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민화집 쥬앙과 대나무 사다리
제 1 부
지구가 생기게 된 이유
옛날 옛날에 파물락 마노보라 불리는 위대한 신이 있었습니다. 높은 하늘에
살던 파물락은 아래쪽의 텅 빈 공간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메말라 보이는구나!" 하고 파물락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파물락은 아래로 내려와서 바다와 땅을 만들었습니다. 파물락은 이것들을 '아
래 세상'이라고 하고 자기의 왕국인 하늘을 '하늘 세상'이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늘 세상으로 되돌아와 자신이 만든 작품을 지킬 수 있는 해와 달을 만들
었습니다.
"밝은 태양아, 너는 낮에는 아래 세상을 지키도록 해라."하고 위대한 신 파물
락 마노보는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달에게는 "밤에는 네가 아래 세상을 지켜야
한다." 하고 말했습니다.
'자, 이제 나는 아래 세상을 언제나 볼 수 있겠구나. 낮에는 태양의 빛으로 볼
수 있고 밤에는 달빛으로 볼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파물락은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잘생긴 해님과 아름다운 달님이 우연히 만났습니다. 하루의
끝이 다가와 자기의 할 일이 다 끝난 해님은 몹시 피곤해서 빨리 쉬고만 싶었습
니다. 신선하고 아름다운 달님은 햇빛이 오래 전에 사라지고 밤이 되었기 때문
에 지구를 지키러 왔습니다.
'해님은 얼마나 힘이 센지!' 하고 달님은 생각했습니다.
'아, 달님은 얼마나 아리따운지!' 하고 해님은 달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
며 탄식했습니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파물락 마노보에게 이 사실을 알려 자신들
의 결혼을 허락 받고자 했습니다. 파물락 마노보가 그들의 결혼을 허락하자 해
님과 달님은 결혼을 했습니다.
아래 세상의 사람들처럼 이 젊은 부부도 그들에게 자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
다. 해님은 힘의 근원인 위대한 '바고보', 전쟁 신인 '다라고'에게 제물을 바치며
그들의 첫 번째 아이가 아들이기를 기도했습니다. 해님은 파 물락 마노보의 제
단 앞에서 춤도 추었습니다.
때가 되어 달님은 아기를 낳았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아름다운 여자아기였고
부모들은 그 아기를 '샛별'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 그러나 용감한 아들을 원했던
해님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해님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분을 참지 못한
해님은 아기를 달님에게서 빼앗아 갈기갈기 찢었습니다. 그러고는 찢어진 팔다
리를 창문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때마침 친절한 바람이 불쌍한 아기의 팔과 다
리를 주워 파물락 마노보에게 가져갔습니다. 그 불쌍한 아기를 가엾이 여긴 위
대한 신은 부러진 팔다리들을 하늘의 둥근 천당에 붙여 놓았습니다. 바로 이것
이 우리가 별이 빛나는 밤에 볼 수 있는 별들이 되었습니다.
매와 바다 그리고 하늘
맨 처음 이 세상에는 오직 바다와 하늘밖에 아무 모양도 없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이 둘은 서로 아주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으
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리의 매가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이 매가 어디서
왔는지 몰랐습니다. 그 어느 것에서도 쉴 곳을 찾지 못한 매는 바다 위를 여기
저기 날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매는 무언가 일을 꾸미기로 했습니다. 우선 하늘
높이 올라간 매는 하늘에게 바다가 그러는데 하늘의 얼굴은 못나고 창백하기만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매는 다시 바다로 내려와서는 바다에게 바다
의 얼굴이 어둠침침하다며 하늘이 그러더라고 했습니다. 하늘도 화가 났고 바다
도 역시 화가 났습니다. 바다는 하늘에게 물을 퍼부었습니다. 하늘은 구름으로
된 딱딱한 공들을 바다에 내던졌습니다. 바다는 구름 공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계속해서 공들을 바다 위에 퍼부었습니다. 결국 지친 바다는
하늘에게 그만 때리라고 사정을 하였습니다.
혼이 난 바다가 피곤해하는 모습을 본 하늘은 바다가 불쌍해져서 그 일을 그
만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자신이 바다의 얼굴에 던진 딱딱한 공들을 다시
치우지는 않았습니다. 바다에게 나쁜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걸 잊지 않게
끔 주의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딱딱한 공들은 섬이 되고 육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이 공들을 치우
려고 애를 썼습니다.
사실 바다는 오늘날까지 육지와 섬 가장자리로 파도를 타고 달려와 자신의 잘
못으로 생겨났던 그 공들을 자신의 얼굴에서 지우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하늘이 높아지게 된 이야기
지구가 비록 해와 달과 별빛으로 환해졌다 하더라도 살기에는 적당하지 못했
습니다. 하늘이 지구와 너무 가까워서 기다란 대나무 막대기로도 하늘이 닿았으
니까요. 이러니 태양의 빛으로 지구가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어느 날 한 거인이 이 지구에 나타났습니다. 이 거인은 '마이카팔'이라 불렸습
니다. 아무도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이 든 어른들은 그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신이라고 했습니다.
마니타팔은 지구가 너무 뜨거워서 쉴 수가 없었습니다.
"하늘을 좀더 높게 올려야겠구나. 그러면 내가 좀 쉴 수 있겠지." 하고 마니카
팜은 말했습니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하늘을 오늘날의 높이로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태양 빛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마이카팔은
칼을 쳐들어 태양의 얼굴에서 빛을 긁어 냈습니다. 그리하여 태양은 훨씬 둔해
지고 차가워졌다고 어른들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니타팔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차갑고 메마른 지구의 모습
이 그를 슬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이카팔은 주머니에서 이상
한 모양의 씨앗을 꺼내 땅에 뿌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구름을 찢자 최초의
비가 내렸습니다. 며칠 후에 지구는 나무와 꽃으로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구의 모습을 바꾸어 놓은 마이카팔은 세상에 좀 더 많은 빛을 주기
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둠을 아주 싫어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는 바닷가에
서 반짝이는 조개 몇 개를 주워 하늘에 걸어 놓았습니다. 바로 이것들이 달과
별들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마이카팔은 구름 위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퉁쿵 랑잇과 알룬시나
이 세상이 처음 시작될 때는 모든 것이 모양도 형체도 없었습니다. 땅, 하늘,
바다, 그리고 공기들이 모두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엉망진창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형체도 없는 공간 깊숙한 곳에서 퉁쿵랑잇이라는 신과 알룬시나라
는 여신이 나타났습니다.
이 두 신이 어디에서 왔는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비사야 지방의 어른들은
퉁쿵 랑잇과 알룬시나가 사랑에 빠졌다고 이야기합니다. 퉁쿵 랑잇이 몇 년에
걸쳐 알룬시나를 따라다닌 끝에 결혼한 그들은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집을 지
었습니다. 그곳은 항상 물이 흐르고 산들바람이 시원한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곳
에는 질서와 규칙이 있었습니다.
퉁쿵 랑잇은 사랑이 많고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하는 신이었습니다. 그는 엉망
진창인 아래 세상의 질서를 바로 잡아 하늘의 신들이 아래 세상을 마음대로 거
닐 수 있도록 정돈하려 했습니다.
반면 알룬시나는 게으르고 질투심이 많고 이기적인 여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창가에 앉아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알룬시나는 집에서
나와 문 밖의 샘 가에 낮아 기다란 칠흑빛 머리를 종일 빗곤 했습니다.
어느 날 퉁쿵 랑잇은 부인에게 "며칠 동안 집을 비워야겠소. 아래 세상의 모든
것을 말끔히 정리해야겠어." 하고 말했습니다.
그가 떠나자 알룬시나는 산들바람을 시켜 퉁쿵 랑잇을 감시하게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퉁쿵 랑잇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이 세상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데도 그렇게 질투하는 것은 여신답
지 못한 행동이라고 그녀를 나무랐습니다. 알룬시나는 화를 내며 퉁쿵랑잇과 다
투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퉁쿵 랑잇은 알룬시나를 내쫓았습니다. 아무도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퉁쿵 랑잇은 몹시 외로웠습니다. 그는 화를 내지 말았어야 했
는데 하고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알룬시나의 달콤한 목소리로 활기에 찼던 퉁쿵 랑잇의 집은 차갑고 쓸쓸한 곳
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깨면 퉁쿵 랑잇은 혼자인 자신을 발견하고 쓸쓸해
했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퉁쿵 랑잇은 가슴 깊이 외로움이 서리는 것
을 느꼈습니다. 문가에서 그를 맞아 줄 사람도 없었고 아픈 팔다리를 주물러 줄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몇 달 동안이나 퉁쿵 랑잇은 심한 외로움 속에 살았습니다. 퉁쿵 랑잇을 알룬
시나를 찾으려 애썼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절망 속에서 퉁쿵 랑잇은
슬픔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로 했습니다.
쓸쓸한 바다와 황량한 땅의 모습에 마음 아픈 퉁쿵 랑잇은 알룬시나의 보석들
을 하늘에 흩뿌렸습니다. 퉁쿵 랑잇은 알룬시나가 그 보석들을 보면 집에 돌아
오고 싶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알룬시나의 목걸이는 별들이 되었고 빗은 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왕
관은 태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별이 반짝이고 해와 달이 빛나도 알룬시나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파나이에 사는 나이 든 어른들은 오늘날까지도 퉁쿵 랑잇이 하늘에 혼자 않아
있다고 합니다. 때때로 외로움에 지친 퉁쿵 랑잇이 소리지르며 흘린 눈물이 지
구에 떨어집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땅을 적시는 비가 퉁쿵 랑잇의 눈물이라고
하지요.
천둥이 칠 때면 노인들은 퉁쿵 랑잇이 사랑하는 알룬시나에게 돌아와 달라고
소리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퉁쿵 랑잇의 목소리는 너무 커서 골짜기를 울리며
메아리친다고 합니다.
최초의 사람들
지구는 이제 약간 나이가 들었습니다. 매일 밤 달과 별들이 지구를 비추었습
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 고요하고 외로웠습니다. 파도의 속삭임과 대나무
숲을 지나는 산들바람의 실랑이는 소리가 지구에서 나는 유일한 소리였습니다.
캅탄이라는 신과 마구얀이라는 여신이 하늘나라의 통치자들이었습니다. 서로
사랑을 한 그들은 결혼을 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서로 말다툼을 했습니다. 캅탄이 마구얀을 내쫓자 그녀는
슬픈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여신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마구얀이 돌아오지 않자 캅탄은 외
로움에 잠겨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슬픔을 잊으려고 캅탄은 '카빌야완'이
라 부르는 정원에 대나무를 한 그루 심었습니다. 그리고 벼와 옥수수 그리고 사
탕수수도 심었습니다. 이 식물들 중에서 대나무가 가장 빨리 자랐습니다. 이 대
나무는 부드러운 나무줄기와 소슬바람에 춤추는 깃털 같은 초록 잎사귀가 달린
아름다운 나무로 자랐습니다. 아름다운 대나무를 바라보며 위대한 신 캅탄은 행
복해했습니다.
"아, 마구얀이 여기 있다면 이 아름다운 모습을 즐길 텐데. 산들바람의 한숨
소리와 희망과 기쁨으로 살랑거리는 나뭇잎의 노랫소리를 들을 텐데." 하고 캅탄
은 한숨지었습니다.
대나무는 계속 자라고 동산은 나날이 아름다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늦은 오
후, 산들바람과 대나무 잎새가 다정히 놀고 있는 것을 보던 캅탄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나무들을 돌볼 사람들을 만들어야겠다." 하고 캅탄은 중얼거렸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나무가 두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갈라진 나무 한쪽에서 첫
번째 남자가 걸어 나왔습니다. 캅탄은 그 남자에게 '힘센 사람'이라는 뜻인 '시칼
락'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남자들은 '시 랄라키' 혹은 줄여서
'랄라키'라 불렀습니다.
또 대나무 마디에서는 한 여자가 걸어 나왔습니다. 캅탄은 그녀에게 시칼락의
동반자라는 뜻의 '시카바에'라고 이름지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여자는 ' 시 바
바에' 아니면 줄여서 '바바에'라고 불렀습니다.
이 남자와 여자는 함께 동산을 돌보고 식물들을 관리했습니다.
또다시 캅탄은 마구얀을 찾으러 떠났습니다. 그는 그녀를 찾으러 멀고 먼 곳
까지 끝없이 여행했습니다.
캅탄이 떠나자 곧 시칼락은 시카바에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카바에
는 그의 청혼을 거절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유일한 오빠라는 것을 모르세요?" 하고 그녀는 차갑게 말했습니
다.
"알아요. 그러나 이 동산엔 다른 아무도 없잖아요. 또한 우리의 신을 위해 우
리가 이 커다란 동산을 가꿀 수 있게끔 우리를 도와 줄 아이들이 필요해요."
그러나 이 말에도 시카바에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의 오빠예요. 우리는 똑같은 대나무마디에서 태어났단 말이
에요."라고 그녀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오랜 말씨름 끝에 그들은 바다 속의 참치들과 하늘의 비둘기에게 그들이 결혼
해도 좋은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참치와 비둘기는 "그럼요, 당신들은 결혼할 수
있어요."하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확신을 얻지 못한 시카바에는 지진에게 그녀가 시칼락과 결혼해도 되
는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예, 당신들은 결혼할 수 있습니다. 이 지상에 사람이 생겨나려면 당신들이 결
혼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칼락과 시카바에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들의 첫아이는 아들이었습니
다. 그들은 그 아기를 '시부'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태어난 딸에게
는 '사마'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리하여 이 최초의 사람들에게서 이 세
상의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답니다.
시부와 사마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
어른이 된 시부와 사마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들은 루푸루판이라는 딸을 낳았
습니다..
그 동안에 시칼락과 시카바에도 '판다구안'이라는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루푸루판은 어여쁜 아가씨로 자라났고 판다구안은 잘 생긴 젊은이로 성장했습
니다. 어느 날 오후 강둑을 걷고 있던 루푸루판은 수영을 하는 판다구안의 모습
을 보고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판다구안 역시 아름다운 루푸루판을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은 결혼을 하여 '아노라노'라는 잘 생긴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판다구안은 아주 부지런하며 부인을 사랑하는 남편이었습니다. 그는 칼리와얀
지방의 식물들과 동물들을 돌보며 하루 종일 일했습니다.
어느 날 판다구안은 고기 잡는 그물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만든 최
초의 그물이었습니다. 그는 이 그물을 바다에 던져 상어를 한 마리 잡았습니다.
기쁨에 찬 판다구안은 고기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바닷가 모래밭으
로 고기를 끌어올렸습니다.
이것을 본 판다구안은 무척 화가 났습니다. 그는 슬픔에 가득 차 울면서 고기
를 죽게 한 데 대해 마디아스 신들을 원망했습니다.
"지금까지 죽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왜 내가 잡은 상어는 죽게 하셨습니
까."하고 외치며 그는 울었습니다.
하늘나라의 캅탄이 판다구안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행에서 막
돌아온 캅탄은 판다구안이 왜 우는지를 알아보기에는 너무나 피곤했습니다. 그
는 자기 대신 파리들을 시켜 이유를 알아보라고 내려보냈습니다. 그러나 파리는
내려가기를 거절했습니다. 꽃의 꿀을 먹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입니다.
명령을 불복종한 데 대해 화가 난 캅탄은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감히 어떻게 너희들이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느냐! 지금부터 너희들은 꽃의
꿀을 먹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은 짐승들의 쓰레기와 오물을 먹을 것이다."
그 후 파리들은 지상의 더러운 것이 쌓인 곳으로 먹을 것을 찾아 끝없이 날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판다구안이 무슨 일로 우는지 알고 싶은 캅탄은 딱정벌레를 보내 알아 오도록
시켰습니다. 딱정벌레는 판다구안이 상어의 죽음 때문에 울고 있다는 소식을 가
지고 돌아왔습니다.
그 소식은 피곤에 지친 캅탄을 언짢게 만들었습니다. 잔뜩 화가 난 캅탄은 판
다구안에게 벼락을 내렸습니다. 판다구안은 벼락을 맞고 순식간에 죽어 버렸습
니다.
이것이 죽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었습니다.
시부와 사마는 많은 자식들을 낳았고 이들은 곧 필리핀 조상들의 부모가 되었
습니다. 어찌됐든 이 불어나는 사람들의 숫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산과 언덕
을 떠나 강과 골짜기와 평야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합니다.
사람들의 수는 아주 빨리 늘어났기 때문에 온 세상이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
었습니다. 커다란 도시들이 강둑에 생겨났고 산에 사는 사람들도 차차 평야로
이동했습니다. 곳식들은 강가와 골짜기 그리고 평야에서 더 잘 자랐습니다. 집들
도 평평한 땅 위에서 더 잘 지을 수 있었습니다. 기온이 낮은 지대가 더 쾌적했
습니다. 너무 추운 기온은 식물과 사람들과 그리고 짐승들의 건강에 좋지 않았
습니다. 두꺼운 가죽과 털과 깃털로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짐승만이 추
운 산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산과 언덕은 새와 짐승의 집이랍니다.
필리핀에 섬이 많은 이유
옛날 필리핀 북부 일로코스 지방의 삼토이 언덕에 앙갈로와 앙가랍이라는 두
거인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부부지간이었는데 너무나 몸집이 커서 그들이
걸어다닐 때면 온 섬이 흔들렸습니다.
그 당시의 필리핀은 오늘날처럼 수많은 작은 섬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았습니
다. 필리핀은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 북쪽까지 뻗어 있는 한 개의 크고
단단한 땅덩어리였습니다.
어느 날 양갈로와 앙가랍은 조개를 주우려고 필리핀의 남쪽 끝 술루의 바닷가
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조갯살을 먹으려고 조개를 열다가 조개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돌덩
이를 보았습니다. 진주를 발견한 것이지요. 이 돌이 내뿜는 영롱한 광채에 거인
부부는 아주 황홀해졌습니다. 그들은 조개를 더 많이 주어서 반짝이는 돌을 많
이 모았습니다. 그들은 반짝이는 진주를 아주 많이 모은 후에야 집으로 떠났습
니다.
필리핀 섬 한가운데쯤 갔을 때 그들은 진주를 누가 더 많이 가질 것인가에 대
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말다툼이 벌어지고 마침내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엄청나게 커다란 발을 마구 구르며 목청을 높여 소리쳤습니다.
그들이 발을 구르는 무거운 무게와 화가 나 소리치는 목소리의 진동은 산들과
언덕들을 갈라지게 했습니다. 땅덩어리도 무너지고 또 금이 갔습니다. 그들의 싸
움이 더 심해지자 커다란 덩어리들이 여러 방향으로 튀겨 나갔습니다. 그들이
싸웠던 장소는 몹시 찌그러졌습니다. 이곳이 오늘날 필리핀의 아름다운 비사야
섬이 되었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튀겨 나갔던 커다란 덩이는 루손 섬과 민다나
오 섬이 되었다고 합니다.
달이 눈부시지 않은 이유
아주 옛날에 해님과 달님은 서로 친한 친구였습니다. 짐승을 찾아 사냥을 할
때에도 혹은 축제에 참석하러 갈 때에도 해님과 달님 둘은 들 같이 행동했습니
다.
그러나 달님이 곧 거만하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이 둘의 우정은
식기 시작했습니다.
"자, 내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좀 보세요. 사람
들은 곡식을 심을 때 내가 변하는 모습에 따라 때를 맞춰 심거든요."하며 어느
날 달님은 해님과 하늘에서 산책을 하다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달님은 혼자 우쭐해하며 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 내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좀 보세요. 사람들은 나를 쳐다볼 때 아주 황홀
한 눈빛으로 쳐다본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당신을 쳐다볼 때는 눈을 작게 뜨거
나 얼굴을 찡그리거나 아니면 눈을 감더군요. 사람들은 당신의 못생긴 얼굴이
참을 수 없나 봐요."
그러고는 달님은 커다란 태평양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고 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해님은 달님의 자랑과 칭찬을 처음 얼마 동안은 듣고만 있었습니다. 해님의
이러한 침묵이 자기 말에 찬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달님은 날마다 더욱 자기
자랑에 열을 올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세요. 내가 나타나면 그들은 놀러
나오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내 깨끗한 빛을 받으며 목욕
을 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당신을 보는 사람들은 당신을 피해 모두 나무 밑이나
아니면 집안으로 들어가더군요!"
마침내 해님은 더 이상 달님의 자랑을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님이
화가 났던 것은 달님이 자기 자랑과 칭찬을 끝없이 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달님이 자기 자랑을 하든 말든 그건 해님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어요. 해님이 참
을 수 없었던 것은 달님이 자기를 하늘 높이 추켜올릴 때마다 해님의 이름은 진
흙 속으로 끌어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님은 달님의 자기 자랑을 그만두
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느 날 해님은 달님에게 잠깐 동안 어딘 가로 여행을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참 좋은 기분 전환이 되겠군요."하고 달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달님의
말뜻은 자신이 얼마 동안 홀로 있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
면 달님은 해님이 자신에게 샘내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예전에 비해 같이
있기가 힘들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달님 곁을 떠나 혼자가 되자 해님은 아름다운 무지개로 변했습니다. 그러고는
강으로 가서 조개 껍데기를 모닥불에 태워 석회가루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불
이 꺼지자 해님은 하얀 석회가루를 모아 주머니에 담았습니다. 하늘로 다시 올
라온 무지개는 해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땅 위에 큰 잔치가 있었는데 해님과 달님 모두 이 잔치에 초대를 받
았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잔치가 이미 시작된 후였습니다.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달님은 술꾼들이 모여 있는 술단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거나하게 취했습니
다.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해님은 술은 마시지 않고 춤을 추고 있는 다른
손님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해님이 걸음을 막 떼어놓는데 달님의 자랑이 또 들
려 왔습니다.
"자, 내가 땅 위의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해주는지 좀 들어보세요!"
해님은 술기운으로 수다스러워진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순서
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잔치는 별 사고 없이 끝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술단지 옆에서 술을 마시던 사
람들이 일어나 다툴 수도 없을 정도로 취해 있었기 때문이지요. 달님은 술에 취
한 채 곯아떨어져 자고 있었습니다.
이제 잔치가 끝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해님은 곯아떨어
진 달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자,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에요. 달님, 다른 손님들은 벌써 다 돌아갔
어요."
그러나 너무 술에 취한 달님은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었기 때문에 "나를 기다
리지 말고 먼저 가세요. 나는 나중에 가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예, 그렇다면 먼저 가겠어요. 그러나 하비아탄을 지날 때는 조심하세요."
하비아탄은 하늘나라와 땅 위의 세상을 갈라놓은 십자로였습니다. 해님은 이
십자로에서 있을 위험한 일을 달님에게 미리 일러준 것이었어요.
해님은 자기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비아탄에 이르러 해
님은 달님이 그 밑을 지나가야만 하는 나무에 석회가루가 든 자루를 매어 놓았
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달님은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습니다. 달님은 창을 찾아 들고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며 갔습니다.
"아, 나는 얼마나 위대한지. 나는 정말 중요한 일을 하지... "
달님은 곡조도 맞지 않는 노래를 크게 불렀습니다.
하비아탄에 이르렀을 때 달님은 해님이 주의하라고 일렀던 말을 기억했습니
다. 달님은 주위를 돌아보며 조심스레 나아갔습니다. 십자로에 서있는 나뭇가지
에 자루가 하나 걸려 있는 것을 본 달님은 크게 웃었습니다.
"하하하, 해님 나으리께서는 요즘 정말 겁쟁이가 되었나 보지. 나무에 걸려 있
는 자루를 무서워하다니."
달님은 더욱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달님은 나뭇가지 밑으로 가서 창으로 자루를 맨 끈을 풀려 했습니다. 그러나
끈이 잘 풀어지지 않자 달님은 있는 힘을 다해 창으로 자루를 찔렀습니다. 그랬
더니 자루가 찢어지며 그 속에 들어 있던 석회가루가 달님의 눈썹은 물론 온 얼
굴에 쏟아졌습니다.
"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
달님의 가엾은 부르짖음에 비너스 별과 북두칠성과 아침 별들이 달려왔습니
다. 그들은 달의 얼굴과 눈에 덮여 씌워진 석회가루를 씻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석회가루가 꼭 달라붙어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달님은 그 밝은 빛을 조금 잃었다고 합니다.
달의 복수
해님이 자신을 골탕먹였던 것을 잊을 수 없던 달님은 해님 몰래 복수할 계획
을 세웠습니다. 달님이 오랫동안 잠자코 있었기 때문에 해님은 달님이 지난 일
을 모두 잊어버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다른 잔치가 땅 위에 있었습니다. 달님과 해님은 이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
였습니다. 예전과 같이 둘은 같이 길을 떠났습니다.
잔치에서 해님은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달님도 독한 술을 많이 마시는 척했
지만 사실은 전혀 마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달님의 마음속에는 다른 꿍꿍이
셈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얼마 후 독한 술에 취한 해님은 그가 어떻게 달님을 골탕먹였는지에 대해 자
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달님 역시 듣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습니
다. 그것은 해님 스스로 자기가 한 장난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손님들이 떠날 때 달님은 술에 취한 해님을 깨웠습니다.
"해님, 잔치가 끝났으니 이젠 돌아갑시다."
그러나 술에 취한 해님은 너무 어지러워서 더 잠을 자야겠다고 했어요.
"먼저 가세요. 난 나중에 가겠어요."하고 해님은 달님이 듣고 싶은 말을 했습
니다.
"예, 그럼 먼저 가지요. 그러나 하비아탄에 오면 조심하세요."
달님은 언젠가 해님이 자기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주의를 주었습니다. 해님은
달님에게 알았다고 대답하고 곧 다시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달님은 십자
로로 즐겁게 노래부르며 갔습니다.
"조심하세요, 해님. 당신이 내게 진 빚을 갚아 드릴 거예요. 복수는 달콤하기도
하지요."
하나는 하늘나라로 이어지고 하나는 지상으로 이어지는 하비아탄 갈림길에 이
르러 달님은 사람들이 멧돼지를 잡을 때 쓰는 깊은 구덩이를 팠습니다. 달님은
해님이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 이 길을 지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달
님은 구덩이 위에 올가미가 달린 썩은 나무 기둥을 세웠습니다. 달님은 이 모든
것을 풀로 잘 덮었기 때문에 아무도 함정이 있으리라 의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달님은 나무덩굴처럼 보이게 만든 올가미 한쪽을 또 다른 나뭇가지에 매었습
니다. 그 나무는 언젠가 해님이 석회가루가 담긴 포대자루를 걸어 놓았던 나무
였어요. 달님은 해님이 걸었던 자루와 비슷해 보이는 자루를 걸어놓기도 했습니
다.
얼마 후 해님은 술에서 깨어났습니다. 해님은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달님이 자기를 골탕먹일지 모른
다는 생각도 해님을 기분 나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해님은 자기가
달님의 함정에 걸려들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림길 하
비아탄에 이른 해님은 이상한 것이 없나 하며 조심스레 걸었습니다. 그는 갈림
길에 있는 나무에 자루가 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본 해님은 크게
소리를 내어 웃었습니다.
"그 바보 같은 달은 내가 저와 똑같은 함정에 빠지리라 생각하나 보지? 하하
하." 하고 해님은 더 크게 웃었습니다.
해님은 이제 마음을 푹 놓고 달님이 만든 함정으로 곧바로 걸어갔습니다. 갑
자기 해님이 밟고 있던 땅이 푹 꺼지고 몸이 공중으로 튕겨졌습니다. 올가미가
해님의 목에 걸려 죄어들었습니다. 해님은 그만 정신을 잃고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답니다.
지상에서 갑자기 밝은 낮이 사라지고 밤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밭에서 일을
하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갑자기 어두워져서 길을 찾을 수가 없어 사
람들은 소란을 피웠습니다. 어머니들은 갑자기 깜깜해지자 무서워 우는 아이들
을 불러 달랬습니다.
수탉들도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새벽잠을 깨우는 울음을 울
어야 할지 밤인사를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닭들은 "꼬꼬댁, 꼬꼬"하며 제멋대로
마구 울어댔습니다. 그러나 병아리들은 다시 잠을 자러 들어갔습니다.
곧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솔 나뭇가지로 횃불을 밝힌 마을 회당으로 모여들었
습니다. 악기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꽹과리와 북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
사장과 나이 많은 노인들이 해를 깨울 수 있는 커다란 소리를 내라고 했기 때문
이었지요. 제사장들은 급히 잡은 돼지와 병아리를 바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해님이 다시 그 밝은 빛을 보여 주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
이 해님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해님!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다시 우리를 비춰주세요!"
해님은 사람들의 응원에 힘을 얻었습니다. 힘을 한번 쓰자 목을 졸랐던 올가
미가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해님은 예전의 밝은 빛을 되찾아 빛나기 시작했습니
다. 지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시 그들을 비춰 주는 해님을 보고 기뻐 소리쳤습니
다.
기쁨에 찬 사람들의 외침과 악기들의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해님은 달님에게
말했습니다.
"자, 보세요. 내가 잠깐 잠든 사이에 땅 위의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그리워하
는지 이제 알겠지요?"
그러나 달님은 언젠가 다시 복수하리라 마음먹으며 다른 길을 떠났습니다. 이
래서 밝은 낮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밤이 되는 일식이 생겼다고 이푸가오 사람들
은 이야기한답니다.
인간이 불을 얻게 된 내력
옛날 옛날에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불이 없었습니다. 땅 위에 있는 단 하
나의 불은 무서운 두 거인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그들에게서 불
씨를 얻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불이 간절히 필요했지만 거인들에게 부탁해 볼 용기는 없었습니다.
드디어 라망이라는 용감한 사람이 거인들에게 불을 얻어 낼 계획을 생각해 냈습
니다. 모든 짐승들도 그를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라망은 마을 동구 밖 가까운 곳에 개구리 한 마리를 놓았습니다. 또 개구리에
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야생 말을 한 마리 놓고 그 말한테서 조금 떨어진 곳에
들고양이를 놓고 그리고 조금 더 멀리에는 들개를 놓았습니다. 들개에게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는 사자 한 마리를 놓았습니다. 바로 그 뒤 좀 떨어진 곳에 거
인들의 집이 있었고 그 집에는 이 땅에서 유일한 불이 있었습니다.
그 거인들은 가끔 쓸쓸할 때면 방문객들을 맞곤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랑망
은 그가 신호를 보내면 어떻게 행동을 취할 것인가 짐승들에게 가르친 후에 거
인들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거인들은 라망을 보고 반가워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얼마간의 시
간을 보낸 후 라망은 거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불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들에게 등걸 불 하나만 나
누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불은 우리가 잘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오. 우린 작은 불씨 하나라도 감히
줄 수가 없소."
거인들은 머리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라망은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이것이 동물들과 라
망 사이에 약속된 신호였습니다. 사자가 울부짖기 시작하고, 개는 "멍멍"짖고, 고
양이는 "야옹 야옹"울고, 말은 "히히힝"울고 개구리는 "개굴 개굴"울었습니다. 동
물들이 동시에 낸 소리에 놀란 거인들은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이때를 틈타 라망은 등걸불 하나를 훔쳐 달아났습니다. 거인들은 활활 타고
있는 등걸불을 보고 그것을 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처럼 빨리 쫓아온 거인
이 라망을 잡으려는 순간 라망은 사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등걸불을 사
자에게 주며 라망은 "자, 친구여! 빨리 이 불을 가지고 뛰게나."하고 말했습니다.
사자는 등걸불을 받아들고 빠르게 달렸습니다. 거인들도 무섭게 뒤쫓아 달렸습
니다. 사자의 기운이 거의 다했을 무렵 사자는 들개가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사자는 등걸불을 들개에게 주며 "자, 친구여! 빨리 이 불을 가지고 뛰게나."하고
말했습니다.
들개는 등걸불을 갖고 바람처럼 빨리 달려갔고 거인들도 뒤쫓아 바람처럼 달
렸습니다. 들개가 기운이 다해 지쳤을 무렵 들개는 들고양이가 있는 곳에 도착
했습니다. 들개는 등걸불을 들고양이에게 주며 "자, 친구여! 빨리 이 불을 가지
고 뛰게나."하고 말했습니다.
들고양이는 등걸불을 들고 성급히 뛰어갔습니다. 거인들도 들고양이를 뒤쫓아
뛰어갔습니다. 기운이 다해 지칠 무렵 들고양이는 야생말이 있는 곳에 도착했습
니다. 들고양이는 등걸불을 말에게 주며 "자, 친구여! 빨리 이 불을 가지고 뛰게
나."하고 말했습니다.
야생말은 등걸불을 들고 "따가닥 따가닥"하며 빠르게 달렸습니다. 거인들은 말
을 잡으러 쫓아왔습니다. 말이 지쳐갈 때쯤 말은 개구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습
니다. 야생말은 개구리에게 등걸불을 주며 "자, 친구여! 빨리 이 불을 가지고 뛰
게나."하고 말했습니다.
개구리는 등걸불을 들고 펄쩍펄쩍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거인들은 개구리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개구리는 꼬리를 잡히게 되었습니다. 너무 놀란 개구리는
눈알이 앞으로 불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개구리는 죽을힘을 다해 꼬리를 거인
들의 손에 남긴 채 뛰어내렸습니다. 개구리는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이 있는 곳
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을 얻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개구리는 꼬리도 잃어버렸고
그때부터 눈이 앞으로 불거져 나오게 되었답니다.
칸 라온 화산의 전설
푸른 사탕수수밭이 펼쳐져 있는 네그로스 섬의 드넓은 골짜기에는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섬의 가장 높은 산에 사나운 용
이 나타났습니다. 그 괴물은 무시무시한 일곱 개의 머리가 달렸고 짙은 초록의
몸뚱이는 1마일이나 될 정도로 길었습니다. 열네 개의 콧구멍에서는 뜨거운 연
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일곱 개의 동굴 같은 입에서는 뜨겁디뜨거운 불길을
내뿜었습니다.
괴물의 콧구멍에서 나온 연기와 입에서 나온 불길은 들의 곡식을 망쳐 버리고
마을을 불태웠습니다. 또 수많은 어른과 어린이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괴물 때문에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들은 괴물을 달래기 위해 온갖 방법
을 찾아보았으나 괴물의 화는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마침내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용에게 바치면 적어도 일 년 동안은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새해가 시작될 때에 제
사장들은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골랐습니다. 그들은 그 처녀에게 까만
옷을 입혀서 산기슭에 놓았습니다. 제사가 끝난 후에 처녀는 산에 혼자 남겨졌
습니다. 용이 처녀를 어떻게 했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사람들은 용이
그 처녀를 삼켜 버렸다고 했습니다. 한 번 처녀를 바치면 적어도 열두 달 동안
연기나 불길이 마을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용에게 갖다바칠 수 있는
아름다운 처녀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아버지들이 딸의 얼굴에 보
기 흉한 상처나 무늬를 새겨 넣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부모들은 처녀로 성
장한 딸들을 괴물에게 빼앗기는 재난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공주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
습니다. 아무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못쓰게 만들 마음을 먹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임금님이 돌아가시면 그녀가 여왕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사
람들은 못생긴 여왕이 그들을 다스리게 되면 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용에게 제물로 바칠 다른 처녀를 곳곳에서 찾아보았으나 그들이
찾은 처녀들은 모두 얼굴이 상처투성이로 미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꼬?"
임금은 근심에 싸여 물었습니다.
또다시 시커먼 연기와 사나운 불길이 용이 있는 산꼭대기에 나타나기 시작했
습니다.
"글세,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도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무 방법도 없는 듯했습니다. 마침내 용의
화를 입느니 공주를 제물로 바쳐야한다는 결정이 났습니다.
바로 그때 인도의 왕자들이 입는 옷을 입은 잘생긴 젊은이가 이 왕국에 나타
났습니다. 그 젊은이는 궁전으로 와서 임금 앞에 나와 말했습니다.
"임금님의 고민을 듣고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정말 고맙네. 그 용을 죽이거나 아니면 쫓아내기라도 해주게. 그렇게만 해준
다면 자네에게 많은 금은보화는 물론이며 나의 딸 공주도 자네의 아내로 주겠
네."하고 임금은 말했습니다.
낯선 젊은이는 더 이상의 말없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는 산기슭에 올라
가서 땅바닥을 기고 있는 개미들과, 꽃에서 꿀을 먹는 벌들과, 하늘 높이 솟아오
르는 독수리들을 보았습니다.
이 용감한 젊은이는 위대한 신 라온이었습니다. 그는 새와 짐승 그리고 곤충
들과 그들이 쓰는 말로 얘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신이었습니다. 그는 개미
한 마리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의 신 라온이다. 네 임금에게 급히 가서 모든 군사들을 데리고 행
진하여 이 산꼭대기로 오라는 내 명령을 전하여라. 용과 싸울 때에 나를 도와주
어야만 한다."
"예, 라온 폐하."
개미는 공손히 절을 하고 서둘러서 떠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위대한 신 라온은
벌들 중 한 마리를 불러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의 왕 라온이다. 너의 왕에게 가서 모든 벌들을 산꼭대기로 데려
오라는 나의 명령을 이야기하여라. 내가 용과 싸울 때에 도와주어야만 한다."
"예, 라온 폐하."
벌은 공손히 절을 하고 앵앵거리며 급히 날아갔습니다.
위대한 신 라온은 또 하늘 높은 곳에서 맴도는 독수리 중 한 마리를 불렀습니
다. 독수리는 머리를 조아리고 라온 앞에 앉았습니다.
"라온 폐하, 우리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너의 왕에게 날아가 모든 독수리들을 산꼭대기로 데려오라는 나의 명령을 전
하거라. 용과 싸울 때 나를 도와주어야만 한다."
"예, 알겠습니다, 라온 폐하."
독수리도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날아갔습니다.
위대한 신 라온의 명령을 전해들은 개미의 왕과, 벌의 왕과, 독수리의 왕은 그
들의 부하들을 모두 불러 모아 산꼭대기로 떠났습니다. 개미들은 길 수 있는 한
빨리 기었고 벌들과 독수리들도 아주 빠른 속도로 하늘로 올랐습니다.
그 사이에 라온은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에게 그를 산꼭대기로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용의 커다란 몸뚱이가 울퉁불퉁한 바위산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용의 무시무시한 푸른색 눈이 그를 보자 콧구멍에서 뜨거운
연기를 내뿜고 입으로는 뜨거운 불길을 토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놀라 임금을 원망했습니다.
"왜 우리 임금님은 그 나그네에게 잠자는 괴물을 깨우게 허락하셨을까?"
임금 자신도 몹시 조바심이 나서 왕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그네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진 공주도 그녀 방에서 조바심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죽을 지 몰라. 그 사람은 죽을 거야!"
공주는 슬픔에 싸여 말했습니다.
개미의 대부대는 용의 몸뚱어리에 떼지어 달려들었습니다. 개미들은 용의 커
다란 초록색 비늘 속으로 들어가 힘을 다해 용의 몸을 깨물었습니다. 동시에 벌
들도 용에게 날아들어 용의 눈이 완전히 멀 때까지 그 끔찍한 초록 눈들을 쏘아
댔습니다.
용은 더욱 무섭게 콧구멍으로 연기를 내뿜고 일곱 개의 입으로 더 많은 불길
을 내 쏟았습니다. 징그러운 용의 발톱은 허공을 쥐었다 놓았다 했고 거대한 용
의 몸은 돌과 흙더미 위에서 이리저리 뒤틀렸습니다. 그때 수많은 독수리 떼가
깃털로 된 번개처럼 재빠르게 내려와 괴물의 눈들을 쪼았습니다.
마침내 위대한 신 라온은 그의 번쩍이는 칼을 꺼내 용에게 다가갔습니다. 용
은 숨막힐 듯한 연기와 불길을 내뿜었습니다. 용은 날카로운 발톱을 허공에 대
고 긋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신 라온은 용의 머리를 하나하나 잘랐습니다. 가장
크고 가장 흉직하게 생긴 머리를 베어냈을 때야 용의 몸이 잠잠해졌습니다.
위대한 신 라온은 용의 커다란 머리를 어깨에 걸머지고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기뻐 소리치며 라온을 성대히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라온을 맞는 사람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임금님의 아름다운 딸이
었습니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공주와 라온은 결혼을 하여 현재 필리핀 네그로
스 섬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신 라온의 용기를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용이 있었던 산을 '라온
폐하'라는 뜻인 '칸 라온'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별님 아가씨
구름 없는 맑은 밤하늘에 수천의 별들이 반짝이는 보석처럼 빛날 때 우리는
세 개의 별이 함께 짝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별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좀더 크고 환한 별 하나를 볼 수 있습니다. 이푸가오 지방 사람들은
이 네 개의 별은 자매들인데 가장 반짝이는 네 번째 별이 바로 오랜 옛날에 그
들 부족 중의 한 사람과 결혼했던 별님 아가씨라고 믿고 있답니다.
옛날에 논을 많이 가진 부유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밤 벼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물이 넉넉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논으로 가곤 했습니다. 그는 근처
연못의 물을 논으로 끌어오는 물길을 혼자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연못가에서 들려 오는 듯한 젊은 아가씨들의 웃음소리를 들
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해 보았으나 깔깔대며 웃는 소리는 끊이지 않
았습니다. 그는 살금살금 연못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는 네 명의 아름다운 처녀들
이 물장난을 치며 즐겁게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 후 놀이에 지쳤다는 듯
어여쁜 아가씨들은 물 밖으로 나와 연못가 나무 아래 감추어 놓았던 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그 네 명의 아가씨들은 옷을 날개삼아 하늘로 날아올라갔습니다. 깜
짝 놀란 젊은이는 목욕을 하던 그 아가씨들이 별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다음 날 밤 그 젊은이는 다시 논으로 갔습니다.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요한 밤공기를 타고 네 명의 아가씨들이 깔깔대고 웃는 소리가 들려 왔던 것
입니다.
젊은이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네 명의 아가씨들 모두가 아름다웠는데 그
중의 하나는 다른 세 명보다도 더욱 빼어나게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다른 처
녀들에 비해 좀더 조용했고 수줍어 보였으며 물장난치는 다른 자매들에게서 조
금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녀의 살결은 그들 중 제일 희고 부드러워 보였으며 눈
도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이 네 번째 아가씨를 깊이 사랑하게 된 젊은이는 처녀
들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슬펐습니다. 그는 그 아가씨들을 또 볼
수 있을지 어떨지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그는 허리를 굽히고 살금살금 연못가로 다가가 물가 숲 속에
숨었습니다. 그는 연못으로 오는 처녀들의 생기 있는 재잘거림을 들었습니다. 연
못으로 들어가며 아가씨들은 하나하나 옷을 벗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가씨
가 나무 밑에 놓아 둔 그녀의 옷을 감추었습니다. 처녀들이 수영을 즐기는 동안
그는 그의 대나무 피리 속에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의 옷을 집어넣고 재빨리 허
리춤에 피리를 숨겼습니다. 그러고는 숨어 있을 곳을 찾아 그 자리를 떠났습니
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 처녀들은 옷이 있는 곳으로 갔으나 가장 예쁜 처녀는 자
기 옷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헛되이 옷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자매들은 밤이 다 지나 빨리 집에 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기다
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늘로 돌아갈 옷을 잃어버린 아가씨는 눈물에 젖어
홀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숨어서 몰래 엿보던 젊은이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왜 울고
있느냐고 친절하게 물었습니다. 그 처녀는 옷을 잃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
나 하늘로 올라갈 때에 옷을 날개로 사용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저와 결혼해 주신다면 저는 당신에게 다른 옷을 드리겠습니다."하고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슬픔에 찬 처녀는 자신의 옷이 특별한 옷이라고 얘기하지
는 않고 그냥 조용히 그 젊은이를 따라갔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이 부부에게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아기가 자라서 집안을 뛰
어다니게 되자 젊은이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집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놀아도 괜찮아요. 그러나 절대로 저
아이가 내 대나무 피리를 가지고 놀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 주구려."
아내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아이의 손이 닳지 않는 곳에 피리를 치웠습니
다. 어느 날 아버지가 논으로 나갔을 때 아이는 피리를 찾아냈습니다. 아이는 피
리를 불어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더욱 세게 피리를 불어도 피
리 속에 들어 있는 그 무언가에 의해 소리가 막힌 것 같았습니다. 피리 구멍으
로 안을 들여다 본 아이는 피리 속에서 아름다운 천으로 된 옷을 끄집어냈습니
다.
"엄마, 이 피리 속에서 나온 것 좀 보세요! 제가 피리를 불 때 이상하게도 아
무런 소리가 나지 않더라니까요!"
그것은 물론 그의 어머니가 오래 전에 연못가에서 잃어버렸던 옷이었습니다.
옷을 되찾은 별 아가씨는 고향으로 되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슬픈 눈
빛으로 아들에게 입을 맞춘 별 아가씨는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자기 아내가 땅 위의 가정을 버리고 하늘로 날아간 것을 안 젊은이는 몹시 슬
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름이 없는 맑은 밤하늘에 다른 자매별들과 함께 반
짝이는 별들 속에서 아내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그에게는 그녀가
밤하늘의 모든 별들 중에서 가장 밝고 아름다운 별이었습니다.
제 2 부
야자나무의 전설
옛날 필리핀의 민다나오에 '강가의 왕국'이라는 뜻의 '방고남사 풀랑구이'라는
왕국이 있었습니다. 이 왕국은 정의롭고 착한 임금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이
왕국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임금의 외동딸 '뿌트리
팀방나맛' 공주가 뛰어나게 아름다워 더욱 유명했습니다.
그녀는 그 당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처녀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긴 이름
은 '우아한 아가씨'라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뿌트리 공주에게 청혼하려는 구혼자 일곱 명이 바다를 건너서 왔지만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구혼자들의 끈질김에 감동을 받은 임금은 일
곱 명의 청혼자를 대신해 딸에게 그들 중 하나를 고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죽을 때를 대비해 나는 후계자가 필요하단다. 내가
눈을 감기 전에 네가 결혼하는 것을 보고 싶구나."하고 임금은 말했습니다. 그러
나 공주는 아버지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몇 달이 더 지나갔습니다. 마침내 임금님은 모든 청혼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들
은 그들 중 누가 공주의 사랑을 얻을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하는 경기를 열기로
동의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공주는 두려움에 싸여 "나와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없다."하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화가 난 공주는 가장 사랑하는 하녀를 불러서 자기를 정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공주는 그녀가 지금까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잘생긴 정원
사 '와타마마'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도 몰래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공
주의 하녀를 빼놓고는 아무도 이 일을 몰랐습니다. 공주는 앞으로 열릴 경기와
그 결과에 대한 두려운 심정을 와타마마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와타마마도 그의
과거를 공주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공주님, 저도 원래는 왕자의 신분입니다. 저의 원래 이름은 '츠메찬 사 알롱
산'(태양의 빛도 꺾을 수 있는 힘센 사람)이랍니다. 제가 세 살 때 누군가가 저
를 부모님에게서 떼어놓았습니다. 욕심 많은 제 숙부가 왕국을 빼앗고 아버님을
사형에 처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그만 끊겨 버렸답니다."
공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을 부드러운 손으로 막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누구이든가 그리고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가는 제게 그리 중요하지
않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드디어 두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나라로 도망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이 도
망갈 준비를 할 때 왕국의 한 장군이 그들의 계획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장군
역시 남몰래 공주를 탐내고 있었기 때문에 공주의 운명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궁전의 어두운 한 구석에서 그 장군과 장군의 부하
들이 도망가려는 두 남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막 궁전을 떠나려 할 때 어둠 속에서 장군이 뛰어나와 날카로운 칼
로 와타마마의 목을 쳐서 머리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공주는 두려움에 떨지
만은 않았습니다. 그녀는 와타마마의 머리가 굴러 떨어진 곳으로 뛰어가 그것을
베일로 소중하게 쌌습니다.
얼마 후 그 소식을 들은 임금과 수백의 군사들이 그곳에 나타났습니다. 그 장
군은 부하와 함께 감옥으로 끌려갔고 와타마마의 잘린 머리통을 안고 서 있던
공주는 그녀의 방으로 뛰어갔습니다. 공주는 침대 위에 올려놓은 머리통 옆에서
아흐레 밤낮을 꼬박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서 머리통을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꼭 잠그고 방에만 박혀 있었습니다.
임금은 몹시 근심하였습니다. 어느 날 임금은 오랜 설득 끝에 공주의 방에 들
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임금은 "내 사랑하는 딸아, 이젠 제발 그 머리를 땅 속에
묻도록 하자. 네가 그의 머리를 땅에 묻지 않으면 그는 결코 천국에 갈 수가 없
단다."하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공주는 "예, 아바마마, 묻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창문 바로 아래
묻어 제가 밤낮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리하여 마침내 와타마마의 잘려진 머리는 땅에 묻힐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창 아래를 내려다보던 공주는 한 작은 식물의 싹이 땅 속에서 솟
아난 것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그 작은 싹은 공주가 앉아 있는 창문까지 닿는
커다란 나무로 자라났습니다. 그 이상한 사건은 공주의 호기심을 자아냈습니다.
공주는 하녀가 그만 사정할 때까지 밤늦도록 그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공주는 크고 멋진 나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
이었습니다. 공주는 남자의 머리통 만한 크기의 둥그런 열매가 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타바토 지방의 이야기꾼들은 이 열매가 이 세상에서 제일 처음 열린 열매라
고 이야기한답니다. 야자 열매 겉껍데기를 벗기면 앞으로 튀어나온 두 눈과 입
까지 있어서 마치 한 남자의 머리통처럼 보인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야자 껍데기는 가시나 털이 없는데 그것은 옛날 사람들이
머리를 길게 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나라의 사람들은 머리를 면
도로 박박 밀었다고 합니다.
망고 나무의 전설
칼리부라는 마을에 성질이 고약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번개라는 뜻
의 대오그덕이라는 이름의 남자였습니다. 한편 그의 아내는 아주 친절하고 상냥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가논이라는 샛별처럼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
었습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아가논은 더욱더 아리땁게 자랐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에
서 그녀의 사랑을 구하는 청혼자들이 많이 왔습니다. 그중 성질이 몹시 사나운
매오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오그덕은 이 사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남자와 결혼시키지 말아주세요, 아버님."하고 아가논은 애원했습니다. 어머
니 마부웃조차도 눈물을 흘리며 간청했습니다.
"안 돼! 너는 내가 고른 남자와 결혼해야만 해."하고 대오그덕은 무섭게 말했
습니다. 신랑이 될 매오픽은 뛸 듯이 기뻐하였습니다.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지만
처녀는 방문을 잠그고 밖에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 잔치에 참석하러 모여들어 온 집안은 떠들썩한 소리로 가
득 찼습니다. 그러나 신부가 될 처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찾
아 온 마을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마침내 단검을 가슴에 꽂은 채 죽어 있는 그녀의 시체가 시냇가에서 발견되었
습니다.
다음날 밤 아가논이 아버지 꿈에 나타났습니다. 혼령은 맑은 시냇물 소리같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딸 아가논의 죽은 혼령이랍니다. 아버지께 가르쳐 드릴 게 있어
왔어요. 시냇가에 내려가 보시면 아버님이 저를 묻었던 장소에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실 거예요."
이렇게 말을 마친 아가논의 혼령은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슬픔에 잠긴 부모들은 딸의 무덤에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심
장처럼 생긴 노란 열매가 달린 커다란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그 과일은 가엾은 아가논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웠습니다. 이 과일이 바로 망고
랍니다.
복수의 불꽃나무
옛날에 한틱이라는 마을에 그 마을 촌장의 딸인 다이라는 소녀가 살았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아침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상냥했습니다.
여러 지방에서 몰려든 많은 청혼자들이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그녀는 혼자였습니다.
어느 날 다이가 들판에서 풀뿌리를 캐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다가왔습니다.
그 잘생긴 나그네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멈추어 선 채 그녀에게 미소를 지
었습니다.
다이는 처음으로 그녀의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다
이는 이것이 첫사랑이 싹터 오는 것인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를 본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넌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무슨 일이 있었지?"
소녀는 몹시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 일을 알게 된 다이의 아버
지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그 낯선 청년은 다름아닌 원수 사이인 이웃
마을 촌장의 아들 '탕가로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녀석을 멀리 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하고 아
버지는 무서운 목소리로 경고했습니다.
겁에 질린 소녀는 아버지의 뜻에 따를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 슬픈 소식을 들
은 탕가로우는 그들이 몰래 만나 함께 달아나자는 내용이 적힌 쪽지를 남몰래
보냈습니다. 약속한 날에 다이는 집을 살며시 빠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탕가로우를 샘낸 또 다른 다이의 청혼자가 몰래 그들을
엿보고 그 소식을 다이의 아버지에게 전했습니다. 촌장은 그의 부하들을 불러
당장 달아나는 두 사람을 쫓아가서 화살로 쏘라고 명령했습니다.
가슴에 화살이 꽂힌 채 탕가로우의 품에 안겨 죽어가며 다이는 조상들에게 호
소했습니다.
"저의 원수를 갚아 주옵소서."하고 다이는 울부짖었습니다.
갑자기 다이의 애원에 대한 답인 양 하늘이 어둠침침해졌습니다. 억수같은 비
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강물이 불어나고 그리고 온 마을에 홍수가 졌습니다.
"이것은 산신령 마디아스의 저주야."라고 어린애들을 안고 산언덕으로 물난리
를 피해 가면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물이 줄어들자 두 사랑하는 사람이 묻힌 무덤 가에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솟
아올랐습니다. 가엾은 다이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그 나무는 '복수의 불꽃나무'
라는 뜻인 '다답'이라고 불렸습니다. 마치 불이 붙는 듯 찬란한 붉은 오렌지 빛
의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지금도 필리핀의 많은 지방에서 오월과 유월이 되면 피
어난답니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종
아주아주 오래 전에 필리핀의 삼토이(혹은 일로코스) 해안 지방에 아주 경건
한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조상신과 조상의 혼령들을 숭배하였으며 산과
들의 신령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기도했습니다.
하늘의 신령들과 산신령들이 경건한 그들에게 축복을 내렸습니다. 그들의 마
을에는 풍요로움이 가득 찼습니다.
이웃 지방의 사람들은 이 사람들의 신나는 행운에 샘이 났습니다.
"삼토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잘사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하고 그들
은 말했습니다.
그들은 삼토이 사람들은 재난이나 어려운 일이 닥칠 때면 꼭 어떤 커다란 종
을 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자처럼 생긴 종은 산신령인 아뽀 볼리나엔이 준
것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우리 그 종을 훔쳐낸 다음 그 마을에 쳐들어 가도록 합시다."하고 그들은 결
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씨 사나운 계획은 사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삼토이 사람들은 종루에서 종을 떼어 숲속 깊은 곳에 묻었습니다.
두 지방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전쟁으로 양쪽 지방의 많은 사람들
이 죽었습니다. 마침내 용감한 삼토이 사람들은 적들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승리의 기쁨에 넘친 삼토이 사람들은 종을 다시 꺼내 달기로 했습니다. 그러
나 안타깝게도 그 종을 파묻었던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처음으로 큰 가뭄을 겪게 되었습니다. 땅이 몹시 메말라 곡
식은 모두 죽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비를 내려 달라고 수없이 기도했습니다. 그
러나 그 종이 없이는 산신령인 아뽀 볼리나엔과 더 이상 의사 교환을 할 수 없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한 소년이 먹을 수 있는 식물 뿌리를 찾아 숲속을 여기저기 돌아다녔
습니다. 숲 속 깊은 곳에 이르렀을 때 소년은 빨간 과일이 달린 커다란 나무를
보았습니다.
"저 과일은 작은 종처럼 생겼네."하고 소년은 중얼거렸습니다. 과일을 딸 수
있는 한 많이 따가지고 소년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른들은 그 종 모양을 한
붉은 과일이 그들이 잃어버렸던 종과 똑같이 생긴 걸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얘야, 너 어디서 이 과일을 땄니?"하고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저기 숲 속에서 땄어요."하고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과일이 많이 달린 그 나
무를 보는 순간 사람들은 기쁨에 차서 "마쿠파(수많은 종)."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 밑을 조심스럽게 파헤쳐 보니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종이 있었
습니다. 사람들은 기쁨에 차서 나무 주위를 돌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모
두들 기쁨에 넘쳐 종탑으로 그 종을 가져오는 행렬에 참가했습니다. 얼마 동안
의 예식을 올린 후 그 지방의 지도자가 종을 쳤습니다. 맑고 은은한 종소리가
언덕과 들과 산에 메아리치며 울려 퍼졌습니다.
그 순간, 마치 그들의 기도에 대답이나 하듯 커다란 구름이 하늘을 어둡게 만
들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언덕은 다시 초록으로 변하고 곡식도 싹을
틔웠으며 나무들은 꽃을 피웠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굶주림에 몰아넣었
던 가뭄도 끝이 났습니다.
고마움에 대한 표시로 사람들은 종처럼 생긴 과일을 맺는 그 나무를 많이 심
었습니다. 그들은 이 나무를 미쿠파(많은 종)라고 불렀습니다.
발레테 나무의 전설
옛날에 카피스 지방에 아주 훤칠하게 생긴 젊은이가 살았습니다. 나이가 찬
젊은이는 결혼을 하고자 했으나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여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
다. 실망한 젊은이는 신부감을 찾아 멀리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긴 여행 때문에 젊은이는 아주 피곤했습니다. 그는 어떤 나무 아래 앉아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잠을 잤는지 젊은이는 알지 못했습니
다. 문득 잠에서 깨어난 젊은이는 어떤 할머니가 그에게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
습니다.
그 할머니 역시 몹시 피곤해 보였고 태양은 아주 뜨거웠습니다. 젊은이는 그
할머니에게 나무 아래 앉아 쉬어가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 아주 피곤해 보이시는 군요."하고 말하며 젊은이는 할머니에게 시원
한 물을 주었습니다.
"그렇다우, 나는 아주 피곤해요. 이렇게 무더운데 바람 한 점 없군요. 그런데
젊은이는 어딜 가는 길이우?"하고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아가씨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하고 젊은이는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왜 웃으세요, 할머니?"하고 젊은이가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자네는 아가씨를 찾는 게 아니고 신부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지."
라고 할머니는 대답했습니다.
"우리 마을에 사는 처녀들은 제 맘에 들지 않기 때문에 딴 곳에서 찾고 있는
중이랍니다."하고 젊은이는 슬프게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노파는 자신의 짐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작은 상자에서 할머니는
이상한 모양의 씨를 꺼냈습니다.
"자, 젊은이, 이 씨를 땅에 잘 심게나. 이 식물을 잘 돌보면 자네의 근심은 사
라질 걸세."
이 말을 남기고 할머니는 길을 떠났습니다.
젊은이는 집에 돌아오자 마자 그 할머니가 시킨 대로 했습니다. 씨앗은 곧
싹을 내밀었습니다. 몇 주가 지나자 마치 마술에 걸린 듯 그 작은 식물은 커다
란 나무로 자라났습니다.
어느 날 아침 청년은 한 아름다운 처녀가 그 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젊은이는 그 할머니가 했던 말들을 떠올렸습니다.
젊은이가 다가가자 처녀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젊은이는 처녀에게 결혼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당신과 기꺼이 결혼할 수 있지만 항상 당신과 있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
하면 언젠가는 제 고향인 나무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하고 아가씨는 말
했습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아주 행복했습니다. 젊은이는 처녀의 경고를 까맣
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슬픔에 빠진 젊은이는 그녀를
찾아 헤매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젊은이는 나무로 다가가 그 처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대답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는 나무 아래 쭈그리
고 앉아 부끄러움도 잊고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얼마 후 젊은이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래서 저는 제 고향
인 나무로 돌아와야만 했어요.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는 마세요. 언젠가 다시 또
당신에게 돌아가겠어요."
달밤이면 그 젊은이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머리를 빗는 모습을 하고 있는
아내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기쁨과 슬픔의 뜻이라는 발레테
나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바나나 이야기
옛날 필리핀 루손 섬 남쪽에 있는 비콜 지방에 아주 용감한 말리나이라는 처
녀가 살았습니다. 그녀는 숲 속에 혼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의 나이 많은 어른들은 동굴, 샘물, 나무, 그리고 집 주변에 초자연적
인 존재나 신령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신령들이 가
까이 오면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맛있는 음식의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
나 신령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말리나이는 신령을 보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녀는 신령을 만나기 위해 샘
물과 동굴 주변을 여기저기 거닐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엔칸다다'라는
신의 아들인 '발통'이라는 신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녀를 어여삐 여긴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그녀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녀는 놀라서 움칠했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아가씨.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겁니다."하고 그 잘생긴 젊
은이는 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아주 행복했습니다. 그러
나 그는 말리나이에게 자기의 신분을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사람의 모습을 할 수 있는 날이 다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말리
나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뜻밖에도 이별 인사를 하자 당황해했습니다. 그리고 슬
픔에 싸여 울기만 하였습니다.
"저도 당신과 함께 가겠어요. 당신이 없는 세상은 생각조차 할 수 없어요."하
고 말리나이는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갈 수 없어요. 나는 내 조상들의 땅으로 가야만 한답니다."
하고 발통은 말리나이에게 사정하였습니다.
말리나이는 몹시 슬펐습니다. 그녀는 발통을 꼭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발통의 몸이 미끄러져 나가는 것을 말리나이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지 발통의 손만이 말리나이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말리나이는
사랑하는 발통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손을 여기 묻어 주오, 말리나이."
말리나이는 눈물로 땅을 적시며 목소리가 시키는 애로 했습니다.
오래 되지 않아 손이 묻힌 장소에 부드러운 줄기와 긴 잎을 가진 나무가 자라
났습니다. 말리나이는 매일매일 그 나무가 자라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나무에
맺힌 열매는 사람의 손 모양과 비슷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나나랍니다.
물에 젖지 않는 토란잎
옛날에 강가의 한 작은 오두막집에 아름다운 처녀가 살았습니다. 그 처녀는
식물을 아주 사랑하여 그녀의 정원은 무성한 나무와 만발한 꽃으로 가득 찼습니
다. 매일매일 그 처녀는 나무에 줄 물을 강에서 길어 왔습니다. 강에 사는 강의
신이 매일 이 아름다운 처녀가 물을 길러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 참으로 아름다운 아가씨구나. 나무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다정한지!"하고
강의 신은 혼자 말했습니다.
처녀를 사랑하게 된 강의 신은 어느 날 물을 길러 강에 나온 처녀 앞에 나타
났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저는 매일 아가씨가 온 정성을
다하여 사랑스런 꽃과 나무에 줄 물을 길어 가는 것을 보았답니다. 당신을 사랑
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저를 사랑해 주시고 제 아내가 되어 주시지 않으시렵니
까?"
"어머나, 저는 인간이고 당신은 신이에요. 제가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길 바라
십니까?"하고 처녀는 놀라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나를 사랑하지 않을 지 모르나 시간이 지나면 나의 사랑을 받아
주게 될 것입니다."하고 강의 신은 말했습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할 거예요."하고 처녀는 차갑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하고 강의 신
은 말했습니다.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강의 신은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러 올 날짜를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처녀는 그 강의 신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슬펐습니다. 강
의 신은 그녀의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암시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
남에 따라 그녀는 강의 신에 대해 잊어버렸고 모든 일을 한때의 나쁜 꿈으로 돌
려 버렸습니다. 다시 여름이 되었습니다. 찬란한 태양 아래, 아름다운 처녀의 정
원에 있는 꽃들은 다시 피어나 태양이 입맞춰 주는 꽃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광채를 마음껏 자랑했습니다. 그 처녀 역시 활짝 핀 꽃 못지 않게 빛났습니다
그녀는 나무와 꽃들에게 행복한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강 저쪽 아래에서도 누군가가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산들바람에 노랫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내일이면 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결혼 종이 울리리. 내일이면 나는 나의
신부를 맞으리니."
처녀에게 돌아오리라고 했던 정확한 시간에 강의 신은 나타났습니다. 그는 결
혼식 예복을 멋지게 입고 있었습니다. 또다시 그는 아름다운 처녀에게 결혼해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예전과 똑같이 차갑게 그녀는 거절했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이미 대답을 드렸었고 제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강의 신은 한갓 인간이 자기와 결혼하는 것을 끝내 거절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존심이 몹시 상한 강의 신은 화가 나서 처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나와 결혼하고 싶지 않으세요, 아름다운 아가씨? 그럼 당신은 그
누구와도 결혼할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은 나무와 꽃만을 사랑하니까 나는 당신
을 식물로 만들어 드리겠어요. 그러나 당신은 잎사귀가 절대로 젖지 않아 잎사
귀로 물을 사실 수도 없는 식물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목석 같은 가슴이 부드
러워져서 나의 아내가 된다고 동의하지 않는 한 당신은 영원히 토란이라는 식물
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잎사귀들은 비의 시원함도 모를 것이며 시원한 물도 마
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름다운 처녀는 토란으로 변했습니다.
이푸가오의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지금까지 강의 신과 결혼하는 것을 거절한
듯 보입니다. 왜냐하면 토란잎은 지금도 물에 젖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팽이의 눈물
손으로 달팽이를 잡으면 달팽이 껍데기에서 물방울이 흘러나옵니다. 필리핀의
섬 비사야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물방울이 달팽이의 눈물이라고 믿고 있습
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모든 피조물이 말하는 능력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총각 달팽이가 강둑을 따라 기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한 아름
다운 새우 아가씨가 목욕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새우 아가씨의 아름다
움에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걸 알아차린 새우 아가씨는 놀라서 도망가려
고 했습니다. 그러나 달팽이가 아주 친절해 보였기 때문에 그녀는 그 자리에 그
대로 있었습니다.
그들은 강에서도 자주 만났습니다. 때로는 강둑과 언덕 그리고 깊은 숲 속까
지 가서 놀았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사랑으로 익어 갔습니다. 그들은 결혼했습니다. 강 언덕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그들은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달팽이는 새우 부인을 남겨 두고 먹을 것을 찾으러 논으로 갔습니다.
그는 익은 곡식 열매가 달린 줄기를 보았습니다. 그는 그가 모을 수 있는 한 많
은 곡식을 모아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새우 부인은 줄기에서 그 황금의 곡식
을 추수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남편 달팽이는 돌절구에 곡식을 찧었습니다. 솥에
서 익어 가는 쌀밥 냄새는 아주 맛있었습니다.
"우리도 벼를 논에 심읍시다. 그러면 곡식을 가지러 그렇게 멀리가지 않아도
될 것이오."하고 남편 달팽이는 말했습니다.
그 말이 새우 부인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그녀는 온순한 부인이었기 때
문에 동의했습니다. 새우 부인은 땅을 부드럽게 하고 씨앗을 뿌리고 곡식이 자
라는 것을 돌보느라 몹시 힘들게 일했습니다. 그 동안 남편인 달팽이는 나무 아
래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새우 부인은 몹시 실망했습니다.
"이제 나는 사는 게 아무런 재미가 없어."하고 그녀는 혼자말을 하곤 했습니
다.
어느 날 그녀는 강 깊은 곳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달팽이는 강으로 뛰어들어
그녀를 뒤쫓아갔으나 헛수고였습니다. 달팽이는 가슴 아프게 후회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달팽이는 헌신적인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계
속 울고 있답니다.
뿔 달린 카라바오
옛날에는 짐승들 중에서 말과 카라바오가 가장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들은 함
께 풀밭을 거닐며 서로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카라바오가 잠을 잘 동안은 말이
망을 보아주었고 말이 다른 동물들과 싸움을 하면 카라바오는 말의 편이 되었습
니다.
유난히 무더운 어느 날, 풀을 뜯고 있던 그들은 웅덩이를 찾아 미역을 감으면
서 더위를 식히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작은 웅덩이를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우리 둘이 들어갈 자리는 없는데..."하고 카라바오는 말했습니
다.
"우리 둘이 번갈아 가며 들어가기로 하는 게 어떻겠니? 네가 먼저 들어갔다
나오면 다음엔 내가 들어가도록 하자."하고 말이 얘기했습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야."라고 말하며 카라바오는 웅덩이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얼마나 시원하던지요. 카라바오는 물웅덩이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여 몸을 식
히며 편안히 누워 있었습니다.
"자, 카라바오야, 이젠 내 차례야. 너는 이제 그만 나오고 나 좀 들어가자. 너
는 그만하면 오래 미역감았잖아. 나는 너무 더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야."하고 말
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단 말야. 좀더 기다려."라고 말하며 카라바오는
웅덩이에 잠긴 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위가 너무 엄청났기 때문에
말은 마침내 참을성을 잃었습니다.
"당장 나오지 못하겠니. 나오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을 테다."
"네 맘대로 해봐라."
카라바오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시원한 웅덩이에 몸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말은 "못된 녀석, 몽둥이 맛을 봐야 알겠니."하며 막대기 하나를 카라
바오에게 던졌습니다 그 순간 이상 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카라바오의 머리에
맞은 막대기가 그대로 뿔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카라바오는 말과 달리 뿔이
달리게 되었답니다.
물고기의 비늘
북쪽 일로코스 지방에 어떤 마음씨 좋은 부부가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살결
이 곱고 칠흑같이 검은 머리가 치렁치렁하고 웃을 때면 뺨에 예쁜 보조개가 패
이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딸을 아주 사랑했습니다. 딸에게 아름다운 옷과 좋은 음식을 마련
해 주기 위해 그들은 들에서 매우 열심히 일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소녀의 아
름다움에 감탄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 소녀는 버릇이 없어지고 거만해졌습니
다.
어느 날 강둑을 따라 걷다 피곤해진 소녀는 바위 위에 앉아 시원한 물에 발을
담갔습니다. 그러고는 맑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정말 아름다워. 아무도 내 아름다움을 따라 올 사람은 없어."하고 그녀
는 스스로의 모습에 취하여 중얼거렸습니다.
그때에 게들의 왕인 보노왁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소녀의 아름다움
에 매력을 느낀 보노왁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옆에 앉았습니다 소녀는 낯선 사
람을 보곤 업신여기는 말투로 "당신은 누구세요?"하고 물었습니다.
"친구랍니다."하고 나그네는 웃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감히 당신 따위가 어떻게 친구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물에 비친 당신 모습을
보세요. 부끄럽지도 않으세요!"하고 소녀는 말했습니다.
게의 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그
를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당장 사라지세요! 당신의 얼굴은 내가 본 얼굴 중에서 가장 못생긴 얼굴이에
요."
보노왁은 정말 화가 났습니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서 처녀의 얼굴을
마구 할퀴었습니다.
"너같이 거만한 사람은 맛 좀 봐야 해."하며 꾸짖었습니다.
보노왁이 할퀸 상처는 딱딱하게 되더니 비늘이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나
는 변화를 느끼며 소녀는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하고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소녀는 돌을 하나 집어들어 보노왁에게 던졌습니다. 그러나 보노왁은 재빨리 몸
을 숨겨 돌을 피했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소녀를 막대기로 때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너는 강에서 살게 될 거야. 거기서라면 물에 비친 네 모습이나 감상
하며 내내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이리하여 한때 아름답고 사랑스럽던 소녀는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비늘이 소
녀의 온몸을 덮고 구슬같은 눈은 물고기 눈이 되어 어두운 물 속을 항상 꿰뚫어
보는 것같이 되었습니다.
원숭이가 생겨나게 된 이유
옛날에 '아브라'라는 골짜기에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오락을 위한 시간이 얼마든지 있었습니
다. 남자들은 하루 종일 마을을 일없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여자들은 잡담
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자 여자들 중 하나가 "우리 서로 머리에서 이를 잡아 주
는 게 어떨까?"하고 제의했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의 이를 잡았습니다.
이를 다 잡고 나자 또 한 사람이 "우리가 잡은 이로 싸움을 시켜봅시다."하고
말했습니다.
"그것 참 재미있겠는데."하고 다른 여자들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들은 고물거
리는 작은 이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재미있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재미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무시무시한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었습니다 거센 바람이 불더니 비가 억수로 퍼붓고 강물이 불어나기 시작했습
니다. 여자들은 놀라 강둑으로 피했습니다. 그러나 물은 점점 저 높이 올라왔습
니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천둥소리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물에 빠
져 죽지 않으려고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갑작스레 너무나 놀란 그들은 말할 능력을 잃어버리고 목소리도 쇳소리처럼
시끄러워졌습니다. 알아듣도록 얘기 할 수가 없어지고 단지 끽끽거릴 수밖에 없
었습니다. 그들의 몸은 털로 덮였습니다. 치마는 꼬리고 변했습니다. 그들은 나
무와 나무 사이를 그네 타며 옮겨 다녔습니다.
이리하여 필리핀에 원숭이가 생겼다고 합니다.
까마귀의 목소리
아주 옛날에는 모든 동물들에게 말하고 노래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도 새들이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고 새들 중에서도 까마귀가 제일 고운
목소리를 가졌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제일 곱다고 생각한 까마귀는 거만해
졌습니다. 숲에는 원숭이, 산돼지, 사슴 등의 짐승과 야생닭, 부엉이, 오리, 메추
리 등의 새들과 그 밖에 여러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노래는 할 수 있었으
나 까마귀만큼 아름답게 노래하는 짐승과 새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정오에 동물들은 숲으로 사냥 나오는 사냥꾼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떻
게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가를 상의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습니다. 맨 처음에
는 모두들 좋은 생각을 떠올리느라고 깊은 생각에 잠겨 조용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요란한 노랫소리 때문에 생각하는 데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회의중인 동물들을 방해하려는 듯 노래 부르는 까마귀였습니다.
"그만 그치지 못하겠니!"하고 원숭이가 소리쳤습니다.
"우린 상의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단다."하고 부엉이도 점잖게 타일렀습니다.
까마귀는 비웃는 듯 미소지었습니다.
"너희들은 내 목소리가 샘이 나서 그러지. 나는 내가 노래하고 싶을 때까지 할
거야."하고 까마귀는 말했습니다.
"제발 좀 그만 두세요, 까마귀 아가씨. 말 좀 잘 듣고 우리를 방해하지 말아
요."하고 산돼지도 타일렀습니다. 까마귀는 그들의 충고에 귀기울이지 않았습니
다. 까마귀는 목청껏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원숭이가 앞으로 나서 까마귀에게 말했습니다.
"까마귀 아가씨, 그대는 정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군요. 우리 집에도 좀 와
주시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당신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아주 기뻐할 거예요."
이 소리에 더욱더 우쭐해진 건방진 까마귀는 그 초대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들
은 함께 원숭이가 사는 나무 위의 집으로 갔습니다. 까마귀를 자기 가족에게 소
개시킨 뒤 원숭이는 까마귀에게 노래를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몇 곡의 노래가 끝나자 원숭이는 "멋지군요."하고 소리치며 까마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까마귀의 목을 꽉 졸랐습니다. 까마귀는 숨
이 막혀 기절했습니다. 원숭이는 까마귀가 깨어나도록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까마귀가 다시 정신을 차리자 원숭이는 까마귀에게 다시 노래를 해달라고 부
탁했습니다.
"또 다른 노래 한 곡만 해주세요. 아마 아직도 그대의 목소리는 아름다울 거예
요."
원숭이의 말에 어리석은 까마귀는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까마귀의 고
운 목소리는 쇳소리 같은 외침으로 변했습니다. "까악, 까악, 깍."
이렇게 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하하."
원숭이 가족과 다른 동물들도 따라 웃었습니다.
부끄러워진 까마귀는 그 자리를 떠나 멀리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까
마귀는 숲을 떠나지 않고 나무 주위만 맴돌고 있다고 합니다. 까마귀는 단지 "까
악, 까악, 깍"하는 쇳소리를 내며 울 뿐입니다.
개구리의 교훈
옛날에 먹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자신은 일하
기를 싫어하면서 아내는 하루 종일 고구마 밭에서 일하도록 시켰습니다. 그는
그냥 집에 남아 하루 종일 먹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배는 산처럼 부풀어
아주 커다랗고 팔과 다리는 운동 부족으로 빼빼 마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잔치에 초대받은 그는 집을 나섰습니다. 잔칫집에서 너무 많이 먹은
그는 집으로 걸어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내에게 "당신의 고구마
바구니에 나를 넣어 업어 가시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강을 건너가
던 중 너무 무거웠던 그는 바구니 밑이 터지면서 그만 강물로 떨어지고 말았습
니다.
화가 난 그는 아내를 마구 야단쳤습니다. 그러나 넘실대는 강물이 입으로 들
어가자 그의 말소리는 단지 "개굴, 개굴, 개굴"하는 소리로 변했습니다. 이미 그
는 한 마리의 개구리로 변해 버린 것이지요.
그러니 어린이 여러분, 너무 많이 먹기만 하는 사람은 개구리가 되니까 조심
해야 되겠어요!
참새 날개와 쥐
고양이 한 마리가 참새를 잡아서 날갯죽지만 빼놓고 다 먹어 치웠습니다. 바
로 그때 고양이는 쥐 한 마리를 날쌔게 잡았으나 너무 배가 불러서 먹지는 않았
습니다. 고양이는 다시 배가 고파지면 먹다 남은 참새 날개와 쥐를 먹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양이는 쥐가 죽었다고 생각했으나 쥐는 단지 죽은 척하고 있을 뿐이었습니
다. 고양이가 참새 날개를 쥐에게 찔러 넣고 자리를 뜨자마자 쥐는 도망쳤습니
다. 쥐는 자기에게 날개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참새 날개는 피가
말라붙어서 쥐 몸뚱이에 꼭 달라붙었습니다 그리고 쥐가 날 수 있도록 몸에 맞
게 날개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 나는 참새다. 쥐가 아닌 참새로 살려면 내 친구들에게 돌아가야겠어."하고
참새 날개는 말했습니다. 그는 논으로 가서 다른 참새 한 마리에게 결혼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참새는 "어머나, 당신은 털이 숭숭 났네요. 당신이 내 남
편이 되는 건 싫어요."하고 말했습니다. 참새 날개는 이 말에 실망하지 않고 또
다른 새에게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새도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오, 당신은 흉측하게도 생겼군요. 당신과 함께 있는 건 창피한 일이에요. 가서
쥐하고나 결혼하시지 그러세요."
참새 날개는 화가 나서 "그래, 너희들에게 본 때를 보여 주지."하고 말했습니
다. 그는 뒤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쥐들은 그를 환영하기
는커녕 마구 꾸짖었습니다.
"우리들에게서 떠나요. 참새들에게나 가서 당신의 그 아름다운 날개를 보여 주
시지 그래요. 당신은 아주 우쭐해져서 우리를 버렸지 않아요. 자, 이젠 당신 친
구들에게나 가세요!"라고 수리치며 쥐들은 그를 내쫓았습니다.
너무 부끄러웠던 참새 날개는 숨을 곳을 찾았습니다. 그는 낮 동안에는 자신
의 모습을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밤에만 날아다니기로 마음먹
었습니다. 자신의 몸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박쥐가 생겨나게 되었답니다.
앵앵거리는 모기 이야기
옛날 필리핀의 보홀 지방의 바닷가에 망글라라고 불리는 게들의 왕이 살았습
니다. 어느 날 밤 망글라는 그의 신하 게를 불러서 개구리들을 불러오라고 했습
니다. 신하 게는 왕인 망글라가 명령한 대로 곧 개구리들을 데려 왔습니다. 망글
라는 개구리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내가 잠을 잘 동안 내 집을 잘 지켜야 해. 그리고 내가 잠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만 한다. 알겠는가?"
"예, 임금님. 우린 항상 임금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게의 왕 망글라는 잠이 들었습니다. 망글라는 잠이 들자 코를 몹시 골았습니
다. 게다가 비가 세게 오자 빗소리와 코고는 소리가 서로 장단이라도 맞추듯 들
려 오자 보초를 서던 개구리들은 웃기 시작했습니다. 게의 왕은 웃음소리에 잠
을 깨 몹시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망글라는 아직도 너무 졸립고 피곤해서 화를
한 번 내고는 또 잠이 들었습니다. 망글라는 개구리 보초들을 불러 왜 시끄럽게
웃었느냐고 물어 보는 것을 그 다음날 아침까지 미루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망글라는 개구리 보초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왜 어제 저녁에 웃었지? 내가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느
냐?"
개구리 보초는 공손히 대답했습니다.
"달팽이 녀석이 집을 어깨에다 지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너무 우스워서 참
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금님."
게의 왕 망글라는 개구리들의 이유가 그럴싸했기 때문에 개구리 보초들을 용
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신하 게를 불러서 그 달팽이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달팽이가 대령하자 게의 왕은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젯밤에 무엇을 했지?"
"임금님, 저는 반딧불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제 집을 어깨에 지고 다녔습니다.
저는 하나 밖에 없는 집에 불이 날까봐 몹시 겁이 났었습니다."하고 달팽이는 공
손히 대답했습니다. 망글라는 달팽이의 그럴싸한 이유를 듣고 달팽이를 용서했
습니다. 그러고 나서 왕은 신하 게를 불러 그 반딧불을 데려오라고 명령했습니
다. 반딧불이 등장하자 왕은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어젯밤에 불을 가지고 다니며 장난했지?"
반딧불은 왕의 성난 목소리를 듣고 몹시 겁이 났지만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임금님, 모기란 녀석이 저를 항상 물으려 하기 때문에 불을 가지고 다닌답니
다. 모기한테서 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저는 앞으로도 항상 불을 가지고 다닐
수 밖에 없답니다."
게의 왕은 자신이 개구리의 시끄러운 소리에 깨지 않았었더라면 알 수도 없었
을 많은 문제가 그의 왕국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하 게
를 보내 모기를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신하는 잠시 후에 모기를 데리고 왔습니
다.
그러나 모기는 좋지 않은 일로 자신을 부르는 것일 거라고 짐작하고 집을 떠
나기 전에 다른 모기들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습니다. 모기가 궁전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게의 왕은 성난 목소리로 호통을 치고 있었습니다. 모기는 조
용히 날아가서 왕의 얼굴을 깨물었습니다.
모기에게 물린 망글라는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아야, 아야! 내가 개구리, 달팽이, 반딧불에게서 들은 말이 모두 사실이구나.
정말 모기란 녀석은 못된 놈이야."
게의 왕은 신하에게 모기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신하 게가
그 모기를 죽이기 전에 다른 모기떼들이 신하 게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신하 게
는 간신히 그 모기를 죽이고 자기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다른 모기들은 친구의
원수를 갚으려고 신하 게를 따라왔습니다. 신하 게의 집은 모래흙 속 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모기들은 신하 게의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기
들은 신하 게의 대문 가에 모여 앵앵거렸습니다.
이리하여 오늘날에도 우리는 게가 살고 있는 구멍 주위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고 앵앵거리는 모기떼들을 불 수 있습니다. 또한 모기들은 우리 사람들의 귓구
멍을 게들의 집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귓가에서 앵앵거린다고 합니다.
달팽이의 친구들
옛날에 붕어와 잠자리, 말벌 그리고 달팽이가 모두 한 집에서 살기로 했습니
다. 그들은 집안 일을 그들의 힘과 재능에 따라 나누기로 했습니다.
붕어는 그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컸기 때문에 대장이 되었습니다. 붕어는 또
한 딴 식구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잠자리는 가장 빨리 날 수
있기 때문에 심부름을 맡아 하기로 했습니다. 말벌은 무서운 침을 가졌기 때문
에 집을 지키는 보초 역을 하기로 했습니다. 보초 외에도 말벌은 집 짓는 데 필
요한 잎이나 진흙을 조금씩 나를 수 있기 때문에 집을 수리하는 일을 맡았습니
다. 달팽이는 집안 일을 하는 것외에 다른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느렸기 때문에
집안에서 요리하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붕어는 식구들의 먹이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수초
사이를 여기저기 헤엄치며 다니던 붕어는 갑자기 물 표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무
엇인가를 보았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물풀 사이에서 커다란 개구리 한 마리가
기운 없이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야. 이건 우리 식구 모두가 먹을 만한 훌륭한 음식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한
붕어는 주저 없이 그 개구리를 덥석 물었습니다. 붕어는 개구리가 도망치지 못
하도록 입에 꼭 물고 집으로 헤엄쳤습니다. 그러나 붕어는 다시는 그의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개구리 속에는 낚싯바늘이 숨겨져 있어서
그만 낚시꾼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붕어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쳤지만 낚시꾼
은 붕어를 바구니에 넣고 집으로 가서 찌개를 끓여 먹었습니다.
그 동안 다른 세 친구들은 붕어가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붕어가
길을 잃었나 보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잠자리를 보내 붕어를 찾기로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잠자리는 넥타이를 멋지게 매려고 오랫동안 매만졌습니다.
그러고는 높이 날아올라 붕어를 찾으려고 머리를 사방으로 돌렸습니다. 드디어
잠자리는 항상 입을 물 밖으로 내밀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볼라시'
라는 물고기를 보았습니다. 볼라시 물고기가 자신의 넥타이를 우습다고 비웃는
것이라고 생각한 잠자리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잠자리는 넥타이가 너무 헐겁게
매진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넥타이를 꽉 조여 맸습니다. 그래도 볼라시는 물 밖
으로 입을 들쭉날쭉 거리며 잠자리를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잠자리는 넥타이를
점점 더 꽉 조였습니다. 드디어 넥타이를 너무 꼭 조이는 바람에 잠자리의 목이
끊어져 머리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틀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붕어와 잠자리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말벌
과 달팽이는 배가 몹시 고팠습니다. 그러나 달팽이가 말벌보다는 나았습니다. 왜
냐하면 달팽이는 진흙이라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진흙을 먹을 수 없는 말
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팠습니다. 말벌의 허리는 굉장히 가늘
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벌은 붕어와 잠자리 친구들을 찾으러 날아갔습니다.
공중을 날아다니던 말벌은 배가 너무너무 고파 허리띠를 꽉 조였습니다. 그러다
그만 너무 세게 조이는 바람에 허리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이제 달팽이만이 집에 남았습니다. 달팽이도 드디어 잃어버린 친구들을 찾아
울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달팽이의 음식은 대부분 진흙이었습니다. 달팽
이는 풀숲이나 물 속에서 자라는 수초를 볼 때마다 그 잎에 올라가 옛 친구들이
어디 있나 보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오늘날에도 달팽이는 여전히 울고
있답니다. 그리고 물위로 솟아오른 수초의 잎새를 볼 때마다 달팽이는 잎새에
올라가서 옛 친구를 찾으려 하고 있답니다.
제 3 부
일곱 명의 바보들
옛날에 필리핀 루손 지방 북부에 일곱 명의 바보들이 살았습니다. 그들의 이
름은 쥬앙, 펠리페, 마테오, 페드로, 프란시스코, 율라리오, 그리고 하신토였습니
다. 그들은 항상 행복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펠리페가 친구들에게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카가얀 강가로 가서 오랫동안 돌았습니다. 오후 두 시쯤 되어 마테오가 친구들
에게 "배가 고프니까 이제 집에 가자."하고 말했습니다.
"그럼, 집에 가기 전에 우리가 모두 다 여기 있는지 세어 보자."하고 쥬앙이
말했습니다. 쥬앙은 자신들이 모두 몇 명인가를 세었지만 자기 자신은 빼놓고
세었기 때문에 여섯 명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 누군가가 물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그들은 모두 잃어버린 친구를 찾으러 강으로 뛰
어들었습니다.
물 속에서 다시 나와 이번에는 프란시스코가 친구를 찾았는지 알기 위해 그들
의 수를 세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을 빼놓고 세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하신토는 잃어버린 친구를 찾을 때까지 집에 가서는 안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물 속을 들어왔다 나왔다 할 때 한 노인이
지나갔습니다. 노인은 바보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바보들은 그들 중
한 명이 물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맨 처음 자네들은 모두 몇 명이었지?"하고 노인은 물었습니다. 그들은 일곱
명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 그래? 그럼 자네들 모두 물로 뛰어들어가보게. 내가 세어 볼 테니까."
그들은 모두 물로 뛰어들어갔고 노인은 그들이 모두 일곱 명이라고 말했습니
다. 잃어버렸던 친구를 다 찾은 바보들에게 노인은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습니
다.
바보들이 노인의 집에 도착하자 노인은 마테오와 프란시스코에게 역시 노인인
자기 아내를 돌보라고 하였습니다. 율라리오는 물 길어 오는 사람, 하신토는 장
작을 나르는 사람, 쥬앙과 펠리페는 사냥할 때 노인의 보조를 해주는 일을 각각
하게 했습니다.
그 다음날 노인은 사냥을 갈 터이니 쌀을 가져오라고 쥬앙과 펠리페에게 일렀
습니다. 얼마 후 산에 도착한 노인은 두 바보에게 열 시가 되면 밥을 하라고 말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노인은 사냥개와 함께 사슴을 잡으려고 산 위로 올라갔
습니다.
한 번도 산에 와본 적이 없었던 두 바보는 사슴을 본 적도 없었습니다. 펠리
페는 나무 밑에 서 있는 사슴을 보고 사슴의 뿔을 잎이 없는 작은 나뭇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자와 쌀자루를 뿔에다 걸었습니다. 물론 사
슴은 재빨리 달아났습니다. 노인이 돌아와서 밥이 다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펠
리페는 쌀자루와 모자를 달아나는 나뭇가지에 달아놓았다고 말했습니다. 화가
난 노인은 "이 바보야, 자네가 본 나무는 사슴의 뿔이야. 먹을 게 없으니 빨리
집으로 가자꾸나."하고 말했습니다.
그 동안 집에 남아 있던 다섯 명의 바보들이 노인이 시킨 일들을 하고 있었습
니다. 율라리오는 물을 길러 갔습니다. 샘에 가서 물 속을 들여다보던 그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그림자도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던 율라리오는 드디어 너무 피곤
해져서 물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신토는 땔감을 찾으러 밖에 나가서 고작 정원 둘레의 울타리를 망가뜨려 놓
았습니다. 페드로는 털을 뽑지 않고 닭을 요리했습니다. 그나마 너무 오래 불을
지펴 닭은 숯처럼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마테오와 프란시스코는 자고 있는 안주인의 얼굴에서 파리를 쫓았습니다. 그
러나 파리들이 끊임없이 달려들었기 때문에 몹시 피곤해진 그들은 파리를 죽여
버릴 커다란 몽둥이를 찾아 들었습니다. 파리 한 마리가 안주인의 코에 않자 그
들은 파리를 잡으려고 몽둥이를 아주 세게 내리쳤습니다. 그 바람에 안주인은
죽어 버렸습니다. 안주인은 마치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듯 죽어 있었습니다. 그
래서 두 바보는 안주인이 자신들이 파리를 죽였기 때문에 기분이 참 좋은가 보
다고 말했습니다.
두 바보와 함께 집에 도착한 노인은 페드로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페드로는 솥 안에 먹을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노인은 숯처럼 까맣게 타버린 닭
을 보고 요리를 했던 페드로에게 화를 냈습니다. 노인은 또 아내의 방문을 열고
그녀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인은 마테오와 프란시스코에게 안주인을
어떻게 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안주인을 괴롭히던 파리를 죽였더니 기
분 좋아하더라고 말했습니다.
바보들이 그 다음에 해야 했던 일은 죽은 안주인을 담을 관을 만드는 일이었
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관은 너무 얕아서 시체가 밖으로 자꾸 떨어져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노인은 바보들에게 시체를 성당으로 운반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뛰면서 운반을 했기 때문에 시체는 얕은 관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바
보들은 짐이 가벼워지는 걸 보니 뛰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서로에게 말했습
니다.
신부는 시체도 없는 빈 관을 보고는 일곱 명의 바보들에게 되돌아가서 시체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노인의 집으로 되돌아가던 바보들은 한 나이 든 아주머니
가 길가에서 나뭇가지들을 줍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주머니, 여기서 무얼 하세요? 신부님이 아주머니를 뵙자고 하십니다."하고
바보들은 소리쳤습니다. 그러면서 그 아주머니를 묶으려 하자 그녀는 자신의 남
편에게 소리쳤습니다.
"여보, 여기 웬 불한당 같은 녀석들이 나를 성당으로 끌고 가려 해요!"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바보들이 아내를 놀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내버려
뒀습니다. 바보들이 그 나이 든 아주머니를 데리고 오자 역시 약간 머리가 이상
한 신부도 그 아주머니를 위해 매장의식을 베풀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자신이
살아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질렀지만 신부는 이미 매장비를 받았기 때문에 아주
머니가 살았든 죽었든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바보들은 그
아주머니를 땅속에 묻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바보들은 자신들이 성당으로 운반할 때 관에서 굴러 떨어진
바고 그 시체를 보았습니다. 프란시스코가 이것은 그 나이 든 아주머니의 유령
이라고 소리쳤습니다. 몹시 겁이 난 그들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도망가 그 후
루손 지방 여러 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자가 된 살라삭
옛날에 두 형제가 살았습니다. 형의 이름은 쿠쿠누였고 동생의 이름은 살라삭
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그들은 남겨진 재산을 나누었습니다. 두 형제
는 각각 암소 한 마리와 논을 약간 물려받았습니다. 살라삭은 그의 형에게서 독
립하여 작은 집을 지었습니다.
어느 날 쿠쿠누의 논에 심은 벼가 자신의 벼보다 더 빨리 자라는 것을 본 살
라삭은 샘이 났습니다. 어느 날 밤 살라삭은 자기의 소를 형의 논에 풀어 놓아
벼들을 마구 짓밟게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쿠쿠누가 동생에게 달려와 말했습
니다.
"이 녀석, 다시 한 번만 네 소가 내 논을 망가뜨리게 하면 너를 가만 두지 않
을 것이다."
그러나 살라삭은 형의 말에 아무 대꾸도 않고 다시 소를 쿠쿠누의 논에 풀어
놓았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도록 화가 난 형은 그 암소를 죽여 버렸습니다.
형의 논으로 소를 찾으러 간 살라삭은 소가죽만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진 데다 형이 무섭기도 해서 살라삭은 형에게 따질 엄두조차 내지 못했
습니다. 그는 소가죽을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얼마 후 수많은 암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본 살라삭은 소를 따라갔습니다. 소
모는 사람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살라삭은 소가죽을 소에게 씌웠습니다. 그리고
소몰이꾼들이 있는 오두막집에 가서 소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실례합니다. 저는 일 주일 전에 소 한 마리를 잃었는 데 당신의 소 떼와 섞이
지 않았나 알고 싶습니다. 소가 몇 마리인지 좀 세어 주시겠습니까?"
가축 상인은 소 떼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가 소를 세고 있는 동안 살라
삭은 소가죽을 씌웠던 소에게로 가 가죽을 집어들며 "아, 여기 제 소라는 표시가
있군요. 이게 제 소의 가죽입니다. 당신은 제게 일천 페소를 내지 않으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소는 살아 있을 때 매일매일 돈을 낳았거든
요."
겁이 난 가축 상인은 곧 살라삭에게 일천 페소를 주었습니다.
살라삭은 형에게 가서 자신의 행운을 얘기했습니다. 동생처럼 부자가 되고 싶
은 쿠쿠누는 자기 소를 죽여 가죽을 벗겼습니다. 그는 큰 길에서 "소가죽을 사세
요."하고 소리쳤습니다. 이 소리에 포졸이 달려와 소가죽을 훔친 도둑이라며 쿠
쿠누를 잡아다 몹시 때렸습니다. 덕분에 그는 집에 간신히 걸어올 수 있었습니
다.
동생 때문에 망신을 당한 쿠쿠누는 몹시 화가 나서 살라삭이 외출한 틈을 타
서 동생의 집에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살라삭이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은 사라지
고 불타 버린 재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재를 자루에 넣고 살라삭은 행운을 잡
으러 다시 떠났습니다. 길에서 그는 돈을 한 자루 지고 가는 한 노인을 만났습
니다.
"할아버지, 어디 가십니까?"하고 살라삭은 물었습니다.
"나는 원님 댁에 이 돈을 갖다 드리러 간다오."하고 노인은 말했습니다.
"예, 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답니다. 제 짐은 가벼운데 그 무거운 것을 제가 져
다 드리겠습니다."하고 살라삭을 말했습니다.
"저런, 자넨 참 친절한 젊은이로군."하고 노인은 말했습니다. 그들은 짐을 바꾸
어 지고 또 걷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를 같이 걸어가다 살라삭은 노인에게 말했
습니다.
"영감님, 가벼운 짐을 지고 걸으시니 더 기운이 넘쳐 보이십니다. 얼마나 빨리
걸어가실 수 있나 좀 보여 주십시오."
노인은 젊은이의 말에 아무 의심도 품지 않고 걸을 수 있는 한 빨리 걸었습니
다. 노인이 보이지 않자 살라삭은 숨을 곳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는 형의 집에
가서 재 한 자루 대신 은돈 한 자루를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 집은 네 집보다 더 크니까 태우면 재를 두 자루는 얻을
수 있을 거야."
이리하여 형은 집을 태운 후 생긴 재를 자루에 담아 어깨에 지고 거리고 나갔
습니다.
"재를 사세요!"하고 쿠쿠누는 소리쳤습니다.
"저런 바보 같은 인간. 우리 집 아궁이에서 나온 재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
르겠는데 재를 사라구?"
이 소리를 듣던 부인들은 모두 한마디씩 했습니다.
쿠쿠누가 원님의 집 가까이 와서 소리치자 원님은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봐라, 저 녀석을 잡아들여라. 저 녀석은 지난 번에 내가 매를 친 녀석인데
또 저렇게 바보짓을 하고 다리리 매를 더 쳐야 되겠구나."
그래서 쿠쿠누는 또 실컷 매만 맞았습니다. 몹시 화가 난 쿠쿠누는 동생에게
절대로 다시는 속지 않으리라 결심했습니다. 쿠쿠누는 동생을 없앨 방법을 곰곰
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동생을 강에 던져 버리기로 하고 아주 크고 튼튼한
새장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쿠쿠누는 동생 살라삭을 잡아 그 새장 속에 가두
었습니다.
"자, 네게 삼 일 동안 반성할 기회를 주겠다. 더 이상 나를 속일 수는 없을 거
다."라고 말하며 쿠쿠누는 동생을 가둔 새장을 강둑에 내버려두고 떠났습니다.
한 젊은이가 둑길을 지나가자 살라삭은 울부짖었습니다.
"세상에, 원님 딸과 결혼하기 싫다고 했더니 그들이 저를 여기다 이렇게 가두
어 버렸어요."
원님의 딸과 결혼하려고 애를 썼던 그 젊은이는 귀가 번쩍 뜨여 살라삭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당신 대신 나를 그 새장에 들어가게 해준다면 내가 가진 많은 소를 드리겠소.
난 원님 딸과 결혼하는 것이 소원이라오."
이런 방법으로 살라삭은 다시 탈출했습니다. 삼 일 후 다시 강둑에 돌아온 쿠
쿠누는 새장 속에 갇힌 사람이 살라삭이라고 생각하여 그 새장을 강물 속으로
사정없이 던져 버렸습니다. 며칠 후 살라삭은 형에게 다시 나타나 물 속의 세상
은 참 아름답더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서 난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만났어요. 부모님께선 내가 당신들과 함께
있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하시면서 여기 있는 소들을 내게 주셨답니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우리 부모님을 만나 봐야지."
이렇게 말하며 쿠쿠누는 강물로 뛰어들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꾀많은 살라삭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안드레와 빨간 요술 보자기
어느 날 아침 안드레는 쌀을 한 되 사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길을 가던 안드
레는 작은 뱀 한 마리를 죽이려 하는 어떤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뱀을 죽이지 마세요. 그 뱀이 아저씨를 해쳤나요?"하고 안드레는 물었습니
다.
"아니오. 하지만 이 뱀이 다른 사람을 물지도 모르니까 죽이려는 것이오. 당신
은 이 뱀을 왜 죽이지 못하게 하는 건가요?"하면서 그 남자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그 뱀을 죽이지 마십시오. 불쌍하니까요. 여기 오 센타보(센
타보는 돈의 단위임)가 있습니다. 이걸 드릴 테니 그 죄 없는 뱀을 살려 주십시
오."하고 안드레는 외쳤습니다.
돈을 보자 마음이 변한 남자는 돈을 받아 들고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
습니다. 그 남자가 떠나자 놀랍게도 작은 뱀이 안드레에게 말을 했습니다.
"친절한 아저씨, 고맙습니다. 저와 함께 우리 집에 가시지 않겠어요?" 우리 집
엔 대장님과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려워하진 마세요. 위험하지 않
답니다. 우리 집에 가서 우리 대장님께 아저씨를 소개해 드리겠어요. 당신이 낯
선 사람이라 혹시 대장님이 처음엔 무뚝뚝해 보이더라도 상관하지 마세요. 우리
대장님이 아저씨께 무얼 원하냐고 물으면 대장님의 빨간 보자기를 달라고 하세
요. 그 요술 보자기는 아저씨가 원하는 무엇이든지 나오게 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그 작은 뱀을 따라 먼길을 여행하여 마침내 뱀굴로 들어갔습
니다. 안드레가 굴에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대장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큰 소리
로 물었습니다.
"너와 함께 있는 이 이상한 자는 누구냐? 살인자인가, 도둑인가?"
"아닙니다, 대장님. 이 사람을 물지 말아 주십시오.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저는
오늘 죽었을 것입니다. 잔인한 사람의 손에서 이 사람이 저를 구해 주었습니다."
하고 작은 뱀이 설명했습니다.
"그렇소? 참 고마운 일이군요. 당신에게 내가 어떤 보답을 하면 좋겠소?"하고
대장 뱀이 물었습니다.
"저는 대장님의 빨간 보자기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습니다."하고
안드레는 말했습니다. 대장 뱀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러더니 대장 뱀은 깊은
방으로 가서 빨간 보자기를 가지고 나와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 어린 뱀 친구를 구원해 주었으니까 이 보자기를 상으로 드리겠
소. 이 보자기는 당신이 원하는 무엇이든지 나오게 할 것이오."
안드레는 대장 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뱀굴을 빠져 나왔습니다. 시간을
벌써 열 시가 되었습니다. 안드레는 그가 아침밥을 지을 쌀을 아직도 사지 않았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엾은 어머니! 몹시 시장하시겠구나."
너무나 배가 고팠던 안드레는 빨간 보자기를 펴고 먹을 것을 달라고 말했습니
다. 그랬더니 안드레가 먹어 본 그 어느 음식보다도 훨씬 맛있는 음식이 풍성하
게 차려졌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서 이 음식을 마음껏 먹은 후 안드레는 집으로
떠났습니다. 아직도 집에 가려면 꽤 많이 가야만 했습니다.
몇 시간을 걸은 안드레는 다시 배가 고팠습니다. 안드레는 길가에 있는 오두
막집에 가서 주인 여자에게 그 집 마루에서 점심을 먹어도 좋으냐고 물었습니
다. 그리고 점심 식사는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인 여자는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안드레는 붉은 보자기를 펴고 "점심 식사가 나와라."하고 말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주 근사한 점심 식사가 그들 앞에 차려졌습니다. 안드레는
주인 여자도 같이 먹자고 초대했습니다. 주인 여자는 기막히게 맛있는 요리를
나오게 하는 그 붉은 보자기를 자신의 요술 돌멩이들과 바꾸자고 말했습니다.
"총각, 내 요술 돌멩이들과 그 붉은 보자기를 바꾸지 않겠나? 이 요술 돌멩이
들은 말만 하면 어디든 날아가서 주인을 괴롭히는 사람을 혼내준다네."
그 돌멩이가 신기했던 안드레는 그러자고 했습니다. 요술 돌멩이 두 개를 가
지고 안드레는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오랫동안 길을 걸은 안드레는 피로해지기
도 하고 배도 고팠습니다. 배가 몹시 고팠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붉은
요술 보자기도 없었고 주머니에는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안드
레는 길 저편에 있는 오두막집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간 안드레에게 그 집 할머
니는 친절한 목소리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막 저녁 식사를 마쳤기
때문에 배고픈 안드레에게 줄 음식이 없었습니다. 안드레는 요술 돌멩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돌멩이들아, 네 먼젓번 주인에게 가서 내가 붉은 보자기를 도로 달란다고 하거
라. 그 아주머니가 보자기를 주지 않으면 너희들이 알아서 좋은 대로 하거라."
그랬더니 두 개의 돌멩이는 그 오두막집으로 날아갔습니다. 주인 여자는 혼자
서 멋진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린 그 붉은 보자기를 도로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오늘 오후 여
기 있었던 우리 주인 총각이 그것을 도로 달라고 하십니다."
주인 여자가 보자기를 주지 못하겠다고 하자 두 돌멩이는 주인 여자를 마구
때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돌멩이들은 보자기를 휘말아 감고 그들의 주인에게 돌
아왔습니다. 안드레는 붉은 보자기를 펴고 주문을 해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리
고 보자기에게 다음날 아침의 멋진 식사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주인 할머니에
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내일 아침 식사는 준비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주문한 맛있는 음식
이 여기 있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안드레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고맙네, 총각. 여기 요술 지팡이 두 개가 있다네. 난 너무 늙어서 그것들이 이
제 필요 없어. 이 지팡이들은 주인을 못살게 구는 적들을 혼내 줄 수 있다네. 자
네가 방향만 알려 주면 이것들은 자네 말을 따를 걸세."
이렇게 해서 안드레는 세 가지의 요술 물건을 얻었습니다. 안드레가 집에 도
착하니 밤은 아주 깊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쌀을 사러 나가 소식이 없는 아들
을 기다리느라 배도 고프고 몹시 화가 나 있었습니다. 안드레를 본 어머니는 성
난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안드레는 웃으며 붉은 보자기에게 어머니를 위한 훌
륭한 식사를 달라고 했습니다. 깜짝 놀라는 어머니에게 안드레는 그 동안의 일
들을 얘기했습니다.
안드레의 이웃들은 안드레가 부자가 된 것을 매우 배아파했습니다. 그 중에서
도 가장 셈이 많은 부자는 안드레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어느 날 밤 도둑들을
안드레의 집에 보냈습니다. 깊은 밤 안드레는 개들이 짖는 소리에 누군가가 다
가오는 기척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도둑이라는 걸 안 안드레는 그의 요술 돌멩
이들과 지팡이들을 꺼내 도둑을 혼내 주라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지팡
이와 돌멩이에게 흠씬 얻어맞은 도둑들은 모두 땅에 쓰러졌습니다. 그 후로는
아무도 안드레와 그의 어머니를 해치려고 하지 못했습니다.
게으른 남편
옛날에 어떤 마을에 자식을 많이 둔 가난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아내인 바바
라는 아주 부지런하고 야무진 여자였습니다. 아내는 많은 자식을 위해 아주 열
심히 일을 했습니다.
반면 남편인 알레호는 빈둥빈둥 놀기만 했습니다. 그는 아내가 일하러 나가면
집안에서 잠만 자거나 먹고 마시기만 했습니다. 아내는 이 게으른 남편 때문에
몹시 속이 상했습니다. 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온 집안은 아이들이 어지럽혀
난장판이 되어있고 남편은 이런 수라장 속에서 낮잠만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화도 내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남편 알레호는 바바라의 잔소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집에서 다른 식구들이 먹을 음식까지 모두 먹어 치웠습니다. 아내 바바라는 점
점 더 화가 나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어린아이처럼
회초리로 때려 주었습니다. 마침내 이런 아내가 귀찮아진 알레호는 집을 떠나기
로 했습니다.
알레호는 숲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 사람이 보이지 않는 외떨어진 강둑을 따라
정처없이 갔습니다. 그러다 너무 피곤해진 그는 강가에 있는 나무 그늘 아래 누
웠습니다. 알레호가 자기의 처량한 신세를 생각하며 누워 있을 때 한 노인이 다
가와 말했습니다.
"젊은이, 무슨 일로 그렇게 슬퍼 보이오?"
"예, 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먹여 살려야 할 자식
들이 많은데 아주 가난하답니다. 게으름만 피우고 있었더니 제 아내가 화를 내
며 저를 때렸습니다. 그래서 전 돈을 벌려고 집을 나왔답니다."
"아, 그렇다면 걱정 마시오. 자, 여기 지갑이 있어요. 이 속에 있는 돈이 떨어
지면 '소폿 우아 우아 소폿'이라고만 주문을 외우시오. 그러면 돈이 나올 것이
오."
알레호는 너무나 좋은 선물을 받아 아주 기뻤습니다. 그는 친절한 노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을에 도착한 알레
호는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친한 친구의 집에 들러서 자신의 행운을 자랑했습
니다. 친구 내외는 술상을 차려 알레호를 대접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알레호는
그의 요술 지갑을 꺼내 친구 앞에서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자, 여보게, 내 지갑을 잘 보게나. 소폿 우아 우아 소폿."하고 알레호는 술 취
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랬더니 마룻바닥에 은화가 가득 쏟아졌습니
다. 이것을 본 친구 내외는 더 많은 술을 권하며 알레호를 취하게 했습니다. 알
레호가 잠이 들자 그들은 알레호의 주머니에서 요술 지갑을 꺼낸 후 다른 지갑
을 넣어 두었습니다.
한두 시간 낮잠을 잔 알레호는 친구 내외의 친절한 대접에 감사한 후 그의 집
으로 갔습니다. 그는 바바라가 등불아래서 아이들의 떨어진 옷을 깁고 있는 것
을 보았습니다. 알레호는 다정한 목소리로 부인을 불렀습니다.
"여보, 사랑하는 여보, 기뻐하시오. 이젠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오."
"오, 뻔뻔스런 사람. 제발 바보 같은 소리 좀 그만 하세요! 당신 같은 사람이
무슨 쓸모 있는 일을 하겠소. 거짓말 말아요."
"아니오, 여보. 난 사실을 말하고 있다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증거를 보여 주시구려."
"아, 그러지. 그런데 우리 아이들을 다 불러서 이 아버지가 발견한 행운을 볼
수 있도록 합시다."
아이들이 모두 다 둘러앉자 알레호는 노인이 가려쳐준 대로 주문을 외웠습니
다. 그러나 요술 지갑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바바라는 더욱 화가
나서 남편을 욕하며 내쫓았습니다.
슬픔에 찬 알레호는 다시 길을 떠나 예전에 노인을 만난 곳까지 왔습니다.
"알레호, 어디로 가지?"하고 노인은 물었습니다.
"노인장, 당신의 지갑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러면 이 염소를 자네 집으로 가져가게. 자네가 돈을 달라고 하면 이
염소가 줄 것일세. '칸딩 파그코로 키난딩'이라는 주문을 외우기만 하게."
알레호는 기꺼이 염소를 받아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마을에서 알레호는 친구
집에 들렀습니다. 친구 내외는 이전처럼 잘 대접했습니다. 술이 몇 잔 들어가서
기분이 좋아진 알레호는 요술 염소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리고 알레호가 취해서
곯아떨어지자 그들은 다시 자신들의 염소와 알레호의 염소를 바꾸었습니다. 잠
에서 깨어난 알레호는 염소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염소
가 돈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며 아내 앞에서 주문을 외었지만 염소는 그들을 멀
뚱멀뚱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바바라는 전보다 더욱 화가 나서 다시는 남편과
상대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알레호는 다시 노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숲에서 노
인을 만난 알레호는 말했습니다.
"노인장이 주신 염소는 제 주문에 움직여 주지 않았어요."
"오, 그런가. 그렇다면 이 식탁을 가져가게. 자네가 '텐데 라 메사'라고만 하면
온갖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질거야."
노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알레호는 요술 식탁을 메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
니다. 가는 길에 그는 전처럼 친구 집에 들러 좋은 대접을 받고 술김에 또 요술
식탁의 주문을 말해 버렸습니다.
"텐데 라 메사"라고 알레호가 말하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맛있는 음식이 그
들 앞에 차려져서 그들은 모두 즐겁게 마시며 먹었습니다.
알레호가 곯아떨어지자 친구 내외는 다시 자신들의 식탁과 그 요술 식탁을 바
꾸어 놓았습니다. 잠에서 깬 알레호는 다시 식탁을 메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는
배가 고픈 아내와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여 줄 테니까 와서 앉으라고 했
습니다. 식탁에 둘러 앉은 식구들 앞에서 알레호가 "텐데 라 메사."하고 주문을
외우자 식탁에서는 물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바바라는 알레호
를 심하게 때려 주었습니다.
알레호는 자신의 모습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그는 친구들 앞에서는 효과가
있었던 요술 지갑, 염소, 식탁이 왜 아내와 자식들 앞에서는 효과가 없는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알레호는 또다시 노인을 찾아 떠났습니다. 숲에 다다
르자 노인은 "어때 그 요술 식탁이 효과가 있었나?"하고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노인장. 그래서 저는 다시 여기로 왔습니다."
"알레호, 자넨 참 한심한 친구로군. 이 지팡이를 마지막 선물로 주겠네. 이제
자네에게 더 줄 것이 없으니 조심하게. 자네를 해치는 사람에게 '바스톤 파모돈!'
이라고 말하면 이 요술 지팡이가 날아가서 누구든 혼내 줄걸세. 상대가 임금님
이든 왕자이든 가리지 않고 말이야."
요술 지팡이를 받고 노인에게 감사한 후 알레호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에는 마을을 지날 때 친구의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갔습니다. 그는 아
내에게 잔치를 벌일 수 있도록 모든 친구와 친척과 이웃들을 초대하라고 했습니
다. 처음에 바바라는 지금까지의 일을 생각하고는 알레호의 말을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알레호의 끈덕진 요청에 바바라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
니다.
모든 친구와 친족과 이웃 사람들이 집에 모이자 알레호는 문과 창문을 모두
닫았습니다. 그리고 요술 지팡이에게 소리쳤습니다.
"바스톤 파모돈!"
그랬더니 지팡이는 알레호를 속인 친구 내외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친구 내
외는 놀라서 "아, 알레호. 살려줘! 자네의 요술 지갑, 염소, 식탁을 모두 돌려줄
테니 제발 우리를 살려 줘요!"
그 말을 듣고 알레호는 요술 지팡이에게 멈추라고 명령했습니다.
요술 지갑, 염소, 식탁을 도로 찾은 알레호는 부자가 되었고 그의 부인 바바라
도 남편의 말을 믿으며 아주 행복하게 잘살았다고 합니다.
파블로와 공주
옛날에 페드로, 쥬앙, 파블로라는 세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들
이 사는 고장이 너무 좁아서 재미없다고 생각한 세 명의 젊은 친구들은 먼 지방
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길을 걷다가 세 갈래 길에 다다른 세 친구들은 모두
각각 다른 길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서로의 행운을 빌며 작별하기 전에 그들은
돌아올 때 바로 이 세 갈래 길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먼저 세 갈래 길에
도착한 사람은 나머지 두 사람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페드로는 오른쪽 길을 택했습니다. 산을 건너고 물을 건너 여러 지방을 세 달
동안 돌아다닌 페드로는 한 도시에서 길을 가다가 어떤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
인은 배가 몹시 고프다고 하며 페드로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페드로
는 가지고 있던 빵을 모두 다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노인은 페드로에게 감사의
말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자네는 참 친절한 젊은이로군. 여기 이 융단을 선물로 주겠네. 자네가
이 융단 위에 앉아 가고 싶은 곳을 말하면 어디든 자네를 실어다 줄 것이네."
페드로는 기쁜 마음으로 그 신기한 융단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노인은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페드로는 그 도시를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페드로는 나머지 두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페드로가 융단 위에 앉자마자 유단은
페드로를 세 갈래 길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 세 갈래 길에 앉아서 페드로는
쥬앙과 파블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쥬앙은 왼쪽으로 난 길을 택했습니다. 세 달 반을 여기저기 여행한 후에 쥬앙
역시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쥬앙에게 배가 고프다고 하며 먹을 것을 달
라고 했습니다. 쥬앙은 저녁 식사로 멱으려던 빵을 기꺼이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쥬앙의 친절한 마음씨에 대한 보답으로 노인은 쥬앙에게 책을 한 권 주었습니
다.
"젊은이, 여기 이 책은 보통 책처럼 보일 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네. 이 책을
읽으면 자네는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모두 알 수 있을 거야."
쥬앙은 노인의 희한한 선물에 몹시 기뻐했습니다. 노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쥬앙은 페드로가 기다리고 있는 세 갈래 길에 가서 함께 파블로를 기다렸습
니다.
파블로는 가운데로 난 길을 택했습니다. 네 달을 여행한 후에 파블로 역시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파블로도 노인에게 저녁에 먹으려던 빵을 주었습니다. 노인
은 파블로에게 보답의 선물을 주었습니다.
"고맙네, 젊은이. 여기 이 상아 피리는 보통 상아 피리가 아니라네. 이 피리의
끝을 아픈 사람의 코 끝에 대고 불면 모든 질병을 낫게 할 수 있으며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살려낼 수가 있는 피리라네."
파블로도 노인에게 깊이 감사한 후에 세 갈래 길로 돌아가서 두 친구들과 다
시 만났습니다. 세 친구들은 서로의 모험과 행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페드로가 쥬앙의 책을 우연히 들여다보다가 먼 나라에 있는 어떤 왕국의
공주가 몹시 아픈데 공주를 다시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을 사위로 삼아 왕위를
계승시키겠다는 왕의 포고문을 읽었습니다. 세 친구들은 곧 그 왕국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세 친구들은 융단 위에 앉아 눈깜짝할 사이에 그 궁전으로 날아
갔습니다. 앓아 누워 있는 공주의 코에 대고 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즉시 공주
는 눈을 뜨고 일어나 말을 했습니다. 이윽고 공주가 옷을 갈아입겠다고 하자 세
친구들은 공주의 방을 나왔습니다.
공주가 옷을 갈아입을 동안 파블로와 쥬앙과 페드로는 왕 앞에 나가 어떻게
그들이 그 소식을 알게 되었으며, 어떻게 이 왕국까지 왔으며, 누가 공주의 병을
고쳤나를 보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왕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렇소, 파블로. 자네가 내 딸의 병을 고친 건 사실이오. 그러나 쥬앙의 책에
서 내 딸이 아프다는 걸 알지 못했다면 어떻게 자네가 공주의 병을 고칠 수 있
었겠으며 페드로의 융단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그렇게 단숨에 이곳으로 올 수 있
었겠소. 그리고 쥬앙, 자네의 책이 내 딸이 아프다는 것을 알린 건 사실이오. 그
러나 우리 공주가 아프다는 그 사실도 페드로의 융단과 파블로의 상아 피리가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오. 페드로 자네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
오. 그래서 우리 공주를 낫게 하는 데 자네들 한 일이 모두 똑같이 중요하니까
난 아무에게도 내 딸을 줄 수가 없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방법으로 결정
하려 하오. 자네들 모두 밖에 나가서 활과 화살을 준비하도록 하시오. 나는 바나
나 꽃을 여기다 걸어 놓겠소. 이것은 내 딸의 심장을 나타내는 것이오. 가장 중
심을 맞추는 사람이 내 딸의 남편이 될 것이오."
페드로가 처음으로 화살을 쏘았습니다. 화살은 바나나 꽃의 중앙에 똑바로 꽂
혔습니다. 쥬앙이 그 다음에 쏘았습니다. 그의 화살도 페드로가 쏘았던 똑같은
자리를 뚫고 지나갔습니다. 이제 파블로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파블로의
차례가 되자 그는 화살을 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임금님, 저 꽃이 공주님의 심장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저는 정말 쏠 수 없습니
다. 전 공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몹시 만족해했습니다.
"그렇군. 자네야말로 내 딸을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야. 내 딸의 심장을 상징하
는 꽃을 어떻게 쏠 수 있겠나. 자네가 바로 내가 찾던 사위일세."
그래서 파블로는 공주와 결혼해서 나중에는 그 나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임금이 된 나무꾼
옛날에 아주 아름다운 딸을 둔 한 임금이 살았습니다. 공주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임금은 다음과 같은 포고문을 발표했습니다.
"누구든지 열흘 동안 계속해서 매일 열 수레의 돈을 가져오는 사람은 내 딸과
결혼할 수 있으며 나중에 왕위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하다가
실패하는 사람은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가난한 나무꾼인 한 총각이 그의 작은 마을에서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무
꾼 총각은 집에서 그를 기다리던 어머니에게 자기가 그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하
여 나중에 왕이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장난을 한다고 여기
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 나무꾼 총각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도끼를 메고 나무를 베러 숲
으로 갔습니다. 나무꾼은 며칠이 걸려야 벨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열심히 도끼질을 하고 있을 때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
다.
"이 나무를 더 이상 베지 말아라. 그 대신 나무 등걸 구멍에 손을 넣으면 네가
원하는 만큼의 돈을 줄 지갑이 있을 것이다."
나무꾼이 그 이상한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놀랍게도 정말 지갑이 있었
습니다. 그러나 지갑은 돈이 한 푼도 없는 빈 지갑이었습니다. 실망한 나무꾼은
지갑을 집어 던졌습니다. 그때 지갑이 땅에 닿자 은화가 가득 쏟아졌습니다. 은
화를 다 주워 모은 나무꾼은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어머
니에게 요술 지갑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기한 지갑에서 돈이 가득 나오는 걸 본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정말 그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하여 왕이 될 수 있으리
라고 믿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궁전에 가서 임금에게 돈을 실어다 줄 테니 공주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말하
거라."
나무꾼은 궁전의 보초에게 그의 말을 임금님에게 전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보
초는 나무꾼의 촌스런 모습과 남루한 옷차림을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쫓으려 했습니다. 때마침 궁 안을 산책하던 임금이 그것을 보고 나무꾼을
들여놓으라고 했습니다. 나무꾼은 자신이 임금의 포고문대로 열흘 동안 매일 열
수레의 돈을 가져오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나무꾼이 사람들을 시켜 반짝이는 은화로 가득 찬 열 개의 수레를 궁
전으로 가져오자 사람들은 몹시 놀랐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공주도 몹시 놀
랐습니다. 닷새가 지났습니다. 나무꾼은 매일 어김없이 열 수레의 은화를 가득
싣고 궁전으로 왔습니다. 공주는 몹시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 이렇게 닷새만 지나면 나는 그 나무꾼과 결혼하게 되는 것이다. 기가 막
혀라. 내 신랑감이 그렇게 못생기고 촌스러운 천한 신분의 사람이라니. 부자면
뭘해. 아, 난 싫어. 좋아, 무슨 수를 써야겠어."
다음날 공주는 나무꾼을 따라갔던 호위병을 불러 그 나무꾼이 끝없이 돈이 나
오는 요술 지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공주는 호위병에게 자신
이 그 젊은이를 은밀히 보고 싶어한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공주가 자기를 좋
아한다고 생각한 나무꾼은 기쁨에 차서 공주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공주는 시녀
들을 시켜 맛있는 술상을 보게 하고 상냥한 말씨로 나무꾼을 즐겁게 했습니다.
마침내 나무꾼이 잠이 들자 공주는 그 요술 지갑을 살그머니 꺼내 들고 방을 나
갔습니다.
잠에서 깬 나무꾼은 공주가 자신을 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아, 나는 지금 바로 궁을 떠나지 않으면 죽게 될 거야. 그 요술 지갑이 없으
면 난 왕과의 약속을 이행할 수가 없으니까....'
이렇게 생각한 나무꾼은 얼른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나무꾼은 어머니에게 그
고장을 즉시 떠나라고 말하고 자신도 다른 나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여러 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떠돌던 나무꾼은 어떤 산에 이르렀습니다. 나무꾼은
아주 먹음직스런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한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열매를 먹은
나무꾼의 이마에 두 개의 뿔이 솟아나자 나무꾼은 기겁을 했습니다. 나무꾼은
그 뿔을 떼려고 애를 썼으나 뿔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나무꾼은 전날
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열매를 따서 먹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이마에서
뿔이 떨어졌습니다. 나무꾼은 다시 두 나무의 열매를 번갈아 먹어 보았습니다.
첫 번째 열매를 먹으면 뿔이 솟아나고 두 번째 열매를 먹으면 뿔이 어김없이 떨
어지곤 했습니다.
나무꾼은 자신의 요술 지갑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 열매들을
손수건에 잘 쌌습니다. 그 후 이년의 세월이 흘러 나무꾼의 얼굴을 잘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변했습니다.
나무꾼은 다시 자신이 태어난 나라로 가서 궁전의 요리사 심부름꾼 일을 했습
니다. 보수를 받지 않고 일을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쉽게 채용될 수 있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이제 나무꾼도 훌륭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일등 요리사가 주방을 비운 사이에 나무꾼은 왕의 가족이 먹을 요리
에 뿔을 나게 하는 열매를 갈아서 섞었습니다. 그리고 뿔이 떨어지게 하는 열매
를 갈아서 병에 담아 놓았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 후 왕과 왕비 그리고 공주는
자신의 머리에서 갑자기 날카롭고 추한 뿔이 돋아 나온 것을 보고 몹시 놀랐습
니다. 왕은 놀라서 일등 요리사를 불러 무엇으로 음식을 만들었느냐고 물었습니
다.
"폐하, 그 음식은 일 주일 전에 드셨던 것과 똑같은 요리입니다."
왕과 왕의 가족들 머리에 돌연히 솟아난 뿔을 보고 두려워 떨며 요리사에게
말했습니다.
"주방장은 빨리 가서 의사를 불러오너라. 그리고 아무에게도 우리가 뿔이 났다
고 얘기하지 말아라. 의사에게 수술 준비를 하고 곧바로 오라고 하여라."
의사를 부르러 뛰어나가는 요리사를 잡고 나무꾼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
다.
"귀찮게 하지마. 난 빨리가서 의사를 불러와야 해. 임금님의 머리에 뿔을 수술
해야 한다고."
"난 그 뿔이 없어지게 할 수 있어요. 의사는 부르지 마세요. 자, 이것 좀 먹어
보세요."하고 나무꾼은 왕이 먹었던 음식을 요리사에게 주었습니다. 요리사가 그
음식을 맛보니 아주 맛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리사는 다음 순간 자신의 이마
에 솟아난 두 개의 뿔을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나무꾼은 곧 준비해 두었던 음
료수를 요리사에게 주었습니다. 곧 두 개의 뿔이 요리사의 이마에서 떨어졌습니
다. 나무꾼은 그때까지의 일을 요리사에게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나무꾼은 의사의 옷을 입고 요리사의 안내로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의사, 제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뿔을 없애 주게. 그리고 아무에게도 이 사
실을 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게. 나와 왕비와 공주는 뿔을 달고 사는 것보다
는 차라리 죽고 싶소. 자네가 이 일에 성공하면 이 왕국의 절반을 주고 우리 공
주를 아내로 주겠네."하고 왕은 말했습니다.
"폐하, 약속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뿔을 치료하려면 너무 아파서 돌아가시게
될지도 모릅니다."
"상관없네. 이 뿔만 없애 준다면 아픈 건 문제도 안돼."
왕의 동의를 얻은 후 의사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왕과 왕비는 피가 나도록 맞
아야 하고 공주는 피곤해질 때까지 의사와 춤을 추어야 한다는 처방이었습니다.
왕과 왕비가 몹시 매를 맞고 있을 동안 의사는 뿔이 달린 그러나 아직도 아름
다운 공주와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왕과 왕비가 거의 기절하게 되었을 때에야 의사는 자신이 준비해 둔 음료수를
마시게 했습니다. 당장에 그들의 이마에서 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 춤을
많이 추어서 목이 마른 공주가 물을 찾자 의사는 그 음료수를 마시게 했습니다.
공주의 이마에 난 뿔도 순식간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며칠 후 왕과 왕비는 그만 죽어 버렸습니다. 의사는 그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
했습니다. 의사는 공주에게 자신이 공주에게 지갑을 빼앗긴 바로 그 나무꾼이라
고 했습니다. 나무꾼이 왕위에 오르자 그는 요리사에게도 높은 벼슬을 주었습니
다. 비록 새 임금이 세련되지 못하고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그는 현명한 사람들
을 신하로 삼아 왕국을 그 누구보다도 번영케 했다고 합니다.
삼형제
옛날에 어떤 마을에 테통과 마리아라는 부부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가난했지
만 금실좋은 부부였습니다. 그 부부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
식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침 저녁으로 무릎을 꿇고 하느님에게 소원을
빌었습니다. 마침내 소원이 이루어져 그들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부부는 너무
너무 행복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들에게 두 번째 세 번째 아이들이 또 태어났
습니다. 세 아들의 이름은 페드로, 펠리페, 쥬앙이었습니다. 세 아들은 모두 잘
생기고 사랑스러워서 부모들은 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아이들이 각각 여덟 살, 일곱 살, 여섯 살이 되자 아이들
은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어 치웠습니다. 아이들은 각각 한자리에서 한되
정도의 쌀을 먹어 치웠기 때문에 아버지 테통과 어미니 마리아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주 열심히 일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부가 열심히 일
해도 아이들이 먹어 치우는 양식을 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의 너
무나 왕성한 식욕 때문에 자꾸만 가난해지고 지쳐 버린 테통은 어느 날 아이들
이 모두 잠든 후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 아이들을 여기 두면 우리 모두 굶어 죽어야 할 것 같소. 그래서 이
아이들을 나무 열매나 풀 뿌리를 찾아 먹을 수 있도록 깊은 산에 갖다 두려고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떻소?"
남편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깜짝 놀랐습니다. 한참을 곰곰
이 생각한 마리아는 말했습니다.
"여보, 참 가슴 아픈 일이지만 별도리가 없으니 당신 마음대로 하시구려."
그래서 테통은 쌀 한 포대와 마른 반찬을 싼 후 아들들을 데리고 여행할 준비
를 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테통은 먼 산 속에 있는 밭에 고구마를 심으려 한
다면서 세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산속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이리저
리 굽어진 길로 아이들을 인도했습니다. 깊은 숲 한가운데 들어서자 세 아들들
은 각자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나무를 베고, 한 사람은 씨
앗을 뿌릴 땅을 고르고, 또 한 사람은 거기에 고구마와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며
칠이 지나자 가지고 온 식량이 다 떨어졌습니다. 테통은 세 아들들에게 말했습
니다.
" 얘들아, 우린 지금 먹을 양식이 별로 없단다. 내가 마을에 나가서 쌀과 반찬
거리를 준비해 올 테니 여기서 며칠만 있거라. 고구마와 옥수수가 많이 달릴 수
있도록 밭을 잘 돌보아야 한다."
이 말을 마치고 테통은 자식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한 후 길을 떠났습니
다.
며칠이 가고, 몇 주가 지나 다시 몇 달이 지났지만 아버지 테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옥수수 싹은 크게 자라 옥수수 열매가 달리고 고구마 싹 뿌리에도
크고 탐스런 고구마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그러나 세 형제에게는 옥수수와
고구마도 충분한 양식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몰랐습
니다. 드디어 자신들의 부모가 자기들을 산속에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여기저기 산속을 다니며 먹을 것을 찾기로 했습니다. 세 형제는 돌부리와 나뭇
가지에 부딪치고 찢기며 정글 숲 속을 헤맸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큰 강가로 나
와 강둑에 누워 쉬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강 저편에 잘 익은 바나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았습니다. 대나무를 잘라 뗏목을 만든 세 형제는 강을 건
너가서 잘 익은 바나나를 마음껏 먹었습니다. 세 형제는 이렇게 여러 해를 보내
며 산속과 강가를 헤매며 성장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샘처럼 생긴 컴컴한 구덩이에 이르렀습니다. 그 구덩이는 너
무나 컴컴해서 밑바닥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세 형제는 튼튼한
나무덩굴과 풀덩굴을 엮어 구덩이 속에 밧줄을 드리웠습니다. 페드로가 밧줄을
타고 제일 먼저 바닥으로 내려가 보았지만 어둠이 무서워서 곧 구덩이를 나왔습
니다. 그 다음 펠리페가 밧줄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갔습니다. 펠리페 역시 어둠
이 무서워서 곧 올라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막내 쥬앙의 차례였습니다. 쥬앙은 함정의 끝까지 내려가서 어둠
속에 오래도록 서 있다가 나무와 풀숲으로 되어진 또 다른 세계가 거기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 쥬앙은 평원 저쪽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초록색 집을 한 채 보았습니다. 쥬앙이 그 집에 가까이 가보니 문가에 아주 아
름다운 처녀가 앉아 있었습니다. 처녀는 쥬앙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쥬앙. 여긴 사람이 전혀 올 수 없는 곳인데 어떻게 오셨어요? 어
찌됐든 여기 오셔서 아주 기뻐요."
쥬앙은 그 처녀가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처녀의 이름은 마
리아였고 그녀는 쥬앙을 집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서로 여러 이야기를 열심히 나
누고 있던 중 마리아가 쥬앙에게 갑자기 빨리 어디든 숨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녀를 돌보고 있는 무서운 거인이 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곧 괴물 모양의 무서
운 거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마리아에게 말했습니다.
"마리아, 넌 누군가를 숨겨 두고 있구나. 사람 냄새가 나는걸."
마리아는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거인은 집안을 샅샅이 뒤져 숨어 있던 쥬앙을
찾아냈습니다. 쥬앙과 거인은 결투를 했습니다. 쥬앙은 피가 나고 멍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마리아가 주는 신기한 약을 바르고 곧 나았습니다. 오랜 싸움 끝에 마
침내 쥬앙은 거인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쥬앙의 씩씩한 모습을 칭찬
하며 그녀가 왜 거기에 갇혀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마리아는
이웃에 자기처럼 괴물 거인이 잡아온 이사벨라라는 처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쥬앙은 그 이사벨라라는 처녀도 구해서 함께 바깥 세상으로 나가자고 했습니
다. 그 말에 마리아는 몹시 기뻐했습니다. 쥬앙이 이사벨라가 있는 집에 가보니
이사벨라는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사벨라는 쥬앙을 보고 놀라
말했습니다.
"오, 쥬앙!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난 여기서 당신과 같은 사람을 처음 보았어
요."
쥬앙이 집에 들어서자 이사벨라는 자기의 불행한 운명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커다란 발짝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 왔습니다. 그것은 이사벨라를 가
두어 놓은 머리가 일곱 개나 달린 괴물이 내는 소리였습니다.
"이사벨라, 집안에 사람이 와 있지? 냄새가 나는걸."하고 괴물은 쩌렁쩌렁 울
리는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뇨, 이 집엔 나 외엔 아무도 없어요."
이사벨라가 이렇게 대답했지만 괴물은 집안을 구석구석 뒤져서 쥬앙을 찾아내
자 칼을 뽑았습니다. 쥬앙은 이사벨라의 도움으로 괴물과 싸워 마침내 괴물의
일곱 개의 머리를 모두 베었습니다. 기쁨에 찬 쥬앙은 이사벨라와 함께 마리아
가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세 사람은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곳을 찾았습
니다. 아직도 구덩이 아래로 밧줄이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쥬앙은 먼저 이사벨라
의 허리를 묶어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형들에게 끌어 올리라고 했습니다. 페드
로와 펠리페는 아름다운 이사벨라를 보자 "아름다운 아가씨! 이 아가씨는 나의
것이야."하고 서로 싸웠습니다. 이사벨라는 싸우는 형제들에게 구덩이 아래에는
아직도 아름다운 처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펠리페는 얼른 밧줄
을 또 밑으로 드리웠습니다. 마리아가 땅 위로 올라오자 펠리페는 마리아는 자
신의 것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각각 아름다운 처녀를 차지하게 된 두 형제는 밧줄을 다시 아래로 드리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끈질긴 부탁으로 페드로와 펠리페는 다시 밧줄을 아
래로 던졌습니다. 그러나 밧줄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자신들의 형제인 쥬앙인
것을 보고 그들은 밧줄을 놓아 버렸습니다.
'아, 당신들은 잔인한 사람들이군요. 형제에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
어요? 쥬앙이 아니었다면 우린 여기에 서 있지도 않았을 거예요."
마리아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재빨리 요술 빗을 함정 속으로
던졌습니다.
"짓아 가서 쥬앙이 죽었으면 그를 살려내고 그의 뼈가 부러졌으면 고쳐 주도
록 하렴."
이 요술의 빗 덕분에 쥬앙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쥬앙은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구덩이 밑바닥에 펼쳐진 세상인 숲 속을 정처없이 걸었습니다.
밝은 세상으로 올라갈 수 없는 자신의 슬픈 운명을 탄식하던 쥬앙은 어떤 나
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쥬앙이 막 잠들려 할 때 어떤 소리가 들
려 왔습니다.
"쥬앙! 쥬앙! 잠을 깨세요! 일어나 '순례자의 땅'으로 가세요. 그곳에 당신을 기
다리는 일이 있답니다."
쥬앙은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떠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쥬앙이 다시 눈을 감자 아까와 똑같이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쥬앙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목소리가 시킨 대로 '순례자의 땅'을 찾아
가기로 했습니다.
쥬앙은 그 길을 찾아 걷다가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쥬앙이
순례자의 땅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노인은 겉에 입었던 누더기를 벗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여기 내 누더기를 가져가서 저 건너 산속에 사는 도사 할아버지에게 주며
물어보게."
쥬앙은 그 누더기를 받아 들고 도사 할아버지가 사는 산으로 떠났습니다. 마
침내 쥬앙이 그 도사가 사는 곳에 도착하자 도사는 쥬앙이 자기 허락 없이 온
것에 대해 화를 냈습니다. 쥬앙은 간절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도사님, 저는 여기 아주 중요한 일 때문에 왔습니다. 제가 낮잠을 자고 있는
데 '순례자의 땅'을 찾아 떠나라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에 어떤 노인이 이 낡은 옷을 제게 주며 도사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옷을 보자 도사의 화는 누그러졌습니다. 도사 할아버지는 이상하게 생긴
피리를 하나 꺼내서 불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온갖 종류의 새들이 모여들었
습니다. 도사는 새에게 순례자의 땅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지만 그 어떤 새도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실망한 쥬앙이 그 자리를 뜨려 할 때에 독수
리 한 마리가 공중에서 내려와 땅에 앉았습니다. 도사가 '순례자의 땅'에 대해
묻자 독수리는 안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도사는 독수리에게 쥬앙을 그곳으
로 싣고 가라고 했습니다. 독수리는 쥬앙을 등에다 싣고 산을 건너고 언덕을 넘
어 순례자의 땅으로 날아갔습니다. 마침내 독수리는 쥬앙을 '순례자의 땅'에 내
려놓고 되돌아갔습니다.
'순례자의 땅'에서 쥬앙은 어느 가난한 부부의 집에서 지냈습니다. 그 부부는
쥬앙을 자신들의 자식처럼 친절히 돌보아 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쥬앙은 그
나라가 사나운 왕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왕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공주와 결혼하려는 왕자들마다 왕은 어려운 숙제를 내주고 그 숙
제를 풀지 못하면 왕자들을 죽였다고 그 부부는 쥬앙에게 말했습니다. 그 이야
기를 들은 쥬앙은 자기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아, 이것이 나를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그 공주는 내 아내가 될 사람임에 틀
림없어."
쥬앙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 공주에게 청혼하리라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쥬앙
은 공주에게 자신의 결심을 적은 편지를 써서 연에다 매달아 공주가 있는 정원
으로 날렸습니다. 공주는 정원으로 날아와 그녀 앞에 떨어진 연을 보았습니다.
'어떤 무례한 사람이 감히 내 정원으로 연을 날릴까.'하고 생각하며 공주는 연
을 바라보다 그 연에 매달려 있는 편지를 보았습니다. 공주는 편지를 보낸 사람
의 용감함과 대담한 글씨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편지를 읽고 공주는 잠시 망설
이다가 그녀의 창아래로 오라는 답장을 썼습니다.
다음날 쥬앙이 공주의 창가에 나타나자 공주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쥬앙, 당신이 나를 아내로 맞이하려면 우리 아버님이 내는 숙제를 모두 통과
해야합니다. 내일 우리 아버님을 뵙고 명령대로 모든 숙제를 하겠다고 약속하십
시오. 그리고 제게 다시 오십시오."
쥬앙은 다음 날 아침 왕 앞에 나아가 말했습니다.
"임금님, 저는 쥬앙이라고 합니다. 저는 임금님의 따님과 결혼하고 싶어서 여
기에 왔습니다. "
"좋아, 쥬앙. 내가 시키는 것을 하면 자네의 소원을 들어주겠네. 저 언덕에 이
밀 씨앗을 심어서 내일 아침에 그 씨앗에서 나온 밀로 아침식사로 먹을 빵을 구
워 오게나. 그렇게 하면 자넨 내 딸과 당장 결혼할 수 있네. 그러나 만약 그 일
을 못 하면 자네의 목숨은 없는 줄로 알게."
쥬앙은 그 얘기를 듣고 그날 저녁 걱정에 찬 표정으로 공주에게 갔습니다. 쥬
앙의 얘기를 듣고 공주는 말했습니다.
"쥬앙, 걱정하지 말아요. 집에 돌아가서 내일 아침 우리 아버님을 뵙기만 하세
요. 아버님이 아침에 일어나시면 빵이 준비되어 있을 거예요."
다음 날 아침 궁전에 간 쥬앙은 식탁 위에 잘 준비된 빵을 보고 기뻤습니다.
왕은 쥬앙이 그 일을 문제 없이 해낸 것을 보고 몹시 놀랐습니다.
"자, 쥬앙. 그렇다면 여기 다음 숙제가 있네. 저 뜰에 커다란 항아리 두개가 있
는데 하나는 녹두가 가득 들고 하나는 고운 모래가 가득 들어 있네. 이 두가지
를 한데 섞어 놓을 테니 내일 아침까지 이것을 처음 상태로 만들어 놓게. 그렇
지 않으면 자네의 목숨은 없어. 알겠는가?"
쥬앙은 그렇게 하겠다고 왕에게 약속했습니다. 쥬앙은 공주의 창가로 가서 공
주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내일 아침에 아버님께서는 녹두와 모래가 원래 모습으로 항아리
에 담긴 걸 보게 되실거예요."
다음 날 아침 쥬앙은 궁전에 들어갔습니다. 막 잠에서 깬 왕은 항아리에 처음
모습대로 담겨진 녹두와 모래를 보고 몹시 놀랐습니다.
"음, 자넨 내가 낸 숙제를 아주 잘 해냈군. 그러나 다음의 숙제도 풀어야 하네.
어제 오후 왕비와 바닷가를 산책하다 내 금반지를 물속으로 빠뜨렸는데 이 반지
를 찾아서 내일 아침까지 가져오게. 알겠는가?"
"예, 폐하. 잘 알겠습니다. 반지를 찾아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쥬앙이 공주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공주는 "내일 새벽 커다란 양동이와 칼을
가지고 오세요. 나와 같이 가서 반지를 찾도록 합시다."하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쥬앙이 공주의 창가로 가자 공주는 마을 처녀의 차림으로 변장을 하고 기
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반지가 빠진 바닷가로 갔습니다. 바닷가에 이르자
아나벨 공주는 쥬앙에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그 양동이와 칼을 들고 내 몸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바다에 던지세
요."
이 끔찍한 말을 듣고 쥬앙은 기가 막혀서 울고만 서 있었습니다.
"쥬앙,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빨리!"
그래서 쥬앙은 칼을 들고 눈을 감은채 아나벨 공주의 몸을 여러 조각으로 잘
라 반지가 빠진 장소로 던졌습니다. 오 분이 지나자 공주는 손가락에 반지를 끼
고 말짱한 모습으로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그날 아침 쥬앙은 물론 왕에게 잃어버린 반지를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왕은
반지를 보며 더욱 놀라워했습니다.
"쥬앙, 자네는 정말 내 딸의 남편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그러나 나는 자
네에게 한 가지 심부름만 더 시키고 싶네. 이것이 마지막일세. 내가 오늘 사냥을
가려고 하니 가서 말을 데려오도록 하게나."
왕의 말은 바람처럼 빨리 달리는 유명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왕과
공주 외에는 아무도 다룰 수 없는 거친 말이었습니다.
쥬앙은 왕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다시 아나벨 공주에게 갔습니다. 공
주는 쥬앙과 함께 가서 말을 데려 오는 것을 도왔습니다. 쥬앙과 공주는 욕심
많은 왕의 곁을 떠나 도망가기로 했습니다. 왕의 말을 난간에 매어 놓은 후 그
들은 아나벨 공주의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왕은 공주와 쥬앙이 달아난 것을 알고 난간에 매인 말을 풀어서 올라타고 두
사람을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의 말은 바람처럼 빨리 달릴 수 있었기 때문
에 곧 그들을 잡을 듯 가까운 거리로 쫓아왔습니다. 아나벨은 아버지의 모습이
가까워 오자 그녀의 빗을 뒤로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커아란 대나무 숲
이 자라서 왕의 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그러나 왕은 수많은 신하들에게 대나무를 자르게 한 뒤 다시 그들을 쫓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왕의 모습이 잡힐 듯 가까운 거리로 다가왔을 때 아나벨 공주는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어 뒤로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일곱 개의 산이 생겨났습니
다. 한참 동안 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또다시 왕은 바
람처럼 빠른 말을 타고 그들을 쫓아왔습니다. 아나벨 공주는 뒤를 돌아보며 침
을 뱉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 뒤에 커다란 바다가 생겨나 왕의 길을 가로막았
습니다. 왕은 마침내 추적을 포기하며 "오, 저런 배은 망덕한 딸년 같으니라구!"
하고 말했습니다.
아나벨과 쥬앙은 어떤 작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마을 신부님을 찾아
가 곧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나벨과 쥬앙은 그곳에다 집을 짓고 땅을 사서 일
생을 그곳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세월이 얼마 정도 지나자 쥬앙은 오래 잊고
지냈던 어릴 적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어느 날 쥬앙은 아내에게 부모님을 찾
아보고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예, 다녀오세요, 여보. 그러나 당신 부모님의 눈물이 당신의 뺨에 절대로 묻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렇게 되면 당신은 나를 까맣게 잊게 될 것입니다. "
아내의 말을 꼭 기억하겠다고 약속한 후 쥬앙은 길을 떠났습니다. 오랜 여행
끝에 마침내 쥬앙은 어릴 적 살았던 집을 찾았습니다. 부모님은 쥬앙을 보자 너
무 기뻐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쥬앙은 그만 아나벨을 까맣게 잊게
되었습니다.
쥬앙이 도착한 그날은 마침 쥬앙의 형인 펠리페와 페드로가 쥬앙이 거인들에
게서 구해 낸 아름다운 처녀들인 마리아와 이사벨라와 약혼식 잔치를 하는 날이
었습니다. 처음 쥬앙을 볼 때부터 쥬앙을 좋아했던 마리아는 펠리페와의 약혼을
포기하고 쥬앙과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쥬앙을 함정에 빠뜨린 형 펠리페는 아
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쥬앙과 마리아는 다시 약혼식을 올리고 춤과
노래의 잔치 속에서 즐거워했습니다.
그때, 멋진 말들이 이끄는 금빛 마차를 타고 아름다운 공주가 마을에 도착했
습니다. 그녀는 잔칫집 마당 나무 그늘에 앉아 춤추는 쥬앙과 마리아를 보았습
니다.
아나벨 공주는 커다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는데 갑자기 개에게 큰소리로
묻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하려고 그녀 주위로 몰려 들었습니다.
"멍멍아, 넌 어떤 공주님을 위해 어떤 임금님의 숙제를 하지 않았니?"
"예!"하고 놀랍게도 개가 대답했습니다.
"멍멍아, 그 왕이 언덕에 밀알을 심고 그 다음날 아침 식사 때 그 밀을 추수해
서 나온 밀가루로 빵을 구워 오라는 숙제를 시키지 않았느냐?"
"예!"
"멍멍아, 그 왕이 큰 항아리에 녹두와 모래를 섞어 놓고 그 다음날까지 녹두는
녹두대로 모래는 모래대로 담아 놓으라고 시키지 않았느냐?"
"예!"
"멍멍아, 너와 어떤 공주님이 바닷가에 가서 왕이 찾아오라는 반지를 찾으려고
네가 그 공주의 몸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바닷물에 던진 것을 기억하지 못하겠
느냐?"
사람들 사이에 끼여 이 모습을 구경하던 쥬앙은 이 마지막 질문을 듣자 공주
앞에 달려나가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아, 나의 소중한 아내여. 나를 용서해 주오."
옛날 일을 다시 기억하게 된 쥬앙은 아나벨 공주를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잔치는 계속되었습니다. 다시 마리아를 되찾게 된 형 펠리페도 아주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쥬앙을 비롯한 세 형제들과 세 처녀들은 세쌍의 부
부가 되어 그들을 버렸던 부모님을 사랑으로 용서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
았다고 합니다.
쥬앙의 모험
옛날 어떤 마을에 딸만 셋을 둔 부부가 살았습니다. 처음에 이 부부는 아주
가난했었습니다. 마을 산기슭에는 크고 하얀 잎이 달린 나무가 있었습니다. 아버
지 페드로는 그 나무의 잎을 팔아서 생긴 돈으로 살았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잎을 판 돈이 많이 모이면 큰 집을 짓기로 했습니다.
큰 집으로 이사한 후에도 아버지는 계속 나뭇잎을 팔았습니다. 일 년쯤 지난
후에 그는 한꺼번에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나무를 베어서 팔기로 마음먹었습니
다. 나무가 쓰러지자 나무 그루터기에서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이 뱀
은 요술을 부리는 뱀으로서 사자, 독수리. 그리고 물고기 왕의 친구였습니다.
뱀은 페드로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게 나뭇잎을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도록 이 나무를 네게 주었다. 그래
서 돈을 많이 벌게 되니까 너는 나무를 베어 버렸구나. 너는 벌을 받아 마땅하
다. 사흘 안에 네 딸들을 나에게 데려오너라. 알겠느냐?"
페드로는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
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걱정에 잠긴 그를 보고 아내와 딸들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려 하지 않았지만 가족들의 끈질긴 물음에 마침
내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 나는 그 나무를 베었단다. 그랬더니 베어진 나무 밑둥에서 커다란 뱀이
한 마리 나와서 우리 세 딸들을 뱀에게 주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죽을 거라고
했단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뱀에게 가겠어요." 하고 세 딸들은 말했습니다.
다음날 딸들은 뱀에게 갈 준비를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딸들은 각각 어머니에게 손수건을 기념으로 남겼습니다. 작별 인사를 한 다음
세 딸들은 아버지를 따라 산으로 갔습니다. 산기슭에 도착하자마자 세 딸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슬픔에 잠긴 아버지는 기운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
니다.
일 전이 지나서 이 나이 든 부부에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이 아기를
쥬앙이라 이름지었습니다. 소년이 열여ㄷ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누나들의 손
수건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게 누나들이 있었다구요?" 하고 쥬앙은 어머니에게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렇단다. 넌 누나가 셋이야. 그러나 뱀이 모두 데려갔지." 하고 어머니는 말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쥬앙은 부모님에게 누나들을 찾아 떠나도록 허
락을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처음에 망설였던 부모님들은 마침내 허락을 했습니
다.
세 개의 손수건을 든 쥬앙은 뱀을 찾아 산으로 떠났습니다. 열흘 이상을 여
행한 후에 쥬앙은 모자 하나와 신빌 한 켤레 그리고 열쇠 한 개를 서로 가지려
고 싸우는 세 소년을 만났습니다. 쥬앙은 소년들에게 다가가 왜 그 세 물건들을
가지려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소년들은 모자를 쓰면 그 사람이 안 보이게 되고,
신발을 신으면 날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열쇠는 어떤 문이든지 열리게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쥬앙은 소년들에게 그것 때문에 서로 싸우느니 아예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
다. 소년들은 상대방이 서로 그 물건을 갖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쥬앙의 말에
따랐습니다. 그래서 쥬앙은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모자를 머리에 쓰고 신발을
신고 날아갔습니다.
수많은 산을 넘은 후 쥬앙은 어떤 산에 내렸습니다. 산을 이리저리 헤맨 후
쥬앙은 한 동굴을 보았습니다. 쥬앙이 동굴 문을 자물쇠로 열고 들어가 보니 창
가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쥬앙은 여인에게 다가가 모자를 벗었습니다.
"누구세요?" 하고 놀란 여인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제 누나가 아니세요" 하고 쥬앙이 물었습니다.
"나는 남동생이 없는데요." 하고 여인은 말했지만 쥬앙이 내민 손수건을 보고
는 깜짝 놀랐습니다. 쥬앙이 그녀에게 지나간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쥬앙이 자
신의 동생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 자, 넌 지금 숨어야 해. 내 남편은 사자들의 대장인데 그가 너를 보면 죽이
고 말거야." 하고 그녀는 쥬앙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그 때 사자가 들어왔습니다. 문가에서 사자를 맞아들이는 그녀에게 사자는 코
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여기 누군가가 와 있군."하고 말했습니다.
"예, 제 남동생이 왔는데 당신이 그 애를 죽일까 봐 겁이 나서 숨겨 놓았어
요." 하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아니오. 내가 왜 당신 동생을 죽이겠소. 그 애는 어다 있지?" 하고 사자는 물
었습니다.
쥬앙은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사자와 악수를 했습니다. 몇 시간을 함께 이야
기한 후에 쥬앙은 다른 누이들을 찾기 위해 떠나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자가
다른 누이들은 가까이 있는 다른 두 산에 살고 있다고 말해 주었기 때문에 쥬앙
은 그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남편은 물고기의 왕과 독수리의
왕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쥬앙을 친절히 맞이해 주었고 쥬앙이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마다 그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쥬앙은 부모님에게 세 누이들이 어디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 집으로 가기로 결
정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쥬앙이 어떤 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모든 사람들
이 까만 옷을 입고 집을 치장한 장식도 온통 검은 색으로 된 것을 보았습니다.
쥬앙은 마을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검은 색 투성이인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
은 공주님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며 누구든지 공주를 되찾아 주는 사람은 공주
와 결혼할 수 있으며 왕의 재산을 절반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쥬앙은 왕에게 나아가 공주를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왕은
쥬앙이 공주를 찾는 데 성공하면 마을 사람들이 말했던 대로 상을 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찍 쥬앙은 신비의 모자를 쓰고 신을 신고 그리고 열쇠를 가
지고 공주를 찾으러 떠났습니다. 이틀을 여행한 그는 어떤 산에 도착했습니다.
산을 여기 저기 헤맨 끝에 쥬앙은 작은 구멍이 나 있는 커다란 바위를 보았습니
다. 그 구멍에 신비의 열쇠를 꽂자 바위는 활짝 열렸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남들
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머리에 모자를 쓰고 쥬앙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속
에는 작은 방들이 많이 있었는데 많은 소녀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맨 마지막 방
에서 쥬앙은 거인 옆에 있는 공주를 보았습니다. 그는 공주의 방문을 열쇠로 열
었습니다. 모든 방의 벽은 감옥처럼 쇠창살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쥬앙은 공주
옆에 다가가 거인이 갈 때까지 가만히 있었습니다.
거인이 가자마자 쥬앙은 모자를 벗었습니다. 쥬앙을 본 공주는 너무 놀랐습니
다. 쥬앙이 그녀를 구하러 왔다고 말하자 공주는 몹시 기뻐했습니다. 공주는 쥬
앙에게 방을 탈출하기 전에 거인이 외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
습니다. 얼마 후 거인은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거인이 나가고 난 후
쥬앙과 공주도 밖으로 나갔습니다. 쥬앙은 그의 요술 신을 신고 공주와 함께 날
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궁전 가까이 도착했을 때 공주는 다시 사라졌습니다.
거인이 그의 강한 요술로 공주는 다시 잡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화가 난 쥬앙
은 곧 거인의 동굴로 되돌아갔습니다. 쥬앙은 문은 열었지만 거인의 마술 때문
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한 시간 가량 헛되이 애를 쓰던 쥬앙은 그의
매부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쥬앙이 매부에게 도움을 청하자 독수리 왕인 매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쥬앙, 그 거인의 힘과 목숨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작은 상자 속에 들어 있
다. 그 상자는 물고기의 왕만이 꺼낼 수 있으며 사자의 왕만이 그것을 열 수 있
어. 거인의 목숨은 상자 속에 있는 작은 새 속에 있지. 그 새는 아주 빨리 날아
가서 나만이 잡을 수 있단다. 그리고 거인의 힘은 상자 속에 있는 작은 알 속에
있다."
독수리 왕이 말을 마치자 쥬앙은 이번에는 물고기 왕에게 가서 부탁했습니다.
"거인의 힘과 목숨이 든 바닷 속의 그 상자를 꺼내다 주시겠습니까?"
쥬앙의 매부인 물고기 왕은 물속으로 들어가서 그 상자를 꺼내 왔습니다. 쥬
앙은 매부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사자 왕에게 상자를 가져갔습니다. 사자
왕은 그 상자를 기꺼이 열어 주었습니다. 상자가 열리자마자 그 속에 있던 작은
새가 재빨리 날아갔습니다. 쥬앙은 알을 들고 매의 왕에게 가서 새를 잡아 달라
고 했습니다. 쥬앙은 독수리의 왕이 잡아 준 새를 한 손에 들고 또 한손에는 알
을 들고 다시 거인의 동굴 문을 힘껏 밀었습니다. 쥬앙이 다시 나타나자 화가
난 거인은 쥬앙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놀란 쥬앙은 알을 깨뜨리고 새
를 죽였습니다. 그러자 거인은 뒤로 넘어져서 팔다리를 쭉 뻗고 다시는 일어나
지 못했습니다.
쥬앙은 동굴 속에 있는 모든 문을 열고 소녀들을 풀어 주었습니다. 쥬앙은 공
주를 궁전으로 데려왔습니다. 곧이어 큰 환영 잔치가 벌어지고 쥬앙은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왕이 세상을 뜬 후 쥬앙은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쥬앙
은 부모님을 찾아가 그의 모험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쥬앙은 부모님을 모셔다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바보 쥬앙
쥬앙은 스무 살입니다. 키는 작은 편이고 검은 눈은 반짝이지는 않지만 그렇다
고 멍청하지도 않습니다. 코는 납작하고 입술은 두껍습니다. 이마는 넓은 편에
속했습니다. 허리통은 굵고 다리는 짧은 편입니다. 그리고 항상 지친 듯한 모습
입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쥬앙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바보짓을 하는 쥬앙을 사람들이 재미있어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쥬앙은 어머니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과부인 쥬앙의 어머
니는 아들 쥬앙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잘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쥬앙에게 훌륭한 아내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종종 말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훌륭한 아내란 말이 많지 않고 항상 조용하게 집안 일을 잘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충고를 마음에 새긴 쥬앙은 어느 날 어
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좋아하실 색시감을 구했어요. 그 여자는 말도 하지 않고 행
동도 많이 하지 않아요. 눈은 한곳만 바라보던데요. 그 아가씨를 열두 시간이자
지켜 보았는데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많은 시끄러운 집
인데도 침대에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게 다냐?" 하고 어머니는 물었습니다.
"아뇨, 어머니. 그 아가씨 손은 아주 차가웠어요. 그 색시는 귀머거리인지 제
말을 듣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머니, 제게 말씀해 주시지 않은 게 한 가지 있어
요."
"내가 네게 충고를 너무 잘 해주었구나." 하고 어머니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습
니다.
"쥬앙아. 너는 내 충고를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였구나. 제가 본 그 색시는 죽
은 사람이란다. 죽은 사람은 코를 찌르는 것과 같은 나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어머니는 답답해서 화가 난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며칠 후 쥬앙과 어머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쥬앙은 나쁜 냄새를 맡았
습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냄새를 풍기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어머니가 정말 돌아가신 거라고 생각한 쥬앙은 밖에 나가 어머니를 위해 무덤을
팠습니다. 잠자는 어머니를 묻고 쥬앙은 아흐레나 슬퍼했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서 혼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혼자서 아침밥을 먹던 쥬앙은 또 코를 찌
르는 듯한 나쁜 냄새를 맡았습니다. 쥬앙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냄새가 나는
것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기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
습니다.
그래서 쥬앙은 강가로 가서 대여섯 개의 바나나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었습
니다. 그러고는 그 위에 누워 물결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가게 했습니다. 세 시간
쯤 후 뗏목은 숲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흐르는 뗏목 위에 누워 있던 쥬앙은 강
가에서 주군가가 성급히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강도들의 두목이
었습니다. 쥬앙은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습니다. 두목은 위협하는 목소리로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쥬앙은 눈을 뜨고 두목에게 자신은 족은 사람이라고 슬프게
말했습니다. 두목은 웃었지만 쥬앙은 뗏목 위에 그냥 누워 있기만 했습니다. 두
목은 쥬앙이 일어나지 않으면 쏘아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쥬앙은 자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총알이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며 강둑으로 갔
습니다.
마침내 쥬앙은 도둑들과 함께 숲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두목은 쥬앙을 그들의
소굴로 데려가 집안 일을 시켰습니다. 도둑들은 쥬앙에게 시끄럽게 굴면 군인들
이 잡으러 오니까 밥을 할 때는 아주 조용히 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도둑들이
다 나가자 혼자가 된 쥬앙은 창문을 닫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쥬앙은 시끄러울
까 봐 자신의 숨쉬는 소리조차도 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질그릇 솥을 불 위에
올려 놓고 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쥬앙이 불가에 앉아 가만히 있으니까 갑자
기 솥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밥솥의 물이 끓기 시작했
기 때문이죠 곧 그 소리는 더욱 커지며 마치 쥬앙에게 " 이 바보 녀석아." 하는
것같이 들렸습니다. 화가 난 쥬앙은 조용히 하라고 솥에게 말했지만 소리는 더
욱더 커져만 갔습니다. 화가 난 쥬앙은 대나무 장대로 솥을 세게 내려쳤습니다.
물론 솥은 깨어지고 그 속에서 끓던 밥은 엉망이 되었죠.
점심때가 되자 배가 고픈 도둑들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깨진 밥솥과
쏟아진 쌀들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쥬앙은 바보 같은 솥이 너무 시
끄럽게 굴고 자신을 놀리는데다가 두목이 조용히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솥을
때려 주었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먹을 것이 다 떨어지자 두목은 쥬앙에게 돈을 주며 시장에 가서 질그
릇 솥과 게를 사오라고 했습니다.
쥬앙은 게를 여러 마리 사고 큰 질그릇 솥을 열두 개 샀습니다. 그런데 질그
릇이 너무 커서 가져가기가 나주 나빴습니다. 쥬앙은 열두 개의 솥에 구멍을 뚫
고 칡덩굴로 묶어서 등에 짊어지고 게가 든 바구니는 손에 들고 걸었습니다. 쥬
앙은 물살이 센 큰 강가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강둑에 앉아 어떻게 강을 건너갈
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게가 수영을 잘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고는 게를 풀어
주며 말했습니다.
"자, 게들아. 우린 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나는 이 솥을 가져가야 해서 헤엄치
기가 힘들단다. 너희들은 수영을 잘하니까 저편 강둑까지 빨리 헤엄쳐서 건너가
라. 강을 다 건너면 나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집에 곧장 가거라."
이렇게 주의를 주며 그는 게를 하나하나 강물에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
나무 조각 하나를 구해 몹시 애를 쓴 끝에 쥬앙도 강을 건넜습니다. 그는 게들
을 찾아보았지만 한 마리도 보이지 않자 '아마 나를 기다리다가 지루해서 내가
명령한 대로 집으로 곧장 갔나 보구나. 두목님이 몹시 놀라시겠지.' 하고 생각했
습니다. 집에 도착한 그는 도둑들에게 게들이 집에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의
말을 들은 게가 한 마리도 없다는 것을 안 쥬앙은 다시는 게들을 믿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목은 솥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쥬앙은 솥은 모두 안전하다고 말했습
니다. 그리도 자신이 열두 개의 솥을 운반하는 데 사용했던 기발한 방법을 설명
했습니다. 도둑들은 솥바닥마다 난 구멍을 보고 배꼽이 빠져라 웃었습니다. 그러
나 몇몇 도둑은 화를 내며 골칫거리만 만드는 쥬앙을 쫓아내자고 말했습니다.
두목은 쥬앙이 원하면 그곳을 떠나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쥬앙을 죽여 버리겠다고 했
습니다. 도둑들은 자신들의 소굴이 드러날까 봐 겁을 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쥬앙은 다시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많은 모험을 했습니다. 그러
다 쥬앙은 어떤 처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쥬앙은 처녀의 부모 집에서 요리
사 일을 했습니다. 쥬앙은 항상 닭고기 요리의 맛있는 연한 부분은 자신과 처녀
의 접시에만 놓았고 처녀의 부모 접시에는 닭의 뼈 부분만 놓았습니다. 처녀의
부모는 왜 자기들에게는 항상 가장 나쁜 부분만 주느냐고 물었습니다.
" 예, 당신들께선 우리들의 보호자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집에 비유
해 볼 때 뼈는 받들어 주는 골격이며 바탕이 되지 않습니까?"
쥬앙의 설명이 똑똑하다고 생각한 처녀의 부모는 쥬앙이 딸과 결혼하는 것을
찬성했습니다. 그 후로 쥬앙은 더욱 총명해지고 훌륭해졌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바보 쥬앙'이라고 부르지 않았답니다.
쥬앙과 게
어느 날 어머니는 점심 식사로 요리할 게를 사러 쥬앙을 시장에 보냈습니다.
쥬앙은 어머니가 준 바구니를 들고 길을 떠났습니다.
시장에서 쥬앙은 다섯 마리의 커다란 게를 골라 바구니에 담은 후 어머니가
말한 대로 바구니의 뚜껑을 꼭 닫았습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쥬앙은 소
년들이 놀고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잠시 구경하고 앉았던 그는 그만
그 놀이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쥬앙은 게들이 바구니 속에서
기어 나오려고 발버둥치는 요란한 쇠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소리에 화가 난 쥬
앙은 바구니 뚜껑을 열고 게들에게 소리질렀습니다.
"너희들 벌써 집에 가고 싶단 말이지? 정말 참을성이 없구나. 그래, 너희들 먼
저 집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내가 곧 가겠다고 말씀드리렴!"
쥬앙은 게들을 바구니에서 꺼내 땅바닥에 놓고 집으로 재빨리 가라고 명령했
습니다. 쥬앙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거의 정오가 되었습니다. 배도 아주 고프고
점심에 먹을 맛있는 게를 생각하자쥬앙은 입에 군침이 돌았습니다.
' 내가 커다란 게 세 마리를 먹고 어머니는 나머지 두 마리를 잡수시면 될 거
야. 어머니도 좋아하시겠지.'
쥬앙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쥬앙이 집에 도착했
을 때 화가 잔뜩 난 어머니가 문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얘야, 게는 어디에 있지? 게를 사오라고 보낸 지가 벌써 몇 시간이나 됐는지
알지?"
"게들이 아직 집에 안 왔어요?"
쥬앙은 정말로 놀랐습니다.
" 어머니가 요리를 하시도록 저보다 먼저 게를 집에 보냈는데요."
쥬앙의 어머니는 화가 나서 쥬앙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렸습니다.
"아야! 아야! 어머니는 게들을 때리셔야지 왜 저를 때리셔요." 하고 쥬앙은 매
를 맞으면서도 불평했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쥬앙은 게들을 찾으러 시장에 갔습니다. 게들에게 화가 난 쥬
앙은 복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게를 때려 줄 막대기를 찾으려고 강둑을
따라 지름길로 갔습니다, 그 때 그는 커다란 게 한 마리가 모래 구멍 속으로 기
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 아하, 너 내 눈을 패해 숨으려구? 그렇지? 다른 녀석들은 어디 있니? 그것
들도 그 구멍 속에 같이 있니?"
그는 무릎을 굽혀 어두운 구멍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빨리 나오지 못하겠니? 이 비겁한 녀석들아! 나와서 내가 어제 울 엄마한테
매맞은 것처럼 너희들도 혼 좀 자봐."
그러고 나서 그는 맨손으로 구멍 속을 뒤졌습니다. 그러자 커다란 게 한 마리
가 쥬앙의 손가락 두 개를 꽉 집어 물었습니다. 쥬앙은 아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쥬앙의 작은 손가락 두 개는 게가 쥬앙을 혼내 주려
고 물어 갔기 때문에 다른 손가락들보다도 훨씬 짧답니다.
쥬앙과 얼음 과자
어느 날 쥬앙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갔습니다. 그는 길 한쪽 옆에서 얼음
과자를 팔고 있는 상인을 보았습니다.
"아저씨께서는 왜 종을 흔들고 계시죠? 아저씨는 교회세요?"
쥬앙이 상인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단다." 하고 상인은 대답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쥬앙은 통 안에서 가장 싼 것을 사겠다고
말했습니다. 상인은 쥬앙에게 얼음 사탕 한 개를 주었습니다. 쥬앙은 얼음 사탕
을 처음으로 맛보다 너무 차가워 펄쩍 뛰는 바람에 얼음 사탕을 그만 놓쳐 버렸
습니다.
"아저씨는 이게 왜 아주 차가운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저를 죽이
려고 하세요?" 하며 쥬앙은 상인을 원망했습니다.
상인은 얼음 과자는 얼음과 우유를 설탕으로 달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
다. 쥬앙은 웃으며 자신은 이번에 처음으로 도시 나들이를 나왔다고 얘기했습니
다. 그 이야기를 들은 상인은 쥬앙에게 돈을 받지 않고 얼음 과자를 하나 더 주
었습니다. 쥬앙은 상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얼음 과자를 먹지는 않았습
니다. 조금 전에 얼음 사탕을 먹느라 쥬앙의 이는 너무 얼얼했기 때문에 이것을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쥬앙은 얼음 과자를 대나무로 만든 가방 안에 넣었습니다. 그 가방 안에는 쥬
앙이 도시에 머물게 될 경우 갈아입을 몇 가지의 옷이 있었습니다. 일자리를 구
할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오후 늦게 쥬앙은 고향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재미있
는 얼굴로 쥬앙은 어머니에게 도시에서 본 새롭고 신기한 것들에 대해 얘기했습
니다. 종을 딸랑딸랑 울리며 얼음 과자를 파는 상인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그러다가 얼음 과자를 생각한 쥬앙은 도시에서 어머니를 위해 가져온 선물에 대
해 요란스럽게 떠들었습니다.
"어머니,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혀를 조금 내밀어 보세요.: 하며 그가 대나무
바구니를 열었을 때 놀랍게도 그 얼음 과자는 없었습니다. 쥬앙은 옷들을 하나
하나 털며 얼음 과자를 찾았지만 잦은 옷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도둑이야, 도둑! 누가 어머니에게 그릴 나의 선물을 훔쳐 갔어. 도둑이야, 도
둑!" 하고 그는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질렀습니다.
쥬앙의 고함 소리를 듣고 이웃집 사람들이 쥬앙의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들
은 아주 엄청나 일이 일어난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도둑이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을 훔쳐 갔어요."
쥬앙은 울며 대나무 바구니를 가리켰습니다.
"보세요. 그 도둑놈이 내 옷에다 오줌까지 쌌어요!"라고 말하며 쥬앙은 대바구
니 안의 젖은 옷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은 쥬앙이 얼음 과자를
대바구니의 옷가지 사이에 집어넣었다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쥬앙과 대나무 사다리
한 번은 쥬앙이 다른 읍내에 갔습니다. 길을 잃은 쥬앙은 친척집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오가 훨씬 지나 쥬앙은 어느 친절한 노인 집에서 점심 대접을 받
게 되었습니다.
식탁에는 연한 죽순으로 만든 요기라 있었습니다. 이 요리는 양파와 토마토
그리고 야자 열매 우유로 맛있게 양념하여 요리한 것이었습니다.
쥬앙은 그렇게 입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주인의
몫은 하나도 남겨 두지 않고 모두 먹어 치웠습니다.
"이처럼 맛있는 요리는 처음입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요?" 하도 쥬앙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아, 그건 대나무에서 나온 걸로 만든 걸세." 하고 노인은 대답했습니다. 그는
손님이 아주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요리를 만드는 비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쥬앙은 어머니에게 잘 드는 칼을 달라고 했습니다.
"어디 가니?" 하고 어머니는 물었습니다.
"채소 요리 재료를 구하러 가려 해요,: 하고 쥬앙은 대답했습니다.
쥬앙은 자기 집 입구의 대나무 사다리를 떼어 여러 조각으로 잘게 잘랐습니다.
그는 대나무 조각들을 커다란 솥에 넣고 물을 부어 불에 올려 놓았습니다. 쥬앙
과 그의 어머니가 그 대나무 요리를 도저히 먹을 수 없었음은 물론이었습니다
제 4 부
작은 나무의 소원
옛날에 어느 산꼭대기에 작은 베텔 나무 한 그루가 살았습니다. 그 나무에는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는 붉은 열매가 맺혔는데 열매 끝은 황금빛이 돌았습니다.
그 때문에 이 나무는 성탄절에 집을 환히 밝히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기를 원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나무에는 종려나무 잎처럼 생긴 앙상하고 볼품없는 네
개의 나뭇잎만 달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잎들은 크리스마스 별은 고사하고
크리스마스 촛불하나도 달 수가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나무에 달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빨갛고 황금빛 나는 열매
로 그들의 집을 밝히는 수많은 촛불보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더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이 베텔 나무는 다른 때보다 더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
니다. 나무는 올해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
다. 왜냐하면 약 30 센티미터나 몸이 더 자랐고 종려나무 잎 모양을 한 새 나뭇
잎이 두 개나 더 자라나 앙상했던 네 개의 잎을 풍성하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지나가고 벌써 12월 24일이 되었지만 아무도 그 나무를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 작은 나무의 희망은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나무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다 반짝이는 별들이 커다란 크리
스마스 트리를 만들기 위해 어디론가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아름다운 별들마저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기를 원하는 구나! 그런데 나
는 크리스마스에 쓸 열매를 달고 있는 진짜 나무인데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될
수 없구나!"하고 나무는 슬프게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나무는 별들이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서 별의 요정이 찬
란히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의 가슴은 기쁨으로 콩콩 뛰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들은 크리스마스 밤에 별의 요정을 보면 소원
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고 싶어요! 저는 제 이마에 반짝이는 별을 달고
싶어요!"
베펠 나무는 눈을 감고 열심히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러
나 아무 일도 일어자지 않았습니다.
'별의 요정님, 제발 저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만들어 주세요. 저로 하여금 사람
들의 마음을 한철 동안만이라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베텔 나무는 별의 요정이 자기의 소원을 알아듣고 눈을 깜박거렸다고 생각했
습니다. 나무는 기적이 일어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렸습니다. 눈물이 억수로 쏟아지고 더욱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자 빨갛고 금빛나는 열매들이 모두 땅에 떨어졌습니다. 마침
내 나무는 울다 지쳐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저런, 이 가엾은 나무는 정말 슬퍼서 쓰러졌네. 이 나무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겠어."
별의 요정은 앙상한 그 나무의 잎사귀를 뜯어 고깔 모자를 만들었습니다. 그
리고 빨간 베텔 열매를 주워 나뭇가지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나무의 눈물에서
나온 금빛 실로 예쁜 방울을 만들어 함께 달았습니다. 별의 요정은 꼭대기의 가
장 작은 잎으로 만든 고깔 모자에 자기의 왕관에서 딴 별 하나를 달았습니다.
그 별은 아주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여 산속 전체가 빛나는 듯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베텔 나무는 행복함을 느끼며 뭔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
다. 베텔 나무는 자신이 종려나무의 잎처럼 생긴 잎사귀 여섯 개를 가진 앙상한
나무여서 크리스마스 별 하나도 달 수 없는 평범한 나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
겨 왔습니다. 베텔 나무는 땅에 떨어졌던 빨갛고 금빛나는 열매를 찾아보았으나
그것들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열매들이 고깔 모양이 된 나뭇잎에
마치 마술처럼 자랑스럽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베텔 나무는 위를 바
라보다 자기 이마에 하늘에 있는 별 못지 않게 반짝이는 금빛 별을 보았습니다.
베텔 나무는 마침내 소원이 이루어져 자기가 정말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다
는 사실을 깨닫고 몹시 기뻐했습니다.
거북이의 지혜
옛날에 거북이와 원숭이가 강물위로 떠내려가는 바나나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나무는 아마 폭풍우에 뿌리를 뽑혔는지 나뭇잎도 싱싱하게 달려 있고 줄기도
굵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바나나 나무 가운데를 반으로 나누었습니다.
거북이보다 힘이 센 원숭이는 나뭇잎이 달린 윗부분이 더 잘 자라리라고 생각
했기 때문에 윗부분을 가졌습니다. 원숭이보다 힘이 약한 거북이는 뿌리만 달린
채 죽은 듯 보이는 밑부분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다시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원숭이씨. 당신의 바나나 나무는 잘 자라나요?" 하고 거북이는
물었습니다.
"오, 그건 죽은 지 벌써 꽤 오래 됐어요. 당신 것은 어때요, 거북이 양?"
"제 것 말입니까? 아주 훌륭해요. 이젠 잎사귀도 있고 열매도 달렸어요. 그러
나 전 나무에 기어올라가 열매를 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좀 문제예요."
"아, 그것 때문이라면 걱정 마세요. 제가 나무 위에 올라가 따드리죠."
"고맙습니다. 원숭이 씨." 하고 거북이는 말했습니다. 그들은 거북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널찍한 푸른 바나나 잎새 사이에 샛노랗게 익은 먹음직스런 바나나
송이를 본 원숭이는 놀랍도록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가 싱글싱글 웃으며 바나나
를 따서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좀 주세요."하고 임자인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원숭이에게 거북이가
소리쳤습니다.
"바나나 껍질도 주기 싫은데요."하고 원숭이는 말했습니다.
거북이는 복수를 하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거북이는 강가로 가서 가시와 조
개 껍데기를 가져다 바나나 나무 주위에 놓고 야자 껍데기로 덮어 놓았습니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내려오다 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렸습니다.
원숭이는 거북이를 가까스로 찾았냈습니다.
"이 못된 것 같으니라구. 마침내 너를 찾았구나. 네가 한 못된 짓을 갚으려면
너는 죽어야 마땅해. 그러나 나는 마음이 넓기 때문에 죽는 방법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어느 방법을 원하느냐? 절구통에 넣고 찧을까 아니면 강물에 던
질까?"
"절구통에요. 절구통에 넣고 찧으세요. 나는 물에 빠지는 건 무서워요."하고 거
북이는 소리질렀습니다.
"아, 물에 빠지는 게 무섭다구? 그렇다면 너를 물에 빠뜨려 죽이겠다."하고 원
숭이는 능글능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강둑으로 거북이를 들고 가 온 힘을 다하여 거북이를 강물에 던졌습니
다. 그러나 거북이는 수영을 하며 다시 물위로 머리를 내밀고 원숭이를 비웃었
지만 마음씨 사나운 원숭이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원숭이와 악어
폭풍우가 치는 날 한 마리의 원숭이가 어떻게 하면 건너편 강가로 갈 수 있을
지를 생각하며 강가에 서 있었습니다. 강이 너무 깊은 데다 수영도 할 줄 몰랐
기 때문에 원숭이 혼자서는 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뗏목을 만들 나무를 찾아
보았으나 그가 본 유일한 것은 당장이라도 그를 잡아먹을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악어였습니다. 원숭이는 아주 무서웠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친애하는 악어씨, 날 죽이지 마세요. 나를 살려 주신다면 당신이 평생을
먹고 살 만큼 많은 원숭이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드리겠어요."
그 말에 찬성한 악어에게 원숭이는 그 장소가 강을 건너가야 있다고 말했습니
다. 결국 악어는 원숭이에게 등에 태워 건너편에 데려다 주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반대편 강어귀에 다다르기 바로 직전에 원숭이는 땅으로 팔짝 뛰어내린 후 동료
들이 있는 나무로 뛰어올라갔습니다. 악어는 물론 원숭이를 쫓아갈 수가 없었습
니다. 물 속으로 되돌아가며 악어는 "네가 호된 맛을 볼 때가 올 거야."라고 분
을 참으며 말했습니다.
얼마 후 원숭이는 마치 죽은 듯이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악어를 보았습니다.
그 근처에는 마치 크리스마스때 장식으로 쓰는 빨간 열매와 같은 고추나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원숭이는 악어에게 다가가 악어의 꼬리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악어가 몸을 움직여 원숭이를 도망갈 수 없게 꽉 붙들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보세요!"하고 원숭이는 다급히 부르짖었습니다.
"악어 나으리, 나는 지금 임금님의 요리사랍니다. 저기 있는 빨간 빵들은 내
책임하에 맡겨졌답니다."
이렇게 말하며 원숭이는 고추나무들을 가리켰습니다.
"당신이 나를 죽이면 임금님이 무장한 군대와 함께 와서 당신을 혼내 줄 것입
니다."
악어는 원숭이의 말에 약간 겁이 났습니다.
"원숭이 씨, 나는 당신을 해치려 하지는 않았어요. 만약 당신이 내가 배고프지
않도록 많은 빵을 먹게 해준다면 놓아주겠소."
"악어 씨, 잡수시고 싶은 대로 잡수세요."하고 원숭이는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가져가고 싶은 만큼 많이 가져가세요. 당신에게는 모두 공짜입니다."
악어는 아무 말 없이 원숭이를 놓아주고 고추나무가 있는 강가로 갔습니다.
원숭이는 몰래 그곳을 빠져 나와 나무 위로 올라가 게걸스럽게 고추를 먹고 난
후 고통스러워하는 악어의 모습을 구경했습니다.
악어는 기침과 재채기를 하고 나서는 혀를 긁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원숭이는
악어가 타는 듯한 혀를 식히러 급히 물로 뛰어드는 것을 보며 재미있어 못 견디
겠다는 듯이 웃었습니다.
벌받은 원숭이
옛날에 아주 마음씨 착하고 참을성이 많은 거북이가 살았습니다. 거북이는 친
구가 많았습니다. 거북이의 친구들 중의 하나인 원숭이는 아주 욕심이 많았습니
다. 원숭이는 항상 가장 좋은 것을 혼자만 가지려고 했습니다.
어느 날 원숭이는 거북이를 찾아왔습니다. 원숭이는 거북이에게 멀리 산너머
마을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거북이는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길을 떠날 때 무거운 짐을 가지고 가는 것이 귀찮았던 원숭
이는 먹을 것을 별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여행할 때 먹을 음
식을 충분히 준비했습니다. 거북이는 원숭이에게 갈 길이 머니까 먹을 것을 더
가지고 가라고 말했지만 원숭이는 비웃기만 했습니다. 하루가 지난 후 원숭이가
가지고 간 음식이 모두 동났기 때문에 거북이는 원숭이에게 자기의 음식을 나누
어 주었습니다. 욕심이 많은 원숭이는 항상 더 많이 달라고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얼마쯤 걸어가다가 원숭이는 멈추
어 서서 거북이에게 말했습니다.
"야, 거북아, 좀더 빨리 갈 수 없니?"
"난 이보다 더 빨리 갈 수는 없어. 이 음식 보따리 때문에 몸이 무겁거든." 하
고 거북이는 대답했습니다.
"그 집을 나에게 줄래, 거북아? 그럼 우린 좀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원숭이가 말했습니다. 거북이는 원숭이에게 음식 보따리를 모두 넘
겨주었습니다. 원숭이는 짐을 받아 들고 거북이를 뒤에 남겨둔 채 아주 빨리 뛰
어갔습니다.
"기다려, 나랑 같이 가." 하고 거북이는 빨리 가느라 애쓰며 소리쳤습니다. 그
러나 원숭이는 "빨리 뛰어오란 말야!" 하고 소리치며 여전히 재빨리 달아나기만
했습니다.
거북이는 몹시 숨이 찼지만 계속해서 기어갔습니다. 원숭이는 길가에 있는 나
무 위에 올라가서 오던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거북이가 저 멀리 뒤쳐져 오는 것
을 보고 원숭이는 음식을 꺼내 먹었습니다. 드디어 그곳까지 온 거북이가 배가
고프다고 음식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안 돼, 좀더 가서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에서 먹도록 하자." 하고 원숭이는 말
했습니다. 거북이는 아무 말 없이 길을 계속 갔습니다. 시냇가에 이르렀을 때 원
숭이는 혼자서 남은 음식을 마저 다 먹었습니다. 얼마 후 거북이가 숨을 헐떡거
리며 오자 원숭이는 말했습니다.
"왜 너는 그렇게 늦게 오니?"
"난 너무 배가 고파서 빨리 걸을 수가 없어. 먹을 것 좀 줘." 하고 거북이는
말했습니다.
"먹을 것은 이제 하나도 없어. 내가 다 먹어 버렸거든. 넌 먹을 것을 너무 조
금 가져왔어. 아직도 난 배가 고파." 하고 원숭이가 말했습니다.
거북이는 몹시 화가 났지만 그냥 아무 말도 않고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사냥꾼을 만났습니다. 원숭이는 사냥꾼을 보자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갔
지만 거북이는 그만 사냥꾼에게 잡혔습니다. 잡혀 가는 거북이를 숨어서 보며
원숭이는 웃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냥꾼은 아주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냥꾼은 바나나 나무에 거
북이를 매어 놓고 시간마다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원숭이는 사냥꾼 집
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원숭이는 거북이가 바나나 나무에 묶여 있는 것을 보
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원숭이는 얼마 후 거북이가 식사 때마다 사냥꾼이 갖
다 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거북이가 부러워졌습니다. 그래서 밤이
되어 사냥꾼이 잠들자 원숭이는 거북이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내가 네 대신 거기 있게 해줘."
"싫어, 난 여기가 좋단 말이야." 하고 거북이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원숭이는
끈덕지게 거북이를 졸라대 결국은 그러기로 했습니다. 원숭이는 거북이를 풀어
주고 자신의 몸을 바나나 나무에 묶었습니다. 거북이는 행복한 마음으로 그 자
리를 떠났습니다. 아침이 되면 사냥꾼이 갖다 줄 음식 생각을 하며 기분이 좋아
진 원숭이는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사냥꾼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원숭이
의 모습을 본 사냥꾼은 원숭이가 자신의 바나나를 훔치러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냥꾼은 사냥총을 가지고 와서 원숭이를 쏘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거북
이는 자유롭게 놓여나고 얌체 원숭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난쟁이 키바안 이야기
옛날 필리핀에는 쌀통에서 쌀을 훔쳐 가거나 어부들의 어망을 가지고 도망가
거나 혹은 어린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장난을 무척 좋아하는 키바안이
라 부르는 난쟁이들이 살았습니다. 이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과연 그들이
사람인지 잘 알 수도 없었지만 피부는 희고 머리카락은 발끝까지 내려오고 입을
열 때마다 금빛으로 된 이가 반짝였습니다. 또 발뒤꿈치가 앞으로 오고 발가락
이 뒤에 붙어 있어서 사람들이 쫓아가 붙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창 밖으로 무엇을 던져 버릴 때 이렇게 말합니다.
"키바안아, 안 다치게 비켜라."
왜냐하면 주의를 주지 않는 사람은 이따금 벌을 받아 병에 거리거나 심한 경
우엔 죽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나이 많은 어떤 아주머니가 짚으로 불을 지피고 나서 그 다음날 아침
에 먹으려고 뜨거운 재 속에 고구마 몇 개를 파묻었습니다. 그런데 밤사이 키바
안이 와서 그 고구마를 다 먹어 버렸기 때문에 아주머니는 재 속에서 아무것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아주머니는 재 속에 고구마를 익히려고 넣
었으나 그 다음날 아침에도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키바안이
먹어 버렸기 때문이죠.
세번째 날 밤 그 아주머니는 누가 고구마를 먹어 치우나 몰래 지켜보기로 했
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군고구마는 참 맛도 좋지." 하고 노래하는 키바안의 흥
얼거림을 들었습니다. 아주머니는 키바안이 다시는 자기 고구마에 손을 대지 못
하도록 혼내 줄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주머니는 고구마 대신 고구마와 비슷하게 생긴 큰 돌멩이들을 재 속에 묻었
습니다. 새벽에 아주머니는 키바안 난쟁이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이, 난 그게 고구마인 줄 알았지!"
그들은 뜨거운 돌멩이를 깨물었기 때문에 이를 다쳤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아주머니는 재 속에서 잘 구워진 고구마를 꺼낼 수
있었습니다. 키바안은 이제 다시는 아주머니를 속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소녀와 쌍둥이 나무
필리핀 루손 섬 북쪽 높은 산악 지방에 사는 원주민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 나
무 한 그루를 심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쌍둥이 나
무'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자라면 아이도 잘고 나무가 시들거나 죽으면
아이도 죽거나 아프게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간이라는 예쁜 여자아기가 태어났을 때 부간의 부모는 아기의 '쌍둥이 나무'
를 심었습니다. 이 나무는 '본톡'지방 숲에 많이 자라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나아
라'(향기로운 노란 꽃이 핌) 나무였습니다. 이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며 부간의
부모는 그들의 딸이 아주 튼튼하고 어여쁘게 자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
다.
산골에 사는 아이답게 부간도 어렸을 떼부터 어떻게 나무를 돌봐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아이는 이 나무를 '어린 부간 나무'라 이름짓고 매일매일 물을 주며
고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린 부간 나무야,
여기 샘에서 막 길어 온 시원한 물이 있단다.
이 물을 마시고 어서어서 자라
우리 아빠가 사냥하시는 숲 속의
네 형제 나무들처럼 튼튼하게 크거라.
어린 소녀 부간은 어떤 날에는 나무에게 밥을 갖다 주기도 했습니다. 부간의
아버지가 사슴이나 산돼지를 사냥해 오면 소녀는 밥과 함께 소금에 절인 고기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면 나무는 나뭇잎이 무성한 가지를 흔들어 대며 기
뻐했습니다. 물론 나무는 고기와 밥을 먹을 수 없었지만 새들이 와서 그것을 먹
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가지에 앉아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 것이 몹시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새들의 노랫소리와 나뭇잎 부딪는
소리 그리고 뛰어노는 소녀의 목소리가 행복하게 온 산에 울려 퍼지곤 했습니
다. 산에 깃드는 안개구름도 찾아와 함께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부간은 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나무는 때로 아침 내내 혼자 있어야 했습
니다. 어린 소녀 부간이 어머니를 따라 고구마를 심으러 먼 산으로 갔기 때문입
니다. 오후 늦게 되어서야 어머니와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올 때마다
소녀는 나무에게 다른 산에서 본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얘, 어린 부간 나무야, 너 고구마밭에 그 우스운 원숭이를 아니? 그 녀석이
내 고구마 바구니를 훔쳐 가길래 내가 나뭇가지를 던졌더니, 그 녀석도 내게 똑
같이 나뭇가지를 집어 던지지 않겠니." 혹은 "얘, 어린 부간 나무야, 우리 고구마
밭 옆 옹달샘 가에 귀여운 빨간 새를 아니? 그 새는 "포롱 포롱" 우는데, 엄마가
그러시는데 그 새가 다른 소리로 울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구나." 때로는 "얘, 어
린 부간 나무야, 너 숲 한가운데 있는 황금빛 나무를 아니? 엄마랑 나랑 언덕을
지날 때 그 나무가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걸 보았단다. 엄마가 그러시는
데, 옛날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그 나무에 달린 열매로 귀걸이를 만들었대."
때로는 부간이 이런 이야기를 다 재잘대기도 전에 벌써 서쪽 하늘에 초저녁
별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나무와 그 나무에 보금자리를 튼 새들은 그 이야기
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그 소녀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린 소녀 부간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무와 새들
은 참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쁜 소녀 부간은 어디 갔을까? 왜 우리에게 작
별 인사도 하지 않고 가버렸을까?
그러나 어린 소녀 부간은 어디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녀는 오두막집 안
에서 뜨겁게 열이 오른 채 앓아 누워 있었습니다. 마을에 사는 무당들이 와서
하늘나라에 사는 신들에게 돼지와 닭을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낫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이 아팠습니다. 무당들은 소녀의 '쌍둥이 나무'가 시들지
도 썩지도 않은 것을 보고 참 이상해했습니다. "이건 분명코 조상님 탓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조상님이 외로워서 함께 놀아 줄 어린아이가 필요한 모양입니다.
부간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커다란 돼지를 잡아 제사를 지냅시다." 하고 무당은
부간의 부모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커다란 돼지를 자아 부간을 아프게 한다고 생각되는 조상에게 제
사지냈습니다.
"자, 부간의 조상님이시여, 여기 돼지가 있습니다. 우리 부간의 영혼을 잡아가
지 마시고,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드리는 이 살찐 돼지의 영혼과 함께 놀아 주십
시오." 하고 무당들은 주문을 읊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제물과 제사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녀 부간은 일어나지 못했습
니다 어느 날 오후, 해가 서쪽으로 반쯤 기울어 갈 때 소녀의 오두막집에서 시
작하여 소녀의 조상이 묻혀 있는 산 언덕바지로 이어지는 작은 행렬이 있었습니
다. 이 행렬이 '어린 부간 나무'를 지날때 나무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부
간의 아버지가 담요 속에 걸머지고 가는 것은 사랑하는 어린 소녀 부간의 생명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슬픔에 차 울부짖고
그 소리는 온 산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이후로 나무는 다시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나무는 어린 소녀가 너무 보
고 싶었습니다. 그 누구도 나무에게 와서 노래를 불러 주지 않았으며 바깥 세상
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않았습니다. 그 어떤 아이도 나무에게 다가와
가지를 정답게 흔들어 주지 않았고 새들과 바람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행복한 목
소리로 노래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이제는 나무에게 물과 음식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 가 나뭇가지들은 마르고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새들도 다른
싱싱한 나무로 보금자리를 옮겨 갔고 그 어떤 새들도 날아와 앉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지진이 온 산을 흔들었습니다. 흙과 바위가 산골짜기로 굴러 내리
는 바람에 커다란 나무들도 무서워서 떨었습니다. 기운도 없고 슬픔에 지친 '어
린 부간 나무'는 뿌리까지 뽑혀 슬픔 비명과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부간의 아버지는 창 밖을 바라보다 그 나무가 뿌리 뽑힌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저것 좀 봐. 마침내 '어린 부간 나무'가 우리 부간과 놀아 주려고 하늘나라로
가버렸구나."
옮기고 나서
필리핀은 7,000여 개의 아름다운 여러 섬이 모여 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데 그
섬의 숫자만큼은 못 되지만 꽤 많은 종족과 언어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말레
이 혈통 외에도 중국, 스페인의 피가 조금씩 섞인 다양한 종족이 살고 있고, 이
나라에는 필리핀 국어로 지정된 '타갈로그어'외에도 100여 개의 방언이 있습니
다.
1521년, 어린이 여러분도 잘 아는 포루투갈의 항해사 마젤란이 긴 여행 끝에
필리핀을 '발견'한 이래 필리핀 사람들은 큰 고난을 겪게 되었습니다. 마젤란은
그때 필리핀 사람들에게 스페인의 종속국이 되라고 요구하다 필리핀 세부 섬의
원주민 장군인 '라푸라푸'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565년, 결
국 필리핀은 당시 유럽의 강대국인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어 333년을 고통스럽게
지냈습니다. 1898년부터 50여 년 동안은 다시 미국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습
니다. 이처럼 서양의 긴 식민지 역사에서 생겨난 여러 가지 모습 때문에 필리핀
은 오늘날 '동양의 서양'이라고 빗대어 불리기도 합니다.
필리핀은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면 겨우 세시간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기후, 풍토, 문화, 풍습이 우리 나라와는 크게 다른 아시아 국가
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여기 실린 46편의 민화들은 필리핀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민화는 그 나라의 가장 중요한
사람들인 보통 사람들의 의식과 풍습, 문화, 꿈 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기 때
문입니다.
이 민화집은 필리핀의 대표적인 민간문학 연구자인 판슬러(D. Fansler)의 민화
집과 호카노(L. Jocano) 교수의 "필리핀 신화집" 등 모두 다섯 권의 책에서 골라
번역한 것인데 4부로 나누어 편집하였습니다.
제 1부는 필리핀 사람들의 우주관,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민화들입니다. 여기
에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항상 궁금해하는 하늘, 바다, 지구, 별, 달,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의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이지만
이 천지창조의 민화가 기독교와 무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까닭은 이 전설, 신화
들은 스페인이 필리핀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제 2부는 나무, 꽃 등의 식물과 물고기, 동물, 곤충등이 생겨나게 된 이야기들
입니다.
제 3부는 필리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인물인 쥬앙의 용감한 모험과 그리고 다
른 여러 종류의 주인공 - 바보, 얌체, 게으름뱅이 - 등의 이야기, 항상 바보짓을
하는 바보 쥬앙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제 4부는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게 된다면
권선징앙적인 우화와 그 밖의 다른 이야기들을 골라 뽑았습니다.
필리핀에는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 손자가 한집에 모여 사는 대가족 제
도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 식구가 모여 살기 때문에 필리핀 어린이
들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자랍니다. 그리고 웬만한 필리
핀 가정에는 어린아이를 돌보아 주는 "야야"(유모)를 두는데, 이 야야가 들려주
는 옛날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아주 꿈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시절을 보
냅니다.
필리핀 민화 속에는 그들의 여유 있는 해학과 웃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
은 필리핀 사람들의 낙관적인 국민성인 '바할라나'(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중 행사처럼 덮쳐 오는 태풍과 화산 폭발
같은 자연적 재앙을 자주 당하는 지역에 살다보니 저절로 생긴 달관된 태도라고
좋게 풀이되기도 하고 종종 안일하다고 비판받기도 합니다.
필리핀 민화의 도 하나의 특색은 대부분의 이야기가 주인공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는 도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선행'(착하거나 용감한 행위)을 베푼 결과 '공주'(아름다움)를 얻게 되는 민화 속
의 양상은 오늘날 숙녀를 깍듯이 대우해 주는 데 관한 한 아시아에서는 필리핀
을 따를 나라가 없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 2부에 나타나는 나무
들의 전설은 모두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때문에 죽어서 나무나 꽃이 된 경우입
니다. 이렇듯 아주 낭만적인 필리핀 사람들의 정신은 오늘의 필리핀 현실 속에
서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1986년 2월에는 국민의 힘으로 마침내 독재자를 물
리침으로써 그들의 옛날 이야기처럼 나쁜 사람이 쫓겨나고 자유가 찾아오는 옛
날 이야기의 권선징악을 실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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