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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마시는 즐거움

by Casey,Riley 202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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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유일한 음료 미디어 ‘마시즘’은 음료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전달하는 음료계의 흥신소다.
실제로 밥보다 후식으로 나오는 음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식당에 가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우리는 일상의 순간순간 음료를 찾는데, 그 종류와 이유가 제각각이다. 맛에 대한 취향은 좁혀지지 않아서 알고 있는 대의명분을 쥐어짠다. ‘세상사 모든 음료는 물 대신 나온 것이거늘’이라는 음료 허무론부터 시작해 ‘히틀러가 콜라덕후여서 환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세 유럽에 서는 사형수에게 사약 대신 커피를 마시게 했다’, ‘맛있는 맥주를 마시지 못하면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나라가 있다’는 등 엄청난 이야기가 쏟아진다. 
 
마시는 즐거움 
 
 
▣ 저자 마시즘 
 
대한민국 최고의 음료 미디어. 물론 하나 밖에 없어서 하는 허세다. 음료계의 설민석, 음료계의 신상털이, 음료계의 기미상궁 등 각종 별명을 양산하며 편의점과 마트를 떠돌고 있다. 덕후와 전문가 사이를 오가는 음료에 관한 글로 네이버와 카카오 브런치 등에서 인기를 얻으며 각종 음료 마니아층을 모으고 있다. ‘마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루겠다는 포부로 260편이 넘는 콘텐츠를 만드는 동안 636개의 음료를 마시고 11개의 빨대와 7개의 병따개를 리뷰했다. 3주간 숙취 해소 음료 마시기, 직급별 음료 선물로 승진하기, 콜라 신상 사러 도쿄 가기, 라면 스프로 티백 차를 만들어 우려먹기 등 각종 정신 나간 소재 중에서 예의와 교양을 갖춘 글을 골랐다(고 자부한다). 
 
▣ Short Summary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밥이 아니라 한 모금의 음료 다.” 안타깝게도 그날의 음식에는 기름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누구는 중간 중간 벌컥거리며 마시는 물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콜라를 시켜야 할까 고민 중이며, 누군가는 식사를 빨리 마치고 카페에 가고 싶어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술집에 들러 맥주를 한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식탁 위의 동상이몽은 대개 이런 식이다. 우리는 일상의 순간순간 음료를 찾는데, 그 종류와 이유가 제각각이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음료를 고르는 것일까?’ 대부분은 말한다. “그냥.” 조금 더 관심 있는 사람은 맛이나 가격, 성분을 보고 음료를 고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바로 ‘이야기’다. 하나의 음료에는 역사적인 사건부터 개인적인 추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에 매료될수록 음료를 고르는 이유와 취향이 단단해진다. 
 
다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앉아 있는 식탁으로 돌아오자. 결국 그들은 마실 음료를 두고 서로 의견을 말한다. 맛에 대한 취향은 좁혀지지 않아서 알고 있는 대의명분을 쥐어짠다. ‘세상사 모든 음료는 물대신 나온 것이거늘’이라는 음료 허무론부터 시작해 ‘히틀러가 콜라덕후여서 환타를 만들었다’는 이야 기도 나온다. ‘중세 유럽에서는 사형수에게 사약 대신 커피를 마시게 했다’, ‘맛있는 맥주를 마시지 못하면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나라가 있다’는 등 엄청난 이야기가 쏟아진다. 그런 내용을 어디에서 배웠냐고? 바로 대한민국의 유일한 음료 미디어 ‘마시즘’에서다! 마시즘은 음료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전달 하는 음료계의 흥신소다. 실제로 밥보다 후식으로 나오는 음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식당에 가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그렇다. 앞서 말한 상황의 주인공들이 바로 이 책의 저자들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음료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모았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바로 ‘마시는 즐거움’이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마시는 음료에는 엄청난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리고 음료에 담긴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 앗, 너무 거창하게 느껴졌다면 미안. 적어도 일상생활에서 목이 마르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수다스러운 이 책을 읽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마시는 음료가 특별하게 느껴진다면 그것 또한 엄청난 변화가 아니겠는가. 
 
- 2 - 마시는 즐거움 
 
▣ 차례 
 
프롤로그 
 
제1장 마실 것에 감춰진 위대한 이야기 교황이 세례한 사탄의 음료수 / 맥주가 된 위대한 실수 / 와인의 참을 수 없는 유혹 / 생명의 물과 불타는 물, 증류주의 두 이름 / 5,000년 동안 사랑받은 음료의 비밀 / 지극히 사적인 코카콜라의 탄생 / 땀의 역사는 게토레이의 역사다 
 
제2장 엉뚱하지만 진지했던 사람들의 음료 폴란드의 신현준, 전쟁에서 커피를 구하다 / 맥알못, 파스퇴르의 대모험 / 기네스는 왜 이과만 좋아해 / 맥주의, 맥주에 의한, 맥주를 위한 정치 / 대통령이 된 맥주 창고지기 
 
제3장 음료 한 잔이 바꾼 역사 역사상 최대의 부부 싸움은 커피 때문에 일어났다 / 맥주 순수령은 순수하지 못해! / 최초의 007이 중국에서 훔친 것은? / 코카콜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다 / 한 통의 맥주가 전쟁에 미치는 영향 / 코카콜라에는 왜 ORIGINAL TASTE가 적혀 있을까? 
 
제4장 상상이 만든 음료의 신세계 월급은 필요 없고요, 음료수로 주세요 / 천하제일 고도수, 맥주 전쟁 / 우주에 진출한 음료수 / 죽이는맛, 사약을 마신다면? 
 
제5장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 음료의 모든 것아침 드라마 중독자가 보는 하이트와 카스의 맥주 전쟁 / 참이슬과 처음처럼, 순한 소주의 독한 전쟁사 / 오란씨와 써니텐, 환타의 독주를 막아라 / 직장인의 혈관에는 커피믹스가 흐른다 / 갈아 만든 배에서 IdH까지 / 의사의 음료가 사람을 구하다 
 
에필로그 참고문헌 
 
- 3 - 마시는 즐거움 
 
마시는 즐거움 
 
 
마실 것에 감춰진 위대한 이야기 
 
교황이 세례한 사탄의 음료수 “아침을 알리는 한 잔. 식사의 마침표를 찍는 한 잔.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주는 한 잔을 마신다.” 무슨 스핑크스 퀴즈쇼 같은 이야기냐고?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음료 ‘커피’ 이야기다. 커피가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커피가 세상에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나는 커피를 발견하고 지켜온 3명의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다. 
 
커피의 시작은 염소지기: 첫 번째, 여기 위대한 발견을 한 염소지기가 있다. 6-7세기 무렵의 에티오피아, 염소를 돌보며 평생을 보낼 줄 알았던 칼디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다. 어떤 나무 열매를 먹은 염소가 길길이 날뛰는 것이다. 궁금한 칼디도 이 붉은색 나무 열매를 먹어보았다. 곧 온 신경이 또렷해 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염소지기 칼디는 염소처럼 날뛰며 이슬람 수도원의 수도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사연을 들은 수도사는 커피는 악마의 열매라며 불구덩이에 커피를 던진다. 역사적인 커피 로스팅이 시작된 것이다. 불 속에서 타오르는 열매의 그윽한 향기가 수도사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마음이 바뀐 수도사는 타버린 열매를 수거해 음료로 만든다. 바로 커피의 탄생이다. 
 
이슬람 수도사들은 이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들은 야심한 밤에 진행되는 종교 의식에 커피를 마시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후 커피는 메카와 카이로를 비롯한 이슬람 문화 권에 널리 알려진다. 그러면서 소수의 수도사가 아닌 대중의 음료가 된다. 그동안 이슬람교에서는 술이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며 금지시켰다. 하지만 커피는 술 대신에 마실 수 있는 합법적인 대안이 되었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사교 활동을 이어갔다. 도시에는 하루가 다르게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종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이 커피에 취한 것이 분명하다며 커피를 금지할 정도로. 
 
교황님은 사탄의 음료 마니아: 16세기 로마. 이슬람의 전유물인 커피가 유럽에 흘러들어간다. 마실 것이라고는 물 아니면 술밖에 없었던 유럽인들에게 커피는 충격적인 음료였다. “이렇게 시커멓게 생긴 것을 어떻게 마셔!” 하지만 곧 소수의 지식인과 예술가, 힙한 것을 찾는 이들을 중심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이들이 있었다. 이교도들의 음료를 경계하는 신자, 사람의 정신을 깨우는 게 두려운 지배층, 맥주와 와인을 파는 선술집 사장들이었다. 이들은 이교도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고 불렀다. 이슬람교도들이 와인을 마시지 않기에 악마가 커피로 벌을 내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논란이 갈수록 커지자 이들은 당시 교황인 클레멘트 8세에게 사악한 커피를 금지시켜 달라는 청원을 하기에 이른다. 교황은 결정을 내리기 전 커피의 맛을 보았다. 그리고 교황은 그 맛과 향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1605년, 클레멘트 8세는 커피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어째서 사탄의 음료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단 말이냐?” 그리고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당장 커피에 세례를 내려 사탄을 쫓아내고 이를 진정한 기독교의 음료로 명할지어다.” 
 
사약이냐 커피냐, 그것이 문제로다: 교황의 지지를 등에 업고 커피는 유럽 전역에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커피에 대해 불신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18세기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3세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커피가 인간을 서서히 죽게 만든다고 믿었다. 커피가 사람의 정신을 강제로 깨우고, 잠을 못 자게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커피가 독약임을 증명하기 위해 쌍둥이 사형수를 불렀다. 그 
 
- 4 - 마시는 즐거움 
 
리고 1명에게는 커피를 다른 1명에게는 홍차를 마시게 했다. 의사들은 각각의 사형수에게 하루에 3번한 사발씩 커피와 홍차를 마시게 했다. 마침내 실험에 참가한 인물 중 첫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매일 보고를 하던 의사였다. 그리고 곧이어 다른 의사가 죽었다. 그다음에는 구스타브 3세의 차례였다. 그는 암살을 당했다. 남아 있는 죄수들은 실험을 계속했다. 먼저 사망한 사형수는 홍차를 마신 사람이었다. 그의 나이 83세였다. 커피를 마신 죄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실험을 기록하는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오래오래 장수했다. 그리고 스웨덴의 커피 소비가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커피, 근대 이성의 잠을 깨우다: 이슬람에서 건너온 커피는 유럽을 정복한다. 커피를 마시기 전의 유럽 인들은 물이 깨끗하지 않아 항상 맥주나 와인을 마셔야 했다. 커피는 몽롱했던 유럽인들을 또렷하게 깨워주었다. 또 한 가지, 커피를 마시는 커피하우스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토론과 예술 활동이 벌어졌고, 각종 소식들이 오가며 관계를 맺고, 정보를 교류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그렇게 잠도안 자고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 사람들이 이성의 시대인 ‘근대’의 문을 연다. 커피가 근대 이성의 잠을 깨운 것이다. 우리가 흔하게 마셔왔던 이 음료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맥주가 된 위대한 실수 빵을 만든다더니 맥주를 만들었네: 기원전 4000년경 농경사회를 시작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풍부한 보리와 밀을 발효해서 빵 만들기를 즐겨 했다. 하지만 가끔 빵으로 굳지 못하고 액체로 남아버린 실패 작이 있었다. 아까운 마음에 맛을 본 메소포타미아인,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이 바로 맥주의 탄생 비화다. 몇몇 고고학자는 맥주를 양조하려다 실패한 것이 빵이라고 주장하지만 당시 메소포타미아인들 에게 빵과 맥주는 똑같은 양식이었다. 빵은 고체 상태의 맥주였고, 맥주는 흐르는 빵이었다. 물론 최초의 맥주는 지금과 달랐다. 커다란 독 안에 담긴 맥주 위에는 곡식 찌꺼기가 떠 있고, 바닥에는 쓴맛이 나는 잔여물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독에 둘러앉아 빨대를 이용해 맥주를 마셨다. 이 행위에는 ‘이 맥주 안에는 독이 없고, 나는 너를 신뢰해서 함께 마신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맥주가 상했으니 금식 중에 마시거라: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맥주 장인이 모여 있는 곳은 바로 교회였다. 당시 수도사들은 직접 노동을 해서 수도원을 운영해야 했기에 맥주를 양조해 팔았다. 수도사들은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가졌기에 맥주 양조 지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수도사들에게 위기가 있었다. 바로 사순절이었다. 이때는 기도와 절제, 금식을 해야 해서 혹독함, 그 자체였다. 16세기 독일 바이에른 지역, 파울라너의 수도사들은 금식 기간에 액체를 마시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들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맥주를 양조한다. 그리고 이 맥주가 교황에게만 닿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독일에서 로마까지 배송 기간 중에 맥주가 상한다는 사실은 깜빡 잊은 채. 
 
마침내 (하지만 상해버린) 맥주가 로마에 도착했다. 이를 마셔본 교황의 반응은 어땠을까? 교황은 이렇게 맛없는 맥주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이런 맥주라면 사순절 동안 마셔도 별 문제가 생길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이 맥주의 끔찍한 맛에서 절제의 미덕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렇게 교황은 맥주를 사순절 기간에 마시는 것을 허락한다. 파울라너의 수도사들은 비록 안주를 먹을 수 없었겠지만 그들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맥주를 만든다. 각종 과일과 꽃을 넣어 보기도 하고, 맥주에 홉을 넣는 방식을 개발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수도원 맥주는 오늘날 유럽 맥주의 베이스가 되었다. 
 
맥주가 맛이 없어서 혁명이 일어난 나라: 국민 1명당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체코다. 체코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딱 3가지다. 여자와 맥주, 신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은 맥주를 사랑하는 나라 체코에 맥주를 만드는 능력을 주진 않았다. 맛이 너무 없어서 영국이나 독일의 맥주를 수입해야 했다. 1838년, 기어코 불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체코의 도시 플젠에서는 맥주가 맛이 없다는 이유로 술집 주인과 시민들이 36배럴(약 1만 3,000병)의 맥주를 바닥에 쏟아버렸다. 
 
- 5 - 마시는 즐거움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역사는 이를 ‘골든 혁명(Golden Revolution)’이라고 기억한다.
플젠의 시민들은 맛있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브루어리(brewery)를 만들었다. 영국과 유럽의 선진 양조 기술을 배웠고, 독일에서 요제프 그롤이라는 브루어리 마스터를 초빙하기에 이른다. 
 
1842년 11월 11일, 드디어 플젠의 첫 맥주가 베일을 벗는 날. 맥주를 따르자 시민들은 경악을 했다. 
 
플젠의 맥주는 너무나도 맑은 황금빛이었다. 하지만 당시 맥주는 모두 어두운 갈색이었다. 이렇게 또 1만 3,000병을 바닥에 부어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맥주를 마신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플젠의 맥주는 이전까지 마셔본 적이 없는 시원하고 강렬한 맛이었다. 특히나 황금빛의 색깔은 사람들을 현혹시 키기에 충분했다. 플젠의 맥주는 독일과 프랑스, 미국까지 진출한다. 바로 세계 맥주 스타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라거(Lager)’다. 우리는 플젠에서 만든 이 맥주를 ‘필스너 우르켈l’이라고 부른다. 
 
맥주는 평등의 술이다: 맥주는 문명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언제나 인류와 함께해왔다. 상류층만 즐길수 있었던 다른 술과 달리 맥주는 황제의 술이었고, 백성들의 술이었다. 혁명가의 술이기도 했으며, 패배자를 위로하는 술이기도 했다. 맥주는 실수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더욱 너그럽다. 편의점으로 걸어 가며 생각했다. 우리의 삶에서 맥주가 사라지는 날이 오면 문명이란 게 없어질 거라고. 
 
5,000년 동안 사랑받은 음료의 비밀 ‘차(茶)’는 무려 5,000년 넘게 사랑받고 있다. 지금도 매일 38억 명이 차를 마신다고 한다. 대체 무엇 때문에 차 이파리 하나 들어간 음료에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열광해온 것일까? 
 
프로먹방러 신농, 차를 발견하다: 기원전 2,732년 중국.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도 않고 하룻밤 요기를 위해 토끼나 쫓고 다니던 시절이다. 이때 태어난 신농(神農)은 사람들에게 농사를 알려준다. 중국인들은 달력과 도끼, 쟁기 등을 만든 신농을 농사의 신으로 떠받든다. 또한 신농은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수 없는 풀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 실험쥐(?)를 자처했다. 하지만 아무 풀이나 먹으면 떡실신(?)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신농은 풀 뜯어 먹고 중독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로 차 때문이다. 
 
신농이 중국 남부의 산맥 지대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하인들은 끓인 물이 안전하다는 신농의 말에 따라 물을 준비했다. 이때 바람에 날아온 마른 잎이 끓는 물에 떨어졌다. 신농은 신기하고, 궁금해서 한입 마셔보았는데 원기가 회복되고 기운이 돋았다. 차의 발견이었다. 그 뒤로 신농은 식물을 잘못 먹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사람을 볼 때마다 차로 해독을 했다고 한다. 차는 가장 트렌디한 의약품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의학서인 『신농본초경』에는 차의 효능이 담겨 있다. “차는 술처럼 취하지 않으며, 물처럼 오염되거나 독성을 띠지 않는다.” 새로 나온 상품이나 음료수들이 ‘성분빨(?)’을 내세우듯차 역시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찻잔은 사랑을 싣고: 기원전 733년 당나라. 도교사원 용개사의 지적선사는 강가에 버려진 아이를 데려 온다. 그는 아이에게 육우(陸羽)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육우는 훗날 단순히 건강용으로 마시던 차를 맛과 예절의 경지에 올린 차의 성인이 된다. 질풍노도의 시기까지 육우는 그저 차 심부름을 해주는 아이에 불과했다. 도교사원에서 자랐지만 도사가 될 생각은 없었고, 소를 돌보는 일은 지루해했다. 가끔 차를 재배하고 달이는 역할을 했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사원 밖에 있었다. 결국 집을 나가게 되었고 지적선사는 그 뒤로 차를 끊었다. “육우가 만든 차 아니면 맛이 없어.” 
 
세상을 둘러본 육우는 사람들이 마시는 차 맛이 엉망임을 알게 된다. 그는 오랜 방랑 끝에 고향에 돌아와 『다경(茶經)』이라는 책을 낸다. 다경에는 차의 기원부터 찻잎을 따는 법, 제다 과정, 차의 종류와 다기, 수질, 예절 등자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다. 오늘날의 차 문화도 『다경』의 손바 
 
- 6 - 마시는 즐거움 
 
닥 위 셔플댄스에 불과하다. 그때까지도 지적선사는 차를 마시지 않고 있었다. 황제는 생각한다. 육우의 차가 얼마나 맛있기에 그런 것인가? 황제는 지적선사를 궁전에 불렀다. 그리고 지적선사에게 궁전 최고의 차를 대접한다. 차를 잠깐 마신 지적선사는 이내 시무룩해졌다. 그러자 황제는 지적선사 몰래 데려온 육우의 차를 대접한다. 지전선사는 맛을 보더니 경탄한다. “내 아들마저도 이보다 더 좋은 차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황제는 육우의 차를 의심했던 것을 뉘우친다. 그리고 육우와 지적선사, 두 사람은 드디어 재회한다. 차가 단순히 약재가 아닌 맛을 갖춘 음료가 된 순간이다. 
 
음료계의 평론가, 노동의 등장: 건강에도 좋다. 맛도 좋아졌다. 하지만 두 장점만 가지고는 잠깐의 유행으로 그칠 수 있다. 수천 년간 내려온 차의 힘은 당나라 노동(盧仝)이라는 사람이 완성한다. 노동은 차를 발견하지도, 차를 잘 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차를 마시는 사람이었다. 대신 끝내주는 감상평을 남긴 시인이었다. 노동이 남긴 시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은 『칠완다가(七椀茶歌)』다. 7잔의 차를 마시면서 느낀 효능과 감상을 적은 시다. 『칠완다가』의 문장은 중국에서 글 좀 쓴다는 문인은 반드시 외워야 하는 작품이었다. 노동의 『칠완다가』 이후 차를 읊는 시가 많이 나타난다. 좋은 차를 맛보고, 멋진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엘리트의 소양이 된 것이다. 누가 더 차를 잘 만드는지에 대한 차 경연 대회가 열리고 차의 맛을 분별하는 티 테이스터들도 생겼다. 이런 현상은 동양 전체로 퍼져나갔다. 
 
한잔의 차에 담긴 건강과 맛과 문화: 우연히 발견한 마실 것이 약재가 되고, 음료가 되고, 문화로 피어 난다. 차뿐만 아니라 맥주, 와인, 커피, 콜라까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료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다. 하지만 차의 변화는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신농, 육우, 노동이 중국의 거대한 역사에 찻잔을 올려둔 것이 1막이었다면, 2막은 더욱 거칠고 격렬한 양상으로 이어진다. 동양에서 서양으로, 녹차에서 홍차로 차의 경쟁 무대가 옮겨간 것이다. 건강, 맛, 문화에 ‘자본’이라는 값어치가 붙으면서 차와 차를 마시는 인간은 또다시 변한다. 
 
엉뚱하지만 진지했던 사람들의 음료 
 
대통령이 된 맥주 창고지기 “맥주는 역사상 가장 평등한 음료다. 승자를 위하여, 또는 패자를 위로하며 우리는 같은 맥주잔을 들기 때문이다.” 여기 패자를 위한 맥주가 만들어지는 곳이 있다. 시골의 작은 양조장에 찾아온 그는 맥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적어도 1974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더욱더. 그는 양조장 일꾼을 모집한다는 이야기에 이곳을 찾아왔다. 그는 몸을 떨며 자신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바츨라프 하벨, 국가의 감시를 받는 인물입니다.” 
 
국가에 쫓긴 불온 인물은 왜 맥주를 만들었는가?: 하벨은 원래 공산당의 집권을 풍자하는 극을 쓰는 작가였다. 1968년 체코에서 발생한 민주자유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이 일어날 때까지 그는 글의 힘을 믿었다. 하지만 프라하의 봄은 소련에서 내려온 탱크에 의해 꺾인다. 하벨의 글은 금지되었다. 아니, 그들이 막지 않아도 그의 펜은 이미 꺾인 상태였다. 그는 글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양조장에 도착한 하벨은 ‘자신은 공산당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양조장 사람들은 술렁였다. 마침내 양조장 총감독은 청년을 웃으며 환영한다. “괜찮아. 우리 양조장에는 집시들도 있다네.” 
 
하벨의 첫 임무는 맥주 창고지기. 홉과 보릿자루를 나르고, 맥주 통을 옮기는 일이었다. 100리터짜리 맥주 통은 비어 있어도 무게가 94킬로그램에 달할 정도로 무거웠다. 신참인 하벨에게 맥주 통을 옮길 힘이나 요령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결국 양조장 내부 여과 장치를 담당했는데, 그곳에서 진정한 맥주의 맛을 알게 되었다. 맥주는 여과 장치에 들어오기 전의 상태가 가장 맛있다는 것을. 양조가 막끝난 맥주에는 효모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맥주의 향이 더욱 풍부하다. 하지만 통에 넣고 장거리 
 
- 7 - 마시는 즐거움 
 
이동을 하다 보면 폭발할 염려가 있기에 살균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하벨은 자신의 일이 맥주를 망친다고 말했던 것이다. 바쁜 양조장 생활 덕분에 그는 시와 연극, 정치를 잊어갔다. 동료들도 하벨을 조용 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양조장의 추억, 연극이 되다: 그러던 그가 양조장에 사표를 낸다. 당국에서 파견한 비밀경찰 때문이었다. 공산당은 하벨이 양조장에 취직을 시도했을 때부터 그를 고용하지 말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양조 장에서 이런 요청에 응하지 않자, 비밀경찰을 보내 내부에 녹음기를 설치하고 하벨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기보다 무거운 맥주 통을 나르느라 끙끙대는 하벨의 신음 소리밖에 들을 수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하벨도 비밀경찰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폭설이 내리던 날, 비밀경찰들이 그의 집 주변 도로의 눈을 치우지 못하게 함으로써 출근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걸어서 출근하기에 양조장까지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결국 그는 사표를 낸다. 그리고 다시 펜을 잡는다. 
 
1975년, 겨울이 잦아들 때였다. 단번에 작성한 단편극의 이름은 『관객』이었다. 『관객』은 양조장에 취직한 지식인 바넥과 맥주를 좋아하는 상사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상부에서 바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은 상사는 이를 어기고 바넥에게 자신이 알아서 감시하고 보고서를 쓰라고 부탁 한다. 지하에서 알음알음 퍼져나가던 『관객』은 시골 양조장 노동자의 손에까지 들어간다. 그들은 단번에 알았다. 극에 등장하는 바넥과 상사가 누구를 말하는지. 
 
세계에서 가장 맥주를 사랑한 대통령: 창작열을 되찾은 하벨은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가 된다. 그는 언제나 프라하의 맥줏집에서 새로운 세상을 구상했다. ‘프라하의 봄이 피우지 못한 민주화의 꽃을 피우는 것.’ 하벨의 그 꿈은 1989년 11월에 이루어진다.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군중이 프라하 광장에 모였다.
처음에는 배우와 학생들이 모였고, 나중에는 국민의 75퍼센트가 모였다. 그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화 운동을 성공시켰다. 우리는 이를 ‘벨벳 혁명(Velvet Revolution)’이라고 부른다. 부드러운 벨벳 천처럼 피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정권을 교체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벨벳 혁명의 주역인 하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이 된다. 
 
하벨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경호원 몰래 술집에 가기도 했다. 또한 체코를 방문한 인사들은 언제나 하벨의 단골 맥줏집으로 향했다.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그랬고, 미 국무장관이 그랬다. 영국의 록그룹 롤링스톤스도 하벨과 함께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하벨이 대접한 맥주는 체코 최고의 맥주이자 과거 체코 시민들이 만들어낸 라거의 원조 맥주였다. 당연히 진정한 맥주 맛을 보여주기 위해 살균 처리가 되기 전 생맥주만을 고집했다. 이 맥주가 바로 우리가 ‘필스너 우르켈’이라고 부르는 맥주다. 프라하의 봄과 벨벳 혁명. 실패할 때 들었던 그 술이, 성공 후에도 여전하다는 것. 바츨라프 하벨에게 맥주는 음료 이상의 동반자였을 것이다. 우리가 맥주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다. ‘건배!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맥주만은 곁에서 영원하기를!’ 
 
음료 한 잔이 바꾼 역사 
 
한 통의 맥주가 전쟁에 미치는 영향 “한 잔의 맥주는 싸움을 말릴 수 있다. 맥주가 한 통이라면 전쟁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그해. 벨기에의 플랑드르 평원에서 90미터를 사이에 두고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했다. 몇 개월이면 끝날 것이라 여긴 전쟁은 수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계속 되는 참호전. 사람들은 그곳을 ‘죽음의 땅’이라고 불렀다. 화약 냄새와 피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도 하얀 눈이 내렸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전장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삼키는 적막만이 흘렀다. 
 
- 8 - 마시는 즐거움 
 
독일군 진영에서 울려 퍼진 캐럴: 바로 그때, 독일군 진영에서 캐럴이 울러 퍼졌다. 독일군 진영에서 시작된 노랫소리는 점점 영국군 참호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긴장감과 적막감만 가득한 전장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자 영국 병사들은 참호가 따뜻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국 병사들은 말했다. “앙코 르!” 총성을 주고받던 이들은 캐럴을 함께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영국군 참호로 독일 병사가 다가오기 전까지는. 참호에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던 영국 병사들은 급히 총구를 겨누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독일 병사가 양손에 총을 든 대신에 맥주 한 통을 끌고 영국군 참호로 온 게 아닌가. 독일 병사가 말했다. “쏘지 마라! 참호 밖에 나오면 맥주를 주겠다.” 영국 병사 몇 명이 참호 밖으로 맥주를 받기 위해 나갔다. 맥주를 앞에 두고 만난 양쪽 병사들은 악수를 했다. “해피 크리스마스.” 
 
상했지만 황홀했던 전장의 맥주: 내친김에 맥주가 한 통 더 양군의 진영 사이에 놓였다. 서로의 참호 가운데에 두고 나눠 마시기 위함이었다. ‘독일 맥주는 영국 병사들도 굴복시킬 맛이었냐고?’ 안타깝게도 아니다. 함께 잔을 나눈 병사의 회고에 따르면, 그것은 ‘끔찍한 맛’이었다. 독일 맥주가 아닌 근처 양조장에서 주조한, 몇 달 동안 참호 속에서 상해가고 있던 맥주였던 것이다. 하지만 맥주를 마시는 장소는 전장, 그날이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병사들은 와인보다 황홀한 맛을 경험하지 않았 을까? 결국 양측의 지휘관이 긴급하게 만났다. 독일의 장교가 영국군 장교에게 맥주를 권했다. 독일에서 수송한 진짜 독일 맥주였다.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며 잔을 나누는 순간, 맥주 두 통을 중심으로 양쪽 군대는 휴전을 했다. 영국 병사와 독일 병사는 서로 맥주를 나누며 캐럴을 불렀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서로 죽이던 상대였지만, 그 순간 양쪽 병사들은 담배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다. 또이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 전사자들을 위해 합동 장례식도 치렀다. 맥주와 함께 축구도 진행 했다. 3대 
 
2로 독일의 승리였다. 하지만 독일의 마지막 골은 오프사이드였다. 
 
맥주 통은 금세 비었다. 서로의 진영에 돌아갈 시간이다. 지휘관들은 다음 날 아침까지 휴전을 연장하 기로 약속했다. 병사들은 훗날을 기리며 그날의 경험에 대해 편지를 남겼다. 가까이 1월 1일에는 또휴전이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맥주를 마실 것이란 기대를 가진 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너무 많은 이들이 전쟁 속에서 죽어갔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3년 10개월 동안 900만 명이 전사했고, 2,000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그리워하며: 약속은 전쟁이 끝나고 90년 뒤에 이루어졌다. 2008년 12월 독일과 영국 대표단이 죽음의 땅이라 불렸던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이들은 크리스마스 휴전을 기념해 다시 축구 시합을 벌였다. 2대 1, 이번에도 독일의 승리였다. 독일 측에서 이번에는 제대로 된 맥주를 가져 왔다. 그들의 고향 작센 지역에서 생산한 ‘라데베르거 필스너’였다. 크리스마스 맥주는 꽁꽁 얼어붙은 전장을 녹였다.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 음료의 모든 것 
 
참이슬과 처음처럼, 순한 소주의 독한 전쟁사 “한국인이 소주를 마시는 이유는 3가지다.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둘 다 아니거나.” 그렇다. 한국은 기승전소주의 삶을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술(증류주)에 2001년부터 16년 연속 1위를한 술이 바로 ‘참이슬’이다. 2위는 러시아의 ‘스미노프.’ 6위에는 ‘처음처럼’이 있다. 1위와 6위가 소주라니. 대체 이 작은 나라에서 얼마나 마시는 거야? 
 
소주는 원래 달았다?: 할아버지 시대까지는 ‘소주가 달았다.’ 원래 소주는 쌀이나 고구마 등으로 발효를 시킨 후 끓여서 얻는 술이다(불사를 소燒에 술 주酒). 때문에 달콤한 맛과 향이 특징이다. 문제는 만들기가 까다로워 잘못 만들면 불순물이 많이 들어가 숙취로 하루가 지워질 수도 있었다. 
 
- 9 - 마시는 즐거움 
 
1924년 평안도에 자리 잡은 ‘진천 양조상회’도 달콤한 소주를 만들었다. 원숭이 로고를 사용했던 이곳은 1954년 서울로 본사를 옮기며 두꺼비로 로고를 바꾸었다. 그렇다. 이 회사가 오늘날 ‘진로(하이트 진로)’의 효시다. 로고만 바꾼 것이 아니다, 1965년 진로는 소주 생산방식을 바꾸었다. ‘희석식 소주’를 선보인 것이다. 이는 마른 오징어에서 물 짜듯이 값싼 재료에서 기계 증류탑을 이용해 알코올을 97~98퍼센트까지 뽑아내는 방식이었다. 이 강한 알코올(주정)을 물에 타면서 희석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희석식 소주는 기존 소주에 비해 원가가 싸고 만들기가 쉬웠다. 알코올 냄새와 쓴맛이 강하다는게 문제였지만. 할아버지는 말했을 거다. “이건 소주가 아니야!” 당시 소주의 끝판왕은 전라남도 목포 에서 만드는 ‘삼학소주’였다. 단맛이 특징이었던 삼학소주의 시장점유율은 60퍼센트를 넘었다. 그렇다면 쓴맛 나는 소주를 만들었던 진로는 어떻게 삼학을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순전히 정부의 정책 덕분이었다. 1965년 박정희 정부는 ‘양곡관리법(쌀 수요 억제)’을 발표하며쌀 막걸리를 비롯한 기존 소주 증류를 금지시킨다. 소주의 표준이 쌀을 안 써도 되는 희석식 소주가된 것이다. 아무리 소주계의 강자 삼학소주라도 정책에 엇박자를 맞추면 밀주에 불과했다. 그렇게 
 
1970년 12월 진로는 소주 시장 1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한 번도 이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소주병은 어쩌다 초록색이 되었을까?: 이젠 아버지의 시대로! 애주가들에게 소주는 두꺼비와 동의어가 되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소주병은 투명하거나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보통 맥주는 빛 때문에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갈색 병을 쓴다. 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20도가 넘어 유통기한이 없는 소주는 아무런 병에 넣어도 괜찮았다. 뜬금없이 초록색 병에 담긴 소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주인공은 1994년 두산경월(두산)에서 나온 ‘그린’ 소주다. 튀어 보이는 게 첫 번째 목적. 그리고 초록색으로 친환경 이미지까지 노리는 게 다음 목적이었다. 효과는 놀라웠다. 새파랗게 젊은 그린은 한때 시장점유율 20퍼센트까지 차지하며 진로를 추격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다른 소주 회사들도 하나둘 초록색 병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진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린의 추격에 깨달음을 얻은 진로는 1998년 대대적인 리뉴얼을 감행한다. 병을 초록색으로 바꾸는 것은 물론 제조 과정에서 대나무 숯을 사용해서 자연에 가까운 소주를 만든 것이다. 그 전설, 아니 레전드의 이름 바로 ‘참이슬’이 되겠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의 작명가는 동일인?: 참이슬은 ‘진로(참 진眞, 이슬 로露)’의 한자어를 한글로 풀어쓴 것이다. 하지만 애주가들은 참이슬을 굉장히 젊다고 느꼈다. 본격 회춘한 참이슬은 전국의 회식 자리를 평정하며 왕좌를 이어받는다. 그사이 그린은 ‘뉴그린’으로 진화했지만 새로운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산’으로 출시되었다가 산으로 가고 만다. 그리고 2006년 두산은 마지막 카운터를 날린다. 제품 출시 2주를 앞두고도 이름을 정하지 못한 두산은 결국 이름 잘 짓기로 소문난 전문가를 찾는다. 그가 추천한 소주 이름이 바로 ‘처음처럼’이었다. 술을 마신 다음 날에도 처음처럼 개운할 것 같은 이름이다.
좋다! 작명가는 누구일까? 바로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다. 참고로 그는 참이슬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이 마시는 두 술의 이름은 한 사람에게서 나왔다. 
 
문제는 처음처럼이라는 이름이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의 작품 제목이라는 것이었다. 두산과 작명가는 성공회대학교에 1억 원의 장학금을 기탁하는 것으로 <처음처럼>을 소주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받았다. 소주병에 적혀 있는 처음처럼의 글씨는 바로 신영복 교수가 직접 써준 것이다. 작명은 성공적이었다. 
 
어디가 물이 깨끗한가, 소주들의 물 대결: 잘 지은 이름만 처음처럼의 무기가 아니었다. 처음처럼은 ‘세계 최초 알칼리성 환원수’로 만든 술이라고 내세웠다. 즉, ‘대관령의 청정수를 전기분해로 나눠 몸에 좋은 알칼리성만 취한다’는 것이었다. 주당들은 당연히 건강한 술로 여겼다. 소주는 재료가 단순한 술이다. 알코올, 즉 주정은 소주 회사가 아닌 국가에서 지정한 업체가 만들어 제공한다. 때문에 소주가 
 
- 10 - 마시는 즐거움 
 
차별화를 할 수 있는 것은 1퍼센트도 안 되는 첨가물이다. 두산은 처음처럼을 출시하고 소주 업계 6위에서 2위로 도약한다. 대나무 숯을 이용해 불순물을 제거한 깨끗한 소주임을 강조해왔던 디펜딩 챔피언 참이슬에게 오랜만에 상대할 만한 도전자가 나타났다. 
 
대결이다, 포켓몬…… 아니 소주 모델: 과거에는 ‘참이슬의 모델을 맡아야 최고의 여성 스타’라는 공식이 있었다. 깨끗함과 맑음을 내세우는 참이슬은 주로 단아한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했다.
어른들이 기억하는 이영애부터 아이린까지 역대 참이슬 모델은 대부분 이런 이미지였다. 2000년대 초에는 한복을 입고 등장해 단아함의 끝을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도전자인 처음처럼은 도발적이다. 처음처럼의 주인이 두산에서 롯데로 바뀌면서 등장한 광고 모델은 이효리. 애주가들은 술병 라벨에 붙은 이효리 사진을 잔 밑에 붙여 ‘효리주’라는 것을 유행시켰다. 이후 처음처럼은 도시적인 이미지의 모델을 기용했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을 비롯해 대부분 소주 광고는 2030 여성 연예인을 기용한다. 소주의주 소비자가 2030 남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다른 움직임이 벌어졌다. 바로 남성 모델 김건모의 등장이다. 방송에서 줄곧 소주에 대한 애정을 펼쳐왔던 김건모는 결국 대선소주의 모델을 맡았다. 다양한 세대가 소주를 마시는 이때에 ‘진정한 애주가’를 모델로 내세우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가 아닐까. 
 
순한 소주의 독한 전쟁: 물과 이름, 모델로 처음처럼은 참이슬에 맞서는 2인자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각을 세우는 정도만 가능했을 뿐이다. 참이슬은 현재까지도 50퍼센트의 점유율을 가진 1인자다. 남은 승부수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소주의 도수를 바꾸는 것이다. 진로는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알코올 도수 25도를 유지했다. 어른들이 진정한 소주를 25도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식 문화는 가벼워졌다. 또한 늘어나는 여성 애주가들에게 25도 소주는 너무 독했다. 진로는 이런 변화에 맞춰 참이슬을 낸 것이다. 무려 23도의 저도수 소주. 여기에 처음처럼이 기름을 부었다.
“20도짜리 부드러운 소주가 나왔습니다. 여러분!”이라는 외침에 소주의 마지노선은 20도가 되었다. 이에 참이슬은 19.8도를 출시하며 마지노선을 파괴한다. 이에 처음처럼이 19.5도로 응수하고……. 지금은 참이슬과 처음처럼 모두 17도 초반의 소주를 내놓고 있다. 도수가 약해진 만큼 소주를 많이 마시니 매출도 많이 좋아졌다고. 
 
소주 도수는 어디까지 내려갈까? 전문가는 15도가 소주의 마지노선이라고 예측한다. 그 이하면 소주 특유의 알코올 향이 사라지고 물의 느낌이 강해지기 때문이란다. 이를 숨기려면 여러 첨가물을 넣거나, 아예 과일 소주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이미 지역 소주들은 15도짜리를 내놓기 시작했고 기차는 멈출 줄 모른다. 조만간 소주맛 생수(?)의 출현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기쁠 때나 슬플 때 소주 한 잔이 주는 힘: ‘취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한 사치다.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건강도 받쳐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취할 만큼 술을 살 돈이 있어야 한다. 술은 원래 비싼 것이다. 하지만 소주는 부담 없는 가격으로 노동자의 저녁을 위로해왔다. “소주 한 잔하고 털어내자.” 이 말 덕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비롯해 한국 사회 전체가 힘을 낸 시기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취하려고 마시기 보다, 즐기고 싶어 마신다. 소주 회사가 하나뿐이었다면 바뀐 시대에 적응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소주의 맛과 품질을 바꾸고 있다. 그렇게 가장 한국적인 술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 11 - 마시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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