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가 되는길 - TOP 비즈니스 리더 50인이 주는 교훈
토머스 J.네프 , 제임스 M.시트린 지음
추천인의 글
CEO 가 되는 길에 보내는 찬사
"CEO가 되는 길에서 저자인 시트린과 네프는 성공한 회사들의 근본적인 성공요인은
CEO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명확한 통찰력으로 쓰여져 있으며, 문체는 힘이 있다. 모
든 분야의 경영자나 경영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 헨리 샤크트, 루슨트 테크놀로지(Lucent Technologies)사 사장 겸 CEO
"일반적으로 회사의 성공요인을 꼬집어서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
다. 시트린과 네프는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파헤쳤다. 그리고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의 핵심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위대한 리더란 어떤 사람인지 밝히고 있다. 참으로 선구
자적인 책이다."
- 라자트 굽타, 맥킨지 월드와이드(Mckinsey Worldwide) 상무이사
"CEO 가 되는 길 은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들로부터 얻은 통찰력과 아이디어로 가득한
책이다. 무한경쟁의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하에서 그들의 경영비법이 들어 있다. 글로벌 비즈
니스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다."
- 헨리 크라비스, Kohlberg Krvis Roberts & Co. 공동 설립자.
1. 왜 위대한 비즈니스 리더인가?
우리는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누군가가 영감을 주기를 열망한다. - 랄프 왈
도 애머슨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비즈니스 리더는 누구인가? 왜 그들은 위대한가? 꿈을 이루기
위한 그들의 인생 행로는 어떤 교훈을 주는가?
1997년 4월,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
였다. 비교적 간단한 질문이긴 하지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이 책 CEO가 되는 길 의 기획 동기는 단순했다. 한 기업의 중역이 전화로 신임
CEO를 물색해줄 것을 요청했다. 전화를 걸어온 중역은 수년 동안 우리와 함께 일해왔던 사
람이었다. 그는 그해 연말에 퇴임할 것을 이사회에 이미 통보해온 CEO의 후임이 될 만한
사람을 물색해 달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전화는 그다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적절한 경영인들과 이사
들을 찾아내서 우리 고객인 기업들에 연결시켜주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스펜서 스튜어트
에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스펜서 스튜어트는 세계 최대 규모의 채용알서 기업들 중 하
나이다. 이곳은 세계 25개국에 퍼져 있는 50개의 지사에서 4천여 건에 달하는 임무를 수행
하기 위해 전세계 4만명에 이르는 중역들을 면접한다. 최근에는 AT&T, 델타항공, 퀘이커
오츠, 리더스 다이제스트, 제이 크루, 와이저하우저에 신임 CEO들을 소개하였다.
스펜서 스튜어트는 40년 이상 각 기업 최고의 인재를 알선하는 일에 주력해왔다. 때문에
그의 전화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다음 요구사항이 우리의 주목을 끌었다.
그는 후임 CEO를 선발할 때 기업이 고려해야할 점을 이사회에 조언해주기를 요구했다. 경
영분야의 경력이나 기업 규모, 사업 규모는 물론이고, 이보다 더욱 미묘하고 중요한 리더의
자질에 대해 우리의 조언을 요청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기업의 리더가 되어
야 하는가? 리더가 갖추어야 하는 자질은 무엇인가?
사실 이것은 벤처기업에서부터 세계 굴지의 대기업에 이르는 스펜서 스튜어트의 고객들이
최근에 요청해왔던 요구사항과 유사한 내용이었다. 우리는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무엇이 위대한 기업가를 만드는가? 오늘날과 같이 경쟁이 치열하고 쉴새없이 변호하는 경
영환경 속에서 성공적으로 조직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진정한 리더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이 문제를 곰곰이 살펴본다면 이것이 아주 잦은 질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런 개개인은 한 조직의 책임자든 혹은 한 부서의 관리자든 반드시 신속하게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AT&T의 전 CEO 케이마트와 선 빔 등 지금은 은퇴한 과거 경영자들의 예에서 알 수 있
듯이, 오늘날의 세계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경영자들은 뒤떨어질 수 밖에 없다.
국제경쟁 시대에 대한 적응은 물론이며, 급속도로 변화하는 기술 집약적 기업환경 속에서
기존의 경영자들이 과거의 성공전략에 의존하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불행히도 그들의 방법은 현실에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기업의 CEO가 이사회로부터
신임을 잃으면, 이사회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새로운 리더의 영입은
이러한 결단 중에 하나이다. 또한 그때가 바로 스펜서 스튜어트가 나서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스펜서 스튜어트가 하는 일
기업의 간부를 알선하는 일은 경영 컨설팅의 전문화된 형태이다. 비즈니스 리더로서의 요
건을 명확히 밝히고, 경영전략을 적절하게 수행할 적임자를 뽑아 면담을 통해 채용하는 것
이다. 기업 리더의 경력과 생활방식, 다시 말해 그들이 어떤 동기로 행동하는가는 이러한 적
임자를 선별할 때 고려할 필수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CEO 후보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업적, 경영방식, 위기극복 요령, 이들이 범했던 실
수와 거기서 얻은 교훈, 리더로서의 경영철학, 유년기, 개인적 소망과 사업관 등에 대한 면
밀한 사전평가가 이루어진다. 기업의 고위직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기 때문에, 그 기업들의
관련 산업, 기업체, 경력 등을 초대한 많이 파악할수록 그들에게 유리하다.
이러한 리더들을 만나 그들의 사업성공 사례를 직접 접함으로써 어째서 그들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전세계 최고 기업가들로부터 귀중한 교훈을 얻는 행운을 누
렸다. 그래서 직업적으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더욱 성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
렇게 얻은 교훈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눠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나오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성공과 리더십에 대한 교훈을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해주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CEO들의 얘기를 직접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주관적 시각에서 "최고"경영
자들을 연구한다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분석과정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은 우리 두 사람이 맥킨지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몸에 밴 사고방식에
근거한 분석 접근방법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에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정밀한 방법을 동
원하여 미국 내 기업들 중 가장 훌륭한 리더들을 나름대로 선정했다. 그리고 왜 그들이 그
토록 성공적인 기업가가 되었는지 알아내고자 장시간에 걸쳐 인터뷰했다.
물론 리더의 자질에 대해서 분석해놓은 책은 셀수 없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은 학술적 접
근방법을 이용하거나 혹은 저자 한 사람의 시각에 한정되어 있다.
해마다 최고의 기업 경영인 순위가 발표된다. 하지만 엄격한 분석이나 깊이있는 고찰을
통해 나온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어떤 접근방법도 현실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위대한 리더가 되는 길을 충분히 설명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야심에 찬 목표를 세웠다.
1) 가능한 한 분석적인 접근방법을 적용하여 비즈니스 리더들의 목록을 작성할 것.
2) 이들의 사례를 되도록 개인적이고 다가가기 쉬운 방식으로 설명할 것.
방법론은 3장에서 다시 한번 세부적으로 거론될 것이다. 우리는 이 방법에 기초하여 비즈
니스 리더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이 명단에 오른 인물들 중에 "가장 위대한 비즈니스 리더
는 누구인가?"라는 첫 번째 질문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여기에는 이미 최고의 기업인들을 다루는 다른 책에 수없이 오르내렸던 CEO들이 올라
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 이상의 깜짝 놀랄 만한 얘기들도 많이 만날 것이다. 또한
CEO와 독자들이 기대하던 인물들이 보이지 않아 실망하기도 할 것이다.
이 목록의 정리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개개인의 리더십 자질을 충분히 고려할 것.
2) 과거 5년에서 10년 사이에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던 조직을 선별하고, 그 시기에
기업이 성공에 가장 크게 기여한 CEO를 선정할 것.
그 다음에 우리가 나름대로 세운 리더(아래에 상세히 나와 있음)의 기준에 따라 CEO들의
목록을 분석한 후 최종적으로 50인을 뽑았다.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 50인
이들이 과연 최종적인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들인가? 반드시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 명단에 올랐던 많은 기업들이 합병 또는 인수를 발표하기도 했고(시티
콥과 틀라벨러, 모빌과 엑슨 등), CEO들이 퇴임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코카
콜라의 로베르토 고이주에타)실제로는 상당히 유동적인 목록이라 할 수 있다. 업계의 변화
는 그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그래서 아마 이 책에 실린 리더들 중에는 집필
을 끝내고 출판하는 사이, 주위 환경이 변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인간적 견지에서 최대한 권위 있고 이해하기 쉬운 객관적 목록을 작성하고자 심혈을 기울
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정확하고 주도면밀하게 수행된 연구라 할지라도 실은 그 시대의 짧
은 한순간을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명단이나 연구방법 또는 2부에서 소개될 개개인의 신상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먼
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과연 독자들은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리고 "오늘
날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이사회,
주주, 경영자, 고용인들에게서 왜 끊임없이 쏟아져나오는가? 이것을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
는 것이야말로 진정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리더십의 의미 변화
30년 전만 해도 성공한 기업은 중앙에서 통제되고 재정적 관리가 잘 이뤄진 대기업을 의
미했다. 제너럴 모터스의 알프레드 슬로언, 인터내셔널 텔레폰 앤 텔레그래프(ITT)의 핼럴
드 지닌, GE의 렉 존스,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의 해리 그레이는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하고
동시에 가장 존경받는 비즈니스 리더들이었다. (이 CEO들은 페튼 장군과 아이젠하워 같은
군 리더들을 모델로 삼아 엄중한 재정적 통제와 권위적 규율을 통해 거대한 기업을 이끌었
다.)
그 당시는 이것이 통했다. 사원들은 결국 엄격한 과업진행 과정을 따르기 위해 군대식, 기
계식 훈련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리더들이 가졌던 또 다른 이점은 그들이 시장을 운영할
때 거의 어떤 도전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지구상의 모든 생산라인을
무기력하게 만든 덕분이었다.
그즈음 세계는 전쟁 상처를 극복하고 정보공학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중무장한 신세대 리
더를 필요로 했다. 이에 따라 페더럴 익스프레스, 시티뱅크, 월마트 같은 기업들은 1980년대
정보혁명의 물결을 주도하며 기국경제 재건에 일조했다.
페더럴 익스프레스의 프레드 스미스나 시티뱅크의 월터 위스톤, 월마트의 샘 월튼 같은
리더들은 새로운 기술을 그들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간파했다. 때문에 분산된 형태
기업 운영이 가능했다. 그들은 정보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고 고객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
해 새로운 형태의 경쟁력을 키워나갔다. 예를 들어, 월마트는 고객들이 물건을 계산할 때 스
캐닝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고객들이 상품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신속히 파악할 수 있었다.
새로이 떠오른 리더들은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는 고용인들의 심리를 파악하여 그들을
일터로 끌어당겼다. 베트남 전쟁 때문에 사회적 분열에 영향을 받았을 그들의 태도를 이해
했다.
오늘날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이나 AOL의 스티브 케이스 같은 젊은 CEO들은 IBM의 루
거스너나 에머슨 일렉트릭의 척 나이트, AIG의 행크 그린버그 등 그 이전 세대들이 닦아
놓은 리더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양 세대의 리더들이 주는 교훈을 모두 얻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
'품질 경영(TQM)에서부터 사업의 재구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터득한 CEO들이라 할
지라도 오늘날에는 다함께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크기가 하나로 정해져 있는 것은 모든
것에 들어맞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 분야에서는 한 마디로 명료하게 정의할 수 있는 답이나 공식이 없다. 때문에 자신만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우선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게 된 요인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주는 교훈을 자신의 독특한 상황에 어떻게 적
용시킬 것인지 찾아내는 것이다.
이 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다. 즉 그들의 조직에 대해 분석하고, 탁월한 리더들(CEO 혹
은 회장, 사장)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개함으로써 그들이 그토록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각 장마다 CEO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성공에 밑거름이 되어준 가장 중요한 요인을
상세히 담고자 노력하였다. 독자들은 인터뷰의 결과와 개개인의 신상을 엮어놓은 조사결과
를 통해 리더들로부터 직접 그들 자신의 이야기르르 듣게 될 것이다.
성공적인 삶을 원한다면, 성공의 근본적인 요인을 직접 몸으로 느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것이 우리가 하려는 일이기도 하다. 많은 CEO나 사장들이 리더십과 성공적인 사업에 대해
그들 나름의 독특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타이코 인터내셔널
과 체이스 맨하탄 같은 기업은 인수를 통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디레와 델 컴퓨터
같은 기업은 내부적인 발전을 통해 더욱 그 지세를 확장시키고 있다. 질레트나 AIG같이 이
미 세계적 기업으로 자리잡은 기업이 있는가 하면, 파니 매처럼 순수하게 미국 내에서만
활동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렇듯 각 조직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기업 발전에 이바지한다.
또한 서로 다른 경쟁 분야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리더들 각자가 가진 나름의 리더십 스
타일은 오직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안에서 적절히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우리의 기업인 목록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예를 들면, 질레트의 전 CEO인 알
자인이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에 가졌던 직업은 국제부 부사장이었다. 명단에 오른 CEO 중
5명이 타사에서 영입된 경우였다. 기업 창립자에서 CEO나 회장, 사장의 지위에 오르는 경
우도 11건이나 되었다. 이렇듯 기업마다 차이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 사실이나
특성만을 가지고 그 기업가가 위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각 기업인들은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그들이 성공한 사람들임을 증명해주는 리더십에 관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3부에서는 그들이 주는 교훈에 초점을 두었다. 리더들의 사례(3부 2장 "옳은 일들
을 올바르게 하는 것")들을 통해 사업운영 방침과 리더십, 공통적인 특성(3부 3장 "CEO들의
10가지 특징 - 기업의 성공을 위한 지침")에 대해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이 작업에 세 번째
질문인 "어떻게 성공적인 CEO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여기서 소개될 최고 비즈니스 리더 40인의 면면이 독특하므로 '어떻게 그러한 목록을 선
별하게 되었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1부 2장에서는 우리의 목록에 올라 있는 리더의 선별과정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선정 방
법을 여러 번 검토하면서, 전에 없던 참신한 방법을 통해 선택된 이들이야말로 틀림없는 최
고의 비즈니스 리더들임을 강조한다.
2. 최고 비즈니스 리더들에 대한 평가
이 책을 펴내면서 우리는 동일한 접근방법을 통해 다양한 CEO들에 대해 연구했다. 결국
'CEO를 영입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바로 비즈니스 리더들을 살펴볼 수 있는 가장 확실
한 방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모든 연구가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으나, 스펜서 스튜어트는 43년간의 역사를
바탕으로 단련된 방법론을 이용한 양질의 연구를 자랑한다.
스펜서 스튜어트의 CEO 채용알선 방법은 다음과 같은 5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기업의 최고 리더를 결정하고자 조심스럽게 각 단계를 밟아나갔다.
1단계- 성공에 관한 정의
첫 번째 단계는 고객인 기업과 함께 기업의 사업 전략과 조직 문화, 그리고 채용될 인물
이 수행할 역할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고객과 스펜서 스튜어트는 성공의
길을 예측할 수가 있다. 1단계의 목표는 해당 지위와 그에 대한 후보자를 구체적으로 명시
하는 "세부 사업"문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우리의 목표는 바로 "최고"비즈니스 이러란 어떤 사람인지 밝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떠한 자격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양적인 성공
여부의 중요성은 물론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여러 요소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기
업과 조직적 리더십에 관한 광대한 문헌 연구와 스펜서 스튜어트의 직업적 경험에 따르면,
우리는 가장 부지런히 달린 기업인들이야말로 부동의 결과를 얻게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것은 "사업"목록의 전제 아래 다음의 10가지 질적, 양적 척도에 비추어 각각의 요소와 리
더십을 평가한 결과이다.
기업가들이 갖추어야 하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 강력하며 장기적인 재정적 성과를 이루었는가?
* 이상적이며 전략적인 기술을 제시했는가?
* 도전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는가?
* 조직과 사원관리에 우수한 기술을 개발했는가?
* 인격적인 일관성과 많은 장점을 보여주었는가?
* 기업인으로서의 자질이나 개척정신을 증명했는가?
* 기업, 산업 또는 사회에 미친 영향이 입증되었는가?
* 혁신적 업적을 이룩했는가?
* 다양한 변화와 사회적 책임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했는가?
2단계 - 기업의 타깃 리스트 작성
능력있는 후보자를 평가하기 위해 기업의 타깃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CEO를 채용할
때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연구에서는 관련 산업 분야에서 가장 성실하게 운
영되어 왔거나 마케팅, 금융 꼬는 경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기업을 뽑아 목표목록을
작성해왔다.
CEO가 되는 길에서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상관없이 어떤 사회 분야나 기업의 규모를 막
론하고 지원이 가능했따. 이 두 번째 단계에서의 분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단계의
방법론은 1부 3장에서 더 자세히 논의될 것이다. 부록 1과 2에서는 스펜서 스튜어트가 갤럽
이 실시한 야심찬 조사와 국제투자은행 래저드 프레리스 지국인 투자경영회사 래저드 에셋
매니지먼트가 실시한 신재정 분석 두 가지를 어떠한 방법으로 통합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자
세히 설명할 것이다.
3단계 - 유망 후보자 선별을 위한 연구
타깃 리스트 작성에 사용된 양적 연구방법을 보완하기 위한 세 번째 단계를 타깃 리스트
에 따라 기업의 성공을 책임질 후보자를 선별하기 위한 질적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연구방법에 따라 우리는 스펜서 스튜어트가 가지고 있는 CEO에 대한 63만 7천
가지의 국제 자료를 발췌하였다. 그리고 후보자들과의 접촉을 바탕으로 작성된 질적 정보를
검토하였다. 뿐만 아니라 "리더 명단"에 알맞은 리더 선별에 참고가 될 정보, 식견, 평판 등
산업 전산망과 기업의 자료를 총동원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단계를 추가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비즈니스 리더들을 선
정하기 위해서 갤럽에 가장 정밀하고 상세한 조사를 의뢰한 것이다.
갤럽은 부사장인 칼 마틴과 갤럽의 저명한 방법론 학자이며 통계학자인 뎁 크리스텐슨박
사, 그리고 1992년, 1996년, 2000년 미국 센서스의 디자인 부장이기도 했던 밥 토토라 박사
의 지휘아래 575명의 기업인 리더들과 인터뷰를 실시했다. 응답자들에게는 위해서 이미 언
급했던 10개 범주에 속하며, 미국에서 가장 탁월한 리더라고 여기는 이를 추천해줄 것을 요
청했다.
설문조사에 응할 사람들의 명단은 조심스럽게 결정되었다. 이름이 거론된 리더 후보들을
되도록 광범위하게 선정했다.
다음은 갤럽이 인터뷰한 인사들이다.
* 재력가 200명과 CEO 1,000명
* 주식회사의 사장 또는 CEO 170명과 미국에서 사업을 벌여 가장 두드러진 성장을 이룬
500명에 해당하는 인물들
* 직원 100명 이상의 비영리 조직의 리더 88명
* 주요 대학의 학장 117명
조사 참여자들에게 10가지 리더의 범주를 고려할 때, 미국의 기업, 산업, 조직의 리더들
중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선택해줄 것을 요청했다. 10가
지 범주란 1.장기적인 성과 2.이상적, 전략적인 기술 3.도전극복의 의지 4.우수한 조직과 사
원 관리 기술 5. 성실하고 일관된 인격 6.기업인으로서의 자질이나 개척정신 7. 기업이나 산
업 사회에 미친 영향력 8.혁신적 업적 9. 고객 지향 10.다양한 변화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다.
또한 그들에게 가장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사람을 지명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는 갤럽의 조사결과를 받았다. 각각 10개의 범주 안에 지명된 리더들의 숫자와, 동료
들이 미국 최고의 리더로서 몇 번이나 서로를 언급했는지 일일이 기록했다. 각각의 리더십
기준의 중요성을 따져 결과의 가중치를 결정하였다.
갤럽의 조사결과는 타깃 리스트 조사에 통합되었다. 더 자세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후보
들로 이뤄진 경영인들의 "롱리스트"작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래저드 프레리스에 자문을 구했다. 후보들이 이끌고 있는 기어븨 재정상태를 분석
했다. 그것을 후보자의 동료가 작성한 결과와 비교했다. 이와 같이 타깃 리스트는 계속적인
검토와 보완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사항들은 나중에 더 신중히 연구 검토되었다. 갤럽 조사에서 아무리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할지라도, 개인적인 사업수행 과정이 미약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최종 명단에 오르
지 못했음을 밝힌다.
4단계 - 후보자 면담과 서류전형
최우선권을 가진 후보자들로 구성된 최종 명단에 따라 4단계는 경영인들의 면담과 우리의
고객인 기업에 제출하기 위한 후보자들의 자필 서류를 준비하는 것이다. 면담의 목적은 후
보자들의 지위에 대한 요구사항 등을 한층 더 심도 깊게 평가하고 그들의 관심분야를 파악
하여, 궁극적으로 기업의 선택을 돕기 위한 것이다. CEO가 되는 길에서는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들의 명단을 선정하기 위해서 1부 3장에서 말한 방법들을 사용했다. 우리는 이 책의 핵
심인 리더십에 대한 사례들을 조사하기 위해 명단에 올라 있는 리더들을 대상으로 1대1 면
담 일정을 잡았다.
1) 이력서에는 개인 자료와 함께 직업적 경험, 책임을 맡았던 업무, 성과 등에 대해 연대
순으로 나열한다.
2) "분석과 평가"항목에는 지위와 1단계에서 논의되었던 후보자의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경영인으로서 평가한다. 또한 이 항목에는 유년기의 영향, 학교 외적인 관심사와 활동, 직업
적 실패의 경험, 인생의 전환점, 인간관계, 리더십 스타일, 경영철학 등에 대한 상황들을 싣
는다.
이 두 가지 항목은 최종 명단에 오르게 될 리더들 개인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리더들에게 몇 가지 일반적인 질문을 던졌다. 리더들의 리더십과 성공에 관한 일
반적인 지침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했던 면담 안내서는 부록 3에
있다.
5단계 - 성공 패턴 도출
스펜서 스튜어트에서 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최종 후보자와 고용협상 과정과 개별 채용을
위한 동의안 등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의 목적은 달랐다. 우리는 가장 성공적인 리더를 발굴하고자 했다.
그들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훌륭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남달랐다. 그들
의 삶의 방식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그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3부에서는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성공이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는 그 핵심 요소를 상세히 설명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부분은 이 책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당신은 다양한 리더십의 특성을 나타낸
10개 범주에서 후보들이 받은 점수를 단순하게 더해서 높은 점수를 얻은 이가 "최고의 비즈
니스 리더"라거나 혹은 최종 명단에 자동적으로 오르게 될 거라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
다. 또한 래저드 에셋 메니지먼트가 기업의 재정 능력을 계량적으로 평가한 최고의 비즈니
스 리더 명단에 올라 있는 기업의 리더들만을 다루는 것이 반드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
다. (이 계량적 측정방법은 3장에서 다시 논의될 것이다.)
기업마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 리더를 선택할 때 중요시하는 점이 다르다. 어떤 기업에서
는 혁신이 가장 절대적인 요구사항일 수도 있고, 어떤 기업에서는 고객 위주의 성실한 자세
가 중요할 수도 있다. 또 어떤 기업에서는 금리나 석유가격 또는 다른 외부 요소가 기업성
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보았듯이, 평가를 위해 고려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은 바로 시간의 문제이다.
지금까지도 우리의 질문에 가장 적절한 혹은 정답을 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독자들이 명
단을 볼 수 없어 이 사람이 최고라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여기서 소개하는 50인의
리더들이 가장 탁월한, 가장 성공한 비즈니스 리더들이라고 확신한다.
3. 최고 비즈니스 리더 선별방법
- 수치에 근거한 정확한 분석
이 장에서는 갤럽 조사결과의 분석방법과 이 책의 리더 명단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된 재
정 분석과 참고문헌 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아마도 이같은 방법론을 사
용한 몇 가지 실례들을 직접 만나보는 것이 이에 하기 쉬울 것이다.
갤럽 조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최고 비즈니스 리더 4인은 다음과 같다. GE의
잭 웰치,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인텔의 앤디 그로브, IBM의 루 거스너가 그 주인공
이다. <표1은>은 갤럽이 실시한 CEO들의 조사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표의 상부에는 10개의 범주와 전체적인 리더십의 역할이 나타나 있다. 그 아래에는 전체
적인 리더십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각 기업의 비중을 결정하고자 각각의 항목에 가중치를
적용시킨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항목마다 총 575명의 조사 응답자들에게서 산출한 숫
자가 나와 있다. 표의 중간 아래 부분은 가중치와 언급된 회수를 곱해 산출된 리더의 가중
치 점수를 의미한다.
부록 1은 갤럽 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명도의 리더들을 보여준다. 이 책에 실릴 인물들을
선별하고 리더의 우선 순위를 매기기 위해서 우리는 <표1>과 같은 분석을 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광범위한 기업의 리더들이 동료들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식견을 가졌
으며, 그들의 여러 장점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리더들은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빌 게이츠
는 이상적, 전략적인 기술, 산업과 사업, 사회에 미친 영향, 혁신과 기업인으로서의 자질 항
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잭 웰치는 장기적 성과, 우수한 조직과 사원 관리기술 항
목뿐 아니라 전체적인 리더십에서 가장 놓은 점수를 보였다. 루 거스너는 고객 중심의 경영
과 도전극복의 의지 항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갤럽 조사와 분석이 끝나자, 우리의 다음 단계는 현재의 비즈니스 리더들이 그들의 조직
에 얼마나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양적으로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래
저드 에셋 매니지먼트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부록 2의 상세한 설명으로 알 수 있듯이, 래저드 에셋 메니지먼트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기업의 공적을 재정적 측면에서 평가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기준을 세웠다.
1)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총수익
2) 기업의 시장가치와 관련된 순이익의 증가
1천개에 달하는 미국의 거대한 상장기업들에 대한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 우리는 위의 두
가지 척도를 통해 생성된 각기 다른 10가지의 방법으로 엄선했다.
* 최근 5년과 10년간의 산업부분 내의 종합적인 시장가치에 대한 순이익의 증가
* 최근 1년, 5년, 10년간의 산업부문 내의 종합적인 주주들의 총수익
* 최근 1년, 5년, 10년간의 산업부분에서의 순이익의 증가와 주주들의 총수익의 1,2위를
차지하는 기업들의 단면
현재 시점에서 최고의 리더들을 선별하고자 최근 5년으로 그 범위를 제한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1) 의미있는 결과를 얻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2) 미국의 주요 기업에서 CEO들이 일반적으로 재임하는 기간이 5년이다. 1997년 미국 대
기업 CEO들의 60퍼센트가 CEO로 재직한 기간을 불과 5년 또는 그 이하였으며, 1980년에는
그 비율이 40퍼센트로 줄었다. 이는 우리의 연구결과 밝혀진 사실이다.
산업분야별 경쟁 기업 간의 우수한 성과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서 그 결과를 제시한 것이
중요했다. 또한 지난 5년간 눈부신 활약을 펼친 사업, 즉 기술 또는 금융 서비스와 같은 산
업 등을 임의로 한정짓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했다.
시장가치와 관련된 순이익의 증가율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었다. 그래서 보여지는 숫자보
다는 상장기업 1,000개 중에서 기업들이 각각 어느 정도 순위에 올라 있는가에 더 중점을
두기로 했다. 두 가지 부문에서 모두 상위에 가까운 기업일수록 높은 순위를 얻는 것은 당
연했다.
다음의 표는 네 개의 동일한 기업들의 결과를 제시한다. 또한 그 기업들이(또는 리더들
이)5 년이라는 기간의 초창기에 시장 가치와 관련된 순이익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표에서 보듯이, 인텔의 시장가치와 관련된 1천 개의 상장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순이익 증
가 부문 80위를 기록했으며, 14개의 기술/구성요소 기업들 중 2위를 기록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천 개의 미국 상장 기업 중에서 두 번째 데실(Decile : 1,000대 상장기
업을 1/10으로 나눔, 첫 번째 데실 1~100위, 두 번째 데실 101~200, 세 번째 데실 201~300위)
를 기록했으나 역시 상위권에 올라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게 경영되는 기업으
로 손꼽히던 GE는 미국 대기업들 중 중간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일어났을
까? 기업 자체의 문제인가 아니면 측정 방법에 문제가 있는가?
해답은 소위 말하는 "승자의 비극"에서 찾을 수 있었다. GE는 "승자의 비극"으로 인해 오
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왔다. 우리가 순이익 평가를 시작할 즈음인 5년 전 이 기업은 이례적
으로 높은 시장가치를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의 상승적 시장가치는 오히려 회사의
시장가치가 오르는 속도만큼 빠르게 순이익의 지속적 성장을 방해했다.
GE의 예는 기업의 성공과 훌륭한 리더십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단 하나의 척도로 기업의 업적을 평가하는 것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
다.
만약 시장가치와 관련된 순이익 증가라는 하나의 척도만이 적용된다고 하자. 순이익 증가
라는 거대한 계산기나 혹은 시장가치 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공통분모에 의해 높은 순
위에 오른 기업도 있을 것이다. 5년 전만 해도 시장가치의 저하라는 부진을 면치 못했던 기
업들이 이 측정 방법으로는 높은 점수를 얻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항공사들은 시장가
치는 낮지만 훌륭한 수익 경영, 가격, 운용, 석유 가격의 하락에 힘입어 순이익이 상당히 증
가했다. 그 결과 이 측정법에서 만큼은 훌륭한 성과를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또 컨티넨탈
항공의 경우는 시장가치와 관련된 순이익 증가 부문에서 미국의 대기업들 중 38위를 기록했
다. GE와 컨티넨탈 항공의 사례는 왜 하나가 아닌 두 가지의 양적 성과척도를 사용해야 하
는지 잘 보여준다.
주주들을 살표보자
그 다음 분석단계를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총수익에 대해 살표보는 것이었다. 마이크로소
프트, GE, IBM, 인텔 네 개의 기업들은 미국의 1천 개의 거대 상장기업들 중 최상위에 올
라 있다.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총수익도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의 표를 보자.
부록 2의 <표1>은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 50인'이 이끄는 각 기업들의 지난 1년과 5년간
의 연간 수익에 대해 보여준다. 인상적인 성과를 거둔 기업들임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만
약 당신이 최종 명단에 올라 있는 46개의 상장기업(비영리 기업, 민간 기업, 자회사 포함)에
투자한다면,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아마도 지난 5년간의 S&P 500의 수입의 대략 50
퍼센트를 능가하는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5년 동안 S&P 500에 투자한 1천 달러가 2,932달러로 늘어난다(연
간 복리 24 펀센트). 이 1천 달러를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 50인' 이 이끄는 기업에 투자하
면 4,484달러 증가한다는 것이다.
치고의 성과를 올린 기업들을 확실히 찾아내기 위해 래저드의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시
장가치와 관련된 순이익의 증가와 주주들의 총수익 두 가지 부문에서 모두 상위에 올라 있
는 기업들을 선별하였다.
롱리스트 완성
갤럽 조사와 래저드 에셋 매니지먼트의 기업성과 분석, 우리가 추가한 연구를 토대로 후
보자들의 명단을 뽑았다. 후보자는 총 240명이었다. 이들의 명단을 '롱리스트'라 부르기로
했
다.
최종 명단에 누구를 올릴 것인지 결정하기 전에, 우선 지금까지 알아본 기업과 조직을 경
영해왔던 이 240명에 관련된 정보가 필요했다. 엄밀히 말하면, 상위에 올라 있는 각 기업들
의 현재 리더십을 측정함과 동시에 그들의 재직기간을 알아보아야 했다. 결국 우리는 그들
의 기업에서 가장 중책을 맡고 있는 리더들을 선별하여 또 하나의 명단을 작성하기로 결정
했다.
먼저 스펜서 스튜어트의 소유 데이터베이스인 퀘스트 엔티(Quest NT : 훌륭한 CEO 알선
을 위한 탐색 시스템 - 신기술 공학)로 들어가 각 리더들의 재임기간, 직업적 경험, 부가적
질적 정보 등 더 많은 자료를 얻어냈다.
우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롱리스트를 완성했다.
이미 은퇴한 저명한 CEO들보다는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업의 리더들을 대상으로 롱
리스트를 작성하기로 결정하고 선별작업에 들어갔다. 최종작업에는 두 가지의 예외 사항이
있었다.
첫 번째는 메릴린치의 회장인 댄 털리였다. 메릴린치의 현 CEO는 데비이드 코만스키로
서, 미국 최대의 유가증권회사 사장을 역임했고 1997년 털리에게서 경영권을 인계받았다. 코
만스키는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왔으면, 메릴린치를 전세계적 기업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금융시장이 상당히 떠들썩하던 1998년 하반기에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해온 인물이었다. 마
땅히 우리의 최종 명단에 올라야 했다. 소매 중심의 시장중개 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탈바꿈한 메릴린치는 털 리가 재임중이던 1992년에서 197년 사이에 대규모의 통합적 투자은
행으로 변모를 시도했으나, 그러한 변화는 사실적으로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증기 파이프 시설공의 아들로 자란 털리는 리더십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명단에 올리고자 하였다. (코만스키와 털리를 메릴린치에 함께 실었다.)
두 번째는 책의 결론 부분에 우리가 "51번째 리더"라고 칭한 피터 F. 드러커에 대해 간략
한 내용을 삽입한 것이다. 드러커 자신이 지적했듯이, 그는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에
들어맞는 리더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많은 비즈니
스 리더들이 인터뷰중에 드러커의 아이디어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갤럽 조사에서도
상위에 오른 리더들 중에 드러커의 이름을 언급한 사람이 여럿 되었다. 때문에 그를 이 책
에 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러커의 일화는 456쪽에서 시작될 것이다.
최종분류
CEO 채용알선 업무에서는 10명에서 20명에 이르는 많은 인원에서부터 3~4명의 간단한
명단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자질을 갖춘 후보자들을 두고 누구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할지 선
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와 같이 240명 중에서 처리 가능한 정도의 인원을 뽑아 우선권을
주기 위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기업에 CEO르 알선하면서 많은 지원
자들과 그들의 리더십에 관한 기술을 평가해온 30년 이상의 복합적인 경험을 전폭적으로 믿
고 따랐다. 뿐만 아니라 상세한 기업성과 분석과 부가적인 조사, 참고 문헌 직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개개인에게 우선권을 부여했다.
동료들의 도움은 너무나 귀중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산업부문에 따라 롱리스트를
분류하였고, 스펜서 스튜어트의 동료들과 함께 각 부문별로 능력 있고 훌륭한 후보자들을
검토하였다. 사실 우리는 에이비에이션, 보드 서비스, 커뮤니케이션 앤 미디어, 컨슈머 굿스
앤 서비스, 파이낸셜 서비스, 하이테크, 인더스트리얼, 라이프 사이언스, 에너지등 9개에 달
하는 전세계적으로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회사 내에서 대부분의 우리 동료들은 각 해당 분
야로 진출할 기업을 고객으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CEO와 이사들을 새로 채용하는 일에 중
점을 두고 있으며, 한 명 이상의 중견 파트너들이 전략가로, 거래 계약가로, 각 부분의 실질
업무 지휘자로 뛰고 있다.
이 실질적 지휘자들에게 리더십과 성공에 관한 10가지 범주에 속하는 비즈니스 리더들의
명단 작성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예를 들어 기술부문의 명단을 작성할 때는 하이테크 부
문의 실질적 지휘자들에게 최고의 사업성과를 거둔 최고 경영자를 선정해줄 것을 요청하는
식이었다.
동료들은 각 기업들이 어떻게 주목할 만한 성공을 할 수 있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들은 CEO들의 조직과 사원관리, 우수한 리더십과 전략, 뛰어난 기술 등에 대한 평가자료를
제공해주었다. 또한 기업들이 계속 발전해 나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우
리에게 얘기해주었다. 이러한 정보 덕분에 우리는 최종 명단의 우선 순위를 매길 수 있었다.
수많은 컴퓨터가 돌아가고, 끝없이 숫자 검토가 계속되며, 스펜서 스튜어트의 내부 데이터
베이스가 쉴새없이 돌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최종 명단을 결정할 준비를 마쳤다.
여러 곳으로부터 확보한 확실한 정보들(갤럽 조사, 래저드 에셋 매니지먼트의 기업 성과
평가, 우리의 부가적인 조사에 따른 결과, 참고문헌, 개인적 배경 지식과 동료들이 도움 까
지 모두 모아 얻은 정보)을 심층 분석했다. 마침내 우리는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들의 명단
을 뽑을 수 있었다.
피드백을 기다리며...
이미 당신의 책장에는 기업의 성공 전략과 리더들의 자서전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
다. 그러나 CEO가 되는 길 은 현재와 더불어 미래의 CEO, 경영인, 기업인, 많은 이사에서
투자가와 경영인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실린 비즈니스 리더
들이 어떻게 그들의 꿈과 야망을 이루었는지 많은 교훈을 줄 것이고, 그들의 발자취를 쫓는
데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독자들이 리더들로부터 얻은 교훈을 자신의 경험을 쌓아가는
데 적절하게 사용하고, 그러한 교훈으로부터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이 책에 실린 혹은 실리지 않은 리더들과 내용에 대한 독자들의 의견과 반응, 비
평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다.
www.lessonsfromthetop.com
토머스 J. 네프, 제임스 M. 시트린 & 뉴욕, 뉴욕 스탬포드, 코네티컷
들어가기 전에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미국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 중의 몇 명을 선별하여 CEO
가 되는길 : TOP비즈니스 리더 50인이 주는 교훈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 테마를 리
더십에 관한 것으로 한정하거나 각각의 인물을 지지하기 위해서 어떤 사례들을 나열하기보
다는, 각 리더들과 그의 기업별로 독립적으로 한 장씩 구성하여 보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AT&T의 마이크 암스트롱 같은 리더는 자신이 생각하
기에 오늘날 많은 이들이 각자의 조직을 이끌어 가는 데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을 자
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암스트롱은 AT&T의 CEO로 채용되기 전까지 IBM과 휴 일렉트로닉스의 임원이었다. 그
는 모든 리더들이 실천해야만 하는 요소로 다섯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각각의
테마로만 책을 구성했다면, 암스트롱은 '미래의 이상'혹은 '경영 전략' 부분에만 실리게
될
것이다. 그랬다면 암스트롱이나 둘 다 속이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역자 주: 리더십 전체를
볼 수 없으므로 암스트롱의 일부를 보고 오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구성되는가?
질레트의 알 자인의 일화가 445쪽에서 시작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은 비즈니스 리더들의 이름순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
각 장의 순서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우리에게는 큰 고민거리였다. 저마다 내용의 길이도
다르기 때문에 규모가 큰 기업순으로 할지, 재정적 성과가 높은 기업순으로 할지, 기업의 알
파벳 순으로 할지, 심지어는 마구잡이로 순서를 정할 지 큰 문제였다. 그러나 이 작업에 참
여한 많은 동료, 관계자들과 함께 수차례 논의한 끝에 결국 이름순으로 책을 엮어나가기로
결정하였다.
각 장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 배경 설명과 리더가 이룩한 업적에 관한 간단한 소개
2) 리더의 경력을 연대별로 담고 있는 프로필
3) 리더들과 나누었던 그들의 "이야기"
4) 기업의 생산품과 실무 라인, 본사 위치, 약칭, 기업의 재정적 성과 등의 간략한 소개
각 장은 서로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3분에서는 비즈니스 리더들이 서로 공유하
는 기업 리더십에 대한 지침과 이 위대한 리더의 공통적 특징 등을 발췌해서 실었다.
마이크 암스트롱(Mike Armstrong) - AT&T
"결정을 내릴 때는 리더로서의 결단력이 필요하다."
1997년 10월, 마이크 암스트롱이 AT&T의 신임 회장이자 CEO로 지명된 직후 90일 동안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매일 출근했다. 하지만 주요 고객들 외에는 회사 내
누구도 그를 보지 못했다. 기자 회견도 없었고, 연설도 하지 않았다. 증권 분석가들과의 회
의도 전혀 없었다.
"3개월 동안 중역들과 회의실에 틀어박혀 꼼짝도 안 했습니다. 아주 긴 시간이었지요. 그
러나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인가 깜짝 놀랄 만한 일을 계획 했습니다. AT&T를 위한 경
쟁 전략을 새롭게 세우느라 머리를 짜 냈던 거지죠." 암스트롱은 말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암스트롱은 CEO라는 지위로 취재진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암스트
롱이 AT&T에서 어떻게 견뎌낼 것인지 혹은 견뎌야 하는 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암스트롱과 경영진은 회사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암스트롱은 위성 텔레비전의 운영자인 다이렉 티비(DirecTV)를 만들어낸 휴 일렉트로닉
스(Hugh Electronics), IBM, 커뮤니케이션스(Communications)를 경영했었다. 그래서 원격통
신 산업에 이미 정통한 기업가였다. 또한 IBM에서 거의 30년 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유럽에
서의 기업 운영 재구성 방법에 대한 안목도 갖추었다. 그는 사업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
지 잘 알았다. 그것은 이곳에서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지 이미 꿰뚫어 보고 있다는 말이었
다.
90일이 다 되어갈 무렵, AT&T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태어나기 위해 첫 발을
내딛었다. 투자가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기업의 주가는 1997년 10월 21일 (암스트롱이
회장이자 CEO로 지명되기 하루 전)에 주당 34달러였는데,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주당 61달
라로 뛰어올랐다. 약 반년 후인 1999년 5월 7일 시장가치는 92억 달러를 호가했다.
인터뷰 전에 모든 대상 리더들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싶어했는지 미
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부록 3 참조.)
미리 준비된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리더의 경
우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질문지 여백까지 이용해 빽빽이 답을 적어놓고 인터뷰하는 내내
그것을 보며 이야기하는 리더들도 있었다. 어떤 리더는 슬라이더를 통해 질문지 내용 중 중
요한 사항들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이크 암스트롱과의 인터뷰는 오히려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질문내용은 잘 보았습니다. 내게서 듣고 싶은 것은 어떻게 이런 거대한 조직을 잘 이끌
수 있었는가 하는 거더군요, 그렇지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암스트롱은 간단명료하게 비즈니스 리더로서의 리더십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이크 암스트롱의 리더십 원칙
"다섯 개 정도의 개똥철학이 있지요. 첫째, 이미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으로 확고한 신념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미래에 대한 비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전략
'
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떤 단어로 꾸며서 이야기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념은
진정으로 실재하는 것, 즉 사람들이 그 존재를 믿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암스트롱이 책임을 맡기 전, AT&T는 기본적으로 장기적인 사업을 보호하고, 자본을 유
지하며, 순이익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차원의 전략을 세운 상태였다.
암스트롱은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기업의 전략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AT&T를 기능 집약적인 광
대한 통신기업으로 바꾸어놓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적인 기업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습니다. 그저 장거리의 협소한 주파수의 통
신사업을 벗어나 광범위한 무선통신, 인터넷, 케이블 사업을 운영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곳
에서 저곳까지'식으로 그 거리가 제한적인 장거리 통신 기업 대신에 고객이 원하는 곳이라
면 어디든 그 거리에 제한을 두지 않는 그러한 기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많은 사람
들과 피비엑스(PBXs)를 고객의 지역 통신망, 해외 통신망, 인터넷 통신망, 심지어는 고객의
개인 통신망에까지 연결하게 될 것입니다. 고객이 세계 어디에 있는 AT&T는 고객이 원하
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AT&T의 비전은 언제 어디서나 고객이 필요로 하는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일한 기업이 되는 것이다.
암스트롱은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절실히 느꼈다.
"원격통신 사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고작 10년 동안 진행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지요. 그러나 통신 산업계의 가장 큰 기업인 AT&T는 그렇지 못
했습니다. 기술이나 각종 규제의 철폐로 인해, 홀로 서기와 같은 위치에서 방어 사업을 하고
있는 우리 같은 기업은 그 존속이 의심스러웠습니다. 아주 공격적인 사업을 펼칠 필요가 있
었습니다."
1년이 조금 지난 후, AT&T는 이 공격적인 사업에 무려 100억 달러를 투자했다. 텔레포
토 커뮤니케이션(Tele Photo Communication)에 12억 달러, IBM 국제 전산망에 5억 달러,
브리티시 텔레컴(British Telecom)과 11억 달러의 합작을 위한 벤처 사업에 5억 5천만 달러,
미국 제 2의 케이블 기업인 티시아이(TCI)에 48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또한 미디어원 그룹
(MediaOne Group)에 54억 달러를 투자한 것이다.
이러한 중대한 사안의 결정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암스트롱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 또한 CEO로서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그는 덧붙였다.
"결국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필요한 자료를 모두
손에 쥘 수는 없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제대로 옳은 길을 가려낼 능력도 부족합니
다. 늘 위협과 위험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지 않습니까? 올바른 정보를 본능과 적절히 결
부시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결정된 것이 시장에서 제대
로 수행될 수 있도록 조직을 최대한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처음 전략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의 90퍼센트 정도 동의를 얻어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
지만 나머지 10퍼센트는 이러한 새로운 활동 단계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이러한 사항을 분석하고 검토하는 데만 몇 달을 소비하곤 했지요. 처음 얼마간
은 빠른 변화가 다소 위험 부담이 크지만, 나는 이 전략만이 AT&T가 그 잠재능력을 충분
히 발휘할 수 있는 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암스트롱은 믿음이야말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고, 이것이 기업
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고 믿고 있었다. 마침내는 중대한 사실로 증명되었다.
전진
"두번째는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비경쟁 기
업을 이기기 위한 특별한 전략이나 확고한 신념 따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판매비 및 일반관리비(SG&A : 손익계산서에서 매출원가와 이익공
적 항목 사이에 위치하는 비용 분류)는 29.6 퍼센트의 수익(revenue : 영업기간 중 영업활동
과정에서 상품의 매출액과 용역 제공에 따라 얻어지는 경제가치로서 자기자본을 증가시키는
이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다른 사업체의 평균은 22퍼센트였지요. '우리도 24개월
안에 22퍼센트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2년 동안 1만 8천 명의 인원을 감축할 예정입니다'라
고
벽에 써서 붙여놓았습니다."
AT&T는 불과 12개월 만에 이 파격적인 구조조정 목표를 달성했다. 재조직과 합리화를
위해 숫자 면에서 2만 명에 달하는 인원을 감축했다. 1년에 16억 달러의 총경비를 절감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고 암스트롱은 말한다.
"고비용 생산으로는 지속적으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성공하는 기업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는 비용감축을 단행해야 했지요. 고비용으로는 회사유지가 어려
웠으니까. 비용 문제를 이 시장에서 주요 장점으로 활용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지속적인 우선 과제여야 합니다. 비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난 다음
에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는 거지요. 매년 이 점을 반드시 유념할 필요가 있답니다."
현재의 판매비 및 일반 관리비의 목표가 얼마인가? 판매의 21퍼센트 달성이다.
"세번째로 중요한 것은 회사의 경영진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신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업의 문화와 모든 경영진을 한꺼번에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사회와 회의를 하면
서(1997년 암스트롱이 고용되기 전), 이것만큼은 분명히 하고 넘어가자고 했었습니다. 어떠
한 이들이 경영진을 맡고 있으며, 최고 경영을 위한 하나의 팀으로서 함께 일을 해나갈 때
서로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등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해 확신이 서기까지는 그 자리
에 서지 않겠노라고 말이지요. 마치 운동 경기와도 같습니다. 뛰어난 선수들이 있는 것도 중
요하지만, 서로 최고의 팀워크를 이루는 팀이 영예의 슈퍼볼 반지를 차지하게 되지 않겠습
니까? 사업도 똑같습니다."
"우리 사업은 600억 달러를 다루는 사업입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기업의 모든 것을 경영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서로가 한 팀으로서 신뢰하고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
다는 것입니다. 16명의 간부들 중에서 8명은 새로운 직책을 맞게 된 이들이었고 4명은 이
회사에 새로 들어온 이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 간부의
절반 정도는 팀의 적절한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 간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암스트롱의 방식이었다.
"예를 하나 들지요. CEO들 중에는 사무실을 너무 아끼는지 본인의 사무실을 떠나지 않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시장으로 나가서 직접 발로 뛰어야 합니다. 고객과 직접 만나
야 합니다. 경쟁 상대를 제대로 알아야 하지요. 똑같은 설명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점심식사 때를 이용하여 공개 토론도 해야 합니다. 나는 매달 사보에 그을 한 번
씩 올립니다. 비디오도 찍고 사내 방송도 하지요. 끝없이 직원들과 함께 의사소통을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결코 나중으로 미루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직접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
고,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지지하는 일은 끝까지 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워싱턴이나 경
쟁 기업 혹은 산업 분석가들이 비난한다 하더라도, 그에 동요하지 말고 자신의 회사를 위해
맞서야 하는 거지요."
"네번째는 직접 정책결정까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조직들이 가끔 정책결정을
제도화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은 민주적인 제도가 결코 아닙니다. 성공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떤 기업가들은 타성에 젖은 여론에 이끌려 결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치를 즐기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극히 적습니다.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하
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지성과 본능, 판단, 결단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사의 문제점 중의 하나로 수직적 관료제와 같은 '원스톱 쇼핑(One
stop
shopping)'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 아래에서는 어떤 위치에 있는 관리자가 임의로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영원히 사장시켜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폐단을 과감
히 정리하기 위한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암스트롱은 어떻게 결정을 내렸을까?
"매주 월요일마다 8-10명의 경영진들과 하루종일 회의를 했습니다. 우리는 밀고 당기는
설전을 벌이면서 시장과 경쟁기업에 대한 확실한 대응책을 세우고자 면밀한 의논을 했지요.
이것은 '의무적인 회의'는 아니었습니다. 논의하려는 내용이 자신의 분야와 그다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꼭 참석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분명히 '의무적인 회의'였지
요.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결정을 내렸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적이든 조직적이든 활성화를 위해서 기여할 때, 그 가
치를 언제나 반드시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회와 열정을 동시에 이끌자는 거지
요. 우리 모두는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보냅니다. 투자한 만큼의 보상도 받아야 하고, 즐겁
게 일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찡그리는 시간보다 미소짓는 시간이 훨씬 많아야 합니다. 기분
좋게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환경이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저마다 헌신적으로 일하
게 될 것이고, 이렇듯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 속에서 우리는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이상이 기업 리더십에 대한 나의 견해 다섯 가지였습니다."
암스트롱은 이러한 원칙들이 제대로 적용된다면 AT&T는 번영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
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필요로 하는 통신 서비스를 고객이 어느 곳에 있든 우리는 항상 제공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모습입니다. 서비스가 국제 간에 한정되어
있는 장거리통신 기업으로서는 먼 길이었죠. 그러나 기술면에서는 이미 이러한 사업이 가능
할 정도로 발전해 있습니다. 내가 할 일은 바로 우리 회사가 이러한 통신 기술의 최첨단을
이끌어가도록 돕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는 데 요구되는 리더십과 실행력 외에도 AT&T는 또 하나의 커다
란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업의 브랜드, 즉 상표이다.
"AT&T의 상표가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것보다 실제적으로 더 많은 것을 대표하고 있다
는 것은 우리에게는 무척 다행이었습니다. 알비오시(RBOC's Bell Atlantic 또는 SBC
Communications)같은 지역 전화교환 업체에 들어가서 '이곳의 지역 서비스는 누가 담당합
니까?"라고 물어보면, 23퍼센트의 사람들이 AT&T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역 사
업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의 케이블 TV는 어디에서 제공하고 있습니까?"라고 질문
하
면, 14퍼센트의 사람들이 AT&T라고 대답합니다. 물론 우리가 이 사업만 하는 것도 아닙니
다. AT&T는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전세계 에서 가장 신용 있는 상표입니다. 우리 상표의
잠재적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전략인 셈입니다. 다
행이도 우리의 상표는 이미 시장에서 우리 업체를 앞질러 나갈 정도로 활약하고 있고, 이것
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귀한 자산이지요."
오늘날 고객이든 직원이든 혹은 물품 공급자, 전략적 파트너들 혹은 투자단체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AT&T란 상표가 상징하고 있는 것을 믿는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믿음은 암
스트롱이 영원히 남길 유산일 것이다.
캐롤 바츠(Carol Bartz)
오토데스트(Autodesk) - "사례를 통해 이끌어가라"
한편으로는 캐롤 바츠가 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캐롤 바츠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서 모두 폭넓은 경험을 가진 기술 분양
의 몇 안되는 고위 경영인 중 한 명이기 때문일 거라고도 한다.
또는 종종 대기업의 CEO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 참석하는 유일한 여성이기 때문일 것
이다.
이유야 어쨌든 캐롤 바츠는 사업과 리더십에서 독특한 자신만의 시각을 지닌 인물이다.
바츠는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순위 집계를 통해서 자신의 인지도를 굳힌 후, 1992년 컴
퓨터 보조 디자인, 컴퓨터 보조 제조(CAD, CAM)의 선두에 있는 오토데스크의 리더로 영입
되었다. 그 이후 그녀는 기업의 제조공정 수준을 끌어올렸고, 유능한 판매담당 직원들을 고
용했으며, 새로운 생산품의 제조에 들어갔다.
승부수는 디자인 소프트웨어가 반드시 필요한 특별 산업분야가 반드시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토데스크는 결국 해냈다.
"단순히 주위를 한번 둘러 보세요. 디자인된 것, 만들어져 있는 것, 제조된 상품 하나하나
마다 우리 제품이 모두 사용되었죠. 우리가 운전하고 다니는 길, 타고 다니는 자동차, 지금
서 있는 건물, 앉아 있는 가구, 입고 있는 옷까지 어떤 것이든 우리 제품이 그 안에 들어 있
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츠는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불어넣고, 몸소 많은 모범을 보이며, 모든 일을 그녀가 직접
하려고 애써왔다. 그 덕분에 기업이 연간매출은 이제 10억 달러에 다가서고 있으며 앞으로
도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업을 효과적으로 경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오토데스크의 사장
이자 CEO 캐롤 바츠는 잘 정리된 그녀의 견해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우선 사업에 대한 확실한 안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내 생각에는 한
2,3년 정도 어떤 사업을 운영하다가 또 다른 종류의 사업으로 옮기곤 하는 최고 경영 전문
가들을 고용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최고위직의 지원자라면 나는 일단
경험도 많고 머리가 좋은 사람일 거라고 가정합니다. 그런 다음 그 지원자가 가진 경영방식
이 앞으로 그 사람이 운영할 기업의 문화와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겠는가를 살펴보지요. 한
형태의 산업이나 기업에서는 효과적인 독재 경영이 다른 조직에서는 한 순간에 그 조직을
모두 날려버릴 수도 있거든요."
"이러한 스타일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지요. 모든 사항을 점검해볼 때, 이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어요."
바츠는 경영 방식을 상당히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남의 방식을 위조하거나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본다. 때문에 그녀는 자문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인다.
그녀는 훌륭한 자문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자문이라는 단어를 아주 싫어합니다. 어떤 개념만 가지고 일을 해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눈송이 같은 존재들이고, 똑같은 눈송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
다. 내가 다른 눈송이의 모양과 똑같이 되려고 하면,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게 되지요. 결국
내가 될 수 있었을 그 무언가는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자문을 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사람들은 자문을 구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이나 삶
을 잘 이해하지 모사고 의아해하지요. 그런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
라하려고 애를 씁니다만 잘되지 않지요.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바츠는 자신이 이곳에 근무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녀는
조언이라는 개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만, 대기업을 경영하는 몇 안 되는 여성 CEO 중
한 사람이라는 지금의 위치에 오르면서 많은 이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했던 것은 아니라고 바츠는 강조한다.
"역할 모델이라는 망투를 입고 다니는 것은 무척 부담스럽습니다. 너무 버거워서 아닌 척
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그렇지만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눈에 띄는 여성
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일단 눈에 띄게 되면 그때부터 더 많
은 압박에 시달리게 되거든요. '올라서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잘해야 한다는 그런 압박
말
이지요."
"내가 이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요즘도 매일 짐승같은 무뢰한들과 마주치곤 합니다. 그런
자들은 회의를 하면서도 내가 일어나서 자신들에게 차를 대접하기를 바라거든요. 얼마나 진
부한 일입니까? 그런 일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일을 당하면
당신도 짜증날 겁니다. '세상에, 이 사람들이 나한테도 이렇게 대하는데 도대체 회사 말단
여성들에게는 얼마나 심하게 대할까?"
물론 그녀 같은 지위에 여성으로서 얻게 되는 이득도 있었다. 바츠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
한다.
"호기심 요소라는 것도 있습니다. 내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주
의를 기울이지요. 그리고 나는 남녀를 막론합니다. 내가 이 회사의 CEO라서 자신들이 오토
데스크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더욱이 여성으로서 눈에 띄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바츠는 '멋진 조언자'가 될 좋은 조건
을
갖추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오토데스크나 다른 조직에서라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조언
해주곤 한다.
"직업개발에 대해서는 기탄없이 말하는 편입니다. 경력을 사다리가 아니라 피라미드같이
차곡차곡 쌓아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터무니없이 승진만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
어요. 그러니 비좁기 그지없는 분야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가령 마케팅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되면 곧장 과장이 될 것인 양 말하지요. 그리고 과장이 되고 나면 금방 부장이
될 것이고, 곧바로 마케팅 부사장이라도 될 것처럼 생각들을 하거든요."
그런 접근이 한편으로는 이해되지만 한계가 있다고 바츠는 말한다. 오토데스크와 가은 회
사에서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서는 결코 CEO 의 지위에 오를 수 없다.
"최고가 되기 위한 가장 안전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강력하고 폭넓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라미드에 비유한 거지요. 탄탄한 초석을 기반으로 하는 피라미드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다리보다 당연히 더 강하다는 거지요. 이러한 강력한 기초를 닦으려
면 진급을 하더라도 한 단계씩 밟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뒷걸음질을 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20대나 30대 정도의 사람들이 찾아와 직업에 관한 자문을 구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나
는 언제나 똑같은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앞으로 30년 혹은 그 이
상
인데, 그 30년의 매 순간도 앞으로 혹은 위로만 발전하는 데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생
각들은 한시라도 빨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 줍니다."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고 바츠는 말한다. 물론 경영
인이 그 뒤에서 많은 지원을 해줄 수는 있지만, 유용한 지식을 찾아서 확실히 자신의 것으
로 만드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몫인 것이다.
"그들에게 꼭 전해주는 또 한가지, 항상 열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열정을 가지고 매사에
임하면 반드시 성공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가슴 가득 열정을 품고 있는 젊은 인재들이 수년
에 걸친 경험을 능가하게 되지 않을까요? 지성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해결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가?
바츠가 기업을 어떻게 운영했는지 관심갖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이러한 연구를 통해
사업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궁리한다. 그러나 그들이 알아낸 것은 그녀는 결과
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직원들에게 원하는 것을 직접 행동하는 한 리더일 뿐이라는 것이다.
"직원 여러분이 검사하지 않으면, 고객들은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자주 말한답니다.
딸아이의 숙제를 함께 하는 것처럼 회사에서도 그렇게 하는 거지요. 생각하는 과정을 중요
시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딸아이는 물론이며 오토데스크의 직원들 모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결과와 그 영향을 꼭 알기를 바랍니다. 리더로서 당신도 이렇게 하면, 직원들에게
언제나 모든 결과가 자신의 판단의 산물임을 이해시킨다면,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오토데스크에서 판단 기준이 모두 일정한 것은 아니다.
"모든 기능이 저마다 다릅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사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미치는 영향
또한 제각각입니다. 나는 오늘 수입과 내일의 영업이익을 보여주는 점검표를 자세히 들여다
보지도 신경쓰지도 않습니다. 그보다는 직원들에게 하고 있는 일이나 맡고 있는 역할을 바
탕으로 스스로의 공약들을 만들어주기를 부탁합니다. 공약의 내용은 수입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작은 목표 혹은 진행중인 작업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나
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하지요. 그리고는 공개하지요. 그들에게 나쁜 소식일수록 빨리 드러
나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미 변화되어온 것이든 혹은 앞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
이든 문제를 빨리 해결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빨리 재평가를 할 수 있고 다시금 방향을
잡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화를 통해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그저 그녀가 어떻
게 CEO의 직무를 수행하는지 또한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왔는지 듣고 있기만 하면 된다. 이
미 모든 이야기는 준비되어 있었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스스로 모범이 되어 보여줘야 합니다. 나는 부사장들에게 만약 그들
의 열 살 된 자녀들이 콘서트를 한다면 그 콘서트는 경영진 회의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
합니다. 그것은 생애에 딱 한 번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존중하는 것
과 관심갖는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CEO로 있기 전에, 여러 해에 걸쳐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캐롤은 할수 없을 거이다
'
라고 자주 말했습니다. 리더십은 바로 그 순간부터 발휘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관심거
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소하고 하찮은 작업이든, 대기업을 운영
하는 것이든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사람들은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하고, 당신과 함께 나아
가고 싶어할 것입니다.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길 수 있어야 합
니다. 일터로 나간다고 해서 모두 급료를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직원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큰 관심을 갖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될 것이다. 더욱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토데스크의 직원들은
자신들이 캐롤에게 전해준 다짐의 내용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스 베처러(Hans Becherer)
디레(Deere) - "생활 속의 고객 창출"
1980년대 내내 미국이 농기구 분야는 고통스럽고 기나긴 경제 위축으로 진통을 겪었다.
미약한 일반 경제의 물가상승과 치솟는 금리 때문에 농업분야의 자산 가치는 추락하였고,
과도한 부채까지 떠맡아 농업의 재정적 붕괴가 만연했다. 따라서 수많은 농기구 생산기업이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펼쳐야 했다. 세계 최대의 농업용 설비 제조 업체인 디레 앤 컴퍼니 또
한 예외는 아니었다.
글나 디레는 이 80년대의 위기를 극복하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서 입지를 다
졌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로부터 '미국의 다국적 기업 모델'이라는 호평까지 받았다.
농기구는 지금도 존 디레의 가장 중요한 생산라인이지만, 건설의 비농업용 장비, 공업용
소비기구, 신용회사 운영, 에이치엠오(HMO)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이런 생산품들이 전체 생
산품의 거의 50퍼센트에 다다르고 있다. 헤리티지 국가 보건 계획인 에이치엠오는 처음에는
디레의 직원 헬스케어를 위해서 설립되었다.
이 화려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이는 누구인가? 그 주인공인 바로 디레의 CEO인 한스
베처러였다. 베처러는 역사학을 전공한 후 독일에서 공군에 복무하였고, 하버드에서 MBA
학위를 딴 직후 디레에 입사하였다. 독일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베처러는 이 기업에 들어오
기 오래 전 이미 국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 국제적 안목은 실질적인 그의 직장 경력
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베처러의 초기 업무는 주로 국제 마케팅 분야였다. 그는
북미를 제외한 해외시장, 특히 남미와 전 소련연방, 중국, 인도 등의 성장 모습을 지켜보면
서, 기업의 미래는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제공하는가에 달려 있
다는 소신을 갖게 되었다.
한스 베처러는 적시적소를 항상 주요 관점으로 두었다.
"처음 디레 앤 컴퍼니와 연락이 닿은 것은 대가 프랑스에 있을 때입니다. 아내가 프랑스
인인데 내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한달 정도 아내의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
었지요. 하루는 아내의 삼촌이 우연히 집에 들렀습니다. 삼촌은 유능한 사업가셨지요. 그분
이 '내일 국제 경영인들 여럿과 함께 점심을 하기로 했는데, 같이하겠나?'하고 제안하더군
요.
물론 그러자고 했지요."
"다음날 나는 디레 유럽 지사의 부사장인 코마트 피터슨 바로 옆에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되었고, 그는 나와 계속 연락했으면 하더군요. 그때 그의 이름을 적어두었는데, 경영대학원
재학중 여름방학 동안에 일자리를 부탁하려고 연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학교를 졸업한 후 일리노이 몰린의 디레 지상헤서 일하게 되었지요. 그해 여름 나는 이 기
업이 너무나 좋은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원하는 만큼 열심히 뛸 수 있는
기업이었으니까요. 그곳에서 일하게 된 것이 지금도 자랑스럽습니다. 다분히 젊은이의 시각
에서 나는 이 기업이 진정으로 가치있는 곳이고, 보이고 것 이상의 저력이 숨어 있는 기업
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내가 일하고자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결정했지요. 게다가
나는 국제 경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때마침 디레가 국제사업을 준비하고 있었
던 것입니다."
"졸업을 하자마자 디레에 정식으로 입사하였고, 그 이후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입사 이후 하루하루가 너무나 즐거웠지요. 여름방학 동안 일하면서 느낀 디레의 모습, 즉 성
실함, 신용, 고객 중심, 우수한 생산품, 양질의 직원 관리 등은 내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직업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 그 다음에는 신명나게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그래
서 나는 회사의 가족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언제나 배려합니다. 신나지 않으면 아마도
제 시간에 일을 마치기가 힘들 것입니다."
베처러 스스로도 유럽에서, 유럽사람들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지리적 시장분야에 디레
의 헌신적인 고객관리를 소개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다고 한다.
베처러는 무엇이 디레의 고객관리 정신을 지탱해주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농부를 생각해봅시다. 농부는 추수할 때와 파종할 때, 이 두 번의 중요한 시기에 꼭 들에
나가게 되고 오랫동안 잘못된 것들은 놓아둘 수가 없습니다. 농부가 파종 최적기를 놓친 하
루하루는 나중 생산량에서 많은 손실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농부는 15만 달러나 하는 곡식
수확기를 구입하지만, 1년 동안 고작 몇 번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싫어서 그 기계에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게 되지요. 따라서 혹시라도 기계
가 고장나면 이것을 그때그때 확실하게 수리해놓아야만 합니다."
"수년 동안 우리는 이 사업을 위한 기술을 개발해왔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우리가 개발한 새로운 사업과 제대로 맞물려 돌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건설기계 생산장치를 라인에 추가시키면서 다른 경쟁사들보다 더 믿음이 가는 기업이 되어
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디레의 첫 번째 고객서비스 전략은 여간해서는 고장나지 않는 훌륭한 제품을 고객
들에게 공급하고, 이상이 생기면 현장에서 즉시 수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
은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생산라인에 추가된 모든 제품들은, 고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장점과 능력에 맞
춰 개발된 것입니다. 우리는 잔디와 정원 관리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오늘날 20억 달
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분야입니다. 이것은 고객의 소리에 귀기울인 직접적인 결과이기도
합니다. 고객들은 자신의 농장에서는 모두 녹색(디레의 대표 색상)장비만을 사용하는데, 왜
정원 잔디를 깎을 땐 다른 회사의 빨간색 잔디 깎는 기계를 사용해야 하는지 묻더군요. 무
언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어떠한 분야에 뛰어들더라도, 우리는 제품의 품질 유지에 관한 한 가장 열심히 뛰는 기
업입니다. 우리의 경쟁 기업들, 특히 주거용 제품과 관련된 기업들은 농업 소비자들과 달리
고객들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기술이나 광범위한 제품 지원에 소
질이 없으며,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고객관리 서비스에 대해서도 문외한일 수밖에
없지요. 이것은 디레의 전통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가령 경제 공황기에 존 디레는 많은
농부들이 파산하는 것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계속 신용을 얻고 있었습니다. 디레
덕분에 어려운 시기에 농장을 살 릴 수 있었기 때문이죠. 수천 가구의 농업인들이 그 고마
움을 잊지 않고 아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많은 고객들과 끈끈하고 질긴 결속을 맺
게 된 것입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신용을 위한 노력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디레는 파이낸스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는 구매자들에게 보험과 노인복지 사업을 제
공하면서 구매시의 가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고객들에게 귀기울이고 그드를 돕
겠다는 이같은 헌신적인 노력은 기업이 번창하는데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
정보 집약적 농업
베처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늘날 우리는 설비사업 개발에 기술이 미치는 영향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정보집약적
농업이란 이를 추구하는 새로운 목표입니다. 농장 경영은 지금껏 늘 직관, 다시 말해서 '오
늘 파종을 해야겠다'라는 식의 환경적인 요소에 의지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농업은 마지
막
남은 영세 사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농부들은 각자 스스로 결정을 내렸고, 그런 대로 괜찮
게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농업분야에서만큼은 더욱더 광대한 정보를 전해주는 관
리 설비를 제공함으로써 생산품의 품질개선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정보집약적 농업이요? 말하자면 지금의 농부들은 종자나 비료, 날씨, 이랑의 너비, 토양
의 생태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료에 의해 결정을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배합을 시도하지만, 그중에는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경우도 있습니다. 부적절한
정보 때문이지요. 그래서 다방면에서 얻은 각각의 단편적인 정보를 적절하게 조합하는 능력
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농부들이 유용한 정보들을 어떻게 모아야 하는지 우왕좌앙 하
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주고자 하는 것입
니다. 예를 들면 이른바 그린스타 컴퓨터 정보라 일컫는, 인공위성으로 운영되는 아주 정밀
한 농경기술 개발에 착수해왔는데, 들판의 곡식 수확기가 정확한 지점에서 그 곡식의 성장
상태와 생산량을 정확히 계산해서 가공되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농부들은 그 이전에는 모든 농지를 다 똑같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것을 서서히 알기 시작
했습니다. 결코 똑같지 않거든요. 그러나 이제는 그린스타가 있음으로써 어떤 농지에 어떤
방법으로 경작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지역에는 비료가 더
필요하고 또 어떤 곳에는 비료의 양을 줄여야 하는 것 등 말이지요. 또한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파종기와 그 외 다른 장비들을 통해 컴퓨터에서 얻은 정보를 그대로 트랙터에 주입시
킬 수 있고, 또한 자유자재로 경작 방법을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통신망의 발달로 생산량이 극대화가 가능하게 됩니다. 따라서 수익도 어마어마하게 늘어
나겠지요. 우리는 정보집약적인 농업경영을 할 수 있도록 온라인 서비스를 현재 추진중입니
다. 농부들은 생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날씨 가격, 최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수요
와 공급의 정보를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하니까요. 말하자면 농부들을 위한 정보가 가득한
자료창고 구축에 앞장서는 것이 우리 기업의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처러는 앞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계하고 있다.
"고객이 직접 기계를 통해 자료를 얻고, 그러한 정보를 평가할 수 있는 종합적 정보 시스
템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기계 바퀴에 구멍이 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뒤 차축의 베어링은
다 닳았고, 유압도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살펴본 후 원인을 밝혀내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농부양반 혹은 건축가 양반,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기계 몇 호에 이
러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뽑고 이렇게저렇게 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
데요'또는 기술자를 보내서 그 자리에서 직접 고쳐줄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등장할 정보를 바탕으로 생겨날 어마어마한 새로운 게임입니다. 이것에
잘 대응하는 기업이 결국은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디레가 해낼 것입니다. 우리는 세
가지의 설비 관련 분야에 대한 기술을 이미 갖추고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 있습니다. 누가
해낼 것인지는 알 수 없지요.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게임이고, 새로운 기술을 향한 고객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자만이 게임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게 디레가 기술
집약적 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오늘날 디레는 바로 그러한 기업입니다."
기업의 미래와 농업 발전을 위한 기술에 대해 얘기하는 베처러의 목소리에는 뜨거운 열정
이 담겨 있었다. 기업의 성공이 결코 우연한 결과가 아닌 것이다.
"성공을 이룬 CEO들은 일과 신념에서 열정을 잃지 않습니다. 그 열정은 어느새 어느새
조직 속으로 진하게 스며될게 되지요. 열정이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베처러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열정적으로 미래에 대한 신념을 다져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인식해야 합니다.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바로 보지 못하는
CEO 는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 또한 CEO는 기업의 미래를 뒷받침해줄 동기를
부여할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CEO가 해야 할 일 중 또 하나는 새로운 패러다임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디레는 미래에 대한 이상인 '참된 가치 추구'와 그 전략인 '비즈니스 프로세스 엑셀런
스
(Business Process Excellence)'에 관해 배처러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참된 가치 추구'는 디레의 미래이고 사업의 본질이지요. 우리는 기업의 성장과 재투자
같은 재정적 목표를 통해 이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식스 시그마, 고급 경영, 고객
만족, 모든 직원들의 조직적 설계와 개발을 통해 끊임없는 질적 성장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
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목표들은 모두 '비즈니스 프로세스 엑셀런스'라는 전략을 통해서 이루어질 거라
고
베처러는 설명한다.
"BPE (Business Process Excellence) 는 디레가 기능 위주의 조직에서 과정 위주의 조직
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 우리 기업의 모습을 아주 특별
하게 바꾸어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지속적인 기업의 개선과 공급 경영, 모든 직원
의 조직과 개발, 고객 위주에 중점을 둘 것입니다. 따라서 성과업적에 가깝지요."
"BPE는 디레가 미래에 얻게 될 진정한 가치를 위해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습니
다."
베처러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위대한 리더들의 공통점은 바로 마음을 열고 변화를 받아들
이는 것이다. "오늘날의 CEO와 그 이전 세대의 CEO들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변화의
속도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돌아가 있는 바퀴 위에 있는 거지요. '어느 한 곳'
에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그저 그 자리에 익숙해지는 겁니다. 목표가 변화하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능력도 너무 빠르게 변화해버리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
해 우선 사고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뛰어난 CEO들이 공통적으로 지녀야 할
특성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학습조직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교육시키고 유지하는 작업을 반
복해야 합니다."
오늘날 최고의 리더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외부 환경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도 다음 세대들에게는 더 가혹해질 거라고 배처러는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배처러의 또 하나의 신념은 다음과 같다.
"포용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계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포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잃지 않을 것입니다.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분개해야만 합니다.
남을 포용한다는 것은 변환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법입니다. 즉 세계화의 첫걸음인 셈이지요.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어떻게 전세계의 갖가지 일들을 감수할 수 있겠습니까?"
"기업발전의 가장 힘든 시기는 기업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이들이 적고 이직률이
높을 때입니다. 내가 처음 이 회사에 들어올 때는 오직 이곳에 대한 커다란 애착뿐이었습니
다. 이리저리 회사를 옮기면서 어떻게 자신의 가치와 열정과 신념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직원들이 혼란을 겪을수록 가치 추구의 개념은 더욱 중요하게 자리잡을 것입니다. 경영인들
의 리더십에 관한 기술 또한 더욱 그 비중이 높아질 것입니다. 기업의 가치 구조를 알리는
것도 직원들과의 교감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조직의 존속을 결정짓는 중요
한 요소들입니다."
이러한 교감 속에서 성실하고 정직하며, 개방적이고 무엇보다도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고 베처러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가끔 직원들 몇 명을 무작위로 뽑아 함께 커피를 마십니다. 한 시간 정도 함께 차를 마
시면서 마음을 열고 대화하지요. 나는 기업이 바라는 바와 저의 신념 등을 들려줍니다. 그리
고 직원들에게 기업이 발전하려면 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시키고자 노력하지
요. 많은 도전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라고."
"대화를 마치고 나면 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 일이지요.'이런 대답들
을
듣습니다. 마치 나의 열정에 응답해주는 듯이 말이지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반
응은 급속도로 퍼져나가지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의 중요성을 가슴속 깊이 느끼지 못한 채
다른 사람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고객 우선주의, 참된 가치 추구,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가치, 세계화, 변화의 수용과 일에
대한 열정. 이것이 바로 디레의 성공 열쇠이다.
고든 비선(Gordon Bethune)
컨티넨탈 항공(Continental Airlines) - "항공사 경영원칙"
1980년대에서 1990년 초반까지는 항공기 운항에 대한 모든 환경이 매우 열악한 상태였
다. 비행기의 운행은 늦어지기 일쑤였고, 비행기의 이륙과 도착 예정시간은 그야말로 예정된
시간일 뿐 제대로 지키지는 일이 없었다. 수화물이 안전하게 운송되는지 확인할 길도 없었
다. 이유는 간단했다. 짐이 자신의 도착 시간에 맞춰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아무
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두 번이나 도산한 경험이 있다. 게다가 고든 M. 비선이 1994년의 성 발렌타이
에 CEO 와 COO 로 지목된 때부터 1994년 11월로 CEO, 그리고 1996년 11월 회장으로 취
임하는 사이에 세 번째 도산 위기를 맞았다.
고등학교 낙제생이던 고든은 후에 고등학교 절업장과 대학 졸업 학위를 땄고, 하버드 경
영대학원의 고위 리더과정을 이수하였다. 되돌아보면 그당시에는 문제의 심각서을 전혀 인
식하지 못했음을 고든 자신도 인정한다. 미리 그것을 알았더라면 어려운 문제들을 회피하기
위해서 보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도대체 얼마나 심각했던 것인가? 그당시 컨티넨탈은 확보 자금이 거의 바닥날 지경이었
다. 직원들은 경영진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항공기는 제 시간에 이,착륙을 하지 못했
고, 수화물의 허술한 관리, 먹을 만한 음식조차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 승객들의 불만이 최고
조에 이르렀다. 그래서 가장 이용하기를 꺼리는 항공사에 손꼽힐 정도였다.
그의 자서전 [꼴찌에서 일등까지]는 상당한 혹평을 듣기는 했으나, 고든은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토록 기업을 위해 무던히 애쓴 사람이라면 최고의 비즈니스 리더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컨티넨탈의 강력한 프랜차이즈 덕분에 기업이 소생할 가능성이 보이자, 이제는 방법이 시
급한 문제로 떠올랐다고 비선은 말한다. 그리하여 전 베인 앤 컴퍼니(Bain & Company)의
컨설턴트이자 컨티넨탈의 현 CEO이며 중역인 그레그 브레네만(Greg Brenneman)과 '최후
의
마찬'이라 이름 지은 식사를 함께하면서 발전을 위해 상세한 전략을 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계획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너무나 뻔한 거이었다. 그러나 잊지 말하
야 할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기업이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심할 때는 직원
들의 월급조차 지불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두 번째는 누구도 생각해낸 적이 없고, 실행
된 적도 없는 특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이 기업은 10년 동안 CEO 가 10번이나
바뀐 전적을 가지고 있다).
"첫 단계는 우리의 목표를 확실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
하고도 확실한 전략 개발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지요. 일단 시작하면 결코 빗나가
지 않을 그런 전략 말입니다."
그러나 직접 실행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비선은 기업이 맞닥뜨린
위기상황 속에서, 그것도 비상사태를 대처할 만한 최소한의 현금보유 여부조차 절망적인 항
공사를 소생시키고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1~2주 안에 지불 간으한 현금을 구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자세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비선은 위험을 감지했고 이와 싸워서 이겨냈다. 이 기업은 오로지 다음의 네 가지 원리에
만 매달리게 되는데, 이는 후에 '선봉 기획안(Go Forward Plan)'으로 알려지게 된다.
* 이익 추구로의 전환, 경비 삭감과 관련된 부분이다. 별다른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칼라
이트 (CALite)부서는 없어졌다. 극심한 손실을 내고 있는 항공편은 예정표에서 누락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컨티넨탈은 그들만의 강점, 즉 클리블랜드와 휴스턴, 뉴옥을
사로잡을 만한 중추적 요지를 세울 계획이었다.
* 자금유통의 원활화, 차관은 재조정되었다. 이에 따른 합리적인 운영이 이루어졌다. 또한
관리와 구매를 단순화하고,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서 13종의 비행기를 6종으로 줄였다.
* 운영, 정시에 출발하고 도착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마련하였다. 수화물 분실에 관한
사고를 줄였으며 품질 높은 음식을 제공하였다.
* 새로운 사내문화 창출. 모든 사람이 함께 승자이며 함께 패자가 되는 기업을 만들었다.
"우리는 다같이 승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같이 실패하게 되어 있었습니다"라고 비선은
말한다.
전략 수립이 확정되자, 비선은 컨티넨탈의 모든 직원들에게 직접 이같은 전략을 알렸다.
중간 직급부터 그 아래의 직원들에게 이 전략은 정확히 전달되었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
반의 컨티넨탈의 모습만을 기억하는 승객들은 잘 알지 못하겠지만, 이 항공사는 수많은 업
적 달성의 역사를 간직한 기업이다. 이것은 항공사의 창립자인 전 곡예 비행사 로버트 F.
식스 (Robert F, Six)의 등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식스를 기억하는 오랫동안 근무했던
직원들은 비선이 항공사를 수익성 높은 회사로 바꿔주기를 원해왔다. 경험이 적은 직원들까
지도, 비록 영예롭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계속 일하기를 원했다.
"직원들의 잘못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고장이 날 대로 난 기업이었지만 무엇보
다도 직장풍토가 문제였지요. 이전에는 직원들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었기 때문에 비뿔어지
고 학대받는 아이 같은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원들이 비선과 브레네만을 중심으로 다시 결합했던 반면, 간부 경영진들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내외적인 이유 때문에 커다란 변화가 절실히 요구 되었다.
구세대의 고위 경영진들이 컨티넨탈이 위기를 맞게 된 원인 제공의 장본인들임에도 불구
하고, 컨티넨탈이 저지른 실수를 받아들이고 이제까지 그들이 걸어온 길을 변화시키고자 하
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실수를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시작에 맞서야
했으며, 또한 이 경영진이 계속 기업을 운영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
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들을 그대로 둔다면 사내뿐 아니라 기업 외부에서도 문제가 일어날 것이 뻔했다. 논리
적으로도 이 오래된 경영진들이 애초에 컨티넨탈을 위기에 빠뜨린 장본인들이었다. 고객이
나 투자자들은 이들이 회사를 그러한 혼란에서 벗어나도록 이끌 사람들이라고 믿지 못했다.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고통이 심한 환자에게는 당연히 훌륭한 의사가 있어야 하지요. 이에 최고의 경영진을 새
로 구성해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두세 달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는 61명의 임원
중 50명을 자르고 20명을 새로 영입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바뀌었고, 새 경영인들은 맡은 임
무를 최고로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서 직접적으로 두 가지 이득을 얻게 되었다.
"관료주의를 타파했고, 여러 가지 경비를 삭감했습니다. 또한 올바른 직장 풍토를 정립시
키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해냈지요. 기업마다 각각의 풍토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우리 기
업의 풍토를 정착시켰던 사람들은 파벌 중심의 문화에 젖어 있었습니다. '나는 이기고 너
는
진다'는 식이지요.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한 팀의 구성원으로서 활동한다
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우리는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최고 감독관에서부터 수화물 관리자에 이르는 조직 전체로 퍼져나갔다. 비
선은 암울했던 옛 컨티넨탈의 흔적을 지우고자 애썼다.
쓰라린 고통의 나날들
고객이 기업을 찾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어도 소용없다. 컨티넨
탈은 고객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보잘것없는 과거의 전적 때문에 단골 승객들도 컨티넨탈
항공사를 외면했다.
비선이 '새롭고 개선된' 항공사를 만들고 있다는 광고에도 불구하고 컨티넨탈은 고객들
의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소비자들, 특히 컨티넨탈의 고객들은 이러한 방법이 그다지 효과적이
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비선과 경영진은 새로운 단골 승객을 모으고, 이전 단골 승객들을 찾
아내 컨티넨탈이 이전에 행했던 불편 사항들에 대해 사과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들에게 두 가지를 조사하였다. 즉 단골 승객들에게 항공사에 대한 그들의 요구사항을 구하
고, 그 요구사항 중에서 어떠한 일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겠는가에 대해 질문하는 거이었다.
이 두 가지 질문은 상당히 중요했다.
고객에게 서비스 관리자로부터 제공받기를 원하는 사항을 이야기해줄 것을 요청하면, 아
마도 그들은 끝도 없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지신들의 '요구 사항'중에서 기꺼이 값을
치러줄 수 있는 항목을 선택해줄 것을 요청 받는다면, 그 목록은 순식간에 줄어들 것이다.
고객이 기꺼이 값을 지불할 거라고 말한 사항들을 보면, 지금까지 컨티넨탈이 얼마나 형
편없는 서비스를 제공했는지 깨닫게 된다. 공항 터미널과 항공기 안에서의 안전보장, 정시
비행과 믿을 만한 수하물 관리, 정기적인 식사때마다 먹을 만한 음식 제공 등이었다. 컨티넨
탈의 자세한 기록을 보면, 안전을 제외하고는 항공기 운행에 관한 모든 사항은 비참할 정도
로 실패작이었다.
그리하여 비선과 경영진은 컨티넨탈을 아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서로 다투기만 하던 직원들이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경비
를 삭감하는 대신 이득 분배 경영이 이루어지면서 서비스가 극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
다.
고객 만족도에서 주요 항공사들 중에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컨티넨탈은 1년 사이에 최
고로 뛰어 올랐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깜짝 놀란 것은 변화의 속도였습니다. 훌륭한 제품과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고 굳게 믿고 있기는 했지만, 극적으로 변화한 직원들의 생활과 우리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나아졌는지 놀라지 않을수 없었지요. 이렇게 바뀌려면 한 2년은 있어야 할 거라고 예상했거
든요. 인정과 존중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목표를 향한 계획의 개발 기회를 준다면 극적인 결
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곧이어 비선은 그것 이전 직장에서 보아왔던 것들과 통하는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피드먼트와 보잉이라는 아주 훌륭한 기업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 유명한 브래니프와 같
은 기업에서도 일을 했었지요. 항상 실패는 100퍼센트 인적 요소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
습니다. 리더로서 성공하기 위한 가장 커다란 기준은 아랫사람들을 대할 때 항상 마음을 열
고 인정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아마도 목숨까지 내놓
을 수 있을 만큼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변변치 않거나 자신보다 못한 사람
으나 대접받으면,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지요."
"성공의 여부는 전략적 차원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높은것입니다. 어떠한 언덕을 넘어야
할지 알 필요가 없다만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언덕을 넘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전쟁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언제나 함께 전략을 세우고 기획하고자 하
십시오.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들 수학과 경제 계획, 전략적 벤치마킹
에 대해 꿰뚫고 있을것입니다. 단 그들에게 확실하게 목표를 주지시키고 자신을 돕도록 유
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경영철학의 수행 결과는 지금도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래리 보시디(Larry Bossidy)
얼라이드 시그널(Alied Signal) - "두뇌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대기업에서 존경받는 부사령관의 위치에 있다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다른 기업의 최고 자
리르 맡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이러한 경영인들은 실
패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되지 않아 깨닫게 되지만, 번창하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그 경영을
하루하루 단순히 옆에서 돕는 것과, 실질적인 책임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
제이다.
얼라이드 시그널의 로렌스 보시디는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사령관이라는 역할 모델의 진
가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1991년 GE의 CEO인 잭 웰치의 총애를 한몸에 받던 보시디는 뉴저지를 본거지로 새로운
대기업에 발을 내딛었다. 그 이후 식스 시그마로 알려진 종합적 품질경영 프로그램(TQM)에
서부터 20퍼센트의 인원감축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변화를 통해 보시디는 기업에 일대 전
환을 이룩하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20퍼센트의 인원 감축 명단에서 살아남은 직원들로 이루어진 회사를 희
생시키는 일은, 남은 80퍼센트의 직원들에게 올바른 목적의식을 가지도록 하는 것뿐 아니라
그 근거에 대한 신뢰를 확고히 하는 데 달려있다. 9명의 장성한 자녀들의 아버지인 보시디
는 이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동료였던 한 투자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얼라이드 시그널에서 래리가 일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노틀담의 풋볼 감독도 될 수 있
을 것만 같습니다.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죠. 그런 성격을 타고났어요."
운동 경기를 예로 든 것은 아주 적절한 비유였다. 실제로 보시디는 피스필드(메사수세츠)
고교 야구부의 인기있는 투수였다. 사실 그는 아주 뛰어난 왼팔 투수였기에, 당시 디트로이
트 타이거스는 그에게 입단 계약서와 서명함과 동시에 4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보시디는 여기에 상당히 마음이 끌렸다. 그러나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전혀 없
었던 부모님의 강력한 권유로, 보시디는 콜게이트 대학에 체육특기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
었다.
보시디가 인계받은 얼라이드 시그널은 본래 120억 달러 수익을 올리는 세 개의 지사를 가
진 대기업이었다. 항공우주 산업, 자동차 산업, 기술용품의 세분야는 지금도 예전보다 더 높
은 생산성을 유지하며 발전하고 있다.
보시디는 이전에 웰치에게서 받은 영향이 컸다. 그래서 전세계에 걸쳐 점진적 제휴를 하
는 GE의 전략을 뒤따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유럽에서 화물차용 제동장치 분야의 약세를
면치 못했던 얼라이드는 미국 내에서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기업인 크노르-브렘스
(Knorr-Bremse)와 손을 잡았다. 이들은 거대한 국제 벤처기업으로 떠올라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래리 보시디가 1991년 처음 얼라이드 시그널의 경영을 맡게 되었을 때, 직원들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그 자차였다고 한다.
"아주 형편없는 건 아니었지만, 성공할 만한 요인을 갖추지는 못했더군요." 그는 말한다.
"회사 주식 시세도 별로 좋지 못했고, 그 이전 5-6년간 벤딕스와 시그널(Bendix &
Signal)의 합병 작업이 이루어어졌지만, 두 회사가 기대만큼 하나로 통합되지는 못한 상태였
습니다."
그즈음 기업에 소속된 수많은 부서들로 인해 "복합적 문화"의 문제도 발생했다. 살마들은
보시디 또한 그 문제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문화가 기업을 구성하
고 있다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었거든요. 다양한 문화를 접할수록 그만큼 다양한시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항공우주 부서에 있는 친구들이 기술용품부 사람들과 똑같은 문
화를 가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서로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고, 자신의 분야
에 적합한 서로 다른 교육을 받는다는 것, 나는 그것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얼라이드 시그널은 이러한 다양한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직원들을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
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시작점으로 보시디는 다음과 같은 비전을 만들어냈다.
"모든 일에서 최고의 기업, 특별한 기업, 성공적인 기업이 되기를 원합니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기업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면, 법률
부서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고란 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소지를 미리 방지하는 것이
었지요. 나는 세계 최고의 기소자가 이곳에서 근무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직원들이 법에 따라 행동하며, 기업의 정책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줄
훌륭한 교육과정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우리가 고소당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말이지요."
그러나 그 비전이 명확했던 만큼 " 그일엔 전혀 특이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업은 직원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좀더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해결책은 바로 식스
시그마, 즉 품질개선 프로그램이었다.
기업 전체에 걸친 이같은 프로그램의 시행으로 보시디는 품질개선뿐만 아니라 공통의 언
어까지 만들어냈다. 우선 직원들에게 체계적으로 결함이나 단점을 인식시키고, 발생한 문제
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을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었다. 사안의 중
요성을 알리기 위해서 보시디는 위에서부터 이것을 시작해 나갔다.
"우리는 간부급 직원들을 모아서 식스 시그마 학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식스 시그마에
대해 정통한 외부 인사들을 초빙해서 강의를 부탁했지요. 결국 우리는 이른바 이 분야의 유
단자(식스시그마는 전문성을 그린벨트, 블랙벨트 등으로 등급화함-역자 주.)들을 양성했습니
다. 이 전문가들은 회사전체에 식스 시그마를 보급하는 트레이너의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
다."
"우선 제조분야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분야에서 더 많은 수익을 올려야 했기 때문이죠. 그
러나 최근 몇 년간, 이것을 모든 분야로 확장 적용했습니다. 이 방법론이 제조분야에서 능력
을 발휘한 만큼, 마케팅 분야에서도 그 효과를 발휘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
다."
어떠한 분야를 막론하고 식스 시그마는 효과가 있었다. 몇몇 단계에 적용되면서 기업의
효율성이 증대되었을 뿐 아니라, 문제제기를 통한 논의에서도 훨씬 높은 성과를 올리게 되
었다.
"직원들의 마음가짐이 변화했습니다. 아주 긍정적인 변화였지요. 이제는 어떠한 문제가 닥
쳐도 식스 시그마를 통해 터득한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든 언제나 맨 앞줄에 서려는 자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자신뿐 아니라 기업을
위해서도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이 방법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면적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얼라이드 시그널과 같이 광범위한 기업일수록 보편성은 매우 중요했다. 전세계 40개국에
나가 있는 7만 7천여 명의 직원들이 거둬들이는 연간 총수익은 무려 150억 달러나 되었다.
"우리처럼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기업에서는 공동의 이상, 공동의 목표, 공동의 가치를 통
해 결속을 다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부서들이 서로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유념해야 합니다. 저마다 다른 분야의 고객을 가지고 있으며 공략해야 할 시장
도 서로 다르니까요."
일반적으로 대기업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의 특정 시장을 중점적으로 공략하여 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바로 이것이 대기업들이 쉽게 경쟁력을 잃고 뒤떨어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시디도 전에 이러한 주장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대로 일축해버렸다.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을 운영한다고 해서, 경영에 관한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
들을 다루기가 더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많은 문제에 대한 전략적인 대안을 더욱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알고 보면 더 수월한 일이기도 하지요. 한 가지 제품만을 다루는 기업
은 생각만 해도 복잡한 수많은 선택사항을 고려할 필요는 없지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게는 몇 가지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단순히 한 제품을 다루는 기업과는 반대로, 항상
내가 누구고 또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장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정책 전환이 쉽고, 경기의 주기적 순환에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기 방어
가 가능하다는 것 등."
CEO의 직무
그러나 대기업을 운영하든, 어느 한 제품을 위해 특정 시장을 공략하고자 하는 신설 기업
을 운영하든, 책임자로서의 직무는 똑같다고 보시디는 말한다.
"오늘날의 CEO는 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수많은 고개들과 더욱 많
은 소통을 해야 하지요. 또한 더욱더 재치 있고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하나 들까요.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기업 발전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수행하곤 했습
니다. 지금은 이것이 3년으로 줄어들었는데, 이것도 길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세계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항상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버스는 이미 지나간 후이지요."
"그래서 항상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과연 내가 이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 무
엇일까? 직원들의 발전과정과 전략, 그리고 운영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해답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지는 시간을 이 세 가지 일에 모두 쏟으려 노력하지요. 기업을 통솔하는
책임자로서의 역할만 하는 CEO는 이 나라에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벌여놓은 일들 때문이라도 더욱 회사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시기에는 머리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많이 희미
해졌지요. 두뇌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확실한 인재들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생각에만
갇혀 꼼짝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워크를 잘 구축해나가고,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며 고
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을 찾고 있지요. 융통성이 있고, 눈코 뜰 새 없이
변화하는 떠들썩한 시대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안전하게 기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도의를 저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건과 화제를 또 다른 관점으
로도 바라볼 수 있다면, 1년 안에 지금과는 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기업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합
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있지요. 식스 시그마를
원
한다면, 식스 시그마를 원하는 목적을 설명해 주어야만 합니다.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10
퍼센트의 수익을 더 올리자고 종용한다면, 직원들은 무엇 때문에 그래야 하는지 더욱 의아
해 하겠지요. 목표에 대한 설명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했는가 또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직원들에게 그 자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인가지 인식시켜야
합니다. 사람들이 CEO를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사실은 그들이 CEO에게 더 필요한 사
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직원들이 이 기업에 머무르면서 기업과 더불어 일하고 기업과 더불
어 성장하고 기업과 더불어 번영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나의 업무인 셈이지요."
보시디는 새로운 인재 발굴을 위한 이같은 경영 철학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리더 직
위로 승진시키고자 하는 이들에게까지 확장한 것이다.
"인간적인 됨됨이를 갖춘 리더를 원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
을 원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원합니다. 또한 그 성공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리더를 원합니다. 이러한 인재들을 얻을 수 있다면 기업을
이끌어나가기가 훨씬 더 수월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인격을 갖춘 인물을 찾을까요?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
고 있는 사람 말입니다. 사업은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웃음으로 남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요.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 중에서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던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을 찾는 거지요. 간단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무엇이든 이루고자
하는 야심찬 인물을 찾습니다. 글너 다음에는 이기적인 생각을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살펴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잘해낼 사람일까? 다른 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일
까? 지식을 남과 공유하고, 솔직하고 흔쾌히 일할 사람일까? 아니면 자기 중심적이고, 야심
만만하지만 타인의 이득을 생각하지 않는 이들은 아닐까?"
승진을 고려중인 인재들을 선별하기 위해서 던지는 질문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항상
이 질문을 던집니다. '자신있는 것이 뭐지요?' 주목할 만한 건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일을 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거든요. 사람들에게 우리의 목표를 확실히
알임으로써 그 일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으니까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가를 알아야 합
니다. 바로 그것이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 비장의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성공적인 경영자가 되고자 한다면, 내가 누구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실하
게 감지하는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미래를 보는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그 미래에 끌어들일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또한 리더십이란 조직에 부여한 모든 의무를 완벽하게 해내고 소화해
낼 수 있는 적임자를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최고 리더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의미했지요. 그러나 지금의 CEO는 겸손을 최우선으로 하는 직업입니다.
더 많은 것을 추구할수록 스스로를 낮추어야 하는 이유를 더욱더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잘난
척할 그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이 언제나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짐 브로드헤드(Jim Broadhead)
FPL 그룹(FPL Group) - "실행하라!"
제임스 브로드헤드는 엔지니어에서 변호사로, 또 전화회사 리더로 변신했다. 그는 에너지
규제 철폐의 시대에 플로리다 파워 앤 라이트라는 이름의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 필요했던
모든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제임스 브로드헤드는 평범하지 않은 배경을 지닌 인물이다. 주노비치에 자리잡은 기업에
대한 그의 기획들 또한 평범하지 않다. 지금은 FPL 그룹으로 알려진 이 기업은 '선샤인
주
(Sunshine State)'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플로리다 주의 360만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왔다. 그러는 사이 이 기업은 플로리다에서 가장 큰 공익 사업체로 알려졌
다. 장기적인 기업의 목표는 더욱 광범위해졌다.
브로드헤드는 미국과 국제시장에 확보하고 있는 투자가들을 위한 보호책으로서 FPL 에너
지라는 새로운 계열사를 설립하였다. 이 부서는 캘리포니아, 버지니아, 메인, 메사추세츠, 그
리고 뉴저지를 비롯한 12개 중의 발전소를 매입하거나 건설했으며, 해외시장에도 손길을 뻗
치고 있다. 또한 FPL 은 콜롬비아와 북아일랜드에도 실비 기지를 소유하고 있다.
브로드헤드는 FPL에 발을 들여 놓기 이전에 이미 많은 기술을 개발했으며, 급속히 성장
하는 다분화된 전력회사 운영을 위해많은 도전을 시도하면서 그 모든 기술을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브로드헤드는 FPL로 옮기면서 모든 분야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기술자 훈련을 받았다. 그의 첫 번째 직업은 잉거솔-랜드의 전력기업 공급자였다. 양
수기, 압착기, 터빈(원동기), 응축장치 등을 FPL 같은 전력 회사에 납품하는 일을 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FPL(플로리다 전력) 같은 기업의 CEO 자리를 넘겨받은 브로드헤드의 상
황은 상당히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고약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기업은 아주 구식의 전력공익설비 업체였습니다. 품
질면의 기술은 훌륭했지만, 가격이나 생산성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더군요. 게다가 움직
임이 아주 느리고, 융통성도 없는 관료주의적인 기업이었습니다."
"지독할 만큼 경쟁이 치열한 천연자원 사업 속에서 성장해왔고, 통신사업 분야에서 일어
났던 많은 변화들을 직접 목격해왔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는 여기에서도 경쟁적인 환경에
직접 맞닥뜨리게 될 것을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인계받은 지위에 대한 브로드헤드의 반응 또한 낙후된 사업을 경영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
아낸 솜씨좋은 경영인의 전형이었다.
"우리는 변화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확실한 전략 개발이 절실했지요. 전략을 개발하기 위
해 우선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우리의 기업 환경
이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이에 대해 각자가 기대하는 기
업이 환경을 기반으로 우리는 계속 노력했습니다."
"첫 1년이 지나고 나서 우리는 다음의 네 가지 사항에 주력했습니다. 원가 상태를 개선할
것, 품질을 강화할 것, 더욱 고객 중심으로 임할 것, 신속하고 융통성을 지닐 것, 이것이 우
리가 전념해야 하는 사항이었습니다."
그후 브로드헤드는 새로운 CEO의 자리에 오르면서 유감스럽게도 전혀 전형적이지 않은
일을 시작했다.
"일단 전략을 세웠으면, 그 시점 이후의 모든 일은 이 네 가지를 성취하기 위해서 행해져
야 했습니다."
"승자와 패자의 경계는 실행했는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승자가 되기 위해
서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명확한 신념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해내야만 합니다. 전국의 수많은 기업들에게도 셀 수 없을 만큼 훌륭하고 중요한 전략들이
있겠지만, 그 전략들을 지정으로 훌륭하게 시행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봅니다."
미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첫 단계는 모든 이들에게 그것을 확실하게 알리는 일이었
다. 기업의 새로운 비전에 관한 설명은 간단했다.
"안전과 신뢰는 기본입니다. 모든 고객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효율적 가격과 제품과
관리를 남보다 먼저 공급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비전입니다."
이렇게 임무를 정의함으로써 브로드헤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요점을 세웠다.
과거와는 달리, 누가 전력을 공급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사항은 선택권이
고객에게 있다는 것, 다음으로는 고객 주도의 선택에 품질과 가격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 그
것도 전기도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에 다른 공급자들과 다른 공급자들의 차별화를 위해서 그
이상의 무언가를 판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브로드헤드는 FPL이 단지 가스와 전기 판매업체에 한정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기업이 취
급하는 것이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에, 기업이 할 일은 합리적인 가격에 그 필수품을 판매하
는 것뿐이었다.
해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미래가 분명하더라도 변화가 필수불가결한 기업 내의 모든 사람에게 그 미래가 명확하게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고객을 낚아가고 손해를 끼치는 경쟁자들과 만나면 직원들에게 사업방식 변화에 필요성을
주지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FPL은 아직 그런 어려운 상황에 부딫히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더 유리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동기부여를 할 만한 위기가 닥치지 않는
경우에는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주 힘든 도전이었습니다. 변화 과정의 초창기에서부터 말씀을 드리지요. 사실 처음에는
가만히 앉아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전략이 이러이러한 거라고 설명한 후, 직원들에게 이
대로 실행하라고 명령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았지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이, 비전은 모든 직원이 하나의 팀을 이루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환경을 위한 중대한 성공 요소가 무엇인가를 밝혀줄 만한 또 다
른 팀을 구성했습니다. 또한 우리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기 위한 팀을 이루었고, 마지막으
로 최고의 조직적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이와 관련된 팀을 만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
의 기획 과정에 약 100명 정도가 함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품질 프로그램도 변화시켰습니다. 약 500명의 직원들이 20명에서 25명 정도의 그룹을 이
루어 대화를 했습니다. 그 결과를 토대로 회사 전체에 걸쳐 약 15명의 직원들로 또 한 팀을
구성했습니다. 매매 관련 부서의 직원들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들의 임무는 품질 프로그램
의 변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지요. 우리가 직면하게 될 경쟁적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서."
"기업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부르짖던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초창기부터 함께 일해왔습
니다."
"동시에 산업분야의 변화를 직시하고, 그러한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
해서 의욕적인 의사소통을 시도했습니다. 매달 비디오도 찍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매주 찍
는 것으로 바꾸었지요. 또한 작은 월보를 발간하게 되었고, 곧이어 격주의 타블로이드판 신
문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년에 4번꼴로 150명의 고위급 경영진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또 중요한 실행안건은 모든 사무실에 내보냈는데, 내용은 언제나 똑같
았습니다.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대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심각한
문
제에 부딪칠 것이다.' 원가개선, 품질 개선, 고개 위주, 민첩성과 융통성 함양 이 네 가지 중
점 사항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노력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성공을 이룰 때마다 자부심을 느끼며 서
로가 끝없이 이야기했지요. 이러한 의사소통을 통해 안목을 넓혔습니다. 동시에 작업 방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성공을 이룰 때마다 자부심을 느끼며 서
로가 끝없이 이야기했지요. 이러한 의사소통을 통해 안목을 넓혔습니다. 동시에 작업 방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위직에 대해 대대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내가 이곳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이런
모든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설득이라는 방법 때문입니다. 조직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특히
거의 75년 동안 똑같은 방식으로 일해오던 조직을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외부에서든 혹은 조직의 말단 직원이든 상관없이 핵심이 되어줄 인재를 영입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폭넓은 경험과 사물을 내다보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입한 인재들에게는 남다른 일을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해주지요."
"또한 모든 훈련 프로그램의 묶은 찌꺼기를 없앴습니다. 새로운 확장 프로그램을 도입하
여 필요한 기술과 행동을 교육했지요. 심지어 공동작업 절차까지도 바꾸었습니다.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과정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정의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FPL의 전통적인
위계구조는 수십 년에 걸쳐 발전돼왔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실수도 없었음을 확인시키기 위
해서는 상당수의 세부적인 비공동 작업절차를 제거해야 했습니다. 그런 절차를 담당하는 부
서까지 있었습니다. 그저 작문을 쓰는데도 절차가 있을 정도였거든요!"
"그런 절차들을 거의 강제로 축소시키게 되면, 기업의 오랜 관습에 길들여져 있던 사람들
이라 할지라도 과거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비공동 작
업절차를 검토하고 불필요한 점들을 제거했습니다. 또한 계속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
는 것을 재정비하기 위해서 직원들과 함께 교차 기능적 팀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계속 보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재정비하기 위해서 직원들과 교차 기능적 팀을 만들었습니
다. 이 팀은 공동 절차의 80퍼센트를 제거했습니다. 고작 20퍼센트만 남겨둔 거지요.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기업 전체에 걸쳐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에 일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바라
던 일이었지요."
"우리는 개개인의 능력을 높이 사기 위한 보상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효율성에 장애가 되
는 작업 규칙들도 제거했습니다. 생산성에 걸림돌이 되는 사항을 제거하고자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는 선견지명을 가진 노조는 굉장한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브로드헤드는 FPL의 모든 사업방식을 체계적으로 일일이 살펴보았으며, 그
것들을 기업의 새로운 비전에 맞추어 재정비시킨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가격과 품질, 고객 관리, 속도와 융통성의 네 가지 사항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지금도 그러
헥 하고 있답니다."
"내가 아는 다른 전력 기업에 비해 생산성에서만큼은 많은 개선이 이뤄졌다고 생각합니
다. 6, 7년 안에 단위 원가가 30퍼센트 이상 줄어들 것이고, 지금도 감소하고 있는 추세입니
다. 게다가 발전소의 유용성도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즉 우리가 가진 이점을 더욱 효과적으
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품질 척도 또한 개선되었고요."
"지속적으로 산업분야의 최고 기업들과 우리를 비교 분석합니다. 할 수 있다면 세계 최고
의 기업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브로드헤드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우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진정으로 공동 문화를 변화시키면서 목표에
도달하고자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동 문화'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마
치 '권력 위임'처럼 점잔빼는 말투같이 들리거든요. 그러나 어찌됐던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
음가짐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기업은 미래의 이상형을 향해 달려갈 그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모든 노력의 결말은 무엇인가?
오늘날 전국의 수십 개에 달하는 전략회사들은 새로운 경쟁자들과 필사적으로 맞서서 그
들의 고객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FPL은 그러한 문제가 없었다.
전일근무를 하는 직원의 수가 1991년 이래로 40퍼센트 까지 떨어졌다. 이는 곧 더욱 효율적
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플로리다의 고객들은 1985년보다 10퍼센트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전력을 사용하고 있습니
다. 물가 상승폭을 계산하면, 40퍼센트 이상 더 싼 가격이지요. 이곳에는 고정된 수입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있다면 그
것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부담없이 플로리다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력가격은 더욱 저렴하면서도, 전력 배급은
더 믿을 만하니까요. 문명사회의 필수요소를 공급하는 중요한 일을 아주 훌륭하게 공급하는
중요한 일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한 기업의 지휘자로서 이것이 너무나
도 자랑스럽습니다."
"그것은 고객의 편에서 나온 것입니다. 주주의 입장에서는, 우리 기업이 생산성과 품질면
에서 많은 개선을 이룩하면서, 주주들이 산업지수 이상으로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에 자부심을 운영되어온 성장 기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포천>의 여론조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전력업체로 선정된 것 또한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지요."
되돌아보면 이 모든 성과는 브로브헤드 덕분이다. 그가 전략을 착실히 실행했기 때문인
것이다.
"전략이라는 것은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한 장의 종이에 지나지 않으면 한 장의 종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CEO의 임무이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번지르르하고 훌륭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 리더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훌륭
한 전략만 가지고는 기업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지고 있는 이라면 어떤 일이 필요한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그에 응
하는 결과를 얻어내야만 합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직접 실행했던 것이다.
스티브 케이스(Steve Case)
AOL(America Online) - "편지 왔습니다!"
수년간 기술 전문가들은 AOL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것이 정말 사실인 듯 여기게
만드는 사건도 일어났다.
우선 '전문가'들은 AOL의 기술이 시대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고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
터넷에 접속하기 위해서 AOL을 사용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에 개발된 새로운 기술 덕
분에 인터넷 사용은 더욱 인터넷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AOL은 접속 시간에 따라 사용료를 부과하는 기존의 요금제 대신에 접속 시
간에 상관없이 매월 고정된 사용료를 납부하는 일종의 균일가 제도를 도입했다. 다시 사용
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용자의 폭주로 인해서 서버로의
접속이 자주 불통되자 집단 소송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제는 AOL의 절박한 상황을 언급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용량을 증설함으로써 접속을 시도할 때 계속됐던 통화중 신호는 문제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게다가 1998년 후반, 넷스케이프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AOL이 시스템이 미
숙한 인터넷이라며 조롱을 일삼던 비평가들을 침묵시켰다.
AOL이 제공하는 갖가지 컨텐츠와 선택사항 덕분에 회원수는 꾸준했다. 특히 '대화방'
의
인기는 놀라울 정도였다. 서비스 내용이 사용하기에 아주 간단했던 것도 이러한 인기 유지
의 비결이었다. 사실 케이스가 사업 계획 초안을 잡는 데 사용했던 원리도 이와 똑같은 것
이었다.
그 원리는 고객들에게 작업하기 쉬운 서비스, 지극히 유용한 서비스, 즐거운 서비스, 부담
없는 가격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기업의 설립자이자 CEO인 스티브 케이스는 결국 최후에 웃는 자가 되었다. 사실 그 이상
의 수확을 거두어들인 셈이었다. 그것은 바로 15년 전 그가 꿈꾸었던 이상을 실현했다는 것
이다. 1985년 케이스가 AOL을 세웠을 무렵, 그의 목표는 광대한 온라인 서비스 시장을 창
출했다는 것이었고, 그의 바램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요즘 할리우드에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편지 왔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
다.
AOL이 얼마나 성공했는가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이 말은 전자우편을 받는 사용자들이
라면 언제나 듣는 말이며, 또한 1998년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 주연의 영화 제목이기도 하
다.
산업의 공동묘지 안에는 신설기업으로서 똑같이 출발했으나 별다른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거대한 사업체로서의 존속에 실패한 수천 개의 기업들이 남긴 유물로 가득하다. 그 원인은
거의 비슷하다. 기업의 설립자가 급속한 발을 맞추지 못했거나, 신속하게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한 사람의 경영방식에 얽매이는 기업은 결코 출발지점을 벗어나 앞
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스티브 케이스는 새로운 상업적 범주로 자리잡은 자동차, 텔레비젼, 컴퓨터 산업의 가장
뛰어난 개척자들의 내력을 상세히 연구하며, 그들의 문제점을 자세히 파악하였다. 이를 통해
기업의 신설에서 경영에 이르는 과정의 변화가 생각보다 비교적 수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
았다고 한다.
"원래 한 5년 전쯤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아이디어로 떠올랐습니다.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모든 것을 내가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가정해서 거기에 맞춰 일을 조직화시키면 어떨까 하고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좀 시간이 걸렸지만, 나중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생각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지요."
"5년이나 10년 전에는 직원수가 고작 몇백 명 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결정에
관여했지요. 각종 발표문과 광고문도 작성했고, 그밖에 아주 고전적인 업무를 했지요. 그러
나 날이 갈수록 너무 많은 상황들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있
었기 때문에 책상 위에는 일이 계속 쌓이기 시작했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그 많은 일을 다
할 수가 없더군요. 직원들도 절망하게 됐지요. 그제서야 훌륭한 기업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내게 주어진 임무를 '이행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행하도록 지도하는 것'으로 바꾸어야 한
다
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방법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한 '비결'은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문제는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는 거지요. 진정으로 확신을 주고 믿음을 주는 그런 인재들 말입니다. 한 사람
은 이것을 책임지면, 또 다른 사람은 저것을 책임지는 식으로 일을 조직합니다. 내가 책임져
야 하는 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말이지요."
"이렇게 하면 CEO으로서의 임무는 변화합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혹은 얼마나 많
은 결정을 내렸는가에 근거한 평가 대신에, 얼마나 많은 핵심적인 결단을 내렸는가로 그 기
여도를 평가받게 되지요."
"이러한 새로운 방식에서 내 역할이야말로 신설 기업에서 선두주자로 입장 서게 되는 열
쇠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또 다른 마음가짐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문제가 생
기면, 이렇게 되물어야 합니다. '내가 꼭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되는 일입니까? 알고 보면 거
의 언제나 아니었습니다. 내가 처리해야 하는 일도 물론 있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문제
는 그럴 필요가 없었지요."
우리가 무엇을 대표하고 있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물론 케이스는 자신을 표면에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의 생각은 일리가 있었다. 설립된 기
업은 자유롭게 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간섭하지 않는 접근방식으로
경영하는 경우에는, 그 지도방식이 조직 전체에 속속들이 알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AOL에
는 이런 것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아마도 케이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두 가지의 커다란 요소는 열정과 편집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는 이 두 가지를 열렬히 신봉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케이스가 수년 전에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인 빌 게이츠를 방문했던 것은 지금도 유명한 일
화이다. 이 실화에 따르면, 당시 게이츠는 케이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의 AOL의 20퍼센트를 매입할 능력이 있습니다. 100퍼센트를 인수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AOL를 사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 산업의 리더가 내뱉은 이 같은 조언은 그에게 성취하고자 하는 일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잠재적인 가능성이 어떻든 경쟁사에 대비해서 끊임없이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 시켜주었다.
"5년 전만 해도 야후나 아마존과 같이 이 시장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 그들은 아주 중요한 신생 기업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소위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는 기업은 생성될 수도 있고 혹은 몰락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편집증적 감각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물론 이런 얘기는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많이 들으셨겠죠. 기업이 거만하거나 자기 만족
에 빠지게 되는 날이 바로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수렁 속으로 떨어지는 날이 될 것입니다.
이곳은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시장이며,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장입니다. 자기 만족에 빠지
게 되면 훌륭한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따분함을 느끼고 실망스러워하다가
결국은 달아나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휘청거리는 거인이 될 것입니다. 창
창한 미래가 기다리기는커녕 전성기는 이미 과거 속에 묻혀 버린 덩치가 커다란 거인 말입
니다."
편집증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제품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편집증 그 자체로는 과히
좋은 것이 아니다.
"AOL은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고 그들을 유지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직원과 회의했던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지성과 열정에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는 말을 전해 듣
는 것이 내 기쁨이지요."
열정은 대단히 결정적인 요소이다.
"자신의 일에 대해 확신이 있을 때, 그것이 중요하다고 스스로 믿을 때, 비로소 자신이 아
주 중대한 과업을 맡고 있는 개척자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물론 실수를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충분한 에너지와 헌신적인 태도로 그 실수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산업에서 인내력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일이 어렵다고 또는 장벽에 부딪쳤다고 두손들고 물러나거나 그만두는 경우가 많
거든요. 그렇지만 항상 '좋아, 우리는 견뎌냈다. 그것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
니다."
AOL이 지나온 기나긴 고난의 시간 속에는 이러한 인내가 숨어 있었다. 초기에는 인터넷
에 접속하는 것은 어렵기로 유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잊어버렸겠지만, 보수적인 사람
들은 CBS, IBM, 시어즈(Sears)가 맨 처음 탄생시킨 인터넷 서비스에서부터 AT&T, MCI
그리고 다른 기업들이 제공해온 컴퓨서브(Compuserve)에 이르는 다양한 경쟁 상품들로 인
해, AOL이이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될 거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그러나 패더럴 익스프레스(Federal Express)의 윌리엄 J.라조크(William J. Razzouk)가
AOL의 최고 경영관리자로 영입되면서 균일가 제도 도입 때문에 생긴 문제들은 단 4개월
만에 자취를 감추었다.
이러한 모든 문제에서 AOL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인내심이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다.
더욱 필요한 것
케이스 인내심과 더불어 미래를 제대로 전망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기 때문에 역사적인 정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
는 오히려 상황을 뒤집는 전망을 하기도 하죠. 전에 그런 유의 영화를 많이 봤는데, 그 영향
을 받은 것 같아요. 최근에 우리 회사에 들어온 사람들은 보지 못한 것도 있을 겁니다."
"새로운 산업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갖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균형을 맞추는 것
이 필요하지요. 한편으로는 열정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연결되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가
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기다리기만 할 뿐,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결코 그곳에 다다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미래와 열정에 대한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실용적인 접근법
을 만들어야 합니다."
AOL의 성공을 살펴보면 케이스가 이러한 생각을 그대로 실천에 옮겨왔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어디서 이 같은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물으면, 그는 이
렇게 간단하게 대답한다.
"50년 후면 지금의 이런 매체들도 역사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겠지요. 그때 사람들이
지금의 매체들에 대해서 '수많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약속은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 가능
성에 대한 기대에는 부흥하지 못했다.'고 결론짓는다면 정말 비극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를 텔레비젼 같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실망스럽겠지요. 사람들은 텔레비젼이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고, 텔레비젼 때문에
광대한 황무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여깁니다."
케이스가 온라인 서비스에 기대하는 일반적인 비전, AOL에 품고 있는 특별한 미래의 모
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의 소원은 전화처럼 혹은 그보다 더욱 실용적으로 사람들의 일상
한가운데에 우뚝 설 수 있는 세계적인 매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50년 전, 나중에 우리 손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겠다고 다짐했었지요. '나도 그때
있었단다. 지금은 대화 매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낸 개척자 중 한 사람이었지'라고 말
입
니다."
케이스가 이르기 위한 길을 가고 있다는 흔적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성인이지만
케이스는 아이처럼 편지 받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항상 더 많은 편지를 받고 싶어요. 하루에 5천여 통의 전자 우편을 받는데도 말입니다(at
Steve Case@aol.com)"
존 챔버스 (John Chambers)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 -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알
고 있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편집증 환자가 되기를 열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텔의 앤디 그로
브는 자신의 베스트셀러인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라는 제목을 그의 개인적 기도문에
서 빌려왔다고 한다.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해라는 부탁에 존 챔버스는 재빨리 "P"라는 단어
를 사용하였다. 편집증(paranoia) 안에는 무엇인가 있는 것 같다. 챔버스의 지도 아래 시스
코 시스템즈가 이룩한 성과는 인텔만큼이나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1991년 존 챔버스가 시스코에 합류했을 당시, 이 기업은 12억 달러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
었다. 8년 이 후 기업은 1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성공의 대열에 올라섰다. 이에 대한 챔
버스의 전략적 목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시스코는 모든 주요 컴퓨터 통신분야에서 1
등이나 2등을 하기를 바랐다. 궁극적으로 고객을 위한 원스톱 통신망과 인터넷 쇼핑을 제공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시스코는 두드러진 내부 성장이 필요했다. 또한 계속적인 인수 작업을 진행해
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챔버스가 CEO에 오른 다음부터 지금까지 무려 12개의 기업을
인수했다. 인수작업이란 언제나 까다로운 일이다. 그래서 챔버스가 법학 박사학위뿐 아니라
MBA 학위와 기술분야의 전문지식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많은 기업을 인수하면서, 챔버스는 성공요인을 5단계 공식으로 구체화시켰다.
1) 두 기업간 공통된 이상을 갖도록 한다.
2) 거의 즉각적으로 단기간의 승리를 일궈낸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간의 직원들은 서로
흥미를 잃게 될 것이다.
3) 제휴에는 장기적으로 전략상 중요한 가능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4) 두 기업의 직원들간에 훌륭한 성격적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5)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습득된 재능이 오래 유지될 것이다.
챔버스는 이 다섯 가지 사항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재능이 곧 핵심 요소인 산업에서
가장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은 수완이다. 시스코가 능수 능란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이
었다.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주식 매입 선택권, 즉 스톡옵션이다. 1년 후, 직원들이 가지
고 있던 상장되지 않은 옵션의 평균 가공 가격 이익은 12억 5천 달러를 넘어섰다. 평균 초
봉은 기업 최고 수준인 약 7천만 달러에 이르렀고, 20대 초반의 직장인으로서는 가히 최고
의 대우였다.
존 챔버스에게 성취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는 일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이렇게 답할 것이다. "고객, 직원, 주주, 파트너들에게 전에 없던 기회를 부여하는 것입니
다."
이 대답이 대본에 쓰여진 대로 보고 읽는 것처럼 들린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모든 직
원들은 기업의 목표가 적힌 작은 카드를 항상 지니고 다닌다. 이것은 시스코가 목표에서 눈
을 떼지 않도록 하기 위한 챔버스의 작은 방법이었다.
"내가 CEO가 되었을 때 이 목표를 세웠습니다. 조금 도전적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겠노라
고 말했습니다. 이전에 누구도 한 적이 없는 일을 하게 될 것이며, 이 산업에서 확실한 선두
주자가 될 거라고 말이지요."
월 스트리트의 하이테크 산업 전체에 걸쳐 시스코의 주식은 동나버렸다. 이러한 시스코의
성공으로 그의 성공 또한 증명된 셈이었다.
비결은 무엇일까? 기업의 기술적 능력을 자신하면서도 늘 섬세한 균형을 유지했던 것, 그
리고 고객의 요구에 늘 귀를 기울였던 것이 바로 성공 비결이었다.
"그 두 가지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건전한 편집증 증세가 필요하죠. 기업의 초창기부
터 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끊임없이 커나가리라는 것을 확신했어요. 그런 식으로 일이
풀렸습니다. 데이터 통신망에서 선두에 서게 되었으며,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과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는 컴퓨터 기업이 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또한 가장 처음으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시장자본 형성 금액 천억 달러 시대를 이룩하였습니다(시스코는 창업 이래 12년 만에
천억 달러에 도달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년이 걸렸다.)"
시스코가 명실상부한 선두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챔버스는 종합적인 기술 시장에서의
살아있는 본보고기가 되기 기업의 대대적인 전환을 시도하였다.
"우리는 5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 제 1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입니다. 하루에 2천만
건의 주문이 들어옵니다. 그중 64퍼센트가 인터넷을 통해 들어오지요. 고객과 연결되는 인터
페이스의 70퍼센트가 사람의 개입 없이 통신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
는 데 4년이 걸렸지요. 이제 고객들은 기술자와 이야기하는 것보다 통신망을 이용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 덕분에 직원들에게 경비를 1년에 1억 5천만 달러나 절감하게 되었습니
다."
"내가 여기에 왔을 무렵, 정보시스템 기능은 그저 값비싼 항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경쟁력을 갖춘 이점으로 전환시켰습니다. 드디어 작년에는 7개의 웹망을 토대로, 20억 달러
의 기본 지출 중 5억 달러를 절감하게 되었고, 그것을 연구개발(R&D)에 투자, 분배하였습니
다. 매년 가까운 경쟁자들이 R&D에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절감했지요. 기술력이
없는 사업가에게 경쟁력을 갖춘 이점을 설명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기술에 전념하는 것은 내부적인 이득이기도 하였다.
"직원들이 처음 시스코에 지원하는 순간부터 마지막 월급을 받을 때까지 모든 의사소통은
인터넷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아마도 모든 교과서에 쓰여 있듯이 공급자들은 실질적인
기업의 한 부분이나 한 부분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고 천천히 그들을 끌어들이려 할 때,
우선 시스코의 예를 들고 그 다음에 다른 산업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확대시켜 설명한
다면, 비로소 왜 인터넷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는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산업혁
명은 어떤 국가가, 어떤 기업이 개인을 위한 최고가 될 것인가를 다시금 바로잡았습니다.
인터넷 혁명이 이룩한 성과 또한 이와 같습니다. 인터넷은 사람들이 활동할 공간을 잘 닦아
놓을 것입니다.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잘 이용하는 국가, 기업, 개인이야말로 성장하고 살아
남은 이들이 될 것입니다."
분명히 챔버스는 시스코를 변화의 최전선에 올려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넘어서 기업의 번영을 이룩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챔버스는 기업의 재정을 추적하는 데서만큼은 냉혹할 정도로
정확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모든 분야를 실시간으로 평가하지요. 예를 들면, 하루를
마치면서 지리적인 사항, 제품 유형, 수익에 따라서 뭘 주문하겠는지 알게 됩니다. 매일 점
검하지요. 이제 회계장부를 거의 이틀 안에 마감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업도 이런 일을 할
능력이 없을 겁니다. 우리는 이런 능력을 가졌습니다.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즉
장부를 꼭 마감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을 향해 움직이는 거지요. 언제 어느 때라도 어느 정
도의 위치에 서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숫자를 추적하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챔버스는 인정한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주었다.
"고객 만족은 가장 중요한 척도였습니다. 그것을 신뢰함으로써 보상 시스템과 실제적인
경영 방침 등에 결합시켜야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고객 만족도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측정하였습니다. 모든 고객
의 방문 후에 1에서 5까지의 척도를 가지고 측정했습니다. 모든 문제는 얼마나 그것에 잘
대처하는가에 달렸습니다. 나는 매일 밤 모든 중요한 대응을 얼마나 잘했는가를 검토했습니
다. 평가는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의 핵심 경쟁자들과 비교
해서 이루어졌습니다. 1년에 한번 우리는 이 모든 결과를 종합했고, 점수를 가장 잘 받은 관
리자에게 수당금을 지급했습니다."
이것이 챔버스가 만들고자 하던 기업의 모습이다.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우리의 성공으로 얻은 세 가지 결과
라고 하고 싶군요. 첫 번째는 고객의 성공에 열광적으로 다가간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말
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얘기했던 것을 진행시켰고, 보상 제도와 결합시켰으며,
우리의 시간 활용에도 접목 시켰습니다. 회사 내의 누구에게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만든 팀의 수준입니다. 우리 팀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가에
대해서 리더로서 너무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상위 10퍼센트에서 15퍼센트에 올라 있던 사람들을 영입했고, 그들에게 한 팀으로서 유일한
방법은 계속 동기를 부여하는 것, 목표를 위해 한 팀으로서 함께 일하기를 원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봉급을 주는 것만으로는 이곳에서 계속 일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돈
을 원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마지막으로 적절한 이상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성공하고자 하는 것, 성공을 위해 실행해
야 하는 것에 대한 핵심 원칙을 정했습니다. 엉터리 기술자의 지식이 아니었기에 거대한 경
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
날 것인지도 예측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발전적으로 일관된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인터넷
덕분에 정보의 흐름은 더욱 빠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으로서
최고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어디서나 통하는 전략
우선 고객을 잡을 것, 계속 주시할 것, 주위의 모든 자원에 의존할 것, 이것이 시스코의
성공을 위해 챔버스가 내린 처방전이었다. 직업적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챔버스가 들려
주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항상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은 인생에서 스스로 이루고자 하는 일은 모두 일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어진 인생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 앞
에 놓인 장애물이 자신을 비껴가기를 바라기보다는 그것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린 시절에 나는 학습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난독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나 졸
업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요. 부모님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지만, 항간에는
그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내 문제였습니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돌봐주신 너무나도 훌륭한 한 선생님의 도움으로 결
국 그 병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학습장애가 널리 인식되기도 훨씬 전이었거든요. 그
래서 '나는 이러저러해서 못하겠다' 고 말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좋은 본보기로 이 예를
들
려줍니다."
"그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아요. 세 번째는 자신이 대우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남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비결이요? 매사에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는 거지요. 인생
을 너무 심각하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방법은 의심의 여지없이 존 챔버스와 시스코에 적중했다.
마이클 델(Michael Dell)
델 컴퓨터(Dell Computer) - "직접 판매의 힘"
가장 짧고도 가장 효과적인 주주간담회가 열렸다.
2년 전, 델 컴퓨터 주주들이 연차 모임을 위해 모였을 때였다. 설립자이며 사장인 마이클
델은 앞으로 나와서 델의 주식을 코카콜라, 컴팩(Compaq), 인텔, 마이크로 소프트의 주식
성과와 비교한 슬라이드를 주주들에게 보였다. 청중들이 "델"이라고 이름붙은 그래프 기울
기가 최소한 다른 기업들의 두 배나 높이 서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5초도 걸리지 않았
다.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기업으로 유명한 이들을 델이 능가했던 것이다.
주주들의 감탄이 여기저기서 울려펴지자, 델은 그들을 바라보며 "자, 이것으로 우리의 발
표를 마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수갈채는 계속 이어졌다.
델은 설명을 이어나갔지만,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차트가 날카롭게 핵심을 지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생에서 산업에 대혁명을 한 번 일으킨다는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두
번이나 혁명을 일으키는 것, 그것도 서른 살 생일을 채 맞이하기도 전에 그 일을 이루었다
는 것은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컴퓨터 회사를 만들기 시작한 초창기부
터 함께 했던 투자가들이 알고 있듯이, 역시 마이클 델은 대단히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델과 델 컴퓨터의 역사는 아주 잘 알려져 있다. 델은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1983년 텍사스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그는 오직 컴퓨터를 이리저리 마지작거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첫 학기 동안 델은 유행이 지나가 재고로 쌓여 있는 구형 IBM 컴퓨터들을 지역 소매상들
로부터 구입하여 기숙사방에 가져다놓았다. 그리고 학교뿐 아니라 지방의 사업체들에 팔기
작했고, 첫 달의 총수입은 무려 18만 달러였다.
델은 곧 낡은 기계들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대신, 컴퓨터 전체에 들어가는 부품을 더 저렴
한 가격으로 구입해 이를 직접 조립했다. 그렇게 조립한 기계들을 기존 상표 가격보다 15퍼
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고객들에게 판매했다. 델은 모델이 실질적으로 더욱 성능이 뛰어나긴
했지만 아주 우연히 그는 첫 번째 혁명을 이룩하였다.
이 무렵만 해도, 사실상 모든 개인 컴퓨터는 다른 소매품들과 같이 상점(개인 컴퓨터만
취급하는 곳이나 전자제품 할인매장)을 통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델은 그럴 필요가 없으며,
또한 자신의 유통방식이 적절하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혁명은 몇 년 뒤, 델이 직접 컴퓨터를 주문 받아 제작, 판매하기 시작했을 즈음에
일어났다. 새로운 상표가 생기게 되었던 것도 이때였다. 고객은 전화를 하거나 인터넷을 통
해 회사와 연락을 취하고, 자신의 컴퓨터를 구매할 때 반드시 필요한(혹은 원하지 않는)사양
등을 설명한다. 미리 놓아놓은 주문에 따라서 만들어진 기계는 36시간 내에 배달된다.
이 방법은 기업이 값싼 제고품들을 최소화하는 데 한몫했다. 델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경
쟁자들이 이 방법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객을 직접 만나는 델 컴퓨터의
성공 전략과는 거리가 멀었다.
개인적으로 델은 이전까지 존재했던 모든 이정표를 새로 세웠다. 1992년 27세의 델은 <포
천> 선정 500대 기업 중 가장 젊은 CEO가 되었다. 오늘날 텍사스에서 가장 부유한 남자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델 컴퓨터의 주제가를 공모한다면, 2년 전에 유행했던 '미래가 너무 밝아, 내겐 그들이 필
요하네'라는 가사가 어울릴 것이다.
다음의 세 가지 요소에 주목해보자.
1) 컴퓨터 가격이 계속 하락함에 따라 수익을 조금이라도 남겨보려고 어떻게 고객과 직접
거래할 것인가를 알아내려고만 하는 경쟁사들에 비하면, 이 기업은 화려하게 자리를 잡았다.
델은 이미 전문가였으며, 고객들에게 직접 컴퓨터를 판매할 뿐이다.
2) 인터넷은 델의 위치를 직접 리더로서 확고히 하도록 도움을 줄뿐이다.
3) 컴퓨터 기업은 델고 같은 비교적 신세대 기업을 괴롭히는 수많은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제들을 이미 극복해왔다. 델은 영원히 존속할 것처럼 보이지만, 1984년에 세워진 기업일
뿐이다.
마이클 델은 이것들을 한 가지로 압축한다.
"초창기부터 우리는 상인들의 가격 인상에 신경쓸 필요없이 직접 고객들에게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더 좋은 가격, 더 훌륭한 서비스에 최신식 기술까지 더해 고객들에게 직접
제공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굳이 상인들을 통해 판매하려 하겠습니까?"
직접 판매 방식은 거대하고 치열한 경쟁이 나무하는 컴퓨터 업계에서 델의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컴팩이나 IBM과 같은 경쟁사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유통하면서 동시에 직접 판매
를 시작했지만 마이클 델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과연 그 기업들이 우리가 그의 제도를 이용해서 얻은 효과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분석가들도 이제는 우리 같은 모델이 이룩한 성과에
동
의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중개상인을 없앴는데, IBM이나 컴팩에게는 이런
방식은 아마 문제가 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중개상인들이 이러한 생각에 아주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소매상인을 거쳐 물건을 파는 방식으로 사업했던 모든 기업들이 직접 판매방
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실수요자들을 다루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니
가요."
"다시 말하면, 가령 델의 2만 2천여 명에 달하는 모든 직원들을 한 방에 넣고 '지금부
터
직접 판매를 중지하고 간접 판매를 실시할 예정입니다.'라고 말한다고 상상해봅시다. 이것은
너무나 급진적인 전환이지요. 간접 산업속에서 자라게 되면, 직접은 적이 됩니다."
"그래서 경쟁자들이 직접 판매에 뛰어드는 것은 커다란 변화인 것입니다. 이 산업분야에
서 간접에서 직접으로 변화를 시도해 성공한 기업의 이름을 혹시 알고 있습니까?" 델은 다
소 과장된 질문을 던졌다.
숨은 강점
고객을 직접 다루었던 델의 경험이 유리하게 작용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기업의 유일한
강점이 아니라고 한다.
"델은 종종 고정관념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델이 그저 유통수단일 뿐이라고 말하
기도 합니다. 네, 물론 그렇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거의 1년에 3억 3천만 달러를 연구비와
발전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3천여 명의 기술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1년에 수백
가지의 특허를 취득하고 있습니다. 생산력에서 산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리더십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본적인 재료를 찾거나 컴퓨터 양식을 개발하는 데 돈을 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줄 방법인 연구개발(R&D)에 매년 컴퓨터 기업들이 투자하는
십억 달러에 이르는 많은 돈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해내려고 합니다."
"따라서 제품의 보급이나 물류관리 또는 제조업체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모
든 것들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4, 5년 전 델을 생산기업과 보급기업으로 나누어, 각각의 충분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
도록 해야 한다고 누군가가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잠시 동안 이에 대해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후에 다시
생
각해보니,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이 두 가지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거든요. 전에는 누구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
던 방식이었습니다."
인터넷의 성장은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뒤에 가만히 앉아서, '기업에 급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의 기술을
고
안합시다.'라고 말만 하고 있다면, 인터넷보다 더 훌륭한 것을 창조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
다. 본질적으로 인터넷은 고객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직접의 궁극적인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었지요."
"이미 고객을 직접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확장이었습니다. 기
존의 사업방식을 인터넷에 맞추기 위해서 바꿀 필요가 없었지요. 모든 것은 이미 적당히 제
자리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판매, 지원 사양에 대해서 일일이 설명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고객이 직접 그 정보를 얻든지 결과적으로 인터넷은 고객과의 거래비용을 절
감시켰고, 거래속도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예를 하나 들지요. 우리의 큰 사업 고객을 위해서 우리는 거래담당 임원을 보유하고 있
습니다. 이 전문 고용인들이 고객을 책임집니다. 특히 포드를 위해서 많은 거래담당 임원을
두었는데, 1년에 5만여 대의 컴퓨터를 여기에 구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소기업들은 1년에 100여 대의 컴퓨터를 구입합니다. 그렇지만 그 정도 규모에까
지 고객담당 직원을 보낼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질적 고객담당 임원들을 또 만
들었습니다. 델의 제품에 관심있는 중소기업들을 이해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간단한 온라인
브리핑을 실시합니다. 이 브리핑은 한 오후 1시 30분전쯤 시작합니다. 담당 판매원은 고객과
전화로 연결되어, 컴퓨터를 켠 후 "www.dell.com.virtuale' 화면을 띄우라고 우리가 말할 때
까지 전화기를 들고 있습니다. 우선 브리핑을 안내하는 판매원과 전화를 통해 연결됩니다.
그리고 생생한 브리핑을 하는 동안에 고객이 볼 비디오 클립인 비디오 온라인과 연결됩니
다. 예를 들면 내가 직접 델의 사업 모델에 관해서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델만이 장점을 공개하는 보고서가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통해서 나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이전보다 더욱더 효과적인 판매 환경을 만들어주는 인터넷 기술을 이용하고
있고, 이 과정을 온라인에 올립니다. 더 이상 우리는 '우편 번호를 말씀해주시면, 이 물건
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식의 평범한 고객담당 임원은 두지 않습니다. 고객의 시간을 더욱 소중
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효율은 더욱 증가했습니다. 고객은 더욱 빨리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우리는
일종의 부가가치가 있는 먹이사슬을 제공하는 셈입니다. 주어진 도구를 더욱 효과적으로 사
용한 거죠."
"웹 토크라는 우리의 웹 사이트에 대해서도 얘기하지요. 이 사이트는 현재 등록되어 있는
회원만도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일종의 온라인 게시판이나 인터넷상의 대화방과 같은데,
델 회원만이 사용할 수 있지요. 이 안에서 수많은 사용자들은 서로의 컴퓨터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내 키보드가 망가졌어요'와 같은 식이 아닙니다. 말
하
자면 '지금 굉장히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설치중인데, 도무지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군요. 무
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라는 문의를 사이트에 올리면, 이에 대해 의견을 보내주는 사람
이
있을 것이고, 그 의견에 대한 또 다른 대답들도 나올 수 있겠지요. '아, 네. 저도 그 프로그
램을 설치했지요. 완벽하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릴게요!라고 말입니다'
"대용품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고객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상담하거나 전화로 연락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많은 일에서 능률을 올려주고 있다는 점
이 중요합니다."
인터넷을 통한 활동은 델의 모든 업무와 완전한 융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마이클 델이 말
한 내용은 델 컴퓨터가 다른 경쟁기업들을 따돌리는 데 한몫했다.
"소매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판매하는 경쟁기업이 인터넷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아마도
직접 판매보다 훨씬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소매상이 크라이슬러와
거래한다고 합시다. 크라이슬러에 1년에 수천 대의 컴퓨터를 판매할 것입니다. 크라이슬러는
지금은 대단히 괜찮은 조달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곳에서 이 제품들을 살
수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는 온라인을 통해 제조업자에게서 제
품을 직접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소매상에게 지불해야 하는 가격
보다 46달러나 싸게 말입니다. 과연 이 상인들이 제품을 크라이슬러에 또다시 판매할 수 있
을까요? 아마 그럴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간접 판매 기업이 가지고 있는 죄인의 딜레마와도 같은 것입니다. 갇혀
있는 갖아 밖으로 탈출하여 직접 판매를 시작하려면, 그들의 총수익의 98퍼센트를 차지하는
소매상들로부터 제거해야 하니까요."
분명히 델 컴퓨터에는 이러한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능한 배우처럼 실수를 통해 배우며 궁극
적으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
"80년대 중반에 델은 유닉스(UNIX)의 자체 버전을 개발했습니다. 사실 우리 기업으로서
는 성공하기 힘들 거라고 여겨졌습니다. 당시에는 굉장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가지고 있던 재산을 형편없는 용도로 사용한 셈이었으며, 더없는 시간 낭비였습니다."
"우리는 대형 슈퍼마켓을 통해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를 판매한 가장 큰 PC 업체 였습
니다. 우리는 이 결정에 빠져들었고,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직접 판매한다면,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을 믿었지요. 결국은 그들이 틀렸지만,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중대한 실수였지요. 우리 사업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그 경로를 없애버리자, 그 결과는 기업의 재정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기업 내부에 진정한 우리의 전략이 뚜렷하게 인식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직접 판매를 하였고, 그 투명성은 경이로운 결과를 증명되
었습니다. 또한 이 덕분에 다섯 가지 다른 방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모든 관심이 우리에
게 쏠렸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밝은 미래의 보장이었다.
엘리자베스 돌(Elizabeth Dole)
미국 적십자(American Red Cross) - "한 나라의 물적, 인적, 내적 자원을 운영하는 법"
위대한 정치적 순간이었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오자, 사회자는 큰소리로 이렇게 소개했다.
"미국 적십자를 대표하는 엘리자베스 돌 여사를 소개합니다."
500여 명의 직원들은 뜨거운 환호로 그녀를 맞이했다. 1999년 초, 미국의 걸출한 비영리
기업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돌의 연설은 이렇게 막을 올렸다. 그녀는 정치적으로 평범한
사건, 즉 한 조직의 CEO의 위치에서의 사임으로부터 자신의 리더십과 미래, 그리고 국가에
미친 영향력으로 인해 끝없이 칭송 받던 곳인 실질적인 랠리로 접어들게 되었다. 또한 언론
의 취재를 보장해주면서 자신의 사임을 발표하기 이해 시간적 여유를 두고 보도될 날을 정
했다.
남편의 대통령 출마가 있은 지 2년 후, 그리고 미국 적십자사 역사상 최고의 재정성과를
이룩한 그해(자연 재해가 가장 심각했던 해이기는 하지만), 돌은 2000년 백악관 입성을 위한
자신의 캠페인 방향을 효과적으로 정립했다. 드디어 그녀는 후보자의 맨 앞줄에 나섰다.
최고 워싱턴 소식통은 언제나 돌에 대해 적절히 보도하였다.
어떻게 보면 이런 일 모두는 그녀의 교육적 투자에 대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성을
겸비한 여성인 돌은 잘난 척 떠들지 않아도 자신을 내세우기에 충분한 경력을 가졌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성장하여 듀크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총명함과 재능으로 가득 찬 여성이었다.
이것은 또한 내적인 추진력을 기르기 위해 헌신적으로 전념한 결과이기도 하다. 결과는
돌이 여러 해 동안 미국에서 가장 칭송 받던 리더들 중 한사람으로서 여러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리는 사실로 증명된다. 자신이 여성인권 주의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돌
은 이렇게 대답한다.
"정치적 교정을 염두 하여 미리 포장된 대답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던지는 질문이라면,
나는 여성인권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와 자유보장에 대한 대답
을 듣고자 하는 거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나는 여성인권주의자입니다."
돌이 다른 CEO 들과 차별화 된 길을 걸었던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의 경력이 말해
주듯이, 비영리 기업의 효과적인 리더십과 민간부문의 경영과 정부 부처간의 평행관계가 이
보다 더 분명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경력을 통틀어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서 걸었던 대부분의 길은 주로 민간부문 쪽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일반 기업에서 근무했다면, 재벌 베스트 500의 중간 정도에서 충분히 올랐을 것이다. 그렇
지만 미국 적십자는 무보수로 일해주는 많은 손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인본주의적 기업이
다. 3만 1천여 명 직원들이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21억 달러의 조직인 것이다. 그 외에도 자
원봉사 차원의 직원들이 1천 3백만 명이나 된다.
이러한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은 세상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돌은 항상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1962년 법학 대학원의 입학 첫날을 그녀가 어
떻게 맞이했는지 들어보자.
"도서관에 들어가자, 가장 처음 들린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한 남학생이 크게 부르더군요.
'엘리자베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여기는 남자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는 걸 모르냐?
교
육받은 법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남자들 말이야.'"
"그 남자는 지금 워싱턴에서 가장 잘 나가는 명문 법률회사의 사장이더군요."돌은 웃으며
회상한다.
오늘날 돌이 그녀가 받은 교육을 얼마나 유효 적절하게 사용하였는지 또는 CEO로서 그
녀의 능력을 어떻게 발휘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사람들을 찾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녀
의 의사소통 기술과 조직관리 능력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출중했다. 워싱턴에서 돌은 누구
나 보다도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또한 탁월한 기금 조달자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적십자사의 예산 70퍼센트 정도가 근로소득에서 나오는 반면, 1년에 7억
달러에 이르는 나머지 30퍼센트는 거의 기부금을 통해서 모아진다. 또한 적십자사의 수입은
병원에 매매한 혈액 수익금과 교육과정에서 얻은 수익금, 투자해서 돌아온 수익금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다. 이 조직은 많은 사람들이 알 듯이, 정부 산하 기관이 아니다.)
그녀의 명성과 조직의 신뢰는 기부금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반 농담조로 그런
성공적인 기금 조달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잔켈로비치(JanKelovich) 조
사기관의 조사결과, 적십자사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은 비영리 단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를 자세히 설명했주었다.
"일단 시장조사라는 중요한 도구를 민간 기업체로부터 본떠오면서 자금 조달에 능숙해지
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진심 어린 보답을 하기 위해서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경우 고객이란 혈액 기증자, 성금 기부자, 자원봉사자, 우리의 혈액을 제공받는
환자, 재해대책 대상자, 우리의 훈련을 받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필요사항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 연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방향 설정하기
돌이 적십자사를 인계 받았을 당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조직에 적합한 방침을 세우는
것이었다. 혈액의 수혈을 통해서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때문에 혈액
수입 사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유나이티드 웨이(United Way)라
는 일반 자금조달 출처로부터의 수입도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이제껏 적십자는 부서가
너무 많고 겹쳐 있었기 때문에 비효율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혈액사업의 문제가 최우선이었다.
"나는 이것이 얼마나 힘겨운 변화였는지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 미국 혈액공급의 거의
반 이상을 테스트하고, 수집하고, 분류해오던 방법을 전체적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래로 시행해오던 기존의 절차가 잘못된 건 아니었지만, 모두 바꿔야만 했지요.
예를 들어, 기존에는 각 혈액을 유형을 두 가지 방법으로 테스트해왔지만, 지금은 여덟 가지
방법으로 하지요. 이 작업을 완수하는 데 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금액으로는 무려 2억 8
천 7백만 달러가 들었습니다."
그러나 자금조달은 더욱 어려워졌다. 미국 적십자사의 기부금 대부분은 수많은 자선사업
을 펼치고 있는 유나이티드 웨이 라는 조직으로부터 모금된 것이었다. 최근 몇 년간 유나이
티드 웨이가 지역과 국가 자선사업을 늘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미국 적십자사로 들어오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자금의 이같은 감소로 조직은 효율성을 증대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야 했
다.
"비전을 확실히 세우고 공동전략 기획과정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우선 사람들
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비전을 세웠지요.
우리 조직은 그때그때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하고, 또한 의견이치와 주인의식을 확립해야 하
는 구조로 이루어졌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너무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광범위
하게 퍼져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지요."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시장조사와 직원, 자원봉사들과의 만남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이행
하면서, 적십자사의 이미지가 분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어
떤 일인지 설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었다.
"지난 수년간 그래왔듯이 전통 있고 명망 있으며 좋은 일을 많이 해온 조직의 모습을 알
리기에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일반 대중의 자비로운 기부금과 자원봉사자, 혈액 기증자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우리의 열의와 의욕을 몸소 느끼게 할 필요가 있
었지요."
적십자의 후원자들이 모두 함께 절실함을 널리 알리기 위한 통합 마케팅 캠페인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냐가 민간 기업체로부터 본떠온 거라고 선뜻 인정한 부
분이기도 하다.
"적십자라는 조직과 기업체간에는 우리가 기꺼이 인정했던 것 이상의 더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록 비영리 단체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운영을 위한 대가는 주어져야 합니다. 고
객 위주의 운영방식과 남보다 먼저 변화하는 모습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나 비영리 단
체를 막론하고 어떤 사업에서건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전에 잭 웰치가 어떤 조직이든 경영
을 둘러싼 환경에 맞추어 빠르게 변화하지 못한다면, 그 끝이 임박한 것라고 말했던 게 기
억나는군요. 훌륭한 이름과 유서 깊은 서비스, 존경받는 조직으로서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
다 하더라도, 만약 세계의 면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도중에서 멈추면 아마 다음 세기에는 존
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 없이는 그러한 변화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직원들의 가슴속에
기업의 사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회원들의 가슴속에 기업의 사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부터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신념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힘과 추진력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또한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열의가 생길 것입니다."라고 둘은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지적하였다.
1단계 : 자신의 시장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파악할 것.
2단계 :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열정을 가질 것.
3단계 : 조직의 작은 구석에 이르기까지 비전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
"누구나 이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남들이 가지지 못한 놀
라운 기술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성취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전달
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직접 다가서서 충분한 설명과 함께 그들을 격려할 능력이 못 된다
면, 조직은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뼈대를 세운 후, 돌은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집중, 집중, 집중!
"교통부 장관이 되었을 때, 전임자였던 드류 루이스(Drew Lewis)는 '오직 정말 중요하
다
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 사항을 정해서 그것만을 향해서 가시오'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너
무
많은 일을 벌여놓기만 하면, 몇 년 후에는 밤낮으로 일만 하면서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해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란 말이었지요. 결국 자신의 노력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조언이었습니다. 어떤 직책을 맡게 될 때마다 성심성의 껏 노력한 부분이기
도 합니다. 진정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고자 노력했고,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 확실한 목표는 돌의 삶에서 주요 시기마다 커다란 역할을 해냈다.
교통부를 이끌던(돌은 미국 역사상 첫 번째의 여성 3군 리더였으며, 국가해상보안대는 교
통부의 한 부분이었다.)돌의 임무는 "미국의 물적 자원을 감독하는 것"이었다. 고속도로 건
설, 조선, 항공 수송 통제, 수많은 국가의 철로 시설 관리 등이었다. "민영화의 본거지가 되
자는 것이 주된 목표였습니다."라고 돌은 설명한다. 정부 자산의 매각은 콘레일(화물철
도:Conrail process)과 알래스칸 철도(Alaskan Railway)를 포함하고 있었다.
"3년간의 험난한 콘레일 사업 과정 동안 때로는 철도 전문가, 때로는 투자은행가, 또 어떤
때는 독점 금지 변호사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때까지 최대의 산업 매물이었던 이 매각 수
익이 20억 달러나 증가하여 국가의 적자를 감소시킬 수 있었지요.
노동부에서 돌의 임무는 '인적 자원의 운영'이었다.
"미국 노동인구의 기술력 개선을 위해서라면 가능한 한 모든 일을 다하고자 노력했습니
다."
다시 돌은 최우선권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실제로 잠재적인 노동력의 위기였습니다. 고동학교 졸업생 중 네
명에 한 명꼴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문맹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경쟁이 치열한
세계 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리하
여 취업이 가능한 인재를 양성할 국가 경쟁력 지침을 개발하기 위해서 블루 리본(최우수 인
재)계획에 착수했습니다. 각 학교와 교육자들에게 교육과정 개선과 다른 프로그램에 있어서
도 이 지침을 사용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노동부는 미국의 기업들과 함께 업무를 기본으로 하는 훈련과 직원들이 조언에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적십자사에서는 내적 자원을 관리하는 데 모든 시간을 썼다고 말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과 돈, 혈액을 지원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조직의 목표였다.
"우리의 목적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업을 위한 새로운 신조를 만들어가는 비영리 모범
조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적십자사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은 바로 인터넷이었다.
"학교, 사무실, 가정 등 인터넷으로 접속 가능한 모든 곳이 적십자와 연결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자원 봉사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고, 혈액 기증을 위한 약속을 잡을 수도 있
고, 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 또한 온라인을 통해서 재정적 기부까지도 가능했기 때문입니
다."
그녀가 초점을 맞췄던 또 다른 부분은 조직이 신속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적십자 역사에서 처음으로 조직을 개편했습니다. 이제는 예전만큼 부서가 많지
않습니다. 사실 예전의 절반으로 줄었지요. 이젠 더욱더 능률적인 서비스가 이루어질 것입니
다. 모든 주에 걸쳐 부서를 재조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윗 부서에서 아래 부서로
하달된 업무를 수행하는 것 보다는 함께 협력하며 자원을 나누기 때문에, 서비스 배급이 훨
씬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혈액 공급에는 거의 완벽한 정밀검사가 이루어져왔다. 자금 조성의 노력은 고객의 요구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돌은 미국 적십자를 탄탄한 바탕 위에 세워놓고 떠난다. 올해 적십자사
는 역사상 최고의 재정적 성과를 올렸으며, 최악의 자연 재해와 최고의 물가를 기록한 해였
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최대의 자금조성 캠페인을 훌륭히 수행하였
다.
돌은 정말 중요한 일을 해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중요
한 것이었다.
"어머니 연세가 97세이십니다. 내가 그 나이가 되면 이런 질문을 하겠지요. '내가 무슨 일
을 했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긍정적인 영향을 준 일이었던가? 하고 말입니다. 다른 어
떤 사소한 일보다도 내게는 중요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쏠린 또 하나의 질문은 돌이 적지 않은 에너지와 추진력, 지성과 리더십을
다음에 쓸 곳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밥 이튼(Bob Eaton)
다임러 크라이슬러(Daimler Chrysler) - "관리자가 되기보다는 리더가 되기를 바라야 한
다."
자동차 산업은 늘 경기순환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경제 주기는 항상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회사 '빅3' 중 가장 작은 크라이슬러에게는 유독 심한 타격을 안겨주었다.
1980년대 초반, 정부의 융자담보는 가장 큰 예이다. 그러나 이 기업은 그것 말고도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곤경을 겪어왔다. 그것이 로버트 J. 이튼이 1992년 크라이슬러로 부임한 후
자신의 포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슬며시 미소를 띄우며 대답한 이유였다. 모든 직업
경력을 제너럴 모터스에서 쌓여왔던 이튼의 목표 중 하나는 '더이상 파산의 낭떠러지 끝에
서 구해낼 일이 없는 크라이슬러의 첫 번째 사장이 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반대로 세계에서 재정적으로 가장 안정된 자동차 기업이 되기를 원합니다."
1998년 다임러-벤츠와의 합병 전에도, 메르세데스-벤츠의 제조자이던 이튼은 그 분야에
정통했다. 물론 다임러의 경영인들은 크라이슬러와 합병을 원하는 이유 중 하나로서 이튼이
이행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예를 들었다. 오늘날 이튼은 새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공동 사장
이며 공동 CEO 이다.
다임러-벤츠 가 크라이슬러의 어디에 매력을 느꼈을까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자동
차 산업에서는 이미지가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미지는 아주 중요하다. 크
라이슬러에 이튼이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했다. 우선 이튼이 제너
럴 모터스(GM)유럽지사의 전 지휘자였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크라이슬러의 국제
적 모습을 넓혀줄 거라고 기대했다. 동남 아시아와 남미 쪽은 특히 전망이 좋은 지역이었다.
크라이슬러가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메르세데스에서 놓칠 리가 없었다.
두 번째는 이튼이 '자동차 사나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4대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말
만 나오면 2대의 닷지 바이퍼(Dodge Vipers)와 플리머스 프라울러 쿠페(Plymouth Prowler
coupe), 지프 웽글러(Jeep Wrangler : 총기용 선반이 완벽히 갖추어진 것)를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끝없이 얘기해줄 것이다.
이 차들은 모두 열렬한 자동차 애호가로부터 애정 어린 시선을 받고 있었다. 또한 이튼은
크라이슬러를 인계받았을 때 크라이슬러 고객의 평균 연령층이 벤츠의 고객보다 더 젊은 이
유를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그 역시 젊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메르세데
스(Mercedes)에게는 매력적인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이튼은 숙련된 기술자이다. 이것은 미국 분석가들의 말을 빌리면, "왜 국내외
를 막론하고 다른 어떤 자동차 제어업자들보다 크라이슬러가 제품생산 발전을 힘있는 경쟁
적 무기로 만들어놓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1993년형 인트레
피드(Intrepid)는 처음에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39개월이 걸렸고, 1998년형 듀랑고
SUV(Durango SUV : 스포츠용 자동차)는 23개월이 걸렸다. 산업적 평균은 30개월이다. 또
한 독일인들은 기술과 능률에 대한 열정으로 유명하다.
퍼만 셀츠(Furman Seltz) 자동차 분석가인 마리얀 켈러(Maryann Keller)는 합병 이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크라이슬러는 능력 보유와 가격 구조, 신제품 생산이라는 미국의 트리오 중 최고임에 틀
림없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새로운 시장에 들어오면, 맨 처음 가장 좋다는 기계로 다가가게 마
련이다. 다임러가 미국에서 동업자를 찾았을 때 크라이슬러에게 접근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
다.
합병은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튼이 CEO가 된 이래 말해온 것은 전적으로 일
관된 것이었다.
연설과 인터뷰에서, "세계 어느 기업들 중에서도 최고의 팀을 만들었다고 알려지고 싶습
니다. 사람들이 사고 싶어하고, 즐길 수 있는 교통수단을 만드는 데에 온 관심을 집중하는
그런 팀 말입니다."
메르세데스의 합병 후에도 바뀌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이튼이 크라이슬러의 직
원들과 계속 의사소통을 했다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합병이라는 일이 기업에서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제3자들에
게 그것을 확신시키는 것은 조금 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더군
요. 첫날부터 조합과 직원들이 합병에 찬성해준 것입니다. 상인들도 물론이고요. 사실 돈을
맡고 있는 제 3자들은 모두 아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마 그들은 크라이슬러의 지불 능력이 언젠가는 바닥날 거라고 미리 내다보고 있었을 것
이다.
기술자라는 직업에 걸맞게 밥 이튼은 크라이슬러의 성공적인 앞날에 대한 정밀한 설계도
를 작성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한 중요 요소들을 정리했습니다. 어떠한 믿음과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
인지 개념을 정립하였고, 6년이라는 길고도 험난한 세월 동안 여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
다. 고객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운전을 즐길 수 있는, 그래서 다시 또 사고 싶게 만드는 자
동차와 트럭을 생산하는 것이 기업의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2000년
까지 세계에서 으뜸가는 자동차 기업으로 올라서는 것입니다."
"모든 직원들은 이제 우리의 목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떻게 이룰 것인
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표어를 만들거나 벽에 써서 붙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다들 잘 알고 있으니까요."
가장 광범위한 목표는 지속적인 발전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모호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크라이슬러가 실행에 옮긴 일은 사실상 이것뿐이다.
"어떠한 사업이든 오직 다섯 가지만 걱정하면 된다고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다섯 가지입니다. 항상 말합니다. 여섯 번째 걱정이 무엇이든 우선 순위인 다
섯 가지 목록에 오를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입니다. 모든 기업에 해당되는 사항이겠지만 말이지요. 서비스업도
물론입니다. 사실 제품생산이라는 일도 일종의 서비스 직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다음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 가격, 품질, 고객 만족, 사람들이죠. 우리는 계속 이 다섯 가지 사항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평가합니다. 예를 들면, 제품평가에는 무수히 많은 방법을 동원합니다.
각종 경연대회나 품평회도 개최합니다. 또한 고객의 선호도를 지켜봅니다. 제품을 평가할 때
는 이 모든 것을 복합적으로 활용합니다."
이제는 다임러 크라이슬러에 속해 있지만, 이 다섯 가지 사항은 조직의 구성방식을 포함
해 크라이슬러의 모든 부분에 적용된다. 제품의 발전양상을 살펴본다면 누구나 충분히 짐작
할 것이다.
"우리는 마케팅, 제조, 제품 조작, 디자인, 조달과 공급에 이르는 모든 부서의 대표로 구성
된 플랫폼 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분야를 섭렵한 이들이지요. 아주 초창기에 우리
는 기업에서 대단히 중요한 결정사항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프라울러(Prowler:스포츠카)에
서 일하는 80명의 인원들에서부터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는 1천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에 이
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친 직원 그룹과 단 한 페이지로 계약했지요."
"12개 패널 차트라고 불립니다. 문자 그대로 연료경제, 항공역학, 가격수익, 종합 수익률,
투자, 가중치와 고객만족에 관한 모든 것을 포함하는 한 장의 종이 위에 쓰인 12개의 작은
패널입니다. 여기에는 자동차 승차감이 어떠해야 하는지, 취급이 얼마나 쉬워야 하는지, 소
리는 얼마나 조용해야 하는지 등의 모든 사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일에 착수하기
로 합의하고 이팀의 활동이 이 계획표의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한, 이들은 상관에게 가서
결재를 맡을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일을 해냈습니다. 첫 번째는 시간을 조절했다는 것입니다. 각종 승인이나 자금
조달을 위해서 총본부를 왔다갔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더욱 중요한 것은 이것이
팀의 과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라도 어떤 것을 변화시킬 것인지 혹은 수정할
것인지 어깨 너머 눈치를 살피거나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계획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이것은 그들의 프로그램인 거지요.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에 우리
도 그들을 살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상관에게 보고하는 제도를 없애버렸습니다. 각각의 팀이 스스로 경영하
도록 한 것입니다."
이러한 냉정한 관점은 기업 내 모든 것을 지배했다.
"지난 10년 또는 12년간 크라이슬러의 가장 큰 실수는 산업 전반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실수는 바로 사업의 다각화입니다. 자동차 산업은
경기순환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다양한 사업을 가지고 있다고 칩시다. 그렇게 여러 곳
으로 사업을 다각화시켜 놓았는데, 자동차 산업의 경기를 활성화시켜줄 수입이 충분하지 못
했다면 전체적으로 수입을 평준화시키려 하겠지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서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사
실 몇몇 부분은 그다지 큰 규모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방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 기업은 이튼이 부임하기 전에 걸프 스트림 애비에이션(Gulf Stream Aviation)을 매각
했고, 자동차 임대업(자도차나 트럭을 제외한), 금융 서비스, 그 외의 방어 사업에서 탈피했
다.
"우리는 핵심 사업의 중추 사항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핵심 사업에서 수직적 통합을 감
소시켰습니다. 또한 집단적 움직임이 대단히 중요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중심을 바꾸기로 한 이같은 결심은 이튼이 어떻게 CEO로서의 역할을 발전시켰는
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CEO라는 직업이 아주 극적으로 변화해왔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관리한다는 것과
지휘한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업 경
영은 일종의 관리라고 여길 것입니다. 현재 대기업의 고위 간부들은 관리에는 많은 시간을
허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고요. 대부분의 시간을 리더십에 쏟
고 있지요. 세계는 더욱더 경쟁이 치열해지고 급속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관리나 통제, 결과
를 쫓아다닐 틈이 없습니다. 비전과 신념, 가치 이러한 정신을 사람들에게 고취시키고 그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장애물을 깨뜨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튼의 지도 아래 크라이슬러가 변모된 모습이다. 이제 크라이슬러에서 다임러 크
라이슬러로 바뀌었지만, 그들의 목표는 다시 한번 이같은 성공을 이룩하는 것이다.
버니 에버스(Bernie Ebbers)
MCI 월드컴(MCI WorldCom) - "진정한 가치는 영원하다"
1997년 말까지 버나드 J. 에버스는 해외 원격통신 사업의 비밀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40개사 이상의 기업인수를 통해 월드컴을 억만장자의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의 전화회사인 월드컴이 AT&T 다음가는 기업인 MCI로 탈바꿈한 것이
다. 그러나 통신사업에서 4위는 미국의 자동차 산업에서의 4위에 버금가는 것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3위까지밖에 잘 기억하지 못한다.
에버스는 모든 것을 맹렬한 공격을 통한 바꾸었다. 430억 달러를 들여서 MCI 커뮤니케이
션을 인수했던 것이다.
그래서 MCI는 지금의 MCI 월드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미국의 두 번
째로 큰 장거리통신 공급업체로, 세계적인 대규모 인터넷 기업 중 하나로, 전화시장에서 막
강한 국제적 영향력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알려졌다.
카우보이 모자와 청바지, 핀스트 라이프 무늬의 실크 넥타이를 좋아하는 캐나다 이민자가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관심거리 였다.
미시시피 주 잭슨에 위치한 미시시피 대학의 야구선수였던 에버스는 처음부터 원격통신의
거물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졸업 후에 고등학교 교사를 했고, 그 다음에는
서비스업에 종사했으며, 마침내는 모텔마다 각종 선을 연결하는 일을 하였다. 항상 유망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던 그와 몇 명의 투자가들은 1983년에 규제 없는 새로운 시장인 장거리통
신 시장의 이점을 이용하여 작은 전화회사를 차렸다. 얼마 되지 않아 MCI의 인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인수 후에도 윌텔(Wiltel), MFS 커뮤니케이션(MFS Communication), 그리고 지금의 MCI
의 계획은 언제나 똑같았다. 둔해보이는 것은 모두 제거할 것, 운영 수익을 보존하고, 기업
이 주가를 지원하기 위한 방편이다. 에비스는 지나친 고객의 환대 또는 광고 지출을 믿지
않는다. 모든 분야에서 이익을 증가시키기 위해, 값비싼 경영인들의 직무상 부수입을 포함한
각종 경비를 줄이는 것을 요점으로 했다.
대단히 복잡한 원격통신 사업에 버니 에버스는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CEO로서의 역할에
다갔다. 사실 처음에 그는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월드컴 초창기에 나는 수동적인 투자자였을 뿐 기업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관
여하게 된 건 단지 기업이 절망적인 재정적 곤경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해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기업 내부로 들어왔을 때, 내 비전은 간단했습니다. 수익을 올
려 누군가가 우리를 인수하게 만들자는 것이었죠.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일단 기업에 관여하자, 에버시는 기업이 금융위기에 다시는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강력한 재정적 통제를 강요하였다. 이것은 기업의 재정적 재난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숙
박 사업의 초창기로 되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버스는 기업의 이익을 가져올
평가방법을 찾아내는 것에 대해서는 광적이었다.
기업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원들에게 성과에 대해 보상해주는 것, 직원들이
이 사실을 알도록 하는 것이다. 에버스는 이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직원들이 사
장과 같은 봉급을 받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의 모든 이들이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의 건물 어디서든 차트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옵션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볼
수 있도록 날마다 새로 개정되는 거지요. MCI는 모든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하지 못했
지만, 우리는 해낼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해, 내 직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직원들로부터 셀 수 없을 만큼
편지를 받습니다. '그 주식이 아니었으면, 제 아이를 대학에 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는
'제 집을 가질 만한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는 첫 계약금을 지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게
다 주식이 오른 덕분입니다.'등의 내용도 있습니다. 기업의 시각으로는, 주주들에게 이러
한
이익이 돌아가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았고, 이사회가 직원들을 여기에 포함시키도록 승인해
주어 너무 고마웠습니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지요."
기업의 예산과 사업기획에 맞게 얼마나 잘 운영되었는가에 따라 대부분의 옵션 배당액이
결정되었다. 당연히 에버스는 기업 활동에 관한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러한 생
각을 한 줄로 압축했다.
"총 수익이 얼마나 늘어가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증가된 총수익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빠져나갔는가 하는 것입니다. 수익률이 있는 돈이 아니라면 총수익이라는 것은
별 가치가 없기 때문이지요."
인수에 적용되었던 철학도 이와 똑같은 생각이었다.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인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얻는 것(또는 갖게 된 소유물)으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MCI 월드컴의 대답은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업의 초창기로 돌아가
면, 판매와 수익이 최소한 1년에 16퍼센트도 성장하지 못한 해는 한번도 없었다. 그 당시는
판매율 5퍼센트에 불과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시각
인수는 또 다른 이점이 있었다. 바로 새로운 관점의 제시였다.
"내가 직접 쓴 보고서를 보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한 직원은 단 한명 뿐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인수를 통해 회사에 들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위해서도
좋은 기회였습니다. 일하는 방식에서 수많은 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내 역할은 어떤 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지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과업은 각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수많은 마이클 조던이 모두 우
리 팀이라서 너무나 운이 좋으며, 한 팀에 그 많은 마이클 조던이 다같이 뛸 수 있어서 더
욱 운이 좋습니다."
"합병할 때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인수하게 될 사람들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는 것
입닏. 그렇지만 그 반대도 또한 옳습니다. 같은 무에서 출발하게 되면, 당신을 댄스파티에
데리고 간 사림이 집에는 데려다 줄 수 없다는 것이 커다란 고민거리입니다. 우리는 계속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봐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장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
람들도 있었습니다."
에버스는 또 다른 핵심적인 사항을 말해준다.
"내가 곧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실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기업의 집사입니다. 나로서는 MCI 월드컴과 같은 기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집사로서의 책임을 지게 되어 얼마나 행운인가 매일같이
되뇌었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항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을 한 단계씩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하나
님께서 주신 기회인 이 기업의 집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살펴봅니다. 내 인생의 기본 원칙은
하나님께 봉사하고, 그분이 주신 기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의 추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글쎄요, 나는 캐나다에서 태어났습니다. 내 가족들 모두 캐나다에서 이민을 왔지요. 내가
1학년을 마쳤을 때, 아버지가 4년동안 캘리포니아에 계셨습니다. 우리는 5년간 뉴멕시코의
갤럽(Gallup)이라는 곳으로 옮겨왔지요. 나바조(Navajo) 보호거주지의 전도자 거주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전도 사업의 간사님이셨지요. 그리 넉넉치 못한 형편이었지요. 매달
말에 아버지 호주머니 속에 몇 달러가 남게 되면, 가족 모두 나가서 햄버거를 사먹곤 했답
니다."
"가장 신났던 크리스마스는, 누나에게 '올드 메이드', 나에게는 '애니멀러미'라고 쓰인 카
드
가 배달되었던 해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열정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와 형제들, 나는 아주 경쟁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고자 혹은 가족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
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
님께서 유일하게 참된 가치는 영원하다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이 말은 에버스에게 겸손과 야망이 조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MCI월드컴의 성공은 직원
들의 반응으로 분명히 나타났다. 에버스는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론을 가졌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직위 대 직위가 아니라 1대 1로 사람들을 대할 때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일을 하면서 기업의 중요한 결정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그
러면 독재적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일이 풀려나간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항상 격식없는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똑같은 사람으로서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곧 보상으로 되돌아오는 지름길입니다."
"최악의 상황은 사람들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이 동의해서 어떤 일을 하도록 하는 것
이 아니라, 시켜서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나쁜 방법입니다. 기업이 성장하기는커녕 더
복잡한 일만 만들게 되고, 이렇다 할 변화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에버스에게 기업의 개성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해주길 부탁하자, 그는 당연스레 이렇게 말
했다.
"겸손입니다."
"언제나 자만해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해왔습니다.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내게는
아주 운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
월트디즈니(Walt Disney) - "우리는 완벽이 아닌 마법을 위해 노력한다."
마이클 아이스너와 월트 디즈니는 타임 워너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그러나 타임 워
너보다도 훨씬 널리 알려진 미디어 엔터테이먼트 기업이다. 그가 겪어온 경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1994년은 이 기업이 지극히 힘든 한해였다. 아이스너와 오랜 파트너로 일해온 디즈니의
사장 르랭크 웰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버지니아에 계획되었던 역사 테마 유원지인
디즈니 아메리카는 사람들의 항의로 결국 철수되었다. 아이스너 자신도 네 차례에 걸쳐서
수술을 받았다.
"내가 수술 때문에 탈진 상태로 병원에 있는 동안에 들은 얘기인데요. 할리우드 거래처의
한 편집자가 그쪽의 여기자를, 로스앤젤리스 시더-사이저가 병원의 간호사로 위장하도록 지
시해서, 나를 취재하도록 보냈답니다. 다음날 기자는 사무실로 들어갔고, 편집장은 '무슨
기
사거리를 좀 얻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 기자는 '아뇨, LA타임즈에서 의사로 위장한
기
자에게 내쫓겼어요. 하고 대답했다 하더군요."
아이스너와 디즈니의 훌륭한 성공은 전세계가 이 기업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모든 매체와 수많은 사람들이 이 디즈니의 일거수 일투
족을 쫓아다녔기 때문에, 기업의 실패는 더욱 커보였다. 디즈니의 서비스와 제품은 당연히
고급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높은 기준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가람들이 곧잘 잊은 사실은 이러한 방식이 항상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다. 아니스너가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사장 겸 COO를 그만 둔 직후인 1984년 디즈니의
CEO로 지목되었을 당시만 해도, 월트 디즈니사는 문제가 많은 소규모 애니메이션과 테마
유원지 사업을 하는 기업일 뿐이었다. 디즈니랜드와 디즈니 월드는 이미 쇠퇴한 상태였다.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들은 그 기억조차 아련할 정도였다. 월스트리트의 전문가들
은 이 기업이 다른 기업으로 팔려가 조각조각 해체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지난 15년 동안, 아이스너는 기업의 자산가치를 약 30억 달러에서 오늘날 700억 달러를
호가하는 수준으로 성장시킴으로써 디즈니 최고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이는 인어공주, 알라
딘, 라이온킹, 토이 스토리, 뮬란, 벅스라이프에 이르는 만화영화의 부활을 가져온 결과였
다. 터치스톤이 새로이 영화사업에 뛰어 들었지만 모든 연령층을 포괄하는 영화제작에는 실
패했다. 테마 유원지도 대대적으로 개선하고 확장했다. 지금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는
디즈니랜드 파리 지점도 개장했다. 최근에는 애니멀 킹덤과 디즈니 크루즈 라인 건설작업에
착수하는 등 새로운 볼거리를 더 많이 제공했다. 또한 수천 개의 방이 있는 호텔을 테마 유
원지 곳곳에 세움으로써 관광객들이 다른 곳으로 떠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회사가 이루
어놓은 방대한 소비상품들을 판매하고, 대형 스크린이나 케이블 TV 디즈니 채널에 새로 출
시될 캐릭터를 선전하고 판매하기 위해 수백 개의 디즈니 점포들을 점점 더 많이 세웠다.
가장 커다란 재기는 아이스너가 1995년 190억 달러를 들여서 ABC 텔레비전 방송망과 케이
블 TV사업의 황금알이라 할수 있는 스포츠 발전소 ESPN을 포함한 캡 시티즈/ABC를 인수
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디즈니는 또한 더욱 박차를 가하여 갖가지 서적과 잡지를 발행했다. 디즈니 온라인,
ESPN.com, 정보 탐색 사이트인 GO.com 등의 인터넷 사업도 촉진 시켰다. 그리고 마이티
덕스와 애너하임 엔젤스 등의 스포츠팀을 활발히 운영하였다. 또한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
등을 브로드웨이의 무대에 올려 흥행에 대성공했다.
그러나 사업의 이러한 다순한 성장을 넘어, 아이스너는 연예 분야에서 전에 한번도 시행
된 적이 없었던 일, 즉 기업의 다양한 사업 노선간의 시너지 효과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큰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 시너지라는 말은 종종 경제용어로 가볍게 취급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디즈니가 새 만화영화 사업을 육성하고 촉진하기 위해 회사의 모든 부분을 긴밀히
연결시킨 방법은 시너지라는 개념이 어떻게 실해에 옮겨져야 하는지 잘보여주고 있다.
피터 드러커의 질문으로 유명한 말 중 하나는 "'진정으로' 어떠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
는
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마이클 아이스너에게 드러커 교수의 이 질문을 약간 바꾸어 물어
보았다. '당신의 경쟁자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이스너는 디즈니의 성공을 다음고 같이 길게 설명했다.
"나는 레저, 교육, 사람들의 여가 시간을 다루는 모든 분야가 곧 경쟁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영화 회사일 수도 있고, 음반 회사일 수도 있겠지요. 또한 방송사나 인터넷 기업일 수
도 있고, 소프트웨어 업계에 진출할 뜻을 품은 하드웨어 기업일 수도 있고, 소프트웨어 업계
에 진출할 뜻을 품은 하드웨어 기업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전화회사일
수도 있겠지요. 그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수많은 이들과 경쟁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산업은 사람들의 여가시간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
다. 그들이 쇼핑을 나가는지, 아니면 운동경기를 보러 나가는지, 아니면 운동경기를 보러 가
는지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지요. 그러나 코카콜라라는 단 하나의 선두기업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펩시콜라와는 달리, 우리는 경쟁자가 하나밖에 없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하지요."
경쟁자는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우리의 가장 큰 경쟁자들은 버틀맨즈, 뉴스코프, 폴리그램과 같이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
닙니다. 타임 워너와 같은 미국 경쟁의 핵심도 있지요. 우리에게는 오락과 정보를 제공하는
어떤 기업도 모두 경쟁자인 것입니다."
그러한 경쟁자를 어떻게 물리치는가 하는 질문에 아이스너는 이렇게 답한다.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지요."
"기업으로서 사람들을 다루는 장소는 두 군데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집 안과 집 밖이지
요. 집 밖에서는 운동경기, 콘서트, 브로드웨이쇼, 영화, 놀이 동산 등이 있으며, 집 안에서는
텔레비전과 컴퓨터, 텔레비전과 컴퓨터, 텔레비전 수상기의 영향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적절히 공략한다면, 미래에 모든 장소와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기술을 담당할 리더
가 필요합니다. 인터넷은 아주 중요한 오락, 교육, 통신의 장입니다. 그래서 이 점을 기업의
가장 우선 순위로 꼽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우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중국에 세워진
디즈니의 테마 유원지는 21세기 우리의 150주년 기념이 되어야 비로소 흑자를 보게 되지만,
어쩌면 좀더 빨리 올 수도 있겠지요."
드러커에게서 얻은 또 다른 질문을 했다. 아이스너의 대답을 듣자 그가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대해 얼마나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리더들이 드러커가 말한
"제대로 평가된 것은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었다. 전형적인 경영인에게
사업 척도를 묻는다면, 대부분이 판매 실적, 총수익의 증가, 주주들의 수익, 고객 만족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 질문을 아이스너에게 던지자, 그는 "내용이 가장 중요하지요."라고 말했다.
"'그 쇼 어땠어? 그 영화 얼마나 재미있어? 그 놀이동산의 음식 맛은 어때? 이러한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나는 제품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업을 해오던 몇 년 동안
사업의 성공이 우리가 가진 모든 무능력을 휩쓸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직면한 어떤 문제라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
법입니다. 또한 지금 당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보이는 것이라도 그 내용이 지정으
로 훌륭한 것이라면, 언젠가 경제적 어려움은 끝날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요? 결국에는 품질이 이기게 되니까요. 그래서 첫 번째로 유념해야 할 것은,
아마 유일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제품의 품질을 날이면 날마다 평가해야 합니다. 품질에 대
해서 이야기할 때는 우리가 얼마나 공원과 호텔을 이용하는 대중을 생각하고 있는가에서 부
터 관객들이 얼마나 우리의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책, 잡지, 웹 사이트를 즐기고 있는
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외에도 중요한 많은 요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양화에 대한 재정적인 책임에서부터
자선사업에 이르기까지, 신경써야 할 부분은 수도 없이 많지요. 이루고자 하는 기업을 만들
수 있는 다른 요소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만약 우리를 계속해 생존하고 성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꼬집어 내겠다고 한다면, 그건 브로드웨이에 올린 라이언 킹 쇼가 이젠 내
릴 때가 된 것이 아니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가끔 우리의 생각이 전에 누구도 생가한 적이 없는 굉장한 것이라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
다. 또 거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끔찍하다고 생각한 것이 대중에게 의외로 잘 받
아들여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에 신경쓰지 않고, 신문에서
어떤 기사를 쓰든 상관하지 않는다면, 훌륭하게 일을 해내기 위한 더욱 확실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과거의 성공 덕분에 디즈니는 더 높은 기준을 고수했다. 아이스너는
그것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우리는 절대적으로 더 높은 기준을 고수하고 있고, 그것을 인식해야 하며, 조
심스러워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모든 제품은 엉터리가 될
것이고, 마침내 기업은 침체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전에는 얼마나 멀리까지 갔는지 놀라게
되고 이렇게 말하지요. 그것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불필요하게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것을 의
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적절하고 부적절한 것에 관한 적정선은 항상 존재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품질은 항상 대중이라는 돋보기 아래에서 평가되니까요."
"조지 루카스(영화 감독)에게서 배운 건데, 품질은 완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
을 추구하면 결국은 사업 밖으로 밀려나게 되지요. 우리가 얻고자 하는 노력하는 것은 완벽
이 아니라 마법입니다."
발전
아이스너와 디즈니의 탁월한 경력에 비해 확실한 계승자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다음
CEO로서 누가 아이스너의 뒤를 이을 것인지 수년간 관심거리로 입에 오르내렸다. 아이스너
는 특정 이름을 거론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계속 승자가 갖추어야 할 성격에 대해 말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보였다.
"디즈니 이사회가 창조적인 최고이 인재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그들은 재정
에 관한 확실한 이해도 가지고 있어야 겠지요. 종합적으로는 창조적인데 재정에 관한 이해
가 부족하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CEO로서의 내 생각으로는, 주위에는 어떤 것이든 재정적
인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기업적이고 가장 창조적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
다."
이것은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말이다. 아이스너는 이것이 비단 오락사업에만 적용되는 것
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장 평범한 산업에서도 리더가 창조력을 지녔다면, 흥미가 가득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산업이든 상관없이 성공을 결정짓는 요소는 항상 같다고 아이스너는 강조한다.
"모든 일에 탁월해지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연속극을 만든다면, 최대한 재미
있는 연속극을 만드십시오. 장난감을 만든다면, 최대한 훌륭한 품질의 장난감을 만드십시오.
아이들의 축구팀 감독이라면,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감독이 되십시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십시
오. 마침내는 훌륭한 결과를 손에 쥐게 될 것입니다."
돈 피셔(Don Fisher)
더 갭(The Gap) - "하나, 둘, 셋 세기보다 쉬운 더 갭의 성공 공식 : 운, 상식, 작은 자만
심"
"갭에 빠져들어라(세대를 건너뛰어라)."
이 세대 사람이라면 어디서나 아주 낮은 소리로 이 말이 울려퍼지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
이다. 자라면서 록음악 방속국의 '톱 40'프로그램을 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표어의 의미는 그 의미보다 더 그럴듯하다. 이것은 '제너레이션 갭(세대차이)'와 관계
있
는 말이기도 하다. 우선 반체제 문화의 핵심 품목인 청바지만을 판매하는 대형 매장에 가보
자. 선반 가득 청바지뿐이다. 이 매장은 그 즉시 대성황을 이루었다.
거기서부터 돈 피셔와 경영진들은 갭키드, 올드 네이비, 바나나 리퍼블릭 같은 의류 체인
점을 늘려나갔다. 이 기업은 오늘날 90억 달러의 소매 수익을 올리는 세계적 기업으로서 지
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피셔는 1995년 말, 부동산 사업을 시작하면서 CEO의 자리를 그 지방 최고의 소매상인으
로 유명하던 밀라드 "미키"드렉슬러에게 인계했다. 오늘날 피셔는 갭의 부동산과 장기적 전
략, 국내외적 기업 상표의 성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단계 - 운
30년 전 이 기업을 설립했을 당시 가졌던 장기적 비전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돈 피셔
는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비전 말이죠?"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첫 가게를 개업하는 데에는 다섯 가지가 따라줘야 하지요. 이게 없다면, 아마 갭은 존재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부동산 사업으로 성장했지요. 처음에는 아버지와 함께 일했습니다. 곧이어 직접 운
영하게 되었지요. 우선 오래된 호텔 리스를 구매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으로 매
입했던 새크라멘토 지역에는 레비 스트라우스의 작은 매장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곳에서
옷을 사게 되었는데, 그만 사이즈가 안 맞는 옷을 사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메이시스로 가서
교환하려 했는데, 교환 절차가 아주 엉망진창이었지요."
고약한 그 경험 덕분에 피셔는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더 나은 방법으로 리바
이스 청바지를 판매해야 했다. 자칭 리바이스 체인점이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때 그 호테을 사지 않았더라면, 리바이스 매장이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또 그곳에서
옷을 사지 않았다면, 나한테 맞는 옷이 있었거나 메이시스에 훌륭한 청바지매장이 구비되어
있었다면, 아마 더 갭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영리했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거지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상표 중 하나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2단계 - 상식(1)
왜 청바지만을 판매하는 매장을 만들었을까? 그 당시 청바지는 베이비붐 세대의 공식 유
니폼과 같은 옷이었다. 이보다 더 멋진 이유가 또 있겠는가? 피셔에게 이것은 그저 상식이
었던 것이다.
"나는 상식이야말로 사업의 성공을 가져오는 커다란 부분이라고 봅니다. 여러 면에서 탁
월한 능력을 가졌어도 올바른 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패배하게 되어 있거든요. 부동산
과 건설에 대해 알고 있어서, 어떻게 가게를 발전시켜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목좋은 장소를
찾는 남다른 감각도 있었고, 충분한 사업 경험도 있어지요."
피셔의 판매 개념만큼이나 관심을 끄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리바이스 체인
점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셔는 상관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리바이
스의 제품만을 취급하는 가게를 열어 사실상 체인점 주인이 되었던 것이다.
"리바이스는 바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는 리바이스 바지뿐이
었거든요."
피셔는 6만 3천 달러를 긁어 모았다. 대부분 아들의 교육비로 준비해두었던 돈이었다. 그
리고 드디어 더 갭이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두 번째는 피셔가 소매업에 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친구분께서 가게를 운영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전혀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개점하고 한 달쯤 뒤에 해고했습니다. 그후부터 직접 판매도 하고, 그외의 모든 일을
하기로 했지요."
마침내 피셔는 앤 테일러에서 근무하던 드렉슬러라는 진주를 찾아내게 된다.
"미키와 함께 일하기 전까지는 내가 하려는 사업을 이해하거나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상식(2)
피셔가 바라던 것은 무엇일까? 이치에 맞게 사업을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1974년, 그러니까 개점 5년 뒤에 우리는 여성용 리바이스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리바이스 제2의 제품인 여성 의류였습니다. 그런데 리바이스에서 나오는 이 여성용 의류는
멋진 디자인이 없었습니다. 잘 만들지 못하더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직접 여성 의류를 만들
기로 결정하게 되었지요."
"상표를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더 갭"으로 부르기로 결정했고, 여성용
리바이스 제품보다 더 낮은 가격을 매겼습니다. (1980년에 '더'를 뺐지요.)"
왜 굳이 다른 상표를 만들었을까? 리바이스가 가진 여성제품 판매 능력에 회의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경쟁자를 만났습니다. '슈퍼 벨류(Super Value) 소유' 컨트리 시트가
새로운 경쟁 상대로 떠올랐죠. 그래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 차별화된 어
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경영대학원을 나온 것도 아닙니다. 사실 1974년에
사용했던 그 방법을 지금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무언가
달리지기를 원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고객이 우리 매장을 찾아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
는 옷들을 발견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쇼핑할 때 첫 번째로 우리 매장을 선택할 수 있
도록 말이지요."
"1974년 이후 매년 리바이스의 판매량을 5퍼센트씩 줄여나가면서 우리 상표의 판매량을 5
퍼센트씩 늘려나갔습니다. 약 20년이 걸렸군요. 결국 1991년에 우리는 마지막 남은 한 벌의
리바이스 바지까지 모두 팔았습니다."
초기의 계획은 더 갭이 리바이스보다 다소 적은 양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슈퍼에서나 볼 수 있는 '특가 판매'전략을 쓰기로 했습니다. 가령 버터를 일주일 동안 세
일해서 팔면 다음주에는 그 가격을 다시 올려야 하는데,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계획을 위반하거든요. 그래서 10일 동안만 가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20일, 30일 할인된 가
격 그대로 내버려두지요. 어떤 때는 아예 제 가격으로 올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주
미칠 지경이었지요."
"궁극적으로 모든 매장이 소심한 '특별 가격' 꼬리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매장들은
싸구려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업은 잘 되었지만, 이런 식으로 사업하기는 싫었습니다. 가
격에 좌우되어 판매한다고 생각 자체가 싫었지요. 월마트처럼 되지 않는다면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싼 것보다는 더 좋은 것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
무도 없었습니다. 미키와 함께 일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미키와 나는 함께 어떻게 할 것인
지를 연구했습니다."
상식(3)
제품에 최고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더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1984년 중반에 시작한 피셔와 드렉슬러는 더 갭을 디자인에서 제조와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
든 것을 총괄하는 수직적으로 구성된 기업으로 전환시키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뉴욕의 한 유명 청바지 제조업자를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바지 모양
이
마음에 드는데, 2만 5천 벌을 만들어서 더 갭이라는 상표를 붙여줄 수 있을까요?' 하고 부
탁
했지요."
그렇지만 결국 직접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고, 제조업자들과도 직접 계약을 맺게 되었다.
"모든 과정에서 품질 개선이 우선 이었습니다. 결국 더 갭이라는 상표가 붙은 옷이 '이
름
난' 경쟁자들이 생산하는 제품만큼이나 잘 만들어졌다는 평을 듣게 되었지요."
더 갭은 제조공정을 직접 관리했기 때문에 중개상인에게 돈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대신
그 돈을 절약하여 상표 광고에 사용했다. 1년에 최고 3억 달러 이상을 광고에 투자한 결과,
지금 더 갭은 최고의 상표로 자리를 굳혔다.
3단계 - 자만심은 처음부터 경계하라
피셔는 모든 제조 과정을 통합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에게 회사
가 잘 통합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고자 노력했다.
"사업을 운영할 때에는 자만심이 큰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결코 내 자신이 자만하도
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공으로 돌리고 싶
습니다. 모든 공을 내가 갖는다면, 정말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크게 낙담하게 될 테니까
요. 각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들은 저마다 공을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다른 이에게 돌리려 하
지 않지요. 진정한 창조자는 그 때문에 떠나게 됩니다.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공
은 진정으로 받아야 할 사람에게 가야 합니다. 인정받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
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옳은데 침묵할 수는 없겠지
요. 다른 사람의 의견이 더 낫다면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그에 대한 든든한 지원
자가 되어줄 아량도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특히 요즘 이 분야로 속속들이 진출하는 MBA 출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라며 피셔는 염려한다.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 직종에서 근무하던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고
잘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렇지만 상식은 대학원에서 얻게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식은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나 변화가 필요한가에 대해 주장하기 전에, 우선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은 금물이지요."
돈 파이츠
캐터필라 "땅을 일구는 기계"
일본의 대형 불도저 장비 제조업체들이 미국 시장을 겨냥하여 건너오고 있을 뿐 아니
라, 앞으로 캐터필라와 같은 기업을 업계에서 밀어낼 것이라는 기사가 비즈니스 면을 가득
메운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미국 경제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기업 중 하나가 이 캐터필라
일 것이다. 공로는 CEO인 도널드 V.파이츠에게 돌려야 한다. 그의 지도 하에서 이 기업은
수출을 판매와 재고, 제조경비 절감에서 3위에 오를 정도까지 증가시켰다.
파이츠는 1990년 CEO를 인계 받자 곧바로 공동 조직에 관한 구조조정을 감행했고, 경비
절감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캐터필라를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이길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인디애나 주 티페카누의 한 가난한 농부
의 아들로 자란 그는 밖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기술자가 되었고 끝내 성공하였
다.
캣에서 경력을 쌓은 파이츠가 기업의 경쟁상대를 비롯한 그 외의 모든 면을 꿰뚫고 있다
는 것은 이 기업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였다.
그 경험은 1980년대의 불경기 속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계속되는 불경기 속에서 일본의
경쟁기업들이 앞다투어 몰려들기 때문에, 캐터필라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못했다. 파이츠는
1971년 MIT에서 미국의 제조업자들이 일본과 경쟁할 수 있을까라는 석사 논문을 썼는데,
캣이 어떻게 해서든 현재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미국 시장으로 몰려드는 일본에 대응하여, 1982년과 1984년에 걸쳐 거의 10억 달러에 달
하는 손해를 무릅쓰고 캐터필라는 제품 가격을 일본 경쟁자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맞추었다.
캣은 미국 경제가 그랬듯이 어려움을 극복했고, 기업이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비용 절감을
위해 고안된 5년에 걸친 18억 달러의 현대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동시에 기업을 분산시키
고 책임감을 기르기 위한 새로운 캠페인을 벌였다. 어느새 경영자들은 자산 목표량의 수익
에 따라오는 보상을 생각했다. 그들은 응답했고, 캣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근무한 지도 42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돈 파이츠는 짤막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의 장기적 헌신은 어느 회
사를 막론하고 오늘날에는 보기 드문 놀라운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오히려 파이츠가
더 놀란 듯했다.
"이렇게 오래 재임한다는 것은 캐터필라와 같은 기업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닙니다. 거
의 모든 직원들이 평생을 이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거대한 기업입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나 제품들과 많은 접촉을
갖게되고, 저마다 생산하는 제품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여기서 일하는 것을 진정으로 즐겁게
생각한다고 느끼지요."
리더십이란 직원들이 그 조직에 계속 머무르는 것과 관계가 깊다. 그가 책임자가 된 이후,
그 기업은 으레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하나로서 빠진 적이 없었다. 73년의 긴 역
사 속에서도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혔다.
파이츠는 1990년 CEO로 지명되었을 때, 특히 오랫동안 간과했던 캐터필라의 직원들을 비
롯한 기업의 강점을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두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
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워낙에 굉장한 유산과 생산라인을 가진 기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의 기업들뿐 아니
라,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 틈에서 그것만 가지고 성공하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았지요."
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회장이며 워싱턴의 세계적인 200개 기업을 대표하고 있는 파
이츠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대에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올바른 조직과 올바른 문화를 가
지고 있어야 하며, 직원들에게 성과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어야 합니다."
"훌륭한 문화를 가졌지만, 1980년대에는 국제 경쟁력에서 일본에 뒤 처져 있었습니다. 세
계적으로 선두를 달리는 오늘날의 우리 위치를 되찾기 위해 치열히 싸워야만 했지요."
경쟁력을 다시금 되찾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기업 내부의 지적
자본을 찾기 위한 캐터필라의 개편이었다.
"기본적으로 말단까지 모든 조직이 잘 어우러져 운영되는 기업이었습니다. 가능한 한 가
장 말단 조직의 의견까지도 수렴하는 것, 직원들에게 사명감을 느끼게 하며 스스로의 결정
에 책임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 훌륭한 성과가 있을 때에 반드시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하는
것이 내 경영 철학이었습니다. 내가 CEO로 오기 전에 이미 이 기업은 경쟁력을 키우기 위
해 행동을 개시했던 것 같습니다."
파이츠는 또한 두 가지 특별한 일을 함으로써 그의 방침을 더욱더 밀고 나갔다. 하나는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수익을 함께 나눠 갖는 것이었
다.
그가 이루어낸 일들을 살펴보면,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한 변화가 아니었다. 그가 기대하는
캐터필라의 모습은 다가오는 미래에 기업과 직원들에게 얼마나 훌륭하게 일을 수행할 것인
가를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라는 시대는 지나갔다.
"전혀 빈틈없이 기업을 운영하는 CEO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모든 사항을 독재적으로 처
리하는 CEO들도 물론 있을 것이고요. 그러나 2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캐터필라와 같은
대규모의 기업을 운영할 때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들
또한 기업 목표의 한 부분이 되어주어야 하지요. 메모를 하거나 연설을 하고 법을 제정하려
는 생각은 오늘날에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을 한 팀으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훨씬 효율적이지요."
성과에 대해 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것은 직원들을 한데 끌어 모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
다. 그리고 모든 직원들이 작업 결과에서 나오는 이익을 틀림없이 얻게 됨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파이츠는 그의 비전에 두 번째 부분으로 옮겨간다. 그것은 바로 직접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올바른 결정을 얻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말단 직원들의 의견까지 수렴할 수 있어야 합니
다. 또한 동시에 정보와 권력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의 문화에 관련된 사항이기도
하지요,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말하면, 아마도 '하암' 하는 따분한 반응
이
나올 것입니다.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낮은 직급에 있는 이들의 의견까지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을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그럼 그 직급이 얼마나 낮은 직급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찌보면 정말 진심인
지 시험해보려고 엉터리 결정을 내리려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형편없는 결정을 내렸다
고 해서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2,3가지의 결정을 한다면, 분명 주어
질 권한의 직급을 한두 단계 높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권한은 틀림없이 직접 일
하는 사람들에게 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감과 사명감에 대해서 말하는지, 아니면
정말로 투자나 판매 혹은 가격 등 성공적인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대 사안에 대한 결정
을 내리도록 하려는 것인지 조직은 아주 빠르게 알아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적인 것입니다. 올바른 조직이 되도록 이끌어야 하며, 그 조직 속에서
올바른 풍토가 조성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과에 대한 보상도 그 다음으로 중요한 사항이지
요. 동료들보다 더 우수한 성과를 거두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더 많은 보상을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처음 두 가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면 이 세 번째 요소는 중요
하지 않습니다."
이를 위하여 파이츠는 기업을 개편한 것이다.
"기업을 완벽한 이익 센터로 전환시키고 싶었습니다. 이 기업은 초창기부터 본사가 운영
해왔고, 나는 내 생애를 통틀어 이에 대해 부담을 지면서 일해왔습니다. 나는 본사에 속한
직원이 아닙니다. 16년은 해외에서 살았고, 5개 대륙에서 일했습니다. 과거에는 일리노이의
피오리아에서 멀리 떨어져 지냈고, 내가 하려는 일 혹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전혀 상관
없는 지시사항들이 담긴 전보와 편지를 받으면서 지냈지요. 내 전임자도 이와 똑같은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이에 본사 조직을 분할해서, 모든 이들이 각각의 피앤엘과 이익을 올릴 대
상을 가지고 이익 센터나 서비스 센터로 가게하고, 그들이 가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면, 서비스 제품을 구입할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야망에 불타게 될 것입니
다. 이익센터를 사람들이 신뢰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상인을 찾게 됩니다. 그 가격으로 그러
한 서비스를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내가 CEO가 된 첫날, 이
러한 일을 할 계획이라고 미리 공고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어쨌든 계획대로
추진할 거라고 말했지요."
캐터필라는 이제 26개의 수익성 있는 센터를 가졌다. 그리고 모든 직원들이 작업 결과에
따라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장하는 200여 가지의 보상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계획의 실행은 모든 경영 환경을 변화시켰습니다. 이제는 결과로 모든 것이 좌우됩니
다. 결과에 대한 주요 평가방법은 자산에 대한 수익입니다. 이것을 사용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설명하기가 간편하다는 것입니다. 수익은 최상의 수준인데 자산은 저
밑바닥 수준이라고 합시다. 그 비율을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높은 숫자를 나타내
는 수익률을 더 늘리거나 낮은 숫자를 보이는 자산 수치를 더 줄이는 것뿐이지요. 기술자들
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습니다."
"아, 저도 기술자 출신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파이츠는 재빨리 덧붙였다.
캐터필라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모든 면에서 성과가 있었다. 그렇지만 계속 성공의 길을
가는 대신 파이츠는 정반대의 방침을 택하여, 1999년 1월 29일 돌연 은퇴를 발표했다.
"CEO로 재임한 8년 동안, 우리는 100억 달러의 기업에서 20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
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아주 많은 이익을 올렸지요. 이제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 기존에
는 약세를 보이던 전 소련 연방이나 중국 등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입, 이전에는 없었던 새
로운 생산라인 개발 등 포함한 야심찬 성장 프로그램을 가득 안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는
10년 안에 30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1년 실질 성장률이 6퍼센트에
서 7퍼센트 정도 오를 거라고 말해왔는데, 이는 계획한 모든 투자를 성공적으로 이행하게
될, 다가오는 3년 안에 반드시 일어날 중요한 일입니다. 앞으로 3년은 훌륭한 전략을 구상하
는 기간이 아니라 훌륭한 전략을 이행하는 기간입니다. 그리하여 이미 적절하게 구상된 성
장 계획을 확실히 이행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이러한 명확한 목표를 정착시키는 것 또한 CEO의 임무라고 말한다. 따라서 '몸소 실천하
는 것' 또한 리더의 몫인 것이다.
"몸소 실천한다는 것은 어떤 작업의 수행과정을 말로만 떠드는 게 아니라 직접 수행해내
는 것입니다. 또한 훌륭한 성과를 거둔 사람에게는 보상을 하고, 별다른 실적을 올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보상의 기회를 주지 않는 거지요."
"또 하나 CEO로서의 성공은 자신이 승진시킨 사람이나 핵심 자리에 올려놓은 사람들에
게 평가받습니다. 말하자면 형편없는 기업에는 형편없는 사람들도 무척 많지요. 그런데 그런
기업에서는 여전히 누구에게 잘 보였는가 혹은 누구를 알고 있는가에 따라 승진이 좌우됩니
다. 연줄이나 인간관계에 상관없이 성과를 증명해 보이는 사람들이 제대로 승진하게 된다면,
그 조직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입니다. 실행과정에 대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 직원들은 항상 주시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어째서 뛰어난 성과와 그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이 승진되지 않는지 의아해할 것입니다."
파이츠의 비전은 간단했다. 자신의 직업과 성공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도록 할 것. 그리
고 성공에 대해 보상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비전을 실행하였고, 캐터필라의 직원들은
그에 응답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전도사"
빌 게이츠는 오랫동안 세상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다음과 같은 사항을 간과하기도 한다.
1.빌 게이츠가 만들어낸 기업이 주는 엄밀한 의의
2.빌 게이츠가 아직 45세도 채 못 되었다는 사실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대충 얼버무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빌 게이츠만큼 예찬에 가까운
명성을 얻은 기업가가 이전에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에 관한 거의 모든 기사들이 그가
얼마나 똑똑한가 혹은 얼마나 부자인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빌 게이츠의 거의 모
든 수익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에서 나오며, 1999년 봄, 게이츠의 재산은 약 800억 달러로
서 세계에서 가장 부자로 알려지고 있다.
빌 게이츠에 대한 수많은 기사들은 전형적으로 이렇게 시작된다. '가장 똑똑한 산업계
의
거물이자 작은 국가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군소의 신보다도 강력한 힘을 자
랑하는 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
게이츠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명사가 되었다. (포천)에서 바바라 월터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고, 가끔은 풍자의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패러디인
윈블로 '98에서는 '은하계의 가난한 얼간이에서 최고의 통치자로 출세'한 주인공 빌 게이
츠
를 흉내내게 된다.) 그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얼마나 많은 일을 집에서 하며,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퉁명스럽게 대하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그가 애용하는
골프 클럽의 상표까지도 유명세를 탈 정도이다. 그는 캘러웨이의 빅 버사 드라이버를 사용
한다.
이렇듯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간혹 게이츠가 이
루어놓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버린다. 빌 게이츠는 인텔의 앤디 그로브와 함께 전세
계의 퍼스널 컴퓨터 사업을 일으키는 데 앞장서왔다. 게이츠와 어릴 적 친구인 폴 알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설했는데, 거기서 탄생시킨 운영체제는 세계 퍼스널 컴퓨터의 80퍼센트
이상을 주름 잡고 있다. (이들이 모든 시장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면서 공격적인 사업을
펼쳤기 때문에, 미국 역사상 가장 대단했던 재판 중 하나인 독점 금지에 관한 재판이 열리
기도 했다.)
지성과 개성이 어우러진 게이츠의 리더십은, 이 책에 실린 다른 리더들과 별로 다르지 않
았다. 열심히 주어진 일을 파고들며 자신의 임무를 치밀하게 수행함으로써, 직원들이 필사적
으로 따라하고자 노력하는 최고의 기준을 세웠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종사하는 직원에게는
게이츠의 리더십과 접근법을 반영하려는 경향이 우리가 소개하는 대부분의 리더들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접근법은 냉혹할 정도로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게이츠는 생활방식부터 시장활
동 방식에 이르는 모든 것을 바꾸어줄 기술력에서는 줄곧 태연할 정도의 낙관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책 (미래로 가는 길)에 나와 있는 다음의 구절은 미래의 의사소통 방법을 묘사
하고 있다.
당신은 내부에서 받는 모든 통신의 명시적인 전달방법을 정하게될 것이다. 저녁식사 동
안에 누가 전화를 걸 수 있는지, 차안에 있을 때나 휴가를 떠나 있을 때 당신에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한밤중에 자다가도 어떠한 전화나 메시지를 보낼 것인지 결정하
게 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나머지 소프트웨어 산업의 모든 돈은 연구에 투자되었다. 그러나 컴퓨
터와 인터넷이 앞으로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널리 보급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투자만으
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빌 게이츠는 제자리에 않아서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가오는 몇 년 안에 모든 규모의 정보처리 기능을 겸비한 새로운 기종의 퍼스널 컴퓨터
를 개발할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커다란 발전이 될 것입니다. 고성능 무선 호출기와 휴대폰
에서 '휴대용 퍼스널 컴퓨터'나 신문처럼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전자 서적에 이르기까지 모
든
것을 만지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군더더기 없고 투명한 방식으로 인터넷에 연결되
어 사용자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소프트웨어는 말하고, 듣고, 보고, 배우는 컴퓨
터를 탄생시킬 것입니다. 미래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자연스럽고 가장 기본적 사양만
을 갖춘 오늘날의 미숙한 소프트웨어를 되돌아보게 되겠지요."
사업의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너무나 잘 아는 게이츠는 새로운 산업 개발에 대해 광범
위하게 연구했으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자동차 산업과 컴퓨터 산업의 초기는 놀라운 만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이것은 그의 연설에서 자주 언급하는 주제이다.
"컴퓨터와 같이, 초기의 자동차들은 열광팬들이 주로 애용했습니다. 초기의 컴퓨터를 구입
한 사람들은 퍼스널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썩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가장 효율
적인 방법이 아닐지라도 말이지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나가서 과시하기를 즐겼습니다. 자동차 산업 초기 최고의 잡지
인 (마이 오토모빌)과 (호스리스 에이지)를 보면 알 수 있지요."
"과거의 (호스리스 에이지)를 살펴보면, 컴퓨터 산업의 핵심 잡지인 (바이트)와 비슷하다
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잡지는 모든 종류의 자동차를 심도있게 다루고자 했으며, 그 내
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호스리스 에이지)가 장기적인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이 부분만큼은 절대적으로 성공했다고 봅니다."
"퍼스널 컴퓨터의 부트 과정이 나쁜지 아닌지 잘 모르기는 해도, 아주 진부한 과정입니다.
컴퓨터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하려면, 우선 컴퓨터 뚜껑을 열고, 카드를 넣고, 스위치들이 어
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명령을 내릴 때 내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리소스 충돌을 파악해
야 하는 시대가 있었지요.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사람들도 컴퓨터 용량을 늘리거나, 컴퓨터
가 가진 기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주변 기기들을 추가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요."
"초기의 자동차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진흙투성이 길에 바퀴가 빠져 꼼짝할 수 없
을 때도 있었지요. 사실 운전사의 본래 개념은 누구를 태워다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차
기 고장났을 때 즉시 자동차를 수리해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지요. 물론 그 개념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자동차들이 차를
더욱 믿을 만하게 만들어서 모든 이들이 스스로 차를 다룰 수 있도록 했지요. 컴퓨터의 경
우는 아직 거기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게이츠는 자동차와 퍼스널 컴퓨터가 혁신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많은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자동차는 실질적인 면에서도 놀라운 혁신의 중심이었습니다. 디트로이트와 같은 활동 요
지도 갖추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새로운 기업들이 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고 신제품이 속
속 등장했지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모두다 제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중에는
자동차에 아주 핵심요소로 자리잡은 것들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전기 시스템의 도입으로
자동차에 라디오를 설치했고, 헤드라이트를 설치하여 어두운 밤에도 어려움 없이 운전할 수
있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되었던 일들이 점차 가능해졌습니다. 전력 도
입이라는 아이디어가 현실로 이루어지면서 파워핸들과 심지어는 자동으로 창문을 올리고 내
리는 기능까지도 생겨났습니다. 너무 힘들여 운전할 필요가 없어졌지요."
"퍼스널 컴퓨터에도 이 같은 혁신이 필요했습니다. 컴퓨터의 발전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급속도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등 기하급수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더
많은 개발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측면에서 볼 때, 게이츠는 컴퓨터 산업이 자동차 업계의 발전을 연구하
는 데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한다.
"비즈니스 분야의 책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앨프레드 슬로언이 쓴 (제너럴 모
터스와 함께한 나의 인생)이라는 책입니다. 앨프레드 슬로언은 제너럴 모터스를 이끌면서
놀라운 성공을 이룩한 사람이지요. 슬로언은 진정한 현대 경영의 기술을 만들어낸 인물입니
다. 그는 중고차 시장에서 자동차의 모델 연도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슬로언은 통합의 필요성을 주장했는데, 이것 또한 컴퓨터 산업에서도 유사한 점입니다.
그는 자동차 개발의 관건은 효율성을 높이는 거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곧 통합의 정도를
높이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수많은 복잡한 부품들이 밀접하게 통합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 산업에서도 부품 단계와 같은 많은 부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밖에 나가서 자동차 부품들을 하나씩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정비소에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이와 같은 일은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산업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
는 것입니다. 윈도 98을 사용하기 위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똑같은 기능의 수많은 소프트웨
어 부품들을 나가서 구입해와야 한다면, 아마도 보통 일이 아닐 것입니다."
"자동차의 외부적인 관련 산업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신종 자동차 전시회와 이를
위한 전시실도 필요하고, 운전자들의 안전교육은 필수이며, 전국적으로 점검 센터를 운영해
서 필요한 때면 언제나 가스를 주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장거리 여행 도중에 쉬
어갈 수 있는 휴게실도 필요하지요. 1925년에는 처음으로 모텔이 등장했습니다."
"컴퓨터 산업에서 이러한 외부적인 사업은 아주 흥미로운 분야지요. 병목 현상도 일어날
수 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훈련받고 있습니다. 하이테크놀러지를
둘러싼 새로운 직업과 서비스들은 이미 기술 공급을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
닐 수 없습니다. EDS나 아더 앤더슨과 같이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대형 상점을 운영하는 신
생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이들은 믿기 어려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결코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미치는 파장은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사고방식이 바
뀔 것이고, 그러한 변화가 몇 세대에 걸쳐 일어나면 모든 것이 너무나 달라지기 때문에 나
중에는 과거로 되돌아가서 비교할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게이츠는 자동차의 광범위한 보급 이래로 발생한 많은 예를 들었다.
"예를 들면, 쇼핑센터를 생각해봅시다. 평균 규모가 30년 전보다 4배 이상 거대해졌습니
다. 자동차를 가진 고객들이 외출해서 더 많은 물건을 사고 짐을 옮기게 되는 일이 이전보
다 늘어났기 때문이지요. 외곽에 쇼핑센터를 세울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은 모두 자동차가 주
는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동차와 컴퓨터의 같은 점은 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곳에
서 살고 있지만, 인터넷으로 연결하면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다른 곳에 있는
사람과 컴퓨터 게임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나도 전국에 퍼져 있는 친구들과 인터넷을 이용
해서 컴퓨터 카드게임을 즐긴답니다. 인터넷으로 서로 연락하는 것이 너무도 익숙해져 있어
서 정작 얼굴을 보게 되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습니다. 짧은 명령어를 치는 것이 더 익숙합
니다. 무슨 옷을 입고 나가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지금은 인터넷으로 하는 것
을 더 선호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인터넷 때문에 조금은 못되졌다고나 할까요/"
"자동차가 사람들의 거주지나 쇼핑 방식을 형태로 변화시켰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의 파급
효과는 이보다 훨씬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의 탐색기능을 사용하여 관심분야에 대한
전세계적인 전문적 기술을 얻겠다는 생각, 다시 말해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확한 지식을 얻으려는 필요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지역적이 돼야 하는 서비스 활동이, 제
조와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시장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변화
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모든 일이 언제쯤 가능할까? 게이츠는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일어날 거라고 말한
다.
"처음으로 자동차가 등장해서 미국인의 75퍼센트가 자동차를 사용하게 되고,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기까지 약 한 세기가 걸렸습니다."
"퍼스널 컴퓨터의 경우에는 그 성장이나 대중적 인식은 더욱더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습
니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는데요. 오늘날의 컴퓨터는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가격이 많
이 싸졌지요. 생활은 풍족해지지만 그에 따른 발전 속도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앞으로
3년 안에 컴퓨터가 절대적인 필수품이 될 거라고 내가 보고 있습니다. 2001년까지 전국 60
퍼센트의 가정이 퍼스널 컴퓨터를 보유하게 될 것이며, 미국 국민의 85퍼센트가 인터넷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각 가정이 이렇게 빠르고 거대한 규모로 새로운 일에 동참한다는 것
은 전례가 없던 일이지요."
"그래서 퍼스널 컴퓨터가 몰고 올 바람은 실로 놀랄 만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출발선상에 서 있는 것뿐이지요."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이 하드웨어 산업의 측면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에게 쓸 만
한 자원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게이츠는 말한다.
"하드웨어쪽 종사자들은 우리에게 아주 귀중한 것을 주었습니다. 요즘은 컴퓨터 용량이 4
기가바이트가 안 되는 기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기가 대신에 1기가바이트의 드라이버
를 가진 하드디스크를 생산하는 규모 경제학상 제조원가에 비해 그것을 제대로 저장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5년에서 10년 동안에 이것이 해결된다면, 그야말로 수백 기가바이
트의 저장 공간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더 훌륭한 아이디어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비자의 요구 사항이라고 게이츠는 말한다.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정보를 다 알고 싶어합니다. 사진을 계속 보관할 수 있기를 원하
며 좋아하는 음악이나 비디오 클립을 계속 갖고 싶어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장치에
저장해놓고, 언제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기를 바라지요. 하드웨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
은 이 흥미로운 일들이 가능하도록 많은 틈을 줄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러한 기능을 공급하는 문제를 앞에 놓고 있으며, 아직까지 불충분한
이 분야를 위해서는 중대한 연구가 필요할 거라고 게이츠는 말한다.
"나는 진정으로 연구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가져다줄 보상을 ale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산업이 연구분야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
다. 그 결말은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지요. 그 필요성 또한 너무나도 명확하지 않습니까?
정보화 시대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다가가는 정보처리 능력은 가장 손에 땀을 쥐
게 하는 문제입니다."
"정보의 과잉 공급 또한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인터넷에 들어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거지요.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질문내용을 타자
로 치거나 혹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과 똑같이 말을 통해서 정보를 얻을 것입니다. 이것
이 원활해지도록 지불해야하는 상업적인 비용은 극적일 정도입니다."
"아직도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습니다. 오늘날 퍼스널 컴퓨터에 관한 정보를 얻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엄청나게 많은 방법을 이용하여 정보를 저장해야 하지요. 우리
는 서로 다른 이름의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탐색 명령어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생
각해보십시오. 아직도 우리가 한 걸음 더 전진해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그래서 연구할 필요
가 있는 대부분의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만들어놓은 목록에 '쉽게 사용하기'라
적
어 놓습니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입을 자신이 호언했던 부분에 쏟아 넣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목표로 삼았던 규모에 도달한 것은 대략5,6년 전이었습니
다. 그후 자연언어와 그래픽 같은 분야에 뛰어들었지요.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러한 일을 시작
한 것은 약3,4년 전이었습니다.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가 되
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오직 얼마나 빨리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가 뿐입니다. 이것은 항상 기업이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지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 수익은 기업이 소유한 레드먼드,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영국에 있
는 연구기관을 거쳐 더 넓게 확장된다.
"사실 기업이 연구에 투자할 때 비로소 산업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야에서 다른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더 많은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위대한 업
적들이란 서로 공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컴퓨터의 모든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
는 지금의 현실을 넘어서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입니다."
산업이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연구는 장기적인 전망을 내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5년이나 10년 안에 어떤 대단한 결
과가 나타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주식시장에서 보통 100배 정도의 수익을 올리는 산업으로서는 사실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런 환경에서는 연구보다 주식시장으로 들어간 소액 자금이 주가를 500달러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단기간의 연구는 그저 근시안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고 게이츠는 말한다.
"3년 전 가장 좋은 보험에 들거나 혹은 차를 샀던 기억을 돌이켜본다면, 그 당시에 퍼스
널 컴퓨터가 그러한 업무를 도와줄 수 있는 도구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누구나 그러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1920년의 자동차 산업과 비교해봅시다. 필요한 일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자기 위치
를 제대로 잡아야 할 일들이 무척 많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연간 30억 달러를 이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일을 추진하는 게이츠의
모습은 특별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매일매일 직장에 나간다는 사실을
사랑합니다. 언제나 새로운 도전, 새로운 기회, 새로이 배워야 할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
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직업을 wmf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루 거스너
IBM "당신은 무엇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는가? 그 성공요인을 쓰려고 보면 쓸 수 없음을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루 V.거스너 2세는 록스타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명사이다. 단추를 잠그는 셔츠와 깨끗
한 청바지가 일반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산업에서, 거스너는 항상 IBM의 회장에 걸맞은 암
청색 양복을 애용했다. 그것이 그의 모습이다.
컴퓨터 전시회에 가는 고객들과 경쟁기업에 종사하는 프로그래머들은 여전히 그의 자서전
을 사모은다.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10년 전에 엘비스나
비틀즈를 만나기 위해서 예약해두었던 것과 같은 상기된 어조로 루 거스너를 만난 것에 대
해서 이야기한다. 이 사람은 지오파디 퀴즈의 명쾌한 대답과도 같았다.
이러한 명성과 추종을 불러일으킨 것은 거스너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었다. 중요한 내부
회의가 있을 때마다 특별한 배경지식 없이도 회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신속한 결정을 내리
기 위한 방편으로서 서면 브리핑을 요구한다. 또한 거스너는 외부 인사들을 흔쾌히 접대하
면서 "나는 회의시작 2분전에 도착하고, 회의가 끝나면 즉시 떠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작은 회의를 진행하는 능력만으로 자문 회사인 맥킨지의 역사에서 우리의 가
장 젊은 파트너가 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여유 있게 만드는 능력만으로 거스너가
50세가 될 때까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로의 전환과, 막강한 알제이알 나비스코의 바이아웃
의 운영이 가능했던 것도 물론 아니다.
사실 과거 그의 업적은 현재 직업을 위한 준비단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스너의 '빅 블루'의 재임기간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IBM으로 선회
2)걸출한 세계적 기업으로서의 IBM 만들기
많은 사람들은 잊었지만, IBM은 이사회가 거스너를 채용하기 전까지 기업을 개별적인 부
서로 나누어(정부의 위임 없이) 주주들에게 분배하는 과정을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었다.
첫 번째 목표는 훌륭하게 이루어졌다. 기업은 두 번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길에 서 있
었다. 제품들은 시장으로 더 빨리 나가고 있고, 서비스 사업은 다시금 향상되었다. 기업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제는 먼 옛날의 일이 되었다.
비즈니스 잡지의 커버스토리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던 것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었
다. "IBM이 돌아왔다."
루 거스너의 최대 결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였다.
IBM 이사회에 의해서 채용되어 1993년 4월 1일 IBM을 인계 받은, 가장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한 사람으로서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거스너는 신속히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엄청
난 부담을 떠맡았다.
모건 스탠리를 위시한 증권 인수업자들이 IBM의 해체를 돕고 주식을 일반인에게 하나하
나 분배하기 위해서 채용되었다. 극소 전자공학과 디스크 드라이브 사업 같은 다양한 부서
들이 폐기되어야 했다. 투자 공동체를 비롯한 모두가 거스너의 성명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거스너는 결코 파산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기대했던 일들을 해냈다. 다운사이징과 그 외의 야심찬 새로운 목표들을 공
표했지만, 자신을 '강렬한, 경쟁적인, 집중력 있는, 무뚝뚝한, 강인한' 사람으로 선뜻 소개했
던 그는 궁극적으로 빅 블루를 해체시키지 못했다.
거스너의 생각을 알았던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동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루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근무하면서 IBM의 고객이던 시절을 자주 생각하곤 했습
니다. 제품하나 또는 서비스 하나 때문에 IBM에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생산라인의 깊이와 연구 업적, 고객서비스 때문에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었지요."
간단히 말해 그는 해법을 산 것이었다. 단지 하나의 이유 때문이 아니라 기업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 때문에 IBM과 거래했던 것이다. 자신이 운영하게 될 기업에 대해서 연구한 휴,
거스너는 IBM이 작은 부분들의 총합보다 더욱 큰 기업이며, 정보기술 공학 산업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가장 적절한 제품이라고 결론지었다. IBM의 고객들이 통합을 존중한다고 믿었
다. IBM경영을 시작한 첫 두 달 동안 주요 고객들, 산업 리더들과의 일련의 모임에서 그러
한 직감을 확인했다. 그 후 거스너는 IBM을 하나의 덩어리로 유지할 거라고 공고하였다.
이러한 깜짝 놀랄 만한 결정을 내린 후 얼마 되지 않아 거스너는 또 다른 결정을 내렸다.
IBM을 위한 중요한 비전을 새로이 창조하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이것은 기업이 지금 당
장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 말은 초기의 기자 회견에서 거스너가 언급한 "IBM
이 바로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이상입니다." 라는 말에 대한 많은 이들의 해
석이기도 하다. 오히려 거스너는 IBM의 현재 상황으로는 정보기술 공학이 그린 미래에 대
한 꿈같고 유토피아적인 모습이 현재의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IBM의 고
객들과 주주들은 컴퓨터 산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았지만, 우선 시
작해야하는 기초적인 일들이 많았다. IBM은 안정을 되찾고, 수익성을 되돌리며, 성장해야
했다. 시장과 고객에게 다시 연결되어야 했다. 또한 더욱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 신속히 유
통시켜야 했다. 이것이 모두 리더십을 되찾고 이상을 만드는 합법적인 기준을 게우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였다.
1995년 가을, 드디어 이 모든 일들을 끝마친 후, 거스너는 그의 이상을 만천하에 드러냈
다. 그것은 후에 전자산업이라고 불리는 네트워크 컴퓨팅 작업이었다. 인터넷과 같은 강력한
전 세계적 통신망에 좌우되는 컴퓨팅 모델의 첫 번째 명확한 표현이었다. (이것은 넷스케이
프의 IPO 이전의 일이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세우기 이전
에 일어난 일이다.)
최근 CNBC와의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거스너는 이렇게 말했다. "고객 중심에 설 것을 광
적으로 강조했습니다. 모든 일은 누가 우리의 고객이며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파
악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모든 네트워크 컴퓨팅, 전자산업 세계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이 분야를 주도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었던 덕분입니다."
거스너는 고객의 시각에서 IBM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자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고 덧
붙였다.
"기업 내부에 존재하던 많은 중점 사항들을 제거했습니다."
장기간 IBM에서 근무해온 직원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도 그러한 중점 사항 때문에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고 동의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오직 앞만 내다볼 것이다
거스너는 기업이 외부인에 의해 운영된다는 인식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IBM 경영인들은 거스너가 기업의 공동 문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방법을 예로 든다. 그는 기업의 회의운영 방법, 오버헤드 프로젝터의 사용금지, IBM 사람들
이 사용하던 '금속조각', 즉 프로젝터와 함께 사용하던 슬라이드를 교체했다.
거스너가 오버헤드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제도적인 기업회의의 주제,
즉 어두컴컴한 회의실, 발표자보다 차트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어야 하는 길고 긴 발표, 무엇
보다도 간부들 설득하기 위한 시간에 드는 과다한 경비 지출 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 오버헤드 프로젝터를 없앰으로써, 사실 여전히 가끔씩 이것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거스
너는 단순히 회의를 소집하는 것보다 직원들의 생각을 분명하게 정리하는 것을 우선 시 했
다. 회의 참석자들이 결정할 사항을 확실하게 미리 준비하도록 했고 단지 정보를 나누거나
내부적인 탁상공론만을 계속하는 일이 없도록 몰아붙였다.
이 모든 변화는 이론적으로는 아주 훌륭했다. 그러나 조직 내의 사람들이 그 이면에 담겨
있는 뜻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단순히 이론에 그치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거스너에게 인계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거 제시하는 변화에 낙담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가 인계 받은 직후에 날마다 제공되었던 바이아웃 패키지를 마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IBM의 대다수 직원들은 거스너의 생각을 믿었으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힘차게
일을 진행했다.
거스너는 이러한 반응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기업의 과거를 다시 되돌리려는 리더십은 오랫동안 이곳에서 인내심을 갖고 일해온 재능
있는 사람들을 고무시켰습니다. 그들은 최고였으며 우리의 성공은 나 혼자 이룬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을 해낸 사람들은 28만여 명에 이르는 우리 직원들입니다. 우리는 중점을 두
어야 할 일을 바꾸었고, 선입견을 떨쳐버렸습니다. 최고의 재능을 소유한 사람들이 이것을
한데 모아 융합시킴으로써 기업을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숫자가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거스너가 CEO로 취임한 이래로, 주주들의 총수익은 연
이율 47퍼센트로 증가했으며, 1993년에서 1998년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자산가치가 1,460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게다가 IBM은 전자산업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인터넷에서 파생된
진가를 개인과 산업, 제도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강력한 힘을 다시 한
번 발휘하게 된 것이다.
교훈
IBM이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쳤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았냐고 물었다. 거스너는 전혀 놀라
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오늘날의 많은 대기업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성공증후군'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성공증후군이 일어나는 프로그램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것은 신뢰받고 검증된 것이기에, 그 성공은 오랫동안 매달리게 되지요, 세계가 변화하고 있
다는 것을 아는 것과 10년 동안 제자리를 지켜온 경영에 관한 관례를 다시 고쳐 쓴다는 것
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IBM은 다음과 같은 일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내부적인 평가 척도를 가지고 IBM을 평가하였습니다. 과거에 시행되던 것과 같
이 직원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지시하는 내부적 구조를 세웠는데, 한동안은 매우 성공적이었
습니다. 정작 산업과 고객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을 때, 실질적으로 관료주의가 시장에서 더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낡은 행동 방식을 유지했던 것
입니다. 그리하여 1993년 봄, 결국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시급한 대처
방안이 필요하던 그 시기에, 우리는 변화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유능한 수천 명의 직
원들과 함께 있었고 그들은 기꺼이 변화에 동참해주었습니다."
IBM은 앞으로도 자기 만족적 사고방식을 경계할 거라고 거스너는 힘주어 말한다. 그가
설명한 것처럼 한번 직업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심각한 난관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이 안내서를 작성하고 법칙을 상세히 정리할 단계에 왔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
상 현 상태를 살피거나 의문을 갖지 않게 됩니다. 대개 모든 성공한 기업들은 그 성공을 정
착시키려는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며, 자신의 성공을 그대로 정착시키려고 하면 내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내부의 일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기업에 어려움이 닥치게
마련입니다. 기업의 발전은 내부에서 바라만 보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끌
어들이는 데서 비로소 이룩되는 것입니다."
레이 길마틴
머크 "보다 높은 목표를 위해서 일하라"
연예계와 스포츠계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전설을 바꾸는 사람이 되려하지 말고, 전설을 바꾸는 이를 뒤따르는 사람이 되라."
옳은 말이다. 슈퍼스타의 뒤를 잇게 되면 그와 영원히 비교되는 운명에 놓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운동선수, 연예인 혹은 사업가들이 슈퍼스타의 뒤를 잇기를 꺼리는 것이다.
그러나 레이먼드 길마틴은 이 말에 수긍하지 않았다.
머크 앤 컴퍼니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P.로이 버젤로스의 후임이 레이먼드 길마틴
으로 결정되었을 때도, 일반적인 불안감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여러 면을 생각해볼 때, 숙련된 기술자인 길마틴이 선택된 것은 뜻밖이었다. 그는 지난 5
년 간 병원과 의료기기 공급업체인 벡톤 디킨슨 앤 컴퍼니를 운영했다. 1994년 머크를 맡게
된 그는 제약 분야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외부인이었다.
헬스케어에 관한 세계의 인식은 변했다. 그 속에서 길마틴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벡톤 디
킨슨 앤 컴퍼니에 있는 동안, 그는 몇 단계의 업무처리 과정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함으
로써 유명해졌다. 이러한 구조조정으로 벡톤 앤 컴퍼니는 바로 의약품 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되었다. 벡톤 앤 컴퍼니의 미국 내 판매율은 80퍼센트 이상이 정부 관리기구와 대규모의 구
매단체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때문에 길마틴은 협력단체의 고객들이 오늘날의 제약회사에
기대하는 바를 훤히 알고 있었다.
길마틴은 머크의 CEO직에 오르면 정밀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어
떻게 하면 버젤로스가 남겨놓은 최고의 업적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지
금 당장 눈앞에 주어진 임무에 충실할 것을 결심했다.
"도전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업은 한동안
침체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선 신약품 개발이 시급했습니다. 또한 메드코의 인수작업을 해야
했으며, 가격 억제 쟁점도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의약품 가격을 낮
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의약품 유통시스템에 대한 정밀조사를 명령했다.)")
"어떤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의 뒤를 그럴듯하게 이어갈 것인가 따위에는 관심 없었습니
다. 기업과 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불확실성이야말로 커다란 도전상대였습니다."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주가가 4배나 급등했다. 신약품이 개발되는 중이었으며 메
드코와의 통합 또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도대체 길마틴은 무슨 일을 한 것일까?
"1994년 6월 16일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약 30~40명의 경영진들과 인터뷰했습니다. 기
본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했지요."
1)우리의 가장 커다란 당면 과제가 무엇인가?
2)당신이 CEO라면,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시간을 가장 많이 투자하겠는가?
"이 인터뷰로 기업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외부 사람이고 사람들이 우리의 성공을 인정했기 때문에, 나와 얘기한 사람들은 아
주 솔직하고 직선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말한 내용들을 기초로 머릿속에 있던 많은 생각들에
우선 순위를 매길 수 있었지요. 그뿐 아니라 그들은 기업의 경영에 대해 자신감을 심어주었
습니다. 당장 시급한 문제로 여기고 있었던 그 다음 단계, 즉 적재적소에 훌륭한 경영진을
배치하고자 하는 일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지요."
"이 같은 경영진을 구성하는 데 두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말할 것도 없이 능력
과 성취 실적이었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머크에 종사하는 다른 많은 직원들에게 인
정받는 사람을 핵심 자리에 앉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의 핵심 가치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인물, 직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러한 인물이 필요했던 거지요."
길마틴의 선택 비결은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것이었다. 리더십에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머
크에서 절대로 바뀌지 말아야 하는 단 한 가지는 제약회사가 무엇을 대표하는가에 관한 인
식이었다.
새로운 경영진을 선출하기 위한 준비에서, 길마틴은 과거 1925년에서 1950년까지 사장으
로 재임했던 설립자 조지 W.머크가 세워놓은 이 기업의 핵심 가치를 연구했다.
"그는 '약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것을 항상 염두 한다면
이익은 자연히 뒤따라올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철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시키기 위해 약품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록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되지요. 우리의 주가는 이러한 신념을 성실히 이행한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포천)의 조사결과를 보니, 머크가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베스트 10에 들었더군요. 그리
고 직원들이 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일하는 점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기자에게 내가 에이
즈 약품에 재해서 소개했는데, 이것은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어떤 단백질 분해제보다도 가
격이 저렴합니다. 이 약품의 특성상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요. 조지 W.머크의 철학
에 대해서 이미 말했듯이, 재정적인 수익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간절하게 약
이 필요한 사람에게 약을 공급해줘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가격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내외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격
려해준 셈이었지요. 말로만 원대한 목표를 갖는 것이 아니라 생동으로 보이는 게 중요합니
다."
길마틴을 능력 있는 후보자들이 이러한 가치를 함께 나눌 만한 됨됨이를 가지고 있는지,
무엇보다도 선발 후보자 명단에 오른 이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결과를 달성했는지 살폈다.
길마틴을 경영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찾고자 했을까?
그는 이 질문에 길게 설명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경영위원회를 통해 머크의 리더십에서 중요한 특성을 찾아냈습니다.
아무 때나 선반에서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적 차원에서 지시할 수 있는 것
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잘되는 못되는 이일에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다음의 네 가지 기본
특성을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1)자신을 알고 개발할 것 2)사업을 알고 개발할 것 3)자기 사람들을 알고 개발하며 지원
할 것 4)의사소통
"자신을 알고 개발한다는 것은 윤리와 통합의 기준에 따른 자기 관리입니다. 자신의 분야
에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그 분야를 올바로 이해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
다. 이러한 원칙에 입각해서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면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올바른 판단력과 경쟁의식을 가진 훌륭한 사업가를 기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세 번째는 조직과 사람들을 개발하기 위한,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직업적으로 성장할 수 있
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리더십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지도원칙은 결코 쉽지 않은 것입니다. 성취하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필요한 정
보를 얻기 위해서 조직 내의 모든 이들과 의사소통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엄청난 힘
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요."
길마틴은 머크가 추구하는 기업 내의 그림이 명확해지자 곧 전략적인 방향, 즉 포괄적인
방향을 제시하였다.
"노동절을 지낸 후 적소에 경영진을 배치했습니다. 10월 초부터 시작된 이 작업을 두 달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은 당시의
고정관념에 다소 위배되는 사항이었습니다."
"성공을 위한 한 가지는 과거에 이 기업이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혁신적인 연구
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전체 산업을 살펴볼 때, 이것은 아주 확실한 결정이
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보건 유통시스템과 전문경영인으로 관리되는 보건 기업이 속
출함에 따라 일어나고 있는 변화 때문에, 경영전문가가 관리하는 보건 기업이 그러한 혁신
적인 연구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
을 믿지 않았고, 결국 연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지요. 기업으로서는 상당히 중대한 변화였습
니다. 평범한 약품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이었으니까요."
"우리가 계획한 연구에 부적합한 모든 사업을 중지했습니다. 특수 화학약품 사업을 철수
하는 등 연구에 불필요한 모든 사항을 제거하였습니다."
"두 번째 핵심적 결정은 인수와 합병을 통한 성장이 아니라 내부 개발에 투자하자는 것이
었습니다. 1994년에 내린 이러한 결정은 우리의 연구 망을 이용해 발견한 사실, 즉 내부 개
발을 통해 성장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잠재력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고정관념에 대항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비롯한 모든 사업의 역사를 보면, 내부 개발을 통해 성장한 기업이 인수
와 합병으로 성장해온 기업보다 주주들의 자산 가치를 더 크게 창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
니다."
"큰 규모의 제약회사들이 서로 협력한다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보건기
업의 구매자들은 기업의 규모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직 최고의 치료법만을 찾고 있지요.
기업의 규모는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연구에서 어떤 규모를 넘어서기만 한다면,
신약품을 개발하기 위한 많은 것을 이미 얻은 것입니다. 그것들을 시장에 내놓기 위한 방편
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연구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이 곧 생산성이 높아진
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거지요."
"세번째의 중대한 결정은 메드코와 함께 할 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메드코가 언론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유통업체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의약품 관리기구였지요. 그래서 두 기업이 각자 성장하는 것보다
함께 손잡고 성장하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성과를 얻기 위한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
습니다."
"그래서 제약사업이 빠르게 성장하려면, 메드코가 머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머크는 메드코에게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두 가지가 문제였지요. 곧 메드코는 내부적으로
이미 조직돼 있던 약품가격 관리용 운영 프로그램을 통해 머크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이 세 가지 결정이 기본적으로 우리의 전략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목표를 설정
하는 것, 최상급 성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지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재빨리,
손쉽게 대처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기회란 마케팅, 연구, 제조 등의 주요
분야에 걸친 장애물을 넘어뜨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더욱 많은 사명감과
권한을 갖게 되지요."
이 세 가지를 실행에 옮긴 후 얻은 중요한 결론은 더 훌륭한 약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고의 약품을 개발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던 연구 전략의 직접적인 결과지요. 많은 환
자들이 사용하고, 병리학적인 새로운 지식과 화학적 성분을 통해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약품을 만들어보기로 했지요. 그래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는 약품으로 높은 판매고
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편의를 위해서 하루에 한 번, 경구 복용하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 또 다른
부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에서 특효가 있는 약품이지요. 아주 효능이 높습니다. 즉 복용
후 고통이 없다는 말입니다. 부작용도 거의 없지요. 약품개발 과정에는 일반적인 특성들이
있는데, 마치 머크의 모든 연구소에서 무슨 주문을 알아낸 것만 같았지요. 또한 가격 억제
압력을 처리하는 일도 중요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시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기업을 일으킬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종사 분야가 가진 복잡성입니다. 우리는 2002년까지
24가지의 치료법을 알아낼 것입니다. 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거듭 확장해왔기 때문에, 많은
치료법과 지리적으로 결부되어 무척 복잡합니다. 각각의 치료법에서 강력한 경쟁자를 가지
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군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중심을 지키는지
아십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 기업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뉘어 있는
경계를 가로질러 일할 수 있는 것과, 치료방법의 프랜차이즈에 집중하고 더 많은 책임감과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특히 이렇게 규모가 커지는 조직일수록 더욱 사명감을 가
질 수 있어야 하며, 권한의 위임을 통해 더 많은 결정을 내리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러한 경
영방식을 가져야 하지요. 그래야 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직접 행동할 수 있어 효과적이지요."
"그리하여 내 임무는 기업 전체의 전략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전략을 수행하
기 위한 구성을 하며, 적절한 경영 과정을 실행하도록 하는 거지요. 조직의 모든 일원들이
기업을 위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합니
다."
기업의 운영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길마틴도 동의한다.
"기업 운영에 관해서 오늘날 CEO에게는 전보다 더 힘든 일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렇
지만 CEO라는 직업에 더욱 흥미를 느낍니다."
길마틴은 기꺼이 설명한다.
"최근 언론사는 조직에서 일이 성사되거나, 그렇지 못한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CEO만을
꼽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비즈니스 위크)나 (포천)의 맨 앞장에
기사를 싣는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 연구 조직을 지휘하는 에드 스콜닉일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 직원들이거나 말이지요."
"내 임무는 전 조직을 결집시키는 것입니다. 연구지식은 없을 뿐더러 바라지도 않습니다.
지금 세계구석구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을 선별하는 데에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야 하며, 유능한 인재를 올바로 식별하여 적절한 위치에 적합한 사람들
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CEO는 아주 훌륭한 전략적 사상가여야 합니다. 수많은 리더십 방
식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직원들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고, 조직에 신뢰를 줄 수 있는 리
더십 방식이야말로 진정 훌륭한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 직원들은 작업을 24개월이 아니라
15개월만에 끝내가 위해서 기꺼이 전념해줄 것입니다."
"자신감과 믿음을 고취시키는 리더십은 많은 면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가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카리스마가 전혀 없어서도 안
됩니다."
에이스 그린버그
베어스턴스 "가난해도 부를 향한 열망이 있는 똑똑한 이들을 고용하라"
우리가 50인의 리더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것은, 그 리더들의 삶이 결코 놀라운
일들로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많은 리더들은 골프를 즐기는 등 사적으로나 사
업상으로나 활동적인 사람들이었으며, 자식 자랑을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
다.
그린버그의 자서전 첫머리에서 그가 서닝데일 컨트리 클럽과 딥 데일 클럽의 회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우리는 그린버그도 비슷한 부류의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조금 더 접근해 들어갔다.
그린버그는 1977년에 전국 브리지 선수권에서 우승한 적이 있고, '아마추어 마술가 협회'
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린버그는 아홉 살 때 해리 블랙스톤 경의 마술쇼를 본 이후 마술에 매료되었다. 이 증
권사 회장에게 가장 좋아하는 속임수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난 속임수는 쓰지 않습니다. 기적을 행하죠."
마술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그였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결코 그렇지 않
았다.
인터뷰 당시 그린버그는 줄무늬 양복이 아닌 헐렁한 바지와 스포츠 재킷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상패가 즐비하게 진열된 사
무실 안에서 촬영하는 것은 싫다며 거부했다. 결국 사진가는 복도에서 요요를 하는 그린버
그를 찍어왔다.
그의 자서전인 (회장님에게서 온 메모)은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사실 제목만 보아도
어떤 책일 거라고 짐작 갈 것이다. 이 책은 그린버그가 하임킨켈 말린츠 아나이니컬의 목소
리를 빌어 지난 20년 간 직원들에게 보내온 메모를 모아놓은 것이다. 아나이니컬은 사내에
서 '유명한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알려져 있는데, 실은 순전히 그가 만들어낸 가상인물이었
다.
그중 하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발신 : 수석 전무이사
이하 전무이사들과 어소시에이츠 디렉터
수신 : 알랜 G.그린버그
일시 : 1991년 8월 14일
지난주에는 두 건의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지요. 맥도날드사가 7백억 개째의 햄버거를
판매한 일과 베어스턴스사가 10,000번째의 팩스를 구입한 일입니다.
그런가 하면 슬픈 소식도 있습니다. 베어스턴스를 위해 일해주었던 세일즈맨 팩스가 은퇴
한 것입니다. 팩스는 이 기업에서 근무한지 33년이나 되었고, 이제는 완전히 노쇠하였습니
다. 팩스는 도널드 트럼프의 요트를 구입했는데, 지친 그의 영혼은 이제 남은 여생을 요양하
며 쉬고자 한답니다.
아나이니컬의 인척은 이 소식을 듣자 그 속에 숨겨진 교훈을 찾아냈다고 한다. 여러분은
찾았는가?
그 교훈은 결국 비용 절감으로 직접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그야말로 우리는 '패배자들의 모임'으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패배
의
모임에 동참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나이니컬은 허구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충고는 다분히 사실적이었다.
'고객에게 예의를 갖추라.'
'만족스러운 상황일수록 손실이 없는지 살펴보라.'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은 무시하라.'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라.'
그린버그는 우리와의 대화 중에 업무절차에 관한 재정적 조언을 해주었고, 그것을 그의
메모에 다시 추가하였다.
"세금을 줄이는 방법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방 공채를 사들이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그린버그를 이용하는 방법이지요. 도대체 그린버그가 어떻게 하냐구요? 일단 세금을
납부하면, 더 이상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도록 만들어 드립니다."
그의 책은 매우 재미있다. 흥미를 끄는 점은 메모의 목소리 톤이 항상 베어스턴스의 실적
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즉 기업의 상황이 좋은 때는 끊임없이 비용 절제의 필요성과, 고
객의 전화에 즉시 응답해 최대한 좋은 기업 이미지를 심어줄 것을 강조한다. 반면에 상황이
어려울 때는 직원들을 고무시키려고 무던히 노력하며 그 노력은 곧잘 성공하곤 했다.
에이스 그린버그는 브리지, 마술, 개 훈련, 거래 등 거의 모든 일에서 나보다 뛰어난 사
람이다. (워런 버핏)
여기에 리더십과 남을 격려하는 능력도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베어스턴스는 산업 세계에
서는 흔히 부풀려지기 마련인 도덕적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바로 이 점이
그린버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과이다. 많은 경쟁에 시달렸을 베어스턴스가 충분히
겪었음직한 이런 악재를 어떻게 피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 기업에서 평생 일한
사람도 퉁명스러워진다.
"마크 트웨인이 이런 말을 했지요. '물고기는 머리끝부터 비린내가 난다' 맞나요? 기업 총
수들은 사업 경영에 대한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리더의 사생활이 난잡하거나, 여기저기에
돈을 뿌리고 지출이 큰 계좌를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행실은 기업 전체로 스며들게 되어
있습니다. 기업 리더의 행실은 곧장 직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 하나
하나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거지요."
1993년에 CEO 자리를 제임스 케인에게 넘겨준 그린버그는, CEO가 본보기를 보인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CEO가 어떤 인물을 고용하는가 라고 말한다.
"나는 항상 현재는 가난해도 가슴속에 부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득 품은 똑똑한 인재
를 찾습니다. 이것은 변함 없는 나만의 기준이지요. 이중에는 경영대학원에 입학하는 사람들
도 있기는 합니다. 권위 있는 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소용한 사람이 틀림없다면 학위 취득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
다. 대신에 당신이 누군가를 정말로 알고 싶다면, 그와 함께 사업하는 사람, 그의 고객, 그가
고용한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지요."
베어스턴스는 채용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주기를, 무엇보다도 도덕적으로 일해줄 것을
기대한다. 이러한 도덕적 기준을 어떻게 확고히 지켜나가는 것일까? 그들은 도덕이 직원 모
두의 책임이라고 분명히 인식시킨다. 그리고 과실을 발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즉시 현금으
로 보상함으로써 도덕 기준을 준수한다.
"이것은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알아내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나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 몇 년씩 걸리는 내부 감사위원회에 의존할 필요도 없지요.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발견
하면, 그 곁에 않아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가장 빠르니까요."
"일부 다른 기업에서는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직원들을 밀고자로 만드는 기업
으로 알려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다릅니다. 우리는 내부 고발자들
은 아주 좋아합니다. 내부 고발을 장려하고, 밝혀진 실책의 5퍼센트에 상당하는 금액을 즉석
에서 현금으로 보상하고 있는데, 5만 달러, 6만 달러의 수표를 써서 보상한 적도 있답니다."
"처음 이 방법을 시행했을 때는 대기업들로부터 직원들을 밀고자로 만드는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다고 심한 비난을 받았지요. 글쎄요, 해군사관학교, 육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나 일
부 대학에도 '당신이 고발하지 않으면 당신도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는 정책이 있다고 들
었
습니다. 이것이 학교에서 효과가 있다면 기업에서도 효과가 없으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요?
우리의 사업을 망치려는 자들이 있을 때, 그러한 계획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잘못
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를 파산시키려는 직원과는 함께 할 수 없으니까요."
이 결과 직원과 주주들은 큰 부자가 되었다. 그린버그에게는 주주의 입장에서도 기쁜 일
이며(그가 쓴 책에서 늘 상기시키듯이 그리버그도 대주주의한 사람이다), 기업의 실적에 따
라 보수를 받는 직원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행복한 일이었다.
"우리 기업은 이 세상의 어떤 기업체와도 다릅니다. 집행위원회의 보수는 기업의 실적에
따라 지급됩니다. 기업이 전혀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분기 당 20만 달러를 받습니다. 명목뿐
인 옵션이나 책략, 무보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업 실적이 좋은 경우에는 우리도 한몫 잡
게 되는 거지요."
"부패 기업에서는 소위 기업총수라는 사람들이 추가 보너스를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옵션을 취소하고 새로운 옵션을 받습니다. 참 우스운 일이지만, 그렇게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이익만을 근거로 보수를 받는 고위경
영 간부 집단은 있을 수 없지요,. 그들은 확실하고 안전한 것은 원하니까요. 그렇지만 우리
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베어스턴스의 직원처럼 매년 수백만 달러를 번다면 당연히 여기에 스스로 만족하
면서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게 될 것이다. 베어스턴스의 직원들도 그와 다르지 않
지만, 그들은 단 한가지의 독특한 경로로만 돈을 벌어들인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300여 명에 달하는 모든 관리자들은 매년 총수입의 4퍼센트를 자선 사업에 기부해야 합
니다. 보통은 그 이상을 기부하지요. 얼마를 기부하는지 그 액수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지
만, 기부했는지 여부는 확실하게 감독하고 있습니다."
"왜 기부를 강요하느냐 고요? 나는 이 나라에서 살 수 있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
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토박이 미국인이 아니고,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에 와야만 했던 아주 운 좋은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운이 없는 이
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이유지요."
'열심히 일하라. 당신의 고객에게 신경을 쓰라. 도덕적으로 행동하라. 받은 만큼 되돌려
주
라.' 이 말은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한 상식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린버그는
우리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지요. 가장 비상식적인 것이 바로 상식이다. 이 말을 믿어야 합니
다."
행크 그린버그
AIG "하얀 지빠귀를 찾아라"
다음은 오래된 우스갯소리이다.
질문 : 당신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수익률 높은 보험 기업을 어떻게 운영하겠습니까?
답 : 아주 자알~
그러나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의 성공을 말하자면, 이 케케묵은 우스갯소리는 상당부
분 사실이다. 모리스 R.행크 그린버그 회장은 새로운 시장을 하나씩 개척하고 AIG의 숙련
된 리더들에게 운영을 맡기면서 국제시장에서 사업을 키워 나갔다.
일단 기업의 발판을 구축하자 그린버그는 공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위험부담은 피했다. 기업 구성비율을 보면 한눈에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의 구성비율이
란 재산, 상해 보험의 수익률을 특징짓는 핵심 개념이다. 이는 손실과 비용(분자)에 대한 프
리미엄(분모)의 퍼센트 비율로 표현한다.
100보다 작은 구성비율을 보험 수익률을 가리키며, 비율이 낮을수록 기업의 수익률은 높
아진다. AIG의 해외산업 구성비율은 사업 주도가 90이다. 이것은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10
퍼센트의 프리미엄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전반적인 이익을 가늠하는 투
자 수입에 의존하면서 평균을 높이는 데 만족한다. AIG의 이러한 검소한 경영 덕분에 한국
에서 청동 훈장을 수여 받기도 하였다.
AIG와 행크 그린버그는 기업과 CEO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둘은 모두 개혁적이고, 두려움을 모르며, 극도로 개인주의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
다.
보통 CEO는 자신의 이미지에 맞추어 기업을 세운다. 그래서 기업과 그 리더는 성격이 비
슷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AIG는 예외였다. AIG는 기업과 리더가 각각 따로 창출되었다. 그
결과는 보험과 금융 관련 서비스 분야에서 가장 수익률 높고 존경받는 기업의 탄생으로 이
어졌다.
AIG는 1919년 상하이에서 처음으로 탄생하였는데, 그린버그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
명한다.
"C.V.스타는 캘리포니아 주 포트 브래그 출신의 미국인이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후 할
일을 모색하던 중에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본으로 진출한 다음, 동양의 진
주라 할 수 있는 상하이로 진출했습니다. 이곳에서 지역탐사 등 약간의 조사를 마친 후 작
은 보험회사를 개업했고, 기존의 보험회사와 손잡아 나갔습니다."
"스타의 이러한 결정은 근본적인 효과를 발휘했는데, AIG가 국내 기업이라기보다는 처음
부터 국제적 기업으로 시작했기 때문이죠."
"스타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글로브와 루트거스 같은 기업에 해외 총지사권(독점판매권)을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에서 미국에 가는데 두 달 정도 걸리던 시대였습
니다. 그래서 아시아라는 위험부담을 안고 미국 기업의 총지사를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세일즈 정신이 필요했습니다. 아마도 1년에서 1년 반 정도는 무엇을 보고하
는지조차 몰랐을 것입니다. 그것은 기업을 파산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죠."
스타는 대단한 세일즈맨이었다는 사실 외에도 또 다른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는 본사로부
터 거의 아무런 원조도 받지 못했지만, 넓디넓은 세상에 진출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고 있
었다. 그린버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결국 그는 총지사를 AIU에 포함시켰습니다. AIU, 즉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보험사는 원
래 글로브와 루트거스, 그리고 많은 미국 기업들의 해외영업을 대표하는 총지사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AIU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AIU는 그 당시 전 세계를 e대상으로 활동하던, 보다 생각이 트인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
이 분명했습니다. 당시에는 믿을 만한 교통수단이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1950년대와 60년대
에는 제대로 된 교통수단이 없었고, 70년대에 이르러서도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항공교통이 그나마 편리해졌지만, 교통수단은 여전히 불투명했지요,. 따라
서 우리는 회사 주변에 독립적인 교통수단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 덕택에 오늘날 우리 기
업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린버그 자신이 바로 AIG의 탄생과 동일한 유형에 해당되는 인물이다.
그는 뉴욕의 농장에서 자랐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립을 해야 했습니다. 열세 살 때는 새
벽 4시에 일어나서 족제비를 잡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숲 속을 걸어다니기도 했지요."
그린버그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군대에 복무하였다. 그 후 학위를 취득한 다음 할 일을
찾다가 결국 AIG를 창설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는 아메리칸 홈이라는 유일한 회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는 전혀 돈
을 벌어들이지 못했어요. 자신의 기업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당신의 회사를
다른 기업에 이해시킬 수 있겠습니까?"
결국 그린버그는 아메리칸 홈을 책임지고 완전히 변화시켰다. 그 변화는 바로 인습타파주
의자를 고용함으로써 가능했다.
"아메리칸 홈은 생기가 없고 전혀 창조적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는 창조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승리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죠. 그래서 과거와의 인연을 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
람들을 중심으로 기업을 일으켜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득은 선이다.
그린버그는 체질을 바꾸는 방법으로, 아메리칸 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쳐나갔다. 그리
고 '자신이 판 보험을 이익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보험회사들이 보험업에서 이익을 얻는 경우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경영에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사고방식으로는 자신이 판 보험을 해약하고,
프리미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모든 간부들은 보험계약 결과로만 평가됩니다. 투자분야가 완
전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투자로부터 신용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프리미엄을 창
출하고, 프리미엄을 거둬들이고, 그들의 위치를 가장 효율적으로 경영함으로써 신용을 획득
합니다. 우리는 리더를 세우지 직원들을 세우지 않습니다."
다른 회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이것말고 다른 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다고 그린버그는 말한다.
"우리의 핵심 사업은 보험업입니다. 보험업이 주축 사업이지요. 주축 사업에서 실패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어떤 사업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핵심 사업요소는 투자가 아니며,
보험업의 위험부담입니다. 따라서 위험부담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이 사업에서 이익을 얻
을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린버그가 원하는 인재의 모습이다.
"경영 간부를 일본이나 동유럽 속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고용할 것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공장 돌아가는 것과는 다른 인물을 원할 뿐이지요. 한마디로 말할 수 없지만
'하얀 지빠귀'라고 부르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신념을 가진 사람, 변화를 이끌어내
고
계속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게 전부지요."
누구도 이 조건에 딱 들어맞는 이는 없다. 마찬가지로 누구도 AIG 같은 근로환경에서 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린버그도 AIG의 근로환경에 잘못된 점은 없다고 본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응당 치러야하는 대가가 있습니다. 대가말고 관심을 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지요. 자연에 대해 생각하면서 20일 동안 숲 속만 거닐 수는 없죠. 멋진 일이기는 하
지만, 앞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것이 대단하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우선
시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필요한 조건이냐고요? 그렇습니다. 전적으로 몰두해야 하는 일
이냐고요? 물론입니다. 일 속에 자기 정화의 기제가 있느냐고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는 특정 환경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을 영입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도전적이고, 자극
적인 환경, 그러한 기업을 원합니다."
CEO를 겸하는 그린버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CEO는 원대한 뜻을 품고 있으나 상아탑에 갇혀 사는 사람이어서는 안됩니다. 나가서 직
접 경영해야 한다는 거지요. 보험사업은 누구나 같은 출발 선상에서 시작해서 지점과 자본
을 얻게 되는데, 바로 이 시점부터 서로의 동질성은 끝나고 차별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차
별성이 있는 일을 하십시오."
제한된 자본으로 많은 돈을 벌고 싶다면? 그린버그는 당연히 성공과 돈을 강조한다.
"국제적인 기업을 만드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매일 다른 문
제를 다루며, 다른 문화를 접하십시오. 만일 보험에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그건 도전입니다.
각 시스템이 여러모로 다릅니다. 보험업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업을 미네소타에서 하든 캔사스에서 하든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 건 아닙니다. 국제
적인 기업은 도전 그 이상을 흥미로운 일입니다. 즐기십시오. 만일 당신이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앤디 그로브
인텔 "상사는 훈련의 책임이 있다"
(포브스)의 전임 편집자 제임스 W.마이클즈는 앤드류 S.그로브를 일컬어 역사적으로 편
집증을 존경받을 만한 것으로 만든 사람으로 평가될 거라고 하였다. 사실 그로브의 성공 덕
택에 편집증은 더 이상 정신병이 아니며, 마이클즈는 심지어 "편집증은 생존 도구"라고까지
정의했다.
오늘날 경제 기사의 아버지로 널리 인정받는 마이클즈는, 그로브가 쓴 (편집증만이 살아
남는다)를 앨프레드 슬로언의 (제너럴 모터스와 함께 보낸 나의 인생) 이후 가장 뛰어난 비
즈니스 책으로 꼽는다. 결국 마이클즈는 저널리스트일 뿐이고, 인텔은 20세기 후반의 가장
위대한 성공스토리 중의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타임)이 1997년 그로브를 '올해의 인물'
로
선정했듯이 우리는 그를 미국 전역에 가장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로브는 바로 그런 인물이다. 인텔의 반도체는 미국인의 전반을 변화시켰다.
1997년 5월 사장직을 맡기 전까지 그로브는 30년 동안 기업의 모든 주요 부서를 경영했
고, 이후 10년 동안 인텔의 회장이자 CEO로 일했다. 그는1968년 인텔이 연간 수입 2,790달
러의 기업으로 출발할 때부터 함께 했다. 오늘날 인텔은 미국경제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굳
힌 기업 중의 하나이며, 그로브가 그 성공의 상당 부분에 기여했음을 인정한다.
스무 살에 헝가리에서 약간의 돈만 가지고, 영어도 잘 못하는 상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치고는 아주 성공적인 결과를 이룬 것이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오직 편집증만이 살아남는다'는 모토가 생겨난 이유를 알 수 있
다.
그는 안드라스 그로프에서 태어났고, 1956년 헝가리 봉기가 일어나자 뉴욕행 수송선을 타고
미국으로 왔다.
도착 즉시 그는 미국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숙부와 함께 수만 명의 이민자들이 하던 대로
뉴욕 시립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후 서부로 가서 버클리 대학
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로브는 인텔의 공동 창업자로서 초창기에는 직원이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
다 경쟁에 대한 두려움 혹은 그가 '전략적 변곡점'이라 일컫는, 즉 사업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때 느끼게 되는 두려움의 지배를 받아왔다.
여기에서 그로브의 경계심에 대한 단편적인 예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리더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분야에서는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은 곧 직원에 대한
훈련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인텔 내에는 '늘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금언이 가득하다. 인텔은 미국 반도체 시장의 마
이크로프로세서 부문의 85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다.
그로브가 쓴 첫 번째 저술인 (고산출 경영)에는 한 저녁식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직원의 훈련이 왜 중요한지 쉽게 설명해준다.
전화예약을 받는 여직원은 당황하며 자신이 신입사원이라 요령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어쨌든 우리는 저녁식사를 예약했다. 그런데 레스토랑에 도착해서야 그곳은 주류 면허가 정
지되어 고객들이 각자 와인을 준비해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당자는 손을 비비며 물었다.
"전화 예약하실 때 얘기를 듣지 못하셨나요?"
우리는 와인 없이 저녁식사를 해야했다.
테이블에 손님이 앉을 때마다 지배인은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확실치는 않
지만, 전화예약을 받는 여직원에게 예약손님에게 그러한 상황을 알려주라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지배인은 계속 얼빠진 변명을 하고 돌아다녀야 했고, 손님
들은 아무도 와인을 마시지 못했다. 이는 직원을 제대로 훈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이 같은 상황은 자주 발생한다.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직원은 아
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고 해도 비능률적이다. 일을 처리하는 최선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
이다. 훈련이 부족한 직원은 곧장 고비용으로 연결된다. 또한 그로브가 저녁식사를 하러 갔
던 날처럼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더 심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다음 예
를 보자.
인텔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실리콘 제조공장에서 '이온 임플랜터'라고 부르는 정교한
생
산기계의 일부 부품에 약간 이상이 발생했다. 기계의 조작자는 그 레스토랑의 직원처럼 신
입사원이었는데, 기계작동에 필요한 기본 기술은 익혔지만 이상 신호를 감지하는 법을 배우
지 못했다. 이상신호가 울렸는데도 그는 기계를 계속 작동시켰다. 그래서 하루치 분량의 거
의 공정을 마친 실리콘 웨이퍼들이 이상 상태로 기계 안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상 상태를
알았을 때는 이미 백만 달러 어치의 원료가 기계를 통과한 후였고, 모두 폐기될 수밖에 없
었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내는 데는 2주 이상이 걸렸다. 따라서 고객에게 배달 날짜를 지
키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로까지 나아갔다.
훈련 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은 아주 사소한 불편에서 시작되지만 엄청난 재앙까지
몰고 온다. 그러나 훈련의 중요성을 아는 책임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경험이 풍부한 리더들
도 보통 부하 직원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서' 혹은 '교육은 전문가가 해
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로브는 이것은 잘못된 방법이라고 말한다. 훈련이야말로 바로 리더의 업무라고 강조한
다. 이 같은 그로브의 주장은 알고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로브는 기본적으로 리더가 해야 할 일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리더가 '더도 덜도 아
닌
기업의 산출 그 자체'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리더의 생산성은 기업의 산출에 의해서 가
늠
된다는 것이다.
리더는 이것을 바탕으로 직원들이 기업의 산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 세 가지 기본 방침을
만들 수 있다.
나머지 다른 조건이 같으면 직원들은 더 열심히 일한다.
리더는 직원들이 더 잘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리더는 직원들이 더 똑똑하게 일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도록 개개인의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서 직원들을 격려하는 것이 리더의 임무라면 왜 훈련시키지
않는가! 그로브는 놀랄 따름이다. 그가 말하듯이 훈련은 '리더가 수행할 수 있는 최고의 경
쟁력 강화 활동 중 하나'인 것이다.
그로브는 엔지니어였다. 그래서 관리자들에게 자기 부서의 구성원 10명에게 앞의 세 가지
내용을 강의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방침을 양적으로 넓힐 수 있었다. 관리자 한 사람이 한
시간 강의를 위해 세 시간을 준비하므로 총 12시간의 투자가 이루어지는 셈이었다.
강의로 관리자 아래 10명당 각각 1퍼센트씩 생산성이 향상된다면 전체적으로는 엄청난 결
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10명의 사람들이 1년에 2천 시간을 일한다. 따라서 그들의 총 노동시
간은 2만 시간이 된다. 1퍼센트 증가는 그들의 총생산이 200시간만큼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러므로 리더가12시간의 투자 효과를 거두는 것은 곧 1,667퍼센트의 이득이 되는 것
이다.
이러한 훈련의 효과를 깨닫는다면, 훈련이 리더의 임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
다.
이것은 관리자 스스로가 자기 일을 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미 올바로 시행되는 일에만 훈련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은 그로브도 인정한다.
잘못 시행되는 문제를 고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로브가 말하는 훈련은 '체계
적
이고 계획적인 것이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봉책이 아니다. 다시 말해 훈련은 하
나의 과정이지 행사가 아니다.'
책임자는 이 같은 훈련의 중요성을 직접 실행함으로써 입증해야 한다.
인텔은 그로브가 말한 대로 실행한다. 예를 들어 1997년에 인텔은 직원훈련에 무려 5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들였다. 인텔 대학교에는 엔지니어, 기술자, 관리자, 리더를 위한 3천 개
이상의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여기에는 직원들이 인텔의 사업방식에 동화할 수 있도록 넓
고 새로운 것은 지향하는 필수 프로그램도 있다. 각각의 집단들은 특정 작업기술을 위한 훈
련계획을 개발한다. 그리고 모든 매니저들이 1년에 최소한 네 과목을 강의하도록 되어있다.
그로브도 강의를 할까? 물론이다. (고산출 경영)에는 다음과 같이 대목이 있다.
나는 준비와 과정에 대한 평가와 생산적인 회의진행, 우리의 역사, 목적, 조직, 경영방침
등 인텔 전반의 소개를 3시간에 걸쳐 강의한다. 수년간 우리의 전문직 직원들에게 강의해왔
으며, 이밖에 다른 영역의 강의를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기술 분야를 가르치기
에는 나는 너무 구닥다리가 되어버렸다.)
흥미롭게도 그로브와 인텔은 훈련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신입 직원들에게 단계별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아이디어, 원칙,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로브는 각자의 업무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보수
그로브가 제시한 첫 번째 훈련 비결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직원들이 훈련받아야할 모든 것을 목록화 하라. 목록에는 전화예약 손님에게 와인을 가
져
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일에서부터 기업과 부서의 가치 기준 등의 가장 추상적인
일까지 모든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로브는 목록을 혼자 작성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필요로 하는지 직접 물어보아야 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던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에 당신
은 무척 놀라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로브는 다른 관리자들이 그다지 주의하지 않는 성과측정 같은 것은 이용해
직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간파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수행평가는 업무와 모니터링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어째서?
성과측정은 직원들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좋고 유일한 방법이기 때
문이다. 능률이 떨어진 직원에게 구체적인 방안을 일일이 제공할 수는 없겠지만, 기업의 총
수는 여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담당자는 바로 기업의 총수이고, 이들이 2퍼센트
향상된다면 최일선 직원에게서는 2퍼센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브는 이 모든 자원들을 이용하면, 어떤 분야를 개선시킬 것인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고 말한다. 일단 목록을 작성하면 그로브는 직접적이고 간단한 조언을 남겨준다.
1)개선이 필요한 분야의 우선 순위를 정하라.
2)생산성에 가장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아이템부터 시작하라.
3)실행에 옮기라.
찰스 하임볼드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 "가장 중요한 CEO의 업무 중 하나는 사자들끼리 서로 잡아먹지
않도록 하는 것"
찰스 A. 하임볼드의 사회적 경력은 모두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의 경영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헬스케어 기업에서 하임볼드의 첫 번째 직책은 약물, 헤에케어 상품(클레어롤), 소비자 의
약품(엑세드린), 의료기기 등을 판매하는 집행 위원회 서기였다. 이후에는 뉴욕의 법률 기업
인 미들뱅크, 트위드, 하들리&맥클로이에서 대리인으로 일했다. 헬스케어 기업에서 그는 풍
부한 경험을 가진 상급 책임자들이 심의하는 걸 지켜보았다. 어떤 사안이 결정되고 그렇지
못하는지 직접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내린 결정과 자신이 그 입장에서 내렸을 법한 결
정을 비교해보기도 했다.
하임볼드에게는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그 수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간의 차이를 직접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연간 예산안과 회의 계획을 직접 보고 기업내의 업무를 배
울 수 있었다. 하임볼드가 CEO직을 맡게 되었을 때는, 이미 각 부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끌고자 하는 부서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
었다.
찰스 하임볼드가 CEO에 취임했을 당시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과학적 기반이 탄탄한 제약회사로서, 우리는 보다 강력하게 소비자를 독점하려고 노력했
습니다. 스큅과의 합병은 최근에 이룬 가장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합병은 내가 CEO직을 맡기 전에 이루어졌는데, 딕
겔브(하임볼드의 전임자)가 성사시킨 그 합병은 정말이지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하임볼드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싶었다. 그러나 1994년 그는 세 가지 장
애물에 부딪치게 되었다.
"첫 번째로, 우리는 헬스케어를 개혁했습니다. 그 개혁 때문에 이 업계에서 기업의 시장가
치가 천억 달러나 떨어지게 되었지요. 따라서 이 개혁은 연구 개발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습
니다. 혁신적인 신약품 개발에서 가격의 통제는 연구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였기 때문입니
다. 정부관료들의 변덕이 가격을 결정하는데, 어떤 기업이 신약품 개발에 지원할 투자비용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 기업의 중요한 특허 제품이 만료 시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었습
니다. 전 세계 매출액의 14-15퍼센트를 차지하는 최대 단일 상품인 카포텐(혈압 관련 약품)
의 특허권이 만료될 시점에 있었던 거지요. 카포텐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상품이었습니다.
특허 만료 1년 전에 65억 달러에 달하던 카포텐의 국제 판매량이 만료된 후에는 12억 5천
달러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손실을 채우기 위해 적극적인 계획을 고안해야만
했지요."
"세 번째 장애물은 바로 심장부 이식 상황이었습니다. 그 업계에서 판매량의 25퍼센트, 즉
2천만 달러 정도의 판매량을 올리던 우리 기업에 이것은 결국 30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 부
담을 안겨주었답니다."
"내가 CEO를 맡았을 당시, 이것들은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였습니다. 따라서 부정
적인 이러한 요소들로부터 확실하고 야심찬 목표, 또는 우리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취임한 지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열린 첫 번째 경영회의에서 나는 전원 모두를 소집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2000년 말까지 판매량과 주가를 두 배로 올리는 것입
니
다.' 이것은 지난 2,3년 간 이룬 것보다 성장률이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했지요."
"이 목표를 신뢰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저한 성
장을 이룬 기업을 인정받기 위해 수입 증가에 초점을 맞추는 이른바 '더블-더블' 목표를 달
성할 것이며, 진행중인 주요 생산성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에 투자할 거라고 말이지요,"
"당시에는 회의주의가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더불-더블 목표를 고수하며 밀고 나
갔습니다. 그 결과 36종의 상품과 연간 1억 달러 이상을 판매하는 생산라인을 보유하게 되
었지요. 그리고 5천만 달러 이상 판매고를 올리는 20개 생산라인과, 매해 적어도 5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9개의 생산라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성장을 일궈낸 것입니다. 마치 완
벽한 방수장비를 갖춘 항공 모함과 같지요. 이제 손해볼 일이 생긴다 해도 흔들리지 않고
갈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경쟁자를 물리치고 소비자를 만족시켜 판촉운동에서 이길 수 있습
니다." 하임볼드는 이 같은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성장목표 달성을 위한 여러 전략을 수행
했다.
"우리는 몇 개의 중소기업을 인수했습니다. 그 중에는 아르헨티나의 소규모 제약회사, 페
루의 제약회사, 프랑스의 꽤 큰 기업도 있었지요. 그 중에서 뛰어난 매니저 집단을 선발해서
봉급을 올려주고, 외부로부터 매니저를 추가로 채용했습니다. 그리고는 기준의 상품을 가지
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했으며, 신상품의 특허를 따내어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의 배급 체
계에 분배하였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경영방법이 아니라 기본적인 사업방식이었습니다. 기업
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내구성을 길러주었던 거지요."
또한 직원들은 지나간 잘못이나 문제를 따지기보다는 잠재력과 적극적인 시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임볼드는 끊임없이 직원들과 대화하고. 훈련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새
로운 기회를 제공하며, 특히 과거보다 훨씬 나아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그들
을 격려했다. 그리고 판매와 수익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늘
자신했다.
"기대하고 확신하게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래,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거
야.' 바로 이것이 내가 바라는 마음가짐입니다. 나는 오직 우리 직원들이 이것을 믿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하임볼드는 그러한 신념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가지를 실천했다. 이를 통해 브리스톨-마이
어스 스큅의 성공은 직원들과 공유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도든 직원들이 스톡
옵션을 가졌다는 것이 그중 하나의 증거이다. 다른 하나는 하임볼드가 먼저 모범을 보임으
로써 기업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직원들은 내가 판매능력을 갖추고 소비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퀘벡에 엄청
난 눈보라가 치면, 내가 즉시 퀘벡에 전화를 걸어 우리 직원들이 무사한지, 비상용품은 구비
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그들은 내가 직원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면서 성공을 일궈나가는 모습을 곁에서 볼 수 있습니다."
평가받는 순간 비로소 임무가 끝난다
미래의 희망은 단 하나, 자신이 계획한 방법이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그것은 하임
볼드가 끊임없이 탐구하며, 기업이 목표를 향해 얼마나 순조로이 나아가고 있는가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많이 요구하는 편입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 해달라고 부탁한 후에는 그것이 완료
되었는지 빨리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 결과를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
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계속 점검 받고 그 결과를 평가받는다면 사람들은 좀더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늘 평
가자가 그 수행과정을 지켜본다는 사실을 기억하겠지요."
늘 그렇듯이 하임볼드가 새로운 초점으로 점검할 때는 항시 경쟁심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하임볼드가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에 내세운 장기 계획도 다른 어떤 대기업보
다 빠른 주식성장을 하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CEO의 업무 중 하나는 사자들끼리 서로 잡아먹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자연스런 경쟁력이 내부가
아닌 외부를 향하도록 만드는 일이지요.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는 적정수
의 적합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한곳에 너무 많은 직원들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먹이를 너무 많은 사자가 노리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책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마법 같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바
로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책임의식을 안고 일하도록 만드십시오. 또한 성공의
결과를 모두 함께 공유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키십시오. 그런 다음에는 추이를 지켜보기
만 하면 됩니다."
허브 에센스 헤어케어 클레어롤이 바로 여기에 알맞은 사례이다. 이 제품은 1970년대 가
장 인기 있는 샴푸였지만 1980년대에 판매량이 급감하더니 1990년대까지 계속 감소하였다.
그러나 이 상품은 경영팀에서 개발한 새로운 포장과 판매 계획으로 강화되어, 1995년 'X세
대'와 '30대'에게 호소하는 판매캠페인을 다시 시작하였다. 현재 이 제품의 판매량은 연간
5억 달러가 넘는다. 하임볼드는 허브에센스가 10억 달러 짜리 상품이 되는 일도 그다지 어
렵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노력은 기업의 핵심 약품에까지 확대되었다.
하임볼드가 경영할 때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의 연구개발비는 증가하였는데, 1998년에만
무려 16퍼센트가 증가하였다. 또한 특허를 따기 위한 노력에도 박차를 가했는데, 글루코파지
가 바로 그 경우이다.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은 1995년 특허 받은 당뇨병 치료제를 미국
시장에 내놓았다. 하임볼드는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기업의 판매력이
강하게 작용하여 불과 6개월만에 9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러한 성공 후에도 의사교육
프로그램을 강화시키고 마케팅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 결과, 1996년에는 판매량을 10배 이상
증가시켰다. 1998년에 전체 판매액은 무려 8억 6천만 달러에 이르렀고, 2000년에는 글루코파
지 판매액이 10억 달러에 다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임볼드는 힘든 계획을 세우고 각 분야 우선순위를 매겨 팀을 주도함으로써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에 새로운 차원의 성장을 가져왔다.
마사 잉그람
잉그람 인더스트리스 "매사에 균형을 유지하라"
(포브스)는 마사 잉그람을 묘사할 때 내슈빌의 '큰 부인'이라고 부른다. 이는 그녀가 공
연예술과 도시의 사회적 취향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설득력이 있다. 잉그람은 내슈빌 발레단, 테네시 공연예술센터, 테네시 페파토리 극장의 창
설을 도왔고, 내슈빌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포브스)는 표면에 나서지 않는 (처음 잉그람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그녀는 이
렇게 말했다. "목록에 오른 사람들 중에서 가장 특징 없는 인물일걸요.")이 매력적인 여성을
보다 심층적으로 취재하여 세계최고의 부호 중의 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포브스)는 '그녀의
재산이 3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하였고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사업가'라고 했다. (아마
도 그것은 (포천)이 잉그람을 전형적인 '철의 목련'이라고 묘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인 브론슨이 1995년에 사망하자, 잉그람은 제국처럼 뻗어나간 사업을 물려받아 이를
셋으로 나누어 아들들에게 나눠주었다. 37세의 데이비드는 비디오 도매업인 잉그람 엔터테
인먼트를 운영하고, 38세의 존은 세계 최대 도서보급사업(60만 주 보유)을 경영하고 있다.
39세의 오린은 국제 수로운송업을 맡았다. 셋으로 나뉜 이 사업들도 인상적이지만 가장 흥
미 있는 최대 사업은 잉그람 마이크로이다. 잉그람 마이크로는 미국에서 판매는 컴퓨터의
20퍼센트를 확보하고 있는데 1996년에 이 기업은 민간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이 기
업은 잉그람가의 소유이며 잉그람 패밀리 트러스트를 통해 65퍼센트가 관리되고 있다.
마사 잉그람 자신은 이 네 사업체의 핵심이다. 잉그람의 모교 바자르 대학교의 총장인 프
램시스 퍼거슨이 지적하듯이 그녀는 늘 핵심적인 존재였다.
"마사는 특별한 여성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는 그녀의 리더십 때문에 오히려 잉
그람 인더스트리스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거지요. 우리는 잉그람이 이와 같이 주장할 수 있
다는 사실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녀가 얻게 된 명성을 부끄러움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마사는 남편의 옆방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기업의 법인 기부를 담당
했다 (잉그람은 전통적으로 모든 세금공제액의 2퍼센트를 자선사업에 기부해왔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에만 주목하고, 그녀가 리더와 직원 사이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서 일해왔다는
사실은 간과해버린다. 그녀는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무료 장거리 전화를 설치했는데, 그 전
화는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서는 제기하기 힘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직원들만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받은 전화는 투자로 이어지기도 했고, 역으로 징계나 면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그녀의 옴부즈맨 역할은 미처 기대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직원들과의 이러한 접
촉으로 그녀는 기업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남편의 죽음 이후에 기업을 넘겨받을 준비를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 것이다.
잉그람의 경영능력이 널이 알려진 것은 최근이다. 그러나 그녀의 능력은 테네시 센터에
서 근무할 때부터 이미 부각되었다. 잉그람은 남편과 일하면서 주립 대학의 일부를 경영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가족 사업에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잉그람은 이렇게 물었다.
"보수가 있나요?"
"물론입니다."
주정부 관리는 즉각 대답했다. 여섯 자릿수의 연봉(즉 10만 불이 넘는 연봉)을 제안 받은
잉그람은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잉그람의 남편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내가 그에 상응하는 대사를 지불하기
를 바라는 거요?"
"그래요."
브론슨은 잉그람에게 기꺼이 보수를 지급했다. 지금의 기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브론슨
의 결정은 매우 바람직했다.
컨설턴트들은 노자에서부터, 율리시스 S.그랜트, 시장에 이르는 모두에게 군대식 전략을
제공하는 것을 주된 업으로 한다. 작가들은 위니-더-푸 캐릭터에 담긴 지혜에 대한 경영 책
을 쓴다. 학계에서는 스타 트렉이나 앤디 그리피스 쇼 같은 텔레비전 쇼를 실전교육의 자료
로 삼는다.
그 같은 작업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우리와 동떨어진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지혜의 원천을 제안하고자 한다. 제목도 이미 정해놓았다. (기업
경영에 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경영에 관한 책을 쓰고자 한다면 마사 잉그람부터 알아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녀의
교훈을 받아들이면, 당신이 쓰는 책이나 당신이 경영하는 사업이 성공을 거두게 됭 테니 말
이다.
"처음에는 사업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1979년에 뛰어들게 되었지요."
잉그람은 잉그람 인더스트리스와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는 테네시 공연예술센터의 8개년 개발 및 조정 프로젝트를 막 완료한 상태였지요.
꿈을 현실로 이룬 것입니다. 주 의회를 통해 3천6백만 달러의 공채 발행을 따냈고, 550만 달
러의 개인 기부금도 얻어냈습니다. 게다가 전문적인 리더까지 고용하자 남편은 이렇게 묻더
군요, '이제는 뭐 할 거요?' 나는 '해변 가에 다녀올게요.' 하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건 오래 걸리지 않겠군. 나랑 일해 보는 게 어떻겠
소? 당신은 에너지가 넘치고 사업이 당신 적성에 맞다는 것도 입증되었으니, 내게 무슨 일
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여기서 일해보는 게 어떨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와서 한번
해봐요.'"
"나는 진지하게 검토해보기로 하고 일단 유보했어요. 네 명의 아이들 때문이었지요. 24시
간을 함께 하면서 직장과 가성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생각하였습니다. 그
리고는 일주일에 하루씩만 일해보기로 결정했는데, 일잔 시작하자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
이 계속 눈에 띄어 도저히 중간에 멈출 수가 없더군요."
잉그람은 도서사업을 확장시켰는데, 컴퓨터 서적은 첫 번째 큰 시도였다.
"컴퓨터 서적을 다루게 되면서 소프트웨어도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소매 고객들이 서점에서도 함께 다룰 수 있는 품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동시에 우리는 비디오 배급 사업에 뛰어들어 주 고객인 서적 소매업자들의 생산라인을
강화시켰습니다. 그때만 해도 독자적인 컴퓨터와 비디오 점포들이 있었기 때문에 소프트웨
어에 하드웨어를 더하게 된 거지요. 모든 사업이 성장을 계속했습니다."
잉그람은 남편 곁에서 일을 계속했다. 그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것은 1994년 12월
이었다. 남편이 죽은 지 6개월 후 잉그람은 기업을 인수했다.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브론슨은 아프기 전에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회장을 맡아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옆에 두라고 말했어요. 나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운 좋게도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이미 16년째 근무
하고 있었고, 또 사업하는 게 편했어요. 그렇지만 큰 문제들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큰 문제들이란 단기적으로 자녀들이 사업을 물려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경영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장기적으로는 가족의 소유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을 의미하는 것이
었다.
두 가지 다 균형 잡힌 실천이 필요했다. 잉그람은 이에 대해 이미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가족 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항상
내 역할이었습니다. 내가 기업에 몸담기 전에도 마찬가지였고요.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역할
이라고 생각해요. 틀림없는 내 역할이지요. 우리는 5년 동안 네 명의 자녀들을 두었고 항상
안정을 추구해왔습니다. 내가 평화주의자처럼 보이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악마처럼 싸울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건 최후 수단일 뿐이고, so 진정한 역할은 균형을 유지하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직업을 위한 가장 좋은 훈련은 어머니가 되는 거라고 자주 말해왔습니다. 두 가지 일 모
두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최선을 다하게 해주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외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또한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나는 회장이나 CEO의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
들들에게 되도록 빨리 기업을 넘겨줘야 한다는 또 다른 문제를 안게 되었지요. 그 애들은
점점 더 CEO다운 역할을 해내고 있답니다."
"기업 경영과 엄마 역할을 동시에 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직후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이제 사업체를 갖게 된 거야.
난 한발 물러나 있을 거란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어머니. 은행에서 돈을 빌
리는 것처럼 쉽게 30년의 연륜을 빌려올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애들은 이렇게 얘기했어요. '어머니께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가 자라서 흰머리가 생길 때까지, 적어도 마흔 살이 될 때까지는
기다려주셔야 한다구요.'"
유머감각
자녀들의 동의 아래 잉그람은 수년간 경영을 하게 되었으며, 이윽고 두각을 드러내기 시
작하였다.
"나는 유머감각이 있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일을 좋아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면 하
거든요. 브론슨은 직원들이 좋은 근무조건에서 높은 봉급을 받기를 바랐지요. 그때도 직원들
이 물론 즐거워했지만, 그때보다도 지금이 복도에서 더 크게 말하고 더 많이 웃는 것 같아
요."
"아들이나 사위 사무실에 들어갈 때(그 애들 사무실은 내 사무실과 같은 층에 있습니다)
깔깔거리고 웃는 소리가 종종 들려옵니다. 아마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으실 거예요. 전
에 잉그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진지했거든요 브론슨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지요. 나는 내 아이들이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가지기를 바라면서, 이러한 마음이 기업 전체로 퍼져 나가길 바란답니다. 유머감각은 참 좋
은 거예요. 사람들이 보다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거든요 즐거운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
으니까요."
여성이 더 잘 보살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까?
잉그람은 확실히 그렇지는 않았다. 잉그람은 수십 억 달러의 조직을 경영하는 극소수의
여성 중 한 명으로 자주 언급되지만, 정작 그녀는 그것이 많은 생각이 필요한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주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특히 학교에서요. 여학교 바자르와 밴더빌드의 이사회 임원
이거든요. 많은 여성들이 강조하는 점을 나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결코 내가 못난
거래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항상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느껴왔지요."
"나는 장녀인데, 아버지는 결코 '오, 안됐지만 넌 여자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
버지는 '봐라, 우리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사업에서 성공했는데, 많은 돈을 벌었어. 내게 무
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지켜봐라. 네 어머니는 사업 경영에 아무 관심이 없지만 넌 책임이
있단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바자르에 입학하려고 할 때도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대
차
대조표나 손익계산서를 보게 하셨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게 무엇이었는지 잘 모른답니다."
"여자라서 받은 불이익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것 자체가 문제라고 하셨는데,
그 때문인 것 같아요. 내가 바자르를 졸업했을 때 아버지는 나를 후계자로 점찍어 두셨지요.
그런데 나는 브론슨과 결혼해서 떠나버렸어요. 아버지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셨지만 다른 사
람을 고용해야만 했어요."
잉그람은 스스로를 역할 모델이라고 여기는 가?
"호기심에서 그런 질문을 한 것 같군요. 사람들은 내가 언제 회장이나 CEO가 되고 싶었
는지 많이들 궁금해해요. 그렇지만 나는 결코 회장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고 늘 대답합니
다. 나는 단지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 세대의 사고방식이잖아
요. 활동적인 자원봉사자나 지역 공동체의 리더는 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가 바로 그런 분
이 셨거든요. 시어머니 또한 그렇고요. 나는 정말이지 사업적 야심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
다."
"좀 남다른 사람이 되고 실었지요. 사업의 세계에서 그렇게 되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그렇지만 '많이 가진 사람에게는 많은 것이 기대된다'는 프로테스탄트적인 도전정
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의 마지막날의 세상은 내가 지나왔기에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
어야 하니까요."
"확실히 나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즈니스 리더로서의 야망은 아니었습니다. 누구에
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면, 의무 이상으로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 바로 사
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나는 이 사업이라는 세계를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즐기
고 있습니다. 이 직위를 바란 적은 없지만 다른 기업에 있었더라도 CEO 자리를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로 이 일을 좋아하니까요."
"차별화 되고 싶습니다. 이미 차별화 되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차별화를 위해 지금
도 열심히 일하고 있답니다."
데이비드 존슨
캠벨 수프 "승리"
66세의 데이비드 존슨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이다. 67억 달러의 판매고를 올
리는 캠벨 수프의 회장이 사무실에 출근하면 일과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선 손님에게 대접
할 음료가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사무실의 작은 회의 테이블에 앉아 지난 10년 간 경쟁
사들로부터 획득한 시장 점유율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한 보고서를 받는다. 다음에는 점심
식사 전에 변동이 없는지 재빨리 확인한다.
심지어 그는 질문을 받을 때에도 앞뒤로 몸을 흔들면서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적어
놓은 노트를 찾아 뒤적거린다.
존슨과 캠벨 수프의 성공은 바로 이러한 에너지 덕택이다. 1990년 CEO가 된 이후 존슨은
끊임없이 또 하나의 목적을 위해 질주하였다. 그것은 바로 다른 소비자가 상품기업을 따라
잡아 누르는 것이다. (캠벨 수프의 순수익에 관한 분기별 증가 비교상황은 캄덴, 뉴저지, 필
라델피아 밖에 위치한 다른 식품 기업 본부를 통해 퍼져나갔다.)
존슨은 캠벨 수프가 경쟁에서 확실하게 승리하기 위하여 비용을 삭감하였다. 20개 이상은
공장을 폐쇄했고, 기업내의 경영 단계를 줄였다. 수백 명의 관리자들을 해고하고, 5억 달러
상당의 부실사업(대부분이 수프)을 정리하였다. 여기에서 절감된 비용을 전국적 규모의 살사
소스 제조업체인 산안토니오의 페이스 푸드 관련 사업과 같이 전망 좋고 수익률 높은 사업
을 사들이는 데 썼다. 존슨은 이렇게 주문을 외웠다. '20-20-20' 이것은 연간 20퍼센트 성
장, 원가의 20퍼센트 이익, 투자한 현금의 20퍼센트 소득을 의미하는 주문이었다.
이처럼 숫자에 초점을 맞춘 결과, 캠벨 수프는 존슨의 경영 아래 일대 전환을 이루었다.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대담한 선전 문구가 모든 관리자들에게 주어진 이 의욕적인 목표와
짝을 이루게 된다.
'목표를 달성하라. 그러면 존슨은 말 그대로 당신을 위해 세레나데를 연주할 밴드를 고
용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이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존슨은 1997년에 CEO직을 사임하고 활동적인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데 이 방법도 그
리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직원들이 기업의 성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리자에 대한
보상으로 대부분의 보너스와 스톡옵션이 주어진다.
또 존슨은 이렇게 말한다. "경쟁은 항상 당신을 음모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더 열심
히 일해야 합니다."
존슨이 직원을 군대 다루듯 하는 이 같은 방식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농장에서 잘 때 터득
한 것이다. 그는 이런 '주인정신'이 모든 기업에 필요하다고 믿는다.
데이비드 존슨은 시카고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하였다.
그 후 콜게이트-팰몰리브, 워너-램버트, 제너럴 푸드와 같은 기업의 전 세계 지사에서 다
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승진하게 된다. 일개 세일즈맨에서 시작하여 두 번이나 CEO직을 맡게 된 것이다.
그가 수십 억 달러의 다국적 기업을 경영하기 위한 최고의 준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
일까?
'어린 시절 내내 오스트레일리아의 농장에서 보내십시오.'
"시골농장에서 자라면, 내가 주인정신이라고 일컫는 것을 아주 어려서부터 깨닫게 될 것
입니다. 무엇을 얻는가, 얼마나 잘해내는가는 재능과 능력, 약간의 신의 도움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다 일찍 배울 수 있답니다."
존슨이 배운 것은 또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 살아 남으려면 최소
한 경쟁자보다 더 잘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시골에서 살아보면 장에 나갔을 때 가치를 압니다. 살찐 야이나 송아지의 가격, 그것이야
말로 모든 것이 바로 그 자리에서 공개되고, 그 가치를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알 게 되거든
요. 끊임없이 비교되는 가운데 우리의 가치가 매겨지고 있답니다."
1960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콜게이트와 팰몰리브의 책임자로서 처음 경영 직을 맡았을
때, 존슨은 '방심은 금물' 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당시는 모든 것이 아주 순탄한 시기였습니다. 재고가 바닥났고 더 이상 생산해낼 수
가 없어서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임원회의를 열고는 책상 위에 발
을 올리고 자축했지요. 그처럼 일이 잘 되어간다면 한 달 동안의 휴가도 얻을 수 있겠다고
농담했고, 인생이 더 없이 멋져 모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우리에
게 당한 패배에 충격을 받은 경쟁사가 하룻밤 사이 질릴 정도로 개선 된 것입니다. 그 후 6
개 월 아마도 8개월이 채 되지 않아 우릴 깜짝 놀라게 하며 신상품을 내놓았지요. 우리는
이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긴장은 풀려 있었고 지나친 확신에 둘러싸인 안일
한 모습뿐이었지요. 그 사건은 내 인생의 가장 큰 교훈 중의 하나입니다. 그 이후로 결코 경
쟁자를 과소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순간도 경쟁자가 음모를 진행중이
라고 생각하며, 절대로 팀원이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속으로 경쟁하면서 이루어집니다. 끊임없이 그 경쟁자들과 비교하고 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경쟁자는 기운이 약해져서 돈을 벌지 못하길 바라며 기뻐할 것이
고, 당신을 죽일 수 있다면 이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
자립, 경쟁자보다 더 열심히 뛰어 노력하는 것, 존슨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비즈니스 세계
를 바라보는 인물을 찾는다.
"우리가 잠든 밤에 경쟁자들은 음모를 꾸밉니다. 따라서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작업한다는 것이 아니라 작업의 질과 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렇지 않으면 금세 간파 당하니까요."
존슨은 그 같은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관리자들에게 적극적인 목표를 만들라고
강조한다. 단위별 인플레이션보다 2퍼센트만 빠르게 성장한다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존슨은 이를 서커스에 비유한다.
"직원들은 공중그네 곡예사와 같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가 3중 공중회전을 할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일하는 겁니다. 비즈니스는 고도의 공중그네 묘기입니다. 나는 이
렇게 일하는 겁니다. 비즈니스는 고도의 공중그네 묘기입니다. 나는 거기에 부담을 더하여
만일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보수도 지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존슨이 과장하고 있기
는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적어도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보상급의 20퍼센트는 고정급료로
지급된다. 나머지는 업무수행 결과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직원들에게 '강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장 떠나시오. 점점 더 힘들어질 테
니
말이오'라고 충고합니다. 그래도 이곳이 좋다고 한다면 믿기 힘들겠지요?"
"나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위험을 감수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훈련을 받으며,
우리가 산출하는 결과에 같이 죽고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이를 향
해 노력하여 성공한다면,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바로 성취감이지요."
"A학점을 받았을 때 흥분되지 않았습니까? 팀의 첫 번째로 뽑히고 상으로 학교 마크를
받았을 때 흥분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속한 팀이 승리했을 때 흥분되지 않았습니까? 바
로 우리도 이와 똑같습니다. 골인 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거지요."
"나는 항상 궁리합니다.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사업을 하고, 그 재미를 직원들과 공유하며,
최선을 다해 성취할까? 즉 최우수상을 받고 졸업하는 것같이 실질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까? 그런 생각 말입니다. 그 방법은 간단하죠. 주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낼 거야'라고 말입니다."
존슨은 주주를 확보하기 위해 리더로서 첫 강의를 했다. 이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 내일이 아니라면, 과연 내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지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전쟁터 같은 사업세계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사람들을 지
도하고 대화하고 성장시키고 가르친다는 관점에서 교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생이 알고 있듯이 동기는 성취의 핵심 요소이다. 존슨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거대한 동기유발 도구, 즉 돈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주
는 거대한 보상, 즉 보너스와 스톡옵션 모두가 기업의 성과에 근거한다고 가정한다면, 그리
고 캠벨 수프가 지난 수십 년 간 이룩한 멋진 성과들을 고려해 본다면 존슨은 많은 사람들
을 부자로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주주들도 돈을 많
이 벌기는 했지만, 이들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일하는 수백 명의 직원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
들의 삶은 보다 의미 있어졌고, 훨씬 더 살기 좋아졌으며, 그들은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게
되었지요. 돈은 그들이 빨리 은퇴하고 싶다면 은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 할
만큼 다한 이들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만큼 위험을 감수했으며 노력했으니까요. 머
리카락도 빠졌을 겁니다. 또 다른 삶을 살아갈 때가 되면 그들은 또다시 그렇게 할 수 있습
니다. 색다른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다는 사실, 멋있지 않나요?"
직원들이 기업의 성공을 공유한 다는 사실은 바람직한 일이다. 공유란 그들이 노력한 만
큼 정당하게 보상받고, 노력한 만큼 정당하게 보상받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경쟁자들을 물리
쳤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도록 일단의 전문가 집단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관중
들이 놀라움 속에서 바라보는 동안 공중그네를 타고 3중 공중회전 묘기를 해낼 수 있는 사
람들이지요."
"단원들이 정말 뛰어나다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그물을 치워버려요.' 침묵이 감도는 가
운데 관중들은 두려움 속에서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당신을 지켜볼 겁니다.
그리고 3중 공중회전 묘기를 멋지게 해내면, 그 환호와 감격은 팀원 등 관련자 모두와 공유
하는 겁니다. 해냈다는 자부심이 뒤섞인 감정이지요."
"나는 우리의 일이 삶의 일부이며 의미 있는 거라고 믿습니다. 단순히 작업을 통한 기계
적 습관이 아닌 것입니다."
66세가 되면 CEO직을 사직하고 미래의 계획에 대해 질문 받는 일을 피해갈 수 없다. '은
퇴할 것인가? 이 일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
당연히 존슨은 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답을 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꿈같은 일이었습니
다. 나는 내게 일어난 일을, 내게 이런 기회가 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사
람들이 내 눈 밑이 검게 된 것을 보고(사실 나는 아주 창백하고, 도전적인 하루 일과를 마
칠 때면 홀쭉해지고, 머리도 하얗게 샙니다)이렇게 말하겠지요. '아주 피곤해 보이는군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그렇지만 기분은 아주 끝내주는 데요.'중요한 것은 바
로
그것입니다. 나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모든 일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도전을 맞이하면
의욕이 생겨 거기에 최선을 다합니다. 나는 흥미로운 것들에 둘러싸여 있고, 일하는 것이 아
주 즐겁습니다.
"오늘날 나는 이사회의 회장으로 캠벨과 인연을 맺고 있으며, 기업을 경영한 것으로 유명
합니다. 이제는 인생의 가장 위대한 기회들을 활용할 자유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바바리아에서 열리는 바그너 오페라 축제에 가거나, 아들과 흰 파도를 가르거나, 아니면 남
극탐험을 해보렵니다."
허브 켈러허
사우스웨스트 항공 "문화는 최고의 특권이다"
허브 켈러허가 무엇으로 유명한가 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에 비유할 수 있다. 앞면은
그의 경영기술이고, 뒷면은 '나는 지구상의 어느 누구보다 즐겁다'는 태도이다.
한편으로는 (파이낸셜 월드)에 두 번씩이나(1982년과 1990년) 거론된 CEO이다. 그는 (피
플스 익스프레스)의 돈 버 같은 수많은 항공사들이 무너져갈 때, 어떻게 주요 항공사를 키
워내는지 보여주었다.
다른 한편으로 켈러허는 부활절 바니에서부터 엘비스에 이르기까지 기업 내에서 그 어떤
역할도 척척해낼 수 있는 리더이다.
켈러허를 잘 아는 사람들도 그가 얼마나 자신의 임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지 아마 모
를 것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무든 직위를 감독하거나 직접 맡아보기도 했기 때문에, 그
는 누구보다도 기업을 잘 이해하고 있다. 전형적인 모범 소년의 성향이(전형적인 모범 소년
이란 필라델피아 바깥에서 태어나 동부에서 교육받은 사람) 강조된 그의 얘기에서는, 또한
원칙을 무시하고 tll장마다 항공사를 설립하는 경향도 찾아볼 수 있다. 켈러허는 경쟁자들이
바로 옆에서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는 도시 안에 본사를 열었다. 이러한 출발은 머리를 맞대
고 벌이는 경쟁을 최대한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듯이 모든 항공사
의 시작에는 직접적인 경쟁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그 같은 지리적 위치는 사우스웨스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요인이다. 이것말고 또
다른 요인이 있다. 켈러허는 동일한 비행기, 동일한 공항 출구, 기본적으로 동일한 운임을
공유하는 사업에서 다른 항공사와 차별화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직원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것이 바로 어떤 직원들이 고용되었는지에 대해 말이 많은 이유이다. 켈러허는 배경 조사를
통해 누가 해당 직무에 적합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입력된
내용을 통해서 비관료적이고, 즐거움을 추구하며, 고객과 동료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을 한다
는 기반 위에 설립된 사우스웨스트의 문화에 그 지원자가 적합한지 알아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켈러허가 그 같은 문화에 적합한 인물임은 분명하다. 사우스웨스트의 모든 직원들이 그러
하듯 그는 기꺼이 짐을 나눠지고자 한다. 단편적인 예를 들어 보자. 추수감사절이면 사람들
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이것은 사람들이 집에서 칠면조 고기를 먹는 동안
사우스웨스트의 누군가는 일해야 함을 의미한다. 켈러허도 추수감사절에 수화물을 옮긴 적
이 있었다.
켈러허는 이렇게 말한다.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사내 문화를 확립하고 싶다며 사우스웨스트를 방
문합니다. 우리는 단지 사람들을 바람직하게 대할 뿐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그러면 사
람들은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이 훨씬 더 복잡한 대답을 원해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떤 '프로그램'인데, 우리는 이 '프로그램'이 오히려 우리의 의도를 망쳐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상징인 즐거운 작업환경 창조라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었느냐
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사람들이 일을 즐길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둥 언제 일을 더 잘하고 보다 생산적일 것 같
습니까?"
"일할 때 인간성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사람들을 고용
하기로 했고,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직원들의 직장생활뿐 아니라 개인생활에도
많은 관심을 쏟으며, 직원들을 단지 일하는 로봇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
었습니다. 우리는 직원들이 진정으로 즐기며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경영방법을 많이 이용하면서, 어떻게 기업을 경영할 수 있었는지 묻습
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내 경영 방식에 알맞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켈러허는 높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그 같은 개념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고 재빨리
강조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에서인지 혹은 당신이 사람들을
정말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인지 다 압니다. 그래서 이 같은 접근 방식이 자발적이어
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켈러러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우리 직원들이 얼마 전에 시카고에 있는 미드웨이 공항에서 몇 개 출구를 확보했습니다.
미드웨이 항공이 그 출구 사용을 중지했을 때, 우리 직원들이 가서 확보한 거지요. 그 결과
우리 고객의 출구를 여유 있게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공항에서 돌아왔을 때 로
비에는 거대한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시카고 도적Ep 만세!'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한 자발
성이었습니다."
그러한 일련의 자발적인 결정, 즉 독창성을 칭찬하고자 하는 결정과 개인주의는 다른 것
이다.
40년도 더 전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켈러허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사회 내에서는 일에 대한 태도와 직장생활 이외에,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
에 대한 변화가 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같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스스로가 변해
야 합니다."
"몇 년 전에 한 직원에게 사회문제에 대해 옳은지 그른지 주장할 생각은 없다고 말한 적
이 있습니다. 그는 일종의 구식 학교, 아마 군대식 학교라고 말할지도 모를 그런 학교를 졸
업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성공과 직원들의 안정과 번영, 우리의 사회
적응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 역행하는 리더가 될 생각은 없었기 때문
에, 우리도 당연히 변해야 했지요. 그것은 사람들이 어전보다 더 나아진다거나 혹은 더 나빠
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이전과는 다른 동기와 초점을 가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따라
서 이 같은 열망에 스스로 동화되는 법을 배워야했지요."
"'오늘날 미국에는 어떠한 직업윤리도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결코 믿지 않습니다. 아예
무시해버리지요. 우리는 항상 뛰어난 직원들을 고용해왔기 때문입니다."
켈러허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러나 이 뛰어난 직원들이 과거와는 다른 요인에 동기부여를 받고 고무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생활필수품 사업을 하는 사우스웨스트에서 특별히 중요시하는 사항이
다. 생활필수품 사업에서 다른 경쟁업체와 차별화 시킬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바로 서비스
이다.
"아주 간단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나는 서비스의 황금률로 얘기합니다. 우리 직원들에게
스스로 받고 싶은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레스토랑이나 백화점에 들어갔
을
때, 판매원이 당신에게 무관심하고 당신의 필요나 요구를 무시하며 당신을 고객으로 대하
지 않는다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누구나 한 가지 대답밖에 할 수 없습니다. '아니오, 우리
는 그같이 대접받는 것이 싫습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위선자가 되지
마십시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십시오. 바로 당신이 받고 싶은 서비스를 말입니다."
사우스웨스트는 고객의 즐거운 비행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
우스웨스트는 지원자들이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서 면접에 특
별히 긴 시간을 들인다. 직접 고객을 대할 직원들뿐만 아니라 전면에 나서지 않는 직원들까
지도 그같이 면접하다.
"모두가 고객이라는 이론을 늘 고수합니다."
이 이론을 켈러허는 이렇게 설명한다.
"고객서비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이론은 경리부에 올바른 사람을 고용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기업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은 결국 대중에게 제
공하는 서비스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신의 직원이 당신의 가장 중요한 고객인 셈
이지요."
"우리가 찾는 것은 태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초점을 맞추기에는 너무 넓은 영역입니다. 종교를 대하듯 채용하지요 예
를 들어볼까요. 몇 년 전에 인사부의 부사장이 그러더군요. 여객기용 이동 트랩에서 일할 사
람을 뽑기 위해 34명을 면접했는데 적합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당황했다 구요. 물론 그
녀는 일정에 차질이 생겨 비용이 많이 들까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동 트랩에서
일할 사람을 찾기 위해 134명을 면접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찾는 것은 태도입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는 진정으로 태도에 초점을 맞춥니
다.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을 채용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요. 오해하지는 마세요, 경력자,
특히 전문가적 지석을 가진 사람을 채용한다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천박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교육을 덜 받고 경력도 부족하며 전문가적 지
식이 떨어진다 해도, 그 태도 하나만으로 채용할 수도 있습니다. 태도는 누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태도가 좋은 사람을 채용하고 필요하다면
기술을 가르칩니다."
"면접과정이 특이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체계적으로 면접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조종사 지원자들에게 면접시에 양복이 아니라 사우스웨스트 항공 셔츠를 입어야 한다고
알렸습니다. 그리고 양복 재킷과 넥타이,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반바지를 입혀 면접을 실시했
지요. 그렇게 입고도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채용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탈락시켰답니다."
기술적으로 아무리 능숙하다 하더라도, 사우스웨스트 문화와 조화될 수 있는 조종사가 필
요했던 것이다.
이같이 독특한 접근법 외에도, 사우스웨스트 직원들은 지원자들과 '단순히 담소'를 나누는
데 이상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지원자가 야구에 관심 있다면 야구에 대한 얘기를 할 것입니다. 지원자의 가족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고 신문에 난 기사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가치
관을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애타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사람을 원합니다.
단지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관심사에 대해 얘기함으로써 적합한
지 아닌 가려내는 것입니다."
이 같은 관점은 기업이 성장하는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수년간 나는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좋아요, 당신의 직원채용 능력은 아주 탁월합니
다.
하지만 직원이 500명쯤 채용될 때까지 기다려요.' 그것은 '5,000명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
는
것과 같습니다. 사업이 커갈수록 우리 기업의 문화와 단체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들
말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지만 문화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면 가능합니다."
켈러허는 이 같은 접근법을 유지하는 것이 사우스웨스트 CEO의 의무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랑, 이상주의, 폭넓은 철학적 개념을 놓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전혀 싫어하
지 않습니다. 나는 리더십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자신이 거대한
사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절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 같은 소속감은 매일 기계
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를 뛰어넘어 인간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지요."
켈러허의 자세는 바로 리더로서의 모든 것이다.
"리더십이란 하인 노릇하기라고 말하고 싶군요. 뛰어난 리더는 동시에 훌륭한 추종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더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자기의 생각과 달라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업의 필요성에 기꺼이 종속시켜야 하지요. 또한 직원들을 위해 기꺼
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직원들을 위해 싸우려 하지 않는 다면 그들도 역시 당신을 위
해 싸워주지 않을 겁니다. 사업 경력을 통틀어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은, 소동이
잦은 업계에서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단 한번도 결항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 점이 바로
우리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절대적 직업 안정이기도 하지요."
"이 사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믿어야 합니다. 리더는 직원들과 오래도록 함께 할 것이
고, 그들은 리더가 허풍쟁이나 위선자 혹은 사기꾼인지 아닌지 반드시 알아낼 것이기 때문
입니다. 직원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자 한다면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마지막으로 당
신은 직원들에게 일을 위임하고 물러나 있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에 나는 경쟁에 대해 얘기한 쪽지를 모두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많은 경쟁자들이 있지요. 초고속 열차나 통신 매체 역시 잠재적인 경쟁자라고 생각하지만,
미래에 대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포고가 말했듯이 적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세계는 계속 변화하고있습니다. 여기에 적
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피해야 할 주요 대상은 바로 편안과 오만, 성
공이 곧 끝이라는 생각입니다.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성공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우리
는
계속해서 쉬지 말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켈러허는 이렇게 덧붙인다.
"다시 말해 문제는 바로 문화입니다. 기업에서 문화가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문
화를 가장 우선시해야 함은 당연하겠지요. 문화가 바로 가장 초점을 맞추어야 할 주제인 것
입니다."
"고객서비스를 주로 삼는 우리의 사업에서는 무형의 것이 유형의 것보다 훨씬더 중요합니
다. 이는 단지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다 정신적인 것은
제공해야 함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고객 서비스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사람들을 단지 A
에서 B로 이동시키는 것 이외에도 '오, 우리가 해냈어'라는 느낌도 원한다는 뜻입니다. 고객
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 환영받는 느낌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고객의 일생에서 따뜻한
사건이 되어 다시 당신의 비행기를 이용하기를 바라겠지요 당신은 비행기를 살수도 있습니
다. 보잉사는 당신에게도 비행기를 팔 테니까요. 당신은 카운터에서 비행기 티켓을 팔고 컴
퓨터를 사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단체정신 같은 것은 모방하기 힘듭니다.
빌커
메리디스 "끊임없이 고객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브랜드 로열티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왜 특정한 케첩이나 특정 상
표의 식기 세척제를 구입하는지, 매년 연말이면 왜 늘 의뢰를 맡기던 회계사무소를 이용하
는지 묻는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
문
에' '그들이 이 일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믿을 만하기 때문에 믿습니다' 등의 대답을 듣
게
될 것이다.
이러한 대답을 듣고 나면, 고객이나 다른 사업체에 무엇인가 팔려고 해도 더 이상 질문할
수 없다.
그러나 브랜드 로열티가 강력한 만큼 힘을 잃을 수도 있다. 일단 힘을 잃으면 고객의 마
음을 돌려놓기란 매우 어렵다. 이것은 1980년대 수천 개의 미국 기업들이 힘든 경험을 통해
배운 사실로서, 한때 애용해주던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하자, 그들은 품질 낮은 제품에 가격을
높게 매겨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 영국 중세사를 가르치고자 했던 윌리엄 T.커는 오랜 시간을 들여 브랜드 로열티에
대해 연구했다. 메리디스는 (더욱 훌륭한 가정과 정원) (레이디스 홈 저널)을 포함하야 50가
지 이상의 가정과 가족 지향 잡지를 출판하는 기업으로서, 구독자와, 오래도록 친밀한 관계
를 맺어왔다. 커가 뉴욕타임스의 잡지 부서 경영 이후 1991년 말에 메리디스와 인연을 맺었
을 당시 메리디스는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이 기업은 평생 메리디스의 고객이었
던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새로이 활기를 불어넣고 이율을 향상시켜야 했던 것이다.
어떻게 메리디스가 성공할 수 있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커는 이렇게 대답한다. 조화를
이루어내고 장애물을 제거하며 무엇보다도 신뢰를 유지한 덕택이었다고 말이다.
"첫 번째로 한 일은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1980년대의 우
리는 핵심적인 출판과 방송산업에서 빗나가는 기업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일을 단순하게
처리하고, 그저 무언가를 인쇄해낼 뿐이었지요. 우리는 그룹을 운영하는 실질적인 대지를 가
지고 있었고, 케이블 사업 안에 있기도 하고 벗어나 있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 같은 상황
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출판과 방송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얘기했던 것입니다. 그래
서 우리는 핵심 사업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했습니다. 내 전임자가 시작한 이 과정은 최근
몇 년간 가속이 붙었고, 이 일말고 다름 모든 일을 중지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강력한 재정적 기대를 확립하고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재
정적 기대에 대해 가볍게 생각해 왔지만, 이 같은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해나갔습니다. 우선 관리자들의 이자를 보다 직접적으로 주주들과 관련짓기 위해 필요한 단
계를 밟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적절한 보상과 공평한 소유권을 전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의
미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재정과 업무 수준을 높일 수 있게 되었고, 지난 7,8년 동안 주
당 수입을 매년 38퍼센트 수준으로 지불하고 수익률을 3배로 늘려 15퍼센트까지 끌어올렸습
니다. 동시에 품질이 눈에 띄게 향상된 새로운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재정적인 측면에 보다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서도 기업 특유의 소박하고, 가족 같은 느
낌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경영방식에 동의했고, 기꺼이 우리 기업의 직원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일하고 싶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했습니다. 메리디스에 대해 뭐라고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출판업계에서 우리 기업은 최고의 사람들이 일하고 싶어하는 기업
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기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지요."
커가 기업내부를 보살피는 이 같은 분위기는 또한 메리디스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
된다.
"나는 항상 직원들에게 보살핌과 헌신을 강조합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곧 고객을 내적으로
나 외적으로 늘 살핀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상품의 품질을 살피는 것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의 잡지를 읽는 것은 아니며, 우리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만 시청해야 하
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만 광고를 의뢰해야 할 의무도 없지요. 그러나 내가 우리 자산을
아끼는 만큼, 다른 잡지보다 월등한 우리 잡지가 많다는 것을 자신합니다. 광고 잡지가 무려
4천여 종에 달하니까요. 광고를 실을 필요가 없는 기업도 물론 있지요. 다른 판촉이나 할인
을 이용할 수도 있으니 말이죠. 기업마다 나름대로의 접근법이 있기 때문에, 광고주들이 우
리를 선택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객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물론 해당
되는 것입니다. 살피는 일은 잃듯 중요합니다."
'살핀다.'는 주제로 시작해서 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를 소개한다. 신뢰가 바로
그
것이다.
"신뢰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좋은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요일 중 하나
는 바로 고객이 우리를 신뢰한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상표독점권을 가진 이유 중
하나도 우리 상표에 신뢰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보지요."
"좋은 잡지를 가진 것은 독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싫어하는 기사가 실려도 독자들은 '당신들 잡지를 왜 이 모양으로 만들었습니까?'라고 묻
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잡지를 자신들의 잡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요. 따라서 적어
도 그들이 우리 잡지에 관심을 가지는 한 우리도 독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덧을 확
실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또한 커는 주의를 늦추지 말고 돌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나라의 가정에게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에 관한 우리의 가치 기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우리에게는 중요한 부분이지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얼마 전에 CBS관련 우리 방송국에
하워드 스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인수하라는 강한 압력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이 우리
기업의 철학과는 잘 맞지 않지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간부들도 꽤 있었지요."
"돈을 벌기 위해 그 프로그램을 인수하고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말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요. 그래서 스턴의 쇼를 우리 방송국에서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습니
다. 단기적인 재정 목표를 위해 우리의 가치기준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같은 신화와 일관성은 메리디스의 핵심적인 독점판매권에 큰 역할을 한다. 메리디스가
고객의 신뢰를 얻데 되면, 고객은 메리디스의 상품을 더 많이 구입하기 때문이다.
"출판분야에서 우리의 전략은 전체를 조명하는 '부모 같은' 잡지 역할과 동시에 세부 분
야
를 다루는 '자녀 같은' 잡지를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이 작은 분야들을 더욱더 세분화시켜 보다 더 많은 잡지들을 소개하기도 했지요.
같은 이름의 '모'잡지를 이용하면서 말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부수적인 출판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커는 (더욱 훌륭한 가정과 정원)과 유사한 내용의 책을 300권이나 더 출판했습니다. 또한
특별히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 100권을 추가로 출판했지요. 뉴스만을 다루는 잡지에서 떠나
(더욱 훌륭한 가정과 정원)이라는 이름 아래 엄선된 가정 관련 주제를 실었습니다."
"(더욱 훌륭한 가족과 정원)으로부터 많은 잡지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전통적인
데코레이션 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인 가정을(더욱 훌륭한 가족과 정원)의 테두리 안
에서 소개하게 되었지요. 그 후 (전통 집)을 새로 내놓았는데 시골의 데코레이션 스타일에
초점을 맞춘 잡지였습니다. 10년쯤 후에는 (시골집)의 자매지인 (시골 정원)을 내놓는 등 이
런 식으로 점점 더 작은 분야로 세분해 들어갔습니다."
"잡지를 8백만 부쯤 찍으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거든요. 잘만 된다면 20만 부로도 그
만큼의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시장을 세분화하는 만큼 기회를 더 가지게 되는 셈이지요. 우리의 최신 상품 두 가지를
생각해볼까요? (패밀리 머니)는 미국인들에게 강력한 여성 리더십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에
서 창간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기회였지요. 사실 모든 명세표를 관리하는 사람이 여성들임에
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에서는 여성을 주목하지 않았으니까요. 15년 전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광고도 이와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 업체들은 여성들이 차를 구입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던 때였거든요. 그렇지만 이제 자동차는 10대 여성잡지 광고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작년에 40대 이상의 여성을 겨냥한 (모어)가 창간되었습니다. (모어)라는 제목이 뭐 대단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잡지에 (나이든 여성의 잡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지는 않
더란 말이지요. 개념이 같으니까요. 여성들에게 건강이라는 주제는 서로 다릅니다. 또한 여
성들의 생활양식에 대한 관심도 다르지요. 여성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역동적인 집단 중 하
나였기 때문에 (모어)는 이런 관점에서 눈길을 끌 만한 시도였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고객에게 아주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밖에 메리디스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유리한 두세 가지 요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유지되는 훌륭한 시장
을 가졌고 그 시장을 아주 잘 활용했지요. 출판에서는 가정과 가족 출판물에 관한 독점판매
권을 가지고 있었고, 집의 개조에 대해 많은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두 채의 집을 소
유하는 것, 가족 그리고 제2의 가족을 향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 같
은 시장에서 잘 자리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메리디스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것은 유지할 것인가 입니다. 이 업계가 많이 통합되고 있었기
때문에 양적으로 더 많은 잡지를 만들지는 못할 것 같고요. 이제 우리는 내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거지요. 우리에게 내적 성장은 새로운 잡지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1년에 한가지 꼴로
새로운 잡지를 창간해온 창조적인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거지요.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좋은 아이디어야말로 우리의 관건입니다. 또한 훌륭한 편집자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송 인수를 계속 모색할 것입니다. 1998년 애틀란타의
WGNX-TV(CBS)를 구매한 것이 그 예가 되겠군요. 이 방송국은 급성장하는 대규모의 시장
에서 잠재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려있습
니다. 아쉽게도 이 같은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방송인수는 지속적인 소득 성장으로, 우리가 소유한 기존 방송국 사업을 향상시키게될
것입니다. 이를 기점으로 시장에서 우리 방송국의 상표를 명확하게 구축하려는 참이지요."
"7년쯤 뒤에 이 나라에서 광고가 강력하게 성장하게 되면, 이후 몇 년 동안은 분명히 광
고계의 위축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비즈니스 주기가 사라졌다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문
제는 그 불경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거지요. 나는 이 문제를 오랫동안 숙고해왔
습니다. 방송과 출판업계에서의 우리의 임무는 광고사업을 단순한 시간 판매나 공간 판매에
의존하지 않는 일입니다. 이미 주문 판매를 장악했고, 자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여 기업과
광고주들의 상품을 창출해내는 시장 배치를 통합한 상태지요.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훌륭한
사업경영이었고, 광고가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또 하나는, 경쟁 분야에서 단 하나의 상품으로 확실히 자리
매김 하는 것입니다. 보통 불황기에는 광고주들이 비용을 절감하지요. 주요 5대 여성잡지에
광고를 내보내는 대신, 2~3가지 잡지에만 광고를 게재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주도적
인 잡지사라는 것은 확실히 하고 싶은 것입니다. 진정한 도전은 성장을 유지하는 일이지요
돈을 벌어들이고 현명하게 투자하는 것, 사고의 흐름을 주도하고 수준 높은 독자들을 끊임
없이 매료시키는 것. 이러한 것들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도전입니다."
커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다시 말하면, 지금 잘해내고 있는 것들을 계속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고객들
로부터 얻은 신뢰를 지속시켜줄 뿐만 아니라, 성장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척 나이트
에머슨 일레그릭- 단순화하라
찰스 F. 나이트는 26년간 맡아온 에머슨 일렉트릭의 CEO직을 그만두려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멋진 얘기를 들려주었다.
세인트루이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기업의 이사회는, 후임 CEO를 누구로 정해야 할지
아직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네다섯 명 정도 유망한 후보자들을 면접하면서 9억 달러 수준
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소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아마 맨 마지막에 들어갔을 겁니다."
척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 앞에서 면접했던 후보들은 그들이 맡게 될 직무이자 한때는 책임을 맡기도 했던
CEO의 직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바를 얘기했다더군요. 나중에 들었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8년 동안 에머슨의 컨설턴트로 일했고, 두 개의 내부 이사회를 위해 일한 적이 있
어서 에머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회 의원들이 CEO가
된다면 어떻게 일하겠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지요. '큰 변화를 꾀하지는 않을 것입니
다. 지금 이 기업은 잘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이 성공을 부숴버리기보다는 잘 쌓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트는 CEO직을 얻었다.
이같은 접근법으로 에머슨을 위해 일해왔으며, 26년 동안 기업 총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나이트는 조직적으로 기업의 성공을 이루어 왔으며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았따.
1998년 137억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평가된 에머슨은 늘 가장 존경받는 10대 기업 안에 손
꼽힌다. 41년 연속 수익과 주당 수익의 증가, 42년 연속 배당금 증가를 기록한 에머슨의 위
치는 미국 제조업계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나이트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업 전반에 대한 조직적인 접근법이다. 에머슨
내에서는 이것을 '경영절차'라고 부른다. 입안을 포함하고 지속적인 이행을 통해 주주들을
책임지며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효과가 있었다.
"경영 절차는 몇 가지 사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마 바보같다고 생각할지
도 모르지만, 지독할 정도로 중요한 사항입니다."
"단순화지요."
"에머슨에서 이것은 어려운 목표를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획과 프로그
램을 개발하고 목표를 성취하며, 목표를 이루었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끊임없이 추구하고,
또한 그 결과에 적합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쉬운 일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단순화
작업이 생각 외로 엄청난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가끔씩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끊임없이 단순한 계획, 단순한 의사소
통, 단순한 조직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따라서 단순화하는 것이 경영절차의 첫 단계입니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지요. 리더의
마땅한 업무니까요. 즉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이율의 신장과 수준 높은 성취에 필요한 투자
기회를 가려내고, 이를 성공적으로 성취하는 것이 바로 리더의 업무입니다. 그 외에 아무것
도 없습니다. 이 밖에도 직원들과 다른 고객의 시각에서 얘기할 수 있는 사항이 대략 150여
가지나 됩니다. 하지만 근복적으로 주주들을 위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투자 기회를 가려
내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승리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테니 말
이지요."
"경영 절차의 두 번째는, 이러한 접근법의 외부에 존재하는 활력적인 기획과정입니다. 이
기획이란 투자기회를 가려내는 시점을 말합니다."
"나는 우리보다 더 기획을 중요시하는 기업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기업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지나친 기획이 과연 있을까? 나이트는 분명히 그렇다고 말한다. 이것은 백화점 업계의 거
물인 존 워너메이커의 말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내 광고는 50퍼센트밖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단지 그 절반이 어떤
것인지 모를 뿐이다. 안다면 효과 없는 그 절반은 없애 버릴 것이다."
나이트 역시 절차 중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을 발견한다면 즉시 기획을 줄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나치게 기획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5개년 계획은 누구나 다
세우지만, 1년 뒤에는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정작 완성되는 기획은 극히 적지
요. 2,3년 이상 지속되는 기획을 도무지 본적이 없어요."
"그리고 과정 중에 더 나은 결과를 낳는 기획도 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기획은 훌륭한
경영훈련 기술인 것입니다."
회장이나 CEO로서 나이트는 각 부서의 기획 회의에서 생산되느 ㄴ기획 과정의 근본적인
부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자리를 지킵니다.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직접 보고를 받지요. 그곳에서 직원
들은 상부에 보고합니다. 모두가 출석했으므로 그 자리에서 결정이 내려지게 됩니다.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잘잘못을 가리지 않습니다. 나 역시 남들과 똑같이 잘못할 수 있
으니까요."
"이 점은 강조해야 할 것 같군요. 그렇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
비난하지 않는 기업'입니다. 결정을 내릴 때 무언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누구 때문이
려니 하는 짐작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실수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서 토론할 뿐 누구에게도
손가락질하지 않는 기업이랍니다."
다음은 무엇인가?
기획이 세워진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다음은 이행입니다. 이 단계는 많은 기업들이 실천합니다. 리더들은 무엇이 행해져야 할
지를 알지만 가끔 몇 가지 이유로 그것을 행하지 않을 때가 있답니다."
"우리는 이행을 잘하는 기업입니다. 시야를 정하고 어떤 목표에 초점을 맞추면 보통은 직
원들의 헌신으로 성공하지요. 서로 협력하면서 각기 자기 역할을 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이트는 이러한 관계가 상호 신뢰 위에 구축되어 있다고 자부한다.
"우리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잘못된 것을 인식하고 고치는 대신 문제나 실패를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획 절차 기억하지요? 우리는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립니다. 일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비난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대신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다시 고려
하고 출발하는것입니다."
"경영 절차의 네 번째는 행동지향적 조직의 창조입니다. 사실은 조직이나 형식을 신경쓰
기보다는 일의 진행과정에 더 관심을 둡니다. 때로는 그것이 분명 옳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조직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당장 우리 기업의 조직표가 필요하다
면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직을 구성하는 복잡성과 그것이 동반할 관료적인 것
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이트는 관료적 기업인지 아닌지 그 특성을 알아볼 수 있는 세 가지 기준을 얘기한다.
그 첫 번째는 직원들의 규모. 가능한 한 적은 인원일수록 좋다는 것이다.
"우리 직원들은 바로 그 때문에 지난 10년동안 늘 똑같은 규모를 유지해 왔습니다. 직원
한명을 더 고용하면 바로 70개 부서 모두에 그에 상당한 직위가 하나씩 만들어져야 하지요.
그 70명은 또 자신은일을 창조해내게 됩니다. 그러나 관료제는 모든 면에서 속도가 떨어
집니다. 절대로 그런일이 일어나게 할 수는 없지요."
"두번째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것과는 달리 의사소통이 엄격한 통로를 통해서 이루어
지는가 여부입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기획과 프로그램을 두고 의사소통을 하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기업의 기획과 수익 통제 수준인데, 아마도 기업이 내리는 가장 중요
한 결정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익을 최대한 낮은 수준에서 기획하고 통제합니다. 부서장은
투자기회를 가려내고 기획하고 생산라인으로 이익을 통제하는 책임을 지게 되지요."
경영절차의 다섯 번째는, 에머슨 베스트 코스트 프로듀서이다. 이것은 1980년대 초에 비용
절감을 내건 신생 경쟁사들의 도전에 부딪쳐,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이율을 보장하기 위
해 채택된 절차이다. 간단히 말해 원가절감, 경쟁자에 대한 지식, 생산목적뿐만 아니라 제조
전략, 경비 위임, 내부 의사소통 강화 등에 동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경영 절차는 차별화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리
더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나이트는 말한다.
"리더는 긴급성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하고, 우선순위를 정하여 실행하는 능력이 필요합니
다."
"또한 성공에 대한 헌신과 타협을 불허하는 높은 기준이 필요합니다. 승리의 환경이란 사
소한 부분에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나쁜 경정의 대부
분이 사소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물론 리더십의 핵심은 직원들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입니다. 엄격하면서도 공정하게
대우해야 하지요. 이 '엄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여러 번 이의를 받는데요. 직원들을
불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냐고 얘기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포브스의 편집자였던 제임스 W. 마이클즈는 이것을 이해하고 1978년에 우리
에머슨을 다룬 기사에 이렇게 썼습니다. '엄격'에 관한 웹스터 사전의 정의를 인용하여 '강
함 또는 확고함의 자질을 갖춤..' 이라고 말이지요."
"마이클즈는 포브스에 '엄격함(강함, 확고함)은 기업경영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생산적인
자본을 만들어낸다. 직업을 꾸준하고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들고 낮은 가격에 좋은 품질의
생산품을 생산하여 사회에 이익이 되도록 한다'고 썼습니다. 또한 '엄격함은 냉정하거나 무
책임한 것이 아니라.. 매우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고도 했지요."
나이트는 주주들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지난 26년 동안 모든 부서의 기획 회의를 즐겼습니다. 내 시간의 60퍼센트를 차지
하는 그 회의들을 어떤 이들은 피곤한 일로 보기도 하지만, 내게는 재충전의 시간이나 다름
없지요. 사업에 관심이 있고 차별성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사람들고 함께 일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경험은 없습니다. 누구나 승리팀의 일원이기를 원한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
니까요."
데니스 코즐로스키
타이코 인터내셔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한 달에 거래 한 건 하는 신사' 이것은 비즈니스 위크가 일찍이 들어 본 적도 없는 거대
한 기업의 총수인 데니스 코즐롯키의 프로필 중 적극적인 성장전략을 말하는 것이다.
과장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정곡을 찌른 묘사이다. 사실 코즐로스키는 인수를 통해 빠
르게 기업을 확장했는데 현재는 타이코 인터내셔널은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는 기업
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제조 업체이자 방화시스템 설치기업이다. 또한 북아메리카
와 영국에 가장 큰 전기안전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이기도하고(ADT소요), 아울러 일회용
의료용품(US 서지컬), 포장재, 전류 통제장치, 전기전자 부속품, 수중 원격통신 시스템 생산
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세계 75개국에서 활동하며 1998년 수익은 1억 3천4백
만 달러였다.
코즐로스키는 이같은 성공의 열쇠를 '실적당 보수'라는 보상제도 즉 개개인의 목적 설정
을 장려하여 팀 전체에게 적절한 동기를 부여한 데에서 찾는다.
"우리의 경영인센티브 프로그램은 단 하나의 원칙에 따르기 때문에 효과가 있습니다. 바
로 일반적인 자치권을 가진 리더와 재정적 이익이 주주들이 이익과 같다는것입니다."
리더가 주주를 위해 더 많이 벌수록 곧 자신을 위해 더 많이 버는 셈이다.
"인센티브 보상은 기업 전체의 결과보다는 각 사업단위의 업무수행에 직결되는데 이는 개
개인이 자신의 행위에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개개인의 힘이란 데니스 코즐로스키와 대화하는 도중에 종종 떠오르는 아이디어이다.
그러한 아이디어는 또한 차세대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에 대해 얘기할 때 드러난다.
"다재다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다른 문화, 아시아 혹은 유럽, 혹은 라틴아메리
카 등의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서 나름의 중요한 몫을 할 것으로 생각하지요."
이것이 코즐로스키의 경영방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해내는 일이야말로 진짜 사업을 경영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중앙으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두는 거지요. 물론 깜
짝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실히 해둡니다. 비록 공기업이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대하고,
시간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그들에게 신뢰를 쌓으면, 적절한 시기에 그에 대한 대가가 돌아
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보상은 당연히 개개인의 업무수행에 근거한다.
"처음부터 함께 일하던 모든 사람들 혹은 인수로 인해 함께 일하게 함께 일하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조직이란 자본주의적 시스템이다. 모두가 활발히 가치창조에 참여한다
면 그 가치를 눈앞에서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가치라는 병은 뚜껑이 없고,
우리의 장려 프로그램에는 상한선이 없습니다."
"또한 나와 직접 관련된 2~3명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타이코의 전체 실적에 따라 보상
받지 않는다고 얘기합니다. 즉 의료사업에서 일하든, 화재나 연기통제 영역에서 일하든 자신
이 관리할 수 잇는 업무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뜻이지요."
"대부분의 직원들은 회사의 주주들이기도 합니다. 직원들에게 주식을 배당한 다양한 방법
들을 고안해 놓았지만, 그 양은 보상의 10퍼센트 이하입니다. 나머지 90퍼센트는 그들이 책
임지고 권위를 행상하며 통제하는 임무에서 나오게 되지요."
코즐로스키는 오랫동안 이 방법이 경영이나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고 생각해왔다.
"대학 때 아인 랜드가 쓴 근원과 아틀라스가 줄어들고 있다를 읽었는데, 20대 후반에 다
시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요. 개인이 미칠 수 있는 공헌이 주된 내용이
었는데, 여기에서 개개인은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기 때문에 한다. 코즐로 스키는 수천 명의 직원들을 감시하는 거대한 중
앙 집중적 경영이 전혀 필요없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본사에는 50명의 직원들만 채용하고 있으며, 그중 40명은 세금과 공적대표로서 대외적으
로 승인해야 할 사항들을 다룹니다. 나머지 10명이 기업의 입장에서 업무를 감독하고 전략
을 세우며 인수를 수행하는 등의 일을 하지요."
코즐로스키는 업인수를 집행하는 원칙을 준수하지는 않는다.
"기업인수는 즉각적인(벌어들이는 것 이외에도) 창조행위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비용은 덜
들어야 하며 상승효과는 재빨리 감지 되어야 합니다. 기업인수는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
며, 우리가 유지할 수 있을 만한 것이어야합니다. 또한 기업인수는 우리의 주식을 다시 사들
이는 것보다 가치있는 행위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
하는 테스트로서 인수를 활용하고 있지요."
"인수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거래를 협상할 때 우리는 즉시 통합 절차를 시작합니다. 시작
시기를 놓쳐서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면 기업인수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소득마저도 잃게 되
니까요"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
코즐로스키는 타이코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도전은 '숙련된 기업인수 전략을 유지하고 창
조적인 거래만을 하며, 초점을 유지하는 일' 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상품과 서비스들을 저비용으로 생산하는 지금의 위치를 유지하는 일뿐
만 아니라, 이 업계 내에서 확보한 중요한 시장 또한 유지 하고자 합니다."
1990년대 초에 코즐로스키가 내린 결정을 살펴보면 이 얘기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 결정이 타이코가 오랫동안 이어온 성공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CEO가 되었을 때(1992년) 내 임무는 기업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85퍼센트 정도를 주기적인 ㅂ즈니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요. 지금은 완전히 그 반
대지만 말입니다. 수입의 15퍼센트 정도가 주기적인 비즈니스로부터 나왔고 85퍼센트는 유
지비용에서 벌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유지비용이란 ADT 안전 요금으로 매달 우리가 받는
것과 해저굴절 차단 케이블 유지를 위해 기업이 우리에게 지불하는 비용을 말하는데, 사실
상 엄청난 서비스 요소를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생산으로부터 버는 것보다 생산품에 대
한 서비스로부터 더 많은 돈을 벌었고, 이것은 2-3퍼센트의 잉여 시장을 확보하는 것보다도
더 높은 수익을 올릴수 있었습니다."
"1992년 당시는 주기적인 사업에서 너무나 탈피하고 싶었고, 서비스에 좀더 주력하여 장
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사업을 하고 싶던 시기였습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일회용 의료용품
을 생산하는 업체로서 연간 약 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켄달을 인수하는 일이었지요. 타
이코는 1억 달러 상당의 일회용 의료용품 생산업체로서 켄달을 인수하고, 뒤이어 다른 일회
용 의료용품 사업체도 사들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회용 의료용품 생산으로 연간
50억 달러를 벌어들입니다. 이것은 가장 수익률 높은 사업 중의 하나로 완전히 자리잡게 되
었습니다."
왜 우리 기업을 변화시키고 싶었는지 분명히 기억합니다. 1991년과 92년에 우리는 영어권
을 강타한 건설 위축의 여파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소규모 의료기기 사업은 계속해
서 잘 성장하고 있던 때인지라, 나는 새로운 CEO로서 그때야말로 주축 사업을 전환할 이상
적인 시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나는 불을 끄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일회용 의료기기 산업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
고, 바로 그날 켄달이 계열사의 소득을 발표했습니다. 당신 켄달은 우리의 레이더에 들어오
지도 않았지만, 나는 즉시 켄달을 조사했고 차입금을 이용한 기업 매수를 통해 켄달이 소유
한 클레이튼, 듀빌러, 라이스를 떠올렸습니다. '사실 나는 타이코를 잘 모르고 있으며, 왜 이
일에 관심이 끌렸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켄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다.'
그후 켄달에서 나를 뉴욕으로 초정했고 협상을 벌였으며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
다."
이후 코즐로스키는 기업을 순조롭게 재건하였고, 그의 결정 때문에 결국 타이코는 오랫동
안 성공할 수 있었다.
한 개인의 힘은 이렇게 큰 것이다.
랄프 라센(Ralph Larsen)
존슨 앤 존스(Johnson and Johnson)
"명령은 효력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200억 달러 상당의 대규모 헬스케어 기업이 아니라, 170개의 소규모 헬
스케어 기업들의 총체라고 생각합니다."
회장이자 CEO인 랄프 라센는 존슨앤존슨을 이처럼 반직관적이고 간결하게 묘사한다. 이
는 이 기업의 놀라운 성장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존슨앤존슨은 반창고, 베이비 파
우더, 샴푸, 타이레놀 같은 소비자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건강 관련 제품업계
에서 시작하여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실제로 소비자 상품은 전체 수익의 1/3에도 미치지
못한다. 존슨앤존슨은 의료기구 제조업체에서 가장 큰 기업 중의 하나로 성장하였고(인공골
반과 무릎관절에서 신경외과 수술에 관한 모든 것), 세계에서 가장 큰 의약품 기업이기도
하다.
존슨앤존슨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하여 모든 각 단위들을 최대한 자체적으로 경영한다. 이
같은 경영방식은 이 기업이 창조된 방식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1930년대부터 오랫동안 회
장직을 맡았던 로버트 우즈 존슨의 방식도 경영을 분산시키고, 최하 단위까지 자치적 경영
권을 부여하는것이었다. 랄프 S. 라센은 이렇게 말한다.
"존슨앤존슨은 생산 비즈니스가 아닌 지식 비즈니스에 속하는 기업입니다."
병기고의 모든 무기들을 최신화시키기 위해, 라센은 매년 말이면 뉴욕의 호텔방을 며칠간
예약하고는 각 부서의 모든 사업 계획을 읽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질문을 적어가
며 잠재적인 문제들을 탐색한다.
존슨앤존슨의 새로운 회장이자 CEO는 문제점을 분명히 발견했다.
"우리는 새로운 주기(라센이 새로이 회장직을 맡은 1989년에 시작된 주기)에 접어들고 있
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기업이 당면한 가격 인상을 유지할 수 없음이 확실했고, 절대적 근거
에 대한 GDP비율로서 측정되는 헬스케어 비용의 엄청난 상승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만은
않으리라는 것도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헬스케어 비율은 GDP의 12-13퍼센트까지 상
승했습니다. 영국에서의 상승률은 6-7퍼센트였으며 계속 상승세를 보였고, 인플레이션 비율
을 감당할 만큼 지속적인 가격상승이 가능해 보였지요. 우리 능력의 한계는 없는 것만 같았
습니다."
"이런 조건하에서는 많은 부정을 숨길 수 있어 자신의 손을 더럽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
서 그 어디에서도 경쟁자로서 접근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다가올 세계 경제에서는
가격인상이 매우 어려울 것이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라센이 내다보는 새로운 세계는 이전에는 한 번도 심각하게 고려된 적이 없고 존슨앤존슨
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희소식이었다.
"기업 내의 직원들은 모두 우리가 어떻게 존경받는 10대 기어에 들게 되었는지 멋진 얘기
들을 읽었습니다. 우리 기업은 대단한 호평을 받았는데, 그중에는 받음직한 것도 많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지요. 모든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바꾸어놓기
란 아주 어려운 일이랍니다."
"결국 이러한 생각들을 고정시키기 위한 프로세스를 생각해냈습니다. 주기적으로 기업에
대해 사례 연구를 하기로 한 거죠. 첫 번째 사례 연구를 '경쟁기준 설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사례에서는 우리가 저지른 어리석은 일과 실수들, 들쭉날쭉한 비용에 대해 밝혔습니다.
예를 들어 SG&A(판매와 일반적인 집행비용)가 40퍼센트인데, 경쟁사는 30퍼센트 약간 웃도
는 수준이라는 등의 내용이었지요. 목록은 계속 집계되었으며, 이것은 우리의 상황이 겉보기
만큼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생생하게 드러냈습니다. 이 사례 연구는 직원들이 아주 진지하
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준 중요한 절차였습니다."
"동시에 사례 연구를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급 리더들은 생각했던 것
만큼 좋은 상황이 아니므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민감해졌거든요."
당연히 존슨앤존슨의 일부 직원들과 경영 책임자들은 이러한 나쁜 결과에 책임을 져야만
했다.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해두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방향을 바꾸어 직원과 관리자들에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이제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겠습니까?'"
라센은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데 모두가 참여한다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한다.
"명령은 존슨앤존슨 내부에서는 효과가 없습니다. 명령한 사람이 지쳐버릴 때까지, 직원들
은 명령을 그냥 흘려버립니다. 상사가 눈앞에 있을 때는 하는 척하지만, 진정으로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는 놀라운 분산 경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독자적으로 일하지요. 따
라서 그들에게 우리의 의도가 옳다는 사실을 확신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도한 바
에 걸맞은 핵심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거든요."
핵심적인 일이 일어났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라센은 '미래 창조'라고 명명한 두 번째
사례 연구를 실시하였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첫 번째 사례 발표에서 직원들이 피드백을 받을 수 있기를 원했고,
그것을 다시 저리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얘기한 것은 틀렸습
니다. 존슨앤존슨의 2005년을 계획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우리에게 보고하십시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시기는 우리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때는 클린턴 정부의 헬
스케어 개혁에 대한 논쟁이 진행중인 시기였지요."
"그 논쟁으로 인해, 우리에게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한편
으로 그것은 존슨앤존슨에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헬스케어 비
용 논쟁으로 세상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적인
차원의 합리적이 헬스케어 체제를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방어자세 대신 어떻게 생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이 설계로 인해 기업 내에 에너지가 넘치게 되었고 전격적으로 재구성을 하게 되었습니
다. 내가 한 일이 아니었어요. 전적으로 우리 직원들이 해낸 일이지요. 우리가 이룩했던 모
든 일은 사실 그저 더 열심히 일하거나 더 오래 일해서 된 것이 아니라, 매사에 도전함으로
써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라센은 몇 가지 예를 들었다.
"20개도 넘는 우리 소유 국내기업들은 모두 각기 경리부를 가지고 수표를 발행하고 있었
습니다. 그 일에 아마도 백 명 이상이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제야 우리는 부
서의 비용에 주목하기 시작하였고 이렇게 자문했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정보 기술이 발달해서 이 모든 일을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데 말이야." 따라서 한 부서
에서 각각의 기업이름으로 수표를 발행함으로써 많은 비용을 절감하게 되었답니다."
"또한 수천 명의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매일 근무시간 기록표를 쓰고 있었습니다. 수
천 장의 종이가 소모되고 있었던 겁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과연 이 근무시간 기
록표가 필요할까요? 대부분의 직원들이 매일 출근하고, 그것도 정시에 출근하는데 말입니다.
휴가를 떠나거나 시간 외 근무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800번 서비스를 이용하면 돼
요. 전화를 걸어서 예외 등록만 하면 됩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믿지요? 속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속일 수는 없지요. 그랬다가는 당장에 해고될 테니까요. 몇 명이나 속일 수 있겠습니까?
인터넷으로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60퍼센트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급여지불 여부, 근무시
간 기록표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지요. 전반적으로 그 기능들을 없앤 상태입니
다."
일단 올바른 방향이 지정되고 뒤이은 성공으로 용기를 얻으면 직원들은 곳곳에서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아낸다.
"부서마다 제각각 화학 제품을 구입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20개 이상의 부서가 다
우나 FMC같은 기업에서 물품을 구입한 거지요. 그래서 소모품 구입부서를 만들어 화학제
품들을 일괄적으로 구입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기업 전체의 계약 가격을 협상했지요.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어요."
계속 얘기되는 이러한 사항들은 모두 존슨앤존슨의 분산경영에서 나온 것이다. 독립된 부
서에서 급여를 지불하고 물품을 구입하도록 만든 것이다.
일단 라센과 그의 팀이 문제를 제기하자, 그 역시 독립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신조는 지켜지고 있는가?
흥미롭게도 존슨앤존슨이 보다 강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비결은 기업의 유명한 신
조와 맥을 같이한다. 기업의 윤리는 장차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 것인가 청사진을 제
시하는 것이었다.
라센은 이같ㅌ은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
"신조는 모든 일의 기반이 됩니다. 이같이 복잡한 세계에서 존슨앤존슨이 분산경영 방식
으로 경영될 수 있었던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조입니다. 170~180개의 각기
다른 부서들이 제대로 운영되는 것은 그 부서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신조라는 아교가 있기
때문이지요."
"신조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신조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면, 아마도 존슨앤존슨에
서 견뎌내기 힘들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는 기업에 해를 끼칠 일을 저지를 것이 분
명하기 때문에, 조직이 그를 거부할 테니까요. 조직은 마치 신체가 외부 장기를 거부하듯이
그 사람을 몰아낼 겁니다."
"우리에게 신조는 북극성과 같습니다. 빙 둘러앉아 업무 과정을 제안할 때면, 누군가 이러
게 말합니다. ;이제 이 내용을 어떻게 우리 신조와 조화시킬까요?'"
이렇게 해서 존슨앤존슨은 낭비를 없앴다.
"신조에 따르면 기업이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할 상대는 바로 고객입니다. 우리는 헬스케
어 전반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다짐합니다. 그렇지만 유전
관련 제품으로의 진출에 대한 압박, '만사 OK'식의 생산라인과 제각각인 품질 수준이 큰
부담이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가려내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나는 최상의 품질
을 생산하고 싶어. 세계애서 가장 경쟁력 있는 헬스케어 기업이 되고 싶다구.'"
"이 한마디에도 각각의 단어들이 모두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경쟁력
있는'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공격하지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수단 방법을 가리
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품질을 떨어뜨릴 겁니까?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가장 경쟁력 있다는 것은 올림픽에서 경쟁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입니다. 우리
가 원하는 것은 아주 잘 훈련받아 업무 수행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최고가 되고 싶을 뿐만 아니라,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을 이루고, 또한 폭 넓은 기반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투자 전문가들은 의약품 사업에만 열중하라고 해요. 수익
률이 높은 분야니까요. 의약품 사업은 키우고 다른 사업은 정리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
게 말했지요. '아닙니다. 우리는 폭널은 기반을 원합니다. 헬스케어 경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집어낼 만큼 똑똑하지 못하거든요."
방향이 설정되자 존슨앤존슨의 직원들은 기업을 보다 효울적으로 만들기 위해 힘차게 출
발했다. 지난 5년동안 존슨앤존슨은 연간 집행비용을 무려 20억 달러나 절감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존슨앤존슨의 직원들은 아무도 비용절감 조치와 직결되는 보너스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센도 이 점을 인정한다.
"우리에게는 상투적인 보상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지상의 모든 기획안들이 특정 목표와 보너스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만, 나는 우리 기업 방침에 따라 그런 식의 보상에 자연스러운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은 헬스케어 업체입니다. 인명을 구하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기업이지 비용을 줄
이고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지름길로 달려가는 식으로 상품을 만들어내는 기업이 아니
거든요. 그래서 기업에 대한 장기적인 공헌도에 따라 보수를 지급합니다. 주관적이 보상이기
때문에, 아주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지요."
"우리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가장 문제가 많은 사업에 투입
하지요. 가령 우리는 엔도 수술직(수술에 직접 필요한 것에 관계된 사업)은 전혀 손을 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US 서지컬이 본격적으로 그 사업에 도전했지요. 우리는 형편없이 뒤쳐
졌고 도무지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고작 10퍼센트 정도 시장을 점
유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재능있는 한 임원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아주 좋은 실적 기록을 가진 사람이었
기 때문에, 그에게 이 일에 도전해 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선뜻 하겠다고 대답했지요.
그리고는 이내 멋진 팀을 구성하더군요."
"우리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이 업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우리는 시장 주도를 원합니다.'"
"그는 5년 안에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보상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팀의 보너스를 매년 엄격하게 계
산된 숫자 달성에 묶어두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그만큼 달성하지 못하면 그에 상
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단서가 있었지요. 이러한 보상이 뛰어난 사람들을 이끌어냈다
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목표는 분명하게 설정되었고, 사람들은 의욕에 넘쳤습니다. 멋지게
일을 끝내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우리가 지시한 목표보다 더 어려운 목표라도 기꺼이 설정
할 사람들이었지요. 그런 그들에게 레몬을 짜내듯이 정교하게 조작된 재정목표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막상 본격인 일이 시작되면 그들은 높은 목표보다
는 낮은 목표를 세우기를 원하게 마련이거든요."
"보수는 후하게 지급됩니다. 특히 뛰어난 직원들에게는 대단히 후한 대가를 치리지요. 내
게 보상이란 뛰어난 직원들을 위한 최소한의 비싼 대가이며, 평범한 직원들을 위한 최대의
비싼 대가라고 할 수 있어요."
"아, 그 수술직 관련 사업팀 말이지요. 그들은 4년 만에 해냈습니다. 처음 2년 정도는 별
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더군요. 다른 기어버럼 엄격한 보너스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
들은 벌써 징계되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들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라센도 멋지게 해왔다.
켐 레이(Ken Lay)
엔론(Enron)
"300억 달러짜리 구멍가게"
깜짝 퀴즈: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이름은?
500대 재벌기업인에게 매년 이 퀴즈를 냈는데, 언제나 가장 많이 나온 답은 의외의 인물
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물론 동료들은 놀라지 않았지만), 대다수가 엔론이라는 기업 이름
은 댄 것이다.
엔론?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가스 기업이자 전자기업인 그 엔론 말인가?
바로 맞추었다.
500대 기업의 총수들은 엔론을 거명함으로써 케네스 L. 레이가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사
업에 성공적을 진출하고 새로운 사업 전략을 수행했음을 인정하였다.
레이의 이같은 여러 움직임 중 공통점이 있다면, 각각의 움직임마다 에너지 사업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레이는 끊임없이 규제 철폐에 대한 압
력을 넣었는데, 그것은 다른 공공 사업자들과 자주 대립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레이
는 규제라는 족쇄가 없어진다면 자신의 기업이 더욱 잘 해낼 거라고 확신했다.
레이는 그 점을 입증하기 위해 사업에 재정적 요소를 부가하여, 다른 에너지 사업을 하려
는 기업들의 시설 설치와 그 유지를 도와주었다. 엔론캐피털앤트레이드리소스 부서는 지금
도 전세계에 미국 가스전기 기업의 상해보험, 장기계약 융자와 여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 외에도 레이는 기업의 이익 센터를 작게 쪼개어 더 많은 관리자들에게 기업의 규제 측
면으로나 비규제 측면으로나 사업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노력하였다.
이 모든 변화는 엔론을 300억 달러에 달하는 에너지 기업 대신 초석으로 느끼도록 계획된
것이다.
긍정적이면서 한편으로는 부정적이기도 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은 켄 레이가 오늘날 기업
을 경영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초기에 플로리다가스의 사원으로 일하던 시절, 레이가 기억하는 것은 기업이 너무나도 편
안한 분위기였다는 점이다. 석유와 가스를 취급하던 기업의 직원들은 전부 합쳐 1천여명 정
도였는데 각기 소그룹으로 나누어 일하고 있었다. 레이는 그 기업의 전반적인 느낌이 자신
이 누구인지 또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익명성을 가진 기업
이라기보다는 중소도시 번화가의 작은 상점에서 일하는 것 같앗다고 말한다.
레이는 작은 기업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상사가 우선권을 행사하는 것을 그는
아주 싫어한다. 다음의 예를 보자.
어떤 직위를 충원하는데 두 명의 후보자를 두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상사는 둘이 똑같
이 그 직무를 수행할 수만 있다면 보다 적은 급여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려 하겠지요.
다른 후보자가 두세 배 더 유능하다 해도 말입니다.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CEO가 되면 모
든 주요 직책에 파격적인 인물을 기용하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어디에서나 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엔론에서 노력하는 바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요 직책을 개방하면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그 직책에 임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임용이 이루어지면 그 밑으로부터 좋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겠죠."
레이가 그런 식으로 최고 임원을 고용할 때면, 이상하게도 그 임원은 할수 있는 한 소규
모의 관리자 단위에서 끝까지 일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엔론은 무수한 다른 기업과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같이 거대한 사업체를 운영
하면서 우리는 조직을 평평하게 유지하고 되도록 직원들과 많이 접촉할 수 있는 경영을 하
려고 노력하지요."
"직원들이 매우 큰 관료적 기업이 아니라 작은 기업 혹은 기능부서의 일원으로 느낄수 있
는(플로리다가스에서 일할 때와 같은)환경을 만들려고 우리 경영팀은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
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 빌딩 내의 활기찬 분위기를 보면 느낄 수 있지요. 또한 단결캠페인
을 위한 개시 집회나, 우리 농구팀을 지원하는 사람들, 우리가 속한 공동체 활동을 위한 많
은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노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레이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한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치체계나 개개인의 중요성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동료집단이나 조직의 상하관계에서 의사소통이 자유롭도록 애를 쓰지요. 우
리가 만들려는 환경은 (바로 이것이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인데) 우리 직원들이 타고난 잠
재력을 진정으로 깨닫게 해줄수 있는 그런 환경입니다. 엔론은 각자의 잠재력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훈련과 격려, 자극을 끊임없이 제공합니다."
"경영철학은 상당 부분이 기본적인 나의 가치체계로부터 나오지만 나의 초창기 경험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 때 내 상사였던 어떤 사람은 기업 전체에 꼭 필요한 직원은 여
섯 명에서 여덟 명이며 충분하며, 나머지는 교환해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
니다. 많은 상사들이 그런 사고방식을 가졌지요."
"하지만 나는 그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직 내의 모든 사람들이 조직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아울러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만
들수록 기업 전체에 좋은 영향을 가져올 것입니다."
"기업의 말단직원에서부터 최고위층의 직원들까지 모두가 차별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입니다."
말을 실행에 옮기기
레이는 직원들과 기업에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엔론의 규제를 없애나갔
다. "규제된 사업과 규제되지 않는 사업이 섞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규제되지 않는 쪽 사람
들은 결정이 빠른 사업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것이고, 규제되는 환경에 배치되는 사람들은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레이는 기업의 이러한 두 부분을 통합하는 것이 "양측 모두에서 좋았다"고 말한
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뀌지는 못했지요. 사실 우리는 여기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적어도
상업분야에서는 규제 사업으로부터 보다 시장 주도적이고, 위험부담을 가지는 환경으로 전
환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점점 더 우리의 설비를 살피면서, 그들의
가치를 우리가 어떻게 최대화할 수 있는지 계산하는 무역업자와 거래인들이 증가하고 있지
요. 이제는 직원들도 우리의 규제 사업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내려는 무역업자
들의 행동을 점점 더 주시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쪽은 점점 더 통합되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통합된 것은 아니지만
점점 더 통합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레이가 말하는 통합 방법 중의 하나는 사람들을 한편에서 다른 한편으로 옮기는 것이다.
"내부 이동을 포함해서 많은 인원들을 옮겼습니다. 현재 유럽을 담당하는 임원은 불과 몇
년 전에는 플로리다가스운송회사에 근무하던 사람인데, 그 기업은 수송관을 다루는 규제 기
업이었땁니다. 그는 수익성이 매우 높은 주요 센터 중의 하나로, 이제 규제가 풀리기 시작하
고 경쟁력을 얻어가는 유럽 엔론 전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성공비결 중 하나는 기업 전체를 통해 기업가 정신을 담는 커다란 주머니를 만든 데 있
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보아 그것은 우리가 채용한 사람들로부터 얻은 결과지요. 그래서 더
욱 똑똑하고, 결과 지향적이며, 창조적이고 성취력이 높은 사람들을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업적에 보상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만들어 기업의 성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레이는 이것이야말로 기업이 정리되든 아니든 사업을 운영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말한다.
"바람직한 환경을 만들지 못하면 일관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가치기준도 없어 직원들은
관심을 잃게 되고, 그러면 만족스러운 작업 결과를 얻기 어려울 것입니다."
레이는 바람직한 환경 조성의 책임은 바로 책임자에게 있다고 말한다.
"CEO으로서의 임무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희망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
이야말로 진정으로 모든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습니다."
레이는 이러한 책임감이 그대로 직원들에게까지 이어진다고 말한다.
"늘 고위급 임원들에게 경영기술보다는 리더십을 가지라고 요구합니다. 경영기술과 리더
십을 둘 다 갖춘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이끌고 싶
은 조직에 대해 분명히 파악하고 있고, 다른 직원들을 고무시킬 수 있는 간부가 되기를 바
란답니다."
"그런 다음에 최고 관리자들에게 강한 '전략적 기술과 추진력'을 요구하지요." 레이는 바
람직한 환경 조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만들려는 환경이란, 비록 3천억 상당의 기업 안에서지만 직원들이 마치 사업가처
럼 일하도록 격려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거대 조직의 임무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
로를 노출시키고, 각각의 팀마다 하나의 작은 기업으로서 필요한 업무가 분명히 있음을 확
인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레이는 기존의 가장 큰 기업 중의 하나를 취해서 초석이 되도록 만들었다.
셸리 라자루스(Shelly Lazarus)
오길비 앤 마더(Ogilvy & Mather)
"360도 브랜드화"
수치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미국인들이 매일 수백 개의 광고
문구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
해서,.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출근길에 우리는 광고판을 지나치고, 신문과 잡지의
광고를 읽게 되며, 기업 로고가 우리와 동료들의 옷 등에 새겨져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쓰
는 사무용품에도 기업 로고가 새겨져 있다. 고개를 돌리는 곳 어디에나 광고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업적 메시지들이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정작 질문을 받으면 지난 24시간 동안 접한 광고들의 단 한조각도 제대로 머릿속에 기억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광고를 요구하며, 고객들이 돈을 지불하는 광고업계
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듣기 좋은 소식이 아니다.
일부 기업들이 고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이 같은 혼잡을
뚫고 나가자'고 결정하면, 다른 쪽에서는 유머를 이용하거나 엇박자식의 접근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셸리 라자루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고객이 상품에 대한 지속적인 메시
지를 보낸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한다. 광고뿐 아니라 포장과 판매 상품에 대한 소책자, 주문
서 등 그 기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이용하는데, 이렇게 메시지를 내보내면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거라고 말한다. 잠재적인 고객이 일단 그중 하나의
고아고에서 깊은 인상을 받게 되면, 그것은 앞서 보았던 다른 광고들에 대한 인상도 강화된
다는 것이다.
고객명단에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포드 IBM, 유니레버와 같은 선두기업들도 포함되어
있다. 라자루스의 접근방식이 이들 주요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
포드자동차의 엔지니어들이 약간의 회의감을 품고 논의를 시작하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어떻게 광고하는 사람이, 그것도 여자가 자동차 기업의 경영절차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다행히도 셸리 라자루스는 그 사람들에 대해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첫 번째로 해줄 야기는 이러했습니다. 제가 상대적으로 자동차라는 분야에 대
해 잘 모르기는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포드가 재규어와 다르고, 마
즈다와 다르고, 또 뷰익이나 폴크스바겐과도 분명 다른텐데, 어째서 모든 전시장이 다 똑같
아 보이는 거죠?"
모두들 잠잠해졌다. 사실 모든 판매업자들이 다 똑같아 보였던 것이다.
라자루스는 이 점을 찰나에 인식시켰다.
"당신의 물건에 관심이 있고 그 물건을 자기 사업장에 들여놓으려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
해보세요. 이 사람이 귀한 시간 중 한 시간을 내어 당신의 상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면, 일단 어디를 먼저 볼까요? 바로 하나도 개성없는 이 전시장이죠."
"그럼 생동하는 브랜드 그 자체인 나이키 타운과 비교해보시죠. 왜 포드는 나이키 타운처
럼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물론 포드도 할 수 있다. 포드의 광고 전략을 기획집행하는 임무를 맡은 오길비센터는 총
체적인 브랜드 체험을 요구하였다.
"브랜드화!" 전시장은 단순한 선전이 아닌 라자루스가 '360도 브랜드화'라고 부르는 유일
한 본보기이다. 전시장은 그 기업이 고객을 접촉할 때마다(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상을
심어주는 중요한 곳이다.
"포드와 일할 때 절차는 단순했습니다. 매번 그들과 만날 때마다 요지를 파악하고 연구해
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게 포드인가요?'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부정적인 대답을 듣게
되는데, 단지 그때까지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아마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는 바로 요즘에 포드의 웹사이트에서 몇 가지 정말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데, 그 사이트는 온통 이질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더군요."
이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 기업이 판매하는 제품과 동일한 외관과 느낌을 주
는 웹사이트를 찾기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라자루스는 주저 없이 자원 낭
비라고 말한다.
"360도 브랜드화 얘기로 돌아가지요. 접촉하는 모든 면에 상표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인터넷도 마찬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찍이 우리 오길비는 고객과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0년 전, 누구도 브랜드
효과에 대해 얘기하지 않던 시절의 얘기예요. 그런데 드디어 지난 12개월 동안 이 상호 작
용에 대한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제는 우리 사업의 아주 중요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브랜드 효과는 새로운 기술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객들이 처음에는 귀를 뚫은 청년
네 명이 운영하는 회사로 찾아갔답니다. 고객들은 이 청년들이 화려한 이미지로 가득찬 웹
사이트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러나 이제 고객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웹사이트가 고객에 대한 통찰력과 상표에 대한 통찰력에 의
해 정보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은 고객들이 브랜드 파수꾼인 우리에
게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나는 웹사이트 작업이 앞으로 우리 사업의 일부로서 엄청나게 성
장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우리의 판매 도구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할 거라고
믿고요. 그 도구란 고객 한분 한분과 대화하면서 기록했던 내용을 모아둔 것인데, 앞으로도
훨씬 더 흥미롭고 풍부하며 다양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브랜드가 나타내는 것
웹사이트, 전시장, 소책자, 자동차에 붙어 있는 가격표, 혹은 텔레비전 광고 모두 그 목적
은 하나다. 상표 이미지, 그 상표의 진정한 의미를 고객에게 확실히 전하려는 것이다.
라자루스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다른 예를 들어 설명한다.
"IBM 광고 위탁 업무를 담당하는 한 최고참 실력자가 고객에게 상표 이미지를 부각시키
기 위해 고전적인 '판매 관련 표현들'을 배치하려고 작업중이었습니다. 이분이 6개월 동안
추진한 프로젝트는, 디즈니월드 엡콧센터에 새로 설치될 IBM 전시장 개발팀에게 인터넷 브
랜드에 대해 자문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실 테마공원의 디자인이나 브랜드 효과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그가 그 브랜드를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렇다고해서 그가 청색톤의 핵채 계획이
나 활자체만을 사용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는 건축가, 디자이너들과 철저하게 작업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각 디자인, 도면, 인
간 공학, 언어, 간판, 전체적인 경험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IBM 브랜드답다' '다정하다' '다가가기 쉽다'고 말하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었지요."
라자루스는 브랜드의 힘에 대해 좀더 설명하기 위해 포드 얘기로 되돌아갔다.
"나는 브랜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브랜드 효과를 설명하는 걸 좋아합니
다. 사람들은 소비자 입장이기 때문에, 이러한 얘기를 듣게되면 금세 나에게 동조하게 되거
든요. 잠깐만 브랜드에 대해 설명해도 사람들은 그 원리를 곧 이해한답니다."
사람들이 곧잘 이해하기 때문에, 오길비와 포드의 업무관계는 보다 더 가까워질 수 있었
다.
"일부 우리 직원들은 상품개발팀에 참여해달라는 초청을 받습니다. 판매를 초월한 경영이
'좋아, 그걸 선택하겠어'라고 말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던 거죠. 엔지니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브랜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내가 처음 상품을 고안할 때부터 함께
일하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그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면, 난 정말로 포드라는 상표를
드러낼 수 있는 멋진 상품을 디자인할 텐데 말입니다.'
제품 디자인 절차를 역추적하면, 전통적인 방법이기도 하지만 '어떤 상표를 위에 붙일까
요?' 하고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재규어? 마즈다? 머큐리? 링컨? 포드?"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입니다. 우리의 활동반경이 점점 더 넓어지기 때문이지요."
흥미롭게도 360도 브랜드화는 오길비의 고객들이 다른 모든 난잡한 상업적 메시지에서 벗
어날 수 있는 돌파구였다. 기업의 이름이나 사조를 신선한 과일 위에서 발견하게 되거나, 배
너 광고가 모든 웹사이트에 뜨고, 몇 가지의 상업적 이미지들을 보면서 하루에 한 시간을
보내도록 강요받는 세게에 산다면, 자신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이
다.
바로 이것이 라자루스가 가장 중요시하는 대목이다.
"약 1년 전, 오길비의 관리자들에게 고객의 총예산 중 몇 퍼센트 정도를 우리와 일하는
데 쓰는지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광고 예산이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
가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은 단기적인 목표에 지나지 않거든요. 내 관심은 바로
그 사람들이 상표가 소비자를 자극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하는가입니다. 이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의 관심은 변화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적합할 것인가?
대부분의 광고대행사가 그렇듯이(사실 대체적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처럼), 오길비에는 나름
대로 일을 처리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라자루스는 기업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에게 그 문
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어떻게 했을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특별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원자가 우리 기업에
적합한지 아닌지는 그 즉시 느낄 수가 있습니다. 똑똑하고 도전적인 힘을 지닌 것으로 보이
는 많은 사람들과 애기해봤습니다. 그중에는 저녁을 같이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 문화 속에서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오길비에서 함께 일할 사람들은 아니란 뜻이죠."
그 문화는 어떤 것인가?
"다른 대단한 기업들처럼 우리 기업도 가치 추구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을 헐뜯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비록 동료나 고객들에게 유머러스하다 해도 오길비에서
는 잘 해내지 못할 거라는 거죠. 우리는 무엇보다도 서로를 그리고 고객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는 비정치적인 문화, 정치를 싫어하는 문화가 지배적입니다.사람들이 서로 대립하도록
놓아두지 않습니다. 단지 그렇게 하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조
직인데, 기업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데리고 있을 때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사으 ㅣ까다로운 경영에 대해 상사 주위에 서서 분개하고 소리치며 화를 낸답니
다."
"앞으로 1년 동안 기여해줄 것 같은 사람은 붙잡고 싶을 때가 많지만, 사실 이런 문화 속
에서는 힘든 일입니다. 모두들 서로를 책임지도록 하고 있거든요."
라자루스는 기업 문화를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직원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로 했는데, 그녀가 관심을 쏟은 이러한 문화의 기원은 기업을 창립할 때로 거
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이제 막 창립 5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간의 데이비드 오길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의 천재성에서 조직의 운영방법에 대한 강렬한 시각이 생겨났고, 그러한 관
점에서부터 직원들 사이에 생생하게 작용하는(놀라울 정도로 지적 정열이 요구되는)원칙들
이 발전하게 되었답니다."
오길비가 라자루스의 스승은 아니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 광고계의 신화인 그녀는 비록 1
년에 3개월 정도, 한 번에 3주 정도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그런 중에도 오길비가 라자로스에
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데이비드를 알게 된 건 어떤 의미에서 그분이 아주 민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는 기업 내에서 이름이나 직위를 제대로 알고 잇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나
는 데이비드가 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저 관심이 가
는 인물을 찾아낼 뿐이었지요. 내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임신 9개월째였어요. 그는 임
신 9개월의 몸으로 출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매일저녁 여섯시에 내 책생에
서 밖을 바라보면 데이비드는 복도에 서 있었는데, 그냥 거기 서서 쳐다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괜찮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들어와서 나와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덕분에 그를 아주 잘 알게 되었지요."
"나는 항상 엘리트주의에 대해서 말했어요. 그것이 바로 데이비드의 경영 방식이었기 때
문이에요. 그는 내가 여자이고 임신했다는 사실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점을 좋아
했던 것 같아요. 모든 이들에게 도전처럼 보였기 때문이지요. 생각해보면, 아주 오랜 전 일
이잖아요. 내 아들이 벌써 스물네 살이니 말이지요. 지금도 임신하면 직장을 그만두게 하는
기업이 많지 않습니까? 당시 제너럴 포드는 임신복을 입자마자 빌딩을 떠나게 할 정도였기
때문에, 데이비드에게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던 겁니다."
데이비드의 이미지 속에서
판타지1
라자누스는 여성 CEO으로서, 편치는 않지만 그녀가 역할 모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일, 입는 옷, 사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된다고 생각할 만큼
뻔뻔스럽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점차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사실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는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도 놀랍니다. 그런데 바
로 오늘 아침에 참석했던 산업회의에서 한 여성이 내게 다가와 울면서 얘기하더군요. '내
소개를 하고 싶어요. 4년전에 한 행사장에서 하신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 나는 임신중이었답
니다. 당신이 균형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고, 지난 4년동안 그 얘기를 교훈삼아 살아왔
어요. 그건 너무 충격적이었고, 더 중요한 건 그것이 바로 제 딸아이에게 일어났다는 거예
요.' " "사실 좀 놀랐습니다. 나는 내 연설을 듣고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거라고는 생
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나는 일하는 가정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항상 운동회나 소풍
따위에 가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다른 직장 여성이나 고객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힘이 납니다."
라자루스는 역할 모델로서 늘 젊은 여성들에게 경력에 대해 조언한다.
"늘 얘기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직장에서 하는 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균형을 찾고 싶다면,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거면 자연히 자녀들을 사랑하게
될 거에요."
"균형이 깨지면 그때부터 여성은 힘들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지 않
게 됩니다. 그러면 늘상 화제였던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되어 직장은 점점 더 최악
이 되어갑니다. 삶이 분노로 가득 차게 되는거지요."
"여기에서 나는 두 가지 관찰 결과를 얻었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람들은 자신이 하
는 일을 사랑하고 열정을 가질 때 가장 성공적이라는 걸요."
"따라서 내가 드릴 수 있는 첫 번째 충고는, 사랑하는 무언가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찾아
낸 것이 다소 지루하고 특별히 흥미롭지 않더라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 말고 찾아야 합니
다."
"두번째 충고는 직장생활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입
니다. 일과 사적으로 다른 것을 하고 싶은 상황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적어도 이
것은 접근법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갈등에 접근 또는 회피하는 방
법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고 성취감을 주는 문제해결 접근방식이랍니다."
라자루스는 분명 그녀 자신과 고객이라는 두 측면에서 균형을 찾아낸 게 틀림없다.
빌 매리어트(Bill Marriott)
매리어트 인터내셔널(Marriott International)
"고객과 직원 보살피기"
매리어트 인터내셔널 직원들은 그들의 CEO가 기업의 성공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인물이
라고 얘기한다.
윌라드 매리어트는 형상의 중간위치에 있음직해 보였고, 어떤 결정이 나든지 상관없이 호
텔 체인의 주요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여러대의 전화를 동시에 받는 마술을
부리는 중이었는데, 내선 1번에는 잠재적인 뉴욕주 소유주, 내선 2번에는 경영 고문이 연결
되어 있었으며, 내선 3번은 그의 아버지와 연결중이었다.
"아버지의 전화를 가장 먼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매리어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아버지는 버지니아의 매리어트 초원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온통 물웅덩이로 뒤덮였으니
복구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하셨지요. 나는 잠시 듣다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버
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한 2∼3일 걸릴 거에요. 지금 우리 역사상 가장 큰 규모가 될지도
모를 거래를 협상중이거든요.'"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얘야, 사소한 일을 돌보지 못한다면 기업에
서도 마찬가지란다.'"
그 물웅덩이 문제는 즉시 처리되었다.
그리고 맨하탄 타임스 광장이 부활할 거라고 아무도 장담하지 않았을 당시에 세워진 매리
어트 마퀴스는 호텔 체인 가운데 가장 성공한 호텔 중의 하나가 되었다.
빌 매리어트의 경영 아래 세심한 주의와 변화에 대한 욕구는 매리어트 인터내셔널의 특징
이 되었다. 빌 미리오트는 엄청난 규모로 기업을 확장시키며, 리츠 칼튼과 르네상스 호텔을
비롯한 11개의 브랜드를 경영하게 되었을뿐만 아니라 고급 주거공동체를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매리어트의 패스웨이 프로그램으로 생활보조금 수령자들을 고용해서 훈련시켜 매리어
트의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규모의 그 프로그램은 미국 전역
에서 환영받았다, 많은 이들이 모방했다.
매리어트는 매리어트의 아버지가 75년 전에 시작한 ANW 루트비어 노점상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지만, 그 특징 중 하나는 아직도 지키고 있다. 빌 매리어트는 아버지가 직원의 행
복을 최우선으로 여겼다고 말한다. 매리어트의 아버지는 직원들 스스로 일하고 싶어 일한다
면 손님들에게 더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행복한 직원은 곧 행복한 고객으로 직결된다.
당시의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는 진실이다.
각 기업의 CEO에게는 자신들이 존경하는 선망의 대상의 누구냐고 질문하는 것은 늘 흥
미로운 일이다. 빌 매리어트는 숨 한번 쉬지 않고 네 명을 줄줄이 읊어댔다.
물론 첮번째는 그의 아버지였다. 빌 매리어트 경은 1920년대 장차 매리어트 인터내셔널로
성장할 조그만 길가 노정상을 연 인물이다.
두 번째 인물은 더욱 놀라웠다.
"아버지말고는 항상 독일의 롬멜 장군을 말합니다. 롬멜 장군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 어떻게 유럽을 가로질러 왔는지에 대해 얘기하지요. 그는 45일 만에 프랑스를 점령했는
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공적이었습니다. 그의 길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만일 프랑스가 다리를 폭파시켰다 해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서 강을 건널 만한 다른 길을
모색했을 겁니다. 그는 늘 맨 앞의 탱크를 타고 선두 지휘했습니다."
"또한 콘라드 힐튼이 특출나게 훌륭한 리더는 아닐지 모르지만, 이분을 매우 존경합니다.
처음으로 진정한 호텔 체인점을 만든 사람이죠. 불행히도 차후 계획을 자지고 있지 않아, 그
의 자리를 물려받은 사람들은 호텔이 아주 위험한 사업이라고 생각했고 재투자를 충분히 하
지 않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위치, 위치, 위치"라고 말했던 그의 말은 틀림없었지요. 힐튼은 아주 좋
은 위치를 몇 군데 확보하고 있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맥도날드를 창립한 레이 크록입니다. 정말 천재였지요. 그는 품질, 화장실의
청결도, 즉석요리 햄버거에 대해 신경을 썼고, 감자튀김은 좋은 기름을 써서 요리해야 한다
고 강조했습니다. 나도 그것을 먹고 자랐지만, 이 사람은 정말 거대한 기업을 만들었습니
다."
우리는 이 네사람이 매리어트의 창조품에 끼친 영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리어트는 힐튼처럼 몇몇 기업이 가장 좋은 장소를 찾지한 호텔업게에서 중요한 위치를
확장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그리고 롬멜을 좇아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며 장애물을 극복한
다. 게다가 메리어트의 CEO는 크록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상품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기업의 업무수행 과정을 분석해보면 빌 매리어트의 아버지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대에 진입하면서 변화의 물결에 휩쓸렸던 매리어트는 이제 다시
한번 접대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5년 부동산을 개별적인 공공 기업, 호스트 매리어
트에 불하하였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아들이 말하는 기업의 장래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
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적인 숙박기업으로서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다양한 상표를 가지
며, 또한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1927년에 확립한 문화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고객을 돌보
고 동시에 고객을 관리하는 직원들을 돌보는 거지요."
"아버지는 직원들이 행복하면 손님들에게도 친절하여 고객들이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사
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직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역점을 두는 부분입니다. 비록 돈을 벌기 위한 기업이지
만, 주주들에게 돌아갈 배당금에 신경쓰고, 너무 많은 부채를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며, 사업
의 성장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바로 모든 것이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제조하지 않는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매일 집에서 멀리 떠나온 수백만의
고객들, 그리고 고객이 사랑하는 이들과 얽혀 지냅니다. 손님들은 지쳐 있습니다. 그들의 발
은 피곤해 합니다. 야단스러게 항공기에 탑승했거나, 원하는 차를 빌리지 못했거나, 호텔로
오는 길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혹 목적한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고객들은 우리 호텔의 프런트에 도착할 때까지는 무슨 일에든 시달렸을 것입니다. 직원들은
그러한 고객들을 보살피지요. 따라서 이것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직원들을 돌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찌 그들이 고객들을 잘 보살펴주기를 바랄 수 있겠습
니까?"
"퉁명스러운 객실 담당을 만나거나 중요한 일정이 잡혀 있는 날, 내려가서 아침식사를 해
야 하는데 직원이 인사하지 않는다면, 아마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 즐겁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결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방문 앞에 이름이 적혀 있는 사람에게 훌륭한 고객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매리어트가 경영하는 2천 개에 가까운 호텔에서 이것을 이행하는 것은 별개
의 문제다.
"이것은 모든 직원들에게 전달됩니다. 우리 호텔의 총지배인 대부분이 바로 그 위계를 통
해 승진한 사람들로서, 이 문화를 믿고 실천하며 이행하는 사람들이지요. 항상 이러한 점을
되풀이하며, 우리의 믿음에 대해 얘기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것입니다. 고객뿐
만 아니라 고객을 돌보는 직원들까지도 말이지요. 직원들이 이 기업에는 기회가 있다고 느
끼기를 바랍니다. 매리어트에서 일하면서 우리 직원들은 성장하고 발전하고, 기여하고, 훈련
받고, 배우고, 더 잘살 수 있습니다. 매리어트가 이 사람들을 인간으로서, 개개인으로서 늘
보살피니까요."
모든 직원에 대한 보상이 고객들의 만족도에 근거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사실
은 아니었다.
"우리는 고객의 만족을 주의깊게 살핍니다. 모든 호텔이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요.
프런트 사무실에 가보면, 체크인과 체크아웃의 처리 속도와 프런트 데스크의 친절도에 대한
점수를 볼 수 있습니다. 객실관리부에 가보면, 객실과 화장실의 청결도에 대한 점수 그래프
를 볼 수 있습니다. 식품부에서는 제공되는 아침식사가 어땠는지를 나타내는 도표가 있습니
다. 이를 통해 고객들이 서비스와 객실 담당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볼 수 있는데, 이는 아주
정확한 측정입니다. 나는 그 정확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CEO를 포함은 모든 직원이 가까이에서 평가될 뿐만 아니라, 기업의 내부 평가도 물론 존
재한다.
"고객만족도 점수 외에도 우리는 1년에 두 번 종합의견 설문조사를 실시하는데, 여기에서
는 우리 호텔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근무조건과 상사에 대한 제반 사항들을 조사하게 됩
니다"
매리어트는 호텔의 지배인들에게 효율성 있는 체제운영을 요구한다. "지배인들이 받는 보
상의 30∼40퍼센트는 다름 항목, 예를 들면 직원과 고객의 만족도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보상제도는 매리어트가 달성하려는 가치들을 강화시킨다.
빌 매리어트도 그의 호텔을 방문할 때마다 은연중에 그러한 가치들을 강화시킨다.
문자그대로 걷기
"나는 기업을 산책하며 돌아다닙니다. 주방, 세탁실, 객실관리부, 프런트 사무실, 후방 사
무실, 객실, 주차장, 창고를 돌아다니는데 특별히 무엇을 찾아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알
고 싶은 것은 '호텔이 깨끗한지? 세련되었는지? 우리 직원들이 어떤지? 다들 행복해하는지?
즐겁게 일하고 있는지? 총지배인은 어떤지? 그가 직원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하는 것들이지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총지배인은 50야드 떨어진 곳에 직원이 서 있어도 '
좋은 아침이군요. 샘. 조앤은 어때요? 좀 나아졌나요? 지미 녀석은 잘 지내지요? 아직도 야
구팀에서 뛰나요?' 하고 말을 건네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우리 호텔이 다른 호
텔과 달라야 하는 점이니까요."
"호텔사업은 많은 경우, 특히 해외에 있는 호텔은 마치 왕자와 같은 사업입니다. 유럽의
대형 호텔이나 일본 호텔의 총지배인들은 그야말로 왕입니다. 정말로요. 그들은 사무실에 앉
아서 룸서비스로 아침식사를 하고 은쟁반으로 서빙을 받는답니다."
"내가 뉴욕의 에섹스 하우스를 구입해서 식당에 갔을 때 지배인이 이렇게 묻더군요. '어
떤 테이블을 원하십니까?'"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지요?어떤 테이블을 원하느냐니요?' 기업 리더들을
위해서는 공원 옆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고, 혼자면 가장자리의 일반 테이블에 앉을 수 있습
니다."
"나는 말했지요. '그럼 다른 시간에는 도대체 누가 그 테이블을 사용하나요?'"
"'오, 아무도 그 테이블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테이블은 항상 총지배인님을 위해 예약
되어 있는 자리입니다."
매리어트는 바로 이것을 방지하려고 애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기업을 역동적이고 학습효과가 있으며 사업가 정신이 살아 있는 기업으로 만들이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활력을 불어넣는 거지요. 내가 직접 뛰어다닙니다. 나에게
보고하는 사람들과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호텔 지배인과 객실 담당직원, 브랜드 관리자와
도 대화합니다. 나에게 직접 보고하지 않는 직원들과 만나기 위해 회의에 참석하는 것입니
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대화를 받아들입니다. CEO는 서열에 따라 직원들과 접
촉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유럽지사 부회장과 함께 유럽에서 1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는 나보다 3단계 아래
임원이지만 유럽의 더 나은 경영개선을 위해 서로 예기를 나누었지요. 우리는 일주일 내내
26개의 호텔을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모두 10개국을 함께 돌면서 나는 이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ㄴ디ㅏ. 또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메리어트는 그것이 이미 계획된 것이었다고 말한다.
"CEO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아닐까요? CEO는 매일아침 일어나 사무실로 내려온
후에는 하루종일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업의 원동력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치
운동선수와 같습니다. 기운 없는 운동선수를 데리고 있으면, 운동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힘쓰
지 못할 겁니다. 막중한 임무를 지고 있는 라인배커(미식축구 수비스)나 쿼터백, 풀백을 데
리고 있다면 성공적으로 경기를 이끌어갈 사람은 얻은 것과 같겠지요."
"물론 정직은 말 그대로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직원들은 CEO를 신뢰해야 하며, CEO
와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또한 CEO가 수익이 될 거라
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중요성과 직원들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강한 믿음을 기르고, 이를 위해 늘 노력합니다. 이익도 물론 중요하지만 개인만큼 중요
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에너지, 통합성, 정직, 이익을 신경쓰는 것만큼 직원들에게 신경을 쓰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사항들이랍니다."
로우 노토(Lou Noto)
모빌(Mobil)
"당신이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1998년 12월 1일, 미국 사업계 역사상 가장 붐비는 한 기자회견에서 모빌과 엑슨은 서로
합병하여(거래를 완료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탄생할 것임을 발표하였따.
바로 일주일 전, 우리 일행은 모빌의 회장이며 CEO인 루치오 A. 노토와 버지니아 주 페
어팩스에 자리한 기업 본부에 나란히 앉아서 지난 5년 동안 그의 기업에서 일어나 변화에
대해 얘기했었다.
사교적이고 뛰어난 얘기꾼인 노토가 엑슨이 선호하던 모빌의 성공적인 자산 재배치, 판매
와 탐색능력, 전세계에 뻗어 있는 기업망에 대해 우리와 대화한 것은 분명하다.
엑슨 모빌로 알려진 통합기업은 연간 수익이 2천억 달러에 달하고, 인터넷상 수입이 무려
120억 달러(이전에는 세금공제 전의 시너지 효과로 측정해서 30억 달러 정도였다)로 예상되
고 있다. 전세계 140개국 이상에서 12만 명 정도의 직원을 고용하는 규모를 자랑할 것이며,
값싼 석유가 뜨고 있는 변덕스러운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경쟁업체로서의 규
모와 영향력을 가지게 될 거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순전히 기업의 미래 규모만을 계산한다면, 많은 산업 분석가들은 잠시 주춤하겠지만, 자세
히 검토해보면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이 두 기업이 서로 잘 조화될 거라고 말한다.
규제 조항은 합병 전에 기업이 밝힐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제한하였다. 이에 대한 위임 문
서가 주주들에게 발송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엑슨의 회장이자 CEO인 리 R. 레이먼드와 그
의 팀이 실제로 모빌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추축할 따름이다.
그들의 최종 결정은 대체적으로 노토가 CEO를 맡은 1994년 이후 기업의 발전사에 근거
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판단한다.
때때로 새로이 CEO가 된 사람은 마치 루이스 캐롤의 원더랜드에 사는 것 같은느낌을 가
져야 하는데, 이 새로운 리더가 복도를 뛰어다니며(은유적으로) '머리를 잘라라. 머리를 잘
라라' 하고 외치고 다니면, 임원들은 떼지어 '다른 관심거리를 찾기 위해' 기업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비교적 흔히 발생되므로 더 이상 많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새로운 CEO는
최고위팀으로 명명된 것이므로, 오래지 않아 모든 임원들을 해고한다는 결정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루치오 노토는 이사회가 그를 모빌의 회장이자 CEO으로 임
명했을 때, 이미 이 게임의 법칙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도매급 해고도 없었고 구조조정도
재조정도 없었다.
"왜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하겠습니까?"
노토는 그 특우의 직설적인 어투로 묻는다.
"기업은 좋은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사람들이 예상하던 기업 해체 대신에, 거대한 석유의 힘을 구축하기로 결정
했다. 노토는 이 결정에서 임시로 몇몇 사람을 밀어내지 않고 고참 관리자들을 그대로 유지
시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하는 얘기를 들으면 처음부터 많은 것을 변화시키지
않겠다는 그의 결정이 깊은 생각에서 나온 여러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경영팀을 이루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 모빌에 대해 많이 알지를 못했습니다. 국제
경영이나 재정 같은 일부분에 대해서야 알지만 본사 안에서보다 외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그래서 '이봐요, 친구들, 내가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거든요. 내가 이 일을 하
도록 뽑혔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팀을 이루어서 일하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일을 해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요'와 같은 태도를 취해야 했지요. 그렇지 않았다가는 완전히 바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이 CEO가 되면 눈에 띄는 건 버려야 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강한 기업을 발견했거든요. 1986년부터 1994년까지 CEO로 일했던 앨런 머레이는 모빌을
위해서 실로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더군요. 우리의 사업을 완벽하게 정리해놓았더란 말입니
다. 머레이가 CEO직을 넘겨받았을 때 우리는 카터 대통령 정권하에서 몽고메리 워드, 컨테
이너, 그 외 여러 개의 부가 산업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산업경기가 점점
더 나빠 질 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업은 석유산업 정책에 반하는 사업을 모색했던
것입니다."
기업이 지나친 규제를 받지 않ㅇ르 거라는 사실이 확실해졌을 때, 부가사업을 매각해버렸
다. 노토는 어느새 석유, 가스, 화학 제품을 둘러싸고 돌아가는, 초점이 비료적 제대로 맞추
어진 사업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래도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는 그때만 해도 큰 부동산사업과 백금사업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끝날 때
쯤 리더 그룹은 좀더 분야를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했죠. 머레이가 이미 어려운 일을 해놓
은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는 만족스럽게 할 수 있었습니다. 백금사업과 부동산사업을 매각하
는 것은 워드와 컨테이너의 가치를 얻는 일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지요."
일단 모빌이 주력 사업으로 흐르기 시작하자, 노토는 보다 융통성 있는 기업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첫 번째로 수행한 것은 놀랄 만큼 완벽하게 관료제를 없앤 것이었다.
"비교적 깔끔한 경영부서를 가지고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내가 처음 CEO가 되었을 때 경영팀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 위해 이
틀 동안 윌리엄스부르그로 떠났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하게 나타난 사항의 하나는 직원들의
새로운 업무수행을 위해서 적합한 모델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동 역할을 지원하
는 많은 직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또한 지위에 걸맞는 많은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동
감독이 부서 감독에서 '왜 비용이 12센트가 아닌 13센트가 들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
러면 거기서부터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노토는 기업을 재조직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그는 그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 데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요소는 기대되는 수입 노선을 벗어난 초구조의 부담을 짊어진 석유, 가스, 화학 제
품의 세 가지 사업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여기저기에 감독을
두는 대신 이곳저곳에 홍보하는 사람을 두어 서비스를 제공하자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일관성이 없기 문이었습니다. 한 부서에서 이루어지는 최고의 업무수행 방식이 바
로 옆 부서에서는 적용되지 않았으니 말이지요."
"구조는 고비용과 복잡성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든 직원
들이 자기의 영역 안에서는 훌륭하게 업무 수행을 해내고 있었는데, 누구도 전체적인 조직
의 절차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실제 가능성보다 비관적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재편성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건 악몽이었지요. 우리는 '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평생고용 산업을 다루고 있었으니까요. 나만 하더라도 모빌과 37년
을 함께해왔고, 평생 직장으로 여겼죠. 이건 당시 아주 전형적인 일이었습니다. 재조직은 그
관행을 깨뜨린 격이지 않습니까? 의리를 끊어버리는 것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
답니다."
노동력의 7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4,700명의 직원들이 해고되었다.
"갑작스레 우리가 직원들과 맺어오던 오래된 사회계약이 붕괴된 겁니다. 그러자 의문이
생기더군요. '어떻게 약속을 지켜나갈 것인가? 직원들에게 과연 무엇을 약속할 것인가?"
"첫번째로, 직원들에게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사업과제를 제공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조치였지요. 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시간 낭비니까요. 두 번째로, 직원들에게 자
기개발의 기회를 제공했는데,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경
험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관리자들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직 익
숙하지 않았습니다. '짐, 자네는 잘하고 있네. 그렇지만 특별히 새로운 기술을 더 익히지 않
으면, 두 계단 상승의 기회를 줄 수가 없군." 이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제 시작하려
고 합니다."
이같은 새로운 사회계약은 중요한 의문점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남아 있는 6만 2천 명의
직원들로 이루어진 이 새롭지만 약간 기울어 있는 조직을 노토는 어떻게 이끌려는 것일까?
대답은 이렇다. 그는 모빌을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도 효율성 있는 조직으로 바꾸고
자 했으며, '근거있는 위험부담'을 만들어내는 기업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세상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실질적으로 500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
는 내기에 100달러를 걸어 모두 잃는다면, 당신의 후견인에게 다른 기회를 찾아보도록 당신
을 격려하라고 말하겠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감수하려는 위험부담입니다. 그렇지만 당
신이 100달러를 걸고 105달러나 101달러를 번다면, 나는 당신을 해고할 겁니다. 당신이 목적
을 달성했는지 여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도박이니까요.'"
"우리는 오로지 성공 지향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화 밑바탕에는 위험
부담이 더 적은 모험을 하는 기업이 존재합니다.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싶은 이는 없을 것
입니다. 목표는 크게 세워놓고 달성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테니까
요. 즉 나는 실패를 조장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럴려면 성공하지 못하
면 해고당할 거라는 규칙을 없애야 합니다."
"그 규칙을 바꾸지 않으면 최선의 업무수행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노토는 모빌의 최고 업무수행이 사업방식과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두드러지게 결과를 나타낸 분야는 가솔린 소매업이었다.
고객의 소리 듣기
"CEO직을 맡은 첫날 멀리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늘 중앙을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중앙
이 아니라 경쟁자를 바라보아야 했고, 보다 중요하게는 고객 들을 바라보아야 했지요. 그것
은 과거와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었습니다. 드디어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
입니다. 솔직히 말해 고객은 모빌 광고의 기본인 자동차 엔진 주위를 달리는 젊은이에게 야
유를 퍼부을 수도 있습니다. 편리함을 원하는 고객도 있을 것이고, 속도감을 원하는 고객도
물론 있겠지요. 서비스센터에서 여러 사항을 원하는 고객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고
객이 뭘 원하는지 진정으로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자제품 주세요'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마케팅 혁명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로 한일은, 주유 펌
프에 직접 돈을 투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주유 펌프에 직접 돈을 투입하는 것은 비교
적 간편하지요. 그리고 누구나 이 방식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시작한 것은
바로 우리 모빌입니다."
"다음 단계는 '스피드 패스'였는데, 이 상품은 과학기술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반영했지요. '스피드 패스'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예를 들어 말하지요. 그
러니까 자신의 신분을 우선 밝히고, 가솔린 대금을 지불할 것인지 말한 다음, (일부 지역에
서는) 어떤 등급을 원하는지 얘기하면, 직원은 열쇠고리나 차양판에 부착할 수 있는 작은
꼬리표를 드릴 겁니다. 그러면 직원은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구입했는지 전자장치로 추적
하지요. 스피드 패스는 1997년 5월에 주요 10개 주유소에 도입되었고, 다음해부터 전국적으
로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첫 5년 동안에만 130만 명이 스피드 패스 자동 무선레이더를 사용
했답니다."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요? 사람들이 기묘한 장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고객이
편리성과 신속성을 원한다고 예기했기 때문이지요."
"이제 동전의 한 면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그 면은 고객들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보여주
지요. 고객들은 주유 펌프 같은 신속성과 스피드 패스 같은 편리함을 추구합니다. 게다가 한
번에 되도록 많은 물건을 쇼핑하고 사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가스를 충전하기 위해 멈춰 서
있는 동안에 몇 가지의 물건을 고르고 싶어하는 거지요.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짐작이 가나
요? 가스충전소에 소매점을 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파는 제품에는 모빌 상표를 달
았지요. 모빌이라는 우리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고객들은 음식에 모빌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좋
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죠. '모빌 석유는 참 좋아요. 하지만 내가 먹을 음식
위에 모빌을 얹지는 마세요.'"
"석유와 대조적으로 가스충전소의 일부를 가게로 만들기 위해서, 판촉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당신들은 새로
운 독점 판매권이 필요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색깔을 가지고 나가
야 한다구요.' 이마에 모빌이 인쇄된 나같은 사람과 일하는 게 어떨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
다. 그들은 나를 시범 장소로 데려갔고, 나는 거의 심장마비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그 가
스충전소는 멋지고 깨끗하면서도 파란색과 빨간색을 강조한 활기찬 모빌 충전소였던 것니
다. 특히 크리스털처럼 깨끗해 보이는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더군요. 옆방은 기업에서 '운영
중인' 편의점이었는데, 마치 원형 곡예장 같았습니다. 노란색, 녹색, 자주색으로 디자인되어
밝고 활기찼으며, 많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객이원한다고 얘기했
던 것이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고객은 그곳에 들러 브랜드가 새겨진 카레와 아침식사를 하고 싶어합니다.
점심때는 그곳에 가서 브랜드가 새겨진 샌드위치와 패스트푸드를 사고 싶어하지요. 그리고
저녁때도 고객은 그곳에 들러 저녁에 먹을 것을 사가지고 나오고 싶어하게 됩니다. 브랜드
를 자꾸 보고 싶어하게 도지요. 누구도 모빌 치킨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충격받은 우리는 고객을 대하는 사업방식에 일대 혁명을 일으켜야 했습니다. 그
래서 로토와 다른 여러 곳에 고객이 원하는 것을 배치해 두었고, 서비스센터 앞 주차장을
확보하였습니다. 이 업계에서 20년 전에 일한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무덤에
서 벌떡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판매전략을 바꾸는 화려한 전망의 일환이었을까?
"나는 '전망'이라는 단어를 싫어합니다. 그 말에는 어딘가 일종의 형식적이고 '자, 이제
전망 탐색을 시작해봅시다'하는 식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같거든요. 그러나 기업에 근본적
인 책임을 지고 있다면, 잘해내기 위해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또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대로 결정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단호히 없앨 수 있어야 합니다. 고객
의 소리를 듣고 이에 신속히 반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적으로는 자신감을 강조할 필
요가 있습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한마디로 말해서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빌과 엑슨이 합병될 것을 생각하니, 이 교훈은 마치 무슨 암호처럼 들린다.
폴 오닐(Paul O'neill)
앨코아(Alcoa)
"사람들고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문제이다"
20~30년 전에 만들어진 미래 영화를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집안의 모든 일을 하는 로봇이나 출퇴근시 타고 다니는 호버
크래프트(고압공기를 아래쪽으로 분산하여 기체를 공중에 띄우는것)가 모두 '우주시대' 에
딱 맞는 금속인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질 거라는 것이다.
알루미늄은 이전보다 더 많은 곳에서 사용되지만, 판매는 대체로 GDP보다 저조하다.
1987년 새로운 리더를 뽑으면서 앨코아위원회는 이러한 실망스러운 사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상품가격뿐만 아니라 가격경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오늘날 경영자의 특
징을 고루 갖춘 사람을 찾았다. 그들은 위원회의 회장으로 한때 인터네셔널 페이퍼의 회장
으로서 상품가격에 관해 일가견이 있는 폴 오닐을 선택하게 된다.
제럴드 포드의 경영예산위원회 부이사였던 오닐은 최고의 가격으로 상품을 거래하는 방법
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12년 동안 앨코아에 근무하면서 다른 산업리더들과 함께 재고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고, 가격을 올리면서 동시에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는 사뭇 이례적이었다.
그 결과는 사뭇 이례적이었다.
투자자들은 제약기업과 같이 알루미늄 기업에 시장매수를 하지 않았으나, 앨코아의 주식
은 알루미늄 기업 사이에서 높은 가격과 이윤으로 계속 거래되었다. 그리고 오닐은 기업의
시장 자본율을 3배나 높이게 된다.
이러한 튼튼한 성과를 기초로 오닐은 기업의 시장 자본율을 3배나 높이게 된다.
흥미롭게도 그는 성공적인 경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순간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오닐은 앨코아가 직면한 도전에 관해 질문받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잘해왔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시장자본 평가는 45억에서 오늘날에는 50억내지
55억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경쟁사들의 수준은 45억에서 120억 내지 130억이지요. 우리는
판매와 이익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영선두주자로 두닥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오닐은 이런 성공에 혹 거만해질지도 모르는 위원들을 경계했다.
"자만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시도 안심할 수 없지요. 다른 사람
이 상상할 수도 없는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적인 개선을 해나가야 합니다."
오닐에게는 어떠한 일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군인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 여러 곳을 옮겨다녔지요(일리노이,
미주리,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하와이, 알래스카 등).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
러한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곳에 다른 유형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 접촉하면
서 융통성과 적응력을 키웠습니다. 의지만 있다면, 옮겨다니는 것은 또한 전문가적인 삶에
필수불가결한 거지요."
오닐은 개인 사업으로 전환하기 전, 연방정부의 경영예산부에서 15년 동안 일해왔다. 그래
서 그는 새로운 생각과 경험에 개방적이었고, 동신에 비즈니스 세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남
다른 시각을 갖추었다.
"자기 중심적으로 빠져들지 않고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조직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변화시키기 어려운 곳은 바로 미국이지요. 부분적으로는
타고난 독립심과 원인을 알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도
때로는 실패할 수 있으며, 어느 곳에서든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는 하고 있는 일을 더 자하도록 따라하는 데에 구구절절 그 이유
를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바로 채택하며, 다시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오닐은 "정열과 열정"을 가진 사람을 채용하고자 한다. 또한 그밖에 다른 중요한 점도 찾
아내려고 노력한다.
"배우려는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인 교육형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이 새로운 정의와 방식을 찾아서 그것을 머릿속에서 구상하는 내용과 통합하려는 사람을
말하는 거지요."
핵심 신념
물론 융통성, 적응력, 배우려는 태도 모두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핵심 신념을 가져야 한다.
오닐은 앨코아가 가장 안전한 제조기업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안
전문제가 리더십을 제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믿었다.
"안전은 가장 중요한 성과측정 기준입니다. 실제로 작업을 단축시킵니다. 또한 이 수치가
지도하는지 관리하는지 구별할 수 있는 지표라고 믿지요. 수치가 향상된다면 지도역할을 잘
하고 있다는 믿음의 어떤 근거가 되어줄 것이고, 수치가 향상되지 않는다면 내가 냉소적인
관리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왜 여기에 초점을 맞추냐고요? 평범한 기업과
좋은 기업의 차이는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통하느냐, 돈보다 더 중요한 신념을 가ㅈ고 있느
냐에 따라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좋은 관계를 가질수 있는 최고의 가능성은 모든 사람이 과
심을 갖고 있는 곳에서 드러납니다. 자진해서 고통에 뛰어드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만약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보다 먼저 조직이 인간적으로 그들에게 관심이 있
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그밖의 것은 이차적입니다. 그러면 좋은 조직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표가 영원한 기관을 설립한다면 가장 먼저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한 벽돌을 쌓
아올려야 합니다.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관계를 맺되, 우선 조직이 인간적으로 그들에
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신념이 단지 매년 보고서에 적힌 사탕발림이 아니라 진실이
라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기에 안전은 앨코아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내부사항이다.
"알다시피 이것은 사탕발림이 아닙니다. 내 데스크탑 컴퓨터는 매일 매분마다 얼마나 많
은 노동시간을 손해보고, 사건이 어디서 어떤 상황에 일어났고 어떤 치료 조치가 취해졌는
지 모든 상황을 나에게 알려주는 실시간 안전자료 시스템입니다. 이것은 내가 여기에서 근
무한 첫날부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안전에 대해 많이 걱정합니다. 그러나 위험한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현재보
다 더 나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평균 산업재해율이 1/3인 미
국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는 어던 사고도 일으키지 말아야한다. 현재까지 그 목표는 제로이
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진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18개월 동안 사람들은 복도 주변
을 서성거리며 수군댔지요. 헝클어진 머리스타일의 오닐이 이 분야의 산업이 얼마나 다루고
힘든지 깨닫고 나면 아마도 이것에 대해 입을 다물게 될 것이고, 우리는 다른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현재 우리 평균 산업재해율은 1/20정도이며, 매일 개선되
고 있습니다."
이것은 더 포관적인 문제이다
안전에 대한 고나심이 높아져갈 때, 오닐의 바람은 앨코아가 완벽하고 견실한 기업으로
알려지는 것이었다.
환경에 책임지는 것은 가치 목표지만, 그는 이것 또한 리더십의 문제로 보았다. 환경문제
의 사회적 책임은 실제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보다 넓은 관점에서 환경문제오 안전문제는
하나의 문제로 용합되어야 했다.
"3년 전에 텍사스 자기업 중 하나인 멕시코 공장에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연기에 질식하
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비록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사태는 심각했지
요. 사람들은 내가 이 사태를 모를 거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솔직히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옳았음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이 일
에 책임있는 그 지역 관리자가 이 사실을 독립환경고문에게 보고했습니다. 그에게 신의 가
호가 있기를! 그 보고서에는 기온 역전현상이 발생해서 공기가 공장 내부 지게차의 일산화
탄소와 결합되는 바람에 사람들을 질식시켰다고 지적했습니다. 부서 책임자는 본사 환경안
전위원회에 보고해야 했지요. 28년간 기업을 위해 봉사하면서, 기업 이익을 10억에서 15억까
지 성장시켰던 그 사람은 이 일로 해고되었습니다.?
"사람을 해고시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강대강 일을 처리하지
않습니다. 기업은 경제가치에 따라 생존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뇌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곳에서도 뇌물을 주지 않습니다. 모든 자기업들도 똑
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입한 건물이 석면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
록 헝가리 법은 이에 대해 규제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석면을 모두 제거하였습니다. 특정
한 법이 아닌 옳다고 생각한 논리에 따라 사람들을 대우하는 거지요. 사람들은 석면에 노출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사소한 일탈을 경험하게 되면, 그러한 일탈 행위가 기준이 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일
을 일관성 있게 진행할 수가 없죠. 가치관은 투명하고 항상 실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좋은 기업이 될 수 있죠. 물론 그것이 아니더라도 좋은 기업을 만들 수는 있
으나 오래 걸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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