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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음식 토정비결 [전영순 하정화]

by Casey,Riley 202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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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토정비결 


  * 차례

  <토종이란 무엇인가>

  <곡류>

  1.쌀/우리 민족의 생명원
  2.보리/모진 한파 속에서 자란 오곡의 장
  3.참깨/신혼의 단꿈처럼 고소한 맛과 향기
  4.참밀/공해 없고 수확량 많은 토종밀
  5.콩(대두)/구수한 된장맛의 뿌리
  6.녹두/그릇된 역사를 응징하는 곡식
  7.팥/귀신을 물리치는 신성한 곡식
  8.조/알갱이는 작지만 가장 오래된 곡식
  9.메밀/도인들의 선식

  <본초류>

  10.인삼/세계 최고의 고려 인삼
  11.칡/굶주린 민중들의 배고픔 달래주는 구황식물
  12.고사리/줄기 연하고 향 짙은 토종 고사리
  13.약쑥/쑥중의 귀족 싸주아리쑥
  14.오미자/다섯 가지의 신비한 맛
  15.산수유/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강장제
  16.도라지/심심산천에 흐드러지게 핀 꽃과 살진 뿌리
  17.더덕/인삼의 사촌
  18.버섯/맛과 향기를 갖추고 암을 예방하는 생약제
  19.황기/인삼대용의 보약
  20.구기자/백년해로하는 불로의 묘약
  21.무/배처럼 시원하고 단맛나는 조선무
  22.호박/어디든 거침없이 뻗어가는 호박넝쿨
  23.율무/윤기나고 찰기있는 토종 율무는 최고의 미용제
  24.대 (죽순)/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것이
  25.민들레/땅 속 깊이 뿌리내리는 민초
  26.소나무/이파리 두 개 달린 이엽송이 토종
  27.고추/톡 쏘는 매운맛, 시집살이의 상징
  28.마늘/단군신화에도 등장하는 강력한 항균제
  29.생강/독특한 맛과 향기

  <과실류>

  30.밤/토종밤은 약밤
  31.은행/무병장수하는 이 땅의 황금나무
  32.대추/단오날 시집가는 양반 나무
  33.감(곶감)/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친 곶감맛
  34.도토리/옛날엔 개밥에 도토리, 지금은 미용건강식
  35.사과/마술의 과일
  36.잣/우리나라의 특산물
  37.호두/사람의 머리를 닮은 고급 과일

  <해산물류>

  38.명태/동해안의 보물
  39.김/식욕 돋구는 장수식품
  40.미역/산후 조리에 빠질 수 없는 회복식
  41.가자미/가자미 눈은 오른쪽에 치우쳐
  42.갈치/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칼 모양의 바닷고기
  43.돔/백 가지 물고기의 왕, 최고의 횟감
  44.굴비(참조기)/누런 황금색의 영광굴비가 토종
  45.오징어/까마귀의 적 오적어
  46.해삼/여름잠 자는 바다의 삼
  47.굴/갯바위에 피는 꽃

  <동물류>

  48.한우/이 땅의 농부를 닮은 우공
  49.오리/현대인의 공해독을 풀어주는 명약
  50.염소/정력에 좋은 수염있는 소
  51.토종닭(오골계)/토속적인 삶 속에 뿌리내린 영물
  52.토종 돼지/제사상에 머리 올리는 부와 재물의 상징
  53.토종벌 (한봉)/추위와 전염병에 강한 토종벌
  54.한국호랑이/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백수의 왕
  55.까치/상서로운 영물, 한국의 나라새
  56.개/충성과 의리의 화신

  <기호품>

  57.차(차)/애연가와 고기를 즐기는 사람에게 필요한 비타민의 보고
  58.토종술/인류와 함께 탄생한 풍류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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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종이란 무엇인가>

  신토불이, 향토식은 자연건강의 원리

  서구식 식단으로 식생활문화가 바뀌고 외국 농산물이 우리 식탁을 점령하는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 농산물 먹기' 또는 '우리밀 살리기 운동'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천되고 있다. 농산물 수입개방화 물결에 맞서 펼쳐지고 있는 이러한 운동의 사상적 바탕은 '신토불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신토불이.
  이것은 우리 몸과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땅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다. 우리 인간도 자연계 생물 중의 하나이며 자연의 일부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 고장의 풍토에서 생산되어 우리 체질에 맞는 것을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신토불이 사상은 원래 다섯가지 자연건강식 원리 중의 하나다.
  1)제 철에 나오는 식품을 섭취(시식)하고, 
  2)제 고장에서 생산된 것을 먹으며(신토불이),
  3)한 가지 먹을거리는 그 전체를 먹어야 하며(일물전체식),
  4)골고루 섭취해야 하며(균형식),
  5)가공되지 않은 것을 먹어야 한다(비가공식).
  원래 신토불이는 불교의 불이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하나(생사불이)이며 색과 공은 다르지 않다(색불이공)고 한다. 이것을 불이철학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사상이 자연식 운동과 결부되어 신토불이식의 원리를 탄생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불교철학에 근원을 둔 신토불이식은 일찌기 일본에서 자연건강식 운동으로 전개된 것으로 우리 입장에서는 향토식이라고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다. 반면에 신토불이 사상은 신라 화랑도들도 추구하던 철학으로 우리의 수천 년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용어의 유래가 어찌되었건 우리가 살고 있는 토양에서 얻은 농산물에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풍부히 들어있다는 사실은 이제 불문가지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자기가 태어난 땅에서 자란 식물과 동물을 먹어야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우리의 몸은 흙의 성질을 닮았으며, 흙 자체가 생명의 원천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인간은 잡식동물이므로 동물과 식물을 번갈아 섭취하게 된다. 이때 우리가 섭취하는 식물은 당연히 그 영양분을 토양에서 섭취하게 된다. 따라서 토양의 성질에 따라서 식물의 성분도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섭취하는 인간의 체질도 결국 토양의 성질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식동물은 그 땅에서 자란 식물을 먹을 것이며, 육식동물은 토양-식물-초식동물-육식동물-인간의 먹이사슬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사람의 몸과 땅이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감로수가 흐르는 우리 땅

  국산 농산물이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는 것은 우리의 체질이 오랜 세월 동안 거기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쌀의 경우,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되는 안남미는 우리가 먹어보면 맛이 좋지 않고 끈기가 없는 반면 동남아 지역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 쌀이 찐득거려서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열대지방 사람들에겐 안남미가 건강에 좋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우리 쌀이 맛이나 영양면에서 좋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토산물의 종류에 따라서는 동일한 작물이라도 우리 흙에서 난 것이 외국산에 비해 절대적으로 품질이 우수한 경우가 있다. 흔한 예로 쇠고기가 그렇고 인삼이나 더덕 등도 마찬가지다. 고려인삼의 약효는 객관적으로 보아서도 미국이나 캐나다산보다 단연코 그 질이 우수하다는 사실이 오래 전에 입증되었고, 더덕도 중국산은 거의 향기가 없으며 육질이 나무뿌리처럼 질겨서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다.   고려인삼의 씨앗을 일본에 가져다 심으면 당근 같은 인삼이 만들어지고 중국 땅에 심으면 엿가락 같은 인삼이 나온다. 또한 미국이나 캐나다에 심으면 무처럼 크기만 하고 맛없는 인삼이 된다고 한다.
  사과의 경우는 어떤가. 원래 일본 아오모리현이 본고장인 '후지'사과의 경우 본토보다도 우리나라에 건너온 뒤로 세계적으로 맛좋은 사과가 되었다. 그리고 마늘의 경우도 일본이나 중국에 심으면 약효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의 토양에는 어떤 특별한 성분이 내재되어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성분을 '희토류'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는 아직 설명하기 어려운 희귀한 화합물의 원소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역학의 원리에 입각하여 그 원인을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한반도는 지구의 두뇌에 해당되는 곳이라 한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감로수라는 기운이 전국에 흐르고 있으며 이것이 곡식이나 과일, 채소 뿐만 아니라 물고기까지도 맛이 들게 해준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설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앞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 사례들로 미루어 우리 풍토에는 뭔가 특별한 성분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 환경은 나날이 오염의 도를 더해가고 있으며 거기에서 우리 토양과 기후도 예외일 수는 없다. 또한 물밀 듯이 들어오는 외국 농산물이나 종자도 우리를 위기에 빠지게 할 것이다. 그것들로부터 풍토를 지키고 토종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생활터전을 지키는 일만큼이나 중요하고 뜻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토종이란 무엇인가? 
  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기초 조건으로 바람과 흙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풍토가 있다. 그리고 우리 풍토에 알맞는 생명의 종자들이 이 땅에서 자라왔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아무리 하찮은 생명일지라도 그것이 이 땅에서 숨 쉬고 성장해온 역사는 이미 수만 년이 넘었다.
  바람과 흙과 종자, 이것은 우리 삶의 조건이고 삶의 뿌리다.   그들은 우리 선조들의 오랜 친구였고 충실한 일꾼이었으며 또한 오랜 식량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역사이고 문화이기도 하다.   토종이란 우리 조상들의 생활 문화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나라의 기후, 풍토에 알맞게 적응하면서 외래 종자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우리나라 재래종을 말한다. 토종은 우리만이 가진 살아있는 재산,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우리의 보물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 식생활의 원천이어야 할 우리 토산물은 무한정 널려있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외국 농산물의 직접적인 침투뿐만 아니라 종자의 침투 또한 심각한 현상이다. 한 고장에서 하나의 토종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숱하게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한다. 갖은 신고를 거치면서 그 토양의 성질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금수강산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건만 지금 이땅에는 고유한 생명의 종자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있다. 대신 우리 풍토에는 맞지도 않은 생면부지의 낯선 종자들이 마치 우리것인 양, 마구잡이로 번식해가고 있다.
  지금 선진 각국에서는 이른바 종자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기 땅에서 난 순수한 종자를 유전학적으로 연구하고 보전하려는 몸부림은 파괴되어 가는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복원하려는 치열한 노력인 동시에 자기것을 지키려는 안간힘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라져가는 토종을 발굴하고 지켜내야 하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신토불이, 향토식이 건강의 지름길이다.
  둘째, 토종을 지키는 노력은 우리의 환경을 지키는 노력과 일치한다.   셋째, 종자 그 자체가 우리의 문화유산이요, 민족적 힘이 되는 것이다.   넷째, 토종을 가꾸고 지키는 것은 문화적 경제적 종속으로부터 우리의 자율성을 지켜내는 일이다.

  점점 복잡해져가는 국제화 시대에 우리가 정녕 사활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이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의 흙과, 종자를 지켜내는 일은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을 지켜내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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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류>
   1.쌀
   우리 민족의 생명원
   쌀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특유의 맛 때문에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주식으로 고락을 같이 해왔다.   쌀의 원산지는 인도 동북부 아삼(Assam)지방에서 중국 윈난(운남)지방에 걸친 넓고 긴 평야지대로 추정된다. 이 지대에서 출발하여 아시아 각 지 에 방사선 모양으로 쌀이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 한 갈래가 양쯔강 하류로 뻗어나가 다시 북으로 전파되고 황하 유역으로 퍼졌으며 또다시 동쪽으로 전래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우리 쌀의 모양은 뭉특하거나 타원형이다. 그리고 품종에 따라서는 젖색깔(백복)이 난다. 반면에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재배되는 남방형 쌀은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각을 이루고 씨눈 제거 부위가 뾰족하다. 또한 밥을 지어놓았을 때 끈기가 부족하고 비타민 함유량이 우리 쌀에 비해 떨어진다. 외국쌀 중에서 북방형은 필요 이상으로 투명하고 윤기가 있으며 모양이 둥글다. 대체로 쌀알은 굵은 편이며 밥맛이 좋지 않다.
  우리나라는 고대 삼한시대부터 쌀을 식량으로 이용해왔으나 실제 벼농사를 지은 것은 백제 초기라고 한다. 1977년에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에서 발굴된 탄화미와 그 뒤 평양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탄화미 등은 우리나라 쌀 재배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는 귀중한 고대 곡물자료이다.
  이후 쌀 농사는 우리나라 남부 지방을 비롯한 전국으로 보급되면서 기후와 지세, 그리고 수자원이 풍부한 영남과 호남 지방에서 활발하게 재배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쌀 이용이 절정에 달하여 떡, 술, 엿, 과자 등 쌀을 원료로 한 다양한 식품들이 개발되었다.
  벼의 종류는 세계적으로 약 3천 여 종에 이른다. 그러나 널리 재배되는 품종은 이중에서 10~20여 종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0여종의 쌀이 재배되고 있다. 또한 쌀은 세계 생산량의 90%를 아시아에서 생산하고 있으며 대부분 아시아에서 소비된다.이처럼 쌀은 아시아 여러 민족의 생명을 지탱해 왔으며 간장, 된장, 술, 감주, 식초 등의 발효식품과 떡, 과자 등의 가공식품으로 이용되어 왔으니 우리들 생활에 가장 밀접한 식품이다.
  쌀은 도정하는 정도에 따라서 백미와 현미로 구분할 수 있는데 백미에 비해서 현미가 훨씬 높은 영양가를 지녔다. 일본에서 나온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백미를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잡곡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보다 수명이 짧다고 한다. 또한 백미를 편식하면 결핵이나 각기병에 걸리기 쉽다는 내용도 발표된 바 있다. 반면에 현미는 흑색식품의 대표격으로 생명력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씨눈을 가지고 있다. 이 씨눈에는 비타민 종류를 비롯한 갖가지 영양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으며 씨눈 자체도 신비로운 효능을 발휘한다. 뿐만 아니라 꾸준히 현미식을 하면 혈액이 맑아지고 혈관 및 심장 계통의 기능이 강화되는 등 여러가지 효능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효능에도 불구하고 현미식은 널리 보급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현미가 소화흡수율이 낮고 밥맛이 떨어지며 밥을 지어놓았을 때 빛깔이 누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다한 농약 사용으로 과피, 종피 등이 농약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70년대 다수확 품종의 도입으로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급격히 증가했고 마침내 재고량까지 누적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한때는 쌀을 오래도록 보관하는 문제에 연구가 집중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쌀의 특성을 살린 쌀가공 식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를테면 캔 숭늉, 쌀 요구르트, 쌀칩, 쌀빵, 현미 음료 등의 시제품을 식품개발연구원이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기술을 전수 개발하여 상품화할 업체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해마다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농림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8년, 4천 2백만 섬을 넘어섰던 쌀 생산량이 지난 91년에는 3천 8백만 섬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3년 사이에 무려 10% 정도나 줄어든 것이다.
  이처럼 쌀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까닭은 농지의 용도 변경으로 논 면적이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는데다 논으로 남아있는 곳에서조차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에 농민들이 쌀농사를 기피하여 과일이나 채소를 대신 재배하거나 아예 땅을 놀리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쌀이 직접 수입되지는 않지만 여러 형태로 간접수입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테면 지난 몇 년간 과자나 찹쌀가루 혼합물 등의 가공식품 형태로 수천 톤에 달하는 쌀제품이 우회수입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아마도 머지 않아서 우리 밥상에는 외국산 수입쌀이 오르게 될 것이다.

  성분

  쌀의 성분은 전분 약 70%, 단백질 약 10%, 지방 3%, 미네랄 약1.3% 및 각종 비타민류 등이 함유되어 비교적 영양가 높은 식품이라 할 수 있다.   백미는 쌀알의 배유부분에 해당된다. 이것의 주성분은 녹말(당질)이며 다른 성분은 주로 배아에 집중되어 있다. 쌀의 배아)에는 영양학적으로 중요한 여러가지 요소가 함유되어 있다. 특히 비타민E, 비타민B1, 미네랄, 단백질, 지방 및 효소류가 많이 들어있다. 그러나 도정하는 과정에서 영양분이 많이 손실된다. 따라서 쌀의 성분은 도정하는 정도에 따라서 다를 수 밖에 없다.
  현미의 주성분은 녹말(76~78%)이고 단백질(7.2%), 지질(2.5%)과 소량의 비타민B1, B2를 포함한다.
  백미는 현미보다 더 많은 당질을 포함하고 있지만 다른 성분은 쌀겨로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쌀의 약효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다음과 같다.
  * 쌀은 허약한 몸을 회복시켜주고 기력을 되찾게 해준다. 즉, 자양강장 작용을 한다.
  * 정신을 안정시키는 작용이다. 신경의 흥분을 가라앉혀 준다.
  * 위나 그밖의 내장을 강화시키는 작용이다. 그 결과 전신의 신진대사도 활발해지므로 몸도 따뜻해지고 얼굴색이나 피부색도 좋아진다.
  *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 일어나는 '쇠약성 설사'를 멈춰주는 작용이다.
즉, 심신의 쇠약을 회복시켜주어서 설사를 개선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쌀로 지은 밥은 여러가지 유익한 성분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전통적인 밥 위주의 식사가 줄어들고 있어 식물섬유의 섭취가 부족하게 된다. 이것이 성인병 유발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고 최근들어 대장암이 급증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비만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밥이 살이 찌는 원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근거없는 속설에 불과하다. 오히려 밥은 비만을 방지해주는 음식이다. 식사를 하고 나면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이것을 '체열생산반응'이라고 하는데 이 반응이 강할수록 먹은 음식은 에너지화되어 체외로 빠져 나갈 뿐 살로 되지 않는다. 즉, 체온의 에너지가 발산되어 불필요한 부분을 열로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톤 대학 비만연구소의 실험에 따르면 밥과 같은 전분이 많은 식사법은 고지방식에 비해 살이 찌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하려는 사람은 밥을 굶을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밥으로 기초식사를 하면서 다른 음식을 주의해야 한다. 이를테면 밥을 먹지 않은 여성들이 감자, 빵 등을 식사 대용으로 먹는 경우가 많은데 이중에서 가장 살이 찌지 않는 것이 밥이고, 감자가 그 반대이다.
  어쨌든 밥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의 식단을 보존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가장 훌륭한 식생활 문화를 지켜나가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여러가지 잡곡을 혼식하고 콩류를 가공한 식품을 곁들여서 먹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영양섭취가 가능할 것이다.

  쓰임새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은 전체 생산량의 95% 이상이 주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러 종류의 곡식들 중에서 쌀이 마침내 아시아 주민들의 주식이 된 이유는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시아 민족도 다른 곡식과 같이 분식으로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밥으로 지어먹는 입식으로 변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입식으로 할 때의 쌀밥 맛은 좀처럼 싫증이 나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밖에도 쌀은 술, 과자, 떡 등의 원료로 사용되며 쌀겨는 사료 및 미강유(기름)의 원료로 사용된다. 쌀을 이용한 훌륭한 식품 가운데 미싯가루는 찹쌀, 멥쌀, 보리쌀 등을 씻어서 증기로 찐 다음 뜨거운 바람으로 건조하여 약간 볶거나 분말 그대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든 미싯가루는 일종의 즉석 수프이고 전시 비상식품과 구호식품으로도 훌륭하게 쓰인다.
  시중에서 쌀은 보통 비닐 봉지에 들어있는 채로 판매되고 있는데, 이는 구입 즉시 다른 용기에 옮겨서 보관해야 한다. 이 때 방습성 밀폐용기가 가장 좋다. 요즘에 들어서는 쌀벌레를 막아주거나 습기를 방지해주는 저장용기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또한 쌀을 보존할 때는 보존 장소에도 신경써야 한다. 통풍이 잘 되며 건조한 곳, 그다지 습도가 많지 않은 곳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쌀은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떨어지므로 보통 1개월간 소비할 분량을 한번에 구입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토종

  주식으로서 쌀은 곡식 중의 으뜸이고, 쌀 중에서도 으뜸은 찹쌀이다. 맵쌀은 현재 우리의 주식이지만 약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찹쌀은 상당히 뛰어난 약성을 가지고 있다. 이 찹쌀에 속하면서 우리의 토종이라 할 만한 쌀에는 대궐찰이 있다. 약성이 뛰어나  임금님 상에 올랐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궐찰은 다시, 붉은빛을 띤 적동미와 푸른 빛깔의 청량미로 나뉘는데, 적동미를 자홍미라고도 한다.
  이 쌀은 옛날에 산간지방에서 재배했으나 요즘은 거의 멸종되어 버렸다. 다만, 지금도 재래종 벼를 재배하다 보면 여러 품종 중에서 중간분자가 결합하여 간간이 파릇파릇한 싹이 자라나는 경우가 있다. 일반벼를 심어놓고 자세히 보면 유난히 크고 튼튼하며 병충해에도 끄떡없는 포기가 군데 군데 섞여 있는 경우가 있다. 농민들은 이것을 잡종이라 하여 마구 뽑아버리는데 알고보면 이것이 대궐찰이다. 이런 포기를 따로 채집하여 재배한다면 약성 높은 토종쌀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궐찰은 벼의 끝에 까끄러기가 많고 알갱이가 작아 소출은 떨어진다. 적동미나 청량미나 모두 약성은 비슷하지만 적동미는 위장, 비장, 대장 등에 좋고 청량미는 고혈압, 당뇨, 중풍에 좋다.
  이것을 약으로 쓸 때는 죽을 쑤어 먹거나 불에 볶아 가루를 내어 미싯가루처럼 물에 풀어서 마시고, 떡을 만들어 먹어도 된다. 또한 누룩을 이용하여 술에 담가 먹어도 된다. 뽕나무껍질을 같은 양으로 배합하여 마시면 이질, 설사, 부인병 등에 효과가 있다.
  이밖에 토종으로 칠만한 쌀에 산두벼가 있다. 말 그대로 산꼭대기에 심는 쌀이다. 논이 없는 산간지대에서 화전민들이 재배한 것으로 보이는 산두벼는 떡을 만들어 먹게 되면 위장병에 특효약이다. 또한 죽을 끓여먹어도 된다. 물론 오랫동안 섭취해야 약효가 있다.
  이러한 토종쌀들은 대체로 산간지방에서 재배되던 것인데 그 때문에 무논에서 자란 것보다 강한 생명력을 지녔으며 토양의 성분을 많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역시 흙과 생명체는 하나의 유기체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토종쌀의 종자를 보전하고 일반에게 보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쌀 시장이 전면적으로 개방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알게 모르게 많은 외국쌀이 들어오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현재 우리나라에서 널리 재배되는 품종이라도 정확히 찾아내어 토종을 지키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자료
  1.{동아일보} 1992.9.25 금요일자
  2.{민족문화 대백과} 226쪽
  3.{조선일보}10.22
  4.류상채 제공
  5.월간{식품과 건강} 91.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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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보리

  모진 한파 속에서 자란 오곡의 장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누구나 익히 듣고 불러서 잘 아는 [보리밭]이란 가곡의 노랫말 앞부분이다. 지금은 보리의 재배 면적이 크게 줄어들어서 그다지 흔하지 않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지천에 널려있는 게 보리밭이었다.
말하자면 노래만큼이나 보리밭도 흔했던 것이다. 그리고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하는 봄철이면 농촌 아이들이 보리줄기 하나씩을 뽑아 피리를 만들어 입에 물고 다니는 것도 일상적인 모습의 하나였고, 그 보리피리의 구슬픈 가락에는 당시 서민들의 배고픔이 절절히 배어있었다.
  {삼국유사}의 주몽설화에는 보리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주몽이 동부여 대소왕자의 박해를 피하여 남하하였을 때, 동부여에 남은 그의 어머니 유화가 비둘기 목에 보리씨를 달아보냈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리는 상고시대부터 재배되었으며 오랜 기간 서민들의 주곡으로 민족의 생명원이었던 것이다.
  '보릿고개'란 말도 있듯이, 보리는 예전에 가난과 배고픔의 상징이었다. 불과 몇 십년 전 만 하더라도 식량난에 허덕이던 우리 서민들은 해마다 3, 4월이 되면 전해에 거둔 곡식도 다 떨어지고, 보리를 수확하기까지 2~3개월간을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다. 이 때 배고픈 서민들은 보리가 익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는 보리가 익을락말락 하면 덜 여문 보리알을 삶아서 식량으로 사용할 정도였으니 이들에게 보리는 생명의 곡식이었다.
  그러던 중 근대화의 물결이 일면서 어느 정도 식량 자급화가 이루어졌고, 굶는 사람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주식으로 자리잡아온 쌀에 대한 선호 때문에 쌀이 보리쌀보다 비쌌고, 그런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은 쌀 대신 보리쌀로 끼니를 이어야 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경작한 쌀은 농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헐값에 거의 다 팔아치우거나 강제 공출을 당하여 우리 서민들은 쌀농사를 열심히 지어놓고도 쌀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사실 보리는 그 맛이 쌀에 비해 뒤지고 조리하는 데 불편한 점이 따른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다. 게다가 식량 자급이 완전히 이루어진 지금, 우리 국민들은 보리쌀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을 뿐더러 정부미도 마다하고 일반 고급미만 찾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보리가 '오곡의 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식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보리밥 전문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일부러 보리쌀을 섞어먹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국제영양학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백미와 보리쌀을 7:3 비율로 섞어 먹는 것이 가장 좋은 식단이라고 한다. 보리는 쌀에 비해 두 배나 소화가 빠르고, 쌀만 먹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인체의 여러 장애를 없애준다. 이를테면 쌀만 먹었을 때 간장에 지방질이 축적되고, 유산이나 포도산 같은 피로물질이 생성되며, 위에 부담을 주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보리쌀을 혼식하면 이런 현상을 막을 수가 있다.
  쌀밥은 산성이 높아 체질을 약화시키고 염분을 많이 섭취하게 하며, 섬유질이 부족하여 변비를 유발한다. 쌀의 이러한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보리쌀 혼용이라고 할 수 있다.
  보리는 세계 4대 작물 중의 하나이며 재배역사도 대략 1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보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으나 그 중 유력한 것은 이원발생설이다. 즉,보리는 결실하는 보리목의 모양에 따라 2조 재배종과 6조 재배종으로 나뉘는데 이것은 처음 재배 때부터 각각의 야생종으로부터 발달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두 가지 종이 전혀 다른 야생종에서 발생하였는데 이후에 재배 및 용도에 공통점이 많아서 결합한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2조 재배종을 맥주맥이라 하여 맥주의 원료로 쓰고 6조 재배종을 보통 쌀보리라 하여 식용으로 썼다. 또한 알맹이와 껍질의 형태에 따라, 껍질이 벗겨지기 쉬운 쌀보리와 겉보리로 구분하기도 한다.
  보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그 원산지가 밀과 같다는 견해도 있다. 중부 유럽이나 이집트의 석기시대 유물에서도 보리가 발견되었는데 이런 형적으로 미루어 보리의 원산지는 대체로 밀과 같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어쨌든 보리 재배의 역사가 무척 길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우리나라에는 서기 초기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우리나라 땅에 옮겨심어진 보리는 수천년 동안 한겨울의 거센 눈보라와 모진 바람 속에서 우리 민족을 닮은 강한 형질을 갖추어 왔으며 서기 3세기 경에는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보리는 파종시기와, 추위에 견디는 정도에 따라 겨울보리와 봄 보리로 구분되는데 우리나라는 겨울보리가 대부분이다.

  성분

  쌀에 비해 비타민이 많이 들어있고 칼슘 및 철분도 많아 빈혈, 고혈압, 각기병 등의 예방효과가 있다. 또 섬유질이 많아 변비를 예방해주고 장의 운동을 활발하게 해주며 소화작용을 돕는다. 보리죽을 자주 먹으면 위와 장의 기능이 강화되고 소화도 잘 된다. 뿐만 아니라 쌀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고 필수 아미노산도 많아 쌀밥 위주의 식생활에서 오는 영양의 불균형을 막아주며 혈관의 노화방지, 각기예방, 위장보호, 성인병 예방 등의 효능이 있다. 옛 의서인 {식성본초}에도 '보리는 허를 보하고 오장을 실하게 해주며 소화를 돕는다. 또 설사를 그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오래 먹으면 살이 찌고 피부가 윤택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식경}이란 책에는 '봄의 기운이 따뜻하면 모름지기 보리를 먹어야 한다. 서늘함과 따뜻함이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보리는 추위 속에서 자라, 한기가 응축된 냉성 식품으로서 봄이나 여름에는 더위를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체질적으로 비위에 열이 많은 소양인에게는 그 열을 식혀주는 역할을 하지만, 비위가 냉한 소음인에게는 자칫 비위를 더욱 냉하게 만들 염려가 있다. 즉 소음인 체질의 사람에게는 보리가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쓰임새

  예전에는 우리의 주곡으로 중요한 식량이었으나 근래에는 쓰임새가 조금 변했다.
  보리가 쌀이나 밀에 비해서 그 용도가 제한되어 있는 이유는 보리 입자의 구조상 배유부에 깊은 홈이 있어서 보리쌀로 만든 다음에도 이 부분에 과피가 남아 있게 되어 외관 및 맛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영양학적으로 식이섬유의 양이 백미에 비해서 약 3배라고 밝혀졌다. 비타민 B군은 배유부에 있는 홈에 있으나 보리쌀의 맛이나 소화를 돕기 위해서 납작보리로 하거나 둘로 쪼개면 비타민이 줄어든다.
  보리는 정백하거나, 이것을 다시 납작보리로 하여 쌀과 섞어 밥을 지어 식용으로 해왔다. 그러나 구미에서는 이와 같은 이용법은 없었고, 보리를 대부분 맥아(엿기름)로 제조하거나 사료로 이용하고 있다. 한편,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보리를 약간 볶아서 여름철의 보리차로 이용하고 있으나 너무 볶아서 탄화된 보리차에 대해서는 그곳에 포함된 타르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가정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보리 요법도 있다.
  *뜨거운 물에 데었을 때는 보리를 검게 볶아 가루를 낸 다음 물에 개어 환부에 붙인다.
  *곪았던 상처가 터져서 진물이 날 때는 보리알이 터질 정도로 볶아 가루를 내어 식용기름에 개어 붙인다.
  *헛배가 부를 때는 보리쌀을 볶아 가루를 내어 미싯가루처럼 타서 먹는다.

  이것이 토종

  보리는 아무 흙에서나 잘 자란다. 또한 재해에 강하고 잡초를 뽑아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므로 무공해성 작물이다.
토양 자체가 오염이 되어 있지만 않다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작물이다. 아무리 약성이 좋고 순수한 종자가 보존된 토종이라 할지라도 농약에 오염이 되어 있다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보리는 쓰임새가 한정되어 수요도 많지 않고 값도 싸기 때문에 아직 지는 외국산이 점령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지금 재배되는 보리는 거의가 도입종, 또는 교배종이다. 순수한 재래종 보리는 1906년까지 재배되었다고 한다. 엄밀히 따지면 지금 순수한 토종보리는 찾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아직까지 깊은 두메산골 어디쯤에선가 순수한 재래종이 자라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애써 보존하지 않으면 머지 않아 멸종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 참고자료
  1.{약이 되는 식품}
  2.{식품사전}
  3.{민족문화 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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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참깨

  신혼의 단꿈처럼 고소한 맛과 향기

  신혼부부나 남녀간에 사랑이 무르익어 한창 좋은 모습을 보고 '깨가 쏟아진다'고 한다.  이나 콩이 쏟아진다고 하지 않고 왜 하필이면 깨가 쏟아진다고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참깨 특유의 고소한 향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참깨는 원래 강장제로 혈액순환을  게 하고 살갗을 윤택하게 해주며 머리를 검게 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 그리고 예로부터 노화를 방지하고 불로장생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참깨는 젊음과 청춘을 상징하는  물이었고, 사랑에 취해 홍조를 머금은 청춘 남녀의 모습과 참깨의 약리 효과를 연상시킨 결 가 신혼부부의 달콤한 모습으로까지 비유된 것이라 하겠다.
  참깨의 재배역사는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무척 오래되었을 것으로 본다. 학자 에 따라서는 '슨다'열도(열도)가 참깨의 원산지라고 말하기도 하고 아프리카의 나일강 유역이 원산지라는 설도 있다. 이 중에서, 나일강이 원산지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고 거기서 실 로드를 따라 온대형 참깨가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되었으며 해로를 통해 남쪽으로 전파된 것은 열대형 참깨라고 한다.   이것은 소승불교의 전파경로와 유사한데, 불교가 발생한 인도 서 육식을 금지함에 따라 고지방 영양식으로 참깨를 활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소승불교의 보급에 따라 말레이반도 등으로 전파되었으며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에는 대승 교와 함께 전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대략 고려 중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참깨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 고대사회까지 전파되어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예컨데 클레 파트라는 자외선을 차단하는 미용액으로 참깨기름을 사용했고 여러가지 종교의식에서도  을 정결하게 하는 재료로 사용했다. 또한 고대 오리엔트의 유적에서 보이듯이 미이라를 만들 때 산화방지를 위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그 시대에 참깨의 산화방지 작용을 발견해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재배방식이 일반화되지 않았고 수효에 비해서 생산량이 너무 적어서 일반인들은 사용할 엄두도 못내고 주로 일부 특권층만 사용할 수 있었다. 2천년  에 나온 중국의 고서인 {신농본초경}에도 "참깨가 곡류 중에 상품"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사실은 참깨가 무척 귀했다는 것을 입증한다. 따라서 참깨를 일반인이 식용한 역사는 매우 짧다.   전 세계적으로 참깨는 야생종만 하더라도 37종이 있으며 재배종은 약 3천여 종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흰참깨, 검은참깨가 재배되는데, 흔하지는 않지만 누런 참깨도 있다. 흰참깨는 지질이 풍부해 주로 기름을 짜는데 쓰이고 검은 참깨는 질은 떨어지지만  기와 맛이 고소하여 떡고물이나 과자, 조미료 등의 원료로 쓰인다. 

  성분

  참깨의 주성분은 지질로서 약 50%를 포함하고 있으며 질좋은 단백질이 무려 40%정도 함유되어 있다. 참깨에 함유된 식물성 단백질은 그 영양면에서 매우 우수하다. 회분, 칼슘, 비타민B 등도 풍부하고 철분도 포함되어 있다. 다른 식물성 기름처럼 재차 정제시키지 않아도 되며 단지 불순물을 걸러내는 정도로 양질의 식용기름을 얻을 수 있다. 참기름에는 리놀산과 리놀렌산 등 중요한 불포화지방산이 다량으로 들어있어 혈액 중에 여분의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생겨나는 것을 억제해 준다. 특히 참기름에 들어있는 토코페롤은 과산화물질의 생성을 억제하여 노화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참깨에만 들어있는 '세사몰'과 '세사민'이라는 성분은 비타민E와 함께 산화작용을 억제하는 성질이 있어 노화를 방지하고 동맥경화 및 암을 억제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흰참깨와 검은 참깨의 성분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검정깨에 노화방지 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이것을 먹으면 머리카락이 검어지고 노인성 난청도 없어진다고 하여 특별히 귀중한 약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러한 효과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검정깨의 색소성분인 폴리페놀류가 그러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쓰임새

  주지하다시피 참깨는 원래 등잔용 기름을 얻기 위해 재배했지만 언제부턴가 완전히 식용으로 쓰이게 되었다. 주로 향신료나 약용으로 쓰인다.
  세계적으로 참깨를 사용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 예컨데 인도에서는 '차파디'라 하여 페이스트 형태로 만들어 빵 등에 발라 먹으며 아프리카에서는 깨죽의 형태로 만들어 다른 음식에 발라 먹는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반드시 참깨기름을 이용하여 '비라프'라는 음식을 부친다. 이처럼 참깨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지질의 함량이 많아 주로 기름의 공급원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재래식으로 참깨를 짜서 기름으로 사용하지만, 볶은 채로 요리에 양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깨알갱이는 종피가 단단하여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따라서 볶은 알갱이를 잘게 부수어 적당한 양의 소금을 섞어 깨소금을 만들어서 조미료, 향신료로 사용하거나 기름을 내어 먹는다. 깨의 약효를 보면 혈관 장애와 심장병, 고혈압에 좋은 식품이며, 위점막을 보호해주므로 위궤양, 위암환자에게 좋은 식품으로 알려졌다. 참깨기름을 우리나라에서는 참기름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호마유, 또는 향유라 한다. 참깨를 살짝 볶아서 짠 참기름은 황금빛을 띠고, 그 향기가 기가 막혀서 요리를 할 때 향신료로 쓰이며 흰빛 참기름은 생 참깨를 그대로 짠 것으로 향기는 덜하지만 약성이 뛰어나다. 민간요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참깨기름과 달걀 흰자위를 한데 개어서 버짐이나 주근깨에 자주 바르면 특효가 있고, 벌레나 독충에 물렸을 때 참깨를 씹어서 상처에 바르면 낫고, 상식(상식)하면 탈모나 흰머리가 나는 것을 방지해 준다.
  *또한 깨를 상식하면 혈청 내의 콜레스테롤을 조절하여 동맥경화와 변비를 예방해주고 아미노산 함량이 많아서 스테미너 강화와 피로회복제로도 좋다.
   최근에 애용되는 참깨 요법을 몇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참기름을 끓여서 적당히 식힌 다음 목욕할 때 몸 곳곳을 마사지 해주면 피부 노화방지, 만성투통, 생리통, 관절통에 효험을 볼 수 있다.
  *참기름과 생강을 같은 분량 넣고 끓여서 식힌 것을 머리에 마사지하면 흰머리, 비듬, 탈모 등에 효과가 있다.
  *목감기, 코감기, 치내염, 치조농루 등에는 참기름 끓인 것으로 양치질을 한다.
  *흰참깨와 소주를 같은 분량으로 준비한다. 그리고 참깨를 갈아서 무명주머니에 넣고 소주와 함께 유리병에 담아 냉암소에 보관하면 3개월 뒤 참깨의 엑기스가 빠져 나온다. 이것은 훌륭한 화장수가 된다.

  이것이 토종

  토종 참깨는 산지에 따라 흰참깨, 누런 참깨, 검은참깨 등으로 나눈다. 외국산에 비해 알이 잘고 껍질이 얇으며 씨눈이 뾰족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고소한 냄새가 진하고 볶으면 짙은 색채를 띤다. 반면 중국 등지에서 수입된 참깨는 알이 크고 껍질이 두꺼우며, 오래된 것이 많기 때문에 색깔은 선명하지 않고 대체로 국산보다 연하다. 또 씨눈이 뭉툭하고 고소한 냄새가 국산보다 덜하다. 최근에는 국내 수확량의 감소로 가격이 높아지자 중국산이 다량 밀반입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낮은 가격만큼 질적으로도 토종과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낙동강 유역의 사질토에서 나는 참깨는 맛과 향이 고소하고 기름이 많이 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경북 예천의 참깨와 참기름은 토종의 명맥을 꿋꿋하게 지켜오고 있다. 이 지방의 참깨와 참기름이 유명하게 되자 전국 각지에서 상인과 소비자들이 몰려와 5일장이 무척이나 붐빈다고 한다. 그래서 이같은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최근 예천군 지보면 단위농협에서는 아예 참기름 공장을 만들어서 질좋은 참기름을 공급하고 있다.

  ***참고자료
  1.박원기,{한국식품사전} , 신광출판사
  2.이철호,{장터순례} 도서출판 유림
  3.월간 {식품과 건강} 92.3월호
  4.{약용음식물백선}
  5.월간 {식품과 건강} 91.11월호,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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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참밀

  공해 없고 수확량 많은 토종밀

  밀은 모든 작물 중에서 세계적으로 재배면적이 가장 넓어 전 세계 작물 경작지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유럽지역은 전 세계 경작지의 2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소비량 역시 유럽지역이 단연 최고다. 구미지역에서는 주식인 빵의 재료로 중요한 위치를 지켜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동양권에서도 식생활의 변화에 따라 밀의 수요가 늘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밀은 '참밀'의 준말이다. 한자명으로는 소맥,진맥 등 여러가지로 불리운다.
  밀의 원산지는 서아시아(페르시아)라고 한다. 빵밀의 가장 오래된 탄화종자가 기원 전 5천5백년 경의 유적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밀의 원종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학자들에 따라서는 밀의 재배역사를 1만여 년 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오랜 재배역사를 지닌 밀은 기원전 5천 년 경에는 소아시아를 거쳐 유럽의 라인강 유역으로 흘러들어 가고, 또 흑해의 서안에서부터 러시아 일대에 전파되어 갔다. 그리하여 기원전 3천 년 경에는 마침내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다.
  한편 이 무렵에는 북아프리카, 에집트 주변에서도 널리 재배되었고 기원전 2천 년 경에는 인도에까지 이른다. 또 기원전 1천 5백년 경에는 아랄해 지역에 퍼지고 몽고를 지나 중국 북부까지 전해졌다.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밀이 전파된 것도 기원전으로 추정된다. 경주의 반월성터와 부소산의 백제 유적지에서 밀의 유해가 발견된 사실이 이를 뒷바침한다. 따라서 밀은 우리나라에서도 여타의 작물보다 재배역사가 무척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서기 4~5세기 경에는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밀은 일반적으로 온대로부터 한냉한 지역에 걸쳐 건조한 풍토에 적합한 곡식이다. 그러나 기후에 대한 적응성이 강하여 전 세계 어디에서나 널리 재배되어 쌀과 함께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작물로 그 지위를 지켜온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밀은 빵소맥(보통의 밀)이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빵소맥 외에도 마카로니소맥을 비롯하여 10여 종이 있다. 빵소맥은 빵, 국수류, 과자의 원료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재배되는 밀은 주로 가을밀인데 1920년 경에 일본품종과 재래종이 재배되었고 이후에 수원85호, 86호 등의 개량종이 보급되었다. 최근에는 조숙, 다수확 품종으로 조광, 다홍밀, 올밀, 수원215호 등의 품종이 보급되었다. 그러나 날로 증가하는 밀의 수요를 국내 생산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거의 절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밀은, 예전에는 귀한 곡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밀은 밀전병, 유밀과 같은 별식이나 간식 등을 만들 때만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원조의 물결을 타고 질이 좋지 않은 미국산 밀가루가 다량으로 도입되면서 주식 대용으로 쓰이게 되었다. 한때는 정부에서 분식하는 날을 정해 놓고 밀가루 음식을 먹도록 권장하는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미국산 원조밀에 의해 우리 식생활이 급격하게 변화한 것이다. 국민소득이 증대되고 쌀 자급이 이루어지면서 요즘에는 국민들의 식생활에 대한 요구 자체가 빵, 과자 등을 선호하는 추세로 나아감에 따라 밀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밀의 공급을 막연히 수입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형편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밀
생산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면 외화도 절약하고 건강도 지키는 이중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성분

  밀은 약 69%의 당질과 약12%의 단백질 그리고 약 2.9%의 지질을 포함하고 있다. 밀 단백질의 [글루텐]은 글리아딘과 글루테닌의 복합체로서 물과 반죽하면 끈기가 있는 가소성의 특성이 있으므로 과자 등 여러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단백질을 구성한 아미노산은 글루타민산, 프롤린이 많고, 리신, 트립토판, 트레오닌, S-함유 아미노산은 적다. 비타민은 쌀보다 약간 많은 편이다.

  쓰임새

  밀은 주로 제분하여 밀가루로 만들어 빵 및 면류(국수류), 과자 등의 제조, 동물의 사료, 된장 등의 원료로 쓰인다. 빵은 주로 밀가루(강력분, 준강력분)에 물, 소금을 가하여 반죽을 한 다음 이것을 빵 효모로 발효시키고, 가열하여 부풀게 한 유럽형과 설탕,분유, 기름 등의 보조 재료를 섞은 미국형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유럽형, 미국형 모두 보급되고 있다.
  면류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그 과정은 밀가루에 소금과 그 밖의 재료를 섞어 압면한 다음 국수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면류에는 가락국수(우동), 메밀국수 등이 있으며 즉석라면은 증기로 찐 국수를 기름으로 데치거나, 열풍건조하여 녹말이  화한 상태에서 탈수시킨 것이다. 면류를 장기보존하면 미생물에 의한 부패, 녹말의 노화, 풍미가 감소하기 쉽다. 냉장고에 보존할 필요가 있고, 건조면 또는 즉석라면류에 있어서도 햇빛이 쬐이지 않는 장소, 온도, 습도가 낮은 장소에 보존하고, 특히 기름의 산화 등에 의해 변질되기 쉬운 것은 제조일이 가까운 것을 선택하여 이용해야 한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의 밀 수요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반면, 현재 자급도는 0%이다. 다시 말하면 100%를 수입해서 먹고 있는 셈이다. 해방 후 미국에서 대량으로 들어온 원조 밀가루와, 통일벼의 빠른 모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밀 재배는 급속히 줄어들었고 급기야 멸종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일부 뜻있는 시민, 학생, 농민들이 힘을 모아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펴고 있다. 그리하여 92년도에는 40kg들이 6천 5백 가마를 처음으로 수확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결과 우리밀의 평균 수확량이 외국밀에 비해 1.5배 가량 월등히 높은 것으로 입증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토종밀은 겨울에 키우므로 병충해가 없고 농약을 사용치 않으므로 무공해 작물이다. 미국산 등 외국밀은 장기간 보관을 위해서 수확한 뒤에 사용하는 농약만 하더라도 21가지나 된다. 단적인 예로 지난 92년 가을에 호주산 밀에서 사용금지된 농약이 검출되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같이 독성 농약으로 범벅된 밀로 만든 가공식품이 우리들 식탁을 넘나들고 있는 현실이다.
  외국산 밀이 말썽을 빚고 우리밀 살리기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자 농림부에서는 토종밀의 종자를 일반인들에게 보급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토종밀은 농촌과 환경을 살리고 우리 국민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취지 아래 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질 전망이다.
  토종밀과 외국산 밀은 모양만으로는 구별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리고 성질을 보면 토종밀은 연질분으로 국수나 부침개를 만드는데 적당하고 미국산은 경질분으로 빵 굽는데 적당하다.
  지금 시중에 나도는 밀가루 제품은 거의 다 미국산, 또는 호주산이라 보면 된다. 다만, 소비자와 생산자가 협동으로 재배하는 독특한 형태의 '우리밀 살리기 운동' 회원으로 가입하면 농약 공해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우리밀을 출자금만큼 배당받을 수 있다고 한다.

  *** 참고자료

  1.{식품사전}
  2.{약용음식물 백선}
  3.{중앙일보}92.9.26
  4.{신토불이}, 농협,(핸드북)
  5.{동아일보} 92.11.17
  6.{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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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콩 (대두)

  구수한 된장맛의 뿌리

  여름에는 시원한 콩국수로, 겨울에는 맷돌에 갈아 별미로 콩죽을 만들어 먹은 콩.
  먼 조상 때부터 우리 생활 곳곳에 여러가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던 이 콩은 요즘에는 싸고 흔해진 탓인지 다소 천대받고 있는 듯하다. 흔히들 콩을 일컬어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곡의 하나로 오랜 옛날부터 재배되어 왔으며 그 쓰임새 또한 무척이나 다양하다.
  콩은 대, 잎, 깍지, 알맹이 어느 한 가지도 버릴 것이 없는 작물이다. 예로부터 대와 깍지는 쇠죽을 쑤어 소에게 먹였으며 어린잎은 된장을 싸서 먹으면 반찬이 된다. 그리고 익어서 수확한 콩으로는 메주를 쑤어 장을 담궜는가 하면 된장, 고추장, 청국장, 두부, 두유 등 지방과 단백질을 공급하는 가공식품들의 원료로 쓰인다.
  콩은 동양 최대의 작물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4~5천 년 전에 콩이 재배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재배역사도 이미 삼한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콩의 원산지는 대부분 중국으로 보고 있지만, 견해에 따라서는 우리나라를 콩의 원산지로 보기도 한다. 남북한을 통털어 한반도 전역에 콩의 야생종과 중간종이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와 만주가 원산지이며, 거꾸로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건너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확실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어느 곳이 원산지인지 지금 분명하게 가릴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또는 인접국가인 중국 등이라는 사실만은 틀림없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콩은 수천 년 풍상에도 굴하지 않고 이 땅을 지켜온 순수한 종자인 것이다.
  한편 서양에서 콩이 재배된 것은 불과 몇 십년 전의 일이다. 유럽에는 1739년 파리식물원에 처음으로 파종되었으나 시험 재배에 모두 실패하고 최근에 이르러서야 남부 유럽에 겨우 콩이 보급되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콩 생산국인 미국의 경우에도 겨우 60년 전부터 콩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산량 면에서는 사정이 크게 달라져서, 1930~40년대만 해도 만주와 한반도에서 세계 콩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것이 오늘날에는 총생산량과 교역량의 60%를 미국에서 차지하게 되었다. 한때는 세계 제 2위의 콩 샌산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요즈음(1990년 기준) 연간 23만 톤 정도를 생산하여 국내수요의 겨우 20%정도만 자급하고 있으며 나머지 100만 톤 정도를 미국, 중국 등지에서 수입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식품은 아무리 영양을 골고루 갖춘 것이라 할지라도 많이 먹으면 탈이 생기기 쉽다. 그러나 콩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좋다고 한다. 무조건 장려해도 좋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대답은 간단하다. 다른 식품에 비해서 콩은 지지리도 맛이 없다. 이를테면 '콩밥'하면 교도소를 떠올리게 될 정도로 식욕을 돋구지 않으며 특유의 비린내가 있어서 꺼리는 사람도 있다. 콩으로 만든 두부, 비지 등에도 사람들의 입맛을 붙들만한 특별한 맛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콩은 섭취량에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옛 문헌에는 콩만 먹고 장수를 누린 기록들이 많다. 일례로 일본의 '오무라'라는 괴짜 노인은 나이 90에 '콩의 장수론'을 주장했다. 그는 쌀을 비롯한 다른 음식물을 일체 먹지 않았고 20여년 동안 매일 콩만 먹었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콩을 볶아서 먹든지, 나물로 먹든지, 삶아서 먹든지 상관 없다고 한다. 무조건 많이,자주 먹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콩을 삶아서 먹거나, 볶아서 먹는 경우 소화 흡수율이 낮다. 실제로 삶은 콩만 먹는다고 했을 때 줄곧 설사에 시달릴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부, 두유 등의 가공형태로 싫컷 먹으면 된다. 예컨데 삶은 콩은 소화흡수율이 65%정도인데 비해 두부는 92.4%의 단백질이 소화 흡수된다. 비지나 두유도 거의 완벽하게 소화된다.

  성분

  콩은 식물성 중에서는 최고의 단백원이다. 단백질의 질에 있어서는 동물성 단백질보다는 떨어지지만 건강의 적인 콜레스테롤이 콜레스테롤이 전혀 함유되어있지 않으므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콩에 들어있는 단백질은 뇌의 동맥경화를 막아 뇌졸증을 예방하고 혈관을 튼튼하고 부드럽게 유지시켜 준다. 또한 통변을 원할하게 하여 대장암을 예방해줄 뿐만 아니라 변비, 치질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콩에는 레시틴이라는 인지질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은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노화를 방지하고 노인들의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콩에는 사포닌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이 성분은 비만체질을 개선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콩에 함유된 비타민E는 혈관의 탄력성을 유지시켜주므로 피부 노화를 방지해준다.
  이처럼 콩은 고단백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으며 많은 양의 당질을 포함하고 있는 반면 지방 함유량이 적어 이상적인 식품이라 할 수 있다. 콩이 콩나물이 되면 비타민 B와 C군이 증가한다. 신기하게도 이것은 콩에서 생겨난 것이면서도 콩에는 없는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는 경우다. 콩을 발아시키면 콩의 상태에는 없는 비타민 C가 생성되고 비타민 B2가 증가하며 소량이지만 나이아신과 비타민 K도 함유한다. 그리고 콩나물에는 칼륨과 칼슘 등의 미네랄과 식물섬유도 많이 함유되어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서민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콩나물은 값은 싸지만, 콩을 섭취하는 것보다 더 많은 영양소를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식탁의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쓰임새

  우리나라는 콩의 종주국인 만큼 그 이용에 있어서도 가히 독보적이다. 콩자체를 조리한 음식은 물론 각종 음식의 보조 재료, 또는 기발한 가공식품인 각종 장류 등 다양하다.
  *장류/
  콩과 밀, 보리 등의 곡류에 곰팡이를 번식시켜 발효한 것에 소금이나 고추가루를 첨가하여 일정기간 숙성시킨 것이다. 구수한 맛과 짠 맛, 그밖의 독특한 향기를 부여한 조미식품인 장류는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간장과 된장의 맛은 메주에서 결정된다.  메주는 콩을 삶아서 뭉친 것을 한겨울 동안 발효시킨 것이다. 이렇게 만든 메주를 장독에 넣어 소금물을 붓고 오랫동안 우려낸 것이 간장이다. 또한 간장을 담그고 난 메주는 된장으로 쓴다. 이러한 장류는 육류식품이 부족한 동양권에서 중요한 단백원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집안의 장맛이 좋아야 가정이 길하다는 속신이 생길 만큼 이들 식품의 제조, 관리에 각별한 배려를 쏟아왔다. 예를 들어 신라의 김유신은 전쟁터에서 장맛을 보고 집안의 무사함을 알 수 있었다고 하고, 장독대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치성의 장소로 사용된 것만 보아도 선조들의 장에 대한 각별한 관심사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장류는 이처럼 수많은 비법과 금기사항을 수반하고 가정주부들의 손맛과 정성으로 발달되어 온 민족양념인 셈이다. 
  *두부/
  콩에 함유된 단백질 중 수용성 단백질을 추출, 성형하여 만든 것이다. 콩단백질의 원형을 가장 잘 살린 식품이 바로 두부인 것이다. 두부는 콩을 물에 불려 곱게 간 후 여기에 물을 넣고 한 번 끓인 다음 여과한 콩즙에 간수를 넣으면 콩즙 속의 단백질이 응고하게 된다. 이것을 마포에 넣어 가볍게 눌러놓으면 두부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든 두부는 옛날 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품이었다. 틀니나 의치가 없던 시대에 살던 노인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두부는 일종의 '효자식품'의 구실을 톡톡히 해왔던 것이다.
  *두유/
  두유는, 물에 담가 불린 콩을 멧돌에 갈아 물을 넣고 끓인 뒤에 비지를 뺀 물이다. 오래 전부터 이를 콩국이라 해서 마셔왔으며 여름이면 많은 가정에서 이것을 차게 해서 국수를 말아먹는다. 두유는 흔히 공장에서 만드는 인스턴트 식품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두유는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노란콩을 한나절 정도 물에 불린 후 건져서 맷돌이나 믹서에 조금씩 넣고 물을 충분히 부어주면서 3분쯤 부드럽게 간다. 그런 후에 무명자루나 발이 고운 체를 이용하여 비지를 걸러내고 남비나 압력솥에 넣어 100˚C 정도에서 반 시간 정도 끓이면 영양가가 풍부한 두유가 된다. 이 때 거품이 많이 나면 식용유를 몇 방울 넣어주면 없어진다.

  이것이 토종

  최근들어 중국산 콩이 대량 유입되는 바람에 미국산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중국산은 알갱이가 작고 약간 푸른빛이0 감돈다. 특히 중국산은 껍질이 두텁고 거칠며,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깨진 알갱이가 많고 돌 등의 이물질이 종종 뒤섞여 있다. 이에 반하여 국산콩은 알이 크고, 고르게 노란 빛을 띠고 있으며 껍질이 얇고 크기가 고르다. 또한 이물질이 적은 것도 특징이다. 우리 나라 콩의 주산지는 경기도 연천을 들 수 있다. 이 지방에서 나는 콩은 '연천태'라고 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참고자료
  1.월간 {식품과 건강} 91.3, 92.1월호
  2.{장터순례}
  3.{약용 음식물 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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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녹두

  그릇된 역사를 응징하는 곡식

  우리 역사 속에는 녹두에 얽힌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다.
  타락한 지배자들에게 의연히 항거했던 전봉준을 '녹두장군'이라 불렀던 것으로 시작해서 '새야 새야 파랑새야'에 나오는 '녹두꽃' '청포' 그리고 육신을 등지고 세조의 공신이 된 신숙주의 변절행위에서 따온 '숙주나물' 등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녹두를 사용한 음식인 빈대떡은 김치, 불고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특수요리에 속한다. 외국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요리 선호도 조사에서 빈대떡이 단연코 인기 1위였다고 하니 빈대떡의 맛이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빈대떡의 원래 이름은 '빈자(빈자)떡'이다. 그 이름처럼 빈자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떡'이다.
  빈자떡은 본래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기름에 지진 고기를 올려놓을 때 밑받침으로 썼던 것이라 한다. 그런데 흉년이 들어 유랑민들이 남대문 밖으로 수없이 몰려들었고 당시의 세도가들은 이들을 불쌍히 여겨 빈자떡을 만들어 달구지에 싣고 와서 "아무개 댁의 적선이오"라고 자랑하며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녹두는 콩과에 달린 한해살이 작물로 원래 인도, 히말라야, 비루마 등지에 자생하던 것을 인도에서 3천여 년 전에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녹두의 기원지는 인도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인도에서는 녹두의 무게를 중량의 단위로 삼았던 적이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재배되었다.
  견해에 따라서 녹두는 팥의 변종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팥과 비슷한 일년생 초본으로 모양이 팥의 축소판 같지만 종피의 색깔은 녹색이 대부분이고 황색, 흑갈색인 것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녹두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된 일이다.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녹두를 재배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우리 민족과 고락을 같이 해온 작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녹두를 사용한 음식이 우리만큼 발달한 나라도 없을 정도이다.
  녹두나물은 맛도 좋고 영양가도 풍부해서 나물 중에서도 으뜸이다. 서울지방에서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부른다. 이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만기요람}이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는데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속설에 의하면 숙주나물의 숙주는 신숙주에서 온 것인데, 그는 육신을 등지고 세조의 공신이 되었으며, 죄없는 남이를 죽이고 공신의 호를 받은 사람인즉 서울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이른바 성을 제거 당한 것이라 한다."
  숙주나물은 무쳐놓고 조금만 지나면 곧 쉬어버리는데 이를 신숙주의 변절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나물 이름 하나에도 사연을 만들어 놓은 선조들의 기지가 놀랍다고 아니할 수 없다.

  성분

  녹두의 주성분은 당질(44.9%)과 단백질(21.2%)로 팥과 흡사하다. 그러나 녹말 이외에 당질의 구성이 약간 다르다. 녹두의 당질에는 점성을 가진 성분이 있어서, 이 성질을 이용하여 녹두 가루로 당면이나 국수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녹두에는 금이신, 라이신, 발린 등의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그리고 불포화 지방산인 리놀레인산이 많아 영양이 우수하고 아밀라제, 인벨타제, 우레아제 등 여러가지 소화효소가 들어있어 소화도 잘되는 편이나 메티오닌, 트립토판, 시스틴 등은 부족하다.

  쓰임새

  옛말에 '녹두는 1백 가지 독을 푼다'고 했다. 그만큼 해독작용이 강하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큰병을 겪고 난 환자에게는 녹두죽을 쑤어 먹이곤 하였다.
  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 녹두로 만든 음식에는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청포묵, 녹두나물 뿐만 아니라 녹두죽, 녹두빈대떡, 녹두밥, 녹두차, 녹두주 등 다양하다. 녹두로 만든 음식은 소화가 잘되며 몸의 열을 내려준다.
  녹두묵은 보통 '청포'라고 부르는데 노란색이 도는 녹두묵은 '황포' 라고 부른다. 청포는 다른 재료를 여러가지 혼합하여 만든 묵이다. 녹두를 약용으로 사용한 민간요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토사곽란에는 녹두가루, 설탕을 각각 2냥(75g)씩 섞어 물에 타서 먹는다.
  * 더위를 먹어서 설사를 하는 경우에는 녹두를 삶아 탕을 만들어서 양껏 마신다.
  뭉근한 불 위에 녹두를 넣고 알맹이가 다 풀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삶은 다음 자루나 눈이 가는 체로 치면 녹두물이 나오는데 이것을 냉장해두었다가 수시로 마시면 건강음료로 일품이다. 여기에 꿀 등의 감미료를 약간 넣어서 마시면 더욱 훌륭한 맛이 난다.
  술을 마시고 취했을 때는 녹두꽃을 그늘에 말려 가루로 만든 것을 작은 찻숟가락 하나 정도로 온수에 복용하면 술이 한결 빨리 깬다. 또한 술 마시기 전에 이것을 먹으면 빨리 취하지 않고 속을 덜 상한다. 땀띠나 여드름 등의 피부질환이 있는 사람은 잠자기 전에 얼굴을 깨끗이 씻은 다음 녹두를 갈아 미지근한 물에 풀어 이것을 얼굴 전체에 골고루 바르면 효과적이다.
  {천금식치}에 의하면 '녹두는 속의 열을 내리고 설사를 그치게 하며 소변불통을 다스린다'.
  {식료본초}에는 '녹두는 원기를 보하는데 유익하고 오장을 조화하며 정신을 안정시킨다'고 했다.
  이밖에도 녹두는 간을 강하게 해주고 살이 찌지 않게 해주며 피부의 탄력성을 유지하게 한다.
  단, 녹두는 열을 제거시키고 몸을 차게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몸이 냉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또 저혈압이나 냉증 증세가 있는 사람은 녹두를 먹지 않는 편이 좋다.

  이것이 토종

  녹두는 현재 국내 생산량 부족으로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일괄 수입하여 국내 소비처에 방출하는 품목이다. 아직은 수입자유화가 되지 않은 품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통공사-도매상-소매상-소비자의 과정을 거치면서 수입산이 국내산으로 둔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체로 수입산의 가격이 국내산의 절반 정도이므로 중간상이 시세차익을 노리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머잖아 수입자유화가 이뤄지면 개인업자에 의해 이런 부작용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녹두는 전량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중국산 녹두는 알이 굵고 껍질을 벗기면 면이 거칠다. 또한 색깔은 연한 녹색이고 윤기가 별로 없다. 이에 반해 국내산 녹두는 진한 녹청색을 띠고 있으며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특히 껍질을 벗겨보면 면이 곱다. 중국산은 알이 굵어 쉽게 눈길을 끌지 모르지만 윤기가 떨어지고 면이 거칠다. 또한 수입산 녹두는 색깔이 연한
것이 특징이다. 중간상인들에게 속지 않고 안전하게 구입하기 위해서는 유통공사 직판장을 통해서 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하다.

  ***참고자료
  1.심상룡, {약용 음식물 백선}, 보건신문사
  2.월간 {소비자시대} 92.8월호 (사진)
  3.{한국식품사전}
  4.{장터순례} 이철호,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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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팥

  귀신을 물리치는 신성한 곡식

  팥을 한자명으로 소두 또는 적두라고 부른다. 우리가 보통 '콩'이라고 할 때는 콩나물의 재료로 쓰이는 대두를 말하는데 팥은 여기에 비하여 '작은콩' 또는 '붉은콩'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팥은 콩과는 사촌벌 되는 잡곡으로 우리 조상들과 수천년 동안 숨결을 함께 해왔다.
특히 팥은 일상적인 식탁에서보다는 세시풍속에서 그 진가를 발휘해 왔다. 동지팥죽이나 시루떡, 기타 떡고물 등 명절 때나 제사 때 흔히 볼 수 있는 음식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팥을 민속작물이라고 한다. 팥의 기원에 대해서는 기록이 분명하지 않으며 다만 인도에 있는 덩굴팥이나 히말라야 산기슭 등에서 발견되는 야생종을 원종으로 추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콩과 마찬가지로 이미 신라시대 이전부터 재배되었던 기록이 있다. 함경북도 회령군 오동의 청동기 시대 유적에서는 팥의 잔해가 출토된 바 있다. 여기서 발견된 원시무문토기에는 팥의 압문이 들어 있다. 또한 백제의 군창 자리에서 녹두와 함께 출토된 적도 있다.
  팥은 동양의 온대지방에서 주로 재배되는데 유럽지역에서는 거의 재배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팥을 최초로 재배한 곳은 중국이나 한국일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중국, 한국, 일본 등지가 주산지이다. 팥은 콩과 비슷한 조건에서 잘 자라지만 약간 다습한 곳을 좋아하며 늦게 파종하여도 적응이 잘 되므로 7월 상순까지도 파종이 가능하다.
  팥은 조금 독특한 식물이다. 우선 그 색깔부터 선명한 붉은 빛을 띠고 있다. 그런 이유로 예로부터 주술적인 면에 많이 이용되어 왔다. 역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붉은색은 양의 색깔로 귀신을 쫓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굿을 할 때 잡귀를 쫓아내기 위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일반 민가에서는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등의 세시풍속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동지 팥죽의 유래는 고대 중국의 고사에서 찾을 수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중국에 공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에게는 아무 재주도 갖지 못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  아들은 마침내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 날이 동짓날이었다. 죽은 아들은 역귀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런데 이 아들은 생전에 팥을 싫어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죽은 동짓날 팥죽을 쑤어 귀신을 쫓는 풍습이 생겨난 것이라 한다.
  동지 팥죽은 먼저 사당에 떠다놓고 차례를 지낸 다음 집안 곳곳에 한 그릇씩 떠다놓고 대문, 벽, 문설주 등에 팥죽물을 수저로 떠서 뿌렸다. 이렇게 하면 액을 막고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동국세시기}에는 10월 오일에는 팥떡을 마구간에 바치고 말의 건강을 비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팥죽은 비단 동짓날에만 쑤어 먹은 것은 아니다. 우리 전래 풍습에는 동네에서 초상이 나면 상가에 팥죽을 쑤어서 가지고 갔으며 이사할 때도 팥죽을 쑤었다. 특히 명절 때나 고사를 지낼 때 꼭꼭 상에 올리는 시루떡은 팥고물을 사용한다. 이것도 앞에서 말한 일종의 주술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 하겠다.

  성분

  팥에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미네랄류, 비타민 B1, B2 등의 영양소와 소량의 사포닌이 들어있는데 주성분은 단백질과 당질이다. 당질 중에서도 특히 전분을 많이(34%) 함유하고 있다. 또한 팥의 전분은 세포섬유에 쌓여 있기 때문에 혀끝에 닿는 감촉이 좋으며 삶아도 전분이 풀처럼 끈적하게 풀리지 않는다. 그러나 소화는 비교적 안되는 편이다. 또한 기초적인 영양분 함유량에 있어서도 콩의 1/5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팥은 비타민 B군이 풍부하기 때문에 각기 예방에 대단히 효과가 있다. 특히 비타민 B1은 당질이 체내에서 연소될 때 꼭 필요한 성분이다. 이 비타민 B1은 신경과 관련이 깊어 이것이 부족하면 식욕부진, 피로감, 수면장애, 기억력 감퇴, 신경쇠약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비타민 B1이 부족하기 쉽다고 한다. 따라서 팥과 같은 식품을 같이 먹음으로써 영양의 균형을 맞추어주면 좋다.
  {약성론}에 의하면 '팥은 열독을 다스리고 나쁜 피를 맑게 한다'. {명의별록}에는 '팥은 한열(한열)과 속이 열한 것을 다스리며 소변을 이롭게 한다. 소갈에도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리방법에 따라 다음과 같은 다양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삶은팥/
  팥을 그냥 삶아서 먹으면 혈액을 증가시키는 철분과 함께 비타민 B1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달인팥/
  팥에 다섯 배 정도의 물을 붓고 완전히 졸아들 때까지 달여서 공복에 먹으면 이뇨, 소염작용이 있어 간 기능을 도와주고 숙취에 효과가 있다. 
  *팥농축액/
  팥과 다시마를 물에 넣고 내용물이 부드럽게 될 때까지 삶아서 먹으면 녹말을 소화하는데 필요한 비타민 B1을 다량 섭취할 수 있다.

  쓰임새

  앞에서 언급한 주술적인 용도 외에 팥은 주로 식용으로 쓰인다. 물론 먹을거리로 만들어서 거기에 주술적인 의미를 담는 경우도 있다. 팥죽이나 시루떡 등이 그런 것이다.
  요즘은 기업체에서 인스턴트 식품으로까지 내놓은 팥죽(단팥죽은 일본 사람들이 우리 팥죽을 배워서 만든 것이다)을 비롯하여 팥밥, 팥시루떡, 송편이나 절편 안에 넣는 팥고물, 팥단자, 팥고추장, 팥장 등이 민속음식으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도경본초}에 의하면 '각기를 앓는 사람이 있었는데 팥을 포대에 채워넣고 이 팥포대를 아침 저녁으로 오랫동안 밟아댔더니 드디어 나았다'고 한다. 또 {본초강목}에서는 '팥은 난산을 다스리고 잉어, 붕어, 닭고기를 넣고 삶아 먹으면 젖이 잘 나온다'는 기록이 있다. 요즘에도 일부 지방에서는 생일날 팥밥을 지어 먹는다. 찹쌀에 팥을 넣어 밥을 지으면 찹쌀의 끈기와 팥의 붉은빛이 합쳐져 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이것을 보통 '찰밥'이라고 한다. 여기에 밤, 대추, 호도 등속을 넣어 약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팥은 민간요법의 재료로도 다양하게 쓰인다.
  *피부가 거친 사람은 팥을 볶아서 이것을 다시 물에 개어 얼굴을 씻어내면 피부가 부드러워진다.
  *비만으로 걱정이 많은 사람은 삶은팥을 다량 섭취하면 좋다. 이때 팥에 설탕을 넣으면 좋지 않으므로 약간의 소금을 첨가하여 충분히 맛을 낸다.
  *만성 각기에는 팥과 율무쌀을 8:3 비율로 섞어 함께 삶아 밥 대신 먹는다. 하루 세 끼니 밥처럼 먹으면 된다. 이 때는 약간의 설탕을 넣어도 좋다.
  *이질에는 팥 1홉을 밀가루와 함께 삶아 한번에 먹는다.
  *변비에는 팥을 달여낸 즙을 수시로 마시면 통변된다.
  *부종에는 뽕나무 삶은 물에 팥을 달여 수시로 마시면 효과적이다.
  *과음으로 인해 구토가 심할 때는 팥을 달여 그 물을 마시면 가라앉는다.
  이밖에도 팥은 고기 중독을 푸는데 좋으며 산모가 젖이 부족할 때도 그 즙을 마시면 좋다.
  또한 메밀겨와 팥을 같은 비율로 섞어 만든 베개를 사용하면 통기성과 단단함이 있어 머리를 차게 해준다. 건강의 기본이 '머리는 차게 하고 발은 덥게 하는데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팥베개는 열 축적을 막아주므로 정신건강에 좋다.

  이것이 토종

  팥은 현재 중국, 태국 등지에서 주로 수입된다. 수입산 팥은 국내산에 비해 대체로 알이 잘다. 특히 색깔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색깔이 검붉을 정도로 진한 것을 수입산으로 보면 된다.
  국내산은 알이 굵고 붉은색이 엷고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수입산과 반반씩 섞어 파는 경우도 있으므로 구별이 묘연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일단은 색깔이나 크기가 일정하게 고른 것을 선택하여 수입산인지의 여부를 가려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장려품종이 선정되어 있지 않지만 우수한 품종으로는 홍천 적두, 진천 적두, 영동적두 등이 있다.

  ***참고자료
  1.월간 {소비자시대}92.8
  2.{한국민속신문} 21호
  3.{약용 음식물 백선}
  4.{기초식품학} 지구출판사
  5.{약이 되는 식품} 이철호,어문각
  6.{민족문화대백과}
  7.월간 {식품과 건강} 91.11, 92.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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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조

  알갱이는 작지만 가장 오래된 곡식

  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토종작물로 분류된다.
  벼과에 속하는 일년생 단자엽 식물로서 곡류 중에서 알갱이가 가장 작다. 그러나 어떤 작물보다도 저장성이 강하다. 조는 그 원형이 강아지풀이다. 강아지풀은 세계적인 잡초로서 아직도 조와 교배가 용이하고 또한 조와 동일한 발생지에 분포한다.
  조는 중국, 만주에서 오랫동안 재배되어 왔다. 기록에 의하면 조는 서기전 2700년경 중국 신농의 오곡 중에 포함되어 있다. 이미 그 시대에 야생종을 순화하여 재배했다는 증거이다. 우리나라도 재배시기는 대략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원시농경의 형태가 남아있는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유적에서 발견된 곡식이 조 또는 피로 보인다고 한다.
  조는 온난하고 건조한 지역에 적합한 작물이며 북위 45~50도 이남에 분포한다. 또한 해발 1300m지대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다. 실제로 조는 세계 전역에서 넓게 재배되고 있다. 유럽 동남부, 아프리카 북부, 아시아 전역은 물론, 북남미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미국에는, 초기의 유럽 이민들이 전파하였으며 1848년 경부터 재배가 장려되어 20세기 초반에는 이미 미국의
기장류 중 90%를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쌀보다 먼저 들어온 조는 예전에는 주곡의 하나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지난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14만ha의 면적에 재배되었으나, 그후 재배면적이 급격하게 줄어 1983년에는 1천5백ha밖에 재배되지 않았다. 줄잡아서 20년 동안 재배면적이 1백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된 작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조를 오곡에 포함시키지 않은 점은 의아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조의 식량적 가치가 다른 곡식에 비하여 낮고 소출량이 낮아 경제적 수익성이 따르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조에는 차조와 메조가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재배현황을 보면 메조가 80~90%를 차지하고 있다. 조는 알갱이가 무척 작고 둥글다. 이를 일컬어 흔히들 좁쌀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좁쌀영감'하면 잔소리가 많으며 속이 좁은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것도 조알갱이의 모습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종자의 껍질색은 동색, 황색, 회색, 흑색 등 다양하며 종피색도 회백색, 황백색, 암녹색, 회색 등이 있다. 그리고 줄기는 단면이 둥글며 속이 차있는 것이 특징이다. 품종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줄기의 크기는 대략 80~150Cm 정도까지 자란다. 이삭의 표면은 많은 털이 달려있어 거칠고 강아지풀처럼 알갱이가 단단히 뭉쳐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격적으로 조 품종의 육종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재래종을 수집하여 분류하는데 그치고 있다. 봄조에는 모래조, 지나조, 천안조(차조)가 있으며 그루조에는 청미실, 강달조, 국분 등이 알려져 있다.
  조는 주로 강원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제주도에서 많이 재배되며 단위수량도 높은 편이다. 현재는 전남 해남군 화원면 일대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으나 해마다 그 재배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성분

  조는 단백질과 지방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며 소화흡수율이 뛰어나다. 도정한 조의 영양성분을 보면 단백질10%, 당질 70%로 대부분 쌀과 같은 녹말이다.

  쓰임새

  과거에 조는 쌀이나 보리와 함께 섞어서 주식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엿, 떡, 소주, 풀, 새먹이 등으로 이용된다. 또한 짚은 연료 및 벌레를 잡는데 쓰인다. 특히 조의 줄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봄철 보릿고개를 지날 때 다른 곡물이나 채소와 함께 섞어서 짚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밖에도 가축의 사료, 지붕 이엉, 땔감 등에 사용되어 왔다. 근래에 들어 조의 생산량도 줄고 쓰임새도 축소되어 이제는 가축이나 새의 사료로 사용되는 정도이다. 그러나 만주 일대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들은 아직도 조를 주곡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구미지역에서는 좁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빵을 만들기도 한다. 순수한 밀가루 빵보다 맛은 약간 떨어지지만 영양면에서는 손색이 없다.
  한편으로 조는 민간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신수본초}에 의하면 '좁쌀 뜨물은 곽란으로 열이 나고 번갈이 있을 때 마시면 즉시 낫고 소갈을 그친다'고 나와 있다.
  {본초습유}에서는 '좁쌀을 물에 끓여 먹으면 복통 및 코피를 멎게 하고 가루를 만들어 물에 타서 죽을 먹으면 몸의 독을 푼다. 곽란 및 위통을 다스리고 놀라는 병에 좋다'는 기록이 있다.
  {본초강목}에 의하면 '차좁쌀은 폐병을 다스린다. 차조는 폐의 곡물이니 마땅히 폐병환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조를 활용한 민간요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구토가 심할 때는 좁쌀가루를 식초에 조금 타서 먹는다.(천금방)
  *설사에는 차좁쌀 가루에 설탕을 조금 섞어 4~5숟갈씩 먹는다.(간역방)
  *소갈증에는 좁쌀로 밥을 지어 말린 다음 이것을 가루를 내어 물에 타서 먹는다.(의방심경)
  *코피가 그치지 않을 때 좁쌀 가루를 물에 타서 먹는다.
  좁쌀 미음은 특히 환자들에게 좋다. 인삼을 함께 넣어서 푹 끓여 체에 받쳐서 먹는다. 좁쌀 미음은 특히 신장병 환자에 적합한 식품이다. 특히 병원에 입원한 환자에게는 쌀밥보다는 조밥을 주는 것이 현명하다. 쌀에 차좁쌀을 적당히 섞어서 밥을 지어 먹으면 소화나 영양 면에서 매우 좋다고 한다.
  이밖에도 조는 각종 전염병 예방과 위장, 비장, 간장, 안질환 등에 탁월한 약효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토종

  현재 조는 중국산이 다량 반입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해남 화원 등지에서 다량 재배되었으나 지금은 중국산에 밀려 재배면적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해남 화원의 경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화원 단위농협에서 매해 수백 톤씩 수매를 했으나 92년도에는 수매량이 5톤 정도에 머물렀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머지 않아 토종 좁쌀은 멸종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농가에서 조 재배를 기피하는 이유는 여타의 작물과 마찬가지로 저가격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메조의 경우에는 중국산에 완전히 장악되어버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산은 차조와 메조의 구분이 모호하여 두 가지 다 누른색이 강하다. 이것은, 황하 유역에서 조가 많이 재배되므로 황색토양의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중국산과 차이가 분명한 차조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재배한다면 결코 수입산에 밀리지 않고 순수한 토종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토종 좁쌀의 특징을 보면 메조의 경우 이삭이 작고, 알갱이는 약간 흰빛이 도는 연노란색으로 대체로 색깔이 연한 편이다. 또한 차조는 메조보다 이삭이 훨씬 크고 굵으며 알갱이는 녹색에 가까운 노란색이다. 토종 좁쌀은 현재 농협에서 일괄 수매하여 보급하고 있다.

  ***참고자료
  1.{민족문화 대백과}
  2.{약용 음식물 백선}
  3.전남 해남 화원 단위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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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메밀

  도인들의 선식

  아무리 문학에 문외한이라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 소설은 휘영청 밝은 달빛과 어우러져 하얀 꽃이 만발한 메밀밭을 지나는 두 사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으로 나오는 메밀꽃이란 게 소설의 쓸쓸한 분위기 만큼이나 실제로도 우리 조상들의 굶주리고 슬픈 삶과 사연을 함께 하고 있다. 흉년이 들면 잡곡으로 연명해야 했던 우리나라에서 메밀은 구황작물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구황작물 중에서도 메밀은 특별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옛날 선인들은 메밀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메밀이 소화가 잘되는 식품이기 때문이다. 도를 닦는 사람들은 많이 먹지 않기 때문에 위장 기능이 약해진다. 따라서 소화가 잘되는 식품을 섭취해야 했던 것이다.
  메밀은 여뀌과에 속하는 식물로, 알맹이는 흑갈색의 딱딱한 껍질에 둘러싸여 있으며 정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을 도정하면 껍질은 떨어져 나가고 가루가 나오는데 메밀 열매에서 가루가 나오는 비율은 70~75% 정도이다.
  메밀의 재배역사는 비교적 짧다. 원산지는 동아시아의 온대 북부, 아무르강, 만주, 바이칼호 부근이다. 7~9세기의 당나라 때 일반에게 알려져 10~13세기 경에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문헌상의 기록을 보면 서기 713년 경에 나온 {식료본초}에 메밀에 관한 기록이 나오며 이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제민요술}의 잡설에 메밀가꾸기에 대하여 상세하게 나온다. 그러나 최근에 중국 한나라 시대의 분묘에서 메밀이 출토된 사실로 미루어 메밀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연대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기원전 8세기 이전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왔고, 이후 일본으로 전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8세기 경에 이미 메밀 재배를 장려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원산지에서 가까운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재배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서 메밀에 대한 기록은 {향약구급방}에 최초로 나온다. 메밀은 생육기간이 짧고 추위에 잘 견딘다. 파종해서부터 약 2개월 후 수확할 수 있다. 환경에 대한 적응성이 강하고 한대지방이나 높은 산지에서도 잘 자라므로 옛날부터 구황작물로 이용되어 왔다. 즉, 극심한
흉년이 들었을 때 대작이나 토양이 척박한 흉작지대에서 응급작으로 재배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구황식물로 우리 조상들의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었던 메밀은 언제부턴가 메밀국수, 냉면 등의 특수한 향토음식 문화를 발전시켜 주었으며 근래에 와서는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성분

  메밀의 과피를 제외한 메밀분의 주성분은 탄수화물로 전분(녹말)이 주가 되는데 아밀라제(Amylose) 25%, 아밀로펙틴(Amylopectin) 75%로 구성되어 있다.
  메밀에는 특히 필수 아미노산과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하며, 비타민 B1과 B2, 칼륨, 인산 등도 많이 들어 있다. 또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는 성분도 들어 있어 혈압환자에게는 아주 좋은 식품이다.
  메밀은 다른 곡류에 비해 리신, 트레오닌, 트립토판 등의 필수 아미노산이 많아 식물성 단백질로서는 우수한 식품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메밀국수 및 메밀묵 등을 많이 먹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식생활이라 하겠다. 비타민 B1의 함량이 매우 높고, 특히 모세혈관을 보강하는 루틴이 포함되어 있어 모세혈관 출혈방지 및 고혈압 예방에 효과가 있다. 메밀에는 많은 효소가 존재하므로 보존에 주의해야 한다.

  쓰임새

  메밀은 외국에서는 주로 사료용으로 쓰이나 한국, 일본 등지에서는 식용으로도 수요가 많다. 이를테면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메밀순을 소, 돼지, 사육용 사료로 사용하고, 인도에서는 이것을 소채로 먹기도 한다. 또한 독일에서는 메밀로 맥주, 증류주 등 술의 원료로 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부침 등으로 식탁에 오르거나 메밀묵과 닭고기를 맑은 장국에 넣어 끓인 다음 여기에 계란을 풀어 갖은 고명을 얹은 유탕등을 보신제로 먹기도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메밀껍질을 베갯속으로 이용해 왔다.
  메밀 가루에는 프롤라민의 함량이 적으며 메밀가루 입자 상호간의 끈기가 약하므로 밀가루를 30~80%정도 배합하고 소금을 첨가하여 물로 반죽한 다음 '메밀국수'를 만든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메밀가루로 죽을 만든 다음 이것을 굳혀서 젤리상태의 [메밀묵]을 만들었다. 그리고 메밀의 연한 잎사귀는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했다.
  메밀가루는 너무 희면 영양분이 적다. 감피부분이나 겉껍질의 부서진 가루가 많이 섞여 있을수록 영양면에서 좋으며 향기도 높다. 또한 메밀은 열매 뿐만 아니라 줄기나 잎에도 루틴의 함량이 풍부하므로 채소로 이용할 수도 있다.
  {본초강목}에 의하면 '메밀은 장과 위를 실하게 하고 북돋아준다. 또한 적체, 풍통, 설사 등을 없애준다'고 한다.
   {식료본초}에는 '메밀은 정신을 맑게 해주고 오장의 부패물을 제거시켜 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요즘에 민간요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비만이나 변비, 숙변 제거에 메밀 줄기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말린 메밀대를 푹 삶아서 우린 물을 먹으면 장 속의 온갖 찌꺼기가 씻겨 나온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권장할 방법은 못된다. 하지만 온갖 약이나 운동 등의 요법으로도 치료되지 않은 만성변비환자는 한번쯤 시도해볼만한 방법이다.
  이밖에도 메밀은 소화불량, 중풍예방 등에도 도움이 되는 식품이다.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메밀가루와 대황가루를 섞어 잠자기 전에 온수나 술과 함께 먹으면 효험이 있다. 메밀껍질과 함께 검은콩, 녹두껍질, 결명자, 국화초를 각각 같은 분량으로 베개 속에 넣어 베고 자면 뇌와 눈이 맑아진다. 이 방법은 두풍열이 있는 사람이나 고혈압 환자에게도 좋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메밀의 품종으로는 보통종, 달단종, 유시종, 숙근종 등이 있다. 이중 보통종이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으며, 달단종은 가루에서 쓴맛이 나고 유시종은 씨알의 모가 자라서 날개처럼 된 것이며 숙근종은 다년생 메밀이다.
  또한 수확하는 시기에 따라서 여름메밀과 가을메밀로 나눌 수 있는데 주로 재배되는 재래 품종은 가을메밀이다. 그러나 가을메밀이라 하더라도 각 지방에 따라서 독특한 풍토의 영향을 받아서 품종에 약간씩 차이가 난다. 그러한 의미에서 메밀은 토양의 성질에 상당히 민감한 작물이라 할 수 있으며 토종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 주는 작물이다.
  우리 나라에서 메밀은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등지의 산간, 개간지에서 많이 재배된다. 특히 고산지대의 자갈땅에서 생산한 메밀이 맛이 좋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되기도 한 강원도 평창 등의 해발 600m 이상되는 화전지대에서 나는 메밀은 그 맛과 질이 우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참고자료
  1.{약이 되는 식품}
  2.{식품사전}
  3.{기초식품학} 150쪽,지구문화사
  4.{약용음식물 백선}
  5.{보약의 건강학}
  6.{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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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초류>

  10.인삼

  세계 최고의 고려 인삼

  우리나라에 인삼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백제 온조왕 때 당나라에 갔던 사신이 인삼종자를 가져온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지금으로부터 천 몇백 년 전에 전라도 지방에서 야생 인삼의 종자를 채취하여 재배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인삼의 약효가 인정되어 약재로 쓰기 시작한 것은 고려 중엽 때이며 조선조 초기부터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의 강화, 개성과 함께 충남 금산이 인삼의 특산지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금산은 전국 인삼 거래의 중심지인데, 모든 인삼 거래는 이곳을 통해야만 상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금산에 인삼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이라고 한다. 그때 강씨(강씨)라는 사람이 산신의 계시로 금산읍에서 4km 떨어진 진악산에서 인삼을 발견하여 보급한 것이라 한다. 금산의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금산읍 중도리에 있는 인삼시장에는 산더미처럼 인삼이 쌓인다. 또한 그것을 사고 파는 사람들과 외지에서 온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발디딜 틈없이 붐빈다. 게다가 금산 읍내에는 조금 특별한 인삼 가게들이 많다. 이를테면 수삼을 큰 솥에 넣고 푹 삶아낸 찐짜 인삼차를 파는 '인삼다방'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고장의 특산물인 인삼을 둘러싸고 갖가지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해마다 10월이면 인삼 수확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인삼의 보급 등을 위해 '인삼 미인 선발대회', '인삼 심포지엄' 등이 열리며 활쏘기, 씨름, 농악, 불꽃놀이, 가장행렬, 붓글씨 대회, 강신제 등의 '인삼축제'가 벌어진다.
  '화문석'의 고장이기도 한 강화도의 수삼과 함께 부여 홍삼도 유명하다.
  인삼은 기후와 토질에 따라 약효가 크게 달라진다. 인삼 중에서도 최고의 약효를 지닌 것이 고려인삼, 즉 우리나라산(산) 인삼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도 자연산 삼이 자라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자란 인삼은 무처럼 크기만 할 뿐 맛도 쓰고 약효는 우리나라 인삼의 십분의 일도 안된다. 역시 토종이 최고인 셈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난 인삼의 종자를 다른 여러 나라에서 가져가서 재배해본 결과, 푸짐하게 잘 자라기는 하지만 약효는 별로 없다는 것이 확인 되었다. 역시 한 곳에서 태어난 인간과 자연물은 닮았음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옛날부터 최고의 영약으로 알려진 산삼은 오갈피나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데 그 뿌리가 약으로 쓰인다. 깊은 산 숲 속의 그늘진 곳에서 포기포기 자라며 드물게는 무리를 이루어 자란다. 이것을 인간이 심어 기른 것이 바로 인삼이다. 이처럼 산삼의 재배종인 인삼은 뿌리를 캐서 물에 씻어 겉껍질을 말려 쓰기도 하고 그냥 먹기도 한다.
   흔히 인삼이라고 하면 말린 삼(백삼)을 말하는 것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가공방법에 따라 수삼과 백삼으로 나눌 수 있다. 수확한 것을 그대로 파는 것을 수삼이라 하고,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려 파는 것을 백삼이라 한다. 또한 쪄서 말린 것을 홍삼이라 하는데 붉은 밤색을 띠며, 요즘에는 전매공사에서 전담하고 있다. 이들 가공인삼은 주로 5~6년근을 사용한다.
  이밖에도 당삼, 산삼 등이 있다. 모양은 대체로 백삼과 비슷하지만 당삼은 약간 노란색을 띤 흰색이고 단맛이 난다. 야생종인 산삼은 뿌리꼭지가 가늘면서 긴 것이 특징이다. 인삼보다 약효도 뛰어나고 값도 훨씬 비싼 편이다. 또한 산삼은 그 모양에 따라 값어치가 크게 달라진다. 예로부터 사람의 모양을 빼닮은 것일수록 영험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특히 여자의 나신 모습을 한 동녀삼이나 사내 아이의 발가벗은 모습을 한 동자삼을 최고로 친다. 그리고 오래된 인삼일수록 약효가 뛰어나다. 최근에 고려인삼은 수출품으로 외화 획득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인삼을 가공한 껌, 캔디, 과자 등이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으며, 특히 일본이나 중국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성분

  우리 토종 인삼에는 사포닌 배당체(4~5%) 날기름(0.05~0.25%), 스테로이드, 탄수화물, 유리아미노산, 비타민, 효소, 기름, 수지, 무기물 등이 들어 있다.
  이 중에서도 약효의 중심이 되는 것은 사포닌 성분이다. 사포닌은 피부에 직접적인 작용을 가하여 세포를 부활시킨다. 즉, 새로운 피부 세포를 자꾸 만들어 생기있고 탄력있는 피부를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 밝혀진 것으로 다당류인 파나키산이라는 성분이 있다. 이것은 혈당치를 내리기 때문에 당뇨병에 효과가 있으며 피부의 수분을 보호해주는 작용을 한다.
  이와 같은 인삼의 성분을 활용하여 요즘에는 여성들 사이에서 인삼미용법이 각광을 받고 있다.

  쓰임새

  인삼은 보통 대추, 생강, 밤 등을 적절히 배합하여 달여 마시는 것이 가장 무난한 방법이지만, 수삼은 그냥 날것으로 먹거나 꿀을 발라서 먹기도 한다.
  수삼을 썰어서 꿀에 재웠다가 먹는 방법은 별로 좋지 않다. 꿀에 잰 인삼은 이틀 정도 지나면 일종의 독소 성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각종 의서에는 인삼에 관한 기록이 약방의 감초보다 더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록에는 인삼이 신비한 효험을 발휘하는 영약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예만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약용식물사전}에는 '인삼은 보혈 강장은 물론 병후 소약, 정력감퇴, 노쇠, 영양부족, 위장병, 신경쇠약, 폐병, 빈혈증, 신경통, 변비, 감기 등과 기타 만병에 뛰어난 효험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초강목}에는 '인삼은 모든 허증과 현훈, 혈붕, 토혈 등을 다스린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보제방}에는 '비위가 약하고 식욕이 없을 때 생강즙과 인삼가루, 꿀을 넣고 달여서 고약같이 만든 다음 미음에 타서 먹으면 좋다'는 처방이 나온다.
  이밖에도 지금까지 알려진 인삼의 효능은 다양하다. 즉, 강심작용, 건위작용, 노화예방, 간기능 회복, 두뇌활동 촉진, 조혈작용 등의 효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인삼은 현대인의 불치병인 암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고 고혈압, 동맥경화, 당뇨병, 스트레스, 갱년기 장애, 냉증, 알콜 중독, 류머티즘, 알레르기, 피로회복, 피부미용 등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인삼이 인체에 주는 효과에 대해서는 한 가지 임상실험의 예를 통해서 실감할 수 있다.
  평균 체중이 1.4kg인 수토끼 집단에 2개월 동안 날마다 인삼가루 0.5g씩을 먹인 다음 부고환을 떼어서 현미경표본으로 만들어 정충의 체외생활 지속시간과 활동 상태를 보통 토끼와 비교해 보았다. 그 결과 인삼을 먹인 토끼 집단은 먹이지 않은 토끼들보다 정충 형성이 우세했고 수도 많았으며 운동도 활발하였다. 또한 정충의 체외생활 지속 시간도 무려 7시간이나 더 길었고 고환 자체의 무게도 0.4g이나 더 무거웠다. 민간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요법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천식으로 숨이 찰 때는 인삼가루를 하루에 5~6회, 각 한 숟갈씩 열탕으로 먹는다.
  *비위가 허약하고 식욕이 없을 때 생강즙에 인삼가루 4냥, 벌꿀 10냥을 넣고 고약같이 달여놓고 이것을 다시 따뜻한 물에 1숟갈씩 타서 먹는다. 위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인삼은 훌륭한 약효를 지니고 있지만 체질에 따라서 적합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인삼을 먹기 전에는 자기 체질에 인삼이 맞는지의 여부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인삼을 먹고나면 얼굴이 붉어지거나 가슴이 답답하고,혹은 피부발진을 일으키는 사람은 가급적이면 인삼을 먹지 않는 편이 좋다. 이런 체질을 가진 사람을 소양인이라고 하는데 비위에 열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인삼은 비위기능이 약하고 체질이 냉하며 몸이 허약한 소음인에게 가장 적합한 약재이다.

  이것이 토종

  인삼은 중국에서 다량 수입되고 있다. 근래에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중국산 백삼은 길이에 비해 지나치게 굵고 표면이 울퉁불퉁하게 거칠며 약효도 거의 없다. 중국 사람들도 옛날에는 우리나라 산 인삼을 사들여서 보약재로 썼다고 하는데 이제는 거꾸로 우리가 중국산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산 인삼은 다리가 잘 발달되지 않았고, 있더라도 한두 개가 고작이다. 그리고 삼 머리가 길며, 홍삼의 경우 암갈색으로 어두운 빛을 띠고 있고, 백삼은 윤기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중국산 인삼은 냄새도 좋지 않다.
  반면에 토종 인삼은 잘 발달된 다리가 2∼4개 있으며 삼 머리가 건실하고 짧다. 홍삼의 경우 적갈색, 또는 담갈색으로 윤택하며 백삼은 깨끗한 유백색이며 인삼 특유의 향내가 난다.
  토종 백삼을 구할 때는 우선 인삼연구소의 품질검사 표시를 확인하거나 인삼 전문상가를 찾아가서 흠집이 적고 곧게 뻗은 것을 골라야 한다. 수삼은 장기간 보관이 어려워 외국산은 거의 없다. 그러나 국산이라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마구 섞어파는 일이 흔하므로, 덤으로 몇 뿌리 더 얻는 데 현혹되지 말고 크기가 고르게 묶인 것을 택해야 한다.

  ***참고자료
  1.과학백과사전 ㅊ판사 <보약의 건강학> 일월서각
  2.이철호 <약이 되는 식품> 어문각
  3.이철호 <장터순례> 유림출판사
  4.안덕균 감수 <한국의 민간요법> 도서출판 가서원
  5.<가정과 생활> 동아일보 92.9.18일자 (사진자료)
  6.월간 {행복의 샘} 92.11월(창간호),농민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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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칡

  굶주린 백성들의 배고픔 달래주는 구황식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긔 어떠리/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고려 말에 이방원(이방원:조선 건국 후 태종이 되었음)이 지은 '하여가'라는 단가이다. 이 노래는 고려 말 충신 정몽주로 하여금 고려 왕실을 버리고 이성계를 따르도록 권유하는 이방원의 마지막 설득인데, 여기서 이방원은 당시의 어지러운 정치상황을 교묘하게
'드렁칡'에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하며 '일백 번 고쳐 죽어'도 고려 왕실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밝히고 결국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칡뿌리 같이 얽혀 살자던 이방원은 나중에 조선의 세번 째 임금이 되었고, 칡뿌리 처럼 얽혀 살 수는 없다는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피를 뿌리고 죽어서 충신의 대명사로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우리의 뇌리 속에 기억되고 있다. 반면 야산에는 오늘날에도 얼키고 설켜서 뒤엉킨 칡뿌리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 속에서 이합집산하는 정치상황의 비유 대상이 되기도 하였던 칡은 배고픈 서민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구황식품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극심한 흉년이 들어 양식이 바닥나면 산에 가서 칡뿌리를 캐어다 가루를 내어 떡이나 국수를 만들어 먹으며 연명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칡의 어린잎이나 칡꽃도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데 한몫을 해왔다.
  분류학상으로 콩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의 만목인 칡은 동아시아 지역에 서식하는 온대식물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만주, 대만, 일본 등지에 분포하는데, 대부분 산이나 들에서 자생한다. 칡덩굴은 20m이상 줄기가 뻗어나간다. 그리고 칡뿌리도 굵은 것은 지름이 40cm나 되는 것도 있다. 이처럼 칡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마음껏 생명력을 발휘하면서 뻗어나간다. 이러한 칡을 중국에서는 약재채취를 위하여 인위적으로 재배한다고 한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사방공사를 할 때 토양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심기도 하였다. 그러나 너무 무성하게 자란 칡이 주변의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말라죽게 하는 바람에 급기야 칡을 인위적으로 뽑아버리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던 적이 있다. 또한 칡을 제거하는 기계까지 등장하여 다량으로 채취한 칡은 가축 사료로 활용하였다.

  성분

  칡뿌리의 성분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다만 녹말질 등 당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칡뿌리에서 얻은 녹말을 우리나라에서는 갈분이라 한다. 야생하는 칡뿌리를 잘게 쪼갠 다음 망치로 오랫동안 두드려 부수고 물에 씻어내면 녹말이 분리되는데 이것을 침전법으로 정제하여 건조하면 갈분이 되는 것이다.
  칡뿌리의 약성분에 대한 기록은 여러 책에서 발견된다. 우선 {신농본초경}에 의하면 '칡뿌리는 소갈증, 신열, 구토, 모든 신체마비 등을 다스리고, 양기(정력)를 일으키며 모든 독을 푼다'고 한다. [명의 별록]에는 '칡뿌리는 상한중풍]과 두통을 다스리며 통증을 그치게 하고 신경통을 없앤다. 생칡뿌리를 즙을 내어 마시면 갈증과 높은 신열을 다스린다.'고 되어 있다.

  쓰임새

  한약 달이듯 하여 차로 마시기도 하고 말려두었다가 가루로 마시기도 한다. 또한 탕에 풀어먹기도 하고 국수나 떡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칡뿌리를 가루낸 것을 갈분이라 하는데 이것은 식용이나 과자의 원료로 쓰이기도 하고 접착력이 뛰어나서 풀을 만들기도 한다. 갈분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칡뿌리를 물에 씻은 다음 적당한 크기로 썰어 절구에 넣고 찧는다. 그리고 나서 자루에 넣고 끈으로 묶는다. 큰 그릇에 물을 채우고 그 물속에 자루를 담그고 힘차게 주물럭거리면 칡가루가 자루 속에서 흘러나온다. 이것을 여러번 되풀이 하면서 칡가루가 자루 속에서 다 흘러나오도록 한다. 흘러나온 칡가루는 그릇 밑바닥에 앙금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면 윗물을 따라버리고 새물을 부어 휘저으면 갈분이 물에 섞이게 된다. 이런 방법을 반복하는 동안 희고 고운 갈분이 남게 된다. 이것을 햇볕에 말리면 수분이 증발한 다음 좋은 전분을 얻을 수 있다. 갈분은 예로부터 환자나 어린이의 영양식으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이것을 끓는 물에 타서 먹으면 몸이 항상 더워지며 감기 초기에 잘 듣는다. 또한 설사에도 효과가 있다. 한방에서는 건재 약재로 사용하고 칡차 및 고급과자의 원료로도 쓰인다.
  칡덩굴 껍질을 벗겨서 짠 것을 갈포라 하는데 옛날에는 옷감으로도 쓰였고 지금은 고급벽지의 재료로 사용한다. 한방에서는 칡이 중요한 약재로 쓰이며 그 효능도 다양하다. 특히 칡꽃은 주독을 없애주며 하혈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예로부터 민간약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이밖에 갈근을 가정에서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요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구역질이 자주 날 때는 칡뿌리를 찧어 즙을 내서 먹는다.
  *불면증에는 생칡뿌리를 즙을 내어 자주 마신다.
  *구갈증에는 칡뿌리 5냥을 물에 달여 탕을 마시면 된다.
  음식을 잘 소화시키고 특히 술독을 풀어주는 데 좋다. 숙취했을 때는 생즙으로 마시거나 달여마셔도 효과가 있다.

  이것이 토종

  칡은 우리나라의 산과 들 어디에서나 자생하고 있다. 별도로 재배하지 않으므로 자생하고 있는 것을 채취하여 쓴다. 인공적으로 재배하지 않은 칡은 공해에 찌들지도 않았고, 깊은 산속 오염되지 않은 토양의 영양분을 흠뻑 머금고 있다. 이처럼 칡은 종자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토종의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칡으로 유명한 고장을 든다면 경남 함양을 꼽을 수 있다. 이 곳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초목이 울창하고 온갖 약초와 산열매가 무진장 널려있는 곳이다. 그 무성한 수풀 속에서 자라난 칡은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고장 사람들은 예로부터 두툼한 칡뿌리는 약재로 쓰고 덩굴 껍질은 벗겨서 갈포를 짰다.

  ***참고자료
  1. 심상룡, {약용 음식물 백선} 보건신문사
  2.{약이 되는 식품} 이철호
  3.{한국식품사전}
  4.{민족문화대백과}
  5.{장터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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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고사리

  줄기 연하고 향 짙은 토종 고사리

  어린 아이의 꼭 움켜쥔 손을 '고사리 같은 손'이라 한다. 끝이 앙증맞게 꼬부라져 있는 고사리의 모양은 과연 어린이의 움켜쥔 작은 손과도 닮았다. 고사리는 높이가 1m 정도에 달하며 봄철에 어린 잎이 돋아나 꼬불꼬불 말린다. 그래서 {본초강목}에서는 "고사리는 음력 2~3월에 싹이 나 어린이의 주먹모양과 같은데 펴지면 봉황새의 꼬리와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고사리는 참고사리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양치류로 햇볕이 잘드는 산이나 들에서 자생하는 구황식품이다. 연필대 만큼 크고 굳은 줄기가 땅속에 가로누워 있고 이른 봄에 여기에서 싹이 돋아 꼭대기가 꼬불꼬불하게 말리며 흰 솜같은 털로 온통 덮여 있다. 어린 잎과 줄기를 채취하여 삶은 다음 물에 담구어 쓴맛과 떫은맛을 우려낸 후 건조하여 저장한다.
  고사리는 전세계에 큰 군락을 만들어 자생하는 생활력이 왕성한 식물로 아시아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식용해왔다. 중국 춘추시대 때 주나라 무왕의 녹을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으로 들어간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먹고 연명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먹은 고사리도 결국은 무왕의 영토에서 난 것이 아니냐고 그들을 비아냥거린 사람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고사리는 일상화된 먹을거리의 하나였다. 이처럼 보편화된 음식물로서 고사리는 제삿상에도 빠질 수 없는 나물이 되었다. 근자에 이르러 고사리에는 '브라켄톡신'이라는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들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확실히 증명된 사실은 아니다. 따라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선조들이 먹어온 고사리를 일부러 식단에서 추방할 필요는 없다. 무릇 어떤 동식물이건 너무 과다하게 섭취하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적당하게 섭취하는 방법을 잘 지키면 약이 될 수 있고, 잘못 섭취하면 해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성분

  고사리는 섬유질이 많고 카로틴과 비타민 C를 약간 함유하고 있으며 비타민 B2는 날것 100g에 0.3mg 정도 함유하고 있다. 또한 뿌리 100g에는 칼슘이 592mg이나 함유되어 있어 칼슘 식품이 적은 산촌에서는 무척 필요한 산나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생고사리의 잎에는 비타민 B1의 파괴 인자인 아노이리나아제(aneurinase)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건조한 고사리에 다량의 당질(37.9%)이 들어있는데 이것은 고사리에 포함된 녹말로 고사리 전분, 고사리떡의 주성분이 된다. 이밖에도 단백질, 지질, 섬유질, 회분, 칼슘, 철분 등이 들어있다. 특히 고사리에는 석회질이 많이 들어 있는데 이것을 많이 섭취하면 뼈와 이가 튼튼해진다. 또한 고사리 뿌리를 깨끗이 씻어서 만든 가루를 섭취하면 자양강장과 해열에 좋다.

  쓰임새

  고사리는 주로 나물, 전분, 떡 등의 원료로 사용한다. 그런데 충분히 물에 우려낸 고사리일지라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좋지 않다는 주장도 있으니 유념해야 할 것이다. 특히 고사리잎에는 비타민 B1분해효소가 들어있는데 이것을 곧바로 섭취하면 안된다. 따라서 이러한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4월 하순에서 5월 상순 사이에 어린 고사리를 따서 나뭇재를 섞어둔다. 여기에 뜨거운 물을 붓거나 뜨거운 물로 고사리를 삶아 식기를 기다린다. 그러면 비타민 B1분해효소가 쓴맛과 함께 빠져나온다. 요즘은 나뭇재 대신 소금과 중조를 쓰기도 한다.
  {본초강목}에 의하면 어린 고사리를 회탕으로 삶아 물을 버리고 햇볕에 말려 나물을 만든다고 하였다. 가을에 접어들면 고사리 뿌리를 캐내어 절구에 찧어 이것을 푸대에 넣고 잘 주물러 녹말을 얻는다. 고사리 녹말로는 떡이나 풀을 만든다. 또 고사리를 따서 건조시켜 저장해 두었다가 수시로 식용하기도 한다. 이 때에는 물에 담가 우려서 다시 삶아 나물이나 탕거리로 쓴다. 요즘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촉성재배한 고사리가 한겨울에 나돌기도 한다. 고사리는 약으로도 쓰인다. 고사리 녹말은 이질에 좋으며 어린잎은 신경흥분제가 되고 탈항을 다스리며 이뇨와 해열에도 효과가 있다. 그러나 {본초강목}에서는 고사리는 이익함이 없는 음식이라고 했다. 또한 {본초습유}에서는 '많이 먹으면 양기가 사라진다. 백이와 숙제는 고사리를 먹고 요절하였다'라고 한다.

  이것이 토종

  고사리는 중국 등지에서 다량 반입되고 있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서 구입해야 한다. 토종고사리는 대체로 대가 가늘고 색깔이 연한 갈색이며 털이 적게 붙어 있다. 길이는 20cm 안팎으로 짧은 편이며 고사리 윗부분이 원형대로 붙어 있다. 또한 채취할 때 손으로 뜯기 때문에 토종 고사리는 절단면이 일정하지 않고 거칠다. 고사리 고유의 향이 짙으며 육질이 연하고 물에 담그면 빨리 부푼다. 그리고 국산 마른 고사리는 보통 짚으로 묶었다. 반면 외국산은 대가 굵직하고 곧은 편으로 길이는 30cm 정도로 길다. 자세히 보면 표면은 쪼글쪼글하고 색깔이 짙은 갈색이며 털이 많이 붙어 있다. 또한 대량으로 재배하여 낫으로 채취하기 때문에 먹을 때 뾰족한 절단면이 혀에 거슬리며 윗대궁 부분이 대부분 떨어져 나가고 없다. 육질 또한 질기고 고사리 고유의 향이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산은 물에 풀어 물고사리로 많이 판매하는데 물에 부푸는 속도가 느리고 검은색을 띠면서 깨끗하지 않다.
  토종 고사리는 봄철에 산지에서 캐내는 대로 소비되기 때문에 유통량이 많지 않고 시장에서 구하기 힘들다. 따라서 진짜 토종 고사리를 구하려면 봄철에 산지에서 미리 구입해서 건조시켜 저장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참고자료
  1. 박원기, {한국식품사전}, 신광출판사
  2.[여성생활] {문화일보} 92.8.28 (비교사진자료 등재)
  3.월간 {소비자시대} 92.8
  4.{민족문화 대백과}
  5.{신토불이} 농협, 핸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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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약쑥

  쑥중의 귀족 싸주아리쑥

  우리나라 산야에 쑥은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래서 봄이면 어디를 가든지 '쑥쑥' 자라난 쑥을 볼 수 있다. 쑥은 토양이 비옥한 곳보다는 오히려 척박한 곳에서 잘 자라며 줄기찬 생명력을 지녀 극심한 악조건 속에서도 사멸하지 않고 번식을 잘 한다. 쑥은 마늘과 더불어 단군 신화에 나올 만큼 아득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약초이자 식품이었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번식력이 좋아서인지 쑥의 종류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표적으로 우리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쑥의 종류만 열거해도 비쑥, 사철쑥, 제비쑥 등 다양하다. 비쑥은 바닷가 모래 땅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서 두 자에서 석 자까지 자라며 줄기 잎은 적갈색을 띠고 있다. 향기가 없고 전체에 회백색의 가는 털이 있다. 꽃은 8∼9월에 피는데 사철쑥에 비해 송이가 크다. 제주, 전북, 경북 울릉도, 경기, 강원 등지에 야생한다. 사철쑥은 냇가의 모래땅에서 많이 자라며 키는 한두 자 정도로 줄기는 곧게 섰고 가지가 많이 갈라졌다. 꽃은 8∼9월에 피며 황색이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일본, 만주, 중국, 대만, 필리핀 등에 분포한다. 줄기와 잎은 식용 및 약용으로 한다. 일본의 인진을 본식물로 볼 수 있다.
  제비쑥은 산지에서 흔히 자라는데 잎이나 줄기에 털이 거의 없고 잎은 호생하며 쐐기형이다. 꽃은 황색으로 7∼9월에 피며 전국 각지에 야생한다. 지리적으로는 일본, 유구, 대만, 만주, 중국, 필리핀에 분포한다. 또한 제비쑥의 어린 잎은 나물이나 떡 등에 많이 사용한다. 줄기가 연하기 때문이다. 봄철에 어린 잎을 채취하여 떡에 넣어 쑥떡을 만들고 삶아 물에 우려서 죽이나 밥에 넣어 먹는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쑥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쑥에 암세포를 억제하는 '인터페론인듀사'라는 성분과 피를 맑게 하는 엽록소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한 쑥에 들어있는 비타민 A군을 많이 섭취하면 시력이 나쁜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는 연구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성분

  쑥은 훌륭한 알카리성 식물로 칼슘, 철분 등이 풍부하여 산성체질이 되기 쉬운 우리 몸에 좋은 역할을 한다. 성질은 따뜻하고 독이 없으며 특유의 쓴 향기를 갖고 있다. 잎에는 약 0.02%의 정유가 함유되어 있으며 그 주성분은 치네올[Cineol(50%)]이다. 그밖에 츄온, 세스키테루펜 알코올, 아데닌, 콜린 등의 염기와 산화칼륨, 유산, 수지, 비타민 A, B, C, D, 아미라제 등을 함유하고 있다. 
 
  쓰임새

  쑥은 나물, 떡, 쑥차 등의 재료로 많이 쓰인다. 봄철에 나온 부드러운 제비쑥 등을 살짝 데쳐서 무쳐 먹으면 별미다. 그러나 쑥은 맛이 쓰기 때문에 데친 다음 하루 정도 두었다가 조리하는 게 좋다. 쑥떡은 쌀, 조 등에 쑥을 넣어서 만든 떡으로 과거에는 명절날 차례상에도 단골로 올랐다. 쑥차를 만들 때는 향이 좋은 바닷가의 쑥을 쓴다. 쑥잎을 채취할 때는 줄기 밑부분까지 뜯어서 말린 다음에 잎을 따는 것이 편리하다. 햇볕에 잘 말려서 종이 봉지에 넣어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매달아 두고 쓰면 된다. 그런데 쑥차는 너무 쓰기 때문에 결명자와 함께 달이는 것이 좋다. 이때 설탕을 넣으면 좋지 않다. 요즘은 쓴맛을 제거한 인스턴트 쑥차가 시판되고 있어서 간단하게 쑥차를 즐길 수 있게 되었으나 쑥을 직접 채취하여
끓여먹는 쑥차맛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을 것이다. 한편, 구급약 없이 산이나 들에 나갔을 때 상처가 생겨서 피가 흐르면 흔히 쑥을 붙인다. 쑥이 독소를 제거하고 지혈을 도와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쑥은 응급약으로 사용되어 왔다. 쑥의 약리작용은 광범위하게 응용되어 민간요법, 또는 한방에서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이를테면 쑥즙은 식욕 촉진과 소화불량에 특효가 있고 쑥탕은 신장, 신우염 등으로 인한 부종을 없애준다.
  쑥은 음력 5월 단오 전후에 채취한 것이 가장 약효가 좋다. 차로 쓰는 쑥도 이 무렵에 채취한 것이 좋다. 또 산중에서 자란 것보다는 바닷가나 섬에서 채취한 것이 약효가 좋다고 한다.
  이처럼 쑥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오래 전부터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여왔으며 특히 동양의학에서는 여러 가지 질병 치료를 위해 자극요법으로도 사용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뜸'이다. 신경통이나 관절염 환자에게 주로 써온 이 '쑥뜸'은 그 효과가 날이 갈수록 입증되어 쑥뜸을 자가요법으로 삼아 지병을 치료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또한 쑥으로 목욕하는 방법도 있는데 쑥으로 목욕을 하고 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웬만한 감기 정도는 쉽게 물리칠 수 있다. 또한 신경통, 요통, 냉병, 부인병 등 그 효과범위가 넓으며 특히 여성들의 피부 보호에도 좋다고 한다.
  쑥 목욕의 방법은, 우선 그늘에서 말린 쑥을 무명 주머니에 넣은 다음 이것을 물에 넣고 끓인다. 그런 다음 이 끓인 쑥물을 따뜻한 목욕물과 함께 목욕탕에 붓고는 그 속에서 목욕을 하면 된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 산천을 통틀어 쑥이 나지 않는 고장이 없다. 굳이 따로 재배하지 않아도 저 혼자 산에서, 들에서 '쑥쑥' 자라나니 이 모두가 순수한 토종이다. 그러나 굳이 질 좋은 토종쑥이 쑥쑥 자라나는 곳을 든다면 경기도 강화이다.
  '쑥'하면 '강화쑥'을 떠올릴 정도로 강화는 쑥의 고장이다. 강화에서 자생하는 쑥은 약성이 좋아 '약쑥'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약쑥은 5∼6종 서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품질이 우수한 것이 바로 싸주아리쑥이다.
  싸주아리쑥의 어원에 대해서는 강화 주민들의 입을 통해 두 가지 설이 전해온다. 모를 심은 곳을 못자리라 하듯이 최초에 쑥이 번식되기 시작한 쑥밭을 시자리라 하였는데 여기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설과, 강화도에 사기리라고 하는 동네가 있어 이곳의 지명인 사기리의 쑥이 변화되어 굳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싸주아리쑥은 대체로 키가 작고(30∼50Cm) 잎새에 윤기가 나며 끝이 둥굴고 털이 보숭보숭 나있는 경우도 있다. 싸주아리는 독한 쑥냄새를 풍기지 않고 무척 향기롭다. 다른 쑥은 말리면 줄기가 검어지는데 싸주아리쑥은 누런빛을 띤다.
  쑥 중의 귀족으로 불릴 만큼 고고한 자태를 지닌 싸주아리쑥은 다른 쑥들과 섞여 있어도 쉽게 식별이 된다. 비록 키는 작지만 풍부한 잎에 윤기가 흐르고 독특한 향기를 주위에 흩뿌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싸우나와 쑥탕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목욕업자들이 마구 채취해 가는 바람에 강화약쑥은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현지 주민들은 단오절 무렵 쑥이 계속 번식할 수 있도록 낫으로 밑둥을 베어서 쑥을 채취하지만 몰지각한 외부인들이 뿌리 째 뽑아서 흙을 털어버리는 방법을 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쑥이 뿌리째 뽑힌 자리에서는 이듬해에 싹이 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분포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 '품질 좋은 강화쑥'이란 소문은 이제 옛 말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척박한 땅에서 자생하는 줄기찬 생명력을 지닌 쑥이라도 탐욕어린 인간의 손길이 한 번 휩쓸고 간 자리에는 생명의 종자를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 참고자료
  1.{약이 되는 식품}
  2.{식품사전}
  3.{민속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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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오미자

  다섯 가지의 신비한 맛

  {천금방}이라는 책에서는 남성의 발기불능에 대한 치료법을 밝히고 있는데 그 중에 오미자 처방이 나온다. 오미자 1근을 말려 가루를 내서 날마다 한 숟갈씩 세 번 나누어 먹는다. 이렇게 백일 이상 계속 먹으면 열 명의 여인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만일 이와 같은 사실이 실증되기만 한다면 아마도 오미자 값이 금값으로 뛸 것이다. 정력제라면 별의별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같은 효능을 가진 오미자를 가만 둘 리가 없다.
  그러면 도대체 이렇게 무지무지한 정력의 원천(?)이 되는 오미자는 과연 무엇인가.
  가을녘이면 높은 산지의 등성이나 계곡 등지에는 마치 포도송이 같은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열매를 일러 오미자(오미자)라 하는데 이것은 이름 그대로 달고, 시고, 쓰고, 맵고, 짠 다섯가지의 맛을 고루 갖추고 있다.
  목련과에 속하는 낙엽덩굴성 관목인 오미자나무는 전국 각처의 산골짜기, 특히 전석지(전석지)에서 군총을 이루어 자란다. 잎이 어긋나며 넓은 타원형, 긴 타원형 또는 난형을 이루고 있다. 열매는 구형 또는 도란상 구형이고 길이 10cm 정도로서 한두 개의 종자가 들어있으며 신맛이 강하다. 오미자는 건조하면 약간 투명한 감이 있으며 누글누글하고 오미자의 독특한 향기가 난다.
  오미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대만 등의 나라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든 재배가 가능하지만 가장 적합한 곳은 서북쪽의 서늘하며 경사도가 낮은 지대이다. 특히 오미자나무는 연약하기 때문에 강풍에 약하다. 그래서 거친 바람이 불지 않는 계곡에서 열매를 잘 맺는다. 바람벽이나 방풍림이 있는 곳이라면 재배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오미자나무는 강한 햇빛을 견디지 못한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면 햇볕에 노출된 오미자나무는 잎끝이 마르고 시들시들한 것을 볼 수 있다. 오미자나무는 서늘한 음지에서 더 잘 자라고 더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다.
  오미자는 품종에 따라 북오미자, 남오미자, 흑오미자, 개오미자 등으로 분류되는데 북오미자는 주로 전라북도 지리산, 충청북도 속리산, 강원도 태백산에 많이 자생하고 있다. 남오미자는 남쪽 섬에 자라는 상록성 덩굴식물이고 흑오미자는 제주에 자라는 낙엽덩굴식물이다.

   성분

  오미자 신맛의 성분은 말산, 타르타르산 등이다.
  과실에 들어있는 산성물질은 유기산이고 그외 당점액질 등을 함유하고 있다.
  약성은 완만하고 맛은 시며 독성은 없다. 효능은 성신경의 기능을 항진시키므로 유정, 몽정, 정력감퇴, 유뇨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대뇌신경을 흥분시키고 강장작용이 나타났으며 호흡중독에도 직접 작용하고 있다. 또한, 심장활동을 도와서 혈압을 조절하고 간장에 들어가서는 간장의 대사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인정되었다. 
  쓰임새 
  오미자는 주로 한방에서 약재로 이용된다. 또한 민간요법에서는 오미자가 기침약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오미자를 물에 담가두고 그 물을 수시로 마시면 기침에 효과적이고 조갈증에도 좋다. 또한 오미자는 예로부터 정력의 강장제로 전해온다. 특히 오미자차를 여성이 자주 마시면 피부가 윤택해지고 탄력성이 생기며 질내의 이상분비를 조절하여 건강과 아름다움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오미자는 남성들에게 강한 정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오미자 즙에 녹두 녹말을 넣어 끓인 응이를 오미자응이라 한다.
오미자응이는 오미자 즙에 녹두를 곱게 갈아서 가라앉혀 만든 녹말을 넣고 끓여서 드는 데 오미자 즙의 고유한 진달래색과 새콤한 특지가 가미되어 담백한 맛을 준다.   한편, 오미자는 달여서 차로 끓여 마신다. 가을에 열매를 따서 잘 말린 다음 종이 봉지에 넣어 습기가 없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에 매달아서 보관한다. 건재약방에서 쉽게 구입할 수도 있다. 열매는 곰팡이가 생기므로 차를 만들기 전에 잘 살펴보아야 한다. 오미자차는 오미자 열매를 넣고 끓이거나, 아니면 열매를 가루로 하여 끓인 물에 타서 마시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보통 끓인 물 1잔에 차숟가락으로 2,3개 정도의 분량을 타서 마신다. 흔히 설탕이나 꿀을 타서 마시는데 독특한 향기와 맛이 있다.   이밖에도 오미자는 여러가지 민간요법의 재료로 쓰인다.   당뇨병환자가 입이 자주 마르고 갈증을 느낄 때에 복용하면 갈증이 제거되고,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고 난 뒤에 복용하면 더위를 이겨내고 갈증을 적게 느끼게 된다. 오래도록 잘 치유되지 않는 해소에 사용하면 기침을 멈추게 하는 효과도 있다. 최근의 임상보고에 의하면 급성황달형 전염성간염에도 좋은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금기사항으로는 감기로 인한 기침에는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이것이 토종

  {명의별록}에 의하면 '오미자는 고려에서 난 것이 가장 우수하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 발행한 {약용식물사전}에도 '오미자는 조선산이 가장 좋고 버금은 중국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 양나라 시대 학자였던 도홍경도 '오미자는 고려에서 난 것이 제일이다. 과육이 많고, 시고 달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난 오미자는 그 질의 우수성을 일찌기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야생하는 오미자는 평안북도 영변산과 경상북도 영양산, 그리고 전북 장수군의 덕유산, 장안산 일대에서 난 것이 질이 좋다.   수정 모양으로 약간 투명한 감이 있으며 누글누글하고 오미자의 독특한 향기를 지닌 것이 좋은 오미자이다.

   *** 참고자료
  1.{민족문화대백과}   2.{약용작물 재배의 실제}
  3.{장터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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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산수유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강장제

  산수유는 산수유나무과, 혹은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소교목으로, 나무의 키는 최고 7m정도까지 자라며 보통 3∼6m 정도이다. 연한 갈색인데 수피가 벗겨진다. 잎은 난형, 타원형 또는 난상피침형으로 마주난다. 길이 4∼12m, 너비 2.5∼6cm로 표면은 녹색이며 복모(복모)가 약간 있다. 꽃은 황색으로 3,4월에 잎보다 먼저 피는데, 그 모양이 아름다워서 관상수로 많이 재배된다. 열매는 긴 타원형으로 8월에 익는다.
  산수유는 내한성이 강한 식물로서 중부지방에서 재배되고 있으나 남부지방에서 재배하는 것이 유리하다. 산수유나무는 양수로서 그늘진 곳보다 양지바른 곳에 심어야 한다. 특히 이른 봄에 개화하여 수분작용을 하기 때문에 서북풍이 막힌 경사분지로서 한파가 없는 곳이 이상적이다.
  산수유나무는 특별하게 토양을 가리지는 않으나 배수가 잘되고 부식질이 많은 모래참흙, 또는 자갈이 섞인 참흙에서 잘 자란다. 가을에 열매가 빨갛게 익으면 수확하여 살짝 찌거나 그대로 씨를 빼낸 후 과육만을 햇빛에 말리어 저장한다. 건재는 윤택하고 살이 많으며 산미가 많은 것이 우량품이다.
   성분
   산수유는 결정성 유기산, 몰식산, 능금산, 주석산 등을 함유하고 있다. 따라서 자양, 강장, 보신, 도한, 동통 등에 효능이 있다. {방약합편}이라는 의서에 의하면 산수유는 성질이 따뜻하고 신허를 다스리며 고정하고 허리와 무릎을 덥게 하고 귀에서 소리나는 것을 고친다.   산수유 열매에는 코르닌, 베르베날린, 타닌, 우르손, 비타민 A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약리작용이 있다. 약성은 온화하고 독이 없으며 맛이 시고 달다. 신장기능과 생식기능의 감퇴로 소변을 자주 보거나, 야뇨, 두훈, 이명, 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은근히 통증을 느낄 때 복용하면
효과가 있다. 또 유정, 몽정이 심하고 하체에 힘이 약하여 보행장애가 있거나 성신경의 기능허약으로 발기가 잘 안되거나 조루 등에 장복하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밖에 잠자리에서 자고 난 뒤에 땀을 많이 흘리거나 팔, 다리가 찬 사람이 사용해도 좋다. 다만 부종이 있고 소변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않는다.

  쓰임새

  민간에서는 차 또는 술에 담가서 강장제로 쓰고 있다. 대표적인 처방에는 좌귀음과 팔미환, 대삼오칠산,팔미지황환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9월 9일(중양절)이 되면 여자들이 산수유의 열매를 따서 머리에 꽂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모든 잡귀를 내쫓을 수 있다고 한다.
  산수유는 동양의학에서 강장제로 쓰여 왔으며 신장의 기능을 보강해 주고 정력감퇴, 구토, 소화불량, 사지의 무력감 및 통증 등을 다스리는데 효능이 있다. 특히 여성들이 월경과다일 때 산수유를 달여서 하루에 세 번 정기적으로 복용하면 정상적으로 조절이 된다. 이밖에도 노인들이 허리, 무릎 등에 찬바람이 나고 통증이 있는 증상에도 산수유는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산수유의 완숙한 열매를 따서 반쯤 말린 다음 씨는 빼버리고 육질만 300g을 달아 소주 한 되에 넣고 설탕을 300g 정도 넣어 3개월 정도 두면 맑고 연분홍빛이 감도는 산수유주가 된다. 이 술은 강장제로서 탁월한 효능이 있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에서 산수유가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곳은 지리산의 한자락인 전남 구례이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산수유는 전국 생산량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품질이 뛰어나다. 그리고 국내 시장은 물론 홍콩과 일본 등지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구례에 가면 어느 곳이나 한두 그루의 산수유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구례군 산동면의 경우에는 전 농가의 8∼90% 정도가 산수유를 재배하고 있다. 구례에서 산수유가 재배되기 시작한 기록은 정확치 않지만 산동면 일대에 나이가 3백년이 넘는 산수유 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이미 그전부터 재배되어 왔음을 알 수가 있다.
   ** 참고자료
  1.{민족문화대백과}   2.{약용작물 재배의 실제}
  3.{장터순례}   4.{보약의 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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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도라지

  심심산천에 흐드러지게 핀 꽃과 살진 뿌리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뿌리만 캐어도 /대광우리에 철철 넘누나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어여라 나다 지화자 좋다 /네가 내 간장 스리살살 다 녹인다"
  아리랑과 함께 우리의 전래 민요 가운데 가장 친근다고 할 수 있는 도라지 타령이다. 이 노래는 전국 각 지역에서 조금씩 다르게 전승되어 왔다. 그리고 도라지는 심심산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만큼 그 명칭도 다양하다. '도랒'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하며, 도래, 돌가지라고도 한다. 또한 한자어로는 길경, 백약, 경초, 고경이라고 부른다. 도라지는 온대지방의 평지 및 해발 1,000m 정도에 이르는 산지의 양지 바른 곳 서 자란다. 줄기의 높이는 40∼100cm로 곧추선다. 굵게 살진 뿌리를 식용한다. 그 탐스러운 뿌리를 일컬어 "한 두 뿌리만 캐어도 대광주리에 철철 넘다"고 했다. 도라지의 잎은 긴 타원형이며 끝이 뾰족하다. 8∼9월이면 다섯쪽으로 갈라진 통꽃이 피는데, 보통은 청자주색을 띠며, 흰색의 꽃이 피는 것도 있다. 이를 백도라지라고 부르며, 꽃이 겹으로 피는 것을 겹도라지라고 한다. 한적한 산길에 피어있는 도라지꽃은 웬지 서글픈 느낌을 자아낸다. 우리 선조들은 대대로 도라지나물을 무쳐먹었고, 마침내 도라지는 산나물의 대명사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도라지를 노래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힘들 때나 기쁠 때 도라지 타령을 흥얼거리며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던 것이다. 도라지 뿌리 중에서 큰 것은 마치 인삼을 닮은 것도 있다. 그래서 일부 상인들은 이것을 인삼으로 속여서 파는 일도 있다고 한다.

  성분

  도라지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칼슘, 인, 철분과 각종 비타민이 골고루 함유되어 있다. 도라지 뿌리에는 당질, 칼슘, 철분이 많고 섬유질이 주요성분을 이루고 있으며 인삼의 성분인 사포닌이 들어있다.   약성으로 보아서는 가을에서 이른봄까지가 좋으나 이 때는 쓴맛이
강하다. 또한 도라지의 뿌리에는 인삼의 주요성분 가운데 하나인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어 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쓰임새 
  도라지는 씹는 맛이 특별한데 특히 2,3년생의 어린 뿌리는 아주 연하다. 봄에서 가을에 걸쳐 캐는데, 날것을 그대로 먹기도 하고 말려서 갈무리하였다가 수시로 먹기도 한다
  흔히들 도라지는 뿌리만 먹는 줄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잎과 줄기도 살짝 데쳐서 나물로 먹거나 기름에 튀겨서 먹으면 훌륭한 반찬이 된다. 도라지의 어린 싹이나 잎은 데쳐서 물에 헹구어 쓴 맛을 뺀 다음 나물로 먹으며, 줄기의 연한 부분도 먹는다.
  도라지는 폐기를 맑게 하고 가슴이 답답한 것을 풀어주며, 인후에도 이롭다. 또 기혈을 보강해주고 한열을 없애주며, 뱃속의 냉기를 덜어주는 효능도 있다. 심장쇠약, 설사, 주독 등에도 효험이 있는 식품이다.
  {명의별록}에는 '도라지 뿌리는 오장과 혈기를 보하며, 한열과 풍비를 물리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방에서는 도라지를 진해, 거담약으로 많이 쓰고 있는데, 실제로 도라지는 천식과 가래를 삭혀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과학적인 성분 분석 결과 도라지에는 사포닌이 들어 있어 거담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고, 기타 항염증, 해열, 진통 등의 약리 작용도 한다고 밝혀져 있다. 폐질환 환자나 폐의 기능이 약한 사람, 천식과 가래가 있는 사람, 또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은 도라지 37.5g과 감초 75g을 물 3되에 넣고 삶아, 이것을 차 마시듯 수시로 마시면 효과적이다. 또 인후통이 있거나 목구멍이 아플 때에는 도라지와 감초를 각각 10g씩 물에 달여 마시면 한결 고통을 덜 수 있다.
  도라지와 갈근(칡뿌리)을 각각 37.5g씩 삶아서 여기에 꿀을 타서 마시면 주독과 주취를 쉽게 풀 수 있다. 감기로 코가 막혔을 때는 도라지 뿌리를 썰어 물에 넣고 달인 다음 차처럼 마시면 시원스레 낫는다. 흔히 도라지는 겨울에는 구경하기 힘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도라지의 뿌리나 잎줄기를 쪄서 말려 두었다가 겨울철에 자주 먹으면 좋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 도라지는 표면이 매끈하고 대체로 흰빛을 띤다. 마른 도라지는 부피는 작으나 속이 알차서 무게가 있다. 또한 도라지 고유의 향이 많이 난다. 수입산 도라지는 표면이 거칠며 색깔도 맑지 못하다. 수입산 도라지는 대체로 마른 형태로 들여오기 때문에 몸은 크지만 속이 단단하지 못하여 비교적 무게가 가볍다. 그리고 향기는 적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갓 채취된 싱싱한 것을 구입하여 쓰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도라지를 많이 재배하는 곳으로는 경남 창원을 들 수 있다. 도라지는 이 고장의 특산물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도라지를 다양한 요리의 재료로 활용한다. 이를테면 흔히 해먹는 도라지 생채 뿐만 아니라 고기국, 생선국에 무처럼 썰어 넣어서 먹기도 하고 잘게 찢어서 초고추장에 버무려 회처럼 먹기도 한다. 특히 이 지방의 특별요리로 꼽을 수 있는 '도라지 장아찌'는 이 지방이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별미다. 
  ***참고자료
  1.{민족문화대백과}
  2.{약이 되는 식품}
  3.{신토불이} 농협, 핸드북
  4.{약용음식물백선} 심상룡, 보건신문사
  5.{장터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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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더덕

  인삼의 사촌

  더덕은 그 모양이 도라지나 인삼뿌리처럼 생겼다. 그래서 사삼이라고도 한다. 독특한 향이 살아있으며 그 향기가 멀리 번진다. 따라서 더덕의 독특한 향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산에 갔을 때 후각신경만 곤두세우고 다니면 된다. 그러다가 더덕 냄새를 맡게 되면 그 냄새의 발원지를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더덕은 군생하므로 한곳에서 많은 더덕을 채취할 수가 있다. 분류학상으로 보면 더덕은 도라지과, 혹은 초롱꽃과에 속하는 다년생 덩굴식물이다. 뿌리의 모양은 비대하고 방추형이며 덩굴진 줄기는 감겨서 뻗어 올라가는데 그 길이는 2m 이상에 이른다. 또한 8월에서 9월 사이에 넓적한 종 모양의 자색 꽃이 가지의 끝에 피는데 더덕의 줄기를 자르면 하얀 유액이 나온다. 오래된 옛 문헌에서도 더덕에 대한 기록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명의별록}에서는 '더덕잎은 구기잎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본초강목}에서는 '1,2월에 싹이 나오는데, 처음에는 아욱잎과 비슷하다. 8월에서 9월 중에 줄기가 자라는데 높이가 1,2척이 된다. 잎은 뾰족하고 길어 구기잎과 같으나 작으며 톱니가 있다. 가을에 잎 사이에서 작은 자주색 꽃이 피는데 모양은 방울같고 피면 다섯 갈래로 찢어진다.
모래땅에서 잘 자라고 황토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라고 비교적 정확한 설명을 하고 있다.
  {고려도경}에서는 '관에서 매일 내놓는 나물에 더덕이 있는데, 그 모양이 크며 살이 부드럽고 맛이 있다. 이것은 약으로 쓰는 것이 아닌 것 같다.'라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더덕을 약으로 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적인 식품으로 쓰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증보산림경제}에는 2월에 옮겨 심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자연산만으로는 모자라서 재배를 하기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원래 더덕은 깊은 산에서 저절로 자란다. 들이나 언덕, 강가의 모래무지, 산기슭 그리고 심지어는 해발 2천 미터 이상의 고원지대 등 도처에 자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생 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인공으로 재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한약재로 수출을 해오다가 근래에 와서는 통조림으로 가공하여 수출되기 이르렀다.   더덕의 어원을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다. 다만 1431년에 간행된 {향약채취월령}이나 {향약집성방}에는 가덕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두식 표기이다. '가'는 더한다는 뜻이므로 '더'라 읽어야 하고 '덕'은 그대로 '덕'이라 읽어야 한다. 그래서 '더덕'이라 한다. 말하자면 한편 {명물기략}에서는 더덕을 사삼이라 하고, 양유, 문희, 식미, 지취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더덕의 종류에는 북사삼과 백사삼이 있다. 북사삼은 뿌리의 빛깔이 붉은색을 띠고 있으며 백사삼은 연한 갈색이다. 그리고 북사삼은 뿌리가 굵고 생장력이 왕성하지만 백사삼은 잔뿌리가 많으며 길고 가늘다.

  성분

  더덕의 일반적인 성분으로는 에너지 53Kcal, 수분 82.2%, 단백질 2.3%, 당질 4.5%, 섬유질 6.4%,회분 1.1%, 칼슘 90mg, 인 12mg, 철 2.1mg, 비타민 B1 0.12mg, 비타민 B2 0.22mg, 니코틴산 0.8mg 등이다. 이와같은 성분 구성은 다른 산나물과 별로 차이가 없다. 다만 다른 나물에 비해 칼슘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사포닌 및 스테롤 성분 등을 포함하고 있어 그 약리효과를 가늠할 수가 있다. 즉, 인삼처럼 사포닌을 품고 있어 이것이 약효를 발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쓰임새 

  더덕은 대체로 식용 및 약용으로 쓰인다. 어린 잎을 삶아서 나물로 만들어 먹거나 쌈으로 먹기도 하며, 뿌리는 고추장장아찌, 생채, 자반, 구이, 누름적, 정과, 술 등을 만든다. 특히 햇더덕을 얇게 저며 칼등으로 자근자근 두들겨서 찬물에 담가 우려낸 다음, 꼭 짜서 참기름으로 무치고 양념장을 골고루 발라가면서 석쇠에 구워낸 더덕구이는 일미이다. 이처럼 더덕으로 만든 요리에는 더덕구이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더덕구이는 고기보다 맛이 있다. 이밖에도 산채비빔밥이나 산채정식에서 곁들여 내놓는 더덕생채는 단연코 뛰어난 별미이다.
  {명의별록}에서는 더덕을 일컬어 '인삼, 현삼, 단삼, 고삼, 사삼을 오삼이라 하는데 모양이 비슷하고 약효도 비슷하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더덕은 이같은 오삼 중에서 식용 소비가 가장 많다.
  더덕은 한방이나 민간요법에서 중요한 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더덕의 약성은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지만 특히 위, 허파, 비장, 신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약효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전해온 민간요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물을 마시고 체한 데 효과가 있으며, 음부가 가려울 때나 종기가 심할 때, 독충에 물렸을 때 가루를 내어 바르면 효과가 있다. 또한 {한국민속약}이라는 문헌에 의하면 더덕은 거담, 강장, 고혈압, 보양보음, 부인병, 산후약, 위냉병, 해소, 해열, 풍열, 혈변에 쓰이고, 인삼,구절초를 섞거나 꿀을 섞어 보약을 만든다고 한다. 한방에서 더덕은 흔히 인삼 대용 생약재로 쓰인다. 특히 오래된 더덕 속에 고여있는 물은 인삼 이상으로 몸에 좋다고 하여 다투어 마시기도 한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에서 더덕은 대부분 야생하는 것을 채취하여 식용한다. 따라서 그 수확량이 많지 않을 뿐더러, 갈수록 야생지가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오랜 옛날부터 더덕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요즘에는 수요에 비해서 재배량이 극히 적은 까닭에 중국에서 더덕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 옛날에는 우리가 중국에 수출을 했지만 근래에 와서 뒤바뀐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더덕의 질을 따지면 단연코 우리나라 산야에서 야생한 것이 최고다. 중국산 더덕은 국내산에 비해 검고 크다. 만져보면 물렁물렁한 감촉이 느껴지며 육질은 딱딱하다. 또한 더덕 특유의 향과 맛이 떨어져 먹으면 나무를 씹는 것 같이 느껴진다. 잘라도 즙액이 나오지 않고 속이 꽉 차있지 않다.
  반면에 야생종인 토종 더덕은 굵기가 가늘고 키도 작으며 미색(연한 노란색)을 띠고 있다. 또한 주름이 선명하지 않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지만 만져보면 단단한 감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육질은 연하며 잘랐을 때 젖색깔의 더덕즙액이 나오고 속이 꽉 차 있으며 향기가 진하다. 더덕은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에 적합한 산나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산간지대에서 많이 난다. 이곳에서 나오는 더덕의 양이 국내 생산량의 7할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공재배도 이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곳에서 우리의 오랜 토종인 튼튼하고 질좋은 더덕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 참고자료
  1. {민족문화대백과}
  2. {식품사전}
  3. {신토불이},농협, (핸드북)
  4. {약용음식물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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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버섯

  맛과 향기를 갖추고 암을 예방하는 생약재

  은은한 맛과 부드러운 향기, 그리고 독특한 생김새 등의 3박자를 갖춘 버섯은 우리들의 감각을 즐겁게 해준다. 버섯은 균류의 속칭이다. 즉, 곰팡이 식물에 속하는 것으로 그 종류는 수천 종에 이른다. 그리고 그 중에서 먹을 수 있는 종류만 무려 1백8십여 종이나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가지 종류의 버섯이 자란다. 이 중에는 자생하는 것도 있고 재배하는 것도 있는데 10여 종을 식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버섯으로 대표적인 것은 영지, 표고, 송이, 운지 등이다.
  이 중에서 영지버섯은 구멍장이 버섯과 영지족에 속하는 것으로 참나무, 밤나무, 매화나무 등의 활엽수 그루터기에 자생하는 1년생 버섯이다. 색깔에 따라 적지, 흑지, 청지, 백지, 황지, 자지 등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많이 자생하는 것이 적지이며,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원목재배법, 포토재배법을 이용하여 적지가 생산되고 있다. 영지의 크기는 10cm 정도이고 전체가 가죽모양의 코르크질이며 촉감이 단단하다.   영지의 생김새를 보면 삿갓의 밑면은 황백색이고, 그밖에는 적갈색, 또는 자갈색이다. 삿갓의 모양은 신장형, 또는 원형으로 지름 5∼13cm이고 밑면에 많은 관공이 있다. 영지는 옛날부터 한방에서 건위, 건뇌, 강장, 강심, 이뇨, 해독, 항균, 면역, 진해, 진통, 신경쇠약, 불면증, 급만성 간염, 위궤양, 혈압강하 등에 효과가 있는 약용버섯으로 이용되어 왔다. 영지버섯의 쓴맛 성분이 가노데르산에 의한 것이라 밝혀졌다. 종래 한방에 의한 생약으로서의 효용,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드링크제를 비롯한 식품으로써의 이용이 증대되고 있다.  한편, 버섯은 약용 및 식용으로 쓰인다. 식용으로는 날것으로 회요리로 만들어 먹는 데서부터 살짝 볶아 먹는 방법, 나물무침, 조림, 튀김 등 그 용도가 무척 다양하다.
  식용하는 버섯을 말린 것을 한방에서는 약용으로 쓰는데 봄, 가을, 겨울에 충분히 자란 것을 채취하여 약한 불이나 햇볕에 말려 약으로 쓴다.
  버섯은 일반적으로 균(특히 결핵균) 억제 작용, 혈당을 낮추는 작용 등의 약리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고 최근 운지버섯의 항암 작용이 과학자들에 의해 규명되고 있다. 이밖에 표고버섯에도 항암 및 항바이러스 성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분
   대부분의 버섯은 수분이 90%이상이고 나머지 10%는 단백질(2∼3%),지방질, 당질, 미네랄 등이다. 칼로리가 거의 없는 데다 고단백이어서 다이어트와 성인병 예방에 무척 좋은 식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구나 버섯은 저칼로리이면서도 비타민, 미네랄 등을 포함하고 있고 비타민으로는 비타민 B2, 나이아신, 프로비타민 D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비타민 B2는 성장 촉진 작용이 크고 지방과 단백질, 당질의 대사에 필요한 물질이다.
니아신은 피부염을 예방한다. 그리고 프로비타민 B는 먹으면 체내에서 비타민 D로 변한다. 또 버섯을 자외선에 노출시켜도 비타민 D의 양은 증가한다. 비타민 D는 뼈의 조직을 만드는데 필수적이고 골다공증을 예방하며 유아의 뼈와 치아 발육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다음으로 미네랄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칼륨이다. 칼륨은 혈압을 상승시키는 원인인 나트륨이 체외로 빠지게 하므로 고혈압 예방에 좋다. 또한 미네랄 중에 인이 많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뼈와 치아를 구성하는 중요한 성분이다.
  또한 버섯은 식물섬유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 설사 및 변비의 치료에 효과가 있고 위장작용을 활발하게 해준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에는 섬유소가 많은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식물섬유는 비피더스균으로 대표되는 장 안의 선옥균의 먹이가 되어 선옥균을 증가시켜 주므로 장의 작용을 정상적으로 조정해 준다. 버섯에는 이러한 식물섬유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버섯
중에서 가장 식물섬유의 함유량이 낮다는 양송이 버섯만 하더라도 함유량이 2.4%에 이른다. 보통 야채의 평균 함유량이 2.2%인데 비해 꽤나 높은 함유량이다.

  빨리 자라고 널리 재배되는 표고버섯

  표고는 동양의 특산으로 밤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호도나무 등 활엽수와 고목이나 그 절주에 발생하는 향기 좋은 버섯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에서 장작개비 재배가 왕성하여 대량 생산되고 있다. 버섯의 삿갓은 3∼6cm로 암자갈색 또는 흑갈색이고, 육질이 강인하므로 건조 저장할 수 있고, 건조함으로써 표고버섯 특유의 향기가 발생한다.   버섯류 중에서 비타민 C의 함량이 제일 많다. 그리고 키틴, 트레할로오스, 환원당 등의 탄수화물을 포함한다. 표고버섯의 특유한 향기성분은 렌티오닌이다. 또한 생표고버섯은 포름알데히드를 함유하고 있으며, 햇빛에서나 그늘에서 건조하는 과정에서 더욱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버섯류에서는 이의 함량이 극히 적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이것이 표고버섯 특유의 성분이라 생각하고 있다. 표고버섯에서 분리된 다당고분자물질인 렌티난은 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표고버섯의 맛과 향기는 일품으로 버섯밥, 전골, 장국, 중국요리의 재료로 쓰인다.
  표고버섯은 기온이 낮고 일교차가 큰 이른 봄에 키워낸 것을 최고로 친다. 봄에는 성장 속도가 느려 수확량이 많지 않지만 이 때 키운 버섯의 맛과 향이 제일 빼어나다. 이에 비해 여름산은 하루 이틀이면 상품으로 유통될 수 있을 만큼 빨리 자라고 값도 싸다.
  봄에 자라는 표고는 밤낮으로 수축과 팽창을 거듭, 버섯갓이 갈라진 틈이 크고 많다. 그 갈라진 틈을 뚫고 터져나온 흰 속살이 많은 것을 고급품으로 친다. 그리고 이 같은 표고를 화고라 한다. 

  독특한 맛과 향의 자연산 송이는 버섯 중의 으뜸 

  송이버섯은 독특한 향과 고급스런 맛이 버섯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송이버섯은 갓이 너무 피지 않은 것으로 자루가 짧고 통통한 것을 골라야 한다.
  송이는 채취한 지 하루만 지나도 향이 현저하게 줄어들므로 구입 즉시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이 좋다. 물에 씻을 때에도 짧은 시간에 곧바로 씻어내야 하며 오래 열을 가하거나 너무 강한 양념을 사용하면 맛과 향이 파괴되기 쉽다. 송이버섯은 고급스런 요리재료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볶음, 잡채 등으로 요리법이 제한되어 있어 풍미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류 호텔의 전문 식당에서는 송이버섯을 주 재료로 한 송이회,소금구이, 튀김, 덮밥 등 다양한 요리를 볼 수 있다. 특히 송이버섯을 익히지 않은 채로 먹는 회 요리는 아직 우리에게 생소하긴 하지만 가장 본래에 가까운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한편, 송이버섯을 날것으로 먹을 때는 간장, 식초에 조미술을 약간 첨가한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송이버섯 중에서도 자연송이는 그 맛이 뛰어나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인제 등지에서 주로 채취되는데 채취량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좋은 것을 구하려면 새벽 일찍 약재상가에 나가야 한다. 자연송이는 갓이 많이 퍼지지 않은 것, 벌레가 먹지 않은 것, 심하게 굽지 않은 것을 상품으로 친다.

  구름 모양으로 피어나는 천연 버섯 '운지'

  운지버섯은 깊은 산골의 고목나무에 주로 서식하고 구름 모양으로 피어나는 천연버섯이다. 그 모양새를 따라서 구름버섯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담자균류 구멍장이 버섯과에 속하는 것으로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권의 산악지대에 자생한다.
  최근 들어 운지의 생약효과에 대한 연구가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그 결과로 운지버섯 국제심포지움이 개최되기도 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험종양세포에 운지버섯 다당류를 비롯한 각종 다당류와 한방억제제를 투여한 결과 종양의 증식이나 전이가 억제되었고 항암제와 함께 사용할 때 그 효과가 증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간염에 운지버섯 다당류를
투여하여 간 세포 손상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밝혀내기도 했다. 

  이것이 토종 
  버섯 중에서도 느타리, 송이 등 수분이 많은 상태로 유통되는 것은 대부분 국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우리 땅에서 난 자연산 송이, 운지, 영지, 석이 등을 진짜 토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말린 표고나 목이버섯 등 마른 상태의 것은 수입품이 많다. 국산 표고는 대개 원목재배를 하기 때문에 품질이 좋다. 표면에 갈라진 흰 줄이 크게 보이며 잔주름이 적고 무거우며 빛깔, 향기가 좋다. 또한 파손율이 낮은 것도 특징이다.
  반면 중국산은 흰 줄은 없고 쪼글쪼글한 잔주름이 많다. 주로 톱밥 재배를 하기 때문에 상품의 질이 조잡하고 악취가 나는 것도 있다. 파손된 것이 많으며 무게가 가볍고 향기도 떨어진다.   목이버섯은 주로 대만에서 수입된다. 수입될 때 비닐 포장이 되어 있으므로 쉽게 대만산임을 알 수 있지만 유통 과정에서 포장을 풀어버리는 경우도 많으므로 구입시 주의해야 한다. 국산 목이버섯은 버섯 뒷면까지 꽤 어두운 적갈색을 띠는 반면 대만산은 표면은 흑갈색이며 뒷면은 밝은 색깔이다. 특히 대만산은 국산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자연산 버섯을 채취할 때는 반드시 전문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버섯은 서로 모양이 비슷한 독버섯이 많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1.{식품사전}
  2.{동아일보} 92.9.24, 10.16, 10.24일자
  3.{조선일보} 92.10.16
  4.{보약의 건강학},일월서각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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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황기(단너삼)

  인삼 대용의 보약

  황기는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서 흔히 단너삼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때에는 이두글자로 수판마라고 하였으며 조선 초기에는 감판마라고 하다가 17세기 경에 와서는 단너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너삼과 모양은 비슷하되 단맛이 나므로 '단너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단너삼은 주로 약용으로 쓰기 위하여 재배하는데 줄기의 길이는 1m 안팎이고 줄기 전체에 잔털이 나 있다. 그리고 해마다 7∼8월 여름이면 연한 황색으로 꽃이 핀다.
  주로 우리나라 북부지방 고냉지에 자생하지만, 모든 지방에서 재배가 가능하다. 중,북부지방 산간의 서늘한 곳에서 가장 잘 자란다. 황기는 서늘한 가을날씨 같은 곳이라야 뿌리가 잘 발달하므로 온도가 높고 다습한 지역에서의 재배는 불리하다. 우리나라 주산지를 보면 강원도 정선, 충청북도 제원과 같이 산간 고냉지에서 우량품이 생산되고 있다.
  겉흙이 두껍고 지하 수위가 낮으며 적당한 습기가 배어있는 식질양토나 부식질 양토에서 잘 자라며, 유기질이 많은 식양토나 사양토에서도 비교적 생육이 잘 된다. 그러나 모래땅이나 질참흙에서는 잔뿌리가 많이 생기고 뿌리가 썩기 쉽다.
  황기는 단일 품종이다. 옛날에는 산에 자생하는 것을 채취하여 썼지만 지금은 포장, 또는 순화재배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새로운 개량종으로 육성된 품종은 없다. 그래서 자연산을 채종하거나, 인공재배한 것 중에서 병충해의 피해를 입지 않은 건실한 포기를 선택하여 종자를 배양한다.   종자를 선택할 때는 광택이 나며 튼실한 햇종자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선별한 종자를 직접 파종하거나 육묘로 이식하여 재배한다. 황기, 즉 단너삼은 뿌리 부위를 약으로 쓴다. 단너삼의 뿌리는 한열을 다스리고, 강장효과가 있다.

   성분

  황기에는 글루코스(Glucose), 후로크토스(Fructose), 과당, 전분, 점액질이 함유되어 있다.
  뿌리는 주로 약재로 이용하는데 그 약효 성분은 폴리산, 콜린 등이다. 동물실험 결과 중추신경계의 흥분작용과 이뇨작용에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또한 흰쥐에게 대량의 분말을 투여하였을 때 신염의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콜레스테롤 혈증의 발생도 지연시켰으며 혈압강하 작용도 인정되었다.

   쓰임새

  황기는 대부분 한약재로 사용된다.
  황기의 약성은 온화하고 매우 달다. 따라서 원기를 돕고 땀을 많이 흘리는데 좋은 약재이다. 또 예로부터 강장약의 하나로서 허약체질을 튼튼하게 해주며 살결을 아름답게 해주는 효능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또한 황기는 비위를 보강시켜주고, 심장의 기능을 항진시키며, 피로회복과 체력증강에 좋다. 그리고 이뇨작용과 지한작용을 하며 설사를 멈추게 한다. 한방에서는 십전대보탕, 황기별갑탕, 보중익기탕 등 중요한 처방에 쓰인다. <방약합편>에 따르면 '미감 성온하며 한표를 거둔다. 창이 난 곳을 아물게 하며 허한데 많이 쓴다. 또한 당뇨병, 결핵성 질환, 신체허약, 만성궤양, 심장쇠약 등에도 효험이 있다.
  이밖에도 당귀 등의 약재와 함께 보혈제로도 많이 쓰인다. 황기가 음식의 재료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그 중 한가지로 '황기 닭찜'이라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 요리는 특히 여름철에 땀을 많이 흘려 원기가 떨어지고 식욕마저 떨어졌을 때, 또 몸이 허약하거나 체질적으로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에게 훌륭한 보신제가 된다. 황기닭찜을 만드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깨끗이 씻어 물에 삶아 피를 뺀 닭 1마리와 황기 20g, 화초수(산초라는 한약재를 물에 담가 우려낸 것)10g, 그리고 파, 생강, 소금, 청주 등을 약간씩 준비한다. 이와 함께 깨끗이 씻은 황기, 알맞은 크기로 썬 파와 생강 등을 넣고 소금, 청주, 화초수를 뿌린다. 이때 황기는 잘 다져서 물을 넣고 졸여 베로 걸러낸 약즙만 써도 된다. 위 재료가 담긴 질그릇을 찜통에 넣고 센 불에서 찐 다음에 먹으면 된다.

 이것이 토종 
최근 들어서 생약재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인정됨에 따라서 한의학에 대한 인식도가 달 지고 있으며 그 수요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재배면적도 증가하고  으며 재배기술도 발달하여 조기 수확이 가능해짐에 따라 생산량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생약재의 국내 생산이 급격히 늘어나자 정부에서는 국내 한약재 가격 안정을 위하여 꾸준히 수출 증대에 힘써 왔다. 또한 국내 생산농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외국산 한약재의 수입을 강력히 억제했다. 그 결과 지난 1987년에는 수출액이 약 1천8백만 달러에 이르렀고 수입액은 2만 7천 달러로 감소되었다.
  이러한 수출흑자 품목 중에서 황기는 주요한 품목 중의 하나다. 대부분 한약재로 사용되는 황기는, 강원도와 경상북도 일부지역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는데 정선, 삼척, 영월, 봉화, 울릉도 등이 주산지이다. 특히 이중에서도 강원도 영월산 황기는 예로부터 품질과 약효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여 수출하는 한약재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략 2백여 종에 달했으나 점차 70여 종으로 줄어들었으나 황기는 변함없는 주요수출품목 중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참고자료
  1.{약용작물 재배의 실제}
  2.{약이 되는 식품}
  3.{민족문화대백과}
  4.{보약의 건강학}, 일월서각 

@   20.구기자
   백년해로하는 불로의 묘약
    {지봉유설}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옛날에 신하 한 사람이 하서에 가던 길에 묘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16,7세 가량의 여인이 8,90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노인에게 매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신하는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젊은 여인은 노인을 가리키며 "이 아이는 내 셋째 자식인데 약을 먹을 줄을 몰라서 나보다 먼저 머리가 희어졌소."라고 하였다. 여인의 나이를 물었더니 395세라 하였다. 이에 사신이 말에서 내려 그 여인에게 절한 다음, 그 약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여인이 구기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 법대로 만들어 먹고 3백년을 살았다고 한다. 또한 {본초강목}에 의하면 '한 노인이 구기를 먹고 백살이 넘도록 살았는데 날으는 듯이 달리고, 백발이 검어지며 빠진 이가 다시 돋아났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의 수명을 엄청나게 연장시켜준다는 구기자는 가지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관목이다. 줄기는 가늘고 회백색이며 흔히 가시가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것을 '개고추'라고 부르기도 한다. 크기는 작지만 언뜻 보면 빨갛게 익은 고추의 모양과 닮은데서 비롯된 명칭이다.
  구기자는 마을 근처의 둑이나 냇가 언덕 등지에서 잘 자란다. 그래서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며 중국, 일본에도 분포한다. 구기자는 내한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국 어느 곳에서나 재배할 수 있다. 과수원 주위, 밭둑, 산야의 개간지, 울타리 주위 등 아무 곳에나 옮겨 심어 놓기만 하면 잘 자란다.
  구기자의 품종은 아직 식물학상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육안으로 판별하여 대립종과 소립종으로 나눈다. 대립종은 잎이 크고 줄기가 굵으며, 가시가 없고 과실이 많이 열린다. 소립종은 반대로 잎이 작으며, 줄기가 가늘고 가시가 있으며, 과실이 적게 열린다. 재배용으로는 당연히 대립종을 골라 심는 것이 좋다.
  구기자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약용 및 식용으로 많이 사용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이미 2천 년 전의 약방서에 그 효능이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강장, 강정제로 유명했다. 그래서 인삼, 하수오와 함께 3대 야생 정력초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의 옛 의서나 속담에는 '집을 떠나 천리길에 구기자를 먹지 마라'는 말이 있다. 즉, 여행을 할 때에는 구기자를 먹지 말라는 것인데 있는데, 이것은 강장제인 구기자를 여행중에 먹게 되면 정기가 넘쳐서 자칫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일본에서도 '독신자는 구기자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구기자는 '양생의 선약'이라고도 불리는데, 중국의 진시황이 서복으로 하여금 동남동녀들을 거느리고 동해의 봉래섬에 가서 구한 불로초가 바로 구기자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옛날 중국에서 장생불로한다는 신선약이 바로 이 구기자라는 것을 고증한 학자도 있다.
  또 {본초강목}을 보면 옛날 중국의 서하지방의 여인들은 구기자 나무의 열매, 잎, 뿌리, 줄기 등을 자주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하면 피부가 아름답고 윤택해지며 기미나 여드름 같은 것이 말끔히 없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분
   인삼과 마찬가지로 구기자의 정확한 약효나 성분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규명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약학적 성분 연구로 밝혀진 것만 보더라도 구기자에는 혈관 강화제인 루틴을 비롯하여 비타민 C, 필수 아미노산, 미네랄 등 인체에 이로운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간장 기능 장애의 예방 효과도 입증되었고, 강장제가 되는 베타인이 들어있음도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구기자에는 베타인(betaine), 제아잔틴(zeazanthin), 카로틴(carotene), 티아민(thiamine), 비타민 A, B1, B2, C 등이 함유되어 있다. 그러나 부위에 따라 성분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과실(과실)에는 베타인(Betaine)이 많이 들어 있고 과피에는 피사랜(Physalein), 잎(엽)에는 루틴(Rutin)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동물을 실험한 결과, 베타인 성분은 생체 내 대사물질의 하나인 친지질물질로 밝혀졌다. 이것은 또 간장에서 지방의 축적을 억제하고 간세포의 신생을 촉진하며, 혈압을 내려주는 작용도 한다.
  구기자의 약성은 평범하고 독이 없다. 만성간염, 간경변증 등에 걸린 사람이 복용하면 염증이 제거되고 간 기능을 활성화시킨다. 일반적으로 생식기능이 허약해서 허리, 무릎이 저리고 아프다거나 유정, 대하 등에 효과가 있다. 또한 안과질환으로 인한 시력감퇴 등에 효과가 있고, 노인의 백내장 초기증상에 응용한다. 이같은 효능을 종합해 보면 구기자는 간과 눈에 이롭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눈의 건강을 좌우하는 것이 간의 기능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구기자는 간 기능 이상을 조절해주는 약재라는 것이 판명된다. 

  쓰임새 
  구기자를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력이 왕성해지며, 다리, 허리 등의 힘이 강해지고 세포의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구기자는 주로 차를 만들어 마신다. 구기자나무의 열매나 잎을 재료로 하여 끓여 마신다. 원래는 구기자 잎의 어린 싹을 따서 끓였지만, 지금은 성숙한 잎을 사용하거나 열매로 끓인다. 그 재료에 따라서 잎을 쓴 것은 구기엽차라 하고, 열매를 쓰는 것은 구기차로 구분하기도 한다.
  구기자잎으로 차를 끓일 때는 잎을 물에 넣고 끓여 마셔도 좋고, 뜨거운 물에 우려서 마셔도 좋지만 뜨거운 물에 우려서 마시는 것이 성분의 손실이 적다. 구기자잎은 신선한 것을 채취하여 그늘에서 잘 말려서 사용하는데, 차의 향기를 좋게 하기 위해서 차를 끓이기 전에 약간 볶아서 쓰기도 한다. 1회 분량은 뜨거운 물 1잔에 2∼3g을 넣고 우려서 마시면 된다. 구기자는 20∼25g을 물 두 컵에 넣고 뭉근한 불에 끓여서, 하루 2~3회 나누어 마신다.   구기차는 잎이나 열매나 그 효능에 별차이가 없으나, 일반에서는 열매로 끓인 것을 더 많이 마시고 효능도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대로 끓여 마시는 방법 외에도 선복화, 찻잎, 참깨 등과 함께 볶아 가루를 내어 마시는 구국차나, 두충과 섞어 끓이는 차, 감구고가 숙지황과 함께 끓이는 차, 오가지, 감초, 대추 등을 배합하여 끓이는 차와 같이 다른 재료들과 함께 섞어서 끓이기도 한다.
  구기자를 삶아 찧어 나온 즙에 누룩과 쌀을 버무려 약주를 빚거나, 구기자와 생지황을 주머니에 넣고 민자약주에 담그면 구기주가 된다. 예로부터 구기주는 불로장생의 묘약으로 알려져왔다. 그래서 구기주에 얽힌 일화도 많다. 이 술을 복용하면 13일 만에 몸이 가벼워지고
백일이 지나면 얼굴이 좋아지며 백발은 흑발이 되고 이가 다시 난다는 등 한결같이 구기주를 극찬하고 있다. 한편, 한방에서는 <인삼지골피산>, <보간산> 등의 보약에 구기자를 사용한다.
  이밖에도 구기자의 순과 연한 잎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며 구기자죽(구기자가루 또는 그 즙에 꿀을 친 흰죽)을 쑤어 먹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정원이나 집안에서 관상용으로 구기자를 가꾸는 경우도 많다. 민간에서는 구기차 또는 구기주로 이용한다. 열이 있는 사람은 먹으면 좋지 않다.

  이것이 토종

  구기자는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 동양인들에게 주어진 불로장생의 묘약이다. 그 중에서도 약초의 나라인 우리나라산 구기자는 예로부터 그 약효가 특별하게 여겨졌다.
 
  *** 참고자료
  1. {식품사전}
  2. {약이 되는 식품}
  3. {약용작물 재배의 실제}
  4. {민족문화대백과} 

@   21.무
   배처럼 시원하고 단맛나는 조선무
   무처럼 여러가지 반찬으로 우리 식탁에 오르는 채소도 드물다. 우선은 무가 김장철에 겨울을 나기 위한 여러가지 반찬의 재료로 쓰이는 것만 열거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그래서 서민들의 밥상에는 깍두기, 생채, 무국, 무말랭이무침 등 무로 만든 반찬이 한꺼번에 서너 가지씩 오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무는 오래 전부터 식용 해왔다.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 전 이집트에서 피라밋을 만들 때 동원된 노예들이 무를 먹었다고 하며, 전쟁시의 비상 식량이나 구황 식량으로도 널리 이용되어 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무는 오래 전부터 인류와 친숙한 작물이었던 것이다.
  무는 그 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먼 옛날부터 유럽과 동남 아시아 전역에서 재배되어 왔으며, 품종도 다양하다. 그리고 분포지역에 따라 상당한 형태적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무는 냉량한 기후를 좋아한다. 자라는데 알맞는 온도는 20℃ 정도이며 0℃가까이에서도 큰 피해를 받지 않을 정도로 내한성이 강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가을과 봄에 재배되며 고냉지에서는 연중 재배가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무의 종류는 조선무와 왜무 등 크게 두 가지 계통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요즘은 조선무와 왜무를 교배한 품종도 많다. 평강김장무, 청풍무, 미농조생무, 여름무, 진주대평무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무는 생장시기에 따라 봄무, 여름무, 가을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성분
  무에는 우리 인체에 필요한 여러가지 영양소가 많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약효도 지니고 있다. 그 한 예로 무잎 속에는 카로틴이라는 중요한 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체내에서 비타민 A로 변한다. 또한 칼슘과 비타민C도 풍부하게 들어있다.
  또한 여러가지 소화효소와 전분 분해 효소인 아밀라제가 많아서 천연의 소화제라 일컬어질 정도이다. 떡이나 밥을 과식했을 때 무즙이나 무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무는 소화불량, 만성 기관지염, 천식, 구토, 기침 등에 좋을 뿐만 아니라 건위, 거담, 이뇨 및 소염제의 약효도 지니고 있다. 무즙은 소화촉진과 함께 니코틴 독을 없애주고 지해, 지혈, 소독, 해열 작용도 한다. 담즙과 함께 담석을 용해하는 작용도 한다. 무는 수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당질, 단백질, 칼슘, 인, 철, 비타민B, C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무잎에는 비타민 A가 많이 들어 있다. 예로부터 속병이 깊은 사람이 무를 상식하였는데 그 이유는 무 속에 있는 전분의 분해요소인 디아스타아제, 글리코시다제 등이 소화를 돕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무즙에 함유되어 있는 수분은 장에 습기를 더해 주고,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장내의 유익한 세균의 수를 불려준다. 이렇게 해서 늘어난 세균에 의해 노폐물의 배설이 활발하게 촉진되어 비만이 해소된다. 특히 무는 칼로리가 굉장히 적으므로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먹어도 살찌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비만 환자에게 있어서 무는 실로 반가운 식품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무의 장점은 지방분이 매우 적다는 점이다. 반면 비타민, 미네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만일 다른 식품에서 무와 같은 양의 비타민, 미네랄을 섭취하려면 아무리 조심해도 다량의 지방분을 함께 섭취하게 된다. 그러나 무를 이용하면 배고픔의 고통을 당하지 않고도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 한방에서는, 여덟 가지 사 중의 하나인 풍사가 체내에 들어와 감기를 일으킨다고 한다. 이 풍사는 음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몸의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서는 양의 식품을 섭취해야 하는데 대표적인 양의 식품이 바로 무다. 무의 매운맛은 시니글린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이 성분은 점막을 자극하여 수성점액의 분비를 활발히 하는 기능이 있다. 이 수성점액의 분비가 활발해지면 가래가 엷어져 쉽게 뱉어낼 수 있게 되고 기관지에 붙어 있던 이물질도 제거된다.
  이밖에도 무는 소염작용을 하므로 술로 인한 위의 염증을 치료할 수 있고 소화 배변을 촉진시켜 숙취를 해소한다.

  쓰임새

  무는 보통 조리하여 반찬으로 먹는다. 단단하게 잘 여문 무를 채로 썰어 무쳐 먹기도 하고 찌개의 재료로도 쓴다. 또한 사각으로 굵게 썰어서 담궈 먹는 깍두기 맛도 일품이다.
  저장용으로 가공한 무말랭이는 무침, 조림, 볶음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데 가을철에 나온 무를 길쭉하게 썰어 실에 꿰어 말려놓은 모습은 예전에는 여염집 처마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먹을 때 무를 함께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원기보양에도 좋다. 어패류와 함께 먹으면 비린내와 독성을 풀 수 있다.
그러나 위궤양을 앓는 사람이 무를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본초강목}에 의하면 '무는 적체와 술독을 풀어주고 어혈을 풀어준다. 또 음식을 소화시켜 주고 대소변을 이롭게 하며 천식을 다스린다'고 한다. {식감본초}에는 '무를 생식하면 갈증이 멈추고 속이 시원해지며 설사가 낫는다. 또 무를 삶아서 먹으면 담이 없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로부터 무를 효과적으로 잘 이용하면 기침에 좋다고 전해지는데, 무씨와 살구씨를 함께 넣고 볶아서 분말로 하여 따끈한 물로 복용하면 기침에 즉효약이다.
  무를 잘게 잘라 사기 그릇에 넣고 물엿 반홉을 넣은 다음 뚜껑을 꼭 덮어두고 하룻밤을 재운 뒤에 보면 맑은 물이 괴는데, 이것을 자주 먹어도 기침에 효과가 좋다. 감기가 들어서 몸에 한기가 느껴지고 목이 간지럽거나, 몸에 열이 있을 때 무 주스를 마시면 아주 좋다.
  무 주스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를 다져서 물엿, 혹은 꿀과 섞어서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거나 무나 생강을 꿀 혹은 엿과 섞어서 끓여 먹으면 된다. 이같은 무 주스는 숙취나 과식, 어깨가 시리고 저릴 때, 신경통, 소화불량, 식중독, 위산과다 등에도 효과적이다.
  해소나 천식, 또는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무를 노랗게 볶아서 가루로 만든 다음 꿀과 함께 환약으로 만들어 수시로 먹으면 좋다.   무는 몸통 뿐만 아니라 무청도 약성이 탁월하다. 무청은 원기를 돋우는 최고의 보양제로 신체, 비위 등이 허약하거나 동맥경화, 고혈압, 저혈압, 신경통, 요통, 이명증, 시력장애 등에 효과가 뛰어나다. 그리고 기억력을
향상시켜주는 작용을 하므로 수험생들에게 아주 유익하다.   그런데 7잎이 나온 다음부터 나오는 무청은 약간의 독성을 머금고 있다. 이 독성 때문에 무를 먹고 채독에 걸리는 수가 있다. 이 독성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강이 지나면 서리를 맞아 없어지므로 이 때는 날로 먹어도 상관이 없다.

   이것이 토종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무는 크게 나누어 우리 재래종인 조선무와 일본종인 왜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왜무는 가늘고 길쭉하며 껍질이 두꺼운 것이 특징인데 주로 단무지의 재료로 쓰인다. 반면 조선무는 뿌리가 굵고 뭉툭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살이 단단하고 저장하기에 좋고 영양가도 많다. 특히 파릇한 윗부분에는 밀감에 버금가는 비타민 C가 들어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아직도 항간에서는 일반음식을 만드는 재료로 왜무보다 조선무를 더 많이 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무는 다른 작물에 비해서 종자오염이 덜 되었으며 그리 어렵지 않게 토종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재배되어온 재래종인 조선무는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막론하고 대체로 물이 많아서 그 맛이 마치 배처럼 시원하고 달았다. 그러나 굳이 품질 좋은 무를 고른다면 예전에는 나주산 무를 최고품으로 쳤으나, 요즘에는 대관령이나 진부령 같은 고냉지에서 나는 무 또한 맛과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따라서 일교차가 심한 강원도나 경상북도의 고지대에 토종 조선무를 대규모로 재배하여 그 종자를 계속 보전한다면 우리의 토종으로 당당하게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무는 무말랭이 형태로 수입되고 있는데 수입산 무말랭이는 대체로 정갈하지 못하고 지저분하며 색상이 검거나 얼룩이 있는 것도 있다. 그리고 조금 굵은 편이며 거칠다.
  반면 국내산은 말린 상태가 깨끗하며 색상이 희다. 또한 두께가 얇고 자른 부위가 정교한 것이 특징이다. 

  *** 참고자료
  1.약이 되는 식품
  2.월간 {식품과 건강} 91.11월호 
  3.월간 {행복의 샘} 농민신문사
  4.월간 {건강저널} 90.12월호 
  5.{신토불이} 농협 (핸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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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호박

  어디든 거침없이 뻗어가는 호박넝쿨

  흔히들 못생긴 여자의 얼굴을 호박에 비교한다. 그리고 속된 표현으로 '호박씨 깐다'는 말이 있다. 그러고 보면 호박은 이상하게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하긴 그 생김새가 박이나 수박에 비해 울퉁불퉁하여 조금 못생긴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호박씨에는 질이 아주 뛰어난 불포화지방과 머리를 좋게 한다는 레시틴, 그리고 필수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다. 따라서 '호박씨 깐다'는 말은 겉으로는 엉성하고 둔한 듯이 보이면서 뒤로 가서는 실속을 챙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실, 호박씨 뿐만 아니라 호박의 뿌리, 줄기, 덩굴손, 잎, 꼭지, 종자 등이 모두 약으로 쓰인다. 비록 울퉁불퉁하게 못생긴 호박이지만 그 영양분이나 약성이 뛰어나 예로부터 훌륭한 식품으로, 민간요법의 약재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던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호박을 상품 목적으로 대단위 재배를 하지만 예전에는 따로 밭을 내어 심지 않았다. 밭둑이나 논둑, 언덕배기, 담장 곁 어디든 놀고 있는 땅에다 심었다. 그러면 여기서 싹이 자란 호박넝쿨이 담장이든 초가지붕이든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죽죽 뻗어나간다. 이처럼 호박은 재배장소에 특별한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어디서든 널리 재배되었고
생활공간 속,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호박의 원산지는 남멕시코 및 중부 아메리카라는 설이 있었는데 이후에 북아메리카의 '콜로라도' 지역 원주민들의 유적에서 호박씨와 덩굴 등이 발견되어 이 지방이 원산지라는 설이 제기되었다. 한편 동인도, 혹은 유럽을 원산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서양계 호박 및 페포(pepo)계 호박은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이고, 동양계 호박은 동남아시아 열대지역으로 그 원산지를 추정하기도 하며, 근래는 동양계 호박도 그 원산지가 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략 1700년대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서양에서 육성된 품종이 유입되기 전에 이미 우리나라에는 호박과 비슷한 품종이 재배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테면 호박의 사촌쯤 되는 '박'같은 경우 고대 설화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특히 '흥부전'에서는 박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박을 재료로 한 '바가지'는 우리 역사와 생활풍습 속에서 숱한 일화를 남기고 있다.
  이처럼 박이 오래 전부터 재배되어 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 유사종인 호박도 재래종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호박의 품종에는, 동양계로서는 서울 애호박이 있고, 서양계로서는 합바드, 델리셔스 등이 있다. 그리고 페포계로서는 주키니 호박이 있다. 또한 서양계로서 사료용으로 쓰이는 호박이 있는데 이것은 30∼40kg까지 자란다. 
  이러한 품종을 우리나라에서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재배한다. 예를 들어 겨울에 파종하여 봄에 수확하는 촉성 및 반촉성 재배, 봄에 파종하여 초여름에 수확하는 조숙재배, 4월 하순에서 5월에 걸쳐 노지에 직파하여 6월에서 9월 사이에 수확하는 여름재배, 남부해안 및 제주지방에서 가능한 억제재배 등의 방법이 있다. 특히 억제재배에서는 덩굴이 뻗지 않는 주키니호박을 대부분 가꾼다.   이러한 재배방법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양의 호박이 생산되고 있는데, 매 년 4만여 톤(88년)이 넘게 생산되고 있다.

   성분

   익은 호박에는 비타민 A가 많이 함유되어 있다. 대체로 수분 95%, 단백질 2.0%, 지방 0.6%, 탄수화물 3.9% 로 구성되어 있다. 무기질 및 비타민은 100g 당 칼슘 15mg, 철 0.7mg, 비타민 C 8mg이 들어있다.녹황색 야채는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 녹황색 야채에는 카로틴( 카로틴)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체내에 들어가면 비타민 A로 변한다.
  또한 호박에는 칼륨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나트륨의 해를 방지한다. 칼륨 성분에는 혈압을 내리는 작용, 즉 고혈압을 방지하는 작용이 있다. 고혈압의 원인 중의 하나로 소금을 너무 많이 섭취하는 것을 들고 있는데 소금에 포함되어 있는 나트륨이라는 성분이 문제가 된다. 이 나트륨의 해를 방지하는 것이 바로 칼륨이다. 칼륨이 많으면 나트륨은 활동하기가 어렵게 된다. 또한 칼륨에는 나트륨의 배설을 촉진하는 작용도 있다. 이처럼 칼륨에는 고혈압을 예방, 개선하는 작용이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이 섭취하면 안된다.
  그리고 호박에는 비타민 A. C. B군이 균형있게 함유되어 백내장, 야맹증 등 눈병을 예방한다. 뿐만 아니라 섬유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서 많은 양을 섭취해도 부작용이 거의 없다. 특히 섬유질은 변비 등으로 인한 대장암을 예방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쓰임새

  어린 열매는 나물, 전 등의 음식으로 만들어 먹고, 늙은 열매는 과육을 떡, 범벅, 죽 등으로 만들어 먹는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호박잎을 쪄서 쌈으로 먹기도 하고 씨를 먹기도 한다.   호박은 저장이 용이하다. 애호박과 크고 늙은 호박 모두를 저장할 수 있다. 먼저 애호박은 될 수 있는 한 씨가 없고 가는 것을 골라 둥글납작하게 썰어서 채반에 펴서 말린 후 실에 꿰어 서늘한 곳에 매달아 두고 필요할 때 사용한다. 반면 늙은 호박은 씨를 파내고 껍질을 긁은 다음 길쭉하게 썰어서 말려놓고 쪄서 먹거나 호박떡에 이용한다.
  예로부터 식용과 약용으로 널리 이용되어 온 호박은 특히 회복기의 환자나 위장이 약한 사람, 노인, 산모 등에게 좋은 식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호박은 감기나 인후통에 효험이 있고, 불면증에도 호박을 삶아 먹으면 효과적이다. 또 회충, 조충의 구제약으로서 효과도 뛰어나며, 백일해, 단독, 일사병, 디프테리아 등에도 약으로 쓰인다. 호박을 상식하면 중풍 예방의 효과도 볼 수 있다.   독충에 물렸을 때에는 호박의 잎이나 꽃을 비벼서 환부에 붙이면 효과가 있다. 동상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생호박을 썰어, 그것으로 환부를 자주 문질러 주면 치료에 도움이 된다.   {본초강목}에는 '호박은 속을 보하고 기를 늘린다'고 되어 있고, {경험방}에는 '천식에는 커다란 호박의 속을 파내고 그 속에 보리엿을 채운 다음 서늘한 곳에 한 달 가령 두었다가 쪄서 먹으면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호박씨는 예로부터 중국에서 수박씨와 같이 고급요리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호박씨의 주성분은 지방산인데, 질이 좋은 불포화 지방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호박씨에는 머리를 좋게 해주는 레시틴과 간장의 작용을 돕는 메티오닌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칼륨, 칼슘, 인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 B군이 풍부한 고열량 식품이다. 전립선이 비대해져 오줌이 잘 나오지 않을 때에는 말린 호박씨를 볶아 먹으면 좋다. 상식하면 정력을 높인다.
  이밖에도 호박씨는 촌충퇴치, 부종, 당뇨병 등에도 효과가 있다. 산후 수족의 부종에 호박씨를 볶아서 달여 마시면 좋고, 당뇨병과 조충 구제에도 효과가 있다. 또 호박씨는 콜레스테롤의 생성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이 되며, 혈압을 강하시켜 주는 작용도 한다.
  호박은 각종 요리로 자주 식탁에 오르는데 몇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호박과 열무를 주재료로 하여 담근 김치를 호박김치라 한다. 이것은 황해도 향토음식의 하나로, 그대로 먹기보다는 된장을 조금 풀고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으면 좋다. 만드는 법은 늙거나 어리지 않은 중간 정도의 호박을 깨끗이 씻어 반달 모양으로 두껍게 썰고, 너무 연하거나 쇠지 않은 열무를 다듬어 깨끗이 씻는다. 이 호박과 열무를 켜켜이 절였다가 건져내어 단지에 담고, 남은 소금물로 밀가루풀을 쑤어 건더기가 위에 뜨지 않고 국물에 잠기도록 붓는다. 그렇게 약 5∼6일간 익혔다가 된장과 고추장을 조금 풀어서 끓이면 맛있는 호박김치찌개가 된다. 이때 고기를 넣으면 더욱 맛이 있다.
  한편, 호박에 소를 넣어 익힌 찜을 호박선이라 한다. {시의전서}에는 호박선의 조리법이 나와 있다. 어리고 작은 호박을 택하여 쇠고기와 여러 가지 양념을 하고 표고버섯이나 석이버섯을 채썰어 섞는다. 호박 사이에 이 소를 넣고 데친 미나리로 동여맨다. 나머지 고기를 바닥에 깔고 호박을 놓은 위에 지단 채썬 것, 실고추, 실백을 고명으로 얹은 다음, 육수를 부어 끓인다. 주로 주안상의 안주로 쓰인다.
  호박을 이용한 식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는 뭐니뭐니 해도 울릉도 호박엿이다. 원래는 후박나무의 수피를 첨가하여 만든 것인데 이 후박엿은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육지에 전래되면서 호박엿으로 와전된 것이다. 오늘날 시중에서 유통되는 울릉도 호박엿은 엿 중에서 맛과 품질이 좋은 엿을 칭하는 말로 바뀌고 말았다. 관광상품으로 울릉도에서 시판하는 호박엿은 울릉도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는 감자를 이용하여 만들고 있다. 물론, 호박에는 전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엿기름으로 삭혀서 엿을 만들 수 있다. 울릉도에서는 호박을 이용하여 엿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 성공한 바 있다.
  이밖에도 호박을 이용한 요리와 식품으로는 호박지찌개, 호박풀대죽 등이 있다.

   이것이 토종

   오늘날 흔히 우리가 재래종으로 부르는 호박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품종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품종에 비해 재배 역사가 오래된 것을 고유의 재래 토종으로 육성할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각 품종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서양계 호박은 그 모양이 동양계와 비슷하여 구별이 곤란한데, 이 때는 줄기의 단면으로 구별한다. 서양계는 단면이 둥글고 동양계와 페포계는 5각형을 나타낸다. 특히 재래종 호박은 덩굴의 단면이 5각형이고 연모가 있으며 덩굴손으로 감으면서 자란다. 그러나 개량된 것은 덩굴성이 아닌 것도 있다. 또한 잎이 어긋나고 엽병이 길어 심장형 또는 신장형이고 가장자리가 5개로 얕게 갈라지며 열편에 톱니가 있다. 종자보존 차원에서는 이러한 품종의 특성을 고려하여 재래종을 새롭게 발굴, 육성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어디든 호박을 심고 가꿀 수 있지만 현재 많이 재배되는 곳으로는 경남 의령 지역을 꼽을 수 있다. 하수오와 함께 호박은 예로부터 이 지역의 특산물로 유명하다.
   *** 참고자료
  1.{민족문화대백과} 
  2.{약이 되는 식품}
  3.월간 {식품과 건강} 91.10 
  4.{약용음식물백선}
  5.{장터순례} 
@   23.율무

  윤기나고 찰기있는 토종 율무는 최고의 미용제

  중국 후한 광무제 때 베트남의 총독으로 파견된 노장군 마원은 베트남의 더위와 질병을, 율무를 먹고 이겨냈다고 한다. 그래서 마원은 임기를 마치고 율무의 종자를 수레에 가득 싣고 개선하였다. 그러나 다른 총독들은 개선할 때 진주, 상아, 육계 등 보물을 가져와 황제에게 바쳤다. 그 때문에 마원은 황제로부터 차별대우를 받다가 끝내는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를 불쌍히 여겨 말하기를 '진주보다 귀한 율무가 의심의 율무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럼 '진주보다 더 귀한'율무는 도대체 어떤 식물인가.
  율무는 벼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식물이다. 키는 2미터 내외이며 7월 경에 꽃이 피고 열매는 긴 타원형인데 이것을 도정한 것을 율무쌀이라 한다. 율무는 예로부터 식량으로 이용되어 왔다. {강목}에 율무를 곡물에 포함시켰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중국에서는 식용작물로 재배한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율무의 원산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앞의 일화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중국에 앞서 베트남에서 먼저 재배 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중국의 재배역사도 기원전 200년 경의 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낙양의 곡물창고 유적에서 율무가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베트남에서의 재배역사는 그보다 훨씬 앞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율무가 들어온 것은 서기 1078년(문종32년)에 저술된 {고려사}에 처음으로 나온다. 당시 송나라에서 가져온 약품의 목록 가운데 율무가 들어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 무렵에는 일본 장군 가토(가등청정)가 조선의 율무를 일본으로 가져 갔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조선에서는 율무가 본격적으로 재배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이후 수백 년이 지나면서 이 땅의 풍토를 닮은 고유의 종자가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재배 역사를 가진 율무는, 처음에는 곡식의 하나로 여겨졌지만 나중에 그 약성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한방 약재로 그 쓰임새가 넓혀졌다. 의학이 날로 발달하고 있는 오늘날에 와서도 율무의 새로운 효능이 속속 밝혀져 그 실용화가 기대되고 있다. 특히 그러한 효능 중 여성 호르몬(에스트로겐)의 분비와 배란형성을 활발하게 해주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성분
   단백질, 지방, 아미노산 등이 많이 들어 있는 율무는 그 영양가가 훌륭할 뿐만 아니라 음식의 소화를 돕고 위장의 기능을 활발하게 해주며, 폐의 기운을 열어주는 효과도 있다. 또 설사나 관절염 등에도 좋다.   율무의 단백질 분해효소는 암세포를 녹이는 작용이 있다고 하며, 또 항종양의 작용을 하는 물질의 존재도 최근에 확인되어 암에 대해 이중의 작용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암환자는 율무쌀을 주식으로 하면서 율무차를 계속 마시면 암의 악화를 방지하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율무에는 단백질의 분해를 촉진시키는 작용도 있기 때문에 단백질의 연소가 빠르며, 혈액 순환이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준다. 또 율무의 단백질 분해 효소는 담낭이나 방광의 결석을 녹이는 작용도 한다.   이밖에도 율무 뿌리는 치통, 월경 불순에 효과가 있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것으로 사신죽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사신죽은 율무쌀과 함께 산약, 백복령, 감인을 넣어 만든 죽이다. 이 사신죽은 특히 위와 장의 기능을 도와주고 담을 제거하며 폐를 맑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물론 암환자에게도 좋으며 암을 예방하는 데에도 좋다. 양기부족과 조루증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본초강목}에 의하면 '율무는 비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위와 폐를 보하며 해열에도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약용식물사전}에는 '율무쌀은 이뇨제, 건위제, 자양제로서 좋고 피부질환과 물사마귀를 다스린다'고 되어 있다.   {신농본초경}에는 '율무쌀은 근육통으로 굴신이 자유롭지 못한 것과 풍을 다스린다'고 적혀있다.

   쓰임새
   율무는 예로부터 구황식품으로도 많이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식량으로보다도 약용으로 더 많이 이용되고 있다. 율무는 도정하지 않은 것을 말하고, 율무쌀이라고 하면 도정한 것을 말한다. 한방에서는 율무를 이뇨, 진해, 건위 등의 약재로 쓰고, 율무쌀도 약용한다.   가정에서 율무차를 상식하면 가족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데, 율무차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차로 쓸 때에는 도정하지 않은 율무를 사용한다. 씨 알이 잘 여문 것을 선택하여 말린 다음 알맞은 용기에 넣어 습기 없는 장소에 두고 써야 한다. 차용으로 율무를 간수하려면 가을 수확기에 구입해 두는 것이 좋다. 껍질이 있는 율무는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율무를 약간 볶는다. 차분량은 물 600cc(약 3홉)에 100g 가량이 적당하다. 율무차는 다른 차와는 달리 처음에는 끓여 마시고, 다시 물을 부어 한번 더 끓여 마신다. 세 번까지 끓여도 된다. 그러나 율무는 알맹이가 단단하여 다른 차와는 달리 끓이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 다른 방법은 율무쌀을 곱게 분말을 만들어 열탕 1잔에 1∼2 스푼씩 타서 마시는 것이다. 끓이면 더욱 좋고 설탕이나 꿀을 조금 넣어도 된다. 율무차는 많이 마셔도 부작용이 없다. 차맛은 덤덤하다. 또, 율무를 이용하여 고운 살결을 가꾸고 비만증을 예방하며 사마귀와 종기를 없애는 미용비결도 있다. 먼저 1컵 반의 물 속에 큰 숟가락 하나 정도의 율무를 넣고 미지근한 불에 반 컵이 되도록 푹 삶는다. 그런 다음 여기에다 꿀을 섞어 하루에 한차례씩 복용하면 된다.
  이 방법은 고운 피부와 날씬한 몸매를 가꾸고 싶은 여성에게 특히 좋지만, 비만 방지와 건강 관리를 원하는 사람에게도 좋다. 특히 발육기의 유아에게 이것을 먹이면 질병 예방이 될 뿐만 아니라 발육 촉진에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율무는 피부의 영양공급에도 대단한 효과가 있다. 단백질 분해 효소의 작용으로 인하여 피부를 부드럽게 해준다. 특히 미용 효과가 확실하며 얼굴의 기미, 주근깨, 반점, 물사마귀 등을 없애주는 효과도 있다. 옛날 후한 때의 복파장군이 남방의 교지라는 곳에 부임해보니, 그 곳 사람들은 유난히 피부 질환이 많고 여성들의 피부가 거칠고 피부에 기미, 주근깨, 반점, 물사마귀 등이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에게 율무쌀을 주식으로 하며 율무죽이나 율무차를 많이 먹도록 권했더니, 그 후 그곳 사람들의 피부 질환이나 기미, 주근깨, 반점, 물사마귀 따위가 몰라보게 없어졌다는 고사도 있다. 사마귀 제거에서 암 억제까지 폭넓은 효과를 발휘하는 율무는 흰 알맹이 상태의 율무 외에도 익혀먹는 율무, 덩어리 상태의 율무, 과립 상태의 율무, 율무차 등 여러가지 종류가 있으므로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다.
  율무의 미용요법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여드름이나 뾰루지 등으로 고민스러운 경우에는 세안제에 율무효소를 첨가하여 여드름 부위를 자극하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감싸듯이 가볍게 씻어주면 소염작용이 있는 율무가 피부의 붉은 기를 억제하고 염증을 예방해준다.
  수면 부족, 피로 등으로 눈꺼풀이 푸석푸석할 때는 면포를 찬 율무차에 적셔서 눈꺼풀 위에 붙이고 종종 새것으로 갈아주면 부기가 가라앉는다. 또한 율무효소를 용기에 넣어두고 목덜미나 가슴, 겨드랑이 아래 등 땀이 나기 쉬운 곳에 파우더처럼 바르고 가볍게 두드려주면 고운 피부를 가꿀 수 있다.
  팔꿈치, 무릎 등 각질이 생기기 쉬운 곳에도 율무화장수를 바르면 흰 살결로 바꿀 수 있다.   또한 율무죽을 계속 먹으면 이뇨 작용에 좋고 간장에도 도움이 된다.
율무쌀로 빚은 술을 자주 마시면 신경통과 각기병 예방에 도움이 되며, 신경통 환자나 류머티즘 환자는 율무쌀을 넣은 탕에서 목욕을 하면 효과적이고 숙취해소에도 좋다.

  이것이 토종

  율무는 충청북도 옥천군 일대에서 많이 생산된다. 옥천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골짜기에 놓여 있는 작은 분지들로 이루어졌다. 이 분지는 퇴적암이 깔려 있어서 땅은 무척 기름진 편이다. 하지만 밭이 논보다 더 넓은 까닭에 이 고장에서는 쌀보다는 보리, 옥수수, 콩 따위의 잡곡을 주로 생산한다. 그 중의 하나가 율무이다.
  율무는 현재 중국산이 대량으로 수입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율무는 빛깔이 짙은 편이며 윤기가 나고 찰기가 있다. 반면 중국산은 색깔이 희며 찰기가 없고 맛도 덜하다.
   ** 참고자료
  1.{약이 되는 식품} 
  2.{약용음식물백선}
  3.{한국의 발견/충청북도}  뿌리깊은 나무 
  4.월간{식품과 건강} 91.10월호
  5.{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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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대 (죽순)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것이

  편의상 대는 나무로 분류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나무로 보기도 어렵고 풀로 보기도 어렵다. 해가 갈수록 줄기가 굵어지는 것은 나무가 분명하나 땅위에 난 부분이 해마다 말라 죽는 것은 풀의 성질을 지녔다. 그래서 대는 그 어느 쪽에도 넣을 수가 없어 예로부터 '나무도 풀도 아닌 것(비목비초)'이라 했다.
  대는 열대성 식물로,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 식생한다. 원래 자생지는 수마트라 섬과 하와이, 폴리네시아의 여러 섬들이라고 하는데 온대지방의 대는 사람이 가져다 심어 추운 기후에 적응시킨 것으로 본다. 이처럼 열대성 식물인 대가 겨울철이면 눈꽃을 함빡 피우며 소나무,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로 지칭되는 것은 기후에 대한 적응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대는 종류가 많아 전세계에 50속 1천2백50종쯤 자라는데 우리나라에는 임업시험장에서 시험 재배중인 것까지 합치면 70종쯤 된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대나무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맹종대, 왕대, 솜대, 오죽, 이대, 조릿대 등이 있다.
  중국에 많은 맹종대는 대나무 중 가장 굵게 자라는 것으로 지름이 한 뼘이 넘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1898년 일본에서 들어 왔으며 남쪽 해안 가까운 곳에 많이 심는다. 거제도 하청면이 유명한 맹종죽 산지다.
  그러나 대의 왕은 역시 이름 그대로 왕대다. 왕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것으로 대나무 중에서 키가 가장 큰 것은 높이 3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마디 사이가 길고 테가 크다. 죽순은 맛이 약간 쓰므로 고죽이라고 한다. 왕대는 탄력성이 좋아서 가공품으로 많이 쓰인다. 솜대는 줄기가 가는 것이 특징이다. 추위에 강한 편이어서 우리나라 중부지방까지 자랄 수 있으며, 화살을 만드는 시누대(시죽)는 오구대 또는 이대라고 하며 제주도와 남부지방에 많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에 걸쳐 나는 것은 조릿대(산죽)다. 조릿대는 중남부의 산속에 자생하며 키는 보통 1∼2m 정도이고 가장 가늘다. 말 그대로 조리나 소쿠리 등을 만들며 한라산과 지리산 고운동이 명산지다. 지금은 조릿대를 베어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조릿대 잎으로 차를 끓이면 적당히 단맛이 나는 차가 된다.
  대는 생장 속도가 무척 빠르다. 봄에 죽순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30∼50일이면 성장을 끝낸 다음 더 이상 자라거나 굵어지지 않는다. 해가 지날수록 줄기만 단단해지고 색깔이 누렇게 변해 간다. 맹종죽의 경우는 하루에 1m 이상 자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대가 급속도로 크는 이유는 뿌리에 오랫동안 영양분을 저장해 두었다가 한꺼번에 밀어올리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자라는 속도와 함께 밀어올리는 힘도 대단히 강하다. 옛날 중국에서는 죄인을 처형할 때에 자라고 있는 죽순 위에 올려놓아 죽순이 몸을 뚫고 올라오게 했다고 하며, 일본에서는 사람이 들어올리기도 힘든 마룻장을 밀고 솟아오르는 죽순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다른 식물들은 대개 잎이 생산한 양분으로 줄기를 굵게 하고 키를 늘리지만 대는 다음 세대를 키우기 위해 모두 땅속으로 보내버린다. 그러므로 대줄기는 해가 갈수록 누렇게 변하다가 마침내 말라 죽는다. 3∼5년 동안 열심히 비축을 해서 죽순 하나를 밀어 올리는데 몽땅 자신을 투자하는 헌신적인 정신을 가진 식물이 바로 대나무인 셈이다.   대나무는 일생에 한 번 꽃을 피우고, 곧바로 말라 죽는다. 따라서 대꽃을 본 사람은 드물다. 대꽃은 벼나 보리의 꽃과 비슷하며 엷은 녹색이다. 이렇게 꽃이 피면 대숲 전체 혹은 일부분이 한꺼번에 시들어버린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에 대꽃이 많이 피어 대숲이 말라죽어 대밭이 많이 사라졌다. 대꽃은 60년, 또는 1백년, 1백20년 만에 핀다는 말이 있는데, 언제 왜 대꽃이 피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릿대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대나무 열매를 보기 어렵지만 따뜻한 지방의 대는 열매를 잘 맺는다고 한다. 대의 열매는 수수와 비슷하다. 이것으로 떡이나 밥을 해먹기도 하고 술을 빚거나 국수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이같은 대의 열매는 몸을 가볍게 하고 기운을 돋군다고 하는데 지금은 대열매를 구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그냥 상상하면서 군침을 흘리는 수밖에는 없다. 대는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을 좋아하고 물기가 많고 영양분이 많은 찰흙땅에서 잘 자란다. 그러나 오죽이나 조릿대류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이와 같은 실용적인 쓰임새 외에도 대는 문화적 측면에서 한국인들의 심성과 정서를 가꾸는데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수천년 동안 대는 시와 그림과 문장의 중요한 소재였고 우리 고전에는 대를 빌어 사상과 정서를 표현한 흔적이 널려 있다. 

  성분

  죽순에는 단백질, 당분, 칼슘, 회분, 인, 비타민A, B, C, 등이 고루 들어 있다. 특히 죽순을 삶을 때 흰 가루가 나오는데 이 흰 가루는 티로신이라는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물에 잘 안 녹는다. 죽순을 삶을 때는 뜨거워서 티로신이 녹지만 식으면 다시 굳어져 흰 껍질처럼 표면에 붙는다. 그러나 대나무 줄기 표면에 붙어 있는 흰 가루는 티로신이 아니라 초의 일종으로 식물체 안의 물이 증발하는 것을 막는 작용을 한다.

   쓰임새

   대는 죽순에서 대잎까지 용도가 넓고 다양하다. 베개, 돗자리, 발 등의 각종 공예품의 재료로, 그리고 건축재로도 쓰이며 중국에는 대나무로 만든 버스도 있다고 한다. 대는 그 성질이 차다. 대를 차분히 관찰해 보면 찬 기운이 느껴진다. 그 찬 성질이 몸 안의 열을 내려주고 열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진 것을 풀어준다. 여러가지 대나무 중에서 왕대(참대)와 조릿대를 약으로 많이 써 왔으며, 대나무속껍질(죽여), 대나무기름(죽력), 댓잎[죽엽], 대나무속진(죽황) 등을 약으로 쓴다.
  죽여는 참대의 속껍질을 말린 것으로 혈분의 열을 없애며 토하는 것을 멈추고 담을 삭이며 태아를 안정시킨다. 부정자궁출혈 등 혈열로 인한 출혈, 태동불안 등에 쓴다. 하루 5∼9g을 달여 먹는다.   대나무 마디를 잘라서 반으로 쪼개어 쌓아놓고 가운데 부분을 가열하면
양쪽 끝으로 진득한 액체가 흘러내리는데, 이를 죽유 또는 죽력이라 한다. 담열로 인한 기침, 중풍으로 담이 성할 때, 경풍, 전간(간질), 파상풍 등에 쓴다.
  참댓잎은 종기를 낫게 하고 작은 벌레를 죽인다. 갑자기 목이 쉬어 소리가 껄끄럽고 잘 나오지 않을 때에는 진하게 달여서 한번에 마신다.   조릿대의 잎은 여름철 꽃피기 전에 베어 햇볕에 말린다. 조릿대 잎은 맛이 달고 심심하며 성질은 서늘하며 신경에 작용한다. 심열을 내리고 번열을 없애며 오줌을 잘 누게 한다. 열병으로 입안이 마를 때, 오줌이 붉으면서 잘 안 나올 때, 입안이 헐고 오그라들 때, 잇몸염 등에 쓴다. 9∼15g을 달여 먹는다.
  가을에 말라죽은 참대를 쪼개어 진을 긁어낸 것을 참대속진이라 하는데 이것은 신열을 없애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경련을 멈추게 한다.
  대를 식용으로 할 때는 연한 싹을 쓴다. 이것이 바로 죽순인데 다양한 요리의 재료로 사용되며 산뜻하면서도 아리한 맛이 퍽이나 독특하게 느껴진다. 죽순으로 만든 요리에는 죽순밥, 죽순탕, 죽순정, 죽순회 등이 있는데 특히 담양의 죽순회는 별미로 손꼽힌다. 조선조 시대에 어느 평양감사가 담양에 들렸다가 죽순회를 먹고 나서 그 맛에 반해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하인들에게 죽순회를 만들어 오게 명령하였으나 때마침 추운 겨울철이라 죽순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이에 하인들은 고민하다가 대바구니를 삶아 평양감사의 상에 올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죽순은 해마다 5∼6월이 되면 대나무의 뿌리에서 움터나오는데 이것이 요리의 재료로 쓰인다. 그리고 땅속에 묻힌 부분이 많은 것일수록 상품으로 친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에서 참대가 잘 자라는 곳은 강원도 강릉, 충청도 단양, 전라도
정주를 잇는 북한계선 이남이다. 이 중에서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으로 예로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담양은 연평균기온이 12℃인 정도이고 연평균 강수량이 1000mm 안팎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대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한 풍토를 지닌 곳이다. 또, 소백산맥의 끝자락인 추월산과 병풍산이 마치 병풍처럼 넓다란 들을 둘러싸고 있어서 바람이 많지 않은 탓도 있다. 추위에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굵은 죽순이 솟아나는 솜대가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고 맹종죽과 왕대도 많다.
  그런데 담양이 대나무로 명성을 얻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널려 있는 대밭이 아니라 그 대밭에서 나온 대나무와 죽순의 질 때문이다. 담양의 대나무는 질이 강하면서도 탄력이 좋아 가공이 쉽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지방에서는 이미 400여년 전부터 가내수공업 형태의 죽물공업이 성했다.
  그러나 지조를 지키듯 대(대)를 이어 죽물을 만들어 온 이고장 사람들이지만 곤궁한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들이 만든 죽물이 나일론과 플래스틱에 밀리고, 게다가 요즘에는 대만과 중국산에서 물 밀듯이 밀려오는 죽세품에 의해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값싼 외국 제품이 국내시장을 잠식해 들어옴에 따라 제 고장에서조차 우리 죽세품이 기를 못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일부 악덕 상인들은 중국산을 담양산으로 속여 폭리를 취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외국산 대나무 제품은 습기제거나 통풍효과, 견고성에 있어 우리나라 제품보다 훨씬 못하다. 담양산 돗자리를 예로 든다면 대나무 자체가 내뿜는 냉기나 견고함을 꼽을 수 있고, 쓸수록 윤기가 나는 등의 특징이 있다.

   ***참고자료
  1.{한겨레신문} 92.10.21 
  2.월간{시사춘추}
  3.월간{식품과 건강} 91.7월호 

@   25.민들레

   땅 속 깊이 뿌리 내리는 민초

   민들레는 우선 그 이름부터 정답고 친근한 민중의 풀이다. 백성의 꽃, 민중의 꽃이라는 뜻이다. 민들레는 풀밭이나 논둑이거나 길옆이거나 마당 귀퉁이거나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콘크리트 바닥 틈새에까지 뿌리를 내린다. 참으로 모질고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풀이다. 더러운 도심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며 먼지와 오물을 뒤집어 쓰면서도 노란꽃을 방긋이 피워내는, 민들레는 서럽고도 모질게 살아온 우리 민초들의 성정을 그대로 닮았다.   민들레는 겨울에 잎이 말라 죽어도 뿌리는 살아 있는 여러해살이풀로 그 뿌리가 땅속 아주 깊게 내려간다. 줄기는 땅바닥에 붙어 있을 정도로 작지만 뿌리는 땅속 2m가 넘게 내려가는 것도 있다. 생명력의 근원이 바로 이 뿌리에 있는 것이다.
  뿌리깊은 식물은 좀처럼 죽일 수가 없다. 민들레 뿌리는 웬만큼 잘라내도 다시 살아난다. 따라서 잔디밭을 가꿀 때 가장 애먹이는 풀이 민들레다. 원체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있어서 완전히 뽑아낼 수도 없고, 풀깎는 기계로 밀어서 목을 잘라버려도 이튿날이면 더 많은 꽃이 피어난다. 모가지가 잘리면 몸통에라도 붙어서 기어이 꽃을 피우고야 마는 지독한 생명력을 지닌 풀이다.   민들레는 봄을 알리는 꽃으로 첫손가락에 꼽히지만 반드시 봄에만 피는 것은 아니다. 서양민들레 같은 것은 3∼11월의 긴 기간 동안 계속해서 피고, 눈보라가 쌩쌩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날씨만 따뜻하면 양지쪽에 조그맣게 꽃을 피운다.
  민들레꽃은 낮에만 피고 밤에는 잠을 잔다. 아침 첫 햇살을 받으면서 꽃다발이 천천히 열리고 꽃잎이 벌어졌다가 해지고 어두워지면 꽃잎을 오므려 닫고 움츠린다. 그리고 날이 흐리거나 비라도 내리면 꽃이 피지 않는다. 연꽃, 튤립, 나팔꽃 등과 같이 밤이면 잎을 오므려 마주 포개어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활짝 편다.
  이처럼 민들레가 해뜨는 동안에만 꽃을 피우는 것은 민들레 꽃잎 뒤에 달린 물주머니 때문이다. 햇볕이 없을 때에는 물주머니에 물이 가득 차있어 꽃잎을 밀어올리므로 꽃잎이 닫히고, 햇볕이 쬐면 물주머니의 물이 증발하여 꽃잎을 받치는 힘이 약해져서 꽃잎이 활짝 펴지게 되는 것이다.

  성분

  민들레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은 수분이 약 90%이며 조단백질 2.27%, 회분 1.04%, 단백질 1.89%, 그리고 미네랄과 비타민 등이다. 또한 독특한 향기 성분인 정유가 들어 있다.
  이밖에 이눌린, 루틴, 팔마틴, 이놀산 등과 단백질 분해효소가 들어 있다. 그리고 뿌리에는 콜레스테롤을 억제하는 콜린, 디락사스테롤, 스테롤, 펙틴 등이 들어 있다.
  민들레는 겨울을 나기 위해 여름내 만든 영양을 뿌리에 갈무리하므로 많은 영양소가 뿌리에 집중되어 있다.   민들레의 약효성분으로는 콜린, 이눌린, 디락사스테롤, 스테롤, 팩틴 등을 들 수 있으며, 임상실험에서는 황색포도상구균, 용혈성 연쇄상구균 등에 강한 살균작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간의 지방변성을 억제하고,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작용이 증명되었다. 

  쓰임새 

  민들레는 국거리에서 약재까지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먹을거리로, 민간약으로, 한약재로 널리 써왔던 것이다.   그러나 맛이 쓰고 쌉쌉하여 바로 먹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다. 그러나 이 쓴맛이 위를 튼튼하게 한다. 쓴맛을 없애는 방법은 많다. 삶아서 하루쯤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내고 먹거나 시금치하고 섞어서 먹어도 되고, 뿌리는 가을이나 이른 봄에 캐서 된장에 박아 두었다가 장아찌로 먹고 고들빼기와 함께 김치를 담가서 먹는다. 또한 그냥 튀겨 먹어도 괜찮다.   민들레의 꽃이나 뿌리는 소주를 붓고 우려내어 여기에 설탕이나 꿀을 알맞게 넣어 한두 달 숙성시키면 훌륭한 약주가 된다. 민들레주는 강정, 강장제로 효과가 있고 향기가 좋다.
  우리 겨레와 민들레가 퍽 친근한 것은 틀림없지만, 식용, 약용으로 더욱 다양하게 활용한 나라는 유럽이다. 서양에서는 민들레를 채소로 가꾼다. 프랑스 요리에 민들레샐러드가 있다. 민들레를 밭에 가꾸어서 이른 봄이나 가을에 뿌리를 캐내서 상자 속에 밀식한 다음 캄캄한 동굴 같은 데 두어 싹을 키운다. 우리나라에서 콩나물을 기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해서
자라난 하얀 싹은 날로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데, 쓴맛이 거의 없고 향기가 좋다.
  서양에서 민들레로 만드는 요리는 민들레 수프, 민들레 파이, 민들레 샐러드, 민들레 피자, 민들레 커피, 민들레 튀김, 민들레 와인 등 열가지가 넘는다. 이 중에서도 민들레 커피(Dandelion Coffee)는 댄대 티(Dandy Tea)라고 하여 오래전부터 인기가 있었다. 민들레 뿌리를 말려 볶아서 가루를 내어 물에 타서 마시는 것인데, 맛과 빛깔은 물론 향기까지도 일반 커피와 비슷하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카페인도 없어 권장할 만하다. 이같은 민들레 커피는 비용도 적게 들고 영양이 풍부하므로 이를 상품화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민들레는 민간에서 종기, 식중독, 위궤양 등에 효과가 있어 약으로 쓰인다. 서양에서도 피를 맑게 한다고 하여 종기 치료, 위장병 등에 많이 이용하였다. 생잎을 씹어 먹으면 만성 위장병에 좋고 정력에도 좋다고 한다. 한약재로도 조선민들레가 약효가 뛰어나다 하여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민간에서는 다음과 같이 활용한다.
  *위궤양, 위장염 등의 위장병에는 민들레 뿌리와 오이풀 뿌리를 같은 양으로 가루를 만들어 먹거나 생잎을 자주 씹어 먹는다.
  *황달에는 가을에 캐낸 민들레 뿌리를 달여서 하루 세 번으로 나누어 식후에 먹는다. 민들레를 찧어서 꿀에 섞어서 알약을 만들어 먹어도 좋다.
  *만성 간염에는 봄에 캔 민들레 뿌리를 달여 마신다. 하루 3∼4번 밥먹고 나서 먹는다.
  *편도선염에는 꽃필 무렵의 민들레를 찧어서 나온 즙으로 하루에 여러 번 양치질을 한다. 말려두었다가 달인 물로 양치질을 해도 된다. 

  이것이 토종 

  세계적으로 민들레는 3백여 종이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 식생하는 것은 흰민들레, 민들레, 산민들레, 좀민들레, 키다리민들레, 서양민들레 등이다.   그런데 보통 도시 근교나 길옆, 잔디밭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애석하게도 서양민들레다. 서양민들레는 유럽에서 들어온 것인데, 토종보다 적응력과 생명력이 더 강하여 토종을 쫓아내고 맹렬하게 번식하고 있다. 토종민들레는 서양민들레에 밀려 지금은 한적한 시골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서양민들레와 토종민들레는 생김새와 성질이 조금 다르다. 토종민들레는
꽃이 4∼5월에 피지만, 서양민들레는 3∼11월까지 오랜 기간 피고, 잎의 생김이 토종은 점잖고 의젓하지만 서양종은 잎의 톱니가 깊고 잘게 갈라져서 조금 조잡하다. 꽃자루를 보면 가장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꽃을 싸고 있는 꽃받침을 총포라고 하는데, 민들레에는 총포둘레에 비늘 모양의 돌기가 있다. 이것을 총포엽이라고 한다. 토종은 이 돌기가  곧게 서 있으나 서양종은 뒤로 젖혀져 있다. 약효나 영양 성분도 조금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구결과가 아직 없으며 서양민들레도 오랫동안 우리 풍토에 적응하여 왔으므로 웬만큼 토종 되었는지 모르겠다.   흰민들레는 우리나라가 원산인 민들레로 흰꽃이 핀다. 잎이 조금 더  고
모양새가 흐트러져 보인다. 섬을 제외한 전국 각지에 분포하지만 흔하지 않으며, 북쪽보다는 따뜻한 남쪽에 많다. 중국에서 조선포공영이라 하여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치던 것이 흰민들레다. 백화포공영이라고도 한다.
  좀민들레는 민들레보다 잎이 작고 가냘프게 생겼으며 제주도에서 난다. 한라민들레라고도 하고 한국에서만 자라는 특산 식물이다.   산민들레는 잎이 민들레보다 커서 36Cm까지 되는 것이 있으며 건조한 땅에서 잘 자란다.

  ***참고자료
  1.월간 {시사춘추} 91.4

@
  26.소나무

  이파리 두개 달린 이엽송이 토종

  우리나라는 소나무의 본고장이다. 어디를 가나 지천으로 널려있는 게 소나무요, 창랑한 바위산과 어울려 고고한 기품을 자랑하는 것이 소나무다. 이렇듯 흔하면서도 고고한 소나무는 백년 전쯤만 하더라도 임야의 70% 이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탐낸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거의 모두 베어, 또 해방 후에는 농민들이 땔감으로 베어냈다.
  게다가 일본인 학자 혼다 세이로꾸가 쓴 '소나무 망국론'이라는 엉터리 학설을 우리 관리들이 무조건 신봉하여 나라에서는 소나무를 심지도, 가꾸지도 않았다. 그 바람에 울창하고 곧던 소나무숲은 거의 사라져버리고 구불구불 뒤틀린 몹쓸 소나무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에 가장 많다. 또한 우리나라가 원산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나무 속에 드는 식물은 지구의 북반구에만 퍼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나는 소나무는 우리나라 전역, 일본 일부, 중국 일부 지역에만 분포되어 있다. 이를테면 중국도 두만강 건너 북간도의 일부에 조금 나고 만주에는 전혀 없으며 중국 본토에는 산동반도의 한귀퉁이에만 조금 자생하고 있을 뿐이다.   소나무를 한자로 '송'으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국 사람들이 '소나무 송'으로 표기하는 나무는 소나무 속이기는 해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는 아니다. 그리고 잣나무 역시 '잣나무백'으로 적는 것은 잘못이다. 중국에는 잣나무가 없다.   우리나라 남부지방 소나무들은 거의 다 줄기가 굽어있다. 이것은 좀벌레가 줄기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서 잎에서 만든 양분을 빼앗아먹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소나무는 성질과 모양에 따라서
반송, 처진 소나무, 금강송, 금송, 은송, 미인송, 춘양목 등으로 나눈다. 이러한 명칭은 소나무의 모양을 보고 붙인 것이다.
  재목의 쓰임새나 아름다움을 손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금강소나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궁궐이나 절을 지을 때 쓴 소나무가 바로 금강송이다. 이 나무는 칠을 하지 않아도 몇 백 년간 썩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금강송의 순종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해방 직후만 하더라도 삼척, 울진, 영양 등지에 금강송의 멋진 숲이 있었는데 도벌꾼들이 다 베어가는 바람에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금강송 못지 않게 뛰어난 소나무는 경북의 청송과 춘양목이다. 춘양목 역시 곧게 자라고 쉬 썩지 않는다. 춘양목은 해송과 육송의 혼혈아로 보이는데 잎은 해송을 닮아 송충이에 강하고 목재는 소나무를 닮아 질이 좋다. 금강송과 해송은 서로 모양이나 성질이 비슷하여 어떤 사람들은 같은 종류로 보기도 하고 구분하기도 어렵다.   미인송은 백두산 부근에 나는데 이름 그대로 미인을 닮았다. 이것은 한국 소나무와 만주 흑송의 중간 쯤으로 보인다.   금송은 잎의 끝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황금색이 도는 소나무다. 이것은 자라는 속도가 매우 느려서 수백년이 되어도 4∼5미터 정도 밖에 자라지 않는다. 또한 은송은 잎에 세로로 금빛이나 은빛이 나는 소나무다. 금송이나 은송은 매우 귀해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소나무의 꽃은 암꽃과 수꽃이 한 가지에 함께 핀다. 수꽃은 노랑색으로 새로 난 가지의 밑부분에 돌려 붙으며 길이가 1센티미터 정도이다. 암꽃은 가지 끝부분에 피고 길이는 수꽃보다 작고 보랏빛이다. 이 암꽃이 차츰 자라서 솔방울이 된다.
  솔꽃 중에서도 수꽃은 하얗게 바람에 날려 멀리서 보면 마치 흰구름이 흩어지는 모양과도 흡사하다. 옛날 사람들은 이 송화가루를 모아서 다식을 만들어서 먹었다고 한다. 송화가루를 모아서 꿀에 개어 과자를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성분

  소나무에 함유된 영양분과 약효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성분을 보면 눈이나 피부에 좋은 비타민 A와 비타민 C,K 등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또한 철분과 효소도 약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솔잎에는 살리니그린, 코니페린, 터펀틴 오일, 피-사이멘, 덴시피마릭산, 렉텐 등이 함유되어 있어 이뇨작용을 하고 풍을 다스리며 종양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다.
  중국의 한방고전인 {본초강목}과 우리나라 최고의 의서인 {동의보감}에서는 솔의 성분이 인체에 주는 효능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이 의서들의 공통된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력이 왕성해지고 이를 튼튼히 하며 눈과 귀를 밝게하고 오랫동안 복용하면 몸을 가볍게 할 뿐만 아니라 늙지 않고 오래 산다'고 하였다. 특히 소나무의 씨는 몸의 반쪽이 마비되는 풍비를 낫게 하고 기의 부족을 다스린다. 그리고 솔잎은 머리털이 나게 하고 오장을 편하게 하며 허기를 면하게 하고 또 중풍으로 입이 돌아간 것을 다스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효능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솔은 과연 인간을 신선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는 신비한 나무라 하겠다.

  쓰임새

  소나무를 생각하면 우리는 쉽게 땔감을 연상하게 되는데 우리 조상들은 수천년 동안 소나무의 온기에 의지하여 살아왔다. 늦가을에 붉은 비단처럼 땅을 덮는 마른 솔잎을 솔갈비라 하는데 불의 열기를 조절할 수 있고 타는 냄새마저 구수한 최고의 밥짓는 재료이다. 또한 소나무 장작은 한 번 도끼질로도 쫙쫙 갈라지고 불에 잘 타는 땔감이다. 그리고 한약을 달일 때에도 소나무숯을 만들어 썼는데 그 이유는 솔에 독이 없고 몸에 이로우며 은근한 불기운이 오래 지속되어 약 달이는데 적합하고 약효도 돋워주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목재 중에서도 최고의 목재이다. 그래서 집 지을 때는 반드시 소나무를 썼다. 소나무로 지은 집은 늘 향기가 가득하고 수백년이 지나도 기둥이나 서까래가 좀처럼 휘지 않으며 풍상에 닳아도 무늬결이 살아있어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해주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목재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나무 전체가 만병통치약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자란 토종 솔뿌리는 근골을 튼튼하게 하고 어혈을 다스리며 중풍, 산후풍, 결핵관절염, 신경통, 골수암, 골수염 등에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소나무를 이용한 술도 다양하다. 송순주, 송엽주, 송실주, 송하주 등이 있다. 송하주란 동짓날 밤에 솔뿌리를 넣고 빚어서 소나무 밑을 파고 항아리를 잘 봉하여 두었다가 그 이듬해 낙엽이 질 무렵에 꺼내어 먹으면 좋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솔잎주스를 만들어 먹어도 좋을 것이다.
깨끗한 솔잎을 따서 냉장고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믹서로 갈아서 천으로 짜거나 걸러서 찌꺼기를 제거한 뒤 레몬 반 개 정도의 즙이나 약간의 꿀을 타서 마신다.
  민간요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인다.
  *기관지 천식에는 감꼭지 열 개와 솔잎 한 줌에 물을 적당하게 넣고 달여서 그 물을 한 번에 다 마시되 하루 세 번 빈 속에 마신다.
  *폐결핵에는 솔잎을 따다가 3개월 동안 술에 담가두었다가 그 우러난 물을 한 번에 두 숟갈씩 하루 세 번 밥먹기 30분 전에 먹는다.
  *간장염에는 사철쑥, 솔잎, 대추를 각각 2:1:1의 비율로 섞은 다음 물을 넉넉히 넣고 푹 달여서 자주 먹는다.
  *두통에는 봄철에 뜯은 소나무 순 5백g에 물 한 사발과 설탕 다섯 숟가락을 넣고 끓여서 식힌 다음 단지에 부어 넣는다. 이 단지를 잘 밀봉하여 땅에 열흘 정도 묻어두었다가 위에 고인 물을 마시면 된다. 하루 세 번 식전에 한 잔씩 먹는다.
  *관절염에는, 솔잎을 따서 천에 싼 다음 뜨겁게 하여 아픈 뼈마디에 하루 두 번 정도 갈아 붙인다. 이것을 서너번 반복하면 효과가 있다.

  이것이 토종

  보통 소나무는 한 곳에 나는 잎의 종류에 따라 분류한다. 한 곳에서 한 개가 나는 것을 일엽송, 두 개가 나는 것을 이엽송, 세 개는 삼엽송, 다섯 개를 오엽송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일엽송은 없고 대개가 이엽송이다. 잎이 세 개 달린 리기다소나무, 대왕송, 테다 소나무 등은 주로 미국에서 건너온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소나무도 반드시 이엽송인 것은 아니다. 드물게 세 개씩 달린 것도 있다. 따라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어느 것이 순수한 우리 토종인지를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렵다. 

  ***참고자료
  1.월간 {시사춘추} 92.1
  2.월간 {식품과 건강} 1992. 6월호 

@   27.고추

  톡 쏘는 매운맛, 시집살이의 상징

  "고초 당초 맵다해도 시집살이만 못하더라-- "
  시집살이의 설움을 매운 고추맛에 비유한 민요의 한대목이다. 시집살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고추맛에 비유하였을까. 한편 고추는 예로부터 남성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아들을 낳으면 금줄에 숯과 붉은 고추를 끼워 대문께에 매달았다. 따라서 이 노래에 나오는 고추 또한 남성의 억압을 상징하고 있다고 유추할 수도 있다. 즉, 남성들에 의한 억압보다도 시어머니 밑에서 당하는 시집살이가 더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는 노래가 아닌가 싶다.
  고추는 가지과에 속하는 일년생 초본식물로 명칭도 다양하여 고초, 번초, 남만초, 남초, 당초, 왜초 등으로 부른다. 키는 60cm에 달하고 여름에 흰색 꽃을 피우고 열매는 녹색을 띠다가 익으면 붉은 색이 된다.
  중부 아메리카 원산지인 고추는 흔히 오랜 옛날부터 우리 겨레가 먹어온 것으로 알고 있으나, 우리나라재 배역사는 무척 짧다. 16세기에 중국에서 발간된 {본초강목}에도 고추에 관한 언급이 없으며, 일본의 {초목육부경종법}에는 1542년 포루투갈 사람이 고추를 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지봉유설}에도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되어 왜겨자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경에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일본측 기록인 {대화본초} {물류칭호} 등에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하고, {화한삼재도회} {본초세사담기} {성형도설} 등에는 우리나라 혹은 남만에서 온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고추가 일본에 먼저 전래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일본을 통하여 들어왔으나, 중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품종과 일본에서 들어온 품종,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육성된 품종들이 서로 교류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익은 고추는 새빨갛게 붉은빛을 띤다. 우리나라에서는 붉은색이 태양이나 불을 상징하며, 잡귀를 쫓는 색깔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고추는 벽사의 의미로 쓰였다. 즉, 민간에서 장을 담근 뒤에 새끼에 빨간 고추와 숯을 꿰어서 독에 둘러 놓거나 고추를 독 속에 집어넣는 것은 장맛을 나쁘게 만드는 잡귀를 막으려는 것이다. 또한 지역에 따라서는 무당들이 별신굿을 할 때 고추를 사용하기도 한다.   고추는 그 생김새가 남아의 생식기와 비슷하여 태몽으로 고추를 보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이 있다. 민간의 습속에 아들을 낳으면 왼새끼 인줄에
고추와 숯을 꿰어 대문 위에다 걸어 놓는데, 이것은 남아의 생식기가 고추와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고추의 빨간색이 가진 벽사의 기능 때문에 잡귀나 잡인의 출입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고추는 그 특유의 매운맛 때문에 시집살이 노래의 좋은 제재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고추는 건조상태가 좋아야 빛깔이 아름답고 오래 저장할 수 있다. 멍석이나 가마니 또는 초가지붕에 널어 햇볕에 말리는 태양초는 빛깔이 골고루 붉으며 광채가 나고, 꼭지에 노란빛이 돈다. 미처 건조되지 않은 고추는 멍석에 펴놓고 폴리에틸렌을 덮어주거나 비닐하우스 속에서 건조시킨다. 연초건조장이나 간단한 화력건조장에서 50∼60℃의 온도로서 1,2일간 건조시키는 화건초는 제 빛깔이 아닌 검붉은 빛깔이나 검정빛을 띠게 되고 꼭지에는 검푸른 빛이 나게 된다. 또한 온도가 60℃이상이 되면 빛깔이 더욱 나빠지고 매운맛도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고추는 재배역사는 짧지만 우리 겨레의 생활에 급속도로 결합하여 고유의 쓰임새와 함께 어느덧 전통적인 것으로 되었던 것이다. 

  성분 

  조선시대에는 고추를 '고초'라고도 표기하였다. 오늘날에는 고추의 '고'자가 쓰다는 뜻으로 쓰이나 조선시대에는 맵다는 뜻으로 쓰였던 바, 입 속에서 타는 듯이 매운 고추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캡사이신은 기름의 산패를 막아주고 젖산균의 발육을 돕는 기능을 한다.
  김치에 젓갈류를 넣게 된 것은 고추가 전래된 이후인 1700년대 말엽부터로, 캡사이신의 함량은 부위에 따라 차이가 있어 씨가 붙어 있는 흰 부분인 태좌(태좌)에는 과피(과피)보다 몇 배나 많으며, 씨에는 함유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김장용 고추는 미국의 타바스코, 테키산스, 일본의 다카노주메와 같은 품종보다 캡사이신은 3분의 1, 당분은 2배 정도 들어 있어 매운맛과 단맛이 잘 조화되어 있다.   고추의 붉은 색은 캐프산틴 캐프솔빈과 같은 캐로티노이드계 색소 수십종이 어울려서 나타나는 것으로, 이것은 몸 속에서 비타민 A로 바뀌어 비타민 A의 공급원이 되는 것이 많다. 또 비타민 C의 함량이 많아서
감귤류의 2배, 사과의 50배나 된다.   이밖에도 고추에는 주석산, 구연산, 사과산 등도 풍부하며 단백질, 당질, 지방, 칼슘 등이 들어 있다. 특히 풋고추와 고춧잎은 비타민 A와 C를 많이 함유하고 있다.
  고추가루의 가공품인 고추장의 주성분은 당질이며 찹쌀이나 쌀이 많이 들어갈수록 많다.

  쓰임새

  고추는 조그맣게 싹이 날 무렵부터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잎은 어린 열매와 함께 졸이거나 데쳐서 나물로 이용되고, 열매는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갈아서 향신료로 쓰기도 한다. 또한 풋고추는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으며, 반으로 쪼개어 속에 두부, 쇠고기 등을 버무려 넣고 전을 만드는데 쓰기도 한다. 그리고 통째로 구멍을 뚫어 젓국에 절여 놓았다가 겨울철의 밑반찬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익은 고추는 갈아서 나물의 조미료로 이용하였으며 말린 고추는 가루를 내어 김치의 양념으로 쓰거나 고추장을 담그는 데 이용했다. 특히, 고추장의 등장은 우리의 식생활의 면모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고춧 가루나 고추를 다져서 넣은 양념과는 달리 고추장은 나물을 무치고, 국과 찌개에 넣는 좋은 조미료가 된다. 또한, 생야채를 찍어먹거나 다양한 쌈의 중요한 조미료가 되기도 한다. 고추장은 그 제조원료나 제조법에 따라 멥쌀고추장, 찹쌀고추장, 보리고추장, 떡고추장 등과 지역 명칭을 붙인 고추장 등 여러 종류가 있다.
  한방에서는 고추를 발한, 식욕부진, 회충과 조충의 구제약, 또는 류머티즘 등에 이용한다. {약용식물사전}에 의하면 고추는 가열성(가열성) 건위약으로서 소화불량, 수종, 장풍(장풍)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동상, 류머티즘, 신경통, 기관지염에도 잘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추는 매운 맛이 강한 일종의 자극제라고 할 수 있다. 고춧가루는 발한 작용을 하여 땀을 흘리게 하고 이로 인하여 체온이 내려가므로 감기의 고열을 다스릴 수 있다.   실제로 감기에 걸렸을 때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타서 먹게 되면 열이 내리며 몸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것이 가끔 위력을 발휘하여 감기가 물러가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고춧가루가 체온조절기능을 하여 일시적으로 해열작용을 하는 대증요법에 불과할 뿐 고춧가루는 결코 감기를 원인적으로 제거하거나 완치시킨다고는 볼 수 없다. 만일 고춧가루에 감기를 퇴치시킬 수 있는 효능이 있다면, 평소 고춧가루를 많이 먹는 편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기에 잘 걸리지 않거나 감기에 걸려도 쉽게 나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이것이 토종

  고추는 바람에 의해 수정이 잘 되므로 쉽게 교잡종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전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품종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잡다한 종자를 그대로 심어왔기 때문에 지방에 따라 여러 품종이 생겨나서 약 100여 종에 이르고 있다. 이것을 주로 산지의 명칭을 따서 영양, 천안, 음성, 청송, 임실, 제천, 제주, 정선, 장단, 연천, 진안, 무주, 금산, 강경, 보은고추 등으로 부르는데 각기 특색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영양고추는 끝이 둥글며 열매에 윤기가 많고 매운맛과 단맛이 적당히 배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껍질이 두꺼워 고춧가루가 많이 나온다.   이처럼 잡다한 품종이 정리되지 않은 채 재배되어 오다가 1953년 경부터 원예시험장에서 품종의 계통을 세우고 우수한 품종을 선발하여 육성하는데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 결과 경상남도 고성군의 재래종은 열매수확량이 많고 맵기 때문에 김장용 고추로 권장되고, 동래 서동 지역의 재래종은 수확의 시기가 빠르고 수확량이 많으며, 열매가 크고 병해에 잘 견디며, 매운맛이 약하기 때문에 채소용 고추로 권장되었다.
  오늘날에는 외국의 우수품종을 도입하여 매우 많은 일대잡종을 육성하여 시판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들 개량종 고추를 통틀어 호고추라고 하는데, 이것은 생육 초기에는 매운맛이 적어서 채소용으로 알맞고, 생육 말기에는 매운맛이 약간 늘어나서 건과용이 된다. 그리고
열매가 붉고 굵으며 껍질이 두껍고 씨가 적어서 가루가 많이 나는 이점이 있다. 이에 비해서 재래종 건고추는 과피가 얇고 매운맛이 강하여 고유의 독특한 맛이 있는데 이를 조선고추라고도 한다.   조선고추 가운데서 무주, 진안산은 크기나 모양이 균일한 태양초로서 색깔과 광택이 선명하고 건조상태가 좋다. 또한 표피가 매끈하고 주름이 없으며, 꼭지가 부서지거나 빠진 것이 없는 것이 좋다.   현재 고추는 중국과 미안마 등에서 수입되고 있다. 풋고추 형태로는 일단 수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로 말린 고추만 들어온다. 그런데 수입 고추는 보관이나 유통 기간이 길고 또, 운반하는 도중 한차례 냉동을 하게 되므로 색깔이 바래거나 검게 변하고 자체 무게에 눌려 모양새가 납작하게 된다. 몹시 맵거나 색깔이 진한 것은 주로 미얀마산이다.
  또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잘 익은 고추를 손으로 따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익게 되면 줄기를 뿌리째 뽑아 무더기로 말린 다음 다시 분류하므로 고루 익지 않은 것들도 섞여 있다. 그리고 꼭지가 떨어진 것이 많으며 가루로 빻았을 때 매운 맛이 너무 강하거나 색깔이 진하다.
  반면 순수한 토종 고추는 특유의 향이 있으며, 보관이나 유통기간이 짧고 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색깔이 선명하고 붉은색을 띤다. 특히 햇볕에 말린 태양초를 최고품으로 치는데 이것은 윤기가 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제대로 익은 것을 일일이 손으로 따서 말리기 때문에 품질이 고르며 꼭지도 제대로 붙어 있다.

   ***참고자료
  1.{민족문화대백과} 
  2.{식품사전}
  3.{약이 되는 식품}
  4.{장터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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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마늘

  단군신화에도 등장하는 강력한 항균제

  마늘은 파, 쑥과 함께 아득한 태고적부터 우리 겨레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온 소중한 식품이며 약재이다.   우리의 옛 문헌을 살펴보면 마늘의 기원을 추측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 파미르 고원에는 '마고성'이라고 하는, 바둑판처럼 네모지게 생긴 성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천부단'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은 지상천국이었다. 여기에 4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형제 중의 하나가 금기를 범하여 4형제 모두가 ㅉ겨나게 되었다. 아버지가 연대책임을 지운 것이다. 쫓겨난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는데 맏아들은 천산산맥을 지나 북쪽으로 가고 둘째는 동쪽 중국으로, 셋째는 서쪽 중동지방으로, 넷째는 남쪽 인도로 가서 각각 인간을 다스렸다. 마치 아담과 이브의 신화를 연상하게 하는, 별로 시답잖은 이야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국'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 '마고성'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또한 '환웅'은 이들 형제 중에서 직계 종손이라 한다. 환웅은 천산산맥을 지나서 요동, 만주 등의 기름진 땅에 도착하여 농경사회를 일구었는데 이때 파미르 고원에서 가져온 파와 마늘이 나중에 여러가지로 큰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지역에는 그 무렵 두 개의 토착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하나는 곰을 토템으로 하는 모계사회였고, 다른 하나는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었다. 때마침 이 부족민들은 설사병에 걸려 몹시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환웅은 모계부족의 여자 추장(단군신화의 웅녀)에게 쑥과 마늘을 조제하여 먹이고 격리하여 치료했다. 여자 추장의 병은 깨끗이 나았고 환웅은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러니까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은 쑥과 마늘을 먹기를 거부하고 환웅의 유화정책에 반대하다가 결국 힘에 밀려 쫓겨났다는 것이다. 사실상 마늘은 나리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며 그 원산지는 동서양의 접경지대인 파미르고원 일대, 즉 중앙아시아 지역이거나 이집트로 추정된다. 특히 기원전 2500년경에 축조된 이집트의 피라미드 벽면에서 공사에 투입된 노무자들에게 마늘을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출토된 바 있다. 또한, 원래는 파가 적자이며 마늘과 양파, 부추, 달래 등은 파의 사촌 쯤 되는 것들인데, 파의 직계 자손들이 세계 각지에 번식하면서 고장에 따라 생김새와 성질이 조금씩 달라진 것 중의 하나로 마늘의 기원을 밝히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본초강목}에 의하면 '중국에는 산산과 야산이 있었는데 이것을 재배하여 산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한나라 때 장건이 서역에서 새로운 품종을 가져오게 되니 이것을 대산, 또는 호산이라 하고 전에 있었던 산을 소산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산은 마늘의 한자명이다. 이같은 사실로 미루어 재래종이 원래부터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마늘도 연대와 내용으로 보아 재래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성분

   마늘에는 단백질, 지질, 섬유질, 회분, 칼슘, 철, 비타민 A, 지아민 등 주요 영양분이 듬뿍 들어 있다. 이들 영양소의 함유량은 비슷한 족속인 서양의 파세리나 셀러리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최근에 마늘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항암물질로 알려진 '셀레늄'이라는 미네랄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셀레늄은 필요량은 미량이지만 체내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필수미량원소라고 하며, 원자번호 34번인 희유원소로 화학적 성질은 유황과 비슷하다.  셀레늄이 항암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노오쓰다코다 주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주보다 암에 의한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원인을 조사해본 결과 그 지방의 토양에 셀레늄 성분이 유독 많이 함유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셀레늄 성분은 미역, 시금치, 감 등에도 조금씩 들어 있지만 마늘이 단연코 압도적이다.
  마늘의 본고장은 우리나라이지만 최근 마늘의 성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일본에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연구결과 밝혀진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마늘은 노화물질을 억제하여 성인병을 예방한다. 우리 몸안에는 불포화지방산이라는 성분이 살아 있는 생체막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평상시 인체구성의 필수성분이다. 하지만 이것이 산화되면 과산화지질로 변한다. 쇠에 녹이 스는 이치와 매 한가지다. 
그리고 이 과산화지질이 몸의 노화를 촉진하고 각종 성인병을 유발시킨다.
이른바 동맥경화도 이렇게 생기는 것이다. 마늘에 들어 있는 셀레늄 성분은 바로 이와 같은 과산화지질의 생성을 억제해주는 작용을 한다.   또한 마늘은 간기능을 촉진시켜 간염을 예방하고 치료한다. 마늘은 예로부터 피로회복의 묘약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것은 마늘이 간장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 피로가 축적되거나 유독물질이 들어오면 이것을 처리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 간장이다. 그런데 과음, 과로 등으로 간장을 혹사시키다 보면 그 기능이 저하되어 해독작용을 못하게 되어버리는데 이런 현상을 일컬어 '간염'이라 한다. 외부 요인에 의한 급성간염은 치료가 어렵지 않지만 만성간염은 치료도 어렵고 간경변과 암을 유발하기도 한다. 생마늘은 유황을 포함한 아미노산이 함유하고 있어, 그 성분들이 간장의 기능을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이들 성분은 마늘에 함유되어 있는 당이나 지방과 결합하여 보다 강한 작용을 한다. 이것은 쥐를 통한 임상실험에서도 여실히 입증되었다. 마늘을 먹인 쥐의 그룹과, 먹이지 않은 그룹에 똑같은 약제를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간염장애를 일으키게 하였더니 장애 정도가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한편 미리 마늘을 대량으로 주었던 쥐의 그룹은 간염을 발병하게 하는 약제를 투여했어도 아무런 장애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늘의 항균작용을 이용하여 아토피성 피부염 및 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다.
  18세기 영국의 의학서에는 마늘의 알콜 추출물이 콜레라에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가 고전했던 아메바 이질에도 마늘이 매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마늘의 항균작용을 이용하여 백혈병에서 비롯된 진균(곰팡이균)병 치료에 응용하고 있다. 물론 지금이야 부작용이 없는 강력한 항균제가 개발되어 마늘을 항균제로 사용하는 예는 드물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늘고 있는 알레르기성 질환이라고 불리는 아토피성 피부염에는 마늘 엑기스를 활용하여 치료하고 있다. 약물요법, 식사요법 등이 비교적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아토피성 피부의 성질 개선에는 마늘엑기스 목욕이 효과가 있다. 미지근한 목욕물에 마늘 엑기스를 넣고 5분 정도 하되 부드럽게 씻으면 된다. 이때 샴푸나 비누를 써도 상관없다.

  쓰임새

  우리 식탁에서 고기와 함께 꼭 따라다니는 마늘은 최근 항암작용을 하는 약재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건국신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짐승을 사람으로 만드는 신통력(?)을 발휘하는 데서부터 마늘은 우리 민족과 유구한 역사를 함께 해왔음을 알 수 있다. 특별한 냄새와 신통력을 관계짓는 사고방식은 예로부터 마늘에 대한 민속을 많이 탄생시켰다.
그래서 민간에서는 콜레라나 마마, 학질 등의 유행병이 번질 때마다 마늘쪽을 실에 꿰어 문기둥에 걸어두거나, 귀신을 쫓는데 마늘냄새를 이용했다. 이것은 마늘의 항균력을 귀신에게까지 적용한 원시적 합리주의라고 해석할 수 있겠으나 실제 효험이 있는 민간요법도 숱하게
많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감기에 걸렸을 때 마늘과 파뿌리, 그리고 생강을 참기름에 달여서 마신다.
  *코피가 멎지 않을 때는 절구에 찧어 만든 마늘떡을 발바닥에 붙인다.(이때 남자는 왼발, 여자는 오른발에 붙여야 한다.)
  *치질과 같은 심한 종기를 앓을 때도 이 마늘떡을 관혈에 붙인다.
  *더위에 설사를 할 때는 마늘을 삶아서 꿀에 타서 먹는다.
  *부녀자들이 음부가 붓고 가려울 때 마늘 삶은 물을 따끈히 데워서 뒷물을 하면 효과가 있다.
  이밖에도 마늘을 사용한 민간요법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마늘은 강장식품으로 유명하다. 마늘을 많이 먹고 나면 온몸이 후끈후끈해지고 아랫배 쪽이 근질근질하면서 공연히 성욕이 솟구치는 것을 웬만한 사람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절에 사는 스님들이 마늘을 먹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마늘을 술로 담그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껍질 벗긴 마늘을 물에 깨끗이 씻어 유리병에 넣고 소주를 부어 밀봉한 후 냉암소에 보관한다. 그리고 3∼6개월 후 마늘을 건져내고 술맛이 순해지도록 오랫동안 천천히 두고 마신다. 그런데 마늘에는 알라신이라는 물질이 있어 냄새가 많이 난다. 이때 월계수잎을 같이 넣어두면 마늘냄새가 중화된다. 마늘주는 강장제로서의 약효가 뛰어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혈액순환을 도우며 체내 독소를 분해하는 작용이 있어 피로회복에 좋다. 식욕증진, 미용효과 등도 있다.
  일반적인 쓰임새 외에도 마늘은 다음과 같이 조리하여 섭취할 수 있다.
  *마늘된장국/ 강판에 간 마늘과 된장을 끓여서 먹는다.
  *마늘구이, 볶음/ 한번에 한두 조각을 기름에 볶거나 은박지에 싸서 구워 먹는다.
  *마늘장아찌/ 마늘을 하룻밤 식초에 담갔다가 간장에 넣어 2개월 정도 묵힌 뒤에 반찬으로 먹는다.
  *된장장아찌/ 껍질 벗긴 마늘을 깨끗이 씻어 박아두었다가 6개월 후부터 꺼내 먹으면 된다.

  이것이 토종

  오늘날 세계 무대에서 '마늘'하면 한국인이 연상될 정도로 우리민족은 유달리 마늘을 애용해 왔으며, 오래 전에 세계 영양학자들이 공표한 10대 영양식품에서도 마늘은 당당히 랭킹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마늘은 크게 한지형과 난지형으로 구분되는데, 한지형은 저장성이 좋고 구가 크며 인편수가 적어서 우수하다. 난지형은 꽃대가 길어 마늘종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가지 종 모두 재배되는데, 한지형으로는 서산, 의성, 삼척의 재래종이 있고 난지형으로는 남해백과 고흥백 등이 있다.
  요즈음에는 외국산 마늘이 다량 수입되어 시장을 장악해 들어오고 있다. 수입산 마늘은 알이 굵고 무른감이 있으며 쪽수가 대개 10∼13개 이상이다. 또한 잔뿌리나 마늘종이 없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내산의 경우 난지형은 한지형보다 마늘 쪽수가 많고 은회색이 돌며 마늘종이 나와 있는 것을 토종으로 친다. 대체로 알이 작지만 단단한 느낌을 준다. 분홍색이 도는 한지형의 경우 마늘종이 나오다 말거나 아예 없지만 잔뿌리가 남아있는 것을 토종의 증거로 들 수 있다.

  ***참고자료
  1.{민족문화대백과} p.523-524
  2.<여성생활> {문화일보} 92.8.28일자
  3.<신비의 식품들> 월간 {식품과 건강} 91.2월호(창간호)
  4.이규태,<삼천자칼럼> {식품과 건강} 91.4월호
  5.이철호,{약이되는 식품} 어문각
  6.월간 {식품과 건강} 91.9,10,11월호
  7.{신토불이} 농협, 핸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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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생강

  독특한 맛과 향기

  '생강'하면 무엇보다도 따끈한 '생강차'가 생각난다. 눈내리는 겨울날 한잔의 뜨거운 생강차는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줄 뿐만 아니라 쌉쌀한 맛이 묘한 여운을 남겨 준다. 어디 맛과 향 뿐인가? 생강에는 여러가지 인체에 유효한 성분이 들어 있어 한겨울의 잔병치레 정도는 생강 몇쪽으로 거뜬히 막아낼 수도 있다.
  한편, 독특한 맛과 향기를 지닌 생강은 그 생김새가 퍽이나 이국적이다. 원산지는 열대 아시아 지방, 혹은 인도의 고원지방으로 추정되는데 분명하지는 않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온대와 열대지방에서 흔히 재배되는 열대성 향료식물이다.
  생강은 '새앙'이라고도 부르는 여러해살이 풀로 키가 대략 한 자에서 두 자쯤 자란다. 줄기는 곧게 자라고 중간중간에 짤막짤막한 마디가 있다. 대나무 잎사귀를 닮은 긴 잎은 줄기에서 두 줄로 어긋난다. 언뜻 보면 조릿대잎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잎 전체에서 독특한 향기가 난다. 옛사람들은 그 향기를 좋아하여 화분에 생강을 심어놓고 즐겼다고 한다.
  큼지막한 등황색꽃이 줄기끝에 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꽃을 보기가 무척 힘들다. 울퉁불퉁하고 살진 뿌리는 마디가 있고 가로로 뻗으며 마디에서 싹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씨앗을 얻기가 불가능하므로 뿌리를 쪼개어 밭에 심어 번식시킨다. 이른 봄에 심어 팔월에서 시월 사이에 캐내는데 땅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편이나 추위에는 약하다.
  중국, 일본, 인도, 아프리카, 자메이카 등이 주 생산국이며 특히 중국에서 난 것은 품질이 우수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현종(1018)때 생강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빠른 신라 말쯤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지금도 인도나 말레이시아의 고원 지대에는 생강의 원종으로 보이는 식물이 발견되고 있는데 독이 있어 사람이 먹을 수는 없다고 한다. 또한 인도에는 노랑색 물감의 원료인 제오다리, 갈란갈 등 생강과 비슷한 식물이 여럿 있다. 또한 중국에서도 이천 오백년 전쯤에 살았던 공자가 생강을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생강은 그 역사가 무척
오래되었으며 향신료로 일찍부터 개발되어 수천 년 전부터 재배해 오면서 품질을 개량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3천 년 경의 그리스로도스섬의 주민이 밀가루와 꿀과 생강으로 만든 과자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넓은 지역에서 인류는 생강을 최고의 향신료로 여겼다. 생강은 약으로 쓸 것과 양념으로 쓸 것을 따로 나누어 수확한다. 약으로
쓸 것은 줄기가 다 말라 죽은 늦가을에 캐고 양념으로 쓸 것은 잎끝이 조금 마르는 시기인 팔월에서 구월 사이에 캐낸다. 일찍 캐낸 것은 소출이 적게 나지만 향기가 진하고 늦게 캔 것은 뿌리가 굵고 단단하다. 생강은 물기가 많아 상하기 쉬우므로 양념으로 쓸 것을 빼고는 대부분 말려서 쓰는데 이를 건강이라고 한다. 건강에는 다시 흑강과 백강이 있다. 흑강은, 땅위로 나와 있는 줄기가 다 시든 뒤에 뿌리를 캐어 열탕에 쪄서 말린 것이고 백강은, 줄기가 시들기 전에 캐내어 겉껍질을 벗기고 물로 씻은 다음 햇볕에 천천히 말린 것으로 흰빛이거나 엷은 노랑색이다. 백강에는 벌레가 먹지 않도록 석회를 뿌리기도 한다.

  성분

  생강의 특이한 향기는 주요 성분이 진기베린, 진기베롤, 캄펜, 보르네올 등이고 매운 맛을 내는 성분은 진게론과 쇼가올이라는 물질이다.
  말린 생강의 성분은 다음과 같다.
  수분 7∼15%, 전분 38∼61%, 단백질 4∼10%, 조지방 3∼7%, 회분 3∼10%, 정유 0.4∼4% 이밖에 펙틴, 사과산, 수산 등이 들어 있다.   이와 같은 생강의 성분은 침 속에 있는 디아스타제의 활성을 높여 소화를 돕고 몸안의 차가운 기운을 내보낸다. 또 구토를 멎게하고 가래를 삭이는 효과가 있어 추위로 인한 두통, 구토, 복통, 기침 등에 쓰며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기능도 있다. 생강은 한기가 있을 때나 몸이 차가울 때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피의 흐름을 좋게 하는 작용이 있다. 예로부터 한방에서는 소화를 도와 식욕을 증진시키고 복통, 설사, 구토를 멈추게 하며 딸꾹질, 현기증, 냉증을 없애주는 약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또한 생강차는 독특한 매운 맛과 향기를 내는 정유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감기로 열이 많을 때는 뛰어난 해열작용을 해준다. 여기다 꿀을 곁들여 마시면 미네랄류까지 섭취하게 되어 체력보강에도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생강에는 대뇌피질을 흥분시키고 중추신경을 자극하여 신진대사를 원할하게 해주는 항진작용이 있다. 따라서 생강차의 향기를 들이마시게 되면 막혔던 코가 풀어지는가 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어 기분전환이 된다.

  쓰임새

  생강은 김치를 담그거나 고기, 생선 등의 비린내를 없애는 데 없어서는 안될 양념으로 예부터 파, 마늘과 함께 중요하게 여겨왔다. 대용차로도 많이 마시고 생강엿을 만들기도 하며 과자 재료로도 많이 쓰인다. 생강을 설탕에 절여 말린 과자를 편강이라고 하는데 간식으로는 일품이다.   생강은 한방에서 주장약으로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신진대사기능 촉진, 땀내기, 해독을 목적으로 하는 처방에 보조약으로 섞어 쓰는 것이 대부분이다.
  {동의학 사전}에는 '생강은 맛이 맵고 성질은 약간 따뜻하다. 폐경, 비경, 위경에 작용한다. 땀을 내어 풍한을 없애고 비위를 덮혀주며 게우기를 멈추게 한다. 매운맛 성분은 말초성 게움멎이 작용을 한다. 생강즙은 건위작용이 있으며 위점막을 자극하여 혈압을 높이고 균을
죽인다. 풍한, 비위가 허약할 때, 된입쓰리, 가래가 있으며 기침이 나고 숨이 찬 데, 소화장애 등에 쓴다'.   민간요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인다.
  *감기에는 파 15대와 생강 다섯 쪽에 물 500ml를 넣고 졸여서 한 번에 큰 잔으로 한 잔 정도 마시고 땀을 낸다. 이렇게 하루 두번, 오후 시간과 잠자기 전에 먹는다.
  *기침에는 생강 세 쪽을 얇게 썰어 살구씨의 속살 40g에 물 300ml를 넣고 반으로 달인 다음 꿀이나 설탕을 넣고 한 번 더 달여 하루 세 번 밥먹기 전에 한 컵씩 먹는다.
  *찬 음식 또는 고기 등을 먹고 체한 데는 생강즙을 마시면 효과가 있다.
  *변비에는 장군풀 말린 것 5g과 생강 5g을 참기름 30ml에 달여서 밥 먹기 반 시간 전에 먹으면 서너 시간 뒤에 대변을 볼 수 있다.
  *생강을 머리에 바르면 피의 흐름을 촉진시켜 머리가 빠지는 증세를 방지할 수 있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에서 생강은 주로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많이 재배되는데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에서 전체 생산량의 90%정도가 생산된다. 특히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이 생강산지로 유명하다. 이 지방에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천3백여 년 전에 신만석이라는 사람이 중국에 사신으로 건너가 봉성현이라는 곳에서 생강 뿌리를 가져왔는데 전국의 여러 곳에 심어보았지만 재배가 되지 않아서 마침내 '봉'자가 붙은 땅을 찾아서 심게 되었다. 그러자 튼튼하게 잘 자랐고 그것이 봉동생강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생강은 수 백년 동안 봉동에 국한되어 생산되어 왔다. 온돌 밑에 지하 저장고를 만들어 씨로 쓸 생강을 겨울 동안 썩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을 일체 비밀로 하여 다른 지역에서는 아예 재배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일제 식민지 말기까지 한 해에 20만섬을 생산하여 전국의 생강 생산을 독점해왔다. 그러나 저장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여타의 지역으로 널리 보급되어 봉동의 재배농가가 점점 줄어드는 바람에 봉동생강의 명칭도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후 생강은 전북 완주군 일대와 충남 서산, 태안 등 과거 주산지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재배되다가 근래에 와서는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에서 다량 수입되고 있다. 그리고 국산과 수입산의 차이가 모호하여 자칫 소비자들이 속아서 구입할 우려가 많다. 따라서 토종을 구입하려면 다음의 특징들을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수입산 생강은 알이 굵고 굴곡이 심하지 않다. 또한 색깔은 대체로 엷은 편이나 붉은 황토색을 띠는 경우도 있다. 이에 반하여 국내산은 알이 작고 몹시 울퉁불퉁하다. 또한 색깔은 짙은 편이며 한덩어리에 여러 개의 갈래가 붙어 있다. 그리고 오래 저장하지 않은 것은 흙이 많이 묻어 있다.   그러나 생강은 국내산도 산지에 따라 약간씩 색깔이나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면 좀처럼 구별하기 어렵다.
  어쨌든 약효도 뛰어나고 우리 땅의 정기를 듬뿍 받은 진짜 토종을 식생활에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우리의 건강도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월간 {시사춘추} 92.9월호 
  2.월간 {행복의 샘} 92.11.창간호. 농민신문사
  3.{신토불이}, 농협, 핸드북 

@   <과실류>
   30.밤
   토종밤은 약밤
   초여름 달밤에 밤나무숲 부근을 지나가면 이상하고 야릇한 냄새가 난다.
이것을 이름하여 '밤꽃 냄새'라 하는데 남성의 체액 냄새와 흡사하다고 한다. 하늘에서는 휘영청 달빛이 부서져 내리고 숲속에서는 진하디 진한 밤꽃 향기가 흘러나와 코끝을 슬슬 간지럽히면 독수공방하던 동네 과부들은 괜시리 오금이 저리고, 불현듯 솟구치는 지아비 생각에 온 밤을 뜬눈으로 하얗게 지새우곤 했다.
  이처럼 가슴 설레게 하는 밤꽃이 지고나면 새끼손톱만한 밤송이가 맺히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잎사귀처럼 녹색이다가 익어갈수록 갈색으로 변하면서 벌어지는데, 연약한 알맹이를 둘러싸고 있는 무성한 가시는 밤알에게는 훌륭한 방어무기이다. 이 가시 덕택에 밤알이 완전히 익어서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것이다.
  단풍잎이 붉게 물들어가고, 들에는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가을이 오면 밤나무숲 사이에는 으레 새 오솔길이 난다. 그것은 바로 쩍쩍 벌어지기 시작하는 밤송이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동네 조무래기들이 다람쥐처럼 밤나무 밑을 드나들어 생긴 길이다. 밤나무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아이들이 맨발로 장대를 잡고 밤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후려치면, 쩍쩍 송이가 벌어진 틈에서 잘 익은 밤알들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고개를 쳐들고 가슴 조이며 치마폭을 펼치면, 쏟아져 들어오는 밤알들. 따끔따끔한 것쯤이야 무던하게 견뎌낼 수 있을 만큼 황홀한 기분이다. 또한 통째로 떨어진 밤송이를 가시에 찔려가며 낫끝으로 파먹는 재미는 어른이 되어서도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밤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교목성 낙엽과수이며 세계적으로 열한 가지 종이 북반구에만 분포한다. 특히 중부 유럽지역에서 많이 나고 동양에서는 일본, 중국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많이 나는 편이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에 걸쳐 재배되는데 함경북도와 평안남도에는 중국계의 함종밤(함종율)이 많고 그 이남지역에는 재래종이 많이 재배되었다. 그러나 1958년 경부터 밤나무혹벌의 발생으로 재래종 밤나무밭은 거의 전멸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를 계기로 해충에 강한 품종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재배면적도 크게 증가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밤나무의 품종은 주로 우리나라와 다른나라 재래종 중에서 해충에 강한 것을 교배하여 우량품종으로 만든 것이거나 일본에서 새로 육성된 내충성 우량품종이다. 그 대표적인 품종은 다음과 같다.
  이른바 '중부6호'라고 불리는 산대밤은 경기도 광주군에서 엄선한 품종으로 나무줄기와 잎새가 무성하게 우거지며 줄기마름병 및 벌레에 강하다. 또한 이 품종은 수확량만이 아니라 가공에도 적합하다. 그리고 서울 임업시험장에서 선발한 품종으로 장위밤이 있다. 이 품종 역시 혹벌이나 줄기마름병 등에 강하다.
  이밖에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으로 삼조생, 이평밤(이평율), 은기 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선발된 품종으로는 광주올밤, 중흥밤, 옥광밤(중부18호), 산성밤(중부26호), 백중밤 등이 있다.

  성분

  밤은 다섯 가지 필수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훌륭한 영양식품이다. 그래서 밤을 많이 따먹고 자란 밤나무골 아이들은 살이 쪄서 대부분 토실토실했다고 한다.
  밤에는 칼슘, 철, 나트륨 등, 뼈가 되고 피가 되는 무기질이 골고루 들어있고, 특히 밤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은 위장을 튼튼하게 해준다.   밤 100g에 들어 있는 영양분은 탄수화물 34.5g, 무기질 1.2g, 단백질 3.5g, 철분 2.1mg, 비타민 A 74mg, 칼슘 35mg,비타민 B2 0.23mg, 비타민 C 28mg, 비타민 B1 0.45mg 등이다.

   쓰임새

  밤을 이용한 음식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밤밥을 들 수 있다. 밤밥을 지을 때는 생밤의 껍질을 깨끗이 벗겨서 반쪽으로 가르고 뜨물에 담가서 색이 변하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이것을 꺼내 쌀과 섞어서 소금을 약간 뿌린 뒤 보통 흰밥처럼 지으면 된다. 이때 팥 삶은 물을 붓고 밥을 지으면 고운 색깔과 함께 한결 구수한 밥맛을 낼 수 있다.
  밤가루와 쌀가루를 함께 섞어서 끓이면 밤죽이 되는데, 이것은 당분이 많아서 예로부터 젖 떼는 아이의 이유식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건강식으로도 널리 애용되어 왔다.
  이밖에도 밤다식, 밤단자, 밤과자, 밤주악, 밤엿 등은 우리의 전통음식으로 밤을 재료로 한 고급음식이다. 그리고 밤을 떡, 통조림 등으로 가공하기도 한다.
  한편 한방에서는 밤을 약용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몸이 허약하거나, 비위가 허해 설사를 할 때, 콩팥이 허해 허리가 아플 때 쓰면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토종밤 중에서 '약밤'이 있는데 이것은 특별히 약성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밤나무의 열매뿐만 아니라 목재도 고급가구재, 건축재, 철도갱목, 조선재 및 버섯 재배용으로 사용되며, 특히 목질에 함유된 탄닌은 화학제품의 연료로 이용된다.
  밤을 고를 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즉, 날것으로 그냥 먹을 밤은 알이 굵고 껍질에 윤기가 흐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으며, 보관했다가 먹을 것은 개량종이라도 알이 지나치게 굵지 않고 윤기가 나지 않는 것을 택해야 달고 맛이 있다.

  이것이 토종

  밤나무는 신의주와 함흥을 잇는 선 아래 지역에서 특히 식생이 잘 된다. 또한 우리 밤은 예로부터 알이 굵기로도 유명한데, 삼국지 중 마한 편에 의하면, 마한에는 굵기가 배만한 밤이 난다고 했다. 또한 당나라 때 편찬된 수서라는 책에도 백제에 큰 밤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토종밤은 알이 잘고 껍질을 벗긴 밤알이 노란 빛을 띠며 맛이 뛰어나다. 그래서 단순히 '밤'이라 하지 않고 '약밤'이라 불렀다. 이렇게 맛이 뛰어나서인지 재래 토종밤은 해충에 약하다. 벌레도 맛있는 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재배해온 밤으로는 '평양밤'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원래 중국이 원산으로 만주 남부에서 화북지방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에 많이 심고 가꾸는 것은 주로 일본밤을 개량한 것으로 밤알이 매우 굵고 많이 열리지만 단단하지 않고 맛이 적다. 이러한 개량종에 밀려 우리 토종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토종밤과 외국산밤은 일반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우나 굳이 특징을 따진다면 토종밤은 껍질의 색깔이 선명하고 윤기가 난다. 반면 수입산은 일반적으로 껍질이 퇴색되어 있고 보관상 농약처리를 하여 농약냄새가 나는 것도 있다.
   ***참고문헌
  1.월간 {행복의 샘} 92.11월, 창간호 농민신문사 
  2.월간 {시사춘추}
  3.{신토불이} 농협 (핸드북) 
  4.{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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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은행 
  무병장수하는 이 땅의 황금나무 

  황금빛 잎새와 곧고 튼튼한 줄기, 그리고 은빛으로 영그는 열매를 가졌지만 은행나무는 늘 외롭다. 어떤 벌레나 새도, 그리고 짐승도 은행나무를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알을 파먹는 새도 없고 줄기나 잎사귀를 갉아먹는 벌레도 없다.
  은행나무가 더욱 고독한 것은 오직 이 지구상에 친척이라 할만한 변종이나 비슷한 나무조차도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그 고귀함과 순결함이 더욱 빛난다.
  은행나무의 선조를 찾으려면 약 3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이 많기로 익히 알려진 소나무나 소철보다 훨씬 먼저 탄생한 것이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간직한 은행나무는 1억 5천년 전쯤 크게 번성했다가 빙하기를 맞이했다. 이때 다른 나무들은 대부분 멸종되었으나 은행나무는 끈질기게 그 추위를 견디며 살아남아서 공룡의 탄생과 멸망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빙하기가 끝날 무렵까지 중국에 몇 그루가 살아 남았다가 한국, 일본 등지로 번식하고 최근에 와서야 세계 전역에 뿌리를 내렸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은행나무가 크게 자라지도 못하고 가지가 넓게 벌어지지도 않는다. 동아시아 국가에서,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지를 뻗으며 가장 크게 잘 자란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입구에 있는 1천3백 년 묵은 은행나무는 그 키가 무려 64미터나 된다. 20층 건물 높이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로 꼽힌다. 또한 충남 금산에는 밑둘레가 16.5미터나 되고 5백 살이 넘은 은행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이처럼 은행나무가 우리 땅에 가장 적합한 나무라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우리 민족을 닯았다는 말이 아닐까.
  마치 이미 진화된 동물이나 인간을 닮은 듯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다. 그래서 암수나무가 서로 마주 보아야만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꼭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십 리쯤 떨어져 있어도 정받이가 가능하다. 또한 좀처럼 은행나무는 꽃을 보이지 않는다.
새벽 두 시경에 피었다가 날이 밝기 전에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은행꽃을 보면 죽는다'는 말이 생겨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황금빛 부챗살 같은 이파리 때문에 우리는 흔히 은행나무를 활엽수로 생각하지만 실은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이므로 침엽수로 분류된다. 은행씨를 둘러싼 겉씨는 얼핏 보면 속씨식물처럼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발육이 중지되어 있다. 말하자면 좀 덜된 속씨식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은행의 열매는 나무가 60살 정도는 먹어야 겨우 맺히기 시작한다. 참으로 귀한 열매인 것이다.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 전역에 번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튼튼하게 자라고 약효도 우리 은행이 가장 뛰어나다.
  그러나 앞으로 대기오염이 더 심해지고 환경이 파괴되면 은행나무의 그 끈질긴 생명력도 시들어버리고 새로운 해충이 나타나서 은행나무만 즐겨 갉아먹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은행나무를 살리는 일이 자연과 인간을 살리는 길과 통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은행나무가 자랄 수 없는 환경에서는 이미 인간도 살 수가 없을 것이므로.

  성분

  사춘기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책갈피에 꽂아본 일이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색깔에 반하여 그랬겠지만 뜻밖에도 은행잎을 책갈피에 꽂아두면 책에 좀이 슬지 않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체내에 균과 벌레를 죽이는 독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은행잎이 곰팡이나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먹성이 좋다고 소문난 딱정벌레까지도 굶어 죽을지언정 은행잎은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은행열매에는 긴놀, 팩틴, 히스티딘, 전분, 단백질, 지방, 당분, 레시틴, 엘고스테린(비타민 D의 모체), 플라보노이드(살균, 살충성분) 등의 성분이 들어 있다. 또한 은행잎에는 징코라이드 A,B,C와 진놀, 프라보놀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쓰임새

   연두빛을 띤 은행의 속살은 술안주나 신선로, 은행단자 등의 고급요리의 재료로 쓰인다. 독이 있으므로 날것 그대로 먹거나 한꺼번에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고, 소금을 쳐서 구워 먹으면 풍부한 영양과 함께 감칠맛을 즐길 수 있다.
  은행은 또 소변 작용과도 관계가 있다.   옛날에는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구은 은행을 먹였는데, 오랜 가마길에 소변을 참으라는 뜻에서였다. 야뇨증에 걸린 사람에게는 볶은 은행이 효과가 있다. 오랜 시간 회의를 하거나 차를 탈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날것은 소변을 촉진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주의해서 먹어야 한다.
  또한 은행열매를 폐결핵 환자가 먹으면 기침이 멎고 가래가 적어진다. 이것은 은행이 호흡기능을 왕성하게 하고 염증을 없애주며 결핵균의 발육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은행에 들어 있는 레시틴과 비타민 D의 모체가 되는 엘고스테린이라는 성분은 성욕감퇴, 뇌빈혈, 신경쇠약, 정신피로, 뇌혈관 개선 등에 효과가 있다.
  민간요법으로 다음과 같은 처방이 있다.   대하증에는 은행열매를 햇볕에 말린 후에 부드럽게 가루를 내어, 가루 200g에 계란 세 개 비율로 풀어 섞어서 하루에 세 번 나누어 먹는다.   중이염에는 껍질 벗긴 생은행을 짓찧어서 가제나 베를 이용해 즙을 낸다.
하루에 한 두번, 귀안을 깨끗이 씻고난 뒤 흘려 넣어주면 효과가 있다.   어린아이가 젖먹다가 체했을 때 은행 한 알 정도를 잘 빻아 가루내어 먹인다.
  소변불통일 때 은행알 14개 정도를 껍질 벗겨 익혀 하루 세 번 나누어 먹는다. 이때 완전히 익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은행알을 완전히 구워서 먹으면 오히려 소변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익힐 때 주의해야 한다.
  신약(신약)의 저자인 인산 김일훈 옹에 의하면 은행알 2되, 살구씨 1되, 호도살 2되를 함께 넣고 절구에 살짝 찧어 밥 위에 얹어 쪄서 말리는 것을 세 번 반복하여 짜낸 기름은 해수, 천식, 폐암에 신약이 된다고 한다.   은행잎이 은행열매보다도 놀라운 약효가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요즘, 은행잎은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토종 은행잎은 외국의 것보다 10배 이상의 약효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늘에 말린 은행잎을 잘게 썰어 은행잎 20g에 물 500ml를 넣고 약한 불에 한 시간 정도 달여, 찌꺼기를 버리고 하루 세 번 정도 식사 전에 나누어 먹으면 위경련에 효과가 좋다고도 한다.
  은행잎은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여 심장을 돕고 폐와 설사에 효능이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가슴앓이, 가래 및 천식, 백태, 상피증 등을 치료하는 데 널리 사용되었다.
  최근에는 은행잎에서 뇌혈관 개선제인 징코라이드가 추출되어 현대인의 여러 가지 난치병(암, 고혈압, 중풍, 류머티스 등)을 예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약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은행잎은 특히 현대인 모두가 시달리고 있는 공해독을 풀어주는 신비한 약재이다. 음력 5월에 딴 은행잎은 공해를 푸는 묘약으로 알려져 있는데, 은행잎 1냥(37.5g)에 원감초 5돈을 넣고 오랜 시간 달인 차를 자주 복용하면 공해독 해독에 매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독일에서, 질 좋은 우리나라산 은행잎을 연간 수백만 톤씩 사다가 1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이러한 기술을 국내 제약회사에서 개발한다면 엄청난 외화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고 빈사 직전의 농촌을 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은행나무는 인삼 못지않은 특산품으로서, 실로 천혜의 자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은행잎은 균과 벌레가 멀리할 만한 독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각종 약용 외에 도심의 가로수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것이 토종 

  은행나무는 심어놓고 거름만 잘 주면 가지를 치거나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혼자 힘으로 자라고, 공해나 병충해에 잘 견딘다. 또 아황산가스나 납성분을 정화하는 능력도 플라타나스보다 두 배나 강하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토양에 적합한 나무가 바로 은행나무다. 따라서 토종 은행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잘 크고 열매나 잎의 약성이 풍부하다.
  그러나 여타의 다른 작물처럼 은행열매 또한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입 은행알의 특징을 보면 알이 굵고 테두리가 날카롭지 못하다. 또한 장기간 보관을 하여 일반적으로 퇴색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산은 알이 작고 테두리가 선명하며 빛이 좋고 윤기가 있다.
   ***참고자료
  1. 안덕균 감수{한국의 민간요법}, 도서출판 가서원 
  2. 최진규, 월간[시사춘추], '토종을 다시본다' 
  3. 이철호[장터순례], 도서출판 유림
  4.{신토불이} 농협 (핸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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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대추

  단오날 시집가는 양반 나무

  대추는 붉은 색깔 때문에 '홍조'라고도 불린다. 초가을 밤, 찬 이슬을 맞으며 흐드러지게 맺혀 있는 뒤뜰의 바알간 대추열매는,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포근하게 적셔주는 풍요로운 정경이다.   이같은 대추는 민간신앙 속에서 아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테면 서울지역에서는 태몽으로 대추나무를 보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으며, 경기도나 충청남도 지방에서는 아들을 낳기 위해 제사상에 놓였던 대추를 며느리에게 먹인다. 또한 시집가는 여자가 옷상자, 경대와 함께 대추를 가지고 갔다는 기록도 남아 있는데 이것 역시나 아들을 낳으려는 염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밖에도 결혼식 때 며느리의 첫절을 받은 시어머니가 폐백상에서 대추를 집어 며느리의 치마폭에 던져주는 풍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대추나무는 단오날 시집을 간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오월 단오날 정오에 대추나무를 시집보냈다는 풍속이 있다. 즉, 대추나무 가지가 둘로 갈라진 곳에 돌을 끼워주거나 도끼 등으로 줄기에 상처를 내주는 것이다. 이것은 대추가 많이 열리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행했던 풍습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일반적으로 나무 열매가 많이 맺으려면 나뭇가지 속에 질소보다 탄수화물의 양이 많아야 하는데 줄기 중간에 상처가 생기면 뿌리에서 흡수되어 올라가는 질소가 이곳에 저장되고, 잎에서 만들어진 탄수화물도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된다. 결국 나뭇가지에 탄수화물이 양이 많아져 열매가 많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한편 대추나무는 만물이 파릇파릇하게 소생하는 늦봄까지도 죽은 듯이 보인다. 함부로 싹을 틔우지 않는다. 그래서 대추나무를 '양반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와 같이 대추는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문화 속에서 많은 풍습과 이야기거리를 지녀온 까닭에, 대추에 얽힌 속담도 많다. 예컨대, 어려운 일에 잘 견디는 단단하고 모진 사람을 '대추방망이'라고 하며, 여기저기 빚을 많이 진 사람을 보고 '대추나무 연걸리듯'했다고 한다. 또한 작고 하찮은 물건을 가리키는 말로 '콧구멍에 낀 대추씨'라는 것도 있다.
  대추의 원산지는 유럽의 동남부라는 설과, 아시아 동남부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화북, 하남, 산서, 만주, 요동 등지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고 기원전부터 중국에서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아시아 동남부 중에서도 중국이 원산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서기 1188년(고려 명종18년)에 널리 재배를 권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는 국가 정책의 하나로 대추나무의 재식을 권했다고 하는데, 과실은 식용 및 약용으로 쓰고 목재는 재질이 치밀하여 인쇄용 판재로 썼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는 오래 전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와서 고려시대 이전부터 재배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대추는 우리나라의 순수한 토종이지만 아직 품종도 정리되지 않았고 대단위로 재배되지도 않고 있다. 따라서 생산량도 1천 톤 미만으로 극히 적은 편이다.
 
  성분

  대추의 과육에 들어 있는 주성분은 당분으로 맛이 달다. 이밖에도 점액질, 능금산, 주석산 등을 함유하고 있다. 특히 생대추에는 비타민 C가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씨에는 베툴린, 베투릭산 등이 들어 있다.   {신농본초경}에 의하면 '대추는 심복의 사기를 다스리고 속을 편안하게 하며 허약함을 보하고 온갖 약성분을 화하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명의별록}은 '대추는 속을 보하고 기운을 늘리며 의지를 굳게 하고 힘을 강하게 하며 번민을 없앤다.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으며 신선하다'고 대추의 약성을 밝히고 있다. 

  쓰임새 

  대추는 관혼상제 때 필수적인 과실이다. 이를테면 결혼식 때 잔치상이나 제사상에는 빨간 대추알이 반드시 오른다. 어떤 지방에서는 말린 대추알을 목기 위에 그냥 올리기도 하고, 또 경상도 같은 지방에서는 '대추징조'라는 향토음식을 상에 올린다.
  사실 대추는 식용으로 많이 쓰지만 가공법은 그다지 발달되지 않은 편이다. 고작 수정과 등의 요리에 양념처럼 쓸 뿐이다. 따라서 이 '대추징조'라는 것은 대추를 이용한 독특한 식품이라 할 수 있다. '대추징조'는 대추와 참깨를 주원료로 한 식품으로, 대추는 씻어서 찜통에 찌고 참깨는 물에 축여 비벼서 껍질을 벗긴 다음 볶는다. 이 두가지를 조청과 설탕을 되직하게 끓인 곳에 넣어 버무린 뒤 대추를 하나씩 떼어내서 그릇에 담으면 된다.   이밖에 대추는 이뇨강장, 건위진정, 건위자양의 약재로도 널리 쓰인다. 또한 민간요법에서는 불면증, 산후조리, 구토 등의 치료에 이용한다. 그러나 대추를 약용하는 데 있어서 금기사항도 있다. 생대추를 많이 먹으면 몸에 열이 생기고 비위를 손상시키며 습열을 돕는다고 하며 치아나 혀에 병이 있는 사람은 대추를 씹어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한다.   수확한 대추는 통풍이 잘 되는 장소에서 말린 후에 보관한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의 대추는 별도의 품종이 개발되어 보급된 것이 없다. 단지 산출되는 지역명을 따서 충청도의 보은대추, 경기도의 경기대추, 논산의 연산대추, 밀양의 고례대추, 경북의 동곡대추 등으로 분류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충북 보은 예속 대추이다. 충청북도 보은은 예로부터 대추의 주산지로 유명한데, 대추를 팔아서 생활고를 해결함은 물론 딸이 시집갈 때 혼인비용까지 충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삼복에 비 오면 처녀의 눈물이 비오듯 쏟아진다'는 말이 전해 내려올 정도이다. 이처럼 충청북도 보은군을 대추의 주산지로 꼽을 수 있지만 이것만이 순수한 토종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산출되는 대추는 거의 순수한 토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난 것도 산지 토양 성질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다르다. 그 때문에 요즘 밀려들고 있는 수입산 대추와 토종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특히 수입산에다 국내 특산물 마크가 찍힌 포장지를 바꿔 씌우거나, 국내산과 수입산을 반반씩 섞어서 파는 경우에는 식별이 매우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수입산과 국내산을 구별 짓는 특징을 찾는다면 다음과 같다.
  수입산 대추는 표면이 쪼글쪼글하고 빛깔이 검은 편이다. 눈으로 판별하기 보다는 냄새를 맡아보는 쪽이 구별하기 쉬운데, 수입산에서는 약간의 농약냄새가 난다. 반면, 색깔이 대체로 선명하고 덜 쭈글쭈글한 것이 토종이다. 그리고 토종은 색상이 밝고 단내가 물씬 풍긴다.

   ***참고자료
  1.{민족문화대백과} 
  2.{신토불이} 농협(핸드북)
  3.{약용음식물백선} 
  4.{장터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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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감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친 곶감 
  탐스러운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려 담 밖으로 휘어져 나온 감나무는 해마다 동네 조무래기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곤 한다. 한가위가 지나고 찬서리가 내리는 초겨울녘에도 감나무 꼭대기에는 어머니가 까치밥으로 남겨둔 탐스러운 열매가 한 두개쯤은 남아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을 지닌 우리만의 정경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추수가 끝난 늦가을녘, 초가집 뒤란에 주홍색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감나무의 모습은 그야말로 토속적인 정취를 물씬 풍리며 향수를 자아내곤 한다. 감은 여러가지 과일 중에서도 약효가 뛰어나 예로부터 생명의 과일로 일컬어져 왔다. 게다가 감은, 과실은 물론 잎, 꼭지까지도 약효가 있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이처럼 귀중한 약재인 감은 언제부터 있어온 것일까. 나무에 매달려 있는 그 정겨운 모습이 말해주듯, 감은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이 원산지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명종(1138년)때 '고욤'이라는 단어가 나와 있는데, 이것이 감의 원명칭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조선 성종(1470)때의 고서에도 건시, 수정시 등의 기록이 있다. 그리고 조선 초기의 진상품에 감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재배의 시작은 고려시대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감은 단감과 떫은감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를 다시 세분할 수 있다. 단감 종류라 하더라도 추운 지방에 심으면 떫은감이 된다. 이것이 바로 종자와 풍토의 관계를 입증하는 사실이다.   감의 껍질을 벗겨내고 꼬챙이에 꿰어 말린 것을 곶감이라 하는데 이것을 건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곶감은 조상대대로 우리나라 건시 과실의 대표격이다. '곶감'말만 듣고도 울던 어린아이가 울음을 뚝 그쳤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예로부터 곶감은 기호품으로 사랑을 받아 왔다. 

  성분 

  감의 주성분은 탄수화물이고 포도당과 과당이 많이 들어 있다. 또한 떫은맛을 내는 탄닌이, 점재되어 있는 탄닌 세포 속에 존재한다. 탄닌은 점막표면의 조직을 수축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설사, 기침, 만성기관지염, 고혈압 등에 좋으며 지혈에도 좋다.
  감잎에는 다량의 비타민 C가 들어있는데 그 함유량이 무려 사과의 8배에 달한다.
  또한 감에 들어있는 카로틴 계의 색소는 우리 몸 속에 들어가 비타민 A로 변한다. 비타민 A는 항암작용을 한다. 

  쓰임새 

  일반적으로 단감은 그대로 생식하고 떫은감은 떫은맛을 제거하여 생식한다. 감의 ㄸ은맛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첫째, 큰 통에 ㄸ은감을 담고 부피비 30∼40% 정도의 에탄올이나 30도 정도의 소주를 분무하여 20℃에서 4∼5일간 밀패한다.   둘째, 큰 통에 떫은감을 넣고 부피비 50%정도의 이산화탄소(CO2) 또는 적당한 양의 드라이아이스를 넣고 밀폐하여 3∼5일간 그대로 둔다.
  저장하는 방법은 품종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0℃에서 폴리에틸렌 봉지에 담아 저장하면 2개월 이상 보존할 수 있다. 감즙은 특히 고혈압에 좋다. 떫은 감즙을 집토끼에게 날마다 먹이면 혈압이 날로 내려갈 정도이다.
  감즙을 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꼭지를 딴 떫은감을 절구에 넣고 짓찧는다. 여기에 감의 10% 정도에 해당하는 양의 물을 붓고 잘 버무려서 다른 용기에 옮긴다. 이것을 날마다 한번씩 휘저어 주고, 약 1주일 정도 지나서 감즙을 자루에 넣고 두부처럼 짠다. 짜낸 액즙을 용기에 넣고 뚜껑을 덮어 밀봉한 후에 5∼6개월이 지나면 매일 한 두잔씩 마시도록 한다. 제조시에 만약 익은 감이나 상한 감이 한 개라도 들어가면 전부를 망치게 되므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감잎은 비타민 C의 보고(보고)이다. 이 감잎을 이용하여 끓인 '감잎차'는 현대인의 성인병을 예방해주고 미용, 건강을 지켜주는 대용차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감잎차를 날마다 마시고 당뇨병을 치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암, 알레르기 증상, 심근경색 등의 난병에도 효과가 탁월하다.
  감잎에 비타민 C가 특히 풍부한 시기는 7∼9월이다. 그리고 차의 재료로는 떫은감의 잎일수록 좋다. 그것이 없을 경우는 단감의 잎이라도 어린 것을 따서 쓴다. 이렇게 채취한 감잎을 건조시킨 다음, 가로 3mm 정도로 썰어서 시루에 얹어 찐다. 너무 많이 찌면 비타민 C가 물기운에 녹아버리고 덜 찌면 비타민 C가 충분히 추출되지 않는다. 오로지 숙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대개는 끓는물에서 3∼4분 동안 찌며 그 사이에 감잎을 한번 뒤집어 불필요한 물기를 증발시키면 된다. 쪄낸 감잎은 통풍이 잘 되는 장소에서 말려 용기에 넣고 밀봉하여 보관한다. 그리고 필요할 때 따뜻한 물에 타서 먹으면 훌륭한 차가 된다.
  감잎차 1백g에서 보통 6백∼8백mg의 비타민 C를 얻을 수 있는데 이 비타민 C는 합성비타민에 비해 부작용이 거의 없으며 열을 가해도 원래의 비타민 C 함유량이 많기 때문에 손실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장점을 지녔다. 또한 감잎차는, 다른 차 종류가 알카리성인데 비해 약산성이므로 많이 마셔도 위에 부담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카페인이 없어 자기 전에
마셔도 잠이 오지 않는 경우는 없다.
  감잎차는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나고 체질강화, 위장강화, 음주 뒤의 숙취에도 유용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건강한 피부를 가꾸게 해준다.   감을 말려서 만드는 곶감은 보통 천일건조 방법을 이용하지만 훈증으로 화력건조시킨 제품이 우수하다. 제조과정 중에 곶감의 표면에 생긴 백색분은 포도당, 과당으로, 건조에 의해서 농축된 당액이 마지막에 표면에서 수분이 증발하자 결정으로 변하여 나타난 것이다.   민간요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감과 곶감은 감기 또는 숙취에 효과가 있다. 특히 생강을 달인 수정과 등을 마시면 좋다.   벌레에 물렸을 때 감즙을 사용하면 좋다.
  또한 감꼭지는 딸꾹질의 묘약으로도 유명한데, 딸꾹질이 멈추지 않을 경우에는 감꼭지와 함께 비슷한 양의 솔잎을 물에 달여 마시는 것도 좋다.   어린이가 설사를 그치지 않을 때는 곶감을 바짝 말려 분말을 만들어서, 비슷한 양의 쌀과 함께 죽을 쑤어 먹인다. 얼굴에 기미와 주근깨가 많은 경우에는 곶감을 하루 2∼3개씩 장기간 복용한다.

  이것이 토종

  감은 토종이 따로 없다. 지금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 탐스런 열매 어느 것이라도 재래 토종이다. 감은 동양이 원산지로 특히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특산물이다. 그러나 감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한 온도는 평균 11도 정도이며 너무 따뜻한 곳에서 자란 감은 품질이 떨어진다고 한다. 오히려 고냉지에서 선선한 바람을 쐬고 자란 감이래야 제맛을 내며 약성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품종은 190여 종이 조사되어 있으며 이중 우수한 품종으로는 사곡시, 고종시, 단성시, 반시 등을 들 수 있다.
  토종 곶감으로 유명한 곳은 전북 완주군 동상면이다. 해발 1천 백 미터의 운장산에 야생하는 토종감으로 만든 '동상곶감'은 육질이 아주 연하고 매우 달아서 조선시대에는 궁중에 진상될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동상곶감은 병충해에 강해서 농약을 전혀 치지 않으며 알은 작지만 씨가 없어서 전국적으로 최고의 곶감으로 친다. 그리고 동상곶감의 특유한 감칠맛은
기계를 쓰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깎는데서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야생 토종감을 재료로, 동상면 주민들의 정갈한 손맛과 운장산의 달콤한 이슬이 빚어낸 걸작이 바로 동상 곶감이라 할 수 있다.
  한가지 주목할 사실은 감은 열매 그대로 수입되지는 않으나 곶감의 형태로 다량 반입되고 있다. 이들 수입산 곶감과 국내산을 구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국내산은 색상이 연갈색으로 두껍고 포장길이가 길다. 또한 표면에 묻어있는 흰가루가 적은 편이다. 그러나 수입산은 색깔이 진한 갈색이고 두께가 얇아서 한꼬치의 길이가 짧으며 곶감 표면에 흰가루가 많다. 또한 둥글고 납작하게 비닐포장한 곶감은 거의 다 수입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참고자료 
  1.박원기, [한국식품사전], 신광출판사
  2.심상룡, [약용 음식물 백선], 보건신문사
  3.{약용음식물백선}, 보건신문사
  4.월간 {건강저널} 90. 11월호
  5.{신토불이} 농협, 핸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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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도토리

  옛날엔 개밥에 도토리, 지금은 미용건강식

  우리나라 옛 속담에는 '마음이 맞으면 도토리 한알로도 시장기를 멈춘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가난하여도 서로 마음만 맞으면 모든 역경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된 속담이다. 여기서 도토리는 아주 작은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맞서는 모양을 보고 '도토리 키재기'라고 한다. 이처럼 도토리는 우리 조상들에게 작고 하찮은 것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도토리는 흔한 만큼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대에는 '개밥의 도토리'처럼 여겨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기근이 들어 굶주림에 허덕이던 일반 서민들에게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중요한 식량원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토리와 기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함수관계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엣 문헌을 통해서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동문선}에는 상실가 라고 하여 탐관오리에게 수탈 당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가 실려있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늙은이만 남아 빈집을 지키는데 사흘을 굶다가 산으로 도토리 주으러 간다. 권세가여 너는 아느냐, 너희들의 진수성찬이 도토리 줍는 늙은이의 눈밑에서 흘러나오는 피라는 사실을..."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7년을 고비로 가뭄이 들거나 난리가 난다는 말이 일반화될 정도로 기근이 많았다. 그러나 재난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탐관오리와 세도가라는 인재 또한 서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다. 이 노래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젊은 자식 내외는 전쟁터로, 혹은 부역을 하러 나가버리고 혼자 남아서 집을 지켜야 할 노인은 식량을 수탈 당하여 하는 수 없이 그 떫은 도토리라도 주으러 산으로 가는 고단한 생활상이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노래이다. 만일 산에 도토리라도 없었더라면 이들은 무엇으로 연명했을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한톨한톨 주워온 도토리는 그냥 먹을 수가 없었다. 도토리맛은 무척 떫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유의 가공방식으로 떫은맛을 제거하고 묵으로 만들어서 먹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 구미를 당기게 하는 도토리묵의 시초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배고픔을 달래는 구황식품이었던 도토리묵은 오늘날에 와서 별미로 일반화되어 도토리값이 쌀값보다 비쌀 정도가 되었다.
  한편, 도토리에 관한 각 지역의 속신은 다양하게 전래되어 내려온다. 예컨데 경상도지방에서는 꿈에 도토리 나무를 보면 행운이 따른다고 믿는다. 반면에 서울 지방에서는 임산부가 도토리묵을 먹으면 유산한다는 속신이 있다.
  우리가 흔히 도토리라고 일컫는 것에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모밀잣나무, 너도밤나무, 침엽수 등의 참나무 열매에 대한 총칭이다. 한자명으로는 상실, 곡실 등으로 부른다. 북반구의 온대, 난대, 아열대에 걸쳐서 약 2백 여종이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13종 정도의 참나무속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주종을 이루는 것은 신갈나무다. 도토리는 우리나라 야산 어디든 흔하게 자생하고 있다.

   성분

  도토리의 주성분은 녹말이며 그 함유량은 60∼80%에 달한다. 이밖에 지질, 단백질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도토리에는 탄닌이라는 특수성분이 들어 있어 날것으로 먹으면 떫은 맛이 난다.   옛 문헌에서는 다음과 같이 도토리의 효능을 밝히고 있다.
  {당본초}에 '도토리는 치질을 다스리고 하혈을 멈추게 한다'고 되어 있다. {일화자본초}에서는 '도토리는 장을 튼튼하게 하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는 기록이 있다.
  {본초강목}에는 '도토리를 찐 다음 말려서 가루로 하여 먹으면 대장을 튼튼히 하고 설사를 그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쓰임새 

  도토리는 예로부터 구황식이나 별식으로 널리 이용되었으며 위와 장에 좋은 식품으로 각광받아 왔다.   특히 도토리는 열량이 적으므로 비만증에도 좋다. 그러나 탄닌 성분은 점막을 수축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변비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도토리를 재료로 하여 만든 식품으로 우리는 흔히 도토리묵을 떠올리지만 이것 뿐만이 아니다. 도토리 껍데기를 벗겨 물에 오랫동안 담가 떫은맛을 뺀 다음 잘 말려 가루를 낸다. 그 가루로 죽을 쑤면 도토리죽이 되고 가루로 떡을 만들면 도토리떡이 되고, 밀가루와 섞어서 도토리국수를 만들며, 꿀에 재어서는 도토리마식, 묵을 만들면 도토리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들 식품 중에서 단연코 인기있는 것은 도토리묵이다. 이 도토리묵은 열량이 아주 적으므로 비만증에 좋은 건강식품이다. 요즘은 가공기술이 발달하여 전혀 떫은 맛이 나지 않은 도토리묵이 널리 보급되고 있다.
  이밖에도 도토리는 다음과 같이 민간요법의 재료로 쓰인다.   치창출혈에는 도토리 가루, 찹쌀가루, 각 1되를 물에 개어 떡을 만든 다음 밥에 얹어서 쪄 먹는다.
  비만증에는 식사대신 도토리묵을 수시로 먹는다.
  설사에는 까서 말린 도토리를 분말하여 약처럼 복용한다.
  도토리 알맹이를 쪄서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장이 튼튼해지고 설사를 다스린다고 한다. 또 어린 도토리는 피를 잘 돌게 하여 소변을 이롭게 하며, 치질을 다스리고 하혈을 멈추게 한다.   도토리나무의 껍질을 달여먹으면 충과 대하증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다.
   이것이 토종
   우리 나라 산간지방 어디를 가더라도 도토리는 흔하게 구할 수 있지만 강원도 철원은 특히 도토리가 많이 나는 곳이다.   우리나라산 도토리는 알이 동그랗고 같은 부피라도 속이 꽉 차 있어서 무게가 훨씬 더 나간다. 또한 색깔은 옅은 검회색으로 선명하며 윤기가 있다. 그리고 맛을 보면 도토리 고유의 냄새와 떫은맛이 강하다.
  반면 외국산은 대체로 알이 길쭉하고 색깔이 검은 편이며 오랫동안 보관하는 도중에 퇴색이 되어 선명한 빛이 나지 않는다. 또한 도토리 고유의 떫은맛과 향기가 덜하고 이상한 약품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다.

  ***참고자료
  1.{신토불이}, 농협,(핸드북)
  2.{장터순례},이철호, 도서출판 유림
  3.{민족문화대백과}
  4.{약용음식물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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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사과(능금:임금)

  마술의 과일

  사과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따 먹은 금단의 열매로 유명하다. 또한 물리학자 뉴톤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처럼 에덴에서부터 뉴튼까지 함께 했을 정도로 인간과 친한 과일이 바로 사과이다.
  사과의 재배역사는 아득히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부유럽지방에 있었던 호서시대(호서시대)의 유물 중에도 사과의 흔적이 출토되었다.   사과나무의 원생종은 유럽, 아시아 및 북아메리카 내륙에 대략 25종 내외가 자생하는데 현재 재배되고 있는 품종은 유럽과 서부 아시아에 분포된 원생종 중에서 개량된 것이다.
  사과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재배되었고 로마사람들에 의하여 유럽 각국에 보급되었다. 그리고 품종의 개량은 주로 유럽의 중부 이북지방에서 이루어졌으며 17세기에는 미국에 전파되어 오늘과 같이 대량 재배되기에 이르렀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사과를 '마술의 과일'이라고 불러 왔다. 또 독일에서는 '밤에 먹는 사과 한 개는 의사를 멀리 하게 한다'는 말이 전해 온다. 이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만큼 사과는 여러모로 우리 몸에 이로운 과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1884년부터 외국 선교사를 통하여 각 지방에 몇 그루씩의 사과나무가 들어와 재식했으나 성공한 예는 별로 없었다. 대부분 관상용으로 심다가 그후 1901년에 윤병수라는 사람이 미국 선교사를 통하여 다량의 사과묘목을 들여와 원산 부근에 심은 것이 경제적 재배의 시초이다.

   성분

   사과에는 사과산, 구연산, 탄닌산, 비타민 A,B,C 등 유효성분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특히 사과100g 중에는 110mg의 칼륨이 들어있다. 이 칼륨은 고혈압 발생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즉, 고혈압은 식염에 의해서 많이 유발되는데 칼륨을 다량 섭취하게 되면 식염의 피해를 최소화 한다는 것이다.
  '하루 1개의 사과를 먹으면 의사가 할 일이 없어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사과는 인체에 유효한 여러가지 성분을 지녔다. 이러한 유효성분들은 피부의 윤기와 탄력을 지키는데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피로의 원인이 되는 젖산의 분해를 촉진시켜 피로를 해소한다.
  수년 전 일본의 한 과학자는 '사과가 치아의 오염을 없앨 수 있다'는 학설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를테면 양치질을 하는 목적은 무엇보다도 치구를 제거하는 것인데 사과의 섬유질이 세균의 온상인 치구를 제거하는데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치구는 일명 '프라그'라는 것으로 충치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사과에는 다량의 식이섬유가 들어 있다. 예컨데 수용성 식이섬유인 펙틴, 불용성(불용성)섬유인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가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서 수용성의 펙틴은 콜레스테롤치를 내리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불용성의 셀룰로오스나 헤미셀룰로오스는 변비를 해소하고 대장암을 해소한다.이러한 식이섬유는 사과 뿐만 아니라 콩류, 야채류 등에도 풍부하게 들어있지만 그 산뜻한 맛을 즐기면서 섭취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사과가 으뜸이다.   이밖에도 사과는 식생활에서 빚어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작용을 한다.
동물성 단백질을 과다섭취함으로써 발생되는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데 사과가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쓰임새 

  사과는 여타의 과일처럼 주로 생식한다. 조리법이 많이 개발되지 않아서 고작해야 쥬스로 만들어 먹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사과는 날것 그대로 먹어도 특유의 맛과 향이 있기 때문에 굳이 달리 제조하여 먹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날것으로 먹을 때 풍부한 영양소도 가장 많이 섭취할 수 있다.
  사과는 청량감과 산뜻한 맛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적된 피로를 풀어주고, 식욕을 증진시키며, 설사, 변비, 소화불량, 고혈압 등에 좋은 과일로 알려져 있다. 병문안을 갈 때 사과를 사들고 가는 목적도 여기에 있다.
   또 사과를 많이 먹으면 혈색이 좋아지는 등 미용식으로도 아주 적합하다. 사과가 많이 나는 지방의 여성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다. 특히 사과는 변비증에는 쾌변을 촉진시키는 반면 설사일 경우에는 이를 멈추게 하는 이중작용을 하기 때문에, 아주 이상적인 정장제라고 할 수 있다.
  *변비에는 매일 밤 잠자기 전에 사과를 1개씩 먹으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사과를 건조시켜서 가루로 만들어 약처럼 먹으면 쾌변이 촉진되는데, 이것은 서양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설사나 소화불량에는 껍질을 제거한 사과를 갈아서 1회에 100g 내지 300g 가량을 하루에 5회 정도로 나누어 먹으면 좋다. 사과를 갈아 물에 희석해서 먹고 배를 따뜻하게 하는 방법도 괜찮다.
  *어린 쑥의 연한 잎을 뜨거운 물로 살짝 데친 후 하룻밤쯤 물에 담가 두었다가 즙을 내어, 여기에 사과 1개와 귤 1개로 만든 쥬스를 섞어 매일 아침 마시면 뇌출혈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 하이킹이나 등산을 할 때 사과를 자주 먹으면 갈증도 해소되고, 사과만으로도 능히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두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이나 회복기의 환자에게는 사과즙이 효과적이다. 
   {버몬트의 민간요법}에 보면, '밤에 땀이 날 때, 자기 전에 사과초를 몸에 바르면 땀을 막을 수 있다'는 기록이 있다.   {식료본초}에는 '사과는 중초의 모든 허약한 것을 보하고 비(비)를 화(화)하게 만든다. 음식을 급히 먹고 체했을 때는 사과즙을 먹으면 좋다'는 구절이 실려있다. 

  이것이 토종 

  외래종 사과가 들어오기 전에도 우리나라에는 능금(임금)이라는 재래종 사과를 재배해 왔다. 지금은 외래종 사과에 밀려 거의 재배되지 않아서 그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지금도 두메산골 어디쯤엔가 몇 그루 남아서 끈질기게 종자를 보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장에서 사과를 구할 때 소비자들은 보통 색이 깨끗하고 겉모양은 반들반들한 것을 고르는데 이런 사과는 일반적으로 봉지를 씌워 익힌 것으로 영양과 맛은 신통치 않다.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익혀 당분과 비타민 함량이 높은 사과는 보통 외피가 거칠다. 특히 조생종인 연두색 사과는 전체적으로 연두빛이 고루 나는 것이 잘 익은 것으로 특유의 새콤 달콤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연홍색의 쓰가류 종류는 전반적으로 노르스름한 바탕에 엷은 홍색의 줄무늬가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   붉은 빛이 짙은 사과는 너무 익었거나 착색제(에스렐제)를 사용한 것이라 푸석푸석하고 맛이 없다. 후지 사과는 밑부분에 붉은 빛이 도는 것이 맛이 있다.

   *** 참고자료
  1. {약이 되는 식품} 
  2.월간{식품과 건강} 1991.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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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잣 

  우리나라의 특산물

  잣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옛날 중국의 진나라가 멸망할 때 많은 궁녀들이 난리를 피하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는데, 먹을 만한 것이 별로 없어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이 때 그들 앞에 신선이 나타나더니 근처에 잣나무 숲이 있음을 알려주고는 그것을 따먹도록 했다. 그래서 궁녀들은 신선이 가르쳐 준대로 잣을 따먹으며 지냈더니 배고픔도 덜 수 있었고 얼굴에는 윤기가 흐르며 늙어서까지 머리가 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화에서 등장하는 잣은 우리나라산과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진짜 잣나무는 우리나라 북부와 중부의 산중턱이나 골짜기 사이의 기름진 땅에 자생하거나 또는 재배된다. 세계적으로 잣이 분포하는 곳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만주, 시베리아, 아무르 지방 등이지만 원산지는 우리나라다.   잣은 한랭한 곳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잘 자란다. 땅에 습기가 있고 부식물이 많으며 모심이 깊어야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자라는 곳은 압록강 유역으로, 그 면적이 무려 22만ha에 달한다.  백자, 송자, 해송자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잣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잣나무의 여문 씨를 말하는데, 솔방울처럼 생긴 굳은 껍질 속에 들어 있다. 잎은 바늘 모양으로 5개씩 뭉쳐난다. 따라서 학술적으로 정의하면 잎이 5개씩 모여서 나는 소나무류를 합하여
잣나무류라고 한다. 그래서 잣나무를 오엽송이라고 한다.   잣나무는 암수가 한 그루로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 나는 잣나무류에는 잣나무, 눈잣나무, 섬잣나무 등이 있다. 눈잣나무는 잎이 짧아서 주로 7cm 미만이며 섬잣나무는 종자에 날개가 있는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보통 잣나무의 경우 종자에 날개가 없으며 길이는 15mm, 폭은 10mm, 두께는 7mm 정도이다.   잣나무의 꽃은 5월경에 피며 10∼11월경에 열매가 익는다. 이렇게 오랫동안 꽃이 피고 진 잣나무 중에서는 밑둥의 지름이 15m, 높이가 30m에 달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수령은 300∼500년 가량 된 것도 많다. 

  성분

  잣은 기름기가 많아 그 맛이 고소하다.
  잣은 지방 70% 정도, 단백질 16%, 탄수화물 11.7%, 각종 비타민 및 아연, 동, 니켈 등의 미량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철, 인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올레산, 리놀산, 리놀레인산 등의 불포화지방산이 많아서 혈압을 내려주며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 또, 이러한 불포화지방산은 콜레스테롤과 같은 혈액 속의 노폐물을 억제하여 동맥경화 및 중풍을 예방하고 정력을 왕성하게 한다. 잣은 칼슘보다는 인의 함량이 많아서 산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잣은 예로부터 자양 강장제로 유명할 뿐 아니라 심기를 보강해주고 기력을 높여주며 식은땀을 멎게 해주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비위도 튼튼하게 해주고, 눈과 귀를 밝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뇌신경 쇠약에도 효과가 있다.
  옛 의서에는 잣의 효능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명의별록}을 보면 '잣은 신경마비류의 질환, 한기, 허기를 다스리고, 허약한 몸을 보해주며, 오장을 살찌게 하며, 피부를 윤택하게 해준다'라고 적혀 있다.
  {본초강목}에는 '잣은 폐를 윤하게 해주고 기침을 다스린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쓰임새 

  잣은 주로 약용 및 식용으로 쓰이는데 전통음료의 감미료로도 많이 쓰인다.
  기운이 없거나 입맛을 잃었을 때, 또는 병중이나 병후 회복기에 잣을 곱게 갈아 뭉근한 불에 은근히 끓여 잣죽을 만들어 먹으면 좋다. 또한 수정과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대용차를 마실 때 잣을 서너 알 띄워서 함께 먹는 것도 독특한 운치가 있다.
  잣을 약용으로 쓸 경우에는 주로 볶아서 사용한다. 한방의학에 의하면 '잣은 성질이 온(온)하여 오장의 기운을 따뜻하게 하고 허약함을 도와주며 기의 운행을 원할하게 한다. 또한 독이 없어 부작용이 거의 없고 맛은 달다'고 한다.
  잣은 칼로리가 높은 식품일 뿐만 아니라 빈혈에도 좋은 식품이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하루에 60∼80개 정도의 분량이 적당하다. 또 잣은 봄이 지나면 영양가가 떨어진다는 사실도 알아둘 필요가 n있다. 민간요법으로 기침이 날 때 잣과 호두를 물에 개어서 먹는 방법이 있다
  잣 뿐만 아니라 잣나무의 잎도 한약재로 쓰이며 목재는 고급 가구재로 쓰인다. 잣잎은 해독작용을 하며 신경통도 낫게 한다. 잣잎은 봄철에 나는 것을 쓰는데 새순을 잘게 썰어 날마다 밥 먹기 전에 술을 약간 넣은 따뜻한 물에 타서 8g 정도씩 먹는다. 잣잎의 원래 맛은 소나무 이파리처럼 떫어서 먹기가 힘들지만 계속 먹다 보면 향긋한 맛에 길이 들어 먹을만하게 된다. 잣잎을 이렇게 복용하면 대부분의 잔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다이어트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처럼 잣은 중요한 한약재로서 변비, 마른기침, 고혈압, 불면증, 정력 감퇴 등에 탁월한 효과를 내며 피부 미용제로도 손색이 없다. 건강 장수식품으로서 잣을 일반 가정에서는 쌀과 함께 죽을 쑤어 먹으면 좋다.   이밖에도 잣은 맥주나 양주 등의 술안주로도 많이 사용되며 봄이 지나면 영양가가 떨어지므로 껍질째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토종 

  잣은 그 자체가 우리나라의 특산 토종이다. 비슷한 나무가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비슷할 뿐이지 우리가 말하는 잣과는 다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잣은 우리나라 고유의 수종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잣을 한자로 적을 때 잣 백으로 적는데 이는 우리 잣을 표기하는 것이 아니고 중국의 비슷한 수종을 지칭하는 말이다. {훈몽자회}에 의하면 '백'은 측백나무를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당나라 때의 {해약본초}에서는 잣의 생산지를 신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명나라 때의 {본초강목}에서도 '신라송자'라고 칭하고 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패사} 라는 고서에는 '신라의 사신들이 오실 때마다 잣을 많이 가져왔으며 이것을 고관들의 집에 선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미 이 때부터 중국인들은 우리나라산 잣의 질을 인정하고 귀하게 생각했다는 증거이다. 아니면 당시 잣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고유한 토종이었다가 이후에 중국에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잣나무는 세계적으로 그 질의 우수성을 인정 받아 왔다. 이것은 잣나무가 우리의 기후 풍토에 적합한 나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일찌기 중국의 여러 고서에도 우리나라산 잣나무를 칭찬한 기록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잣은 고유의 토종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잣나무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잣을 유실수로 따로 재배하기도 하지만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 않아서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잣은 주로 우리나라의 한강 이북 지방에 많이 분포하는데 특히 가평군
일대에 많이 난다. 가평의 특산물 하면 으례히 잣을 떠올릴 정도다.   근래에는 중국산 잣이 다량 수입되고 있는데 이것은 대체로 열매가 굵지만 윤기가 떨어진다. 또한 씨눈이 그대로 붙어 있고 먹을 때 바삭바삭한 느낌이 있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이에 반해서 토종잣은 중국산에 비해 윤기가 나고 잘더라도 크기가 균일하다. 또한 씨눈이 붙어있지 않고 먹을 때 끈기가 있으며 뒷맛이 고소하다.

  *** 참고자료
  1.{약이 되는 식품}
  2.{약용음식물백선}, 보건신문사
  3.월간 {식품과 건강} 92.2
  4.{한국식품사전} 박원기, 신광출판사
  5.{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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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호두

  사람의 머리를 닮은 고급 과일

  예전엔 호두알 두개를 손에 쥐고 '달그락 달그락' 하는 소리를 내고 다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손때가 새까맣게 묻어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호두를 깨뜨려서 속살을 파먹는 것도 재미있는 일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일은 호두의 모양이 신기할 정도로 사람의 머리와 닮았다는 점이다. 우선 딱딱한 껍질 모양을 보면 사람의 머리뼈를 닮았고, 그것을 깨고 난 뒤에 나오는 호두의 속살도 마치 사람의 두뇌와 흡사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호두를 많이 먹으면 총명해진다는 말이 전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호두는 미용제로 더 각광을 받아 왔다. 청조 말기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서태후는 늙어서 살결이 더욱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녀는 노화방지를 위해 페르시아만에서 나는 진주를 비싸게 사들여 갈아 마셨다고 한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그녀의 진짜 미용비결은 호두에 있었다고 한다. 늘상 호두죽을 애용함으로써 늙어서도 아름다운 살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두나무가 처음으로 자생한 곳은 옛 페르시아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호두'라는 말 앞에다 '페르시아'를 붙여서 'Persagn Walnut'라 부른다. 이후로 호두는 동남아시아, 중국 등지로 한 갈래가 전파되고, 유럽 서부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미국의 개척민들이 캘리포니아 일대에 옮겨 심었으며 이곳에서 급속도로 번식하여 최근에는 미국이 세계 호두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우리나라에 유입된 호두의 품종은 '동양종(Oriental Walnut)'으로 내한성이 강하여 추위에 잘 견딘다. 이 품종은 나중에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것을 서양종과 교배하여 품종개량에 성공하였고 우리나라는 이것을 역수입하기에
이른다. 만춘, 청옥, 화광 같은 품종이 바로 그것이다. 
 
  성분 
  호두에는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자양 강장의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왔다. 또한 비타민, 미네랄 등도 풍부하여 머리를 좋게 하고 살결을 곱게 해주며 두발을 검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또 이뇨작용이 있고 신장을 강하게 해주며 신경쇠약, 불면증, 기관지 천식에 좋다. 그리고 다리와 허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효능도 가지고 있다.
  {본초강목}에 의하면 '호두는 기를 보하고 혈을 기른다. 조를 윤하게 해주고 담을 없애주며 수염과 머리카락을 윤택하게 해준다. 또 종독을 흩어버린다'고 한다.
  {본초비요}에서는, '호두는 폐를 따뜻하게 하고 장을 부드럽게 해준다. 또한 천식, 요통, 심복의 모든 통증을 다스린다'고 서술하고 있다.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호두기름은 급성폐렴에 특효약이라 한다. 그리고 폐렴 뿐만 아니라 기침이 심한 독감에도 탁월한 효과가 인정되고 있다.

  쓰임새

  호두는 주로 식용 및 약용으로 쓰인다. 영양가가 풍부하고 소화 흡수가 잘 되므로 중병을 앓고 난 환자의 회복제로 많이 쓰이며 불면증 환자나 신경쇠약자에게도 좋다.
  호두를 식용할 때는 보통 죽으로 만들어서 먹는다. 호두 10개의 속살과 쌀 1컵을 물에 잘 불려서 함께 섞은 후에, 이것을 으깨어 물 6컵으로 걸러서 냄비에 담고 끓여서 1컵 분량의 죽으로 만들면 된다.   이 호두죽은 몸이 허약하거나 정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좋다. 그러나 과식하면 소화기능에 장애를 주어 속이 메스꺼워지는 수도 있으므로 양을 잘 조절해야 한다.   호두죽보다도 더욱 좋은 것이 바로 호두홍조죽이다. 이것은 호두죽에다 설탕과 '홍조'라는 한약재를 첨가한 것으로 소화를 도와주는 역할과 함께 보혈 작용도 한다.
  이 홍조죽을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차례씩 한 달간만 꾸준히 복용하면 비만증이 없어지고 살결이 고와지며 머리카락이 검어진다고 한다. 또한 탈모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고, 이뇨를 도우며 변비를 없애주는 등 대부분의 성인병과 부인병 예방에 효험이 있다. 특히 이 음식은 피부에 영양을 보충해주고 깨끗이 해주는 효능이 있기 때문에 여성의 미용제로서 아주 적합하다.
  죽을 쑤어먹는 방법은 다소 번거롭기 때문에, 하루에 호두 2알 정도를 꾸준히 먹어도 부드럽고 윤기있는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호두는 알칼리성 식품으로 여러모로 좋지만, 알칼리성 식품으로 하루에 세 알만 먹어도 하루에 섭취해야 할 지방분은 충분하다. 또 냉한 체질의 사람은 다소 많이 먹어도 좋지만, 몸에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별로 적합하지 않다. 특히 호두는 지방이 많은 고열량 식품이기 때문에 겨울철 추위를 이기는 데 좋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에서 호두의 본고장은 역시 천안이다. 열차를 타고 가다가 천안역에 이르면 으례히 '자, 천안의 명물 호도과자요!'하고 외치며 지나가는 상인의 목소리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천안에 호두가 심어진 것은 고려시대의 일이다. 당시 이 고장 출신 고관이었던 유청신이라는 사람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호두를 들여와 이 고장에 심었으며 이후 몇 백년 동안 번식하면서 천안의 토종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천안지역에서 생산되는 호도의 양은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절대량이 부족하여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 어려운 까닭에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수입되어 왔다. 최근에는 중국산 호두 수입도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미국산이 대부분이다.
  호두는 겉모양만 보고는 외국산과 국산을 구별하기가 무척 어렵다. 굳이 차이점을 들자면 미국산은 우리나라산보다 알이 굵고 모양이 공처럼 둥근 편이며 표면에 골이 깊지 않고 잔주름이 많이 있다. 이에 반해 국산은 모양이 약간 길쭉하며 잔주름이 적은 대신 골이 깊게 패여 있다. 크기도 대체로 미국산보다는 작은 편이다. 또한 호두 고유의 맛을 담뿍 담고 있어 고소하고 담백하며 과육의 충실도가 높다. 중국산의 경우는 모양이 일정치 않으나 럭비공처럼 긴 것이 다소 섞여있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껍질을 쪼개보면 국산은 속살이 노랗게 윤이 나지만 수입산은 색깔이 검은 편이다. 가격은 수입품이 국산보다 30%가량 싸다. 그러나 맛과 질은 당연히 국내산보다 떨어진다.

   *** 참고자료
  1.{약이 되는 식품} 
  2.{동아일보} 92.10.31
  3.{약용음식물백선}, 보건신문사 
  4.월간 {민의약} 89.8월호
  5.{신토불이} 농협(핸드북)   6.{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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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삼물류>

  38.명태

  동해안의 보물

  명태를 중요한 생선의 하나로 여기고 다양하게 조리하여 먹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이웃나라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서도 명태가 잡히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명태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의 옛 의서에도 명태에 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 민족만이 유일하게 명태를 즐겨먹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 확실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어느 민족이건 그 민족만 특별하게 먹는 음식이나 식품이 있게 마련이므로 그저 어찌어찌 하다보니 명태도 우리 민족 고유의 생선이 되었다고 가정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기름기 적고 담백하며 시원한 맛이 우리 민족 고유의 식성과 잘 맞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조상들이 명태를 즐겨 먹어온 이유를 능히 짐작할 수는 있다.   이렇게 명태를 즐겨 먹었던 까닭에 '맛좋기는 청어, 많이 먹기로는 명태'라는 말도 생겨날 정도였다. 즉, 명태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가장 많이 먹어온 생선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영양가도 풍부하며 어느 한 군데도 버리지 않고 다 먹을 수 있는 생선이라는 점에서 볼 때 명태는 우리 민족과 가장 친근한 생선이다. 그래서 명태는 이름도 많다. 생명태를 선태라 하고 망태, 간태, 북어, 춘태(이상 자란 명태)왜태, 애태, 애기태, 노가리(이상 명태새끼)건태, 동태, 북어(이상 가공한 명태)등 20여 가지가 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한류성 물고기인 명태는 우리나라 동해안 북부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명태의 주된 산란장은 우리나라 원산만 부근과 북해도 서쪽 연안이며 1∼2월에 가장 활발하게 산란을 한다. 산란을 할 때에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어부들이 그물로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몽롱하게 취해버린다. 산란 시각은 자정부터 새벽까지이고 바람이 자거나 부드러울 때 주로 산란한다.
  그러나 산란이 끝난 명태는 잔뜩 굶주린 승냥이처럼 작은 물고기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먹는다. 이처럼 잔인할 정도로 먹어치우는 바람에 정어리, 멸치, 도루묵, 오징어 등은 숨바꼭질을 하듯 명태에게 쫓겨다닌다. 그리고 해삼, 조개, 털게 같은 것들은 아예 집을 버리고 도망쳐버리기도 한다. 산란을 위하여 명태가 연안으로 찾아들면 그때까지 평화롭게 살던 작은 물고기들은 이같이 비상사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명태는 대구와 그 생김새가 비슷하다. 그리고 생김새가 비슷한 만큼 왕성한 식욕에 있어서도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명태는 대구떼를 만나면 형님, 아우 하듯이 함께 몰려다니며 놀라운 식욕을 발휘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상어새끼와 돌자갈, 심지어는 자기 새끼까지도 잡아먹는 대구가 제 덩치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명태는 잡아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명태가 지닌 특유의 독성 때문으로 보인다.
  명태와 대구는 이처럼 생김새나 식욕에 있어서 사촌쯤 되는 관계이지만 자세히 보면 명태는 대구보다 몸통이 조금 작고 날카로운 이가 촘촘하게 나 있다. 또한 명태는 입을 다물었을 때 아랫턱이 윗턱을 덮고 대구는 윗턱이 아랫턱을 덮는다. 그리고 명태는 턱 아래에 짧은 수염이 하나 나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명태와 대구를 구분할 수 있다.
  명태는 3∼4살쯤 되면 다 자라서 성어가 되는데 암컷이 수컷보다 크며 숫자도 많다. 다 자라면 길이 35cm쯤 되고 수명은 8년 이상이라고 한다. 명태는 회유성이 강한 물고기로 원산만에서 북해도 서안까지 회유하기도 하는데 회유속도도 매우 빨라 하루 10마일을 회유한 기록도 있다. 그러나 완전한 생활상을 추적하기가 어려워 자세한 생태는 알기가 어렵다.
  명태는 장기간 보관을 해놓고 필요할 때 먹을 수 있는 생선이다. 그래서 잡아올린 명태는 일단 건조를 시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명태 말리는 방법은 세계에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적이다. 명태는 주로 겨울철에 많이 잡아올리는데 이 때 동해안에 인접한 지방에 가면 어디서든 해안에 설치된 명태 건조장을 구경할 수 있다. 말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건조장에다 갓 잡아온 생태를 걸쳐서 냉동건조시킨다. 그러면 밤에는 명태 세포 사이에 있는 수분이 얼어붙었다가 낮에는 얼음이 녹으면서 천천히 건조된다. 이처럼 밤에 얼었다가 낮에 녹는 현상이 오랫동안 반복되면 명태살이 졸아들었다 부풀었다 하기 때문에 바짝 말라도 겉이 부드럽고 누르스름한 빛을 띠게 된다.
  이렇게 말린 명태를 황태, 또는 더덕북어라고 한다. 살이 황금빛이 나고 제맛을 내는 황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하 20도 이하의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한겨울 내내 명태를 잠재워야 한다. 명태가 우리 민족의 식성에 맞는 물고기로 각광을 받아온 것은 단지 명태 자체의 영양분이나 맛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한겨울의 모진 추위 속에서 뿜어낸 어부들의 입김이 서리고 서렸기 때문에 '많이 먹기로는 명태'라는 말이 성립되었는지도 모른다. 

  성분 

  명태의 주성분은 단백질이다. 그리고 함유량은 쇠고기, 계란, 우유와 거의 비슷한 정도이다. 명태육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조성은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이 고루 들어 있어 질적으로 매우 우수하다.
  또한 명태육에 들어 있는 지방의 함량은 적지만 간장에는 지방을 많이 축적하고 있다.
  창란젓과 명란젓도 영양가가 대단히 높다. 우선 지방의 함량을 보면 명란젓은 3.2%, 창란젓은 3.6%로 두 가지 다 팔미트산, 올레산, EPA, DHA의 조성비가 높은 영양식품이다.
  특히 명태의 간에는 지질 함량이 많아 46.2%에 이르며 이들의 지방산 조성은 포화산으로는 팔미트산, 불포화산으로는 EPA, DHA의 함량이 많아 건강식품으로 권장할 만하다.

   쓰임새

   명태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이 모두 먹을 수 있는 생선이다. 살은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내장은 창란젓을, 귀세미로는 귀세미젓을, 알은 명란젓을 담가 먹으며 눈알은 구워서 술안주로 먹는다. 고니는 그대로 빼내어 국을 끓이고 생살을 짓이겨서 어묵을 만들기도 한다. 피문어와 홍합과 파를 함께 넣어서 '건곰'이라는 국을 끓이는데 이것은 노인이나 병후의 환자들에게 좋은 보신음식이기도 했다.
  이러한 우리나라 동해안의 명태는 각종 독에 중독되었을 때 최고의 해독제이기도 하다. 날로 늘어가는 농약중독, 공해독, 연탄가스 중독, 독사에 물렸을 때, 미친개에게 물렸을 때 등 어디든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명태의 약성을 이와 같이 새롭게 소개한 {신약}에 의하면 명태는 독사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뿐만 아니라, 연탄가스에 중독되거나 그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에 걸린 사람도 깨끗이 치료한다. 그리고 독사나 미친개에게 물렸을 때, 핵독이나 각종 공해독에 신비한 약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명태가 눈병에 좋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같은 효능이 사실로 입증된 사례도 있다.
  옛날에 함경북도 삼수갑산 같은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잘 보이지 않은 풍토병이 많았다 한다. 이 풍토병에 걸린 사람들은 겨울 동안 가까운 해변이나 어촌으로 내려가 머물면서 명태 창자 속에 들어있는 간유를 빼먹어 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이것이 토종

  요즈음 우리나라 동해안에서는 명태가 별로 잡히지 않는다. 주로 먼 북양에서 잡아오는 명태가 대부분이다. 이런 명태는 덩치는 크지만 오랫동안 물속에 담가오므로 살속의 간맛이 모두 빠져버려 싱겁고 퍼석퍼석해서 별로 맛이 없다. 반대로 동해안에서 잡은 명태는 크기는 작아도 짭짤하고 구수한 맛이 나는 데다 양념을 잘 흡수하므로 가장 질 좋은 것으로 친다.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잡은 명태를 '지방태'라고 하여 으뜸으로 치는 것이다.   이런 토종 명태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이유는 최근 동해안의 수온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명태가 가장 많이 잡히기로 유명한 고성군 거진 부근의 평균 수온이 최근 10oC를 옷돌아 명태가 살기에는 너무 따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70년대 이후 성행한 저인망 어선이 명태새끼인 노가리까지 훑어내 자원이 고갈된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참고자료
  1. 최진규, 최운림 [토종의 재발견] 월간[시사춘추]
  2.월간 {민의약} 90.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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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김

  식욕 돋구는 장수식품

  우리의 주식은 쌀로 지은 밥이다. 그리고 이 밥을 먹을 때는 국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반찬이 곁들여진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적인 밥상에는 기본메뉴라 할 수 있는 김치를 비롯하여 각종 나물, 생선, 육류 등이 지역적 특성과 풍토에 따라 오르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밥과 함께 곁들여 먹는 반찬의 가짓수는 사람 수 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반찬 중에서 김처럼 밥맛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도 없다. 그래서 밥집이나 여염집 밥상에는 늘 구은 김이 오르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빳빳한 김에 싸서 먹는 맛은 일품이다. 또한 김과 밥의 조화는 '휴대용 정식'이라 할 수 있는 김밥에서 절정에 달한다.
  밥과 함께 단무지나 시금치, 쏘세지, 달걀후라이 등을 넣고 김으로 말아서 적당한 크기로 썰어놓은 김밥은 산이나 들, 그리고 여행길 등 어디서든 간단하고 맛있게 주린 위장을 채울수 있는 간편한 휴대식이다. 여기서 '간편함'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김이다.
  김은 홍조류에 속하는 해초를 일정한 크기로 만든 건조품이다. '해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일본식 한자표기이며,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나라의 파래를 지칭하는 것이다.
  김은 북태평양에 접한 해안 어디든 널리 분포되어 있다. 알래스카 만에서 캘리포니아주까지 북동부에서 주로 서식하는데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시베리아에서 왔을 때부터 이미 몇천년 동안 이용해왔다고 인류학자들은 보고하고 있다. 즉 이들 인디언들은 음식에 소금을 넣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체내의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 김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먹었던 것은 오늘날과 같은 가공된 형태의 김은 아니었다. 해초 상태의 천연김을 줄기채로 그냥 먹었을 것이다.   천연산 김은 우리나라 남해를 비롯하여 일본 연해 등 농도가 높은 곳에도 약 20여 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것이 양식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가공된 형태의 김으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에서 중요한 식품의 하나로 인식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 김 생산을 가장 대규모로 산업화한 나라는 일본이고 중국에서도 일찌기 김 양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김 양식의 역사는 외국에 비해 짧은 편이다. 문헌상에는 서기 1424년 발간된 {경상도 지리지}에 최초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경상도 하동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1700년 경에 섬진강 어구에서 조개를 채취하고 있던 한 할머니가 나무토막에 붙어있는 김을 발견하고 떼어먹어 보았더니 맛이 독특해서, 그후 대나무를 물 속에 박아 인공으로 김을 착생시킨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 {조선의 수산}이라는 문헌에는 17세기 말에 전남 완도에서 최초로 양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전남 광양군에서는 4천여 년 전에 이미 김을 귀중한 토산물로 여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김 양식의 역사에 대하여 문헌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근대적인 방법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오래 전에 지역에 따라서 김이 양식되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즉, 옛날에 인디언들이 소금기 보충을 위해서 천연김을 먹었던 것처럼 우리 조상들도 아주 오래 전부터 해안지역마다 나름의 방식대로 김을 채취해 먹었을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김양식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늦어도 조선 중기 무렵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오랜 역사를 거쳐 김은 이제 우리 밥상에서 떠날 수 없는 일상식품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아울러 높은 영양가를 지닌 식품으로 널리 알려지기에 이른 것이다.
   성분
   마른 김 한 장은 달걀 두 개분의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다. 그런데 김은 채취한 시기에 따라 영양분의 함량이 조금씩 다르다. 일반적으로 겨울철에 난 것이 단백질의 함량이 높아서(30∼35%) 질 좋은 것으로 취급된다.   건조품인 김의 주성분은 당질과 단백질이다. 그리고 다른 곡류나 채소류에 비해서 단위당 함유량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 곡류에 비해서 먹는 양이 적으므로 단백질원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 대신 김에는 칼슘, 인, 철분, 칼륨을 비롯하여 마그네슘, 아연, 망간, 코발트, 니켈, 구리, 요오드 등 미량의 무기질이 포함되어 있어서 독특한 맛과 향기로 식욕을 돋구어 주고 소화흡수를 촉진시켜 준다.

  쓰임새

  가장 질좋은 김은 빛깔에 광택이 있고 향기가 진하며 불에 구웠을 때 청록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보통 밥을 싸서 먹거나 가루를 내어 떡국, 국수 등에 넣어 먹는다.
이밖에도 김무침, 김조림, 김장아찌, 김튀김, 김국 등의 입맛 돋구는 요리가 있다.
  김을 구울 때에는 두 장씩 겹쳐서 낮은 불에 서서히 가열시켜야 한다. 김을 잘못 구우면 오그라들 뿐만 아니라 영양 손실도 많게 된다. 두 장을 겹쳐서 구울 때도 한쪽만 불을 쬐는 것이 좋다. 또한 김을 구울 때 소금을 너무 많이 쓰면 맛을 떨어뜨리고 건강에도 해롭다고 한다.   한편 김에는 피코에리트린이라는 홍자색의 색소와 피코시안이라는 청색 색소 및 클로로필이 포함되어 있는데 피코에리트린은 가열됨으로써 청색인 피코시안으로 변한다. 따라서 김을 불에 쬐면 적자색이 없어지면서 녹색을 띠게 되는 것이다.
  또 김을 오래 보관해두면 자색을 띠게 되는데 이것은 피코시안 및 클로로필이 분해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응은 김을 직사광선 아래 두거나 습기를 머금으면 더 빨리 일어난다. 그러므로 김을 보관할 때는 밀봉하여 어두운 곳에 두어야 한다.
  식욕을 돋구어 주는 김의 특유한 향기는 김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김에 혼합되는 미생물의 분해작용으로 인한 것이라 한다.

  이것이 토종

  '완도 하면 김, 김 하면 완도'라 불릴 만큼 완도는 김의 고장이다. 지금은 김 생산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사정이 다르지만 지난 70년대만 하더라도 완도에서 생산되는 김의 양은 전국생산량의 70%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도 연간 소득이 수백억대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김은 질도 좋아서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고, 국내수요가 대량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소득이 높아져서 한때는 '개가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였다.
  김 양식법이 근대화되면서 우리나라 남해안 일대에서는 어디든 김을 생산하게 되었고 생산량과 수요가 동시에 급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규모 간척사업과 해수 오염으로 김 양식장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김 생산이 줄어들 경우,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중국 등지에서 김을 수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바다에서 나는 우리 김을 먹기 위해서는 바다를 오염으로부터 지키는 일이 시급하다 하겠다.

  ***참고자료
  1.심상룡, {약용 음식물 백선}, 보건신문사
  2.{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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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미역

  산후 조리에 빠질 수 없는 회복식

  아기를 낳은 부인들은 왜 미역국을 먹을까? 이것은 단순히 먼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관습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이러한 관습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미역에는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칼슘의 함량이 많다. 이러한 칼슘 성분은 뼈와 이를 튼튼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산후 자궁수축과 지혈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해산날이
가까워지면 미리 미역을 사다가 놓는데, 이때 장사꾼이 미역을 그대로 주는가 꺾어서 접어주는가에 따라 순산을 점쳐보는 습속도 있다. 미역을 꺾어주면 그 미역을 먹을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난산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모가 먹을 미역은 꺾지 않고 새끼줄로 묶어서 주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회사에서 해고 당하는 일을 흔히 '미역국 먹었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아마 미역의 표면이 점성 물질로 덮여있어 미끈거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시험과 승진을 앞둔 사람들은 미역국을 기피하기도 하지만 미역을 많이 먹으면 신진대사가 잘 되기 때문에 머리가 맑아져서 뇌의 활동도 활발하고 성적도 오히려 좋아진다. 그러므로 재수없다는 속신 때문에 미역을 기피할 필요는 전혀 없다.   미역은 갈조류 곤포과에 속하는 해조로, 우리나라 동남해안에서 많이 난다. 외해에 면한, 또는 외해에 가까운 바위나 돌에 착생하며, 만 1년생 해초다.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가을에서 겨울 동안에 자라고 봄에서 초여름 동안에 유주자(무성포자)를 내어서 번식한다. 유주자는 곧 발아하여 현미경적인 배우체(유성세대)로 되어서 여름을 난다.
  미역은 양식이 성해지자 자연산 미역은 거의 쇠퇴하게 되었다. 미역은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고 있으나 양식은 동해남부연안과 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해안에서 가장 성행하고 있다. 현재는 가격유지를 위해서 생산을 억제하고 있는 실정이라서 생산량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수요만 증가하면 생산량은 급격히 늘릴 수 있다.
  미역을 비롯한 해조류는 산이나 들야채에서 얻을 수 없는 영양을 주는 것 외에도 그 깊고 신비한 푸른빛과 매끄러운 표면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촉감, 그리고 신선한 향기로 먹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준다.   미역을 즐겨먹는 사람들은 주로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들이다. 반면에 서양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역을 언제부터 먹게 되었는지 문헌상의 기록이 없어 알기 어렵지만 식용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기 1900년 경에 나온 {고려도경}에는 '미역은 귀천을 막론하고 많이 먹고 있다. 그 맛이 짜고 비린내가 나지만 오랫동안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만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는 문종이 미역을 신하들에게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미역을 식용해온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으며 우리나라의 특산물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겨레의 출산풍습과 밀접하게 관련하여 이어져 내려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식탁의 찬거리로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성분

  미역의 주요 성분은 무기질과 각종 비타민이라 할 수 있다. 이중에서도 칼슘의 함량이 많고, 인(P)의 함량비율이 좋다. 특히 미역에는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있는데 그중에 요오드 성분은 갑상선 호르몬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갑상선 호르몬은 심장과 혈관의 활동, 체온과 땀의 조절 등 신진대사를 활발히 하는 작용을 한다. 이 요오드가 체내에 부족하면 신진대사가 완만해지고 적게 먹어도 자꾸만 살이 찌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요오드는 전신의 노화를 막아준다. 산후에는 특히 신진대사가 활발해야 하는데 이 때 미역으로 요오드를 제대로 공급해줘야 갑자기 몸이 비대해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   미역에는 또 알긴산이라는 소화되지 않는 물질이 들어있다. 이 물질은 식물섬유의 일종으로 변비를 해소하고 발암물질을 체외로 배설시켜주며 장내 나트륨의 흡수를 막아주어 고혈압도 예방한다고 한다.   한편, 미역은 지방질이 적은 저칼로리 식품으로, 다이어트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실제로 마른 미역 100g에는 지방이 1.3g정도 밖에 들어 있지 않고 그 대신 리놀산과 에이코사펜타인산(EPA), 후코스테롤 등 동맥을 부드럽게 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또한 미역에는 혈압강하작용을 하는 라미닌(laminine)이라는 아미노산이 함유되어 있으며, 혈액의 콜레스테롤의 양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다. 섬유질의 함량이 많아서 장의 운동을 촉진시킴으로써 임산부에게 생기기 쉬운 변비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그리고 자극성이 적어 자극성 음식물을 기피하는 산모에게 매우 적합하다고 하겠다.

   쓰임새

   미역은 주로 국으로 끓여 먹는다. 송송 썬 파와, 다진 마늘 한 숟가락 정도만 있으면 다른 재료 없이도 시원하고 깔끔한 미역국을 끌일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쇠고기, 홍합, 광어 등을 넣어서 끓이는 것이 상례다.
  이밖에 미역을 사용한 요리나 반찬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생미역을 잘게 썰어서 장과 기름을 치고 주물러 무치면 미역무침이 된다.
  마른 미역을 잘게 썰어 기름을 쳐서 간하여 번철 등에 볶으면 미역볶음이 되는데 고소한 맛이 난다.   생미역을 손바닥 크기로 잘라서 고추장을 넣고 밥을 싸서 먹는 것을 미역쌈이라 한다.   마른 미역을 반듯반듯하고 약간 잘게 썰어서 끓는 기름에 튀긴 것을 미역자반이라 하는데 이것은 도시락 반찬이나 술안주로 좋다.   잘게 뜯은 생미역에다 고추장, 된장, 고기, 파, 기름, 깨소금을 쳐서 주물러 물을 약간만 붓고 끓이면 미역지짐이 된다. 
  물에 빤 미역을 잘게 뜯어 양념한 고기와 한데 무쳐서 볶은 것을 냉국에 넣고 초를 친 미역찬국은 더운 여름철에 시원한 맛을 더해준다.   한편, {동의보감}에서는 미역의 약성에 대하여 '성질이 차고 맛이 짜며 무독하다. 속열을 버리고 혹의 결기를 다스리며 이뇨작용이 있다'고 하였다.
  미역의 저장방식을 옛날과 오늘이 다르다. 옛날에는 여러 포기를 겹쳐서 펼쳐, 길이 약 2m, 너비 약 15cm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서 햇볕에 건조시켜서 보관, 저장하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100℃의 물에 잠시 데쳐서 소금으로 주물러서 소금에 절여 저장하기도 한다. 소금절임은 건조미역보다 장마철에 변질하지 않아서 보관성이 높다.
  미역을 물에 담그었을 때 지나치게 풀리지 않은 것이 좋으며, 색깔을 내기위해서 황산구리를 사용한 것은 인체에 좋지 않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미역이 각광받는 식품이지만 서양은 물론 가까운 중국만 하더라도 미역은 낯선 식품이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 미역을 '신라미역' 또는 '고려미역'이라 하여 약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대부분 미역을 양식하지만 아직도 자연산 미역을 생산하는 곳도 있다. 그 예로 진도미역을 꼽을 수 있는데 이 고장에서는 바닷가 바위에 붙어 자라는 천연미역을 채취하여 말린다. 특히 진도군 조도 일대에서 나는 것이 가장 유명하다.
  또한 경남 양산 지방의 기장미역은 예로부터 유명한 이 고장의 특산물이다. 기장미역은 그 질이 워낙 뛰어나서 조선시대에는 임금에게 진상되었으며 아직까지도 그 명성이 이어져 내려온다.   그러나 미역은 우리나라 어디에서 난 것이든 우리 풍토에서 자란 토종이다. 따라서 어느것이 진품인가를 따지기 전에 다양한 가공방법을 개발하여 수요를 늘려나가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 참고자료 
  1.{민족문화대백과}
  2.월간 {식품과 건강} 91.8월호 p.27, 같은책 92.6월호 
  3.{약용음식물 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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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가자미 

  가자미 눈은 오른쪽에 치우쳐 

  가자미목에 속하는 바다물고기를 통틀어서 가자미라 한다. 한자로는 비목어라고 하는데 눈이 빗나갔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자미는 두 개의 눈이 다 머리 한쪽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눈을 심하게 흘기는 사람을 보고 '가재미눈'이라고 불렀다.   가자미는 지방에 따라서 가재미, 까재미, 가지미, 납새미 등으로 불리는데 가자미류의 물고기들은 대부분 몸이 옆으로 납작하여 타원형에 가깝다. 또한 비늘은 잘고 짙은 갈색을 띠고 있으며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가 몸길이의 많은 부분에 걸쳐있고 몸의 다른 한 쪽은 흰빛을 띠고 있다.
  가자미는 깊은 바닷속에서 사는데, 몸길이는 작은 것은 15cm 가량에서 큰 것은 3m 가까이 되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의 남부 근해를 비롯하여 일본의 근해에 분포하며 그 종류는 50여 종에 달한다. 이것들을 다시 넙치과, 가자미과, 납서대과, 참서대과 등으로 나누는데 참서대과와 납서대과는 몸이 좁고 긴 편이며, 넙치류는 왼쪽에 눈이 붙어있고 가자미과의 것들은 오른쪽에 눈이 있다.
  {자산어보}의 저자 정약전은 일찌기 가자미에 대한 상세한 관찰과 고증의 결과를 저서에 기록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이시진은 말하기를 비목어는 각각 눈이 하나이기 때문에 서로 나란히 합쳐져야 전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나라는 가자미류를 생산하고 있는데 크고 작은 여러가지 종류가 있으며 속칭도 각기 다르고 모두 각 개체가 독립해서 다닌다. 그리고 암수가 있으며 두 눈이 다 한쪽에 치우쳐 붙어 있다.'
  이처럼 정약전은 중국 사람들이 상상해서 멋대로 풀이한 것을 구체적으로 반박하였다.
  이밖에도 여러 옛 문헌에 가자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서는 대부분 가자미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기록을 반박하고 있다. 이를테면 {지봉유설}에는 '비목어는 동해에서 나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접역이라 한다.'고 하며 {전어지}에 의하면 '가자미는 동해에서 많이 나며 서남해에도 있는데, 그것은 동해에서 나는 것과는 다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예로부터 가자미는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많이 났으며 널리 식생활에 이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성분

  종류에 따라 성분 특히 지질함량에  이가 많다. 육질부의 평균값을 나타내면 대체로, 수분 76.9∼78.8%, 단백질 19.0∼19.4%, 지질 0.6∼2.2%, 당질 0.3%, 회분 1.2∼1.6% 등등이다.   가자미류에는 엘라스틴(elastin) 및 콜라겐(collagen)의 두 성분으로 이루어진 결체조직인 근육섬유가 연결되어 있다. 콜라겐은 끓이면 젤라틴(gelatin)으로 되어 용출되므로 용액이 흐리게 된다. 가자미류와 같이 콜라겐이 많은 고기는 끓이면 부드러워진다. 

  쓰임새 

  가자미는 활어로부터 냉동어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상태로 시판되고 있다. 종류에 따라 생선횟감, 건어물로 한다. 넙치류는 회맛이 좋고 참서대류는 건어맛이 좋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가자미는 허를 보하고 기력을 더하게 하며 많이 먹으면 조금 동기한다.'고 하였다.
  또한 함경도 지방의 향토식품으로 가자미식해라는 것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이것은 동해안에서 나는 노랑가자미와 관북지역의 좁쌀을 이용한 일종의 저장식으로, 엿기름과 조밥의 녹말이 당화되어 특별한 맛이 생기게 하여 밥 반찬이나 술안주로 이용한다.
  가자미식해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물좋은 노랑가자미를 내장과 머리를 떼어내고 이틀 정도 얼간을 하여 보자기에 싸서 큰 돌로 눌러놓은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토막을 친다. 그런 다음 메조밥을 되직하게 지어 마늘, 생강, 고춧가루, 엿기름가루를 섞어서 절인 가자미와 함께 항아리에 넣은 다음 꼭꼭 눌러서 삭힌다.   이렇게 일주일 정도 보관해 두면 익어서 물이 올라온다. 조밥이 다 삭으면 채를 썬 무를 소금에 약간 절여 물기를 짜고 함께 넣어둔 양념과 잘 섞어서 다시 꾹꾹 눌러 담아놓고 하루 내지 이틀 정도 지나면 먹을 수 있다.

  이것이 토종

  수입산 가자미는 대부분 냉동상태로 유통되고 있다. 따라서 무게에 짓눌린 상태에서 얼어버리므로 몸의 형태가 구부러져 있거나 굴곡이 져있다. 또한 지느러미 부분은 노란색이며 등쪽은 짙은 갈색이고, 등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에 암색 반점이 있다.
  이에 반하여 국내산은 대체로 싱싱한 선어로 유통되고 있어 체형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수입산에 비하여 약간 작으면서 길어 보인다. 그리고 암갈색 바탕에 흑갈색 반문과 유백색 반문이 산재해 있다.   또한 국내산이라도 넙치와 가자미는 모양이 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려우므로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알아 두면 좋다.   넙치는 눈이 왼쪽에 붙었으며 입의 윗턱이 눈보다 뒷쪽까지 이어져 있다. 그리고 양식산은 배의 흰부분에 검은색의 띠나 큰 반점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반하여 가자미는 눈이 오른쪽에 붙어 있는 점이 다르다.

   ** 참고자료

  1.{식품사전}
  2.{민족문화대백과}
  3.{국내산과 수입수산물의 식별방법}, 수산청,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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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갈치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칼 모양의 바닷고기

   갈치는 경골어류 갈치과에 속하는 바다물고기이다. 갈치를 칼치라고도 하는데 {역어유해}라는 문헌에 의하면 갈치를 '군대어'라 하고 한글로는 '갈티'라고 한다고 하였다. 또한 {자산어보}에서도 갈치를 군대어라 하고 있으며 속명을 '갈치어' 또는 칼치,도어라고 한다.
  이와 같은 명칭은 갈치의 생김새에서 유래한다. 갈치는 몸이 홀쭉하게 길고 얄팍한 띠모양으로 칼과 비슷하게 생겼다. 옛 신라 지역에서는 칼을 갈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일반화되어 오늘날에도 갈치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다. 한편 갈치의 모양이 칡넝쿨을 닮아서 칡'갈'자를 써서 갈치라고 한다는 설도 있으나 갈 자는 가차문자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갈치는 비늘이 없고 선명한 은백색의 빛을 띠고 있다. 다 자란 갈치의 몸길이는 대략 석 자에서 다섯 자에 이르며 입은 크고 양턱과 구개골에 강대한 이가 있어서 닥치는대로 먹어치운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갈치는 굶주릴 때는 같은 종의 꼬리를 뜯어 먹으며, 심지어는 제 꼬리까지도 뜯어먹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등지느러미는 후두부에서 꼬리까지 온 등쪽을 차지하고 있으며, 배지느러미 및 꼬리지느러미가 없고, 뒷지느러미는 피하에 묻혀 있다.   갈치는 평소에는 일본 중부 이남, 태평양, 대서양의 열대부에 서식하다가 산란기인 8,9월 경에는 얕은 곳으로 이동해 온다. 알은 부유성으로 떠 다니며 연한 등색 다. 여기서 부화된 갈치새끼는 성어와 달리 몸이 길지 않으며 머리가 길다. 이러한 갈치새끼를 '풀치'라 한다.   이처럼 갈치는 원해성(원해성) 어족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 연해, 특히 서남해에서 많이 나며 예로부터 다획성 대중어로 우리 민족들이 즐겨 먹었다. 특히 모심기철에 가장 많이 소비되었다.

   성분

   머리,내장,뼈,지느러미 등 약 35%의 폐기물을 제외한 가식부의 성분은 수분 74.8%, 단백질 18.0% 등등이다. 4∼5월에 난소가 숙성되어 지질이 많은 것이 더욱 좋은 맛을 낸다. 갈치는 흰살고기류 중에서는 비교적 수분이 적고 지질의 함량이 많은 편이다.

   쓰임새

  갈치는 주로 구이나 튀김, 조림 등으로 요리해서 먹는데 생선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말려서 먹기도 한다.   식용 외에도 피부에 있는 은백색의 가루에 침착된 구아닌의 결정을 모아서 인공진주의 원료로 쓰기도 한다. 

  이것이 토종 

  외국 바다에서 난 갈치는 몸집이 크고 머리가 굵으며 이가 강하다. 색깔은 조금 어두운 은빛을 띠고 있어 약간 거무스름하게 보이기도 하며 등지느러미가 굵고 억세며 표피는 거칠다. 또한 냉동되었다가 몸이 녹아서 풀렸을 때 안구가 노랗게 된다. 그리고 등쪽 육질 속에는 석회석(돌)이 들어있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외국산 갈치는 조리를 했을 때 등뼈가 육질과 분리가 잘 되지 않는다.   국내산 갈치는 은백색 또는 은빛을 띄고 있어 색깔부터 차이가 난다. 눈 주위가 투명하며 눈동자가 검다. 지느러미와 고깃살이 연약하고 머리와 이가 대체로 작다. 그리고 수입산에 비해 실꼬리가 비교적 길다.

  ** 참고자료
  1.{식품사전}
  2.{국내산과 수입 수산물의 식별방법} 수산청, 1992.8
  3.{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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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돔

  백 가지 물고기의 왕, 최고의 횟감

  도미를 일러 백 가지 물고기(백어) 중에 왕이라 한다. 세계적으로는 130여 종이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경사나 제사를 올릴 때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생선이다. 또한 도미의 회맛은 한번 보면 오랫동안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여러 가지 횟감 중에서도 도미가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대부분 도미를 하급 생선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를테면 영국에서는 "돔 같은 것은 유태인이나 먹는 잡어"라고 하는가 하면 달팽이를 진미로 여기는 프랑스 사람들은 돔을 식충어라고 한다. 이밖에 미국이나 중국 등지에서도 돔은 잡어로 취급되어 별로 귀여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도미의 진가를 모르는 이런 나라 사람들을 일컬어 혹자는 '야만적'이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도미는 지능이 대단히 발달된 어족이며 일부일처제의 도덕성 또한 엄격하다고 한다. 한 예로 일몰시각에만 도미들은 암,수가 교접을 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도미는 대단히 고등 진화과정을 거친 특유의 향과 담백한 맛을 지닌 생선이다.
게다가 도미는 수명에 있어서도 사람과 비슷하여 50년 가량 사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단정하게 균형 잡힌 몸매, 신비할 정도로 화려한 색채를 지닌 도미는 모든 어류 중에서도 고급 생선으로 대접받을 만한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도미는 농어목 도미과에 속하는 고기들의 총칭이다. 그리고 종류도 다양하여 참돔, 감성돔, 청돔, 새눈치, 황돔, 붉돔, 녹줄돔, 실붉돔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것이 참돔으로 그 생김새도 퍽이나 아름답다. 이 참돔은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분홍색과 녹색의 광택을 띠고 있으며 청록색의 반점이 흩어져 있다. 또한 몸의 길이가 커서 1m에 달하는 것도 있다. 수명도 길어서 40년 정도까지 살 수 있고 우리나라의 전 연안바다에 분포한다. 5월 경의 산란기를 제외하고는
먼 바다에서 사는데 수심 30∼50m 사이의 암초지대가 주 서식지다.   1930년대 발견된 부산 동삼동 조개무지에서는 참돔의 뼈가 출토되었는데 턱뼈의 길이로 보아 몸 길이가 50cm 정도로 추정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도미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에게 식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감성돔(흑돔)은 몸이 타원형이며 등쪽 외곽이 솟아나 있다. 몸빛은 전반적으로 회흑색이지만 배 부분으로 갈수록 색깔이 연하다. 몸 길이는 40cm 정도이고 내만성 어류로서 보통 40∼50m 정도의 얕은 바다에 산다. 우리나라의 중부 이남 연해에 분포하며 4∼6월 경에 산란기를 맞이한다. 전새개골에 작은 톱니가 있으며 7∼8줄의 비늘이 있다. 또한 감성돔은 내만성 물고기로 깊이 40~50cm 이하의 얕은 바다에 서식하는데, 우리나라 중부 이남, 일본 중부 이남, 대만 등에 널리 분포하며 여름철에 맛이 좋다.   금눈돔은 몸길이가 30∼50cm 안팍으로 형체가 둥글고 납작하다. 눈은 고양이 눈처럼 황금색으로 빛난다. 몸색깔은 붉고, 복부쪽은 은백색, 비늘은 크고 거칠다. 몸색깔은 홍색, 황색, 회색, 흑색 등으로 연안성
어류이다. 우리나라 남해, 일본 전역의 바다 밑에서 서식한다.   이밖에도 우리나라 연해에 서식하는 도미로는 돌돔, 능성돔, 옥돔 등이 있다. 이 중, 옥돔은 우리나라 제주의 특산물로 머리가 뭉특하고 눈이 큰 것이 특징이다.
  도미류는 선도가 비교적 오래 가므로 장기간 저장을 하더라도 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육질의 안정성은 좋지 않으므로 냉동은 좋지 않다. 따라서 얼음 저장을 하는 것이 좋다. 

  성분

  감성돔은 전형적인 흰살고기로서 단백질, 지질, 비타민 A 및 수용성 비타민도 적당량 함유되어 있으나 비타민 C나 D는 그 함량이 적다. 칼슘(Ca), 철(Fe) 등의 함량도 적으므로 무기질의 공급원으로는 그다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돔의 엑기스에는 글루타민산을 비롯한 아미노산이 대단히 균형있게 들어 있고 육질에는 누클레오티드의 이노신산이 축적되어 있어 맛이 아주 좋다.   일곱줄의 세로줄 무늬가 있는 돌돔은 육질이 단단하며 연중 맛의 변화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능성돔은 붉은 홍색으로 단백질이 적은 반면 지방은 2배로 많아 최고의 맛을 지닌 횟감으로 쳐준다.   금눈돔류의 성분은 참돔과 유사하며 도미의 대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껍질(피부)의 붉은 색은 아스타크산틴이란 카로티노이드계 색소이다. 

  쓰임새 

  '썩어도 돔'이란 말이 있듯이 돔의 육질에는 고도의 불포화 지방산이 적은데다 육질에 축적된 이노신산의 분해 속도가 아주 느려 신선도가 떨어지더라도 곧바로 맛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의 횟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붉은 돔과 흑돔은 생선회 등 생식에 알맞고, 이밖에 가열조리(소금구이, 기름튀김 등)의 재료로 이용한다.   금눈돔류는 생식으로 회를 쳐서 먹거나 조림의 재료로 널리 쓴다. 색깔과 모양이 도미와 유사하지만 육질이 부드럽고 지방은 도미보다 훨씬 많다.
맛은 비교적 적으므로 양념을 하여 맛을 낸다.   도미류는 대부분 지질이 적어 담백한 맛을 내며 필수 영양소가 골고루 갖추어져 있고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간장과 신장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소화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것이 토종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도미류의 어족이 풍부하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이를 탐낸 일본 사람들이 우리 바다를 자주 침범하여 우리나라산 도미를 무단으로 잡아가곤 하였다. 오늘날 일본 사람들이 도미회를 필사적으로 즐기는 것도 예전에 우리나라 연해에서 잡아간 도미맛에 길들여졌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일본의 {요리물어}라는 문헌에는 도미를 이용한 '고려자'라는 요리가 등장하는데 그 명칭으로 보아 이것도 우리나라에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그 맛과 질이 우수한 우리나라산 도미도 근래에 와서는 어족이 고갈되어 귀한 물고기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틈을 타서 외국산 도미가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붉은돔(참돔)의 경우 수입산은 가슴지느러미가 길며 체형상으로는 등이 볼록하게 굽어있는 느낌을 준다. 색깔은 붉은색, 또는 도적색으로 짙은 편이며 복부 부분은 담색이다. 일본 연해에서 수입된 참돔은 국내산과 체형이 비슷하나 색깔이 담홍색으로 대체로 짙은 편이다.
  국내산 붉은돔은 체형이 날씬한 유선형이며 머리가 대체로 둥근 편이다. 등에는 청록색의 반점이 있고 꼬리지느러미 끝에 검은띠가 있다. 몸체의 빛깔은 자연스런 선홍색을 띠고 있다.   은회색돔(감성돔)의 경우 수입산은 머리가 대체로 각이 져 있으며 입이 뾰족하다. 색깔은 검거나 회백색으로 바래져 있으며 등이 굽어 있고 두께가 얇은 어종도 있다. 옆에서 보았을 때 체고가 높다. 대체로 체형이 자연스럽지 못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국내 연안바다에서 건져올린 은회색돔은 체형이 매끄러운 유선형으로 자연스럽고 은회색의 광택이 난다. 

  ** 참고자료 
  1.{식품사전} 
  2.{국내산과 수입 수산물의 식별방법}, 수산청, 1992.8
  3.{민족문화대백과} 
  4.{생선과 건강}, 한국수산신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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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굴비(참조기)

  누런 황금색의 영광굴비가 토종

  조기를 소금에 약간 절여서 통째로 말린 것을 굴비라 한다. 오징어, 명태, 문어 등 보통 물고기를 저장용으로 가공할 때는 딱딱한 포의 형태가 되지만 조기의 경우 말렸을 때도 꼬들꼬들하게 탄력성이 유지되며 그 맛도 증가한다는 점이 바로 굴비가 고급 요리재료로 각광을 받는 이유라 하겠다.
  '굴비'라는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속설이 전해온다.   굴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고려 인종때부터다. 인종의 친척인 이자겸이 나랏일을 보다가 영광군 법성포로 귀양을 오게 됐는데 이곳에서 잡힌 조기를 먹어본 뒤 그 맛에 반하여 소금으로 간을 치고 바위에 말려서 임금에게 진상을 했다. 수랏상에 올라온 조기를 먹어본 인종은 그 맛에 감동하여 이자겸의 귀양을 풀어주었다. 조기 때문에 귀양에서 풀려 조정으로 돌아간 이자겸은 웬지 쑥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조기를 진상한 일이 죄를 면하기 위한 아부가 아니고 신하로서 임금에 대한 변함없는 마음의 표현이라 하여 '굴비'라 일컬었던 것이 오늘날까지 명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조기에 간을 해서 말린 것이 굴비이다. 따라서 굴비를 알려면 조기, 그 가운데에서도 참조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조기는 민어과에 속하는 바다물고기로서, 우리나라에서 어획되는 주요 어족의 한가지이다. 조기는 모양과 색깔에 따라서 참조기, 수조기(부세기), 백조기(보구치), 흑조기 등으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 참조기가 가장 맛이 좋아 굴비의 재료로 쓰인다.   조기는 세계적으로는 약 160여 종이 알려져 있는데 그 중 80여 종이 미국 연해에 서식하며 유럽 연해에 20종, 열대지방 부근에 37종, 일본 연해에 14종, 그리고 우리나라 연해에는 11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른이 된 조기의 몸길이는 약 30cm 정도이며 몸 전체는 길쭉한 유선형이고 옆이 납작하다. 꼬리는 가늘며 몸색깔은 회색, 또는 황금색이다. 그리고 참조기는 몸이 통통하며 둥글고 배에 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다. 또한 입술에 연분홍색 점이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조기가 많이 몰려드는 곳은 우리나라 서남해 일대인데 그중에서도 전남 위도, 황해도 연평도, 평북 대화도, 그 바다의 간석지에 많이 살며 발해만, 대만 근해에도 분포한다.
  참조기는 3월 초 흑산도 근해에 회유 진입하여 황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여 4월 하순부터 5월 중순 사이에 영광군 법성포 칠산바다에서 연평도 근해 사이에 집결하는데 이 때가 어획의 절정을 이룬다. 이 시기에 칠산바다가 나가면 참조기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울음소리는 참조기가 산란장에 들어오고 나갈 때 숫놈과 암놈이 서로 부르는 신호다.   이러한 참조기를 잡아올려 천일염으로 염장을 하고 그늘에 매달아 적절히 말리것이 먹음직스런 '굴비'가 되어 우리 밥상에 오르는 것이다. 

  성분 

  생선류가 포함하고 있는 성분들은 계절에 따라 함량의 변동이 있다. 따라서 같은 물고기라도 어획하는 시기에 따라 각각 맛이 다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참조기는 이른 봄 산란기에 잡아올린 것이 영양이 풍부하며 맛이 좋다.
  일반적인 생선류처럼 조기에는 양질의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또한 고도불포화지방산과 같은 지질이 많이 들어 있으며 탄수화물과 회분을 약간씩 함유하고 있다. 

  쓰임새 

  조기는 주로 국이나 매운탕, 찜으로 먹으며 굴비는 통째로 굽거나 기름에 튀겨서 먹는다. 또한 소금구이나 조림으로도 이용된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조기가 기운을 복돋워주는 생선이라 하여 즐겨 먹었으며 산모나 환자의 회복용으로도 많이 이용하였다. 그리고 굴비를 보리 속에 오랫동안 넣어둔 뒤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굴비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조기는 관혼상제의 의식을 치룰 때 꼭꼭 상에 올랐다. 그래서 조기는 조상 앞에 먼저 바친 다음에 먹는 것이 불문율로 여겨지기도 했다. 조기는 일반가정에서 민간요법의 재료로도 활용하였다. 이를테면 독충에 물렸을 때 굴비 껍질을 상처에 붙였으며 이는 위장이 허약할 때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온다.
  한편 {개보}라는 고서에는 '조기는 순채와 함께 국을 끓여 먹으면 위장을 좋게 하고 기운을 늘린다. 구워 먹으면 이뇨에 좋고 설사와 복부팽만감을 다스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에서 조기가 많이 나는 곳은 영광군 법성포와 연평도, 대화도 등지이다. 그러나 연평도 굴비의 맛은 영광굴비에는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굴비의 고장은 단연코 영광이다.
  전남 영광군 법성포구 주민들은 하루 일과를 온통 조기와 함께 살아간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굴비의 양이 전국 생산량의 90%를 차지한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영광굴비가 특별한 맛과 질로 명성을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기는 본래 동지나해, 즉 제주도와 중국 상해 사이의 난류가 흐르는 바다에서 월동을 한다. 그러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면 알을 낳기 위해 한류 쪽으로 북상을 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서해안을 거쳐 멀리는 만주 발해만까지 북상한다. 법성포 앞 칠산바다는 수심이 얕고 바닷물의 온도가 적당하여 조기의 산란장으로 적합하다. 따라서 이곳으로 수많은 조기떼가 몰려들게 되고 이 때 잡은 조기는 산란 직전이라 알이 통통하게 배어 있다. 이 조기는 영양가가 풍부하고 기름져서 '알배기 참조기'라고 따로 부른다.   반면 조기가 이곳에 이르기 전인 추자도나 흑산도 부근에서 잡은 것은 물이 완전히 오르지 않아서 조금 부실하고 연평도 이북에서 잡은 것은 산란을 해버린 뒤라서 기름기가 없고 색깔 또한 거무죽죽하여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영광굴비가 우수한 또 한가지 이유는 특유의 가공방법에 있다.
  3월경, 성어기가 되면 영광에서는 통풍이 잘되는 원두막이나 통나무 장대에 알밴 조기를 총총히 매달아 그늘에서 말린다. 이렇게 말린 것을 통보리 속에 넣어 저장한다. 이 때, 건조하는 조기는 냉동되지 않은 것을 써야 한다. 만일 얼음으로 냉동한 조기를 쓰면 건조할 때 썩어버리거나, 썩지 않더라도 제맛을 낼 수가 없다고 한다.
  영광굴비의 진짜 비법은 간을 맞추는데 있다고 한다. 소금의 양이나 염장하는 기간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야 제대로 맞출 수가 있다. 또한 영광굴비는 1년 이상 간수가 잘 빠진 천일염을 쓴다. 간수가 잘 빠진 천일염은 천연 미네랄 성분만 남아 맛이 고소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특한 가공법으로 전통의 맛을 자랑하던 영광굴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저인망식 어로법으로 바다밑바닥까지 훑어내는 바람에 새끼조기까지 한꺼번에 잡아버려서 어족 자체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칠산어장에서도 알배기 참조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와 같이 사라져 가고 있는 영광굴비 또한 애써 보존해야 할 우리의 토종이라 할 수 있겠다. 근래에는 수입개방의 물결을 타고 참조기도 수입되고 있는데 그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수입산 조기는 지느러미가 크고 비늘이 거칠며 꼬리가 길고 넓은 편이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수입되는 조기의 경우 몸 전체가 흰색이나 회색을 띤다. 종류에 따라서는 눈, 복부, 지느러미 등이 붉은색을 띠는 것도 있다.
  반면에 영광굴비는 배 부분이 누런 황금색을 띠고 있다. 그리고 몸 전체가 다소 두툼한 편이며 육질이 연약하다. 특히 꼬리가 짧고 두툼하며 두꺼운 편이다.
  한가지 유념할 사실은 똑같이 국내산이라도 부세를 참조기라 속여파는 경우가 있으므로 그 차이점도 알아두어야 한다. 부세는 참조기에 비하여 측선이 가늘고 체형도 가늘며 긴 편이다. 또한 머리가 몸에 비하여 큰 편이고 몸통의 비늘이 크다. 꼬리자루 길이는 길고 가늘다. 이와 같은 특징을 알고 있으면 참조기를 제대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자료

  1.{식품사전} 
  2.{약용음식물백선},보건신문사
  3.월간 {건강저널} 90.6 
  4.{기초식품학}, 지구문화사
  5.{국내산과 수입수산물의 식별방법} 수산청, 1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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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오징어

  까마귀의 적 오적어

  십완목 오징어과에 속하는 연체동물을 총칭하여 오징어라 한다. 옛문헌에 나오는 기록들을 보면 그 명칭을 우리말로 오중어, 오증어, 오ㅈ어, 오직어 등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한자어로는 '오적어'를 표준으로 쓴다. {자산어보}에 오징어의 명칭에 대해서 상세하게 논한 대목이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남월지에서 이르기를 그 성질이 까마귀를 즐겨 먹어서 매일 물 위에 떠 있다가 날아가던 까마귀가 이것을 보고 죽은줄 알고 쪼면 그 까마귀를 잡아끌고 물 속으로 들어가 먹으므로 오적이라 이름 지었는데 까마귀를 해치는 도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오징어의 명칭이 혼동되어 쓰이고 있다. 이를테면 오징어를 흔히 갑오징어라고 하고 피둥어꼴두기를 오징어라고 부르는 경우 등이다. 오징어과의 동물들은 몸이 몸통, 머리, 발로 구분되는데 몸통은 타원형이고 한 쌍의 옆지느러미는 좁게 몸통을 따라 붙어 있으며 보통 몸 뒤에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오징어의 발은 다섯 쌍으로 열 개가 있는데 이 중에 특별히 긴 한 쌍이 더듬다리이다.
  {자산어보}에서는 오징어의 명칭과 함께 그 생김새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오징어는 등에 긴 뼈가 있는 타원형이다. 살은 매우 무르고 연하며 알이 있다. 또한 속에 주머니가 있어 먹물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만일 오징어를 침범하는 것이 있으면 그 먹물을 내뿜어서 적을 현혹시킨다. 그 먹물을 취하여 글씨를 쓰면 색이 매우 윤기가 있다. 그러나 오래되면 벗겨져서 흔적이 없어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것을 다시 바닷물에 넣으면 먹의 흔적이 살아난다.' 오징어의 특징 중에서도 몸통 안에 시커먼 먹물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그 먹물은 오징어를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방어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오징어가 뿜어낸 이 먹물을 보고 도리어 오징어를 잡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은 오징어의 먹물을 약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오징어는 일생에 단 한 번 산란을 한다. 즉, 오징어는 생식 주기를 되풀이 하지 않고 1년간 대단히 빠른 속도로 성장을 진행하다가 알을 까놓고 일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는 고도의 운동능력과 특수한 섭이양식과 효율적인 소화, 흡수방식에서 기인한다.
  또한 오징어는 수온의 변화에 잘 견딘다. 낮에는 주로 5-15℃ 정도로 온도가 낮은 저층에 있다가 밤에는 수면층으로 부상하는데 한 시간에 5-6℃의 온도변화에서도 충분히 견뎌낸다. 그리고 환경변화에 민감한 성질도 가지고 있다. 예컨데 쾌적한 환경에서는 몸체가 아주 투명하여 내장까지 들여다 보일 정도지만 흥분하여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적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수족관 등에서 키우고 있는 오징어의 색깔을 보고 그 수족관의 환경 상태를 짐작할 수도 있다. 

  성분 

  오징어 몸통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성분은 수분(82%), 단백질(15.6%), 지질(1.0%), 회분(1.5%), 등이며 이밖에 소량의 칼슘, 인, 철, 나트륨, 칼륨, 비타민 등이 들어 있다.
  특히 오징어는 콜레스테롤치가 높다. 그러나 오징어에 들어 있는 콜레스테롤은 양질(HDL)의 것으로, 오징어 근육에 다량 함유된 타우린이 콜레스테롤을 억제하여 혈압을 정상으로 유지하게 하고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시켜 당뇨병, 심장병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에 예방효과가 크다.   게다가 오징어가 성숙기에 이르면 타우린의 양이 급격히 증가하여 무려 육질의 34%나 되는 엄청난 양을 함유하게 되는데 오징어를 말릴 때 표피에 생기는 하얀 가루가 바로 타우린이다. 따라서 마른 오징어를 먹을 때는 이 가루를 털지 말고 그대로 먹어야만 귀중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오징어의 먹물에는 암세포의 발생을 억제하는 성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최근 일본에서는 이 먹물을 제암제(제암제)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쓰임새

  오징어는 맛이 감미로워서 회나 포감으로 쓰이는 대표적인 연체 동물이다. 살은 성질이 무난하며 주로 살짝 데쳐서 식용하거나 회를 쳐서 먹기도 한다. 그러나 오징어는 역시 마른 오징어의 수요가 압도적이다. 술안주나 기호품으로 각광을 받는 마른 오징어는 근래에 들어와 그 유통량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오징어는 살 뿐만 아니라 뼈, 그리고 시커먼 먹물 까지도 쓰임새가 있다. 먹물은 제암제)로 사용되며 오징어뼈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쓴다. 오징어 뼈는 제독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예를 들어오징어 뼈를 우물에 넣으면 그 안에 있던 벌레들이 모두 죽는다고 한다. 각 해안지방에는 오징어를 이용한 고급요리가 발달되었는데 지방마다 각양각색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 향토음식의 하나인 오징어순대는 오징어의 몸통에 소를 넣어 익힌 것으로 중요한 잔치상에는 빠질 수 없는 별미다. 이것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오징어의 내장과 뼈를 몸통을 가르지 않고 손가락으로 밀어서 빼낸다. 그리고 껍질을 벗긴 다음 다리도 떼어내어 끓는물에 데친다.
  물기를 짠 두부와 데친 숙주, 그리고 고추, 파, 마늘 등을 오징어 다리와 함께 잘게 썰어 여기에 소금, 후추가루 등의 양념을 하고 계란을 풀어서 소를 만든다. 이렇게 준비한 소를 오징어 몸통에 적당히 채우고 찐 다음 식혀서 썰어놓으면 훌륭한 오징어순대가 된다.

   이것이 토종

   오징어는 외국에서 직접 수입된다기 보다는 국내 어선들이 멀리 남태평양까지 진출하여 잡은 원양산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다. 이 때문에 울릉도 부근에서 잡은 진짜 우리바다 오징어까지 헐값에 팔리고 있다.   원양어선은 한 번 출항하면 수 개월씩 조업을 하기 때문에 곧바로 냉동 보관된다. 이렇게 오랫동안 보관된 오징어는 염분이 육질에 배서, 이것을 말리면 짜고 딱딱해져 맛이 떨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원양산 냉동오징어를 울릉도산으로 속여 파는 경우이다. 옛날부터 '오징어' 하면 우리나라 울릉도산을 최고로 쳐주기 때문에 수입산이나 원양산을 속여 파는 것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수입산 오징어는 아르헨티나, 뉴질랜드, 포클랜드, 페루 연안 바다에서 잡아온 것이다. 이러한 수입산 오징어는 냉동상태와 마른오징어 상태로 국내에 반입되는데 냉동오징어의 경우 국내에 와서 건조되는 장소와 방법에 따라서 각각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울릉도 오징어는 빨판이 작지만 뚜렷하게 많이 달려있으며 늘리거나 누르지 않아서 몸체가 두껍다. 또한 가운데 쪽 다리나 바깥쪽 다리가 모두 굵기가 일정하고 먹어보면 육질이 딱딱하지 않고 쫄깃쫄깃하면서 맛이 구수하다. 그리고 울릉도산은 1축(20마리)을 묶을 때 가운데 허리부분을 다리로 직접 묶은 것이 특징이다. 또 다리 사이로 끼운 나무도 대나무를
사용하며 1축당 무게는 울릉도산이 2kg 정도로 가벼운 편이다.   반면 수입산 오징어는 속초나 묵호 등지에서 말리는데 지금까지는 1축을 묶는데 노끈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다리 사이에도 대나무 대신 수수깡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공방법은 울릉도산을 따라 바뀔수도 있음직하다. 따라서 다른 특징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수입산은 빨판이 많이 떨어져 나갔고 대체로 맛이 짜다는 점을 일반적인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또한 산지에 따른 수입산 오징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아르헨티나산 오징어는 울릉도산과 가장 유사하지만 늘려서 말리기 때문에 넓은 대신 두께는 얇다. 그리고 가운데 쪽 다리보다 바깥쪽 다리가 가늘다든지 굵기가 일정하지 않는 등의 특징을 들 수 있다. 또한 맛이 짜고 딱딱하다. 페루산 오징어는 일반 매점에서 '문어다리'라며 팔고 있다. 이것은 몸통이 대단히 커서 채로 썰어 안주용 진미로 먹는다. 그러나 육질이 매우 질기다. 포클랜드산 오징어는 일명 무라사끼라고 하는데 가장 맛이 없다. 또한 검붉은 빛을 띠고 있으며 냄새가 좋지 않다. 따라서 튀김용으로나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자료
  1.월간 {소비자시대}92.8 
  2.{국내산과 수입수산물의 식별방법}, 수산청, 1992.8, 자료집
  3.{생선과 건강}, 수산신보사 
  4.{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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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해삼 

  여름잠 자는 바다의 삼

  산에서 나는 자연산 삼을 산삼이라 하고, 인공으로 재배해낸 것을 인삼이라 한다면 해삼은 '바다의 삼'이 되는 셈이다. 그러면 바다에서 나는 어패류의 일종인 해삼도 산삼이나 인삼 만큼 그 성분이나 약효가 탁월한 것일까.
  여기서 일단 옛 문헌을 참고해보자. {전어지} <해삼조>에 의하면 '해삼은 성질이 따뜻하고 몸을 보비하는 바 그 효력이 인삼에 맞먹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해삼에 대하여 다른 설명도 자세하게 덧붙이고 있는데 바다에서 나는 여러가지 동물 중에서 몸을 가장 보하는 것이 해삼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한편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에는 '해삼변증설'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해삼은 더덕이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변하게 된 것' 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어떤 문헌에서는 해삼을 남자의 성기에 비유한 것도 있다. 과연 해삼의 생김새를 보면 시커먼 것이, 남자의 그것이 연상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해삼이 남자들의 술안주로 각광을 받아온 것도 어쩌면 이런 엉큼한(?) 속셈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해삼류에 속하는 바다 동물들은 대부분 몸이 좌우대칭이고 생김새는 표면이 울퉁불퉁한 오이를 닮았다. 문어나 오징어처럼 관족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에 따라서는 아예 퇴화되여 없는 것도 있다. 그래서 언뜻 보면 큰 것은 도깨비 방망이 같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오이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자산어보}의 해삼조에는 해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큰 것은 2자 정도이고, 몸의 크기가 누런 오이와 같고, 전신에 작은 젖꼭지가 널려 있다. 또한, 누런 오이와 같이 양머리는 모가 조금 죽었고, 한쪽 머리에 입이 있고 다른 한쪽 머리에 항문이 있다. 배 속에 어떤 물체가 있는데 그 모양이 밤송이 같다. 창자는 닭의 것과 같고 가죽은 매우 연하여 잡아 들어올리면 끊어진다. 배 밑에 많은 발이 있어 걸을 수 있으나
헤엄칠 수 없고 그 행동이 매우 둔하다. 빛이 새까맣고 살은 푸르다.'   위에서 '젖꼭지'라고 표현한 부분이 바로 퇴화된 관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해삼은 몸길이가 대략 한 자 정도이다. 사는 곳은 바닷가의 암석, 진흙, 모래, 해조 등 여러 곳이다. 주로 현탁물이나 퇴적물을 먹고 산다. 입 주위에 있는 20개의 촉수로 바다 밑바닥에 있는 개펄을 그대로 빨아들여서 그 중 양분만을 흡수하고 나머지는 체외로 배출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다에 살지만 바다 밑바닥의 토양을 먹고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해안에서 난 해삼은 우리 토양의 성질을 닮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해삼의 종류는 세계적으로 현서종 약 900종이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4과 14종이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 전 해역에서 난다.   {물보}라는 책에는 수족편에 해삼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해삼을 해남자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뮈'라 하였다' 한다. 또한 {재물보}에서는 해삼을 '토육'이라 하고, 속명을 해삼,우리말로는 '뮈'라고 한다' 고 하면서 '바다 속에서 살며 색은 검고 길이가 5치, 배가 있고 입과 귀는 없으며 발이 많다'고 하였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해삼은 여름잠을 잔다. 해삼은 수온이 16℃ 이상이 되면 식욕이 감퇴되고 소화관이 위축되는데 이 때부터 여름잠을 준비하다가 25℃ 이상이 되면 완전히 잠에 빠지게 된다. 다른 포유류 동물들이 동면을 취하는 것에 비하면 해삼의 여름잠은 꽤나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해삼은 전복, 홍합과 함께 삼화라고 하였다. 이것은 우리나라 해안에 해삼이 널려있으며 우리 어민들이 그것을 잡아다 팔아서 소득을 올렸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처럼 해삼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수산자원이 되었던 것은 해삼의 수요가 많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해삼은 고유의 맛 말고도 어떤 훌륭한 약효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제 해삼의 성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성분 

  해삼의 성분은 대부분 수분(약90%)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단백질, 지질, 당질, 회분, 칼슘, 인, 철분, 나트륨, 칼륨, 비타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단백질과 당질의 양은 적은 편이며 회분의 함량이 많다. 따라서 해삼은 칼슘, 철, 인 등을 제외하곤 영양적 가치는 적고 비타민의 함량도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적어서, 흙에서 나는 산삼이나 인삼과 같은 약효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몸통 부분은 껍질(상피)과, 전후로 뻗어있는 복관과, 직각으로 발달한 섬유 모양의 조직으로 대부분 섬유로 이루어진 결합조직이다. 이처럼 해삼의 몸통은 다른 어패류 처럼 근육질로 이루어지지 않고 섬유질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소화, 흡수되기 어렵다. 다라서 해삼은 단백식품이라기보다는 기호식품으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한방에서는 해삼을 '신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기운과 정력을 돋구어 주는 정력강장제'로 보고 있다. 사상의학의 원리로 본다면 해삼은 체질적으로 신장의 기능이 약하고 정력이 부족한 소양인에게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쓰임새

   우리나라에서 해삼은 술안주 등으로 주로 생식한다. 주둥이 부분을 잘라 몸통을 벌려 개복한 후 내장을 꺼내고 소금을 약간 뿌리면 미끈거리는 점액이 제거된다. 이것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초간장과 곁들여 먹으면 별미다. 뿐만 아니라 해삼의 내장으로 담근 젓은 고노와타라고 하여 일본에서는 진미로 손꼽힌다.
  해삼은 탕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규합총서}에서는 열구자탕과 어채의 재료로 해삼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해삼은 중국요리의 재료로도 많이 쓰이는데, 중국요리에서는 내장을 제거하고 쪄서 말린 건해삼을 일주일 정도 쌀뜨물에 담갔다가 사용한다.
  해삼은 소화 흡수율이 극히 낮으므로 비만을 걱정하는 사람이나 고혈압 환자에게는 좋은 기호식품이라 하겠다. 특히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살 안찌는 술안주로도 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참고로 해삼의 소화흡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살짝 데치거나 초를 쳐서 먹으면 된다. 특히 제주산 홍해삼은 영양가를 보존하기 위해서 데쳐 먹으면 좋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온대산의 '참해삼'에 속하는 청삼, 홍삼, 흑삼 등 3종류가 생산된다. 이중에서도 홍해삼은 제주도 부근에서만 생산되고 청해삼, 흑해삼은 남해안과 서해안에서도 생산된다. 생산량도 많아서 일찌기 중국 등지에 건해삼을 수출했는데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산 건해삼을 '조선인삼'에 비유해 '바다인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직까지 해삼은 날것 그대로는 수입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삼을 주로 생식하기 때문에 갓 잡아온 싱싱한 해삼이 아니면 상품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관용으로 가공된 건해삼은 남방산이 대량으로 수입되어 중국요리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해삼을 건조, 가공할 때 국내산은 배설강을 통하여 내장을 제거하나 수입산은 복부를 절개하여 내장을 제거한다. 또는 아예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말린 것도 있다.
  그리고 수입제품이 아니더라도 해삼과 비슷한 어족인 군소를 해삼으로 속여서 내놓는 경우도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군소는 해삼에 비해 배가 불룩하고 머릿 부분에 두 개의 돌기가 있다. 또한 표피가 부드럽고 요리를 할 때 스펀지 같은 느낌을 준다.
  옛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동해에서 나는 해삼은 살이 두껍고 좋으며, 서남해에서 난 것은 살이 얇아 품질이 떨어진다고 한다. 낙산사(낙산사) 일대에서 해녀들이 갓 잡아올린 강원도 양양 부근의 해삼과 제주도 등지의 해삼은 유명하다.

   *** 참고자료

  1.{민족문화대백과} 
  2.{한국식품사전}, 신광출판사
  3.{생선과 건강}, 수산신보사 
  4.{국내산과 수입수산물의 식별방법}, 수산청 어정과, 자료집 
@   47.굴

  갯바위에 피는 꽃

  굴은 일명 '석화'라고도 하는데 멀리서 보면 따낸 굴조개 껍질이 바위면에 하얗게 붙어있어서 마치 꽃무더기를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돌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벗굴과에 속하는 쌍패류를 모두 가리켜 굴이라 한다. 굴은 그 종류가 다양하여 모두 합해 대략 20여 종에 달한다. 굴과에 속하는 조개는 고착생활을 하는 장소에 따라 크기가 일정치 않지만 대략 5∼10Cm정도이다. 껍질의 안쪽은 백색이고 두 조가비가 맛물리는 곳에 이가 없다. 경사가 완만한 해안의 바위 등에 서식하며 초여름에 산란을 하고 대략 1년 정도면 성숙한 굴이 된다.
  굴은 조개류 중에서도 유난히 생명력이 강하다. 열대, 온대, 한대 지역을 불문하고 모든 근해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세계 각국의 식생활 문화에 흡수되어 왔다. 어패류를 날로 먹는 습관이 거의 없는 구미인들조차 굴만은 껍질에 붙은 그대로 레몬즙이나 케챱을 곁들여 먹는다.   굴은 기원전 로마 시대부터 양식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유명한 쥴리어스 시저가 영국 원정을 계획했던 것도, 템즈강 하구에서 잡히는 굴이 목적이었다는 설이 있다. 또 나폴레옹은 촌각을 다투는 전쟁 중에서도 제 철을 맞은 싱싱한 굴만큼은 식탁에서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독일의 비스마르크도 생굴의 껍질에 남은 즙을 곧잘 핥아 마셨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영웅은 굴을 좋아한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굴을 좋아해서
영웅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굴에 함유되어 있는 풍부한 영양이 힘과 지혜를 길러주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굴이 언제부터 양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근거를 밝힐 만한 자료가 없다. 1908년 경 섬진강 하구에서 일부 굴양식을 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때의 양식 방법 등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그리고 1908년 이후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영산강 하구와 송전만 등에서 양식업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본격적인 굴양식은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에 와서는 수하식 굴양식업이 성행하여 경남 충무를 중심으로 남해안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이후에도 굴 생산량은 계속 증가했으며, 이렇게 생산된 굴은 대부분 생굴로 우리 겨레의 밥상을 상큼하게 장식해 주었고 나머지는 건굴이나 통조림 형태로 가공되어 수출되기도 하였다. 

  성분 

  굴은 3대 영양소는 물론 비타민, 미네랄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완전식품인 우유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굴을 일컬어 '바다의 우유'라고 한다. 또 체내에서의 단백질의 이용척도를 '아미노산 산가(산가)'로 나타내는데 우유의 아미노산 산가를 100으로 할 때 굴의 산가는 77이 된다.
  그리고 굴에 들어 있는 지방질은 콜레스테롤치를 내리는 다량의 불포화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다. 콜레스테롤치가 걱정이 되어 생굴을 놓고 입맛을 다시면서도 망설이는 경우가 많은데 염려할 필요가 없다. 굴에는 다량의 콜레스테롤이 들어있지만 동시에 '타우린'이라는 황이온을 포함하고 있는 아미노산의 일종이 들어 있어 이것이 콜레스테롤의 해를 제거해 준다. 이것은 임상실험을 통하여 밝혀졌다.
  당질에 있어서도 굴은 우유보다 뛰어나며 특히 글리코겐(포도당의 저장형태)을 다량 함유하고 있기에 굴이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임상실험 결과, 굴은 또한 중성지방의 수치를 내리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실험 결과로 증명되듯이 굴은 중성지방의 수치를 내려 각종 성인병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알콜과 피로에 시달린 간장을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 간장의 활동에 필요한 영양소는 글리코겐인데 굴에 이 성분이 다량 들어 있으므로 간장이 약한 사람이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제 철에 나는 싱싱한 굴로 간장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주의할 점은 글리코겐을 포함한 당질은 간장에서의 허용량을 초과해서 섭취하면 글리코겐이 되지 않고 중성지방이 되어버린다. 당질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살이 찌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대인의 식탁에서 가장 결핍되기 쉬운 영양소는 '미네랄'이다. 미네랄이란 신체기능을 조절하는 광물질의 총체로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그 종류를 열거하면 나트륨, 칼륨, 칼슘, 인, 마그네슘의 5가지 다량 원소와 철분, 아연, 구리, 크롬, 요오드, 코발트, 셀렌, 망간 등 8종류의 미량원소가 그것이다. 굴에는 이러한 미네랄이 거의 모두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네 식단에서는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굴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것은 아연, 구리, 마그네슘 등이다. 이밖에 구리는 조혈작용을 하는 것으로 빈혈을 예방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여성들에게 자주 보이는 빈혈을 보통 철분 부족으로만 생각하는데 구리가 부족해서 생기는 빈혈이 더 많다. 이밖에 마그네슘의 작용도 중요하다.
  한방에서는 굴에 들어있는 글리코겐 성분을 번열, 갈증의 해소에 쓰며 혈색을 곱게 하고 영양을 돕는 데 사용한다.

  쓰임새

  신선한 것은 보통 생식에 적합하고 기름에 튀기거나 굴젖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패각이 붙어 있는 굴조개는 2∼3주일간 살아있을 수 있으므로 그대로 유통할 수 있고, 굴을 따내어 냉장, 냉동할 수도 있다. 통조림으로 저장해도 무방하다.
  굴은 싱싱한 생굴을 그대로 먹는 것이 맛과 영양을 즐길 수 있어 좋다.   굴은 대체로 날것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옛부터 전해오는 이 식습관은 영양학적으로 보아도 아주 훌륭하다. 굴에 포함된 영양소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아미노산의 한 종류인 타우린이다.   영양적으로 먹는 방법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그 식품에 없는 영양소를 함께 먹는 식품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식품을 한꺼번에 먹게 되는 예가 '굴야채전골'이다. 이 경우도 물론 타우린과 비타민이 빠져나왔기 때문에 국물까지 남기지 말고 먹어야 한다.   굴은 또 시금치와 어울려 요리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영양섭취를 할 수 있다. 굴에 부족한 지방을 보충한다는 점에서 '굴후라이'도 있다. 튀길 때 콩기름과 같은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면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키는 불포화지방산을 억제하기 때문에 더욱 영양가가 높아진다. 특히 겨울철에 나는 굴은 최고의 영양가를 보유하고 있다.

   이것이 토종

   전 세계적으로 굴과에 속하는 종류는 많으나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에는 참굴, 바윗굴, 벗굴 등이 있다. 이 중에 참굴은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둥글거나 가늘고 긴 것이 있으며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한다. 바윗굴도 형태가 일정치 않으나 일반적으로 장타원형이고 남해안과 동부남해 연안에 분포한다. 그리고 벗굴은 원형에 가까운 사각형으로 남해안과 서해안에 분포한다.
  참굴은 양식종으로 많이 쓰이고 바윗굴과 벗굴은 자연산을 채취하여 이용한다. 그러나 벗굴은 생산량이 적어서 일반적으로 널리 이용하지는 않는다.
  굴은 수입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 수요는 자급해야 한다. 따라서 재배기술을 개발하고 대량 생산에 힘쓴다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토종굴로 식탁을 풍부하게 하고 우리의 건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월간 {식품과 건강} 91.10월호
  2.{민족문화대백과} 
  3.{생선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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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류> 

  48.한우 

  이 땅의 농부를 닮은 우공

  지난 수천 년간 이 땅의 논밭을 갈아온 한국소는 온순한 성격과 끈질긴 체질이 이 땅의 농부들과 너무도 닮아 우리가 우공이라 부르며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칭송해 왔다.
  농경생활에 바탕을 둔 우리 민족은 소를 한가족처럼 여겨왔다. 요즘이야 영농법이 기계화되어 소를 직접 농사에 사용하지는 않지만 불과 1∼20년 전만 하더라도 이른 아침에 농부들이 소를 몰고 일터로 나가는 일은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사의 하나였다.

   까마득한 소 사육의 역사

   고대의 문명국들은 일찍부터 소의 이용법을 알고 있었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생활의 터전이 잡히고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천5백 년,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4천∼3천5백 년,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천5백 년경에 이미 농경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쟁기를 끄는 데 소를 이용하여 재빨리 문명국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소가 들어온 것은 기원전 1∼2세기경으로 보이는데 그 유입 경로에 대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이설이 있다.   첫째, 한우를 비롯한 동아시아 계통의 소는 뿔이 짧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원산지를 중앙아시아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간 것이 한우가 되고 서쪽으로 이동해 간 것은 고대 이집트의 단각우가 된 것이다.
  둘째, 세계적으로 순수한 소의 기원은 시베리아 가우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의 한우와 일본의 화우도 이 계통에 속하는 것이다.   셋째, 중국, 우리나라, 일본의 재래소를 남아시아 계통의 소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반텡(Banteng)계통의 소로 본다.
  위와 같은 몇 가지 기본적인 학설에 대하여 일본의 학자들은 동아시아 지방에 분포한 소의 혈액형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 일본의 화우는 한우에서 나왔고 한우는 중국의 황우와는 혈통이 다르고 오히려 만주, 몽고에 이르는 아시아 대륙 중부지역의 소와 가깝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고고학적으로는 기원전 1∼2세기 경의 유적인 김해 조개더미에서 소의 치아가 발견되어 사육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유입경로에 대한 확실한 자료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한집안 식구로 사람 대접 받은 한우

  한편 소는 생구라 불린다. 우리말에서 식구는 가족을 뜻하고 생구는 한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말하는데, 소를 생구라 함은 사람대접을 할 만큼 소를 존중하였다는 뜻이다. 이렇게 소를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소가 힘든 일을 도와주기 때문이며 소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소는 값이 비싸서 재산으로서도 큰 구실을 하였다. 따라서 정월 들어 첫번째 맞은 축일을 소날이라 하여, 이날은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쇠죽에 콩을 많이 넣어 소를 잘 먹였다. 그리고 도마질이나 방아질을 하지 않고 쇠붙이연장을 다루지도 않았다. 도마질을 하지 않는 것은 쇠고기로 요리를 할 때에는 도마에 놓고 썰어야 하므로 소의 명절날 차마 이와 같은 잔인한 짓을 삼간다는 뜻이다. 방아는 연자방아를 의미하는데, 연자방아는 소가 멍에를 매고 돌리는 것이므로 연자방아를 돌리는 것은 곧 소에게 일을 시키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연자방아를 찧지 않던 풍속이 다른 방아에까지 번진 것이다. 쇠붙이연장을 다루지 않는 것도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풍속이다.

  길흉을 점치게 하는 희생물

  한편, 우리 민속에는 기형이나 털 색이 이상한 새끼가 태어나면 음양오행과 관련시켜 길흉을 예측하는 습속이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84년 고타군주가 신라 사파왕에게 청우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청우는 털 색이 검은 소로 추정되는데, 중국 문헌에 의하면 늙은 소나무의 정이 청우로 된다고 한다. 따라서 청우는 선인, 도인, 성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고대에서 소는 무엇보다도 희생의 동물이었다. 예컨대 {삼국지} 동이전 부여조에 보면 '군사가 나아갈 때는 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지내고 발굽의 상태를 관찰하여 그것이 벌어져 있으면 흉한 징조이고 합쳐져 있으면 길한 징조'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일종의 주술적 의미로 파악되는데 시베리아나 중국에도 비슷한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조선시대까지도 선농단을 두고 해마다 경칩 직후에 소를 잡아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냈다. 이때 제사를 지내고 난 뒤 고기를 삶아 탕으로 하여 제관들이 나누어 먹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설렁탕이 되었다고 한다.

  질 좋고 맛 좋은 한우고기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쇠고기를 많이 먹어온 편으로 그 요리와 이용법도 상당히 발달하였으나 그 대부분이 생육용이고, 가공저장법은 외국에 비해서 비교적 뒤진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쇠고기는 다음과 같이 쓰인다.   살 가운데 연한 부분은 회로 이용한다. 또한 굵게 저민 것을 헌이라 하며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다.
  쇠고기구이(구)는 불고기, 불갈비 등 독특하고 훌륭한 세계적인 식품으로 발전해 왔다.
  쇠고기를 비롯한 사슴고기, 멧돼지고기 또는 말고기 등을 저장하기 위해 말려서 포로 하는 방법도 발달해 왔다. 고기를 얇게 썰어서 가미하지 않은 것을 포라 하고, 생강, 육계 등을 가미한 것을 수라고 한다.
  숙육과 편육은 소의 머리를 고아서 만든 것으로, 살코기 부분을 수육이라 하고, 머리껍질과 뼈에서 나온 젤(gelatin)을 굳힌 것을 편육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쇠고기 가공법이다.
  살코기를 풋고추, 마늘 등과 함께 간장에다 넣어 조린 것으로 쇠고기 장조림이 있다.
   이밖에 염통, 콩팥 등은 불고기와 수육의 재료로, 피는 선지국이나 순대의 원료로, 양, 간은 회, 곱창은 국과 곱창구이, 탕 등의 원료로, 골, 고환 등은 삶아서 술안주 등으로 버리는 것 없이 이용되어 왔다. 또한 부위에 따라서 꼬리와 엉덩이뼈 등은 곰탕, 갈비는 갈비탕, 네 다리는 족탕, 그리고 여러 가지를 섞은 설렁탕 등으로 쓰였다.

  이것이 토종

  한우는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나라 고유의 역용종으로, 수천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독특한 품종이다. 이 땅의 농부들과 심성이 닮아서 성질은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하면서도 영리하다. 털색은 적갈색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가 있고, 체격은 북부지방의 것은 크고 남부지방의 것은 작은 편이다. 젖은 겨우 송아지를 키울 정도로 나오고 유기는 3개월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쇠고기를 식용해 왔다. 그리고 한우의 고기맛은 세계의 어떤 소보다도 좋다. 그러나 한우는 주로 농경과 만용(만용:점술용)으로 길렀으므로 고기의 생산량은 적은 편이다. 그리고 아무 것이나 잘 먹고, 특히 산과 부문의 질병이 적은 특징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 순수한 한우가 몇 마리나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순수 한우는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구별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종자 보존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색깔이나 모양이 현저히 다른 몇 마리의 소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그 순수성을 인정받았다고 하는 한우를 아마추어가 구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우 외에, 체구가 작고 털빛이 검거나 누런 제주소도 순수한 토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멸종해 버리고 없다. 다만 한라산의 깊은 산중에 가끔씩 야생 제주소가 출몰한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있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제주소는 1천8백여 두가 사육되었는데 불과 10년 사이에 하나의 종자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우와 달리 수입 쇠고기에는 성장호르몬제인 디에틸스틸베스트홀이라는 물질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은 질암이나 남성 유방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무서운 물질이다. 디디티(DDT), 디엘드린 등의 살충제도 잔류되어 있다.
  국가 간의 관계는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 같은 강대국에서 쇠고기가 마구 들어오는 현상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전체적인 교역 조건을 고려하여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쇠고기 수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한우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온국민들이 수입 쇠고기를 철저하게 거부한다면 수입 쇠고기가 발붙일 곳이 어디 있겠는가. 

   *참고자료
  1.{토종을 찾아서} KBS 영상사업단 방영자료 
  2.{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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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오리 

  현대인의 공해독을 풀어주는 명약 

  신라시대나 고려 시대에도 오리를 길렀다거나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오리가 사육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리고기는 다른 고기에 비해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음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민다'는 속담이 있어 맛없고 실속 없는 고기로 상징되고 있으며, 닭처럼 제사상에 오르지도 못했다.   어디 이것 뿐인가. '오리 궁둥이'하면 엉덩이가 못생긴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며 '미운 오리새끼' 라는 말도 생겨났다. 어느 구석을 뒤져 보아도 오리가 사람들에게서 귀염을 받은 흔적은 없다. 오리가 이처럼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은 오리고기 특유의 누린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쩍 오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건강식품의 바람을 타고 오리고기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으며 그 털은 오리털 잠바로 겨울의류의 주종을 이루고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오리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져서 오리고기가 영양 면에 있어서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결코 뒤지지 않고 성인병 예방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속속 밝혀지고 있는 추세다.

  날 수 없는 새, 집오리

  엄밀하게 말하면 오리는 집오리뿐만 아니라 야생하는 오리류 전체를 가리킨다. 또한 오리의 사촌쯤 되는 기러기과와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종도 있다. 전세계적으로 오리과와 기러기과에 속하는 새는 146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36종이 발견되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에 철따라 오고 가는 오리는 27종에 달하고 텃새인 흰뺨검둥오리와 원앙 등 2종만이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한다.   이처럼 물오리, 청둥오리, 집오리 등 여러 종이 있지만 이 중에서 진짜는 집오리다. 물론 집오리도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청둥오리가 조상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야생의 물오리나 청둥오리와는 다른 환경에서 정착해 왔으므로 전혀 다른 하나의 품종으로 형질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마침내 날개가 퇴화되어 버렸고 이제는 둔한 몸짓으로 기우뚱거리며 걸어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즉, 날 수 없는 새가 되고 만 것이다.
  집오리는 오리과에 속하는 집짐승이며, 모양은 물오리와 비슷하지만 물오리에 비해서 몸체가 크고 날개는 약하다. 그리고 머리가 둥글고 부리가 넓적하다. 또한 꽁지의 지선에서 나오는 기름을 깃에 바르며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고 물을 좋아한다. 곡물, 어패, 수초 따위를 먹으며 초봄에서 여름 사이에 계속 알을 낳다가 8월 경부터 점차 줄어들어 이듬해 봄까지 휴산한다. 오리 새끼는 약 두 달 가량이면 어미만큼 자랄 수 있다. 

  옛 문헌에 나타난 집오리의 실상

  옛 문헌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오리는 집오리를 지칭하며 우리말로는 오리, 올이, 올히로 불렀으며 한자어로는 집오리를 압, 물오리를 부라 하였다. 집오리는 원래 야생의 청둥오리를 중국에서 가축화한 것으로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2천년경의 문헌에서도 오리가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신라와 고려에도 오리가 있었고 일본에는 3세기경에 전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들은 이보다 훨씬 전에 오리를 기르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고려에는 싸움오리도 있었다고 한다.
  {지봉유설}에는 '닭과 오리는 가축이어서 잘 날 수 없고, 그밖의 들에서 사는 새들은 모두 잘 날 수 있다'는 송나라 왕규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그리고 '집오리도 들판이나 물에서 오랫동안 놓아 기르면 멀리 잘 날 수 있다. 아마도 가축이 잘 날 수 없는 것은 마시고 쪼아먹는 것이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동의보감}의 <탕액편>에는 오리의 성질과 약효를 밝히고 있는데, 집오리의 기름, 피, 머리, 알, 흰오리고기, 흰오리똥, 검은오리고기의 성질과 약효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들오리의 고기는 '성이 양하고 독이 없다. 위기를 화하고 열, 독, 풍 및 악창절을 다스리며 배, 내장의 모든 충을 죽인다. 9월 후부터 입춘 전에 잡은 것은 크게 보익하며 집오리보다 훨씬 좋다. 그리고 조그마한 종류가 있는데 이것을 도압이라 하여 맛이 가장 좋고 이것을 먹으면 허를 다스린다'고 하였다.

   모질고 강한 생명력

   집오리는 더러운 개천이나 폐수가 흐르는 하천 등지에서 산다. 그러나 거의 질병에 걸리는 일이 없으며 성장이 빨라서 번식도 용이하다. 또한 특별히 먹이를 주지 않아도 저 혼자 논이나 늪, 개울 등을 돌아다니며 물 속의 어류, 곤충 등을 잡아 먹고 그것도 없으면 잡초를 뜯어 먹고 산다. 이렇게 살아도 오리는 좀처럼 병에 걸리는 일이 없으며, 심지어는 쥐약 같은 독약을 먹고서도 일단 배설만 해버리면 불사신처럼 다시 살아난다. 조금 잔인한 이야기지만 사람이 잡아 먹기 위하여 털을 뽑고 목을 잘라 놓아도 오리는 한참 동안 목숨이 끊기지 않고 바둥거린다. 오리는 이처럼 대단히 생명이 질긴 동물이다. 따라서 다른 가축에 비해 사육하기 쉽다. 하천이나 풀밭 등 아무 데나 풀어놓기만 하면 알아서 잘 먹고 잘 크기 때문이다.

  새롭게 인식되는 오리의 약성

  이렇게 흔하고 천대받는 오리지만 영양 면에서는 결코 닭고기나 돼지고기에 뒤지지 않는다. 오리는 매우 실용적인 가축이다. 단지 고기에서 노린내가 나기 때문에 사람들의 구미를 쉽게 끌지 못할 뿐이다. 오리고기의 주성분은 단백질과 지질이며, 이밖에도 회분, 칼슘, 마그네슘, 인, 철, 나트륨, 칼륨 등을 조금씩 포함하고 있다.   또한 오리기름에는 인체에 필요한 필수 지방산인 리놀산, 리노레인산 등이 함유되어 있다. 이 성분은 콜레스테롤 형성을 억제하고 혈액순환을 도와준다. 따라서 동맥경화, 고혈압 같은 성인병에 효과가 있다.
  오리고기는 특유의 노린내가 있어서 식용 면에서 닭고기나 돼지고기보다 천대받아 왔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생강, 마늘, 파 등을 넉넉히 넣고 깻잎이나 미나리, 양파 같은 야채를 사용하면 노린내를 제거할 수 있어서 식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오리의 뇌수 속에는 매우 강한 해독제가 들어 있는데, 이것은 명태보다도 해독력이 강하다. 오리가 일반 해독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히 해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기를 보충해 준다는 것이며, 특히 어떤 약재와 배합해 사용해도 부작용이 없다는 점이다.
  오리는 농약독이나 화공약독을 해독하는 데 최고의 약이라 한다. 그러므로 공해에 찌들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약이다.
그리고 어떤 암이든 치료하기 위해서는 오리가 필요한데 그것은 오리가 인체 내의 독을 풀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산 김일훈의 저서 {신약}의 처방에는 토종 집오리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오리는, 청강수나 양잿물 같은 독약을 먹여도 고통은 심하게 받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 이런 점으로 보아 오리의 뇌 속에 들어 있는 해독제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1.월간{신약} 
  2.{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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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염소 

  정력에 좋은 수염있는 소 

  염소는 소과에 속하는 짐승으로 면양과는 전혀 다른 종이다. 그러나 한자로 표기할 때 '양'으로 쓰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양과 염소를 혼동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면양과 구분하기 위해 요즘에는 산양(산양)으로 통용된다. 순수한 우리나라 말로는 지역에 따라 염생이, 또는 얌생이 등으로 부른다.
  염소는 양처럼 털이 감겨 있지 않고 턱에 수염이 있다. 다른 동물에 비해 독특한 수염이 나 있기 때문에 '염소' 또는 '염우'라 하였다. 수염 있는 소라는 뜻이다.
  뒤로 구부정하게 휘어진 뿔, 짧은 꼬리, 쫑긋한 귀, 그리고 소처럼 수심 가득한 눈망울 등은 그지없이 순하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염소는 성질이 매우 급하고 체질이 강한 편이다. 또한 좀처럼 병에도 걸리지 않고 물을 별로 먹지 않으므로 마른 풀이나 나무 껍질만 있으면 저 혼자 갉아 먹으면서 잘도 큰다. 그래서 염소는 키우기가 쉽다.
  염소가 가축화된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 온다. 즉, 3천5백여 년 전에 이란의 유목민족이 최초로 가축화했다는 설과 기원전 3천년경에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염소를 가축화 했다는 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염소를 집짐승으로 사육하게 된 것은 서기 전 2천년경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 염소가 언제부터 사육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문헌이나 유적을 통해 추측해 볼 때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삼한시대 말쯤에 유입되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재래염소가 분포한 상태로 보아 중국 동부 연안으로부터 우리나라 서해안 지방으로 직접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사실은 일본 동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통해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이들에 의하면 우리나라 재래염소는 대만 서부 지방과 중국 광동지방의 흑색염소와 유기적인 관련이 있다고 한다. 

  쓰임새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흑염소는 허약체질이나 소모된 체력을 보강할 때 애용되는 식품이다. 임산부나 회복기의 환자, 그리고 어린이에게도 좋으며 특히 세포의 노화를 방지하고 불임을 막는 작용을 한다. 
  또한 허리나 다리가 저리고 아플 때 복용하면 신장기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늑막염이나 폐결핵 환자에게 영양을 섭취하게 하는 식품으로도 널리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지방 섭취가 과다한 현대인들은 흑염소를 복용하는 것을 일단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감기로 몸에 열이 날 때도 삼가는 것이 좋다.
  흑염소를 잡아서 푹 곤 뒤 각종 한약제를 넣어 달인 흑염소탕이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다. 이밖에도 흑염소 고기에 들깨, 미나리, 토란줄기, 파, 마늘, 고추 등으로 양념하는 흑염소 구이도 미식가들이 애용하는 흑염소 요리이다.
  건강원, 보양원 등의 이름으로 성업중인 시중의 흑염소집에서 달여주는 흑염소는 보통 30만원선이고 대략 한 달 정도 복용할 수 있는 양이다. 

  정력의 화신 

  한편, 염소탕은 개고기와 함께 정력제로 알려져 왔다. 특히 전라도 지방에서는 염소탕을 보신탕이라 부를 정도이다. 그리고 염소 중에서도 흑염소를 주로 탕의 재료로 쓴다. 세계를 정복한 칭기즈칸도 염소를 재료로 한 특수요리를 즐겼다고 하며 아프리카산 염소요리는 세계적인 고급음식으로 서양 상류계급 사람들도 어쩌다 한 번씩 맛보는 정도라고 한다.
  이와 같이 염소가 정력제로 각광을 받아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발정기가 오면 수컷 염소들은 서로 암컷을 독차지하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이때 수컷의 뿔은 무기로 변하고 심지어는 어린 새끼까지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멀리 쫓아 버린다. 아뭏든 앞에 수상한 놈이 나타나기만 하면 피투성이가 되도록 격투를 벌이는 것이다. 이러한
발정기는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주로 나타나는데 한동안 3주일 간격으로 반복된다. 이처럼 암컷에게 목숨 걸고 덤비는 염소의 생태를 보고 난 인간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염소는 다른 동물에 비해서 교미하는 방법이 조금 특이하다. 염소는 극히 짧은 시간에 교미를 하지만 여러번 거듭 반복한다. 보통 다른 동물들은 암컷은 대부분 수동적이며 교미 중에 조용하지만 염소의 경우는 암놈이 전적으로 주도권을 휘두른다. 단지 교미하는 순간뿐만 아니라 프로포즈에서부터 마지막 절정에 이를 때까지 무려 두 시간 동안이나 줄곧
암놈이 주도한다. 말하자면 염소탕을 먹으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강해질 것이라고 연상되었고, 그래서 염소처럼 화끈한 성생활을 즐겨보자는 인간들의 속셈이 염소탕을 보신탕의 지위로 올려놓은 것이다.

  이것이 토종

  염소는 사용하는 목적에 따라 여러 종류가 사육되고 있다. 예를 들면 젖을 얻기 위한 유용종으로는 자넨(Saanen)이 있고, 털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기르는 것에는 앙고라(Angora), 캐시미어(Cashimere)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젖이나 털을 얻기 보다는 주로 식용, 약용으로 하기 위하여 사육되어 왔다. 이러한 품종으로는 흑색과 백색, 그리고 갈색 계통의 것이 있다. 이중에서 육용이나 약용으로 가장 널리 이용되는 것은 키가 작고 털빛이 검은 흑염소이다.   흑염소는 일 년 내내 번식이 가능하고 병에 강하며 발톱의 질도 견고해서 재래 토종으로 육종하기에 적합한 형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들을 이용하여 육성,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없어서 해마다 사육 두수가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흑염소는 몸에 좋은 보양약이 된다고 알려짐에 따라 수요가 끊임없이 늘고 있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흑염소를 중탕으로 달여주는 상점도 여기 저기 생겨나고 있다.

  음양곽 먹고 자란 약산도 흑염소

  흑염소는 섬 지방에서 자란 것을 최고로 친다. 그래서인지 전남 완도군의 '약산도 흑염소'는 예부터 그 약효가 뛰어나기로 널리 알려져 왔다. 그리고 옛날에는 이 약산도에서 자란 흑염소가 궁중의 보약으로까지 쓰였다고 한다. 약산도 흑염소가 이처럼 각광을 받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즉, 약산도는 지명 그대로 약초가 많이 나는 곳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흑염소는 삼지구엽초 등의 약초를 뜯어먹고 자란다.
삼지구엽초는 음양곽이라 하여 한방에서 빠질 수 없는 약재로, 이것을 뜯어먹고 자란 흑염소는 혓바닥이 거무스름 하다고 한다.   음양곽은 정력의 풀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예가 중국의 옛 일화에서 나온다. 옛날 중국의 어느 초원지방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
있었다. 그는 양을 치다가 우연히, 숫양 중의 몇 마리가 유독 많은 암컷을 거느리고 하루에 백 회가 넘는 교미를 하며 실로 무서운 정력을 과시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이상히 여긴 목동은 이러한 숫양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숫양들이 산골짜기로 들어가서 어떤 풀을 열심히 뜯어 먹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이것을 본 목동도 그 풀을 뜯어 먹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도 역시 갑자기 정력이 왕성해지는 것이었다.
  그 뒤부터 이 풀의 이름을 음양곽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서도 음양곽에는 에피메딘이라는 배당체가 들어있어서 이것이 체내에 들어가면 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정수를 풍부하게 해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나라 약산도의 흑염소들이 바로 이같은 약초를 뜯어먹고 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의 흑염소는 당연히 그 약효를 인정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고자료
  1.안덕균 감수, {한방요리}, 예음, 91.10) 
  2.{민족문화대백과} 633쪽
  3.{약용음식물 백선} 
  4.{장터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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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토종닭/오골계 

  토속적인 삶 속에 뿌리 내린 영물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좋은 닭이 나는 나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수탉의 홰치는 소리를 들으며 새날을 맞이했다. 또한 닭을 상서로운 짐승으로 여겼으므로, 닭에 얽힌 설화나 전설이 오늘날까지 숱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액을 막고 재앙을 쫓는 상징으로 삼았다.   이처럼 닭은 모든 생명을 깨우는 전령사였으며 우리 겨레의 토속적인 삶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영물이었다.   닭이 제 때에 울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겼으며 초저녁에 울면 재수가 없고 해진 뒤나 한밤중에 울면 집안에 우환이 생긴다고 했다. 거기에 덧붙여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얘기도 있다.   흰닭을 삼 년 기르면 귀신이 된다는 속설도 전해 내려온다. 이것은 닭을 신과 통하는 짐승으로 여겼다는 증거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은 십 년 묵은 닭을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이 닭이 요망스럽게도 주인에게 "밤새 안녕히 주무십시오"라며 인사를 했다. 주인은 깜짝놀라 이 닭이 정말 귀신이 되려나 보다고 생각하며 문틈으로 둥우리를 지켜보았다. 밤이 깊어지자 둥우리에서 뛰어내린 닭은 몇 번 재주를 부리더니 예쁜 여자로 둔갑하여 산으로 올라갔다. 주인이 살금살금 뒤를 따라가 보았더니 여자는 여우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우에게 말했다.
  "우리 주인집에 내려가 세 번만 울어주면 지금까지 내 자식들과 알을 다 먹어치운 주인을 죽일 수가 있으니 도와주시오."
  그러자 여우는 "그까짓 것 어렵지 않지만 내가 울 적에 절구에 찧은 붉은 팥잎이 내 귀에 박히면 죽고 말아" 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재빨리 집으로 내려와 붉은 팥잎을 절구에 찧어 손에 쥐고 기다리다가 여우가 내려와 울려고 하자 팥잎을 여우의 귀에 넣었다. 여우는 그 자리에서 곧 죽어버렸고 여자는 다시 닭으로 변해 둥우리로 올라갔다. 그래서 주인은 "요놈의 닭아, 너를 씨닭이라고 오랫동안 살려두었더니 나를 죽이려 들어!" 하며 목을 졸라 잡아먹여 버렸다.
  이처럼 닭은 우리 선조들에게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닭은 그 용도에 따라서 난용종, 육용종, 난육겸종, 애완종, 투견종 등이 있다.
  요즘은 장미계 등 토종닭이라 할 수 있는 품종이 급격히 줄어들어 멸종 위기에 놓여 있고 그 대신 많은 알과 고기를 얻기 위한 외국품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리가 가늘고 푸르며 알을 잘 품고 병아리를 잘 거느리는 우리 토종닭은 정녕 멸종되어 버리고 말았는가.

   토종오골계, 털빛 하얀 '골흑자'

   고대국가의 건국설화에는 닭과 얽힌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경주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계림의 전설이 있으며 신라 탈해왕 때는 나라 이름을 계림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신라의 화랑들은 수탉의 깃털을 머리에 꽂아 용맹스러움의 징표로 삼았다. 이처럼 닭은 예로부터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은 희망과 풍요의 상징이었으며 새해 첫날에는 닭과 호랑이 그림을 벽에 붙여 잡귀가 물러나기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는 예부터 '닭의 나라'로 알려졌는데 {삼국지} 중 [위지동이전]에 보면 '한나라에 꼬리가 긴 닭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후한서}에는 '마한에는 꼬리가 5척이나 되는 닭이 있다'고 나온다. 이밖에도 중국의 옛 의서에는 우리나라 닭에 대한 내용이 자주 나오며, 한결같이 고기맛이 좋고 약성이 뛰어나다고 칭송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칭송받던 우리 토종닭도 외래 품종에 밀려 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희귀한 품종이 하나 보존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오골계이다. 오골계는 그 생김새가 보통 닭과는 달리 살과 뼈는 물론 내장까지 온통 까맣다. 마치 까마귀처럼 검다고 하여 '오골계'라고 부르며 '골흑자'라고도 한다.
  인간이 닭을 기르기 시작한 역사는 분명치 않으나 대략 6천년쯤 전으로 추측된다. 동아시아 밀림 속에 자생하던 '개루스개루스'라는 들닭을 잡아다 기른 것이 사육의 시초라 한다. 오골계도 보통 닭처럼 이 들닭이 선조이며 여기서 갈라져 나온 품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오골계가 순수한 종자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 대라리의 오골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였다. 그러나 해방이 되면서 방치한 까닭에 거의 멸종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다시 1962년에 동래군 기장면 대라리 산 2번지에 사육되고 있던 오골계를 다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으나 경제성이 떨어지고 번식력이 약한 까닭에 사육 부진으로 천연기념물 지정 자체가 해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오골계는 털빛이 희고 깃털이 다리를 덮는 오골계의 표준품종이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이후 1980년에 충남 연산의 털빛이 까만 오골계를 천연기념물 265호로 지정하여 보호해 오고 있다.
  연산 오골계는 백색 오골계보다는 질병이 적고 체질도 꽤 튼튼한 편이다. 옛 토종 오골계와 같은 품종인 흰빛 오골계는 멸종되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연산 오골계를 재래종 오골계로 친다. 그러나 품종이 재래종 오골계라 할지라도 철망 속에 가두어 놓고 외국산 배합사료를 먹여서 키운 것은 토종이라고 할 수 없다. 시골집 마당에 내먹여서 병도 없고 알도 잘 까는 닭이 진짜 토종닭이라고 할 수 있다.

  연산오골계의 담백한 고기맛

  아직까지는 오골계에 들어있는 약효 성분이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연구된 바는 없다. 그래서 오골계의 약성이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대부분 고기의 맛과 성분은 먹이에 따라 차이가 난다. 좁은 닭장에 가두어 놓고 외국산 배합사료와 항생제를 먹여 키운 닭과 집 주위에 놓아 먹여서 풀씨나 벌레, 푸성귀, 곡식 등을 주워먹으며 자란 닭은 고기의 맛과 성분이 크게 다르다.
  오골계 또한 먹이의 종류에 따라 맛과 약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솔밭이나 대밭에 놓아 키운 것을 으뜸으로 친다. 이렇게 놓아서 키운 오골계는 솔씨, 송충이, 작은 벌레, 개구리 등을 잡아먹고 자라므로 양계장에서 키운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튼튼하고 알과 고기맛, 약효 등이 우수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오골계의 고기에는 메타오닌이라고 하는 필수 아미노산을 비롯하여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그리고 옛 의서인 {동의보감}에 의하면 오골계는 보신, 보간, 보허에 좋고 정력을 좋게 한다.
  오골계의 검은살은 쫄깃거리고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뿐만 아니라 분명 육류임에도 불구하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름기가 없어서 국물이 뽀얗고 말갛게 우러나며 맛 또한 담백하다. 지방이 적으므로 소화, 흡수가 잘 됨은 물론이다.

   약효 뛰어난 오골삼계탕

   옛날 조선시대 양반들이 즐겨먹던 육개장이나 삼계탕 등의 보신음식들은 오늘날까지 인기가 있는 별미인데, 특히 영계에 백삼, 황기, 마늘, 찹쌀 등을 넣고 푹 고아서 먹는 삼계탕은 누구의 입맛에나 잘 맞는 초여름의 별미이다. 그런데 이 삼계탕 중에서도 가장 약성이 뛰어난 것이 바로 오골삼계탕이다. 즉, 오골계를 사용한 삼계탕이다.
  그리고 오골계는 고기나 알을 얻기 위해서보다는 보통 약으로 쓰기 위해 길러왔다. 신경통, 부인병, 피부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으며 그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오골계는 간과 신장이 허약한 증상을 개선하는 약으로 쓰인다. 오골계에 인삼, 대추, 밤, 생강, 흰 도라지, 천궁, 찹쌀을 넣어 곤 오골삼계탕은 신장허약에 효험이 탁월하다.
  또한 중풍으로 언어장애나 반신불수가 되었을 때도 오골계의 살을 발라 파, 후추, 소금, 생강, 식초, 간장을 넣고 탕을 끓여 마신다.
  닭의 흰 똥은 계분백 또는 계시백이라고 하는데 갈증을 멎게 하고 오줌을 잘 나가게 하고 유뇨증을 치료하며 악창을 낫게 하는 약으로 써 왔다. 또한 토종닭의 계분백은 신장암, 신부전, 신장염, 전립선염 등을 치료하는 신약이 된다고 하였다.
  이밖에도 오골계를 이용한 한방처방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부인들의 대하나 자궁출혈에는 오골계에 당귀, 황기, 생지황, 숙지황, 향부자, 복령, 인삼, 육계, 지골피를 넣고 진하게 달인 다음, 오골계의 뼈를 볶아 가루를 내어 한데 섞어 환으로 만든 오계전환을 쓰면 효과가 있다. 그리고 몸이 수척해지고 입이 마르고 잠잘 때 땀을 흘리는 증상에는 뼈를 찧고 갈아 가루를 내어 알약으로 만든 오계환을 쓴다. 

  이것이 토종 

  토종 오골계는 천연기념물 제 265호로 지정되어 충청남도 논산에 있는 연산 오골계 농장에서만 지정 사육되고 있다. 이렇게 귀한 까닭에 토종 오골계는 다른 지방에서 만나기 어렵다. 충청도 지방에서도 오골삼계탕을 전문으로 하는 집은 드물다.
  통상적으로 오골계는 보통 닭보다 몸집이 조금 작고 볏은 검붉은 색깔로 맨드라미꽃과 닮았다. 또한 깃털이 발목까지 내려와 다리를 덮고 있으며 발가락이 보통 닭보다 하나 더 많은 다섯 개다.   오골계라고 다 털이 검은 것은 아니다. 털이 흰 것도 있고 점박이도 있다. 또한 가슴부분만 붉은 털이 난 것도 있다. 이처럼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오골계는 그냥 보아서는 보통 닭인지 오골계인지 분간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뼈가 검다는 것이다.   토종 오골계는 충청도에서 나는 것인 만큼 오골삼계탕은 충청도의 토속적인 맛을 낸다. 예부터 충청도 사람들은 그 기질이 순하고 소박하므로 음식 역시 구수하고 넉넉했다. 충청도는 농업이 주가 되는 지역이라 쌀, 보리, 고구마, 무, 배추 등 농산물이 많이 나고 해산물은 서쪽 해안지방에서나 나왔으며 산채나 버섯, 호박 등을 이용한 음식이 식단의 대부분을 차지해 왔다. 특히 보리를 덖어서 지은 보리밥과 청국장이 이 지방 최고의 음식이었으니 오골삼계탕이야말로 이 지방 사람들이 내세울 만한 사치스런 음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치스럽다고 하더라도 이 지방의 본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서 양념도 그리 많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맛을 한껏 살리고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토종오골계가 귀한 탓에 서울 시내에서도 이 오골삼계탕을 찾기는 쉽지가 않다. 오골삼계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지만 공급받을 수 있는 오골계의 수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즉, 충남 연산의 오골계 농장에서 사육하는 오골계의 지정된 마리수에서 초과하는 수효만큼만 오골삼계탕의 재료로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오골계마저 대만, 중국 등지에서 수입되고 있다. 따라서 이 수입 오골계를 재료로 한 오골삼계탕집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수입한 오골계의 종자를 국내 여러 곳에서 사육하기도 한다. 덕분에 그 귀한 오골삼계탕을 일반인들이 맛볼 수 있는 기회는 넓어졌지만 순수한 토종오골계의 종자는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자료
  1.월간 {식품과 건강} 91.8월호 p.34
  2.월간 {시사춘추} 92.10월호
  3.월간 {신시}


  52.토종 돼지

  제사상에 머리 올리는 부와 재물의 상징

  돼지는 일찍부터 제사상의 희생물이었다. 우리의 유구한 역사 속에는 돼지머리를 제천의식에 사용하였던 기록들이 종종 나온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제천의식에 쓸 돼지를 도망가지 못하도록 돼지다리를 끊어버린 사람을 왕이 처형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성한 희생물에 흠집을 냈다는 죄목이었다.   또, {삼국사기}에도 '고구려는 항상 삼월 삼일에 낙랑의 구릉에 모여 사냥하고 돼지와 사슴을 잡아 하늘과 산천에 제사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동국세기}에도 산돼지가 조선시대 납향에 제물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에도 큰 굿을 할 때나 잔치 때는 돼지를 희생으로 쓴다. 돼지머리만을 제물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통째로 쓰기도 한다.   돼지는 전통민간신앙에서 지신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상해일에 궁중에서는 나이가 젊고 지위가 낮은 환관 수백 명을 동원해서 횃불을 땅 위로 이리저리 내저으면서 '돼지 주둥이 지진다.'고 하며 돌아다니게 하였는데, 이는 풍년을 비는 뜻이라고 하였다. 
  한편 돼지에 관한 속신도 많다. 예컨대 임산부가 돼지고기를 먹으면 아이의 피부가 거칠고 부스럼이 많다고 하며, 산모가 돼지발을 삶아먹으면 젖이 많이 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돼지꼬리를 먹으면 글씨를 잘 쓰게 되고 꿈에 돼지를 보면 복이 오고 재수가 좋다고 한다. 돼지꿈을 꾸면 재물이 생기는데 이것은 돼지를 지칭하는 한자의 음이 돈(돈)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기실 돼지는 야생하던 멧돼지를 잡아다 사육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육의 역사는 중국,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돼지 사육의 역사는 정확한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중국의 옛 문헌에서 우리나라와 관련된 기록을 통해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삼국지} 부여조에는 저가라고 하는 관직명칭이 나오는데, 이 사실로 미루어 우리나라에서는 약 2천년 전에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 재래종은 조선시대 말엽까지 사육되어 오다가 외래종이 도입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돼지는 기후, 풍토에 대한 적응력이 매우 강해서 전세계적으로 1천여 품종이 분포되어 있다. 유럽 중, 남부와 아프리카 북부에서 야생하는 유럽산 멧돼지, 중국대륙 동부에서 우수리강 유역에 걸쳐 살고 있는 멧돼지, 동남 아시아 멧돼지 등이 각 지역마다 독특한 재래종으로 형성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재래종 돼지는 중국의 멧돼지 또는 동남 아시아의 멧돼지에서 유래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우리가 흔히 뚱뚱하거나 많이 먹는 사람을 보고 돼지라 하는 것처럼 돼지는 일반적으로 머리부분이 작고 몸집이 뚱뚱한 편이다. 몸무게는 큰 것이 5백kg 정도에 이른다. 또한 돼지는 잡식성 동물이기 때문에 송곳니와 어금니가 모두 발달되어 있고 닥치는 대로 잘 먹는다.   흔히들 사람들은 돼지가 지저분하고 더러운 짐승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돼지는 그 조상인 멧돼지의 성질을 닮아 후각이 매우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배설을 하더라도 냄새 나고 지저분한 곳에만 한다.
반면에 잠자리는 항상 가장 깨끗하고 마른 곳을 선택한다. 단지 돼지는 땀샘이 발달하지 못하여 소변을 많이 보게 되므로 돼지우리 주변에 습기가 많이 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돼지우리를 만들 때 배설장소를 따로 만들어 주면 청결한 환경에서 돼지를 키울 수 있다.

   성분

   돼지고기에는 필수지방산 중 리놀산이 많이 들어있으며 그 함량은 쇠고기의 4∼5배 정도이다. 이것은 비만증이나 고혈압, 동맥경화 등을 예방 치료하는 데 좋다.   한편 돼지기름에 들어 있는 콜레스테롤 함량도 쇠기름의 절반 밖에 되지 않으며 단백질의 아미노산 조성 비율도 사람의 몸 성분에 더 가깝다고 한다. 옛 문헌에 의하면 '돼지고기는 수은과 독을 제거한다'고 한다. 

  쓰임새 

  앞에서 밝혔듯이 돼지는 오랜 옛날 제천의식의 제물로 쓰였다. 돼지가 제물로 쓰였다는 것은 당시에 돼지고기를 식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나라에서는 금기시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것은 터무니없는 금기이다.
  돼지고기의 효능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돼지고기에 약간의 독성이 있으므로 다른 음식과 화합하여 인체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돼기고기가 약이 된다는 견해이다. 매실, 도라지, 연뿌리 등과 돼지고기를 같이 먹으면 설사가 나고, 메밀과 같이 먹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한다. 이것은 돼지고기에 독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견해이다.
  이밖에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좋지 않은 금기식품으로는 화채, 붕어, 계란, 노란 콩, 자라고기 등이 있다. 화채와 함꼐 먹으면 치질이 생기고, 붕어, 계란, 노란 콩 등과 같이 먹으면 기가 체하고, 자라 종류의 고기와 같이 먹으면 내장이 상하며, 특히 생강과 같이 먹으면 풍의 요인이 될 뿐 아니라 얼굴이 검어진다고 한다. 또 돼지골은 남자의 양기를 감퇴시킨다고 하였으며, 돼지고기는 고혈압의 증상인 풍의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한편, 돼지고기의 약효로는 돼지의 허파가 사람의 허파와 해소병에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돼지의 꼬리에서 뽑은 피는 갑자기 쓰러져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묘약으로 알려져 있고, 등뼈의 골수는 사람의 골수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돼지의 목덜미 살은 술에 체했을 때 얼굴이 노래지고 배가 늘어나는 증세를 막는다고 한다. 이질에는 저간환을, 탈항에는 저간산을 쓰고, 각종 피부병과 천식 등 호흡기질환에는 돼지발톱을 썼다. 돼지꼬리를 태운 재를 대머리에 바르면 머리가 나고, 돼지털을 태운 재를 깨기름에 이겨 화상에 바르면 낫는다고 한다.
  또한 돼지의 입부분은 입술의 종기나 식은땀에 좋고, 혓바닥은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 좋으며, 돼지 이빨은 단오날에 태워 가루를 내서 어린이의 경기나 뱀에 물린 데, 또는 쇠고기를 먹고 중독된 데 이용하면 약효가 있다고 한다. 돼지뼈, 특히 턱뼈를 태운 재는 천연두를 앓는 아이에게 좋다.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나누어 등심, 방아살, 어깨살, 뒷다리, 갈비 등으로 분류하는데, 지방이 적고 연한 부분을 상품으로 친다. 요즘은 갖은 양념을 한 등심이나 갈비, 그냥 구워서 소금에 찍어먹는 삼겹살을 즐겨 먹으며, 계피 등을 써서 냄새를 없앤 돼지족도 인기식품 중의 하나이다.
  그 밖에 저민 돼지간에 메밀가루를 묻혀서 기름에 지진 간전, 돼기고기를 덩어리째 삶아서 얇게 저민 수육, 편육을 비롯하여 갈비찜, 완자전 등의 음식과 순대, 서양식으로 가공한 소시지 등 다양하게 조리되고 있다. 부산물인 털은 칫솔, 옷솔의 원료로 이용되고, 가죽은 피혁으로 이용된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사육되어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자리잡은 재래종 돼지는 조선시대 말엽까지 사육되어 오다가 외래종이 도입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꿈만 꾸어도 재수가 좋다고 하여 집집마다 그림으로 걸어놓던 부와 재물의 상징인 새까만 토종돼지는 지금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찾아보기 어렵다.   재래종 돼지는 흑색으로 몸집이 작고 주둥이가 길며 체질이 강건하여 질병에 잘 견디는 장점이 있다. 주로 산간지방에서 사육되었으나 근래에는 그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경상북도 김천의 지례돈과 경상남도 사천의 사천돈이 독특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었으나, 이 품종들도 외래품종의 도입으로 인하여 고유한 특성을 상실하였다.
 
  ** 참고자료 
  1.{민족문화대백과}
  2.{잃어버린 토종을 찾아서} KBS 영상사업단 제작 비디오 자료 
  3.{약용음식물백선}, 보건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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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토종벌(한봉)

  추위와 전염병에 강한 토종벌

  벌들의 나라는 꿈의 왕국이다. 그런 까닭에 이상세계를 추구하는 고대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꿀벌의 삶은 하나의 연구모델이었다. 벌들의 세계는 평화롭고 민주적이며 질서정연하고 조직적이다. 또한 벌들은 꽃의 낙원에서 살고 꽃가루로 집을 지으며 꽃의 정인 꿀을 먹이로 하여 살아간다. 그들의 세계는 화려하며 아름답고 신비하다. 그래서인지 평화롭고 기름진 땅을 일컬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하였고 꿀맛은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상징하는 말로 쓰여왔던 것이다.   벌의 왕국은 크게 세 가지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마리의 여왕벌을 중심으로 수백 마리의 수펄과 2∼6만여 마리의 일벌이 완전히 다른 임무를 수행하면서 하나의 질서를 이룬다. 여왕벌은 벌왕국의 강력한 통치자로서 종족번식을 자신의 임무로 한다. 벌집을 다스리고 벌들을 감독하면서 날마다 1천5백여 개의 알을 낳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평생을 빈둥빈둥 놀고 먹는 수펄은 여왕벌과 단 한 번의 교미를 위해서 태어난다. 그러나 실제로 여왕벌과 교미를 하려면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리고 여왕벌의 혼인식이 끝나면 모든 수펄들은 차례로 쫓겨나거나 죽게 된다. 벌나라의 절대다수의 민중은 일벌들이다. 일벌은 본래 암컷이었으나 능력이 퇴화된 중성이며 몸집은 작지만 날쌔고 튼튼하다. 이러한 일벌들은 꽃가루를 채집하고 꿀을 모아 들이고 애벌레를 키워 후손을 양육하며 외적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는 전사의 역할까지 담당한다.
  그런데 이처럼 벌들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보다 실제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꿀이다. 그 이름만 들어도 달콤한 맛이 연상되어 군침이 도는 꿀은, 사실은 꿀벌이 꽃에서 따서 저장해둔 먹이이다. 꿀에는 투명한 것과 누런 것이 있으며, 끈끈한 액체로 그 성분은 대부분이 당질이다. 식용, 약용으로 쓰이고 특히 한방에서는 위를 편하게 하고 대변을 순하게 한다
하여 약재로 사용한다. 인간이 언제부터 꿀을 이용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이미 원시 시대 때부터 이용해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봉소, 즉 벌집이 원시시대 때의 동굴에서 발견된 적도 있고,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 속에서 꿀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보면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꿀은 그 종류에 따라 색깔, 향미, 성분 등에 차이가 있으며, 어떤 것은 독성이 심한 것도 있다. 또 꿀을 많이 먹고 나서 속이 편치 않거나 심한 경우에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수도 있는데, '꿀을 많이 먹으면 속에서 불이 난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현상 중의 하나이다.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꿀이 삼투압 작용, 즉 수렴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위궤양 같은 위장병을 가진 사람에게는 꿀이 다량의 수분을 흡수해 버림으로써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성분 

  꿀에 들어 있는 주성분은 과당과 포도당이며 이밖에 설탕, 엿당, 덱스트린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단백질, 회분 비타민 B군 등도 미량 함유하고 있다.
  꿀은 밀원에 따라서 성분에 차이가 나는데 토종꿀이 우리에게 좋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를테면 메밀, 참피나무, 밤나무 등에서 채취한 꿀은 색깔이 짙고 철분이 많다. 색깔이 옅은 꿀은 철분 함유량이 6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꽃의 화밀(꿀)을 꿀벌이 모아 농축 저장한 꿀의 주성분은 당질로서 약 80%를 차지한다. 당은 과당과 포도당이 주체로 과당이 포도당보다 더 많다. 이밖에 설탕, 엿당, 덱스트린 등을 포함한다.   꿀에는 이 밖에도 비타민 B1,B2,B6, 판토텐산, 젖산, 개미산, 철분, 칼슘 등의 성분이 다양하게 들어 있다. 특히 꿀에는 칼륨이 상당량 들어 있어 박테리아가 생존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옛날부터 꿀이 건강과 미용에 효용이 있다는 평은 비타민 B군, 특히 B6가 많고, 피부의 거칠음을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철분은 메밀, 참피나무, 밤나무 등에서 얻어진 꿀에 많다. 꽃의 당분은 대부분이 설탕이지만 벌의 분비액 중의 효소인 인베르타아제에 의해서 설탕이 반전당으로 변화되므로 꿀은 흡수되기 쉬운 당질식품이다.   꿀에 들어있는 효소의 작용으로 거품이 발생하는 수가 있으므로, 여름에는 저온으로 저장해야 한다.   꿀 속의 과당은 체내의 당분 흡수를 지연시키고 흡수된 당분의 소비를 촉진시켜 혈당의 상승을 막아주며, 빨리 분해되기 때문에 신장을 편하게 하는 역할과 피로회복, 진정 작용, 보혈 작용 등도 한다.

  쓰임새

  꿀은 보통 식용하지만 이외에도 과자, 음료, 화장품의 제조에 쓰이며 한방에서는 환약(환약)을 만들 때 결합제로 쓴다.   음식물에 꿀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꿀은 주성분이 환원당으로 n온도에 따라 감미도가 변하므로 조미료로는 적당하지 않다.
  설탕보다 흡수가 잘 되므로 피로회복에 효과가 좋으며 과자에 사용하면 갈색으로 변하여 먹음직한 색깔을 낼 수 있다.   변비 퇴치에도 효과가 있으며, 소화가 잘 되는 식품이므로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도 좋다. 더욱이 꿀에는 비타민 B6가 들어 있어 피부가 거칠어지는 것도 막아준다.   이처럼 꿀에는 여러가지 좋은 효능이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꿀은 민간약으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소련의 어느 조사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100세 이상 장수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꿀을 상식하는 사람이 아니면 양봉가였다고 한다.
  예로부터 혀에 혓바늘이 돋거나 염증이 생겼을 때, 또는 입안이 헐었을 때 꿀에 봉사(한방에서는 보통 월석이라고 한다) 가루를 녹여 발라두면 아주 효과가 좋다고 전해 온다. 또 {약성론}이라는 옛 책에도 '입안에 창이 생긴 데에는 무잎을 꿀에 담가서 물고 있으면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모두 꿀의 수렴 작용을 이미 오랜 전부터 알고서 치료에 활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방의 사상의학에서는 체질적으로 비위에 열이 많은 소양인 체질의 사람에게는 꿀이 그다지 적합한 식품이 못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칫 비위의 열을 더욱 높여 얼굴이 붉어지게 만들고 가슴을 답답하게 하거나 피부 발진을 일으키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빵 식용시에는 버터를 바른 위에 꿀을 더하여 식용하면 한층 좋은 맛을 즐길 수 있다.

  이것이 토종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벌의 종류는 무려 9백20여 종이나 된다. 그 중에서 꿀을 얻을 수 있은 것은 꿀벌과에 딸린 '양봉'과 '토종벌' 두 가지다. 토종벌이라고 부르는 동양종 벌은 가짓수가 하나뿐이지만 서양종 벌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흔히들 '한봉'이라 하는 토종벌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토종벌은 인도가 원산지인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아시아 여러 나라에 서식한다. 그러나 종은 같을 지라도 주변 환경에 따라 생태와 꿀의 질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나라에서 나는 '한봉'은 우리의 특산물로 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안에서도 토종벌은 그리 흔하지 않다. 주로 강원도의 산간지대나 지리산, 덕유산 등지에 토종벌 보호구역이 설정되어 있다. 이것은 양벌로부터 토종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인데 양봉이 침투하면 힘이 약한 토종벌은 거의 몰살을 당하기 때문이라 한다.
  토종벌은 2천년쯤 전인 삼국시대 초기부터 사람들이 길러왔다고 한다. 먼저 고구려에서 시작하여 점차 백제, 신라 등으로 벌 치는 기술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의 여풍이라는 사람이 서기 6백43년에 양봉법을 일본에 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 선조들이 오랫동안 길러온 한봉은 꿀의 생산량이 많은 양봉에 밀려 그 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심지어 어떤 양봉학자들은 양봉업의 발달을 위해서는 한봉이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토종벌은 서양벌보다 몸집이 조금 작고 혀의 길이가 짧아 꿀을 따는 능력이 서양벌보다 떨어진다. 또한 성질이 매우 감정적이어서 날씨나 기분에 따라 꿀을 모아들이는 양이 다르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면 금방 의기소침해져서 일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토종벌은 나무통을 파내어 만든 '환태식 벌통' 속에서 살기 때문에 양봉 자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벌집의 구조 때문에 일년에 한 번씩 벌을 모두 죽여버리지 않고서는 꿀을 뜰 수 없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그러나 토종벌은 여왕벌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이 서양벌보다 강하고 성질이 온순하여 다루기가 쉬우며 추위와 전염병에 강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꿀의 질인데 토종꿀이 양봉꿀보다 질적으로 훨씬 우수하다. 똑같은 꽃에서 꿀을 따온다 하더라도 양봉꿀은 한 해 동안 철따라 여러 번 뜨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꿀의 종류와 질이 다르고 물기를 말릴 겨를이 없어서 꿀이 대체로 묽다. 그러나 토종꿀은 환태식 통나무 벌통 속에 사계절 동안 피었다 진 수많은 꽃에서 따온 꿀이 위에서부터 켜켜이 들어차 있어서 꿀의 밀도가 높고, 오랜 동안 벌들의 날개짓으로 물기가 거의 빠져서 농도가 매우 진하다.
  그러므로 영양이나 약성 면에서 토종꿀이 양봉꿀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토종벌을 외면하고 도태시킬 것이 아니라 보호 육성하고 잘 활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참고자료
  1.{약이 되는 식품}
  2.{식품사전(꿀)}
  3.월간 {시사춘추} 9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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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한국호랑이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백수의 왕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국이므로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여 '호랑이의 나라'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때문에, 호랑이가 인간에게 끼치는 민폐가 매우 심하여 호랑이에 의하여 사람이나 가축이 해를 입는 환난을 일컬어 '호환'이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한국호랑이는 단군왕검의 탄생설화에서부터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여곡절을 함께 해왔다.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대하는 심성은 영물을 대하는 그것과 같아 호랑이를 의인화한 전설이나 설화 등에 많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마침내 서울 올림픽대회의 마스코트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호랑이는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인 호랑이는 여러 설화를 비롯하여 그림과 조각 등 미술품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등 우리민족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주역}에서는 만주와 우리나라를 지목하여 인방으로 지칭하고 있기도 하다. 

  왕처럼 의젓한 생활방식

  호랑이는 큰 몸집에 비하여 동작이 매우 빠르고 조심성이 있다. 먹이를 발견하면 소리를 내지 않고 은밀하게 접근하다. 자기 몸이 보이지 않게 걸어가는 동작과 모양은 마치 뱀이 땅 위를 기어가는 동작과 비슷하다.   먹이를 찾아서 하루 동안에 보통 80∼100km를 달리는데, 항상 뒷발이 앞발자국을 되밟는 습성이 있다. 또한 뛰는 속도도 매우 빠르고 한번 도약하면 5m 가량 뛰어오를 수 있고, 먹이를 쫓아갈 때는 7∼8m의 먼 거리를 무난히 건너뛰기도 한다. 그리고 10m 높이의 벼랑을 훌쩍 뛰어내리기도 하며, 헤엄도 잘 친다. 경사가 45˚정도로 기울어진 나무 위를 자유롭게 기어올라갈 수 있는데, 나무 위에서 내려올 때는 회전하여 머리를 밑으로 향하게 내려온다.
  이처럼 자유자재로 숲을 누비며 백수의 왕으로 군림하는 호랑이도 괴로운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여름철의 무더위다. 그래서 호랑이는 6∼7월 여름이 되면 깊은 산중의 서늘한 골짜기에서 살고 8월이 지나가면 다소 밑으로 내려와서 산다.
  반면 호랑이는 추위를 잘 견디는 편 다. 겨울에는 -30˚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시기가 되면 배와 겨드랑이 밑의 지방층이 5cm 정도 두꺼워진다. 그리고 눈오는 겨울밤이면 마치 개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처럼 월광욕을 즐기기도 한다. 또한 호랑이는 밤을 좋아한다. 그러나 낮에도 수시로 먹이가 되는 야생동물을 찾아다닌다. 배가 부르면 하루종일 드러누워 낮잠을 자다가 해가 지자마자 활기를 띠고 약탈적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한편 호랑이는 12월에서 1월 초순경에 교미 시기가 되는데 이 시기에 수컷은 이산 저산 숲이란 숲은 모조리 뒤져서 암컷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암컷을 발견하면 여러 마리의 숫컷은 암컷 한마리를 두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대판 싸움을 벌인다. 이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가 암컷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패한 호랑이들은 싸움의 장소를 떠난다.   이렇게 교미가 이뤄지면 암호랑이는 임신을 하게 되는데 뱃속에 98∼110일 정도 후에 분만을 한다. 1회에 낳는 새끼 수는 보통 3마리 정도이며 암컷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바위로 된 동굴이나, 바위와 바위 사이에 움푹 팬 곳, 절벽의 동굴에 보금자리를 만든다. 암컷은 항상 경계를
하기 위하여 결코 일직선으로 보금자리를 찾아가지 않고 바위를 밟고 다녀서 자신의 발자국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호랑이는 새끼를 양육하는 기간에는 성질이 무척 사나워져서 엽사(엽사)에게 미친듯이 덤벼들기도 한다.
  새끼들은 생후 3년 뒤에야 좋은 서식장소를 찾기 위하여 방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생후 5년이 되어야 비로소 성숙하며, 수명은 40∼50년이다. 1년에 두 번 털갈이를 하는데, 검은 줄무늬와 코와 발의 털을 다른 부분보다 먼저 갈이한다. 또, 길고 날카로운 발톱도 매년 바뀌며, 바뀌는 시기는 12월 경이다.   호랑이는 식성이 까다롭다. 그래서 자기자신이 잡은 신선한 야생동물의 고기만 먹는다. 일반적으로 짐승들의 뼈가 많이 붙어 있는 곳과 내장은 먹지 않는다. 그러나 제 아무리 호랑이라도 극심하게 시장기가 들면 죽은 고기, 오래된 고기도 먹는다. 주식물은 멧돼지이며 노루, 산양, 곰, 사슴 등이다. 그리고 포식을 한 뒤에는 소화작용을 돕기 위하여 여러가지 풀과 도토리, 과실, 즙액이 많은 머루, 다래 같은 것을 먹는다.
말하자면 후식까지 먹는 셈이다.   음식을 충분히 먹은 뒤에 호랑이는 냇가로 내려가서 코와 입을 물속에 담그고 입 속에 남은 고기부스러기와 피를 깨끗이 씻는 습성이 있다.
일종의 양치질이다. 겨울에는 물을 얻기가 어려우므로 물 대신 눈으로 목마름을 면한다.

   민간신앙에서 숭배 대상

   우리 민족의 민간신앙 속에는 호랑이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온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예컨데 산악숭배사상과 융합되어 산신신앙으로 자리잡게 된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즉, 산을 숭배하는 사상은 산속에 사는 숭배의 대상인 호랑이와 연계되어 산신이 호랑이로 표현되는 것이다. 호랑이를 별칭하여 산군, 산군자, 산령, 산신령, 산중영웅이라고 부르는 데에도 이러한 사상이 엿보이고 있다. 오늘날에도 심마니들은 호랑이를 산신령으로 대접한다.
  그런데 산신당에는 호랑이가 사자로 묘사되기도 하고, 호랑이 자체의 모습이 산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그리고 산신도에 묘사되고 있는 호랑이는 무섭고 사납다기보다는 점잖고 친근하게 표현되고 있다. 호랑이의 자세도 산신의 옆 또는 앞에 다소곳이 엎드려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호랑이의 모습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애교가 있고 신성한 영물로서의 분위기와 함께 친근한 시골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를 나타냄으로써 인간적인 모습으로 희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호랑이는 풍수설에서도 중요시 되어 왔다.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에서는 우주를 진호하고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상징적 동물을 방위신으로 설정하고 있다. 즉,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라는 이름을 가진 방위신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들 4신은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풍수지리에서는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라 하여 매우 중시되었다.
  이처럼 설화 또는 민간신앙 속에서 등장하는 한국호랑이는 무섭고 두려운 맹수가 아니라 우리 생활에 밀접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동물로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어리석고 의뭉스러울지라도 결코 간교하지 않은, 오히려 우직함이 돋보이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하겠다. 

  호랑이는 죽어서 약과 가죽을 남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한다. 호랑이의 가죽은 무척 귀한 물건으로 여겨져서 높은 값에 거래되었다. 그래서 웬만한 부자나 고관대작이 아니면 손에 넣기가 무척 힘들었다. 호랑이가 사람에게 잡히는 일도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사악한 잡귀를 쫓는 신비한 영험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호랑이 가죽은 주로 장식용으로 쓰였다. 그러나 단순한 장식이 아니고 몸을 보호하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신행 때 신부의 가마 위에 호랑이 가죽을 덮기도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즐거움을 시기한 잡귀가 새색시를 넘보기라도 할까 보아서 미리 잡귀의 범접을 막고자 한 의도이다.   한편으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만 남기는 것이 아니었다. 호랑이의 신체 각 부위는 주술적으로, 혹은 한방이나 민간약재로 긴요하게 쓰였다.
{본초강목}에는 호랑이의 각 부위가 약재로 이용되는 예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예컨데 뼈는 사악한 기운과 병독의 발작 등을 멈추게 하므로 풍병의 치료제로 쓰였고 호랑이의 눈은 마음이 산란한 환자에게 쓰였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인광을 발휘하는 호랑이의 눈에는 사귀도 놀라 달아나게 되어 마음을 진정시키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호랑이의 코는 미친병의 치료와 어린이 경풍에, 그리고 치아는 매독이나 종기의 부스럼에, 발톱은 어린이의 팔뚝에 붙은 병도깨비를 물리치는데, 털가죽은 사악한 귀신을 놀라게 하여 학질을 떼는데, 수염은 치통에, 오줌은 쇠붙이를 삼켰을 때 사용되었다.
  또한 단오날에는 궁중에서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신하에게 하사하는 풍속도 있었고 부녀자들은 호랑이의 발톱으로 노리개를 만들어 패용했다.

  이것이 한국호랑이

  한국호랑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모두 25마리가 포획되었다. 1918년 강원도 춘성군 가리산에서 수컷 1마리, 1922년 경상북도 경주군 대덕산에서 수컷 1마리, 1946년 평안북도 초산에서 1마리를 잡은 것을 마지막으로 멸종되고 말았다.
  한국호랑이는 크고 날쌔며 털가죽의 무늬가 최고로 아름답다. 또한 털의 질도 인도산보다 훨씬 좋은 듯이 보이며 노란색이 적고 그 대신에 흰 무늬가 있다. 그러나 검은 줄무늬는 열대산과 같이 뚜렷하며 꼬리는 더 길다.
  한국호랑이의 평균 몸무게는 120∼150kg 정도이고 꼬리를 포함한 몸길이는 2.5m에 달한다. 잔등의 색깔은 선명한 누런 밤색이고 24개의 검은 띠줄이 서로 연결되어 어룽더룽하다. 또한 배에는 흰색 바탕에 5개의 검은 줄무늬가 그어져 있는데 다른 호랑이보다 줄의 폭이 넓고 뚜렷하며 이마에는 검은 무늬로 임금'왕'자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백수의 왕'임을 과시하고 있다.
  전 세계의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 중에서 한국호랑이로 보이는 것은 150여 마리다. 그러나 정작 남한의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 30여 마리 중에는 한국호랑이가 한 마리도 없고 모두가 벵골산이다. 남한에서는 이미 우리나라 고유의 호랑이가 멸종되어버린 것이다. 무분별하게 포획을 해버린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행동반경이 넓은 호랑이의 특성상 남북 분단으로 만들어진 철조망이 생태계를 단절해버린 것도 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는 평양 대성산 유원지에 '조선범'이 사육되고 있으며 백두산 근처에 4∼50마리의 조선범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철조망이 없어지고 한국호랑이가 다시 서식하기를 기대해 본다.
   ** 참고자료
  1.{민족문화대백과} 
  2.{세계일보} 93.2.10
  3.{한국호랑이} 김호근, 윤열수 공저,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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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까치

  상서로운 영물, 한국의 나라새

  이른 아침에 밝은 햇살이 봉창을 물들일 무렵 사립문 곁에서 들려오는 까치 소리를 들으면 웬지 기분이 좋다. 또한 까치 우는 소리를 들으면 반가운 손님이 오거나 기쁜 소식이 온다. 그리고 집 앞에 까치가 집을 지으면 부자가 되거나 관직에 오르고, 집 안에 있는 나무의 남쪽으로 뻗은 가지에 둥지를 틀면 집안에서 과거급제하는 인물이 나온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욕심많은 사람들은 까치집을 훔쳐다 집안에 들여놓기도 했으며 까치 둥지만 걸려있는 뜰안의 나무를 오르내리며 까치 흉내를 내기까지 하였다. 실제로 조선조 성종 때 까치둥지가 있는 나무를 베어다 집 앞에 세운 사람이 있었는데 미행하던 성종의 눈에 띄어 과거합격의 징표인 홍패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또한 {필원잡기}에 의하면 세종 때에는 집현전 남쪽의 큰 버드나무에 흰까치가 둥지를 틀었는데 이 때 정부의 요직을 집현전 학자들이 모두 차지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까치는 갖가지 연애설화에서 사랑을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견우와 직녀가 사랑을 속삭이도록 은하수에 오작교를 놓아준 새도 바로 까치이며, 이몽룡과 성춘향이 사랑을 속삭이던 남원 광한루의 다리 이름이 또한 오작교다.   한편, 까치는 은혜를 갚는 새로 알려져 왔다.
  까치가 목숨을 바쳐 은혜를 갚는 설화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구전되어 온다. 지역에 따라 설화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옛날 한 선비가 과거보러 가는 길에 구렁이나 뱀에게 잡혀먹힐 위기에 처한 까치를 발견하고 구해준다. 그리하여 까치는 살아나고 구렁이는 선비에 의해서 죽는데, 선비가 나중에 다른 구렁이에게 보복을 당하여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근처 절에 있는 종이 세번 울려야만 선비가 살아날 수 있다. 이 때 선비가 구해준 까치가 나타나서 절에 있는 종을 머리로 받아 세 번 울려 선비를 구해주고, 자신은 머리가 깨져 죽는다. 이밖에도 많은 설화나 민담에는 은혜갚은 까치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이렇듯이 사람들은 예로부터 까치를 상서로운 새로 여겨왔다. 그래서 까치를 죽이는 것은 죄가 된다고 믿었으며, 오래된 까치집은 미친병이나 뱃속에 벌레가 있는 사람에게 약으로 썼다고 한다. 또한 호남지방에는, 까치의 둥지가 있는 나무의 씨를 받아 심으면 벼슬을 하게 된다고 믿는 속신이 있으며, 중부지방 사람들은 까치둥지가 있는 나무밑을 자주 지나가면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이처럼 까치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민족과 친근한 야생조류로서 사람들에게 희소식을 알려주는 사령자 역할을 해온 덕분에 지난 1964년 '나라새 뽑기' 공개응모에서 압도적인 표를 얻어 영광의 나라새로 뽑혔다. 그리고 런던의 '국제조류보호회의'에서는 까치를 한국의 나라새로 정식 보고하기도 했다.

   협동심 강한 터줏대감

   까치는 참새목 까마귀과에 속하는 텃새로, 크게 나누어 검은부리까치와 노랑부리까치 등 2종이 분포한다. 이 중에서 노랑부리까치는 미국 북부의 극히 제한된 지역에 분포하는 특산종이고 검은부리까치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북반구 온대지역에 분포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까치는 검은부리종에 속하며 울릉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각 지역에
분포한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지난 89년 말에 모 일간신문사가 항공회사의 후원을 얻어 인공이식을 시도 하였다. 그 결과 90년 5월에는 다섯 마리의 새끼를 부화시켜 이제 제주도에서도 까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울릉도 등 까치가 식생하지 않은 다른 도서지방에도 이어져 조만간에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기분좋은 까치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까치에게는 낯선 환경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습성상 까치는 사람이 사는 동네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사는데 종족의 수가 많이 불어나 포화상태에 이르더라도 좀처럼 생활의 터전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까치를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반면에 까치는 자신들의 생활터전이 다른 새들에 의해 침범 당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매, 수리 등 힘세고 사나운 새들이 침범해온다 하더라도 까치들은 특유의 협동심을 발휘하여 끝내 침입자를 물리치고 만다. 한편으로 까치는 대단히 영리한 새다. 까치새끼를 어려서부터 데려다 기르면 그 주인을 알아보는데 주인이 외출하면 소매를 물고 늘어지기도 하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반갑게 울어제친다. 뿐만 아니라 특별한 훈련을 시키지 않아도 주인이 시키면 담배 같은 물건을 물어오기도 한다고 한다. 까치가 상서로운 새로 여겨진 데는 이와 같은 까치의 높은 지능도 작용했으리라. 
 
  까치는 노래와 그림의 주인공

  우리나라 각지역에는 까치를 노래한 동요가 많다. 아침 저녁으로 까치소리를 듣고 자란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까치에게 친근감을 지니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가 치아를 갈 때 빠진 이를 지붕에 던지면서 부르는 노래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전북 부안지역에서 전승되는 노래를 예로 들면 이렇다.
   까치야 까치야
   내 헌 이 가져가고
   네 새 이 도라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이들이 젖니가 빠지면 미관상 우습게 보여 다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될 뿐만 아니라 음식 먹기에도 불편해 하루 빨리 새 이가 나기를 고대한다. 우리 어린이들은 이러한 마음을 하소연 하면서 염원하는 대상으로 까치를 선택했다. 까치는 상서로운 새이므로 간절하게 빌면 꼭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까치를 소재로 부르는 노래는 많았다. 까치가 집짓는 모양을 묘사하거나 까치소리를 흉내내는 등 까치의 생태를 노래한 경우도 있었고, 흙장난을 하다가 눈에 티가 들어갔을 때 티가 빨리 나오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까치는 어린이들과 친근한 새로서, 작은 소망을 들어주는 신앙적인 영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민화에는 호랑이 그림이 많은데, 호랑이와 함께 꼭 등장하는 것이 까치다. 사실상 까치가 다른 새들에 비해서 빼어나게 아름답거나 하지는 않다. 그러나 늘상 호랑이 그림 속의 나무 위에는 까치 두어 마리가 앉아있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사악함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오는 민속신앙의 대상으로 호랑이와 까치를 동일하게 보았다는
의미이다. 즉, 백수의 왕 호랑이의 위엄으로 악귀를 물리치고 상서로운 새 까치로 하여금 행운을 불러오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이렇게 한 장의 족자로 만들어진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우리 선조들은 정월 초하루 날 문이나 벽에 걸어 액운을 쫓는 방패막이로 삼았다. 이러한 풍속이 조선 후기까지 계속되었다는 사실이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까치가 꼭 호랑이와 함께 그림 속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옛 화가들은 소탈하면서도 단아한 자태가 돋보이는 까치를 그림의 직접적인 소재로 삼아 즐겨 그렸다. 그 중에 까치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를 예로 들면 창강 조숙(1595∼1668)이다. 그는 은근하면서도 시정이 넘치는 배경에 거칠고 성긴 붓놀림으로 소박하게 까치를 표현하여 조선 백성의 심정과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려 하였다.

   지명에 스며든 까치의 얼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를 가든지 산, 마을, 다리, 고개 등에 붙여진 까치와 관련된 이름을 만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오작교를 들 수 있다.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 전설에 나오는 은하수에 놓인 다리 이름이다. 견우와 직녀의 사랑에 감동한 까마귀와 까치들이 만들어놓은 다리, 즉 까막까치다리이다. 그런데 이 오작교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도 있다. 전라북도 남원군 광한루에 있는 오작교가 바로 그것인데, 돌로 만든 다리이며, 1460년 경 조선 세조 때 남원 부사로 부임한 장의국이 만들었다. 나중에 이 다리는 춘향전의 무대가 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그러므로 춘향전이 지어지기 전부터 이 다리는 오작교로 불리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춘향전의 저자는 남원 오작교를 배경으로 이몽룡과 성춘향의 연애사건을 구사했던 것이다.   하늘에 있는 오작교를 까치가 만든 것이라면 땅위의 오작교는 인간이 만들었다. 그리고 하늘의 오작교는 1년에 단 한 번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비극의 다리지만 남원의 오작교는 이몽룡과 성춘향 이래로 지금껏 숱한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만남의 자리로 이용되고 있으니 이 사실 또한 까치의 상서로운 기운이 다리 이름에 스며 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밖에도 까치의 이름을 딴 지명으로 눈에 띄는 것만 예로 든다면 까치성(경북 월성, 충남 천원), 까치봉(경북 영천, 강원도 고성, 전남 보성 등), 까치섬(전남 신안), 까치바위(충북 청원, 전북 순창), 까치내(충북 괴산) 등이 있다. 이처럼 까치에 얽힌 지명은 너무도 많아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충청북도, 성남시를 비롯한 전국의 많은 군(군)에서 까치를 지역의 상징새로 삼고 있다.
  좋은 소식을 알려준다는 까치에 대한 신앙이 이렇듯 불러서 기분좋고 들어서 재수좋은 지명을 숱하게 탄생시킨 것이다. 한번 붙여진 지명을 자손대대로 사용하면서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해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사라져가는 까치를 아끼고 보존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까치밥과 전신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늦가을에 시골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초가집이었고, 그 초가집 뒤에는 으례히 감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그리고 감나무 꼭대기에는 노랗게 익은 감이 한두 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이를 일컬어 '까치밥'이라 하여, 아무리 먹을 것이 없고 굶주려도 꼭 남겨 두었다. 말하자면 까치의 먹이로 남겨둔 것인데, 이와 같은 풍습에는 까치를 가까이 살게 하려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절절히 배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까치가 정전 사고의 주범으로 몰려 퇴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주 꼭대기나 애자에 둥지를 틀면서 쇠붙이 조각까지 물어다 나르는 바람에 합선사고를 일으키고, 주위를 날다가 고압선에 부딪혀 정전사태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전 당국에서는 부단히 까치집을 철거하지만 한 자리에 반복해서 집을 짓는 까치의 습성 때문에 부숴도 부숴도 까치는 고집스럽게 집을 지어댄다.
  까치가 전신주를 찾게 된 것은 도시 부근에 자연녹지가 적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의 까치는 녹지가 부족하여 먹이 고갈로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그러므로 정전사고를 일으킨다 하여 무조건 까치집을 헐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을철에 아무리 곤궁해도 '까치밥' 하나쯤은 남겨두던 우리 민족 전래의 풍습을 이어서 전주 위에도 둥우리용 받침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정전사고도 예방하고 자연생태계를 보호하는 길일 것이다. 

  ***참고자료 
  1.{까치이야기}, 국민은행 홍보실
  2.{민족문화대백과} 

@   56.개

   충성과 의리의 화신

  개는 인간의 생활양식에 가장 근접한 동물이다. 진화론적인 견해에서 본다면 원숭이나 유인원이 인간의 신체구조와 가장 유사하겠지만 생활 속에서 친근한 동물로 치자면 개에 비견할 것이 없다.   개는 식육목 개과에 속하는 포유동물로서 이리, 늑대와 비슷하다.
야생동물 중에서 가장 먼저 가축화되어 집안에서 사육되었다. 개가 사육된 사실에 대한 기록은 서기전 9천5백년 경의 페르시아 베르트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일본에서도 신석기 시대의 유물에서 개의 치아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가축화된 개는 상호 선택, 교배에 의해 약 2백여 종의 품종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무척 오랜 세월을 통해서 가축으로 순화되었기 때문에 종에 따라서 형태의 변화가 심하고 세계적으로 넓게 분포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개의 독특한 성질을 여러가지로 이용한다.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하여 애완용으로 기르기도 하고 후각과 청각이 예민하게 발달되어 있어 경찰견이나 수색견으로 이용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미의 젖을 냄새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후각이 발달된 개는 성별이나 개체까지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 물체를 잘 구별할 수 있고 움직이는 물체를 민감하게 포착해낸다. 하지만 색채를 구분하는 능력은 약하다.
  한편, 개는 기쁘거나 슬플 때, 또는 경계를 할 때 짖어서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나 야생개는 짖지 않는다. 그리고 가축화된 개도 보통 길거리에서는 짖지 않고 자기 세력권 범위 안에서만 우렁차게 짖으며 용맹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사나운 목소리로 짖어대는 개라고 해서 성질 자체가 사납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는 것처럼 개는 경계심과 두려움이 들 때 시끄럽게 짖어대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개가 사람이나 닭 따위를 물어뜯으려고 할 때는 조용히 노려보다가 갑자기 덤벼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짖어대는 개를 무서워했던 겁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부터는 짖지 않은 개를 더 조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나 기록에는 주인에게 충성을 바친 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개는 대부분 충실하고 의리가 있는 가축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이처럼 충성을 다하거나 의리를 지킨 개의 무덤도 많다. 이를테면 경북 선산에는 의구총과 의구비가 있으며 평안남도 용강군의 의구총, 충남 부여의 개탑 등이 충성스런 개의 죽음을 전하고 있다. 또한 고려 충렬왕 8년에 개성의 '진고개'라는 곳에, 사고무친의 눈 먼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밥을 얻어 먹이고 물을 먹여 키운 개가 있어서 화제거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관청에서는 그 충직함을 기리기 위해 개에게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이밖에 사람이 죽어서 개로 환생한 설화도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개와 관련된 설화를 통해서 우리는, 예로부터 개가 인간과 감정을 교환하는 영감적인 동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개를 10년 이상 키우면 둔갑을 하는 영물이 된다고 믿어 늙은 개를 흉물로 보았으며 개를 선택할 때도 관상을 고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양의 몇몇 나라에서는 '보신탕'이라 하여 개고기를 먹는다.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개고기는 고단백 식품으로 정력을 키워준다고 하여 예로부터 뭇 남성들이 군침을 흘리는 대상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오늘날에도 크게 변함이 없다. 그래서 법적인 허가가 있지는 않지만 동네 골목 곳곳에서 보신탕집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수술한 환자가 회복하는 데도 개고기만큼 좋은 식품이 없다고 한다.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될 당시 개고기를 혐오식품이라 하여 추방해야 한다는 세간(세간)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막상 올림픽이 끝나고 나자 개고기의 수요는 여전히 증가했다.
  사실상 우리 선조들은 개고기를 애용해왔다. 그러나 무턱대고 개를 잡아먹은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옛 선조들은 주둥이가 뾰족하여 사냥을 잘하는 개를 전견, 주둥이가 짧고 잘 짖으며 집을 지키는 개를 폐견이라 하였으며 살이 많아서 잡아먹기에 알맞은 개를 식견이라 하여 식용으로 썼던 것이다.
  식품학적으로 보면 개고기는 단백질과 철분이 비교적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육질이 연하고 소화가 잘된다. 따라서 체력이 아주 약한 사람에게는 적합한 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개고기를 푹 삶아 식이성 섬유를 많이 포함한 야채와 여러가지 양념을 곁들여 탕식 또는 숙육식으로 먹는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식품이라도 평소 한집에서 살아온 정리를 생각한다면 께름칙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 개고기인만큼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삼가는 게 좋을 듯싶다.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길러온 개의 품종으로는 진도개와 풍산개가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혈통의 정통성을 이어온 재래종 개는 각 지역마다 수없이 많은 종이 있었다. 이러한 토종견을 찾는 노력이 진행되면서 우리의 토종견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삽사리다. 

  귀신쫓는 개 삽사리 

  사흘만 정을 주어도 동구밖의 주인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뛰쳐나오는, 충실하고 귀여운 그림 속의 개 삽사리는 하마터면 영원히 전설 속의 개로 파묻힐 뻔했다. 그러던 중 지난 1972년 경북대 수의학과 탁영빈 교수가 삽사리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탁교수의 후계자인 하지홍 교수에 의해 삽사리에 대한 연구가 더욱 체계화 되었다.
   그동안 삽사리는 혈통이 방치된 채 그 명칭만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엉뚱하게 오용되어 왔다. 즉, 털이 길고 곱상한 외국개를 일컫는 명칭으로 잘못 사용된 것이다. 삽사리는, 들어낸다 또는 퍼낸다는 뜻의 '삽'과 귀신, 악귀를 뜻하던 '살'이 만나 이루어진 낱말로 '집안의 잡귀를 쫓는 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삽사리는 중간 정도의 몸집(대략 50Cm 정도)에 털이 긴 개이다. 또한 털색깔에 의해 청삽사리와 황삽사리로 구별된다. 청삽사리는 검은 색의 긴 털에 회색털이 섞여 있어 달빛을 받으면 푸른 빛을 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황삽사리는 누런색 털에 흰색과 검은 색의 털이 들어 있어 여러가지 누런빛을 띈다. 대체로 황삽사리가 청삽사리보다 조금 큰 편이다.
  삽사리는 온몸이 털로 덮여 있어 두 눈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또한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털이 퍽이나 야성적인 인상을 풍긴다. 한편으로 길게 내뱉고 있는 혀와 가려진 눈이 해학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짖는 소리는 우렁차며 짖을 때 아래 송곳니 두 개가 드러난다.   삽사리의 이같은 겉모양은 동양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것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 한반도에 들어왔는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경주 지방에는 삽사리에 대한 하나의 속설이 전해 내려온다. 구전에 의하면 삽사리는 신라시대 왕궁에서만 길러지던 귀한 개였는데 통일신라가 망하면서 민가로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속설이 사실이라면 신라시대 폭넓은 해상 무역로가 있어서 인도, 중동, 중국 등지에서 유입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무릇 대부분의 모든 개가 그러하겠지만, 삽사리는 특히 어릴 때 사귄 주인을 오래도록 따른다. 설령 주인과 헤어지더라도 오래도록 기억한다. 그러나 낯선 상대에게는 사나운 성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현재, 대구 근교 하양의 '대구목장'에서 관리되고 있는 삽사리 성견(자란 개)50마리는 지난 1991년 '고유견 삽사리 보호육성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과학기술처 특정연구과제로 선정되었다. 여기에는, 유전자를 통해 혈통을 연구하는 하교수를 비롯, 각 분야에 8명의 교수가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진도개

   지난 1938년 5월 3일, 천연기념물 53호로 지정된 진도개는 현재 1만 5천여 마리가 전남 진도에서 사육되고 있다. 진도개는 일본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따라서 진도개의 이력은 지금 두 갈래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 하나는 '일본도 인정할 만큼 우수한 우리 개'라는 찬사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내선일체정책의 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견해이다. 후자의 견해 때문에 진도개는 8.15 이후 수난을 겪는다. 즉,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배척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세계적인 개로 개발해보라'고 한마디 하자 진도개는 대량으로 육지로 건너오게 되었지만 그 중 90%이상이 죽고 말았다. 다행히 1962년 문화재 보호법이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진도개가 유입된 경로도 다른 토종개와 마찬가지로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설이 전해온다. 첫째, 고려 초기 중국 산동성 어민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 진도에 표류하면서 종자를 뿌렸다는 설. 둘째, 고려 중엽 몽고 침입시 삼별초군이 진도에서 항전할 때 몽고군이 군견으로 데리고 와서 전파시켰다는 설. 세째, 조선조 초기 진도군 지산면에 국영목장을 설치하면서 번견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몽고에서 수입해 왔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지 어언 50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진도개의 혈통은 확실하게 고정되지 않았다. 또한 특별한 사유없이 진도 밖으로 반출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법이 있다 뿐이지 거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다시 말하자면 도시에서 돈뭉치를 들고 와서 어렵지 않게 밀반출해갈 수 있었고, 이렇게 도시로 나간 개는 차츰 특유의 성품을 잃고 겉만 번드르한 개가 되고 말았다.

   사냥의 명수 제주개

   천해의 바다 가운데 우뚝 솟은 환상의 섬 제주도는 경관이 뛰어나서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유전학적으로 보면 각종 동식물의 종자오염을 가장 적게 받는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재래종을 연구하는 연구가들에게 제주는 종자 자원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을 반영하듯 지난 1986년에는 제주 토종개인 '제주개'가 멸종 직전에 발견되어 토종개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86년 당시 제주도 축산사업소는 제주대 교수진과 함께 제주개에 조예가 깊은 노인들을 찾아가 기초자료와 민담 등을 수집, 3개월간 제주도 전역을 뒤진 끝에 제주개 3마리를 발견했다. 그후 선택계통번식법에 의해 10마리가
견사에서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혈통이 고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삽사리가 학문적으로 접근되고 있는 반면 제주개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제주개는 얼핏 보면 진도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꼬리가 곧추 서 있으며 주둥이가 길고 이마가 튀어나왔으며 머리 모양이 역삼각형인 점이 진도개와 다르다. 청각, 후각, 시각이 유난히 발달되어 사냥에 능하고 영리하며 털은 황색이다.
  제주개의 유입경로에 대해서는 다른 개와 마찬가지로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몽고 침입시 유입되었다는 설과 중국의 절강성에서 전래되었다는 설이 상존하고 있다. 그리고 시기는 대략 8∼9천 년 전쯤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일제시대 진도개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개마고원 지역의 풍산개(지금 북한에서는 갑산개로 불린다)도 토종견의 가능성이 많다. 또한 경남의 거제개나 전남의 해남개도 우리 토종견으로 발굴할 수 있는 유망한 견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인들과 고락을 같이 해온 토종개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 고유의 명견을 육성하는 것은 전통문물 보존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 참고자료 
  1. {식품사전}
  2.[우리개 삽사리를 아십니까], 주간 {시사저널}1991.4.18일간 
  3.{문화일보} 92.10.8
  4.이철호,{장터순례} 유림 
  5.{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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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호품>

  57.차

  애연가와 고기를 즐기는 사람에게 필요한 비타민의 보고

  우리 선조들은 옛날부터 하루 세 끼 밥먹듯 자주 행해지는 일을
'다반사'라고 했다. 마치 차를 마시는 일처럼 빈번하다는 뜻이다. 또한 명절 때 조상에게 지내는 간략한 제사를 차례라 하고, 질서와 예의를 지키는 뜻의 '차례'도 같은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차는 우리가 보통 기호품으로 마시는 차를 뜻하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차를 마시고 살아왔으며 남부지방 여러 곳에서 차나무가 재배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삼차' '모과차' '생강차'니 하는 것들은 마실거리에 '차'자를 붙이는 것으로 이는 잘못이다. '차'란 반드시 차나무에서 딴 어린 잎을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커피나무 열매를 가공하여 만든 것을 '커피'라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마실 수 있도록 가공된 '차'가 먼저 있었던 게 아니고 '차나무'가 먼저 있었다는 말이 된다.   다방이 생겨나면서부터 일반인들에게 차가 널리 보급된 것도 사실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차가 서양에서 들어온 커피에 밀려나게 되었다. 그래서 아예 다방이 커피숍으로 바뀌고 있으며 흔히들 '차 마신다'는 말이 '커피 마신다'는 의미로 바뀌고 말았다. 또한 우리차가 널리 애용되는 것을 방해하는 한 가지 요인을 지적한다면 '다도'라는 것을 들 수 있다. 다도는 일본에서 수입된 예법이다. 차는 원래 우리나라를 통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인데, 언제부턴가 거꾸로 차 마시는 법이 일본에서 건너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차의 역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차를 마시는 데 까다로운 예법이 있다는 기록은 없다. 초의선사도 말하기를 차는 아무런 격식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마시면 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숭늉 마시듯이 편하게 마시면 된다는 말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차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귀국하는 길에 차나무의 종자를 얻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 차나무 종자를 지금의 지리산 기슭에 심어 번식시켰다고 한다. 또한 설화에 의하면 수로왕의 7왕자가 외숙인 보옥선사를 따라 화개의 운상원에서 수도할 때 심은 차의 유종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습속은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부터 있었다고 하니 우리 고유의 재래종 차나무가 이 땅에 자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김대겸이 차의 신품종을 당나라에서 가져와 지리산 산록에 심어서 이후 더욱 성하게 되었을 뿐이다.
  이처럼 지리산 일대에서 자란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를 죽로차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대나무 숲속에서 이슬을 받아먹고 자란 차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것이다.
  고려 때에는 나라에 공로를 세운 장군이나 재상이 세상을 떠나면 임금은 이를 애도하는 뜻에서 차를 하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에는 차가 아주 귀한 물건으로 취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차를 엽전처럼 줄에 꿰어두고 몸살이나 감기에 걸리면
이것을 물에 달여서 마셨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것을 청태전, 또는 전다라고 불렀다고 한다. 불교가 왕성했던 시기는 대체로 차가 생활에서 큰 몫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차는 산간의 선방에서나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차가 오늘날까지 현대인의 기호품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차나무는 동백과에 속하는 다년생 상록수로 자연상태에서는 10여 미터 정도까지 자라지만 보통 재배할 때는 알맞은 높이로 잘라서 가꾼다. 습기가 많고 무덥지만 시원스런 바람이 계속 불어와 무더위를 씻어주는 곳이나 아침에 햇볕이 잘 들고 낮에는 그림자가 지는 계곡을 낀 산비탈에서 잘 자란다.
  참고로 차의 재배적지는, 연간 강우량 1,500∼2,000mm 정도에 토양은 약산성(PHC)이고 연평균 12℃ 정도의 해발 200m이하인 곳이다.   일반적으로 차를 따는 시기는 곡우(곡우)를 전후한 4월 20일경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나무는 꽃이 져야 열매를 맺는 반면 차나무는 열매가 영그는 철에 꽃이 핀다. 그래서 차나무를 일컬어 실화상봉수라 한다. 즉, 꽃과 열매가 마주 본다는 뜻이다. 남쪽지방 차밭에는 해마다 늦가을이면 찬서리 속에서 영롱하게 맺혀 있는 차꽃을 볼 수 있다. 차꽃은 하얀색으로 무궁화처럼 다섯 쪽이다. 이 다섯 쪽은 각각 차가 지닌 다섯 가지 맛을 상징한다. 또한 차꽃의 흰색은 군자에게는 지조를, 여자에게는 정절을 상징한다.
  차는 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서 봄차, 여름차, 가을차로 나누고 각 계절마다 첫물, 두물, 세물, 만물차로 부르기도 한다.
  또 제품의 형태에 따라서 잎차, 고형차, 가루차로 나누기도 하고 만드는 방법에 따라 일쇄차, 가마덖음차, 증자차 등으로 나눈다. 그리고 발효의 정도에 따라 불발효차인 녹차, 반발효차인 우롱차, 발효차인 홍차 등으로 분류한다.
  우리가 흔히 시중에서 접하는 작설차, 설록차, 춘설차, 다운령, 학사차 등은 제품명이다.

  성분

  우리 고유의 차는 그 맛과 향기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비타민 A,B,C,D와 탄닌, 카로틴, 카페인, 아미노산, 철분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이중에서 탄닌은 떫은 맛을 내는 성분이다. 이 성분은 피부의 세포를 수축시키는 작용을 해서 피부의 노화를 막아준다. 그리고 이 탄닌을 섭취하게 되면 니코틴이나 타르 같은 유해물질에 반응하여 이것들과 결합하는데 이것은 물에 녹지 않으므로 위장에 거의 흡수되지 않고 대부분 몸 밖으로 배출된다. 다시 말하면 탄닌이 니코틴이나 타르 등의 유해물질을 무독화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담배를 즐기는 사람이 녹차를 자주 마시면 흡연의 해악을 상당히 덜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녹차는 애연가의 건강을 여러모로 돕는다. 흡연자들은 흔히 비타민 C의 결핍으로 얼굴이 검어지게 되는데 비타민 C의 보고인 녹차를 많이 섭취함으로써 얼굴색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차는 담배 없이 못 사는 애연가에게는 반가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차에 들어 있는 카페인은 몸의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
여기에 비타민 B1과 비타민 C 등의 작용이 더해져 피하지방을 연소시키며 이렇게 처리된 물질은 몸 밖으로 배설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차에 들어 있는 비타민 C는 특히 열에 강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뜨거운 물에 차를 끓여 먹어도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 이것은 아마도 탄닌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가장 최근에 밝혀진 차의 성분으로는 불소와 폴리페놀류를 들 수 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불소는 충치예방 효과가 있는데 차에 함유되어 있는 불소의 양은 매우 적다. 그러나 폴리페놀류라고 하는 강한 항균작용을 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충치균과 치주병균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주목을 끌고 있다.

  쓰임새

  차는 일반적으로 기호품으로 사용되며 한방에서는 약용으로 사용한다.   최근에 서구나 일본의 학자들은, 차의 성분이 농약 등의 각종 공해나 방사성 암과 성인병, 심지어 에이즈 예방에까지 효력이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해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그밖에 녹차잎을 이용한 재미있는 생활의 지혜도 많다.   차를 특별히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다 우려먹은 녹차잎으로 베개를 만들어 사용한다. 녹차잎을 넣은 베개를 베고 자면 녹차의 은은한 향기가 남아 머리를 맑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험생이 있는 집에서는 해볼 만한 일이다.   베갯속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3∼4회 우려먹은 차잎을 모아두었다가 신문지를 깔고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이틀 정도 말린다. 이를 촘촘한 옷감으로 만든 베개주머니에 넣고 꿰매면 된다. 오래 사용할 경우에는 아예 차잎을 비닐 주머니에 싸서 넣으면 먼지부스러기가 스며나올 염려도 없다.
  또한 차잎을 이용하여 조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차잎을 오이소박이에 넣으면 좋은 양념이 되고 삶은 달걀 껍질에 금이 많이 가게 한 후 녹차잎을 넣고 5∼6시간 가량 삶으면 녹차 맛이 노른자에까지 배어 달걀 특유의 구린내가 없어지고 보존기간도 두 배로 늘어난다.
  이밖에도 백설기, 빈대떡, 만두 등을 만들 때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이 토종 
  지리산은 차의 모산이다. 화엄사, 천은사, 쌍계사 부근의 계곡에는 지금도 차나무가 많이 야생하고 있으며 초의선사가 지은 [동다송]에는 화개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차밭이 있고 그 품질이 뛰어나다고 찬양한 대목이 있다. 이밖에도 무등산 등지에서 품질 좋은 우리차가 재배되고 있다.
  특히 화개차는 83년 8월 지방 기념물 61호로 지정된 우리의 토종이며, 쌍계사 입구에는 우리나라 차 시배를 기념하는 [김대겸공차시배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이 추모비는 81년 5월 25일 건립되었는데 '한국다인회'는 추모비 건립일인 5월 25일을 '차의 날'로 정하여 기리고 있다. 
  ***참고문헌 
  1. 이형석, [한국의 산하], 홍익제, 1990. 8
  2. 이철호, [장터순례], 유림, 1991. 6 
    3.{조선일보} 92.10.16
  4.월간 {식품과 건강} 92.1월호 

@   58.술

   인류와 함께 탄생한 풍류의 상징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나 전설에는 으레 술이 등장한다. 즉, 신과 함께 술이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때, 술은 어쩌면 인간보다도 앞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서양에서는 술을 관장하는 '바커스'라는 신이 있을 정도이며 이집트 신화에는 최고의 여신 이시스(Isis)의 남편 오시리스(Osiris)가 보리로 맥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술에 대한 이야기는 {제왕운기}의 주몽신화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이 신화에서 천제(천제)의 아들 해모수는 압록강 변에서 놀고 있는 세 처녀를 보고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버린다. 세 처녀는 하백의 딸 유화, 선화, 위화였다. 해모수는 신하를 시켜 유혹하였으나 이 처녀들이 응하지 않았다. 낙담한 해모수는 고민끝에 새로 웅장한 궁궐을 지어 그녀들을 초청하고 술을 대접한다. 처녀들이 만취되어 돌아가려 하자 해모수는 앞을 막고 하소연을 한다. 그러나 두 처녀는 달아나고 유화만 해모수에게 붙들려 궁전에서 잠을 자게 된다.   해모수의 행위에 분노한 하백은 도술 싸움을 벌인다. 그 결과 해모수의 신성성이 입증되자 주연을 베풀어 모두 취하게 한 후 해모수와 유화를 가죽 수레에 태운다. 그러자 남녀는 취중에 수레 안에서 한몸이 되고 해모수가 깨어나면서 햇빛을 타고 승천하게 된다.
  그 뒤 유화가 아들을 낳아 주몽이라 했으니 그가 바로 나중에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화를 통해서 술의 기원을 밝혀내기는 어려우며 인류의 형성과 더불어서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어쨌든 술은 문자의 발생보다 먼저 나타났으며 중국 은나라 시대의 유적에서도 술 빚는 항아리가 발견된 바 있다.

  민족의 특성 반영하는 술의 문화

  세계 여러 민족들은 저마다 독특한 자연환경과 풍토에 맞는 술을 빚어 왔다. 그리고 각 민족에 따라 술을 빚는 전통적인 비법들이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기록에 나타난 우리나라 술의 역사는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한시대에는 이미 누룩을 사용하여 곡주를 제조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시기부터 술은 제천의식(제천의식)의 필수적인 제물이었다. 추수가 끝나면 모든 부족민이 한자리에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추수에 감사하는 의미로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었던 것이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술은 화합의 상징이었다. 제천의식에서 술이 제물로 등장한 것도 따지고 보면 신과 화합하여 하나가 되려는 염원이 드러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술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화합을 도모하게 한다. 이를테면 제주도 무속신화인 '나주 기민창 조상' 신화에서는 술이 사람과 사람을 화합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제주도 안씨 선주가 흉년으로 굶어 죽게 된 제주 백성을 위해 쌀을 구하러 육지에 나갔으나, 육지 사람들의 인심을 움직이지 못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주(나주)에서 술을 마시다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즉, 쌀로 막걸리를 빚어 술독에 담아서 동네 곳곳에 놓고 나주 백성들이 오가면서 바가지로 떠먹게 하였다. 그랬더니 나주 백성들은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고 안씨 선주가 쌀을 구해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한편, 각 민족마다 술 문화는 하나의 풍습으로 생활 속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 속에서 술은 인정의 표현이었고 친지와 이웃 간에 즐거움을 나누는 도구였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손님을 맞으면 정중히 술을 대접하였고, 농촌에서는 막걸리를 빚으면 이웃 어른과 친지를 불러 술을 내놓고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곤 하였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주막, 또는 주점에서도 우리 겨레는 술로 인정을 나누었다. 장날 동네 어른을 만나면 목로주점에 들어가 막걸리 한 사발을 대접하는 것이 우리네 인사법이었고 친구들과 어우러져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데 가장 좋은 매개물도 역시 술이었다.

  약 주고 병 주는 술

  술은 알맞게 마시면 약이 된다고 한다. 기분이 가라앉았을 때 힘과 용기를 복돋워 주고 피로를 덜어준다. 그리고 농사철에는 일의 성과를 올려주고 일체감을 주어 작업을 원할하게 하도록 한다. 또한 흥에 겨워 적당히 취하면 노래와 춤을 곁들여 신명과 멋을 낼 수도 있다. 어느 민족이든 잔치 때 술을 마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농촌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술은 남녀간의 사랑 만큼이나 많이 묘사되고 있다. 정철, 윤선도 등 조선시대 문장가들도 술을 논하며 무상한 인생을 달랬다.
  이처럼 술은 멋과 풍류와 정서를 가다듬게 하여 생활에 활력 주는 반면 지나치게 마시면 악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찌기,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 같은 이는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하고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한다"고 개탄한 적도 있다. 사실상 그 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주벽은 좀 지나쳤다고 할 수 있다. 무분별한 음주로 가산을 탕진하고 몸을 버려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허다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1인당 음주량이 세계 1위라는 통계만 보더라도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 전통적인 술의 예법은 사라져 버리고 폭음하는 습관만 남아서 닥치는대로 마셔대는 사태에 이르고 만 것이다.

   우리나라 술의 역사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실제로 술이 등장한 것은 삼한시대 무렵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는 삼국시대 후기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동안 우리 술은 종류도 다양해 졌고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전해졌다. {제민요술}에 의하면 중국의 술빚는 기술을 도입한 우리나라는 이를 발전시켜 독특한 주조법을 개발하였고 일본에까지 기술을 전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누룩을 사용한 술이 일반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 원나라의 양조법이 도입되어 보리와 쌀을 술에 이용하였으며 술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특히 고려 후기에 들어서는 증류주 문화가 유입되어 주곡 뿐만 아니라 수수, 조 등을 이용한 술이 개발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 술의 역사상, 지금까지 유명주로 손꼽히는 것들은 주로 조선시대 때 정착된 것들이다. 이때부터 술은 고급화 추세를 보여 양보다는 질 좋은 술들이 개발되었으며 증류주는 일본, 중국 등지에 수출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와서는 각 지방의 특성을 살린 지방주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 유명한 술로는 서울의 약산춘, 여산의 호산춘, 충청의
노산춘, 김천의 청명주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소주에 각종 약재를 응용한 술들이 새로 개발되어 전라도의 이강주, 죽력고 등이 유명해졌다. 그리고 양조주와 증류주를 혼합한 혼성주로서는 과하주가 유명하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활짝 꽃피운 우리 술 문화는 일제 침략을 맞이하기 전까지 절정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외래주도 적잖게 도입되어 토속주와 외래주가 공존하는 현상을 빚어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에는 마침내 양주 문화가 도입되기에 이른다. 또한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일제가 수탈 목적으로 과중한 주세를 부과하는 바람에 전통적인 향토주와 토속주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신식술이 획일적으로 제조되어 우리의 전통적인 술 문화를 발칵 뒤집어놓고 말았다. 

  서민들의 벗 막걸리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그 종류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술들이 제조되었지만 오늘날까지 서민들의 입맛을 돋궈주는 전통주로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막걸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막걸리는 청주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낸 술로, 빛이 탁하며 알콜 성분이 적다. 그래서 옛 문헌에는 '혼돈주'라는 이름으로 나오기도 하고 탁주, 약주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막걸리는 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은 뒤 숙성되면 술밑을 체에 받아 버무려 걸러낸 것이다. 그러면 쌀알이 부서져서 뿌옇게 흐린 술이 된다. 보통 농촌에서는 농주라 하여 농사철에는 식량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일제 침략기에 이르러 주세법이 제정됨에 따라 막걸리 빚기가 규격화 된다. 그리고 일제시대 말기부터 만성적인 식량부족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외국산 양곡을 많이 도입하는 바람에 1964년부터 막걸리에 쌀의 사용이 금지되고 밀가루 80%, 옥수수 20%의 도입양곡을 섞어 빚게 되었다. 이와 같이 막걸리에 밀가루를 사용하자 술맛이 떨어지게 되어 서민들은 맛없는 막걸리보다는 소주를 선호하게 되었다. 또한 중산층이나 상류층은 맥주와 양주를 찾게 되었다.
  그 뒤 쌀 생산량이 다시 늘어 식량자급이 이뤄지고 쌀이 남아돌게 되자 1971년 쌀막걸리를 다시 허가하였다. 그러나 술 빚는 방법이 규격화 되었고 대형 양조장에서 화학약품을 첨가하여 빚는 바람에 좀처럼 옛맛이 살아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막걸리는 이미 되살릴 수 없는 옛맛이 되고 만 것이다. 또한 국민들의 생활 형편이 나아지고 국내에서도 양주가 생산되어 이제는 서민들도 막걸리보다는 맥주나 국산 양주를 즐겨 찾는 단계에 이르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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