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과 詩》
1. 詩.禪 融合의 선구자 神秀와 慧能(신수와 혜능의 게송)
중국의 종교에서 가장 신비하고 가장 독특한 교파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곧 선종이다. 선종은 당연히 불교 종파의 하나인데, 그러나 선조사들은 敎外別傳으로 유명하고(알려져 있고), 선종은 자칭 宗門이라 하고, 불교의 각 종파는 敎下라 칭하여, 종문과 교하는 서로 대항하는 형세를 이루었는데, 오랫동안 상호마찰을 겪은 후에 선과 교는 다시 합하였다. 그러나 선종의 精髓는 이미 불교 가운데 /주입/되어, 천하의 불교사찰은 거의가 모두 禪林으로 일컬어졌으며, 선종의 사상과 求道하고 悟道하는 방식과 정신은 중국의 철학,문학과 예술에 영향을 끼쳤는데, 그 중에서도 詩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선종은 달마가 남북조의 梁武帝 때 세운 종파라 전해지는데, 달마는 南天竺國의 바라문으로서 南越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와 불교를 깊이 믿었던 양무제와 만났었지만 법연이 맞지 않아 곧장 北魏로 갔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숭산 소림사에서 20년 내지 50년 동안 교화를 편 후 비로소 신도를 얻어 독자적으로 한 파를 세워 선종의 중국 初祖가 되었다고 한다. 달마가 선종을 창립할 수 있었던 까닭을 羅香林선생은 그의 傳敎방법이 달랐기 때문이라 여겼다.
달마의 선종이 중국학술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일찌기 인도의 방법을 중국에 가져왔다는 데 있다. 인도의 방법은 중국의 선학과 같지 않은데, 그 법은 심오한 의리와 事象에 대해서는 겨우 해석만 하고, 그 대신 이야기를 지어내고 여러가지로 비유를 드는 데 힘을 사용하였다. 그 /성질/은 중국의 韓詩外傳 처럼 말이 쉽지만 사람들을 더 깊게 감동시킨다. 선종은 그 방법을 인용하였으므로 절대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曹溪南華寺考訪記>, 中山大學文史硏究所 月刊 1卷4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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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참신한 교수방법은 경전강론과 설법을 중시하고 불교논리(인명)와 名相(이름과 형상)의 연구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의 불교에 대하여 당연히 큰 자극제가 되었으며 신도들을 쉽게 끌어 들였다. 그러나 그 본질은 불교와 기본적으로 달랐는데, 인순법사(印順法師)는 달마의 傳敎특색이 [교를 빌어 종을 밝힘]〔자교명종〕에 있다고 여겼는데, 불교의 경전을 빌어서 宗風을 세우고, 수행의 방식에서는 頭陀行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달마의 선은 [교를 빌려 종을 밝혔다]. 교를 중시한 것(쪽)은 名相의 楞伽經師(명상을 연구하는 능가경 법사)로 발전되고, 종을 중시한 것(쪽)은 계율이나 경전의 가르침(경전교육)을 중히 여기지 않는 선자(선객)들을 형성하였다. 달마의 깊은 종지를 간직한 慧可 문하의 那禪師,粲禪師 등은 《능가경》을 心要(기본경전,핵심,근본)로 삼아 이를 따라 말하고 이를 따라 행하면서 엄격하고 힘든 頭陀行으로 보조를 삼았었다.{{) 印順法師, 《中國禪宗史》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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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당연히 아주 깊은 견해인데, 불교의 승려가 수행(수지)하는 근본(방식)은 理入과 行入이다. 理入은 불교의 이치를 정밀하게 탐구해야 하므로 경전을 중시하고, 行入은 염불,지계,좌선해야 하므로 /율제/를 중시한다. 달마의 시기에 이러한 경향은 아직 뚜렷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점차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선종에서는 명심견성하는 것이 견문과 사려에 의한 [알음알이]〔지지〕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둔한 것 같은] 直覺과 直感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臨濟선사는 불교의 [三乘과 十二分敎는 모두가 더러운 것을 닦는(똥닦는) 휴지들이다]〔三乘十二分敎, 皆是拭不淨故紙〕라고 하여, 理入으로 들어가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지계,좌선 등의 수행방법은 닦음이 있고 證得이 있으니 이것은 有爲法이므로 마침내 도를 깨달을 수 없다. 왜냐하면 수행을 할 때만 이 마음이 안정되고 밝을 수 있다면 수행하지 않을 때에는 곧 혼란스럽고 더럽게 될 것이니, 또한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제선사는 좌선하고 있는 중을 보면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우면서 무슨 잠꼬대짓이냐고 꾸짖었다. 선종의 도에 들어가는 요지는 곧 오염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모두 광명한 자성을 가지고 있어서 부족하거나 남음이 없는데, 단지 情欲과 六根,六塵에 가려지기 때문이다. 만약 물들지 않을 수만 있다면 광명한 自性이 저절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馬祖는 [平常心이 곧 도]임을 주장하였다. 마조가 말한 평상심은 [造作,是非,取捨,斷常,凡聖의 차별이 없는 것]인데, 수행은 조작과 시비와 취사가 있는 것이다. 임제는 [한 생각의 마음도 없어야 함]〔無一念心〕을 주장하였는데, 한 생각의 마음이 없어야 비로소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되며 모든 곳에서 다 참되어, 경계가 와도 /흔들리지 않아서/]〔隨處作主, 立處皆眞, 境來回換不得〕, [닦음도 없고 깨달음도 없으며, 얻음도 없고 잃음도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종문과 교하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다. [교 밖에 따로 전하고,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바로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고 부처를 이루게 한다]〔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는 게시(게송)는 진정으로 선종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상의 서술과 비교를 거쳐 우리는 비로소 이 게송의 진정한 의의를 이해할 수 있다. 선종에서는 스스로 불교 밖에 따로 전하는 것〔別傳〕이라 여긴다. 불교의 전수는 佛,法,僧 三寶에 있지만, 선종에서는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는데, 경전과 문자의(를 통한) 理入에 의하지 않고, 더럽히지 않고 직지인심하여 명심견성하는(바로 마음을 가리켜, 마음을 밝히고 불성을 보는) 법에 의하며, 수지하는(닦아가는) 行入에 의하지도 않는다. 당연히(그렇다고) 求道하는 과정에서 굳이 理入과 行入을 폐할 필요는 없다.
선종은 달마가 開宗한 후 慧可에게 전해지고, 다시 僧燦에게, 그리고 道信에게 전해졌다. 道信은 弘忍에게 전하였는데, 따로 牛頭와 法融이 나와서, 傳法하는 데 [한 대에 한 사람에게 전하는]〔一代一人〕 원칙이 바뀌어 [분두병홍](여러 분파로 나뉘는)의 경향으로 나아간 것 같다. 선종은 5祖 弘忍의 손에 이르러 법문이 크게 열리고, 10대 제자의 이름이 당시에 드높았는데, 그 중에서도 남쪽의 慧能, 북쪽의 神秀가 당대에 대치하였다.(양립하였다) 혜능과 신수의 의발전수에 얽힌 /득실/은 아래의 두 게송에 있다.
神秀의 示法詩
몸은 보리수이고, 마음은 명경대와 같다. 항상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莫遺有塵埃]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때가 남아있지 않도록 하라〈祖堂集〉권2, 《景德傳燈錄》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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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能의 示法詩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도 또한 /거울/이 아니다. 본래 아무 것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끼겠는가?{{)[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보리는 본디 나무가 없고 명경 또한 대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이 없으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일어나겠는가 《景德傳燈錄》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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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燈史에 근거하면, 홍인이 黃梅에서 불법을 펼 당시 신수는 벌써 교수사였고, 혜능은 일자무식의 나무꾼이었고 또한 정식 승려신분이 아닌 즉 도첩을 받지 않은 頭陀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높은 根器를 홍인에 의해 인정받게 되었는데, 宗主의 지위를 신수에게 전하려니 그는 아직 투철하게 깨달지 못하였고, 혜능에게 의발을 전하려니 또한 대중의 여망에 부합하지 못하여, 홍인은 문도들에게 게송을 지어 그들의 경지를 보이게 함으로써 법을 付囑하는 근거로 삼으려 하였다. 그래서 신수와 혜능은 각각 이 게송들을 지었다. 이 두 시는 모두 아주 깊은 禪理를 담고 있는데, 다만 경지에서는 높고 낮음의 차별이 있다. 두 시는 그 후 선종이 전파됨에 따라 천하에 널리 퍼졌고, 또한 무의식 중에 禪과 詩를 하나로 융합하게 하여 중국의 詩作과 詩學에 중대한 영향을 낳았다. 그 결과 元好問의 말처럼 [시는 禪客들에게 꽃을 수놓은 비단(금상첨화)가 되었고, 선은 시인들에게 절옥도(옥을 자르는 寶刀)가 되었다.]{{) "詩爲禪客添花錦, 禪是詩家切玉刀."
}} 실로 이는 뜻밖의 일이었다.
선종은 종교의 범주에 속하고, 시는 문학의 영역에 속하므로 성질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어, 마땅히 얼음과 재처럼 섞일 수 없는 것이지만, 선종조사들의 融合을 거친 후에 마치 물과 우유처럼 하나로 섞였다. 선객들은 시에다가 禪理를 담고, 시인들은 禪理와 禪趣를 시에 받아들이고 나아가 禪理로써 시의 창작이론을 세웠다. 선과 시가 하나가 되자, 시를 알지 못하면 선을 알 수 없고, 선을 이해하지 못하면 참선인의 깊은 경지가 담긴 시편들을 확실히 알 수 없으며 또한 선으로써 시를 논한 심오한 비밀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선을 알고 시를 논하는 것은 시를 이야기하고 시를 논평함에 있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당송시대는 詩의 황금시대인데, 禪도 또한 당송시대에 융성하였다. 이러한 시대 배경에서 신수와 혜능이 시로써 불법을 나타내는 다시 말하면 시의 형식에 선리를 담는 것은 일종의 교묘한 결합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장 아름다운(좋은) 표현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선객들이 명심견성했을 때 즉 큰 깨달음을 얻었을 때, 도달한 것은 일종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경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는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思辨과 言語로써 이 깨달은 [自性] 혹은 [大全]을 묘사하면 곧 [能說](깨달은 [自性]과 [大全]을 선사가 말하는 것)과 [所說]([大全] 혹은 [자성]이 선사에 의해 말해지는 것)이 있게 되는데, 둘 다 [절대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없어야](언어도단,심행처멸) 하는데, 만일 마음으로 헤아리고 뜻으로 상상하여 언어로써 이 [절대경지]를 나타낸다면, 얻은 깨달음을 잃어 버리고 파괴하여, 깨달은 후에 다시 혼미하게 되는, [깨진 거울은 다시 비출 수 없고, 떨어진 꽃잎은 다시 나무 위에 필 수 없는]{{)"破鏡不重照, 落花難上枝."
}} 큰 위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그 결과) 스승과 벗이 깨우쳐 주고, 참선하는 학인을 만날(접인) 때는 (이와 같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알을 부라리거나 손을 들어 칠 것 같은〔揚眉竪目, 擎拳擧掌〕 동작을 하거나 혹은 상징적인 시구로써 간접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말을 하면서도 말함이 없고], [말이 천하에 가득하여도 잘못된 말이 없이], [우회적으로 禪을 말하는] 목적을 이루게 된다. 시와 선이 합해질 수 있는 도리는 《談藝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치를 대충 말하지 않고, 사물의 상태를 형상하여 이치를 밝힌다. 도를 헛되게 말하지 않고, 器用을 묘사하여 도를 싣는다. 형이하의 것을 들어서 형이상의 것을 밝혀, 고요하고 텅비어 형상이 없는 것을 사물에 가탁하여 일으키고, 황홀하여 조짐이 없는 것을 자취를 드러내어 눈에 보이듯 하니, 비유하면 무극과 태극이 凝結하여 兩儀,四象이 되는 것과 같다. 새소리와 꽃향기에 호탕한 봄기운이 깃들고, 눈썹 끝과 눈초리에 아름다운 정이 전해진다. 만가지 차별 가운데 하나를 들어, 이로써 하나를 꿰뚫으면 모든 것을 꿰둟음을 보인다.{{)乃不泛說理, 而狀物態以明理. 不空言道, 而寫器用之載道, 拈此形而下者, 以明形而上者, 使廖廓無象者, 託物以起興, 恍惚無朕者, 著迹而如見, 譬之無極太極, 結而爲兩儀四象, 鳥語花香, 而浩蕩之春寓焉, 眉梢眼角, 而芳菲之情傳焉, 擧萬殊之一殊, 以見一貫之無不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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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단락의 논지는 매우 정밀하다. [형이하의 것을 들어서 형이상의 것을 밝힌다]〔拈此形而下者, 以明形而上者〕는 것은 바로 신수,혜능의 게송에서 사용했던 방식이다. 신수의 생각에 의하면 萬法은 실재하고 萬象은 공허하지 않다. 이 몸은 보리수로서 성불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심성은 거울처럼 밝아서 본래 빛나는 것인데, 六根,六塵에 가려져 온갖 것에 오염되고 더러운 것에 가려지게 된다. 참선인이 가일층의 원력으로 티끌을 없애고 빛을 낸다면, 원래 밝고 조촐한 성체(불성의 본체)가 자연히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이 남아 있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인순법사의 《中國禪宗史》의 고증에 의하면, 신수의 게송은 그의 사상과 일치한다. [몸은 보리수]라는 것은 곧 신수가 말한 [마음과 색을 모두 여의면 아무 것도 이것이 큰 菩提(깨달음)이다]〔心色俱離, 卽無一物, 是大菩提〕, [몸이 고요하면 곧 보리수이다]〔身寂則是菩提樹〕라는 말이다. [마음은 명경대와 같다]는 것은 곧 그가 말한 [청정한 심체(마음의 본체)는 明鏡과 같아서 무시이래로 萬象을 나타내지만 일찌기 물든 적이 없다]〔淨心體猶明鏡, 從無始以來, 雖現萬象, 不曾染着〕는 말이다. 弘忍은 이 게송을 상당히 높이 쳐서 학인들에게 향을 피우고 독송하도록 시켰다. 후인들은 또한 이 게송을 근거로 신수는 漸修를 주장하였다고 생각하고, [北漸]이라는 말을 확립했는데, 이것은 확실히 北宗의 특색이다.
漸修의 공부를 가지고 오염을 제거하는 것은 求道의 경지일 뿐, 悟道의 경지는 아니다. 그러므로 혜능은 신수가 [아직 큰 일을 밝히지는] 못했다고 생각하여, 따로이 게송을 지어 신수의 견해를 부정하였다. 혜능은 萬法皆空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으로 기울어진다). 法體는 본래 보리가 아닌데, 이것은 청정하고 저것은 오염되었다는 것은 큰 일을 밝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조는 보리와 심성이 모두 假名이요, 법계는 眞空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 또한 /거울/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道를 깨닫고 이룬 후에는 마음이 곧 부처인데, 이와 같은 [절대경지]에 이르면 수행(修持)하고 조작하여 먼지와 때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 [자성]은 본래 청정하고 본래 먼지나 더러움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래 아무 것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끼겠는가]라고 하였다. 이것은 도를 깨달은 후에 크게 쉬는 경지이지, 공을 들여 수행하는 경지가 아니다. 두 대사의 높고 낮음은 이로부터 볼 수 있다. 나중의 사람들은 이 게송에 근거하여 혜능은 頓悟를 주장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확실히 육조(혜능)의 게송이 노래한 것은 돈오 이후의 경지이며, 따라서 [南頓]이라는 말을 생겨 南宗의 특색을 나타냈다. 그 시로부터 그 禪의 경지를 논한다면 확실히 이와 같다.
두 수의 게송의 표현양식(체재)을 가지고 말한다면 그들은 모두 近體詩 7언절구의 詩體를 사용하였다. /신수의 게송은 仄聲으로 시작하여 押韻은 平聲인데, 제1,2구에서는 對句를 사용하였고, 平仄이 완전히 운률에 맞는 것으로, 이는 7언 절구에서 상용하는 형식이다. 혜능의 게송은 평성으로 시작하여 압운은 평성인데, 네 구절이 모두 운률에 맞지 않다. 제1구의 [無]자는 측성을 써야 함에도 평성을 잘못 쓰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唐代 시인의 詩集에서도 자주 보인다./ 이 두 수의 시는 龍朔2년(662) 전후에 지어진 것으로 그 때는 바로 근체시의 흥성기여서, 두 대사는 이를 따라 쓰면서도 자각하지는 못했는데, 이것은 시대의 풍조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이후의 선조사들은 더욱 더 원용하여(이 방식을 사용하여) 시에다 禪을 의탁시키는(담는) 것이 풍조가 되었다. 당송 시대에 참선인들의 시는 1만 수 이상이나 되는데, 이것들은 선가에서는 보물이요, 또한 시 중에서는 /색다른 작품/들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선종의 문헌에 묻혀 버려 응분의 중시를 받지 못하였다.(별로 중시되지 못하였다. 응분의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당송의 사대부와 시인들은 선학을 익히는 풍조 때문에 참선인들과 즐겨 왕래하였으므로, 禪家의 이야기들, 선조사들의 도량과 사적, 선종의 이야기 및 語句들 더우기 禪理가 하나하나 시 가운데 받아들여져 시의 정신세계를 제고시키고 시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여 禪과 詩가 융합하는 또 다른 일면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淸朝의 袁枚 등은 禪은 禪이요, 詩는 詩일 뿐이라 여기고, 더우기 禪으로써 詩를 논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袁枚는 말하기를:
시는 순임금으로부터 비롯되었고(에서 시작되고) 공자에 의해 편집되었는데, 우리 선비들이 두 성인의 가르침을 받들지 않고 멀리 佛.老를 인용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阮亭이 禪으로써 /시/를 말하자, 시인들은 이를 지론으로 받들고 있다. 나는 논박하기를 '毛詩 3백편은 어찌 뛰어난 노래들이 아닌가? 이 때 선이 어느 곳에 있었으며 부처는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이에 대답하지 못하였다.{{)[詩始於虞舜,編於孔子,吾儒不奉二聖人之敎,而遠引佛老何耶? 阮亭以禪語此,詩人奉爲至論. 吾駁之曰.毛詩三百篇,豈非絶調? 爾時禪在何處? 佛在何方? 人不能答.]:《隨園詩話》補遺권1
}}
선종이 성립하기 전에 시 가운데 禪이 없었다는 것은 실로 사실이지만, 선종이 성립된 후에 시와 선이 서로 융합하였다는 것 또한 부인 못할 사실이다. 신수와 혜능은 선과 시를 하나로 합한 선구자였기 때문에 먼저 들어서 논하였다.(67∼68. 15,16,17. 新生報 副刊)
2. 외짝 신발 들고서 天竺으로 돌아간 達磨(달마와 [외짝 신발 메고 서천으로 돌아가다])
선종에는 西天28祖와 중화6조의 전법계통이 있는데, 보리달마는 인도로부터 禪학을 동쪽에 전한 중요인물이다. 그는 서토에서는 28조이고, 중국 선종사에서는 初祖의 지위를 차지한다. 선종등사(禪宗燈史)의 기록에 근거하면, 보리달마(菩提達磨)는 南天竺國 香至王의 셋째 아들로서 본명은 보리다라(菩提多羅)인데 나중에 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를 만나고서 도를 깨쳤다. 梁 普通8년 정미년 9월 21일에 중국에 왔는데, 南海에 도착하여 廣州刺史 蕭昻의 환영을 받았으며, 그후 숭산 소림사에 거처하면서 제자 慧可 등에 의해 신봉되었고, 그런 후 後魏 孝明帝 太和19년 병진년 10월 5일에, 여섯번째 독살 기도에 대하여, [교화의 인연이 이미 다하였고 법을 전할 사람을 얻었으니 따라서 다시 구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景德傳燈錄》
}} 달마에 관한 사적들은 여러가지 다른 전설들이 있지만 역사적 기록을 가지고 보면 모두 사실에 맞지 않는 점들이 있다.{{) 印順法師의 《中國禪宗史》 제1장을 참조하기 바람.
}} 하지만 몇 가지 점은 믿을 수 있다. (1) 달마라는 사람은 확실히 있었다. (2) 달마는 확실히 중국에 와서 법을 전하였으며, 확실히 선종의 개창자이다. (3) 달마가 중국에 온 시기와 법을 전한 확실한 기한은 이미 상세히 고찰하기 어렵다. (4) 달마에 관한 사적은 억지로 갖다 붙이거나 위조된 경우가 아주 많다. 달마가 법을 편 주장에 의거하여 보면, (그의 가르침은) 여전히 불교의 주장 즉 理入과 行入이다. 道宣의 <달마전>에서는 이르기를:
이와 같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을 벽관이라 한다. 이와 같이 실행(발행)하는 것을 4법이라 한다. 이와 같이 경계에 따르는 것은 /헐뜯고 싫어함을 보호하게 하는 것이고,/ 이와 같이 방편을 취하는 것은 /집착하지 않게하는 것이다/. 도에 들어가는 길은 많으나 요점은 오직 두 가지인데, 理入과 行入이다.{{)如是安心, 謂壁觀也. 如是發行, 謂四法也. 如是順物, 敎護譏嫌. 如是方便, 敎令不著. 然則入道多途, 要唯二種, 謂理行也.
}}
理入은 교의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행입은 수행의 공부로부터 도에 들어가는 것인데, 불교의 종지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달마가 종법을 크게 선양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 간이함을 따랐다는 점인데, 불교의 삼장경전은 황하의 모래알처럼 많지만, 달마는 《능가경》을 취하여 혜가에게 부촉하고, 그 밖의 율제과 경교(경전의 교육, 경전의 가르침)는 중시하지 않음으로써 간이한 기풍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달마의 교수방법은 名相(이름과 형상)탐구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사람들이 받아 들이기에 쉬웠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대체로 앞 절에서 나향림씨가 말한 것과 같다.)
당시 이 새로운 방법은 名相(이름과 모습)에 사로잡혀 알음알이(지해)와 강학(講授)을 중시하던 불교종법에 자연히 한 중대한 돌파구가 되었으므로, 한 시대를 풍미하여 [사람들을 더욱 깊이 감동(화)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었는데, 여러 대의 홍양을 거쳐 마침내는 하나의 작은 교파로부터 불교와 힘을 겨루는 큰 종(파)을 형성하여, 중국의 종교,사상,학술,문학,예술에 대하여 지극히 큰 영향을 끼쳤다. 달마의 [한 짝 신발 메고 서천으로 돌아갔다]는 공안은 비록 신화 같지만 禪機가 극히 풍부한데, 《경덕전등록》에서는 그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사가 현묘한 기풍(현풍)을 멀리 떨치고 진리의 비(법우)를 널리 내렸지만, /국량/이 좁은 사람들은 스스로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서 그를 해치려는 마음을 다투어 가지게 되어 여러 차례 독살을 시도했다. 여섯번째에 이르러 대사는 세상(교화)인연이 이미 다되고 법을 전할 사람을 얻었으므로 다시 스스로 목숨을 구하지 않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으니, 곧 후위 효명제 태화19년 병진년 10월 5일이었다. 그해 12월 28일에 웅이산에 안장하고 정림사에 부도를 세웠다. 3년 뒤에 송운이 사신으로 서역에 갔다 돌아오다가 령에서 대사를 만났는데, 한 짝 신을 손에 들고 너울너울 홀로 가는 것을 보고서 송운이 어디 가느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서천으로 간다고 하였다. 또한 송운에게 말하기를 그대 왕이 이미 세상을 떠났도다 하였다. 송운이 이 말을 듣고 놀라, 대사와 헤어져서 왕궁으로 돌아와 복명하자 명제는 이미 죽었더라. 효장이 즉위하고 나서 송운이 그 사실을 모두 아뢰자 왕이 대사의 묘를 파보도록 하였는데, 관은 비어 있고 한 짝 신발만 남아 있었다.{{)師(達磨)遐振玄風,普施法雨,而偏局之量自不堪任,競起害心,數加毒藥 至第六度,以化綠已畢, 傳法得人, 遂不復救之, 端居而逝, 卽後魏孝明帝太和十九年丙辰歲十月五日也. 其年十二月二十八日葬熊耳山, 起塔於定林寺, 後三歲, 魏宋雲奉使西域廻, 遇師於蔥嶺, 見手 隻履, 翩翩獨逝, 雲問師何往? 師曰:西天去! 又謂雲曰:汝主已厭世. 雲聞之茫然, 別師東邁. 復命, 卽明帝已登遐矣. 孝莊卽位, 雲具奏其事, 帝令啓壙, 惟空棺, 一隻革履存焉.:卷3
}}
인순법사의 고증에 의하면 한 짝 신을 들고 서천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지어낸 이야기(위탁)인데, 나중의 선사들이 분분히 이 공안을 가지고 해석을 하거나 혹은 게송으로써 노래하기도 했지만, 결코 이 위조의 가능성이 있는 기록(등사)을 믿어서 그것을 기특한 신통이거나 허망하지 않은 역사적 사실로 여겼던 것이 아니라, 이를 빌어 그 선학상의 경지(機境)을 표현했던 것이다. 오조 법연은 이르기를:
조사께서 한 짝 신발을 남겼다는 사실이, 천고만고에 걸쳐 사람들의 귀에 전해진다. /부질없이 어깨에 메고 맨발로 가시다니, 언제는 자신이 걸은 적이 있었던가./{{)祖師遺下一隻履,千古萬古播人耳. 空自肩擔跣足行,何曾踏着自家底.:《頌古聯珠通集》卷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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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께서 외짝 신발을 남긴 이야기가 천고만고에 걸쳐 사람 귀에 전해온다]는 것은 오조 법연의 생각에 의하면 달마의 [외짝 신발을 메고 서천으로 돌아간다]는 공안이 너무 크게 소리를 내어 천고만고에 걸쳐 참선인의 입과 귀에 전파되니, 그것을 조사의 기적으로 보고, 신통으로 보며, 기특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 같은데, 만일 이러한 면을 따라서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지극한 도를 깨달으려 한다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질없이 어깨에 메고 맨발로 가니 언제 일찌기 자신이 밟은 적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이는 참선인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동산공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양위의 산하가 본래 태평하였는데 무단히도 이 늙은 여우귀신을 받아 들였네. 9년 동안 가죽과 골수를 모두 나누어 주고 또한 외짝신 빈 널로써 사람들을 기만하였도다.{{)梁魏山河本太平,無端容此老狐精. 九年皮髓分張盡, 隻履空棺更誰人.: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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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인의 향상일사(위로 추구하는 한가지) 즉 소위 자성묘체 곧 본체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것이고, 서방인도와 동토중국이 차이가 없는 것이며, [범인에 있어서도 줄어들지 아니하고 성인에 있어서도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달마는 양에서 위에 이르기까지 횡설수설했는데, 이 자성묘체에 대해서 말한다면 곧 쓸 데 없는 일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달마는 /오도/의 파도를 뒤흔들어서(도를 깨달아야 한다고 높은 물결을 일으켜) 양위의 산하가 태평하지 못하게 하였다. [무단히도 이 늙은 여우혼령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달마의 부질없는 일을 배척하고 달마를 깍아 내리는 것이 같지만, 실제로는 찬미하는 것인데, 반어법에 속한다. 달마가 법을 부촉할 때 다음과 같은 가죽을 얻고 골수를 얻는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
9년이 지나자 서쪽천축으로 돌아가고자 하여 이에 문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때가 되었으니, 너희들은 각자 얻은 바를 말해 보아라? 그 때 문인 도부가 대답하기를: 제가 본 바로는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떠나지 않는 것이 도의 작용입니다. 대사 이르기를: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니총지가 말하기를: 제가 이해한 바로는 경희가 아축불국을 본 것과 같이 한 번 보고는 다시는 보지 않습니다. 대사 이르기를: 너의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이 말하기를: 사대는 본래 빈 것이고, 오음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제가 본 바로는,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대사 이르기를: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최후에 혜가가 예배하고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대사께서 이르기를: 그대가 나의 골수를 얻었다.{{)[ 九年已, 欲西返天竺, 乃命門人曰: 時將至矣, 汝等 各言所得乎? 時門人道副對曰: 如我所見, 不執文字, 不離文字, 而爲道用. 師曰: 汝得吾皮. 尼總持曰: 我今所解, 如慶喜見阿 佛國, 一見更不再見. 師曰: 汝得吾肉. 道育曰: 四大本空, 五陰非有, 而我見處, 無一法可得. 師曰: 汝得吾骨. 最後慧可禮拜後依位而立. 師曰: 汝得吾隨.]:《景德傳燈錄》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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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구년 동안 가죽과 골수를 다 나누어 주었다]는 말이 생겨난 유래인데, 동산공선사는 생각하기를 달마가 9년 동안 설법하여 이미 법을 전하는 일을 다 마치고서, 이 [외짝 신을 메고 서천으로 돌아가는] 빈 관의 신통을 드러낸 것은 실은 다 쓸 데 없는 일이며, 또한 사람의 이목을 현혹시키고 뒤사람들을 속였다는 혐의가 있다(의심이 간다). 왜냐하면 달마가 입적을 보인 것은 용을 버리고 체로 돌아간다는 말로서 저절로 응당 과위가 모두 없어진 것이므로 이러한 신통을 드러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 참선인들의 견해(생각)가 결코 남을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곡의부화한 것이 아니라) 각자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종의 건립자인 달마의 지위는 석가모니와 거의 대등하다.
3. 선종에 도가사상을 도입한 우두법융(도를 녹여서 선으로 들어간 우두법융)
선종의 종파가 나눠진 것은 신수와 혜능의 북종,남종의 대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4조 도신 때 우두법융 계열이 나왔다. 이화의 <윤주학림사고경산대사비명>에서는 법융이 자연의 지혜를 얻어서(저절로 지혜를 얻어서, 혼자서 깨달아) 도신대사가 나아가 증거하여 주었다고 칭한하였으며, 유우석의 <우두산제1조융대사신탑기>에서 법융의 우두종은 홍인의 동산종과 대립한다고(쌍벽을 이룬다고) 추인하였으며, 규봉종밀은 선종의 <선문사자승습도>에서 법융이 우두산에서 따로 하나의 종(파)을 세웠는데 [이 종(파)은 남북 양종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唐대의 문학대가와 선종대사들의 기록에 의하면, 우두종의 선학이 당시에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두종의 특색은 첫째, 도가의 사상을 융합하여 선학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둘째, 지방색채가 풍부하여, 이후 혜능 문하의 마조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인순법사는 법융을 東夏의 달마로 칭송하였는데, 지극히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법융이 도를 깨치기 전에는 강남에서 행각하면서 아직 달마 문하 선학의 훈도를 받지 않았는데, 자신은 또한 (불교) 내외의 전적을 두루 읽고, 노장의 철학을 섭렵하였다. 당시 남방의 불학은 혜원과 구마라집의 영향을 받아, 비록 불법의 천명에는 유리했지만, 또한 도.불이 혼합하는 씨앗을 뿌렸는데, 법융에 이르러 그의 絶觀論은 공허를 도의 근본으로 세우고, 나를 잊고 정을 잊어버리는 것을 수행(수지)으로 삼고, 무심하게 공부하는 것을 방편으로 삼았다. 이러한 경지는 장자에서 나온 것이며, 아울러 남방의 불교 색채가 풍부하다. 법융은 깨달음을 얻자 우두산 유서사 북암(/북쪽 바위/)의 석실에 은거하였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많은 새들이 꽃을 물어다 그에게 바쳤다고 한다. 당태종 정관년간에 4조 도신이 우두산으로 찾아가 새로운 가르침을 주었다. 《오등회원》에서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도신을 인도하여 암자에 이르렀는데 암자 주위에는 범과 이리 같은 것들만 눈에 띄었다. 도신은 이에 두 손을 들고서 무서워하는 모습을 지었다. 법융이 말하기를: /오히려/ 이것 밖에 없읍니다. 도신이 말하기를: 이것이 무엇인고? 법융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얼마 후 도신이 법융이 앉아 있는 바위 위에 '불'자를 쓰니 법융이 보고서 깜짝 놀랐다(몸 둘 바를 몰랐다). 도신이 말하기를 이것 밖에 없다고 하였다.{{)遂引祖(道信)至庵所, 요庵唯見虎狼之類. 祖乃擧兩手作怖勢, 師(法融)曰: 猶有這個在. 祖曰: 這個是甚 ? 師無語. 少選, 祖却於師宴坐石上書一佛字, 師覩之 然. 祖曰: 猶有這個在.---]:卷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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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융은 도를 깨친 후에 범,이리와 함께 살았는데, 도신이 두려움을 나타내는 손모양을 지어보이자, 법융은 [오히려 이것이 있다]고 답하였다. 이것이란 불성,불법을 표시한다. 그 후 도신은 법융이 앉아 있던 반석 위에 한 '불'자를 써서, 법융에게 아직 성인과 범부를 분별하는 의식이 있으며, 그것은 도를 깨달은 [절대경지]가 아님을 표시하였다. 그런 다음 법융에게 새로 가르쳐 말하기를 [모든 법문은 다 마음으로 귀결되고 수많은 묘한 덕은 모두 마음의 근원에 있다. 일체 계문,정문,혜문,신통변화가 모두 스스로 구족하여 그대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법융으로 하여금 [사려를 끊어버리도록] 하여, [벗어날 삼계도 없고, 구할 보리도 없음]을 알게 한 것이다. 법융이 (도신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후에는 뭇 새들이 더 이상 그에게 헌화하지 않았다. 이에 뭇 새들이 꽃을 물고 물지 않음이 하나의 공안이 되어, 후대의 선사들은 많은 게송을 지어 각기 다른 각도에서 그들의 견해와 경지를 표시하였다. 그 가운데 아주 정취가 있고 깊은 뜻(함온)이 담겨 있는 네 수의 시를 특별히 들어보자.
우두봉 정상은 겹겹히 구름에 잠겨 있는데, 홀로 앉아 묵묵히 이 몸을 기탁하도다. 뭇 새들이 오지 않아도 봄은 또 지나가고, 누가 암자에 찾아오는지 알지 못하도다.(설두현)
의자 하나 쓸쓸히 푸른 그늘에 비껴 있고, 그림그린 빗장과 소나무 문이 싸늘도 하구나. 게으른 융이 /평상심을 가지게 되니/, 새들이 꽃을 물어도 찾아 들 곳이 없구나.(조인명)
꽃은 피고 지니 새들은 슬피 울고, 암자 앞의 정경은 그대로지만 주인은 이미 옛사람이 아니도다. 도원을 지척에 두고도 찾지 못하여, 외로운 노에 그물을 걸치고 쓸쓸히 돌아온다.(장무진)
고요한 풍월이 저녘놀에 누워 있고, 새들은 더 이상 헌화하지 않는구나. /사람의 도리는 가난 때문에 다 없어지고/,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같이 부자집으로 향하네.{{)牛頭峯頂鎖重雲, 獨坐寥寥寄此身. 百鳥不來春又去, 不知誰是到菴人.(雪竇顯)一榻蕭然傍翠陰, 畵 松戶冷沈沈. 懶融得到平常地, 百鳥銜花無處尋.(祖印明)花落花開百鳥悲, 菴前物是主人非. 桃源咫尺無尋處, 一櫂漁蓑寂寞歸.(張無盡)寥寥風月臥烟霞, 百鳥從玆不獻花. 人義盡從貧處盡, 世情偏向有錢家.(夢菴信.《頌古聯珠通集》卷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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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융이 처음 도를 깨달았을 때에는 성인(초월,완전함,성스러움)에 대한 집착,법에 대한 집착(성집,법집)이 있었다. 즉 성자로 자처하였다. 남천보원의 비평과 같이 [도랑을 건너려고(그것 즉 성불을 위하여) 걸음걸음 부처의 계단을 올라갔다.] 그 결과 새들이 꽃을 물고 오는 상서로운 일이 있었다. 그러나 4조도신을 만나고 나서는 이미 성인과 범부라는 생각이 다 사라져 성인과 범부라는 분별심을 가지지 않고 성자로 자처하지 아니하여 보통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따라서 새들은 그가 성자임을 몰라서 그에게 꽂을 물어 올리지 않게 된 것이다. 위 네 시는 모두 이 방면으로부터 착상한 것이다. [우두봉 꼭대기가 겹겹이 구름에 잠겨있다]는 것은 우두산 봉우리가 구름 위에 높이 솟아 있다는 것인데, 법융이 이미 선의 최고경지 즉 [외로운 봉우리가 홀로 잠드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비유한 것이다. [홀로 고요히 앉아 이 몸을 기탁한다]는 것은 이러한 성인의 경지에서는 작위가 없다는 말이다. 봄은 이미 갔지만 새들은 꽃을 물고 오지 않는데, 왜냐하면 새들이 누가 성자인줄 분별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누가 암자에 왔는지 모른다]. 우두는 4조를 만난 후에 크게 확철대오하여, 마치 홍진을 간파한 은사 처럼, 보내지도 않고 맞아 들이지도 않으면서 편안히 자득하였다. [외로운 의자가 쓸쓸히 그늘에 비껴 있고, 그림 그린 빗장과 소나무 문에는 사람의 손길이 없다]는 것은 곧 이러한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법융이 성인과 범부의 구분에 떨어지지 않는 평상심에 이르러 보통사람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들이 꽃을 물고 찾아 들 곳이 없었다]. [꽃은 피고 지고 새들은 슬피우니, 암자 앞의 정경은 전과 같으나 암자의 주인은 전과 다르다]는 것은 종전에 꽃을 물고 오던 새들이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슬피 우는데, 왜냐하면 암자 앞의 정경은 그대로이지만 주인은 이미 달라졌기 때문이다. [도원을 지척에 두고도 찾지 못하고, 외로운 노에 어망을 지고 쓸쓸히 돌아온다]는 것은 나중의 참선인들이 법융의 깨달음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지척을 사이에 둔 도화원에 이르지 못한 채 단지 쓸쓸히 빈 손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몽암신은 법융이 도를 깨쳐 [고요한 풍월이 저녘놀에 기대 있는] 가나한(궁벽한) 은사가 된 후에, 새들은 곧 사람이 곤궁하면 의리가 끊기는 것처럼 더 이상 (금상첨화하여) 그에게 꽃을 바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네 수의 시는 모두 깊은 시의 맛과 선의 정취를 가지고 있다.(68. 1. 26. 《新生報≫ 副刊)
4. 六祖의 出家
선종은 비록 서토인도에서 싹이 텄지만 성장은 중국에서 하였는데, 6조를 거친 후에 가지와 잎이 더욱 무성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문화에 하나의 속성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관건은 6조에게 있다. 6조는 중국문화 속에서 살았고, 불교경론의 훈련과는 거리가 멀었다. 6조가 건립한 남종은 실은 중국문화의 다른 한 면이 드러난 것으로 인도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후인들은 그를 중국선의 건립자로 숭앙하게 되었다.
인도의 불교는 승려의 지위가 지극히 높아 사람들의 공양을 받았으며, 불교의 교의에는 또한 윤회와 인과응보설이 있어서 계율에서 불살생을 가장 중시하였다. 그러므로 경작을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경작을 할 때 호미와 쟁기가 지나면서 자연히 흙이나 풀 속의 벌레들을 살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고승은 심지어 천으로 물을 걸러서 마시기도 하였는데, 곧 살생으로 과보에 떨어지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6조는 출가하기 전에 나뭇꾼이었으며 황매사에서 법을 구할 때에는 또한 방아로 쌀을 찧었는데, 그것이 이후의 선종에 영향을 미쳐 참선인들은 모두 일을 하게 되었다. 백장회해는 더우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아야 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정신은 그가 만든 [백장청규]에 잘 나타나 있으며, 훗날의 표본이 되었다. 경작을 하게 되면 자연히 벌레를 죽이거나 다치게 되는데, 참선인들은 이에 대해 과보가 있을 것이라 믿지 않은 것 같으며, 심지어 귀종은 풀을 베면서 뱀을 죽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입세의/ 정신이 작용한 결과, 당무종 회창법란 때 사찰이 훼손되고 승려들은 환속당하여 불교는 크게 타격을 받았지만, 선종은 도량을 중시하지 아니하고 또한 일을 할 수 있어 공양을 받지 않고서도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세속 중에서도 여전히 수행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선종만이 /빼어날/ 수 있었는데, 그 관건은 또한 6조가 일을 했었다는 데 있다.
6조는 행자의 신분으로 의발을 전해 받았는데, 그가 정식으로 승려의 신분을 얻은 것은 광동의 법성사에서였으며, 그의 머리를 깍아준 사람은 인종법사였다.
[6조가 법을 받고 5조를 떠난 뒤 회집과 사회 사이에서 은거할 적에 남해에 이르러 인종법사를 법성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저녘 무렵 바람이 불어 찰대의 표기가 펄럭였는데, 두 중이 논쟁하기를 하나는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하나는 표기가 움직인다고 하여, 주고 받는 말이 이치에 맞지 않았다. 6조가 말하기를: '외람되나 제가 잠시 고매한 논쟁에 끼여도 되겠는지요? 그것은 바람이나 표기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이) 움직이는 것이지요.'---]{{)[六祖受法辭五祖, /令/隱於懷集四會之間, 屆南海隅印宗法師於法性寺, 暮夜風 刹幡,聞二僧對論, 一云風動, 一云幡動, 往復酬答, 曾未契理, 祖曰: 可容俗流, 輒預高論否? 直以風幡非動, 動自心耳.---]::《頌古聯珠通集》卷7
}}
인종은 6조가 말하는 것을 듣고서는 그를 위하여 삭발하여 주었다. 이 단락의 이야기는 또한 선종의 [바람과 표기]공안이 되었다. 세속적 관념에서는 바람이 불어 표기가 움직이는 것은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 불교의 이치에 따라 말한다면, 바람은 공계 혹은 법계를 대표하고, 표기는 유계 혹은 색계를 대표한다. 구름이 흐르고 바람이 일어나며 만물이 발생하고 인간의 일이 변화하는 것은 감각으로써 알 수 있는 색계 즉 현상이다. 바람은 왜 일어나고 구름은 왜 흘러가며 만물은 왜 발생하고 인간의 일은 왜 변화하는가하는 것은 감추어져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중은 말하기를 [표기가 움직인다]고 하였는데, 표기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바람이 불어서 움직이게 한 것으로, 만유의 변화는 본체가 움직이게 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이게 하는 힘은 보이지 않지만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표기가 움직이는 것은 바로 바람이 불기 때문인 것과 같은데, 그러므로 한 중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하였다. 6조는 생각하기를 [공]과 [유]가 일체이고, [색]과 [법]은 [일여]한 것인데, 사람들이 억지로 분별하여 이들 대립하는 단어가 있게 되었으며, 만약 어느 한 쪽에 치우쳐 [공]이라 하고 [유]라 하면 곧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이 움직인 것도 아니요, 표기가 움직인 것도 아니며 두 스님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공안을 가지고 후대의 선사들은 아주 많은 게송을 지어, 서로 다른 견해와 경지를 나타내었다.
[바람도 아니요, 깃발도 아니로다. 맑은 하늘이 무슨 일로 대나무를 흔드는가? 분명할 때에는 당연한 이치를 논할 필요가 없도다. 자재로운 한가한 사람은 바른 눈으로 볼지어다.]{{)[不是風兮不是 , 淸 何事 琅 ? 明時不用論公道, 自在閑人正眼看.]:圓通仙
}}
원통선선사는 6조의 의견에 찬동하였다. 바람이 움직인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인 것도 아니므로, [맑은 하늘]에 즉 구름도 고요하고 바람도 그쳤을 때 [낭간] 즉 대나무가 오히려 흔들거리고 있다. 두 스님이 만일 분명히 알았다면 즉 개오하였다면 이 [시비]를 논쟁하여 [당연한 도리를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스님의 논쟁은 이미 깨달아서 더 이상 번거로이 도를 구할 필요가 없는 [한가한 사람] 즉 6조가 지혜의 눈 즉 [정안]으로 판단(단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당청선사의 게송에서는 말하기를:
[바람과 깃발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나고 하니, 아득히 외 길이 끊어져 찾을 수가 없구나. 흰 구름은 본래 자취가 없으나, 가파른 낭떠러지에 깊고 깊이 떨어졌는가.{{)[不是風 不是心, 一路絶追尋. 白雲本自無 跡, 飛落斷崖深更深.]
}}
초당청선사는 겉으로는 6조의 의견에 반대하여, 바람이 움직인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인 것도 아니며, 또한 두 스님의 마음이 움직인 것도 아니라 여긴다. 이 [자성],[대전]은 [향상일로(위로 향하는 한 길, 높은 진리)]로서, 언어로써 말할 수 있거나 생각과 뜻으로써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자취로써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성]은 흰구름처럼 우연히 형상을 드러내지만 실질적으로는 종적이 없는 것이다. 6조의 이 말은 흰구름을 깊고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뜨려 버려서 이후의 참선인들이 궁극적인 경지를 찾아 깨달음을 얻을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또한 자득휘선사의 게송에서는:
바람인지 깃발인지 그대는 의심하지 말라. 풀이 우거진 속에 발길 가는대로 돌아온다. 왕도가 태평하면 꺼리는(금지하는) 것이 없다. 한들거리는 나비 한가한 꾀꼬리는 나무를 감돌며 난다.{{)[是風是 君莫疑,百草叢中信步歸. 王道太平無忌諱, 戱蝶流鶯 樹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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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득휘선사는 [색이 곧 공]이라 생각한다. 현상계 중의 일체는 모두 본체계가 작용하여 나타난 것이므로, 바람이 움직이는지 깃발이 움직이는지 사람들은 의혹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러면 곧장 옳은 것이요, 곧장 도를 증득할 수 있으니, 현상계로부터 본체계로 깨달아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풀들이 우거진데 발길 가는대로 돌아온다]고 하였다. [자성],[대전]은 마치 탄탄한 왕도와 같아서 태평무사하여, 사람마다 갈 수 있고 금지된 곳이 없다. 현상계의 현상은 본체를 떠날 수 없는 것이 마치 춤추는 나비와 날으는 꾀꼬리가 꽃나무를 감돌아 나는 것과 같다. 이 세 수의 시는 세 가지 다른 견해와 경지를 드러내고 있다.(67.9.5. 新生報 副刊)
5. 한송이 꽃에 다섯 꽃잎으로 피어난 조계선(한송이 꽃에 다섯 꽃잎의 조계선)
6조 혜능은 선종사에 있어 한낮의 태양과도 같은데, 그의 지위는 그 앞의 선종조사들을 넘어선다. 조계선은 중국에 유포된 뒤 동쪽으로는 조선,일본에 전해졌고, 근세에는 나아가 구미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나중의 5종2파는 모두 조계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것이 곧 [한송이 꽃에 다섯 꽃잎이 열린 것]인데, 다시 말해 6조로부터 조동종,운문종,법안종,임제종,위앙종 등 5종이 도출되었고, 송대에 이르러서는 임제종이 크게 성하여 다시 양기,황룡 2파로 나뉘었다. 그 세력은 불교의 기타 각종각파에 영향을 끼쳐, 거의 모든 교를 선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므로 후세에 [중국불교의 특색은 선에 있다]라는 논단이 생기게 되었다.
혜능대사는 더우기 선종사에서 전기적인 인물이다. 그의 속성은 노씨인데, 아버지의 이름은 행/도/이며 어머니는 이씨이다. 아버지는 본래 범양(하북 탁현)에서 관직생활을 했는데, 나중에 신주(광동 신흥현)로 좌천되었다. 혜능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남해로 이주하여 땔나무를 하여 생계를 꾸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글을 알지 못하였으며, 어떤 사람이 금강경을 외는 것을 듣고서 개오하였다고 한다. 그전에는 불교의 다른 경론들에 대한 교육(함영훈도)을 받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5조홍인이 금강경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서, 황매사에 이르러 5조에게 참배하고 부처가 되는 법을 구하자, 5조는 말하기를 [너는 영남사람이고 또한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하였다. 혜능대사는 대답하기를 [사람에게는 곧 남북이 있지마는 불성에는 남북이 없으며, 오랑캐의 몸과 승려의 몸은 다르지만 불성에는 무슨 차별이 있읍니까?] 하였다. 오조는 그의 상근기로서의 자질과 용감성을 인정하여 그를 방아간에 보내어 쌀을 찧게 하였다. 이 때에 혜능은 여전히 승려의 신분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당나라에서 중은 출가할 때에 고시를 거쳐 출가가 허락되어야만 도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8개월 동안 쌀을 찧고 나서, 게송을 지은 경지가 신수상좌 보다 높아서 마침내 행자의 신분을 가지고 5조로부터 의발을 전수받아 선종의 종주가 되었다. 그 후 의발 때문에 야기되는(될) 박해를 피하기 위해 사회.회집 일대에 숨어서 사냥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고기에 섞인 나물을 먹고 지냈다. 오랜 동안의 은거를 거쳐 비로소 광동에 이르러 출가한 뒤 조계에 머물면서 13곳이나 사찰을 세웠다. 조계선은 따라서 세상에 드날리게 되었는데, 왕유가 지은 <6조혜능선사비명>에서는 그의 공덕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도덕이 천하를 덮고(두루 미치고) 명성이 널리 퍼져,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성인이 가신지 오래되어, 몸에 칠을 하고 귀를 뚫는 나라에서도, 머나먼 뱃길을 마다 않고, 모두 /용과 코끼리의 모습에 눈을 부비고자, 고래의 입에서 몸을 잊고자/ 하여, 문 밖에 늘어 서고, 법상 앞에 가부좌하고 앉았다.{{)[旣而道德遍覆, 名聲普聞, 泉館卉服之人, 去聖歷劫, 塗身穿耳之國, 航海窮年, 皆願拭目於龍象之姿, 妄身於鯨 之口, 騈立於戶外, 趺坐於牀前.---]:《全唐文》卷327,《王右丞集》卷25)
}}
대사의 교화 아래 많은 사람들이 [사냥하는 것을 그만두고, 굿을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육식을 끊고 승려들의 식사법을 본받았으며, 물고기 잡는 일을 그만두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 40여년 동안 설법하고 교화하여, 마침내 육신성불하였는데, 대사가 앉아서 입적에 든 남화사는 남방의 불교성지가 되고, 조계는 선종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와 같이 6조의 이야기는 전기적 색채가 아주 풍부하다. 후대의 참선인들은 6조가 게송을 가지고 의발을 전수받은 것을 공안으로 삼아 노래하기를:
육조는 그 때 사내답지 못했으니, 남에게 부탁하여 벽에다 시를 써서 스스로를 기만했다. 시에서는 분명히 아무 것도 없다 하고서는, 오히려 발우를 전해 받았구나.{{)[六祖當年不丈夫, 人書壁自塗糊. 明明有偈言無物, 却受他家一鉢盂.]:祖印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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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백 승려 가운데 한 사람을 가려서, 본래 아무 것도 없는데 서로 인가하였도다. 한밤 중에 의발을 전수받고 조계로 떠나가니, 쇠나무에 꽃이 피니 때이른 봄이구나.{{)[七百僧中選一人. 本來無物便相親. 夜傳衣鉢曹溪去, 鐵樹開花二月春.]:草堂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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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의 법석에 수많은 무리가 있었어도, 몇 마디 말에 기틀을 드러냈으니 슬픈 일이로다. 본래 아무 것도 없는데, 청천백일이 구름에 가렸구나.{{)[黃梅席上數如麻, 句裡呈機事可嗟. 直是本來無一物, 靑天白日被雲遮.]:西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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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인연으로 만남은 유래가 있는데, 명경은 대가 아니라고 몰래 말을 던지네. 소림이 무너져서 살길을 찾아서, 노젓는 소리 물 속의 달을 흔들며 창주를 지나가네.{{)[師資綠會有來由, 明鏡非臺語暗投. 壞却少林窮活計, 櫓聲搖月過滄洲.]:葛廬覃.《頌古聯珠通集》卷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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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의 앞 두 구는 반어법으로, [육조가 그 때 장부가 아니었다]는 것은 실제로는 그 때 6조가 장부였음을 칭찬한 것이고, [사람을 시켜 글을 써게 하니 스스로 멍청하다]는 것은 전하는 말에 의하면 6조의 게송은 강주별가였던 장일용에게 대신 써 주도록 부탁한 것이라 하는데, [사람에게 부탁하여 벽에 글을 쓴다]는 것은 이를 가리킨다. [스스로 멍청하다]는 것은 곧 어리석지 않다는 뜻인데, 혜능은 게송에서 말하기를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하였는데 결과는 오히려 의발을 전해 받았으므로,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게송에서 한 물건도 없다고 해놓고 도리어 남에게서 발우를 받았다]는 것은 풍자이지만, 실제로는 그가 게송으로 선의 경지를 표현하여 의발을 전수받을 수 있었음을 찬미한 것이다. 둘째 수는 5조가 칠백이나 되는 승려들 속에서 [본래 아무 것도 없다]는 사람을 가려내어 의발을 전수해 준 것이 마치 쇠나무에서 꽃이 피는 휘귀한 일과 같이 기특하다는 것을 노래하였다. 셋째 수에서는 생각하기를, 황매 홍인의 법석에 승려들이 마치 삼대처럼 많은데도 단지 6조가 지은 게송만이 현묘한 /기틀/을 담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보잘 것 없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로다. 불성이 만약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것]이라면 6조가 말한 것도 쓸 데 없는 것인데, 6조가 말함으로써 사람들이 곧 이러한 [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마치 청천백일이 구름에 가려진 것과 같다. 넷째 시의 앞 두 구절은 5조와 6조가 사제인연으로 만난 것은 유래가 있었는데, 이전의 불조들에게도 이미 [예정(懸記)]이 있었으며, 6조의 게송 중의 [명경은 또한 대가 아니다]라는 말이 오조의 깨달음과 암암리에 투합했음을 찬미한 것이다. [소림이 무너지니 살길이 막연하여, 노소리 요란하게 달을 흔들며 창주를 지나간다]에서 앞 구절은 반어법으로, 5조가 노를 저어 6조를 강을 건네 줄 때 /이미 달마가 창립한 선종의 운명이 광대하게 될 것이 결정되었는데, 왜냐하면 달마가 숭산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면벽을 했었기 때문이다./ 한송이 꽃에 다섯 꽃잎이 피어난 것은 혜능이 달마가 창건한 선종을 광대하게 한 일을 가리키는데, 그러나 혜안으로 [영웅]을 알아 본 사람은 5조 홍인이고, 6조의 전설적인(전기식의) 업적(성취)은 모두 5조가 끌어낸 것이었다.(67. 10. 2. 신생보부간)
6. 聖諦 또한 위하지 않은 靑原行思(참된 진리 조차 배척한 청원행사)
청원행사는 강서사람으로 속성은 유씨이다. 그는 6조의 제1대 제자인데, 나중에 강서 길주의 청원산 정거사에 머물렀으므로 선종의 (전)등사에서는 그를 청원행사라 칭하였다. 5종 가운데 조동,운문,법안은 그의 법계에서 나온 것이다.
행사가 광동으로 가서 6조혜능을 친견하자 6조가 물었다. [그대는 여태껏 무엇을 했던고?] 행사가 대답하기를 [부처님의 말씀도 행하지 않았읍니다.]〔성제역불위!〕 육조는 다시 묻기를 [어느 단계에 떨어졌는고?] 행사가 말하기를 [진리도 따르지 않았는데, 무슨 단계가 있겠읍니까?] 하였다. 육조는 그는 아주 신임하여 대중의 수좌로 삼았다. [일찌기 무엇을 했었느냐?]라는 것은 6조가 행사의 수행과정을 물어 본 것이다. 불법에는 세제와 성제의 구별이 있는데, 세제는 세속적인 이치(리)와 일(사)를 가리키고, 성제는 성자가 본 진리를 가리킨다. [성인의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사가 이미 성인과 범부라는 견해를 다 떨어버렸으므로 성인이 되려거나 불도를 추구하는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 왔느냐?]라는 것은 6조가 행사의 수행이 무슨 과위 즉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물은 것이다. [성스런 진리도 추구하지 않으니], 이미 일체의 분별심이 없어져, 성인도 없고 범부도 없으니 자연히 차별관념이 있는 어떤 단계에도 떨어지지 않게 된다. 달리 말하면 행사는 이미 수도의 최고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나중의 단하순선사는 시로써 행사의 선적 경지를 밝힌 바 있다.
우뚝 솟아 있어 바른 눈으로도 엿보기 어려우며, 고금을 멀리 벗어나서 무엇에 견줘 보기도 어렵도다. 옛 궁전에는 이끼만 끼어 있고 지키는 사람 없으며, 푸른 오동에는 달만 걸려 있고 봉황은 깃들지 않는다.{{)卓爾離將正眼窺,逈超今古類離齊.苔封古殿無人侍,月鎖蒼梧鳳不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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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눈(정안)은 정법안장의 준말인데, 청정법안이라는 뜻으로, 바른 법을 투철하게 보는 혜안을 가리킨다. 행사는 남달리 특출한 선사로서, 도달한 경계는 이미 정안으로도 엿보기(몰래 헤아리기) 어렵다. [고금을 멀리 벗어나서 무엇에 견줘보기도 어렵다]는 것은 행사가 이미 멀리 고금을 초월하고 성인과 범부의 견해를 다 제거하여, 그의 수행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옛 궁궐에 이끼만 둘러 있고 지키는 사람이 없다]에서 [낡은 궁전에는 이끼만 끼어있다]는 것은 절대경지를 형용한 말인데, 행사는 이러한 경계를 깨달을 수 있어, 이미 [외로운 봉우리가 홀로 자는] 경지에 이르러, 아무도 그와 동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푸른 오동에는 달만 걸려 있고 봉황은 깃들지 않는다]는 것은 행사는 결코 이 성스런 경지 중에 머물려 하지 않고, 세상에 들어가 세상을 구하려 하는데, 그것은 마치 봉황이 푸르른 오동가지 위에 영원히 머물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행사가 후세에 유전시킨 것은 [노릉의 쌀값] 공안이다. 그가 청원에서 설법할 때에 어떤 스님이 [어떠한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라고 묻자, 행사는 [노릉의 쌀값은 얼마인고?]라고 대답하였다. 이 대답은 참으로 괴이하기 짝이 없는데, 노릉지방의 쌀값은 세속의 일로서, 불법의 대의 즉 출세의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후대의 선사들은 이 공안에 대하여 여러모로 이해하였다. 황룡혜남선사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노릉의 쌀값은 해마다 달라지는데, 길에서 듣고 허투이 전하면 다 옳지는 않다. 대의는 갈래길에서 물어서는 안되고, 높고 낮음은 마땅히 본래 사람을 만나야 된다.{{)盧陵米價逐年新, 道廳虛傳未必眞. 大意不須岐路問, 高低宜見本來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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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혜남은 행사의 말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노릉의 쌀값은 해마다 다르니, 쌀을 사려면 직접 시장에 가서 물어봐야 하고, 길에서 듣고 길에서 전하는 값은 참된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으로, 도를 구할려면 진지하게 참구해야 함을 비유한 말이다. [대의는 갈래길에서 물어서 안된다]는 것은 불법의 대의는 다방면으로(여러모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물어서는 안되고, 조금이라도 불법을 얻으려면 본래의 사람 즉 본체,불성을 만나봐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장령탁선사는 생각하기를 청원의 노릉쌀값의 대답은 사람의 사려분별(정식과 의상)을 끊어버리고 망령되이 추측하지 못하게 한 것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음과 같은 시로써 의견을 나타냈다.
노릉의 쌀값이 각지로 퍼져서, 크게 부르고 가볍게 대답함에(값을 흥정하는 일이) 힘이(에) 미치지 못한다. 눈앞에 세상일은 상관하지 않는데도, 유유히 남북으로 부질없이 헤아리는구나.{{)盧陵米價播諸方, 高唱輕酬力未當. 親面不干升斗事, 悠悠南北 猜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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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릉의 쌀값이라는 이 공안이 각지에 전파되어 [높이 부르거나] [가볍게 응답하거나] 즉 깊은 것을 연구하거나 낮은 것을 분명히 말하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마땅하지 못한데, 왜냐하면 행사와 승려가 대면하여 대답(문답)한 것은 한 되의 쌀, 한 말의 쌀이라는 세속의 일에 관계되지 않는 것이므로, [유유히 남북이(으로) 헛되이 헤아린다]는 것은 남북의 선인들로 하여금 이리저리 헤아리고 상상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삼조종선사는 [노릉의 쌀값] 대답이 의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의 시에서는 말하기를:
노릉의 쌀값을 아는가 모르는가? 본래 서로 사고 파는 것은 양쪽이 다 손해가 없어야 한다. 가게에 들어갔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자는 끝까지 깍으려 하기 때문이다.{{)盧陵米價知不知? 合下相酬兩莫虧. 君信入전空返者, 到頭只是愛便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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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릉의 쌀값을 우리가 아는가 모르는가? 노릉쌀의 가격은 한 번 물어보면 알 수 있고, 불법의 대의도 한 번 물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본래 사고 파는 것은 양쪽이 다 손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가격이 합의되면 돈을 주고 쌀을 가져오니 양쪽이 다 모자람이 없다는 것인데, 비유하자면 쌀값은 쉽게 알 수 있고, 쌀값을 안 후에는 쌀을 사는 행동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불법의 대의를 물어 분명히 안 다음에는 수행의 실천 공부가 있어야 한다. 알고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불법을 모르는 것과 같다. [가게에 들어갔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은 단지 깍으려고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대는 믿어야 한다]라는 것은 쌀을 사려고 시장에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결코 쌀값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깍으려고만 하여 흥정만 하다가 결국 쌀을 사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불법대의를 묻는 사람도 편한 것만 좋아해서 도를 깨닫는 지름길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찾고 묻기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으면 그 결과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함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원은 비록 선종의 3대 유파를 열었지만 선학에 있어서는 별로 많은 것을 전하지(유전시키지) 못하였는데, 단지 이 공안만이 길이길이 암송되고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67.10.30. 新生報 副刊)
7. 남악회양과 [한 물건이라고(과 같다고) 해도 맞지 않다]
남악회양은 속성이 두씨이고, 금주사람인데(금주는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지금 섬서 안강현의 금주이고, 하나는 봉천 금현의 금주로서, 다 당대에 있었던 곳이다. 회양대사의 본적은 어디 속하는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두 곳이 다 그가 출가한 형주에서 아주 멀기 때문이다), 형주의 옥천사에서 출가하였다. 그는 먼저 율종을 익힌 뒤 다시 6조와의 인연에 의해 선문으로 들어갔으며, 그 문하에서 마조대사가 나와서 임제종과 위앙종의 개창주(개파영수)가 되었다. 《경덕전등록》5권에 그가 깨달음에 이른 경과가 기록되어 있다.
하루는 스스로 탄식하기를: [/무릇 출가한 사람이 무위의 법을 행하면, 천상인간보다 나으리라./] 그 때 한 동학이 /탄연히/ 스님의 뜻이 고매함을 알고는, 스님에게 같이 숭산의 안화상을 친견할 것을 권하였는데, 안이 계발해 주었다. 이에 곧장 조계로 가서 육조를 참배하였다. 육조가 묻기를: [어디서 왔는가?] [숭산에서 왔읍니다.] 조사가 묻기를: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조사 이르기를: [그래도 닦아 증득할 수 있는가?] [닦아서 증득함이 없지는 않으나, 더럽혀지지도 않습니다.] 조사 이르기를: [단지 이와 같이 더럽히지 않는 것이 모든 부처가 간직(호념)하는 것이니, 그대도 이와 같고, 나도 이와 같다. 서천의 반야다라는 예언하기를: '그대의 발 아래 망아지 한마리가 나와서 천하사람들을 밟아죽이리라.' 아울러 그대 마음에 간직하고, 섣불리 말하지 말라.] 스님이 환하게(활연히) 깨닫고는, 곁에서 15년이나 모시다가, 당 선천2년에 비로소 남악으로 가서 반야사에 머물렀다.{{)[一日自嘆曰: 夫出家者爲無爲法, 天上人間無有勝處. 時同學坦然, 知師志高邁, 勸師同謁嵩山安和尙, 安啓發之. 乃直詣曹谿參六祖, 祖問: 什 處來? 曰: 嵩山來! 祖曰: 什 物? 恁 來? 曰: 說似一物卽不中. 祖曰: 還可修證否? 曰: 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祖曰: 只此不汚染, 諸佛之所護念, 汝旣如是, 吾亦如是. 西天般若多羅讖: 汝足下出一馬駒, 殺天下人, 在汝心, 不須速說. 師豁然契會, 執侍左右, 一十五載, 唐先天二年, 始往南嶽, 居般若寺.]
}}
이것은 회양이 도를 구한 과정에 대한 간단한 서술이다. 6조는 그에게 단지 [인가]만 하였고, 아무런 가르침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는 전등사의 기록이 상세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고, 또한 선조사들이 비밀스런 전수방식을 많이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종사적을 연구하는 다른(그 밖의) 사람들은 신화에 가까운 참기 즉 예언에 대하여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은 억지로 갖다 붙인 것이 아니면 위조라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를 가지고 말하면 고금동서에 모두 이러한 유의 사례들이 있다. 여기서는 마조가 6조의 참기 중의 [망아지]인지 아닌지는 논하지 않고, 다만 남악회양의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다]는 공안을 연구토론하도록 한다. 자성묘도와 본체대전은 그 성질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이는 황벽단제선사가 말한 것과 같다.
이 마음은 무시 이래로 일찌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푸르지도 않고 /누렇지도/ 않으며, 형체도 없고 모습도 없으며, 유와 무에 속하지 않고, 새로움과 낡음을 헤아리지 않고,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일체의 제한과 언어와 자취를 넘어선다.{{)[此心自無始以來, 不曾生, 不曾滅, 不靑不黃, 無形無相, 不屬有無, 不計新舊, 非大非小, 超過一切限量名言 跡.]:《黃檗山斷際禪師傳法心要》
}}
이 문장은 회양의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다]는 말을 충분히 해석하였다. 자성은 실로 어떤 한 물건으로도 비유하여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닦고 증득함도 곧 없지는 않다]는 것은 회양이 도를 깨닫고 도를 구하는 것이 닦음도 있고 증득도 있다고 생각한 것인데, 그 문맥을 살펴보면 결코 별로(매우) 중시한 것은 아니며, 중점은 [오염되지도 않는다]는 데 있다. 대개 [오염되지 않아서] 심지의 광명과 순결을 간직하는 것이 비로소 가장 중요한 일이다. 6조는 이르기를: [다만 이렇게 오염되지 않는 것이 모든 부처가 호념한 것이며, 그대도 이와 같고, 나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은 곧 [인가]하는 말인데, 회양의 견해가 잘못됨(틀림.차실)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불인현선사는 오염되지 않음의 뜻을 노래하여 밝혔다.
옥은 연못 속에 있고 연꽃은 물 위로 나오니, 더럽힘은 /비유를 끊을 수 없도다/.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이 받아 들인다면(승당), 동정(호)의 하루밤에 가을바람이 일어난다.{{)[玉在池中蓮出水, 汚染不能絶方比. 大家如是若承當, 洞庭一夜秋風起.]:《頌古聯珠通集》卷9
}}(송고련주통집권9)
사람마다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마치 옥이 연못 속에 있어도 더럽혀지거나 손상되지 않으며, 연꽃이 진흙에서 나와도 그 깨끗함이 더럽혀지지 않는 것과 같다. 이로써 인성의 광명과 지선을 비유하였다. 그러나 이 지극히 선하고 밝은 본성은 항상 욕망과 바깥 환경으로 인하여 오염되는데, 이러한 오염을 없애면 자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회양의 [오염되지 않는다]는 말은 실로 가장 직접적이고 명쾌한 도에 들어가는 법칙이며, 그 밖의 것은 부처를 향해 구하든 경전을 향해 구하든 스님을 향해 구하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남에 의존하여 이해하는 것은 좌선이거나 수행이거나를 막론하고, 만약 이 마음을 깨끗하고 빛나게 할 수 없다면, 여전히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로소) [오염은 /방비/를 끊을 수 없다] 즉 오염되지 않는 것은 기타의 방법으로 비유할 수 없다고 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이 받아들인다면(승당)]하는 말은 참선인이 회양이 말한 것처럼 [물들이지 않음]의 방식으로써 대사를 승당한다면 그 자리에서(바로,당장) 깨닫는다는 것이다. [동정호의 하루밤에 가을바람이 인다]는 구절의 뜻은 분명하지 못한데, 한편으로는 능히 지극한 도를 깨닫는 것은 마치 가을바람이 홀연히 일어나서 초목을 시들게 하는 것처럼 참모습(진제)을 드러낸다고 해석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오염되지 않을 수 있다면 본체자성이(을) 스스로(저절로)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 마치 가을바람이 동정호의 파도를 일으키는 것과 같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정호는 [본성의 바다(성해)] 즉 자성을 상징한 것이다. 자세히 생각하면, 응당 후자의 해석이 비교적 좋은 것 같은데, 이와 같이 해석하면 동정 두 글자가 비로소 공허함에 떨어지지 않게 된다. 불국백선사는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다]는 말을 노래하여 밝혔다.
숭산 꼭대기에서 어떻게(이렇게) 와서(왔지만), 한 물건이라도 맞지 않다는 것은 일찌기 먼지가 되었네. 곧 남악으로 돌아가 벽돌을 갈았는데, 그런데 망아지가 바람을 좇아 돌아오더라.{{)[嵩頂來來恁 來, 不中一物早塵埃, 便歸南嶽磨 片, 照得馬子追風回.]:同上
}}
[숭산 정상에서 오고 와서 이렇게 왔으니]하는 구절은 이중의 경계를 가지고 있는데, 표면적으로는 회양이 숭산에서 와서 이와 같이 6조를 친견함을 말하고, 실제로는 회양이 이미 깨닫고 왔다는 말이다. 숭산 꼭대기는 외딴 봉우리가 홀로 잠듦 즉 성위에 깨달아 들어갔음을 나타내고, [이렇게 왔다]는 것은 이와 같이 왔다는 것이다. [한 물건이라도 맞지 않다는 것은 일찌감치 먼지가 되었다]는 말은 절대경지는 말로써 논설할 수 없는 것이므로 부처는 [말할 수 없다]고 하였고, 선가에서는 [말 길이 끊어짐]을 표방하였는데, 지금 회양은 말하였으니, 이미 성스런 경지(성경)가 아니며, [/풀밭에 빠진/] 이야기가 되어 알음알이의 층차에 떨어져 일찌감치 먼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 두 구절은 /선적 이치(선리)/가 지극히 깊다. 아래 두 구절은 단지 회양이 남악의 반야사에 이르러 거울을 만든다고 벽돌을 갈아서 마조를 깨우친 일과 [비록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다]는 것은 관계가 없음을 노래하여 밝혔다. 보녕용선사의 게송은 전체 공안의 의미를 노래하여 밝히고 있다.
뿔난 머리를 치켜 들고는 이렇게 와서, 철위산을 모두 들이받아 연다. 염부제에서는 사람을 무수히 밟아 죽이고, 깊은 구름 속에 코를 박고는 끌어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戴角擎頭與 來, 鐵圍山嶽盡衝開. 閻浮踏殺人無數, 驀鼻深雲 不回.]:《頌古聯珠通集》卷9
}}
회양이 숭산에서 도를 깨친 후에 6조에게 와서 참배한 것은 마치 [소]가 머리를 치겨들고 뿔을 앞세워 온 것과 같은데, 이 [소]는 곧 [자성]을 상징한다. 이 [소]의 힘은 묘용이 무궁하고 신통이 광대하여 비록 철위산과 산악이라도 깨뜨릴 수 있다. 염부는 곧 염부제의 음역인데, 섬부주라고도 칭하며, 우리들이 사는 곳을 가리킨다. 밟아 죽인다는 것은 반어법으로 마조의 교화(도화)를 가리키는데, 마조는 중국에서 교를 흥하게 하고 종파를 세워 무수한 사람을 제도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도리어 [소에게 가야금을 타 주는 것]과 같아서, 전혀 이 공안에 의하여 계시를 얻지 못하여 고개를 돌리려 하지 않는다. [깊은 구름 속에 코를 쳐박고서 끌어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이 두 사람의 교화를 저버렸다는 말이다.
8. 신회와 [오경에 뒤척임]
돈황에서의 두루말이들의 발견은 근대 학술계의 큰 일인데, 이들 [명사석실] 속에 감춰져 있던 천여년이나 되는 당나라의 사본들은 그 가운데 아주 많은 불교경전들이 있으며 또한 선종에 관한 것들도 적지 않다. 호적선생은 [두루말이 중의 신회화상의 유저에 근거하여 신회의 사상을 크게 선양하였는데, 그는 신회의 공적(헌)을 논하여:
이와 같이 중요한 인물을 후일 선종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종종 소홀히 하였다. 오히려 두 이름없는 스님들(행사와 회양)은 후배들의 세력에 의하여 선종의 정통이 되었는데, 이것은 역사에서 가장 불공평한 일들 가운데 하나이다.{{)《호적선학안》제3집권4.해외독서기
}}
사실 선종의 (전)등사에는 결코 신회의 공헌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그는 남종과 정통을 다투어 혜능의 지위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이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신회는 낙양 하택사에서 /숭능의 진당/을 세웠는데, 병부시랑 송정이 비를 세웠다. 신회는 종맥의 순서를 정하고, 여래로부터 서역의 조사들 외에 중국 6조의 영정을 모두 그렸으며, 태위 방관이 육엽도의 서문을 지었다.{{)[會於洛陽荷澤寺, 樹崇能之眞堂, 兵部侍郞宋鼎爲碑焉. 會序宗脈, 從如來下西域諸祖外, 震旦凡六祖, 盡圖회其影, 太尉房琯作六葉圖序.]:《頌高僧傳卷8.慧能傳》
}}
선종의 /전/등사에서는 이 공헌을 또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로 인하여 스스로 심인을 전하여, 낙양에 교화를 펴고, 그 종지를 정하였다. 남능북수가 신회로부터 현양되어, 조계의 지맥이 비로소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因此自傳心印, 演化東都, 定其宗旨, 南能北秀, 自神會現揚, 曹溪一枝, 始芳宇宙.]:《祖堂集》卷3
}}
조사가 입적한 뒤 20년 동안 조계종지는 형.오지방에서 침체되고, 숭악의 점문은 진.낙에서 성행하여, 곧 서울까지 들어갔는데, 천보 4년에 바야흐로 양종으로 확정되었다.{{)[祖滅後二十年間, 曹谿宗旨 廢於荊吳, 嵩嶽漸門盛行於秦洛, 乃入京, 天寶四年, 方定兩宗.]:《景德傳燈錄》卷5
}}
이 두 최초의 선종사에서는 모두 그가 남종선학을 선양한(표양) 공로를 인정하였으며, 송대에 남종이 크게 성한 후에 《송고승전》에서는 신회의 공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잇달아 낙양에서 크게 선법을 행하여 명성을 드날렸다. 처음에는 양경(장안과 낙양) 사이에서는 모두 신수를 으뜸(종)으로 삼았으니, /마치 겁없는 물고기(다랑어)가 늪의 용에 붙어 있는 것과 같았다./ /(신회는) 6조의 종풍을 깨닫고 나서 그 점수의 방법을 소탕해 버렸다./ 남북 2종이 이 때에 처음으로 나뉘어졌다. /보적의 정에 이르러 가득찬 이후에 공허하게 된 것이다./---신회가 혜능조사의 종풍을 부연하고 현발한 것은 신수의 /문/을 적막하게 만들었다.{{)[續於洛陽大行禪法, 聲彩發揮, 先是兩京之間, 皆宗神秀, 若不 之魚 附沼龍也. 從見會明心六祖之風, 蕩其漸修之道矣. 南北二宗, 時始判焉. 致普寂之庭, 盈而後虛.---會之敷演顯發能祖之宗風, 使秀之門寂寞矣.]:《卷8.神會傳》
}}
신회의 지위에 관해서는 이미 정론이 있어서, 근본적으로 호적이 논증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돈황에서 출토된 기록들은 단지 신회가 남종의 종풍을 선전하기 위해 노력한 상황을 보여줬을 따름이다.
신회는 6조의 제자로서, 속성은 고씨이고, 양양(지금의 호북 양양현)사람이며, 당대에 서경의 하택사에서 설법하였므로 하택신회라 불렸다. 《경덕전등록》권5에서는 그가 6조를 친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친견하자 6조가 물었다. [선지식은 멀리서 오느라 크게 고생하였는데, 근본(그대 본분)은 가지고 왔는고? 만일 근본(본분)이 있다면 /그대의 주인이 될 터이니(식주에 합할 것이니)/ 한번 말해 보아라.] [머무름 없음을 근본으로 삼아서(삼고,) 보는 것이 곧 주인입니다.] 조사 이르기를: [이 중놈이 /어디서 줏어듣고 지껄이느냐/.] 바로 지팡이로 후려쳤다. 신회(스님)는 맞으면서 생각하기를: [대선지식은 몇 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데 오늘 만났으니 어찌 목숨이 아까우랴, 지금부터 곁에서 모시리라.] 어느날 6조가 대중에게 고하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자도 없으며, 등도 없고 얼굴도 없다. 여러분들은 알겠는가?] 신회(스님)가 곧 나아가 말하기를: [모든 부처의 본원이고, 신회의 불성입니다.] 6조가 이르기를: [너(그대)에게 이름도 없고 자도 없다고 했는데, 너는 본원불성이라 부르는구나.] 신회(스님)가 절하고 물러나왔다{{)[謁六祖, 祖曰: 知識遠來大艱辛, 將本來否? 若有本, 則合識主, 試說看? 師曰: 以無住爲本, 見卽是主. 祖曰: 這沙彌爭合取次語, 便以杖打. 師於杖下思惟曰: 大善知識歷劫離逢, 今旣得遇, 豈惜身命, 自此給侍. 他日祖告衆曰: 吾有一物, 無頭無尾, 無名無字, 無背無面, 諸人還識否? 師乃出曰: 是諸佛之本源, 神會之佛性. 祖曰: 向汝道無名無字, 汝便喚本源佛性. 師禮拜而退.]
}}.
신회는 6조에게 맞을 때 [깨친](발명) 것은 없고, 단지 마땅히 받아야 하는 편달로 간주하여, 그의 도를 향한 정성을 표시할 수 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6조에게 한 답변에는 /[말많은 스님]/이라는 느낌이 크고 결코 투철한 깨달음의 경지는 없다. 신회의 선학은 현재 《신회어록》 즉 돈황의 두루말이 가운데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그 한 두 가지를 엿볼 수 있다. 그가 무념무상을 해석한 것은 대체로 6조의 사상에 부합하며, [돈],[점]의 동이를 분별한 것은 남북양종이 정통을 다툴 때에 마땅히 일대 공헌을 하였다. 신회는 [돈]과 [점]의 구별을 논하여:
원법사가 물었다. [이와 같은 교문이 어찌 불법이 아닌가? 무엇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가?] 신회가 답하였다. [모두 돈과 점이 다르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 6조대사는 하나하나 모두 말하는 것이(말하되) 단도직입적이고(단칼에 바로 들어가고), 곧바로 깨쳐 본성을 보고, 단계적인 점수를 말하지 않았다.]{{)[遠法師問: 如此敎門, 豈非是佛法? 何故不許? 和上(神會)答: 皆爲頓漸不同, 所以不許. 我六代大師, 一一皆言, 單刀直入, 直了見性, 不言階漸.---]:《胡適禪學案.新校定的敦煌寫本神會和尙遺著兩種》
}}
이로부터 [돈][점]의 차이는 6대조사의 전수상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6조대사는 모두 돈오를 주장하고(주로 하고) 점수를 주장하지 않았는데, 이로써 /신회가 사승의 전수에 합하지 않았음을 공격하였다/. 신회는 또한 말하기를:
발심하는 데에는 돈과 점이 있고, 미혹하고 깨달음에는 빠르고 늦음이 있으니, 미혹함은 여러 겁이지만 깨달음은 눈깜짝할 사이이다. 비유하자면 한 타래의 실이 그 수가 한량없지만, 합하여 새끼를 만들어 나무 위에 얹어두고 예리한 칼로 내리치면 일시에 모두 끊어진다. 실오라기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의 칼을 이겨내지 못한다. 보리심을 발하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다.{{)[發心有頓漸, 迷悟有遲疾, 迷卽累劫, 悟卽須臾. 譬如一 之絲, 其數無量, 若合爲繩, 置於木上, 利劍一斬, 一時俱斷, 絲數雖多, 不勝一劍. 發菩提心人, 亦復如是.]:同上
}}
이것이 신회가 돈오를 주장한 이유인데, 대개 돈오라야 비로소 /하나를 깨치면 모두를 깨칠 수 있다/. 이로써 사람들에게 좌선을 가르치고, 마음을 집중하여 선정에 들어가고, 마음을 한 곳에 머무르게 하여 깨끗함을 보고, 마음을 일으켜 바깥을 관조하며, 마음을 추스려 안으로 증득하는 북종의 형상에 집착하고 뜻을 짓는 것은 점수에 떨어져서 견성할 수 없다고 힘써 배척하였다. 이것이 신회 선학의 대요이다. 애석하게도 신회 계열은 5대(전) 이후 규봉종밀이 화엄의 5조가 됨으로써 법맥(계파의 맥)이 끊어지게 되었으므로, 공안을 연출하지 못하였다.
신회에게는 돈황 두루말이 가운데 보존되어 있는 어록 외에 또한 <5경전> /게송/이 남아있는데, 호적의 고증에 의하면 <대승5경전>과 <남종정사5경전>을 모두 신회의 작품이라 하는데, 기실 틀림없이 확정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하택화상5경전>이 가장 믿을 만하며 그 나머지는 단지 문구가 서로 비슷하고 뜻이 서로 유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완벽/한 <1경전>을 아래와 같이 적어본다.
일경초에 열반성에서 진여를 본다. 망상은 공이요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있지 않다고도 말하지도 않고 없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더럽거나 깨끗함이 아니며, 공허함도 떠난다. 뜻을 짓지 않으면 남김 없음에 들어간다. /본성을 깨달아 알면 바로 해탈인데/, 힘들게 좌선하여 공부할 필요가 없도다.{{)[一更初, 涅槃城裏見眞如. 妄想是空非有實, 不言未有不言無. 非垢淨, 離空虛. 莫作意, 入無餘. 了性卽知當解脫, 何勞端坐作功夫.]:同上. 또한 巴宙가 편輯한 《敦煌韻文集》三一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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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시가 노래하고 있는 것은: (1)좌선하여 마음을 머물게 하고 깨끗함을 보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므로 왜 힘들게 단정히 앉아서 공부하는가 하였다. (2)무심하게 도에 들어갈 것(무념입도)을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뜻을 짓지 말라고 하였고, 또한 이르기를 /본성을 깨우치면 곧 바로 해탈임을 안다/고 하였다. (3)도체의 성질은 유도 아니고 공도 아니며, 깨끗함도 아니고 더러움도 아니라고 노래하(여 밝히)고 있다. 전체 시의 글 뜻은 명백하고 직설적으로 풀이하였는데, [신회가 혁명을 선전하는 책자]라고 단정한 호적의 말은 대체로 틀리지 않다.
이 밖에 /한 번 제기할 만한 것은/ 종전에 중국문학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詞가 개원천보 이전에 일어났을(생겼을, 시작되었을) 수 없다고 여겨, 이백의 <억진아>와 <보살만>을 의탁한 작품이라 의심하였다. 그러나 신회의 <5경전>은 /같은 가락이/ 매우 많은데, 호적은 이를 /민간의 속어(이구)에 근거하였으며 가락이 사를 이룬 것이라 생각하여/, 사의 기원은 마땅히 개원천보 /년간/이라 단정하였으니,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신회의 <5경전>의 발견은 실로 문학과 종교적인 이중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9. 영가현각의 증도가
선가문학(선원)의 매우 많은 아름다운 시들 가운데 한 수의 악부체의 증도가가 있는데, 그 길이가 1800여자나 되어서 <공작동남비>의 1700자에 비하여 더 길다. 문학사에서는 <공작동남비>를 중국 5언서사시 가운데 유일한(독보적인) 장편으로 손꼽는데(추앙하는데), 그렇다면 증도가는 응당 7언철리시 가운데 유일한(독보적인) 장시가 된다. 그러나 역대로 시를 논한 사람들은 매우 적게 언급(제기)하였으며, 근대의 문학사가들도 마땅히 받아야 하는 평론을 주지 않아서, 자못 사람을 불만스럽게 한다(나로서는 자못 불만스럽다). 왜냐하면 증도가는 선리를 깊이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문채도 아름다워 <공작동남비>가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편의 작자는 영가현각대사인데, 그는 절강 영가(지금의 麗水縣)사람이고, 어려서 출가하여 3장의 불전을 두루 읽었으며, 천태종의 지관법문에 정통하였다. 그 후 좌계책선사와 함께 조계에 이르러 6조의 인가를 받았는데, 일숙각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다.《景덕전등록》에는 이 과정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현각은 도착하자 주장자를 떨치고 병을 들고서 6조를 세 번 돌고는 우뚝 멈춰섰다. 6조가 이르기를: [무릇 사문(출가승)은 삼천위의와 팔만세행을 갖춰야 하는데, 대덕은 어디서 왔길래 크게 자만하는가(이리도 무례한고)?] 현각이 말하기를: [나고 죽은 일이 큰데, 덧없이 빠릅니다.] 6조가 이르기를: [어찌 나지 않음을 체득하고 빠르지 않음을 깨닫지 않는가?] [체득함이 곧 나지 않음이고, 깨달음은 본래 빠르지 않습니다.] 6조가 이르기를: [그렇지 그렇지.(옳지 옳지)] 그 때 대중들은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스님은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예배를 올리고 나서는 곧장 작별을 고하였다. 6조가 이르기를: [그리 빨리 돌아가는가?] [본래 움직이지 않았는데,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6조가 이르기를: [움직이지 않은 줄 누가 아는가?] [인자께서 스스로 분별심을 낸 것입니다.] [그대는 나지 않음의 뜻을 깊게 얻었도다.] [나지 않는데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뜻이 없다면 누가 마땅히 분별하는가?] [분별 또한 뜻이 아닙니다.] 6조가 감탄하여 이르기를: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잠시 하루라도 자고 가거라.] 당시에 그를 일숙각이라 하였다.{{)[(玄覺)初到, 振錫携甁, 繞祖(六祖慧能)三 , 卓然而立, 祖曰: 夫沙門者, 具三千威儀, 八萬細行, 大德自何方而來, 生大我慢? 師曰: 生死事大, 無常迅速. 祖曰: 何不體取無生了無速乎? 曰: 體卽無生, 了本無速. 祖曰: 如是如是. 於時大衆無不愕然, 師方具威儀參禮, 須臾告辭, 祖曰: 返太速乎? 師曰: 本自非動, 豈有速耶? 祖曰: 誰知非動? 曰: 仁者自生分別. 祖曰: 汝甚得無生之意. 曰: 無生豈有意耶? 祖曰: 無意誰當分別? 曰: 分別亦非意. 祖嘆曰: 善哉! 善哉! 少留一宿, 時謂一宿覺矣.]
}}
두 사람의 문답은 매우 현묘한 이치를 갖추고 있다. 당시 6조는 이미 선종의 종주였는데, 현각이 예를 차리지 않는 것에 대하여 곧 야단을 쳤으며, 현각은 [나고 죽는 일이 큰데, 덧없이 신속하다]고 답하였다. 그 말은 도를 구하는 일이 크기에 그런 세속적인 예를 갖출 시간이 없다는 뜻인데, 대개 이로써 6조를 시험해 보고자 한 것이다. 6조는 그 말에 대하여 [나지 않음을 체득하고 빠르지 않음을 깨달으라]고 하였는데, 도체는 곧 [무생]이니, 도를 체로 삼으면 남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대도를 깨달으면 [빠름도 없다] 즉 [덧없이 신속한] 시간적 구속을 받지 않는다. 현각은 [체득함은 곧 나지 않음이고, 깨달음은 본래 빠름이 없다]고 답하였는데, 이미 6조가 보여준 뜻에 완전히 부합하였다. 그러므로 6조는 [/그렇지 그렇지(이와 같다. 이와 같다/]고 하였는데 곧 인가하는 말이다. 현각이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절을 올린] 것은 육조의 종주지위를 인정하였다는 뜻을 가진다. 나중에 선종의 [/전/등사]에서는 현각을 6조의 법사(법손,법제자)로 분류하였으며(의 반열에 두었으며), 현각을 [천태에서 달아나서, 달마의 양자가 되었다]고 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기실 6조는 종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인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는데, 이로써 이 종문의 학인들이 깨달았는지 아닌지, 그 깨달음의 경지는 어떠한지, 잘잘못은 어떠한지를 판정한 후에 바야흐로 그가 세상에 나가서 설법하는 것을 허락한다. 현각은(의 경우에는) 혹은 이미 깨달았지만 확신이 없었으므로 6조에게 찾아가 검증을 구한 것이거나, 혹은 깨달음에 편벽된 곳이 없다고 자신하였지만 인가를 얻지 못했으므로 6조에게 찾아가 인가를 구하였다. 더군다나 현각은 6조에게 오기 전에 이미 左溪朗선사의 독려(격려)를 받았으며 또한 동양책선사와 동행하였는데, 이로써 선종과의 관계가 앝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종계통에 집어넣는 것이 잘못은 아닌 것 같다.
현각에게는 <증도가> 외에 또한 《영가집》이 세상에 전해지는데, 《영가집》은 《경덕전등록》의 기록에 근거하면, 경주刺사 위정이 편집한 것이라 하고, 《조당집》의 기록에 근거하면 현각의 노래들은 그의 누이가 수집한 것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현각의 <증도가>에 대하여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오직 호적이 돈황에서 출토된 태평흥국 5년(980년)의 두루말이에 <증도가>가 <선문요결>로 되어있고, [초각대사일숙각]이 지은 것이라 되어 있어, 책의 이름이 다르고 작자의 이름도 한 글자가 틀리기 때문에, 초각은 현각이 아니라 의심하여, <증도가>는 현각의 작품이 아니라 하였으며 아울러 이 노래를 지은 사람은 대략 만당5대에 살았던 사람으로 추정하였고, 따라서 《경덕전등록》의 기재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호적은 일숙각이라는 이름을 소홀히 하였으며, 현각은 또한 진각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금세기에 한국에서 발견되고, 금세기 후기에 비로소 일본에서 간행되었으며, 민국62년 전후에 대만에서 간행된 《조당집》은 태평흥국보다 약 30년이 빠른 南唐保大10년에 완성된 것인데, 현각에 관한 사적의 기록은 《경덕전등록》과 같아서, 《경덕전등록》에 기록된 것이 틀리지 않음을 충분히 증명하였다. 또한 현각은 진각대사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시호는 제왕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거짓 전하거나 위조할 수 없는 것이다. 두 책에서 기록한 것이 다 같으므로 <증도가>는 확실히 현각이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증도가>는 매우 넓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은데, 부처의 이치와 선의 견해가 있고, 도를 구하는 요결이 있으며, 선종의 /전/등사가 있다. <증도가>라는 이름은 아마 뒷사람이 붙인 것 같은데, 바로 돈황까지 전해져서는 <선문요결>이라 제목이 붙여진 것과 마찬가지이다. 전체 시는 개인적 깨달음의 경험을 가지고 수도하는 사람들에게 권고를 제시한 것이다. 첫 단락에서 이르기를: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공부를 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고 참을 구하지도 않는다. 무명의 실다운 성은 곧 불성이고, 허깨비 빈 몸은 곧 법신이다.
법신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달으면 본원자성이 천진부처이다. 5음은 떠다니는 구름처럼 공허하게 가고 오며, 3독은 물거품처럼 공허하게 출몰한다. 실상을 증득하면 사람도 법도 없고 찰나간에 아비지옥에 떨어질 업도 소멸된다. 만약 망녕된 말로 중생을 속이면 스스로 수많은 겁 동안 발설지옥에 떨어지리라.{{)[君不見,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法身覺了無一物, 本源自性天眞佛. 五陰浮雲空去來, 三毒水泡虛出沒. 證實相, 無人法, 刹那滅却阿鼻業. 若將妄語 衆生, 自招拔舌塵沙劫.]:《景德傳燈錄》卷30
}}
[글공부를 끊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한가한 도인]이라는 말은 이미 선종의 정신을 밝혔는데, 교하 즉 불교의 기타 종파들은 모두 수행(수지),좌선,송경,구법에 편향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선종은 기본정신에서 형식적인 /수지/를 반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경전(경초)이나 목불을 불태우거나 [부처를 죽인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으며, 무심하게 도에 합하고, 알음알이(智知)에 의존하지 말 것을 제창한다. 학문을 끊는다는 것은 세간의 속학을 끊는다는 말이며, 무위는 유위의 수지법으로 도를 닦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와 같이 하여 한가하고 자유로운(자재) [도인]은 그 본성을 오염시키지 않고, 저절로 무심하게 도에 합할 수 있다. 망상은 속인들의 허망한 생각을 말하는 것이며, 참(진)은 진실한 불성을 말하는데, 망령된 것을 버리고 참된 것을 구하는 것은 본래 교하에서 수행하는 이상이다. 그러나 선종은 오히려 성과 범(성스러움과 범속)의 분별심이 있으면 도를 체득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차이를 분별하는 [평상심]이 없어야 바야흐로 도를 체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하나의 분별도 없는 관념으로써, 불성은 [무명]과 [실성]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므로, 부모의 인연으로 생기고 4대(지,수,풍,화)가 화합한 허깨비몸(환신)이 곧 상주불멸하는 금강법신으로 본다. 그러므로 [무명실성이 곧 불성이고, 환화공신이 곧 법신]이라 하였다. 일반적으로 도를 구하는 것은 도를 실재하는 것이라 여기고, 부처에게 구하고 승려에게 구하여 /남에 의존하여 견해를 짓고/서, [도]라는 것이 억지로 붙인 이름이며, 본원으로 돌아오면 색계와 공계가 모두 자성천진불이며 사람마다 스스로 구족하고 있음을 모른다. 그러므로 [법신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달으면, 본원자성이 천진불이다]라고 하였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색,수,상,행,식 5음이 뜬구름이 오고가는 것과 같아서, 도에 장애가 될 수 없으며, 탐,진,치 3독 또한 물거품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과 같아서 본진(본래의 참됨)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깨달아서 실성과 실상에 증득해 들어간 후에는 곧 사람과 법이라는 견해가 없으며, 찰나간에 아비지옥의 중한 업을 소멸시킬 수 있다. 현각은 자신이 깨달은 것이 진실불망함을 표현하고, 맹세하여 말하기를: [만약 망령된 말로써 중생을 속인다면, 스스로 수많은 겁 동안 발설지옥에 떨어지는 화를 초래할 것이다.] 즉 말한 것이 진실하지 않으면, 니리지옥에 들어가 혓바닥을 뽑히고 논밭을 가는 괴로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만겁 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 단락은 <증도가> 전 편의 강령인데, 현각은 [공부를 끊고 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의 경지를 발휘하여 말하기를:
깊은 산에 들어가, 난야에 머무르니, 험준한 산은 깊고 고요한 장송 아래 있도다. 여유롭게 고요히 앉은 산승은 한적하게 안거하니 실로 상쾌하도다.
깨달으면 다 마치니, 공을 베풀 필요가 없어서, 일체 유위법과는 다르다. 의식적인(형상에 집착하는,주상) 보시는 하늘에 나는 복을 지으니, 허공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을 초래하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자유롭지 않게 된다). 어찌 무위실상문이 한번(에) 뛰어넘어 곧바로 여래지에 들어가는 것과 같겠는가.{{)[入深山, 住蘭若, 岑 幽邃長松下. 優遊靜坐野僧家, 閒寂安居實蕭 .
覺則了, 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 箭還墮, 招得來生不如意.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
가사 중의 [야승가]의 의의는 첫 단락의 [한가한 도인]과 완전히 같은데, [야승가]를 써서 송경,지계,봉불하는 교하의 승려와 구분이 있음을 나타내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유위법이기 때문인데, 닦음이 있고 증득이 있으면 닦음이 없고 증득이 없을 때는 마치 하늘에 화살을 쏘아서 힘이 다하면 화살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선종의 [어찌 무위실상문과 같겠는가, 한번 뛰어넘어 곧장 여래지에 들어가도다]에 마음을 돌릴 것을 주장하였다. 즉 돈오를 요구하고 漸修를 주장하지 않았다. 현각은 돈오에는 [뛰어난 무사가 한번 베면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것과 같은) 공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로부터 논하면, 현각은 실은 [천태에서 달아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선종에 마음을 돌렸으며, 그의 전체 사상계통은 선문에 부합되고 교하와는 먼 것이었다.
영가는 또한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고 참을 구하지도 않는다]는 말의 깊은 뜻을 설명하였다.
참을 구하지도 않고 망령됨을 자르지도 않으니, 두 법이 비고(공하고) 상이 없음을 깨달아 안다. 상(모습)도 없고 공(빔)도 없고 공하지(비지) 않음도 없는 것이 곧 여래진실상(여래의 진실한 모습)이다.
마음거울이 밝아서, 비추는 데 장애가 없으니, 환하고 투명하게 모든 세계를 다 비춘다. 삼라만상이 비치는 가운데, 한 알의 둥근 구슬이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다.
확 트이게 비어서, 인과를 뽑아 버리니, 끝없이 재앙을 초래한다. 공에 집착하는 병이 있음을 버리는 것도 그러하니, 오히려 물에 빠지는 것을 피하다가 불에 뛰어드는 격이로다.
망령된 마음을 버리고, 참된 도리를 취하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위선이 된다. 학인이 수행하는 것을 그치지 못하면, 진실로 도적을 자식으로 여기는 것이 된다.{{)[不求眞,不斷妄, 了知二法空無相. 無相無空無不空, 卽是如來眞實相.
心鏡明, 鑑無碍, 廓然瑩徹周沙界. 萬象森羅影現中, 一顆圓珠非內外.
豁達空, 撥因果, 蕩蕩招殃禍. 棄有箸空病亦然, 還如避溺而投火.
捨妄心, 取眞理, 取捨之心成巧僞. 學人不了用修行, 眞成認賊將爲子.]
}}
왜냐하면 진(참됨)과 망(망령됨)은 상대되는 명사인데, [진.망 두 법은 본래 모습(상상)이 없기] 때문이다. 망을 버리고 진을 구한다면, 소위 번뇌를 끊고 보리를 구하는 것은 유위열반을 증득하는 것이고, 여전히 궁극적인 것(구경)이 아니다. 하물며(더군다나) 망을 버리고 진을 구하는 것은 반드시 이것이 참이고 저것은 망이라는 분별심을 일으켜야 하는데, 곧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위선(교묘한 거짓)을 이루어], 도를 깨칠 기약이 없게 되니, 학인에게는 깨달음이 중요하고 깨닫지 못하면 경건히 수행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도적을 자식으로 오인하는 위험이 있게 된다. 당연히 현각은 불교전적들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일찌기 천태에 귀의하였으므로, <증도가> 중에도 이러한 영향들이 남아 있다.
법의 우뢰를 진동시키고 법의 북을 두드리며, 자비의 구름을 펴서 감로를 뿌린다. 용상(큰스님)의 짓밟음이 끝없이 적시니, 3승과 5성이 모두 각성한다. 설산의 /비니/는 더욱 잡스럽지 않고, 순수히 제호를 내어 내가 항상 받아 들인다. 한 성은 일체의 성을 원통하고, 한 법은 일체 법을 포괄한다. 하나의 달은 일체 물에 두루 드러나고, 일체 물의 달은 한 달에 포섭된다.{{)[震法雷, 擊法鼓, 布慈雲兮 甘露. 龍象蹴蹈潤無邊, 三乘五性皆惺悟. 雪山肥 更無雜, 純出醍 我常納. 一性圓通一切性, 一法偏含一切法. 一月普現一切水, 一切水月一月攝.]
}}
설산은 곧 부처가 도를 구한 곳이고, [법의 우뢰을 진동시킨다]에서부터 [삼승오성이 모두 각성한다]까지는 불교의 전파를 설명하고 있으며, [하나의 성이 모든 성을 원통하고, 하나의 법이 모든 법을 포괄한다]와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비치고, 모든 물의 달은 하나의 달에 포섭된다]는 것은 화엄경의 심오한 뜻이며, 천태종의 사리겸비이다. 이것이 현각이 교를 융합하여 선에 포섭시킨 점인데, 사상체계를 가지고 말하면, 그의 출신과 서로 부합하는 것이다.
현각은 <증도가> 중에서 적지 않은 싯귀를 가지고 그가 선종에 귀의한 것을 표명하였으며, 아울러 선종의 전등사를 서술하였다.
강과 바다를 건너, 산과 내를 지나, 스승과 도를 찾은 것은 참선을 위해서였다. 조계의 길을 깨닫고 나서는, 살고 죽음이 상관이 없음을 깨달아 알았다.
가는 것도 선이고, 앉는 것도 선이며, 어묵동정에 편안함을(편안히) 체득한다. 아무리 날카로운 칼을 마주쳐도 마음이 편안하고, 비록 독약을 먹더라도 마음이 여유롭다.{{)[游江海, 涉山川, 尋師訪道爲參禪. 自從認得曹溪路, 了知生死不相關.
行亦禪, 坐亦禪, 語默動靜體安然. 縱遇鋒刀常坦坦, 假饒毒藥也閑閑.]
}}
현각이 6조를 찾아가서 친견했을 때 깨닫고 증득한 것을 진술하고 있다. [아무리 칼끝을 들이대더라도 편안하고, 비록 독약을 마셔도 여유롭다]는 것은 도를 지키는데 용감하여 흔들리지 않으며, 도를 깨달은 후에는 동정에 막힘이 없고, 세상에 나가 일을 하면서(응세용사) 미혹하거나 실수가 없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비로소 [가는 것도 선이고, 앉는 것도 선이며, 어묵동적에 /편안함을 체득한다/]고 말할 수 있다. 현각은 선종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법의 깃발을 내걸고 종지를 세우니, 조계는 밝고 밝은 부처의 칙어라. 처음 가섭이 먼저 등을 전하고, 28대가 되어 서천이 /마감된다/.
바다 건너 이 땅에 들어오니 보리달마가 초대조사가 된다. 6대까지 전해와서 세상에 널리 퍼지니, 후대 사람들이 도를 얻는 자가 헤아릴 수 없도다.{{)[建法幢, 立宗旨, 明明佛 曹溪是. 第一迦葉首傳燈, 二十八代西天記.
歷江海, 入此土, 菩提達磨爲初祖. 六代傳衣天下聞, 後人得道何窮數.]
}}
이것은 선종의 전등사를 읊은 것이다. 호적은 의발 전수설은 신회화상이 위조한 것이고, 선종이 28대를 거쳐 비로소 중국에 전해졌다는 것은 만당 이후의 [정설]이라 생각하였다. 따라서 <증도가>는 현각이 지은 것이 아니라 위작이라고 의심하였다. 인순법사의 《중국선종사》 중의 고증에 근거하면, 선종의 모든 문헌에서 의발을 전수했다는 설에 반대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또한 《조당집》의 증명을 얻어, 현각은 적어도 만당 이후의 사람이 아니며, 그에 관한 기록은 결코 착오가 없다. 전등사를 노래한 이 단락은 아마도 뒷사람에 의해 윤색되었을 수도 있는데, <증도가>의 전본이 한가지가 아니고 글자수의 많고 적음에 차이가 있어서 이러한 가능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충분한 증거가 없다면 또한 <증도가>의 내용을 의심해서는 안되는데, 왜냐하면 <증도가>는 태평흥국 이전에 이미 서쪽 변방의 돈황에까지 전해져서, 일찌기 이미 대중들이 숙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각에게서 나왔다는 것은 당나라 사람들의 기록에 모두 이설이 없는데, 또한 어떻게 아무런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그것을 뒤집을 수 있겠는가?
해는 차가워질 수 있고 달은 뜨거워질 수 있어도, 뭇 마귀들이 참된 말을 파괴할 수는 없다. 어찌 험한 산세가 코끼리의 앞길을 막고, 사마귀가 수레를 막을 수 있겠는가?
큰 코끼리는 토끼가 다니는 길은 가지 않고, 큰 깨달음은 작은 범절에 구애되지 않는다. 좁은 소견으로 푸른 하늘을 비방하지 말지니, 깨닫지 못했거든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 해결해 주리라.{{)[日可冷, 月可熟, 衆魔不能壞眞說. 象駕 嶸 進途, 誰見螳螂能拒轍?
大象不遊於兎徑, 大悟不拘於小節. 莫將管見謗蒼蒼, 未了吾今爲君決.]
}}
영가가 도를 독실히 믿어서, [해는 차가워질 수 있고 달은 떠거워질 수 있어도 마군들이 진리의 말은 파괴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큰 코끼리는 토끼가 다니는 길로 가지 않고, 큰 깨달음은 작은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더우기 선종이 근기를 중시하고 천재를 숭상하는 일관된 전통이다. <증도가>는 확실히 선가의 시들 가운데 진기한 보물로서 선의 도리와 선의 경지를 드러냄이 가장 많다. 다만 지면의 제한으로 구절마다 자세한 설명을 붙일 수는 없고, 다행히도 주석본이 유전되고 있으므로 한번 찾아 보면 전모를 엿볼 수 있다. [모래같이 수많은 세계는 바다 가운데 물거품과 같고, 모든 성현은 번개불처럼 스쳐간다.] 영가대사의 <증도가>는 결코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지는 물거품이 아니라, 도를 담고 있는 불후의 작품이다.
(68.5.25.26. 新生報副刊)
10. 석두희천과 참동계
선가의 시 가운데 도를 담고 있는 5언고체의 유명한 시가 한 수 있는데, 그것은 곧 석두희천의 <참동계>이다. [참]이란 [둘쭉날쭉 고르지 않음]이고, [동]은 [같음]인데, [가지런하지 못한(다양한)] 현상계는 그 [같은] 본체계와 묘한 도에 함께(같이) 계합함을 가리킨다. 제목에서 이미 [일과 이치는 한가지]라는 불교의 이치를 현시하였는데, 또한 장자의 같지 않은 것을 같게 하는 제물사상과도 맥락이 통하는 점이 있어, 선종이 중국문화의 산물임을 더욱 증명하였다.
석두희천은 본래 6조혜능의 제자였는데, 6조가 입적하기 전에 그에게 /여/릉으로 가서 청원행사를 친견하도록 명하여 따라서 법을 얻었다. 당 천보초년(초기,원년)에 남악형산의 남사의 주지로 천거되어 갔는데, 남사의 동쪽에 형상이 /대/와 같은 큰 바위가 있었다. 그래서 그 바위 위에 암자를 엮어 머물렀는데, 당시 사람들이 이에 그를 석두화상이라 불렀다. 어떤 학인이 그에게 묻기를: [어떠한 것이 선입니까?] 석두는 답하기를: [벽돌이다.] [어떠한 것이 도입니까?] [나무이다.] 이것은 다분히 장자가 기와짝에 도가 있다고 한 경지가 있다. <참동계>의 첫단락에서 이르기를:
축토의 대선인의 마음이, 동서로 은밀히 서로 부촉되었네. 사람의 근기에는 높고 낮음이 있지만, 도에는 남종과 북종의 구분이 없도다.{{)[竺土大仙心, 東西密相付. 人根有利鈍, 道無南北祖.]
}}
축토는 천축을 가리킨 것으로, 옛 인도의 명칭이다. <참동계>가 노래하여 밝힌 것은 서방천축의 대선인 즉 부처의 심법인데, 이 이심전심의 묘법은 서방의 부처들에 있어서나 동토 즉 중국의 선종조사들에게서나를 막론하고 모두가 비밀리에 법을 전하고 법을 부촉한 것이다. 법을 전할 때 사람의 근기에는 [영리함] 즉 아주 지혜로움과 [둔함] 즉 어리석음의 다름이(차이가) 있으므로 북종의 점수와 남종의 돈오의 차별이 있으나, 도를 구하고 도를 깨닫는 것을 가지고 말하면, 남종과 북종(북조)의 분별이 없는 것이다. 다음 단락에서는 이르기를:
신령한 본원은 밝고 순결하며, 갈래들은 보이지 않게 흘러내린다. /일에 집착하는 것/은 원래 혼미한 것이고, /이치에 계합하는 것/도 깨달음이 아니로다. 문 마다 일체 경계는, /얽혀 있으면서 얽혀 있지 않다/. /돌면서 다시 서로 관련되니,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머무리라/.{{)[靈源明皎潔, 枝派暗流注. 執事元是迷, 契理亦非悟. 門門一切境, 廻互不廻互. 廻而更相涉, 不爾依位住.]
}}
[본체] 즉 신령스런 근원은 밝고 깨끗한 것이지만 결코 단독적인 존재가 아니고, 수목이나 하천의 지파와 마찬가지로, 만사만물 가운데 각각 흐르고 있다. 일과 이치는 [겸비]되어 있으므로, 일만 붙들고서(단독집사) 법을 구하고 도를 구하는 것은 원래 미혹한 것이고, 설령 사리에 계합한다 해도 또한 도를 깨닫고 법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도는 지혜로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추리 등의 지력의 활동을 가지고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 마다 일체 광경이 있다]는 것은 현상계의 각양각색의 사물이 현시하는 광경은 지극한 도와 모두 [회호]하고 있다. 즉 일체 유정무정은 모두 지극한 도와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지극한 도는 또한 유정무정의 사물 가운데 감추어져 있음을 가리킨다. 하지만 또한 사물에 집착해서 도를 구할 수는 없는데, 도는 또한 사물과 [회호]하지 않는 방면을 가지고 있고, 사물은 결코 지극한 도와 같지 않다. 회호의 방면을 가지고 말하면 본체계와 현상계는 서로 관련된 것이다; 회호하지 않는 방면을 가지고 말하면, 색은 색계이고, 공은 공계로서, 본체와 현상은 원래 일체가 아니다. 여기에 이르러 지극한 도의 신비성과 본체와 현상의 관계를 이미 충분히 노래하여 밝혔다. 셋째 단락에서는 이르기를:
빛(색)은 본래 質과 상이 다르고, 소리는 원래 즐거움과 괴로움이 다르다. 암암리에 /상중의 말/에 부합하면 /말의 청탁/을 분명히 안다. 사대의 본성을 스스로 회복하는 것은 자식이 그 어머니를 찾은 것과 같다. 불은 뜨겁고 바람은 움직이며 물은 습하고 땅은 견고하다. 눈으로 색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코로 향기를 맡고 혀로 맛을 본다. /하나하나 법에 따라, 뿌리와 잎을 따라 분포된다. 본말은 근본으로 돌아가야 하고, 존비는 그 말을 쓴다/.{{)[色本殊質象, 聲元異樂苦. 暗合上中言, 明明淸濁句. 四大性自復, 如子得其母. 火熱風動搖, 水濕地堅固. 眼色耳音聲, 鼻香舌鹹/작/. 然依一一法, 依根葉分布. 本末須歸宗, 尊卑用其語.]
}}
색계를 가지고 말하면, 본래는 본체인 지극한 도와 성질과 현상에서 차이가 있는데, 마치 소리에 즐거움과 괴로움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색체/는 또한 [지극한 도]와 [중도]에 합하는데, 시의 /청탁구/와 마찬가지로 명명백백하다. 지,수,화,풍의 [4대]는 당연히 색계 즉 현상계의 사물이다. 그러나 이 [4대]에 로부터 본체계의 [자성]을 다시 얻을 수 있는데, 마치 자식을 통해 어머니를 얻는 도리와 같다. 불의 성질은 뜨겁고 바람의 성질은 만물을 흔드는 것이며, 물의 성질은 습하고 땅의 성질은 견고한 것이다; 사람의 눈은 각종 색을 분별할 수 있고, 귀는 각종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코는 냄새를 맡을 수 있고, 혀는 짜고 신 것을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법성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색계 중의 일체는 본체계 즉 지극한 도에 의해 생겨난 것인데, 마치 나뭇잎이 뿌리와 줄기에 의지하여 퍼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근본이거나 말단이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본체계에 의해 통섭된다. [높거나 낮거나 그 말을 쓴다]는 것은 지극히 높은 도이거나 낮은 현상계를 막론하고 모두 이 말을 가지고 총괄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넷째 단락에서는 이르기를:
밝음 가운데 어두움이 있으니 어두움으로써 서로 만나지 말라. 어두움 가운데에 밝음이 있으니, 밝음으로 서로 보지 말라. 명암이 각각 상대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앞뒤의 걸음과 같다. 만물에는 각자 공이 있으니 마땅히 작용이 미치는 곳을 말해야 한다. /일을 간직하는 것/은 상자와 뚜껑이 합하는 것이고, /이치가 응하는 것/은 화살과 칼끝이 부딪히는(버티는) 것이다. 말을 받들어 반드시 종지를 알아야 하고, 스스로 법도를 세우지 말라. 눈길이 닿아도 길을 알지 못하면, /움직이는 다리가/ 어찌 길을 알겠는가? 나아가는 걸음이 가깝고 먼 것이 아니라, 혼미함이 산하처럼 완고하게 막고 있다.{{)[當明中有暗, 勿以暗相遇. 當暗中有明, 勿以明相覩. 明暗各相對, 比如前後步. 萬物自有功, 當言用及處. 事存函蓋合, 理應箭鋒/주/. 承言須會宗, 勿自立規矩. 觸目不會道, 運足焉知路. 進步非近遠, 迷隔山河固.]
}}
이 단락은 [밝음] 즉 현상계와 [어두움] 즉 본체계가 서로 /어우러져 있는(참치협대)/ 도리를 힘써 설명하였다. 현상계 가운데 본체의 지극한 도가 있지만, 이것을 가지고 [밝음] 중으로부터 [어두움]을 구할 수는 없다; 본체는 명백한 현상계 가운데 있는데, [밝은 상]을 가지고 이 [어두운 상]을 보아서는(관찰해서는) 안된다. [밝음]과 [어두움]은 [/겸대/]의 관계인데, 바로 길을 갈 때 앞 걸음과 뒷 걸음의 관계와 마찬가지이다; 만물에는 각각의 작용이 있으니 마땅히 서로 다른 작용과 위치를 밝혀야 한다; 사물의 존재와 사물의 도리는 마치 상자의 밑통과 윗덮개가 꼭 맞는 것처럼 일이 있으면 곧 이치가 있어서, 이치와 일은 활촉과 칼끝처럼 서로 버티는 것이다. 언구를 받을 때는 곧 선종의 종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멋대로 [규구] 즉 법칙을 세워서는 안된다. 만약 마음으로 생각하고 뜻으로 헤아려서, 눈길이 닿아도 [지극한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면, 곧 마치 다리를 운용하여 길을 갈 수 없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지극한 도]는 아주 현묘하고 고원한 것이 아니라, 다리를 써서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길의 원근과는 관계가 없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를 깨친 사람은 하나를 깨치면 모든 것을 깨닫고, 미혹하여 깨닫지 못한 사람은 지극한 도와 격리되어 마치 [산하]에 의해 [틀어 막힌]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석두는 전체 시를 총결하여 말하기를: [진리를 참구하는 사람에게 간절히 말하노니,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근백참현인, 광음막허도.]
}} 도를 구하여 [현묘한 이치를 참구하는] 참선인은 시간을 붙들어 헛되이 세월을 보내서는 안된다고 훈계하고 있다. 이 <참동계>는 도를 높고 깊이 담고 있어서, 나중의 조동종 선학의 근본이 되었으니, 중시하고 연구할 만하다. (67.12.7. 신생보부간)
11. 마조와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듦
선종이 빠르게 전파된 것은 혜능대사 이후에는 마조도일에 의해서라 해야 한다. 그는 사천 십기현 사람인데, 용모가 매우 기이하여, 혀를 펴면 코끝을 넘길 수 있었으며, 발바닥에는 수레바퀴 모양의 꽃무늬가 두 개 있었고, [소의 걸음걸이와 호랑이 눈빛을 가졌으며] 기개가 비범하였다. 어린 나이에 머리를 깍고 중이 되었고, 나중에 또한 율종의 스승을 따라 계율을 받았으며, 당현종 개원년간에 남악 형산의 전법원에서 선종을 익혔는데, 남악회양선사에 의해 크게 인정을 받았다. 이 두 사람의 사제가 의기투합한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회양은 도일이 법기임을 알고서 그에게 가서 물었다: [대덕이 좌선하는 것은 무엇을 도모함인가?] [부처가 되려 합니다.] 회양은 이에 벽돌을 하나 주워서 암자 앞의 바위 위에서 갈기 시작하였다. 도일이 묻기를: [벽돌은 왜 갑니까?] [거울을 만들려 한다.] [벽돌을 갈아서 어찌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이 되지 않는다면, 좌선한다고 어찌 부처가 되겠느냐?] [어떻게 해야 됩니까?] [만일 소가 수레를 끄는데, 수레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수레를 쳐야 하는가? 소를 쳐야 하는가?] 도일이 아무 대답이 없었다.---{{)[師(懷讓)知(馬祖)道一是法器, 往問曰: 大德坐禪, 圖什 ? 一曰: 圖作佛, 師乃取一 於彼庵前石上磨. 一曰: 磨 作 ? 師曰: 磨作鏡! 一曰: 磨 豈得成鏡耶? 師曰: 磨 旣不成鏡, 坐禪豈得成佛耶? 一曰: 如何卽是? 師曰: 如牛駕車, 車不行, 打車卽是! 打牛卽是? 一無對.---]:《景德傳燈錄》권5
}}
회양은 좌선을 통해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와 같이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가지고 마조도일을 깨달음으로 인도하였는데, 이것은 또한 선종에서 상용하는 교수방법 즉 언어형상화이다. 세속적인 견해에 의하면, 만약 소를 매어 수레를 끌 때 수레가 가지 않는다면, 소를 쳐야 하는가 아니면 수레를 쳐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소를 쳐야 한다는 것인데, 마조도일은 당연히 이 평범한 도리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마조는 대답이 없었다. 왜냐하면 소를 친다는 것도 정확한 답이 아닌데, 소를 치면 곧 수레가 가지만 소를 치지 않을 때는 수레는 여전히 가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좌선을 통해 도를 닦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좌선을 하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러므로 훗날의 선사들은 수레를 치는 것도 옳지 않고 소를 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는데, 소를 부려 수레를 가게 하는(駕) 것은 수레를 모는( )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를 깨닫는 근본은 구도자의 마음에 있다. 마조도일은 회양의 전수를 거쳐 [마음이 곧 부처]라는 도리를 깨우쳤다. 즉 자심을 바로 가리켜 본성을 보고 부처를 이루었다. 뒷사람들은 이 두 공안에 대하여 적지 않은 게송을 지어 서로 다른 견해들을 나타내었다.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것은 같은 소리를 그리워함이니, 와서 물은 것은 본심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겨우) 나무인형을 불러서 고개를 돌리고 가르키게 하니, 밭가는 소가 땅 속에 묻힌 오래된 황금을 갈아낸다.{{)[磨 作鏡慕同音, 來問分明示本心. 喚木人回面指, 犁牛耕出古黃金.]:汾陽昭
}}
회양이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행동으로써 마조도일을 가르친 것은 마조도일이 법기 즉 법을 전하고 도를 펼 인재임을 알아 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같은 소리를 그리워한다] 즉 같은 도가 있음을 기뻐한 것이라 하였다. 소를 칠 것인가 수레를 칠 것인가 하는 이 물음 중에 회양은 이미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구한다는 불법의 근본을 분명히 현시하였다. 마조도일은 이로 인하여 깨달았는데, 깨달은 후에는 바로 성자이고 깨닫기 전에는 범부였다. [범(부)]에서 [성(인)]에 이르는 것은 마치 나무인형을 불러서(喚轉) 고개를 돌리고 손을 움직이고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이 비유는) 한편으로 도를 깨달음이 어려움을 나타내는데, 나무인형은 생명이 있을 수가 없는데 생명을 가지게 된 것이고, 한편으로는 도를 깨달은 후의 기특함을 나타내는데, 나무인형이 명령을 듣고 동작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깨닫는 것은 농부가 소를 부려 밭을 갈아 [옛 황금]을 갈아내는 것 즉 보물을 얻는 것과 같은데, 이 보물은 예로부터 곧 있었다. 또한: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갑자기 빛이 나서 온 우주를 비춘다. 우습게도 좌선을 하여 부처를 구하는 자들은, 지금도 소에다가 채찍질을 가하는구나.{{)[磨 作鏡不爲難, 忽地生光照大千. 堪笑坐禪求佛者, 至今牛上更加鞭.]:佛印元
}}
불인은 깨달은 후에는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 생각하였는데, 왜냐하면 이미 신통이 다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회양의 말은 마조로 하여금 도를 깨치게 하였는데, 마조의 경우를 가지고 말하면 홀연히 대지가 빛을 내어 산하대지를 두루 비추는 것처럼, 그로 하여금 환히 알게 하였다. 그러나 나중의 사람들은 여전히 좌선하여 부처를 구하고 있다. 바깥을 향해 치달려 구하는 것은 마치 소가 수레를 끌도록 채찍질을 하여 영원히 멈출 때가 없는 것과 같은데, 이것이 [우습게도 좌선하여 부처가 되기를 구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소에다가 채찍질을 하는구나]하는 말의 뜻이다.
수레끄는 소의 뒤통수를 아프도록 후려치고, 황금은 버리고서 벽돌조각을 껴안고 있네. 나쁜 것과 삿된 것을 쫓고 따라 오늘까지 이르르니, 즉심즉불이니 비심비불이니 하는 말이 잘못 전해지고 있구나.{{)[車牛腦後痛加鞭, 棄却黃金抱碌 . 逐惡隨邪至今日, 卽非心佛錯流傳.]:笑翁堪
}}
소옹감은 대체로 이 시와 공안을 빌어서 오로지 좌선을 공부로 삼는 송대의 묵조선을 풍자하고 있다. 수레를 끄는 소에 채찍질을 하는 것은 사방 바깥으로 분주히 다니면서 부처가 되려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황금 즉 마음이 곧 부처인 사실을 버리고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벽돌을 끌어안고 있는 것 즉 좌선하여 성불하려는 것과 같다. 좌선하여 성불하려는 이 방식은 나중의 참선인들이 공통적으로 믿고 행한 것인데, 지금도 고치지 않고, 마조의 가르침 즉 [마음이 곧 부처이다]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는 말은 저버려져 헛되이 유전되어 체득하고 준행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경덕전등록》권6에 마조의 [마음이 곧 부처다]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는 공안이 실려있다.
어떤 중이 물었다. [스님(마조)은 왜 마음이 곧 부처라고 했읍니까?]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는 것이다.] [울음을 그친 후에는 어떻게 합니까?]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僧問云: 和尙(馬祖)爲什 說卽心卽佛? 祖曰: 爲止小兒啼! 僧曰: 啼止後如何? 祖曰: 非心非佛!]
}}
[즉심즉불]은 부처가 자신의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집착하여 [궁극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이 말은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누런 나뭇잎 즉 사람을 속이는 말과 같을 뿐이다. 그러나 참선인들은 어린아이처럼 진정으로 믿었는데, 따라서 깨달으면 [큰 도는 이름하기 어려움]을 안다. 도를 깨달은 후에는 비로소 [도]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며,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시 가운데 [즉비심불]이 나온 출처이다.
마조는 깨달은 후에 강서에 이르러 설법하였는데, 건신 불적령에서 시작하여, 뒤에 임천으로 옮겼고, 다시 남강 공공산으로 옮겨 갔는데, 문하에 대선사들이 아주 많았다. 유가는 이르기를: [강서는 마조가 장악하고, 호남은 석두가 장악했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끊임이 없었다. 두 대사를 친견하지 않으면 무지하다는 소리를 들었다.]{{)[강서주대적(마조의 시호), 호남주석두(희천). 황래동동, 불견이대사위무지의.]
}} 이것은 그가 당시 선문에서의 우상이었는데, 강서를 왕래하는 참선인이 만약 그를 친견하러 가지 않으면 곧 [무지]하다고 여겨졌다는 말이다. 당시에 그의 명성이 얼마나 드높았던지를 알 수 있다. (67.12.18. 新生報 副刊)
12. 백장회해와 여우의 참선
백장회해,남천보원,서당지장은 마조 문하의 세 걸출한 선사들인데, 더우기 백장회해는 유명한 백장청규를 건립하여, 그 후 선사들이 수행하면서 준수할 규범을 제공하였다. 그 자신은 더욱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아서], 선문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더욱 중국화되고 더욱 세속화하여, 세속에 들어가면서도 또한 세속에서 벗어나서, 비로소 당무종의 회창법난을 무난히 넘길 수 있게 하였다. 인도에서 승려는 귀족계급의 하나여서 경작하고 생산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불교의 교의에서는 살생을 금지하는데, 살생을 하면 인과윤회의 과보에 떨어질 수가 있다. 경작을 할 때는 자연히 자신도 모르게 땅 속에 있는 벌레들을 살상할 수 있으므로 승려들은 경작을 하지 않는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후에 이 규율이 계승되었다. 6조에 이르러 그는 방아찧는 노동을 하면서 도에 들어갔고, 백장회해에 이르러 정식으로 노동생산을 청규 안에 집어넣어 [열 가지의 일]을 두었는데, 모든 사람들은 각기 맡은 일이 있어서 선종의 문도들로 하여금 세속적인 생활을 추구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회창법란 때 기타 각 종파의 불문제자들은 환속할 수 밖에 없었지만, 선종 일파는 생활이 이미 세속화되었으므로 심각한 영향을 받지 않았었다. 그 근원을 따져본다면 마땅히 백장에게 공을 돌려야 한다.
백장회해선사의 속성은 왕씨이며, 복주 장락사람이다. 마조대사를 추종하여 법을 얻은 후에 홍주(지금의 강서 남창)의 대웅산에 머물렀는데, 머무른 곳이 산세가 아주 험했기 때문에 백장이라 불렸다. 그가 설법하고 있을 때 여우가 참선한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선문의 공안이 되었다.
스님(백장)이 설법할 때마다 한 노인이 대중들과 함께 설법을 들었는데, 하루는 대중이 다 물러간 후에도 노인 홀로 남아 있었다. 스님이 묻기를: [그대는 누구신가?] 노인이 말하기를: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 가섭불 때 이 산에 머물고 있었는데, 수행을 많이 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지느냐는 학인의 물음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가, 500생을 여우의 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청컨대 스님께서 저 대신 한번 달리 말씀하셔서 여우몸을 벗게 해 주십시오.] [그대가 물어 보라.] [수행을 많이 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인과에 어둡지 않도다.] 노인은 이 말에 크게 깨닫고는 절을 올리면서 말하기를: [저는 이제 여우의 몸에서 벗어났습니다. 산 뒤쪽에 머물고 있는데, 감히 바라건대 승려처럼 장례를 치러 주십시오.] 스님은 감독승(유나) 백추로 하여금 공양이 끝난 후에 승려의 장례를 치른다고 고하도록 하였다. 대중들은 모여서 쑤근대기를 [대중이 모두 아무 일도 없고 열반당에도 병든 사람이 없는데 무슨 일인가]하였다. 공양이 끝난 후 스님은 대중을 이끌고 산 뒤쪽의 바위 아래 이르러 지팡이를 가지고 죽은 여우를 한마리 끄집어내어 법도에 따라 화장을 하였다.{{)[師(百丈)每上堂, 有一老人隨衆聽法, 一日, 衆退. 唯老人不去. 師問: 汝是何人? 老人曰: 某非人也, 於過去迦葉佛時, 曾住此山, 因學人問: 大修行人還落因果也無? 某對云: 不落因果. 遂五百生墮野狐身. 今請和尙代一轉語, 貴脫野狐身. 師曰: 汝問! 老人曰: 大修行人還落因果也無? 師曰: 不昧因果. 老人於言下大悟,作禮曰: 某已脫野狐身, 住在山後, 敢乞依亡僧律送. 師令維那白椎告衆, 食後送亡僧. 大衆聚議, 一衆皆安, 涅槃堂又無病人, 何故如是? 食後師領衆至山後巖下, 以杖桃出一死野狐, 乃依法火葬.]:《五燈會元》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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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참선한다는 이 공안은 비록 신화에 가깝지만, 종문에서는 독실히 믿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총림에 널리 퍼져 이에 대한 게송이 50여 수나 되는데, 특별히 몇 수를 가려서 해석하고자 한다.
말길이 분명히 있으니, 그대는 자세히 볼지어다(그대에 의지하여 자세히 보라). 비와 함께 서풍이 심하게 부니, 불 옆에 가도 오히려 한기만 더하는구나.{{)[語路分明在, 憑君仔細看. 和雨西風急, 近火轉加寒.]:道吾眞.《宗鑑法林》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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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오진선사는 백장과 여우화신의 노인 사이의 대화가 하나하나 다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이 공안을 참구하는 사람은 자세히 분별해야 하는데,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것은 단지 한 글자가 다르지만 경지는 각별하여, 하나는 오백생 동안 여우몸에 떨어지게 하였고, 하나는 도를 깨치고 가도록 했으니, 참으로 [털끝만큼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멀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안은 말 속에 현묘한 기틀을 포함하여, 마치 비를 동반한 서풍처럼, 사려분별에 의해서는 해답을 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불을 가까이 해도 오히려 추위만 더한다]고 하였다. 불 옆에 가면 추위가 사라지는 것이 세속의 정상적인 일인데, 불 옆에 가도 오히려 취위가 더하는 것은 세속에서는 비정상적인 일이다. 이는 세속의 의식으로써는 해답을 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 장 큰 바위가 푸른 하늘에 기대 있어, 사람들은 길이 있어도 가지를 못하는구나. 어떻게 한 점 구름은 걸림도 없이, 모이고 흩어지며 종횡으로 바람처럼 빠른가?{{)[萬丈洪巖倚碧空, 人間有路不能通. 奈何一點雲無碍, 舒卷縱橫疾似風.]:兜率悅.《宗鑑法林》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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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종열은 백장이 대신 한 말이 곧바로 본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음은 도를 이룬 후의 일이고, 인과에 어둡지 않음은 수행할 때의 일이다. 도솔종열은 [만 장 큰 바위가 푸른 하늘에 기대 있다]는 것을 가지고 자성묘체를 비유하였는데, 높이 푸른하늘에 솟아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찾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어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길이 있어도 가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도를 깨닫는 길이 비록 있어도, 사람마다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찌하여 한 점 구름은 걸림이 없는가]라는 말은 백장의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대답이 마치 장애도 없고 구속도 없는 구름처럼 본원에 투철하여 푸른 하늘에 솟구쳐 있는 만 장이나 되는 큰 바위에 이를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뭉치고 흩어지면서 바람처럼 빨리 오고간다]는 것은 백장의 대답이 마치 걸림 없는 구름이 능히 뭉치고 능히 흩어지면서, 바람처럼 빠르게 마음대로 종횡하는 것처럼, 조금도 생각으로 헤아리지 않고, 현묘한 경계를 현시한다는 말이다.
임기응변한 말이 잘못되어, 오백생 동안 여우의 몸에 떨어졌네. 소녀는 이미 하늘로 돌아갔건만, 어리석은 사내는 그래도 혼자 찬 화로를 지키고 있네.{{)[臨機只爲語偏枯, 五百生來墮野狐. 女已歸 漢去, 郞猶自守寒爐.]:圓通仙.《宗鑑法林》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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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선선사는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대답이 너무 한 점에 치우쳐, 따라서 오백생을 여우의 몸에 떨어졌다고 생각하였다. 지금 백장의 대답이 그로 하여금 도를 깨달아 여우의 몸에서 벗어나게 하였는데, 마치 소녀가 도를 얻어 하늘 너머 가버린 것과 같은데, 후대의 참선인들은 도리어 이 공안을 필사적으로 참구하면서 마치 어리석은 사내(연인)가 소녀가 단을 이루고 버린 차가운 화로를 지키는 것처럼, 도를 깨닫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우가 참선한다는 이 공안은 적어도 일체 중생은 다 불성을 가지고 있음을 현시하였는데, 그러므로 여우가 도를 이룰 수 있었다. 또한 인과의 순환은 존재하는 것인데, 그러므로 잘못 대답하면 오백생을 여우의 몸을 받게 되니, 사람을 가르치고 도를 구하는 것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음과 인과에 어둡지 않음은 그 결과가 어떻게 이처럼 큰 차이가 나는가? 백장과 여우노인처럼 그 경지를 몸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답을 풀 수 없는 것이다. (68.3.4.신생보부간)
13. 남천이 고양이 목을 치다
남천보원선사는 마조대사의 법제자(입실제자)인데, 그의 속성은 왕씨이고, 정주 신정현(지금의 하남 신정현)사람이다. 그러므로 평소에(항상) 자신을 왕노사라 불렀다. 어려서는 교하의 경전들을 참구하다가 나중에 다시 종문으로 전향하였으며, 지양의 남천에 머물렀기 때문에 남천보원이라 불린다. 그가 고양이를 내리친 공안은 선림을 뒤흔들었다.
스님(보원)이 동서 양당의 중들이 고양이를 놓고 서로 다투는 것을 우연히 보고는 대중에게 이르기를: [(제대로) 말하면 고양이를 살려 줄 것이고, 말하지 못하면 목을 칠 것이다.] 대중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스님은 곧 고양이 목을 쳐 버렸다. 조주가 밖에서 돌아오자, 스님은 앞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앞에 했던 말을 그에게 들어 보였다). 조주는 이에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스님이 말하기를: [그대가 그 때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師(普願)因東西兩堂各爭猫兒, 師遇之, 白衆曰: 道得卽救取猫兒, 道不得卽斬却也. 衆無對, 師便斬之. 趙州(從 )自外歸, 師擧前語示之, 趙州乃脫履安頭上而出. 師曰: 汝適來若在, 卽救得猫兒也.]:《景德傳燈錄》卷8
}}
출가인은 마땅히 탐욕과 집착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동당과 서당의 중들은 고양이 한 마리를 놓고 다투었는데, 남천은 이를 보고 직접적으로 꾸짖지 않고 간접적으로 가르침을 주었다. 남천이 이 고양이를 제기했을 때는 곧 이를 가지고 불가에서 말하는 [자성], 철학에서 말하는 우주[대전]을 나타냈으며, 이로써 대중들의 수양 정도와 깨달은 뒤의 견해를 시험해 보았는데, 애석하게도 거기 있던 자들은 모두 승복이나 걸치고 밥이나 축내는 무리들이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오직 조주종심이 남천의 [말하면],[말하지 못하면]이라는 말의 뜻을 알았다. 그래서 짚신을 머리에 얹고 밖으로 나감으로써 철리를 형상화하고, 말하면서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짚신은 이를 가지고 [도를 행하는] 즉 길을 가는 것이니, 마땅히 발에 신어야 하고, 머리 위에 얹어서는 안된다. 머리 위에 얹은 것은 뒤집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으로, 남천이 물은 말은 [말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자성]의 경계는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말길이 끊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남천은 이 대답에 동의하여, [네가 마침 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렸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양이 목을 친 이 공안에는 하나의 더 깊은 의미가 드러난다. 불교의 계율에 의하면 살생을 금지하고 있고, 살생을 하면 인과보응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남천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생을 하였다는 사실이 현시하는 것은 다음의 셋 가운데 하나이다. (1)남천의 수행이 이미 과보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이기 때문에 담담하게 살생하였다. (2)남천은 과보를 믿지 않았다. (3)남천은 과보를 알고 있었지만 대중을 권화하기 위해 과보에 떨어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고양이의 목을 쳤다. 나중에 이 공안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이 사실에 주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단지 연우초선사가 이러한 뜻을 약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시에서 이르기를:
몸을 돌보지 않고 오랑캐를 소탕하리라 맹세했건만, 수많은 병사(삼천초금)가 변방에서 목숨을 잃었네. /정처없는/ 강가에 흩어진 뼈가 가련하건만, 그래도 봄이 오는 규방에서는 님의 꿈을 꾸고 있네.{{)[誓掃匈奴不顧身, 三千貂錦喪邊(胡)塵.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
}}
연우는 [따름으로써 지었는데(이술위작)], 당나라 사람 진도의 <농서행>이라는 시를 빌어 그의 선적 견해(선견)를 표현하고 있다. 남천은 자신이 인과응보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돌아보지 않고 고양이의 목을 쳤던 것인데, 그 목적은 참선인들을 깨우쳐 집착과 어리석음을 없애주려는 것이다. 이것이 [오랑캐를 소탕하고자 맹세하여 몸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에 담긴 뜻이다. [/삼천 초금/이 변방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당시의 대중들이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말귀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말이다. [정처없는 강변의 뼈들이 가련하다]는 것은 고양이가 이미 죽어서 마치 정처없는(무정) 강가의 마른 뼈와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공안은 후세에 전해져서 선사들이 깨닫기를 몽상하는 대상이 되었는데, 마치 /정처없는/ 강가에 파묻힌 마른 뼈가 여전히 봄 규방의 부인이 꿈에도 그리는 사랑하는 사람인 것과 같다. 빌어 쓴 솜씨가 나무랄 데가 없다. 호안국의 시에서는 이르기를:
손으로 온 우주(건곤)를 살리고 죽이는 기틀을 잡고, 종횡으로 시설하여 /때에 임하여 있노라(때가 이르렀도다)/. 당에 가득한 것은 토끼와 말들이고 용과 코끼리가 아니니, /대용의 당당함/은 전혀(결국) 모르는구나.{{)[手握乾坤殺活機, 縱橫設施在臨時. 滿堂兎馬非龍象, 大用堂堂總不知.]
}}
호안국은 거사의 신분으로 이 공안을 /참구하여 이해/하였다. 남천보원이 고양이를 제기하여 [자성]을 나타낼(대표할) 때, 우주의 [대전]은 곧 남천의 손 위에 있었다. 그러므로 보은수선사는 해석하여 말하기를: [바로 이러할 때 시방세계를 통틀어 유정과 무정들이 모두 왕노사의 손을 향해 목숨을 애걸한다.]{{)[정당임마시, 진시방세계, 정여무정, 일체향왕노사수중걸명.]
}} 남천은 당시에 고양이로써 [자성]과 [대전]을 대신(대표)하였으며, 칼을 휘둘러 내리칠 때, 자른 것은 또한 이 [자성]과 [대전]이다. 이 때 남천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것은 [건곤 즉 천지 사이의 살리고 죽이는 기틀]이다. 그렇다면, 일체 유정과 무정의 중생들이 모두 왕노사의 손을 향해 목숨을 애걸해야 하게 된 것이다. [종횡으로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때에 임하고 있다(상황에 따른다)/]는 것은 남천의 이 공안은 상황에 따라 이루어진(경계를 만나 기틀이 이루어진) 것이며, 때에 따라 가르침을 베푼 것이고, 의식적인 안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애석하게도 만당한 중들이 너무 멍청하여, [용과 코끼리]가 아니고 [토끼와 말]이어서, 깨칠 수가 없었다. [대용은 당당하지만 /아무도/ 모른다]는 말은 남천의 큰 기틀을 발휘하고 큰 작용을 일으키는 가르침은 성대하고 분명한 현시였으나, 마침내 전혀(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울어도 소용없고, 입 다물고 남은 봄을 지내느니만 못하다.] 남천은 완전히 쓸데없이 떠들었다.(떠든 셈이었다) 불심재선사는 조주종심의 해답에 대하여 선적 견해(선견)를 표시하였다.
짚신을 머리에 얹은 것을 누구와 더불어 논할까? 사해에 바람이 없으니 물결이 저절로 가라앉는다. /도를 풀이하는 곡/을 마쳤어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강 위에는 몇몇 푸른 봉우리만 가득하네.{{)[草鞋頭戴與誰論? 四海無風浪自平. 解道曲終人不知, 江頭 得數峯靑.]
}}
불심재는 조주종심이 머리에 짚신을 인 해답이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깨달을 수 있는 것(사람)은 근본적으로 해답할 필요가 없고, 깨달을 수 없는 것(사람)은 해답을 낭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한번 헛되이 쓴 것은 누구와 더불어 논구할 것인가? 그는 또한 남천과 조주 두 사람이 조성한 공안을 쓸데없는 일이라 책하였는데, 마치 큰 바람이 파도를 일으켜도 파도는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며, 파도가 일어날 때의 현상이 어떠한지에 상관없이, 결국은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자게 되는데,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잔 후에야 비로소 바닷물의 본래의 모습이 드러날 수가 있는 것과 같다. [노래가 그쳐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강 위에 연이은 봉우리가 푸르다]{{)[곡종인불견, 강상수봉청]
}}는 것은 당나라사람의 [상령고슬]이란 시인데, 불심재선사가 이를 그대로 쓴 것은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 [해도곡이 끝이 나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에서 [해도]는 하나는 [분명히 알았다]는 뜻이고, 하나는 [도를 이해하였다]는 뜻인데, [도]의 본질을 이해한 것은 단지 마음 속으로 이해할 수 있고, 말로 전할 수는 없으며 [상]은 있고 형체가 없으니, 마치 악곡의 연주에서 곡조가 이미 다 연주되었지만 음악을 연주한 사람은 몸을 나타내지 않는 것과 같은데, [자성]이란 볼 수 없는 것임을 비유하였다. 비록 이와 같지만, [자성]은 비록 [공]도 아니고 [유]도 아니지만, [유]를 떠나서 현상 중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강기슭에 푸른 봉우리가 가득하다]고 하였다. 도를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강산과 대지가 법왕의 몸을 함께(일제히) 드러낸다.] [자성]은 때에 따라 드러나고 있어서, 남천이 고양이를 치켜 들 필요도 없고 또한 조주가 짚신을 머리에 이어 표시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 공안에 의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선사들이 서로 날카로운 경계(기봉)를 보여주고, 수시로 선적 경지의 고하를 비교하였는데, 언어를 가지고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동작을 가지고 상징하며, 시귀를 빌어 현시했다는 것이고, 체득한 것이 다르고 또한 소견도 각기 달라서 동일한 공안에 대하여 완전히 같은 해석이 없으며 또한 구상(착상)이 완전히 같은 게송도 없다는 것이다.
(68.3.14. 신생보부간)
14. 왕노사와 목우송
왕노사 즉 남천보원의 牧우 공안은 선사들의 수행에 아주 큰 영향을 낳았는데, 송고시를 형성했을 뿐 아니라, 목우도도 그려져, 각 대에 모두 이에 대한 화답시가 있으며, 아울러 멀리 일본에도 전해졌다. 소를 기른다는 뜻은 마음을 길러 도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오등회원》에서는 이 공안의 사연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남천보원이 상당하여 이르기를: 왕노사가 어릴 적부터 소를 한마리 길러 왔는데, 시내 동쪽에서 풀을 먹이려 하니 다른 나라 왕의 수초를 뜯어 먹게 되고, 시내 서쪽에서 풀을 먹이려 하니 또 다른 나라 왕의 수초를 뜯어 먹게 된다. 분수에 따라 조금만 먹이는 것만 못한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도다.{{)[(南泉普願)上堂曰: 王老師自小養一頭水 牛, 擬向溪東牧, 不免食他國王水草, 擬向溪西牧, 亦不免食他國王水草, 不如隨分納些些, 總不見得.]
}}
왕노사는 선리(선의 이치)를 형상화하였는데, 물소를 기르는 것은 심성을 함양하는 것을 비유하였고, 시내 동쪽과 시내 서쪽은 이쪽 저쪽과 같은데, 이쪽은 색계를 대표하고, 저쪽은 공계를 대표한다. 색에 집착하고 공에 집착하여 도를 깨닫기를 구한다면 공부는 고향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이며, 분별심을 일으켜, 색계는 환상이고 공계는 진실이며, 이쪽은 범(속)이고 저쪽은 성(역)이라 생각하면 모두 오류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 왕의 수초를 먹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분수에 따라 조금만 받아들이는 것만 못하다] 즉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으면 평상심이 도에 합치된다. 뒷 날 장경나안의 깨달음은 완전히 이 공안의 도움을 받았다.
懶안이 백장에게 나아가 절을 하고 물었다. [학인이 부처를 알고자 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습니까?] 백장이 이르기를: [소를 타고서 소를 찾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나안이 이르기를: [알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이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나안이 이르기를: [시작과 끝을 깨닫지 못했으면 어떻게 보임해야 합니까?] 백장이 이르기를: [소를 치는 사람이 작대기를 들고서 남의 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과 같다.] 나안이 이로부터 깨닫고는 다시는 바깥으로 치달려 구하지 않았다.{{)[師(懶安)卽造百丈(懷海), 禮而問曰: 學人欲求識佛, 何者卽是? 丈曰: 大似騎牛覓牛. 師曰: 識得後如何? 曰: 如人騎牛至家. 師曰: 未審始終如何保任? 丈曰: 如牧牛人, 執杖視之, 不令犯人苗稼. 師自玆領旨, 更不馳求.]:《五燈會元》卷4
}}
백장과 남천은 마조 문하의 뛰어난 제자들이다. 백장이 나안의 문제에 답한 것은 남천의 뜻을 밝힌 것이지만, 그 내용은 약간 다르다. 사람마다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을 향해 구하지 않고 바깥으로 치달리는 것은 소를 타고서 소를 찾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스스로의 마음을 깨달은 후에는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고, 도와 더불어 함께 돌아간다. 그러므로 부처를 안 후에는 사람이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참선인이 도를 깨달은 후에 깨달음의 경지를 잃지 않으려면 아주 오랜 수행시간을 가지고 깨달음을 통해 얻은 것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를 [보임]이라 한다. 백장이 나안에게 일러준 것은 소치는 사람이 채찍을 들고 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욕심의 부림을 받아서 색계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안은 백장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수행하여, 나중에 위산영우를 대신하여 위산의 방장(주지)이 되어, 소를 쳐서 마음으로 얻은 것을 밝혔다.
위산에서 30년 동안 편안히 있으면서, 위산의 밥을 먹고 위산의 똥을 쌌지만, 위산의 선은 배우지 않았다. 단지 소를 한 마리 돌봤는데, 만약 길을 벗어나 풀밭으로 들어가면 곧 끌어내고, 남의 논을 침범하면 곧 채찍질하였다. 길들이기를 오래하였는데, 가련하게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으나, 오늘날에는 공터에 있는 흰 소로 변하여, 항상 면전에 있으니, 종일 멀리 데리고 다니면서 쫓아도 멀리 가지 않는다.{{)[所以安在 山三十來年, 喫 山飯, 山屎, 不學 山禪, 祗(祇)看一頭水 牛, 若落路入草, 則便牽出, 若犯人苗稼, 卽便鞭撻, 調伏旣久, 可憐生受人言語, 如今變作箇露地白牛, 常在面前, 終日露逈逈地, 亦不去也.]
}}
이것은 의심할 것 없이 나안이 30년 동안 [보임]한 후에 그의 수행경지를 발표한 말이다. [빈 터의 흰 소]는 소가 이미 길들여졌으며 아울러 [순수한(일색)] 경지에 이르러 도와 하나가 되었음을 비유한 것이다. 항상 면전에 있어 쫓아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미혹하여 잃어버림이 없다는 말인데, 당연히 그가 보임한 결과이다. [길을 벗어나 풀밭에 들어가면 끌어내고, 남의 밭에 침범하면 곧 채찍질한다]는 것은 그가 보임하는 노력을 하였다는 말이다. 똑같이 소를 기르는 것으로 비유를 한 것이 마조와 석공의 문답에도 보인다.
무주석공혜장선사가 어느날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마조가 보고서는 물었다. [뭘 하는가?] 석공이 답하기를: [소를 치고 있다.] [어떻게 치는가?] [일단 풀밭으로 들어가면 코뚜레를 잡고서 끌어낸다.] [자네는 소치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군.]{{)[撫州石鞏蕙藏禪師, 一日廚中作務次, 馬祖見而問曰: 作甚 ? 鞏曰: 牧牛! 祖曰: 作 生牧? 鞏曰: 一回入草去, 把鼻 將來. 祖曰: 子眞解牧牛.]
}}
목우공안이 각지에서 크게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찬미하는 게송을 제창한 사람도 특별히 많았으며, 보명선사에 이르러 그림으로 그려졌는데, 길들이는 열 개의 단계로 나누었으며, 아직 기르지 않는 단계에서부터 함께 잊어버리는 단계까지 각각 게송을 가지고 각 단계의 경지를 밝혔다.
첫째 단계: 소를 치기 전(미목 제일)
사납게 뿔을 치켜 들고 마음대로 포효하며, 계곡으로 산으로 분주히 달려도 길은 오히려 멀구나. 한 조각 검은 구름이 골짜기 입구를 가로지르니, 걸음마다 아름다운 싹을 범한 줄 누가 알리오?{{) 獰頭角恣咆哮, 奔走溪山路轉遙. 一片黑雲橫谷口, 誰知步步犯佳苗.:《牧牛圖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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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아직 코뚜레를 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았을 때는 포효하면서 아름다운 벼와 싹을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달린다. 사람의 심성도 탁마와 함양을 거치지 않았을 때는 비록 본성이 본래 선하지만, 항상 욕심이 지혜를 어둡게 하여 날로 악해지는데도 자신은 알지 못하므로,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소가 난폭하게 뛰어다니는 것을 가지고 비유하였다. 따라서 아직 길들이지 않음을 첫 단계로 삼았다.
둘째 단계; 처음 길들임(초조 제이)
새끼줄을 가지고 곧장 코뚜레를 하고, 한 차례 날뛸 때마다 아프게 채찍을 내리친다. 여태까지의 나쁜 성질을 통제하기 어려워, 오히려(여전히) 소치는 아이는 힘을 다해 끄는구나.{{)[我有芒繩驀鼻穿, 一廻奔競痛加鞭. 從來劣性難調制, 猶得山童盡力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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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처음 코를 꿰이면 나쁜 성질이 여전히 남아서 미쳐 날뛰기를 그치지 않는데, 소치는 아이가 힘을 다하여 견제해야만 악을 선으로 바꾸어 논밭을 침범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처음 수행하는 참선인이 심성을 길들이는 것은 참회하는 공부와 극기하는 수단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완고한 본성을 없애고, 한편으로는 선을 따라 향상하려는 원력을 증가시킨다.
세째단계: 통제를 받아들임(수제 제3)
점차 길들여져 날뛰는 것을 그치니, 물을 건너 구름을 뚫고 걸음걸음 따라온다(간다). 고삐를 잡은 손을 조금도 늦추지 않지만, 목동은 하루종일 스스로(저절로) 피곤함을 잊는다.{{)[漸調漸伏息奔馳, 渡水穿雲步步隨. 手把芒繩無少緩, 牧童終日自忘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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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코를 뚫리고 통제를 받은 후에는 다시는 포효하고 날뛰지 않으며, 감히 논밭을 범하지 않는데, 이로써 사람이 마음을 밝히고 성품을 조복시킨 후에 선을 따르고 악을 버림을 비유하였다. 하지만 [마음의 주인] 즉 심령의 주재는 여전히 감히 방종하지 못하고 걸음걸음 조심하는데, 마치 목동이 구름을 뚫고 물을 건넘에 소의 뒤를 따라가면서 고삐를 쥔 손을 조금도 늦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 [목동은 하루를 마쳐도 피곤함을 모른다]는 것은 도를 향해 자득하는 것은 전적으로 억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비유한 것이다.
네째단계: 고개를 돌림(회수 제4)
날이 지나고 공들임이 깊어감에 비로소 머리를 돌리니, 미쳐 날뛰는 마음씀이 점차 부드러워진다. 소치는 아이는 아직 완전히 믿지는 못하고, 여전히 고삐를 맨 채로 둔다.{{)[日久功深始轉頭, 顚狂心力漸調柔. 山童未肯全相許, 猶把芒繩且繫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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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공을 들여 심성이 점차 통제를 받아 열악한 근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이에 악을 고쳐 선으로 향하는 것이 곧 [고개를 돌린다]는 말의 뜻이다. [날이 지나고 공이 깊어져 비로소 고개를 돌린다]는 것은 곧 이를 가리킨다. 머리를 돌리기 전에는 마음이 사물에 의해 부려져서 바깥으로 치달리고, 머리를 돌린 후에는 악한 생각이 모두 소멸하고, 악이 있으면 곧장 다 알게 된다. 선으로 향하는 공부가 깊어지면 마침내 미쳐 날뛰는 심성을 통제할 수 있는데, 마치 소가 코를 뚫려 통제를 받아 야성이 점차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것이 [미쳐 날뛰는 마음이 점차 부드럽게 길들여진다]는 말의 뜻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양지가 이제 주인이 될 수 있지만, 아직 이 마음이 이미 순수하게 선하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고, 억제하는 공부를 여전히 버릴 수 없는데, 마치 소가 비록 이미 통제를 받지만 여전히 나무에 묶어두거나 우리에 가둬 둘 필요가 있어, 소치는 아이는 감히 소가 자유롭게 달리도록 내버려 두지는 못하는데, 이로써 야성이 다시 발동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소치는 아이는 아직 완전히는 소를 믿지 않고, 여전히 고삐를 묶은 채로 둔다]고 하였다.
다섯째 단계: 잘 길들여짐(馴복 제5)
푸른 버들 그늘 아래 옛 시냇가에서, 놓아 두거나 불러 들임이 전혀 힘들지 않도다. 날은 저물고 푸른 구름 아래 아름다운 풀밭에, 목동은 돌아오면서 굳이 이끌 필요없네.{{)[綠楊陰下古溪邊, 放去收來得自然. 日暮碧雲芳草地, 牧童歸去不須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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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성이 통제와 함양을 거쳐 나쁜 성품이 완전히 제거되고 선한 본성이 완전히 드러나면, 인심의 동향은 천리와 양지의 올바름에 합치되어, 수행과 억제에 의하여 억지로 작위할 필요가 없이 법도를 넘어서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소가 이미 잘 길들여져 채찍과 고삐를 필요로 하지 않고서도 풀어놓고 불러들일 수 있으며 그리고 /돌아갈 곳을 아는 것과 같다. 마음이 이르러서는/ 선함에 머무르는 것은 마치 소가 목동의 견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날이 저물어 푸른 하늘 향기로운 풀밭에, 목동은 돌아가면서 구태여 끌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러한 경계를 노래한 것이다.
여섯째 단계: 걸림 없음(무애 제6)
공터(넓은 평지)에서 편히 잠자니 마음이 자유롭고, 힘들여 채찍질하지 않으니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다. 소치는 아이는 푸른 소나무 아래 편히 앉아서, 피리소리 오르내리니 즐거움이 넉넉하네.{{)[露地安眠意自如, 不勞鞭策永無拘. 山童穩坐靑松下, 一曲昇平樂有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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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이 이미 길들여져도 아직 힘써 행하는 단계에 있으면, 마치 목동이 소를 치면서 고삐는 비록 제거했지만 채찍은 여전히 남겨 두어 이로써 소가 달아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걸림이 없는 단계에 이른 후에 소는 더 이상 외양간에 가둬 기를 필요가 없고, 심지어는 공터에서 편히 잠을 자기도 하는데, /그래도 잃어버리거나 남의 곡식을 먹을 염려가 없어서/ 또한 채찍으로 구속하거나 감독하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목동 즉 마음의 주인은 이 때 이미 마음이 한가하여 푸른 소나무 아래 편히 앉아서 채찍을 놓아 두고 단소를 비껴 불며 태평가를 연주하니 아주 기분이 좋다. 그러므로 [목동은 푸른 소나무 아래 편히 앉아 피리를 불며 즐거움이 넉넉하다]고 하였다.
일곱째 단계: 흐름에 맡기다(임운 제7)
버드나무 아래 봄 물결은 저녁놀 비쳐있고, 아지랭이 향기로운 풀은 마냥 푸르르다. 배고프면 밥먹고 목마르면 물마시며 때에 따라 지나가니, 바위 위의 목동은 깊은 잠이 들었구나.{{)[柳岸春波夕照中, 淡煙芳草綠茸茸. 饑餐渴飮隨時過, 石上山童睡正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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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없는 단계에서는 심성은 이미 순전히 선할 수 있지만, 여전히 심주 즉 목동은 보살피고(지켜보고) 있다. 흐름(운명)에 맡기는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는 무엇을 하여도 모두 천성의 자연스럼을 발휘하여 조금도 힘써지 않는다. [버드나무 우거진 물가에 봄물결은 저녘놀 비추고 있는 가운데] [맑은 연기 향기로운 풀이 푸르고 푸른] 즐거운 경지가 있다. 소는 이미 목동 즉 심주의 어떠한 보살핌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배고프면 밥먹고 목마르면 물마시며 자연히 도에 합한다. 목동은 바위 위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하나같이 소에게 맡겨 두어, 이미 마음대로 하여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여덟번째 단계: 서로가 잊어버림(상망)
흰 소는 항상 흰구름 가운데 있고, 사람이 절로 무심하니 소 또한 그러하다. 달이 흰구름을 뚫고 나오니 달 그림자도 희고, 흰구름과 밝은 달이 서에서 동으로 간다.{{)[白牛常在白雲中, 人自無心牛亦同. 月透白雲雲影白, 白雲明月任西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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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이미 길들여져 흐름에 맡겨두는 단계에 이르러면, 비록 이미 나쁜 성품(습성)은 전부 소멸했지만, 이로써 목동의 악한 생각이 모두 사라지고 지극한 선에 이르렀음을 비유하는데, 하지만 소와 목동은 여전히 대립한다. 서로 잊어버리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소는 이제 순백하여, 본성에는 선악의 구분이 없고 순전히 선하니, 흰 소와 흰 구름은 전혀 구분이 없게 되어(한 색이 되어), [흰 소는 항상 흰 구름 가운데 있다]고 하였다. 목동은 이미 소의 생각 즉 심성을 조복하려는 생각을 간직할 필요가 없고, 소 또한 목동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심성이 이미 자연히 도에 합치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절로 무심하고 소도 또한 그러하다]고 하였는데, 소와 목동이 서로를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도는 /부지/도 아니고 /무기/도 아니다. 이 때는 [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도 전체가 드러나며] [자성]이 드러난다. 달은 [자성]을 대표하고, 흰 구름은 현상을 대표하는데, 자성은 현상으로부터 묘용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달이 흰구름을 뚫고 나오니 구름 그림자가 희다]고 하였다. 사람과 소가 서로 잊어버리고 밝은 달 흰 구름 아래 동으로 가거나 서로 가거나 뜻과 같지 않음이 없고 자재하지 않음이 없다.
아홉번째 단계: 홀로 비춰봄(하나임을 관조함)(독조 제9)
소는 어디 가고 목동은 한가한데, 한 조각 외로운 구름이 푸른 봉우리 사이에 있네. 밝은 달 아래 손뼉치고 큰 소리로 노래하며, 돌아오니 아직 하나의 관문이 남았네.{{)[牛兒無處牧童閑, 一片孤雲碧 間. 拍手高歌明月下, 歸來猶有一重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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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로부터 용을 일으키니 체와 용이 한가지이다. 사람과 소가 서로 잊음으로부터 소가 이미 보이지 않음에 이르르니, 즉 한 점 신령스런 빛이 위아래를 환하게 비추어 조금의 찌꺼기도 없으니, 마치 외로운 구름이 종횡으로 흩어지고 뭉쳐짐이 막힘이나 걸림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소는 어디 가고 목동은 한가한데, 한조각 외로운 구름이 푸른 봉우리 사이에 걸렸네]라고 하였다. 소를 치는 것이 이 경지에 이르러면 이미 성공한 것인데, 사람이 심성을 길러 이미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작용을 포섭하여 본체로 돌아가지 못하여, 아직 내가 있고 나의 견해가 있으니, 최후의 한 관문을 돌파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오니 아직 한 관문이 남았다]고 하였다.
열번째 단계: 둘 다 사라짐(쌍민 제10)
사람과 소가 보이지 않고 종적이 묘연한데, 밝은 달은 빛을 머금고 만상은 공적하다. 만약 그 가운데 분명한(확실한) 뜻을 묻는다면, 들꽃과 향기로운 풀은 저절로 총총하다.{{)[人牛不見杳無 , 明月光含萬象空. 若問其中端的意, 野花芳草自叢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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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는 이미 최후의 한 관문을 돌파하여 소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완전히 우주대전의 자성에 의해 포섭된 것이다. 이 때 목우도에서는 오직 한 큰 동그라미가 있는데, 마치 보름달과 같고 다른 형상은 없다. 이것은 곧 [자성]을 대표한 것이며 만상을 포섭한다. 그러므로 [사람과 소는 보이지 않고 행방이 묘연한데, 밝은 달은 빛을 머금고 만상이 공적하다]고 하였다. 이 둘 다 사라지는 경지에 이르러, 만약 궁극적 경지를 묻는다면, 현상계,색계의 일체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즉 [들꽃과 향기로운 풀이 저절로 무성하다.] 참선인이 도를 구하는 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도를 깨닫기 전에는 산을 보면 산이고, 물을 보면 물이다. 도를 깨달아 [들어갈 곳]이 있고 나서는,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다. 보임과 [쉼]을 거친 후에는 산을 보면 여전히 산이고, 물을 보면 여전히 물이다. 여기서 [들꽃과 향기로운 풀이 저절로 무성하다]는 것은 바로 이 최후의 경계와 같다.
목우도와 게송은 두 가지 다른 그림본이 유전되고 있다. 하나는 아직 소를 치지 않음(미목)으로부터 둘 다 사라짐(쌍민)에 이르는 것으로,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고, 하나는 소를 찾음(심우)으로부터 시장에 들어가 팔을 드리움(입전수수)에 이르는 것이다. 두 가지는 다 열 개의 그림과 열 개의 게송을 가지고 있고, 앞에 것의 소는 검은 색에서 흰 색에 이르고, 뒤에 것의 소는 시종 완전히 흰 색인데, 담긴 뜻이 각기 다르다. 나중에 일본으로 전해져서, 일본의 일산국사가 화답한 십우도는 뒤의 것이다. 일산국사는 게송들 앞에 하나의 작은 서문을 달았다.
십우도는 옛 스님(고숙)이 /길(조리.도리)/이 없는 가운데 길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만약 이 일을 논한다면 눈썹을 /덜고 더해도/ 벌써 어긋난다. 하물며 깊고 옅음과 순서의 구분이 있음에랴(있겠는가)? 그러나 성인께서 가신지 오래될수록 법은 당연히 /위태롭게 되고/, 근기에 우열이 많고 /기틀의 작용(기용)/에 빠르고 느림이 있어서 또한 일괄적으로 정할 수 없으므로, 여러 방식으로 다양하게 베풂으로써 이끌어주지 않을 수 없다. 이 그림을 만든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은미한 뜻을 궁구하여 각자 안락하게 쉬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자신도 이롭고 남에게도 이로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이 후세에 퍼져서, 여러 스님들이 게송으로 화답한 것이 자못 많은데, 지금 이 산승은 (분수를) 헤아리지 않고 여러 스님의 뒤에 /덧붙여 쓰니(뒤를 이으니)/, /보는 사람들이 비웃지 않길 바랄 뿐이다/.{{)[十牛圖古宿無途轍中途轍也. 若論此事, /핍/上眉毛, 早已蹉過, 況有淺深次第之異乎? 然去聖逾遠, 法當危末, 根性多優劣, 機用有遲速, 又不可一槪定之, 故未免曲設多方, 以誘掖之, 此圖之作是耶! 究此微旨, 各各至於安樂休歇之地, 可以自利利人也. 此圖後來布世, 諸老頌和者頗多, 今山僧不 , 續紹於諸老之後, 覽者 發一笑云耳.]:《一山國師妙慈弘濟大師語錄》
}}
일산이 화답한 것은 부암칙화상의 십우도송인데, 칙화상의 (게송) 앞에는 또한 청거선사의 작품이 있다. 뒷사람들은 두 가지 다른 목우도송을 분별하기 위하여 청거선사 및 부암칙 화상에게서 나온 것을 또한 백우십송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두 가지 게송의 세부목차 및 담긴 뜻은 다른 점이 많다.
첫째, 소를 찾는다(심우 제일)
본래 형적을 찾을 수 없는데(찾을 수 있는 형적이 없는데), 구름같이 나무가 창창하고 연기같이 풀은 무성하다. 발 아래 비록 갈래길이 나뉘지만, 바위 앞의 마른 나무는 스스로 용트림하는구나.{{)[本無形跡可求尋, 雲樹蒼蒼煙草深. 脚下雖然 路別, 巖前枯木自龍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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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를 가지고 자성 혹은 [/배리즉불/]을 비유하였는데,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소를 찾는 것은 곧 도를 구하고 부처가 되려는 것이다. 지극한 도와 자성은 형체와 자취가 없으므로 [본래 찾을 수 있는 형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성][대전]은 또한 색계 가운데 숨겨져 있는데, [구름같이 나무는 창창하고 안개같이 풀밭은 무성하다]는 것은 곧 이 뜻을 암암리에 담고 있다. 도에로 들어가는 길은 한번 구하면 바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갈래길로 잘못 들어간다. 그러나 도는 어디에나 있으므로, 고목조차도 용트림을 하고 있어, 곳곳에서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발 아래서 비록 갈래길이 나뉘지만, 바위 앞의 마른 나무는 스스로 용트림을 한다]고 하였다.
둘째, 자취를 보다(견적 제이)
풀덤불 속으로 가니 길이 어찌 이리 많은가? 단지 이 발굽자욱이 소가 간 길이 아닐까? 다리 힘이 다한 곳에서 다시 나아가면, 치켜든 소의 뿔이 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草 裏走路何多? 只此蹄岑莫是 ? 脚力窮邊重進步, 昻昻頭角要逢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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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추적을 통해 소는 비록 아직 보이지 않지만 드디어 종적을 찾았다. 도는 비록 깨치지 못했지만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비록 이와 같지만 벌써 다리 힘을 적지 않게 써버렸다.
셋째, 소를 보다(견우 제삼)
바람은 따뜻하고 새는 가지 위에서 울고, 비온 뒤에 풀밭의 빛은 더욱 푸르르다. 이번에는 드디어 그 놈의 뿔을 보았는데, 대씨의 붓끝으로도 그려 내지 못하리라.{{)[風暖幽禽枝上聲, 雨餘原草色尤靑. 者回已覩渠頭角, 戴氏毫端寫不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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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의 참모습이 이미 나타난 것은 마치 소의 형상이 이미 보이는 것과 같다. 소는 초원 위 나뭇가지 아래 있는데, 혹은 바람이 따뜻하고 혹은 비가 그치고, 혹은 새가 우는 무렵이라는 것은 형이상의 도가 형이하의 만유세계를 통하여 현시되어 도는 어디에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지극한 도는 이름하기(마음에 새기기) 어렵고 언어로써 형용할 수 없는데, 마치 소의 형상을 그리기 어려운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때 이미 소뿔을 보았으나, 대씨의 붓끝으로도 그려내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넷째, 소를 잡다(득우 제사)
콧구멍을 하늘 향해 벌름거리는 그 놈을 끌어당겨, 이제부터 날뛰는 성품을 제거해야 한다. 설산은 향기로운 풀과 가는 안개가 있으니, 또한 몰아와서 이곳에 머물게 해야 한다.{{)[鼻孔 天 轉渠, 從今狂逸性須除. 雪山香草和煙細, 且要驅來向此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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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얻었다는 것은 도를 얻었다는 뜻인데, 소를 얻은 후에는 그 날뛰는 성품을 제거해야 하고, 도를 얻은 후에는 보임해야 한다. 석가모니는 설산에서 수도하였는데, 설산의 풀과 안개는 소의 내력과 불교의 기원지를 설명한다. 소를 치는 자는 소를 이 [성역(성위)]에 몰아서 방목해야 한다.
다섯째, 소를 먹이다(목우 제오)
때에 따라 수초로써 그 몸을 길러서, 순수하고 청정하니 어찌 한 티끌에라도 물들었겠는가? 곡식은 자연히 범하지 않고, 묶어 두나 풀어 두나 자유롭도다.{{)[隨時水草活渠身, 純淨何曾染一塵. 苗稼自然混不犯, 收來放去 自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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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얻은 후에는 방목해야 하며, 도를 깨달은 후에는 보임해야 하는데, [순수하고 깨끗해서 어찌 일찌기 한점 티끌에라도 물들었겠는가]하는 말은 자성 지극한 도는 본래 청정함을 설명한 것이고, 벼의 모를 덤덤히 범하지 않아서 풀어두고 묶음이 자유롭다는 것은 보임을 제대로 하여 심성을 기름에 자유롭게 흐름에 맡겨둘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여섯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기우회가 제육)
여윈 소는 이제(이미) 순수하여 집으로 돌아오니, 나무 아래 사립문은 저녁놀을 맞아 들이네. 외양간 속에 식식거리며 자도록 내버려 두고, 처마끝에 걸려 있는 초생달을 조용히 바라본다.{{)[羸牛已純却回家, 樹下柴門啓暮霞. 放敎 欄裏臥, 靜看新月掛 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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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색으로부터 공을 보아 도를 이룬 성스런 진리(도,길)에 이르렀음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도를 행하는 것은 아직 원만하지 못한데, 마치 한 조각 초생달이 맑은 빛은 이미 드러났지만 모자라지도 않고 남지는 않는 큰 원(보름달)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응당 한 층 더 나아가야 한다.
일곱째, 소는 잊어 버리고 사람만 남아있다(망우존인 제칠)
/도롱이 삿갓은/ 이제부터 산에 들어가지 않고, 채찍(과 고삐)을 던져두니 한 몸이 한가하다. 다시는 무서워하며 끌어 당길 일 없으니, 푸른 아지랑이 사이에 마음껏 노래할 수 있어서 좋구나.{{)[蓑笠從玆不入山, 鞭繩抛却一身閒. 更無 勞牽 , 得謳歌翠靄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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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아주 잘 길들여져서 /채찍(과 고삐)/을 쓰지 않아도 되고, 도를 보임하는 공부는 깊어져서 떨어질 염려가 없다. 소를 잊어버린다는 것은 이미 도라는 관념을 잊어버려, 사람과 도가 하나가 되어 분별심이 없음을 비유하였다.
여덟째, 사람과 소를 다 잊어버리다(인우공망 제팔)
한 생각이 공할 때 모든 경계가 공하니, 겹겹이 막혔던 관문이 활연히 통한다. 동서남북에 다 자취가 없으니, 이와 같이 비고 현묘해야만 바른 진리에 합한다.{{)[一念空時萬境空, 重重關隔豁然通. 東西南北了無跡, 只此虛玄合正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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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 더불어 함께 변화하여, 활연히 관통하니, 공과 유의 거듭된 관문은 이미 장애가 될 수 없고, 공과 유가 하나되어, 소도 잊고 사람도 잊으니, 아무런 흔적과 형상도 찾을 수 없다.
아홉째, 근원으로 돌아가다(반본환원 제구)
이미 작위가 없는데 무슨 공부가 있겠는가? 보는 것은 장님 같고 듣는 것은 귀머거리 같다. 시냇물은 맑아서 쪽빛처럼 푸르고, 산꽃은 피어서 /비단/처럼 붉다.{{)[旣然無作有何功? 眼見如盲聽似聾. 澗水湛如藍色碧, 山花開似錦機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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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은 함도 없고 공도 없으며, 도를 보아도 눈으로 보지 않고, 도를 들어도 귀로 듣지 아니하며, 이미 자성과 섞여서, 있지 않으면서 있지 않는 곳이 없다. [시냇물은 맑아서 남색처럼 푸르고, 산꽃은 피어서 /비단처럼 붉다/]. 도는 어디나 있으며, 자성은 만상을 따라 드러난다. [강산과 대지가 모두 법왕의 몸을 드러낸다].
열번째, 저자에 들어가 팔을 드리움(입전수수 제십)
털가죽을 바꾼 뒤 걸음을 돌려 오는데, 까마귀 주둥이와 물고기 아가미가 비슷하구나(분간이 되지 않는다). 온 몸이 원래 흙탕물에 빠졌으니, 나는 이 진리의 문(종문)을 크게 열리라.{{)[換却皮毛轉步來, 依稀烏嘴與魚 . 通身固是混泥水, 我此宗門要大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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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 들어가 팔을 드리운다는 것은 도를 깨친 후에 세상에 들어가 손을 내밀어 사람을 구하는 것을 비유하였다. 자신만 깨친 사람이 되지 않고 세상을 위해 배가 되어서(항해를 하여), 흙탕물 속에서 대중과 다름없이(어울려) 크게 /종문/을 연다. /(이것이) 전적으로 가죽과 터럭을 바꾼 즉 환골탈태한 후에 성위(성스런 경지)에서부터 몸을 돌려 나오는 까닭이다./
이상의 두 가지의 게송들은 각기 /기봉(날카로운 뜻)/을 나타냈는데, 경계에는 비록 같고 다름이 있지만, 높고 낮음의 구분은 없다. 여러 사람들의 화답하는 시는 유실된 것이 아주 많은데도, 뒷사람들에 의해 모아진 것이 여전히 230수 이상이나 된다. 아름다운 문장과 좋은 구절을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우므로, 대강(대략) 20수를 대표적으로 해석하여 그 나머지의 예를 들었다. 범(부)에서 성(인)으로 들어가는 이 10대 역정은 공자의 [나는 열 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에 입신하였으며, 40에 미혹하지 않았고, 50에 천명을 알았으며, 60에 듣는 것을 다 이해했고, 70에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말과 그 기본정신이 상자와 뚜껑이 꼭 맞는 것처럼 일치한다. 단지 하나는 부처가 되는 것이고 하나는 성인이 되는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68.3.25.26.27. 신생보부간)
15. [한입에 서강의 물을 다 들이킨] 방거사
선종은 마조,석두에 이른 후에 용상대덕(큰 스님들)이 배출되어 한 때 극성하였다. 이는 실로 두 대사의 교화에 공을 돌려야 한다. 당시 마조의 문하(좌하)에 방온이라는 속가제자가 한 사람 있어서 큰 신임을 받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의 온 가족이 도를 얻었다고 하는데, 어록과 게송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더우기 [한 입에 서강물을 다 들이마신다]는 공안이 세상에 전해져서 지금도 유명한데, 그는 흡사 종문의 유마힐과 같다.
방거사는 호남 형양사람인데, 대대로 선비집안이었으며, 재물이 풍족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도를 깨달은 후에 보물들을 배에 싣고 상강에 나가 빠뜨렸다고 한다. 그는 먼저 남악의 석두희천을 참배하는데, 석두가 그에게 묻기를:
[그대가 노승을 만난 후로 /일상생활/은 어떠한가?] 즉 수도하는 심덕은 어떠한가? 거사가 대답하기를: [만일 /일상생활/을 묻는다면 입을 열 수가 없습니다.] 즉 도는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거사의 대답은 여전히 /공범기해/에 떨어진 감이 있다. 이에 다시 한 게송을 올려 [일용사]의 깊은 뜻을 밝혔다.
일상생활(매일 하는 일)은 별 다른 게 없으니, 오직 나만이 스스로 우연히 합한다. 무엇이나 취사선택하지 않고, 어디서나 어긋나지 않는다. 붉은 색과 자주색은 누가 구분하였는가? 언덕과 산은 한 점의 티끌도 없다. 신통과 묘용은 물 긷고 나무하는 것이다.{{)[日用事無別, 唯吾自偶諧. 頭頭非取捨, 處處勿張乖. 朱紫誰爲號? 丘山絶點埃. 神通 妙用, 運水與搬柴.]:《景德傳燈錄》卷8
}}
도는 이 [일용사]와 결코 구별이 없다. 하지만 내가 도와 서로 합할 수 있는지에 있을 따름이다. 모든 생각에 취사가 없고 성.범의 분별심을 간직하지 않으며 깨끗하고 더럽다는 차별관념을 일으키지 않으면, 자연히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으며 어디서나 /괴리하지 않는다/. 즉 이 자성과 서로 어긋남이 없다. 붉은 색과 자주색은 곧 이름(/명상/)의 차별인데, [색계]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은 누가 세운 가명인가? /언덕과 산/은 [자성]을 대표하는데, 절대 청정하여 한 점의 티끌도 없는 것이다. 도를 깨친 후의 경계는 아무리 신통과 묘용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물을 긷고 나무를 하는 일용사와 같은 평소에 지나지 않는다. 방거사의 깨달음은 석두희천에 의해 매우 칭찬을 받았으며, 아울러 거사의 신분을 가지고 문하에 들도록 하였다. 하지만 방거사는 마조의 전수를 얻어 깨달았기 때문에 마조의 법계(/법사/)가 되었다. 《경덕전등록》에는 그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방거사는 뒤에 강서로 가서 마조를 참배하고 묻기를: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은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가 말하였다. [그대가 한숨에 서강물을 다 마시고 나면 말해 주리라.] 거사는 그 말을 듣고 현묘한 진리를 담박 깨쳤다.{{)[(龐居士)後之江西, 參問馬祖云: 不與萬法爲侶者是什 人? 祖云: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居士言下頓領玄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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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만법의 변화 가운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직 [자성]이 만법을 낳을 수 있고, 만법과 더불어 짝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니, 곧 견성성불한 사람이다. 보통사람은 자연히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실 수가 없다. 견성성불하여 대전과 합일되면, 마땅히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실 수 있다. 이 경계에 이르면 이미 남김없이 담박 깨쳐, 언어로써 해설할 필요가 없다. 후인들이 이 공안을 노래한 시들이 /특히(기이하게) 많은데/, 특별히 몇 수를 가려서, 서로 다른 선의 경지들을 보이고자 한다.
단숨에(한 입에) 서강물을 다 /들이키니/, 낙양의 목단에 새 꽃술이 터지네. 흙을 털고 먼지를 날려도 찾을 수가 없으니, 눈을 들면 자신과 마주치게 되리라.{{)[一口吸盡西江水, 洛陽牡丹吐新蘂. 土揚塵無處尋, 擡眸撞着自家底.]:五祖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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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서강물을 들이킴이여, 자고새가 /깊은/ 꽃 속에서 울고 있네. 자연히 /알아 듣는 사람/ 있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어디서 오는지는 귀먹은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다.{{)[一口吸盡西江水, 啼在深花裏. 自有知音笑點頭, 由來不入聾人耳.]:寶峯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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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서강물을 들이켜서, 한 방울도 남지 않았는데 큰 물결이 일어난다. 망아지는 /이로부터 보통이 아니며(심상치 않으며)/, 석양 속에 바람이 불어 그림자를 흔든다.{{)[一口吸盡西江水, 涓滴不留洪浪起. 駒兒自是不尋常, 시風弄影斜陽裏.]:白楊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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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서강물을 들이킴이여, 방아 주둥이(방아공이)에 꽃이 피어도 그치지 않네. 잎과 가지마다 빗방울과 이슬이 맺혀있고, 수미산은 바늘 끝에 감추어져 있도다.{{)[一口吸盡西江水, 生花猶未已. 葉葉枝枝垂雨露, 須彌藏在針鋒裏.]:大禪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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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연은 [한입에 서강의 물을 다 마신다]는 이 공안을 마치 낙양의 명화인 목단이 새 꽃술을 터뜨린 것과 같아서 총림의 참선인들이 주의한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성]의 깨달음은 마치 흙 속에 묻힌 야광구슬(밝은 구슬)과 같이 마조의 가르침(지시)을 따라서 파헤쳐 설령 흙과 먼지를 흩날려도 찾을 곳이 없다. 그러나 도는 어디나 존재하여, 눈길 닿는 것이 곧 보리이다. 만일 기회와 인연을 공교롭게 만나게 되면, 머리를 들면 곧 자신의 보물과 맞부딪쳐 견성성불할 수 있다. 보봉조선사는 생각하기를 마조가 보여준 이 공안에는 깊은 계시가 있는데, 마치 깊은 꽃덤불 속에 숨겨진 자고새처럼 형체는 비록 볼 수 없지만, 즉 도는 본래 형체가 없다, 그러나 그 소리소리 불러들이는 울음은 사람들이 도를 향해 깨닫도록 재촉하고 있다. 자연히 방거사와 같이 소리를 아는(알아 듣는) 인재가 있어서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깨닫는다. 깨달을 수 없는 사람은 마치 귀머거리처럼, 종래로 이러한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백양순선사는 [한입에 서강물을 다 마신] 후에 서강의 물은 이미 한방울도 남지 않았는데, 설령 도를 깨달은 사람이 이미 이 지극히 큰 신통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지만 [자성]은 여전히 용솟음치는 큰 물결처럼 기틀의 작용(/기용/)이 멈추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망아지는 이로부터 범상하지 않다]는 말은 마조의 성취가 비범함을 칭찬한 것이다. 육조는 일찌기 남악회양에게 예언하기를 [그대의 발 아래서 망아지가 한 마리 나와 천하사람들을 밟아 죽일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망아지는 마조를 은유한 것이고, [천하사람을 밟아죽인다]는 것은 천하사람들을 제도한다는 것의 반어법이다. 망아지는 곧 이 /전고/를 원용한 것이다. 마조의 이 공안은 마치 망아지가 석양의 노을 속에서 /바람을 향하여 울부짖고 그림자를 희롱하/는 것처럼, 선의 기틀(/선기/)을 현시하였다. 대선명선사는 [한입에 서강의 물을 다 들이킨다]는 이 공안이 마치 생명이 없는 /절구(방아입)/가 멈추지 않고 가지를 내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아주 기특하다고 생각하였다. [잎과 가지마다 비와 이슬을 드리우고 있다]는 것은 세세대대의 참선인들이 모두 이 공안에서 비와 이슬 같은 은택을 받고 있음을 비유하였다. 하지만 사람마다 받아들일(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마치 수미산이 바늘 끝에 감춰져 있는 것처럼 참구하여 깨닫기가 어렵다.
방거사는 마조의 [한입에 서강 물을 다 들이킨다]는 가르침 아래 철저하게 깨달았다. 하지만 그 후 수많은 참선인들이 연구한 사람이 많았지만 깨달은 사람은 적었다. 미혹하면 범인에 머무르고, 깨달으면 성인이 된다. 이 공안은 선의 신비성을 충분히 드러내었다.
(68.2.1. 신생보부간)
16. 대매의 [매실이 익다]
대매산의 법상선사는 속성이 정씨이고, 호북 양양사람이다. 어려서 형주 옥천사에서 출가하였는데, 《경덕전등록》권7에서는 그가 법을 얻은 것과 /산에 머무른/(주지가 된) 경과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처음 대적(마조의 시호)을 참배하고 물었다.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다!] 스님은 곧 크게 깨달았다. 당 정원 때 대매산 은현 남쪽 70리 /매자진구은(처)/에 머물렀다. 당시 염관의 회하의 한 중이 지팡이를 만들 나무를 하러 산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암자가 있는 곳에 이르러 물었다. [스님은 이 산에 계신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사방의 산이 푸르다가 다시 누렇게 되는 것밖에 보지 못했다.] 다시 묻기를: [산에서 나가는 길은 어떻게 갑니까?] [물이 흘러 가는대로 가라.] 중이 돌아가 이 말을 염관에게 하였다. 염관이 말하기를: [내가 강서에 있을 때 한 스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후로 소식을 모르는데, 그 스님인 것 같구나.] 마침내 그 중을 보내 스님에게 나오도록 청하였다. 스님은 게송을 지어 이르기를: [꺾이고 앙상한 고목이 차가운 수풀에 의탁하여, 몇 번이나 봄을 만나도 마음이 변치 않는다. 나무꾼이 보아도 오히려 돌아보지 않는데, /유명한 사람(영인.유행가수.영땅의 사람)/이 어찌 힘들여 찾는가.]{{)[初參大寂(馬祖諡號)問: 如何是佛? 大寂云: 卽心是佛! 師卽大悟. 唐貞元中,居於大梅山 縣南七十里梅子眞舊隱(疑漏一處字). 時鹽官會下一僧入山採柱杖, 迷路至庵所, 問曰: 和尙在此山來多少時也? 師曰: 只見四山靑又黃. 又問: 出山路向什 去? 師曰: 隨流去. 僧歸, 說似鹽官, 鹽官曰: 我在江西時, 曾見一僧, 自後不知消息, 莫是此僧否? 遂令僧去請師出, 師有偈曰: 殘枯木倚寒林, 幾度逢春不變心. 樵客遇之猶不顧, 人那得苦追尋.]
}}
염관제안도 마조의 제자이다. 대매법상은 마조의 한 마디 말을 듣고 문득 깨닫고는 대매산에서 은거하였는데, 곧 [바위를 짝하고 구름에 의지하여 /성태/를 기른 것이다]. 즉 깨달음의 경지를 잃지 않게 하는 [보임]의 날들을 보낸 것이다. 그 후 염관 문하의 중이 묻는 말에 답하였는데, 그 말에는 현묘한 기틀(/현기/)이 담겨 있었다. [단지 사방의 산들이 푸르고 또 누른 것을 보았다]는 말은 이미 세월을 잊어버리고 성스런 경계 중에 있지만, [대전]이 낳는 현상계의 변화를 이해할(체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 질문에 대답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수행의 경지를 현시하였다. 염관제안은 대매의 대답을 듣고서 이미 그 요지를 알았다. 그래서 그에게 산에서 나오기를 청했으며, 법상은 게송으로써 거절하였다. [꺽어지고 앙상한 마른 나무가 차가운 숲에 의지해 있다]는 말은 현상(/색상/)을 간파하고 본래를 깨달아서, 형체는 마른 나무와 같고 마음은 식은 재와 같이, 홀로 [차가운 숲]에 의지하여 변함없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번이나 봄을 만나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몇 차례 [꺼진 재가 다시 불타고] [마른 나무가 다시 살아나는] 기회를 격었지만, 여전히 원래의 마음(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체는 이미 마른 나무와 같아서 나무하는 나무꾼도 오히려 베어가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칼과 도끼를 휘두르는 /영인/ 즉 목수가 재목을 구하여 세상에 쓸려는 눈으로써 간절히 찾는가? 여전히 산에서 내려갈 뜻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야광구슬이 땅에 묻혀 있어도 저절로 그 빛을 감출 수 없는 법이다. 나중에 법상은 마침내 세상에 나와 주지가 되었다. 마조는 이 소식을 듣고서 사람을 보내 그의 수행경지를 시험하였다.
대적은 대매가 /산에 머물고 있다/(주지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서 한 중을 보내 묻게 하였다. [스님이 마조선사를 친견하였을 때 무엇을 얻었길래 이 산의 주지가 되었습니까?] 스님이 이르기를: [마조스님은 나에게 마음이 부처라고 하여서, 나는 곧 여기 와서(여기를 향해) 머물고 있다.] 중은 이르기를: [마조스님의 요사이의 불법은 또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가?] [요사이는 또한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 늙은이가 사람들을 현혹시켜 그칠 날이 없구나. 그대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닐지라도, 나는 오로지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할 것이다.] 그 중이 돌아가 이 말을 마조에게 전하자, 마조는 이르기를: [대중들아! 매실이 익었구나.]{{)[大寂聞師住山,乃令一僧人到問云..和尙見馬師,得箇什마? 便住此山. 師云..馬師向我道,[卽心是佛] 我便向這裏住. 僧云. 馬師近日佛法又別. 師云 作마生別? 僧云..近日又道非心非佛. 師云..這老漢惑亂人未有了日, 任汝非心非佛, 我只管卽心卽佛. 其僧廻,擧似馬祖,祖云 大衆! 梅子熟也.]
}}
참선인이 도를 깨친 후에는 남김없이 환하게 이해하여, 자연히 입각점을 세울 수 있으니, 남에 의지해 이해하여 남들이 뭐라 하면 자기도 뭐라 하며 남들의 언구에 따르지 않게 될 수 있다. [오직 아주 지혜로운 사람과 아주 어리석은 사람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이 곧 이 뜻인데, 그 앎이 참되고 뚜렷한 것이기 때문이다. 법상은 이미 마조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가르침에 의해 요도(중요한 도리)를 깊이 체득하여,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는 바뀜(전환.전변)이 그에게는 이미 쓸데없는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어떠한 언구도 모두 통발과 같아서, 물고기를 이미 잡고나면, 통발의 크기는 어떠한지 형식이 어떠한지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감탱이가 사람을 현혹시키는 짓을 그칠 날이 없구나]하고 마조를 비평하였다. 자신이 얻은 것을 독실하게 믿어서 마조를 따라 고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마조는 특별히 그를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매실이 다 익었다] 즉 대매의 깨달음과 수행이 이미 원만하고 성숙해졌다. 매실이 익었다는 것은 이후 선사들이 선의 견해를 표현하는 제재가 되어 노래되어졌다.
연꽃으로 옷해 입고 솔잎을 먹으며 구름 깊은 곳에 머무니, 아마도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보았다. 평생을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에 묻혀 있으니, 천년 만년이 되어도 티끌이 되지 않네.{{)[荷衣松食住深雲, 蓋是當年錯見人. 埋沒一生心卽佛, 萬年千載不成塵.]:《宗鑑法林》卷12.楚雲南
}}
초운남선사는 반어법으로써 이 공안을 노래하였는데, [연잎으로 옷해 입고 솔잎을 먹으며 깊은 산에 머무른다]는 것은 법상선사가 도를 깨친 후의 보임하는 공이 깊음을 찬미한 것이다. [아마도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만났다]는 것은 실은 그 때 일찌기 사람을 잘못 만났지 않았음인데, 즉 다행히도 마조를 만났다는 것이다. 이 일이 있고서야 비로소 요도(도)를 깨닫고서 연/꽃/(연잎)으로 옷을 삼고 솔/방울/(솔잎)로 밥을 삼아, 세속에 초연하여 오랫동안 백운 깊은 곳인 성스런 경계 안에 머물렀다. [한평생을 마음이 곧 부처에 파묻혔다]는 것은 여전히 반어법을 썼는데, 법상은 마조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가르침을 얻어서 도를 깨달았는데, [일생을 묻었다]는 것은 곧 일찌기 일생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조의 가르침과 법상의 깨달음 그리고 이 공안은 천년만년이 지난 후에도 영원히 매몰되거나 소실되지 않았으므로 [천년만년이 되어도 먼지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내 마음은 꽃잎처럼 얇지만 첩(의 마음)은 얼음처럼 맑아서(차가워서), 사내가 황금으로 꼬여도 첩은 응하지 않네. 만일 우연히 미소라도 한번 흘린다면, 반생동안 외로운 등불을 지켰음을 누가 믿어 주겠는가?{{)[郞心葉薄妾氷淸, 郞說黃金妾不應. 假使偶然通一笑, 半生誰信守孤燈.]:간옹경
}}
간옹경은 염정시의 형식으로써 법상이 도를 지켜 변하지 않음이 마치 절개있는 부인이 정조를 지켜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아 시험을 견디어 냈음을 표명하였다. [사내 마음이 꽃잎처럼 엷다]는 것은 마조의 앞뒤 불법이 다른 것을 비유하였으며, [첩의 마음은 얼음처럼 맑다]는 것은 법상의 굳은 마음이 마치 절개를 지키는 부인이 얼음처럼 맑게(차갑게) 정조를 지키는 것과 같음을 형용한 것이다. 마조의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는 말은 사람을 유혹하는 황금과 같다. 그러나 법상은 흔들리지 않았는데, 마치 절부가 황금을 물리치고 응답하지 않은 것과 같다. 황금을 보고 한 번 미소지어 두 사람의 정이 통한다면 절개를 지키는 부인이 변함없이 정조를 지켜왔음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법상이 만일 마조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믿었다가 (이제와서) [마음이 곧 부처]의 의한 깨달음을 의심한다면, 믿는 마음이 굳지 못한 것이고, 달리 말하면 도를 깨달음이 투철하지 못한 것이어서, 발을 딛고 서지 못하고 남들을 따라서 옮겨갈(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만약 우연히 웃음이 한 번 통하면, 반생동안 외로운 등불을 지켜왔음을 누가 믿겠는가]의 뜻이다.
오조초는 도잠의 시를 빌어 그의 생각(정취)을 나타내었다.
/높은 분/ 앞에서 아리따운 아가씨에 대해 매우 감사하니, 꿈 속에서 양왕을 고뇌하게 만드는 것과 같도다. 선(정)심은 이미 진흙에 빠진 솜처럼 되었으니, 동풍이 상하로 미친 듯이 불어도 날리지 않는다.{{)[多謝尊前窈窕娘, 好將幽夢惱襄王. 禪心已作沾泥絮, 不逐東風上下狂.]:五祖蕉
}}
혜홍의 《冷齋夜話》라고도 하는 《홍각범에》 근거하면, 이 시는 /오의 승려인/ 도잠이 소동파와 왕래할 때 지은 것이다.
오승도잠은 정취가 있었다---동파가 동서로 임직을 옮기자, 도잠이 그를 방문하러 가서, 소요당에 머물렀는데, 사대부들이 다투어 알아 보았다. 동파는 손님접대를 마치고는 초대하여 함께 왔는데, 기생들을 데리고 왔다. 동파가 한 기생에게 시켜 시를 청하자, 도잠은 붓을 당겨 시를 지었는데: 무산에 있는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말을 전하니, 꿈 속에서 혼령이 양왕을 고뇌하게 만든 것과 같다. 선정의 마음은 이미 진흙 묻은 버들개지처럼 되어, 봄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다.{{)[吳僧陶潛, 有標致……及坡移守東徐, 潛往訪之, 館於逍遙堂, 士大夫爭識之. 東坡饌客罷, 約而俱來, 紅粧擁隨, 東坡遺一妓前乞詩, 潛援筆而成曰: 寄語巫山窈窕娘, 好將魂夢惱襄王. 禪心已作沾泥絮, 不逐東風上下狂.]:《詩人玉屑》 20권에서 《冷齋夜話》를 인용
}}
오조초의 시는 비록 글자에 있어서는 약간 다르지만, 두 시는 대체로 같아서, [옮겨 적어 창작하는 방식(이술위작)]의 차용임을 알 수 있다. 비록 이와 같지만, 일단 차용을 거치고 나서는, 의의가 각기 달라졌다. 왜냐하면 도잠의 시는 시를 청하는 기녀에게 응당 마음을 동파에게 쓰도록 권하고, 마치 선녀(신녀)와 양왕의 관계와 같이, 자신은 참선하는 사람으로 선(정)심이 이미 정하여져 마치 진흙이 묻은 버들개지가 춘풍에 따라 위아래로 광란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오조초가 인용한 후에는 아리따운 아가씨로써 마조에 비하였다. 마조의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는 말은 단지 양왕 즉 도를 깨치지 못한 사람만을 미혹시킬 수 있다. 법상은 투철히 깨닫고 나서 다시는 현혹되지 않기 때문에 마조가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고쳤다고 해서 따라서 위아래로 광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참선하는 마음은 이미 진흙 묻은 버들개지가 되어 동풍을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를 가지고써 표현하였다. 또한 재미있게 비유하는 시(/비흥시/)의 오묘한 점을 볼 수가 있다.
종전의 선조사들은 문도와 후배들에 대하여 이른바 [인가]하는 활동이 있었는데, 이로써 그가 깨달았는지 여부, 오차와 잘못됨이 있는지 여부, 깨달음의 정도는 어떠한지를 시험하였다. 한바탕 정면대결하는 진실한 시험과 다름이 없는데, 전광석화처럼 빨라서,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생각으로 알고 이해하는 지해(알음알이)의 경계에 떨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학인으로 하여금 곧 바로 말을 하고(말을 받고./착어/), 말마다 가슴 속에서 흘러나와서 학인이 절실하게 투철히 깨달은 견해일 것을 요구한다. 위에서 서술한 마조가 사람을 보내어 법상에게 한 문답이 곧 [인가]하는 시험이며, [매실이 익었다]는 것은 [인가]한 후의 증명하는 말이다. 동배의 참선인들도 종종 서로가 시험(검증)하였는데, 유가에서의 절차탁마와 같다. 대매법상이 마조에게 인가를 받은 후에 방거사가 또한 시험을 하였다.
방거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오랫동안 /큰 매화나무/(대매)를 그리워했는데, 매실이 익었는지 않았는지는 모르겠군.] 스님이 이르기를: [자네는 어디에다 입을 대볼텐가(하구)?] 거사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산산조각 나겠지!] 스님이 이르기를: [씨는 나에게 돌려 주시게.]{{)[龐居士問師, 久嚮大梅, 未審梅子熟也未? 師云: 向什 處下口? 士云: 與 , 則百雜碎也! 師云: 還我核子來.]
}}
[오랫동안 /큰 매화나무/를 그리워했다]는 것은 대매법상의 깨달음을 기다린지 오래라는 말이고, [매실이 익었는지 어떤지를 모르겠다]는 것은 이를 빌어 법상이 도를 깨친 정도가 어떠한지를 캐물은 것이다. 법상이 만약 매실이 익었다고 답했다면, 조잡하고(세심하지 않고) 자만하는 것 즉 성자로 자처함을 면하지 못한다. [어디다 입을 댈텐가]하는 말은 매실은 익으면 입을 대어 맛을 볼 수가 있는데, 만약 깨달았다면 만유의 근본인 [대전]과 함께 있으니, 그렇다면 이 [익은 매실]은 어떻게 입을 댈 것인가 즉 어떻게 시험할 수 있는가 하는 뜻이다. 방거사도 보통사람이 아니어서, 답하기를: [그러면 박살이 나겠지]. 즉 소견이 여전히 정신없이(헷갈려) 그림자를 우롱하는 가상이라는 말이다. 이에 법상은 방거사에게 손을 내밀면서 [(내) 씨는 돌려주시게] 즉 나에게(나의) [도의 핵심]은 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방거사는 다시 물을 수 없게 되었다.
대매의 매실이 익었음을 방거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바른 시각으로 진과 망을 증험하니, 서로 만나 손뼉치고 돌아온다.{{)[大梅梅子熟, 龐老已先知, 正眼驗眞妄, 相逢拍手歸.]:松源岳
}}
송원악선사는 완전히 두 사람이 시험하는 과정 및 결과를 가지고 게송을 지어 밝힌 것이다. 대매법상의 깨달음은 방거사가 벌써 알았는데, 하지만 [바른 눈으로써 진실한지 망령된 것인지를 확인]하려 하였다. 바른 눈은 지혜의 눈을 말한다. 사람의 정수리를 불가에서는 외눈(/척안/)이라고 하는데, 사람의 지혜가 나오는 곳이고 또한 바른 눈이라고 한다. 방거사가 지혜의 눈을 통하여 법상의 깨달음의 진망을 시험하고자 한 결과 이 시험의 전장은 막상막하였다. 그러므로 [서로 만나서 박수치고 돌아온다]고 하였다. 하지만 또한 피차의 시험이 일치하지 못하고, 고하가 이로써 드러난 것이니, 법상이 주지가 된 후의 이 공안으로 예증할 수 있다.
夾산과 정산이 동행하다가 의견이 달랐다. 정산이 말하기를: [나고 죽는 가운데 부처가 없었다면 곧 나고 죽지 않을 것이다.] 협산이 말하기를: [나고 죽는 가운데 부처가 있으므로 나고 죽음에 미혹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산에 올라 절하고서, 협산이 이 일을 들어 대매에게 물었다. [두 사람의 견해가 어느 것이 좀 더 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대매가 이르기를: [하나는 가깝고 하나는 소원하다.] 협산이 묻기를: [어느 것이 가깝습니까?] 대매가 말하기를: [물러갔다가, 내일 오너라.] 협산이 이튿날 다시 올라와 묻자, 대매가 이르기를: [가까운 자는 묻지 않고, 묻는 자는 가깝지 않도다.]{{)[夾山與定山同行言話次, 定山云: 生死中無佛卽非生死. 夾山云: 生死中有佛卽不迷生死. 二人上山參禮, 夾山便擧問師(大梅): 未審二人見處, 那個較親. 師云 一親一疏. 夾山云: 那個親? 師云: 且去, 明日來. 夾山明日再上問師, 師云: 親者不問, 問者不親.]
}}
정산과 협산의 소견이 달라서, 자신의 견해를 양보하지 않았다. 이에 곧 법상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법상은 결코 두 사람의 경계에 의하여 높고 낮음을 단정하지 않고, [가까운 자는 묻지 않고 묻는 자는 가깝지 않다]에 따라 높고 낮음을 정하였다. [묻는 자는 가깝지 않다]는 것은 소견에 의심이 있거나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와서 묻는 것이거나 아니면 높고 낮음을 다투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와서 묻는 것이므로 곧 [묻는 자는 가깝지 않다]. 즉 협산은 이미 정산의 아래에 떨어졌다. 방거사가 대매의 회답에 다시 무슨 말을 하지 못한 것으로 확실히 매실이 익었음을 알 수 있다. 신암 선사는 곧 이러한 뜻으로 게송을 지었다.
방거사가 직접 찾아와 백기를 세우니, 한 칼에 만가지 기틀이 끊어졌네. /종전에 덜 익은 것을 깨물어 캐트린 것이 아니라, 그의 매실이 아주 익었기 때문이다./{{)[龐公親到竪降旗, 一劍當頭斬萬機. 不是從前生咬破, 爲他梅子熟多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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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거사가 시험할 때 깃발을 들고 투항한 것은 법상의 지혜의 칼이 [만가지 기틀]을 다 자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실이 설익었을 때 씹어 깨뜨린다는 것은 말에 부족함(치우침)이 있는데, 왜냐하면 매실이 익어야 비로소 원융무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상이 철저하게 견성하고 참으로 깨달았으며, 마조의 인가가 조금도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매실이 익은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얼마나 많은 참구의 공부와 얼마나 많은 보임의 노력을 들여야 비로소 익게 되는지 모른다. (67.4.19. 신생보부간)
17. 단하가 목불을 태우다
등주(지금의 하남 등현)의 단하천연선사는 응당 선문에서 [괴짜(기인)]인데, 일생동안의 행적은 더욱 전기적 색채가 풍부하다. 《경덕전등록》권14에 단하의 출가경과(과정)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는 유학을 익혔는데, 과거를 보려고 장안에 가던 중에 객사(여인숙)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홀연히 꿈 속에서 흰 빛이 방에 가득하였다. 점치는 사람이 [/공의 도리를 깨달을 상서입니다/] 하였다. 한 선객을 만났는데 그가 물었다. [/선비/는 어디 가시오?] [벼슬하러 갑니다.] 선객이 이르기를: [벼슬하는 것(선관)이 어찌 부처가 되는 것(선불)만 하겠소?] [부처가 되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지금 강서에 마조대사가 계시는데, 그 곳이 부처를 뽑는 곳이니, 선비는 가보시게.] 이에 곧장 강서로 갔다.{{)[初習儒業, 將入安應擧, 方宿於逆旅, 勿夢白光滿室, 占者曰: 解空之祥也. 偶一禪客問曰: 仁者何往? 曰: 選官去! 禪客曰: 選官何如選佛? 曰: 選佛當往何所? 禪客曰: 今江西馬祖大師出世, 是選佛之場, 仁者可往. 遂直造江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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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가 되는 것]과 [부처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두 길이다. 적어도 [관리가 되는 것]은 입세적이고, [부처가 되는 것]은 출세적이다. 단하는 장안에 들어가 과거에 응시하여 [관리가 되는 것]으로부터 단지 딴(옆) 사람들의 몇 마디 말의 지도(인도)를 거쳐, 이에 태도를 바꾸어 곧바로 강서의 마조가 [부처를 뽑는] 곳으로 갔다. 불교를 믿는 사람을 가지고 보면, 곧 큰 기연(기회와 인연.인연)이고, 단하를 가지고 논한다면 이 180도의 전환은 대지혜가 초래한 것이다. 단하가 마조대사를 찾아가서 참배하자, 대사는 그의 인연(기연)이 남악의 석두희천에게 있다고 하여, 이에(그래서) 희천의 문하가 되어 [/부엌에서/] 불을 때는 행자가 되었다. 그가 삭발수계한 것과 법호를 얻은 행위는 여전히 사람을 놀라게 한다.
행자생활을 한지 3년이 되었는데, 어느 날 석두가 대중에게 고하기를: [내일은 법당 앞의 풀을 뽑도록 해라.] 이튿날 대중과 행자들은 각기 가래와 괭이를 준비하여 풀을 뽑았는데, 스님만은 동이에 물을 채워 머리를 깨끗이 씻고서 스님 앞에 꿇어 앉았다. 석두가 보고는 웃으면서 곧 삭발을 시켜 주었다. 그리고는 계법을 일러주자, 스님은 귀를 막고는 나가 버렸다. 곧장 강서로 가서 다시 마조를 참배하려 했으나, 참배하지 못했다. 그러자 법당 안으로 들어가 불상의 목에 걸터 앉았다. 대중들이 깜짝 놀라 급히 마조에게 보고하였다. 마조가 몸소 법당에 들어와 이를 보고는 말하기를: [내 새끼가 천연스럽구나.] 스님은 곧장 내려와 절을 올리고 말하기를: [스님께서 법호를 내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를 인하여 천연이라 이름하였다.{{)[役凡三年, 忽一日, 石頭告衆曰: 來日 佛殿前草. 至來日, 大衆行童各備 草. 獨師以盆盛水淨頭於和尙前胡 , 頭見而笑之, 便與剃髮, 又爲說戒法, 師乃掩耳而出. 便往江西, 再謁馬師, 未參謁, 便入僧堂內騎聖僧頸而坐. 時大衆驚愕, 遽報馬師, 馬躬入堂視之, 曰: 我子天然. 師卽下地禮拜曰: 謝師賜法號, 因名天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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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수계는 승려의 큰 일이고 큰 의식인데, 단하는 이런 식으로 그 일을 치뤘으며, 또한 석두희천이 계법을 설하는 것을 듣지 않았는데, 실제로는 계법을 깨닫고 있어서 구구하게 말해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천연]이라는 법호를 얻은 기특한 행위는 한편으로는 마조에게 귀의한(심복한)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미 현상(색상)을 비운 것인데, 그러므로 감히 불상의 목에 걸터 앉았던 것이다. 그가 목불을 태운 것은 같은 의의를 가진다.
나중에 혜림사에 있을 때 어느날 날씨가 몹시 춥자, 스님이 목불을 가져다가 불태우니 어떤 사람이 그를 비난하였다. 스님이 말하기를: [불태워 사리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나무에 어찌 사리가 있겠는가?] 스님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어찌하여 저를 야단칩니까?]{{)[後於慧林寺遇天大寒, 師取木佛燒之, 人或譏之, 師曰: 吾燒取舍利. 人曰: 木頭何有? 曰: 若爾者, 何責我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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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부처는 여전히 나무이다. 단하는 부처의 형상 때문에 감히 태우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그를 꾸짖을 때, 단하는 [사리를 얻으려고 태웠다]고 하였다. 만약 목불이 참으로 부처라면 자연히 사리 즉 부처의 뼈가 있을 것이다. 이미 [나무에 무슨 사리가 있겠느냐] 즉 나무에 사리가 없다면, 목불은 여전히 나무이고, 나무를 태운다고 무슨 죄가 되겠는가? 그러므로 그는 다시 /양존불상/을 가져다가 태우려 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단하를 꾸짖었던 사람은 혜림사의 원주였는데, 원주는 [한 생각 화내는 마음이 일어나면, 백만가지의 장애가 생긴다]는 것 때문에, 뒤에 도리어 눈썹과 수염이 모두 빠져버리게 되었고, 단하가 목불을 태웠다는 공안은 오히려 후세에 유전되어, 게송의 제재가 되었다.
옛 바위에는 이끼가 덮이고 차가움은 사립문을 침범하니, 나는 것은 놀라고 달리는 것은 혼미하다. 밤 깊어 차가운데 모래밭에 불을 밝혔는데, 새벽 잃은(잊은) 어부는 문득(번번이) 스스로 의심하네.{{)[古巖苔閉冷侵扉, 飛者驚危走者迷. 夜深寒 汀洲火, 失曉漁家輒自疑.]:《頌古聯珠通集》卷14.投子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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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바위에 푸른 이끼가 덮여 있고, 차가운 기운은 문짝으로 스며든다라는 것은 투자청이 색계의 일을 빌어 이로써 우주대전 즉 본체계를 비유한 것이다. 나는 것은 나는 새를 가리키며 달리는 것은 달리는 짐승을 가리키는데, 참선인의 근기 및 깨달음이 혹은 높고 혹은 낮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근본을 철저하게 깨치기 전에는 즉 마음을 밝혀 본성을 보기 전에는, 높은 자는 깜짝 놀래서 높아서 미칠 수 없다고 여겨 마음이 곧 부처임을 감히 믿지 못하고, 낮은 자는 미혹하여 이 [위로 가는 한 길/(향상일로)/]이 있음을 모른다. [밤은 깊고 차가워 모래밭에 불피운다]는 것은 단하천연이 목불을 태운 것이 차가운 깊은 밤에 물가에서 어두운 나루터를 밝혀줄 횃불을 밝히어 돌아오는 배들을 인도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어부 즉 혜림사의 원주와 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새벽을 잃어버리고(이 오는 것도 모르고)] 즉 기연(기회와 인연.인연)을 놓치고 스스로 의심하여(미혹하여) 참된 이해(깨달음)를 얻지 못한다. 참으로 임천노인이 이 공안에 대하여 가한 논평과 같다.
그 어찌 곡조가 고상하여 따라하는 사람이 적고, 옳은 것을 그릇된 것으로 여기는가. 대저 동으로 가면 서로 가는 것이 이로움을 모르고, 재주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을 못난 아이는 못마땅하게 여기니, 어부에게 의심하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당연하다. 아! 밤 무덤의 해골들이 원래는 물이며, 객의 술잔에 비친 활 그림자는 결국 뱀이 아니다. 본성은 빈 것이고 마음의 달은 둥글거나 이그러짐이 없는데, /미친듯이 미혹의 구름에 별안간 가려진다./{{)[其奈曲高和寡, 以是爲非, 大抵東行不見西行利, 巧兒做處拙兒嫌, 莫怪漁家疑情尙在, /이/! 夜塚 元是水, 客杯弓影竟非蛇. 性空心月無圓缺, 狂被迷雲取次遮.]:《空谷集》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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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진은 시인의 입장에서 이 공안을 노래하여, 단하를 높이고 혜림사의 원주를 폄하하였다.
눈 덮인 바위문이 꽁꽁 얼어 아직 봄이 아닌데, 목불 한 분(하나) 쪼개어 장작으로 삼았네. 눈동자 움직인 곳에 눈썹이 빠진 것은, 여래의 바른 법륜을 비방했기 때문이다.{{)[雪擁岩扉凍不春, 一尊木佛劈爲薪. 眼睛動處眉毛落, 爲謗如來正法輪.]:《頌古聯珠通集》卷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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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무진거사의 생각에 의하면 단하가 목불을 태운 것은 사람의 분별심(/정식/)과 속견을 단절시킨 것이다. 목불을 쪼개어 장작으로 쓴 것은 목불을 받드는 것이 곧 미혹한 믿음이고 망령된 견해임을 비유한 것이다. 부처라는 생각이 있어도 [한 조각 구름이 계곡입구를 가로지름에, 얼마나 많은 새들이 제 집을 찾지 못하는] 위험이 있는데, 하물며 간직한 것이 또한 [목불]이라는 생각이라면 어떻겠는가? 원주의 눈썹이 빠진 것은 단하를 비난한 과보인데, 왜냐하면 단하가 굴린 것은 여래불의 바른 법륜인데, 원주는 오히려 무지하여 꾸짖었기 때문이다.
단하선사의 세상에 나가 설법한 것 또한 다른 선사들과 자못 달랐다. 《경덕전등록》에서는 그 대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원화 3년에 스님이 천진교에 가로누워 있었는데, 마침 유수였던 정공이 지나다가 꾸짖어도 일어나지 앉았다. 아전이 그 까닭을 묻자, 스님은 그냥 대답하기를: '할 일 없는 중이다.' 유수는 그를 특출한 사람으로 생각하여, 명주 다섯 필과 옷 두 벌을 올렸으며 날마다 쌀과 밀가루(쌀가루)를 대었다. /낙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에게 귀의하였다. 15년 봄이 되자, 문인들에게 고하기를 '나는 이제 산으로 들어가 여생을 마칠까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에 문인들이 /제정방으로 하여금 남양 단하산을 점치게 하여 암자를 만들고 섬겼는데/, 3년만에 /玄묘한 학문에 뜻을 두는 사람(도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무리가 삼백이나 되는 큰 사원을 이루었다.]
이 큰스님은 출가에서 전법에 이르기까지 전기적인 성격이 가득한데, 참으로 선문에서 전기적인 인물이다.
(68년 육.입. 신생보부간)
18. 약산이 [법좌를 오르다]
약산유엄은 석두희천의 법제자(/법사/.계승자)이며, /2대를 전하여/ 조동/종/을 열었는데 데, 그는 이 법계의 중요한 인물이다. 약산의 속성은 한씨이며, 絳주(지금의 산서 신강현)사람이다. 17세 때 조양에서 출가하였으며, 나중에 풍주의 약산(지금의 호남 풍현)에서 설법하였으므로, 약산유엄이라 불렸다. 먼저 혜초선사를 좇아 출가하였고, 뒤에 또한 희조율사를 따르다가 다시 석두희천에게 귀의하였는데, 선종과 율종을 출입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와 석두희천의 문답에서 그의 선의 경지를 조금 엿볼 수 있다.
석두를 친견하고는 은밀히 현지를 깨달았다. 하루는 스님이 좌선하고 있는데, 석두가 보고서는 물었다. [그대는 여기서 뭘 하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곧 한가히 앉았구나.] [한가히 앉았다면 곧 하는 것입니다.] [그대는 하지 않는다는데, 도대체 뭘 하지 않는가?] [모든 성인들도 모릅니다.] 석두는 게송을 지어 그를 칭찬하였다. [여태껏 함께 머물면서 이름도 모르고, /무심하게 서로 이렇게 행하여 왔네./ 예로부터 성현들도 오히려 모르는데, 황망한(덤벙대는) 범속한 무리들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卽謁石頭, 密領玄旨. 一日師坐次, 石頭覩之, 問曰: 汝在這作 ? 曰: 一切不爲. 石頭曰: 恁 卽閑坐也. 曰: 若閑坐卽爲也. 石頭曰: 汝道不爲, 且不爲箇什 ? 曰: 千聖亦不識. 石頭以偈讚曰: [從來共住不知名, 任運相將只 行. 自古上賢猶不識, 造次凡流豈能明.]:《景德傳燈錄》卷14
}}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증도가>에서의 [공부 끊고 무위하는 한가한 도인]의 뜻이다. [無知의 知(앎이 없는 앎)]로써 조작도 없고 행위도 없이, 그윽히 부합하고 말없이 증득하여 지극한 도를 깨닫는다. 그러나 또한 할일 없이 한가히 앉아 있는 것은 아닌데, 만일 이와 같다면 범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석두가 [무엇을 하지 않는냐]고 묻자 [모든 성인도 알지 못한다]고 답하였는데, 자성묘체는 형상이 없어 견문에 의한 지식을 초월하며, 크기는 바깥이 없고 작기는 안이 없어서, 아무도 언어로써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만 성인이라도 알지 못한다.] 그의 [법좌에 오른(승좌)] 공안은 깊은 경지를 가지고 있다.
약산이 오랫동안 법좌에 오르지 앉자, 원주가 아뢰기를 [대중들이 스님께서 설법해주시기를 오래동안 바라고 있습니다.] 스님이 말하기를:[종을 치거라.] 대중들이 겨우 모이자 스님은 곧 법좌에서 내려와 방장실(주지실)로 돌아갔다. 원주가 뒤따라가서 물었다. [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이미 설법을 허락하시고서는 왜 한 말씀도 하시지 않으십니까?] [경에는 경사가 있고 논에는 논사가 있는데, (아무 말도 않는다고) 어찌 이 노승을 괴이하게 생각하는가.]{{)[藥山久不陞座, 院主白云: 大衆久思和尙示誨. 師曰: 打鐘者. 大衆 集, 師便下座歸方丈. 院主隨後問曰: 和尙旣許爲大衆說法, 爲什 一言不措? 師曰: 經有經師, 論有論師, 爭怪得老僧.]:《頌古聯珠通集》卷14
}}
《경덕전등록》에 기록된 것은 자구는 조금 다르지만 내용은 대체로 서로 같다. [경에는 경사가 있고 논에는 논사가 있다]는 말은 경을 강하고 논을 설하는 경사와 논사라면 언설이 있어야 하겠지만, 자신은 선사인데, 이 향상일사(위로 향하는 한 일)는 언설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언설하지 않는 의미는 아래의 기록에서도 증명될 수 있다.
스님이 불자를 써고서는 도오에게 무슨 자냐고 물으니 도오가 불자라고 답하였다. 스님이 이르기를: [/말 많은 스님이다./] 어떤 중이 묻기를: [/자신의 일/을 밝히지 못하였사오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스님이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 한마디 하는 것은 또한 어렵지는 않으나, 단지 그대가 말을 듣고 곧 깨달으면 /그래도 조금은 낳은 편이지만/, 만일 다시 생각에 빠진다면 도리어 나의 죄가 될 것이니, 차라리 각기 입을 다물고 서로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느니만 못하도다.]{{)[師書佛字, 問道吾是什 字, 吾云佛字, 師云: 多口阿師. 僧問: 己事未明, 乞師指示. 師良久曰: 吾今爲汝道一句亦不難, 只宜汝於言下便見去, 猶較些子, 若更入思量, 却成吾罪過, 不如且各合口, 免相累及.]:《景德傳燈錄》卷14
}}
약산이 법좌에 올라서 설법하지 않은 것은 [/말 많은 스님/]이 되는 것을 피하려 한 것이며, 또한 [각기 입을 다문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무준법선사는 이 뜻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자리 펴고 크게 열었으니 보았는가, 살 사람이 어찌 구경꾼만큼 많구나(어찌 적고 구경꾼만 많구나). 완성된(완벽한.잘 만들어진) 한 자루의 취모검이, 단지 도공의 집 벽 위에 북이 되었네(걸려 있구나).{{)[鋪席宏開見也 ? 買人何似看人多. 十成好箇吹毛劍, 只作陶家壁上梭.]:《頌古聯珠通集》卷14
}}
약산의 말없는 가르침은 점포에서 자리 펴고 물건을 펼쳐 놓은 것과 같은데, 당시의 선사들과 후대의 참선인들이 이를 보았는가? 어찌하여 사려는 사람은 적고, 즉 지음을 만나지 못하겠고, 보는 사람은 많은가, 즉 모두들 헛되이 수고로이 이 공안을 참구하는가? 약산의 이 말없는 공안은 응당 /잘(다) 만들어진/ 털을 불면 잘리고 쇠도 자르는 날카로운 칼이어서, 일체 범속한 정과 견해를 잘라버릴 수 있다. 그러나 도리어 아무 작용도 발생하지 못하고, 마치 도공이 벽 위에 걸어논 베틀북이 베를 짜는 작용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약산의 고심을 저버렸다. 천동각선사는 당시의 참선인들의 근기가 어리석고 낮아서 약산의 이 공안을 깨달을 수 없었다는 것에 착상하였다.
어리석은 아이는 울음을 달래는 돈을 마음 속에 새겨두고,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봐도 바람처럼 내달린다. 구름 걷힌 하늘에 달은 학처럼 둥지 틀고, 싸늘한 한기가 뼈에 사무쳐 잠을 이루지 못하네.{{)[癡兒刻意止啼錢, 良駟追風顧影鞭. 雲掃長空巢月鶴, 淸寒入骨不成眠.]: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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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문하의 참선인들은 너무 형상에 집착하여 단지 말 있는 가르침만 알고, 말없는 가르침은 몰랐다. 《열반경》권20에 이르기를: [어린애가 보챌 때 부모는 곧 누런 버들잎을 주면서, '우지 마라 우지 마라, 금을 줄께' 하면, 어린애는 이를 보고 정말 금이라 생각하여 곧 울음을 그친다. 그러나 이것은 버들잎이지 결코 금이 아니다.] 약산 문하(좌하)의 참선인들은 단지 경을 강론하고 법을 설하는 것에만 마음을 두어 이를 금이라고 생각하여, 마치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치는 것과 같다.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봐도 바람처럼 내달린다]는 것은 만송노인이 해석한 것과 같다.
외도가 부처에게 물었다. [말이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이 없는 것도 묻지 않습니다.] 세존은 한참 말없이 앉아 있었다. 외도가 곧 말하기를: [세존께서는 크게 자비로우시니, 미혹의 구름을 헤치고, 저를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외도가 떠난 후에 아란이 부처에게 묻기를: [외도는 무슨 도리를 봤기에 깨달았다고 했습니까?] 부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좋은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봐도 달린다.] /세존과 마찬가지로 약산도 채찍을 한 번 들었는데,/ 원주는 대중을 거느리고 예찬해야 할 일임에도 도리어 한 말씀도 하지 않았다고 의심을 품으니, 동토의 납승이 서천의 외도만 못하다고 할 것이다.{{)[外道問佛,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便云: 世尊大慈,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 外道見何道理, 而言得入? 佛言: 如世良馬, 見鞭影而行. 與世尊藥山, 一等擧鞭, 院主率衆禮讚有分, 却懷不垂一語, 可謂東土衲僧, 不如西天外道.]:《從容錄》
}}
만일 큰 지혜를 가진 참선인이라면 마땅히 바람처럼 내달리는 훌륭한 말은 채찍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곧 [눈이 열릴] 수 있다. 약산이 한참동안 말이 없었던 가르침은 마치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 달의 전체 모습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그 후 약산이 [경에는 경사가 있고 논에는 논사가 있는데 어찌하여 노승을 이상하게 여기느냐?]고 한 것은 마치 /허공에 구름이 한 점도 없는데 달을 가리운 것과 같다./ 그러나 이들 언어의 보금자리(상투)를 지키는 참선인들은 마치 달 아래 둥지를 튼 학과 같이, 비록 약산의 공안을 알지만 눈을 뜬 채 꿈을 꾸고 있어서, 한갓되이 구름이 지나가고 달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있으니, 단지(겨우) 약산의 말에 깊은 뜻이 있다는 것만 알아차리고, 깊은 뜻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맑고 차가움이 뼈에 사무치니 잠을 이루지 못한다] 즉 헛되이 상상하고 헤아린다. 자수심선사는 약산의 가르침은 마치 밝은 구슬(야광주)을 어둠 속에 던진 것과 같이 심력을 낭비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빛나는 구슬 한 알은 값을 따지기 어려운데, 지음이(알아 보는 이) 아니라서 곧 어둠 속에 던져 버렸네. 약산이 헛되이 힘쓴 것이 /우습구나/, 물은 맑아 고기는 보이지만 낚시를 물지는 않는구나.{{)[明珠一顆價難酬, 不是知音便暗投. 笑藥山空費力, 水淸魚現不呑鉤.]:《頌古聯珠通集》卷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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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구슬(야광주) 한 알이 값을 따지기 어렵다]는 것은 약산의 이 공안은 마치 밝은 구슬이 상당하는 값을 가지기 어려운 것처럼, 값이 없는 보배인데, 그러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여, 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함으로써 빛나는 구슬을 어둠 속에 던져 버려 이 구슬을 낭비하였다(못쓰게 하였다.망쳤다). [약산이 헛되이 애썼으니 /우습도다/]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비웃음이지만, 실제로는 찬미하는 것인데, 여러모로 자세히 베풀어 학인을 계도하는 약산의 자비를 찬미하였다. [물이 맑아 고기가 보인다]는 것은 진속의 견해를 제거해버림을 비유한 것인데, 고기가 나타난 것은 도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고기를 낚는 사람이 없다. 즉 지극한 도를 깨닫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선은 깨달음을 귀하게 여기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지해)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데, 깨달음은 말할 수 없는 부분이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19. 조주종심과 [뜰 앞의 잣나무]
종심선사는 조주(지금의 산동 荷택) 학향사람인데, 속성은 씨이다. 어려서 불교를 믿어서 승복을 입고 출가하였다. 남천보원을 참배하였는데, 남천의 고양이 목을 친 공안에는 그의 참여가 있었다. 그 후 조주(지금의 하북성) 관음원에서 설법하였으므로, 조주종심이라 불렸다. 그의 깨달음은 /리입/을 통해서였다. 《경덕전등록》에 그 경과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어느 날 스님이 남천에게 물었다. [무엇(어떤 것)이 도입니까?] 남천이 이르기를: [평상심이 도이다.] [/또한 나아갈(취향할) 수/ 있습니까?] [향하려고 생각하면 곧 어긋난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도인줄 압니까?] [도는 알고 모르는 데 속하지 않는다. 아는 것은 망령되이 깨달음이고, 모르는 것은 /무기/이다. 만약 참으로 의심없는 도에 이른다면 마치 태허(허공)와 같아서 툭 틔어 막힘이 없으니 어찌 억지로 시비를 따질 수 있겠는가?] 스님은 이 말에 이치를 깨달았다.{{)[異日問南泉, 如何是道? 南泉云: 平常心是道! 師曰: 還可趣向否? 南泉曰: 擬向卽乖. 師曰: 不擬時如何知是道? 道不屬知不知, 知是妄覺, 不知是無記, 若是眞達不疑之道, 猶如太虛, 廓然虛豁, 豈可强是非耶? 師言下悟理.---]: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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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의 [평상심이 도이다]라는 말은 마조가 주장한 것인데, 소위 평상심이란 것은 인간의 순결하고 흠이 없는, 성념과 범정 그리고 시비선악 등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최초의 마음(초심)]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평상심]을 가지고 바야흐로 도를 깨달을 가능성이 있다. 종심은 [평상심]의 의의를 잘 알고 있었으나, 도에 들어가는 길에서는 의심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다시 [또한 /취향할/ 수 있습니까]하고 즉 좇을 수 있는 빨리 바로가는 지름길이 있는지를 물었다. 대개 교하에는 리입과 행입의 구분이 있으며 또한 [공],[유],[중도]의 구별이 있는데, 남천이 [향하려고 헤아리면 곧 어긋난다]고 한 것은 공이나 유에 집착하거나 혹은 /취향할/ 수 있는 도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곧 도와 괴리된다는 말이다. 종심은 여전히 의심을 가지고서 [헤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도인줄 압니까] 하였다. 도라는 것은 형상을 초월한 볼 수 없는 존재인데, 만약 비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도]인 줄을 알겠는가? 남천의 대답은 가장 현묘하고 은미한데, 도라는 것은 곧 바로 깨달을 수 밖에 없으므로 [도는 알고 모르는 데 속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만약 앎의 방법 즉 논설과 언행을 가지고 [도]를 알려고 하면, 안 것은 망령된 깨달음(지각)이고, 만약 모르는 것(무지)을 [도]를 아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또한 멍청하게 무지하고 무식한 [무기]에 속한다. 이 단락의 말은 [도]의 경지를 해석한 가장 훌륭한 풀이이다. 종심은 이를 인해 깨달아 계합하였다. 조주는 법을 얻은 후에 황벽,보수,협산,鹽관과 같은 당시의 선문종장들을 두루 참배하고, 비로소 하북 등지에 이르러 설법하고 접인하였으며, 조주 관음원에 머물렀는데(주지가 되어), 조주고불이라 받들어졌으며, 입적한 후에는 진제대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조주에게는 총림에 유전된 공안이 가장 많은데, 또한 가장 유명하고 그리고 가장 많이 노래된 것은 그의 [뜰 앞의 잣나무] 공안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중이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라고 묻자, 조주가 대답하기를: [뜰 앞의 잣나무이다.] [스님은 경계를 가지고 보여주지 않으십니까?(보여주지 마십시오)] [나는 경계를 가지고 보여주지 않는다(않겠다).] [어떠한 것이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이다.]{{)[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庭前栢樹子. 曰: 和尙莫將境示人? 師曰: 我不將境示人. 曰: 如何是西來意? 師曰: 庭前栢樹子.]:《頌古聯珠通集》卷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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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중이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하고 말이 표면적으로 묻는 것은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어디 있느냐를 물은 것이지만 실제로 묻는 것은 어떻게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수 있는가이다. 조주의 대답은 참으로 묻지 않은 것에 답한 것이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는 마치 모기가 무쇠소에 앉아서 /입 부리/를 댈 곳이 없는 것과 같다. 나중에 이 공안을 참구하여 게송을 지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 공안을 뜻이 있는 말이라 보거나 뜻이 없는 말이라고 보는 두 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분양선소는 이르기를:
뜰 앞에 잣나무가 땅 속에서 나오니, 소를 빌려 고개 위에서 밭갈이 하지 않네. 서쪽에서 온 천 가지 길을 보여 주니, 조락한 숲에는 눈동자가 빾빽하네.{{)[庭前栢樹地中生, 不假牛犁嶺上耕. 正示西來千種路, 鬱密稠林是眼睛.]:《頌古聯珠通集》卷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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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에 잣나무가 땅에서 나온다]는 것은 도는 본래 천연적으로 이뤄진 것이며 사람은 [대전]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비유하였다. [소를 빌려 고개 위에서 밭을 갈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은 본래 불성을 가지고 있어서, 참선인이 도를 증득하는 것은 반드시 수행을 할 필요는 없음을 비유하였다. 인연이 이르러 깨닫는 것은 마치 잣나무의 성장이 소의 경작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분양선소선사는 이것이 곧 [어떠한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묻는 데 대한 조주의 대답이라 생각하였다. 천갈래 길이 모두가 도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러할 뿐만 아니라 설령 빽빽한 숲이라도 또한 ([목]과 [안])안목이 있는 곳이다. 왜냐하면 도는 어디에나 있고, 자성은 모래알 같은 세계에 두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륵담영철의 서쪽에서 오신 뜻에 대한 게송은 조주의 뜰 앞의 잣나무라는 대답이 뜻이 없는 말이라 생각하였다.
어떤 중이 나에게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묻는다면, 나는 산에 머문지 7.8년이라 말하리라. 짚신은 겨우 3컬레를 삼았었고, 삼베옷은 일찌기 두 번 어깨에 걸쳤었네. 동쪽 암자에서 매번 서쪽 암자의 눈을 보고, 아래 시내가 항상 흐르는 것은 위 시내에서 흘러오기 때문이다. 한 밤에 흰 구름이 흩어진 뒤, 둥그런 밝은 달이 창 앞에 이르른다.{{)[因僧問我西來意, 我話居山七八年. 草履祇裁三箇耳, 麻衣曾補兩番肩. 東庵每見西庵雪, 下澗常流上澗泉. 半夜白雲消散後, 一輪明月到 前.]:《五燈會元》卷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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륵담영철의 생각에 의하면 곧 조주의 대답이 그가 말하는 [나는 산에 머문지 7,8년이 되었다고 하리라]와 다름 없이, 깊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이에 의하여 이해를 구하거나 법을 구해서는 안되며, 응당 조주가 얻은 법요(법의 핵심) 즉 [평상심이 도]와 같아야 한다. [짚신은 겨우 세 컬레를 삼았고, 베옷은 일찌기 두 번 어깨에 걸쳤다]는 것은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는 평상심이 도라는 뜻이다. [동쪽 암자에서 매번 서쪽 암자에 눈내리는 것을 보고, 아래 시내가 멀리 흐르는 것은 위 시내에서 물을 대기 때문이다]에서 동쪽 암자는 동토중화를 비유하고 서쪽 암자는 서방천축이라는 뜻인데, 동토에서 깨달은 도가 서방천축(의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 마치 동쪽 암자에서 보는 눈이 서쪽 암자에서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과 같다. 위 시내는 옛날이라는 뜻이고, 아래 시내는 지금을 비유하였는데, 도는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 마치 시냇물의 위쪽과 아래쪽이 흐름에는 차이가 있지만 물의 성질에는 차이가 없는 것과 같다. [한밤 흰구름 흩어진 후, 둥근 밝은 달이 창 앞에 다다른다]에서 흰구름으로써 [색계]를 비유하였고, 밝은 달로써 [자성]의 청결을 비유하였다. 색계를 투철히 참구하여 바야흐로 모든 가리움이 다 제거되면 [자성]이 현현하는데, 마치 밝은 달이 창을 밝게 비추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언어로써 설명하여도 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굳이 마음을 쓰고 힘을 들여 뜰 앞의 잣나무 공안을 참구할 필요가 없다. 이 밖에는 나중의 참선인들의 근기가 용렬하여, 조주의 이 공안을 알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만리창공에 비가 개일 때, 둥근 밝은 달이 휘영청 빛나네. 뜬구름이 천 사람의 눈을 가리우니, 항아의 얼굴을 보는 사람이 드물다.{{)[萬里長空雨霽時, 一輪明月映淸輝. 浮雲掩斷千人目, 得見姮娥面者稀.]:佛鑑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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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한 마리가 /옛 길에 가로누워 있으니/, 푸른 매가 보자마자 곧 채어 가버렸네. 뒤늦게 온 사냥개는 /영성이 없어서/, 부질없이 아까 있던 마른 오동 밑에서 찾고 있네.{{)[一兎橫身當古道, 蒼鷹才見便生擒. 後來獵犬無靈性, 空向枯椿舊處尋.]:承天宗.《頌古聯珠通集》卷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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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시에서는 조주의 이 공안은 마치 비가 그치고 하늘은 푸르며, 구름이 걷히고 달이 나타나지만 항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지극히 적은 것과 같이 [뜰 앞의 잣나무]라는 공안에 미혹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뜬구름이 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린다]고 하였다. 그러나 승천종은 조주의 공안은 마치 흰 토끼가 옛길에 나타난 것과 같은데, 이미 당시에 매처럼 눈이 밝은 참선인에 의해 포획되었고, 나중의 선사들은 마치 /영성/이 모자라는 개가 단지 바람이나 그림자를 잡고서 남은 냄새나 맡는 것과 같아서 이 공안에서 얻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조주의 잣나무 공안에 관한 게송은 수십 수가 있지만, 구절이 아름답고 의미가 수승한 것은 별로 많지 않다.
(육팔.구.육.신생보부간)
20. 장사의 [산놀이]
호남 장사의 경잠선사는 법호가 초현대사인데, 남천보원의 제자이다. 처음에 녹원에 머물러(의 주지가 되어) 녹원의 개창주(제일세)가 되었기 때문에 또한 녹원초현이라고도 불린다. 그의 [산놀이] 공안은 시정과 선취가 가장 풍부하여, 선사들의 게송도 따라서 문장이 화려하고 뜻이 아름다워 조잡함(粗俚)의 결함이 없다.
長沙가 어느 날 산놀이를 하고 돌아와 문앞에 이르자, 수좌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 다녀오십니까?] [산놀이 갔다 온다.] [어디로 다녀오셨습니까?] [처음에는 향기로운 풀을 따라 갔다가 다시 떨어진 꽃을 좇아 돌아왔다.] [/봄기운이 물씬합니다./] [가을이슬이 연꽃을 적시는 것보다는 낫다.]---노래하기를: [대지가 가는 티끌마저 끊어지니(대지에 잔 먼지도 없으니), 누가 눈이 열리지 않겠는가. 처음 향기로운 풀을 따라 갔다가, 다시 떨어진 꽃잎을 따라 돌아온다. 파리한 학은 차가운 나무에 발돋움하고, 깊은 휘파람은 옛 누대에 /뛰어 노네/. 장사의 무한한 뜻이여, 아! 땅을 파고 더욱 깊이 묻는다.{{)[擧長沙一日遊山, 歸至門首, 首座問: 和尙什 處去來? 沙云: 遊山來! 首座云: 到什 處來? 沙云: 始隨芳草去, 又逐落花回? 座云: 大似春意. 沙云: 也勝秋露滴芙渠.--- 頌曰: 大地絶纖埃, 何人眼不開. 始隨芳草去, 又逐落花回. 羸鶴翹寒木, 深嘯猿古臺. 長沙無限意. ! 掘地更深埋.]:《宋明覺大師雪寶頌古集》.마지막 구절은 照覺克勤이 더한 것이다. 《碧巖錄》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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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景잠이 산놀이 갔다가 돌아와 수좌에게 대답한 것이 처음에는 [세속적 진리의 유포] 즉 일반적인 답변이다. 수좌의 [어디로 다녀오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르러 비로소 말뜻이 이중적이다. 수좌는 이를 빌어 장사의 수행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여쭌 것이다. 장사는 수좌가 묻는 의도가 어디 있는지를 분명히 안 뒤에, 이에(그래서) [묻는 쪽에서 답하여], 산놀이의 물음에 따라 답하였다. [처음에는 향기로운 풀을 따라 갔다]는 것은 [색계]로부터 [공계]를 증득해 들어감 즉 범속으로부터 성스러움으로 들어감을 비유한 것이다. [다시 낙화를 좇아 돌아왔다]는 것은 /성위/에 영원히 머물러 공에 빠지지 않고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와 기틀을 발휘하고 작용을 일으킨 것을 비유한 것이다. 수좌는 [/춘정이 완연합니다(대사춘의)/]라 하였는데, 들어올림(대)이 있으면 약화시킴(약)이 있으니 즉 누름(억)이 있으면 폄(양)이 있으니, 봄뜻이 가득하다. 비록 기틀의 작용(/기용/)이 있지만, 여전히 현상계 중에 떨어진다. 장사는 [가을이슬이 연꽃을 적시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였는데, 가을이슬이 연꽃을 적신다는 것은 번화함을 떨어버리고(화려한 꽃이 떨어져) 참된 경계(진제)에 깨달아 들어감을 비유하였는데, 그는 현재 이미 이 경계를 넘어섰다는 말이다. 설보명각의 게송은 이 공안의 선취(선적 정취)와 깊이 계합하였다. 자성은 청정하여 본래 실오라기 같은 티끌도 없으며 일체에 두루한다. 그러므로 [대지는 잔 먼지도 끊어졌다]고 하였다. 이미 투철히 깨달은 참선인으로 말한다면 이 청정자성은 산하의 대지 가운데로부터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 [누가 눈이 열리지 않는가]는 누가 지혜의 눈이 열리지 않아 밝게 볼 수 없겠는가하는 말이다. [처음에 향기로운 풀을 따라 갔다가 또한 낙화를 좇아 돌아온다]는 완전히 장사경잠의 원래 구절을 습용한 것인데, 이 투철히 깨달은 사람은 혜안을 갖추어, 색계로부터 공계로 깨달아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향기로운 풀을 따라 간다]. 마치 놀러가는 사람이 산에 오르는 것과 같이, 향기로운 풀을 따라 외로운 봉우리 정상 즉 최고의 참선경계에 이르른다. 또한 이미 증득한 후에는 다시 성스런 경계에 머물지 않는데, 마치 놀러간 사람이 떨어진 꽃을 따라 인간세상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이것이 장사경잠이 이른 경지이다. 그러나 나중의 참선인들은 어떤 이는 능히 고요하지만 능히 움직이지는 못하여, 기틀을 돌이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방석 위에서 [/현살/]하는데, 마치 파리한 외로운 학이 [차가운 나무]의 가지 위에 깃들어 있는 것과 같고, 어떤 참선인은 투철하게 깨닫지 못하여, 마치 미친 원숭이가 [과일을 찾아] [고대(오랜 누대)] 위에서 소리치고 날뛰는 것과 같아서, 장사가 이 공안을 현시한 깊은 뜻을 저버린다. (그 뜻은) 이 [색계]로부터 [공계]로 들어가고, [성위]로부터 [범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데 있다. 설보는 /일갈 즉 돌/로써 전체 시를 마감하고 있는데, 소각극근이 이 공안을 제창할 때, [땅을 파고 더욱 깊이 묻는다]는 구절을 더하였는데, 장사경잠의 공안은 마치 보물을 땅 속 깊이 파묻어 놓은 것처럼 사람들이 깊이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사제(후배)는 한 수의 시를 화답하였다.
홀로 거닐며 일찌기 말이 없다가, 사람을 만나면 곧 입이 열린다. 처음에는 향기로운 풀들을 따라가다가, 나중에는 떨어진 꽃잎을 좇아 돌아온다. 얇은 안개는 붉은 해를 체질하고, 가벼운 연기는 푸른 이끼를 감싸고 있다. 만일 싯귀만 이해한다면, 법왕의 재능을 묻어 버린다.{{)[獨步曾無語, 逢人口便開. 始隨芳草去, 又逐落花回. 薄霧篩紅日, 輕煙/츤/綠苔. 若將詩句會, 埋沒法王才.]:《頌古聯珠通集》卷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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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각극근의 사제는 곧 불감혜근인데, 《송고연감주통집》에서는 불감근으로 되어 있다. [홀로 걸어 일찌기 말이 없다]는 것은 장사의 산놀이로부터 말을 시작한 것인데, 홀로 외로운 봉우리를 홀로 걸을 때, 도를 깨달을 수는 있으나 말 할 수는 없다는 것이고, [사람을 만나면 곧 입을 연다]는 것은 장사가 수좌의 화제에 답한 것이고, [엷은 안개가 붉은 해를 체질하고, 가벼운 연기가 푸른 이끼와 어울려 있다]는 것은 [처음에는 향기로운 풀을 따가 갔다가, 다시 떨어진 꽃을 따라 돌아온다]는 두 싯귀를 형용한 것인데, 담겨진 뜻이 심원하고 어렴풋하다. 그 말은 이 공안은 바로 얇은 안개 가운데 한 조각 햇빛이 뻗어 나오고, 푸른 이끼 위에 아스라한 연기가 끼어 있는 것과 같아서, 지력으로써는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혜근은 이 시를 보는 사람들에게 만일 싯귀만 가지고 이해하고, 구절 밖에서 뜻을 구하고 말 밖에서 /현묘한 것/을 구하지 않는다면 장사경현의 법왕의 재능을 매몰시킨 것이라고 일깨운다(주의를 환기시킨다). 이 선문의 거두는 싯귀를 가지고 법륜으로 삼은 것이다. 상방익은 여전히 장사의 산놀이라는 뜻으로부터 이 공안을 시로써 밝혔는데, /경치를 묘사하는 말/의 정교함은 앞 세 사람에 못지 않다.
산향기는 길 가득 솔솔 날리고, 들꽃은 떨어져 /풀밭에 흩어지네/. 봄바람의 무한히 깊고 깊은 뜻을, 꾀꼬리가 아니면 누구에게 말하리오?{{)[拂拂山香滿路飛, 野花零落草披離. 春風無限深深意, 不得黃鶯說向誰?]: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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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불 산향기는 길에 가득 날리고, 들꽃은 시들어 떨어져 ---]는 표면적으로는 산놀이 할 때의 /정경을 묘사한 말景語/로서, 장사가 산놀이할 때 보았던 물상들이다. 날리는 향기가 길에 가득한 것, 들꽃은 시들어 떨어지는 것, 향기로운 풀이 흩어지는 것은 바로 [봄]의 작용 즉 [본체], [대전]작용의 현시이다. 도는 없는 곳이 없지만 도를 깨닫는 자는 드물고, 춘풍의 무한한 깊고 깊은 뜻을 초목도 설할 수 없고 꽃향기도 말할 수 없으며, 단지 꾀꼬리의 교설(재잘거림) 즉 장사경잠의 말재주만이 비로소 말할 수 있어서, 이 공안을 형성하였다. 소각극근도 시를 지어 이 공안을 노래하여 밝혔다.
떨어진 꽃잎과 향기로운 풀이 비단처럼 펼쳐 있고, 눈에 가득 봄빛이 그림 속으로 들어온다. 문 밖에 서로 만나 /친절한 것은/, 가을 이슬이 연꽃을 적시는 것보다 낫도다.{{)[落花芳草如 錦, 滿目春光入畵圖. 門外相逢親切處, 也勝秋露滴芙 .]: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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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꽃잎과 향기로운 풀이 비단을 펼친 것 같고]는 한편으로는 장사의 답을 노래한 것이고, 한편으로는 떨어진 꽃잎과 향기로운 풀들이 땅에 가득 비단을 수놓은 것처럼 도가 눈에 뚜렷함을 표출하였다. [눈 가득 봄빛이 그림에 들어온다]는 한편으로는 봄빛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고, 한편으로는 장사경잠의 공안이 완벽함을 은유한 것이다. [문 밖에서 서로 만나 친절한 곳(점, 것)]은 장사경잠과 수좌의 대화를 가리키는데, [친절한 곳]은 /도에 계합하는 긴밀함/이라는 뜻이다. [가을이슬이 연꽃을 적시는 것보다 낫다]는 한편으로는 장사의 원어를 그대로 쓴 것이고, 한편으로는 또한 이 공안이 앞사람들이 투철히 깨쳤던 자취(단서)를 남겨준 것임을 노래하였다. 한 작자 미상의 시에서는 이르기를:
향기로운 풀은 방석처럼 푸른 걸음을 맞이하고, 떨어진 꽃잎은 비단을 펼친듯 옷의 향기를 떨치네. 돌아와 여러 선객들에게 이를 말하니, (봄)풍경이 (그림그린) 들보에 한바탕 둘러 있네.{{)[芳草織茵迎步綠, 落花鋪錦拂衣香. 歸來說似諸禪子, 蕩蕩風光 畵粱.]: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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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풀이 방석처럼 푸른 걸음을 맞이하고]는 [처음에 향기로운 풀을 따라 갔다가]라는 구절 중에서 나온 것 같고, [떨어진 꽃잎은 비단처럼 옷의 향기를 날리네]는 또한 전적으로 [다시 떨어진 꽃을 좇아 돌아온다]는 구절을 답습한 것이니, 바로(꼭) 황산곡의 [그 뜻을 바꾸지 않고서 그 말을 지어내는] 환골법을 사용하였다. [돌아와 여러 선객들에게 이야기하니]에서 사는 시와 통하는데, 이 공안이 총림의 참선인들 가운데 유전되었다는 말이다. [풍광(풍경)이 화려한 들보를 한바탕 감싸고 있다]는 것은 이 공안이 마치 탕탕무변한 풍광이 그림그린 대들보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아서, 감상하고 음미할 수는 있지만 그 진제(참 모습)을 얻기는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 몇 수의 시들의 문장이 아름다운 것은 장사의 이 공안 자체의 착어가 너무 아름답고, 좋은 제목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시를 짓기에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육팔.칠. 신생보부간)
21. 위산의 [물소]
위산영우는 위앙종의 건립자이다. 그는 복건 장계(지금의 하포현)에서 출생한 선문의 종장인데, 먼저 복주 건선사의 법상율사에게서 삭발하였으며, 항주 용흥사에서 계를 받았고, 대소송의 경률을 연구하였다. 그 후 백장회해의 입실(전법)제자가 되었으니, 교하에서 선문으로 귀의한 것이다. 또한 호남 장사(담주)의 위산에서 설법하여, 그의 제자 앙산과 더불어 위앙종이라 불린다. 《경덕전등록》에는 위산의 개오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하루는 모시고 서 있는데 백장이 물었다. [누군고?] 스님이 대답하기를: [영우입니다.] [화로 속에 불이 있는지 헤쳐 보아라.] 스님이 헤쳐 보고는 대답하기를: [불이 없습니다.] 백장이 몸소 일어나 깊이 파헤쳐 작은 불씨를 찾아 보여주며 말하기를: [이것은 불이 아니냐?] 스님이 깨닫고는 절하였다.{{)[一日, 侍立, 百丈問: 誰? 師曰: 靈祐! 百丈云: 汝撥 中有火否? 師撥云: 無火. 百丈躬起深撥得少火, 擧以示之云: 此不是火? 師發悟禮謝.]:卷9
}}
재를 뒤적여 불씨를 찾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깊고 깊이 뒤적여 비로소 자그마한 불씨를 찾는 이 정경은 백장의 고의적인 안배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깊이깊이 파헤쳐야 조금 있다.] 이에 위산으로 하여금 영감을 불러일으키도록 촉발하였다. 백장은 이 신비한 과정(역정)을 [시절인연]으로 돌렸는데, [시절이 이미 이르니, 혼미하다가 홀연히 깨달은 듯, 잊었다가 홀연히 기억하는 듯이, 바야흐로 자신의 것은 다른 곳에서 얻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는 맹자가 말한 [하루 아침에 활연히 관통한다]는 말과 같은 이치이다. 당왕조의 장욱은 공손대랑의 칼춤을 보고서 초서법을 깨달았는데, 다 불가사의에 속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모두 이러한 어떤 대상에 의해 기틀을 이루고(영감을 얻고), 기틀을(영감에) 따라 깨닫게 되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위산이 깨달은 것은 위없는 중요한 도이었을 따름이다. 위산의 [물소] 공안은 후대에 널리 전해졌다.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에게 이르기를: [노승이 백년 후에 산 아래로 가서 한 마리 물소가 되어, 왼쪽 옆구리에 '위산의 중 아무개'라는 다섯 글자를 쓸 것이다. 이 때 위산의 중이라고 부르자니 또한 물소요, 물소라고 부르자니 또한 위산의 중인데, 뭐라고 불러야 옳겠는가?{{)[師上堂示衆云: 老僧百年後向山下作一頭水 牛, 左脇書五字云: 山僧某甲. 此時喚作 山僧, 又是水 牛; 喚作水 牛, 又云 山僧, 喚作什 卽得?]:《景德傳燈錄》卷9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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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는 과거세,현재세,미래세의 삼세설이 있는데, 위산은 이 때는 위앙종의 영수인데, 미래세에는 위산 아래의 물소가 될 수도 있으며, 현재세와 미래세를 꿰뚫어 보면, 위산의 중 영우와 위산 산 아래의 물소는 둘이면서 하나이다. 위산의 중이라 부르자니 현재는 물소의 형상을 가지고 있고, 물소라 부르자니 일찌기 위산의 중이었다. 그러므로 이 후의 선사들은 이 공안에 대하여 많은 다른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다.
산 위에선 산승이요 산 아래에선 물소이니, 털이 나고 뿔이 달려 /같은 무리에 섞였네/. 온 하늘에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었는데, 홀로 위산은 물소가 되었구나.{{)[山上山僧山下牛, 披毛戴角混同流. 普天成佛與成祖, 獨有 山作水牛.]:《頌古聯珠通集》卷15.佛國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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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 나고 뿔을 쓴 것은 /다른 종류 가운데 있는 것이다/.] 위산영우는 위산에 있을 때는 중이고, 산 아래 있을 때는 물소인데, 털 나고 뿔 쓴 형상을 가지고 동류 즉 당시 참선인들의 이목을 혼란시켰다. 실제로는 당시의 선객들로 하여금 삼세를 훤하게 꿰뚫고, 대립을 다 없앨 것, 즉 아상,인상,중생상이 없도록 일깨우고 있다.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것 즉 선종의 조사가 되는 것은 바로 당시 대중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인데, 유독 위산만이 [성스러움]이라는 생각을 타파하고, 물소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러므로 [하늘 가득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었는데, 홀로 위산이 물소가 되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위산이 범부와 성인이라는 관념을 다 없앴음을 노래하여 밝힌 것이다. 해인신선사는 자못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산 아래에선 물소고 산위에선 중이니,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이름으로도 다 부를 수 없다. /언제나 저녁 구름은 돌아가 합하지 않고, 먼 산은 무한히 층층이 푸르도다/.{{)[山下爲牛山上僧, 河沙異號未爲能. 常愛暮雲歸未合, 遠山無限碧層層.]: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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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이 산 위에서는 중이고, 산 아래에서는 물소가 되는 것은 불법에 통달한 사람에게는 기이한 일이라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주 사이에 있는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은 다른 이름의 사물들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산이 말한 것은 특출한 기량(수완)은 아니다. 하지만 해인은 이 공안을 감상하여, 현재,미래세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성인과 범부가 대립하는 개념을 다 없애고, 또한 아주 분명하게 표현하여, 마치 저녘구름이 산으로 돌아가 합하지만 합하지 아니한 것처럼, [한 조각의 흰 구름이 계곡입구를 가로질러, 얼마나 많은 새들이 둥지를 잘못 찾아 들었던가]하는 상황을 초래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한없이 먼 산이 층층이 푸르고 역력히 분명하다는 것은 삼세인과가 이 물소공안으로 인하여 특별히 분명해졌음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저녘구름은 돌아가 합하지 않고, 먼 산은 무한히 층층이 푸르다]라고 하였다. 남당흥선사는 다르게 이해하였다.
위산과 물소는 특이한 종류인데, 위산도 아니고 소도 아니로다. 세상에서 누가 능히 말할 수 있으랴, 물결소리 피리소리 고기 잡는 배로다.{{)[ 山水 異常流, 不是 山不是牛. 擧世有誰能道得? 波聲漁笛釣魚舟.]: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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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과 물소는 특이한 종류이다]는 말은 위산영우의 물소공안이 보통사람들이 제창하는 것과 다름을 찬미한 것이다. 위산이 이 공안을 말할 때, 그는 위산 위의 중도 아니고 위산 아래의 물소도 아니었다. 그는 법륜을 굴리어 이름과 형상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고, 법왕의 몸을 나타내고 있었으니, 그를 위산의 중이라 불러도 맞지 않고, 물소라 불러도 맞지 않다. [세상을 통틀어 누가 능히 말하리오]하는 말은 이러한 깨침이 없고는 위산의 이 물소공안은 아무도 그 가운데 담긴 뜻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이와 같지만, 모든 언어와 문자 등의 해설, 위산의 물소공안의 현시는 모두 진여법성 즉 [대전]본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마치 강산의 파도소리, 고기를 부르는 피리소리, 고기 낚는 배의 움직임은 모두 고기를 감추고 고기를 낚는 광경, 고기를 잡는 도구(수단)인데, 물고기를 얻지 못하면 물고기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도와는 상관이 없다. 백운단선사의 게송은 취지(착상)가 자못 같다.
위산이라고도 하지 않고 소라고도 하지 않으니, 분명히(작연) 어디에서 자취(종유)를 분별할까. 털끝만큼이라도 오는 길이 어긋나면, 만겁이 지나도록 출구를 찾을 수 없다.{{)[不道 山不道牛. 酌(灼의 잘못인 것 같다)然何處辨踪由. 絲毫差却來時路, 萬劫無由得出頭.]: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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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이라고도 하지 않고 소라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또한 이 때 위산靈우가 산 위의 중인지 하니면 산 아래 물소인지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이 공안은 분명히(작연) 분별할 수 있지만, 그 이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이 공안의 자취와 원인을 분별(변명)할 곳이 없다.(무처가이) 만일 참으로 위산이 삼세윤회에 떨어져 현세에는 위산 위의 중이고, 내세에는 산 아래 물소라 생각한다면, [털끝만한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멀어져서], [만겁이 지나도 출구를 찾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즉 생사윤회 중에서 나고 죽고 나고 죽고하여 수많은 겁을 지나도 그치지 않게 될 것이다. 보녕용은 이 공안의 현묘하고 은미한 지극한 이치는 깨달을(령회)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모습을 고치고 머리를 바꾸어도, 햇볕을 보면 종적을 숨기기 어렵네. 나귀라고 말이라고 비록 /둘러댔지만/, /많은/ 구경꾼이 얼굴 가득 부끄러워한다.{{)[改却形容換却頭, 當陽難隱個 由. 驢名馬字雖呼喚, 多少傍觀滿面羞.]: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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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영우가 자신이 [산 아래서 물소가 된다]고 할 때, 그는 사람의 모습을 고쳐, 소의 얼굴로 바꿨다. 그러나 그는 [왼쪽 옆구리에 위산의 중 누구(모갑)라 쓴다]고 하였는데, 이 /투로/는 바로 볕이 든 초목이 그 중의 종적과 원인을 숨기기 어려운 것과 같다. 영우는 비록 장자가 나를 소라고 부른다면 응하여 소가 될 것이고, 나를 말이라 부른다면 응하여 말이 될 것이라 한 것 같이, 나귀라 하든 말이라 하든 부르는 데로 맡겨 두지만, 그러나 많은(다소의) 사람들은 이 공안의 함축된 의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방관할 때 얼굴 가득 부끄러워한다.
이 네 수의 시들은 네 가지 다른 견해들을 대표하였는데, 위산의 물소 공안의 내함은 대체로 이 네 수의 시들에 의해 대표될 수 있다. 기타의 시들은 /선어/는 자못 많지만 시적 정취(시취)가 결핍되어 있으므로 하나하나 들지는 않았다.(육팔.육.卄육. 신생보부간)
22. 뱃사공 스님(강 위의 선객) 화정선자덕성
참선하는 사람이 도를 구할 때 대부분 깊은 산에 머물고, /저자/에 머무는 사람은 적었으며, 나룻배(도선)를 몰면서 몸을 숨긴 사람은 더욱 적다. 그러므로 화정선자덕성선사는 /하상/선인이라 불리는데, 실로 지나친 말이 아니다(그렇다.) /선자/화상의 평생은 고증할 수 없으며, 각종 전등사의 기록에 근거하여 단지 그가 약산유엄에게서 법을 얻었으며, 청원행사의 법계에서 나왔고, 나중에 수주(지금의 절강 가흥현)화정에 머물면서, 작은 배를 저으면서, 인연 따라 사람을 제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신분을 너무나 잘 숨겼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그를 뱃사공스님이라 불렀으며, 아무도 그가 도를 깨친 선사인 줄을 몰랐다. 그는 /경계/를 빌어 법을 보였는데, 한 시에서는 이르기를:
천자나 되는 낚싯줄(사륜)을 곧 바로 드리우니, 한 물결이 움직이자 만 물결이 따라 온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찬데 고기는 물지 않고, 빈 배 가득 맑은 달만 싣고 돌아온다.
30년 동안 물 위에서 놀았으나, 물은 맑고 고기는 보이지만 낚시를 물지 않는다. 낚시대가 다 부러져 다시 대를 심으니, 힘드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얻으면 곧 쉰다.{{)[千尺絲綸直下垂, 一波 動萬波隨.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三十年來海上遊, 水淸魚現不呑鉤, 釣竿斫盡重栽竹, 不計功程得便休.]:《五燈會元》卷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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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자의 /사륜/을 곧 바로 드리운다]는 것은 낚시를 드리우는 것을 가지고 도를 구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한 물결이 움직이자 만 물결이 따른다]는 것은 한 물결의 물이 움직이는 것은 물고기 즉 도의 작용이 초래한 것인데, 그러나 도는 없는 곳이 없는데, 마치 물결이 끊임없는 것 같이, 물고기는 잡기 쉽지 않고, 도는 쉽게 깨달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찬데 물고기는 물지 않고, 빈 배 가득 밝은 달만 싣고 돌아온다]고 하였다. [삼십년 동안 물 위에서 놀아도, 물은 맑고 고기는 보이지만 낚시를 물지는 않는다]는 것은 도를 구하면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이 맑으면 고기가 보이지만, 그러나 도를 깨달음이 아직 원만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므로 [고기는 보이지만 낚시를 물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도를 향하는 마음은 조금도 줄거나 물러나지(감퇴) 않는데, 마치 어부가 낚시대를 다 써버리자 다시 대나무를 심어서 대나무를 잘라 낚싯대를 만들고 다시 낚시를 드리워 물고기를 잡아야 그만두고 공을 쓰는 정도는 전혀 계산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공정은 계산하지 않고 잡아야 비로소 쉰다]고 하였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것은 덕성선사는 이미 깨달음을 얻고서 수주 화정에 머물렀으므로 그가 한 것은 응당 깨달은 후의 보임공부였는데, 그러나 전체 시에 나타난 것은 오히려 구도하는 경계이다. 하지만 이 선자화상은 확실히 물고기로써 도를 비유하였으며, 또한 노래하기를:
한 마리 물고기가 굉장하여 손을 쓸 수가 없는데, 모든 것을 포괄하니 참으로 기특하다. 능히 변화하고 바람과 우뢰를 토하는데, 낚싯줄을 드리운다고 어찌 낚을 수 있겠는가.{{)[有一魚兮偉莫裁, 混融包納信奇哉. 能變化,吐風雷, 下線何曾釣得來.]:《五燈會元》卷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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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한마리가 있는데 굉장하여 손쓸 수 없다]는 것은 도의 광대함을 표현한 것이다. 도는 어디에나 있으며, 불성은 온 우주에 두루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포용하니 참으로 기특하다]고 하였다. 이 자성,불성은 항상 그 작용을 현상계에 현시하는데, 예를 들어 바람과 우뢰의 발생, 만물의 변화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어부의 낚시로는 낚을 수 없는 것이다.
덕성선사는 뱃사공으로 몸을 숨겨 사람들은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또한 산에 머물면서 법을 베푸는 것을 할 일로 생각하지 않았으니, 선문의 은자라 할 수 있다. 그가 협산선회에게 법을 전한 것은 전적으로 동학인 도오의 추천에 의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로 만난 정황을 《오등회원》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도오가 후일 /경구/에 이르러, 협산이 설법하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어떤 중이 묻기를: [어떤 것이 법신입니까?] [법신은 상이 없다.] [어떤 것이 법안입니까?] [법안은 티가 없는 것이다.] 도오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道吾後到京口, 遇夾山上堂, 僧問如何是法身? 山曰: 法身無相. 曰: 如何是法眼? 山曰: 法眼無瑕. 道吾不覺失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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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산과 중의 문답을 듣고, 도오는 협산의 견해가 여전히 알음알이에 떨어져 투철히 깨달아 /원형/하지 못함에 실소한 것이다. 협산 또한 충분히 자신하지 못했으므로, 도오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협산이 곧장 법좌에서 내려와 도오에게 묻기를(청문): [내가 방금(적래) 이 중에게 답한 것에 반드시 옳지 않은 것이 있었길래 상좌로 하여금 실소하게 하였을 터이니, 상좌께서 자비를 아끼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도오가 말하기를: [화상이 이처럼(일등) 출가하였으니 스승이 없었습니까?] [저의 어디가 잘못인지 설파하여 주십시오.] [저는 뭐라고 할 수 없고, 스님께서 화정선자를 찾아가 보시지요.] [이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 사람은 위로는 기와 한 조각도 없고 아래로는 송곳도 꽂을 데가 없지요. 화상이 만약 가려면, 반드시 옷을 바꿔 입고 가야 합니다.] 협산은 이에 대중을 흩어 버리고 행장을 꾸려 곧 바로 화정으로 갔다. 선자가 그를 보자 물었다. [대덕은 어느 절에 머무르는고?] [절에는 머물지 않고, 머문다면 곧 같지 않습니다.] [같지 않다는 것은 무엇과 같지 않다는 것인가?] [눈 앞에 보이는 법과 같지 않습니다.] [어디서 배웠는고?] [이목으로 이를 곳이 아닙니다.] [한마디가 /합두/하면, 만겁에 나귀 매는 말뚝이다.] 다시 이르기를: [천 척의 낚싯줄을 드리운 뜻은 깊은 바닥에 닿고자 함인데, 낚시와 겨우 세치 떨어졌는데, 그대는 어찌 말하지 않는가?] 협산이 생각한 뒤 입을 열다가(입을 열려 하자), 스님의 노에 맞아 물 속으로 떨어졌다. 협산이 겨우 배에 오르자, 스님은 다시 말하기를: [말해라! 말해.] 협산이 입을 열려 하자, 스님은 또 다시 후려쳤다. 이에 협산이 활연대오하고는 세 번 고개를 끄덕였다.{{)[山便下座, 請問道吾, 某甲適來/祇/對這僧, 話必有不是, 致令上座失笑, 望上座不吝慈悲. 吾曰: 和尙一等是出世, 未有師在? 山曰: 某甲甚處不是, 望爲說破. 吾曰: 某甲終不說, 請和尙却往華亭船子處. 山曰: 此人如何? 吾曰: 此人上無片瓦, 下無卓錐, 和尙若去, 須易服而往, 山乃散衆束裝, 直造華亭. 船子才見便問: 大德住甚 寺? 山曰: 寺卽不住, 住卽不似. 師曰: 不似似箇甚 ? 山曰: 不似目前法. 師曰: 甚處學得來? 山曰: 非耳目之所到. 師曰: 一句合頭話, 萬劫繫驢 . 師又曰: 垂絲千尺, 意在深潭, 離釣三寸, 子何不道? 山擬開口, 被師一橈打落水中. 山才上船, 師又道: 道! 道. 山擬開口, 師又打, 山豁然大悟, 乃點頭三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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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한편으로는 협산이 도를 구하는 용맹심(용결)을 나타낸 것인데, 그 때 그는 이미 단을 열어 설법하는 방장이었는데, 일단(일경) 지적을 받고는(지점) 바로 정성을 다하여 찾아갔다(참방). 한편으로는 선은 깨우침을 중시하고, 언어/기해/를 중시하지 않음을 현시하였다. 협산이 크게 깨친 후에 곧 세 번 고개를 끄덕여 뜻을 보였는데(시의), 이미 [말 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움직일 곳이 없어진] 것이다. 선자화상이 인가한 후에 협산에게 부촉하여 말하기를: [너가 가거든(향거) 곧장 몸을 숨기는 곳에 종적이 없어야 하고, 종적이 없는 곳에 몸을 숨겨서는 안된다. 내가 20년 동안 약산에 있으면서 단지 이 일을 깨달았다. 몸을 숨기는 곳에 종적이 없다는 것은 성위에 깨달아 들어가서 종적을 찾을 수 없음을 이르는 것이고, 종적이 없는 곳에 몸을 숨기지 말라는 것은 또한 성위에 머물지 말아서 범부와 성인이라는 생각을 다 없애는 것을 이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선사는 게송으로써 이 경계를 찬탄하였다.
몸을 감추어 자취가 없고 또한 감춤도 없으니, 몸을 벗어나 의지할 것 없음이 곧 /마땅하네/. 옛 거울은 갈지 않아도 또한 저절로 비춰주고, 맑은 연기와 이슬이 가을 빛을 적신다.{{)[藏身無迹更無藏, 脫體無依便 當. 古鏡不磨還自照, 淡煙和露濕秋光.]:《頌古聯珠通集》卷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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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속한 감정에도 걸리지 않고 성스런 견해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대해탈이고 대자재이다. 이것이 [몸을 감추어 --- 마땅하다]의 뜻(명의)이다. [옛거울을 닦지 않는다]는 것은 자성의 작용이 나타나지 않았음을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자성을 깨친 사람은 이미 그 일체의 작용을 밝혔으므로(알았으므로) [옛거울은 닦지 않아도 저절로 비춘다]고 하였다. 이 경지에 이르면 공과 유가 한가지이며, 동과 정을 융섭하는데, 마치 화로와 담연이 가을 빛을 습투하여 분별할 수 없어서, 가을날(추천)의 광경이 충분히 물상을 통해 드러나는 것과 같다. 원극잠선사는 시로써 그의 견해를 노래하였다.
자취가 없는 곳에 몸을 숨기지 말라는 것은 자세히 보니 눈 속의 먼지로다. 온 힘을 다하여(전기) 나귀 맨 말뚝을 타파하니, 몽둥이에 끝에서 옥기린이 튀어 나온다.{{)[沒踪跡處莫藏身, 看來端是眼中塵. 全機打破繫驢 , 棒頭敲出玉麒麟.]:《頌古聯珠通集》卷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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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적이 없는 곳에 몸을 숨기지 말라]는 것은 여전히 성위에 머무른 것인데, 마치 금가루가 눈에 들어가서 티가 된 것처럼 [법]이 아니오 먼지이다. 자성을 철저하게 깨칠 수 있어야 비로소 언어/기해/로 흐르지 않을 수 있다. 마치 협산이 도를 깨닫기 전에는 [한마디가 /합두화/ 만겁을 나귀가 되어 말뚝에 매이는] 혼미한 안개 속에 빠져 있었던 것과 같다. [방망이를 두드리니 옥기린이 튀어나온다]는 것은 선자화상이 노를 휘둘러 협산의 /정식과 의상/을 잘라버려 곧 바로 깨달아 들어간 것이 마치 옥기린과 같은 상서롭고 진기한 물건이 되었음을 가리킨다.
선자화상은 단지 협산 한 사람에게만 법을 전하여, 선문의 종사들이 크게 법륜을 굴렸던 것과 도철이 수이하니, 참으로 독특한(독립특행한) 선사이다. (육팔.구.칠. 신생보부간)
23. 황벽의 [안명]
황벽희운은 위로는 백장회해를 계승하고 아래로는 임제의현을 낳았다. 당시의 재상 배휴와 교유했기 때문에 명성이 한 때를 진동시켰을 뿐 아니라 또한 따라서 배휴에 의해 집록된 유명한 선문의 전법심요를 남겼다. 희운은 복건사람인데, 속가의 성씨는 자세하지 않고,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으며, 나중에 백장을 참배하여, [대사]를 밝혔다. 《경덕전등록》권9에 이 인연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스님이 훗날 도성에 놀러갔다가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는 백장을 찾아가 참배하고서 물었다. [/종승을 /어떻게 가르칩니까?] 백장이 아무 말 없이 한참 있자, 스님이 이르기를: [가르친 뒤 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백장이 이르기를: [/너가 오만한 사람인가 하였더니/] 이에 일어나 방장실로 가버렸다. 스님이 뒤따라 들어가서 말하기를: [제가 특별히 왔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훗날 나를 저버리지 말라.]{{)[師後遊京師, 因人啓發, 乃往參百丈, 問曰: 從上宗乘, 如何指示? 百丈良久, 師云: 不可敎後斷絶去也. 百丈云: 將謂汝是箇人, 乃起出方丈. 師隨後入云: 某甲特來. 百丈云: 若爾, 則他後不得孤負吾.]
}}
황백희運은 백장의 한참 동안 말없음이라는 이 말로 할 수 없는 경지에 크게 깨친 것이다. 백장은 곧 아무런 말 없이 의발을 전수할 제자로 인정하고서는 비로소 말하기를: [뒤에(타후) 나를 저버리지 말라.] 나중에 배휴가 완릉(지금의 안휘 선성)에 /원님으로 왔을 때(鎭)/ 큰 선원을 세우고 희운을 청하여 주석하도록 하였다. 희운은 출가한 황벽산을 지극히 사랑하여 황벽이라 이름을 지었으므로, 황벽희운이라 불린다. 그러나 배휴가 지은(찬) 황벽희운의 《전법심요》의 기록에 의하면, 배휴는 대중2년에 완릉에 이르러 희운선사를 개원사로 맞이하였는데, 희운은 원래 홍주(지금 강서 남창)가 속한(에 속한) 고안현에 머물렀으니, /이는 희운이라는 이름을 황벽산으로 고치게 된 연유이다./ 《경덕전등록》의 기재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배휴는 일찌기 시를 지어 희운을 /찬양(가송)/하였다: [대사가 심인을 전함으로부터(自從) 이마에 둥근 구슬과 같은 칠척의 몸이 있었네. 주자자를 걸어 놓고 십년 동안 촉수에 머무르고, 잔을 띄워 오늘날 강濱을 건너 오시네. 하나의(일간) 용상이 높은 걸음을 뒤따르니, 만리에 향기로운 꽃이 피고 뛰어난 인연을 맺었네. 스승으로 모셔 제자가 되고자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법을 부촉하실지 알 수가 없도다.]{{)《경덕전등록》권9.《전당시》권563을 보라
}} 희운은 이 시를 보고서도 아무런 기쁜 빛이 없었다. 그 시기를 고찰하여 보면, 이것은 배휴가 종陵의 /원으로 있을/ 때 희운을 맞이한 시이고, 회창법난 이후에 배휴는 다시 완릉으로 부임할 때 또 다시 희운을 맞이하였는데 《전법심요》는 곧 이 때 기록된 것이다. 《경덕전등록》에서 [크게 선원을 건립하였다]는 것은 마땅히 법난 후에 사원을 중건한 것이다. 《전법심요》 가운데서 가장 귀중한 두 점은, 하나는, 자성묘체의 명백한 /계설/이고, 하나는 무심하게 도에 합하는 것의 천명이다.
모든 부처와 일체 중생은 오직 한 마음이고, 다시 다른 법이 없다. 이 마음은 무시 이래로 일찍이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푸르지도 않고 누렇지도 않으며, 형체도 없고 모습도 없으며, 유와 무에 속하지 않고, 새 것이다 낡은 것이다 할 수 없으며, 길지도 짧지도 않고, 크지도 작지도 않아, 일체 한량과 명언과 자취와 상대를 초월한 것이다. 당체가 곧 이것이니(옳으니) 생각이 움직이면 곧 어긋나며, 마치 허공과 같아서, 가장자리도 없으며, 헤아릴 수도 없다.{{)[諸佛與一切衆生, 唯是一心, 更無別法. 此心自無始已來, 不曾生,不曾滅,不靑不黃, 無形無相, 不屬有無, 不計新舊, 非長非短, 非大非小, 超過一切限量名言 跡對待. 當體便是, 動念卽差, 猶如虛空, 無有邊際, 不可測度.]:《景德傳燈錄》卷9
}}
이 자성, [한 마음]의 계설은 선종의 본체론을 밝혀주었을 뿐 아니라(不 ), 憑우란의 중국 철학사에서 [선종은 비록 형이상학이 없지만]이라는 말(竟謂)은 참으로 잘못된 논단(망단)이다. 또한 황벽은 [무심]의 요결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무심은 여여한(의) 體인데, 안과 밖이 목석과 같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구르지도 않아서, 안과 밖이 허공과 같으며, 막히지도 않고 가리움도 없으며, 능도 없고 소도 없으며, 위치(방소)가 없고, 모습(상모)이 없으며, 득실이 없다. 나아가는 자는 감히 이 법에 들어가지 못하고, 공에 떨어져 머물 곳이 없을까 두려워 하므로 멀리서 바라보고 물러난다. 문수는 이치에 합당하고 보현은 행동에 합당한데, 이치는 진공무애의 이치이고, 행이란 상을 떠난 다함없는 행을 말한다.{{)[無心者, 如如之體, 內外如木石, 不動不轉, 內外如虛空, 不塞不 , 無能無所, 無方所, 無相貌, 無得失. 趣者不敢入此法, 恐落空, 無棲泊處, 故望涯而退. 文殊當理, 普賢當行, 理者眞空無 之理, 行者離相無盡之行]:同上
}}
대체로(대약) 선종 마조법계의 [무심이(무심으로) 도에 합한다]는 황벽의 이 단락의 말에 의하여 적지 않은 계시를 얻을 수 있었다. 불교에서는 리입과 행입을 주로(주장) 하는데, 황벽은 행을 [상을 떠난 다함이 없는 행]이라 해석하였다. 당연히 하나의 특수한 해석인데, 왜냐하면 교하의 [행]이란 닦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편의 《전법심요》는 내 생각에는(竊) 선문의 /정요/인데, 응당 도덕경과 짝할 만하다(//미). 애석하게도 아무도 깊이 연구하지 않으므로, 특별히 간략하게 천양함으로써 주의를 환기시킨다. 희운과 배휴의 [이름 붙이는(명명)]공안을 아래와 같이 들어 서술한다.
배휴가 하루는 한 존불을 스님 앞에 /그려 놓고(탁) 꿇어앉아 말하기를: [스님께서 이름을 붙여 주십시오(안명).] 스님이 부르기를: [배휴.] 공이 대답하자 스님은 이르기를: [그대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노라.] 배휴가 절하였다.{{)[公(裴休)一日拓一尊佛於師前 曰: 請師安名. 師召曰: 裴休. 公應諾, 師曰: 與汝安名竟. 公禮拜.]:《頌古聯珠通集》卷15
}}
세속적인 시각(안광)으로써 논하면, 배휴가 불상을 가지고 황백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를 청하고, 그는 마침내 배휴라고 명명한 것은 부처를 가지고 배휴를 稱許한 것과 다름이 없으며, 일종의 /諂/媚이다. 그러나 참선인의 이론을 가지고 말하면 사람마다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어서 중생은 모두 미래의 부처이니, 배휴라는 이름을 가지고 불상을 칭하는 것도 못할 것도 없다. 사람마다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감히 승당하고 하지 못하는 것은 곧 하나의 문제이다. 감히 승당하지 못하는 것은 [성]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으면 또한 [화사]이다. 배휴가 이 범.성의 분별심을 제거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불인원의 게송에서는:
배휴는 당시에 이름을 잊어버려서, 남이 불러줘도 미혹되지 않았도다. 사람몸을 갖추지 않은 날을 모른다면, 누가 감히 이 본성을 미혹하게 하겠는가.{{)[裴相當時忘却名, 被人喚着又惺惺. 不知未具胞胎日, 誰敢塗糊此性靈.]:同上
}}
[배상당시망각명]은 본래 가지고 있는 자성을 망각함을 이른다. 황벽이 배휴의 이름으로써 불상에 붙인 것은 배휴의 본래를 환기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배휴가 절을 한 것은 이미 이를 인식한 것 같다. [성성]은 이해하고 각성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피인환간우성성]이라 하였다. 사람이 아직 [포태]를 갖추어 사람이 되지 않았을 때 즉 아직 형체에 의해 막히지(阻格) 않으면, 자성이 원래 밝아서 /호도/되지 않는다. 또한 초당청선사는 이르기를: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데, 황벽이 부른 것은 무엇인가? 배휴는 이로부터 이름이 헛됨을 알았지만, 천하의 납승들은 뛰어 나오지 못한다.{{)不是心兮不是佛, 黃檗喚出是何物? 裴公從此認虛名, 天下衲僧跳不出.:同上
}}(동상)
황벽이 부른 것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왜냐하면 [지극한 도]는 이름이 없고, 억지로 이름하면 [마음]이라 하고 [부처]라 하지만, 모두가 진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배휴는 깨닫지는 못하고, 경건하게 절을 하였는데, 인지한(인득) 것은 [부처]라는 이 하나의 성스런 /명상/이어서, 향상일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단지 배휴만 이와 같을 뿐 아니라 천하의 승려들도 모두 이러한 성인이라는 견解의 속박(권투)을 벗어나지 못한다. 초당청의 게송의 대의는 이와 같다. /담당청/선사의 게송에는 다른 경지(의경)가 있다.
배공이 깨달은 곳에 /그릇됨/가 끊어지고, 한 자의 물이 능히 만 길의 물결을 일으킨다. 벽력같은 기틀 중에 산 눈을 번뜩이고, 날카로운 말 속에 창과 칼을 깨뜨린다. 산정상의 길을 잠깐 사이에 지나치니, 가지마다 푸른 색에 한점 붉은 색이, 사람을 움직이는 봄빛은 많을 필요가 없도다.{{)[裴公悟處絶 訛, 尺水能 萬丈波. 霹靂機中反活眼, 鋒芒句裏罷干戈. 峯頭路,暫經過, 濃綠萬枝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同上
}}
담당/심/은 배휴가 깨달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배공의 예배는 도를 체득했다는 무언의 표현이며, 황벽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이 [배공오처절요訛]의 명의가 있는 곳이다. [척수능飜만척파]는 이 공안아 비록 작지만 확실히 범부에서 성인으로 들어가는 길을 현시하여, 만 길이나 되는 파도를 일으키는(흔기) 힘을 가지고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천둥번개치는 가운데 [활안]을 드러내어 꿈꾸고 있는 사람을 자신이 원래 부처임을 알도록 놀라게 하여 깨운다. 황벽의 말은 날카로운 칼날이 다 드러난 보검과 같아서 범정과 속견을 잘라 버리고 내심의 싸움을 제압하고 없애 버렸다. 하지만 [부처]는 또한 단지 [외로운 봉우리] 위의 한가닥 길일 뿐이어서, 단지 지나갈 수 있을 뿐이지 머물러 [성위] 속에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다. 숫한 공안들 가운데 황벽의 이 공안은 짙게 푸른 수많은 가지 가운데 한 떨기 붉은 꽃과 같아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봄빛은 많을 필요가 없다], 사람들을 깨닫게 감동시킬 수 있는 말은 원래 많지 않다. 담당청은 황벽의 도리를 확실히 파악하고 또한 /하나의 깊은/(일중) 도리를 말하였다.
24. 덕산의 [방망이]
/만자자 마자/(당두) 몽둥이로 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사람을 /맹성/시킬 수 있음을 이른다. 몽둥이를 쓰고 고함을 쓰는 것은 임제종의 방편법문인데, 그 기원을 고찰하면, 덕산이 몽둥이를 사용하였고, 임제가 바야흐로 몽둥이와 목소리를 함께 사용하였다. 처음 /사용했던/(작용) 사람은 응당 육조라 하여야 한다. 육조가 신회를 때릴 때 몽둥이를 쓰지 않았던가? 그러나 풍/조/는 덕산선감에 의하여 /흔기/되었다. 그러나 덕산 종맥 아래의 운문종은 비록 몽둥이를 썼지만, 법안종에서는 아주 드물게 이와 같이 하였다. 이것은 [문정에서 베푸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이다.
덕산선감의 속성은 주씨이며, 검남(지금의 /사천 성도현치/)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경률론에 대해 모두 깊이 연구하였고, 뒤에 용담숭신을 친견하고는 깨달음을 얻었다.
덕산이 하루는 용담을 모시던 중 밤이 깊었다. 용담이 이르기를: [밤이 깊었으니 그만 가보거라(밤이 깊었는데 왜 가지 않느냐?) 스님이 조심조심(진중) 나가다가 다시 돌아와 말하기를: [밖이 깜깜합니다.] 용담은 종이 등에 불을 붙여 주었다. 스님이 받으려 하자 용담이 불을 불어 꺼버렸다. 스님은 이에 크게 깨닫고는 곧 절하였다. 용담이 말하기를: [그대는 뭘 보았는고?] 스님이 말하기를: [지금부터 다시는 천하 노스님의 말(설두)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德山一日侍龍潭抵夜, 潭曰: 更深何不下去? 師珍重便出. 却回曰: 外面黑. 潭點紙燈度與, 師擬接, 潭復吹滅, 師於此大悟, 便禮拜. 潭曰: 子見箇甚 ? 師曰: 從今向去, 更不疑天下老和尙舌頭.:《頌古聯珠通集》卷23
}}
덕산의 깨달음은 이른바 [인연을 따라 깨달아 이르는 것]이니, 향엄의 대나무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깨친 것이나 영운이 桃화를 보고 깨친 것 등과 같은 유형에 속한다. 덕산은 [깊이 도를 깨친(심조자득)] 후에 먼저 금강경의 소초들을 불살랐는데, 그가 불을 지를 때 깊은 의미가 담긴(의대현미) 말을 몇 마디 하였다. [현묘한 언변을 궁구하는 것은 터럭 하나를 허공에 두는 것과 같고, 세상의 /추기/를 다하는 것은 깊은 골짜기에 물 한 방울을 던지는 것과 같다.] 자성의 오묘한 도는 언어와 지변으로 궁구하고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었다. 그 후로부터 기봉이 풍발하여, 위산을 참배하였는데, 위산은 [이 자식은 이후로 높은 봉우리 꼭대기에서 초암을 짓고서는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며 살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그 후 덕산은 학인들을 접인하였는데, 중이 문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곧 몽둥이로 후려쳤다. 그는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말하여도 30대요, 말하지 못해도 30대니라.] 맞게 말하여도 여전히 방망이를 맞는데, 왜냐하면 자성의 묘함은 본래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때리려 한다. 틀리게 말하면 어리석기 때문에 또한 때리려 한다. 하지만 어떤 때는 또한 이로서 참선인의 나아간 깊이를 시험해 보는데, 그러므로 말을 맞게 해도 때리고 잘못해도 때린다. 마치 삼산래의 게송과 같다.
학인이 찾아오면 큰스님은 곧 몽둥이로 때렸으며, 혹 나아가 말을 하여도 큰스님은 몽둥이로 때렸다. 이것은 학인의 허실을 시험하고, 그에게 견해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는 것이지, 또한 상벌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如學人 到, 宗師便打, 或進有言句, 宗師亦打, 此是辨驗學人虛實, 看他有見無見, 亦不在賞罰之列.]:《五家宗旨纂要》卷상
}}
그렇다면 덕산이 말해도 때리고 말하지 못해도 때렸던 것은 곧 이로써 참선인의 깨달음의 경지를 시험(측험)한 것이다. /정식과 의상/을 떨어버린 정황에 서 몽둥이가 비오듯이 머리 위에 솟아지면 참선인이 그의 깨달음의 경지를 표시할 때 자연히 가슴속에 든 것을 곧장 내놓아 깊고 옅음이 이로써 드러난다. 운개창선사는 곧 이로써 입의하였다.
덕교는 분명히 크게 기특함을 드러냈으니, 몽둥이를 휘둘러 미세한 것도 끊어버렸구나. 영을 행함에 부처와 조사로서도 공중에 떠나갈 수 없으니 하나같이 전륜성왕이 만가지 기틀을 잡은 것과 같다.{{)德嶠分明顯大奇, 棒頭揮出絶離微. 令行佛祖無空過, 一似輪王握萬機.:《頌古聯珠通集》卷23
}}
첫 구절은 덕산의 몽둥이가 일종의 기특한 작용을 현시하여 이로써 참선인의 깨달음의 경지를 변별하였음을 노래하였다. 왜냐하면 방망이를 한번 휘두를 때 사람들이 생각하고 헤아리게 하는 여지가 없어서, 거칠고 무례하다고 생각하면 원래 잘못된 것이고 매를 들어 가르치는 것( 작교형)이라 생각해도 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황에서 착어하면 스스로 반드시(자필) 사유상의 은미한 데 들어가는 현묘한 생각(입미현상)을 단절해야 한다. [비록(令행) 부처와 조사라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은 이러한 몽둥이 아래서는 비록 부처와 조사라도 공중을 날아(빙공) 지나갈 수 없다는 말이다. [輪왕이 모든 기틀을 파악하는 것과 같다(일사)]에서 윤왕은 전륜왕인데, 전선응도하여 일체를 위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덕산이 몽둥이를 사용한 것은 마치 전륜왕이 법륜을 굴리어 일체를 항복시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보엽원선사/는 덕산이 몽둥이를 쓰는 것은 성위를 증득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작용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얗게 맑은 하늘에 성난 우뢰 진동하니, 만겹의 철산이 모두 놀라 열린다. 비바람이 순조로운 날을 생각한다면, 어찌 이런 방법을 가지고 다 들 수 있겠는가?{{)皎潔睛天吼怒雷, 鐵山萬疊盡驚開. 因思塊雨條風日, 安得全提有此來.:同上
}}
덕산이 방망이를 쓴 것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갑자기 우뢰가 일어난 것과 같은데, 이 우뢰(신뢰)의 위력은 굉장하여(비동소가), 마치 천겹만겹의 철위산도 깜짝 놀라 열릴 정도이다. 그러나 이미 오묘한 도를 깨친 참선인에 대하여 말한다면 부질없는 일이다. [괴우조풍]은 마땅히 괴풍조우로 써야 하는데, 비바람이 순조로운 태평시절을 비유한 말이다. 이미 성위에 깨달아 들었으면 태평무사하여 편안히 거처(단거)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안득전提유차래]에서 전제는 곧 [전제정령]인데, 종문의 강요를 완전히 제기한다는 뜻이다. 이 시절에 이르러면 이러한 몽둥이를 쓰는 방법을 써서 종문의 [전제정령]의 용으로 삼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또한 덕산이 몽둥이를 사용한 것은 선종의 [전제정령]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왕의 전등사에 없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별로 좋지 않다. 왜냐하면 선사는 결코 덕산이 몽둥이를 사용한 것을 부정하려는 뜻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홍달선사는 덕산이 몽둥이를 쓴 것은 부질없는 일(다사)이라 하였다.
소나기 내리고 우뢰가 치니, 구름이 일고 번개그림자가 뒤따른다. 비록 장군의 명령이 있지만, 어찌 요임금때만 하겠는가.{{)驟雨迅雷擊, 雲興電影隨. 將軍雖有令, 何似帝堯時.(同上)
}}
[소나기 내리고 우뢰가 친다]는 것은 덕산이 방망이를 쓰는 것이 마치 소나기가 오고 우뢰가 치는 것 같아서 조금도 피할 여지가 없음을 형용한 것이다. [구름이 일고 번개그림자가 뒤따른다]는 것은 방망이를 쓸 때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호란할타) 사람에 따라 베푸는 것이니, 마치 구름이 일어날 때 우뢰가 뒤따르는 것처럼, 이로써 참선인의 견식을 변별한다. 비록 이와 같지만, 또한 부질없는 일(다사)임을 면할 수가 없다. [장군이 비록 명령이 있지만]은 덕산은 주인이 아니라 장군이 영을 받들어 일을 행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어찌 요임금 때와 같겠는가]하는 것은 요임금이 무위하면서 다스리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도는 사람에게 멀리 있지 않으므로 근본적으로 방망이를 쓸 필요가 없다. /무착총 비구니/는 덕산이 몽둥이를 쓰는 것은 상이 있고 벌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 제호와 독약과 같다. 상을 줄 것인지 벌을 줄 것인지는 /하나같이 헤아리고 있다/(일임복탁)]{{)(동상)
}} 덕산이 몽둥이를 쓴 것은 범견을 없애주는 [살]과 바른 견해를 인정하는 [살]을 병행한 것이며, 목숨을 구하는 제호이기도 하고, 또한 독약이 될 수도 있으니, 전적으로 학인의 지혜와 깨달음에 따라 정하여지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상인지 벌인지는] 전적으로 학인의 깨달음에 달려 있다. 소위 방망이에는 상과 벌이 있다는 데 대하여 삼산래는 해석하기를:
학인이 큰스님을 친견하러 와서는 기특한 일에만 힘을 써서 현묘한 것에 의지하여 도리어 바른 이치를 상하니, 큰스님은 곧바로(직하) 몽둥이로 때려 조금치도 용납하지(방과) 않으니 이것은 또한 벌주는 방망이다.{{)如學人來見宗師, 專務奇特造作, 依 玄妙, 反傷正理, 宗師直下便打, 不肯放過, 此亦是罰棒.:《五家宗旨纂要》
}}
벌봉은 어리석음을 꾸짖는(책척) 외에 또(아직) 이 하나의 큰(일중) 작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상 방망이를 논하였는데:
학인과 만나면 큰스님은 스님의 뜻을 들어 보였는데, 그가 능히 깨달아서 상응한 답을 하면, 종사는 곧 몽둥이로 때렸다. 이것은 /내기/를 인증한 것인데, 상 방망이라 이름한다.{{)如學人相見, 宗師拈示師旨, 彼能領會, 答得相應, 宗師便打, 此是印證來機, 名爲賞棒.:同上
}}
덕산이 방망이를 쓴 것에는 상이 있고 벌이 있다는 것은 마땅히 이 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후 임제와 법안 두 파가 몽둥이를 쓰고 고함을 쓴 것은 또한 덕산의 유법이다.
25. 동산의 [만리에 풀 한포기 없다](는 공안)
동산양价의 속성은 유씨이며 회계(지금의 절강 소흥)사람인데, 그는 조동종의 건립자이고, 그 종파는 지금까지 널리 전해져서 끊이지 않고 있다. 어린 나이에 스승을 따라 배웠으며(불법을 배웠으며), 뒤에 오설산 예묵선사를 좇아 출가하였고, 남천,위산을 친견하여 /신임을 받았으며/, 후일 위산의 소개로 운암을 참배하였는데, 경덕전등록에 그 사제의 만남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위산이 말하기를: '여기에서 석실이 서로 연이은 곳으로 가면 운암도인이 있는데, 만일 풀을 헤치고 바람을 볼 수 있으면 반드시 그대에게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동산이) 운암에게 이르러 묻기를: '무정설법을 어떤 사람이 들을 수 있습니까?' 운암이 말하기를: '무정설법은 무정한 사람이 들을 수 있다.' 동산이 묻기를: '스님은 들으셨습니까(듣습니까)?' 운암이 이르기를: '내가 만약 들었다면(듣는다면) 너는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할 것이다.' (동산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양개는 스님의 법을 듣지 못했읍니다(하겠군요).' 운암이 이르기를: '내가 말하는 것도 듣지 못하는데 하물며 무정설법을 어찌 듣겠는가?' 동산은 이에 게송을 지어 운암에게 올렸다: '참으로 기이하고도, 기이하도다, 무정설법은 불가사의하여, 만약 귀를 가지고 듣는다면 끝내 이해하기 어렵고,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알 수 있도다.' 이윽고 운암에게 작별을 고하자, 운암이 이르기를: '어디로 가는가?' '비록 스승을 떠나지만, 어디에서 그칠지는 알 수 없습니다(점칠 수 없읍니다).' 운암이 이르기를: '호남으로는 가지 말라.' '그러겠읍니다.' 운암이 이르기를: '조만간 돌아오게.' '스승께서 머무르는(머물) 곳이 생기면 오겠습니다.' 운암이 이르기를: '이제 한번 가면 서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서로 만나지 않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동산이 묻기를: '스승께서 돌아가신 후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묻기를 스님의 참모습을 그릴 수 있느냐고 하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그냥 그에게 다만 이것이라고 하라.' 동산이 한참 동안 말이 없자, 운암이 이르기를: '이 일을 마음에 담아 자세히 살펴 볼지어다.' 동산은 /여전히 의심이 있었는데/ 후일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서 예전의 말뜻을 크게 깨치게 되었다. 이에 게송을 지었다: '절대로 남을 따라 찾지 마라, 아득히 나와는 멀어진다. 나 오늘 홀로 가는데, 가는 곳마다 그를 만난다. 그는 지금 바로 나인데, 나는 지금 그가 아니다.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비로소 진리와 하나가 될 수 있도다.'{{) 山曰: 此去石室相連, 有雲巖道人, 若能撥草膽風, 必爲子之所重. 旣到雲巖, 問: 無情說法, 什 人得聞? 雲巖曰: 無情說法, 無情得聞! 師曰: 和尙聞否? 雲巖曰: 我若聞, 汝卽不得聞吾說法也. 曰: 若恁 , 卽良价不聞和尙法也. 雲巖曰: 我說汝尙不聞, 何況無情說法也. 師乃述偈呈雲巖曰: 也大奇, 也大奇, 無情說法不思議, 若將耳聽終離會, 眼處聞聲方可知. 遂辭雲巖, 雲巖曰: 什 處去? 師曰: 雖離和尙, 未卜所止. 曰: 莫湖南去. 師曰: 無. 曰: 早晩却來! 師曰: 待和尙有住處卽來. 曰: 自此一去難得相見. 師曰: 難得不相見. 又問: 師百年後, 忽有人問, 還貌得師眞不? 如何祇對! 雲巖曰: 但向伊道, 只這箇是; 師良久. 雲巖曰: 承當這個事, 大須審細. 師猶涉疑, 後因過水覩影, 大悟前旨. 因有一偈曰: 切忌從他覓, 與我疎.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 會, 方得契如如.(권15)
}}
여기에서, 동산이 도를 깨친 것은 여러 스승을 널리 친견하였으나 인연은 운암에게 있었으며 마지막 깨달음은 시절인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무정설법이란 곧 [산하대지가 모두 법왕의 몸을 드러낸다]〔하산병대지, 제로법왕신〕는 뜻인데, 비록 이와 같지만 지혜로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산의 게송에서 [눈으로써 소리를 들어야 알 수 있다]는 것이 이 뜻인데, 그러나 여전히 알음알이(지해)에 떨어졌다. 동산이 운암에게 스님께서 머무를 곳이 있을 때 오겠다고 대답한 것은 그 법통을 잇겠다고 응답한 것인데, 운암이 산에 머무를 때를 기다려 곧 돌아온다는 것이다. 운암이 죽은 후에 그의 참 모습을 그릴 수 있는지 여부를 묻는 동산의 물음에 답할 때, 운암은 말하기를 [단지 그에게 다만 이것이라 하라]고 하였는데, 자성의 묘체에 의해 포섭(융섭)된다는 말이다. 나중에 동산이 개오하여, 깨달음의 경지를 읊은 시는 표면적으로는 물을 건너면서 그림자를 보는 것을 노래하지만, 실제로는 마음을 밝혀 도를 보는 것을 담고 있다. [결코 남을 따라 찾지 말 것이니, 나와 아득히 거리가 생긴다]는 것은 바깥으로 치달려 구하면 오히려 도와는 날로 멀어진다는 것이고, [내가 지금 홀로 가니 곳곳에서 그를 만난다]는 것은 혼자 외로이 가서 자신을 향해 구하면 가는 곳 마다 그 즉 자성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가 지금 바로 나이다]는 것은 도와 내가 하나라는 말이고, [나는 지금 그가 아니다]는 것은 여전히 형체의 국한을 받고 여전히 나의 제한이 있음을 이른 것이다. 동산의 공안은 아주 많은데, [만리에 한 치의 풀도 없다]는 공안에는 아주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동산이 대중에게 이르기를: '초가을 늦더위에 형제들은 혹은 동으로 가고 혹은 서로 갈지라도 반드시 만리에 풀 한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비로소 얻을 것이다.' 또한 이르기를: '만약 만리에 풀 한포기 없는 곳이라면 또한 어떻게 갈(살) 것인가?' 그후 어떤 중이 유양에 이르러 석상에게 이 말을 옮겼는데, 석상은 이르기를: '문을 나가면 곧 풀이 있다.' 그 중이 돌아와 이 말을 동산에게 전하자, 동산이 말하기를: '당나라 전체에 몇이나 있을까?'{{)洞山示衆云: 秋初夏末, 兄弟或東去西去, 直須向萬里無寸草處去始得. 又云: 只如萬里無寸草處且作 生去? 後有僧到瀏陽, 擧似石霜, 石霜云: 出門便是草. 僧回擧似師, 師曰: 大唐國裏能有幾人.:(頌古聯珠通集24卷)
}}
이것은 동산이 하안거해제 때 한 법문인데, 이른바 [만리에 풀 한포기 없는 곳으로 간다]는 것은 자성의 오묘한 경계를 비유한 것으로, 그것은 커서 끝이 없고 본래 청정하여 색계를 초월하므로 [만리에 한 치의 풀도 없음]이라고 하여 비유로 삼았다. 또 다시 대중들이 사구(죽은 말)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여 [다만 만약 만리에 풀 한 치 나지 않는 곳이라면 또한 어떻게 갈(살) 것인가]라고 하여, 갈 곳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갈 곳에 능히 이르는 것이 중요하다 하였다. 석상제경이 [문 밖을 나가면 곧 풀이다]라고 한 것은 색계와 공계가 하나임을 말한 것이며, (그러나) [문을 나가면] 곧 천민으로 유랑하게 된다(풀밭에 빠지게 된다). 불혜천선사는 두 사람의 견해에 반대하여, 그들은 다 치우치고 떨어짐이 있다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문을 나서면 곧 너무 바삐 돌아다녀 만리에 돌아오지 않으니 원만하지 못하도다. 산문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고자 하여도 저녁연기 아득하고 푸른 풀은 끝이 없네.{{)[出門便是太忙然, 萬里無來未得圓. 欲識山家門去路, 暮烟輕鎖綠綿綿.]:同上
}}
[문 밖을 나가면 곧 너무 바쁘다]의 忙은 마땅히 茫자를 잘못 쓴 것이다. 문을 나가면 곧 풀이 있어서 사람을 너무 막연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참선인이 도를 구하는 이유는 본래 [색계] 가운데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명안은 [문을 나가지 않더라도 또한 풀이 가득하다]〔직득불출문, 역시초만만지〕고 하였다.(《허당집》권上) 그렇다면 석상제경의 말은 단지 사람을 망연자실하게 만들 뿐이고, 동산의 [만리에 풀 한포기 없는 곳에는 또한 어떻게 가는가]라는 말은 문제가 이 성스런 경계를 알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편]으로 이 성스런 경계에 이를 수 있는가 즉 어떻게 가느냐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동산도 이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또한 분명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또한 자연히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으므로, [만리에 오지 않으니 원만하지 않다]고 하여 불만을 /드러냈다/. [산문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 해도 저녘연기 깔려 있고 녹색(풀밭)이 끝이 없다]는 것은 불혜천선사가 생각하기에 성역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색계] 가운데 있고, 풀이 끝없이 널려 있는 데서부터 만리에 풀 한포기 없는 곳으로 통하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인데, 저녘연기가 가벼이 깔려 있고 녹색이 끝없이 펼쳐진 것이 바로 [색계]의 현상(모습)이다. 단하순선사의 게송은 그 경지가 아주 대단하다.
집에 돌아 왔다고 어찌 푸른 구름 위에 앉아만 있겠는가. 문을 나가도 풀밭으로는 가지 아니한다. 동서남북으로 본래 자유로우니, 그는 향배(향하고 등짐)가 없는데 무엇을 피하겠는가?{{)[歸家豈坐碧雲床, 出戶不行靑草地. 南北東西本自由, 渠無向背那廻避.]:《虛堂集》上卷
}}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성인의 경지에 깨달아 들어감을 비유한 것이고, 성역에 들어간 후에는 또한 오랫동안 푸른 구름 위에 앉아 있지 않고, 세상을 벗어나지 않고 /일을 처리한다(응물)/. [문을 나간다]는 것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인데 그 후에도 또한 현상계 가운데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푸른 풀밭]으로 가지 않음으로써 비유하였다. [동서남북이 본래 자유롭다]는 것은 도를 깨달은 후의 경계인데, 도를 깨닫기 전이라도 동이다 서다 하고 나눌 필요가 없고, 이쪽이나 저쪽으로 마음대로 자유롭게 소요한다. [그는 향배가 없는데 어찌 피함이 있겠는가]의 [그]〔渠〕는 자성의 묘체를 가르키는데, 삼라만상을 포괄하여 회피할 수 없으니 어떻게 푸른 풀밭과 만리에 풀 한포기 없는 땅을 분별할 수 있겠는가? 소산여의 뜻도 대체로 이와 같다.
나가지 않아도 끝없는 풀에 길이 가리고, 문을 나서면 오히려 더욱 하늘 낭떠러지에 막히네. 마음(기틀)을 돌려 하늘로 통하는 길을 밟으니, 청산 어느 곳이 집이 아니겠는가?{{)[不出漫漫草路遮, 出門猶更隔天涯. 回機踏着通 路, 何處靑山不是家.]:《頌古聯珠通集》24卷
}}
문을 나가지 않아도 푸른 풀이 또한 가득히 길을 가리고 있고, 문을 나간 후에는 만리에 풀 한 포기 없는 곳에 이르는 것도 하늘끝 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동산과 석상의 말마디에 떨어져서는 안되는데, 만약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하늘로 통하는 길을 밟아서 즉 도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얻은 후에 [청산 어디가 집이 아니며], [청산 어디가 도량이 아니겠는가]. 색계 중의 청산과 끝없는 풀밭길이 모두 /성위/이며 모두 참선인이 돌아가는 집이다.
동산은 균주(지금 강서 고안)의 동산에서 설법했으므로 동산양개라 불리고, 동산사는 또한 보리원이라고 하는데, 일설에는 신풍현에 있다 하며, 조동종의 발상지이다. 조동종은 남송 때 일본으로 전해져 그 세력이 매우 성하였으며 지금까지도 유전되고 있다.
26. 앙산이 [한마디로 산하대지를 모두 말하다]
앙산혜적선사는 위산의 법통을 이어받은, 위앙종의 건립자의 한 사람인데, 그는 굳건한 의지로써 법을 구한 참선인이었다. 그는 소주 회화(지금 광동 번우현경) 사람이며 속성은 섭씨이다. 십오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려 했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으며, 2년이 지나도 여전히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앙산은 스스로 두 손가락을 자르고 부모 앞에 꿇어 앉아 청하기를 [바른 법을 구하여 낳고 길러주신 공에 보답하기를 서원합니다]라고 하여 비로소 뜻을 이루어 광주의 남화사로 출가하였다. 그 후 여러 곳을 다녔는데, 탐원을 배알하여 이미 깨친 바 있었고, 뒤에 위산을 친견하여 큰 법을 확실히 깨달았다. 《경덕전등록》 11권에 그의 깨달음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위산이 묻기를: [그대는 주인이 있는 사미인가? 주인이 없는 사미인가?] [주인이 있습니다.] 다시 묻기를: [주인은 어디에 있는가?] 앙산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서 섰다. 위산은 그가 남다른 사람임을 알고서 가르침을 내렸다. 앙산이 묻기를: [어떠한 것이 참 부처가 머무르는 곳입니까?] [생각해도 생각하지 않는 묘함을 가지고 신령한 불꽃이 무궁함을 돌이켜 생각하여 생각이 다하고 근원으로 돌아가면, (본)성과 (형)상이 항상 머무르고 일과 이치가 둘이 아니며 참 부처가 여여하다.] 앙산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아, 이 때부터 곁에서 모시었다.{{)[祐問(仰山) 汝是有主沙彌? 無主沙彌? 師曰: 有主. 曰: 主在什 處? 師從西過東立. 祐知是異人, 便垂開示. 寂問: 如何是眞佛住處? 祐曰: 以思無思之妙, 返思靈 之無窮, 思盡還源, 性相常住, 事理不二, 眞佛如如. 師於言下大悟, 自此執侍.]
}}
여기에서 앙산이 크게 깨달은 것은 위산영우의 가르침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우가 앙산에게 물은 것은 주인이 있는 사미인가 없는 사미인가 하는 것으로, 곧 앙산의 수도경지를 헤아려 보고자 한 것인데, 앙산은 말풀이(문자해석, 언어적 해석)에 떨어지지 않고 행동으로 표시하였는데, 서에서 동에 이르는 것은 그에게 [주인이 있음]을 상징하며, /그것은 [공].[유] 양계에 걸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우는 비로소 다시 앙산의 묻는 말을 가지고 가르침을 주었다. 앙산은 참부처가 머무르는 곳을 물었는데, 곧 참부처 즉 지극한 도가 어디에 있는가를 물은 것이다. 영우의 회답에는 요점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수지하여 도를 깨닫는 법이다: 그는 앙산에게 이르기를, 생각없는 생각의 비결을 가지고 지극한 도의 [신령한 불꽃]이 무궁함을 돌이켜 생각하라고 하였다. 이른바 생각없는 생각이란 분석과 추리의 논리적 노선을 따라 마음으로 생각하고 억측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는 직감의 방법을 가지고 /온 몸을 던져 들어가는/ 것이다. [생각이 다하여 본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생각의 공부가 극치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본원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가리킨다. 둘은 지극한 도 즉 불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성과 상이 항상 머무름]을 알 수 있다. 상은 [모든 존재의 형상]〔제법체상〕이라는 뜻이며, 성은 성체(자성본체)라는 뜻인데, 성과 상은 서로 의존하고 항상 머물러(상주하여) 변하지 않는다. 일(사)과 이치(리)가 둘이 아닌데, 이치는 일 가운데 있고 일은 이치와 합한다. 불법은 이와 같은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앙산은 영우의 가르침을 깨닫고는 그의 시자가 되었는데, 스승과 제자가 계합하여 위앙이라는 일파를 창립하였다. 그는 원주앙산(지금의 강서 의춘현)에서 설법하였기 때문에 앙산으로 존칭된다. 그의 [한마디로 산하대지를 다 말한다]는 공안이 선림에 전파되어 있다:
앙산이 불 있는 곳으로 가고 있을 때 어떤 중이 참배하였다(가르침을 청했다). 앙산이 말하기를 [한마디로 산하대지를 다 말한다]고 하였다. 중이 묻기를: [어떠한 것이 한마디 말입니까?] 앙산은 부젓가락을 화로 가운데에 꽂았다가 다시 전에 있던 곳으로 옮겼다.{{)[仰山向火次, 有僧參, 師曰: 一言說盡山河大地, 僧問: 如何是一言? 師以火筋揷向爐中, 又移向舊處.]:《頌古聯珠通集》권25
}}
지극한 도는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데도 앙산은 말하기를 [한마디로 산하대지를 다 말한다]고 하였고, 이 참배하는 참선인은 오히려 정말이라 믿고서, 말 밖에서 깊이 생각하고 뜻을 찾지 않고서, 말에 사로잡혀 마치 미친 개가 흙덩이를 쫓아가듯이 필사적으로 캐묻기를 [어떠한 것이 한마디입니까] 하였다. 이 한마디는 무엇인가? 앙산은 오히려 /대상을 가지고 기틀을 이루어/, 부젓가락을 집어서 화로 속에 꽂았다가 다시 있던 곳에 옮겨 놓았는데, 여전히 말하지 않고 말하여 언어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그 참선인에게는 아무런 작용도 낳지 못했으며, 단지 이 공안을 남겨 후인들이 참구하도록 하였다. 앙산의 [한마디로 산하대지를 다 말한다]는 것과 소동파가 동림총장로에게 증정한 시는 같은 경지이다.
시냇소리는 곧 장광설이요, 산색은 청정법신이로다. 간밤에 팔만사천 게송이나 읊었으니 훗날에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까?{{)[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示人.]:《蘇東坡全集》前集권13
}}
이 산하대지는 성(본체,본성)과 상(형상)을 함께 갖추고 있어서 /실제 들어 말할 수 없다/. 때문에 투자의청의 송고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 구절을 들어 만상이 분별되니, 마치 마갈이 중문을 닫는 것과 같다. 석양 그림자에 풍파가 급하여, 모르는 사이 배가 황혼 뒤로 넘어가 버렸네.]{{)[一句稱提萬象分, 肯同摩竭掩重門. 夕陽影裏風濤急, 不覺移舟下渡昏.]:《投子義靑禪師語錄》卷하.《頌古聯珠通集》권25
}}
이 시의 문구는 선가의 전적들에 기록된 것에 많은 차이가 있는데, 《만자속장경》제124책 <투자의청어록>에서는 이 시 위에 다음과 같은 주를 달았다. [肯 이하 21자는 《집》에서는 '마갈이 부질없이 스스로 중문을 닫는다. 애당초 납승이 조금 눈을 떴으나, 부젓가락을 화롯가에 꽂자 불에 타버렸네.'{{)[마갈공자엄중문. 당초납자미개안, 삽근노변당화분.]
}}하였다.] 투자의청의 《공곡집》의 원래 구절이 이와 같고, 임천노인이 평창한 《공곡집》에서 인용한 것도 또한 이와 같으며, 경지로써 말해도 《공곡집》의 원래 구절의 의미가 비교적 뛰어나다. 왜냐하면 《어록》과 《송고聯珠》에 실려 있는 [석양 그림자에 풍파가 심하여, 모르는 사이 배가 황혼 뒤로 넘어가 버렸네] 하는 구절은 문장의 의미가 분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또한 원래 공안에도 적절하지 못하다. 이에 《공곡집》에 기록된 원래 구절을 가지고 아래와 같이 해석한다.
[한 구절을 들자 만상이 분명해졌다]는 것은 투자의청의 생각에 의하면, 앙산의 [한마디로 산하대지를 다 말한다]라는 한 구절은 그가 이와 같이 들어 말한 후에 이미 남김없이 말해버려 만상이 분명해져 더 이상 해석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임천노인은 단평(착어)에서 [대소가 명백하다]고 하였는데, 크고 작은 삼라만상이 모두 불성에 의해 포괄(함섭)되어, 한 구절로 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일 따름이다. 이것이 마땅히 앙산이 말한 [한마디로 산하대지를 다 말한다]의 본래 뜻인데, 마치 근본적으로 가리킨 것이 없는 것 같아서, 곧 거짓말(허튼 소리)이다. [마갈]은 범어인데, 그 뜻은 고래 즉 물고기 중의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를 가지고 본체 즉 자성,불성을 비유하였다. 이 본체는 거대한 고래왕과 같아서 비록 바다물결 속에 숨어도 머리만 감춰지고 꼬리는 드러나는데, 드러나(내)지 않을 수 없음이 마치 고래가 자취를 감추려는 것과 같아서 또한 불가능하며, 헛되이 덧문을 닫는 /것이니/, 오직 사유로써 억측하는 것에 의해서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당초에 납자가 약간 눈이 열렸다]는 것은 당초에 가르침을 청한 참선인이 이 뜻을 깨달을 수 있었음을 이르는데, 눈은 곧 지혜의 눈을 가리킨다. [부젓가락을 화롯가에 꽂자 불타버린다]는 것은 바로 /앙산의 대상에 접하여 기틀을 이루는 지시 즉 부젓가락을 화로 가운데 꽂았다가 다시 처음 있던 곳으로 옮기는 것에 응대하여 상응하는 행동으로써 돌이켜/ 앙산의 동작을 이해하는 것인데, 마치 큰 불이 타는 것처럼 명백하다. 왜냐하면 앙산이 부젓가락을 움직여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다시 [이쪽]으로 옮겨 놓은 것은 바로 범부로부터 성인으로, 성인으로부터 다시 범부로 돌아오는 것을 현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천노인은 이 시를 평하여: [한 구절이 세 구절을 밝히고, 세 구절은 한 구절을 밝히지만, 셋과 하나는 서로 상관하지 않으니, 위로 가는 길(향상로)을 분명히 한다(이 분명하다). 만일 이와 같이 찬양할 수 있으면 제창한 것이 뚜렷이 명백하다]고 하였다. 생각컨대, 마갈은 또한 마갈타로 해석할 수 있으며, 중인도국의 왕사성이 있는 곳을 가르키는데, 뜻이 또한 통할 수 있다.
앙상은 그 후 관음사에 이르러 설법하였는데, (선종 중의 저명한 인물이고,) 77세에 소주 동평산에서 입적하였다. 시호는 지통대사이다.
(69년 4월 1일 신생보 문화난)
27. 曹山이 [부자간의 정(사랑)]을 논하다
조동종은 선종 5종의 하나로서, 동산양개와 조산본적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5종의 학이 침체된 후에 임제종이 홀로 성했는데, 오직 조동종이 간신히 대항할 수 있었으며, (그 후 일본에 전하여져 또한 오직 이 양종이 우뚝 대치하였다.)
조산본적선사는 천주 포전(지금의 복건 포전현) 사람이며 속성은 황씨이다. 그는 유학으로부터 선학으로 들어간 사람인데, 19세에 출가하여 25세에 계를 받았다. 그는 동산의 문하에서 나왔는데, 《경덕전등록》 17권에 두 사람의 인연이 기록되어 있다.
함통 초에 선종이 흥성하였다. (조산은) 동산양개선사가 /도량에 앉아 있을 때/ 왕래하면서 가르침을 청하였다. 동산이 묻기를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고?] [본적입니다.] 동산이 이르기를: [위로 다시 말해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동산이 묻기를 [왜 말하지 못하는가?] [이름붙이지 못하는 것이 본적입니다.] 동산은 그를 큰 그릇으로 여겼다. 조산은 이로부터 입실하여, 깨달은 바를 인가받았으며(깨달음을 비밀리에 전해 받았으며), 여러 해 동안 곁에 머물다가 마침내 동산을 작별하였다. 동산이 묻기를 [어디로 가려는가?] [변하지 않은 곳으로 갑니다.] [변하지 않는다면 어찌 떠나감이 있겠는가?] [가는 것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작별하고 떠났다. 인연 따라 다니다가, /처음에는 초청을 받아/ 무주조산에 머물다가 뒤에 하옥산에 머물렀는데, 두 곳의 법석에는 배우는 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咸通初, 禪宗興盛, 會洞山良价禪師坐道場, 往來請益, 洞山問: 黎名什 ? 對曰: 本寂. 曰: 向上更道. 師曰: 不道. 曰: 爲什 不道? 師曰: 不名本寂. 洞山深器之. 師自此入室, 密印所解, 盤桓數載, 乃辭洞山, 洞山問: 什 處去? 曰: 不變異處去. 曰: 不變異豈有去耶? 師曰: 去亦不變異. 遂辭去. 隨綠放曠, 初受請, 止於撫州曹山, 後居荷玉山, 二處法席, 學者雲集.
}}
이것은 조산본적의 일생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다. 동산이 사리(승려)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본적이라고 대답한 것은 [세속적인 문답]〔世諦流傳〕으로, 오늘날의 대면인사말과 같고, 그 아래의 대화가 비로소 날카로운 말이다. 동산이 본적에게 [위로 다시 말하라]고 한 것은 세속적 진리(세제)를 넘어서 한층 높은(깊은) 대답을 하라고 한 것이다. 조산은 대답하기를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는데, 그 이상의 것은(향상일로는) 답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동산이 왜 말하지 못하느냐고 그 이유를 따져 묻자, 조산은 말하기를 이름붙이지 못하는 것이 본적이라고(본적이라고 이름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곧 말할 수 없고 이름붙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동산의 물음을 가지고 대답한 것인데, 답이 묻는 곳에 있다. 그러므로 동산의 신임을 얻었다. 나중에 조산이 동산을 떠날 때 동산이 그 가는 곳을 물은 것도 또한 날카로운 뜻을 담고 있었는데, 조산이 [변하지 않는 곳으로 갑니다]고 답한 것은 /성위/로 나아간다는 것인데, /성위/를 깨달아 증득한 후에는 곧 자성과 한 몸이 되어 변하지도 않고 다름도 없는 것이다. 동산은 다시 더 따져 묻기를, 자성이란 응당 머무를 곳이 없는데, 그러므로 [변하지도 다르지도 않다면 어찌 떠나감이 있을 수 있겠느냐?]하고 물었다. 조산은 [떠나는 것도 변하지 않고 다르지 않습니다]하였다. /성위/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은 결코 형체와 자취가 없으며 여전히 본래면목이니, 변하고 달라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두 사람의 대답에는 평상시의 대화와 인사말 속에 /선기/가 감춰져 있을 뿐 아니라, 선의 경지도 또한 (이로 인해) 드러난다. 이 두 스승과 제자는 수시로(언제나) 가르침을 주고 받았는데([수탁][감마]), 두 사람이 평소 생활 중에서 한 마음으로 도를 지향하여 자나깨나 생각하여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임을 실천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산의 부자간의 사랑이라는 이 공안은 [도가 사람에서 멀지 않다]는 깊은 뜻을 은연 중에 담고 있다.
조산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자식이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는데도, 왜 아버지는 전혀 돌아보지 않읍니까?' 조산이 말하기를: '이치가 그러하다.' '부자간의 사랑은 어디 있읍니까?' 조산이 이르기를: '비로소 부자간의 사랑을 이룬다.' '어떠한 것이 부자간의 사랑입니까?' 조산이 이르기를: '칼과 도끼로도 자를 수 없는 것이다.'{{)[曹山因僧問: 子歸就父, 爲什 父全不顧? 師曰: 理合如是. 曰: 父子之恩何在? 師曰: 始成父子之恩. 如何是父子之恩? 師曰: 刀斧斫不開.]:《宗鑑法林》권62
}}
이 공안은 본래 《조산어록》에 보이는데, 후인들에 의해 提唱되어 게송으로 형성되었다. 조동종에서는 [5위]를 提倡하였는데, 동산에게 이미 군신5위가 있었다. 5위는 구도와 오도를 다섯 단계로 나눈 것인데, 군신5위는 군으로써 자성을 표시하고, 신으로써 참선인 혹은 구도자를 표시한다. 이 공안 중의 부자에 담긴 뜻도 같은 것으로 아버지로써 자성을 대표하고 아들로써 구도자를 대표한다. 어떤 중이 묻기를 [자식이 아버지를 찾아 갔는데 왜 아버지는 전혀 돌아보지 않느냐]는 것은 참선인이 도를 구하고 도를 증득할 때 왜 이 지극한 도,자성은 전혀 표시가 없으며 전혀 맞아 들여 이해시킴이 없는가 하는 것이다. 조산은 이치가 본래 이와 같다고 답하였다. 한편으로는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아서 즉 자성은 수많은 세계에 다 미치므로 굳이 이끌어 이해시킬 필요가 없으며, 한편으로는 지극한 도,자성은 언어와 동작을 가지고 구도자를 깨우치고 맞아 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질문을 한 중은 부자간의 사랑 즉 지극한 도와 구도자의 관계에 의심을 품고 [부자의 사랑은 어디 있읍니까]하고 물었다. 조산은 [비로소 부자의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대답하였는데, 왜냐하면 도가 비록 사람에게서 멀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펴나가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펴나가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극한 도,자성은 결코 작위와 조처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이미 이와 같으므로 중은 다시 [어떠한 것이 부자간의 사랑입니까]하고 물었다. 이 [부자]의 사랑은 결국 어디에 있는가? 조산은 [칼과 도끼로써도 자를 수 없다]고 답하였는데, 이 [부자]의 사랑은 나눌 수도 없고 자를 수도 없으며, 구도하는 사람은 이 자성에 의해 함섭된다는 말이다. 나중의 참선인들은 각각 게송으로써 이 공안에 대한 체인과 견해를 나타냈는데, 퇴곡운선사는 이르기를:
칼과 도끼로도 자를 수 없지만, /신령스런 기틀/은 한 점 티끌도 끊어 버린다. 맑은 바람이 남은 눈을 쓸어 버리고, 화사한 기운은 봄과 함께 돌아오도다.{{)[刀斧斫不開, 靈機絶點埃. 淸風掃殘雪, 和氣帶春回.]:同上
}}
자성과 구도하는 사람의 관계는 밀접한데, [칼과 도끼로도 자를 수 없지만, 신령스런 기틀은 한 점 먼지도 끊어 버린다]는 것은 이 자성은 한 점의 띠끌에 도 전혀 물들지 않으며, 그 관계는 인간세속의 아버지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성스런 것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도자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자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 보임이나 조짐이 조금도 없는 것이 결코 아닌데, 맑은 바람이 남은 눈을 쓸어 내고, 따스한 기운이 대지에 봄을 불러 들이는 것은 바로 (본)체가 (작)용에 의해 드러나는 (것의) 명백한 증거이다. 이것은 조산을 대신하여 [부자의 사랑]을 해석한 것과 다름이 없다. 영원지선사는 이르기를:
한 주렴이 적막하게 깊은 궁을 닫아 놓고, 낡은 거울은 침침하여 모습을 비추지 못하네. 발길을 돌려 돌아오니 어두워 길이 보이지 않고, 달은 짙은 안개에 잠기어 허공에 걸려 있도다.{{)[一簾虛寂閉深宮, 古鏡 不露容, 轉步歸來渾不辨, 月籠彩霧鎖長空.]:同上
}}
이 게송에서는 자성은 그 형상을 볼 수 없고 그 용모를 엿볼 수 없다고 여긴다. [발 하나가 적막하게 깊은 궁궐을 가리고]라는 것은 자성이 실재하는 사물이 아니며 또한 마치 제왕이 깊은 궁궐 속에 /거주함/과 같다는 말이다. [낡은 거울이 침침하여 얼굴을 비춰 볼 수 없다]는 것은 자성은 또한 침침하고 빛이 없는 낡은 거울과 같아서 그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발길을 돌려 돌아와도 /혼돈되어/ 분별할 수 없다]는 것은 비록 참선인이 /성위/에 깨달아 들어가도 자성의 [모습]을 분별할 수 없다는 말인데, 왜냐하면 [아무 것도 몰라야] 비로소 /[제왕의 법칙에 순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성의 [모습]은 신비하고 /고원/하며 아득하여, 마치 달이 아름다운 안개에 갇히고 먼 허공에 묶여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산하대지는 오히려 달빛 속에 있다. 여암하선사는 이르기를:
곧장(곧 바로) 조부의 존엄함을 잊었버렸으니, /어찌/ 알음알이를 가지고 친소를 논할 수 있겠는가? 가르침을 따라 여섯 나라(육근)에 전쟁이 멈췄으니, 모름지기 온 천지가 한 사람의 명령을 받음을 믿어야 한다.{{)[直下渾忘祖父尊, 肯將知解論疎親. 從敎六國烟塵靜, 須信乾坤奉一人.]:同上
}}
이 시는 어떻게 하면 [부자가 서로 사랑하게] 할 수 있는가에 착상한 것인데, 지극한 도와 자성을 너무 존귀하게 봐서는 안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받아 들여야 한다./ 어찌 세속의 지식과 견해 즉 부자의 사랑을 가지고 도,자성과 사람의 관계를 논할 수 있겠는가? 6국은 이로써 6근,6진을 비유하였는데, 6근이 청정하여 6진을 탐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지극한 도,자성이 일체의 근본임을 확실히 믿어야 비로소 도를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가르침을 따라 여섯 나라에 분란이 안정되고, 천지가 한 사람을 받듦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이다.
이상 세 선사들의 게송을 통해 조산의 이 공안이 가지는 의미는 대체로 분명하게 되었다.
28. 임제의현의 [무위진인]
선종의 문호가 광대하게 된 것은 육조혜능이 한 단계가 되고 임제의현이 또 한 단계가 된다.(선종의 문호는 육조혜능에 의해 한번 광대해지고 다시 임제의현에 의해 광대해졌다.) 혜능대사가 전적으로 남방에서 전법활동을 했다면, 임제는 북방에서 선교하였다. 더우기 양송에 들어선 후에는 천하의 총림이 대부분 임제의 [법계]가 되어, (임제종은) 선문에서 거의 독점적인 형세를 이루었는데, 그것은 아마 임제가 수립한 준엄하면서도 생기있는(활발한) 종풍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임제선사의 속성은 형씨이며 조주 남화(지금의 산동 조현)사람이다. 진주의 임제선苑(지금의 하북 정정)에서 설법하였으므로 임제의현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임제종의 종주가 되었다. 당 의종 함통7년에 입적하였으며, 시호는 혜조대사이고, 《어록》이 남아있다. 《경덕전등록》12권에 그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 황벽 문하에 있었는데, 대중들과 함께 스님을 모시고 있을 때 그 중 수좌가 그에게 질문을 하도록 권하였다. 임제가 묻기를: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참된 뜻은 무엇입니까?] 황벽은 곧 바로 몽둥이로 때렸다. 이와같이 세번 묻고 세번 맞았다. 이에 수좌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시키는대로 질문을 했다가 몽둥이만 맞았으니, 어리석고 둔한 것이 한이 되어, 여러 곳을 떠다니렵니다] 하였다. 상좌가 황벽에게 이 사실을 고하면서 말하기를: [임제는 비록 후학이지만 자질이 뛰어나니, 작별인사를 드리러 오면, 스님께서 다시 이끌어 주십시오.] 다음날 임제가 황벽에게 작별인사를 드리자, 황벽은 대우를 찾아가도록 지시하였다. 임제가 대우를 찾아가자 그가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황벽에게서 왔습니다.] [황벽이 무슨 말로 가르치던가?] [(달마가) 서쪽에서 온 참 뜻을 여쭸다가 방망이로 맞았읍니다. 이와같이 세번 묻고 세번 맞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읍니다.] 대우가 이르기를: [황벽 이 할망구가 너를 위해 피곤함을 무릅쓰고 가르쳐 줬는데도 오히려 잘못이 어디 있는지를 찾는가?] 임제가 이 말에 크게 깨닫고는 [불법도 별게 없구나!] 하였다. 대우가 이에 임제의 멱살을 쥐고는 [좀 전에는 모르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또한 별 것도 아니라니, 몇 놈이나 왔는고, 몇 놈이나 왔는고!] 하였다. 임제가 대우의 갈빗대를 주먹으로 한대 치자, 대우는 그를 놓아 주면서 말하였다. [/너의 스승은 황벽이니, 나를 스승이라 하지 말라./] 임제가 돌아오자 황벽이 물었다. [왜 이리 빨리 돌아왔는가?] [할망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해서입니다.] 황벽이 말하기를: [대우 이 영감탱이, 만나기만 하면 한 방 갈겨 줄테다.] 임제가 [만날 게 뭐 있읍니까, 지금 치면 되지요] 하고는 황벽의 한 손바닥을 쳤다. 그러자 황벽이 깔깔거리며 큰 소리로 웃었다.{{)[初在黃檗, 隨衆參侍, 時堂中第一座勉令問話, 師(臨濟)乃問: 如何是祖師西來的的意? 黃檗便打, 如是三問三遭打, 遂告辭第一座云: 早承激勸問話, 唯蒙和尙賜棒, 所恨愚魯, 且往諸方行脚去! 上座遂告黃檗云, 義玄雖是後生, 却甚奇特, 來辭時, 願和尙更垂提誘. 來日, 師(臨濟)辭黃檗, 黃檗指往大愚. 師遂參大愚, 愚問: 什 處來? 曰: 黃檗來! 愚曰: 黃檗有何言敎? 曰: 義玄親問西來的的意, 蒙和尙便打, 如是三問三遭被打, 不知過在什 處? 愚曰: 黃檗恁 老婆, 爲汝得徹困, 猶覓過在? 師於是大悟. 云: 佛法也無多子! 愚乃 師衣領云: 適來道我不會, 而今又道無多子, 是多少來! 是多少來! 師向愚肋下打一拳, 愚托開道: 汝師黃檗, 非干我師! 師却回黃檗, 黃檗問云: 汝回太速生? 師云: 只爲老婆心切. 黃檗云: 遮(這)大愚, 老漢待見, 與打一頓! 師曰: 說什 待見, 卽今便打. 遂鼓黃檗一掌. 黃檗吟吟大笑.]:《진주임제혜조선사어록》
}}
황벽은 곧 황벽희운이고, 대愚는 곧 고안대우인데, 둘 다 남악법계에서 나왔다. 위에서 인용한 것은 《경덕전등록》에 붙은 <송본임제의현사장>에 보이는데, 각종 (전)등사에 기록된 것은 모두 대동소이하다. 이 공안이 보여주는 것은 선은 스스로 깨달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말로써 설명할(설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현이 세번 법을 물었다가 세번 맞았다. 의현은 세 차례나 몽둥이를 맞고서, 처음에는 어리석음을 꾸짖는 체벌로 생각하였다가, 대우의 /분발/을 거치고서 비로소 황벽의 뜻을 깨달았다. 한없이 중요한 도는 언설에 의해 들어갈 수 없고, 이에 곧장 깨달아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곧 불법이 별 것 아니라 하였다. 선종 중의 이 위대한 종장은 원래는 /공의 이론에 정통한(정공) 비구(니)/로서, 경론을 널리 연구한 인물이었는데, 투철하게 깨친 후에는 名相(이름과 형상)에 대한 관념과 경론에 대한 집착을 용감하게 떨어버렸으니, 그것이 [도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임제는 말하기를:
배워서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말과 문자(名句)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 범부와 성인이라는 이름에 의해 도의 눈(도안)이 가려져서 분명히 알지 못한다. 12분교 같은 것은 모두 /드러난(드러낸)/ 학문인데, 학자가 이를 알지 못하고서 곧 /드러난/ /말과 문자(명구)/ 위에서 알음알이를 내니, 모두 인과에 떨어져서 삼계에 윤회함을 면하지 못한다.{{)[學不了, 爲執名句, 被他凡聖名 , 所以障其道眼, 不得分明, /祗/如十二分敎, 皆是表顯之學, 學者不會, 便向表顯名句上生解, 皆是依倚落在因果, 未免三界生死.]:《진주임제혜조선사어록》
}}
이 단락은 선종의 불립문자의 정신(선종에서 문자를 세우지 않는 정신)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12분교는 모두 /바깥으로 나타난/ 학문으로서, 도구(수단)이지 근본이 아니다. [드러난 /명구/ 위로 향하여 알음알이를 낸다]는 것은 다 밖으로 구하는 것이 되어, 거기서 얻은 것은 /이름과 형상/에 대한 관념에 불과하고, 그것에 집착하면 [도안]을 가리우게 된다. 그러므로 또한 말하기를:
3승12분교는 모두 더러운 것을 닦는 휴지조각이고, 부처는 허깨비이고, 조사는 늙은 중이다. //그대는 다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싶은가?// 그대가 만약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를 찾는다면) 곧 부처마귀에게 사로잡힐 것이며, 그대가 만약 조사가 되고자 한다면 곧 조사마귀에게 사로잡힐 것이다. 그대가 만약 구하는 것이 있다면 모두 고통이 될 것이니, 아무 일 없느니만 못하다.{{)乃至三乘十二分敎, 皆是拭不淨故紙, 佛是幻化身, 祖是老比丘. 爾還娘生已否? 爾若求佛, 卽被佛魔攝; 爾若求祖, 卽被祖魔攝; 爾若有求皆苦, 不如無事: 동상
}}
이것은 교하와 종문의 최대 분기점인데, 불교의 모든 종파에서는 다 불법승을 신봉하여 삼보로 받들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도는 삼보의 제자라 불린다. 부처는 불교를 창립한 교주이므로 자연히 마땅히 믿고 받들어져야 하는데, 부처가 입적한 후에 현묘한 말과 도는 모두 3승 즉 성문,연각,보살승과 12분교 즉 일체 경전 중에 남아 있으므로 또한 마땅히 높이 받들어야 한다. 그리고 경전을 해석하고 법을 설할 수 있는 것은 또한 승려이므로 역시 받들어 믿는 대상이 된다. 그러나 임제는 생각하기를 이것들은 모두 /다른 것(남)에 의지하여 이해하는 것/이고, 바깥으로 치달리는 것이어서 중요한 도를 깨닫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부처를 향하여 법을 구하면 부처마귀에게 사로잡히고 조사를 향하여 도를 구하면 조사마귀에게 사로잡히며, 도가 부처와 조사에게 있다고 여기고, 이 우상 혹은 /성인이라는 생각(성념)/을 마음에 두는 것은 모두 화를 초래하는 일이다. 따라서 3승12분교를 더러운 것을 닦는 휴지로 보면 문자와 관념의 장애가 없고, 부처를 허깨비로 조사를 늙은 중으로 보면 우상의 가리움(장폐)이 없다. 그러므로 임제는 더욱 나아가 주장하기를:
그대가 법다운 견해를 얻고자 한다면 단지 남들에 의해 미혹되지 말라. 안으로 향하거나 밖으로 향하거나 만나는대로 곧 죽여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야 비로소 해탈을 얻어, 사물에 구속되지 않고 벗어나서(透脫) 자재할 수 있다.{{)[爾如欲得如法見解, 但莫受人惑. 向裏向外, 逢着便殺, 逢佛殺佛, 逢祖殺祖, 逢羅漢殺羅漢, 逢父母殺父母, 逢親眷殺親眷, 始得解脫, 不與物拘, 透脫自在.]:동상
}}
불교도는 불살생을 첫째 계율로 삼고 있으므로, 임제가 [죽인다]는 것은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부처와 조사는 이미 죽었는데, 설사 죽이고자 해도 이미 죽일 대상도 없다. 이는 곧 이름과 형상에의 집착, 부처,조사,나한 곧 성인(성스러움,성제)에 대한 관념을 없애는 것이다. 성스러움(성제)에 대한 생각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은 소위 [구름 가운데서 아무리 /금모사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바른 눈으로 관할 때는 길상이 아니다.]{{)[운중종유금모현, 정안관시비길상.]
}} 부모,친척은 곧 세속적인 관념(세제관념)인데, 나의 부모, 처자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에게 당연한 것이지만, 도를 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사랑과 그리움으로 인하여 탐욕,성냄,어리석음,거만함,의심 등이 생기게 되니, 어떻게 지극한 도를 투철하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과 속을 다 버려야 이름과 형상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세속적 인연에의 집착을 버려야 도를 구할 수가 있다. 이로써 논한다면, 임제는 [리입]에 의존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지만, 또한 [행입]에도 의존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고, [닦음도 없고 증득도 없음(을 것)]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교학상에서 스스로 /틀을 짜서/ 별도로 /방법/을 만들었는데, /양식/이 층층이 끝이 없다. [3구],[3현3요],[4료간],[4갈],[4조용],[4빈주] 등인데, 그후 문도들에게는 다시 다른 /방편법문/들이 있다. 이것은 [경론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 /종사/가 결코 아무렇게나 만들어낸(지껄인) 것이 아니다. 그 기본사상은 곧 [무위진인]에 있는데, 그것은 마조의 [평상심이 도에 합치된다]는 것에서 변형된 것이다.
임제가 상당하여 이르기를:
붉은 고기덩이 위에 한 무위진인이 있어, 항상 여러분들의 면전으로부터 출입하고 있으니, 아직 확인하지 못한 자는 자세히 볼지어다. 그 때 어떤 중이 나와서 묻기를: [어떠한 것이 무위진인입니까?] 임제가 /선상/에서 내려와 그를 붙들고는 [말하라! 말하라!] 하였다. 그 중이 뭐라고 /하려는데/, 임제가 놓아주면서 [무위진인이 무슨 똥막대기냐] 하였다.{{)[赤肉團上有一位無位眞人, 常從汝等諸人面前出入, 未證據者看看. 時有僧出問: 如何是無位眞人? 師下禪床把住云: 道! 道! 其僧擬議, 師托開云: 無位眞人, 是什 乾屎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
}}
각 사람의 육체는 모두 하나의 [붉은 고기덩이]이다. 이 /푸른/ 고기덩이 위에 그런데 한 무위진인이 있어서, 항상 여러분들의 면전으로 출입하고 있다는 것은 곧 사람마다 불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 공안 속에서 임제는 비록 [무위진인]이 무엇인가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승려가 [무위진인]을 헤아려서 /해설/하려 할 때, 그를 밀쳤을 뿐 아니라 또한 [무위진인이 무슨 똥막대기냐]고 하였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분별하고 헤아리거나 말로 따지는(/정식의상/과 /언어논설/의) 구덩이에 빠질까 염려한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이 [무위진인]과 관련된 취지(의도)는 여전히 적지않은 암시가 있었다.
만약 진정한 도인이라면 마침내 이와 같지 않다. 다만 능히 인연을 따라 지난 업을 소멸시키고, 되는대로(운에 맡겨) 옷을 입고, 가야되면 곧 가고, 앉아야 되면 곧 앉아서 한 생각 마음도 없는 것이니, /부처가 되기를 바란다면(의 과위를 희구한다면)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이 하는가?/ 옛 사람이 말하기를 '만약 업을 지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이는 생사의(에 빠질) 큰 조짐이다'라고 하였다. 대덕이여! 세월이 아깝도다. 단지 옆사람을 모방하여 허둥대며 선과 도를 배우고, 이름과 자구를 외우고, 부처와 조사를 구하며 선지식을 구하는구나. /잘 헤아려 잘못되지 않도록 하라,/ 도 닦는 이들이여! 너희들에게는 단지 한 부모가 있으니, 다시 무엇을 구하는가? 스스로 반조해 볼지어다.{{)[若是眞正道人, 終不如是, 但能隨綠消舊業, 任運著衣裳, 要行卽行, 要坐卽坐, 無一念心, 希求佛果, 緣何如此? 古人云: 若欲作業求佛, 是生死大兆. 大德! 時光可惜, 祇擬傍家波波地學禪學道, 認名認句, 求佛求祖, 求善知識意度, 莫錯, 道流! 爾祇有一個父母, 更求何物, 爾自返照看?]:同上
}}
도를 구하는 참선인이 만약 범(부)과 성(인)을 생각하고 부처와 조사를 구하고 선과 도를 배운다면 곧 분별심을 일어나 /인과(단계적 과위,계급과위)/에 떨어지게 된다. 무위진인의 뜻은 바로 이 분별심을 없애고 이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단계에 대한(성범계급과위의) 관념을 제거하는 데 있는데, 석두희천이 말한 [성제(참된 진리)도 실천(추구)하지 않는데 무슨 단계(계급)에 떨어지겠는가]하는 것과 같고, 마조의 [성인의 마음에는 본래 지위,인과,계급이 없음을 알지 못한다(못하는가)]라는 뜻과 일치한다. 무위란 곧 지위,인과,계급이 없다는 뜻인데, 임제는 또 말하기를:
도 닦는 이들이여! 불법은 공을 들일 것도 없고, 단지 평소대로 아무런 일 없이, 똥누고 오줌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누워 자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알 수 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바깥으로 공부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이다]고 하였다. 그대들이 모든 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곳이 다 참다와서 경계(대상)가 와도 바꿀 수 없다.{{)[道流! 佛法無用功處, 祇是平常無事, //屎送尿, 著衣喫飯, 困來卽臥, 愚人笑我, 智乃知焉, 古人云: 向外作功夫, 總是癡頑漢. 爾且隨處作主, 立處皆眞, 境來換不得.---]:同上
}}
이 어록은 임제가 자신이 무위진인에 그윽히 도달한(을 그윽히 깨달은) 방법을 자술한 것인데, 사람마다 불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바깥으로 치달려 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자성이 보통 숨어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참으로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도 없이], 평소에 아무 일 없을 수 있다면, 오히려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되고, 있는 곳이 모두 참다워서, 경계가 와도 바뀌지 않을] 수 있다. 소위 평소에 아무 일이 없다(평상무사)는 것은 마조가 말한 [무엇을 평상심이라 하는가? 조작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고, 취하고 버림도 없고, 단멸과 항상도 없고, 범부와 성인도 없는 것이다]라는 것과 말은 다르지만 뜻은 같다. 이와같이 해야 비로소 곧 바로 깨달을(당하에 천취할) 수 있다. 이로부터 본다면, 이러한 닦지 않는 닦음과 증득하지 않는 증득이 비로소 진정한 닦음과 증득함이다. 보녕용선사는 이 경지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흙을 뿌리고 먼지를 날려 숨길(을) 곳이 없으며, 면전에서(얼굴에서) 출입하니 너무 요란하구나. 똥누고 오줌누는 것이 모두 /상관없는 일/인데, 넓고 넓은데 누가 악취와 향기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播土揚塵沒處藏, 面門出入太郞當. 撒屎撤尿渾閑事, 浩浩誰分臭與香.]:《頌古聯通珠集》21卷
}}
앞의 두 구절은 임제의 [무위진인]의 뜻을 노래한 것이다. 도는 없는 곳이 없는데, 장자가 피알갱이,기와짝,먼지,티끌,똥오줌 가운데 도가 있다고 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흙먼지를 일으켜 숨길 곳이 없다]고 하였다. 사람마다 불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 불성의 /대표/ 즉 무위진인은 또한 마음대로 늘상 사람의 얼굴 앞으로 출입하고 있으나 그것을 얻는(아는) 자가 드물다. 표면적으로(겉으로) 보면, 도를 구하는 것은 지극히 장엄한 일로서, 경을 외고 염불하며 좌선하고 수행해도 오히려 이루지 못할까 걱정스럽다. 그러나 임제가 보기에, 이것들은 작위가 있는 유위법이고, 평소에 아무 일 없는 닦음도 없고 증득도 없는 것, 똥누고 오줌누는 것,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은 이미 범부와 성인에 대한 생각도 없고 또한 단계(계급)의 구분도 없지만 오히려 그윽히 부합하고 말없이 증득할 수 있다. 이것이 [똥누고 오줌누는 것이(똥오줌을 뿌리는 것이) 다 /상관없는 일/이며, 넓고 넓은데 누가 냄새와 향기를 구분하겠는가]하는 말의 뜻이다. 또한 불인원선사의 게송도 문장과 의미가 모두 뛰어나다(수승).
변화의 옥구슬(옥고리)이 해를 가릴 정도로 아름다운데(흠집하나 없는데), 진왕은 비록 탐이 났으나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도다. 아깝게도 다시 상여의 손으로 들어갔으니, 한바탕 맑은 바람만 한 길 가득 돌아오네.{{)[卞璧無瑕奪日輝, 泰王雖愛不輸機. 可憐又入相如手, 一陣淸風滿路歸.]:《頌古聯珠通集》21卷
}}
앞의 두 구절은 임제의 무위진인에 관한 문답(대답)의 상황(정경)을 읊고 있다. 임제가 무위진인의 공안을 내놓은 것은 마치 변화의 옥구슬이 아름답고 흠이 없어 그 빛에 눈이 부신 것과 같고, 당시의 답하는 승려는 마치 진왕반이 이 아름다운 옥을 좋아했지만 마음을 드러내지(/기틀을 보내지/ 즉 /입기,투기/하지) 못한 것처럼 이 무위진인에 대하여 곧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생각으로 헤아려 이야기하려 하였다. 그 결과 임제는 [무위진인이 무슨 똥막대기냐]라고 함으로써 가르침(날카로운 말)을 마감하고 있으니, 그것은 마치 진왕의 옥구슬이 다시 상여의 손에 들어가 조나라로 돌려보내지는 것과 같다. 이는 마치 한바탕 맑은 바람이 종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과 같아서, 임제의 고심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가련하게도 또한 상여의 손에 들어가니, 한바탕 맑은 바람이 한길 가득 돌아온다]라고 하였다. 눌당사선사는 또 달리 이해하였는데, 게송에서 이르기를:
봄눈이 하늘 가득 내려서, 닿는 곳마다 꽃이 피네. 화원 안의 나무 가운데, 어느 것이 진짜 매화인지 알 수가 없구나.{{)[春雪滿空來, 觸處是花開, 不知園裏樹, 那個是眞梅.]:同上
}}
눌당사선사는 봄눈으로써 자성 혹은 大全을 표시하였는데, [봄눈이 하늘 가득 내린다]는 것은 이 자성 혹은 대전이 없는 곳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고, [닿는 곳마다 꽃이 핀다]는 것은 [봄눈]이 작용을 현시하여 닿는 곳마다 꽃이 핌을 비유한 말이다. 하지만 매화와 눈은 같은 색이고, 자성 혹 대전과 현상계는 구분되지 않는데, 사람마다 불성을 가지고 있으나, 사람마다 부처가 되지는 못하는 것은(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은) 화원 안의 나무에서 어느 것이 진짜 매화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즉 색으로부터 공을 깨닫는 자가 드물다. 적지 않은 게송들이 임제의 이 공안에 대해서 참구하는 사람은 많지만 깨닫는 사람은 적다고 여긴다.
총림에서 독보적이어서 더 이상 적수가 없으니, 임제의 날카로운 말(가르침)은 당할 수가 없구나. 지금 사백년이나 지난 일을 여전히 다시 들춰내는 제자(법손,후학)들이 있구나.{{)[叢林獨步更無雙, 臨濟機鋒不可當. 至今四百年來事, 亦有兒孫再擧揚.]:道場如.同上
}}
싸늘한 가을바람 뜰 가득 서늘한데, 울가에 핀 향기로운 국화는 반쯤 서리 맞았네. 가련히도 /꽃을 당겨 꺽는(향기 맡는) 이 없으니/, 어지러운 가지 끝에서 얼마나 향기로운가.{{)[颯颯秋風滿院凉, 芬芳籬菊半經霜. 可憐不愚攀花手, 狼藉枝頭多少香.]:高峰妙.《宗鑑法林》권20
}}
도량여선사는 임제의 이 공안은 그 날카로운 뜻을 헤아리기 어려움이 선림에서 독보적이며, 오늘날도 /오히려/ 후인들에 의해 /선양/된다고 노래하고 있다. 고봉묘선사는 이 공안을 참구한 사람은 많지만 이해하고 깨달은 자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싸늘한 가을바람이 뜰안 가득 서늘하고, 향기로운 울가의 국화는 반쯤 서리 맞았다]는 것은 이 공안이 완벽함(매우 훌륭함)을 노래한 것이다. [가련히도 손 내밀어 꽃 꺽는 이 없으니]하는 것은 아무도 이 공안을 깨달을 수 없었다는 말인데, 이 공안이 비록 선림에 널리 퍼졌지만 마치 국화가 가지 끝에 어지러이 피어서 아무리 향기를 허비해도 아무도 꺽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로부터 무위진인은 임제선학의 중심사상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68.10.24,25.신생보 부간)
29. 향엄의 [(나무에 오를 때)상수]공안
위앙종 중에서 선림에 이름을 떨친 대사가 한 사람 있었는데, 바로 향엄지한이다. 그는 깨달음이 극히 신비롭고, 그의 [상수]공안이 선문에 전파되었을 뿐 아니라, 또한 당시의 시인 사공도에게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사공表聖/의 시집 중에 <향엄장노찬>이라는 시가 한 수 있는데, 곧 향엄에 대한 존경과 신심을 증명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여태껏 사공도와 그의 유명한 24시품을 연구한 사람들은 모두 향엄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찬으로부터 사공도의 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못했었다. 필자가 《선학과 당송시학》에서 특별히 (이 점을) 천술한 뒤 비로소 사공도 및 그 작(품)자를 연구하도록 주의를 일으켰(었)다. 그러므로 특히 향엄지한의 이 공안을 /거슬러/ 서술한다. [어미가 자식을 알다]는 공안이(으로부터(에 의해)) 혹시 사공도의 사상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향엄지한의 출가 전 경력은 자세하지 않은데, 겨우 청주(지금의 산동 광饒)사람이라는 것만 알 수 있으며, 나중에 등주 향엄사(지금의 하남 등현)에서 설법하였다. 《경덕전등록》에는 그가 개오한 과정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지한이 위산의 /선회/에 의탁하고 있을 때, 위산이 그의 그릇(법기)을 알아보고 지혜의 빛을 일깨워(격발해) 주고자 하루는 말하기를:'그대가 여태껏 배워서 아는 것과 경전 등에서 외운 것을 묻지는 않을테니, 그대가 어머니 배속에서도 나오지 않았고 아무 것도 분별하지 못했을 때 본분의 일을 시험삼아 한 마디 말해 보라. /나는 그대를 기억하고자 한다./' 지한은 멍하니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동안 망설이다가(생각하다가) 몇 마디 그의 견해를 말하자 위산은 모두 인허하지 않았다. 지한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위산이 말하기를: '내가 말하는 것은 나의 견해이니 그대의 안목에는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런 후 지한은 방으로 돌아가 모아둔 여러 구절들을 두루 살펴 보았지만 대답이 될만한 말은 하나도 없었다. 스스로 탄식하여 '그림의 떡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다'고 하면서 모조리 태우면서 말하기를 '이 생에도 불법을 배우지 못하으니 차라리 공양주나 되어서(오랫동안 밥만 축냈으니) 마음의 부담을 덜리라' 하고는 울면서 위산을 작별하고 떠났다.{{)[(智閑)依 山禪會, 祐和尙知其法器, 欲激發智光, 一日謂之曰: 吾不問汝平生學解及經卷冊子上記得者, 汝未出胞胎未辨東西時本分事試道一句來? 吾要記汝. 師 然無對, 吟久之, 進數語, 陳其所解, 祐皆不許. 師曰: 却請和尙爲說. 祐曰: 吾說得是吾之見解, 於汝眼目又何益乎? 師遂歸堂, 檢所集諸方語句, 無一言可將酬對, 乃自嘆曰: 畵餠不可充飢. 於是盡焚之曰: 此生不學佛法也, 且作箇長行粥飯僧, 免役心神, 遂泣辭 山而去.]:卷11
}}(권 11)
위산영우가 물은 것은 분별지에 의한 학문의 일이 아니라, 수행하여 깨침에 의해 얻은 것이다. 지한은 말과 문자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여 바깥으로 치달려 구한 결과 오묘한 도를 /얻을 수가 없었으므로/, 대답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 영우는 그를 위해 한마디도 설(파)해 주지 않았는데, 그것은 도와주려다가 도리어 해를 입혀 그의 도의 눈을 가릴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인연이 이르러 향엄의 천부적 기틀이 촉발되어 스스로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지한이 남양에 이르러 충국사의 유적을 보고서는 그곳에 (쉬려고) 머물렀다. 어느날 산중에서 풀과 나무를 베다가, 기와조각이 대나무에 부딪혀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잠시 실소하는 사이 확연히 깨달았다. 급히 돌아와 목욕하고 향을 피워 멀리 위산에게 예배하고는 찬하기를: '스님은 크게 자비하시니, 그 은혜가 부모를 넘어선다. 그 때 나를 위해 말해 주었다면, 어떻게 오늘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에 한 게송을 지었다: '한 번 부딪치는 소리에 지식을 다 잊어 버리고 다시는 수행에 의지하지 않는다. 동작과 용모는 옛 도를 드날리니(떨치고) 쓸쓸한 기틀에 떨어지지 않는다. 모든 곳에 종적이 없으니 소리와 빛 밖에 위의로다. 모든 도 깨달은 자들은 높고 높은 기틀을 다 이야기한다.'{{)[(智閑)抵南陽, 覩忠國師遺迹, 遂憩止焉. 一日因山中芟除草木, 以互礫擊作聲, 俄失笑間, 廓然省悟, 遽歸沐浴焚香遙禮 山贊曰: 和尙大慈, 恩踰父母, 當時若爲我說却, 何有今日事耶? 乃述一偈云: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持, 動容揚古道, 不墮 然機. 處處無踪迹,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同上
}}
지한이 경과 소(불경과 해설서들)를 태워버리고 /공양주/가 되려고 준비한 것도 곧 바깥으로 치달아 구하고 남(다른 것)에 의존하여 해석하는 길을 놓아 버린 것이고, 그 결과 무심무사한 나머지 오히려 신령스런 빛이 드러나서 외경(바깥대상)이 촉발하자 내기(안의 기틀)가 보이지 않게 응하여 따라서 깨달았던 것이다. [부딪치는 한 소리에 알던 것 다 잊고 다시는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대나무가 부딪치는 소리에 깨달을 때, 어리석고 둔한 것 같아서 분별하는 견해를 잊어 버리고, [이 일]이 수행공부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안 것이다. [행동거지가 옛 도를 나타낸다]는 것은 이미 깨달음이 마음에 있으면 앙연히 얼굴에 드러나, [옛 도] 즉 명심견성에 합한다는 것이다. [고요한(쓸쓸한) 기틀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공적]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모든 곳에 종적이 없고, 소리와 빛 밖에 위의가 있다]는 것은 앞 구절은 도가 형적을 찾을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고, 뒤 구절은 도를 깨달은 후에는 소리와 빛 밖에서 도의 [위의]를 볼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도를 깨달은 모든 사람들은 다 높고 높은 기틀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내가 깨달은 것이 이와 같고 모든 도에 이른 자들이 깨달은 것도 이와 같아서 모두 /비고 현묘한 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의 [나무에 오른다]는 공안은 다음과 같다.
스님이 상당해서 이르기를: '만약 이 일을 논한다면 사람이 나무에 오르는 것과 같다. 입으로 나무가지를 물고 발로는 가지를 밟지 않고 손으로는 가지를 잡지도 않았는데, 나무 아래에서 문득 어떤 사람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으면 그가 물은 것에 어긋나고, 대답한다면 떨어져 죽을 것이니, 이러한 때 어떻게 해야 되는고?' 그 때 호두초상좌가 대중 가운데서 말하기를: '나무 위에 있으면 묻지 말고(않을테니), 나무에 오르지 않았을 때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나무 위에 있을 때 묻지 말고, 나무에 오르지 않을 때 스님께 말해주도록 청하지요)' 스님이 이에 껄껄대며 크게 웃었다.{{)師戒上堂: 若論此事, 如人上樹, 口銜樹枝, 脚不 枝, 手不攀枝, 樹下忽有人問: 如何是祖師西來意? 不對他, 又違他所問, 若對他, 又喪身失命, 當恁 時作 生卽得, 時有虎頭招上座出衆云: 樹上卽不問, 未上樹時請和尙道, 師乃呵呵大笑:《五燈會元》卷9
}}
나무에 오른다는 것은 마음을 밝히고 불성을 보아 이미 [저 쪽]에 이른 것을 비유한다. 나무에 오르지 않은 것은 혼미한 것을 이르니 [이 쪽]에 있는 것과 같다. [저 쪽] 절대경지에서는 헤아리거나 말할 수가 없는데, 그렇지 않으면 깨달은 뒤 다시 혼미해지는 상태에 떨어지는데, 그러므로 [몸과 목숨을 잃는다]고 하였다. 호두초상좌가 [나무에 오르지 않았을 때 스님께서 말해 주십시오] 한 것은 향엄에게 도를 깨치지 못한 자를 위하여 법문을 열어 보이기를 청한 것인데, 향엄은 껄껄하고 크게 웃었다. 이는 첫째, 말로써 이야기하면 곧 몸과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한 것이며, 둘째,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마침내 남을 위해 설파하지 않은 것이다. 汾양소선사는 게송에서 이르기를:
향엄이 나무가지를 물고 많은 사람에게 보여준 것은, 형제들을 본래의 참된 세계에 이르도록 이끌고자 한 것이다. /헤아려 의론하는 것은 곧 말을 듣고 취하는 것이니,/ 몸과 목숨을 잃은 자가 먼지처럼 많도다. 분양이 그대를 위하여 어두운 길을 밝혀 주리니, 긴 하늘에 구름이 흩어지자 해와 달이 새롭구나.{{)[香嚴銜樹示多人, 要引同袍達本眞. 擬議卽從言下取, 喪身失命數如塵. 汾陽爲 開迷路, 雲散長天日月新.]:《頌古聯珠通集》卷25
}}
[향엄이 나무를 물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은, 형제들로 하여금 본래의 참됨에 이르게 인도하고자 함이다]라는 말은 향엄의 [상수]공안이 오랫동안 유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졌는데, 그 목적은 사람들이 본래의 참된 세계로 돌아가 도를 투철하게 깨치도록 이끌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머리로 헤아리는 것은 곧 말 끝을 따라 취하는 것이니, 신명을 잃은 자가 먼지처럼 많도다]하는 것은 만일 참선인이 곧바로 깨달아 들어가지 못하고 헤아리고 추측하여, 남들의 말을 따라 깨닫기를 구한다면 곧 몸과 목숨을 잃게 되는데, 그 수가 마치 먼지처럼 많다는 말이다. 분양이 [혼미한 길]을 열어주는 방법은 곧 [긴 하늘에 구름이 걷히니 해와 달이 새롭다]는 것인데, 가슴 속의 욕심과 삿된 견해를 말끔히 쓸어버리면 비로소 영대(마음)가 비고 밝을 수 있어서 - 긴 하늘에 구름이 흩어져서 - 본성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 해와 달이 새로이 드러난다 -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상방익선사의 게송은 어귀가 가장 청아하다.
길이 좁아서 몸을 돌리기도 어려운데, 동서로 모두 산이 둘렀구나. 행인이 이르지 않은 곳에, 바람이 자니 떨어진 꽃잎이 한가하다.{{)[狹路轉身難, 東西盡是山. 行人不到處, 風定落花閒.]:《頌古聯珠通集》卷25
}}
도에로 들어가는 길은 매우 좁아서 몸을 돌리기도 아주 어려운 곳에 있다. 대개 참선인들은 대체로 부처를 향하여 구하고 경전을 향하여 구하고 스승을 향하여 구하면서 몸을 돌리어 자기에게서(자신을 향해) 구할 줄을 모른다. 또한 참선인들이 공과 유를 나누어 /[이쪽]이다 [저쪽]이다 하는데,/ 모두 쉽게 넘지 못하는 산이므로 [길이 좁아서 몸을 돌리기도 어려운데, 동서가 모두 산이다]라고 하였다. [행인이 이르지 않는 곳]이라는 말은 구도자가 [집]에 이르지 못하여, [바람이 자니 떨어진 꽃이 한가한] 비고 고요하며 신령한(허정공령) 경계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응암화선사의 게송 또한 뜻이 깊고 격조가 높다.
오래된 정원에 봄빛은 가지끝에 있고, 머리를 어지럽히는 봄바람은 아직도 그치지 않네. 하는 일 없이 저녘이 되어 강 위에서 바라보니, 고기 잡는 배는 둘셋씩 짝을 지어 있구나.{{)[故園春色在枝頭, 惱亂春風卒未休. 無事晩來江上望, 三三兩兩釣魚舟.]:《頌古聯珠通集》卷25
}}
[오래된 정원에 봄빛이 가지끝에 있다]는 것은 도가 이미 색계로부터 드러난다는 말인데, 향엄의 [상수]공안이 이미 드러났지만 도를 구하는 참선인들은 相에 집착하여 /선/을 구하니, 이 공안이 오히려 번뇌가 된다. [아무 일 없이 저녘이 되어 강 위에서 바라보니, 고기잡는 배가 둘셋씩 짝지어 있다]는 것은 보이는 것은 다 바깥으로 치달려 구하는 [낚시꾼]들이라는 말이다. 보녕용선사의 게송에서는:
/낡은 송곳을 여기저기 꽂으면/, 가지 위에 다시 가지가 나는 것을 어떻게 감당할텐가. 마치 좋은 말은 채찍그림자만 봐도 달리고, 흙덩이를 쫓아가는 것은 또한 사자새끼가 아닌 것과 같다.{{)[曲設多方老古錐, 那堪枝上更生枝. 好如良馬窺鞭影, 逐塊且非獅子兒.]:同上
}}
앞의 두 구절은 향엄의 [상수]공안이 [여러모로 자세히 /베풀어/] 사람을 가르쳤으나, 가지 위에 가지가 나는 것과 같아서 번잡함을 면할 수 없다는 말이다. 타고난 자질이 높은 사람은 마치 천리마가 채찍 그림자만 돌아보고도 달려서 채찍질이 필요없는 것과 같고, 그렇지 않으면 미친 개가 흙덩이를 쫓아가는 것과 같으니 사자새끼가 아니다. 향엄의 이 공안이 아주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68.11.28.신생보부간)
30. 운문의 [건곤 안의 한 보물]
운문문언은 고소 가흥사람이고 속성은 장씨이다. 《경덕전등록》에 의하면 [처음에 목주 진존숙을 참배하여 /도를 깨달았으며(대지를 발명하고)/ 뒤에 설봉에게 나아가 깨달음을 더하였다(현요를 익자하였다).] 진존숙은 황벽희운의 제자인데, 일찌기 짚신을 삼으면서 은거생활을 했었다. 설봉의존은 덕산선감의 법제자(법사)인데, 뒤에 운문문언이 설봉을 스승으로 삼아 그 법계에 들어가서 큰 도를 깨달았고(대사를 발명하였고), 스스로는 설봉의존의 가르침이 가장 크고 중요하다고 여겼다.
운문문언은 5종 가운데 운문종을 건립한 사람인데, 소주(광동 소주)의 운문산 운문사에서 설법하였으므로 운문문언으로 불리게 되었다. 운문종풍은 준엄하였으며, 선종이 불교화되는 데 강력히 반대하여 선사들이 화두어록을 보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운문은 이르기를:
이 일이 만일 언어에 있다면, 3승12분교에 어찌 언어가 없었겠는가만은 무엇 때문에 다시 교외별전을 말했겠는가. /만일 배워서 아는 것과 기발한 지혜로부터 얻을 수 있다면, 10지성인과 같이 설법이 구름 같고 비 같아도 오히려 꾸지람을 듣고, 견성은 비단이 가리워진 것과 같을 것이다/. 이 때문에 모든 것이 마음이며, 천지가 현격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此箇事, 若在言語上, 三乘十二分敎, 豈是無言語, 因什 更道敎外別傳, 若從學解機智得, 只如十地聖人說法如雲如雨, 猶被呵責, 見性如隔羅穀, 以此故知一切有心, 天地懸殊.:《景德傳燈錄》卷19
}}
그는 이리저리 법을 물으면서 다니는 것에도 반대하였다. [/즉시 마음에 두어야 한다(명심해야 한다). 부질없이 이 고을 저 마을을 떠다니며 주장자를 짊어지고 천리 이천리를 가서 여기서 겨울을 지내고 저기에서 여름을 지내며, 좋은 산수를 즐기고 재와 공양이 많고 쉽게 의발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지 마라. 괴로운 일이 닥치리라. 한톨의 쌀을 도모하다 반년의 양식을 잃게 된다./](동상) 그러므로 전력을 다하여, 사람들이 [대사]를 밝히도록 하였다(가르쳤다). 하지만 임제의현처럼 [여러모로 자세히 베풀어] 방망이나 고함을 쓰지도 않고, 또한 조동종의 리입처럼 [군신오위]를 세우지도 않았다. 격렬한 언어로 사람들에게 나루터(잘못된 길)를 일러주어, 사려분별을 단절시켰으며, 말이 현미한 데까지 미쳤다. 그의 [건곤 안에 한 보물] 공안은 가장 좋은 사례이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건곤 안에 우주 사이에 그 가운데 한 보물이 있는데, 형산에 숨겨져 있다. 등불을 들고 불전(부처의 궁전) 속으로 향하는데, 세 문을 지나자 등불 위에 무엇이 생겼는가(등불이 어떻게 되었는가. 등불을 들었는데, 왜인고)?' 스스로 /대답하여/ 말하기를 '/생각이 대상을 따라 다닌다(사물을 따라 생각이 옮아간다)./' 또 다시 말하기를: '구름이 일어나고 번개가 친다.'{{)上堂: 乾坤之內, 宇宙之間, 中有一寶, 秘在形山, 拈燈籠向佛殿裏, 將三門來燈籠上, 作 生?, 自代曰: 逐物意移, 又曰: 雲起雷興.:《五燈會元》卷15
}}(오등회원권15)
운문문언의 이 단락의 말은 실은 내력이 있다. 남북조 때 승조의 《보장론》에 이르기를 [무릇 천지 안에 우주 사이에 가운데 한 보물이 있는데 형산에 숨겨져 있다. /사물을 인식함에 허령하게 비추고/, 안과 밖이 다 비었고, /고요하여 견해를 떠나고 있으며(나)/, 그 작용이 현묘하고 현묘하다.] 보통의 보물은 산의 흙 속에 감춰져(장폐)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가 없으며(사람들이 알아볼 수가 없으며), 더우기 작용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나 [대전],[자성]은 비록 보물이 감추어진 것처럼 [형산] 즉 만유의 현상계 가운데 비장되어 있지만, [/식물허조/],[그 작용이 현묘하고 현묘할] 수 있다. 하지만 운문의 말은 사람들이 이 [보물]을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이 [보물]을 가지도록 하려는 것이다. 운문은 일반 승려들이 부처를 향해 구하는 것에 반대하였는데, 그는 부처를 향해 구한(하는) 결과는 [/등불을 들고 불전 속으로 향하는데, 삼문을 지나와 등롱을 걸었다/]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 목적은 사람들이 바깥으로 치달려 구하는 방법(作法)을 끊는 데 있다. 왜냐하면 부처를 향해 구하는 것은 운문이 대신 말한 것처럼 [사물을 따라 뜻이 옮겨간 것]이기 때문이며, 그러나 이 [보배]는 마치 [구름이 일어나고 천둥이 치는 것]과 같아서 본체는 작용에 숨겨져 있다. 백운단은 게송에서 이르기를:
고개 위의 흰구름은 흩어졌다 다시 모이고, 하늘가 흰 달은 갔다가 다시 오네. 고개숙여 초가집 처마 아래로 다시 들어오니, 나도 모르게 껄껄 웃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嶺上白雲舒復卷, 天邊皓月去還來. 低頭却入茅 下, 不覺呵呵笑幾回.]:《頌古聯珠通集》卷32
}}
현상계의 기괴한 각종의 변화들은 변화무상하여 마치 하늘의 흰구름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과 같아서 헤아릴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스스로 암묵 중에(명명중) 하늘의 주재하는 작용이다. 그러므로 [고개 위의 흰구름이 흩어졌다 다시 모인다]고 함으로써 현상계가 이 [하나의 보물]을 비장하고 있는 [형산]임을 비유하였다. [하늘가에 흰달은 갔다가 다시 온다]에서 [흰달]로써 [본체],[자성]을 비유하였는데, 흰달은 흰구름이 흩어지고 모임에 따라 때로 나타나고 때로 숨는다. 하지만 숨은 후에도 여전히(아직) 다시 나타날 때가 있으며, 이로써 [이 보물]이 비록 [형산] 중에 감춰져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니며, 가고 또 가고 오고 또 와서 그칠 때가 없음을 비유하였다. [이 보물]은 없는 곳이 없으며, 또한 찾을 수 있는 정해진 곳도 없고, 더우기 [보물을 캐내는] 정해진 착수방법도 없다. [이 보물]은 전적으로 /불전/ 중에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이 보물은 부처에게 절을 하고 경을 외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가? 이 또한 그렇지 않다. 단지 자신에게 돌이켜 구하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머리 숙여 초가 처마 밑으로 다시 들어간다]라고 하였는데, /불전/ 안으로 가지 말고, 자신의 집 안에 이르러 구하면, 그 결과 [이 보물]은 과연 자기 집 가운데 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몇 번이나 껄껄거리고 웃는다]는 것은 [보물]을 얻은 후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는 참으로 어느 승려의 오도시에서 이른 것과 같다. [하루종일 봄을 찾았지만 봄을 보지 못하고, 짚신 신고 산마루 구름을 밟는다. 돌아와 우연히 매화냄새 맡으니, 봄은 이미 가지끝에 완연하구나.]{{)/견학림옥로인/
}} 게송들 가운데 매우 기특한 것이 천동정각의 게송이다.
남은 회포는 접어두고 번거로운 일을 싫어하니, /돌아오면 어느 곳이 생애일까?/ 도끼자루 섞은 나뭇꾼은 길을 찾지 못하고, 나무에 걸린 호공은 묘하게 집이 있네/. 밤 금물결에 계수나무 그림자 떠 있고, 가을바람 눈벌판은 갈대꽃을 안고 있네. 날이 차서 물고기는 바닥에서 미끼를 물지 않아, 흥이 다하여 맑은 노래 부르며 배를 돌리노라.{{)[收卷餘懷厭事華, 歸來何處是生涯? 爛柯樵子疑無路, 掛樹壺公妙有家. 夜水金波浮桂影, 秋風雪陣擁 花. 寒魚着底不呑餌, 興盡淸歌却轉 .]:《宏智正覺禪師廣錄》卷2
}}
천동의 게송은 정교한 7언율시로서 /전적을 인용하고 사실에 바탕하여/ /제지/에 계합하여, 송고시 중에서 보기 드문 작품이다. 율시 규칙의 계한을 받으면 발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남은 회포를 거둬두고 일이 번거로움을 싫어한다]는 것은 [이 보물]의 성질 즉 [쓰면 나가고 버리면 숨는다]는 것을 밝힌 것인데, 이 말은 《논어》에서 나왔다. 거둬 들인다(수권)는 것은 쓰지 않으면 은밀한 곳으로 물러나 감춘다는 뜻이다. 자성은 사람이 [일이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물러나 감춰져 작용하지 않는데, 바로 운문의 [이 보물]은 형산에 비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돌아오면 어디서 사느냐]하는 것은 자성의 묘체가 거둬들여져 물러나 감춰진 후에는 그 작용이 어디에 있으며, 성질은 어떠하며, 어떻게 탐구하는가 하는 말이다. 운문의 말에 비록 지시(가르치는 것)가 있지만, 결국 법을 어떻게 구하는가? [도끼자루가 섞은 나무꾼은 길이 없는가 의심한다]는 것은 찾을 길이 없다(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도끼자루가 썪어내린 일은 《왕씨신선전》에 나온다.
진 융안 때 신안현의 왕질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현실판에 이르러 석실을 보았는데, 네 동자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 왕질에게 대추 같은 것을 주었는데 그것을 먹으니 배가 고프지 않았다. 바둑이 끝났을 때에는 도끼자루가 허리춤에서 썪어 버렸으며 소맷자락은 바람에 흩어졌다. 저물녘에 집에 돌아와 보니 이미 몇 십년이 지난 후였다.{{)晉隆安時, 信安縣王質採薪, 至眩室坂, 見石室, 四童子奕棋, 與質物如棗子, 食之不饑, 恭終斧柯爛於腰間, 衣袂隨風, 抵暮還家, 已數十年矣.
}}
만약 /불전/을 향해 도를 구한다면 도끼자루가 섞은 나뭇꾼이 길을 찾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도를 구하는 길은 [나무에 달린 호공에게 오묘한 집이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壺공의 이야기는 《동한방술전》에 보인다.
비장방은 여남사람이다.---호공이 약을 파는 것을 보았는데, 값을 두 번 부르지 않았다. 나무 위에 병을 달아 놓고는 팔딱 뛰어 병 속으로 들어갔다. 장방이 다락(이층)에서 이를 보고는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곧바로 청소를 하고/ 떡을 올리자 사양하지 않았다. 오래 알고 지낸 뒤 돈독히 믿게 되자(오래 지난 뒤 독실히 믿음을 알게 되자) 말하기를 "해가 저물어 사람들이 없을 때 오라"고 하였다. 비장방에게 나를 따라 뛰어 들어오라 하였다. 비장방이 그 말을 따라서 또한 뛰자 곧 병으로 들어갔다. 보니까 오색찬란한 누각이 있고 좌우에 덧문이 있었으며 하인(시자)이 수십명이 있었다.{{)費長房, 汝南人,.... 見壺公賣藥, 不二價, 懸壺樹上, 輒跳入壺, 長房樓上見之, 知非常人, 乃日掃除進餌, 不謝, 積久知篤信, 語曰: 日暮無人時來. 語房, 隨我跳入, 房承其言亦跳, 卽入壺矣. 見有樓五色, 重門左右, 侍者數十人.(《從容錄》卷下인용
}}(후용록권하인)
운문의 말은 나무 위에 달린 호공의 호리병과 같은데, 출입이 여기(이 곳)에 있음(이곳을 통해 출입함)을 가리킨 것이다. [밤의 금물결 위에 계수나무 그림자가 떠있다]는 것은 승조의 《보장론》이, 밝은 달이 밤에 물을 비추어 사람으로 하여금 달의 존재를 알게 하는 것처럼, 천지우주 사이에 이 [한 보물]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을 비유하였다. [가을 바람 한 바탕 눈이 갈대꽃을 에워싼다]는 것은 눈과 갈대꽃이 같이 [한 색]에 속하는데, 체와 용이 다르지 않고, 사와 리가 겸비되어 있어서, [이 보물]은 깊이(심복) 비장되어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며, 운문의 말은 가을 바람이 이 한바탕의 눈과 갈대꽃을 불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이미 소식을 드러냈음을 비유한 것이다. [차가운 물고기는 강바닥에서 미끼를 삼키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운문의 지시가 있었지만, 도를 구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닌데, 마치 [차가운 물고기가 강바닥에서 미끼를 삼키지 않는 것] 즉 낚시바늘에 걸리지 않는 것과 같다. 선자덕성의 시에서는 이르기를 [밤은 깊고 물은 찬데 물고기는 미끼를 물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두 시는 같은 뜻이다. 참선인이 도를 구하는 것은 어부(고기잡는 이)가 낚시를 드리우는 것과 같고, 자성묘체는 깊이 물 속에 잠겨있는 [차가운 물고기]와 같아서, 미끼를 물어 낚시바늘에 걸리지 않고서 고기잡는 이가 애만 쓰게 한다(심기수단을 낭비하게 한다). [흥이 다하여 맑은 노래(반주없는 노래) 부르며 뗏목을 돌린다]는 것은 고기잡는 이가 낚시를 드리우려는 생각이 다하여 애쓰면서(/기심수단/을 가지고) 고기를 잡으려 하지 않고, 맑은 노래 크게 부르며 뗏목을 돌리면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즉 도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운문의 말이 이미 한가닥 돌아갈 길을 지적하였으므로 자신의 심성을 향해 구하면 [보물을 얻을] 가능성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운문의 이 [건곤 안에 한 보물이 있다]는 공안은 위 두 시의 해설(송명)을 거쳐 참으로 [맑은 빛]이 다 드러났다. 이 두 시는 우회적으로 선을 말하고 있는데, [말이 천하에 가득 차도 잘못된 말이 없다]. 그것은 마치 운문이 말한 [하루종일 (일을) 말하여도 일찍이 입술과 이에 걸리지 않았고 일찍이 한 자도 말하지 않았으며, 하루종일 옷 입고 밥 먹어도 일찍이 한 톨의 쌀도 씹지 않았으며 한가닥의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았다]라고 한 것과 같이, 말을 했지만 말한 것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선가 게송의 독특한(특수한) 점이다.
(68.12.18. 신생보부간)
31. 법안문익의 [털끝만큼의 차이]
법안종은 법안문익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5종 가운데 가장 늦게 생겼다. 그는 주 현덕 5년에 입적하였으므로, 이미 5대 말엽이었다. 문익의 속성은 노씨이며 여항(지금 절강 杭주)사람이고, 법안은 사후의 시호인데, 이에 따라 그 종파를 칭하였다. 법안문익은 여러 스승들에게서 배움을 더해간 전형적인 인물인데, 그는 먼저 신정 지통원의 전위선사에게서 삭발하였고, 다시 율장희각에 의해 /은미한 도(미지)/를 깨쳤으며, (일찌기) 지장을 참배하였고, 석두의 참동계를 연구하였으며, 또한 /장경을 두루 참배하였고/, 나한계심의 법을 이었으며, 그리고 일찌기 유학의 경전도 읽었으며(을 방탐하고) 시문도 즐겨서(문아의 장에 놀아서) 유가의 자유자하에 비겨졌다(로 간주되었다). 법안의 선학은 5종 가운데서 특수한 풍격은 없다. 그는 선과 교를 혼합(혼동)하고 여러 종파(제종)를 널리 취하였다. 그는 《종문십규론》에서 이르기를:
무릇 종풍(종승)을 드날리고(거양) 교법을 인용하고자(원인) 하면 반드시 먼저 부처의 뜻을 밝히고 그 다음에 조사의 마음에 계합하여야, 그런 후에 /이를 들어 행하면서 엉성한 것과 정밀한 것을 비교하여 헤아려 볼 수 있다./ 만일 의리를 알지 못하고서 다만 /자기 종문의 기풍(문풍)/만을 고집하여 지킨다면 /문득 망령되이 끌어 증거하는 것과 같아서/ 스스로 비웃음을 사게 된다.{{)[凡欲擧揚宗乘, 授引敎法, 須是先明佛意, 次契祖心, 然後可擧而行, 較量疏密. 或不識義理, 只當專守門風, 如輒妄有引證, 自取譏 .---]
}}
이것은 뚜렷이(분명히) 종문과 교하의 대항을 없애려 하는 것이며, 또한 각 종은 혈맥상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동가풍에는 치우침과 바름이 있고 밝음과 어두움이 있으며, 임제(가풍)에는 주인과 손님이 있고, 본체와 작용이 있어서, 교화의 건립이 같지 않으나 또한 혈맥이 서로 통한다.] 그는 각 종파가 서로 다투고 서로 시비하는 것은 곧 쓸데없는 일임을 논하였다.
덕산,임제,위앙,조동,뇌봉,운문 등에 이르러서는 각기 문호를 열어 높고 낮음을 따져서, 각 법손들이 자기 종파만 찾고 자기 조사를 중심으로 편을 갈라, 참된 진리에 바탕하지 않아서 마침내 여러 갈래로 나눠져 서로 다른 점을 공격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슬프도다. 큰 도는 들어가는 길이 많으며, 법의 갈래는 한 곳으로 통함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逮其德山,林際, 仰,曹洞,雷峯,雲門等, 各有門庭設施, 高下品提, 子孫護宗黨祖, 不原眞際, 竟出多岐, 予盾相攻, 緇白不辨, 嗚呼! 殊不知大道多方, 法流同味.]:同上
}}
법안의 말로부터, 혜능 이후에 남종은 또한 각 가의 종지가 다름에 따라 각각 종파를 세워 서로 공격하여 5종이 대체로 이미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법안은 이를 조화시키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형세상으로 또한 불가함이 있었는데, 왜냐하면 각 종파가 만일 각자의 특색을 잃어버린다면 선종은 근본적으로 성립될 필요가 없고, 여전히 교하에 (의해) 포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송 이후에 선학이 자취를 감추게 된(聲銷色散) 것은 일찌기 선을 포섭하여(가지고) 교로 돌아간 연고가 아님이 없지만, 그 실마리(조단)는 곧 법안에게 있다. 그와 나한계琛이 스승과 제자로 만난 것(사자투합) 것은 한마디에 서로 계합하여 심법을 서로 이은 것이다.
법안이 현묘한 기틀이 일단 발동하여 잡된 일을 모두 버리고 주장자를 떨치면서 남쪽으로 유람하여 복주 장경법회에 이르렀다. 비록 (계속 유람하려는) 미련이 남았지만(인연의 마음은 쉬지 못하였지만) 수많은 대중이 그를 추대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다시 결려하여(같이 갈 사람을 구해), 호주 밖으로(호외로) 가려고 길을 떠났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 계곡물이 불어나 잠시 성서의 지장원에 머물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계침스님을 참배하였는데, 계침이 묻기를: [상좌는 어디로 가는가?] [죽 행각길을 갑니다(이리저리 다닙니다).] [행각은 왜(무엇하러) 하는가?] [모릅니다.] [모른다는 것이 가장 그럴듯하다(맞는 말이다.친절).] 법안이 이 말에 환히(활연히) 깨달았다.{{)[師(法眼)以玄機一發, 雜務俱捐, 振錫南遊, 抵福州長慶法會, 雖綠心未息, 而海衆推之, 尋更結侶, 擬之瑚外, 旣行, 値天雨忽作, 溪流暴漲, 暫寓城西地藏院, 因參琛和尙, 琛問: 上座何往? 師曰: 行脚去. 曰: 行脚事作 生? 師曰: 不知. 曰: 不知最親切. 師豁然開悟.]:《景德傳燈錄》卷24
}}
[모른다는 말이 가장 /친절하다/]는 계침의 뜻은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도를 체득하고 깨닫는 가장 좋은 길이라 생각한 것인데, 이 말에 법안은 곧장 깨달았으니, 또한 기회와 인연이 딱 맞아 활연히 깨달은(오달) 것이다. 그의 [털끝만한 차이가 있다]는 공안에는 현묘한 도리가 듬뿍 담겨 있다.
법안이 수 /산주/에게 물었다. [털끝만한 차이가 천지처럼 멀어진다는 것은 왜 그런가?(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무슨 말인가?)] [털끝만한 차이가 천지처럼 멀어집니다.] [그렇다면 도는 또한 어떻게 얻는가?(그렇게 말한다면 또한 어떻게 얻겠는가?)] [저(아무개)는 다만 그렇다면 사형은 왜 그렇다고 생각합니까(저는 단지 이러한데 사형은 어떻습니까)?] [털끝만한 차이가 천지처럼 멀어진다.] 수가 이에 절을 하였다.{{)[法眼問修山主, 毫釐有差, 天地懸隔, 只作 生會? 修曰: 毫釐有差, 天地懸隔. 師曰: 與 道又爭得? 曰: 某甲只與 , 師兄作 生? 師曰: 毫釐有差, 天地懸隔. 修遂禮拜.]:《頌古聯珠通集》卷36
}} (송고련주통집권36)
3조의 《신심명》에서는 이르기를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오직 가리는 것(간택)을 싫어하니, 단지 사랑하고 미워하지 아니하면 환하게 명백하다.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천지만큼 멀어진다]고 하였다. 법안과 수산주가 참구한 것은 곧 (이) 몇 구절의 시인데, /기특한/ 것은 법안의 질문이 곧 수산주의 대답이 되고, 뒤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법안의 대답이 곧 수산주의 질문이 되어, 왔다갔다 하여, 단지 [털끝만큼의 차이가 천지만큼 현격해진다]는 것이다. 가능한 상황(해석)은 수산주는 겨우 말과 생각으로부터 이해(해석)하였(다는 것이)고, 법안이 당시에 대답한 의도와 상황(신태와 정경)은 수산주의 사려분별(/정관의쇄/)을 제거하려는(참단) 것이었는데, 수산주가 곧장 깨달았다(곧 바로 받아들인 것이다,당하천취). 법안과 보은현칙의 문답은 이 단락의 문답과 형식은 달라도 동일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금릉의 보은현칙선사에게 법안이 묻기를: [이전에 어떤 사람을 만났던가?] 보은이 말하기를: [청봉스님을 만났습니다.] 법안이 이르기를; [무슨 말이 있었던가?] 보은이 이르기를: [제가 '어떠한 것이 학인 자신입니까?'하고 묻자, 청봉은 '병정동자가 와서 불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법안이 묻기를: [상좌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보은이 이르기를: [병정은 불에 속하니 불을 가지고 불을 구하는 것은 마치 자신을 가지고 자신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법안이 이르기를: [그렇게 이해한다면 또한 어찌 얻겠는가?] 보은이 이르기를: [저는 단지 이와 같은데, 스님의 높은 뜻은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법안이 이르기를: [그대가 나에게 물으면, 내가 그대에게 말하리라!] 보은이 이르기를: [어떠한 것이 학인 자신입니까?] 보안이 이르기를: [병정동자가 와서 불을 구한다.] 보은이 이 말을 듣고서 단번에 깨달았다.{{)[金陵報恩玄則禪師, 法眼問: 曾見什 人來? 恩云: 見靑峰和尙. 眼云: 有什 言句? 恩云: 某甲曾問: 如何是學人自己? 峯云: 丙丁童子來求火. 眼云: 上座作 生會? 恩云: 丙丁屬火, 將火求火, 如將自己求自己. 眼云: 與 會, 又爭得, 恩云: 某甲只如此, 未知和尙尊意如何? 眼云: 問我, 我與 道! 恩云: 如何是學人自己? 眼云: 丙丁童子來求火. 恩於言下頓悟.]:《從容錄》卷상
}}
《종용록》에 실린 것은 《경덕전등록》권25에서 나왔는데, 문장에 약간 차이가 있다. 보은현칙은 [병정동자가 와서 불을 구한다]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니고, 법안 또한 이 구절에 대하여 해석을 하지 않았다. 현칙의 돈오가 말과 생각에 있었던(의한) 것이 아니라 수산주의 대오와 동일한 유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천동각의 게송에서는 이르기를:
저울대 끝에 파리 한마리가 앉아 (저울이) 기우니, 만세의 저울이 제대로 물건을 달지 못한다. 한근,한량,한푼,한치가 분명하게 나타나니, 결국 나는 가만 있고 별들이 도는 것이다.{{)[秤頭蠅坐便/의/傾, 萬世權衡照不平. 斤兩 銖見端的, 終歸輸我定星盤.]:《頌古聯珠通集》卷36
}}
파리가 저울대 끝에 앉으면 곧 한쪽으로 기우는 현상이 생기는데, 바로 [터럭만한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멀어진다]는 의미를 노래하여 밝혔다. 저울대는 만세에 무게를 다는 작용을 할 수 있는데, 평평하게 비춰보지 못한다는 것은 [털끝만한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가 만세에 도를 구하는 사람의 깨달은 경지가 털끝만한 차이가 나서 성인과 범인 같이 천지처럼 현격한 차이가 생겼는지 아닌지를 변별할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저울의 작용(분변) 아래 한근,한량에서부터 한푼,한치의 경미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분명히 분별할 수 있는데, 만약 생각으로서 이해한다면 [털끝만한 차이가 천지처럼 현격해진다.] (원래 이는)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수선주가 깨닫기 전에는 곧 이렇게 이해하였으니, 저울이 한푼,한치를 /분별(변)/하는 것이 저울대의 높낮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반에 있는 것이다/. 참선인이 도를 깨닫는 것은 곧장 바로 들어가는 데 있다. 이것이 [/마침내 나는 가만히 있고 별들이 돈다/]는 말의 함축된 뜻이다. 엄실개는 법안의 가르침(개시)을 노래로 찬미하였다.
하나의 도는 마치 활시위처럼 곧아서, 장안에 이미 소식이 통하였네(퍼졌네). 만방이 모두 들어와 공물을 바치니, 사해에 낭자한 연기가 그치도다.{{)[一道如弦直, 長安信已通. 萬邦皆入貢, 四海息狼煙.]:同上
}}
수산주가 법안의 가르침을 얻어 입도의 탄탄한 길에 들어간 것이 [장안에 편지(소식)가 이미 통하였다]는 것인데, 이미 [저 쪽]과 소식을 통한 것이다. 장안은 임금이 있는 곳인데, 이를 빌어 /성스런 경계(성경)/를 비유하였다. [만방이 모두 들어와 공물을 바치니, 사해에 낭자한 연기가 그친다]는 것은 이로부터 수산은 이리저리 찾을 필요가 없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태평스런 날들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의 경지(시의)는 자못 얕으며, 더우기 뒤 두 구절은 좋지 않다.
법안은 남방의 강절 지역에서 활동하였으며, 법의 인연(법연)은 금릉에 있었는데, 학인들을 접인하면서 주로 공안과 화두를 들었는데(염거), /죽은 뱀도 능히 살릴 수가 있어서/ 사람들이 근기(기틀)에 따라 깨달아 들어가게 하였다. 그러므로 개종입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특별한 공적(실적)이 없었기 때문에 송에 들어서는 (가장) 먼저 쇠퇴(쇠진)하였다.
32. 양기의 [세 다리 당나귀]
임제는 황룡과 양기 두 지류를 분출시켰는데, 후인들은 양기를 마조가 다시 온 것에 비하였는데(간주), 왜냐하면 그의 세 다리 당나귀는 [망아지]가 천하 사람들을 밟아 죽였다는(죽인) 것과 같아서, 아주 큰 영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양기와 황룡은 다 석상초원에서 배출되었는데, 석상은 흡사 임제가 부처도 욕하고 조사도 꾸짖는 것과 같은 가풍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는 여러 대사들과 각 종파를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마조의 즉심즉불(마음이 곧 부처)이란 /그 사람이 깨닫지 못한 것이고(사람들이 깨닫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이고)/; 반산의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는 것은 단지 쓸데없는 이야기(희론)이고; 설령이 공을 굴리는 것은 어린아이를 속이는(속여 놀래게 하는) 짓거리이고, 운문이 거울을 돌아본 것은 /옆에서 보는 사람을 크게 웃기는 일이며/; 소실이 자해한 것은 한바탕 큰 잘못이며; 덕산이 문을 들어서면 곧 몽둥이질 한 것은 기인을 만나지 못한 것이며; 임제가 문을 들어서면 곧 고함지른 것은 너무 경박한 것이며; 황매가 게송을 올린 것은 나와 남을 아직 잊지 못함이며; 더우기(다시) 조사와 조사가 서로 전했다고 하는 것은 차례로 서로 비방한 것이다.{{)[馬大師卽心卽佛, 當人未悟; 盤山非心非佛, 只成戱論; 雪嶺 球, 호小兒之作; 雲門顧鑑, 笑煞傍觀; 少室自傷, 一場大錯; 德山入門便棒, 未遇奇人; 臨濟入門便喝, 太煞輕薄; 黃梅呈頌, 人我未忘; 更言祖祖相傳, 遞相誹謗.]:《石霜楚圓禪師語錄》
}}(석상초원선사어록)
그의 어록으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고변하면) 그는 운문 등 여러 종파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 그런 바탕 위에서 어느 것도 모방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런 결과 문하에서 두 큰 종파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양기방회선사는 속성이 冷씨이고 원주 의춘(지금의 강서 노릉)사람이다. 일찌기 세금을 걷는 관리가 되었다가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몰래 도망하여 서주 구봉(지금의 강서 고안)에 이르렀는데, 마치 옛날에 노닐었던 곳인 것 같았으며, 이에 마침내 미련을 버리고 못하고, 삭발하고 출가하였다. 경전들을 열람하면 그 의미들을 이해할 수(심융신회할 수) 있었으며, 그 후 석상과 가까와져서 그의 상좌(조수)가 되었다. 그가 도를 깨닫게 된 것은(대사를 발명한 것은) 그가 석상에게 강요한 결과였다(억지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의탁한지 비록 오래되었으나, 아직 깨닫지 못하였는데, 매번 불법을 물을(자참할) 때 마다, 명은 이르기를: [곳간을 관리하는 일이 바쁠테니 가보거라.] 다음 날 또 물으면, 명은 이르기를: [/감사(총무)여, 다른 때 하지./ /아손/이 천하에 두루 있는데, 서두를 필요가 뭐 있는가.] 하루는 명이 마침 나갔을 때, 갑자기 비가 내렸다. 스님이 그를 찾아 나갔다. 좁은 길이 보이자, 팔을 비틀어 꼼짝 못하게 하고는 말하기를: [이 영감탱이 오늘은 나에게 말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때려 줄테다.] 명이 말하였다. "/감사/는(여), 이런 일을 알게 되면 곧 아무 것도 하지 않겠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스님은 크게 깨닫고서 곧 진흙길에 엎드러 절을 하였다. 묻기를: [좁은 길에서 서로 만났을 때는 어찌 합니까?] 명이 말하기를: [그대가 또한 피하고, 나는 저쪽으로 가려 한다.] 스님은 돌아와서, 스스로 위의를 갖추고 나아가 예를 올리고 감사했다. 명이 꾸짖어 말하기를: [아직 /멀었다/.]{{)[依之雖久, 然未有省發, 每咨參, 明曰: 司庫事繁且去. 他日又問, 明曰: 監寺異時, 兒孫遍天下在, 何用忙爲. 一日明適出, 雨忽作, 師偵之, 小徑旣見, 住曰: 這老漢, 今日須與我說, 不說打 去. 明曰: 監寺, 知是這般事便休. 語未卒, 師大悟, 卽拜於泥途. 問曰: 狹路相逢時如何? 明曰: 且 避, 我要去那裏去. 師歸來, 自具威儀, 詣方丈禮謝. 明呵曰: 未在.]:《五燈會元》卷19
}}(오등회원권19)
양기방회가 깨달은 것이 특이했음(기특함)을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한마음으로 도를 추구하여 여러차례 간청(참청)하였으나 거절을 당하였고, 따라서 [무력]을 가지고 협박하였기 때문이다. 석상은 단지 [아는 것이 이러한 일이면 곧 쉰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일은 곧 불법을 깨닫는 것(대사를 발명하는 것)이고, 이러한 일을 알면 곧 쉰다는 말의 뜻은 항상 도를 체득하려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고, 이말저말 생각하고 헤아리지 않고 때가 되기를(사절인연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양기가 크게 깨달은 후에 [좁은 길에서 서로 만나면 어찌합니까?]라고 물었는데, 그 뜻은 문득 도를 깨달은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말이다. 명이 이르기를: [그대가 또한 피하라.] 그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반어법으로서, 그에게 성스런 경계(성경) 가운데 머물러 피하지 않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는 그가 성스런 과위(성위)에 머물러 지난 날(과거)을 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양기가 설법한 이후 세다리 나귀 공안은 한 때 크게 유행하였다.
묻기를: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세 다리 나귀가 /발굽소리 요란하게/ 간다.] [/이것 말고는 곧 무엇입니까?/] 스님이 이르기를: [호장로(호주의 노스님)이다.]{{)[問如何是佛? 師曰: 三脚驢子弄蹄行. 曰: 莫祇這便是 ? 師曰:湖長老.]:同上
}}
이른바 세 다리 나귀는 세상에 이런 것이 없으므로 응당 상징적인([形相화]된) 말인데, 대개 세 다리는 유와 공과 공이면서 유(역공역유)를 비유하였는데, 본체의 큰 작용은 이를 통해 드러난다(/전체대용/은 이에 의하여 행한다). 왜냐하면 양기는 공과 유가 한가지임(일여)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다.
진리의 작용(대용)을 크게 일으키고, 진리의 세계(전진)에 발을 내딛는다. 서는 것을 가지고 진리(참,진)이라 이름하니, 진리(진)를 떠나서 서는 것이 아니다(를 떠나지 않고 선다): 서 있는 곳이 곧 진리(진)이니, 여기에서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 자리에서(당처에) 발생하면(깨달으면), 어디서나 해탈한다(자유롭다).{{)一卽一切, 一切卽一.
繁興大用, 擧步全眞, 卽立名眞, 非離眞而立; 立處卽眞, 者裏須會, 當處發生, 隨處解脫.:《古尊宿語錄》卷19
}}
자성묘체에 의하여(로부터) 작용(대용)이 크게 일어나는(번흥) 것은 곧 [완전한 나귀]이다. 그러나 체용은 반드시 공과 유를 기다려(에 의하여) 나타나고(드러나고), 자성은 또한 공이면서 유(역공역유)이므로 이 [나귀]는 세 다리를 /기다려(에 의하여) 발굽소리를/ 내며 간다. 당시의 /참/선인들은 그가 세다리 나귀에 걸터 앉아 천하사람들을 밟아죽였다고 했다. 불성태의 게송에서는 이르기를:
세 다리 나귀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면, 걸음걸음 연꽃이 발 아래 생긴다. /우습게도(웃음을 참으면서)/ 풀 가운데에서 찾는 사람은, 향기로운 나무에 지저귀는 봄꾀꼬리를 알지 못한다.{{)[三脚驢子弄蹄行, 步步蓮花 足生. 堪笑草中尋覓者, 不知芳樹 春鶯.]:《頌古聯珠通集》卷39
}}
앞 두 구절은 세 다리 나귀가 곧 기특한 동물인데, 지나간 곳은 걸음마다 연꽃이 생김을 노래하여 밝히고 있다. 만약 /잘못 이해하여/ 이 세 다리 나귀가 실재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따라서 실재하는 현상계에서 찾는다면 곧 웃음거리라는 것이 이 [우습게도 풀에서 찾는 사람]이라는 구절의 뜻이다. [향기로운 나무에 지저귀는 봄꾀꼬리를 모른다]에서 향기로운 나무는 화려하고 볼 수 있는 것이고, 향기로운 나무 가운데 숨어있는 봄꾀꼬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귀를 즐겁게 하는 새소리는 짹짹거리며 향기로운 나무로부터 솟아나는데(투출), 이를 통해 자성이 비록 형체와 색상이 없지만 많은(제반) 묘용을 가지고 있어 색계를 통하여(를 뚫고서, 에 /투과/되어) 하나하나 드러남을 비유하였다. 도는 실로 일찌기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은데,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상에 착하지 않고(현상을 떠나서) 구하여 곧 갈피를 못잡고(헷갈리어) 그림자를 희롱하는 것이다. 백운단선사는 이르기를:
세 다리 나귀가 발굽소리 요란하게 가는 것은(면서), 행인들이 잘 보도록 권하는 것이다. 풀 속에서 그것을 찾으면 반드시 목숨을 잃게 되니, 단지 발자국소리 따라 가는 것이 가장 분명하다.{{)[三脚驢子弄蹄行, 奉勸行人著眼睛. 草裏見他須喪命, 只綠 踏最分明.]:白雲端
}}(백운단)
앞의 두 구절의 시는 참선인들이 양기의 세 다리 당나귀의 공안에 주의하도록 하려는 것이고, 지혜의 눈을 가지고 체인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곳의 행인은 찾아 다니면서(참방하면서) 구도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풀 속은 /풀에 떨어진다(천민이 된다,낙초)/는 뜻이다. 현상계 혹은 /실제/에서부터 답을 구하여 세 다리 당나귀라는 이 공안을 연구탐색한다면 곧 몸과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 다리 당나귀가 짓밟은(척답) 것은 분별의식과 헤아리는 생각(정식의상, 주작의의)이기 때문인데, 이것이 [풀 속에서 그것을 찾으면 반드시 목숨을 잃고, 단지 발자국소리를 따르는 것이 가장 분명하다]는 말의 함축된 뜻이다. 전우유선사의 게송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절름발이 나귀가 세 다리로 발굽을 딸그락거릴 때, 만약 직법 타보지 않으면 또한 알 수 없도다. /순금부처(자마금용)를 실어도 움직이지 않으니, 죽비는 과연(실로) 차가운 철퇴보다 나으리라./{{)[蹇驢三脚弄蹄時, 若不親騎也不知. 紫磨金容 不動, 竹 端勝冷鉗鎚.]:同上
}}
세 다리 나귀는 겉으로는 절름발이(파각) 나귀지만, 실제로는 /성스런 경계(성경)/를 대표한다. 만약 나귀 위에 탄 사람이 아니라면 그 /좋은 점(훌륭한 곳)/을 알지 못하며,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체회)할 수 없다. [/순금불상을 실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만일 [성스럽다는 생각(성해)]을 일으켜, 금동(금주동마의)불상이라 생각한다면, 이 세 다리 당나귀는 그것을 실어 나를 수 없음을 비유하였다. 이 세 다리 당나귀 공안은 사람의 눈 가운데서 금박(예)을 깍아 없애는 죽비로서, 차가운 쇠가 쇠망치〔감추〕의 두들김(추격)을 받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이상의 게송들은 세 다리 나귀의 의미(함축된 의의)를 대체로 노래하여 밝혔다.
33. 황룡의 [세 관문]
선종의 전승은 송대에 들어온 후 위앙의 전승은 거의 끊어졌고 네 종 가운데 홀로 임제가 가장 성하였으며 조동종은 여전히 상당한 세력(성세)을 가지고 있었다. 임제는 또한 아래로 황룡혜남과 양기방회 두 파를 열었는데(하개), 남송 때 양기 일파가 자못 두드러졌다(걸출). 그러나 한 꽃에 다섯 꽃잎이었던 성황에 비하면 이미 /크게 미치지 못하였다/. 송왕조가 멸망한 후 선종은 (겨우) /실오라기처럼 끊어지지 않았으며/, 선과 교는 /또한(차우)/ 차츰 융합(혼융)하였다.
임제종은 송대에 전해지자 종주는 이미 죽고 사람과 법이 모두 없어져서, 비록 전승은 있었지만 병폐가 날로 드러나, 방망이나 고함을 쓰는 것이 점차 터무니없게(소란스럽게) 되었으며, 조동종의 바르고 치우침(/정편회호/)과 군신오위는 알음알이(이해)에 떨어져, 이에(그래서) 공안을 참구하고 화두를 보며 앉아서 참선하는 풍조(풍기)가 형성되었는데, 황룡사심선사는 이를 질책하여 말하기를:
심문이 말하기를: 납자들이 선으로 인해 병을 얻는 자들이 매우 많다. 귀와 눈에 병이 있는 자는 눈썹을 치켜 뜨고 눈알을 부라리며 귀를 기울이고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선이라 하고; 입과 혀에 병이 있는 자는 말을 거꾸로 하고 아무 때나 고함치는 것을 선이라 하고; 병이 손발에 있는 자는 앞으로 나가고 뒤로 물러나며 동을 가리키고 서를 그리는 것을 선이라 하고; 가슴과 배에 병이 있는 자는 현묘한 것을 궁구하고 생각(정식)을 넘어서고 견해를 떠나는 것을 선이라 한다. 실제에 근거하여 논하면, 병이 아닌 것이 없다.{{)[心聞曰: 衲子因禪致病者多, 有病在耳目者, 以 眉努目, 側耳點頭爲禪; 有病在口舌者, 以顚言倒語, 胡喝亂喝爲禪; 有病在手足者, 以進前退後, 指東劃西爲禪; 有病在心腹者, 以窮玄究妙, 超情離見爲禪; 據實而論, 無非是病.---]:《禪門寶訓》卷하
}}
이 말은 임제의 방망이와 고함은 요란뜨는 것이며, 위앙이 일원상을 그리는 것은 손짓발짓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조동종지는 검은(허황한, 현묘한) 굴 속에 떨어졌음을 질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명심견성할 수 없기 때문인데, 지난날 종사들이 사람을 접인하던 이 수단들을 후인들이 그대로 모방하여 웃음거리와 장난거리(호래)가 되었다(부시). 황룡혜남은 이러한 배경 아래 크게 /선풍을 세/울 수 있었는데, 선문의 중흥인물이 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부끄러움이 없다)./
혜남선사의 속성은 장씨이며 신주(지금의 강서 상요)사람이다. 그는 본래 륵담징선사에게 귀의(의탁)하여 이미 그와 함께(분좌하여) 학인을 제접하였는데, 그러나 운봉열선사의 영향을 받아 석상초원의 문하로 다시 들어가 임제의 /법계(실)로/ 들어갔다. 혜남이 석상을 찾아가 배알했을 때 석상은 이미/ (절) 일을 맡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형옥에 머물면서 보엄현에게 귀의(의탁하여) 서기가 되었는데 얼마 있지 않아 현이 죽자, 군수는 석상을 주지로 초청하였다. 《오등회원》권17에는 두 사람의 인연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갑자기 현이 죽자, 군수는 자명(즉 석상)을 후임으로 삼았다. 그가 이르렀을 때, 황룡은 그가 여러 선사들(제방)을 깍아내리고(폄박) 누누히 삿된 견해라 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기가 막혔다. 마침내 석상의 방으로 갔다. 석상은 말하기를 [서기가 무리를 거느리고 여러 곳을 다녔으니, 만약 의심이 있다면 앉아서 논의해볼만 하도다.] 황룡이 간청하는 마음이(애간) 더욱 절실하였다. 석상이 말하기를: [그대는 운문선을 배웠으니 반드시 그 종지를 잘 알 것이다. 만약 동산이(에게) 방망이를 세 대 놓는다면 이는 몽둥이를 맞을 것인가 맞지 않을 것인가?] 황룡이 말하기를: [맞을 것입니다.] 석상이 정색을 하면 이르기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까치나 까마귀가 울어대는 것도 모두 몽둥이를 맞아야겠구나.] 명은 곧 단정히 앉아서, 스님이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는 것을 받았다. 명이 다시 물었다. [조주가 말하기를 '대산 할멈, 내가 그대를 위해 다 깨뜨려 주리라.' 그렇다면 어느 곳이 그가 할멈을 깨뜨리는 곳인가?] 스님은 진땀을 흘리며 답하지 못하였다. 다음날 또 다시 나아가자 명의 꾸짖음이 끝이 없었다. 스님이 말하기를: [꾸짖는 것이 어찌 자비법시라 할 수 있습니까?] 명이 말하기를: [너는 꾸짖는 것을 알고 있는가(꾸짖을 줄이나 아는가)?] 스님은 그 말에 크게 깨닫고는 게송을 지었다. [걸출한 총림은 조주인데, 노파를 /깨뜨림은/ 유래가 있도다. 그리하여 오늘날 사해가 거울처럼 평온하니, 행인은 길을 원수로 삼지 말라.] 자명에게 올리자 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룡의 깨달음은 /조주감파/의 공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세 관문]공안은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는데, 게송이 많다.
스님은 입실하는 승려가 있으면 항상 묻기를: [사람마다 모두 태어나는 인연이 있는데, 상좌의 태어나는 인연은 어디 있는고?] 문답이 치열할 때면(교봉), 다시 손을 내놓으면서 말하기를: [내 손은 어찌하여 부처손 같은고?] 다시 여러 곳에서 종사들을 참배(청)하여 무엇을 얻었는지를 묻고는 또 다시 다리를 내놓으면서 이르기를: [내 다리는 어찌하여 나귀다리 같은고?] 30여년 동안 이 세 가지 질문을 하였는데, 취지에 계합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간혹 대답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스님은 가타부타한 적이 없었다. 총림에서는 그것을 황룡3관이라고 하였다. 스님이 스스로 노래하기를:
태어나는 인연을 사람들은 모두 안다고 하지만, 해파리가 언제 새우를 떠난 적이 있던가? 단지 해가 동쪽 둔덕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니, 누가 능히 다시 조주의 차를 마실런고.
내 손과 부처 손을 함께 드니, 참선인은 곧 바로 받아 들이는구나(깨닫는구나). 창과 방패를 쓰지 않고 말하니, 그 자리에서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는다.
내 다리와 나귀 다리가 함께 가니, 걸음걸음 나지 않음(무생)을 밟아간다. /구름 걷히고 해 지는/ 것을 알 수 있으면, 바야흐로 이 도가 걸림없음을 알리라.
(/총괄하는 노래/) 태어나는 인연이 끊어진 곳에 나귀가 다리를 뻗고, 나귀가 다리 뻗을 때 부처손이 펴진다. 천하에 공부하는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하여, 세 관문을 하나하나 꿰뚫어 간다.{{)師室中常問僧曰: 人人盡有生綠, 上座生綠在何處? 正當問答交鋒, 却復垂手曰: 我手何似佛手? 又問諸方參請宗師所得, 却復垂脚曰: 我脚何似驢脚? 三十餘年, 示此三問, 莫有契旨, 脫有酬者, 師未嘗可否, 叢林目之爲黃龍三關. 師自頌曰:生綠有語人皆識, 水母何曾離得鰕, 但見日頭東畔上, 誰能更吃趙州茶.
我手佛手兼擧, 禪人直下薦取. 不動干戈道出, 當處超佛超祖.(林間錄에서는 當處가 自然으로 되어 있음)
我脚驢脚 行, 步步踏着無生. 會得雲收日卷, 方知此道縱橫.
(總頌) 生綠斷處伸驢脚, 驢脚伸時佛手開. 爲報五湖參學者, 三關一一透將來.
}}
참선인들의 송고시는 모두 앞 사람들의 공안을 노래하여 밝힌 것인데, 이로써 자기의 경지를 표현한다. 그런데 황룡혜남은 스스로 자신의 공안을 노래하고, 나아가 부분 노래(분송)가 있고 총괄하는 노래(총송)가 있는데, 실로 남과 다른 하나의 격을 갖추었다. 황룡의 세 관문은 만약 이 네 게송이 없었다면 참으로 아무런 자취도 없었을 터인데, 이 네 게송이 있고나서 비로소 시를 통해 그 뜻을 거슬러 헤아려 볼 수 있게 되었다. 선가의 소위 세 관문은 곧 초중,중관,뇌관인데, 총괄적인 노래를 강령으로 삼아 부분 노래를 탐색연구하면 그 의의를 명백히 알 수 있다. 태어나는 인연은 첫째 관문이 되는데, 태어나는 것과 인연이 되는 것은 곧 색계의 일이다. 그러나 색과 공이 한가지이므로 마땅히 색계를 통하여 공계를 알아야 하고, 가유(가상적 존재)를 통하여 묘유(참된 존재)를 알아야 한다. 태어나는 것과 인연맺는 것의 [유]는 곧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이해하는 것이므로, [태어나는 인연은 사람들이 다 안다고 한다]고 하였다. 가유를 통하여 묘유에 이르고, 자성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데, 해파리는 본체를 비유하고, 새우는 작용을 비유하였으며, 둘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단지 해가 동쪽 언덕에서 떠오름을 본다]는 것은 이미 자성묘체를 알았음을 비유한 것인데, 비록 여전히 한 쪽에 떨어져 있지만, 이미 유는 묘유이고, 세속적 진리(속제) 가운데 참된 진리(진제)가 있음을 안다면, 멍청하게 무지한 참선인처럼 억울하게 조주의 벌차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 이 고비를 지나면 곧 첫째 관문을 통과한 것인데, 이른바 [태어나는 인연을 끊은 곳에 나귀가 다리를 뻗는다]는 것이다. 내 다리와 나귀 다리는 중관(둘째 관문)인데, /이로써 초관에서 중관에 이르는 것을 비유(비의)하였다. [실유]에서 [진공]에 이르는 것은 곧 걸어서 이르는 것이고, 걸음걸음 [나지 않음(무생)]을 밟는 것이다. 마치 /구름이 걷히고 해가 지는/ 것과 같아서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고, 상하좌우(종횡상하)가 모두 도에 이르는 /수단(기관)/이다. 그러므로 /총송/에서 비로소 [나귀가 다리 뻗을 때 부처손이 펴진다]고 하였다. 내 손과 부처 손은 /뇌관/인데, 이는 도를 이룬 후에 손을 뻗어 사람을 구하는 것을 비유하였는데, 내가 손을 뻗는 것은 부처의 손이 뻗어지는 것과 같고, 옷을 떨치며 설법하여 세상을 위하여 항해를 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참선인은 곧 바로 깨달아 들어가야] 하고, 기회와 인연(기연)을 놓쳐서는 안되는데, 만약 헤아림과 생각을 발동하지 않을 수 있다면, 마치 창과 방패를 쓰지 않는 것처럼 다치지 않고 도에 합하여 곧 부처나 조사와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조각총선사의 게송은 황룡의 원래 뜻을 가장 잘 얻었다.
부처의 손이 비로소 펴지자 옛(낡은) 거울이 밝아지고, 삼라만상이 조금도 남김없이 형체를 드러낸다. 매일 아침 태양은 동쪽에서 나오는데, 얼마나 많은 행인들이 병.정을 물었던가.{{)[佛手 開古鑑明, 森羅無得隱纖形. 朝朝日日東邊出, 多少行人問丙丁.]:《頌古聯珠通集》卷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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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손이 비로소 펴지자 오래된 거울이 밝아진다]는 것은 부처와 조사가 손을 펼쳐 사람을 제도할 때, 자성은 낡은 거울이 밝아지는 것처럼 삼라만상을 비추어서 조금의 형적도 숨길 수 없다는 말이다. 태양이 매일매일 동쪽에서 나오지만 즉 지극한 도가 색계에서(로부터) 드러나지만, 도를 구하는 사람은 마치 길 가는 사람들이 불이 어디 있는지를 묻는 것처럼 [도]가 어디 있는지 묻고 있다. 경복순선사의 게송은 더욱 문장이 고상하고 뜻이 깊다.
장강(양자강)에 구름 흩어지고 물결은 도도한데, 갑자기 광풍이 불어 물결이 높아진다. 자신의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물결 속에 휩쓸려 풍파에 흔들린다.{{)[長江雲散水滔滔. 忽爾狂風浪便高. 不識自家玄妙意, 偏於浪裏 風濤.]: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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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시는 황룡의 세 관문의 총괄적 뜻을 노래하여 밝히고 있는데, 그는 황룡의 세 관문의 경지가 아주 명백하다고 생각하였다. 가려진 장애를 없애버린 뒤에 자성은 마치 양자강의 도도한 물결처럼 눈앞에 드러난다. 황룡의 세 관문이라는 이 공안은 바람으로 인하여 물결이 일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구도하는 참선인은 어부의 참 뜻 즉 목적이 고기를 잡는 데 있음을 알지 못한다. 물고기는 물결 속에 숨어 있는데, 황룡의 공안은 그 목적이 이로써 도를 보이려는 데 있음에도, 굳이(뜻밖에, 하필) 풍랑 속에서 풍파/를 점측하고 있고/(에만 신경쓰고, 만 일으키고), 물고기의 존재를 잊어 버렸다.
황룡의 문하에는 고승들이 아주 많았는데, 황룡조심,동림상총,보봉극문,운거원우 등 30여명이나 되었는데, 그 후 모두 한 지역의 방장이 되어(/한 지방/의 /영수/가) 되어 황룡의 법계를 빛내었다.
34. 지문광조와 [연꽃이 물 위에 나오다]
지문광조선사의 /출가전 행적/은 자세하지 않으며, 단지 절강인이라는 것만 알(/고지/할) 수 있다. 그는 향림원선사의 법제자(법사)이며 운문종 계열에서 나왔다. 송대에 들어온 후 운문종의 전승이 비록 성대했지만, 큰스님(종사와 거장)이 많지 않아서, 임제(종)와 자리를 다투기에 부족했는데, 단지 광조선사의 법계 아래서 설두중현이 배출되어 그 이름이 한 때를 떨쳤으며, 《설두사집》은 사부총간 가운데 수록되어 운문종을 중흥시키는 기상이 있었다. 광조는 호북 수주의 지문사에서 설법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얻었으며, 당시의 법석은 매우 성대하였다. 그의 [연꽃이 물 위로 나온다]는 공안은 지극히 현묘한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떤 중이 묻기를: "연꽃이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연꽃이다." 다시 묻기를: "물에서 나온 후에는 어떠합니까?" "연잎이다."{{)僧問: 蓮花未出水如何? 師曰: 蓮花. 曰: 出水後如何? 曰: 荷葉.:《五燈會元》卷15
}}
연꽃이 물 위로 나오기 전에 보이는 것은 마땅히 연잎인데도 광조가 연꽃이라고 답한 것은 매우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비록 물 밖에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연꽃의 성질은 이미 완전히 갖추고 있으며, 뒤에 물 위로 나와서 연꽃이 되는 것은 그 잠재적 성질이 드러난(인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뜻은 자성묘체가 작용을 발생하기 전에 이미 일체 묘용이 존재하고, 나중에 본체로부터 작용이 일어나면, 현상계의 일체는 다 자성묘체의 작용임을 비유한 것이다. 연꽃이 물 밖에 나온 후에 보이는(보게되는) 것은 마땅히 연꽃인데도 광조는 연잎으로 답하였다. 연잎은 근본이요, 연잎은 둥근 것이다. 선종에서는 항상 일원상으로써 자성묘체를 나타내는데(대표하는데), 이로써 연꽃이 연잎을 근본으로 삼으며, 현상계의 일체 변화는 여전히 이 자성묘체에 의해 포섭(괄)됨을 비유하였다. 단하순선사는 이르기를:
흰 연뿌리가 싹트지 않았다고 숨겨진 것이 아니며, 붉은 꽃이 물 밖에 나온다고 환하지 않다. 구경하는 사람은 소식을 전할 필요가 없으니, 저절로 맑은 바람에 향기가 멀리 전해진다.{{)[白藕未萌非隱的, 紅花出水不當陽. 遊人莫用傳消息, 自有淸風遞遠香.]:《頌古聯珠通集》卷37
}}
[흰 연뿌리가 싹트지 않았다고 숨겨진 것이 아니다]는 것은 흰 연뿌리가 생겨나기 전에(이라도) 결코 원래 있는 성질이 숨겨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천노인은 착어(단평)에서 이르기를: [숨겨져 있지만 더욱 /빛난다/], 또 이르기를: [진여는 변함이 없는데, 인연 따름에 무슨 장애가 되겠으며, 당체가 본래 공한데, 일을 이루는 데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싹트지 않았을 때 원래 숨겨진 것이 아니다]{{)[은이미창], [진여불변, 하애수연, 당체본공, 하방성사, 미맹시원비은적.]:《허당집》권하를 보라
}}라고 하여, 이미 단하순의 /게송의 뜻/(시의)을 밝혔다.(도출) 광조선사가 연꽃이 물 밖에 나오지 않았을 때는 어떠한지에 대한 물음에 [연꽃]이라고 대답한 본 뜻도 이와 같다. [붉은 꽃이 물 밖에 나와도 /햇빛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연꽃이 물 밖에 나온 후에(도) 결코 일체 변화의 원인이 아주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임천노인은 착어에서 이르기를: [/뚜렷하지만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하고 또 이르기를 [물 위로 나와도 어찌 /햇볕을 쬐겠는가, 눈으로 보면 살필 수가 없다/]{{)[현이불로.], [출수처나긍당양, 연관불심.]
}}고 하였다. [구경하는 사람은 소식을 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놀이하는 사람들은 꽃이 피는 것을 보고서 부질없이 소식을 전할 필요가 없고, 참선인은 깨닫고 나서 이말저말 함부로(크게) 선양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자성묘체는 결코 사람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늘상 소식을 드러내니(투출하니), [맑은 바람이 저절로 향기를 멀리 전한다] 즉 저절로 맑은 바람이 있어서 무형 중에 연꽃의 향기를 멀리까지 전하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원래 개인에 있는(달린)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화려한 배 위에서 아무리 연꽃노래를 불러도, 목란나무 노가 가르는 새 물살이 차갑다]{{)[화선수창채연가, 蘭棹발잔신수랭.]
}}는 말처럼 또한 헛되이 기력만 낭비하여, [일(깨달음)]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자수심선사의 시는 더욱 뜻이 깊고 싯귀가 오묘하다.
연기(안개)는 난간 밖을 감싸고 울긋불긋 푸른데, 바람은 연못 가운데서 흔들려 송이송이 향기롭다. 아주 고맙게도 비단 씻는 사람이 꺾지 않아서, 비오는 중에 남아서 /원앙을 덮어준다/.{{)[煙籠檻外差差綠, 風 池中柄柄香. 多謝浣沙人不折, 雨中留得蓋鴛鴦.]:《頌古聯珠通集》卷37
}}
연잎은 안개(연기)서린 아래 난간 밖 연못 속에서 겹겹이 푸르고, 송이송이 연꽃은 맑은 바람이 흔들어서 가지가지 맑은 향기를 발휘한다. 이것은 작용이 본체로부터 발생하고, 본체는 작용을 통해 드러나서 /도의 존재가 눈에 보임(도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함)/을 비유한 것이다. [매우 고맙게도 모래씻는 이가 꺽지 않는다]에서 마땅히 모래는 비단을 잘못 쓴 것인데, 비단 씻는 사람이 일찌기 풍경을 /대살하여/ 연꽃과 연잎을 꺾지(절단하지) 않음에 매우 감사하는 것은 이로써 지문광선사의 이 대답이 결코 참된 마음(진심)을 직접 말(직설)하지 않음으로써 [말길이 끊어지고, 마음 쓸 곳이 없는(언어도단,심행처멸)], 다치지 않으면 부딪치는 경계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능히 물음에(묻는 자리에서) 대답하고, 둘러서 선을 말하여 어긋나지도 않고 저촉하지도 아니할 수 있었음을 찬미한 것이다. [비내리는 가운데 남아서 원앙을 덮어준다]는 것은 안개비 가운데 연덮개를 남겨서 원앙새가 장마비를 맞지 않도록 덮어준다는 말이다. [원앙은 홀로 잠들지 않는다]는 것은 도가 나눠질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인데, 자성묘체가 비록 [유]와 [공]으로 나눠지지만, 둘은 마치 원앙새를 떼놓을 수가 없는 것과 같이 사실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광조선사의 연꽃이 물 위에 나오지 않는다는 공안은 결코 [공]과 [유]를 말하지도 않고, [공]과 [유]를 나누지도 않고, [공과 유가 하나이며], 연덮개처럼 완전하여, 원융무결하고, [공]과 [유]를 포함하여, 이 한 쌍의 [원앙]을 덮어 주었다. 불감懃선사의 게송은 말은 다르지만 그 뜻은 같다.
꽃봉오리는 흔들리는 못 가운데 달을 차갑게 꿰뚫고, 푸른 잎이 수면의 바람을 가볍게 흔든다.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그대는 볼지니, /도로(서역의 나라이름)/는 단지 한 연못 속에 있는 것을.{{)[香苞冷透波心月, 綠葉輕搖水面風. 出未出時君看取, 都盧只在一池中.]:同上
}}
[꽃봉오리가 못 가운데 달을 차갑게 꿰뚫어 흔든다]는 것은 향기를 머금은 연꽃봉오리는 달빛이 밝게 비추는 아래서 차가운 물결 속에서부터 물을 뚫고 나온 것이라는 말인데, 이는 광조선사의 공안은 노래한 것이다. 연꽃은 물 밖에 나와도 여전히 연꽃인데, 달리 한 층 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연꽃의 꽃봉오리는 [흔들리는 물 속의 달]로부터 뚫고 나온(투출된) 것인데, 색계의 일체는 모두 자성묘체에 근원하고 있다. [푸른 잎이 수면의 바람을 가볍게 흔든다]는 것은 연잎이 /(田田,여기저기)너울너울/ 수면에서 바람에 흔들리는(요풍,바람을 흔드는) 것인데, 이것은 연꽃이 물 위로 나온 후의 모습(상황,정형)이고, 이로써 색계의 실제상황(정황)을 비유하였다. [나오고 나오지 않을 때 그대는 잘 보라]는 것은 연꽃이 물 위로 나오는 것과 나오지 않은 것을 그대는 유의하여 관찰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뜻은 공안을 참구하는 참선인이 이 공안에 마음을 두어야(류심, 주의해야) 함을 환기시키는 데 있다. [모든 것(도로)은 다 단지 한 못 속에 있다]는 것은 연꽃이 물 위에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상관없이, 연꽃이거나 연잎이거나 상관없이, 총괄하여 말한다면(결국) 모두가 하나의 연못 속에 있다는 것인데, 자성묘체에 비유하자면, 색계와 공계, 범속과 /성경/을 막론하고 모두 그것에 포함된다. 불감근선사의 게송은 참으로 말과 뜻이 다 아름답다. 불등珣선사의 게송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착안하였다.
진흙과 물이 나눠지지 않아도 붉은 연꽃봉오리, 비온 뒤 푸른물결 뚫고 향기가 먼저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침내 알기 어렵지만, 일단 뿌리로 돌아가면 곧 /마땅하다/.{{)[泥水未分紅 , 雨餘先透碧波香. 千般意路終離會, 一著歸根便 當.]:同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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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과 물이 뒤섞여도 붉은 연꽃봉오리]는 연꽃이 물 위로 나오기 전에 진흙과 물이 나눠지지 않았을 때, 붉은 연꽃봉오리 즉 연꽃의 성질은 이미 정해졌음을 가리키는데, 자성의 묘체는 본래 저절로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비 그친 뒤 푸른 물결을 뚫고 향기가 먼저 나온다]는 것은 빗물의 재촉(독촉)을 기다려(에 의하여) 연꽃이 바야흐로 물결을 뚫고 나와서 맑은 향기가 멀리 퍼진다는 것인데, 이로써 작용이 발생한 후에 묘유의 일체가 바야흐로 뚜렷이 드러남을 비유하였으며, 이 두 구절은 여전히 광조선사의 공안에 떨어진다. /한 마디가 /머리말/에 합하면 천년을 나귀재갈을 차게 되니/, 도를 깨닫는 것은 결코 말이나 생각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근본적으로는(근본은) 이 공안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아무리 생각해도 마침내는 깨닫기 어렵다]고 하였다. /만약 깨달았다면 비로소 근본이다./ 그러므로 비로소 말하기를 [일단 뿌리로 돌아가면 곧 /옳다/]고 하였다. 장무진의 게송 또한 뜻이 아름답다.
연꽃과 연잎은 함께 연못 속에 있는데, 꽃과 잎은 해마다 푸르고 붉다. 잔물결 이는 봄의 연못은 맑아서 바닥까지 보이는데, 외로운 새 우는 소리에 밤새 바람이 분다.{{)[蓮花荷葉共池中, 花葉年年綠間紅. 春水漣 淸澈底, 一聲啼鳥五更風.]:同上
}}
[연꽃과 연잎이 함께 못 속에 있다]는 구절은 광조선사의 이 공안을 다 노래하였는데, 연꽃이나 연잎을 막론하고 결국은(다) 이 연못 가운데 있다 즉 자성묘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꽃과 잎은 해마다 푸르고 붉다]는 것은 (그리고) 해마다 변함없이 결국은(총시) 푸른 잎과 붉은 꽃이 서로 어우러지는 것처럼, 자성묘체는 공과 유로 말미암아(로부터) 나타나고 간직된다는 것이다. 쉽게 볼 수 있고 쉽게 알 수 있는 한 쪽은 [잔물결이는 봄 연못은 맑아서 바닥이 보인다]는 것이고, 알기 어렵고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곧 [외마디 우는 새에 밤새 바람이 분다]는 것처럼 자성묘체는 헤아릴(착막) 수 없다.
이상의 게송들은 이치를 담고 있으면서 /품격도 갖추어/, 조잡하여 세련되지 못한 병폐가 없다. 시인들의 명작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
35. 낙포와 양산의 [조사의 뜻과 교학의 뜻]
[/경전/ 밖에 따로 전하며,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바로 마음을 가리켜, 본성을 보고 부처를 이룬다]라는 이 몇 마디는 확실히 선종의 특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선종은 하나같이 [교외별전] 즉 불교 종파 안에 있지 않고, 불교 이외의 [별전]임을 승인한다. 그러나 선종과 불교의 관계는 결국 어떠한가, 선종과 불교의 교의는 같은가 다른가 하는 것은 나중에 점차 참선인들이 탐구하는 문제가 되었는데, 특별히 낙포현안과 양산연관의 조사의 뜻과 교의 뜻을 들어, 같은지 다른지를 탐구토론함으로써 동이를 보이고자 한다. 이것은 참선인 자신의 의견이므로, 마땅히 가장 진실하다.
낙포현안선사는 속성이 담이고, 봉상 인유(지금의 섬서 봉상현)사람인데, 처음에 우율사 문하에서 계를 받았고 뒤에 임제를 참배하고 그 시자가 되었는데, 임제의현은 그를 찬미하여 [임제 문하의 화살을 누가 감히 당할(당봉) 수 있겠는가]{{)[임제문하일척전, 수감당봉?]
}} 하였다. 그러나 낙포는 (오히려) 협산선회 아래서 깨달음(심요)을 얻었으며, 호남 풍주의 낙포산에서 설법하여, 낙포현안(또한 낙보라고도 한다)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조의교의] 공안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어떤 중이 낙포에게 묻기를: [조사의 뜻과 교의 뜻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포가 말하기를: [해와 달이 교대로 빛나지만, 따로 길이 있다고 누가 말하던가?] 중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어두움과 밝음이 길은 다르지만 시비는 한가지입니가?] 포가 이르기를: [단지 스스로 양을 잃지 않으면, 갈래길에서 울어야 할 까닭이 뭐 있겠는가?.]{{)[僧問洛浦: 祖意敎意是同是別? 浦云: 日月 輪輝, 誰言別有路; 僧云: 恁 則顯晦殊途, 是非一揆. 浦云: 但自不亡羊, 何須泣 路.]:《五燈會元》卷6
}}
낙포는 교하와 종문이 마치 해와 달이 교대로 운행하면서 함께(상병) 천지를 밝히는 것과 같아서 이 밖에 도에 들어가는 길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해와 달이 함께 돌아 빛나지만, 누가 따로이 길이 있다고 하는가]라고 답하였다. 중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밝고 어두움이 길은 다르지만, 옳고 그름은 한가지입니다]라고 한 뜻은 두 종이 하나는 밝게 말하고, 하나는 드러나지 않게 이해하여, 도에 들어가는 길은 비록 다르지만 [시비는 한가지]여서 도는 둘이 없고 같이 하나의 이치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낙포는 [단지 양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갈래길에서 울 필요가 뭐 있는가]라는 말로 답하였는데, 갈래길에서 양을 잃어버리는 것은 《열자.설부편》에 나온다. [양자의 이웃사람이 양을 잃어버리고서 그 /무리/를 이끌고는 다시 양자의 하인에게 찾아나서기를 청하자 양자가 말하였다. '한마리 양을 좇는 데 어찌 사람들이 이리 많은가?' 이르기를: '갈래길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돌아오자 양을 찾았는지 물었다. 이르기를: '못 찾았습니다.' '왜 못 찾았는가?' '갈래길 가운데 또 갈래길이 있었습니다.'] 자기 집의 양을 놓치지 않았으면, 길이 갈래가 많은지 적은지를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약 깨달았다면 또한 불교와 선종의 분별을 물을 필요가 어디 있는가? 낙포의 뜻을 자세히 궁구하여 보면, 그는 불교와 선종이 목적이 서로 같고 지위가 서로 대등하다고 여겼다. 단하순선사는 게송에서 이르기를:
달은 솔 그림자를 체질하며 나무의 높낮이를 재고(를 오르내리고), 해는 연못 속을 비추(면서 하늘을 오르내린다)니 하늘이 위아래로 갈라진다. 환하고 환한 여름(뜨거운) 하늘은 정오가 아니고, 둥글고 둥근 가을밤에 원만함을 알지 못한다.{{)[月篩松影高低樹, 日照池心上下天. 赫赫炎空非卓午, 團團秋夜不知圓.]:《頌古聯珠通集》卷27
}}
[달이 소나무그림자를 체질하니 높고 낮은 나무가 있고, 해가 연못을 비추니 위 아래의 하늘이 있다]는 것은 낙포의 조사의 뜻과 불교의 뜻이 같은지 다른지 하는 것을 노래하여 밝힌 것인데, 달빛이 소나무를 비추어 소나무의 높낮이에 따라서 각기 다른 나무그림자가 생기고, 햇빛은 연못 속에 비치어 하늘 위에 한 하늘이 있고 연못 속에 한 하늘이 있다. 이것은 종문과 교하는 모두 달그림자를 나타내는(현시하는) 나무이며 햇빛과 하늘그림자를 비추는 [연못]이라 여긴 것이다. 그러므로 임천노인은 말하기를: [달이 소나무그림자를 체질하니, 높낮이에 두루 응하고, 뜻은 말에 있지 않고 말은 뜻을 가지고 않는다. 해가 연못에 비치니, 잠시 위아래로 나뉘고, 물결은 물을 떠나지 않고, 물이 곧 물결이다.]{{)[월사송영, 보응고저, 의부재언, 언비유의, 일조지심, 권분상하, 파불리수, 수즉시파.]:《허당집》권상
}} 솔직하게(사실대로) 말하면, 조사의 뜻과 불교의 뜻은 방법은 비록 다르지만 목표는 일치한다. [환하고 환한 뜨거운 하늘은 정오가 아니다]에서 환하고 환한 뜨거운 하늘은 햇빛이 정오가 아니라도 이와 같고, 햇빛은 뜨겁지 않은 때가 없는데, 이로써 교하의 리입과 행입이 분명하게 사람들을 가르치지만,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특별히 쉽게 이해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하였다. [둥글고 둥근 가을밤은 원만함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가을밤에 보름달이 되었을 때, 만일 감상할 수 없다면, 달의 원만무결함을 알 수가 없는데, 선종에서 둘러서 비유하고 여러 방식으로 이끄는 것이 만일 깨달을 수 없다면 또한 밤에 한가위 둥근달을 만난 사람이 달의 원만함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음을 비유한 것이다.
양산연관의 출가 전의 경력은 자세하지 않은데, 송대 조동종 동안관지의 법사(제자)이며, 양산에서 설법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의 조사뜻과 불교뜻의 공안은 다음와 같다.
어떤 중이 양산에게 물었다. [조사의 뜻과 교의 뜻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산이 이르기를: [금까마귀가 동에서 떠오르니 사람들이 모두 귀하게 여기고, 옥토끼가 서로 기우니 부처와 조사가 혼미하도다.]{{)[僧問梁山: 祖意敎意, 是同是別? 山云: 金烏東上人皆貴, 玉兎西沈佛祖迷.]:《頌古聯珠通集》卷36
}}
[금까마귀가 동에서 떠니 사람들이 다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불교의 경전이 명백하게 성불하는 길을 지적하여, 사람마다 모두 그 진귀함을 알고 있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옥토끼가 서쪽으로 가라앉으니 부처와 조사가 혼미하다]는 것은 선종은 언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 이러한 말과 설명이 없는 때에는 비록 부처와 조사라도 또한 혼미함을 비유한 것이다. 임천노인이 풀이하기를:
양산이 금까마귀옥토끼가 동쪽에서 올라오고 서쪽에서 가라앉는다고 대답한 것은 사람들이 비록 모두가 귀하게 여기지만, 잠시 빛과 그림자일 뿐이다. 부처와 조사가 혼미하다는 것은 지극한 이치를 말한 것이다.{{)[故梁山答以金烏玉兎, 東上西沈, 人雖皆貴, 暫時光影爾, 佛祖迷者理極之謂歟!]:《虛堂集》卷하
}}
그는 옥토끼를 윗구절에 집어넣어 해석하고, 옥토끼가 서쪽으로 잠김에 부처와 조사가 혼미하다는 것을 둘로 나누었을 뿐 아니라, 또한 전체 공안 중의 조사의 뜻과 불교의 뜻이 같은지 다른지 하는 것이 의지할 곳이 없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아래의 단하순선사의 게송만큼 양산의 뜻을 얻지 못하였다.
영산 법회에서 비록 말이 많았지만, 소실봉 앞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네. 상서로운 풀이 더부룩하니 달빛을 머금고, 차가운 소나무는 무성하게 하늘 높이 솟았네.{{)[靈山會上言雖普, 少室峰前句未形. 瑞草夢茸含月色, 寒松 鬱出雲 .]:《頌古聯珠通集》卷하
}}
[영산회상에서 한 말이 비록 널리 퍼졌지만]하는 것은 불조가 영산법회에서 불법을 강설하기를 비처럼 구름처럼 하였으며, 나중에 불경으로 엮어져 두루 유행하였다는 말인데, 이것이 불교의 특색이다. 그러나 선종은 달마에 의해 개종되었는데, 달마는 숭산의 소림에서 9년간 면벽하였고, 결코 아주 많은 경전가르침과 말(경교언설)이 없었으며, 학인을 깨우치는(개시) 데는 곧 바로 마음을 가르키는 것을 귀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소실봉 앞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선종의 불립문자의 특성을 노래하였는데, 이는 단하순이 불교와 선종에 분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서로운 풀이 더부룩이 달빛을 머금고]하는 것은 불교의 일체 경전이 사람들에게 성불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는 마치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풀이 무성하게 돋아나서 달빛을 비추어 사람마다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선종에서는 범부와 성인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끌어들이지(가르치지) 않는다. 따라서 [한 조각 흰 구름이 골짜기입구를 가로질러 있어, 얼마나 많은 새들이 둥지를 잘못 찾아들었던고] 하는 병폐가 없다. 그러므로 마치 차가운 소나무는 도리어 시련을 겪었기에(겪고나서) 울창하게 하늘 높이 솟구쳐 있는 것과 같다. 단하순은 선종의 성취가 불교 위에 있다(보다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임천노인은 조사의 뜻과 불교의 뜻이 같은지 다른지에 대하여 논설하기를:
만일 교의 뜻을 이해하면 그것은 곧 조사의 뜻이다. 기실 조사의 뜻과 교의 뜻은 본래 두 길이 없다. 정에 사로잡히면 길에 걸려 정체하게 되고, 이치에 계합하면 묘용이 걸림이 없다. 옛적에 병산이 달마가 별전을 편다는 설을 찬하기를: '어지 우리 불교 밖에 다시 전할 것이 있겠는가? 특별히 이름과 형상(명상)에 얽매이지 않았을 따름이다. 정말로 전한 것은 부처의 가르침이고, 따로이 전한 것이 아니다. 여래는 마지막으로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다시 공.불공의 참된 진리과 유.불유의 오묘한 말로써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망상과 집착을 떠나서 최고의 진리를 깨닫게 하였다. 만약 선과 교를 융통시키고, /진리에 관한 이야기(종설)/에 막힘이 없어서, 잘못된 견해들을 통달한 사람의 이론에 합하게 하고, 강과 하천을 뚫어서(몰아서) 함께 큰 바다로 돌아가고, 울타리를 걷어서 한 집안이 될 수 있다면, 어찌 오늘날의 모순점이 있을 수 있겠는가.{{)[若會敎意, 卽是祖意, 其實祖意敎意, 本無二 , 情封則觸途成滯, 理契則妙用縱橫. 昔屛山贊達磨敍別傳之說云: 豈吾佛敎外, 復有所傳乎? 特不泥於名相耳. 眞傳者敎者也, 非別傳也. 如來末後拈花示衆, 復以空不空之眞宗, 有不有之妙說, 令一切衆生, 離妄想執着, 而證無上正等菩提, 若能禪敎融通, 宗說無滯, 使僻見之流, 合達人之論, 抉江河同歸大海, 撤藩籬通爲一家, 何有今日之矛盾者也.]:《虛堂集》卷하
}}
이와같이 불교와 선종을 혼융시킬 것을 분명히 말한 것은 이론상으로 말하면 지극히 통달한 것 같으나, 선종의 성취와 발전을 가지고 논하면, 선종의 사상과 주장에 부합하지 않는다. 낙포는 교로부터 선으로 들어갔는데, [교]와 [선]을 혼융시키는(결합시키는) 경향이 있었으며, 연관과 단화순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의향이 없었다. 그 후 선과 교는 마침내 점점 혼합되어, 선과 교가 극히 큰 구분(분별)은 없었으며, 선종의 특성도 따라서 소실되었고, 광채도 점점 흩어졌다.
【 부 록 1 】
「당송시에 나타난 선취」
1. 당송시에 나타난 선취문제의 형성.
당송시는 중국시에 있어서 백미이며, 당송시에 선취가 있다함은 모든 사람들이 익히 알고 익히 말한 바이지만 선취의 형성은 대부분 모호한 말들이며 또한 불합리한 해석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명 호응린의 왕유시에 대한 논평은 다음과 같다.
태백의 5언 절구는 천선의 말이며,왕우승은 도리어 선종으로 들어갔다.(선종에 몰입하였다) 예를 들면 인간의 계수나무 꽃이 떨어지니 방은 고요하고 봄 산은 비어있네. 달이 솟아오르니 산새가 놀래어, 때로 봄 시내에 울음 우네. 나무 끝에 부용 화여 산 가운데 붉은 가지가 피어있네. 시내 위 집에 고요하여 사람이 없는데 어지럽게 피었다 또 떨어지네. 이 시를 읽노라면 몸과 세상을 모두 잊고 온갖 생각이 모두 고요하니 성율 가운데에 이와 같이 오묘함이 있는 줄을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太白五言絶, 自是天仙口語, 右丞却入禪宗. 如人閒규花落, 夜靜春山空. 月出예山鳥, 時鳴春澗中. 木末笑蓉花, 山中發紅*. 澗戶寂無人, 紛紛開且落. 讀之身世兩忘, 萬念皆寂, 不謂聲律之中, 有此妙詮.(詩藪內編下.絶句)
[왕우승이 선종에 몰입하였다] 라는 어휘는 명확하지 못하다. 그가 선종의 영향을 받았음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왕유의 생애를 고찰하여 보면 그의 모친은 대조선사를 스승으로 삼은바 있다. 대조의 시호는 보적이며 북종신수 문하에서 배출된 인물이지만 그 자신은 남종에 귀의하여 육조 햬능선사의 비명을 지은바 있다. 응라이 말한 바는 곧 이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두 수의 시--<조명간> <신이호>에는 선취와 선의가 풍부한 것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러나 호씨가 말한 "이를 읽노라면 몸과 세상을 모두 잊고 온갖 생각이 고요하여 성율의 가운데 이와 같이 오묘함이 있는 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말은 이 두 시를 불서와 불전과 대등한 위치에서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주관판단의 서술에 그친 것일 뿐 객관적인 해설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며 시에 나타난 선취의 문제에 대하여서도 밝힌 바 없다. 心덕잠에 이르러서 시에 이취와 선리가 있다라는 부분을 지적하였는데 그는 설시수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두보시의:
강산은 그 누구를 기다린 듯 하고 꽃과 버드나무는 스스로 사사로움이 없네.
물이 깊으니 고기가 지극히 즐겁고 수풀이 성하니 새가 돌아갈 곳을 아노라.
물이 흐름에 마음을 다투지 아니하고 구름이 있음에 뜻이 모두 더디어라.
라고 하니 이시는 모두 이치에 들어간 것이며; 소자의 시를 살펴보면:일양이 처음 동한 곳이요, 만물이 발생하지 않은 때이라. 라는 것은 리어로써 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며; 왕우승의 시는 선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때로 선리를 얻은 바 있으며, 동파는: 두 손으로 병 속의 참새를 가리고자 하나 사조는 정중의 뱀을 매우 두려워한다라고 하니 말밖에 여미가 있는 것일까?
杜詩 江山如有待, 花柳自無私. 水深魚極樂, 林茂鳥知歸. 水流心不競, 雲在意俱遲. 俱入理趣; 邵子則云 一陽初動處, 萬物未生時. 以理語成詩矣; 王右丞詩, 弗用禪語, 時得禪理, 東坡則云 兩手欲저甁裏雀, 四條瀋伯井中蛇. 言外有餘味耶?
심덕장은 시에 나타난 이취와 선취의 부분이라고 인정하여 예시한 두보시는 이취를 담아 시를 이룬 예증이며 왕유의 시를 논한 것은 선리가 담겨 있음을 말한 것이며, 소응시는 리어라고 지목하였고 동파시는 선어라고 지목하였다. 이는 리취.선취가 리어.선어의 시보다 고차원적인 것을 뚜렷이 인식한 것이지만 자세히 논변하여 본다면 그가 열거한 동파시에도 또한 선리가 담겨 있으니 한낱 선어를 사용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치를 담아 시를 이루지 못한 때문에 심덕장에 의하여 배제 당한 것이다. 예를 들면 소동파의 화자유민지회구일시는 선리를 담고 있으면서도 시의 격을 이루고 있다.
인생이 이르는 곳마다 어찌되는 것일까?
이는 나는 기러기가 눈과 진흙을 밟는 것과 같네,
진흙 위에 우연히 발자국을 남기고
기러기는 날아 다시 동서를 생각하네.
노승은 이미 열반하여 새로운 탑이 이루어 졌고,
무너진 담벼락에는 옛적에 써놓은 시를 찾아볼 수 없네,
지난날 기구하였던 것을 또한 기억하는가?
길은 멀고 사람은 피곤한데 절름거리는 나귀만이 울음 우네.
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雲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 老僧已死成新塔, 괴壁無由見舊題, 往日崎嶇還記否? 路長人困蹇驢시.
사신행의 소시보주에 근거하여보면 나는 기러기가 발자국을 남기다라는 것은 모두 전등록천의회의선사의 화두를 인용한 것이다. [기러기가 허공을 나르매 그림자는 차가운 물에 떨어지는데 기러기는 발자국을 남기려는 마음이 없고 물은 그림자를 붙잡으려는 마음이 없다. 능히 이와 같이하여야 바야흐로 이류의 행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신행은 아울러 동파 이 시의 전 4구는 보이지 않게 천의회의의 말과 의를 인용하였음을 지적하였었지만 차이점을 찾는다면 천의회의의 화두에 담겨있는 것은 [향상일로]의 선리이며 동파가 말한 바는 인생의 만남과 이별이 무상하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미 선리를 담아 시를 이루면서도 리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당송시에 있어서 사리와 선리를 담고 있는 시는 매우 많으며 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에 여기에 군더더기의 말을 붙이지 않는다. 서이암의 시화에 열거된 바는 시의 선취의 문제에 관련되어 있다.
당인의 기러기가 단풍나무 잎을 뒤적임에 석양이 움직이고 회오리가 갈대꽃에서 있으니 가을 물이 밝다라는 한 연구는 사람들이 모두다 그 아름다운 싯구임을 알고 있지만 왜 그처럼 아름다운가에 대하여서는 모르고 있다. 나는 왕마힐의: 동쪽집 흐르는 물이 서쪽 이웃으로 들어간다라는 뜻이니 갈가마귀가 단풍잎을 흔들매 움직이는 것은 도리어 석양이며 회오리가 갈대꽃에 서 있지만 밝은 것은 도리어 가을 물이니, 이는 선가삼매의 오묘함을 얻은 것이다.
唐人有鴉번楓葉夕陽動, 鷺立려花秋水明一聯, 人但知其佳, 而不知其所以佳. 余曰 此卽王摩詰 東家流水入西린意, 夫鴉번楓葉, 而動者却是夕陽, 鷺立려花, 而明者却是秋水, 妙得禪家三昧.
서증은 [아번풍엽석양동.로입로화추수명.] 이 두 구절은 눈앞에 보이는 경계를 묘사한 서경시인데 형이상적 선의 이치를 담고 있다고 인식하여 [선가삼매의 오묘함을 얻었다]라고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선가삼매의 오묘함을 얻었는가]에 대한 해설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왕호응린이 왕유시를 평했던 것과 한가지이다. 전인들은 선취시에 있어서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식하여 왔다. 황자운의 야홍시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시에는 선리가 있으니 이는 설파할 수 없으며 그 소식을 학자가 마땅히 깨쳐야 할 것이다. 한번 필설에 관계되면 촉이 아니면 곧 배이니 이에 주를 낼 수 있으나 해석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詩有禪理, 不可道破, 箇中消息, 學者當自領悟, 一經筆舌, 不觸則背, 詩可註而不可解者, 以此也.
선의 깨달음의 최고 경지에는 참으로 [한번 필설을 거치면 촉이 아니면 배]라는 금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리는 아울러 말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선종燈사화선조사의 어록에 기재된 바에 의하면 절대 부분은 선리를 해석하여 말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선리시는 깨달음을 필요로 하나 그러나 또한 해설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며 시에 있어서 해설할 수 있으나 이해할 수 없다라는 것으로써 선취의 오묘한 경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사람을 속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중화의 <정일제시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해석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것으로써 시에 있어서 오묘한 경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모두가 허깨비로써 사람을 현혹시키는 이야기들이다. 시에는 정을 말하고 리를 말하지 않는 것은 정이 다하면 이치는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니 이는 바로 용의 체를 감추어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가 오묘한 경지에 이르면 그 언구는 모두가 나타나지 아니하지만 그 내면의 정은 이미 뚜렷이 나타남으로써 해설을 잘한 사람은 대신하여 지적할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지 않은바 없으니 곧 광정해이가 이것이다. 만일 한결같이 모호하게 대한다면 무슨 오묘한 경지가 있겠는가? 또한 어찌 시에서 취할 수 있겠는가?
有以可解不可解爲詩中妙境者, 此皆影響惑人之談. 夫詩言情不言理者, 情협則理在其中, 乃正藏體於用耳, 故詩至入妙, 有言下未嘗화露, 其情則已躍然者, 使善說者代爲指點, 無不媚媚動人, 卽匡鼎解이是已. 如果一味막糊, 有何妙境? 抑亦何取於詩.
그 말은 오로지 선취시만을 가리킨 것은 아니다. 단 선취시는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것이 아니다. 이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고묘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깊이 탐구하여 전인이 밝히지 못한 바를 밝히어 시를 논하고 시를 밝히어 도움을 삼고자 하니 제현의 질책을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2. 선과 시의 합류
당조는 선의 황금시대였으며, 송에 이르러서는 보편적으로 발전하였고, 당조는 또한 시의 황금시대였음과 동시에 송대에 이르러서는 여전히 게송하고 발전과 변화를 거쳐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선은 종교요, 시는 문학에 관계되므로 제각기 다른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침내 서로의 차이가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아래에 서술한 원인과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1). 선종의 간사: 전래되는 말에 의하면 석가세존이 靈산회상에서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자 대중은 모두다 말이 없었지만 오직 가섭존자만이 파안 미소를 지으니 불타가 말하기를 "나에게 정법안장과 열반묘심과 실상무상과 미묘한 법문이 있는데 너에게 부촉하노니 너는 마땅히 이를 잘 보호하여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말하니 이것이 곧 선종전심의 기원이라 한다. 그후 조사들이 서로 전하여 달마에 이르러서는 천축 28조가 되었으며 해동으로 건너와 법을 전하여 혜가.승찬.도신.홍인을 그리고 다시 육조혜능에게 법을 전하여 종풍이 크게 번창하여 천하에 유행하였고 이후 임제.조동.운문.위암.법안.오종으로 진행되었으며 송대에 이르러 임제종은 또다시 황룡.양기 두 파로 나뉘어져 교하의 모든 지위를 탈취하여 마침내 중국 불교의 주류로 형성되어 불교를 교하라 말하고 선종은 종문이라 일컬어지게 되었다.
(2). 선과 시의 차이점: 선과 시는 같은 일면이 없지 않으나 또한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시의 발생으로 말하면 선종이 발생하기 이전에 시는 이미 크게 번성하였고 범위로 말하면 선은 종교에 시는 문학에 속하는 것이며 내용으로 말하면 선종에서 참고한 바는 진여법성을 깨달아 사리를 밝히는데 있지만 시에서 밝히고자 한 것은 사람의 성정과 사물의 감정이며 작용의 면에서 말하면 선이란 성불과 조사가 되어 스스로를 제도하고 타인을 제도하는 데 있으나 시는 성정을 기쁘게 하여 인심과 세도를 돕는데 있으며; 감수측면에서 말하면 선이란 스스로 자기만이 알 수 있을 뿐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년의 하나의 풍류의 일을 그대만이 홀로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싯구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이 즐길 뿐 아니라 또한 타인에게 보여주어 타인을 감동시키는 것이니 그 차이점은 이와 같다.
(3). 선과 시의 융합의 가능성: 시는 본디 감정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도를 싣고 있다. 선은 비록 종교에 속하지만 탐구한 바는 도리어 철학상의 [자성] [대전] [본체]의 형이상의 도이다. 이는 형이하에 의하여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담예록에서 말한바와 같다. "이에 이치를 말하지 않고서 물태를 표현하여 이치를 밝히며 부질없이 도를 말하지 않고서 기용의 도가 실려져 있음을 묘사하니 이는 형이하를 들어서 형이상을 밝히어 고요하여 조짐이 없는 것으로 하여금 물에 가탁하여 흥을 일으켜 황홀하여 조짐이 없는 것을 자취가 나타나 보이는 듯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때문에 왕유의 시에 "행하여 물이 다한 곳에 이르러 앉아서 구름이 피어오르는 때를 보노라" 라는 것은 만나는 처지가 모두 도임을 말하는 것이니 도란 어느 곳에서나 있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의 본질상에 있어서는 도를 담을 수 있는 것이며 더욱이 선종에서 탐구한 것은 [자성]과 [대전]이니 인식 방면에 있어서 참으로 생각에 의하여 일으키지만 마침내는 마음의 길이 끊어진 즉, 생각과 지혜를 초월한 경지로서 보이지 않게 진리의 하나가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심행로절]의 정황에서 선사들은 감각적으로 감각으로 할 수 없는 것과 사의로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여 눈썹을 깜박거리고 주먹을 곧추세우는 류에 시를 사용하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표현 방법으로 삼아 왔으며 더더욱 시의 비흥체를 응용한 바는 더욱 많다. 그것은 시에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으로 말한다면 "말은 다함이 있지만 뜻은 무궁하기 때문"이니, 이러한 [자성]과 [대전]에 저버린 바 없기 때문이다. 시에는 생략으로써 표현하지 못할 부분이 있으니 '한 글자마저도 쓰지 않고서도 모두 풍류를 얻을 수 있다'기에 이는 [자성]과 [대전]에 저촉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배반하지도 않고 저촉하지도 않으며 말하면서도 말이 없어 선경의 시가 마침내 서로 융합될 수가 있었다. 예를 들면 정원의 《육서신지》의 논시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도에는 나간 시에는 반드시 표현한 바 있으며 그 의사는 그 말한 바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 하고자 한 바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르도록 한 것이니 아울러 말할 수 없는 것이며 이는 그 말할 수 없는 것은 여기에서 말한 "상외로 초월한 것이다"(시품) 그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말은 다함이 있으나 뜻은 무궁하다" 라는 것이다.(차랑시화) 도에로 나간 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표현함을 얻게 해 줄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그 표현함을 얻은 이에 그 말한 것은 이른바 전제에 지나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이니 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버리고 뜻을 얻으면 말은 어두워지는 것이다.
이 말은 근본적으로 도와 시가 합하여질 수 있는 원인을 말하여주고 있다. 선가에서는 다시 시란 더욱더 "일체의 언어를 총괄하여 언어로 삼고 대천세계를 한 티끌에 포괄한 것"이라고 인식한 것이니 이는 도를 시에 융합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시와 선이 융합될 수 있었다.
(4). 선과 시의 융합의 과정: 선과 시의 융합은 먼저 선가에서 시의 체제를 인용하여 선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있다. 신수의 "몸은 보리의 나무와 같고" 라는 구절과 육조의 "보리는 본디 나무가 없다"라는 두 게송은 천하에 크게 전하여서 큰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므로 선종의 불입문자는 한편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며 또다른 한 면으론 감히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도를 깨달은 이후에는 자성을 밝히어 본체와 계합되어 그 크기로는 바깥이 없고 그 작기로는 안이 없으니 하나의 물건이라 말하여도 곧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다. 만일 말하고자 한다면 지혜와 생각이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 주관.객관.능소의 대립이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영산회상에서 어떠한 것이 지상경계입니까?를 묻자 세존께서는 다만 말할 수 없다라고 하여 연꽃을 들어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왜 감히 말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본체계는 본디 서술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구태여 이를 말한다면 마음과 생각이 부질없이 일어나고 분별심이 일어나 깨달은 바의 경지를 쉽사리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깨달은 이후에 혼미하여지는 위험을 말하는 것이니--"깨어진 거울은 다시 비춰질 수 없는 것이요, 떨어진 꽃잎은 다시 나무 위에 필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을 제도해야 한다는 이유로써 말하지 않을 수 없을 때에는 어떠한 수단과 시어로써 말을 한다면 이는 말을 하되 말이 없는 것이요 말이 없는데 말이 있어서 "천하에 말이 가득하여도 잘못된 말이 없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시인이 선의 정신을 시의 형식에 도입한 것이다. 당송의 시인들은 참선으로 하나의 풍조를 이루어 그들이 얻은바와 그들이 아는 바를 시에 도입하였다. 당송시인들은 대부분 선적인 오묘한 경지를 서술하여 선리의 뜻을 담고 있다. 이에 시는 선의 도움을 받아 시의 내용이 풍부하여졌고 시의 경지가 향상되었으며 시의 표현방법이 증대되었다. 왕유는 그 중에 가장 뚜렷한 한 예라 할 수 있다. 그후 선리를 인용하여 시리를 설명한 것은 예컨대 교연시식과 사공도시푸품과 창랑시화에서 말한 "영양이 뿔을 걸고 있으매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그 오묘한 곳은 투철하고 영롱하여 머물 곳이 없으니 이는 마치 허공의 음악이요 상의 빛이며 물에 잠긴 달이요, 거울 속의 형상과 같다"라는 말이니 이는 모두가 선리를 빌어서 시리를 비유한 것이며 선학으로써 시학을 논술한 것이다. 이를 종합하여 말한다면 시가 지극히 융성한 때에 참선인들은 시로써 선을 묘사하였고 선이 지극히 유행한 이후에는 시인들은 선의 정신을 시에 도입하여 선리와 시론은 점차 서로 융합하였고 서로 찬란히 빛나게 되어 마침내는 시는 참선객의 금상첨화를 이루어 주었고 선이란 시인들의 옥을 자르는 지도가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3. 당송 선취시의 구성
/선취/시를 들어 논하는 것은(염론) 매우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데(파감애난), 왜냐하면 시 가운데 선어는 없는데 선취가 있거나, 선리를 담고 있지만 자취(흔적)가 없으면, 종종 직감할 수는 있지만 설명(전설)할 수는 없어서,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서 일정한(정해진) 규칙(원칙)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세 유형으로 나누어 논해 보도록 한다.
(1) /천취/와 선취시: 일찌기 문정공은 고근체시를 /초록하려고 생각하여/, /신기/라는 하나의 종류(유형)를 세우고, 아울러 신기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기란 무심으로 만나고 우연히 접촉하는 것이다.] 최근에 심팽령은 그 뜻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신이라는 것은 인공(인간의 작업)과 /천기/(천연의 기틀)가 서로 어울려서(만나서), 마치 복서에 계사가 있는 것과 같고, 마치 좌전 등 역사책에 동요가 있는 것과 같고, 마치 불서에 게송이 있는 것과 같으니, 그 뜻은 이해(해석)할 수 있는 듯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이해할 수 있음과 없음 사이에 있다). 옛사람에게는 빗대어 풍자하는 것이 있는데, 마치 완사종의 경우(유형,종류)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신어/를 지어 그 말(사.문장)을 어지럽게 하였다. 당나라 사람은 예를 들어 태백의 호탕함, 두보(소릉)의 웅장함, 용표의 /빼어남/, 창곡의 /기발함/ 그리고 /원백장왕/의 악부 등은 또한 종종 /신과 기를 발휘한/ 말이 많았으며, 곧 송 때 명가들의 시도 또한 모두 인간의 기교가 극에 이르고 /천공/이 /드러났으니/, 샛길(좁은 길)은 끊어지고 바람과 구름만이 통할 수 있다. 대개 반드시 더불어 /기틀/을 말할 수 있고 더불어 /신묘함/을 말할 수 있어야 /시적 재능을 다할 수 있다/.{{)(《이원시화》,<동북총간>제2기를 보라)
}}
심팽령이 /신기/를 논한 것은 시 가운데 원래(물론) 이 한 격(식)이 있다. 그러나 신이 이르고 기가 이르러(신묘함과 기틀이 발휘되어), 무심으로 만나고 우연히 접촉하는 것은 어느 누가 선사의 공안어록이 어구가(구절이) 뜻에 머물지 아니하고, (작)용이 기틀에 머물지 아니하여, /말재주가 민첩한 것/(/《談藝錄》의 말/)보다 낫겠는가? 예컨대 동산양개가 물을 건너면서 그림자를 보고서 깨달았던 것, 향엄지한이 기와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서 깨달았던 것, 영운이 복사꽃을 보고서 도를 깨달았던 것 등, 이러한 유형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동산이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서 깨친 뒤 시를 지었는데:
결코 /다른 데서/ 찾지 말지어니, 점점 더(아득하게) 나와 멀어진다. 내가 지금 홀로 가면(나는 지금 홀로 가니), 곳곳에서(처처에서) 그를(와) 만난다. 그는 지금 바로 나이고, 나는 지금 그가 아니다. 마땅히 이렇게 이해하여야, 비로소 여여하게(변함없이.진실되게) 계합한다.{{)切忌從他見, 與我疎.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 會, 方得契如如.:宋釋普濟《五燈會元》卷13
}}
이는 동산이 깨친 후에 신이 이르고 기틀이 이르러(신묘함과 기틀이 발휘되어.신묘한 기틀이 발휘되어) 지은 것이다. 그는 신체로써(몸으로써) 구도하는 개체를 비유하였고, 신체의(몸의) 그림자로써 [자성],[대전]을 비유하였다. 이로써 참선인의 깨달음은 바깥에서 구할 필요가 없으며, [자성]은 본래 구족하여 생각과 헤아림으로써 얻을 수 없음을 보여 주었다. 신이 이르고 기가 이른(신묘한 기틀이 발휘된) 시는 종종 한덩이가 되어(혼성) /새기고 쪼갠(인위적인)/ 흔적이 없어서, [/사람의 기교가 다하고(사라지고) 하늘의 솜씨가 드러나며/, 좁은 길은 끊어지고 바람과 구름만이 통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천취(천연의 흥취)/가 넘쳐 흐름을 느끼게 한다. 작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일체의 생각(지력)과 재주와 기교를 다하여, 흔적을 다 없어지고 /천연적으로 혼성하게 된다/. 감상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단지 그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을 뿐이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가리켜 그 아름다움을 해석할 수 없으니, 왕유의 [물이 다한 곳까지 가서, 앉아 구름이 일어나는 때를 본다]는 것과 같다. 관휴는 [바람이 아름다운 꽃을 건드리니 화려한 비단이 떨어지고, /섬돌/이 흐르는 물을 가로 지르니 옥거문고가 /비껴있다/]고 하였는데, 작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사람의 기교가 극에 이르러 천공이(하늘의 솜씨가) 손을 대어(드러나서)], 인간의 기교와 하늘의 작업(천공)이 함께 극치에 이른 결과이고, 독자의 입장에서 말하면, [샛길이 끊어지고 바람과 구름만이 통하는] 감각(느낌)이 있다. 생각과 분석의 샛길(좁은 길)로써 이들 싯구의 아름다운(좋은) 점을 분석하여 말하기가 아주 어려우므로, 샛길이 끊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직감의 방법으로써 그 아름다운 점을 깨달을 수 있으므로 바람과 구름이 통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들은 다방면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는데), [형이하의 것을 들어 형이상을 밝히는] 도를 싣고 있는 작품이라고 체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사들이 극히 많이 인용하였고, 또한 [깨닫지 못하면 세속적 진리가(라도) 유포되니], 서경시(경물시)로서 감상할 수 있다. 우리는 장사의 산놀이 공안에서 /이러한 (유형의) 시의 이중적 /경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장사가) 하루는 산놀이를 갔다가 돌아와 문어귀에 이르자, 수좌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 다녀오십니까?] [산놀이 갔다 온다.] [어디로 다녀 오십니까?] [처음에 아름다운 꽃을 따라갔다가 다시 낙화를 좇아 돌아왔다.] /[몹시 봄의 뜻과 같습니다.(봄의 정취(춘정)가 물씬합니다.)]/ [/또한(그래도.역시)/ 가을이슬이 연꽃을 적시는 것보다 낫다.]{{)(長沙)一日遊山, 歸至門首, 首座問: 和尙什 去來? 沙曰: 遊山來. 首座云: 到什 來? 沙云: 始隨芳草去, 又逐落花回. 座云: 大似春意. 沙云: 也勝秋露滴芙 .:《傳燈錄》,《碧崖錄》을 보라
}}
장사는 녹원초현을 가리키는데, 남천보원의 제자이다. 그의 대답은 /경계(대상)/를 빌어 선을 나타낸 것인데, [처음에는 향기로운 풀을 따라 갔다]는 것을 가지고 [색]으로부터(을 통하여) [공]을 깨닫고, 범으로부터(범부의 세계에서) 성으로(성스런 경지로) 들어감을 비유한 것이고, [다시 낙화를 좇아 돌아온다]는 것을 가지고 성위(성스런 경지)에 영원히 머물지 않고 다시 인간(인간세상)으로 돌아와 기틀을 발휘하고 작용을 일으킴을 표시하였다(나타내었다). 수좌가 [/춘정이 물씬하다/]고 한 것은 /착어에 들고 놓으며, 누르고 높임이 있으니,/ 생기(활기)가 드러나는 것이 마치 봄뜻(춘정)이 넘쳐 흐르는 것과 같다는 말인데, 모든 존재하는 것을 공으로 여기지 못하여 여전히 현상계 가운데 떨어진다. 장사가 [/또한/ 가을이슬이 연꽃을 적시는 것 보다 낫다]고 한 것에서 가을이슬이 연꽃을 적신다는 것은 이미 화려한 꽃잎을 /떨어버리고/ 진제로 깨달아 들어갔음을 비유한 것인데, 그가 이미 이 경계를 벗어났음을 나타낸다. /경계를 만나서 기틀을 이루는(그 때 상황에 따라 기틀을 발휘하는)/ 이러한 대답과 싯귀는 참으로 /천취/가 넘쳐흐르고 있다. 시인들에게도 바로 이러한 작품이 있는데, 장설의 /<옹호산사시>/는 가장 좋은 예가 된다.
빈 산이 적막하니 도심이 생기고, 빈 골짜기가 아득하니 산새(들새)가 지저귄다. 선실은 예로부터 진속 밖을 /감상하는데//(진속 밖의 보상인데)/, /향대(향로대)/는 어찌 세속의 정을 가지는가. 구름 사이 동쪽 재는 천길이나 솟아 있고, 숲 속의 남쪽 호수는 /한 조각(으로)/ 빛난다. 만일 소부.허유로 하여금 이 뜻을 알게 한다면(가령 소부.허유가 이 뜻을 안다면), 칡넝쿨(거친 생활)을 잠영(벼슬살이)과 바꾸지 않으리라.{{)空山寂歷道心生, 虛谷 遙野鳥聲. 禪室從來塵外賞, 香臺豈是世中情. 雲間東嶺千尋出, 樹裏南湖一片明. 若使巢由知此意, 不將蘿薛易簪纓.:《全唐詩》卷88
}}
김성탄은 이 시를 해석하여:
적막함에 의하지 않으면 도심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적막함은(이) 도심이(은) 아니다; 아득함에 의하지 않으면 새소리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득함에는 새소리가 없다. 방거사가 말하기를: 다만 모든 존재하는 것을 공으로 /보는 것/이 고요하니 도심이 생긴다는 뜻이며, 삼가 모든 없는 것을 /실하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득하니 들새소리가 들린다(지저귄다)는 뜻이다.{{)不因寂歷不生道心, 然而寂歷非道心也; 不因 遙不傳鳥聲, 然而 遙無鳥聲也. 龐居士曰: 但願空諸所有, 是寂歷道心生義也; 愼勿實諸所無, 是 遙野鳥聲義也.:《金聖嘆選批唐詩一千首》
}}
장설의 시에서 앞 두 구절은 김성탄의 해석에 따르는 것이 좋다. [선실은 종래로 진속 밖에 감상하고(속세 밖의 세상인데), 향대(향로대)는 어찌 세간(세속)의 정을 가지는가]는 /선종에 귀의함을 표현한 것이며/, [구름 사이 동쪽 재는 천길 높이 솟아 있고, 숲 속의 남쪽 호수는 /한결같이/ 맑구나]는 /표상/으로부터(을 가지고) 말하면, 호산사에 올라 본 경관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현미한 지극한 도는 물상에 의하여 밝혀진다. 천 길 높이 솟은 동쪽 고개마루는 구름 사이로부터 /투출/되고, 반짝거리는(빛나는) 남쪽 호수는 나무 속에 가려져 있다. 바로 색과 공이 한가지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자성]과 [대전]은 현상계로부터 뚜렷이 드러나는데, 이치를 깨달으면 진세(속세) 또한 도량이요, 관복을 입고 벼슬하는 것과 산 속에 은거하는 것이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비로소(곧) [만일 소.유가 이 뜻을 안다면(알게 하면), 칡넝쿨을 잠영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로 귀결하였다. 만일 위 두 구절을 단지 물색(경관)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구름 사이의 동쪽 고개와 나무숲의 맑은 호수는 바로 은사들이 산림에 묻혀 사는 즐거움인데, 소부,허유 등의 은사들은 /바로 칡넝쿨(거친 생활)을 벼슬과 바꾸어야 비로소 바른 도리가 되니/, [칡넝쿨을 가지고서 잠영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정신없는 이야기/(허튼 소리난담)가 되어 버린다. 또한 이고의 <증약산유엄시>에서는 이르기를:
수련하여 몸은 학과 같이 되고, 천 그루 소나무 아래 두 상자의 경전이라. 내가 와서 도를 물으니 쓸데 없는 말이 없고,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네.
조용한 곳을 선택하여 자연의 정취(경치)에 /즐기니(만족하여)/, 해가 다하도록 보냄도 없고 맞이함도 없네. 때로는 곧 바로(곧장) 고봉정상(외로운 봉우리 꼭대기.산정상)에 올라, 달 아래 구름을 헤치고 긴 휘파람 불어본다.{{)練得身形似鶴形, 千株松下兩函經. 我來問道無餘說, 雲在靑 水在甁.
選得幽居 野情, 終年無送亦無迎. 有時直上孤峯頂, 月下披雲嘯一聲.:《唐詩紀事》卷35,《傳燈錄》卷14를 보라
}}
/《전등록》/의 기록에 근거하면, 이고가 [어떠한 것이 도입니까]하고 물으니, 약산유엄은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고 답하였다. 구름이 하늘에 있으면(있는 것은) 드러나서 보기 쉽고, 물이 병에 있으면(에 있는 것은) 숨어서 알기 어렵다. 구름과 물은 모습(形狀)은 다르지만 그 성질(질성)은 하나인데, 이로써 색과 공, 현상과 본체가 나눌 수 있으면서 나눌 수 없으며, 도는 어디나 있음을 비유하였다. /《전등록》/은 또한 기록하기를: 유엄선사는 어느날 밤 밤 산에 올라 크게 웃었는데, 이고는 다시 시를 지어 증정하였다. [어떤 때는 곧장 외딴 산봉우리에 올라, 달 아래 구름을 헤치고 휘파람을 분다.] [외딴 봉우리 고개]- 참선인들에게는 '/외딴 봉우리가 홀로 잠든다/'는 화두가 있다 -는 이미 [절대경지]에 깨달아 들어갔음을 비유한 것이며, [달 아래 구름을 헤치고 휘파람을 분다]는 것은 유엄이 동과 정에 구애되지 않고, [공적에 침체하지] 않아서, [/죽은 물 속에 빠져(잠겨) 죽지 않음/]을 칭찬하고 있다. 우리는 이 두 수의 시를 감상할 때 참으로 길(샛길)이 이미 끊어진 느낌을 가진다. 하지만 확실히 그 아름다운 경지와 심오한 뜻을 깨달을(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람과 구름이 통하는] 이해(납득,깨달음)을 일으킬 수 있다/.
앞의 세 수 시의 천취(천연의 정취)와 선경(선의 경계)은 여전히 자취와 형상을 찾아볼 수 있다. 장설의 시는 첫머리에서 [도심이 생긴다]고 말하였고(집어 내었고), 이고의 시는 유엄선사에게 증정하는 작품이라 명시하였으며, 또한 /《전등록》/에서 그 배경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해하기에 쉽다. 호응린은 왕유의 두 시는 더욱 천취(천연의 정취)가 혼연하여, 이치를 담고서도 자취가 없다고 평(집어서 평)하였다.
<조 명>
사람은 한가한데 계수나무 꽃은 떨어지고, 밤은 고요한데 봄 산은 적막하구나. 달이 솟아 산새를 놀라게 하니, 때로 봄 시내에서(소리 속에) 우는구나.{{)<鳥鳴> 人閒桂花落, 夜靜春山空. 月出驚山鳥, 時鳴春澗中.:《王右丞集》卷13
}}
<신 이 塢>
나무 끝 부용화는, 산 속에서 붉은 꽃을 피우네. 시냇가 집은 적막하여 사람도 없는데, 어지러이 피었다가 다시 떨어지네.{{)<辛 夷 塢> 木末笑蓉花, 山中發紅 . 澗戶寂無人, 紛紛開且落.: 同上
}}
앞의 시는 사람이 지극히 한가하고 고요해야 비로소 계수나무꽃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으며, 내심과 외경이 하나이어야 비리소 봄산이 공적함을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적의 경계에는 또한 약동하는 /기경(기틀경계)/이 있으니, /달이 떠자 산새가 놀라 우는 것은 고요함으로부터 움직임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도와 사람은 거리가 없어서 마치 달이 산새를 놀라게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보통사람은 능히 움직일 수는 있으나 고요하지는 못하고, 참선인은 고요한 것을 좋아하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한쪽에 치우치는데, 오직 고요할 줄도 알고 움직일 줄도 알아서 움직임과 고요함을 포괄해야 비로소 최고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뒤의 시는 /기틀의 작용(기용)/이 정체되지 않음을 현시한 것이다. 왜냐하면 선사들은 자성묘체는 절대경계이이어서 공도 아니고 유도 아니며, 공이면서 또한 유로서, 모든 것을 포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용화가 붉은 꽃을 피우는 것은 일상적인(통상적인,규칙적인) 일이며, 외(재)적인 환경으로 인해 전이되지(바뀌지,변경되지) 않는다. 개울가의 집은 적막하여 사람이 없어도, 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이로써 /기틀의 작용/이 멈추지 않음을 드러낸다. 호응린이 [/성율(싯귀.시문)/ 가운데 이와 같이 오묘한 경지가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뜻밖이다)/]라 한 것은 마땅히 또한 이러한 것을 이해하고서 비로소 말한 것이다. 아래 세 사람의 시도 응당 이러한 관점으로 감상해야 이해할 수 있다.
/<원미/지/유서>/
야인은 한적한 곳에 머무는 것을 (스스로) 사랑하니, 가까이는 장송을 마주하고 멀리는 산이로다. 하루종일 구름을 바라보니 마음에 근심이 없고(걸림이 없고), 때로 달을 보니 밤이 되면 한가하다. 호리병 속의 천지는 건곤 밖에 있고, 꿈 속의 몸과 마음은 /조석 사이로다/. 먼 바다는 천년 학을 생각하는 것 같고, 또한 번잡한 곳을 남겨두고 멀리 날아갈 줄 안다.(천년 학은 먼 바다를 생각하는 것 처럼, 번잡한 곳을 버려두고 멀리 날아갈 줄 안다.){{) <元微之幽棲> 野人自愛幽棲所, 近對長松遠是山. 盡日望雲心不繫, 有時看月夜方閒. 壺中天地乾坤外, 夢裏身名旦暮間. 遼海若思千歲鶴, 且留城市會飛還.:《元氏長慶集》卷16
}}
/왕안석의 <독와유회>/
낮 비둘기 봄 그늘에 울고, 고요한 숲 속에(림학) 홀로 누워 있도다(홀로 누우니 나무 숲은 고요하다). 옅은 구름에 한차례 비가 지나고, 쓸쓸하게 저녘소리를 내는구나(저녘이 오는구나). 눈 앞에는 붉고 푸른 색이 어지러이(널려 있어), 계절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다툰다. 감회가 있어도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어서, 우두커니 서 있으니 /종산/이 어둑하네.{{) <王安石獨臥有懷> 午鳩鳴春陰, 獨臥林壑靜. 微雲過一雨, 淅瀝生晩聽. 紅綠紛在眼, 流芳與時競. 有懷無與言, 佇立鐘山瞑.:《臨川先生集》卷2
}}
/대병의 <유서>/
조용히 은거하니 시끄러움과 단절됨이 자못 기뻐고, 찾아오는 이 없으니 사립문은 종일 닫혀 있네. 물 길어 꽃에 주니 사사로운 비와 이슬이 되고, 못가에 돌 쌓으니 영락없이 산과 계곡이로다. 계절마다 경치가 다르니 항상 즐길 수 있건만, 세상에 한가롭게 놓아버리는 사람이 없구나. 작은 정자에 단정히 앉아 온갖 묘함을 보노라면, 녹음 사이에서 꾀꼬리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裁 昺 幽 棲> 幽棲頗喜隔 喧, 無客柴門盡日關. 汲水灌花私雨露, 臨池/첩/石幻溪山. 四時有景常能好, 一世無人放得閑. 淸坐小亭觀衆妙, 數聲黃鳥綠蔭間.:《東野農歌集》卷4
}}
이 세 수의 시가 [말이 전개하는(펴는) 것]은 /하나의 이중경지(계)/이고, [뜻이 /허락하는(칭찬하는,나타내는)/ 것]은 또한 /하나의 이중경지(계)/이다. [하루종일 구름을 보아도(보니) 마음이 걸리지 않고(마음에 걸림이 없고,마음에 근심이 없고), 어떤 때는 달을 보니 밤이 한가롭다]는 것은 두보의 [물이 흘러도 마음은 다투지 않고, 구름이 (떠) 있으니 뜻은 함께 느리다]는 것과 동일한 경지(경계,정취)이며, 왕안석의 [감회가 있어도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고, 우두커니 서 있으니 /종산/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눈길 닿는 곳에 다 도가 존재하여, 말없이 깨달아 계합하는 느낌이 있고, 대병의 [작은 정자에 단정히 앉아 온갖 오묘한 광경을 보노라면, 숲 속에서 꾀꼬리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는 것은 더더욱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아서, [산하대지는(가) 일제히(한결같이) 법왕의 몸을 드러낸다]는 현묘하고 은미한 경지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나 개인의 천착된(천착하는,견강부회하는,억지로 끌어 붙이는) 말이 아니고, 심괄의 《몽계필담》에도 다음과 같은 선례가 있다.
옛사람의 시에 '바람이(은) 그쳐도 꽃은 여전히 떨어진다'는 구절이 있는데, 아무도 /댓구를 쓰지/ 못할 것으로 여겼다. 왕형공이 '새가 우니 산은 더욱 /고요하다/'라고 댓구를 지었다. '새가 우니 산은 더욱 /그윽하다/'는 본래 송왕/적/의 시인데, 원래는 '매미소리 시끄러우나 그림자는 더욱 고요하다'의 댓구이고, 위아래 구절은 단지 한 뜻이다. '바람이 그쳐도 꽃은 여전히 떨어지고, 새가 울어도 산은 더욱 고요하다'는 것은 윗 구절은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고, 아래 구절은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다는 것이다.{{)古人詩有風定花猶落之句, 以謂無人能對, 王荊公對以鳥鳴山更幽, 鳥鳴山更幽本宋王籍詩, 元對蟬 影逾靜, 上下句只是一意, 風定花猶落, 鳥鳴山更幽, 則上句乃靜中有動, 下句動中有靜.
}}
심괄의 고요함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가운데 고요함이 있다는 해설은 또한 시의 /둘째 이중경지(계)/로부터 이해한 것이다. 오자량의 《임하우담》에서는 이르기를: [섭수심의 시의(시뜻)는 소릉을 더욱 능가한다. '꽃은 봄빛을 전하여 가지마다 이르고(가지마다 전하고), 비는 가을소리를 대신하여(전하여) 방울방울 떨어진다.' /이는 /분량/이 같지 않으며 두루 하여 끝이 없는 것이다/. '강은 넓은 곳에 이르러 물이 새롭게 번지고, 봄이 /다하면/ 꽃은 /갑절/이나 늘어난다.' 이 지위에 이미 이르면, 공부의 힘이 /곱절/이나 /더한다(나아간다,진전한다)/는 것이다. '모든 꽃들은 봄이 따뜻해진 뒤에 유정하고(정취가 있고.생기가 있고), 달은 밝은데 외로운 /지팡이/는 짝이 없구나.' 이것은 /혜화이청의(유하혜처럼 온화하고 백이처럼 청아한)/ 기상이다. '꽃과 대나무를 포용하여 봄은 /골짜기/에 남아있고, /연꽃과 갯버들/은 /사양하고 버리어/(사유) 눈은 못가에 가득하다(꽃과 대나무를 가득안고 봄은 거리에 가득하고, 떨어진 연꽃과 버들개지는 못가에 가득하다).' 이것은 음양이 /서참하는 규모/(운동하는 방식)이다.]{{)[화전춘색지지도, 우체추성점점분.] [강당활처수신장, /간/도극두화배청.] [만훼유정춘난후, 일공무반월명변.] [포용화죽춘유항, 사견하포설만애.]
}} 이것은 또한 바로 문구 밖에서(으로부터) 이해한 것으로, 바로 [샛길은 끊어지고 바람과 구름이 통하는] 현묘한 이해 방법이다. 이러한 유형의 천취시는 [사람의 기교가 지극하여 하늘의 작업이 드러나는] 것이다. 왕창회는 《시화류편》에서 그 /혼성의(뒤섞여 하나가 된, 순수한)/ 경계(경지)를 아주 잘 해석하고 있다.
/편법/의 오묘함은 /구법/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있고, 구법의 오묘함은 /자법/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법이 극에 이르러 자취가 없어진 것이다. 사람이 지극한 데 이를 수 있으면(여기에 이를 수 있으면) 그 경지(경계)가 하늘과 만나게 되는데(같아지는데),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다 같이(함께) 상(형상)에 속하면서 묘한 것이 있고, 다 같이 뜻에 속하면서 묘한 것이 있으며, 다 같이 고조를 이루면서 묘한 것이 있고, 곧장 /대우(댓귀)/를 쓰지 않아서 묘한 것이 있는데/, 모두 흥예,신합,기완이(흥취가 나아가고, 신명이 합하며, 기상이 완비되어) 그렇게 만든 것이다.{{)篇法之妙, 有不見句法者, 句法之妙, 有不見字法者, 此是法極無跡, 人能之至, 境與天會, 未易求也, 有俱屬象而妙者, 有俱屬意而妙者, 有俱作高調而妙者, 有直不下偶對而妙者, 皆興詣神合氣完使之然.:卷2
}}
[사람의 기교가 극에 이르러 하늘의 작업이 드러나는] /혼성/한(혼연히 하나가 된,천연의) 경계를 아주 잘 설명하였는데, /흥예,신합,기완(흥이 생겨서 정신이 합치하고 기운을 다 쓰는 것)/은 진정으로 천취시의 신이 이르고 기가 이른다(신묘한 기틀이 발휘된, 발휘된다는) 말의 가장 좋은 설명이다.
(2) 기취와 선취시: 시는 기취(기발한 정취)가 있음을 귀하게 여기고, /고매/한 시에는 선취가 있는데, 중시하는 것은 선에 있지 않고 (정)취에 있다. 청오교는 논하여 이르기를:
자첨(소동파)이 말하기를: [시는 기취를 종지로(으뜸으로.근본으로) 삼고, 평범(일상)에 어긋남으로써(상식에 반하여,반하면서) 도에 합하는 것(반상합도)을 /추(방향)/로 삼는다.] 이 말이 가장 훌륭하다.(적절한데,) 기취가 없으면 어떻게 시라 할 수 있겠는가? 일상(상식)에 위반되면서 도에 합하지 않는 것은 정신없는 이야기(허튼 소리)라 하고, 일상(상식)에 위반되지 않으면서 도에 합하면 곧 문장이 된다. 황산곡은 이르기를: [/쌍환/의 여동생은 /도리/처럼 어여쁜데, 어린 나이에 나에게 시집와 /둘째 첩/이 되었다.] 이것은 /난담/이다; 요부, 삼황 등의 /노래(음)/는 문장이다.
{{)子瞻曰: 詩以奇趣爲宗, 反常合道爲趨. 此語最善, 無奇趣何以爲詩? 反常而不合道, 是謂亂談, 不反常而合道, 則文章也. 山谷云: 雙 女 如桃李, 早年歸我第二/雛/. 亂談也; 堯夫三皇等吟, 文章也.:《圍爐詩話》卷1
}}(단하가) 훗날 혜림사에 있을 때, 매우 추운 날씨를 만나, 목불을 가져다가 불을 지폈다. 원주가 꾸짖기를: [어찌 나의 목불을 태우는가?] 스님은 지팡이를 가지고 재를 뒤적이며 이르기를: [태워서 사리를 얻으려고 합니다.] 원주가 말하기를: [목불에 어찌 사리가 있겠는가?] 스님이 말하기를: [사리가 없다면, 다시 양존불을 가져다 태워야겠군.]{{)(丹霞) 後於慧林寺遇天大寒, 取木佛燒火向. 院主訶曰: 何得燒我木佛? 師以杖子撥灰曰: 吾燒取舍利. 主曰: 木佛何有舍利? 師曰: 旣無舍利, 更取兩尊燒.:《五燈會元》卷5
}}
옛적에 어느 도닦는 이가 법당 앞에서 부처를 등지고 앉자, 스님이 말하기를: [도사는 부처님을 등지지 마시오.] 도닦는 이가 말하기를: [대덕이여! /본 교/에서는 불신이 법계에 충만하다고 합니다. 어느 곳을 향해 앉아야 됩니까?] 스님이 대답하지 못하였다.{{)昔有道流在佛殿前背佛而坐, 僧曰: 道士莫背佛, 道流曰: 大德! 本敎中道: 佛身充滿於法界. 向甚 處坐得? 僧無對.:《五燈會元》卷6
}}
어떤 행자가 법사를 따라 법당에 들어왔다. 행자가 부처를 향해 침을 뱉자, 법사가 말하기를: [행자의 /거취가 잘못되었다/. 어찌하여 부처님에게 침을 뱉는가?] 행자가 말하기를: [부처가 없는 곳을 가져 오면(이 있으면) 거기 침을 뱉지요.]{{)有一行者, 隨法師入佛殿, 行者向佛而唾. 師曰: 行者少去就, 何以唾佛? 行者曰: 將無佛處來與某甲唾.:同上
}}
이 세 공안은 모두 상식에 반하고 도에 합하여, 기취를 가지고 있다. 목불을 태우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일인데, 목불을 태워서 사리를 얻으려 하는 것은 더욱 상식에 반하는 것이다. 목불을 태운 결과 사리가 없으니, 목불은 부처가 아니고 여전히 나무이다. 그러므로 다시 양존불을 가져다가 불태우는 것은 상식에 반하지만 도에 합한다. 부처를 등지고 앉지 않는것은 불문(불가)의 상례(통상적 예절,상식적 예절)이다. 도닦는 이(도사)가 부처를 등지고 앉은 것은 상례를 위반하였으나, 불신은 법계에 충만하다. 그렇다면 부처를 등지지 않고 앉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만약 부처를 등지고 앉을 수 없다면 어디에도 앉지 못하게 된다. 부처에게 침을 뱉지 않는 것은 평상의 도리(상리,평상의 이치)에 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신은 법계에 충만하므로, 부처에게 침을 뱉지 않으면 침을 뱉을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부처가 없는 곳을 가져다 주면 내가 거기 침을 뱉겠다]고 하였다. 이 세 공안은 상식에 반하면서(지만) 도에 합하는 것을 충분히 설명하였으며, 또한 반상합도가 구성한 기취를 충분히 밝히고 있다. 시에도 바로 이러한 유형이 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명경)은 또한 대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끼겠는가.{{)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傳燈錄》卷5
}}
보리에는 나무가 있는데(보리는 나무인데), 지금 육조는 도리어 나무가 없다고 하였고, 명경에는 대가 있는데(명경은 대인데) 도리어 대가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상식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리수는 가명이고, 명경대는 인연이 화합한 것, 즉 각종 조건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신수는 보리로써 선근(선의 뿌리,선의 근본)을 비유하였고, 명경대로써 광명자성을 비유하였는데, 무릇 [대전]은 본래 선악의 구분이 없으며, 자성은 본래 스스로 청정하여, 한 물건이라 하여도 곧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육조는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은 또한 대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비록 상식에 반하지만 도에 합치된다. 또한 조산의 시에서는 이르기를:
화염 속에 차가운 얼음이 맺히고, 버들 꽃은(이) 구월에 휘날린다. 진흙소는 수면에서 울고, 나무말은 바람을 따라 운다.{{) 裏寒氷結, 楊花九月飛. 泥牛吼水面, 木馬逐風嘶.:《曹山本寂禪師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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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조동종을 개종한 조산본적의 胱 伽 ㅲ 昱 驍낒 뭝 뉚 속에 차가운 얼음이 맺히고, 구월에 버들꽃이 날리며, 진흙소가 수면에서 울고, 목마가 바람을 좇아(가며) 우는 것은 모두 상(상식)에 반하고 속(세속)에 반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자성], [대전]을 투철히 깨달은 후에는 이러한 기특한 일들이 다 발생할 수 있다. 바로 대혜종고가 말한 [다리는 흘러도 물은 흐르지 않는다]는 시어와 같은 뜻이며, 그러므로 상(상식)에 반하지만(반하면서) 도에 합한다. 두보의 시에서는:
물은 흘러도 마음은 다투지 않고, 구름은 /있어도/ 뜻은 함께 느리다.{{)水流心不競, 雲在意俱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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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시내 위에서 [가는 것이 이와 같아서, 낮과 밤을 멈추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흐르는 물을 보고서 감흥한 것이다. 《문심조룡.물색편》에서 말한 [감정(정서)은 사물에 의해 움직이고(변천하고), 문장(사)은 감정(정서)에 의해 발휘된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두공부/는 /잔잔하고 도도하게/ 흐르는 물을 보고서도 마음이 따라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것은 상(상식,일상)에 반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감정이 사물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만, 후천적인 수행에 의하여 마음이 사물을 따라 바뀌지 않고 사물 밖에 초연하게 된다. 흐르는 물이 스스로(저절로,자연히,혼자서) /잔잔하고 도도하여도/, 나는 저절로(자연히,스스로) 사물 밖에 초연하여, 마음(심념,생각)이 적정하다. 그러므로 상(상식,일상)에 반하여(하면서,하지만) 도에 합한다(합치된다). 또한 송나라 사람의 시에:
뜰 가득 꽃의 빛깔(화색)이 좋다고 /아무리 말해도/(말이 많지만), 가지 하나 붉은 것은(붉으면) 가지 하나 빈 것이다(공적하다).{{)長說滿庭花色好, 一枝紅是一枝空.:見《竹莊詩話》
}}
이미 [뜰 가득 /꽃빛깔/이 좋다]고 하였다면, 붉은 꽃이 가지 마다 가득한 것은 바로 꽃색이 좋은 정상적인 현상이다. [가지 하나 붉은 것은 가지 하나 공적하다]는 것은 /상/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꽃이 붉으면 떨어지고, 극성하면 쇠퇴하는 것이니, 꽃이 붉은 때가 되면 또한 공적한(할) 때가 된 것이다. 법안문익선사의 <간목단시>에서 [아름다움(매력있고 아름다움.농염한 자태)은 아침이슬을 따르고, 꽃향기(방향)는 저녁바람을 좇으니, 어찌 굳이 시들어 떨어진 후에야 비로소 공(적함)을 알겠는가]{{)《오등회원》권10
}}는 뜻과 서로 같으며, /상에 반하여/ 도에 합한다. 또한 왕유의 시에서는:
그대는 고향에서 왔으니, 응당 고향의 일을 알테지. 내일은 아름다운 창 앞에, 붉은 매화가 꽃을 피울런지.{{)君自故鄕來, 應知故鄕事, 來日綺 前, 紅梅著花未?:《王右丞集》卷13
}}
우승은 이미 [그대는 고향에서 왔으니, 마땅히 고향의 일을 알 터이다]라고 하였다면, 왕유가 물은 것은 또한 당연히 고향의 일이다. 그러나 친지들 및 고향의 소식은 전혀 묻지 않고, 단지 창 앞의 붉은 매화가 꽃을 피웠는지 여부를 물었다. 더군다나 붉은 매화가 꽃이 피었는지 않았는지하는 작은 일은 고향에서 온 객이 아는 것이 아닐(알 수 없을) 가능성이 아주 커서, 일상적(상식적) 이치(도리)와 일상적(상식적) 정서에 뚜렷이 위반(배)된다. 하지만 창 앞의 붉은 매화(조차)도 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묻는 대상이 된다면, 고향의 모든 변동은 반드시 저절로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범위 안에 있게 된다. 그리고 왕유의 창 앞 붉은 매화의 일을 알 수 있는 사람은 그 관계와 정의(정리)가 자연히 반드시 매우 가까워야 비로소 이를 물을 수 있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지극히 무리한 것으로서, /상(상식)에 어긋나서/ 도에 부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고보영의 《당송시거요》에서는 조송곡의 시론을 인용하여 왕우승의 이 시는 왕안석의 [도인이 북쪽 산에서 와서, 나에게 동쪽 산등성이(언덕)의 소나무를 물었다. 손을 들어 용마루를 가리키며, 지금은 저만큼 컸다고 하였다]는 것과 [같은 형식(짜임새)으로서, 모두 정이 지극한 말(문장)이니, 이는 수식(꾸밈)을 빌리지 않고서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이 두 시의 작법은 서로 같아서, 왕안석이 의도적으로 모방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왕안석의 시는 단지 아무런 꾸밈없이 담백하게 쓴 것이고, 왕유의 시는 상식에 어긋나지만(면서) 도에 합하는 심원한 의의를 더 가지고 있다. 또한 김창서의 시에서는:
꾀꼬리를 /야단쳐서/, 가지 위에서 울지 못하게 할지어니. 우는 소리에 첩이 꿈을 깨면, 요서에 이르지 못하게 되리라.{{)打起黃鶯兒, 莫敎枝上啼, 啼時驚妾夢, 不得到遼西.
}}
꾀꼬리는 야단맞아야 할 대상이 아니고, 가지 위에서 밤을 보내는 꾀꼬리는 더욱 쫓아서는 안되는 것이니, 이것은 상식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자는 /단지 꾀꼬리의 울음소리를 빌어(만 가지고), 요서에 이르러 남편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상봉하는 좋은 꿈을 깨운다고 하였다/. 꾀꼬리는 또한 봄에 울기 시작하니 더욱 그 절기에 적합한데도, 사람으로 하여금 슬픈(처량한) 감정(기분)을 일으키게 한다. 그러므로 상식에 어긋나 도에 합한다.
이상 서술한 것으로부터, 참선인들과 시인들에게는 모두 상식에 반하면서 도에 합한 사실이 있는데, 상식에 반함은 반드시 도에 합함을 전제로 해야 비로소 기취(기발한 정취)를 구성할 수 있다. 선가의 반상합도는 사리에 깊이 계합하여 보통사람들에 비하여 한 층 깊이 들어가고, 시의 반상합도는 /상상하여(을 통하여) 기발함에 들어가/ 사람들로 하여금 /[복잡한]/ 느낌을 가지게 하며, 재삼 음미하여도 여전히 여운을 남긴다. 동파가 /기취/로써 시를 논한 의의는 대략 이와 같으며, 《랭재야화》,《죽파시화》,《시인옥설》에서는 모두 동파의 반상합도론을 인용하고 있으며(는데), 류종원의 <어옹>이라는 시를 /해당시켰다.(예로 들었다)/ 《시인옥설》권10에서 이르기를:
류자후의 시에 이르기를: [늙은 어부가 밤에는 서쪽 바위 옆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는) /청상/에서 물을 긷고 /초죽/을 태운다. 연기가 사라지고 해가 나오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어디 갔나 하였더니 노래소리가 산수와 /어우러진다/. 하늘가를 돌아보며 중류로 내려가니, 바위 위에는 무심한 구름이 뒤따라 온다.] 동파는 [기취를 으뜸으로 삼고, 반상합도를 취향으로(정취로) 삼는다]고 하였는데, 이 시에는 기취가 있다.{{)柳子厚詩曰: 漁翁夜傍西巖宿, 曉汲淸湘燃楚竹, 烟消日出不見人, 疑乃一聲山水綠. 回看天際下中流, 巖上無心雲相逐. 東坡云: 以奇趣爲宗, 反常合道爲趣, 熟味之, 此詩有奇趣.
}}
류종원의 이 시에 기취가 있는가 없는가는 다른 문제이고, 그 시는 도에는 합하지만 상식에 반하지는 않아서, 결코 동파가 말한 것처럼 반상합도에 의해 구성된 기취가 아니다. 그러므로 /당송시에 있어서의 선취는 반상합도에 의해 구성된 기취를 가진 작품이(이고) 응당 그 가운데 일부분이다/.
3. 리취와 선취시: 시는 본질적으로(본질에 있어) 정을 말하는 데 기울어진 것이다. 감정과 영혼(정령)을 뒤흔드는 것이 시의 주요목표이다. 그러나 《시경》으로부터 시작하여 거의 모든 시들은 다 이성에 호소하는 '도리를 담고 있는 시'(우리시)를 포함하고 있는데(있으며), 남북조에 이르러 [시에는 반드시 노자의 /취지(지귀)/가 있고, 부는 곧 장자의 주석(뜻풀이)이다]라는 감탄이 있었으나, /문평가/들에게 중시되지 않아서, '이치를 담고 있는 시'는 시 가운데 /별조/와 같았다. 그러나 당송 참선인들의 시는 거의 전부가 '이치를 담고 있는 시'인데, 교연,한산,제기,관휴 등의 작품처럼, 단행본(전집)으로 세상에 유포된 것은 제외하고도, 불교의 경전어록들 가운데 묻혀 있는 것이 적어도 만 수 이상이나 된다. 이 시들은 능히 이치를 담고(아) 시취를 이루고 있으며, 능히 물을 표현하여(사물을 형상(화)함으로써) 이치를 밝히고, 사물에 의탁하여 뜻을 나타내며, 유한으로써 무한을 나타내고, 형이하를 들어서 형이상을 드러내는데, 이치를 분석함으로써 사람을 감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리취로써 사람을 감동시킨다. 《담예록》에서 이르기를: [고요하여 형상이 없는 것을 사물에 /가탁(의탁)/하여 감흥을 일으키고, 황홀하여 조짐이 없는 것을 자취에 붙여(자취를 드러내어) 눈에 보이듯이 한다(눈으로 보는 것처럼 만든다). 비유하면, 무극과 태극이 결합하여 양의사상이 되고, 새소리와 꽃향기에 호탕한 봄기운이 담겨 있으며, 눈썹꼬리와 눈초리에 아름다운(향기로운) 정이 전해진다. 만수(만가지 차별)의 일수(하나)를 들어서 하나에 통하면 모든 것에 통함(하나를 꿰뚫으면 모든 것을 꿰뚫음)을 보여주니, 이른바 리취라는 것은 이러한 것(이것)이다.] 리취시가 시가 될 수 있는 까닭은 이치를 미세하고,깊고,상세하고,명백하게 설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일)로써 많은 것(다)을 보여주고,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드러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고 느껴 언어 밖에서 이치에 계합하게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단지 이치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정취를 가지고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이치가 있지만 정취는 없으면, 곧 소위 /[태극의 동그라미] [선생의 문구] [수신의 격언]/인 것이다. 비록 이취시가 선사들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이치를 담는 용도로 시를 쓴 것은 선사들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 후에 시인들은 /이를 원용하여 시에 들어가/, 시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심덕잠은 말하기를: [시는 선리와 선취가 있음을 귀하게 여기고, 선어가 있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선리를 담고 있으면서 /흥취(취미)/가 넉넉한(풍부한) 시는 응당 선취시를 구성하는 중요 부분이며, 사람들이 살펴 알기에(이해하기에) 비교적 쉽다. 선사들의 시로써 논하면, 혜능과 신수의 게송은 사람들이 다 익히 아는 바이기에 다시 예로 들지 않는다. 이 유형의 시들은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어디에나 많이 있는데), 예를 들어 앙산혜적의 시에서는 이르기를:
/도도하게/ 계율을 지키지도 않고, /우뚝하게(부지런히,멍하게)/ 좌선도 않는다. 진한 차 두세 잔을 마시고(마셔도.마시지만), 마음은 곡괭이 옆에 있다.{{)滔滔不持戒, 兀兀不坐禪. 茶三兩碗, 意在 頭邊.:《仰山慧寂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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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산은 위앙종을 건립한 사람인데, 이 시는 그의 선리를 나타낸 것이다. 마음이 도도하여 세속의(적인) 생각이 끊어지지 않으면, 비록 계율을 지켜도 실은 계율을 지키지 않는(은) 것이며, 우뚝하게 앉아서 몸은 마른 나무와 같고 마음은 식은 재와 같아도 일단 방석을 떠나면 마음은 경계에 따라 움직이므로 또한 좌선이라 일컬을 수 없다. 앙산 자신은 단지 평범하고(평온하고) 담담하게 진한 차 두세 잔을 마시고(마셔도.마시면서), 마음은(마음을 쓰는 것은) 마치 농부가 곡괭이를 쓰는 것처럼 항상 곡괭이 곁에 있어서, 더러운 것도 버리고 깨끗한 것도 버려서, 세속적인 것(범속의 티끌)을 모조리 없앤다. 그러므로 계율을 지키지 않아도 일찌기 계율을 지키지 않음이 없고, 좌선하지 않아도 일찌기 좌선하지 않음이 없다. (이 시는) /선리(선의 이치)/가 담겨 있으면서 /시취(시적 정취)/도 갖추고 있다. 또한 조산의 시에서는 이르기를:
평민도 모름지기 정승이 될 수 있으니, 이 일은 기특할 것이 없다(이상한 것이 아니다). 대대로 벼슬하는 자는(자여), 곤궁해질(궁핍한) 때를 말하지 말라.{{)白衣須拜相, 此事不爲奇. 積代簪纓者, 休言落魄時.:《曹山本寂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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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조산본적의 <오상송> 중의 첫 수이다. 사람마다 불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 성불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평민(백의) 즉 공명이 없는 사람이 과거를 통하여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면 재상에 임명될 날이 있을 것과 같으니, 이는 기특한(기이한) 일이 아니다. 아직 재상에 임명되기 전 즉 성불하지 않은 때에는 수도하는 사람은 곤궁한 평민(백의)과 같다. 하지만 스스로 원망을 품어서는 안된다. 그는 본래 대대로 벼슬한 집안의 후손이며, 수도인은 본래 [미래불]이다. 현재는 비록 범부이지만 단지 수도하고 공부하기만 하면 된다. (이 시도) 또한 이치를 담고 있으며 /의미(시적 멋)/도 있다. 또한 도광선사의 <사백락천초시(백락천의 초대에 감사하는 시)>에서는 이르기를:
산승의 본성이 한적한 곳을 좋아하여, 매양 /암아/를 향하여 /석안/에 의지하네. /소나무를 심거나 옥륵을 키울 줄은 모르고/, 오로지 물을 끌어 금빛연꽃만 심는다(가꾼다). 백운은 잠깐만에 푸른 산봉우리에 닿을 수 있으나, 밝은 달은 푸른 하늘에서 내려가게 하기 어렵도다. 번잡한 곳이 /주장자를 날아가게 하지 못한(못하는) 것은/, 꾀꼬리가 푸른 누각 앞에서 우는 것을 방해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山僧野性好林泉, 每向嚴阿倚石眼. 不解栽松陪玉勒, 惟能引水種金蓮. 白雲乍可來靑 , 明月難敎下碧天. 城市不能飛錫去, 恐妨鶯 翠樓前.:《全唐詩》卷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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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선(리)을 담고 (시)취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또한 문채가 화려한데, 한 수의 세밀하고 정제된(깔끔한,세련된) 칠률응수시이다. [소나무를 심거나 옥륵을 키울 줄은 모르고, 단지 물을 길어다 금빛 연꽃을 가꿀 줄 안다]는 것은 /부귀한 사람을 위해서는 단장할/ 줄을 모르고, 단지 법을 전하기 위해 접인할 줄만 안다는 말이다. 대개(여기서) 선사는 물로써 법을 비유하고, 금련으로써 부처를 향하는 사람을 비유하였다. [백운은 잠깐만에 푸른 산봉우리로 올 수 있다]는 것은 백락천이 산중으로 방문할 수 있다는 말이고, [명월은 푸른 하늘에서 내려가게 하기 어렵다]는 것은 선사가 여여부동하여, 마치 밝은 달이 높이 매달려 있어서 빛을 나누어 주고 우러러 볼 수는 있으나, 굽히게 할 수 는 없는 것처럼 백락천의 초청에 응해 나아갈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또한 [도시(번잡한 곳)가 /지팡이(주장자)를 날아가게 할 수 없는/] 원인은 꾀꼬리가 푸른 누각에서 우는 것과 같은 백락천의 화려한 세속생활에 방해가 될까 두려워한 것이다. 꾀꼬리가 우는 것을 가지고 백거이의 시첩들(/소만번소/)을 가리켰으니 또한 /풍자와 권유/의 의미를 가졌다(가지고 있다). 송나라 사람의 《학림옥로》에 어느 비구니의 오도시가 실려 있는데:
종일 봄을 찾아 다녀도 봄을(은) 보지 못하고, 짚신은 고갯마루의 구름을 답파하였다. 돌아와 우연히 /매화(를 잡아) 냄새 맡으니/, 봄은 이미 가지끝에 완연하구나.
자성은 본래 스스로 구족하여 바깥에서 구할 필요가 없으며, 바깥에서 구하면 얻지 못한다. 머리를 돌려 우연히 가지 위의 매화를 냄새 맡으니, 도는 곧 자신의 정원 속에 있다. 이 오도시는 시취가 충만하다. 또한 소각극근의 오도시에서는 이르기를:
/금압(금빛 향로)/의 향기는 비단 수놓은 /휘장/에 사라지고(을 감싸고)/, 생황 반주에 노래소리 가득한데 취하여 부축받고 돌아오네(가네). 소년(젊은 날)의 일단의 풍류사는, 단지 /그대(가인)/만이 홀로 알리라.{{)金鴨香銷錦繡 , 笙歌叢裏醉扶歸. 少年一段風流事, 只許佳人獨自知.:《五燈會元》卷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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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근은 오조법연의 제자로서, 북송 때의 선문종장이다.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염정적인(곱고 아름다운) 어구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가 투철히 깨달았을 때 깨달은 경지를 나타내고 있다. [/금압의 향기는 비단 수놓은 휘장을 감돌고, 노래소리 가득한데 술취해 부축받고 돌아온다/]는 것은 /가무에 열중하는 풍류객/을 비유로 든 것인데, /금압에서 향기가 풍겨나오는 비단 수놓은 휘장 중에서 꽃을 찾는다(기생집을 찾는다)/는 것은 그가 번잡한 [색계]에서 도를 구하는 것을 비유하였으며, 풍류객이 /기생집을 찾았다가 술이 취해/ 돌아온다는 것은 자신이 참선하여 깨달음이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 경계는 단지 직접 깨달을 수 있을 뿐이고,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젊을 때의 일단의 풍류 공안은 단지 /가인/만이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으로서 하여금 그 비밀을 듣게 할 수는 없다. 이 시는 선리(선의 도리)를 함축하고 시취(신의 정취)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또한 /연정/이 /넘치고 있다(화려하다)/.
당송의 시인들 가운데 /선리/로써 시에 들어가고, 또한 이치(리)를 함축하고(담고서) 선을 이룬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다. 왕유,백거이,소식 등의 대시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항상(밥먹을 때도) 임금을 잊지 않은 두보를 예로 들어도 선을 함축하고 있는 시가 있다:
/우두/에서 /학림/을 보니, /계단 같은 길/이 깊은(고요한) 숲을 둘러있네. 춘색은 산 밖에 /떠 있고/, 은하수는 전음(불전 그늘)에서 잠을 자네. /전등(법을 전하는 것)/은 백일(태양.쉬는 날,헛된 날)이 없고, 땅에는 황금이 깔려 있네. /기뻐 날뛰는(미친듯이 기뻐하는)/ 노인이(늙은 이가) 되지 말고,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돌이켜 보라.{{)牛頭見鶴林, 梯逕繞幽林. 春色浮山外, 天河宿殿陰. 傳燈無白日, 布地有黃金. 休作狂/歡/老, 回看不住心.:《九家集注杜甫詩》卷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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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두보의 <망우두사>라는 시인데, 뒤의 네 구절은 /선리/가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선어를 내렸으니(말하였으니), 시대풍조의 영향이 심했음을 알 수 있다. 路洵美의 <야좌>는 정취(경지)가 더욱 아름답다.
발을 걷으니 /죽헌(대나무로 만든 집)/이 /말끔하고(청아하고)/, 사방 이웃에는(사방에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네. /눈물/은 /노래/ 속에 흐르고, 달은 앉은 곳에 와서 밝혀주네. 초목과 길가꽃은 (밤이슬에) 젖어 있고, 옷 속에는 찬 기운이 생기네. /감상할 줄 아는 이/를 만나기 어려워, 부질없이(헛되이.혼자서) 이 시절(계절)의 정취를 기뻐하네(즐기네).{{)簾捲竹軒淸, 四隣無語聲. 漏從吟裏轉, 月自坐來明. 草木露華濕, 衣裳寒氣生. 難逢知鑒者, 空悅此時情.:見《竹莊詩話》卷13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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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목과 길가꽃은 이슬에 젖어 있고, 한기는 옷 속에서 생긴다(느껴진다)]는 것은 [자성]이 현상계로부터 드러나서, 자신의 깨달음이 도와 합한 /경지(정취)/가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감상할 줄 아는 이를 만나기 어려워, 이 계절의 정취를 혼자서 즐긴다]는 말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무리한) 헛소리가 된다. 왜냐하면 [초목과 길가의 꽃이 이슬에 젖어 있고, 옷 속에는 한기가 느껴지는] 것에는 결코 이와 같이 기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범성대의 <수기시>(<수기>라는 시)에서는 이르기를:
어리석은 듯이 세상과 더불어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고, 멍청하게 사람들을 따르니 나를 어리석다 비웃네. 한가한 가운데 일이 바쁘니 낮에는 약을 말리고, 고요한 가운데 기틀이 움직이니 밤에는 바둑을 두노라. 깊은 잠에서 깨어나니 무슨 할 일이 있으며(일할 것이 무엇이며), /전근향이 부드러우니(전근의 향기가 부드러우니)/ 밥은 수저에서 흘러 내리네(밥은 수저에서 흐른다).{{) 與世共兒嬉, 兀兀從人笑我痴. 閒裏事忙晴 藥, 靜中機動夜爭棋. 熟睡覺來何所事, 氈根香軟飯流匙.:《石湖居士詩集》卷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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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가운데 일이 바쁘다]는 것은 참으로 바쁜 것이 아니며, [고요한 가운데 기틀이 움직인다]는 것도 참으로 다투는 것이 아니고, 다투는 것은 바둑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니 무슨 일이 있으며, /전근향/이 부드러우니 밥이 수저에서 흐른다]는 더욱 크게(훨씬 더) 임제가 [단지 평소에(평범하고) 아무 일 없으니, 똥누고 오줌누며, 옷입고 밥먹으며, 피곤하면 잠잔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겠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알 것이다]라고 한 /경지(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석의 <설시>에서는 이르기를:
대지는 털끝과 같아 모든 현상은 공하고, /하늘은 아득하니(끝이 없으니) 하나의 혼돈된 기운이네/. 밤에는 냉기가 침습하니 매화는 달을 싣고 있고, 아침에는 해가 다시 떠니 /흰 비단이 바람을 일으킨다(날린다)/. 신세는 세속 바깥으로 /몰래 옮겨 놓고/, 건곤은(우주를) 옥호리병 속에 거둬 들인다. 빈 집에 상서로운 풀이 /경림/과 합하여(빈 방에서 차 마시는 것은 책 읽는 것과 잘 어울리고), 봉래산 제일봉을 다 눌러 버린다.{{)大地纖毫色色空, 寥天望極一鴻 . 夜凝冷浸梅魂月, 朝拂朝回縞帶風. 身世密移塵境外, 乾坤收入玉壺中. 虛堂瑞草瓊林合, 壓盡蓬萊第一峯.:《方舟集》卷4
}}
이 시는 명백하게 눈을 빌어 선을 설하였다. 이로써 자성이 어디에나 있으며 무엇이나 포괄함을 비유하였다. 그러므로 [/대지는 티끌과 같으니 모든 것이 공하고, 하늘은 저 끝까지 한 혼돈의 기운이다/]라고 하였다. 추위가 극에 이르면 따뜻함이 생기고, 메마름이 다하면 다시 번영하게 되어, 서로 낳고 서로 교대한다. 그러므로 [/밤이면 냉기가 침습하니 매화는 달 아래 피어나고, 아침이면 해가 돌아오니 바람에 흰비단이 날린다/]고 하였다. 진제를 깨달으면 세속을 멀리 떠나, 일과 이치를 겸비한다. 그러므로 [신세는 은밀하게 세속 밖에 옮겨 두고, 우주는 호리병 속에 거둬 들인다]고 하였다. [허당의 서초는 경림과 합한다]는 것은 참선인이 성위에 머무르는 [상서로운 형상]이 있다는 의의가 있어야, 비로소 [봉래산 제일봉을 /다 누른다/]고 말할 수 있다. 봉래는 신선이 거처하는 선경인데, 선에 의한 깨달음(선적 깨달음)의 성스런 경계는 신선의 선경보다도 훨씬(족히) 낫다. 전체 시에 함축된 뜻은 확실히 이와 같다. 려본중의 <수시>에서는 이르기를:
종일 시를 써도 시가 되지 않고, 편안히 낮잠을 자도 꿈에 자주 놀란다. 깨어나 생각해 보니(봐도) 아무 일(도) 없고, 담 밖에서 꾀꼬리가 우는 소리가 이따금 들린다.{{)終日題詩詩不成, 融融午睡夢頻驚. 覺來心緖都無事, 牆外啼鶯一兩聲.(東萊先生詩集1卷)
}}
이 시의 앞 두 구절은 정성을 들여 참선하여 도를 구한다는 뜻이 있고, 뒤 두 구절은 [무의식 중에 얻는다]는 정취(경지)를 가지고 있는데, 도는 어디에나 있으니, [담 밖에 꾀꼬리 우는 소리가 간혹 들린다]는 것은 곧 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송학안》에서 그가 선열(선의 희열.선의 즐거움)에 빠졌다고 말한 것은 근거없는 말이 아니다. 또한 《류정시화》에서는 육상산이 주자의 <심춘시>(<심춘>시)를 평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
주자양이 일찌기 시(절구)를 한 편 지었는데: [냇가 언덕은(냇가는) 붉고 푸르게 일시에 새로우며, 저녁에 비오다가 아침에 개니 더욱 /마음에 든다.(아름다워라.보기가 좋다)/. 서책에 몰두하는 일은 언제나 마칠런지, 차라리 포기하고 봄이나 찾아 갈까.] 육상산이 듣고서 기뻐하며 말하기를: [원회가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렀구나(이만큼이나 깨달았구나).]{{)朱紫陽嘗作一絶曰: [川原紅綠一時新, 暮雨朝晴更可人. 書冊埋頭何日了, 不如抛却去尋春.] 陸象山聞而喜曰: [元晦至此覺矣.]
}}
주자의 이 <심춘시>를 육상산은 <견도시>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말은 주자는 이미 도는 서책 위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자가 깨달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이를 인용하여 증명으로 삼은 것은(이를 증거로 인용한 것은) 다만 이상의 수많은 시들에 대한 해설이 억측과 망령된 말이 아님을 이로써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선리선취시는 뚜렷이 볼 수 있는 것도 있고, 분명하지 않아 알기 어려운 것도 있는데, 모두가 당송시 중의 한 부분이며, 적지 않은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한 부분이다.
4. 결론
천취시(천연의 정취를 가진 시)는 선을 함축하고 있으면서도 자취가 없어(고), [형상 밖에 초월하여, 그 /환중/을 얻어서(으니)], 여러 방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취시(기발한 정취를 가진 시)는 반상합도를 /취지/(방향으)로 삼는데, 그 법식은 참선인들에게서 온 것이다. 시인들은 이것을 가지고 시를 지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선리와 유관하고, 그 무관한 것은(도) 또한 자못 선의 /의경(경지,정취)을/ 갖추고 있다. 리취시는 혹은 선리를 곧장 말하거나, 혹은 /제목을 세워(제목을 통해)/ 뜻을 드러내거나, 혹은 바로 선어를 내렸는데, /자세히 살펴볼만한 가치가 상당히 있다/. 당송시인들의 시는 그 선취(선적 정취)의 구성이 분류하면(유형이) 대체로 이와 같다. 위의 문장에서 //[양면으로 모두 서술한 예증과 해설은// 마땅히 본원을 탐구하여 말류를 알고(얻고), 잎을 떨치어(헤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으니),/ 선취시는 말할 수 없으면서 말하였다.(말로써 할 수 없는데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원호문의 답준서기학시칠절에/ 이르기를: [시는 참선객에게 꽃을 더한 비단(금상첨화)이고, 선은 시인에게 옥을 자르는 칼(절옥도)이다.] 선의 본질에서 말하면, 시는 선의 금상첨화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시로써 선을 함축한 결과, 선학은 크게 유행하게 되었으며, 선으로 하여금 인도의 /명상(개념들)/을 /사용하지 않고(않으면서,사용하는 것 말고)/, 눈썹을 /치켜뜨거나/, 눈을 깜박이거나, 주먹을 /곧추 세우고(불끈 쥐거나)/, 주장자를 드는 외에, 고상한 표현방식을 가짐으로써 거친 일면을 보완하게 하였다. 시인들이 선을 원용하여 시로 들어가며, 아울러 선리를 가지고 시를 논한 것은 교연,사공도,소동파,엄창랑이 가장 뚜렷한 예들인데, /옥을 자르는 칼은(절옥도는) 능히 옥을 재단하여 기물을 이루고, 璞을 제거하여 硏을 이루는데, 이것은 시학이 선의 도움을 받은 것이고, 또한 /시 그 자체만은 아닐 따름이다.(시 그 자체인 것만은 아니다.)/(상세한 것은 필자의 《선학과 당송시학》을 참고하기 바란다). 태허법사는 [중국 불교의 특질은 선에 있다]고 하였는데, 또한 그 말을 그대로 사용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송시의 특질은 선취에 있다]. 선은 당송의 시를 장르(표현양식)와 작법 등을 육조 이전의 시와 다르게 한 외에, 내용과 의경(경지)에서 더욱 별취(색다른 정취)와 별조(색다른 방식)를 풍부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선은 또한 시인들에게 금상첨화가 되었으며, 단지 옥을 자르는 칼(절옥도)일 따름이 아니다.
(제1/차/ 한중문학회의를 위하여 쓴 것으로, 68.7.24,25,26,27 신생보부간에 간행되었고, 그 후 담강주간에 전재하였음)
부 록 2 :
선가종파와 강서시파
시가의 종파형성은 강서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풍조(기풍)가 전파한 것은(그 기풍은)/ 조.송의 시단을 거의 뒤덮었으며, 시의 창작과 비평에 대한 그 영향은 명.청에 이르렀고, 그 여파는 현대까지 미치고 있으니, 참으로 시단의 큰 일에 속한다. 강서시파의 발생을 소급하면 선종에 그 근원이 있다.
1. 선종의 건립이 강서시파의 성립에 끼친 영향
선종은 달마에 의해 창립된 뒤 육조혜능에 이르러 동학인 신수상좌와 더불어 남능북수가 서로 필적하는 형세를 형성하였다. 더우기 혜능이 입적한 후에 법의의 전수가 중단되어 선종(종중)에서는 영도하는 종주를 잃어버렸다. 그 결과 그의 제자 신회와 신수의 제자 보적은 종통의 방계와 정통에 관한 논쟁을 전개하였는데, 그 격렬한 정도가 두 파로 하여금 물과 불 같은 형세를 띠게 하였으며, 적지 않은 조정의 고관, 문사시인들도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갔다. 그 대략은 《송고승전》에서 이른 것과 같다.
회(신회)는 낙양의 하택사에서 숭능(혜능)의 /진당/을 세웠는데, 병부시랑 송정이 비를 /썼다/. 회는 종맥(종의 맥)을 서술하였는데(순서지웠는데), 여래로부터 서역의 조사들 외에, 진단의 육조들이었으며, 그 영정을 다 그렸다. 태위방관은 <육엽도서>를 지었다.{{)會(神會) 於洛陽荷澤寺, 樹崇能(慧能)之眞堂, 兵部侍郞宋鼎爲碑焉. 會序宗脈, 從如來下西域諸祖外, 震旦凡六祖, 盡圖/회/其影, 太尉房琯作六葉圖序.
}}
그 때 신회는 도첩을 팔아 군량을 /대었는데/, 곽자의에게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안사의 난이 평정된 후 당왕실의 정치적인 지지를 획득하였으며, 따라서 북종보적/을 대신하여/[숭산에 비명을 세우고, 일곱 조(사)당을 세웠으며, /법기(종법과 기율)/를 닦고(정리하고), /7대수에 배열되는/] 종주지위를 차지하였다. 혜능남종은 비로소 선종의 정통이 되었으며, 북수는 방계로 폄하되었다. 이와 같은 종통의 방계정통 논쟁은 대략 개원 20년에서 시작하여 신회가 숙종의 조칙으로 대궐에 들어가 공양을 받고, 조칙으로 하택사의 /선우/가 되었을 때 약 지덕 2년에 이르러 그쳤다. 그 논쟁에 개입한 주요 인물에는 송정,방관,왕거,왕유,곽자의,위리견이 있다. 조금 뒤의 한유는 종파가 서로 다툰 이 사실을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그의 《원도》는 실제 선종의 남북 두 파가 조사를 배열하고 종지를 정하는 방법을 답습하여 유가의 도통을 수립하였다. 그의 《원도》에서는 말하기를:
[이 도는 어떤 도인가?] [내가 도라고 하는 것은 종전의 소위 노자와 부처의 도가 아니다. 요는 이로써 순에게 전하고, 순은 이로써 우에게 전하고, 우는 이로써 탕에게 전하고, 탕은 이로써 문무주공에게 전하고, 문무주공는 공자에게 전하고, 공자는 맹가에게 전하였는데, 맹가가 죽자 전해지지 못했다.---{{)曰: 斯道也, 何道也? 曰: 斯吾所謂道也, 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 堯以是傳之舜, 舜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武周公, 文武周公傳之孔子, 孔子傳之孟軻, 軻之死, 不得其傳矣.---
}}
확실히(참으로.실은) 선종이 7대 /조위(조사)/를 배열한 것과 다름이 없고, 단지 한문공은 도통이 격세하여(세대를 격하여) 서로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또한 그것을 가지고 불.로를 배척했을 따름이다. 주자에 이르러 바야흐로 도통이라는 이름을 세웠는데, 그는 《중용장구》序에서 말하기를:
무릇 요,순,우는 천하의 위대한 성인들이다. --- 이 이래로 성인과 성인이 서로 계승하였다. /성탕문무/는 군주였고, /고요,이윤,부열,주공,소공/은 신하였는데, 모두 이로써 도통의 /전수를 이었다/.{{)夫堯舜禹, 天下之大聖也...... 自是以來, 聖聖相承, 若成湯文武之爲君, 皐陶伊傳周召之爲臣 , 皆旣以此而接夫道統之傳.
}}
이 이전에는 도통설이 없었으며, 겨우 맹자에게 500년이 지나면 반드시 왕이 될 사람이 등장하게 된다는 말이 있었을 따름이다. 도통이라는 단어는 선종의 종맥,종통의 뜻에 비겨서 이름을 취한 것 같다. 주자를 뒤이어 이원강이 이를 바탕으로 〈도통상전도〉를 만들었다.
伏義 - 神農 - 黃帝 - 堯 - 舜 - 禹 - 湯 - 文.武 - 周公 - 孔子 - 顔子,曾子 - 子思 - 孟子 - 周子 - 程子,張子 - 朱子.
이원강은 원래 위로 한유를 계승하였지만, 실제로는 북종보적의 [7대에 배당함]과 신회의 [종맥의 순서를 정함]을 본받았다. 곧 도통의 성립은 한문공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나, 주자 및 이원강의 손에서 완성된 것이며, 선종의 전승에서 취함이 있었다는 것은 지극히 뚜렷한 일이다. 도학가들이 도통을 건립할 때, 시인들도 시의 종파를 건립하였다. 강서시파는 선학이 번성한 시대배경 아래서 성립된 것인데, 여본중은 주문공,이원강 보다 앞에(이전에) <강서시사종파도>를 만들었다. 조언의 《운록만초》에는 /려서(여본중의 서문)가/ 실려 있다:
고문은 한대말엽에 쇠퇴하였는데, 선진의 고서 가운데 남아있는 것은 사대부들이 표절하는 자료가 되었다. 5언(절구)의 오묘함은 (시경)300편과 이소와 우열을 다툴만하다. 이태백과 두보가 나오고서는 이후 사람들이 미칠 수가 없었다. 한유,류종원,/맹교,장적/ 등은 /스스로 형식을 만들어/ 따로 일가를 이루었다. 원화 말엽에는 논할만한 사람이 없었으며, 당말에 이르러서는 쇠퇴가 극에 이르렀다. 그러나 악부장단구는 일창삼탄의 극치가 있었다. 본 왕조에 문물이 크게 갖추어져, /목백,장윤,사노/가 고문을 짓기 시작했는데, 구양씨에 이르러 성하게 되었고, 시가는 /예장/에 이르러서 비로소 커졌는데, 나오자 힘써 떨쳐서, 후학자들이 함께 일어나고 함께 화답하여, 천고의 비밀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그 이름을 기록하여 강서종파라 하는데, 그 원류는 모두 예장에게서 나온 것이다.
여본중은 황산곡을 추앙하여, 그를 송시의 대표이며 선종에서의 달마에 비하여 종파를 연 인물로 여겼으며, 그의 제자로 자처하였다. 그러므로 /호존은 《苕계어은총화》/에서 이르기를: [려거인은 최근에 시로써 이름을 얻었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강서에서 의발을 전수받았다고 하였다. 일찌기 <종파도>를 지었는데, 예장으로부터 /(진)사도를 나열하였고, 반대림/--- 합하여 25사람을 법제자라 여겼으며, 그 원류는 모두 예장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여씨가 <강서시사종파도>를 지은 것은 아마도 젊어서 장난삼아 지은 것으로, 그의 문집 중에는 결코 <강서시사종파도서>를 싣지 않았으며, 곧 그의 《자미시화》에 겨우 [강서제인시]라는 한 조목(항목)이 있고, <강서종파도>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산곡의 시를 논한 것도 많이 보이지는 않으며, 또한 강서시파 중의 사람을 전적으로(전문적으로,오로지) 논하여 숭앙한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깍아내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고전서총목》에서는 그의 시화를 평하기를:
본중은 비록 예장에게서 법을 얻었지만, 이 편에 /황정견/을 칭송한 것은 오직 범원실이 한 조목이며, 반 노가 두 조목이며, 晁무고가 한 조목인데, 모두 다른 사람을 인하여 언급한 것이고, 황정견의 시를 전적으로 논한 것은 오직 구양계목 한 조목일 따름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 가계가 옛날에 들었던 것과 벗들이 새로 지은 것을 서술(진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횡거,정이천과 같은 경우도 또한 다 싣고 있고, 실로 한 가(일가.한 가계)를 주로 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이상은을 극칭하였는데,---또한 한 격을 주로 한 것도 아니다.{{)本中雖得法於豫章, 而是編稱述庭堅者惟范元實一條, 潘 老二條, 晁/ /咎一條, 皆因他人而及之, 其專論庭堅詩者, 惟歐陽季默一條而已. 餘皆述其家世舊聞, 朋友新作, 如橫渠張子,伊川程子之類, 亦備載之, 實不主於一家, 又極稱李商隱…… 亦不主於一格.
}}
《자미시화》를 살펴보면 진실로 《사고전서총목》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아울러 강서시파의 명성을 부추긴 곳도 없다. 또한 범계수의 /《능양실중어》/에 의하면: [여공이 하루는 서실을 지나다가,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들고 읽어보니 곧 강서종파도였다. 공이 이르기를: '어떻게 이 책을 얻었는가? 절대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라. 이것은 젊어서 장난삼아 지은 것이다.'] 이로써 《자미시화》와 《사고전서총목》에서 평한 것이 매우 믿을 만한 말임이 증명된다. 여거인이 한 때 재미삼아 지은 것이 《사고전서총목》에서 말한 것처럼, [송시의 분파가 나뉘는 시초]였을 뿐 아니라, 또한 이후의 시단에 영향을 끼쳤다. 강서시파의 성립은 선학의 자극을 받았으며, 려씨에 의하여 /빗장이 벗겨졌을(작업이 시작되었을)/ 따름이다.
2. 강서시파 종지에 끼친 선학의 영향
시가에 종파가 있음은 강서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비록 전원파,산수파,변새 혹은 사회파 등등의 명칭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뒷사람들에 의한 분류이고, 당시의 시인들이 스스로 세운 종파의 표기(깃발)는 아니다. 강서시파는 여본중이 창립한 명칭인데, 그는 선학의 영향을 가장 깊게 받았다. 《송원학안》 중의 〈자미학안〉에서는 이르기를:
전조망은 삼가 살펴보건대: 대동래선생은 滎양의 적장자로서, /한 스승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어느 한 스승에 매이지 않았는데)/ 또한 가풍이다. 원우 이후 류원성,양귀산,천산,위료옹,윤화정 및 왕백신의 무리들과 같은 여러 /명사/들을 다 일찌기 사귀었으며, 선철들의 언행을 많이 기억하고(외우고), 이로써 그 덕을 쌓았다. 그런데(그러나) 선에 빠졌으니, 또한 가문의 유폐였다.{{)祖望謹案: 大東萊先生爲滎陽 嫡, 其不名一師, 亦家風也. 自元祐後諸名宿如元城,龜山,薦山,了翁,和靖, 以及王伯信之徒, 皆嘗從遊, 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 而溺於禪, 則又家門之流弊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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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거인의 시를 시험삼아 살펴보면, 선의 전적과 선어를 사용한 것이 매우 많으니, 그가 선학에 빠졌다는 /전조망/의 말은 매우 맞는 말이다. 거인은 또한 항상 선리로써 시를 논하였는데, 《시인옥설》권5에서는 이르기를:
문장을 짓는 것은 반드시 깨달아 들어가는 곳이 있어야 하며, 깨달아 들어가는 것은 반드시 공부에서 나오는 것이지 요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노소의 문장과 노직의 시는 대개 이 도리를 다하였다.
모름지기 깨달아 들어가는 바가 있으면(있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 자연히 /제자(여러 사람들)/를 넘어설 수 있다. 깨달아 들어가는 도리는 바로 공부가 근면한가 태만한가에 달려 있다. 예를 들면 /장장사/가 /공손대낭/이 칼춤을 추는 것을 보고서 필법을 담박 깨쳤는데, 장씨는 오로지 이 일에 뜻을 두어 가슴 속에서 잠시도 잊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일을 우연히 경험하고 얻은 바가 있어서 신묘한 경지를 이룰 수 있었다. 만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칼춤을 보게 하더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도움이 되겠는가). 이는 문장을 짓고 글을 배우는 것만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作文必要悟入處, 悟入必自功夫中來, 非僥倖可得也. 如老蘇之於文, 魯直之於詩, 蓋盡此理矣.:《呂氏童夢訓》
須令有所悟入, 則自然度越諸子. 悟入之理, 正在功夫勤惰間耳. 如張長史見公孫大娘舜劍, 頓悟筆法, 如張者, 專意此事, 未嘗少忘胸中, 故能遇事有得, 遂造神妙, 使他人觀舞劍, 有何干涉, 非獨作文學書而然也.: 呂居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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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선종의 깨달아 들어가는 이치를 가지고써 시를 짓는 법을 추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강서시파를 창립하면서 곧 황산곡을 달마에 비유하였는데, 그는 비록 분명히 말하지 않았지만, 류극장은 이 점을 확실히(명확히) 말하고 있다:
나는 (이미) 려자미를 종파의 뒤에 붙였는데, 혹은 말하기를: '시파는 여기에서 그칩니까?' 나는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증다산/은 땅 사람이며, /양성제/는 길땅 사람이니, 모두 중흥한 대가들이다. 선학에 비유하면, 산곡은 초조이고, 여.증은 남북 이종이며, /성재/는 조금 뒤에 나왔으니 임제.덕산이다. 초조 이하는 단지 언구에 그쳤는데, 봉과 할(갈)이 나오고서는 더욱 /뛰어났다(달라졌다)/. 그러므로 또한 두 가로써 /연속시킨다(계속된다)/.{{)余旣以呂紫薇附宗派之後, 或曰: 詩派止此乎? 余曰: 非也. 曾茶山 人, 楊誠齋吉人, 皆中興大家數, 比之禪學, 山谷初祖也, 呂曾南北二宗也, 誠齋稍後出, 臨濟德山也, 初祖而下, 止是言句, 至棒喝出, 尤徑挺矣, 故又以二家續.:《後村先生大全集》卷97〈茶山誠齋詩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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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은 <강서시파종사도>를 만들면서, 자신은 그 안에 넣지 않았는데, 류극장이 바야흐로 그를 뒤에 덧붙였다. 그는 황산곡을 달마에 비유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려씨와 증기를 남능북수에 비유하였고, 양성재를 임제와 덕산 두 선사에 비유하였으며, 또한 강서시파는 양씨에 이르러 다시 한번 변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당연히 류극장이 말한 것은 자신이 새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거인의 뜻을 미루어 천발한(추정하여 밝힌) 것이다. 또한 선종이 종파를 세우고 나눈 것(종을 세우고 파를 나눈 것)은 /자신(자가)/의 종지를 수립하는 데 있었으니, 이른바 [/가풍에 따라 가르치는 것(문정설시)/]은 다른 가운데 차이가 있음을 용납하지 않고, 이로써(않음으로써) 배우는 사람들을 접인하였다. 달마의 개종은 (이로써) 불교와 달랐고, 혜능은 신수와 구별되었는데, 그 후 다섯 종파가 각자 수립한(된) 것은 모두 이러한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송유는 이를 더욱 본받아 각 가(학파)의 강학에는 각 가(학파)의 종지가 있었는데, 황종희가 말한 것과 같다: [이에 원류와 지파가 나뉘어, 종지가 역연하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나아가면, 원래 성인의 이목이다./] 강서시파의 성립도 그들의 공동의 종지와 특색을 수립하는 데 있다(하기 위한 것이다). 려거인은 황산곡을 평하면서, 그는 [억양이 반복되고, 모든 체들을 다 겸하며], [천고의 비밀을 다 발휘하여 남김이 없었다]고 생각하였다. 산곡의 이 특색을 중시하는 것은 전체 강서시파가 본받는 바가 되었다. 류극장은 산곡의 시를 논하여 이르기를:
국초의 시인으로서, /潘 魏野/ 같은 사람은 만당의 격조를 고수하여(규범으로 준수하여) 한 걸음도 감히 벗어나지 못했으며, 양류는 또한 오로지 /곤?/체에 매달렸으므로, 뒷사람들에게 /의산을 이것저것 따서 모았다//(꽉 붙잡았다)/는 비난이 있다. 소.매 두 선생은 평담하고 호준하게 조금 변하여 화답하는 사람들이 오히려(여전히) 적었다. /륙일파공/에 이르러서는 높게(우뚝) 대가/들/이 되어 학자들이 높이었다(존숭하였다). 그러나 /이공(두 분)/은 또한 각자 천재적인 필력이 /이르는 바/를 다하였을(극대화하였을) 뿐이지, 반드시 단련하고 노력한 결과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예장이 조금 뒤에 나와서 /백가/의 구율들의 장점을 모으고, 역대 체제들의 변화를 궁구하고, 기서들을 수렵(수집)하고, /이문(희귀한 것)/을 /천혈하여(파고 들어)/ 고율을 만들어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비록 한 글자 반 구절이라도 가볍게 내지 않았다. 마침내(따라서) 본조 시가의 종조가 되었으니, 선학에 있어서는 달마에 비견된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정론이다.{{)國初詩人, 如潘 魏野, 規守晩唐格調, 寸步不敢走失, 楊劉則又專爲崑體, 故後人有 義山之 . 蘇梅二子, 稍變以平淡豪俊, 而和之者尙寡. 至六一坡公, 巍然爲大家數, 學者宗焉. 然二公亦各極天才筆力之所至而已, 非必鍛鍊勤苦而成也. 豫章稍後出, 會萃百家句律之長, 究極歷代體制之變, 蒐獵奇書, 穿穴異聞, 作爲古律, 自成一家, 雖隻字半句不輕出, 遂爲本朝詩家宗祖, 在禪學中比得達磨, 此不易之論也.:《後村詩話》〈江西詩派小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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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씨는 강서시파를 논하면서 황산곡이 개창한 것은 달마가 선종을 성립시킨 것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달마가 초조로 받들어지는 까닭은 [교 밖에 따로이 전하여, 문자를 세우지 않고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본성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는] 종풍을 창립했기 때문이다. 황산곡이 강서시파의 [조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시의 창작에서 [백가의 구율들의 장점을 모으고, 역대의 체제들의 변화를 궁구하고, 기서들을 수집하고, /이문(기이한 것)/들을 /꿰뚫어(파고 들어)/, 고율을 만들어서 스스로 일가를 이루어, 한 글자 반 구절이라도 가볍게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일구공과 동파의 재주로도 또한 황산곡과 어깨를 견줄 수 없는데, 왜냐하면 두 사람은 단지 천재적인 필력을 다 발휘했을 뿐 시의 창작종지를 건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깊이 탐구하면, 강서시파는 황산곡을 선종조사의 지위에 비유하였고, 또한 황산곡의 창작방법을 선종의 종지에 비유하였다. 그러므로 류극장은 /〈제하수재시선방장〉/에서 또한 이르기를:
시가에서는 두보(소릉)를 초조로 삼는데, 그 말에 의하면: '말이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어도(을 때까지) 그만두지 않는다'; 선가에서는 달마를 초조로 삼는데, 그 말에 의하면: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詩家以少陵爲初祖, 其說曰: 語不驚人死不休; 禪家以達磨爲祖, 其說曰: 不立文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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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창작주장을 가지고 선종의 종지에 비유하였음을 뚜렷하고 쉽게 볼 수 있다. 선종은 육조에 전해진 후에 오종이 뒤이어(잇달아) 일어나 각기 규모와 면모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조동종의 5위, 위앙종의 원상, 운문의 3구, 법안의 천대소사료간 등과 같이 가풍이 각각 다르다. 강서시파는 또한 이에 비유하여:
강서종파는 시가 강서이지 사람이 모두 강서는 아니다. 사람이 모두 강서가 아닌데 시를 강서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묶는 것이다(관련시키는 것이다). 묶는 것은 무엇인가? 맛으로써이지 형체(형식으)로써가 아니다. ---고자면은 이사와 같지 않고, 이사는 삼홍과 같지 않고, 삼홍은 진후산과 같지 않은데, 하물며 산곡과 같겠는가? 맛일따름이다. 시고 짠 것은 맛이 다르고, 산에서 난 것과 바다에서 난 것은 다른 진미들이지만, 조리하는 오묘함은 한 손에서 나온다. 같고 같지 않은 것(비슷함과 비슷하지 않음)은 추구해도 되고, 버려도 된다.{{)江西宗派者, 詩江西也, 人非皆江西也, 人非皆江西, 而詩曰江西者何? 繫之也. 繫之者何? 以味不以形也.--- 高子勉不似二謝, 二謝不似三洪, 三洪不似陳後山, 而況似山谷乎? 味焉而已矣, 酸鹹異味, 山海異珍, 而調 之妙, 出乎一手也. 似與不似, 求之可也, 遺之亦可也.:《誠齋集》卷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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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리는 말하기를 강서시파 중의 사람들이 각기 서로 답습하지 않은 것은 또한 오종이 달마와 육조에게서 나왔지만, 종풍이 다른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함께 강서시파에 연계되는(묶어지는) 것은 단지 공동의 풍격과 /풍미/와 관계가 있는데, 또한 오종이 교하와 다른 것은 공동의 본질 즉 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과 같다. 이상 서술한 바를 종합하면, 강서시파의 성립은 확실히 선종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3. 강서시파의 창작이론에 대한 선학의 영향
선학이 광대하지만 그 요체를 논한다면 하나의 '오'자에 있을 따름이다. 왜냐하면 미혹하면 범부에 머물지만 깨달으면 성역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에로 들어가는 문은 길이 매우 많은데, 예를 들어 2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법을 물어서 들어갔고, 3조는 죄를 참회하여 도를 증득했고, 4조는 얽매임이 없음으로부터 돈오하였으며, 6조는 금강경을 듣고서 개오하였으며, 그 밖에 북소리를 듣고서 도를 깨닫기도 하고, 복사꽃을 보고서 마음을 밝히기도 하고, 물을 건너다가 깨닫기도 하고, 물에 떨어져 얻기도 하고, 이름 부르는 소리에 견성하기도 하고, 햇살을 보고서 단번에 깨치기도 하고, /한번 손바닥(손뼉)을 치고/ 크게 깨닫기도 하고, /입을 가리고/ 단번에 밝히기도 하였으니, 산하대지, 모습있는 것과 없는 것, 어묵동정(말과 침묵,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음)이 다 도에 들어가는 법문이며, 심지어 우뢰소리를 듣거나, 개구리가 물에 뛰어드는 소리를 듣거나, 강가에서 /길을 비키라고 소리치는(고함치는)/ 것을 듣거나, 계수나무 향기를 /맡/거나, 변소의 구린내를 /맡/고서도 모두 마음을 밝히고 본성을 볼 수 있으니, 진실로 옛 스님이 말한 [온 대지가 해탈하는 문이다]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심에 즉하여 깨닫는 것은 염불송경과 타좌입정의 행입에 의하지 않고, 또한 경전을 붙들고 해석을 추구하고 /인명이념/을 밝히는 이입도 아니다. 이러한 직감직지(바로 느끼고 바로 아는 것)는 비록 극히 신비적인 색채가 풍부하지만, 선종의 전등사를 종합하면 분명히 믿을 만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성을 밝게 깨치고, 우주의 대본 또는 대전을 투철히 깨치는 것은 확실히 지력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직감과 직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위 [사람이 물을 마시면 뜨거운 것은 스스로 알 수 있다]는 것은 곧 느껴 깨달을 때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설명이다. 선학에서의 이 도리는 시가에서 곧(바로) 이것을 가지고 시를 배웠는데, 강서시파가 심하다/고 여긴다(에서 가장 심하였다)/. 참선을 가지고 시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가장 먼저 들어 쓴 사람은 소동파가 가장 빠른 것 같다. 위경지의 《시인옥설》권6에 그 일을 기록하여:
동파는 이단숙의 /시권(시집)/의 발문에서 이르기를: 좋은 시를 잠시 빌어 긴 밤을 지새고(보내는데), 아름다운(좋은) 곳(구절)을 만날 때 마다 문득 참선한다. 대개 단숙의 시는 너무 지나치게 마음을 쓰는데, 참선이라는 말은 이를 가지고 /경계/하는(일깨우는) 말이다.{{)東坡跋李端叔詩卷云: 借好詩消永夜, 每逢佳處輒參禪. 蓋端叔詩用意太過, 參禪之語, 所以警之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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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의 말에 의하면 참선하는 법으로써 시를 감상하는 것은 이로써 구절 밖의 아름다운 정취를 얻으려는 것이지 이로써 시를 배우려는 것이 아니다. 한구, 여본중에 이르러 /바야흐로/ 참선하는 법으로써 시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시인옥설》권6에서는 이르기를:
'꾀꼬리를 /야단쳐서/, 가지 위에서 울지 않게 하라. 몇 번이나 첩의 꿈을 깨워서, 요서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구나.' 이것은 당나라 사람의 시이다. 어떤 사람이 한자창에게 시법을 묻자, 자창은 이 시를 참구하여 법으로 삼도록 하였다. '변수는 하루에 삼백리를 달리고(달리는데), /쪽배/를 타고 동쪽으로 내려가(가며) 더욱 돛대를 펼친다. 아침에 기국을 떠나니 바람은 약하게 북쪽으로(에서) 불고, 밤에 영릉에 정박하니 달은 바로 남쪽에 있네. 늙은 나무는 서리에 덮여 /추적추적 소리를 내고/, 차가운 바람은 이슬을 /받아 뚝뚝 떨어진다/. 아득하여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데, 물색과 하늘빛은 모두 짙게 푸르다.' 이것은 한자창의 시이다. 어떤 사람이 려거인에게 시법을 묻자, 거인은 이 시를 참구하여 법으로 삼도록 하였다. 뒤에 시를 배우는 사람들이 이 두 편의 시를 숙독하면 깨닫는 바가 많을 것이다.{{)打起黃鶯兒, 莫敎枝上啼. 幾回警妾夢, 不得到遼西, 此唐人詩也. 人問詩法於韓公子蒼, 子蒼令參此詩以爲法. 水日馳三百里, 扁舟東下更開帆. 旦辭杞國風微北, 夜泊寧陵月正南. 老樹挾霜鳴 , 寒風承露落 . 茫然不悟身何處, 水色天光共蔚藍. 此韓子蒼詩也. 人問詩法於呂公居仁, 居仁令參此詩以爲法. 後之學詩者, 熟讀此二篇, 思過半矣.
}}
위경지가 말한 [훗날 시를 배우는 사람들이 이 두 편의 시를 숙독하면 얻는 바가 많을 것이다]라는 것은 /여본중과 한구가 말한(의 소위) [참선]을 숙독하여 정밀하게 생각하고 해석하면/ 참으로 큰 잘못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두 사람의 깊은 뜻을 자세히 음미하면, 선사가 공안을 참구하는 방법을 가지고 시를 배우는 것을 가리킨다. 복송 이후 선사들은 지난 조사들이 깨달은 경과와 가르침의 날카로운 언행들을 공안으로 만들어, 하나의 공안을 붙들고 밤낮으로 참구하여, 이로써 [/죽은 뱀이 살아나기/]를 /기약/하였다. 다른 사람의 깨침을 인하여 자신의 깨달음을 여는데, 하나의 공안을 깨닫게 되면, 하나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 여본중과 한구 두 사람이 사람들에게 하나의 시를 참구하도록 하고, 천 수 백 수의 시를 숙독하게 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뜻이다. 대개 참구에 의하여 오묘한 깨달음을 얻으라는 말이다. 여,한은 다 강서시파에서의 /걸출한 인물//(영수)/들인데, 한구는 시를 논한 또 다른 한 수의 시에서 더욱 명백하게 참구함으로써 깨닫는 도리를 말하였다.
시를 배우는 것은 마땅히 처음 선을 배우는 것과 같으니, 깨닫기 전에는 제방을 두루 찾아 보아야(참방해야) 한다. 하루 아침에 바른 법안을 깨달으면, /손 가는대로 가져와도/ 모두가 문장이 된다.{{)學詩當如初學禪, 未悟且遍參諸方. 一朝悟罷正法眼, 信手拈出皆成章.:《陵陽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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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는 시인은 마땅히 참선인이 총림을 행각하면서 고승들을 두루 참방하여 그 가르침을 얻음으로써 돈오하여 자득하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참선인은 /정수리의/ 정법안장을 얻은 후에는 곧 [/현묘하고 분명하여/, /마음도 아니며 생각도 아니며/, 나오는대로 말하여도, 구절구절이 도이다(모두 사리에 맞다).] 시인은 남을 따라서 시법을 깨달은 후에는 바야흐로 본체로부터 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서, 성률과 규칙(규범)과 법식(형식)을 초월하여, 입으로 읊조리고 손으로 씀에 원하는대로 문장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루 아침에 바른 법안을 깨달으면, 손에서 나오는대로(손 가는대로.손 가는대로 가져와도) 모두 문장이 된다]고 하였다. 소위 바른 법안은 곧 금강혜안인데, 사람의 정수리에 있다. 한자창이 여기에서 사람들에게 [두루 참방]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시인옥설》권6에서 오로지 한 수의 시를 참구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주장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하지만 합하여 살펴보면 그가 참선하는 방법으로써 시를 참구하도록 가르치는 뜻은 사람으로 하여금 시의 일체를(모든 것을) 오묘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고, 여본중이 사람들에게 시를 참구하도록 가르친 것도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아 들어가도록 하는 것인데, 이미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으므로 다시 불필요하게 인용하지 않는다. 묘한 깨달음은 자취를 찾을 수 없으며, 항상 허공에 떨어지는데, 황정견이 보여준 것은 곧 환골탈태라는 실용법문이다.
황산곡이 말하기를 시정(시적 정취)은 무궁하지만 사람의 재능은 유한한데, 유한한 재능을 가지고 무궁한 뜻(정취)을 따라간다면, 비록 도연명과 두보라도 /그 기교를 발휘할 수(성공할 수)/ 없다. 그 뜻(정취))을 바꾸지 않고서 그 말을 지어내는 것을 환골법이라 하고, 그 뜻(정취)을 /묘사(規摹)/하여 형용하는 것을 탈태법이라 한다.{{)山谷言詩意無窮而人才有限, 以有限之才, 追無窮之意, 雖淵明少陵不得工也. 不易其意而造其語, 謂之換骨法, 規摹其意形容之, 謂之奪胎法.:《冷齋夜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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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골탈태는 송나라사람들이 많이 /논급/하였는데, 이 밖에 《시인옥설》에도 보인다. 총괄적으로 말하면(요컨대), 표절하는 [교활한 도적]에서 벗어나지 않을 따름이고, 단지 시를 배우고 시를 지을 때 일조를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황정견이 이 두 말을 표출(제시)한 것은 도가사상과 관련이 있고 선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참선의 법으로써 시를 배우는 것은 아직(또한) 조장천이 있다. 조장천은 강서시파 /후기(마지막)/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한자창,여본중의 영향을 받아 참선으로써 시를 논하였다.
[시를 배우는 것은 참선을 배우는 것과 흡사하여, 초년과 /말년/을 /식취한다/(분간하여 취한다). /기술있는 장인/이 어찌 썩은 나무를 조각할 수 있으며, 들판을 태우는 큰불이 어찌 꺼진 재를 다시 불붙게 하겠는가.(아무리 기술있는 장인이라도 썩은 나무를 조각할 수 없으며, 아무리 큰 불이라도 다 탄 재를 다시 불붙게 할 수는 없다.)
시를 배우는 것은 참선을 배우는 것과 같으니, 마음으로 전하는 것과 귀로 전하는 것을 간직해야 한다. 추국과 춘란이 어찌 자리를 바꾸겠으며, 청풍과 명월은 본래 같은 하늘에 속한다.
시를 배우는 것과 참선을 배우는 것은 흡사하니, 속박되면 어찌 구와 연을 논하겠는가. 사해구주는 /어떻게/ 역력하며, 천추만세는 영원히 전해진다.{{)[학시혼사학참선, 식취초년여모년. 교장갈능조후목, 요원녕부사회연.](기일)
[학시혼사학참선, 요보심전여이전. 추국춘란녕역지, 청풍명월본동천.](기이)
[학시혼사학참선, 속박녕론구여련. 사해구주하력력, 천추만세영전전.](기삼./명도목의 《남濠시화》/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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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과 만년(말년)을 /분간한다/]는 것은 참선인이 초년에(처음에) 아직 깨닫지 못했을 때와 만년에(나중에) 깨닫고 보임을 한 후에 차이나는 까닭을(것을) 명심(기억해 두고 참고로)함으로써 그 시를(시학을) 이루는 일을 말한다. 참선인이 처음 총림에 들어가 대사를 아직 밝히지 못하고 증득함이 없을 때에는 경전에 의지하지 않으면 곧 남들의 말을 따르고, 혼미하여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으면 곧 공과 유에 집착하게 되니, 이른바 /말귀 아래 죽어있다(죽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시인이 처음 시를 배울 때도 또한 이와 같아서, 시를 외우고 시를 읽으면서 /시라는 한가지 일만/ 안다. 그러나 혹은 격률에 어려움을 겪거나(곤혹하게 되거나) 혹은 /구법/에 미혹하거나 혹은 이전의 대가들에 현혹되어 벗어나지 못하니 또한 참선인이 언구 아래 죽(어 있)는 것과 같다. [솜씨가 뛰어나 기술자라도 어찌 썩은 나무를 조각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은 시를 배우는 자의 천부적 재능을 중시하는 것인데, 마치 참선인들이 [근기]를 중시하는 것과 같다. 참선인의 깨달음은 참으로 큰 스님의 교화와 인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근기의 우열에 달려 있다. 이른바 [견해가 스승과 같으면 스승의 덕을 반으로 감소시키고, 견해가 스승을 넘어서야 조금(다소) 전수할 만하다]는 것이다. 시인 또한 천부적 재능을 응당 중시해야 하는데, 진실로 썩은 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면 비록 정교한 장인이 있다 할지라도 어떻게 조각하여 그릇(기물)을 만들 수 있겠는가? [/큰 불이라도 어찌 다시 꺼진 재를 불붙게 하겠는가/]하는 것은 시인은 반드시 [크게 한번 죽고], [죽은 다음에 회생하는] 신비적 경험을 갖출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참선인의 큰 깨달음은 항상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고, 고목에 다시 봄이 오고, 꺼진 재가 다시 불붙는 것에 비교되는데, 대개 /정식/을 말끔히 쓸어 없애어 나도 없고 법도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더러움도 없고 청정함도 없어 자성을 밝게 깨친 후에는 전혀 이전의 경계가 아니다. 조씨는, 시인은 굳이 이와 같을 필요는 없으니, 마치 불이 초원에서 타는 것과 같아서 꺼진 재가 다시 불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마음으로 전하는 것과 귀로 전하는 것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은 시가 전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또한 참선에서 전승(스승에게 전수받음)을 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참선인이 참방할 때 선조사의 가르침은 그 말로써 하는 훈시에는 이해할 수 있는, 뜻이 있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이전(귀로 전한 것,귀로 전수받은 것)의 의미이고, 또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뜻이 없는 말이 있는데, 예컨대 뜰 앞의 잣나무라거나 마 세근과 같은 것들이고, 또한 방망이를 쓰거나 할을 쓰는 것과 같은 것인데, 단지 마음(심신)으로 깨달을 수 있을 뿐이며, 선사들이 법을 전할 때 항상 마음으로써 마음을 인증하여 그윽히 부합(부촉)하고 말없이 증득하니, 이것이 심전(마음으로 전한 것)의 의미이다. 시인이 시를 배우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입과 귀에 의해 서로 전하는 이전이 있고 또한 마음으로 깨닫는 언어를 초월한 심전이 있는데, 옛 시인들의 시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은 더욱 심전에 의존한다. [추국과 춘란이 어찌 자리를 바꾸겠는가]라는 것은 시를 배워 성취가 있으려면 시절인연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참선인의 깨달음은 특별히 시절인연을 중시하는데, 선조사가 비록 가르침을 주더라도 법을 듣는 사람은 또한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의 구별이 있으며, 또한 당시에 들은 것을 깨치지 못하였다가도 훗날 바야흐로 어떤 계기를 만나 깨닫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동산양개가 물을 건너다가 깨달은 것과 향엄지한이 기왓조각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친 것과 같다. 시인이 시를 알고 시를 배우는 것도 서로 유사한데, 예를 들어 난초가 봄에 꽃이 피고 국화가 가을에 누렇게 되는 것은 시절이 다르기 때문이지 토양의 차이가 아니다. 그러므로 시를 배우는 것은 때가 이르러야 바야흐로 완성되는 것이며, 더군다나 한 (시)대에 는 응당 한 (시)대의 시가 있어야 한다. [청풍과 명월은 본래 같은 하늘에 있다]는 것은 시리와 시법은 선가에서 공을 논하고 유를 논하는 것과 같아서 본래 일체라는 말이다. [자성]의 체용이 현시한(하는) 것을 (가지고) 말하면, 형이상의 [공]이 있고, 형이하의 [유]가 있는데, [공][유]는 한가지이고, 본래 서로 다르지 않다. 조장천은 청풍으로써 [공]을, 명월로써 [유]를 비유하고, 하늘로써 자성 혹은 대전을 비유하였는데, 공과 유는 모두 이 대전에 같이 속한다는 말이다. 시 또한 이와 같아서, 형이상의 시리가 있고 형이하의 시법이 있는데, 같이 시의 영역에 속하며, 시를 배우는 자들은 이 이치를 밝게 알아서 망령되이 분별심을 내서는 안된다. [속박이 있으면 어찌 구와 련을 논하겠는가]하는 것은 시인은 응당 마치 참선인이 속박을 버린(버리는) 것과 같이(것처럼) 일련일구의 속박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참선인이 참선하여 깨달음을 구할 때는 [유에의 집착]을 제거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공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하며, 다시 [유도 아니고 공도 아니며], [유 아닌 것도 아니고 공 아닌 것도 아닌]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크고 원만한 거울과 같은 지혜(대원경지)를 얻어서, 마치 외로운 달이 허공에 빛난(허공을 밝히는) 것처럼, 가리움도 없고 봄도 없으며, 성인의 경지에 들어간 후에는 다시 성스런 견해와 성스럼에 대한 집착도 제거해야, 바야흐로 크게 쉴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한 티끌이 날려서 하늘을 가리게 된다. 시인이 시를 배우는 것도 당연히 집착을 버려서 일구일련의 속박에 얽매여서는 안되는데, 능히 이와 같으면 천추만세에 그 시는 저절로 유전될 수 있으며(있으리니), 사해구주의 시가가(시인들이) 이처럼 역력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참선의 이치로 시를 논하는 것은 여본중,조장천 두 사람이 이미 상세하고 명백하게 논한 것이 매우 정밀하여(하므로), 특별히 위에서처럼 미루어 설하였다(변명하였다. 살펴보았다).
강서시파는 또한 시의 활법을 /講究/하였다(중히 여겼다.문제삼았다.). 그것은 여본중에 의하여 창도되고 조장천이 천발하였는데, 또한 강서파가 시를 논하는 중요이론이 되었다. /증계리/의 《정재시화》에서는 이르기를:
후산은 시를 논하면서 환골을 말하였고, 동호는 시를 논하면서 중적(적중)을 말하였고, 자창은 시를 논하면서 /포참입처/를 말하였다. 그러나 그 실은 모두가 하나의 /핵심/이니(이 있으니), 깨달아 들어가지(깨닫지) 않고는 안된다.{{)後山論詩說換骨, 東湖論詩說中的, 子蒼論詩說飽參入處, 然其實皆一關 , 非悟入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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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본중이(의 시가) 활법을 강론한 것은 이미 당시 시가에 의해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직(단지) 활법은 결코 깨달아 들어감이 아닌데, 증계리는 혼동하여 논하여(섞어서 논하여), 여본중의 뜻을 오히려 상실한 것이다(잃어 버렸다.놓쳤다). 여본중은 스스로 활법의 뜻을 말하여 이르기를:
자미공이 <하균부집서>를 지으면서 이르기를: 시를 배우려면 마땅히 활법을 알아야 된다. 이른바 활법이란 규칙(규구)을 갖추고도 능히 규칙을 벗어나서, 변화불측하면서도 또한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이 도는 정해진 법이 있으면서도 정해진 법이 없고, 정해진 법이 없으면서도 정해진 법이 있는 것이다. 이를 아는 자는 더불어 활법을 이야기할 수 있다. 사원휘가 말하기를 좋은 시는 유전하여(널리 전파되는데), 탄환처럼 원만하고 아름답다고 하였다. 이것이 참된 활법이다.{{)紫薇公作夏均父集序云: 學詩當識活法, 所謂活法, 規矩備具, 而能出於規矩之外, 變化不測, 而亦不背於規矩, 是道也, 蓋有定法而無定法, 無定法而有定法, 知是者, 則可與語活法矣. 謝元暉有言, 好詩流轉. 圓美如彈丸, 此眞活法也.:劉克莊《江西詩派小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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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법과 사법이란 상대적인 이름(명상.개념)이며 그 정밀한 의의는 또한 응당 선학에서 구해야 한다. 선종에서는 일체 법이 모두 가명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육조혜능은 이르기를: [만일 자성을 깨달으면 또한 보리열반을 세우지 않고 또한 해탈지견을 세우지 않으니,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어야 바야흐로(비로소) 만법을 건립할 수 있다.] 또한 이르기를: [자성을 스스로(자신이) 깨쳐서, 담박 깨치고 담박 닦으니, 또한 점차가 없다. 일체 법을 세우지 아니하니 제법이 적멸한데 무슨 차제(순서)가 있겠는가?] 자성을 돈오하는 것은 일체 법을 세울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또한 법이 있으면 집착이 되기 때문에 제법도 반드시 적멸해야 한다. 또한 곡은선사는 이르기를:
우리 종에는 /어구/가(말이) 없으며, 또한 한 법도 사람에게 줄 것이 없다. 만약 한 법이라도 사람에게 줄 것이 있다면, 또한 단멸과 상주의 법을 이루게 되니, 정법이 아니다. 예로부터 부처와 부처가 수여(전수)하고, 조사와 조사가 전한 것은 단지 /증득한 것이 툭 트이고 막힘이 없이 본원을 철저히 보는 것을 귀하게 여겼으니, 바야흐로 이를 바른 지견(정지정견)이라 한다. /반듯한/(끝없는.많은) 준거가 있고, 법마다 융통하여(하니), 혹은 십이분교에서 밝게 얻은 자가 있고, 혹은 교 밖에서 밝게 얻은 자가 있으며, 혹은 들지 않아도 먼저 알고, 말하지 않아도 먼저 깨닫는 자가 있으며, 혹은 스승이 없이 스스로 깨닫는 자가 있다.---{{)我宗無語句, 亦無一法與人, 若有一法與人, 亦成斷常之法, 非正法也. 從上佛佛授予, 祖祖有傳, 只貴所得所證, 廓然蕩豁, 徹見本源, 方謂之正知正見, 繩繩有準, 法法融通, 或於十二分敎明得者, 或於敎外明得者, 或有未擧先知, 未言先領者, 或有無師自悟者.---:《兀庵和尙語錄》<示松島圓海長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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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법이 하나도 없다(한 법도 줄 수 없다)는 것은 대개 일정한 법이 있으면 곧 죽은 법이 된다는 말이다. 일정한 법이 없어야 법마다 원만하게 통할 수 있고, 자성을 밝게 깨칠 수 있으니, 곧 원통한 활법이다. 여본중이 말한 것은 곧 선리를 시리에 통하게 한 것이며 선법에 의해서 시법을 논한 것이다. 시가에서 말한(말하는) 법은 격조,성률,대우,편법,구법,자법 등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시를 배울 때에는 마땅히 이로부터 착수하여야 하며, 시를 짓는 것 또한 이를 어겨서는 안된다. 오로지(하지만) 한 법을 사수하여 법에 속박되면 생기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법을 따르되/ 한 법을 사수하지 않는데, 이것을 정해진 법이 없으면서 정해진 법이 있으며, 규구(규칙.법도)가 있어도 규구를 벗어나는 활법이라 한다. 이것이 여본중의 소위 [활법이란 규구(법도.틀)를 모두 갖추고도 규구 밖에 벗어날 수 있으며, 변화불측하면서도 규구(법도)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려씨의 논지에 대하여 이미 오해가 있었다. 그러므로 류극장은 이르기를:
인용한 사선성의 '좋은 시는 /유전하여 원만하고 아름답기가/(유창하고 원만하기가) 탄환과 같다'는 말은 내가 선성의 시로써 고찰하여 보니, 마치 비단 짜는 사람이 비단을 짜고, 옥을 가공하는 사람이 옥을 쪼는 것과 같아서, 천하의 교묘함을 지극히 하여 교묘함을 끝까지 다한 연후에 능히 유전하고 /환미(원만)/할 수 있다. 최근의 학자들은 탄환의 비유를 오인하여, /쉬운 것으로 달려간다/. 그러므로 /방옹의 시에서는(방옹시에서는.방옹시는)/ 이르기를: '탄환의 논은(과 같다는 주장은) /바야흐로/ 사람을 오도한다.'{{)所引謝宣城好詩流轉 美如彈丸之語, 余以宣城詩考之, 如錦工織錦, 玉人琢玉, 極天下巧妙, 窮巧極妙, 然後能流轉 美, 近時學者, 誤認彈丸之喩, 而趨於易, 故放翁詩云: 彈丸之論方誤人.:<江西詩派小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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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람들은 이미 결과를 원인으로 도치시켜(결과를 원인으로 뒤바꾸어), /유전환미(유창하고 원만하기가)/가 탄환같다는 것은 시가에서(시인들이) 활법을 운용한 결과임을 알지 못하고, 시를 짓는 것이 가볍고 쉬움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후학을 오도하여 방옹의 질책을 받았다. 여본중의 활법의 뜻은 서증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깊이 계합하고 천명할 수 있었다.
나는 30년 동안 시를 논하면서 단지 하나의 '법'자를 알았는데, 요사이에 비로소 하나의 '탈'자를 알게 되었다. 시에는 대개 법이 있는데, 떠나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붙어 있을(즉할) 수도 없다. 떠나면 체를 상하게 되고, 붙어 있으면(즉하면) 기를 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를 짓는 자는 먼저 법으로부터(을 따라) 들어가서 나중에는 법을 따라(으로부터) 나와야, 능히 법 없음을 법 있음으로 삼을 수 있으니, 이것을 탈이라 한다.{{)余三十年論詩, 祇識得一法字, 近來方識得一脫字, 詩/蓋/有法, 離不得, 却又卽他不得, 離則傷體, 卽則傷氣, 故作詩者, 先要從法入, 後從法出, 能以無法爲有法, 斯之謂脫也.:《徐而庵詩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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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의 소위 탈은 려씨의 활법의 뜻이다. 오직 그 말이 자못 고원하고 현묘하여, 왕부지의 이론을(주장을) 가지고 증명해야 비로소 더욱 여본중의 활법의 뜻에 분명해진다.
기승전수는 하나의 법인데, 처음에 성한 당(초기 성당)의 시율을 시험삼아 취하여 증험해 보면, 누가 이 법을 /어리석게/ 지키고 있는가? 법은 문장을 이루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는데, 이 네 법을 세우면 장을 이룰 수 없다. 더우기 /도노가 소부/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것은 어떤 (문)장법인가? 또한 /불나무와 은꽃이 합하는 것처럼/(불꽃이 휘황찬란하게 합하는 것처럼) 혼연히 한 기운이다; 또한 이루는 것만 알고 돌아오지 않으면 복잡(곡절)하여 단서(실마리)가 없다; 그 밖에 혹은 여섯 구를 평평하게 펼쳐서(펴고는) /두 말(어구)/(이어)로써 총괄하기도(묶기도) 하고(한다); 혹 6,7구에 뜻이 이미 /남김이 없어서/(다 드러나서), 말구에서는 비백법을 가지고 펼치기도 하고(한다); 의취(정취)가 /초탈하고 고원하여/, 일으키되 굳이 일으킬 필요가 없고, 거두어 들이되 굳이 거둬 들일 필요가 없으니, 곧 생기가 영통하여 문장을 이루게 할(생기가 영통하게 하여 문장을 이룰) 따름이다.{{)起承轉收一法也, 試取初盛唐詩律驗之, 誰株守此法者? 法莫要於成章, 立此四法, 則不成章矣. 且道盧家少婦作何解? 是何章法? 又如火樹銀花合, 渾然一氣; 亦知成不返, 曲折無端; 其他或平鋪六句, 以二語括之; 或六七句意已無餘, 末句用飛白法 開; 義趣超遠, 起不必起, 收不必收, 乃使生氣靈通, 成章而已.---:《夕堂永日緖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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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가 영통하여 문장을 이룬다]는 것은 이미 시인이 법을 사용하는 핵심(요령)을 다 말하였다. 대개 참선인은 정해진 법이 없고 오직 남김없이 돈오하기를 추구한다. 시인은 정해진 법이 없고 오직 문장을 이루어 뜻을 전달하기를 추구한다. 정해진 법이 있는 것은 처음 참구하고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이롭고, 정해진 법이 없는 것은 스스로 깨닫고 원만하게 통함을 구하며 변화가 자취가 없기를 추구한다. 심덕잠의 /논지/는(논술은.주장은) 더 비교적 상세하고 확실한데, /?/:
시는 성정을 귀하게 여기지만, 또한 반드시 법을 논해야 한다. 난잡하여 무질서하면 시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법이라는 것은 가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가고, 그치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그쳐서, 기복이 /조응/하고 승접이 전환하여, 스스로(저절로) 신명이 그 가운데서 변화하는 것이니, 만약 이곳에 /얽매인다면 어떻게 할 것이며, 저 곳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뜻으로써 법을 운용하지 않고, 오히려 뜻으로써 법을 따르면 곧 죽은 법이다. 천지 사이에서 물이 흐르고 구름이 머무르며 달이 뜨고 바람이 부는 것을 보라, 사법(죽은 법)에 따르는(착하는) 것이 어디 있는가?{{)詩貴性情, 亦須論法, 亂雜無章非詩也. 然所謂法者, 行所不得不行, 止所不得不止, 而起伏照應, 承接轉換, 自神明變化於其中, 若泥定此處應如何, 彼處應如何? 不以意運法, 轉以意從法, 則死法矣! 試看天地間, 水流雲在, 月到風來, 何處着得死法.:《說詩 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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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법이란 기복이 조응하고 승접이 전환하는 것이고, 이른바 활법이란 그 사이에 출입하여 /신화(신묘한 변화)/가 일정함이 없음으로써(일정하지 않음으로써) 한 시의 뜻(정취)에 통괄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본중의 뜻을 보완하여 밝힐 수 있으며, 선산이 논한 것과 서로 밝혀주는 부분(점.곳)이 있다. 활법과 사법은 참선인에게서 근원하여 시론에서 발휘되었는데, 위에서 논한 것으로부터 그 대강을 알 수 있다. 시를 참구하는 것으로써 시를 배우고, 활법으로써 시를 논하는 것은 이 강서시파에서 황산곡의 환골탈태법을 제외하고는 시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인데, 진실로 선학에 의하여 이를 밝히지 않으면 그 원류에 어두워(원류를 몰라서) 그 진의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게 된다.
4. 강서시파의 비평에 대한 선학의 영향
선종이 개종입파한 것은 각 가의 종지가 다른(구별되는) 데서 나온 것이다. 구체적인 가르침의 방법(문정설시)이 서로 달라서 각기 문호를 세웠지만, 기본정신은 법을 구하는 데 있지 종파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며, /정밀한(자세한.깊은) 의의/는 깨달음에 있지 우열을 서로 드러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두루 참방하여 서로 /기봉(날카로운 말)/을 드러내어 서로가 계합하면 동참하고, 계합하지 않으면 팔을 걷어 부치고 떠나간다. 계합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도에 있는(달린) 것이지 종파에 있지 않다. 오직(단지) 황룡,양기에 이른 후에 바야흐로(비로소) 조동종과 더불어 간화선과 묵조선의 논쟁을 형성하였다. 강서시파에서 시를 논하고 시를 평하는 것도 그 시초는(에) 또한 이러한 정신을 갖추고 있다(있었다). 그러므로 종파를 형성한(형성된) 것은 [/맛/으로써이고(의 차이에 의해서이지) /신/으로써가(에 의해서가) 아니다]. 비록 황산곡을 같이 스승으로 하지만, 각각 /건립한 바 있는데/, 양만리가 말한 바와 같다.
(인용문:170p 참조)
여본중의 《자미시화》를 가지고 /증명하여(확인해) 보면/, 겨우 한 조목에서 강서 /제인/의 시를 논하고 있으며, 황산곡의 시를 논한 것은 또한 많이 보이지 않으며, 또한 (강서시)파 중의 /제인/의 시를 전적으로 논하여 /높이고 장려/하거나 혹은 강서시파 외의 시인들을 /끊고(자르고)/ 폄하한(헐뜯은) 것도 아니다. 강서파 중의 시인들은 비록 서로 표방한 점도 있지만, 서로 /맥락이 통하지 않으며 서로가 추대하여 높이고 있다(서로 정보(목소리.마음.뜻)을 교환하고 서로 칭찬(양추)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나중에는 점차 변화가 생겼는데, 예를 들면 류극장의 <강서시파소서>에서는 이미 비평에서 완전히 강서시파 제인의 시작들을 /높여 드러내고(높여서)/, 거의 칭찬만 하고 폄하는 하지 않는다. 그는 황산곡을 추앙하여 말하기를:
(인용문 169p참조)
황산곡을 추앙하여, 그의 지위가 소식의 위에 있다고(보다 높다고) 생각하였으며, 아울러 선종의 조사에 /비하여 논하였다/. 진후산을 논하여 이르기를:
진후산이 수립한 것은 매우 높은데, 그 의론은 한 글자도 남에게 빌리지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말하기를 그의 시는 예장공을 /스승으로 삼았다고/(본받았다고) 하였는데, 혹자는 황산곡과 진후산이 /명성이 같았는데(똑 같이 유명했는데)/, 어떻게 스승을 삼았겠는가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활쏘기는 한 화살로 다투고, 바둑은 한 수로 다툰다. 시 또한 그렇다. 후산의 지위가 예장에 멀지 않으므로, 능히 스승으로 삼았다. 만약에 /동시(대)의 진조의 제인(진조와 같은 사람들)이라면/ 이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오직 시에 조예가 깊은 자만이 안다.{{)後山樹立甚高, 其議論不以一字假人, 然自言其詩師豫章公, 或曰黃陳齊名, 何師之有? 余曰: 射較一鏃, 奕角一著, 惟詩亦然, 後山地位去豫章不遠, 故能師之, 若同時秦朝諸人, 則不能爲此言矣, 此惟深於詩者知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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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진후산을 진조의(보다) 위에 추앙한 것이다. 강서시파에서 여러 사람들이(파 중의 여러 사람들에서) /지극히 추정하여 밝히는 능사는/(미루어 밝히는 수완을 다 발휘하였는데) 비록 다른 파를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같은 파끼리 한 패가 된 혐의가 있다. 예를 들어 증계 의 《정재시화》는 아주 많이 힘을 다하여 여본중 및 강서파의 중요 인물들의 시와 사적을 천술(명백히 논술)하였는데, 그래서(그 결과) 시를 논하는 문호와 파벌을 형성하였고, 따라서 /격렬한 반동을 일으켰다(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무/가 말한 것과 같다.
근세의 문사들이 즐겨 강서를 말하는데, 온화하기는 범지능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 통쾌하기는 양정수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 /고상하기는/ 소동부와 같고, 재능있기로는 륙무관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 이들은 모두 /스스로 일정한 형식을 만들어/, 진실로 볼만한 것을 가진 자들인데, 또한 어찌 강서(시파)라 할 수 있겠는가?{{)近世文士, 喜言江西, 溫潤有如范至能者乎? 痛快有如楊廷秀者乎? 高古有如蕭東夫, 俊逸有如陸務觀者乎? 是皆自出機 , 亶有可觀者, 又奚以江西爲?:《梁谿遺稿.白石詩稿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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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파에 대하여 이미 곱지않은(불만스런) 비평이 있었으며, 그후 사령,강호파가 잇달아 일어난 것은 당연히 또한 강서파/의 시평시론(가 시를 평하고 논한 것)의 자극을 받은 것이다.
시를 평하고 시를 논하면서 강서를 표본으로 한 결과 강서 일파의 시에 가려지게 되어 그 밖에 다른 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기에 이르렀다. 양만리는 이(러한) 잘못을 논하여 이르기를:
근세에 이 도가 성한 것은 강서보다 성한 것이 없다. 그러나 강서가 /있는 줄/(있음)을 아는 사람은 /당인(당시)/이 있는 줄은 모른다. 혹자는(혹은) /당인과 강서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데(당인을 깍아내림으로써 강서를 편드는데)/, 이는 당인을 모를 뿐 아니라, 또한 강서를 아는 사람이라 할 수도 없다. 비록 당인은 몰라도, 오히려 강서는 아는데, /(그렇게 되면)강서의 도도 또한 알 수 없는 것이니,/ 탄식할 일이다.{{)近世此道之盛者, 莫盛於江西, 然知有江西者, 不知有唐人, 或者左唐人以右江西, 是不惟不知唐人, 亦不可謂知江西者. 雖然不知唐人, 猶知江西, 江西之道, 亦莫之知焉, 可嘆也.:《誠齋集》卷78<雙桂老人詩集後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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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시파 아래의 시인들은 당나라 사람들의 시를 모르게 되었고, 혹은 /당인과 강서를 겸하기도 하는데(당인을 깍아내림으로써 강서를 편드는데)/, 그 폐단을 알 수 있다. 사령파,강호파가 일어난 것은 또한 강서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었다. 비록 두 파의 문호가 이미 섰지만 치우침을 면하지 못하였으며, 또한 힘이 강서시파와 비교될 수 없었다. 이에(그래서) 방회 등은 다시 강서를 편들고 사령,강호를 공격하였다. 원호문은 이르기를: [시를 논하면서 어찌 /부옹(황정견)에게 낮추어 절을 할 수 있겠는가/, /강서시파의 사람들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곧 황산곡에서 취한 것이 있었지만, 강서파를 경시하였다(하찮게 여겼다). 대개 종파를 세우는(파를 세우고 종을 세우는) 것은 자연히 /잘못/이 있다(세우게 되면 자연이 잘못이 생기는데,). 륙상산이 말하기를:
후세에 학문은 먼저 반드시 문호를 세워야 한다. /이는 이치가 편안한 바이니 어떻게 문호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학자들이 각자 문호를 비호하는데, 이것은 또한 비루한 일이다.{{)後世問學, 先須立箇門戶. 此理所安, 安有門戶可尋. 學者各護門戶, 此尤可鄙.:《象山集》권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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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실로 병의 근원을 통철하였다. 강서시문에서 종파를 세운 것은 그 시초는 종지를 드러내는 데 있고, 사람들로 하여금 /문정설시(독특한 가르침)/를 알게 하는 데 있었는데, 마치 참선인들이 분파입종한 것과 같다. 그러나 실로 문호파벌의 유폐를 피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왕부지가 말한 것와 같다.
일단 문호를 세우면, 단지 그 국격(한정된 틀)을 가지게 되고, 더 이상 성정(성격)이 없으며,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어, 자신도 얽어매고 남도 얽어매니, 누가 풀어줄 것인가? 문호를 세우는 자는 반드시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면/ 문호를 세울 수 없는 것이 아니나, 대개 심령은 사람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고 서로 빌려주는 것이 아니어서, /따라서 방편법문이 없으면, 천박한 사람이 마음대로 끌어쓰게 된다./ ---/장악하고(일을 처리하고) 하지 못함은 결국 심령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사람들을 감흥시키고 무리의 원망을 관찰하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천박한 사람들이 끌어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오직 그(처럼) /끌어쓰지/ 못하므로 문호를 미루어 건립하는 자가 없어서, /홀로 400년 동안 쇠퇴한 것을 일으킨다/.{{)才一立門庭, 則但有其局格, 更無性情, 更無思致, 自縛縛人, 誰爲之解者.---立門庭者必 , 非不可以立門庭, 蓋心靈人所自有, 而不相貸, 從無方便法門, 任陋人支借. ---用事不用事, 總以曲寫心靈, 動人興觀 怨, 却使鄙人無從支借, 惟其不可支借, 故無有推建門庭者, 而獨起四百年之衰.:<夕堂永日緖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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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진실로 강서시파 및 그 후 시파들의 /잘못/에 /대해 정곡을 찔렀다(대해 발휘된 것이다)/. 대개 강서 이후로부터 시가들은 종파를 즐겨 말하지 않음이 없었다.
강서시파가 극도로 성한 후에 명대에서는 송시를 버리고 당시를 높였는데, 이는 실로 엄우의 《창랑시화》에 의하여 /처음 이끌어진/ 것이다. 그 책은 본래 강서를 폄하함으로써 시의 바른 도를 회복하고 있다. /명의 칠자/는 시는 반드시 성당 때와 같아야 한다는 논지를 주창하였는데, 곧 창랑의 주장을 발휘한 것이다. 청 동광 후에는 송시가 다시 존중되어 다시 강서의 실마리를 계승하였으니, 강서시파의 영향을 알 수 있다. 홍매는 이르기를:
시를 짓는 데는(작시에는) 내력이 있어야 하는데, 곧 연원종파가 된다; 그러나 글자 마다 얽매이면 또한 /난삽(拘澁)/하게 된다.{{)作詩要有來歷, 則爲淵源宗派; 然字字執泥, 又爲拘澁.---:《空齋詩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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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것을 가지고서 강서시파의 긍정적인 영향을 보고, 그 잘못된 것(치우치고 잘못된 것)을 피하면, 시를 알고 시를 논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5. 결 론
옛 사람들이 강서시파를 논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는데, 오직 그 득실과 영향만을 비교하여 논하고, 그 파를 세운 유래는 탐구하지 않았으며, 그것이 선학의 영향을 깊이 받은 것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피상적으로 논한 것이 많았는데, 예를 들어 청송 의 <서장태래강서시사종파도록>에서는 이르기를:
시에는 통(계통)과 파(파벌)가 있는데, 나의 벗 /류자산위/가 말하기를: 통(게통)이란 물이 땅에서 흘러서 웅덩이(귀허)에 모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결국 천일에서 나온 것이고, 지류와 별/파/가 얻은 것이 /편거/하여 이름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사독백천이 이미 나눠지면, 나뉘어서 넘치고, 넘쳐서 그 나온 곳을 소급한 후에 파를 칭함으로써 구별하는 것은 대개 한 류의 여지이다. 거인을 산곡이라 이름하는 것은 아마 한 류로써 /작게 하는/ 것이지 높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 류에 덧붙이면(붙이는 것은) 또한(다만) 스스로 /작게 함/이 심하다.{{)詩有統有派, 余友劉子山蔚曰: 統猶水行於地, 匯於歸墟, 而總爲天一之所生, 非支流別 之所得偏據以爲名, 至於四瀆百川之旣分, 分而溢, 溢而溯其所由出, 然後稱派以別之者, 蓋一流之餘地, 居仁之名山谷, 殆以一流小之, 非尊之也, 而附於一流, 抑又自小之甚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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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실로) 강서시파를 충분히 알지 못한 것이다. 려씨가 종파를 칭한 것은 산곡을 /왜소화/시키고(작게 하고) 낮춤으로써 자신을 내세우려는(자牧) 것이 아니라, 황산곡을 높임으로써 /종/을 세운(세우려는) 것이다. 마치 달마가 개종함으로써 교하의 자리를 빼앗은 것과 같다. 강서시파를 살펴보면, 영향이 가장 큰 것은 선학으로써 건립한 시학에 있는데, 《담예록》에서 말한 것과 같다.
엄창랑은 강력히 강서시파를 배척하였지만, 그가 시를 논한 것은 첫째 말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원만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반드시 활구를 참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강서파도>의 작자 려동래의 말과 차이가 없다. 육방옹은 <증응수재>(응수재에 준)시에서 또한 이르기를: 나는 다산의(에게서) 한 /전어/를 얻었는데, 문장은 절대 사구를 참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활이라는 것은 시인들이 / 嚮/하는 공통된 것이지, 일가일파의 사사로운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嚴滄浪力排江西, 而其論詩, 一則曰造語須圓, 再則曰須參活句, 與江西派圖作者呂東萊之說無以異, 放翁贈應秀才詩亦謂: 我得茶山一轉語, 文章切忌參死句. 故知圓活也者, 詩家/ /嚮之公, 而非一家一派之私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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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실제를(사실을) 따지면, 참시(시를 참구하는 것),활법을 제창한 것은 실로 강서파이고, 그것은 /시리/의 깊고 넓음을 얻었기 때문에 제가제파들에 의해 공인되었으며, 그 원류를 추구하면 곧 선학에서 유출된 것이다.
(67년 6월.《中興大學文史學報》제8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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