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와 가짜 나
석용산
차례
머리말:순례의 여정에서
1. 자비의 문턱에 쓰러지더라도
내 자신을 용서하자
성냥갑 움막에서
2. 모두가 거지, 모두가 수행자
성자의 그림자
어제가 내일
거지가 거지로 보이는데
3. 거지 성자
만나야 할 인연
이상한 만남
도인과 원수 지으라!
4. 무심히 던진 돌
달라이라마와 재회
추워도 얼지 않는 빈 방
남녀쌍신수행
편지
보건소 문간방
나는 환생자?
토지 신들의 장난
알 수 없는 결정
삼보(불, 법, 승)와 함께 생활
이마를 부딪치며 비벼 대는 인사
무심히 던진 돌
한 여인이 5형제를 다 남편으로
림포체와 일반 라마
달람살라의 살인사건
네충라마와 신탁
티베트의 법왕이자 임금님인 달라이라마
5. 수행은 한 나이라도 젊어서
여자 환생자
전생의 애인
나의 티베트어 선생님 따시의 고민
구루의 가피
스파이처럼 구루를 살펴라
8대 캄툴림포체
티베트 밀교의 허와 실
나는 전생의 이곳 라마?
티베트 불교의 아버지 "파드마삼바바"
수행은 한 나이라도 젊어서
자비 에너지냐? 삿된 에너지냐?
라마 댄싱
구루(스승)와 첼라(제자)
마하무드라
진짜 나와 가짜 나
6. 악마에게 내 마음속 한 자리를
두 분의 구루
작은 스승 암틴
집중은 창조의 입구
진짜와 가짜
어린 림포체(환생자)의 눈
제행무상 제법무아
악마에게 내 마음속 한 자리를
정화의식
"왕" 입문식, 수계의식, 정화의식, 세례의식
밀교의 분위기
마하무드라의 오계
생명을 연장하는 단약
천녀들의 공양
마하무드라의 네 가지 맛
밀교의 수행차제
문 없는 집
7. 수행자의 노래
수행자의 노래 "도하"
수행 없는 현대판 깨달음
"포와"(의식전이) 행법
티베트의 회전기도기
종교의 이론과 정서
밀교도 석가 부처님 법
수행에도 전문 분야
부처의 숨겨진 얼굴 분노존
따시종의 진수
영적 충동 영적 성숙
시인의 영혼 수행자의 에너지
망상이 부처의 뜻
부적을 받다
영원한 나의 스승
지은이 소개
석용산 스님
현 불교교육회관 대구 공덕원 회주
현 불교교육회관 부산 공덕원 회주
현 불교교육회관 아산 공덕원 회주
현 불교교육회관 인도네시아 공덕원 회주
현 사회복지법인 공덕원 이사장
저서
수필집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
"여보게 이 땅에 다시 오려나 그리운 사람 있다면"
소설 "등신불" 1, 2
시집 "천년에 한번 우는 새"
"미우면 미운대로 고우면 고운대로"
"그대 어찌 부르리오" 등
머리말
순례의 여정에서
히말라야 설산 아래 싯다(성취자)들은 나를 환생자라 하였다.
한 생은 티베트 라마승, 한 생은 인도의 왕, 또 한 생도 수행자였다 한다.
그러나 이 말씀보다 더 실질적이고 절실한 환생을 체험할 수 있었다.
충청도 두메에 태어난 김 아무개가 석용산이란 승려로...
석 아무개란 승려가 죽으면서 더 큰 모습으로 환생을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죽어서만 환생이나 윤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생의 삶에도 윤회와 환생은 실재하며, 우리가 추구하는 것도 사실은 현실
속의 환생, 바로 작은 껍질을 벗어가며 성숙과 완성의 세계로 향해가는
탈태환골의 거듭남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석용산 죽이기에 앞장섰던 분들과 석용산스님의 환생을
간절히도 기원했던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 책(마하무드라)은 전 3권으로 1권은 3년 전 병든 몸을 이끌고 한국을 떠나
호주에서의 방황과 수행, 그리고 인도로 건너가서 구루(스승)들을 만나는 순례의
여정, 나중에는 히말라야 설산에 숨어사는 성자를 만나서 영혼의 상처들을
치료하고 깨달음의 세계로 향하는 과정을 그렸다.
2권은 인도의 5대 성지와 중국의 4대 성지, 티베트 본국의 성지들을 돌며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았던 소중한 수행 일지들이고, 3권은 공덕원을 빼앗고자 석용산
죽이기를 기획했던 사람들의 얽히고 설킨 기막힌 사연과 PD수첩에 공개처형
당하면서 일어난 이야기 등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 같은 사실들을 적었다.
한 수행자가 살아온 삶을 있는 그대로 적어 뒤에 오는 또 다른 수행자와
인간답게 살고자 진정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자 몸부림하는 이들을 위해 어설픈
수행의 파편들이지만 남기고 싶었다. 3권 중 먼저 1권을 발행하니 이 인연
공덕으로 원수진 이나 은혜로운 이들 모두 성숙되길 기원한다.
제자들이 짜놓은 법회 일정을 보며 어지러워했던 것이 엊그제 같다.
가까운 나라들은 물론 지구 반대쪽 작은 나라들까지, 한국인이 있는 곳, 내 책이
들어간 곳에서는 거의 법문 요청을 하고 있었다. 그 요청을 다 받아들이면, 십년을
돌아다녀도 끝내기 어려운 일정이었다.
일년 365일 강연과 법문을 하며, 비행기는 물론 기차와 택시 뒤켠에서 구부리고
잠을 자는 시간들이 늘어만 갔다.
결국 내 몸뚱이는 망가지고 말았다.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일에 모든 힘을 바친 뒤 생명 에너지가 다 했을 때,
몸뚱이마저 소신공양 올리리라 서원했는데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에너지가 다
되었는지 어지러움증과 졸도, 때로는 혼수상태를 경험한다.
관절마다에 고통이 오는 통풍과 양어깨를 끊어내는 것 같은 오십견이라 병은 한
번도 깊은 잠을 들게 하지 않는다.
이명현상으로 머리와 귀가 울려, 법문이나 강연을 거의 할 수 없게 되어간다.
이제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소신공양을 올릴 시기가 온 것이다. 막상 주위를
정리하려고 보니,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행자가 발우 하나 옷 한 벌이면 족하다 하였건만, 왜 이렇게 많은 것을 갖게
되었을까? 나도 모르는 내 마음 밑바닥 욕심 때문이었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정신없이 부처님 법을 팔다보니 돈과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그러나 들어오는 돈과 이름을 관리 할 줄도 몰랐다. 아니
관리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히려 바빠지면 바빠질수록 자비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에 대한 열망과
갈구만이 더해갔다.
거추장스러운 공덕원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다. 법상좌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승려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보았지만, 내가 박복한 탓인지,
하나같이 가슴에 못을 치고 달아났다.
그들이 할퀴어 놓고 떠난 자리는 생각보다 상처들이 깊었다.
먼저 스님패! 뒤에 스님패! 이 스님패! 저 스님패!
화합과 용서보다는 시기와 질투가, 염불과 기도보다는 잿밥에 신경들을 모으게
되었다.
제일 큰 문제는 그 상처들을 봉합해야 할 내가 너무 깊은 병에 들어있다는
점이었다. 궁리 끝에 재단법인을 만들기로 하고, 공덕원의 젓가락 숟가락까지
그리고 열 권의 책 인세와 권리까지 집어넣어 허가를 출원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차일피일 미루어지기만 했다. 관계부처와 여러 번
싸우기도 하였으나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진정 하는 눈 열린 중은 못되었다.
세상은 진실이 통하지 않는 부분도 함께 하고 있음을 살 필 줄 몰랐고, 인간의
악한 부분과 탐욕스런 부분을 너무도 경시하고 살았다.
포교를 십수 년 하면서도 더불어 사는 일들에 익숙치 못했었다는 이야기다.
기자에게 촌지를 줄줄도 몰랐고, 인연 대고 사는 관공서에 수고비(?)도 내놓을 줄
모르는 어리석은 중이었다.
이런 융통성 없는 행위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두가 깨닫지 못한 고집과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관계부처에서 하라는 대로 구비서류를 고치고 갖추어, 또다시 법인허가를
출원해 놓고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공덕원의 모든 것은 이사진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 생각하고, 거추장스러운
몸뚱이를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장기 가운데 쓸모 있는 부분은 떼어서 필요한
사람(신장은 친구 아들, 눈 한쪽은 외국 제자)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부처님께
공양 올리면, 한 생이 원만하게 회향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가 인간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또 잊어버리고
있었다. 공덕원을 빼앗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미 석용산 죽이기가 철저히
계획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를 죽이려는 이들의 계획이 결과적으로는 나를 더 살게 하는 기막힌 계획들이
되고 말았다.
공덕원을 차지해 보겠다는 사람들의 온갖 노력은, 나의 장기이식이나
소신공양은 물론 모든 일들과 계획을 포기하게 했고, 깨달음의 여행, 자비문을
여는 순례길에 오르게 했다.
삶 자체가 순례이지만, 호주를 거쳐 인도, 중국, 티베트를 도는 여정 속에 나는
육체도 정신도 다시 살아나는 환생을 경험하게 되었다.
3년여의 순례길 속에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 보니 기막힌 일들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공덕원을
빼앗아 보겠다는 사람들은 특정 고발 프로까지 동원하여 겨우 살아난 내 김장에
참으로 잔인한 비수를 다시 꽂고 말았다. 전생에 나는 분명, 살아있는 가슴에
억울한 비수를 수없이 꽂았음에 틀림없다.
일평생 쌓은 모든 것을 다 던져 주면서도, 한 마디 대응없이 수행에만 몰두한
것은 내 전생의 죄업과 금생의 인과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 죽음이란 더 아름다운 삶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는
것!
석용산이란 이름은 처참히 죽었는지 모르지만, 맑은 영혼과 청정한 수행의 원은
더욱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으니 말이다.
허상이 참된 모습을 부술 수 없고, 거짓된 나가 참된 나를 죽일 수 없는 하늘의
도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 나라 이 민족도 이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서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느 집단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인간들의 혼란한 마음을 바로
이끌고, 뒤틀린 사회에 아름다운 질서를 부여해야 할 종교 집단들, 특히 불교
집단은 자신들의 앞가림에 급급한 작은 집단으로 전락해서는 안될 것이다.
진정으로 수행하려는 자들을 보호하고 키우는 영혼의 샘터가 되어야 할 줄로
안다.
그리고 사회의 목탁이 되어야 할 매스컴이 인기에 영합하고, 개인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될 것이다.
한마디 변명도 대응도 할 수 없는 수행자를 수백만이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에, 공개 처형하는 끔찍한 사회풍조를 만드는 주범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참으로 좋은 기회를 우리는 맞이하였다.
올챙이는 개구리로,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 더 넓고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절호의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종교인, 정치인, 매스컴은 물론 우리 모두가 자신을 돌아보고, 더 성숙된 진화의
세계로 향할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인 것이다.
용렬하고 옹졸하며 사악하기까지 했던 한 인간이, 신심없고 근기 하천한 한
수행자가, 더 큰 성숙의 깨달음을 향하여 몸부림한 이 어줍잖은 글들이, 악연이든
선연이든 인연 닿는 모든 이들의 거듭남에,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되길 무릎 꿇고
합장하여 머리글을 맺는다.
석용산
1. 자비의 문턱에 쓰러지더라도
내 자신을 용서하자
절대 자비 억자 자비
호주의 밤은 길기도 하다. 잠이 안 온다.
몇날 며칠을 뜬눈으로 새웠건만 잠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고 열꽃과 두드러기는, 온몸을 열화지옥의 나찰처럼
만들어간. 분노와, 내 억지 인욕수행이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시행착오의 삶이었다.
사랑하는 이들 가슴에 못 박은 업이 너무 아리어,
'다시는 누구의 가슴에도 상처내지 않으리라.'
서원 세우고 올리고 또 올린 기도들,
십여 년의 지장기도는 내 생각의 골격을 다시 만들어 가고, 몸뚱이의 뼈대마저
바꾸어 갔다.
사악하고 비열하며 잔인하기까지 했던 마음은 자비와 부드러움으로 채워져
갔고, 안으로는 인욕을 밖으론 따스한 얼굴을 지니며, 마치 지장의 화신처럼
변하여 갔다.
그러나 남은 속여도 스스로는 속일 수 없는 범, 언제나 자신을 괴롭혀 온 것은
확철대오한 깨달음의 세계에 접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었다.
나의 행위들은 깨달음의 자비에서 흘러나온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아니라,
노력해서 만들어 내는 억지 자비의 마음이라는 점이었다. 한순간도 진정한
자비세계에 대한 목마른 갈망을 놓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아직도 영혼의 밑바닥 깨달음의 소리는 듣지 못하고, 습관적인 용서와
억지 자비의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 증거가 지금의 내 모습이다. 남을
해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보겠다고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나왔으면,
분명 껄껄 웃는 큰 마음이 되어야 하겠건만, 애를 삭이려고 몸부림하는 모습은
스스로 보아도 민망할 정도이니...
생지옥의 밑바닥
여러 날 잠을 못 이루다 보니, 모든 사물들의 움직임이 슬러모션이다.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해지는 것 같다.
이러다가 미치는 것이 아닐까? 그래 미쳐 보자!
미쳐봐야 미친 사람 심정도 알 것이 아닌가?
벽에 걸린 그림들이 살아 움직이고 TV속의 사람들이 달려나온다. 돌아가신
조상들의 애절한 절규가 들려온다, 머리 풀어 산발한 연인들이 벽에서 튀어나온다.
독한 술을 마셔 본다. 몸뚱이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러나 그것도 잠깐 다시
눈을 뜨이고...
수면제를 먹어보지만 오히려 더 몽롱하고 괴로울 뿐!
지장보살. 지장보살 불러보지만 도움이 안된다.
그러나 가물가물 의식이 꺼져가는 느낌이 들 때마다, 어디선가 지장보살!
지장보살! 염불 소리가 들려온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지장보살을 부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참으로 미칠 일이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지금의 상태를 생지옥이라고 하는
걸까.
큰 스님의 마지막 전화
호주의 골드 코스트! 세상에서 가장 고운 모래들이 있는 곳, 색색의 요정들이
햇빛 물결 따라 춤추고 저녁노을 온갖 보석이 바다 가득 깔리는 곳.
새벽 물안개 속, 백설공주가 사는 예쁜 나라 되는 해안 모래밭. 눈 씻고 다시
봐도 새벽의 골드 코스트는 동화 속의 아름다운 나라이다.
수면제를 너무 많이 먹은 탓인가? 호텔 방 난간에 서 있는 나는,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과 구름을 탄 듯 일렁이는 내
모습이 우스워서 눈물이 흘리고 있다.
다급한 지광스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스님 위험합니다."
지광스님의 목소리와 따르릉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다. 이건 또
어찌된 일인가? 생각지도 못한 전화였다.
서경보 큰 스님이 이곳을 어찌 아셨을까? 아! 장난주 보살의 배려였으리라.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다정했다.
"여보게 결코 낙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게! 이번 대구의 소요는 자네를 더 크게
쓰시려는 부처님의 배려일세! 자네를 지켜봐온 사람 중의 하나이네. 푹 쉬고
건강하게 돌아오게! 내가 자네를 도움세! 돌아오면 큰일들을 상의하세."
마음이 약해진 탓일까?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큰 스님께선 이승 사람이 아니셨다.
인간의 무서움
어떻게 호주로 오게 되었을까?
가보고 싶었던 곳은 인도와 티베트였는데...
이 곳과의 인연이라곤, 3년 전 뉴질랜드와 호주의 교민 초청 법회 때문에 한 번
와 본 곳이라는 것뿐인데, 사람일이란 참으로 모를 것이다.
아! 그 당시 나를 도운 청련화 가족이 이곳 시드니에 살고 있다고 들었지. 그때
함께 동행했던 인도네시아 공덕원 회장 현 거사네와는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며,
내 법문 테이프도 교환해서 듣고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한국에 왔던 청련화의 둘째 딸에게 밥 한 끼 사준 기억도 난다. 이심전심인가
지광스님이 갑자기 청련화 얘기를 꺼낸다.
"스님! 스님 모시고 나오기 직전에 청련화 둘째 딸아이한테 전화가 왔었습니다.
호주까지 왔으니 제가 전화 한 통화 드릴까요?"
"마음대로 하게!"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내일 비행기로 이곳에 온단다. 지광스님에게
핀잔을 했다.
"지금 내가 반은 정신 나간 상태인데, 이꼴이 뭣이 좋다고 보이려 하는가? 다시
전화하여 오지 말도록 하게!"
그러나 오겠다는 그들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청련화와 두딸아이 그리고
숙모라고 부르는 보살이 들이닥쳤다.
내 모습을 본 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에 큰 충격들을
받은 모양이다. 숙모라는 보살은 2년 전에 남편과 사별했는데, 나의 책으로 인해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며, 은혜를 갚고 싶으니 시드니로 가 잔다.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더 많은 책을 쓰고 더 많은 법문도 하여, 자기와 같이
힘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줘야 한단다.
말은 고마웠지만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솔직히 인간들이 싫었다. 아니
무서웠다.
내 자신을 용서하자
만나고 헤어짐에는 사람 의지대로 될 수 없는 그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는가
보다.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는 달리, 속가 상좌 재욱이의 차를 타고 장장
11시간 거리의 시드니를 향해 가고 있다.
호주는 참으로 광활하고, 자연을 잘도 보존한 나라이다.
오염되지 않아 공기마저 달콤한, 끝없는 숲속을 지난다.
양떼가 하품을 하며 등을 대고 졸고 있는, 평화롭고 드넓은 초원도 지나고,
파도의 용트림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길을 당장에라도 부숴버릴 듯 포효하는
해안도 지난다.
돌고래 떼가 춤을 추고, 오색 무지개가 다리놓은 아름다운 바닷가에 헐떡거리는
차도 쉬게 한다.
나를 즐겁게 하려는 재욱이의 배려가 가슴으로 느껴 오지만, 그럴수록 아픈
마음은 감춰지지 않고 자꾸만 비어져 나오려 한다.
용서하자!
용서하자!
남을 용서하기 전에 못난 자신을 용서하자!
아! 언제쯤이 돼야, 밑바닥 뼛속까지 사랑과 자비 그 따스한 온기로 가득
채워질 수 있을까?
무력감과 우울
청련화 가족의 정성으로 몸은 차츰 회복되어 갔다.
전신에 퍼졌던 두드러기와 열꽃이 시들고, 불면과 통증들도 잠잠해져 간다.
그러나 밀려오는 무력감과 우울은 어떻게 감당할 길이 없다. 모든 것이 귀찮고
싫기만 하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다.
부처도 지장도 수행도 글 쓰는 일도, 모두가 무의미로 다가올 뿐이다.
이렇게 쓰러져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가물거리는 의지만이, 겨우 목숨을 붙잡고
있다.
문득 우울증을 호소하던 경애보살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오른다. 불면증과
무력감을 호소하던 근오거사의 비웃는 듯한 미소가 스친다.
"사람이 나이를 먹다 보면 생명력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면은 여러 가지
병치레를 하게 되는 것이니 너무 걱정마세.
대신 아침 저녁으로 조용히 앉아 수식관을 해보시게.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번뇌 망상도 사라지고 아랫배에 힘도 생겨 무력감이나 우울증은
물론 만병이 사라진다네.
뭐 그런 거 가지고 야단을 떠는가!"
꾸중 반 위로 반, 달래 주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그 일이 나의 일이 되고 보니...
어설픈 내 모습이 부끄럽기만 할 뿐이다.
눈먼 과부라도...!
일주일만에 청련화가 찾아왔다.
"스님! 스님은 여기 계신데, 소문은 미국에 계신데요.
오늘 포교당엘 갔더니, 스님 얘기가 분분했어요.
석용산 스님이 많은 돈을 꿍쳐가지고, 미국에 가서 예쁜 여자랑 잘 산데요.
스님! 저한테만은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미국에 여자가 있으면 어때요. 스님은 사람이 아닌가요 뭐?
그리고 스님이야 종단이나 사형사제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일구신 모든
것이 아니겠어요.
돈은 얼마나 갖고 오셨어요? 호주에 절 지을 만한 돈은 있으시겠죠?"
내 표정이 이상했던지 말을 하다 눈치를 살핀다.
"보살! 내 영혼을 충족시켜 줄 그 무엇이 있다면, 왜 이렇게 힘들게 살겠어? 이
나이에 이렇게 떠돌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
그 놈의 깨달음의 세계! 자비의 세계가 뭔지, 그것에 홀려 아직도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거요.
지금 같아선 깨달음이니 자비니 하는 것 다 던져버리고, 옛 여인이라도 찾아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야.
미국까지 갈 필요도 없으니, 눈 먼 과부라도 있거든 붙여줘!"
"스님도 농담 할 줄 아시네요?"
"농담이 아냐, 솔직한 심정이야."
청련화의 눈이 반짝인다.
"정말이세요?"
그녀의 반짝이는 눈이 갑자기 무서워진다.
무얼 생각하는 것일까? 정말 눈먼 과부라도 붙여줄 작정인가?
승복을 벗어...?
바닷가에 앉아 조용히 일렁이는 물결을 본다.
갑자기 내 얼굴이 괴상한 모양을 연출한다.
분노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이더니, 억지로 웃어보려는 뒤틀린 얼굴이 된다.
외로움에 지친 측은한 모습이 되었다가, 단정히 앉아 온갖 마구니의 유혹을
물리치는 수행자의 모양으로 바뀐다.
아들 딸 주렁주렁 달고 행복해 하는 얼굴도 보인다.
출렁이는 물결만큼이나 사념들이 일렁인다.
승복을 벗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다.
이 옷이, 이 모양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하나?
물 사위에 또 다른 모습들이 흐른다.
흘러간 옛 여인들! 어줍잖은 이 인간의 마음을 잡으려 몸부림했던 얼굴들이
비웃는 듯 일렁인다.
나를 위해 평생 동정녀로 살겠다는 어느 소년의 모습까지...
이건 또 누구란 말인가? 후려칠 듯 부릅뜬 눈에 작대기를 들고 서있는 돌아가신
일고스님! 주장자 짚고 선 지장보살.
정말 어쩌란 말인가?
무력증에 우울! 독한 술을 먹어야 잠을 이루는 엉터리 땡초를 만들어 놓고, 이
무겁고 답답한 옷마저 벗지 못하게 하는 저 모습들은, 대체 나에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물위의 얼굴들에게 힘껏 던졌으나, 바람 타고 되돌아온
모래들은 내 눈에 입에 코에 사정없이 박혔으니...
책방의 포스터
책을 사러 시드니 시내로 나갔다.
한국 서점에 세 곳이 있는데 제일 크다는 서점으로 갔다.
막 가게로 들어서려는데, 문 유리창에 붙여진 어느 잡지 선전 포스터에 '석용산
스님 묘령의 여인과 스캔들'이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씌어 있다. 멀쩡한 사람
잡는 것이 무책임한 매스컴이라하더니... 이래도 되는 걸까?
정말 인간들이 이대로 살면 되는 것일까? 이대로밖에는 살 수 없는 것일까?
한심한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인간들이 살아갈 방향을 잡아줘야 할 나같은 중들이, 이렇듯 제자리에 서지
못하고 있는데, 누구보고 세상 사람들의 나아갈 길을 밝히라 말할 것인가? 책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서는 뒤통수가 한없이 뜨겁게 느껴졌다. 몇 발자국
걸었는가.
"용산스님 아니세요?"
맞은편 정육점에서 한 보살이 손을 흔들며 나온다.
옆집 미장원에서도 식당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와 손을 잡고 반가워한다. 모두
삼년 전 초청강연 때 법문을 듣고 책을 읽은 사람들이란다.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들은 아직도 저 책방의 포스터를 보지 못했는가? 그러면 다행인데, 나도
모르게 책방으로 자꾸만 시선이 간다. 한 보살이 눈치를 챘는지 깔깔 웃으며,
"스님! 스님은 참 여러모로 유명하세요. 글 잘 쓰고 인물 좋고 법문 잘하시고
여자들에게 인기 있고, 스님! 책방에 신경쓰지 마세요. 인기세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이렇게 스님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곳곳에 있잖아요. 힘 내세요!"
먹지 않겠다는 나를 가게로 끌고 들어가 국밥을 말아주며, 땟국 흐르는 내 책을
찾아가지고 나와 사인을 부탁하는데...
처진 어깨에 힘이 들어감을 느끼며 발걸음을 돌렸다.
꿈?
어느 곳인가를 솜털처럼 가볍게 두둥실 떠올라 가고 있었다. 내 몸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있을까? 지그시 눈 감으니 한없이 평화롭고 고요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스함과 평온함이었다.
아무런 걱정 근심도 우울함과 통증마저도 사라진 것 같다. 이 생각 저 생각
마음 아픈 생각들을 떠올려 보았지만, 기쁨과 행복감을 더해 줄뿐이었다.
내가 어느새 도가 통한 것인가?
꼬집어 보아도 아프긴 하지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할 수 없다. 죽어서
극락에 온 것일까?
내 원이 지옥 가는 것이고, 또 극락갈 일 하지 못했으니 그럴 리는 없고...
이곳 저곳 자세히 살펴보니, 오른 쪽엔 무우국(근심없는 나라)이라 씌어 있고
왼쪽에는 환희국(기쁨의 나라)이라 씌어 있다.
그럼 내가 이 무우국과 횐희국 사이에 와 있다는 말인가? 언제 나타났는지
양쪽에 세 명씩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합장을 하고 서 있다.
천녀:스님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나:돌아갈 시간이라니요? 금방 이곳에 왔는데.
천녀:아닙니다. 스님, 이곳에 오신 지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더 오래 계시면
돌아가시기 어려워집니다.
나:그래요? 잘 됐습니다. 나는 여기가 무척 좋소.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천녀:아닙니다, 스님! 스님은 하실 일이 너무 많으신 분입니다.
나:싫소! 돌아가 봐야 근심 걱정 투성이고 자국 자국 가슴 아픈 눈물뿐이오.
천녀:스님! 스님의 걱정 근심은 중생의 업을 씻어주는 약이 되고, 가슴 아픈
눈물들은 귀신중생의 영혼을 씻어주는 감로가 되옵니다.
나:달콤한 말로 나를 속이려 들지 마시오. 난 여기서 살고 싶소.
천녀:스님은 원력보살이시니, 꼭 이곳에 사시겠다면 아무도 말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스님을 기다리는 많은 중생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나 :싫고! 당신들이 뭘 잘못 알고 있소. 나는 그대들이 말하는 원력보살도
아니고, 큰 사람도 아니오. 더 이상은 고통스럽게 살고 싶지도 않소.
언제 나타났는지 할머니, 어머니, 증조 할머니까지 근심어린 모습으로 합장하고
서 계신다.
"스님! 에미와 할미들을 알아보시겠습니까? 죄 많은 우리들은 스님 덕분에
근심걱정 없이 이곳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모두 스님이 쌓는 수행공덕 덕분이랍니다. 그러나 이곳도 기쁨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스님의 염불소리 기도소리가 다하지 않는 한, 스님이 중생들을 구하겠다는 원이
끝나지 않는 한, 에미와 할미들은 이곳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을 위해 돌아가주실 수 없겠소?"
눈을 뜨니 꿈이었다. 꿈? 꿈? 정말 꿈이었나?
진정 꿈이었단 말인가?
아! 할머니 어머니, 나는 어쩌란 말입니까!
자비의 문턱에 쓰러지더라도
초겨울 바다 내음이 코끝을 시리게 하고, 모래밭에 찍히는 발자국마다엔 싸늘한
마음만 고인다.
아! 저 확 트인 하늘처럼, 쭉 뻗은 수평선처럼 내 마음도 트일 수 없을까?
넓고 따뜻하게 열릴 수는 없는 것일까?
부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진작부터 알았으며, 결코 이 길을
걷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제 와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 옷을 벗는다 한들, 수십 년 부처에게 길들여진 내가 누구에게 다시 길들여
질 수 있단 말인가?
가자! 가는 데까지 가보자.
깨달음의 문, 자비의 문! 그 문턱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할 순 없다.
비록 꿈속이었지만, 어머니와 할머니들을 위해서라도...
모래알 민족
전화번호부를 뒤지며 수행할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여러 곳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외국인 수행자를 받아주는 곳은 흔치 않았다.
호주에는 생각보다 절도 많았고, 절 비슷한 수행처도 많았다. 태국절, 스리랑카절,
티베트, 대만, 일본, 월나절, 서양절들에다 속인들이 만들어 놓은 기도원과 수도원
등 불교적인 수행 집단이 의외로 많았다.
불교에 대한 관심도가 어느 나라 못지 않았고, 불교인의 증가 또한 세계
제일이었다. 거기에 따른 결과인지 대만에서 지은 '남천축사'라는 절은 상상을
초월한 모습이었다.
수천만 달러가 들었고, 이 절을 자기 주에 유치한 주지사는 정부로부터
표창까지 받았다 하니, 가히 불사 규모를 짐작하리라.
일본이나 태국 스리랑카절의 전통적 모양은, 그들 나라만의 독특한 정취를
느끼게 하고, 나라 없는 티베트 콤파(절) 또한 당당한 자세로 밀교의 신비를
드러내고 있었다.
바다 건너 도망온 보트 피플 난민들이 지어놓은 월남절마저도, 아린 마음을
더하게 하는 정서와 향취를 풍기며 서 있었다. 외로운 이국땅에 신앙을 중심으로
한마음이 되어, 관습과 전통 문화와 얼을 지켜가는 모습들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런데... 살 만큼 살고 불교 문화를 자랑거리로 내놓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그 한국 불당의 초라한 모습은 어떤 핑계나 변명될 수 없을 것 같다.
힘겹게 사는 이곳 스님들만을 나무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래알처럼 도저히 뭉쳐질 수 없는 안타까움 민족성, 사촌이 논을 사면
배아프다는 심성이 이곳에 와서도 작용하여, 호주 정부에서 준다는 종교 부지
땅마저,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작은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이, 쓸쓸한 가슴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성냥갑 움막에서
태국절 반다눈 수도원
여러 절과 수행처를 헤맨 끝에 두 곳에 인연이 닿았다.
한 곳은 시드니 시내에서 세 시간 거리의 부루 수도원, 또 한 곳은 두 시간 반
거리의 태국절 반다눈 수도원, 부루 수도원은 유교인이 운영하는 수행처였는데,
속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산만하였다. 그리고 반다눈 수도원은 태국
스님들만 계신 곳으로 수행인의 냄새가 배어 있는 곳이었다.
호주 절들을 돌아보며, 한국의 사찰들과는 정서가 많이 다른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모든 사찰들이 숙박업을 겸하고 있으며, 외국 스님은 물론, 자국의
신도들까지도, 먹고 자는 비용과 전기 수도 사용비, 차 한 잔 마시는 것까지
어김없이 돈을 받고 있었다.
아주 합리적인 운영 방법 같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유일하게 반다눈 수도원만은 예외였다.
숙식비를 지불하겠다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어찌 같은 형제(부처님
제자)끼리 밥값을 받을 수 있느냐며, 자신들의 계율과 규칙만 따라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함께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찰 운영은 어찌 되느냐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며, 태국 속담에 부처님
모시고 굶어죽는 사람 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것이었다.
며칠 뒤에 오기로 하고 돌아서는 가슴에, 아린 슬픔이 스며드는 것은 어찌된
연유일까? 한국인이 한국 절을 놔두고 외국인 수행처에 와야 하는 아픔 때문일까?
수도원 가는 길
겨울이 깊었는가 보다.
반다눈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싸락눈이 쌓인다.
차창에 스치는 풍경들이 을씨년스럽다.
청련화, ㅊ련화의 큰딸아이, 그동안 알게 모르게 도와준 김보살, 허보살! 스님
따라 절에 간다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며 따라나선 보살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하다.
내가 또 우울하게 보였는가?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내 몰골이 아무리
밝은 표정을 지으려 해도 결과는 그러지 못한 것 같다.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농담도 하고, 할 줄 모르는 노래까지 불러 보았지만 그저
숙연한 모습들이다.
청련화가 말문을 연다.
"스님! 이렇게 추운데, 꼭 수도원에 들어가셔야 하나요? 겨울이나 지나거든..."
말을 잇지 못한다. 아직도 초췌하고 병색 짙은 모습이 미덥게 못한가보다.
스님이지만, 오빠처럼 모시겠다며 정성을 다하더니, 정이 들었나보다. 오빠를
외지로 보내는 누이처럼 마음 아려한다.
돌아가자는 그들을 달래다보니 어느새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깊은 산에 어둠이 내려서인지 몹시도 추웠고, 내가 생활할 작은
허트(오두막)까진 본당 건물이 꽤 멀었다. 안내하는 스님의 손전등 불빛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돌아갈 길이 멀으니 서둘러 떠나라고 재촉했으나, 좀체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보살들을 보며, 저들에게 나라는 인간은 어떤 존재이기에 저리도 안쓰러워 하는
걸까? 내 담담한 마음이 미안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하였다.
성냥갑 움막
일어서면 머리가 닿고, 가로 세로 어느 쪽으로 누어도 발이 닿는, 성냥갑 같은
오두막, 바닥과 천장 벽까지 널빤지로 되어 있는 집이라, 도저히 겨울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데...
방에는 깔고 덮을 담요 두 장, 깨진 접시 위에 초 한 토막, 성냥 한 통이 놓여져
있다.
청련화네가 준 숄과 내 겨울 누더기가 없었으면, 동태된 한국 스님 장사 치르는
번거로움만 안겨 줄 뻔하였다.
밤새도록 몰아치는 바람에 오두막이 날아가버릴까봐 걱정하다 날이 샜다.
먼동이 트면서 언제 바람이 불었느냐는 듯, 눈부신 햇살이 너무도 평안하게
움막을 감싼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우거진 숲풀들과, 그 사이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뿐이다. 동서남북의 구별이 안되어 엉거주춤 서성이는데, 어제 나를
안내한 스님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스와디(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젊은 스님이었지만, 따스한 분위기가 참으로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서로가 서툰 영어였으나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침 예불을 5시,
공양(식사)시간은 하루 한 끼 10시 30분,
저녁 예불 7시, 모두 본 건물에서,
나머지 시간은 각자의 허트(움막)에서 수행하며,
작은 미물도 살생은 금물, 술이나 담배 마약 등은 절대 금지,
운전 금함, 신도들이 주는 공양물을 직접 손으로 받지 말며,
여신도와 접촉 금함."
이야기하다가 주문이 많은 것 같았는지 태국 스님이 씩 웃는다.
농담삼아 밤에 대소변은 어찌하느냐고 물었더니, 허트 주변에 적당히 하란다.
이곳에는 짐승들이 많아 맛있는 공양공덕이 된단다.
우리는 함께 웃고 돌아섰다.
호주의 명당은 꼭대기
움막을 나와, 본 건물을 찾아가는 오솔길엔--나무늘보 비슷한 것, 캥거루 새끼
같은 것--처음으로 보는 짐승들이 사람 무서운 줄을 모르는지, 빤히 쳐다보고
있다.
좋아라(?) 팔짝팔짝 뛰는 놈도 있는가 하면, 후닥닥 튀는 놈도 있다. 날아오르는
새들의 소리에 오히려 내가 놀란다.
종루가 보여 가까이 가보니, 북방 불교에 있는 사물(목어, 운판, 범종, 법고)은
없고 서양식 종이 걸려 있다. 대웅전 앞에 서니 하늘과 땅이 탁 트여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호주의 명당은 앞과 뒤가 트인 높은 언덕이나 바다가 보이는 산 정상이 되기에,
이 절도 세 시간 거리의 시드니 시내가 아지랑이처럼 내려다 보이는 산꼭대기에
세워져 있다.
북방 불교(대승)와는 달리 남방 불교(소승)에는 관세음이나 지장 같은 보살상이
없어, 본당 안에는 석가모니와 아래로 가섭과 아난존자가 모셔져 있다.
법당을 나와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또 하나의 소법당과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오고, 숲 사이로 얼핏얼핏 허트들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또 하나의 법당과 역시 연기가 오르는 건물이 눈에 뜨인다. 연기
나는 곳이 궁금하여 가보니, 목욕과 빨래 그리고 대소변을 보는 화장실이었다.
나무를 대서 물을 데우니 연기가 오를 수밖에는...
오른쪽은 비구들이 사는 지역, 왼쪽은 비구니들이 사는 곳이었으나, 남방
불교(소승)에는 비구니 승단이 없고, 거저 여자 수행자의 자격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여러 스님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제일 어른(조실) 스님과 주지 스님은 보이지
않아 물어보았다.
어른 스님은 미국에 계시고, 주지스님은 타스메니아 분원에 수행차 가 계시다고
한다.
조실스님과 주지스님을 소개하는 젊은 스님의 눈길에는 존경과 경외로 가득 차
있다. 두 분은 정신력으로 물건들을 옮기기도 하고, 병자도 낫게 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훌륭한 분들이란다.
이 수도원 땅도 신심있는 호주 불자가 조실스님께 보시하여 6년 전에 세웠으며,
호주땅에 기도처로서는 가장 크고 잘 알려져 있기에, 세계 수행자들이 꼭
거쳐가는 곳이기도 하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스님의 안내로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도록 꾸며진 좋은 수행처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 한 끼 일종식
남방 불교는 철저한 계율 불교이기에, 공양도 철저하게 일종식(하루 한 끼)이며,
부처님 당시와 마찬가지로 마을의 일곱집에서 밥을 빈다.
호주땅이다 보니, 밥을 얻는 탁발이 여의치 않지만, 신도들과 비구니 스님들이
공양을 지어 여법하게 걸식형식에 따라 고양의례를 치른다.
처음이라 모든 의식 절차와 생활 리듬이 맞지 않아 힘이 들었다.
점차 시간이 흐르니 추워도 견뎌 낼 수 있게 되고, 남방 불교 특유의
계율들에도 익숙하여 갔지만, 공양이 문제가 되었다.
이곳 스님들은 하루 한 끼 사시공양을 하지만, 그 분량은 내 열흘치 식사분에
해당할 만큼 많았다.
소식을 해왔기에 수행에 도움이 될 줄 알았으나, 그렇지가 못하다. 밥 한 수저로
하루를 견디며, 장정스님들과 똑같이 정진하기엔 힘이 들었고, 스트레스성
당뇨까지 겹쳤던 몸뚱이는 저녁이 되면, 중풍 들린 사람처럼 떨기 일쑤였다.
이곳 스님들도 저녁 허기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마늘, 파, 고추, 당근, 치즈,
꿀 등을 갈아 만든 짬뽕차를 마시는 것을 보고 나도 시도를 해보았으나, 뱃속이
적응을 하지 못하였다.
순간순간 혼수 상태가 왔지만,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수행 아닌 싸움을 해
나갔다.
부목이 주지스님?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 하던가. 벌써 두세 달이 훌쩍 흘렀는가 보다.
이곳에 적응하려는 몸부림은 내 몸의 병든 현상들을 잠재워 갔다.
통증이나 혼수와 이명현상이 사라지고, 술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자게 되었다.
그러나 무력감과 우울증은 여전히 달라붙어 있었다. 허트에서 본당 건물까지
10분 내지 15분 조용히 걷다보면 중간에 장작을 패기도 하고, 쌓아두기도 하는
창고가 있다.
며칠 전부터 이곳에는 장작 패는 사람이 보이는데, 부목 같기도 하고 행자
같기도 하였으나 큰 관심없이 지나치곤 했다.
오늘도 진눈깨비 내리는 속에 땀흘리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워, 돕겠다고
하였더니 사양을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무리하게 수행만 하지 말고 땅이 넓으니
산행도 하란다.
겉모습은 초라한데 범하기 어려운 위엄을 지니고 있다.
행자라면 나중에 큰 중노릇하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서려는데, 한국에서 무슨
공부를 했느냐고 묻는다.
설명하기가 번거로워 그냥 자비 공부를 했다고 하니, 싱긋 웃으며, 또 이상한
말을 한다. 나에게 따스한 기운과 하얀빛이 나는데, 그것도 자비 공부를 한
덕이냐는 것이다. 참으로 웃을 수도 웃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무슨 빛이며 기운이란 말인가?
행자인지 부목인지 별소릴 다 하는구나.'
무시하고, 공양 시간이 되어 법당으로 들어갔다.
어! 이런 일이, 항상 비어 있던 주지 자리에 그 부목 같은 사람이 들어와
앉는다.
부목도 아니고 행자도 아닌 초능력을 지녔다는 주지였으니...
산행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주지와의 오가는 정감이 따스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느낀다.
어느날 주지와 나는 수행동굴이 있다는 남쪽산으로 산행을 하게 되었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주지는 아직 젊었다.
의과 대학을 다니다가 자신이 치유능력과 투시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초능력 처리 문제로 지금의 스승을 만나게 되었으며, 결국 출가하기에
이르렀단다.
나도 허심탄회하게, 병들어 있는 몸과 한국의 여타 사정 이야기를 하니 조용히
웃으며 용기주는 말을 던진다.
"결코 쓰러지지 않으실 겁니다. 스님은 시련을 겪을수록 더욱 큰 일을 하실 수
있는 독특한 에너지를 지니고 계십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 사이 목적지에 당도하였다.
자신의 스승과 함께 보름 동안 물만 먹고 기도했다는 이 수행동굴은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참으로 안온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언제 준비했는지, 등에 멘 배낭 속에서 도시락과 책보따리 같은 것을 꺼내
놓는다. 펴놓은 책들은 주간지와 월간지 같은 것도 있었고, 신문 스크랩과 전단
같은 것도 있었다.
어느 스님과 벌거벗은 여인의 사진이 함께 실려 있는 가십기사 같은 것도
있었고, 또 어떤 곳에는 한 스님을 보호하려는 수천의 신도들과 경찰들이 대치해
있는 모습도 있었으며, 또 다른 신문에는 어떤 스님이 노란 가사를 검은 가사로
갈아 입고 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진이 차례대로 게재되어 있기도 했다.
"스님! 이 모든 것들이 저희 스승을 죽이려는 태국 기성불교인들과 매스컴의
작품입니다. 저희 스승을 보호하려는 신도와 기성 불교 세력과의 싸움 장면을
경찰들이 제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옷을 벗으라는 반대 세력의 끈질긴 요구에, 원하는 것이 이 옷이라면 벗어
주겠다며, 승려의 전통 가사를 벗고 검은 천을 두르는 스승의 모습입니다."
주지스님은 담담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저희 스승 프라하 아잔은 장차 태국의 정신계(불교계)를 끌고 나갈 분으로
주목 받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신통을 얻으실 정도로 수행이 깊으셨고 참으로
자비로운 분이셨습니다.
스승님은 해이해진 승풍을 진작시키고, 관제화로 곪아 있는 불교계를
개선하고자 새로운 불교 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성 불교인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던 것입니다.
불교가 국교인 태국에선 불교 일이 나라 일이기에 정부마저 개입하게 되었고
결국은 계획된 모략에 의해 옷을 벗게 되신 겁니다. 그러나 스승님을 따르는
신도들과 제자들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다시 포교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까지 손을 뻗친 태국쪽 사람들에 의해 또다시 음해를 당하게 되었고, 미국의
한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법적 제재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은 음식에 독을 넣어 스승님을 반신불수로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수행이 깊으셨기에 독을 몰아내고 이제는 거의 회복
단계가 되셨습니다.
저와 제자들은 이런 모든 상황과 과정들의 자료를 수집하여, 영문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법과 진실을 존중하기에, 이 자료들이 스승님의 억울한
사정과 진실한 마음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나 다른 스님들이나 아무도 그들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희들은 스님의 수행하시는 모습에 고무되고 용기를 얻게 되었으며, 진정
저희들의 스승같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계신 저희 스승님께도 스님의 말씀을 드렸더니 잘 모시라는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능하시다면 내일 저희 스승님과 통화를 하시면 좋은 인연이
될 것 같습니다."
그와 나눈 대화 그리고 함께 먹은 도시락의 맛은 오래도록 못 잊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 책임을 지고 있는 매스컴의 역기능과 횡포를
반드시 짚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산길을 내려왔다.
프라하 아잔!
프라하는 스님이란 뜻이고 아잔은 어른이란 뜻이란다.
승복을 벗어야 했고 미국으로 추방되었으며, 독까지 먹었고, 외국땅에 가서도
몸이 부자유스런 연금 상태에 놓여 있는 수행자!
그러나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고 웃음기까지
그득하였으니...
"take care! take care!"
누가 먼저랄까? 똑같이 나온 영어 단어 'take care.'
우리는 수만 리나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가장 가까이, 마음과 마음이
닿아 있다는 느낌을 주고 받았다. 다시 전화는 프라마나, 프라하용, 프라섬켐 등의
제자들에게 돌려졌다.
전화가 끝났는데도 오랜 침묵이 계속되고 있었다.
오년 전 왔다가 다시 오지 못하는 스승을 기다리며, 제자리를 지켜가는
제자들의 모습! 고통스럽도록 어려운 상황임에도 밝은 목소리를 지닐 수 있는
프라하 아잔의 맑은 영혼! 그들과의 영적 만남은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힘이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제자와의 만남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이 왔는가 보다.
내 작은 오두막에 경사가 났다.
엄지손가락 만한 새앙쥐가 옷을 싸둔 구석에서 새끼를 낳았다.
하얀 옷을 노랗게 물들인 오줌 냄새가 고약했지만, 꼬물거리는 어린 생명이
이렇듯 아름다울 줄은 미처 몰랐다.
허기들 때마다 하나씩 먹는 치즈 조각이, 새앙쥐 어미를 봉양(?)하느라 내 입에
들어 올 새가 없다.
청련화 식구들이 왔다. 그들은 음식을 싸들고 왔는데, 한국 제자들이 내일
이곳에 도착한단다.
그들이 왔다.
효선이와 법등명 그리고 재욱이와 재욱 친구가 함께 왔고, 그동안 퀸슬렌드
티베트 절에서 공부하던 지광스님도 왔다. 감정이 복받쳤는지 법등명은 가슴을
누르며 울먹이고, 효선스님과 지광스님은 무릎 꿇고 일어날 줄을 모른다.
전생에 이들과 어떤 사이였기에 금생에 스승 제자 인연으로 다시 만나,
껍질벗는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일까?
그동안 친해진 공작 한 쌍과, 까치, 문조, 참새 등 온갖 새친구들이 노래를
부른다.
하루를 묵고 제자들은 떠났다. 식구들이 쓴 것이라며, 슬그머니 편지 뭉치를
내놓고 돌아선 그들의 뒷모습...
돌아보고 또 돌아보던 그들의 눈망울이, 며칠이 지나도 지워지질 않는다.
그들이 전해 준 편지를 읽으며, 나는 더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어야 했다.
인간의 본성은 선악마저 초월한 절대 자비의 감로가 가득하다 하였건만 어찌
이리도 악랄하며 거짓스러움과 위선으로 가득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진정
성숙과 진화의 존재가 아닌 탐욕과 어리석음, 투쟁과 분노로 일그러진 구제 받지
못할 오욕덩어리에 불과하단 말인가!
제자들의 편지를 "마하무드라 1"에 넣었으나 책의 분량상 다음 책 "마하무드라
2"에 싣기로 미루었다.
스승과 공덕원을 지키고자 몸부림했던 그들의 삶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줄 수
있는 스승이 되고자 신명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지구의 배꼽 '에어즈 럭'
일어서야 한다. 이대로 쓰러질 순 없다.
하루 속히 무기력과 우울에서 벗어나야 한다.
잃어버린 에너지와 원력을 되찾고, 반드시 절대 자비의 세계를 체험해야 한다.
일어서자! 일어서자!
시계 바늘이 거꾸로 돌고 나침반이 멋대로 움직인다는 에너지의 산 '에어즈
럭'에라도 가보자.
지구의 배꼽이라고도 불리우는 그 곳에 가면, 가물거리는 내 영혼의 배터리를
충전시킬 그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니...
지광스님, 재욱이, 재욱이 친구, 그리고 나 넷이서 성산 '에어즈 럭'을 향해
출발하였다. 호주의 황량한 사막을 건너고 사람들이 땅속에서 사는 땅굴 마을도
지났다.
초행길이기에 잘못 알고 들어갔던 원주민 촌락에서, 알콜과 마약으로
찌들어가는 호주 '에버리진'(호주의 원주민 이름)의 참상도 보았다. 밤낮을 달려
10일만에 도착한 성산 '에어즈 럭'은 흙이나 돌산이 아닌 철산이었다.
정말 나침반이 마음대로 도는 이상한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지만, 내 우울과
무기력의 나침반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허탈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운명적인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달라이라마를 모시고 호주에 온 툽텐라미와의 만남이 그것이었느니...
기운 없이 서 있는 내 뒤통수에 차를 타고 지나가며, "안녕하세요."
란 인사말을 보내온 게 만남의 시작이었고, 참으로 우연히도 세 번씩이나 다시
만나게 되는 기이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결국 나는 그가 사는 인도땅, 망명 티베트의 서울인 달람살라로 초청을 받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그의 초청이 티베트 밀교 세계로의 초대였으며 나를 환생케 하는 더
큰 세계로의 초청이 될 줄이야...
2. 모두가 거지, 모두가 수행자
성자의 그림자
사랑하는 제자에게
효선아.
머나먼 천축국 지금의 북인도 땅 꼭대기
독수리만이 찾아드는 설산 아래 긴 여정을 풀었구나.
인도의 살아있는 성자들
설산에 은거하다 일년에 한 번 나타나는
비하루 주의 '싸티아난타'로부터
끝이 안 보이는 사원의 소유자 '라다스와미'
한서린 달람살라 왕궁의 주인 '달라이라마'와
'림포체'라 불리우는 티베트의 환생자들
전용 비행기와 전용 활주로를
가지고 있는 현대판 성자와
재산이라고는 부모가 물려준 몸뚱이 하나뿐인
발가벗은 사두(자이나교 수행자)까지.
성자라 불리우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기차로 자동차로 비행기로 때로는 걸어서
수만 리를 헤매었구나.
너희들 기도 덕인지 만나기가 어렵다는 분들을 모두 뵙고, 설산 깊숙이
숨어사는 은둔 요기(남자 수행자)와 요기니(여자 수행자)는 물론, 티베트 밀교의
마지막 고승들도 친견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단다.
병들고 지친 몸이었으나 고갈되었던 영기가 다시 살아나는 기쁨과, 서로 다른
에너지를 뿜어내는 성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겠다는 열망으로 온 인도를
헤매고 다녔구나. 희열과 고통이 교차된 순례의 시간들었다만...
성지순례가 아닌 성자순례길은, 더 큰 행운과 가피 그리고 더 간절한 기도가
따라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단다.
여기 그 분들과 만나며 느끼고 받았던 향훈들을 글로 적어서 보낼 터이니, 너와
나는 물론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의 업장이 소멸되는 인연되게 하자꾸나.
오로빈도와 영성음악
델리에 있는 '성자 오로빈도' 아쉬람(절)을 찾았구나.
인도인들에게 널리 존경받고 사랑받던 그도 역시 또 다른 생을 받아 떠나고,
가냘픈 한 여인이 그 위업을 이어 받아 인도 곳곳에 오로빈도의 신비사상을
펴나가고 있구나.
본원은 남쪽 도시 마드라스에서 자동차로 네 시간 걸리는 '본디체리'라는 곳에
있고, 이 델리 아쉬람은 분원이지만 중, 고등학교도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오는 요가 수행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장소와, 각종 수련 시스템도
갖추고 있구나.
이곳을 운영하는 여인은 악인도 무릎을 꿇게 하는 신비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오로빈도의 사상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뛰어난 인물이라기에, 두
번씩이나 방문하였다만 허탕을 치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 세 번째마저도 지친
발걸음을 돌리게 하는구나.
지금 무엇 때문에 이 곳을 세 번씩이나 찾아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단다.
이미 떠나버린 성자의 초상을 쳐다보고, 그가 남기고 간 그림자들을 밟아본들
어떤 의미가 있으며, 신비한 에너지를 지닌 여인을 만나본들, 내 가물거리는
영성의 빛에 무슨 힘이 되겠는가를...
터덜거리는 발걸음에 맞추기나 하려는 듯, 어디선가 애절한 멜로디가 들려온다.
꼭 귀신의 울음처럼...
홀린 듯 소리나는 곳에 당도해 보니, 호궁을 탄 선녀같은 여인이 악기를 끌어
안고 주문 같은 노래를 읊조리고 있고, 그녀 주위엔 노래 소리에 맞추어 상체를
조용히 흔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빙둘러 앉아 있구나.
찰랑거리는 물컵 속에 동전을 조심스레 집어넣듯, 나 역시 그들 무리 속으로
가만히 빠져 들고 말았단다.
방황하는 영혼을 붙잡아 쉬게 하는 듯한, 떠도는 귀신의 마음을 달래어 평안한
곳으로 인도하는 듯한 묘한 소리...
이 아쉬람에서 자랑하는 프로그램중의 하나인 요가 음악, 일명 영성 음악에
이끌리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는 음악을 모르지만 당신의 노래와 악기(시타르)소리에는 지친 영혼을 쉬게
하는 영적인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나도 염불이라는 음악을 통해 떠도는 영혼을 달래기(천도)도 합니다만, 그
영성의 힘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 힘을 다시 찾고자 긴 순례길에 올랐습니다만...
먼 곳에서 온 이 사람에게 한 곡만 더 들려주십시오."
낸 영성의 빛이 다시 타오르기를 바란다며, 그 여인은 내게 또 다시 이름 모를
노래와 함께 악기를 연주해 주었단다.
지금도 그녀의 주문 같은 악기 소리와 말 소리가, 스멀스멀 귓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구나. 여기 영성음악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적어 보내마.
'일반적으로 영성 음악이라고 하는 이 요가 음악은, 가장 고등하고 아름다운
주문입니다. 영성의 힘이 깊은 사람은, 새나 고양이는 물론 작은 풀꽃과도 교감을
나눌 수 있습니다.
모든 생물은 나름대로의 고유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는데, 공부의 힘이 깊어지면
그 진동수를 알게 되고 그 진동수를 알면 어떤 대상하고도 대화가 가능하며, 그
대상을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돌아가신 스승께선 그것이 가능하셔서, 상처받은 영혼을 달래주고 병든
마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의 이 인연으로 스님의 영성의 빛도 다시 활활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살아 있는 성자 싸티아난다
또 한 분의 성자를 만나기 위해 비하루 주의 파트나 공항까지 비행기를 타야
했고, 유리창도 없는 고물 자동차에 몸을 싣고 열 시간을 넘게 털털거리며 달린
끝에, 문개르 시 '알락바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단다.
밤 12시가 넘었으나, 불꺼진 아쉬람의 문을 안면몰수하고 두드리고 두드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단다.
어쩔 도리가 없어 다시 온 길을 되짚어 나가다 보니,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하게
됐고, 간신히 방 하나를 얻게 되었구나.
먼지투성이의 몸을 씻고자 둘러보았지만, 목욕탕도 물도 보이지 않아 주인에게
사정을 하니, 물 두어 바가지에 식사 한 끼 값을 요구하며 필요하면 줄 터이니
모기장도 담요도 선풍기도 각각의 값을 내라는 말을 덧붙이는구나. 어찌 성자가
사시는 곳 인심이 이리도 야박하냐고 물으니, 그래도 성자 덕에 이곳 사람들이
먹고산다는 이야기를 동문서답으로 하는구나.
인도의 살아있는 성자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싸티아난다'의 아쉬람!
어젯밤과는 전혀 다르게 아침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홍수를 이루었단다.
일년에 20일 정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서 설법하고 그 외에는 설산에서
알몸으로 은거 수행하는 분! 스승 '시바난다'에게 우주의 에너지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법을 이어 받았고, 말법시대에는 체계적인 영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견해하에 인도 유일의 요가 전문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나, 이미 모든 것을 제자
'니란자난다'에게 넘겨 주고 수행에만 모두하고 계시단다.
이 분의 말씀을 들으러20일 동안 세계 각처에 모여드는 사람 수는 헤아릴 수
없으며, 호텔, 여관, 민박까지, 가까운 도시의 숙박업소는 일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만 한다는구나.
이 아쉬람에는 뜻밖에도 교회와 사당이 있어, 좁은 안목의 수행자들에게 눈을
크게 뜰 수 있는 충격도 안겨준단다.
성자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절대금지되어 있어, 아쉬움을 금치 못했는데,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으니 행운인지 운명인지? 아랫도리의 중요한 부분만 한 자의
수건으로 가린 발가벗은 모습이 어린아이같이 사랑스러워(?) 앞뒤 생각 못하고
몸을 만졌다가 주위 호위군사(?)들에게 주의를 받기도 하였단다.
그러나 나에게 자신의 염주를 걸어주는 온정도 베풀고, 외국인을 위한 법회 때
자기 곁에 자리를 만들어 앉게 하는 배려도 잊지 않더구나.
그 덕분에 웃지 못할 경험도 하게 되었단다.
그 분이 내게 걸어 준 염주 때문에 수도 없는 키스 세례를 받아야 했고, 염주
낀 손목의 껍질이 벗겨지고 마는 행복한(?)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단다.
한 인간의 영적인 힘을 몸서리치도록 진하게 느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구나.
이 분의 법을 이은 제자 '니란자난다'가 총장으로 있는 요가대학을 방문하여
하루를 묵었는데, 감각이 없던 발끝의 세포들이 모두 살아나는 이상한 에너지를
받음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중의 하나였구나.
여기 성자 '싸티아난다'와 나눈 이야기를 적어 보내니, 잘 새겨 보도록 하거라.
나(용산):깨달은 경지가 어떠한지요?
성자(싸티아난다):구태여 말을 빌리자면,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경계라네.
나:깨달은 분들이 나타날수록 세상은 아름다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허물 수 없는
성벽만 쌓여가고 살육과 전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데, 그대로 세상에는 성자와
종교라는 것이 필요한지요?
성자:머리를 기르는 나에게는 머리카락이 있어야 하고, 자네같이 머리를 박박
깎은 사람에겐 머리칼이 필요 없겠지.
우린 서로 쳐다보며 빙긋이 웃고 말았단다.
나:지금보다 더 발달된 문명이 수천 년 전에도 아니 수만 년전에도 존재했음을,
현대 과학자들은 하나하나 밝혀내고 있는데, 인류는 퇴보하고 있는 것인가요,
진보하고 있는 것인가요?
성자:떴다 가라앉았다 하지만 진화하고 있다네.
나:이곳에선 현존하는 스승을 부처님보다 더 믿고 따르며,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히 받들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서와는 다릅니다.
성자:스승은 바로 길이요 안내자인데, 어찌 안내자 없이 모르는 길을 간단
말인가? 그대 나라의 정서는 어떠한지 모르지만, 내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스승이라네.
나:저에게도 스승을 모실 수 있는 복연이 있는지요?
성자:북쪽으로 가보시게.
나:저는 불민하여, 이 나이가 되도록 방황하고 있습니다. 좋은 충고의 말씀 한
마디 해주십시오.
성자:진리를 찾아 헤매는 방황은 아름다운 것이네.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럴 수
있다는 것은 더욱 큰 아름다움이지. 자네는 복 받은 사람이네.
성자의 그림자
효선아!
너도 들으면 알 수 있는 '라즈니쉬'라는 성자의 아쉬람을 찾아 왔단다.
이미 그의 모습은 한줌 재로 사라졌지만, 한때 그는 큰 나라 국가원수들만 탈
수 있다는 롤스로이스를 아흔 아홉 대나 소유하는 여유와 부를 누렸단다.
점잖은(?) 여러 나라에서 추방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세계 각국의
수백만 추종자와 수천만 독자들을 웃기고 울렸던 사람!
그가 살던 아쉬람을 바라보며 인생무상의 감회에 젖어 있구나.
'성자도 가고 범인도 가고, 부자도 가난뱅이도 선인도 악인도 모두가 가는
죽음의 길...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지친 몸 이끌고 이 머나먼 길을 오는 나
같은 자들도 없어지련만...!
머리를 흔들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니, 사람의 모습을 한 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있구나.
라즈니쉬 아쉬람에서 만난 자칭 전위 조각가와 나눈 이야기를 적어 보내니,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읽도록 하려무나.
나:이곳 수행 프로그램을 통하여 배운 게 있다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는가?
조각가:어렵지 않다.
나:뭘 배우고 뭘 얻었는가?
조각가:성적 에너지를 영적 에너지로 바꾸고, 좌절과 실패에서 오는
공포에너지를 성숙의 에너지로 바꾸는 것을 배웠다.
나: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한다며?
조각가:걱정과 근심의 에너지를 기쁨과 환희의 에너지로, 번뇌와 망상의
에너지를 깨달음의 에너지로, 탐냄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의 힘을 절제와 평온과
지혜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다.
나:그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가?
조각가:말로는 어렵다. 당신도 프로그램에 참석해 보거라.
나:삶에서 겪어야 하는 모든 부정적인 에너지를 긍정적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인데... 자유자재로 되는가?
조각가: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잘 안된다. 단지 부정적인 것들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발산시키는 정도까지 배웠다.
나:어떻게 발산시키는가?
조각가:요가체조와 명상, 노래와 춤, 스킨십과 폭력, 파괴와 악을 쓰는 몸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이다.
나:이곳 프로그램의 장점을 이야기한다면?
조각가:비록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주고, 나같은 예술인들에게 영적 자극도
주며, 발광과 자살 직전의 사람들에게 모르핀과 같은 진정제 역할도 한다.
나: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작정인가?
조각가:이곳 생활을 좀더 즐기고 싶다.
나:행운이 있길 바란다.
조각가:당신도...!
프로그램에 참석해 보겠다는 나를 극구 말리는 통역 겸 안내인은 이곳에 잠깐
있었던 한국 여학생이었다.
"왜 말리느냐? 한국인들도 있고 한국 스님도 계시다는데..."
"그래도 스님은 한국의 자존심입니다."
"자존심?"
"이곳이 나쁘다는 말씀이 아니라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지..."
나를 말려보겠다고 전전긍긍하는 이 아이의 마음이, 충분히 가슴을 전해 오는
것 같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발길을 돌려야 했구나.
모두가 거지 모두가 수행자
효선아!
마음과는 달리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을 보면, 나도 이제 늙었는가 보구나. 손과
발이 물러 터지고 이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물과 음식 탓도 있겠지만 나이 먹은
결과가 아니겠니?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너희들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곤 한단다.
도량을 지켜가며 많은 어려움들을 헤쳐나가는 너희 모습들이 나를 쓰러지지
않게 하는 힘이 되고 있구나.
한은 구천을 떠도는 귀신을 낳고, 간절한 원은 삼생을 뚫고 환생하는
원력인간을 만든다 하였으니... 영원히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수행자로, 전생업
금생업 인연 닿는 모든 이의 업을 끌어안고, 소신공양 올릴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보는구나.
이 땅은 분명 수행이 통하고 자비가 흐르는 영기의 땅이란다. 거지와 매연과
오물이 온 도시를 덮고 있지만, 그 밑에 흐르는 영적 에너지는 10억 인구를
버티게 한단다.
카스트 제도라는 천형의 차별, 소만도 못한 더럽고 가난한 삶, 더위에 찌드는
악조건 속에서도 영성의 빛이 바래지 않음은, 역시 물질은 정신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 같구나.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다 수행자 같기도 한 묘한 이곳을, 누구나 한 번쯤
다녀갔으면 하는 생각도 해보는구나.
만남의 소중함
효선아!
만나고 헤어짐이 모두가 인연 소치라 하겠으나, 삶에는 극적인 요소들이 너무도
많은 것 같구나.
사람이나 땅덩이가 우리나라의 수십 배가 넘는 이 큰 나라에서, 어느 성자가
어느 곳에 있으며, 누가 가짜고 누가 진짜인지 구별한다는 것은 초행길인 나에게
무리일 수밖에 없었단다.
성자 투성이(?)인 이곳에서 비하르 주의 '싸티아난다'나 펀지브주의 '라다스와미'
같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음은 순전히 '묵상'이라는 요기니 덕분이었단다.
그녀와의 만남 또한 예사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구나.
호주 시드니 비행장에서, 엉덩이까지 치렁치렁 길러내린 머리와 인도식 옷을
입은 그녀를 바라보며, 지광스님과 나는 한국인 닮은 인도인도 있다며 웃고
있었단다.
멀리 앉아 있던 그녀가 우리의 얘기를 들은 것처럼 다가와.
"한국 사람입니다."
라고 인사하는 바람에 일차로 놀라고, 지광스님 보고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 30분만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하는 당돌함에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단다.
한국까지 가는 열 시간을 다 이야기 해도 끝이 없는 그녀의 해박함과 전혀 지칠
줄 모르는 그녀의 에너지에,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었구나.
여인이라는 신분이 악조건으로밖에 작용할 수 없는 종교사회 특히 한국과
인도에서, 요가센터를 운영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일가를 일구어 낼 수 있음은,
어느 모로 보나 가상한 일이 아니겠니?
내 일정의 차질로 그녀 그룹과 함께 하는 인도 여행은 무산됐으나, 그때의
인연으로 인도에 와서 도움을 받게 되었단다. 악연이든 선연이든 만남은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선현의 말씀을 다시 한번 들려주고 싶구나.
인도의 어머니
인도인의 어머니!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바로 강가라고 불리우는 갠지스강의 인도인들은 그렇게 부른다.
이 강에서 목욕하면 모든 숙업의 죄가 씻겨지고, 죽어 태워진 재가 강가의
가슴에 뿌려지면 영원을 얻는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 인도인들에게
강가강은 바로 어머니였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 타다 남은 것을 노리는 굶주린 개와
머리 벗겨진 독수리떼...
타고 있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도통한 소...
관광객과 순례자들! 종교인이 아닌데도 종교를 한 번 정도 생각하게 하는 곳이
강가이기도 하다.
강 옆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지어 놓은 성들과 사원이 줄지어 있고, 건물들과 강
사이엔 '가트'라는 돌층계가 있어 목욕터와 화장터 역할을 겸하고 있다.
타다 남은 뼈와 재를 그대로 밀어넣고 있는 바로 아래에선, 상기된 순례자가
무어라 주문을 외우며 뼈와 잿더미를 휘젓고 물을 마신다.
강물을 이마에 퍼부으며 환희의 노래를 부른다. 모두가 설명 불가능의
모습이다.
같은 순례자요 수행자이건만,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나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흉내라도 내보자고 발을 벗고 들어갔으나, '강가'는 내 마음을 아는지 거부의
몸짓을 한다.
강가는 수천년 동안 인간의 뼈와 살과 혼을 먹고 산 힘 때문인지, 물을 떠다
며칠씩 놔두어도 썩지 않고 벌레마저 생기지 않는 신묘함을 지니고 있다.
인도의 더러운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다 끌어 안아 정화시켜주는 어머니 같은
강가가 있음은 인도인의 긍지요, 이들의 영성을 지켜주는 강한 힘이 되고있다.
어제가 내일
설명될 수 없는 나라
인도엔 강가강만이 불가사의가 아니라, 다양한 인간유형과 너무도 격이 다른
삶의 모습이 또 하나의 불가사의다.
우리는 인도의 카스트(신분제도)가 네 가지(승려, 왕족, 평민, 노예) 정도로
배워왔지만 실제는 수백 가지 아니 수천 가지가 넘는다. 평민 중에서도 있는 자,
없는 자, 못 배운 자, 도시와 시골 거주자가 다르다.
천민 가운데도 요리사, 정원사, 청소부, 세탁부가 다르며, 청소하는
사람중에서도 식탁 닦는 자와 방바닥 닦는 사람의 계급이 엄연히 다르다.
직업 따라 세분되는 카스트가 이천여 가지나 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서로 다른 카스트와는 결코 결혼할 수 없는 불문율이 너무도 잘 지켜지고
있기에, 계층간의 구분은 더욱 심화되어 간다. 인도를 망치는 것이 있다면 이
카스트 제도요, 또한 인도를 버티어 나가는 힘이 있다면 그것도 이 카스트
제도라니 정말 알 수 없는 나라다.
벤츠와 우마차, 오토바이와 똥지게가 서로를 비집고 다니며, 핵무기와 물레,
인공위성과 요강이 다함께 필수품인 다양성...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들이 함께 존재하는 인도를 단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일 뿐이다.
우리나라 부자는 명함도 못 내밀, 너무도 잘사는 20퍼센트의 상류 사회
사람들과, 또 20퍼센트의 중산층 사람들, 그들을 뺀 나머지 모두는 가난한
천민들이다.
상류층 사람들을 위한, 상류층 사람들에 의한, 상류층 사람들의 정책 속에
용케도 지탱되어 가는 나라...
다른 사람의 옷깃만 스쳐도 죄가 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기만 해도 부정을
탄다고 침 세례를 받는, 불가촉 천민이 엄연히 존재하며, 그 숫자가 일억이나 되는
나라...
석가, 마하비라 등 불교와 자이나교의 교주가 태어났고, 간디, 마하라쉬,
오로빈도 등 수많은 싯다(성취자)들을 배출한 나라.
지구상의 인구 6분의 1이 숨쉬고 사는 곳인 만큼, 인간의 온갖 유형을 다 볼 수
있는 나라.
겨울엔 몇백 명이 얼어죽고 여름에는 또 수백 명이 쓰러져도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는 나라.
길거리의 거지들이 모두가 성자같이 보이는 나라.
상상을 초월한 일들이 예사로이 일어나고, 온갖 상상력과 언어를 다 동원해도
설명될 수 없는 나라.
이런 인도의 모습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인도를 배우는 것은 세상을 배우는 것이다.'
라는 결론은 무디어진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제가 내일
효선아!
우리들은 부처님의 일생을 배우면서, 부처의 탄생 연대도 제대로 모르는
인도인들을 이상하게 생각했었잖니?
여기 와서 보니 이해가 가는구나.
어제라는 단어와 내일이라는 단어가 같고 그제와 모레가 같으며, 며칠 전과
며칠 후라는 단어 또한 같으니, 시간 개념과 연대 개념이 어떻게 정확할 수
있겠니?
돌고 도는 윤회 속에서 보면, 어제가 내일일 수 있고, 앞뒤가 바뀔 수도 있으니
할 말은 없다만, 이들에겐 장유유서의 개념도 희박하여 어른과 애들의 대화도
친구간의 말씨와 다를 바가 없단다.
추운 겨울이 영상 2, 3도를 넘고 여름은 50도를 웃도는 상하의 나라이고 보니,
사철의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들의 사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많구나.
사계절이 없는 나라의 꿀벌은 꿀을 모으지 않고, 추위를 모르는 동물은 겨울을
준비하지 않듯이, 추위 걱정과 쌓아두어야 할 염려를 모르는 이들 삶의 패턴은,
빨리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낙오되고 마는 우리의 삶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어
보이는구나.
중국인의 만만디9천천히)보다 더 느린 이들의 속성을 파악하지 못한 한국
기업인들이, 가슴을 치며 답답해 하는 모습도 알만 하단다.
한국의 '빨리빨리'가 통할 수 없는 나라 중 하나임을 알아두는 것도 좋겠구나.
나그네 가슴
인도에 온 지도 얼마 안되는 내가 인도인을 닮아 가는지 오늘이 며칠이 되고,
여름인지 가을인지, 나와 동행한 부라 부부의 두 아들 '아론' '팅키'가 슬며시
내미는 카드에서 'MERRY CHRISTMAS!'라 적혀 있는 글귀를 보지 않았으면,
오늘이 12월 25일인 줄도 모를 뻔하였구나.
효선아!
매년 이날이면 너희들은 노래와 춤, 연극과 코미디 등, 온갖 재롱으로 이 못난
스승을 즐겁게 해주었지. 내 생일과 겹치는 크리스마스를 보은의 날로 정해
놓고서 말이다.
그러한 어린 너희들을 선동하여 스승의 가슴에 못을 박게 한 사람들이, 오늘은
미운 모습으로 떠오르는구나.
오늘은 왠지 아침부터 심란하구나.
강가에서 불에 타고 있는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얀 소의 큰 눈망울이
자꾸만 어른거리고, 여기서 얼마 안되는 '구시나가르'란 곳에서 돌아가신 부처님
모습도 떠오르는구나.
제자 아난의 부축을 받으며 길가 나무 그늘 아래 고향 땅 가빌라 쪽으로 머리를
두고 돌아가신 그 분이, 오늘따라 그리워짐은 몸과 마음이 약해진 탓일까?
복통과 설사로 고생을 하면서도 쉬지 못하고, 무엇을 찾아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석가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을 지니고 계셨으니, 외로워도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쉴 곳 없는 나그네의 가슴앓이를 절실히도 느껴보는 시간이구나.
어린 제자에게 나이 먹은 스승이 넋두리를 하다니, 그럴 나이도 아닌데
망령기가 발동하는가 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거라.
부처님같이 넓고 따스한 가슴을 지녀 보기 전엔 쉽게 눈을 감을 것 같지가
않으니 말이다.
기도 많이 하거라.
성자 마하리지
공사상에 철저한 구루(스승) 마하리지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분이다.
'모든 것은 환상이며 꿈이며 지나가는 풍경이다. 마음이라는 것도 생각들이 얽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전생도 내생도 환생이라는 것도 꿈이다.'
인도의 구루들이 수행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자아를 인정했으나, 이 분만은
철저하게 자아를 부정한 분이다.
그의 저서에 매료되어 인도에 오면 그 분을 찾아 뵈리라 마음 먹고, 그 분의
아쉬람을 알기 위해 대사관 친구에게 부탁했더니 오늘에서야 연락을 받았다.
주소 하나만 들고 비행기로 세 시간 거리의 '부와네스와르'라는 곳에 도착하여,
다시 자동차로 갈아타고 열 시간, 또 다시 열 시간을 헤맨 끝에 구루가 사신다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 그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인생사가 예측불허의 연속이듯, 와서 보니 이 곳은 동명이인인 다른
마하리지의 아쉬람이었다.
그러나 이 분도 100여 년 가까이 장좌불와 하신 구루 중의 구루라는 현지인들
이야기와, 비록 내가 찾는 곳은 아니었지만 또 다른 수행의 에너지를 지닌 분을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에, 기꺼이 인사를 올리기로 하였다.
거처는 조그마한 벽돌 움막이었고, 집 뒤에는 수십 개의 석굴 구멍이 벌집처럼
뚫려 있는 돌산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언제 석굴들이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요기들의 수행처로 사용되고 있었다.
가부좌 하고 앉은 그 분의 양 옆으로 열서너 명의 제자들(?)이 앉아 있었다.
"한국에서 온 수행자입니다.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몇 마디 여쭈어도
되는지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풍체는 머리와 수염이 백설같은
선풍도골, 그동안 만났던 누구보다도 거룩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는데 눈동자만은
새빨개져 있었다.
나:장좌불와 하셨다는데 얼마 동안 앉아 계셨습니까?
구루:잘 모른다.
대신 옆의 제자가 말을 받는다. 자기 나이가 80세인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장좌불와하고 있는 구루 옆에서 논 기억이 나니, 적어도 팔십년은 넘었고, 길게는
백년도 더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상한 것은 담배를 연신 돌려가며 피우는데, 방
안이 설명할 수 없는 냄새로 절어 있었다. 한국의 청정한 수행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나:피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두말 없이 담뱃대를 내밀며 피워 보란다. 기분이 내키지 않았지만 몇 모금 빨아
보았다. 핑도는 느낌이었다.
구루:어떤가? 그 담배는 우리 수행자들이 영성을 개발하고, 온갖 잡사에서
벗어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물건이다.
나:영성을 개발한다 함은?
구루:더 넓고 더 큰 세계를 경험하고, 무한한 평화와 행복을 맛보게 함이다.
나:이 담배가 혹시 마약의 일종인 핫시시라는 것이 아닌지요?
인도에는 핫시시와 비슷한 마약류의 약초를 씹고 피우는 인구가 수억을 넘는다.
이것을 사용하는 수행자 집단도 많다.
구루:먹고 마시는 것이든 피우고 짝짓는 일이든, 대상에 먹히면 마약이 되고
내가 대상을 먹으면 보약이 된다.
마약 같은 담배에 취한 탓일까? 머릿속이 어수선하다.
나:저는 지금 인간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모두 잃어버리고 무기력과 우울증
속에, 영적 스승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적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는지요?
구루: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다. 배 아픈 데는 복통약, 머리 아픈
데는 두통약이면 되듯, 무기력과 우울증에는 저 담배만한 스승이 없다.
나와 같이 이곳에서 수행하면 만사가 다 해결될 것이다. 그대나 나나, 이미 날
때부터 운명은 결정되었다.
무얼 찾아 발버둥하는가?
사는 동안 최대한 기쁨을 누리며 살다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으면 모든
것은 끝이다. 이름과 재산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쌓아 두었다가 어디다
쓰겠는가?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면 된다.
나:죽으면 끝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합니까?
구루: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도 돌아와서 끝이 아니었다고 일러준 사람도 없다. 그대가 예까지
온 것도 사실은 행복을 찾아서가 아닌가? 왜 어렵게 고생을 사서 하며 멀리
헤매는가? 바로 그대 곁에 그대 손 안에 있다.
구루가 또다시 담배를 권한다.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뭔가 기대 하는 마음에
받다 피웠다. 맞지 않는 인연인가? 전혀 다른 에너지 때문인가? 속이 메슥거리고
울렁거릴 뿐이었다. 더 인내하고 앉아 있기엔 한계가 온 것 같아 구토를 핑계로
나와서, 맑은 공기에 머리를 헹구고,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동안 가봤던 아쉬람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또 다른 에너지를 지닌
곳이었다. 인도에는 마약을 상습하는 수행 그룹이 있다더니, 어쨌든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었다.
올 적엔 몰랐는데 다시 돌아가야 하는 발길은 너무도 힘들었다.
'좋은 것이라도 대상에 먹히면 마약! 나쁜 것이라도 먹고 잘 소화시키면
보약!'이라니 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나 이 말은 일생을 수행자로 사는 사람들이나, 어떤 경계를 뛰어 넘은
특별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평범한 속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약을 상용하면서도 중독되지 않고, 여여한 삶을 살다 가는 사람은 결코 보지
못했다.
인도에 가면 사이비 구루, 사이비 사두와 사이비 요기들을 조심하라는 충고를
되뇌어 보며, 마하리지의 잔상을 지우려 하였으나 그의 주문 같은 말들이 또다시
살아난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너나 나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인데 무얼 찾아
발버둥하는가!'
이미 운명은 결정됐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그의 말에 아무런 반박의
대답도 떠오르지 않고, 신앙으로 밀어 붙이기엔 저 밑에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말을 듣지 않는다.
죽으면 끝이다? 죽으면 끝이다?
내 순례의 여정도 이 질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 나오는 날 끝을 맺게 되리라
생각하며,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집단 섹스장(?) 카주라호
인도를 소개하는 엽서나 책자에서 낯 뜨거운 남녀의 교합상으로 온통 도배를 한
것 같은 한두 사원을 보아왔다.
플레이보이 잡지는 이름도 못 내밀 너무도 다양하고 적나라한 섹스 장면을,
무슨 이유로 엄숙한 사원벽에 조각했는지가 관심사였는데, 오늘 그 유명한
조각들을 옷인 양 두르고 서 있는 카주라호의 사원에 오게 되었다.
카주라호는 호수가 아니라 'KHAJURAHO'라는 단순한 도시 이름이고,
도시라기보다는 절동네 같은 곳이었다.
사원 바깥 벽을 장식한 천녀상과 미투나상(남녀교합상)은, 그림에서 보거나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나라했다.
너무도 육감적이고 풍만한 남녀들! 짐승들까지 어울려 연출하는 섹스 장면은
가히 에로티시즘의 극치였다.
지금부터 천년 전에 세워진 사원 도시!
천년 전의 인간 모습도 지금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고, 오히려 더 화려하고
육적인 삶을 산 것 같았다. 어떻게 사원의 벽을 집단 섹스장으로 만들었을까?
그러나 조각들을 보면서 낯 뜨겁다는 생각은 점차 사라지고 단순한 혼음의
세계가 아닌, 가장 신성한 신들의 세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은 어찌된 연유일까?
남녀 교합의 절정세계를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세계로 승화시키려 했던 힌두
탄트리즘.
남녀 교합의 극치에 이루어지는 성에너지를, 깨달음의 에너지로 사용했던 밀교
탄트라.
이런 탄트리즘의 영향이라는 설명을 접어두더라도, 조각들 속에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음은 너무도 인간적인 모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 조각들의 하나하나에 신성한 숨결들을 불어넣은 조각가들의 신앙심
때문인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깨달음으로 통하고, 가장 원초적인 것이 신성한
것으로 통한다는 말을 되새기며, 황홀한 세계에 빠져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느 것이 진짜(?)
효선아!
인도는 정말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란다.
한없이 순수하게도 보이며 영적으로도 보였다가, 정나미 떨어지도록 추하게도
보이고 천하의 거짓말쟁이가 다 모인 나라로도 보이는, 거리의 성자들(?)
99퍼센트가 한뼘의 위속을 채우기 위해 성자쇼를 연출하는 거지들임을 알았을 때,
맛보아야 하는 당혹과 실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한 나라의 가장 신성하고도 아름다운 부분은, 이방인에게 쉽게 노출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은밀한 구석에 감추어져 있기에 영적인 열망을 가진 자만이, 그
나라의 보배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을 생각해 보며 마음을 다시 다독여 본단다.
그리고 효선아! 인도의 종교인들을 만나며, 우리와는 또 다른 정서를 체험하게
되는구나.
이들은 구루(스승)라면 무조건 추앙하는 전통이 있어, 구루의 부정적인 면이나
사생활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단다.
가난으로 고통받고 외로움으로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기쁨을 줄 수 있는
구루라면, 조건 없이 믿고 따르며 숭배한단다.
성자라고 추앙되는 어떤 구루들은 전용 비행기에 전용 활주로, 수십조 원에
이르는 재산을 지닌 사람들이고, 어떤 구루는 추종자가 우리나라 인구보다 더
많아 제왕같이 지내며, 또 어떤 구루는 자신이 사는 집에 인공폭포와 인공호수는
물론 초호화판 에덴 동산을 만들어 놓고 산단다.
절대자유를 부르짖던 어떤 구루는, 이루어 질 수 없는 불륜으로 평생을
자유롭지 못하게 살았지만 인도인들은 그런 구루들을 비방하거나 의심하기보다는,
변함없이 믿고 따르는 신심을 지니고 있단다.
인도인의 이러한 전통과 믿음이, 인도를 성자의 나라 영적인 나라로 만들었다고
생각되는구나.
힌두성자 사이바바
한국 방송에서 사기꾼(?)으로 매도한 힌두 성자 사이바바!
그러나 그는 수많은 이적을 행하고 세계 각국에 수천만 추종자를 두었음은
물론,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전용 비행기와 전용 활주로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구루였다.
그에게 부정적인 부분이 있다 해도 세상 사람들에게 미치는 그의 엄청난
영향력과 영적 에너지는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를 만나기란 국가원수 접견하는 것보다 힘들고 특히, 한국 사람이
친견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인도의 외무부 직원(이 사람은 사이바바의
제자이자 나의 친구)을 구워 삶아 어렵게 그의 아쉬람을 방문하게 되었다.
미리 접견 약속과 시간 약속을 하지 않으면, 만남이 불가능하다는 인도 친구의
충고에도, 무조건 동행만 해달라는 억지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따라온 그의
말대로, 구루는 외국에 나가고 없었다.
그러나 우리를 접견해 준 그의 제자에게서 받은 인상과 그와 나눈 이야기들이
가슴에 남아 여기에 적어 본다.
나:성자(사이바바)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아십니까?
제자: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나:거기에 대한 해명 같은 것은 없으신지요?
제자:그럴 필요 없습니다. 크신 분들에겐 환호와 갈채의 여신들도 따르지만,
질투와 폭력의 남신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나:성자께선 많은 선연을 지으셨는데 어찌 한국과는 악연을 맺게 되셨습니까?
제자: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의 견해와 스승의 견해는 틀립니다. 우리는 선연을
좋아하고 악연을 싫어하지만, 스승께선 악연도 선연도 아름다운 한 가지
인연으로만 보십니다.
그리고 수행자는 속인과는 생각이 달라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속인은
중생보다 부처를, 타인보단 자기를 더 좋아하고, 해보다는 이익을 고보다는 낙을
더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진정한 수행자라면 그 반대로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국과 악연을 맺었다고 생각지 않고, 깊은 인연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맑고 깨끗한 에너지 때문인지, 그가 한 말이
미사여구에 그친다 해도, 믿고 싶은 마음이었다.
악연도 선연도 오직 아름다운 인연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넓고 깊은 가슴,
그런 따스한 가슴을 지닐 수 있다면 방황의 순례도 끝이 나련만...
미리 연락하고 오면 꼭 구루를 만나게 해주고,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수행할
수 있게 배려도 하겠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나오는 발걸음은, 들어갈 때와는 달리
가볍고 편안하였다.
인도의 아버지
강가(갠지스)강을 인도의 어머니라 부른다면, 인도인의 아버지는 간디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인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그의 묘소 앞에 서서, 손수 물레를
돌리며 실을 뽑던 바짝 마른 성자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인도를, 인도인을 그렇게 사랑했건만, 사랑하는 자의 총알에 숨을 거둘 수밖에
없었던 그의 가슴 아픔을 느껴보면서...
아니, 그는 그렇게 죽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자의 손에 죽는, 마음
쓰라림을 기쁨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도의 불가촉 천민을 하리잔(신의 아들)이라고 격려하며 그들 곁에 있고자
했던 간디!
인도의 미래와 영성의 불씨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사는 시골 마을에
타오른다며, 물레를 잣던 간디!
비록 물질문명의 근대화 작업에는 악영향을 끼쳤는지 모르지만 인도를 영적인
나라로 정신의 메카로 우뚝 세우는데, 크나큰 역할을 한 분임에 틀림이 없다.
간디는 독립 운동가요 정치인이기도 했지만, 평생을 자기 절제와 금욕으로, 자기
완성의 길에 물러서지 않았던 철저한 수행자였다.
언제나 신에 대한 순종과 합일을 기원했으나, 그의 진정한 신들은 하리잔과
같은 천민이었고, 그의 사원은 가난한 인도인의 촌락이었다.
무저항의 인욕과 금욕적 수행 사상은, 자신의 저서에서 밝혔듯이 어려서 받은
부모의 영향 때문이라 한다.
그의 회고록을 보자.
'나는 담배와 고기를 위해 동전 몇 닢과 금 한쪽을 훔쳤다. 그러나 죄의식에 못
이겨, 벌 받을 것을 각오하고 아버지에게 고백하였다. 틀림없이 끔찍한 체벌이
가해질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나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시며 따스하게
용서하셨다.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은, 두번 다시 담배를 피우거나 고기를 먹고 싶다는
유혹의 시험에 들지 않게 했다.'
그는 십대에 일찍 결혼을 했고, 아버지의 병간호 중에 잠깐 빠져나와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임종을 볼 수 없었던 그는, 두고두고 후회와 죄의식으로 지냈으며 결국 젊은
아내를 두고서도, 삼십대 중반에 금욕을 선언하고 마는 원인이 되었다.
그는 금욕 에너지를 영적 에너지로 돌려, 인도 독립과 가난한 인도인을
사랑하는데 그 힘을 모두 바쳤다. 그의 자기 수행에 대한 탐구와 시험은, 주위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철저하여, 가까운 사람들이 떠나버리고 마는
결과도 빚었다.
발가벗은 70대 노인과 20대 처녀의 나신, 이것은 간디의 자기탐구 일환으로
친척 손녀뻘인 여식과 동침하며 자신을 실험했던 상황을 회고록에 적은 것이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정서를 지니고 있기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겠으나,
그의 끊임없는 자기절제의 수행 정신이, 그를 인도의 아버지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수행자는 끝까지 당하고 인욕해야 하는 것, 어떠한 고통과 박해에도 결코
대항하고 싸워서는 아니되는 것, 목숨까지 내어놓는 것이 진정한 수행자!
자신의 변명과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하에 남과 대항함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보살의 길을 포기하는 것!'
얼마든지 말로는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인욕을 삶속에 실천하는 일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 그 어려운 일을 간디는 무저항 운동이란 이름으로 현실의
삶에 실천한 것이다. 무저항의 자비사상을 총을 맞아 죽어가면서도, 기쁘게
받아들인 간디와 같은 분들이 있는 한 세상은 아름답게 성숙될 것이다.
거지가 거지로 보이는데
인도 여인의 운명
효선아!
인도인은 모두 간디 같고, 생활이 다 영적이고 종교적이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란다.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라는 말에 어울리듯,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예사로이
일어나고 있구나.
이들 나라의 폐습중 하나를 든다면 지참금 문제인데, 우리나라에서 사자 붙은
신랑을 얻으려고 열쇠 경쟁을 하는 것은 애교에 불과하단다.
인도에서 여인쪽의 지참금은 결혼의 필수조건이기에, 금액의 많고 적음에 딸라
신부의 위치가 아니 운명이 달라지는구나.
딸에게 주어보낼 돈을 마련키 위해, 눈이나 신장 등 장기를 팔거나 도둑질까지
하는 부모가 생기며, 더 심한 경우에는 돈을 적게 가져온 신부를 부모형제와 짜고
살해한 다음, 또 다른 색시를 구하는 일이 벌어진단다.
부엌에서 가스 폭발이나 화재로 사망하는 여인들이 너무 많은데, 거의가 신랑과
시집 식구들에 의한 고의 사고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니?
영적이고 종교적인 부분만 생각했던 내 성자순례길에, 생각지도 않은 일들에
부딪치면서 인간의 삶이란 영적이고 육적인 것을 분리하고,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삶을 떼어 생각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단다. 행복이 우리의
얼굴이라면 불행은 그 뒷모습이며, 고통이 내 가슴이라면 기쁨은 나의 등허리란
말을 새겨 본단다.
내가 겪고 당한 것은 모두 나의 삶이기에, 다 끌어 안고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려보는구나.
버스 꽁무니
인도 순례길에 작은 일이지만 힘들었던 것 중의 한 가지는 교통문제였단다.
사이클 릭샤와 오토바이 릭샤는 가장 쉬운 교통수단의 하나인데, 외국인에게는
하나같이 바가지를 씌운단다.
출발할 때 흥정을 하고 가지만 도착해서는 꼭 딴소리를 하므로, 큰소리를 내지
않고는 해결할 길이 없었단다.
어느 외국 여행자는 릭샤꾼만 봐도 소름이 끼친다고 표현했으니...
택시 또한 마찬가지이고 버스와 기차는 너무 황당하여 말이 나오지를 않는구나.
버스나 기차가 한두 시간 늦어지는 것이야, 인도 여행길에 예삿일이니 참을 수
있다 하겠으나, 제시간보다 먼저 떠나버리는 버스 꽁무니를 멍하니 바라보는
기분을 알 수 있겠느냐?
비행기가 몇 시간씩 연착해도 안내 방송 하나 없지만, 마냥 묵묵히 기다리는
인도인의 여유(?)를 배우는 데는, 많은 시행착오와 인내가 필요했단다.
모두가 인생 안내자
내 순례길에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가 나를 인도해 주기 위하여, 잠깐 사람으로
변신한 보살의 화현들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본다.
어떻게 그렇게 고비고비마다 나타나서 통역은 물론 길 안내와 인연의 연결까지
하는지, 참으로 신기할 정도였다.
성자순례란 돈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힘이 있다고 되는 건 더욱 아님을
느끼게 한다. 순례란 전생의 인연들을 찾아, 만날 사람 만나고, 주고 받아야 할
업들을 정리해가는, 그러면서 한발 한발 성숙의 길로 나아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해
본다.
힘들고 어렵지만 좋은 시간들이 될 것 같다. 내 의지대로 살아왔다고 교만해
하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고, 의지와는 다르게 또 다른 인연의 힘이 함께
작용하며 흘러가고 있음도 느껴보며...
화가, 정치가, 상인, 학생, 창녀, 거지, 군인, 요기, 요기니, 구루와 사두 등
순례의 여정에서 만났던 보살의 화현들, 그들은 내 닫힌 가슴을 조금씩 열게 하는
가르침과 정성들을 나누어 주었다.
세계 최대의 석굴들로 꼽히는, 아쟌타와 엘로라를 가는 도중 또 한 쌍의 보살
화현을 만나게 되었다. 테이블이 두어 개뿐인 간이식당에 한국인 남녀와 마주
앉게 되었다. 인사성 밝은 동행자 김 화백이 나를 한국의 큰 스님이라고 소개하니,
앞에 앉은 남자가 고개를 돌리며, "한국의 큰 스님 밥맛 없어요." 한다.
무안하고 당황스러웠다.
"소개가 잘못됐습니다. 석용산이라는 중입니다."
라는 나의 인사말에도 그는 아무런 대꾸가 없다. 김 화백이 그의 곁에 있는
여인에게,
"불교인이 아니신 모양이군요."
라며 말을 걸자,
"불교 신자입니다."
라는 대답에, 우리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여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들은 인도인을 돕는 불교단체의 일원들입니다. 석용산 스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저 분이 워낙 스님들을 싫어해서...아무튼 죄송합니다."
한국 스님은 밥맛 없다는 소리를 듣고도 오히려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지니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거사님! 거사님은 불교인이고 불교 봉사단체의 일원이신데, 왜 스님들을
그렇게 싫어하십니까?"
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중들한테 그렇게 당하고도 저한테 묻는 겁니까? 가난해서 문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도인들에게 의료품과 식량 교육 등 제 나름대로 봉사해온 것이 칠팔
년이 넘었는데, 초창기 어려운 일들이 많아 여러 스님들을 발이 부르트도록
찾아다녀 봤지만, 누구 하나 돌아봐주는 인간이 없습니다. 아니 돌아보지 않으려면
끝까지 돌아보지 않아야지, 단체가 세계적 주목을 받으니 그제서야 서로
접수하겠다고 달려드는 그들을 스님이라 부를 수 있습니까?
제 나이 사십입니다만 아직 장가도 못 갔습니다. 그동안 직장(한의사)에서 번 돈
다 털어 넣고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데, 손 안대고 코풀려 들다니..."
스님을 앞에 놓고 스님을 모욕하는 사람에게 분명 분노를 느껴야하건만, 오히려
은근히 동조하는 마음이 생기고, 내가 당한 분풀이를 대신 해 주는 것 같은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내 가슴속에 정화되지 않는 분노의 그림자가 아직도 작용하고 있음을 보며,
수행 밑천이 겨우 요것뿐이냐는 자괴감으로 두 어깨가 처지고 말았지만, 그러나
어떻게든 그의 맺힌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목적지가 같은 그들을 우리 차에 타도록 권하였고, 아쟌타 석굴까지 가는 동안
있는 욕, 없는 욕, 중들의 욕을 실컷 하다 보니, 어느 사이 우린 친한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아쟌타 석굴을 돌아보는 동안 나는 그를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진짜
보살로 대우했고, 그도 마찬가지로 자비심이 발하였던지, 나를 큰 스님처럼
대접했다.
헤어지는 마당에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큰 스님! 이 땅에 빛이 되는 진정한 큰 스님 되어 주십시오!"
"거사님! 중생과 아픔을 같이 하는 살아 있는 보살이 되어 주십시오."
오랜 친구의 이별처럼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잠깐이었지만 서로의 가슴에 앙금을 풀어내는 만남이었다.
큰 스님 된 느낌을 나는 오래오래 간직하고, 그도 또한 보살된 기분을 오래도록
지니길 기원해 본다.
엘로라 석굴에서
인류는 얼마나 더 성숙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 것일까?
수행과 신심이 본성에 닿으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엘로라 석굴군' 앞에 서 있다. 지금 같이 발달한 건축용구도 없던
시대에, 변변찮은 끌과 망치로 어떻게 저 어마어마한 공사를 해낼 수 있었을까?
이집트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만이 불가사의가 아니다.
이곳 석굴사원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단순한 굴이 아니라, 까마득한
바위산을 수백년 동안 수천만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깎고, 쪼고, 뚫으며 그들의
피와 땀과 혼을 발라 만들어낸, 신령스런 신물인 것이다.
차에서 내려, 5, 60미터 앞에 위치한 '카일라사나타' 석굴사원은, 34개의 석굴중
가장 큰 건물로 폭이 오십 미터, 높이가 사십여 미터, 파고 들어간 길이가 백
미터에 가깝다니, 그 거대한 모습은 인류의 자랑거리며, 섬세하고 웅휘한 조각들
또한 사람의 솜씨가 아닌 것 같다.
석굴의 자용만큼이나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마음도 넓었는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의 석굴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왕조의 종교가 바뀜에 따라, 종교
건축물들도 흥망의 모습을 달리해왔건만, 이곳은 예외였다.
7, 8세기 만들어진 십여 개의 불교 석굴, 9세기경에 세워진 열 일곱 여덟의
힌두석굴, 그리고 자이나교의 석굴들이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종교 사원들을 부수고 태우는 현재를 보면서, 부수고 싸우는 기술은
천여 년 전보다 훨씬 발달했을지 모르지만, 더불어 나란히 사는 기술은
퇴보했음을 보는 것 같았고, 인류가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회의를 가져보기도
했다.
아잔타에서
엘로라와 나란히 인도를 대표하는 석굴사원으로 아쟌타가 있다.
엘로라가 그 거대한 자태로 사람들을 기죽게 한다면, 아쟌타 석굴들은
아름다움으로 압도한다.
아쟌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한 것은 석굴 속의 벽화들로서,
모나리자가 무색한 보살상의 미소는, 인간들이 그려낸 것 같지 않은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인도의 고대 그림은 아쟌타 벽화 이와는 남아 있지 않고, 또 한국, 일본, 중국,
중앙 아시아 등에 퍼져 있는 불교 회화의 모델이기에, 그 소중함이 더해지는
것이다.
승려들의 수행처로, 기원 전 2세기에서 기원 후 1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전기
동굴과, 5세기에서 7세기에 세워진 후기 동굴로 나뉘어진다.
전기 동굴들은 소승 불교시대의 것으로, 후기 동구에 보이는 불보살은 없고,
탑과 부처님 발자국 그리고 보리수 등이 조각돼 있다.
8세기에 이르러 불교가 쇠퇴해지자, 주인 없는 석굴들은 정글에 덮이기
시작했으며, 1819년 장교가 발견해 낼 때까지 천여 년의 긴 잠을 자야 했다.
천년 세월 잠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답답함도 있었지만, 그 덕분에 불교
회화의 원류라 하는 벽화들은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으니, 세상사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아름답고 거대한 영적인 유산들을 돌아보며, 더욱 짙어지는 의문이 있었으니,
진정 인류는 진보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대량으로 석굴을 팔 수 있고, 대량으로 그림을 뽑아낼 수 있으며, 그 시간들을
단척시킬 수 있는 것이 인간들의 진보일까? 대량 생산과 대량 살상, 대량으로
자연과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공구를 개발했다고 해서 그것을 인류의 진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라는 풀리지 않는 화두를 안고 돌아섰다.
그렇지만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신앙심을 생가하며, 밖으로만 치닫는
인간들의 마음을 안으로 돌릴 수 있다며, 인류의 파멸이 아닌 인류의 진보와
성숙은 확실한 것이라고 자위를 해보았다.
육신의 뿌리
효선아!
한국의 산천이 그리워지고, 풍경소리 목탁소리가 듣고 싶구나.
그리고 너희들이 보고 싶다.
물내음, 풀냄새, 바람내음마저도 내 나라 것이 그리워짐은 애국자여서가 아니라,
이 육신의 뿌리가 그곳이기 때문인가 보구나.
생각은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지만 가슴은 자신의 뿌리 냄새를 갈망하고 있으니,
지금 심정으로는 고국산천의 풀 한 포기, 둘 한 조각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모르겠구나!
얼마나 더 헤매고 얼마나 더 걸어야, 싫고 좋은 것 초월하고 이곳 저곳 가리는
분별 넘어, 영원한 본성의 세계에 다다를지...
엘로라, 아쟌타 석굴을 돌아보고, 살아있는 성녀 테레사 수녀를 만나기 위해
캘커타로 가던 도중, 또 한 분의 구루를 만나는 행운을 얻게 되었구나. 만남의
이야기를 적어보내니 공부되도록 하거라.
발가벗은 자이나 사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정오의 뙤약볕을 즐기듯 시원시원 걷는 그의
모습은, 볕에 익어서인지 빠알간 홍옥처럼 빛나고 있었고, 올망졸망 천진스런
어린아이들은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그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니, 유창한 영어로 대답을 한다. 말이
통하게 되어 천만다행이란 생각을 하였다.
나:잠깐 이야기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구루:얼마든지...
나:어디로 가십니까?
구루:성숙을 향해 가오.
나:토굴은 어디이신지요?
구루:이 몸뚱이가 토굴이오.
나:사람이 살아가는데 지켜야 할 예절 같은 게 있는데...
구루; 최상의 예절은 순수함이오. 이 모습이 세상에 대한, 내 최고의 예절이오.
참으로 기막힌 우문현답이었다.
나:선생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데 괜찮으십니까?
구루:얼마든지.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는 모습이, 고추 내놓고 폼 재는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부끄럽지 않으세요?
구루:성스러움도 잊었소.
그냥 헤어지기가 너무도 아쉬워서, 꼭 잡은 그의 손을 한동안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내 마음이 통했는지, 내 마음을 읽었는지, 햇빛에 눈부셔하는 나를 나무
그늘 밑으로 끌고 가신다.
나:저는 한국의 수행자입니다. 인연 닿는 땅, 인연 닿는 스승을 찾아 헤매고
잇습니다.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구루:어디에도 구원의 땅, 구원의 집단은 없소. 그대의 마음을 단번에 바꾸어 줄
구루도, 세상엔 존재하지 않소. 굳이 말한다면 그대 마음이 인연 닿는 땅이고,
그대 가슴이 인연 닿는 스승이요.
수없이 들은 이야기이고, 수없이 해온 말이었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니 요술
같게도 가슴속에 꼭꼭 박힌다.
나:좋은 말씀 조그만 더...
구루:인간들의 머릿속에는 온갖 망상 사념들이 흐르고 있소.
이익과 손해, 집착과 해탈, 탐욕과 보시 등, 걸리적거리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소.
나는 이렇게 발가벗고 가는 열기로, 그 망상 사념들을 녹이고 있소.
나:꼭 발가벗고 길을 걸어야만 합니까? 아쉬람이나 적정처에 조용히 앉아서는
안되는 것인지요?
구루:그렇지 않소. 인연과 근기에 따라 다른 법이요. 그대는 옷을 입고 차와
비행기로 세상을 다니지만, 나는 옷을 벗고 걸어서 다닌다는 차이뿐이오. 그리고
아쉬람이나 적정처에 머무는 것도 좋지만, 고인 물은 썩고 생선에는 파리가 꾀는
법이요.
우리 가르침에 '혼자 떠도는 집없는 강아지가 될지언정, 아쉬람에 갇힌 도인은
되지 말라'고 했소.
나:어떻게 해야 선생님과 같은, 철저한 무소유의 마음을 지닐 수 있습니까?
구루:이 자리에 옷을 벗고 나를 따라 보시오.
발가벗고 따르지 못하는 아쉬움에 깨어나,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든 표시하고
싶었다. 앞뒤 생각없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 올리니, 서슴없이 받는다.
몇 장을 빼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다시 돌려준다. 아쉬워하지
말라며 다시 만날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이들과 다시 장난치며 길을 가는 그의 뒷모습에 미련을
둘 수 없어, 나 또한 발걸음을 돌렸지만, 아직도 그의 모습과 다시 만날 것이라는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거지가 거지로 보이는데...
테레사 수녀님측과 연결이 잘 안되어, 델리로 방향을 돌려야 했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구루들이 사신다는 곳을 이곳
저곳 찾아다니는 일이고 보니,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에서 남으로 수백 리 수천
리를 오가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건강하던 지광스님도 지쳐 보인다. 오늘은 일진도 안 좋은 모양이다.
인도 기차는 이삼십 분이나 한두어 시간 늦는 것은 예사일이기에, 늑장을
부리다가 놓칠 뻔했다.
떠나는 기차를 급한 김에 오르고 보니, 내가 타고자 했던 9번 객차가 아니라
6번 객차였다. 인도 기차는 칸과 칸 사이가 막혀 있어서, 자기가 타야 할 객차에
오르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겨우 겨우 자리를 찾아갔다.
그런데 지친 몸을 쉬어보겠다고 구입한 침대칸 차표가 오히려 곤혹감을 더해 줄
것 같다.
북통만한 방에 위아래 양 옆으로 달아매 놓은 비닐 침대나, 아래 침대의
시끌벅적한 상황으로 보아, 편히 쉴 생각은 애초에 접어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사람 사는 일은 어디나 마찬가지인가보다. 술 안 먹는다는 인도인이 만취되어
비틀거리고, 싸움할 줄 모른다는 사람들의 치고 받는 모습이, 보기에 섬뜩할
정도였다.
인도에 대한 환상과 주워들은 지식들이 하나 둘 깨져 가고, 길가의 거지마저
구루로 보이던 내 눈에, 거지가 거지로 보이기 시작하니, 잘되는 일인지 못되는
일이지 분간이 안 선다.
3. 거지 성자
만나야 할 인연
늙은 델리, 젊은 델리
델리! 25개 주와 7개의 연방 직할시를 거느리고 있는 인도공화국의 수도!
인도를 일천여 년 지배한 모슬렘(회교도)의 발판이었고, 근세기 영국 통치의
200년 본거지이기도 했던 비운의 도시!
늙은 올드델리와 젊은 뉴델리로 나뉘어져 있지만, 상상했던 인도의 수도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서구 문명을 뒤범벅으로 받아들여 인도의 정서와 혼마저 흔들어 놓은 대표적인
도시, 매연과 어물로 눈과 코와 입을 막아야 살것 같은, 그래도 이곳에 비집고
들어와 살겠다고 모여든 사람들이 천만이 넘고, 똑똑하다는 정치인들, 돈 많은
부자, 깨우쳤다는 성자들, 자이나교의 사두, 힌두의 구루, 모슬렘의 수피, 거지
유랑자들로 온통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도시이다.
다른 것은 참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숨을 안 쉬고는 살 수 없기에, 탄광 굴속
같은 델리 시가지를 한 시간 정도 벗어나, '노이다'라는 외곽지에 여장을 풀어야
했다.
이곳도 더러움과 매연은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숨을 쉬고 살아 가는지... 참으로
이들은 도통한 사람들인 것 같다.
바람과 비가 오는 우기철엔 오물투성이의 길도, 안개 같은 매연도 나아지고, 또
다른 인도의 모습을 보여준다지만...
내가 묵는 숙소의 화장실 한글 낙서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한국인이여! 한 시간이라도 이 나라를 빨리 떠남이, 그대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좋으리니...'
여유를 부려 보려던 여행길이 이렇게 힘들어 갈 줄은 미처 몰랐다.
여행길에서 만난 친구들
푹 쉬고 싶었으나 그럴 팔자가 아닌가 보다. 묵상과 부라 부부 그리고 김
화백이 들이닥쳐, 박항렬 고수의 그림 전시회에 가잔다.
부라 부부는 국제 결혼한 사람들로, 묵상의 통역과 번역들을 맡아주는 좋은
사이였고, 특히 미세스 부라는 한국 여성으로 힌두어와 영어에 능통한 재원이었다.
김 화백은 미세스 부라의 친구 남편으로, 예술(그림)을 이해 사랑하는 아내도,
삶의 기반인 학원도 내던지고 인도에 온, 멋을 아는 로맨티스트였다.
하나 같이 고운 사람들이었고, 내 순례길을 풍요롭게 해준 보살의 화신들이었다.
특히 김 화백은 인도에 온 것이, 나를 만나게 하기 위한 부처님의 배려였다며,
인도에 있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인연을 맺었다.
서울대 박항렬 교수와 델리 미술대 학장인 굽타 교수의 합작 전시회였다. 나는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었지만, 인간의 내면 깊숙이 빛나는 영성의 세계를 그려낸
박 교수의 그림은, 자연스럽게 가슴으로 들어왔다.
닮은 영혼(?)의 사람들이라 그런지, 우린 쉽게 친숙해 질 수 있었고 그의
와이프는 물론 그의 그림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전적으로 서포트 해주는
추제화랑의 두 젊은 부부와도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우리는 한패가 되어 그럴듯한 레스토랑에서, 인도의 전통춤과 음악을 곁들여
음식을 즐겨보는 호사도 누렸고, 한국에서도 가보지 않은 영화관엘 가서, 함께
울고 나오는 추억도 만들었다.
굽타 교수의 초대를 받아 인도 교수의 생활상도 돌아보았으며 인도 박물관,
티베트 전통 용품 전시관, 델리 근교의 모슬렘 유적지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박 교수의 그림을 산 벨기에 대사관저에 초대받아 가서, 유럽풍의 가옥
구석구석을 대사가 직접 안내해 주는 대접도 받았다.
아직도 다섯 손가락으로 식사하던 굽타 교수의 새까만 손톱 밑의 때가 정답게
아른거리고, 박물관에서 본 실물 크기의 인물화에서 풍겨 오던 기이한 느낌도
잊을 수가 없다. 앞에서 봐도, 오른쪽 왼쪽 어느쪽에서 봐도, 그림의 눈동자가
보는 사람을 느껴졌었다. 수천년 세월 넘어 지금도 인간들에게 경건함을 주고
있는 부처님의 뼛조각(사리)도 지워지지 않고 눈에 어른거린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또다시 길을 가는 힘이 되었으니, 만남의 인연에
감사할 뿐이다.
만나야 할 인연
델리 한국 불교의 박 회장 부부가 찾아 왔다.
사람마다 모습이 다르듯 전해오는 에너지는 미묘하게도 모두 다르다. 이들
부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참으로 특이한 것이었으니, 긴 침묵의 동굴을 갓
빠져나온 사람들의 분위기가 전해져 왔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이제서야 만나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박 회장은 기도의 가피를 입은 사람이었다.
사십을 넘긴 사람들에겐 자신들이 살아온 이력이 얼굴에 작용하기에, 자신의
살아온 모습을 감추기가 어렵다 한다.
서로의 마음이 통한 탓일까?
"두 분은 꼭 수행자 같소?"
나의 이런 물음에 박 회장은,
"스님! 한국만 아니라 인도까지 떠들썩하게 하시는 스님의 모습이 정말
궁금했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시네요. 꼭 조용한 학 같으세요."
"그럼 내 머리에 뿔이라도 달린 줄 알았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편안하게 웃었다.
이 한순간의 인연으로 훗날 자신의 사업마저 밀쳐 주고, 40대 성지를 기꺼이
안내하여 우리를 에스코트해 주었다.
전생의 인연 때문인지 긴 여정의 어려움을 함께 한 마음 때문인지, 스승과
제자의 연이 되고 말았다.
작은 성녀
효선아!
멀리에만 성자 성녀가 있는 것이 아니고 유명한 부만이 성스러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단다. 부라 부부의 아들 '팅키' 생일에 초대받아 갔다가 부라 거사의
누이를 만났구나.
고복 검소하게 생긴 40대의 부인이었는데, 손님 대접하는 모습이 인도
선녀(?)같았고 초대받아 놀러온 아이들과의 어울림이 꼭 한국의 어머니 같아
신기했단다.
자신이 하는 일을 속이기란 어려운 것인가 보다. 길가의 아이들을 데려와
입히고 먹이고 학교까지 보내는 자그만 성녀였구나.
특별히 고아원을 차린 것도 아니고 정부나 어떤 단체의 보조를 받는 것도 아닌
순수한 개인 봉사자였단다.
남편의 월급을 쪼개고 어설픈 부업까지 해가면서, 때로는 열 명 때로는 이십여
명씩의 아이들을 십여 년 넘게 키워왔다는구나.
길가에 버려진 핏덩이가 죽어가는 모습에 도저히 고개를 돌릴 수 없어 주워온
것이 일의 발단이 되었지, 특별한 이유도 특별한 종교 때문도 아니란다.
거개가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을 보면, 종교의 영향이나 신의 계시, 영적 충동
등 특별한 동기가 있는데, 너무나도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의 마음이었다니 고개가
더욱 숙여질 뿐이구나.
제일 어려웠던 것은 처음 아이를 데려왔을 때, 남편에게 큰 오해를 받아
이혼까지 당할 뻔했던 때와 여러 명 교육을 시키다보니 학용품이 떨어졌을 때
가슴이 아팠다는구나.
지금도 길거리에 떠도는 불쌍한 아이들을 볼라치면 손과 마음이 근질거려
자신을 달래느라 애를 먹는다 하니,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구나.
피 흘리는 전쟁터나 굶주리고 병든 난민들 속에서, 그들을 돌보고 생활을 함께
하는 나이팅게일 같은 모습도 거룩하지만, 자신의 삶 한귀퉁이에서 자신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챙기며, 서로의 세계를 한귀퉁이에서 자신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챙기며, 서로의 세계를 키우고 살찌워가는 모습이 더욱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구나.
자신이 하는 일은 그냥 살아가는 일상 속의 일이니, 하나도 티낼 것 없다며
담담해 하는 모습에서, 더 큰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 얼마든지 남을 해치지
않고 남을 도우며 살 수 있는 속가의 삶도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단다.
효선아!
마음껏 남을 돕고 착한 일하며 살 수 있는 자가 성직자, 특히 승려임을 잊지
말고 감사하자꾸나.
소님(?)
인도에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인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
인도인들 사는 모습이 극락의 삶 같기도 하고 지옥 같기도 하며, 육도(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의 세계가 현실 속에 그대로 펼쳐지고 있는 듯한 상황
때문일 것이다.
소들이 시장 한복판과 도로 가운데 앉아서, 오가는 인간들을 구경하는 이상한
정서도 지니고 있다.
걱정, 근심, 시기, 질투, 좋은 것, 나쁜 것, 모두 다 놓아버렸다는 듯,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소들의 모습은 발을 동동 구르며 사는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여유를
누리고 있는 듯하다.
쇼윈도 앞에 자리잡고 누워 있는 소가족(다섯 마리 아니 다섯 분?)에게
다가가서 나도 쪼그리고 안자 보았다.
전혀 본체 만체 아는 체도 하지 않는다. 말을 걸어보았다.
"그대 소님들은 이 세상이 어찌 보이고 인간들이 어떻게 느껴지시는가?"
너무도 고상하고 당당하게 생긴 황소님이 깊이 가라앉은 모습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그 눈빛은 사람 성자보다 맑고 고요하였다.
"인간님아! 몇 천 년을 사는가? 몇 만 년을 사는가?
왜 뺏고 쌓고 싸우면서 정신없이 설치는가? 산다는 것은 한판 꿈이고 쇼인
것을!
그대도 아무데나 자리잡고 앉아 보게나. 앉으면 주인이지 임자가 따로 있겠나?
그리고 산 입에 거미줄 치는 일 없으니 동동거리고 안달하지 말게나!
수행과 진리라는 것도 뭐 별다른 게 있나? 그냥 이렇게 보고 있으면 제대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소름이 돋는 이상한 느낌을 받으며, 소들의 세계를 그리고 소를 절대적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힌두인들의 마음을 순간이나마 느껴 볼 수 있었다.
인간꽃들의 행진
울긋불긋한 꽃바구니를 둘러 멘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다.
차도 사람도 모두 서서,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들의 얼굴은 땀과 먼지와 물감들로 얼룩져,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 힘들었고
얼마나 걸었는지 신발은 갈가리 찢어져 너덜거리고, 발에는 피와 고름이
뒤범벅되어, 뜨거운 아스팔트 길에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종교 축제에 따른 고행 의식이다.
고행과 요가 그리고 박티(신에 대한 헌신)가 수행의 요체인 힌두교도들이, 이맘
때가 되면 수백 킬로를 오후불식하며 몇 날 며칠, 때로는 몇 달씩을 걷고 또
걷는다.
목적지는 성스러운 강가 강과 야무나 강이 맞닿는 곳!
어깨에 멘 꽃바구니(꽃배)들을 성스러운 강신에게 바치고, 다음 생엔 좀더 나은
곳으로의 환생을 기원하며, 금생의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마저 꽃배에 띄워 보내다.
중간 중간에는 신심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이들을 잠시 쉬게 하고 한 끼의
음식을 제공하는 장소를 마련하여, 보시공덕도 쌓게 하는 일종의 종교의식이자
축제이며 수행이다.
이 기간은 아내도 자식도 생업마저도 잊어버리고, 살인적인 더위(오십도
안팎)속을 걸으며, 자신과의 끝없는 투쟁을 벌인다. 일상에 찌든 때를 벗겨내고,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는 영성을 흔들어 깨운다.
수천 수만 아니, 수십만의 인간꽃들이 줄을 잇는 장관을 바라보며, 바로 이것이
인도를 지탱하는 힘이요, 혼임을 생각해 본다.
북적대는 신들
인도인의 통계 수치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종교성 직원이 들려준
바에 의하면 이슬람교 13퍼센트, 기독교(신, 구, 유태교 합해서) 3퍼센트, 시크교
3퍼센트, 불교 2.5퍼센트, 자이나교 2.3퍼센트, 기타 1퍼센트 그리고 나머지는 다
힌두교인들이라 한다.
힌두란, 힌드(인도의 옛이름)에 사는 신을 믿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힌두교인을
일컫는다.
그러나 힌두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 개념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정교를
창시한 교주는 물론 십계명이나 오계 같이 강조되는 규범도 없고, 성경이나 불경
같은 경전은 물론, 교단으로 조직되어 있지도 않다.
이들이 의지하는 베다성전이라는 것도, 기원 전 천오육백 년 전부터 기원 후
사오백 년에 걸쳐, 지혜 있는 사람들이 불렀던 영성의 노래와 신을 찬양하는
찬송가들을 엮어 만든, 제식과 찬미의 시집 같은 것이다.
믿는 신도 가지 가지, 창조의 신 비슈누와 파괴의 신 시바로부터 멧돼지, 사자,
물고기, 거북이에 이르기까지 10억의 인도인 만큼이나 많은 신들이 북적댄다.
부처도 예수도 마호메트도 어떤 성자나 교주도, 모두 창조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부처와 마하비라(자이나교 교주)의 사진을 걸어놓고, 자신을 부처와 마하비라를
믿는 힌두교인이라고 말을 하니, 이 사람들의 종교를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걸려야
했다.
천차만별의 다양한 신앙 형태를 인정하고 끌어 안는 힌두교인 아니 인도인,
그들의 포용성이 이 나라를 신앙의 메카, 신들의 나라로 만드는 힘이 되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천태만상의 혼돈 속에서도 맥이 되어 흐르는 통일성이 있다면, 전생과 내생을
믿으며 인과와 윤회를 믿는다는 점이다.
선을 행하면, 다음 생에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과 언젠가는
깨달음에 이를 것이라는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불평등은 물론 수모와 고통도
감내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전생의 수행자?
참으로 묘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곳 외무부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연락이
오기를, 요가와 좌선은 무론 심령술을 하는 기독교인들을 만나보겠냐는 것이었다.
외무부 친구는 인도인으로 한국 주재 인도 대사관에도 근무했었고, 신비 사상
및 요가에 관심과 조예가 깊었으며, 태권도 유단자인 특이한 사람이었다.
나와의 인연은 사오년 전 외국인 불교 모임에서였고, 그때 이 친구가 나의
몸에서 빛이 난다고 떠드는 바람에, 집회 장소가 야단법석이 되고 만 묘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 뒤 안부의 엽서가 가끔 오고 갔지만, 인도에 와서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연결된 모임에는 정회원이 아니면 참석하기 어렵고, 특별한 경우나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에 한해서만 입회와 동참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 대사관 친구가 나를 참석시키기 위해서, 몸이 빛이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단다. 참으로 당황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고, 영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니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모임 장소가 영화에서 나오는 으시시한 동굴이나 지하실 같은 데가
아닐까 상상도 해보았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생각과는 다르게, 모임을
이끌어가는 xx교수님의 집이었다. 밝고 넓은 정원, 파아란 잔디, 지붕도 창문도
온통 유리인, 현대식 단층건물이었다.
기이하고 별난 분위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들이 달여주는 향기로운 차를
대접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들 중에는 혼령들과 교통할 수 있는
영능자도 있었고, 특별한 초능력을 지닌 사람도 있었으며, 내 친구도 이곳
회원임을 알게 되었다.
더 깊고 자세한 집회 내용은, 친구들과의 약속을 위해 생략하기로 하고, 나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본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가슴과 머리 주위를 특이한 오로라가 감싸고 있다는 말을
했으며, 몇생을 거듭 환생하였다고도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몸에 빛이 나는
이유도 설명해 주었다.
나의 한 생은 온몸을 인두로 지지며 극도의 고행을 하던 수행자였고, 또 한
생은 장작더미 위에 몸을 올올히 태워올리는 소신공양도 했으며, 또 한 생은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속에 들어가 몸을 사르면서, 법을 증명한 진리의 전도사였다고...!
몇 생을 쌓은 수행의 염과 에너지가 빛으로 나타난다고도 했다.
내가 부인을 한다 해도, 이 증표들이 내 마음과 몸에 새겨져 있다고 했다. 나의
손을 꼭 잡은 한 영능자는 내 주위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고 말해주었고, 앞 못
보는 한 영능자는 내 가슴에 불자국이 있다고 말했으며, 또 한 사람은 기름이
끓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이들이 나도 모르는 내 영혼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일까? 믿을 수도 없고
부인할 수도 없었다.
승려가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부처님께 소신공양을 하겠다는 생각이 싹터
있었고, 그 생각들은 더욱 간절해져서 금생의 원이 되었으며, 신도들 앞에서나
책들을 통해 공공연히, 소신공양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나 자신도 확실히 모르고 살아 왔는데... 그리고 또
하나 내 가슴에는 인두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어려서(중학교 때) 산란한
마음을 달래보겠다고, 인두로 가슴을 지졌었고, 그 불자국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한 가지를 더 가져다 붙여 본다면, 내 어렸을 적 천주교 세례명이 요왕이었다.
신부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시며, 요왕이라는 분은 진리를 전하시다 기름
가마속에서 돌아가신 분이니 너도 진리를 위해 이와같이 용감히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집회에 모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믿든 안 믿든, 전생에도 수행자였고,
금생에도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지친 몸과 마음에
되었다.
*이곳 인도의 기독교,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하여 생긴 개신교
프로테스탄트도 아니고, 구교인 카톨릭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예수교와
천주교라고 부르는 교파와는 또 다른, 인도 특유의 기독교이다. AD 50년경
그리스도의 직제자 성 토마스가 남인도 겔레라 지바에 전도하였으며, 근교에 있는
타밀나두와 고아 등지에 퍼져 있었다.
이상한 만남
망명객
건강들 하느냐?
며칠 동안 만이라도 쉬어 보고 싶구나. 찬물에다 식은 밥 한 덩이 말고
고추장에 풋고추 찍어 우리 밥 조 먹어왔으면 좋겠구나.
공양주 보살의 구수한 된장찌개와 누릉지, 그리고 공덕화의 시원한 국수도
생각나니, 스님이 노망기가 드는 것이냐? 지친 탓이냐?
그리고 효선아! 한국에선 지천인 라면은 물론, 작설차 한 봉지 구하기가 불로초
구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남의 나라임을 절감한단다.
나야 마음만 먹으며, 내일이라도 너희들 곁으로 갈 수 있지만, 아무리 가고
싶어도 자기 나라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1959년 중국에 나라를 빼앗기고, 달라이라마와 함께 인도로 망명온
티베트인들이 바로 그들이란다.
모두가 돌고 도는 인과응보! 티베트가 중국을 침범했던 역사 속의 인과가
아니겠니?
너도 툽텐라마와 내가 호주에서 만나, 서로 초대를 하게 된 인연 이야기를
들었지? 그 분이 티베트 불교와 정부에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달라이라마를 친견케 할 수 있는 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더구나.
그에게 전화를 하니 반가워하며, 기차로 달람살라 아래 '바팅코트'라는 곳까지
오면 마중나와 있겠다는 말을 하면서, 달라이라마가 달람살라 왕궁에 오시려면
한달 정도가 지나야 할 것 같으니, 여행 일정상 서둘러 만나고 싶으면, 사일 뒤
아쇼카 호텔에서 잠깐 뵙도록 주선을 하겠다고 하는구나.
우여곡절 끝에 라마를 호텔 로비에서 잠깐 뵐 수 있었단다. 너무 거룩하게
생각한 탓일까? 내 눈에 비친 그 분의 모습은 성자도, 일국의 원수도, 밀교도들을
이끌어가는 법왕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도 아닌 너무도 지쳐 있는 노인이었단다.
지난날 강연과 법회 등 과도한 일정에 쫓겨 차속과 비행기 안에서 모자란 잠을
자야 했던 내 일들이 생각나 건강하시라는 인사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단다.
어렵사리 자리를 마련한 사람들은 나의 너무도 간단한 인사말에 멍한
모습들이었단다.
뒤통수에 쇠망치
캘커타! 봄베이와 함께 인도를 대표하는 최대의 도시!
그러면서도 인간 살기가 세계에서 제일 나쁘다는 도시!
하리잔들이 사는 곳에 왔다.
거무죽죽한 비닐들을 더덕더덕 덮어 만든, 삼각형 텐트 비슷한 것들이 수백 채
아니 수천 채, 아니 끝이 안 보이는 이곳! 정말 사람 사는 곳일까?
델리나 봄베이에서 보았던 빈민촌은 오히려 낭만적(?)이었다.
자꾸만 다른 세계, 텐트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천의 얼굴을 가진
인도라 하더니, 볼수록 알 수 없는 것이 인도라는 나라다.
종교가 어떻고 천당이 어떠며 깨달음이 어떻다는 얘기가 이곳에서도 통할까?
어쩌면 더 절실하리라!
시궁창에 연꽃이 핀다 했던가!
인도에 성자가 날 수 있는 이유를 또하나 발견한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내 마음이었다. 이 게딱지 같은 텐트 막사들이,
고층빌딩이나 우아한 영국식 집들보다 오히려 더 다정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흙
파먹고 놀던 어린 시절 정서 때문일까?
아니면 전생에 나도 이곳 출신이었는가?
끝없는 텐트들을 바라보며 한없는 연민의 정이 솟아남은, 닫혀버린 마음들이
살아나는 징조일까?
텐트 나라에서 받은 충격들을 진정시키며, 택시를 타고 테레사 수녀의 주소를
내밀었다.
"오우? 마더 테레사 쉬즈 데드!"
그녀가 죽었다(She's dead)? 믿기지 않아 다시 물으니, 바로 며칠 전에
돌아가셨단다.
'건강이 악화되셨다더니, 돌아가셨구나!'
이곳에 오자마자 계속적인 충격이었다. 좀 후회되기도 하였다.
연락이 되거든 가라는 친구의 말을 또 무시하고, 만나는 것도 내복, 못 만나는
것도 내 복이라는 고집을 세웠더니,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운전수의
볼멘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다.
인도인 운전수의 말인즉슨, 죽어가는 사람 몇 명 데려다 놓고, 약주고 밥 먹여서
더 살게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마더 테레사! 마더 테레사! 하며
떠들어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옆에 있던 김 거사가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따지니, 그냥 놔둬도 죽을
사람 죽고, 살 사람 살며 여태껏 그렇게 잘 살아왔는데 야단법석을 떠는
서양인들이 참으로 우습다는 것이다.
입씨름 해봐야 서로 득되는 일 없을 것 같아, 침묵하고 말았다.
한국에 돌아가서 제자들과 신도들에게 테레사 수녀가 돌아가셔서 뵙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하였는데, 어느날 신문을 보고 기절을 할 뻔했다. 교황과
악수하는 수녀님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가끔 테레사 수녀와 그 운전수가 생각나면, 인간의 본성이 사랑과 연민인가?
아니면 무관심과 이기적인 마음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곤 한다.
거지 성자
나의 뱃속도 이제 인도에 적응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인도 음식과
타협을 하지 못한다.
소화제를 너무 많이 먹었는가? 인도 약도 음식이라고 위장이 거부를 하는지,
신열이 나고 몸이 추웠다 더웠다 제 마음대로다.
그래도 캘커타까지 왔으니, 친구들이 천거한 거지 성자를 찾아 봐야 했다. 길을
몰라 많이 헤매기도 하였지만, 생각보다는 쉽게 만나 뵐 수가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질문을 했다.
"성자와 성자 아닌 자는 뭐가 틀리는지요?"
거지 성자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했다.
절름발이에다 눈까지 먼 성자에게, 세계 최고의 학자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질문을 던졌다. 마음속으론, '병신인 주제에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성자의 징표는 무엇입니까?"
때마침 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리고 돌아다니다가, 학자의 콧잔등에 내려앉았다.
손으로 쫓았으나 다시 내려앉았다. 신경질이 난 학자는 파리를 친다는 것이
자신의 콧잔등을 치고 말았다. 이때 병신 성자는 조용히 말했다.
"성자는 코에 파리가 앉아도 신경질을 내지 않습니다."
대답을 대신한 짤막한 이야기였지만, 가슴이 찡해 옴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시적 이야기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무기력해진 몸과 마음의 소생이었다.
나:성자님! 저에게는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깊은 우울의 나락에서
빠져 나와, 인간들을 다시 사랑하고 싶습니다. 다시 살고 싶습니다.
성자: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소. 그리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하였소. 당신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당신 자신뿐이오.
나: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자:당신의 몸엔 수행자의 향기가 배어 있소. 진리 추구의 여행을 멈추지
않으면 반드시 되살아날 것이오.
나: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요?
성자:동쪽으로 기운 나무는 동쪽으로 쓰러지는 이치일 뿐이오.
나:왜 많은 식견과 지혜를 지니시고서도, 이런 모습으로 사셔야 합니까? 다른
구루들처럼 여러 나라 다니시며, 중생들에게 이익된 말씀을 주시는 것이, 더
보람된 길이 아닐는지요?
성자:깊고 조용한 수행처에 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움이지만, 이렇게라도 살 수
있음에 감사할 분이오.
이 시대는 능력을 드러내거나 높고 큰 자리를 취할 시대가 아니오. 낮은
자리에서 조용히, 영성의 빛을 갈무리할 때인 것이오. 어울려 의지하고 살 때도
아니고, 제자들을 키울 대도 아니오. 스스로에게 의지하여 홀로 닦아 갈 때요.
나:크신 말씀 고맙습니다만, 큰 말씀을 담기에는 몸뚱이조차 병든 나약한
중생입니다.
성자:병과 아픔은 무쇠를 강철로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오. 그대는
세상을 이롭게 할 무량공덕주요, 여행을 계속하다 보면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날
것이요.
선인선덕 악인악덕이 온다는 이치요.
깨달음의 에너지를 조금씩 불어 넣어주는 듯한 진지한 말씀들에 고무되어, 나는
또다시 순례길에 오른다.
펀자브 주의 시크교 성자 '라다스와미'
인도에는 우리나라의 몇 배가 되는 큰 주들이 여러 개 있는데, 어떤 주는 술을
팔아도 안되고 마셔도 안되며, 술마시다 들키면 감옥행인 곳도 있다.
남부지방에는 모계사회 풍습이 남아 있어, 외삼촌과 조카딸이 결혼을 하며, 한
여자가 남자쪽 여러 형제들을 한꺼번에 데리고 살기도 한다.
어떤 곳에는 삼십대의 사내들과, 여덟 아홉 살의 계집아이가 결혼을 한다. 넓고
다양하다 보니 사는 모습도, 지켜가는 풍속도 가지각색이다.
인도에 거지가 없는 유일한 곳도 있다.
펀자브 주라는 곳인데, 시크교인이 대부분이며 다른 주와는 다르게 머리에
터번을 쓰고 다닌다.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시나 담배는 피우지 않고 일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안다.
부지런하기에 평균 소득은 다른 인도인의 몇 배가 된다. 그리고 이들은 절대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아서, 산적 두목 같은 사람들도 있고 신선이나 도인 같은
멋스러운 모습을 지닌 자도 있다.
믿는 종교도 또 특이하다.
분명 인도인이면서도 힌두교가 아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좋은 점을 따서 만든, 시크교라는 종교를 믿는다.
이 시크교의 살아있는 성자라고 불리우는 '라다스와미'를 만나러, 하루 낮밤
기차를 타야 했다.
펀자브 주 비아스라는 도시에 도착하면서부터,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럽의
어떤 아름다운 도시에 와 있는 착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다녀본 곳 중에서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답게 정돈된 기차역은 처음 보았다.
이곳은 인도가 아니었다. 역은 물론 사람도 길도 공기도 인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들이 인도와의 분리 독립을 위해, 피흘리며 싸웠는가 보다.
시크교의 성자 라다스와미! 그의 아쉬람 앞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한족에서는 아쉬람에 들어가기 위해 몸수색을 받고, 또 한 쪽에서는 절대
촬영금지의 규칙에 따라, 카메라와 비디오를 맡기느라 정신들이 없다.
외국인 전용 게이트가 있어서 좀 수월했지만, 국제공항 검색대와 다를 바가
없었고, 들어가서도 외국인 담당 사무실에, 숙소 배정과 수속 절차를 또 밟아야
했다.
방 번호와 머무는 날짜, 출발 시간까지 모두 체크되었다. 기막힌 사실은 이렇게
오는 외국인이나 내국인이 하루에 수백 아니 수천이 넘는데도, 숙박료는 물론
식사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합동 법회에는 끝이 안 보이는 운동장에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이삼층 높이의 단상에 성자가 나타나기를 목을 늘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나타났지만, 너무 높고 너무 멀어 얼굴의 윤곽마저 잘 보이지 않았다.
사자후를 기대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 앉은 제자(?)되는 사람이, 자신들의
경전인 아디그란트(지혜의 집성)를 읽고, 성자는 은행의 감시 카메라 돌아가듯이
고개만 돌리며 사람들을 둘러볼 뿐이었다.
싱겁기까지 했으나, 거기에 모인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는 환희의 빛이 흐르고
있었으니...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사람에게 무엇이 그리 감동스러웠냐고 물으니, 성자께서
몇 번씩이나 자기만을 쳐다보셨다는 것이다.
성자의 주위에는 한 무리의 경호대가 따르고 있어서, 감히 누구 하나 접근하지
못했고, 개인 친견은 불가능했으나, 마침 외국인 특별 법회가 있어 운좋게도
대담까지 할 수 있었다.
나:여기서는 어떤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지요?
스와미:신과 합일을 가르치며 신에 대한 묵상을 배운다.
나:좀더 자세한 말씀을...
스와미:인간의 불행은 신과의 분리에서 온다. 신과 분리되면,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가 생긴다. 신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그럴수록 인간들은 편벽과 오만의 업에 싸여지고, 불안과 혼란으로 영성을
잃어버린다. 신에게 모든 것을 헌신함으로써 영성이 회복되며 구원에 이른다.
나:신을 무조건 믿고 따르며 선행을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까?
스와미:그런 뜻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이기적으로 변하는 자신을
끊임없이 살피는 수행이 필요하다.
자기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은, 부와 섹스, 권력과 가족, 지위와 명예 등 안락한
의식주의 덫에 걸려 신을 잊어버린다. 자기 중심적인 것들이 인간의 궁극 목표가
아님을 끊임없이 살피는 것이 우리의 수행이다.
나:같은 수행자로서 외국인 수행자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실 수 있습니까?
스와미:자기 중심적 삶을 버려라. 세상 일들은 노력과 고통만 크지, 남는 것은
없다. 수행 이외의 잡된 세상사를 철저하게 버려라.
지급된 숙소는 인도의 좋은 호텔 수준이었고, 뷔페식의 세 끼 식사는
채식이었지만, 너무도 다양한 음식들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온 외국인들도
다양하여, 일일이 기억할 수 없었으나, 나에게 자신이 아끼는 성자 사진과 자신이
그린 카드와 보리수잎을 선물해준, 빈에서 온 컴퓨터 박사가 생각난다.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심리학자의 당부 말도 떠오른다.
"달라이라마를 꼭 다시 한번 만나보시오. 이들 성자와는 또 다른 에너지를 지닌
분이십니다. 특히 당신과 에너지의 흐름이 같으니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의 당부에 대한 고마움은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또 잊혀지지 않는 세
여인이 있는데 영국에서 온 자매들로, 동양의 영적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세 사람
모두가 이곳 사람들과 결혼을 한, 참으로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수십 년 수행한 수도승보다 더 조용하게 가라앉은 모습이 너무도 좋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구도인들과 스승들이 많아질 수 있다면...
며칠 더 머물고 싶었지만, 달람살라의 툽텐라마와 약속한 날짜가 임박하여,
떠나올 수밖에 없는 발길이 아쉬웠다.
툽텐라마
내가 툽텐라마를 만난 것은, 호주인들이 지구의 배꼽이라고 일컫는 호주의 상산
'에어즈 록'이라는 곳에서였다.
운명이었을까?
나는 이때(호주에 있을 때) 지금보다 훨씬 몸과 마음이 아팠었다.
절과 재산(?) 등을 빼앗고 석용산이라는 이름마저 철저히 매장시켜 보려는,
전생의 빚진 인연들과 싸우고 싶지 않아. 아니 싸우게 되면 불교 집안의 어두운
부분들이 줄줄이 터져나와, 불교를 망치는 일이 불보듯 뻔하기에, 훌훌 던져주고
바람부는 대로 흘러간 곳이 호주였다.
전생 수행자로 산 업 때문인지 무겁고 귀찮은 승복을 그래도 벗어버리지
못하고, 반다눈 수도원(태국 승려 선방)에 몸을 부려야 했다.
병들어 있던 몸에, 마음까지 상처 입은 영육은 혹독한 추위와 하루 한 끼의
일종식, 그리고 삼십대의 젊은 승려들과 함께 하는 정진으로 힘겨워 있었다.
기력을 찾아보려고, 가피력을 얻어보겠다고 수만 킬로 굴루사막을 달려,
시계바늘과 나침판을 돌려놓는다는 성산, 에어즈 록을 찾아 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감흥도 에너지도 느낄 수 없어, 허탈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뒤에서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 말 한마디가 툽텐라마와의 만남, 아니 인도의 구루들과 티베트 요기들을
만나게 되는 시발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또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면서,
서로 초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달람살라에 가면 달라이라마도 친견케 해주고
안내도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툽텐라마가 신탁을 받아 달라이라마를 돕는, 국사역의 특별한
존재인지는 인도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이상한 만남
가만히 보면 인생이란 기막힌 드라마이다. 예측불허의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내 인생 여정이 그러하듯, 내 순례의 여정 또한 기막힌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제 내 의지라는 것도, 뜻이라는 것도 제어하려 들지 않는다.
저희들이 알아서 돌아가도록 그냥 놔두어도, 제대로 흘러감을 보고 있을 뿐이다.
사오 일씩 차를 타야 하는, 아니 거의 차 속에서 살고 있는 형편이지만, 저
북천축 히말라야 아랫마을 달람살라까지 밤을 세워서 간다고 생각하니 겁부터
나는데, 꾀를 내는 몸과 마음에 자극을 줄 또 하나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묶고 있는 숙소에서 100여 킬로 거리에, 대우자동차 공장이 서 있고 몇 킬로 못
미쳐서 초월명상의 창시자이며, 요가 행자가 싸시는 아쉬람이 있다.
그 아쉬람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깜짝 놀랄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니...
다시 만날 것이라던 발가벗은 성자!
아쟌타 석굴 근처에서 고추를 내놓고 폼재던 그 분!
정말 그 분을 다시 만난 것은 생각 밖에 일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주신 가죽옷만 걸치고, 어디서 주웠는지 털이개
같기도 하고 부채 같기도 한 것을 들고 있기에, 무소유 수행자가 그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벌레들이 붙으면 벌레를 털고 여자들이 붙으면 여자를 턴다며 싱긋
웃었다.
소리없이 웃는 그의 미소는 여자는 물론, 귀신도 홀릴 것 같은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차를 보내고, 나도 그와 함께 걸으며 (비록 옷은 못 벗었지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놀라운 일은 내 어줍잖은 영어가 그와의 대화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자이나교의 사두(스승, 수행자)입니까?
성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자이나교의 근본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성자:업에서의 해탈, 깨달음을 이야기 한다.
나:업은 어떤 것입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까?
성자:같은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 자이나가 이야기 하는 업은, 마음과
행위에 따라 일어나는 업만이 아니라, 우주 자체가 보이지 않는 업의 미립자들로
가득차 있다고 믿는다.
화나는데 달라붙는 입자, 탐내고 어리석은데 달라붙는 입자, 분별망상의
생각들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자들이 달라붙어, 영성의 빛을 흐리게 만들어 간다.
나:그러면 영혼이라고 하는 것도 업의 물질이니까?
성자:그렇지 않다. 영혼은 순수 그 자체이다. 영혼이라는 보석이 업의 물질에
덮여 빛을 잃었기에, 인간에게 불행과 혼돈, 슬픔과 고뇌가 시작된 것이다.
나: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성자:간단하다. 수행을 통해 업을 녹여내면, 평화와 지복으로 가득차 영성이
드러나고, 우리는 조화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무엇이 가장 파괴적이고 무서운 업입니까?
성자:그것은 타인을 해하려 하는 행위다. 욕망과 증오에 의해, 다른 생명을
해치려는 행위는 최대량의 업을 끌어들인다.
그래서 우리 자이나교도들은 타인을 해치지 않겠다는 서약을 제일로 친다. 이런
가르침이 간디 같은 사람의 무저항주의로 이어져, 인도를 영적인 나라로
만들어왔다. 간디가 자이나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가?
나:무상해, 무저항, 무소유 등의 가르침은 간디 같은 성자들이나 실천하지,
범속한 우리들이 어떻게 실현해 갈 수 있습니까? 신의 도움이라도 받습니까?
성자:아니다. 인간을 도울 수 있는 인격적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도
창조적 행위도 관심이 없다.
해탈의 길은 오직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자이나교 교주인 마하비라(부처와 동시대 사람)나 그리고 수많은 영적 스승들도
인간이었고, 부처도 간디도 다 인간이었다.
생각과 습관의 차이일 뿐 우리도 얼마든지 무저항, 무소유의 삶을 살 수 있다.
나:어떻게 지금의 삶속에 남을 속이지 않고, 남의 것을 뺏지 않고, 남의 목숨을
죽이지 않으며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성자:얼마든지 가능하다. 자이나교 사업가의 정직은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아주고 믿어준다. 그러기에 못 사는 사람이 없다. 채식만으로도
남의 생명을 빼앗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
나:식물은 생명이 아닙니까?
성자:크고 작은 것이 있고, 많고 적은 게 있다. 식물의 정령은 독한 업이 지극히
미세하여, 인간들의 마음에 잔인함과 악업을 쌓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업으로 여기기에, 자이나의 스승들은 거룩한 죽음(음식은
물론 물마저도 마시지 않고 움직이는 행위도 하지 않다가 그대로 좌탈입망) 즉
쉽게 표현하여 앉아서 굶어 죽는 길을 서약하고, 다들 그렇게 죽어간다.
나의 스승도 40년 전 거룩한 죽음에 드셨다. 스승은 천 한 조각 신발 한짝
걸치지 않고, 바루 하나 없이 맨손으로, 하루 한 끼를 얻어 먹으면서 36년 동안
인도 천지를 탁발 수행하셨다.
돌아가실 때에는 한달 동안 물만 마시다가, 그것마저도 끊고 13일 동안 어떤
움직임도 없이 육신의 모든 업을 소진시켜 버리시고, 거룩한 죽음의 세계로
가셨다. 이것이 자이나 사두들의 삶이다.
나:옷을 입은 수행자도 있던데?
성자:최초의 스승이신 마하비라(BC 599__?) 열반 후 옷을 입는 사람들이 생겨,
그들을 백의파라 한다. 백의파에도 옷을 입지 않는 수행자들이 많다. 우리들의
성전 '앙가'에 담겨 있는 가르침을 배우는 데는 옷을 입는 파나, 나같이 벗고
다니는 공의파가 다른 게 없다.
물에 빠져 죽는 남자는 엎어져 죽고, 여자는 반대로 젖히어 죽는다고 했던가?
지나가는 여인들이 구루의 반짝거리는 잠지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업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인가 보다.
질문을 계속해 나간다.
나:지난번에 헤어질 때, 또다시 만날 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숙명통이
통하셨습니까?
성자:먼지 낀 거울에 때를 닦아 내면, 자연스레 얼굴이 비추인다. 숙명통을
얻었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람들에게 잠깐의 위안거리가 될지는
몰라도...
집도 절도 돈도 마누라도 세상까지도 필요없는 수행자에게, 신통도
걸리적거리는 장애일 뿐이다.
나:나를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오신 것입니까?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성자:만나려는 생각이 의지에 심어지면, 그것이 금생이든 내생이든 언젠가는
만나지게 된다. 우리는 이미 전생에 그런 인연의 씨앗들을 심어 놓았기에,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나:그러면 우리가 전생에 심었던 씨앗은 무엇이라는 말씀이니까? 알아듣기 쉽게
말씀해 주십시오.
성자:그대와 난 아주 가까운 도반이었다. 우리는 함께 거룩한 죽음을 맹서했고,
나는 그렇게 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대는 진리를 널리 펴고자 소신공양을
택했다. 우리는 분명 스승들 앞에 거룩한 죽음을 맹서했던 것이다.
그러한 죽음이 업을 종식시키는 해탈의 길이며, 가르침의 길인 것이다. 나의
말을 기억해 달라.
나:그럼 그것 때문에 나를 만난 것입니까?
아무 대꾸 없이 가만히 손을 잡으며, 쳐다보는 그의 눈망울! 그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보석처럼 빛나던 그의 모습은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티베트의 운명
티베트! 붉은 옷의 라마승, 탄트라 불교(라마교), 여러 번을 환생한 환생자
림포체, 이런 이색적인 정서가 엮어져 티베트를 신비한 나라로만 생각했는데...
중국의 티베트 침공으로 알맹이(?)들이 북인도 히마찰주 달람살라로 망명을
오게 되고, 그로 인하여 베일에 가려 있던 티베트 밀교(라마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달라이라마가 노벨평화상--독립운동을 하면서도 무상해, 무저항의 자비사상을
실현--을 받음으로 해서, 티베트와 티베트 불교는 세상 사람들, 특히 서양인의
관심과 이목을 끌게 되었다.
불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부분과 밀교의 신비가 더해져서, 서양인들을
흥분케 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던 것이다.
불교를 인도에서 티베트로 처음 전파한 '파드마사바바'가 '훗날 붉은 옷을 입고
머리를 깎은 사람들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리라.'라는 했던 예언대로 붉은
승복의 라마승들이 세상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나라 잃은 불행과 법이
널리 퍼지는 행복이 자리를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인간들이 코앞만 생각하고, 잘됐느니 못됐느니 하는 판단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알음알이임을 절감하게 된다.
자이나 성자들이 지극한 지식을 첫번으로 이야기 하고, 불교성인들이 바르게
보는 정견을 팔정도에 머리에 두는 것도, 다 이유있는 가르침일 것이다.
이 못난 승려의 삶도 생각한다면, 비운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요인들을 제공한 인연들이 밉고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되돌려 생각해보면 훌륭한 성자의 구루들을 다 만나보고, 세상의 온갖
풍물과 여러 수행 형태도 경험할 수 있으며, 이 나이에도 끊임없이 수행할 수
있음은 최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축복을 제공해준 사람들이 미워할 자가 아닌 고마운 은인임을 가슴에
새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티베트의 운명과 같이, 생각에 따라 나쁜 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좋은 것이
나쁜 것도 있음이 세상사인 것이리라.
도인과 원수 지으라!
티베트의 망명 수도 '달람살라'
달람살라에 올 때 일주일 예정을 하고 왔다.
다른 구루들과 만날 계획들을 세워놨기에 오가는데 이삼 일, 툽텐라마를
만나보고 여기저기 돌아보는데, 삼사 일이면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와보니 한라산보다 높은 해발 이천여 미터 고산 지역에, 뺑 둘러쳐진
산마다에는 눈이 덮여 있었고, 흰구름들을 허리에 감은 히말라야 설산 자락들이
첩첩으로 둘러싸여, 백설 연화궁에 온 기분이었다.
보면 볼수록 신비함이 더해져서, 나중엔 무릉도원에 포근히 앉아 있는 착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훌륭한 달라이라마가 계셔서 명당처럼 생각되는지, 명당이라 큰분이 오셨는지는
모르지만, 달람살라 전체가 그대로 사원이고 수행자들의 마을인 것 같아 너무도
좋은데, 달람살라라는 뜻마저 수행자가 머물다가는 곳이라 했다.
인연의 땅이어서 그렇겠지만, 이 험난한 오지가 말할 수 없는 환희심을 불러
일으켰으니...
더 고마운 인연은 툽텐라마가 자신의 일정들을 모두 며칠씩 물리고, 달람살라
왕궁을 비롯하여 노블랑카 여름 궁전, 병원, 학교는 물론 중요하고 큰 사찰과
일본인들이 달라이라마의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으로 지어올린 콤파도 참배케 해
주었다.
툽텐라마의 위치가 특별하다 보니,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곳까지 속속들이
둘러보게 되었다.
특히 툽텐라마는 국가 신탁을 받는 영적이고 신적인 분이어서 서로 영어가
서툴렀지만, 내 마음을 정확히 짚어내고 원하고자 하는 것을 미리 알아서 해
주었다.
많은 영적인 사람들을 만났지만 툽텐라마는 분명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타심통의 영능자였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자비문을 열고자 하는 수행이며, 인간들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찾고자 함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여행 일정에 차질이 없다면 달라이라마를 다시 한번 만나뵈라
했고, 만약 이곳에서 수행을 하고자 한다면 어떤 파--티베트 불교에는 닝마, 겔룩
까규, 샤카라는 4파가 있음--의 고승이든 소개를 해 주겠다고도 말했다.
내가 청하고 싶었던 사항들이었는데, 미리 알고 이야기 하는 그의 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나는 다른 일정들을 모두 뒤로 미루고 티베트 밀교 수행을 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일이 되느라고 그랬는지 숙소가 좀 문제였는데, xx스님이 한달 정도 부다가야로
순례를 간다며 방을 쓸 수 있도록 해주었고, 고마운 배려들까지 아끼지 않았다.
한철 머물 계획으로 호주에 남겨 두었던 몇 가지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지광스님을 호주로 보내고, 내 나름의 준비를 해나갔다.
도인과 원수 지으라!
툽텐라마가 찾아왔다.
수행할 곳을 몇 군데 물색했단다. 달람살라 근처 바위굴에 겔룩파의
하이라마(고승) 한 분이 계시고, '따시종'이라는 곳과 '마날리' 근교에 역시 티베트
밀교의 진수를 깨달으신 까규파의 독텐(성취자, 깨달은 자)이 계신다 했다.
자기 생각에는 따시종이나 마날리 쪽이 나을 것 같다며, 아무래도 달람살라는
번잡해서 제대로 수행하기에는 적당치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의아해 하였더니, 달라이라마 법력으로 세계 각처에서
외국인들이 몰려들지만, 그들이 모두 수행자들은 아니다 라는 것이었다.
설혹 수행에 관심이 있어서 온 사람들이라 해도, 수행할 자세나 소양이 제대로
갖추어진 사람이기보다는, 밀교의 신비한 분위기에 취해 잠깐 스쳐가는
인연들이라고 했다.
달람살라는 환락의 거리는 아니지만, 밀교 탄트라 분위기가 유행처럼 출렁이는
거리라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설산에 은거하시는 하이라마(고승) 한 분을 만나 뵙고 오는 길이었는데, 인근
마을 아이들이 따라오며, 방이 있다는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같이 간 스님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이미 달람살라 주위에는 인간들로
오염되어 큰일이라면서, 근처에 지어진 게스트 하우스나 마을집들이 수행처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고 마약을 피우는 장소로 대여된다고 했다.
인도에는 마약성 약초가 흔하기에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남녀가 수행을 핑계로,
혼숙은 물론 기상천외의 짓거리를 다하고 있다고 했다.
툽텐라마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벌써 알았느냐며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악인과 원수지면 악을 더하지만, 도인과 원수지면 결국 도인이 되듯, 그들이
달라이라마 품안에 있는 한은 반드시 정신을 차릴 것이고, 결국은 깨달음의 길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역시 달라이라마에 대한 신심과 존경이 확실한 것을 느끼며,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운의 땅 따시종
툽텐라마와 따시종에 가게 되었다.
그의 차가 있었지만, 우리들 식의 자가용이라기보다는 콤파의 차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들에겐 개인 소유라는 관념이 희박하다.
자기가 쓰는 차이지만 내 것이라는 생각이 없고 공동체 물건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라마들의 무소유 개념이 일상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공공물건이기에
따시종에 가는 기름값과 사용료를 응당 내가 물었지만, 이들의 생활을 알기
전까지는 돈을 받은 툽텐라마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는 길에 샤캬파의 대찰이라는 콤파에 들러 참배하는 시간 이외엔 멈추지 않고
달렸으나, 세 시간이 족히 걸렸다.
도착하고 보니 산악지대였지만 포근하고 아늑함은 달람살라 못지 않았고,
이곳의 두 장소에서 엄청난 에너지와 충격을 받는 인연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콤파의 주인이자 제일 어른은 17세의 어린 라마로 아홉 번을 환생한
캄쿨림포체이지만, 그의 신비한 눈빛과 미소 외에는 그냥 어린 아이로밖에 볼 수
없었는데, 뒷산 무문관 토굴에 계신 독텐(성취자) 안잠라를 보는 순간, 이유없는
서러움이 북받쳐서 참느라 혼이 났다.
86세의 허리 구부러지고 가는 귀까지 잡수신 볼 품 없는 노인에게, 나는 무엇을
느꼈기에 그토록 감정을 주체 못했는지...
또 한 분의 살아계신 독텐 암틴라는 자리에 안 계셔서 뵙지 못하고, 얼마 전
이곳에 수행하러 왔다는 한국 스님들의 처소에 들렀더니 어린 스님들이었으나
아주 당차 보여 마음이 놓였다.
돌아나오는 길에 온몸이 저려 오는 충격을 나는 또 한번 받게 되었다. 안이
들여다보이는 쇠창살로 잠가놓은 법당을 관리 라마에게 부탁하여서 열고
들어갔다.
법당 가운데 우측으로 나의 키만한 보석탑이 봉안되어 있어서 참배코자
합장하는 순간, 나는 그만 온몸이 감전된 듯, 한참 동안이나 몸과 마음을 꼼짝할
수 없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탑의 내력을 물어보니, 이 절의 전대 어른이었던 8대
캄툴림포체의 심장이 모셔져 있는 탑이라 했다.
시신을 다비하고 보니 다른 곳은 다 타서 재가 되었는데 심장만은 타지 않고
물기 촉촉한 그대로였다 한다. 온 티베트 불교신자들이 환희용약했고, 이 사실이
외국 제자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어, 결국 값진 보석들로 탑을 조성하여 심장을
봉안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나는, 이 분이 무슨 공부를 했느냐고 여쭈었더니, 자비
성취를 원으로 삼으신 수행자셨다는 것이다.
아! 무릎을 잘 끓지 못하던 내 교만한 몸뚱이가 눈녹듯 허물어져 일어날 줄을
몰랐다.
소개장을 들고 마날리로
티베트 밀교 둑빠 까규파의 숨은 도인이 계시다는 마날리 길이 너무 험하고
멀다며 눈이나 좀 녹거든 가라는 툽텐라마의 염려를 뒤로 하고, 그의 소개장
하나만을 들고 길을 나섰다.
험하고 멀면 얼마나 멀겠느냐는 마음에 출발했지만, 가는 길은 참으로 산넘어
산이었다. 천길만야의 벼랑길을 곡예하듯 달리는 미니버스 운전사가 그렇게
거룩하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중간중간 눈사태로 막힌 길을 치우기도 하고, 길이 끊겨 걷기도 하며 열대여섯
시간의 사투(?) 끝에 한밤중이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두워서 콤파를 찾지 못하고 게스트 하우스 신세를 져야 했는데, 눈이 무릎
넘어 빠지는 마날리는 참으로 추었다.
이곳이 한국에서 많이 들어본 히말라야 등반의 전초지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야릇하기도 했다.
고생의 인연인지 숙소에 전기가 나가는 바람에 밤새도록 오돌오돌 떨며, 이를
갈아대는 수행(?)도 미리 맛보아야 했다.
덕분에 나는 때아닌 온천욕을 해보는 호강도 누렸다. 도저히 언몸이 풀리지
않자, 이곳 안내인이 온천욕이 제일이라며 끌고 가는 바람에, 난생 처음 눈 속의
온천탕을 구경할 수 있었다.
큰 어른을 뵈러 가는데 당연히 목욕재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피곤으로 굳은 몸을 닦았다. 콤파를 찾아가니 어떻게 연락이 됐는지, 툽텐라마가
내가 갈 것이라는 것을 벌써 알려놓은 상태였다.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마음 갈피에 접어넣고, 96세의 노승과 그의 제자 겸
통역인 젊은 림포체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방에는 석탄 스토브가 따뜻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옆에는 아기 바구니에
기가 막히게 귀여운 사내아이가 옹알이를 하고 있었다.
수행자의 처소라기보다는 옛날 마을 집 안방 분위기였으며, 림포체 곁에서 차를
끓이는 예쁘장한 여인과 누워 있는 아이는 그의 아내와 아들이었다.
아내와 자식을 쳐다보는 림포체의 눈길이 흐뭇한 사랑으로 넘쳐 흐름을 볼 수도
있었다.
노승은 이미 은퇴를 하고, 림포체가 이 콤파의 모든 수행자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티베트 라마들은 거의 대부분 결혼을 하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 여인이 필요한
입장이 되면 웃어른의 허락을 받아 동료 대중에게 고하고 아내를 취하여 산다.
그러나 전혀 부끄러움이나 숨기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자신이 지닌 수행력이나 중생을 제도할 능력이 문제이지,
겉으로 사는 모양새는 두 번째 일이 된다.
이곳의 림포체도 아내를 얻은 경우지만, 림포체로서 한 콤파의 지도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그의 당당하고 의젓한 모습에서 읽을 수 있었다.
발가벗은 요기들의 수행처 무문관과 경을 번역하는 역경처, 호법신 기도처, 법당
등을 돌아보며, 이 춥고 깊은 산골에서 삶을 영위하는 자체만으로도 수행이요,
도임을 생각하게 하였다.
내가 원한다면 은퇴하신 노승이 직접 수행 지도를 해주시고,
예비수행--오체투지의 티베트 식 절 십만 번, 금강살타만트라 십만번, 만다라
고양 십만 번, 스승과 하나 되는 주문 십만 번--을 생략하고 바로 본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으니,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눈속에서 발가벗고 수행하는 요기들을 떠올려 보며, 돌아가는 험한 길이 전혀
고생스럽게 느껴지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생 자비 성취자
마날리에서 돌아오던 차머리를 달람살라가 아닌 따시종으로 돌렸다.
수행처를 따시종으로 정하고 싶었기에 한 번 더 인연을 확인하고 싶었다.
따시종에 도착하니 구루림포체 불공--구루림포체는 티베트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한 파드마삼바바의 다른 이름--의 회향날이었다.
남의 공양만을 받아오던 내가 신심을 내어 대중 공양을 올렸고, 만나뵙지 못한
또 한 분의 독텐(성취자) 암틴라에게 인사도 올렸다. 지난 번 뵈었던 안잠라와
많이도 닮아 있었으나, 더 젊고(76세) 흠잡을 데 없는 신선의 모습이었다.
암틴라는 외국인을 비롯한 이곳의 중요한 수행 지도를 도맡아 하고 계셨으며,
나도 이곳에 오게 되면 이 분에게 지도를 받게 되는 것이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 몇 말씀이 있다. 오고간 이야기 중에,
"그대는 전생의 자비 성취자요, 이곳에 인연이 있으니, 원한다면 기꺼이 제자로
받아들이겠소. 그러나 거처나 먹는 것도 문제이지만, 중요한 것은 힘든 예비
수행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이곳에서 수행을 하겠소?"
마날리에서 오고간 이야기-예비 수행을 안해도 된다는 말-를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예비수행이 아무리 어려운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 한들, 이런 곳 이런
분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수행할 수 있다면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스승을 만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취한 듯 홀린 듯, 외계에 발을 디딘 느낌이었으니...!
콤파를 다시 여기저기 돌아보다가, 기이한 장소를 또 한 군데 보게 되고 더욱
신심을 촉발하는 인연을 얻게 되었다.
대법당 오른쪽에 사람들이 꼬라(탑돌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탑머리 안에 자그마한 부처님을 모셔놓았다.
그 탑속에서 보리수가 자라나, 탑 속의 부처님을 돌돌 말아 휘감고 올라간
모습이 괴이하도록 신기했다.
탑이 모두 시멘트로 되었건만 어떻게 시멘트를 뚫고 보리수가 자라며, 그
보리수가 탑 안의 부처님을 어찌 알아보고 상호를 가리지 않으려고 휘어감고
올라가, 탑 꼭대기에 잎사귀를 피워냈느냐는 이야기다.
이 탑이 바로(법당 안 보석탑에 심장이 모셔진) 8대 캄툴림포체의 나머지
유골(사리)탑이었으니, 나라에 큰일이나 경사가 생길 때면 법당 안 심장탑과 법당
밖 이 사리탑에서 동시에 방광을 한다며, 멀리에서 참배 온 라마들과 신도들이
부지런히 꼬라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 분위기에 너무 취해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 차리고 자신을 돌아보았으나 어느 때보다 기력이 충만함을 느끼며 혼자
웃었다.
편지 1
효선이를 비롯한 제자들아!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못했구나.
스님도 정신이 없었단다. 며칠 뒤 따시종이라는 수행처로 가기 위해 날짜를
꼽다 보니 내일이 설날이구나.
항상 외롭게만 보이던 달람살라 별들이었는데, 오늘은 생기가 돌고 아름다운
유성들까지 꼬리를 물고 장난을 치는구나.
그래, 제자들아! 세상 사람들이 이 못난 스승과 너희들을 욕한다 하더라도 우린
웃어버리자! 그리고 그들과 세상을, 아름답고 고운 눈으로 바라 보자꾸나, 모든
외로움과 슬픔, 어려움과 고뇌를 성숙의 에너지로 돌려보자꾸나.
인적이 끊어진 4층 콤파의 탑을 돌며 너희들과 세상 사람들의 성숙을
빌어본단다. 내일이면 새해를 맞이하는 가슴들이라 그런지, 잠들지 않은 창틈
사이로 따스한 정담들이 도란도란 흘러나오는구나.
스님도 사람이라 그런지 두고온 하늘이 그립구나. 내가 바라보는 저 별들을
너희들 중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으리라 위로해 보며, 자국자국 발자국마다에
수행의 결의를 다져본단다.
편지 2
제자들아!
힘들고 어려웠던 어제 일을 거울삼고 에너지 삼아 더 성숙되고 힘찬 내일을
맞이하자꾸나.
스님도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기 위해 남은 힘 다해 보련다.
꽁꽁 얼어붙은 설산에서 자신의 수행열로 주위의 눈을 녹이며, 살아가는
수행자들의 이야기를 적어보냈는지 모르겠구나.
티베트 불교의 비전인 '뚬보'라는 수행을 성취하면, 외부의 추위와 고통은 물론
내부의 어떤 번뇌와 아픔도 모두 녹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구나.
많은 세월 여러 곳을 다니며 법을 구하였지만, 이런 수행법이 아직도 현실로
전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단다.
그리고 이 법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분을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며, 법을
전수받을 인연이 될 줄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느냐.
모두가 불보살의 가피이며 너희들의 염려 덕이 아니겠느냐?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수행법(뚬모, 환신, 몽환) 외에 또 세 가지 행법(정광명,
바르도, 포와)을 합하여 '나로육법'이라고 하는데, 마지막 포와 행법은
의식(영혼)을 다른 사람이나 동물에 전이시킬 수 있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수행법이란다.
달마대사를 비롯한 많은 고승들이 행하셨던 행법들이 바로 이 곳에 남아
전승되고 있구나. 한국에서 알고 있는 티베트 밀교가 얼마나 잘못 알려져
있는가를 절감하게 되는구나.
제자들아!
모든 수행법이 그러하듯 이 행법 역시, 아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나는
고행이 필요하단다. 본 수행에 들어가기 전 사과행이라는 예비 수행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구나.
첫째는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맹서와 함께 십만 번의 오체투지의 절을 해야
한다. 그것이 끝나면, 전생, 금생 모든 악업을 참회하는 금강살타진언 십만 번,
그리고 일체 중생에게 복덕을 희향하는 만다라 공양 십만 번, 스승과 하나되는
진언을 또 십만 번 해야 되는구나. 그것이 끝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봐서 예비수행이 원만히 되었다고 판단되어야, 본 수행을 할 수 있는
입문식(관문식)을 행한단다.
입문식에는 제자와 스승 사이에 지켜져야 할 약속(계율)이 있고, 이 약속을
파하거나 누설하면 엄청난 재앙을 받게 된단다.
이런 밀법을 실질적으로 전수받을 수 있는 스승과의 만남을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기연 중에 기연인 것은 이 스승님의 원불이 지장보살의 또 다른 모습이기에
만남과 수행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란다. 밀밀히
전승되던 행법이 외국인 제자에게 전해질 인연의 시기가 되었다고 하신 말씀을
되뇌어보며, 이 수행을 성취하는데 전력을 다해 보련다.
한국과의 인연, 아니 이전의 모든 반연을 끓고 수행에만 전념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내 질문에 손을 꼭 잡으시며,
"그러지 말게! 그대를 바라보는 세상의 많은 인연자들을 섭수해야 할 업연이
자네에게 있다네! 때가 될 때까지 수행하며, 전하고, 전하며 수행하도록 하게."
이곳에서 지켜지는 계율로 보아 참으로 파격적인 말씀이란다. 이곳에 입문한
무문관의 제자들은 최소한 삼년 아니면 칠년, 그리고 어떤 제자들은 머리도
수염도 깎지 않고 목욕은 물론 바깥출입도 금한 채 수행에만 몰두하게 한단다.
이 모든 인연과 수행이 내 자신뿐만 아니라, 인연 닿는 모든 이에게 회양되는
길이 되길 다시 한 번 합장하여 보는구나. 스님이 보내는 이 편지 내용을 자세히
살피길 바란단다. 참기 힘든 오욕과 아픔 감내하며, 평생을 바쳐 찾아낸 진리의
길이란다.
우리 모두가 가야할 수행의 길이기도 하단다. 그리고 이곳 수행을 한다 해서,
스님이 괴인이나 기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잘못 알려진 좌도 밀교의 이상한
수행을 하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하겠구나.
티베트 정통 밀교와 한국의 불교가 대승의 가르침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틀린 것이 있다면, 방편의 차이란다. 달마, 진묵, 사명 같은 고승들이 행하던
일련의 수행법들이 그대로 살아 전승되고 있다는 점이구나.
한국에도 고려말까지는 이 밀법 수행들이 살아 있었으나 그 뒤로는 이어지지
못하였단다.
한국 불교가 되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실전되고 생략된 이런 중요한 수행
과정들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해 보는구나. 입으로만 되뇌이는 막연한
구두선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행법이 필요한 시대란다.
제자들아!
할말이 무궁하다만 수행으로 대신하자꾸나.
그리고 아무 걱정들 말고 기도에 전념하거라.
너희들 곁에는 불보살님들이 계시고 호법선신들이 버티고 계시단다.
특히 지장보살님과 우리가 천도해준 많은 영혼들이 너희들을 도울 것이다.
이번 정초 기도 때 절 많이 하고, 멸정업진언과 츰부다라니 염송하도록 하거라.
그러면 반드시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생명 에너지가 상승되어 복덕자량이 쌓일
것이다.
이 못난 스승 돌아갈 때까지 몸들 건강하고 신심 퇴보치 말거라.
여기 어느 스님 글 한 편 적어 보내니 함께들 읽어보려무나.
부처님은 내 아버지, 보살은 내 어머니
함께 사는 수행자들 형제요 조카
불법 따르는 자 내 친구들이라네.
여보게들!
진정한 행복 구한다며는
산란한 마음 기도로 휘어잡고
언제나 고독한 사막에 머물며
인욕으로 토굴 삼아
자나 깨나 기도염력 길러가게나
그러면 몸과 마음 정화되고 에너지 상승되며
탐, 진, 치 삼독은 물론 팔풍과 팔난이 사라지리니
마침내 인생의 승리자 되고 말리라!
4. 무심히 던진 돌
달라이라마와 재회
툽텐라마에게 사오일 뒤 따시종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한다.
지광스님과 내 여권을 달라며, 달라이라마를 뵙고 가는 것이 좋겠단다.
한달 전에 왕궁측에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특별히 청을 해볼 터이니 좋은 꿈을
꾸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인다.
이튿날 연락이 와서 3일 뒤 친견이 있으니, 준비를 하고 있으라 했다. 이곳에
있는 xx보살이나 미쳄보 그리고 한울타리(게스트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도 자기
일같이 기뻐한다.
이곳 사람들은 외국인이나 티베트인 모두가 달라이라마 친견을 평생 소원으로
지니고 산다.
달라이라마를 자비의 화신, 관음의 화신으로 철저히 믿으며, 자신들의 영원한
구루, 영원한 법왕으로 가슴에 모시고 산다.
통역으로는 미쳄보가 따라가길 원했고, 나도 그러고 싶었으나 개인적인 만남의
의미보다 더 큰 의미도 있는 것 같아서, 승려인 xx스님을 대동하기로 하였다.
열네 번씩이나 인간으로 환생한 14대 달라이라마!
밀교도의 정신적 지주이자 티베트의 법왕 그리고 망명 정부의 원수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 어느 모로 보나 거룩한 분이지만, 지난 번의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 스친다.
이제, 두 번째 만남을 위해 왕궁 출입 관리처에 입궁 수속 절차를 받고 있다.
궁궐 내부는 지난 번 툽텐라마의 배려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그때는
달라이라마가 출타 중이셨고, 왕궁 시종의 안내로 라마 침실을 비롯 집무실, 개인
기도실, 돌아가신 라마의 스승 링림포체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는 내부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화려한 궁전이라기보다는 수행자의 냄새가 배인 수도원 같은 느낌이 들어
참으로 좋았었다.
더욱이 왕궁 시종과 툽텐라마의 설명들이 덧붙여져서 흥미로웠고, 시간들에
쫓기지 않아 따뜻하고 평화로움마저 만끽해 가며, 고궁 나들이를 나온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철저한 신분 확인과 검색 등, 한 나라 원수를 만나는
절차를 밟으며 기다려야 했다. 좀 번거롭고 딱딱하긴 하였으나, 어려운 친견을
주선해 놓은 툽텐라마의 마음을 생각하며 수속을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대기실 의자에 앉아 마주 보이는 벽시계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얼마 전 왕궁을 구경하러 이곳에 들렀을 때, 자고 있던 시계가 아직도 자고
있는 것이다.
달람살라 왕궁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리라. 수많은 나라,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고 또 거쳐 갈 한 나라의 통치자 대기실 시계가, 여러 날을
잠자고 있음을 이들은 어떻게 이야기할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수행자가 사는
곳이라고?
통역을 맡은 xx스님과 지광스님도 내 말을 듣고 편안한 웃음들을 웃는다.
기다리는 우리들에게 비서관이 몇 번이나 당부를 한다. 친견 시간은 20분이니
꼭 시간을 지켜 달라고, 델리 아쇼카호텔에서 뵐 때 지쳐 계시던 모습이 떠오르며,
내가 너무 욕심을 낸 것이 아닌가도 생각되었다.
달라이라마를 한 번 뵙고자 목숨을 걸고 몇 달씩 걸려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오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호기심도 있었다.
그 분의 지친 모습 뒤에 내가 보지 못한 그 어떤 힘이 있기에, 툽텐라마와 다른
사람들이 다시 뵙기를 권한 것일까?
이번엔 내 의식을 최대한 넓혀 선입관 없는 마음으로 친견하리라.
시간이 되어 접견실로 들어가 달라이라마를 보는 순가,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우습게도, 영웅과 미남은 시시각각 모습이 변한다는 어떤 사람의 말이었다.
아쇼카호텔에서 뵈었을 때의 그 지친 모습은 어디 가고 사자 같은 또다른
모습이었으니...
어떻게 된 것일까? 내 마음이 변한 것일까? 달라이라마의 변신인가? 인사와
소개, 이런 저런 얘기가 오고 간 뒤, 몇 가지 질문을 요청했더니 흔쾌히
승낙하셨다.
나:한 나라의 통수권자이자 노벨평화상을 받으신 분으로서가 아니라, 나라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남의 땅에 오셔서 살아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고뇌 같은
것이 있으시다면?
달라이라마:내가 젊어져야 할 운명적인 업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이며 삽니다.
거부하지 않기에 고뇌와 고통이라고 표현하기엔 좀 그렇습니다만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나:저 같은 경우는 포교생활 일이십 년에, 벌써 인간에 대한 실망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수행을 핑계삼아 이렇게 떠돌고
있습니다.
라마님은 수십 년 동안 복잡다단한 상황 속에, 수행자로서도 국가원수로서도
여법하게 살아가고 계신데, 저같은 사람들에게 주실 가르침이 있으시다면?
달라이라마: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의 역할과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할 수 없는 것이 정해진 업이기에, 나의 일에 만족하려고
노력하며 또 만족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처님 뜻입니다.
우리 민족이 이런 고충을 겪는 것도 지난 세월의 그 어떤 업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행과 일은 둘이 아닙니다. 나는 수행하는 마음으로 일과
사람들을 대하며, 또 반대로 많은 일과 인연들이 나의 수행을 성숙시켜 줍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일들이 모두 해결된다면, 나도 수행자로 남고 싶습니다.
사이 사이 주고 받는 수행자들로서의 대화가, 조금은 형식적이고 딱딱했던
분위기를 녹여가고 있었다.
금방 20분이 지나갔다. 사인을 보내는 비서관들의 손짓을 물리시고, 다과를
내오게 하신다.
나는 사진을 찍으려는 지광스님에게 찍지 말라고 하였다. 좋은 분위기가 깨질
것 같은 염려에서 였다.
나:좀 더 질문을 해도 될까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아시는 듯 다과를 권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다.
나:여러 곳에 다니면서 가장 마음 아프게 생각한 것은 같은 민족끼리도, 종교가
틀리다는 이유로 서슴없이 살육을 자행하는데, 이래도 세상에는 종교가
필요한지요?
라마:자동차 길에 이정표가 필요하듯, 우매한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가르침은
필요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종교를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나:인간들이 진정 영적으로 진보를 하고 있는지요? 독해지고 악해지는 것을
보면, 그 반대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라마:진보하고 있다고 봅니다. 썩어가는 것 같지만, 썩어야 더 많은 새싹과 더
좋은 생명들이 태어납니다.
시간이 꽤 됨직하여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넘었었다. 비서관들은 사인 보내는
일을 포기했는지 그냥 쳐다보고 서 있다. 오히려 라마가 말을 잇는다.
라마:한국에도 밀교 수행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나: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오육백 년 전까지만 해도 맥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실질적인 수행은 이미 단절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티베트 불교와 한국 불교가
잘 교류된다면 법(다르마)으로나 현실적인 면에서, 서로에게 많은 도움과 활력이
되리라고 생각하는데 라마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라마:나도 한국과 한국 불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양국은
너무도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지요. 모양뿐만 아니라, 정서도 한도 맒아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불교의 교류도 잘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 통역을 맡은 스님을 포함해서
이곳에 공부하는 한국 사람들이 있는데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양국 불교의
다리 역할을 할 재목들이니까요. 그리고 하루 속히 티베트가 독립하여, 라마님을
본국의 포탈랍궁에서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라마:고맙습니다. 나와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 하나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문화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계인들은 다함께 관심을 가져 줄 것입니다.
달라이라마가 껄껄 웃으시며, 통역한 스님의 등을 두드리신다.
라마:작은 다리들이지요. 작은 다리가 모이면 큰 다리 역할도 할 수 있지요.
법왕이며 한 나라의 통치자라는 권위와 위엄마저도, 따스한 웃음속에 녹여버린
그 분의 수행과 겸손함에 합장 경배드리며 왕궁을 나서니, 온세상을 다 덮을
것처럼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번 두 번째 만남이 없었다면,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피곤한 모습의
달라이라마가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며칠 사이에도, 아니 돌아섰다 다시 봐도, 또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음을 또다시 경험했다. 언제나 물들지 않은 마음, 선입견 없는 마음으로, 사람도
세상도 보리라고 다짐해 보며 눈길을 내려왔다.
추워도 얼지 않는 빈 방
엊그제의 노고(달라이라마와의 통역)도 있고, 그동안 향그러운 차들을 대접 받은
고마움도 갚을 겸, 저녁 식사라도 한 끼 하고자 xx스님을 찾아갔다.
바짝 마른 수행자의 모습이었지만 오늘따라 더 까칠해 보였다. 방안의 냉기가
몸을 오싹하게 한다.
심한 폭설로 전신주들이 어찌 됐는지 달람살라 전체가 정전이었다. 전열기구를
사용할 수 없어 방안은 냉동고로 변해 있었고, 밤새도록 떨었던 그의 모습은 성할
리 없었지만 수행자의 꼿꼿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었다.
가슴이 찡해 왔다. 부모형제 버리고 출가하여 또 무얼 찾아 이 멀고 험한
곳까지 와서 고행을 해야 하는가? 그래도 남아 있는 가스에 물을 끓여 차 한 잔
달이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창 밖으로 저녁 노을이 지고, 눈덩이 무게를 못 이긴 소나무들의 가지 부러지는
외마디가, 원숭이들의 장난과 어울려 신비의 세계를 자아낸다.
해맑은 찻잔 속에 고향 냄새와 훈훈한 인간 냄새 그리고 청정한 수행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추위를 정담으로 녹여갔다.
슬그머니 내놓은 그의 편지에 밑줄 그어진 부분이 눈에 뜨인다. 고향
형수에게서 온 사연속에 내 이야기가 적혀 있다.
텔레비전 프로 'TV는 사랑을 싣고'를 보고 시동생이 생각나 쓴, 시골 형수의
정어린 서신이었다. 그에게 이유없이 뭔가를 주고 싶었지만 가진 게 없어,
어줍잖은 즉흥시 한 편을 지어주었다.
추워도 얼지 않는 빈방
눈 실은 바람 기어들고
원숭이 울음 품은 솔빛
찾아드는 곳
지나는 길손들아
그리움 있거들랑 주고 가렴
외로움 있거든 놓고 가고...
채워도 쌓이지 않는 빈 방
공행모 놀고
법, 보, 화 삼신
쉬어가는 곳
피곤한 길손들
시름 있거들랑 놓고 가렴
시비 있거든 주고 가고...
남녀쌍신수행
xx스님이 쌍신수행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자세히 설명해 주며, 사이비
구루를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이곳에는 정말 여러 모습의 수행자와 구루(스승)들이 있습니다. 잘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던, 추억(?)이 하나 있어요.
이곳에 와서 얼마 안되어 낯설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할 즈음 어떤 티베트
라마와 외국 비구니를 알게 되었어요. 티베트 라마와 외국 비구니 그리고 저와
저의 일행이었던 비구니 스님 세 분과 어울려서들, 티베트 밀교에 대해 듣고 묻고
토론하며 밤새는 줄 모르고 한동안을 잘 지냈어요.
그런데 어느날 남녀가 포옹하고 있는 탕카(탱화)와 불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 티베트 라마는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이 수행하는 목적도, 인간의 내면 깊숙이 묻혀 있는 절대적 세계의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며, 내면의 무한한 능력을 끌어올리는데는 남녀
교합의 성에너지가 제일 좋은 방편중의 하나이고, 탄트라 밀교 수행의 정수라는
이야기를 해주는데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 수행을 위해서는 상대할 여자 수행자가 필요하며 이런 상대 여인을
'칸돌마'라 부른다고 했어요. 티베트 라마들이 결혼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전생의 인연 따라 눈이 맞아 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최고의 수행과 명을
잇기 위해 하는 경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때 흥미진진하여 침까지 삼켜가며 이야기에 빠져들었지요.
티베트 밀교 샤카파의 법왕이나 달라이라마의 오른팔격인 xx림포체의 경우가
좋은 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오십이 다 되어 최고의 수행 관문을 뚫고자 여자(칸돌마)를 취한
것이랍니다. 이런 수행을 쌍신수행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자기는 쌍신(두
몸뚱이)수행을 성취한 사람이니 원한다면, 그 수행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더군요.
옆에서 그와 함께 온 비구니도 우리를 부추겼지요.
자신도 대만에서 십수 년 공부했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는데 이 라마를 만나
새로운 쌍신수행을 배우게 되었고, 지금 에너지가 충만해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 정서로는 어려운 일이기에 거절했지만 우리들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뭔가를 얻어 보려고, 소위 도통해 보려고 온 것인데
이까짓 몸뚱이 한 번 던져봐?'
하는 유혹의 마음이 우리들 사이에는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갈등의 와중에, 그
라마와 외국 비구니, 그리고 우리들이 함께 네팔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 툽텐라마에게 인사차 들러, 쌍신수행을 한 라마를 따라가도 되겠는가
여쭈었더니, 쌍신수행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공부를 성취한 뒤
칠정육욕의 경계를 넘어, 몸뚱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나 가능하고, 또
스승의 허락이나 지도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공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네팔 여행도 취소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참 생각한 뒤 가도 괜찮을
것이라며, 장애 없도록 당신 본인이 기도를 올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 라마와 저희들은 전혀 에너지가 틀리나, 별다른 일이 없을 것이라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팔 여행이 시작되었는데, 라마는 매일 한 사람씩 시봉을 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라마는 항상 방에서 발가벗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라마가 크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절대 하기 싫다는 일은
자그마한 일이라도 강요를 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그에게 반쯤 혼을 빼앗겼던 갓 같아요. 하루는 밤에 잠이
안 와 뭉그적거리며 망상을 해보고 있었습니다. 쌍신수행을 해볼까 말까? 해봐?
말어?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옆에 자던 xx비구니가 안 보였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그 스님이 쌍신수행에 대해 제일 관심이 있었고, 저보고 당신이 먼저 용기를
내보라고 농담까지 했었으니까요.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다른 두 분 스님을 깨워서 그 비구니 스님이 그쪽
방으로 갔다고 이야기하니 다들...! 숨을 쉴 수 없는 긴장감에 그대로 앉아 있지
못하고 막 일어나려 하는데,
"에이 변소 한번 더럽네!"
하며 xx비구니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팔짝팔짝 뛰고 데굴데굴 구르며
얼마나 웃어 젖혔는지 모릅니다.
아무 탈 없이 네팔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서 툽텐라마를 찾아 뵙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때부터 어려운 일이 있으면 꼭 툽텐라마에게 상의를 하게 되었고, 그분을
더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은 이곳의 구루들을 잘 살피시라는 제 나름의
염려입니다.
참으로 정성어린 충고였으며, 쌍신수행에 대한 알기 쉽고 실감나는 설명이었다.
편지
효선아!
여기는 따시종(행운의 땅)이라 불리우는 작은 산골이란다.
달라이라마가 1959년 인도로 망명을 올 때 따라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인도 산악 지역에는 이런 마을과 도시들이 여러 군데 있단다.
제일 큰 곳으로는 왕궁과 메인콤파(절)가 있고 만여 명의 티베트인과 거기에
버금가는 인도인이 어울려 사는 망명 티베트 정부의 수도 달람살라가 있단다.
이 달람살라는 우리나라 이북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중국을 거쳐서, 이남으로
넘어오듯, 중국의 티베트 자치주에서 히말라야 설산을 넘고, 네팔 국경을 통과하여
인도 땅으로 들어와 이곳까지 오는 사람들로, 줄을 잇고 있는 곳이기도 하구니.
달라이라마 설법을 듣고자 각국에서 모여드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기도
하단다.
그리고 여기에서 열서너 시간 거리에 히말라야 등정의 전진기지로 잘 알려진
'마날리'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 근처에도 커다란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 한두어 시간 거리인 '비루'와 또다른 곳들에도 티베트인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구나.
더 멀리 남쪽 후불리라는 곳에는 티베트의 삼대 콤파인 '드레퐁' '간덴' '세라'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사찰이 있고, 라마(스님)들만도 칠팔천 명이 넘게
생활하고 있단다.
지금 내가 머무는 따시종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이지만 규모도 작고 아주 조용한
산골로, 이백여 명의 라마와 천여 명의 티베트인이 군락을 이루고 산단다.
참으로 특이란 것은 이곳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라마와 사찰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집집마다 작은 불단을 차려 놓고 달라이라마 사진을 모셔 놓으며, 아침
저녁 예불을 올리고 있구나. 이런 믿음이 있기에 나라 잃은 서러움과 고통을
견디며, 오히려 티베트 본국보다 문화와 전통을 올곧게 지키며 생활하고 있구나.
이들 표정에서도 망명객의 슬픔이나 외로움보다는 비굴치 않는 부드러움과
미소를 잃지 않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어서 흐뭇했었단다.
여기는 주거환경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곳이란다. 히말라야
아랫줄기라고는 하지만, 한라산보다 높은 고산 지역으로 산비탈에 밭을 일구는 일
외에는, 먹을 것을 가꿀 수 없는 메마른 곳이기도 하구나.
물이 귀해 우기 철이나 되야 목욕들을 마음껏 하며 화장실이 없어 온 마을이
그대로 화장실이 되는 설명하기 힘든 곳이란다.
불공(뿌자)을 두세 시간 하고 나서, 백여 명의 라마들이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아무 곳에서나 볼일을 보는 모습은, 한국 사람으로선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기가
힘든 광경이란다.
이런 악조건과 싸우면서도 다른 곳에 나가서 살지 않음은 모두가 신앙심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라마중에는 림포체라 불리우는 환생자들이 있는데, 자비와 덕을 갖춘 훌륭한
라마가 계속 환생하는 분들이란다.
여기에도 훌륭한 림포체들이 계셔서, 그들을 중심으로 그들을 믿고, 그들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구나.
이 마을 촌장이며 실질적인 행정 책임자인 '도정림포체'가 게신데 여덟 번을
환생한 고승이며, 열일곱살 되는 '캄툴림포체'는 이곳의 정신적 지주이며 제일
어른이기도 한데 아홉 번을 환생한 자비 성취자임을 얘기한 것 같구나.
이 캄툴림포체는 비록 어리지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의젓함과 가볍게 대할
수 없는 큰 에너지를 지니고 있단다. 티베트인들은 이들을 살아 있는 부처로
의지하며 믿기에 시련과 고통들을 감내할 수 있는 것 같구나.
특히, 이곳에 '독덴'이라 불리우는 성취자가 계셔서 다른 곳의 라마들과
수행자들이 우러러보며, 세계적인 관심의 장소가 되기도 한단다.
보건소 문간방
효선아!
스님 스스로 자청해서 하는 고생이다만, 거처 때문에 애를 먹고 있구나. 우선
보건진료소 문간방을 얻어 쓰고 있으나, 목욕과 화장실은 둘째 쳐놓고 고산병과
추위 그리고 음식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구나.
그럴 때마다 너희들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곤 한단다. 걱정들 말거라.
이 나이에 신심을 낼 수 있고, 꿈에 그리던 스승을 만나서 수행할 수 있음이
행운중에 행운이 아니겠느냐?
어려움 참아가며 정진의 마음 놓지 않고 살아온 대가라고 생각해 보는구나.
왜 꼭 이런 곳에서 수행을 해야 하느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법과 수행과
사람됨이 살아 있으며, 특히 스승이 살아 계신 곳은 세상에 흔치 않기 때문이란다.
이곳 생활을 하면서 인간의 진화와 성숙은 결코 물질이 아니고 정신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구나.
나는 환생자?
효선아!
참으로 회유한 것이 돌고 도는 윤회의 세계와 인연의 세계임을 생각해 본단다.
숙명통을 통한 성취자들에게 전생의 내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이 갈수록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 아니 삼생--전생, 금생, 내생--이 너무도 선연하게
느껴지는 세상에 들어와 있음을 보고 있단다.
전생에 내가 티베트 승려로 훌륭한 라마였다는구나. 다른 한 생은 인도의
왕이었고 또 다른 한 생도 수행자였다는구나.
모두가 환상이요 꿈이라고 고개를 흔들어 보지만, 윤회의 세계에 전생하는 내
모습을 부정할 길은 없구나.
어느 전생의 고향땅인 이 곳을 찾아오기 위해 길고 긴 순례의 여정과 인고의
아픔을 겪었다 생각나,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구나.
효선아! 제자들아!
너희들과의 인연은 스님이 말하지 않더라도 미루어 짐작할 줄 믿는단다. 갚아야
하고 주어야 하고 또 받아야 할 인연이었기에 껍질 벗는 아픔을 서로 지켜주고
있는 것이란다.
기쁨은 기쁨대로 받고 아픔은 아픔대로 받아 삭이자꾸나.
우리들이 살면서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자잘못을 누가 판단할 수 있겠니?
훗날 부처님께서 잘 계산하시리라 생각한단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아주
쉬우면서 효험있는 관상법(명상법) 한 가지 가르쳐 줄터이니 시행들 하거라.
먼저 합장을 하고 불전에 서려무나, 그리고 오른쪽에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을
세우고 (마음속으로), 왼쪽에는 어머니와 어머니 형제들을, 뒤에는 친구들과 도반
그리고 승가 사람들을 세우려무나.
가장 가까운 앞에는 제일 미운 사람, 원수 맺은 이들을 세우고 영가들도 함께
하려무나. 그런 다음 모두 절을 하거라.
나와 인연의 끈이 질긴 사람들, 그들의 업장이 녹지 않고는 내 업장 녹이기가
쉽지 않단다.
이것이 밀교 탄트라의 기초이면서 궁극의 행법이구나.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으니 십만 번을 행하면 성취의 기틀이 된단다.
스님이 돌아갈 때까지 십만 번의 오체투지 절을 행하도록 하거라. 알고 보면
가까운 사람들이 전생의 빚진이고 원수였기에, 언제나 그들과 함께 참회하고,
그들과 함께 업장소멸의 절을 해야 한단다.
티베트인들과 이곳 라마들에겐 이런 생각과 믿음이 몸과 마음에 배어 있고
생활에 녹아 있어서 그런지, 아무리 미운 사람도 그리고 미천한 사람도 가볍게
대하지 않는 아름다운 품성을 지니고 있구나.
좀 다른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중국의 티베트 점령이 티베트 인들에겐
불행이지만, 더 크게 보면 달라이라마와 티베트 불교를 세상에 널리 알려, 더 많은
중생을 성숙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는구나.
물들지 않고 훼손되지 않은 수행법이 잘 보존되었다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됨도
돌고 도는 인과의 모습이 아니겠니?
미국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달라이라마의 제자가 되어, 중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티베트 현황을 영화로 만들고, 서구인들이 밀교에 귀의하는 붐이 일고
있음도 시절 인연의 도래라고 생각해 본단다.
스님도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정진할 터이니, 너희들도 어떤 상황에서든 부처님
제자임을 잊지 말거라.
토지 신들의 장난
따시종 보건소의 건물은 콤파(절)바로 밑에 있다.
왼쪽 아래에는 이 촌락을 관리하는 행정사무소가 있고, 오른쪽 옆에는 불교
조각과 탕카(탱화), 교삼(탕카틀), 인쇄 그림 등 콤파에 필요한 불구들을 제작하는
건물이 있다.
아래로는 자그마한 초등학교와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다리 하나 건너서
인도인들의 거주지가 있다. 대부분 밀농사를 겸하여 양과 염소, 버팔로 등을
키우는 순박한 사람들이다.
티베트인과 인도인이 분리되어 있으나, 모두 콤파의 영향력 속에 있었고, 관습과
풍속, 사고와 종교적 차이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마찰들이 있지만 그런대로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보건소에는 진찰실, 화장실, 창고 외에 북통만한 환자방이 4개 있는데, 입원
환자는 없고 가끔 게스트 하우스 역할을 한다. 이 방들중 두 개를 얻어
지광스님과 내가 쓰고 있는 것이다.
전기와 물 사정이 안 좋아서, 물이 나오지 않는 날은 화장실 바로 앞인 내방은
지린내, 구린내로 향을 태울 필요가 없게 된다.
냄새를 없애보려고 향을 무더기로 피워봤지만, 오히려 기상천외한 향수 냄새가
생겨나 머리가 아플 뿐이었다.
다른 방도가 없어, 부처님이 주신 가장 자연스러운 향내라고 관상하며 공부하는
길밖에 없었다. 냄새는 그렇다 치고 참으로 묘한 일을 겪게 되었다.
한밤중이었다.
새들도 풀벌레도 잠든 바이라 고요할 대로 고요한데, 문득 인기척이 나서
시경을 세우니 뒤 창문을 열려는 소리였다. 사람이 있다는 기척을 냈더니
조용해진다. 조금 있다 또 창문을 흔든다.
이번에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창문을 두드려 댄다.
이 방은 코너였기에 앞문과 옆벽만 막혀 있었지 다 나무창틀로 되어 있었다.
앞문을 열고 나가려 하였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정신이 번쩍 나서, 누가 들어오면 대항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흔들어
댈 뿐 창문을 깨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보건소 직원은 퇴근하여 없었고, 외국 스님 한 분이 주무시고 계셨던지 한참이
지나자 나와서 앞문을 따주는 바람에 해방이 되었다.
세 사람이 전지를 들고 여기저기 살폈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작은 돌들이 우박 쏟아지듯 쏟아져 내린다. 한두 사람이 하는
짓이 아닌 것 같았다. 또 뛰어나가 봤으나 어떤 흔적도 없었다.
칠흑같이 어두웠기에 손전등 몇 개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렇게
찾고, 숨고, 숨바꼭질을 하다가 날이 새고 말았다.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도깨비
장난이었다.
지광스님은 델리에 볼일로 나가고, 또다시 이틀밤을 보이지 않는 도깨비(?)와
싸우며 말도 걸어 보고, 달래도 보고, 욕도 해보며 실랑이를 하다 보니 나중엔
떠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도깨비 장난에 쫓겨갈 수는 없는 일!
이것도 공부려니 생각하고 버텨 볼 만큼 버텨 보리라고 다짐했는데, 삼일이
지나자 도깨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보건소 간호사, 보파림포체 등과 이야기를 해봤지만, 이곳에는 그런 일을 할
만한 배짱 가진 사람도 없고, 또 그런 예도 없었으며, 그럴 이유도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이곳 호법신들이, 나의 구도심을 시험한 것이라며 웃어 버리고 말았지만
잊지 못할 일중의 하나였다.
알 수 없는 결정
공부하러 온 몸이기에 여러 가지 불편함을 수행으로 여기고 살지만, 콤파 안과
콤파 밖의 분위기와 에너지는 자못 다르다.
이곳에 수행하러 온 외국인이 십여 명이 넘지만 모두 콤파 밖에서 생활하고
있다.
공부하는 한국 비구니 스님도 두 분 계시는데, 이 분들 역시 거처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콤파 뒤쪽 외국인의 집에 우선 머물고는 있지만, 주인이 오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기에, 주인이 돌아온다는 소식이라도 올까봐 좌불안석 하는 모습이, 내
경우보다 더 안된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곳에도 비구니들이 머무는 처소가 있고, 방들이 비어 있는데도 배려가 되지
않은 것은, 3년 전 정해진 외국인 콤파내 생활금지 규칙 때문이란다.
전에는 외국인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집 지을 땅도 제공하고 콤파 안에 처소도
마련해 주었는데, 그러다 보니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스님들은 아직 편안한 문명의 이기들을 잘 모른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어린 라마들에게 ET와 마이클 잭슨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먹는 것이냐고
되물어서 그만 웃고 말았던 일이 있다.
컴퓨터도 모르고 게임기가 어찌 생겼는지조차 모른다.
이들은 수행 생활이 생활의 전부일 뿐, 달람살라가 서양 문물에 오염되어 가는
것과는 달리 아직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산다.
깨달은 성취자와 무문관의 요기들은 물론 주지, 총무, 재무 등 모든 라마들이
한국의 큰 아파트 화장실만한 방에서 살며, 그것도 흙이 묻어 나는 회벽집이기에
비가 오면 벽에 물이 배어난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은 어느 호화궁전에 사는 사람보다도 아름답고 순수하다.
방이 몇 평 더 크고, 화장실 시설이 좀더 낫다고 해서 행복해지고, 사람의
영성이 더 빛나는 것이 아님을 이곳 어른들은 잘 알고 계시기에, 혹여 젊은
스님들이 잘못된 서양 사고에 오염될까봐, 외국인이 콤파내에서 생활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어쨌든 부처님과 스승님은 콤파 안에 계시고 우리는 콤파 밖에 살다보니,
티베트 사찰 분위기에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두 한국 스님들도 생각다 못해 땅을 사서 토굴을 짓겠다며, 터를 구입하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땅을 사서 토굴을 짓겠다며, 터를 구입하는 일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땅을 타인에게 파는 것을 수치로 아는 인도인들의 관습과, 외국인에게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몇 곱절을 더 주고도 마땅한 땅
구입하기가 힘이 든 형편이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두 비구니 스님이 이곳에 들어올 때 10년 수행을 각오로,
냉장고는 물론 전열기구와 필수품들을 장만해서 왔는데, 이사온 다음날 불이 나서
몽땅 태우고 속가 부모님께 조르고 졸라 시집갈 때 밑천 대신 받아온 십년
생활비마저 침대 시트와 함께 재로 만들었으니, 이들 입장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너무도 가상한 일은 모든 것을 부처님 뜻으로 돌리고, 수행의 뜻을
굽히지 않는 여법한 모습이었다.
남의 집을 태웠으니 다시 지어줘야 하는 어려움을 감내하면서도, 결코 퇴굴심
내지 않는 이들의 모습 속에, 수행자이기 전 한국 여인의 당참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흐뭇했다.
나 역시 거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스승님들이 사시는 뒷산쪽 흙집 한 채를
빌리려고, 보파라고 하는 림포체에게 부탁을 해놓고 있는 상태이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생기고 말았다. 보파림포체와 두 스님이 활짝 웃는
낯으로 찾아와서,
"스님 일이 아주 잘 됐습니다. 어른 라마들이 회의한 결과인데 스님을 콤파내에
사시도록 배려했답니다. 그것도 콤파 제일 위에 있는 림포체가 사시던 방을
쓰시도록요. 어느 라마 한 분이 운영회의에서 말씀하시길, 인연 깊은 라마를
저렇게 대우해서 되겠느냐며 콤파내에 모시도록 제의했고 모두들 찬성했답니다."
나는 지금도 이 분들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곳에 전혀 도움되는 일을 한 적도 없고, 잘 아는 처지도 아닌데 어째서 특별
대우를 하는 것일까?
생각 같아선 회의에 내 문제를 거론한 라마를 찾아서 이유도 물어보고 감사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다 부처님 뜻이라 여기고 더욱 조심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것을 다짐할 뿐이었다.
삼보(불, 법, 승)와 함께 생활
무슨 복연일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언제 비워줘야 할지 모르는 보건소 문간방에서, 거처 문제
신경 안 쓰고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니 아이들 말로 신이 난다.
짐이라고 해야 보따리 둘, 착첼판(티베트식 절 하는 판)과 숟가락 몇 개인데
무슨 짐이 되겠느냐 생각했지만, 지광스님 것과 함께 싸놓고 보니 제법 되었다.
짐나르는 인도인 꾸리라도 부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절에서 작은 라마,
큰 라마 우를 몰려와 하나씩 들고 가니, 이사는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여 음료수라도 마시도록 돈을 몇 푼 내놓자 깜짝들 놀라며, 서툰
영어로,
"마이 플레저(MY PLEASURE)."
를 외치고 도망들 간다.
이들의 외모는 물론 정서와 인정마저도 우리와 닮아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몽고인들을 대하면서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친근감을 이들에게도 느끼고 있다.
내가 쓸 방들이 지난번 보았을 때는 좀 으스스한 분위기였는데 말끔히 단장해
놓으니, 공부하기에 안성맞춤이고, 전혀 불편함이 없는 콤파내에서 제일 좋은 방이
되었다.
이곳에는 참으로 드물게도 수세식 변소와 작은 부엌 공간이 있고 네 개의
방들이 나란히 붙어 있어서, 아래에 사는 스님들의 여건과는 전혀 달랐다.
림포체가 쓰시던 장소라 그럴 거라고 생각하며 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먼지와
비바람에 얼룩졌던 방벽들도 페인트 칠이 새로 되어 있고, 깨쳐 나간 유리창들도
모두 갈아 끼워져 있었다.
내 처지에 그저 몸뚱이 하나 뉘일 곳이면 족했는데, 너무 호사하는 것 같아서
송구하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뭐! 방 하나 얻은 것 가지고 호들갑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곳의 규칙이나
상황은 물론 내 구루(스승)가 머무시는 방에 비한다면 궁전 같고 보니, 송구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찌 됐건 처소가 마련되니 부처님이 부럽지 않았다.
역마살과 방랑기가 있어서 그런지, 큰 집이나 재산을 소유함이 부담되곤
하였는데, 조그마한 방 하나 얻음이 이런 안정된 기분을 줄 수 있는 줄 몰랐다.
땅과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몸부림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도 같았고, 내 절을
빼앗기 위해 별 수단을 다 부리던 사람들의 마음도 알 것 같았다.
누워서 한참 망상을 피우다 보니 방 뒤쪽으로 커튼 쳐진 곳에 눈길이 가, 걷어
보았더니 이럴 수가... 한참을 멍하니 그대로서 있었다.
신비한 글자와 그림들이 빽빽이 새겨진 티베트 장경들로 가득차 있었다. 해인사
판본을 닮은 것도 있고, 크리켓볼 치는 배트 같은 모양도 있으며, 방망이를
눌러놓은 것 같아 장경판도 있었으니, 묘한 기분과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를
느끼며, 한 장 한 장 빼보는 손끝이 떨려왔다.
위에는 삼십칠불 부처님 모신 누각 법당, 밑에는 대법당의 삼존 불과 스님들,
옆에는 티베트 대장경의 판본들... 이 무슨 복연이며, 무슨 의미란 말인가?
참기 힘든 오욕 참은 공덕인가? 수행의 원 놓지 않은 인연인가?
이곳에서 불법승 삼보의 보물들을 모시고 수행할 수 있게 되다니... 벅찬 가슴에
잠이 오지 않았다.
누각 법당으로 올라가, 내 마음의 상처들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럽게 닦아 내며
밤을 새웠다.
이마를 부딪치며 비벼대는 인사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도 이제 정말 늙었나? 5층 높이의 층층계를 올라와 허리잡고 앉으니, 세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콤파(절)의 제일 높은 곳이기에 이 곳에 올라오면 주위가 가히
도원경처럼 펼쳐진다.
멀리 둘러쳐진 설산들은 겨울의 백설향을 뿜으며 서 있고, 중간쯤 앉아 있는
산들은 가을의 향내로 그득하다.
좀더 가까이는 여름의 풍치가 무르익었는가 하면, 콤파 바로 밑에는 아지랑이
속으로 이름 모를 새들, 짐승들, 그리고 사람들이 어우러져 그림 속의 무릉도원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사계절이 함께 하는 묘한 곳이기도 하다.
문득 인생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닦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낯설고 물설고 바람의 냄새마저 다른 이국땅을
이렇게 아름답게 볼 수 없으리라. 언제 나타났는지 구름 한 저이 허리를 집고
산마루에 기대섰다.
꼭 나를 흉내내는 것 같아 피식 웃고 만다. 어디선가 할머니의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님 힘들지요! 우리 늙은이들도(나를 키워 주신 증조모, 조모, 모) 청상과부로
평생을 외롭고 힘들게 살았어요. 하늘의 뜻인 줄로 알고 그냥 그렇게 살았지요.
스님은 수행하는 분이시니 잘 참아 내시리라고 믿어요."
갑자기 뒷산에 계신 두 분 스승이 생각난다. 한 분(안잠)은 86세, 또 한
분(암틴)은 76세, 티베트 밀교 까규파의 마지막 남은 성취자들! 그 분들은 이
어렵고 힘든 세월을 어찌 버텨 오셨을까?
나라 잃고, 도반 잃고, 부모 형제마저 뒤에 두고 수만리 설산 넘어 오셨으니,
자유가 그렇게도 절대적인 것이고, 달라이라마가 그렇게 소중한 분이신가?
무엇에 취한 듯 뒷산으로 향한다.
아! 내 마음을 이 분들이 알고 계셨는가?
토굴 앞 양지 곁에 나란히 앉으셔서 두 손 벌리시는 구루들, 허연 수염
흔드시며 빙긋 미소짓는 이 분들 모습을 일러 신선이라 하겠지. 꼭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두 스승님 옆에는 의학으로 성취한 의사 독덴과 무문관을 관장하는 라마 한
분이 서 계시다가 합장을 하신다. 이렇게 함께 하신 모습은 처음이기에 느끼는
가슴이 평소와는 달랐다.
안잠은 언제나 하듯이 손을 꼭 잡으시고 이마를 비비며 장난을 치신다. 나는
빡빡 깎은 민둥머리고 안잠은 평생 깎지 않은 긴 머리를 틀어올리고 계시니, 서로
이마를 맞대고 비비면 나만 아프게 된다. (이곳에는 친한 사람끼리는 이마를
부딪치고 머리를 비비며 인사하는 것이 의례다.)
안잠은 인사하러 올라갈 때마다 내 머리를 괴롭히시곤 하는데, 피부에 따꼼따꼼
박히는 느낌들이 이 분 마음 같아 때론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지만...
오늘은 무문관 요기와 라마들을 위해 기도를 한단다. 수행에 일어나는 자애들을
제거해 주기 위한 것이기에, 제일 큰 어른들이 다 모이신 것이다.
기도 올리는 안잠의 방이 다섯 사람 들어가기에 너무 작은 움막이라, 라마와
나는 문간에 걸터앉아 합장을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묘한 힘을 지닌 만트라
주문은 움막을 청정한 향내로 가득 채우고 무문관 주위를 자욱이 감싸 안는다.
나 역시 무념삼매에 빠졌다가 눈을 떠보니, 한 시간이 흘렀다. 구루들은 아직도
무아지경 속에 계신다.
아! 비록 순간이지만 법열의 이 기쁨을 나와 인연 닿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다시 합장하고 기원해 본다.
세상 모든 사람들 마음이 우주처럼 넓혀지게 하소서, 그 마음속에 자비와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게 하소서.
무심히 던진 돌
출렁이던 마음 강물이 가라앉았는가 보다. 움직이는 생각들이 보이고 미세한
사고의 흐름마저 감지된다.
원한, 분노, 수치, 가식, 자비, 애증, 무기력, 무관심, 불신, 배반, 초연 참으로
인간은 무한한 다양성과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수만 년 수억 년 아니 영겁의 세월 속에 익혀 오고 배워 온 신비로운 신통들이,
모양 없는 의식 속에 갈무리되었다가, 인연 따라 시절 따라 나타남이 천변만화
그대로니...
다리도 풀 겸 사람 냄새도 맡을 겸 이 마을 유일의 휴식 공간인 구멍가게로
짜이(차)를 마시러 간다. 스치는 티베트인이나 인도인이 하나같이
'따시델헤(티베트)' '나마스데(인도)'를 연발하며 손을 흔든다.
여기 사람들은 격식 갖춘 인사는 할 줄 모른다. 스님들도 그냥 씩 웃는 것이
전부다. 합장을 한다거나 머리숙여 예를 표할 줄 모른다.
중앙 티베트인은 예절을 중요시 하나, 서부 티베트인들은 격식 보다 편안함을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좋아한다. 이곳 스님이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서부인이기
때문에, 격식에 익숙지 않았다. 합장하고 인사법을 가르치는데는 지광스님의
노력과 시간이 꽤 투자된 걸로 알고 있다.
가게 주인도 부드럽고 순진해서 가르친 대로 합장도 하고 친구처럼 편안히
지내는 사이다. 마을 사람들도 가게에서 만나면 서양트럼프도 권하며, 손짓발짓
농담도 곧잘 하곤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언제부턴가 가게 주인은 물론 마주치는 사람들이나 아이들까지 슬금슬금 피하며
인사도 건성인 것 같았다.
내가 이들에게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기억나는
일이 없다. 말도 잘 통하지 않으니, 누굴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오늘도 가게에 내려가니, 득실대던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주인만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없느냐고 몸짓을 해 보았지만, 땡감 씹은 표정을 지을
뿐 대꾸가 없다.
마침 지나가는 따시(티베트어 선생)를 불러 궁금하던 일들을 물어보았으나, 역시
어색한 웃음뿐이었다.
심각해진 내 얼굴이 무서웠던지 안타까웠던지, 더듬더듬 이야기를 하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나를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외국인 정도로 생각했는데, 절집 어른들이
림포체(큰 스님) 대접을 하니,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고, 어린 라마들 역시 집안
어른들이 큰 라마 대접을 하는데 같이 놀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내가 오는 것이 보이거나 올 시간이 되면, 다들 도망간다는 것이다.
물론 가게 주인은 장사가 안되니 나의 출현이 반가울 리 없고, 땡감 씹은
표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다. 무심히 던진 돌에 개구리 머리가 깨져 고통을
받게 된다더니, 무심히 내 일상이 이들에게 이런 곤란을 줄 줄은 미처 몰랐다.
주인의 등을 몇 번 두드려 주고 올라오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흐르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업연의 줄을!
한 여인이 5형제를 다 남편으로
고산병 증세가 있어서 보건 진료소를 찾아갔더니, 마침 간호사가 왕진 나가고
없었다. 이곳에는 정식 의사가 일년에 한두 번 들르기에, 진료나 치료 처방과 왕진
등 모든 일을 간호가 혼자서 처리한다.
특별한 병원이 없으니, 인근에 사는 인도인들도 이곳을 이용하기 때문에 언제나
만원인 셈이다.
오늘도 기다리는 사람이, 나말고도 여러 명의 보살들이 더 있었는데,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여인들의 수다는 알아 줄만 하였다.
저쪽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낯선 남자와 함께 오는 간호사가 보이기에, 함께
오는 두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한 여인은 남편과 아들이라고 하고 다른
여인은 삼촌과 아들이란다.
무슨 말인지 빨리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물으니, 자기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낄낄거릴 뿐 대답을 않는다.
웃는 표정들도 묘하고, 한 남자를 놓고 남편과 삼촌이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됐지만, 더 물을 수도 없어서 약만 타가지고 돌아왔다. 그 뒤론 그 일을 잊고
있었다.
이곳에는 스님들과 주민의 발노릇을 하는 영업용 지프차 두 대가 있다.
한 대는 티베트인 것이고 또 한 대는 인도인 것인데 미터기도, 정해진 가격도
없이, 말 그대로 엿장수(운전수) 맘대로다.
같은 업종끼리 친한 사람이 없다고, 둘 사이가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란다.
어찌된 소문인지 인도인 운전사가 술먹고 주정하기를, 이곳 티베트인들도
뜨거운 맛을 한 번 보여줘야 한다고 선동을 했단다.
여기 말고 다른 곳에는 현지 인도인들과 티베트인들간에 마찰이 심하여
적지않은 불상사가 일어나곤 한다.
2년 전에는 달람살라 주변의 인도 청년들이, 몸둥이와 파이프로 무장하고
티베트인 가게와 집들을 때려 부수고, 달라이라마 왕궁까지 쳐들어 간 것을 인도
군인들이 출동하여 저지하는 커다란 사고가 있었단다.
인도 정부의 공식 사과로 급한 불은 껐지만, 티베트인들의 생활이 인도인보다
훨씬 낫고 인도인을 부리고 사는 입장이기에, 다툼의 불씨는 항상 안고 있다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곳에서만은 한번도 그런 사고가 없었고 잘들
지내왔는데, 두 운전사의 갈등 때문에 안 좋은 소문들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티베트인들은 급하지 않으면 인도인의 차를 이용하지
않으며, 인도 운전사는 운전사대로 티베트인들을 더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도저도 모르다 보니, 놀고 있는 인도인 차를 이용하게 되고 인도
운전사는 자신의 차를 사용하는 우리들에게 친하다고 티베트인 흉을 보는 것이다.
오늘도 인도인의 차를 타게 되었는데 티베트 운전사와 보건 진료소의 간호사
욕을 해댄다. 내용인 즉 티베트 운전사는 형제 둘이 한 여자를 데리고 사는 안
좋은 사람이며, 보건진료소 여인은 형과 아우를 양쪽에 끼고 사는 무서운
여자라는 것이다.
알쏭달쏭하기도 하고 좀 이상한 이야기라서 나중에 티베트어 선생에게
물어보았더니, 좀 어색한 표정이었지만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티베트에는 여자가 귀하고 유목 생활에 가족들의 결속과 재산을 보호하는
면에서, 두 형제나 세 형제 많으면 네다섯 형제들이 한 여자를 공유하고 산다는
것이다.
아니 한 여자가 네다섯 명의 남편을 데리고 산다는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이렇게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이든 사람들이나 티베트 본국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처음 우리들의 통역을 맡았던 28세의 젊은 여인도 얼마 전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어 친정에 와 있는데, 형제들이 찾아와 같이 살기를 종용하고 있다는 말도
해주었다. 몇 가지 얘기들도 덧붙여 주었는데, 여러 남편들과 함께 사는 여인은,
절대 어느 남편이 좋고 나쁘다는 말이나 감정들을 나타내서는 안되며, 함께 사는
형제들끼리 우애가 좋지 않다거나 형제중 누구라도 집을 나가면, 여자의 부덕으로
치부되어 지탄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자식들에게 큰남편을 아버지로, 다른 남편은 모두 삼촌으로 부르게 하고,
큰남편과 나이가 비슷한 여인은 넷째, 다섯째 남편이 자신의 자식과 나이가 같은
경우가 있는데, 이런 때는 좀 문제가 된다는 설명을 차근차근 해주었다.
이것도 이들 나라의 관습이자 문화인, 좋다 나쁘다는 말을 붙일 수가 없었지만,
보건진료소 진료를 기다리던 인도 여인들이 한 남자를 놓고 아버지다 삼촌이다
우기며, 낄낄거리던 웃음의 뜻을 확실히 알게는 되었다.
림포체와 일반 라마
산이나 들, 태양과 별, 자연계의 경이로운 모습들을 인간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융단의 솜털처럼 부드럽게 일렁이는 파아란 보리 잎들의
숨결, 멀리는 오로라처럼 설향을 뿜어내는 설산의 황혼...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옆에 있던 보파림포체의 인기척에
제 정신이 돌아왔다.
"라마라('라'는 존칭 의미) 어떻게 따시종까지 오게 되셨습니까?"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생 고향에 와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외엔...
"보파라마! 라마는 림포체(환생자)라며, 전생 기억이 남아 있어?"
"모르겠어요. 어렸을 땐 언뜻언뜻 어딘지 모르지만 가보고픈 마을과 막연히
그리운 얼굴들이 스쳤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아요. 꿈길에서만 가끔 낯선 곳을
가보곤 하죠."
"보파라마라 전생이라는 게 있는 걸까?"
"라마라! 라마라께선 그걸 믿지 않으세요?"
"어! 아니..."
나의 믿음은 관념이고, 이들 믿음은 생명 그 자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내가 얼마나 더 수행을 해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믿음을 실질적인
생명의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보파라마! 보파도 림포체잖아? 다른 림포체들처럼 위의도 갖추고 집도 짓고
품위있게 살 수도 있잖아?"
"라마마! 저는 다른 림포체처럼 어릴 때(두세 살 때) 발견된 것이 아니고 스물
여섯에 환생자로 확인됐어요. 이미 성격이나 습관과 행동거지들이 제식으로
굳어진 뒤였어요. 저는 그냥 자유스러운 게 좋아요. 저도 나이가 들고 능력이
생기면 라마라처럼 자유롭게 한 세상 떠돌다 가고 싶어요."
티베트 밀교의 특징중 하나가 림포체라고 부르는 환생자들과 일반 스님들과의
철저한 차별이다. 먹고 입고 자는 환경이나 교육도 분리된다.
옛날 왕자와 평민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림포체로 발견되는 즉시 확인
절차를 거쳐 특수 환경에 특수 교육을 받아 왕재로(요샛말로 리더감으로)
키워진다.
어려서부터 영재 교육을 받아서인지 날 때부터 왕재로 태어나서 그런지, 보통
사람들과는 많이 틀린 모습을 지니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 보파림포체는 현재 33세, 구루(스승)와 나 사이의 통역을 맡고 있다. 한번
들으면 잊지 않는 특수한 기억력과 천진난만하고 인정 많은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네팔계 티베트인이다.
내 구루의 시자로 있던 도중에 림포체(환생자)로 확인됐는데, 본인의 의사에
의해 림포체 대우(?)도 마다하고 스승의 시자로 그냥 살고 있다. 그러나 공식
행사에는 스승 윗자리인 상석(림포체들 자리)에 앉는다.
나의 스승은 모두가 존경하는 독덴(성취자)이지만, 공식석상에는 언제나
림포체(왕족) 아래인 일반 라마(평민)의 자리다. 어떤 위치 어떤 상황속에서도 더
큰 자유를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욕구인 모양이다. 보파림포체의 희망은 더 큰
세상을 마음껏 떠도는 것이다.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요염하기까지 하던 설산들이 검은 구름에
덮인다. 조석변덕인 이곳의 날씨처럼, 인생사 흐름도 영겁의 윤회속에 이와 같이
변해가리라 생각해보며, 우리는 어린아인 양 손잡고 빗속을 뛰었다.
달람살라의 살인사건
효선아, 제자들아!
모두들 건강하느냐? 스님은 정진 잘하고 있다만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있구나.
그곳에도 전해졌는지 모르지만, 다람살라에 큰 살인 사건이 일어나, 이곳
저곳에서 수군거리며 모두가 어두운 분위기란다.
달라이라마가 아끼는 세 분의 하이라마(큰 스님)를 괴한들이 칼로 난자해서
죽였단다. 그것도 따로따로 계신 분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인도 신문은 물론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고 있으며 매스컴에서는 중국측을
의심하고 있지만, 한편에선 달라이라마 반대 세력인 간덴파의 짓이라고도
하는구나.
(간덴파는 간덴콤파(절)를 중심으로 달라이라마가 모시는 호법신과는 다른
호법신을 모시는 밀교 파벌이다. 같은 밀교이면서도 달라이라마쪽과는 상종마저
꺼려하는 오랜 숙원의 사이다.)
어찌되었든, 이들 세 분은 달라이라마 외국 방문 때 꼭 필요한 분들이며,
정부에는 물론이거니와 티베트 불교에도 없어서는 안될 분들이라는구나.
여러 번 달라이라마 곁을 떠나라는 협박장을 받은 다섯 분 중의 세 분이란다.
나머지 두 분은 나의 후견인인 툽텐라마와 캄도림포체란 분인데, 캄도림포체는
결혼도 했으나 도가 높아, 달라이라마 곁을 떠나지 않고 보필하는 중요한 분으로,
나와 지광스님을 보자마자 지장보살님의 신봉자라고 말하여, 경비병들을 세워
놓고 있다고 하는구나.
나에게 정성과 배려를 아끼지 않은 가까운 분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데, 다리
괴고 편안히 앉아 있기에는 내 수양이 부족한 것 같구나.
차를 잡아 타고 달람살라에 가보니 평소 분위기와는 아주 달랐단다. 툽텐라마
방에 들어가는 복도문에 쇠창살을 해 달았으며, 건장한 제자 두 사람이 밥을 들고
먹으며 지키고 있구나.
반가워하는 툽텐라마의 손을 잡고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니, 주고 받아야 할
업이라며 씁쓸히 웃는구나.
자신도 여러 번 협박장과 전화를 받았으나. 주어야 할 목숨이라면 주어야 하는
것이 도리이고, 받아야 할 업이라면 받아야 하니, 몸사리며 두려워할 것도 없다고
하는구나.
몇 번이나 참으려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말았단다.
"그렇게 도가 높은 하이라마들이 어떻게 자기 죽는 것도 몰랐습니까? 그것도
끔찍하게... 그리고 한편에선 달라이라마를 반대하는 다른 밀교 집단의 짓이라고도
하는데, 어찌 자비 문중에서 속인들도 할 수 없는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티베트 밀교인들만은, 시기. 질투. 원한. 복수의 감정들을 정화시킨 인욕과
자비의 민족으로 알았는데, 이 살인이 진정 달라이라마와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또 다른 불교인의 짓이라면?...
툽텐라마는 심정이 착잡한 듯 가라앉은 음성으로 변명 아닌 설명을 차근차근
하는구나.
"모두가 인과응보이지요! 이 살인이 중국 측의 짓이든 우리 쪽의 짓이든...!
그러나 우리들 수행자는 이러한 현상들을, 진리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겠지요. 진정 도가 높은 하이라마이면 결코, 인과의 업보를
피하려고 하지 않겠지요.
신통 제일이었던 목련존자도 칼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피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인과의 도리를 아셨기 때문이었지요. 그리고 수행자의 근본은
인욕이니까요.
큰 서인께서 항상 무상해, 무저항, 무투쟁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그냥 도덕적
차원에서만 하시는 말씀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지요.
현상계의 순환 원리는 인과의 법칙이요, 수행자가 곡 지켜야 할 철칙은
인욕임을...!
이런 가르침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로 보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이야기가 나왔으니, 달라이라마와 간덴파의 업보 관계를 설명하여 드리겠습니다.
티베트 밀교의 호법신은 '네충'이었습니다. 지금도 네충이고요. 나라법으로도
불법으로도 인정된 절대적인 수호신이지요.
그런데 이 네충신 대신 '숙덴'이라는 호법신을 모시는, 특별한 라마가 200여 년
전에 출현하셨습니다. 이 라마는 영적 능력이 대단하여 많은 추종자들이 따르게
되고 불교계는 물론 나라에도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지요.
결국, 네충신을 모시는 기존 불교계와 달라이라마는 이 라마를 제거하게 되었고
이 라마와 '숙덴' 신을 모시는 사람들은 모두 극형에 처해지고 말았지요.
극형을 당하면서 이들은 저주의 맹서를 하였습니다. 달라이라마가 하는 일은
세세생생 방해할 것이며, 네충신을 모시는 자들과는 결코 자리를 함께 하지 않을
것을!
숙덴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간덴콤파를 중심으로 수백 년을 내려오면서 세력이
결집되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지요.
티베트 불교인이 풀어야 할 오래된 숙업의 과제이지요."
효선아!
툽텐라마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인과의 업보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고, 인과의 업에 얽매이지 않고, 인과에 매하지 않는 길은 오직
깨달음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단다.
부디 공부의 마음놓지 말아라!
네충라마와 신탁
"스님! 따시종의 신장과 호법신들은 극성맞다는데 마음 단단히 잡수십시오."
경설스님의 말에 인성스님이 얼른 받는다.
"걱정마십시오. 스님은 티베트 호법신인 네충이 호주에서 예까지 모셔온 분인데
염려 놓으세요."
나를 이 나라에 초대하였고 따시종까지 인도하게 된 툽텐라마와 따시종에
들어오기 전날 식사를 하며, 초대된 스님들과 주고받은 이야기이다.
'네충'이란 뜻은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티베트 신의 이름이며, 그 신을
모신 장소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그 신에 빙의되어 신탁을 내리는 라마도
네충이라 부른다.
이 네충라마의 본명은 툽텐이다.
현재 달라이라마가 중요한 국사를 결정하거나, 림포체들의 환생 자를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특별한 위치의 사람이다.
네충라마, 툽텐을 만난 것은 호주의 '에어즈 럭'이라는 산에서 였음은 앞에 밝힌
바 대로이다. 티베트 나라 티베트 불교에서 네충라마와 네충신탁은 특수한 위치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신탁은 없어서는 안될 국가 의식이자 가장 신성시되는 신의 계시인 것이다. 이
의식은 본래 불교의 것이 아니었다.
불교가 티베트에 들어오기 전부터 주술적 신앙들이 민간에 퍼져 있었고, 그
주술적인 힘들이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작용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흡수
조화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무속적이고 주술적인 민간신앙을 조화 있게 흡수
승화시킨 불교가 티베트 불교이다.
티베트 불교 최초의 절인' 삼레콤파'에서 이 의식(신탁)은 시작되었는데, 불교가
융성했던 5대 달라이라마 시절 국가 의식(국가신탁)으로 제도화되었으며,
그때부터 네충신탁으로 정식 명명되었다.
이 네충신탁은 놀라울 만큼 정확했기에, 역대 달라이라마들이 하나같이 신탁에
의지하여 중대사를 결정했으며, 그 제도와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신탁 제도는 한 절에 국한되지 않고, 각 지방의 큰절에서도 자신들만의
네충신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신탁을 받는 네충라마들은 가장 높은 특권층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각 사찰의 지방 네충들은 국가 네충의 확인을 받아야 했고, 어려운
수련과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했다.
그리고 네충신탁이 행해지는 건물은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장소가 되었으며,
승왕인 달라이라마도 예배를 드리곤 했다.
정말 네충신과 인연이 있었던지, 말로만 듣던 네충신탁의 과정을 생생히 보게
되었다.
도저히 우리들이 배워온 합리적 지식으론 설명될 수 없는, 신의 세계가 현실로
펼쳐지는 현장이었으며, 한국 굿판의 신내림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네충신에 빙의되기 전 선정에 든 네충라마의 모습은 단정하고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넓고 반듯한 이마가 은은한 빛을 발하며, 엷은 미소는 부처님의 자비스러움
그대로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감고 있는 눈알이 돌기 시작하고, 곱던 입술이 찢어지며 이상한 신음이
나온다. 몸을 떨기 시작하더니, 앉아 있는 커다란 특수 의자와 법상은 물론 앞에
있는 내 몸까지 떨려 왔다.
엄청난 에너지의 파장이었다. 심줄은 터질 듯 부풀고 얼굴 모습은 엷은
주머니에 물건을 쑤셔 넣을 때처럼 변해 간다. 일어나며 번쩍 치켜 뜨는 눈 속에
시뻘건 광채가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걷는 것이 아니고 껑충껑충 뛴다. 그가 쓴 의식 모자는 보통 사람이 쓰면 목이
부러질 엄청난 무게의 것이건만, 전혀 무거운 것 같지 않다.
라마들에 의해 다시 제자리에 앉혀진 네충라마는, 제삼의 눈으로 앞에 갖다 댄
질문서들을 읽는다. 이상한 음색의 해답 소리는 또 다른 라마들에 의해 체크되고,
묻고 적고 시간이 흐른 뒤, 심한 또 한 차례의 경련과 함께 서서히 자신의 몸으로
되돌아온다.
신탁을 받을 때 자신의 상황을 아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미솔 로만
답하는 모습, 신탁을 도저히 안쓰러워 보지 못하겠다는 나의 손을 꼬옥 잡고
쳐다보는 눈길에, 형제의 정 같은 것을 느낌은 전생의 그 어떤 인연 때문일까?
그의 평상시 생활은 바쁘면서도 부드럽고 조용하다. 달라이라마가 부를 때
이외에는 자신의 사찰에 백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지내며,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손님들을 만난다.
다른 티베트 절이 그러하듯, 게스트 하우스와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여 재정을
충당하기도 하나, 그가 차지하는 위치 때문인지 다른 사찰에 비하여 큰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다.
그는 몸과 마음을 언제나 깨끗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가 옴을 믿기에, 행동거지가 여법함은 물론 수행면에서도 결코 게으르지 않다.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됨은, 이 네충라마 바로 네충신의 인도였음을 생각해 보며,
내 의지와는 또 다르게 흘러가는 커다란 흐름을 느껴본다.
티베트의 법왕이자 임금님인 달라이라마
달라이라마?
'달라이'는 몽골계 티베트어인 '띨렛'의 서양식 발음이다.
달라이란 큰 바다란 뜻이며 라마는 스승이니, 큰 바다와 같은 스승이란 뜻이
된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불교 법왕이며, 나라의 통수권자이기도 하다. 종교와
정치를 통합한 티베트 전통 제도의 최고 통치자인 것이다.
현재 달라이라마가 14대 환생자이니, 초대 달라이라마(1391__1474)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오백여 년 전 그때의 한 사람이 몸만 열네번 바꾸어 환생한 것이다.
서양식 사고로 보면 참으로 비합리적 제도요, 통치 체제라고 할지 모르지만,
티베트인들의 인생관이나 우주관, 환경, 삶 등을 이해한다면 완벽하도록 묘한
조화의 제도인 것이다.
자신들의 사랑과 믿음 그리고 헌신을 모두 바쳤던 스승의 환생자를 찾아 다시
그 자리에 복귀시킴으로, 마음의 질서와 생활의 질서를 확고하게 확립시키는
것이다.
이런 환생자 제도가 달라이라마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니다.
티베트 불교에는 정신적 스승(위대한 라마)들이 계속 환생하여 그 자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계보들이 많다.
내가 머무르는 이곳도, 캄툴라마라는 훌륭한 분이 아홉 번을 환생하여 그
자리를 승계하고 있다.
티베트에서 달라이라마와 버금할 만한 영향력의 환생자를 꼽는다면 단연
판첸라마를 꼽을 수 있는데, 이 분은 열한 번을 환생한 계보이며, 달라이라마가
티베트의 수도인 라사의 포탈랍궁에 거점을 두고 살아오셨다면, 판첸라마는 두
번째 큰 도시인 시가체 따시룸포사원에서 활동해 오셨다.
14대 달라이라마와 중국의 모택동을 같이 만난 분도 10대 판첸라마이며, 끝까지
티베트 본국에 남아 중국의 갖은 박해를 감내한 분도 판첸라마이다.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분의 환생자인 11대 판첸라마를 찾는 작업과, 찾고난 뒤
어린 11대 판첸라마의 실종, 중국측의 가짜 11대 판첸라마 착좌식(즉위식) 등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도 판첸라마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티베트에는 이런 환생자들을 림포체 또는 뚤꾸라고 부르며, 신앙의 대상으로
보살의 화신으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티베트의 주요학파들도 이 환생자들에
의해 이끌어지며, 계승되고 있다.
이 환생자를 찾는 작업은 철저하여 경외감마저 든다. 환생자들은 돌아가시기 전
자신의 환생 장소나 환생 연월일을 예언하는데, 이런 자료와 돌아가시고 난 뒤
가까운 제자들의 꿈이나 계시에 나타나는 말씀, 그리고 큰 라마(고승)들이 선정에
들어서 본 현상들을 종합한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네충 신탁의 감정을 거쳐, 모든 것이 일치되었을 때,
실제 확인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현지 확인 작업 과정에서도 같은 이름, 같은 생일, 같은 지명은 물론
비슷한 마을, 비슷한 모습 등으로 많은 어려운 절차를 밟아야 하며, 티베트 전역은
물론, 때로는 다른 나라까지 세상 구석구석을 뒤져야 하는 큰 일이기에 몇 년씩
헤매는 경우도 있다.
13대 달라이라마 환생자를 찾고 확인하는 과정을 보면 참으로 경이롭다. 13대
달라이라마 환생 조사단이 동북 티베트 '타크처'라는 작은 마을 한 농가에 도착한
것은 13대 달라이라마가 열반하신 뒤 2년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조사단 대표인 큐창림포체는 허름한 하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림포체 하인인
롭상은 일부러 림포체 복장을 하고, 이 농가에 들어가 며칠 묵어갈 것을 청하게
된다.
이때 한 어린 아이가 쪼르르 나와, 잘 차려입은 롭상을 제쳐놓고 뒤에 서 있는
하인 차림의 큐창림포체에게 가서, 그의 목에 걸린 13대 달라이라마 염주를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맞추면 주겠노라 는 말에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린아이답지
않게 시선을 하늘의 떠가는 흰구름쪽으로 돌리고 묵묵부답이었는데,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심상찮은 낌새를 느낀 림포체는 다그쳐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맞히면 염주도 주고 다른 것도 주겠노라고...
어린아이는 림포체를 찬찬히 보면서,
"그대는 하인이 아니라 지체 높은 큰 라마."
림포체는 연이어 물었다.
"그럼 나와 함께 온 분은 누구인가?"
"그대 시자 롭상."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다시 확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13대 라마가 쓰시던 물건들과 그와 비슷한 모조품들을 펼쳐 놓고 아이에게
고르게 하였다.
먼저 목에 거는 여러 개 염주 중에, 13대 달라이라마가 쓰시던 것을 서슴없이
집어들었으며, 손에 쥐는 작고 예쁜 수주들도 이것저것 만져 보다가, 역시 라마가
쓰시던 것을 골라잡았다.
지팡이를 분별하는 과정에선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으며, 두 개의 지팡이를
내미는 조사 단원은 손은 몹시 떨리고 있었다.
아이는 먼저 쇠지팡이를 한참 만지작거리더니 내려놓고, 동으로 된 지팡이를
집어드는 것을 보면서, 조사단은 또한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돌아가신 전대 달라이라마가 처음에는 쇠로 만든 걸 쓰시다가 다른 분에게
주시고, 말년까지 동지팡이를 사용하셨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이 앞에는 다루(작은 손북)가 놓여졌다. 하나는 단순한 디자인의
평범한 다루였고, 다른 것은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된 상아 다루였다.
아이는 서슴없이 라마가 쓰시던 평범한 다루를 집어들고 앞뒤로 돌리며,
조사단들에게 웃음을 봬는 것이었다.
조사단 중의 한 명은 그때의 감동을 울먹이며 술회하였다.
안도의 감사와 환희, 감격 속에 그냥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눈물만
흘렸노라고...
티베트 정부는 그들의 역사와 전통에 따라 수년 동안의 환생자 찾기 작업을
끝내고, 시골 소년 덴진갓쵸를 13대 달라이라마 환생자로 공식 인정하게 되
것이다.
어린 소년은 서울 라사로 보내져, 티베트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강한 스파르타식 수행 과정과 교육을 마치고,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거쳐 지금의 14대 달라이라마가 된 것이다.
환생! 우리 나라에서도 환생의 예는 얼마든지 있지만, 전통과 제도의 절차에
따라 한 사람의 환생자가 몇 대를 계승하는 경우는 없으며, 티베트만의 독특한
절차와 전통인 것이다.
5. 수행은 한 나이라도 젊어서
여자 환생자
이 곳에 와서 나는 흔치 않은 여자 환생자를 만나보게 되었다. 불쌍한 이웃들을
돌봐가며 자신을 드러내놓지 않고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쓰는 것조차 흰옷에
먹칠하는 기분이 들지만, 사람들에게 이익 되는 일이라면 써도 된다는 격려에
간단히 소개하여 본다.
지금은 네팔령이지만, 티베트의 한 평범한 마을에서 이 연인은 태어났는데
언제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너댓살 때부터 자신이 다른 집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고, 그 느낌과 생각들이 확실해지면서 자신이 어디에 살던
누구 였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함께 사는 부모에게, 자신은 전생에 누구였으며 어느 곳에 살던
사람인데 결혼도 했으며 아들 딸까지 있으니, 데려다 달라고 졸랐지만 병자
취급만 받고, 몇 번의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큰 라마의 도움으로 한 평범한 환생자로 밝혀졌고, 전생의 기억 따라
전생의 인연들을 찾게 된다. 전생 가족들을 만나보니 이미 남편은 재혼을 했고
아이들은 성장해 있었다.
전생의 가족들을 보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반가웠지만 남편과
아이들은 정신이상자를 대하는 태도일 뿐이었다.
그녀가 아니 그 아이가 돌아오면서 깨달은 것은, 전생의 남편 그리고
자식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과, 자신은 이미 다른 몸으로 환생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생 관계나 전생 기억에 방해받지 않고, 새 인연의 흐름 속에 새 삶을
창조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는데는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결국 그녀는 전생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갈망을, (그리고 전생 어느 때 어떤
관계였을지 모를) 금생의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착의 감정들을, 고귀하게
승화시키는 영적인 삶에 귀의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언뜻언뜻 스치는 상념과 스쳐가는 일상들에서, 또 자신도 모르게
집착되는 사람이나 장소에서, 전생의 부분들을 감지하며 산다.
그러나 현재의 삶이 더 소중함을 알기에, 그런 기억이나 생각들을 아름답고
조화있게 승화시켜 가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인간들이 추구하는 목표이자
순리이기도 함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할 것 같다.
전생의 애인
나는 포교 일선에서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와 전생에 인연이
닿았던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중 최근에 한국에서 만났던 한 소녀의 생각이
떠오른다.
이 열살짜리 소녀의 가족과 전생에 어떤 관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친밀하고
아름다운 인연이었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 소녀의 고모네 가족은 물론, 두 삼촌 가족 열세 명의 아이들이 모두가 나의
속가 상좌이다. 이 소녀도 나의 속가 상좌가 되기 위해 어느날 엄마와 오빠
그리고 삼촌댁들과 함께 오게 되었는데, 들어서서 나를 보자, 감전된 듯 멍하니 서
있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멀리 왔다고 아이스크림을 사다줬건만 다른 아이들은 맛있게
먹고 있는데, 이 아이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가슴을 꼭 쥐고 나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상히 여기지 않았던 고모와 엄마, 삼촌댁들도 점점 아이의 행동이
기이해지고 이상해지자 달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아이는,
"엄마! 나 저 스님에게 한 번만 안기게 해줘."
웃기만 하더니 친척들과 스님들의 얼굴색이 변해갔다. 분위기가 너무
숙연해지기에,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 한 바퀴 돌고 내려놓으니 아이는 그제서야
제대로 숨을 쉬며 얼굴에 웃음을 띠는 것이었다.
그후 나는 바빠서 소녀와 만날 시간을 좀처럼 낼 수 없었으나, 그 어린 나이에
나를 보겠다고 부산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모습을 보며, 여러 생에 걸쳐 맺어온
깊은 인연의 환영을 볼 수밖에 없었다.
빨리 커서 스님을 도와야 한다며, 공부를 열심히 하여 반에서 일등도 하고
부반장도 되었다는 소식과, 내 사진을 걸어놓고 건강하고 오래 살라고 아침 저녁
기도한다는 말을 들으며, 전생의 깊은 인연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비로 깨닫지는 못하고 살지라도, 전생과 내생을 한 번만이라도 깊이
생각할 수 있다면, 전생에 내 부모 형제였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가슴에 잔인한
못을 서슴없이 박지는 못할 것이다.
이 아이뿐만 아니다. 전생에 내가 자기 남자였다는 (자녀가 여섯에 나이가 예순
가까운0 어느 여인의 집착과 애증으로, 6년 동안 사기 협박에서 강간죄까지 걸어
다섯 번이나 고소를 하는 기막힌 전생 인연도, 엄연히 금생에 존재하고 있으니...
정서불안과 정신분열 증세로 상담을 해오던, 자칭 여기자라는 불쌍한 처녀와의
옹맺힌 인연은 물론, 상상의 러브 스토리를 인쇄하여 부산역 광장에서 돌리던
어느 여인과의 설명할 수 없는 인연들! 어떻게 금생의 삶만 가지고 이런 알 수
없는 인연들을 이해하고 풀어갈 수 있단 말인가?
불쌍한 그들을 이용하여 공덕원을 빼앗아 보려는 사람들과 방송 프로그램의
인기를 높여 보려는 몰지각한 매스컴 종사자들과의 인연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오직 유일한 길은 기도와 수행으로 전생의 악연을 푸는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목숨을 내걸고 수행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전생사이지만, 전생을 믿지 않고는 금생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인 것을 어찌하랴!
나의 티베트어 선생님 따시의 고민
서부 티베트인들이 삼십오륙 년 전 이곳에 정착한 것은, 열반하신 8대
캄툴림포체 때였다고 한다.
현재 이 절의 주인이자 제일 어른인 9대 캄툴림포체는, 8대 림포체가 환생하신
분이시니, 그 분이 그 분인신 셈이다.
세수 17세의 현 9대 캄툴림포체는 어리지만 전혀 어린 사람 같지 않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아홉 번이나 몸을 바꾸면서 축적된, 보이지 않은 그 어떤
힘 대문인 것 같다.
이곳은 산중턱에 자리잡은 콤파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속인들이
사는 집에 비하면 콤파의 건물은 참으로 화려하여, --티베트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그대로 살려-- 참으로 장엄하게 세워져 있다.
이삼층을 통털은 높이의 대법당을 중심으로 기도하는 라마들의 방이 붙어 있고,
위로 올린 삼사층엔 호법 신전들이 있으며 그 위 사오층엔 내가 머무는 림포체의
방사가 있고, 제일 꼭대기 누각에는 서른일곱 분의 작은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소법당이 자리하고 있다.
본당건물 앞으로 비스듬히 33계단을 내려가면, 팔정도의 만다라가 그려진 넓은
마당이 부채살처럼 펼쳐지고, 마당 양옆으로 대칭되는 두 개의 불당건물이
아담한데, 한쪽은 조사전, 한쪽은 라마들의 공부나 작은 불공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본당건물 양옆쪽으로는 일반 라마들의 요사체와 식당이 있으며, 뒤쪽으론 큰
라마들의 거처와 무문관이 있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본당건물의 웅장함과
화려함과는 달리, 라마들의 방이나 아래에 사는 속인들의 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고 누추하다.
두 평 정도의 공간에 작은 불단이 벽에 붙어 있고, 누우면 다리가 걸릴 것 같은
널판 침대 하나에 옷가지들과 가재도구가 빼곡이 들어 차 있다.
물론 화장실은 없다. 나의 구루 같은 분은 세계적인 잡지와 티베트 정부
기관지에도 단골로 소개되는 유명 인사(?)이지만, 이와 똑같은 방을 쓰고 계신다.
내가 법을 받으러 가면 스승의 침대 위에나 옆에 쭈그리고 앉아야 한다.
아래에 사는 나의 티베트어 선생 따시네 집도 예외는 아니다.
'따시'는 행운이란 뜻의 이름이고 여기서는 드물게 고등 교육도 받았으며,
지금은 절에서 필요한 목각을 하고 있는 28세의 신심있는 총각이다.
위로는 육십에 가까운 부모님과 림포체의 운전기사를 하는 33세의 형, 그리고
21세의 남동생과 18, 16, 15, 14세의 연년생 누이들을 두고 있다.
이들 역시 아홉 사람이 작은 방 두 개에 함께 생활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의
제일 작은 아파트에 산다고 생각하면 맞을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비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이들의 집은 흙벽돌로 지어졌고, 겉에 회칠을 해서 옷이 닿으면 횟가루와 흙이
묻어난다.
비가 많이 오면 흙물이 줄줄 흐르지만, 흙속에 살아온 유목민들이라 그런지
먼지나 흙을 더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시네는 지금 더럽고 깨끗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커가는 동생들과 함께 이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문제이다. 따시네가 이러할진대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서도 이곳에 살기를 고집하는 것은, 아침 저녁으로 시간만 있으면 콤파
주위를 도는 '꼬라'와 남녀노소 앉으나 서나 중얼거리는 '옴마니반메훔'의 신앙
때문이다.
이들의 신심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막연한 관념이 아니라 생활자체이다.
인생관도 우주관도 문화도 나라도 개인의 감정마저도 신앙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서 나라와 부모 형제를 뺏고 문화와 전통을 깡그리 뺏어 간다 해도,
가슴에 간직된 부처님과 달라이라마는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신앙이
있기에 악조건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들에게도 현실의 아픔은 아픔일 수밖에 없다. 스물여덟, 서른셋의
노총각들 고민도 고민이지만, 커가는 누이들의 잠자리를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하는 아픔이 더욱 크단다. 따시 형 소남(공덕)은 림포체 문간방에서 지내며,
따시는 먼지와 톱밥투성이인 목각실에서 지낸다.
그리고 이들 식생활도 물론 어렵다.
밀가루, 보릿가루 그리고 쌀을 먹는데 보릿가루를 많이 먹는 편이다.
아침에는 발렙이라는 빵조각과 버터차 한 잔, 점심에는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밥에 우리나라 된장 비슷한 달이라는 것을 섞어서 간단히 먹는다. 그리고 저녁엔
뚝바(수제비)나 국수, 잘하면 모모(만두)가 전부이다.
간식이나 별식도 크게 없다보니 체격 조건도 역시 점점 왜소해진다는 것이
따시의 진단이기도 하다. 문화 시설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 곳이다.
몇 집에 초대를 받아 가보았으나, 텔레비전이 있는 집은 아직 못 보았다.
목욕시설은 상상도 못하고 비가 많이 오는 우기철이나 되어야, 쌓아둔 빨래에다
몸에 쩔은 때까지 한꺼번에 벗긴다 하니...
처음 이곳에 와서 괴로웠던 것 중 하나는,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 코를 돌려도
풍기는 지린내와 구릿구릿한 냄새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냄새마저 구수하니, 인간의 적응 능력이 동물중에 으뜸이란
말은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과 쉽게 친해지고 적응될 수 있었던 것은, 내 어렸을 적 흙파먹고 놀던
앞마당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모깃불 피워놓고 돼지우리 냄새 맡아가며, 할머니의 옛날 얘기 듣던 추억의
정서 때문인 것 같다.
옛시절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으며, 피부는 물론 장기 이식수술을
해도 부작용이 없을 정도로 핏줄이 같은 몽골리안인 것이다.
같은 몽골리안으로 그리고 다 같은 부처니 제자로, 이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풍부한 물질의 혜택을 받고 사는 것이, 왠지 미안스럽기까지 하였다.
아메리카 쪽으로 이동한 몽골인 인디언은, 이미 종족마저 보전키 어려운 상태가
되었고, 또 한 갈래인 티베트 몽골인도 자기나라를 잃고 이런 어려움 속에 사는데,
내땅 내나라에서 문화생활까지 즐길 수 있음이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도는 것, 주위 정세와 여건도 변하고 또 변하는 것!
한국의 몽골리안들이 긴 안목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코 앞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이들 티베트인이나, 인디언과 같은 운명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며 '따시' 같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다.
한국인도 이제 긴 꿈에서 깨어나, 새마음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고 기원해 본다.
구루의 가피
말이 안 통하는 것은 핏줄이 안 통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 생각난다.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포교를 했어도 현지인보다는 한국인들 대상이었고,
언제나 통역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불편한 줄 몰랐으나, 이곳 사정은
다르다.
구루(스승)께서 수행의 틀을 설명하셔야 하는데, 구루님도 영어나 한국말을
모르며 나 또한 티베트어를 모르니, 중간에 통역이 반드시 필요한 실정이다.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구루(스승)의 가피였는지, 보파림포체라는 라마와 이곳에
공부하러 오신 xx스님이 맡아 주시기로 했다. 공부할 수 있는 여건들이 갖춰지게
되어 참으로 기뻤는데, 나보다 이곳 라마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코리아 라마가 아무런 장애없이 티칭(가르침)을 받게 되었다고, 모두가 구루의
가피라고.... 티베트 불자들이나 티베트 라마들은 고마운 표현에도 반드시 '구루의
가피'란 말을 쓴다.
이곳에서 자신의 구루는 진리이자 바로 부처님이다. 아니 자신의 생명과 같은
존재이다. 밀교 수행의 기본과 핵심은 구루를 관상(생각)하는 일이다. 자신의 모든
잡된 생각들을 오로지 구루를 관상함으로써 녹여내며 변화시켜간다.
밀교 공부는 구루의 관상으로 시작해서, 구루의 관상으로 끝을 맺는다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구루가 부처님보다 자신의 생명보다, 진실로 더 소중하게 여겨졌을 때 공부는
끝난다고 한다. 여기에 와서 수행하며 제일 힘들었던 것도 이 부분이었는데,
구루를 믿고 따르는 것은 보편적 상식이지만, 부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부처님과
똑같이 관상하는 것은, 한국 불교의 정서 속에 자라온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 라마들은 구루와 하나되는 공명과 전이를 통해, 구루의 모든 것을 전수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수행의 기초 중에 구루와 하나되는 주문(만트라)이 있어 그 주문을 십만법 이상
염한 뒤에 구루의 검증을 거쳐서, 되었다고 인정돼야 다음 수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길이
있음은, 바로 구루의 가피인 것이다.
스파이처럼 구루를 살펴라
티베트인들에겐 불교가 추상적인 관념이나 피상적인 사고가 아니라, 생명이자
생활자체임을 누누이 말해왔다. 환생이나 업, 윤회와 삼생은 이들 핏줄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개념이다.
이들은 금생을 중요시하는 만큼, 실제로 전생과 내생을 중요시한다. 깨어 있을
때는 중요시하듯, 잠잘 때와 꿈꿀 때도 중요시한다. 가장 솔직한 의식의 표현이
꿈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기에, 수행하는 사람에게 꿈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구루는 제자의 꿈을 일일이 점검하여, 그의 의식 상태와 수행 상태를 파악하고
제자의 생각과 성숙의 과정을 세밀히 관찰하며 지도한다. 어떤 수행을 하면 꿈을
꾸게 돼 있다는 것도 체계적으로 알려주고 그러한 꿈을 유도한다.
한국의 선불교에서 화두를 주고 네가 알아서 해 보라는 식이 아니라,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깨달음의 목적지까지 구루가 책임을 진다는 점에, 밀교의 수승함을
찾을 수 있다.
그러기에 구루와 제자가 완전히 하나가 되지 않고는 수행이 불가능하다. 또
하나 구루와 교감되는 공부의 비밀은 어느 누구에게도 누설해서는 안된다.
불문율이자 철칙이기에 밀교라고 이름 붙여지게 된 것이다. 달라이라마 가르침
중에 너무도 인상적인 말씀이 있다.
"스파이처럼 구루를 살펴라! 구루의 공부가 확실한가를! 공부 하지 않은 가짜
구루들이 많은 말법시대이니 잘못하면 인생을 망친다."
많이 들어온 가르침이지만, 이곳 밀교에선 더욱 의미가 깊은 말씀인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나 또 편지 서두 등에 '삼보에 귀의하옵고'를 쓰듯이 이들은
'나의 구루 누구에게 귀의하옵고'를 필히 쓴다.
우리는 불, 법, 승 삼보에 귀의하지만 이들은 사보(불, 법, 승, 구루)에 귀의한다.
사보가 하나이지만 이들에겐 실질적으로 구루가 으뜸이다.
구루와 제자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밀교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8대 캄툴림포체!
티베트 밀교의 특징적인 것 중의 하나가 환생자(림포체) 제도라고 전술했다.
법왕(달라이라마)인 덴진갓쵸림포체가 그렇고 판첸림포체, 한국에 왔던
링림포체가 그렇듯, 여러 대를 환생하며 림포체들은 나라와 종파, 학파 등을
이끌어 간다.
티베트 선종(까규파)의 종찰인 이 콤파를 이끌어온 캄툴림포체도 아홉 번을
환생한 고승 중의 고승이다.
현재는 9대 림포체이지만 이곳 따시종 콤파와 마을을 만든 분은 돌아가신 8대
림포체로, 2959년 달라이라마와 함께 망명오셔 여기에 자리를 잡고, 20여 년
가까이 콤파와 마을을 일구어 놓으셨다.
이렇게 만드느라 지치셨던지, 49세 한창 나이에 낡은 몸을 벗어 놓으시고
새몸을 받아, 인도 아르나찰주 '붐릴라'라는 마을에 환생하였다.
그분이 바로 지금의 9대 캄툴림포체이신 것이다. 환생을 확인하는데는 어렵지가
않았다 한다. 가장 친했던 '까르마파'라는 분과 딩굴림포체 그리고 전설적인 독덴
한 분에게 자신의 환생지를 자세히 계시해주어,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없이 쉽게
모셔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분이 지금 성장하여 속가 나이 열일곱이 되었는데, 한국 같으면 한창 부모
속을 썩일 나이이지만, 머리 허연 제자들의 시중을 의젓이 받으며, 설명하기 힘든
미소와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여법한 태도로, 수백의 승려와 수천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 어린 림포체를 꿈에도 어린아이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전대 림포체 화신으로 철저히 믿고 산다. 아마 이들의 이러한 신앙이 무너진다면,
티베트 사회는 하루 아침에 붕괴되고 말 것이다.
이곳 사람들에겐 자기 스승은 바로 자신의 삶이고 진리이며 부처인 것이다.
나의 구루 말씀에, 돌아가신 8대 림포체는 자비의 화신 그대로였다고 한다.
귀신을 쫓아달라고 부탁한 라닥이라는 마을에 가서, 귀신이 불쌍해서 데리고 와,
이 콤파 뒤에 사당을 지어주었다.
지금도 그 귀신은 이 절의 수호신으로 사당에 산다하니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원수마저 사랑할 수 있는 자비 공부를 해보겠다고 이곳까지 흘러온 나에게는,
소름돋는 고마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앞장에서도 아야기했듯이, 이러한 자비 공부는 돌아가신 후 육신을 화장했건만,
따뜻한 심장은 타지 않고 그냥 남아 법당 안 보석탑에 모셔지고, 남은
유골(사리)들은 법당 밖 사리탑에 모셔져, 큰 경사일에는 안과 밖의 탑에서 자비
방광을 하고 있으니...
자연을 정복한다는 마음이 아닌, 귀신을 쫓는다는 마음이 아닌, 자연도 귀신도
남도 나도 미운 이도 고운 이도 더불어 끌어안고, 서로의 일부로 살아가는 이런
분들에겐 구름에게 부탁하여 해를 나오게 하고, 바람에게 간청하여 잠시 자게
하는 신비한 능력들이 있음을, 세상 사람들은 믿은 수 있을까?
9대 캄툴림포체의 예쁜 손과, 깊은 미소를 보며 그가 어떤 얘기들을 해도 어떤
조화를 부린다고 해도, 모두 다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은, 삼생이 함께 하는
이곳의 정서와 분위기에 젖은 탓만은 아닐 것이다.
티베트 밀교의 허와 실
티베트 불교는 나라 자체가 지니는 폐쇄성 내지 신비성 때문에, 진실되고
사실적인 부분보다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겉모양의 이미지만을 우리들은 갖고
있다.
이들의 삶이나 수행이 영적이고 신비하여, 최고의 의식수준에 나타날 수 있는
황홀하고 매혹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직접 안에 들어와 경험하는
세계는 냉정하리만큼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체계적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영적인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수행 방법이,
너무도 구체적이고 세밀하다는 이야기다.
티베트 불교의 가장 뛰어난 특질은 생활과 동떨어진 개념 불교가 아니라, 삶에
직접 연결되어 삶을 살찌우고 윤택하게 하는 생활 불교라는 점이다.
티베트 불교는 교리적 내용에서는 인도나 한국 불교와 다르지 않으나, 깨달음에
이르는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나타난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티베트 불교의 독특한 부분이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티베트는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의 생활이었기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문자는
물론 발달된 문화도 없었다. 불교를 받아들이기 위해 문자가 만들어졌으며, 점차로
불교 문화가 형성되었고 그들이 갖고 있는 본래의 영적인 힘이 집약되기
시작했다.
누가 얘기했듯이, 티베트인은 인도에서 불교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깨달은
자(붓다)가 본 전 우주를 그대로 다 받아들인 것이다.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라고도 한다.
모든 불교 국가의 전통에서는 귀의의 근본이 불, 법, 승 삼보인데, 티베트에선
라마가 첨가되어 사보라는 말을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다.
이 부분이 불교 국가간에 논란과 혼란을 야기시켰지만, 불교가 티베트에서
아름다운 문화의 꽃을 피우고 지금도 신비한 힘을 간직할 수 있음은, 바로 이
사보 제도, 라마 제도 덕인 것이다.
라마란 '영적인 스승'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의 '구루'와 동의어이다. 남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충분한 수련과 능력을 지닌 사람에 대한 칭호이며, 티베트
승려와 일반적인 호칭이기도 한 것이다.
어떤 제자가 라마에게 물었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경전을 따라야 하나요? 라마를 따라야 하나요?"
"네가 경율론 삼장을 다 외운다 해도 그것은 죽어 있는 지식일 뿐이다. 지식은
네 근본과는 별개의 것이다. 라마는 부처이며, 경전이고 너를 깨달음으로 인도할
살아있는 안내자이다."
이 문답에서 알 수 있듯이 라마를 으뜸으로 하기에 라마교라 부르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구루 즉 라마와 제자간의 영적인 상응을 통하여, 능력이 전이 될 수 있음을
이들은 확실히 믿는다.
그리고 티베트 불교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또하나 있다면, 불교는 분명 인도
발생이고 경전만 하여도 팔리어 경전 산스크리트(범어) 경전 등 원전이 있는데, 왜
세계인들이 티베트 경전을 중요하게 여기느냐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인도에는 경, 율, 론 삼장이 온전히 남아 있지 않고, 중국의 한역
경전은 번역되지 않은 것이 다수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티베트 경전에 비해 중국의 경장은 700여 부, 논장은 400여 부가
부족하다.
그 밖에도 많은 부분이 빠져 있어 온전치가 못하다.
티베트는 인도의 경, 율, 론 삼장을 번역하기 위해서 문자를 만든 유일한
나라이며, 티베트 경전을 다시 환언해서 인도의 범본으로 옮긴다 해도, 인도
원본에 틀림없을 정도의 정확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부처님의 법이 지금까지 훼손 결여되지 않은 채로 온전히 보존되어 있음이,
티베트 경전과 티베트 불교의 중요성인 것이다.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인 인생 안내서, 바로 경, 율, 론 삼장이 제대로
보전되었음의 가치를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전생에 이곳 라마?
정말 내가 전생에 이곳의 라마였을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이 콤파의 가장 중심이 되는 방이다. 분명 공부하기
위한 학생(수행자)으로 왔다고 했지만, 하이라마들간에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갔기에 이 방에 모셔져(?) 있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이분들의 관심이나 전통 등 생활을 깊이 모른다. 그러나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구루를 비롯한 이들 모두가 나에게 주는 감정이나 친절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써서 생색 낸 일도 없고, 아니 몇 푼의 보시나
진실 없는 떠벌림에 마음이 움직일 그런 분들도 아니다.
어떤 조화인지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아니 영원히 몰라도 좋다. 다 죽어 있던
내 마음이 살아나고, 모두 방전되어 살아갈 에너지마저 고갈되어 버렸던 내
생명의 배터리에, 가득 차 오르는 에너지의 충만 감을 느낄 수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 곳에 오기 전까지는 몸과 마음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두 번 다시 인간들을 사랑할 수 없는 불구자가 되는 줄 알았다.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이사갈 날이 바쁜 사람처럼 정신없이 살았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 날 유명해져 있었고 또 어느 날 갑자기 죽일 놈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좋다.
유명함도 죽일 놈도, 세상 사람들이 붙여 준 헛된 이름이니...
유명해졌다가 죽일 놈이 된 석용산이가 진짜 나인 줄 착각을 해서, 소중한 삶을
포기할 뻔도 했다. 인간들에 대한 너무 깊은 실망이, 오랫동안 지녀 온 신앙의
눈마저도 잠깐 흐리게 했던 것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의 구루가 너는 전생의 자비 성취자이고 이곳
라마였다고 한 말씀이, 나 자신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전생에 자비 성취자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비의 원을 지녔던
수행자였음은 의심치 않는다. 승려가 된 것도 남을 사랑하고 싶어서였다.
지장 신앙을 하게 된 것도, 지옥에 가 있는 중생마저 구할 수 있다는 자비 사상
때문이었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자비 수행의 진정한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라, 시행착오 속에 감당하기 힘든 아픈 삶의 연속이었다.
나의 자비 행이 상대적인 노력의 자비였지, 깨달음에서 흘러나오는 절대의
자비가 아니었기에, 지치고 힘든 아픈 삶이 따라옴은 당연한 이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내 자신을 정립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중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으니, 억지 자비 행이 바로 절대 자비 행으로 가는 최선의 길이라는
사실을!
모르겠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오욕과 시련들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살아 있음이 어떤 조화와 어떤 힘인가를...!
그러나 내 삶이 나의 의지였든, 아니면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큰 흐름의
힘이었든,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몫은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전생에 내가 이곳의 라마였든 아니면 또 다른 그 무엇이었든, 저 흰 구름이
바람의 방향을 거스르지 않듯, 내 한 줌 생명의 흐름이 자연에 거스름 없이
살아갈 수 있길 기원할 뿐이다.
티베트 불교의 아버지 '파드마삼바바'
따시종에서 설산 쪽으로 수십 킬로 '초빼마'라는 성지가 있다. 이곳은 티베트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파드마삼바바(연화생 대사)와 그의 아내이자 제자였던
이시초자라는 비구니와 만다라화라는 공주가 인연을 나누던 전설의 고향이자
역사의 현장이다.
눈 덮인 산꼭대기!
자연 동굴인 바위굴 안에는 부처님이 음각되어 있고, 이삼 미터 더 들어가
평평한 곳에는 이시초자와 만다라화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가운데 벽쪽으로 연화생 대사가 앉아 공부하셨다는 방석 같은 돌이 놓여져
있는데, 굴 안에는 신기할 정도로 냉기나 물기는 물론 바람기마저도 없어
안온하였다.
동굴을 나와, 세상이 한꺼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 정상으로 올라가면, 커다란
사람 발자국이 찍혀 있는데--훗날 인연 닿는 사람들이 찾아와 신심과 영감을
얻으라고--연화생 대사가 직접 자신의 발자국을 남겼다고 한다.
이곳 주위에는 세속의 오욕락을 던져버리고, 작은 바위굴에 금생의 삶을
맡겨버린 수행자들이 구석구석에 다리를 틀고 앉아 있다. 요기뿐 아니라
요기니9여자 수행자)들도 있다. 자신의 수행 열로 영하의 추위를 견디고 주위의
눈까지 녹이며, 세상의 죄업까지 녹여 내고 있는 수행자들이 모여 있는 성지 중의
성지였다.
이곳까지 나를 오게 한 인연들에 감사하고 싶어, 바위굴 마다마다에 따끈한 차
한 잔씩을 공양해 올렸다.
우측으로 조금 더 내려가니 신비하게도 연못이 있었고, 그 주위를 사람들이
부지런히 꼬라를 돌고 있었다. 바로 이 연못이 파드마삼바바(연화생 대사)가 화형
당한 곳이며, 화형 후 일주일 동안 비가 내려 연못이 만들어졌다는 곳이다.
그때 이 연못 가운데에서 커다란 연꽃이 피어올랐는데, 그 아름다운 연꽃
속에서는 화형 당한 연화생 대사가 앉아 있었다 한다.
그후부터 연꽃에서 태어난 대사, 연화생대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이 곳에는 신기한 기적들이 일어나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연못을 돈다고
한다.
나 역시 신심이 발하여 꼬라를 하는데, 연꽃 물 속에서 빙긋이 미소하는
아름다운 동자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합장 경배하며 돌고 또 돌았다.
조금 더 내려가니 또 하나의 바위굴이 있는데, 만다라화 공주가 공부하던
곳으로, 부왕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바위벽을 움켜잡았던 손자국이 남아 있어서,
사람들의 참배 장소가 되고 있었다.
어찌됐든 파드마삼바바(연화생 대사)는 티베트에 불교를 처음 전한 역사적
인물이고, 이시초자 역시 160세 가까이 살면서 파드마삼바바의 가르침을 티베트
전역에 전하였으며, 그 유명한 사자의 서 등 삼바바의 저서들을 흙속이나 동굴
속에 남겨 두어, 지금도 인연 있는 자들에게 발견되게 하고 있다.
삼바바, 이시초자, 만다라 화를 나란히 모시는 밀교 종파가 현존하고 있음은,
살아 숨쉬는 전설이자 역사인 것이다.
연화생 대사의 바위굴에서 환희의 기쁨을 이기지 못해 불렀던 노래를 적어
본다.
세상이 좁다하고 헤매고 다녔으나
바늘구멍 작은 마음 벗어나지 못했건만
내 오늘, 한 뼘의 바위굴에 온 세상 펼쳐놓고
수행자 연화생대사에게 이 노래 바친다오.
수행자 연화생이여! 연화생 대사여!
날름이는 연꽃 불에 미련 없이 던져버린
그대의 환한 모습 너무도 선연한데
세월타고 흘러온 당신의 다른 모습
그대를 그리며 노래를 부른다오.
눈 덮인 하얀 산 병풍삼아 둘러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어우러진 바위틈에
슬며시 앉아드니
독수리, 들개, 원숭이, 배암들이
기웃이 찾아들어 하늘 노래 부른다오.
파드마삼바바! 수행자 연화생이여!
한 꼭지 눈을 따면 백천개 싹이 돋는
천상의 꽃씨처럼
한 알의 씨앗 터져 우주가 피어나는
신비의 진리처럼
활활 타오르는 그대 모습
바위굴 마다마다 환생하여 앉았구려.
연화생 대사여! 연화생 대사여!
뼈저리게 시리었던 길고 긴 나그네길
천년을 기다려준 그대 발자국
연꽃처럼 피어나는 아름다운 두 여인
가만히 다가와
고이는 내 눈물에 점안을 하는구려!
수행은 한 나이라도 젊어서
한 나이라도 젊어서 수행하라는 웃어른들의 말이 뼛속을 파고든다.
착첼판(티베트식 절하는 판) 위에 온몸 던져 엎드리는 오체투지의 절을 십만번!
하루에 삼천 배씩은 나에게 무리인 것 같다.
잘해야 천배를 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숫자기를 누르면서 하였는데, 정신 집중이 되지를 않아, 셈없이 하다
보니 하루에 몇 번씩을 하는지 모르겠다.
점점 절하는 숫자가 줄어드는 것 같고 온몸의 힘줄이 다 당기고 살들마저
부들부들 떨려 온다.
하루에 천 번씩을 해도 석달 열흘이 돼야 마칠 수 있는데... 이를 악물고
기다시피 몸을 던져 보지만, 오늘은 더하긴 틀린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서글퍼진다.
얼마나 더 몸부림쳐야 남의 가슴에 못박지 않고 남은 생을 살다 갈 수 있을지.
마음과는 달리 인연 닿는 이들 가슴에 사랑과 기쁨을 주기보다는 아픔과 슬픔을
주었고, 성숙과 영성의 빛을 밝혀 주기보다는 죄업들만 짓게 한 것 같다.
모두가 깨닫지 못한 탓이고 나의 지중한 업력 때문인 것이다. 몸 하나도 조복치
못하고 무슨 마음을 조복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하며, 다시 몸을 추슬러
보지만 손끝 하나 까닥치 않는다.
엉금엉금 기어 일어나, 지난번 닦았던 서른일곱 분 부처님을 다시 한 분 한 분
닦아 드리며, 죄업 많은 이 인간의 정화를 기원하고 기원했다.
인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두 분 비구니 스님이 합장을 하고 계신다. 끙끙거리는
내 모습을 다 보고 있었던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그동안 구루의
가르침을 통역하느라 많은 애를 쓰신 두 분이었다.
웬일들이냐고 물었더니 그동안 분망했던 마음을 다잡아 다시 정진키 위해
무문관에 드니, 당분간 통역을 해드리지 못한다며 미안해 했다.
어린 스님들을 도와주지 못하고 폐만 끼친 것 같아, 나도 무언가 도움되는 일을
해주고 싶었으나 도와줄 것도 도와줄 기력도 없었다.
용맹정진을 하다 하니 글로라도 힘을 더하고 싶어, 몇 자 적어 인편에
내려보냈다.
착첼하는 땀구멍 향내 흐르고
기원하는 손끝 신심으로 떨지만
늙은 몸 헉헉임은 중생된 슬픔이요
그래도 인연따라 찾아온 전생의 내고향
스승과 도반, 만날 수 있음도
행운의 땅 따시종, 구루의 가피인데
이곳에 금강신 맺지 못하면
다른 생 어느땅 기약할는지
눈 뜨고 다시 보면
모두가 흘러가는 풍경이지만
그래도 사는 데는 인욕과 정진 필요하기에
업장의 몸 다시 굽혀 고두례하며
두 분의 정진을 기원한다오!
자비 에너지냐? 삿된 에너지냐?
내가 있는 곳에 어떤 금족령이 내려졌는지 일체 아무도 올라오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 콤파 xx라마는 가끔 올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간다. 이곳은 선종
사찰이지만 어느 수준의 기초적인 교학은 필수적이기에, 교학을 총 담당하는 분이
xx라마이고 콤파에서 유일하게 '게쉬'라는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게쉬는 우리식으로 교학 박사 내지 불교학 박사로 '게쉬고시'는 한국의
사법고시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것 같았다.
오늘도 특유의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고염과 돌배를 가지고 왔다. 함께 먹으며
농담을 한다.
"라마마('라'는 존칭 의미). 라마라의 법력이 대단하신 모양입니다. 라마라는
이곳에 가만히 앉아 계신데도 온 동네가 라마라 얘기뿐이랍니다. 젠틀하고
험블(겸손)하다고요."
"라마! 험불과 머시는 라마의 상표가 아닙니까? 라마가 나보다 한창 젊은데
내가 게임 상대가 되겠소?"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 참에 제가 비밀 하나 가르쳐 드리지요. 아! 요놈의
아니(비구니)들이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라마라를 법상에 올려놓고 벗겼다.
입혔다. 오도방정을 다 떨었나 봅니다.
라마라에겐 여자에게 모성애를 발동케 하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는데, 그
에너지가 수행 에너지냐? 타고난 에너지냐? 그리고 그것이 자비 에너지냐? 삿된
에너지냐? 가 토론의 주제였답니다. 이만하면 제자리를 내놔야 하겠죠?"
분위기가 좀 이상해졌다. 내 표정이 굳어졌는가 보다.
"라마라! 뭐 농담 가지고 그러십니까?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하이라마가 못되지요."
"라마! 나에게는 사실 심각한 문제요. 그놈의 자비 에너지인가 뭔가 때문에
곤욕들을 치르고 있고. 말이 났으니 말이지 텔레비전에서 나를 보고 전생의 자기
남자라고 고소까지 하는 기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게 무슨 자비
에너지이겠소. 에너지라는 것이 있다면 삿된 에너지가 아니겠소? 나에겐 참으로
심각한 문제요."
"라마라! 이곳은 아홉 번을 환생한 캄툴림포체가 계시고 여러 번을 환생한 높은
림포체들이 계신 곳입니다. 그리고 티베트가 자랑하는 독덴(깨달은 자)이 두
분이나 계신 곳입니다. 라마라가 삿된 에너지의 소유자라면, 콤파의 가장 중심이
되고 혈이 되는 이 자리에 모셔 둘 리 있겠습니까?
우리 전대 캄툴림포체는 떼어버리라는 여귀신도 붙여 가지고 오셨는데, 자비
에너지를 지니신 분들에게 뭔들 붙지 않겠습니까?"
게쉬라는 박사 학위가 그냥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확 트인 식견과
분석은 내 입을 다물게 하고 말았다. 우리는 껄껄 웃고 딴 얘기로 돌렸지만...
라마 댄싱
인간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다양하고 무진무궁한가 보다.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를 경험했으니 말이다. 이 콤파에서 일년에 한 번 열리는 라마
댄싱(라마들의 춤)이라는 수행의식 겸 천도의식이 있다.
라마들은 보름 동안 계속되는 이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 겨울 내내 연습들을
한다. 한 동작, 한 방향, 손발짓은 물론 눈짓 하나에도 커다란 의미들이 담겨
있는, 긴 뮤지컬 드라마이다.
그렇다고 이것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소아가 대아로, 더 성숙된
영적 세계로 발전해 나아가는 수행 과정을, 수행자 자신들이 체험하기 위한
의식이다.
티베트 수행자들은 낮에 깨어서 사는 시간만큼 잠자며 꿈꾸는 시간도 소중히
여기고, 눈에 보이는 세계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똑같이 중요시하기에
--살아서의 수행과 해탈 과정을 법본에 기술해 놓듯--죽음에서 환생과
해탈까지의 생생한 모습도 법본들에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이 라마 댄싱 역시 경전의 가르침대로, 삶은 물론 죽음에서 환생까지 그리고 그
중간 기간, 중음의 몸(바르도체 혹은 의식체)으로 겪는 49일의 모습들을, 너무도
실감나게 표현한 영혼 정화의 영적 드라마이다.
제일 어른이신 캄툴림포체와 마을 촌장인 도정림포체, 독덴이신 두 분 스승
그리고 어린 라마들에게서부터 외국인 수행자들까지 한마음 한몸이 되어, 영적
세계로의 진화와 성숙을 창출해 내며, 중음신으로 떠도는 영혼들을 일깨워 환생의
길 깨달음의 길로, 더불어 나아가게 하는 십오일간의 긴 영혼 천도 의식이기도
하다.
첫째날은 현재의 삶의 모습이었다. 오욕락에 얻어지는 환희의 세계를 나타내고
이어 시기, 질투, 배신, 살인, 방화, 전쟁, 기아, 이별 등 온갖 슬픔이 펼쳐지며, 이
무상함을 보고 출가하여 수행하는 수행자의 모습도 보인다.
다음날은 갈길 몰라 헤매는 망령들의 당황해하는 모습이 펼쳐지며, 한편에선 잘
닦은 수행자가 자신의 낡은 몸을 매미 껍질 벗듯 가만히 벗어놓고, 해탈의 세계나
또 다른 세계로 환생을 하고 있음이 보여진다. 이때 참석한 사람들은 갈길 몰라
헤매는 망령(의식체)에게 일제히 외친다.
"그대는 이생의 몸을 버렸노라! 죽은 줄을 깨달아라!"
죽은 줄을 깨달으라고 힘을 다해 소리지르며 일깨운다.
다음날은 또 다른 치알과 제단이 준비되고, 또 다른 모습들이 등장을 해서
기막힌 사후세계를 엮어낸다.
설명하기 힘든 빛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 어떤 빛깔도 아닌 눈부신 광휘,
망령은 따뜻함과 인자함, 고요함을 지닌 빛에 젖어, 인간 영혼의 절대적 자아를
느끼고 지복과 지순의 황홀을 경험하지만, 살아 생전에 익숙지 않았던 에너지의
이질감으로, 그 빛과 하나되지 못하고 만다.
그러나 다른 어떤 망령은 (살아서 닦은 덕에) 익숙한 에너지임을 느끼고, 그대로
빛에 동화되어 해탈의 세계로 떠난다.
눈부신 광휘에 흡수되지 못한 망령은 인간의 마음만큼이나 다양한 신들이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 신들의 세계가 펼쳐지는 다음날, 대웅전 앞마당에 쳐진 대형 치알과
현란하도록 울긋불긋한 제단, 그리고 기막힌 라마들의 모습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무당과 귀신들의 화려한 파티장이었다.
거룩하신 림포체와 독덴 그리고 라마들이 입고 쓰고 걸치고 들은 제구들은 물론
곳곳에 꽂아 놓은 깃발과 새털까지, 한국 무당과 무당집에 사용되는 물건들
그대로였다.
한국의 온갖 무속인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페스티벌이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일까?
환상일까 하고 눈을 비비고 다시 보지만 현실이었다.
한국 불교(선종)의 정서 속에 길들여진 나에게 이 상황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순간 생각을 굴려본다.
이 곳의 이런 모습들이 한국 무속에 흘러들어간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그러나 그럴 가능성들은 희박하다.
나는 여러 곳을 다니면서 만났던 영적인 사람들, 특히 신들과 교감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에서 공통적인 색깔과 모양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모양들과 색깔들이 지금 이곳에서, 선종의 종찰인 이 콤파 대웅전
마당에서 펼쳐지고 있으며, 여러 나라 굿판에서 보았던 비슷한 율동들이, 라마들에
의하여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서양학자들은 이런 상황들을 인간 문화의 이동설을 들어 설명하려 들지만,
그것은 좁은 안목의 소치인 것 같다.
영적인 사람들이 본 영적인 세계는 색깔이나 모양이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라마 댄싱은 티베트 밀교의 종조라 할 수 있는 파드마삼바바(연화생대사)가
선정에 들어서 살펴 본(육도윤회의 세계) 온갖 유형의 신들과 망령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을 진화된 영의 세계로 더 성숙된 영적 세계로 이끌어 내기 위하여
기록한 법본 한 부분을 라마 댄싱이란 의식으로 재현한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신들의 제전에, 울고 웃으며 공감과 전율의 에너지들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대 이기적이고 소아적인 자신에 실망하고,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의
틀이 싫어서, 어리석고 별난 짓을 수행이라고 해보았던 때가 있었다.
진정한 해탈의 세계, 공의 세계는 죄업의 덩어리인 육체의 소멸과 번뇌 망상의
근본인 마음의 완전 소멸이라고 생각하고, 온갖 방법으로 육체와 마음을 부수고
학대했었다.
독주만 마시며, 입에 쌀 한 툴, 물 한 방울 넣지 않고 수십 날을 보내며,
성숙되지 않는 소아의 소멸을 여러 차례 시도했었다.
그때 생각지도 않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세계의 온갖 환영과 고통을
몸서리쳐지도록 진하게 경험했는데, 이곳에서 라마 댄싱을 보며 한번 더 그때의
육도세계를 회상하게 되니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라마들이 들고 있는 창과 칼 온갖 무기들로, 제단에 있는 사람 모형(에고)을
찔러댈 때마다 온몸에 통증을 느껴야 했고, 라마들이 그 모형의 팔다리를
토막토막 잘라낼 때, 내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전율의 에너지를 받아야 했다.
나는 이 라마 댄싱의 주인공인 바르도체가 되어, 인간들이 무시 이래로
윤회하며 체험한 온갖 유형의 고통을 느껴보는, 또 한 번의 기막힌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중간중간 라마들과 림포체, 독덴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죽은 줄 알라!
죽은 줄 알라!
죽은 줄 깨달으면 다시 죽는 고통에서 벗어난다!
환영이다!
환상이다!
모두가 업의 바람이요, 에고의 그림자다.
본래 나(에고)는 없는 것이다. 환상임을 깨달아라!"
외쳐대고 외쳐대지만, 망령들은 깨닫지 못하고 더 낮은 영적 세계로 흘러들고
만다.
고무공을 땅에 튀기면 높이 솟았다가 점점 낮아지듯, 죽은 자의
의식체(바르도체)도 지칠 대로 지쳐 낮은 영의 세계로 낮은 차원의 세계로
내려오고, 오직 무섭고 괴로운 업풍에서 빠져나와 어딘가에 숨어들려고
몸부림하다가, 결국은 가장 낮은 차원의 자궁 세계로 흘러든다.
그러나 회유하게도 마지막까지 깨달음의 원, 수행의 원을 버리지 않은 의식체는,
자궁으로 유입되기 직전 모든 것이 환영이었음을(에고의 그림자들이었음을)
깨닫고, 절대 자유의 세계 영원한 평화의 세계로 환생을 하며 라마 댄싱은 끝이
난다.
참으로 현실과 영적 세계를 오가는 시간들이었고, 감명이었으며 보름 동안의
꿈이었다.
이 라마 댄싱에 참석하고 확실해진 것이 있다면, 지금의 이 현실도 잠깐의
꿈이라는 확신과, 그
꿈을 깨는 영원한 영적 존재가 영속함도 믿게 되었다.
구루(스승)와 첼라(제자)
작은 스승 암틴의 가르침을 뼛속에 새겨둘 것이다. 아니 내 의식의 씨앗 속에
심어서 세세생생 수행자로 살아가는 힘이 되게 할 것이다.
스승의 말씀이다.
네 의식 속에는 절대자유와 절대자비의 갈망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오랜 생을 수행자로 살아온 증표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볼 수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너를 받아들였다.
너 또한 나를 받아들임에 외형이 아닌 내면의 모습을 받아들여라. 네가 나의
인격적인 모습을 존경하거나 취하려 한다면, 바로 실망하고 말 것이다.
모든 인격에는 결점이 있으니, 늙고 병들며 죽어야 하고 입고 먹고 배설해야
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모자람 없는 불성을 생각해라.
인간을 보게 되면 결점을 보게 되고 결점이 눈을 가리면 빛나는 영성은 보지
못한다.
구루를 이루는 것도 옷도 신체도 이름도 그 어떤 외형적 조건도 아니다. 구루
안에서 살아 숨쉬는 지혜의 빛인 것이다.
구루를 구하고자 할 때는 철저히 살펴 믿음이 가는 자를 택해야 한다.
일단 마음이 결정됐으면 목숨을 던져 구루에게 귀의하라. 구루는 인격적인
스승이 아니라 영혼의 스승이며, 부처의 화신임을 잊어선 안된다.
구루의 말은 바로 부처의 선물이요, 구루의 몸짓은 그대로 깨달음의 무드라인
것이다.
구루가 첼라(제자)를 받아들이는데 신중하듯, 첼라 또한 구루를 받아들이는데
마찬가지가 돼야 하느니라.
싯다(성취자)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단점으로 가려진 사람들의 가슴에서 신성한
장점을 볼 수 있는 사람이며, 천하고 못난 사람들도 존경할 마음의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는 자를 일컫는다.
도를 닦는다 하여 스스로를 다른 사람보다 수승하다고 생각하거나 세상을 보잘
것 없다고 멸시한다면, 어떠한 영적 발전도 있을 수 없느니라.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연민과 자비는 자아 중심적인 에고를 녹여주는 빛이니,
절대적 자비가 올 때까지 상대적 자비행을 놓쳐서는 아니 되느니라.
절대적 자비는 절대적 자유이다.
그리고 절대적 자유란 홀로 있을 때의 자유스러움만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관계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고, 어떤 여건에서도 스스로를 적응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 어느것에도 저촉되지 않는 공심의 발로이며 자비심의 현현이다.
그리고 이곳은 나로빠, 마로빠, 밀레레빠 등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구루들로부터, 시간과 공간 생과 사의 벽을 뚫고 몇 번을 환생하신 림포체들과,
안과 밖의 모든 마구니를 항복받은 뛰어난 성취자들, 마음과 마음 입과 입으로
비밀리에 법을 주고받아 이어온 밀교 둑바 까규파의 종찰이다.
너도 이곳의 법을 받으러 온 첼라(제자)임을 잊지 말아라.
마하무드라
스승께서 물으셨다.
"원하는 공부가 무엇인지를 말해 보거라.
성취 여하에 따라, 외부의 어떤 고통이나 악조건 속에서도 견디어 낼 수 있는
공부도, 내부의 모든 번뇌와 심화도 녹일 수 있는 수행도 있다. 공중 부양은 물론
분신을 나투고 유체 이탈을 자유자재로 하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이나
동물에게 전이할 수 있는 공부들도 있고, 마하무드라의 최상 요가도 있다. 그리고
나만의 독특한 수행도 있으니 어떤 공부를 원하느냐?"
난감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모든 공부를 다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욕심일
것이고, 마음 속 있는 그대로를 말씀드렸다.
"공중 부양을 하고 영혼을 전이시킬 수 있는 공부도 좋겠지만, 저는 그보다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는 자비문을 여는 수행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뿐인가?"
"그것뿐입니다."
"마하무드라 수행을 하도록 하거라. 그러나 본 수행을 하기 전에 예비 수행에
소홀치 말되, 자네는 공부의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이니 숫자에 연연치 말고
신명을 다해 보거라. 예비 수행만큼의 공덕을 훗날 중생 제도하는데 쓰게 됨을
잊지 말아라."
아쉬운 것은 지광스님과 법을 함께 청했지만, 지광스님은 나와 스승 제자
인연이 깊음으로 내가 공부하는데 시봉을 잘하라며 시봉자의 공덕을 설해 주셨다.
지광스님이 구루의 말씀을 합장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 가슴 뭉클함을 느낀다.
지광스님을 보면 진묵스님과 그의 시자 기춘이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진묵스님에게 어느날 열일곱 살의 어린 행자가 찾아오는데, 스님은 이미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 한 처녀가 스님을 사모하게 되는데,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깨닫고 처녀는 방법을 달리한다.
금생에는 여자의 몸이기에 스님을 모실 수 없지만, 다음 생에는 남자의 몸을
받아 반드시 스님을 모시리라 원을 세우고 죽는다.
그 처녀는 원대로 사내아이가 되어 진묵스님 곁으로 다시 오게 된 것이다. 생전
시자를 두지 않던 스님이 시자를 받아들이고, 특별한 성미이시라 누구와도 함께
주무시지 않던 분이, 기춘이만은 한 방에 데리고 자는 사랑을 베푸신다.
대중 스님들은 그런 모습이 못마땅하여, 어린 기춘이를 여러 가지로 괴롭히게
되고, 한날은 수백 명 대중이 먹을 국수를 기춘이에게 끓이도록 하니, 어린 행자
혼자서 가능한 일이겠는가?
진묵스님은 부엌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기춘이를 달래시고, 공양 시간에
대중방에 들어가시어, 모든 스님들 발우에 바늘 하나씩을 나누어 주고 만트라를
외운 뒤, 휘휘 저어 먹으라고 한다. 대중들이 기가 막혀 발우 속을 들여다보니, 잘
삶아진 국수가 하나 가득 담겨 있었으니...
"가고 옴이 다 인연의 소치이고, 있고 없음이 환상과 같을진대 어찌 어리석은
마음들로 지혜의 빛을 가리려 하는가?"
라고 나무라시며 나오셨다는 이야기가, 절집에는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나는 깨닫지 못하여 전생 인연은 모르겠지만, 입속의 혀 같이 시봉하는
지광스님을 바라보며, 전생 기춘이와 같은 인연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
본다.
진짜 나와 가짜 나
작은 스승 암틴에게 여러 가지 의문들을 여쭈어 보게 되었다.
나:어디에 실제적인 목표를 두고, 무엇을 바탕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요?
구루:궁극의 목표는 절대적 공과, 절대적 자비 체험에 둬야 하고 수행의 근본은
인욕으로 삼아야 한다.
나:공의 내용물은 무엇인지요? 알아듣기 쉽게 말씀해 주십시오.
구루:지복과 지락, 그리고 끝없는 에너지이니라!
다시 말해, 절대자유와 진정한 행복이 공의 실체인 것이다.
나:어떻게 하면 공의 세계를 체득할 수 있는지요?
구루:일단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모든 사고를 부정할 수 있어야만 공을 체득할 수 있게 된다.
머릿속에 입력된 모든 개념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알고 보면 가족도,
친구도, 명예도 돈도, 집도, 절도 모두가 네 생각이 빚어낸 허공 속의 그림이며
하룻밤 꿈인 것이니라.
나:공의 세계를 체험하려는 수행도 행복하게 살기 위한 몸부림인데, 모든 것이
헛된 것이면 수행은 해서 무엇합니까?
구루:지금 네 말은 허무주의 사상에 떨어진 단견이라는 것이다. 구름이 걷히면
해가 나오듯 헛된 것이 사라지면 지복과 지락, 바로 절대자유와 절대자비의
공세계가 펼쳐진다.
모든 것을 진정으로 포기할 수 있을 때 모든 것을 진정으로 얻을 수 있다.
나:인욕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으라 하셨는데, 생명마저 빼앗으려 하는데도
인욕을 해야 하는 것이며, 그게 가능한지요?
구루:지금 네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네 목숨을 버릴 수 있겠느냐?
나: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몸뚱이 하나쯤이야 뭐가 아깝겠습니까?
구루:바로 그 마음이다.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위해, 순간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진정한 인욕의 마음이다.
평생 쌓은 명예와 재산 그리고 소중한 목숨까지 빼앗으려 할지라도 수행자는
인욕해야 하며,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말을 하여서는 아니 되느니라.
수행자에게 어렵고 힘든 일은 있을 수 있으나, 안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 두도록 하거라!
참으로 깊은 용기와 힘을 주는 가르침이었다.
나:힘드시지 않으신지요?
구루:구법망구이니라. 법을 위해서는 배우는 자나 가르치는 자나 몸을 잊어야
한다.
나:감사합니다. 불법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은, 세상의 오욕락보다 수행의 법락을
더 좋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세상의 즐거움들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구루:감각의 즐거움은 몇 초 몇 분 몇 시간에 불과한 것들이니라. 또 알고 보면
실제적인 즐거움도 아니고 고통인 것이다. 영원한 즐거움과 진정한 행복은 진아
속에 있느니라.
나:진짜 내가 있으면 가짜 나도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구루:깨달음의 근본에서야 어찌 진짜와 가짜의 분별 상이 있겠느냐만, 그러나
중생들이 사는 현상계에는 가짜도 있고 진짜도 있느니라.
나:알기 쉽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구루:사람들은 몸뚱이 그리고 뇌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나 기억들을 진짜 자기인
줄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나는 엉뚱한데 앉아 있다.
가짜(몸뚱이와 뇌세포)에게 빛과 에너지를 나누어 주며, 영과 육의 뒤쪽에
조용히 앉아 있는 불멸의 존재인 것이니라.
나:그러면 어떻게 해야 가짜가 진짜가 될 수 있습니까?
구루:가짜가 사라질 때 진자는 저절로 나타나게 되어 있느니라. 절대적
자기부정과 철저한 공의 체험 그리고 깨달음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이 있으면
된다.
깨닫고자 발심한 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진짜 자기를 볼 수 있다. 동물들이 귀소
본능을 가지듯 인간도 진짜의 나, 영원한 나, 지극한 행복의 나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찾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아무리 오욕락에 젖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행복의 세계, 진짜 나의
세계를 항상 갈망하며 산다.
나:정말 진정한 행복의 세계와 영원한 생명의 세계는 존재하는지요?
구루:세상을 다 못 믿는다 해도 깨달은 부처는 믿을 수 있느니라.
분명하게 부처는 말씀하셨다.
무상 무아 일체고와 함께
진상 진아 진락을 설하셨다.
무상 무아 일체고는 가짜의 입장을 말씀하신 것이고
진상 진아 진락은 진짜의 모습을 가르치신 것이니라.
거짓 자아는 무상한 것이지만,
진정한 자아는 영원한 것
가아의 감각적 즐거움은 순간인 것들이지만
진아의 즐거움은 무한한 것이라고
가아의 생명은 소멸되는 잠깐의 허상이지만
진아의 생명은 단절 없는 영원의 실체인 것!
먹으면 꼭 뱃속이 우굴거리는 쇼우(티베트 요구르트)를 통역하는 보파림포체가
주는 대로, 한 공기를 다 먹고 나니 걱정이 생긴다.(중간에 화장실에 가야 할까봐,
화장실이 십 리는 더 되는데...)
지금 내 정신이 아닌 것 같다. 분명 맑고 밝은데, 어떤 큰 힘에 들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인 것은...
나:계속할까요?
구루:계속하라.(잘 웃지 않으시는 분이 씨익 웃는다)
나:진아를 찾아내는 근본의 방법이 인욕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조건 참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구루:자네의 말에는 어폐가 있구나.
무조건 참게 되면, 분노와 원한이 쌓여 심화를 일으키게 된다.
스스로 안정시키고 비춰보는 것이 함께 되야 하느니라. 바깥으로 끄달리는
--밖으로 향해 있는--모든 생각이나 사념들을 안으로 돌려 고요히 녹이고
녹아지는 모습들을 잘 살펴야 하느니라. 대승, 소승, 금강승, 모든 수행들이 이
지와 관의 두 길을 벗어나 있지 않느니라.
나:인욕하는 방법을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구루:저 인도라는 영적인 나라가 중국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달라'라는 선의
명인이었고, 티베트에 준 훌륭하고 소중한 선물은 티베트 불교의 영원한 스승
'아티샤'라는 인물이었다.
그 아티샤의 가르침을 따르는 티베트 불교 까담파라는 법통에서도, 인욕을
수행의 제일 덕목으로 삼고 있다.
그 아티샤의 가르침을 전해주마.
인욕 수행에는 네 가지 길이 있다.
첫째, 화살의 표적이 되는 길
둘째, 연민의 마음을 갖는 길
셋째, 스승으로 여기는 길
넷째, 삶의 참모습을 관하는 길이다.
첫째에 대해 생각해 보자.
네가 만약 화살의 표적이 되지 않았더라면, 화살에 맞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시의 대상이 되지 않았는데도 화살을 맞았다면, 그것은 진정 화살의
목표가 되었던 업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너에게 화살을 겨누고 해를 끼치는 자가 있더라도 화를 내거나 원수
갚을 생각을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가슴에 화살을 꽂는 말이나 행동은, 반드시 다시 돌아와 네 가슴에
꽂힐 것이다.
이것이 업의 부메랑 원리이며 인과의 법칙인 것이다.
화살은 결국 나의 악업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 인욕을 하는 것이 그
첫째이니라.
둘째 연민에 대해 생각해 보거라.
한 미치광이가 온전한 사람을 다치게 했을 때, 온전한 사람은 미치광이에게
자기가 입은 만큼의 피해를 돌려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냥,
"에이 재수 없네!"
라는 말로 그칠 것이다.
너를 실제로 해코지 하려는 사람도 알고 보면 정상인이 아니다.
가만히 살펴봐라. 그는 스스로 옭아맨 분노와 광기, 어리석음과 탐욕으로 날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 참 불쌍하다. 안됐구나! 스스로는 얼마나 괴롭겠는가?"
라는 연민심을 내야 하느니, 이것이 두 번째 인욕의 길이니라.
셋째, 참된 삶의 길로 나아가도록 채찍질을 해줄 구루가 없다면, 어찌 진정한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너를 해치려는 적이 없다면, 인욕의 실천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해코지하고 저주하는 자를 인욕을 가르쳐주는 스승으로 삼아라.
너에게 인욕 수행의 길을 열어주고, 깨달음의 길을 터준 그들에게 진정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내야지, 화를 내거나 원수 갚을 마음을 내서는 아니
되느니, 이것이 인욕의 세 번째 길이니라.
마지막으로 우리의 근본 실체가 공성임을 깨달아서, 제 그림자를 보고 짖는
강아지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제 마음의 그림자, 거짓 나의 환상에 화내고 성내는 어리석음을 지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꿈속의 적들에 화를 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욕함으로 얻어지는 공덕은
측정하기 어렵다. 우리가 남에게 해침을 당할 때에, 보다 높은 성숙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는 자각이 생기고, 그 자각을 바탕으로 수행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고로 우리를 해하려는 존재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모든 욕됨을 이렇게 녹이고 관하면, 진정한 행복의 길로 반드시 나아가게 되어
있느니라. 이것이 인욕의 네 가지 길이니 인욕하고 인욕해야 할 것이다.
나의 구루는 내 손을 유리속처럼 들여다보고 계신 것이다. 아니 지나온 나의
과거까지, 더 나아가서 내 자신도 모르는 내 영혼 속의 비밀까지 다 알고 계시는
것 같다.
두려움과 경외감마저 생긴다.
나도 모르게 구루에게 합장 울리는 마음은, 다른 의문과 질문 그리고 잡다한
생각들마저 녹여버린다.
나무지장보살 마하살.
6. 악마에게 내 마음속 한 자리를
두 분의 구루
나에게는 두 분의 구루가 계신다. 한 분은 안잠라(86) 한 분은 암틴라(76), 큰
스승 작은 스승이란 호칭을 쓰지만, 그것은 순전히 연령에서 오는 구별이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큰 스승, 안잠라는 구십을 바라보는 고령이신데도, 정정하셔서 무문관의 가장
중요한 수행 의식이나 불상, 염주, 도르제 등 불구들의 점안 의식은 반드시 큰
스승의 손을 거쳐야 한다.
요새는 아침 9시쯤 큰 스승님께 올라가 한 시간 정도 논다(?). 옆에서 바늘도
꿰어 드리고, 부처님 복장 속에 들어가는 오곡들과 오폐도 가려 드리며, 경전을
접어 드리는 일도 하지만 스승을 방해하는 장난질은 주된 역할이다.
완전히 나는 어린애가 된다. 나이 먹은 제자가 뭐가 그리 귀여운지, 좋아하시는
모습이 이상스러울 정도다. 이렇게 느지막에 스승을 두 분씩이나 모시고 살 수
있음이 무슨 복인지 두려움마저 든다.
스승께 드리려고 바짝 말라 돌덩이 같은 인삼을, 반나절이나 씨름하여 잘게
부수고, 물 끓이는 포트를 달람살라까지 가서 빌려와, 함께 싸들고 덜렁덜렁
스승님께 올라가는 내 모습이 내가 보아도 우습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함이, 그것도 제자가 스승을 섬길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느껴 보며, 찡해 오는 코끝을 만져본다.
좋아하면 마마 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하였던가!
분명 구십이 다 된 노인에다, 별로 씻지도 않고 머리와 수염은 평생 깎지도
않은 홀아비인데, 전혀 노인 냄새도 홀아비 냄새도 나지 않으며, 오히려 향긋한
전단향기가 풍기니, 내 예민한 코가 동서남북을 잃은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볼 때도
있다.
방이 너무 작은 데다 흙과 먼지를 더럽게 여기지 않는 분들이기에, 스승의 의자
겸 긴 침대에 앉았다 일어나면, 목재소 톱밥이 궁둥이에 묻어나듯 온갖
잡동사니가 먼지와 함께 붙어난다. 그것마저 정겹게 여겨지니...
모기란 놈이 반질반질한 내 머리를 여러 방 쏴서 긁어대면, 손바닥에 침을 뱉어
가려운 부분에 문질러 주시는 스승의 정을 받으며,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맛보고
있다.
또 한 가지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기에 비밀로 해오는 사실이 하나 있다.
수행에 대해 꼭 알아야 할 부분이 생기면 어김없이 우리(스승과 나)는 꿈속에서
만나 문답을 하고 해답을 얻어낸다.
내가 배워야 할 수행의 틀들은 작은 스승 암틴에게 전수받지만, 작은 스승에게
풀 수 없는 의문 역시 이쪽 꿈속에서 해결을 하고 만다.
나만 아는 일인지, 스승 역시 느끼고 계시는 사실인지는 확인치 못하였으나,
숨겨둔 보물처럼 조심스럽게 가슴에 담고 있다.
알고 보면 밀교 수행자들에겐 스승과 제자가 꿈으로 연결됨이 당연한 것이기에,
놀랄 일도 비밀스러운 것도 아니겠으나, 나와 큰 스승은 아무런 훈련도 없었고
주고 받는 만트라도 없는 상태이기에, 이런 일들이 생김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삼생이 함께 하고 꿈과 현실이 함께 하는, 특별한 세계에 와 있음을 생각하며
정신을 다시 차려보지만, 지금의 나는 양호한 에너지와 가장 선명한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작은 스승 암틴
작은 스승 암틴!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지니고 계신다.
인자함과 어린아이 같은 부드러움은 물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험도
갖추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지니고 계시다.
당신의 전생 스승이며 이곳 주인인 캄툴림포체와 다른 뚤꾸들, 그리고 무문관
요기들과 하이라마들, 인연 닿는 외국인까지 가르침을 주신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스스로를 죄업 많고 박복한 인간이라고 투정도
해보지만 어떤 분말대로 복인 중에 복인인 것 같다.
큰 스승님은 물론 작은 스승 역시 나에 대한 사랑이 지극함을 깊이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주위 라마들은 물론 인연 닿는 한국 스님들까지 밉지 않은 질투를 보내고 있다.
작은 스승에게도 우리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두드러진 부분이 있으시다.
중요한 행사 때마다 끊임없이 만트라(주문)를 외우며 하늘을 향해 손짓 눈짓
여러 가지 수인을 지으시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한 날은 하도 궁금하여 시자인
보파림포체에게 무얼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구름을 쫓고 비바람을 잠깐 멎게
하신다고 대답했다.
정말로 황당한(?) 대답이 아닐 수 없다.
일반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비일비재한 이곳 생활이지만 또 하나의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기막힌 것은 스승의 만트라 주문이 둥이라는 무거운 악기 소리와 어울려 하늘에
번질 때면 어김없이 비바람이 멎었으니... 이곳 주민들이나 라마들에겐 당연한
일상이고 보니, 이상하게 생각하는 내가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논리적이고 평면적인 사고 훈련을 받아온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분석하고 따져보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다. 스승이 하늘에 대고 만트라를 외울
때마다,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며 나름대로 논리적인 추론을 해본다.
문제의 열쇠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외워대는 만트라의 에너지와 영혼마저
후려낼 것 같은 티베트 특유의 악기 소리들이 어우러지고, 그 소리들을 큰
에너지로 엮어내는 스승의 만트라가 작용하여, 하늘의 구름과 바람을 달래는 것
같았다.
어떤 사물이든--그것이 동식물이든 생명 없는 무생물이든--고유한 파장을
지니고 있는데, 그 파장을 풀어내는 열쇠의 소리 만트라가 있어 그 열쇠의 소리를
아는 사람은, 사람의 영혼은 물론 무생물까지도 조종할 수 있음이 과학으로
증명되고 있다 한다.
이런 원리에 입각하여 생각한다면 넓은 지역은 어렵겠으나 한 마을 산골
동리에서야, 하늘 구름 달램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라고 어줍잖은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소리의 비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신비한 힘이니, 마을
꼬마들까지도 작은 스승 암틴의 이런 능력을 백 퍼센트 믿고, 암틴이 주문을 외울
때, 서슴없이 따라 할 수 있는 집결된 힘이 가장 큰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사도 초월하고 수많은 생들의 벽을 뚫을 수 있는 믿음의 힘이, 기상의
변화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나도
가져본다.
집중은 창조의 입구
오늘 꿈에서도 큰 스승님과 나는 장난치고 얘기하며 문제들을 풀어갔다.
나:스승님! 모든 이치가 공이라면 망상과 지혜, 해탈과 속박이 다를 리 없고,
모든 것이 환상이요 환영일진대 지옥과 천당이 어디 있으며, 할 일 없는
게으름뱅이와 죽도록 애쓰는 수행자가 뭐가 다르겠습니까?
도통하셨다는 구루도 늙고, 저도 늙어가고 그러다 갈 곳은 뻔한 곳, 무얼 위해
누굴 위해 그리고 누가 수행을 한다는 말인지요?
구루:그건 수행자의 말이 아니다.
봉사가 코끼리 다리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기둥 같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의
질문이다. 커다란 이치를 알려고 하는 자는 평면적인 생각이나,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양극단의 짧은 소견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진실을 알 수 없다.
진정한 공의 이치를 알려거든 이것을 봐라!
스승이 책을 보실 때 사용하는 커다란 볼록렌즈 확대경을 종이 위에 대고
맞추자, 빛들이 한 곳에 모아지면서 불이 번져 종이는 재가 되고 말았다.
구루:이래도 모르겠느냐?
흩어진 빛들을 모아 한 곳에 집중시킬 때 엄청난 에너지가 생기며, 그 속에서
변형의 새 세계가 창조되는 것이니 집중은 이래서 필요한 거다. 성숙과 해탈을
원하는 자들에게 노력과 수행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자신을 관조하며 바라보는 집중은 바로 이 렌즈 역할을 하는 것이다.
새로운 탄생과 창조가 집중의 수행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도 게으름뱅이와 수행자가 같느냐? 이 멍충아!
속인들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수행자들의 정신세계에도, 자기 기만과 변명의
샛길은 얼마든지 있는 거야.
초연과 게으름을 분간 못하고, 마음의 평정을 세상에 대한 무관심으로
돌려버리는 자들에겐, 거룩한 진리도 독이 될 수밖엔 없는 거야. 밖으로 향한 빛을
안으로 돌려볼 줄 모르는 자들이 어찌 공의 시계에 펼쳐지는 변형과 창조를 알 수
있겠느냐?
나:자신을 관조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또 어찌해야 합니까?
구루:그러니까 너 같은 보살 시님(?)이 있어야 하는 게야. 밖으로 향해 있는
남들의 모든 헤드라이트를 (맞아 죽을 각오 없이) 거꾸로 돌려 놓는 일이 어디
쉽겠느냐!
그런 짓을 하다가, 너도 죽다 살아남지 않았느냐?
나:스승님! 꼭 남의 아픈 데를 건드려야 직성이 풀리십니까?
구루:나는 너만 보면 약을 올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나:세세생생 그 마음 변치 마십시오.
진짜와 가짜
요사인 내가 낮에 사는 재미로 사는지, 밤에 꿈꾸는 재미로 사는지 분간이
안간다.
이제는 꿈과 현실을 둘로 보지 않는 정서 속에 깊이 묻혀 이곳을 이해하고,
밀교의 수행체계와 전법전승의 정서도 이해하게 되어간다.
경전들을 깡그리 외우고 해석한다 해도--생사가 함께 하고 삼생이 더불어
존재하며 현실과 꿈이 똑같이 비중으로 다가오는--이러한 삶에 젖지 않고는
가르침의 진수를 맛보긴 어려울 것 같다.
이 까규파의 가르침은 더욱 그러하니, 티베트 밀교 여러파 중 까규의 수행을
제일로 치는 이유도, 수행의 전통과 정서들이 올곧이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까규란 입과 입으로 소근소근, 가규가규 전해지는 뜻이라 한다. 깨달음의 진수는
구전으로 직접 전해지고 있기에, 어떤 법이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법의 전승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심전심이 아니라 이구전구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다.
오늘밤도 스승과 나는 만났다. 꿈속에서...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또 귀를 잡고 내 민둥머리에 자신의 90년 묵은 쐐기풀
같은 머리를 비비려고 용을 쓰고, 나는 손을 갖다대고 막으려고 애를 쓴다.
노인이 얼마나 힘이 센지, 허리와 머리가 좌우로 구부러졌어도, 키는 나보다
크고 팔뚝의 알통은 나보다 단단하다. 귀에 대고 소근소근, 이곳에 와 있는 외국
수행자들의 흉을 본다.
나:어른이 어찌 남의 흉을 보십니까?
구루:그러니까 네 귓속에다 살짝이 말한 거 아니냐!
나:계속해 보십시오.
구루:저놈들이 법을 훔치러 왔단 말이다. 그런데 진짜는 놔두고 가짜만
훔치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배꼽이 아파 죽겠다.
나:어떤 것이 가짜이고 어떤 것이 진짜입니까?
구루:그거야 네놈이 훔치려는 게 진짜이고, 저 코쟁이들이 훔치려는 게
가짜이지.
나:그럼 제가 진짜 도둑인데 걱정 안되십니까?
구루:이 멍충아! 법이란 태양과 같은데, 불을 붙여가는 놈은 봤어도 태양을 들고
가려는 어리석은 놈은 아직 못 봤다.
나:그럼 코쟁이들에게도 진짜 보물을 가르쳐 주시죠.
구루:놔둬라! 다 잘 돌아갈 것이다. 저 어리석은 놈들이 욕심은 대단하다는
말이다.
'뚬모열'로 눈을 녹이고 물을 끓인다 하니, 이 더운데 저렇게 땀을 흘리며 물
끓일 생각밖에는 하지 않는구나. 물 끓이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돈 몇 푼 주고
전기 주전자 사면 아주 간단한데...
공중 부양(앉아서 뜨는 것)의 법이 있다 하니, 방석에서 뜰 생각만 하고 앉아
있구나. 비행기 타면 더 좋은데...
유체 이탈과 분신의 법이 있다 하니, 몸을 여러 개 만들어 보려고 비지땀을
저렇게 쏟고 있구나. 지 마음들이 이미 천만 가지 모습으로 신통변화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있으니, 얼마나 우습겠나 생각 좀
해봐라!
나:어찌 할아버지가 애들 같으십니까? 비웃지 말고 좀 가르쳐 주시지요.
구루:그것도 걱정할 것 없다. 진정한 법은 깊고 묘한 것이라 다 잘되게 되어
있느니라.
나:뭐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저 놈들이 신통한 능력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저러고 있지만, 저렇게 힘쓰는
자체가 자신의 욕심--자아(에고)--을 죽이는 훈련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단
말이다.
저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지들이 훔치려 했던 보물이 가짜인 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단다.
자신들이 구하던 신통 변화의 힘을 사용할 이유와 필요가 없음도 알게 되고,
자비와 공의 세계로, 불성과 영성의 빛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음이 밀법의 신묘한
힘이란다.
나:스승님도 어지간 하십니다. 돌아가셔서 좋은 데 못 가실 겁니다.
구루:그것도 걱정 안한다. 나는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보장돼 있다.
나:무슨 백인데요?
구루:너 같은 지장보살을 제자로 뒀는데 뭘 걱정하겠느냐?
나:....
어린 림포체(환생자)의 눈
이 곳에는 여덟아홉 살에서부터, 열대여섯 살까지의 어린 라마들이 육칠십 명
가까이 살고 있다. 말 그대로 어린아이들이지만 사는 모습들이 여법하고 의젓하며,
자신이 해야 할 부분들을 너무도 익숙하게 해내는, 깨물어 주고 싶은 모습들이다.
때로는 웃고 울고 장난치고 싸우기도 하지만, 다투는 모습조차 귀엽고 이쁘다.
티베트인들은 자식이 둘만 돼도 한 명은 일찌감치 절에 맡겨 라마로 키우며,
그것을 축복이자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고 산다. 그러기에 티베트인의 반 정도가
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승가 교육이 끝나면,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여 절 식구들을 먹여살리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의 속가집 가업을 돌보기도 한다.
속가 일들을 도우면서도, 라마의 자세를 잃지 않고 지켜야 할 계율과 규율들을
지켜나가는 모습은, 승속의 구분은 있되 승 속의 단절은 없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잘못 보면, 승속의 구분이 없고 청정한 계율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계율을 파해야 할 입장이 되면, 자신의 구루나 하이라마에게 상의하여 떳떳이
환속도 하고 결혼도 한다. 자신도 속이고 주위의 눈도 속여가며 자기 기만의
이중적 생활은 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나 분위기가 아니다. 체면이나 위신 권위나 위의
등 껍데기 삶보다는, 자연스런 인간의 삶을 최대한 긍정하고 인정하는 가르침과
계율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종교적인 규범이나 권위 등으로, 자연스런 영적인 삶을 규제하려 들지 않는
부분들이, 티베트 불교의 수승한 몫이 되는 것이다. 의도와는 달리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흐르고 말았다.
이곳 티베트인들은 속인이건 라마이건(특별한 기도날이나 기도를 담당하는 라마
외에는) 늦게 일어나는 관습이 있어, 여섯 일곱시가 돼야 일어난다.
그리고 한 방에 둘셋씩 기거를 하는데, 큰 라마 한 명에 어린 라마 둘이 짝이
된다. 큰 라마가 어린 라마들을 보살피라는 배려이겠지만, 때로는 거꾸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오늘 아침 경내를 돌다가 다투는 소리에 다가가 보니, 어린 라마 둘과 큰 라마
하나가 담요를 밀고 당기며, 승강이를 하고 있었다.
큰 라마는 담요를 몸에 둘둘 감고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려 하고, 아홉열 살의
어린 라마 둘은 어떻게라도 일어나게 하려는 안달의 싸움이었다.
어린 라마가 큰 라마를 달래며, 오늘 뿌자(불공) 준비가 자기들 담당인데 빨리
일어나야 된다고 조용을 하고, 큰 라마는 일분만 더 자겠다고 애원을 하고...
너무도 정겨운 풍경에 넋을 잃고 서 있었다. 그리고 어린 라마들 중에는
림포체라고 불리는 어린 뚤꾸(환생자)가 네다섯 명 정도 이 콤파에 산다.
이들은 하이라마나 큰 림포체, 아니면 독덴과 함께 기거하며 매일 몇 시간씩
특별 지도를 받는다. 다른 어린 라마들과 같이 뿌자도 하고 놀기도 하지만 특별한
대우와 특별한 교육을 시킨다.
이들이 쓰는 경전이나 책 등 일용 도구도 일반 라마와는 다르며, 경전만
하더라도 같은 내용이지만 종이 질이 틀린 것으로 제작되어 있다.
옛날 왕자와 평민들의 차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라마들이 질투나 시기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자신들도
열심히 수행하면 다음 생에 뚤꾸로 태어난다는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이며,
금생에도 공부를 성취하면 독덴림포체--깨달은 림포체--의 길이 열려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 와서는 어린 림포체들이 애들로 보이거나, 다른 문화가 만들어낸
특별한 사람 정도로 생각되었지, 거룩한 라마로 보여지지 않았다.
처음 와서 겪은 일인데, 큰 스승님의 옆방에 의학으로 성취한 의사 라마의 방이
이어져 있다.
내가 스승방에 올라가는 9시쯤이면, 꼭 낭랑한 독경소리가 그 방에서
흘러나온곤 했다.
어느날 빼꼼이 문을 열고 봤더니, 아주 어린 라마가 몸을 좌우로 흔들며
베차(경)를 신나게 읽고 있었다.
모습이 너무 귀여워 들어오라는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가, 볼을 한 번 꼬집고
이마를 부딪쳤다.
장난스런 마음으로 그의 눈을 쳐다보던 나는 그만 섬칫 놀라고 말았으니,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눈은 결코 어린아이의 눈이 아니었다. 아랫사람을
꾸중하는 위엄과 당당함이 서려 있는, 어른의 눈이었다. 참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경솔함을 사과하며 합장을 하니, 다시 평상으로 돌아가 미소를 보낸다. 그때
이후론, 아무리 어린 림포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없었다.
한국에 왔던 달라이라마의 스승 링림포체의 어린 환생자를 텔레비전에서 보았을
것이다.
그 의젓하고 당당함과 부드럽고 인자함이 금생의 훈련과 공부만으로 가능한
것일까? 서너 살의 어린 림포체들을 보며, 기이하고 신비함을 넘어 인간 의식의
단절없는 영속성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아, 환생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어간다.
다섯 살짜리 림포체가 수천 명의 사람들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내리는 모습,
그것도 몇 시간씩을...
그러다 배고프면 단상에서 내려와 엄마의 젖을 빨고, 다시 올라가 또 몇 시간씩
그 행동(축복을 내리는 행동)을 하는 모습은, 결코 금생의 훈련에 의한 것이
아님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어린 림포체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던 어느 보살이, 꼭 한번 안아보고 싶다고
하니,
"너는 여자, 나는 수행자!"
그래서 안된다고 고개를 흔드는 모습, 그러면 삼천 불을 보시할 터이니 딱 한
번만 안아보자고 간청을 하니--삼천 불은 가난한 티베트인이 평생을 살 수 있는
거금--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하며 생각하다가, 결국 안된다고 거절하는 것이
이제 겨우 말하고 걷는 어린아이에게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일까?
나는 이런 일들을 접하며, 개인의식의 연속성과 환생은 가장 명백하고 확실한
자연 현상임을 믿게 되었고 수행을 통해, 윤회와 환생을 초월할 수 있는 해탈의
길도, 분명히 열려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우리들이 이 의식의 연속성과 환생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순간적인
욕구들과 보잘것 없는 것들에 끄달리며, 귀중한 삶을 낭비하다 가게 되는
것이라고도 생각을 해보았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오늘도 꿈에 큰 스승님을 만났다.
여전히 장난꾸러기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달려들어 스승님 머리칼이 적은 쪽으로 박치기를 하여
인사의 예를 치렀지만, 적은 머리칼이 더 까칠까칠하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이번에도 내가 당한 골이다.
몰랐지! 하는 표정이 너무도 역력하여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스승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의 진리를 말씀하시면서 또 어떻게 개인의식의 연속성을
인정하여 환생을 말씀하시는지요?
구루:어허, 또 수행자 같지 않은 망상을 피웠구나.
제행은 무상하고 제법 또한 무아하다는 말씀(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고, 모든
존재가 고정된 틀이 없다는 말씀)은 무한한 변화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작은
모양이나 소아에 가두어 두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통해 흐르는 천변만화의 변화에 에너지를 한 곳에 묶어 두지 말라는
말씀이지, 그게 어디 아무것도 없음과 단절을 가르치신 말씀이냐? 어찌 또
평면적인 생각으로 영원의 진리를 묶으려 하느냐?
모든 것이 항상하지 않아야 하지, 만약 항상한다면 어떻게 변형의 조화가
이루어지며 영원한 흐름이 지속되겠느냐?
고정된 실체가 없어야지, 고정된 실체가 있다면 생성소멸의 무한한 변화와
창조가 어찌 이루어지느냐?
무상과 무아의 이치가 있기에 창조가 이루어지며, 인간들의 삶의 장도 펼쳐지게
되는 것이니라.
또 한 가지 어떤 이치가 어떻게 작용하든 우리들의 사는 모습은 우주의 엄연한
부분임에 틀림없으니,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니라.
불꽃 없는 등잔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본체계에 대한 깨달음이 중요하듯, 중생들의 삶의 장인 현상계를 긍정할 때
진리라는 것에도 의미가 붙게 되는 것이니라!
우리들이 모든 것을 바쳐 수행하는 목적이 끊임없는 진화와 성숙의 창조이지,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고요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허무가 아니다.
제행무상, 제법무아의 진리를 잘못 알고 허무와 단절의 무기공에 빠진다면,
자멸과 소멸의 무서운 상태에 떨어지고 만다. 자멸과 소멸은 잘못된 해방이며
엉터리 해탈이기 때문이니라.
너도 한때는 허무와 무기공에 빠져 평생을 그르칠 뻔하였잖느냐? 이르고
이르노니! 진정한 자기 부정이 아니라 거짓 자기의 부정이 돼야 한다.
영원한 흐름의 소멸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은 것의 소멸이 바로 제행무상
제법무아의 도리이니라!
모든 것이 부질 없고 쓸모 없어 살아볼 가치도 없는 세상이라는 단견이나, 모든
것이 영원한 것인 양, 쌓고 빼앗고 탐착하는 상견에서도 벗어나야 하느니라.
나:구루는 구루시네요.
어찌 세 속을 그리도 잘 꿰뚫어 보시고, 같은 얘기를 수십 번 반복하시는
수고를 하셨습니다.
그냥 제행무상, 제법무아이면 됐지...
악마에게 내 마음속 한 자리를
갑자기 부처님들이 뵙고 싶고 대법당 심장탑에 참배하고 싶어져, 먼저 위에
계신 서른일곱 분의 부처님께 향 사르고 내려와 대법당 부처님들에게 예배하며,
이곳에 와서 수행할 수 있음을 감사드렸다.
그리고 이 도량을 건립하신 캄툴림포체에게 다시 한번 합장 배례하였다.
심장탑 앞에서는 불에도 녹지 않는 자비 가슴 지니게 해달라고 감히 청을 못
드렸지만, 세세생생 자비 행자로 살겠다고 서원드렸다.
갑자기 따스하면서도 청량한 기운이 탑안에서 뻗어나와 온몸을 휘감는다. 나는
또다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온 오욕의 굴곡들이 한순간에 스치며, 무지했던 죄업과 앙금의 아픔들이
눈물로 녹아내리듯, 닦아도 닦아도 마르지 않아, 흐르게 놔두고 고개를 드니, 온
법당 부처님들은 빛을 놓으시고 어디서 스며드는지 향긋한 전단향 내음들이 법당
안을 장엄한다.
심장탑 안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윳빛 광휘가 계속 뻗어나와 몸을 감싼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잊어버리는 무아의 삼매에 들리어, 라마들이 왔다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얼마를 지났는가 눈을 떠보니, 법당과 신전을 관장하는 라마가 합장을 하고 서
있다.
라마에게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호법 신전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두 말
없이 허락하며 신전들을 열고 참배케 해준다.
티베트 콤파의 호법 신전들은 성역시 되기에, 물과 불로 몸을 정화하기 전에는
외인 출입이 금지되는 곳이었으나, 오늘의 나는 예외인 것 같다.
생각지도 않은 보물창고(?)와 오래도록 잠겨 있던 비밀함까지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으니...
비밀함에서 나온 물건들은 사람의 두개골로 만들어진 해골바가지, 제구--사람의
피, 여자의 월경, 남자의 정액, 오줌들을 담아 올리고 마시는 의식기구--와
해골잔, 사람의 다리뼈 두 개를 붙여 만든 특수한 악기, 인피(사람가죽)로 만든
작은 북 한 쌍, 손가락 발가락 뼈를 꿰어 만든 의식용 목걸이, 쉽게 볼 수 없는
밀교 특유의 불구들이었다.
이중삼중으로 되어 있는 보물창고의 함들 속에는, 계율상 설명 할 수 없는
제구들이 가득 담겨 있다.
왜 나에게 이런 것까지 보여주느냐 물으니 자기도 모른단다. 그냥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한다. 아마 상식적인 일상에서 이곳을 보게 되었더라면, 이질감과
거부감은 물론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괴이함도 음침함도 놀라움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환희스런
마음으로 볼 수 있음은, 대법당에서 자비방광의 에너지들로 정화의식을 치렀기
때문이리라!
혹여 티베트 밀교를 오해할까봐 부연을 해두고 싶다.
두개골과 뼈, 시체 등을 사용하는 것은 중생들의 교만을 꺾고, 마시고 짝짓는
오욕락이 인생의 최고 가치인 양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일깨워주기 위한 방편의
도구인 것이다.
음욕이 강한 사내의 침대 밑에는 여자 시체의 뼈다귀를, 총각귀신이 붙은
계집의 이부자리 밑에는 남자의 xx을 만다라로 설치하여 상처입은 바르도를
치료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려는 밀교 특유의 처방이며, 티베트 불교의
방편들인 것이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이곳의 수행자들은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로 받아들인다.
이들이 죽음이나 귀신, 잡신, 지옥 세계의 악신들마저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도, 언제나 죽음의 상징들인 해골이나 뼈, 시체 등을 일상의 신앙과 수행의식
속에 가까이 접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어린 라마들도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고, 공동묘지의 유령 얘기마저도 아무
두려움 없이 들어 넘긴다.
귀신이나 악마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 반대되는 적대되는 존재들에게도 내
마음속 한 자리를
내어 줄 때, 두려움과 공포 미움과 싫음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두려움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밀어낼 때 생기는 에너지인 것이니, 죽음마저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공포의 관념은 우리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화의식
큰 스승님께 올라갔다.
서로 보고 씩 웃는다.
다른 때와는 달리 박치기 할 생각을 똑같이 잊어버린 것 같다.
참 묘하다. 이것을 마음과 마음이 통해 있다고 하는 걸까?
스승 곁에 가만히 앉아 그가 돌리는 염주 반대편을 잡고 호흡과 리듬을 맞추어
본다.
조용히 눈을 감고 스승의 만트라 속도를 가슴으로 재 보며 염주 알을 굴리니
스승의 심장 박동이 느껴져 온다.
점점 스승의 침묵 세계로 내 모든 것이 흡입되어 들어간다.
한없는 희열과 다스함에 젖어 든다. 찢기고 할퀴어져 상처투성이인 내
바르도(의식체)의 온갖 부분을 스승의 자비 에너지가 어루만진다.
상처들이 아물고, 막히고 찌그러진 부분들이 건강한 제 모습으로 돌아가며,
에너지의 흐름이 활발히 소통된다. 스승과 나의 에너지는 커다란 하나의 흐름이
되어, 또 다른 큰 흐름의 에너지에 동화된다.
이것이 스승의 가 피라고 하는 것일까?
밀교에서 말하는 전이와 공명을 통한 제자에게 내려 주는 스승의
정화의식이라는 걸까?
분명 수십 겁의 때를 씻은 듯한 가슴이다.
얼추 한 시간이 넘게 흐른 것 같다. 두 사람은 또 씩 웃으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박치기를 하고 만다. 이건 또 어떤 조화일까? 이것은 평소에 하던 박치기가
아닌, 설명 힘든 에너지의 전달이다.
멍하니 쳐다보니 나의 귀를 잡아당겨, 또 한 번 박치기를 하는 바람에 제
정신이 돌아왔다.
스승은 내 공부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이런 식으로 나를 도왔고, 가물거리는 내
영성의 빛에 활력의 에너지를 넣어 주었으며, 가슴 밑바닥에 눌려 있던 분노와
원망과 살기마저 녹여 주었다.
그리고 우울과 무기력은 물론 인간들에 대한 애정 포기 등, 치유되지 않던
영혼의 상처들을 한 곳 한 곳 치료해 주셨다.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고, 추상적이거나 시적인 표현이 아니며 책을 쓰기
위한 허구도 아니다.
'왕 입문식, 수계의식, 정화의식, 세례의식
여기 와서 제일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 '왕'이라는 입문식 절차였다.
왕이란 티베트 밀교 전통의 입문식 내지 수계의식, 세례의식, 정화의식 같은
것인데 왕을 받아야지만, 예비 수행을 마치고 본수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왕은 나의 스승들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고, 왕을 줄 수 있는 림포체가
따로 있는 것이다. 비록 형식상의 절차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왕을
주는 림포체와 왕을 받는 사람은 사제지간이 되어, 세세생생 영적으로 묶여지는
커다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나는 왕을 받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고충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승가에 들어올 때--반드시 부처님으로부터 깨달음의 계를 직접 받기
전엔--어떤 형식적인 계도 받지 않으리라는 맹서를 스스로에게 했었다.
이 어린애 같은 맹서 덕분에, 한국에서 승려생활을 하는 동안 겪어야 했던
고충은 또 하나의 책을 써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참으로 무모한 맹서였지만, 부처님께 진정한 깨달음의 계를 받겠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수행을 놓지 않은 원동력이 되고, 어렵고 힘든 고비마다 나를 살려내는
힘이 되어 왔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자신의 맹서를 깨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을 줄 수 있는 림포체도 은근히 왕 받기를 권하였고, 주위 사람은 물론 한국
스님들마저도 왕을 받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초발심 때 멋모르고 한 무모한 맹서였다고 돌이켜 생각도 해보았으나,
나름대로의 맹서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은 나를 수행자로 키우고 살리는 힘이 되어
왔으니, 어찌 그 맹서를 쉽게 버릴 수 있겠는가다.
이러한 개인적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행동을 이해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어떨 땐 나도 내 자신이 이해가 안 가고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다.
남들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을 나는 무겁게 생각하고, 남들이 소중히 여기는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사는 방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내 고집스럽고 꽉 막힌 부분이 스스로도 답답할
때가 있다는 얘기다.
모두를 왕을 받아야 한다고 권하였지만, 두 스승님들만은 권하지 종용하지도
않으셨으나 고민은 고민이었다.
몇 백 년을 지켜온 이곳의 계율과 규칙이 나로 인해 고쳐지거나 깨질 리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의 약속도 깰 수 없고, 난감한 입장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배짱 반 포기 반의 마음을 먹게 되니 심사가 좀 편안해졌다.
이곳과의 인연이 정말 깊고, 이곳의 공부를 하게 될 운명이라면 무슨 수가
생겨도 생길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비록 좋은 수행처이고 훌륭한 스승들이
계시지만, 공부할 곳이 이곳뿐이겠는가? 아니면 내가 확철대오 할지도 모르니,
인연에 맡기기로 하고 공부를 이어갔다.
원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다.
왕을 받지 않고도 본수행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었고, 본수행인 마하무드라
행법은 엄청난 가피와 에너지로 나의 새로운 탄생, 나의 변형에 불을 붙였다.
가고 오는 것도 잊어버리고 시간도 공간도 놓아버린, 법열의 환희 속에 날들은
흘러갔다.
밀교의 분위기
정서란 분위기가 무르익어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는 에너지의 파장을
말한다.
분위기에 따라 우리는 기쁠 수도 슬플 수도 있듯이, 분위기라는 정서는 인간
변형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한국엔 단일민족이 빚어낸 한국적 정서가 살아 있고, 미국에는 온갖 잡다한
인종이 함께 만들어낸 합중국 정서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랑의 분위기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사랑의 정서는 개념이 아니라 실체적인 느낌이며, 에너지들이고 말이 필요 없는
신비한 힘인 것이다.
오가는 느낌과 에너지에, 다른 말이나 설명이 끼여들면 신비한 분위기가 깨짐은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리라. 밀교의 정서가 바로 이러한 것이다.
구루(스승)와 첼라(제자) 사이 말과 글을 떠난 비밀스런 에너지가 오고갈 때,
설명이 끼여들 수 없는 변형의 장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밀교는 철저히 드러내지 않고 밀밀히 전하는 것을 제일의 교리로 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밀교의 정서를 받아들이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미
만들어진 한국 수행자의 정서와, 한국인의 의식을 뛰어넘는데 노력의 한계까지
느껴야 했으니 말이다.
내가 전수 받고 익힌 수행 법들을 글로 자세히 전하고 싶지만, 밀교를 배우는
밀교 행자로서 지켜야 할 약속들이 있고, 비밀을 풀어놓음으로 해서 신비의
에너지가 해체되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 같기도 하여 망설여진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의 수행이 익어, 밀교의 교리와 수행 그리고 방편들을,
한국인의 정서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을 때가 반드시 오리라고 믿는다. 그때까지
묵묵히 정진해 갈 것이다.
마하무드라의 오계
마하무드라 수행자가 지녀야 할 다섯 가지 마음가짐(계율)을 작은 스승께서
말씀하여 주셨다.
첫 번째, 마하무드라 수행자는 안으로 닦아야 할 심법과 밖으로 닦아야 하는
행법을 쌍으로 지녀야 한다.
심법이라 함은, 우주만물의 본성이요, 실체인 공성을 확실히 이해하고 관하면서
산란함을 녹이는 공부를 말함이니라. 공성은 바로 불성이요 최고의 행복과 최대의
낙 그리고 영원한 에너지가 구족된 나의 실체이다.
행법이라 함은, 다겁생을 밖으로만 구하고 치닫던 마음들이 되어서, 안으로 공한
이치를 비추어 보기가 쉽지 않으니, 기도. 염불. 주문 등은 물론 육바라밀
팔정도를 닦아, 그 복덕의 에너지로 마음의 방향을 공성의 본체로 돌리게 하는
법을 말함이니라.
심법을 바탕으로 행법을 닦아야 하며, 행법을 근본으로 심법을 익혀야 함이
대성취로 나아가는 길이 되느니라. 이것이 마하무드라 행자가 지녀야 할 중요한
첫 번째 계율이니라.
두 번째 기켜야 할 것은, 무상살귀가 일초 후에 찾아올지 모른다는 마음가짐을
지니는 것이니,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바로 즉석에서
닦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명이 짧은 사람은 엄마 뱃속에서도 죽고 걸음마 전에도 죽으며, 자다 죽고 먹다
죽고 길가다가도 죽는다.
혈기 왕성한 삼십대는 물론 큰 일을 해야 할 사오십대에도 죽기 마련이니,
시간을 미루지 말고 닦아야 한다는 계율이니라.
세 번째는 의, 식, 주를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 마음가짐이니, 내일을
걱정하면서는 수행이 제대로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주인없이 배회하는 길가의 소나 하늘을 나는 새, 야생의 풀 한포기조차 내일
먹을 것을 걱정치 않는데, 항차 수행자가 내일을 두려워하여, 계를 모으고 쌓아둘
창고와 집을 마련하는 일은 잘못된 것이다.
수행자의 근본이 지족임을 잊지 않는 계율이다.
네 번째. 하늘 위쪽 스승들의 삶을 본받아 살아야지 아래쪽 마을 잘 입고 잘
먹고 잘 노는 속인들 삶을 본보고 살아서는 안된다.
영원한 행복과 단절없는 생명의 영속을 이상으로 삼는 삶이 되어야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순간의 쾌락과 허무한 욕망을 쫓는 삶이 되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네 번째 지켜야 할 계율이니라.
마지막 계는, 오로지 일직심으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절대 행복을 찾는
방법인 수행에 몰두해야 함이니, 두 바늘로 옷을 깁지 못하고 산란한 마음으로
궁극의 목표를 이루지 못함을 알아, 최선을 다하는 수행으로 다섯 번째의 계율을
삼느니라.
이 오계를 지니고 행함이 마하무드라 행법을 성취하는 근본이고, 또한 구경임을
알아야 하니 철저히 지켜야 하느니라.
생명을 연장하는 단약
큰 스승 안잠이 길러 낸 제자 중에 '샘도'라는 요기가 있다.
이 분은 의학으로 성취한 사람이며, 아직도 스승님 옆방에 살며 스승을
시봉한다. 67세란 나이건만 나보다 더 젊고 건강하다.
이 분이 하는 일은 온갖 기이한 약초들을 채집해다가, 부수고 자르고 다리고
말려서 만병통치의 단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곳의 라마들과 속인들은 물론 다른 곳의 승속들도, 심한 병이 들면 이 분을
찾아와 약들을 얻어간다.
이 요기는 큰 스승 방에 올라갈 때마다 만나게 되지만, 기분 나쁠 만큼
조용하고 말이 없다.
오늘도 스승님 방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두 분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아무 설명도 없이
자기 방으로 가잔다.
큰 스승의 눈빛이 따라가라는 것 같기도 하여, 그의 방으로 끌려(?)갔다. 아무
말 없이 차 한 잔을 내놓기에 무심코 마셨다. 그러나 차맛이 좀 이상했다.
티베트인들이 즐겨마시는 것도 아니고, 이곳에서는 처음 맛보는 차였지만, 맛이
문제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할지가 궁금하였다.
차를 다 마시고 앉아 있는데도 눈만 감고 아무 말이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
없어, 하실 말씀 없느냐고 묻자 그만 가보란다.
싱겁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으나, 통역까지 불러 그의 쓰디쓴 차대접의 의미를
물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잊어 버리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계속되는 그의 차대접이었다.
부담스럽고 이상한 일이었지만, 딱히 따질 일도 캐볼 일도 아니기에 스승님을
찾아뵐 때마다 그의 방에 들러, 차를 마시고 나오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갔다.
오늘도 무의식적으로 그의 방에 들어가 차 줄 때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차를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때나 저때나 한참을 기다려도 그냥 눈 감고 선정에
들어 있을 뿐이다.
'오늘은 중요한 공부 때문에 차 대접을 거르는 모양이구나.'
그러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멀뚱히 앉아 있다가, 싱겁게 나오는
혼자만의 해프닝이 계속 되었다.
차 공양이 끝난 것으로 판단하고 다음부터는 그의 방에 들르지 않게 되고 그
뒤론 그 일을 잊어 버렸었다.
달람살라에서 올라온 xx스님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스님 이상하네요. 우기철이라 달람살라는 물론 이곳 따시종에도 유행성 감기와
환절기 병들로 온통 몸살들을 앓고 있는데 왜 스님만 멀쩡하시죠? 오히려 혈색도
좋으시고 더 젊어지신 것 같으니 불로초라도 잡수셨어요?"
문득 샘도 요기의 약차 생각이 난다.
이제 생각하니 그 약차를 얻어마시면서부터 가부좌하고 앉을 때마다, 따스한
기운이 단전에서 일어나 온몸의 경락을 돌면서 구석구석을 뜨겁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요사이 며칠 동안은 이 충만한 기운 때문에 가부좌하고 앉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해 밤새도록 서성거리며 기운을 가라앉혀야 했다.
물을 잘 마시지 않는 내가 며칠만에 한달 마실 분량을 마셔댄 것 같으니, 이는
분명 샘도 요기의 약차 덕분임을 생각하며 xx스님에게 대강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티베트인들의 현대의학 수준은 초보 단계에 있으나, 대신 고산 지역의 기이한
약초들로 단약을 만드는 제약술은, 그 어느 나라보다 뛰어나다.
요기들 사이에 비밀리 전해오는 기이한 약초와 단약들은, 요기들의 신체단련과
정신수련에도 크게 쓰이며, 호흡과 맥박, 심장까지도 몇 날씩 멎게 할 수 있는
단약도 있다고 한다.
달람살라의 약초 연구소 연구관들과 일본, 몽골 등지에서 유학온 단약
제조의사들의 얘기를 빌리면, 약초와 단약을 써서 인간의 뼈와 살 그리고 피까지
바꾸어, 탈태환골을 하게 할 수도 있다 한다.
어찌 되었건 큰 스승님과 요기의사 샘도의 정어린 배려로, 온 콤파가 다 앓고
있는 병 한 번 앓지 않고, 강건한 몸과 마음으로 수행을 할 수 있었던 은혜를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샘도 방을 몇 번이나 기웃거렸지만, 묵묵히 앉아
있는 그의 몸짓에서 나라와 민족을 초월한 더 큰 자비와 은혜를 배울 수 있어서,
더욱 찡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천녀들의 공양
초발심 때 원효와 의상대사 전기를 읽으며, 천공(하늘의 천녀들이 주는 음식과
차공양)을 받으셨다는 부분들이 참으로 신비하게 느껴지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마음이었는데, 천녀들의 공양은 원효스님이나 의상만이 받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는 수행자라면 누구나 다 받을 수 있음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하루는 작은 스승님께 올라갔더니, 음식은 무엇을 어느 정도 먹는가 물으시기에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하루에 삶은 계란 두 개와 밥 한 숟갈 정도를 먹는데, 그것도 불편하여 물 한
잔과 밥 한 수저로 지냅니다. 그런데도 기력이 충만하여 눕지 않고 가행정진을 할
수 있음은 모두가 구루의 가피입니다.
좀 우스운 말씀입니다만 정에 들었을 때나 꿈속에서 할머니 어머니, 때로는
예쁜 여인들로부터 음식을 받아 먹기도 합니다."
스승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며,
"그 여인들은 모두 수행자를 돕는 다키니(티베트의 처녀, 호법신)들의
모습이니라. 어느 수행자나 수행에 몰두하게 되면 다키니의 공양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다키니들 역시, 네 마음속 에너지 방울(호르몬, 정액, 생명력)의
화현임을 잊지 말고, 허상에 끄달리지 않도록 하거라.
인간의 실체 속에는 모든 능력이 본래부터 모자람 없이 구족되어 있으니, 수행
여하에 따라 에너지 방울을 마음대로 조종하여, 백년 천년도 살 수 있음은 물론
노쇠하지 않는 방법도 있으니, 대장부로 태어나서 한 번 해볼만한 것이 수행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낡은 옷은 갈아입어야 하듯, 너무 오래 살아 자연의 순리를 어기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니라.
내가 한창 젊었을 나이 산속 동굴 수행을 할 때인데, 하루에 한번 물과
짬바(티베트 보릿가루)를 날라다 주던 속가 형님이 계셨다.
그런데 이 분이 급한 볼일로 다른 지방에 가면서, 나의 음식을 친구에게
부탁하셨지만, 그 친구가 형님의 부탁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바람에 두 달 넘게
야생짐승들이 먹다 버린 고기 찌꺼기로 연명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살 수 있었던 크나큰 힘은, 꿈과 선정 속에 다키니들이 올리는 공양
덕분이었다.
수행자가 수행이 더욱 깊어져서 정신과 육체의 비밀을 알게 되면 이 다키니들의
공양이 허상이 아니라 내 몸속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에너지 방울, 바로 호르몬과
생명력의 신비임을 알게 되느니라.
분명 진정한 수행자라면 누구나 다 천녀들의 공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티베트 라마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일년에 몇 번씩은 단식 수행하는 것으로
삶의 활력을 삼고 있다. 그러나 여법한 요가 절차에 따라서 해야지 서양인들처럼
살을 빼기 위해 무조건 굶는 방법은, 오히려 몸과 마음은 물론 생명력을 다치게
하기도 한다."
스승의 말씀은 다이어트나 천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하는
가르침이셨다.
마하무드라의 네 가지 맛
스승님께서는 또 마하무드라 행법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마하무드라 요가(수행) 행법은 다양하지만, 기본적 틀이 되는 네 가지
수행차제가 있으니 첫째 일점집중 요가, 둘째 이희 요가, 셋째 일미 요가,
마지막으로 무수 요가인 것이다.
일점집중 요가라 함은 다겁생은 물론 금생 어머니 태속에서부터 길들여진
습관적인 나를 떠나서 (영원한 실체 절대자비와 행복 절대자유의 에너지이며
빛인) 진정한 나에게로 초점이 맞춰지는 요가이니 마하무드라 행법의 첫 번째가
되느니라.
두 번째는 이회요가로 모든 희론을 떠남이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이거다
저거다의 이론적 말장난을 떠나고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분별망상의 정신적
유희마저도 다 놓아버리는 요가수행을 말한다. 다겁생으로 익혀온 사량 분별의
토론과 논쟁이 비워진 공의 세계, 밝음과 고요 그리고 지복과 지락이 영원히
물결치는 공의 세계와 합일되는 요가이다.
세 번째는 일미 요가이니 수천 가지의 물이 하나의 대해로 흘러들어 한 맛을
내는 공부이다. 공도 색도 부처도 중생도 지혜도 번뇌도 모두가 한 맛이 되며,
무차별의 평등세계에 이르게 된다. 싫고 좋고 밉고 곱고도 한 맛이요, 있고 없고
많고 적고 모든 상대적인 것들이 공성의 한 맛이 되는 공부인 것이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선악호오 일심평등의 공의 세계와 한 맛이 되는 요가행이다.
네 번째는 무수 요가이니, 닦음 없이 닦는 공부이다.
번뇌의 물결은 공성, 바로 불성의 출렁임이요, 떠도는 망상들은 지혜주의 빛임을
알아, 출렁이면 출렁이는 대로,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놔두고 보는 요가이니,
안과 밖 온 세상이 그대로 공성(불성, 영성, 자비성)의 빛으로 가득하게 되며,
닦느라 애쓰고 노력할 이유조차 빛속에 녹아지는 행법이니라.
이 마하무드라 요가를 하다 보면 역경계와 순경계의 징후들이 나타난다.
어느 경계가 오더라도 경계에 집착하거나 포기해서는 아니 되며, 모든 경계를
공성으로 연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느니라.
역경계라 함은 깨어 있는 것도, 자는 것도 아닌 혼침의 상태와 잠에 빠지는
수면의 상태, 멍한 무기의 상태를 말함이다. 이런 경우는 주위를 밝게 하고,
패행법을 사용하도록 하거라.
순경계는 즐겁고 밝고 평화로운 상태가 지속됨이니, 공부가 익어가는 징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순경계에 집착하여도 대도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즐거움에 집착하면 욕계의 세계로, 밝음에 집착하면 색계로, 평화롭고 고요함에
집착하면 무색계로 빠지게 된다.
이런 경우는 탁트이고 환한 곳보다는 조용하고 은폐된 장소가 도움이 된다.
어떤 경계가 오든 언제나 밝은 공성의 빛으로 깨어 있어야 함이 마하무드라
수행의 근본 핵심이니라."
밀교의 수행차제
"밀교(금강승)의 마하무드라 행법이 한국과 중국의 돈오행법과 무엇이
다른지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리고 인간들의 자질에 따라 수행하는 방법이 다를 뿐,
똑같은 부처님 법이니라.
밀교도, 티베트인들 특유의 환경과 여러 정서가 근본 불교에 가미된 것이지,
본래 부처님 법과 틀린 것이 없다. 뒤섞여 있는 것들을 차례로 정리하여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삶이듯, 학문이나 수행에도 그 차례가 필요한 것이다. 그 차례와
방법들을 체계적이고 실용적으로 개발한 불교가 티베트 밀교라고 할 수 있다.
밀교에서는 처음부터 경을 보게 하지 않는다.
경은 평면적인 사고의 틀을 넘어선 깨달음의 말씀이기에, 고도의 영감과 직관
없는 초심자에게는 혼돈을 가져오기 쉽다. 깨달음의 말씀들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사람들이 알기 쉽게 논리성을 부여한 것이 논서임에, 우리는 이 논을
금고를 여는 열쇠로 표현한다.
논과 율을 배워 수행의 틀을 세운 뒤 근기에 따라 경을 보게 하는 것이 밀교의
수행차제이다.
티베트에도 8세기 티송테첸 왕대에 '마하연선사'라는 중국 승려가 혜능 계통의
돈오사상을 전파하고 있었다.
인도 전통의 점수사상과 커다란 마찰이 야기되었고 결국은 왕이 참석한 가운데
점수측의 '가마실라'와 돈오측의 '마하연선사'는 몇 날 며칠을 비판 옹호의 논쟁
속에 토론과 검증을 거치게 되었다.
결과는 인도 불교 전통의 점수를 택하기에 이르렀고, 마하연선사는
추방되었으며, 돈오행법은 수행할 수 없는 불법으로 온나라에 선포되었다.
그렇지만 어디 부처님 법에 잘되고 못됨이 있으며, 더하고 못함이 있겠느냐?
사람들의 생각과 근기가 다를 뿐이지. 그러나 비행기도 활주로가 있어야 비상하듯
수행도 차제(순서)가 있어야 함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된다.
돈오도 점수도 또 어떤 다른 법도 수행의 틀과 준비단계는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밀교에서는 어떠한 종파라도, 기본이 되는 이론체계부터 공부하게 한다.
이론 체계가 세워지고 나면 그 이론을 근거로 지적 통찰을 공부하게 하고, 지적
통찰의 공부가 익어지면 다음 단계로 지적인 활동 마저 녹게 하는 집중력을
기르게 한다.
지와 관을 통해 집중력이 증장하게 되면, 습관적 사고의 힘이나 업력이 녹게
된다.
볼록렌즈의 초점에 불이 일어나듯 깊어진 집중력은 의식의 변형을 이루며,
깨달음의 세계로 직접 통할 수 있는 직접회로를 찾게 되는 것이다.
전문용어이지만 마하요가(생기차제), 아누요가(원만차제),
아티요가(최원만차제)의 차제를 밟아, 더 높고 깊은 영적 세계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돈오가 됐든 점수가 됐든, 중생을 살리는 법이 되어야지 말과
장난의 희론거리가 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밀교가 세계인의 주목거리가 되고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밀교 종파끼리 이론체계의 논쟁과 대립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모두 중생을 살리는 근본 취지로 마음을 모으고 회향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자네에게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자비와 공의 체험이 수행의
목표이겠으니, 경우에 따라서는 자비심이 공부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직접회로를 확실히 찾기 이전에는, 자비심도 그 어떤
거룩한 마음도 일단 녹여 내도록 하거라.
자네를 이곳까지 오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자네의 자비심이지만,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자비심 때문이니라! 내 말 알아듣겠는가?"
내 정신세계와 공부 세계의 장단점을, 친절하게 지적해 주시는 구루의 가르침에
또 한번 합장 배례할 수밖에 없었다.
문 없는 집
달람살라에서 xx스님이 올라왔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는 내 모습에 자극을 받았던지, 며칠만이라도
다잡아 공부하고 싶다며, 일주일만이라도 무문관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의 스승이기도 한 나의 작은 스승께 무문관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라닥이라는 곳에 한 수행자가 무문관을 하겠다고 온 마을에 고하고, 앉아 있을
움막을 가시천막으로 둘러치고, 뚫린 창문들과 들락거리는 큰문까지 못질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흙을 발라 밀봉을 해버리고, 대소변 나올 구멍과 물과
짬바(보릿가루 뭉친 것)가 들락거릴 수 있는 작은 구멍만 뚫어 놓고 들어 앉아
버렸는데, 어느날 동료 수행자가 보니 다른 마을에서 밥을 빌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무문관이란 명예나 이름, 권위 등을 얻기 위해서라든지, 낯을 내기 위한
형식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철저한 홀로 있음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 본래
자기 모습과 대면할 수 있는 수행이 되어야 한다는 금옥 같은 말씀을 주시며,
일주일간의 무문관을 허락해 주셨다.
역시 외국 행자들은 모든 여건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에, 하루 두 끼 식사는
나의 티베트어 선생 따시집에 부탁하고, 처소는 전에 내가 쓰던 보건소
문간방으로 정하였다.
이곳에는 적게는 3년 내지 6년, 길게는 10년에서 20년까지, 오가는 문이 없는
무문관 속에, 삶의 전부를 던져 놓고 있는 수행자들이 있다.
그들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는, 고요와 침묵의 또 다른 세계가 산 뒤쪽에
자리하여, 우리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기운과 청정하고 향그러운 내음들은, 이곳 무문관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이곳을 중심으로 번져나며, 온 콤파를 수행의 분위기로 감싸는
힘도 이곳에서 흘러나온다.
어느새 일주일이 흘렀는지 무문관을 마친 xx스님이 올라왔다.
아직도 정신없이 책상다리하고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자신의 무문관이 잘 끝난
것보다 더 기뻐해주는 그의 마음이 빛나 보였다.
아마 전생에 좋은 인연이었으리라, 스스로의 수행과 삶도 힘들 터인데,
달람살라에서 예까지 서너 시간 거리를 멀다 않고 오가며, 작은 스승에 대한
공양과 내 뒷바라지까지 정성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분명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다.
형제자매 스승제자 사형사제들끼리도, 시기와 질투가 오가는 이 말법시대에, 나
아닌 남의 공부 성취를 바라보며 진정으로 환희심을 낼 수 있는 수행자라면, 공부
성취를 이루는 사람보다 더 수승한 공덕을 지닌 보살임에 틀림없을 것이리라.
무문관을 무사히 마쳤다는 인사를 어른들께 하고 온 그는, 걱정겸 고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곳 제일 어른들이 모두 힘들어하시며 편찮으시단다. 전에 없던 일인데....
이것은 분명 내가 계속 삼매상태에 빠져 있기에, 내 영적 수행 세계를 돕고자
너무 애들을 쓰신 결과라고 했다.
껄껄 웃어넘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내 자신을 보며, 나도 이제 밀교인이 다
되어 간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가 한 말이 한국 수행 정서로 들으면 무협소설 속의 이야기나 철없는
아이들의 말장난으로 들릴 수도 있으나, 이곳 비밀 불교(밀교)의 세계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비구름을 쫓기 위해 만트라를 하고, 무문관 요기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
독덴과 하이라마들이 무문관 동서남북에 앉아 자신들의 공력을 전달하는 모습을
평상심으로 보게 되었으니, 나도 이제 밀교 세계에 깊이 젖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처음 와서 이곳의 환경을 한국과 비교해보며, 이곳 사람들이 참으로 불쌍하고
안쓰럽게 생각되었는데, 이제는 거꾸로, 영적인 삶을 잃어버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사는 한국인들, 특히 한국의 수행자들이 안됐고 안타깝게 여겨진다.
분명 이 곳은 도가 통해 흐르고, 자비와 부처님 법이 살아 숨쉬는 수행처이며,
공부인이 머물만한 장소인 것이다.
7. 수행자의 노래
수행자의 노래 '도하'
효선아!
어떤 큰 흐름을 타고 흘러가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구나.
삼생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너희들을 보러 가는 것조차 꿈인 양 잊었나 보다.
효선아! 참으로 회유한 것은 내가 불렀던 지장의 노래(지장경약찬게)와
마찬가지로, 티베트 라마들도 도하(영혼의 노래, 법열의 노래, 수행자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감정이나 법열, 깨달음 등을 제자와 신도들에게 노래로 지어
전하고 있구나.
그러나 한국의 선시나 오도송, 임종게 등과는 분명 틀린 형식이란다. 가장 듣기
쉽고 전하기 쉽고, 부르기 좋은 구술 형식의 노래들이란다.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엄밀히 따져 노래도 아닌 나의 노래들이 이곳
티베트의 도하일 줄이야! 내가 전생 티베트의 라마였다는 말에, 약간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며 웃고 있단다.
티베트에서 도하를 가장 많이 짓고 불렀던, 한국의 원효스님만큼
티베트인들에게 존경과 사랑받는 까규파의 두 번째 조사 '밀라레빠'가, AD
1130년 경 티베트의 '니샹구루파'라는 동굴에서 '권보도르제'라는 사냥꾼을 제자로
얻으신 이야기를 도하로 부르셨구나.
여기 그 한 부분을 적어 보내니, 잘 읽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인연되거라.
사냥꾼과 사냥개에게 쫓겨, 동굴로 숨어든 사슴에게 도하를 들려주신다.
"나의 스승 마르빠 발아래 엎드려 경배하오니, 이 사슴을 비롯한 모든 중생의
아픔을 덜게 하소서!"
너 아름다운 뿔을 가진 사슴아!
내 말을 들어보렴.
너는 언제나 바깥의 적들로부터 도망가기 바쁘기에 눈멈과 망상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기회가 없구나.
후회하거나 슬퍼하진 말고 네 마음과 육체를 잊어버려라.
네 자신의 눈멈과 망상을 놓아 버릴 때가 되었느니라.
쌓이고 쌓인 업은 무섭고 강력한 것
너는 도망치려 하나
어떻게 미혹된 육체를 가지고 벗어날 수 있겠느냐
원하는 바가 탈출이라면
마음의 본체 안으로 숨으려무나.
달아나고 싶거든 마음속 깨달음으로 도망가거라.
다른 어떤 피난처도 안전한 곳 없나니.
아름다운 뿔을 지닌 사슴아!
너는 지금 죽음의 공포로
오들오들 떨고 있구나.
너는 망상도 하고 있구나.
'저 언덕 너머 먼 곳 안전한 지대가 있을 것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잡히고 말 것이니 또다시 도망가자.'
그러나 사슴아!
네가 이렇게 공포 속에 윤회하며 헤매는 원인은
그러한 두려움과 희망 때문이란다.
마음의 모든 혼란 놓아 버리고
나와 함께 이곳에 머물며 고요히 휴식하자꾸나.
떠도는 귀신들마저도 감동시킬, 혼을 실은 노래들은 사슴의 업을 녹여 주었고,
사슴은 사람처럼 다가와 눈을 흘리며 밀라레빠 곁에 가만히 앉아 있게 되었단다.
곧 이어 사슴을 쫓아온 검은 꼬리 붉은 사냥개가 들이닥치는데, 혀는 불타는
리본처럼 날름이고 무엇이든 찢어발길 것 같은 날카로운 발톱에다,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천둥보다 사나웠다.
적개심과 분노로 가득찬 개는, 지금 모든 것이 적으로 보인다. 공성(자비성)을
증득한 밀라레빠는 개의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를 가라앉혀 주기 위해 또 영혼의
노래 도하를 부른다.
스승이신 마르빠 발아래 머리숙여 절하오니
이 개를 비롯한 모든 중생들의 분노와 증오를 잠재워 주소서!
너 이리의 얼굴을 한 사냥개야
나의 노래를 들어보렴.
무엇을 보든지 적으로 생각하는 너의 마음은
분노와 살기로 가득하구나.
너의 이런 짓(카르마) 때문에 사냥개의 몸을 받았고
영혼의 굶주림과 육체의 격정으로 몸부림하는구나.
너는 날뛰는 자신의 마음 잡으려 않고
소중한 남의 생명 뺏으려 하는구나.
네 마음 잡아야 할 때가 되었느니라.
이제는 원망과 분노 모두 버리고
나와 함께 이곳에 앉도록 하자꾸나.
탐욕과 분노로 스스로를 잊어버린 너는
오로지 생각하기를
"이 길로 가면 도망친 사슴을 잡을 것이고
저 길로 가면 놓칠 것이다."
갈등과 흥분 속에
신령스런 한 가닥 기운마저 놓치고 만다.
이러한 희망과 두려움이 윤회의 씨앗이니라.
사냥개마저도 적개심과 살기를 놓고 꼬리 흔들며, 주둥이를 두 앞발에 얹어
놓고 밀라레빠 앞에 엎드린다. 오래지 않아 헐레벌떡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동굴에 들어오는 그의 얼굴은 진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손에는 활과
올가미가 쥐어 있었다. 굴속에 들어온 사냥꾼은 놀라고 만다. 자녀를 품고 있는
어머니처럼, 사슴과 개를 양옆에 앉혀 놓고 있는 밀라레빠를 보며,
"이것들이 요기한테 홀렸구나!"
화가 나서 밀라레빠에게 소리를 친다.
이 할 일없이 놀고먹는 요기 놈아!
나는 네놈들을 여러 곳에서 보아 왔다.
마을 집에 내려와 술 먹고 주정하며,
닭 잡고 개 잡는 것도 보았고
계집과 돈 때문에 싸움질하며,
사람마저 상하게 하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다.
너희 같은 놈들 한두 놈 죽여도 죄될 리 만무하다.
네 놈이 어떤 홀리는 힘이 있어,
개와 사슴을 순종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내 주먹맛을 보거라.
사냥꾼은 힘껏 밀라레빠를 쥐어박았으나, 돌덩이나 나무 둥치를 치는 것 같아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이때 밀라레빠는 생각한다.
'무지한 짐승들도 영성의 빛이 있어 혼과 혼이 통하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임에야 말할 것 있겠는가.'
사냥꾼을 달랜다.
나를 죽이고 패는 일은 앞으로도 할 수 있으니 땀도 말릴 겸, 내 노래 한 곡조
들어보시게!
권보도르제라는 사냥꾼은 쉬기도 할 겸 못 이기는 척 체 앉는다.
모든 스승들에게 기도 드리며
이 사람의 삼독(탐. 진. 치)을 녹여 주소서.
인간 몸에 악마의 얼굴을 가진 사람아!
나의 노래를 들어보거라.
인간의 몸 소중타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그대에게 소중한 것이 뭐가 있느냐.
죄 많은 사람아!
그대는 이승의 쾌락을 위해 날뛰지만은
헐떡이는 마음뿐
즐거움을 얻기가 힘이 들구나.
그러나 네 안의 삼독만 놓아 버리면
곧바로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아!
바깥 세상 모두 다 정복할 수 있다 해도
형체 없는 자기 마음 정복하기 어렵지만
이제 그대는
자신의 마음 정복할 때가 되었느니라.
불쌍한 사람아!
이곳의 사슴을 잡아간다 해도
순간의 만족뿐, 영원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네 안의 삼독을 잡을 수 있다면
그대의 모든 소망 이루어지리라.
욕심 많은 사람아!
바깥 세상 모든 적을 잡으려 하지만
잡고 잡아도 적은 있는 것
그대 안 자아(에고)만 잡아낸다면
세상의 모든 적은 사라지리라.
사냥꾼 권보도르제여!
소중한 인생 소모치 말고
영적인 가르침 행하는 것이
영성의 빛에 득이 되니라.
밀라레빠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사냥꾼은 서서히 분노가 가라앉고 침착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통 때 같으면 저 사슴은 겁에 질려 있어야 하고, 나의 사냥개는 사납고
무자비할 터인데, 어머니 품에 안긴 자식들인 양 평화롭고 조용하구나.
내 마음 역시 이렇게 편안한데, 이분은 가짜 요기가 아니고 진짜 요기나 라마인
모양이다. 출신 내력이나 좀 알아보자.
"거룩하신 라마시여! 몰라 뵈어 실례를 한 것 같습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
시며 어떤 수행을 하십니까? 또 어떤 수행 처에서 오셨으며 당신의 친구들이나
수행 동료들은 누구이오며, 당신은 무엇을 갖고 계시는지요? 궁금증을 풀어
주소서. 그리고 저를 인도해 주소서."
밀라레빠는 또 도하를 부르기 시작한다.
나의 스승은 티베트인으로
거룩한 법을 위해 눈덮인 설산을 넘고
갠지스, 인더스 강을 건너, 천축땅을 세 번씩이나
다녀오신 마르빠라오.
그분의 스승이신 나로빠는 인도인으로
인도 최고의 대학 나란다의 총장이었고
뛰어난 영적 지도자이며,
탄트라 불교의 최고 스승이셨소.
또 그분의 스승 틸로빠 역시 인도인이요
영과 육을 마음대로 조정하신 조어장부요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셨소.
나는 이 세 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오.
그대가 좋다면 나와 함께 그분들의 길을 따를 수 있소.
붓다와 그의 가르침과 교단에 귀의하여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수행, 올바른 행위 등
세 가지 가르침을 수행한다오.
당신이 이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와 가도 좋소.
토굴과 바위굴 그리고 눈덮인 설산
이곳이 내가 머물고 공부하는 수행처요
사슴과 염소 그리고 뿔난 양들이
내가 가진 가축이며,
뇌조 독수리 그리고 노래하는 졸모새
이 셋이 나의 새들이오.
당신이 좋다면 같이 가도 좋소.
해와 달 그리고 아름다운 별이
내 방의 그림들이고
신과 유령 그리고 어진 자들이
나의 이웃들이라오.
하이에나, 원숭이, 늑대가
친구들이며
나무뿌리 쐐기풀 멀건 죽들이
내가 먹는 음식이고,
눈녹은 물, 옹달샘, 흐르는 시냇물들이
내가 마시는 청정수라오.
그래도 좋다면 함께 가도 좋소.
숨과 맥과 그리고 빈두(정액)
본래 내가 가진 의복이며 근본 재산이라오.
당신이 그래도 좋다면
같이 가도 좋소.
"라마시여 당신의 노래를 들으며 나도 당신을 따라 수행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집을 정리하고 식량을 가져오겠습니다."
"사냥꾼이여! 수행을 잘하면 음식은 자연히 따르는 것이니 염려할 것 없으며,
죽음은 순간적으로 닥쳐오고 마음은 수시로 변하는 것, 진정으로 발심했다면,
곧바로 이 자리서 실행하시오."
그러면서 밀라레빠는 또 수행자의 노래, 도하를 부른다.
들어보시오 권보도르제여!
비록 천둥소리 요란해도
그것은 텅빈 울림에 불과하오.
무지개의 색깔이 아무리 아름답고 찬란해도
곧바로 사라져 버릴 그 어떤 것이오.
이승의 쾌락 꿈속과 같소.
우리가 그것을 즐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고통의 근본일 뿐이오.
보이는 모든 것이 영원인 양 하지만
산산이 흩어질 그런 것이고 지나가는 풍경들이라오.
비록 수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다 해도
눈 한번 감으면 아무것도 없고,
작년에 살았던 영웅, 금년엔 가고 없소
어제의 동료 오늘의 적이 되고
맛있던 음식 잠을 자면 변한다오.
불평과 배신이 선의에 대한 보답이고
살기 위해 저지른 일, 날 죽이는 결과로 돌아온다오.
백명의 머리가 있을지라도, 나의 것보다 소중한 것 없고,
열 손가락 나의 것은 어떤 것을 베어도 아픈 것이니
세상에 가장 소중한 것, 결국은 내 자신일 뿐이오.
그대 스스로가 그대를 도와야 할 때가 되었다오.
인생은 재빨리도 달아나는 것
죽음이 곧 당신 문을 두드릴 것이니
영원한 생명을 발견하는 일은
한 시각이라도 미루어서는 아니될 거요.
사랑하는 사람들 아무리 많아도,
떠나는 그대를 잡을 자는 없소
순간의 행복을 추구함보다
영원한 행복을 찾는 일이, 더욱더 소중하다오.
이제 당신은 영혼의 영속성을 아는 진정한 구루에게
의지할 기회이고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을 배울 때라오.
권보도르제라는 사냥꾼은 곧바로 밀라레빠를 따르게 되었고
치라레빠(CHIRAREPA) 즉, 베옷 입은 사냥꾼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도를
성취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밀라레빠의 뛰어난 제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단다.
효선아!
수행자의 길이 참으로 어렵고 외로운 길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구나.
외국 수행자 한 사람이 병이 나서 고행을 하는데, 의료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이곳에서 특별한 치료도 못 받고 이 약 저 약 먹어 보지만 효험이 없다는 구나.
내가 탑돌이 할 때마다, 탑전에 앉아 베차(밀교법본)를 열심히 암송하던 그를
기억할 수 있었단다.
멀고 먼 남미에서 이곳까지 온 그의 까맣고 깊은 눈속에서, 인연의 묘함을
느껴보곤 하였는데, 아프다 하니 가슴이 찡해 오는구나.
그도 머물 처소가 마땅치 않아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다, 어느 속인 집
옆방을 얻어 살고 있다는 구나. 사람이라도 곁에 있어 주면 나을 것 같아
찾아갔더니...
이곳 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나인데도,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와 지린내로
현기증을 일으키고 말았단다.
친척은 물론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으며 먹고 마시는 것조차
맞지 않는 나라, 병들어 몸부림하는 한 수행자의 처절한 모습에 울컥 눈물이 남을
막을 수 없었구나.
아끼고 아꼈던 라면 몇 봉지를 들고 가 끓여 먹이고 위로의 말 대신 몸을
주물러 주었단다.
문득 아주 오래 전, 중 되고 몇 년만에 처음으로 하산해서 보았던 집안의
풍경과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단다. (집안은 풍지박산, 찾아낸 할머니의 모습은,
불도 못 땐 남의 집 문간방, 입도 돌아가고 눈도 돌아간, 수족마저 못 쓰는 중풍
걸린 기막힌 모습, 끌어안고 오열하던 그때의 심정.)
아무런 방법도 모르고 그저 할머니 수족을 주무르고 주물러서 낫게 했던,
그때의 마음으로 그의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단다.
그는 이틀만에 꾀병에서 일어나듯 생기를 되찾고 수행을 다시 하게 되었구나.
수행자들이 일년에 한두 번씩 줄도록 앓는 것은 모두가 외로움에 지친
병이란다. 그 어느 생인가 맺은 희미한 인연의 줄따라 흘러온 그와 나는, 다음
어느 생 또다시 만날 인연의 업을 만들고 말았구나.
수행 없는 현대판 깨달음
효선아! 이곳에 가끔 들르는 외국 수행자들을 보고 생각이 난 것인데, 행여
유행처럼 번져 있는 현대판 깨달음의 방법들에 현혹되지 말거라.
외로움과 어려움을 싫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몰핀과 같은 깨달음의 약을 파는
현대판 구루들을, 인도에 와서 너무도 많이 보게 되었고 그들의 책들도 읽어보게
되었구나.
게으른 삶과 즉흥적인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기만의 핑계와
자신을 합리화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야기들이었고, 순간의 해방감을 맛보게 할
수 있는 마약 같은 가르침이었단다.
그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그럴 듯하단다.
'철저히 굶주리다가 밥 한 사발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고행과 수행은, 헛된
짓이고 자기 기만이다. 모든 속박의 틀을 깨고 온갖 것을 즐기면서도,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수행 법들이기에, 현대 젊은이들을 혹하게 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과 비슷한 수행을 하는 좌도 밀교(정통 밀교를 떠난 극소수의 탄트라 수행자
집단) 사람들도, 뼈를 깎는 자기 통제의 수련과 목숨을 던진 집중 훈련을 철저히
한 뒤, 탄트라의 본 수행에 들어간단다.
외로워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자비의 원을 낼 수 없단다.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알 수 있겠느냐.
앉아 죽고 서서 죽는 살활 자재한 수행도,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영속성을
찾아내는 수행의 길도, 목숨을 던진 집중이 반드시 필요함을 너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것이다.
집중의 길도 기술로 친다면 다른 기술이나 마찬가지여서 이력이 나고 힘이
붙으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란다.
집중하는 안간힘 없이도, 저절로 집중이 되어가는 묘한 이치가 밀법에는 있단다.
'포와'(의식전이) 행법
오늘은 작은 스승에게 포와 행법(의식전화)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인도네시아의
제자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내가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얼마나 궁금해할까? 일년 가까이 전화 한
통, 편지 한 줄 보내지 않은 무심한 스승을! 떠도는 소문들에 마음까지
아파하겠지만...
그러나 스승 없는 외로움도 공부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내 수행이 익어 참된
가르침을 줄 수 있을 때까지 나도 참아 보리라 마음을 다져 본다.
문득 인도네시아에서 얻은(?) 현지인 제자 생각이 난다.
'포와'와 관계되는 문제로 인하여 구루와 첼라(제자)의 인연을 맺은 여제자가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육군 장성이었던 남편을 잃고, 외로운 공백을 메우려고 스승도 없이
심령술을 공부하다가 접신된 신녀였다.
접신된 뒤부터 지껄이는 그녀의 말들은 신통스런 예언이 되었고, 그 소문은
온나라에 퍼져 나가서, 정부 고위 관리들까지 줄을 서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돈도 엄청나게 벌어 제주도 만한 섬을 소유하는 갑부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 밑바닥에는,
'이것이 내가 바라던 삶은 아닌데, 아무리 부와 명예를 누린다 해도, 한낱
귀신의 노예에 불과한 삶인 것을...'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의 몸부림에, 또 한 번의 변신을 결심하고 귀신을 떼어
내기 위해 골몰하던 중, 묵언을 해야겠다는 영감이 떠올랐다고 한다.
음식을 섭취하는 일 외에는, 입을 천으로 봉하고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그녀를, 삼년 동안 온갖 방법으로 괴롭히며 입을 열게 하려는 귀신의
요동은, 그녀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갔지만, 목숨을 내놓은 결심으로 결국
귀신을 떠나게 하고 말았다 한다.
참으로 기이하게 생각되는 점은, 누구의 가르침도 없었건만, 바른 수행에 대한
끊임없는 자신의 열망이었단다. 삼년의 묵언이 다시 삼년으로 이어졌고 묵언이
깊어지다 보니, 자비심과 자비행이 저절로 싹터 나왔으며, 나중에는 육신이 정화된
탓인지 몸에서 의식 체가 빠져나오는 유체 이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한다.
문제는 의식 체가 빠져나가는 유체 이탈의 상태가 되었을 때, 의식체가 다시
몸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공부를 더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도를 받아 보고자 승려들을--인도네시아는 소승 불교가 들어와 있음--찾아가
보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이야기가 끝날 무렵엔 흐느껴
울었는데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도도하고 거만하기까지 하던 그녀가 자신을
억제치 못하고 우는 모습을 보며, 재민 엄마(인도네시아 공덕원신도 회장)와 아빠
그리고 함께 온 사람들마저 당황해 했다.
실컷 울고 난 그녀는 남편이 죽었어도 울지 못한 성격이었는데, 왜 스님을 뵙고
이렇게 울어야 하는지 가르침을 달라는 것이다.
할말이 없었다.
왜 우는지를 알 수 없으니...
왜 우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니,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만히 생각해
보라는 말밖에...
그녀는 눈물을 닦고 흩어진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정좌를 하더니, 몇 분이
지나자 평정을 찾은 모습으로 부끄러운 듯 말을 했다.
스님의 영혼은 자신이 만났던 영혼 중에 가장 자기와 닮은 영혼이었고, 자신의
영적 에너지를 감쌀 수 있는 부드럽고 평화스런 에너지였기에, 그 동안의
움츠렸던 마음들이 풀어지면서 울게 된 것이라고 차분히 심정을 이야기하면서,
스님은 영적 스승이 분명하니 자신의 구루가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가르칠 만한 공부가 없었기에 거절을 하였다. 하지만 허락치
않으면 결코 일어나지 않겠다는 그녀의 결의와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제자 하나를 더 만들고 말았다.
구루 발에다 키스를 하는 것이 예의하며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또 한 번
진땀을 뺏는데 연거푸 땀이 나게 했으니, 정식으로 무릎 꿇고 묻기를,
"유체 이탈했을 때, 몸을 떠난 의식 체가 몸에 다시 들어오지 못할 땐 어떻게
합니까?"
유체 이탈 자체도 해보지 못한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냥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는데, 곁에 있던 재민 엄마가 잽싸게,
"우리 스님이 전에 그러시던데 육과 영은 은줄 같은 것으로 이어져 있어서,
실컷 돌아다니다 다시 들어 올 수 있답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공부나 더
열심히 하십시오."
내가 언제 재민 엄마에게 이런 것을 가르쳤던가 생각해 보며, 제자가 스승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아 웃음이 나왔으나, 그 새로운 여제자가 또 내 냄새나는 발을
붙잡고 키스를 퍼붓는 바람에 혼쭐났었다.
이 콤파에 와서 포와(의식전이) 행법을 받다 보니, 재민 엄마의 그때 말이
표현은 좀 틀렸지만 맞는 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티베트 밀교의 특징은 사는 기술(행법)뿐 아니라 죽는 기술은 물론 환생하는
기술까지 고도로 발달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막연한 이론 체계가 아니고 실질적인
실용 체계라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법본들 중 죽은 자 의식체를 인도하여,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지지 않도록 안내하는 '바르도퇴돌(사자의 서)'이 유명하고, 살아 있는 자의
바르도체(의식체)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포와'가 의식 전이 행법 중
대표적이며, 사는 방법의 대표적 가르침은 '마하무드라' 행법을 제일로 치고 있다.
이 포와 행법의 대가인 '아냥림포체'가 포와 의식을 거행할 적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 행법의 에너지가 대단하여, 너무도 신기한 기적들이 즉석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마 우리가 아는 포와행법의 대표적인 분을 꼽으라면 달마대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달마대사 이야기를 약술하면,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장안으로
가던 중 산길에 엄청난 크기의 구렁이가 썩어 가고 있기에, 포와(의식전이)
행법으로 달마 대사의 의식이 구렁이 속에 들어가서 구렁이 몸뚱이를 바다에
버리고 와 보니, 앉아 있던 자기의 육신이 간 곳 없었다.
휘휘 둘러보니 몸뚱이 없는 정령이 취하고 있기에, 자비심으로 놔두고 다른
몸뚱이를 찾아보았다.
숲풀 속에 죽은 지 얼마 안된 막 썩기 시작한 시체가 있어, 그 속으로
달마대사의 의식체는 들어가게 되었다.
분명 인도에서는 거룩한 상호를 지녔던 달마대사가 중국 양무제 앞에 나타났을
때는, 그 찌그러지고 험상궂은 모습에 불심천자라 불리던 양무제마저도 고개를
돌렸다는 이야기가 포와 행법을 잘 나타내는 실례인 것이다.
이 포와행법이 티베트에도 전해져, 이곳 까규파의 첫 번째 조사인 마르빠에게
이어지고, 그의 친아들인 피존에게 전승되었으며, 다시 2대 조사인 밀라레빠에게
전하여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작은 스승께서 포와 행법을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면서, 의식전이라는 것도 수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기술(신통)에 불과한 것이며, 중생 교화의 방편이
되어야지, 수행자의 궁극 목표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된다고 못박으셨다.
어찌 됐든 인간의 삶에 필요한 수행법들이, 형식적인 틀에 묶인 종교인이나
수행자들에 의해, 삿된 수행으로 도외시 되지 않고 제대로 수용되어 인류가
영적으로 진보되고 삶의 질이 높여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티베트의 회전기도기
티베트 밀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언뜻 생각나는 것 중의 하나가, 둥그런
통들을 손으로 돌리며 지나가는 모습일 것이다.
이것을 마니코르(회전기도)라 하며, 동으로 만든 통 속에 두루말이 경전들을
넣어 돌리며, 만트라(주문, 진언)를 외우는 것은 신행 의식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항상 손에 들고 다니면서 돌릴 수 있는 작은 마니코르부터,
집동만한 둥코르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큰 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회전시키기가 어려울 정도로 크지만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종소리가 나도록 되어 있어, 만트라 리듬과 어울리면 묘한 정서를
자아낸다.
그리고 반드시 오른쪽으로 돌리게 되어 있어, 이 회전기도기뿐만 아니라, 탑을
도는 꼬라며 모든 의식이 오른쪽 회전을 규칙으로 삼는데, 부처님 당시에도
오른쪽으로 돌면서 예의를 표하는 장면들이 경전에 묘사되고 있다.
왜 꼭 오른쪽으로 돌아야 할까? 그리고 돌아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부처님은 우주의 이치를 아셨던 분이기에, 무엇이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거역치 않는 법들을 가르치셨을 것이다.
지구가 오른쪽으로 회전하며 태양의 오른쪽으로 순행하는 원리, 원자의
회전까지 같은 순환의 원리를 가지고 있음을 부처님은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인생은 돌고 돈다.
모든 것이 윤회의 법칙 속에 순환을 한다. 그 속에서 생명들은 에너지를 얻고
생을 유지해 가는 것이다.
발전기의 단순한 회전들이 지구 구석구석을 밝히듯, 이 회전의 법칙 속에 인간
영성의 빛을 끌어내려는 깨달으신 분의 지혜일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탑돌이를 하며 염주를 돌리듯, 이들도 회전 기도 기를
돌리며, 바늘구멍보다 적었던 마음을 우주를 감쌀 수 있는 마음으로 돌려놓으려는
신앙의 행위인 것이다.
일회의 생명이 아닌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영속의 원리, 환생의 법칙을
찾고자 하는 수행의 몸짓이기도 한 것이다.
종교의 이론과 정서
우리들의 기억이나 상상 등 모든 사념들은 수행에 걸리적거리는 망상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과거의 기록을 찾아내는 회로가 되고 미래와
연결되는 통로도 되는 것이다.
우리의 잡다한 공상과 망상들이 알고 보면, 수많은 생들을 윤회하며 축적한
지혜의 빛이며 완성을 향한 비전인 것이다. 우주는 그 사념들로 가득하다.
그 사념들에 인간의 옷을 입힌 것이 신이기에, 우주 또한 신들로 가득한 신들의
세계인 것이다. 바로 망상의 세계이며 지혜의 세계이기도 하고, 중생의 세계이며
신들의 세계이고 보살의 세계인 것이다.
이 세계를 티베트인들은 모든 것이 함께 존재하는 만다라의 세계라고
이야기하며, 그것들을 표현 방식에 따라 소리 만다라, 그림 만다라, 불상, 건축,
춤, 온갖 유형으로 나눈다.
이런 것들 중 소리 만다라를 만트라라고 하여, 주문. 진언. 다라니. 노래 등으로
나타낸다. 소리 만다라(만트라)의 세계를 표현한 티베트 불교 음악은, 신도들과
라마들의 정신세계를 고무시키고 수행을 돕는 커다란 역할을 한다.
이 음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염불(만트라)소리부터가 특이하다.
한국에 창을 하는 사람들이 목청 떨림의 한계를 넘어 자연과 합일하는 독음의
소리를 내듯이, 티베트 염불은 목의 진동이 아닌 창자의 떨림 아니, 온 몸통의
울림소리가 되는 것이다.
이 염불 만트라에 어울려, 엄청나게 큰 한 쌍의 악기(둥) 소리는 태곳적 우주의
소리를 듣는 듯 전율을 느끼게 한다.
고산 지역에서는 몇 백리를 간다는 이 소리를 처음 들으며, 청각이 재조립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질감이나 싫은 소리가 아닌, 온몸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 같은 떨림 속에,
밀교와의 전생 인연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다.
염불 만트라와 둥 그리고 온갖 악기 소리가 조화되어, 우주에 가득한 신들을
찬양하고 특정한 신을 불러내기도 하며, 그 신을 사람에게 접신케 하여 대화를
나누는 기막힌 일까지도 가능케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탁이며, 달라이라마마저도 이 신탁의 예언을 중히 여겨
국사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 속에 신과 영은 우주를 경험하게 되니, 라마들의 생각이나 의식에
자기중심적인 에고의 그림자가 엷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티베트 밀교를 배우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도, 수행 집단의 이기심이나
권위적이고 파행적인 분위기가 아닌, 수행을 하고 싶게 하는 정서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지적 가르침이, 삶의 실질적인 정서와 결합된지 못하면,
종교는 아무런 의미도 힘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티베트에 불교를 정착시키려고 시도했던 티송텐첸 왕은, 대석학이며, 인도
최고의 불교 지도자였던(산타락시타)라는 분을 초청 하지만, 지성 뒷면에 부착된
삶의 정서를 제대로 인식치 못했기에 실패하고 돌아간다.
그가 돌아가며 왕에게 추천한 파드마삼바바(연화생 대사)는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었고, 티베트 본래의 무속 신앙체인 '뵌교'를 잘 흡수하여,
독특한 불교의 기반을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음악을 통한 인간 정서의 함양과 신앙심을 고무시키는 행위는,
티베트 밀교의 이론적 교리를 떠받치는 힘과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밀교도 석가 부처님 법
앞장에서 뵌교의 얘기가 잠깐 비춰졌다. 뵌교는 티베트에 불교가 자리잡기 전,
티베트 사회 전반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무속 적이고 주술적인 토착
신앙 체였다.
이들의 신앙 체계에도 고도의 집중력과 훌륭한 수행 법들은 있었지만, 그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힘들이 인간 성숙의 에너지로 활용되지 못하고, 저주와
살인, 원한과 복수의 방법들로 사용되고 있었다.
흑술 또는 흑마술이라고 불리우는 이들의 수행법은, 인간 기본 질서와 덕목을
무시한 채 오로지 신통만을 목표로 한 술법들이었기에, 그 결과적 행위들은
티베트인들의 삶에 무섭고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함은 물론, 통치권 차원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 폐단을 절감한 왕들이, 인도의 성숙된 신앙체인 불교를 받아들여 뵌교의
힘을 꺾어보려 하였으나, 잘 다듬어지긴 했어도 실질적인 힘이 없는 이론 불교가
뵌교의 막강한 힘을 꺾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인도의 석학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여러 번 초청되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티베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 이론은 물론 요가 행법에도 정통했던,
파드마삼바바(연화생대사)라는 스님은 뵌교인들과 실질적인 실력 대결을 벌이며,
항복도 받고 섭수도 하여 불교를 티베트에 심는데 성공을 하게 된다.
티베트에서는 파드마삼바바의 이러한 밀법을 기록한 것을 보물 경전이라 하여
보물처럼 여겼고, 독특한 티베트 불교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티베트 불교(밀교) 역시 파드마삼바바의 독창적인 가르침이나 수행
법이 아니라, 석가 부처님께서 근기수승한 특별한 자들에게 비밀리 전한 밀법이
파드마삼바바에게까지 전해지고, 그에 의하여 티베트에서 꽃이 피게 된 것이지,
불교와 전혀 다른 법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파드마삼바바의 보물 경전이나 밀교의 수행 법들이 모두 부처님 법이었음을,
현지 수행을 통해 확인하고 경험할 수 있었음은 부처님의 가피였다.
수행에도 전문 분야
이곳 하이라마들(고승)의 수행법도 각자 전문 분야가 다르다. 어떤 분은
마하무드라 행법에 뛰어나고, 어떤 분은 나로 육법으로 일가를 이루기도 하며,
공중 부양, 유체 이탈, 포와 행법, 쌍신 수행 등 방편술에 수승함을 보이는 분들도
계신다.
이 여러 분야를 두루 달통한 성취자를 독덴이라고 부르는데, 이 콤파에
유일하게 두 분이 살아 계신다.
암잠, 암틴 바로 나의 두 분 스승이시다. 작은 스승 암틴은 여러 행법 중에서도
야만타카 행법을 전문으로 하신다. 이 야만타카 행법도 파드마삼바바가 남긴 보물
경전 속의 법으로,, 여러 차원의 온갖 신들은 물론 염라대왕의 모든 권속들까지
다스릴 수 있는 무서운 에너지를 가진 실질적인 행법이자, 기도 방법인 것이다.
야만타카 기도 중에 일어나는 신이한 현상들을 보며, 까무러칠 뻔한 충격들을
여러 번 받게 되었다.
인간과 귀신과 수많은 사자와 염라왕의 권속들이 인간의 몸을 빌려 현실적인
힘으로 나타나는...
지성과 이론, 논리와 과학적 사고 등이 깡그리 부서지는 기막힌 현장이었다.
인간 삶의 공간에 함께 동참한 여러 차원의 신적 존재들, 그들이 내뿜는 엄청난
에너지들을 과학은 어디까지 접근하여, 어떻게 설명하고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기도회향 날 모든 세계의 수많은 차원의 중생들이 부처님의 자비품으로
섭수되고 귀의되는 현상을 바라보며, 사람을 혼돈스럽게 하는 굿판이 아니라, 작은
에고의 감옥에 갇힌 인간의 해방을 경험하는 감동이었다.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선 의식의 진보와, 더 큰 세계로의 성숙에 동참할 수 있는
거룩하고 훌륭한 장이었다.
삶의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이론과 형식적인 것들에게까지 의미와 힘을
부여할 수 있는 밀교의 기도와 수행법들이, 수행자들을 흥분케 하고 세계인들에게
외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리라.
구루의 야만타카 행법이, 한국에서 내가 배우고 연구하고 정리 해온 지장기도
체계와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고무시켰고, 구루의 여러 가지 행법을
더 열심히 배우는 자극제가 되었다.
십수년 동안 중국,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사막까지 온 세계를 다니며, 지장
신앙의 틀을 정립해 보려던 마음속엔, 언제나 실질적인 행법을 점검받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지장기도의 또 다른 모습인 야만타카 기도를 전문으로 하신
구루를 만나게 되고, 그분에게 직접 지도 받을 수 있음이 어떤 인연이고
복연인지...
내가 해 온 영가천도, 지장기도와 그 행법들을 인정받고 확인받으며
환희스러웠던 마음은 숨길 수 없다.
모두 수행의 마음을 놓지 않고 길게 참은 결과라 정리해 본다.
부처의 숨겨진 얼굴 분노존
밀교의 또하나 특징은 분노존이란 존재이다.
우리는 불보살님의 분노한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밀교에서는
인간이 야누스적인 양면성을 지니듯, 불보살님에게도 분노의 모습이 함께 한다.
불상은 물론 탱화나 또 다른 불구나 제구에도, 자비와 분노가 겹쳐진 형상들을
볼 수 있다.
중생을 교화하는데 자비스런 섭수도 중요하지만, 악심자를 무릎 꿇게 하는
절복도 필요하듯이, 자비스런 불보살상이 때로는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과, 성난
황소의 모습 그리고 악신의 모습까지 취하고 있음은, 바로 중생들의 이중성을
절복섭수하는 밀교 특유의 이론의 실제화 모습인 것이다.
이런 부분이 밀교가 인간의 삶 속에 살아 숨쉴 수 있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야만타카 행법에 나오는 야만타카의 모습은, 사람의 몸에 소의 얼굴을 하고
목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금방 잘라진 머리들을 주렁주렁 걸고 있다.
이 모습은 문수보살과 지장보살의 분노한 모습이요, 문수 지장의 또 다른
모습이다. 누가 봐도 분노에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무서운 형상이다. 이런
형상을 지니게 되는데는, 전설 같지만 실제인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한 수행자가 일생을 바쳐 호로 동굴 수행을 해왔는데, 깨달음의 순간에 마가
들었는지, 소도적들이 동굴 입구에서 소의 목을 자르고 도살하다가 수행자를
발견하고, 그의 목마저 잘라 박살내고 만 것이다. 수행의 정점에 있던 그의
초능력은 떨어진 머리도 붙일 수 있는 힘이 있었으니, 박살난 머리 대신 선혈이
낭자한 소머리를 자신의 몸에 결합시켜, 기괴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분노의 화신이 되어버린 수행자는 소도둑들의 머리를 잘라 목에 걸고, 온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죽이는 악마로 변신하고 만다.
다행히 파드마삼바바를 만나 문수 지장에 귀의하고, 문수와 지장기도를
방해하거나 지장행자들을 괴롭히는 악심자들을 벌하는 호법신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 호법신이 바로 야만타카이며 지장, 문수의 분노존이다.
이때부터 악신 분노신들을 부리는 야만타카 행법이 전승되게 되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존재들이 이론이나 형상화에 그치지 않고, 수행과
기도를 통해 힘이 실리고 에너지가 생겼을 때의 그 결과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강력한 수행력을 가진 수행자가 동물적인 복수심 쪽으로 에너지 통로가 열렸을
땐, 악마적인 힘이 탄생하고, 영적인 통로로 에너지 회로가 열렸을 때에는, 신성한
힘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수행자들이 반드시 수행의 에너지를, 공과 자비의 실체인 깨달음으로 섭수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시종의 진수
작열하던 태양신의 극성도, 하늘 구멍에서 쏟아져 내리던 지독한 비님들도, 제
일들을 다했는지 아니면 가을의 서늘한 바람에 기가 죽었는지, 평화로운 정적만이
콤파를 감싸고 있다.
긴 풍랑과 파도를 뚫고 항해를 마친 뱃전의 깃발인 양, 나도 고요와 따스함을
만끽하고 있다.
신도들을 사랑할 수 있는 에너지만이, 내가 사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생각된다.
돌아가야 할 마음조차 놓아 버리고 한가로운 빛살에 기대어, 그립고 미웠던
얼굴들을 떠올려 보지만, 찬란한 여의주 빛 마음 사이로 어릿어릿 사라져가는
모습들일 뿐, 그들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음을 느껴 보고 있다.
어제 작은 스승께서 '로념'이라는 법을 전수해 주시며, '마하무드라'를 마음 안의
근본 수행으로 삼고 '로념' 법을 마음 밖 행법으로 삼되, 안과 밖이 언제나 둘이
아님을 깨달아 쌍으로 닦고 쌍으로 쓰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전해 줄 것은 다 전해 주었으니, 크게 쓰고 작게 쓰는 것은 너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느니라."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이제 정말 돌아갈 때가 된 것도 같다. 또다시 인간 풍파의 거센 풍랑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하겠지만, 아무런 두려움도 기쁨도 특별한 감회도 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마음도 이 순간뿐이리라.
나는 분명 또 신도들을 위해 울고 신도들에 의해 가슴 아파하며, 가슴에는 또
상처와 멍울들을 지니게 되리라.
그러나 그것이 인생이고 인간 몸을 받은 내 삶의 몫인 것을 어찌하랴! 이젠
나에게도 외롭고 힘들 때 의지할 곳이 새겼다.
이곳에 계신 두 분 스승의 따뜻한 가슴과 그들이 밝혀 준, 내 가슴속
빛--영원한 공성의 빛--속에 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따스한 망상 삼매를 즐기고 있는데 발자국 소리가 난다.
이곳은 외인 출입금지라고 써 붙이지도 않았는데, 찾아오는 것은 까치와 매
그리고 가끔 독수리들이 날개 접고 쉬어 갈 뿐...
주지 스님도 요사이는 안 보이고, 하루에 두 번 밥을 넣어 주는 따시가 있지만,
아직 올 시간은 이르고, 아 오늘이 일요일 인가보다.
시봉하던 지광스님이 너무 지친 것 같아 한국에 보내고 나니 여러 가지
아쉬움이 많았는데, 달람살라 xx스님이 일요일마다 올라와 식수와 음식,
빨랫감들을 처리해 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양손에 봉지를 들고 따시와 함께 올라오는 그의 모습이...
그가 가지고 온 물과 차, 깨질세라 곱게도 싸 온 다구로 정성스럽게 달인
작설은, 온몸의 피로를 청량하고 향긋하게 녹여 준다. 차향에 취했던가! 그동안
틈틈이 적어두었던 수행일지와 법열의 시 몇 편을 읽어 주었다.
"스님! 따시종의 진수는 모두 스님이 가져가시네요. 우리들은 스님을 위한
들러리였군요. 삼배 올리고 싶으니 절 받으십시오."
말릴 겨를도 없이 삼배 공양마저 받고 말았다.
수행의 원을 놓지 않아 이런 좋은 수행자들을 만나게 되는지, 좋은 수행자들을
만나 수행의 원을 놓지 않게 되는 것인지 모르지만, 서로 탁마 되어 확철대오
하는 날 더덩실 함께 춤을 추어 보리라.
영적 충동 영적 성숙
다리 괴고 앉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었을까?
가늘게 뜬 눈빛 사이로 참으로 신기한 세계가 열린다.
야마천, 도리천, 도솔천 욕계 육천의 문이 열리고 색계, 무색계, 차원의 하늘
신들이 모여든다.
나의 구루를 비롯한 밀교의 역대조사들은 물론 티베트 밀교의 호법신들까지,
고운 이 미운 이 원수 맺은 이, 돌아가신 부모 친척 온갖 유형의 사람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동식물까지...
이렇게 다양한 것이 중생계인가? 중생들의 모습이 이렇게 천차만별이고 이렇게
가지각색의 형태를 지니고 있을 줄이야!
모두가 나를 도와 왔고 앞으로도 도울 존재들이란다.
그런데 호법신 중에 나를 죽이려던 사람들도 끼여 있으니...!
그래, 그들이 없었다면 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나를 키운 일등공신 호법신들임에 틀림없다.
무엇 때문에 모였느냐고 물으니, 나의 공부를 돕기 위해서라고 한다. 진정 도울
마음이 있거들랑, 깨닫게 해달라고 하니, 다른 것은 다 도와줄 수 있어도 깨달음은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내가 깨닫는 것이 만다라 세계의 모든 이들을
성불케 하는 길이 된단다.
설명하기 힘든 묘하고도 기막힌 만다라의 장이었다.
우주가 돌듯 그 많은 존재들이 오른쪽으로 돌기 시작하더니 알라딘 램프의
거인이 램프 속으로 빨려 들듯, 나의 가슴으로 들어온 뒤 환상은 사라졌다.
환영은 환영인데, 환영이라고 지워 버리기엔 너무도 뚜렷하고 강력한 에너지의
파장이었다. 비록 환상들이었지만 그 많은 호법신들이 나를 돕는다니, 그리고 원수
맺은 이들까지도 나를 도와주는 호법신들이라 하니, 뿌듯한 마음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더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아마 이런 현상을 한국에서 보았다면 그리고 밀교를 알기 전에 겪었다면,
아무런 의미도 주어질 수 없었음은 물론, 삿된 망상이라고 소금까지 뿌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밀교에선 환상뿐 아니라, 꿈 하나하나에도 삶의 의미와 수행 자체의
의미들이 붙어 다니고, 미물 하나, 풀 한 포기, 먼지 한 올에도 존재의 의미를
붙이기에, 삶. 죽음. 꿈. 신. 동물. 지옥 등 온 우주의 구석구석이 철저하게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기계적이고 물질적이며 평면적인 삶의 사는 사람들은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역동하는 우주가 여기 현실 속에 있는 것이다.
밀교의 전통과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우주적이고 입체적인 세계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제 석용산이도 한물갔구나' 하는
얘기밖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꿈도 환상도 그 무엇도, 삶의 현장에 한 자리를 내주어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의 정신 세계가, 인류의 가장 고등한 문화 중의 하나를 만들어 냈고
성숙된 세계를 이룩해 냈음을,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환영들의 에너지 속에 깨어나고 보니, 문득 달람살라에 가고 싶다는 영적
충동이 일어난다. 영적 충동(?) 이렇게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어제 달람살라 스님들이 왔다 갔기에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을 터인데
외출한다고 하니, 나의 티베트어 선생 따시의 큰 눈이 더욱 커진다.
달람살라에 도착을 했다. 뜻밖의 출현에 달람살라 눈들도 휘둥그렇다.
어제까지도 꼼짝할 기미를 보이지 않던 내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말이다.
영적 충동으로 왔노라고 얘기하자니, 잘못하면 따시종에 가서 맛이 갔다고 놀릴
것도 같고, 궁색한 답변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행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돈도 좀 바꾸고, 책방도 들르고 등등... 어찌됐든
반가워들 하니 기뻤다.
툽텐라마에게 갔다.
툽텐라마의 모습은 여전하였고 기쁜 얼굴로 손을 잡으며, 그러잖아도 내가 오늘
내일간 오지 않으면, 기도 끝나는 대로 따시종에 들르려고 했다며, 티베트의 모든
호법신들에게 공양 올리는 중요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나의 공부 성취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고 한다.
할말을 잊어버리고 툽텐라마의 얼굴만 쳐다보다가, 오늘 아침에 보았던 환영의
세계와 여기까지 오게 된 영적 충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툽텐라마는 씩 웃으며
내 손을 가만히 잡는다.
둘은 남이 모를 미소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영적 교감 영적 충동이란 말을
쓰고 있으면서도, 이 단어들에 생소함을 느낄 수밖에 없음은, 나도 그만큼 영적인
부분들을 도외시하고 살아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왜 꿈 같은 이야기들을 계속하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영적인 인간들이 너무
물질적으로 기계적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점점 더 동물적 차원으로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하루 속히 인간 스스로 만든 물질의 감옥을 벗어나, 더 성숙된 영적 삶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무서운 결과가 오리라는 생각을 해본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형제가 형제를 살해하며, 신도가 스님을 죽이고 제자가
스승의 얼굴에 오물을 씌우는 이 세상이, 더 악랄하게 변해간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 기회에 사람도 바뀌고 사는 패턴마저 바뀌어, 모든 것이 좀 더 성숙된
삶으로 변화하는 그 어떤 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해 보기에, 간절한 마음들을 글에
담아 보는 것이다.
시인의 영혼 수행자의 에너지
밤에 따시종으로 들어가겠다는 나를 극구 말리는 툽텐라마 덕분에, 둥꼬르
돌아가는 신묘한 소리와 영혼을 울리는 악기 등의 여운 속에 평온한 한밤을
보냈다.
툽텐라마가 모시는 네충신의 부레싱(축복)을 받고, 생각지도 않은 선물도
받았다. 언제 준비했는지 지혜의 칼과 제왕의 표식인 도르제를 달아맨 목염주를
걸어주며,
"당신은 아름다운 시인의 영혼과 강하고도 밝은 수행자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니, 그 빛을 아낌없이 세상에 회향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드리는 이 불상은 한국에 가서 풀어보시되 달라이라마가 주신
불상과 함께 모시도록 하십시오.
우리 서로에게 좋은 인연들이 될 것입니다."
툽텐라마의 작별 인사말은 나를 또 한 번 고무시키는 힘을 주었다. 몸 하나
지탱하기조차 힘들었던 내 지친 영혼을, 호주에서 예까지 인도해준 그와의
인연이...!
아낌 없는 그의 정성과 배려 속에 나는 진정 환생의 길을 걷게 되었으니, 무슨
사족의 말을 더 붙이겠는가?
그동안의 모든 인연들에 보답하는 길은 세세생생 받는 몸마다 수행자 되어,
사랑과 자비 그 영성의 빛을 곳곳에 밝히는 일일 것이다.
망상이 부처의 뜻
달람살라 툽텐라마와 작별 인사를 하고 온 지도 며칠이 지난 것 같다.
명상 속 샘물처럼 솟는 기쁨들을 즐기다 보니, 정말 한국에 가야 할 마음마저
놓았나 보다. 사념들에 방해받지 않고 고요와 평화만이 그득한 지복의 공성에
머무는 시간들은, 그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내가 이러다가 지장보살도 아주 잊어버리고, 나를 키워 온 한국의 인연들마저
깡그리 놓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망상도 솟아난다.
오늘은 작심하고 스승님께 작별 인사를 하러 올라갔다.
먼저 작은 스승께 들르니 조금 피곤하게는 보였지만 여일하고 여법한
모습이셨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떠나야 할 날짜가 많이 지난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머물고 싶습니다만....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망상마저도 알고 보면 공심의 빛이니라!
자네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이며, 마음속 부처님의 뜻이니, 조용히 한번 더
생각해 보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거라.
이곳에 법락을 누리며 앉아 있음도 좋겠지만, 그대의 전생업과 맹서들이 아직
남아 있기에 편히 쉴 때는 아닌 것 같다. 인연 닿는 업의 바다에 노닐며 닦아
봄도, 출세한 대장부의 멋이 아니겠는가. 지장보살이 행해야 할 몫이기도 하니라.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내가 한 말을 잊지 마라. 자네는 전생 자비 성취자였다는
사실을...
한 가지 더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대와 나라의 벽을 뚫고 이곳까지 오게
된 그대의 길고 긴 여정들을 되돌려 살펴보아라. 시대에 따라 그 시대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 인간들의 영적 흐름은 신묘하기에, 시대마다 꼭 필요한 자를 만들어
낸다.
이제 그대 스스로가 그대를 살필 수 있게 되었으니 알아서 하도록 하라!"
그러시면서 수족같이 쓰시던 도르제와 요령을, 하얀 까닥(부처님과 웃어른들께
올리는 성스러운 머플러)으로 묶어 건네주시는 것이었다.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떠나거라. 그대는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순례의 여정이었으나 복받은 삶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득
나의 인도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다른 나라는 더 말할 나위 없지만 인도 땅에서 진정한 구루를 찾는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오기보다 어렵습니다.
기인과 괴인 그리고 수행을 사탕알처럼 만들어 파는 현대판 성자들은 만날 수
있어도, 영적 성숙을 지도해줄 구루는 만나기가 불가능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잘 아는 진정한 구루들은 설산 속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인도 사람도 아닌 스님이 어떻게 원하는 구루를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성자라고 이름 붙은 분들이나 두루 만나 보도록 하십시오.
그 일은 저도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인연과 복력이 다르니 결코 포기하라는 말로는 받아들이지
마십이오?"
궁극의 깨달음을 얻지 못해도 좋다. 수행할 수 있는 사람 몸 받았음이 진정
축복임을 알게 되었고, 인간들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또 한번의 행복마저 찾게
되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내 영성의 빛이, 두 분 스승의 영원한 빛과 연결되어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길게 참고 견디면 반드시 이루어지며, 수행자의 근본은 인욕이라 하신 금구의
말씀을 눈물 쏟으며 뼛속에 새겨 본다.
부적을 받다
한국의 수행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콤파에서도 올 때는 인사를 하지만 떠날
때는 아무 말없이 조용히 떠난다.
떠나는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이곳에서는 너무도 잘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내 경우는 좀 다른 것 같아서, 하얀 까닥을 준비해 가지고, 제일 어른인
캄툴림포체에게 올라갔다. 언제 봐도 혈기방창해야 할 열일곱살의 모습은 아니다.
평정과 평등심을 잃지 않은 여여한 고승의 모습 그대로이다.
내가 떠난다는 것을 어찌 아셨을까?
부처님이 수놓아진 탕카(작은 탱화)와 빠알간 주머니에 넣은 부적을 내놓으시며,
"라마는 따르는 사람도 많지만 해하려는 사람도 많을 것이오. 이번에 돌아가면
더 큰 아픔과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이 부적을 가슴 윗부분에
지니십시오."
또 속삭이듯 말을 한다.
"대중들이 삼개월 동안 기도하여 만든 특별한 부적입니다.
밖으로 액막이 됨은 물론, 안으로는 자기 부정의 촉진제가 되어 주고 온갖
사념의 거품들을 제거해 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때로는 방편도 필요하니 지니십시오.
그리고 부디 인욕하고 인욕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라마의 성취를 기도할 것입니다."
이런 대접과 배려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아직도 빨리 접수되지 않지만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마음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삼배를 어린 림포체에게 올렸다.
영원한 나의 스승
내 생애에 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슴으로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신 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영성의 빛을 보게 해 주시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게 하여 주신 분
단절과 소멸의 순간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을 사는 환생자임을 자각케 하여 주신 분
큰 스승 안잠라!
작별인사하러 올라가는 감정이 좀 숙연하고 슬퍼야 할 터인데 박치기 할 생각을
하니 히죽히죽 웃음만 나온다.
거기다가 작별 선물로 등허리 긁던 효자손 하나 달랑 준비한 내 마음가짐이,
어딘가 잘못된 것 같아 한참을 서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
그러나 스승님이 원하시는 것이 없으니 해드리고 싶어도 해드릴 것이 없다.
스승이 필요한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분명 이 효자손도 당신 등허리
두어 번 긁으시고 내 등허리 몇 번 긁어 주신 다음, 됐으니 가져가랄 게 뻔하니
말이다.
그래, 오래 사시라고 박치기나 한 번 세게 해드리자!
이곳에 계신 분들은 모두 타심통이나 천안통을 하셨나 보다. 간다는 말을 입
밖에도 꺼낸 일없지만, 내가 떠나는 줄을 어찌 아셨는지, 스승님은 당신의 엄지
손가락만한 약병을 내놓으시며, 수행에 도움이 되고 생명력도 강하게 해주는
단약이니 먹으라고 하신다.
마개를 빼는 순간 온 방안이 향기로 가득찬다. 장난기 서렸던 내 몸과 마음은
굳어지고, 작별 인사조차 잊은 채 스승의 두 손을 꼭 잡고 이마를 맞댄다.
잡은 손길 사이로 전생이 흐르고 내생이 흐른다.
마주 댄 이마 사이로 과거가 흐르고 미래가 흐르고, 큰 흐름 영원한 빛 속으로
하나 되어 흐른다.
사랑하는 아들아!
모두가 사라져갈 한판 꿈이란다.
하지만 대자유의 조어장부임을 잊지 말고,
세상을 이롭게 함도 잊지 말거라!
스승과 나는 영원한 향내음 속으로 흡입되어 들어간다.
반드시 목숨 바쳐 스승의 정성과 배려를 온 세상에 되돌려 주리라!
반드시 다음생에도 스승들의 사랑을 세상 구석구석에 희향하리라!
반드시 또 다음 생에도 스승들의 자비를 육도의 모든 중생들에게 나누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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