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호의 귀 by 커티스 슬레피언 (1983)
별빛이 영롱히 빛나던 어느 추운 밤, 나는 몇시간에 걸쳐 <빈센트
반 고호>를 미행하고 있었다. 오전 3시, 나는 문간에 몸을 숨기고 그가
비틀거리며 라마르띤광장을 가로질러 자기집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
다. 그 다음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에이는 듯한 매서운 고통이었다. 누
군가가 나의 옆구리를 강타했던 것이다. 허리를 꺾으며 주저앉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땅바닥에 얼굴을 쑤셔 박으면서, 나는 이번 사건
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야기의 발단은 서기 2043년 캘리포니아에서 비롯되었다. 산페
드로의 술집에 앉아 독주를 홀짝거리면서, 어느 여성과 나누었던 키스
의 감촉을 떠올리려고 하는 판에 전화가 걸려왔다.
"<슬레지 해머> 씨, 나는 <랠프 마인더> 박사입니다. 일에 대해서
의논할 것이 있는데요."
역사상의 사건을 다루는 수사관으로서, 나는 6개월 전 아틀란티스
의 비밀을 밝혀낸 후로는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의
타임홉스(시간을 뛰어넘는 여행)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였
다. 어쩌면 내 운세가 바뀔 모양이다.
"해머씨, 나는 [비벌리힐스 정신의학연구소]에서 열릴, 빈센트 반
고호의 노이로제 증세에 관한 강연을 준비하고 있읍니다. 나의 강
연의 핵심은, 어떻게 그가 자신의 귀를 잘라냄으로써 상징적으로
부모를 배척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그 행위의
전후에 걸친 그의 행동을 관찰해 주었으면 합니다."
기상천외의 주문이었지만, 돈은 그가 대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타임머신을 1888년 12월 24일 오후, 프랑스의
아를르에 맞추고 올라타 손에 익은 작동버튼을 눌렀다. 다음순간, 나는
그곳에 가 있었다. 이 허술한 마을에서 반 고호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
이었다. 그와 그의 단짝 <뽈 고갱>은 까페 드 라 뉘에서 첫번째 포도주
병을 막 비운 참이었다. 그 거나한 시점에서, 두사람은 각기 상대방의
그림이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 뽈, 아무도 자네처럼 정확한 기억으로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
네."
"여보게, 빈센트, 자네야말로 렘브람트 이후 아무도 따를 수 없는
필치를 지니고 있어."
네 병을 비운 후, 이들은 각기 상대방의 그림이 걸려야 하며, 더이
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반 고호는 유리잔을 집어들고 그것
을 고갱에게 내던졌다. 이런 법석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굵은 시가를
입에 물고 턱수염을 기른 말쑥한 신사가 반 고호를 응시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화가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날 밤, 이들 거나한 젊은이들은 가비스-영업시간 후에도 문을 여
는 저속한 술집인데, 값싼 여자들과 어울릴 수도 있다.-에서 판을 끝냈
다. 그들은 오전 2시경에 자리를 떴다. 갈짓자걸음으로 거리를 내려가
면서 그들은 다시금 논쟁을 벌였다. 갑자기 고호는 날쌘 주먹을 날려
고갱을 쓰러뜨린 후 미치광이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그는 나로 하여금 아를르의 거리를 온통 헤메고 돌아다니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내 뒤로 몰래 다가와 손을 쓴 것은 바로 이때였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나는 머리에 오렌지만한 혹을 붙인 채 깨어났
다. 길 건너에는 몇 명의 경관들이 반 고호의 집 주위에 모여 있었다.
일은 벌어졌군. 그가 자기의 귀를 잘라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나는
그 장면을 놓친 것이다. 마인더는 굉장히 화를 낼 것이다. 나는 한걸음
에 달려가서 역사상의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 신분증을 잽싸게 내보이
며 경찰들 옆을 통과했다.
2층에 있는 반 고호의 방은 온통 빨간 색, 피처럼 빨간 색깔이었
다. 방안에는 이렇다 할 장식이 없었다. 그림 몇점, 책, 그리고 귀퉁이
가 새로 떨어져나간 게 분명한 테라코타 흉상이 전부였다. 그 흉상엔
고갱의 서명이 들어 있었다.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뚤루즈-로트렉>에
게 보내려던 미완성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친애하는 앙리, 우리가 사
소한 문제로 다툰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오.> 아래층에서는 한 이
웃사람이 반 고호는 절단작업을 한 후에도 가비스로 가 라셸이라는 아
가씨와 이야기를 나눌만큼 기력이 있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나는 가비스로 갔다. 라셸은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그 여자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새벽 세시경, 누가 문을 두드렸어요. 제가 나가봤어요. 반 고호였
는데, 얼굴을 온통 스카프와 모자로 가리고 있었어요. 그는 웃으면
서,<메리 크리스마스. 빈센트로부터>라는 글이 쓰인 조그만 상자를
내밀었어요. 그 속에 든 귀를 보고 나는 까무러치고 말았어요."
"귀는 어디 있소?"
"모르겠어요. 내가 깨어났을 땐 없었으니까요."
신문기자 행세를 하면서, 나는 읍 외곽의 한 병원으로 반 고호를
찾아갔다. 그에겐 스트레이트자켙이 입혀져 있었다. 담당 외과의사
<레이> 박사가 그에게로 몸을 굽히고 있었다. 레이가 반 고호의 귀가
달려 있었던 부위를 싸맨 붕대를 매만질 때, 나는 그 화가의 옆머리에
생긴 생생한 상처와 커다란 혹을 보았다. 나는 그 혹에 대해서 반 고호
에게 물어보았지만, 그의 머리는 텅 빈 화폭과 같았다.
"엊저녁 일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납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을 뿐이오. 그런데 내 시각에 무슨 이
상이 있나봐요. 모든게 흔들리고 움직이는군요."
병원에서 나오기 전에 나는 레이에게 전날밤 어디에 있었는지 따져
물었다. 외과의사는 왕진을 갔었노라고 말하고 나더니 묵비권을 행사했
다. 접수창구를 지나치면서, 나는 까페 드 라 뉘에서 보았던 시가를 문
사나이를 보았다.
아를르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고 나를 괴
롭혔다. 반 고호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친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미치광이일까? 그의 머리에 생긴 혹과 나의 머리에 있는 혹은 무
슨 연관이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대체 그의 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둠이 깔린 후, 나는 뤼뒤푸에 있는 레이박사의 집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집에 없었다. 나는 쇠지레로 문을 비틀어 열었다. 서재
에서 나는 유리병이 늘어서 있는 선반을 발견했다. 인체의 여러 기관들
이 포름알데히드(방부제)속에 잠겨 있었는데, 모두 깔끔하게 레테르가
붙어 있었다. <파스칼>의 뇌, <나폴레옹>의 엄지손가락, <플로베르>의
발가락 등등. 역겨웠다. 책상 위에 놓인 병에는 귀가 들어 있었는데,
너덜너덜한데다 거의 두조각으로 동강이 나다시피한 상태였다. 거기 붙
은 표를 읽을 때 나의 피부는 마치 독거미의 집처럼 오싹 오므라들었
다. <V.G>라고 적혀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병원의 직원은 레이가 파리에서 열리는 [마취학회]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떠났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북쪽으로 여행길을
떠나야만 했다.
그날 저녁, 리옹역에 도착하여 기차에서 뛰어내리던 나는 시가를
문 사나이가 두 칸 떨어진 객차에서 내려서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의
존재를 머리속에서 밀어내고 <뚤루즈-로트렉>을 찾아내는 일에만 몰두
했다.
덩치가 작은 이 화가는 어느 서커스단에서 그네에 매달려 있거나
대말에 타고 있는 몇 명의 난장이 광대들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로트렉
과 이들 광대들은 사이좋은 친구들 같았다.
"나는 반 고호의 주치의입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내 환자가 자기 귀를 잘라냈는데요, 그의 정신 상태에 대한 당신
의 인상을 듣고 싶습니다."
"나는 인상파 화가가 아니오."
정말로 약은 친구다.
"이만 실례하겠소. 난 그림을 끝내고 싶소."
이튿날 아침 레이와 마주 앉았을 때, 그는 그 귀가 담긴 병에 적혀
있는 <V.G>는 자기의 옛 환자 <빅토르 귀르네이>의 약칭이라고 주장했
다. 그는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눈치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찾아본 사람은 고갱이었다. 그는 물랭 드 라 갈레
뜨에 혼자 앉아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내 이름은 해머고 사설탐정이오. 내 고객으로부터 빈센트 반 고호
의 사건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소. 그가 자기 귀를 잘라냈다
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네, 예기를 들었읍니다."
"경찰에서는 반 고호가 정신이상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의견은 어
떠신지요?"
"맞아요, 그는 괴짜요. 많은 화가들이 그렇답니다. 당신은 무엇이
화가들을 돌게 하는지 아시나요? 시기 때문이요! 그들은 모두 나의
재능을 시샘하고 있답니다."
수다를 떨면서도 고갱은 반 고호의 프로필을 스케치해 나갔다. 반
고호의 귀가 붙어 있었을 자리의 살덩어리도 나타나 있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나는 걸어서 뤼드라 쁘띠뜨로 갔다. 로트렉은
막 이륜마차에 올라타는 참이었다. 나는 다른 이륜마차에 뛰어올라 반
쯤 완성된 에펠탑까지 그를 뒤따랐다. 나는 텅 빈 2층으로 그를 뒤쫓아
올라갔고, 그곳에서 이 조그마한 유미주의자는 나와 마주섰다.
"아, 의사양반, 아직도 왜 반 고호가 자기 귀를 잘라냈는지 규명하
고 있는 중인가요?"
"아니오, 왜냐하면 반 고호는 자기 귀를 잘라내지 않았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잘라낸거요. 그의 귀를 잘라낸 작자는 먼저 그를 쳤답
니다. 옆머리에 혹이 생기고, 그의 시력을 상하게 할 정도로 세게
말이지요. 사용된 흉기는 테라코타 흉상이었는데, 그때의 충격으로
인해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악한은 반 고호
에게 정신이상의 딱지를 붙이기 위해 반 고호의 귀를 가비스로 가
져갔던 거요. 레이는 그날 밤 가비스에 있었어요. 그는 그 귀를 손
에 넣어, 그의 광적인 수집목록에 첨가시켰답니다.
"그러나 레이는 귀를 자르지는 않았소. 그는 메스를 다루는 전문가
이기 때문에 귀를 그 모양으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지는 않습니
다. 그러니까 가장 혐의가 짙은 사람은 고갱이지요. 하지만 고갱은
우연히 자신의 결백을 밝혀 놓았답니다. 그림에 관한 한 그는 거의
사진에 못지 않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그가 그린 반
고호의 스케치에는 왼쪽 귀가 아니라 오른쪽 귀가 없었어요. 분명
히 그는 어느쪽 귀가 잘려나갔는지 몰랐던 겁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짓일까?" 로트렉이 물었다.
"당신이오, 선생. 결과적으로 서커스단 친구들의 도움을 받은 셈인
데요. 그들은 무심코 당신에게 대말 타는 법을 가르쳐 줬었죠. 대
말을 타면 당신의 키는 반 고호의 키 만해지죠. 크리스마스 이브에
당신은 대말을 탄 채 기차로 파리에서 아를르로 왔고, 크리스마스
에는 다시 돌아갔지요. 당신은 대말을 탄 채 그 귀를 가비스까지
가져갔고, 그래서 누구나가-얼이 빠진 반 고호까지 포함해서-그것
이 반 고호 자신의 소행으로 생각하게끔 해놓은 거요. 그러나 당신
은 늘 대말을 타고 있지는 않았어요. 크리스마스날 이른 새벽, 반
고호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당신은 문간에서 나를 보았
어요. 그리고 당신은 남의 눈에 띄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나를
쳤던 것이오. 그리고 당신의 손이 내 머리에 닿지 않기 때문에, 우
선 내 옆구리부터 쳤소."
로트렉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반 고호는 자기가 거물인 양 생각하고 나를 깔보았소. 그래
나는 그에게 본때를 보여준 것이오. 금상첨화격으로 그는 그것을
자기 짓이라고 생각하오, 그러니 그는 미친 놈이 되어버릴 것이오.
"당신은 스스로 올가미 속에 들어가버렸소, 로트렉."
"그렇지는 않을거요."
그의 지팡이 밑으로부터 10인치쯤 되는 칼날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에게로 덤벼들었지만 미끄러져 쓰러졌다. 로트렉은 그 순간 내 위로
올라타 크고 힘센 손으로 나를 찍어눌렀다. 다른 한손에 든 칼날이 천
천히 내려왔다. 누군가가 로트렉을 거머잡고 난간쪽으로 팽개쳤을 때,
나는 탐정의 수호성인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나의 구세주는 까페 드 라
뉘에서 본 시가를 문 말쑥한 사나이였다.
"내 소개를 하겠소."
그가 말했다.
"<지그문트 프로이드>라고 합니다."
대가는 겸손한 법이다! 프로이트는 자기가 마취학회에 가는 도중에
아를르에 들렀던거라고 나에게 설명하였다. 화가들의 정신상태에 관심
이 있었으므로 그는 절단사건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동기로 발작을 일으키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는 병원
에 가서 반 고호를 만나보았소. 분명히 그는 미치지 않았고, 자기
자신의 귀를 자르지 않았던 것이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소행이었
소. 나는 어느쪽이냐 하면 당신을 의심했었고, 그 후 파리에서 당
신을 본 후로는 당신을 감시하고 있었소. 다행히 당신은 나에게 진
짜 미치광이를 만나게 해주었소."
나는 프로이트에게 사의를 표하고 나서, 아를르로 갔고, 그리고 집
으로 향하여 떠났다.
24시간 후, 나는 마인더의 사무실에 와 있었다. 그는 프로이트가
반 고호에게 정상이라는 건강증명을 내린 것이 못마땅했다.
"이것은 내가 강연을 취소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강
연료를 못 받게 되지요."
마인더는 울기 시작했다. 나는 걸어나오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때로는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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