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라는 이름으로 SNS와 팟캐스트 방송을 해온 저자가 작가로서의 전업을 선언하고 쓴 첫 번째 에세이집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 남편으로 살아오다 실패라는 큰 벽에 부딪쳤던 저자는 아들과 장애를 가진 딸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을 특유의 감성어린 필치로 촘촘히 써 내려가고 있 다.
생각보다 잘 지내는 중입니다
▣ Short Summary
장을 보러 마트에 갑니다. 할인행사 매대에 가격을 낮춰 판매를 유도하는 프로모션 제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뭐가 있나 하고 살펴보는데, ‘원플러스원’ 패키지도 눈에 띄네요. 어릴 적 학교에 들어가서 ‘1+1=2’라는 공식을 처음으로 배웠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1+1=할인행사’ 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요. 최근에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5분 차이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요즘에는 덤으로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더는 시험 안 치르고 살아갈 줄 알았는데, 인생은 오히려 삶의 한복판에서 진짜 문제를 내주더라고요. 학교에 다니면서 수학 공식 잘 외우고 영어 문법 잘 익혀서 시험 성적이 잘 나오는 바람에 저는 저 자신이 대단히 잘난 인간인 줄 알고 착각하며 지냈습니다. 젊은 시절, 한때는 높이 비상도 했지만, 끝도 없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자존감은 뭉개지고 하루하루 의미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런 날들을 10년이 넘도록 보내기도 했고요.
요즘 인생이 저에게 주관식으로 묻습니다. “다시 살아가면서 느끼는 점이 무엇인가?”라고요. 저는 대답 합니다. “가족이 참 소중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질문이 날아듭니 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저는 행사 상품 공짜 덤처럼 살아가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똑같은 물건 하나 더 준다고 상품의 가치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가격이 낮아져서 사람들의 관심을 얻어 선택받는 저렴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스포츠에서 전반 전과 후반전이, 공연에서 1막과 2막이 사뭇 다르듯 그렇게 저만의 스토리를 완성하며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어린아이처럼 다시 배우며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육체는 늙어서 기력이 떨어지고 마음 바닥에도 이미 어지럽게 적힌 이야기들로 꽉 차 있어서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의 처음은 아마도 ‘나 자신과 주변을 새롭게 바라보기’가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요즘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 니다. 덤으로 삶을 얻은 50대 아재의 살아가는 이야기, 한번 들어 보실래요?
저자는 아내와 사이가 벌어져 숙려기간을 갖고 있고 아들과 장애를 가진 딸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을 특유의 감성어린 필치로 촘촘히 써 내려가고 있다. 아울러 에세이가 끝나는 말미에 당시의 심정을 표현한 시(詩)들을 곁들여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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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프롤로그
첫 번째 이야기 1-1 혼밥 이야기 / 1-2 싸구려 수건과 결별하기 / 1-3 청소를 하다가 1-4 고기가 진리였는데 / 1-5 새벽 빨래방에서 / 1-6 왼손으로 밥 먹기 1-7 고수부지의 하늘 / 1-8 초라하게 느껴질 때 / 1-9 라면 끓이기 1-10 남성용 보정속옷 착용기 / 1-11 꼰대로 사느니 / 1-12 새로운 도전_여행 1-13 새로운 도전_독서 / 1-14 새로운 도전_팟캐스트 / 1-15 카페에서 글쓰기 1-16 슬럼프를 벗어나려면
두 번째 이야기 2-1 내 마음속의 연탄재 / 2-2 아빠, 허무해 / 2-3 사진을 배우고 싶어 2-4 성인식 선물 / 2-5 차마 깎지 못한 연필 / 2-6 친구 같은 사이 2-7 식당보조 생활 / 2-8 현장에서 배운 것들 / 2-9 부부라는 이름 2-10 아버지, 흔들리는 촛불처럼 / 2-11 만년 소녀, 어머니 2-12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 2-13 뮤지컬이 아니었다면 2-14 즐거운 요리 / 2-15 소확행 모임 / 2-16 차오르는 사랑
세 번째 이야기 3-1 이끼와 활력 / 3-2 돈 때문에 두려워질 때는 / 3-3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3-4 비록 유리 멘탈일지언정 / 3-5 뭔가에 중독되는 진짜 이유 3-6 수조에서 벗어나기 / 3-7 관습을 넘어서는 중입니다 3-8 노화와 맞서는 중입니다 / 3-9 죽음을 예비하는 중입니다 3-10 인생 2막 준비하기 / 3-11 은하수를 바라보며 3-12 연기를 하면서 얻은 것 / 3-13 나에게 사과하기 3-14 딸아이와 함께 하는 바리스타 수업 / 3-15 해돋이를 바라보며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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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잘 지내는 중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혼밥 이야기 여러분은 혼밥 좋아하시나요? 저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밥을 먹었어요. 좋아해서라기보다는 편했기 때문에 어릴 적 부모님께서 너무 많이 다투셨기 때문에 늘 조금은 주눅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밥을 함께 먹으면 금방 친해지고 마음을 여는 사이도 될 수 있을 것같은데 말이죠. 철도 일찍 들어 조숙했어요. 삼 남매의 첫째라서 동생들을 이끌어야 하는 처지였고, 반에서도 반장이나 부반장을 맡으며 늘 책임감을 느끼는 환경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비로소 짐을 벗고 해방된 느낌이 들었나 봐요. 전에는 혼자 밥 먹는다고 하면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소외되었기 때문이 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밥을 먹는 걸 즐겼어요.
이제 시대가 바뀌고 혼밥의 시대가 온 것 같네요. 사방을 둘러보면 1인용 먹거리가 넘쳐서 고르는 데도 힘들 지경이에요. 이렇게 많은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는 건 혼자서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겠지요. 그 사람들이 집밥을 그리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오히려 더 좋아졌어요. 혼밥의 매력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당하게 간섭받을 필요도 없고, 대신에 불필요하게 누군가를 참견할 이유도 없다는 점이 아닐까 해요. 게다가 요즘 나오는 먹거리들이 간편하고 맛도 제법 좋은 편이라서 만족도가 높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름 혼자서 밥을 잘 먹고 지냈는데 요즘은 문득 자문하곤 해요. ‘혼밥’ 하면 ‘혼 자’라는 말에 온통 신경을 쓰느라 혹시 ‘밥을 먹는다’에 무심했던 건 아닐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언제 한번 밥 먹자.”라고 할 때, 그건 단순히 만나서 음식을 위장 속에 채우자는 뜻은 아니잖아요. 거기에는 밥을 먹으면서 사는 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도 말 못할 심정도 나누고, 고민거리도 털어놓자는 뜻인데 제가 살면서 그런 인간적인 교류를 소홀하게 생각한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1인용 제품들에서 문득 비인간적인 느낌이 들어서 씁쓸하기도 해요. 말그대로 음식에서 사람 냄새가 많이 없어져 버린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요. 아마 그릇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플라스틱 용기 비닐봉지, 종이팩, 나무젓가락 등이 주는 산업용품의 재질감 때문에 소비 자인저 역시 산업사회의 한 부품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집밥이라는 게 단순히 집에서 먹는 밥이라는 뜻은 아니잖아요? 거기에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새벽부터 일어나신 어머니의 졸린 하품과 시간 맞춰 음식이 탈 새라 쫄 새라 뒤척인 손길과 음식이 다 만들어지면 많이 먹고 힘내서 열심히 살아가라는 정성스러운 염원이 담겨서 나오는 거잖아요. 오직 합리성과 가격 경쟁력만을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 용기에는 그런 사연이 없죠. 마치 흙과 쇠가 뜨거운 온도를 지나 도자기 그릇들과 숟가락, 젓가락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음식들에도 그런 사연이 녹아들게 되는 것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어느 날은 일회용 즉석 음식들을 꺼내서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커다란 접시에 골고루 담아서 먹어 보았습니다. 용기 하나 바꿨을 뿐인데 보다 인간적이고 정성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지금까지 될 수 있으면 꼭 그런 식으로 먹곤 해요. 가뜩이나 졸혼을 하고 혼자 서 지내는 형편인데, 행여 간편하다는 이점에 매몰되어 그렇게 확보된 남은 시간 동안 기계문명의 부품처럼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아서 말입니다. 어떠세요? 혹시 시간이 된다면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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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초라하게 느껴질 때살면서 초라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인가요? 예전에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초라하다는 감정을 느꼈는데 점점 느낌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누군가 찍어준 단체 사진 속에서 어느 중년 사내의 모습인 나를 발견할 때 초라해지는 느낌이에요. 저 자신의 젊은 날들이 떠오르기 때문이죠. 시간이 참 무심하게 빠르구나 하면서 시간 앞에서 무력하게 작아지는 사실을 느낍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들로 채워주고 싶은데 지출할 수 있는 예산이 부족할 때 초라한 기분이 들어요. 다른 사람들과 경제적인 비교를 해서 작아지는 게 아니라 해주고 싶은 마음 앞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거죠. 사랑이란 게 끝을 알 수없을 만큼 넓고 깊은데 그걸 채우기에는 가진 게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창회나 경조사 자리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들 때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번듯한 명함 한 장, 자신 있게 내밀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슬그머니 망설이는 제 모습을 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서열의 문제가 아닐 텐데 세상에서 통용되는 힘의 논리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못난 마음인 거죠.
젊었을 때는 초라한 기분이 들면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나서는 툭툭 털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지냈 어요. 시간이 내 편이니까, 다시 기회는 올 테니까. 그렇게 희망의 힘으로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같아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 남아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자칫 비참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아집니다. 초라해서 쓸쓸하더라도 비참해지면서 망가지면 안 되는데 하는 위기감이 오고, 그래서 그걸 넘어설 방법을 고민하게 돼요. 외모와 돈과 지위 같은 외부 변수를 바꿀 능력이 안 된다면 멘탈을 강하게 해서 극복하는 수밖에는 없겠지요. 생각을 더 긍정적으로 하고 예전에는 미처 모르고 지나 쳤던 부분을 깨달아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새로운 도전_ 독서 제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지금부터 2년 전 여름이었어요. 그렇게 마음먹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일 년 동안 읽은 책이 평균 두 권도 안됐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결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습관을 몸에 붙이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학창 시절에는 책을 좋아했기에 지금은 일주일에 한 권씩은 무리를 해서라도 읽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나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언뜻 떠오르는 대답은 ‘뭔가 얻기 위해서’ 입니다.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리 비싸지 않은 비용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무형의 지식이나 지혜를 얻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하지만 집이나 자동차나 보석 같은 대상을 수집하듯 지식이나 지혜를 책에서 얻어 보겠다고 접근하는 태도는 결국 소유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런 소유욕을 기반으로 책에 접근하게 된다면 자신이 책에서 얻은 내용들을 과시하고 싶지는 않을까요? 마치 자신의 부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부자들처럼 말이죠. 저도 책으로 얻은 지식을 뽐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걸 느끼곤 합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바람직한 책 읽기 자세는 무엇일까요? 캄캄한 밤바다에서 배들이 운항할 수 있는건 등대가 있어서 가능하듯이 독서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의식이 필요하 다고 봅니다. 저의 목표는 ‘날마다 부정하기’입니다.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었던 내용을 논리적으로 부정하는 책을 찾아서 읽기, 미처 자신이 몰랐던 세상과 느끼지 못하고 지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읽기. 그러니까 저의 ‘날마다 부정하기’란 기존의 생각을 좀 더 합리적으로 바꿔주고, 미처 몰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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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감정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게 말은 참 쉬워도 막상 부딪혀서 해보려고 하면 자꾸만 예전의 관성으로 돌아가서 익숙한 책들만 주워 담곤 해서 힘이 빠질 때도 많더라고요. 그래도 의지를 가지고 제 의식의 지평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그 위로 가지를 치며 넓어질 수 있도록 매일 노력하고 있습 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매일매일 죽고 또다시 그만큼의 세포들이 날마다 새롭게 생겨남으로써, 생명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매일 죽어야 다시 매일 살아난다는 몸의 이치처럼 제 자신도 그렇게 매일 조금씩이라도 자기 부정을 통해 새로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지내는 요즘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아빠, 허무해 몸을 추스른 이후 몇 해 동안은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했어요. 조금 살 만해지면서 뭔가 재기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아 기회를 잡아볼 요량으로 밖으로 분주하게 다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이 자랐고 양육은 대부분 아내가 맡아서 지냈는데 일 년에 한두 번 가족 여행을 가는 정도가 전부였죠. 그러다가 아들이 중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아들이 다니던 중학교는 학교 교칙이 비교적 엄해서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분위기였는데요. 제 아들 녀석을 비롯한 몇 명이 반항을 했던 모양입니다. 수업시간에 무단으로 외출하거나 잠을 자는 등 차곡차곡 쌓이는 벌점에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던 그 아이들이 급기야 사물함을 부수고 화장실에서 물을 뿌리며 소동을 일으키면서 학내 폭력 건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가 되었던 거죠. 이쯤 되니 아내도 두 손을 들고 저한테 도움 요청을 해서 제가 학교로 갔습니다.
징계위원실로 들어가니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앉아 계셨고, 간략하게 위반 내용과 벌점 상황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주에 최종 결과가 발표될 거라는 통보를 받고 방을 나왔는데 아이가 제게 교무실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학생주임께서 돌아가기 전에 꼭 잠시라도 들러 달라고 하셨다는 거예요. 안 좋은 일일까? 걱정스러워서 떨리는 마음으로 교무실 문을 여는 데 학생주 임께서 의외로 밝고 환한 얼굴로 저희 부자를 맞이하시며 한마디 당부를 하셨습니다, <세 얼간이>라는 영화가 최근에 개봉했는데 아이와 꼭 함께 보라는 말씀이셨어요. 고개를 숙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는데 배려해 주시는 마음에 눈물이 흘러서 서둘러 교무실을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아이와 함께 영화 <세 얼간이>를 관람하니 거기서는 얼간이들이 실은 모순에 차 있는 세상에 맞서 어리석을 만큼 저항하는 멋진 청년들의 이야기였는데, 서울에서 부동산 가격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저희 집 주변에는 진짜 얼간이 부모들이 많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물론 저도 그중에 한 명이었고요. 학교에서 나와 아이를 데리고 집 앞 상가에 있는 호프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생맥주 한 잔과 콜라 한 병을 사이에 두고 아들과 마주 앉았는데 어떤 할 말도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그냥 뭐랄까,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 낯설게 느껴지고 눈을 마주치기도 어렵고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치를 보는 건 아들 녀석도 마찬가지였고요. 한참을 지나서 제가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기분이 어때? 아빠는 다음 주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길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들은 대답이 없었고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아들은 콜라를 마시지도 않고 바닥만 쳐다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어서 한마디를 했습니다. “아빠, 나 허무해.” 아이의 입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이 나왔어요. ‘허무’라는 말이 마치 폭음처럼 크게 제 귓가를 때렸습니다. 아이가 다시 고개를 숙이는데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보였어요. 갑자기 숨이 턱 막히다가 식도에서 뭔가가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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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치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과연 뭘까요? 핏줄을 나누어서 DNA 검사를 하면 친자임이 확인되고, 가족 증명서를 떼어보면 거기에 틀림없이 이름이 함께 올라와 있는 게 자식이고 가족임을 증명하는 걸까요?
저는 그때 그동안 제가 아이의 진정한 아빠가 아닌 채 지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어요. 서로의 진심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흐르지 못한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호칭이나 형식은 그저 죽어있는 껍데 기에 불과합니다. 저는 지금도 문득문득 제 아이가 그때 마음을 먼저 열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아 준점을 늘 고맙게 생각해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열려라 참깨’라는 마법의 주문이 동굴 문을 열었듯이, ‘아빠, 허무해’라는 신뢰와 진심의 고백으로 못난 아빠의 굳은 마음의 빗장이 풀리며 그 안으로 사랑하는 제 아이가 들어왔고. 바로 그 순간 저는 비로소 아빠가 되었습니다.
부부라는 이름 사업이 망하고 아내와의 관계도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수입이 여의치 않은 저 때문에 밖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담당하는 일도 맡아서 하랴, 어린 자식들 키워내랴, 틈틈이 경제적 지원을 해주시는 시부모님들 눈치 살피며 죄인처럼 비위도 맞추며 맏며느리 역할도 하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거예요. 마음을 의지할 대상인 남편이 아이들한테만 마음을 쓰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타고난 심지가 굳고 늘 밝은 얼굴로 웃는 모습이 예쁜 사람이었는데 점점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지만 무심하기만 했던 저는 따뜻한 배려와 위로의 말도 변변히 전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일들에도 심사가 뒤틀려 삐지거나 불편한 내색을 비치고 옹졸한 마음에 잔소리타 박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못난 남편 상대하며 자신의 삶을 꿋꿋 하게 버티며 살아낸 아내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결혼제도가 일종의 계약관계라면, 저는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자격도 없는 갑의 위치에서 온갖 특권을 누리며 지냈던 건 아닌지 그런 반성이 들기도 해요. 심근경색을 거쳐 제 삶에 대한 각성의 시간이 찾아오고 그래서 그 반성하는 마음을 담아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상일 텐데, 삶이란게 참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동화책이나 소설에서는 이런 경우 두 사람이 극적으로 화해하고 다시 꿋꿋하고 씩씩하게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스토리로 끝나겠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사실 저와 제 아내는 요즘 숙려기간을 지나고 있어요. 아직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법률적으로 결별하는 것까지 합의를 한 상태입니다.
우리 둘 사이에 근본적인 문제라는 건 과연 뭘까요? 그건 어쩌면 결혼 당시 우리 모두 집에서 빨리 독립하고 싶어서 급하게 서둘러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겉으로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협력했다고는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모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을 부부관계가 없이 지내면서 살가운 정을 느끼며 나누는 게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실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네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둘이서 합의를 하면서 공감한 내용은 하나입니다. 함께 지내면서 서서히 말라서 죽느니 차라리 각자 홀로 서서 남은 생을 활기차고 보람 있게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되묻고 또 고민해 보지만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보이네요. 그리고 더욱 아이러 니한 사실은, 그렇게 거리를 두고 서로의 삶에 집중하면서 둘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고 신뢰가 쌓이는 체험도 적지 않게 생겼다는 점이에요.
그전에는 사소한 일들로 서로 신경이 곤두서서 다투고 그랬을 일들이 이제는 웬만하면 양해하고 협력 하는 과정으로 변했습니다. 그전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마음속에만 머물던 고마움과 미안함과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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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함의 표현들도 부담 없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마치 적당한 거리에 있는 남들에게는 오히려 더 솔직 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앞으로 아내와의 최종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희망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알량한 혼인서류 한 장으로 껍데기를 삼아 그 안에서 곪고 썩어가는 그런 가식적이고 병든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아울러 아이들 양육에도 서로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부부라는 말이 한자로는 서로 다른 뜻이지만 우리말로 보면 똑같은 글자인데,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침 없는 동등한 인격체로 마주 서서 각자 의 삶이 충만한 삶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아버지, 흔들리는 촛불처럼 여러분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마주하기가 참 어렵고 깐깐한 분이셨어요. 잔소리가 심하신 편이었고, 의심도 많으신 분이라 좀 답답하고 그랬죠. 그래도 사업에서 자수성가 하신 분이라 자식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무난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신 점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버지는 말년이 조금 힘드신 편이셨어요. 십 년 전쯤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시고 투병을 하셨는데, 간호하시던 어머니도 힘에 부치시며 당신의 병세가 짙어지셔서 따로 방을 얻어 독립하시게 되었습니다. 까다로운 아버지 수발하는 게 더는 감당이 안 된다고 하시는데 차마 조금 더 참아보시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어머니가 안 계시게 되니 아버지는 어쩔 수없이 혼자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셨는데 나날이 상태가 나빠지시더군요. 간병인 아주머니가 계시긴 해도 워낙 까다로우신 분이라 주말에 방문하면 늘 편편하지 않은 심경을 토로하시는데 사실 진심으로 마음을 쓰며 그 고통이나 불편함을 공감해 드리지 못했던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렇게 혼자 지내신 지 이삼 년이 지나던 어느 날, 실버타운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간병인이 퇴근하고 저녁을 드신 아버지께서 무단으로 외출하셔서 동네를 배회하시다가 낙상을 해서 길바닥에 쓰러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가 인근 병원으로 모셔서 검사를 하고 며칠 입원치료를 하신 후퇴원을 했습니다. 멀쩡히 잘 계시다가 갑자기 무단으로 외출하신 이유를 여쭤보니 밖에서 누가 자신을 협박하는 전화를 해서 지금 당장 나오지 않으면 보복을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었어요. 파킨슨병은 시간이 경과 되면서 신경 퇴행으로 인한 수족 떨림 현상을 지나 차츰 치매나 환각, 우울증 등 인지기능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아버지가 그 단계로 접어드신 듯했습니다. 야간에도 간병인을 붙여 드려야 하는데 아버지는 완강히 이를 거부하셨습니다. 까다로운 성격 탓에 낯선 타인과 어떻게 같이 잠을 잘 수 있느냐는 게 이유였죠.
비상 대책을 위해 가족회의가 열렸습니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제는 요양시설로 옮기자는 게 중론이었는데 제가 혼자서 반대를 했어요. 대신에 제가 저녁에 실버타운으로 들어가서 아버지를 수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가뜩이나 외로워하시던 아버지는 제가 들어가자 반색을 하며 좋아하셨지만, 저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요. 딸아이 저녁을 일찍 차려주고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치매와 비슷한 환각 증상으로 아버지는 같은 말씀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환각을 보시는 경우에 잠을 주무시다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셔서는 출입문과 창문들이 제대로 닫혀 있는지, 누가 들어왔는지 확인을 하고 또 하셨습 니다. 단칸방에서 함께 자고 있던 저는 밤새 몇 번이나 깨서 아버지를 안심시키고 달래느라 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건강도 나날이 나빠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제야 비로소 어머니가 왜 아버지 수발을 하시다가 탈진하셨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오시면 아버지는 참 자상하시고 어린아이처럼 순박하신 모습을 보이셨어
- 8 - 생각보다 잘 지내는 중입니다
요. 지나온 인생역정을 기억나는 대로 차분하게 얘기해 주시는데 처음에는 그마저도 듣기 싫다가 점점 귀를 기울여 아버지가 살아오신 길의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단편적인 기억의 파편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한 사람의 서사가 차츰 살아 움직이며 제게 다가왔습니다. 아버지란 존재는 늘 저에게 소화가 안 되는 음식물처럼 버겁고 답답했는데 빙산이 조금씩 녹아내리듯 차츰 아버지에 대한 해묵은 감정들이 사라지더군요.
10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아버지와 대화하다가 제 마음속에서 강렬한 감정이 솟구치는 경험을 했습 니다. 평생을 나귀처럼 가족이라는 굴레를 어깨에 짊어지고 일하시다가 마지막까지 가족을 위해 헌신 적으로 희생을 하며 쓸쓸히 스러지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난생 처음으로 아버지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모르시고 계속 등을 다독거리며 괜찮 다고 하셨습니다. 평생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화해가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만약 제가 아버지 수발을 들지 못 했었다면 아마 그런 일은 없었을 테죠.
그날 이후 1년 정도를 더 모시고 지내다가 아버지를 요양원 시설로 모셨습니다. 함께 지낼 때도 그렇고 요양원으로 모시고 난 이후에도 그렇고 제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스킨십이 생겼다는 점이었어요.
수시로 아버지의 손을 잡아 드리고 안아 드리곤 했습니다. 요양원 생활을 하시다가 올해는 상태가 더악화되면서 폐렴과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을 세 번이나 들어갔다 오셨지만 아버지 특유의 끈질김으로 꿋꿋이 이겨내셨습니다.
하루 온종일 침상에 누워 계셔서 찾아뵈면 의식이 있기도 하시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는데 저는 갈 때마다 아버지의 뺨을 쓰다듬어 드립니다. 너무 앙상해져서 이제는 손에 스치는 감촉이 뼈마디밖에 없지만 저는 천천히 손가락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어루만집니다. 바람 앞에 마지막 촛불처럼 흔들리는 아버 지의 영혼을 제 손으로라도 막아 드리고 싶어서인지 모르겠네요. ‘아들은 아버지의 그림자를 밟고 자란 다’는 말이 있는데, 한평생을 오직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아버지의 흔들리는 그림자가 크고 짙게 느껴 지는 요즘입니다. (아버지께서는 2018년 11월 15일, 이생에서의 길고 힘든 여정을 마치시고 편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돈 때문에 두려워질 때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자본주의 사회이고, 여기서는 경제활동이 중요 하죠. 문자 그대로 자본, 즉 돈이 중심이 되어 사회의 시스템이 유지 운영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돈을 벌어야만 생활을 영위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가 돈을 얼마나 버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지닌 가치가 평가 되기도 하죠. 그건 마치 수조 속에도 비싼 생선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해산물이 나뉘는 것과도 비슷한 데요. 크게 보면 모두 수조 속에 갇힌 신세라는 걸 생각하면 좀 서글프고 우습기도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우리가 유능한 사회구성원임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하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두려워집니다.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돈 버는 일에 능숙하지 못한 저는 늘 마음 한편이 무거웠습니다. 자신감이 떨어졌다고 해야 하나, 좀 주눅이 드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치열하게 돈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스러운 마음과 감탄이 섞인 찬사가 올라오곤 했죠. TV에서 소개되는 유명 맛집의 사장님들을 봐도 돈을 많이 버는 모습보다는 뭔가 자신감 있고 당당한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 9 - 생각보다 잘 지내는 중입니다
돈을 버는 일에 약하면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돈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것마저 알뜰하지 못하면 그때는 자책감이 들곤 하죠. 저는 돈을 지출하는데 너무 무계획적이어서 이제는 고치려는 생각마저 포기하다시피 했어요. 돈이 많아서 걱정 안 하고 펑펑 쓰는 건 결코 아니고요. 단지 가랑비에 옷이 젖는줄 모르는 것처럼, 야금야금 빚이 조금씩 늘어나는 형편입니다. 알뜰하게 쓰고 남겨서 저축한다는 일은 언감생심이고요. 적은 돈이라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소중하게 모아뒀다가 목돈으로 만들어서 손자의 등록금에 쓰라며 보태 주시는 저희 어머니 앞에서 항상 죄송하고 송구스럽더라고요. 다름 아닌 그런 분의 자식으로 어쩌면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사는지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계속 이래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금전 출납과 관련한 가계부 앱을 남몰래 깔아 보기도 했는데, 한두 달 동안 해보다가 그냥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주변에 좋은 본이 되어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그분들을 닮지 못하는 건 돈에 대한 제 마음가짐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어릴 때부터 뿌리를 내리다 보니 성장하면서도 금전에 관련해서 건강한 가치관을 형성하지 못한 것 같아요.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늘 바쁘셨고 가족보다는 일을 우선시하셨습 니다. 경제적으로는 여유로웠지만, 가족들 간에 정을 주고받는 점에서는 부족하셨죠. 주변 환경에서도 좋은 영향을 받지 못했어요. 번듯한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치열한 암투를 들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죠. 제 무의식 어딘가에서는 돈이라는 게 인간의 행복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너무 많으면 불화의 소지가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은 게 아닌가 해요. 다행히도 이제는 돈을 건강하게 활용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우연한 기회에 기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돈에 관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해가 지나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행위를 하면 할수록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보상이 뒤따르는 걸 체험하며 지내고 있어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처음에는 쓰고 남으면 기부를 한다는 자세였지만, 이제는 저 나름대로 소액투자금을 적립한 통장을 만들고 그 범위 내에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접 기부를 합니다. 최근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는데 아버지 친구분 들이 문상을 오셨다가 저도 모르는 일화를 전해주셨는데요. 아버지가 사업이 한창 잘 나가실 무렵부터 은퇴하실 때까지 아무도 모르게 강원도 모 고등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시며 지내셨다는 얘기였습니다.
아버지에게 그런 면이 있으셨다는 걸 모르고 그저 원망만 하면서 지낸 저 자신이 부끄럽고, 그런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사뭇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어요.
돈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그 본질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꼭 필요한 자리에 놓이게 되면 세상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들고 무엇보다 돈을 잘 운용하는 사람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선물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런 자세로 지낸다면, 돈이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과 자책감을 떨쳐 버리고 어느 정도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평생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를 하시 다가 돌아가신 어느 할머니께서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이 점점 더 크게 와닿는 요즘입니다. “돈은 똥이야. 쌓이면 악취를 풍기지만 뿌리면 거름이 되잖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열심히 일하면서 지내다가 어느 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있죠. 어렵게 얘기 했는데, 쉽게 말하면 백수가 되는 일 말입니다. 다니던 회사가 망하기도 하고, 정리해고를 당하기도 하고, 결혼이나 출산으로 인해 그만두기도 하고, 내가 과연 뭐하면서 사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들어서 사표를 내기도 합니다. 하던 일을 중단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이후에 느끼는 감정은 비슷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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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에 성공해서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면 다행이지만, 백수 생활이 장기화 되면 점점 무력해지고 의욕 상실이 일상화가 되면서 폐인 모드가 됩니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살면서 두 번의 위기가 있었어요. 한 번은 제 나이 서른일곱 살 때 사업에 실패하고 1년 반 정도,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최근에 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40개월가량 백수 생활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일종의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유예를 당하는 셈인데, 심리적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이게 얼마나 무서운가 하면 마치 배 위에서 미끄러져 강물에 빠지면서 점점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때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라는 생각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했습니다.
처음 사업실패로 인한 위기 때는 다행히 주변에서 지인 한 분이 프리랜서로 재기를 할 수 있도록 일거 리를 주시면서 극복할 수 있었어요.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틈만 나면 후배들에게 “사람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비로소 누가 진정한 아군이고 적군인지 알 수 있다”고 역설하곤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사업이 망했던 이유 역시, 사람을 보는 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지냈습니다. 그때 하나 더 깨달은 것은 혹시라도 물에 빠지는 것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온전히 힘을 빼고 그냥 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 이었죠. 중간에 어설프게 살겠다고 발버둥 칠수록 점점 몸에 힘이 빠지게 되더라고요. 오히려 밑바닥 까지 내려가야만 비로소 땅을 딛고 위로 솟구칠 수 있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를 도와주신 지인은 그바닥에서 발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디딤돌 같은 분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최근에 찾아온 위기 때는 양상이 조금 달랐어요. 나이가 들어 경력이 단절되고 백수가 되면, 젊었을 때와는 달리 주변에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더 힘든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대출을 받아 버티면서 보다 근본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앞으로는 인생 2 막이기 때문에 상황이 좋아지면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었죠. 편치 않은 시간이 좀 오래 걸렸지만 온전히 작가로 집중하자고 결정하게 되어 참 기쁩니다. 제가 20년이 넘도록 전념했던 마케팅 기획과 영업 분야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릴수 있었던 건, 한 발자국 떨어져 제 모습을 살필 수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자신이 옳다는 걸 받아들이는 태도, 그런 인정욕구가 제 안에 깊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학교에 다니면서 모범생으로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자긍심을 느꼈고, 회사를 운영하고 프리랜서 활동을 할 때에도 클라이언트 회사의 컨펌을 받고 통장에 용역 대금이 입금되 어야 비로소 자부심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남들에 의해 평가를 받아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판정하는 사람은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될 때 불안하고 초조해집니다.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야 도달하는 곳이 성공이라면, 저는 거기에서 많이 벗어난 자세로 사회생활을 했던 것이죠. 미련을 버리고 후회 없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혹시 새로운 길을 모색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너무 초조하게 여기저기 쫓아다니시는 것보다 차분하게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숨 막히는 상황과 앞길이 막혀서 막막한 상태를 몰라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저는 경력이 끊어 지는 두려움 못지않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경력이 계속 지속되는 상황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닐 수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새 술을 담기 원하신다면, 부대를 돌아보고 수선하고 보강하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버티셨으면 좋겠어요. 준비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 기회는 반드시 찾아 오더라고요.
- 11 - 생각보다 잘 지내는 중입니다
인생 2막 준비하기 아버지가 떠나신 후 저는 오랜 시간 스스로 고립되는 바람에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밀린 숙제를 하듯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개인적으로는 오래 묵은 구태들을 극복하 면서 사회적으로는 경제적인 자립을 일궈서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보람 있게 지내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가능한 일인 듯 보입니다. 네, 이제 저는 초보 작가로 다시 탄생하는 중입니다. 무엇이든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결의를 다지게 마련이죠. 사람들은 그걸 ‘초심’이라고 하는데요, 작가로 탄생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도 앞으로 어떤 마음을 지니고 지내야 할지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깊은 뿌리 같은 그런 마음 말이죠. 그리고 그 마음을 담으면서도 뭔가 잊히지 않고 푯대가 될 만한 말이 없을까 하고 살펴 보게 됩니다. 밤하늘의 북극성이나 밤바다의 등대처럼 말입니다.
제가 앞서 탄생이란 말을 썼는데, 그냥 차분하게 출생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출생이란 말은 왠지 ‘생명’과도 연관이 있어 보여서 독자들에게 생명력 있는 내용으로 오랜 시간 사랑을 받고 싶은 염원도 담기는 것 같아서 더 좋은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인간의 출생’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혹시 아시나요?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거친 난관을 헤치고 달려온 1등 그룹 수백 마리는 난자를 싸고 있는 난구 세포를 없애서 투명대를 만드는데 온 힘을 다 쓰고 탈진하게 되고, 그 뒤에 도착한 2등 그룹 중 하나가 투명대를 거쳐 난자의 세포막과 결합된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정자는 2등이 승자입니다. 반면 난자는 철저하게 승자독식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여러 개의 난포가 경쟁을 시작하지만, 자신의 성장은 촉진시키고 경쟁자들을 퇴화 시키는데 성공한 최종 승자만이 배란에 성공한다고 하네요. 인간의 생명이 시작되는 역사의 첫 페이지에, 생존을 위한 치열한 이기주의와 대의를 위한 헌신 적인 이타주의가 공존한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출생과 관련하여 과학이 전해주는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세상의 그 어떤 탄생 설화들보다 너무 인간적 이어서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앞으로 생명력 있는 글을 쓰기 위해 치열하게 사유하고 헌신적으로 행동하면서 한 발씩 걸어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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