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푸트렐(Jacques Futrelle, 1876-1912)
미국 조지아 주 파이크에서 태어났다. 리치먼드에서 신문사에 근문하다가
보스턴으로 이사하여 <보스턴 아메리칸>지의 편집기자가 되었다. 1895년에
L.메이 필과 결혼했는데, 그녀도 <잡무 담당 비서>(1911)들 여러 권의 책을
썼다.오늘날에도 계속 읽히고 있는 것은 `생각하는 기계'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이지만, 푸트렐은 그밖에 역사소설과 연애소설도 썼다.
1912년 4월에 푸트렐 부부는 영국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를 탔다가, 조난사고를 당했다. 푸트렐은 아내를
구명정에 억지로 태우고, 자신은 배와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이때
6편의 미발표 작품도 함께 가라앉았다고 한다.
수록 작품의 원래 제목은 `The problem of cell 13'이다.
생각하는 기계, 밴 두젠 교수
푸트렐이 창조한 오거스터스 S.F.X. 밴 두젠 교수. 온갖 분야에 정통한 이
탐정은 그러나 `생각하는 기계'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생각하는 기계'의 추리법은 오직 논리가 주체이다. 그런만큼 그는 냉철하
며, 그의 인간미는 극도로 억제되어 있다. 그보다 앞서 태어난 탐정들처럼
예술적인 취향도 없고, 도락을 즐길 줄도 모른다. 생애의 대부분을 `2 더하
기 2는 4다'라는 명제를 입증하는 데에만 바쳐왔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논리
학자이다. 자칫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는 이 같은 점들이 그의 한계가 되기
도 하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은 오히려 이 같은 현대적 매력에 더 큰 사랑을
보내는 것 같다.
`생각하는 기계'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은 모두 48편인데, <13호 독방의
비밀>은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자 푸트렐의 데뷔작이다.
13호 독방의 비밀 (1)
알파벳 26자 가운데 오거스터스 S.F.X 밴 두젠의 이름에 들어가지 않은 글
자들은 나중에 그 신사가 빛나는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거의 모두 그 이름
뒤에 명예롭게 추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거기에 속하는 모든 칭호
와 함께 정식으로 쓰면, 놀랄 만큼 당장한 구조를 이루었다. 그는 Ph.D.(철
학박사)이고, LL.D.(법학박사)이며, F.R.S.(왕립협회 회원)이고, M.D.(의학
박사)이자, M.D.S.(치의학박사)였다. 그는 또한 외국의 여러 대학과 학회에
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몇 가지 다른 칭호―그가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것―도 얻었다.
그의 겉모습도 요란한 이름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다. 그는 호리호리한 몸매
에 가냘픈 어깨를 학자답게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깨끗히 면도한 얼굴은
늘 밀폐된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생활 때문에 병적으로 창백했다. 그는 미
세한 물체를 주의깊게 관찰하는 사람처럼 항상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기 때
문에, 두꺼운 안경을 통해 겨우 보이는 그 눈은 자동판매기의 동전구멍처럼
가늘고 길게 찢어진 연푸른색의 틈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그 눈위에 있는 이마였다. 거의 비정상적일 만큼 높
고 넓은 그 이마 위에는 더부룩한 노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서로 공모하여, 그에게 독특하고 괴상한 개성을 부여해 주고 있었다.
밴 두젠 교수의 먼 조상은 독일인이었다. 그의 조상들은 대대로 과학 분야
에서 명성을 얻었다. 따라서 후손인 밴 두젠 교수가 걸출한 지성을 갖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논리학자였다. 그가 살아온 반
세기 남짓한 세월 가운데 적어도 35년은 오로지 2에 2를 더하면 언제나 4가
된다는 것, 경우에 따라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느때나 그렇게 된
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에만 바쳐졌다. 그는 일단 움직이기 시작한 모든 물
체는 모두 어딘가로 가게 마련이라는 일반 명제를 대체로 존중했고, 조상들
의 정신력이 모두 농축된 그 놀라운 정신력을 주어진 문제에 쏟아넣을 수
있었다. 말이 난 김에 말이지만, 밴 두젠 교수의 모자 치수가 8호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세상 사람들은 밴 두젠 교수가 `생각하는 기계'라는 병명을 갖고 있다는
말을 어렴풋이나마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 이 별명을 붙인 것은 어
떤 신문사로, 그가 체스 시합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였을 때였다. 그는 이
시합에서, 체스를 처음 만지는 사람일지라도 논리적인 사고력만 발휘하면
평생을 체스 연구에 바친 챔피언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입
증해 보였던 것이다. 생각하는 기계! 아마 이것은 그가 가진 명예로운 칭호
를 모두 합한 것보다 그를 더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말일 것이다. 그는 몇
주일이고, 몇 달이고 비좁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지내면서, 동료 과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세계 전체를 흥분시킨 생각들을 잇다라 내놓았기 때문이
다.
생각하는 기계가 손님을 맞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어쩌다 찾아
오는 손님들은 대개 남자였다. 뛰어난 과학자들이 논의의 요점을 주장하고
증명하기 위해 들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기계를 설득하기 위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확신을 갖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이런 손님들 가운데 찰스 랜섬 박사와 앨프레드 필딩이 어
떤 이론을 토론하러 찾아왔다. 그 이론이 어떤 것인지는 여기서는 별로 중
요하지 않다.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대화 도중에 랜섬 박사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소." 생각하는 기계도 똑같이 단호하게 선언
했다. 초조한 듯이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정신은 만물
을 지배하는 주인이오. 과학이 그 사실을 충분히 인식한다면 큰 진보가 이
루어질 거요."
"비행선은 어떻습니까?" 랜섬 박사가 물었다.
"그건 불가능하지 않소." 생각하는 기계가 단언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발
명될 거요. 내가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워낙 바빠나서……"
랜섬 박사는 너그럽게 웃고 나서 말했다.
"전에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 들었지요. 하지만 그런 말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정신은 물질의 주인일지 모르지만, 자신을 활용하는 방법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요. 세상에는 사람의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것이 존재하니까요."
"예를 들면 어떤 거지요?" 생각하는 기계가 물었다.
랜섬 박사는 담배를 피우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이를테면 감옥의 벽은 어떨까요? 감방을 빠져나가는 방법은 아무도 생각
해낼 수 없습니다. 만약 그걸 생각해낼 수 있다면, 얌전히 감방 안에 앉아
있을 죄수는 한 사람도 없겠지요."
"두되와 창의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감방을 떠날 수도 있소. 그 두가
지는 서로 다른게 아니라 똑같은 거요." 생각하는 기계가 퉁명스럽게 말했
다.
랜섬 박사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잠시 뒤에 말했다.
"한 가지 경우를 가정해 봅시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들, 절망과 두려움
에 미칠 것 같아서 탈출할 기회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을 사람들을 가두
어놓는 감방을 예로 들어봅니다. 당신이 그런 감방에 갇혔다면,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오." 생각하는 기계가 선언했다.
"물론……" 필딩 씨가 처음으로 대화에 끼여들었다. "폭탄으로 감방을 날
려버릴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죄수로서 감방 안에 갇혀 있으면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 종류의 일은 결코 없을 거요." 생각하는 기계가 말했다. "당신들이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를 다루듯 나를 다루어도, 나는 감방을 떠날 수 있소."
"감방에 들어갈 때 탈옥하는 데 필요한 연장을 미리 준비해 갖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불가능할걸요." 랜섬 박사가 말했다.
생각하는 기계는 눈에 보이게 짜증을 내며 파란 눈을 깜박거렸다.
"나한테 꼭 필요한 물건만 주고, 언제든 어디에 있는 감방에든 나를 가두
어보시오. 일주일 안에 탈옥해 보일 테니까." 그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랜섬 박사는 흥미를 느끼고, 의자에서 앉음새를 고쳤다. 필딩 씨는 새 시
거에 불을 붙였다.
"밖으로 나오는 방법을 정말로 궁리해낼 수 있다는 겁니까?" 랜섬 박사가
물었다.
"반드시 탈출해 보이게소." 생각하는 기계의 대답이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물론 진심이오."
랜섬 박사와 필딩 씨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면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마침내 필딩 씨가 물었다.
"물론이오." 밴 두젠 교수는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빈정거림이 담겨 있
었다. "나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진리를 사람들한테 납득시키려고 그보다
더 어리석은 짓도 한 적이 있소."
생각하는 기계의 말투는 모욕적이었고, 양쪽의 마음속에는 비슷한 분노가
격렬하게 끓어올랐다. 물론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밴 두젠 교수가
기꺼이 탈옥을 시도해 보겠다고 고집했기 때문에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정
을 보았다.
"그럼 당장 시작합시다." 랜섬 박사가 덧붙였다.
"내일 시작하는 게 좋겠소." 생각하는 기계가 말했다.
"아니, 지금 시작해야 합니다." 필딩 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은 예고
없이 체포되는 겁니다. 물론 비유적으로 체포되는 거지만, 친구들한테 연락
할 기회도 없이 감방에 갇혀,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과 똑같이 엄중한 감시
와 보호를 받게 되는 겁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좋소. 그럼 지금 시작합시다." 생각하는 기계가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치숄름 교도소의 사형수 독방이 어떨까요?"
"치숄름 교도소의 사형수 독방이라……"
"그러면 몸에는 무엇을 지니고 가시겠습니까?"
"되도록 조금만 가져가겠소." 셍각하는 기계가 말했다. "구두, 양말, 바지,
그리고 셔츠."
"물론 몸수색은 허락하시겠지요?"
"나는 모든 죄수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아야 합니다." 생각하는 기계가 말
했다. "나를 특별히 더 엄중하게 감시해도 안 되고, 더 느슨하게 감시해도
안 되오."
이 시험의 허락을 얻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준비가 필요했지만, 세 사
람이 모두 영향력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이 전화로 만족스럽게 해
결되었다. 세 사람이 순전히 과학적인 견지에서 그 실험을 설멸하자, 감옥
의 관리위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지못해 승낙했다. 밴 두젠
교수는 그들이 지금까지 맞이한 죄수들 가운데 가장 저명한 죄수가 될 터였
다.
『추리문학동호회-일반연재 (go CHURI)』 1368번
제 목:[잭 푸트렐] 13호 독방의 비밀 (2) - 밴 두젠 교수
올린이:2880 (남희재 ) 98/08/20 07:19 읽음:183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13호 독방의 비밀 (2)
생각하는 기계는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몸에 걸치기로 한 것들을 다 착용
한 다음, 가정부이자 요리사를 겸하고 있는 작달막한 노파를 불렀다.
"마사, 지금이 정각 9시 27분이오. 나는 지금 나갈 텐데, 오늘부터 일주일
뒤 9시 30분에 이 신사분들과 한 명 내지 두 명의 다른 신사분들이 여기서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요. 랜섬 박사는 아티초크 요리를 무척 좋아한다
는 걸 기억해 두시오."
세 사람은 치숄름 교도소로 차를 몰았다. 전화로 그 일을 보고받은 교도소
장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도소장이 알고 있는 것은 저명한 밴 두젠
교수가 교도소에 들어올 예정이고, 그가 교수를 붙잡아둘 수만 있다면 교수
는 일주일 동안 죄수 노릇을 하게 될 것이며, 교수는 아무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다른 죄수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뿐었다.
"몸을 수색하시오." 랜섬 박사가 지시했다.
생각하는 기계는 몸수색을 받았다. 그에게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바지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빳빳한 흰 셔츠에는 주머니가 하나도 없었
다. 구두와 양말은 벗겨서 조사한 다음 돌려주었다. 랜섬 박사는 이 모든
사전 준비를 지켜보는 동안, 어린애처럼 연약하여 측은한 마음을 불러 일으
키는 육체―핏기없는 얼굴, 가늘고 흰 손―를 눈여겨보고는 이 일에서 자신
이 맡은 역할을 후회할 정도였다.
"정말로 이 일을 하고 싶습니까?" 그가 물었다.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내 말을 납득하시겠소?" 생각하는 기계는 되물
었다.
"아뇨."
"좋소. 그럼 하겠소."
그 말투는 랜섬 박사가 품었던 동정심을 모조리 몰아내 버렸다.
화가 난 랜섬 박사는 이 실험을 끝까지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실험에 실패
하면 밴 두젠 교수의 자부심은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런 자부심은 비난
을 받아 마땅하다고 박사는 생각했다.
"외부 사람과 연락을 취하는 건 불가능하겠지요?" 랜섬 박사가 물었다.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교도소장이 대답했다. "교수님한테는 어떤 종류의
필기도구도 허용되지 않을 겁니다."
"간수들이 교수의 전갈을 외부 사람한테 전하지는 않을까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한마디도 전하지 않을 겁니다." 교도소장이 말했
다. "그 점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간수들은 교수님 말씀을 한마디도 빼놓
지 않고 나한테 보고할 테고, 교수님이 주시는 물건은 모조리 나한테 넘겨
줄 겁니다."
"그만하면 충분한 것 같군요." 필딩 씨가 말했다. 그는 이 문제에 노골적
인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교수가 실패할 경우에는……" 랜섬 박사가 말했다. "그리고 자유를
돌려달라고 요구할 경우에는 당연히 교수를 풀어주어야 한다는 건 알고 계
시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교도소장이 대답했다.
생각하는 기계는 옆에 서서 듣고 있었지만, 이 대화가 모두 끝날때까지 잠
자코 있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세 가지 사소한 것을 요구하고 싶소. 허락하든 말든, 그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이제 와서 특별 대우를 요구하시면 안 됩니다." 필딩 씨가 경고했다.
"그런 따위는 요구하지 않겠소." 생각하는 기계는 쌀쌀맞게 대답했다. "내
가 원하는 건 가루 치약이오. 그게 틀림없는 가루 치약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도록 당신이 직접 사다 주시오. 그리고 5달러짜리 지폐 한 장과 10달러짜
리 지폐 두 장을 갖고 싶소."
랜섬 박사와 필딩 씨, 그리고 교도소장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
다. 가루 치약을 요구한 데에는 놀라지 않았지만, 돈을 요구한 것에는 놀라
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양반이 접속하게 될 사람 가운데 25달러로 매수할 수 있는 사람이 있
습니까?"
"25달러는커녕 2천 5백 달러로도 안 될 겁니다." 교도소장은 단호하게 대
답했다.
"그렇다면 돈을 줍시다." 필딩씨가 말했다. "내 생각엔 전혀 해롭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러면 세번째 요구 사항은 뭡니까?" 랜섬 박사가 물었다.
"내 구두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고 싶소."
사람들은 다시금 놀란 표정으로 눈길을 교환했다. 이 마지막 요구는 어리
석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거기게 동의했다. 이런 요구 사항이 모두
이루어지자, 생각하는 기계는 그가 탈출하겠다고 장담한 감옥 안으로 끌려
갔다.
"여기가 13호 독방입니다." 교도소장이 강철 복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세번
째 문 앞에 멈춰서면서 말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살인범들을 가두어놓는
방이죠.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이 방을 나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방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외부와 연락을 취할 수 없습니다. 나는 거기에 내 명
예를 걸겠습니다. 이 방과 내 사무실 사이에는 문이 세 개밖에 없으니까,
언제든 이상한 소리가 나면 당장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감방이면 되겠소?" 생각하는 기계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빈정거
림이 담겨 있었다.
"훌륭합니다." 핸섬 박사와 필딩 씨가 대답했다.
무거운 강철문이 활짝 열리자, 날쌔게 도망치는 작은 발소리들이 들렸다.
생각하는 기계는 어두운 감방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교도소장은 문을 닫
고, 이중으로 자물쇠를 채웠다.
"감방 안에서 난 저 소리는 뭡니까?" 랜섬 박사가 창살 너머로 물었다.
"쥐들이오. 수십 마리는 되는 것 같군." 생각하는 기계는 짤막하게 대답했
다.
세 사람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자, 생각하는 기계가 불러세웠다.
"교도소장, 지금이 정확히 몇 시요?"
"11시 17분입니다." 교도소장이 대답했다.
"고맙소. 그럼 오늘부터 일주일 뒤 8시 30분에 당신 사무실에서 저 신사분
들을 만나겠소." 생각하는 기계가 말했다.
"만약 당신이 감방에서 나오지 못하면?"
"그 문제에서는 만약이란 없소."
치숄름 교도소는 화강암으로 지은 넓고 큰 4층 건물이었고, 몇 에이커에
이르는 널따란 빈터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높이가 5미터를 넘는 단단한 돌
담이 교도소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아무리 노련한 암벽 등반가도 발판을 찾
을 수 없을 만큼 돌담 안팎이 미끄럽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돌담 꼭대기에
는 또 하나의 예방조치로 끝이 창날처럼 뾰족한 1.5미터 높이의 강철 막대
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이 돌담은 그 자체가 자유와 구속 사이를 가로막는
절대적인 경계선이었다. 설령 죄수가 감방에서 탈출했다 해도 이 돌담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문이다.
교도소 건물은 폭이 7~8미터쯤 되는 뜰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것이 건물에
서 돌담까지의 거리였다. 이 뜰은 낮에는 이따금 약간의 자유를 허락받은
죄수들의 운동장으로 쓰였다. 그러나 13호 독방에 갇힌 죄수들에게는 그러
한 혜택이 주어지지 않았다. 뜰에는 하루 종일 무장한 경비원 네 명이 배치
되어, 한 사람이 교도소 건물을 한쪽씩 맡아 계속 손찰을 돌았다.
밤에도 뜰은 거의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밝혀졌다. 사방에 각각 하나씩 커
져 있는 커다란 아크등은 교도소 담장 위로 높이 솟아 있어서, 경비원들은
무엇이든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그 불빛은 뾰족한 강철 막대가 박힌 담장
꼭대기도 환히 비추었다. 아크등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은 교도소 건물 옆
을 따라 올라가 애자에 이른 다음, 꼭대기 층에서 아크등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까지 뻗어 있었다.
생각하는 기계는 침대 위에 올라서야만 촘촘히 창살이 박힌 감방 창문 밖
을 내다볼 수 있었지만, 이런 모든 것들을 보고 파악했다. 지금은 그가 감
방에 갇힌 다음날 아침이었다. 그는 또한 희미한 모터보트 소리를 들었고
물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날아가는 것도 보았기 때문에, 돌담 너머 어딘가
에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같은 방향에서 사내아이들이 왁자
지껄하게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따금 방망이로 공을 때리는 소리
도 들렸다. 그래서 그는 교도소 돌담과 강 사이에 운동장 같은 빈터가 있다
는 것을 알았다.
치숄름 교도소는 절대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다. 지금까지 그 교도소에서
탈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생각하는 기계는 침대 위에서 창밖을 내다보
고, 그 이유를 당장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감방이 20년즘 전에 지어졌다
는 판단을 내렸지만, 감방 벽은 빈틈없이 단단했고, 창문에 새로 끼운 쇠창
살은 녹슨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창문 자체도 너무 작아서, 쇠창살이 없다
해도 그리로 빠져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보면서도 생각하는 기계는 낙담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고 커다란 아크등을 유심히 바라보
았다. 지금은 눈부신 햇살이 뜰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아크등
에서 건물까지 뻗어 있는 전선을 눈으로 더듬었다. 그 전선은 그의 감방에
서 그리 멀지 않은 건물 옆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갈 게 틀림없다고 그는 판
단했다. 그것은 알아둘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13호 독방은 교도소 사무실과 같은 층에 있다. 다시 말해서, 지하실도 아
니고 위층도 아니었다. 사무실 층에서 계단을 네 단밖에 올라오지 않았으니
까, 이 층의 높이는 기껏해야 지상 1미터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창문 바로
밑에 있는 땅은 보이지 않았지만, 건물에서 돌담 쪽으로 조금 떨어진 땅은
볼 수 있었다. 그 정도 높이면 창문에서 쉽게 뛰어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
건 좋다.
이어서 생각하는 기계는 이 감방까지 어떻게 왔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외곽 경비초소가 있었다. 이 초소는 담장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거기에는 양쪽으로 열리는 무거운 쇠창살문이 있었다. 이 문에는 항상 한
사람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보초는 수많은 열쇠와 자물쇠를 철컥거린 뒤에
야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교도소장의 사무실은 교도소 건물 안에 있었
고, 교도소 뜰에서 그 사무실까지 가려면 작은 눈구멍만 하나 뚫려 있는 튼
튼한 강철문을 통과해야 했다. 그런 다음, 그 실내 사무실에서 그가 지금
갇혀 있는 13호 감방까지 오려면 무거운 나무문 하나와 강철문 두개를 지나
교도소 복도로 들어와야 한다. 게다가 이중 자물쇠로 잠겨 있는 13호 감방
문도 항상 고려해야 한다.
결국 13호 감방에서 바깥 세계로 나가 자유를 찾으려면 무려 7개나 되는
문을 정복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가 거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유리한 점이었다. 교도관은 아침 6시에 음식
을 들고 감방 문 앞에 나타났다. 그 다음에는 정오에 다시 오고, 저녁 6시
에는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밤 9시에는 점호를 하러 왔다. 그게 전부였다.
"이 감옥 체계는 썩 훌륭하게 정비되어 있군." 생각하는 기계는 속으로 찬
사를 보냈다. "밖으로 나가면 감옥 체계를 조금 연구해 봐야겠어. 감옥에서
죄수들을 다루는 데 그렇게 많은 주의력을 발휘하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는
걸."
그의 감방에는 철제 침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
다. 침대는 큰 망치나 줄을 사용하지 않고는 분해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조립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큰 망치도 줄도 없었다. 의자도, 탁자도, 양철
이나 도자기 조각조차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간수는 그가 음식을 먹
는 동안 옆에 지키고 서 있다가, 그가 사용한 나무 숟가락과 그릇을 챙겨
들고 나갔다.
이런 일들이 하나씩 생각하는 기계의 두뇌 속에 새겨졌다. 그는 마지막 가
능성을 검토한 뒤, 감방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붕에서 사방 벽을 따
라 바닥에 이르기까지 모든 돌과 시멘트를 조사했다. 여러 번 주의깊게 바
닥을 발로 굴러보았지만, 바닥은 단단하기 짝이 없는 시멘트였다. 조사가
끝나자, 그는 철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생각하
는 기계인 오거스터스 S.F.X. 밴 두젠 교수한테는 생각할 거리가 있었기 때
문이다.
그때 쥐 한 마리가 그를 방해했다. 그 녀석은 그의 발등을 가로지른 다음,
자신의 대담무쌍함에 놀란 듯 감방의 어두운 구석으로 허둥지둥 도망쳤다.
잠시 후, 눈을 가늘게 뜨고 쥐가 사라진 구석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밴 두젠
교수는 어둠 속에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작은 구슬 같은 눈들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눈을 세어보니 여섯 쌍이었다. 거기에는 그보다 더 많은 눈
이 있을 게 분명하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이어서 생각하는 기계는 침대에 앉은 채 처음으로 감방 문의 아래쪽을 주
목했다. 쇠창살과 바닥 사이에는 5센티쯤 되는 틈이 있었다. 생각하는 기계
는 이 틈에 눈을 고정시킨 채, 구슬 같은 눈들이 모여 있던 구석쪽으로 갑
자기 뒷걸음질쳤다. 놀란 쥐들이 비명을 지르며 쏜살같이 달아났다. 이어서
정적이 깔렸다.
문틈으로 나간 쥐는 한 마리도 없었는데, 이제 감방에는 한 마리의 쥐도
남지 않았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틈일지라도 감방밖으로 나가는 또 다른
통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생각하는 기계는 네 발로 엎드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어둠 속을 더듬으며, 그 통로를 찾기 시작했다.
그의 수색은 마침내 성과를 거두었다. 바닥에서 시멘트와 같은 높이의 작
은 구멍을 발견한 것이다. 구멍은 동그랗고, 크기는 1달러짜리 은화보다 조
금 컷다. 쥐들이 도망친 통로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구멍 속으
로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것은 배수관 같았는데, 지금은 쓰이지 않는 듯 바
싹 마르고 먼지가 끼어 있었다.
이 점을 납득한 그는 다시 한 시간 동안 침대에 앉아 있다가, 작은 창문을
통해 다시 한 번 주변을 조사했다. 외곽을 지키는 경비원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맞은편 담장 옆에 서 있었는데, 생각하는 기계의 머리가 창문에 나타
났을 때 우연히 13호 감방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자는 그
경비원에게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정오가 되자, 간수가 속이 메스꺼워질 만큼 맛이 밍밍한 교도소 점심을 들
고 나타났다. 생각하는 기계는 집에 있을 때는 오로지 살기 위해 음식을 먹
었다. 여기서도 그는 주는 대로 불평없이 음식을 먹었다. 이따금 그는 문
밖에 서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간수에게 말을 걸었다.
"지난 몇 주일 동안 여기서 개수 공사를 한 적이 있소?"
"특별한 건 없습니다." 간수가 대답했다. "4년 전에 담장을 새로 쌓은 정
도지요."
"교도소 건물 자체는 손을 대지 않았소?"
"외부의 목조 부분에 페인트를 새로 칠했지요. 그리고 아마 7년쯤 전에 배
수관을 새로 설치했을 겁니다."
"아아!" 죄수가 말했다. "저기 있는 강은 여기서 알마나 떨어져 있소?"
"100미터쯤 될 겁니다. 아이들이 교도소 담장과 강 사이에서 야구를 하지
요."
생각하는 기계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지만, 간수가 떠날 준비를 하자
물을 청했다.
"여기서는 목이 몹시 마르구려. 그릇에 물을 좀 담아서 여기 놓아둘 수 없
겠소?"
"소장님한테 여쭤보겠습니다." 간수는 대답하고 사라졌다.
30분 뒤에 그는 작은 오지그릇에 물을 담아가지고 돌아왔다.
"소장님이 말씀이, 이 그릇은 계속 갖고 계셔도 좋답니다. 하지만 제가 요
구하면 언제든 저한테 보여주서야 합니다. 그릇을 깨뜨리면 그걸로 끝입니
다. 더 이상은 드릴 수 없습니다."
"고맙소." 생각하는 기계가 말했다. "깨뜨리지 않겠소."
간수는 자기 책무를 수행하러 갔다. 간수가 떠나기 전에 생가하는 기계는
잠시 뭔가를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결국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두 시간 뒤, 그 간수는 13호 감방 문 앞을 지나가다가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생각하는 기계는 감방 구석에 네 발로 엎
드려 있었다. 그 구석에서 겁먹은 쥐들이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간수
는 흥미로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옳지. 드디어 잡았다." 그는 죄수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뭘 잡았다는 겁니까?" 간수가 물었다.
"쥐 한 마리오." 생각하는 기계가 대답했다. "보겠소?"
과학자의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서 작은 회색 쥐가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죄수는 그것을 불빛 쪽으로 가져와서 유심히 바라보았다.
"물가에서 사는 쥐로군." 그가 말했다.
"쥐를 잡는 것보다 더 나은 일은 없습니까?" 간수가 물었다.
"쥐들이 이곳에 있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오." 죄수는 짜증스럽게 대답했
다. "이 녀석을 가져가서 죽여버리시오. 이 쥐가 나온 쥐구멍에는 아직도
수십 마리가 더 있소."
간수는 꿈틀거리며 몸부림치는 쥐를 받아들고 바닥에 힘껏 내동댕이쳤다.
쥐는 한번 찍 소리를 내고는 쭉 뻗어버렸다. 나중에 간수는 이 사건을 교도
소장에게 보고했지만, 교도소장은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날 오후 늦게, 교도소 건물의 13호 감방 쪽을 지키고 있는 외곽 경비원
은 다시 그 창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죄수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어서 한 손이 쇠창살 쪽으로 올라오더니, 무언가 하얀 것이 13호
감방 창문에서 바로 밑에 있는 땅으로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작은 천조각을
둘둘 말아서 5달러짜리 지폐로 묶은 것이었다. 천은 하얀 셔츠감인게 분명
했다. 경비원은 다시 창문을 쳐다보았지만, 얼굴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는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며 돌돌 말린 천과 5달러짜리 지폐를 교도소장
의 사무실로 가져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천에 적혀 있는 글을 간신히 해독
했다. 글씨는 기묘한 잉크 같은 것으로 적혀 있었는데, 잉크가 번져서 희미
해진 부분이 많았다. 바깥쪽 천조각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것을 발견하시는 분은 찰스 랜섬 박사에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아." 교도소장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첫번째 탈출 계획은 실패했군."
그러다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중얼 거렸다. "하지만 왜 이걸 랜섬 박사
한테 보냈을까?"
"그리고 도대체 어디서 펜과 잉크를 구했을까요?" 경비원이 물었다.
교도소장은 경비원을 쳐다보았고, 경비원은 교도소장을 바라보았다. 그 수
수께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교도소장은 천에 쓰
인 글자를 주의깊게 살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그 사람이 랜섬 박서한테 뭐라고 말할 작정이었는지 보세." 마침
내 그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고는 안쪽에 있는 천조각을
펼쳤다.
"아니, 이게 뭐지? 자넨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당황하여 물었다.
경비원은 천조각을 받아들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다니 아이업 방옥 탈는하 도의가 내은것. 이.'
교도소장은 한 시간 동안은 이게 무슨 종류의 암호인가를 궁금해했고, 다
시 반 시간 동안은 죄수가 왜 하필이면 그를 이곳에 있게 만든 장본인인 랜
섬 박사와 연락을 시도했는가를 궁금해했다. 그 다음에는 죄수가 어디서 필
기도구를 구했으며, 또 그 필기도구는 어떤 종류의 것인가를 잠시 생각했다.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교도소장은 다시 한 번 천조각을 조사했다. 그
것은 흰 셔츠를 찢어낸 조각이었고, 가장자리가 울퉁불퉁했다.
이제 천조각은 설명할 수 있었지만, 죄수가 무엇으러 거기에 글을 썼는지
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교도소장은 죄수가 펜이나 연핀을 갖고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게다가 그 글씨는 펜이나 연필로 쓴 것도 아니었
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교도소장은 직접 조사해 보기로 결심했다. 생각하
는 기계는 그의 죄수였다. 죄수들을 감옥에 잡아두라는 것이 그가 받은 명
령이었다. 이 죄수가 외부 사람에게 암호문을 보내어 탈출하려 한다면, 다
른 죄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막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교도소장은 13호 감방으로 갔다. 생각하는 기계는 바닥에 네 발로 엎드려,
쥐를 잡는 게 아니라 쥐들을 겁주는 일에 열중해 있었다. 죄수는 교도소장
의 발소리를 듣고 재빨리 그를 돌아보았다.
"수치스러운 일이오." 죄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쥐들 말이오. 수십
마리는 될 거요."
"다른 사람들은 쥐가 있어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교도소장이 말
했다. "여기 새 셔츠가 있습니다. 입고 계신 셔츠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왜요?" 생각하는 기계가 재빨리 물었다. 그의 말투는 부자연스러웠고, 그
의 태도는 정말로 당황한 것 같았다.
"당신은 랜섬 박사와 연락을 취하려고 했습니다." 교도소장이 엄격하게 말
했다. "당신은 이곳에 갇힌 죄수니까, 그걸 막는 게 제 의무입니다."
생각하는 기계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마침내 말했다.
"좋소. 의무를 수행하시오."
교도소장은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죄수는 바닥에서 일어나 흰 셔츠를
벗고, 그 대신 교도소장이 가져온 줄무늬 죄수복을 입었다. 교도소장은 얼
른 그 셔츠를 받아든 다음, 그 자리에서 당장 암호문이 적힌 천조각과 셔츠
의 찢어진 부분을 대조해 보았다. 생각하는 기계는 흥미로운 듯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비원이 그걸 당신한테 갖다줬군요?" 그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교도소장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당신
의 첫번째 탈옥 기도는 끝난 겁니다."
천조각과 셔츠의 찢어진 부분을 비교해본 교도소장은 흰 셔츠에서 찢겨나
간 부분이 두 곳뿐인 것을 확인하고 만족해했다. 생각하는 기계는 그 모습
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뭘로 쓰셨습니까?" 교도소장이 물었다.
"그걸 알아내는 것도 당신의 의무인 걸로 아는데요." 생각하는 기계는 짜
증스러운 듯이 말했다.
교도소장은 거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지만, 곧 자제심을 되찾고는 감방과
죄수의 몸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펜 대용
으로 썼을지 모르는 성냥개비나 이쑤시개조차도 찾아내지 못했다. 암호문을
쓰는 데 사용한 액체도 똑같은 수수게끼에 싸여 있었다. 교도소장은 눈에
보이게 곤혹스러운 얼굴로 13호 감방을 떠났지만, 찢어진 셔츠를 전리품으
로 얻었다.
"그래, 셔츠 조각에 편지를 쓴다고 해서 감옥을 빠져나갈 수 있는 건 아니
지. 그건 확실해." 교도소장은 자기 만족에 빠져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천
조각을 서랍 속에 집어넣고 사태의 진전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사람이 그
감방에서 빠져나오면, 나는…… 나는 사임할 거야. 빌어먹을."
『추리문학동호회-일반연재 (go CHURI)』 1369번
제 목:[잭 푸트렐] 13호 독방의 비밀 (3) - 밴 두젠 교수
올린이:2880 (남희재 ) 98/08/20 20:47 읽음:194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13호 독방의 비밀 (3)
감옥에 갇힌 지 사흘째 되는 날, 생각하는 기계는 공공연히 간수를 매수하
여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간수가 점심식사를 갖다주고 쇠창살문에 기대에
그가 식사를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생각하는 기계가 말을 걸기 시작
했다.
"감옥의 배수관은 강으로 통해 있지요?"
"그렇습니다." 간수가 대답했다.
"배수관은 무척 작을 것 같은데."
"그리로 기어나가기에는 너무 작지요. 그게 교수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탈출구라면 말입니다." 간수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생각하는 기계는 식사를 끝낼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식사가 끝나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겠지요?"
"네."
"그리고 내가 석방을 요구하면 언제든 석방될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
지요.?"
"네."
"나는 여기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여기 왔소." 죄수는 이렇게 말하
고는 실눈을 뜨고 간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내 탈옥을 도와주는
대가로 경제적인 보상을 받을 생각은 없소?"
간수는 얄궂게도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호리호리하고 연약한 죄수의 체
격과 노란 머리로 더부룩하게 덮인 커다란 머리를 바라보면서, 딱하다는 표
정을 지었다.
"이 감옥은 교수님 같은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을 만큼 어수룩하게 지어지
진 않았을 겁니다." 마침내 간수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탈옥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계획을 한 가지쯤 귀띔해줄 생
각은 없소?" 죄수는 거의 애원하듯 물었다.
"아뇨." 간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5백 달러 주겠소." 생각하는 기계는 열심히 간청했다. "나는 범죄자가 아
니란 말이오."
"안 됩니다." 간수가 말했다.
"천 달러면 어떻겠소?"
"안 됩니다." 간수는 다시 말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의 유혹을 피하기 위
해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간수는 몇 걸음 떼어놓다가 다시 돌아서
서 말했다. "저한테 천 달러를 주신다 해도 교수님을 탈출시킬 수는 없습니
다. 밖으로 나가려면 문을 일곱 개나 통과해야 하는데, 제가 갖고 있는 열
쇠는 두 개뿐이거든요."
간수는 이 일을 모두 교도소장에게 보고했다.
"두번재 계획도 실패했군." 교도소장은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첫번째는 암호 편지였고, 두번째는 매수인가.
간수는 6시에 생각하는 기계의 저녁식사를 들고 다시 13호 감방으로 가다
가, 무슨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발을 멈추었다. 틀림없이 쇠로 쇠를 긁어
대는 소리였다. 간수의 발소리가 나자, 그 소리는 멈추었다. 죄수의 시야에
서 벗어난 곳에 있던 간수는 교묘히 발을 쿵쿵거려 13호 감방에서 멀어져가
는 듯한 발소리를 냈다. 그런 실제로는 같은 지점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꾸준히 쇠를 긁어대는 소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 간수는 발꿈
치를 들고 조심스럽게 감방 문으로 다가가 창살 사이로 감방을 엿보았다.
생각하는 기계는 철제 침대 위에 올라서서 작은 창문의 창살을 무언가로 문
지르고 있었다. 팔이 앞뒤로 움직이는 것으로 미루어보다, 쇠붙이를 자를
때 쓰는 줄로 창살을 깎고 있는 것 같았다.
간수는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여 사무실로 되돌아가서 교도소장을 직접
불러낸 다음, 교도소장과 함께 발꿈치를 들고 13호 감방으로 되돌아갔다.
쇠붙이를 긁어대는 소리는 아직도 들리고 있었다. 교도소장은 만족할 만큼
듣고 있다가, 감방 문 앞에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
"잘 되어갑니까?" 교도소장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생각하는 기계는 침대 위에서 뒤를 홱 돌아보고는 얼른 바닥으로 뛰어내리
더니, 무언가를 감추려고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교도소장은 한 손을 내민
채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 주세요." 그가 말했다.
"싫소." 죄수는 날카롭게 말했다.
"자, 어서 이리 주세요." 교도소장은 재촉했다. "교수님의 몸을 다시 수색
하고 싶진 않습니다."
"싫소." 죄수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건 뭡니까? 줄인가요?" 교도소장이 물었다.
생각하는 기계는 말없이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교도소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낙담 비슷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낙담과 아주 비슷하긴
하지만, 완전히 낙담한 표정은 아니었다. 교도소장은 거의 동정을 느낄 정
도였다.
"세번째 계획도 실패하셨군요? 안됐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몸을 수색하게." 교도소장이 지시했다.
간수는 주의깊게 죄수의 몸을 수색했다. 마침내 그는 바지 어리띠에 교묘
하게 숨겨진 5센티미터 정도의 쇳조각을 찾아냈다. 쇳조각의 한쪽은 반달처
럼 구부러져 있었다.
"오오." 교도소장은 그것을 간수한테서 받아들면서 말했다. "구두 뒤축에
서 빼내신 거로군요." 그는 유쾌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간수는 수색을 계속하여, 바지 허리띠의 반대쪽에서 첫번째 것과 똑같은
쇳조각을 또 하나 찾아냈다. 가장자리가 닳아 있는 것을 보면, 그것으로 창
문의 쇠창살을 문지른 게 분명했다.
"할 수 있었을 거요." 생각하는 기계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섯 달쯤 문지르면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교도소장은 너그럽게 말했다.
죄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교도소장은 그 얼굴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고
개를 저었다.
"이제 포기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난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소." 생각하는 기계가 대답했다.
그러자 교도소장은 간수와 함께 다시 한 번 감방을 철저히 수색했다. 두
사람은 밤방을 샅샅이 뒤지고. 마지막에는 침대를 뒤집어 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교도소장은 몸소 침대 위에 올라가, 죄수가 톱질
을 하고 있던 창살을 조사했다. 창살을 보고 그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열심히 문지르신 덕분에 반짝반짝 윤이 나는군요." 교도소장은 풀죽은 모
습으로 서서 그를 쳐다보고 있는 죄수에게 말했다. 교도소장은 튼튼한 두
손으로 쇠창살을 움켜쥐고 흔들어보았다. 쇠창살은 단단한 화강암 속에 박
혀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교도소장은 쇠창살을 하나씩 차례로 조사한 끝에,
모두 만족스러운 상태인 것을 알았다. 마침내 그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포기하세요, 교수님." 그가 충고했다.
생각하는 기계는 고개를 저었고, 교도소장과 간수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복도를 따라 사라지자, 생각하는 기계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저 감방에서 나가려 한다는 건 미친 짓이에요." 간수가 한 마디했다.
"물론 나갈 수 없지." 교도소장이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영리해, 나
는 그 암호를 뭘로 썼는지 알고 싶네."
이튿날 새벽 4시에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커다란 교도소 전체에 울려퍼
졌다. 심장이 오그라들 만큼 무시무시한 비명소리였다. 건물 중심부에 있는
감방에서 터져나온 그 비명은 소름끼치는 전율과 고뇌, 끔찍한 공포로 가
득 차 있었다. 교도소장은 그 소리를 듣고, 부하 세명과 함께 13호 감방으
로 통하는 긴 복도로 달려갔다.
그들이 달려가고 있을 때, 또다시 그 무시무시한 비명이 들렸다. 그 소리
는 점점 약해져, 비통한 울부짖음으로 바뀌었다. 하얗게 질린 죄수들의 얼
굴이 위층과 아래층의 감방 문에 나타나, 놀란 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13호 감방에 있는 그 멍청이야." 교도소장이 투덜거렸다.
그가 13호 감방 앞에 멈춰서서 안을 들여다보자, 간수 한 명이 플래시를
켰다. `13호 감방에 있는 그 멍청이'는 간이침대에 편안하게 반듯이 드러누
워, 입을 딱 벌린 채 코를 골고 있었다. 그들이 13호 감방을 들여다보고 있
을 때, 위쪽 어딘가에서 또다시 귀청을 찢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교도
소장은 약간 놀란 얼굴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꼭대기
층의 43호 감방에서 한 사내가 감방 구석에 움츠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43호 감방은 13호 감방의 바로 위였지만, 2층과 3층이 그 사이에 끼여 있었
다.
"무슨 일이야?" 교도소장이 물었다.
"고맙게도 소장님이 와주셨군요." 죄수는 이렇게 외치고는 감방 창살에 몸
을 던졌다.
"왜 그래?" 교도소장이 다시 물었다.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죄수는 무릎을 꿇고 교도소장의 몸을 끌
어안았다. 그의 얼굴은 공포에 하얗게 질려 있었고, 두 눈동자는 크게 확대
되어 있었으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는 얼음처럼 차가운 두 손
으로 교도소장의 손을 움텨잡았다.
"저를 이 감방에서 데리고 나가주십시오. 제발 좀 데리고 나가주세요." 죄
수는 간청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교도소장은 조바심이 나서 짜증스럽게 물었다.
"무슨 소리를 들었어요. 무슨 소리를……" 죄수는 이렇게 말하고, 신경질
적으로 감방을 두리번거렸다.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그건……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죄수는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다가 갑자
기 두려움이 폭팔한 듯 말을 이었다. "저를 이 감방에서 데리고 나가주세요.
어디에 쳐넣어도 좋으니까, 여기서 나가게만 해주세요."
교도소장과 세 간수는 서로 눈길을 나누었다.
"이 녀석은 누구야? 무슨 죄를 지었지?" 교도소장이 물었다.
"조지프 밸라드라고 합니다." 간수 한 명이 대답했다. "어떤 여자 얼굴에
염산을 끼얹었답니다. 그 여자는 그것 때문에 죽었지요."
"하지만 그걸 증명할 수는 없어요." 죄수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하지
만 그걸 증명할 수는 없어요." 죄수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무도 증명
할 수 없다구요. 제발 저를 다른 감방으로 옮겨주세요."
죄수는 아직도 교도소장에게 매달려 있었다. 교도소장은 거칠게 죄수의 두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잠시 그곳에 서서, 몸을 움츠리고 있는 불쌍한 죄
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죄수는 어린애처럼 맹렬한 공포에 사로잡힌 것 같았
다.
"이것 봐, 밸라드." 마침내 교도소장이 말했다. "네가 무슨 소리를 들었다 면,
陋?무슨 소린지, 자, 어서 말해봐."
"말할 수 없어요. 못 해요." 죄수가 대답했다. 그는 어느새 흐느끼고 있었
다.
"그 소리는 어디서 들려왔지?"
"모르겠어요. 사방에서…… 아니, 어디에서도 아니에요. 그냥 내 귀에 들
렸을 뿐이에요."
"그건 무슨 소리였지? 사람 목소리였나?"
"제발 대답하라고 하지 마세요." 죄수가 간청했다.
"대답해야 돼." 교도소장은 날카롭게 말했다.
"목소리였어요. 하지만 사람 목소리는 아니었어요." 죄수가 흐느껴 울면서
대답했다.
"목소리이긴 한테, 사람 목소리는 아니라고?" 교도소장은 당황하여 죄수의
말을 되풀이했다.
"숨죽인 소리처럼 분명치 않게 들였어요…… 멀리서…… 유령처럼…… "
죄수는 설명했다.
"그 소리는 감옥 안에서 들려왔나? 아니면 밖에서 들려왔나?"
"어디서도 들려오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냥 여기…… 여기에 있었어요.
사방에…… 나는 그 소리를 들었어요. 분명히 들었다구요."
한 시간 동안 교도소장은 그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밸라드는 갑
자기 태도를 바꾸더니 아무 말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 다른 감방으로 옮
겨주거나, 아니면 날이 밝을 때까지 간수 한 사람을 곁에 있게 해달라고 간
청할 뿐이었다. 이 요구는 둘 다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그리고 이봐." 교도소장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또다시 그런 비명을 지르
면, 징벌방에 쳐넣겠어."
그리고 나서 교도소장은 찌푸린 얼굴로 나가버렸다.
밸라드는 동이 틀 때까지 감방 문 앞에 앉아서, 공포에 하얗게 질린 일그
러진 얼굴을 창살에 눌러대고, 크게 뜬 눈으로 교도소 복도를 뚫어지게 내
다보고 있었다.
그날, 생각하는 기계가 감옥에 갇힌 지 4일째 되는 날은 이 자원하 죄수
덕분에 상당히 활기를 띠었다. 그는 감방의 작은 창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가 맨 처음 한 행동은 또 다른 천조각을 경비원에게 던진 것이었
다. 경비원은 충실하게 그것을 집어들어 교도소장에게 가져갔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교도소장은 그것을 읽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생각하는 기계가 쓴 글은
이제 사흘만 더 감옥에 갇혀 있으면 된다는 뜻이라고 그는 이해했다. 그리
고 그는 그 편지가 교수의 허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는 어떻게 그것
을 썼을까? 생각하는 기계는 이 새 천조각을 어디서 찾아냈을까? 어디서?
어떻게? 교도소장은 천조각을 주의깊게 조사했다. 그 천은 하얀색의 고급
셔츠감이었다. 그는 교수한테서 빼앗은 셔츠를 꺼내어, 처음의 천조각 두개
를 찢어진 부분에 조심스럽게 맞추어 보았다. 이 세번째 조각은 끼여들 여
지가 없었다. 그것은 어느 부분에도 맞지 않았지만, 분명히 같은 옷감이었
다.
"그리고 어디서…… 도대체 어디서 필기도구를 구하는 것일까?" 교도소장
은 전세계를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
넷째날 오후, 생각하는 기계는 감방 창문을 통해 바깥에 있는 무장 경비원
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이 며칠이오?"
"15일입니다." 경비원이 대답했다.
생각하는 기계는 머릿속으로 천문학적 계산을 한 뒤, 그날 밤에는 아홉시
가 지나서야 달이 뜨리라고 확신했다. 이어서 그는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저 아크등은 누가 손보고 있소?"
"전기회사에서 사람이 옵니다."
"그러면 이 건물에는 전기 기술자가 한 사람도 없단 말이오?"
"네."
"교도소가 자체적으로 기술자를 고용하면 오히려 돈을 절약할 수 있을 텐
데."
"그건 제가 참견할 일이 아닙니다." 경비원이 대답했다.
경비원은 그날 생각하는 기계가 유난히 자주 감방 창문에 나타나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 얼굴은 항상 멍청해 보였고, 안경 뒤에서 가늘게 뜬 눈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얼마 후에는 사자처럼 더부룩
한 머리의 존재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다른 죄수들도 똑같은 짓을 하는 것을 보았다. 창문 밖을 내다보는 것은 바
깥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날 오후, 주간 경비원이 야간 경비원과 교대하기 직전에 그 사자 머리가
창문에 다시 나타났다. 생각하는 기계의 손이 창살 사이로 무언가를 내밀
고 있었다. 그것은 5달러짜리 지폐였다.
"당신한테 주는 거요." 죄수가 외쳤다.
여느때처럼 경비원은 그것을 교도소장에게 가져갔다. 그 신사는 지폐를 의
혹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제 13호 감방에서 나온거라면 뭐든지 의심
하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
"저한테 주는 거라고 하더군요." 경비원이 설명했다.
"일종의 팁이겠지." 교도소장이 말했다. "자네가 그걸 받으면 안 될 특별
한 이유라도…… "
그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는 밴 두젠 교수가 13호 감방에 들어갈 때 5
달러자리 지폐 한 장과 10달러짜리 지폐 두 장을 갖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전부 합해서 25달러였다. 그런데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은 그 감방에
서 나혼 첫번째 천조각에 묶여 있었다. 교도소장은 아직도 그것을 갖고 있
었다. 그는 다시 한 번 확인하게 위해 그 지폐를 꺼내어 유심히 바라보았다.
분명 5달러짜리 지폐였다. 그러나 여기에 5달러짜리 지폐가 또 한 장 있다.
생각하는 기계는 10달러짜리 지폐밖에 갖고 있지 않을 텐데, 이 지폐는 어
디서 난 것일까.
"누군가가 10달러짜리를 5달러짜리로 바꾸어 주었겠지." 마침내 그는 이렇
게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는 마음을 정했다. 13호 감방을 이 세상의 어떤 감
방도 그처럼 철저히 수색당해 본 적이 없을 만큼 철저히 수색하자. 죄수가
마음대로 글을 쓰고 돈을 바꾸고 그밖에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다면, 이 교도소는 근본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된 거야. 그는 한밤중
에 13호 감방에 들어가볼 계획을 세웠다. 새벽 3시가 좋을 것 같았다. 생각
하는 기계가 그 모든 불가사의한 일들을 한 이상, 하루 중 어느 때인가는
그 일을 했을 것이다. 밤중에 그런 일들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이치
에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교도소장은 그날 밤 3시에 살금살금 13호 감방으로 내려갔다. 그는
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죄수의 규칙적인 숨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교도소장은 거의 소리도 내지 않고 이중 자물쇠를 연 다음,
감방 안으로 들어가 다시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누워 있는 사람의 얼굴에
느닷없이 플래시를 비추었다.
교도소장이 생각하는 기계를 깜짝 놀라게 해줄 계획이었다면, 그건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그 사람은 조용히 눈을 뜨고는 안경에 손을 뻗으면서, 지
극히 냉정한 말투로 물었기 때문이다.
"누구요?"
교도소장의 수색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수색은
문자 그대로 철저했다. 감방이나 침대의 어느 부분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뚫려 있는 동그란 구멍을 발견하고, 무슨 영감이 번득였는지
그 구멍 속으로 굵은 손가락을 수셔넣었다. 잠시 그곳을 더듬고 있던 교도
소장이 무언가를 꺼내어 플래시에 비춰보았다.
"윽!" 그는 비명을 질렀다.
그가 구멍에서 꺼낸 것은 쥐, 그것도 죽은 쥐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번득
인 영감은 태양 앞의 안개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그는 수색을 계속했다.
생각하는 기계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 죽은 쥐를 감방에서
복도로 차냈다.
교도소장은 침대 위로 올라가 작은 창문에 박힌 쇠창살을 흔들어 보았다.
쇠창살은 모두 단단했다. 문의 창살도 마찬가지였다.
이어서 교도소장은 죄수의 옷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우선 구두부터 조사해
보았다. 아무것도 감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바지 허리띠를 조사
해 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그 다음에는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한
쪽 주머니에서 그는 지페 몇 장을 꺼내어 조사했다.
"1달러짜리 다섯 장이로군." 그는 숨막힌 소리로 말했다.
"그렇소." 죄수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10달러짜리 두 장과 5달러짜리 한 장을…… 도대체…… 어
떻게 한 겁니까?"
"그건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오." 생각하는 기계가 말했다.
"내 부하가 돈을 바꿔주었나요? 교수님의 명예를 걸고 솔직히 말씀해 주십
시오."
생각하는 기계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대답했다.
"아니오."
"그럼 돈을 만드시는 겁니까?" 그는 이제 어떤 것도 믿을 준비가 되어 있
었다.
"그건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니까." 죄수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교도소장은 유명한 과학자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는 놀림당한 기분이었
다. 아니, 그는 교수가 자기를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떻게
놀리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교수가 진짜 죄수라면, 어떻게든 진상을 알
아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아마 지금까지 일어난 그 모든 불가해
한 일들이 그처럼 강렬하게 그의 마음에 와 닿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랫동
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교도소장이 갑자기 홱 돌아서서 감방
을 나가 문을 쾅 닫았다. 그때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시계를 힐끔 바라보았다. 4시 10분 전이었다. 그가 침대에 눕자마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또다시 감옥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는 고
상하진 않지만 감정이 그대로 담긴 말을 몇 다미 중얼거리고, 다시 교도소
복도를 지나 위층 감방으로 달려갔다.
밸라드가 아까처럼 철문에 몸을 힘것 눌러댄 채, 목청껏 비명을 지르고 있
었다. 교도소장이 감방 안으로 플래시를 비추었을 때에야 비로소 비명을 그
쳤다.
"저를 데리고 나가주세요. 여기서 내보내 주세요." 그는 비명을 질렀다.
"내가 했어요. 내가 그랬다구요. 내가 그 여자를 죽였어요. 제발 그걸 치
워줘요."
"뭘 치워달라는 거야?" 교도소장이 물었다.
"내가 그 여자 얼굴에 염산을 부렸어요. 내가 했다구요. 솔직히 자백할게
요. 저를 여기서 내보내 주세요."
밸라드의 상태는 가련했다. 그를 복도로 나오게 한 것은 오직 자비에서 나
온 행동이었다. 밸라드는 마치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복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를 진정시켜 입을 열게 하는 데에는
꼬박 30분이 걸렸다. 그는 감방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지만, 이
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고 지리멸멸했다. 어젯밤 4시가 되기 조금 전에 그는
목소리를 들었다. 무덤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흐릿한 목소리가 구슬프게 울
부짖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뭐라고 했지?" 교도소장이 호기심에서 물었다.
"산…… 산…… 산!" 죄수는 헐떡이며 말했다. "그 목소리는 나를 비난했
어요. 산이라고! 나는 염산을 뿌였고, 그 여자는 죽었어요. 오오!" 죄수는
공포에 질려 오랫동안 몸을 떨면서 울부짖었다.
"산이라고?" 교도소장은 어리둥절하여 죄수의 말을 되풀이했다. 이 사건은
그에게는 너무 벅찼다.
"산요. 내가 들은 건 그것뿐이에요. 그 한마디가 여러 번 되풀이 되었어요.
다른 말도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어요."
"그건 어젯밤이라고 했지? 안 그래?" 교도소장이 물었다. "오늘 밤에는 무
슨 일이 있었지? 지금은 왜 이렇게 겁을 먹은 거야?"
"똑같았어요." 죄수는 헐떡거렸다. "산…… 산…… 산!" 그는 손으로 얼굴
을 덮고 몸을 떨면서 앉아 있었다. "내가 그 여자한테 뿌린 건 염산이었지
만, 그 여자를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나는 그 말을 들었어요. 그건 나를
고발하는 말이었어요. 나를 비난했다구요." 그는 우물거리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다른 소리는 못 들었나?"
"들었어요. 하지만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아주 조금…… 한
마디나 두 마디밖에…… "
"그건 무슨 소리였지?"
"나는 `산'이라는 말을 세 번 들었어요. 그 다음에는 길게 신음하는 소리
가 들렸고,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8호 모자'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 말은 두 번 들렸어요."
"8호 모자?" 교도소장은 되풀이했다. "도대체 8호 모자는 또 뭐야? 죄를
비난하는 양심의 목소리가 8호 모자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건 금시초문이군."
"이 녀석은 미쳤습니다." 간수 한 사람이 다 끝났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 말이 맞아." 교도소장이 말했다. "이 녀석은 미친 게 분명해. 아마
무슨 소리를 듣고 겁을 먹었겠지. 지금은 겁에 질려 떨고 있어. 8호 모자라
고! 도대체…… "
생각하는 기계가 감옥에 갇힌 지 5일째 되는 날이 밝았을 때, 교도소장은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이 일을 빨리 끝내
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는 유명한 죄수가 감옥 생활을 즐기고 있다
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생각하는 기계는 유머
감각을 전혀 잃어버리지 않은게 분명했다. 이 닷새째 되는 날, 그는 또 다
른 천조각을 외곽 경비원에게 던졌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또한 50센트도 아래로 던졌다.
교도소장은 13호 감방의 죄수가 50센트짜리 동전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는 것, 아니 동전뿐만 아니라 펜이나 잉크나 천조각도 갖고 있을 리가 없다
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들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교도소장이 쫓기는 짐승 같은 표정을 짓
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기도 했다.
`산'과 `8호 모자'에 대한 무시무시하고 불가사의한 이야기도 그의 머리에
집요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물론 그 이야기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공포에
질려 범죄를 자백한 미친 살인자의 허튼 소리일 뿐이었다. 그러나 생각하는
기계가 들어온 뒤 교도소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
고 있었다.
6일째 되는 날, 교도소장은 엽서 한 장을 받았다. 엽서 내용은 랜섬 박사
와 필딩 씨가 이튿날인 목요일 저녁에 치숄름 교도소에 갈 예정이고, 밴 두
젠 교수가 그때까지 탈출하지 못했을 경우에는―그들은 교수한테서 아무 소
식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교수가 교도소를 탈출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교도소에서 교수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교수가 탈출을 못했을 경우라고?" 교도소장은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탈출이라니!
생각하는 기계는 그날 세장의 편지로 교도소장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덕분
에 교도소장은 하루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었다. 그 편지들은 여느대처럼
천조각에 적혀 있었고, 대체로 목요일 밤 8시 30분의 약속과 관계있는 내용
이었다. 그 시간은 과학자가 감옥에 갇힐 대 약속한 시간이었다.
7일째 되는 날 오후, 교도소장은 13호 감방 앞을 지나가면서 안을 힐끔 들
여다보았다. 생각하는 기계는 철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가볍게 한숨 자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얼핏 보기에 감방은 여느때와 다름이 없었다. 교도소장
은 그 시각―그때는 4시였다―부터 그날 저녁 8시 30분 사이에는 아무도 그
감방을 떠날 수 없다고 장담할 수도 있었다.
높은 창문에서 한 줄기 햇살이 들어와 자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죄수가 몹시 수척하고 피곤해 보인다는 생각이 처름으로 교도소장의 머리
에 언뜻 떠올랐다. 바로 그대 생각하는 기계가 가볍게 몸을 뒤척였다. 교도
소장은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얼른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그날 저녁 6
시가 조금 지났을 때, 그는 간수를 만났다.
"13호 감방은 별일 없겠지?" 그가 물었다.
"네, 소장님." 간수가 대답했다. "하지만 음식을 별로 드시지 않았습니다."
교도소장은 7시가 지난 직후에 의무를 다했다는 부듯한 기분으로 랜섬 박
사와 필딩 씨를 맞아들였다. 그는 두 사람에게 천조각에 적힌 편지를 보여
주고, 그가 고생한 이야기를 죄다 털어놓을 작정이었다. 그걸 전부 이야기
하자면 시간이 한참 걸릴 터였다. 그러나 그가 미처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강변 쪽 뜰을 지키는 경비원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제가 맡은 쪽의 아크등이 켜지질 않습니다." 경비원은 교도소장에게 보고
했다.
"이런 빌어먹을! 그 사람은 정말 재수없는 사람이군." 교도소장은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이 여기 온 뒤로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니…… "
경비원은 어둠에 묻힌 근무지로 돌아갔고, 교도소장은 전기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는 치숄름 교도소요." 그는 전화에 대고 말했다. "아크등이 하나 고
장났으니까, 서너 명만 급히 좀 보내주시오."
교도소장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뜰로 나간 것을 보면,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게 분명했다. 랜섬 박사와 필딩 씨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때, 정문
을 지키는 경비원이 속달 편지 한 통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랜섬 박사
는 우연히 그 겉봉에 쓰인 주소에 눈길이 쏠렸고, 경비원이 밖으로 나가자
좀더 자세히 그 편지를 살펴보았다.
"맙소사!" 그가 외쳤다.
"무슨 일입니까?" 필딩 씨가 물었다.
박사는 말없이 편지를 내밀었다.
"우연의 일치일 겁니다." 필딩 씨가 말했다. "틀림없어요."
8시가 다 되었을 때, 교도소장이 사무실로 돌아왔다. 전기 기술자들은 왜
건을 타고 도착하여, 지금 아크등을 고치는 중이었다. 교도소장은 정문 경
비원과 연결되어 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전기 기술자는 몇 명이나 들어왔나?" 그는 인터폰 수화기에 대고 물었다.
"네명이라고? 작업복에 잠바를 걸친 기술자 세 명과 감독 한 명? 감독은
프록코트에 실크햇을 썼다고? 좋아. 나중에 네명만 나가는지 확인해. 이상."
그는 랜섬 박사와 필딩 씨 쪽으로 돌아섰다.
"여기서는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 그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빈정거림
이 섞여 있었다. "과학자들을 가두어놓고 있을 때는 더욱 조심해야지요."
교도소장은 속달 편지를 아무렇게나 집어들어 봉투를 찢기 시작했다.
"이걸 읽은 다음에 두 분께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니! 이게
뭐야!" 그는 편지를 힐끔 보고는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는 너무 놀라서 꼼
짝도 하지 않고 입을 딱 벌린 채 앉아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필딩 씨가 물었다.
"13호 감방에서 보낸 속달 편집니다." 교도소장이 헐떡이는 소리로 말했다.
"저녁식사 초대장이에요."
"뭐라고요?" 나머지 두 사람은 똑같이 벌덕 일어섰다.
교도소장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잠시 편지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앉아 있
다가, 복도에 서 있는 경비원에게 날카롭게 외쳤다.
"당장 13호 감방으로 달려가서, 그 사람이 거기에 있는지 확인해."
경비원은 명령대로 달려갔다. 그동안 랜섬 박사와 필딩 씨는 편지를 조사
했다.
"밴 두젠의 필적입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랜섬 박사가 말했다. "밴
두젠의 필적이라면 수없이 보았지요."
바로 그때, 정문과 연결된 인터폰이 울렸다. 교도소장은 멍한 상태로 수화
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뭐? 기자 두 명? 들여보내." 그는 랜섬 박사와 필딩 씨를 홱
돌아보았다. "그 사람이 밖에 나갔을 리가 없습니다. 틀림없이 감방에 있어
요."
바로 그때 경비원이 돌아왔다.
"아직 감방에 있습니다. 소장님." 경비원이 보고했다. "제가 보았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어요."
"그것 보세요. 내가 뭐랬습니까?" 교도소장은 이렇게 말하고, 그제서야 숨
통이 트린 듯 다시 자유롭게 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 편지는 어떻게 보냈
을까요?"
바로 그때, 교도소 뜰에서 교도소장의 사무실로 통하는 철문을 탕탕 두드
리는 소리가 났다.
"기자들입니다." 교도소장이 말했다. "들여보내게." 그는 경비원에게 지시
랬다. 그리고는 다른 두 신사에게 말했다. "이 일에 대해서는 기자들한테
아무 말도 마십시오. 이제 그 이야기라면 진저리가 나니까요."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정문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한 사람이 말했다. 허친슨 해치였다. 교도소장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또 한 사람이 성급하게 말했다. "나요."
그는 생각하는 기계였다.
『추리문학동호회-일반연재 (go CHURI)』 1370번
제 목:[잭 푸트렐] 13호 독방의 비밀 (마지막) - 밴 두젠 교수
올린이:2880 (남희재 ) 98/08/21 23:31 읽음:190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13호 독방의 비밀 (마지막)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교도소장을 노려보았다. 교도소장은 입을 딱 벌린
채 앉아 있었다. 얼마 동안 교도소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랜섬 박사
와 필딩 씨도 물론 놀랐지만, 교도소장이 알고 있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
다. 그들은 그저 놀랐을 뿐이지만, 교도소장은 온몸이 마비되어 버렸다. 기
자인 허치슨 해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된 겁니까?" 교도소장이 마침내 숨
막힌 소리로 물었다.
"감방으로 돌아갑시다." 생각하는 기계는 과학자 동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교도소장은 아직도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멍한 상태로 앞장섰다.
"감방 안을 플래시로 비춰보시오." 생각하는 기계가 지시했다.
교도소장은 지시에 따랐다. 감방의 겉모습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리
고 침대 위에는 생각하는 기계가 누워 있었다. 틀림없었다! 노란 머리가 보
였다! 교도소장은 다시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돌아보고, 별 희한한 꿈도 다
꾸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감방 문을 열었다. 생각하는 기계는 안으로 들어갔다.
"여길 보시오." 그가 말했다.
그가 감방 문 아래쪽 창살을 발로 걷어차자, 창살 세 개가 밖으로 밀려나
왔다. 네번째 창산을 부러져서 복도를 데굴데굴 굴러갔다.
"여기도 보시오." 지금까지 죄수였던 과학자는 침대 위에 올라서서 작은
창문으로 손을 뻗으며 명령했다. 그가 손으로 창문을 한번 휩쓸자, 창살이
모두 빠져버렸다.
"침대 속에 있는 저건 뭡니까?" 교도소장이 물었다. 그는 이제야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가발이오." 생각하는 기계가 대답했다. "이불을 젖혀보시오."
교도소장은 그렇게 했다. 이불 밑에는 둘둘 감은 10미터쯤 되는 굵은 밧줄,
단검 하나, 쇠붙이를 깎는 줄 세 개, 3미터쯤 되는 전선, 가늘면서도 강력
한 강철 펜치, 손잡이가 달린 작은 망치, 그리고 데린저식 권총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교도소장이 다시 물었다.
"여러분은 아홉시 반에 나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잖소." 생각
하는 기계가 말했다. "자, 어서 갑시다. 지금 가지 않으면 늦겠소."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교도소장은 고집스럽게 물었다.
"두뇌를 쓸 줄 아는 사람을 붙잡아둘 수 있다고는 생각지 마시오." 생각하
는 기계가 말했다. "자, 빨리 가지 않으면 늦겠소."
밴 두젠 교수의 집에서 열린 만찬은 조용했다. 손님은 랜섬 박사와 앨프레
드 필딩, 교도소장, 그리고 허친슨 해치 기자였다. 식사는 일주일 전에 밴
두젠 교수가 지시한 대로 정확히 제시간에 마련되었다. 랜섬 박사는 아티초
크가 맛있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식사가 끝나자. 생각하는 기계는 랜섬 박
사 쪽으로 돌아서서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제는 믿겠소?" 그가 물었다.
"믿습니다." 랜섬 박사가 대답했다.
"그게 공정한 실험이었다는 걸 인정하겠소?"
"인정합니다."
다른 사람들, 특히 교도소장과 마찬가지로 랜섬 박사도 생각하는 기계의
설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내셨는지…… " 필딩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내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교도소장이 말했다.
생각하는 기계는 안경을 고쳐 쓰고, 가늘게 뜬 눈으로 손님들을 두어 번
둘러본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처음부터 논리적으로 이야기했다. 지
금까지 그처럼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이는 청주을 앞에 놓고 이야기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몸에 걸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갖지 않고 감방에 들어갔다가
일주일 이내에 그 감방을 떠나기로 약속했소." 그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나는 치숄름 교도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소. 감방에 들어갈 때, 나는
치약 가루와 10달러짜리 두 장과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요구했고, 내 구
두에 구두약을 칠해서 반짝 반짝 윤이 나게 닦아달라고도 요구했소. 이런
요구가 거부되었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을 거요. 하지만 여러분은
내 요구를 들어주기로 동의했소.
감방 안에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리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소. 그래서 교도소장이 나를 감방에 집어넣고 문을 잠갔을 때, 겉보기
에 전혀 해롭지 않은 그 세가지 물건을 쓸모있는 것으로 바꾸지 못하는 한,
나는 분명 무력한 상태였소. 그 물건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라면 누구한
테나 허용되었겠지요? 어떨소, 교도소장?"
"치약 가루와 광낸 구두는 허용되지만, 돈은 허용되지 않았을 겁니다." 교
도소장이 대답했다.
"사용법을 아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어떤 물건이든 위험한 법이오." 생
각하는 기계가 말을 이었다. "그 첫날 밤에는 잠을 자고 쥐를 쫓는 일밖에
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소." 그는 교도소장을 노려보았다. "그 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 나는 그날 밤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소. 그래
서 이튿날로 연기하자고 제안한 거요. 여러분은 내가 외부의 도움으로 탈옥
을 준비할 시간 여유를 갖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오.
나는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 내가 원하는 사람과 연락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소."
교도소장은 잠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엄숙하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
했다.
"이튿날 아침 6시에 간수가 아침식사를 가져와서 나를 깨웠소." 교수는 말
을 이었다. "점심은 낮 12시에, 그리고 저녁은 오후 6시에 한다고 간수가
말해 줍디다. 나는 그 시간 사이에는 대개 혼자지낼 수 있으리라고 짐작했
소. 그래서 아침식사를 끝내자마자, 나는 감방 창문으로 외부 상황을 조사
했소. 창문을 통해서 감방을 바져나가기로 작정한다 해도, 담장을 기어오르
려고 애쓰는 건 헛수고가 되리라는 걸 첫눈에 알았지요. 내 목표는 단순히
감방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교도소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으니까요. 물론
담장을 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식으로 계획을 세우려면 더 많은 시간
이 걸렸을 거요. 그래서 당분간은 그 생각을 모두 잊어벼렸소.
이 첫번째 관찰 결과, 나는 교도소 저편에 강이 있고 운동장도 있다는 것
을 알았소. 이 추측은 나중에 간수가 확인해 주었지요. 그때 나는 또 한 가
지 중요한 사실을 알았소. 바깥쪽에서는 필요하면 누구나 특별한 주의를 끌
지 않고 교도소 담장에 접근할 수 있다는 거였소. 그건 기억해둘 만했지요.
그래서 나는 그 사실을 머리에 새겨두었소.
하지만 바깥에 있는 물건들 가운데 가장 내 관심을 끈 것은 내 감방 창문
에서 불과 1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을 지나 아크등으로 이어져 있는 전
선이었소. 그건 내가 아크등을 꺼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귀중한 역할을 하
게 되리라는 걸 알았지요."
"오오, 그렇다면 오늘밤에 당신이 그 아크등을 꺼버진 겁니까?" 교도소장
이 물었다.
"나는 그 창문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을 전부 알나낸 다음…… " 생각하는
기계는 교도소장의 말참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교도소 내부
를 통해 도망치는 방법을 궁이했소. 나는 그 감방에 어떻게 들어갔는가를
생각해 보았소. 그게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
이오. 나와 바깥 세계 사이에는 문이 일곱 개 있었소. 그래서 그 길로 나가
겠다는 생각도 당분간은 포기했소. 그리고 감방의 단단한 화강암 벽을 뚫고
나갈 수도 없었소."
생각하는 기계는 잠시 말을 끊었다. 랜섬 박사는 시거에 불을 붙였다. 몇
분 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과학적인 탈옥범이 말을 이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쥐 한 마리가 내 발등을 지나갔소. 그건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시해 주었소. 감방에는 적어도 여섯 마리의 쥐가 있었
소. 구슬처럼 반짝이는 그 눈을 여섯 쌍 볼 수 있었지요. 하지만 어떤 쥐도
감방 문 밑을 통해 들어오진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소. 나는 녀석들이 그 길
로 나가는지를 확인하려고, 감방 문을 지켜보면서 녀석들을 일부러 놀라게
했소. 녀석들은 분명 감방 문 밑으로 나가지 않았는데, 모두 다 사라져버렸
소. 쥐들은 다른 길로 나간 게 분명했소. 다른 길로 나갔다는 건 곧 다른
통로가 있다는 뜻이오.
나는 그 통로를 찾아보았고, 결국 찾아냈소. 그건 낡은 배수관이었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오물과 먼지로 일부가 막혀 있더군요. 하지만 그
건 쥐둘이 온 길이었소. 쥐들은 어디선과 왔을거요. 어디서 왔을까요? 배수
관은 대개 교도소 뜰 바깥으로 통해있지요. 이 배수관은 아마 강이나 강 근
처로 통해 있었을 거요. 따라서 쥐들은 그쪽에서 온 게 분명했소. 쥐들이
그 배수관을 통해 왔다면, 배수관 끝에서 왔을 거라고 나는 추리했소. 단단
한 쇠나 납으로 만든 배수관에 출구 이외에 다른 구멍이 뚫린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간수는 내 점심식사를 가져왔을 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해 주었소.
그 자신은 그게 중요한 건지 어떤지도 몰랐겠지만 말이오. 하나는 7년 전에
교도소의 배수관을 새로 설치했다는 거였고, 또 하나는 강이 1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거였소. 그래서 나는 그 배수관이 옛날에 쓰던 배수관
의 일부라는 걸 분명히 알았소. 배수관은 대개 강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져 있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소. 하지만 배수관의 출구가 물 속에 있느냐,
아니면 땅 위로 나 있느냐가 문제였소.
내가 다음에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
해, 나는 내 감방에 들어온 쥐를 몇 마리 잡았소. 간수는 내가 이 일에 열
중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지요. 나는 적어도 12마리를 잡아서 조사해
보았소. 쥐들은 모두 물기 하나 없이 말라 있었소. 쥐들은 배수관을 통해
들어왔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집쥐가 아니라 들쥐였다는 사실이오. 그
렇다면 배수관의 반대쪽 끝은 교도소 담장 밖의 땅 위로 나 있는 게 분며했
소. 거기까지는 순조로웠소.
나는 지금부터 자유롭게 일을 하려면 교도소장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
야 한다는 걸 알았소. 당신들이 내가 탈출하러 감옥에 왔다고 교도소장한테
말한 덕분에, 실험은 휠씬 더 어려웠지요. 그 때문에 나는 거짓 냄새를 피
워 교도소장을 속여야 했으니까요."
교도소장은 슬픈 눈으로 천장을 쳐다보았다.
"첫번째 속임수는 내가 랜섬 박사와 연락을 취하려고 한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었소. 그래서 나는 셔츠에서 찢어낸 천조각에 랜섬 박사 앞으로 편지를
쓰고, 그것을 5달러짜리 지폐로 묶은 다음 창 밖으로 던졌소. 나는 경비원
이 그걸 교도소장한테 가져가리나는 걸 알았지만, 교도소장이 그걸 랜섬 박
사한테 보내주기를 기대했소. 그 첫번째 천조각을 갖고 있소, 교도소장?"
교도소장은 암호문을 꺼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가 물었다.
"거꾸로 읽어보시오. `이'자부터 시작해서, 낱말 사이의 띄어쓰기는 무시
하고 읽어보시오." 생각하는 기계가 지시했다.
교도소장은 그 지시에 따랐다.
"이, 것, 은…… " 그는 글자를 한 자씩 읽으면서 잠시 그것을 들여다보다
가, 이윽고 싱긋 웃으면서 단숨에 읽어내렸다.
"이것은 내가 의도하는 탈옥 방법이 아니다."
교도소장은 여전히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게 당신의 관심을 끌리라는 걸 알았소. 사실이 그랬지만…… " 생
각하는 기계가 말했다. "그리고 그 뜻을 정말로 알아냈다면, 그건 정중한
비난이 되었을 거요."
"도대체 뭘로 이 글을 쓰셨습니까?" 랜섬 박사는 천조각을 조사해 보고 필
딩 씨에게 건네주면서 물었다.
"바로 이것이오." 지금까지 죄수였던 과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한쪽 발을
쭉 뻗었다. 그 발에는 그가 감옥에서 신었던 구두가 신겨져 있었지만, 광택
은 나지 않았다. 구두약이 말끔히 벗겨져 있었다. "검은 구두약을 물로 축
축하게 적신 게 내 잉크였쏘. 구두끈 끝에 달려 있는 뾰족한 금속은 아주
좋은 펜이 되었지요."
교도소장은 천장을 쳐다보며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안도감과 즐거움
이 뒤섞인 웃음이었다.
"정말 놀라운 분이군요." 그는 감탄한 듯이 말했다. "어서 계속하십시오."
"내가 의도한 대로, 그 편지 때문에 교도소장은 내 감방을 일찍 수색하게
되었소. 나는 교도소장이 내 감방을 수색하는 버릇을 갖게 하고 싶었소. 아
무리 수색해도 번번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정나미가 떨어져서
수색을 그만둘 테니까 말이오. 결국에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요."
교도소장은 얼굴을 붉혔다.
"교도소장은 그때 내 흰 셔트를 빼앗아가고, 그 대신 죄수복을 주었소. 내
셔츠에서 찢겨져 나간 부분이 첫번째 편지에 쓰인 두 조각뿐인 것을 교도소
장은 확인했지요. 하지만 교도소장이 내 감방을 수색하는 동안, 나는 그 셔
츠에서 찢어낸 사방 25센티쯤 되는 천조각을 작은 공처럼 돌돌 말아서 내
입 속에 집어넣고 있엇어요."
"그 셔츠에서 사방이 25센티나 되는 천조각을 찢어냈다고요?" 교도소장이
물었다. "도대체 그건 어디서 난 겁니까?"
"빳빳한 읜 셔츠의 가슴 부분은 모두 세 겹으로 되어 있소." 생각하는 기
계가 설명했다. "나는 가운데 들어 있는 천을 떼어내고, 가슴 부분에는 두
겹만 남겨 놓았지요. 당신이 그걸 알아차리지 못 하리라는 건 알고 있었소.
그 얘기는 이 정도로 해둡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교도소장은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교도소장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어, 당분간은 교도소장 문제를 처리했기
때문에, 나는 자유를 향하여 엄숙한 첫걸음을 내디뎠소." 밴 두젠 교수는
말했다. "나는 배수관이 바깥 운동장 어딘가로 뚫려 있다는 걸 당연히 알고
있었소. 많은 사내 아이들이 거기서 논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쥐들이 거기
서 내 감방으로 들어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소. 이런 일들을 알고 있다면,
바깥에 있는 사람과 연락을 취할 수도 있지 않겠소?
우선 필요한 건 길고 튼튼한 실이라는 걸 깨달았소. 그래서…… 하지만 우
선 이걸 보시오." 그는 바지 자락을 걷어올려 양말 윗부분을 보여주었다.
가늘고 질긴 나일론 실로 짠 양말 윗부분이 양쪽 다 사라지고 없었다. "나
는 양말을 풀었소. 일단 실을 풀기 시작한 뒤로는 별로 어려울 게 없었소.
나는 400미터 정도의 실을 쉽게 손에 넣은 거요. 그런 다음, 나는 남아 있
는 천조각의 절반에다 여기 있는 이 사람한테 내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썼소." 그는 허친슨 해치를 가리켰다. "솔직히 말해서, 그 편지를 쓰느라
무척 고생했소. 나는 이 사람이 나를 도와주리라는 걸 알고 있었소. 신문기
사 거리가 될 가치가 충분하니까 말이오. 나는 천조각에 쓴 그 편지에 10달
러짜리 지폐를 단단히 묶었소. 사람의 눈을 끄는 데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
은 없지요. 그리고 천조각에다 이렇게 썼소. `이것을 발견하시는 분은 <데
일리 아메리칸> 지의 허친슨 해치 기자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 사람이 이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10달러를 더 드릴 것입니다.'
다음에 할 일은 이 편지를 어떤 사내아이의 눈에 뜨이도록 그 운동장으로
내보내는 것이었소. 거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나는 가장 좋은 방
법을 선택했소. 나는 쥐를 한 마리 잡았소. 쥐를 잡는 일에는 이제 숙달이
되어 있었으쑈까, 그건 전혀 어렵지 않았소. 나는 쥐의 한쪽 다리에다 천조
각와 돈을 단단히 묶고, 그 배수관으로 쥐를 풀어주었소. 공포에 사로잡힌
쥐는 당연히 배수관 밖으로 나갈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린 다음, 땅 위에서
달음질을 멈추고 실을 갉아서 천조각과 돈을 데어낼 거라고 나는 추측했소.
쥐가 더러운 배수관 속으로 사라진 순간부터,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소.
내가 너무 많은 요행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오. 쥐는 내가 한쪽 끝을 잡고
있는 실을 갉아서 끊어버릴지도 모르오. 다른 쥐들이 그 실을 쏠아버릴 수
도 있소. 쥐가 배수관 밖으로 발려나가,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 곳에 천조각
과 돈을 남겨둘 수도 있소. 그밖에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 거요.
그래서 초조한 시간이 시작되었소. 하지만 내 감방에 남아 있는 실이 불과
1미터 정도밖에 안 될 때까지 쥐가 계속 달렸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나는
쥐가 배수관 밖으로 나갔을 거라고 생각했소. 나는 편지를 받은 다음에 할
일을 해치 씨한테 자세히 지시해 두었소. 문제는 그 편지가 과연 해치 씨
손에 제대로 들어갈 것인가 하는 거였소.
이 일을 끝내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기다리면서 이 계획이 실패
할 경우에 대비하여 다른 계획을 세우는 것뿐이었소. 나는 공공연히 간수를
매수하려고 시도했소, 나와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일곱 개의 문 가운데 그
간수가 열 수 있는 문은 두 개뿐이라는 걸 알았소. 그런 다음, 나는 교도소
장을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일을 꾸몃소. 나는 구두 뒤축에서 강철
받침대를 빼내어, 내 감방 창문의 쇠창살을 톱질하는 척했소. 교도소장은
굉장한 소동을 벌였고, 그 다음부터는 내 감방 창문의 창살이 튼튼한지를
확인하게 위해 창살을 흔들어보는 습관도 생겼소. 창살은 튼튼했지요. 그때
는 말이오."
교도소장은 다시 빙그레 웃었다. 이제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이 계획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고,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기다리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두고 보는 것분이었소. 나는
내 편지가 제대로 배달되었는지, 아니 발견되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쥐가
그것을 갉아먹어 버렸는지도 알 도리가 없었소. 하지만 나와 바깥 세계를
이어주는 그 가느라단 실을 배수관을 통해 잡아당겨볼 용기는 나지 않았소.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도, 나는 실을 가볍게 잡아당기는 신호가 올까봐 잠
을 자지 못했소. 그 편지를 받으면, 실을 가볍게 잡아당겨 나에게 그 사실
을 알려달라고 해치 씨한테 지시해 두었기 때문이오. 새벽 3시 30분쯤 되었
을 때, 나는 실이 잡아당겨지는 감촉을 느꼈소. 실제로 사형선고를 받은 죄
수도 어떤 일을 그보다 더 진심으로 열렬히 환영한 적은 아마 없었을 거요."
생각하는 기계는 말을 멈추고 기자를 돌아보았다.
"자네가 한 일은 자네가 설명하는게 낫겠네."
"천조각에 쓴 편지를 나한테 가져온 건 야구놀이를 하고 있던 꼬마였지요."
해치 씨가 말했다. "나는 당장 거기에 굉장한 기사 거리가 들어 있다는 냄
새를 맡았기 때문에, 그 꼬마한테 10달러를 주고는 명주실과 삼실, 그리고
가볍고 유연한 철사를 구했답니다. 교수의 편지에는 그 편지를 발견한 사람
이 어디서 그걸 주었는 알려줄 테니까, 새벽 2시에 그 부근을 수색하기 시
작하라고 적혀있더군요. 그리고 실 끝을 발견하면, 그것을 부르덥게 세 번
잡아당기고 다시 한 번 잡아당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작은 손전등을 들고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1시간 20분쯤 지난 뒤에야
겨우 잡초 속에 반쯤 감추어진 배수관 끝을 찾아냈지요. 배수관 입구는 상
당히 컸습니다. 지름이 30센티미터쯤 될까요. 이어서 나는 실 끝을 찾아내
어 교수가 지시하신 대로 잡아당겼지요. 그랬더니 당장 음답이 오더군요.
나는 그 실에 명주실을 묶었고, 밴 두젠 교수는 그것을 감방 안으로 잡아
당기기 시작했지요. 나는 명주실 끝에 다시 삼실을 묶었고, 그것이 안으로
끌려들어가자 이번에는 삼실 끝에 철사를 묶었습니다. 그것도 안으로 끌려
들어갔고, 이제 우리는 배수관 입구에서 감방 안까지 쥐들이 쏠아버릴 수
없는 튼튼한 통신선을 갖게 되었지요."
생각하는 기계가 손을 쳐들자, 해치는 말을 끊었다.
"이 모든 일은 완전한 침묵 속에서 이루어졌소." 과학자가 말했다. "하지
만 철사가 내 손에 들어왔을 때는 너무 기뻐서 환성을 지르고 싶었다고. 이
어서 우리는 또 다른 실험을 시도했소. 해치 씨는 기꺼이 실험에 응할 준비
가 되어 있었지요. 나는 배수관을 말을 주고받는 통로로 사용해 보았소. 해
치 씨나 나나 똑똑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
게 될까봐 감히 큰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소. 마침내 나는 내가 당장 원하
는 것을 해치 씨에게 납득시킬 수 있었소. 내가 질산을 요구했을 때, 해치
씨는 그 말을 알아듣는 데 상당히 애를 먹은 모양이오. 나는 `산'이란 말을
여러번 되풀이해야 했지요.
그때 나는 위쪽 감방에서 비명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소. 나는 당장 누군가
가 엿들었다는 것을 알았고, 교도소장이 오는 소리를 듣고는 얼른 자는 척
했소. 당신이 그 순간 내 감방에 들어왔다면, 그 탈출 계획은 모두 거기서
끝장이 나고 말았을 거요. 하지만 당신은 그냥 지나쳐갔소. 내가 가장 위험
했던 순간은 바로 그 순간이었소. 하마터면 들킬 뻔했으니까.
이 임시변통의 통신선을 확보한 이상, 내가 어떨게 감방 안에서 필요한 물
건을 구하고 마음대로 사라지게 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거요. 그냥 배수
관 속에다 떨어뜨리기만 하면 그만이었소. 교도소장 당신은 손가락이 굵어
서 바깥 세계와 연결된 철사에는 손이 닿지 않았을 거요. 내 손가락은 보다
시피 더 길고 훨씬 더 가늘지요. 게다가 나는 그 배수관 위에 쥐를 보초로
세워두었소. 그건 당신도 기억하시겠지요?"
"기억합니다." 교도소장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누군가가 그 구멍을 조사해볼 마음이 난다 해도, 죽은 쥐를 보면 당장 마
음이 달아날 거라고 생각했지요. 해치 씨는 이튿날 밤까지는 배수관을 통해
쓸모있는 것들을 보내줄 수는 없었지만, 시험삼아 10달러짜리를 바꾼 잔돈
을 나에게 보내주었소. 그래서 나는 내 계획의 다른 부분을 추진할 수 있었
지요. 이어서 나는 내가 마침내 채택한 탈출 계획을 발전시켰소.
이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뜰에 있는 경비원이 감방 창문에
있는 내 얼굴을 보는데 익숙해지게 할 필요가 있었소. 나는 으스대는 글을
쓴 천조각을 경비원한테 떨어뜨여 이 문제를 해결했소. 가능하면 교도소장
이 자기 부하들 가운데 하나가 나를 위해 바깥 세상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
고 믿게 하는 것도 목적의 하나였지요. 나는 경비원이 나를 볼 수 있도록
몇 시간씩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곤 했고, 이따금 그 경비원한테 말을 걸
기도 했소. 그런 방법으로 나는 교도소 자체에는 전기 기술자가 한 명도 없
고, 문제가 생기면 전기회사에 의존한다는 걸 알게 됐소.
그건 자유로 가는 길을 완벽하게 열어주었지요. 내가 갇혀 있는 마지막 날
초저녁에 날이 어두워지면, 내 감방 창문에서 1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전선을 절단한 계획이었소. 내가 갖고 있는 철사 끝에 질산을 묻려서
전선에 갖다 대면, 쉽게 전선을 끊을 수 있지요. 그러면 전기 기술자가 끊
어진 부분을 찾고 있는 동안에는 교도소의 그 부분이 캄탐해질 터였소. 그
러면 해치 씨가 쉽게 교도소 뜰로 들어올 수도 있겠지요.
실제로 탈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딱 한가지 더 있었소. 배
수관을 통해 해치 씨와 마지막 세부 사항을 타합하는 일이었지요. 나는 감
금된 지 나흘때 되는 날 밤, 교도사장이 내 감방을 나간 지 30분도 채 지나
기 전에 이 일을 했소. 해치 씨는 이번에도 내 말뜻을 알아듣는 데 무척 애
를 먹었지요. 그래서 나는 `산'이란 말을 여러 번 되풀이 했고, 그 다음에
는 `8호 모자'란 말을 되풀이했소. 그건 내 모자 사이즈요. 위층에 있는 어
떤 죄수가 이 말을 듣고 살인을 자백했다지요? 이튿날 간수가 나한테 전해
줍디다. 그 죄수는 배수관을 통해 우리 목소리를 듣고 당연히 당황했을 거
요. 그 배수관은 그 죄수의 감방과도 이어져 있었소. 내 감방 바로 위에 있
는 감방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듣지 못했던 거요.
물론 창문과 문에서 쇠창살을 잘라내는 작업은 질산 덕분에 비교적 쉬웠지
만, 시간이 걸렸소. 나는 유리 병에 넣은 질산을 배수관을 통해 받았지요.
닷새째와 엿새째, 그리고 이레째 되는 날은 밑에 있는 경비원이 나를 쳐다
보고 있는 가운데, 철사 조각에 질산을 묻혀서 창문의 쇠창살을 녹였소. 나
는 질산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치약 가루를 사용했지요. 나는 작업하는
동안 멍하니 밖을 내다보았고, 그러는 동안에도 시시작각 질산은 금속 안으
로 더 깊이 침투해 들어갔소. 나는 간수들이 문의 창살 상태를 확인할 때,
항상 문의 윗부분만 흔들어보고, 아래쪽 창살은 한 번도 흔들어보지 않는다
는 걸 알아차렸소. 그래서 나는 아래쪽 창살을 거의 다 자른 다음, 금속을
조금만 남겨서 제자리에 붙어 있게 해놓았지요. 하지만 그건 무모한 만용이
었소. 그쪽으로는 그렇게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었을 거요."
생각하는 기계는 얼마 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것으로 모든 일이 분명해졌을 거요. 내가 설명하지 않은 점은 모두 교
도소장과 간수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위한 연극일 뿐이오. 내 침대 속에
있던 물건들은 해치 씨를 즐겁게 해주려고 들여놓은 거였소. 해치 씨는 그
기사를 좀더 재미있게 꾸미고 싶어 했으니까. 물론 가발은 내 계획에 꼭 필
요한 물건이었소. 그 속달 편지른 내가 감방에서 해치 씨의 만년필로 쓴 다
음, 밖에 있는 해치 씨에게 보내어 부치게 한 거요. 내 이야기는 이걸로 다
끝난 것 같소만…… "
"하지만 교수님은 실제로 교도소 구내를 떠났다가, 다시 정문을 통해서 내
사무실로 들어오셨잖습니까?" 교도소장이 물었다.
"그건 아주 간단하오." 과학자가 말했다. "나는 아가도 말했듯이 전류가
아직 통하고 있지 않을 때 질산으로 전선을 끊었소. 그래서 전류가 공급되
기 시작했을 때, 아크등은 켜지지 않았지요.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내서 수
리하는 데에는 약간 시간이 걸리리라는 걸 나는 알았소. 경비원이 당신한테
보고하러 갔을 때, 교도소 뜰은 어두웠지요. 나는 창문으로 기어나온 다음
……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그 창문은 너무 작아서 내 몸이 빠져
나오기에도 빠듯했소. 어쨌든 창문으로 기어나온 다음, 창살을 좁은 창틀
위에 세워서 제자리에 돌려놓고, 전기 기술자들이 도착할 때까지 어두운 그
늘 속에 숨어 있었소. 해치 씨는 그 사람들 큼에 끼여 있었지요.
내가 해치 씨를 보고 말을 걸자, 해치 씨는 나한테 모자와 잠바, 그리고
작업복을 건네주었소. 나는 교도소장 당신이 뜰에 있을 때, 당신한테서 3미
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 옷을 갈아입었소. 나중에 해치 씨는 내가
기술자인 것처럼 나를 불렀고, 우리는 왜건에서 무언가를 가져온다는 구실
로 함께 정문을 빠져나갔지요. 정문 보초를 우리를 금방 들어간 두 기술자
인 줄 알고 기꺼이 내보내줍디다.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타나서 당
신한테 면회를 요청한 거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들을 만났지요. 그것뿐이요."
침묵이 길게 흘렀다. 맨 처음 입을 연 사람은 랜섬 박사였다.
"훌륭합니다." 그가 외쳤다. "정말 놀랍습니다."
"해치 씨는 어떻게 기술자들과 온 겁니까?" 필딩 씨가 물었다.
"아버지가 그 전기회사 이사거든요." 생각하는 기가 대답했다.
"하지만 바깥에 당신을 도와줄 해치 씨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어떻
게 하지요?"
"죄수는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탈옥을 도와줄 친구를 한 사람쯤은
갖고 있는 법이오."
"가령…… 가령 낡은 배수관이 없었다면?" 교도소장이 호기심이 동한 얼굴
로 물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그밖에도 두 가지가 더 있었소."
생각하는 기계는 수수께끼처럼 대답했다.
10분 뒤에 전화벨이 울렸다. 교도소장을 찾는 전화였다.
"전등은 고쳤나?" 교도소장이 수화기에 대고 물었다. "좋아. 13호 감방 옆
에 있는 전선이 끊어졌다고?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전기 기술자가 한 사람
이 더 많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두명은 나갔다고?"
교도소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정문 보초는 전기 기술자를 네 명만 들여보냈고, 두명은 내보냈으니까 두
명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세 명이 남아 있답니다."
"내가 그 나머지요." 생각하는 기계가 말했다.
"오오." 교도소장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수화기에 대고 말했
다. "다섯번째 사람도 내보내. 그 사람은 틀림없어."
'책,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시 [게오르규] (0) | 2023.06.01 |
---|---|
20 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나카타니 아키히로] (0) | 2023.05.31 |
6 년전에 일어난 일 - Elsin Ann Graffam (0) | 2023.05.29 |
신발 한 켤레 (0) | 2023.05.29 |
숭늉이 맛있는 집 (0) | 2023.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