40만에 달하는
조군이 백기의 포로가 되어 생매장을 당했다. 이것이 전국 시대 천하를 떨게 한 장평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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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요컨대 ‘관문착적’의 모략을 운용하려면, 전체적인 국면을 면밀히 살펴 ‘관문’의 시기와 지점을 정확하
게 선택해야 하며, 형세에 따라 계략을 달리 구사하고 정세에 따라 변통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약한
적뿐만 아니라 적의 주력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삼국지》 사례: 남만 지역의 추장 맹획의 등갑군은 웬만한 공격과 무기로는 뚫을 수 없는 강적이었다.
그러자 제갈량은 ‘관문착적’ 계책을 구사하기로 했다. 그는 장수 위연을 시켜 남만의 장수 올돌골이 이
끄는 군대를 반사곡으로 유인한 다음 통나무와 돌을 굴려 계곡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리고 장작이 잔
뜩 실린 수레에 불을 질렀다. 퇴로를 차단당한 올돌골의 군대와 3만 등갑군은 서로서로 끌어안은 채
반사곡에서 불에 타 죽었다.
Ⅴ장 병전계幷戰計
가치부전假痴不癲
“어리석은 척하되 미친 척은 하지 마라. 거짓으로 모르는 체 못하는 척하는 것이 낫지, 모르면서도 아
는 척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침착하게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주역》의 ‘둔’괘처럼 구름이 위
에서 천둥을 누르는 형상이다.”
‘가치부전’에서 ‘치(痴)’란 어리석고 멍청한 것을 말하고, ‘전(癲)’은 미친 것을 말한다. 거짓으로 어리석
고 멍청한 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친 것은 아니다. 그 뜻은 형세가 불리한 상황에서 겉으로 멍청하고
어리석어 아무것도 못하는 것처럼 가장하여 내심 품고 있는 정치 포부를 숨김으로써 자신을 경계하는
적의 눈길을 피하려는 것이다. 이 계책은 흔히 물러섰다가 나아가고, 늦게 출발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가치부전’의 중점은 꾸민다는 뜻의 ‘가(假)’ 자에 있다. 못 듣는 척, 말 못하는 척, 멍청한 척 위장한다
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과 두뇌는 생생하게 깨어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 계책을 정치와 군사에서
제대로 운용한다면 고수라 할 것이다. 정치에서 운용할 경우는 자신의 진면목과 진짜 실력을 감추는
도회술이라 할 수 있다. 형세가 자신에게 불리할 때 겉으로 멍청한 척 어디가 좀 모자란 듯 꾸며서 아
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는 인상을 주어 재능을 감추고 내심의 정치적 포부를 덮음으로써 정적의 경
각심을 피하고, 나아가 은밀히 기회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는 것이다.
기원전 209년, 흉노 선우의 태자 묵특이 집권했다. 당시는 동호 부락의 세력이 막강했다. 동호는 묵특
이 아버지를 죽이고 선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사람을 보내 “네 아버지가 타던 천리마가
갖고 싶다.”라고 전했다. 묵특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상의했다. 신하들은 모두 “천리마는 흉노의 진귀
한 보물이니만치 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묵특은 “이웃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면 어찌 말
한 필을 아까워하겠는가.”라며 천리마를 동호로 보냈다.
동호는 묵특이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다시 사람을 보내 미인을 요구했다. 흉노의 신하들
은 동호가 자신들을 욕보이려는 것이라며 무력으로 동호를 공격하자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묵특은
이웃 나라에 미녀쯤 바치는 것이 뭐 대수냐며 자신이 가장 아끼는 미녀를 바쳤다.
동호는 더욱더 교만방자해져 흉노의 서쪽 변경을 침범해 왔다. 동호와 흉노의 접경지대는 천 리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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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르는 황무지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다. 쌍방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초소를 설치했다. 동호는 묵특
에게 사람을 보내 “경계선 밖의 땅은 너희가 통제할 수 없으니 우리가 점령하려 한다.”라고 통보해 왔
다. 묵특은 신하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논의했다. 누군가가 “그 황무지는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인 땅
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묵특은 크게 성을 내며 “땅은 나라의 근본이거늘 어찌 남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라며 그자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바로 전투마에 올라 “누구든 땅을 떼어 주자는 자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목을 벨 것이다.”라며 동호를 기습했다.
묵특을 안중에도 두지 않던 동호는 묵특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그대로 무너졌다. 묵특은 동호를 멸망시
키고 그 땅과 사람, 그리고 가축을 모조리 차지했다. 내친김에 서쪽의 월지, 남쪽의 누번과 백양까지
합병해 버렸다. 이후 묵특은 흉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시대를 열었다.
계책과 모략은 지혜에서 나온다. 치밀하면 성공하고 자신을 노출하면 패한다. 현명한 리더는 자신의
의도를 감추기 위해 흔히 ‘어리석음을 가장하여’ 뭇사람들의 이목을 흐리게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
을 보여 주고 총명함을 멍청함으로 가장하는 것이 하지도 못하면서 할 수 있는 척, 멍청하면서도 영리
한 척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이 계책은 지금 움직여서는 안 되는 상황일 때 특히 주의할 것을 요구
한다. 자칫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백전백패가 뻔하기 때문이다.
《삼국지》 사례: 239년, 위나라 명제 조예가 병으로 죽자 여덟 살짜리 조방이 황제 자리에 올랐다. 사
마의는 태부로 승진했고, 병권은 대장군 조상이 장악했다. 조상은 조정을 마음대로 주물렀고, 이 때문
에 사마의와 틈이 벌어졌다. 사마의는 병권을 장악하기 위해 늙고 병들었다는 핑계로 짐짓 본색을 감
췄다. 조상은 그것을 진짜로 믿고 대비책을 소홀히 했다. 249년 그러니까 위 가평 원년 정월, 사마의는
조상이 황제를 모시고 고평릉에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틈을 타서 태후의 명령을 조작하여 성문을 걸
어 잠그고 사도 고유를 보내 조상의 군영을 점거했다. 그런 다음 황제 조방에게 조상의 죄상을 고해바
쳤다. 조방은 하는 수 없이 조상을 면직시켰다. 사마의는 군대를 보내 조상의 집을 포위한 다음 반역
죄를 물어 조상과 그 일당을 모조리 죽였다. 이로써 조정의 실권은 사마의가 장악했다.
Ⅵ장 패전계敗戰計
주위상계走爲上計
“줄행랑이 상책이다. 전군이 퇴각하여 강한 적을 피하는 것이다. 전황이 정 불리할 때는 물러나야 한
다. 그런 다음 다시 기회를 엿봐야 한다. 이는 정상적인 용병 원칙이지 결코 비겁하거나 잘못된 계책
이 아니다.
《남사》 <단도제전>에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유송의 정남대장군 단도제가 북위 정벌에
나섰다. 먼 길을 행군하느라 병사들이 지친 데다 식량도 제때 보급되지 않아 상당한 곤경을 치르고 있
었다. 역성에 이르자 마침내 식량이 바닥을 드러냈다. 여기서 단도제는 병사들이 모래를 가마니에 담
아 식량처럼 쌓으면서 ‘큰 소리로 양식 가마니 수를 세는’ ‘창주양사(唱籌量沙)’ 모략을 이용해 적을 속
이고 무사히 귀환했다. 단도제의 모략적 재능을 잘 보여 주는 본보기였다.
모략가들은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후퇴하거나 도망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36계 중에서도 줄
행랑이 상책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만큼 결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단도제는 줄행
랑을 위해 또 다른 모략을 적절하게 구사한 지장(智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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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상계’는 불리한 형세에서 적과의 결전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투항ㆍ강화ㆍ퇴각을 들고 있다. 세
가지를 서로 비교해 보면 투항은 철저한 실패이며, 강화는 절반쯤 실패한 것이라 할 수 있고, 퇴각은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은 방법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도망’이 상책이라
고 말하는 것이다. 단, ‘도망’이 각종 모략 중에서 상책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주위상계’는 36계의 마지막 계책이다. ‘36계’는 계책이 많다는 뜻이지, 계책이 모두 합쳐 36가지라는
뜻이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36계》는 군사 모략이 36개라는 것이 아니라 음양 학설 중 태
음에 해당하는 수인 6X6=36이란 뜻으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모략을 비유했을 뿐이다.
‘주위상계’는 패전계의 마지막 계책이자 36계 전체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계책이기도 하다. ‘주위
상계’에서 주의할 점은 언제 달아날 것이며, 어떻게 달아날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결단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임기응변인데, 상당한 공력과 실력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삼국지》 사례: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빌려 바람의 방향을 바꾸고 결국 주유의 화공을 성
공시킨 고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주유는 제갈량의 신기한 재주를 시
기하여 그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제갈량은 진작 배를 타고 동오를 떠난 뒤였다. 주유가 보낸
두 명의 장수가 주유가 당신을 초청한다면서 돌아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제갈량은 웃으면서 작전이 원
하는 대로 잘되었으니 잠시 쉬었다가 훗날 다시 만나자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주유의 의도를 진작에
간파하여 미리 조자룡에게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했으니 뒤쫓지 말라고 덧붙였다.
두 장수는 그래도 제갈량을 뒤쫓았다. 그러자 조자룡이 활을 당기며 “내가 상산 조자룡이다. 명을 받
고 군사를 모시러 왔으니 괜히 내 화살에 맞아 죽어 두 나라의 화합을 깨지 않도록 하라.”라고 경고했
다. 이어서 화살 하나를 날리니 화살은 상대 배의 장막을 받치는 기둥을 부러뜨렸다. 배는 강 한쪽으
로 기울었고, 조자룡은 무사히 제갈량을 데리고 돌아갔다.
‘주위상계’를 구사할 때는 임기응변이 변수다. 달아나면서도 주위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고 파악하는 일
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임기응변할 수 있고 나아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
다. 현대는 기동력, 반응력, 정보 수집의 수준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달아나더라도 제대로 달아나는 것
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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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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