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박성원
나는 지금부터 나의 유서를 쓰려고 한다. 어쩌면 이것은 유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일종의 고백성사일 수도 있으며, 하나의 사티로스극으로 불러도 좋다. 문건, 조서, 넋두리, 낙서, 대본 그 무엇으로 불러도 좋다. 나는 내 개인의 절대성을 여러분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겠다.
대신에 나는 여러분의 어떠한 비평이나 평가도 받아들이지 않겠다.
이 얼마나 공평한 일인가? 이에는 신도, 비평가도, 법도 필요치가 않다.
또 나는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에 대해서는 남에게 절대 시키지 않는다. 또한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의 어떠한 부탁에도 절대 응하지 않겠다. 이 얼마나 간편한 일인가? 그러나, 내가 굳이-여러분이 어떤 식으로 부르든-'유서'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것은 '유서'가 갖고 있는 속성 때문이다. 세칭 '유서'라 함은 '죽음을 맞이하여 남기는 글'이 란 뜻이다(모범 국어사전 참조). 나는 이제 이 글로서의 나의 저주를 남기고, 나는 마지막을 경험하러 떠날 것이다. 죽음, 그것은 완성이며 경이로운 마지막 경험이자 최후의 저항, 완전한 해방, 절대적인 전횡의 길이다.
지금 내가 유서를 적으려는 이 방안에는 무엇이든지 두 개이다. 그 것도 똑같이 생긴 것들이 항상 두 개씩 있다. 그 똑같은 두 개는 서로가 왼쪽, 오른쪽을 점하고 있기에 혼란을 일으킬 만큼 대칭적을 배열되어 있다. 똑같은 사물들이 두 개씩인 만큼 그 사물들의 주인도 둘이었었다. 분명히 둘이었었지만 지금은 나 하나이며 그리고 나머지 그 하나도 곧 사라질 것이다.
언제인가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내 방을 보고는 롯데월드에 있는 거울의 집이나 마술의 집과 닮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똑같은 것들이 항상 두 개씩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고 나서는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와 똑같이 생긴 내 동생을 보고는 모두 다 한번씩 놀란다.
비단 친구들뿐만 아니라 처음 오는 모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똑같이 놀란다. 그러다가 내가 하하, 얘는 나보다 9분 차이로 늦게 나온 내 동생이 오라고 하면 모두가 똑같이 고개를 까닥이는 강아지 인형처럼 고개를 까닥이며 아하 한다. 이것은 불문율 같은 일종의 관례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연신 탄복을 자아내면서 나와 내 동생을 번갈아 본다. 신기해 마지않는다. 우리를 신기하게 보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도 그들을 신기하게 보니깐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짜증이 나는 것은 그들은 나의 저주도 모르는 채, 그들 스스로의 생각으로 자신들을 합리화하면서 나와 내 동생을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는 그 눈길이다.
그 눈길들, 눈길들 난 그 눈길들이 두렵다. 분명 난 동생과는 다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씩 하는 한번의 엷은 미소 속에 모든 본 질을 무마하려 든다. 꼭 그러는 그들의 대부분은 세상에 던져진 책 몇 권으로 마치 세상을 주관하려 드는, 결코 나와 여행을 할 수 없는, 야무진 나의 적들이다.
나와 내 동생은 그렇게 9분의 차이로 세상에 태어났다. 죽음을 목전에 둔 지금의 생각에도 나에게는 태어남 자체부터 구속만이 있었을 뿐 자유스러움은 조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세상은 존재해 있었고, 그 주어진 세상에 이미 나도 존재해 있었다. 또 세상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굴러갔었고 나 또한 세상과는 상관없이 죽어 갈 것이다. 그러나, 태어남은 나의 절대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되었지만 죽음은 분명 나만의 절대 의지로서 진행될 것이다. 이 점만은 정말이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꿈속에서 가끔씩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형체를 잘 알 수 없는 두 개의 핏덩어리가 물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다만 이따금씩 꾸르륵꾸르륵 거리는 물 흐르는 소리만이 들려 오고, 그 두 개의 핏덩어리들은 서로 유영하면서 배회한다. 시나브로, 시나브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똑같이 생긴 서로 다른 두 개가 웅크린 채 마주보고 있다. 그 둘의 발목에는 반점이라 부르는 낙인이 찍혀 있다. 그 낙인의 색깔은 코발트색을 닮은 경미한 파란색이다.
그 낙인은 구속의 표시이며 제품의 품질 보증서이다. 그리고 그것은 족쇄 자국이다. 나는 알 수가 있다. 그 둘의 생김새의 구분은 좀처럼 쉽지 않으나, 그 둘의 낙인만은 명확히 구분이 되어 있다. 나의 낙인은 엉덩이가 아닌 왼쪽 발목에 찍혀져 있었고 마주보고 있는 동생의 낙인은 엉덩이가 아닌 오른쪽 발목에 찍혀져 있다. 이것은 거울의 이치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그렇게 서로 마주보고 있는 동안에는 둘이 다 아무 생각이 없다. 그러다가 머리 위로 강렬한 수술실 조명등이 내리 쪼인다. 본능적으로 그때부터 그 강렬한 수술실 조명등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때부터는 그 본능에 굴복을 하고 만다.
나는 그 강렬한 수술실 조명등을 향해 동생의 머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것이 나의 비극의 시작인지도 모르고 다만 '빛'인 줄로만 여기고 동생의 머리를 나의 발로 박차고 튕기며 밖으로 나간다.
탄생. 아아, 강렬한 빛 다음의 어둠이여...... 나는 혼절한 상태 마냥 나의 눈과 나의 사고는 매우 혼란스럽다. 나의 홍채는 갑자기 짙은 안개가 낀 듯이 아주 흐릿해지고, 나의 동공은 어안 렌즈로 돌변하여 사물이 심하게 왜곡되어 보인다. 왜곡되어 보이는 그 모습들이 본질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의 사고는 회전 열차를 탄 것처럼 마냥 어지럽고 깊은 계곡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다.
그 혼돈의 상태에서 무언가가 나의 엉덩이에 충격을 가해온다. 철썩 하고 소래 내어 때린다. 나는 참지 못하고 컥 하고 울음을 터뜨린 다. 입 안에서 오물이 떨어지고 나는 정신을 잃는다. 나는 끝이 없는 낭떠러지로 계속해서 떨어진다. 그리고는 소리 없는 비명 소리에 나는 잠이 깬다.
잠이 깬 채 주위를 둘러보면 나의 홍채는 점점 열리면서 어두운 방 안에서 감각을 찾으려고 확대되고, 동공은 표준 렌즈로 돌아온다. 나의 뇌는 아틀라스처럼 그 무겁고 커다란 꿈을 어깨에 떠받치고 있다.
그때쯤이면 으레 나의 동생은 나의 땀을 닦아준다. 동생의 말없는 행동은 마치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다 아는 것처럼 나타난다. 동생은 나를 지배하고 주관하려 든다. 나는 그것이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나에게 절망적인 시기심과 함께 패배감을 가져온다.
시기심과 패배감, 이것이 기원전부터 은밀하게 진행되어온 나에게 주어진 저주이다. 그 저주는 지겹도록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시기심은 적개심으로 치닫고 패배감은 나를 사육하면서 죽게 만들었다.
나에게 쏟아지는 저주를 내가 현세에서 느낀 것은 얼마 되지 않는 다. 그것은 내가 동생 자신이 출연하고,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쓴 사티로스극을 보았을 때였다. 그 사티로스극은 그리스의 비극 중에서 외디푸스왕에 관한 것이었는데, 동생은 주제를 널리 알려진 외디푸스왕 이나 그의 딸 안티고네의 이야기에 맞춘 것이 아니라 외디푸스왕의 두 아들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어 극을 진행하였었다.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바로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였었다.
극은 외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른 사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후 외디푸스는 방황의 길로 접어들었고, 외디푸스가 떠난 후 두 아들은 1년씩을 번갈아 가면서 테베를 다스리기로 했었다. 그러나 에테오클레스가 이 1년간의 지배 기간이 다 지난 후에도 왕권을 내놓지 않자,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로 망명을 가서 그곳 군사-테베 공략의 일곱 용사들-를 데리고 전쟁을 일으킨다. 결국 두 형제는 서로의 칼에 서로가 찔린 채 피비린내 나는 9년간의 장기전과 단기전은 끝이 나고 만 다.
--칼로서 서로가 서로를 찌르다.
나의 동생은 너무 환하지 않은 피에로의 분장으로 의자에 앉은 채, 약간의 소도구만을 들고서 그렇게 한 시간을 독백하였다. 무대 위는 전체가 어두웠었고, 동생의 연기하는 의자 위에는 2차 대전 당시의 기관총 모양의 색광 조명등만이 총신이 돌아가듯 돌면서 비추고 있었다.
색광 조명등의 그 몇 안 되는 원색들이 동생의 이야기의 고저와 흐름 에 따라 번갈아 가면서 바뀌었었고 그것이 바뀔 때마다 나는 환영을 보 았었다.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들판이 있다. 햇무리와 달무리가 동시에 드리워져 주위는 온통 붉게 물들여져 있고 천지사방은 조용하다. 간간 이 말들의 작은 교성 소리와 짐승 소리만이 들리어온다. 나는 은색으로 빛나는 철옷을 입은 채 막사 안에 혼자 있다. 어제까지의 대소 전투에서는 양쪽 모두 아홉 번의 승리와 아홉 번의 패배를 주고받았었다. 내일, 내일 동이 트면 이 전투는 끝이 난다. 동이 터옴과 동시에 양쪽의 군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너와 나는 서로 칼을 겨눌 것이 다. 너와 나는 그렇게 들판에서 서로를 마주볼 것이다. 나는 너를 죽임으로써 나만의 테베 왕국을 건설하리라. 내일이면 너의 피가 묻은 칼을 높이 쳐들고 군사들의 환호 속에서 나는 세상에 등극하리라. 지배자로서 전횡자로서. 오늘은 잠 못 이루는 소름끼치는 전야제. 모든 내일을 앞둔 전야제.
어두운 극장 안에서 나는 동생의 소리 소리마다에 소름이 끼쳤었고, 그 소름은 이후 나를 며칠씩 이유도 없는 고열에 쓰러지게 만들었다.
고열이라는 고질병. 동생에 대한 패배감에, 나의 몸에는 고열이 모세 혈관마다 흐르고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나의 근육과 뼈까지 시리게 했다.
그래, 유서에다 동생과 나의 이야기를 적자. 그리고 내가 왜 동생을 죽였는지에 대해서도 적자. 그것이 나의 저주스러운 삶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단서가 될지 모르니까.
실상 나의 동생은 훌륭한 배우였다. 비단 배우뿐 아니라 시인이면서 화가였다. 글쎄, 어떤 식으로 동생을 소개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생은 만재능을 가졌었고, 동생의 그 만재능은 나를 병들게 했었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었다. 그러나 학창 시절 때도 물론이거니와 여태껏 단 한 번도 나는 시를 통해서 인정받은 적이 없었다. 국민학교 때의 그 흔한 교실의 뒷벽 환경미화란에조차 단 한 번도 오르지 못 했었다--그러나 인정을 못 받았을 뿐 나의 시가 훌륭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정말이지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었다. 내가 시를 쓰려고 밤을 새울 적이면 동생은 자다 말고 내 곁으로 다가온다. 그러면 나는 자랑스러이 밤새 적은 시를 보여준다. 동생은 괜찮네 하며 씩 하 고 웃는다. 대개의 주관자들은 보통 그런다. 그리고는 동생은 나도 몇 개 적은 것이 있어 하며 자기 책상에서 종이를 몇 장 들고 온다.
나는 처음에 놀랐다. 미술과 연극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좋은 시를 적다니. 문학 평론에 비록 문외한이지만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시다.
동생은 그러면서 흄의 안티 휴머니즘과 엘리엇의 감수성의 시론, 파운드의 고전주의를 막 내깔린다. 주지적 시론에서 상징적 시론으로 다시 문학 이론에서 기호학, 사회학, 철학까지 치닫는다. 처음에 나는 감동한다. 흥분의 물결이 파도되어 나의 살을 돋게 한다. 짜릿함과 환희. 그 순간의 동생에 대한 신비는 동생에 대한 모든 시기심과 질투를 잊게 만들었고, 나는 동생의 손을 잡으며 나에게 시를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동생은 순간 하던 말을 멈추고 나를 본다. 안돼. 세상에 시를 가르치는 게 어딨어? 동생은 자기 침대에 가서 눕는다.
자는 동생의 뒷모습. 나는 한참이나 동생의 등을 쳐다본다. 그러면 너 시인으로서 문단에 한번 나서보라고 말한다. 내보이기 싫어라고 동생이 말한다.
동생은 결코 자신의 재능을 내보이지 않았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행위들을 경멸하였다. 동생은 내게 상품화된다는 것이 싫다고 말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는 무서운 것이라며 자본주의는 사회주의까지 상품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동생이 다시 일어나 앉았다.
형--동생과 나는 불과 9분의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동생은 내게 항상 형이란 호칭을 붙였었다--생각해봐. 훗날 노동절 기획 상품으로 마르크스 인형이나 레닌 인형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어? 나는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를 않았다. 답을 한다는 것은 저항 그 자 체이다. 하지만 무기력한 나는 동생에게 어떠한 반감도 가질 수가 없다. 동생은 만재능을 지배하지만 나는 시기심과 패배감에 지배를 당하기에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동생은 내게 계속해서 물었다. 그래,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든다 해서 무슨 가치가 창조되나. 시가 쌀로 변하고 그림이 연탄으로 변하고 음악이 시멘트로 변한다면 나는 복종하겠어. 주어진 농간에 발맞추는 그런 것 나는 싫어. 인간이라는게 광합성 작용을 하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면 시를 적겠지. 생존을 못하는데 생활을 한다? 시라는 게 원래 사치며 가진 자들의 장난이야. 얼마나 많은 시인이랑 화가들이 배고파 죽어 갔는지 알아? 단지 당시의 비평가 나 업자들의 눈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명작들이 대접도 못 받고 사라져 갔는지를 아냐구? 천재라는 것이 다 우연히 재수 있는 놈들을 말할 뿐이야. 당시 비평가들의 입맛에 맞으면 천재고 맞지 않으면 개수작이야. 모든 것이 상대적이지 절대성이라는 것이 어디 존재할 것 같아? 그렇지만 형은 그렇게 시인이 되고 싶어했으니 잘해봐. 낭중지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언젠가는 형의 시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겠지.
동생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답변도 못 하고 있을 그때, 방바닥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지나갔다. 동생은 순간적으로 놀라서 흠칫 뒤로 물러 앉았지만 나는 손바닥으로 그놈을 눌렀다. 동생이 놀라는 틈을 타서 과감히 그리고 재빠르게 행동을 보여주었다. 비록 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그래 시라는게 나에게는 사치일 수도 있지--.
나도 평상시에는 벌레를 맨손으로는 잡지는 못한다. 그러나 벌레를 맨손으로 잡은 그것은 나의 자위였으며 동생에게 나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자 유혹이었다.
순식간이라 벌레를 손바닥으로 꽉 누르지 못하고 덮어 버렸기에, 방향을 잃은 벌레가 손바닥 안에서 살아 꿈틀대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무척이나 간지러웠고 섬뜩했지만 나는 웃으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동생에게 말을 했었다. 그래 나는 벌레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다. 동생에게 타고난 역할과 재능이 있듯이, 나에게도 살아가는데 있어 역할과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벌레를 잡는 일이다. 나는 내 손 안에 잡힌 벌레를 볼모로 동생에게 할 말이 생겼다. 그래, 동생아, 나는 시를 쓰고 싶다. 하지만 너의 말대로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구나.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인정하거나 알아주지도 않는구나. 시를 쓰면서 나의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살아가기에는 너의 시가 필요하구나, 너의 시가. 너의 그림으로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을 보낸 것처럼 내가 살기에는 너의 시가 필요하다. 대신에 나는 벌레를 잡겠다..... 벌레를.
동생과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마주보았다. 동생은 나의 생각을 모두 알고 있겠지만 나는 그 아무런 말이 없이 보낸 시간 동안에 동생의 생각을 단 한 번도 간파한 적이 없다.
어쨌든 그때부터 동생은 밤마다 시를 적었고 나는 밤마다 벌레를 잡았다. 나는 동생에게 동생이 적은 시를 요구했지만, 동생은 나에게 내 가 잡은 벌레를 요구하지 않았었다. 구밀복검--겉으론 웃으면서 다정하게 굴지만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그렇게 나는 동생이 쓴 시로서 문단에 등단을 했었고, 나는 동생의 기생충이 되어 살아왔었다.
나는 그렇게라도 살고 싶었었다. 타인의 눈에는 사이가 좋은 쌍둥이로 보였었고 나의 눈에는...... 눈에는...... 후우.......
이후로 동생에 대한 시기심보다는 패배감에 시달리기 시작했었다.
시인으로서의 삶이란 게 남들이 보기에 구차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나는 왜 동생같이 되지 못할까? 나는 지금 다시금 대단한 혼란에 빠져 있다. 유서를 쓰고 있는 이 방을 다시 한번 둘러본다. 386 PC의 칼라 모니터가 나를 비추고 있고, 모니터의 목 아래에는 재떨이가 어렴풋이 보인다. 방안은 불이 꺼진 채 모니터의 불빛만으로 그 윤곽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나는 이 방안에서 지낸 수년간 경험과 감각에 의해 방안 사물들의 정확한 위치와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 어두운 주위 속에서 나는 물건들을 하나, 하나씩 연상해본다. 책걸상, 침대, 옷장, 책꽂이, 재떨이, 주전자 그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나의 눈과 경험과 감각, 그 어디에도 자살을 위한 선택이 보이질 않는다. 칼도 보이지를 않고 수면제도, 끈도 보이지를 않는다. 물론 방안에는 가스도 없으며, 투신할 충분한 높이도 되지를 않는다. 무거운 바벨도 없으며 불을 붙일 기름도 보이지 않는다. 총은 더더욱 없으며 한강물도 없다. 약도 약품도 없으며 날카로운 공구도 깨진 유리도 없고, 차도 기차도 지하철도 벽돌도 양잿물로 나를 죽여줄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느 것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나는 죽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대단한 혼란에 빠져 있다. 무엇이라고 종잡을 수는 없지만, 프랑스 여인이 내 귓볼에 대고 밀어를 속삭이는 것이 듣고 쉽기도 하고, 자살 할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인지 헨델의 '사라방드'를 듣고 싶어지기도 한다. 또 그러나 정확히 그런 것들은 아니다.
무얼까? 두려움? 그래 어쩌면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동생의 죽음 이후에도 동생에 대해서는 두렵다. 나를 어디선가 보고 있는 듯하다. 동생은 나를 보이지 않게 몰래 숨어 숨어 질타한다. 동생은 죽으면서까지 나를 괴롭힌다. 아니 죽음 이후에 더더욱 나를 숨막히게 한다. 내가 생각한 교묘한 살인을 동생은 역이용하여 나의 목을 조른다. 그리고 추궁한다. 내 죄를....... 어길 수 없는 업보를...... 바로 질시와 패배로 찬 살인을 말이다.
맞은편 아파트의 몇 집에 아직 불이 켜진 곳이 보인다. 이 야심한 밤에 무엇을 하는 것일까. 살인을 모의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살인을 모의한 것도 이런 야심한 밤이었다. 그때에도 지금과 같이 맞은편 아파트에서는 몇 집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생각을 해보았었다.
만일 동생이 없다면. 아니 없어진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벌레를 잡으며 동생이 던져주는 시에 만족할 것인가? 기생충, 기생충, 어-이 기생충, 누군가가 나를 자꾸만 놀려댄다. 잘난 사람들이 자꾸만 나를 놀려댄다. 나는 기생충이 아니라 시인인데도 자꾸만 나를 기생충이라 한다. 사람들아 나는 시인이다. 대학로, 신촌, 명동 바닥을 거니는 여대생의 팔에 안긴 시집 한 권의 주인공이란 말이다. 그러나 내가 정당히 외칠 수 없는 이 원죄는 어디서 왔나. 나는 나만의 왕국을 건설하여 다스리고 싶다. 추종자들은 나를 받들고 나의 절대성은 언제나 관철된다. 왕국. 그래 이제 생각이 난다. 내가 원래 왕이었었지. 내가 다스리고 있던 곳이 보인다. 그러나 백성들에게는 동생이 더 인기가 있었지. 맞아, 내가 왕궁을 거닐다 보면 동생은 하프를 켜면서 시를 읊고 있었지. 나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동생을 쫓아 버렸어. 국가의 위협적 인물이로다. 그를 추방시킬 제도를 만들라. 도편추방제. 이제서야 모든 게 환해진다. 나는 과거의 회상으로보터 용기를 얻어 현세에 그를 추방시킬 음모를 꾀한다. 동생에 대한 나의 음모는 나를 해방시켜 줄 것이다. 보아란듯이 그를 제거하리라. 자, 이제 나는 그를 어떤 식으로 추방하여 내가 기생충이 아닌 시인임을 세상에 고할까.
모함을 할까? 아내야 머리 좋은 그놈은 빠져나올게 틀림없어. 아, 그때처럼 추방시킬 수만 있다면. 그러나 추방시켰다가 그를 추종하는 놈들과 함께 모반을 하면 어떻게 하지? 가만, 혹시 옛날에 내가 그놈을 추방시켰을 때도 그놈이 다시 나에게 쳐들어왔었나?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여튼 지금은 추방만으로는 안 된다. 다시 쳐들어올 위험도 있고. 그렇지. 살인이다. 죽음뿐이다. 윤희의 영겁을 벗어버리도록 완연한 죽음. 아주 깊고 깊은 죽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관에 못을 박자. 뼈를 갈고 머리털 하나까지 모두 태우자. 그를 추종하는 놈들도 아주 철저히 죽이자. 나를 기생충이라 부르는 동생의 추종자들도 모두 죽이자 죽여. 그렇게 해야만 후환이 없다. 그렇게만 되면 완연한 해방이다. 전횡이다. 음,...... 그러나 내가 죽인 것이 탄로나게 하면 안된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살인이란 아주 흔하디흔한 일이니깐 말이다.
권력으로서도 범인 없이 아주 쉽게 살인을 할 수 있고, 제도로서도 보이지 않게 아주 간단하게 죽일 수 있다. 사회 구조 속에서는 더욱더 교묘히 살인을 즐길 수 있다. 죽은 시신 앞에서 죄송하군요, 유감입니다, 우연입니다면 그뿐이다. 나는 그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내가 권력을 가진 것이 없다. 구조와 제도 속에서 죽이기에는 언제 죽을지 시간이 불명확하다. 나는 지금 당장에 동생이 죽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우연을 가장한 사고사. 실족사.
화재. 익사. 자동차 사고. 과실치사. 그 중에 나는 산에서의 실족사를 생각한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와 동생은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산에 간 적이 없다. 처음 가보는 산에서 죽는다는 것이 무언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또 나는 산에 오르는 정복감과 동생을 정복하는 두 가지의 정복감을 동시에 만끽한다. 산에서의 사고는 태반이니까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는다. 인적이 드문 곳이면 들킬 염려도 없다. 완벽하다. 후후. 게획만은 완벽했었다.
동생.
우리는 여행을 가야겠다. 아주 긴 여행을. 어쩌면 돌아오지도 못하는 그런 긴 여행을.
해남을 지난 813번 국도를 따라가면 송호리가 나와. 그 송호리에서 좀더 남쪽으로 끝까지 내려가면 토말, 땅 끝이라는 곳이 나오지. 난 그 땅 끝까지 갈 것이야. 이 땅을 살아가면서 땅 끝도 가보지 않고 중간만 보고 절망하거나 혹은 단정한다면 너무도 서글픈 일이 아니겠는가.
난 지금부터 사공이야. 난 같이 여행을 할 배가 필요해. 강의 기원을 찾아서 같이 갈 배 말이야. 난 아주 예전부터 매우 궁금했어. 과연 강은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네가 배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어. 난 갈 거야, 떠날 거야. 우리 같이 가자. 배가 없는 사공은 외롭거든.
힘이 매우 드는 법이거든. 강을 거슬러 근원을 찾아, 길을 찾아.
여행. 여행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지 않나. 어디론가, 그곳에 가면 무슨 일인가 생길 것도 같고. 무언가 해답을 얻을 것만 같은. 사실 나는 여행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녀 봤어도 내가 항상 생각하던 그런 해답을 구한 적은 없었어. 하지만 또 다시 여행을 가게 되더군. 꼭 어디로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여행일 수도 있지 않겠나.
동생을 산으로 끌고 가기 위해 난 여러 날을 준비했었다. 동생은 나의 생각들을 곧잘 간파하기에 모종의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었다.
바로 화해의 제스처. 나의 이 말에 동생은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있다가 형, 형은 계속 벌레를 잡을 거야 하고 힘없이 물었다. 물론이지. 나의 사명은 벌레를 잡는 것이거든. 그것이 나의 업원이거든. 내게 뿌리 박힌 저주이거든. 또 말없는 동생의 초월한 모습. 그 초월한 모습 내면 깊숙한 심연의 사고. 동생도 역시 그때 이미 나에 대한 모종의 기습적이며 역습적인 파상 공격을 준비했었다.
바보같이 나는 그때 눈치조차 못 채고 마음만 들떠서.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왜 그리 가슴이 설레었는지. 나의 시가 아니라는 그 동안의 악성 루머를 깨고 왕위에 등극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절대자라는 칭호가 내 마음에 안착된다. 나는 자고 있는 동생을 마지막으로 보았다. 이제 너는 이 밤이 지나면 죽음의 긴 여행을 가겠지.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지 아니면 알지만 이미 지쳐 모든 것을 초월했는지 너무나 자연한 모습이었다. 나는 너를 꼭 죽여야만 하나.
진정 이 방법 외에는 나를 구원해 줄 그 무엇도 없단 말이지. 눈물 같은 찝찝한 것이 흐르기는 했지만 벌레만 잡는 씹어 죽일 내 업원을 생각하며...... 사라져 버려라 이놈. 제발 사라져 버려라. 죽어다요. 죽어다오.
죽음. 죽음 다음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혼이라는 것이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얼이라는 것도 없었으면 좋겠다. 단지 그냥 뇌가 먼지가 되어 아무런 사고를 가지지 못하면 좋겠다. 다시는 내가 저주를 생각지 못하도록 그냥 마구 썩으면 좋겠다.
오늘로부터 사십구 일 전, 그래서 동생과 나는 그렇게 토말에 있는 산으로 갔었다. 내가 산으로 유인할 필요도 없이 동생은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자며 산으로 가자고 했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도록 산으로 올라갔었다. 우리는 산 정상에서, 땅 끝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기로 했었다. 신이 태양을 기다리듯이, 창조자가 피조물을 기다리듯이, 동생이 나를 기다리듯이.
우리는 말없이 정상까지 올라갔었다. 그러다가 정상에 거의 다가서자 동생은 나에게 사람들이 산을 왜 오르려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다. 동생은 산을 애써 오를 하등의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이미 모든 것들을 정복했었고 지배해 보았기 때문에 말이다. 무아와 윤회. 동생은 이제 산을 내려와야 할 단계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태초의 황금의 종족에서부터 지금의 돌의 종족까지, 선택한 것도 없었고 지배한 적도 없었다. 나는 이제 이 산에서 영겁의 세월 동안 맺힌 저주를 풀어야 만했다. 테베에서부터의 지배자인 동생은 이제 윤회를 마쳐야 한다. 나는 문하생에서 지배자로 진보를 거듭해야 한다. 이젠 나도 전횡의 길로 간다.
산 정상에 도착하니 저녁이 되었었다. 모든 산속 깊은 숲속에는 판 적 공포가 서려져 있다. 나는 이 공포감에 어떤 신비한 경외감을 가진다. 환상과 환청을 가져오는 무언가 비밀스러운 듯한, 어디에서부터인지 시작되었는지를 모르는 소리들, 마법들...... 나는 기묘한 판의 정령들을 심호흡으로 들이마셨다. 싸늘함으로 내 가슴속에 들어와 답하는 정령들. 동생은 어두워서 안 보인다고 텐트를 빨리 치자고 말했다.
동생과 나는 텐트를 치고 산책을 갔었다.
동생은 밤공기가 시원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별이 잘 보인다고 했다. 동생은 무언가 말을 하고픈 모양이었다. 나는 동생에게 아무 이야기나 해달라고 했다. 형, 내가 이야기를 한 가지 해줄까? 이건 내가 아는 어느 한 나이 많은 선배 연극 단원의 이야기인데...... 동생의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시작하였었다.
그는 진정한 연기자가 되고 싶었어. 완벽의 연기를 구사하는 배우 말이야. 그는 그가 연기를 하면 관객은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전혀 모르더라도 단지 그가 맡은 배역의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러한 연기를 한번이라도 하고 싶었지. 내가 보기에는 그는 그러한 연기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 외의 모든 사람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하더군. 오히려 혹독한 비웃음만을 줄 뿐이었지. 모두가 자기 경험에 비추어 보고는 그를 무능하다며 일찌감치 다른 일을 해보라고 은근히 권유하는 단원도 있었고, 혹자는 마치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연기자인 양 착각하고는 그에게 연기 지도를 한답시고 노리개처럼 데리고 노는 사람도 있었지. 그 빌어먹을 상상력이 빈곤한 경험론자 들이 말이야. 도대체 그를 어떻게 보고는...... 어쨌든 그는 단역이라도 좋으니 제발 연기를 하게 해달라고 했었지. 하긴 요즘처럼 배곯아가며 연극을 하겠다고 제발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마당에 애써 그를 나가라고만은 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 그뒤로 그는 그에게 주어진 단역들을 소화해내기 위해 경험론자들이 읊조리는 경험을 찾아나서기 시작했지. 그 노력은 실로 무서울 정도였어. 그 경험론자들에게 단지 칭찬받기 위한 그 노력은 일종의 광신이었지.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의 역할을 맡으면 그는 배역을 맡는 그날부터 공연 전날까지 근 두세 달을 거리를 활보하면서 행인을 연구하는 정도였으니 말이야. 그러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단역을 맡아야 했어.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으로, 부랑자로, 도둑 3으로, 경찰 2로...... 대사가 두세 마디라도 그에게 배정된다면 그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정말 단역만을 맡게 되었어. 그것도 우리 극단에서 뿐만이 아니라 행인 9까지 필요한 주위의 모든 극단에서 그는 활동을 했었지. 그는 그 길만이 그가 배우로서 살아남고 타단원들에게 인정을 받는 길이라 생각을 했대. 그렇게 24년을 보냈어. 내가 그 선배를 안 것이 5년전부터 였는데 그가 나에게 작년에 이런 말을 했어.
- 자네는 사티로스극을 했으니 알 수도 있겠군. 그래 자네는 무대 위의 광대가 언제 가장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낀다고 생각하나? - 글쎄요, 음, 공연이 끝난 뒤 불이 켜졌을 때가 아닐까요? 불이 꺼졌을 때는 관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불이 켜지고 난뒤 관객은 한 명도 없고 오직 무대 위의 광대 자신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을 때요. 자신을 지켜볼 단 하나의 관중도 없다는 게 가장 슬프죠.
- 허허, 일리는 있네만 아직도 자네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구먼. 나는 말일세, 이렇게 생각한다네. 오히려 불이 꺼졌을 때라고 생각한다 네. 관객이 있든 없든 간에 해야만 하는 광대의 운명 말일세. 정말이지 이젠 나도 지쳤어......
아마 그 대화가 그 선배의 마지막 자신의 모습이었을 거야.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이상한 것은 그 후로부터야. 그뒤로 그 선배는 목소리가 변하기 시작하더래. 5년 전 강도 역을 맡았을 적의 강도 목소리가 나기도 했다가 어떨 때는 노인의 목소리, 또 어떨 때는 부인의 목소리, 심지어 아기의 목소리가 나는 거야. 처음에 우리 단원들은 발성 연습 삼아 말하는 줄로만 여겼었찌. 그런데 자신은 자신이 말을 할 때마다 괴로워하는 거야. 마치 벙어리가 꼭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발성이 안 되어 괴로워하는 것같이 말이야. 왜 괴로워 하냐고 내가 물어 보았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한 질문이었지만 말이야. 그는 자기 자신의 원래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는 거야. 그는 나보고 전에 자신의 목소리를 가르쳐 달라고 하잖아. 그래서 나는 선배의 목소리는 이러이러한 목소리였었다고 내가 설명해 주었지 않겠어? 그랬더니 그는 내가 설명한 자신의 목소리를 차츰차츰 내기 시작했는데-마치 아기가 처음 말을 배우는 것같이-그가 내는 목소리는 예전의 선배의 목소리가 아니었고, 내가 설명한 목소리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는 목소리만 낼 뿐이었어. 나는 그게 아니고 예전의, 고유의 당신의 목소리는 이러이러 했었다고 다시 설명을 해주었지. 이번에도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시 내가 설명한 목소리의 흉내만이 되풀이 될 뿐이었어. 그는 한참을 울더군.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녹음기가 되었어.
이것으로만 끝나지 않았어. 그런 일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도 그 모임에 나타나지 않았어. 하루도 빠짐없이 나타나는 그였는데 말이야.
궁금한 나는 그의 집을 찾아가 보았지. 거울이 깨진 방안에 마치 아이들로부터 피난 온 원숭이같이 그가 웅크리고 앉아 있더군. 나는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 보았겠지. 대뜸 나를 보고는 한다는 소리가 자신이 강도였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겠어.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지.
그러면 자신이 모기업 총무과장인지를 묻는 거야. 나는 웃으면서 역시 아니라고 말을 했었지. 그랬더니 그는 하염없이 울면서 그는 자신이 누구였으며 무엇이었었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야. 나이도 모르겠고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성별조차 모르겠다는 거야. 나는 당신은 배우였소라고 말을 했지만 그는 연기를 한 기억이 없다는 거야. 그러면서 마냥 울기만 하는 거야. 후우--, 형, 결코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는 거야.
동생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나는 그 배우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묻지를 않았다. 또 왜 동생이 죽기 전에 그 이야기를 나에게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동생은 이야기를 다했고, 나는 동생과 같이 단지 끝이 없이 걸을 뿐이었다. 동생이 다시 말을 이었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낭떠러지가 나와...... 형,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내가 저기 낭떠러지에 발을 헛디뎌 떨어져서 아주 작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고 쳐, 형은 나를 구해줄까? 나는 동생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했고 다만 내 몸이 추워짐을 느낄 뿐이었다. 내가 여기서 죽어 없어지면 앞으로 형은 밤마다 벌레 잡는 일을 하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내 서랍 안에는 아직도 충분한 양의 내가 적은 시가 들어 있거든. 형은 무엇을 택할 것이야? 벌레야? 시야?.......
나는 형이 나를 구해 줄 것이라 믿어. 내가 아는 형은 그럴 테니까.
나는 또다시 고열에 휩싸일 것 같았다. 정보가 샜는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잘못했다고,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할까? 무언가를 의지하고 싶어졌다. 어지러워지면서 오히려 내가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태어날 때도 이렇게 어지러웠고 끝이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었지.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빛도 보이질 않는다.
형, 형은 나를 부러워했거나 시기했을 수도 있겠지. 아마, 그럴거야.
하지만 나 또한 무척이나 괴로웠어. 형이 시를 구걸하는 그 비참한 모습. 시기와 탐욕으로 바라보는 피 서린 눈발. 벌레를 찾아 방구석을 돌아다니는 머리통. 불에 지진 팔. 끈으로 묶인 자국이 서려져 있는 시퍼런 목. 수면제가 들어 있는 위. 대못에 박힌 발바닥. 그리고, 헉헉..... 벌레가 들어 있는 심장. 난 형이 벌인 그 전쟁을 마치고 싶어. 형과 나는 주종 관계, 계약 관계였지. 벌레를 잡아다 주인에게 바치고 곡물을 얻어가는. 혹시 우리가 죽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될 수 없는 거야.
형이 될 수 없는 거야. 형은 형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기원전부터 싸워온 둘만의 전쟁은 이제 끝날 수 있을까. 난 이제 끝내고 싶어.
어떠한 운명이 다시 전쟁을 부채질하더라도 말이야. 자, 형, 가아안- 다아. 너무도 순간. 동생은 나뭇가지 대신에 벼랑에 손끝을 의지한 채 매달렸다. 주위는 매우 어두웠으나 나는 분명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고요한 산중에 동생의 거친 숨소리가 전해져 왔다. 형, 선택해.
형이나 나나 우리는 세상에 갇힌 거야. 갇혀서 사육되어온 거야. 나는 이제 완전한 선택을 했어. 이제 형이 선택할 차례야. 이런 값진 선택은 다시는 없을 거야. 나는 기억이 나. 형의 시기스런 눈발을 피해 어두운 방안에 혼자 갇혀 있던 그 공포가. 이제 난 탈출이야. 나만의 선택으로.
나는 그 자리에서 어지러워 아무런 것도 할 수 없었다. 선택? 무엇을. 나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너는 죽으면서까지 무엇을 택한 것이냐?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느냐. 내 자신을 찾으라고? 너에게 곡물을 얻어 가는, 시를 얻어 가는 그래서 벌레만을 잡는 나를 찾으라고? 나?
세상의 많은 경우의 수가 나를 짓누르며 엄습해온다. 이 세상의 모든 경우의 수가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 어느 하나도 선택할 수 없었다. 나는 여태껏 '선택'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게 끌려 다니며 살아왔기에 그 뜻조차 쉽게 생각이 나질 않았다. 매달린 동생의 숨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온다.
난 형을 믿어. 형은 나를 시기하고 미워했을 수도 있지만, 형은 알아? 나만이 형을 사랑한 것을? 나만이 형을 인정하고 알아준 것을.
그렇지만 이건 형도 알아야 돼. 형의 추종자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내가 형을 더 추종하는 것을. 그러니 형도 선택해줘, 제발. 형,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는 거야. 모든 이가 안 알아주어도 나만은 형을 사랑해..... 자, 형 선택해.
나, 인정, 패배, 시기, 동생, 죽음, 벌레, 시, 기생충. 동생은 손에 힘이 빠지며 서 있는 나를 점점 멀리하며 밑으로, 밑으로 떨어져 갔다.
떨어져 갔다. 떨, 어, 졌, 다.
그날 어떻게 산을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동생이 떨어진 낭떠러지 위에서 본 산의 높이는 실로 조그마하였다. 한달음만 치면 낭떠러지 밑으로 내디딜 것만 같았었다. 아...... 그때 나는 그 한달음을 내디뎌 야만 했었다. 땅 밑의 모든 산초나무들이 가시를 앞세워 낭떠러지 끝에서 위로 치솟아, 그 높이는 낭떠러지의 어깨와 같았었다. 정말이지 한달음이면 동생의 부스러진 뼈와 살을 안기에 충분할 것 같았었다.
그러나 나는 그 한달음 대신에 수만의 걸음으로 산초나무의 가시를 헤 치며 아래로 아래로 뛰었었다. 중력에 맡기고 그냥 추락하는 기분으로 내 몸을 맡기며 뛰었었다. 내가 산 입구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에는 기다리던 아침해가 동생의 시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동생이 기다리던 해는 동생과 조우를 하지 못하고 그렇게 떠오르고 있었다.
서울로 오는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었다. 버스 안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어제 오후 7시경 공덕동 권모씨의 지하 전세방에서 살던 일가족이 동반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저 세상에 간다라는 짤막한 유서를 남긴 채 모두 숨져 있는 것을 오늘 아침 이 집주인 권모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으나 이미 숨져 있었습니다. 이들 일가족은 경북 임하군 보성 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 이겨 작년 서울로 올라왔으며 지난 해 10월, 현재의 지하 방을 전세 4백만 원에 얻어 살아왔습니다. 숨진 일가족의 가장 김씨는 경기도 부천의 공장에서 작업 도중 팔을 잃어버린 후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해 평소 세상을 비관하며 지냈었다고 인근 주민들은 전하였습니다. 다음 뉴스......'
라디오를 튼 장본인인 버스 기사는 살인에 대해서 알까? 나는 주위를 둘러다 보았다. 버스의 흔들림에 아무런 저항이나 지탱함도 없이 그냥 몸을 맡긴 채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면서 앉아 있는 무감각한 승객들. 그 승객들은 죽음의 의미를 모른다. 동생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리고 공덕동 권모씨가 왜 죽었는지를. 하다못해 늙은 연극단원이 왜 자기 자신을 잃어갔는지도. 나는 그 승객들이 미워진다. 흔들리는 대로 흔들리는 그 유연함이 나에게 불현듯 테러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은 오늘 벌어진 두 가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할까? 자살과 방관. 자살과 타살. 실족사, 살인. 우연한 사고, 필연적인 살인.
필연적인 사고, 우연한 살인. 그들의 죽음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동생은 죽었는가 아니면 내가 죽였는가. 권씨의 지하 전세방의 한 식구의 죽음이 자꾸만 교차되어 생각난다. 미필적 고의, 미필적 고의, 미필적 고의......
산에서 내려온 그날 이후 나는 지금까지 예전에 앓았던 고열에 시달렸었다.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는 거야.
나는 동생이 죽은 지 사십구 일 만인 오늘 아침에 그녀를 만났었다.
동생의 약혼녀이자 나의 첫사랑을. 물론 그녀는 내가 죽은 동생인 줄로만 안다. 동생 죽음 이후 사십구일간 나는 동생 행세를 했었다.
동생의 책상 서랍 안에는 동생이 적은 시가 가득했었고 어느 누구도 구별하지 못하는 똑같이 생긴 외모와 체격, 음성 덕택에 나는 그렇게 지낼 수가 있었다. 나는 동생의 죽음 이후, 나의 저주를 풀고 나의 세상을 만드는 듯 싶었었다. 동생의 시로서, 동생의 행세를 하면서, 동생의 추종자들을 만나 나의 존재를 과시하면서 삶을 즐기려 하였었다.
그러나 편치 않은 안락감과 석연치 않은 고요함. 그것은 마치 해일이 불어닥치기 전의 잔잔한 파고와도 같았다. 어디선가 아직도 지켜보고만 있을 것 같은 동생의 눈길에, 나는 여전히 저주 속에서 갇혀 살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을 한다. 형,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는 거야라고.
나에게 형의 죽음을 묻는 그녀가 가증스러워 보였다. '형의 죽음은 정말 안되었어요. 좋은 분이었는데...... 장례식에 못 가서 정말 미안해요.' 가증스러움. 그녀에게서 가증스러움을 확인할 수도, 찾아볼 수도 없었지만 나는 왠지 가증스러움을 자꾸만 느낀다. 나는 그녀를 짓밟고 싶었다. 그녀의 육체와 영혼까지. 아직도 동생이 지켜본다면 나는 발악을 하고 싶었다. 동생에 대한 단 하나의 성취감이라도 갖고 싶었다. 동생은 빌어먹을 능력 없는 늙은 연극단원과 나를 비교하여 끝까지 조롱하고 야유하면서 내게 자신을 영존시켰다. 또 동생은 자신의 예기치 못한 돌변스러운 죽음을 나에게 던짐으로써 나에게 옥죄 같은 답을 요구하였다. 결코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고? 그래 그렇다면 나를 보여줄까? 최후의 일각까지 너에게 저항을 하고 답을 거부하고 발악을 하는.
그녀와 나는 커피숍을 나와 대낮의 도시의 번화가를 거닐었다. 어젯밤의 후유증이 아직 채 가시기 전의 번화가는 스산하였다. 미찌고 런던 옷가게 앞의 젊은 여종업원은 빨간색 플라스틱꾸 양동이에다 마포 걸레를 질퍽질퍽 빨고 있었고, 맞은편 레코오드 가게의 아가씨는 젖통을 열심히 흔들거리며 윈도오우를 닦고 있었다. 거리에는 캐롤쏭이 신경질이 나도록 큰 소리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내 앞을 걸었다. 그녀의 뒤를 걸으면서 나는 그녀의 흔들거리는 엉덩이를 꿰뚫어본다. 치마에 팬티 자국이 어렴풋이 보이고 곧 터질 것 같다. 뾰족구두를 신은 그녀의 육체는 한걸음, 한걸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흔들렸다. 그녀는 뒤따라오는 나와 걸음을 맞추려는지 가끔 뒤를 힐끔 돌아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나는 그녀의 팔을 낚아채며 결혼하자고 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에 너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형의 죽음 이후에 외롭다고, 괴롭다고 말하면서. 그녀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고는 다시 이것도 저것도 아닌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넌 역 시...... 사실, 동생은 그렇게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단지 그녀가 일방적으로 동생을 좋아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동생의 추종자였다.
추종의 대상이 없어진 추종자. 너 역시 짓밟히기에는 충분한 죄를 갖고 있다. 난 충분히 알고 있었다. 동생이 그녀를 만나준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를 진정 좋아했었지만 그러나 그녀는 동생에게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뿐이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안았었다. 무엇이 그녀를 감동시켰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하며 나의 품에 안기어 울었다.
전야제. 해일이 일고 폭풍 치는 오늘밤. 모든 내일을 앞둔 지금은 전야제. 이 전야제가 다 끝나가는 듯히다. 몸이 피곤하다. 어깨가 무거워지고 유서를 적는 속도가 차츰 늦어진다. 이제 유서를 마칠 때가 온것 같다. 동이 터오고 있다. 사물의 색깔들이 검은 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더니 이제 제 색을 띠기 시작한다. 방안은 사물들의 제 색 찾기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조용하고, 나는 오늘 죽을 것이다. 맞은 편의 아파트 창문에서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러 집이다. 새벽밥 짓는 소리가 몇 군데서 들려 오지만 불켜진 그 모든 집에서 들려 온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도 소리 없이 불만 켜진곳이 몇 집 있을 것이다. 그들도 전야제를 보낸 것일까?
째깍째깍째깍...... 나는 이 유서 앞에 가만히 있는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구가 한 시간 가량 움직였다. 지구가 한 시간 가량 움직이는 동안 나는 가만히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전야제, 동이 터온다. 언젠가 과거에도 한번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은색 갑옷을 입고 막사에 있었지. 그리곤 마지막 전투가 있었어. 살인을 계획하던 날의 못다란 기억들이 이제서야 주마등같이 지나간다. 그래, 나와 동생은 서로의 칼에 찔린 채 우린 죽어갔었지. 자기 자신을 못 찾은 채 우리는 서로의 칼에 찔려 죽어 갔었지. 그렇다면 진정 이제는 내가 죽을 차례인가?
먼 곳의 직장으로 출근하려는지 벌써부터 차량에 시동 거는 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울린다. 출근길, 학교길을 배웅하는 가족이 보인다.
아내가 손을 흔든다. 아빠와 국민학교에 올해 갓 입학한 큰아이가 차에 올라탄다. 어미와 아직 학교에 들지 못한 작은아이가 어미따라 빠이빠이 한다. 아이. 아이들. 시간은 역행할 수 있는가. 모든 걸 되돌리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고 한다. 나는 불현듯 아기가 되고싶다.
오늘 죽음을 앞둔 바로 지금 살고 싶어진다.
아포카리포스 apocalypse--죽음. 누군가가 말했었지. 그것이 곧 시작이라고. 죽음의 기인 검은색 철 덩어리로 된 기차를 타고 역시 기인 터널을 지나 아주 희인 플랫포오옴에 들어서면 아브라카다브라 abracadabra--축복, 즉 탄생이라고. 죽음이 곧 축복이라고. 나는 죽음으로서 과연 이 저주를 풀 것인가. 동생과의 악연도 끝이 나고 진정 축복을 받을 것인가. 그러면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걸까?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로......
동생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동생이 얘기한 늙은 연극 단원은 어떻게 되었나. 해답을 구한 사람이 있을까...... 차라리 나는 계속해서 벌레를 잡을 것을. 그러나 동생이 곁에 와서 조용히 말한다.
죽어서 속삭인다. 나지막이. 아주 나지막이. 형, 결코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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