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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개념과 연구방법

by Casey,Riley 2023.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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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개념과 연구방법




1. 머 리 글

‘공유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의 총체’로서 또는 ‘상징과 의미의 체계’, ‘관
계의 구조’로서의 문화는 인류학에서 핵심적인 주제가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 ‘문화’에 대한 개념과 연구방법에 대하여 인류학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문화’의 범위가 넓고 그 주
제가 다양한 데에서 기인한다. 
문화는 학자에 따라 실로 다양하게 정의되어 1950년대에 이미 100여 가지가 넘는 
문?
다(Kroeber & Kluckhohn, 1952). 대표적인 몇 가지만 보
더라도 타일러(Tylor, 1871)의 총체론적 접근에서 시작하여 베네딕트(Benedict, 19
34)의 문화형상론(cultural configuration), 레비-스트로스(Le쳖i-Strauss, 1963)
의 의식구조, 기어쯔(Geertz, 1973)의 의미와 상징체계로서의 문화, 해리스(Harris
, 1979)의 문화유물론 등 다양하다.1) 따라서 어떤 한 가지로 이 모든 다양한 문화
개념과 정의를 수렴하기란 불가능하다. 일차적으로 문화(culture)란 자연(nature)
에 대립되는 개념이며 따라서 인공이 가미된 모든 것이 인류학의 연구
며 주
제가 된다. 여기에는 정치체제나 경제제도는 물론 자연에 대한 감상과 인식체계도 
포함된다. 즉 자연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가진 독특한(즉 문화적으
로 규정된) 감각으로 접해지는 것이며 인식의 틀(즉 문화체계)에 의거하여 감상되
어지는 대상이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자연’은 이미 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어느 하나도 문화가 아닌 것은 없다. 그렇다고 하여 인류학
이 자연에 대한 인공적인 경험체계의 모든 것을 연구의 대상으로 한다거나 인류학
만이 이를 연구한다는 말은 물론 성립
는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이 연구하는 
‘문화’란 그러한 인공적인 것의 일부에만 치중하는 수가 많으며, 자연에 대한 
대립개념으로서의 문화와 인류학이라는 전문 분과학문 영역에서 실제로 다루어지
는 주제로서의 문화는 종종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글에서는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사고와 접근방법의 주된 경향
을 특히 1970년대 이후에 초점을 맞추어 봄으로써 전통 인류학과 현대의 문화연구
(Culture Studies) 사이의 연관성을 모색하는 시도를 한다.2) 


2. 문화의 개념과 연구대상

우선 문화는 윤리(ethics)와 ?
ics)의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대개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적 이상을 의미한다. 둘째로는 일상과 구별되는 미적 활동 
및 그 결과물을 흔히 문화라고 범주화한다. 여러 장르의 예술과 박물관에서 접하
게 되는 전시물이 그 대표가 된다. 셋째로는 대중문화(mass culture)와 소비문화(c-
onsumer culture)라는 말에서 보듯이 소비의 대상으로서의 생활 스타일과 물질생활
을 일컬을 때 문화라는 말을 적용한다. 넷째로는 생산력 규정을 위하여 일상생활의
영역에서 실천되는 사회적 관습과 제도들을 문화라고 한다. 이는 자연상태의 것과 

것으로서 인류학에서의 문화개념은 주로 이에 집중된다. 
물론 인류학이 네 번째 문화개념에 치중한다고 해서 그 나머지를 거부하거나 소홀
히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류학에서는 윤리와 미학과 예술과 물질생활을 그 자
체 대신에 사람들의 실제적 생활세계 속에서 그것들이 실천하는 의미에 관심을 두
어 이해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미학적 정의나 윤리체계가 민족, 사회, 집단에
따라 그리고 시대에 따라 왜 다양한가를 현실적 맥락과 실천의 차원에서 규명하는 
것이다. 예술품 자체는 물건(object)일 뿐 그것에 의해서 표현되고 실
 의미
와 기능의 복합체가 비로소 문화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술을 미적 감상의 대
상이 아니라 사회구조나 계급간의 이해관계의 과정의 산물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통하여 정치적 함의, 경제적 가치, 종교적 의미를 표상화하는 장르로 보는 것이다
. 예술인류학이란 ‘우리’의 기준에 의해서 평가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들’
이 스스로 인지하는 권력과 권위, 계급관계, 신과 인간의 관계, 우주관, 자연관, 
자연과학적 기술과 지식의 미적 실천을 관심의 대상으로 한다. 의식주 생활에 대
하여서도 그 형식이나 기능을 과학적으?
構킬?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 아
니라 특정의 소비 형식과 법칙이 어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미적 함의를 지니
는지를 보는 것이다.3) 따라서 제도, 규범, 관습 등은 그 사회의 생산력 통제뿐만 
아니라 소비의 형태와 과정에 대한 것임을 재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
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즉 문화는 소비형태, 소비의 대상, 그리고 그 가치
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문옥표 편, 1997; Baudrillard, 1970 참조).
이렇게 볼 때 인류학에서의 문화의 대상은 결국 ‘사람’이 개입된 모든 활동과 
제도에 적용된다. 문화
개론서에서 제시되는 것을 보자. 환경과 인간생활,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과 사회 및 문화의 관계, 친족제도, 가족제도, 혼인 관습과 
규정, ‘우리’와 ‘남’을 구분하기 위한 사회문화적 장치인 지연, 학연, 핏줄, 
민족, 고향, 종교, 취향, 성, 연령 등등의 제도와 이와 관련된 의례와 담론들이 
문화연구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또한 정치적 제도, 권력과 권위체계, 법과 정의
와 정상과 범죄의 구분, 신앙체계와 의례, 언어, 예술, 경제활동과 제도, 의식주의
물질생활과 소비 등이 문화연구의 대상이 된다. 
인류학에서 이들을 법학, 정
英맨? 경제학 등의 분과학문에서의 관심 및 
대상과 구분하여 문화의 영역으로 취급하는 이유는 법체계나 정치제도 자체가 아
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며 정치나 경제영역을 그 사람들의
‘문화’의 실천의 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화연구에서의 관심거리는 문
화의 각 항목들이 상호 연결된 총체성 속에서 의미가 파악되는 대신에 항목별 칸막
이로 특화되어(compartmentalization) 특정한 맥락에서만 의미를 갖게 되는 담론의
헤게모니 현상이다.
현대 인류학에서는 점차 자기 사회와 자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 있다. 이는 
비단 1960년대 제 3 세계에서 자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토착 인류학의 대
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서구 인류학자들 사이에는 
자기 사회와 자기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접근방법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촉구
되었다. 따라서 인류학이 국가 이전 단계의 사회나 비서구 사회에 대한 문화이해라
는 명제로부터 벗어나서 모든 사회 그리고 현대 국가와 산업 사회 및 복합 사회에 
대한 연구로 영역이 확대됨과 동시에 문화를 반드시 타문화의 인류학자가 연구하
는 것이어야 한다는 전통이
된 것이다. 즉 이제는 탈부족사회화(detribaliz
a-tion)에 의하여 새로운 상태 즉, 국가체제의 확립, 전통적인 부족 혹은 지역 공
동체의 해체, 산업화, 대중화 등등의 변동 속에서의 문화현상을 다루게 된 것이다.

이러한 분야에 대한 연구에서 금세기 초반에는 인간의 문화적 진화를 설명하기 위
하여 그 구조와 기능의 지역적, 시대적 차이를 찾아 내는 작업에 집중하였다. 레드
클리프-브라운에게서 보듯이 인류학은 곧 비교사회학이었으며 인간에 관한 자연과
학적 법칙성을 찾아 내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형태와 제도 안에 ?
는 의미와 상징을 규명하는 것이 중심과제가 되고 있다. 즉 문화란 궁극적으로 
물리적 적응을 위한 경제수단이 아니라 인간 내면적인 상징과 의미구성의 욕구의 
결과이며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인류학에서는 제도 ─ 흔히 문화라는 말로 대체되는 ─ 를 경제적 욕
구 즉, 환경에 대한 적응의 효과를 최대화하려는 합리적 계산과 행위의 결과로 보
아 왔다. 즉 생산양식과 소비형식의 다양성은 환경에 대한 적응전략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경제행위에는 그러한 욕구만이 결정적인 것이 아
니다. 거기에?
?의미가 있으며 비경제적 욕구와 성향이 함께 어울려 있다. 
따라서 문화를 합목적적인 것 ─ 쾌락, 이익, 질서, 안정의 확보 ─ 으로 보는 대
신에 판단과 이해를 위한 설명의 틀로서 본다. 말리놉스키는 트로브리안드에서 농
사에 주술이 결합되어 있는 것을 미신의 실천보다는 생산의 합리적 실천을 위한 지
식과 기술의 신비화 행위로 본다(Malinowski, 1935 참조). 그것은 일견 인간의 행
위라는 합리성을 실천하기 위하여 독특한 형식을 취하는 예로써 설명될 수도 있지
만 동시에 상징과 의미와 지식 그리고 권위들의 실천의 장으로써 ?
?것이라
는 점을 보여 주며, 문화란 제도와 법칙뿐만 아니라 감정과 성향, 이념 등의 결합
에 의하여 규정되고 실천된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 준다. 이는 곧 현대 사회에서 종
교적 의례가 경제 및 사회 발전의 의미를 두고 국가와 인민이 벌이는 정당성의 쟁
탈의 공간이며 과정으로서 이해되는 것과 같다.4) 즉, 의례 또는 의례적인 행위는 
구조의 확인이나 구조의 전복 혹은 반구조화의 욕구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역사
적 경험을 의미화하기 위한 상징체계의 동원 및 조작과정일 수도 있다(Turner, 197
4). 그러므로 상징과 이념 실천의
서 종교는 반드시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동일한 의미로 채택되는 것이 아니다. 아프
리카에서의 기독교의 다양한 모습은 그것이 지역적 정치와 역사적 맥락에서 전략적
으로 채택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피식민지 아프리카인들의 저항정신의 실천을 
위한 문화적 기제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이에 대하여 Comaroff, 1985, 19
92, 1997 등 참조).

3. 문화연구의 방법론

1) 개념적 논의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Man as a Cultural Being)은 인류학이 내세우는 가장 강
력한 패러다임으
문화의 ‘관계’는 인류학의 주된 관심거리이다. 그런
데 인간이 문화의 창조자로서 또는 문화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변화를 시키는 주체
자임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은 ‘문화’의 내용과 법칙성을 규명하는 데에 치중하여 
왔다. 그럼으로써 문화는 어느덧 인류학연구의 ‘주된 대상’이 되었으며 문화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잠정적으로 논의에서 제외되거나 미약하게 취급되었다. 따라서
문화는 어떤, 뚜렷이 경계지을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며 자율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문화체계에 의하여 인간의 행위가 결정된
×?
착안한 구조기능주의적인 현지조사 관행에 기인하는 것인바, 그 결과 문화를 인간
의 바깥에 있는 것으로 대상화하게 된다. 즉, 문화는 인간의 지적 활동의 산물로서
인간을 통제하는 기제이며 인간이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분석과 해석을 하는 ‘대
상’으로 다루어진다. 인간과 문화의 관계를 인간이 ‘문화의 창조자인 동시에 그 
수인(囚人)’이라고 정의를 내림에도 불구하고 수인으로서의 인간을 상정하는 암
묵적 전제의 지배는 결국 문화의 주체자로서의 인간을 소외시키게 되었다. 따라서 
문화를 인간과 유리시킨 문화론은 허구?
?되어 버린다. 
레드클리프-브라운이나 말리놉스키 등에 의해 기틀이 마련된 현대 인류학에서는 
문화적 규범과 법칙이 그대로 개개인의 행위를 결정한다고 간주하는 것이 지배적
인 전제가 되어 왔다. 이렇게 인간이 ‘문화’에 의하여 규제된다고 보는 시각에 
있어서는 20세기 전반부의 구조기능주의자나 후반부의 마르크시스트들에서 모두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하여 문화가 사회적 실천의 차원에서 포착되는 사회적 제도
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머리 속에 있는 하나의 사고의 체계나 방식이라는 시각이 새
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되었다.
와 불룸필드 등의 언어학의 분석방법에서 나
온 구조주의(Le쳖i-Strauss, 1963)와 인지인류학(Goodenough, 1971), 그리고 상징
체계론(Douglas, 1966)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화를 궁극적으로 머리 속에 
─ 의식의 차원에서든 무의식의 차원에서든 ─ 들어 있는 법칙으로서 인간의 행위
─ 문화적 실천이라 해도 좋다 ─ 란 그것에 의하여 결정되며 그것을 표현하는 것
이라는 입장을 표방하는 것으로서 타일러 이래의 문화론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내재한 법칙과 그것의 표현으로서의 행위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상정하는 것은 

 의미의 망 속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를 간과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
를 마치 외부의 물질적 조건이나 사회정치적 과정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존재하
는, 또는 그에 의해 근본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구조나 인지체계로 다루려는 경향
을 낳는다. 문화란 여러 의미의 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며 개인은 그러한 의미
의 망에 자리잡고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문화와 인간의 관계를 기어쯔는 거미줄과
거미의 관계로 적절하게 비유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문화를 기호학적으로 접근하
여 개인이 공식적으로 인식되는 방식을 통하여 기호?
작하고 선택적으로 사용
함으로써 의미를 실천한다는 점에 착안한 현상학적 혹은 해석학적 인류학이 대두된
다. 즉 인류학은 개인의 문화실천에 관한 학문이며 이 때 문화는 개인의 행위를 통
하여 해석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5)
현대에 와서 문화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그 자체의 체계 혹은 영역이기보다는 우
리들의 일상생활의 조건에 나타나는 주요 변화들에 대한 반응으로 이해하려는 시각
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하였다. 즉 문화란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정치나 경제, 
종교처럼 체계로서 인간 바깥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대신에
정치, 경제,
종교의 제 활동(생활)에 스며 있어서(embedded) 따로 분리가 불가능하며 또한 따로
떼어 내어서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으로 보려는 입장이다. 따라서 사회, 문화적인 
제도들이 어떻게 ‘실천’되는가를 보는 것이 인류학적 연구로 강조되기 시작하였
다. 
예를 들어 친족제도나 혼인제도 자체를 문화라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악보와 같은
것으로서 그 악보에 그려진 기호를 어떤 해석에 기초하여 실제 음으로 연주해 내는
가는 다양하다. 마찬가지로 부계친, 장남상속, 사대봉사, 동성불혼 등은 제도사연
구의 주제일 것이다. 그?
로 어떻게 ‘실천’되느냐를 보는 것이 인류학적 
관심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실천이 내재한 혹은 밑에 깔린 구조와 법칙 혹은 인
지체계의 표현이라는 시각 대신에 실천의 양상과 그 의미와 기능이 지역 사회의 구
조, 환경, 국가이념과 정치제도 등의 상호 결합된 체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하고 그
것을 실천하는 개인이 그 자신의 행위로부터 어떤 의미를 실천한다고 해석하는 바
를 규명해야 한다. 인류학자는 곧 행위가 실천하는 의미의 해석을 서술하는 것이다
. 따라서 현대 인류학의 문화연구에서는 문화와 사회에 존재하는 총체적 관련
성격을 밝히는 방법으로서 민족지적 접근방법(ethnography)이 다시 강조되고 있다

오늘날 민족지적 이해와 민족지 작성의 과정에 대한 성찰로부터6) 말해지는 문화
체계와 실천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사실과 이 괴리를 ─ 때로는 모순적이고 배반적
인 ─ 어떻게 문화재현의 민족지 작성에 담을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
고 있다. 여기서 민족지를 문화에 대한 텍스트로서 연구의 결과로 간주하는 종래의
입장에 대하여 그것은 실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는 규칙과 상징의 세트가 어떻게
실제 현실 속에서 재조정되어 행위로 나
「?보여 주는 출발점에 지나지 않
는다는 해석학적 인류학의 주장이(Geertz, 1973 참조) 대두된다. 
그런데 이 민족지적 방법은 하나의 경계 속에 있는(enclosed) 세계 안에서 문화체
계를 실천되는 맥락에서 살펴보는 방법이다. 따라서 민족지적 방법은 문화가 실천
되는 그 공동체 바깥에서도 그 문화가 동일하게 실천되는가는 문제삼지 않는다. 인
류학적 문화연구가 타학문분과와 논쟁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독특한 접근방법에
관한 것이다. 즉 인류학자들이 폐쇄된 한 단위 안에서 그 안에서 발견되는 문화적 
항목들을 설명하는 데 ?
맨橘?逵嚮【??그 미시적 접근의 일반화와 특수
성으로써 보편화하는 것의 제한성과 오류의 가능성을 경고한다. 그러나 인류학적 
민족지는 문화항목의 총체적 결합으로서의 ‘사회적 단위’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
라 그러한 문화요소의 총체적 담지자로서의 ‘인간’을 관찰하고 서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제도와 구조의 특정 항목이나 현상만을 떼어 내어 거시적 분석과 설
명을 하는 타사회과학 분과의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인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불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2) 방법론적 논의 

1970년대 이래 인류학계
鄂?자각이 일어났다. 첫째로 인류학적 관심의 
대상이 부족 세계에서 현대 사회로 확대되면서 인류학적 인식의 틀에 대한 재고가
요구되었다. 인류학자들은 ‘부족 사회’ ─ 동질성, 평등성, 일관성, 체계성, 내
재 혹은 자생성의 상징으로서 ─ 를 기본으로 삼는 사고방식에 젖기 쉬워서 ‘국가
’ ─ 이질성, 위계성, 경쟁성, 외부와 내부의 알력의 상상 ─ 속의 개인과 문화의
다양성을 종종 간과하였던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류학자에게 부족 사회의 
성원으로서의 인간의 모습과 문화를 이야기해 줄 것을 기대하며 그렇지 않은 ?
는 비인류학 분과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여긴다.7) 국가는 비실체적이면서도 가장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며 구체적 행위자인 개인은 그러한 국가의 공적인 권위와 권
력에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부족 사회에
서 공동체와 그 성원으로서의 개인의 관계와는 질적인 차이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전통 인류학에서는 부족 사회 모델을 논의의 바탕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러
한 인식의 전환은 부족 사회가 국가로 변한 20세기 중반의 세계사적 경험을 인류학
에서 수용하는 현실적 반응뿐만 아니라 이미
전에도 부족 사회라고 상정했던 
사회가 국가의 일부로서 존재했던 점을 간과했던 오류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둘째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의 특징으로 제시되
었던 ‘합리성’은 하나의 허구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합리성 자체
의 논리적 논증뿐만 아니라 인간이 반드시 합리적이지만은 않으며 비합리적인 요소
가 때로는 더 중요하고 결정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합리성에 대한 정의가 서구적인 것과 비서구적인 것이 차이가 있는 것인가의 논의
가 재연?
 대하여 Wilson, 1974; Finnegan & Horton, 1973 참조). 이와 함
께 인간은 ‘상징’적인 존재이며 ‘의미’를 생산하고 실천하는 데 더 관심이 있
는 존재임이 주장된다. 즉, 경제적 이익 추구만을 위하여 행위를 결정하고 삶의 질
과 의의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또한 성향(habitus)이라든가 정서체계의 중
요성이 실증주의 사회과학 전통에서 간과되었던 점에 대한 재고이다.
셋째로, 집단과 ‘개인’의 문제가 재고되었다. ‘문화 공동체’ 혹은 ‘동질성’
, 그리고 문화의 개인에 대한 ‘구속력’이나 ‘강제성’에 대한 신념(전제
 
‘공동체’ 안에서 정형과 변형(들)의 병존을 논의에서 인정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인류학적 논의거리가 실제 현실과 관계없이 정해지게 되었다. 이는 예
외적인 것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만든다. 즉, 지배문화 혹은 주된 문화 외에 언제나
도전이나 저항문화로서 ‘디자인된’ 것이 있다는 사실과 바로 그러한 이질적이고 
상호 대항적인 문화들 사이의 역동성이 현실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지배
문화나 주된 문화라는 것 자체가 그러한 경쟁과 대항의 과정 속에서 일시적으로(물
론 그 시간적인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
泰置構?된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의 ‘경험’(experience) 및 ‘실천’(practice, praxis)의 
‘장’(field)이 어떻게 규정되고 구축(construct)되는가를 밝히는 것이 인류학적
문화연구의 관심이 된다. 물론 이는 문화의 정치성(힘과 헤게모니)뿐만 아니라 정
치경제학적 시각에서의 접근일 수도 있다. 어쨋든 ‘정당한’ 문화에 대한 정의, 
정당한 문화의 ‘생산’과 ‘유포’의 방식과 과정, 그리고 문화생산의 실체와 그
‘소비’의 주체를 규명하는 것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즉 궁극적으로는 문화에 

?泳鐸??정체를 밝히는 데 있다. 사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문
화 그 자체 또는 문화논의 그 자체, 문화 생산기제 그 자체, 문화소비의 시장구조
와 논리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인류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4. 최근의 논쟁들

1) 권력과 문화

오늘날 문화를 권력(power)과 헤게모니(hegemony)의 현상이라고 보는 관점이 보다
뚜렷하게 대두하게 되었다. 즉 문화란 서로 다른 사회적 혹은 경제적 범주의 사람
들이 자기들의 성향과 욕구를 보다 더 정당화하고 지배적인 것으로 하려는 권력 싸
움이 빚어 내?
痼甄? 이러한 싸움은 민족간, 국가 간, 계급간에 이루
어지며 여기서 문화민족주의, 국가 간의 문화 갈등문제, 세계체제 속에서 지역문화
, 혹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문화(local culture) 사이의 관계, 문화적 계
급주의 혹은 계급문화의 문제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문화의 동질성, 구속성, 공유성에 대한 ‘지나친’ 신념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다
. 인류학자들은 원리와 원칙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가장 전형적인 집단을 연구의 대
상으로 삼았다. 곧 특정 집단, 공동체, 특정 계급, 소위 대표자(집단
?濚孚?
이건 ‘상민’이건, 엘리트이건 주변적 집단이건, 지배집단이건 피지배집단이건 어
느 한 편의 ─ 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 안에서 말해지고 행해지는 것만을 ‘표본’
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것은 곧 문화란 공유되고 합의된 것일 때 비로소 의미가 있
고 정당하며 그 전형을 찾아야 한다는 가정에 근거한 접근방식이었다. 공유성의 강
조는 ‘문화적 동질성’이 상상되는 집단 즉, ‘상상의 공동체’에 대하여 집중적
으로 행했던 현지조사의 전통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한 집단 안에 과연 단일한 문
화체계만이 있는가? 그리고 문화가
봇便涌“?동일한 정도로 공유되고 있는
가? 만약 공유되고 있다면 그것은 과연 합의에 의한 것인가? 등등의 질문이 제기되
는데, 그에 대한 답은 모두 부정적이다. 즉, 공유된다는 사실은 현실이 아니라 가
정이며 제한적 의미에서 사실일 뿐이다. 그것은 동질성의 표현이 아니라 이질성과 
차별의 구조적 현실이 지배적 담론에 의하여 은폐 혹은 가장된 것일 뿐으로 보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관찰과 분석의 대상이 오직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세계
였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남성에게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문화의 실천과 언술
에 ?
 계급적 차이뿐만 아니라 성적 차이를 간과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서 한국 사회에서 각 문화전통과 성향이 하나의 통합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고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Brandt, 1971)과 하나의 보
편적 원리가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연행된다는 시각(강신표, 1985)을 대비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문화를 ‘현대 국가체제’ 안에서 실천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의 결여 내
지는 소홀함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제 3 세계의 제 1 세대 인류학자들은 서구
인들이 비서구 혹은 부족 사회에 적용
식의 틀을 ‘과학’이라는 상표 때문
에 별다른 비판적 성찰 없이 그대로 채택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1970년대까지의 한
국문화인류학회를 구성하였던 다수의 민속학 전통의 인류학자들이 한국의 친족, 한
국의 가족, 한국의 종교, 한국의 의례 등의 연구를 통하여 ‘한국’문화의 전형(典
型)을 규명하는 데 치중하였던 데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물론 제도의 실천적 다
양성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원형이나 원리 또는 전범(典範)의 추구에 더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서로 다른 성향의 문화세력간의 헤게모니에 의한 원리와 
실제?
?소홀히 취급하였다. 이러한 1970년대까지의 형태분류학적 문화연구
경향에 대하여 1980년대에 와서 문화의 역동성을 인류학적 연구의 중심에 둘 것과 
이러한 문화의 역동성을 국가, 자본, 시장의 힘이 전통적이고 이상적인 문화영역
에 확산해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볼 것을 요구하는 새로운 경향이 대두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인류학계에서는 제도로서의 문화와 그것을 구조기능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전통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문화가 ‘누구에 의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리고 ‘왜’ 공유되며 합의되는가에 대한 ?
颯?질문으로 삼
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 체계가 어떻게 정치, 경제, 종교 생활에서 반영되는가 
혹은 작용하는가를 관찰할 뿐이다. ‘밑에 깔려 있는 구조’(underlying structur-
e)라는 말은 곧 모든 현상은 원래의 내재적인 문화체계의 표현이라는 명제에 치중
한 것이며 여러 이질적인 성향과 힘들 사이의 역동적 관계와 과정이 현재적 현상을
실천하고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다. 즉, 1970년대에 들어서야 현실 혹은 ‘실천’을
몰정치적인 ‘행위’와 ‘상호 작용’으로 보는 부르주아 사회이론의 순진함으로부
터 벗어나서 힘(권력)
등의 관계 속에 내재해 있는(embedded) 것으로 보는 
시각의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되었다(이 점에 대하여 1970년대에 등장한 마르크시
스트 인류학자들과 1980년대의 민중론자 및 Sahlins, 1981; Giddens, 1979; Bourdi-
eu, 1977 등 참조). 이는 곧 문화를 구조(structure)와 대리인(agent), 그리고 물
질적인 것과 이념적인 생활을 한데 엮는 사회적 역사적 과정에서 실천되는 것으로 
본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여 ① 사회는 하나의 체계이며, ② 체계는 힘에 
의하여 관리되는 것이며, ③ 그것은 인간의 행위와 상호 작용에 의해서 만

거나 해체되거나 하는 것이다(Ortner, 1984).
실제로 당내친, 사대봉사, 문중을 일차적 세계로 여기고 절대적 충성과 귀속감을 
실천하는 사람이 과연 오늘날 한국에 몇 명이 있을 것인가? 만약에 그러한 사람과
그렇지 아니한 사람의 구분을 하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의 문화는 매몰되어 버
린다. 따라서 어느 영역과 부문에 일차적인 것이 작용하며 어느 수준에서 그것이 
작용하지 못하게 되는가를 분석하지 않는다면 인류학자가 규명하는 ‘한국 문화’
란 한국인들의 다양한 행위 전략과 방식 그리고 다양한 수준에서의 생활을 설명?
이 될 수 없게 되며 스스로 상상의 전형을 ‘발명’하는 것이 될 뿐이다. 
국가와 민족이란 표면적으로는 단일성과 동질성에 의해 통합된 단위이지만, 그것
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Anderson, 1983). 왜
냐 하면 공동체의 내부에서는 실제로 이질성과 다양한 성향과 전통들이 끊임없는 
갈등과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연구란 그것들이 어떤 담
론과 규범에 의하여 하나의 동질적인 것으로 상상되게 하는 경험과정과 기제를 규
명하는 작업이다(Cohen, 1985). 그것은 성향을 달리하는
집단간의 실제 경험
(lived experience)과 상상의 경험(imagined experience)의 구분, 혹은 경험되는 
현실(experienced reality)과 만들어지는 현실(constructed reality)의 구분이며 
두 영역간의 역동적 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이는 현대 국가와 민족 사회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내재적 이질성이 표면적인 단일성으로 더  이상 수
용 또는 통제되지 못함에 따라 탈부족(post-tribal) 시대인 오늘날 신부족주의(neo
-tribalism)의 성향들이 나타나게 된다. 혈연, 지연, 학연, 취미, 성향, 종교, 소
속단위 등에 집착하여 공
체적 이념과 감정을 조직하는 것이다. 

2) 과정 속에서의 문화 

분석의 대상으로서의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개념은 오늘날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다. 그것은 공유된 것(shared)에 대해서 상호 경쟁관계에 있는 것으로(contested),
지속적인 것(durable)에 대하여 끊임없이 변화의 과정에 있는 것으로(constantly 
changing), 일관성 있는 것(coherent and consistent)에 대하여 상호 모순적이거
나 파편화된 것(inchoate, contradictory, fragmented)으로 보는 견해들의 부딪침
이다. 여기서 문화를 하나의 체계(system)로 보는 입장과 형?
constructio-
n process)으로 보는 입장이 오늘날 다시 논의되고 있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체계로서의 문화란 ‘어느 정도’ 지속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고 ‘비교적’ 정
형화되어 있으며 사람들에게 구속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또한 세대를 
넘어서 그리고 그 문화를 형성한 외적인 조건 즉, 환경과 기술과 역사적 경험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소위 초유기체적 성격을 지닌다. 사실 변화 속에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며 그 불변의 것은 연원이 상당히 오랜 것이 있음을 부
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원형
?대한 개념은 한국 문화의 본질이나 특성 그
리고 한국 사회의 발전형태나 속도 등을 문화결정론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낳는다. 
그리고 그 원형을 놓고 이웃 문화와의 비교를 통하여 선후를 논하거나 우열을 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베네딕트의 문화유형론, 독일의 민족학 전통, 일본의 민속학 
전통이 한국 문화에 대한 오늘날의 논의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문화체계론은 그것에 의하여 현실적 현상을 설명하는 근거로 삼게 됨으로써 자연
히 문화결정론(cultural determinism)과 결합된다. 이 문화결정론적 시각은 종종 
문화민족주의(cu
nationalism)와 식민주의(colonialism)에 이용된다. 즉, 
식민주의는 문화결정론적 논리에 입각하여 피식민지의 문화개조와 식민통치의 문
화적 필연성을 정당하는 데 동원되었던 것이다.8) 문화민족주의는 오늘날 자국 혹
은 자민족의 문화특징이나 전통에 대한 적극적 긍정론을 의미하는 데 적용되지만 
그 민족문화의 열등성과 개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론적 해석의 기반을 
제국주의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적’이라는 접두사로 상정되는 
문화론은 서구이론에 수용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설명수단으로서 채택된다
 
한국 사회가 현재 겪는 문제점들은 한국 고유의 문화체계에 원인이 있다는 논리로
서 동시에 한국의 경제발전이 한국 문화의 우수성 때문이라는 논리이기도 하다. 전
자가 식민주의의 조작적 산물이라면 
후자는 국수적 자민족 중심주의의 산물이다. 
사실 식민주의자들의 피식민지 문화 왜곡과 파괴에 대항하여 인류학자들은 피식민
지 문화를 그 정당성, 합리성, 고귀성에 있어서 식민세력의 문화와 동격으로 놓으
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해석의 논리는 바로 식민주의자들의 것이
었으며 그것을 반대 방향으로 적용한 것?
. 따라서 문화를 체계화하고 정형
화하고 그것에 의하여 비서구인들의 행위가(고귀하게) 실천되는 듯이 서술함으로써
문화가 가지는 융통성(flexibility) 혹은 역동성(dynamics)을 간과하게 되었다. 이
러한 문화론은 제 3 세계 토착 인류학자들의 문화 정체성(identity) 추구에서도 그
대로 채택되었다. 따라서 문화는 상황에 대한 인간의 적응 결과이며 정형을 상정하
고 그것이 절대적 결정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원래부터 무리이다. 이는 
문화의 보편성과 개별성의 문제를 간과하기 때문에 얻어지는 단순논리이며 인간에
대한 문
향력을 과대 평가하는 데서 오는 오류이다. 즉, 한국 사회와 한민족
의 문화적 성향을 몇 가지 단순논리로 체계화하는 시도가 무리일 뿐만 아니라 심각
한 오류와 왜곡을 낳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칭 문화비평가나 문화 비교연구
가들은 끊임없이 한(恨)의 문화, 눈물의 문화, 정(情)의 문화, 신바람문화, 장고문
화, 화합의 문화, 디오니소스적 문화, 아폴로니우스적 문화 등등의 작명을 즐긴다.

한국에서 1980년대에 시도한 민중문화운동도 기존의 문화체계 ─ 소위 엘리트 전
통의 문화 ─ 에 대한 대안적인 체계를 주장함으로써 또
정형화를 추구하는
것에 머물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서 1990년대에 들어와서 신판 문화결정론
이 조장되고 있다. 그것은 서구체제와 현대화의 허구성에 대한 경험에서 나온 비판
과 자성, 그리고 대안찾기운동에 편승한 문화읽기의 탈바꿈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는 ‘서구’의 한계와 동양에 대한 재인식의 필요성에 의하여 동양의 재해석으로 
눈을 돌리는 서구의 조류와 이에 대한 동양의 화답의 한 현상이기도 하다. 유교전
통의 재조명과 동양적인 것의 재해석이 그것이며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긍정적인 측
면에 집착한 문화결정론
하기 시작한다(대중매체를 장식하는 아마추어 문화
비평가적 진단이 그 대표이다).
과정 속에서 문화를 읽으려는 노력은 문화결정론의 제약성과 문화의 가변성 ─ 비
정형성 ─ 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1970년대 이래 권력과 헤게모니 이론에 입
각한 문화현상 해석의 움직임이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또한 민족지 작성을 문화연
구의 핵심적인 방법론으로 지적하고 행위자가 그 문화적 의미의 망에서 무엇을 추
출하여 행위를 통하여 실천하는가를 그려야 한다는 기어쯔의 중층적 서술 방법론 
역시 개인이 문화를 선택하고 응용하고 해석
정에서의 다양한 역동성을 강
조하는 것이다. 
체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도전은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문화는 친족제
도나 상징체계와 같은 수단적인 제도나 체계가 아니라 구성물로서 과정 속에서 이
해되는 그 무엇인 것이다. 즉 문화란 Taussig(1980), Nash(1980), Ong(1987), Rosa-
ldo(1989) 등에서 보듯이 타자와 구분하고 차별화를 표현하는 것이며, Comaroff(19
85, 1995, 1997)에서 보듯이 저항과 자기를 표현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1980
년대 후반에 와서 한국의 사회과학계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포스트 모더니스트
チㅗ滑聆? 해체주의, 브리꼴라주로서의 문화해석도 기존의 문화체계에 대한 인
식과 문화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 허구이며 불가능하다는 강력한 메시
지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문화를 역사적 과정 속에서의 순간적 현상으로서, 
그리고 일반화나 대표화할 수 없는 국지적인 특수현상으로서 포착하고 연구자 자
신의 ‘통찰력’과 과학적 ‘독자성’으로 무장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와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약성을 갖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현상은 유일한 것
이고 일회성일 뿐이기 때?
그들은 문화현상의 예측불허성 혹은 임기응변성에
몰두함으로써 문화들 사이의 지배적 지위, 중요도의 매김, 지속성 등을 간과하며 
궁극적으로 문화현상을 낳는 구조와 역사적 관성, 그리고 권력의 문제를 지극히 
편협하게 적용한다. 따라서 과학적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이정덕, 199
3 참조). 여기서 국가(공권력과 공적 영역)와 사회(민간, 사적 전통, 사적 영역) 
간의 헤게모니적 관계 속에서 문화의 다양성과 비정형(非定型)을 설명하려는 시도
를 모두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권력관계 속에서 문화를 재조?
는 사람들은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는 이질적이고 상호 경쟁하는 각 문
화의 주체를 비교적 뚜렷하게 규정짓는데 비하여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아예 그러
한 역동적 힘의 소재를 규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다. 


3) 역사와 권력의 문제

에반스-프리챠드가 인문학으로서의 인류학을 강조하는 데서 역사학과의 관계를 주
장하였고 보아스가 서툰 문화해석을 경고하면서 역사적 특수주의를 주창하였으나 
일반적으로 인류학자들은 현재적 상황에서의 문화실천에 관심을 두었다. 역사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란
도를 현재시제로 서술하거나 현재의 현상을 기반
으로 특정 제도가 과거에 어떻게 기능하였는가에 대한 유추해석을 시도하는 데에 
그쳤다. 또한 과거에 대한 호기심과 ‘전통문화’의 ‘원형’을 추구하기 위하여 
과거의 것에 집착하여 그것이 현재적 맥락에서 어떻게 실천을 하는가를 소홀히 한
다. 이러한 자세는 결국 문화란 단일한 체계로서 고정적인 위치를 누리는 것이 아
님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오늘날 인류학자들은 한 공동체가 실제로는 여러 모습과 여러 목소리를 지니고 있
으며 그들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규명
이 인류학적 문화연구라고 지적하고
소위 역사적, 전통적이라는 것이 이미 정치적 경제적 의미를 위하여 특정의 세력이
나 성향에 의하여 ‘발명’되는 것임을 밝힌다(Hobsbawm & Ranger, 1983).
물론 전통의 ‘발명’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자칫 비서구 사회에서의 전통체계의 
오랜 역사성과 연속성을 부정하는 논리로 작용할 위험이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통이란 새로이 발명되고 조작되며 변형되기도 하기에 그러한 발명의 의
미와 기능을 규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제 3 세계가 지니고 있는 전
통의 고유성도 이
한다. 전통이 발명된다는 것은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악용
될 수 있다. 즉, 식민세력이 들어오기 전에는 민족의식이 없었다든가 민주주의, 국
가, 민족, 문화, 역사인식, 의식 등이 모두 최근의 서구적 담론과 서구와의 접촉의
경험 속에서 즉, 외적 자극에 의해서 비로소 개발된 듯이 말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
기 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발명과 재생산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왜 그러한 작업이 시도되었는가를 규명함으로써 역사를 다시 읽고 역사와 문화의 
주체자의 정체를 밝혀 냄으로써 문화의 권력문제를 규명하게 해 주?
다. 이
로부터 역사는 한 공동체 내에서 다양하게 쪼개어지는(fragmented) 것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인류학자들은 식민세력과 피식민지 주민 사이에 토착문화가 어떻게 규
정되고, 다듬어지고, 발명되었는가를 규명하고 있다(Dirks, 1992; Comaroff, 1995,
1997). 
문화변동(culture change)은 곧 체계의 변화를 말한다. 이 문화의 변동은 문화의 
조건 즉, 제도나 법규 및 기술의 변화와 그 속도와 정도에 있어서 일치하지 않는
다.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관계는 복잡하여 어느 것 하나가 바뀐다고 연
쇄적으로 자동적인 변화를 하
아니다. 구조기능주의자의 총체론은 문화요소
들 간의 상호 연쇄작용을 강조함으로써 자칫 그러한 가정으로 쉽게 우리를 이끌고 
갔다. 그러나 경제 행위에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친족 이념은 변하지 않을 수 있
으며 마찬가지로 친족 이념이 적용되는 영역이 시대에 따라서 변하지만 종교체계는
변하지 않을 수 있다. 사회제도와 체제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체계는 여전히 차
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이것이 한국을 다른 사회와 구분되게 하며 동일한 정치적
, 경제적, 외적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상이한 반응을 하게 하는 요소인 것?
문화변동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의 패러다임은 진화론, 문화접변, 문화전파론 등
이었으며 이들은 문화변동을 정치적, 사회적 관계 특히 불평등과 지배/착취의 관계
와 분리시켜서 설명함으로써 그것이 정치-경제 권력의 변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임을 간과하였다. 예를 들어 과거 문화의 한 요소가 현대적 맥락 속에서 바뀌지 
않고 존속하는 것을 문화지체(culture lag)라고 하지만 이 말은 가치관이 개입되
어 있는 것으로서 지속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천착을 결여하고 있다. 이는 문
화의 자동성, 자율성, 초유기체성으로만 간단히
퓸沮?것이 아니다. 그 지속
의 배후에 있는 힘(권력)이나 의도의 정체를 규명해야 한다. 즉 형성(construct)이
나 지속(continuity)을 힘의 과정(power process)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에 힘
과 역사의 개념이 문화해석에 필요하게 된다. 
역사인류학의 또 다른 차원은 문화의 역사적 변동과정을 분석하는 것 외에 역사적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분석하는 일이다. 곧 문화를 역사 경험의 틀로서 보는 것이다
. 하나의 역사적 과정(사건)은 여러 다른 입장에서 경험되어지며 상이한 경험 중에
서 특정(세력)의 경험만이 공식적인 역사의 지위
(혹은 획득)받게 된다는 사
실에 주목한다. 따라서 문화활동과 문화운동이 역사적 경험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 
담론과 해석에 대한 도전으로서(Kim, 1994) 민간차원과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다. 또한 역사적 경험이 하나의 전설이 되어 현대 사회에서 지
역 아이덴티티의 전략적 자원으로 이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권숙인, 1996 참조). 
경험의 공식화와 과거를 이야기하기는 개인차원에서도 시도된다. 
민간차원에서의 사적 역사를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들어 냄으로써 목소리를 갖지 
못한(muted) 영역에게 목소리를 ?
 것이다. 한 개인이 자신의 역사를 어떻
게 엮고 수정하고 감추고 지어 내는가를 통하여(Shostak, 1981; Kendall, 1988) 인
류학자는 개인이 공식적인 역사 속에서 자신의 비공식 역사를 어떻게 위치지우며 
어떤 의미를 실천하는가를 밝힌다. 국가의 공식적인 부정에 대항하여 사적 전통을
재생산하고(김광억, 1993) 사적인 경험에 공적인 역사의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다
양한 문화적 전략이 시도되는 것이다(Yoon, 1992). 하나의 공공의 공동체 안에 때
로는 경쟁하고 갈등하는 역사인식의 여러 판본(version)을 통하여 다양한(multi-vo-
ca
 공동체들의 존재를 밝히는 것은 곧 문화적 역동성을 설명하게 해 준다. 
역사에 대한 인류학적 작업은 또한 문자가 없는 사회에서 타세력의 문자에 의해 
‘발명된’ 역사를 재조명하거나(Sahlins, 1985), 지방의 역사가 권력의 세계체제
에 어떻게 편입되는가를 규명하는 것(Wolf, 1982; Mintz, 1985)도 포함된다. 
식민시대의 피식민지 주민들이 세계질서의 부당한 변화를 거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전통을 고수하거나 외래의 것을 자기들의 것으로 재변조하는(Comaroff, 1985; Coma-
roff & Comaroff, 1995, 1997) 저항문화의 담론에서 해석해
것이다. 마찬가지
로 현대화, 과학화, 기술과 자본의 영향에 대한 저항과 대안문화로서 전통이 그것
도 민중의 주변화된 전통을 되살리는 운동은 바로 소극적 의미에서의 문화지체가 
아니라 적극적인 저항문화로서의 지체가 채택되고 발명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제적 생산양식이 도입됨에 따라 남미 농민들이 전자본제적 시
대의 전통의례를 발명한 것(Taussig, 1980; Nash, 1980), 말레이시아 여성 노동자
들이 다국적 기업의 착취와 성에 대한 문화적 정체성의 변화, 압박에 대한 이념적 
저항으로서 신들림을 채택하?
g, 1987), 구소련 체제의 붕괴에 따라 독립국
이 된 야쿠트에서 민족문화 정체성 확립을 위하여 샤머니즘을 부활시키는 문화운동
(김성례, 1995), 아프리카의 현대 국가 형성 및 독립을 위한 게릴라 전쟁에서 민간
샤머니즘의 전략적 부활(Lan, 1985)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1960
-80년대에 걸친 지식인들의 민족문화 정체성찾기운동과 저항적 민중문화운동의 결
과 1980년대 말에 들어서 비로소 유교전통의 엘리트 문화에 의하여 주변부화되어 
왔던 민중전통의 문화가 그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Kim, 1994). ?
 변화는 문화 자체가 지닌 자율성이 아니라 사람들의 의도적인 실천의 결과이
다. 따라서 한국에서 엘리트 문화전통과 이에 맞선 민중문화전통의 헤게모니를 간
과한다면 지난 50년간의 문화변동을 진단할 수 없다(Kim, 1994). 대개 공교육의 보
급, 민주 시민 사회에 대한 교육의 확산, 산업화의 진전, 도시화 등 사회학적 용어
가 실천되면서 자동적으로 문화가 바뀐다는 설명을 쉽게 한다. 그러나 1980년대의 
치열한 공방을 거쳐서 비로소 하나의 문화에 대한 대안문화 혹은 저항문화가 자리
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역사인식과 권력관계를
로 한 문화연구는 곧 ‘문화는 역사적 산물이다’ 
혹은 ‘문화는 축적된다’는 개론 수준의 정의를 재고하게 만든다. 문화는 역사적
결과일 뿐만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생산하는 것이며 역사적 맥락에서 사람
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의미를 해석하게 하는 틀인 것이다.9)
 
4) 연행으로서의 문화

문화를 규범과 이상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트(set)로 보는 관점은 특정 시점에서
일어나는 (일회적) ‘사건’에 대한 관심을 결여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오늘날 인
류학에서는 문화의 내용과 법칙뿐만 아니라 문화의 표현방식, 연출, 연

중요성이 강조된다. 따라서 담론, 스타일, 패션, 세속적 의례, 기념일, 축제(심지
어 교회의 종교적 의례 및 신학적 담론까지도) 등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힘, 역
사, 계급 등의 맥락 속에서 보려 한다. 즉 그것들은 한 사회의 서로 다른 성향들 
사이에 진행되는 헤게모니 과정과 결과를 극적으로 표현 혹은 연행하는 것이다. 
그 연행은 단순히 구경거리가 아니라 관객을 참여자로 만들고 참여자를 ‘교화 = 
문화화’하는 기제이다(김광억, 1989). 
연행과정의 중시는 문화란 일방적으로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

廚關?실천되는 것이라는 견해에 입각한 것이다. 지식과 규범이 개인의
머리 속에 하나의 체계로서 존재하든 무의식의 차원에서 존재하든 그 자체로서는 
문화가 아니며 특정의 상황에서 개인이 특정의 행위를 할 때 선택되고 조작됨으로
써 문화가 된다는 것이다. 이 때 문화는 그 의미와 상징이 공공적으로 인지되는 행
위에 의해서 해석적 의미를 갖는다(Geertz, 1973 참조). 따라서 문화란 항상적으로
그리고 고정적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니며 특별한 순간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인
류학자는 민족지적 관찰을 통하여 그 문화가 형태를 갖
?표현되는 분위기나 
상황을 봐야 한다. 특정의 행위가 채택되고 의미를 갖게 되는 맥락을 벗어나는 문
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반복되며 의도적으로 조직되는 의례와 연행은 기존의 인류학적 연구에서 정형화되
고 체계화된 문화로서 다루어지는 것이었다. 오늘날 인류학자들은 그들의 관심의 
지평을 넓혀서 즉흥적이거나 일회적 혹은 사건적인 연행과 비정형과 비공식적 수
준에서의 의례를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한 ‘연행’은 공식영역에서의 문화를 거부
하거나 도전하는 또 다른 문화로서 조직되는 것이다. 어떠한 조건에서 그러?
적이고 비정형적인 사건이 나타나는가 혹은 조직되는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란 지속적, 체계적, 정형적, 공적인 것만을 뜻하지 않게 된다. 
기어쯔식의 해석학적 문화론과는 다른 차원에서 상황적인 문화실천이 논의된다. 
소위 대중문화 혹은 소비문화는 일정한 체계나 구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
려 비일관성, 비지속성 속에서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실천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문
화는 시장원리에 의하여 끊임없이 상품(소비의 대상)으로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한
시적인 대상일 뿐이다. 이러한 소비생활은 정형화된
섟?못지않게 우리의 일
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소비대중의 익명성과 자본의 힘에 집착
한다. 또한 사람을 단순히 그러한 소비의 담론에 수동적인 존재로서만 상정함으로
써 그것을 만들어 내는 힘의 존재와 주체를 은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소비는 
하나의 생산이다. 그것은 생산자와 소비자에 의하여 의미가 실천되게 된다(문옥표
외, 1997; 황익주, 1994; 한경구, 1994 등 참조).

5) 민족지 방법론 

인류학은 궁극적으로 ‘타’문화를 ‘우리’의 언어로 재현하는 것이다. 즉, 문화
의 ‘번역’문제가 대두된?
고체계나 논리 혹은 합리성이 다르다면 과연 
어떻게 그들을 다른 문화의 언어로 옮길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하여 인류학자는
민족지적 기술(ethnographic description)을 시도한다. 즉 문화를 그것이 작용하는
실제의 맥락 속에서 관찰하고 현실세계 속에서 작용하는 그대로를 서술함으로써 독
자로 하여금 그 기술된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의미를 이해하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어떤 문화 항목 하나를 전체의 맥락으로부터 무관하게 떼
어 내어서 대상화하여 의미를 추구하는 그래서 연구자의 문화와의 구분을 하지 않
학문분과의 분석적 방법과 구별된다. 따라서 인류학의 문화기술(文化記述)은 
그 분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정리 요약하기보다는 관계된 여러 장르를 함께 펼쳐 
보임으로써 장황하면서도 현대적이지 못한 단점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러한 점에서 인류학적 민족지 서술방식이 타학문분과에서 기피될 수도 
있다. 반면에 인류학자들은 인접 학문분과의 동료들이 타문화를 주관적인 자기 언
어와 사고방식으로 처리한다고 의심을 품는다. 자기 문화라 하더라도 객관화하고 
타자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문화를 주관적으로 왜곡?
비난과 거부
감을 가지고 있다. 타분과 학자들은 문화에 대한 몇 가지 패턴을 만들고 이론을 구
축하려는 강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내용을 단순화, 관념화, 축약화하기를 
좋아하며 약자 사용을 즐긴다. 그들은 인류학자가 하찮은 것에까지 중요성을 동일
하게 부여함으로써 중요도를 구분 못하게 만든다고 불만을 품는다. 학술적 약속어
를 거부함으로써 학술적 대화의 대상이 아니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
류학자들은 이러한 작업이 자칫 ‘우리’의 ‘학문’을 위하여 ‘그들’을 제멋대
로 축약시키고 정리하는 우를
문화파괴 행위로 거부한다. 짧은 시간 내에 
빠른 속도로 요점만 정리하여 부호화하는 효율성이 선호되는 현대적 분위기에서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상상을 하고 간접적인 체험을 하게 하며 독자와 ‘그들’이 
직접 대화를 하도록 유도하는 인류학적 민족지 서술은 인기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하여 인류학은 민족지적 서술을 주된 문화연구의 방법에서 제외해야 하
는가? 그렇지 않다. 민족지적 서술은 아직도 가장 강력하고 바람직한 문화재현의 
방법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민족지가 문화의 텍스트로서 독자에게 주어진다는 사?
?
하게 생각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Geertz, 1988; Clifford & Marcus, 1986 등). 민
족지는 인류학자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일종의 창작품이
다. 이 창작적 기술(writing)은 결국 인류학자가 개인적인 경험들을 선택하여 재조
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며, 저자와 ‘그들’, 그리고 저자와 독자 사이의 권력 관
계에 따라 서술의 형식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학적 지식은 
권력과 이익의 관계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지적된다. 민족지는 어디까지
나 그것을 작성한 인류학자 개인의 작품?
?그 문화에 대한 진리를 제공하는
텍스트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지는 경험론적 재현이라는 점에
서 마치 텍스트인양 취급되어 왔다(필자의 친구 한 명은 안다만 섬에 가서 현지조
사를 하였다. 그의 집요한 질문에 궁해진 현지인은 지방 도서관에서 레드클리프-브
라운의 『안다만 사람들』이라는 책을 빌려서 주면서 모든 인류학적 진리는 여기에
다 있으니 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젊은 인류학도가 원하는 것은 현재의 원주민
인 피면담자가 자기의 말로 자기의 생각을 그대로 전해 주는 것이지만 이미 레드클
리프 ?
 저서에 의해서 원주민의 실지의 생각과 언어는 비진리가 되었으며 
따라서 텍스트로서의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어느 것이 텍스트일까?).
이전에는 텍스트의 작성자(민족지 작성자인 인류학자)와 독자(민족지를 읽는 사람
)와 주인공(민족지를 채우는 현지주민들) 사이에는 아무런 상호 작용이 필요 없었
다. 그러나 이제는 작가와 독자와 주인공들이 함께 상호 작용을 통하여 민족지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 중시된다. 독자가 원하는 문제의식과 주인공들의 연기와 작가
의 서술의 관계인 것이다. 씌여진 민족지와 상상되어진(그것을 읽음으?
어지
는) 민족지를 분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종 문제, 민족 문제, 성 문제, 정치-경제
학적 문제가 여하히 민족지적 기술에서 실천될 수 있을 것인지가 앞으로의 방법론
에서의 관건이 될 것이다. 
민족지 작성이 ‘타자’를 발명하는 작업일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자기
성찰의 차원에서 다시 대두된다. 문화연구에 있어서 민족지적 서술은 종종 문화가 
연행되는 맥락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만들어’ 내고 ‘대상화’하기 
쉽다. 문화연구자와 그들의 관계가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실천하는 의
미와 연구?
하는 의미가 점검되지 않는 것이다. 즉 인류학자는 자신이 겪은
문화적 체험을 낭만화(romanticize)하거나 그들의 ‘특성’이라는 이유로 그것만을
부각시키는 일을 종종 한다. 곧 일상생활에서 지극히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현실생
활 대신에 기이한 음식과 특별한 성행위와 특이한 사건들을 부각시킴으로써 마치 
그들의 일상이 그러한 기괴하고 특이한 것들로 이루어지는 양 상상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연행된다는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일상적인 것인지, 인류학자
에게 보여 주기 위한 특별히 조직된 연행인지, 인류학자(외부인)를
構킬?속
이거나 비웃기 위해서 또는 다른 목적으로 과장하고 극적으로 조작하는지를 구분하
지 못하는 것이다. 보통적인 것의 무미함을 벗어난 전율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러한 경험의 나열은 이전 시대에 탐험가나 선교사들이 만든 ‘타자’의 발명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민족지 작성의 자세와 과정에 대한 성찰은 그 
자체로서 이미 문화연구의 중요한 과정이며 나아가서는 ‘그들’을 이해하는 수단
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문화를 바라보는 문화비평학적 작업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인류학자 스스로가 진리인 ?
?왔던 인류학적 연구 
방법에 대한 자기성찰일 수는 있지만 과학성과 공정성은 영원히 완성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를 낳는다. 문화연구는 그 재현의 과정에 개입되는 권력문제로 말미암아 
결코 완전하지 못하며 끝없는 실험과정의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점은 인류
학자를 도덕적으로 괴롭히고 있다. 이것은 인류학자만이 겪는 직업병적인 고뇌가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타자의 문화를 아주 잘 안다고 할 때(cultural intimacy) 과연
얼마나 밀접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는 영원한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Hertzfeld, 19
97). 이미 ?
류학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중매체의 호기심 충족용 
‘다큐멘터리’와 관광회사의 여행안내서 및 지식인의 ‘나의 체험기’류의 경험
담들의 대량 생산은 대중을 상대로 막강한 세력으로 새로운 상업적 ‘문화 만들기?
?문화 왜곡하기)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 쓰기에 관한 인류학적 자기성찰은
문화라는 현실에 대한 접근방법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외로운 철학적, 
윤리적 작업일 뿐이다. 


5. 맺 음 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서 우리는 최근의 인류학적 논의에서 문화와 권력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주제로
?수 있다. 그것은 푸코와 그람시의 권력이론이 최
근 가장 강력한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문화란 결국 권력의 표
현에 다름 아니라는 이러한 시각은 정치권력이 모든 영역에 압도적 위세로 작용하
는 한국의 현실에서 특히 공감을 얻는다. 그러나 이 권력결정주의는 문화결정론이 
지니는 설명의 제한성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인류학에서의 문화와 권력은 푸코식의 접근만이 아니며 사회과학의
타분과들과 구별되어 사용된다. 사회과학의 일반적인 조류는 모든 사회적 현상과 
제도들이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과학적인 대
상이 되지 않는 것은 곧 과학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접근의 대상에서 제
외한다. 정치학자나 사회학자, 경제학자들은 그들의 소위 과학적 패러다임으로 분
석과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에만 과학이라는 명칭을 부여한다. 그들이 설명할 수 없
는 것 즉, 그들의 용어와 분석의 틀에 걸맞지 않는 것은 문화라고 명명함으로써 스
스로의 제약성에 면죄부를 부여한다. 결국 문화는 비과학적인 것을 의미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정치문화’는 서구의 과학적인 패러다임으로는
 되지 않는 비
서구 사회의 정치현상을 말할 때 쓰는 용어이다. 서구 사회의 정치제도, 구조, 행
위, 규범, 사상 등을 말하지만 비서구 사회의 정치를 설명함에는 (독특한) 정치‘
문화’라는 말과 개념이 동원된다. 교통문화, 음주문화, 놀이문화 등등 문화를 남
발하는 이러한 신조어들은 모두 그러한 사회과학적 분석을 포기하는 순간에 그것을
버리는 구실로 등장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문화란 비과학적이고 모호한 것을 말하
는 것으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인류학자들은 바로 그러한 서구식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으며 인간에게는
 서구식 과학적 설명이 안 되는 또 다른 측면
이 있다는 것과 오히려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구조에 대한 과정
, 정형에 대한 비정형, 공식적인 것에 대한 비공식적인 것 등등을 분석에서 제외함
으로써 서구 정치학의 분석틀은 실제의 권력의 실천자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빠뜨려
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인류학과 기타 학문분과는 문화(즉, 비과학)와 과학이란
말로써 대비되게 만들었다.
여기서 흥미 있는 것은 어떤 것을 과학이라 하고 어떤 것을 비과학 혹은 문화라고
분류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즉 문화규정의 뒤에 있
의 문제이다. 이는 문화
적 현상에 구속력을 행사하는 권력의 정체를 밝히려는 푸코식의 접근보다는 그람시
의 헤게모니 이론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인류학은, 문화
가 과학 즉, 서구식 과학이라는 점을 인식시키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서구식 과학
의 허구성 혹은 한계성을 지적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을 구
축하는 노력에서 인류학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기대받게 된다. 요컨대 과학의 발견
, 과학의 정당성, 과학이라는 정의의 적용 뒤에 숨어 있는 힘의 논리를 밝히는, 새
로운 역할이 인?
게 주어지고 있다(허구적 진리가 어떻게 과학으로 둔갑하는
지를 밝히는 작업이 문화연구의 의무과제라는 인류학적 철학의 기본명제는 오히려 
비인류학자인 문학비평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연구에서 보다 많은 지식인들의 
반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더글라스(Douglas, M.)의 ‘위험 사회’(ri-
sk society) 논의는 바로 이러한 점을 개발하고 있다. 국가, 과학, 해방, 여성, 공
업화 등이 언제나 일방적으로 진보와 풍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또 다
른 위험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가정의 해체, 환경과 자원?
, 개인의 
소외 등등이 진보와 현대성이 가져오는 또 다른 위험한 현상인 것이다. 과연 서구
식 과학과 진보의 신념이 완전한 것인가? 우리는 그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어디
서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문화와 권력 사이의 관계에 관한 관심, 포스트모더니즘, 과정으로서의 문화인식 
등의 현대 인류학적 논의는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어떻게 접목이 되는가? 정형의 
부정, 해체주의, 공식에 대한 비공식의 중요성, 정설의 이면(裏面) 읽기, 실천의 
맥락 속의 의미 찾기 등의 방법은 문화를 하나의 틀과 하나의 용어로 규정짓는 한
계를 벗?
 준다. 그러나 이는 필연적으로 민족이나 국가의 공유된 문화특성
에 의한 ‘문화 특수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과연 한국 문화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는가? 그러한 정의는 허구인가? 한국이라는 지리적 공간을 문화적 단위로 삼
을 때 지역적 문화연구의 적실성은 없는가?(한상복, 1995) 문화의 특수성을 연구하
는 인류학에 그것은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점을 제공한다. 만약 문화란 지속적이거
나 고정적인 그리고 특정의 법칙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면 우리는 불가지론에 
빠질 뿐만 아니라 어떤 것도 일시적인 맥락에서 설명의 대상
? 몇 가지 문
화 외적인 요소들의 일시적인 결합에 의한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문화 또는 문화적 정체성이 국경이나 지역적 경계를 너머서서 ‘만들어진
다’는 개념이 점차 주목을 끌고 있다. 세계 도처에 있는 화교들은 범중화(凡中華)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한인들 역시 한민족 문화권을 확인하려고 한다. 다이아
스포라(diaspora)와 ‘국가경계를 넘어선 민족문화’(trans-nationalism)가 점차 
인류학적 주제로서 관심을 얻고 있다. 이것은 문화가 특정의 정치적, 지역적 단위
안에서만 존재하거나 권력의 맥락에서만
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물론 오
늘날 세계 시장화에 의하여 상품으로서의 문화가 경계를 넘어서 침투하는 것의 이
면에는 정치와 경제의 힘이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소수민족이 자
신의 정체성 확보를 위하여 모국의 문화를 재생산하는 것은 권력이나 경제와는 별
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화에 관한 인류학적 관심을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것은 체계
로서의 
문화에 초점을 맞추어 행하는 타자의 이해와 타자의 재현 그리고 타자의 생산에 
대한 관심의 발전과 같은 것이다. 즉, (타)문화를 공?
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어떻게 (타)문화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가 하는 민족지 작성
을 둘러싼 성찰적 관심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미 존재하는 문화 대신에 만들어지는
문화에 관심을 기울인다. 즉, 어떻게 하여 하나의 문화가 그것으로 존재하게 되는
가를 형성과정의 맥락에 초점을 맞추어 규명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식민주의
가 피식민지 문화를 또는 서구가 동양을 어떻게 정의 내리고 구성하고 재생산하였
는가를 분석하는 작업이 시도된다. 여행가, 탐험가, 선교사, 군인, 상인, 관리, 학
자 등의 인상, 경험, 언?
 등이 특정의 ‘문화’를 어떻게 생산하고 유포하
는가 하는 과정과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에는 외부인이 관광객으로서 무엇을 
경험하는가를 밝히는 것보다는 관광객에게 어떤 의미가 자연이나 건축물에 형상화
되어지며 자연 자체가 그림과 사진, 엽서, 일기, 축제 등에 의하여 형상화되고 의
미가 다듬어져서 연출되는가를 보는 작업도 포함된다. 따라서 이제는 문화를 대상
화하고 그 속에서 배우고 다시 그려 내는 일뿐만 아니라 문화가 어떻게 다듬어지고
생산되는가를 보려는 관심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체계로서의 문화 대신 구
construct) 혹은 형성과정으로서의 문화를 연구하는 데에는 권력, 지배, 낙인찍기
, 배제, 차별화, 도전, 자본, 신앙, 이념 등이 중요한 개념적 단어로 등장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제 문화는 인류학자들만 전유하는 것이 아니며, 한 사회가 
단일하고 고정된 문화로 채워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소위 다문
화(multi-cultural) 혹은 문화다원(cultural pluralism)의 현실이다. 문화는 여러 
분야에서 실천되고 이해되며 동시에 인류학의 문화영역도 이전의 범주를 넘어서서
확대되었다. 대중 소비문화, 비제도적, 비지속적
즉 무정형과 항상 변하는 과
정 속의 문화, 사건과 행사, 유행, 이러한 것들이 인류학의 문화연구 분야에 들어
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류학과 기타 학문분과와의 상호 연관성은 더욱 강해진다.
그렇다고 하여 인류학의 특성이 모호해진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학문분과간의 
경계성이 그 경직성을 완화하고 있고 독자적 영역에 공개되고 있으며 학제적 연구
가 새로운 방법으로 시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의 주제와 방법론에 있어서 
인류학의 독자성 내지 특성은 유효하다. 인류학자는 타학문분과 종사자와 뚜렷이 
다르게 현실 속?
榕載「簾?실천의 주체의 입장에서 문화를 접근한다. 그러
므로 앞으로의 방법론에 관한 인류학적 과제는 문화의 실천 주체를 더욱 분명히 밝
혀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즉 주어지는 대로 실천하는 피동체로서의 사람과 문화
의 형식과 담론 자체를 생산 유포하는 주체자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 사
이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이는 폐쇄된 공동체 안에서 무엇이 진행
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인 촌락에서의 현지조사로서는 밝혀 낼 수 없으
며 따라서 거시차원에서의 문화분석을 위한 새로운 방법론적 패러?
개발해야 
한다. 그러므로 현대 인류학에서는 세계 체제(world system)와 지역 사회(local)
의 관계, 국가적 경계를 넘어서 존재하는(trans-national) 문화권과 민족집단의 상
상적인 공동체 문제, 국가와 사회의 관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간의 헤게모니, 
국가와 개인, 인종(ethnic)과 민족(nation), 성, 중심과 주변부, 경계(boundary),
대리인(agent) 등의 관계 속에서 문화의 생산과 실천의 구조와 과정을 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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