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아빠 눈 보고 말해
임기원
끝없는 고행의 시작
1992년 어느 날 아내가 상협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곤혼스러운 표정으
로 상협이가 '자폐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처음 듣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과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상협이가 겨우 22개월이 될 무렵이
었습니다. 그 날 이후 단 하루도 편할 날 없는 나의 고행의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내
가 자폐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정신병이라거나 저능아라거나 영화 '레인맨' 정도
였으므로 상협이가 자폐아라는 사실이 오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뿌린 만큼 거둔다'고 원인과 결과가 있는 법인데,
나나 아내나 자폐아라는 단어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협이에 대한 모든 일들이 마치 며칠이 지나면 깨어나는 악몽처럼 단지 꿈이기를
바랐지만, 상협이가 자폐아란 사실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시간이 흘러도 변화될 기미는 보이
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이후 5년 동안 초기엔 상협이와 동생 상빈이 둘을 함께 데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상빈이를 놀이방에 맡겨 놓고 자폐아를 치료한다는 곳을 찾아서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는 유랑(?)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나는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잠깐 상협이
와 함께 할 시간이 있었지만 몇 번씩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지 않고 이상한 행동만을 계속하
는 상협이에게서 어떤 정신적인 연결 고리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저 한숨만 내쉬며
낙담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상협이는 때로 TV 광고를 보면서 미친 듯이 웃어대거나 침대
에서 몇 시간씩 뛰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장난감 자동차 수십 대를 일렬로 늘어놓고 한
대씩 정해진 길로 되돌아오게 하는 동작을 몇 시간씩 반복하곤 했습니다. 또 문방구만 눈에
띄면 곧장 달려가서 장난감 자동차를 무작정 집어들곤 했는데 만약 사 주지 않을 경우에는
땅바닥에 그래도 드러누워 괴성을 지르는 바람에 사 주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심하게 말
하면 상협이는 인간도, 동물도 아니었으며 기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친 사람도 아니었습니
다. 내가 어렸을 때 미친 사람을 몇 번 보았지만 그래도 미친 사람은 최소한의 상호 소통
(?)은 가능했었습니다. 자폐아와 비교하면 미친 사람도 부러운 존재였습니다. 상협이가 서너
살 경에는 할아버지가 상협이를 데리고 공원에 몇 번 산보를 다녔었는데 다섯 살 이후에는
그것도 불가능해졌습니다. 갑자기 할아버지 손을 뿌리치고 방향 감각이나 목적지도 없이 아
무 곳으로나 정신 없이 뛰어가는 상협이를 할아버지가 더 이상은 뒤쫓아갈 수 없었기 때문
입니다. 그냥 놔두면 차도를 뛰어다니다가 차에 칠 것이 뻔해서 외출 할 때는 항상 상협이
의 손을 꼭 잡고 다녀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상협이가 왜 감각이나 의식도 없이 전속력으로
아무 곳으로나 뛰어다니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찾을 수가 없어서 그저 황당할 뿐이었습니
다. 상협이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때는 내가 상협이와
같이 생활한지 2년여가 지난 1999년 초순이었습니다. 상협이와 같이 식당에 가는 것도 견디
기 힘든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상협이는 식당에 가면 가만 있지를 못하고 계속해서 식당을
몇 번 돌다가 밖으로 나가기 일쑤였고 나는 그러한 상협이를 뒤따라 다니기에 바빴습니다.
또한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지 못해 식당의 아무 자리에나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집어먹곤 해서 손님들의 불쾌한 눈총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상협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싫은 것은 몸부림치고 괴성을 지르며 반항했기 때문에 도저히 타협이라는 것이 불가능
했습니다. 더구나 상협이는 말을 할 줄 몰랐을 뿐만 아니라 말을 이해할 줄을 더더욱 몰랐
기 때문에 최소한의 타이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당시의 상협이는 이성적으로나 합
리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따라서 나와 상협이와의 생활이라는 것도
'그 무엇'의 원인을 찾아서 실체를 알아 내고 발전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던 것
입니다. 지금에야 고백하건대 나는 그 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는 상협이의 참담한 모
습을 바라보면서 상협이의 깊은 내부에 아름답고 깨끗한 하나의 영혼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상협이는 이제 나에게 막 꽃피기 시작한 하나의 눈부신
우주와 같습니다.
내 아들 상협, 자폐아
오램 고민 끝에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두고 상협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기까지 나는 그
저 상협이가 자폐증이라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려서 뇌가 잘못되었을 거라고만 막연히 생각해
온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상협이가 왜 보통 아이와 달리 이상한 행동을 하는지, 또 어
떤 방법으로 고쳐나가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 상협이의 상태가 얼마나 좋아질지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찾으려 하지
도 않았습니다. 그 당시 상협이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이 지났으나 도저히 입학시킬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상협이는 자폐아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자해 행위나 자동차 일렬로 세우
기, 침대에서 뛰기, 광고에 대한 맹목적 집중과 같은 수십 가지의 이상한 행동들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그 동안 계속된 반복 훈련으로 약간의 명사를 말할 수는 있었지만, 문장
구사는 '엄마, 물'이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아빠, 물' '엄마, 밥' 등의 기초적인 응용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상협이와 밖에 나갈 때는 언제 차도에 뛰어들지, 언제 갑자가 높은
계단에 올라가 아래로 뛰어내릴지 몰라 항상 손을 꽉 잡고 다녀야 했습니다. 상협이는 동그
라미나 삼각형 등의 기본 도형도 잘 그리지 못해서 아무렇게나 그어 댔고 간단한 노래조차
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답답했던 것은 정상아와 달리 인지 형성이 되
지 않아서 언어를 통한 상식적인 선에서의 의사 전달이나 기본적인 통제마저 할 수 없었다
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 상협이가 받은 교육은 자폐아라는 것을 처음 안 1992년 이후 복지
관에서의 부모 교육을 시작으로 대학 병원에서 1년 동안 아이와 엄마가 받은 애착 교육, 대
여섯 살까지 특수 교육과 함께 병행한 유치원 생활, 아내 나름대로 연구하며 실천해 온 애
착교육과 인지 교육이 전부였습니다. 처음에는 나도 상협이에 대하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
에 상협이를 데리고 무작정 아무런 체계 없이 이것저것 교육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아동
백과 사전, 동화, 아동 과학 등과 같은 일반 어린이들이 보는 책을 교육에 사용했는데 그 중
에서 상협이는 3.1절, 안중근, 식목일, 크리스마스 등에 대해서 아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그
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것은 빈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상협이가 네다섯 살
쯤 되었을 때인가, 제가 특별히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글을 읽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 때 상
협이가 글을 읽는 것을 보고 아내와 내가 얼마나 기뻐하고 다행스러워 했는지 모릅니다. 글
을 읽을 줄 안다면 당연히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상협이는 책의 내용만 읽는 게 아니라 출판사 이름, 저자, 제가 연월일 등, 책에
쓰여있는 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읽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상협이가 글의 내용을 읽
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글씨'만을 읽을 뿐이며, 글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예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 후로도 몇 개월이 걸렸습니다. 이것은 내가 자폐아의 입장에서가 아니
라 정상인의 입장에서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이런 것이 자폐 현상의 핵심 문제라는 것도 몰
랐던 것입니다. 이렇게 두서 없이 상협이에게 지식을 넓혀 주기 위한 설명 위주의 교육을
한 달 정도 시키던중, 나는 작으면서도 아주 크고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날 상
협이와 같이 동화를 읽다가 내용 중에 호랑이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장면이 있길래 나
는 상협이와 같이 잠깐 놀아줄 생각으로 한 번 엉금엉금 기어가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협이는 엉거주춤한 자세만 취할 뿐, 기는 자세와 비슷한 자세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상
해서 이번에는 뛰어 보라고 했는데 상협이는 역시 전과 같은 엉성한 자세만 취할 뿐, 뛰는
것과 비슷한 흉내도 내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머리를 돌려 보라고 했는데 역시 비슷한 동
작도 하지를 못했습니다. 나는 그로 인해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2~3
년 동안 소리내어 책을 읽은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
지고 며칠 동안 이 문제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후 상협이에 대해서 몇 가지를 더
확인한 결과 상협이는 행동 인지는 고사하고 '좋다, 싫다, 무섭다, 기쁘다, 슬프다' 등의 기초
적인 감정 인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길다, 짧다, 많다, 적다, 무겁
다, 가볍다' 등의 기초 인지도 없었고 '더럽다, 깨끗하다, 보드랍다, 축축하다' 등의 느낌 인
지도 없었습니다. 상협이가 글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글씨만 읽은 것은 기본적으로 이
러한 느낌과 기초 인지, 감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순히 언어만 모르면 언어 장
애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상협이는 언어 장애가 아니라 거의 뇌의 '백지 상태'였던 것입니
다. 그 일이 있은 며칠 뒤 상협이의 듣고 이해하는 능력을 시험해 보았지만 역시 듣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습니
다. 상협이에게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마치 자동차 소리나 짐승의 울음 소리처럼 그저
의미 없는 소리에 불과했으니까 말입니다. 물론 몇 년 동안 들어 왔던 명사 몇 마디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가져와'라고 하면 '가져와'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냉장고에 가서 우유를 꺼내기는 하지만 우유를 먹어 버리거나
식탁 위에 올려놓는 등의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저기 있는 것은 무엇이
지?" "제발 말좀 해봐" 등의 말은 마치 한국 사람이 아프리카 말을 듣는 것처럼 자폐아에게
는 아무런 의미 없는 소리일 뿐이었습니다. 자폐아가 느낌, 인지, 감정이 전혀 없어 언어를
이해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자폐아 특유의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
연하고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입니다. 당시 나의 가장 큰 잘못은 상협이에 대해서 오해를 하
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상협이가 기본적인 인지는 있는데 뇌의 이상으로 정신 질환에
걸렸거나, 아니면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 나라로 가지 못하고 상협이의 머리로 들어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식의 다소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상협이가
가지고 있었던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지식들은 뿌리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사상 누각에 불과
했으며, 상협이가 보고 행했던 특수 교육, 유치원 생활, 나들이의 대부분 역시 의미 없는 몸
짓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상협이에 대한 교육을 원점으로 돌아가
서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정상아는 태어나면서 바로 느낌의 인지가
있어서 배가 고프거나 무섭거나 기저귀가 축축할 때는 울음으로 의사 표현을 하고, 두세 살
이 되면 기초 인지가 생겨서 맛있는 것을 보면 적은 쪽보다는 많은 쪽을 선택해서 먹는다든
지 하며, 네다섯 살이 되면 느낌, 인지, 감정이 적절히 결합되어서 응용까지 하게 됩니다. 그
러면서 말을 알아듣고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폐아는 아예 처음부터 느
낌, 인지, 감정이 없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상아들처럼 공부
를 시킨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머리 속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상태에서 육체의 나
이만 일곱 살이 되었으니 상협이가 정신적인 나이와 육체적인 나이의 괴리로 인해서 자폐아
특유의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고 느끼던 즈음, 상협이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마침내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상협이에게 이런 문제점
이 있다는 것만 겨우 깨달았을 뿐,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렇게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느낌
과 인지와 감정이 형성되지 않았는지는 정말 알 수가 없었습니다. 상협이의 이러한 상태가
'시각 우선자'라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몇 달 뒤, 상협이가 자기의 생
각을 조금씩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된 1998년 초였습니다.
마음의 캠프
상협이가 특수 학원을 다니던 시기에 캠프를 몇 번 갔다 온 적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야외에서는 통제하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에 특수 교사와 부모 외에도 십여 명의 자원 봉사
자들이 함께 와서 아이 한 명당 두세 명이 관리했습니다. 특수 교사와 자원 봉사자들이 아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서 율동도 하고 노래도 불렀지만 아이들의 정신을 집중시키
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멍한 눈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고 어떤 아이는 주위
를 정신 없이 돌아다녔으며, 어떤 아이는 밖으로 나가려고 소리를 지르며 울어댔습니다. 사
정을 모르는 사람이 멀리서 보면 보통의 어린이 캠프라고 생각하겠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
다 보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캠프 프로그램은 정상적인 아이들처럼 진행되었지만
사실 제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옷을 스스로 입지도 벗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억
지로 한복을 입히고 춤을 추도록 하는 경우이니 무엇하나 제대로 될 리가 없었습니다. 진행
요원들의 흐르는 땀과 부모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지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먼 낯선 세계
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주 가끔씩 아이들과 눈맞춤이 되면 그 순간 기뻐하면서 계속해서 아
이의 눈의 초점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이내 다시 먼 허공으로 돌아가 버리
기 일쑤였습니다. 상협이의 경우에는 마이크를 붙잡고 괴성을 질러대서 이를 말리느라 고생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체적으로 형식만 있었지 내용은 없는 우울한 캠프였습니다. 결국 캠
프에 갔다 온 사람은 교사와 부모와 봉사요원이었고 정작 아이들은 캠프에 갔다 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캠프에 갔다 왔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캠프에 대한 최소한의 인지는 해야
하는데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차마 캠프에 갔다 왔다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
이들의 정신을 현실에 집중시키기가 그토록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캠프가 전혀 무의
미했던 것은 아닙니다. 상협이의 상태가 어느 정도 좋아진 열 살경부터 나는 상협이와 여행
이나 캠프를 갔던 일 등 상협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합니다. 이런 대화를 통해
서 상협이에게 그나마 남아 있던 캠프에 대한 시각적인 기억이나 감각적인 기억을 인지적인
기억으로 바꿔 주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협이는 비로소 인생이라는 이름의 긴
캠프에 갔다 온 셈이 되는 것입니다.
특수 유치원 졸업식
1998년 2월의 어느 날 상협이의 특수 유치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IMF의 여파로 사회 분
위기도 스산했으며 나는 몸도 마음도 차가운 겨울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피할 수 없는 고
통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십여 명의 아이들이 졸업했는데 그 의미를
아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형식은 갖추느라고 검은 졸업 예복에 모자를 쓰고
졸업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아서는 다들 멀쩡한 아이들이었지만 실제로는 껍데기
만 있고 속은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상장과 상품을 받았어도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아이
역시 한 명도 없었습니다. 겨우겨우 형식뿐인 졸업식을 마치고 나왔으나 밖에서 기다리는
부모를 찾는 아이 역시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들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이상한
손짓과 발짓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자폐아 중에서 상태가 조금은 낫다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 수준이었습니다. 밖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들도 말이 없었습니다. 다들 마음
이 착잡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나마 그 동안은 가정과 특수 기관의 보호로 버티어 왔지만
3월부터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보호막을 벗어나 사회 속으로 흡수되어야 하라 판이었
습니다. 도대체가 엄마가 무엇인지 선생님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프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
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초등학교는 너무나 높은 성벽인 것만 같아서 도저히 엄두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진짜 고난의 길은 특수 유치원 졸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제 새로 시작인
것이었습니다. 나 역시도 상협이가 이미 1년 동안 입학을 유예한 상태였고 당시만 해도 상
협이에게서 근본적인 변화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일단 일반 초등학교에 1∼2년 보낸
후 적절한 시기에 특수 학교로 보낼 생각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착잡한 심정이었습니다. 제
발 자고 나면 모두가 꿈이었기를 바라던 세월이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실은 꿈이 아니었
고, 이제는 현실의 벼랑 끝에 서서 더 이상 뒤로 물러나 F여지도 없었습니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아내와 같이 상협이가 들어갈 초등학교의 선생님을 찾아 뵙고 상협이의 상태를 설
명하면서 '죄송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전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저 세상 모두가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
상협이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지 6개월여가 지난 1997년 말과 1998년 초에는 참으로 어
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상협이와 같이 6개월 정도 공부한 결과, 상협이가 여러 방면에서
약간 발전하기는 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수준과는 아직 거리가 멀었고 학교를 보내기에도 부
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나 자신이 자폐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상협이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 해 연말에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라는 TV프로에서 어느 산골 허름한 집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추위와 굶주림에 떨
며 살고 있는 장애인들을 보여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상협이도 언젠가는 저런
곳에서 저렇게 살아야 하겠구나'하고 생각하니, 잘생긴 내 아들 상협이에 대한 가슴 에이는
슬픔에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납니다. 그 때만 해도 상협이의 정신이
어느 정도 정상적인 수준까지 발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더군다나 나
는 IMF사태의 여파로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는데, 그 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지
내던 나로서는 처음 당하는 고통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상협이에 대한
실망감과 경제적 압박으로 상협이를 포기하고 다시 취직을 하려고 했지만 엎친 데 덮친 다
고 취직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시행 착오와 갈등을 겪은 끝에 1998년9월부터는 가게
에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아침에 가게에 나갔다가 오후5시쯤 일찍 입
에 돌아와서 상협이와 3∼4시간 동안 같이 공부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데 세상만사 새옹
지마라고, 만약 당시에 취직이 되었다면 아마 지금의 상협이의 모습은 영영 볼 수 없었을지
도 모릅니다. 상협이가 제법 발전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여름, 즉 상협이와
같이 생활한 지 1년만이었습니다. 요즈음 상협이는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고 말뜻을 이해하
여 나이에 맞는 학습을 수용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참을성과 타협하는 마임
이 생겼고 말을 할 때는 발음과 내용이 많이 좋아져서 상대방이 조금씩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변화한 것으로는 정상아에게 하는 보통의 말투와 내용으로 상협이와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요즘에는 동생 상빈이와 같이 노는 것보다
상협이와 같이 노는 것이 더욱 즐거워지는 내 자신을 보면서 어렵게 보낸 시절에 대한 보상
을 받는 거서 같아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운명의 5초
시각 우선자인 자폐아가 정상적인 논리 우선자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동물적 본능
과 인간성마저도 갖지 못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자기 보호 본능이 전혀 없는 자폐아의 모든
동작들은 '움직이는 위험물'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면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기, 높은 곳에
서 아래로 뛰어 내리기, 구슬 등을 먹거나 코 속에 집어넣기, 깊은 물 속에 들어가기, 갑자
기 사라지기, 어린아이를 세게 때리거나 밀치기 등 보호자가 잠시만 한눈 팔고 있으면 금방
위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위험한 상황이 갑자기 보호자 앞에 닥쳤을 때 보호자에
게는 약 5초 간의 여유가 생깁니다. 그 5초 동안에 사태를 해결하면 별 탈 없이 지나가지만,
그 5초 동안 머뭇거리면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합니다. 마치 군대의 5분 대기조처럼 자폐아
의 부모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돌발 상황이 대비하기 위하여 항상 긴장하며 살아가야 합
니다. 그런데 더욱 가혹한 것은 부모가 이러한 상태로 1, 2년이 아니고 평생 동안 살아야 한
다는 것이고, 이보다 더욱 가혹한 것은 부모가 죽은 후에는 그나마 이런 비상 대기자가 없
기 때문에 자폐아가 치명적인 상황에 정면으로 방치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 일부 장애자 보호소에서는 자폐아의 손과 발을 쇠사슬로 묶어서 기둥 같은 곳에 고
정시켜 놓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자식을 보는 자
폐아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보호소 측도 오죽하면 그렇게 하겠냐
는 현실적인 동정의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폐아 부모는 그 찰라와 같은 5초 동안
수많은 마음의 번민을 해야 하는데, 이 5초를 전반 3초와 후반 2초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전반 3초 동안 부모는 아이를 구해야 할지, 그냥 방치해서 치명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놔 두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 때 나중에 이 아이가 커서도 아무런 발전
이 없을 바에는 차라리 어려서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 생을 마감하
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아마 대다수의 자폐아 부
모는 한 번쯤 경험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3초 동안 부모는 가슴시린 번민의
상념에 잠기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낳은 자식을 위험에 그냥 방치할 수 없는 부모의 본
능 때문에 남은 2초 동안 아이를 위험에서 구해 내게 됩니다. 만약 5초 동안 입술을 질끈
깨물고 가만히 있으면 상황은 그렇게 간단히 끝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자폐아 부모는 자식
에게 '뭐 하러 사니'라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
습니다. 상협이가 여덟 살 되던 해인가, 여름에 가족끼리 해수욕장에 간 적이 있습니다. 당
시 나와 아내는 수영복을 입지 않고 상협이와 동생 상빈이만 수영복을 입혀서 놀게 했습니
다. 그런데 상협이가 빌려 온 튜브를 타고 순식간에 제법 깊은 곳까지 떠내려가는 것이었습
니다. 상협이는 수영을 못 하기 때문에 몇 초만 지나도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은 뻔한 일이
었습니다. 물론 상협이는 깊은 물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튜브 위에 가만히 있기만 했습니다. 그 상황에 처한 나의 그 5초 간의 갈등은 참으로 컸습
니다. 지금에 와서 고백하지만 솔직히 나는 가만히 놔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당시만 해도 나 자신이 상협이에 대한 어떠한 해결의 실마리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몇
초간이었지만 심한 갈등 끝에 일단 상협이를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
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라는 본능의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마음을 추
스린 후에 옆에 있는 빈 텐트로 들어가서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실
은 나도 수영을 못 하기 때문에 상협과 나 둘 모두에게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
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상협이를 구한 것입니다. 내가 옷을 갈아 입었던 텐트는 우리 텐트
도 아니어서 그 텐트의 주인이 나를 도둑인 줄 알고 소리치며 쫓아왔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종류의 고민에 깊이 빠지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자폐아
인 상태로 머물러 있다면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의 길이 없겠지만 자폐아에게 논리적인
사고가 생기기 시작하면 스스로 위험에 대한 자기 보호 본능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입니다. 이는 상협이와 나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고 어떤 방법으로 얼마만큼 노력하면 자
폐아가 정상적인 사람처럼 생각의 기초를 이루는지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분당 할아버지 집
1998년 2월의 매우 추웠던 어느 날, 나는 분당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제 아버지
는 일제시대 때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50여 년 간을 시골 학교의 교직에 계시다 정년 퇴직하
셨습니다. 1995년까지는 장성한 자식들을 모두 분가시키고 시골에서 두 내외분만 사시다가
연로해지신 탓인지 시골 살림을 청산하고 분당으로 오셔서 두 분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
부분의 선생님이 그렇듯이 나의 아버지 역시 평생 동안 도덕적으로 나쁜 일 한 번 해 보신
적이 없으며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을 죽기보다 싫어해서 그야말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의
전형인 분입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부자지간에도 금전과 관계되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은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고 서로 간에 금전에 관해 궁금한 게 있어도 서로 잘 알아서 하
겠지 하는 믿음으로 끝나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전혀 없고 심지어 결혼 비용과 전세 비용을 해외 근무 때 저축해 두었던 돈
으로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모든 자식들처럼 나도 부모님을 찾아 뵙고 약간의
용돈을 드리거나 같이 간단한 여행을 하는 등 보통의 자식 역할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습니
다. 그런데 그 날 나는 평생에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는 부탁을 아버지께 드리고 말았습니
다. 아버님의 분당 집을 제 아들인 상협이 앞으로 명의 변경해 달라고 조른 것입니다. 당시
에 나는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쳐 있었습니다. 상협이를 정상으로 바꿔 보겠다고 할 수 있
는 모든 노력을 다 해봤지만 상협이는 변화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나는 미래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없고 또한 돌파구도 찾을 수 없는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
로 IMF 한파로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자 나로서는 더 이상 재기할 힘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나는 상협이의 미래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에는
상협이를 보호해야 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자폐아 관련 기관에 맡길 수밖에 없
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상협이가 굶어죽지 않도록 돈이 필요했으며 그 돈을 위
해 아버지에게 불효의 부탁을 드렸던 것입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아버지께서는 당신도
평소에 상협이 문제를 많이 생각하고 있었으며 내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셨다고 하
시면서, 다만 아직은 시간의 여유가 있으므로 상협이의 발전을 위해 좀더 노력해 보고 몇
년 후에 결정을 내리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년여가 흘렀습니다. 예전엔 상협이 할아
버지가 상협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상협이
가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가면 할아버지가 쫓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상협이가
지금은 할아버지 안마도 해드리고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조르기도 하며 할아버지와 함께
손잡고 문방구에 가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 날 저녁에 제 아버지의 뜨거운 마음 때문에 가
슴 시렸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제가 상협이를 이렇게 사랑하듯이 제 아버
지 또한 저 때문에 잠 못 이루시고 계십니다. 이게 우리네 아버지의 마음인가 봅니다.
자폐아 부모가 힘든 다섯 가지 이유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힘든 사람을 뽑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자폐아의 부모를 뽑겠습니
다. 에이즈나 치매는 그 병의 끝을 알 수 있지만 자폐 증상은 끝이 없는 고행의 길이라서
그 부모의 입장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기막힌 것입니다. 또 육체적으로 장애를 입
은 사람은 최소한의 의사 소통은 가능하지만, 자폐아는 아예 부모의 존재와 의미조차 모르
고 배가 고프거나 아픈 것에 대한 느낌조차 없어서 인간성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동물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이러한 자폐아를 둔 부모의 어려움을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 예상치 못했던 불행이 주는 고통입니다. 내가 보기에 자폐아들이 보이는 시각
우선 성향은 정신병이나 저능아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시각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폐 현상이 처음 나타났던
미국의 경우를 보면 1960년대에는 자폐 현상을 상류병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는 주로 상류층
집안에 자폐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1970년대에 이르러 자폐 현상이 일반 대중에게
도 무차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 이유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컬러
영상 문화가 소위 있는 집안의 전유물이었으나 1970년대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자폐
현상도 대중화된 것 같습니다. 자폐 현상은 인간의 유아기 때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시각
능력이 뇌의 논리성 마비로 이어지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자폐 현상은 정신적 이
상이나 부모의 죄와는 관계 없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그 충격이 더욱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아라 하더라도 어렸을 때 이러한 위험에 노출되면 자폐아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
게 되지 않았다면 다행히도 자폐의 덫에 걸리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렇게 자폐 현상의 요인
은 우리 생활 주변에 널려 있으며 앞으로 과학 문화와 영상 문화가 발전할수록 자폐 현상은
보통의 가정에서 더욱 증가할 것입니다. 둘째, 현실 상황이 주는 고통입니다. 과도한 시각
우선 성향으로 인한 뇌의 논리성 마비 상태인 자폐 현상은 현실 생활에서 갖가지 이상한 행
동으로 나타남으로써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잠자는 것과 깨어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아무 때나 자고 아무 때나 일어나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활동
시간에는 손으로 이상한 모양을 반복하거나 여러 대의 자동차를 세워 놓았다가 부수는 행동
을 반복합니다. 또 식사 시간에는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아예 먹으려 하지 않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담배 꽁초를 주워 먹거나 쓰레기통
을 뒤지기도 합니다. 외출할 때는 언제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지, 언제 높은 곳에서 뛰어내
릴지 몰라서 항상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하는데, 어릴 때는 그래도 괜찮지만 커서도 이런 식
의 외출을 해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폐아의 부모는 삶과 죽
음의 문제로부터 늘 자유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 미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아무리 이
상한 아이라도 자식이기 때문에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제대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
러나 부모가 죽은 후에 적절한 보호 시설에 수용되거나 부모를 대신해 줄 헌신적인 후원자
를 찾지 못할 때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넷째, 경제적인 고통입니다.
정신을 잡아 주어야 하는 자폐아의 특성상 교육은 필히 일 대 일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그
런데 대부분의 자폐아 교육을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실정이고 보면
보통 가정의 소득 형편상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입니다. 또 일부의 경우이기는 하나 이렇
게 막대한 비용을 특수 교육비로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폐아가 별다른 발전 없이 원
점을 맴도는 경우도 있어서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자폐아가
수술을 했을 때 잘못되면 정상인일 경우에는 의사가 의료 사고의 책임을 지지만 자폐아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 원래 아이의 상태가 나빴다라는 책임 소재가 애매한 말을 들을 수도 있
습니다. 어쨌든 자폐아의 부모는 경제적으로 과도한 부담의 고통과 더불어 그에 비례하는
아이의 발전을 보지 못하는 이중고를 감수해야 하기도 합니다. 다섯째, 시대와의 괴리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내가 주장하는 자연주의적인 정신의 무장이 자폐아의 발전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가정할 때 자폐아는 현 시대의 흐름과는 반대의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요즘
시대가 물질적 풍요와 과 기술의 발달 시대라고 한다면, 자연주의적 접근은 과거 회기적인
성향이 있어 자칫하면 현실과 유리되어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나는 자폐아
부모의 일부는 정신적으로 회색 인간의 삶을 살아간다고 느꼈습니다. 왜냐 하면 대개의 자
폐아 어머니는 과거의 친구들과는 관계가 두절되고 자폐아 부모들과의 교류가 많아지는데,
이 때 현실이 주는 유혹과 자폐아가 주는 고단하고 두려운 삶의 극단 속에서 어느 한쪽에도
정신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갈등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자폐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할
때 부모의 이러한 태도는 자폐아의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차라리 진흙탕
같은 자폐아의 세계에 몸과 마음을 던지는 것이 어머니의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아이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폐아는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일까요?
자폐 현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제 3자들에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 가운데 하
나가 자폐아는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폐현상에 대해서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자칫 자폐아의 발전 방향을 왜곡시킬 수도 있는 잘못된
편견입니다. 자폐아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 슬픈 음악을 배경으로 깔면서 진행
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마치 자폐아가 어떤 종류의 외부적인 영향으로 스스로 세상
을 거부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결국에는 '과연 언제쯤 자폐아가 마음의 문을 열
고 세상으로 나오게 될지 기대해 보겠습니다'는 식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실 자폐아는 열리고 말고 할 마음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
니다. 만약 자폐아가 정말로 마음의 문이 닫힌 사람이라면 자폐아 교육의 핵심은 마음의 문
을 열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자폐아 교육의 방향이 이런 식으로 잘못 설
정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폐아는 마음 자체가 형성되지 못한 사람들이
기 때문에 자폐아 교육의 핵심은 당연히 자폐아에게 먼저 마음을 만들어 주는 데 있어야 합
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의 자폐아에게 먼저 마음을 만들어 주는 데 있어야 합니다. 하
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의 자폐아 교육은 이러한 핵심 요소를 파악하지 못해서 그런지, 마음
을 만드는 교육보다는 마음을 열게 하려는 식의 겉도는 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자폐아
에게 마음을 만들어 주는 근본적인 교육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교육도 별 효과가 없
을 것이며 종국에는 허상을 쫓아가다 시간만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제
는 매스컴이나 제 3자들도 자폐 현상에 대해서 단순히 감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추론
적인 접근을 지양해야 합니다. 보다 냉철하고 현실적인 논리로 자폐 문제에 접근할 때 진정
한 해결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왜 시각 우선자인가
이 책에서 나는 자폐아를 '시각 우선자'라 부릅니다. 이는 어떠한 학문적인 정설로 굳어진
것도 아니며 많은 사람이 그렇게 부르는 보편적인 개념 또한 아닙니다. 그렇지만 상협이와
같이 생활하겠다고 결심을 굳히면서부터 나는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하였고 그 결과 현대
의학에서도 파악하지 못하는 자폐아의 개념을 나름대로 '시각 우선자'라는 용어로 정의했습
니다. 물론 특수 교육 학자나 신경정신 계통의 전공자도 아닌 제가 이렇게 규정하는 데에
많은 무리가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폐아에 대한 뚜렷한 연구 성과가
없는 지금, 자폐아 연구를 위한 다양한 가설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 개념을 사용합니다.
*원인의 발견 내가 상협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처음 느꼈던 점은 상협이가 언어의 의미
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7년이 되도록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언어를 자율적으로 획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강제로라도 우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상협이가 왜 기본적인 인지와 언어를 획득
하지 못했는지 그 원인을 찾을 작은 단서도 없었고 그저 막연히 정신병이나 뇌의 이상에 관
련된 문제일 거라고만 추측할 뿐이었습니다. 당시에 상협이는 공부하는 도중 시도 때도 없
이 딴 생각의 세계로 들어가서 혼자 이상한 몸 동작을 하며 계속 웃기만 했습니다. 나는 이
러한 상협이의 정신을 공부에 집중시키려고 같이 놀아 주기도 하고, 먹을 것으로 유인하기
도 하고, 때로는 뺨을 때리기도 하면서 무척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
면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은 동네 공원에서 축구를 하는 1시간 동안 계속해서 혼
자 정신 없이 웃어 댔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통제할 수가 없어서 낙담했던 기억도 있습니
다. 왜 웃냐고 물으면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몇 마디를 했는데 아마 TV 광고를 생각하고
웃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나름대로 상협이의 정신을 붙잡으려 애쓰며 하
루에 8∼10시간 정도의 교육을 계속하였습니다. 1997년 상협이는 2년째 일반 유치원에 다니
고 있었는데 유치원 생활이 상협이의 능력과는 거리가 있어서 별다른 도움이 안 되는 것 같
았습니다. 그래서 나와의 교육 시간을 좀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그 해 10월에 유치원을 그
만두게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3∼4개월이 지나자 상협이에게 놀랄 만한 의미 있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동네 공원에서 상협이와 축구를 하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상협이가 떨어진 나뭇잎을 보고 "아빠, 낙엽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들었던 최초의 의미 잇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차를 타고 가면서 창 밖을
보고 '아빠, 길거리예요, 아빠 정류장이에요, 아빠 공사중이에요'라며 눈으로 본 현실을 명사
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피자를 먹으려는 상협이에게 햄버거만 사 주자 "모자라요"라
고 말했고 어린이 공원에 갔을 때는 "다 왔어요"라고 하는 등 몇 가지 느낌을 언어로 표현
하기도 했습니다. 이로부터 한 달 정도 후에 상협이가 갑자기 등에 보자기를 걸치고 손엔
장난감 칼은 든 채 갑자기 나타나서는 "나는 죽음의 신이다. 모두 물러서라!"고 외치며 돌아
다녔습니다. 이것은 공부하던 동화책의 내용 중 하나를 흉내낸 것이었는데 아마 상협이가
칼을 체대로 손에 들어 본 것이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그 동안 상협이와 같이 동화
책을 읽거나 들으면서 동화 속에 표현된 행동을 내가 모두 직접 시범을 보여 주었는데, '칼
을 휘두르다'라는 내용에 대해서도 내가 직접 상협이에게 칼을 잡는 방법과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몇 번 행동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에 상협이의 그런 행동이 가능했으리라 생각합니
다. 또 한 달 정도가 지난 그 해 초겨울, 처음으로 상협이가 스스로 상빈이와 같이 놀기 시
작했습니다. 놀이의 내용은 단순히 같이 서랍장 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는 것과 침대 위에
여러 물건을 올려놓고 서로 치고 받는 정도였는데, 어쨌거나 상협이가 스스로 상빈이와 같
이 놀려고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상빈이와 같이 놀면 아빠가 공부를 시키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으려는 수단으로 상빈이와 같이 놀았던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동생과 같이
노는 것을 보니 부모로서는 퍽 기분이 좋았습니다. 상협이가 보여 준 일들은 일반적으로 상
협이가 약간씩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건들이었을 뿐, 특별한 사항을 발견한 경우
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의 경우들은 확실히 상협이의 특별한 모습을 발견하는 중요한
사건들이었습니다. 아마 그 해 11월경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공부하는 도중에 문득 상협
이가 '아빠, 절벽은 무엇이에요? 아빠, 암행어사는 무엇이에요?'와 같은 질문을 퍼붓기 시작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드디어 상협이가 내용을 알고 질문하기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하나 성의껏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계속해서 쉴새 없이
질문을 하는데다 어떤 질문은 자꾸 되풀이하길래 대답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상협
이는 스스로 '절벽은…이고, 암행어사는…이고, 움집은…이에요'라고 정확히 말하는 것이었습
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협이가 질문한 내용은 스스로 생각해서 물어 본 것이 아니라, 동
화책의 아래 부분에 조그마한 글씨로 어려운 말을 설명해 놓은 것을 보고 그대로 물어 보았
던 것입니다. 그런데 70권의 책에 있는 천여 개의 단어를, 그 단어뿐만 아니라 설명하는 말
까지 통째로 외우는데 어느 책의 몇 쪽을 말하면 그 곳에 있는 단어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
게 정확히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자폐아를 다룬 책에 보면 자폐아들이 특별한 재능을 가지
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데, 상협이도 외우는 것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사건이었습니
다. 그러나 그것이 상협이의 본질을 깨닫게 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 다음 달에는 상협이가
방에 있는 대나무 바구니를 한참 동안 처다 보더니 갑자기 무섭다며 도망갔던 일이 있었습
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혹시 어떤 그림이나 영상이 생각나서 그러지 않을
까 하는 생각에 상협이에게 바구니를 보고 생각나는 그림을 가져와 보라고 말했습니다.(전
에는 이런 지시 이행이 불가능하였으나, 11월경부터는 일반적인 지시를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상협이가 가지고 온 책의 제목을 보니까 <콩쥐 팥쥐>였는데 상협이가 가리킨
그림은 팥쥐 어머니가 콩쥐를 방 안에서 야단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방 한 구석에는 대나
무 바구니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바구니의 모양이 우리 집에 있는 바구니와 비슷했던 것입
니다. 그 때 나는 순간적으로 상협이의 본질을 깨달았습니다. 상협이가 그토록 몰두하던, 아
니 시달리던 것이 실체는 바로 그림(영상)이었습니다. 정상인은 대부분 팥쥐 어머니가 콩쥐
를 혼낸다고 인지하는 느낌의 부분만을 기억할 뿐이지, 그림의 배경으로 그려진 작은 바구
니까지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전혀 느낌의 인지가 없는 상태에서 그림 자체만을 보
는 시각 우선자만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어서 상협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 보았더니
상협이는 1천 5백여 개의 그림들이 각각 어느 책의 몇 쪽에 있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
니다. 단순히 그림의 주요 내용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내용의 배경이 되는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임금님이 사냥가는 장면에서는 말이 몇
마리이고 군사가 몇 명이 뒤따르며 군사들이 무슨 옷을 입었고 나무는 몇 그루가 있으면 어
떤 색깔의 집 몇 채가 있었는지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억하는 게
아니라 영상을 열화 필름처럼 그대로 떠올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순간 탬플 그랜딘
(Temple Grandin)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논리적이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
라, 눈으로 본 영상으로 생각하는 시각 사고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글을 별다
른 의미 없이 읽었는데 이제 보니 상협이가 바로 '시각 사고자' 혹은 '시각 우선자'라는 생각
이 들었던 것입니다. 상협이의 핵심을 깨달은 첫번째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내가 몇 개월 동
안 인지와 언어를 교육해서 어느 정도 의사 소통이 되고, 상협이도 기초적인 논리적 체계가
생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상협이가 옛날의 모습 그대로였다면 자신이 '그
그림이 생각나서 무서웠다'라고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그러한 사실을 모
르고 지냈을 것입니다. 이후 상협이가 음식점 화장실에서 <보물섬>에 나오는 해적 그림이
그려진 맥주 포스터를 보고 무서워서 소변도 보지 못한 채 후다닥 도망온 적도 있습니다.
어느 겨울날에는 공원에서 나뭇가지를 보더니 또다시 무서워하면서 도망가길래 집에 와서
왜 도망갔느냐고 묻자 그림책을 가져와서 보여 준 적도 있었습니다. 그 그림에는 겨울철에
꽃을 꺾으려고 산에 올라가다 쓰러져 죽은 소녀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산에 앙상한 나무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고원의 나무들을 보자 바로 이 그림이 생각났던 것
입니다. 또 한 번은 주방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무서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
는 <장난감 병정>이란 동화책에 나오는 장난감 병정이 빗물에 휩쓸려 하수구에 떠내려가는
그림이 생각나서였습니다. 그 떠내려가는 장난감 병정의 표정을 상협이가 한동안 굉장히 무
서워했는데 그 표정은 내가 봐도 이상하리만치 기분 나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
으면서 상협이는 자폐아들 특유의 이상한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없어졌습니다. 상협이가 마
지막으로 보인 이상한 행동은 1998년 3월경에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등하교길에 있는 나무가
무섭다며 보름 정도 그 길로 다니지 못하고 다른 길로 다닌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
도 있었습니다. 그 해 여름 어떤 학습지에 일기 쓰는 내용과 함께 '3월 16일, 수요일'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상협이는 끝까지 수요일을 금요일로 고쳐 적으려고 했습니다. 이상해서 혹시
나 하고 달력을 찾아보았더니 3월 16일이 바로 금요일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몇 번 더 날짜
를 물어 보니 상협이는 그 날짜의 요일을 달력에 있는대로 정확히 말했습니다. 내가 상협이
에게 날짜와 시간의 개념을 가르쳐 준 때가 1997년 10월경이었는데, 상협이는 10월 이전 날
짜의 요일은 몰랐지만 11월 이후 날짜의 요일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시각적 능력
을 이용하여 달력을 사진으로 찍어서 머리에 기억하듯이 날짜의 요일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 주일쯤 지난 후에 우연히 3월 16일에 무엇을 했느냐고 상협이에게 물
어 보았는데 상협이는 그 날 한 일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무엇을 공부했고 점심은 무엇을 먹었으며 반찬은 무엇이었고 저녁 밥은 무슨 반찬으로 무엇
을 먹었는지, 밤에는 무슨 학습지 어느 부분을 공부했고 상빈이와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하
루의 생활을 모두 거침없이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자세히 확인한 결과 피상적인 외
형만 기억하는 것이었고 구체적인 내용까지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얘를 들어 학습지
의 <수학>이냐 <슬기로운 생활>을 공부한 것은 기억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물어보면 모
른다고 대답하는 것이 아마 기억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구체적인 내용을 기
억할 능력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복잡한 내용을 얘기하기 싫어서 피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자폐아는 몇 년 전 결혼식에서 보았던 할머니의 옷 색깔을 기억하는
것과 같은 시각적 이상 현상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생활한 구체적인 내
용을 모두 기억하는 것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로서는 이것을 어떻게 이
해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세상에는 정상적인 '논리 우선자'와 자폐아 교육의 핵심은 뇌의 구
조 자체를 바꾸어 시각 우선자를 논리 우선자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몇 달 뒤였습니다. *시각 우선자의 현상 상협이를 그토록 강하게 휘어잡고 있는
'시각 우선 성향'을 이해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도 많이 해 보고 상협이를 자세히 관
찰도 해 보았으며, 내가 시각 우선자라 생각하고 행동해 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해
보았습니다. 물론 내가 의학 계통에 지식이 전혀 없는 문외한이고 뇌나 신경계통에 대해서
는 더더군다나 말할 자격도 없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의학계에 계시는 분들이
노력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단지 자폐아를 둔 부모로서 상협이가 보여 주는 현상을 관찰하
면서 느낀 점과 거기에 대한 생각을 몇가지 적어 보고자 합니다. *컬러 TV 자폐 현상은
1940년대 미국에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자폐아의 행동은 워낙 이상해서 만약에 그 전에도
자폐 현상이 있었다면 의학계에서 발견하지 못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 지금
약 4만 명의 자폐 아동이 있다고 한다면, 1960년대에도 최소한 2만 명 정도의 자폐 아동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말을 하면서도 지능이 모자란 바
보스러운 아이는 한둘 있었지만 자폐 현상을 보이는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자폐 현
상은 시기적으로 컬러 TV의 출현과 관계가 깊은 것 같습니다. 아이가 시각 우선 성향을 가
지고 있더라고 강력한 컬러 TV의 영향에 노출되지 않으면 자폐 현상을 잠재되어 있을 뿐,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서 정상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컬러 TV의 강
력한 영상에 노출되면서 시각 우선 성향이 더욱 강화되어 지금의 자폐아와 같은 논리성, 현
실성이 전혀 없는 아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시대적으로 보아도 자폐아의 출현 시기와 컬러
TV, 비디오 등의 출현 시기는 비슷합니다. 일본에서도 강력한 영상의 만화 영화를 보다가
수백 명의 아이들이 집단적으로 경기를 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한 자폐 문제는 선진국의 문제이지 TV가 없는 아프리카 오지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쨌든 어린아이에게 강력한 영상의 TV를 보여 주는 것을 삼가 하는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폐아들이 좋아하는 영상 일반적인 자폐아와 마찬가지로 상협이 역시 여러
광고에 지나친 집착을 보이고 정신 없이 뛰면서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 보니
광고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액션 영화의 영상에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
어 <스피드> 같은 종류의 영화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상협이의 반응은 즐거움,
기쁨, 슬픔 등이 논리적인 감정이 아니라 시각이 주는 원초적 쾌감이었는데 상협이에게 시
각적 쾌감을 주었던 화면의 성격을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속도감 있는 화면이 상협이에게
강한 시각적 쾌감을 주었습니다. 대다수의 자폐아들이 자동차를 매우 집착하는데 그 이유는
자동차를 가지고 놀 때 자동차의 빠른 질주나 폭파 장면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쾌감을 맛보
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는 감각의 균형 파괴에서 나오는 자폐아의 여러 가지 이상 현상
들 중의 하나인데 자동차뿐만 아니라 광고의 빠른 화면에서도 쾌감을 느낍니다. 자폐아는
자기가 떠올리는 영상과 자기의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폐아는 위험에 대
한 원초적인 자기 보호 본능마저도 없기 때문에 자동차에 부딪히면 다치고 아프다는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없습니다. 대신 눈으로 보이는 자동차의 속도에 따른 쾌감이 우선하기 때문에
길을 가다 갑자기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뛰어가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둘째, 폭파 장면이나
높은 데서 추락하는 것을 보면 절제할 수 없는(절제라는 사회적 언어가 적절하지 않지만)
쾌감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언덕을 구르다가 폭파되는 장면을 보면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으로 심하게 도취되어 시각적 쾌감을 느낍니다. 더구나 높은 데 올라가서 뛰어내
리려는 성향을 거의 맹목적이어서 계단이나 놀이터의 높은 데만 보면 무조건 올라가서 무작
정 뛰어내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무섭다거나 아프다는 현실적이고 기초적이고 본능적인
느낌마저 없는 상태에서 뛰어내린 후에는 아프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미친 듯이 웃어댑니
다. 이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에 대해 굉장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며, 머리 속으로
떠올린 추락하는 장면을 그대로 실행하려는 습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각 우선적
인 성향이 동물적인 보호 본능보다도 더욱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무서움이나 아픔의 느낌
도 없이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침대에서 몇 시간씩 쉬지 않고 뛰는 것도 이러
한 상하 운동이 주는 감각적인 쾌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셋째, 우스꽝스러운 화면
이나 표정에 대해서도 관심이 큽니다. 광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시각적으로 강한 효과를
주는 독특한 행동이 나오는 광고가 많은데, 자폐아는 이러한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에 쾌감
을 느낍니다. 정상적인 모습에서 어떤 느낌을 가지려면 그 화면이 주는 의미에 대해 이해해
야 하지만, 자폐아는 정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연속극 같은 화면에 대해서는 마치 현실
에 대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전자 오락을 할 때에도
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일부러 죽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죽는 순간에 오락의 주인공이
보여 주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더욱 쾌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즉 현실 생활과 같은 속도
나 표정의 화면에 대해서는 그것을 이해하거나 논리적으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우스꽝스러운 화면에 대해서는 시각적인 느낌을 가지는 것입니다. 넷째, 특
정 화면이나 특정 인물에 대해서는 무서움이나 공포감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엇에
대해서 무서움을 느끼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는데 점차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무엇에 대해서
무서움을 느끼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시각적 쾌감은 화면을 보고 느끼는 1차적인 감각인 반
면, 무서움은 무섭다라는 최소한의 기본적 느낌을 바탕으로 한 2차적인 느낌입니다. 따라서
초기의 심각한 자폐 상태에서는 무섭다라는 느낌마저도 가질 수 없지만, 약간이라도 기초
인지가 이루어지면 무섭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TV에서 어느
여자 탤런트만 보면 무서워하며 허둥지둥 방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걸어잠그고 한동안 밖으
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상협이에게 왜 도망 갔냐고 물었더니 아줌마가 아이를 때렸다고 대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 탤런트는 연속극에서 가정 주부 역을 맡아 자기 아이를 혼내
면서 엉덩이를 때리는 역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상협이는 그 장면을 본 이후로 그 탤런트
를 무서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TV와 현실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상협이로서는 눈앞에 무
서운 아줌마가 보이는 것이 무척이나 공포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다섯째, 특별히 설명하기
어려운 보통의 화면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거나 무서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 화
면이 전에 보았던 동화책이나 만화의 그림과 비슷하다고 느끼고 동화책이나 만화의 그림을
영상으로 떠올리며 쾌감이나 무서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TV의 영상이 연결
고리가 되어 비슷한 다른 장면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여자 탤런트에 대한 무서
움이 2차적인 인지에 의한 무서움이라면, 지금 얘기하는 무서움은 1차적인 시각에 의한 무
서움입니다. 초기에는 보통의 화면에서 느끼는 경우와 같은 무서움을 주로 느끼지만 인지
발달에 따라 특정 화면이나 특정 인물에 대해 느끼는 무서움으로 점차 발전해 갑니다. 1999
년부터는 상협이가 몇몇의 연속극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면서 즐거워하거나 무서워했는데
그 대상은 멜로 드라마가 아닌 코미디식 연속극이거나 약간의 폭력이 가미된 추리 드라마
등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단편적인 화면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해하고 나서 반응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상협이는 5∼10분 정도의 대사를 특유의
기억력으로 다 외워서 연속극이 끝난 후에 각각의 주인공들이 했던 대사와 동작을 흉내내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무서워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드라마와 현실을 구별하
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줄거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자폐아에게는 단편적인 화면 구성
능력에서 연속적인 화면 구성 능력으로의 발전을 뜻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여섯째, 화면과 함께 경쾌하거나 재미있는(비정상적인) 음악이 나오면 즐거워합니다. 자폐아
는 소리나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소리를 들었을 경우 그 소리의 의미를
파악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것을 거의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 소리가 기분 좋은 소리
인지 기분 나쁜 소리인지만을 느끼고 반응하는데 특히 TV광고에서 나오는 특별한 음악이
나 말투에 관심을 갖습니다. 즉 화면의 동작이나 소리가 정상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대해서
는 반응하지 않고 비정상적인 동작이나 소리에 대해서 쾌, 불쾌의 반응을 보입니다. 상협이
가 다섯 살 때에는 공원 같은 곳에 가면 우리는 언제나 긴장을 해야 했습니다. 왜냐 하면
주위에서 어린 애기가 울기만 하면 상협이가 참지 못하고 어김 없이 달려가서 그 애기를 주
먹으로 때리는 통에, 애기가 우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가지 못하도록 상협이의 손을 꽉 잡고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참 동안 계속되다가 1997년에 교육을 시작하면서
애기가 우는 까닭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며 따라서 애기가 울면 우유를 줘야 한다는 것을 계
속해서 가르친 결과 더 이상 우는 애기를 때리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소리에 대한 쾌, 불쾌
의 느낌은 정상인하고 크게 다른 점은 없으나 음악이나 노래가 주는 의미를 파악하지는 못
하고 단순히 소리의 느낌에 따라 반응했습니다. 어떤 소리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화면과 같
이 나올 경우에는 그 소리와 화면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소리가 화면의 즐거움
이나 무서움을 배가시켜 주는 효과음의 역할을 한 까닭입니다. 문제는 자폐아의 이런 행동
들이 논리를 근거로 하는 느낌이나 인지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단지 시각적인 감각의
불균형에 근거를 둔 것이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는 영원히 논리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다
만 시각 우선자의 이상한 행동만을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시각 우선자의 특징 여기에 쓰는
시각 우선자의 특징은 이 책의 핵심 내용이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부분입니다. 결론
부터 말하면 자폐아는 '시각 우선자'입니다. 자폐아란 말도 일반적으로 그렇게 표현하니까
나도 그렇게 말하는 것뿐입니다. 굳이 말해서 자폐아가 원래는 내부적인 인지, 논리의 능력
은 있으나 어떤 내외의 요인으로 인하여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꺼리는 아이를 가리킨다면,
시각 우선자는 기본적인 인지, 논리도 없어서 스스로 접촉을 꺼리고 말고 할 능력조차도 갖
추지 못한 아이를 말합니다. 어떤 책에 자폐아에는 시각 우선자, 청각 우선자, 촉각 우선자
등이 있다고 쓰여 있는데 저는 그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청각, 촉각, 후각 등의 이상 현상
은 시각 우선의 현상으로 인한 인지와 논리의 마비에서 오는 오감의 불균형 현상 때문에 나
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순서대로 적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시각
우선 현상의 발생 및 뇌의 지배 ②인지, 논리 기능의 마비 및 현실 이해 기능 마비 ③이로
인한 오감의 전체적 불균형 발생 ④촉각, 청각, 후각, 미각의 불균형으로 인한 과민 반응으
로 '자폐 행동'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행동 및 시각의 세계만을 머리에 떠올리고 그 영상에
자기를 일치시키려는 단순한 행동 출현 ⑤이성적인 인지, 논리의 교육 불가로 인한 '자폐 인
간'으로의 고착 어떤 사람이 10여 년 동안 동물들과 같이 숲 속에서 생활한 정글 소년이 자
폐아일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잇는데 나는 이 이야기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동물들은 인간과는 다른 나름대로의 본능과 생활 규칙이 있고 인간은 동물들의
그러한 본능과 생활 규칙을 가지고 잇지 않으므로 인간이 동물들과 같이 생활하려면 동물들
에게 적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지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각 우선자들은
이러한 최소한의 인지 능력마저도 없어서 만약에 자폐아를 정글에 놓아 두면 잡아먹히거나
굶어 죽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나름대로의 본능과 지능에 따라 살아가는데 이
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기 보호가 있다는 것입니다. 속담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
이 있습니다. 이는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최소한의 자기 보호 본능 및 번식 본능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동물들 중에서 이러한 자기 보호 본능이 없는 것은 자폐아
하나뿐인 것 같습니다. 비록 저능아라 하더라도 대응의 수준 차이가 있다 뿐이지 자기 보호
본능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폐아가 자기 보호 본능이 없다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예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돌진한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도
아픈 것을 모른다. ·공격을 받는 경우에 방어 대응을 못 한다. ·자기를 보호해 주는 '어머
니'에 대한 개념이 없다. ·심할 경우 배고픔에 대한 감각과 식욕마저도 없다. 그렇다면 도
대체 이 시각의 영향이 얼마나 강하길래 이토록 동물적인 본능마저도 마비시켜 버릴 정도로
강렬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시각의 영향을 폭발물로 치자면 핵
폭탄에 비유할 만합니다. 핵폭탄이 일정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것처럼, 시각에의 집착은 인간
의 뇌를 초토화시킴으로써 뇌를 마비시켜 버립니다. 마비시킨다는 것은 죽여서 없앤다는 것
보다는 '뇌의 작동을 정지'시켜 버린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뇌가 현실을 향해서 계속하여 작
동함으로써 인지, 감정을 획득하고 이것을 논리적으로 언어에 연결시킴으로써 정상적인 인
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각의 수렁에 빠지면 하루 24시간 내내 뇌는 시각저인 영상만
을 떠올리기 때문에 스스로는 수렁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을 분만 아니라, 억지로 빠져
나오게 하려 해도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현실의 논리의 세계보다는 시
각의 세계가 더 재미있고 유혹적인 것 같습니다. 그리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뇌의 논리적
인 작동이 정지되었다는 것이지 결코 그 기능이 죽어 버렸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1997년 말경, 다른 자폐아의 아버지와 가벼운 토론을 한 것이 생각납니다. 과연 자폐아는 선
천적으로 뇌의 어떤 장애 때문에 정상적인 발전이 불가능한가 아니면 그 어떤 장애를 극복
하면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자폐아 부모들이 공통으로 가
지는 의문이지만 당시에는 어차피 서로가 경험과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에는 분명히 자폐아의 뇌는 죽은 것
이 아니며 단지 시각의 세계에 가로막혀 뇌의 논리적인 활동이 정지되었을 뿐이라는 강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물론 많은 자폐아를 접해 보지 않고 단지 상협이 한 명에 대한 경험만
을 가지고 내린 결론이기 때문에 한계는 있을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 뇌를 논리적으로 작동
하여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각 우선자의 현실 반응 강
도 정상적인 보통 사람의 경우 하루 20시간, 1년이면 약 7천 시간정도, 즉 하루의 거의 대부
분의 시간 동안 정신을 현실에 집중한 채 논리적으로 뇌를 작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현실의
상황이나 소리, 말 등에 대한 인지→이해→판단→대응의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 학습함으로
써 거의 동시에 하나의 체계로 연결시켜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완성하기까지
대략 4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면 약 3만 시간의 뇌의 작동 시간이 필요하며, 네 가지의 단계
별로 나누어 보면(물론 딱 나누어서 말하는 것이 무리지만) 단계 당 약 10만 시간의 뇌의
작동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뇌의 작동을 통하여 기존 사실의 반복 학
습 및 새로운 사실의 습득이 이루어지고, 수십억 혹은 수백억 개의 정보가 머리에 입력되어
그 결과로 대응이라는 형태로 출력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폐아가 정신이 시각의 세계에서
빠져 나와 현실의 세계를 주시하는 시간은 하루에 불과 3∼4시간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
3∼4시간도 열심히 간섭해야만 가능한 시간이고 적당히 노력할 경우에는 1∼2시간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곱 살의 자폐아가 오전중에는 유치원에 가고 오후에는 특수 교
육을 2시간 동안 받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고작 정신 연령이 두세 살 정도인 일곱 살의 자
폐아에게 일반적인 유치원 교육은 거의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대화
하지도 못하고 유치원의 학습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교사가 계속 일 대
일로 교육하면서 자폐아의 정신을 집중시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유치원에 다닌다는 것은 말
이 그렇다 뿐이지 실제로는 내버려진 것하고 별반 다름이 없습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정상
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무엇인가 느끼고 발전하기를 바라겠지만 그것은 단지 부모의 바람
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자폐아는 학습면에서나 정신면에서 유치원 교육을 수용 할 능력이
없습니다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느끼고 배울 정도의 인지 능력이 있다면 애당초 자폐아
가 아닌 것입니다.(물론 자폐 현상의 정도가 약하고 초기부터 집중적인 교육을 실시하여 객
관적으로 보아 유치원 교육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면 유치원 교육을 받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 살부터 일곱 살 정도까지는 자폐 현상이 최고도에 달하는 극심한 정신적 혼란기
이기 때문에 일곱 살 정도에 일반 유치원 교육을 가치 있게 수용할 능력을 가진 자폐아는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별로 가치가 없는 일반 유치원 교육을 계속 수행할
경우, 5시간의 유치원 생활 중에서 정신이 현실로 집중되는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특수 교육을 받는 시간 역시 말이 2시간이지, 사실상 교육에 집중하는 시간은 1시
간도 되지 않습니다. 나도 자폐아들이 특수 교육을 받는 것을 몇 번 보았지만 교육 시간을
자폐아들이 시각의 세계에 빠져 버리면 교사들도 속수무책입니다. 물론 노련하고 실력있는
교사의 경우에는 좀더 세련되게 자폐아의 정신을 현실로 유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시각 우선자라는 불리한 조건과 정상아에 비해서 뇌의 짧은 작동
시간을 가진 자폐아들에게 정상인들이 느끼는 정도의 강도로써 현실에의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자폐아의 정신을 시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돌려 놓기 위해서는
정상인들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육체적, 정신적 충격이 있어야만 합니다. *시각 우선자와 논
리 우선자 정상인은 태어나면서 정신을 현실의 세계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을 갖게
되며 느낌과 인지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를 연결하여
응용력이 생기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귀로는 말을 듣고 이해하고 입으로는 감정 표현의
말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상적인 인간의 과정을 거친 사람을 논리 우선자라고 한다면 시
각 우선자는 논리 우선자, 즉 정상적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이어서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논리 우선자가 될 수 없고 시각 우선자 특유의 시각적 영상 속
에서만 평생을 지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3년 전에 애인과 같이 강변의 카페에서 데이트를
했을 경우에 정상인인 논리 우선자는 주변의 풍경이 어떠했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분
위기가 어떠했고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머물렀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기억이 남는
반면, 시각 우선자인 자폐아는 탁자가 몇 개였고 색깔은 무엇이었으며 벽면의 광고판에는
어떤 고아고가 붙어 있었는지 하는 시각적 기억만 머리속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시각 우선
자는 논리적인 것을 인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전혀 기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자폐
아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필요한 것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쓸데없는 것들은 잘도 기억한다고
한탄하는데, 그 이유는 자폐아가 논리적인 의미의 기억은 하지 못하고 시각적인 기억만 하
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시각 우선자는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각
우선자를 현실의 세계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필히 뇌의 근본을 바꿔 논리 우선자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각 우선자를 논리 우선자로 만들기 위해 뇌의 근본, 혹은
정신의 근본을 바꾸어 주는 작업을 일반적으로 '자폐아 교육'이라고 부릅니다. 자폐아 교육
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폐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올바른 교육 방법의 설정 등 너무나 많
은 시각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교육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
는 실정입니다.
정해진 길
아내에게 상협이가 다섯 살 때의 일 중에서 가장 먼저 생각 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내 물음에 아내가 맨 처음으로 대답한 것이 '정해진 길'이었습니다. 다른 자
폐아와 마찬가지로 상협이도 길을 걸을 때는 한 번 가는 길이 정해지면 그 길로만 가려고
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보도의 선을 밟으면서 걷다가 건물 주위에 있는 경계선을 따라서 걷
고, 그 다음에는 정원의 선을 밟으면서 걷다가 다시 보도의 경계선을 밟으면서 목적지까지
갑니다. 말하자면 신기할 정도로 인도와 차도 사이의 경계선이나 줄만 밟고 다녔습니다. 이
렇게 한번 정해진 길을 1년 365일 동안 거의 100센티미터의 착오도 없이 정확하게 밟고 가
는 것입니다. 만약에 길의 중앙으로 끌어당기면 마치 용수철처럼 순식간에 다시 경계선으로
몸을 옮기곤 했고 이 길에서 약간만 차이가 나도 온갖 발악을 하기 때문에 감히 다른 길로
끌어당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지긋지긋한 일이었습니다. 또 일요일에는 동물원
에 가고는 했는데, 동물원에서도 상협이는 동물을 보는 순서가 있어서 그 순서대로만 가야
무사히 동물 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동물 구경을 하는 것이 아니고 동물
원의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목적이어서 상협이는 동물에게는 눈길을 주지 못했습니다. 한
번은 상협이의 손을 억지로 끌고 다른 길로 갔었는데 아무리 맛있는 것을 사 주겠다고 해도
소용이 없고 계속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비명만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억지로 손을 끌어당기
고 몸을 밀면서 1시간 동안 몇 곳을 돌아다녔는데 참으로 낙담스러운 광경이어서 다른 사람
들 보기도 민망했습니다. 이런 상협이에게 처음으로 스스로 다른 길로 걸어가도록 한 것은
1997년 가을이었습니다. 내가 상협이와 같이 생활을 시작하면서 오후에 1시간씩 동네 공원
에 가서 공놀이를 했는데, 공원으로 가는 길이 A와 B의 두 길이 있었습니다. 처음 한 달 정
도는 상협이가 원하는 대로 A의 길로 갔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B의 길로 가서 상협이
에게 B의 길로 오지 않으면 아이스크림을 사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상협이는 끝
까지 A 길로만 걸어갔고 나는 실제로 아무것도 사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사 주지
않자 이윽고 상협이는 비명을 지르며 발악했지만 끝까지 사 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이 몇 번 계속되자 상협이가 드디어 며칠만에 울먹이며 B의 길로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엄밀히 말해서 강제와 억지로 상협이에게 다른 선택을 하도록 한 것일
뿐, 스스로의 판단으로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어서 큰 의미는 없었습니다. 이후 1998년
에 어느 정도 인지 능력이 좋아지면서 오락실에서 오락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그 때
에야 비로소 오락실로 가는 A와 B의 두 길 중 어느 길로도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
에는 길을 가는 목적에의 인지가 전혀 없어서 그토록 정해진 길만을 고집했지만 오락이라는
목적을 인지하게 됨으로써 정신이 오락의 즐거움에 집중됨에 따라 A와 B 어느 길도 개의치
않게 된 것입니다.
흘겨보기
자폐아들이 어느 정도 발전하면 사물이나 TV를 볼 때 직접 보지 않고 옆으로 흘겨보듯이
보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자폐아가 사물을 보면서 즐거움과 무서움을 동시에 느
끼기 때문입니다. 자폐의 초기 상태에서는 단순히 시각적 쾌감과 무서움만을 느끼기 때문에
사물이나 영상이 시각의 쾌감을 자극하면 미친 듯이 좋아하고, 시각적으로 무서움을 느낄
경우에는 도망가 버리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자폐아가 어느 정도 발전해서 약간의 이해력이
생기면 영상에 대하여 즐거움과 무서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그 사물을 쳐다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이럴 때 자폐아는 사물이나 영상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눈을 옆으로 돌린 채
마치 숨어서 보듯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자폐아가 느끼는 무서움이 단순히 시각 그 자체가
주는 1차적인 무서움인지 혹은 사물이나 영상이 원인이 되어서 다른 무엇인가를 떠올리고
무서움을 느끼는 2차적인 무서움인지는 각각의 경우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때 그때 물어 보
지 않는 한 자세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상협이도 가끔씩 TV를 보다가 눈을 반쯤 감고
고개를 돌린 상태에서 무서워하는 얼굴로 TV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이는
TV 화면의 특징 중의 하나는 화면에 얼굴이 크게 잡혀서 그 인물의 눈빛이 강렬하게 보일
때입니다. 그러한 화면은 대개 연속극에서 볼 수 있는데 이 때 상협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면 옛날처럼 도망가지 않고 움츠리면서라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시각 우선자의 특징에서 비롯한 시각적인 무서움도 있으나 또 다른 이유는 아직은
TV의 화면과 현실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이 모자라가 때문입니다. 어떤 부
모들은 자폐아의 이런 행동을 안과 부분의 이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해서 고치려고 하지
만 내가 보기에 이런 현상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며 단기적으로 이러한 행동을 막을 방
법도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이러한 행동을 막으려 한다면 자폐아가 어떤 사물이나 영상을
보고 느끼는 무서움 자체를 느끼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근본적으로 무서운 느낌 자체를
막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나 역시도 상협이가 TV를 보면서 이런 행동을 보일 때 상협이에
게 TV는 무섭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단기간 내에 상협이의 행동이 수정되
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 인지 형성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현상은 없어지리
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상협아, 아빠 눈 보고 말해
우선 눈맞춤의 정의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합니다. 정상인이 상대방과 대화할 때 흔히 눈
을 보며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끔씩은 상대방의 눈동자를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상대방의 얼굴 근처를 보면서 이야기할 뿐, 똑바로 눈동자를 보며 이야기하
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본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 의도가 있
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자들끼리는 상대방이 자기를 쳐다보았다는 이유로 싸
우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상대방이 자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경우 상당히 불쾌하고 곤혹
스러움을 느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자폐아 역시 서로 눈동자가 마주치는
것에 대해 곤혹스러워하고 무서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상협이는 아직 그림과 현실을 확실
히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림에서 느끼는 쾌감이나 무서움을 마치 현실에서 느끼는 것과
거의 같은 강도로 느낍니다. 그래서 무서운 그림을 볼 경우에는 꼭 그림에 그려진 사람의
눈동자를 손가락으로 가리고 봅니다. 결국 내가 말하는 '눈맞춤'이라는 것은 '적절히 상대방
의 얼굴 근처를 쳐다보는 것'이지 결코 눈동자와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친다는 것은 아닙니
다. 사람이 아닌 물체에 대해서는 '목표의 물체에 적절히 눈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눈맞춤
입니다. 상협이가 다섯 살 쯤 되었을 때와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상협이와 처음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 몇 번인가 상협이와 눈맞춤을 강제로 연습해 본 적이 있습니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앉아서 서로 눈동자를 쳐다보는 것이었는데 상협이는 싫어하면서 억지로 몇 초
동안 나의 눈동자를 쳐다보다가는 다른 곳으로 눈동자를 돌려 버렸고, 결국은 매번 별다른
소득 없이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교육은 내가 자폐아를 잘 알
지 못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교육이었습니다. 정상인은 상대방과 대화할 때 아주 지루하지
만 않다면 몇 시간 동안 그 대화에 집중하면서 눈맞춤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시각
우선자와 같이 시각이나 촉각이 예민하지 않아서 다른 감각의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이며,
또 몇 시간 동안 대화를 이끌어 갈만한 충분한 논리와 느낌과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
다. 같은 정상인이라도 열 살 정도의 어린이라면 그렇게 계속해서 몇 시간 동안 대화를 이
끌어가기는 힘들 것입니다. 왜냐 하면 논리와 정보가 어른보다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몇 시간 동안 친구와 함께 놀 수는 있을 것입니다. 재미없고 딱딱한 논리보다는 놀이가 훨
씬 즐겁기 때문입니다. 자폐아가 상대방과의 눈맞춤을 할 수 없는 이유는 현실에 집중하기
에는 그보다 더 강력한 시각적 감각의 방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집중할
아무런 논리적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상인도 현실이 아닌 다른 생각에 집
중할 경우에는 눈의 초점이 허공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폐아와 눈맞춤이 가능
하려면(눈맞춤의 시간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현실에의 집중을 방해하는 시
각 우선 현상이 없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자폐아는 선천적으로 시각 우선자이기 때문에 이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음엔 논리적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논리적인 인지가 없는 상
태에서는 현실에의 집중이 불가능하지만 인지와 관심의 폭이 커지면 그만큼의 눈맞춤이 가
능합니다. 예를 들어 인지가 향상되어 주사위 놀이에 즐거움과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다
음과 같은 정도의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아빠, 주사위 놀이 하자." "싫어, 아빠는 윷놀이 하
고 싶어." "아냐, 난 주사위 놀이 할 거야." "그러면 공부 끝나고 주사위 놀이 하자." "싫어,
먼저 주사위 놀이 하고 나중에 공부하자." 즉 현실에의 인지 정도가 높아져서 현실의 놀이
가 시각의 즐거움보다 더 크다고 느낄 경우에는 억지로 강제하지 않아도 위와 같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1분여 동안 자연스럽게 눈맞춤이 가능해집니다. 주사위 놀이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도 관심의 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눈맞춤은 그만큼 길어집니다. 그러면 위와 같은
기본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즐거운 것을
느낄 수 있는 기본적인 인지와 소리를 듣고 말뜻을 이해할 수 있는 청각적 능력, 그리고 기
본적인 인지와 느낌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내가 억지로 상협
이와 눈맞춤을 하려고 마주앉았던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무
도 심지 않고 열매부터 딸 생각을 한 것입니다. 설령 억지로 눈맞춤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눈동자를 쳐다본다는 거서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이는 눈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
라 너무 오랫동안 눈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초점을 맞추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라는 말처럼 눈맞춤의 정
도를 보면 자폐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만 이것을 강제로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아닌 물체에 대해서도 같은 이치로 말할 수 있습니다. 정상인 어른이 10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초점을 맞추고 호랑이를 쳐다볼 수 있는 이유는 호랑이가 멋있다거나
신비스럽다거나 신기하다거나 무섭다거나 하는 논리적 인지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느낌 때문에 호랑이가 걷는 모습, 우는 모습, 먹는 모습 등을 호기심을 가지고 오랫
동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자폐아가 동물원에서 코끼리에게 눈의 초점을 전혀 맞출 수 없
는 이유는 '길다, 짧다, 크다, 작다, 무섭다, 귀엽다' 등의 기본 개념 및 비교 개념이 아예 없
거나 아직 성숙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코끼리를 보라고 눈물로 호소해도 자폐아
는 코끼리를 보지 않습니다. 코끼리에게 눈의 초점을 맞출 인지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러한 자폐아에게 기초적인 인지 교육을 좀더 충분히 한 다음 동물원에 간다면 다만 10초 정
도라도 코끼리에게 눈의 초점을 맞출 것이고 인지가 성숙될수록 눈의 초점을 맞추는 시간은
길어질 것입니다. 초기의 자폐아라고 해서 전혀 눈맞춤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발소의 광고판과 같은 시각적 쾌감을 얻을 수 있는 것에는 나름대로 눈맞춤이
잘 이루어집니다. 단지 논리적이거나 감정적인 인지가 필요한 사물에 대한 눈맞춤이 잘 이
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과의 눈맞춤은 상대적인 인지 능력이 없을 뿐만 아
니라 눈맞춤에 대한 원초적인 무서움이나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더욱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눈맞춤은 단순히 눈동자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현실의 그 무엇에 집
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눈맞춤이 오랫동안 잘 된다는 것은 자폐 상태에서의 탈출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맞춤은 자폐아에게 있어 핵심적이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눈맞
춤은 자폐아의 인지나 느낌 등이 발전하는 정도에 따라 함께 발전하는 것으로서 자폐아 발
전의 척도입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 사람이 밤에 한국의 번화가에 갔을 경우에는 현란한 간
판의 색깔보다는 각각의 가게가 무엇하는 집인지 알려 주는 글자에 먼저 관심이 가고 눈맞
춤이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갈비집, 오락실, 다방이라는 글자의 내용과 의미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한국 사람이 밤에 외국의 번화가에 갔다면 간판의 글자보다는 휘
황찬란한 간판의 시각적 효과에 먼저 관심이 갈 것입니다. 이는 외국어로 쓰여 있는 간판의
내용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글자라는 목적물에 먼저 눈맞춤이 되는지, 아니면 불
빛이라는 시각적 형상에 먼저 관심이 가는지 하는 것은 과연 글자라는 목적물을 인지하고
상상할 정신적인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문제이기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내가 종종
'상협아, 아빠 눈 보고 말해'라고 하는 말 속에 는 상협이에 대한 애틋함과 함께 현실 세계
로의 더 많은 귀환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자폐아도 꿈을 꿀까요?
아직도 상협이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상협이가 잠을 자면서 꿈을
꿀까 하는 것입니다. 상협이가 어느 정도 좋아진 1998년 후반부터 가끔씩 상협이에게 어제
밤에 자면서 무슨 꿈을 꾸었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미래의 희망을 의미
하는 꿈과 잠자면서 꾸는 꿈을 구별하지 못했던 상협이는 "독립군이 되고 싶어요" 또는 "의
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하곤 했습니다. 아직 꿈에 대한 개념이 없거나 꿈을
꾸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후 상협이가 상당히 좋아진 1999년 후반부터는 "귀신 꿈
을 꾸었어요" 혹은 "강도 꿈을 꾸었어요"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두 자지의 꿈을
구별은 하는 것 같았지만, 정말로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시각적으로 무서움을 느꼈던 일
들을 그냥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정말로 꿈을 꾸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흔히 어
린이는 다섯 살 정도까지는 사진처럼 단상의 꿈을 꾸고 여섯 살 이후부터는 영화처럼 연속
적인 꿈을 꾼다고 하는데, 상협이가 꿈을 꾸는지 아직 꿈을 꾸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꿈을 꾼다면 사진과 같은 꿈을 꾸는지 영화와 같은 꿈을 꾸는지는 더욱 알 수 없
습니다. 꿈 이야기를 하는 상협이에게 재차 "꿈에서 귀신이 어떻게 했니?"라고 물어 보면
"귀신이 나를 잡아먹어서 무서웠어요"라고 대답하며 무서운 표정을 짓곤 하는데, 내가 귀신
표정을 지으며 "상협이를 잡아 먹어야지"라고 하면 반은 재미있어 하고 반은 무서워 하면서
도망치곤 합니다. 단정할 순 없지만 내 생각으로는 책에서 보았던 무서운 내용들에 대해서
가끔씩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즈음 잠자는 상협이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면 대개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그저 편안하게 잠을 잡니다. 이럴 때면 아직 꿈을 꾸지 못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상협이가 꿈을 내용을 인지할 능력이 되면 다시 한 번 물어
볼 생각인데, 과연 그 때 상협이가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
습니다.
IQ가 궁금하다
상협이와 같이 생활하면서 느꼈던 점들 중의 하나는 자폐아와 저능아는 서로 차이점이 많
으며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개념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저능아는 기본적으로 논리
우선자이기 때문에 느낌, 감정, 기초 인지 등의 개념을 자율적으로 획득할 수는 있지만 좀더
높은 개념을 인지하기는 어려운, 즉 IQ가 낮은 사람인 반면 자폐아는 가장 기본적인 느낌,
감정, 기초 인지 등의 개념조차 없는 시각 우선자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시각 우선자인 자폐
아를 논리 우선자로 바꿀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자폐아가 논리 우선자로 바뀌었을 경우에 자
폐아의 IQ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하는 것입니다. 내 경험으로는 완전한 논리 우선자로의 전
환은 불가능하지만 시각과 논리가 양립하는 정도까지는 전환될 수 있으며, 이렇게 전환되었
을 경우에 보통 사람의 IQ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협이는 어느 정도 논리 우선자
로서의 기초는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상협이의 지적인 능력은 시각 우선자의 특성
에 맞게 뛰어난 부분만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의 적응력을 보면서 일반적인 학
과 수준을 그런 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자폐아는 저능아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내 생각에 상협이가 학교의 학습을 따라갈 수 있는 이
유는 예습이나 복습을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학습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느낌, 기초 인
지, 감정 등)을 비교적 튼튼하게 쌓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즉 기초적인 논리적 자생력
을 얻으면 어느 정도는 학교의 학습을 스스로 따라갈 수 있지만 논리적 자생력이 없는 상태
에서 오직 학습만을 교육하면 효과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에는 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본래 IQ검사라는 것이 논리 우선자의 논리적 능력
을 측정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를 시각 우선자에게 적용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왜냐
하면 시각 우선자에게는 근본적으로 논리 능력이 없으며 굳이 있다면 본래 자기의 능력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능력인데 굳이 그것을 측정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
다. 시각 우선자인 자폐아의 지적인 능력 즉 IQ를 측정하려 한다면, 먼저 시각 우선자를 논
리 우선자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어느 정도 논리 우선자의 기초를 만들
어 준 다음에 실시해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논리 우선자에로의 전환 정도가 높아
지면 높아질수록 IQ도 올라갈 것입니다. 상협이도 초기에는 IQ가 60이나 70 정도라고 예상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장난에 불과한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상협이의 IQ를 측정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굳이 지금 IQ를 측정해 보
면 전에 예상했던 것 이상은 나올 것 같으며 앞으로 논리 우선자의 기초가 더욱 확립되면
IQ는 더 올라갈 것이라 생각됩니다.
할아버지 냄새가 고약해요
상협이가 다섯 살경부터 여덟 살 때까지는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할아버지 집에 가자고 말만 하면 아무 곳에나 드러누워서 가지 않겠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당황하곤 했습니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차를 타는 것은 더욱 싫어해서 함
께 차를 탈 때마다 무척이나 곤혹스러웠습니다. 겨우 달래서 차를 같이 타도 상협이는 꼭
앞자리에만 앉으려고 했기 때문에 상협이가 앞자리에 않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내와 같
이 뒷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덟 살 때부터는 상협이가 할아버지 집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 집에서 상협이가 좋아하는 탕수육을 사 주었고 저녁에는 할아버지와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게 했으며 가끔씩은 할아버지가 장난감을 사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
후에는 오히려 상협이가 먼저 할아버지 집에 가자고 졸라 댈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할아버
지에 대한 상협이의 태도가 바뀐 데에는 탕수육, 아이스크림, 장난감 등의 유혹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내가 상협이와 같이 생활한 이후로 집안에 있으면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이를
피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또 할아버지 집까지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마음껏 밖을 보면서 편안
하게 시각의 세계를 즐기려는 것도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거나 할아버지에 대한 상협이의
태도가 바뀌어서 할아버지 입으로의 나들이가 한결 편해지기는 했습니다. 상협이가 어느 정
도 자기의 느낌이나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된 1998년 여름, 상협이에게 도대체 왜 옛
날에는 그렇게도 할아버지 집에 가기를 싫어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상협이가 대답하기를
"할아버지 냄새가 고약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노인들에게서는 어느 정도 노인 냄새
가 납니다. 나도 어렸을 때 시골 할아버지 집에 가면 싫은 냄새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
나 무의식중에서도 할아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사항이나 권위 때문에 차마 말은 못 하고 마
음 속으로만 할아버지의 냄새가 고약하다고 생각했을 따름이었습니다. 즉 코로 냄새를 맡는
후각적 감각보다는 할아버지에 대한 인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논리적 능력이 더 컸기 때
문에 냄새를 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상협이는 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인
지는 없고, 오직 고약한 냄새가 나는 후각적 불쾌감만이 강력하게 존재해서 그토록 할아버
지를 피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후에 상협이의 인지 능력이 종합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할
아버지 집에 가면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거나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등의 생각을
함으로써 후각적으로 느끼는 냄새에 대한 과잉 반응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졌습니다. 그
리고 이제는 보통의 정상인이 취하는 일반적인 행동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데 심지어 할아버
지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합니다. 상협이가 옛날에는 우는 아이만 보면 가서 주먹으로 때
렸지만 이제는 아이가 우는 이유는 배가 고파서라는 논리적 사실을 인지 함으로써 우는 아
이를 보아도 참을 수 있게 된 것이나, 옛날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호두까기 인형이
생각나서 무서웠지만 이제는 물이 흐르는 것은 수도꼭지가 열렸기 때문이라는 논리적 사실
을 인지함으로써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이나 모두가 같은 맥락입니다. 위의 몇 가지 예에서
처럼 자폐아가 보이는 이상하고 과격한 행동들의 대부분은 인지 능력의 부족과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강해진 감각의 불균형에서 기인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행동들을 근원부
터 없애기 위해서는 인지 능력을 향상시켜서 지나치게 과도한 감각 능력을 줄여줌과 동시
에, 감각보다 인지 능력을 강하게 느끼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
결될 수 있습니다.
전화를 받는다는 것
얼마 전에 친척 한 분이 우리 집에 전화를 했는데 마침 집에 혼자 있는 상협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친척분은 상협이가 제법 대답도 잘하고 상황 설명도 조금은 하는 것을 보니
많이 발전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했습니다. 물론 그분의 이야기에 약간의 과장이 있
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상협이가 전화 받는 것이 옛날보다는 좀 더 나아진 것 같기도 합니
다. 그러나 상협이는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의 전화나 혹은 잘못 걸려온 전화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미숙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좀더 일반적인
인지가 확장된 뒤에나 수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전에 상협이에게 전화 받는 방
법을 교육하려고 하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자폐아의 발달 정도를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이기는 하지만,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인위적으
로 몇 마디 가르쳐서 앵무새처럼 말만 되풀이하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
문입니다. 그리고 잠재 능력이 풍부해지면 자기 스스로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을 수 있을 거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역할은 다만 상협이의 잠재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일 뿐이고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상협이도 전화 받을 능력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
로 상협이가 스스로 타인과 통화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기대했던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 기쁜 일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으려면 시
각은 전혀 배제된 상황에서 상대방의 목소리만으로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잇는 능력도
있어야 하고, 또 듣고 이해하는 능력과 함께 적절히 말로 표현하는 능력도 필요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기상의 상대방에 대한 인지 능력도 갖추어야 합니다. 따라서 시각 우선자인 자
폐아에게 전화 받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곧 자폐 상태에서의 1차 탈출이라고 볼 수 있을 정
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임 돼지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 상협이의 몸무게는 40킬로그램 정도여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제법
비만인 셈입니다. 모든 비만의 원인이 그렇듯이 상협이 또한 과식해서 그렇게 된 것인데 나
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몇 가지 마음 아픈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아홉 살 이전까지의
과식입니다. 이 때까지 상협이는 최소한의 자기 보호 본능도 없는 상태였으므로 생활 주변
의 여러 가지 위험 요소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달리는 차에 돌진하거
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좀더 솔직하게 제 마음을 표현하자면 언제 죽
을지도 모르는 생명을 잠깐 보관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으라는 마음에서 짐승처럼 과식을 해도 제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리석
지만 그게 부모 마음이었거든요. 둘째로 자폐아의 일반적인 특성이 지나치게 포식하면서도
야채는 거의 먹지 않고 육식만을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통닭집을 발
견하면 곧바로 뛰어들어가 다른 손님 상에라도 보이는 통닭을 먹거나 자리에 앉아서 .통닭
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억지로 끌고 나오려 하면 통제할 수 없
는 상황이 벌어지고 최소한의 타협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별 도리 없이 통닭을 사 줄 수밖
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집에서도 벌어지지만 부모로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
니다. 셋째는 그 원인이 나에게도 있다는 것입니다. 상협이가 현실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유일하게 식용이므로 나는 그 식욕을 교육에 사용한 것입니다. 얼핏 동물원의 동물 훈
련이 연상되듯이 당근과 채찍의 수단으로 먹는 것을 이용한 내 마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상협이는 비만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과거에
비해서 식탐이 조금이 줄어들고 있어서 더 이상 뚱뚱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부모로서는
여러 가지 살배기 묘책을 찾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막연하고 마땅히 상협이의 살을 뺄 수 있
는 방법이 없어서 태권도나 공놀이 등을 계속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요즘 내가 상협이에게
뚱뚱해지니까 음식을 먹지 말라고 이야기하면 상협이는 1분 정도 체조하는 시늉을 하고 "살
을 뺐으니까 음식을 먹어야지"라고 말하며 슬금슬금 식탁 쪽으로 다가갑니다. 아직은 뚱뚱
하다는 개념보다 먹고 싶다는 욕심이 우선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학교에서 상
협이의 별명이 '임 돼지'인데, 이에 대해 상협이 스스로가 기분나빠하며 자기의 별명은 '임
돼지'가 아니고 '태권 왕'이라고 우기는 것을 봐서는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또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도 느끼고 있는 듯합니다.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
겠지만 앞으로 상협이가 뚱뚱하다는 것과 날씬하다는 것에 대해 좀더 충분히 현실적으로 인
지하면 그 때는 한번 본격적으로 살 빼는 작업을 시도해 볼 계획입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면
자기의 자식이 자폐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부모들은 하나같이 낙담한 나머지 깊은 회한
에 빠지며 이러한 상황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 위해 조급해집니다. 때문에 부모들은 일반
적이지 않은 특별한 무엇인가를 통해서 상황이 역전되기를 바라지만, 사실 내가 갑자기 프
랑스어를 프랑스 사람처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자폐아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을 열거나
정상아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폐아의 부모들은 자폐아의 작은 행동들
에 대하여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희일비합니다. 예를 들어 자폐아가 잠깐 엄마와 눈맞춤을
하거나 병아리를 유심히 쳐다보거나 안녕과 같은 말을 하면 마치 자폐아가 자폐 상태에서
탈출한 것처럼 기뻐하고, 자폐아가 단순 반복 행동을 계속하거나 길바닥에 나뒹굴면 금방
또 낙담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폐아가 엄마나 병아리를 쳐다본 것이 정상아처럼 사랑이나
귀여움이라는 논리적 개념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단지 엄마나 병아리를 시각 우선자의 시각
적 영상과 일치시키려는 것이 불과할 수도 있으며 안녕이란 말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수십만
개 단어 중의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리 크게 기뻐할 일은 아닙니다. 또한 자폐아가 단
순 반복 행위를 하거나 자해 행위를 하는 것도 자기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의 행동이자 자기 기분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리 크게 슬퍼할 일도 아닙니다. 자폐아를 판단
할 때 중요한 것은 자폐아의 단편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폐아에게서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이
고 종합적인 느낌입니다. 만약 부모가 이러한 사실을 망각할 경우에는 자꾸만 자폐아에게
부모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단편적인 행동을 하도록 교육 방향을 설정하는 우를 범할 수 있
습니다. 이렇게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것에 대하여 집착할 경우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
는'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자폐아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의 하나하나의 행동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칫 이러한 관심
이 지나칠 경우에는 오히려 자폐아에게 피해를 주어서 특별한 몇 가지는 잘 하면서도 일반
적이며 상식적인 것들은 제대로 못하는 아이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뿌리 없는 나
무처럼, 세워 놓으면 금방 넘어지는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아무런 소득이 없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폐아에게 중요한 것은 부분적이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며 기
초적인 커다란 줄기의 근본이라는 것을 교육자는 특히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언제나 말을 할까?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은 논리 우선자인 정상인들은 자연스럽고 쉽게 획득하는 언어를 시각
우선자인 자폐아는 각각의 단계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지만 획득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상인은 정신이 스스로 성장하지만, 자폐아는 교육자가 자폐아의 정
신을 만들어 간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자폐아의 정신에 관한 모든 면에서 논리적이고
세심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가끔씩 자폐아의 부모들 중에서 '과연 우리 아이는 언제
나 말을 할까?' 하고 탄식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추운 느
낌이 있어야만 '아이 추워'라는 말을 할 수 있고 높다고 인지해야만 '하늘이 높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아프다는 느낌이 있어야만 '아파요'라는 말을 할 수 있고 크다고 인지해
야만 '코끼리가 크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자폐아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느낌과 인지를 스스
로는 획득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자폐아가 일
곱 살쯤 되어서 '엄마, 안녕, 사자, 토끼'와 같은 명사 몇 마디를 할 수 있게 된 경우 일부
자폐아 부모들은 이제야 우리 자식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고무되는데 이 역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자폐아에게 억지로 몇 년 동안 단어 훈련을 시키면 아무리 자폐아라고 해도 명
사 몇 마디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낌과 인지를 바탕으로 스스로 느껴서 나오는 말
이 아닌, 억지로 가르친 말은 언어 장애자가 아닌 자페아에게는 단지 의미 없는 약간의 입
놀림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러한 명사 몇 마디가 스스로 자생력을 가지고 발전하는 일은 절
대로 없기 때문입니다. 즉 자폐아에게 억지로 명사 몇 마디를 하게 하려고 이곳 저곳 쫒아
다니는 일은 비록 자폐아가 몇 마디의 명사를 말하게 될지라도 전혀 가치 있는 일이 아닙니
다. 몇 년 동안 언어의 아무런 발전도 없이 아무에게나 '안녕하세요'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다니는 자폐아에게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그야말로 더도 덜도 아니고
다만 앵무새와 똑같을 뿐입니다. 자폐아의 부모가 '과연 우리 아이는 언제나 말을 할까?'라
거나 '우리 아이는 엄마, 안녕, 사자라는 말을 해요'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자
폐아는 절대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 아이는 언제나 말을 할까? 하고 생각하는 것
은 자기 자신이 불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불어 공부를 하지도 않으면서 불어를 잘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또 '우리 아이는 엄마, 안녕, 사자라는 말을 해요'
라며 기뻐하는 것은 중학생인 자기 자식이 'apple, tiger, This is a book'이라는 기초 영어
를 하는 것을 보고 마치 영어를 아주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정상인은
이미 인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단순히 인지를 외국어 쪽으로 전환하기만 하면 외국어를 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자폐아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자폐아는 언어를 배우기 전에 먼저 인지
형성 작업을 하고 이를 다시 언어로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에, 정상인이 단순히 외국어를 배
우는 것에 비해서 몇 배의 노력이 뒤따라야만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라면 끓이는 법
일반인들은 물론 자폐아에 대한 전문가들조차도 때론 자폐아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는 부분
도 있습니다. 그 단적인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언젠가 나는 어느 특수 교사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야유회에 가서 자폐아에게 라면 끊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
는데 집에 와서는 라면을 끓이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자폐아에게는 일반화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며 따라서 가능하면 같은 라면 끓이는 방법이라도 한 곳에서만 가르칠
게 아니라 집, 산, 바다 등 다양한 곳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뜻 듣기에는 일
견 맞는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의 근본적인 잘못이 있습니다. 첫째
는 '라면 끓이는 법'에 대한 문제입니다. 자폐아는 정신적인 나이와 육체적인 나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육체적인 나이가 일고여덟 살이 되었다 하더라도 당연히 정신적인 나이인 두세
살을 그 아이의 나이로 보아야 맞습니다. 상식적으로 두세 살 아이에게 라면 끓이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렇게 육체적인 나이와 정신적인 나이를 혼동하는 겨우는 비단
의사나 특수 교사뿐만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많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일고여덟 살로 보이지
만 두세 살 때 배워야 할 것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나도 상협이의 정신 나이가 육체 나이와
다르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함께 지내가 보면 가끔은 눈에 보이는 모습만 보
고 정신 나이에 적절하지 않은 지시나 대화를 유도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자폐아는 정신 나
이와 육체 나이가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정신 나이에 적절하면서도 발전적
인 교육을 하도록 하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둘째는 '가르쳤다'는 것에 대한 문제입니
다. 가르쳤다는 것을 정상인의 입장에서 본 것일 뿐, 사실 자폐아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
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고등학생이 수학 시험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볼펜을 손으로 돌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학생에게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물어볼 경우,
과연 그 학생이 무엇을 했다고 대답해야 정상적인 대답이 되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의 정신
과 육체가 하는 일이 서로 다를 때 과연 정신이 한 일이 그 사람이 한 주된 일인지, 아니면
육체가 한 일이 그 사람이 한 주된 일인지 묻는 물음입니다. 만약 그 학생이 그 시간에 손
으로 볼펜을 돌리고 있었다고 대답하면 우리는 그 학생이 농담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학생은 그 시간에 수학 시험을 보고 있었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즉 정신이 한 일과
육체가 한 일이 다를 때 정신이 한 일을 주된 것으로 생각하는 게 정상인의 상식적인 생각
일 것입니다. 정상아와 자폐아가 함께 야유회에 갔을 때 정상인이 생각하는 하루 생활은 이
렇습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9시에 버스를 탔고, 11시에 자연 농원에 도착하여 12시에 라면
끓이는 법을 배웠고, 오후 1시에 식사를 했으며 2시부터 4시까지 무, 배추, 당근 등 농원의
채소를 견학했고, 4시부터 5시까지 오후 시간을 가졌으며 5시 30분에 버스를 탔고, 7시에 집
으로 돌아왔다. 이에 반하여 같은 하루를 보낸 자폐아의 하루 생활은 이렇습니다. 아침 7시
부터 8시까지 자동차 선전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8시부터 10시까지 파워 레인저를 생각했으
며 10시부터 1시까지 콩쥐팥쥐를 생각하고 1시부터 2시까지 영화 <스피드>를 생각했으며 4
시부터 7시까지 아이스크림 광고를 생각했다.(사실 '생각했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고 각각
의 영상을 '떠올렸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 것입니다.) 즉 자폐아의 정신적인 하루 생
활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하루 생활과는 전혀 다릅니다. 정상인은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기 때문에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고 따라서 일반화 작업이 쉬운 것입니다. 그러
나 자폐아에게 하루 생활에서의 행동들은 마치 학생이 수학 시험 시간에 볼펜을 손으로 돌
린 것처럼 의식적인 의미의 이해가 없는 것이며 다만 시각적 영상만이 기억날 뿐입니다. 그
런 정신 상태인 자폐아에게 라면 끓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폐아
의 실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정상인의 착각인 것입니다. 물론 자폐아가 물을 끓이거나 스
프 봉지를 찢는 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돌아서면 잊어버릴, 즉 정신이 거의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단순한 강제에 따른 어렴풋한 몸 동작이었을 뿐입
니다. 물론 자폐아의 정신을 라면 끓이는 현실에 강하게 집중시킨 다음 가르치면 훨씬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자폐아가 시각적 쾌감을 얻을 여지가 없는 실내에
서 탈출하여 시각적 쾌감이 가득한 실외로 나가면 자폐아의 정신 상태를 통제하기란 현실적
으로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보호자가 실외에서는 현실적으로 자폐아에게 적절한 견제나 채
찍을 행사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신을 현실에 집중시키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이와
같이 자폐아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이 잘못되면, 잘못된 논리를 기초로 하는 자폐아 교육 역
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치료인가 교육인가
자폐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특히 뇌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나는 전혀 알지 못
합니다. 다만 현재까지는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뇌의 분석 측
면에서가 아니고 상협이의 행동에 대한 관찰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라는 전제 하에 나는 자
폐가 '증'이나 '병'이 아닌 '성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치 축구 선수가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인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듯이 자폐아 역시 시각에 대한 선천적인 감각을 가지고 태어
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은 평생 동안 가지고 살아가는 거이지 마치 맹장 수술을 해서
맹장을 떼어내는 것처럼 단기간에 치료되고 말고 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
시 먼 미래에 유전 공학이 발전해서 운동에 소질이 있게 하는 유전자를 찾아내어 그 유전자
를 제거함으로써 운동 선수를 운동에 소질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그림에 소질 있게 하는
유전자를 찾아내어 그림에 소질 없는 사람에게 이식함으로써 그림에 소질 있는 사람을 만든
다면 자폐아도 시각 우선 성향을 가지게 하는 요인을 찾아내어 제거함으로써 정상인이 되게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따라서 자폐아는 계속 그런 성향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정신병자와 애착 장애자 같은 경우에는 이미 정상저인
인지는 되어 있으나 외부의 상황과 자신의 의지에 의한 표현 방법이 사회적으로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 치료나 놀이 치료 등을 통해서 적절한 사회적 인간으로 만들어 주고 있
습니다. 그러나 자폐아는 아예 기본적인 인지조차도 갖추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기본
적인 인지를 갖추도록 해 주는 것에 대해 '치료'라는 말보다는 '교육'이라는 말이 적절하리라
생각합니다. 교육은 평생 동안 다방면에 걸쳐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인 반면, 치료는 일정 시
간 동안 정해진 방법으로 외부의 영향을 통해서 결과를 도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폐아
에 대한 수정 작업은 일정시간 동안 일정한 방법으로 외부의 영향을 준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일반적인 개념을 가르쳐서 내부의 역량을 키움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많은 양의 교육을 통해 자폐아는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시각 우선자에
서 논리 우선자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치료하고 교육해도 시각 우선 성향의 요
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완전한' 정상인과 똑같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좋아졌다는 개념
에 대해서도 정확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자폐아 교육의 철칙은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좋아
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폐의 상태가 심한지, 약한지, 복합적인지에 따라 발전의 속도가 다
를 수는 있겠지만 적절한 교육만 이루어지면 그만큼 자폐아의 정신을 발전합니다. 그러나
100을 기준으로 할 때 10만큼 좋아진 것인지, 30만큼 좋아진 것인지, 50만큼 좋아진 것인지
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판단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3이나 5만큼 좋아진 것도 좋아진 것이고,
70만큼 좋아진 것도 좋아진 것인데 그냥 좋아졌다고만 말하면 너무 추상적입니다. 자폐아가
상당히 좋아지는 정도까지 도달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짧은 기간 내
에 상당히 좋아질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이러한 행동이 줄어들었다든지, 뒤에서
불렀을 때 돌아본다든지, 차분해졌다든지 하는 것들이 바람직한 현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러한 것들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본격적인 발달 작업은 그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되
기 때문에 지나치게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며 객관적인 마음가짐과 노력이 계속해서 필요합
니다. A, B, C, D를 읽을 줄 안다는 것은 단지 영어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지 결코 영어의
완성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초기 교육의 어려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나 느낌은 전혀 없이 이상한 행동만을 계속하는 자식을 옆에
두고서 본다는 것 자체가 고문과 같은 고통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때로는 1분조
차 참기 힘들 정도로 울분에 몸부림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좌절과 낙담으로 범벅
된 끔찍한 세월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처음 상협이를 교육하던 때를 생각하면서 초기
교육에 대해 말해 보려 합니다. 초기에 교육하던 내용 중의 하나는 '눈으로 본다, 귀로 듣는
다, 코로 숨쉰다, 입으로 말하고 먹는다, 다리로 걸어간다' 등이었습니다. 그걸 매일 하루에
1시간씩 1개월 정도를 열심히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물어볼 때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상협이를 보면서 가슴이 불이 날 것 같은 속상함을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
다. 더군다나 그 당시에 상협이가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희망도 불투명해서 내가 공연히 쓸
데없는 짓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과 함께 이제 그만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도 가끔 할
정도로 상협이의 발전은 더디기만 해서 하루하루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전혀 합리적인 통
제가 되지 않는 아이와의 하루 생활은 지금 생각해 보면 억만금을 준다 해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피곤하고 답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쨌거나 하루
종일 상협이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교육한 결과 1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는 상협이가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진 일곱
살쯤부터 같이 생활하기 시작했으므로 그 전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인 다른 자폐아 어머니보
다 내가 더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상협이와 보낸 2년여의 생활은
너무나 짧은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 스스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상협
이에 대한 분석을 누구보다 철저히 했다는 것이고 그 발전 방법 또한 열심히 찾았으며, 내
스스로 주체가 되어서 직접 그것들을 철저히 시행했다는 점입니다. 자폐아 초기 교육의 목
표는 기본 인지와 느낌을 갖도록 해서 자폐아를 시각 우선자에서 논리 우선자로 전환시키는
기초를 닦는 것인데, 이러한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기울여야 하는 노력의 정도는 실로 엄청
나서 부모 아닌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만큼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
다. 부모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이 따르지 않으면 시행하기 어려울 정도입니
다. 밖에 나가기만 하면 갑자기 뛰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집안에서는 이상한 단순 행
동을 반복하면서 정신 없이 돌아 다니는 아이를 보면 과연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
지 정말 막막하기만 해서, 설령 부모가 자기 자식을 포기한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에 자폐아의 초기 교육에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고통이 뒤따릅니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이러한 초기 교육의 어려움과 전문성의 부족을 이유로 상당수의 자폐아
들이 부모가 아닌 전문 교육 기관에 맡겨지지만, 전문 교육 기관 역시 초기 교육의 어려움
때문에 정면 돌파를 못 하고 초기 교육의 가장 큰 목표인 논리적인 인간의 틀을 잡는 데 실
패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자폐아가 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지 못한 채 그저 원점에서만 맴
도는 한계 상황을 연출하다가 그대로 실패하고 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
서 부모조차도 하기 힘든 초기 교육을 부모가 아닌 교육자에게 100% 책임지라고 주장하기
엔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굳이 자폐아인 자기
자식을 자폐 상태에서 탈출시키고 싶다면 이토록 어려운 초기 교육의 70% 정도는 부모가
책임진다는 독한 마음가짐과 함께 구체적인 노력을 행동으로 옮겨야만 할 것입니다. 다행히
도 이렇게 험난한 초기 교육이라는 첫번째 산을 넘고 나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통제가 가능한 희망의 시기가 오게 됩니다.
식욕이라는 지푸라기
처음 상협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제일 난감했던 것은 다른 자폐아와 마찬가지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떤 방법으로 이 아이를 통제할 것인가였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시각의 세계
에 빠져들어 이상한 표정과 이상한 행동으로 산만하게 움직이는 것에 다만 난감할 뿐이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두 살 정도의 정신
연령에다 기초적인 느낌과 인지를 획득하지 못한 상태로 몸만 일곱 살이 되었으니 상협이
자신도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이해가 되고 동정도 가지만, 당시 나는 자폐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상협이를 정상인의 관점에서만 보았으니 그 속상함과 답답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
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상협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딱 한가지의 방법이 있었
는데, 그것이 바로 상협이의 강한 식욕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상협이가 현실의 세계에
대하여 제대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먹는다는 것에 대한 욕심 한 가지였는데, 바로 이
식욕이 상협이를 발전시키는 단 하나의 지푸라기 같은 구명줄 역할을 했습니다. 단순한 상
협이는 다른 통제는 아예 이해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 통제에 따를 수 없었지만 먹는 것에
대한 회유와 협박에는 지나칠 정도로 잘 따랐습니다. 오늘은 내일 무엇을 사 주겠다고 꼬였
으며 아침에는 저녁에 무엇을 사 주겠다고 꼬였는데, 그 하나를 먹을 욕심으로 상협이는 몇
시간씩이나 무던히도 잘 참고 따라주었습니다. 오전과 오후에 공부할 때는 말을 듣지 않으
면 점심밥이나 저녁 밥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는데, 상협이는 굶는다는 고통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굶지 않기 위해서라면 세상의 어떤 어려운 일도 할 정도로 강한 반응을 보였습니
다. 또한 다른 자폐아와 마찬가지로 상협이도 육식만을 좋아하고 채식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는데, 상협이가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엔 산에 가서 혼자서 채소만 먹고 살으라고 말하면
후다닥 정신을 바짝 차리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효과가 오래 가는 것은 아니어서 10∼20
분이 지나면 도로 정신이 풀어져 멍한 표정이 되었고, 또다시 먹는 이야기를 하면 정신을
차리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이후에 더럽고 깨끗한 것에 대한 느낌 인지가 생기고 향긋하
고 고약한 냄새에 대한 느낌 인지가 생기면서부터는 돼지 우리에 보내겠다느니, 혹은 하마
와 함께 냄새 나는 곳에서 살게 하겠다는 등의 협박에도 강한 반응을 보이면서 무서워하곤
했습니다. 그래도 역시 식욕에 대한 반응이 가장 강해서 지금도 어지간한 협박에는 별로 무
서워하지 않고 시큰둥한 표정을 짓지만, 먹는 것에 대한 유혹에는 쉽게 넘어가고 강한 반응
을 보입니다. 어느 부모든지 처음에 말이 통하지 않는 자폐아를 적절히 통제할 마땅한 방법
을 찾지 못하여 애가 타는 경우가 많은데, 상협이의 경우에는 그나마 식욕에라도 강한 욕구
를 느끼는 것이 불행중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상협이가 의미 있는 말을 하기 시
작한 부분도 주로 '피자 먹으러 가요' '더 주세요' '공부 끝나고 밥을 먹자' 등과 같은 식욕과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생활의 정신적 긴장
시각 우선자인 자폐아를 그냥 방치할 경우에는 하루 종일 정신이 시각의 깊은 늪에 빠져서
스스로는 빠져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할 때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흐트러진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자폐아 특유의 이상한 행동들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자폐아의
이상한 행동들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자폐아의 정신을 현실의 세계로 돌려 놓음으로써 정신
과 육체가 일치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폐아의 정신과 육체가 일치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폐
아의 정신과 육체를 일치시키는 꾸준한 작업은 '간섭'이라는 부모의 통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데, 자폐아는 이러한 간섭을 통하여 타율적인 '생활의 정신적 긴장'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자폐아로 하여금 비록 타율적으로라도 생활의 긴장을 계속 유지하게 해야 하는 까닭은 자폐
아가 생활의 긴장을 계속 유지할 경우에는 정신이 시각의 세계에 깊이 빠지지 않고 현실의
세계에 머물 수 있어서 현실적인 느낌, 인지, 감정을 이해하고 획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긴장감 없이 시각의 세계에 깊이 빠져 버리면 현실적인 느낌, 인지, 감정들을 의식할
수 없으므로 현실 세계의 이해가 불가능해 집니다. 간섭에 의한 생활의 긴장 유지란 말하자
면 자폐아의 뇌를 계속 해서 시각이 아닌 논리의 세계에 잡아 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
업을 계속할 경우 처음에는 자폐아가 논리적 사고에 따른 스트레스와 거부감 때문에 괴성을
지르거나 자해 행위를 하면서 괴로워 하지만, 어느 정도 논리적 사고에 익숙해지고 인지가
생기면 괴성을 지르거나 자해 행위를 하는 대신에 현실의 즐거움을 찾아서 이러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정상인은 심심하다고 느끼는 고통 때문에 즐거움을
찾는 반면에 자폐아는 논리적인 것에 대한 고통 때문에 쾌감을 느끼려고 합니다. 또 자폐아
는 생활의 긴장이 유지되면서 시각적 즐거움을 찾는 것보다 현실의 즐거움을 찾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느낌이 강화되지만, 생활의 긴장이 풀어지면 현실의 즐거움이 아닌 시각의 즐
거움에 탐닉하게 되므로 자폐아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상협이도 집에서 교육
도중에 10∼20분 정도의 자유 시간을 주면 교육의 긴장이 계속 유지되어 주사위 놀이, 동화
읽기, 공놀이, 총놀이, 동생과의 놀이 등 현실적인 놀이에 집중하지만, 자유 시간을 30분이나
1시간을 주면 소파에 눕거나 위인이나 탤런트 수십 명의 이름을 낙서장에 쓰거나 상가 건물
에 있는 수십 개의 상가 이름을 쓴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등 금방 시각적인 즐거움의 세계
로 빠져 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자유 시간의 길이에 따라 놀이의 종류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즉 상협이가 아직은 스스로의 의지대로 현실 세계에 정신을 집중시킬 능력이 없
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방치할 경우에는 정신을 집중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긴 시간 동
안 방치할 경우에는 생활의 긴장도가 떨어져서 시각의 세계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
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꾸준한 간섭으로 생활의 긴장을 유지해 주는 것이 필요하며, 이러
한 교육이 계속될 경우에는 언젠가는 스스로 자기의 정신을 현실 세계에 계속 집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상협이는 아직 장소나 시간에 따라서 생활의 긴장도에 큰 차이를 보이는
데, 예를 들어 집 안에서는 생활의 긴장이 어느 정도 유지되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집 밖으로 나가면 바깥 세상이 주는 시각에의 유혹들 때문에 긴장이 풀어져서 흐트러진 모
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2∼3일 동안의 여행이나 명절을 보내고 정신적으로 이
완된 후에는 논리적인 현실적 사고를 하는 것에 대하여 보통 때보다 더욱 짜증을 내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폐아에게 일상 생활에서 정신적 긴장을 꼭 유지해 주어야 하는
이유는 자폐아가 정신의 논리적 긴장으로 인하여 정신을 현실의 세계에 집중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긴장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현실적인 놀이의 즐거움
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수록 자폐아의 현실 이해, 다양성, 사
회성 등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8시간의 하루
자폐아가 과연 하루에 얼마나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확실한 임상적 근거를 가지
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자폐아가 하루에 6시간 정도의 교육을 계속
받으면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진다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있는 정도입니다. 나도 여러 자폐
아를 경험해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상협이와의 경험을 근거로
이야기한다면 하루에 6시간이 아니라 최소한 8시간은 교육해야만 자폐아가 상당히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8시간의 교육이라는 것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8시간 동안 가르친다는 것이 아니라, 자폐아의 정신을 시각의 세계에서 현
실의 세계로 전환시켜서 자폐아의 정신이 현실에 머무르는 시간을 8시간 이상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자폐아의 정신을 현실에 8시간 이상 집중하도록 한다는 것은
자폐아의 뇌를 하루에 8시간 이상씩 작동시켜 준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자폐아의 어머
니가 1시간 동안 외출 준비를 하면서 자폐아를 혼자 방치해 놓고 자폐아의 옷을 깨끗이 빨
아서 다리미로 다린 다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힌 후에 자폐아를 데리고 외출을 나간다고
할 경우, 겉으로 보기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자폐아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어머니가 자폐아와 함께 있는 시간 중에서 빨래,
음식 준비, 청소 등의 집안 일에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면 자폐아에게 8시간의 정신 집
중 시간을 확보해 줄 수 없습니다. 굳이 빨래를 해야 할 경우에는 비록 힘들더라도 자폐아
를 옆에 두고서 옷이 깨끗한지 더러운지, 바지인지 셔츠인지, 위에 입는 옷인지 아래 입는
옷인지, 옷이 긴지 짧은지, 무늬가 예쁜지 미운지 등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질문함
으로써, 자폐아의 정신을 빨래라는 현실에 집중시키도록 노력해야만 하루에 8시간 이상의
의미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정상인은 하루에 뇌가 24시간 작동한다는 것을 감안
하면 8시간도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자폐아의 정신을 하루에 8시간씩 현실의 세
계에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자폐아가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을 자기까지 누군가가 옆에
서 계속 간섭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자폐아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멍하니 눈만 뜬
채 자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자폐아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오늘 날
씨가 어떤지 아침에 우유나 신문이 왔는지 확인해 보고 다른 식구들은 무엇을 하는지 인지
시켜야 합니다. 또 세수를 할 때는 물이 차가운지 뜨거운지, 또는 비누 냄새는 어떤지, 샴푸
냄새는 어떤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은 어떤지, 식사를 할 때는 반찬의 종류가 무엇무엇이
고 재료는 어떤 것으로 만들었는지 하는 것들에 대하여 간섭해야 합니다. 이처럼 자폐아의
일상 생활에 대한 꾸준한 간섭을 통해서 자폐아가 현실의 세계를 인지하고 의식할 수 있게
하루 종일 노력해야지만 8시간 동안의 의미 있는 현실 세계 인지 교육이 가능합니다. 물론
초기에는 자폐의 정도나 종류에 따라서 이러한 현실에의 정신 집중을 심하게 거부하거나 스
트레스를 느끼는 자폐아도 있기 때문에 초반부터 너무 강하게 하지 말고 자폐아의 성격에
따라서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폐아가 이러한 현실에
의 정신 집중을 거부한다고 해서 그냥 놓아 두면 그 자폐아의 미래는 영영 기대할 수 없다
는 점입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폐아에 대한 정신적 간섭을 지속적으로
하고, 또 간섭하는 시간을 늘릴 때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질과 양
어떤 자폐아 부모는 이러한 의심을 가질 것입니다. '왜 똑같이 했는데 어떤 아이는 느낌의
인지를 획득하고 어떤 느낌의 인지를 획득하지 못하는가?' 이러한 의심에 대해서 나는 질과
양의 문제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자폐아 교육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완벽하게 이루어져야만
이 성공하라 수 있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질과 양의 측면에서 본다면 질적으로는 전인격체
적이고 단계적인,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종합적이고 인간주의적인 개념에 충실해야 할 것이
며 양적으로는 하루 12시간 정도의 노력이 투입되어야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에 어떤 자폐아 부모가 나에게 '왜 나는 실패했는데 당신은 성공했느냐'라고 물어본다면, 나
는 '나의 경우에는 당신보다 3∼5배 더 노력했다고'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사실 나의 노력은
'처절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나의 모든 것을 이 문제의 해결에 집중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폐아 교육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노력의 양이 100이라면, 일반적인 능
력을 가진 보통의 가정 주부가 가사 생활을 하면서 투입할 수 있는 노력의 양은 50을 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자폐아 교육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지만은 않은 이유는 이
렇게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질과 양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질과 양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물론 원칙적으
로 질과 양이 다 중요하지만 만약 둘 중에서 더욱 중요한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나는 '양'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질'은 비록 고품질의 질이 아니어도 많은 노력의 양으로 보충할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양이 모자랄 경우에는 아무리 고품질의 질로 노력해도 보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 하면 자폐아 교육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을 획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보
통의 사람이 가지는 일반적인 것들을 획득하는 데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사람
이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2만에서 3만 시간의 교육의 양이 바로 자폐아에게
도 필요한 교육의 양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교육의 질 역시도 중요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느낌의 교육이나 자연 지향적인 교육 등 인간성 회복의 교육이 된다면 양 날개를 갖추게 되
어서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공법으로 공격(?)
자폐아인 상협이에 대한 나의 교육 방법은 암기도 아니고 임시 방편도 아니며, 조건적인
것도 아니고 대안적인 것도 아닌, 철저하게 자폐아의 핵심부를 파고 드는 '정공법'입니다. 왜
냐 하면 정공법이 아닌 그 어떤 방법으로도 자폐아가 가지고 있는 시각의 세계라는 튼튼한
벽을 허물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록 힘들었지만 상협이의 벽을
정면으로 공격해서 허물어뜨리자 의외로 기대했던 것 이상의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처음
엔 이러한 스파르타식의 강인하고 힘겨운 작업이 혹시 상협이에게 지나친 스트레스를 주어
서 무엇인가 잘못된 결과를 도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지나 버린 나이까지도 별다른 큰 발전이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
로도 영원히 자폐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을 거라는 위기감에서 모험을 한 것입니다. 이러
한 강해군 속에서 상협이는 많이 힘들어했으나, 나는 계속 당근과 채찍의 방법을 병행하면
서 '인지와 논리'라는 무기로 '시각'이라는 거대한 성을 공격했고, 드디어는 그토록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시각의 성벽이 조금씩 깨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
이 자폐아 수정 작업의 1차 관문이었는데 그 성벽이 너무나 공고하고 튼튼해서 정공법이 아
닌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깰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내가 처음에 교과서에도 없는 이
런 방법으로 교육하는 것을 본 주변에선 상협이를 이상한 아이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말과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낸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심지도 상협이를 데리고
4∼5년 동안 특수 학원에 다녔던 아내조차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방법이라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로서는 자신이 나처럼 교육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간 나의 교육
에 따라 상협이도 과거에 비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 나의 분석과 판단에 자신이 있었던 이유는 상협이가 1997년
6월경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다니던 특수 언어 학원에서 상협이를 담당하던 교사가 실
력도 있고 상협이에 대해서 잘 파악하는 좋은 분이셨는데, 상협이에 대한 그 교사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분석이 나 혼자만의 독단적인 것
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으며, 올바른 판단을 기초로 했다면
해결 방법 역시 크게 어긋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도 생겼던 것입니다.
일대일로 교육하기
자폐아 교육에서 일 대 일 교육은 필수적인 기본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일
대 일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교육은 별다른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폐
아가 시각의 세계에 정신을 집중하는 정도는 매우 강해서 보통의 노력으로는 자폐아의 정신
을 현실의 세계로 돌려 놓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정신이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해도 곧바로 다시 시각의 세계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따라서 누군가 계속해서 자폐아의 정
신을 쉬지 않고 감시하면서 정신을 현실의 세계에 머물도록 해야만 어느 정도 자폐아의 정
신을 붙잡아 둘 수 있습니다. 자폐아가 어느 정도 발전해서 기초 인지, 느낌의 인지를 갖고
약간의 읽고 이해하기와 듣고 이해하기가 가능해지면 자폐아를 통제하기가 한결 쉬워집니
다. 그러나 초기에는 아무리 자폐아를 감시한다 해도 육체적인 충격을 주거나 식욕으로 유
혹하는 방법 등 육체적인 느낌을 통해서만 통제할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구나 정신적
인 느낌을 통한 통제는 거의 불가능해서 아무리 일 대 일의 교육을 실시한다 해도 역시 어
려움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육체적 통제는 현실적으로 부모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어
려움이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자폐아 여러 명을 한 사람의 교육자가 통제하
거나 교육한다면 자폐아의 외형적인 자세를 통제할 수는 있어도 자폐아 한 사람 한 사람과
의 정신적인 교류를 통한 통제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선 시각의 세계에 빠져
있는 자폐아의 정신을 현실의 세계로 돌려놓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 하면 외형적으로
는 비록 학습이나 놀이를 하는 자세를 보일지 모르지만, 정신의 세계는 시각의 세계에서 여
행하고 있을 뿐으로, 학습이나 놀이를 통한 실질적인 교육 효과는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다
만 자폐아가 기초 인지를 갖고 놀이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스스로 학
습이나 놀이에 어느 정도 정신을 집중 할 수 있으므로 교육자 한 사람이 서너 명의 자폐아
를 교육시키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역시 자폐아는 수시로 시각의 세계
에 빠지기 때문에 자폐아에 대한 세심한 정신적 통제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어쨌든 자폐아
의 초기 상태에서는 오직 일 대 일 교육을 통해서만이 자폐아의 정신을 현실의 세계로 돌려
놓을 수 있으므로 상당 기간은 필히 일 대 일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상협이는 학교에서
수학 시험을 보면 간단한 문제는 거의 다 맞는 편이나 복잡한 문제는 틀리는 경우가 많은데
학교에서 틀린 문제를 집에서 다시 풀어 보면 정답을 제대로 쓰는 때가 많습니다. 아직은
학교와 같이 열린 공간에서 누군가의 간섭 없이 그대로 두면 정신이 산만해져서 시각의 세
계와 현실의 세계를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복잡한 문제라는 현실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에서 나와 같이 일 대 일로 정신을 집중시키고 공부를 하면 복잡한 문
제의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정답을 쓸 수 있습니다. 상협이가 수학 문제를 맞히는지 틀리
는지는 상협이가 그 문제를 풀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협이가 그 문제에
얼마나 정신을 집중하는지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1∼2년 전에는 일단 집
밖으로 나가면 정신이 많이 흐트려져서 거의 수습이 어려운 상황이 되기 때문에 수학 문제
를 푼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지만, 요즘은 집 밖의 일 대 일이 아니 상황에서도 간단한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는 정도까지 정신을 현실에 집중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만해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이러한 발전 정도는 시간이 흐르면
서 더욱 높아지리라 확신합니다.
반대로 가르친다.
자폐아를 둔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사항은 자폐아들은 아예 처음부터 아무런 인지도 없고
아무런 감정적인 느낌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정상아는 태어나면서부터 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아픔, 무서움, 기쁨, 슬픔 등의 원초적인 감정을 느끼고 배워 가지만, 자폐
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각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는 것입
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그래도 둘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내 경우에 비추어 보면, 억지로
라도 교육을 시키다 보니 그 교육 방법이나 과정이 정상아에 비해 '반대'라는 것을 알았습니
다. 정상아들은 우선 원초적으로 인지와 감정의 느낌을 가지고 후에 이러한 것들을 논리적
으로 연결시키며, 언어를 획득하고 사회성을 습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반면에 자폐아들을
교육할 때에는 우선 언어의 뜻을 가르쳐서 각각의 행동을 언어로 단편적으로 인지시킨 다음
각각의 인지화된 행동의 의미를 자폐아의 생활 속에서 찾아내어 그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감정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확신시키고, 이를 통해 전체적으로 느낌과 지식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을 겪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적절한 사회
성도 어느 정도 얻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로서는 확실히 자신있게 얘기할 수는 없고 앞
으로 몇 년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 때에는 먼저 인
지 교육도 없이 억지로 '이것은 이렇지 않느냐, 이럴 때는 슬퍼해야 하지 않느냐, 그것은 그
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가르쳤는데 상협이는 멍한 얼굴로 나를 멀뚱멀뚱 바라볼 뿐
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협이를 바라보는 나의 가슴은 답답함을 넘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고
수많은 시행 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렇듯 처음부터 상협이에 대해서 잘 알고 '반대로 깨
닫게 하는 교육'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차츰 상협이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 상협이에게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 넣는 작업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렇게 정상아와는 반대의 순서
로 상협이에게 세상을 깨닫게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때리는 것도 교육(?)
자폐아 교육을 잘 하는 것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자폐
아를 상습적으로 체벌하는 질 나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또 자폐아를 때리면 커서 인성이
잘못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글을 어느 책에서 읽은 적도 있습니다. 자폐아 중에서도 아픔
을 느끼고 싫어하는 자폐아에게는 굳이 체벌을 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아
픔조차도 인지할 줄 모르는 자폐아에게는 부득이 육체적인 아픔을 가할 필요가 있을 것 같
습니다. 그것은 체벌을 위한 체벌이 아니라, 육체의 아픔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
다. 예를 들어 높은 곳에서 스스로 떨어진 후에도 바보처럼 웃기만 하는 아이처럼 무서움과
육체의 고통을 모르는 아이에게는 필히 육체적인 아픔의 불쾌감을 가르쳐야 합니다. 언젠가
TV에서 국민 연금 관계자가 '인간에게는 가장 큰 서러움이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몸이 아
픈 서러움이고, 둘째는 배고픈 서러움이다. 몸이 아픈 서러움을 위해서 의료 보험을 만들었
고, 이번에는 배고픈 서러움을 위해서 국민 연금을 확대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
니다. 육체적인 아픔이나 불쾌한 느낌을 갖는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도 생존
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바로 이 육체적인 아픔을 느낌으로써 자기의 생명을 보호하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아픔과 불쾌감의 인지는 살아 있는 생명에게 필수적인
원초적 조건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육체의 아픔을 인지하지 못하는 자폐아가 상당수 있
습니다. 예전에 어떤 자폐아 부모가 우리 아이가 몸이 아플 때 어디가 아프다고 말할 수만
있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나 또한 그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
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지요. 우리가 인지하는 육체적인 아픔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배탈이 나서 배가 아픈 것처럼 병으로 인한 아픔이고, 다음은 상대방에게 뺨
을 맞은 경우에 느끼는 것과 같은 2차적인 아픔과 불쾌감입니다. 자폐아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육체의 아픔과 불쾌감을 인지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은 병이나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는 모든 동물의 생존 법칙이기도
한 것입니다. 상협이와 처음 생활을 시작하던 몇 개월 간은 며칠 걸러 한 번씩 상협이의 뺨
을 몇 대씩 제법 아프게 때리곤 했습니다. 우선 상협이의 눈과 정신을 현실의 세계로 유도
한 다음 상협이가 잘못한 점을 설명하고(상협이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상관하지 않고) 뺨
을 때렸는데, 주로 혼잣소리를 한다거나 딴 생각을 한다거나(정신이 시각의 세계로 가 있을
경우) 할 때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거기에는 상협이에 대해서 너무 답답했던 감정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나의 생각은 잘못했으면 혼이 난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하고 맞
았을 때는 아프고 불쾌하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릴 때는 언
제나 상협이에게 '맞으니까 기분이 어때?' 라고 물어 보았고 상협이가 울면서 '아프고 기분
이 나빠요' 라는 대답을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처음 맞았을 때 상협이는 허둥대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러더니 조금 지나서는 괴성을 지르며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고 댔고 나중
엔 아빠를 원망스런 눈으로 쳐다보며 울어 댔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야 아빠를 불쾌하고 원
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볼 줄 아는 정상인의 눈빛을 보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상협이를 때릴
필요가 없습니다. 아프지 않게 조금만 때려도 아빠를 흘겨보며 서럽게 우는 모습에서 상협
이가 육체의 아픔과 불쾌감을 깨달았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때리려고 해도 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 눈망울을 쳐다보며 자기 자식을 때릴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상협이
는 이제 자기 몸에 대한 인지가 높아져서 뛰어가다 엎어지거나 모기에 물려 몸에 작은 상처
만 나도 스스로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등, 자기 몸의 보호에 엄살일 정도로 신경을
많이 씁니다. 더 나아가서는 타인의 몸에 상처가 난 것을 보면 "왜 다쳤어요?"라고 물으며
육체의 아픔과 치료에 대해 적절한 관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육체의 아픔과 불쾌감을 억지
로라도 가르쳐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원만한 학교 생활을 위해서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
는 자폐아의 상당수가 친구들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거나, 심지어
어떤 아이는 이상한 괴성을 지르기 때문에 친구들은 그것이 재미있어서 계속 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땐 마치 자폐아가 친구들의 장난감처럼 취급되는 것 같아서 부모의 가슴은
더욱더 찢어집니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서라도 육체의 아픔과 불쾌감을 정확하게 인지하면
필연적으로 적절한 대응 행동을 하게됩니다. 상협이는 학교에서 싸우는 경우는 있어도 일방
적으로 맞는 경우는 없습니다. 상협이가 태권도를 2년여 동안 배우기도 했지만 맞았을 때의
불쾌감이 상대방에게 격한 반응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친구들이 상협이를 쉽게 때리지 못
하는 것입니다. 물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상협이는 상대방의 배나 가슴 등을
공격하지 못하고 얼굴만을 주먹으로 치는 등 적절한 공격을 하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친구
들의 행동 가운데 공격과 장난을 잘 구별하지 못하여 친구들의 장난에 대해서도 일정한 강
도가 넘으면 주먹으로 대응하여 싸움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
에서 과연 장난감처럼 일방적으로 매 맞는 자식이 좋은지, 때로는 과잉 반응을 보일지라도
적절히 대응할 줄 아는 자식이 좋은지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일단 대응하는 능력을 가지면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후에 인지의 확장에 따라 사회적으로 적절하게 수정하는 작업
이 가능하지만, 아예 대응하는 능력이 없을 경우에는 평생 독립적인 생활을 보장할 수 없습
니다. 그러므로 자폐아에게 필히 대응하는 능력을 키워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방법이 비록
서툴더라도 자기 보호와 자기 방어를 적절히 할 수 있도록 강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물론 정상아 부모의 입장이나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자폐아의 지나친 과격
대응으로 자기 자식이나 남의 자식에게 혹시 피해를 줄 우려가 있으며 나의 생각에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자기 방어 능력이 없이 평생을 산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
을 정도로 참혹한 일이며, 자폐아의 인지가 발전할수록 대응의 방법도 점차 세련되기 때문
에 크게 문제될 일이 아닙니다. 구더기가 무서우면 장을 담글 수 없습니다. 매를 맞거나 싸
우는 과정을 통해서 판단 능력과 대응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폐아의 발전을 위
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필히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폐아를 때리면 후에 성격
이 안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한 다면, 이는 오로지 정상인의 입장에서만 본 낭만적인 오해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 하면 초기의 자폐아는 맞는다는 것에 대해 기본적인 인
지가 아예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높은 곳에서 스스로 떨어지고도 멍하니
웃고만 있겠습니까. 물론 다른 모든 인지와 느낌은 빼고 단지 불쾌감만을 교육했을 경우에
는 후에 잘못될 가능성도 있으나 자폐아에게 불쾌감뿐만 아니라 사랑, 즐거움, 행복 등의 개
념도 같이 교육하면 후에 성격이 잘못될 염려는 없습니다. 자폐아에게 육체의 아픔과 불쾌
감을 충분하게 인지시키기까지는 먼저 느낌을 갖도록 훈련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때리려고 해도 때릴 수 없는 아이의 선연한 눈망울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굳이
꼭 뺨을 때려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의 아픔과 불쾌감을 현실로 느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나 초기에 상협이의 손바닥과 종아리를 약하게 때린 적
이 있는데, 상협이는 이를 장난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매를 맞으면 오히려 즐거워하면서 더
때려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자폐아에게 초기에 정말로 아픔의 불쾌감을 느끼게 하기 위
해서는 어느 정도 상당한 충격을 주어서 강한 느낌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과연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지는 부모가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골 생활
자폐아를 자식으로 둔 부모들이 자주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시골 생활입니다. 시골에서
자연을 벗 삼아 생활하면 아무래도 상태가 나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가끔
어느 자폐아가 시골에서 생활한 결과 거의 정상인이 되었다는 뜬소문 같은 이야기가 들려
오면 시골 생활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시골 생활 자체
가 자폐아의 상태를 호전시키기에는 미흡한 것 같습니다. 자폐아의 뇌는 정상아와는 확연히
다른 상태이기 때문에 시골 생활과 같은 소극적인 방법으로 상황의 반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골 생활 자체가 자폐아를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
이가 나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골 생활이 변화의 원동력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실 도시
에 살고 있는 성인이라면 누구든지 한 번쯤 전원 생활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가지며 전원
생활이 삶을 윤택하게 해 줄 것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어린 시절을 회
상해 보면 시골이라는 곳이 낭만적인 장소만이 아니라 고단한 '삶의 현장'으로 기억될 뿐이
고 오히려 놀이 기구나 오락실에 더욱 마음을 설랬던 것 같습니다. 즉 시골은 고단하고 불
편한 곳이었으며 시골 생활에 대한 낭만과 향수는 어른이 되어 도시에 살고 있는 지금에나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감정은 어떻게 보면 도시인의 착각인지도 모르
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폐아에게 시골 생활을 하게 함으로써 아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시골 생활의 고단함과 불편함을 깨닫는 것이 인지 형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의 도시 생활이라는 것은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진 생활이어서 과정
없이 목적과 결과만을 도출하는 구조를 보여 줄 뿐입니다. 이렇게 과정의 이해 없이 결과만
도출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자라게 되면 정상아들도 참을성이 없거나 쉽게 포기하는 사람
이 될 수 있는데, 심지어 목적과 결과를 모르는 자폐아들에게 과정마저 이해시키지 못한다
면 세상은 온통 혼돈의 연속일 것입니다. 어렸을 때 고생하고 자라서 지금 어른이 된 우리
들은 비록 편리한 시대에 살면서도 그 속에 포함된 과정의 생략을 이해할 수 있지만 아예
처음부터 편리한 시대에 산다면 과정의 이해가 그만큼 어려워질 것입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속담의 '고생'의 의미 역시 과정의 이해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
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자폐아에게 시골 생활을 하게 한다면서 온갖 문명의 이기들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가치 없어 보이며 그보다는 고단함과 불편함의 자연스러운 생활을 통해
서 자폐아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됩니다. 추울 때는 보일러 버튼을 눌
러서 따뜻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성냥으로 볏짚이나 나무에 불을 붙여서 따뜻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정의 이해를 통한 결과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자동차, 청소기, 에어컨, 세탁기 등의 가정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자폐아를
위해서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을 자폐아 부모들과 이야기할 때 쉽게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문명의 이기에 너무도 익숙한 부모들에게는 설득력이 없기 때
문입니다. 우리 집에서 상협이가 원하는 물건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상협이는 오락을
하기 위해서는 오락실까지 가야 하고 오락실에 가기 위해서는 신을 신고 옷을 갈아입는 과
정을 거쳐야 하며, 또 오락에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서는 엄마나 아빠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합니다. 이때 나는 상협이에게 돈을 주면서 청소를 한다든지 정리를 한다든지 하는 것
을 조건으로 내건 다음에 이를 실천하게 합니다. 이러한 과정의 이해가 계속 쌓이면 언젠가
는 커다란 종합적인 생각의 틀을 형성하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목욕
어느 자폐아 부모로부터 자기 아이가 절대로 목욕을 하지 않으려 해서 걱정이라는 이야기
를 들었습니다. 목욕을 시키려고 하면 거의 발악하는 괴성을 지르며 반항하기 때문에 목욕
시키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른인 나도 때로는 목욕하기가 귀찮고 싫습니다.
강제로 목욕을 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나나 그 아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싫어하고 거부
하는 것은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목욕을 싫어하는 것과 자폐아가 그러는 것과는 무엇
이 다를까요? 나는 논리적인 근거로 싫어하는 것이고 자폐아는 과잉 감각을 근거로 싫어하
는 점이 다릅니다. 말하자면 나는 귀찮다거나 더러워도 좋다는 등의 논리적 근거를 대면서
싫어하지만 자폐아는 물에 대한 피부의 과잉 촉감이나 시각적으로 물에 대한 무서운 영상이
떠올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참으면서 목욕을 하지만 자폐아는 절대로 목욕을
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싫어함의 근거를 과잉 감각적 근거에서 논리
적 근거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협이는 오이나 상추 등의 야채를 지나치게 싫
어해서 절대로 먹지 않았으며 만약 야채를 억지로 먹일 경우 집안이 한바탕 시끄러워지고
먹은 것을 넘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한 상협이에게 야채를 억지로 먹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대신 야채를 보여 주면서 '맛이 써서 싫어요'라는 논리적인 근거를 지속적으로 느끼
게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인 것입니다. 또 상협이가 다섯 살쯤에는 길을 가다가 고
인 물만 보면 어김 없이 달려가 미끄러지며 좋아했었는데 동작이 워낙 빨라서 통제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한 아이를 억지로 끌어낸다고 해도 아이의 발전과는 거리가 멀고 그 대
신 '진흙이 미끄러워요' '미끄러우니까 재미있어요' '신발이 더러워졌어요'라는 설명을 통해서
과잉 감각적 자극을 논리적 근거로 바꾸어 주는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감각
적 자극에 의한 행동은 타협이나 수정이 불가능하지만 일단 논리적인 근거로 바꾸는 작업에
성공하면 과거와는 달리 유연성을 보이기 때문에 타협이 가능해지며 극단적인 행동들도 많
이 완화됩니다. 즉 정상아나 자폐아나 마찬가지여서 싫어하는 것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싫어함에 대한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확보하는 작업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놀이와 등산
자폐아 관련 TV 프로그램을 통해 상당수의 부모들이 자폐아들에게 주로 시키는 운동이
수영, 달리기, 등산, 줄넘기 등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협이가 다섯 살쯤에 아내가 수영
이 좋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 와서 상협이에게 1년여 동안 수영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당
시 나는 특별히 수영이 자폐아에게 좋은 이유를 찾아 낼 수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수영을 배
우는 분위기였고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왠지 좋을 것 같아서 수영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 생각은 다릅니다. 수영, 달리기, 줄넘기의 공통적인 특징은 단순 반복 운
동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배울 때는 어려울지 모르나 어느 정도 배우고 나면 단순 반복 행
동만으로도 그 운동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즉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겉으로 보이는 육체는
운동을 하고 있으나 속에 있는 정신은 시각의 세계에 빠져들어서 결과적으로 육체와 정신이
따로 분리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물론 어느 운동이든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자폐아는 운동 부족으로
인한 비만을 해결할 수도 있고 자기 몸에 대한 느낌도 갖게 해서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이왕 운동을 할 바에는 정신과 육체가 일치될 수 있는 운동이 더 효과적이
며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자폐아에겐 공놀이가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 하면 손으로 던져서
주고 받는 놀이나 축구를 할 경우 공을 잡기 위해서는 공이 앞뒤좌우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가는지를 판단해야 하고, 또 적절히 몸을 움직여 여기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
입니다. 자폐아는 기본적인 인지와 이해는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
의 판단과 대응의 문제는 마땅히 효율적으로 가르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놀이는 자
폐아의 정신을 방향과 속도의 다양함을 통해서 현실에 오랫동안 묶어 놓을 수 있을 뿐만 아
니라 절대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상대적인 개념과 다양성의 개념을 깨닫게 할 수 있고 판단
과 대응의 개념을 알게 할 수 있으며, 몸을 적절하게 목적하는 바에 따라서 움직이게 하는
기능을 향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처음 상협이와 같이 생활할 무렵 집에서 상협이에게 공을
공중으로 던진 후에 받아 보라고 했는데 공을 공중으로 던지지도, 떨어지는 공을 잡지도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상협이에게 공놀이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동네 공
원으로 함께 갔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상협이는 손이나 발로 공을 잡으면 즉시 공을 가지고
아무런 방향 감각도 없이 아무 곳으로나 한없이 뛰어갔고, 나는 그런 상협이를 뒤쫓아 뛰어
가서 다시 데리고 오기를 보름 정도 계속했습니다. 이후 상협이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후 드리블, 제기 차기, 뛰어넘기, 공 돌리기 등 공으로 할 수 잇는 기초적인 운동 10여 가지
를 연습했습니다. 그 후에는 페널티 킥을 해서 상협이가 이기면 과자를 사 주는 방법을 써
가며 슛 연습을 했고 농구도 같이 했습니다. 처음 페널티 킥을 하면서 상협이에게 골을 10
개 넣으면 과자를 사 주기로 하고 공을 찼는데, 상협이가 슛한 것을 내가 계속 막아내자 상
협이는 화난 얼굴로 내게 와서 나를 골대 밖으로 밀어내려고 했습니다. 아직은 골키퍼가 어
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슛을 하고 상협이가
골키퍼를 하게 해서 골키퍼의 역할을 이해시키려 했습니다. 이후 상협이는 내가 골키퍼를
하면서 왼쪽에 있으면 오른쪽으로 공을 차고 오른쪽에 서 있으면 왼쪽으로 공을 차는 등 축
구에 대한 인지가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한번은 내가 공을 공중으로 강하게 차서 계속 골인
시키자 골키퍼를 보던 상협이가 내게 "아빠, 세게 차면 어떡해, 천천히 차란 말이야"라고 당
시로서는 제법 의미 있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공을 던지고 받기를 할 때에도 나는 상협
이에게 앞뒤좌우, 상하강약의 여러 종류로 공을 던졌는데 어느 정도 연습하자 상협이는 공
의 성질에 따라 이리저리 쫒아다니며 잡으려 했습니다. 요즘도 가끔 놀이터에서 공놀이를
하곤 하는데 이제는 헤딩하기, 높이 던지기도 제법 잘 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또래 아이들과
같이 축구를 하기에는 판단력, 패스, 스피드 등이 모자라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
고 그냥 같이 뛰어다니기만 하는 정도입니다. 또한 공놀이를 한다고 해서 계속하여 정신을
현실에 집중시키지는 못하고 20∼30분 정도 지나면 눈의 초점이 풀어지면서 시각의 세계에
다시 빠지고는 합니다. 현실의 논리 세상에 20∼30분 정도 정신을 집중하면 정신이 피곤함
을 느껴서 자동으로 편안한 시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단순한 운
동보다는 다양성을 가진 공놀이가 판단력과 대응력을 길러 주므로 자폐아가 미래에 풀어야
할 숙제에 대해서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운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공놀이
를 하면 나 아닌 상대방을 인지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성의 기초를 준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공놀이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공놀이를 시키기 위해서는 아이의 일반적인
생활을 공놀이보다 더욱 싫은 긴장된 상황으로 만들어서, 아이가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생활
보다는 차라리 공놀이를 하는 것이 더욱 편하다는 느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부모가
애틋한 마음으로 아이를 강하게 지도하지 못하면 아이 역시도 현재의 타성에서 쉽게 빠져
나오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자폐아로 하여금 일상 생활에서 여러 가지의 공부를 통해 계
속하여 논리적 사고를 하도록 지도한다면, 자폐아는 이러한 일상의 논리적 사고가 주는 스
트레스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상대적으로 편한 공놀이를 선택할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자폐
아의 이러한 초기 상황의 난제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이를 극복해야지만 한계 상황을 탈출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의 상태에 따라 부모가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가질 필요
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등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등산은 다른 단순 운동과는 달리 울퉁불퉁한 산을 넘
어지지 않고 올라가거나 내려가기 위해 계속하여 길의 상태라는 현실에 정신을 집중해야 하
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현실 세계에의 정신 집중이라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에
상협이와 같이 몇 번 등산했던 경험으로 보면 상협이는 등산을 하면서 자기의 정신을 전적
으로 길의 상태에 집중하고 나머지 반의 정신은 시각의 세계에 가 있는 듯했습니다. 이렇게
정신의 반은 현실 세계에 있고 나머지 반은 시각의 세계에 가 있는 상태이다 보니 불안한
자세로 걸어가다가 가끔씩 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되도록 자폐아의 정신을 전
적으로 현실의 세계에 집중시키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정신의 반만이라
도 현실 세계에 집중하는 것이 자폐아에게는 가치 있기 때문에 울퉁불퉁한 길에서의 등산은
공놀이와 더불어 자폐아에게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물 가방
상협이의 상태가 어느 정도 좋아진 작년에 나는 어깨에 메는 조그마한 보물 가방을 두 개
사서 상협이와 상빈이가 외출할 때 꼭 그 가방을 메고 나가도록 했습니다. 상협이가 비로소
현실에 대한 인지와 느낌을 조금씩 갖게는 되었지만 아직은 정신이 오락가락 해서 자기의
물건이나 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아무 곳에나 두기 때문에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
다. 그래서 상협이에게 외출할 때에는 항상 자기의 물건을 가방 속에 보관하도록 시켰습니
다. 처음에는 가방조차 아무 곳에다 둬서 나나 아내가 챙겨 주었는데 어느 정도 세월이 흐
르고 상협이의 인지도가 조금씩 좋아지면서부터는 제법 가방을 잘 챙겼고, 특히 오락할 때
쓸 동전은 꼬박꼬박 잘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자기의 가방과 상빈이의 가방을 비교
해 보면서 누가 돈이 더 많은지 세어 보기도 했으며 상빈이의 돈이 더 많을 때는 탐을 내기
도 했습니다. 즉 보물 가방은 물건을 챙겨 넣는 가방이라기보다는 상협이의 정신을 현실의
세계로 돌려주는 가방인 셈입니다. 생활하는 각각의 부분에서 생겨나는 물건이나 장난감, 동
전들을 보물 가방이라는 현실의 매체와 연결시킴으로써 항상 상협이의 정신이 현실의 세계
를 주시하도록 긴장시키는 역할을 보물 가방이 맡아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년 말에
상협이가 오락실에서 보물 가방을 잃어버린 후 나는 다시 가방을 사 주지 않았습니다. 다음
부터는 호주머니를 적절히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가
끔씩 상협이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속엔 아빠의 희망도
들어 있을 겁니다.
여행의 조건
내가 직장에 다닐 때 가끔 몇몇의 자폐아 아버지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자식이 크면 자식을 데리고 이곳 저곳 여행을 자주 다녀서 아이의 안목을
키워 주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나도 그러한 말에 동감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
나 내가 상협이와 같이 생활하면서 상협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된 이후에는 생각이 바
뀌었습니다. 지금은 자폐아를 데리고 자주 여행 다니는 것에 대해 굳이 반대하지는 않겠지
만 그렇다고 찬성하지도 않습니다. 원래 여행을 하는 목적은 보통의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가정 생활에서는 보거나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나 신기한 것을 봄으로써 인간
의 정신의 폭을 넓히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여행의 기본 목적이 달성도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는데, 이것은 인지와 느낌의 확장을 통한 일반화가 먼저 이루어진 다음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다나 배나 폭포를 볼 때 새롭다거나 아름답다거나 신기하다
라는 개념의 인지가 있어야만 스스로 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보고 배울 수 있
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폐아들이 새롭다거나, 신기하다는 상위 개념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자폐아는 그냥 단지 따라 다니는 것에 불과하게 됩니다. 또한 새로운 것을 보
아도 신기하다는 인지를 하기보다는 단순히 시각의 쾌감만을 느끼기 때문에 여행을 통해서
자폐아의 정신 세계를 높여 준다는 생각은 자폐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나온 정상
인의 오해일 뿐입니다. 상협이도 여행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여행의 본래 목적인 새롭고 신
기한 것을 보는 것에 그 목적이 있는 게 아닙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공부라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차 안에서 오락 게임이나 맛있는 음식 등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
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정상적인 어린아이일지라도 태어난 지 1∼2년밖에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세네 살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자폐아가 상당히 발전하기까지
는 자폐아와 함께 하는 여행에 대해서 바람을 쏘여 주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좋
고, 자폐아의 정신적 폭을 넓혀 준다는 큰 기대를 가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집과 상협이네 집의 차이
좀더 일찍 상협이와 많은 시간을 가졌다면 상협이의 정신 연령에 맞는 기초 교육을 더 많
이 충실하게 해 줄 수 있었겠지만 내가 교육을 시작할 때 상협이의 나이는 이미 취학 연령
을 지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협이에게 네다섯 살에서 여덟 살 정도까지의 기간에 해당하
는 교육을 2개월 간격으로 1년치씩 시켰습니다. 당시 상협이의 정신 연령이 두세 살 정도까
지의 교육을 시킨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이것은 무리도 상당한 무리였으며, 억지도 상당한
억지였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이유는 상협이가 다음 해에 정신 연령이 여
덟 살인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신 연령 두세 살과 정
신 연령 여덟 살의 현격한 차이에서 오는 전혀 다른 집단과의 이질성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가능하면 네 살에서 여덟 살까지의 상황을 맛보기식으로라도 접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일고여덟 살의 교육이라는 것은 초등학교에서의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자기에 앉기, 줄 서기, 화장실 가기, 청소 등의 교육이 아니라, 일고여덟 살 정도의 아이들에
게 걸맞는 단어, 문장 이해, 상황 판단, 동화 줄거리 파악 등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생각에 상협이의 뇌는 4∼5년 정도의 상황이 체계 없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혼돈의 상태
일 것 같았습니다. 정상적인 아이들이 일고여덟 살이 되기까지는 육체의 나이에 알맞는 적
절한 정신의 성장이 체계적으로 튼튼하게 기초를 다지며 이루어져서 육체의 나이와 균형을
이루는 데 반해서, 상협이는 세월의 이곳 저곳에 너무나 빈틈이 많은 부실한 뇌의 송자인
셈입니다. 콘크리트 기둥으로 따지자면 정상아의 뇌는 콘크리트를 조금씩 넣으면서 다져져
빈틈 없는 튼튼한 기둥이고, 상협이의 뇌는 한꺼번에 많이 부어 넣어서 이곳 저곳에 빈 구
멍이 있고 쉽게 갈라지는 부실한 기둥인 셈입니다. 상협이를 다섯 살 쯤부터 가르치기 시작
해서 좀더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이러한 기초 작업을 더 많이 튼튼하게 할 수 있었을 텐
데 하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이렇듯 경험의(체험적) 기초가 따라 주지 못한 인위적인 교육의
결과를 요즘 상협이의 상태 몇 가지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 "아빠, 이 집은 우리 집
이에요"라고 말했다가 무엇인가 조금 생각한 후에 "아니야, 이 집은 우리 집이 아니야. 상협
이네 집이야"라고 고쳐서 말하는 등 '우리 집'과 '상협이네 집'을 혼동하는 상황이 한 달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자세히 설명해 주고 둘 다 맞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지만,
상협이는 정상아처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습니다. ● "아빠,
여기는 우리 동네예요, 마을은 시골에 있어요"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구어체와 문어체의 차
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나온 현상으로서 나름대로 도시는 동네이고, 시골은 마을이라고 규정
한 것 같았습니다. ● 부부, 남편, 부인, 사위, 며느리 등의 개념을 혼동해서 가끔 "나는 크
면 남편이 되어서 아이하고 같이 오락실에 갈 거예요"라고 말하거나 "아빠, 며느리는 뭐예
요?"라는 질문을 하곤 하는데, 일단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 정도만 구별해 주고 있습니다. ●
"아빠, 부장이 뭐예요, 부장이 대통령보다 더 높아요?" 상협이의 이 말은 며칠 전 학급 문고
에서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는 내용을 보고 난 후, 나에게 박정희 역할을
하라고 하고 자가는 김재규의 역할을 하면서 총 쏘는 흉내를 내며 한 말입니다. 아직 부장
이라는 지위에 대해서 조직이라는 개념 파악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 초등학교 1, 2학년
학습지에 나오는 <바른 생활>이나 ,즐거운 생활>의 내용을 잘 알고 있으며, 4지 선다형이
나 간단한 주관식 문제에 대해서도 제법 정확히 답을 씁니다. 예를 들어 집안 정리를 어떻
게 해야 한다든지, 아픈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
게 해야 한다든지 하는 제법 어려운 문장으로 된 4지 선다형의 문제에서도 거의 정확하게
답을 골라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책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일 뿐, 그 내용을 실제 생활
과는 별고 연결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주변에 누가 와 있거나 누가 아플 때,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거나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옷을 벗으면 무의식적으로 아무
곳에나 쳐박아 둡니다. 옛날에는 주의를 주어도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행동을 고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주의를 주면 행동을 고친다는 면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처럼 학습과
실제 상황의 대응이 다른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앞에서 말한 급작스러운 단기간의 교육 때문
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상협이가 3학년이지만 2, 3학년의 학습지를 함께 공부
시키고 있으며, 다른 교육을 할 때는 대여섯 살에 기준을 두어 교육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지금이라고 상협이의 비어 있는 부분을 계속 채워 주고 싶은 생각 때문입니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정상아들도 어떤 일을 인지하고 대응하는 것은 한두 번의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것
이 아니라 수십 번의 반복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자폐아 역시 수십 번의 반
복 교육을 해야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범하고 부족한 생활
만약 자폐아와 관련된 사람이 상협이와 나의 생활을 본다면 별것도 아니면서 호들갑을 떤
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의 생활을 평범한 일상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학습지를
앞에 놓고 있기는 하지만 팔씨름을 하기도 하고 총싸움도 하며, 깡패 만화 이야기도 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이야기하며 때로는 오락실에 가기도 합니다. 또 이 모든 것을 하지
않고 축구하기도 하는 등 짜여진 시간표대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의 상황과 기
분에 따라 생활합니다. 그러나 과거나 지금이나 생활의 기본 개념은 같은데, 즉 살아 있는
느낌 교육을 통해서 인지와 느낌을 확장시키고 이를 현실과 연결시키는 작업은 계속합니다.
이렇게 평범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도 내가 지키는 규칙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상
협이에게 어려운 것은 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쉬운 하위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기 때문에 억지로 상위 개념을 이해시키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려운 문제와 쉬운 문제를 대비하여 어렵다와 쉽다는 개념을 이해하도록
해서 '쉬워서 이해할 수 있어요' 또는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어요'라는 말뜻을 이해시키는
작업은 꼭 실시합니다. 둘째, 상황의 다양성을 통한 상대적인 개념의 이해입니다. 나는 상협
이와 정해진 틀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생활을 통해 상협이는 정
신적으로 선택이라는 논리적 문제에 부딪히게 되며 선택의 고민 만큼 상협이의 정신은 성장
하는 것입니다. 변덕쟁이 엄마의 자식이 눈치가 빠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셋째, 상협이와
나의 정신의 일치입니다. 아무리 쉽고 편한 작업을 하더라도 나는 상협이와의 정신적인 끈
을 끝까지 놓지 않고 함께 갑니다. 왜냐 하면 정신의 끈을 놓으면 논리적인 생각을 하던 상
협이가 시각의 세계로 곧바로 침잠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서로 간에 정신의 연결 없이
도 상협이 스스로 어느 정도는 현실 세계에 정신을 집중하지만, 초기에는 온갖 수단을 다해
서 노력해야지만 상협이의 정신을 현실 세계에 잡아둘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상협이는
이러한 작업이 계속될수록 정신의 자립 정도가 높아집니다. 결국 나와 상협이의 생활은 겉
으로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치열한 생활인 셈입니다.
개념의 확장
나와 상협이가 함께하는 시간 중에 가장 소중한 시간은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물론 초기에
는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와의 대화는 불가능해서 나의 일방적인 설명의 시간들이
었습니다. 그 후 간단한 명사의 대답이 가능해졌을 때부터는 상협이가 대답할 수 있도록 내
가 질문과 설명, 그리고 힌트를 계속해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가능하면 상협이 스
스로 생각해서 대답하도록 하며 필요한 경우에만 조금의 힌트를 줍니다. 또 대답할 때는 육
하 원칙에 기준하여 대답하도록 유도하며 조사와 어미의 적절한 활용 연습도 시킵니다. 이
러한 과정에서 힘든 일은 목이 많이 아프다는 것과 계속하여 대화를 이끌어 갈 소재가 마땅
히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때는 내가 이름지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써서 대화를 이끌어
갑니다. 예를 들어 옷에 대해서 이야기할 경우에 나는 단순히 입는다는 개념에서 탈피하여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옷 하나를 통해서 우주 만물의 모든 진리를 설명해 줄 수 있습
니다. 상협이는 옷이 몇 벌 있니? 상협이 옷은 어디에 있니? 상빈이는 옷이 몇 벌일까? 상
협이와 상빈이 중에서 누가 옷이 더 많니? 아빠와 상협이 옷 중에서 누구 옷이 더 크니?
상협이는 지금 옷을 몇 벌 입고 있지? 상협이는 옷 중에서 어느 옷이 제일 좋으니? 상협이
는 언제 옷을 입지? 상협이는 언제 외출복을 입지? 상협이 옷 중에서 어느 옷이 새옷이니?
상협이 반에서 누가 제일 더러운 옷을 입니? 선생님은 옷이 몇 벌이나 될까? 상협이 팬티
는 무슨 모양이지? 옷을 만져 보면 어떤 느낌일까? 옷하고 비슷한 촉감이 우리 집에 또 무
엇이 있을까? 상협이 옷 중에서 어느 옷에 호주머니가 있을까? … 이외에도 옷에 대해서
상협이에게 깨닫게 해 줄 사항은 무수히 많은데, 초기에는 내가 미리 어느 정도 개념 정리
를 해서 상협이의 수준에 맞도록 쉽게 접근해 갔습니다. 처음에는 상협이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울부짖으며 거부하였으나 꾸준히 노력하자 계속해서 조금씩 받아들
였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상협이가 단순히 시각적으로 흘려 보낸 주변의 일상들을 인지하며
정보 처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
는 옷 이외에도 명사, 동사, 형용사, 등 수만 개 이상은 될 것인데 이렇게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수박은 크고 딸기는 작다
일원동에 있는 장애아 종합 복지관에서 유용한 책을 여러 권 구할 수 있었는데 그 중의 하
나가 <나도 말할 수 있어요>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기초 개념 및 비교 개
념을 가르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당시 상협이의 수준은 주로 그림을 보고 명사를
말하는 정도였는데 그 상태로 지지부진하게 있다가는 평생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
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밀어붙이기식으로 기초 개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뇌의 백지 상태인
자폐아에게 기초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
서 또 한 가지 말해 두어야 할 것은 '비교 개념'의 중요성입니다. 대개의 자폐아들은 시각적
의 영상에 의한 절대 개념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개념이 한 번 시각
적으로 정해지면 그 절대적인 영상이 일종의 가치관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모자
를 쓰지 않은 모습으로 정형화되어 버린 어머니가 모자를 쓰면 조금도 참지 못하고 울부짖
는 것입니다. 자폐아의 절대적인 영상 개념은 마치 종교 광신자의 신과 비슷합니다. 그것만
이 절대적이고 다른 그 무엇도 거부하며, 그래서 그것이 무너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또 자동차를 정확히 일렬로 늘어놓는다든지, 한번 간 길로만 계속 가려
한다든지 하는 것과 같은 융통성이나 응용력이 전혀 없는 행동들 역시 앞의 경우처럼 대부
분의 자폐아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의 현상입니다. 그래서 나는 상협이에게 기초 개념 못지
않게 비교 개념을 확립시켜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예를 들면 크다, 작다, 많
다, 적다, 길다, 짧다 등의 개념을 통해서 세상에는 긴 것도 짧은 것도 있으며 큰 것도 작은
것도 있고, 두꺼운 곳도 얇은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를 통해서 과연 상
협이가 얼마나 절대적인 개념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바꾸었는지 정확히 수치화할 수는 없지
만, 분명히 그토록 극악했던 절대 개념이 많이 유화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일단 비교 개념을
가르친 뒤에는 이를 현실에 많이 적용해서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수박은
크고 무거우며 딸기는 작고 가볍다'든지 '우리 가족 중에서 아빠가 제일 키가 크고 상빈이가
제일 작다'든지 '태권도장까지는 거리가 가깝고 동물원까지는 거리가 멀다'든지 하는 것들입
니다. 물론 처음에는 혼동하고 당혹스러워했으나 계속해서 많은 양의 교육을 시키니까 서너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신기하게도 거의 틀림없이 정확하게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실생활의
예는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준비했는데 백 개를 준비할 수도 있고 오백 개를 준비할 수도
있을 만큼 주위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비교 개념이 어느 정도 확립되면
비록 감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현실의 객관적인 사실을 알 수가 있어서, 후에 감상적
인 부분을 이해하는 기초가 됩니다. 이와 관련된 놀이의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왼쪽,
오른쪽과 가위 바위 보를 해서 누가 이기는지의 개념인데, 20분 정도 같이 해 보면 어느 정
도 정확히 알다가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개념이 흐려지고, 다시 20분 정도 같이 하면 개념
이 정확해지기를 수차례 거듭했습니다. 이후 어느 정도 개념이 정확해지기는 했지만 빨리
하면 가끔씩은 틀립니다. 일반인은 왼쪽 오른쪽과 가위 바위 보는 굳이 생각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알 수 있을 만큼 머리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상
협이는 이것들을 아직 실생활에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어떤 영어 선생님이 영어 시간마다 영어 문장 몇 개를 외
우는 숙제를 냈었습니다. 그러면서 '영어를 말할 때 생각해서 말하면 안된다. 한국어처럼 그
냥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 문장을 외우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자폐아들도 한국어를 그냥 자연스럽게 말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비교 개념은 논리의 시작인 만큼 너무나 중요한 개념이라서 필히 끊임없이
반복해서라도 스스로 응용할 수 있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하며, 아울러 이것을 직
접 현실에 적용하여 이해하도록 하는 작업 또한 필요합니다.
안다와 모른다
어떤 자폐아 부모로부터 아이가 무엇을 물어 보면 물어 본 말을 그대로 따라서 반향어를
한다거나 혹은 무엇을 물어 보아도 물어 본다는 의미를 모르니까 질문과 대답 자체가 형성
되지 않는 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시각의 세계 혹
은 시각의 나라에 대해서 좀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각의 나라에서는 단지
눈으로 본 것과 눈으로 보지 못한 것만이 존재할 뿐 안다와 모른다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즉 안다와 모른다는 시각의 개념이 아니고 논리의 개념이기 때문에 시각 우선
자는 안다와 모른다의 개념에 대해 교육받지 못하면 스스로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질문이라는 것이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알고 싶어서 하는 것인데 스스로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대해서 논리적 개념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질문과 대답의 관계를 형
성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입니다. 즉 시각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는 시각 우선
자는 자기 스스로 자기가 무엇을 아는지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질문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 우선자에게 안다와 모른다의 개
념을 적절히 교육하여 자기 스스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해 이해하면 그 이후에야 비로
소 호기심이나 궁금하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고, 자기 스스로도 궁금증에서 비롯되는 여러
질문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자발적인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지식과 인
지의 확장이 가능해지고 결국에는 종합적인 인지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각 우선
자에게 안다와 모른다의 개념은 단순히 질문과 대답을 위해서 필히 획득해야 하는 논리의
개념인 것입니다. 나는 1997년 9월경에 상협이가 안다와 모른다의 개념이 없다고 느끼고 하
루에 수십 개의 예를 들어 가며 몇 달 봉안 교육한 기억이 있습니다. 상협이의 주변에서 논
리적인 근거에 기인한 사항이든, 시각적인 근거에 기인한 사항이든 객관적으로 상협이가 알
고 있다고 판단되는 것과 모르고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나누어서 인지시키는 작업을 6개
월 정도 실시하자 비로소 상협이가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상협이는 객
관적으로 모르는 사항에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떠오른 영상이나 맹목적으로 외
운 단어, 위인 이름에 대하여 '00는 뭐예요?'라는 질문을 하였고 아직은 명확하게 자기가 알
고 있는 사항과 모르는 사항을 구별할 줄 몰랐습니다. 이후 4개월여가 더 지난 1998년 중순
경부터 비로소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타당하게 구별하
여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에는 상협이의 논리적인 사고가 어느 정도 형성되면서 동
화에 깊이 빠져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질문의 내용이 주로 동화책에 나오는 문어체 단어,
예를 들면 '멋쟁이가 뭐예요' '은혜를 갚다가 뭐예요' '원수가 뭐예요' '쌍둥이가 뭐예요' 등의
질문을 했으며 이러한 문어체 단어의 설명을 통하여 상협이의 지적 인지적 수준이 상당히
확장되었습니다. 1999년부터는 상협이의 관심이 동화책에서 만화책으로 옮겨가며 현실적인
내용에 관심을 많이 보였는데, 따라서 질문의 내용도 '괴짜가 뭐예요' '젠장이 뭐예요' '멍청
한 놈이 뭐예요' '건방진 자식이 뭐예요' '황홀한 고백이 뭐예요' '이름 없는 영웅이 뭐예요'
등 주로 대화에 쓰이는 회화적인 단어나 이상한 만화 제목에 집중되었습니다. 즉 그 동안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 대화를 하지 못했던 결과, 대화체 언어를 전혀 습득하지 못했던 상협
이에게는 기초적인 대화체 언어가 또 다른 미지의 언어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대화체
언어의 약간의 발전을 보여서 동네의 어린아이를 부를 때 '야 꼬맹이놈아'라고 부르거나 내
가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자 '아빠 멋쟁이'라고 하는 등 회화적인 말을 약간씩 했지만 아직은
미국 사람이 한국말로 농담을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어쨌든 이러한 모든 것들이 자기 스스
로 무엇을 아는지와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논리의 개념이 형성되어야지만 얻을 수 있는
까닭에 필히 안다와 모른다에 대한 개념을 심어 줘야 할 것입니다.
시간의 길이
어느 자폐아 부모로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학교 수업시간 중 앉아 있지를 못하고
돌아다녀서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폐아가 40분의 수업 시간 동안 의
자에 앉아서 견디지 못하고 돌아 다니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40분이라
는 시간 동안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인지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수업 시간 동안 가만
히 있기 위해서는 그 시간 동안 어떤 종류의 인지 부분에 대해서 계속하여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데, 자폐아는 40분 동안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인지의 양이 모자라기 때문에 돌아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자폐아의 속성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의 수정은 불가능합니다. 자폐아가 논리적 인간으로 전환되어서 상당한 양의 인지
경험과 능력을 쌓아야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자폐아가 40분이라는 '시간의 길이'
에 대한 개념이 없거나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시각의 나라는 시간의 길이에 대한 개념이 없
는 나라여서 시각 우선자는 시각적 자극을 받는 일에 대하여는 수년 전의 일도 기억하는 반
면, 시각적 자극을 받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몇 시간 전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 중에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노래가 있는데, 정상적인 사람은 논리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은 일에 대해서도 시간이 지나면 그 느낌이 약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논리 우선자에게 적용되는 개념이지 시각 우선자에게 적용되는 개념
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시간 우선자가 살고 있는 시각의 나라는 시간의 길이에 대한 개
념이 없는 나라여서 논리 우선자의 나라와는 차원 자체가 다른 나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간의 길이에 대한 개념이 없는 시각 우선자가 시간의 길이를 알지 못하여 수업 시간에 돌
아다니거나, 혹은 시간의 길이에 따른 정신의 정리를 하지 못하는 것은 시각 우선자에게는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나는 1997년 말경부터 상협이의 혼란스러운 정신의 이유 중 하나가
시간의 길이 개념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상협이 주위의 모든 일들에 대하여 시간의
길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약 6개월 동안 상협이 주위의 거의 모든
일들에 대하여 시간적 길이의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시행하였습니다. ·학교까지는 몇 분
걸리지? -10분 ·태권도장까지는 몇 분 걸리지? -5분 ·화장실에서 응가는 몇 분 동안 하
지? -10분 ·공부는 몇 분 동안 하지? -40분 ·태능 공원까지는 몇 분 걸리지? -30분 ·할
머니 집까지는 몇 분 걸리지? -1시간 ·설악산까지는 얼마나 걸렸지? -5시간 ·밥은 몇 분
동안 먹지? -10분 ·오락실에 내일 자자. ·짜장면은 주말에 사 줄 게. ·어제는 무엇을 했
지? ·일주일 전에는 무엇을 했지? ·한 달 전에는 무엇을 했지? ·일 년 전에는 무엇을
했지? ·상협이 잠은 몇 시간 자지? 이외에도 상협이의 주변 생활과 과거, 현재, 미래의 시
간의 길이에 대한 질문과 설명을 하루에 몇 십 개씩 계속하면서 시간의 길이에 대한 감각을
키워 주었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실시하기 위하여 사전에 분, 시, 일, 주, 월, 년에 대한 단순
개념을 가르쳐 주었는데, 상협이는 이 단순 개념에 대해서는 며칠만에 이해를 하였지만 30
분 동안, 1시간동안, 어제, 오늘, 내일, 1주일 전, 한달 후 등의 시간 길이의 개념을 이해하기
까지는 수개월이 걸렸습니다. 처음에 시간 길이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을 때에는 '한 시간만
더하자' '내일 사 줄 게' '응가는 10분 동안만 해' '어제 무엇을 했지' 등의 말에 대하여 괴성
을 지르며 심하게 거부하였지만 차츰 시간의 길이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조금씩
타협이 가능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상협이가 공부를 하기 싫어할 경우 무조건 하지 않는 다
거나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주장에 대해서 서로 양보하여 합의하는 약속이 가
능해진 것입니다. 처음에 내가 1시간만 공부를 더하자고 하면 상협이는 10분만 더 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20분이나 30분 정도에서 서로 타협을 보는 것입니다. 시간의 길이에 대해 이해
하게 되면 주변의 일이나 상황에 대한 생각의 정리 정돈이 가능해지고 일정한 시간 동안 참
는 능력이 생겨서 행동이 안정적으로 되며, 시각 우선자의 정신을 시간이라는 현실에 묶어
둠으로써 시각 우선자의 정신을 쉽게 다시 현실로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책상에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를 의자에 묶어 놓거나 특정한 그림을 보여 줌으로써 책상에
앉아 있도록 하는 특수 교육의 행동 수정은 내가 보기에는 큰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서 개념의 획득과 이해를 도와줌으로써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
하리라 생각합니다. 정상인도 하루의 생활 동안 시간의 길이에 따른 생활의 계획이 있기 때
문에 정신이 분산되지 않고 계속하여 현실의 세계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시각 우
선자가 시간의 길이라는 인지만을 얻음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각
각의 단위 시간의 길이 동안 정신을 논리적으로 회전시킬 수 있는 인지 능력이 갖추어짐으
로써 상당히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단은 시간의 길이에 대해 충분이 이해하기만 해도
앞에서 말한 세 가지의 중요한 발전이 가능한 까닭에 이러한 개념은 필히 교육해야 할 것입
니다. 또한 시간의 길이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했었다' '하고 있다' '할 것이다'와 같은 과거
현재 미래 시제의 어미 변화를 이해하게 되고, '기다리다' '약속하다' '참다' '예상하다' 등과
같은 단어도 이해하게 되며, 줄서기를 할 때 자기 차례가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 : 30분 동안 기다려라. 저녁에 아이스크림을 먹도록 약속해. 10분 동안 참았다
가 피자를 먹어. 내일 비가 올 것으로 예상돼요. 어느 자폐아 부모님이 자기 자식은 동화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걱정했는데, 동화의 첫마디에 주로 나오는 '옛날 옛적에…'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시간 길이의 개념은 필히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오십 원짜리 동전 두 개
상협이와 같이 생활하면서 교육하는 과정에서 나 역시도 많은 시행 착오를 겪었습니다. 그
시행 착오들의 근본 원인은 나 또한 상협이를 비롯한 자폐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상협이가 아홉 살이던 1998년에 교육했던 것 중에 돈을 계산하는 과정이 있었습
니다. 먼저 십 원짜리,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 천 원짜리 돈을 상협이에게 보여 주면서 돈
의 목적과 금액에 대해서 익히도록 하는 학습이었습니다. 돈을 알게 한 후에는 돈으로 간단
한 계산을 하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예를 들어 십 원 동전 세 개면 삼십 원, 오십 원 동전
두 개는 백 원, 십 원짜리 열 개는 백 원, 백 원짜리 동전 일곱 개는 칠백 원 하는 식이었습
니다. 물론 나는 여러 종류의 돈을 앞에 놓고 셈을 해 가며 가르쳤습니다. 그 때 상협이는
겨우 2 더하기 3이나 5 빼기 2와 같은 간단한 계산을 할 수 있는 정도여서 큰 기대는 없이
단지 설명하는 정도로 교육했습니다. 이러한 교육을 수백 번 계속하자 상협이는 백 원짜리
다섯 개는 오백 원, 십 원짜리 세 개는 삼십 원 등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십 원짜리 열 개
는 백 원, 백 원짜리 열 개는 천 원 등 다른 단위의 돈도 감을 잡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당시의 상협이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오십 원짜리 두 개는 백 원' '오백 원
짜리 두 개는 천 원'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이 개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
니다. 물론 처음부터 큰 욕심을 가지고 교육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음
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도가 있지, 상협이가 몇 달에 걸쳐 오십 원짜리 두
개는 백 원, 오백 원짜리 두 개는 천 원을 교육받았음에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자 슬그머니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불과 10분 전에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물어 보면 또다시 모르
는 일이 수개월 동안 계속되자 짜증이난 나는 가끔씩 아이를 쥐어박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무슨 방법을 동원해도 가르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상협이의 IQ를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부터 상협이의 현실 인지가 급격히 좋아지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습니
다. 즉 상협이가 현실적인 즐거움(오락실 가기, 군것질 하기)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돈이 필
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와 함께 돈을 계산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었습니
다. 따라서 돈을 계산하는 법을 강제로 교육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용돈으로 백 원을 주
면 오백 원을 달라고 응석을 부렸으며, 오백 원 동전 하나를 주면 두 개를 달라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간청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제 상협이는 가게에서 돈을 자유 자재로 바꾸어서
오락도 하고 과자도 사 먹습니다. 현실의 인지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이렇듯 자연스럽게 스
스로 적응력이 생긴다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한심할 정도로 몇 개월 동안을 강제로 교육하
려 했던 것입니다. 이 시행 착오는 자폐아를 교육하려는 다른 부모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 때가 생각나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기도 합
니다.
절대가치과 상대가치
자폐아에게 행하는 교육 내용을 성격에 따라서 '절대 가치'와 '상대 가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절대 가치라는 것은 동물성과 인간성의 기본을 이루는 기초적인 느낌과 인지의
부분이고, 상대 가치라는 것은 사회성에 기초를 둔 적절한 개인 행동일 것입니다. 이러한 절
대 가치의 교육과 상대 가치의 교육 중에서 자폐아에게 우선 교육해야 하는 부분은 절대 가
치의 교육입니다. 예를 들어 식사 시간에 음식의 맛과 냄새를 느끼도록 하는 교육은 절대
가치의 교육이고,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게 한다든지 음식을 흘리지 않도록 하는 교육은 상
대 가치의 교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루 세 번의 식사 시간 동안 거의 한 번도 빠
뜨리지 않고 상협이에게 김치는 매운 맛, 불고기와 갈비의 맛은 비슷한 맛이라는 등의 설명
을 했습니다. 또 상협이가 식사중에 손으로 음식을 먹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는 일에 대해서
는 그냥 두었고, 다만 손이 더러워졌거나 옷이 더러워졌다는 것에 대하여 인지시켰습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혹은 미국인이든 인도인이든 음식의 맛을 느끼거나 냄새를 맡는 것에 대
해서는 공통적인 감각을 가집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총각이 처녀를 보고 뚱뚱하다고 느끼
거나 날씬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총각이 가지고 있는 공통 사항인 반면에 나름
대로의 삶의 경험에 비추어 뚱뚱한 여자를 좋아한다든지, 날씬한 여자를 좋아한다든지 하는
문제는 자신의 선택에 관한 문제일 것입니다. 비행기 타는 것을 거부하는 자폐아에게 교육
해야 할 내용은 억지로라도 비행기에 태우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타면 무섭다는 거부의
근거를 확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폐아의 선택 기준이 논리적 근거가 아니고 시각 성향
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전환 교육이 필요하지만, 나름대로의 논리적인 근거를 확보한 상태
라면 존중해 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폐아에게 필히 교육해야 할 사항은 이러한
절대 가치의 교육이고 상대 가치는 절대 가치의 획득에 따라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습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표와 내용
자폐아가 길을 갈 때 특정한 길이나 선만 따라서 가려고 한다든지 특정한 물체를 무서워한
다든지 하는 현상을 보이는데 그 첫째 이유는 단편적인 영상 개념에서 오는 다양화(상대성)
의 부족이고 둘째 이유는 목표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시각 우선 성향의 특성에서
오는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논리의 다양성 개념의 획득을 통해서
수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중기적인 계획의 실천으로 어느 정도 수정이 가능합니
다. 대부분의 자폐아는 어디에 간다든지 무엇을 한다든지 하는 목표 의식이 희박하며 이러
한 목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내용의 이해는 더욱 희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
폐아가 목표 장소나 목표 내용보다는 시각적인 자극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여 길을 가는
과정에서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목표 장소나 목표 내용에 대해서 보
다 성숙하게 이해하고 즐거운 느낌을 가지게 된다면 정신의 상당 부분이 목표의 내용을 생
각하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이상 행동은 많이 완화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상협이
와 같이 공놀이를 하러 공원까지 걸어가는 10분 동안 상협이가 특정한 길로만 가려고 하거
나 공놀이하러 간다는 목적을 잊어버리고 다른 일을 하는 행동을 많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공놀이의 구체적인 즐거움에 대해 많이 느끼게 되고 걸어가는 시간에 공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상협이의 정신을 공놀이에 집중시키면서부터는 과거에 보였던 이상한
행동들이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줄서기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줄서기에 대한 개념
이 이해와 기다리는 시간의 길이에 대한 이해 등 다른 요인도 만족되어야 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목적에 대한 이해와 목적이 주는 즐거움을 풍부하게 이해함으로써 자폐아는 비로
소 자연스러운 줄서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적과 그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면
자폐아의 정신은 정리되지 못하고 혼돈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상한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상협이와 같이 무엇을 하거나 어느 곳에 갈 때는 미
리 혹은 도중에 상협이에게 목적과 그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이해시키는 작업을 지금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내용의 이해 정도에 대한 문제입니다. 내용의 이해 정도가 10
일 수도 있고 50이나 100일 수도 있으며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의 경우는 200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자폐아는 비록 내용의 이해가 가능하다고 해도 10이나 20정도의 피상적
인 이해에 머무는데 이러한 정도의 이해로는 자신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교육자는 자폐아가 조금의 이해력이 있다고 해서 만족하거나 방심하지 말고 이해의
정도를 넓히는 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느낌이 살면 교육도 산다
자폐아가 하루에 8시간 이상 현실 세계를 의식하는 정신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기란 아무리
부모라도 매우 힘든 일입니다. 사실 자폐아에 대해서 아무리 일상 생활에 대한 간섭과 인지
의 시간을 가져도 3시간을 넘기기 어려우며 나머지 5시간 정도는 책이나 테이프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이나 테이프로 공부하는 내용도 크게 '살아 있는 느낌 교
육'과 '죽어 있는 교육'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자폐아 교육은 반드시 살아 있는 느낌 교육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먼저 죽어 있는 교육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글쓰기와 글 읽기 ·숫자, 문장 들을 외우기 ·덧셈, 뺄셈 등의 단순 계산 ·자세 교정 등
의 행동 수정 ·음악, 미술, 운동 등의 단순한 기능 교육 ·일정한 틀에 박힌 행동의 반복
·자폐아가 이해하지 못하는 높은 수준의 교육 물론 이러한 것들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자폐아가 발전함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렇
지만 이러한 것들보다 먼저 교육해야 할 중요한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위의 것
들을 교육한다면 그것은 사상 누각에 불과할 것 입니다. 그래서 먼저 살아 있는 느낌 교육
을 시행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먼저 단순한 글쓰
기와 글 읽기는 교육자가 교육시키기에는 편할지 몰라도 자폐아로서는 뜻도 모르는 것을 쓰
고 읽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단순히 글자를 쓰고 읽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예
를 들어서 '호랑이가 토끼를 꽉 깨물었습니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 열 번씩
읽고 쓰게 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교육자가 자폐아의 팔을 깨무는 행동을 통해서 '꽉 깨물었
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함과 동시에, 호랑이가 배가 고파서 토끼를 잡아 먹으려고 꽉 깨
물었다는 것과 토끼는 깨물려서 아프고 불쌍하다는 것을 실제로 느끼게 하는 교육이 필요합
니다. 또 자폐아는 시각 우선의 특성성 숫자나 문장을 외우는 데 있어서 오히려 정상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이 있으므로 단순히 숫자나 문장을 외우게 하는 것은 자폐아를 논리 우선자
로 바꾸기 위한 교육으로서는 별다른 가치가 없습니다. 오히려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다양한
응용력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말하자면 숫자를 외우게 하는
것보다는 '맛이 있으니까 하나를 더 먹겠다'는 개념을 가지도록 하는 교육이 더 효과적입니
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폐아는 저능아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초적인 교육이 되면 3
더하기 2, 5 빼기 3 등과 같은 단순 계산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 계산보다는
'나비가 3마리 있었는데 2마리가 더 날아와서 5마리가 되었다'거나 '나비가 5마리 있었는데
3마리가 날아가서 2마리만 남았다'는 식의 언어화된 논리적 사고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어
야만 진정으로 수를 이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자폐아로 하여금 이러한 것들을 이해
하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단순한 숫자 개념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나
는 처음 3개월은 문장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어서 가르쳤고 후반 3개월은 질문의 내용을
학습지를 보지 않고 생각해서 말하도록 하는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
가 있어서 나중에는 문제의 내용을 읽은 후에 책을 보지 않고 스스로 문제의 내용을 논리적
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수학을 이용해서 논리적인 언어 표현 방법을 가르친 것
입니다. 상협이가 처음 자폐아 특유의 이상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단기적으로는
그런 행위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안정한 행동 역시 단기적으로는 수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장기적으로 수정 작업을 실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방바닥에 머리를
찧는 자해 행위를 할 때는 '머리를 찧으니까 아프니, 안 아프니?'라고 질문하여 아프다는 느
낌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자해 행위가 끝난 후에도 몇 번 더 계속하여 질문함으로써 아프다
는 느낌을 계속 강화시켰습니다. 땅바닥에 드러누울 경우에는 더러운 옷을 보여 줌으로써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옷이 더러워졌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고, 얼굴이 더러워졌을 때에는 거
울 앞에 데리고 가서 얼굴을 보게 함으로써 세수를 하지 않아서 얼굴이 더러워졌다는 것을
알도록 해주었습니다. 또한 침대에서 계속 뛸 경우에는 벌로 과자를 사 주지 않는 등 자기
행동에 대한 스스로의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꾸준히 간섭했습니다.
다행히도 상협이는 점점 스스로의 느낌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별다른 행동 수정을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느껴서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혹 정상인이 생각하기
에는 자폐아에게 미술이나 음악 등의 예술 활동을 시키면 이러한 예술 활동이 자폐아의 잠
재적인 인간성을 자극하여 어떤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아주 다
릅니다. 자폐아는 기본적으로 예술을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예술 교육을 시켜
도 단순한 기능을 획득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물론 예술 교육을
시키면 차분해지는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예술 활동을 하는 동안 자폐의 세계에서 정신
이 빠져 나오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폐아는 기본
적으로 예술 활동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얻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사전에 어느 정도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을 이해시킨 후에 예술 활동을 시킨
다면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도 먼저 자기
몸의 각 부분을 인지하게 한 후 특정 운동을 시키는 것이 효과적이지, 특정 운동만을 먼저
실시할 경우에는 몸놀림에 의한 운동 이상의 특별한 효과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
폐아에게 특정한 행위를 계속 시키는 것 또한 비록 그 행위가 사회적으로 적절하고 편안한
행동이라 해도 자폐아는 그 행위의 의미를 하나로 고착시키기 때문에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
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출근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인사하는 행동
을 계속 가르치다 보면 얼마 후엔 그러한 행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꼭두각
시처럼 그와 같은 행동만을 반복할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아
침마다 아버지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매일 다른 것으로 하나씩 사 오라고 얘기하도록
시키는 것이 자폐아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기회를 부여할 수 있으므로 더욱 바람직합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꼭 식탁에서만 먹게 할 것이 아니라, TV를 보고 싶을 때는 TV 앞에서
밥을 먹게 하고 또 모자를 쓸 때도 꼭 앞으로만 쓰게 할 것이 아니라, 옆이나 뒤로도 쓰게
하고 또 그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여 줌으로써 다양성에 대한 인지를 갖도록 해야 합니다.
위에서 예시한 것 이외에도 생활 전반에 걸쳐서 다양한 여러 가지의 것들을 경험하게 하면
자폐아는 전보다 훨씬 더 유연한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과시욕으로 남달리 특별한 것이나 어려운 것들을 교육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자폐아를 위한 일이라고 볼 수 없으며 자식을 통해 부모의 욕심을 채우려는 거서 이상의 가
치는 없습니다. 정말 자폐아에게 필요한 교육은 평범한 생활을 통해서 느껴지는 상식적인
것 이상은 아니며 그 이상의 것들은 자폐아가 자폐 상태를 탈출한 이후에나 생각해 볼 것들
입니다. 사실 자폐아가 자폐 상태를 탈출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으며 그 이상의 것들
은 지금 생각해 봤자 오히려 자폐아에게 피해만 줄 수 있습니다. 내가 굳이 살아 있는 느낌
의 교육과 죽어 있는 교육이라는 다소 과격한 말을 쓴 데는 실제로 대부분의 자폐아 부모들
이 죽은 교육을 하는 경우가 있어 걱정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낀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이고 어떤 교육이 좋지 않은 교육인지 확실한 근거를 가지
고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피해 버리는 것도 용기 있는 행동은 아
니라고 생각되어 비록 미숙한 점은 많지만 자폐아를 둔 부모의 심정으로 그 동안 상협이와
의 오랜 생활에서 얻은 검증된 사항들을 바탕으로 나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밝히는 바입니
다.
아이 시원해, 아이 추워
자폐아들이 초기에는 비록 감각적인 느낌을 가지지 못하지만 적절한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
지면 이러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상협이가 일곱 살
이전에는 여름과 겨울에 덥다거나 춥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었습니다. 날씨의 변화에 따른
느낌이 거의 없어서 여름이나 겨울이나 그냥 무덤덤하게 걸어다닐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책
의 글과 그림을 통해 덥고 추운 상황과 언어를 반복해서 가르치고, 때로는 뜨거운 곳과 차
가운 것들을 직접 만져 보게 함으로써 덥고 추운 느낌을 가르쳤습니다. 이후에는 더울 때
선풍기 앞에 데리고 가서 바람을 쏘이며 시원한 것을 느끼도록 가르치고, 추울 때는 따뜻한
곳에 데리고 가서 따뜻한 것을 느끼도록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교육 자료와 실제 경험에 의
한 의식 교육이 어느 정도 반복되자 상협이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이나 공원에
서 운동을 하여 땀이 나면 쪼르르 선풍기 앞에 달려가서 바람을 쏘이며 "아이 시원해라" 하
고 말했고, 겨울에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몸을 벌벌 떨며 "아이 추워라" 하면서 추위를 피
해 후다닥 집으로 뛰어들어가곤 했습니다. 즉 자폐아들이 타고날 때부터 느낌에 대한 선천
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정상인들과 똑같은 감각적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입니다. 다만 시각 세계의 위력이 너무 강하고 정신이 온통 시각의 세계에 가 있어서 현실
적인 감각의 느낌을 스스로는 인지 할 수 없다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자폐아의 정신을 적
절히 현실로 유도한 후, 현실의 느낌을 인지하도록 하면 감각의 느낌을 가지게 할 수 있으
며 이를 계속 반복함으로써 현실의 느낌을 강화시키다 보면 결국 정상아와 같은 정도의 느
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덥고 추운 느낌뿐만 아니라 기쁘고, 슬프고, 기분좋고, 기분
나쁘고 하는 느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정신을 현실에 집중해서 느낄 수
있는 준비를 한 후 계속 반복해서 인지시키면 정상아와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
다. 정상아가 수천, 수만 번의 느낌을 가진 후에 감정이 성숙되는 것처럼 자폐아 역시 많은
느낌을 가진 후에야만 성숙된 감정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신체에 대한 감각 키우기
자폐아가 보여 주는 이상 현상 중의 하나는 신체적인 아픔이나 간지러움 등과 같은 자기의
신체에 대한 느낌조차 적절히 갖지 못하여 자기의 몸을 자기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할 때
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팔을 옆이나 앞으로 적절히 뻗거나 돌릴지 못할 뿐만 아
니라, 손가락이나 발가락 같은 세부 기관을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여, 한두 살 정도의 어린아
이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현상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느낌과 기초 인지의 교
육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신체의 접촉을 통한 신체적 느낌 강화도 중요합
니다. 예를 들어 자폐아의 등 뒤에서 몸의 각 부분을 손가락으로 찌른 다음 자기의 어느 신
체 부위에 느낌이 있었는지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한다면, 자폐아가 정신을 효율적으로 현실
의 세계에 집중해서 자기 몸의 각 부분의 느낌을 감지하고 강화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서는 뭉툭한 도구와 뾰족한 도구를 사용해서 어떤 도구로 찔렀는지를 알아맞히는 게임을 한
다면, 신체의 느낌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옆이라는 개념도 옆이 90도 정도의
직각을 이루는 것이라는 개념을 계속 심어 주면 자폐아가 팔을 옆으로 벌릴 때 과거의 엉거
주춤한 자세에서 벗어나 제법 정확한 자세를 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팔 돌리기를
할 경우에도 먼저 돌리는 것에 대한 개념을 충분히 자세하게 인지시켜서 이해하게 한 후에
팔 돌리기를 시도하면 효과적일 것입니다. 신체의 각 부분에 대한 훈련을 통해서 자기 신체
에 대한 감각을 강화시키면 자폐아가 정신을 현실의 세계에 집중하는 것을 도와 주어서 학
습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자폐의 탈출에도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각각의 손가락을 적절히 움직이게 해서 세모나 동그라미 등의 모양을 만들거나, 왼손가락과
오른손가락을 서로 어긋나게 붙이거나, 양손가락을 이용해서 간단한 숫자나 글자를 만들거
나 하는 등의 훈련은 신체의 느낌 강화에 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한쪽 눈만 감고 윙크하
기, 무릎 사이에 공을 넣고 걸어가기, 어깨를 으쓱으쓱하기, 각각의 발가락 움직이기, 허리
돌리기 등과 같이 각각의 신체 부위별로 몇 가지의 적절한 움직임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
로 훈련시키면 아이의 전체적인 발달에 큰 도움이 됩니다.
부모님 같이 갑시다
한국에서 1970년대에 영어를 배운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영어의 문법은 잘 알지만 회화
는 잘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문법에 따라 영어 원서를 읽고 이해할 정도의 수준인데 반
해 회화는 거의 못해서 지극히 간단한 생활 영어조차 거의 벙어리 수준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국말의 경우로 생각하면 잘 모르지만 영어에서는 문어체와 구어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말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자유 자재로 표현하니까 그렇지
따지고 보면 문어체와 구어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문어체와 구
어체는 마치 별개의 언어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말하자면 자폐아의 경우 문어체와 구어체
에 있어서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마치 영어를 배운 한국 사람이 문법에 따
른 영어는 잘 하면서 영어 회화는 못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문법을 익히는 언어는
책을 통한 교육만으로도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화 위주의
구어체 언어는 주로 동년배와의 어울림을 통해서 얻기 마련인데 자폐아는 육체 연령과 정신
연령의 차이 때문에 상당 기간 동안 동년배와 어울리기 어려워서 현실적으로 구어체 언어가
발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폐아가 구어체 표현 능력이 모자란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을 평가하기 위해서 독해력이나 수리력 시험지를 들고
다니며 시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인의 눈에는 자폐아가 금방 이상한 아이로
보입니다. 따라서 그 아이의 전체를 두고 이상한 아이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사실 자폐아에
게 적절한 교육을 할 경우, 이상한 부분은 단지 대화가 부족하다는 점에 머무를 뿐 인지나
수리 능력 등이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사람이 한국 사람과 대화할 때 기초
적인 영어 회화가 되지 않을 경우 그 사람의 영어 실력이 형편 없다고 평가하겠지만, 사실
그 사람은 어려운 영어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영어 실력을 소유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얘기를 자신 있게 할 수 잇는 것은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상협이의 경우를 통해서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공부를 시작할 때는 앞
이 캄캄했으나 지금은 상협이가 제법 2학년 학습을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늦게 시작한 것
을 감안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이고, 어느 때는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학습
인지가 좋은 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또래 집단과의 꾸준한 대화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단
지 어른들과의 대화만이 어느 정도 가능한데, 그 말이 구어체가 아닌 책으로 배운 문어체
표현이어서 듣는 사람에게는 조금 어색합니다. 그렇다고 기본적인 뜻 자체가 틀린 것은 아
닙니다. 예를 들면 '엄마랑 아빠랑 같이 가자'라고 말해야 할 것을 '부모님 같이 갑시다'라고
한다든지 '화가 났어'라고 말해야 할 것을 '화가 머리끝까지 났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기
본적인 인지나 학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과의 대화마저 되지 않는다면 걱정이겠으나
인지와 학습이 되어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동생 상빈이와 간단
한 놀이를 할 경우에 즐거워할 부분에서는 즐거워하고 화를 내야 할 부분에서는 적절히 화
를 냅니다. 단지 그러한 경우에 필요한 적절한 구어체 표현을 못 한다는 것뿐입니다. 때문에
즐거운 부분에서 지나치게 웃거나 화가 나는 부분에서 주먹이 나가는 일이 발생합니다. 사
실 구어체 대화도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틈틈이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화적 표현 방법을 가
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문어체 언어만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속도가 더디며, 또 표현
방법을 자주 잊어버립니다. 구어체 표현을 단시간에 획득하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현실 상황 인식이 더욱 좋아지면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쯤 되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상협이가 획득한 구어체 표현 두 가지를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
디서 들었는지 자기에게 불리하거나 어색한 상황을 맞으면 '아이 썰렁해'라는 표현을 가끔쓰
곤 합니다. 썰렁하다는 것의 진짜 의미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어긋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배가 고파 죽겠어요'라든지 '심심해 죽겠어요'와 같은 '죽겠어
요'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오락실에 가고 싶을 때는 '아빠, 심심해 죽겠어요, 오락실에 가
요'라고 표현하고 피자를 먹고 싶을 때는 '아빠 배 고파 죽겠어요, 피자 먹으로 가요'라고 표
현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구어체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은 바람직
해 보입니다. 다시 한 번 얘기하는 것이지만 상협이의 인지나 학습 수준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상협이의 행동이나 언어로 평가되는 수준보다 상당히 높다는 것입니다. 즉 자폐아는
육체 연령과 정신 연령이 서로 다르며, 정신 연령도 사회적 연령과 학습 연령이 서로 다르
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뭉뚱그려서 전체적으로 정상 아동과 비교하면
대안 없는 고통만 뒤따르게 됩니다. (자폐아의 육체적인 나이와 정신 연령이 다른 이유는
정상아의 경우 정신이 현실을 주시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스스로 학습되는 반면, 자폐아는
정신이 현실이 아닌 시각의 세계에 빠져 있어서 강제로 학습이 이루어지는 만큼만 정신 연
령이 높아지기 때문이며, 정신 연령 중 사회적 연령과 학습적 연령이 서로 차이가 나는 것
은 자폐아가 초기에 현실을 통하여 배우지 못하고 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어적 이해가 구어적 이해보다 높을 경우에 가장 걱정되는 것은 관념적인 인
간이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집중하는 강도나 시간이 정상인보다 약하기 때
문에 복잡한 현실의 관계를 이해하는 정도도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주로
책을 통해 인지하는 교육을 계속하다 보면 현실을 책 속의 세상으로 보려는 정도가 훨씬 강
하게 작용합니다. 처음에 일단 책을 통해서 기초 인지를 교육한 다음 이를 현실에 적용하려
고 계획했던 나의 의도는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
는데, 이는 당초 계획했던 시점에서는 상협이가 시각 우선자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시각 우선자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그 외의 별다른 뾰족한 방
법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로서는 다만 책에서 배운 기초 인지를 현실에 적용하는 작업을 계
속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교육을 처음 시작했을 땐 <콩쥐 팥쥐>라는 동화책을 보면 그 내
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림만 볼 뿐이었는데 6개월 정도 지나면서는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면서 동화책을 보았습니다.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확인하려고 몇 가지
질문을 해 보면 제법 내용을 이해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줄거리와 함께 왜 화가 났는지, 왜
울었는지, 왜 행복해졌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책의 내용이 현실이 아니라
단지 동화라는 데 있었습니다. 왜냐 하면 상협이에게는 <콩쥐 팥쥐>가 동화가 아닌 '현실의
세상'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콩쥐 팥쥐> 속에 들어가서는 그 내용을 이해하고 기뻐하
고 슬퍼하지만 같은 수준의 현실에 대해서는 이해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단순히 어린아이이
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정도입니다. 책으로 배
운 것을 어떻게 현실의 세계로 넓혀 가야 하는지는 나의 숙제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세계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시각 우선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시각적 한계와 정도의 한계를 인정
해야 할 것입니다. 자폐아가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를 사용한다는 것의 의미는 '책의 세상'에
서 탈출하여 '현실의 세상'으로 정신이 전환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지만, 짧
은 시간에 정신이 전환되기는 어려우며 인지된 현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수년 동안의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자라요
상협이는 특수 교육 기관의 교육을 오래 받으면서 몇 마디의 명사는 어렴풋이 할 수 있었
습니다. 그러나 언어 장애자가 아닌 자폐아가 명사 몇 마디를 훈련받은대로 발음하는 것은
마치 앵무새와 같아서 명사만 되풀이하는 것일 뿐 언어 응용이나 확장으로는 연결되지 못합
니다. 따라서 그보다는 '빨리 가요' '많이 먹어요' 등 인지된 상황을 이해하는 형용사나 동사
의 사용이 절실했으나 상협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1997년 7월부터 상협이와 같이 생활하
면서 '크다, 작다, 무겁다, 가볍다' 등의 인지 언어와 '차갑다, 뜨겁다, 아프다' 등의 느낌 언
어를 책과 실제 생활의 예를 보여 주면서 교육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 연령이 지난
여덟 살의 상협이는 도대체 초점 없는 눈으로 이상한 몸 동작만 계속하여 참으로 답답했고,
이런 상협이를 보는 나는 평생 동안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
다. 그러던 중 11월경에 가족과 함께 남한강으로 드라이브를 했는데 상협이가 "피자, 피자"
라고 하여 중간 휴게소에서 피자 대신 햄버거를 사 주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에 상협이가 다시 "피자, 피자"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상협이는 아까 햄버
거 먹었으니까 피자는 먹지 말아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그 때는 나의 대답을 상협이가
이해하기를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상협이가 희미한 목소리로 "모자라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내 귀가 의심되어 다시 한 번 말해 보라고 했더니 "모자
라요" 하고 다시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내가 상협이로부터 8년만에 처음 듣는 표
현 언어였던 것입니다. 그 동안 상협이에게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가르쳤지만 별다른 반응
이 없었는데 그 말 한마디를 듣고 나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인지 능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습니다. 그 때는 몰랐으나 상협이가 말했던 몇 개의 표현 언어는 시각적
감각이나 맛의 감각 등의 자극에 대한 한정된 표현이었으며 일반적인 현실 생활에 대한 현
실적인 표현 언어를 말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상협이가 심심해요
상협이에게 특별히 이해시키기 어려웠던 단어들 중의 하나가 '심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상인에게는 심심하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할 일이나 생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며 그럴 경
우엔 대개 옛날 일이나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해 보거나, 혹은 재미있는 일을 찾아봄으로써
심심하다는 느낌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자폐아는 현실적인 일이나
생각을 할 때 재미보다는 스트레스를 느끼며 오히려 현실적인 일이나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정신이 시각의 세계로 들어가서 더욱 즐거움과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과연 어느 때가 심심
한 때라고 설명해 주어야 할지 곤란했습니다. 정상인은 심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할 일을 찾거나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바로 이 심심하다는 느낌이 인간에게
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폐아는 심심하다는 느낌이 없기 때문
에 굳이 어떤 일이나 생각을 해서 심심한 상태를 벗어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습니다. 이러
한 상황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현실적인 의욕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폐 상태의
초기에는 정신이 시각의 세계에 깊이 빠져서 심심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으며, 성장한 후
에는 혹시 시각의 세계에서 스스로 빠져 나와도 뇌가 백지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런 느낌을
가지지 못하고 그냥 멍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아이를 집에 혼자 놓아 두면 뇌
의 활동이 정지되는 심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TV를 본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밖
에 나가서 친구와 함께 논다든지 할 것입니다. 만약에 할 일이 전혀 없다면 마치 독방에 혼
자 있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낄 것이며, 오래되지 않아 뇌가 마비되어 잠에 빠져들 것입니
다. 그러나 자폐아를 집에 혼자 놓아 두면 정상아처럼 심심한 상태에서 빠져 나오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은 거의 하지 않고 곧바로 정신이 시각의 세계에 빠져서 멍한 채로 있거나 기
껏해야 단순 반복 행동만을 계속할 것입니다. 즉 자폐아가 정상인처럼 창조적, 현실적인 일
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심심하다라는 고통스러운 느낌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
다. 그러므로 자폐아가 심심하다라는 느낌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정상인은 현실적인 일이
나 생각이 없으면 뇌가 정지하는 고통을 느끼지만, 자페아는 시각의 세계에서 뇌가 영상을
따라 활동하기 때문에 뇌가 정지하는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
게 자폐아에게 심심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
까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 하면 자폐아가 심심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무엇인가 현실적인 행동이나 생각을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폐아는 정상아와 같은 행동을 보이면서 자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98년 말경에 나는 상협이에게 심심하다는 느낌을 가르
치려고 했는데,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서 상협이와 같이 2∼3분 정도 침대에 가만
히 누워 있은 후에 "상협아, 가만히 있으니까 심심하지?"라고 물어 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 때 상협이는 이미 시각의 세계에 빠져 만화인지, TV 연속극인지를 생각하며 혼자 낄낄
대고 웃고 있어서 심심하다는 개념을 가르치는 것에 실패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상
협이가 가끔 심심하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는데, 예를 들면 '아빠, 심심한데 오락실에 가요'
혹은 '아빠, 심심한데 축구하러 가요' 등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상협이가 당시
현실적으로 재미있게 느꼈던 놀이를 하고 싶은 경우였지 정말로 심심하다고 느껴서는 아니
었습니다. 단지 하고 싶은 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심심하다는 말
을 쓰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재미있게 느끼는 현실적인 놀이를 많이 만들어서 이들 놀이
의 즐거움이 시각의 세계의 즐거움보다 더 크게 느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놀이가 상당히 많아져서 연속적으로 다양한 놀이를 즐길 정도까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상협이의 경우에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은 상협이가 두세 가지의 놀이를 30분이나 1시간까지
는 할 수 있으나, 좀더 다양한 놀이를 하려고 하면 곧 싫증을 내고 거부하며 아무리 즐거워
도 1시간 이상은 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집에서는 공부와 놀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해
서 하자고 하면 쉽게 놀이를 선택하지만, 집 밖에서와 같이 정신이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그
나마 놀이마저도 별로 하려 들지 않습니다. 즉 현실적인 놀이에 대해서 무한의 즐거움을 가
질 정도가 되어야 심심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상협이는 현실적인 놀이에 대
해서 제한적인 즐거움밖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심심하다는 본래의 느낌을
갖기에는 아직 무리인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표정짓기
내가 상협이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상협이의 얼굴 표정이 근래 들어
확연히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들고 상협이가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정을 지을 줄 알게 되었
기 때문입니다. 표정은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정상아든 자폐아
든 표정을 보면 그 아이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는데, 상협이는 비록 아직 말은 어눌하고
간단한 표현밖에 못 하지만 즐거운 표정, 화난 표정, 무서운 표정, 웃는 표정, 우는 표정 등
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특히 돈을 달라고 하거나 업어달라고 할 때에는 상대방의 눈치
를 보며 제법 무안한 표정과 함께 미안한 말투로 말하곤 합니다. 즉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마
음 상태가 이루어져서 상황과 정신이 현실에 적합하게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정을
보면 상협이에게 최소한의 기본적인 인지와 감정이 바르게 자리잡혔다는 확신이 듭니다. 처
음 상협이가 깊은 자폐의 세계에서 헤매고 있을 때 보여 주었던 표정은 괴성을 지르며 발악
하는 동물과 같은 상태일 때 짓는 단순한 표정 하나뿐이었으며, 그 외에는 시각의 세계에
깊이 빠져서 멍한 표정으로 있거나 때로는 정신 없이 웃어 댈 때의 표정뿐이었습니다. 또
다르게 표현하면 적절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현실의 상황이 자기에게 주는 의미를 적절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이는 인지와 감정을 가르치는 최종 목표가 바로
현실 상황의 의미를 적절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
로 자폐아의 표정 발달은 그 아이가 얼마나 인지와 감정이 발달하여 현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는지를 보여 주는 척도가 되며, 적절하게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곧 적
절한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학교 생활의 의미
상협이에게 학교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공동체 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0점을 받느냐 50점을 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100점을 받았을 때는 기뻐하고 50점을 받았을 때는 기분 나빠할 수 있
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과연 어떤 친구가 좋은 친구이고 어떤 친구가 나쁜 친구인지 나
름대로의 판단 능력을 가지고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폐아가 유치원이나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 좋은지 나쁜지의 판단 기준은 과연 그 자폐아가 사회
생활을 통해서 인지할 수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지, 아니면 주변 상황에 대한 인지 능력
이 없어서 인지할 수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없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문제는 자폐아가 시각
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어서 스스로는 상황에 대한 인지 능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인위적
으로 인지 능력을 가지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 생활이 자폐아에게 도움이 되
기 위해서는 사전에 어느 정도 인지 능력을 갖도록 해 준 후에 사회 생활을 접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전혀 인지 능력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유치원이나 학교에 보낸다면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상협이에게 과거에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두게
한 것은 상협이가 이러한 주변 상황에 대한 인지 능력이 전혀 없어서 유치원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상협이가 지금도 아무런 인지 능력이 없어서
지금의 학교 생활 역시 전혀 효과가 없다면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 볼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협이는 어느 정도는 교육 효과가 있어서 주변 상황에 대한 인
지 능력이 생겼고 인식의 정도도 시간의 지날수록 조금씩 나아지므로 학교에 보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요즘은 매일 저녁에 30분씩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상
협이와 이야기하는데, 즐겁고 재미있었던 이로가 화나고 기분 나빴던 일을 나누어서 이야기
하게 합니다. 한때는 상협이에게 일기를 쓰게 하려는 생각도 있었으나 일기를 쓸 경우 시간
이 많이 걸릴뿐더러 정신의 집중도가 약해지기 때문에 말하는 기술도 늘릴 겸 해서 일기 대
신에 이야기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도록 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아직은 상협이에
게 구체적으로 인지된 경험이 별로 없으므로 학교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구체적인 인지
와 느낌을 강하게 심어 줄 필요가 있고, 또 잘잘못에 대한 판단 능력도 설명을 통해서 키워
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상협이가 말했던 즐거운 일은 주로 친구와 놀았던 일,
운동을 한 일, 점심 시간에 맛있는 것을 먹은 일, 학급 문고의 책을 읽은 일, 미술 시간에
있었던 일, 100점 맞은 일 등이었고, 기분 나빴던 일은 주로 친구와 싸운 일, 선생님에게 혼
난 일, 맛없는 반찬이 나온 일, 시험에서 틀린 일 등이었습니다. 처음에 물어 보면 육하 원
칙에 따라 원인과 결과를 이야기하지 못하고 단순하게 '친구와 놀았어요' '친구와 싸웠어요'
'선생님께 혼났어요'라고만 대답하다가 내가 재차 '누구하고 놀았니?' '무엇을 하고 놀았니?'
'누구랑 싸웠니?' '왜 싸웠니?' '왜 혼났니?' 하고 구체적으로 물어 보아야만 자세한 대답을
하는데, 그나마 다행한 것은 여러 가지를 물어 보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까지의 대
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사안에 따라 칭찬해 주기도 하고 타이
르기도 하며 때로는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내가 직접 상협이에게
경험하도록 해 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라도 각각의 일들에 대하여 느낌이
있는 인지를 갖도록 하여 인지되는 경험의 폭을 넓혀 주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상협이는 아
직도 시각 우선자와 논리 우선자의 중간에 서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놀지는 않고 주로 학급 문고의 책을 읽습니다. 상협이에게는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지 말고 친구들과 함께 놀아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게 변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친구들과 같이 몇 가지의 간단한 놀이를 하면서 노는 시
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 희망을 가져봅니다.
친구들의 평가
상협이가 1학년 때 가끔 같은 반 친구에게 상협이가 어떤지를 물어본 적이 있는데, 친구들
은 나의 얼굴을 피하려고만 할 뿐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차마 상협이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상협이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상협이가 할 줄 아는 몇 마디의 말은 친구들이 거의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고 이상한 행동들도 많아서 정상적인 아이들의 눈에 '이상한 아이'로 보였을 것입니
다. 그래서 상협이의 친구들은 상협이와 같이 있는 것 자체를 꺼려할 정도였고, 심지어는 상
협이를 피하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친구를 놀려 주려고 해도 그 친구가 최소한의 인지
능력은 있어야 놀림의 대상이 될 텐데 워낙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되고, 기본적인 대화 능력
조차 없다 보니까 아예 놀림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2학년이 되면서
는 상황이 조금 바뀌어서 친구들에게 상협이에 대해서 물어 보면 '괜찮아요' '말을 빨리 해
서 잘 못 알아듣겠어요' '청소를 안 하려고 해요'라는 등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
은 상협이가 친구들이 보기에 '이상한 아이'에게 '조금 모자란 아이'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
했습니다. 지금은 가끔씩 상협이의 친구들이 놀러 오기도 합니다. 우리는 보통 지식이 없는
사람을 '무식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슬픔이나 기쁨 등의 느낌을 인지하지는 못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상협이가 1학년 때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은
상황에 대한 적절한 느낌 인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의미이며, 2학년 때 '모자란 아이'로
여겨졌다는 것은 기본적인 느낌 인지는 되지만 경험 미숙으로 인해 적절한 대처 능력이 부
족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에 상협이가 저능아라면 모자란 아이에서 더 이상 발전하기는 어
렵겠지만 저능아가 아니라면 모자란 아이에서의 탈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리라고 생각됩니
다. 이렇게 상황이 조금 나아져서 반가운 측면도 있는 반면에 나쁜 측면도 생기기 시작했는
데 여자 친구들의 경우에는 별 탈 없이 상협이와 같이 놀아 주는 반면, 짓궂은 남자 친구들
의 경우에는 상협이에게 일반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평가되는 일을 하도록 하는 등 부작용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상협이는 인지된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서 적절한 보편적 행동 및 판
단 능력이 부족한 까닭에 침 뱉는 놀이 등을 할 때 장난의 대상이 되기도 해서 속상한 경우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협이의 수준에서는 사회적으로 적절한 판단 능력을 기대하
거나 그것을 교육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또래 집단과의
교류에서 오는 이러한 불편한 점을 참을 수밖에 없고, 다만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교육
함으로써 적절한 판단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동생
연년생 동생인 상빈이는 형 때문에 유아기를 주로 놀이방에서 보냈으며 어느 정도 큰 후에
는 형과 엄마를 따라 특수 교육기관에 다니면서 자랐습니다. 이렇게 부모의 관심을 별로 받
지 못하고 자란 상빈이가 보기에 따라서는 안쓰러워보일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
니다. 어릴 때 부모와 함께 보내는 것도 좋지만 또래 친구들과 같이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상빈이가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특수 기관에 따라다닌 것에 대해서는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상빈이의 성격이 나빠지지는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수 기관의 아이들을 많이 보고 자란 것이 오히려 정신적인 성장에 도움
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형과 같이 3학년이 된 상빈이는 개구쟁이이긴 하지만 몸과 마음이 건
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를 내가 엄하게 대할 때가 있는데 바로 상빈이가 상
협이를 놀리거나 무시할 때입니다. 이럴 때면 나는 상빈이를 아주 무섭게 혼내거나 때로는
매를 들기도 합니다. 상협이가 아무리 정상이 아니라 해도 형은 형이므로 형에 대한 기본적
인 마음은 있어야겠기에 상빈이가 아무리 동생이고 어려도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나는 거의 상빈이를 이해하고 함께 놀아 주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상빈이가 밖에서 놀다가 늦게 들어와도 무엇하고 놀았냐고 물어볼 뿐 꾸짖지는 않습니다.
나도 어릴 적에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간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
는 상빈이의 때낀 손가락과 발가락이 사랑스럽습니다. 상빈이의 보물 가방에는 언제나 그
당시에 유행하는 팽이나 딱지가 가득 들어 있으며 밖에 나갈 때는 항상 그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나갑니다. 예전에는 상빈이가 주로 밖에서 친구들과 놀았지만 요즘에는 상협이가
많이 좋아졌으므로 형과도 제법 재미있게 놉니다. 전에는 상빈이가 크면 상협이를 맡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안쓰럽고 미안했는데 요즘처럼 상협이가 좋아지면 상빈이
의 짐도 가벼워질 테니 상협이의 발전은 상빈에게도 반가운 일일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서
상빈이가 좀더 나이가 들면 나의 이런 마을을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어느 특수 교사 이야기
상협이가 여덟 살쯤에 특수 교육 기관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아내가 관여했었고
나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가끔씩 그 특수 교육 기관에서 교육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보통의 경우 특수 교사가 부모에게 교육 자료를 쉽게 주지 않는데, 그 분은 열린 마음을 가
지고 있다고 생각되어 친근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곳에 가서 그 분과 한두
번 상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후 이사를 해서 한동안 찾아뵙지 못했는데 2년이 지난 후
에 한 번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 분에게 평소에 궁금했던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보통은 특수 아동을 교육하기가 너무 힘들고 자기 자식을 교육하는 것도 피곤한
데 당신은 도대체 무슨 힘으로 매일같이 남의 자식을 열심히 교육하느냐고 말입니다. 이러
한 나의 질문에 그분은 자기 역시도 힘들 때면 아이들을 무성의하게 대할 때가 있지만 그런
무성의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어서 오히려 더욱 죄의식을 느끼며 그럴 때면 하느님께 용서를
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이러한 이야기에 대해서 나 자신도 동감했고 종교가 주는
정신적인 믿음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느꼈습니다. 그 분은 또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상협이를 통해서 자폐아가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
니다. 사실 그분도 그 동안의 교육 경험을 통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지만 단지 체계적
으로 정리하지 못했을 뿐이며, 그러한 노력의 결과에 대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부모들에
게 자기의 생각을 말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의 경우 부모는 자폐아의 무한한 발전에 대해서 생각하고 특수 교사는 자폐아의 한계에 대
해서 생각하는데 그분은 전혀 반대였던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자폐아 관계자가 자폐아의
한계에 대해서 생각하면 현실적인 한계의 틀을 깨지 못하고 결국에는 현실 상황에 주저앉게
됩니다. 그러나 무한한 발전에 대해서 생각할 경우에는 부족한 현실 상황을 개선하려는 작
업을 하기 때문에 자폐아는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자폐아의 무한한 발전을
꿈꾸는 그 분의 정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설악산
나는 가을에 드라이브하는 것을 좋아해서 1년에 한두 번은 설악산으로 여행을 갑니다. 상
협이도 설악산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주변의 경치나 바다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설악산
입구에 있는 오락실에서 총을 맘껏 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오락을 위해서 상협이는 차
속에서 6∼7시간 동안을 무던히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상협이가 다섯 살쯤에는 설악산
가서 비룡폭포까지 등산하는 일은 힘들었습니다. 왜냐 하면 상협이의 기분에 따라 그 날의
등산계획이 달라지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번은 상협이가 중간까지는 잘 따라왔으나 도중에
갑자기 괴성을 지르면서 울어대서 제법 무거워진 상협이를 안고 산을 내려오느라 고생한 적
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상협이도 케이블카를 타고 외식을 하고 외박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끼면서 편안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일곱 살 때까지
는 상협이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상당히 무서워하여 절대로 바닷가 근처를 가려하지 않았
으나 여덟 살 이후부터는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는 놀이에 제법 흥미를 느껴서 바닷가에서
조금씩 놀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름에는 수영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깊은 물에 대
한 감각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항상 옆에서 지키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열 살 때는 상협
이가 설악산 등산로 입구에서 망설이며 조그만 목소리고 "아빠, 업어 주세요"라고 수줍은
듯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상협이가 태어난 지 9년 만에 내게 처음으로 한 말입니다. 무엇
보다도 상협이가 업어달라는 의미를 깨달은 것이 대견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 같아
서는 산꼭대기까지라도 업고 가면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이미 40킬로그램의 몸무게인 상협
이를 계속 업어 줄 수는 없었습니다. 상협이는 설악산에 갔다 온 후에 그림 일기를 그릴 때
면, 산이나 바다와 같이 감정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아직 느낌의 인지를 획득하지 못하여
그림으로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대신 설악산 입구에 있는 수십 개나 되는 모텔 건물들을 그
렸는데 잠깐 사이에 어떻게 외웠는지 각각의 모텔 이름을 정확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싫어, 거짓말하지 마
내가 상협이에게 가장 먼저 가르쳤던 말들 중의 하나가 '싫어'라는 말이었습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느낌 중의 하나가 싫어하고 불쾌해 하는 것인데, 이러한 느낌을 적절히 표현할 방
법을 모르다 보니 자해 행위를 하거나 괴성을 지르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인위적으
로 상협이가 싫어하는 상황을 만든 다음에 싫어라는 말을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예를 들어
상협이가 싫어하는 오이를 억지로 먹여 본다든지, 혹은 상협이가 무서워하는 곳에 데리고
간다든지 하여 상협이가 싫어라는 말을 하면 그만두는 식이었습니다. 다른 말보다는 싫어라
는 말을 가르치기는 비교적 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상황에서보다는 불쾌한 상황에
서 비교적 정신이 현실에 많이 집중되고 그만큼 현실적인 말이 나오기도 더욱 쉬웠기 때문
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싫어라는 말을 어느 정도 인지하여 사용하면서부터는 비록 남용하
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자기가 싫은 상황에서는 제법 싫어라는 의사 표현을 하게 되었고
따라서 자해 행위를 하거나 괴성을 지르는 현상이 많이 줄었들었습니다. 상협이가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거짓말하지 마'라는 말을 조금씩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객관적인 상
황을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상협이에게 '가게 앞에 호랑이가
나타났대' 혹은 '상협이네 학교에 불이 났대'와 같은 객관적 타당성이 없는 얘기를 하면서
상협이에게 '거짓말하지 마'라는 대답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상협이의 객관적 판단력을 키
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객관적 판단력은 없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동생이 하자
는 것을 하지 않다가도 동생이 "형, 이것을 하면 아이스크림을 사 줄게"라고 이야기하면 좋
아서 히히덕거리며 따라합니다. 내가 상협이에게 "상협이는 누워 있으니까 오락실에 갈 수
없겠구나"라고 이야기하면 "거짓말하지 마"라고 대답하는 등 객관적인 상황을 판단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따져서 '거짓말하지 마'라는 말을 사용하는 정도입니
다. 지금 당장 상협이에게 시급하게 객관적 판단력을 키워 줄 때는 아니기 때문에 강제로
계속 거짓말하지 말라는 개념을 가르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이러한 교육을
해서 점진적으로 상협이의 객관적 판단 능력을 키워 줄 생각입니다. 또 하나 상협이의 현재
상태를 알 수 있는 단어는 '외롭다'와 '불쌍하다'입니다. 외롭다는 말의 의미는 자기 중심적
인 뜻이기 때문에 상협이가 어느 정도 뜻을 이해하고 때로는 외롭다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
니다. 그러나 불쌍하다는 말의 의미는 자기 중심적인 뜻이 아니고 상대방 중심적인 뜻이기
때문에 아직도 상협이는 불쌍하다라는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벌레를 죽였을 때, 상협이는 그 벌레에 대한 냄새나 생김새에 대하여 싫어하는 느낌은 있으
나 아직은 그 벌레에 대해서 불쌍하다는 감정까지 느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상협이가 도둑질하기 시작했어요
상협이가 현실적인 놀이나 장난감, 과자 등에 대한 정상적인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였습니다. 이 시기에 상협이에겐 갑자기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졌고 먹고 싶은 것도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나 상협이가 원하는 것들은 대부
분 집에 없어서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가는 곳마다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돈
에 대한 계산 능력도 생겨서 제법 거스름돈도 잘 받아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엄마나 아빠에게 용돈을 달라는 이야기를 하루 건너 한 번씩 하게 되었으
며 자주 보는 친척에게도 용돈을 달라고 하였는데, 아내나 나에게는 천 원씩 달라고 하는
반면에 친척들에게는 2천 원씩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상협이가 용돈을 달라고 하
면 가끔씩 주기는 했지만 그냥 주지는 않았고 꼭 청소나 정리 정돈, 그릇 닦기 등의 일을
시킨 다음에 천 원씩 주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중반까지는 상협이가 용돈을 받기 위해서 열
심히 일을 하곤 했는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일하는 것을 조금씩 귀찮아했습니다. 나로서는
상협이가 맹목적으로 일하는 것보다 귀찮아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더욱 발전적이라
생각해서 상협이에게 여러 가지 예를 들면서 귀찮다는 개념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작년
말의 어느 날, 내 지갑이 방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세히 살펴보았습
니다. 그리고 천 원짜리 한 장이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두고 상협이가 하
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상협이는 내 지갑에서만 돈을 몰래 빼가는 것
이 아니고 가끔씩은 아내의 핸드백이나 상빈이의 저금통에서도 천 원씩 빼가는 것이었습니
다. 상빈이의 저금통은 제법 튼튼한 편인데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뾰족한 것으로 저금통을
연 다음에 천 원을 빼내고 다시 닫아 놓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얻은 천 원으로 상협
이는 가게에 가서 오백 원짜리 과자를 사고 나머지 오백 원으로 가게 앞에 있는 조그만 오
락 기계에 쭈그리고 앉아서 오락을 하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상협이와 비교하
면 지금 하고 있는 짓이 너무 예뻐 보여서 별다른 꾸중은 하지 않고 넘어갔는데 올해부터는
좀더 대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천 원으로 천 원짜리 과자를 사고 나자 오락할 돈이 없어서
이번에는 좀더 많은 2천 원씩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상협이에게 '돈이 어디서
났지?'라는 물음을 통해 상협이가 '훔쳤어요'라는 대답을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도둑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하는 정도의 만족감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물론 상협이가 처
음부터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처음에 상협이는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말하다가
내가 사실대로 말하면 용서해 준다고 하자 그 때서야 훔쳤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만화에서
용서라는 말을 몇 번 읽은 적이 있어서 용서라는 말이 들어가면 혼나거나 매맞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어느 날, 아내가 상협이의 주머니를 뒤져 보았는데
놀랍게도 천 원짜리가 몇 장이나 나왔습니다. 돈이 어디에서 났는지를 추궁하자 내 지갑에
서 만 원짜리를 가져갔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상현이의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아서 귀엽기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제재를 가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과연
어느 선까지가 적당할지는 얼마간 시간을 두고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컴퓨터는 유익한가
과연 자폐아에게 컴퓨터가 유익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부터 많은 논의가 있어 왔으나 그
성격상 찬반의 주장은 어떤 과학적인 근거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추론에 근거한 것이 될 수밖
에 없으며, 나 자신도 명백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러나 상협이가 그 동안 컴퓨터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경험한 사항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나
는 자폐아의 컴퓨터 사용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상협이는 컴퓨터 게임 중 특히 야구를 좋
아합니다. 정상인들은 야구 게임의 주목적이 상대방과 경기를 해서 이기는 것에 있고 그 과
정에서 여러 가지 이기기 위한 방법을 선택하며 즐깁니다. 그러나 상협이는 상대편의 개념
과 이긴다는 개념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만 야구 게임 도중에 나오는 심판이 공에 맞고 쓰
러지는 장면이나 홈런이 됐을 경우 전광판에 글자가 쓰여지는 장면, 혹은 심판이 아웃이라
고 외치는 장면 등과 같은 특정 장면을 즐기면서 시각적 쾌감을 얻기 위해 야구 게임을 하
는 것이었습니다. 정상인처럼 야구의 규칙과 논리에 따라 야구 게임을 즐기지 못하는 것입
니다.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여서 퀴즈 게임의 경우, 자기가 이기면 상대방이 깜짝 놀라 떨어
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을 즐기기 위해서 열심히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
기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인 특정
화면의 출현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컴퓨터 게임이 과정을 숙련시키고 즐기는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각의 쾌감을 즐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
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고의 다양성을 기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 하나는 자폐아 교육의
최종 목적이 현실 세계의 즐거움과 무서움, 어려움 등을 깨닫게 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기 위
해 인간 집단과의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잇는 반면, 컴퓨터 게임은 그것을 즐기
는데 있어서 그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만의 세상을 구축하게 됩니다. 그리고
컴퓨터의 기본 성격이 자폐아의 기본 성격과 비슷해서 자폐아를 시각적으로 즐겁게 해 줄
수는 있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는 자폐아의 수정이나 발달 작업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
는다는 것입니다. 자폐아가 웬만큼 발전하면 현실 세계의 원초적인 감각인 어려움이나 싫은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가 가능해지는데 이 때 자폐아가 찾는 사람은 친구가 아닌 부
모들입니다. 왜냐 하면 부모들은 자기의 어려움이나 필요한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들
인 반면에, 친구들은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존재이지 자기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가 때문입니다. 자폐아들은 현실 세계의 어려움과 필요한 것은 어느 정도 빨리
인지하는 반면 현실 세계의 어려움과 필요한 것은 어느 정도 빨리 인지하는 반면 현실 세계
의 즐거움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인지하고 느낍니다. 그러므로 친구 집단과의 교
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 세계의 즐거움(가위 바위 보, 숨바꼭질, 주사위 놀이
등)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느낄 수 있도록 교육해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야 합
니다. 그러면 주변 또래 집단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좋아집니다. 그러나 컴퓨터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에는 비록 인지가 약간 발전하는 것은 기대할 수 있으나 이를 현실 세계에 연결
시키는 응용력이 없기 때문에 자폐아의 정신이 현실 세계와는 별도의 세상에 고착될 가능성
이 충분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야구 게임을 좋아한다 해도 규칙과는 논리에 의한
야구가 아닌 시각적인 야구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현실의 야구에는 흥미가 없다든
지, 혹은 좋아한다 해도 컴퓨터 야구 게임과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서 컴퓨터 야구 게임을
연상하면서 즐거워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컴퓨터 야구 게임을 하
도록 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현실의 야구를 하도록 유도해서 야구 경기를 할 때 발생하는 여
러 가지 상황과 거기서 생기는 즐거움과 분노 등의 느낌을 실제로 느끼도록 하고 이를 체계
화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사실 나는 상협이가 컴퓨터를 의식적으로 멀리하도록 하
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상협이의 최종 목표는 현실의 느낌과 인지의 이해인데, 컴퓨터는 현
실의 느낌이 아닌 영상의 시각적인 쾌감을 자폐아에게 전해 주는 측면이 강해서, 비록 약간
의 인지 발달이라는 작은 것을 획득할 수는 있어도 자칫 현실의 느낌이라는 큰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월계동과 반포동
1989년에 결혼한 이후 우리 가족은 구이동에서 2, 3년 정도 살다가 상협이가 세 살부터 여
섯 살까지 월계동에서 살았으며 일곱 살에서 여덟 살까지 2년은 반포동에서 살았습니다. 이
후 상협이가 1년 늦게 학교에 입학하던 아홉 살부터 지금까지는 다시 월계동에 살고 있습니
다. 1998년에 반포동에서 다시 월계동으로 이사 온 이유는 IMF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이 한
가지였고, 또 하나는 상협이의 교육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월계동의 아파트
는 작은 평수의 서민 아파트인데 대부분이 결혼한 지 얼마 안되는 30대가 주류를 이루며 따
라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공원이나 놀이터, 상가 등에는 항상 꼬마들이 몰려다니
고 그 부모들도 아이들을 스스럼 없이 편하게 대해 줍니다. 그 때만 해도 상협이의 모습은
금방 다른 사람들의 눈에 뜨일 정도여서 이웃들이 상협이에 대해 불편해 해도 나로서는 어
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고맙게도 이웃들이 우리들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편하게 대해 주
었습니다. 도 아이들도 상협이를 편견 없이 대했기 때문에 마치 시골의 장터처럼 포근함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특히 여름철에 대부분의 가정은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문을 열어 놓고
사는데, 동네 꼬마들이 이집 저집 돌아가면서 놀았고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과자
나 라면을 주었습니다. 상협이도 이런 분위기에 묻어서 엉겁결에 친구들과 같이 다른 집에
몇 번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실은 나는 이러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싫고 가끔씩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꼬마들에 대해 짜증이 날때도 있었지만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참을 수 있었
던 이유는 상협이의 상태가 좋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반포동에 살았을 때는 각각의
집들이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었으므로 불완전한 상협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동네에 몇 명의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상협이와는 거리감이 있어서 쉽게 어울리지 못했습니
다. 그나마 상협이가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때는 태권도장에서의 1시간뿐이었습
니다. 그 때도 물론 상협이는 친구들과 같이 놀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이상한
짓을 하며 태권도장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상협이는 몇 개월 후에는 줄을 서고 앉아 있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집중적으로 느낌과 인지 교육을 실시한 까닭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
으로는 습득한 느낌과 인지를 적절히 표현할 장소와 대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개인
적으로 월계동보다 반포동을 좋아하지만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은 월계동에 살면서 상협이가
사회라는 공동의 장에 흡수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상 가정이 개별화되고
설상가상으로 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사람이 직접 만나는 교류의 장이 줄어든다면 자폐아들
에게는 그만큼 더 사회화의 기회가 줄어들 것 같아서 걱정스럽습니다. 나로서는 상협이를
편하게 대해 주는 월계동의 이웃들과 또래 친구들, 그리고 상가의 가게 주인들이 너무도 고
마운 사람들입니다.
나를 찾게 해 준 상협이
상협이가 어린 시절에 보여 주었던 자폐아 특유의 이상한 행동들은 정상인의 사고방식으로
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깊은 근심과 두려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으며, 급기야
는 나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일을 팽개치고 상협이와의 생활을 통한 자폐문제에의 정면 대
결의 길로 들어서게 했습니다. 상협이와의 생활 초기에는 상협이에 대한 낙담과 울분의 연
속으로 삶의 깊은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협이의 내부에 숨
어 있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파악하게 되었고 마치 얽힌 실을 풀 듯이 문제점들을 풀어갔
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상협이 원래의 참모습을 되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과
정들이 인간으로서 참기 힘든 고행의 연속이었지만 어쨌거나 2년이 지난 후에는 제법 정상
적인 인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변한 상협이를 보면서 나는 자식을 되찾
은 듯한 기쁨 외에도 도전과 극복, 그리고 승리를 생각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나
는 상협이의 변화 못지 않은 커다라나 변화를 느낄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변
화'였습니다. 사실 나라는 사람의 삶은 지극히 평범했고 굳이 특징이 있다면 사람이나 사건
을 관조하면서도 근본적인 이유에 대하나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것에 대해 친구들이나 동료
들이 인정해 주는 정도였습니다. 직장 생활 중에 편견이나 아집을 가진 사람들도 만났지만
나름대로 그들의 삶을 인정하면서 별 탈없이 살았고 나 역시도 넓은 아파트, 새 차, 증권 등
에 관심을 소시민의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생활과 사고 방식은 과거에 비해
정반대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넓은 집보다는 좁은 집이 상협이를 위해서 좋을 것
같고 비싸고 큰 차보다는 작은 차가 환경을 위해서는 더 좋을 것 같고, 증권은 인간의 정신
을 물질적인 욕심에 집중시킴으로써 창조적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데에 방해 요인이 된
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내 생활의 변화에 대해서 처음에는 나 스스로도 느끼지
못했지만 상협이의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상협이와의 생활 초기에
나 스스로를 상협이에게 좋은 쪽으로 맞추려고 노력했던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든 것입
니다. 또한 나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한 인간의 정신을 만들어가는 숭고
하고 보람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만든다는 것은 마치 하
나의 우주를 만드는 것과 같아서 나의 정신이 올바르지 못하면 상협이의 정신고 제대로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나의 정신을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
러운 상태로 유지하면 할수록 상협이의 정신도 그에 비례해서 좋아지기 때문에 나의 정신은
타락하려 해도 타락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도 평범한 소시민이
기 때문에 현실적인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상협이가 있기 때문에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비밀의 문
우리 나라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과연 이 속담이 자
폐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적용될 수만 있다면 참으로 기쁜 일이겠
습니다. 이러한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내가 느꼈던 자폐 문제 해걸에 대한 비밀의 문에 대해
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과학적 기능주의의 시각과 정신으로 자폐아를 보면,
자폐아는 이상함과 신비스러움 그 자체여서 도저히 자폐아를 이해할 수도 없고 가까이 다가
갈 수도 없습니다. 물질적이고 기능적인 정신을 가진 나는 다마나 나일 뿐이고 자폐아라 이
름 붙여진 정신의 마비 상태인 시각 우선자는 저 멀리에 있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어서 서
로 간의 간격을 좁힐 수 없는 평행선만 계속될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질적이고 기능
적인 정신과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이 자폐아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단지 반복학습에 의
한 인간로봇을 만드는 것일 뿐이고, 본질적인 문제인 정신과 마음을 만들어 주는 일은 불가
능합니다. 비밀의 문은 그 반대쪽에 있어서 기능주의자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밀의 문이란 바로 자폐아를 정신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이야기가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의 보이지 않는 옷처럼 지
나치게 추상적이고 피상적으로 생각되겠지만, 자폐 현상이라는 정신의 문제 자체가 바로 추
상적인 문제입니다. 좀더 학문적인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보겠습니
다. 인간의 정신 형성 과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첫째는 세 살 정도까지의 기초
형성 과정이고 둘째는 세 살 이후의 정신의 확대와 발전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데 자폐아의 문제는 두 번째 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첫번째 과정의 문제인 기초적인 정신 형
성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기능주의는 두 번째의 과정에서는 적용이 가능하지만 첫번
째 과정인 정신의 형성 과정에는 적용이 불가능합니다. 첫번째 과정의 영역은 신의 영역이
고 우주의 영역이며 자연의 영역이지 과학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자폐아에
게 아무리 과학적인 사고 방식으로 기능적인 접근을 해도 결국은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두 번째의 정신 성장 과정을 자연적인 환경과 기능적인 환경이 혼합된 환경에서 자라
났는데, 내 마음의 중심을 자연 친화적인 마음으로 뿌리내린 결과 상협이에게 정신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연주의적인 정신이 과연 자폐아의 초기 정신 형성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또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는지를 정확히 수량화해서 이야기하
기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연주의적 정신이라는 것은 자연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
끼는 것으로 예를 들어 봄의 꽃과 가을의 낙엽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며, 여름과 겨울의
더위와 추위도 그 상태로 느끼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능주의적 정신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좀 더 예쁜 꽃을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종자를 만들거나 또 낙엽을 청소하기 위해
서 효율적인 청소기를 만들고 또는 에어컨과 보일러를 만드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이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한 이념은 자연주의적 정신이 아니고 기능
주의적 정신이기 때문에 자폐아는 사람들에게 아이러니와 모순의 숙제를 함께 던져 주는 셈
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자폐아 교육의 시작은 잘못된 자폐아를 나의 의도대로 수정
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자폐아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포용의 마음에서
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점이 자폐아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
합니다.
상협이의 미래
상협이와 어렸을 때 같이 교육받았던 어느 자폐아 어머니가 우리 집에 놀로 온 적이 있었
습니다. 그분은 상협이가 변한 모습을 보고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 동안 간접적으
로만 좋아진 자폐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로 자기의 눈으로 그러한 사실을 목격
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상협이는 초능력 보유자입니다. 좀더 정
확히 말하면 논리 우선자인 정상인의 시각에서 보면 시각 우선자는 시각적 초능력 보유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논리 우선자인 우리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일 뿐, 시각 우선자
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초능력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보통의 사실일 뿐입니다. 자폐아 관
련 책에서 자폐아의 일부는 이러한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쓴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보
기에는 요즘 다량 출현하는 자폐아는 누구나 이러한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
다. 다만 이러한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자폐아가 상당 수준
발전해서 자기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기초적인 수준까지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
다. 그런데 이러한 기초적인 수준까지의 발달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잠재적인 초능력을 가
지고 있는지의 확인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상협이는 수년 전의 날짜와 요
일, 그 날 한 일 등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수천 장의 그림이나 만화의 대사도
그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영어도 한 번만 들으면 정확히 기억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은
상협이가 영어를 잘 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초능력이라면 초능력이고 병적인 모습이라
면 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미루어 볼 때 상협이가 앞으로 잘 성
장한다면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화가 나기도 하는데 상협이와 가족들을 그토록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과학적 시각 영
상의 세계에서 상셥이가 다시 일한다는 것이 마치 병주고 약주는 것처럼 이율 배반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협이가 아주 싫어하지 않고 또 어느 정도의 능력이 생긴다면
나는 상협이와 같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동물들을 키우며 살고 싶습니다. 이러한 시골
생활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았던 나에게도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협이를 위해서도
자연적인 시골 생활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협이가 과연 땀
흘려 일하면서 고생하는 시골 생활에 대해 만족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생길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부정적입니다. 아침에 해 뜨고 저녁에 해 지는 것에 대해서 혹은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감동을 느끼고 즐거움을 갖는다는 것은 이미 이 시대의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도 찾아보기 어려운 정서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협이가 이러한 자연적인 정서들을 영원
히 얻지 못하고 계속하여 시각의 세계에만 머물러 잇다면 어쩌러 수 없이 상협이의 시각적
초능력을 활용할 술 있는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직업을 찾아봐야겠지만, 이러한 결정을 지
금 할 필요는 없고 열다섯 살 이후에나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상협이가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아서 장래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래도 지금
은 과거에 비하여 비교적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내가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 이유는
상협이와의 생활중에 작으면서도 아주 귀중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상협
이는 상협이의 정신과 나의 정신이 일치하는 시간 만큼 성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상협이는
나와 정신이 일치하면서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나의 정신을 흡수하고, 이러한 과정에
서 느낌과 감정을 얻게 되며 결국은 정상적인 인격체로 발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상협이와 정신을 일치하는 시간을 앞으로도 계속 가진다
면 상협이의 장래는 어느 정도 낙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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