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이 자신의 "파인 아츠" 체계 안에 무용을 포함하지 않은 이유
I.들어가는 글
19세기 전반기에 이미 예술의 "소멸"을 주장한 미학이 있었다. 예술이 탄생된지 1세기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1)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본다면 탄생하자마자 사망선고를 당한 꼴이다. 이른바 헤겔의 "예술 종말론"이다. 그에 의하면, 절대정신(Absolute Reason)을 파악하고 드러내는 것이 인간의 정신적 능력이고, 그것을 담당하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이 예술. 종교. 철학이라는 것인데, 자기 시대인 19세기초에 예술은 이미 정신적 활동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완수하고, 종교에 그 임무를 넘겨주었기 때문에 사라져야 하고, 계속 남아 있다면 관습에 의해 일 뿐이라는 것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이라는 일종의 진리를 파악하고 표현하는 인간의 방법에는 예술. 종교. 철학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들 각각은 나름대로의 특징과 장단점을 가지는데, 한 마디로 말해서 헤겔은 예술보다 종교가, 그리고 종교보다는 철학이 절대정신의 보다 발전된 표현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예술은 절대정신의 감각적 드러냄이다.2)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한 가지 방식으로 쉽지만 모호하다는 특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감각적인 특성을 가지기에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명료하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철학은 절대정신을 어렵지만 명료하게 표현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철학은 개념으로 구성되었고, 개념이란 추상된 것이기에 어렵지만, 일단 그 의미가 파악되면 명료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그에 의하면 19세기초는 절대정신이 철학으로 포착. 표현되는 시기이고, 우리의 관심사인 예술은 더 이상 인간의 중요한 정신적 능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은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고, 관습의 힘에 의해 존재할 뿐이며, 계속해서 존재한다면 관습에 의해서 예술 본래의 기능과는 다른 용도로 -예컨대, 장식적 용도로- 지속될 뿐이라는 주장이다.
II.헤겔 시대의 무용
이러한 상황에서 본 논문의 주 관심사인 무용에 관해 특기할 만한 사실이 있다. 헤겔이 자기 시대에 사망을 선고한 예술의 체계 안에 무용을 포함시키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18, 19세기에 "파인 아츠"의 체계를 논한 거의 모든 사상가들에게 공통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는 의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게다가 18세기 때의 바뙤나 달랑베르의 경우에는 볼만하고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무용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헤겔의 시대에는 상황이 달랐던 것이다. 이미 지금 우리가 "고전 발레"라고 아는 것과 형태가 거의 동일한 무용인 낭만 발레가 태동하기 직전의 비교적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헤겔 사후에 급속한 발전을 이룬 낭만 발레가 시점의 간발의 차이로 헤겔의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다른 일부에서는 남자 철학자로서 무용에 대한 원천적인 거리감이 문제라고도 주장한다. 전자의 주장은 약간의 타당성이라도 가지지만, 후자의 경우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은지 오래이다.3)
III.
여기서 우리를 주목시키는 중요한 문제는 헤겔이 내린 사망 선고와 18세기의 바뙤나 달랑베르의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전자에게서 현대의 무용의 화려한 부활을 위한 약간의 가능성을 찾아볼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헤겔은 아래에서 설명할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부정적인 의미"에서 무용을 예술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지만, 그것은 그 당시의 그의 견해였고, 다른 시공에서 사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무용이 예술에서 제외된 이유를 다른 각도에서, 즉 좀더 "긍정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즉, 그가 무용이 예술에 속할 수 없다고 비난한 바로 그 이유가 무용이 20세기 후반에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중요한 예술로 부활할 근거를 제공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18세기의 달랑베르에 비하면 헤겔은 확실히 무용을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그리고 역사 철학자라는 그의 주전공에 비추어 훨씬 더 많은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무용을 예술에서 신중하게 제외시키고 예술에 대한 사망 선고를 내렸었다.
헤겔 시대에는 무용 예술의 중요성이 주장된 적이 없었다. 발레 닥시옹을 주장한 노베르와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들이 저항한 형식주의에 대한 인정받을 만한 대안을 확립하지 못했다. "현대의 춤은 그처럼 기교가 발달할수록 더욱 가치가 상실된 팬터마임으로 된다"고 헤겔은 말했다. "그 결과 우리는 무용을 유일하게 예술의 자유로운 영역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현대 발레가 점점 더 사라지는 징후를 보는 것이다"(헤겔 「헤겔미학」 Knox trs.1192쪽). 기교적 거장의 무용은 그것이 아무리 현란하더라도 단순히 구경거리 이상의 것이 될 수는 없고, 그리고 헤겔의 입장에서 단지 화려하기만 한 볼거리는 예술이 아닌 것이다.
헤겔은 문명화 노력에 기여하지 않는 것은 예술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따라서 단순히 아름다운 대상의 제작은 그러한 기여로 인정하지 않았다. 예컨대, 오페라에서 음악이 대사의 의미와 독립적인 가치를 가진다면 그것은 단지 "화려한 것"이 되고, 그리고 정교한 무대 장치와 의상도 당연히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헤겔은 바로 무용이 그러한 종류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현대 발레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무대장치, 의상 그리고 조명의 훌륭함과 매력이다.... 다른 한편 사람들은 엄청나게 발달한 다리의 화려함과 유연함에 사로잡히고,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오늘날의 무용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떤 정신적 표현이 -오늘날 무감각함과 지성의 결핍의 극단에서 방황하는- 단순한 능숙함을 통해 빛나려면, 필요한 것은 모든 기술적 어려움에 대한 완전한 정복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와 조화를 이루는 신중한 움직임, 그리고 -극히 드문- 자유와 우아함이다."(「헤겔미학」,1192쪽).
헤겔이 말한 능숙한 기교의 다리와 표현적인 팔 사이의 대조, 그리고 아카데미 발레 작품이 -정신이 빠진 죽은 신화에 대한 장식적 탐닉 때문에- 인간에게 부적절하다는 불평은 -헤겔보다 한 세대 앞선- 노베르와 그의 동시대인들과의 논쟁에서 빌려온 것으로, 아마도 헤겔은 노베르의 약속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IV.
예술에 대한 헤겔의 체계는 대략 다음과 같다. 파인아츠는 미를 산출하는 아트이다. 미는 하나의 관념에 대해 하나의 형식으로 해당하고, 그래서 파인아츠는 관념들을 그것들에 적합한 형식들로 구체화한다. 문명이 진전하듯이, 예술들도 점차 세련되어진다. 정신이 부분적으로만 물질에 충만되는 상징적 예술(symbolic art; 암시적 예술)은 정신과 물질이 완전히 융합되는 고전적 예술(classic art; 표현적 예술)에 자리를 내어주고,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곧바로 정신이 그것의 물질적 구성물을 지배하는 낭만적 예술(romantic art; 관념적 예술)에 양보한다.
결국, 정신은 자율적 형식을 취하고, 그리고 전체로서의 예술은 -그것이 더 이상 (문명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가장 발전된 합리적 의사소통의 형식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폐지되게 된다. 상징적 예술의 패러다임은 건축, 고전적 예술은 조각이다. 낭만적 예술은 회화, 음악, 시가 전형적이다. 예술 전체에서는 조각이 중심적 예술이고, 낭만적 예술에서는 가장 낭만적이기 때문에 음악이 중심적 예술이다. 그러나 가장 정신적이고 진보된 것은 시이다.
건축, 조각, 회화, 음악 그리고 시의 다섯 예술은 "본질과 실체 둘 다에서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으로 결정적이고 구체적인 체계를 형성한다. 그 외에는 조경술, 춤추기 등의 불완전한 예술이 있는 것이 사실인데, 그러나 그것들에 관해서는 단지 지나가면서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헤겔미학」1975,626쪽).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불완전한 하다고 간주하는 이유는 분명치는 않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무용은, 상징적 예술 이기에는 효과적이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으며, 고전적 예술로서는 미발달의 연극이고 불완전한 시이고, 낭만적 예술로서는 무용은 시의 퇴화된 형식이다. 따라서 무용은 그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례들을 정리한 끝에 설정한 세 가지 종류의 예술의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V.
[1]
헤겔이 상징적 예술의 전형으로 본 것은 건축이다.4) 그리고 그는 무용과 건축의 상당한 유사성을 인정한다. 무용수의 기술과 우아함은 피곤한 실제의 신체를 활성화시키는데, 그것은 마치 건축가가 엄청난 하중을 받는 아치형 천장에 환영적인 가벼움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 시대의 건축은 파산되었다고 평가된다. 그 시대의 건축은 파산했다, 즉 -어떤 종류의 진정하거나 설득적인 양식을 절망적으로 찾으면서- 원래적인 의미를 상실한 장식의 레퍼토리로 몰락했다고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고, 그리고 헤겔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기 시대의 무용을 그와 비슷하게 열광적이고 절망적인 그러나 죽은 의미를 소생시키려는 피상적인 시도로 보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움직이는 인간의 신체 그 자체가 매우 표현적이어서, 어떤 의미를 그 대상에 삽입시킨다는 의미에서의 상징적 예술의 목적에 기여할 수 없다고 한다. 무엇인가 다른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에는 그 자체가 너무나 표현적이라는 말이다.
[2]
헤겔이 말하는 세 가지 예술 양식 중에서 무용이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은 바로 조각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예술이다.5) 그 이유는 인간의 신체가 이미 완전하게 표현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서 인간을 창조했다"는 관념에 사로잡힌 생각인데, 그것은 인간이 -조물주의 특성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지적이고 신중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거나, 인간의 신체가 추론적이고 합목적적인 능력의 유일하게 물질적인 표명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럼에도 무용이 조각처럼 고전적 예술로 인정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헤겔은 무용을, 시의 움직임을 사지의 움직임으로 바꾼 시에서 파생된 퇴보한 팬터마임으로 보았다. 헤겔에 의하면 시는 "정신의 절대적이고 진실한 예술"이다. 왜냐하면 오직 말만이 상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학강의」,626쪽). 시는 총체적인 예술인데, 그 이유는 "그것은 그 자신의 영역 내에서 다른 예술들의 특징적 표현 양태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예술에서 "시는 또한 -객관적으로 표명되었을 때 이 객관적인 실제적 발생의 내적 측면에 외적 모양을 주고 그래서 음악과 제스처, 흉내내기, 무용 등과 밀접하게 통합될 수 있는- 간결한 행동 내에서 말을 진행시킨다"(「미학강의」,627쪽).
결국 언어로 표현된 텍스트가 없다면 이야기 줄거리를 움직임으로 서술하는 것으로서의 무용은 -아마도 아름답기는 하겠지만, 가져야만 하는 정신적 의미가 박탈된- 단순한 단편이 되고 만다 (추상 무용은 생각조차 될 수 없었던 시기이다). 바실루스(Bathyllus)나 피레이데스(Pylades)가 철학적 텍스트나 외교적 조약의 의미를 춤출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의미가 -원래의 텍스트나 그것이 서술된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 명쾌했다는 루키아노스의 이야기는 헤겔을 확신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결국 무용을 텍스트에 의존하는 팬터마임에 불과한 것이고, 그러므로 진정한 예술이 가져야 할 정신적 의미가 배제된 것으로 본 것이다.
[3]
헤겔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절대정신을 제일 먼저 암시하는 것이고, 그러한 일은 관념이 형식을 지배하는 예술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낭만적인 예술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낭만적 예술이란, 매체의 조형성이 관념의 구체화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따라서 그것은 음악, 시 그리고 회화에서처럼 매체를 넘어서거나 압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요즘 말로 한다면, 그것은 매체가 상징적 체계의 형성에 기여하는 예술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용은 결코 낭만적 예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변형시키고 조작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신체는 그것 자체의 구체적 형태를 계속해서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헤겔이 1831년에 콜레라로 사망한 직후 메이어베르(Meyerbeer)의 「악마 로베르」속의 『수녀의 춤』이 -당시의 시인들이 낭만주의를 이해한 것으로서의- 낭만적 무용 예술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이러한 가능성은 발레를 우리가 지금 발레라고 생각하는 형태의 것으로 변형시켰다. 헤겔이 살아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 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규정한 의미에서의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그것의 "낭만적" 요소들은 그가 "상징적"이라고 서술한 것의 기미가 있고, 그리고 아마도 그러한 입장에서 반동적으로 판결되었을 것이다.
VI.
한 마디로 말해서, 헤겔에게 있어서 무용이 어떠한 종류의 예술 형식으로도 인정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가지는 본래적인 표현성과 신체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양의 미학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이론으로 평가되고 있는 헤겔의 예술론이 제외했다는 사실과 그 근거 때문에, 무용은 예술의 사망이 선고된 이후에도, 아니 선고되었기 때문에 더욱 잠재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또한 헤겔이 자신의 파인 아츠 체계에서 무용을 제외시켰던 것은 그가 무용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가 무용에 관심을 가졌는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하튼 역사 속에서의 예술의 용도는 이미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무용이 역사상 문명화에, 절대 이성의 자기 파악에 중심적으로 기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판단했다는 점과, 결국 그 판단이 무용 자체 내에서가 아니라 무용을 둘러싼 역사적. 외적 상황에서 내려진 것이라는 사실이다.6) 즉, 상황이 바뀌면 무용을 얼마든지 인간의 삶에 지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헤겔이 말한 예술의 종말은 정신성을 표명함에 있어서 예술이 더 이상 중심적인 활동일 수 없다는 말이다. 예술은 결국 관습적인 행위나, 부차적. 장식적인 행위로 몰락하고 만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종말이고, 거기에서 제외되었던 무용은 결국 그것이 지닌 이른바 "파인아츠"와의 본질적인 차이인, 표현성과 신체성 때문에 다른 커다란 가능성을 내포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대적 상황이 엄청나게 바뀐 지금 무용은 이제 그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가능성은 이미 1850년대에 바그너에 의해서 "코레이아"의 전통을 이어받은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7)이라는 개념으로 시도된 바 있고,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일부 무용인들과 연극인들에 의해 "신종합예술작품"(New Gesamtkunstwerk) 또는 "퍼포먼스"(Performance)라는 이름 하에 시도되어 왔다.
감정의 메마름을 그저 이성적으로만 건조하게 그리고 피상적으로만 안타까워하게까지 된 요즈음, 어떤 한 예술이 본질적으로 풍부한 표현성과 신체성을 가졌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려는 노력이다.
* 참고문헌
1.Hegel, G.W.F. 1975 < Aesthetics > trs. from Hegel 1835 by T.M.Knox. Oxford: Clarendon Press.
2.Sparshott, F. 1985 < Off the Ground > Princeton Univ. Press.
3.____________ 1989 < A Measured Pace > Univ. of Toronto Press.
4.Copeland, R. & Cohen, M. 1980 < What is Dance > Oxford Univ. Press.
1.엄밀히 말하면 "파인 아츠"(fine-arts)라는 개념이 성립된지 1세기라고 해 야 하겠다.
2.G.W.Hegel, 1952, < Phanomenologie des Geistes > hrsg, V.J. Hoffmeister, Verlag von Felix Meiner Hamburg. S.27-28.
3.Sparshott, F. < Off The Ground > 1.24에 그러한 주장과 그것에 대한 반론 이 자세히 전개되어 있다.
4."건축은 그 개념 정의상 우선적으로 고찰되는 예술로 설정되는 의미를 지닌 뿐 아니라, 그 존재적인 측면에서도 최초의 예술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두 행숙 옮김 < 헤겔미학III > 나남출판사, p.45.
5.F.Sparshott, < Off the Ground > Princeton Univ. Press, 1988, pp.38-41.
6.F.Sparshott, <Off the Ground > pp.43-45.
7.김문환 <총체 예술의 원류>(느티나무, 1986)에 바그너의 종합예술작품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고 명석하게 서술되어 있다. 공연 예술, 특히 미래의 예술을 이 해하기 위한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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