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1)
크랜달은 넥스트프로그램이 복잡한 부분까지도 쉽게 표시해준다면서 다음과같은 요지의 말
을 했다.
"이것이운용되는 것을 보면 흥미롭다. 지금까지 "매시메티카"라고 하는 기능을 갖춘 시스템
이 나온 일은 없다. 그 기능을 이용하여 양자파 함수 도표 를 그려보겠다. 여기에 양자파 함
수 객체가 있고 양자역학을 풀었던 종전의등식을 푸는 방법이 있다. 내가 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그래프는 매 시메티카가 그린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일년에 열 사람이 쓸까말
까하는 프로그램이다. 응용기술과 그 프로그램을 접속시킨 것이다. 매우 간단하다. 6개의 정
점이 있는 산처럼 생긴 양자파 함수를 여기 볼 수 있다.
크랜달은 넥스트 본사와 연결된 마이크를 손으로 툭툭 친 다음 프로그램과 접속, 그 소리
를 곡선으로 변형시켜 컴퓨터 화면에 시뮬레이트시키는 일로발표를 마무리했다. 크랜달은
화면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 손으로 낸 소리를 도식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는 크랜달이 무대에서 내려가자 "리처드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것을 만들었습니
다"라고 말했다. 잡스는 크랜달 같은 사람이 앞으로 그의 고객 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크랜
달은 잡스가 바라던 대로 넥스트컴퓨터가 학문 계에서 스위스제 군용칼의 역할을 할 것이라
는 사실에 동의했다. 사람들은 컴퓨터값이 비싸더라도 이 컴퓨터를 구입하기 위해 산이라도
기꺼이 옮겨야만 했다. 잡스가 대학 관계자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측에 대학을 대표하여 넥
스트컴퓨터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그때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때 크
랜달은 잡스를 위로했다. 그러나 잡스를 위로한 크랜달 부류 의 사람들은 "가격이 문제가
안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넥스트의 상업적 기반을 다져주는
데 실패했다.
크랜달의 순서가 끝나자 잡스는 컴퓨터의 획기적인 사운드기능을 보여주기 위한 시연을 시
작했다. "책을 통해 지식을 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소리로 듣는 것도 감동적
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마시오"라는 연설과 "독수리 가 착륙했다"라는 제목의 미
항공우주국(NASA)소개 자료내용을 들려주었다.
잡스는또 넥스트가 디자인한 전자메일시스템이 메시지에 녹음한 음성을 어떻게 접속시키는
지를 보여주었다. 잡스는 입을 마이크에 갖다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티브입니다. 저는 오늘같은 역사적인 날에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데이비스 심포니 홀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박수소리 도 함께 보낼까요. 물론 원한
다면 그 부분을 편집할 수 있습니다."관중들은 잡스가 "이런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을 때
그 표현을 미리 준비해서 한 것인지 아니면 그날 흥분된 분위기에 휩쓸려 즉흥적으로 한 말
인지아직도 궁금 해 한다. 어쨌든 그날 넥스트의 특수 멀티미디어 메일이 전세계적으로 쉽
게전송될 수 있다는 점만 강조되었지 그런 메시지를 받기 위해서수진자측도 넥 스트제품을
구입해야 한다는 점은 언급되지 않았다. 독특한 전자메일을 받기위해 넥스트 제품을 구입하
는 것은 AT&T비디오폰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AT&T비디오폰은 1964년 세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을 때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제품으로 1992년 다시 발표되
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디지털 라이브러리라는 개념을 확실히 잡는 것이 가장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넥스트가 개발한 대량 저장능력과 획기적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
면 손끝 하나만 움직여서 전체 인류의 문명사 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디지털
책을 만들었습니다. 구텐베르크이후 인쇄업은 사실상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역사적
중요성을 부각 시키는 말들이 계속 나왔다. 넥스트가 웹스터사전, 옥스퍼드사전 및 옥스퍼
드판 셰익스피어 작품에 디지털 책의 라이선스를 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결국 쓸모 없는 것이 되어 소비자들의구매욕을 일으킬 만큼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디
지털 라이브러리가 획기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잡스의 말을 의심한 사람은 그 당시 아
무도 없었고 그런 기능이 넥스 트 컴퓨터만의 독점 기능이 될 것이라는 가정을 의심하는 사
람도 없었다. 그 날 데이비스 심포니 홀에 모인 사람들은 잡스의 상업적 판단의 타당성을
검토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잡스는그런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할 만큼 카
리스마적이었다.
작성일자 : 1995.04.12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2)
"여기서 몇가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먼저 정말로 좋은 디지털 책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드
리겠습니다. 여기에 웹스터 사전이 있습니다. 먼저 동의어 사전을 부릅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변덕스럽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단어 의 뜻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찾
은 내용입니다. 세번째 설명이 제게 해당되는 것같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여 예측할 수
없는 특성을 지닌 것". 동의어.반대어 사전을 쭉 훑어 내려가면 반대말이 "무뚝뚝하다"라 고
나옵니다. 그럼 그 뜻이 무엇인지가 또 궁금해지겠죠? 클릭을 두번 누르면 그 뜻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 있습니다. "냉정하고 감정의 기복이 없는 것, 행동이 느리거나 변화
를 거부하는 것, 우울하고 무뚝뚝한 성격 . "변덕스럽다"라는 말이 그다지 나쁜 뜻이 아닌가
봅니다."잡스는 자신에 대한 떠도는 소문을 유머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을 뿐 아니라그의 박
식함 과 문학적 소양도 과시했다.
"보브 다일랜의 작품전체를 끄집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것까지도 판매할 수있을지는 자신
이 없지만요. 다일랜이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했는지 한번 알아봅시다. "결혼의 노래"
로부터 시작해 사랑에 관한 내용이 36가지 있습니다. 적당한 수준이죠? 다시 말해서 상당한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매우 훌륭한 책 한권이 더 있습니다. 옥스퍼드 명문장사전이 그
것입니다. 이 책에는 아침 식사라는 말이 들어있는 멋있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시스템이 부드럽게 스크롤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는지요. 이렇게 밑으로스크롤하면 됩니
다." 잡스는 컴퓨터의 음악적 기능을 제일 마지막에 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 감정을 조절
했다. 그 컴퓨터는 잡스가 "순수한 수학"이라고 표현한 것을 기본으로 하여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의 도움을 받아 신시사이저만큼이나 편리 하게 음악이 나오게 할 수 있었다. 잡스
는 그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제품발표회가 심포니 홀에서 개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세 종류의 악기소리가 심포니 홀을 가득 채웠다. 모든 소리는 컴퓨터 합성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런 훌륭한 기능은 대학의 음악과 이외의 학과에서는 별 환영을 받지 못하였
다.
발표가 거의 마무리단계에 이르러 가격을 언급할 시기가 왔다. 잡스는 긴 서론 때문에 불
만스러워할 지도 모르는 청중들에게 하드웨어를 사면 같이 받게될 소프트웨어들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잡스는 메일 프로그램과 디지털 라이브러리 워드프로세서,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칭찬하며 이런 기능들을 값으로 치면 수천달러는 호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만 들
으면 넥스트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거의 공짜로 제품을 구입한 행운을 잡았다는 착각에 빠지
게된다. 고등교육기관에 공급될 컴퓨터의 대당 가격은 6천달러가 될 것이다. 모두가 사무실
에 한대씩 비치하고 싶어하는 획기적 프린터는 가격치고는 상당히 높은 2천달러가 될 것이
다." 잡스는 기존의 하드디스크로 광 디스크의 저장 용량을 충당하려면 추가로 2천달러 또
는 4천달러만 더 부담하면 된다고 말했다.
발표회가 개최되기 전 실리콘 밸리에서는 잡스가 모든 사람들 앞에 포도향 쿨 에이드라는
음료를 한 잔씩 갖다 놓으면 청중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의심 해 보지도 않고 단숨에 마셔
버릴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아 잡스가 마치 짐존스나 존 스타운 목사와 같은 영향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했다. 그 소문은 사실 그렇게 근거 없는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청중들은 하드 디스크를(광 디스크의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갖
추어야 했다 갖춘 컴퓨터와 프린터의 가격이 1만달러 이상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열렬한 환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흑백컴퓨터치고는 3천달러라는 약속된 가격에 부합된 조건
은 아니었다. 잠재 고객들은 제시된 조건으로 컴퓨터를 받아들이는 도리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소프트웨어를 낱개로 구입할 수는 없
었다. 잡스는 "전체가 아니면 구입하지 말라"고 고집했다. 그는 또 기본적인 소프트웨어 운
용체계가 아직은 미완성 단계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그는 쿨 에이드 음료에 중독되어 있는
관객들에게 그의 훌륭한 언변을 이용하여 그것은 문제도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그들을
세뇌시켰다. 제일 처음 발표되는 소프트웨어에는 1.0버 전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후에 발표
되는 제품들은 버전업이 되는 것이 관례 이다. 그러나 그 당시 넥스트는 첫번째 버전을 발
표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는 현재 올해 11월 초쯤 시스템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금년에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은 0.8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년 초에는 0.9 버전을 발표하여
소프트웨어 개발업자 및 최종 사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다음 2.4분기에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완벽한 1.0 버전을 발표할 것입니다." 컴퓨터 자체가 다음달이나 돼야 출하
될 수 있고 소프트웨어는 앞으로 6개월 더 있어야 완성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너무 성급하
게 제품 발표회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 잡스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
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3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리느라 지쳐 있는 대학 관계자 들이
모두 등을 돌리기 전에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시늉이라도 보여야만했다. 그는 진지한 자
세로 발표회를 진행시켜 나갔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미완성된 제품도 마치 완성된 것처
럼 생각하도록 했다. 넥스트를 소개하는 필름을 봐도 아직 미완성된 넥스트 공장이 마치 완
성된 것처럼 보인다.
넥스트가약속한 컴퓨터 내장소프트웨어를 서둘러 개발하는 동안 검고 딱딱하게 생긴 입방
체 외형은 좋은 눈속임이 될 수 있다.
그는 업계에서 내로라하게 똑똑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넥스트가 마치 난공불락의
성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잡스는 밝은 면만 열거했다.
"지난 몇년동안 우리는 운좋게도 유익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이 자리를 빌려
그 관계를 밝힐까 합니다.(화면에 IBM과 넥스트의 로고가 나타난다)사실입니다."
작성일자 : 1995.04.14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3)
잡스는 넥스트 컴퓨터와 IBM의 유닉스 시스템상에서 운용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넥스트
스텝"을 IBM에 라이선스해 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넥스트 스텝이 어떤 IBM기종에서 운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지는않았지만 두 회사가 손을 잡고 일할 것이라는 이미지
를 어렴풋이 풍겨 잠재 고객과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이상적인 동업자라는 인식을 갖도록
유도했다. 잡스가 흥분된 어조로 "새 컴퓨터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고 말한 후 샌 프란시스코 교향악단 소속 바이올린 연주자가 넥스 트컴퓨터와 함께 바흐의
A 마이너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2중주로 연주하는것으로 발표회는 막을 내렸다.
멋진 2중주에 관중은 박수를 보냈다. 관중은 월 가 증권 거래소나 메리 케이 화장품 판촉
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 집단광란의 반응을 보였다. 관중의 그러한 반응은 연주가 매우 신선
하기도 했지만 PC사용자가 원하는 기능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트집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열띤 분위기에 빠졌던 로스 페로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컴퓨터 소리에
맞추어 합성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 것이야말로 "최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것으로 그날
을 회고했다. 잡스는 소프트웨어 운용상의 실수 없이 그날의 발표를 마쳤다.
그는 그의 실력을 백배 활용했을 뿐 아니라 행운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달 개최된 프레스클럽기자회견 직전에 밝힌 페로의 회고담을 들으면 그날
잡스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배짱으로 버텨 나갔고 불가능에가까운 일들을 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무관심한 실리콘 밸리 에서직접 컴퓨터를 시연해 본것 자체가 놀라운 일
이다.(넥스트의 충직한 사람들만골라 그날 초대되었는데도 페로는 그들의 충직함을 부인했
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무대에 선 잡스는 마치 마이클잭슨 처럼 모두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
고갔다고 페로는 말했다.
페로가 신비주의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로가 그 날의 분위기에
휩쓸려 들어간 것은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라 는 신비한 인물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언론마저도 그날의 분위기에 휩쓸린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 발표회 이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잡스는 분위기를 완전히 휘어잡았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쉽게
대답했다. 잡스 는 계획보다 늦게 제품발표회를 개최한 이유를 묻는 질문들에 대한 답도 미
리 준비해 두었다. "컴퓨터는 결코 늦게 발표된 것이 아니다. 적어도 5년은 앞선 제품이다".
기자들은 동의했다. 제품을 몇 대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넥스트는 제품을 최대
한 많이 생산할 것이지만 "수요에 못 따라갈것 이라고 답했다.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로 실
리콘 밸리 소식을 어느 정도 다루는 웨스 스미스는 잡스가 까다로운 질문을 던진 기자들을
무시하자 동료 기자들마저 그들을 비난하는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잡스는 자신의 성공을 지나치게 자신한 나머지 타당한 질문에 대해 한마디 짧은 답으로 응
수한 것이 얼마나 무뢰하게 비춰졌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잡 스는 넥스트 컴퓨터를 사용하
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대학생이 아니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에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학에 등록하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잡스의 큰 실수까지도 눈감아 줬다. 점심식사가 변변치 않았다. 몇몇이 불만을 토
로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언론은 이번에발표된 제품에 대해 대체로 긍
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스트워드 알솝은 앞으로 18개월 이내에 약 2만5천여대의 "멋있는 넥
스트 컴퓨터"가 판매될 것이라고 썼다. 대학이 컴퓨터가 갖고 있는 문제를 약간 부담한다면
넥스트는 앞으로 일년 반 안에 총 1억5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되는 것이
다. 다른 뉴스레터의 편집부장인 리처드 셰퍼도 넥스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나는 처음에는 넥스트를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고 말했기 때
문에 알솝의 말보다 더 설득력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도 넥 스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표현했다. ITC사의 이사인 클레어 플레그 는 넥스트의 제품뿐 아니라 마케팅 전략 또한 훌
륭하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테크놀로지 스톡 레터지의 편집 부장인 마이클 머피는 넥스트
가 앞으로2년 동안 5만여 대의 컴퓨터를 판매해 약3억달러 상당의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예
측했다. 매큐저지의 편집부장은 다소 흥분된 어조로 "이 기계는 결국 섹스 보다 더 중요해
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제품 발표회의 분위기와 관중들의 넥 스트에 대한 지지는 이보다
더 고조될 수는 없었다.
넥스트는 제 4의 물결을 타고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작성일자 : 1995.04.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4)
88년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큐브컴퓨터를 발표하기 훨씬 이전에도 신 기술로 교육방식을
바꾸어 보려는 시도가 여러번 있었다. 과거 몇몇 기술예언자들도 자신들이 마련한 획기적
전기가 혁신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잡스만큼 확신 했지만 그들의 예언은 빗나갔다. 잡스
가 영웅시했던 토머스 에디슨도 "시각 적인"강의를 가능케할 "모션 픽처"라는 효율적인 매체
로 인해 "학교 수업에 서 책은 곧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필름 뿐 아니라 라디
오 및텔레비전에 대해서도 초기에는 화려한 예측들이 나왔다. 그들은 교육분야를 대대적으
로 혁신시키고 미래를 주도해나갈 것이라고 장담했고, 책을 이용하는 시대는 이제 막을 내
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런 제품들은교육분야를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
60년 컴퓨터가 교육에 이용되기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MIT 미시간 대
학을 비롯한 미국의 고등교육기관들은 한동안 컴퓨터가 모든것을 혁신시킬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61년 MIT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수학 강의를 시험적으로 시도한 이
래로 많은 학교들이 60년대 에 접어들면서 컴퓨터를 이용, 강의를 수백개 개설했다. "타임"
지는 "B.M. O.Cs:BigMacines On Campus(캠퍼스의 대형 기계)"라는 말을 만들어 내기 도
했다. 65년 캘리포니아 대학이 어빈에 분교를 설립하였을 때 주정부는캘리포니아 대학 분교
가 컴퓨터를 이용한 교수법을 개척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컴퓨터 U"라고 불려지기도
했던 UC-어빈은 학교건물을 짓기도전 에 컴퓨터를 구입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미시간에
설립된 한 대학은 도서 관을 설계할 때 수천권의 책만을 소장할 수 있게했고, 나머지 공간
에는 시청 각기재 및 컴퓨터가 들어설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책을 싫어해서 이런설 계를
한 것이 아니다. 책은 이제 더이상 정보전달매체로서 최선의 방법이될수 없기 때문이다." 잡
스는 너무 젊었기 때문에 컴퓨터시대 초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며 애플이 등장하기 이전의
상황을 검토해 보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이것이 결국 불행 을 낳게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
었다. 만일 그가 컴퓨터의 역사와 25년전에 이미 캠퍼스에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잘못
된 예측이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더 유의했더라면 넥스트의 정책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
다.
넥스트는 큐브 컴퓨터가 대학에서 강사를 보조해 주는 이상적인 기계가 될수 있다고 설명
했다. 1960년대는 바로 그런 것을 필요로 했다. 즉 학생 개개인이 필요로하는 강 의를 컴퓨
터가 할 수 있어야 했다. 교수들은 엘리트의 독무대였던 교육계가 민주화될 것이 라고 말
했고 이것은 잡지를 통해 독자들에 게 전달 되었다. 레드북은 영국의 찰스 황태자 와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개인 교사를 두었다고 지적했듯이 컴퓨터는 모든 학생들이 과거 특수
계층이 누렸던 특권, 즉 개인의 필요에 따라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독자들에
게 말했다.
매콜스는 한 수 더 떠서 컴퓨터가 캠퍼스에 등장하게 되면 "평범한 사람이천재만큼의 생
산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시스템 기획 실장인
로버트 치르기는 대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활동 력이 없고, 상호 작용이 없는" 책을 사용한
세대보다 "상호 작용이 가능하고 사용이 용이하며 신속한 해결책을 주는" 컴퓨터 강 사에
향수를 느끼게될것이라고 예상했다.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가 단순히 교수의 조수 역할로만 끝나지 않고 나중에는 교수를 대
체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 당시 행동 심리학자인 프레드 켈러 는 제법 심각하게 "선
생님이여 안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기도 했었다.
이런분위기는 아직 컴퓨터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못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 으켰
고 중도주의적 태도를 취한 사람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컴퓨터지원 강의를 보완적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평가하여 초현 대주의적 요소
와 고전적 요소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 산업계는 약삭빠르게 새 컴퓨터에 고전적 이름을 붙였다. 일리노이 대학의 시스템
은 Programmed Log-ic for Automatic Teaching Operations의 머리글자 따서 PLATO라고
그럴싸하게 불렀다. 그 후에도 스탠퍼드 대학 이 SOCRATES, MIT대학이 ATHENA라는 약
어를 사용하여 시스템과 고전적 요소를 연관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그런 학습용 기계를 누가 비난하겠는가? 기계를 통한 교육과 소크라테스식 개인 교수법은
닮은 데가 없다고 주장하는 완고한 학자만이 그런 태도를 취할 것이다. 맥스웰 골드버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의 인문대 교수로 69년 매우 기분 나쁜
어조로 "소크라테스가 자기 이름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무덤에서 걸어
나와 독약을 한컵 더 마실 것"이라고 말했다.
작성일자 : 1995.04.19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5)
전통적인 대학 강의에 가장 큰 위협이 된 것은 전통적인 이름을 가진 일리노 이 대학의 플
라토(PLATO)라는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은 다 낡은 텔레비전 세트와 16개의 키가 있는
키보드로 이루어졌고 다른 방에서 손으로 슬라이드 를 집어서 컴퓨터 스캐너에 비춰야 화면
에 그림이 나타나는 시스템으로 1960 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점차 개선
되어 1백50여개의 강좌 를 완전 전산화시킨 매우 큰 시스템이 되었다. 일일이 손으로 슬라
이드를 잡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전 자동화가 이루어졌다. 이 시스템은 1970년대 말에이르
러서는 스와힐리어 과목에서부터 시작하여 로켓 강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강좌에 사
용되었다. 그러나 정작 플라토에 대한 강의에는 이용되지않았다. 플라토는 민간 부문으로부
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넥스트의 후반시 기와 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무료로
대학에 구형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대여해온 미니애폴리스에 본사를 둔 컨트롤 데이터사는
1977년 이미 개발된 시스템 강좌에 대해 로열티를 지불하겠다는 조건으로 일리노이대학으로
부터 플 라토에 대한 소유권을 인수받았다. 컨트롤 데이터는 프로그램 개발에 거액을 투자
하여 다양한 기능을 만들어서 대학뿐 아니라 국민학교와 직업 교육 기관 에까지 시스템을
판매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컨트롤 데이터 의 노력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
다.
컨트롤 데이터는 몇년이 지나 9억달러의 적자를 내고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윌리엄 노리스는 창립자라 는 위치와 권위를 내세워 사업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명백했음에
도 불구하고 플라토로 계속 수익을 올리려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컨트롤데이터 이사진 들
에 의해 밀려나게 되었다.
그럼 왜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여 계속 확장시킨 플라토가 빛을 보지 못했을까? 그것은 사
람들이 원하지 않은 기능을 계속 개발했기 때문이다. 플라토 는 대학이 기꺼이 플라토 소프
트웨어가 내장되어 있는 본사에 있는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전화선을 통해 연결된 컴퓨터 터
미널을 임대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개발되었다. 1960년대에 타당한 전제였다. 그러나 1970년
후반 애플과 같은 여러 회사들이 플라토 터미널의 월간 임대료 1천1백달러 이하에 퍼스널
컴퓨터를 제공하게 되자 중앙 집중 컴퓨터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아니 사
실 영원히 사장된 것이다. 그러나 컨트롤 데이터가 이미 자리잡고 있는 조류의 변화를 깨닫
는 데는 몇년이 더 걸렸다.
플라토의 종말을 고하는 이 시점에서 1980년대 말 넥스트가 고등교육 기관에 넥스트큐브
컴퓨터를 제공할 당시의 넥스트와 플라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넥스트는 제품을 개체로 판매했다. 넥스트 본사 와 연결된 임대 회선이 없었기 때문에 그
에 대한 비용이 제품 가격에 포함되지 않았다. 넥스트 컴퓨터는 그 크기와 마이크로프로세
서의 내용 그리고 스크린의 모양으로 봐서 매킨토시와 더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
넥스트 의 창립자와 대부분의 초기 직원들이 매킨토시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넥 스트가
역사적 배경을 지적해야할 경우가 생기면 반드시 매킨토시를 언급할것이라는 생각이 사람들
의 마음 속에 굳어져 있었다.(넥스트는 넥스트큐브가 기존의 제품과는 다른 혁신적인 제품
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얼핏 보기에 넥스트 제품과 매킨
토시가 유사한 점이 많은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넥스트컴퓨터가 발표된 다음에 사
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아무도 원하지 않는 플라토와 닮은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넥스트컴퓨터의 가격은 학생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연구소가 주관해 야 플라토를
임대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학생 또한 학부모가 아니라 연구소 등에서 넥스트 컴퓨터를 구입
해야할 정도로 가격이 높았다. 매킨토시의 뒤를이어 퍼스널 컴퓨터 시대에 넥스트를 판매하
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마케팅기법이었다. 시대에 뒤진 넥스트컴퓨터를 사려고 한 사람
들은 메모리 확장 성과 대형 하드 디스크를 갖춘 첨단 제품을 과연 1만7천달러를 주고 구입
해 야할 필요가 있는가를 두고 망설였다. 게다가 서비스를 받으려면 연간 1천6 백달러를 더
지불해야 했다. 이런 가격은 매킨토시가 캠퍼스에 제시한 1천달 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제안이었다.
교육기관 정도라야 넥스트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학생들이기숙사 방안에서 컴퓨터를 사용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넥스트컴퓨터 는 플라토의
낙후된 기술로 되돌아가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1960년대에 플라토가 처음 등장했을때 학
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컨트롤 데이터사가 1970년대 후반에 플라토를 판매하
려고 했을 때 학생들은 퍼스널 컴퓨터를 대신 살 수 있었다. 그로 부터 10년후 넥스트의 사
업 전략은 분명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고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기숙사 방 안에서 그 컴
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불편도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환영받을 리 없었다.
넥스트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왜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면 넥스
트 큐브컴퓨터와 플라토터미널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유사점 을 살펴보면 될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남이 하는대로 따라하기를 거부하는 완고한 창립자의 지시에 따라 제품을 개발
했다. "남들이 남쪽으로 가는 것을보면 나는 왠지 북쪽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라는 말
을 한 사람은 바로 컨트롤 데이터사의 윌리엄 노리스였다. 잡스도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
람이었다. 다른사람에 대한 반감은 사업을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때때로 타협점을 찾는 것도 좋은 결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않았다. 게다가 두사람은 모
두 제품 기술이 뛰어나면 별도로 마케팅에 신경 쓰지 않더라도 제품이 잘 팔릴 것이라는 생
각을 가졌다.
작성일자 : 1995.04.21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6)
1979년에 윌리엄 노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스티브 잡스는 88년 "시장이 있다는 사실만 알면
힘들여 시장을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잡스는 고등 교육 기관이 커다란 시장 잠재
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시장을 분석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주요 대학
들은 포천지 선정 5백대 기업 만큼 자금이 풍족하고 그에게는 그들이 꿈꾸어온 컴퓨터가 있
는데 더이상 아쉬운것이 무엇이겠는가? 플라와 마찬가지로 넥스트 큐브 컴퓨터는 성공하지
못했다.
대학의 입장에 서 볼 때 넥스트컴퓨터는 PC급이 아니라 워크스테이션급이었고, 그 시장은
잡스가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큐브 컴퓨터가 처음 공개된 비슷한 시기에 시장 조사
업체인 스테이플 인포메이션사는 대학 워크스테이션 시장의 규모를 알아보려는 조사를 실시
했다. 물론 넥스트는 그런 기초적 조사조차도 하려하지 않았다. 스테이플사의 조사결과 미흡
한 컬러 기능과 미완성 단계에있는 소프트웨어 운용 체계와 같은 제한된 하드웨어및 소프트
웨어 기능때문 에 워크스테이션을 많이 사용하는 공학 및 전산학과에서는 큐브컴퓨터가 별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넥스트 큐브의 가격을 고려한다면 나머지 대학도 일년에 1억4천만달러 규모 의 하위 워크
스테이션 정도의 시장밖에 형성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넥스트가 시장을 1백% 점
유하더라도 그 규모는 작을 것이고 잡스가 꼭 달성 해야 한다고 강조한 10억 달러 규모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나 학계 시장을 과대 평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년 전인 1966년에 미국 기업들은 컴퓨터지원 강의를 개발함으로써 교육계에서 큰 돈을
벌어 보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었다. 기업들은 교육 기관들이 대체로 풍족한 예산을 가
지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대부분의 예산이 교직원 수당이나 시설확충에 사
용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잡스는 댄 르윈이 판매 활동을 지휘하고 있는 한 르윈과 절친한 관계를 맺고있는 애플-대
학 컨소시엄의 대학 관계자들이 매킨토시를 지원해 준것처럼 넥 스트의 앞날을 개척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절친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훨씬 많은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르윈은 드렉셀 대학의 브라이언 허킨스와 같은 대학 행정 관계
자들의 신임을 얻기위해 저녁 식사에 거듭 초대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넥스트 직원들은 이
런 관계를 "수완의 극치"라고 부르기를 좋아했었다. 넥스트 사람들은 "수완"이 라는 말을 사
용하기를 좋아했는데 이 말은 인간관계를 통해 투자한 것에 비해 많은 것을 얻을 때 주로
많이 사용했다. 넥스트는 애플이 대학 컴퓨터 분야에 소속된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이미 절
친한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그 덕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관계자들은
넥스트 컴퓨터제품뿐 아니라 그 가격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필요한 워크스테이
션을 결정할 때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했다. 수만대의 컴퓨터를 특성이 다른 여러 학과
에 판매하는 것은 뛰어난 "수완"에도 불구하고 거의 불가능했다. 넥스트는 각 학과별로 상당
한 돈을 들이고 수지균형에 미치지 못하는 매출을 올렸다.
잡스, 르윈 그리고 넥스트의 마케팅 요원들은 다가오는 현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매킨토시가 순조롭게 성공했기 때문에 이들은 매킨토시와 같은 방식으로
퍼스널 컴퓨터를 판매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완전히 다른 규칙에 의해 운영되는
대학 연구소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대학 연구소는 첫째, 장비를 대량 기부 받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IBM과 디지털 이퀴프먼트
사(DEC)는 오래 전에 이런 전통을 수립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특정 제품에 익숙해진 학생
들은 취직 후에도 같은 제품을 찾았기때문이다. 사람들은 DEC가 대학에 기부한 VAX미니
컴퓨터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VAX 컴퓨터에 중독되었다고 하기까지 했다.
DEC의 뒤를 이어 나타난 선 마이크로시스템즈도 높은 할인율을 제시하거나 제품을 기부
하는 전통을 이어갔다. 1988년 선사가 대학 연구소에 기부한 제품말고도 대학 연구원들은
시장 가격보다 50%싼 워크스테이션을 구입할 수 있었다. 애플사도 우수 대학 고객들에게
할인된 가격에 제품을 판매했을 뿐 아니라 현금 지원 도 해주었다. 그러나 넥스트는 공평하
지 않다는 이유로, 즉 모든 학교에 기증할수 없다는 이유로 제품 기부를 거부했고 가격 할
인을 해줄 경우 큰 대학 이 작은 대학보다 더 이득을 보게될 것이기 때문에 대폭적인 할인
을 거부했다. 넥스트는 예외를 두지 않았다.
작성일자 : 1995.04.24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7)
모든 사람들이 제값을 주고 제품을 구입해야 했다.
이런 방침은 완고한 대학 관계자들에게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다트머스 대학은 컴퓨터
거래처에 "우리는 절대로 정가를 주고 물건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자랑했다. 카네
기 멜론 대학은 한 수 더 떠서 "우리는 지금까지 돈주고 물건을 사본적이 없다" 고 뻐겼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은 기부 받은 컴퓨터 장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이 사
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 고 있다고 말했다. 기증된 워크스테이션은 사용시 회로에서 열이
많이 발생 하기 때문에 한 사무실에서 히터로 사용되는 것도 있었다. 대학은 앞으로 덤핑된
하드웨어"는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기존의 시스템과 잘 작동되는 제품만 기부 받
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해야만 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컴퓨터 거래처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
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받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서로 주고 받았다. 듀크 대학의
행정관인 패트리샤 스카루 리스는 컴퓨터 관련 회의에서 동료들에게 "모든 것은 우리 하기
나름이다.
우리는어떤 성격의 계약도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회사와는 다르다고 자만
한 넥스트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큐브 컴퓨터를 쌍수를 들고 환영한 것은 대학 음대였다.
그러나 가격때문에 다른 분야에서는 부진했다.
대학측에서 볼 때 다른 혜택이 없고 아키텍처가 달라 기존의 제품들과 연결 되지도 않는
(게다가 운용 시스템은 아직 미완성인 상태였고)것을 비싼 가격 에 산다는 것은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잡스와 넥스트가 그들의 조건을 바꾸기만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제품이 고급 퍼스널 컴퓨터라고 한다면 그보다 넥스트가 판매하려고한 컴퓨터는 "베타"급
에 불과한 것이다. 컴퓨터업계에서는 회사자체에서 제품의 "알 파"테스트를 한후 일부 고객
을 선정하여 비공개로 "베타"테스트를 실시해서일반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전에 버그를 식별
해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대학 관계자들도 가끔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는 제품
을 미리 보게 해주는 특혜 정도로 여겼다. 이를 위해 대학은 비용이 들지 않았지만 몇몇 대
학은 그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넥스트 큐브가 발표될 시기에 메릴랜드 대학 컴퓨터 담당자인 로널드 위스먼 은 대학이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는 관행을 비판했다. 그는 컴퓨터 회사가 대학을 베타 테스트에 참여
시키는 것은 대학의 이름을 빌리기 위한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넥스트큐브는 베타급 제품으로 공인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그랬고 넥스 트 큐브가 등
장하기 전까지 어떤 컴퓨터 업체도 고객으로 하여금 디버깅 비용을 부담하도록 요구하지 않
았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넥스트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냈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말 넥스트의 맥스 헨리 판매부장을 위로하는 말로 넥스트의 자문 위원회는 "넥스
트는 역사상 처음으로 정가를 받고 대학에 가장 많은 베타 제품 을 팔았다"고 말했다.
큐브컴퓨터가 발표될 당시 컴퓨터 업체와 고등 교육기관의 관계가 지나치게 긴밀하다는 점
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했던 위스먼이 넥 스트사에 들어와 고등 교육 기관을 대상으로 판매
하는 마케팅 부서책임자가 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수없이 많은 대학 중 단 하나의 대학만이 넥스트 큐브에 모험을 걸었다. 펜실베이니 아주
메드빌에 있는 알레그니 대학만이 넥스트 컴퓨터를 구입하겠다 는 의사를 표시했다. 드렉
셀 대학이 일찍이 매킨토시에 투자하여 관심을 모았던 것처럼 알레그니 대학도 넥스트에
투자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 많이 변했다. 퍼스널 컴퓨터나 워크스테이션은 이제 더이상 특별한
제품이 아니었다. 알레그니 대학의 조치는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 큐브의판 매가 부진한
것만 보더라도 매킨토시에 비해 넥스트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것인지를 알 수 있다.
큐브컴퓨터가 발표된지 일년이 지난 후에도 알레그니 대학이 구입한 것은 22 대밖에 되
지 않았다. (MIT가 20대를 구입한 것에 비하면 그것도 많은 편에 속하지만). 넥스트 컴 퓨
터의 판매는 시일이 지나면서 증가했다. 제품이 발표된 훨씬 뒤인 92년 가을 알레그니 대
학은 1백50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수는 대학에 보급된 선사의 워크스테이션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
초 넥스트 경영진은 89년까지 알레그니 대학은 6백50대의 컴퓨터 를 구입해 학생 3명당 한
대꼴로 컴퓨터를 보유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알레그니는 넥스트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 알레그니 스스로가 1백만달러의 기부금을 모
아 보겠다고 나선 이상 중간에 태도를 바꿀 수는 없었다. 알레그니 대학은 각학과의 보충교
과로 컴퓨터에 바탕을 둔 강좌를 개설했다.
과거PLATO소프트웨어가 제공한 강좌와 같이 화학, 생물학, 철학, 영문 학, 물리학, 수학,
지질학 및 종교학과에 보충강좌를 개설했다. 그러나 넥스 트컴퓨터의 가격이 너무 높았다.
나중에 참여한 대학들은 알레그니 대학처럼 지원금으로 1백만달러를 확보할 능력이 없었다.
알레그니 대학이 발주한 물량도 넥스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넥스트와 마찬가지로 알레그니 대학도 시대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퍼스널 컴
퓨터의 등장으로 학생 또는 학부모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다른
대학들은 비용을 학생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대학의 재정적 부담을 줄여 나가고 있었 다.
작성일자 : 1995.04.26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7)
모든 사람들이 제값을 주고 제품을 구입해야 했다.
이런 방침은 완고한 대학 관계자들에게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다트머스 대학 은 컴퓨
터
거래처에 "우리는 절대로 정가를 주고 물건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자랑했 다.
카네기 멜론 대학은 한 수 더 떠서 "우리는 지금까지 돈주고 물건을 사본적이 없다" 고
뻐겼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은 기부 받은 컴퓨터 장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대부
분이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 고 있다고 말했다. 기증된 워크스테이션은 사용시 회로에서
열이 많이 발생 하기 때문에 한 사무실에서 히터로 용되는 것도 있었다. 대학은 앞으로 덤
핑된 하드웨어"는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기존의 시스템과 잘 작동되는 제품만 기
부 받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해야만 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컴퓨터 거래처로부터 어떻게 하
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받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서로 주고 받았다. 듀크
대학의 행정관인 패트리샤 스카루 리스는 컴퓨터 관련 회의에서 동료들에게 "모든 것은 우
리 하기 나름이다.
우리는어떤 성격의 계약도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회사와는 다르다고 자만
한 넥스트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큐브 컴퓨터를 쌍수를 들고 환영한 것은 대학 음대였다.
그러나 가격때문에 다른 분야에서는 부진했다.
대학측에서 볼 때 다른 혜택이 없고 아키텍처가 달라 기존의 제품들과 연결 되지도 않는
(게다가 운용 시스템은 아직 미완성인 상태였고)것을 비싼 가격 에 산다는 것은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잡스와 넥스트가 그들의 조건을 바꾸기만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제품이 고급 퍼스널 컴퓨터라고 한다면 그보다 넥스트가 판매하려고한 컴퓨터는 "베타"급
에 불과한 것이다. 컴퓨터업계에서는 회사자체에서 제품의 "알 파"테스트를 한후 일부 고객
을 선정하여 비공개로 "베타"테스트를 실시해서일반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전에 버그를 식
별해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대학 관계자들도 가끔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는
제품을 미리 보게 해주는 특혜 정도로 여겼다. 이를 위해 대학은 비용이 들지 않았지 만 몇
몇 대학은 그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넥스트 큐브가 발표될 시기에 메릴랜드 대학 컴퓨터 담당자인 로널드 위스먼 은 대학이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는 관행을 비판했다. 그는 컴퓨터 회사가 대학을 베타 테스트에 참여
시키는 것은 대학의 이름을 빌리기 위한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넥스트큐브는 베타급 제품으로 공인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그랬고 넥스 트 큐브 가
등장하기 전까지 어떤 컴퓨터 업체도 고객으로 하여금 디버깅 비용을 부담하도록 요 구하지
않았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넥스트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냈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말 넥스트의 맥스 헨리 판매부장을 위로하는 말로 넥스트의 자문 위원회는 "넥스
트는 역사상 처음으로 정가를 받고 대학에 가장 많은 베타 제품 을 팔았다"고 말했다. 큐브
컴퓨터가 발표될 당시 컴퓨터 업체와 고등 교육기관의 관계가 지나치게 긴밀하다는 점에 대
해 불쾌하게 생각했던 위스먼이 넥 스트사에 들어와 고등 교육 기관을 대상으 로 판매하는
마케팅 부서책임자가 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수없이 많은 대학 중 단 하나의 대학만이 넥스트 큐브에 모험을 걸었다. 펜실베이니 아주
메드빌에 있는 알레그니 대학만이 넥스트 컴퓨터를 구입하겠다 는 의사를 표시했다. 드렉
셀 대학이 일찍이 매킨토시에 투자하여 관심을 모았던 것처럼 알레그니 대학도 넥스트에
투자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 많이 변했다. 퍼스널 컴퓨터나 워크스테이션은 이제 더이상 특별한
제품이 아니었다. 알레그니 대학의 조치는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 큐브의판 매가 부진한
것만 보더라도 매킨토시에 비해 넥스트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것인지를 알 수 있다.
큐브컴퓨터가 발표된지 일년이 지난 후에도 알레그니 대학이 구입한 것은 22 대밖에 되지
않았다. (MIT가 20대를 구입한 것에 비하면 그것도 많은 편에 속하지만). 넥스트 컴 퓨터의
판매는 시일이 지나면서 증가했다. 제품이 발표된 훨씬 뒤인 92년 가을 알레그니 대학은 1
백50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수는 대학에 보급된 선사의 워크스테이션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초
넥스트 경영진은 89년까지 알레그니 대학은 6백50대의 컴퓨터 를 구입해 학생 3명당 한대꼴
로 컴퓨터를 보유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알레그니는 넥스트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 알레그니 스스로가 1백만달러의 기부금을 모
아 보겠다고 나선 이상 중간에 태도를 바꿀 수는 없었다. 알레그니 대학은 각학과의 보 충
교과로 컴퓨터에 바탕을 둔 강좌를 개설했다.
과거PLATO소프트웨어가 제공한 강좌와 같이 화학, 생물학, 철학, 영문 학, 물리학, 수학,
지질학 및 종교학과에 보충강좌를 개설했다. 그러나 넥스 트컴퓨터의 가격이 너무 높 았다.
나중에 참여한 대학들은 알레그니 대학처럼 지원금으로 1백만달러를 확보할 능력이 없었
다. 알레그니 대학이 발주한 물량도 넥스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넥스트와 마찬가지로 알레그니 대학도 시대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퍼스널 컴
퓨터의 등장으로 학생 또는 학부모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다른
대학들은 비용을 학생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대학의 재정적 부담을 줄여 나가고 있었다.
작성일자 : 1995.04.26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8)
알레그니 대학은 넥스트컴퓨터를 공동장소에 설치했다. 전산학과 과장인 조엘 스미스는 학
생들이 기숙사방에서 나와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해줄 수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공부에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알레그니 대학처럼 1천8백여명의 학생이 1백50대의 컴퓨터를 공동으로 사용
하게하는 환경을 택할 대학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환경은 PARK 이전의 초기에나 필요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사람과 컴퓨터가 1대1비율
로 요구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알레그니 대학은 지원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여 그에 따른 비용도 많이 들고 교재프로그램
을 만드는 것을 도울 전문프로그래머를 별도로 고용해야만 했다. 알레그니의 방식을 따른
대학이 별로 없었다는 것만 봐도 알레그니 대학 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레그니
는 3천여개 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넥스트 시스템으로 전산망을 구축했다.
다른 대학들은 넥스트 제품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넥스트 자문 위원회위원이 었던 사람들
은 동정심에서 넥스트 컴퓨터를 구입했다. 아이비 리그중에서 유 일하게 넥스트에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던 대학은 코넬 대학이었다. 코넬 대학은 연구실에 30대의 넥스트컴퓨터를 설
치했다. 그러나 기능과 소프트웨어 상의 문제때문에 학생들은 계속 항의했다.
잡스는 연구소개소식에 참석하여 교육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인 학자들과 만나 그들의 작업
과정을 비평하여 큰 비난을 받았다. 잡스는 전산실 사람들이 자 사제품을 못마땅하게 여긴
다는 말을 듣고 의아해 했다. 관련 교직원들은 요구사항을 잡스에게 설명했다.
그들은 성능및 메모리 용량의 향상과 소프트웨어 패키지의 조속한 완성을 요구했다. 잡스
는 그들의 요구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들이 필 요로하는 것은 넥스트 큐브
그자체이며 그와 함께 제공된 소프트웨어라고 주장했다. 코넬 대학은 넥스트 방식에 실패한
후 선사연구실에 열중했다. 코넬 대학은 결국 넥스트 연구실을 폐쇄했다. 이러한 결과는 경
쟁이 치열한 컴퓨터 시장 에서 넥스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라기 보다 넥스트가 지나
치게 자만한 태도를 취해 넥스트를 지원하려고 한 사람들조차도 거부했기 때문에 초래됐다
고 할 수 있다.
만일 넥스트컴퓨터가 워크스테이션이라면, 대학의 기계공학 및 전산학과에서 왜 외면했겠
는가. "은행에 돈이 많기 때문에 은행을 턴다"라는 윌리 서턴의 유명한 말처럼 선 마이크로
시스템즈사도 예산이 많은 학과를 공략 했기 때문에 기계과와 전산학과에는 선사제품이 많
이 보급되었다.
잡스가 인문계 학과에서나 관심을 가질 정도의 큐브컴퓨터를 완성했을 때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넥스트 제품이 고급 퍼스널 컴퓨터라고 한다면 그보다 훨씬 값싼 제품과 성능을 비
교해보면 진위을 쉽게 알수 있다.
넥스트 컴퓨터는 잡스가 생각했던 "퍼스널 워크스테이션"이라는 하이브리드 가 되기보다는
퍼스널 컴퓨터도워크스테이션도 아닌 어중간한 제품이 되었다. 1988년 말께 넥스트는 그들
의 제품을 사려는 대학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그러나 회사의 자금 사정은 아직 양호했다. 특히 고위 이사진들의 주머니 사정은 아직 두둑
했고 낙관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넥스트는 한달에 4백여대의 컴퓨터를 생산했다. 그러나 공장장인 탠디 해프 너는 한달에 1
만여대를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판매량은 제자리 걸음을 하
고 있었지만 경영진은 전망을 밝게 보았고 그때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전략
을 바꾸기로 했다.
잡스는 제품 발표회에서 넥스트의 판매를 대학에만 국한시킬 것이라는 방침 을 설명할 때
"대부분의 회사들은 굶어서 죽기보다 소화 불량으로 죽는다"라 고 말했다. 그런 방침은 신생
기업의 경영전략치고는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넥스트는 식욕부진이라는 스스로 만들어낸 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페로의 자금 지원이
있건 없건, 넥스트의 판매가 증가하지 않는 한 더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데이비스 홀에서
제품 발표회가 개최된지 불과 7개월후 넥스트는대학에만 판매를 국한시키겠다는 방침을 철
회했다.
1989년 넥스트는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에서 가장 큰 소매업체 비즈니스랜드와 넥스트 컴퓨
터를 교육분야 이외의 시장에서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
다.
교육계를 지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넥스트가 그들을 배반했다고 항의했다. 기업을 대상으로
컴퓨터를 판매하는 비즈니스랜드와 넥스트와의 계약은 넥스트 가 교육계를 혁신하다는 당초
의 정책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일부관계자들 은 넥스트가 처음부터 대학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잡 스가 당초부터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대학을 과도기
적 실험장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비판자들의 추측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데이비스 홀에서 큐브컴퓨터가 발표되기 훨씬
이전부터 넥스트는 비즈니스랜드와 10만여대의 컴퓨터를 판매한 다는 3년 계약을 추진해오
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협상은 극비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넥스트가 대학만을 상대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해서 넥스트의 마케팅 전략변화를 배반 행위로 간주聖할 수
는 없다. 넥스트 자문위원회의 대학측 대표자 들은 넥스트가 고객층을 다양화하지 않는다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되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도 넥스트가 대학시장에만 집
착한다면 넥스트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대학은 싼 것을 지나치게 선호하고 프로그램의 무단복제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갖고 있
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항상 불만을 가졌다. 넥스트가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로부터 지원을
얻지 못한다면 넥스트컴퓨터는 캠퍼스 안팎에서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작성일자 : 1995.05.01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9)
구매자를 다양화하면 일반 소비자들이 대학의 특별 가격을 지원하는 결과를가져오게 되어
가격을 낮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대학도 넥스트가 구매자층을 확대하도록 적극
적으로 지원했다.
회사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일부 넥스트의 애호자들이 비즈니스랜드와 계약을 맺는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지만 비즈니스랜드가 그 업계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이
라 할수 있다. 1982년에 매장 하나로 시작한 비즈니스랜드는 1989년에 점포가 1백개 이상으
로 늘어났다.
매출도 급속히 증가해 가파른 상승곡선을 나타냈다. 1983년에 4천4백만달러, 1984년에는 1
억5천7백만달러, 1985년에는 3억5천만달러를 기록하고, 1988년 에 10억달러 이상의매출을 올
렸다. 비즈니스랜드의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비즈니스랜드를 컴퓨터 판매점으로 키워준 많
은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사람들은 비즈니스랜드가 단시일내에 넥
스트가 목표로 하고있는 10억달러의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넥스트는 그 누구와도 종속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으려하지 않았다.
넥스트는컴퓨터디자인에서 제조에이르기까지 모든면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파트너도 자기 담당분야, 즉 컴퓨터를 판매하는 기술에서 최고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회사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한 사람이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스티브
잡스의 상대는 데이비드 노먼이었다. 그는 일찍이 많은 경험과 역경을 이겨낸 노장 사업가
였다. 그는 잡스만큼 능숙하게 많은 대중을 압도할 수는 없었지만 기업가들과 금융계 사람
들과의 상담에서는 훨씬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비즈니스랜드의 창립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노먼은초장기에 모험 자본가들로부
터 자금을 조달했고 그후에는 회사의 수익 전망에 대해 금융계 에 낙관적으로 보고함으로써
회사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잡스처럼 노먼은 개성이 매우 강해 부하 직원들이 그를 두려워
했다.
잡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거래처나 파트너들과 쉽게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그도역시 허용한 것 이외의 정보가 밖으로 누출되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을 썼다. 그는 또
한가지 목표에만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때때로 레이저빔과 비교되기도 했다. 1989년에 노
먼은 비즈니스랜드의 회장, 사장겸 최고경영자 가 되었다. 한 마디로 넥스트처럼 비즈니스랜
드도 한 사람손에 그 미래가 달려있었다. 노먼은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난 타고
난 사업가였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컴퓨터 사업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그는 비즈니스랜드가 포천지의 5백대 기업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가
능성을 제일 먼저 포착했고 초창기 중소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삼았던비즈니스랜드 매장을
대기업을 상대로 방문 판매할 수 있는 거점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매장의 운영 방침을 전환
시켰다. 그는 매출을 올리는데는 일가견 이 있었지만 컴퓨터에 대한 기술적 지식이 부족했
다.
기술지식이 부족한 그는 회사의 공동 창립자이며 기술자 출신인 엔조 토레시 에게 기술 자
문을 구했다. 그러나 토레시가 회사 운영에서 발을 빼고 1988년 사임함에 따라 그는 토레시
의 부하인 케빈 컴턴에 의존했다.
컴턴은 젊고 기술분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졌을 뿐 아니라 외모가 준수했다. 그러
나 그는 상급자의 의견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는 1986년 비즈니스랜드
가 자신이 회계및 건설 산업 관련 프로그램을 작성했던 캔자스 시티사를 합병하자 비즈니스
랜드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회계 관련 패키지 및 컴퓨터 네트워크에 대한 기술지원 차원에 서 전화상담
업무를담당했었다. 그러나 그는 몇개월 안에 부서장이 되었고 1년 후에는 기술 지원팀의 팀
장이 되고 3년 후에는 수십억 달러 규모로 성장 한 그 회사의 부사장이 되었다.
노먼이 전화 상담일을 했던 사람에게 갑자기 부사장이라는 직함을 준 것은그의 눈과 귀가
되어 달라는 뜻이 있었다. 그는 컴턴에게 앞으로 가장 잘 팔릴 수 있는 제품을 알아내는 과
제를 주었다.
노먼은 한 가지 조건만 내세웠다. 비즈니스랜드가 어떠한 제품을 취급하든 그 제품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할 수 있어야 했다. 노먼이 독점을 주장하고 경쟁 업체로 하여금 인기 있는신
제품에 대한 유통권을 갖지 못하게 하면 비즈니스랜드는 수익면에 있어서상위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케빈 컴턴 의 업무는 인기제품을 찾아내어그 제품에 대한 비즈니스랜드의
독점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비즈니스랜드는 컴퓨터 업계에서 상당히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비즈니스랜드는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렸고 가장 바람직한 고객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
라 가장 좋은 기업들을 상대하고 지명도 높은 제품들만 취급했다.
그들은 거래처를 찾아 나설 필요가 없었다. 회사들은 스스로 비즈니스랜드의 거래처가 되
겠다고 찾아왔다. 노먼이 현재 취급제품을 확대하여 유닉스 컴퓨터를 새로 추가하겠다는 말
을 흘리자 마자 유닉스 거래처모두 비즈니스랜드와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가장 선도적인 유
닉스 워크스테이션 제조 업체인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사가 비즈니스랜드의 거래처가 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선사는 비즈니스랜드의 독점 소매권에 대한 요구를 검토한후 비즈니스랜드를 파트
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사의 거절이 넥스트사에는 기회로 작용했다.
작성일자 : 1995.05.03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0)
그러나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비즈니스랜드는 합리적
인 경영 논리를 근거로한 상대를 결정하기 보다 룰렛 휠의 도박성 또는 리즈 스미스 가십난
에 나오는 소위 개인의 연줄로 상대를 결정했다. 애플사와 오랫 동안 거래를 했고 스티브
잡스의 절친한 친구인 텍사스 출신 백만장자 빌리 래딘은 잡스와 비즈니스랜드의 케빈 컴턴
을 연결해주는 중간 역할을 했다. 래딘은 휴스턴에 본사를 둔 컴퓨터그래프트라는 컴퓨터체
인점 의 사장이었다. 1988년 비즈니스랜드가 그 체인점을 인수했을 당시 그 거래는 양쪽 모
두에게 유리한 거래처럼 보였다.
래딘은 2천4백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교환하여 현금을 쥘 수 있었고 비즈니스랜드는 과거
에 저버렸던 중소기업및 개인 사업가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 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거래는 래딘에게는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비즈니스랜드에는 실패작이었다.
계약이거의 체결될 시점부터 컴퓨터그래프트 체인점들은 적자를 보기 시작하였고 그 폭은
계속 벌어져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래딘이 다 늙은 말을 비즈니스랜드에 팔았
다고 비판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988년여름 래딘은 비즈니스랜드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 래딘이 비즈니스 랜드에 아직
발표되지도 않은 넥스트 컴퓨터를 유닉스컴퓨터에 사용해 보라고 제안하자 케빈 컴턴이 이
를 받아들인 것이다.
더구나 컴턴은 IBM이 넥스트와 기술 라이선스계약을 체결했다는 소문을 듣자 그 제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IBM의 빌 로에게 전화를 걸어 그 소문의 진위를 알아
보았더니 로는 그 소문이 근거 없는 것이아니라고 대답했다.
컴턴은 그 답을 듣자마자 데이브 노먼과 자신앞에서 넥스트컴퓨터를 시현하는 자리를 주선
했다. 이를 보더라도 넥스트가 이미 확보한 파트너를 통해 다른 파트너를 끌어들이는데 얼
마나 능숙했는지를 알 수 있다.
비즈니스랜드는 넥스트가 IBM과 협력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명되어 넥스트와 쉽게
파트너관계를 맺었다. 넥스트에 대한 IBM의 관심은 중역진 들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 당시
IBM이 라이선스 문제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IBM이 넥스트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비즈니스랜드가 넥스트를 인정하는 충분한 요건이 되었다.
두 회사는 곧이어 파트너가 되어 넥스트는 또 다른 파트너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업가들
은 바로 이런 효과 때문에 지렛대의 효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넥스트의 잡스만큼
그 효과를 잘 이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컴턴과 노먼이 넥스트사에 도착하자 잡스는 10월 제품 발표회를 위해 준비하고 있던 슬라
이드를 보여주었다. 그는 컴퓨터의 심장인 인쇄회로기판을 보여주고 질문에 대한 답도 했다.
제품 발표회에서 했던 것처럼 긴 서론을 마친후 실제 제품을 소개했다. 컴턴은 그 제품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했다. 잡 스는 노먼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각별한 대접을 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데이비스 홀에서 개최되었던 제품 발표회에 초대되었고 며칠후 잡스는 컴
턴과 함께 넥스트 연구실을 돌아 보며 개발중인 제품들을 소개 했다. 그 때 소개된 제품에
는 컬러 머신도 있었다. (그 제품은 계획 보다 3년 늦게 완성되었다.)컴턴은 잡스가 자기에
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컴턴은 넥스트에 대한 IBM의 관심 변화에 매우 신경을 썼다. 그는제품 발표회 때
IBM이 제일 마지막에 소개된 슬라이드에 잠깐 비춰진 것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했다. 컴턴
은 12월과 1월에 IBM의 입장을 계속 확인했다. 그러나 IBM의 답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IBM워크스테이션에 채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애매한 답이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러는 동안 컴턴은 잡스 와 많은 시간
을 보냈고 당연히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의 거래는 급속도로 진척되어갔다. 88년 말부터 89
년 초까지 비공식적 회의가 계속되자 노먼도 잡스와 가까이지내게 되었다. 판매의 천재인
노먼과 잡스는 서로 상대가 듣고자 원하는 거창한 약속을 주고 받았다.
잡스는 넥스트컴퓨터가 "제4의 물결"의 퍼스널컴퓨터로 소프트웨어 작성이 수월하고 신속
하다는 개념을 노먼에게 팔았다. 노먼은 비즈니스랜드의 경험 이 풍부한 직원들을 내세우면
서 유닉스컴퓨터의 네트워킹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모두 과장된 것이었다. 그들이 귀만 좀더 열었더라면상대방의 주장
에 얼마나 허점이 많았는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넥스트 소프트웨어는 빨리 개발되지 않
았다. 특히 기본시스템 소프트웨어가 아직 완성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더욱 희박
한 것이었다. 또 비즈니스랜드가생각했던 것처럼 유닉스 네트워킹은 파워가 약한 퍼스널컴
퓨터의 연결만큼 쉬운 일도 아니었다. 기술팀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노먼은
잡 스처럼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작성일자 : 1995.05.05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0)
그러나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비즈니스랜드는 합리적
인 경영 논리를 근거로한 상대를 결정하기 보다 룰렛 휠의 도박성 또는 리즈 스미스 가십난
에 나오는 소위 개인의 연줄로 상대를 결정했다. 애플사와 오랫 동안 거래를 했고 스티브
잡스의 절친한 친구인 텍사스 출신 백만장자 빌리 래딘은 잡스와 비즈니스랜드의 케빈 컴턴
을 연결해주는 중간 역할을 했다. 래딘은 휴스턴에 본사를 둔 컴퓨터그래프트라는 컴퓨터체
인점 의 사장이었다. 1988년 비즈니스랜드가 그 체인점을 인수했을 당시 그 거래는 양쪽 모
두에게 유리한 거래처럼 보였다.
래딘은 2천4백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교환하여 현금을 쥘 수 있었고 비즈니스랜드는 과거
에 저버렸던 중소기업및 개인 사업가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 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거래는 래딘에게는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비즈니스랜드에는 실패작이었다.
계약이거의 체결될 시점부터 컴퓨터그래프트 체인점들은 적자를 보기 시작하였고 그 폭은
계속 벌어져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래딘이 다 늙은 말을 비즈니스랜드에 팔았
다고 비판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988년여름 래딘은 비즈니스랜드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 래딘이 비즈니스 랜드에 아직
발표되지도 않은 넥스트 컴퓨터를 유닉스컴퓨터에 사용해 보라고 제안하자 케빈 컴턴이 이
를 받아들인 것이다.
더구나 컴턴은 IBM이 넥스트와 기술 라이선스계약을 체결했다는 소문을 듣자 그 제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IBM의 빌 로에게 전화를 걸어 그 소문의 진위를 알아
보았더니 로는 그 소문이 근거 없는 것이아니라고 대답했다.
컴턴은 그 답을 듣자마자 데이브 노먼과 자신앞에서 넥스트컴퓨터를 시현하는 자리를 주선
했다. 이를 보더라도 넥스트가 이미 확보한 파트너를 통해 다른 파트너를 끌어들이는데 얼
마나 능숙했는지를 알 수 있다.
비즈니스랜드는 넥스트가 IBM과 협력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명되어 넥스트와 쉽게
파트너관계를 맺었다. 넥스트에 대한 IBM의 관심은 중역진 들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 당시
IBM이 라이선스 문제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IBM이 넥스트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비즈니스랜드가 넥스트를 인정하는 충분한 요건이 되었다.
두 회사는 곧이어 파트너가 되어 넥스트는 또 다른 파트너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업가들
은 바로 이런 효과 때문에 지렛대의 효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넥스트의 잡스만큼
그 효과를 잘 이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컴턴과 노먼이 넥스트사에 도착하자 잡스는 10월 제품 발표회를 위해 준비하고 있던 슬라
이드를 보여주었다. 그는 컴퓨터의 심장인 인쇄회로기판을 보여주고 질문에 대한 답도 했다.
제품 발표회에서 했던 것처럼 긴 서론을 마친후 실제 제품을 소개했다. 컴턴은 그 제품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했다. 잡 스는 노먼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각별한 대접을 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데이비스 홀에서 개최되었던 제품 발표회에 초대되었고 며칠후 잡스는 컴
턴과 함께 넥스트 연구실을 돌아 보며 개발중인 제품들을 소개 했다. 그 때 소개된 제품에
는 컬러 머신도 있었다. (그 제품은 계획 보다 3년 늦게 완성되었다.)컴턴은 잡스가 자기에
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컴턴은 넥스트에 대한 IBM의 관심 변화에 매우 신경을 썼다. 그는제품 발표회 때
IBM이 제일 마지막에 소개된 슬라이드에 잠깐 비춰진 것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했다. 컴턴
은 12월과 1월에 IBM의 입장을 계속 확인했다. 그러나 IBM의 답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IBM워크스테이션에 채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애매한 답이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러는 동안 컴턴은 잡스 와 많은 시간
을 보냈고 당연히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의 거래는 급속도로 진척되어갔다. 88년 말부터 89
년 초까지 비공식적 회의가 계속되자 노먼도 잡스와 가까이지내게 되었다. 판매의 천재인
노먼과 잡스는 서로 상대가 듣고자 원하는 거창한 약속을 주고 받았다.
잡스는 넥스트컴퓨터가 "제4의 물결"의 퍼스널컴퓨터로 소프트웨어 작성이 수월하고 신속
하다는 개념을 노먼에게 팔았다. 노먼은 비즈니스랜드의 경험 이 풍부한 직원들을 내세우면
서 유닉스컴퓨터의 네트워킹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모두 과장된 것이었다. 그들이 귀만 좀더 열었더라면 상대방의 주장
에 얼마나 허점이 많았는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넥스트 소프트웨어는 빨리 개발되지 않
았다. 특히 기본시스템 소프트웨어가 아직 완성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더욱 희박
한 것이었다. 또 비즈니스랜드가생각했던 것처럼 유닉스 네트워킹은 파워가 약한 퍼스널컴
퓨터의 연결만큼 쉬운 일도 아니었다. 기술팀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노먼은
잡 스처럼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작성일자 : 1995.05.05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1)
89년 2월에 노먼이 넥스트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긴급한 일이 생겼다. 비즈니스랜드의 가장
중요한 고객인 컴팩컴퓨터가 비즈니스랜드와의 거래를 완전히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 것이
다.
컴팩의 입장에서 전년도 1억5천만달러이상의 매출을 올린 큰 컴퓨터 딜러와 관계를 단절하
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비즈니스랜드는 컴팩과 같은 회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특별한 조
건"을 요구했다.
그들은다른 판매점들과 달리 특별할인을 요구했다. IBM과 애플은 마지못해 비즈니스랜드
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컴팩은 그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고 위협했다. 노
먼은 그들의 요구가 허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여 태도를바꾸지 않았다. 그 결과 컴팩을 잃
게 되는 뜻밖의 일이 생긴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컴팩과 비즈니스랜드중 컴팩의 피해가 더 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트
워트 알솝은 뉴스 레터에 비즈니스랜드가 폭넓은 제품 가운데 컴팩을 대신할 수 있는 제품
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컴팩이나 다른 한 브랜드만을 계속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표면적으로는 비즈니스랜드에 별 영향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노먼은 거래처를 바꿔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컴팩의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다른 거래처를 찾으면서 그는 그동안 생
긴 손실도 메워야했다.
그런 상황에서 넥스트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세상을 곧 떠들석하 게 만들 고가
의 워크스테이션을 취급하게 되면 (노먼과 컴턴은 과학자 또는엔지니어들만 사용하는 넥스
트제품이 연구실에서 곧 대 기업의 사무실 책상 으로 자리를 옮기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큰 수익원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먼이 잡스와 거래관계를 맺어야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넥스트는 선사가 거부했던
비즈니스랜드의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여 비즈니스랜드에 독점 유통권을 주겠다고 했다.
바로 다음 달 넥스트 비즈니스랜드는 화려한 기자 회견을 열고 제휴를 발표 했다. (잡스는
그 발표를 위해 차기 연도 마케팅 비용으로 책정했던 자금을 일주일에 다 써버렸다.) 사람
들은 완벽한 협력관계라고 축원해 주었다.
뉴스레터의 발행인인 리처드 셰퍼는 넥스트가 가장 훌륭한 판매조직을 갖추었기때문에 다
른 유닉스 회사(선사를 포함해서)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말했다. 넥스트는 회사의
제한된 경비를 광고, 홍보 트레이닝 또는 서비스 팀 운영에 투입할 필요가 없었다.
넥스트는 대신 자금력이 훨씬 큰 비즈니스랜드를 이용할 것이다. 넥스트의 지렛대 효과"가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알솝은 비즈니스랜드가 컴팩 과 한판승부를 낸 "결단력"을 높
이 평가했고 신기술 신제품으로 새로 도전해 보겠다는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사람들은 비
즈니스랜드가 좋은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소프트웨어 전문가인 댄브릭린은 비즈니스랜
드가 무대를 빛내줄 수 있는 훌륭한 주인공을 만났다고평가했다.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데이비드 노먼은 실현 불가능한 예측을 했다.
그는"넥스트의 일년 매출은 컴팩의 전년 총 매출을 훨씬 넘어설 것"이라고 언론에 말했다.
컴팩은 1억5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넥스트의 기계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또 실제 시장에서 평가받기도 전에
넥스트가 하루 아침에 성공하리라는 예측이 어떻게 나왔는가이다. 그 예측은 사람들이 값비
싼 제품을 살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루어졌다.
비즈니스랜드는대학에 공급되는 넥스트컴퓨터의 가격보다 훨씬 높은 9천9백 95달러에 공급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할인이나 에누리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굳혔다. 기본
컴퓨터에 어떤 옵션을 추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노먼은 1만에서 1만5천대를 팔아 자
기가 예측한 1억5천만 달러의 매출을 충분히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숫자는 넥스트가 생산하기로 계획한 제품의 십분의 일에 불과했다. 뉴스 레터의
발행인인 리처드 셰퍼도 그 터무니 없는 예측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넥스트는 볼
품 없는 신생 기업이었으나 이제는 1억 달러 규모의 회사가 되었다. 비즈니스랜드가 1만대
의 컴퓨터 판매 목표를 절대로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계획은 합리적이기 보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에서 구상된 것이었고 넥스트 는 그런 분위
기를 조장했다. 비즈니스랜드와의 계약이 체결되는 날 비즈니스 랜드와 넥스트의 중역진들
은 잡스의 자택에서 베풀어진 축하 연회에 모였다.
양사의CEO들은 서로에게 건배를 권했다. 먼저 노먼이 축사를 했다. 그는작은 구룹 앞에서
는 특히 강했고 그의 유창한 말 솜씨로 이번 파트너십의 체결 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
으므로 앞으로 잘해 나가자는 말을 했다. 그 다음은 잡스의 차례였다. 그는 노먼과 술잔을
부딪치며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서 나가 사람들을 골탕먹입시다." 다음 달 플로리다에
서 비즈니스랜드의 엘리트 팀이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해의 목표량을 훨씬 넘게 판매한 "1백 퍼센트 클럽"에 속하는 영업사원
들이었다. 케빈 컴턴이 먼저 개회사를 했는데 업체가 당면한 몇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도중에 "당신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때문에 말을 중단했다. 컴턴은 익명의 목소
리를 듣고 "나는 첨단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는 부사장이오. 당신은 누구시죠? 라고 물었고 "
나는 스티브 잡스요"라는 답이 들려 왔다. 비즈니스랜드의 영업사원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그 일은 미리 계획된 것이었다. 잡스는 캘리포니아에서 미리 전화를 걸어 컴턴에게
그렇게 지시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다시 조용해지자 잡스는비즈니스랜드와 함께 일할 수 있
게 되어서 매우 기쁘다고 말했고 넥스트도 큰 회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그날의 소란을 다음과 같이표현했다.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어른들이 의자 위에 올라 서서
비명을 지르며 흥분된 감정을 표현했다." 황홀한 분위기였다.
작성일자 : 1995.05.08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2)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애플사가 사업에 성공해 잡스가 마케팅 천재로 부상 하기 이
전의
잡스 모습을 회상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의 모습을 생각 해 보기 전에 잠시
그에 관해
잊혀진 것이 무엇인가를 따져 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잡스가 마케팅의 천재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마케팅의
귀재인
레기스 매케나와 제이 키아트의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매케나와키아트는 각각 홍보 및 광고 업무를 맡아 초창기 애플의 성공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다.
이 두사람은 쌍벽을 이루면서 잡스의 이미지 제고에힘을 기울였다. 기술지식 이 풍부
했던
워즈니악에게는 기술적인 역할이 주어졌고 기술을 사랑했던 잡 스는 뛰어난 언어 구
사력
때문에 마케팅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맡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잡스는 매
케나와
키아트가만들어낸 마케팅 천재로 서의 이미지가 남이 만들어준 것이라는 것을 잊은
채그것이 정말 자기의 모습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잡스가 넥스트를 창립 할 때 쯤 그는 자신의 마케팅 전략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 되
었고
경험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기술은 그 자체 만으로도 매출을 올
릴수
있다는 것과 대중들의 관심을 많이 모을수 있는 화려한 이벤트를 통해서 양질의 기술
을
시장에 선보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이라는 데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데이비스 홀에서 개최되었던 큐브컴퓨터의 발표회는 애플사 매킨토시 발표회 의 성과
를
능가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의 협력관계도 전통대로 화려하게
발표되었다. 대부분 애플에서 데리고 온 초창기 멤버들은 이벤트 마케팅 분야에 많은
경험을
가졌다. 그들은 연속해서 시즌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넥스트는 매출이나 직
원 수로
볼 때 매우 작은 회사였지만 잡스의 힘을 입어 작은회사에 걸맞지 않게 전세계의 관
심을 불러
모았다. 비즈니스랜드와의 거래가 화려하게 발표된 이후에도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
는
2백만달러를 들여 약12개 도시에서 세미나를 개최했다. 스티브 잡스는 귀빈으로 그
행사에
참석했고 넥스트큐브는 신비로운 작품으로 소개되어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월가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가나 세미나에는 많은 관중들이 몰려 들었다.
이벤트 마케팅에 의존하는 넥스트의 경영 방침은 선사의 사업 방향과 완전히달랐다.
선사에는 내세울 만한 유명 인사도 없었고 광고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론의
관심도
많이 받지 못한 채 순전히 고객들의 입을 통한 제품평가에 의존하여 사업을 했다. 선
사는
화려한 언론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강력한 보병 부대의 영업 활동을 토대로 조금씩 아
주 어렵게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이따금 선사를 방문하는 기자들은 선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
해서라기
보다 스코트 맥닐리의 경쟁력에 대한 견해를 들으려 문을 두드렸다. 1989년 넥스 트
와
비즈니스랜드의 제휴가 발표되기 이전에 맥닐리에게 넥스트 큐브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테레오 컴
퓨터가
위험에 빠지게 된 것 같소.
더 심각한 것은 그 컴퓨터는 운용체계가 잘못되었고 프로세서의 가격도 잘못되었소.
맥닐리는 넥스트를 꼭 집어서 얘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매킨토 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타자기를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기계다"라고
비아냥
거렸다.
선사가 회사 자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더라도 넥스트처럼 언론을 한자 리에 모
을 수
있는 능력을 갖지는 못했다. 넥스트가 비즈니스랜드와의 관계를 발표한 직후 선사는
넥스트
큐브컴퓨터와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게 벡톨 샤임이 고안한 기계를 발표했다.
선사는 그 제품을 SPARC 스테이션이라고 불렀다. 그 기계는 크기면에서 큐브 보다 작
았고
매킨토시의 상위 제품과 유사했지만 RISC 마이크로프로세서가내장되어 있어서 다른
제품보다 속도가 몇배 더 빨랐다. 그러나 그 제품은 넥스트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했
다. 월
가의금융 분석가들은 SPARC 스테이션 이 사무 용으로 잘 판매되지 않을 것이라고생각
했고
선사의 경쟁 제품인 아폴로가 또 다른 경쟁 업체인 휴렛 패커드의워크스테이션 부서
로
편입되었다 는 뉴스보다도 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넥스트가 대형 컴퓨터 소매업자
와의
협력관계를 자축하는 가운데 선사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처럼 보였다.
늦은 봄 선사의 미래는 더욱 악화되는 듯했다. 두명의 중역이 갑자기 사임했던 것이
다. 그중
한명은 버나드 라크루트였다. 선사는 사내전산망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서 5주 동안
조업을
중단해야 했다. 또 창립 이후 처음으로 그 분기는 적자를 기록했다. 컴퓨터 회사가
시스템
고장을 일으키는 것처럼 수치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언론은 신발 장수집 아이가 신발이 없을 수 있느냐고 떠들어댔다. 선사는 워크스테이
션은
고장난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명하려고 했다. 문제는 회사가 10억달러의 매
출을
경신할 시점에 휴렛 패커드 미니컴퓨터에서 보다 큰 메인프레임 컴퓨터로 교체하는
과정에서일어났다고 해명했다.
작성일자 : 1995.05.10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3)
새 시스템이 완벽하게 설치되기 전에 기존의 시스템을 너무 일찍 해체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SPARC 스테이션의 판로를 넓혀주기 위해 가격 할인된 선제품에 대한 주문이
쇄도했다. 컴퓨터가 완전히 꺼진 한때 선 데이터 베이스로의 입력을 기다리는 주문이
3피트
정도 적체된 적도 있었다. 그 주문들 이 제대로 기록되기 전에 선사는 어떤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선사의 중역인 오스틴 메이어는 "우리는 컴퓨터 속에 있는
내용을
추측 해야 했고 우리의 추측은 어긋났다"고 고백했다.
기자들이 독수리처럼 노려보는 가운데 맥닐리는 다른 문제로 화살을 피했다.
그는한 분기에 5개의 새 제품을 발표하고 스코틀랜드에 새 공장을 세웠으며기술지원
조직을
확대하는 계획 등을 거론했다. 그는 이번 분기에 적자를기록했다고 해서 그처럼 커다
란
주목을 받게 된 것이 놀랍다고 말하며 애써태 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47번
이나
연속으로 홈런을 친 다음 스트라이크 아웃된다면 대단한 뉴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
다.
그러나 월가는 그런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선사의 주식 값은 50% 내려갔다.
그 당시 언론, 산업분석가, 일반 대중과 선사 자신도 새 워크스테이션의 수요가 폭발
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SPARC 스테이션사업 그룹의 추측이 맞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89년
선사가 직면한 최대의 위기에 SPA RC 스테이션이 많이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제품의
예상 판매량을 낮게 책정한 마케팅 부서의 특별한 지원없이도 쉽게 성공했기 때문이
었다.
SPARC스테이션에 대한 주문이 쇄도했지만 선사는 많은 물량을 생산할 준비도 안되었
을 뿐
아니라 하청 업체가 부품을 제대로 조달해 주지 못해 부품 부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스티브 잡스는 바로 이런 보기 드문 "소화 불능"현상 때문에 넥스트 큐브컴 퓨터의
판매를
처음에 고등교육기관에만 국한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불길했던
SPARC스테이션의 발매가 결국은 색옹지마로 끝난 선사의 경우를 볼 때 소화불량이라
는
것이 곧 사라질 수 있는 작은 증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SPARC 스테이션의 주문량은 기대 이상으로 많았고 조업활동도 곧 정상 상태를 회복했
다.
선사는 다음 분기에 다시 흑자를 올렸고 89년의 고비를 잘 넘겨 그 회계연도에
17억7천만달러 상당의 매출을 올림으로써 전년대비 68% 의 성장을 기록했다. 일반인
들은
SPARC의 성공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장기적으로 볼 때 선사의 지속적인 성장이 언론
이나
광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전문기술 지식을 가진 고객들이 직접 선사의 제품과 경
쟁사
제품을 비교하여 그 우수성을 인정하게 되어 더욱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다.
SPARC스테이션은 성능과 가격의 조건이 특출해서 그런 효과를 거둔것이다. 소비자들
이
선사에는 고객의 평가라는 보이지 않는 튼튼한 기반이 있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던
것처럼
넥스트의 이벤트 마케팅에 내재되어 있는 약점과 비즈니스랜드와의 관계에 취약한 부
분이
많다는 것을 빨리 깨닫지 못했다.
전국여러 곳에서 개최된 세미나에 모인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와 큐브를 보고 감탄사
를
연발했을 뿐 아니라 당장 그 제품을 사고 싶어서 수표를 꺼내도록 하는 데 성공했더
라면
큐브컴퓨터는 순조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품의 시연은 잠재 고
객을 실제
넥스트의 구매자로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서커스나 록음악회에 가면 그 순간의 흥분
으로
10달러짜리 싸구려 기념품이나 티셔츠를 그 가치도 생각해보지 않고 사게 된다. 그러
나
넥스트 큐브의 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시연하는 광경을 보면서도1
만달러라는 가격때문에 쉽게 충동 구매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넥스트는 업무용으로
컴퓨터를 구입할 때 그 비용을 경상 경비로 처리하여 마치 연필한 통을 사는 것처럼
간단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회사에서는 한 대의 컴퓨터를
구입하기
위해 한 명 이상의 승인을받고예산편성 부서의 심사를 받는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발표회에참석했던 사람들은 다시 넥스트 컴퓨터를 찾지 않았기 때문에 넥스트와 비즈
니스
랜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우선 넥스트 컴퓨터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잡스는데이비스
홀의
제품 발표회에서 운용체계의 버그를 감추는 데 성공했는지는 몰라도 소규모 시연에서
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넥스트 소프트웨어 팀이 198 8년 말과 1989년에 그 시스템을 완
성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제품에도 버그가 많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넥스트가더이상 완성된 시스템의 발표를 늦출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스크린의 동결,
프린트
기능 이상, 데이터 손실, 또는 네트워크 이상을 일으키는 소위 "쇼를방해하는 요인"
을
일으키는 버그를 제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제품은 조금 개선되었다.
1989년 4월
넥스트의 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던 외부 프로그래머들은 2주 전에는 시스템이
30초마다 이상이 발생했지만 이제는 30분에 한 번 문제가 생긴다면서 그 진전에 감탄
했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들은 미처 발견되지 못한 버그가 일으키는 문제때문에 개선된
버전을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5월 잡스가 샌디에이고에서 8백여명 의 소프트웨어
전문가들 앞에서 시연하는 동안 2대의 컴퓨터가 문제를 일으켰고 여름내내 비슷한 사
고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대학에서 넥스트 큐브를구입한 사람들은 버그를 제거하기 위해 컴
퓨터를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했다.
그러나비즈니스랜드의 주 고객인 기업체들은 그들과 같지 않았다.
그들은컴퓨터의운용체계를 분해했다가 조립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작성일자 : 1995.05.12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4)
비즈니스랜드의 고객은 넥스트사의 대학가 고객과는 다른 종류의 소프트웨어 를
필요로했다. 그들에게는 3차원 방정식을 풀거나 LISP라는 특수언어로 인공지능루틴을
작성하거나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검색해서 명문구를 찾을 수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
하지
않았다. 그 보다도 그들은 데이터베이스가 필요 했지만 넥스트컴퓨터에는 그런 기능
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CAD 프로그램이 필요했지만 그것도 없었다. 그들은 워드프로세싱
이상의 기능을 갖춘 우수한 워드 프로세싱 프로그램이 필요했으나 그것 역시 없었다.
거기에는 또 로터 스 1-2-3과 같은 스프레드시트도 없었다.
오하이오주 액런에서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 비즈니스랜드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일하
는 한
영업 사원은 매서매티카(Ma-thematica)프로그램(대학의 고급 교과과정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다항식 인수 분해와 같은 수준 높은 계산 기능을 갖춘 프로그램)을 스프레드시트 기
능까지
멋지게 할 수 있는 다목적 비즈니스용 프로그램으로 소개하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한것이지 계산을 할 필요는 없
었다.
넥스트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유일한 프로그램은 긴 서류를 작성하는데 필요 한
프레임메이커라고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은 배우기 어려웠고 편지
나
짧은 리포트 작성에는 부적당했을 뿐 아니라 넥스트의 기본운용체계가 완성될 때까지
그
기능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전에
는
넥스트 컴퓨터는 사실상 사무실에 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처음에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큐브컴퓨터를 자세히 살핀 후 공짜로 줘도 안 받겠
다면서
등을 돌렸다. 그러나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의 경영진들은 아무리 비싸도 고객들은
그들의
기계를 기꺼이 살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즈니스랜드가 발간하는
뉴스레터에는 영업사원들에게 넥스트 의 수요가 많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내용들이
게재되었다.
"비즈니스랜드의 슈퍼 스타들이여! 경쟁 제품이 없는 제품을 한번 팔아 보는 것이
어떻겠는지요(한번 생각해 보시요). 당신은 첨단 제품을 팔게 될 것입니다. 그 제품
은
지명도도 높고 커미션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용도도 아주 넓습니다. 그런 제품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바로 넥스트 큐브컴퓨터가그것입니다. 사용이 편리한 이 워크스테이션의
판로는 아주 넓습니다. 넥스트의 예상매출 은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업사
원이라면
매출실적에 대한 정당한 몫을 찾을수 있도록 신경쓰십시요. 그렇지 못하면 당신은 너
무 힘들
것입니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비즈니스랜드는 9천9백95달러의 기본 컴퓨터 가
격 에
프린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서비스 이용, 광디스크및 기타 주변기기 비용을 합하
면
2만1천5백19달러가 된다고 설명했다. 다른 제품을 가지고 이와 비슷한 커미션을 벌려
면
8대의 1BM 컴퓨터와 15대의 로엔드 매킨토시를팔아야 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데이브 노먼부터 전사원에 이르기까지 사업전망을 낙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사실과 다른 퍼스널 컴
퓨터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두가지 문제점을 깨닫지 못했다. 넥스트와 비즈니스
랜드의
거래가 발표된 3월이후 세미나를 시간적 여유를 갖고 개최했더라면 양사는 그해 봄
판매
촉진을 위해 개최된 세미나에서 잠재 고객들이 제기한 여러 부정적 문제점들을 해결
하려고
노력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불과 몇달후인 1989년 6월 넥스트 직원들에게 또 다른 행운이 찾아왔다. 넥 스트의
광디스크
공급업체이며 프린터의 주요 부품을 조달해주는 일본의 캐 논사가 41억달러 상당의
넥스트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넥스트는저절로 굴러 들어온 행운에 자축하는 분위
기에
빠져들었으며 그 일로 회사가 잘되어 가고 있다는 확신을 더 갖게 되었다(캐논사는
잡스로부터 최고운영책 임자를 고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나 잡스는 3년후에야 그
약속을 지켰다 . 비즈니스랜드도 넥스트와의 거래가 아주 훌륭한 결정이라며 축하분
위기
에들떠있었다. 잡스는 "월스트리트저널"지와의 인터뷰에서 넥스트는 현재 현금이 물
밀듯이
쏟아져들어오고 있어서 대부분을 은행에 예치해 둬야할 형편 이라고 말했다. 그말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넥스트의 자금력이 얼마 나튼튼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한 말이었
다.
잡스는 캐논을 이용하여 1989년 가을 라이선스 비용을 두배로 올리면서 IBM과의 라이
선스
계약협상을 다시시도했다. 넥스트가 계획한 대로 IBM 또한 캐논의 협력이 넥스트의
성공에
기여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넥스트는 갑자기 자본금 6억달러를 갖는 회사가 되었다. 지분이 조정된 후에도 50%의
지분을 갖게된 잡스는 약 3억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직원 수가 2백
여명에
불과하고 수입을 전혀 못 올리는 상황에서 이런 경우는 전에 거의 없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사 조차도 그와 같은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1986년 선사가 주식을
공개했을 때의 시장 가치는 4억3천만달 러였지만 그 당시 2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작성일자 : 1995.05.15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4)
비즈니스랜드의 고객은 넥스트사의 대학가 고객과는 다른 종류의 소프트웨어 를
필요로했다. 그들에게는 3차원 방정식을 풀거나 LISP라는 특수언어로 인공지능루틴을
작성하거나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검색해서 명문구를 찾을 수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
하지
않았다. 그 보다도 그들은 데이터베이스가 필요 했지만 넥스트컴퓨터에는 그런 기능
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CAD 프로그램이 필요했지만 그것도 없었다. 그들은 워드프로세싱
이상의 기능을 갖춘 우수한 워드 프로세싱 프로그램이 필요했으나 그것 역시 없었다.
거기에는 또 로터 스 1-2-3과 같은 스프레드시트도 없었다.
오하이오주 액런에서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 비즈니스랜드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일하
는 한
영업 사원은 매서매티카(Ma-thematica)프로그램(대학의 고급 교과과정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다항식 인수 분해와 같은 수준 높은 계산 기능을 갖춘 프로그램)을 스프레드시트 기
능까지
멋지게 할 수 있는 다목적 비즈니스용 프로그램으로 소개하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한것이지 계산을 할 필요는 없
었다.
넥스트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유일한 프로그램은 긴 서류를 작성하는데 필요 한
프레임메이커라고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은 배우기 어려웠고 편지
나
짧은 리포트 작성에는 부적당했을 뿐 아니라 넥스트의 기본운용체계가 완성될 때까지
그
기능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전에
는
넥스트 컴퓨터는 사실상 사무실에 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처음에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큐브컴퓨터를 자세히 살핀 후 공짜로 줘도 안 받겠
다면서
등을 돌렸다. 그러나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의 경영진들은 아무리 비싸도 고객들은
그들의
기계를 기꺼이 살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즈니스랜드가 발간하는
뉴스레터에는 영업사원들에게 넥스트 의 수요가 많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내용들이
게재되었다.
"비즈니스랜드의 슈퍼 스타들이여! 경쟁 제품이 없는 제품을 한번 팔아 보는 것이
어떻겠는지요(한번 생각해 보시요). 당신은 첨단 제품을 팔게 될 것입니다. 그 제품
은
지명도도 높고 커미션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용도도 아주 넓습니다. 그런 제품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바로 넥스트 큐브컴퓨터가그것입니다. 사용이 편리한 이 워크스테이션의
판로는 아주 넓습니다. 넥스트의 예상매출 은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업사
원이라면
매출실적에 대한 정당한 몫을 찾을수 있도록 신경쓰십시요. 그렇지 못하면 당신은 너
무 힘들
것입니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비즈니스랜드는 9천9백95달러의 기본 컴퓨터 가
격 에
프린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서비스 이용, 광디스크및 기타 주변기기 비용을 합하
면
2만1천5백19달러가 된다고 설명했다. 다른 제품을 가지고 이와 비슷한 커미션을 벌려
면
8대의 1BM 컴퓨터와 15대의 로엔드 매킨토시를팔아야 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데이브 노먼부터 전사원에 이르기까지 사업전망을 낙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사실과 다른 퍼스널 컴
퓨터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두가지 문제점을 깨닫지 못했다. 넥스트와 비즈니스
랜드의
거래가 발표된 3월이후 세미나를 시간적 여유를 갖고 개최했더라면 양사는 그해 봄
판매
촉진을 위해 개최된 세미나에서 잠재 고객들이 제기한 여러 부정적 문제점들을 해결
하려고
노력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불과 몇달후인 1989년 6월 넥스트 직원들에게 또 다른 행운이 찾아왔다. 넥 스트의
광디스크
공급업체이며 프린터의 주요 부품을 조달해주는 일본의 캐 논사가 41억달러 상당의
넥스트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넥스트는저절로 굴러 들어온 행운에 자축하는 분위
기에
빠져들었으며 그 일로 회사가 잘되어 가고 있다는 확신을 더 갖게 되었다(캐논사는
잡스로부터 최고운영책 임자를 고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나 잡스는 3년후에야 그
약속을 지켰다 . 비즈니스랜드도 넥스트와의 거래가 아주 훌륭한 결정이라며 축하분
위기
에들떠있었다. 잡스는 "월스트리트저널"지와의 인터뷰에서 넥스트는 현재 현금이 물
밀듯이
쏟아져들어오고 있어서 대부분을 은행에 예치해 둬야할 형편 이라고 말했다. 그말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넥스트의 자금력이 얼마 나튼튼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한 말이었
다.
잡스는 캐논을 이용하여 1989년 가을 라이선스 비용을 두배로 올리면서 IBM과의 라이
선스
계약협상을 다시시도했다. 넥스트가 계획한 대로 IBM 또한 캐논의 협력이 넥스트의
성공에
기여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넥스트는 갑자기 자본금 6억달러를 갖는 회사가 되었다. 지분이 조정된 후에도 50%의
지분을 갖게된 잡스는 약 3억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직원 수가 2백
여명에
불과하고 수입을 전혀 못 올리는 상황에서 이런 경우는 전에 거의 없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사 조차도 그와 같은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1986년 선사가 주식을
공개했을 때의 시장 가치는 4억3천만달 러였지만 그 당시 2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작성일자 : 1995.05.15
죄송 합니다.
75번은 올릴 수 있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6)
운용체계가 완성될 무렵인 9월에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사는 고객들 사이에서 넥스트
컴퓨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1백년 의 역사를 가진
베벌리힐스와 뉴욕에 있는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에서 큐브 컴퓨터를 대량
구입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오랜 전통을 가진 윌리엄 모 리스와 신생기업인 넥스트의 협상은
할리우드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서로 사업에 대한 관심보다는
카메라를
더욱 의식했으며 어깨동무를 해보이며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하려 노력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야망에 찬 초년생들이 입사하면 먼저 우편 정리부 터
시키며
스스로가 열심히 일하도록 유도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근래 들어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 그
회사에서 일했던 에이전트들이 독자적으로 크레 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를
창립하여
라이벌 업체로서 크게 성공하고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그들에게 고객을 많이
빼앗겼으며
새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약화된 이미지 때문에 활동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부동산 투자로 얻은 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그 에이전시는 과거에 집착한다는 이미지를 벗어버리려 했고 경쟁업체들이
매킨토시를 대량
구입한다는 소식을 듣자 독보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던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는 매킨토시 다음의 컴퓨터, 즉 넥스트 를 구입하여 단숨에 유명해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넥스트는 윌리엄 모리스와의 거래를 통해 넥스트에 대한 대중들의 신용도를더욱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해했다. 윌리엄 모리스가 표출하고자하는 보수적인 이미지는
넥스트의
목적에 꼭 맞아 떨어졌다. 가장 오래된 에이전시와 거래를 하게 되면 넥스트는
신생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많이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윌리엄 모리스가
넥스트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면 기술 집약적인 환경 이외에서도 큐브컴퓨터가 널리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에이전시는 업무의 특성상 언론 매체를 잘
다루었고
넥 스트처럼 그 규모에 비해 많은 관심을 모으는 데 능숙했다. "포천"가 선정한
5백대 기업에
제품을 팔아도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만큼 언론의 관심을 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두
회사는 서로의 협상 방법에 대해서도 만족해 했다. 그 에이전시는 스티브 잡스
말고는
협상하지 않으려 했고 비즈니스랜드또는 넥스트의 임원진들과도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기존의 방법으로 잡스와 연락이 안될 경우 그들은 또 다른 유명인사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고위층하고만 거래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고 그 신조는 잡스
의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졌다.
잡스는 직원들에게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넥스트의 자유방임적 마케팅 전략의
정당성을
확인시켜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넥스트 는 업계를 대상으로
미끼를 던져
놓고 어떤 업체들이 그 미끼에 걸려드는 지를 지켜 보았다. 그는 특정 분야만
집중적으로
공략했으면 절대로 윌리엄 모 리스를 고객으로 만들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고 결국 이런좋은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넥스트 컴퓨터
시장은 윌
리엄 모리스처럼 스스로 넥스트의 고객이 되고자 하는 보이지 않는 고객들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고 믿었다. 잡스는 윌리엄 모리스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맺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러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조건들 을 받아들일 자세도 가졌다.
그는
2백70대의 컴퓨터를 팔기 위해 대폭적인 할인율을 제시했던 것이다. 할인 조건에
대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넥 스트는 그 조건을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대외적으로는 할인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이번 거래를 꼭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잡스는 만족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넥스트와 협상할 당시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음악 담당 부서를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 당시 음악 부서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IBM호환 기종
하나뿐이었다.
컴퓨터의 사용을 회사 전체로 확산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된 에이전시는
컨설턴트를
초빙하여 지나치게 수준 높은 제품을 도입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자문을 구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트직원들 대부분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고 사용할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그 회사는 처음에 미니컴퓨터를 설치하여 각 책상에 설치될 터미널과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토록 했다.
그러나 컴퓨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자처했던 영화부서 부책임자였던 존 번햄이
넥스트가 "대단한 제품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그 기계를 한번 사용해 보자고
제의했다.
그의 동료인 마이크 심슨도 그의 의견에 찬성하며 넥스 트를 추천했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퍼스널 컴퓨터의 귀재라는 평판을 받던그는 기술적인 능력보다는 의욕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그와 그의 부하였던크리스 가드스탁은 IBM호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를 정리하지 못해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원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 볼수 있는
방법을
배우려하 지 않았다. 심슨의 컴퓨터에는 대량의 자료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들은 결국 포기하고 대신
구식방법으로 파일을 정리했다. 1980년대 초 매킨토시 이전에나온 컴퓨터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심슨이 1980년대 말에 나온 넥스트를사용할 리 만무했다. 그는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보다 사용이 용이하고 값도 저렴한 컴퓨터의 사용법을 배우려는 의지도 시간도
없었지만 차세대의 "걸작 "으로 알려진 컴퓨터에 거금을 투자하려 했다.
전문적인 기업가로서 부푼 꿈을 가졌던 마이크 심슨이 또 다른 꿈에 넘어간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사용이 편리한 넥스트 컴퓨터가 쉴사이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답해야하는 윌리엄 모리스사의 업무량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선전에 넘어간
것이다. 한
직원이 하루 평균 50 내지 2백여통의 전화를 받는데 심슨처럼 직위가 높은 사람은
전화 4개를
한꺼번에받는 경우가 많았다. 전화 한대로 통화하는 동안 부하 직원은 또 다른 통화
를
준비하고 2대의 전화가 연속해서 걸려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작성일자 : 1995.05.19
죄송 합니다.
75번은 올릴 수 있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6)
운용체계가 완성될 무렵인 9월에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사는 고객들 사이에서 넥스트
컴퓨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1백년 의 역사를 가진
베벌리힐스와 뉴욕에 있는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에서 큐브 컴퓨터를 대량
구입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오랜 전통을 가진 윌리엄 모 리스와 신생기업인 넥스트의 협상은
할리우드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서로 사업에 대한 관심보다는
카메라를
더욱 의식했으며 어깨동무를 해보이며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하려 노력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야망에 찬 초년생들이 입사하면 먼저 우편 정리부 터
시키며
스스로가 열심히 일하도록 유도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근래 들어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 그
회사에서 일했던 에이전트들이 독자적으로 크레 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를
창립하여
라이벌 업체로서 크게 성공하고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그들에게 고객을 많이
빼앗겼으며
새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약화된 이미지 때문에 활동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부동산 투자로 얻은 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그 에이전시는 과거에 집착한다는 이미지를 벗어버리려 했고 경쟁업체들이
매킨토시를 대량
구입한다는 소식을 듣자 독보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던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는 매킨토시 다음의 컴퓨터, 즉 넥스트 를 구입하여 단숨에 유명해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넥스트는 윌리엄 모리스와의 거래를 통해 넥스트에 대한 대중들의 신용도를더욱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해했다. 윌리엄 모리스가 표출하고자하는 보수적인 이미지는
넥스트의
목적에 꼭 맞아 떨어졌다. 가장 오래된 에이전시와 거래를 하게 되면 넥스트는
신생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많이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윌리엄 모리스가
넥스트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면 기술 집약적인 환경 이외에서도 큐브컴퓨터가 널리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에이전시는 업무의 특성상 언론 매체를 잘
다루었고
넥 스트처럼 그 규모에 비해 많은 관심을 모으는 데 능숙했다. "포천"가 선정한
5백대 기업에
제품을 팔아도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만큼 언론의 관심을 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두
회사는 서로의 협상 방법에 대해서도 만족해 했다. 그 에이전시는 스티브 잡스
말고는
협상하지 않으려 했고 비즈니스랜드또는 넥스트의 임원진들과도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기존의 방법으로 잡스와 연락이 안될 경우 그들은 또 다른 유명인사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고위층하고만 거래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고 그 신조는 잡스
의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졌다.
잡스는 직원들에게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넥스트의 자유방임적 마케팅 전략의
정당성을
확인시켜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넥스트 는 업계를 대상으로
미끼를 던져
놓고 어떤 업체들이 그 미끼에 걸려드는 지를 지켜 보았다. 그는 특정 분야만
집중적으로
공략했으면 절대로 윌리엄 모 리스를 고객으로 만들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고 결국 이런좋은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넥스트 컴퓨터
시장은 윌
리엄 모리스처럼 스스로 넥스트의 고객이 되고자 하는 보이지 않는 고객들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고 믿었다. 잡스는 윌리엄 모리스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맺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러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조건들 을 받아들일 자세도 가졌다.
그는
2백70대의 컴퓨터를 팔기 위해 대폭적인 할인율을 제시했던 것이다. 할인 조건에
대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넥 스트는 그 조건을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대외적으로는 할인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이번 거래를 꼭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잡스는 만족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넥스트와 협상할 당시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음악 담당 부서를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 당시 음악 부서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IBM호환 기종
하나뿐이었다.
컴퓨터의 사용을 회사 전체로 확산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된 에이전시는
컨설턴트를
초빙하여 지나치게 수준 높은 제품을 도입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자문을 구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트직원들 대부분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고 사용할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그 회사는 처음에 미니컴퓨터를 설치하여 각 책상에 설치될 터미널과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토록 했다.
그러나 컴퓨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자처했던 영화부서 부책임자였던 존 번햄이
넥스트가 "대단한 제품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그 기계를 한번 사용해 보자고
제의했다.
그의 동료인 마이크 심슨도 그의 의견에 찬성하며 넥스 트를 추천했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퍼스널 컴퓨터의 귀재라는 평판을 받던그는 기술적인 능력보다는 의욕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그와 그의 부하였던크리스 가드스탁은 IBM호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를 정리하지 못해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원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 볼수 있는
방법을
배우려하 지 않았다. 심슨의 컴퓨터에는 대량의 자료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들은 결국 포기하고 대신
구식방법으로 파일을 정리했다. 1980년대 초 매킨토시 이전에나온 컴퓨터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심슨이 1980년대 말에 나온 넥스트를사용할 리 만무했다. 그는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보다 사용이 용이하고 값도 저렴한 컴퓨터의 사용법을 배우려는 의지도 시간도
없었지만 차세대의 "걸작 "으로 알려진 컴퓨터에 거금을 투자하려 했다.
전문적인 기업가로서 부푼 꿈을 가졌던 마이크 심슨이 또 다른 꿈에 넘어간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사용이 편리한 넥스트 컴퓨터가 쉴사이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답해야하는 윌리엄 모리스사의 업무량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선전에 넘어간
것이다. 한
직원이 하루 평균 50 내지 2백여통의 전화를 받는데 심슨처럼 직위가 높은 사람은
전화 4개를
한꺼번에받는 경우가 많았다. 전화 한대로 통화하는 동안 부하 직원은 또 다른 통화
를
준비하고 2대의 전화가 연속해서 걸려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작성일자 : 1995.05.19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7)
이처럼 숨가쁜 상황속에서 심슨은 넥스트 컴퓨터를 가지고 "누구십니까?"라 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걸려오는 전화내용을 녹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프로그램은 오클랜드에 있는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인 아다메이션에 의해 개발되고
있었다. 심슨은 그 프로그램에 대해 전화번호 관리 이상의 기능을 기대했다.
컴퓨터는 다른
정보, 즉 감독과 일정, 가수 및 배우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기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멀티미디어 기능까지 가능했기 때문에 사진과 음악도 저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심슨은 꿈을 산 것이지 현실까지 산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몰랐다. 198 9년
늦은 여름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가 넥스트와 거래하기로 계약을 맺을당시 넥스트의
운용체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 구십니까?"라는 프로그램이 완성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가 기대했던 소프트웨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윌리엄 모리스사는 그 프로그램에 관련된 모든 업체로부터 기능을 보장받기를
바랐다.
그들은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및 소프트웨어업체 아다메이션사로 부터 만족스러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는 약속을 받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자문을 해주어야 할딜로이 트
타우치는
제외되었다. 그들은 넥스트를 추천하더라도 별 영향을 받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딜로이트 타우치는 넥스트의 하드웨어및 소프트웨어가 새 기술이라는 이유로 최종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윌리엄 모리스사가 컴퓨터를 대량 구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 결과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먼저 넥스트 컴퓨터 30대가 1989년 10월에 그 회사에 납품됐고 나머지 1백20 대는 그
다음해
초에 배달되는 것으로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비즈니스랜드는 첫
거래를 만족스럽게 진행시켜 넥스트컴퓨 터는 대학에만 적합하다는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으며 윌리엄 모리스는 다시 인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와
넥스트는
사람들의 관심을더 끌기를 원했다. 그 거래에 관련된 아무도 윌리엄 모리스가
치명적인 실수
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운전경험도 없이 사 실상
경주용차에
올라탄 셈이다. 1989년 그 회사는 넥스트의 유일한 고객이 었고 3년 뒤인 1992년
여름까지
북미에서 두번째로 큰 넥스트의 고객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는 타의
모범이
되지 못하고 실패의 상징이 돼가고 있었다.
한번 내린 결정에 대해 언론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기를 원했던 그 윌리 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넥스트를 칭찬했고 그 컴퓨터를 사용함으로써 회사가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고
선전했다. 그 회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넥스트가 오락 산업의 선두 주자"라고
강조하면서
전통적으로 업계의 표준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고객과
관련된 비디오를 저장하고 출력할 수 있게 된다. 에이전트들은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멀티미디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면서 업무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91년마이크 심슨은 잡지기자에게 특수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고객 들로부터
2백만달러를 쉽게 받아낼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멀티미디어 넥스트
데이터베이스라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가 요구한 소프트웨어는 사실
92년
가을에도 시험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불완전했고 회사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지 3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회사가 89년 넥스트제품을
선택하게된
이유는 구식 이미지를 벗어 보려는의도외에 근본적으로 넥스트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그런 소프트웨어는 누워서 떡먹는 것보다 더
쉽게
만들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 회사는 완전한 독자적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요구 하는
기술을
필요로하며 서로 완벽하게 조화될 수 있는 8개의 개별 모듈로 구성된 복잡한
데이터베이스를
요구했다. 그 소프트웨어를 직접 담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거래를 성사 시키기 위하여 윌리엄모리스 에이전시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려고하는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가 그랬고 기술적 자문은 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하지 않은 딜로이트 타우치가 그랬다. 결국 아다메이션사가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프로그램의 보안성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개발 작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과거 그 회사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직원들이
고객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나갔기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본 윌리엄 모리스는 이번
프로그램에는
여러개의 잠금쇠를 설치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일부 고객 캐린더나 거래에
대한
정보는 허용하되 고객의 전화번호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시키고자 했다.
작성일자 : 1995.05.22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8)
회사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그와같은 제약이 있거나 모듈이 여러개
필요하다면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다메이션사는 윌리엄 모 리스에게
디자인을 조금
단순화시켜 달라고 부탁했지만 윌리엄 모리스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아다메이션사는 그 일을 넥스트에 넘기고 도중 하차하고 말았다.
넥스트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넥스트는 아다메이션사가 2년 동안
이룩한 개발
실적을 모두 파기하고 91년 처음부터 일을 다시 시작해야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고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넥스트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했다. 넥스트는 엔지니어들을
달래가며 회사내부의 문제가 폭발하여 밖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다.
넥스트라는 작은 회사 가 윌리엄 모리스라는 고객에게 쏟아 붓는 엄청난 자금
이외에도 다른
대형 기업고객이 넥스트로 눈을 돌리도록 하는 비용도 많이 들었다. 넥스트가 윌
리엄
모리스와 함께 같은 계통에 있는 다른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었더라도넥스트는 별
이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뛰어나면 화려한 명성을 얻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정확히 말하자면 넥스트가 먼저 별 특징
없는
보험회사와 거래했더라면 넥스트 와 넥스트의 파트너인 비즈니스랜드는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윌리엄 모리스는 89년과 90년에 공급된 넥스트 컴퓨터가
회사로서
처음 사용하는 컴퓨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윌리엄모리스에이전시 사람들은
워드프로세싱이 무엇인지 전자 메일이 무엇인지를 알지못했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그런 기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에이전시 직원들은 조금 예외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있다.
넥스트컴퓨터가 독특하고 뛰어난 기술로 제작되었다는 과장된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
에이전시에 있는 넥스트 제품들은 회사 내에서 메모를 전송해주는기본적인 통신
기능정도만
할 뿐이었다. 이런 기능들은 1만달러짜리 워크스테이션이 아니더라도 저가제품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지루한 사무실 환경에서 음향 기능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는
다른 회사제품과 같이 음향기능이 없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메모는 한 주에
수천건에
이르는데 그 많은 메모들을 어떻게 들을 수있겠는가? 이 시스템이 다른 점이 있다면
누가
무엇에 대하여 통신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상급자를 헐뜯는 내용과 일을
어떻게 하면
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잡담이 상급자의 컴퓨터에 수록되는 바람에 6명이 해고된
적이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능은 넥스트 컴퓨터가 아니더라도 네트워크
시대에사용되고
있는 어떤 컴퓨터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컴퓨터로 베벌리힐스나 뉴욕 사무소와 통신할수있게
되어서
만족해 했다. 그러나 넥스트 컴퓨터와 음악 부서에 있는 다른 컴퓨터와는 연결되지
않았다.
윌리엄 모리스는 넥스트의 장점을 꼬집어서 내세울 수 없었다. 그는 일반적인
컴퓨터의
특성과 넥스트 컴퓨터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구분하여 부각시키지 못했다. 그
에이전시는 또
어렵게 설치한 넥 스트 네트워크의 부진한 기능과 잦은 충돌을 감내해야만 했다.
넥스트 네트
워크는 선사와 다른 업체들이 만든 서버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지만 넥스트는그렇게
하지
않았다. 넥스트는 네트워크 설치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서버 대신에
넥스트
컴퓨터를 사용했고 그 결과 네트워크의 기능을 저하시켰다. 그 에이전시는 컴퓨터를
사용해
본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넥 스트의 장점들을 부각시킬 수도 없었고 다른업체로
하여금
넥스트를 구입하도록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넥스트 컴퓨터를 도입하여 그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인 전화 받는 일을 줄여
보겠다는
마이크 심슨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90 년대의 가장 뛰어난
제품인
넥스트 큐브컴퓨터의 첨단기술도 70년대초에 개발된 전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걸려오는
전화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교환원 들은 그 많은 전화를 도저히 컴퓨터에 입력시킬
수
없었다. 기존의 방법대로종이에다 손으로 전화번호를 기재하는 방법이 가장
손쉬웠다.
넥스트 큐브의 "퍼스널 메인프레임기능"과 디지털 신호처리기능 그리고 여러가지
전자적
기능들이 사실상 수동작업을 선호하는 직원들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넥스트컴퓨터는
한가지 간단한 일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큐브컴퓨터에다 전화번호 목록을
저장한 다음
전화기에 연결시켜 놓으면컴퓨터 자판 하나만 눌러도 전화를 걸 수 있었을 것이다.
91년 윌리엄 모리스사 직원들은 이런 기능이 경쟁업체인 크레이티브 아티스 트 에이전시가
구입한 매킨토시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컴퓨터 로 전화를 거는 기능은 비싸지
도 않았고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것으로 초기 IBM호환기종도 그런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 에이전시는 그들이 요구한 주문 소프트웨어가 완성되기를 기다리
는 동안 다른 업체 들은 오래전부터 다른 컴퓨터가 제공하는 편리한 소프트웨어 기능을 향
유하고 있었다.
사양길에 접어든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가 아직은 건재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동
안 부상하는 신생 크레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는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애써 선전할 필요
가 없었다.
작성일자 : 1995.05.26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8)
회사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그와같은 제약이 있거나 모듈이 여러개 필요하
다면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다메이션사는 윌리엄 모 리스에게 디자인을 조금 단순
화시켜 달라고 부탁했지만 윌리엄 모리스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아다메이
션사는 그 일을 넥스트에 넘기고 도중 하차하고 말았다.
넥스트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넥스트는 아다메이션사가 2년 동안 이룩한 개
발 실적을 모두 파기하고 91년 처음부터 일을 다시 시작해야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고
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넥스트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했다. 넥스트는 엔지니어들을 달
래가며 회사내부의 문제가 폭발하여 밖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다. 넥스트라
는 작은 회사 가 윌리엄 모리스라는 고객에게 쏟아 붓는 엄청난 자금 이외에도 다른 대형
기업고객이 넥스트로 눈을 돌리도록 하는 비용도 많이 들었다. 넥스트가 윌 리엄 모리스와
함께 같은 계통에 있는 다른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었더라도넥스트는 별 이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뛰어나면 화려한 명성을 얻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정확히 말하자면 넥스트가 먼저 별 특징 없는 보험회사와 거래했
더라면 넥스트 와 넥스트의 파트너인 비즈니스랜드는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윌리엄 모리스는 89년과 90년에 공급된 넥스트 컴퓨터가 회사로
서 처음 사용하는 컴퓨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윌리엄모리스에이전시 사람들은 워드프로세
싱이 무엇인지 전자 메일이 무엇인지를 알지못했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그런 기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에이전시 직원들은 조금 예외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있다.
넥스트컴퓨터가 독특하고 뛰어난 기술로 제작되었다는 과장된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 에이
전시에 있는 넥스트 제품들은 회사 내에서 메모를 전송해주는기본적인 통신 기능정도만 할
뿐이었다. 이런 기능들은 1만달러짜리 워크스테이션이 아니더라도 저가제품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지루한 사무실 환경에서 음향 기능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
는 다른 회사제품과 같이 음향기능이 없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메모는 한 주에 수천건
에 이르는데 그 많은 메모들을 어떻게 들을 수있겠는가? 이 시스템이 다른 점이 있다면 누
가 무엇에 대하여 통신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상급자를 헐뜯는 내용과 일을 어떻게
하면 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잡담이 상급자의 컴퓨터에 수록되는 바람에 6명이 해고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능은 넥스트 컴퓨터가 아니더라도 네트워크 시대에사용되고 있는 어
떤 컴퓨터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컴퓨터로 베벌리힐스나 뉴욕 사무소와 통신할수있게 되어서 만
족해 했다. 그러나 넥스트 컴퓨터와 음악 부서에 있는 다른 컴퓨터와는 연결되지 않았다.
윌리엄 모리스는 넥스트의 장점을 꼬집어서 내세울 수 없었다. 그는 일반적인 컴퓨터의 특
성과 넥스트 컴퓨터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구분하여 부각시키지 못했다. 그 에이전시는 또
어렵게 설치한 넥 스트 네트워크의 부진한 기능과 잦은 충돌을 감내해야만 했다. 넥스트 네
트 워크는 선사와 다른 업체들이 만든 서버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지만 넥스트는그렇게 하지
않았다. 넥스트는 네트워크 설치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서버 대신에 넥스트 컴
퓨터를 사용했고 그 결과 네트워크의 기능을 저하시켰다. 그 에이전시는 컴퓨터를 사용해
본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넥 스트의 장점들을 부각시킬 수도 없었고 다른업체로 하여
금 넥스트를 구입하도록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넥스트 컴퓨터를 도입하여 그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인 전화 받는 일을 줄여 보겠다는
마이크 심슨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90 년대의 가장 뛰어난 제품인
넥스트 큐브컴퓨터의 첨단기술도 70년대초에 개발된 전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걸려오는 전
화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교환원 들은 그 많은 전화를 도저히 컴퓨터에 입력시킬 수 없었
다. 기존의 방법대로종이에다 손으로 전화번호를 기재하는 방법이 가장 손쉬웠다.
넥스트 큐브의 "퍼스널 메인프레임기능"과 디지털 신호처리기능 그리고 여러가지 전자적
기능들이 사실상 수동작업을 선호하는 직원들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넥스트컴퓨터는
한가지 간단한 일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큐브컴퓨터에다 전화번호 목록을 저장한 다
음 전화기에 연결시켜 놓으면컴퓨터 자판 하나만 눌러도 전화를 걸 수 있었을 것이다.
91년 윌리엄 모리스사 직원들은 이런 기능이 경쟁업체인 크레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가
구입한 매킨토시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컴퓨터 로 전화를 거는 기능은 비싸지
도 않았고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것으로 초기 IBM호환기종도 그런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 에이전시는 그들이 요구한 주문 소프트웨어가 완성되기를 기다리
는 동안 다른 업체 들은 오래전부터 다른 컴퓨터가 제공하는 편리한 소프트웨어 기능을 향
유하고 있었다.
사양길에 접어든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가 아직은 건재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동
안 부상하는 신생 크레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는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애써 선전할 필요
가 없었다.
작성일자 : 1995.05.26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9)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는 회사 일부 부서에서만 사용하던 매킨토시와 NBI 워드
프로세서를 회사전체로 확산시켜 매킨토시 컴퓨터망을 구축해 나갔다. 그들은 윌리엄 모리
스 에이전시가 거창하게 기자회견을 열어가며 자신들의 선두적 위치를 강조하기 훨씬 이전
부터 사실상 윌리엄 모리스사를 앞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사는 새 시
스템을 구축했을 때도 떠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시스템에 관련된 질문을 받아도 이를
밝히려하지 않았다.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의 매킨토시는 윌리엄 모리스의 넥스트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었
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치비가 훨씬 저렴했고 전산화된 롤로덱스 와 보안기능이 내장된
고유의 데이터베이스구축이 훨씬 용이했다는 점이다.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는 윌
리엄 모리스처럼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법석을 떨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매킨토
시를 자사 시스템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는 실속 없이 말로만 떠들어
대는 10 대처럼 행동했다.
윌리엄 모리스사는 신생기업인 넥스트사가 처음으로 확보한 대형 고객에게는 특별한 예우
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컴퓨터 몇백대 주문 가지고는 IBM이나 애플사의 관심
을 끌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넥스 트와 컴퓨터 구매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시스템 사용법을 익힐 때까지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
고 비즈니스랜드가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넥스트가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넥스트는 그 에이전시가 바라던 대로 충분한 지원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소비자와 판매자
간의 거래에서 제공되는 일반적인 지원이상의 값비싼 것을 제공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잘
못된 관행때문에 넥스트와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의 거래가 더 발전적인 거래로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넥스트는 중요고객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
른 고객들은 첫 고객이 누리는 특별대우를 기대할 수도 없었고 무제한적 지원도 요구할 수
없었다. 넥스트 컴퓨터는 이제 자립해야 했다. 그러나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는 "넥스트 고
위 간부의 개입"없이, 즉 잡스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제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경쟁업체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사의 영업사원들이 다져놓은 터전에 잡스가 나
타나서 넥스트제품을 사도록 권유하고 돌아가면 일대 동요가 일어나게 마련이었다. 그 소식
을 들은 스콧 맥닐리는 비행기를 타고 와서 다시 고객들을 설득해야 했다. 이 일은 맥닐리
를 분노케 했다. 맥닐리와 선사 의 고위 간부들은 스티브 잡스의 명성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다.
자기 선전을 하는데 있어서 잡스를 따라올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메인프레 임업계에 오래
종사했고 퍼스널 컴퓨터가 일으키고 있는 혁신에 별 관심을두지 않았던 사람들이 참석한 89
년 말에 개최된 컴퓨터 업계 회의에서 잡스 는 넥스트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을
완전히 압도했다. "컴퓨터 월드"지의 한 칼럼니스트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잡스는 애플시절 청바지 차림과는 매우 다른 모습인 세련된 이탈리아제 양복을 입고 백만
불 짜리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람들은 그의 손아귀에서 녹아 드는 것을 느꼈다.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래도 그 업계에서 중요한 사람들이었지만 잡스는 유명 인사였다.- 넥스
트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한 사람들도 잡스가 시연을 시작하자 옆 좌석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잡스는 키보드를 치는 피아니스트처럼 여겨졌다.-잡스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잡스는 그 자리에서 컴퓨터 몇대를 판매한 것이나다름 없었다. 아
무리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느정도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할리
우드식 화려한 마케팅 전술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유명 인사라 할지라도 한번에 여
러 곳에 나타날 수도 없었고 공연시에 그 명사에 대해 완전히 반했던 관중들도 느리고, 값
비싸며, 소프트웨어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컴퓨터를 선뜻 대량 구입할리는 없는 것이다.
같은 회의에서 마 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넥스트의 결함을 보완해 줄 의사가 없다
고 밝혔다. 넥스트는 매출액을 발표할 때마다 가장 좋은 면만 드러내 보이려고 힘을 기울였
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은 항상 조금씩 왜곡됐다. 예를 들어서 80년대말 넥스트는 기
업 부문과의 거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이미지 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또 윌리
엄 모리스 에이전시의 뒤를 이어 포천지선 정 5백대 기업들이 속속 넥스트의 고객이 되고
있다는 고무적인 소식을 전달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렇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가 주문한
2백70대의컴 퓨터도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이 한번에 공급되지 못했다. 2백70대의
컴퓨터는 2년여에 걸쳐 공급되도록 되어 있었지만 사실 91년 6월 이후에야 공급이 완료되었
다.
넥스트는 비즈니스랜드가 1989년 말까지 컴퓨터 3백60대밖에 판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
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특히 과거 애플에서 근무했던 넥스트 직원들은 매킨
토시가 발표된 첫해에 40만대 이상 판매되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그 사실은
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대학에 판매된 큐브컴퓨터를 판매 대수에 합친다 하더라도 그
수치가 너무 미미했기 때문에 넥스트 직원들은 그 집계결과를 보면서 그 단위 가 천대이든
가 아니면 0이 3개 빠졌을 것이라는 농담을 했다. 그러나 그 통계수치는 거짓 없는 사실이
었다. 넥스트사 공장의 월간 생산량은 1백대미만 이었다. 10만대가 아니라 1백대 이하이다.
넥스트가 창립된지 4년, 데이비스 홀에서 큐브컴퓨터가 발표된지 16개월이 지났을 뿐아니라
비즈니스랜드와의거래를 발표한지 9개월이 지나고 일본이 넥스트에 대규모 투자를 한지 6개
월 이 지났어도 시장은 스티브 잡스와 그의 회사에 대해 비협조적이었다.
작성일자 : 1995.05.31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80)
모든 가족이 숨기고 싶은 비밀을 가지고 있듯이 기업체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게 마련
이다. 기업의 이미지와 실질적 내부사정은 극과 극처럼 다르게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88년
큐브컴퓨터가 발표된 이후 대외적으로는 넥 스트 컴퓨터가 성공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넥스
트는 전략적으로 많은 사건들 을 비밀에 부쳤고 넥스트의 매출과 경쟁업체의 매출격차가 점
점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왔다.
넥스트사 직원들은 회사의 이같은 이중적이고 비합리적 태도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성공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 회사 자체
는 가장 훌륭한 제품을 개발했다고 자부했지 만 소비자들은 넥스트 큐브컴퓨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 잡스 가 대외적으로는 넥스트 직원들이 최고의 교육수준과 기술을
갖추었다고 선전했지만 회사내부서에서는 그들을 냉혹하게 비판하는 행위등 모두가 속과겉
이 다른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넥스트사 직원들은 불안이나 불편을 가져오는 요소들을 부인하는데 능통
한 잡스를 귀감삼아 이런 불협화음을최소화시키고 있었다.
잡스의 이중성을 잘 나타내주는 한 예를 들어보면, 89년 9월 넥스트가 대학 시장 밖에서는
매출을 전혀 올리지 못했지만 잡스는 대중들에게 자신감있게 실제와는 다른 말을 들려주었
다.
그는 기업분야에 컴퓨터를 공급한 시기를 비교할 때 넥스트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앞서가고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넥스트는 애플처럼 뒷거래없이 직접 공식적인 거래를 텄기 때문이
라는 것이다. 그는 넥스트컴퓨터를 개발하는 방법을 변경할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잡스는 직원들에게는 넥스트 컴퓨터의 가격이 높고 속도가 느리며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고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에게는 넥 스트 컴퓨터에 필요한 소프
트웨어를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하기가 어려워지고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계획보다도 빠르게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사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이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넥스트가 호응을 점점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을 대중
들에게 인식시키는데 잡스가 성공했더라면 소프트웨어 업체와 소비자들은 넥스트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될 것이며 그렇게되면 환상에 불과했던 넥스트의 꿈은 현실화 되었을 것이
다.
넥스트의 대외적인 입지와 대내적 실상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장면을 모으면 앨범
한권의 분량이 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진실과 허구의 차이 그 자체 보다 이
런 현상에 대한 심리적인 갈등과 넥스트 직원들 의 불편한 심기 그리고 일반인들의 기대간
의 괴리가 더 컸다는 점이다. 스티 브 잡스가 일반인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는 그들과 잡스의 요구가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회는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잡스가 영웅처럼 대중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그들의 책임 또는 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책임은 대부분의
경우 무시되고 만다.
넥스트 컴퓨터가 아직 미완성인 상태에서 수많은 결함을 지닌채 발표 되었음에도 한 잡지
가 89년 초 잡스를 "최고의 경영인"으로 지칭한것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사람들은
현인의 권위에 순종하기를 갈구한다. 그 현자 의 초자연적 통찰력은 젊음과 성공으로 더욱
공고히 될 수 있다. 스티브 잡 스는 사람들이 필요로 했던 현자의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잡스 자신의 이권과 현명한 경영인을 갈망했던 대중들의 요구가 "퓨처 포럼" 이라는 텔레
비전 프로그램에 잘 나타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월스트리트 저널 창간 1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89년 6월 다우 존스의 후원 아래 뉴욕 공공 도서관에서 제작되었다.
"미래"라는 주제의 토론회에는 세계각국의 정치인 및 경제인들이 초대되었다. 그중에는 포
드 자동차의 도널드 피터슨, 경제자문 위원회의 위원장인 마 이클 보스킨, 프랑스 전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텡 맥킨스키 및 컴퍼니동경지사에서 온 게니치 오마에 그리고 영국, 헝
가리, 맥시코, 이탈리아, 구 소련에서 온 여러 명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토론회에 참석
한 사람중 유일하게 40세 미만인 사람은 오직 한명, 스티브잡스뿐이었다.
뉴스 앵커인 피터 제닝스가 그날의 토론을 주재했다. 그는 토론자들에게 가상의 회사인 크
레이티브 모터스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가 자기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려하고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제닝스는 당연히 젊은 기업인의 표상
이었던 잡스에게 그 엔지니어를 실제의 인물로 환생시켜보라고 했다. 잡스는 그의 요청에
따라 두서없이 얽힌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지금 사회자께서는 타우러스와 에드셀의 차이는 몇사람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곧 자기의 전공분야인 컴퓨터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인들
이 "머리쓰는 일"을 점점 많이하게 됨에 따라 타우러스와 에드셀의 유일한 차이는, 즉 호응
을 얻는 자동차 디자인과 실패 한 디자인의 유일한 차이는 그 디자인을 제작하는 과정에 컴
퓨터화된 데이터 베이스를 사용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1)
크랜달은 넥스트프로그램이 복잡한 부분까지도 쉽게 표시해준다면서 다음과같은 요지의 말
을 했다.
"이것이운용되는 것을 보면 흥미롭다. 지금까지 "매시메티카"라고 하는 기능을 갖춘 시스템
이 나온 일은 없다. 그 기능을 이용하여 양자파 함수 도표 를 그려보겠다. 여기에 양자파 함
수 객체가 있고 양자역학을 풀었던 종전의등식을 푸는 방법이 있다. 내가 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그래프는 매 시메티카가 그린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일년에 열 사람이 쓸까말
까하는 프로그램이다. 응용기술과 그 프로그램을 접속시킨 것이다. 매우 간단하다. 6개의 정
점이 있는 산처럼 생긴 양자파 함수를 여기 볼 수 있다.
크랜달은 넥스트 본사와 연결된 마이크를 손으로 툭툭 친 다음 프로그램과 접속, 그 소리
를 곡선으로 변형시켜 컴퓨터 화면에 시뮬레이트시키는 일로발표를 마무리했다. 크랜달은
화면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 손으로 낸 소리를 도식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는 크랜달이 무대에서 내려가자 "리처드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것을 만들었습니
다"라고 말했다. 잡스는 크랜달 같은 사람이 앞으로 그의 고객 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크랜
달은 잡스가 바라던 대로 넥스트컴퓨터가 학문 계에서 스위스제 군용칼의 역할을 할 것이라
는 사실에 동의했다. 사람들은 컴퓨터값이 비싸더라도 이 컴퓨터를 구입하기 위해 산이라도
기꺼이 옮겨야만 했다. 잡스가 대학 관계자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측에 대학을 대표하여 넥
스트컴퓨터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그때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때 크
랜달은 잡스를 위로했다. 그러나 잡스를 위로한 크랜달 부류 의 사람들은 "가격이 문제가
안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넥스트의 상업적 기반을 다져주는
데 실패했다.
크랜달의 순서가 끝나자 잡스는 컴퓨터의 획기적인 사운드기능을 보여주기 위한 시연을 시
작했다. "책을 통해 지식을 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소리로 듣는 것도 감동적
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마시오"라는 연설과 "독수리 가 착륙했다"라는 제목의 미
항공우주국(NASA)소개 자료내용을 들려주었다.
잡스는또 넥스트가 디자인한 전자메일시스템이 메시지에 녹음한 음성을 어떻게 접속시키는
지를 보여주었다. 잡스는 입을 마이크에 갖다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티브입니다. 저는 오늘같은 역사적인 날에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데이비스 심포니 홀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박수소리 도 함께 보낼까요. 물론 원한
다면 그 부분을 편집할 수 있습니다."관중들은 잡스가 "이런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했을 때
그 표현을 미리 준비해서 한 것인지 아니면 그날 흥분된 분위기에 휩쓸려 즉흥적으로 한 말
인지아직도 궁금 해 한다. 어쨌든 그날 넥스트의 특수 멀티미디어 메일이 전세계적으로 쉽
게전송될 수 있다는 점만 강조되었지 그런 메시지를 받기 위해서수진자측도 넥 스트제품을
구입해야 한다는 점은 언급되지 않았다. 독특한 전자메일을 받기위해 넥스트 제품을 구입하
는 것은 AT&T비디오폰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AT&T비디오폰은 1964년 세계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을 때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제품으로 1992년 다시 발표되
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디지털 라이브러리라는 개념을 확실히 잡는 것이 가장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넥스트가 개발한 대량 저장능력과 획기적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
면 손끝 하나만 움직여서 전체 인류의 문명사 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으로 디지털
책을 만들었습니다. 구텐베르크이후 인쇄업은 사실상 큰 발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역사적
중요성을 부각 시키는 말들이 계속 나왔다. 넥스트가 웹스터사전, 옥스퍼드사전 및 옥스퍼
드판 셰익스피어 작품에 디지털 책의 라이선스를 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결국 쓸모 없는 것이 되어 소비자들의구매욕을 일으킬 만큼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디
지털 라이브러리가 획기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잡스의 말을 의심한 사람은 그 당시 아
무도 없었고 그런 기능이 넥스 트 컴퓨터만의 독점 기능이 될 것이라는 가정을 의심하는 사
람도 없었다. 그 날 데이비스 심포니 홀에 모인 사람들은 잡스의 상업적 판단의 타당성을
검토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잡스는그런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할 만큼 카
리스마적이었다.
작성일자 : 1995.04.12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2)
"여기서 몇가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먼저 정말로 좋은 디지털 책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드
리겠습니다. 여기에 웹스터 사전이 있습니다. 먼저 동의어 사전을 부릅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변덕스럽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단어 의 뜻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찾
은 내용입니다. 세번째 설명이 제게 해당되는 것같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여 예측할 수
없는 특성을 지닌 것". 동의어.반대어 사전을 쭉 훑어 내려가면 반대말이 "무뚝뚝하다"라 고
나옵니다. 그럼 그 뜻이 무엇인지가 또 궁금해지겠죠? 클릭을 두번 누르면 그 뜻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 있습니다. "냉정하고 감정의 기복이 없는 것, 행동이 느리거나 변화
를 거부하는 것, 우울하고 무뚝뚝한 성격 . "변덕스럽다"라는 말이 그다지 나쁜 뜻이 아닌가
봅니다."잡스는 자신에 대한 떠도는 소문을 유머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을 뿐 아니라그의 박
식함 과 문학적 소양도 과시했다.
"보브 다일랜의 작품전체를 끄집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것까지도 판매할 수있을지는 자신
이 없지만요. 다일랜이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했는지 한번 알아봅시다. "결혼의 노래"
로부터 시작해 사랑에 관한 내용이 36가지 있습니다. 적당한 수준이죠? 다시 말해서 상당한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매우 훌륭한 책 한권이 더 있습니다. 옥스퍼드 명문장사전이 그
것입니다. 이 책에는 아침 식사라는 말이 들어있는 멋있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시스템이 부드럽게 스크롤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는지요. 이렇게 밑으로스크롤하면 됩니
다." 잡스는 컴퓨터의 음악적 기능을 제일 마지막에 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 감정을 조절
했다. 그 컴퓨터는 잡스가 "순수한 수학"이라고 표현한 것을 기본으로 하여 디지털 시그널
프로세서의 도움을 받아 신시사이저만큼이나 편리 하게 음악이 나오게 할 수 있었다. 잡스
는 그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제품발표회가 심포니 홀에서 개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세 종류의 악기소리가 심포니 홀을 가득 채웠다. 모든 소리는 컴퓨터 합성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런 훌륭한 기능은 대학의 음악과 이외의 학과에서는 별 환영을 받지 못하였
다.
발표가 거의 마무리단계에 이르러 가격을 언급할 시기가 왔다. 잡스는 긴 서론 때문에 불
만스러워할 지도 모르는 청중들에게 하드웨어를 사면 같이 받게될 소프트웨어들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잡스는 메일 프로그램과 디지털 라이브러리 워드프로세서,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칭찬하며 이런 기능들을 값으로 치면 수천달러는 호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만 들
으면 넥스트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거의 공짜로 제품을 구입한 행운을 잡았다는 착각에 빠지
게된다. 고등교육기관에 공급될 컴퓨터의 대당 가격은 6천달러가 될 것이다. 모두가 사무실
에 한대씩 비치하고 싶어하는 획기적 프린터는 가격치고는 상당히 높은 2천달러가 될 것이
다." 잡스는 기존의 하드디스크로 광 디스크의 저장 용량을 충당하려면 추가로 2천달러 또
는 4천달러만 더 부담하면 된다고 말했다.
발표회가 개최되기 전 실리콘 밸리에서는 잡스가 모든 사람들 앞에 포도향 쿨 에이드라는
음료를 한 잔씩 갖다 놓으면 청중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의심 해 보지도 않고 단숨에 마셔
버릴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아 잡스가 마치 짐존스나 존 스타운 목사와 같은 영향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했다. 그 소문은 사실 그렇게 근거 없는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청중들은 하드 디스크를(광 디스크의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갖
추어야 했다 갖춘 컴퓨터와 프린터의 가격이 1만달러 이상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열렬한 환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흑백컴퓨터치고는 3천달러라는 약속된 가격에 부합된 조건
은 아니었다. 잠재 고객들은 제시된 조건으로 컴퓨터를 받아들이는 도리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소프트웨어를 낱개로 구입할 수는 없
었다. 잡스는 "전체가 아니면 구입하지 말라"고 고집했다. 그는 또 기본적인 소프트웨어 운
용체계가 아직은 미완성 단계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그는 쿨 에이드 음료에 중독되어 있는
관객들에게 그의 훌륭한 언변을 이용하여 그것은 문제도 안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그들을
세뇌시켰다. 제일 처음 발표되는 소프트웨어에는 1.0버 전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후에 발표
되는 제품들은 버전업이 되는 것이 관례 이다. 그러나 그 당시 넥스트는 첫번째 버전을 발
표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는 현재 올해 11월 초쯤 시스템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금년에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은 0.8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년 초에는 0.9 버전을 발표하여
소프트웨어 개발업자 및 최종 사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다음 2.4분기에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완벽한 1.0 버전을 발표할 것입니다." 컴퓨터 자체가 다음달이나 돼야 출하
될 수 있고 소프트웨어는 앞으로 6개월 더 있어야 완성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너무 성급하
게 제품 발표회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 잡스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
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3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리느라 지쳐 있는 대학 관계자 들이
모두 등을 돌리기 전에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시늉이라도 보여야만했다. 그는 진지한 자
세로 발표회를 진행시켜 나갔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미완성된 제품도 마치 완성된 것처
럼 생각하도록 했다. 넥스트를 소개하는 필름을 봐도 아직 미완성된 넥스트 공장이 마치 완
성된 것처럼 보인다.
넥스트가약속한 컴퓨터 내장소프트웨어를 서둘러 개발하는 동안 검고 딱딱하게 생긴 입방
체 외형은 좋은 눈속임이 될 수 있다.
그는 업계에서 내로라하게 똑똑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넥스트가 마치 난공불락의
성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잡스는 밝은 면만 열거했다.
"지난 몇년동안 우리는 운좋게도 유익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이 자리를 빌려
그 관계를 밝힐까 합니다.(화면에 IBM과 넥스트의 로고가 나타난다)사실입니다."
작성일자 : 1995.04.14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3)
잡스는 넥스트 컴퓨터와 IBM의 유닉스 시스템상에서 운용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넥스트
스텝"을 IBM에 라이선스해 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넥스트 스텝이 어떤 IBM기종에서 운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지는않았지만 두 회사가 손을 잡고 일할 것이라는 이미지
를 어렴풋이 풍겨 잠재 고객과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이상적인 동업자라는 인식을 갖도록
유도했다. 잡스가 흥분된 어조로 "새 컴퓨터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고 말한 후 샌 프란시스코 교향악단 소속 바이올린 연주자가 넥스 트컴퓨터와 함께 바흐의
A 마이너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2중주로 연주하는것으로 발표회는 막을 내렸다.
멋진 2중주에 관중은 박수를 보냈다. 관중은 월 가 증권 거래소나 메리 케이 화장품 판촉
행사에서나 볼 수 있는 집단광란의 반응을 보였다. 관중의 그러한 반응은 연주가 매우 신선
하기도 했지만 PC사용자가 원하는 기능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트집잡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열띤 분위기에 빠졌던 로스 페로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컴퓨터 소리에
맞추어 합성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 것이야말로 "최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것으로 그날
을 회고했다. 잡스는 소프트웨어 운용상의 실수 없이 그날의 발표를 마쳤다.
그는 그의 실력을 백배 활용했을 뿐 아니라 행운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달 개최된 프레스클럽기자회견 직전에 밝힌 페로의 회고담을 들으면 그날
잡스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배짱으로 버텨 나갔고 불가능에가까운 일들을 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무관심한 실리콘 밸리 에서직접 컴퓨터를 시연해 본것 자체가 놀라운 일
이다.(넥스트의 충직한 사람들만골라 그날 초대되었는데도 페로는 그들의 충직함을 부인했
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무대에 선 잡스는 마치 마이클잭슨 처럼 모두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
고갔다고 페로는 말했다.
페로가 신비주의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로가 그 날의 분위기에
휩쓸려 들어간 것은 이해할 만도 하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라 는 신비한 인물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언론마저도 그날의 분위기에 휩쓸린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 발표회 이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잡스는 분위기를 완전히 휘어잡았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쉽게
대답했다. 잡스 는 계획보다 늦게 제품발표회를 개최한 이유를 묻는 질문들에 대한 답도 미
리 준비해 두었다. "컴퓨터는 결코 늦게 발표된 것이 아니다. 적어도 5년은 앞선 제품이다".
기자들은 동의했다. 제품을 몇 대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넥스트는 제품을 최대
한 많이 생산할 것이지만 "수요에 못 따라갈것 이라고 답했다.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로 실
리콘 밸리 소식을 어느 정도 다루는 웨스 스미스는 잡스가 까다로운 질문을 던진 기자들을
무시하자 동료 기자들마저 그들을 비난하는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잡스는 자신의 성공을 지나치게 자신한 나머지 타당한 질문에 대해 한마디 짧은 답으로 응
수한 것이 얼마나 무뢰하게 비춰졌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잡 스는 넥스트 컴퓨터를 사용하
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대학생이 아니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에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학에 등록하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잡스의 큰 실수까지도 눈감아 줬다. 점심식사가 변변치 않았다. 몇몇이 불만을 토
로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언론은 이번에발표된 제품에 대해 대체로 긍
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스트워드 알솝은 앞으로 18개월 이내에 약 2만5천여대의 "멋있는 넥
스트 컴퓨터"가 판매될 것이라고 썼다. 대학이 컴퓨터가 갖고 있는 문제를 약간 부담한다면
넥스트는 앞으로 일년 반 안에 총 1억5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되는 것이
다. 다른 뉴스레터의 편집부장인 리처드 셰퍼도 넥스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나는 처음에는 넥스트를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고 말했기 때
문에 알솝의 말보다 더 설득력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도 넥 스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표현했다. ITC사의 이사인 클레어 플레그 는 넥스트의 제품뿐 아니라 마케팅 전략 또한 훌
륭하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테크놀로지 스톡 레터지의 편집 부장인 마이클 머피는 넥스트
가 앞으로2년 동안 5만여 대의 컴퓨터를 판매해 약3억달러 상당의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예
측했다. 매큐저지의 편집부장은 다소 흥분된 어조로 "이 기계는 결국 섹스 보다 더 중요해
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제품 발표회의 분위기와 관중들의 넥 스트에 대한 지지는 이보다
더 고조될 수는 없었다.
넥스트는 제 4의 물결을 타고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작성일자 : 1995.04.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4)
88년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큐브컴퓨터를 발표하기 훨씬 이전에도 신 기술로 교육방식을
바꾸어 보려는 시도가 여러번 있었다. 과거 몇몇 기술예언자들도 자신들이 마련한 획기적
전기가 혁신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잡스만큼 확신 했지만 그들의 예언은 빗나갔다. 잡스
가 영웅시했던 토머스 에디슨도 "시각 적인"강의를 가능케할 "모션 픽처"라는 효율적인 매체
로 인해 "학교 수업에 서 책은 곧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필름 뿐 아니라 라디
오 및텔레비전에 대해서도 초기에는 화려한 예측들이 나왔다. 그들은 교육분야를 대대적으
로 혁신시키고 미래를 주도해나갈 것이라고 장담했고, 책을 이용하는 시대는 이제 막을 내
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그런 제품들은교육분야를 크게 변화시키지 못했다.
60년 컴퓨터가 교육에 이용되기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MIT 미시간 대
학을 비롯한 미국의 고등교육기관들은 한동안 컴퓨터가 모든것을 혁신시킬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61년 MIT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수학 강의를 시험적으로 시도한 이
래로 많은 학교들이 60년대 에 접어들면서 컴퓨터를 이용, 강의를 수백개 개설했다. "타임"
지는 "B.M. O.Cs:BigMacines On Campus(캠퍼스의 대형 기계)"라는 말을 만들어 내기 도
했다. 65년 캘리포니아 대학이 어빈에 분교를 설립하였을 때 주정부는캘리포니아 대학 분교
가 컴퓨터를 이용한 교수법을 개척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컴퓨터 U"라고 불려지기도
했던 UC-어빈은 학교건물을 짓기도전 에 컴퓨터를 구입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미시간에
설립된 한 대학은 도서 관을 설계할 때 수천권의 책만을 소장할 수 있게했고, 나머지 공간
에는 시청 각기재 및 컴퓨터가 들어설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책을 싫어해서 이런설 계를
한 것이 아니다. 책은 이제 더이상 정보전달매체로서 최선의 방법이될수 없기 때문이다." 잡
스는 너무 젊었기 때문에 컴퓨터시대 초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며 애플이 등장하기 이전의
상황을 검토해 보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이것이 결국 불행 을 낳게한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
었다. 만일 그가 컴퓨터의 역사와 25년전에 이미 캠퍼스에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잘못
된 예측이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더 유의했더라면 넥스트의 정책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
다.
넥스트는 큐브 컴퓨터가 대학에서 강사를 보조해 주는 이상적인 기계가 될수 있다고 설명
했다. 1960년대는 바로 그런 것을 필요로 했다. 즉 학생 개개인이 필요로하는 강 의를 컴퓨
터가 할 수 있어야 했다. 교수들은 엘리트의 독무대였던 교육계가 민주화될 것이 라고 말
했고 이것은 잡지를 통해 독자들에 게 전달 되었다. 레드북은 영국의 찰스 황태자 와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개인 교사를 두었다고 지적했듯이 컴퓨터는 모든 학생들이 과거 특수
계층이 누렸던 특권, 즉 개인의 필요에 따라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독자들에
게 말했다.
매콜스는 한 수 더 떠서 컴퓨터가 캠퍼스에 등장하게 되면 "평범한 사람이천재만큼의 생
산성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시스템 기획 실장인
로버트 치르기는 대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활동 력이 없고, 상호 작용이 없는" 책을 사용한
세대보다 "상호 작용이 가능하고 사용이 용이하며 신속한 해결책을 주는" 컴퓨터 강 사에
향수를 느끼게될것이라고 예상했다.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가 단순히 교수의 조수 역할로만 끝나지 않고 나중에는 교수를 대
체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 당시 행동 심리학자인 프레드 켈러 는 제법 심각하게 "선
생님이여 안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기도 했었다.
이런분위기는 아직 컴퓨터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못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 으켰
고 중도주의적 태도를 취한 사람들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컴퓨터지원 강의를 보완적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평가하여 초현 대주의적 요소
와 고전적 요소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 산업계는 약삭빠르게 새 컴퓨터에 고전적 이름을 붙였다. 일리노이 대학의 시스템
은 Programmed Log-ic for Automatic Teaching Operations의 머리글자 따서 PLATO라고
그럴싸하게 불렀다. 그 후에도 스탠퍼드 대학 이 SOCRATES, MIT대학이 ATHENA라는 약
어를 사용하여 시스템과 고전적 요소를 연관시키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그런 학습용 기계를 누가 비난하겠는가? 기계를 통한 교육과 소크라테스식 개인 교수법은
닮은 데가 없다고 주장하는 완고한 학자만이 그런 태도를 취할 것이다. 맥스웰 골드버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의 인문대 교수로 69년 매우 기분 나쁜
어조로 "소크라테스가 자기 이름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무덤에서 걸어
나와 독약을 한컵 더 마실 것"이라고 말했다.
작성일자 : 1995.04.19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5)
전통적인 대학 강의에 가장 큰 위협이 된 것은 전통적인 이름을 가진 일리노 이 대학의 플
라토(PLATO)라는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은 다 낡은 텔레비전 세트와 16개의 키가 있는
키보드로 이루어졌고 다른 방에서 손으로 슬라이드 를 집어서 컴퓨터 스캐너에 비춰야 화면
에 그림이 나타나는 시스템으로 1960 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점차 개선
되어 1백50여개의 강좌 를 완전 전산화시킨 매우 큰 시스템이 되었다. 일일이 손으로 슬라
이드를 잡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전 자동화가 이루어졌다. 이 시스템은 1970년대 말에이르
러서는 스와힐리어 과목에서부터 시작하여 로켓 강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강좌에 사
용되었다. 그러나 정작 플라토에 대한 강의에는 이용되지않았다. 플라토는 민간 부문으로부
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넥스트의 후반시 기와 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무료로
대학에 구형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대여해온 미니애폴리스에 본사를 둔 컨트롤 데이터사는
1977년 이미 개발된 시스템 강좌에 대해 로열티를 지불하겠다는 조건으로 일리노이대학으로
부터 플 라토에 대한 소유권을 인수받았다. 컨트롤 데이터는 프로그램 개발에 거액을 투자
하여 다양한 기능을 만들어서 대학뿐 아니라 국민학교와 직업 교육 기관 에까지 시스템을
판매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컨트롤 데이터 의 노력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
다.
컨트롤 데이터는 몇년이 지나 9억달러의 적자를 내고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윌리엄 노리스는 창립자라 는 위치와 권위를 내세워 사업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명백했음에
도 불구하고 플라토로 계속 수익을 올리려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컨트롤데이터 이사진 들
에 의해 밀려나게 되었다.
그럼 왜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여 계속 확장시킨 플라토가 빛을 보지 못했을까? 그것은 사
람들이 원하지 않은 기능을 계속 개발했기 때문이다. 플라토 는 대학이 기꺼이 플라토 소프
트웨어가 내장되어 있는 본사에 있는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전화선을 통해 연결된 컴퓨터 터
미널을 임대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개발되었다. 1960년대에 타당한 전제였다. 그러나 1970년
후반 애플과 같은 여러 회사들이 플라토 터미널의 월간 임대료 1천1백달러 이하에 퍼스널
컴퓨터를 제공하게 되자 중앙 집중 컴퓨터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아니 사
실 영원히 사장된 것이다. 그러나 컨트롤 데이터가 이미 자리잡고 있는 조류의 변화를 깨닫
는 데는 몇년이 더 걸렸다.
플라토의 종말을 고하는 이 시점에서 1980년대 말 넥스트가 고등교육 기관에 넥스트큐브
컴퓨터를 제공할 당시의 넥스트와 플라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넥스트는 제품을 개체로 판매했다. 넥스트 본사 와 연결된 임대 회선이 없었기 때문에 그
에 대한 비용이 제품 가격에 포함되지 않았다. 넥스트 컴퓨터는 그 크기와 마이크로프로세
서의 내용 그리고 스크린의 모양으로 봐서 매킨토시와 더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
넥스트 의 창립자와 대부분의 초기 직원들이 매킨토시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넥 스트가
역사적 배경을 지적해야할 경우가 생기면 반드시 매킨토시를 언급할것이라는 생각이 사람들
의 마음 속에 굳어져 있었다.(넥스트는 넥스트큐브가 기존의 제품과는 다른 혁신적인 제품
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인정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얼핏 보기에 넥스트 제품과 매킨
토시가 유사한 점이 많은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넥스트컴퓨터가 발표된 다음에 사
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히려 아무도 원하지 않는 플라토와 닮은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넥스트컴퓨터의 가격은 학생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연구소가 주관해 야 플라토를
임대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학생 또한 학부모가 아니라 연구소 등에서 넥스트 컴퓨터를 구입
해야할 정도로 가격이 높았다. 매킨토시의 뒤를이어 퍼스널 컴퓨터 시대에 넥스트를 판매하
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마케팅기법이었다. 시대에 뒤진 넥스트컴퓨터를 사려고 한 사람
들은 메모리 확장 성과 대형 하드 디스크를 갖춘 첨단 제품을 과연 1만7천달러를 주고 구입
해 야할 필요가 있는가를 두고 망설였다. 게다가 서비스를 받으려면 연간 1천6 백달러를 더
지불해야 했다. 이런 가격은 매킨토시가 캠퍼스에 제시한 1천달 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제안이었다.
교육기관 정도라야 넥스트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학생들이기숙사 방안에서 컴퓨터를 사용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넥스트컴퓨터 는 플라토의
낙후된 기술로 되돌아가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1960년대에 플라토가 처음 등장했을때 학
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컨트롤 데이터사가 1970년대 후반에 플라토를 판매하
려고 했을 때 학생들은 퍼스널 컴퓨터를 대신 살 수 있었다. 그로 부터 10년후 넥스트의 사
업 전략은 분명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고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기숙사 방 안에서 그 컴
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불편도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환영받을 리 없었다.
넥스트가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왜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면 넥스
트 큐브컴퓨터와 플라토터미널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유사점 을 살펴보면 될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남이 하는대로 따라하기를 거부하는 완고한 창립자의 지시에 따라 제품을 개발
했다. "남들이 남쪽으로 가는 것을보면 나는 왠지 북쪽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라는 말
을 한 사람은 바로 컨트롤 데이터사의 윌리엄 노리스였다. 잡스도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
람이었다. 다른사람에 대한 반감은 사업을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때때로 타협점을 찾는 것도 좋은 결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않았다. 게다가 두사람은 모
두 제품 기술이 뛰어나면 별도로 마케팅에 신경 쓰지 않더라도 제품이 잘 팔릴 것이라는 생
각을 가졌다.
작성일자 : 1995.04.21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6)
1979년에 윌리엄 노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스티브 잡스는 88년 "시장이 있다는 사실만 알면
힘들여 시장을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잡스는 고등 교육 기관이 커다란 시장 잠재
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시장을 분석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주요 대학
들은 포천지 선정 5백대 기업 만큼 자금이 풍족하고 그에게는 그들이 꿈꾸어온 컴퓨터가 있
는데 더이상 아쉬운것이 무엇이겠는가? 플라와 마찬가지로 넥스트 큐브 컴퓨터는 성공하지
못했다.
대학의 입장에 서 볼 때 넥스트컴퓨터는 PC급이 아니라 워크스테이션급이었고, 그 시장은
잡스가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큐브 컴퓨터가 처음 공개된 비슷한 시기에 시장 조사
업체인 스테이플 인포메이션사는 대학 워크스테이션 시장의 규모를 알아보려는 조사를 실시
했다. 물론 넥스트는 그런 기초적 조사조차도 하려하지 않았다. 스테이플사의 조사결과 미흡
한 컬러 기능과 미완성 단계에있는 소프트웨어 운용 체계와 같은 제한된 하드웨어및 소프트
웨어 기능때문 에 워크스테이션을 많이 사용하는 공학 및 전산학과에서는 큐브컴퓨터가 별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넥스트 큐브의 가격을 고려한다면 나머지 대학도 일년에 1억4천만달러 규모 의 하위 워크
스테이션 정도의 시장밖에 형성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넥스트가 시장을 1백% 점
유하더라도 그 규모는 작을 것이고 잡스가 꼭 달성 해야 한다고 강조한 10억 달러 규모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나 학계 시장을 과대 평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년 전인 1966년에 미국 기업들은 컴퓨터지원 강의를 개발함으로써 교육계에서 큰 돈을
벌어 보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었다. 기업들은 교육 기관들이 대체로 풍족한 예산을 가
지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대부분의 예산이 교직원 수당이나 시설확충에 사
용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잡스는 댄 르윈이 판매 활동을 지휘하고 있는 한 르윈과 절친한 관계를 맺고있는 애플-대
학 컨소시엄의 대학 관계자들이 매킨토시를 지원해 준것처럼 넥 스트의 앞날을 개척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절친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훨씬 많은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르윈은 드렉셀 대학의 브라이언 허킨스와 같은 대학 행정 관계
자들의 신임을 얻기위해 저녁 식사에 거듭 초대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넥스트 직원들은 이
런 관계를 "수완의 극치"라고 부르기를 좋아했었다. 넥스트 사람들은 "수완"이 라는 말을 사
용하기를 좋아했는데 이 말은 인간관계를 통해 투자한 것에 비해 많은 것을 얻을 때 주로
많이 사용했다. 넥스트는 애플이 대학 컴퓨터 분야에 소속된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이미 절
친한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그 덕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관계자들은
넥스트 컴퓨터제품뿐 아니라 그 가격에 대해 만족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필요한 워크스테이
션을 결정할 때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했다. 수만대의 컴퓨터를 특성이 다른 여러 학과
에 판매하는 것은 뛰어난 "수완"에도 불구하고 거의 불가능했다. 넥스트는 각 학과별로 상당
한 돈을 들이고 수지균형에 미치지 못하는 매출을 올렸다.
잡스, 르윈 그리고 넥스트의 마케팅 요원들은 다가오는 현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매킨토시가 순조롭게 성공했기 때문에 이들은 매킨토시와 같은 방식으로
퍼스널 컴퓨터를 판매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완전히 다른 규칙에 의해 운영되는
대학 연구소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대학 연구소는 첫째, 장비를 대량 기부 받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IBM과 디지털 이퀴프먼트
사(DEC)는 오래 전에 이런 전통을 수립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특정 제품에 익숙해진 학생
들은 취직 후에도 같은 제품을 찾았기때문이다. 사람들은 DEC가 대학에 기부한 VAX미니
컴퓨터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VAX 컴퓨터에 중독되었다고 하기까지 했다.
DEC의 뒤를 이어 나타난 선 마이크로시스템즈도 높은 할인율을 제시하거나 제품을 기부
하는 전통을 이어갔다. 1988년 선사가 대학 연구소에 기부한 제품말고도 대학 연구원들은
시장 가격보다 50%싼 워크스테이션을 구입할 수 있었다. 애플사도 우수 대학 고객들에게
할인된 가격에 제품을 판매했을 뿐 아니라 현금 지원 도 해주었다. 그러나 넥스트는 공평하
지 않다는 이유로, 즉 모든 학교에 기증할수 없다는 이유로 제품 기부를 거부했고 가격 할
인을 해줄 경우 큰 대학 이 작은 대학보다 더 이득을 보게될 것이기 때문에 대폭적인 할인
을 거부했다. 넥스트는 예외를 두지 않았다.
작성일자 : 1995.04.24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7)
모든 사람들이 제값을 주고 제품을 구입해야 했다.
이런 방침은 완고한 대학 관계자들에게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다트머스 대학은 컴퓨터
거래처에 "우리는 절대로 정가를 주고 물건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자랑했다. 카네
기 멜론 대학은 한 수 더 떠서 "우리는 지금까지 돈주고 물건을 사본적이 없다" 고 뻐겼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은 기부 받은 컴퓨터 장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이 사
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 고 있다고 말했다. 기증된 워크스테이션은 사용시 회로에서 열이
많이 발생 하기 때문에 한 사무실에서 히터로 사용되는 것도 있었다. 대학은 앞으로 덤핑된
하드웨어"는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기존의 시스템과 잘 작동되는 제품만 기부 받
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해야만 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컴퓨터 거래처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
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받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서로 주고 받았다. 듀크 대학의
행정관인 패트리샤 스카루 리스는 컴퓨터 관련 회의에서 동료들에게 "모든 것은 우리 하기
나름이다.
우리는어떤 성격의 계약도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회사와는 다르다고 자만
한 넥스트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큐브 컴퓨터를 쌍수를 들고 환영한 것은 대학 음대였다.
그러나 가격때문에 다른 분야에서는 부진했다.
대학측에서 볼 때 다른 혜택이 없고 아키텍처가 달라 기존의 제품들과 연결 되지도 않는
(게다가 운용 시스템은 아직 미완성인 상태였고)것을 비싼 가격 에 산다는 것은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잡스와 넥스트가 그들의 조건을 바꾸기만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제품이 고급 퍼스널 컴퓨터라고 한다면 그보다 넥스트가 판매하려고한 컴퓨터는 "베타"급
에 불과한 것이다. 컴퓨터업계에서는 회사자체에서 제품의 "알 파"테스트를 한후 일부 고객
을 선정하여 비공개로 "베타"테스트를 실시해서일반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전에 버그를 식별
해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대학 관계자들도 가끔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는 제품
을 미리 보게 해주는 특혜 정도로 여겼다. 이를 위해 대학은 비용이 들지 않았지만 몇몇 대
학은 그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넥스트 큐브가 발표될 시기에 메릴랜드 대학 컴퓨터 담당자인 로널드 위스먼 은 대학이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는 관행을 비판했다. 그는 컴퓨터 회사가 대학을 베타 테스트에 참여
시키는 것은 대학의 이름을 빌리기 위한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넥스트큐브는 베타급 제품으로 공인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그랬고 넥스 트 큐브가 등
장하기 전까지 어떤 컴퓨터 업체도 고객으로 하여금 디버깅 비용을 부담하도록 요구하지 않
았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넥스트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냈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말 넥스트의 맥스 헨리 판매부장을 위로하는 말로 넥스트의 자문 위원회는 "넥스
트는 역사상 처음으로 정가를 받고 대학에 가장 많은 베타 제품 을 팔았다"고 말했다.
큐브컴퓨터가 발표될 당시 컴퓨터 업체와 고등 교육기관의 관계가 지나치게 긴밀하다는 점
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했던 위스먼이 넥 스트사에 들어와 고등 교육 기관을 대상으로 판매
하는 마케팅 부서책임자가 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수없이 많은 대학 중 단 하나의 대학만이 넥스트 큐브에 모험을 걸었다. 펜실베이니 아주
메드빌에 있는 알레그니 대학만이 넥스트 컴퓨터를 구입하겠다 는 의사를 표시했다. 드렉
셀 대학이 일찍이 매킨토시에 투자하여 관심을 모았던 것처럼 알레그니 대학도 넥스트에
투자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 많이 변했다. 퍼스널 컴퓨터나 워크스테이션은 이제 더이상 특별한
제품이 아니었다. 알레그니 대학의 조치는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 큐브의판 매가 부진한
것만 보더라도 매킨토시에 비해 넥스트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것인지를 알 수 있다.
큐브컴퓨터가 발표된지 일년이 지난 후에도 알레그니 대학이 구입한 것은 22 대밖에 되
지 않았다. (MIT가 20대를 구입한 것에 비하면 그것도 많은 편에 속하지만). 넥스트 컴 퓨
터의 판매는 시일이 지나면서 증가했다. 제품이 발표된 훨씬 뒤인 92년 가을 알레그니 대
학은 1백50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수는 대학에 보급된 선사의 워크스테이션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
초 넥스트 경영진은 89년까지 알레그니 대학은 6백50대의 컴퓨터 를 구입해 학생 3명당 한
대꼴로 컴퓨터를 보유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알레그니는 넥스트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 알레그니 스스로가 1백만달러의 기부금을 모
아 보겠다고 나선 이상 중간에 태도를 바꿀 수는 없었다. 알레그니 대학은 각학과의 보충교
과로 컴퓨터에 바탕을 둔 강좌를 개설했다.
과거PLATO소프트웨어가 제공한 강좌와 같이 화학, 생물학, 철학, 영문 학, 물리학, 수학,
지질학 및 종교학과에 보충강좌를 개설했다. 그러나 넥스 트컴퓨터의 가격이 너무 높았다.
나중에 참여한 대학들은 알레그니 대학처럼 지원금으로 1백만달러를 확보할 능력이 없었다.
알레그니 대학이 발주한 물량도 넥스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넥스트와 마찬가지로 알레그니 대학도 시대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퍼스널 컴
퓨터의 등장으로 학생 또는 학부모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다른
대학들은 비용을 학생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대학의 재정적 부담을 줄여 나가고 있었 다.
작성일자 : 1995.04.26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7)
모든 사람들이 제값을 주고 제품을 구입해야 했다.
이런 방침은 완고한 대학 관계자들에게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다트머스 대학 은 컴퓨
터
거래처에 "우리는 절대로 정가를 주고 물건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자랑했 다.
카네기 멜론 대학은 한 수 더 떠서 "우리는 지금까지 돈주고 물건을 사본적이 없다" 고
뻐겼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은 기부 받은 컴퓨터 장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대부
분이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 고 있다고 말했다. 기증된 워크스테이션은 사용시 회로에서
열이 많이 발생 하기 때문에 한 사무실에서 히터로 용되는 것도 있었다. 대학은 앞으로 덤
핑된 하드웨어"는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기존의 시스템과 잘 작동되는 제품만 기
부 받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해야만 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컴퓨터 거래처로부터 어떻게 하
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받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서로 주고 받았다. 듀크
대학의 행정관인 패트리샤 스카루 리스는 컴퓨터 관련 회의에서 동료들에게 "모든 것은 우
리 하기 나름이다.
우리는어떤 성격의 계약도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회사와는 다르다고 자만
한 넥스트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큐브 컴퓨터를 쌍수를 들고 환영한 것은 대학 음대였다.
그러나 가격때문에 다른 분야에서는 부진했다.
대학측에서 볼 때 다른 혜택이 없고 아키텍처가 달라 기존의 제품들과 연결 되지도 않는
(게다가 운용 시스템은 아직 미완성인 상태였고)것을 비싼 가격 에 산다는 것은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잡스와 넥스트가 그들의 조건을 바꾸기만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제품이 고급 퍼스널 컴퓨터라고 한다면 그보다 넥스트가 판매하려고한 컴퓨터는 "베타"급
에 불과한 것이다. 컴퓨터업계에서는 회사자체에서 제품의 "알 파"테스트를 한후 일부 고객
을 선정하여 비공개로 "베타"테스트를 실시해서일반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전에 버그를 식
별해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대학 관계자들도 가끔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는
제품을 미리 보게 해주는 특혜 정도로 여겼다. 이를 위해 대학은 비용이 들지 않았지 만 몇
몇 대학은 그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넥스트 큐브가 발표될 시기에 메릴랜드 대학 컴퓨터 담당자인 로널드 위스먼 은 대학이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는 관행을 비판했다. 그는 컴퓨터 회사가 대학을 베타 테스트에 참여
시키는 것은 대학의 이름을 빌리기 위한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넥스트큐브는 베타급 제품으로 공인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그랬고 넥스 트 큐브 가
등장하기 전까지 어떤 컴퓨터 업체도 고객으로 하여금 디버깅 비용을 부담하도록 요 구하지
않았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넥스트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해냈다고 볼 수 있다.
1989년 말 넥스트의 맥스 헨리 판매부장을 위로하는 말로 넥스트의 자문 위원회는 "넥스
트는 역사상 처음으로 정가를 받고 대학에 가장 많은 베타 제품 을 팔았다"고 말했다. 큐브
컴퓨터가 발표될 당시 컴퓨터 업체와 고등 교육기관의 관계가 지나치게 긴밀하다는 점에 대
해 불쾌하게 생각했던 위스먼이 넥 스트사에 들어와 고등 교육 기관을 대상으 로 판매하는
마케팅 부서책임자가 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수없이 많은 대학 중 단 하나의 대학만이 넥스트 큐브에 모험을 걸었다. 펜실베이니 아주
메드빌에 있는 알레그니 대학만이 넥스트 컴퓨터를 구입하겠다 는 의사를 표시했다. 드렉
셀 대학이 일찍이 매킨토시에 투자하여 관심을 모았던 것처럼 알레그니 대학도 넥스트에
투자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 많이 변했다. 퍼스널 컴퓨터나 워크스테이션은 이제 더이상 특별한
제품이 아니었다. 알레그니 대학의 조치는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 큐브의판 매가 부진한
것만 보더라도 매킨토시에 비해 넥스트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것인지를 알 수 있다.
큐브컴퓨터가 발표된지 일년이 지난 후에도 알레그니 대학이 구입한 것은 22 대밖에 되지
않았다. (MIT가 20대를 구입한 것에 비하면 그것도 많은 편에 속하지만). 넥스트 컴 퓨터의
판매는 시일이 지나면서 증가했다. 제품이 발표된 훨씬 뒤인 92년 가을 알레그니 대학은 1
백50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수는 대학에 보급된 선사의 워크스테이션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초
넥스트 경영진은 89년까지 알레그니 대학은 6백50대의 컴퓨터 를 구입해 학생 3명당 한대꼴
로 컴퓨터를 보유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알레그니는 넥스트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 알레그니 스스로가 1백만달러의 기부금을 모
아 보겠다고 나선 이상 중간에 태도를 바꿀 수는 없었다. 알레그니 대학은 각학과의 보 충
교과로 컴퓨터에 바탕을 둔 강좌를 개설했다.
과거PLATO소프트웨어가 제공한 강좌와 같이 화학, 생물학, 철학, 영문 학, 물리학, 수학,
지질학 및 종교학과에 보충강좌를 개설했다. 그러나 넥스 트컴퓨터의 가격이 너무 높 았다.
나중에 참여한 대학들은 알레그니 대학처럼 지원금으로 1백만달러를 확보할 능력이 없었
다. 알레그니 대학이 발주한 물량도 넥스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넥스트와 마찬가지로 알레그니 대학도 시대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퍼스널 컴
퓨터의 등장으로 학생 또는 학부모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다른
대학들은 비용을 학생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대학의 재정적 부담을 줄여 나가고 있었다.
작성일자 : 1995.04.26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8)
알레그니 대학은 넥스트컴퓨터를 공동장소에 설치했다. 전산학과 과장인 조엘 스미스는 학
생들이 기숙사방에서 나와 정신을 집중할 수 있도록해줄 수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공부에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알레그니 대학처럼 1천8백여명의 학생이 1백50대의 컴퓨터를 공동으로 사용
하게하는 환경을 택할 대학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환경은 PARK 이전의 초기에나 필요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사람과 컴퓨터가 1대1비율
로 요구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알레그니 대학은 지원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여 그에 따른 비용도 많이 들고 교재프로그램
을 만드는 것을 도울 전문프로그래머를 별도로 고용해야만 했다. 알레그니의 방식을 따른
대학이 별로 없었다는 것만 봐도 알레그니 대학 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레그니
는 3천여개 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넥스트 시스템으로 전산망을 구축했다.
다른 대학들은 넥스트 제품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넥스트 자문 위원회위원이 었던 사람들
은 동정심에서 넥스트 컴퓨터를 구입했다. 아이비 리그중에서 유 일하게 넥스트에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던 대학은 코넬 대학이었다. 코넬 대학은 연구실에 30대의 넥스트컴퓨터를 설
치했다. 그러나 기능과 소프트웨어 상의 문제때문에 학생들은 계속 항의했다.
잡스는 연구소개소식에 참석하여 교육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인 학자들과 만나 그들의 작업
과정을 비평하여 큰 비난을 받았다. 잡스는 전산실 사람들이 자 사제품을 못마땅하게 여긴
다는 말을 듣고 의아해 했다. 관련 교직원들은 요구사항을 잡스에게 설명했다.
그들은 성능및 메모리 용량의 향상과 소프트웨어 패키지의 조속한 완성을 요구했다. 잡스
는 그들의 요구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들이 필 요로하는 것은 넥스트 큐브
그자체이며 그와 함께 제공된 소프트웨어라고 주장했다. 코넬 대학은 넥스트 방식에 실패한
후 선사연구실에 열중했다. 코넬 대학은 결국 넥스트 연구실을 폐쇄했다. 이러한 결과는 경
쟁이 치열한 컴퓨터 시장 에서 넥스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라기 보다 넥스트가 지나
치게 자만한 태도를 취해 넥스트를 지원하려고 한 사람들조차도 거부했기 때문에 초래됐다
고 할 수 있다.
만일 넥스트컴퓨터가 워크스테이션이라면, 대학의 기계공학 및 전산학과에서 왜 외면했겠
는가. "은행에 돈이 많기 때문에 은행을 턴다"라는 윌리 서턴의 유명한 말처럼 선 마이크로
시스템즈사도 예산이 많은 학과를 공략 했기 때문에 기계과와 전산학과에는 선사제품이 많
이 보급되었다.
잡스가 인문계 학과에서나 관심을 가질 정도의 큐브컴퓨터를 완성했을 때 이미 때는 늦어
버렸다. 넥스트 제품이 고급 퍼스널 컴퓨터라고 한다면 그보다 훨씬 값싼 제품과 성능을 비
교해보면 진위을 쉽게 알수 있다.
넥스트 컴퓨터는 잡스가 생각했던 "퍼스널 워크스테이션"이라는 하이브리드 가 되기보다는
퍼스널 컴퓨터도워크스테이션도 아닌 어중간한 제품이 되었다. 1988년 말께 넥스트는 그들
의 제품을 사려는 대학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그러나 회사의 자금 사정은 아직 양호했다. 특히 고위 이사진들의 주머니 사정은 아직 두둑
했고 낙관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넥스트는 한달에 4백여대의 컴퓨터를 생산했다. 그러나 공장장인 탠디 해프 너는 한달에 1
만여대를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판매량은 제자리 걸음을 하
고 있었지만 경영진은 전망을 밝게 보았고 그때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전략
을 바꾸기로 했다.
잡스는 제품 발표회에서 넥스트의 판매를 대학에만 국한시킬 것이라는 방침 을 설명할 때
"대부분의 회사들은 굶어서 죽기보다 소화 불량으로 죽는다"라 고 말했다. 그런 방침은 신생
기업의 경영전략치고는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넥스트는 식욕부진이라는 스스로 만들어낸 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페로의 자금 지원이
있건 없건, 넥스트의 판매가 증가하지 않는 한 더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 데이비스 홀에서
제품 발표회가 개최된지 불과 7개월후 넥스트는대학에만 판매를 국한시키겠다는 방침을 철
회했다.
1989년 넥스트는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에서 가장 큰 소매업체 비즈니스랜드와 넥스트 컴퓨
터를 교육분야 이외의 시장에서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
다.
교육계를 지원하는 많은 사람들은 넥스트가 그들을 배반했다고 항의했다. 기업을 대상으로
컴퓨터를 판매하는 비즈니스랜드와 넥스트와의 계약은 넥스트 가 교육계를 혁신하다는 당초
의 정책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일부관계자들 은 넥스트가 처음부터 대학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잡 스가 당초부터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대학을 과도기
적 실험장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비판자들의 추측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데이비스 홀에서 큐브컴퓨터가 발표되기 훨씬
이전부터 넥스트는 비즈니스랜드와 10만여대의 컴퓨터를 판매한 다는 3년 계약을 추진해오
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협상은 극비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넥스트가 대학만을 상대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해서 넥스트의 마케팅 전략변화를 배반 행위로 간주聖할 수
는 없다. 넥스트 자문위원회의 대학측 대표자 들은 넥스트가 고객층을 다양화하지 않는다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되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도 넥스트가 대학시장에만 집
착한다면 넥스트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대학은 싼 것을 지나치게 선호하고 프로그램의 무단복제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갖고 있
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항상 불만을 가졌다. 넥스트가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로부터 지원을
얻지 못한다면 넥스트컴퓨터는 캠퍼스 안팎에서무용지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작성일자 : 1995.05.01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69)
구매자를 다양화하면 일반 소비자들이 대학의 특별 가격을 지원하는 결과를가져오게 되어
가격을 낮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대학도 넥스트가 구매자층을 확대하도록 적극
적으로 지원했다.
회사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일부 넥스트의 애호자들이 비즈니스랜드와 계약을 맺는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지만 비즈니스랜드가 그 업계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이
라 할수 있다. 1982년에 매장 하나로 시작한 비즈니스랜드는 1989년에 점포가 1백개 이상으
로 늘어났다.
매출도 급속히 증가해 가파른 상승곡선을 나타냈다. 1983년에 4천4백만달러, 1984년에는 1
억5천7백만달러, 1985년에는 3억5천만달러를 기록하고, 1988년 에 10억달러 이상의매출을 올
렸다. 비즈니스랜드의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비즈니스랜드를 컴퓨터 판매점으로 키워준 많
은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사람들은 비즈니스랜드가 단시일내에 넥
스트가 목표로 하고있는 10억달러의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넥스트는 그 누구와도 종속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으려하지 않았다.
넥스트는컴퓨터디자인에서 제조에이르기까지 모든면에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파트너도 자기 담당분야, 즉 컴퓨터를 판매하는 기술에서 최고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회사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한 사람이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스티브
잡스의 상대는 데이비드 노먼이었다. 그는 일찍이 많은 경험과 역경을 이겨낸 노장 사업가
였다. 그는 잡스만큼 능숙하게 많은 대중을 압도할 수는 없었지만 기업가들과 금융계 사람
들과의 상담에서는 훨씬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비즈니스랜드의 창립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노먼은초장기에 모험 자본가들로부
터 자금을 조달했고 그후에는 회사의 수익 전망에 대해 금융계 에 낙관적으로 보고함으로써
회사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잡스처럼 노먼은 개성이 매우 강해 부하 직원들이 그를 두려워
했다.
잡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거래처나 파트너들과 쉽게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그도역시 허용한 것 이외의 정보가 밖으로 누출되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을 썼다. 그는 또
한가지 목표에만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때때로 레이저빔과 비교되기도 했다. 1989년에 노
먼은 비즈니스랜드의 회장, 사장겸 최고경영자 가 되었다. 한 마디로 넥스트처럼 비즈니스랜
드도 한 사람손에 그 미래가 달려있었다. 노먼은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난 타고
난 사업가였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컴퓨터 사업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그는 비즈니스랜드가 포천지의 5백대 기업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가
능성을 제일 먼저 포착했고 초창기 중소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삼았던비즈니스랜드 매장을
대기업을 상대로 방문 판매할 수 있는 거점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매장의 운영 방침을 전환
시켰다. 그는 매출을 올리는데는 일가견 이 있었지만 컴퓨터에 대한 기술적 지식이 부족했
다.
기술지식이 부족한 그는 회사의 공동 창립자이며 기술자 출신인 엔조 토레시 에게 기술 자
문을 구했다. 그러나 토레시가 회사 운영에서 발을 빼고 1988년 사임함에 따라 그는 토레시
의 부하인 케빈 컴턴에 의존했다.
컴턴은 젊고 기술분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졌을 뿐 아니라 외모가 준수했다. 그러
나 그는 상급자의 의견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했다. 그는 1986년 비즈니스랜드
가 자신이 회계및 건설 산업 관련 프로그램을 작성했던 캔자스 시티사를 합병하자 비즈니스
랜드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 회계 관련 패키지 및 컴퓨터 네트워크에 대한 기술지원 차원에 서 전화상담
업무를담당했었다. 그러나 그는 몇개월 안에 부서장이 되었고 1년 후에는 기술 지원팀의 팀
장이 되고 3년 후에는 수십억 달러 규모로 성장 한 그 회사의 부사장이 되었다.
노먼이 전화 상담일을 했던 사람에게 갑자기 부사장이라는 직함을 준 것은그의 눈과 귀가
되어 달라는 뜻이 있었다. 그는 컴턴에게 앞으로 가장 잘 팔릴 수 있는 제품을 알아내는 과
제를 주었다.
노먼은 한 가지 조건만 내세웠다. 비즈니스랜드가 어떠한 제품을 취급하든 그 제품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할 수 있어야 했다. 노먼이 독점을 주장하고 경쟁 업체로 하여금 인기 있는신
제품에 대한 유통권을 갖지 못하게 하면 비즈니스랜드는 수익면에 있어서상위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케빈 컴턴 의 업무는 인기제품을 찾아내어그 제품에 대한 비즈니스랜드의
독점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비즈니스랜드는 컴퓨터 업계에서 상당히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비즈니스랜드는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렸고 가장 바람직한 고객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
라 가장 좋은 기업들을 상대하고 지명도 높은 제품들만 취급했다.
그들은 거래처를 찾아 나설 필요가 없었다. 회사들은 스스로 비즈니스랜드의 거래처가 되
겠다고 찾아왔다. 노먼이 현재 취급제품을 확대하여 유닉스 컴퓨터를 새로 추가하겠다는 말
을 흘리자 마자 유닉스 거래처모두 비즈니스랜드와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가장 선도적인 유
닉스 워크스테이션 제조 업체인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사가 비즈니스랜드의 거래처가 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선사는 비즈니스랜드의 독점 소매권에 대한 요구를 검토한후 비즈니스랜드를 파트
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사의 거절이 넥스트사에는 기회로 작용했다.
작성일자 : 1995.05.03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0)
그러나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비즈니스랜드는 합리적
인 경영 논리를 근거로한 상대를 결정하기 보다 룰렛 휠의 도박성 또는 리즈 스미스 가십난
에 나오는 소위 개인의 연줄로 상대를 결정했다. 애플사와 오랫 동안 거래를 했고 스티브
잡스의 절친한 친구인 텍사스 출신 백만장자 빌리 래딘은 잡스와 비즈니스랜드의 케빈 컴턴
을 연결해주는 중간 역할을 했다. 래딘은 휴스턴에 본사를 둔 컴퓨터그래프트라는 컴퓨터체
인점 의 사장이었다. 1988년 비즈니스랜드가 그 체인점을 인수했을 당시 그 거래는 양쪽 모
두에게 유리한 거래처럼 보였다.
래딘은 2천4백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교환하여 현금을 쥘 수 있었고 비즈니스랜드는 과거
에 저버렸던 중소기업및 개인 사업가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 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거래는 래딘에게는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비즈니스랜드에는 실패작이었다.
계약이거의 체결될 시점부터 컴퓨터그래프트 체인점들은 적자를 보기 시작하였고 그 폭은
계속 벌어져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래딘이 다 늙은 말을 비즈니스랜드에 팔았
다고 비판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988년여름 래딘은 비즈니스랜드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 래딘이 비즈니스 랜드에 아직
발표되지도 않은 넥스트 컴퓨터를 유닉스컴퓨터에 사용해 보라고 제안하자 케빈 컴턴이 이
를 받아들인 것이다.
더구나 컴턴은 IBM이 넥스트와 기술 라이선스계약을 체결했다는 소문을 듣자 그 제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IBM의 빌 로에게 전화를 걸어 그 소문의 진위를 알아
보았더니 로는 그 소문이 근거 없는 것이아니라고 대답했다.
컴턴은 그 답을 듣자마자 데이브 노먼과 자신앞에서 넥스트컴퓨터를 시현하는 자리를 주선
했다. 이를 보더라도 넥스트가 이미 확보한 파트너를 통해 다른 파트너를 끌어들이는데 얼
마나 능숙했는지를 알 수 있다.
비즈니스랜드는 넥스트가 IBM과 협력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명되어 넥스트와 쉽게
파트너관계를 맺었다. 넥스트에 대한 IBM의 관심은 중역진 들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 당시
IBM이 라이선스 문제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IBM이 넥스트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비즈니스랜드가 넥스트를 인정하는 충분한 요건이 되었다.
두 회사는 곧이어 파트너가 되어 넥스트는 또 다른 파트너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업가들
은 바로 이런 효과 때문에 지렛대의 효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넥스트의 잡스만큼
그 효과를 잘 이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컴턴과 노먼이 넥스트사에 도착하자 잡스는 10월 제품 발표회를 위해 준비하고 있던 슬라
이드를 보여주었다. 그는 컴퓨터의 심장인 인쇄회로기판을 보여주고 질문에 대한 답도 했다.
제품 발표회에서 했던 것처럼 긴 서론을 마친후 실제 제품을 소개했다. 컴턴은 그 제품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했다. 잡 스는 노먼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각별한 대접을 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데이비스 홀에서 개최되었던 제품 발표회에 초대되었고 며칠후 잡스는 컴
턴과 함께 넥스트 연구실을 돌아 보며 개발중인 제품들을 소개 했다. 그 때 소개된 제품에
는 컬러 머신도 있었다. (그 제품은 계획 보다 3년 늦게 완성되었다.)컴턴은 잡스가 자기에
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컴턴은 넥스트에 대한 IBM의 관심 변화에 매우 신경을 썼다. 그는제품 발표회 때
IBM이 제일 마지막에 소개된 슬라이드에 잠깐 비춰진 것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했다. 컴턴
은 12월과 1월에 IBM의 입장을 계속 확인했다. 그러나 IBM의 답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IBM워크스테이션에 채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애매한 답이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러는 동안 컴턴은 잡스 와 많은 시간
을 보냈고 당연히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의 거래는 급속도로 진척되어갔다. 88년 말부터 89
년 초까지 비공식적 회의가 계속되자 노먼도 잡스와 가까이지내게 되었다. 판매의 천재인
노먼과 잡스는 서로 상대가 듣고자 원하는 거창한 약속을 주고 받았다.
잡스는 넥스트컴퓨터가 "제4의 물결"의 퍼스널컴퓨터로 소프트웨어 작성이 수월하고 신속
하다는 개념을 노먼에게 팔았다. 노먼은 비즈니스랜드의 경험 이 풍부한 직원들을 내세우면
서 유닉스컴퓨터의 네트워킹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모두 과장된 것이었다. 그들이 귀만 좀더 열었더라면상대방의 주장
에 얼마나 허점이 많았는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넥스트 소프트웨어는 빨리 개발되지 않
았다. 특히 기본시스템 소프트웨어가 아직 완성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더욱 희박
한 것이었다. 또 비즈니스랜드가생각했던 것처럼 유닉스 네트워킹은 파워가 약한 퍼스널컴
퓨터의 연결만큼 쉬운 일도 아니었다. 기술팀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노먼은
잡 스처럼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작성일자 : 1995.05.05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0)
그러나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비즈니스랜드는 합리적
인 경영 논리를 근거로한 상대를 결정하기 보다 룰렛 휠의 도박성 또는 리즈 스미스 가십난
에 나오는 소위 개인의 연줄로 상대를 결정했다. 애플사와 오랫 동안 거래를 했고 스티브
잡스의 절친한 친구인 텍사스 출신 백만장자 빌리 래딘은 잡스와 비즈니스랜드의 케빈 컴턴
을 연결해주는 중간 역할을 했다. 래딘은 휴스턴에 본사를 둔 컴퓨터그래프트라는 컴퓨터체
인점 의 사장이었다. 1988년 비즈니스랜드가 그 체인점을 인수했을 당시 그 거래는 양쪽 모
두에게 유리한 거래처럼 보였다.
래딘은 2천4백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교환하여 현금을 쥘 수 있었고 비즈니스랜드는 과거
에 저버렸던 중소기업및 개인 사업가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 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거래는 래딘에게는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비즈니스랜드에는 실패작이었다.
계약이거의 체결될 시점부터 컴퓨터그래프트 체인점들은 적자를 보기 시작하였고 그 폭은
계속 벌어져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래딘이 다 늙은 말을 비즈니스랜드에 팔았
다고 비판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1988년여름 래딘은 비즈니스랜드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 래딘이 비즈니스 랜드에 아직
발표되지도 않은 넥스트 컴퓨터를 유닉스컴퓨터에 사용해 보라고 제안하자 케빈 컴턴이 이
를 받아들인 것이다.
더구나 컴턴은 IBM이 넥스트와 기술 라이선스계약을 체결했다는 소문을 듣자 그 제안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IBM의 빌 로에게 전화를 걸어 그 소문의 진위를 알아
보았더니 로는 그 소문이 근거 없는 것이아니라고 대답했다.
컴턴은 그 답을 듣자마자 데이브 노먼과 자신앞에서 넥스트컴퓨터를 시현하는 자리를 주선
했다. 이를 보더라도 넥스트가 이미 확보한 파트너를 통해 다른 파트너를 끌어들이는데 얼
마나 능숙했는지를 알 수 있다.
비즈니스랜드는 넥스트가 IBM과 협력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명되어 넥스트와 쉽게
파트너관계를 맺었다. 넥스트에 대한 IBM의 관심은 중역진 들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 당시
IBM이 라이선스 문제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IBM이 넥스트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비즈니스랜드가 넥스트를 인정하는 충분한 요건이 되었다.
두 회사는 곧이어 파트너가 되어 넥스트는 또 다른 파트너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업가들
은 바로 이런 효과 때문에 지렛대의 효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넥스트의 잡스만큼
그 효과를 잘 이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컴턴과 노먼이 넥스트사에 도착하자 잡스는 10월 제품 발표회를 위해 준비하고 있던 슬라
이드를 보여주었다. 그는 컴퓨터의 심장인 인쇄회로기판을 보여주고 질문에 대한 답도 했다.
제품 발표회에서 했던 것처럼 긴 서론을 마친후 실제 제품을 소개했다. 컴턴은 그 제품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했다. 잡 스는 노먼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각별한 대접을 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데이비스 홀에서 개최되었던 제품 발표회에 초대되었고 며칠후 잡스는 컴
턴과 함께 넥스트 연구실을 돌아 보며 개발중인 제품들을 소개 했다. 그 때 소개된 제품에
는 컬러 머신도 있었다. (그 제품은 계획 보다 3년 늦게 완성되었다.)컴턴은 잡스가 자기에
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컴턴은 넥스트에 대한 IBM의 관심 변화에 매우 신경을 썼다. 그는제품 발표회 때
IBM이 제일 마지막에 소개된 슬라이드에 잠깐 비춰진 것에 대해 불안하게 생각했다. 컴턴
은 12월과 1월에 IBM의 입장을 계속 확인했다. 그러나 IBM의 답은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IBM워크스테이션에 채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애매한 답이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러는 동안 컴턴은 잡스 와 많은 시간
을 보냈고 당연히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의 거래는 급속도로 진척되어갔다. 88년 말부터 89
년 초까지 비공식적 회의가 계속되자 노먼도 잡스와 가까이지내게 되었다. 판매의 천재인
노먼과 잡스는 서로 상대가 듣고자 원하는 거창한 약속을 주고 받았다.
잡스는 넥스트컴퓨터가 "제4의 물결"의 퍼스널컴퓨터로 소프트웨어 작성이 수월하고 신속
하다는 개념을 노먼에게 팔았다. 노먼은 비즈니스랜드의 경험 이 풍부한 직원들을 내세우면
서 유닉스컴퓨터의 네트워킹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모두 과장된 것이었다. 그들이 귀만 좀더 열었더라면 상대방의 주장
에 얼마나 허점이 많았는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넥스트 소프트웨어는 빨리 개발되지 않
았다. 특히 기본시스템 소프트웨어가 아직 완성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더욱 희박
한 것이었다. 또 비즈니스랜드가생각했던 것처럼 유닉스 네트워킹은 파워가 약한 퍼스널컴
퓨터의 연결만큼 쉬운 일도 아니었다. 기술팀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노먼은
잡 스처럼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작성일자 : 1995.05.05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1)
89년 2월에 노먼이 넥스트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긴급한 일이 생겼다. 비즈니스랜드의 가장
중요한 고객인 컴팩컴퓨터가 비즈니스랜드와의 거래를 완전히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 것이
다.
컴팩의 입장에서 전년도 1억5천만달러이상의 매출을 올린 큰 컴퓨터 딜러와 관계를 단절하
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비즈니스랜드는 컴팩과 같은 회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특별한 조
건"을 요구했다.
그들은다른 판매점들과 달리 특별할인을 요구했다. IBM과 애플은 마지못해 비즈니스랜드
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컴팩은 그 요구를 철회하지 않으면 거래를 끊겠다고 위협했다. 노
먼은 그들의 요구가 허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여 태도를바꾸지 않았다. 그 결과 컴팩을 잃
게 되는 뜻밖의 일이 생긴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컴팩과 비즈니스랜드중 컴팩의 피해가 더 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트
워트 알솝은 뉴스 레터에 비즈니스랜드가 폭넓은 제품 가운데 컴팩을 대신할 수 있는 제품
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컴팩이나 다른 한 브랜드만을 계속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표면적으로는 비즈니스랜드에 별 영향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노먼은 거래처를 바꿔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컴팩의 자리를 메울 수 있는 다른 거래처를 찾으면서 그는 그동안 생
긴 손실도 메워야했다.
그런 상황에서 넥스트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세상을 곧 떠들석하 게 만들 고가
의 워크스테이션을 취급하게 되면 (노먼과 컴턴은 과학자 또는엔지니어들만 사용하는 넥스
트제품이 연구실에서 곧 대 기업의 사무실 책상 으로 자리를 옮기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큰 수익원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먼이 잡스와 거래관계를 맺어야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넥스트는 선사가 거부했던
비즈니스랜드의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여 비즈니스랜드에 독점 유통권을 주겠다고 했다.
바로 다음 달 넥스트 비즈니스랜드는 화려한 기자 회견을 열고 제휴를 발표 했다. (잡스는
그 발표를 위해 차기 연도 마케팅 비용으로 책정했던 자금을 일주일에 다 써버렸다.) 사람
들은 완벽한 협력관계라고 축원해 주었다.
뉴스레터의 발행인인 리처드 셰퍼는 넥스트가 가장 훌륭한 판매조직을 갖추었기때문에 다
른 유닉스 회사(선사를 포함해서)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말했다. 넥스트는 회사의
제한된 경비를 광고, 홍보 트레이닝 또는 서비스 팀 운영에 투입할 필요가 없었다.
넥스트는 대신 자금력이 훨씬 큰 비즈니스랜드를 이용할 것이다. 넥스트의 지렛대 효과"가
여실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알솝은 비즈니스랜드가 컴팩 과 한판승부를 낸 "결단력"을 높
이 평가했고 신기술 신제품으로 새로 도전해 보겠다는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사람들은 비
즈니스랜드가 좋은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소프트웨어 전문가인 댄브릭린은 비즈니스랜
드가 무대를 빛내줄 수 있는 훌륭한 주인공을 만났다고평가했다.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데이비드 노먼은 실현 불가능한 예측을 했다.
그는"넥스트의 일년 매출은 컴팩의 전년 총 매출을 훨씬 넘어설 것"이라고 언론에 말했다.
컴팩은 1억5천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넥스트의 기계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또 실제 시장에서 평가받기도 전에
넥스트가 하루 아침에 성공하리라는 예측이 어떻게 나왔는가이다. 그 예측은 사람들이 값비
싼 제품을 살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루어졌다.
비즈니스랜드는대학에 공급되는 넥스트컴퓨터의 가격보다 훨씬 높은 9천9백 95달러에 공급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할인이나 에누리를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굳혔다. 기본
컴퓨터에 어떤 옵션을 추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노먼은 1만에서 1만5천대를 팔아 자
기가 예측한 1억5천만 달러의 매출을 충분히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숫자는 넥스트가 생산하기로 계획한 제품의 십분의 일에 불과했다. 뉴스 레터의
발행인인 리처드 셰퍼도 그 터무니 없는 예측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넥스트는 볼
품 없는 신생 기업이었으나 이제는 1억 달러 규모의 회사가 되었다. 비즈니스랜드가 1만대
의 컴퓨터 판매 목표를 절대로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계획은 합리적이기 보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에서 구상된 것이었고 넥스트 는 그런 분위
기를 조장했다. 비즈니스랜드와의 계약이 체결되는 날 비즈니스 랜드와 넥스트의 중역진들
은 잡스의 자택에서 베풀어진 축하 연회에 모였다.
양사의CEO들은 서로에게 건배를 권했다. 먼저 노먼이 축사를 했다. 그는작은 구룹 앞에서
는 특히 강했고 그의 유창한 말 솜씨로 이번 파트너십의 체결 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
으므로 앞으로 잘해 나가자는 말을 했다. 그 다음은 잡스의 차례였다. 그는 노먼과 술잔을
부딪치며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서 나가 사람들을 골탕먹입시다." 다음 달 플로리다에
서 비즈니스랜드의 엘리트 팀이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해의 목표량을 훨씬 넘게 판매한 "1백 퍼센트 클럽"에 속하는 영업사원
들이었다. 케빈 컴턴이 먼저 개회사를 했는데 업체가 당면한 몇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도중에 "당신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때문에 말을 중단했다. 컴턴은 익명의 목소
리를 듣고 "나는 첨단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는 부사장이오. 당신은 누구시죠? 라고 물었고 "
나는 스티브 잡스요"라는 답이 들려 왔다. 비즈니스랜드의 영업사원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그 일은 미리 계획된 것이었다. 잡스는 캘리포니아에서 미리 전화를 걸어 컴턴에게
그렇게 지시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다시 조용해지자 잡스는비즈니스랜드와 함께 일할 수 있
게 되어서 매우 기쁘다고 말했고 넥스트도 큰 회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그날의 소란을 다음과 같이표현했다.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어른들이 의자 위에 올라 서서
비명을 지르며 흥분된 감정을 표현했다." 황홀한 분위기였다.
작성일자 : 1995.05.08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2)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애플사가 사업에 성공해 잡스가 마케팅 천재로 부상 하기 이
전의
잡스 모습을 회상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의 모습을 생각 해 보기 전에 잠시
그에 관해
잊혀진 것이 무엇인가를 따져 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잡스가 마케팅의 천재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마케팅의
귀재인
레기스 매케나와 제이 키아트의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매케나와키아트는 각각 홍보 및 광고 업무를 맡아 초창기 애플의 성공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다.
이 두사람은 쌍벽을 이루면서 잡스의 이미지 제고에힘을 기울였다. 기술지식 이 풍부
했던
워즈니악에게는 기술적인 역할이 주어졌고 기술을 사랑했던 잡 스는 뛰어난 언어 구
사력
때문에 마케팅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맡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잡스는 매
케나와
키아트가만들어낸 마케팅 천재로 서의 이미지가 남이 만들어준 것이라는 것을 잊은
채그것이 정말 자기의 모습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다.
잡스가 넥스트를 창립 할 때 쯤 그는 자신의 마케팅 전략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 되
었고
경험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기술은 그 자체 만으로도 매출을 올
릴수
있다는 것과 대중들의 관심을 많이 모을수 있는 화려한 이벤트를 통해서 양질의 기술
을
시장에 선보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이라는 데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데이비스 홀에서 개최되었던 큐브컴퓨터의 발표회는 애플사 매킨토시 발표회 의 성과
를
능가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의 협력관계도 전통대로 화려하게
발표되었다. 대부분 애플에서 데리고 온 초창기 멤버들은 이벤트 마케팅 분야에 많은
경험을
가졌다. 그들은 연속해서 시즌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넥스트는 매출이나 직
원 수로
볼 때 매우 작은 회사였지만 잡스의 힘을 입어 작은회사에 걸맞지 않게 전세계의 관
심을 불러
모았다. 비즈니스랜드와의 거래가 화려하게 발표된 이후에도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
는
2백만달러를 들여 약12개 도시에서 세미나를 개최했다. 스티브 잡스는 귀빈으로 그
행사에
참석했고 넥스트큐브는 신비로운 작품으로 소개되어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 월가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가나 세미나에는 많은 관중들이 몰려 들었다.
이벤트 마케팅에 의존하는 넥스트의 경영 방침은 선사의 사업 방향과 완전히달랐다.
선사에는 내세울 만한 유명 인사도 없었고 광고 활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론의
관심도
많이 받지 못한 채 순전히 고객들의 입을 통한 제품평가에 의존하여 사업을 했다. 선
사는
화려한 언론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강력한 보병 부대의 영업 활동을 토대로 조금씩 아
주 어렵게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이따금 선사를 방문하는 기자들은 선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
해서라기
보다 스코트 맥닐리의 경쟁력에 대한 견해를 들으려 문을 두드렸다. 1989년 넥스 트
와
비즈니스랜드의 제휴가 발표되기 이전에 맥닐리에게 넥스트 큐브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테레오 컴
퓨터가
위험에 빠지게 된 것 같소.
더 심각한 것은 그 컴퓨터는 운용체계가 잘못되었고 프로세서의 가격도 잘못되었소.
맥닐리는 넥스트를 꼭 집어서 얘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매킨토 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타자기를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기계다"라고
비아냥
거렸다.
선사가 회사 자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더라도 넥스트처럼 언론을 한자 리에 모
을 수
있는 능력을 갖지는 못했다. 넥스트가 비즈니스랜드와의 관계를 발표한 직후 선사는
넥스트
큐브컴퓨터와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게 벡톨 샤임이 고안한 기계를 발표했다.
선사는 그 제품을 SPARC 스테이션이라고 불렀다. 그 기계는 크기면에서 큐브 보다 작
았고
매킨토시의 상위 제품과 유사했지만 RISC 마이크로프로세서가내장되어 있어서 다른
제품보다 속도가 몇배 더 빨랐다. 그러나 그 제품은 넥스트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했
다. 월
가의금융 분석가들은 SPARC 스테이션 이 사무 용으로 잘 판매되지 않을 것이라고생각
했고
선사의 경쟁 제품인 아폴로가 또 다른 경쟁 업체인 휴렛 패커드의워크스테이션 부서
로
편입되었다 는 뉴스보다도 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넥스트가 대형 컴퓨터 소매업자
와의
협력관계를 자축하는 가운데 선사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처럼 보였다.
늦은 봄 선사의 미래는 더욱 악화되는 듯했다. 두명의 중역이 갑자기 사임했던 것이
다. 그중
한명은 버나드 라크루트였다. 선사는 사내전산망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서 5주 동안
조업을
중단해야 했다. 또 창립 이후 처음으로 그 분기는 적자를 기록했다. 컴퓨터 회사가
시스템
고장을 일으키는 것처럼 수치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언론은 신발 장수집 아이가 신발이 없을 수 있느냐고 떠들어댔다. 선사는 워크스테이
션은
고장난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명하려고 했다. 문제는 회사가 10억달러의 매
출을
경신할 시점에 휴렛 패커드 미니컴퓨터에서 보다 큰 메인프레임 컴퓨터로 교체하는
과정에서일어났다고 해명했다.
작성일자 : 1995.05.10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3)
새 시스템이 완벽하게 설치되기 전에 기존의 시스템을 너무 일찍 해체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SPARC 스테이션의 판로를 넓혀주기 위해 가격 할인된 선제품에 대한 주문이
쇄도했다. 컴퓨터가 완전히 꺼진 한때 선 데이터 베이스로의 입력을 기다리는 주문이
3피트
정도 적체된 적도 있었다. 그 주문들 이 제대로 기록되기 전에 선사는 어떤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선사의 중역인 오스틴 메이어는 "우리는 컴퓨터 속에 있는
내용을
추측 해야 했고 우리의 추측은 어긋났다"고 고백했다.
기자들이 독수리처럼 노려보는 가운데 맥닐리는 다른 문제로 화살을 피했다.
그는한 분기에 5개의 새 제품을 발표하고 스코틀랜드에 새 공장을 세웠으며기술지원
조직을
확대하는 계획 등을 거론했다. 그는 이번 분기에 적자를기록했다고 해서 그처럼 커다
란
주목을 받게 된 것이 놀랍다고 말하며 애써태 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47번
이나
연속으로 홈런을 친 다음 스트라이크 아웃된다면 대단한 뉴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
다.
그러나 월가는 그런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선사의 주식 값은 50% 내려갔다.
그 당시 언론, 산업분석가, 일반 대중과 선사 자신도 새 워크스테이션의 수요가 폭발
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SPARC 스테이션사업 그룹의 추측이 맞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89년
선사가 직면한 최대의 위기에 SPA RC 스테이션이 많이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제품의
예상 판매량을 낮게 책정한 마케팅 부서의 특별한 지원없이도 쉽게 성공했기 때문이
었다.
SPARC스테이션에 대한 주문이 쇄도했지만 선사는 많은 물량을 생산할 준비도 안되었
을 뿐
아니라 하청 업체가 부품을 제대로 조달해 주지 못해 부품 부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스티브 잡스는 바로 이런 보기 드문 "소화 불능"현상 때문에 넥스트 큐브컴 퓨터의
판매를
처음에 고등교육기관에만 국한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불길했던
SPARC스테이션의 발매가 결국은 색옹지마로 끝난 선사의 경우를 볼 때 소화불량이라
는
것이 곧 사라질 수 있는 작은 증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SPARC 스테이션의 주문량은 기대 이상으로 많았고 조업활동도 곧 정상 상태를 회복했
다.
선사는 다음 분기에 다시 흑자를 올렸고 89년의 고비를 잘 넘겨 그 회계연도에
17억7천만달러 상당의 매출을 올림으로써 전년대비 68% 의 성장을 기록했다. 일반인
들은
SPARC의 성공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장기적으로 볼 때 선사의 지속적인 성장이 언론
이나
광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전문기술 지식을 가진 고객들이 직접 선사의 제품과 경
쟁사
제품을 비교하여 그 우수성을 인정하게 되어 더욱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다.
SPARC스테이션은 성능과 가격의 조건이 특출해서 그런 효과를 거둔것이다. 소비자들
이
선사에는 고객의 평가라는 보이지 않는 튼튼한 기반이 있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던
것처럼
넥스트의 이벤트 마케팅에 내재되어 있는 약점과 비즈니스랜드와의 관계에 취약한 부
분이
많다는 것을 빨리 깨닫지 못했다.
전국여러 곳에서 개최된 세미나에 모인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와 큐브를 보고 감탄사
를
연발했을 뿐 아니라 당장 그 제품을 사고 싶어서 수표를 꺼내도록 하는 데 성공했더
라면
큐브컴퓨터는 순조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품의 시연은 잠재 고
객을 실제
넥스트의 구매자로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서커스나 록음악회에 가면 그 순간의 흥분
으로
10달러짜리 싸구려 기념품이나 티셔츠를 그 가치도 생각해보지 않고 사게 된다. 그러
나
넥스트 큐브의 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시연하는 광경을 보면서도1
만달러라는 가격때문에 쉽게 충동 구매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넥스트는 업무용으로
컴퓨터를 구입할 때 그 비용을 경상 경비로 처리하여 마치 연필한 통을 사는 것처럼
간단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회사에서는 한 대의 컴퓨터를
구입하기
위해 한 명 이상의 승인을받고예산편성 부서의 심사를 받는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발표회에참석했던 사람들은 다시 넥스트 컴퓨터를 찾지 않았기 때문에 넥스트와 비즈
니스
랜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우선 넥스트 컴퓨터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잡스는데이비스
홀의
제품 발표회에서 운용체계의 버그를 감추는 데 성공했는지는 몰라도 소규모 시연에서
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넥스트 소프트웨어 팀이 198 8년 말과 1989년에 그 시스템을 완
성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제품에도 버그가 많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넥스트가더이상 완성된 시스템의 발표를 늦출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스크린의 동결,
프린트
기능 이상, 데이터 손실, 또는 네트워크 이상을 일으키는 소위 "쇼를방해하는 요인"
을
일으키는 버그를 제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제품은 조금 개선되었다.
1989년 4월
넥스트의 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던 외부 프로그래머들은 2주 전에는 시스템이
30초마다 이상이 발생했지만 이제는 30분에 한 번 문제가 생긴다면서 그 진전에 감탄
했다.
그러나 일반 소비자들은 미처 발견되지 못한 버그가 일으키는 문제때문에 개선된
버전을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5월 잡스가 샌디에이고에서 8백여명 의 소프트웨어
전문가들 앞에서 시연하는 동안 2대의 컴퓨터가 문제를 일으켰고 여름내내 비슷한 사
고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대학에서 넥스트 큐브를구입한 사람들은 버그를 제거하기 위해 컴
퓨터를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했다.
그러나비즈니스랜드의 주 고객인 기업체들은 그들과 같지 않았다.
그들은컴퓨터의운용체계를 분해했다가 조립하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작성일자 : 1995.05.12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4)
비즈니스랜드의 고객은 넥스트사의 대학가 고객과는 다른 종류의 소프트웨어 를
필요로했다. 그들에게는 3차원 방정식을 풀거나 LISP라는 특수언어로 인공지능루틴을
작성하거나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검색해서 명문구를 찾을 수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
하지
않았다. 그 보다도 그들은 데이터베이스가 필요 했지만 넥스트컴퓨터에는 그런 기능
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CAD 프로그램이 필요했지만 그것도 없었다. 그들은 워드프로세싱
이상의 기능을 갖춘 우수한 워드 프로세싱 프로그램이 필요했으나 그것 역시 없었다.
거기에는 또 로터 스 1-2-3과 같은 스프레드시트도 없었다.
오하이오주 액런에서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 비즈니스랜드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일하
는 한
영업 사원은 매서매티카(Ma-thematica)프로그램(대학의 고급 교과과정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다항식 인수 분해와 같은 수준 높은 계산 기능을 갖춘 프로그램)을 스프레드시트 기
능까지
멋지게 할 수 있는 다목적 비즈니스용 프로그램으로 소개하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한것이지 계산을 할 필요는 없
었다.
넥스트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유일한 프로그램은 긴 서류를 작성하는데 필요 한
프레임메이커라고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은 배우기 어려웠고 편지
나
짧은 리포트 작성에는 부적당했을 뿐 아니라 넥스트의 기본운용체계가 완성될 때까지
그
기능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전에
는
넥스트 컴퓨터는 사실상 사무실에 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처음에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큐브컴퓨터를 자세히 살핀 후 공짜로 줘도 안 받겠
다면서
등을 돌렸다. 그러나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의 경영진들은 아무리 비싸도 고객들은
그들의
기계를 기꺼이 살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즈니스랜드가 발간하는
뉴스레터에는 영업사원들에게 넥스트 의 수요가 많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내용들이
게재되었다.
"비즈니스랜드의 슈퍼 스타들이여! 경쟁 제품이 없는 제품을 한번 팔아 보는 것이
어떻겠는지요(한번 생각해 보시요). 당신은 첨단 제품을 팔게 될 것입니다. 그 제품
은
지명도도 높고 커미션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용도도 아주 넓습니다. 그런 제품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바로 넥스트 큐브컴퓨터가그것입니다. 사용이 편리한 이 워크스테이션의
판로는 아주 넓습니다. 넥스트의 예상매출 은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업사
원이라면
매출실적에 대한 정당한 몫을 찾을수 있도록 신경쓰십시요. 그렇지 못하면 당신은 너
무 힘들
것입니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비즈니스랜드는 9천9백95달러의 기본 컴퓨터 가
격 에
프린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서비스 이용, 광디스크및 기타 주변기기 비용을 합하
면
2만1천5백19달러가 된다고 설명했다. 다른 제품을 가지고 이와 비슷한 커미션을 벌려
면
8대의 1BM 컴퓨터와 15대의 로엔드 매킨토시를팔아야 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데이브 노먼부터 전사원에 이르기까지 사업전망을 낙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사실과 다른 퍼스널 컴
퓨터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두가지 문제점을 깨닫지 못했다. 넥스트와 비즈니스
랜드의
거래가 발표된 3월이후 세미나를 시간적 여유를 갖고 개최했더라면 양사는 그해 봄
판매
촉진을 위해 개최된 세미나에서 잠재 고객들이 제기한 여러 부정적 문제점들을 해결
하려고
노력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불과 몇달후인 1989년 6월 넥스트 직원들에게 또 다른 행운이 찾아왔다. 넥 스트의
광디스크
공급업체이며 프린터의 주요 부품을 조달해주는 일본의 캐 논사가 41억달러 상당의
넥스트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넥스트는저절로 굴러 들어온 행운에 자축하는 분위
기에
빠져들었으며 그 일로 회사가 잘되어 가고 있다는 확신을 더 갖게 되었다(캐논사는
잡스로부터 최고운영책 임자를 고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나 잡스는 3년후에야 그
약속을 지켰다 . 비즈니스랜드도 넥스트와의 거래가 아주 훌륭한 결정이라며 축하분
위기
에들떠있었다. 잡스는 "월스트리트저널"지와의 인터뷰에서 넥스트는 현재 현금이 물
밀듯이
쏟아져들어오고 있어서 대부분을 은행에 예치해 둬야할 형편 이라고 말했다. 그말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넥스트의 자금력이 얼마 나튼튼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한 말이었
다.
잡스는 캐논을 이용하여 1989년 가을 라이선스 비용을 두배로 올리면서 IBM과의 라이
선스
계약협상을 다시시도했다. 넥스트가 계획한 대로 IBM 또한 캐논의 협력이 넥스트의
성공에
기여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넥스트는 갑자기 자본금 6억달러를 갖는 회사가 되었다. 지분이 조정된 후에도 50%의
지분을 갖게된 잡스는 약 3억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직원 수가 2백
여명에
불과하고 수입을 전혀 못 올리는 상황에서 이런 경우는 전에 거의 없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사 조차도 그와 같은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1986년 선사가 주식을
공개했을 때의 시장 가치는 4억3천만달 러였지만 그 당시 2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작성일자 : 1995.05.15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4)
비즈니스랜드의 고객은 넥스트사의 대학가 고객과는 다른 종류의 소프트웨어 를
필요로했다. 그들에게는 3차원 방정식을 풀거나 LISP라는 특수언어로 인공지능루틴을
작성하거나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검색해서 명문구를 찾을 수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
하지
않았다. 그 보다도 그들은 데이터베이스가 필요 했지만 넥스트컴퓨터에는 그런 기능
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CAD 프로그램이 필요했지만 그것도 없었다. 그들은 워드프로세싱
이상의 기능을 갖춘 우수한 워드 프로세싱 프로그램이 필요했으나 그것 역시 없었다.
거기에는 또 로터 스 1-2-3과 같은 스프레드시트도 없었다.
오하이오주 액런에서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 비즈니스랜드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일하
는 한
영업 사원은 매서매티카(Ma-thematica)프로그램(대학의 고급 교과과정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다항식 인수 분해와 같은 수준 높은 계산 기능을 갖춘 프로그램)을 스프레드시트 기
능까지
멋지게 할 수 있는 다목적 비즈니스용 프로그램으로 소개하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한것이지 계산을 할 필요는 없
었다.
넥스트 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유일한 프로그램은 긴 서류를 작성하는데 필요 한
프레임메이커라고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은 배우기 어려웠고 편지
나
짧은 리포트 작성에는 부적당했을 뿐 아니라 넥스트의 기본운용체계가 완성될 때까지
그
기능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전에
는
넥스트 컴퓨터는 사실상 사무실에 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처음에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들도 큐브컴퓨터를 자세히 살핀 후 공짜로 줘도 안 받겠
다면서
등을 돌렸다. 그러나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의 경영진들은 아무리 비싸도 고객들은
그들의
기계를 기꺼이 살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즈니스랜드가 발간하는
뉴스레터에는 영업사원들에게 넥스트 의 수요가 많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내용들이
게재되었다.
"비즈니스랜드의 슈퍼 스타들이여! 경쟁 제품이 없는 제품을 한번 팔아 보는 것이
어떻겠는지요(한번 생각해 보시요). 당신은 첨단 제품을 팔게 될 것입니다. 그 제품
은
지명도도 높고 커미션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용도도 아주 넓습니다. 그런 제품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바로 넥스트 큐브컴퓨터가그것입니다. 사용이 편리한 이 워크스테이션의
판로는 아주 넓습니다. 넥스트의 예상매출 은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업사
원이라면
매출실적에 대한 정당한 몫을 찾을수 있도록 신경쓰십시요. 그렇지 못하면 당신은 너
무 힘들
것입니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비즈니스랜드는 9천9백95달러의 기본 컴퓨터 가
격 에
프린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서비스 이용, 광디스크및 기타 주변기기 비용을 합하
면
2만1천5백19달러가 된다고 설명했다. 다른 제품을 가지고 이와 비슷한 커미션을 벌려
면
8대의 1BM 컴퓨터와 15대의 로엔드 매킨토시를팔아야 했다.
비즈니스랜드는 데이브 노먼부터 전사원에 이르기까지 사업전망을 낙관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사실과 다른 퍼스널 컴
퓨터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두가지 문제점을 깨닫지 못했다. 넥스트와 비즈니스
랜드의
거래가 발표된 3월이후 세미나를 시간적 여유를 갖고 개최했더라면 양사는 그해 봄
판매
촉진을 위해 개최된 세미나에서 잠재 고객들이 제기한 여러 부정적 문제점들을 해결
하려고
노력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불과 몇달후인 1989년 6월 넥스트 직원들에게 또 다른 행운이 찾아왔다. 넥 스트의
광디스크
공급업체이며 프린터의 주요 부품을 조달해주는 일본의 캐 논사가 41억달러 상당의
넥스트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던 것이다. 넥스트는저절로 굴러 들어온 행운에 자축하는 분위
기에
빠져들었으며 그 일로 회사가 잘되어 가고 있다는 확신을 더 갖게 되었다(캐논사는
잡스로부터 최고운영책 임자를 고용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나 잡스는 3년후에야 그
약속을 지켰다 . 비즈니스랜드도 넥스트와의 거래가 아주 훌륭한 결정이라며 축하분
위기
에들떠있었다. 잡스는 "월스트리트저널"지와의 인터뷰에서 넥스트는 현재 현금이 물
밀듯이
쏟아져들어오고 있어서 대부분을 은행에 예치해 둬야할 형편 이라고 말했다. 그말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넥스트의 자금력이 얼마 나튼튼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한 말이었
다.
잡스는 캐논을 이용하여 1989년 가을 라이선스 비용을 두배로 올리면서 IBM과의 라이
선스
계약협상을 다시시도했다. 넥스트가 계획한 대로 IBM 또한 캐논의 협력이 넥스트의
성공에
기여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다.
넥스트는 갑자기 자본금 6억달러를 갖는 회사가 되었다. 지분이 조정된 후에도 50%의
지분을 갖게된 잡스는 약 3억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직원 수가 2백
여명에
불과하고 수입을 전혀 못 올리는 상황에서 이런 경우는 전에 거의 없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사 조차도 그와 같은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1986년 선사가 주식을
공개했을 때의 시장 가치는 4억3천만달 러였지만 그 당시 2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작성일자 : 1995.05.15
죄송 합니다.
75번은 올릴 수 있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6)
운용체계가 완성될 무렵인 9월에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사는 고객들 사이에서 넥스트
컴퓨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1백년 의 역사를 가진
베벌리힐스와 뉴욕에 있는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에서 큐브 컴퓨터를 대량
구입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오랜 전통을 가진 윌리엄 모 리스와 신생기업인 넥스트의 협상은
할리우드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서로 사업에 대한 관심보다는
카메라를
더욱 의식했으며 어깨동무를 해보이며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하려 노력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야망에 찬 초년생들이 입사하면 먼저 우편 정리부 터
시키며
스스로가 열심히 일하도록 유도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근래 들어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 그
회사에서 일했던 에이전트들이 독자적으로 크레 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를
창립하여
라이벌 업체로서 크게 성공하고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그들에게 고객을 많이
빼앗겼으며
새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약화된 이미지 때문에 활동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부동산 투자로 얻은 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그 에이전시는 과거에 집착한다는 이미지를 벗어버리려 했고 경쟁업체들이
매킨토시를 대량
구입한다는 소식을 듣자 독보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던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는 매킨토시 다음의 컴퓨터, 즉 넥스트 를 구입하여 단숨에 유명해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넥스트는 윌리엄 모리스와의 거래를 통해 넥스트에 대한 대중들의 신용도를더욱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해했다. 윌리엄 모리스가 표출하고자하는 보수적인 이미지는
넥스트의
목적에 꼭 맞아 떨어졌다. 가장 오래된 에이전시와 거래를 하게 되면 넥스트는
신생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많이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윌리엄 모리스가
넥스트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면 기술 집약적인 환경 이외에서도 큐브컴퓨터가 널리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에이전시는 업무의 특성상 언론 매체를 잘
다루었고
넥 스트처럼 그 규모에 비해 많은 관심을 모으는 데 능숙했다. "포천"가 선정한
5백대 기업에
제품을 팔아도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만큼 언론의 관심을 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두
회사는 서로의 협상 방법에 대해서도 만족해 했다. 그 에이전시는 스티브 잡스
말고는
협상하지 않으려 했고 비즈니스랜드또는 넥스트의 임원진들과도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기존의 방법으로 잡스와 연락이 안될 경우 그들은 또 다른 유명인사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고위층하고만 거래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고 그 신조는 잡스
의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졌다.
잡스는 직원들에게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넥스트의 자유방임적 마케팅 전략의
정당성을
확인시켜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넥스트 는 업계를 대상으로
미끼를 던져
놓고 어떤 업체들이 그 미끼에 걸려드는 지를 지켜 보았다. 그는 특정 분야만
집중적으로
공략했으면 절대로 윌리엄 모 리스를 고객으로 만들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고 결국 이런좋은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넥스트 컴퓨터
시장은 윌
리엄 모리스처럼 스스로 넥스트의 고객이 되고자 하는 보이지 않는 고객들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고 믿었다. 잡스는 윌리엄 모리스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맺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러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조건들 을 받아들일 자세도 가졌다.
그는
2백70대의 컴퓨터를 팔기 위해 대폭적인 할인율을 제시했던 것이다. 할인 조건에
대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넥 스트는 그 조건을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대외적으로는 할인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이번 거래를 꼭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잡스는 만족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넥스트와 협상할 당시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음악 담당 부서를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 당시 음악 부서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IBM호환 기종
하나뿐이었다.
컴퓨터의 사용을 회사 전체로 확산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된 에이전시는
컨설턴트를
초빙하여 지나치게 수준 높은 제품을 도입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자문을 구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트직원들 대부분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고 사용할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그 회사는 처음에 미니컴퓨터를 설치하여 각 책상에 설치될 터미널과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토록 했다.
그러나 컴퓨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자처했던 영화부서 부책임자였던 존 번햄이
넥스트가 "대단한 제품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그 기계를 한번 사용해 보자고
제의했다.
그의 동료인 마이크 심슨도 그의 의견에 찬성하며 넥스 트를 추천했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퍼스널 컴퓨터의 귀재라는 평판을 받던그는 기술적인 능력보다는 의욕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그와 그의 부하였던크리스 가드스탁은 IBM호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를 정리하지 못해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원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 볼수 있는
방법을
배우려하 지 않았다. 심슨의 컴퓨터에는 대량의 자료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들은 결국 포기하고 대신
구식방법으로 파일을 정리했다. 1980년대 초 매킨토시 이전에나온 컴퓨터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심슨이 1980년대 말에 나온 넥스트를사용할 리 만무했다. 그는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보다 사용이 용이하고 값도 저렴한 컴퓨터의 사용법을 배우려는 의지도 시간도
없었지만 차세대의 "걸작 "으로 알려진 컴퓨터에 거금을 투자하려 했다.
전문적인 기업가로서 부푼 꿈을 가졌던 마이크 심슨이 또 다른 꿈에 넘어간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사용이 편리한 넥스트 컴퓨터가 쉴사이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답해야하는 윌리엄 모리스사의 업무량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선전에 넘어간
것이다. 한
직원이 하루 평균 50 내지 2백여통의 전화를 받는데 심슨처럼 직위가 높은 사람은
전화 4개를
한꺼번에받는 경우가 많았다. 전화 한대로 통화하는 동안 부하 직원은 또 다른 통화
를
준비하고 2대의 전화가 연속해서 걸려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작성일자 : 1995.05.19
죄송 합니다.
75번은 올릴 수 있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6)
운용체계가 완성될 무렵인 9월에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사는 고객들 사이에서 넥스트
컴퓨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1백년 의 역사를 가진
베벌리힐스와 뉴욕에 있는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에서 큐브 컴퓨터를 대량
구입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오랜 전통을 가진 윌리엄 모 리스와 신생기업인 넥스트의 협상은
할리우드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들은 서로 사업에 대한 관심보다는
카메라를
더욱 의식했으며 어깨동무를 해보이며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하려 노력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야망에 찬 초년생들이 입사하면 먼저 우편 정리부 터
시키며
스스로가 열심히 일하도록 유도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근래 들어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 그
회사에서 일했던 에이전트들이 독자적으로 크레 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를
창립하여
라이벌 업체로서 크게 성공하고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그들에게 고객을 많이
빼앗겼으며
새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약화된 이미지 때문에 활동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부동산 투자로 얻은 수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그 에이전시는 과거에 집착한다는 이미지를 벗어버리려 했고 경쟁업체들이
매킨토시를 대량
구입한다는 소식을 듣자 독보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던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는 매킨토시 다음의 컴퓨터, 즉 넥스트 를 구입하여 단숨에 유명해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넥스트는 윌리엄 모리스와의 거래를 통해 넥스트에 대한 대중들의 신용도를더욱 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만족해했다. 윌리엄 모리스가 표출하고자하는 보수적인 이미지는
넥스트의
목적에 꼭 맞아 떨어졌다. 가장 오래된 에이전시와 거래를 하게 되면 넥스트는
신생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많이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윌리엄 모리스가
넥스트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면 기술 집약적인 환경 이외에서도 큐브컴퓨터가 널리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에이전시는 업무의 특성상 언론 매체를 잘
다루었고
넥 스트처럼 그 규모에 비해 많은 관심을 모으는 데 능숙했다. "포천"가 선정한
5백대 기업에
제품을 팔아도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만큼 언론의 관심을 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두
회사는 서로의 협상 방법에 대해서도 만족해 했다. 그 에이전시는 스티브 잡스
말고는
협상하지 않으려 했고 비즈니스랜드또는 넥스트의 임원진들과도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기존의 방법으로 잡스와 연락이 안될 경우 그들은 또 다른 유명인사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고위층하고만 거래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고 그 신조는 잡스
의
스타일과 잘 맞아 떨어졌다.
잡스는 직원들에게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넥스트의 자유방임적 마케팅 전략의
정당성을
확인시켜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넥스트 는 업계를 대상으로
미끼를 던져
놓고 어떤 업체들이 그 미끼에 걸려드는 지를 지켜 보았다. 그는 특정 분야만
집중적으로
공략했으면 절대로 윌리엄 모 리스를 고객으로 만들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고 결국 이런좋은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넥스트 컴퓨터
시장은 윌
리엄 모리스처럼 스스로 넥스트의 고객이 되고자 하는 보이지 않는 고객들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고 믿었다. 잡스는 윌리엄 모리스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맺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러기 위해서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조건들 을 받아들일 자세도 가졌다.
그는
2백70대의 컴퓨터를 팔기 위해 대폭적인 할인율을 제시했던 것이다. 할인 조건에
대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넥 스트는 그 조건을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대외적으로는 할인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이번 거래를 꼭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잡스는 만족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넥스트와 협상할 당시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음악 담당 부서를 제외하고는
컴퓨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 당시 음악 부서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IBM호환 기종
하나뿐이었다.
컴퓨터의 사용을 회사 전체로 확산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된 에이전시는
컨설턴트를
초빙하여 지나치게 수준 높은 제품을 도입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자문을 구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트직원들 대부분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고 사용할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그 회사는 처음에 미니컴퓨터를 설치하여 각 책상에 설치될 터미널과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토록 했다.
그러나 컴퓨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자처했던 영화부서 부책임자였던 존 번햄이
넥스트가 "대단한 제품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그 기계를 한번 사용해 보자고
제의했다.
그의 동료인 마이크 심슨도 그의 의견에 찬성하며 넥스 트를 추천했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퍼스널 컴퓨터의 귀재라는 평판을 받던그는 기술적인 능력보다는 의욕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그와 그의 부하였던크리스 가드스탁은 IBM호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를 정리하지 못해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원하는 내용을 쉽게 찾아 볼수 있는
방법을
배우려하 지 않았다. 심슨의 컴퓨터에는 대량의 자료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들은 결국 포기하고 대신
구식방법으로 파일을 정리했다. 1980년대 초 매킨토시 이전에나온 컴퓨터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심슨이 1980년대 말에 나온 넥스트를사용할 리 만무했다. 그는
사용하고 있던
컴퓨터보다 사용이 용이하고 값도 저렴한 컴퓨터의 사용법을 배우려는 의지도 시간도
없었지만 차세대의 "걸작 "으로 알려진 컴퓨터에 거금을 투자하려 했다.
전문적인 기업가로서 부푼 꿈을 가졌던 마이크 심슨이 또 다른 꿈에 넘어간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사용이 편리한 넥스트 컴퓨터가 쉴사이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답해야하는 윌리엄 모리스사의 업무량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선전에 넘어간
것이다. 한
직원이 하루 평균 50 내지 2백여통의 전화를 받는데 심슨처럼 직위가 높은 사람은
전화 4개를
한꺼번에받는 경우가 많았다. 전화 한대로 통화하는 동안 부하 직원은 또 다른 통화
를
준비하고 2대의 전화가 연속해서 걸려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작성일자 : 1995.05.19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7)
이처럼 숨가쁜 상황속에서 심슨은 넥스트 컴퓨터를 가지고 "누구십니까?"라 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걸려오는 전화내용을 녹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프로그램은 오클랜드에 있는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인 아다메이션에 의해 개발되고
있었다. 심슨은 그 프로그램에 대해 전화번호 관리 이상의 기능을 기대했다.
컴퓨터는 다른
정보, 즉 감독과 일정, 가수 및 배우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기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멀티미디어 기능까지 가능했기 때문에 사진과 음악도 저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심슨은 꿈을 산 것이지 현실까지 산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몰랐다. 198 9년
늦은 여름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가 넥스트와 거래하기로 계약을 맺을당시 넥스트의
운용체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 구십니까?"라는 프로그램이 완성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가 기대했던 소프트웨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윌리엄 모리스사는 그 프로그램에 관련된 모든 업체로부터 기능을 보장받기를
바랐다.
그들은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및 소프트웨어업체 아다메이션사로 부터 만족스러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는 약속을 받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자문을 해주어야 할딜로이 트
타우치는
제외되었다. 그들은 넥스트를 추천하더라도 별 영향을 받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딜로이트 타우치는 넥스트의 하드웨어및 소프트웨어가 새 기술이라는 이유로 최종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윌리엄 모리스사가 컴퓨터를 대량 구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 결과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먼저 넥스트 컴퓨터 30대가 1989년 10월에 그 회사에 납품됐고 나머지 1백20 대는 그
다음해
초에 배달되는 것으로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비즈니스랜드는 첫
거래를 만족스럽게 진행시켜 넥스트컴퓨 터는 대학에만 적합하다는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으며 윌리엄 모리스는 다시 인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와
넥스트는
사람들의 관심을더 끌기를 원했다. 그 거래에 관련된 아무도 윌리엄 모리스가
치명적인 실수
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윌리엄 모리스는 운전경험도 없이 사 실상
경주용차에
올라탄 셈이다. 1989년 그 회사는 넥스트의 유일한 고객이 었고 3년 뒤인 1992년
여름까지
북미에서 두번째로 큰 넥스트의 고객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는 타의
모범이
되지 못하고 실패의 상징이 돼가고 있었다.
한번 내린 결정에 대해 언론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기를 원했던 그 윌리 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넥스트를 칭찬했고 그 컴퓨터를 사용함으로써 회사가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고
선전했다. 그 회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넥스트가 오락 산업의 선두 주자"라고
강조하면서
전통적으로 업계의 표준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고객과
관련된 비디오를 저장하고 출력할 수 있게 된다. 에이전트들은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멀티미디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면서 업무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91년마이크 심슨은 잡지기자에게 특수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고객 들로부터
2백만달러를 쉽게 받아낼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멀티미디어 넥스트
데이터베이스라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가 요구한 소프트웨어는 사실
92년
가을에도 시험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불완전했고 회사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지 3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회사가 89년 넥스트제품을
선택하게된
이유는 구식 이미지를 벗어 보려는의도외에 근본적으로 넥스트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그런 소프트웨어는 누워서 떡먹는 것보다 더
쉽게
만들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 회사는 완전한 독자적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요구 하는
기술을
필요로하며 서로 완벽하게 조화될 수 있는 8개의 개별 모듈로 구성된 복잡한
데이터베이스를
요구했다. 그 소프트웨어를 직접 담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거래를 성사 시키기 위하여 윌리엄모리스 에이전시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려고하는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가 그랬고 기술적 자문은 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려하지 않은 딜로이트 타우치가 그랬다. 결국 아다메이션사가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프로그램의 보안성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개발 작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과거 그 회사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직원들이
고객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나갔기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본 윌리엄 모리스는 이번
프로그램에는
여러개의 잠금쇠를 설치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일부 고객 캐린더나 거래에
대한
정보는 허용하되 고객의 전화번호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시키고자 했다.
작성일자 : 1995.05.22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8)
회사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그와같은 제약이 있거나 모듈이 여러개
필요하다면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다메이션사는 윌리엄 모 리스에게
디자인을 조금
단순화시켜 달라고 부탁했지만 윌리엄 모리스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아다메이션사는 그 일을 넥스트에 넘기고 도중 하차하고 말았다.
넥스트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넥스트는 아다메이션사가 2년 동안
이룩한 개발
실적을 모두 파기하고 91년 처음부터 일을 다시 시작해야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고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넥스트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했다. 넥스트는 엔지니어들을
달래가며 회사내부의 문제가 폭발하여 밖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다.
넥스트라는 작은 회사 가 윌리엄 모리스라는 고객에게 쏟아 붓는 엄청난 자금
이외에도 다른
대형 기업고객이 넥스트로 눈을 돌리도록 하는 비용도 많이 들었다. 넥스트가 윌
리엄
모리스와 함께 같은 계통에 있는 다른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었더라도넥스트는 별
이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뛰어나면 화려한 명성을 얻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정확히 말하자면 넥스트가 먼저 별 특징
없는
보험회사와 거래했더라면 넥스트 와 넥스트의 파트너인 비즈니스랜드는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윌리엄 모리스는 89년과 90년에 공급된 넥스트 컴퓨터가
회사로서
처음 사용하는 컴퓨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윌리엄모리스에이전시 사람들은
워드프로세싱이 무엇인지 전자 메일이 무엇인지를 알지못했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그런 기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에이전시 직원들은 조금 예외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있다.
넥스트컴퓨터가 독특하고 뛰어난 기술로 제작되었다는 과장된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
에이전시에 있는 넥스트 제품들은 회사 내에서 메모를 전송해주는기본적인 통신
기능정도만
할 뿐이었다. 이런 기능들은 1만달러짜리 워크스테이션이 아니더라도 저가제품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지루한 사무실 환경에서 음향 기능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는
다른 회사제품과 같이 음향기능이 없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메모는 한 주에
수천건에
이르는데 그 많은 메모들을 어떻게 들을 수있겠는가? 이 시스템이 다른 점이 있다면
누가
무엇에 대하여 통신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상급자를 헐뜯는 내용과 일을
어떻게 하면
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잡담이 상급자의 컴퓨터에 수록되는 바람에 6명이 해고된
적이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능은 넥스트 컴퓨터가 아니더라도 네트워크
시대에사용되고
있는 어떤 컴퓨터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컴퓨터로 베벌리힐스나 뉴욕 사무소와 통신할수있게
되어서
만족해 했다. 그러나 넥스트 컴퓨터와 음악 부서에 있는 다른 컴퓨터와는 연결되지
않았다.
윌리엄 모리스는 넥스트의 장점을 꼬집어서 내세울 수 없었다. 그는 일반적인
컴퓨터의
특성과 넥스트 컴퓨터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구분하여 부각시키지 못했다. 그
에이전시는 또
어렵게 설치한 넥 스트 네트워크의 부진한 기능과 잦은 충돌을 감내해야만 했다.
넥스트 네트
워크는 선사와 다른 업체들이 만든 서버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지만 넥스트는그렇게
하지
않았다. 넥스트는 네트워크 설치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서버 대신에
넥스트
컴퓨터를 사용했고 그 결과 네트워크의 기능을 저하시켰다. 그 에이전시는 컴퓨터를
사용해
본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넥 스트의 장점들을 부각시킬 수도 없었고 다른업체로
하여금
넥스트를 구입하도록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넥스트 컴퓨터를 도입하여 그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인 전화 받는 일을 줄여
보겠다는
마이크 심슨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90 년대의 가장 뛰어난
제품인
넥스트 큐브컴퓨터의 첨단기술도 70년대초에 개발된 전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걸려오는
전화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교환원 들은 그 많은 전화를 도저히 컴퓨터에 입력시킬
수
없었다. 기존의 방법대로종이에다 손으로 전화번호를 기재하는 방법이 가장
손쉬웠다.
넥스트 큐브의 "퍼스널 메인프레임기능"과 디지털 신호처리기능 그리고 여러가지
전자적
기능들이 사실상 수동작업을 선호하는 직원들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넥스트컴퓨터는
한가지 간단한 일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큐브컴퓨터에다 전화번호 목록을
저장한 다음
전화기에 연결시켜 놓으면컴퓨터 자판 하나만 눌러도 전화를 걸 수 있었을 것이다.
91년 윌리엄 모리스사 직원들은 이런 기능이 경쟁업체인 크레이티브 아티스 트 에이전시가
구입한 매킨토시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컴퓨터 로 전화를 거는 기능은 비싸지
도 않았고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것으로 초기 IBM호환기종도 그런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 에이전시는 그들이 요구한 주문 소프트웨어가 완성되기를 기다리
는 동안 다른 업체 들은 오래전부터 다른 컴퓨터가 제공하는 편리한 소프트웨어 기능을 향
유하고 있었다.
사양길에 접어든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가 아직은 건재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동
안 부상하는 신생 크레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는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애써 선전할 필요
가 없었다.
작성일자 : 1995.05.26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8)
회사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그와같은 제약이 있거나 모듈이 여러개 필요하
다면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다메이션사는 윌리엄 모 리스에게 디자인을 조금 단순
화시켜 달라고 부탁했지만 윌리엄 모리스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아다메이
션사는 그 일을 넥스트에 넘기고 도중 하차하고 말았다.
넥스트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넥스트는 아다메이션사가 2년 동안 이룩한 개
발 실적을 모두 파기하고 91년 처음부터 일을 다시 시작해야했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고
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넥스트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야 했다. 넥스트는 엔지니어들을 달
래가며 회사내부의 문제가 폭발하여 밖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다. 넥스트라
는 작은 회사 가 윌리엄 모리스라는 고객에게 쏟아 붓는 엄청난 자금 이외에도 다른 대형
기업고객이 넥스트로 눈을 돌리도록 하는 비용도 많이 들었다. 넥스트가 윌 리엄 모리스와
함께 같은 계통에 있는 다른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었더라도넥스트는 별 이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뛰어나면 화려한 명성을 얻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정확히 말하자면 넥스트가 먼저 별 특징 없는 보험회사와 거래했
더라면 넥스트 와 넥스트의 파트너인 비즈니스랜드는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윌리엄 모리스는 89년과 90년에 공급된 넥스트 컴퓨터가 회사로
서 처음 사용하는 컴퓨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윌리엄모리스에이전시 사람들은 워드프로세
싱이 무엇인지 전자 메일이 무엇인지를 알지못했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은 그런 기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에이전시 직원들은 조금 예외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있다.
넥스트컴퓨터가 독특하고 뛰어난 기술로 제작되었다는 과장된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 에이
전시에 있는 넥스트 제품들은 회사 내에서 메모를 전송해주는기본적인 통신 기능정도만 할
뿐이었다. 이런 기능들은 1만달러짜리 워크스테이션이 아니더라도 저가제품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지루한 사무실 환경에서 음향 기능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
는 다른 회사제품과 같이 음향기능이 없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메모는 한 주에 수천건
에 이르는데 그 많은 메모들을 어떻게 들을 수있겠는가? 이 시스템이 다른 점이 있다면 누
가 무엇에 대하여 통신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상급자를 헐뜯는 내용과 일을 어떻게
하면 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잡담이 상급자의 컴퓨터에 수록되는 바람에 6명이 해고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능은 넥스트 컴퓨터가 아니더라도 네트워크 시대에사용되고 있는 어
떤 컴퓨터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컴퓨터로 베벌리힐스나 뉴욕 사무소와 통신할수있게 되어서 만
족해 했다. 그러나 넥스트 컴퓨터와 음악 부서에 있는 다른 컴퓨터와는 연결되지 않았다.
윌리엄 모리스는 넥스트의 장점을 꼬집어서 내세울 수 없었다. 그는 일반적인 컴퓨터의 특
성과 넥스트 컴퓨터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구분하여 부각시키지 못했다. 그 에이전시는 또
어렵게 설치한 넥 스트 네트워크의 부진한 기능과 잦은 충돌을 감내해야만 했다. 넥스트 네
트 워크는 선사와 다른 업체들이 만든 서버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지만 넥스트는그렇게 하지
않았다. 넥스트는 네트워크 설치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서버 대신에 넥스트 컴
퓨터를 사용했고 그 결과 네트워크의 기능을 저하시켰다. 그 에이전시는 컴퓨터를 사용해
본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넥 스트의 장점들을 부각시킬 수도 없었고 다른업체로 하여
금 넥스트를 구입하도록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넥스트 컴퓨터를 도입하여 그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인 전화 받는 일을 줄여 보겠다는
마이크 심슨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90 년대의 가장 뛰어난 제품인
넥스트 큐브컴퓨터의 첨단기술도 70년대초에 개발된 전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걸려오는 전
화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교환원 들은 그 많은 전화를 도저히 컴퓨터에 입력시킬 수 없었
다. 기존의 방법대로종이에다 손으로 전화번호를 기재하는 방법이 가장 손쉬웠다.
넥스트 큐브의 "퍼스널 메인프레임기능"과 디지털 신호처리기능 그리고 여러가지 전자적
기능들이 사실상 수동작업을 선호하는 직원들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넥스트컴퓨터는
한가지 간단한 일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큐브컴퓨터에다 전화번호 목록을 저장한 다
음 전화기에 연결시켜 놓으면컴퓨터 자판 하나만 눌러도 전화를 걸 수 있었을 것이다.
91년 윌리엄 모리스사 직원들은 이런 기능이 경쟁업체인 크레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가
구입한 매킨토시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컴퓨터 로 전화를 거는 기능은 비싸지
도 않았고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것으로 초기 IBM호환기종도 그런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그 에이전시는 그들이 요구한 주문 소프트웨어가 완성되기를 기다리
는 동안 다른 업체 들은 오래전부터 다른 컴퓨터가 제공하는 편리한 소프트웨어 기능을 향
유하고 있었다.
사양길에 접어든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가 아직은 건재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동
안 부상하는 신생 크레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는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애써 선전할 필요
가 없었다.
작성일자 : 1995.05.26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79)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는 회사 일부 부서에서만 사용하던 매킨토시와 NBI 워드
프로세서를 회사전체로 확산시켜 매킨토시 컴퓨터망을 구축해 나갔다. 그들은 윌리엄 모리
스 에이전시가 거창하게 기자회견을 열어가며 자신들의 선두적 위치를 강조하기 훨씬 이전
부터 사실상 윌리엄 모리스사를 앞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사는 새 시
스템을 구축했을 때도 떠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시스템에 관련된 질문을 받아도 이를
밝히려하지 않았다.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의 매킨토시는 윌리엄 모리스의 넥스트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었
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치비가 훨씬 저렴했고 전산화된 롤로덱스 와 보안기능이 내장된
고유의 데이터베이스구축이 훨씬 용이했다는 점이다.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는 윌
리엄 모리스처럼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법석을 떨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매킨토
시를 자사 시스템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윌리엄 모리스는 실속 없이 말로만 떠들어
대는 10 대처럼 행동했다.
윌리엄 모리스사는 신생기업인 넥스트사가 처음으로 확보한 대형 고객에게는 특별한 예우
를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컴퓨터 몇백대 주문 가지고는 IBM이나 애플사의 관심
을 끌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넥스 트와 컴퓨터 구매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는 시스템 사용법을 익힐 때까지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
고 비즈니스랜드가그런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넥스트가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넥스트는 그 에이전시가 바라던 대로 충분한 지원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소비자와 판매자
간의 거래에서 제공되는 일반적인 지원이상의 값비싼 것을 제공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잘
못된 관행때문에 넥스트와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의 거래가 더 발전적인 거래로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넥스트는 중요고객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
른 고객들은 첫 고객이 누리는 특별대우를 기대할 수도 없었고 무제한적 지원도 요구할 수
없었다. 넥스트 컴퓨터는 이제 자립해야 했다. 그러나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는 "넥스트 고
위 간부의 개입"없이, 즉 잡스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제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경쟁업체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사의 영업사원들이 다져놓은 터전에 잡스가 나
타나서 넥스트제품을 사도록 권유하고 돌아가면 일대 동요가 일어나게 마련이었다. 그 소식
을 들은 스콧 맥닐리는 비행기를 타고 와서 다시 고객들을 설득해야 했다. 이 일은 맥닐리
를 분노케 했다. 맥닐리와 선사 의 고위 간부들은 스티브 잡스의 명성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다.
자기 선전을 하는데 있어서 잡스를 따라올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메인프레 임업계에 오래
종사했고 퍼스널 컴퓨터가 일으키고 있는 혁신에 별 관심을두지 않았던 사람들이 참석한 89
년 말에 개최된 컴퓨터 업계 회의에서 잡스 는 넥스트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진 이들을
완전히 압도했다. "컴퓨터 월드"지의 한 칼럼니스트는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잡스는 애플시절 청바지 차림과는 매우 다른 모습인 세련된 이탈리아제 양복을 입고 백만
불 짜리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람들은 그의 손아귀에서 녹아 드는 것을 느꼈다.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래도 그 업계에서 중요한 사람들이었지만 잡스는 유명 인사였다.- 넥스
트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한 사람들도 잡스가 시연을 시작하자 옆 좌석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잡스는 키보드를 치는 피아니스트처럼 여겨졌다.-잡스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고 잡스는 그 자리에서 컴퓨터 몇대를 판매한 것이나다름 없었다. 아
무리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느정도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할리
우드식 화려한 마케팅 전술은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유명 인사라 할지라도 한번에 여
러 곳에 나타날 수도 없었고 공연시에 그 명사에 대해 완전히 반했던 관중들도 느리고, 값
비싸며, 소프트웨어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컴퓨터를 선뜻 대량 구입할리는 없는 것이다.
같은 회의에서 마 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넥스트의 결함을 보완해 줄 의사가 없다
고 밝혔다. 넥스트는 매출액을 발표할 때마다 가장 좋은 면만 드러내 보이려고 힘을 기울였
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은 항상 조금씩 왜곡됐다. 예를 들어서 80년대말 넥스트는 기
업 부문과의 거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이미지 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또 윌리
엄 모리스 에이전시의 뒤를 이어 포천지선 정 5백대 기업들이 속속 넥스트의 고객이 되고
있다는 고무적인 소식을 전달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렇다.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가 주문한
2백70대의컴 퓨터도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이 한번에 공급되지 못했다. 2백70대의
컴퓨터는 2년여에 걸쳐 공급되도록 되어 있었지만 사실 91년 6월 이후에야 공급이 완료되었
다.
넥스트는 비즈니스랜드가 1989년 말까지 컴퓨터 3백60대밖에 판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
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특히 과거 애플에서 근무했던 넥스트 직원들은 매킨
토시가 발표된 첫해에 40만대 이상 판매되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그 사실은
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대학에 판매된 큐브컴퓨터를 판매 대수에 합친다 하더라도 그
수치가 너무 미미했기 때문에 넥스트 직원들은 그 집계결과를 보면서 그 단위 가 천대이든
가 아니면 0이 3개 빠졌을 것이라는 농담을 했다. 그러나 그 통계수치는 거짓 없는 사실이
었다. 넥스트사 공장의 월간 생산량은 1백대미만 이었다. 10만대가 아니라 1백대 이하이다.
넥스트가 창립된지 4년, 데이비스 홀에서 큐브컴퓨터가 발표된지 16개월이 지났을 뿐아니라
비즈니스랜드와의거래를 발표한지 9개월이 지나고 일본이 넥스트에 대규모 투자를 한지 6개
월 이 지났어도 시장은 스티브 잡스와 그의 회사에 대해 비협조적이었다.
작성일자 : 1995.05.31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80)
모든 가족이 숨기고 싶은 비밀을 가지고 있듯이 기업체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게 마련
이다. 기업의 이미지와 실질적 내부사정은 극과 극처럼 다르게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88년
큐브컴퓨터가 발표된 이후 대외적으로는 넥 스트 컴퓨터가 성공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넥스
트는 전략적으로 많은 사건들 을 비밀에 부쳤고 넥스트의 매출과 경쟁업체의 매출격차가 점
점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숨겨왔다.
넥스트사 직원들은 회사의 이같은 이중적이고 비합리적 태도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성공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 회사 자체
는 가장 훌륭한 제품을 개발했다고 자부했지 만 소비자들은 넥스트 큐브컴퓨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 잡스 가 대외적으로는 넥스트 직원들이 최고의 교육수준과 기술을
갖추었다고 선전했지만 회사내부서에서는 그들을 냉혹하게 비판하는 행위등 모두가 속과겉
이 다른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넥스트사 직원들은 불안이나 불편을 가져오는 요소들을 부인하는데 능통
한 잡스를 귀감삼아 이런 불협화음을최소화시키고 있었다.
잡스의 이중성을 잘 나타내주는 한 예를 들어보면, 89년 9월 넥스트가 대학 시장 밖에서는
매출을 전혀 올리지 못했지만 잡스는 대중들에게 자신감있게 실제와는 다른 말을 들려주었
다.
그는 기업분야에 컴퓨터를 공급한 시기를 비교할 때 넥스트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앞서가고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넥스트는 애플처럼 뒷거래없이 직접 공식적인 거래를 텄기 때문이
라는 것이다. 그는 넥스트컴퓨터를 개발하는 방법을 변경할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잡스는 직원들에게는 넥스트 컴퓨터의 가격이 높고 속도가 느리며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고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에게는 넥 스트 컴퓨터에 필요한 소프
트웨어를 개발해달라는 요청을 하기가 어려워지고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계획보다도 빠르게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사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이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데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넥스트가 호응을 점점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을 대중
들에게 인식시키는데 잡스가 성공했더라면 소프트웨어 업체와 소비자들은 넥스트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될 것이며 그렇게되면 환상에 불과했던 넥스트의 꿈은 현실화 되었을 것이
다.
넥스트의 대외적인 입지와 대내적 실상이 얼마나 다른가를 보여주는 장면을 모으면 앨범
한권의 분량이 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진실과 허구의 차이 그 자체 보다 이
런 현상에 대한 심리적인 갈등과 넥스트 직원들 의 불편한 심기 그리고 일반인들의 기대간
의 괴리가 더 컸다는 점이다. 스티 브 잡스가 일반인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
는 그들과 잡스의 요구가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회는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잡스가 영웅처럼 대중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그들의 책임 또는 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책임은 대부분의
경우 무시되고 만다.
넥스트 컴퓨터가 아직 미완성인 상태에서 수많은 결함을 지닌채 발표 되었음에도 한 잡지
가 89년 초 잡스를 "최고의 경영인"으로 지칭한것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사람들은
현인의 권위에 순종하기를 갈구한다. 그 현자 의 초자연적 통찰력은 젊음과 성공으로 더욱
공고히 될 수 있다. 스티브 잡 스는 사람들이 필요로 했던 현자의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잡스 자신의 이권과 현명한 경영인을 갈망했던 대중들의 요구가 "퓨처 포럼" 이라는 텔레
비전 프로그램에 잘 나타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월스트리트 저널 창간 1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89년 6월 다우 존스의 후원 아래 뉴욕 공공 도서관에서 제작되었다.
"미래"라는 주제의 토론회에는 세계각국의 정치인 및 경제인들이 초대되었다. 그중에는 포
드 자동차의 도널드 피터슨, 경제자문 위원회의 위원장인 마 이클 보스킨, 프랑스 전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텡 맥킨스키 및 컴퍼니동경지사에서 온 게니치 오마에 그리고 영국, 헝
가리, 맥시코, 이탈리아, 구 소련에서 온 여러 명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토론회에 참석
한 사람중 유일하게 40세 미만인 사람은 오직 한명, 스티브잡스뿐이었다.
뉴스 앵커인 피터 제닝스가 그날의 토론을 주재했다. 그는 토론자들에게 가상의 회사인 크
레이티브 모터스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가 자기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려하고 있는 상황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제닝스는 당연히 젊은 기업인의 표상
이었던 잡스에게 그 엔지니어를 실제의 인물로 환생시켜보라고 했다. 잡스는 그의 요청에
따라 두서없이 얽힌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지금 사회자께서는 타우러스와 에드셀의 차이는 몇사람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곧 자기의 전공분야인 컴퓨터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인들
이 "머리쓰는 일"을 점점 많이하게 됨에 따라 타우러스와 에드셀의 유일한 차이는, 즉 호응
을 얻는 자동차 디자인과 실패 한 디자인의 유일한 차이는 그 디자인을 제작하는 과정에 컴
퓨터화된 데이터 베이스를 사용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작성일자 : 199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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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82)
제3자가 볼 때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유도하는 데에는 잡스의 경영방식 이 가장 효과
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잡스는 선수들로 부터 "1백10%"의 노력을 요구하는 미식 축구
코치의 훈련 방식에서 사람들의 최선을 끌어내는공식을 도출하였다. 잡스도 미식 축구 코치
의 방식을 사용했다.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의 1백%을 요구하면 1백에 가까
운 결과를 얻을 수있지만 1백50%를 요구하면(여기서 1백50%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생각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되어 1백20%를 얻거나 불가 능한 것
을 요구하지 않았을 때보다 20%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 었다. 그러나 직원들
의 사기를 고려해 볼때 이런 경영방식은 결코 좋은 광경 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잡스는 항상 직원들에게 넥스트가 마라톤 시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래 근무한 직원들은 단거리 선수와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장거리를 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시간이 지남 에 따라 넥스트와 같은 작은 기업이 큰 기
업들의 인내력을 유지하는 일이 더어려워졌다. "6개월 후면 모든 것이다. 완성됩니다. 아니
면 우리를 버려도좋습니다 라는 잡스의 말을 설득시키기가 더 어려워졌고 사실 6개월이 지
난다음에도 앞으로의 6개월이 가장 중요하니까 우리의 약속을 믿어달라는 요구 가 또 6개월
연장으로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중도 포기하고 회사를 떠나갔다. 한 마케팅 과장은 사퇴
하는 날 동료 직원에게서 전자 메일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쳇바퀴를 멈추려면 그만두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을 축하합니다" 나중에 입사한 사람들도 경기를 포기하고
떠나갔고 그 뒤를 이은 사람들도 같은 과정을 밟았다. 사람들은 고통을 덜기위해 농담을 주
고 받았다. 이중적 인격을 가진 정신 아상자를(넥스트에는 "가장 유능하지 않으면 가장 형편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직원들은 생각했다) 치료하는 약품인 리티움에대해 말하면서
넥스트 직원들은 "리티움"을 과다 복용하지 말도록 서로 경고 하곤 했다. 환상에서 깨어난
넥스트 직원들은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쳇바퀴 돌기를 포기하고 떠난 한 과장처럼 동정을 받지 못했다. 정
신적인 성취감을 맛보려 남아 있던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을 변절자이며 싸움에서
진 약해빠진 사람들에 불과하다고 매도했다. 회사를 그만 둔 사람들은 "B 플레이어"였고 남
아있는 사람들은 "A 플레이어"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계속 용감하게 전진해 나갔지
만 결국 쓰러지고말았고 그들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 직원들이 계속 입사하게 되었다.
잡스는 신입 사원을 채용하거나 공급업자 또는 고객을 새로 유치할 때 그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그러나 일단 목적을 달성한 다음에는 기본적인 예의조차도
지키려 하지 않았다. 회사내 비공개회의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된다. 직
원들은 대중들 앞에서와 회사내 에서 달라지는 잡스의 태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대중들 앞에서는 사려깊고 카리스마적이며 위대한 창립자인 잡스와 그들이 아는 흠
잡기 좋아하고 칭찬에 인색한 잡스사이를 오가며 거기에 적응해야 했다. 직원들은 되도록이
면 잡스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넥스트사의 전직 직원들은 넥
스트사에서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자는 농담을 했다.
과학에 심취된 사람이나 한번 세뇌된 하레 크리시 나의 추종자들을 다시 정상으로 회복시
키는 일을 하는 센터가 있는 것처럼넥스트 출신자들을 위한 "해독 센터"를 설립해야겠다는
것이 그들의 사업 취지였다. 고등 교육 기관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넥스트가 비영리 단체 밖에 있는 가장 정열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 한 베테랑은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그는 "사실 넥스트도 비영리 단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 이
라는 말을 덧붙였다.) 또 다른 신봉자였던 한 사람에 의하면 일을 시작하게 된 직원들은 너
무 흥분되어 "일도 하고 보수도 받으니 얼마나좋은 일인가"라고 서로 말했다고 하면서 대부
분의 넥스트 직원들은 이상주의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직원들이 그렇게 이상적이지는
않았다. 어떤 직원들은 같은 업무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 중에서 더 많은 월급을 요구한 사
람들도 있어서 회사가 강조하는 평등주의와 배금사상 배척주의에 위반된 행동 을 했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넥스트에서 더 오래 근무할 사람들일수록 이상주의자들처럼 환상에
서 깨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맞지 못했기 때문에물질을 더 밝히게 되었다.
몇몇 다른 전직 직원들도 넥스트가 사람들 앞에서는 호탕하지만 남들이 안볼 때에는 가장
의 성격이 까다로운 "결손 가정"이라고 심각하게 묘사했다. 그런 가학자를 고쳐 보려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완벽성을 보임으로써 가장에게 존경심을 보이는 다른 가족구성원들처럼
(결국 항상 실패하기는 하지 만) 텍스트 직원들도 잡스의 태도를 고쳐 덜 잔인한 사람으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작성일자 : 1995.06.07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82)
제3자가 볼 때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유도하는 데에는 잡스의 경영방식 이 가장 효과
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잡스는 선수들로 부터 "1백10%"의 노력을 요구하는 미식 축구
코치의 훈련 방식에서 사람들의 최선을 끌어내는공식을 도출하였다. 잡스도 미식 축구 코치
의 방식을 사용했다.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의 1백%을 요구하면 1백에 가까
운 결과를 얻을 수있지만 1백50%를 요구하면(여기서 1백50%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생각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되어 1백20%를 얻거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을 때보다 20%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 었다. 그러나 직원들의
사기를 고려해 볼때 이런 경영방식은 결코 좋은 광경 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잡스는 항상 직원들에게 넥스트가 마라톤 시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래 근무한 직원들은 단거리 선수와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장거리를 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시간이 지남 에 따라 넥스트와 같은 작은 기업이 큰 기
업들의 인내력을 유지하는 일이 더어려워졌다. "6개월 후면 모든 것이다. 완성됩니다. 아니
면 우리를 버려도좋습니다 라는 잡스의 말을 설득시키기가 더 어려워졌고 사실 6개월이 지
난 다음에도 앞으로의 6개월이 가장 중요하니까 우리의 약속을 믿어달라는 요구가 또 6개월
연장으로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중도 포기하고 회사를 떠나갔다. 한 마케팅 과장은 사퇴
하는 날 동료 직원에게서 전자 메일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쳇바퀴를 멈추려면 그만두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을 축하합니다" 나중에 입사한 사람들도 경기를 포기하고
떠나갔고 그 뒤를 이은 사람들도 같은 과정을 밟았다. 사람들은 고통을 덜기위해 농담을 주
고 받았다. 이중적 인격을 가진 정신 아상자를(넥스트에는 "가장 유능하지 않으면 가장 형편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 직원들은 생각했다) 치료하는 약품인 리티움에 대해 말하면
서 넥스트 직원들은 "리티움"을 과다 복용하지 말도록 서로 경고 하곤 했다. 환상에서 깨어
난 넥스트 직원들은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쳇바퀴 돌기를 포기하고 떠난 한 과장처럼 동정을 받지 못했다. 정
신적인 성취감을 맛보려 남아 있던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을 변절자이며 싸움에서
진 약해빠진 사람들에 불과하다고 매도했다. 회사를 그만 둔 사람들은 "B 플레이어"였고 남
아있는 사람들은 "A 플레이어"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계속 용감하게 전진해 나갔지
만 결국 쓰러지고말았고 그들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 직원들이 계속 입사하게 되었다.
잡스는 신입 사원을 채용하거나 공급업자 또는 고객을 새로 유치할 때 그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그러나 일단 목적을 달성한 다음에는 기본적인 예의조차도
지키려 하지 않았다. 회사내 비공개회의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된다. 직
원들은 대중들 앞에서와 회사내 에서 달라지는 잡스의 태도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대중들 앞에서는 사려깊고 카리스마적이며 위대한 창립자인 잡스와 그들이 아는 흠
잡기 좋아하고 칭찬에 인색한 잡스사이를 오가며 거기에 적응해야 했다. 직원들은 되도록이
면 잡스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넥스트사의 전직 직원들은 넥
스트사에서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자는 농담을 했다.
과학에 심취된 사람이나 한번 세뇌된 하레 크리시 나의 추종자들을 다시 정상으로 회복시
키는 일을 하는 센터가 있는 것처럼넥스트 출신자들을 위한 "해독 센터"를 설립해야겠다는
것이 그들의 사업 취지였다. 고등 교육 기관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넥스트가 비영리 단체 밖에 있는 가장 정열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 한 베테랑은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그는 "사실 넥스트도 비영리 단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 이
라는 말을 덧붙였다.) 또 다른 신봉자였던 한 사람에 의하면 일을 시작하게 된 직원들은 너
무 흥분되어 "일도 하고 보수도 받으니 얼마나좋은 일인가"라고 서로 말했다고 하면서 대부
분의 넥스트 직원들은 이상주의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직원들이 그렇게 이상적이지는
않았다. 어떤 직원들은 같은 업무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 중에서 더 많은 월급을 요구한 사
람들도 있어서 회사가 강조하는 평등주의와 배금사상 배척주의에 위반된 행동 을 했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넥스트에서 더 오래 근무할 사람들일수록 이상주의자들처럼 환상에
서 깨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맞지 못했기 때문에물질을 더 밝히게 되었다.
몇몇 다른 전직 직원들도 넥스트가 사람들 앞에서는 호탕하지만 남들이 안볼때에는 가장의
성격이 까다로운 "결손 가정"이라고 심각하게 묘사했다. 그런 가학자를 고쳐 보려고 모든 일
에 최선을 다하고 완벽성을 보임으로써 가장에게 존경심을 보이는 다른 가족구성원들처럼
(결국 항상 실패하기는 하지 만) 텍스트 직원들도 잡스의 태도를 고쳐 덜 잔인한 사람으로
만들어 보려고노력했다.
작성일자 : 1995.06.07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84)
컴턴의 부하직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지금 농담하고 계시죠"라고 했지만 컴턴은 정
색을 하며 농담이 아니라 로고의 색깔이 틀렸기 때문에 떼어내야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직
원들은 "넥스트가 사용한 "팬텀매칭시스템(PMS) "색을 써서 다시 로고를 만들면 안됩니까"
라고 제의했다. 잡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로고를 만드는 사람은 규격대로 넥스트의 N
자를 "PMS웜 U"로 칠했고 "e"자는 "PMS옐로 109U"로 칠하는 등 넥스트의 모든 로고를 규
격색으로 통일시켜 다시 만들었다.
모든 비즈니스랜드 매장은 로고의 색규격 카드를발급받아 로고를 통일시켰다.
이런상황에서 나무때문에 숲을 보지 못한다는옛 격언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것이다. 이들은
나무 하나에 달려 있는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나무 껍질에 다 코를 누르고 있는 것이었
다.
"품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잡스의 업무방식에 익숙해진 넥스트 직원들도 때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큐브컴퓨터를 출하시켜야 할 때가 왔다. 그러나 넥스트의 마케팅 및
영업부서 사람들은 그들이 받은 주문을 프리 먼트에 있는 넥스트 공장이 전혀 출하할 수 없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잡 스가 애플에서 데리고 온 버트 커밍스과장이 큐브컴퓨터의 선
적을 책임지고있었다. 그는 공장에다 전화를 걸어 제품을 출하할 수 없는 이유를 알아본 결
과 부품 업자가 공급한 마그네슘 케이스에 페인트 칠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을 알게 되었다. "페인트에 거품이 있어요"라고 공장측은 말했다. "그래요, 얼마나 심각하죠"
라고 물으니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오랫동안 씨름을 한끝에 공장 측은 커밍스가 품질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면 제품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커밍스는 케이스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차를 타고 프리먼트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에
도착해서 알아본 결과 페인트 거품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고 돋보기를 가져와서 자세히
들여다 봐야 보이는 정도였다. 공장측은 자기들 마음대로 품질을 인증할 수 없고 회사의 엄
격한 품질 보증 시험을 통과해 야 제품을 출하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제품 시험시 45도 각도로 조명이 비춰져야 하는 등의 조명 상태와 관찰 거리까지
상세하게 매뉴얼에 규정해 놓았다. 커밍스는 규정된 관찰 거리에 서서 관찰 각도를 맞춘 다
음 시험을 통과한 제품과 통과하지 못한 제품을 비교 검토했지만 별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
다. 그런 후 그는 "좋아요. 만일고객이 돋보기를 통해서만 보이는 결함에 대해 불평한다면
몇달 후에 새 제품을 보내 주겠다고 말하지.
하지만 지금은 고객이 받아 볼 수 있도록 이것들을 우선 선적시킵시다"라고 재촉했다. 커
밍스는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일은 다해주면서 정말 중요한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한 넥스트
의 무능을 회상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89년 잡스는 사내 연수에서 "품질" 이라는 말을 "디프시트"라고 표현하면서 품질개선을 회
사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설정했다.(이 과제는 회사의 다른 문제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
다. 잡스는 시트(shit)라는 말을 특별한 경우에썼는데 한 예를 들면 그를 만족시키는 직원에
게 "당신은 똥(shit)을 금으로만들었군 하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잡스는 넥스트의 주요 공
급 업체인 모토롤러사가 종합 품질관리(TQM) 프로그램의 우수성으로 말콤 발드리즈 상을
수상한 다음부터 언론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을 보고 넥스트도 비슷한 프로그
램을 제정하여 그 상을타야겠다고 결심했다. 넥스트는 TQM의 전문가이면서 발드리즈상 심
사위원이 기도한 에바 첸을 고용하여 그 프로그램개발에 착수하도록 했다. 그녀는 선교사처
럼 품질은 제조 과정에서 단지 결함을 줄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내 모든 부서가 관심
을 가져야하는 문제임을 전파하며 다녔다.
언뜻 볼 때 넥스트가 가장 완벽한 종합 품질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미국의 데밍스와 주란에 의해 개발되고 일본의 대기업들이 시행하여 제도화된
TQM 제도는 80년대 거의 모든 경영 세미나의 중요한 토론 주제가 되었고 이 주제를 다룬
책들도 많이 발간되었다. 최고의품질이 아닌 것에 대하여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잡스가 미국에서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넥스트에서 TQM은 잡스가 임
의로 적용한 규칙들을 단지 공식화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첸과 넥스트의 여러부서
에서 선발된 11명은 TQM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TQM의 여러 조항과 잡스의 경영
방식이 여러 모로 상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TQM 담당자들은 회사의 사원급
직원들을 포함한 전원이 품질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잡스는 발드리즈
상만 받으면 된다는 입장이 었다. TQM담당자들은 모두 사업 분야를 다시 검토해 봐야겠다
고 주장했지 만, 잡스는 제품의 외형적인 심미성과 같이 자기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
분만 강조할 뿐 잠재 고객에 대한 연구등의 일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말했다.
작성일자 : 1995.06.1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85)
TQM담당자들은 경영진들이 새로운 정보를 얻고 피드백을 제공해야 한다고했지만 잡스는
자기가 듣고 싶은 의견만 선택해서 수용할 뿐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해
고시켰다.
넥스트의 중간 관리층과 일반 직원들은 이 TQM 프로그램이 장기적으로 볼때 넥스트를 그
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외부에서 들려오는 여러 부정적인 의견들이 지금까지는 경영진들 귀에까지 들어 가
지 못했지만 이 제도가 실시되면 잡스와 중역진들이 그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
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TQM담당자들은 직원들을 믿고 더 많은 권한을 줌으로써 장기적인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고 주장했지만 이런 주장은 잡스의 경영 방침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잡스는 일시적으로 반짝이는 물체에 시선이 잠시 집중되듯 TQM에 대한 관심도 오래 지속
되지는 못했다. 그는 반짝이는 또 다른 물체를 포착하자 마자 그 이전의 것을 모두 버렸다.
넥스트는 성장하기 위해 인간힘을 쓰는 신생 기업에 TQM프로그램의 시행이 과연 적합한지
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본보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설사 잡스가 TQM 규정들을 잘 따랐다고 가정해도 시행 과정에서 여러문제 들이 발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TQM을 제정하기 위해 많은 경비가 필요했고 여러 보고서가 작성되어야
했고 회의를여러번 개최해야 했다.
회사 기반이 튼튼해져 자금 지원을 쉽게 받을 수 있을때까지 TQM 실시를 보류할 지, 아
니면 TQM 자체를 회사의 기반을 디지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지 넥 스트에서는 TQM 프로
그램이 너무 일찍 사장되어 버렸기 때문에 알수 없게 되었다. 종합품질관리 계획을 실시하
는데 필요한 충분한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없게된 에바 첸은 넥스트를 떠났다. 그로 인해 넥
스트에서 짧게나마 추진되었던T QM 프로그램은 무산되고 말았다. 넥스트는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 이번 일을가 장 불안하게 생각했다.
첸은 넥스트를 그만두고 1년이 훨씬 지난 91년에 종합 품질관리에 대해 자신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기 위해 넥스트와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넥스트 변호사들은 그것에 대해 한마
디라도 하면 소송을걸겠다는 협박을 했다.(비록 넥스트에서 TQM 프로그램이 실패했지만
TSM, 즉종합 보안 관리 제도는 많은성과를 거두었다고 볼수 있다.)실제의 매출을 숨긴 채
잡스는 단편적인 내용만을 공개하여 사람들을 감질나게 만들었다.
그는 넥스트가 포천지가 선정한 5백대 기업 중 50여개 기업과적극적인 협상 을 벌이고 있
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다. 그는이번에는 미국 의 다른 기업들과 정면으로
맞서 보겠다고 말했지만 이 말은 작년에도 한 바있었다. 사람들이 큰 감명을 받은 것 같지
않으면 잡스는 태도를 조금 누그 러뜨려 비즈니스랜드가 넥스트를 위해 일을 잘해나가고 있
다고 말했다.
데이브 노먼도 나름대로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90년대 초 일년 안에 1억달러
상당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비즈니스랜드는 89년 마지막 4.4분
기에 겨우 컴퓨터 1백50대를 판매했지만 넥스 트 컴퓨터를 전담하는 판매 마케팅 기반구축
에 1백50만달러를 들였으며 그중 광고에 투입된 자금은 1백만 달러에 달했다.
다시말해서 비즈니스랜드는 컴퓨터 한대당 도매가보다 훨씬 많은 10만달러를 넥스트 컴퓨
터 판매 인프라 구축에 투입한 셈이 된다. 비즈니스랜드는 90년 마지막 4.4분기에는 지금보
다 20배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게 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계속 할 것이
라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했다.
비즈니스랜드는 감원을 단행하고 매출 목표를 늘리는 것으로 악화 일로에 있는 재정을 개
선하려 노력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영업 사원들에게 한달 할당량을 정해 주어 15만달러
에서 17만5천달러 상당의 매출을 올리도록 했다.
그러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성능면에서 모두 뒤떨어진 넥스트 컴퓨터를 상장가대로 판
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작성일자 : 1995.06.14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86)
값비싼 넥스트컴퓨터를 팔기 위해서는 몇 개월 동안 고객에게 판촉 활동을 해야 했으며 기
계를 특별히 평가해 보도록 하는 절차를 겪어야 했지만 거절 당하기 일쑤였다.
수락한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한대 내지 두대 만을 구입했다. 이렇게 해서는월별 할당량을
도저히채울 수 없었다. 하지만 1월19일까지 그해의 쿼터를 모두 소화시킨 신화적인경험을
가진 로스 페로에게 그것은 문제가 아닌 것처럼보였다. 그는 넥스트매니저에게 "비즈니스랜
드 영업 사원들에게 부담스러운 할당량을 주는 대신한달에 한대만을 팔도록 장려해 보시오"
라는 충고를 했다. 그는 이 문제가 숫자상의 문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넥스트 또한 페로
의 충고대로 영업사원 한명당 컴퓨터 한대를 할당했다. 그러나 이 인센티브도 그전의 정책
만큼이나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공개된 바와는 반대로 잡스는 비즈니스랜드에 대해 큰 불만을 가졌다. 비즈니스랜드 덕분
에 기업에 대한 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었다고 한 잡스의 말은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던
허상에 불과했다. 90년 봄 다음 분기 넥스트 큐브 컴퓨터의 예상 판매량을 발표한 비즈니스
랜드의 지역별 부사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잡스는 크게 노여워 했다. 판매예상수치는 적절히
설정되었지만 그 집계를 본 잡스는 격노하여 책상을 두드리며 말다. "그 정도 밖에 못한다
면 다 집어치워." 노먼 또한 잡스만큼이나 비현실적이어서 넥스트만을 전담하는 팀을 만들
도록 승인했고 그 팀은 정해진 월별 쿼터를 채워야 하는 압박감에서 해방되도록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넥스트 매출 을 올리기 위해 인력을 더
투입하면 할수록 컴퓨터 업계에 몰아닥친 치열한 가격경쟁에서 주요 제품의 판매망을 살릴
수 있는 기회는 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비즈니스랜드는 전체적으로 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넥스트는 신기할 정도로 시장에서의 고전을 숨길 수 있었다. 컴퓨터 업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판매예측을 제공하는 시장조사회사인 인터내셔널 데이터사는 넥스트의 총 수
입은 고등교육기관에 이루어진 매출까지 포함 하면 90년에는 7천4백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보
고했다. 그러나 그 집계조차도 과장된 것이었다. 일년후 회사자체 내에서 보고된 수치에 의
하면 넥스트의 총 수입은 그해 2천8백만달러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총 수입은 27억6천만달러였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는 89년 SPARC스테이션을 발표할 당시의 적자를 딛고 일년만에 매출
이 치솟기 시작했고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어 전년도에 비해 주가가 2배로 폭등하게 되었다.
선사는 넥스트와 비즈니스랜드가 접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제품시장에 깊숙이 침투했
을 뿐 아니라 엔지니어링 및 과학 관련업계를 뛰어 넘어 노스 웨스트 항공사, 나이키 및 미
쓰비시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주문을 받았다. 제록스사는 2억달러 상당의 선 워크스테
이션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이례적인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PARC에서 첫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하는데 참여한 제록스사는 워크스테이션의 대량 구매자
로 변한 것이었다. 매출의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선사의 맥닐리 시장은 영업 사원들이 50
만달러 이하의 매출에 대해서는 시간을 많이투자하지 못하도록 했다. 넥스트의 기계를 구입
한 소수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넥스트 소프트웨어에 대한 애착을 갖도록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선사 는 점점 더 생기를 갖게 되어 1990년에는 선 컴퓨터에서 운영될 수 있는 소프
트웨어 프로그램이 무려 2천여가지나 된다고 발표했다.
1990년 7월 뉴욕 몽고메리 증권의 증권 분석가인 데레사 리우는 "회사를 진정으로 사랑하
는 것은 어렵지만 선사를 보면 한 걸음 뒤로 물러 서서 감탄사 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것
입니다"라고 말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즈뿐 아니라 IBM, 디지털이퀴프먼트 그리고 휴렛 패커 드사와 같은 경
쟁사들의 폭발적인 성장은 넥스트가 대학 이외에 시장을 큐브 컴퓨터로 공략하려 하는 동
안, 또 뒤늦게 다른 컴퓨터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동안 넥스트의 입지는 점점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넥스트가 개인용 컴퓨터를 주요 사업으로 채택했다 하더라도 많은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만일 세계가 변하지 않고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비교적 느린 속 도로변화해 나갔다면 넥스
트는 과오를 수정하여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을것이다. 또 넥스트가 자금 조달을 제
대로 하지 못했더라면 벌써 파산하여 존재조차 없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에는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넥스트는 계속 생존 해 나갔으며
항상 대중들 앞에서는 낙관적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넥스트의 한 전직 직원은 자신과 회사
동료들이 넥스트가 성공할지 또는 실패할지를알리는 하늘은 징표를 항상 기다려왔지만 하늘
은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고 옛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넥스트는 경주를 계속해 나
갔지만 다리 하나 잃은 강아지와 같아서 계속 달릴 수는 있어도이길 승산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작성일자 : 1995.06.16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87)
"첫 인상은 두번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격언은 오래된 것이긴 해도 첨단
기술이 위용을 떨치는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진실이다.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은 88년 넥스트
가 큐브컴퓨터를 발표할 당시 세인들의 주목을 끌며 넥스트컴퓨터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
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품 이 우수하여 세인들의 주목을 마땅히 받을 수 있는데도 두
번째는 첫번째 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넥스트는 "랩9"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제2
세대 컴퓨터를 첫번째 것보다 훨씬 우수한 것으로 만들려 했었다. 이 새로운 제품은 큐브컴
퓨터보다 마땅히 사람들의 호평을 더 많이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잡스는 88년 받았던 각광을 재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는 90년에도 88 년의 제품발
표회와 같은 화려한 무대를 준비했다. 첫 제품발표회를 개최한 지 2년후 같은 장소인 데이
비스 심포니홀에서 업계와 넥스트 직원 그리고 초청인사를 모아놓고 그는 거창한 발표회를
가질 것을 꿈꾸고 있었다. 발표회 바로 전날 잡스는 큐브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록 뮤지션
의 대부 그래햄 내시와 로스 페로를 만찬회에 초대했다.
이 두 사람을 함께 참석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한 컴퓨터계 기자는 잡스에게 격찬을 보냈
다. "우드스톡계의 베테랑과 대자본가를 한 테이블에 앉힐 수 있는 사람이라면 비록 그 사
람이 전세계를 흔들어놓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충분히 인정할 것이다." 그
는 잡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잡스가 무미건조한 컴퓨터업계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는 말을
하며 IBM과 디지털 이 퀴프먼트사는 계속 재미없는 신제품만을 발표한다고 했다.
이 말은 그러나 잡스의 의도를 잘못 짚은 것이었다. 잡스는 사람들에게 여흥 을 베풀려고
만찬회를 연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제패하여 그의 경쟁상대조차도 불가능하다고 한 것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을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데이비스 홀에서의 두번째 발표회에서
는 록 콘서트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앰프처럼 생긴 4개의 검은 장비들이 무대위에 놓여
있었다. 장내의 조명은 어두웠고 잡스는 긴 머리를 뒤로 살짝 넘긴채 말쑥한 차림으로 무대
옆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는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넥스트의 미래입니다" 라고
하며 성공을 장담했다.
잡스는 이번에 꼭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행사에서 좀더 겸손한 태도를 취하
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당초 첫 큐브컴퓨터에 대해서는직원들에게 결함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었다. 광디스크와 같은 첨단기술을 시장이 아직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
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90 년 제품발표회에서는 넥스트의 단점을 인정했다. 넥스트
큐브컴퓨터는 너무느리고 값이 비싸며 색상 및 소프트웨어도 다양하지 않았다는 것을 솔직
히시인했다. 그러나 그는 낙관적인 태도를 취하며 모든 문제점들이 해결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넥스트에 공급되는 모토롤러사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더 많은 기능을 갖추었다. 넥스
트스테이션이라고 하는 보다 얇고 새롭게 디자인된모델의 개발로 소비자들은 그전의 넥스트
컴퓨터의 절반가격으로 흑백모니터의 넥스트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델의 주요부분은 그전해 발표된 선마이크로시스템즈사의 SPARC스테이션 처럼 피자
상자와 비슷하게 생겼다.(잡스는 선을 흉내내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그 부분을
피자상자로 부르지 말고 슬라브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돈을 더 내면 소비자들은 컬러
모니터를 살 수 있을 것이고 그것보다 돈을 조금 더 내면 향상된 컬러버전을 살 수 있을 것
이다. 이런 기능은 특수압축된 칩과 함께 큐브컴퓨터안에 내장되어 그래픽.비디오 또는 사운
드 파일을 사용하여 작업할 때 신속하게 처리를 해줄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무대에 선 잡스는 확신에 차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새로 개발된 제품
은 사실 발표할 준비가 채 되지 않았다. 모토롤러는 예정보다 늦게 새 마이크로프로세서개
발을 완료했기 때문에 잡스가 9월에 제품발표회 를 개최할 당시 버그없는 칩을 거의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잡스는 새 컴퓨터 모두 기존 칩이 아닌 새칩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거짓말로 답해야 했다.
새 컴퓨터가 무대위에서 시연되는 동안 청중들과 기자들이 보이지 않게 안전 을 위한 네트
의 지원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시연회가시작되기 바로 며칠전 한 넥스트스테이션에서 돌이
킬 수 없는 오차가 발생했다. 그래서 무대밑에구멍을 만들어 잡스가 사용하는 모니터와 사
람들이 볼수 없는 곳에 설치된큐브컴퓨터를 케이블로 연결시켰다. 또 실수에 대비하기 위해
무대위에 있는컴퓨터와 연결된 컴퓨터앞에는 넥스트 엔지니어들이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잡스는무대위에서 시연을 시작하려할 때 순간적으로스크린 로킹 프로그램을 먼저 풀어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
다행히 무대 뒤,보이지 않는 곳에서 잡스의 컴퓨터와 연결된 엔지니어가 "K ill-9" 유닉스
명령어를 잡스가 컴퓨터를 켜기 바로 전에 입력하여 큰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잡
스는 그날 너무 태연하게 공연을 했다. 그 시스템의 신뢰성을 강조하기 위해 잡스는 시연
내내 "-이렇게 잘 작동합니다 "라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는 그 말을 아주 확신있게 했기 때
문에 사람들은 잡스 자신도일이 너무 순조롭게 풀려서 놀라지 않았나 생각할 정도였다.
모토롤러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납기일을 지키지 못해 흑백모니터 넥스트 컴퓨터버전은 제
품 발표회가 개최된 후 6주 뒤에야 선적될 수 있었다. 첫번째 저급넥스트 컴퓨터 버전은 다
음해 3월에 선적되었고 고급 버전은 5월말, 즉8 개월 후에야 선적되었다. 그 당시 1만4천달
러나 되는 고급 컬러 컴퓨터를 산사람들은 외주 업체가 제때 칩을 공급하지 못해 컴프레션
칩이 내장될 자리만을 남긴 채 조립된 컴퓨터를 구입해야 했다.
그러나 비싼 돈을 들여 컴퓨터를 구입한 사람들은 나중에 컴프레션 칩 개발을 맡은 모토롤
러가 개발프로젝트를 완전 포기했고, 넥스트도 고속 컴프레션 을 탑재하여 컴퓨터를 재조립
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엄격히 말하자면 외주 업
체가 개발한 칩의 디자인에 결함 이 많은 것은 넥스트의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넥스트는 약
속한 기능을 갖추지 못한 채 성급히 물건을 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작성일자 : 1995.06.21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88)
모토롤러 칩을 사용하여 만든 새 컴퓨터를 발표할 당시 잡스는 모토롤러가 버그를 마지막
까지 다 퇴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위험한 기대를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결국 어
긋났다. 넥스트는 모토롤러 칩을 이용하면 일 년안에 애플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컴프레션 칩은 결국 개발되지 못했고 넥스트의 고급 컬러 컴퓨터를 구
입한 가장 충실 한 고객들이 그 손해를 봐야 했다. 손해 보상을 해줘도 거짓 약속에 속았다
는 배신감 때문에 고객들사이에서 신용을 회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속도가 빠른 RISC기술을 중심으로 설계된 선 워크스테이션에 비해 넥스트 컴퓨터의 속도
는 너무 느렸다. 그러나 같은 제품군에 해당되는 모토롤러사의 칩을 탑재하여 만든 애플 매
킨토시와 비교해 볼 때 넥스트 컴퓨터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경쟁적 우위를 지킬 수 있
었다. 애플사가 뒤늦게 넥스트가 사용한 똑같은 모토롤러 칩을 사용하여 매킨토시 쿼드라를
발표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고 가격도 넥스트 저급 컬러 컴퓨터보다도 더 비쌌다.
넥스트의 저급제품도 결코 싼 가격이 아닌 8천달러였다. 매킨토시중에서 가장 비싼 이번버
전이 넥스트와 비교해 볼때 유일하게 갖게 될 장점은 수천개에 달하는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모두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넥스트는 디자인상 모든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운용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잡스는 눈이 굉장히 높았다. 그는 역사속에 길이 남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 했고 그런
제품을 만드는데 평범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매킨토시 소프트웨어가 한창 개발되고 있을 때 IBM호환 소프트웨어만큼 흔한 것이라
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잡스는 다른 기종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존의 소프트웨어를 채
용하여 신제품을 개발하자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자 들의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잡스는 넥스트컴퓨터만을 위해 개발한 프로그램을 사용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개발업자가 전용프로그램을 갖다 줘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새로 개발한 프로그
램을 보이러 가면 그는 한마디로거절하곤 했었다. 그는 "그건 쓰레기야"라는 저속한 표현을
쓰곤 했다. 그는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오히려 넥스트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 정도를 벗어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들면 잡스는 매킨토시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개발한 주요 소프
트웨어업체중 하나인 시맨택사의 이사진에게 "우리는 당신들에게 우리 프로그램 개발을 맡
기는 일을 검토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시맨택사의 임원들은 혹시 잘못 들은게 아닌가 하고 서로를 쳐다보며 "뭐라
고 하셨죠"라고 되물었다. 이처럼 잡스는 누가 누구에게 경우를지켜야 하는지를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거만했다. 시맨택사는 매킨토시.볼랜드 및 기타 다른 큰 소프트웨어 회사들처럼
잡스의 거만함을 묵인했다.
지금까지 이룩한 단편적인 성공에 도취되어 잡스는 "획기적인 애플리케이션" 이 아닌 것은
모두 거절했다. 즉 다른 컴퓨터에서는 운영이 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또는 프
로그램)이지만 그 성능이 탁월해서 사람들이 그 애플리케이션 하나 때문에 새 컴퓨터를 마
다않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애플리 케이션은 획기적인 제품이어야 했다.
과거 이런 사례들은 몇번 찾아볼 수 있었다. 비시칼 스프레드시트가 개발된 후 애플Ⅱ가
성공할 수 있었고 보다 강력한 로터스의 스프레드시트1-2-3이 개발된 후 IBM 퍼스널컴퓨터
가 성공할 수 있었으며 페이지메이커 데스크톱출판 프로그램의등장으로 매킨토시가 고등교
육기관 이외의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잡스는 넥스트를 그렇게 성공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대했고 1990년 넥스트가 새로운
버전을 발표할 때 잡스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임프루브"라고
불리는 새 버전은 앞서 언급한 3개 프로그램 중 2개처럼 기존의 것보다 한 차원 높은 스프
레드시트였다. 더욱이 그 프로그램 의 기본은 로터스 1-2-3이었다. 임프루브는 역사 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것처럼 보였다. 잡스는 이 프로그램은 마치 원자폭탄과 같아서 사람들이
그것을 보자 마자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88년 10월부터 잡스는 로터스가 넥스트를 위해 임프루브를 개발하도록 설득해왔고 선택
된 소수만이 넥스트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은연 중에강조했다. 로터스가 스프레드시
트 프로그램을 새로 개발한다는 소식을 잡스가 들었을때는 이미 개발이 한창 진행 되고 있
을 때였고, 그 프로그램은 IBM 및 마 이크로소프트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OS/2라고
하는 시스템위에서 운용될수 있도록 작성되고 있었다. 임프루브는 1-2-3을 개량한 버전으로
개발 되지 않았다.
위치를 가리키는 포인터로 문자와 숫자를 혼합 사용하는 다른경쟁사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
로 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스프레드시트는 스크린을 행과 열로 나눈다. 가로 행에
는 알파벳 문자를 사용하고 세로 열에는 숫자를 기입한다. 임프루브는 영어 라벨만을 사용
하여 공식을 만들었다. 수입-지출-이윤. 이런 공식은 또 특정 박스에만 해당되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숫자를 쉽게 조정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공식은 아무런영향을 받지 않는다. 기존의
스프레드시트 에는 이런 기능이 없었다.
작성일자 : 1995.06.23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89)
로터스가 새로 개발한 이 소프트웨어는 잡스의 버전과 맞아 떨어졌다. 로터스사의 소프트
웨어 개발자들은 넥스트가 객체지향형 소프트웨어 개발 툴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로터스의 임원들은 또 OS/2의 차세대 스프레드시트개발사업을 계속 추진 시키면 로터스가
가장 싫어하는 경쟁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사만 유리하게 될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로터스사를 제치고 퍼스 널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계의 선두자리를 차지
하게 되었다. 로터스가 넥스트 를 위해 일한다면 빌 게이츠를 다시 앞지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로터스는 빌 게이츠가 넥스트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지 않겠다
고말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다른사람들이 주저하고 있는 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매킨 토시 소프트
웨어를 개발, 크게 성공해서 이제는 아쉬울 것이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이번기회는 로터스에
매우 중요했다. 로터스는 까다롭게 굴면서 매킨토 시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너무 일찍 발을
뺀것을 크게 후회했다. 로터스는 실책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그들도 다
시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넥스트 또한 로터스가 안고 있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로터 스의 주 수입
원인 스프레드시트 1-2-3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개량된 스프 레드시트를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로터스의 자본규모는 4억7천만 달러였지만 히트한 제품은 하나밖에 없었
다. 제품을 다양화시키려는 노력을 여러번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1-2-3에만 의존하는
회사가 되었다. 만일 임프루브가 기존의 메인스트림 컴퓨터 표준에 맞도록 개발되고 그 결
과성공한다면 그것은 결국 1-2-3의 시장을 잠식하여 성공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임프루브가 넥스트상에서만 운영되고 넥스트에서 1-2-3이 운용될 수없게 하면 시장
잠식의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될것이다. 로터스는 고객들에게 서로 다른 스프레드시트중 어
느것을 구입해야 하는지와 같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넥스트는 로터스에 1-2-3을
보호하면서 프로토타입을 실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이번 전략은 쉽게 결정된 것은 아니다. 로터스는 4개월여동안 세밀히 검토한 후 스
프레드시트를 넥스트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 소식을 들은 잡스는 대단히 흥분했다. 그는 3
피트나 되는 화환을 보냈고 로터스가 새로 개발하는 이번 스프레드시트가 넥스트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넥 스트의 옳은 판단을 입증할 수 있는 트로피와 같은 역할을 할
수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트로피를 넥스트 소프트웨어 개발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개발업자들에게자랑
할 수 있을 것이다. 잡스는 "로터스가 우리를위해 기꺼이 일한 다는데 다른말이 더 필요합
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잡스는 새 컴퓨터를 소개하는 제품 발표회 행사에 로터스가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사람
들은그것을 보고 넥스트가 가지고 있던 소프트웨어상의 문제들 이 모두 해결된것 같은 인상
을받게 되었다. 워드퍼펙트도 넥스트상에서 시연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외교적 수완도 발휘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겸손함
을보였다.
그는 연설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왜 넥스트를 선택했는가? 왜 새 스프레드시트를개발
했는가? 그리고 빌 게이츠라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했다. 짐 만지는시간
이 부족하기 때문에 세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왜넥스트
를 선택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신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다.
넥스트가 그 어느때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잡스는 또다른
사실을 들려줌으로써 그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이름을 밝힐수는 없지만 대기업들은 이제품
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1만5천대의 주문을 받았고 이 주문은 가상의주
문이 아니라 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모두 놀라운 표정으로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대체로 사람들은 한번 믿으면 계속 믿어버리는 경향이 없지 않다.
제품발표회 행사를 마친후 초대된 고객들은 넥스트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의 부스가 설치
된로비로 안내되었다. 그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은 개발업자들로 여러 업체와 거래할 수 없
는형편이었다. 넥스트가 성공하든지 아니면 실패 하든지 선택권은 둘 중 하나였다. 그들은
여기에서 실패하면 의존할 수 있는다른 소프트웨어제품을 갖고 있지 않았다.
작성일자 : 1995.06.26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0)
그들에게 90년 거의 7억달러규모에 이른 로터스사의 기존 사업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요원
하게만 느껴졌다. 이들은 또 실리콘 밸리 또는 보스톤이 아닌 지역에서 왔다.
뉴 요커의 커버에 나온 사울 스타인버그의 유명안 미국 지도에맨하턴만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는것처럼 사람들은 흔히 실리콘 밸리라는 그이름 자체 때문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다. 실
리콘 밸리에서는 막강한 (hot)이라는 말을 많이사용했고 실리콘 밸리를 모든 사고의 중심에
\ 놓았다.
캘리포니아는 막강한 주였고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실리콘 밸리는 가장 막강한도시였으
며 그 중에서도 그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넥스트는가장 막강한 회사인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넥스트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의 부스를 보면 실리콘 밸리만이 컴퓨터의 중심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전자제품의본격적인 생산으로 업체 들은 여러곳에 확산되어 공
장을 설립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비슷한 업종들 끼리 한곳에 모여 자리를 잡을 수 밖에 없
었다. 자동차 관련 산업을 경영하려 면 아주 작은 부품업체라도 디트로이트 근처에 자리를
잡아야 했고, 철강업 을 피츠버그 또는 개리로 모여야 했다.
그러나 컴퓨터 업계의 활동영역은 널리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컴퓨터의 기본적인 틀들은
가볍기 때문에 운송이 쉬웠고 여러지역간의 통신은 신속하고 도 저렴하게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넥스트와 연계된 대부분의 개발업체들 은 여기저기흩어져 있었다. 뉴 멕시코 알부퀘
크, 캔사스 위치타, 오클라호마오클라호마시티 아이오와 페어필드, 미시간 입사란티, 일리노
이스 찰스톤, 테네시 크로스빌, 메리랜드 체비 체이스, 플로리다주 탑파시와 같이 여러 군데
분포해있었다.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업체들은 대부분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로서 IBM 호
환 PC나 매킨토시와 같이 경쟁이 치열한 부분을 피해가고 있는사람들이였다. 경험있는 사
람들은 넥스트와 같은 신규 소프트웨어분야에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하려하지 않았다.
넥스트를 선택한 사람들은 매킨토시를선호하는 사람들의 보수적 태도를 보고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90년 늦여름넥스트 유저 저널의 편집을 담당하던 에리카 리브만이 메킨토시 소
프트 개발업체들이 모인 자리에서 넥스트를 홍보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만 결국 아무 소
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특정 가격에 일정한 물량의 컴퓨터를 팔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요구를 했고 일년
에 최소한 50만달러 상당의 매출을 보장하라고 요구 했지만 그녀는 그런 보장을 해줄 수 없
었다. 그러자 "그래요 그러면 우리는 그런 기계를 위해 개발 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며 남들
도 하지 않을 것이요"라고 그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리브만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들이 1984년에 모험을 기꺼이 감수한 사람들이
였다. 그녀는 "어디서 개척자를 찾을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자문 했다. 1990년 9월 데
이비스 홀 제품 발표회때 출품했던 중소 소프트 웨어 회사들은 남들이 투자를 회피하는 곳
에 과감히 뛰어 듦으로써 승부를 걸고자 했던것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와줬던 퍼스널 컴퓨터의 역사에서 큰 힘을 얻었다. 성공한 소
프트웨어 개발자인 앨란 쿠퍼는 어떤 컴퓨터 표준을택할지 고민하다가 새로 등장한 표준을
"형평성을 갖게 해주는 위대한 도구" 라고 묘사하여 큰 소프트웨어 회사들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중소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경쟁이 없는 분야에서 하고 싶
은데로 할수 있을 것이다." 쿠퍼는 자기도 마이크로소프트나 로터스처럼 성공할수 있는 "기
회"가 올것이라고 생각했다.
쿠퍼는 1989년에 이런 말을 했었지만 그 당시 넥스트를 염두해두고 말한 것은 아니였다.
몇년 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가 이 작은 회사에게 새 애플 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았지만 그 때도 "대기업과 형평 성을 갖게해준"효과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것은 환상에 불과 했다. 윈도즈 애플리케이션을 가장 많이 판매했던 회사는 다름 아닌
마이크로소프트사 자신이였고 그만큼 작은 개발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갔
다. 그러나 "형평성의 원칙"이 타당해 보이는 1990년에도 제품이 발표되기전 넥스트에 투
자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은 그들의 투자 결정에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성일자 : 1995.06.28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0)
데이비스 홀에서의 호화로운 시연회가 성공리에 마쳐졌음에도 불구하고 로터스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임프루브"는 잡스의 새 컴퓨터 출하에 맞춰 시판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임프루브는 발표회 5개월 후에야 시판될 수 있었다. 시판이 미뤄지는 동안 애시턴-데이트
는 잡스가 로터스 제품만을 선호하여 넥스트 컴퓨터를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이 제품을 무료
로 증정할 것이라는얘기를 듣고 개발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로터스의 "임프루브"와 비교하
면 자사의 스프레드시트는 너무 특징없었고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2년 후 그 회사는 보어
랜드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되돌아 보면 애시턴-데이트는 너무 성급하게 스프레드시트 개발
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터스가 임프루브를 발표하자 대부분의 잠재 고객들은 그
제품을 외면했다. 기술적인 결함때문이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은 잡스와 로터스가 약속한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시장이 거대한
변혁보다는 안정적인 발전을 원했던 데 있다. 임프루브는 기존 스프레드시트 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능이 달랐기 때문에 그 이점을 설명하기가 쉽지않았다. 임프루브의 마케팅
매니저인 제프 앤더 홀름은 그 제품의 특징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껏해
야 "직접 프로그램을 실행해 보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애석해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은결국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91년 넥스트가 지금까지 무료로 임프루브를 나눠주던 것을 그만두자 임프 루브는 홀로서
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임프루브의 매출은 계속 부진을 면치못했다. (애시턴-데이트가 임프
루브 때문에 제품 개발을 포기하고 몇년이 지난 후 예전에 애시턴-데이트가 개발했던 스프
레드시트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던 것은 아이러니이다.) 임프루브를 기꺼이 구입하려고
했던 기업 고객들도 임프루브 이외에 다른 소프트웨어를 더 필요로 했다. 기업들에 스프레
드시트 하나만을 사용하기 위해 초급 수준의 넥스트 스테이션을 5천달러나 들여 사도록 하
는 것은 지나친 요구가 아닐 수 없었다. 위성 궤도를 측정할 수 있는
새틀라이트 툴키트와 같은 다른 소프트웨어들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넥스트
소프트웨어 판매 책임자였던 데이비드 그래디는 "그 프로그램은 항공 계통 또는 정부 기관
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들의 관심만을 모을 워드프로세서보다도 더 수요가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물론 위성-트레킹 프로그램, 분자 모델 프로그램 또는 의료 트렌스 크립션 프로
그램과 같은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새 스프레드시트도 또한 필요 없었다. 그들은 넥스
트상에서는 운용되지 않는 1.2.3이나 빌 게이츠 가 넥스트 상에서 운용될 수 있도록 재작성
하자는 요구를 거절했던 마이크로 소프트 프로그램, 즉 1.2.3의 경쟁 제품을 원했던 것이다.
잡스는 그 중간급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개발업체가 그런 제의를 할 때마다 냉소
적인 반응만을 보였다.
잠재 기업 고객들은 넥스트의 기존 고객들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넥스트의 거대한 컴퓨터
네트워크가 설치된 곳을 가보고 싶어 했다. 그들은 비즈니스 랜드 영업 사원들에게 넥스트
시스템이 이미 설치된 곳을 가볼 수 있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윌리엄 모리스 에
이전시에 설치된 넥스트컴퓨터가 사람들의 호평을 많이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컴퓨터 매출이 적다고 넥스트 이사진들로부터 계속 질책을 당해온 비즈니스랜드 영업
사원 들도 비즈니스랜드가 자주 받았던 질문들을 넥스트 이사들에게 했다." 넥스 트가 직접
담당하는 정부 또는 고등 교육기관 중 어느 곳에 가장 매출이 높습니까? 라고. 세일즈 담당
책임자는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함부로 누설할 수 없는 거래 내역(그것도 성사되지
않고 아직 진행 중에 있는 거래) 에 대해 얘기 하며 시간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들이 기업들의 관심을 넥스트 쪽으로 돌리려는 비즈니스랜드의 노력을 상당히 약
화시켰다. 1990년 가을 제2세대 넥스트 컴퓨터의 발표가 비즈니스랜드 영업 사원들의 저하
된 사기를 다시 북돋워줬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잡스는 신제품과 함께 그 신제
품에 수반되어야 할 마케팅 전략 을 새로 만들어냈다. 그 전해만 해도 잡스의 눈에 "영웅"으
로 비춰졌던 비즈니스랜드는 더 이상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지 못했다.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1)
비지니스랜드는 기업 시장에 대한 독점권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속도가 더 빨라진 신제품
의 등장으로 하루아침에 구식 기계가 되어 버린 넥스트 큐브 컴퓨터의 재고를 혼자서 처리
해야 했다. 속도가 더 빨라진 신제품이 나오면 제조업체는 아직 팔리지 않았거나 창고에 쌓
여있는 제품에 대해서 소매업체 에 할인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다. 그러나
넥스트는 계약 초기부터 비즈니스랜드를 보호할 수 있는 그런 조건들을 포함시키지 않았으
며비즈니스랜드가 속도가 빨라진 모토롤러 칩으로 교체하고 싶으면 정가대로 가격을 지불해
야 한다고 말했다. 별다른 대안이 없는 비즈니스랜드는 넥스트 큐브 컴퓨터에 대한 투자액
을 최대한 회수하기 위해 대폭적인 할인가격으로 넥스트를 판매했다. 비즈니스랜드는 흔들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즈니스랜드는 흔들거리는 사업을 다시 살리지 못했다. 넥스트와의 거래 성립을 거창하게
발표하고난 2년후 비즈니스랜드라는 거인은 헐값으로 JWP라는 대기업에 넘어갔다. 그러나
JWP도 비즈니스랜드를 인수한 후에야 비즈니스랜드의 실제 가치가 숫자적으로 조작되었다
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막대한재정적 피해를 입고난 후였다. 현대기업의 역사에서 수십
억달러 상당의 이윤 을 남기던 비즈니스랜드의 파산은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비즈니스랜드가 파산한 후 그 원인을 규명한 보고서에는 넥스트와의 관계가 여러
원인중 일부분만을 차지한다고 언급되었다. 사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 것은 비
즈니스 랜드가 컴퓨터 소매업의 환경이 변화되고 있다는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점이다.
고객들은 퍼스널 컴퓨터에 점점 더 익숙해져가고 있었으며 손의 조작을 덜어주는 기계를
선호하면서도 가격에 굉장히민감하게 반응하여 비즈니스랜드가제시하는 제품을 사는데도 되
도록이면 가격을 낮추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사실 비즈니스랜드의 파산은 잡스와넥스
트때문에 변화하는 조류를 신속 하게 파악하지 못하여 결국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을수 있다.
되돌아보면 비즈니스랜드는 치명적일 정도로 타이밍을 못 맞췄다는 것을 알수 있다. 컴퓨
터 소매업의 가격질서가 흔들리고 기존의 고가 컴퓨터도 판매 에 고전하고 있을때 능숙한
딜러들도 신중해야 할 시점에서 비즈니스랜드는가격이 비싸고 실험되지도 않았으며 높은 초
기 투자를 요구하는 넥스트컴퓨 터를 선택했던 것이다. 사람들은넥스트 제품이 비즈니스랜
드의 파산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것이다.
비즈니스랜드가망하기 오래 전부터 잡스와 넥스트는 회사의 마케팅전략을 바꿨다. (넥스트
에 있던 익살꾼들은 전략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오늘은 일을 어떻게 해야하지?"라고 묻곤
했다). 전략은 비즈니스랜드라는 거구를 쫓아 버리고 백여개에 달하는 독립 컴퓨터 딜러들
을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전환 되었다. 이 딜러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었는데 저마다 전문분
야가 있어서 그분야에 해당되는 제품의 판매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독점권을 부여해 준다는
것이었다. 소규모 딜러들은 주로 중소기업을 상대로 컴퓨터를 판매했고 넥스트본사는대기업
을 상대로 자체 영업팀을 파견하여 관리했다.
넥스트는 딜러들에게 넥스트의 텔레마케팅 부서에는 일주일에 1천여건의 문의가 접수되는
데 고객이 10대 미만의 제품을 원하는 경우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소규모 거래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항상 그랬듯이 파트너 가 아닌 넥스트가 모
든 결정을 내렸다. 잡스는 이런 거래들을 작은 딜러들에 게 넘겼던 것이다.
잡스는 자신의 집에서 몇 블럭 떨어진 팔로 알토 시내에서 본점을 운영하고 있는 컴퓨터
애틱이라는 딜러를 제일 먼저 끌어드렸다. 그 매장은 젊고 모험 심 있는 4명이 함께 소유하
고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은 처음에 매장도 없이마즈다 트렁크에 물건을 싣고 다니며 팔았
다.
그러다가 이층에 있는 사무실을 임대하여 장사를 하던중 86년 애플 매킨토시 를 판매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들은 일이 잘 풀려 사무실도 이층 에서 일층으로 옮겼으며 나
중에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계속 사업을 번창시켜 나갔다. 91년 초에 이르러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의 연간 총 매출액은 2천만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컴퓨터 애틱과 같은 딜러들은 영업 사원들이 기술적으로 숙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번창할
수 있었다. 넥스트가 이런 개별적 딜러와 거래를 맺는 것을 보고 관측가들은 "부티크"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 애틱 넥스트와의 거래를 성사시킨 것을 축하하기 위해 자바스가 직접 보낸 편지에
는 "우리가 당신들을 선택한 이유는 당신들이 우리와 훌륭한 컴퓨터와 고객만족이라는 공동
사안에 관심을 두고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들어었다. 컴퓨터 애틱도 넥스트와 함께 일
할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해 있었다. 넥 스트의 재도약지점은 다름 아닌 바로 이곳이었
다. 실리콘 밸리의 중심지에 넥스트 본사 뒤뜰에서, 그리고 잡스가 커피 마시러 자주 가는
카페의 맞은편 골목에서 넥스트는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컴퓨터 애틱과 넥스트는 곧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매출 상대인 부동산 중매 업체 알레인 핀
넬사를 만나는 행운을 안았다. 알레인 핀넬사는 주로 부자들 만 상대하는 중개 업체로 평범
한 다른 중개 업체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가장정교해 보이는 컴퓨터를 사기 원했다.
그 회사 대표는 헬렌 파스토리노라는30대 여성이었는데 그녀에게서는 실적이 좋은 영업 사
원 특유의 자신감과 박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작성일자 : 1995.07.03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2)
그녀는 기술적 지식을 구비하지 못했고 컴퓨터에도 별관심이 없었지만 어떤 댓가를 치르더
라도 불과 6개월 전에 1백80달러를 들여설치한 평범한 IBM 호환 퍼스널 네트워크를 다른
시스템으로 대체하기를 원했다.
당시 IBM 네트워크는 사용하기 불편 했고 세금을 많이 내야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일이든 빨리 결정하는 것을 좋아 했고 컴퓨터 애틱 은 지나치게 기술 지향적이
였기 때문에 그녀의 취향에 맞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녀는 직접 넥스트와 거래하기를 원했
지만 넥스트도 그녀의 의도를 제대 로 파악하지 못했다. 넥스트는 사람을 보내려면 적어도
3주가 걸린다고 통보 했다. 그리고 3주 후 알레인 핀넬사를 방문한 영업사원은 파스토리노
가 넥스트 컴퓨터의 대당 가격도 모르고 그녀가 원하는 크기의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적어도
4천달러가 들것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거래의 성립가능성 조차도 배제
했다. 파스토리노가 넥스트에는 자금을 지원해 주는 제도가 없냐는 질문을 하자(물론 없지
만) 넥스트에서 온 영업사원은 서류 가방을 성급히 닫아버리고 도망치다시피 했다.
파스토리노는 선사의 영업사원과도 만나 보았다. 선사의 영업 사원은 파스토 리노의 말을
좀더 신중하게 받아들여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윌리암 모리스 에이전
시에서 고객에게 현실적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경험을 한 아다메이션사의
스테판 아담스는 부동산 업체가 사용할 커스텀 소프트웨어는 선사나 기타 다른 컴퓨터 회사
보다 넥스트 컴퓨터 상에서 가장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타당성 있게 잘 설명해주었다. 또 파스토리노가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선사 기계로 만들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파스토리노는 지금 지원 같은 것을 필요로하지 않았다. 알레인 핀넬사 에서 파트너로
일하는 사람은 백만 장자였고 스티브 잡스 보다 훨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기를좋아 했다). 결국 그녀는 넥스 트가 베이 에리어에 넥스트 시스템을 설치한
곳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넥스트 기계에 투자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였다.
그녀는 작은 우물에서 큰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고 큰 고객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넥스트가 심혈을 기울여 문제를 해결해 줄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이
거래를 성사 시키는 조건으로 그녀는잡스 자신이 자기 회사를 담당하는 영업 사원이 되도록
요구를 했다. 그녀는거래가 성사된 후에도 잡스가 계속 돌봐줄것이라는 잡스의 개인적인 약
속을원했던 것이다.
넥스트에서 잡스와 영업 사원들과의 미팅이 주선되었다. 파스토리노는 그화 합에서 그동안
넥스트의 영업사원들과 상대 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잡스에게 털어 놨다. 그녀는 넥스
트의 영업 사원들이 돌아가는 상황을 잘 파악 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전했다는 얘기도 했다.
그 말을 하고 보니까 그녀가 그 당시 상대했던 영업 사원 몇명이 그 자리에 있었고 상당히
불쾌해 하고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잡스에게 둘이서만 얘기하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간 후 그녀는 얘기를 계속했다. 그녀는 넥스트의 성공 여부
에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에 그 만큼 위험 부담을 안고 참여하는 것이라 완전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넥스트의 기술력 이외에는 넥스트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잡 스는 회사를 망하게 하는 요인이 세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본, 기술 그리고 지도력의 결여라고 했다.
작성일자 : 1995.07.05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3)
그는 넥스트가 세가지를 다 갖추었다고 강조 했지만 파스토리노는 "재미 있군요 저는 넥스
트 처럼 자본도 지도력도 있고 비슷한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회사를 알고 있는데 그 회사는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라며 응수 했다. 그 회사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픽아르라는 회사로 망하지는 않았지만 영업 규모가 계속 줄어들어 겨우 명맥만 유지
해 나갈 정도로 작아진 회사였다. 파스토리노와 잡스 모두 이 회사를 잘 알고 있었기때문에
적절한 보기가 될 수 있었다.
파스토리노는 픽아르사가 한창 전성기를 누릴 때 그녀의 남편이 그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고 잡스는 그 회사를 조지 루카스에게서 매입했기 때문에잘 알고 있었다. 잡스
는 픽아르 또는 넥스트의 지도력를 변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부드러운 대화
를 유도해 가며 때때로 감정과 사업을 결부시켜서는 안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넥스트가 할인가격을 제시하는 대신 그 비밀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둘은 합의를 보게 되었
다. 파스토리노는 또 넥스트만이 제공할 수 있는 또 다른 조건을 받아냈다. 잡스는 파스토리
노가 로스 가토스에서 새 사무실을 개관하는 날 개관식에 직접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했던
것이다.
91년 넥스트는 알레인 핀넬사에 1백20여대의 컴퓨터를 설치해주었는데 그것이 그해 넥스트
가 기획한 최대 매출이었다. 넥스트는 매킨토시 붐이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넥스트는 특정시장에 집중적인 공략을 하지 않아도될 것이다. 생각지도 못하는 곳에 시장
이 형성될 것이고 그곳에서의 수요가 저절로 넥스트를 부를 것이라는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앞으로 부동산 업계가 유망한 마케팅분야가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잡스와
그의 마케팅 및 영업담당자들은 알레인 핀넬과 같은 미지의 시장을 개척하여 놀라운 판매를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레인 핀넬 리알리티 부동산 중계 대행사가 미국에서 가장 집값이 비싸 지
역에서 가장 고가의 주택만을 취급하는 특별한 고객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일반
부동산업체들은 컴퓨터와 같은 사무기기들을 구비해놓을 정도로 풍족한 예산을 갖지 못했
다. 그러나 넥스트는 한오라기의 희망이라도 움켜쥐려는 심정으로 알레인 핀넬과의 거래는
앞으로 무궁무진한 매출가능성을 가져다줄 것처럼 생각했다. 한번 판매를 개시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잘 풀릴 것이라고 믿었다.
넥스트는 아무것이나 가능하다는 말과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넥스트의 마케팅을 책임졌던 학자출신인 론 위스만은 91년 1월에 넥스트가 그해 고등학교를
공략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힘으로써 넥스트 가 얼마나 착각에 빠져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넥스트는 또 전례없이 정부기관을 상대로 영업활동에 주력했다. 넥스트는 정확한 숫자를
밝히지 않은채 DARPA 국방기술연구기관에 컴퓨터를 판매했고 한 연방기구로부터는 제품
을 수주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 기구는 극비에 해당되는 민감한 군사문제들을 다루기 때문
에 이들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로스 앤젤레스 군 보안관 사무소는 2년여간의 긴 협상끝
에 1백30대의 넥스트컴퓨터를 주문했고 근시일내에 2백내지 3백대를 더 구입할 계획이 있다
고 발표했다. 보안관 사무소와의 거래는 앤디 그리피트의 "메이베리"라는 무미건조한 텔리비
전 프로를 방영할뿐 포춘지 5백대 기업이 선정된 것과 같은 강한 인상 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넥스트의 홍보담당 대변인인 앨리슨 토머스는 LA경찰서에는 1만3천 여명이 일하고
있고 2천7백 평방 마일에 달하는 기업 밀집 지대에서 법을 집행하고 있으며 연 10억 달러가
넘는 예산을 쓰는 큰 시장이라고 말하며 최대한 좋은 면들만 지적하려 노력 했다.(이 말은
잡스가 초창기에 대학을 포춘5백대 기업을 맞먹는 시장이라고 지적한 말이 떠오르게 한다)
앞으로 누가 넥스트 컴퓨터에 구입할 것인지 걱정하지 않았던 잡스의 태도는 전례 없이 정
부 기관을 고객으로 확보함에 따라 정당화 되는 것 같았다. 기계만 만들면 고객은 저절로
찾아 오는 것이다.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넥스트의 손아귀에 들어 오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넥스트는 결
국 고등 교육 기관및 비즈니스랜드와 거래를 시작 했던 초창 기에는 유럽에 잘 알려지지 않
았다.
그러나 유럽에 뒤늦게 알려짐으로써 넥 스트는 오히려 더 많은 득을 보게 되었다. 넥스트
는 독일 하노버에서 개최된 CeBit 무역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유럽인들에게 소개되었는데 사
람들이 넥스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넥스트는 실패한 과거 이미지를 극복하려고
애쓸 필요 없이 신선한 이미지로 유럽인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처음 부터 다시 시작하여 데이비스 홀에서의 첫 제품 발표회 때 받았던 신선한 관심을 모
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약 5천명이 참가한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CeBit 박람회에서 넥스트는
이층에 있는 구석 자리에 부스를 설치 했지만 박람회가 개최된 7일 내내 사람들로 부터 가
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스티 브 잡스가 작년 가을에 발표한 새 넥스트 컴퓨터를 소개하는
비디오가 대형 스크린에 상영 되었고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러 몰려 들었다.
유럽 사람들은 가격이 비싸다고 투덜대지 않았다.
작성일자 : 1995.07.07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4)
유럽에서 넥스트 컴퓨터의평균 가격이 1만5천달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독일 사람들
은 케헬에있는 넥스트 딜러에게 어떻게 값 이렇게 저렴할 수있냐고 물었다. 넥스트는 곧 유
럽에서 1백여명의 딜러와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판매를 개시하는데1백만달러를 각각 투자하고 교육등을 지원할 뿐 아니라 재고에
대한 부담도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91년 7월에는 일본 어판 넥스트 운영 체용체계
가 완성되어 일본에서도 곧 판매가 개시될 것처럼보였다. 넥스트에 많은투자를 했고 일본에
서 넥스트의 독점 판매권을 가졌던 캐논사 가 넥스트와 상당한 마찰 가능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캐논사는넥스트의 가장 큰 경쟁업체인 매킨토시와 선 워크스테이션 제품
에 대한 판매 도 담당하고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 넥스트의 성공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 없
었다. 91년 첫3개월동안 넥스트 매출의 30%가 유럽과 일본에서 이루어졌고, 그 해 중순에는
50%로 그 비중이 늘어났다. 넥스트는 넥스트 컴퓨터의 기능 과 매력은 대단한 것이기 때문
에 지리적 경계선으로 없다고 자랑했다.
넥스트를 설치한 모든 사무실.학교.정부기관 그리고 모든 나라가 넥스트에대하여 가지고 있
던 환상은 생각보다 위험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론 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
는 것처럼 보이면서 새로 태어난 넥스트는기존 파트너와의 관계유지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넥스트는 이제 고등 학교와 어학코스기관에는 소홀해졌다. 따라서 영업 사원들은 더
이상 대학을 방문하지 않았고 학생중에서 파트타임으로 고용했던 "캠퍼스 컨설턴트"도 대폭
감원시켰다.
학생들은 시간당 7달러 내지 9달러를 받았는데 그것도 기숙사 방에서 큐브컴 퓨터를 시험
해볼 컴퓨터를 임대해야 했다. (속도가 느린 넥스트를 알리는 좋은 수단이 되지는 못했다.
잠재 고객들은 넥스트의 속도가너무 느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캠퍼스 컨설턴트들은 얼마
되지 않는 보수때문이 아니라 넥스 트가 주장하고 있는 객체 지향적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
지하고 있었기 때문에넥스트를 가장 열열히 지원해 주었다.
그들은 넥스트를 알리는 선교사의 역할을 했고 어떤 비용를 치르더라도 구할수 없는 충직
함을부였다. 그러나 캠퍼스에서의 부진한 매출에 불만족한 잡스 는 그들의 수를 대폭 줄여
나갔다.
고등교육 기관에서의 매출은 부진했다. 잡스가 개량된 신형컴퓨터를 선보였을 때 대학가에
서의 경쟁은 한풀 꺽인 후였다. 데이비스 홀에서의 2번째 제품발표회가 끝난 직후 91년 가
을에 개최된 에듀컴(Educom)연례 회의에 잡스 는 연사로 초빙되었는데 겉으로 보기에 사람
들은 넥스트에 아직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넥스트컴퓨터가 시연도중 갑작스런 고장으로시스템을 교체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넥스트
부스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락거렸고 복도에서 넥스트의 장래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관심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버클리에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과 같은 데서 3천여대의 매킨토시와 7천여대의 IBM-호환 컴퓨터 그리고 1천5백대의 선
워크스테이션 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넥스트는 불과 30대밖에 도입되지 않았다.
그 당시 대학 넥스트의 속도가 향상되고 가격이저렴했다 하더라도 넥스트와 같이 시스템
전체를 바궈야 하는 컴퓨터는 구입할 능력이 되지 못했었다. 다른 컴퓨터는 구형시스템을
버릴 필요가 없었기때문에 당연히 우선권이 주어 졌다. 넥스트는 과거에 고수했던 가격을
인하하고 대학에 장비를 기증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정책을 포기하겠다고 했음에도불구하고
넥스트의 이미지 개선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제2세대 컴퓨터를발표하고 난 1년후 대학
에서의 매출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90년 9월부터 91년 9월까지 13개월 동안 20대 대학 에서
의 평균 매출은 캠퍼스당 1백34대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학에서의 판매 는 불과 10여대 수
준에 머물렀다. 이런 수치들은 공개할 수 없을 정도로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잡스의 개인적인 사기를 북돋워줄 수 있는 일들이 생기게 되었다. 91년3월 그
는 스탠포드대학 MBA과정에 있는 로렌 파월이라는 학생과 결혼하였고 둘다 초혼이였다) 9
월에 아들을 보게 되었다. 아기의 탄생은 심각하면서도 익살스럽게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
었다.
작성일자 : 1995.07.12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5)
"로렌과 저는 아직 이름을 짓지 못한 아이를 갖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신제품의 이름
은 항상 짓기가 어렵죠." 그는 자신과 부인이 "작은 커스텀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며 익
살을 부렸다. 그러나 아버지가 된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자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으
며 "지금까지 초록색을 보지 못했다가 아이를 갖게 된 후 처음으로 초록색을 볼 수 있게 된
것과 같은 기분입니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엄숙한 일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의 이름은 "리드"라고 지었다.
그당시 잡스는 이미 젊은시절 결혼하지 않은 여자에게서 낳은 딸이 있었다. 딸이 태어날
무렵 둘사이의 관계는 멀어질대로 멀어진 상태였고 결국 엄마는 딸만 남기고 떠나게 되었
다. 그러나 아들의 탄생은 잡스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잡스의 사생활에 변화
가 생겼기 때문에 넥스트의 미래가 더 나아지고 개선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넥스
트 직원들의 전반적인 사기도 진작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비즈니스 관계를 형성해나가는데 중점을 두게 된 넥스트는 IBM과 같은 기
존 파트너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소홀히 했다. 그당시 IBM은 넥스트 운영 체계를
IBM의 새 워크스테이션에 채용하는 것에 대한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IBM은 처음에는 자체
개발한 RISC프로세서인 파워칩을 채용하여 가격면에서 경쟁력 있는 워크스테이션 개발을
하는데 선사에 뒤졌다. 그러나 90년 2월 IBM제품을 처음 발표하자 기대보다 좋은 반응을
받았다. 첫해에 전체 IBM매출중 10억달러를 차지했다. 넥스트도 같은 목표를 세웠지만 5년
이 지나도록 그 매출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둘째 해에 IBM은 20억달러상당의 워크스테이
션을 팔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출은 "넥스트스텝"의 도움없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잡
스는 IBM으로부터 돈을 받은 다음에는 파트너를 만족시킬만한 일을 하는데 전혀 신경을 쓰
지 않았다. 그러나 IBM에서 잡스를 지지해주었던 빌 로웨와 앤디 헬러가 IBM을 떠난 이후
로는 IBM의 기분을 맞추는 일을 대단히 중요시했다. 하지만 이미 로웨와 헬러의 뒤를 이은
사람들은 잡스의 말에 귀기울이지도 않았고 관대하지도 않았다.
IBM 워크스테이션그룹은 넥스트스텝이 IBM의 유닉스상에서 운용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소프트웨어의 기본코드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아주 어려웠다. 90년 10월 스탠
포드대학에서 개최된 넥스트 유저그룹 미팅에서 IBM은 IBM 워크스테이션에서 운용되는 넥
스트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약간 보여주었다. IBM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최근에야 프
로그램을 안정시킬 수 있었고 곧 개인용 컴퓨터용 프로그램이 나올 것이라는 IBM측의 계획
은 성능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넥스트 소프트웨어의 워크스테이션용 버
전도 발표되지 않았다.
잡스는 IBM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며 이기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다이아몬드"를 진흙에
떨어뜨리면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없듯이 IBM이 넥스트컴퓨터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했
다고 말했다. 그는 IBM이 끊임없이 임원진을 교체하였기 때문에 넥스트스텝이 제대로 개발
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요인들은 모두 무시했다. IBM은 넥스트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넥스트의 라이센스를 따느라 엄청난 돈을 들였을뿐
아니라 넥스트의 가장 뛰어난 엔지니어로 구성된 팀을 지원하는데도 많은 비용을 지불했
다. IBM은 넥스트로부터 결코 태만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금을 투자했
다.
잡스는 자기가 넥스트 소프트웨어 가장 최신버전이 사용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겼
다. 잡스는 넥스트의 라이센스 계약은 1.0의 사용을 허용한다는 것이지 2.0까지 포함하는 것
이 아니라고 주장 했고 최신의 버전을 사용하고 싶으면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넥스트가 제공하는 개발물과 애플리케이션은 넥스트 본사의 것보다 하위의 것이어야
했다.
잡스는 IBM이 기능이 월등히 뛰어난 RISC워크스테이션으로 약소한 넥스트를 앞지를까봐
잔뜩 겁 먹고 있었다. 그는 넥스트 자체가 보유하고 있는것보다 항상 뒤진 기술만 IBM에
제공하였다. 그는 "2만7천여명의 영업사원을 가진 IBM에게 바보처럼 모든 것을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잡스는 IBM이 넥스트가 공략하는 시장을 피하여
대당수만 달러나 되는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잡스는 IBM
을 적극 지원하여 넥스트 소프트웨어를 시장에 출시함으로써 양사가 같이 이득을
볼수 있도록 하기 보다 근시안적으로 IBM으로부터 돈만 더 받아내려고 하였다.
잡스는 IBM이 넥스트스텝을 수용하지 못한 것에 대해 계속 비난 하면서 양사의 관계를 악
화시킨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함구해 버렸다. 90년 제 2세대 넥스트 컴퓨터를 소개하기
전날 양사는 결정적으로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다. 그는 IBM은 달라스에서 잡스가
90여명의 시스템 엔지니어들 앞에서 시연을 해보이며 그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헀다. 그날 아침 잡스는 영업담당책임자인 마크 헤이즈와 함께 달라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 했다.
헤이즈는 신문 판매대 앞에 양복을 입고 등짐을 지고 있는 잡스를 보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 갔다. 헤이즈는 그 전날 잡스가 발표하게될 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슬라이드
프로젝터가 2세트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잡스는 슬라이드를 한세
트밖에 가지고있지 않으며 그 얘기를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헤이즈는 이 얘기를 비행기를 타기 전에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기다렸다가 타고난 다음에
말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 했다.
작성일자 : 1995.07.14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6)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의 근황을 물어보는 질문을 받으면 어린 아이와 깍꿍놀이를 하는 것
과 같이 장난스런 태도를 보였다. 그는 넥스트의 비밀이 절대 누설되지 않도록 했고 넥스트
는 사기업이였기 때문에 매출이나 재정상태를 밝힐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잡스는 필요하다고 느낄 때만 넥스트의 매출 및 수익에 대한 정보의 일부만을 밝혔고 곧이
어 침묵을 지키곤 했다. 90년 1만5천여대의 컴퓨터를 미리 주문받았다고 발표한 것도 일반
인들을 조롱하는 잡스의 책략에 불과했던 것이다. "깍꿍, 우리가 새로 주문받은 것좀 보시오
" 이윽고 손으로 눈을 가리면 일반인들은 다시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모든 것은 속임수에
불과했다. "1만5천여대를 주문받았다"는 것도 1만5천여 대가 아니었고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주문도 아니었다. 넥스트는 잠재고객들 로부터 앞으로 1만대이상을 사겠다는 약속만 받았기
때문에 그 주문은 전혀 구속력을 갖지 못했다.
넥스트는 비공식적인 조사만 했을뿐 실제 주문을 받지는 못했다. 넥스트는사람들에 대해
조사했고 고객들은 이러 이러한 기능과 이런 저런 조건만 충족된다면 관심을 가져보겠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넥스트는 고객 A에게 B라는 고객이 넥스트를 사기로 했다고 말했고, 또
고객 B에게는 고객 A가 살 것이라고 말해 마치 자사제품이 인정받은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더 많은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고객들은 넥스트가 더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들의 이름 을 들먹인다
는 사실을 모른채다른 사람들이 산다면 우리도 생각해보지라는식으로만 대답했다. 넥스트
의 대학고객들은 특히 이런 실행가능성 없는 약속을 많이 했다. 잡스 는 이 대학기관에 2천
9백95달러 또는 50%나 인하된 특별가격으로 컴퓨터를 제공했고 그 사실을 비밀에
붙였다. 그러나 아무런 구속력없는 약속들을 잡 스는 데이비스 홀에서 "실질적인 주문"이라
고 주장했다.
일반인들은 잡스가의미없는 약속에 불과한 수치를 발표하고 있다는 사실을몰랐고 잡스 또
한 그 수치들이 진짜라고 강변했다. 1년후 그 당시 대학의 약속이 얼마만큼 지켜졌는지 알
아본 결과 약속대로 이행된 계약은 겨우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을알게 되었다.
잡스는 91년까지 숫자놀이를 계속했다. 넥스트는 첫 3개월동안 8천여대의 컴퓨터를 판매하
여 "전문가용 워크스테이션"분야에서 갑자기 2위로 부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넥스트가
휴렛팩커드, 디지털 및 IBM과 같은 주요 경쟁 상대를 제치고 그들을 앞지르고 있다는 뜻이
된다. 선사만이 1위를 가로막고있었다. 넥스트가 2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넥스
트가 전문가용워크스테이션 을 넥스트에게 유리하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넥스트는 과학기술연구소 이외에 판매되는 워크스테이션을 "전문가용 워크스테이션 이라고
명명했다. 넥스트의 경쟁상대나 시장분석가 누구도 넥스트처 럼 매출을 기록하지 않았기 때
문에 그들은 넥스트의 통계를 확인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넥스트는 IBM
과 휴렛팩커드와 같은 주요 경쟁상대자들이 기록하고 있는 수십억달러상당의 매출을 보잘
것 없는 것으로만들었다. IBM은그 분기에 1만2천여대의 워크스테이션을 판매했지만 넥스트
는 "전문가 용 워크스테이션"이라는 잣대로 계산하여 IBM이 1천여대밖에 판매하지 못했다
고 주장했다. 휴렛팩커드는 2만여대를 판매했지만 넥스트는 같은 방식을 적용하여 3천여대
만을 인정했다. 그런 책략은 성공했다. 로스엔젤레스 타임 지는 "넥스트,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다"라는 제목하의 기사를 게재 하여 넥스트 편을 들어주었다. 그나마 넥스트
가 워크스테이션시장을 모두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은 것을 보면 잡스가 약간은 겸손
한데가 있다고나할까. 그는 넥스트 제품이 1백%의 시장을 점유한다고 더 자신있게 내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넥스트는 예술 및 편집을 맡았던 크리에이티브 서비스그
룹을 해체하여 첫번째 감원을 단행했다. 넥스트와 같은 작은회사가 자체내에 크레이티브그
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잡스는 필요할 때마다 외주업체를 통
해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다(우리는 소를 소유하기보다 우유를 사먹기
로 했습니다).
그러나 인원을 감원키로 하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결정이었기 때문에 잡스 는 감원대상
자들이 마지막으로 출근하는 날 그들과의 작별인사를 피하기 위해 모습을감추었다.
회사의 이미지가 손상될만한 모든 일을 비밀에 붙이는회사의 일관된 정책에 따라 넥스트는
언론에 감원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따라서8천여대의 넥스트에는 전혀 피해가 가지 않
았다.
감원을 결정하기 바로 전에 잡스는 넥스트의 전속광고 대행사인 암미라티 앤 드 퓨리스와
의 계약을 해지하기로 결정했다. 88년 넥스트는 지키지도 못할자금을 대주겠다고 약속하여
그 광고대행사를 끌어들였다. 잡스는 매년 2천 만달러를 광고료로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지
만 실상 그 십분의 일밖에 지불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에이전시는 넥스트와 계약을 맺고 이 회사를 전담하게 될 직원을 일부러 충원한 다음에
야 넥스트가 약속한 광고수수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알게 되었다. 그래도 잡스는
넥스트만을 담당하는 전속팀이 남아있기를 바랬기 때문에 그의 요구에 따라 필요할 때 지원
해줄 수 있는 직원을 남겨두는조건으로 이 광고대행사에 예약료를 지불할계획을 가지고 있
었다.
암미라티 앤드 퓨리스의 임원인 스티브 가든이 잡스의 사무실로 왔을 때 잡 스는 그런 그
의 계획을 얘기하려 했지만 그에 앞서 가드너가 먼저 본사의 계획을 전달했다. 그 에이전시
는 얼마전 새로 계약을맺은 일본의 니콘사의 요구에 따라 넥스트를 더이상 고객으로 삼지
않겠다고말했다. 니콘은 그들의경쟁업체인 캐논사가 넥스트와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넥스트
와도 마찰을 피할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작성일자 : 1995.07.19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7)
잡스는 자신이 직접 양사의 관계를 단절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양사의 관계를 결정했다는 사
실에 화가 났다. 때문에 넥스트는 그당시 암미 라티 앤드 퓨리스로부터 빌린 수십만달러의
돈을 갚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스티브, 어쨌든 그 회사와는 더이상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인데 그럴필요까지 있겠
습니까?" 이사중에 한명이 스티브를 설득하려 했지만 잡스는" 한마디도 누설하지 마시오. 이
번 기회를 잘 이용할 수 있을겁니다"라고 말했다. 넥스트의 전속 변호사도 상환거부는 정당
화될 수 없으며 지불을 연기하면 결국 소송에 휘말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넥스트가 일반
인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도록 지금까지 세밀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여론에 대하여 굉장한 분노를 터뜨렸다.
넥스트는 91년 1.4분기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발표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통
계는 발표하지 않았고 무분별한 행동만 계속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넥스트가 8천
여대의 컴퓨터를 판매했다는 통계에는 컴퓨터안에내장되는 주기판의 판매량까지도 포함된
것이었다.
그러나 컴퓨터 주기판은컴퓨터안에 내장되는 것이지 컴퓨터와 동일한 것으로취급될 수 없
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오래된 주기판만 교체해서 속도가 느린 큐브컴퓨터를 넥스트 스테이
션과 비슷한 기능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자들은넥스트가 일하기로 한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판단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통계가 필요했다.
그들은 8천여대를 판매했다는 그 매출에 개량된 주기판의 판매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불쾌하게 생각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지처럼 쉽게 속아넘어가지 않았던 산호세 머큐
리 뉴스라는 지방신문은 넥스트의 보도자료를 검토한 결과 넥스트가 발표한 8천여대의 컴퓨
터 매출이이중조작되어 있다는사실을 알아내었고 이를 신문에 폭로함으로써 넥스트의평판을
떨어뜨렸다(대 부분의 매출은 그전해 9월에 발표된 1만5천여대의 판매와 중복산출된 것이었
고 초기의 주문도 91년초에야 출하될 수 있었다).
이후 스트의 토드 룰론 밀러는 어떤 부분이 중복된 것이고 어떤 주문이 새로 받은 것인지
를 정확히 밝힐 수 있는 정보를 더이상 주지 않았다. 그는 단지 1.4분기가 "대역사(대역사)"
의 시작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91년 봄 넥스트 이사진들은 초기의 판매강세로 보아 2.4분기에도 그 여세가 계속될 것이라
고 생각했기 때문에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잡스는 그 여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
문에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잡스는 그해 5천만 여대의 제품을 팔아서 2억달러 내지 2억5천
만달러의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넥스트는 아주 순조롭게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시기를 맞는 듯했다.
사내 뉴스레터인 "SJ Gazette"에서 잡스는 모든 직원이 2.4분기에서도 기록을 갱신할 수 있
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독려했다. 정기직원 미팅이 지연되었고 예산을 10% 감축하는
가 하면 직원들의 보수가 동결되었다. 그러나그것으로 넥스트를 되살리기에는 부족했다.
넥스트는 정신없이 배안에 고인물을 밖으로 퍼내는데도 불구하고 소금물이 가득차 있어 침
몰할 위기에 있는배와도 같았다. 넥스트가 수익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4월에 넥
스트의 소이사회에 전달되었고 주주인 로스 페 로도 그 소식을 듣고 달가워하지않았다.
그는 발표를 듣는 도중 "지금 조종 실에 불이 나서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겁니까. 내가 모르는사실을 좀 얘기해 주십시오"라고말했다.
그는 루론 밀러와 몇몇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판매를 촉진시킬 수있는 방법을 모색하도
록 했다. 캐논사 또한 대표단을 파견했다.
몇백달러어치에 불과한 컴퓨터 주문량을 생산하기 위해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첨단제조시설
관리비용이 들었고 그때문에 잡스와 다른 이사진들은 항상 마찰을 빚었다. 넥스트컴퓨터처
럼 넥스트공장은 겉으로는 근사해보였지만 내실 은 거의 없었다.
예를 들면 넥스트가 그토록 칭찬받았던 "적시에 생산한다"라는 개념은 넥스 트가 주문을
받은 다음에야 컴퓨터 조립에 들어갔다는 뜻이된다. 그러나 주문량은 항상 일정하지 않았다.
공장 근로자들은 3주동안 도너츠를 먹는 일 이외에는 할일이 없다가 월말쯤되면 갑자기 주
문이 몰려서 정신없이 바빠지 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작성일자 : 1995.07.21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8)
한 분기가 끝날 때가 항상 바빴다.넥스트는 모니터를 다른 업체로부터 공급 받아서 썼는데
납기일이 적어도 3개월은 걸렸기 때문에 넥스트는 흑백모니터 뿐 아니라 컬러모니터 재고를
항상 비축해 놓아야 했고 컴퓨터 주문을 받기 전에 미리 수백만달러어치의 부품을 확보해야
만 했다.
또 모니터 재고종류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예측을 통해 준비하기보다 순전히 추측으로 준
비해야 했다. 캐논사는 넥스트의 생산방식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전문가로 구성된
작업반을 6주동안 넥스트에 파견하여 넥스트가 "적시 생산"이라는 이상적이 지만 비능률적
개념을 버리게 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넥스트 공장은 비수기 에 컴퓨터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먼저 조립하고 실제 주문을 받은 다음에는 특수한 부품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소량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넥스트가 제조시설을 직접 운영한다는 것은 재정적인
차원에서 볼때 전혀 타당성이 없었고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직접 제조 시설을 운영
해야 한다는 잡스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넥스트는 91년 캐논사의 감독하에 아주
조심스럽게 넥스트가 제조한 제품의 품질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캐논은 조사내용을 검토한 결과 넥스트가 주장한 것보다 제품 결함을 훨씬높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품질이 계속 저하되고 있다는 당혹 스러운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
다. 캐논사는 컴퓨터를 해외에서 생산하라고 잡 스에게 촉구 했다. 페로도 캐논사의 편을 들
었고 6월에 레드우드 시티에서개최된 회의에 참석한 페로는잡스와 격렬한 논쟁을 벌인 끝에
이사진에서 결국 사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페로는 기분이 상당히 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임을 언론에 밝히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는 넥스트의 이미지를 보존해 주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넥스트에
투자한 자신의 몫을 보호하는 침착성을 보였다. 페로의 사임은 넥스트에게 큰 타격을 주었
지만 그 당시 잡스의 가장 큰 라이벌인 빌 게이츠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어 그 충격이 약간
무마될 수 있었다.
잡스는 댄 르윈을 지위가 낮은 다른 직책으로 밀어낸 다음 자신이 직접 마케팅 업무를 책
임져 왔는데 그러는 동안 댄 르윈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계속 물색해 왔다. 댄 르윈의
자리는 일년이 넘게 비어 있었기 때문에 넥스트 의 마케팅은 점점 약화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영국 전기 통신 회사인 머큐리 커뮤니케이션사에서 이사로 근무 했던 영국 태생인
피토 벤 큐랜버그가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댄르윈의 후임자가 확정되는 듯 했으나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였다. 잡스는 결국 5월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고 있던 마이크 슬
레이드를 넥스트의 마케팅 국장으로 채용했다. 그는 아주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이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 스프레드시트인 엑셀의 성공적인 마케팅을 담당 했던 사람이
었다. 그가 오기 전에 넥스트는 그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었지만첫날 직원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저지른 실수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기시작했다. 슬레이드는 마이크로소
프트의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고 그 주식만 팔아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사람들에
게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은그가넥스트로 오게된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그 동기를 상견례 때 물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아주 큰 회사 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물에서 노는 큰 물고기가
되고 싶어서 넥스트로 오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것도 농담의 기미 없이 아주 진지
하게 대답했던 것이었다.
슬레이드는 사람들에게 넥스트는 바로 지금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던지 아니면 멸망하던
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갓 들어온 신참이었기 때문에
지난 6년동안 넥스트가 바로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근근히 유지해 왔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
었다. 그는 초기의 큐브 컴퓨터 가 가지고 있던 문제는 넥스트스테이션의 개발로 모두 모두
해결 되었고, 비즈니스랜드와의 문제도 개별 소매업자와 구축한 새로운 유통 경로로 해결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넥스트는 이제 더이상 핑계를 댈 수 없었다. 넥스트 컴퓨터는 혼자서 자립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넥스트 컴퓨터는 퍼스널 컴퓨터가 아닌 워크스테이션급과 경쟁해야 했다. 퍼스널
컴퓨터는 상호호환이 가능한 얼굴없는 제품으로 사람들은 가격을 기준으로 제품을 구입했기
때문에넥스트와 같은 프리미 엄급 제품은 값싼 IBM 호환기종과 경쟁할 수 없었다. 슬레이
드는 넥스트의 가장 큰 경쟁상대가 선사라고 생각했다.
2.4분기의 매출 실적이 호조를 보였다고 보고 되자 잡스는 넥스트를 담당하는 홍보회사로
하여금 그 희소식을 발표하도록 했다. "수익 1.4분기 대비 86 % 신장 넥스트 사상 최초로 4
천6백만달러 매출달성"라는 제목의 보도기사가 발표되었다. 매출이 3.4분기에도 같은 속도로
증가하고 그 여세가 4.4분기에도 계속되었더라면 넥스트는 잡스의 예측대로 그해에 2억5천
만달러의 매출을 쉽게 달성 하여 선사처럼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았을 것이다. 그러나 잡스
와 넥스트의 임원진들은 수익이 계속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때보다 더 많은손
실을 입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속앓이를 해야 했다.
자금의 흐름은 갈수록 어려워졌지만 일반 대중과 딜러들은 전혀 그 사실을눈치채지 못했
다.
넥스트와 새로 딜러 관계를 맺은 미네소타주 미니아폴리스에 있는 이미지 네트의 예만 보
더라도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하여 노력했던 넥스트의 노력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가
를 알수 있다.
이미지네트는 94년 4월에 넥스트의대리점 승인을 받았다. 이미지네트를 창립한 20대 청년
3명은 과거에 매킨토시를 팔았었지만 점차 넥스트의 첨단기술 특히 전자출판기술에 큰 매력
을느꼈다. 이미지네트는 전문적인 딜러로 넥 스트 컴퓨터와 출판업무를 원하는사무실에 넥
스트컴퓨터와 커스텀 소프트웨어를 함께 팔았다.
이미지네트는 매장을 갖지 못했다. 이들은 시내상가에 사무실을 두고 직접 고객들의 사무
실을 방문하여 영업활동을 했다. 이들은 모든 사람들을 공략했던 비즈니스랜드와 달리 특정
대상만을 겨냥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큐브컴퓨터의 절반가격에 불과했고 넥스
트스테이션 급에서도 가장 저렴한 5천달러짜리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의 책상에
모두 배치하기에 워크스테이션의 가격은 너무 비쌌다.
작성일자 : 1995.07.24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99)
한대값인 5천달러로 IBM 호환기종을 4대를 살수 있었다. 하지만 출판업무의 경우 더 강력
한 워크스테이션 이미지네트는 넥스트의 출판 기능을 부각시키면 일반 컴퓨터 딜러들처럼
할인 제안을 해야할 번거로움 없이 아주 안전하게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이미지네트는 넥스트에 대해 많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넥스트를 지원할 수 있는 소프
트웨어상에 많은 제약이 있다고 것을 알았다. 넥스트가 아무리 완벽한 전자출판 기능을 갖
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림을 그리고 편집할 수 있는 탁월한 성능의 그래픽 소프트웨어가 부
족하고 넥스트 상에 있는 페이지를 다른 컴퓨터에 옮길 수 있는 상호 연결 및 페이지 배치
소프트웨어가 없다면결코 완벽하다고 할 수 없었다.
넥스트는 다른 컴퓨터와도 호환할 수 있어야만 했지만 사실 그것을 가능하게하는 소프트웨
어가 없었다. 이미지네트는 넥스트가 그런 소프트웨어를 준비할 때까지 버티기 위해 그 당
시 전자출판의표준으로 굳건한 위치를 지키고있던 애플의 매킨토시 판매권을 확보하고 있었
다.
이미지네트와 같은 딜러들은 넥스트 컴퓨터에 쿼크 엑스프레스(Quark Xpres s)라고하는 출
판용 편집 프로그램 소프트웨어페키지를 절실히 필요로 했다.
쿼크엑스프레스는 열, 헤드라인, 삽화, 문자체, 지면의 헤더 및 푸더등을 포함한 편집기능을
거의 모두 갖추고 있었다.
또 각항과 문자 사이의 간격을 세밀히 교정해 주며 전문 용역 업체에 의뢰해 야만 했던 컬
러 분리 기능과 인쇄 전의 사전 준비를 모두 가능하게 함으로써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쿼크 포매트는 출판에 사용되는 유일한 표준규격이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수 있는 경쟁
제품이 없었다. 쿼크 엑스프레스는 매킨토시에서만 사용가능 했다. 만일 넥스트상에서도 사
용할 수 있었더라면 이미지네트의 파트너들은 수지를 맞추지 위해 매킨토시 거래를 포기하
고 당초 계획했던 대로 넥스트제 품 독점 딜러가 되었을 것이다.
잡스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덴버에 본사를 두고 잡스못지 않게강한 의지의 소
유자인 프레드 에브라히미가 이끄는 쿼크사를 오래 전부터 포섭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90년 넥스트스테이션이 발표되기 바로 전 잡스는 에브라히미와 다른 쿼크 임원들에게 앞
으로 넥스트가 수십만 대 팔릴 것이라고 설득했다. 잡스는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소프트웨
어 개발업자들을 설득했다.
잡스는 데스크톱 출판기능을 더욱 확고히 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쿼크사와 협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때문에 넥스트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개발업자들에게 자금을 대주지 않을것이라는 기존의 규칙에 예외가 적용될 수 있
도록 했다. 그는 IBM을 설득하여 쿼크사에게 1백50만달러를 함께 지원할 것을 제의 했다.
이 금액은 막대한 것이었고 넥스트의 장래에 이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
문에 넥스트에게 있어서 대단한 거래였다(에브라히미는 처음에5백만달러를 요구 했었다).
쿼크사는 90년 데이비스홀에서 개최되었던 제품 발표회 바로 직전에 이 거래에 동의했고
잡스는 행사 마지막 순서로 넥스트 컴퓨터터에 쿼크 엑스프레스가 "포트"될 것이라고 발표
했다.
관중들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그 어느 때 보다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발표 후 쿼크사는 넥스트의 출판 시장의 실제 규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또 매킨토시에서
사용했던 프로그램 코드를 재사용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소프트 웨어 툴을 찾기 시작했다.
쿼크사는 엑스프레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60명 을 투입했다.
작성일자 : 1995.07.26
<시리즈> 매킨토시 신화주역 스티브잡스의 야망 (100)
지금까지 투입한 노력을 모두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다시 60명이란 막대한 인원을 투입하
면서 넥스트버전을 다시 작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먼로 파크에 있는 쿼럼이
라는 작은 업체는 매킨토시 프로그램이 넥스트와 비슷한 다른 컴퓨터에서도 운용될 수 있
도록 코드를 전환하기를 원하는 쿼크와 같은 회사들을 도와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잡스와 소프트웨어 수석 엔지니어링 버드 크리블은 그 소프트웨어에 대한 사용을
절대적으로 반대했다. 그들은 성능이 약한 매킨토시 코드를 재 사용하기 보다 넥스트의 "
고유"코드를 가지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쿼럼사가 그런 툴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노력했다. 쿼크사가 매킨토시 코드를 재사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자
그들은 쿼럼사에게 쿼크사 를 비난하는 말을 했다. 예를 들면 이란 태생 에브라히미를 "
카페트 상인"이 라고 비꼬며 인신공격을 했으나 이에 대해 쿼크사는 침묵을 지켰다.
잡스는 양사의 관계를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겉으로만 화
해 제스처를 보일 뿐 모욕적인 언행을 계속했다. 잡스는 "내가 당신을 보잘것 없는 사람
이라고 했던 소문을 들으셨겠죠. 보잘것 없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바로 이것"이라면서
시연되었던, 그렇지만 이렇게 편리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못한 디지털 웹스터 사
전을 인용, 그말의 정의를 적어 에브라히미에게 팩스로 보냈다.
잡스는 지금까지 내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전화로 본인이 보잘것없는 사람이 아
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에브라히미이게 통보했다. 그러나 에브라히미는 잡스에게 전화
를 해주지 않았는데 그에 대해 놀란 사람은 잡스 밖에 없었다.
잡스로부터 받은 모욕적인 팩스 이외에 쿼크사는 넥스트의 신용과 매출규모 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양사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조건이 합의된 후 서면으
로 사인하는 공식적인 절차만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쿼크사는 계약이 체결되는 최종 순간에 넥스트가 사전 동의 없이 몇몇 조항을 개
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넥스트가 주기판만 개량해서 매출과 새로 완성한 제품의
매출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것도 쿼크사를 불안 하게 만들었다.
넥스트는 무모하게 매출을 부풀려왔고 이와 같은 행위는 결국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
파트너와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쿼크를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 있긴 하였다. 91년초 네스트를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된 "넥스
트월드"라는 잡지는구독자들을 대상으로 이용자들이 넥스트 버전에서 운용되는 쿼크 엑스
프레스를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쿼크사에게 보내도록 권유했다.
그러나 그 이후 몇달동안 쿼크사는 겨우 10통의 편지만을 받았다. 쿼크사는더욱 확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준비되는 동안 자신들은 자사의 신용이 손상 되지 않도록 넥스
트가 제공하는 기능이상의 제품만 팔지 않도록 주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타게트 스트아는 바로 그들이 찾는 고객이였다. 타게트 스토아는 94년 선데 이 신문 사이
에 끼워서 배포할 20페이지짜리 컬러광고를 만들컴퓨터를 찾고있었다. 이런 고객은 거의 없
었다.-항상 외주업체에게 일을 맡겼기 때문에컴퓨터가 없는 이런 회사는 거의 없었다-넥스
트는 매킨토시、IBM 호환기종 또는 선사를 견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가장 좋은 기회
가 온것이었다.
타게트사는 신중하게 넥스트를 살 계획을 세웠고 타게트의 경영진 및 외부 컨설턴트는
실제 넥스트가 무엇을 제의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미니아폴리스에서 캘리포니아 레
드우드시티를 직접 찾아갔다.
넥스트의 영업사원을 제품에 대해 능숙하게 설명을 했다. "넥스트스텝"과 객체 지향형
프로그래밍에 대한 잡스에게 직접 기술 자문에 의해 이루어졌고그들은 직접 영웅을 만나는
것 다음으로 영광스러운 대접을 받았다. 타게트사의 고위간부들은 좋은 인상을 받았고、
넥스트가 광고를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다른 컴퓨터와 비교하지 않고 넥스트를
사겠다고 했다.
넥스트의 직원 한명은 프레임메이커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타게트가 필요로 하는 프레임메이커가 아닐 것이라고했다. 그러
나 그들은 더 나은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프레임메 이커전문가 한명이 모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 도 프레임메이커는 길이가 짧으면서
그림과 헤드라인으로 구성된 광고를 만들기에는 부적합한 프로그램이었다.
시간은 지나갔지만 작업은 전혀 진척되는 것 같지 않았다. 타게트사에서 파견된 직원들
이 넥스트 사무실을 둘러보며 간간히 모의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완성되었는지를 확인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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