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산업을 주제로 떠올린 배경에는 어떤 특정문화의 보편화 경향과 함께 세계 여타 지역문화 및 문화가치의 위축 내지 소멸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데 대한 깊은 우려가 작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유리한 경제적 정치적 조건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문화산업이 예술분야의 직업과 일반인의 창조성의 발휘 양상을 크게 변모시킬 수 있고 창조적 예술가들과 일반 대중 간의 접촉기회를 높이는가 하면, 학교 안팎에서의 교육활동에 신선한 자극을 제공하기도 하고, 국민 일반에 의한 문화적 표현에의 효과적 참여를 상당히 강화하기도 한
?주장도 없지 않다.
말하자면, 문화산업의 역효과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국한한다는 것은 잘못이며 현실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문화산업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것은 흔히 비판이론이라고도 불리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1947)이라는 책의 한 장을 이와 같이 이름 붙인 데서 유례한다.
그들은 다분히 비판적인 입장에서 이에 접근했는데, 그들이 행한 분석의 진정한 주제는 문화산업이 아니라, 그것의 당연한 산물, 즉 대중문화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말하자면, 문화산업 개?
대중문화 개념을 올리기 위한 무대일 뿐 그 자체가 연구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생산의 산업형태라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재즈와 만화, 라디오와 영화 등을 뭉뚱그려 같은 현상으로 취급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재즈가 텔레비전 연속극과 같은 차원의 것이 아니란 점을 잘 알고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 바 있다.
이에서 보듯이 문화산업에 대한 총론적 이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영역이 어느 정도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말로 된 자료들 중 가장 표준적이라고 할 만한 유네스코의 《문화산업론》은 문화산업의 범위와 활동분야
0개의 범주로 나누고 있다.
도서, 신문·잡지, 음반,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새로운 시청각 제품과 서비스, 사진, 미술품 복제, 광고가 그것이다.
우리 나라에 온 적도 있는 프랑스의 문화정책 전문가 오귀스트 지라르에 따른 이같은 범주들은 다시금 제조방식에 따른 기준에 따라 다시 몇 개의 집단으로 구분된다.
원초적으로 소규모적이고 개인적인 창조품목이 산업기술에 의해 대량 생산되는 제 1 집단으로는 도서, 미술복제, 음반이 손꼽힌다.
이어서 창조적 활동이 처음부터 상당한 기술적 물량투입을 상정할 뿐 아니라, 공급양식도 집
성격을 지니는 제 2 집단으로는 영화, 텔레비전이 손꼽힌다.
나아가 사진과 홈무비(자가영화)는 제조과정의 흥미로운 결합을 보여주는데, 사용자는 우선 산업제품을 시장에서 구입하여 이를 원자재로 활용, 자신의 개성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찍힌 필름은 다른 또 하나의 산업에 넘겨지게 되고 그 산업은 ‘현상·인화’된 사진을 되돌려 주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진은 독특하면서도 복제 가능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문화산업은 또한 사용방식에 따라 분류될 수도 있다.
책, 음?
상제품은 사용자가 서로 다른 제품들을 놓고 능동적인 선택을 행사할 수 있는 상품들로서, 사용자가 오래 간직하는 내구적 상품으로 구입하기 때문에 애착이 강하고 지속적이다.
달리 말하면, 공급이 수요에 앞서 가면서, 즉각적 수익성이 없는 품목들(시, 철학, 옛날 또는 현대 음악 등)이 여전히 생산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의 경우는 출판산업이라고도 할 만한 앞의 경우에 비해 그 사용자가 엄청나게 더 크지만, 그들에게 허용되는 선택의 가능성은 제한되어 있고, 따라서 그들은 훨씬 수동적이다.
이 분야에서의
산은 광고를 통해 여타의 비문화적 상품 소비와 연결되는 일반적이고 금방 낡아 버리는 대량소비상품의 생산과 홉사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지라르는 라디오, 텔레비전이 좀더 고상한 출판산업이나 생음악 연주 등의 제품을 일종의 ‘문화저장고’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충분한 설명이 주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이로써 문화생산에는, 그 대량생산의 국면에서조차, 문화의 본질과 관계되는 그 어떤 것이 존재하며, 따라서 대량생산된 부품들을 일정 장소나 공장에서 조립함
館?행해지는 상품생산을 지시하는 ‘산업화’라는 말이 문화에는 적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의 예언대로 새로운 시청각 제품, 그 서비스 및 네트워크(영상제품, 위성 등 전산기술과의 연관에서 파생되는 일체의 기술, 전화와 텔레비전 스크린 등)가 모든 문화제품을 좌우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우리는 “문화산업은 문화의 산업화가 아니다”라는 그의 주장이 여전히 유효한가를 질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은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느 경우에라도, 그것이 ‘문화적 저장고’를 그 존립여건으로 삼고
募?인식이 망각되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이윤의 관점에서 이에 접근하면서, 어떻게 하면 좀더 잘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만 정신을 팔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사리 제작기술과 보급기술의 개선이 절실하다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것이 마치 유행이 강요되고 있는 이른바 ‘세계화’를 문화적으로 손쉽게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라도 되는 듯이 야단법석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인문교육의 핵심에 속하는 예술교양교육,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예술전문교육은 여?
방치해 두는 넌센스가 태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문화산업이 일반대중의 예술수용력을 키우고 예술에의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조건반사 속에 몰아넣거나 무감각 상태에 빠뜨리는가 하는 질문은 자칫 질문을 위한 질문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그 사용자들에게 진정으로 새로운 가치를 심어줄 수 있고, 메시지 생산자들과 일반대중이 극히 제한되고 암시적인 교류의 범위를 넘어 참다운 대화관계를 수립할 수 있게 하려면, 그리고 시장세력이나 정치적 편의주의가 아니라 사용자들이 좀더 능동적이고 근원적으
문화상품의 선택에 참여할 수 있게 하려면 아무래도 시민적 차원의 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 첫걸음은 아무래도 살되 좀더 사람답게 살려는 노력의 총화로서 문화가 지닌 힘을 믿으면서 비문화적 사태를 개선할 수 있는 지식과 실천을 위한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2.
앞에서 유네스코가 이해하는 문화산업의 범위와 활동분야를 소개한 바 있거니와, 필자가 이 글에서 의미하는 문화산업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항목들을 포함한다.
(1)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문화산업(예, 예술과 디자인, 과학, 문학, 교육, 반성?
淪臼痢?생산하는 영리·비영리 기관 등).
(2) 펌웨어를 생산하는 문화산업(예, 문화적 소프트웨어에 의해 뒷받침되는 하드웨어산업 ─ 섬유예술 또는 디자인이 가미된 섬유제조, 수공과 도자공예, 디자인 건축 등).
(3)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문화산업(예, 문화 소프트웨어를 위해 필요한 제품을 공급하는 제조업 ─ 비디오 기계, TV 수상기, CD 플레이어, 녹음기, 카메라, 인쇄기 등).
(4) 문화상품·용역의 분배나 배달을 담당하는 문화산업(예, 영화·비디오·인쇄물의 유통체계, 음악의 분배체계, 미술의 네트워크, 관광이나 운동경기 관람 코?
네이팅 등).
문화산업을 엄밀히 정의하기란 매우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화산업을 삶의 질을 지탱하고 향상시키는 재화와 용역을 산출해내는 산업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재화·용역의 수요에 대한 충족은 많은 경우에 생활방식의 변화에 의해서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소비자 생활에서 과학적 지식과 예술적 감각을 접목시키기도 하지만, 예술이나 문화와 구별되는 도박과 놀이를 가져오기도 했다.
후자와 전자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기에 우리는 문화산업을 정의함에 있어서 이들을 함께 다루고자
?
이와 같은 의미의 문화산업은 서비스업의 성장과 함께 발전해 왔다.
그런데, 세계 경제 서비스업에 대한 조사에 따르자면, 전체 고용인구에 대한 비율에서 미국의 서비스업 고용인구가 가장 앞서고 있다(1985년에 미국 72.3%, 네덜란드 67.5%, 스웨덴 66.9%, 영국 65.3%, 프랑스 61.7%, 독일 54.2%). 반면에 일본에서의 이와 같은 비율은 57.1%에 그쳤다.
1) 다니엘스에 따르자면, 일본과 독일에서 서비스업의 비율이 낮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행해진 재건의 과정에서 강조된 건설업의 역할과 연관될 수 있다.
그런데 1980년대 이
뼁【??문화산업이 급성장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일본에서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1,600만 명에 달한다.
이것은 일본 국내산업 고용인구의 30%에 해당된다.
이와 같은 문화산업 선풍의 배경은 무엇인가? 우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그 원인으로 지적하는 견해에 동의한다.
1) 일인당 국민소득의 증가
1950년, 일본의 경우 일인당 국민소득은 4만1천 엔(명목지수)이었으며, 그것은 당시 미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의 1/14에 해당된다.
그러나 1965년에 일본은 일인당 26만6천 엔(명목)을 달성시켰으며, 1990년에는 2,732
다.
이는 미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미국 일인당 국민소득의 1.1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일인당 국민소득의 증가율은, 같은 기간의 소비자 물가지수의 변화를 감안한다고 해도, 놀라운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인들은 생활방식의 근원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이나 식기세척기, 냉장고와 같은 내구재의 보급률이 1991년에는 97~98%에 달했다.
또한 엥겔지수는 1965년의 36.2%에서 1990년에는 24.1%로 감소한 반면, 가계지출에 대한 서비스의 소비율은 같은 기간에 42.4%에서 52.6%로 ?
다.
무엇보다도 교육, 문화, 오락, 교통, 그리고 통신에 대한 지출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2) 근로시간의 단축
일본인의 평균 근로시간이 1965년에는 연간 총 2,311시간이었던 반면, 1990년에는 2,052시간으로 단축되었다.
그 결과로 다수의 일본인은 여가를 활용하고 즐길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일본 레저개발재단의 《백서》(1994)에 의하면, 일본인의 대부분이 향후 다음의 활동들을 즐기고자 하고 있다.
(1) 여행이나 관광(국내 및 해외).
(2) 야외활동(등산, 운동으로서의 산책, 스포츠, 그리고 일일여행 포함).
(3) 공연예술이나
재의 감상.
(4) 전통문화 또는 현대문화의 학습, 교양과목의 교육이나 훈련, 독서, 그리고 평생교육의 수혜.
(5) 사회서비스에 대한 봉사활동.
이와 같은 경향은 근로시간의 단축이 문화산업 시장 형성을 초래했음을 암시한다.
현 시점(1993)에서, 일본의 레저시장(769조370억 엔)은 민간부분의 최종소비자 지출의 28.4%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민총소득(GNP)의 16.3%를 점유하고 있다.
시장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 스포츠=시장의 8%(경기단체나 교육기관이 그 절반을 차지한다).
(2) 취미, 오락, 그리고 창작=14%(신문, 잡지, ?
7%, 감상용 제품 ─ 음향기기, 텔레비전, VTR, 음반, 비디오나 CD 등의 소프트웨어 ─ 이 5%를 차지한다).
(3) 놀이, 도박, 가라오케, 그리고 외식=62.9%(놀이=25.5%, 도박=12.2%, 외식=25.6%).
(4) 관광이나 여행=15.1%(국내관광=10.2%).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의 레저 시장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놀이, 도박, 그리고 외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여가활동은 문화와 예술의 수용이나 창조보다는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에 가깝다.
일본 놀이의 상징은 ‘빠찡꼬 홀’이다.
이들 홀은 수십 개
치기 기계들로 가득 차 있으며, 때로는 도회지의 문화 홀보다도 규모가 크다.
그러나 1990년 이래, 빠찡꼬 홀보다 훨씬 관심을 끄는 문화 홀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홀들은 지역사회에 공연예술과 미술을 홍보하고 있다.
일본에서 빠찡꼬 홀은 증권시장에 주식을 상장할 수 없는 도박업에 속한다.
이제 일본인들의 선호가 변해 빠찡꼬보다는 공연예술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면, 공연예술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우수한 예술 지원정책이 전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은 귀기울여 볼 만하다.
Ю?
일본은 세계에서 평균수명이 가장 긴 나라의 하나이다.
1990년에 65세가 넘는 노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12.0%를 차지했다(1950년에는 4.9%, 1965년에는 6.3%). 당국에 의한 공식적 추정에 의하면, 2,000년에는 전체 인구의 17.5%(약 2,170만 명)가 이 연령층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가족들에 의한 노후보장체계에서 사회에 의한 노후보장체계로 삶의 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수명 연장의 과정은 한 명 또는 두 명의 자녀를 둔 부부로 이루어지는 핵가족의 증가로 성취되었는데, 이는 1960년대에 농촌사
공업화에 기인한 이촌향도 현상 때문이다.
새로운 체제는 문화산업 성장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가족들에 의한 상호적 생계보장의 체계에서 노령 가구의 분리를 통해, 노인들은 그들 스스로 저축한 노후보장연금과 사회보장제도에 의해 취미 및 창조적 활동, 그리고 개인주의적 생활방식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경향에 의해 새로이 개척된 문화산업의 기회들은 다음과 같다.
(1) 중년 및 노년층을 위한 새로운 패션의 의류시장.
(2) 노인들의 새로운 생활방식에 좀더 적합하고, 인생경험에 대한 대화를 더욱 쉽게 만들고,
? 예술적 감각이 가미된 새로운 식음료품 시장.
(3) 사회로부터의 의료서비스와는 다른 복지 혜택을 받는 새로운 양질의 노인주택 시장.
(4) 근로시간의 단축에서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취미, 오락, 창작, 놀이, 도박, 가라오케, 외식, 그리고 관광 및 여행을 포괄하는, 노인 대상의 레저산업의 새로운 시장.
4) 교육, 고용,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여성의 참여
전통적인 가족제도(가부장제)에서 해방시키고, 평등한 교육기회를 주려는 민주적 개혁의 뒷받침을 받아 일본여성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참정권을 인정받았다.
이들은 자유로운 의
의 경험을 갖고 있으며, 1990년 현재, 전체 노동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평생고용제도는 진부한 남성 중심의 관습에 기초를 두고 있어서 많은 경우에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적은 임금(ILO의 보고에 따르자면 남성 평균임금의 52%, 1986~1988)을 받거나, 시간제 고용 상태(1990년, 전체 여성 고용인구의 27.9%)에 있다.
외형적으로 보아서 이들은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으며,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남성들보다 오히려 높다.
그러나 사업세계 안에서 이들은 남성들과 비교해서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다.
?
岵막?이들은 사업세계 밖에서 가치 있는 삶의 양식을 찾는 데 열성적이었다.
지역사회의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거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할 기회가 있을 때, 남성들에 비해 진보적인 여성들이 많다.
또한 여성들은 문화 면에서 유행을 주도하는 유행 창조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 일본적 생활방식의 근간을 이루는 특징은 기업 중심의 사회였다.
즉 기업의 발전이 가정의 행복보다 앞선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사회체제는 남성 중심의 질서에 바탕을 둔 평생고용제도에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삶?
?평생고용제도에서 소외된 여성들에 의해 주도되는, 가족 중심적인 것이다.
일본에서는 1980년 이래, 가족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협동·네트워크 기관들이 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은 오염되지 않은 식품의 확보를 위해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도시소비자와 농촌을 연계하는 유통구조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협동조합을 통해 안전한 농산물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될 수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은 여성들에 의해 의식주생활이나 관광과 같은 소비자행태로 확산되었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여성들이 자신의 가정뿐만 아?
환경문제나 문화와 예술에도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은 일본식 생활방식을 바꿀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며, 이들은 스스로의 인간적 향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경향의 주도자로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재화와 용역에 대한 이전의 선호를 변화시켰다.
이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디자인과 성능을 갖춘 전기제품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관광지에서 가족과 본인을 위한 서비스를 수용하게 되었다.
이제 그와 같은 포용력은 일본의 문화산업의 발전을 촉진시키게 되었다.
?
?최근에 가격만 합리적이라면, 대량생산에 의한 단순한 상품보다는 과학자, 디자이너, 그리고 예술가들을 거느리고 있는 고급제조업에 의해 공급되는 ‘고유가치’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 고조의 반영으로서, 1975년 이래, 직업예술가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디자이너와 음악가들이, 다른 공연예술가들이나 사진작가, 문학작가나 미술가 등의 예술가들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1985년에는 12만에 불과했던 디자이너들의 숫적 증가는 일본 소비자들이 실용적인 기능뿐
灸? 예술적 감각을 가진 좋은 디자인의 상품 및 서비스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5) 사회보장 최저 수준의 달성
일본의 의료보험제도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연금제도는 1959년에 성립되었다.
지역사회의 사회보장제도는 그 이후로 탁아, 의료혜택, 노인복지, 장애자복지 등에 대한 수요의 증가에 따라 점차적으로 개발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지방자치단체들 안에서 주민 선택의 여건들을 바꾸어 놓았다.
1969년까지 주민선택의 가장 중요한 안건은 새로운 공장을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1970년
觀隙?주민들은 사회복지에 대한 시의 계획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서, 우리는 일본이 사회보장의 최저 수준을 성취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복지정책이 아직은 미흡해서 노인들이나 아이들, 장애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 이래, 지방자치단체들의 정책목표의 서열 선두는 문화정책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문화정책의 상징으로서 수많은 문화 홀들이 지방(현)과 지역사회(1993년에 1,000개 이상=1980년의 두 배)에 증설되었다.
이들 홀의 대부분(86.5%)은 시립으로 세워졌다.
회보장의 사회적 최저수준을 달성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업, 병고, 빈곤, 무주택 등의 공포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 아래,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은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요구를 가중시킬 것이며, 생활방식의 변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충족을 논함에 있어서 우리는 (1) 물질적 조건 또는 사회보장의 최저수준은 언제 달성될 것인가, (2) 언제쯤 반쯤 빈 속에 익숙해져야 하는 삶에서 탈피하는가, 그리고 (3) 언제쯤 인간적 향상의 희망을 갖고
있는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인간적 향상의 가능성에 대한 고찰은, 1980년대에 사회보장의 최저 수준이 달성됨으로써,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갖게 되는 기대와 연결된다.
이들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적 삶의 정체와 어떠한 삶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자기평가에 관심을 가져 왔다.
그러한 것이 일본인의 생활 방식의 놀라운 변화이다.
가까운 과거 사람들은 “일본인의 생활 방식의 기본적 특징은 엄격성과 획일성이다.
어쩌면 이들은 개인주의에 무관심하고 집단주의에 익숙한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일본의 유?
湄? 특히 학생, 여성, 그리고 중·노년층은 그들 스스로의 개성이나 정체성을 앞에 언급한 《레저백서》에 수록된 여가활동들에 의해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일본 레저시장의 가장 큰 부분은 놀이나 도박, 외식 등, 수공의 예술이나 문화와는 구별되는, 대량생산과 연결되어 있는 서비스들에 의해 점유되고 있다.
삶의 질을 지탱하고 향상시키며, 복지나 정신적 행복에 기여하는 산업이 존재하는 한편, 삶의 질 향상이나 지탱과 합일하지 않으며, 단지 일시적인 정신 분산에만 기여하는 산업 또한 존재한다.
3.
앞에서
瞿뼈?문화산업이 오늘날과 같이 성장한 배경적 요인들을 짚어 보았거니와, 이와 같은 복합적 원인들을 염두에 둘 때, 예컨대 한국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일본에 필적할 만큼 국력이 신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대응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좀더 실제적인 방안을 찾아보자면 일본의 문화상품 중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형들을 선별적으로 유입하는 방안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현재의 문화산업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이른바 ‘고유가치의 경제’를 제창하는 양심적인 지식인이 없지 않으므로 이?
珦?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만하다.
예컨대 일본 문화경제학회장 이케가미 쥰 교수(쿄토대)는 존 러스킨의 사상을 중시하면서 ‘삶의 질’의 지탱과 향상에 대한 기여와 소비자 선호의 변화를 고려하는 가치이론을 탐색한다.
고유가치는 삶을 뒷받침하는 모든 절대적 힘이다.
일정한 품질과 질량을 가진 밀 한 단은 그 내부에 신체의 생존을 유지시키는, 측정 가능한 힘을 갖고 있으며, 1 평방 피트의 공기는 온도를 유지하려는 일정한 힘을, 아름다운 한 묶음의 꽃은 감각과 정서를 활발하게 하고 자극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5湧?그것을 멸시하고 거부한다고 해도 밀이나 공기, 꽃의 고유가치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사용되든 않든, 이들의 힘은 그것들 자체의 내부에 있으며, 다른 어떤 것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3)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러스킨은 고유가치의 기본적 특성을, 신체의 생존을 유지시키는 밀의 기능에서와 같은 상품의 역량과 기능; 온도를 유지하려는 공기의 기능에서와 같이 천연자원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의 역량; 그리고, 정서와 감각을 자극하고 활성화시키는 아름다운 꽃의 기능과 같이 즐거움을 주는 환경의 역량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같은 역량들은 삶의 질을 지탱하고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고유가치를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할 수 있게끔 하는 조건들에 대한 사고가 요청되는데, 그와 같은 조건들을 러스킨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것들의 (고유)가치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수용자가 특정한 상황에 놓여져 있어야 한다.
음식이나 공기, 꽃이 그 가치를 다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소화, 호흡, 그리고 감지 기능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가치의 생산에는 언제나 두 가지 과제가 관여
그것은 먼저,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의 생산이며, 다음으로,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수용력의 생산이다.
고유가치와 수용능력이 합치하는 곳에는 효과적인 가치나 부가 생성되며, 고유가치가 부재하거나 수용능력이 부재하면, 효과적인 가치, 다시 말해서, 부가 생성되지 않는다.
승마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은 사용될 수 있는 부가 아니며, 볼 수 없는 사람에게는 그림도 마찬가지이고, 고상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어떠한 고귀한 것도 부가될 수 없다.
4)
이처럼 삶의 질을 향상시키 위해서는 ① 고유가치를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할 인적 자본 및 능력의 개발, 그리고 ② 수용능력, 다시 말해서, 음식을 소화하고, 공기를 호흡하며, 예술적 감각으로 꽃의 기능을 감지할 수 있는 인적 자본 및 능력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이와 같은 생산과 수용능력의 개발을 위한 인적 자본 및 능력의 형성은 다음 두 영역의 확장을 의미한다.
첫째, 기술자와 문화 홀이나 문화기관에 의해 뒷받침되는 전문적 과학자 및 예술가 층의 조성.
둘째, 다양한 종류와 단계의 학교를 포괄하는 평생교육 체계의 조성.
이러한 두 영역이 사회의 다른 산업들처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자유
제를 통해 이들에게 사회적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보우몰과 보웬이 지적했듯이,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술적 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연예술과 같이 인적 자본의 형성의 대부분은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없다.
5) 대개의 인적 자본산업은, 아담 스미스의 시대로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인적 자원의 기술이나 솜씨, 판단력에 의존해 왔다.
결과적으로 공연예술산업은 출연 및 입장료의 증가와 수입격차의 증가를 경험해 왔다.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는 생산성의 격차로 인해 자유경쟁체제에 입각하여 사회?
원을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많은 문화경제학자들이 가격의 상관관계의 고찰을 위해, 비영리기관과 공적 지원을 포괄하는 지원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던 것이다.
일본에서도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지탱하는 문화산업은 효과적인 지원체계의 부재와 비영리기관들의 이탈로 인해 장해를 받아 왔다.
그러므로 인적 자본 관계의 영역과 놀이나 도박 등의 영역의 가격관계는, 이들 인적 자본 영역에 불리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이 놀이나 도박, 외식업 등이 다른 레저산업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瘟堧甄?
그렇다고 삶의 질 지탱과 향상에 기여하는 문화산업의 변화양태의 경향을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따라서 이케가미 교수는 그와 같은 노력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개의 기본적 요소들에 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인간의 복지를 위한 상품 및 서비스의 역량이다.
인적 자본 형성을 내재화한 뛰어난 예술가, 디자이너, 과학자, 기술자, 도시 및 지역 계획자 등에 의해 역량의 실현을 위한 합리적 조정이 이루어지면, 고유가치를 가진 상품 및 서비스의 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정자들이 인
뼈?형성을 통해 역량을 올바르게 실현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자원을 올바르게 배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생산물의 기능은, 예술적 감각과 효용을 통해, 삶의 질 지탱 및 향상을 위한 인간적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인간의 향상을 증진하는 동기에 의해 뒷받침되는 이러한 역량이 바로 ‘고유가치’라고 명명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고유가치’는 ‘효용’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선호의 변화를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효용이론에서는, 빵은 경제적 인간의 선택 대상의 하나이며, 누군가가 화폐
환함으로써 빵을 갖게 되면, 그 빵을 원하는 ‘누구’의 욕구가 충족된다.
그러나 고유가치 이론에 의하면, 누군가 화폐와 빵을 교환한다고 해도, 우리는 빵의 역랑과 기능이 실현되었는지, 그러지 못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구’의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볼 수 없다.
빵의 역량이 ‘누구’의 수용능력에 부합하고, 빵이 인간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의 욕구가 빵에 의해 충족되었다고 인정하게 된다.
이처럼 삶의 질 변화나 발전을 논함에 있어서 ‘고유가치’는 가장 적합한 개념이 되지만, 여기에서는 고유가치를
틉湧甄?소비자의 수용능력도 문제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교육체계는 근본적 개혁을 경험했으며,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한편으로, 지방과 지역사회에 전통문화(예, 꽃꽂이, 주조술, 칠보기술, 도예, 전통의복 등)와 그에 대한 교육기관들이 유지되어 왔던 반면, 최근 국경을 초월한 경제활동으로 인해 유럽이나 아시아 등 해외문화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졌다.
이 모든 실천에 의한 학습과 교육에 대한 투자는 일본에서의 문화적 부흥과 일본 문화산업?
배경이 되었다.
문화산업은 삶의 질을 변화시키고 인간적 향상을 촉진시키는 기능의 효과적인 작용으로 인해, 앞으로 일본 경제를 촉진시키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부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960년대 미국의 공연예술 지원체계와 같은 문화예술 지원체계의 부재로 인해 문화예술 공급의 소득격차에 직면해 있다.
일본은 아직도 구미 여러 나라보다 수년 뒤쳐져 왔다.
가격의 불이익을 인정하고 열악한 예술지원체계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일본 문화산업이 더욱 촉진되기란 불가능해질 것이다.
일본의 양식 있
자들이 앞서가고 있는 나라들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예술지원체계를 재구축할 것을 절실히 요구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서, 1980년대 일본에서 문예부흥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예술이 경제를 촉진시키는 기능의 중요성이 충분히 연구되지 못했기 때문에, 효과적인 예술지원체계가 구축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기한 기능들의 중심개념은 ‘고유가치’이며, 그것은 J. 러스킨에 의해 제창된, 예술적 인상과 인간적 생활을 위해 유용성을 지닌 상품이나 환경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을 의미한다.
고유가치의 공급을 위?
는 실천을 통한 학습과 고유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력을 증가시킬 교육체계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고유가치 이론을 지역 발전에 도용함으로써 ① 소비자의 선호를 변화·발전시키고 지역발전을 유발하는 지역주민의 수용력을 촉진하는 하부구조를 공급할 수 있으며, ② 이를 배경으로 지역사회의 자원을 올바르게 분배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계획은 소프트웨어, 펌웨어, 하드웨어, 그리고 유통체계를 담당하는 문화산업의 발전을 촉진시킬 것인데, 이는 문화적 효과라고도 불릴 수 있으며, 지역의 발전의 원동력을 규명할 수
게 해줄 것이다.
한국사회도 아직 일본에는 못미치지만 196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 꾸준히 발전해 왔고, 이에 따라 문화상품에 대한 수요도 꾸준하게 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문화상품을 가장한 채 단순한 정신분산만을 조준하는 상품들에 대한 수요도 급증한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둘러싼 논란이 이는 것도 이와 같은 사태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앞에서 본 일본에서의 문화산업에 대한 전망이 도달한 비슷한 결론을 우리 사회의 미래에도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 보면서 삶의 향상을 위한 노력을 한층 더 기울여야 할 것이?
繭?일본의 현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독자적인 이론을 발전시키려는 양심세력과 연대하는 것이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
1.
필자는 문화상품이라는 개념을 단도직입적으로 문화산업들에 의해 생산된 산물들로서 규정하고자 한다.
이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은 앞장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1940년대에 특히 비판이론을 대표하는 호르크하이머나 아도르노에 의해 인간의 반성능력을 둔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자못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던 것에 반해, 오늘에 와서는 중성적이거나 심지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경향마저 생겨났다.
이와 같은 가치평가와 연관된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그 범위와 관련된 논의부터 시작하자면, 앞장에서 언급한 대로 유네스코가 대?
동의하는 10개의 범주가 아무래도 중점적인 관심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한다면, 그것은 곧 도서, 신문 잡지, 음반,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새로운 시청각제품과 서비스, 사진, 미술작품 복제, 광고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에 공예와 관광이 추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산업들의 산물들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된다.
첫째 유형은 책, 레코드, 사진, 미술작품 복제, 신문과 잡지, 공예 등으로서, 여기에서는 창조적인 예술가 또는 발행인에 더 많이 의존하면서, 개인 기업이 아직 압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나아가
유형의 산물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획득 또는 사용되고 상대적으로 내구력이 있는 상품의 범주에 든다.
그러나 그러한 산물들은 인구의 어느 한 부분에 의해서만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와 같은 첫째 유형은, 경우에 따라 개별적인 예술가들 또는 출판인들이 멀티미디어 전략들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다음에 설명하는 둘째 유형들과 완전히 구별되지는 않는다.
둘째 유형의 산물들인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뉴미디어, 광고와 관광은 첫째 집단의 산물들과 비교해 볼 때, 대체로 생산비용은 더 들지만 획득비용은 덜 드는 유형?
?또는 서비스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의 창조 내지 발간에 포함된 과정은 집합적(collective)이다.
이것들의 활용은 앞의 유형에 비해 덜 선택적이고 따라서 좀더 수동적이다.
그 산물들의 수명도 상대적으로 좀더 짧은 반면, 일반 대중은 비교적 고르게 이에 접근한다.
광고는, 그것이 비록 다른 대중문화산업들과 비슷한 인력과 자원을 활용하고 이에 접하는 공중(公衆)도 마찬가지라 할지라도, 다소간 독자적인 입장에 있다.
마지막으로 관광산업은 그것이 비록 많은 측면에서 엄격한 의미에서의 문화산업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적인 또는 전기적인 대중소비수단에 의해 특별한 메시지를 생산한다고 간주될 수는 없다.
여기에서 우리가 문화산업으로서의 관광에 좀더 유의해야 할 필요가 생겨난다.
이 자리에서 관광, 그중에서도 문화관광의 의미를 자세히 논구할 겨를이 없다.
단지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한 나라, 또는 지역의 과거와 현재의 문물들을 특히 인간적인 접촉을 통해 터득케 하고 이를 통해 독특한 즐거움을 향유케 하자는 데 그 초점이 놓여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한다.
그럴 경우, 관광객들을 위한 문화프로그램들은 그들이 방문하?
? 또는 지역들이 지녀온 전통문화들을 제대로 인식하는 동시에, 그것이 현재에도 계속 생명력을 유지 발전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또한 시설들이 문화유산들에 대해 손상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마련되어야 하며, 여행사들이나 안내자들, 호텔 종업윈들은 자신들이 문화외교를 책임지는 요원이라는 의식이 투철해야 한다.
아울러 관광이 공예생산의 질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도 유념해야 한다.
전체시장이 상업화되고 말 때, 전통적인 디자인이나 전통적인 소재들이 관광객들의 요구에 맞춰 ?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2.
우리는 흔히 문화산업 내지 문화상품의 진흥을 위해 공공기관이 개입하는 것이 마치 당연한듯이 전제하는 논의를 듣곤 하지만, 이 문제는 사실상 그리 단순치가 않다.
사실에 좀더 밀착해서 살펴본다면, 거기에서 우리는 오히려 문화산업을 떠받치는 현대적 매체들과 문화정책 사이에 필경 모순이 항존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순은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모든 시도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한편으로, 대중매체들에는 본래 수단의 집중과 메시지의 국제화를 향한 경
聆磯?
일반적으로 말해서, 산업화 자체에는 상품들의 표준화와 코스모폴리탄적 성격을 강조하는 자연적인 성향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 모든 형태의 문화정책은 자생적인 문화적 표현을 위한 영역을 확보하려 했고, 사회 및 국가적 집단들의 문화적 다원주의를 유지하려 했다.
만일 정부가 아주 민감한 이 문제에서 효과적인 활동수단을 가질 수 있다면, 이러한 모순은 극복 내지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문화산업들은 비문화화의 위험과 함께 특정한 상황들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문화적 발전을 위한 기회를 동반한다
순히 산업적 생산의 내재적 천박성에 대조되는 예술적 창조의 순수성을 찬양한다거나 이윤추구를 저주한다고 해서 위험이 방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정부가 계몽된 행동을 위한 효과적인 기초를 확보하고 있다면, 대안들을 제시하는 동시에 관계되는 경제 및 사회적 자료들을 양적으로 집적하는 작업을 우선적으로 실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문화산업들이 근대적인 문화정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항상 다음의 목표들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되어야 한다.
(1) 일반 공중의 문화에의 접근을 확대할 것
(2) ?
들의 질을 개선할 것
(3) 다원적인 창조적 작업을 발전시킬 것
(4) 기존 제도들을 근대화할 것
(5) 문화적 생산을 위한 잠재능력을 강화할 것
(6) 해당 국가가 문화적 독립성을 향유하는 동시에 국경을 넘어서서 좋은 영향을 미치도록 보장할 것
중앙 정부관서가 중심이 되든지, 아니면 그 밖의 공공기관, 자원, 협회, 전문조직 또는 기업이나 지자체 중 어느 것이 되든지간에, 문화산업에의 공적 개입은, 그것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근거 위에 확고히 설 때, 정당화될 수 있다.
(1) 경제적으로 취약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중요한 가치들을
할 필요
(2) 외국과의 경쟁에서 국내 산업들을 보호해야 할 필요
(3) 국가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행동을 통제해야 할 필요
(4) ‘공정한’ 국제경쟁을 유지해야 할 필요
(5) 국가적 연구 및 혁신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
(6) 지적 소유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
(7) 문화산업 상품들의 특정한 내용유형들을 통제해야 할 필요
(8)과잉한 기업집중을 중화시켜야 할 필요
(9) 외국 산물들에 의한 시장 과잉점유를 저지해야 할 필요
(10) 창조성을 보호하고 젊은 창조적 작가들을 위해 기회를 마련해야 할 필요
(11) 모든 종류의 산물들에 ?
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필요
혼합경제정책을 갖춘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나 가능할 것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겠으나, 문화산업에의 공적 개입들이 어떤 근거에서 이루어져야 할지를 생각할 때, 이와 같은 항목들이 적어도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문화산업들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는 국가들의 경우에 비추어 좀더 일반화하고자 하면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1) 문화산업들은, 적어도 시장경제사회들에서는, 대중에게 문화를 전달하는 주요?
가 된다.
제도적 경제적 변화들과 나란히, 기술공학적 발달은 ‘문화’를 차츰 산업적 패턴들에 따라, 산업적 틀 안에서, 산업적 규모로 창조, 생산, 그리고 보급되는 무엇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개인적인 창의성, 극단적으로 말해 ‘예술을 위한 예술’적 사고, 그리고 예술적 장인정신을 위한 여지가 점점 좁아진다.
문화정책 입안자들이 이와 같은 현상을 없앨 수는 없다.
그들은 기껏해야 이것이 가져오는 부정적 결과들을 수정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문화산업들의 발전을 감시함으로써 정책결정자들을 보조하는 문화관?
ジ?책임지는 국가 또는 국제적 기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2) ‘문화산업들’ 역시 산업이다.
시장경제사회에서 그것들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에 의해 운영된다.
순전히 상업적인 기초 위에서 작동한다 할지라도 기업이 ‘문화’에 긍정적이고 의미있는 공헌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적으로 부정될 수는 없다.
그러나 순전한 시장세력들의 기능이 ‘문화’의 발전을 보장함에 있어서 불충분하다는 것 또한 부정될 수 없다.
(3) 문화산업들이 대다수의 인구를 위해 상징 및 가치의 주요한 원천이 되고 있고, 자라나는 세대들을
회화의 주요한 동인이 된다는 점에서, 문화적, 경제적 또는 사회적 정책목표들이 무엇이든지간에, 국가 및 국제적 정책 결정권자들이 ‘문화산업들’의 영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으려면 믿음직한 정보와 전문지식을 필요로 한다.
(4) 전체적인 산업적 산출에서 차지하는 몫이 아직 미미하다 할지라도, ‘문화산업들’은 막중한 경제적 효과를 지닌다.
예컨대 광고와 판촉기술들을 통해 소비자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이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경제적인 관점과 문화적인 관점 양자로부터 볼 때, 이는 우리가 왜 합리적인 정책결정
輸袈關?정보와 전문지식을 확보해야 하는지를 설명할 추가적인 이유가 된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정책결정권자들이 기술공학자들을 지나치게 무시하거나 또는 반대로 지나치게 과신할 경우, 그로부터 파생되는 결과는 치명적일 염려가 있다.
특히 기술공학자들, R&D 전문가들, 경영자들은 대체로 그들의 기술이 가져올 좀더 폭넓은 결과들과 문화적 영향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와 같은 의사결정 과정에 인문학자와 예술가들의 참여가 절실히 요청된다.
이는, 문화산업들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
酉?暈願셉╂?확장과 상업주의적 이윤추구의 심화와 연계되면서, 사람들의 취향을 하향조정한다는 비난이 아직도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도 연계된다.
좀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이에 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우리를 영적으로 충만하게 해주는 예술가들이 오늘날 많은 나라들에서 적어도 생존중에는 너무나도 적은 보상밖에는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연계된다.
이는 곧 예술가들의 재능이 오늘날에는 고작해야 문화산업들을 통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아먹고자 하는 광고주들에 의해 소진될 뿐이라는 비난으로 직결된다.
그러나
와 같은 분노를 터뜨리기 전에 문제상황을 좀더 차분히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우선, 문화산업들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는 배경을 살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문화발전과 경제성장, 그리고 기술공학적 발전 사이에 밀접한 연관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인데, 특히 기술공학적 발전이 대중매체에 적용될 경우 그러하다.
나아가, 주어진 사회의 문화적 가치들을 반영하는 작품들이 합리적 생산과정의 특수한 결과라는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는 측면도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 생산과정이 작품들의 내용과 그것들이 매개하는 가치들
〈?영향이 측정될 수 있으려면, 그와 같은 과정이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들을 유지해 가면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사실은, 문화산업들의 최근 발전이 문화적 메시지의 생산에서 예술가들의 역할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 역할의 감소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특히 시청각 매체들이 예컨대 공연예술가들에게 고용과 경제적 안정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를 따져 묻게 되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오늘날의 문화산업들이 지구적인 차원에서나, 권역적인 차원에서나, 국?
맛?차원에서나 그들에게 좀더 확장된 노동시장과 창조적 활동수단을 제공하고 있는지가 문제된다.
더군다나 문화산업들의 국제화는 문화적 정체성의 위기라는 문제까지 발생시키면서, 결과적으로는 창조적인 예술활동 일반을 위협하고 만다.
나아가 지적 소유권의 보호문제와도 연관되면서, 경제 제일주의는 예술가들 일반의 창조 및 작업조건들에 대해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러 예술분야들 중 특히 영화의 위상이 특이하다.
왜냐하면 특히 이른바 제3세계에서 영화가 단지 오락으로만 취급되면서 이윤확대를 노리는
‘검은 돈’에 의?
되기가 일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전통적인 예술가들이 이에 대해 본래적인 관심을 갖게 하자면, 우선 영화가 건전한 대중예술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여러 가지 조처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컨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호주와 인도가 하나의 모범으로 간주될 수 있겠는데, 거기에서는 정부가 새로운 예술영화의 출현, 그리고 매체 및 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지위향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산업을 위한 정부의 자금지원 등이 통제를 위한 구실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
요컨대 원초적으로 소규모적이고 개인적인 창조품목을 산업기술에 의해 대량생산하는 방식이든, 처음부터 창조적 활동이 상당한 물량투입을 상정할 뿐 아니라 공급양식도 집단적 성격을 지니는 방식이든, 흔히 문화산업의 유형에 속한다고 손꼽히는 작업들은, 일종의 ‘문화저장고’로서 일차적인 예술활동과 그 소산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화산업을 진흥하겠다는 정책이 예술진흥정책을 외면할 경우, 결국 원천이 고갈된 상태에서,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이 괴멸된 상태에서, 외국 제품, 그것도 필경 질적으로 뒤떨어진 제품들만?
뭐琯湧?문화적 수요를 그릇되게 충족시키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중요성을 갖는 일차적 예술들이 결코 짧은 시기에 갑자기 일정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예술창조 뿐만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의 측면에도 해당한다.
그러기에 예술적 성숙을 위한 정부적 차원의 노력은 교육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이 때 교육이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사회교육까지도 포함하는 이른바 평생교육이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끝으로 문화산업을 통해 예술활동이 좀더 진작되고 예술가들의 지위와
좀더 향상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각종 예술단체들의 공동체적 역할이 좀더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문화산업기관들이 저작권 보호의 문제에서도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예컨대 텔레비전이 전시나 공연을 취재할 경우가 있는데, 예술가 쪽에서는 프로그램으로 방송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처럼 행세할 때가 없지 않다.
이와 같은 상황의 변화를 위해서는 예술가들의 상황이 한 국가의 노동력(labour force) 평가에서 핵심적인 구성요소로 간주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자면 또한 예술가들에 관한 사회적 지표들이 마련되
各만?안된다.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예술가를 지나치게 신비화하는 것은 문제상황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때에 따라서는 창조적인 예술가들에게 훌륭한 작업 내지 생활조건들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조합 형태의 조직을 권장하는 일도 고려함직하다.
이와 같은 경우 예술가들의 전문 범주들과 필요한 자격요건, 선발방법들과 기준들, 등록 절차들과 예술가로서의 경력에 들어설 수 있는 가능성 등이 현실적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자료에 입각해서 예술가들의 생활 내지 작업조건들의 실상을 좀더 확실하게 파악하
편, 앞에서 언급한 문화산업들에서 전통적인 형식의 예술이 어느 정도 활용되고 있는지를 밝히는 작업이 또한 필요하다.
아울러 가장 효과적인 적용방법에 대한 실험적인 작업을 지속적으로 실행하는 한편, 그와 같은 적용이 문화산업의 진흥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의 제고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때, 현재로서는 아직 어느 분야 못지 않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이 우선적인 고려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실험적인 작업은 국가적 차원에서는 물론 국제적 차원에서도 수행되어야 할
适? 예컨대 국제적인 페스티벌을 규모있게 개최함으로써 이를 통해 전통적인 예술들과 과학·기술적 발전의 성과를 연결해 보는 작업들을 격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예술사회사적으로 볼 때, 결국 근대 내지 현대사회 속에서 이루어진 과학·기술과 예술의 분리와 재통합이라는 문제의식을 통해서만 제대로 조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고찰은 주어진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작업이 되겠기에, 생략할 수밖에 없다(졸저, 《레오나르도를 되살린다》, 신구문화사, 1997 참조). 다만, 필자로서는 문화산업들이 인류
그 개별적인 구성단위에게 진정한 공헌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어떤 진흥정책도 전통적인 예술들의 진흥정책과 분리된 상태에서는 결코 좋은 성과를 맺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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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화를 염두에 두고 무역과 문화를 연결해서 생각하고자 할 때, 우리는 전략적 차원에서 무엇보다도 수출상품의 고부가가치화를 노리는 문화가 담긴 제품을 연상한다.
말하자면, 상품의 개발, 디자인, 생산 및 판매 등에 문화를 육화시켜 세계시장을 확보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략은 무역을 첨단기술과 엮어서 생각하자는 발상과 상통하면서, 결국 무역을 좀더 질적으로 성장시키자는 기본정책을 반영한다.
세계에서 12번째로 수출 1천억 달러를 돌파한 우리 나라로서는 당연한 방향설정이다.
?무역을 단순히 한 지역 또는 국가의 상품이나 용역을 다른 지역 또는 국가로 옮김으로써 발생하는 이윤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본다고 해도, 이를 위해서는 이쪽의 장점 내지 특색이 저쪽의 필요 또는 기호에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아직 의·식·주를 비롯하여 인간적 사회적 기본수요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지역 또는 국가가 아니라면, 무역으로 표현되는 욕구는 ‘문물’이라는 말이 그렇듯이 정신적인 요소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사는 길을 찾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상대가 스스로는 쉽게
현할 수 없는 스스로의 행동을 관찰에 의해 확인하는 문화인류학적 접근과 진정한 감정을 확인하는 미학적 발상을 요청한다.
이러한 접근은 물론 상호작용적이어야 하는 동시에 공유할 수 있는 미의식 내지 가치의식을 탐색하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를 통해 시대마다 각각 ‘신명’, ‘힘’, ‘꿈’, 그리고 심지어는 ‘슬픔’이라는 정서를 특색있게 살려내는 한편, 실용에 부응하되, ‘무기교의 기교’로 대표되는 자연과의 교감과도 무관하지 않은 ‘멋’을 하나의 기조로서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상
가장 잘 어울리면서 우리 자신의 특색을 살려낼 수 있는 원천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원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그 원천을 현대생활에 알맞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요청된다.
이와 같은 능력을 함양하는 노력의 총체적 표현을 ‘기업문화’라고 한다면, 국경 없는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국적 기업문화’를 주요한 관심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처럼 무역과 문화가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문화적 접근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그러한 암중모색의 한 단편에 불과하다.
2.
어느 나라의 기업이든 지도적 위치를 오랫동안 지켜가려면 고객이 원하는 신제품을 끊임없이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혁신능력은 기업뿐이 아니라 국가에도 이익을 가져다 주는데, 효율적인 신제품을 계속해서 개발해 온 세계적인 최고기업들을 연구해 온 윌라드 I. 장윌(Willard I. Zangwill)은 신제품 개발을 위한 지침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르자면, 혁신을 전략으로 삼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단계이고 그 다음 단계는 기초를 쌓는 것이다.
기에는 전문지식과 기술적인 기초뿐 아니라, 문화적 기반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곧 기업문화가 된다.
즉, 기업문화가 혁신을 위해 불가결한 기초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불행하게도 많은 기업에는 혁신을 뒷받침하지 않는 기업문화도 있다.
관리자와 종업원간의 교류를 저해하는 기업문화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이런 경우 프로젝트에 문제가 일어나고 지연이 예상되는데도 질책이 두려워 아무도 관리자에게 보고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처럼 최고 경영책임자가 혁신
퓔?기울이지 않는다든지, 사원간에 신뢰감과 경의가 결여되어 있다든지, 관리자가 사내 정치 내지 개입에 말려들어 간다든지,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과 의론이 공개적으로 행해지지 않는다든지, 임원과 관리자가 다른 사원을 희생시켜 승진한다든지, 비난과 개인공격이 당당하게 통한다든지 하는 등등도 배제되어야 할 사항이다.
혁신을 지원하는 기업문화를 창조하려면 무엇보다도 사원의 아이디어가 공정하게 청취될 수 있다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불안을 해소하고 좀더 자유롭게 발언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때 올바른 결
?내려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미래에는 강력한 문화를 가진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이 하나의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다.
즉 강력한 문화를 가진 기업은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급격하게 변화하는 주위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종업원들이 생활에 불안을 느끼지 않고 기업의 발전을 위해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즉 문화를 회사 내에서 창출해내는 것이 기업가들의 주요한 과제로 손꼽힌다.
기업 내외에서 일을 처리해 나가는 방식이라고도 정의되는 기업문화는
가치관의 형성, 영웅의 창조, 의례와 의식의 정립, 그리고 문화적 네트워크 등의 요소를 포함하면서 행동방향을 결정하는 강력한 지렛대 구실을 한다.
강력한 문화는 사원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더욱 열심히 일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모든 사원들에게 동질적인 가치기준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물론 그와 같은 가치기준이 자칫 환경에의 적응을 어렵게 만드는 역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사실상 문화는 원래 다소간 변신에 저항하는 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이따금 변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할 나위가 없다.
변신이 필요하게 되는 시기를 테렌스 E. 딜과 앨런 A. 케네디는 그들이 공저한 《기업문화》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1) 환경에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중이고, 회사가 언제나 고도로 가치지향적으로 이끌려질 때
(2) 산업이 매우 경쟁적이고, 환경이 급변할 때
(3) 회사가 만성부진 또는 악화일로 상태에 있을 때
(4) 회사가 대기업으로 전환하는 문턱에 있을 때
(5) 회사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을 때
요컨대 기업들은 자신을 냉혹하게 돌아보는 진실과 용기를 갖고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와 믿음을 통찰함으
도전이 발생할 때에도 이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와 같은 기업문화의 창출이 단순히 기업가들의 몫만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구성원들의 창의성과 싹을 이룰 때 더욱 강해진다.
서로 격려하고 돕는 기업문화가 신제품 개발을 위한 질적 전략의 기초단계에서 확립할 만한 기반이라는 주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객의 잠재적 욕구에 유의하는 것이 혁신을 지연하는 기업문화의 창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고객 최우선은 ‘전격전략’의 7단계 중 가장 중요한 단계로 내세워지고 있는 바, 이는 최?
사태란 바로 고객이 사지 않을 제품을 자꾸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팔리지 않는 것에서는 수익도 나오지 않고 사업도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팔릴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상명령이다.
그런데 고객이 실제로 어떤 제품을 바라는지를 알아낸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때 문화적 성격을 띤 접근방식이 상당히 유효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우선 이른바 문화인류학이 곧 그것이다.
이는 통상적인 인류학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고객을 마치 연구대상이 되는 어떤 종족, 또는 집단으로 간주?
萱?일컫는다.
그 목적은 고객의 행동을 관찰하고, 고객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확인하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제품을 설계하는 데에 있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에 관한 전체적인 해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고객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고객의 구매행위를 관찰하고, 소비행동을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은 고객도 눈치채지 못한 전략정보를 얻기 위한 유효한 방법으로 간주된다.
이와 같은 방법은 고객연구의 정밀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제품의 개발에도 ?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획기적인 제품의 개발에는 보통고객의 의견은 고려하지 않고 최첨단을 가는 고객의 의견을 들어보는 일이 필요한데, 이때 문화인류학이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고객을 관찰하고 고객도 눈치채지 못하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신제품 개발을 위한 ‘전격전략’ 중 고객연구를 위해 문화인류학적 정보 못지않게 중요한 의의를 지닌 또 하나의 접근방식으로서 감성분석이 거론된다.
감성분석은 어떤 제품에 관한 고객의 발언을 넘어서서 고객의 진정한 심층감각을 탐?
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제품의 아름다움과 우아함, 좀더 추상적인 감각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솜씨가 뛰어난 도기제작회사가 어떻게 하면 커피잔을 좀더 우아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알고 싶어한다고 가정하자. 제작회사는 여러 가지 모양, 크기, 색 그리고 장식의 커피잔을 보이고, 나아가 그의 반응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우아함의 구성요소를 파악하고, 드디어 이를 표현해내는 커피잔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우아함은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하지만 앞에서 행한 이른바 실험미학적 방법에 의한 감성분석을 통해
痼?어떤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의 감성분석 역시 심리학적 연구에 의해 시작된 것인데,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얼굴의 근육이 정확하게 감정을 반영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얼굴에 센서를 붙이는 것에 의해 50개의 다른 감정을 분류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얼굴의 근육에 의한 자료가 말에 의한 표현보다도 정확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일본의 혼다와 마즈다는 고객의 얼굴에 센서를 붙이게 한 채 시작(試作) 자동차를 테스트해 본 적이 있다.
이에 의해 정확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던 동시에, 개인의 감정?
에 접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 시(視)·청(聽)·취(臭)·미(味)·촉(觸)의 오감을 고르게 배려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무엇인가를 산다든지, 서비스를 이용한다든지 하는 이른바 소비행동에 있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결정요인으로 선택하게 되는데, 날이 갈수록 단순히 좋다 나쁘다, 또는 좋다 싫다의 정도를 넘어 오감(五感) 전체가 동시에 반응을 일으키는 차원이 중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한다든지 새로운 판매방식을 생각해낸다든지 할 경우 사?
?이와 같은 변화에 민감하지 않으면 기업은 결국 뒤떨어지고 만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창의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여기에서는 이성에 의한 합리적 추구보다도 감각적인 부분이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오감을 통해 입력된 외부 정보가 의식화를 넘어서 무의식적 영역에까지 침전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기업에게도 요청된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에게 오감이 중요시된 이유는 창조성과 관계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문서주의적 관행 또는 기업풍토가 차츰 시청각을 활용한 프레젠테이션을 축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된
?孤?관계가 있다.
OHP의 레이아웃, 설명비디오의 색채와 음악센스라고 하는 요소가 사내 외에서의 설득을 결정짓게끔 되어 간다.
무엇보다도 기업 자체가 취급하는 제품이 변화하고 있다.
이제 오감에 좋은지 나쁜지가 기업의 존속을 좌지우지하는 사태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 전체의 오감화(五感化)와 엔터테인멘트에 특화된 오감산업의 진전이라는 두 가지 조류뿐만이 아니라, 심하게 말해서, 국가 자체가 오감을 축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이미지를 투영할 권리를 주장하면서
영상산업에 대해 저항하는 자세를 보였던 것이라든지, 오감을 노린 <쥬라기공원>의 성공으로 디지탈 헐리우드현상이 차츰 세력을 얻고 있다든지 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즉, 미국에서 진행중인 ‘전자오감의 확장’이라는 움직임이 프랑스의 국가전략에 영향을 미치자 미테랑 대통령이 사실상 각국의 독자적인 ‘오감의 권리’를 말한 것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방식에 대해 상품미학 비판이라는 미학적 방법은 아마도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지만, 이에 관한 논의는 미루어둔 채, 우리로서는 ?
문화인류학적 접근방법과 감성분석이 신제품 개발에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하나의 사실로서 확인하는 한편, 그와 같은 접근이 사실상 국내소비자보다는 국외소비자를 염두에 둔 무역과 좀더 깊게 연관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고자 한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이른바 다국적기업문화의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3.
여기에는 말하는 다국적기업문화란 예컨대 한 국가가 지녀 온 사회적·문화적으로 특수한 관행을 역사적 관점으로부터 또는 문화론의 관점으로부터 탐구하면서 이로써 여러 외국의 기업경영과의 유사점을 경시?
形ㅖ?缺岵?요소만을 과장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던 연구방식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채용된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론에 얽매인 논의를 개방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으로서, 이는 각국의 경영차이를 강조할 뿐인 비교경영으로는 21세기를 개척하는 새로운 경영을 창출해낼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그것은 각각의 기업이 개성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여러 가지 존재방식으로 다양한 문화를 통합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즉 이 개념은 로칼한 경영문화의 독자성과 주체성을 존?
가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체적인 통합이 가능한 기업문화를 상정하고 있다.
흔히 ‘다국적기업’이라고 하면 다분히 부정적인 어감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다국적기업의 경영자는 오히려 세계공통의 윤리기준에 비추어 자신의 의사결정, 기업행동을 다스려 나간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스스로 현재 존재하고 있는 것(Sein)이라기 보다는 당위(Sollen)를 추구하는 규범론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고 주장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문화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것이 결?
형 소비시장의 형성을 노리면서 제3세계에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후진국의 사람들에게 근대화의 장점을 찬양하고 자신의 문화에 대해서는 열등의식을 심어주어 서구문화의 규범을 공유하는 것을 열망하도록 만들어 놓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다국적기업문화론’으로 인해 문화를 둘러싸고 새로운 대립이 야기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문화를 단순히 국가와 동일시하는 입장을 일종의 인종중심주의(ethnocentrism)로 간주하면서, 다국적기업의 존재이유를 이질적인 문화가 만나는 것에 의해 발생하는 교차문화 시너지(cros
ultural synergy)의 실현과 이에 기초한 창조성의 발휘에서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이질적인 문화가 만날 경우 창조보다도 파괴가 선행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비판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이에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는 공간이 반발과 증오의 수라장이 되지 않도록 숙달된 글로벌 매니저의 역할이 불가결하다는 쪽으로 논의를 몰아간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업문화를 논할 때 기업의 사회 공헌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경영윤리의 확립이 잠정적인 결론이 되게 마련이다.
다국적 기업은 받아들이는 나라 특유의 정책, 비지
관행, 경영에 관계되는 문화의 여러 양상과 만나게 되고, 때로는 서로의 오해가 원인이 되어 삼각한 마찰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마찰을 해소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의 이른바 필란스로피(philanthropy)가 거론된다.
미국의 필란스로피 정신은 자원봉사 활동에 입각해 있으면서 기업은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널리 공헌해야 한다는 미국의 경제문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미국의 기업들이 기부행위와 사원의 자원봉사 활동 지원을 통해 사회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같은 매락에서 다국적기업에게 있어서 필란스로피가 사람, 돈, 물건의 현지화에 이은 고차의 현지경영정책이고, 세방화(世方化, globalized) 기업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이야기된다.
결국 기업문화가 조직상의 행동양식과 상징으로 구체화된 조직구성원 공유의 가치 및 규범의 총체로서 이해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실천상의 행동양식을 결정하고, 묵표와 수단을 선택하게 하는 가치규범을 내포하는 윤리적 체계를 포함하지 않으면 안된다면, 그와 같은 글로벌한 기업윤리의 형성을 기초로 하여 글로벌한 기업문화를 형성해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력은 단지 시대적응적인 기업문화의 형성을 의미할 뿐 아니라, 말하자면 문화화된 기업(cultured corporation)을 실현하기 위한 길이어야 한다는 결론은 어느 정도 이해됨직하다.
그리하여 다국적 기업의 완성된 모습으로서 글로벌한 경영이념에 기초를 둔 ‘세련된 문화적 기업’이 이상화되고 있다.
우리 시대에서는 규모있는 기업들이 거의 다 사실상 다국적기업을 의미하는 경향이 짙고, 이에 따라서 적합한 새로운 담론구조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에서, 아직 낯설 수밖에 없는 ‘다국적기업문화’라는 개념을 잠시 언급해 보았다.
국제화가
의 천성일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기업이 단순히 이윤동기와 가격정보만을 믿고 세계시장에서 행동한다면, 다시 말해서, 세계시장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이내 자멸하고 말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이를 통해 읽혀졌다면 지극히 다행이라 하겠다.
물론 수출을 좀더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품 개발에 힘을 써야 하고, 이를 위해 이른바 ‘문화적 접근’이 일정한 몫을 담당해낼 수 있다.
그러나 문화의 궁극적인 뜻은 결국 사람이 좀더 사람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문
?대할 때에도, 단순히 그것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들이려고 궁리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적 접근은 오히려 불가능해진다.
물론 우리의 전통문화는 그 품이 넉넉하면서도 개성적이어서 신제품 개발에 상당한 정도로 자극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예술문화의 영역뿐만 아니라 의·식·주를 중심으로 한 생활문화의 영역에 들어 있는 자산들 중에는 조금만 손질하면 그대로 세계적인 상품이 될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세계화에 성공하려면 우리가 세계를 필요로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서 세계가 ?
?필요케 하는 수준으로 옮아가는 상승작업에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기업이 경제적 성과만을 추구하지 않고 자연과 사회와 관계를 맺는 중에 균형을 갖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새로운 세계적인 조류에 비추어 볼 때, 한국기업이 글로벌한 차원에서 존속·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각국으로 넓혀진 이해관계자들과 단순히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미적·문화적·윤리적 가치 등 다양한 가치를 공유하고, 기업도 사회의 구성인자라고 하는 인식을 가지고 사회와 조화로운 사회발전의 추진자로서 뿌?
?내리는 것이 요청된다.
필자로서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화적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본 자세가 확립될 때에야 비로소 해외 거점에 필요한 권한을 위양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종업원의 다양성을 인정하여 다양한 능력을 계속해서 발휘할 수 있게 하고, 기업으로서 통합되어 가는 성격의 경영체제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겠는지, 또는 한국의 전통 내지 현대의 문화적 성과를 어떻게 신제품 개발과 연결시킬 수 있겠는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이 제대로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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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론
특정지역을 지목하면서 문화상품을 논의하는 것은 일단 그 지역 발전을 위해 문화 및 매체산업들이 지닌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것을 하나의 전제로 삼고 있음을 뜻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러한 논의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담겨져야 한다.
○ 문화 및 매체산업들에 대한 지역 차원의 실태 파악.
○ 문화지향적 지역 발전을 위한 문화 및 매체산업들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 광역뿐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기초 자치단체 및 그보다 하위구조가 지닌 잠재력의 파악.
○ 지역의 ‘문화 환경’ 조성을 둘러싼 ?
?논의와 함께 문화 및 매체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의 요구사항.
○ 문화 및 매체산업들과 직업의 질화(qualification)에 관한 토의 및 문화와 매체산업을 위해 타당성을 지닌 지역 내 공교육 체제의 교과에 대한 기초 조사.
○ 지역과 이를 포괄하는 좀더 넓은 단위의 권역들 안에서의 발전경향들에 대한 기초적 분석과 이를 위해 활용가능한 자금에 대한 조사.
○ 지역 내 발전을 위한 문화 및 매체산업의 내발적 잠재가능성의 활용을 추진할 방안.
그러나 이와 같은 논의들을 전개해 나가자면 무엇보다도 문화산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
?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2. 문화 및 매체산업의 정의
여기에서 기술, 분석, 그리고 평가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문화산업은 종종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경제단위들의 다면적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경우, 그것들은 하나의 단순하고 분명한 양적 또는 통계적 관찰방식으로는 파악되지 않는다.
경제 통계들은 좀더 산업적으로 정향된 과거의 생산사회적 구조들에 짜맞춰져 있다.
따라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의 광범한 서비스산업들과 새로운 생산부문들의 급격한 성장에는 아주 제한된 정도로 밖에는 적용 가능하지 않다.
대조적으로 문화 및 매체산업은 오늘날 생산과 서비스 산업의 다양한 문화 내지 문화적으로 합당한 영역들을 포괄한다.
오늘날 ‘문화 및 매체산업’을 정의함에 있어서 중심되는 기준으로서 “즐거움을 주려는 목적”이 은연중에 작용하고 있고, 이에 따라 문화 및 매체산업은 그러한 활동들중 ‘사경제적 부문’에 속하는 것만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이에 따라 예컨대 독일과 같은 경우 문화 및 매체산업에는 공공적인 지원을 받는 문화기관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자영적인 예술가들과 문화생산자들이 중·소 ?
리고 대규모의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문화 및 매체산업의 한 부분을 이룬다.
같은 이유로 자영적인 프리랜서 예술가들은 민간부문 안에 고용된 예술가들과 꼭 마찬가지로 문화경제의 한 부분을 이룬다.
문화 및 매체산업은 모터산업과 같은 다른 경제분야들에서 발견되는, 긴밀하게 짜여진 집단 및 단체들과 비교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의에 따른다면, 문학과 책 시장은 문화산업의 한 분야로서, 독립적인 작가들을 하나의 하위집단으로 포괄한다.
그러나 동시에 출판사, 인쇄소, 제책소 그리고 서점을 포함한다.
그러나 종이 생산과 기계
포함된 좀더 원초적인 산업들은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일반적인 정의를 요약하자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문화 및 매체 산업’이라는 말은 종종 밀접하게 연관된 경제부문들의 고도로 차별화된 집단을 기술한다.
그것이 지니고 있는 협의의, 광의의, 그리고 보완적인 의미들은 예술적 생산을 준비하고, 창조하고, 보존 또는 보호하거나 매체를 통한 문화의 보급 내지 출판, 그리고 제품생산과 시장생산을 목적으로 수행 또는 작동하는 모든 상업적 기업활동과 즐거움을 주는 활동을 포괄한다.
예술 및 문화 연관적 산업들?
복합적인 분야를 위한 약어인 ‘문화산업’이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음악산업’, ‘문학 및 책 시장’, ‘미술 시장’, ‘영화와 텔레비전산업’, 그리고 ‘공연예술들과 오락’을 포함한다.
오늘날 새로운 매체들의 도입과 함께 흔히 영상매체 내지 산업만을 주목하는 경향이 농후한데, 이와 같은 관점은 지극히 편협하고, 불완전하며, 심지어 유해하기조차 하다.
더군다나 그와 같은 산업의 하드웨어적인 측면만을 마치 문화산업의 전부로 착각할 때, 이른바 문화침탈 현상은 거의 불가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걋?정의가 공공적 목적에 의해 지탱되는 문화생활의 요소들과 공공적인 지원을 받는 문화적 설비들을 제외하고 있긴 하지만, 민간부문과 공공부문간의 공통적인 관심과 상호작용의 존재 자체가 어쨌든 순수히 경제적인 전망을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문화생활 및 그것의 하부구조적 전제와 문화 및 매체산업은 많은 방면에서 보충적이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나 그것은 종종 주장되듯이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들어서서는 안된다.
흔히들 ‘문화의 경제적 효과’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 역시 상당히 조심스러운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
으로 문화에 대한 공공적 지출을 경제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바, 그와 같은 지출이 반드시 경제적인 의의만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은 문화에 대한 정당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오늘날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정황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우리는 잠시 “문화는 돈이 든다”는 통설을 다소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기로 한다.
3. “문화는 돈이 든다?”
문화는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이 자극하는 창조적, 개혁적, 그리고 생산?
이 제대로 관찰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는 예술·문화와 급속하게 성장하는 문화 및 매체산업과의 상호작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비슷하게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 문화 및 매체산업이 지역 경제구조 안에서 중핵적인 요소가 될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나 여타의 미래정향적 경제부문들에 대해 부차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사실이 망각된다.
문화 및 매체산업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닌 것으로 확인된다.
○ 지식집중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특히 고도의 질적 수준을 요청한다.
○ 노동집약적이고 제한적인 ?
합리화(기계화)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보통 수준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낸다(그리고 그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임금으로 가능하다).
○ 보통 중·소규모의 기업에 의해 특징지워진다(물론 대규모의 매체재벌은 예외적이다). 다시 말해서, 상당한 정도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지역경제의 사이클 속에 자리잡고 있다.
○ 밀접하게 짜여진, 그러면서도 유연한 생산 및 서비스 체제들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
이로 인해 경제적 위기들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4. 결 론
문화상품을 단?
념품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필자는 이 글에서 짐짓 문화 및 매체산업이라는 좀더 넓은 범위의 문제를 거론하였다.
물론 여기에서 다루지 못한 관광산업 역시 중요한 문화산업들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고, 필자는 그것이 지닌 문화적 의의를 강조하기 위해 ‘문화관광’을 강조해 왔다.
최근 관광진흥 10개년계획이 발표된 바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논의되었다는 점에서 언론으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관광이란 궁극적으로 우리와는 다른 문화 속에 살고 있는
宕湧?이곳으로 오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질적으로 보이는 문화경험을 통해 오히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증폭된 이해를 가능케 하자는 데 그 궁극적인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볼거리, 먹을거리, 그리고 살거리를 어떻게 마련하며, 그들이 우리들과의 접촉에서 인정을 느낌으로써 이를 두고두고 즐거운 추억거리로 삼거나 다시 찾아오게 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 때 우리것만을 강조하는 일방통행식 강요는 될 수 있는 한 기피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객지에
?지치면 우리 입맛을 살린 먹을거리를 찾듯이, 그들이 이국적인 문물들 속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문물을 찾아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와 같이 폭넓은 전망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서울을 오래도록 추억하게 할 문화상품이 가능해질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서울이라는 세계도시가 문화 및 매체산업의 의의를 일상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진흥코자 하는 용의를 제대로 갖춘 때에라야 서울은 비로소 세계적인 문화도시의 반열에 들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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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 김문환 편, 《현대미학의 향방》, 열마당, 1985, p.61.
2) 앞의 책, p.63.
3) Philip Henderson 편, The Letters of William Morris to His Family and Friends, 1950.
4) E.P. Thomson, ?omanticism, Moralism, and Utopianism : the Case of William Moris,?New Left Review, 99, 1976, p.93.
5) E.P.Thomson, William Morris : Romantic to Revolutionary, London : Lawrence Wishart Ltd., 1955, p.59.
6) 앞의 책, p.62.
7) W. Morris, ?ow I Became a Socialist,?in G.D.H Cole ed., William Morris : Stories in Prose, Stories in Verse, Shorter Poems, Lectures and Essays, New York, Random House, 1978, p.657.
8) A. A. Helmholz?hellan, The Social Philosophy of William Morris, Durham, Duke Unv. Press, 1927, p.105.
9) J. Redmond ed., William Morris : News from Nowhere, London, Routledge and Kegan Paul, 1987, p.17에서 재인용.
10) L.T. Sargent, ?illiam Morris and the Anarchist Tradition,?Socialism and the Literary Artistry of William Morris, ed. F.S. Boos and C.G. Silver, Columbia, V. Missouri Press, 1990, p.71에서 재인용.
2장
1) 1961년에 뉴욕주의 주지사 Rockefeller의 지휘 아래 ‘뉴욕주 예술평의회’(New York State Arts Council)가 처음으로 탄생하였다.
2) 비영리 예술문화 및 자선단체에 기부되는 공액은 조세감면 및 소득공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므로 과세율이 높은 상층의 소득계층일수록 기부를 통한 조세감면 혜택의 효과를 더 많이 누릴 수 있었던 사실과 연관된다.
3) Throsby & Withers, ?onsumer Decision for Cultural Goods,?Economics of Cultural Decision, ed. by W. Hendon.
4) A. Peacock, Inflation in the Performing Arts, ed. by H. Baumol and W. Bowen, 1984.
5) Lange & Luksetich, ?he Cost of Producing Symphony Orchestra Services?in Journal of Cultural Economics, 1993.
6) J. Blau & J. Schwarz, ?nternal Economies of Scale in Performing Arts Orga-nizations?in Journal of Cultural Economics, 1986.
7) Withers & Throsby, ?erceptions of Quality in Demand for the Theatre,?in Markets of the Arts, ed. by W. Hendon, J. Shanahan, 1983.
8) Touchstone, ?he Effects of Contributions on Price and Attendance in the Lively Arts,?in Journal of Cultural Economics, 1980.
9) Lange & Luksetich, ?emand Elasticies for Symphony Orchestras,?in Journal of Cultural Economics, 1984.
10) M. Feldstein, The Economics of the Art Museum.
11) J. Heilbrun, The Economics of Art and Culture.
12) Peacock, ?elfare Economics and Public Subsidies to the Arts?(1969) in M. Blaug, The Economics of Arts, 1974.
13) Netzer, ?istributional Effects of Cultural Subsidy,?1992.
14) Feld, O?ear & Shuster, Patrons Despite Themselves : Taxpayers and Art Policy, 1983.
15) Wale, ?ax Policy and Private Giving?in Public Money and the Muse, ed. by S. Benedict, 1991.
16) B. S. Frey & W.W. Pommerehne, Muses and Markets : Explorations in the Economics of the Arts, Basil Blackwell Ltd., UK, 1989.
17) G. A. Withers, ?nvalanced Growth and the Demand for Performing Arts : An Econometric Analysis,?Southern Economic Journal, 1980, pp.735-742.
18) R. Guardian and G. J. Van Eind, ?o Fee or not to Fee : Some Effects of Introducing Admission Fees in four Museums in Rotterdam,?in V. L. Owen and W. S. Hendon eds., Managerial Economics for Arts, Association for Cultural Economics, Akron, Ohio, 1985.
19) R. K. Filer, ?he ?tarving Artist??Myth or Reality? Earnings of Artists in the United States,?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4, 1986, pp.56-75.
20) S. Globerman and S. Book, ?tatistical Cost Functions for Performing Arts Organizations,?Southern Economic Journal, 40, 1974, pp.668-671.
21) W. W. Pommerehne and F. Schneider, ?arum blo?ist ein Rauschenberg so teuer?,?in C. A. Andreae ed., Kunst und Wirtschaft, Bachem, K쉕n, 1983.
3장
1) 이 패널토의에서는 문화경제학에 대한 정보이론의 응용에 관해 별로 상세하게 토의가 전개된 것은 아니지만, 그 응용 가능성은 일단 인정된 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샤논(Chaude E. Shannon)에 의해 착상된 정보이론 역시 이를 위해 응용될 수 있으리라고 보는데, 엔트로피를 정보량의 핵으로 삼는 샤논의 정보이론은 예컨대 ‘샤논의 제2정리’의 응용과 연관하여, 사회제도 내지 조직에의 전개가능성을 이미 시사한 바 있다. 또한 샤논형의 정보이론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게임이론형의 정보이론에 있어서도 확률모델을 기초로 한 ‘불확실성’
의 개념은, 예컨대 도덕적 해악의 분석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의 불확실성이 운위될 경우, 확률모델을 기초로 한 ‘불확실성’의 개념과는 별도로, ‘애매성’의 논리적인 모델 구축을 지향하는 퍼지이론형의 불확실성을 생각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경제이론, 특히 게임이론에서 보이는 최근의 발전동향은 확률모델형의 불확실성이라는 전개방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장
1) 야마다, <문화시설의 경제적 효과>, 1981.
2) 쿠라바야시·마쯔다, 《일본 공연예술의 경제적 사회적 측면》, 키노쿠니야, 1988.
3) R. H. Havens, 《전후 일본의 예술가와 후원자: 무용, 음악, 연극 시각예술, 1955~1980》, 예일대학 출판부, 1982.
4) 미요시, <일본에서의 예술활동의 변화 경향>, 1988.
5) 쿠라바야시, <일본에서의 문화경제학의 진전>, 1994.
6) 야마자키, <공연예술을 위한 시설의 경영관리>, 1989.
7) 게이단쿄, 《일본 공연예술 종사자들의 활동 및 생활여건》, 1990.
8) 히야마, 《악기 산업》, 옹가쿠노도모, 1990.
4-1
1) P.W. Daniels, Service Industries in the World Economy, 1993, p.7.
2) Japanese Cultural Board of the Ministry of Education, Japanese Culture and Cultural Policies, Gyousei, 1988, ditto, Trend of Arts and Culture, 1993.
3) J. Ruskin, Munera Pulveris, Chap1, C.13.
4) 앞의 책, Chap1, C.14.
5) W. J. Baumol and W.G. Bowen, The Performing Arts; The Economic Dilemma,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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