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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익명의 섬

by Casey,Riley 202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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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명: 익명의 섬

이문열


      목차

  익명의 섬
  새하곡
  롤랑의 노래
  폐원
  어둠의 그늘
  두 겹의 노래
  알 수 없는 일들
  그 세월은 가도
  금시조
  충적세, 그 후
  귀두산에는 낙타가 산다.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연설문
  작가연보
   익명의 섬

  “쯧쯧.”늦은 저녁을 마친 뒤 TV를 보고 있던 남편이 한심한 듯 혀를 찼다. 짐작대로 화면에는 두 손이나 옷깃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웅크린 남녀들이 경찰서 보호실 한구석에 몰려 있는 모습이 여러 각도에서 잡혀 있었다. 도박인가 싶었으나 비밀 댄스홀이었다. 대낮인데도 어둑한 조명 아래서 춤을 추다가 끌려왔다는 것인데, 아나운서는 “춤추다”라는 말 대신 남녀가 몸을 부비고 ?
  “도대체가 우리 시대는 너무 쉽게 익명이 될 수 있어서 탈이야.”
  남편이 그걸 보며 개탄조로 시작했다. 이미 몇 번인가 들은 말이어서 그 뒤는 듣지 않아도 어림잡을 만했다. 도회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로부터 버스 정류소 하나 정도만 벗어나도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고 만다. 그런데 손쉽게 자기를 감출 수 있다는 것, 즉 익명성의 획득은 사람들을 대담하게 만든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도덕적 타락, 특히 여자들의 성적 부패를
  “면 전체가 서로서로를 물 밑 들여다보듯 아는 사이지. 그것도 태반은 멀건 가깝건 혈연으로 묶여 있어. 여자들의 탈선이란 여간한 각오 없이는 엄두도 못낼 일이야. 가끔씩 가까운 읍내를 이용해 보지만 그것도 이르든 늦든 알려지게 되어 있어...”
  하지만 그런 남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내게는 무슨 반발처럼이나 떠오르는 옛일이 하나 있다. 마땅히 남편에게 죄스러워하고, 어쩌면 스스로도 부끄럽게 여겨야 하지만, 지금은 물론 그때조차도 그저 아득하기만 하던 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해 이른 봄 갓 교육대학을 졸업한 나는 굳이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어느 시골국민학교에 첫 부임을 하게 되었다. 군청 소재지에서 육십 리 가까이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것도, 그 너머에는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높고 험한 재를 두 개나 넘어야 되는 산골이었다.
  약간 비탈진 곳에 자리잡은 버스 정류소에 처음 내렸을 때 나는 한동안 막막한 기분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높은 산들은 일평생 나를 가두어 둘 거대한 감옥의 벽처럼 느껴졌고, 저만치 보이는 백여 호 정도의 마을도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폐촌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산 그늘에라도 묻힌 것인지 내가 찾아가야 할 학교가 아무래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사이 함께 내린 두어 명의 승객도 모두 어디론가 가버린 후여서 나는 가까운 가겟집에나 물어볼 양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너 발짝이나 옮겼을까, 나는 피부를 찔러 오는 날카로운 빛 같은 것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고 앞을 살폈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겟집 툇마루에 앉아 몽롱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어떤 사내였다. 때묻고 해진 아랫도리는 원래의 천이 어떤 것이었는?
 어떤 무성한 숲길에 들었을 때, 그 잎새에서 뱀을 보면 그것은 그 숲길을 다 지날 때까지 하나의 공포이다. 그러나 그 공포는 단순한 두려움의 감정과는 다른, 신선한 충격 또는 묘한 기대와도 같은 것으로서, 무사히 그 숲길을 빠져나오고 나면 일종의 허전함이나 아쉬움이 되기도 한다. 사내의 두 눈에서 언뜻 비쳤던 그 빛도 그러하였다.
  그런데 내 그런 느낌을 일순의 착각으로 만들어 준 것은 갑자기 가게문을 열고 나온 주인 남자였다.
  “깨철이 이노마야, 니 아까부터 거기 앉아 뭐하노?”
  주인 남자는 자기보다 대여섯은 위로 보이는 그 사내에게 서슴없이 말을 낮췄다. 그걸로 보아 그 사내는 떠도는 걸인이 아니라 그 마을에 붙어사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깨철이란 그 사내는 들은 척도 않고 여전히 몽롱한 눈길로 나만 쳐다보았다. 이미 말한 대로 징그럽다기보다는 까닭없이 섬뜩해지는 눈길이었다.
  “일마나 귀가 먹었나? 일나라.”
  주인 남자가 그에게 다가가 제법 소리나게 등짝을 후려치면서 머뭇머뭇 다가가는 내게 물었다.
  “어서 오소. 뭘 찾습니까?”
  그제서야 나는 내 몸에 끈적끈적 묻어나는 듯한 그 사내의 눈길을 떼어내기라도 하듯 야멸차게 말했다.
  “XX국민학교가 어디죠?”
  “하, 그러고 보이 새로 오신다는 여선생님인 모양이구만. 가만있자...”
  주인 남자는 갑자기 친절이 넘치는 얼굴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가게 뒤에서 여남은 살쯤 돼 보이는 소년이 하나 나왔다.
  “야, 니 여 좀 온나 보자.”
  “도곡아재 왜요?”
  “새로 오신 선생님인갑다. 학교까지 좀 모시고 가라.”
  그리고 내게 공연히 미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학교란 게 코딱지만한 주제에 조쪽 산자락에 숨어 있어서...”
  순순히 앞장서는 소년을 따라 나서려는데 여전히 깨철이란 사내의 눈길은 나를 쫓고 있었다. 그 사이 평온을 회복한 나는 짐짓 매서운 눈길로 그를 쏘아주고는 자리를 떴다.
  소년과 함께 학교를 찾아가면서 얼핏 알게 된 그 마을의 인적 구성은 좀 독특했다. 소년은 만나는 사람마다 꾸벅꾸벅 인사를 했는데 그게 모두 아재요 무슨 할배였다. 도회지에서 자랐고 친척이라면 1년에 한두 번씩 드나드는 큰집 작은집밖에 모르는 내게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현상은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급의 절반이 같은 성씨였고, 또 성이 달라도 고종이니 하는 식으로 얽혀 있었다. 드물게 보존된 동족부락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남북으로 지나가는 실낱 같은 국도외에는 사방이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데다가 이렇다 할 특산물도 없어 타성들의 유입이 별로 없는 탓이었다.
  첫인상의 기묘함에도 불구하고 그 뒤 나는 한동안 깨철이란 사내를 잊고 지냈다. 물론 그는 언제나 일 없이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쪽이었고,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초라한 몰골과 몽롱한 눈길을 대하곤 했지만, 그런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새로 시작한 내 생활이 너무 바쁘고 고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내게는 첫 부임지인데다 그곳에서의 생활 또한 내가 처음으로 집을
  그러다가 어느 정도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고 마음도 여유를 갖게 되자 나는 차츰 주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깨철이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출신이었다. 그는 그 고장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곳 누구의 피붙이거나 인척도 아니었다. 어느핸가 우연히 흘러들어와 사십이 넘은 그때까지 어른에게도 깨철이요, 아이에게도 깨철이로 살아왔다.
  그 다음 이상한 것은 그의 생계였다. 나는 처음 잡일이나 막일로 지내는 줄 알았으나 나중에 보니 전혀 하는 일없이 매일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렵지 않게 하루 세 끼의 밥과 저녁에 누울 잠자리를 그 마을에서 얻고 있었다.
  예를 들어 끼니 같으면 이렇게 해결됐다. 저녁나절 밥상에 둘러앉았을 시간이 되면 그는 아무 집이나 불쑥 들어간다.
  “밥 좀 다고.”
  누구도 그에게 말을 올리지 않는 것처럼 그 또한 누구에게도 존대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인의 반응이었다. 대개는 그런 깨철이의 요구를 귀찮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다.
  “등신이라도 먹어야 살제. 여 밥 한 그릇 말아줘라.”
  그러면 주인 아낙은 큰 보시기나 양푼에 밥, 국, 김치 할 것없이 한꺼번에 말아 내밀고 그걸 받아든 그는 멍석 귀퉁이나 마루 끝에 앉아 후룩후룩 마시고 가는 것이었다.
  “잘 먹고 간다.”
  “고맙다꼬는 안카나?”
  “내 밥 내 먹고 가는데 무신 소리.”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나가면 그 뒤 두어 달은 그 집에 얼씬도 않았다. 내가 가만히 헤아려 보니 그 날수가 대개 마을 호수와 비슷했다.
  잠자리도 마찬가지였다. 대개는 정자나 동방을 빌어 자는데 그도 날이 좀 춥거나 미처 군불 땔 나무를 준비하지 못한 날이면 어김없이 마을을 돌았다.
  “너 집에 좀 자자.”
  “목욕하고 오믄 재워주마.”
  “이불 필요없다. 니는 너 마누라한테 가서 엎어지면 될꺼 아이가?”
  대개 그렇게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러고 보면 그와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는 확실히 묘한 데가 있었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그를 반편이나 미치광이 취급을 했지만, 그 뒤에는 어딘가 그가 정말은 그렇지 않을는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애써 감추려는 어떤 꾸밈이나 과장 같은 것이 엿보였다. 여자들도 그를 반편이나 미치광이 취급하는 것은 남자들과 다름 없었지만, 그런 그녀들을 지배하는 심리 뒤에는 단순한 동정 이상
 그런데 거기에 대한 내 의문에 희미한 암시 같은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그곳에 부임한 지 여섯 달인가 일곱 달쯤 되는 어느날, 나는 퇴근길에 하숙집 앞 공터에서 큰 소동이 일어난 것을 보았다. 어떤 젊은 남자가 말 그대로 깨철이를 짓뭉개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때리는 쪽도 맞는 쪽도 그 원인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일이었다. 젊은 남자는 지게작대기든 장작개비든 손에 잡히는 대?
  어쩔 줄 모르고 보고 있는 사이에 여기저기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 무자비한 폭행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 화천이, 이 무슨 못난 짓고? 우리가 집안끼리 모두 서로 보고 있는데 설마 그런 일이야 있었을라꼬.”
  “화천아재, 진정하소. 이 빙신이 무슨 짓을 하겠능교?”
  “맞다. 화천이 니 낯 깎이고 집안 우세다. 우리 문중이 여기 삼백 년 세거해 왔지만 서방질로 쫓기난 며눌네는 없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말렸는데, 내게는 어쩐지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같이 들렸다.
  “보소 화천 양반요. 화천댁 체면도 좀 생각해 주소. 세상에 어디 남자가 없어 저런 빙신하고 뭔 일을 벌이겠능교.”
  “맞지러. 화천아지뱀 같은 멀쩡한 신랑 놔두고 뭣때매 저런 병신과... 생사람 잡지 마소.”
  “억지라도 유분수제. 마흔이 넘도록 색시 얻을 꿈도 안꾸는 고자 보고...”
  좀 나이가 지긋한 여자들도 대개 그렇게 말렸는데, 그 말투는 그가 병신이라는 것이 마치 그를 구해줄 무슨 영험한 부적이라도 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더욱 이상한 것은 아직 나서서 말릴 처지가 못되는 좀 젊은 아낙네들이었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성난 눈길로 깨철이가 아니라 장작개비를 휘두르는 젊은 남자 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다행히 소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갑작스런 소동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깨철이의 존재가 마을 사람들에게 묵인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두가 모두에게 혈연이나 인척이라는 것은 동시에 모두가 모두의 감시자, 특히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감시자란 뜻도 되었다. 깨철이의 존재는 거기서 오는 그 마을의 폐쇄성 중에서 특히 성적인 것과 어떤 연관을 가졌음에 틀림 없었
  나의 그런 추측은 언젠가 개울가에서 무심코 엿듣게 된 그 동네 아낙네들의 수군거림을 통해서도 뚜렷해졌다. 그날은 무더운 여름밤이었는데 발이라도 식히려고 개울가에 나갔던 나는 수면의 반사작용 덕인지 꽤 먼 곳의 수군거림까지 들을 수 있었다.
  “영곡댁 알라-애기- 깨철이 닮은 것 안 같더나?”
  “형님, 그카지 마소. 또 애매한 깨철이 초죽음시킬라꼬.”
  “내가 뭐라카나? 그냥 해 본 소리따.”
  “그래도... 깨철이는 갈 데 없는 빙신 아입니꺼?”
  “글체, 빙신이제. 깨철이는 빙신이라.”
  그녀들은 마치 서로 다짐하듯 그렇게 끝을 맺었는데 그 어조에는 어딘가 공범자끼리의 은근함이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철이의 숨겨진 무서운 면을 본 느낌과 함께 마을 아낙네들이 가장 경멸스럽게 그를 얘기할 때조차도 그 뒤에서는 이상한 보호 본능 같은 것이 느껴지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깨철이가 힘들여 일하지 않고도 하루 세 끼 밥과 누울 잠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 또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단조로운 생활과 그 무료함에 자극된 까닭모를 호기심으로 제법 세밀하게 마을과 깨철이를 관찰한 결과였다. 학교라고는 하지만 통틀어 여섯 학급, 그나마 정원이 차지않는 반도 있을 정도인데다, 워낙이 산골이라 감사나 시찰 같은 것도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학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더 이상 깨철이나 그 마을을 관찰하고 있을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그해 여름방학을 집에서 보내던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해수욕을 갔다가 당시 대학교 4학년이던 지금의 남편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가는 바람인가 싶었으나 차츰 우리들은 뜨겁게 발전했다. 그가 나와 한 도시에 산다는 것 외에도 취미나 성격상의 닮은 점이 우리 사이
  그리하여 2학기에 그 마을로 돌아가서부터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그의 편지를 읽는 것과 거기에 꼬박꼬박 답장하는 것만으로도 밤이 짧을 지경이었다. 내 머리는 언제나 그의 생각으로 가득차고 상상은 또한 언제나 그가 있는 도시를 맴돌았다.
  세상의 어떤 것도 그와 관련된 것이 아니면 도무지 내 흥미를 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 해의 나머지가 가고 다시 이듬해 봄이 왔다. 다행히 양쪽 집에서 모두 크게 반대가 없어 졸업과 함께 나와 약혼한 남편은 이어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을 전후하여 나는 이미 남자를 깊이 아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겨울방학 때도 이미 사흘간의 여행을 남편과 함께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특히 약혼 후에 맞은 학년말 휴가는 거의가 입대를 앞둔 남편과 함께 ?
  입대 후에도 남편의 홍수 같은 편지는 계속됐고, 오히려 전보다 더욱 달아오른 나는 그 답장에 열중했다. 마을 어디선가 불쑥불쑥 나타나서 나를 살피는 그 눈길에 가끔씩 섬뜩해 할 때가 있긴 해도 깨철이는 여전히 나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다가 깨철이가 느닷없는 충격으로 나에게 덮쳐 오게 된 것은 남편에게 닥친 뜻밖의 변화 때문이었다. 입대한 지 다섯 달인가 여섯 달 만에 남편이 월남 전선으로 차출된 일이었다. 3년만 조용히 기다리면 되는 것으로 알았던 나는 처음 그 소식을 듣자 정신이 아뜩하였다. 그때만 해도 월남에 가는 것은 곧 죽을 땅으로 가는 것처럼 여기던 때라 나는 거의 절망적인 공포에 사로잡혔
  나는 아무런 부끄럼 없이 남편에게 썼다. 단 한 번, 단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 다시 한번 그의 품에 안기고 싶다고. 다시 한번 따뜻한 그의 체온과 뜨거운 숨결을 느끼고 싶다고. 무슨 수를 쓰든 꼭 한 번 다녀가 달라고. 남편의 답장은 곧 왔다. 그것은 반갑게도 파병 전에 1주일 정도의 휴가가 있으리라는 것과 그 기간 중 며칠을 빼내 나를 만나러 오리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남편이 오기로 되어 있는 그 1주일을 나는 마치 열에 들뜬 사람처럼 보냈다. 그러나 남편은 끝내 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그때 남편은 친구들과 어울려 지나치게 마신 바람에, 나에게서 보내려고 비워둔 이틀을 앓아 누워버린 탓이었다.
  남편이 올 수 있는 마지막 날, 오후 5시 막차까지 그냥 지나가 버리자 나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허탈한 심경이었다. 결근이라도 하고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지 못한 것이 그제서야 뼈저리게 후회되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은 그런 허탈한 가운데서도 식을 줄 모르고 달아오르는 내 몸이었다. 아니, 그 이상, 남편의 품에 안길 ?
 나는 허탈감 못지않게 내 몸을 사로잡는 그 묘한 열기에 취해 거의 몽롱한 기분으로 버스 정류소를 떠났다. 그러다가 갑작스런 소나기에 언뜻 정신이 든 것은 버스 정류소와 하숙집의 중간쯤 되는 길 위에서였다. 이미 초가을에 접어들고 있었음에도 장대 같은 소낙비였다. 얼결에 주위를 둘러본 나는 길가에 있는 조그만 창고를 발견하고 그리로 뛰어갔다. 처음 나는 그 처마에나 붙어서
  한참을 기다려도 빗발은 점점 세어져 - 이윽고 나는 함석문을 열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비료 같은 것들을 쌓아 두는 그 창고는 그날따라 텅 비고 조용하였다. 혹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그 지나친 고요에 차근히 창고 안을 살펴볼 생각도 하지않고 열려진 문틈으로 쏟아지는 소낙비만 망연히 바라보았다. 지나친 방심이라기보다는 작은 벌레들처럼 스멀거
  어쨌든 창고 안을 자세히 살피지 않은 것은 큰 실수였다. 튀는 빗발을 피해 내 몸이 완전히 창고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어둠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재빨리 달려나와 창고문을 닫고 빗장을 질렀다. 실로 눈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누구예요? 문 열어. 소리지를 테야.”
  나는 그 갑작스런 사태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떠들어야 소용 없어. 소나기 오는 들에 사람 다니는 것 봤나?”
  약간 쉰 듯한 목소리와 함께 집게 같은 손이 내 팔목을 죄었다. 처음 그림자가 퍼뜩할 때의 직감대로 깨철이었다. 그가 누구인 것을 알자 이상하게도 나를 사로잡고 있던 공포가 일순에 사라졌다.
  “깨철이지? 이거 못 놔?”
  나는 제법 마을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러나 그는 대신 창고 바닥에 깔린 짚덤불 위에 나를 쓰러뜨리더니 내 치맛자락을 거칠게 감아쥐었다.
  “험한 꼴로 하숙집에 돌아가기 싫거든 곱게 벗어.”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에게서 빠져나오려고 기를 썼다. 그런 나를 덮쳐 누르고 있던 그가 다시 뜨거운 입김을 내 귓가에 뿜으며 중얼거렸다.
  “이 깨철이 다른 건 몰라도 언제 너희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지금 네 몸은 달아 있을 대로 달아 있어.”
  그 말을 듣자 이번에는 묘하게도 내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대신 잠깐 잊고 있었던 묘한 열기가 다시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내 귀에다 그가 다시 이죽거렸다.
  “오후 내내 지켜보고 있었지. 정류소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기다리고 서 있을 때부터...”
  그러면서 그는 능란하게 내 몸을 더듬었다. 그런 그는 이미 평소의 초라한 차림이나 추괴한 용모와는 무관한, 남자라는 하나의 추상이었다. 나는 차츰 몽환과도 흡사한 상태에 빠져들면서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말았다. 회상하기도 민망스럽지만 어쩌면 그때 나는 당했다기보다는 차라리 그와 한 차례의 정사를 즐긴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남의 아내 된 여자로서 한 가지 변명을 삼을
  그 일이 있고 난 뒤의 한동안을 나는 은근한 걱정에 잠겨 보냈다. 깨철이가 다시 내 방으로 뛰어들지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그 일이 동네방네 알려져 내 삶에 어떤 치명적인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에 대한 죄의식이나 도덕적인 가책으로 괴로와한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은 지금에 와서 보면 한심스럽다기보다는 기이한 느낌이 든다.
  우려와는 달리, 깨철이는 그뒤 신통하리만큼 내 주위에는 얼씬도 않았다. 나에 대한 무슨 수상한 소문이 마을을 떠도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당한 엄청나다면 엄청나달 수도 있는 그 일에 비해 너무도 깨끗한 뒤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간 후에야 나는 비로소 그 쉽잖은 절제와 함구가 깨철이를 지켜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보호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령 그가 내가
  어쨌든 그 일로 나는 추측과 상상 속에 숨어 있던 그의 참모습을 확인함과 동시에 더욱 완전하게 그 마을 아낙네들을 이해하게 된 기분이었다. 극단으로 말한다면, 그는 모든 마을 아낙네들의 연인 또는 잠재적 연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깨철이의 존재를 묵인하는 그 마을 남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다시 얼마간의 세월이 필요했다. 계기는 그해 겨울방학이 가까운 어느 날 오후의
  “그는 백칩니다. 성불구자요.”
  표현은 달라도 그 남자 교원의 주장 역시 보통의 마을 남자들과 다름이 없었다. 펄쩍 뛰듯 나서는 그를 보자 나는 이상스레 심술궂은 기분이 들며 그동안 내가 관찰한 것들을 증거로 대듯 차근차근 늘어놓았다. 물론 내 자신의 이야기만은 쏙 뺀 채였다.
 “정말 놀라운 관찰력이십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나도 최근에야 짐작한 일이죠. 한선생님께서 그렇게 예리하게 살피고 계신 줄은 몰랐읍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 남자 교원은 나중에야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수긍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잡아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분들까지 그 사람의 존재를 묵인하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 우선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지않나 싶습니다. 그 하나는 얄팍한 자존심이고 다른 하나는 영악한 계산일 겁니다.”
  “자존심과 계산?”
  “얄팍한 자존심이란 자기가 당했을 경우에 해당됩니다. 깨철이에 대한 우월감을 지키기 위해 그 따위 인간에게 아내를 앗긴 것을 스스로가 인정할 수 없죠. 그보다는 멀쩡한 그를 병신이라고 우기는 편이 속 편합니다. 또 영악한 계산이란 남이 당했을 경우에 깨철이를 용서하는 방식이죠. 아시다시피 이 마을은 전부가 한 문중이고 아니면 인척들입니다. 생피붙거나 사돈끼리 배가 맞?
  나는 그런 합리적인 해명보다는 차라리 어떤 악마적인 것의 침해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불안을 즐기는 피학성향이나, 자기들로서는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도덕과 인습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깨철이와 자기들을 동일시함으로써 얻어지는 보상심리 같은 것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지나친 비약같아 대신,
  “그렇다면 저번에 동네 가운데서 깨철이를 두들긴 사람은 어째서죠?”
  “이건 제 관찰입니다만, 깨철이에게도 어떤 룰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젊은 층은 피한다든가, 같은 상대와 두 번 다시 되풀이는 않는다든가 - 왜냐하면 젊은 남편은 종종 앞뒤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수가 있고, 나이 지긋한 남자라도 여편네가 되풀이 그런 짓을 할때 는 참지 못하니까요. 그때도 아마 깨철이가 그런 식의 어떤 룰을 지키지 않아 생긴 소동일
  그러다가 그 남자 교원은 내가 타성이고 또 아직 미혼이라는 걸 떠올렸는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어물어물 말을 맺었다.
  “뭐, 이것은 순전히 제 추측입니다. 한선생님께서 이미 세밀하게 관찰하신 뒤끝이라 함부로 말해 보았읍니다만 - 우리가 방금 나눈 대화, 혹시라도 마을로 흘러나가 말썽이 안되도록 각별히 유의해 주십시요.”
  그렇게 말하는 그는 표정까지도 흔한 그 마을의 중늙은이들을 닮아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깨철이의 전력을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때 이미 그 남자 교원은 그 화제의 흥미를 잃고 있었다.
  “그건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특별히 이상할 건 없죠. 다른 곳에도 그와 같이 정체 모를 섬 같은 인물들은 흔히 있으니까요.”

  그뒤 내가 그 마을을 떠난 것은 부임한 날로부터 3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군에서 제대한 남편으로부터 지금의 직장에 취직이 되었다는 편지를 받고 나는 곧 그와의 결혼식을 위해 학교에 사표를 냈다. 그런데 워낙이 머릿수를 맞춰둔 교원이라 내가 그날로 떠나 버리면 그동안 맡아오던 학급은 후임자가 올 때까지 수업을 중단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 바람에 나는 사흘이나 더 기
  내가 그 마을을 떠나던 날이었다. 마침 대학 후배였던 내 후임자는 버스 정류소까지 나를 전송하러 나왔다. 그런데 정류소 앞 가겟집 툇마루에 언제 왔는지 깨철이가 웅크리고 앉아 처음 나를 보았을 때와 똑같은 눈으로 내 후임인 여선생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그녀에게 깨철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혈연이나 인척으로 속속들이 기명화된 그 마을에 유일하게 떠도는 익명의 섬이었다. 만약 그녀에게도 대부분의 그 마을 아낙네들처럼 혹은 2년 전 어느 날의 나처럼, 분출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폐쇄되고 억제된 성이 있다면, 역시 그 익명의 섬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 후임자에게 충고하는 대신 밉살맞을 만큼 끈끈하게 그녀를 살피는 깨철이를 약간 쌀쌀맞은 눈길로 쏘아 주었다. 그도 그런 내 눈길을 맞받았다. 그때, 착각이었을까, 나는 문득 그의 눈길에서 희미한 웃음 같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비탈 아래 펼쳐진 논밭과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 땅 어느 모퉁이에도 그의 것은 흙 한 줌


   새하곡

  그날 아침 이상범 중위는 “전쟁이란 이렇게 터지는 것이로구나” 하는, 각오가 되었으면서도 얼떨떨한 비장감과 묘한 열기 속에 눈을 떴다. 내무반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사태는 충분히 예견되었고, 만일에 대비해 여러 가지 작전과 상세한 행동계획이 수립돼 있었지만, 몇몇 고참병을 제외하고는 모두 형편없는 혼란에 빠져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완전 군장을 꾸리느라 장비와 병기가 부딪는 소리, 철모가 통로의 시멘트바닥에 요란스럽게 떨어지고, 반합이 떨그럭거리며 침상을 굴렀다. 거기다가 쉴새없는 전화벨소리, 포대장과 인사계의
  그러나 이중위에게도 그런 것을 더 이상 한가롭게 지켜볼 틈이 없었다. 그는 이 야전포병대의 통신장교였고, 그래서 이제부터 그 어느 때보다 능률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돼야 할 백여 종의 통신장비와 사십여 명의 과원이 그의 지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은 출동해야 할 통신차량과 무선장비의 점검이 급했다. 그는 그제서야 어슬렁거리며 일어나는 선임하사 임상사에게 막사
 이중위는 먼저 갓 통신학교를 나온 신병이 배치돼 있는 17호 차량으로 들어갔다. 인접포대망을 맡고 있는 녀석은 웅웅거리는 V-17 앞에서 무엇인가 방금 수신한 음어를 해역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뭐야?”
  “018대대 전개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보다 상황이 좀 빨랐던 것 같습니다.”
  “빨리 전해.”
  그때 갑자기 플래쉬가 번쩍이며 지원연대망을 맡고 있는 유상병이 이중위를 찾았다.
  “과장님 V-25 수신부 침묵입니다.”
  “퓨즈 점검했나?”
  “네, 이미 점검해봤지만 이상없었읍니다.”
  “언제부턴가?”
  “약 십 분 전부텁니다. 지금 보조수신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감이 아주 나쁩니다.”
  “배터리는?”
  “어제 저녁 최종 점검 때 충분히 충전된 것으로 갈았읍니다.”
  “그럼 수신부, 빨리 예비와 바꿔. 그리고 결과 보고해.”
  무선반의 사고는 그밖에도 두 건 더 있었다. 멀쩡하던 사단 AM망이 갑자기 송신불능에 빠진 것과 V-17 한 대가 차량배터리의 합선으로 가동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둘다 예비로 대치하면서 이중위는 새삼 예비를 확보해 둔 것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며칠 전 인근부대에 통신장교로 근무하는 동기들로부터 거의 사분의 삼톤 트럭 한 대분의 장비를 빌려두었는데, 그것은 기재계 강?
  대략 무선병 점검이 끝나자 이중위는 선임하사가 맡은 유선병 쪽으로 가보았다. 역시 장비적재로 부산하기는 하였지만 당장 쓰이는 것들이 아니어서 성능 때문에 오는 혼란은 없었다. 선임하사가 그의 독특한 충남 사투리로 유선반장 양하사에게 무엇인가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것을 뒤로 하고 이중위는 다시 교환대로 향했다. 날은 아직도 어두웠다.
  교환대 못미처 설상파카와 설상위장포를 들고 오는 서무계 권일병을 만나고서야 이중위는 비로소 눈이 오는 것을 알았다.
  “제기랄, 전쟁이 터지는 날은 언제나 인상적이로구나.”
  그런 기분은 비가 왔더라도, 안개가 끼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설령 청명했더라도.
  그런데 교환대 문을 연 이중위는 의외의 광경에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이런 법석중에도 교환병 김일병이 야전교환기의 신호음을 꺼놓고 리시버를 귀에 꽂은채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야, 이 개새끼야.”
  이중위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과 함께 김일병을 걷어찼다. 그러나 놀라 그를 올려보는 김일병의 얼굴을 보고 그는 “아차”했다. 녀석의 안경알 밑으로 번질거리며 흐르고 있는 것은 분명 두 줄기의 눈물이었다. 함께 근무하던 배상병의 변호가 아니더라도 녀석이 자고 있지 않았던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화가 나는 실수였다.
  “근무 똑똑히 해. 임마, 곧 출동이야.”
  마침 기재계 강병장이 야전선 적재문제로 이중위를 찾아왔으므로 그는 자칫 난처할 뻔했던 자리를 여전히 화난 목소리로 때우고 교환대를 나섰다.
  “뒷산 야전선을 좀 써야겠는데요.”
  위장망에 단독군장 차림으로 출동준비를 완전히 갖춘 강병장이 은밀한 의논 투로 말했다.
  “뒷산 야전선?”
  이중위는 그게 무얼 뜻하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아 그렇게 반복했으나 이내 강병장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지난 여름 전방의 야전선을 재래식 화기의 화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하로 매설할때, 이중위와 강병장은 약 팔 마일의 야전선을 빼돌렸다. 사단에 보고할 선로도는 매설 곤란을 이유로 곡선으로 그리고 실제 매선은 직선으로 하는 방법을 이용했는데 주로 행정적인 면은 강병장이 처리했고 검열문제는 이중위가 맡았다. 선로도와 실제 매설이 일치하는 지점을 몇 군데 표시해 두었다가 적?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힘들여, 또 싯가로도 몇십만 원이 되는 야전선을 빼돌린 데에 딴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의 훈련이 끝나면 보통 상당한 감량이 생기는데 사단 보급소는 그 감량 인정에 인색했다. 거기다가 때로 지상가설에서 절취당하는 수도 있어 자칫하면 통신장교가 몇 마일씩 변상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그런 때를 위해 부대 뒷산의 쓰지 않는 방공호에 은?
  “사단서 수령한 것은 폐선이 많이 섞여 재생을 해도 대개 저항 3백이 훨씬 넘습니다. 감도가 나빠 선로가 길면 어렵죠. A급을 자르기는 안됐지만, 미더운 게 필요해서요.”
  “그럼 강병장이 알아서 몇 마일 싣도록.”
  이중위는 언제나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강병장의 판단에 일임했다.
  이상하게도 그는 강병장만 대하면 모든 것이 미덥고 든든하면서도 원인모를 위축감에 빠지곤 했다. 강병장이 자기보다 두 살 위이고, 또 유능한 기재병이어서 그가 맡은 정부재산을 잘 관리해 준다는 것 이상으로 강병장에게는 무언가 그를 압도하는 것이 있었다. 그만의 어떤 특이한 힘이었다.
  실제로 지난 여름 강병장은 대대장도 손을 든다는 작전과장 장대위와 정면으로 충돌하여 그를 굴복시킨 적이 있었다. 강병장에게는 갓 전입온 신병에게까지도 깍듯이 경어를 쓰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이 육사출신의 전형적인 군인인 장대위에게는 군기의 문제로 비친 모양이었다. 몇 번이나 타일러도 강병장이 듣지 않자 화가 난 그는 어느날 정식명령으로 그것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장대위가 펄펄 뛰었으나 속수무책 - 이미 일주일이나 굶어 늘어진 사람을 어쩔 수는 없었다.
  결국 강병장의 일은 단식 열흘 만에 대대장에게 보고되었고 놀라 달려온 대대장에게 눈만 번쩍이는 강병장이 내놓은 것은 그 열흘 동안 수십 번을 검토한 것임에 틀림이 없는 “군인복무규율” 한 권이었다.
  “죄송합니다. 대대장님. 그러나 책 어느 조문을 보아도 하급자에게 경어를 써서는 안 된다는 구절은 없었읍니다...”
  그런 강병장의 특이한 힘은 이중위도 한번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지난 여름의 일이었다. 그날 무심코 기재창고를 지나던 이중위는 돌연한 고함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알았어? 너희 대장 하대위가 와도 내게는 그리 못해. 그런데 이새끼, 너 그 태도가 뭐야?”
  이중위로서는 처음 듣는 강병장의 고함이고 욕설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상대였다.
  “강병장님, 뭘 그리 화내십니까?”
  기가 꺾인 목소리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은 분명 보안대 장병장이었다. 평소 사병은 물론 장교까지도 개똥같이 여기는 전방보안대 사병의 표본 같은 녀석이었다.
  “조심해, 임마. 병아리도 못되는 주제에 장닭처럼 벼슬을 흔들어대면 모가지가 부러지는 법이야.”
  그러자 장병장은 들여다보고 있는 이중위를 의식했는지, 아니면 당하다 보니 화가 났던지 갑자기 지금까지의 부동자세를 풀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 이거, 강병장 뭘 자꾸 그러슈? 까짓 배터리 몇 개 안 주면 그만이지...”
  그러나 그의 말은 강병장이 무섭게 따귀를 내려치는 바람에 중단되고 말았다.
  “차렷! 이새끼. 이 새까만 일병놈의 새끼가. 아직 말 끝나지 않았어, 야전 건전지가 너 같은 놈 물고기나 잡으라고 나온지 알아? 야, 임마! 그 한 박스면 1개 포대가 한 달간 쓸 수 있어, 이 썩은 새끼야.”
  이중위는 비로소 강병장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가를 알았다. 야전 건전지는 폐품반납 과정에서 잘 조작하면 여분을 남길 수 있었다. 강병장도 상당한 여분을 가지고 있었는데 장병장이 그걸 알고 얻으러 온 모양이었다. 무전기나 특수 장비용의 배터리는 직렬로 연결하면 물이 얕은 개울에서의 고기잡이에는 넉넉한 전류를 끌어낼 수 있었다.
  “쓸 데가 있어서... 남는 걸로 알았읍니다.”
  신통하게도 금새 기가 죽은 장병장, 아니 장일병이 궁색하게 변명했다. 녀석은 보안대의 공공연한 관례대로 지금까지 병장 계급을 사칭해온 모양이었다.
  “그렇더라도 그건 정부재산이야. 장교가 와도 기장하지 않고는 내준 적이 없어. 어디서 순...”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럼 꺼져버려. 아구통 돌아가기 전에.”
  “필, 승!”
  결국 장일병은 경례까지 깍듯이 하고 돌아갔다. 평범한 전방야포대의 사병인 강병장이 무엇으로 막강한 보안대원을 그토록 무섭게 굴복시켰는지 이중위는 몹시 궁금했다.
  “군대와서는 처음으로 군번을 따졌죠. 녀석은 일병이었으니까요.”
  강병장은 히죽이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게 아닌 것은 분명했다. 거기다가 이중위가 또하나 감탄하는 것은 강병장의 깊이 모를 능력이었다. 이중위는 이 부대에 통신장교로 근무한 이래 그가 모른다거나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특히 통신분야에서는 이십 년이 가까운 선임하사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장비는 물론 작전면에까지 그의 능력이 미치지 ?
  따라서 통신과에는 이중위와 임상사 외에도 분대장인 세 명의 하사와 다섯 명의 고참이 있었지만 모든 일은 사실상 거의 그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가끔씩 이중위마저도 통신과의 정신적인 과장은 그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갑자기 맞은편 산등성이에서 청색 신호탄이 오르더니 여기저기서 총성이 터졌다. 본부포대장의 신경질적인 명령이 산 아래 연병장서 들려왔다.
  “각과 삼분의 일씩 경계조를 편성, 삼분 이내로 본부연병장에 집합-”
  중대한 상황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이중위는 상황실로 달려가 보았다.
  “차리-C포대- 북방 무명고지 일대 수미상의 게릴라 출현.”
  C포대의 보고에 상황실의 급박한 지시가 하달됐다.
  “차리, 차리, 빨리 타격대를 편성하라. 타격대를 잔류시켜 게릴라에 대항하고 빨리 포를 빼라.”
  뒤이어 각 포대의 상황보고가 날아 들었다.
  “풍랑객 다섯, 풍랑객 다섯, 여기는 풍랑객 하나. 이상.”
  “여기는 풍랑객 다섯, 풍랑객 하나, 말하라. 이상.”
  풍랑객 다섯은 상황실의 호출부호, 하나는 알파-A포대-의 호출부호였다.
  “병아리에는 날개가 났다.이상.”
  “풍랑객 하나, 병아리를 날리도록. 끝.”
  선임 A포대가 전개명령을 받은 것이었다. 뒤이어 브라보-B포대-의 호출과 전개 명령, 그리고 마지막으로 C포대의 보고였다.
  “여기는 풍랑객 셋, 병아리를 날린다. 까치발 오공-캘리버 50 경기관총-과 병아리 한 배-1개 소대-를 남긴다. 현재 까마귀-게릴라- 침묵중.”
  그 사이 본부 차량들도 하나 둘 빠지기 시작했다. 이중위가 탄 상황실 박스 카도 천천히 진지를 빠져나왔다. 날은 드문드문한 눈발 사이로 어느새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사단규모의 통합훈련 청룡 25호 작전의 D데이가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진지를 떠나 눈 속을 느릿느릿 십 마일쯤 이동했을 때에야 이중위는 상황장교를 통해 사태의 정확한 진전을 알 수 있었다. 적-가상-은 총 1개 사단의 병력으로 그날 새벽 네 시를 기해 대대적인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아군 390연대는 중앙이 돌파당해 이십 마일이나 후퇴해서 재정비중이었고, 392연대는 임진강 지류 하나를 끼고 치열한 교전중이었으나, 역시 적의 주공은 사단본부를 끼

  그 모든 상황은 육이오 이듬해에 태어나 한 번도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고 임관후에도 줄곧 후방근무만 해온 이중위에게는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나이든 하사관들이나 경험많은 고참 장교들에게는 심드렁한 전쟁놀음일 뿐이었다.
  “글쎄, 그년을 만났더라요.”
  수송부 선임하사인 문중사였다. 새벽부터 어디서 한잔 걸쳤는지 약간 취한 목소리로 간밤의 꿈얘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첨 살림을 차린 무등산 기슭의 판자집이드랑께. 차암 그때는 재미있었제... 그런디 - 그 X할 년이 갑자기 왜 나타났을까...”
  그에 관해서는 이중위도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술과 계집으로 팍삭 늙어 얼굴은 사십대도 중반이 넘게 보이지만 실은 서른 넷의 나이였다. 시골 목사의 아들로 유복하게 자랐고 교육도 상당히 받은 편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하러 광주로 나왔다가 옆방에 자취하던 술집 여급과 눈이 맞아 빗나가 버렸던 것이다. 고지식한 부모에게 의절당하고 학교마저 중퇴한 그는, 방금 얘기한 그
  “년도 꽤나 쪼그라들었을 것이로구만잉, 나보다 세 살이나 위였응께...”
  그런 그의 목소리에는 그날따라 야릇한 감개가 서려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 여자는 그에게 있어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였다. 그후 그는 세 번이나 딴 여자와 살림을 차렸으나 번번이 한 달도 못가 끝나 버렸다. 그를 만년 중사로 만들어 놓은 고약한 술버릇 때문이었다.
  “XX 껌씹는 소리 그만하고 그 수통에 쐬주나 있으면 한 모금 나눠 주슈.”
  문득 맞은편에서 묵묵히 차량에 거치된 석유스토브를 쬐고 있던 군수과장 “별”대위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혀도, 과장님은 그 소리들은 지 오래 됐을 건디.”
  수통을 건네면서 문중사가 하는 소리였다. 군수과장 역시 몇년전에 상처하고 아직 홀애비였다.
  그들은 곧 음담패설을 주고 받으며 소주를 나눴다. 장교와 하사관이라는 신분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곧잘 어울렸다. 문중사가 군수과 선임하사였을 적에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는 것 외에도 무언가 그들에겐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군수과장의 계급 앞에 “별”이란 별명이 붙게 된 경위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였다.
  십여 년 전 신임소위로 OP에 파견근무를 하던 그는 항상 은박지로 큼직한 별을 두 개씩이나 철모에 오려 붙이고 다녔다. 그러나 어느날 그는 불시에 순찰나온 사단장과 그 철모를 쓴 채 맞닥뜨리게 됐는데, 그 사단장은 준장이었다. 그런 종류의 실수는 종종 군인으로서의 그에게 치명적인 것이 되어 십 년째 그를 대위로 묶어놓았지만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요즈음도 멋모르는 소령?
  “야, 이새끼야. 말조심해. 중령같은 대위다.”
  갑작스런 긴급 임무의 하달로 그들의 그런 술자리는 깨지고 말았다. 끝내 밀리게 된 392연대가 적의 진격속도를 줄여줄 지원 포격을 요청해 왔던 것이다.

  그들은 근처 얼어붙은 논바닥에다 긴급 방열을 하고 삼십분 가량 비사격을 했다. 그동안 유선가설에 땀을 뺀 이중위는 비상식량으로 늦은 아침을 때운 후 부대가 다음 진지로 이동할 무렵 가설 차량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금 철거한 야전선 뭉치와 빈 방차통이 개인장비와 뒤죽박죽이 된 차량 한구석에 교환병 김일병이 풀이 죽어 앉아 있었다.
 “김일병, 새벽에는 내가 지나쳤다. 대신 작전이 끝나는 즉시 휴가는 책임지마. 안되면 단 며칠이라도.”
  이중위는 불면으로 핼쓱한 김일병의 얼굴에 알지 못할 연민을 느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겨우 스물 셋인데도 녀석에겐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강병장이 들려준 이야기는 바로 그 아내가 백일도 안 지난 아이를 시가에 떼놓고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이중위는 힘들여 녀석의 청원휴가를 얻어냈으나 이번 작전으로 그만 연기돼 버렸다.
  이중위의 다정한 위로에도 불구하고 김일병은 그저 망연한 눈길로 이중위를 올려보며 꿈꾸듯 중얼거렸다.
  “과장님, 저는 그때 전화를 받고 있었읍니다...”
  아, 또 그 전화얘기, 이중위는 약간 한심한 기분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가설병들이 저희끼리 수군거리며 킥킥 웃었다.
  “터어키 병사였읍니다...”
  김일병은 최근 들어 기이한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밤 늦어 졸면서 근무하던 전방의 교환병이 간혹 환청을 경험하는 수가 있기는 하지만 김일병의 그것은 좀 특이했다. 한결같이 이땅에서 죽은 외국인 병사들의 전화가 거의 매일 저녁 그에게 걸려 온다는 것이었다.
  군의관은 김일병의 그런 증상을 지난 여름의 야전선 매설작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그 작업중 몇 군데 땅 속에서 해골더미가 발견됐는데, 그것이 그때 그 작업에 동원됐던 김일병의 의식 깊이 잠재했다가 다른 어떤 심리적인 요인과 함께 환청으로 나타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환청 이상 다른 증상은 전혀 김일병에게 보이지 않았으므로 특별한 치료나 후송같은 것은 고려
 “이스탄불의 건달이었답니다. 고향에 돌아가는 꿈을 꾼 날 아침 적의 박격포에 당했어요...”
  이중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일병은 여전히 몽롱한 표정으로 폭사한 터어키 병사의 얘기를 계속했다. 그는 우리말밖에 모르는데도 환청 속에서만은 어느 나라 말이건 신통하게 알아들었다. 영어, 불어, 일어는 물론 서반아어, 인도네시아어까지도, 그리고 그에게 전화질을 해대는 망령들은 한결같이 일정한 유령이었다.
  지난 가을 늦게 녀석에게 처음 전화를 한 것은 산동성 출신의 중공군 병사였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왔는데 무단 후퇴를 하다 독전병에게 즉결됐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이 전직 복서였다는 콜롬비아 중사, 약혼녀에게 자랑할 전리품을 위해 인민군 시체더미를 뒤지다 생존자에게 저격됐고, 다음은 삼류가수와 결혼한 캐나다군의 나팔수로 아내의 변심을 고민하다 자살, 그리고 지
  “그런데 그들중에 김일병은 누구일까?”
  강병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그 캐나다군의 나팔수일 겁니다. 녀석도 사회에 있을 때 나팔을 불었죠. 맥주홀의 밤무대 같은 데서 - 여자도 거기서 만났다니까요.”
  그러나 그때는 거의 희롱처럼 느꼈던 강병장의 얘기가 지금 이런 상황 아래서 망연한 눈길과 함께 떠오르자 왠지 이중위도 음울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가 고통속에 죽어가던 그 순간도 그의 아내는 다른 사내와 흥청대고 있었다는 거예요...”
  김일병은 이중위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독백과도 흡사한 얘기를 힘없이 이어갔다.
  “그러나 너는 살아서 돌아간다. 이건 도대체가 훈련이고 죽음같은 것과는 아무 관련도 없어. 거기다가... 아마 네 아내는 현숙한 여자일 거야. 어디선가 틀림없이 너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을 거다.”
  깊어가는, 알지 못할 연민으로 다소 감상적이 된 이중위는 그렇게 위로하며 김일병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차량 뒤켠으로 가서 마치 무거운 기분을 떨쳐버리듯 두터운 방수천을 걷어 제쳤다. 갑자기 찬바람과 함께 굵은 눈발이 날아 들었다. 멎었던 눈이 다시 하늘 가득히 내리고 있었다.
  건너편 도로 위에 포를 뒤로 뺀 우군 전차가 어디론가 황급히 이동하고 있었다. 시가 퍼레이드에서 자랑하던 위용과는 먼, 무언가 초조와 불안에 싸인 듯한 조그만 쇠붙이의 초라한 행렬이었다. 전차대가 사라져간 산모퉁이로 보병의 행렬이 끊임없이 눈 속을 헤쳐가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이중위는 막연히 중얼거렸다.
  “전쟁은 참으로 쓸쓸한 것이로구나...”

  몇 군데에서의 긴급방열을 거쳐 그들이 숙영지로 예정된 제 4 전개진지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그곳은 조그만 내를 끼고 멀리 인가가 보이는 조그만 계곡 입구의 논이었다.
  그들이 막 포방열을 마쳤을 때 갑작스런 적기의 공습이 있었다. 다행히 대공위장이 거의 완료대 진지는 피해가 없었지만, 고장으로 뒤져 들어오던 보급차량이 반파의 판정을 받고 말았다.
  공습 후부터 저물 때까지 이중위는 정말 바빴다.
  “눈썹과 X털이 바람에 휘날리도록 달려와.”
  “워카 밑창에서 가죽 냄새가 나도록 뛰어.”
  선임하사가 그렇게 시시덕거리며 과원들을 몰아대고 있었지만 이중위는 웃을 틈조차 없었다. 긴급방열 때와는 달리 진지에서는 정규가설을, 그것도 통제관의 시간체크 아래 해치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포대선은 포대의 가설병이 끌어오게 돼 있었고, 참모부선은 구간이 짧아 문제가 안됐지만, 포사선, 연대선, OP선은 예상외로 힘들었다. 대부분 몇 마일씩 되는 장거리선인데다 지형 지?
  별수없이 두 개의 OP선을 직접 지휘한 후 다시 연대선을 끌고 목적지 부근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육부 정도의 능선에서 일단의 보병들이 참호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언 땅이라 야전삽 정도로는 교통호는 고사하고, 개인호도 제대로 패여질 것 같지 않았다. 그들과 약간 떨어진 곳에 소대장인 듯한 소위 하나가 철모를 쓴 채 눈바닥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
  “연대본부가 어디요?”
  그러자 고개를 약간 든 그는 말도 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이미 어둠이 짙어오는 계곡 밑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기계적인 동작을 되풀이하고 있는 사병들도 몹시 지쳐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들은 하루 종일 도보로 행군했을 것이다. 적어도 이십 마일 이상을, 그것도 가끔씩은 도보로.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중위는 비록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체험해보지 못한 전쟁의 또다
  “전쟁이란 피로한 것이로구나...”
  그러나 피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설을 힘들여 마치자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원인모를 단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단선을 잡기만 하면 그것은 반드시 도로 횡단지점에서였고, 그 행태는 누군가가 야전선을 돌로 짓찧어 놓은 것 같았다. 몇 번인가 똑같은 경우를 당한 후에야 비로소 이중위는 그 원인을 알아냈다. 범인은 우군 자주포와 전차였다. 땅이 얼
  밤 여덟시경에야 모든 작업을 마친 이중위는 숙영지로 돌아왔다. 겨울밤으로는 상당히 깊어 사방은 고요했다. 불빛이 통제된 진지는 한층 완강한 침묵으로 어둠과 추위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중위가 바지가랑이와 군화에 묻은 눈을 털고 십인용의 가설병 막사에 들어가니 썰렁한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식은 우내장국이었던 모양으로 표면에는 기름이 두껍게 굳어 있었고, 절인 무우에는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그제서야 이중위는 추위에 언 가설병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도중 민가에라도 들러 저녁을 먹이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돈보다는 이동 통제반과 적의 ?
  “뭐야?”
  “찌갭니다. 과장님 몫은 따로 끓이고 있으니 함께 가시지요.”
  가설병이 환성을 지르며 식기를 들고 반합 주위로 모여들었다. 군용 두부와 동태, 콩나물 따위를 넣고 역시 군용 고추장을 풀어 끓인 것으로 이중위가 보기에도 먹음직했다.
  “누가 끓였나?”
  “강병장님 솜씹니다. 자, 과장님. 가시죠. 강병장님이 기다리고 있읍니다.”
  권일병이 인도해 간 곳은 계곡 한편의 전주 밑에 자리잡은 강병장의 텐트였다.
  개인 텐트를 몇 장 교묘하게 결합해 한 평 남짓한 그 속에는 강병장이 단짝인 암호병 박상병과 함께 이중위를 기다리고 있었다.
  “히야, 이사람들 봐라.”
  텐트를 들치고 들어간 이중위는 우선 감탄했다. 텐트 안에는 군용갓을 씌운 백열등이 켜져 있었고, 구석에는 조그만 전기곤로가 발갛게 달아 있었다. 그리고 텐트 한가운데 놓인 등산용 고체연료 위에서는 무엇인가가 한참 기분좋게 끓고 있었다. 그 곁에는 소주병도 두어 개 보였다.
  “전기는 누가 끌었나? 고압선 같던데.”
  “한전기사가 끌었읍니다.”
  한전에 근무하다 입대한 신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강병장은 방한모도 야전잠바도 벗은 채로였다.
  “곤로는?”
  “미리 준비해 왔죠. 고체연료도 서너 개. 아무래도 겨울에는 따뜻한 게 제일이니까요.”
  “거기다가 야전전기세트라 - 이건 PLL-전투예비-아냐?”
  그러나 이중위의 질문은 나무람이라기보다는 감탄의 연속이었다.
  “하여튼 애들을 위해 찌개를 끓여둔 건 잘했다. 그런데 이 술은 웬거야? PX품이 아닌데-”
  “역시 PX겁니다. 이럴 때 PX도 한몫 봐야죠.”
  그러자 이중위에게도 생각나는 게 있었다. 원래 PX는 군납품만 쓰게 돼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가가 있고 이윤이 적은데다 때로는 질 문제로 잘 팔리지도 않았다. 영내에 있을 때는 사단 PX와 감찰부의 통제 때문에 어쩔수 없지만 이제 그들의 통제권 밖으로 나온 이상 반드시 군납품을 쓸 필요는 없었다. 듣기에 주임상사는 이번에 개인적인 투자로 거의 한 트레일러 분의 사제 물품을

  식사를 마치자 이중위도 방한모와 야전잠바를 벗었다. 눈에 젖은 바지가랑이와 군화에서 가는 김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강병장이 넥타깡통에 소주를 반 가까이나 부어 권했다.
  “한잔 드십시오. 몸이 확 풀릴 겁니다.”
  안주거리 찌개는 따로 있었다. 강병장이 납작한 철제 약상자에서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범벅해 둔 양념이며, 조미료, 장조림 따위를 꺼내는 걸 보고 이중위가 다시 물었다.
  “치밀하군. 누구 솜씬가?”
  “박상병 어부인 솜씨죠. 지난 주 외출때 가져왔읍니다.”
  육사를 중퇴했다는 풍문뿐 강병장의 경력이나 환경이 깊이 감추어진 것임에 비해 박상병의 그것은 비교적 대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우선 그는 부대의 최고령자였다. 국내 제일의 명문에서 대학원까지 수료하고도 고시준비로 몇 년을 더 보낸 바람에 스물여덟에 입대, 지금은 강병장보다 한 살 많은 서른이었다. 부인은 약사로 개업중이었고 세 살난 아들이 있었는데, 강병장과는 각별
  이상하게도 이중위는 그들과 술을 나누다보면 자기가 군에 있다는 것을 깜박깜박 잊어버리곤 했다. 한번은 술이 취해 그들과 강형, 박형 하다가 부대장에게 경을 친 적도 있을 만큼 그들의 화제는 군대를 떠나 있었고 그 분위기는 독특했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로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서로 강형, 박형 하는 것이 조잡스럽게 보였고 그들의 대화도 공허하게 들렸다. 처음 한동?
  “그런데 말이야, 강병장. 나는 장교로 이 년째 근무하면서도 도무지 너희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어.”
  “뭔데요?”
  강병장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너희들의 - 그 무어랄까... 이를테면 모든 것을 방기해 버린 것 같은 자세말이야.”
  “구체적으로 어떤 것 말씀입니까?”
  “예를 들면 너희들의 탐식. 너희들은 이상하게도 먹는 것에 집착한다. 이미 우리 군대에는 아무도 배고픈 사람이 없을 텐데도 말이다.”
  “먹는다는 건 분명 즐거운 일입니다. 그 다음은요?”
  “너희들의 나태. 너희들은 병적으로 움직이는 걸 싫어한다. 훈련이나 작업은 물론이지만, 분명 너희들에게 유리한 일도 시키기 전에는 안한다. 대신 기회만 있으면 자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멍청히 있기를 좋아한다.”
  “사실 배부른 사병이 가장 열렬히 바라는 게 그 두가집니다.”
  “ 또 있다. 그것은 너희들의 집요한 탐락. 한번 술잔을 들면 쓰러질 때까지 놓지 않고 여자를 얻으면 날이 새기 전에는 그 배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너희들이 용감하고 부지런해지는 것은 그 둘을 위해서 뿐이다.”
  “대개 총기 사고는 그 둘 중의 하나 때문이죠.”
  “너무 철저한 자기 방기다. 더구나 그것이 학력이나 인격, 연령에 관계없이 너희들에게 공통되는 것을 보면 아연할 때마저 있다.”
  “이거 오늘 우리가 되게 당하는군요. 너무나 사병적인 야영준비였읍니까?”
  강병장은 여유있게 웃었다.
  “그런데 과장님은 그 원인을 생각해 보셨읍니까?”
  “처음에 나는 그게 일제의 나쁜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남의 나라, 다른 민족을 위해 죽음을 강요당해야 했던 그들의 군대관이 지금까지 그릇 전승돼 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너무 오래된 일이고, 또 지금은 다르다.”
  “그래도 일제의 잔재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죠.”
  “그래서 나는 또 그것이 와전된 쾌락주의라 생각했다. 개인주의와 현실숭배의 기형적인 결합 같은 것 - 하지만 그것도 너희들의 그 철저한 방기의 설명으로는 불충분해.”
  “맞습니다. 잘 보셨지만, 과장님은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읍니다.”
  “무언가?”
  “니힐이죠. 병사의 절망입니다.”
  “병사의 절망?”
  “모든 것을 타아에 맡겨 버린 자아의 절망입니다. 우리에게 존재를 부여하는 생명까지도 병사는 자기 것으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가진 것은 철저한 무죠.”
  “그런 것을 정말 너희들이 모두 느끼고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쟁이 터져 존재 자체가 실제 위협을 당할 때조차도. 그러나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과 그게 없다는 건 별개지요. 모든 병사는 군번과 함께 그 절망을 잠재의식 속에 지급받았던 겁니다.”
  “하지만 소위 동일시라든가 동기의 합리화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집단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것 같은...”
  여기서 불쑥 박상병이 끼어들었다. 그들은 이 화제에 어느 정도 익숙한 것 같았다.
  “그런 것을 자발적인 것으로 사병들에게 구하는 것은 무리지요. 더구나 우리는 대개 국민개병제도에 따라 의무적으로 왔을 뿐이니까요. 효과적인 동기부여나 정치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걸 위해 정훈이 있지 않나?”
  “그러나 그 효과는 참으로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병사의 절망을 확인시키는 때도 있죠. 예를 들어, 프롤레타리아에 대해 수십 매의 논문이라도 쓸 수 있는 사병이 -프롤레타리아;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 즉 빈털터리- 식의 암기사항을 강요당할 때, 그는 자기의 절망을 확인할 겁니다. 또 사학을 전공한 친구가 별로 전문화되지 못한 정훈교관에게 -이순신 장군은 배 열두 척으로 ?
  “대개 박상병이나 강병장 자신의 얘길 테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아.”
  “그래도 우리 본부요원의 태반은 대졸이나 대잽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 비율은 높아갈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강병장이 다시 끼어들었다.
  “지적 수준이 낮은 사병도 마찬가집니다. 별 알맹이도 없이 어렵기만 한 한문용어로 된 정훈교범을 대할 때, 토요일 내무사열에서 수십 개의 비슷비슷한 암기 사항을 다 못외어 그날의 외박이 취소당했을 때, 시골중학을 중퇴한 그 사병은 또한 자기의 절망을 확인할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의 정훈은 완전한 낭비인 셈이군.”
  “아니죠. 만약 어떤 곳에서 보다 전문화된 교관에 의해 근거있게 등급화된 사병들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여기서 이중위는 묘한 저항감을 느꼈다.
  “아니면 너희들 중 하나를 정훈감에 앉히거나...”
  원래 논리에 감정이 개입되면 그 논리는 끝이다. 그런데 돌연 그들의 대화에 노골적인 감정을 끌어들인 것은 어느새 취한 박상병이었다.
  “병사들을 절망시키는 것은 그밖에도 더 있읍니다. 이를테면 하사관층의 원인모를 가학성향, 장교들의 아리스토크래티즘-귀족주의-...”
  “박형, 잠깐.”
  갑자기 노련한 강병장이 요란스레 술병을 부딪치며 박상병의 말을 중단시켰다.
  “술이 다됐어. 수고스럽지만 술 좀 더 가져오쇼.”
  강병장은 그쯤에서 대화를 끝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는 분노로 변해가는 이중위의 묘한 저항감을 짐작한 것 같았다. 그러나 취한 박상병은 할 얘기를 다 하고야 일어섰다.
  “사단 보충대에서의 일입니다. 제 신상명세서를 본 인사과 행정반의 장교들이 저를 부르더군요. 멋모르고 쓴 대학원 학력때문이었죠. 그들은 나를 잘 보아준답시고 사역과 훈련에서 빼낸 것입니다. 그런데 일없이 행정반에 빈둥대다가 그들에게 처음 받은 과업이 뭔지 아십니까. 군화를 닦아달라는 것과 PX에서 담배를 사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남는 팔십원으로는 오리온 마미를
  강병장은 조심스레 이중위의 눈치를 살폈지만, 거기서 이중위는 오히려 원인모르게 착잡한 심경이 되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박상병을 붙들어 앉히고 대신 일어섰다.
  “작전중이야. 술은 됐어. 오늘만은 그놈의 절망을 절제해라.”
  그는 담담하게 말하고 강병장의 막사를 나왔다. 강병장이 따라 나왔다.
  “술 잘 마셨다. 잘 자라.”
  “죄송합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필승!”
  강병장은 전에 없이 단정하게 경례까지 했다. 그러나 보기보다 많이 취한 것 같은 박병장은 그동안도 막사에 비스듬히 앉은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니힐, 니힐, 니힐리아 노래부르며... 저 바벨론의 강가에서 먼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노라..”

  하지만 그날밤은 결국 누구도 잘 잘 수 있는 밤이 못되었다. 게릴라 침투가 세 번이나 있어 무전차량 한 대가 반파, 포차 한 대가 완파되고, 이십여 명이 사상 판정을 받았다. 전 병력은 별수없이 취침을 포기하고 철야경계에 들어갔다. 거기다가 새벽녘에는 또 난데없는 헌병대가 들이닥쳐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인근 부락의 술집에서 나이든 작부 하나가 피살된 사건 때문이었다. 술?
  이중위의 부대에서도 그 시각에 진지에 없었던 것이 명백한 몇몇이 - 예를 들면 보선을 나갔던 가설병이나 부식수령을 갔다가 늦은 일종계와 취사병 같은 병사들이 - 턱없이 엄한 심문을 받고 데려온 술집 주인과 면대까지 했으나 술집 주인은 이미 얼굴을 잊은 후였다. 사건 후부터 지금까지 벌써 수백 명을 면대한 그는 그저 자고 싶으니 돌려보내 달라고 할 뿐이었다.

  이튿날 D 더하기 1일은 숨가쁜 이동의 연속이었다. 반격에 실패한 지원 연대를 따라 이중위가 소속된 야포대도 삼십 마일이나 뒤로 밀렸기 때문이었다. 오전 동안에 긴급 방열이 두 번, 게릴라 출현이 한 번, 그리고 적의 경비행기가 투항을 권고하는 전단을 뿌리고 사라졌다.
  그런데 오후 늦게 재반경이 시작되면서 이중위의 부대는 포병으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제 6전개진지에서 적 보병집결지를 향해 맹렬하게 비사격을 하고 있는데 통제관이 화집점 확인을 하러 들어왔다. 그러나 핀이 꽂혀 있는 곳은 적의 집결지가 아니라 392연대의 CP 부근이었다. 지원연대가 이미 삼십분 전에 진공한 것도 모르고 열심히 그 머리 위에 포탄을 퍼분 셈이
  상황실은 벌컥 뒤집히고 컴퓨터-계산병-들은 거의 혼이 빠졌다. 그러나 아무리 계산해 봐도 연대 최종지원사격 요청지점의 좌표는 그곳임에 틀림없었다. 결국 지원연대에 문의한 결과, 연대는 진공 직전에 그 지역에 대한 포격중지 요청을 AM망으로 날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전문을 처음 접수한 AM이나 그걸 조립한 암호병 박상병과 상황실 사이에서 무슨 이상이 있었음이 분명했
  “박상병,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저는 이 전문을 전하러 상황실로 뛰어갔읍니다.”
  박상병은 아직도 문제의 전문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전하지 않았나?”
  “도중에 본부 부관 심소위님을 만났읍니다. 다짜고짜 주먹이 날아왔어요...”
  “무엇 때문에?”
  “철모도 안쓰고 위장망을 입지 않았다는 겁니다.”
  박상병은 주로 박스 카 안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전투복장에 소홀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후라도 그 전문은 전했어야 하지 않나?”
  “그럴 틈이 없었읍니다. 다시 자기를 노려보았다고 주먹과 발길이 계속 날아들었으니까요.”
  그런 박상병의 두 눈에는 은은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입술은 좀 전보다 더 흉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럼 지금까지 계속 맞고 있었단 말인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만 정신을 잃었던 모양입니다. 내 스스로가 너무도 처참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 이십 분이나 지나 있었읍니다.”
  기어이 박상병의 목이 잠겨왔다. 이중위는 그와는 더 이상 얘기가 될 것 같지 않아 심소위를 찾아 나섰다.
  심소위는 비정규사관학교 출신으로 금년 봄에 임관된 이른바 “신삥 소위”였다. 군인으로는 대개 충실한 편이었는데, 계급을 지나치게 따지는 게 흠이어서 처음에는 마흔이 넘는 하사관들까지 함부로 다루다가 물의를 빚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차차 실무를 경험하면서 그들에게는 다소 부드러워졌지만, 일반 사병들에게는 여전히 엄하고 거칠게 대했다. 특히 그런 그의 엄격함은 참모부의 대학출신 사병들에게 심해, 그들중 한번쯤 심소위에게 당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강병장은 그 원인을 심소위의 “대학컴플렉스”로 분석했는데 그 예외중의 하나가 박상병이었다. 나이가 나이인데다, 암호병이란 직책이 원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병장은 오히려 그 점을 더 염려했다. 그것은 박상병이 석사과정까지 수료한 대학이 심소위가 입대하기 전에 두 번이나 낙방한 바로 그 대학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강병장의 판단이 옳았는지
  심소위는 마침 PX차 근처에서 동기인 박소위와 깐포도를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어이 심소위, 나 좀 봐.”
  “웬일입니까? 통신장교님.”
  심소위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태연한 얼굴로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박상병 일 어떻게 된 거야? 영창 가게 됐잖아?”
  “아, 그새끼요? 영창가야 싸죠. 하두 복장이 엉망이고 군기가 싹 빠졌길래 몇 대 줘박아 보내려 했더니, 아 이게 노려보잖아요. 그리고 나중에는 숫제 징징 울며 기어붙는 거예요. 그래서 좀 짓밟아 버렸죠.”
  “그래도 급한 용무로 가는 사람을...”
  “그새끼가 말하지 않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터진후에라도 뛰어갈 일이지, 기집애처럼 쿨쩍거리기는.”
  “그래도 나이든 사람을 - 좀 심했지 않나?”
  이중위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누르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심소위는 조금도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병신 새끼, 나이 처먹으면 지가 먹었지 - 미쳤다구 자빠져 있다가 이제 오기는... 억울하면 새벽밥 먹고 군대 올 일이지.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빠지다 늦게 끌려온 그런 새끼 설움받아 싸죠. 지가 대학원을 나왔으면 나왔지, 아니꼬와서...”
  “심소위, 사병들에게 너무 그러는 거 아냐. 이게 실전이라면 뒷총맞는 수가 있어.”
  “흥, 이게 실전이라면 그런 같잖은 새끼는 당장 즉결입니다.”
  드디어 이중위도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야, 이새끼. 정말 악질이구나.”
  이중위의 주먹이 날랐다. 심소위의 고개가 젖혀지며 철모가 언 땅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러나 심소위의 기세는 여전히 수그러질 줄 몰랐다.
  “이건 왜 이러슈? 이중위님. 사병애들 보는 데서 챙피하게...말루 합시다. 말루.”
  “뭐 이새끼야. 말루? 개발에 다갈이다. 임마, 너 같은 놈이 장교라는 건 대한민국의 수치다.”
  그러나 심소위도 지지 않았다. 연신 날아오는 이중위의 주먹을 두 손으로 막으며 악을 쓰는 것이었다.
  “너무 그러지 마슈. 통신장교님. 철모가 빵구나게 해먹을 것도 아니면서... 못난 자식새끼 편력드는 애비도 아니고...”
  그러나 함께 있던 박소위와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수송장교의 제지로 소동이 길지는 않았다.
  그날의 숙영까지는 두 번의 이동이 더 있었다. 우군의 재반격이 순조로운 탓이었다. 그러나 숙영지와 정규가설을 끝내고 지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으로 돌아온 이중위에게는 또 다른 성가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선감시조가 야전선을 걷어 가던 마을 아이들을 잡아 혼을 내준 것이 말썽이 된 것이다.
  “보쇼. 말똥-무궁화- 두개를 달았으면 눈에 뵈는 게 없소? 철모르는 애들이 좀 잘못이 있었기로 잘 타일러 보낼 일이지 - 개패듯 팰 건 뭐요? 걔들이 빨갱이 새끼요? 너무 그러지 마쇼. 나도 내 한 몸 나라에 바친 일급 상이용사요.”
  이중위가 급작스런 부름을 받고 CP막사로 달려가니 왼팔이 날아가고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 오십대의 남자 하나가 목발로 바닥을 땅땅 쳐가며 대대장에게 따지고 있었다. 대대장은 무척 난처한 모양이었다. 민폐는 작전 못지않게 중요한 통제관의 체크사항이었다.
  “통신장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힐끗 통제관을 보며 이중위에게 그렇게 묻는 대대장의 표정은 차라리 “통제관이 납득하도록 잘 설명해”라는 명령이라는 게 옳았다. 그러나 이중위는 해명할 틈이 없었다. 대뜸 그 남자가 이중위를 보고 퍼부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이 통신장교야? 이봐, 새파란 사람이 그러면 못써. 왜 남의 아이들 탕탕치는 거야. 그렇게밖에 부하 교육을 시킬수 없어?”
  이건 숫제 반말이었다.
  “가서 그놈 데려와. 우리 아이 친 그놈 말이야. 내 이 갈쿠리로 눈깔을 뽑아놓고 말 테니.”
  그는 이중위의 눈앞에다 왼손의 의수를 흔들어댔다. 독한 술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도 하나뿐인 자식놈이야. 지금 정신없이 앓아 누웠어. 치료비 내놔. 연천에라도 데려 나가 입원시켜야겠어--”
  그러자 대대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럼, 이중위. 우선 군의관 데리구 아이나 한번 보구 오지.”
  그러자 그 남자는 갑자기 사나운 기세로 펄펄뛰며 악을 썼다.
  “얕은 수작 부리지 말어. 링게르나 한 병 맞히고, 아스피링 몇 알 먹인 뒤에 어물쩡 뜨려고? 어림없어. 그런 수작에 넘어갈 나 아니야.”
  그는 은근한 협박까지 곁들였다.
  “내 비록 지금은 병신이지만 이래뵈도 백선엽이 따라 혜산진까지 갔다온 용사야. 너희 사단장 김소장? 철의 삼각지에서 피 함께 흘린 전우야. 전화 한 통화면 끝나. 날 무시보지 말어.”
  그때였다. 뒤늦게 불려온 선임하사가 갑자기 꽥 고함을 질렀다.
  “영감, 이거 조용하지 못해? 여기가 어디 제집 안방인 줄 알어? 이 순 사기꾼 같은 영감쟁이가--”
  일순 그는 움찔했다. 그걸 보며 선임하사는 자신있게 대대장에게 말했다.
  “속지 마십쇼. 대대장님, 이 영감 몽땅 거짓말입니다. 뭐, 일급 상이용사라구요? 어디서 불발탄 분해하다 팔다리 날리고선...”
  그러자 갑자기 그 남자가 악을 썼다.
  “야, 넌 뭐야. 네가 뭘 안다고. 이 개 같은 새끼야.”
  그러나 선임하사는 눈도 깜짝 안했다.
  “자, 여기 전화 있다. 내 사단장실 대주지. 뭐 함께 피흘린 전우? 정말 웃기네. 늙어도 곱게 늙어.”
  그리고는 다시 대대장을 향해 돌아섰다.
  “대대장님, 더 이상 상대하지 마십쇼. 전문적으로 훈련 부대 티 뜯고 다니는 치죠. 오년 전에도 여기 왔다가 이 비슷한 일로 쌀 두 가마 뜯겼읍니다. 어이 김상병, 이일병, 이자 끌어내.”
  사내가 고래고래 악을 쓰며 끌려나가자 대대장이 근심스러운듯 물었다.
  “정말 괜찮을까?”
  “걱정 마십쇼. 저런 치들은 한번 본때를 뵈야 해요. 약하게 뵈면 끝이 없읍니다.”
  임상사는 이어 그들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포사격이 있으면 사령부보다 먼저 아는 친구들이죠. 사격중 십분 휴식이 있어도 그 시각까지 정확히 알아 탄피나 불발탄을 줏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야전선을 걷기도 하고, 자동차 부속을 빼가기도 하지요. 아무리 중요한 걸 잃어도 저치들한데 구하면 얻을 수 있지요. 한번은 포대경을 잃어 쌀 한 가마니와 바꾼 적도 있습니다. 거짓말 좀 보태면 저치들 집 하나만 뒤져도 일개 소대?
  정말로 그 남자는 부대가 철수할 때까지는 부근을 얼씬도 않았다.

  그 밤에는 게릴라의 출현이 여섯 번이나 있었다. 사병들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고, 장교들도 대부분은 새벽까지 잠을 설치고 말았다. 좀 이상한 것은 게릴라가 주로 통신차량 부근에서 출몰한 것과 게릴라의 출현이 있을 때마다 어디선가 심소위가 나타나 통신병을 들볶아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게릴라를 본 사람은 없었고, 통제관도 상황부여에만 만족하는 듯, 피해판정에는
  그런데 그 총중에도 후일 오래오래 얘기된 두 개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 하나는 후방 OP로부터 심소위에게 날아온 긴급 전문이었다. 짧은 음어 전문이었는데 무전병이 급히 해역한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영자 XX 그리워. 오”
  “나도. 권”
  이번 작전에 참가하지 못해 심심해 죽겠다는 O1의 오소위와 O2의 권소위가 동기 심소위에게 보낸 것이었다.
  “X대가리 근지럽거든 총구수입이나 해라”
  심소위의 답신이었다. 물론 이들의 교신은 고위층이 탑승한 비행기의 이륙 시간을 그저 자모분철법으로만 날린 이웃 사단의 무전병과 함께 황새봉의 무전 감식반에 잡혀 후일 처벌을 받았다.
  그 다음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교환대 김일병의 것이었다.
  그날밤 세시경 돌연 그는 각 참모부를 동시 호출한 후 외쳤다.
  “왜군이 북상한다. 이여송을 격파하고.”
  그는 그날따라 임진왜란때 참전했다가 벽제관에서 죽은 명나라 병사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히 여긴 상황병이 교환대 막사로 달려갔을때 그는 교환기에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한편 잦은 게릴라 출현으로 새벽까지 잠을 설친 이중위는 날이 훤히 밝아오는 걸 보고서야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푹 잘 수 있는 박스 카로 갔다. 그러나 그 창틀 밑을 지나던 이중위는 그 차량 안에서 들려온 무슨 다툼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았다. 박상병 홀로 있을 것으로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강병장과 함께였다.
 “박형, 참아요. 그거 이리 내고. 대신 내가 해주겠소. 내 반드시 놈의 골통을 바수어 놓을 테니...”
  강병장은 박상병을 상대로 무언가를 간곡히 만류하고 있었다.
  “강형은 상관마쇼. 이건 내 일이오. 반드시 내 손으로 해야 할...”
  “박형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저급한 감정의 논리요. 현명해야지요. 나를 믿어주쇼. 나는 아무도 상하지 않고 보복해 주겠소.”
  “강형이 무슨 수로...”
  “조금 전에 방법을 생각해냈소. 두고 보쇼. 내일 아침에도 녀석이 제 발로 걸어 다닐수 있는가.”
  무슨 일이 또 있었구나, 생각하며 이중위는 차량을 돌아 박스 카의 뒷문을 열었다. 무엇인가를 서로 붙잡고 승강이를 벌이던 두 사람이 놀라 떨어졌다. 강병장의 등 뒤로 무언가가 번쩍하며 숨겨졌다.
  “강병장, 뭐야 등 뒤에 감춘 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평소답지 않게 침착을 잃은 목소리였다. 이중위는 강병장의 감춘 손을 앞으로 끌어당겨 보았다. M-16단검이었다. 그걸 보고 이중위가 꽥 소리를 질렀다.
  “뭣하는 짓들이야”
  “...”
  “심소위지”
  그러자 그새 약간 여유를 회복한 강병장이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했다.
  “심소위님이 좀 심하셨던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또 박상병을 짓밟고 갔습니다.”
  “왜”
  “게릴라가 출현했는데도 차 속에 가만히 있었다는 겁니다”
  그말을 듣자 이중위도 얼굴에 열기가 확 치밀었다. 바로 심소위 자신의 발길질 때문에 박상병은 거동조차 불편했던 터였다. 어제의 오폭 사건으로 징계를 당하게 된 심소위가 이중위의 변호로 무사하게 된 박상병에게 고의적인 화풀이를 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중위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제했다. 그는 역시 한사람의 육군장교였던 것이다. 심소위의 소행은 충분히 가증스러운 것이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단이 고수해야 할 근본적인 질서와 위계였다. 그런데 조금 전 그가 엿들은 것은 바로 그 핵심을 폭력으로 부인하겠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또 그가 아무리 믿고 사랑하는 과원들이라도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중위는
  “그래서 이칼로 찌르겠다는 건가”
  “아닙니다. 박상병이 좀 흥분한 것 같기에 제가 달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말은 순전히 박상병을 달래기 위해 지어낸 겁니다”
  어느새 이중위가 자기들의 얘기를 엿들은 걸 간파한 강병장이 자기가 박상병에게 한, 아마도 틀림없이 실현될 약속까지도 천연스레 눙치고 있었다.
  “염려마십쇼, 과장님. 저나 박상병이나 철없는 짓 할 나이는 지났습니다. 집단의 원리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구요”
  그러나 이중위는 더욱 험한 얼굴로 그런 강병장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시끄러워. 이 건방진 새끼들. 사병이면 사병답게 처신해 기왕 사병으로 와놓고 굳이 사병대접을 받지 않으려 드는 것은 꼴불견이야. 그리고..”
  이중위는 두 사람을 천천히 번갈아보며 낮으나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이 일로 또 다른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 두놈은 모두 영창이야. 시시한 사단영창이 아니라, 군법회의에 붙여 남한산성에 보내겠어”

  그런데 이중위가 아침 아홉시경 다시 눈을 떠서 처음으로 부딪친 것은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성질의 사건이었다. 선임하사의 조심스런 보고에 따르면 전입온 지 두달도 못된 천일병이 밤새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충청도 어느 두메에서 왔다는 천일병은 어떻게 현역입대가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로 학력과 지능이 낮은 유선병이었다. 따라서 사십여 명 과원중에 섞인 천일병의 ?
  약 한 달 전 어느 된서리가 내린 아침, 우연히 교환대를 지나던 이중위는 양지바른 벽에 기대서서 홀로 훌적이는 천일병을 만났다. 이중위가 다가가 원인을 묻자 그는 갑자기 복받친 듯 방울방울 눈물을 떨어뜨리며 떠듬거렸다.
  “벌이....다 얼어죽겠네유. 엄씨-어머니- 혼자 가을걷이가 잘 될란지유. 섬께 밭에 보리파종도 해얄낀데...”
  뒤에 강병장을 통해 들었지마는 그는 산촌에서 전답 몇 마지기에 벌 몇 통을 치는 홀어머니의 외아들이었다.
  이중위는 왠지 불안한 마음으로 일방 수색조를 보내고 일방 포로 명단을 확인하면서 진지이동 때까지 초조히 기다렸다. 그러나 천일병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D+2일 대대적인 우군의 반격작전이 전개됐다. 작전초에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아군 390연대는 대오를 정비해 적을 우회, 적후방 사 마일 지점의 무명고지에 돌출했다. 조공을 맡은 392연대는 적의 좌익을 충실히 견제했고, 정예 391전투단의 주력 일부는 임진강 도하작전에 성공, 적진에 교두보를 확보했다. 작전 초에 무리하게 병력을 산개한 적은 서서히 붕괴돼 가고 있었다.
  이중위의 야포대는 반격이 개시되면서 더욱 바빠졌다. 여기저기서 화력지원요청이 들어오고 종합화망형성에도 참가해야 했다. 그날 그들은 낮동안만 여섯번 진지를 이동했고 여덟 번 포를 방열했다. 실사격도 두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지난 이틀의 야간체험은 그런 중에도 이중위에게 어느 정도 전쟁을 객관적으로 음미하고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상한 것은 연사흘째 작전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산발적인 게릴라 침투 외에는 적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포병진지에 적의 보병이 나타난다면 볼장 다 본 셈이라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것은 이중위에게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제 우리의 전쟁은 적을 볼 수 없는 것이 되었구나...”
  적을 볼 수 없다는 것 - 그 때문에 현대전의 잔학성이 있는 것 같았다. 항병을 도살한 항우는 그로 인해 천하를 잃었고 포로를 학대한 나치나 일제의 장군들은 전범으로 처벌되었다. 그러나 포탄이나 미사일 발사를 명한 현대전의 장군들에게는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전자는 적을 보았는데 비해 후자는 적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날아간 포탄이나 미사일은 분명 항거의 의사나 ?
  다음 또 하나 이중위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대전의 정묘한 매카니즘이었다. 그들은 바쁘게 이동하고 포를 쏘았지만, 기실 그것은 하나의 일관된 공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예정된 시간에 일정할 거리를 이동해 이미 핀이 꽂힌 지도상의 한 지점으로 역시 일정량의 포탄을 퍼붓는 것은, 피스톤의 왕복이나 톱니바퀴의 회전같이, 전쟁이란 거대한 매커니즘의부분동작에 지나지 않았다. ?
  그런데 이중위가 학훈단 동기인 남중위를 만난 것은 제6전개진지의 연대선 가설을 하는 도중이었다, 공병병과인 남중위는 사분의 삼톤 차량에 몇 명의 사병을 태우고 출동하다가 가설중인 이중위를 보고 차를 세웠다. 반가운 인사끝에 이중위는 언뜻 그 차량 뒤에 실린 몇 통의 야전선을 보고 무심히 물었다.
  “공병대도 가설을 하나”
  “왜 공병은 가설을 하면 안되나 이게 다 네놈들 포가 백발백중하라고 하는 짓이다”
  “무슨 말이야”
  “지금 천마고지로 가는 길이다”
  “천마고지 거긴 내일 우리의 최종 화집점인데...”
  “그러니까 손 좀 봐두러 가는 거야. 하기야 실제로 쓰인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지만...”
  “그래서 공병대가 뭘 하겠다는 거야”
  “멍청한 새끼, 이게 순 형광등이군. 어쨌건 네놈들 포나 잘 유도해, 통신이 포병의 눈깔이라니까”
  그리고 남중위는 손짓으로 무엇이 핑 터지는 듯한 흉내를 냈다. 그제서야 이중위도 그가 설치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이중위가 진지로 돌아오니, 사병들이 전부 진지 앞 공테에 집결해 있었다. 인사과장의 안전교육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사상이 있었고, 또 의무대나 군수과에 의해 실제와 동일하게 처리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각 통제관의 판정에 의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적군의 점령 전에 그 지역을 빠져나가지 못했다든가, 적에게 위치가 노출돼 부대가 집중포화를 받았다든가, 게릴라의 침투를 몰랐다거나 등. 그런데 작전 삼일째로 접어들면서 갖가지 안전사고가 발생해 상당한 실병력
  인사과장이 안전사고의 사례로 든 것 중 가장 처참한 것을 설상파카를 입고 술에 취해 노두렁 밑에 쓰러져 자던 보병이 탱크에 깔려버린 사건이었다. 설상파카의 위장효과 때문에 탱크병이 주위에 쌓인 눈과 그 사병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었다. 다음은 기름에 젖은 옷을 입고 불을 쬐다가 불에 붙어 중화상을 입은 수송병과 메틸알콜을 에틸로 잘못 알고 포도당에 타 마신 의무병, 그리?
  이중위가 알기로 아직 대대 내에서는 별 사고가 없었다. 그런데 인사과장은 그 교육 끝에 끔찍한 차량사고 하나를 전했다. 그날 오후 대대 부식수령차가 전복돼 뒤에 탔던 취사병이 즉사하고 선임 탑승했던 수송부 문중사와 운전병이 각각 중경상을 입은 사고인데 그것을 전하는 헌병대의 전통은 세 사람이 모두 취한 상태에서였다는 것이었다.
  인사과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이중위에게 문득 작전 첫날 상황실 박스 카 안에서 꿈 얘기를 하던 문중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운명의 지침을 바꾸어 놓고 한 번 사라진 후 다시는 찾을 길 없던 그 여인이 꿈 속에서 그를 찾아온 것은 닥쳐올 이 끔찍한 사고의 불길한 전조나 아니었던지.

  “전쟁은 언제나 마지막이 치열했었지”
  그밤 세번째의 진지이동을 하면서 이중위는 혼자 중얼거렸다. 얼어붙은 겨울 밤 하늘에 조명탄이 눈부시게 피었다 졌다 하고 있었다. 우군은 점차 적의 주력을 압박하여 마지막 섬멸의 단계로 돌입하고 있었다. 지금 이중위의 야포대도 내일의 그 통쾌한 섬멸전을 치르기 위해 마지막 숙영지롤 이동중이었다.
  이중위는 힐끗 전면을 살폈다. 방금 타오르는 조명탄 아래,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는 부라보의 탄약차가 뚜렸이 보였다. 그걸 보며 그는 안심한 듯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통상으로 이동간 본부차량의 선도는 작전과장의 지프차가 맡아왔는데, 그밤은 어떻게 됐는지 영문도 모르게 이중위가 탄 AM박스 카가 앞장서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도 한 장 없이 선도하게 된 게 약간 꺼림칙했?
  그런데 그게 탈이었다. 원래 조명탄은 이중위를 위해 떠오른 것이 아니라 산너머 작전중인 보병을 위한 것이었고 그래서 대대가 삼십 분쯤 이동하자 더 이상은 뜨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덥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중위는 그만 브라보의 탄약차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당황한 이중위는 운전병을 재촉해 행군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오분이 지나고 십분이 돼도 앞차량을 보이지 않았다. 이중위가 탄차는 더욱 속도를 냈다. 여전히 앞차는 보이지 않고, 대신 영문을 모르는 후미 차량들로부터 항의하는 무전만 어지럽게 날아들었다.
  보병의 행군에서도 그렇지만 차량행군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이상한 현상이 있다. 앞차가 시속 오십 마일로 달리면 십여 대 위의 차량은 육칠십 마일을 내야 한다. 그러나 당황한 이중위는 더욱 속도를 냈고 투덜거리면서도 본부는 미친 듯이 뒤따라왔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갑자기 전면에 약간 긴 교량이 나타나고 멀리 도회의 불빛이 보였다. 연천이었다. 아차, 싶어 차를 세우고
  “이 망할 자식, 쏘아 버릴라. 뭘 믿고 달리긴 달려, 이새끼야”
  대대장의 군화가 이중위의 정강이에 사정없이 날아왔다. 다행히 중요 작전이 끝나고 목표지가 단순한 숙영지여서 그 이상의 책임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중위가 거기서 치른 곤욕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ROTC가 군인이면 전봇대에 꽃이 핀다더라. 이 망할 자식”
  결국 대대장이 1호차에 작전과장을 태우고 직접 선도해서 대대가 숙영지에 도착한 것은 예정보다 한 시간 가까이 늦은 새벽 두시경이었다. 그들은 서둘러 포방열을 마치고 숙영준비로 들어갔다. 그러나 겨우 취침을 시작한 그들이 선잠도 들기 전에 또다시 게릴라가 출현했다. 어제와 같이 자취도 없고 피해도 없지만, 사병들에게는 괴롭기 짝이 없는 게릴라였다. 별수없이 본부는 병력?
  이중위 역시 그밤은 잠자지 못했다. 침구가 준비되는 대로 잠자리에 들었으나 대대장에게 걷어채인 정강이뼈가 욱신거리는 데다가 바쁜 낮동안에 잊고 지냈던 몇 가지 사건이 한꺼번에 떠올라 잠을 날려 버린 것이었다. 그 첫번째는 천일병의 일이었다. 천일병의 탈영이 명백한 이상 그 문책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데 그는 천일병의 신상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물론 원진지의 행정반 서?
  예상대로 강병장의 텐트에서도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역시 고체연료 위의 반합에서는 무엇이 기분좋게 끓고 있었고 소주도 몇 병 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강병장은 없고 대신 유선반장 양하사와 병기과의 “예”병장이 박상병과 함께 있었다.
  “여기는 항상 따습구나. 끓는게 뭐야”
  “개구립니다”
  “예”병장이 약간 익살맞은 얼굴로 대답했다.
  원래의 성이 최인 “예”병장의 “예”는 “예수”를 줄인 것인데, 그가 그런 별명을 얻게 된것은 재미있는 그이 부활 소동 때문이었다.
  작년 가을 위장풀을 베러 간 그는 산에서 까치독사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부대로 가져오는 도중에 그 뱀의 목을 맨 끈이 느슨해진 걸 보고 한 손에는 위장풀을 든 채 이빨로 그 끈을 죄려다가 그만 입술이 물리고 말았다. 입술이 물려 지혈을 할 길이 없는 그가 의무대로 업혀 갔을 때는 이미 독이 온몸에 퍼져 목 부근의 임파선은 사람 머리보다 더 굵게 부어 있었다. 대대는 급히
  그런데 삼개월 만에 그는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왔다.
  그런 착오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것은 부활이었다.
  “개구리”
  “주간 제4진지서 잡았습니다”
  “겨울에 무슨 개구리가 있나”
  “얼음을 깨고 지렛대로 큰 돌을 들치면 물개구리가 수십 마리씩 모인 곳이 있죠. 여섯개째 들쳐 겨우 잡은 겁니다. 재수 좋으면 뱀도 있는데...”
  “뱀한테는 질렸을 텐데... 하여튼 몬도가네로군”
  “아닙니다, 과장님. 잡숴 보십쇼, 맛도 맛이지만, 대단한 스태미너식이죠”
  “벌써 스태미너식을 찾는걸 보니 너도 다 된 놈이다”
  “아니죠. 스태미너란 그저.. 다다익선이니까요”
  얘기는 주로 “예”병장이 하고 있었지만 박상병도 새벽의 그 기분은 아닌 것 같았다. 눈두덩이며 입술의 부기도 거의 빠져 있었다. 이중위는 다소 가벼워진 기분으로 박상병을 향해 물었다.
  “강병장은”
  “지금 경계나가 있습니다”
  “교환근무를 하면 추운 데 나가서 떨지 않아도 될텐에...”
  “유선병 김상병이 몸이 좀 불편해 바꿔준 겁니다”
  그렇다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중위는 강병장을 찾으러 나갈까 망설이다가 거기서 기다리기로 하고 양하사가 주는 술잔을 받았다.
  “교대 시간이 언젠가”
  “이제 한 삼십분 남았습니다”
  강병장은 왠지 교대 시간이 돼도 돌아오지 않았다. 묵묵히 술잔을 비우며 사병들의 잡담을 듣고 있던 이중위는 불쑥 박상병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희미한 꼬마전구에 비치는 그의 얼굴이 유난히 늙어 보였다.
  “박상병, 새벽의 일 기분 나빴나”
  이중위는 부드럽게 물었다. 사실 그 정도의 폭언도 그들에게 한 것은 그 새벽이 처음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박상병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 같은 사병, 참으로 부담이다. 나이도 있고, 학식도 있다. 아마 나 이상으로”
  “설령 그렇다 해도 장교교육은 받지 못했습니다. 군대에 대한 이해도... 부담 갖지 마시고 여느 사병처럼 대해 주십시오”
  그말을 듣자 이중위는 돌연한 취기와 함께 일종의 자신 같은걸 느끼며 언제부턴가 그들에게 하고 싶던 말을 천천히 시작했다.
  “박상병이 아다시피, 나는 자연과학을 전공했어. 따라서 집단이라든가 인간의 심리 같은 것에 대해 밝진 못하지만....그리고 또 박상병이 이런 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말씀 계속하십시오”
  “군대가 아주 특수한 사회란 생각, 박상병도 그런가”
  “예,약간은.”
  “그런데 나는 달라. 이건 오히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집단이라고 생각해. 그걸 특수하게 만든 것은 어떤 사회의 왜곡된 의식구조나 관찰자의 편견 같단 말이야”
  “.....”
  “박상병도 입대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고 행복했다고 생각하나”
  “예, 대체로”
  “그런데 나는 도무지 그게 이해 안돼. 먼저 자유의 문제. 내가 보기에는 본질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입대 전에도 우리는 분명 복종해야 할 권위가 있었고, 때로는 불합리한 줄 알면서도 시인해야 할 규율이 있었어. 외관은 달라도 본질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복종하고 시인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어. 그러고 보면 결국 달라진 것은 우리의 식사와 의복이 좀 거칠어지고 주거?
  “....”
  “결국 입대와 함께 우리에게는 갑작스런 의식의 과장이 일어난거야. 바깥의 것은 무조건 크고 화려하고, 안의 것은 무조건 작고 촤하다는 식의... 그리고 그것은 너희들도 일부 인정하고 있더군. 집에 금송아지 안 매둔 놈 없다는 얘기 말이야”
  “마찬가지로.. 우리가 제대를 한다는 것, 그것도 너희들이 믿는 것처럼 전혀 새로운 세계에로의 출발은 아닌것 같아”
  “아마.... 반드시는 아닐 테지요”
  “아니야, 전혀. 그건 역시도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여기보다 더 좀 관례가 다른 부대로 전입을 가는 정도에 불과해. 이 시대에는 이미 순수한 개인이란 존재할 수는 없어. 어디를 가든 우리는 집단에 소속하게 되어 있고, 그 집단은 또 나름대로의 위계와 규율을 우리에게 강요할 거야. 예를 들어 우리가 취직을 한다는 것은 대대장이나 사단장이 전무나 사장으로 바뀌는 정도야. 명칭?
  “그렇지만 거기에는 선택의 자유라든가 창의의 개발 같은 게 있지 않습니까”
  “선택의 자유라고, 그렇지만 한 집의 가장으로서 생계가 걸린 직장을 팽개치기가 이곳에서 탈영하는 것보다 더 쉬을 것 같은가, 또 수천 수만의 종업원이 있는 회사에서 한 말단 사원의 창의라는 것이 포대 소원수리보다 대단할 것 같은가”
  “....”
  “물론 가난한 집에 태어나 나가면 곧 취직을 해야 하는 내 처지를 중심으로 생각한 것이지만 예외는 없을거야. 죽거나 신이 되지 않은 한 인간은 아무도 홀로일 수가 없으니까”
  “....”
  박상병은 처음부터 별로 이중위의 화제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대신 좀 전부터 무언가를 초조히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것도 모르고 이중위는 계속 자기의 논리에 열중해 있었다.
  “너희들은 장사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 천만에. 거기는 또 고객이란 왕이 있어. 불특정다수의 집단이지만 그들의 불매는 너희가 이곳에서 받은 그 어떤 제재보다 더 강력할지도 몰라. 부유한 부모를 가져서 외부적인 집단에 속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겠지. 그러나 그때는 바로 그 부모 자체가 규율이고 권위인 거야...”
  그 무렵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요란스런 폭음이 났다. 게릴라의 모의 폭탄이 터지는 소리였다. 박상병의 얼굴이 일순 굳어졌다.
  “게릴라 출혀어언..”
  “게릴라 출혀어언..”
  여기저기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양하사와 예병장도 뛰쳐나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소란스러움은 곧 여럿의 웅성거림으로 변했다. 이중위가 의아해서 잠시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고 있을때 먼저 달려갔던 양하사가 헐떡이며 텐트로 돌아왔다.
  “과장님 가보셔야겠습니다. 강병장이 심소위님을 쳤습니다”
  “뭐”
  “심소위님이 강병장에게 개머리판으로 맞아 기절했어요. 머리가 터지고 피가 몹시 흐릅니다”
  이중위는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는 황급히 일어나 양하사를 따라갔다. 그곳에는 벌써 군위관이 나와 심소위의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심소위는 그새 깨어났으나 아직 정신이 잘 돌아오지 않는 듯 눈만 멀뚱거리고 있었다.
  “왜 그랬어, 강병장”
  이중위는 자기도 모르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 곁에 멍청히 서있는 강병장에게 물었다.
  “경계를 서고 있는데 누가 나타나 모의폭탄을 던지길래 게릴라인줄 알고 한대 쳤더니...심소위님이었습니다”
  강병장은 정말로 겁에 질린 듯 떠듬거렸다.
  “한대야, 이새끼야, 철모가 날아간 후에도 두번이나 더 쳤잖아, 아이쿠”
  그제서야 정신을 수습한 심소위가 악을 쓰다가 상처가 쑤시는지 신음을 냈다. 이중위가 그런 그에게 물었다.
  “모의 폭탄은 어디서 났나”
  “저새끼가 순 지어낸 말입니다. 게릴라가 도망친 후에 내가 달려갔는데, 아이쿠”
  “아닙니다. 분명히 심소위님이 던지는 걸 보았습니다. 주머니에 더 있을 겁니다”
  갑자기 끼어든 강병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질린 것이었지만, 강경하고도 확신에 차 있었다. 이중위도 왠지 강병장의 말이 틀림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왔는지 함께 있던 작전과장 장대위가 심소위를 보며 날카롭게 명령했다.
  “심소위 , 주머니에 든 것 전부 꺼내 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새끼가 지어낸 말입니다...”
  그러나 어딘가 그는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그래도 확인해야겠다. 강병장이 포상휴가를 가야할지 군법회의에 넘겨져야 할지 말이야”
  장대위는 직접 호주머니 검사라도 하려는 것처럼 심소위에게 한발 다가갔다. 그때 누군가가 둘러선 사병들을 헤치고 나타나 장대위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확인할 것 없다. 작전과장. 모의탄은 내가 준거니까. 그리고 저 사병은 분명히 모범사병이다”
  작전 초부터 CP에 상주하는 군단 통제관이었다. 심소위는 묘한 표정으로 그런 그를 올려다 보았다.
  “상황 부여를 대신해준 건 고맙지만...자넨 좀 심했어”
  통제관은 심소위를 비웃는 듯한 눈길로 내려보며 역시 나지막이 말했다.
  이중위는 무엇으로 머리를 호되게 맞은 기분이었다. 어느새 강병장은 저만치서 무슨 거인처럼 당당히 서 있었다.
  심소위는 그날 밤 뒤총수를 일곱 바늘이나 꿰매고 이튿날 날이 밝는 대로 원진지로 후송되었다. 포경수술을 받고 며칠 되지 않아 작전에 참가했다가 수술자리가 터져버린 하사 하나도 심소위와 함께 돌아갔다.

  심소위의 수술을 지켜보고 돌아온 이중위는 그날 묘한 갈등을 경험했다. 분명 강병장의 정당함을 확인했고 또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는 알지 못할 분노가 부글거렸다. 아득한 무력감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강병장의 뒷모습을 환영 속에서 바라보다가 다시 초라하게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심소위를 떠올리면서 이상한 모욕감으로 몸을 떨었다.
  “녀석은 교활한 사냥꾼처럼 덫을 놓고 숨어서 기다렸다. 멋모르고 심소위가 걸려들자...개패듯 쳐 넘겼다...” 그러나 이중위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라 안절부절했다. 그렇게 이중위가 잠들지 못하고 있을때, 돌연 CP에서 예기치 않은 부름이 있었다.
  이중위가 여전히 단안을 내리지 못한 채 쭈뼛거리며 CP막사로 들어가자 그때껏 잠들지 않고 있던 대대장이 험악한 얼굴로 쏘아 붙였다.
  “통신장교, 도대체 부하통솔을 어떻게 하는 거야”
  이중위는 그게 강병장 얘긴 줄 알았다. 일순 이중위의 머리는 눈부시게 회전했다.“어쨌든 그는 나의 부하이고, 심소위는 당해 마땅한 짓을 했다. 거기다 일은 일단락됐고, 설령 강병장의 고의를 증명하려고 해도 그가 부인하는 이상 아무런 증거가 없다...” 이중위는 마치 지금껏 준비라도 해온 듯 강병장을 변호하고 나섰다.
  “심소위가 모의탄을 던지니까 게릴라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그러자 대대장은 벌컥 화를 내며 고함을 쳤다.
  “지금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냐. 그 뭐야, 어제 행방불명된 천, 천재룡 일병 말이야”
  “네”
  “이중위는 그녀석 신상이나 파악하고 있어”
  그제서야 이중위는 천일병이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아는대로 천일병의 신상을 떠듬거렸다.
  “그것 뿐이야. 녀석은 XX리에서 붙들렸어”
  XX리는 DMZ 가까운 곳이었다.
  “네”
  “짐작이 가나, 단순 탈영이 아냐. 월북기도자로 붙들린 거야”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습니다”
  그는 천일병의 공허한 눈길과 바보스럽게 벌어진 입을 떠올렸다. 홀어머니를 위한 순수한 눈물도.
  “하여튼- 이상이 보안대의 통보야. 그리고 또 그들은 참고인으로 자넬 소환했어. 내일 작전이 끝나면 데리러 올 거야. 준비해둬”
  대대장은 성가신 듯 말을 잘랐다. 이중위는 멍한 기분이었다.
  “이제 가봐. 멍청하게 섰지 말고. 그리고 내일 작전에는 실수 없어야 돼”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D+3, 작전 마지막 날이 밝아 오고 있는 것이다. 이중위가 탄 사분의 삼톤 차량은 매운 새벽바람을 가르며 잠든 연천평야를 달리고 있었다. 이중위는 지금 여섯 명의 숙달된 가설병과 무전병 하나를 데리고 출동 중이었다.
  이번 작전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그날 오전 아홉시에 개시될 천마고지의 점령이었다. 기습에 실패한 적은 삼십 마일 이상을 퇴각했지만 그 고지를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 인접 두 개의 무명고지와 더불어 여전히 연천평야를 장악한 채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우군의 최종 목표는 바로 그 천마고지에 포진한 적의 주력을 분쇄하는 것이었다. 이중위의 야포대도 사단 예하의 전 포대
  날이 밝아오면서 점차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그것이 적의 관측에서 보호해 줄 것이라고 생각되자 갑자기 이중위는 자기의 모험에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그 자신은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주었다. 황량하기만 했던 겨울들판이 정답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느껴졌다. 도로변 곳곳에서 눈에 띄는 오분저지선의 허옇게 서리친 철조망 뭉치들도 무슨 화려하고 섬세한 화환처럼 보였다. 을
  때때로 우군의 자주포와 전차의 행렬이 요란한 캐터필러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이미 퇴각 때의 불안하고 초조한 쇳덩이는 아니었다. 박격포를 멘 보병대와 무반동총을 거치한 지프차들과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아무 관련 없다는 듯이 가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부착된 푸른 표지로 보아 몇 시간 내 그들의 화력을 불과 반이 이 마일 내에서
  갑자기 차량이 산길을 접어들면서 좁은 계곡 양면에 굵은 콘크리트 기둥들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폭과 스위치를 누르면 굴러내려 이 도로를 차단할 장애물이었다. 그걸 보며 양하사가 불쑥 말했다.
  “이번에 전방에 와서 보니 남침위험이라는 게 어째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포병의 화력과 저지선 통과만으로도 적의 전력은 절반 이상이 소모될 테니까요”
  “마지노선이 강했어도 프랑스를 보호하지는 못했어”
  “하지만 우리에겐 우회할 수 있는 중립국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전 병력을 공중 침투시킬 수도 없고, 또 대규모 상륙작전을 전개할 충분한 선단이 놈들에게 있는것도 아니니까...”
  “네가 가봤어. 그리고 땅굴은”
  그러자 양하사가 피식 웃었다.
  “노일전쟁이나 "디엔 비엔 푸"에서처럼 한 가지 또는 한 요새의 공격이라면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전면전에서의 땅굴은.....아무래도 미련스러운 데가 있어요”
  “전면전이라는 것은 바로 그 한 기지 혹은 한 요새의 싸움이 모인 거야. 많이 웃어봐라. 그럼 네놈집 마당에 땅굴 입구가 나타날테니”
  그러다 이중위는 의외의 사태로 놀라 말을 중단했다. 전방 이십 미터 지점의 길섶에 서 있는 사톤 트럭 뒤에서 갑자기 일단의 북괴군 병사들이 쏟아져 나와 차를 정지시켰기 때문이었다. 모두 AK소총으로 무장한 2개 분대 정도의 병력이었다.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중위는 가슴이 섬뜩했다. 사실 휴전선은 거기서 직선 거리로 이심 킬로미터도 안되었다. 인솔자인 듯한 상위?
  “동무들 어딜 가오. 보아하니 청군 동무들인데”
  “아, 저, 가설나가는 길입니다”
  이중위는 어떨떨해 대답했다.
  “기래요, 그럼 통신장교 동무로구만”
  만약 거기 있는 차량이 아군차량이 아니고 그들 중에 끼들끼들 웃는 녀석이 없었더라면 이중위는 정말로 그들을 북괴군 병사로 착각했을 것이다.
  “동무들은 운이 좋소. 한시간 전이라면 동무들은 전사나 포로가 됐을끼니....”
  그리고 그도 킥 웃었다. 뒤이은 그의 말씨는 단정한 서울말이었다.
  “수고합니다. 나 XX사단에서 홍군 지원 나온 황대위요”
  이중위도 마지못해 웃었다.
  “놀랐습니다. 그런데 무슨일입니까”
  “고무테이프 좀 하고 퓨즈 하나 빌립시다. 저게 말썽이오”
  그는 세워둔 트럭을 가리켰다. 마침 여분이 있음을 확인한 이중위는 운전병에게 그걸 내오게 했다.
  “대신 하나 묻겠습니다. 지금 이 부근에 홍군 상황이 어떻습니까?”
  “주력은 벌써 철수를 개시했소. 하지만 군데군데 잔류병력이 있을 거요. 왜 무슨 일인데?”
  이중위는 간단히 자기 처지를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친절하게도 지도까지 꺼내 적의 주요 잔류지점을 알려 주었다.
  “내가 보기에는 국도로 가지말고, 이쪽 B16 작전도로로 빠지는게 나을 거요. 그러면 이 고지 팔부능선까지 오를 수 있소. 그곳은 어제 홍군의 화기중대가 숙영했던 곳이라 지금쯤은 아무도 없을 거요. 거기서 차량을 버리고 곧장 그 봉우리를 넘으시오. 마침 장비가 적으니 별로 힘들지는 않을 거요. 그래서 도로 하나만 무사히 횡단하면 바로 그 맞은 봉우리가 당신들의 OP요”
  참으로 의외의 수확이었다.

  적의 진지에 접근할수록 그들은 더 많은 적의 흔적을 보았다. 포병진지터, 보병 숙영지, 땅이 얼어 형식적이 되고 만 참호 등이 인근 논밭이나 산 계곡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꺼진 모닥불에서 아직 연기가 오르는 곳도 있었다. 그들은 그 대위가 가르쳐준 대로 전진했다. 때로 멀리 포신을 뒤로 뺀 채 퇴각하는 홍군 전차도 보기도 하고 쌍안경 속에 홍군의 보병행렬이
  그러나 마지막 도로횡단에서 결국 이중위는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정보가 정확한 것만 믿고 관측도 경계도 없이 시계가 트인도로를 횡단한 탓이었다. 그들이 목표 봉우리의 좌측 능선에서 일단의 적 보병들이 나타나 공포탄을 쏘며 정지를 외쳐댔다. 포로가 되면 가설은 끝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병인 경우에는 사흘간의 영창, 장교의 경우에는 징계였다. 개인화기만 든 보병들과 그?
  “장교의 공명심이 사병을 죽이기도 하는구나”
  그때였다. 갑자기 앞서가던 가설병 하나가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키며 멍청히 걸음을 멈추었다.
  “과장님, 저기. 저기.....”
  이중위는 맥이 탁 풀렸다. 그가 가리키는 능선에서도 산개한 병력이 까맣게 몰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전병을 불러 비문파기를 지시하고 본대를 부르도록 했다. 이쪽의 상황을 알려 새로운 가설조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자신도 장교수첩에다 파기 표시를 했다. 사병들은 암담한 얼굴로 그런그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뒤를 돌아본 양하사가 들뜬 목소리로 ?
  “과장님 홍군이 달아납니다. 이쪽은 우리편입니다.”
  이중위도 동작을 멈추고 안개 속에서 다가오는 병사들을 자세히 살폈다. 아, 그들의 가슴께에 부착된 것은 분명 가로 세로 이인치인 청색 헝겊이었다. 시계를 보았다. 정확히 아군의 진격 예정시간이었다. 일찍 차를 버려 도중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이 오히려, 그들을 구한 것이었다. 이중위는 돌연 콧등이 시큰해졌다. 가설병들 중에는 정말로 눈물이 글썽이는 녀석도 있었다. 전?

  오전 아홉시. 무사히 가설을 끝낸 이중위는 양하사와 그대로 OP에 눌러 앉아 쌍안경으로 우군의 천마고지 탈취작전을 보고 있었다. 어림잡아 우군 진지의 상공으로 보이는 곳에는 몇 줄기의 신호탄이 오르더니 쉬잇쉬잇하는 제트기 소음 같은 것이 머리 위에서 들렸다. 이어 고지 가운데서 풀썩 연기가 솟았다.
  “팔인치 포군요”
  관측 장교가 말했다. 그제서야 은은한 폭음이 들렸다. 이어 갖가지 방향으로부터 폭탄이 쏟아지고 순식간에 산봉우리 여기저기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한덩어리로 어울려 곧 포격의 명중여부를 따질 수가 없게 돼버렸다. 그는 문득 공병대의 남중위를 생각했다.
  “새끼 헛수고깨나 했군”
  포탄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이어 삼십분경 지원나온 공군 편대가 가세하자 천마고지는 그대로 거대한 화염의 고지로 변했다. 정말로 적이 거기에 포진해 있다면 개미새끼 한 마리 남아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전방 오십 미터 지점에서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솟았다. 이어 다시 후방에서도 포탄이 작열하는 소리가 났다.
  “엎드려. 박격포다. 빨리 방공호 속으로”
  관측장교가 호 입구로 굴러 떨어지며 외쳤다. 이주위도 얼결에 곁에 섰던 양하사를 끌어당기며 호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드이 모두 OP방공호 속으로 대피하자 그들 머리 위로 우박 떨어지듯 박격포탄이 작열할 때마다 콘크리트벽이 울리고 시멘트가루가 떨어졌다. 관측장교가 OP무전병에게 고함을 질렀다.
  “박격포 쏘는 놈들 확인해봐, 도대체 어떤 미친 놈들이야”
  그러나 포격은 한 오분 만에 멈췄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방공호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피해는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군 박격포중대 하나가 OP를 천마고지 좌측 적 점령하에 무명고지로 오인한 것이었다. 그들이 그걸 알고 무전으로 그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을 때 갑자기 OP의 전화벨이 울렸다. 이중위가 수화기를 들자, 느닷없이 욕설과 고함이 튀어나왔다.
  “이 X할 놈들. 포를 어떻게 유도하는 거야. 우리 탄약고 날아가게 생겼어”
  이 작전에 참가하지 않은 이웃 사단 전차 중대장이었다. 천마고지 뒷산에 있는 그들의 탄약고 앞 일킬로미터 지점까지 포탄 두 개가 날아들었다는 것이다. 목표에서 삼킬로미터 이상을 벗어난 셈이었다.
  “우리 105미리는 아닐 겁니다. 장약 7호로도 그만큼은 못갑니다. 아마 175미리 자주포 애들일 거예요. 걔들은 여기서 개성까지도 쏴붙일 수 있으니까”
  전화를 바꾼 관측장교는 별로 성난 기색도 없이 이죽거렸다.
  한시간 가량 포격이 계속된 후에 갑자기 은은한 함성과 함께 보병의 공격이 시작됐다. 아직도 포연과 흙먼지에 싸인 천마고지를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보병들이 개미떼처럼 기어오르고 있는것이 쌍안경 속에서 보였다. 다시 삼십분쯤 후에 이제는 다소 흙먼지가 가라앉은 그 고지의 정상에는 태극기가 꽂히고 은은한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중위가 본대로 돌아온 것은 열한 시 반경이었다. 포사격 성과가 좋았던지 대대장의 기분은 몹시 좋아보였다. 그는 너털웃음을 치며 이중위를 맞았다.
  “OP선 수고했어. 나는 걱정했지”
  이중위는 하마터면 포로가 될 뻔했던 일을 생각하며 속으로 쓰게 웃었다. 그러나 분명 기분나쁜 일은 아니었다.
  점심식사 후부터 원진지로 귀환하는 오후 다섯시까지는 부대정비 시간으로 돼 있었지만 사실상 휴식이었다. 나흘에 걸친 청룡25호 작전은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이중위도 며칠간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식사가 끝나자마자 침구를 깔아둔 AM박스 카에 누웠다. 그러나 오래는 못잘 잠이었다. 한참 단잠에 빠져 있는데, 누가 이중위를 흔들었다. CP당번병이었다.
  이중위가 간신히 잠을 깨어 밖으로 나가보니 지프차 한 대와 사복을 한 보안대원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무시는데 안됐습니다. 보안대 박중삽니다. 천재룡 일병 일로 왔습니다”
  “아, 네.”
  이중위는 휭한 머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타시죠. 함께 가서 이야기 합시다”
  이중위가 차를 타니 선임하사 임상사가 먼저 타고 있었다.
  “임상사두 가요?”
  “아닙니다. 수송부 문중사가 위독하다고 해서- 박중사에게 부탁을 했죠. 마침 가는 길목에 지구병원이 있길래...”
  “그렇지만 선임하사도 없으면 귀환때 애들 통제는 누가 하죠?”
  “양하사와 강병장에게 잘 일러두었습니다. 돌아가는 것뿐이니까 괜찮을 겁니다”
  “그래도......문중사는 어느정도요”
  “어제 저녁 수송장교가 가봤는데 아직 깨어나지 못했답니다”
  “그럼 할 수 없군”
  이중위가 인도된 곳은 전에 미군주둔지였던 듯한 기지 한 구석의 콘센트 막사였다. 서른 안팎의 대위 하나가 이중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 날카로와 보이는 얼굴이었다.
  “한가지 물어 봅시다. 평소 천재룡에게 이상한 점이 없었소”
  간단한 자기 소개후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전혀. 그저 좀 지능이 모자란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지능이 모자란다고, 그럼 이걸 보시오”
  그는 오만분의 일 지도 한장을 꺼내더니 앞에 놓인 서류에 따라 일정한 곳에 붉은 싸인펜으로 점을 찍었다. 그리고 그 점들을 연결했다.
  “이게 천재룡이 탈영 후잡힐 때까지 지나온 길이요. 그리고-”
  그 다음에 그는 서랍에서 처음부터 붉은 선이 그어져 있는 지도 한 장을 꺼냈다.
  “이건 이미 우리게게 포착되어 지난 유월 이후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지만, 간첩들의 남파 및 월북 루트요”
  이중위는 가슴이 섬뜩했다. 두개의 지도 위에 있는 붉은 선은 거의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우직하고 단순한 천일병을 떠올리고는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혹 우연의 일치가 아닐까요. 간첩들의 남파루트라면 그만큼 초소가 드물거나 은신이 용이한 지역이란 뜻이 아닙니까”
  “그러니 천이 무턱대고 몸을 숨기고 초소를 피하다 보니 우연히 그 루트와 일치하게 됐다. 그말이요.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도 정확이 이 두 개의 선이 일치하는 데다가 또 천은 너무 많이 휴전선에 접근해 있었소”
  “하지만 제가 알기로 그는 방향 식별할 만한지능이 없습니다. 그저 막연히 부대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다보니...”
  “물론 그렇게 단순 탈영이라면 모두가 좋겠지요. 당신도 이런데 불리워 올 필요가 없고, 나도 밤잠 설쳐가며 귀찮은 일을 안해도 될테니. 그런데 그의 신원조회를 해본 결과 우리의 추측이 정당하다고 믿을 만한 사실이 나왔소”
  “무엇입니까”
  이중위는 문득 불길한 예감으로 물었다.
  “그의 본적은 남원, 그 아버지 천득수는 지리산으로 숨어든 인민군 패잔병을 도와주다 부역죄로 토벌군에게 총살당했소. 천재룡은 그 유복자요. 그리고 삼촌 천태수는 월북, 이쯤되면 모든 건 명백하오.”
  자기의 강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이중위는 천일병의 변호를 단념했다.
  “사상이란 것이 지식인의 전유물은 아니요. 나는 여기서 이 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이론적으로 경도된 사병이 말성을 일으키는 것은 보지 못했소. 그들에게는 행동력이 없으니까.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론이 없는 그러나 저돌적인 행동력을 가진 맹신이오. 그게 바로 천일병의 경우요. 조사에 따르면 천일병의 생활은 아주 넉넉한 편이었소.그런데도 교육을 받지 않은 것은 그 어머
  결국 이중위는 전방근무자의 신상파악이 그토록 불철저했던 경위를 중심으로 양면괘지 십여장에 달하는 참고인 진술을 하고 오후 늦게서야 그곳을 나왔다.
  “아, 참. 강대욱이라고 거기서 근무하죠. 안부전하더라고 말해 주쇼. 하대위라면 알거요”
  방문을 나설 때 그 보안장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두워진 원진지에 돌아와 보니 내무반이고 기재창고고 떠날 때 만큼이나 엉망이었다. 양하사의 지휘 아래 완전군장을 풀어 관물정돈을 하고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등이 가설된 기재창고 부근에서 장비 수입과 야전선 재생을 하느라 부산하였다. 선임하사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강병장이 주로 그들을 통솔하고 있었다. 그런 강병장의 노련하고 여유있는 모습을 보?
  “과장님, 대충 정리된 후 회식 어떻습니까”
  잠시 쉬려고 교환대로 향하는 이중위는 강병장이 뒤따라와 말했다.
  “모두 수고들 했으니까요 . 저기 술도 좀 있습니다”
  강병장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막걸리통 하나와 소주 됫병 두개가 보였다.
  “웬 술이야”
  “막걸리는 지난 일요일에 수송부와 축구해서 딴 거고, 소주는 휴가 귀대한 함상병 겁니다. 마침 돼지고기가 나왔길래 비계지만 그것도 서너근 취사반에서 얻어 놨습니다”
  그러자 처음 내키지 않던 이중위도 점차 생각이 바뀌었다.
  어쨌든 이 훈련은 성공적이었다. 사단장의 진급이 확실하다는 풍문이 들릴 만큼. 천일병의 일이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으나 그건 이 훈련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이번 사병들의 고생은 혹심한 것이었다. D데이의 눈에 이어 강추위가 이틀간 계속됐는데도 대부분 불 한번 피우지 못하고 언 밥과 식은 국으로 속을 채웠다. 전례로 이런 날 저녁의 회식은 당연한 것이었다.
  “좋아 하지만 술은 하나로 통일해라. 되도록이면 막걸리로. 그리고 이거 보태 안주 좀 낫게 장만해라”
  이중위는 주머니를 털어 삼천 원을 내주었다.
  “돈은 저희들에게도 좀 있습니다”
  “사병이 무슨 돈이야”
  “양키들 야전선을 좀 걷었죠. 녀석들 ATT를 하길래....우리라고 끊길 수만 있습니까. 그런데 애들이 좀 많이 걷어서 우리걸 채우고도 남길래...”
  “어디서야”
  갑자기 이중위의 신경이 곤두섰다. 일종의 자기 방어본능이었다. 그러나 강병장은 산악처럼 끄떡도 않았다.
  “저희들도 그게 어딘지 모릅니다. 과장님도 안들은 걸로 하시죠. 사실은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그렇지만-”
  좀더 따지려던 이중위는 문득 밀려드는 피로감으로 그만 강병장에게 양보하고 말았다.
  “좋다. 나는 그 얘기를 못들었다. 그러나 오늘 회식에는 그 돈을 써선 안돼. 이 돈을 쓰고 부족하면 PX에 내앞으로 달아. 그렇지 않으면 이 회식은 허락 할 수  없다”
  그러자 강병장도 할 수 없다는 듯 그 돈을 받고 물러났다.
  회식은 장비 정리가 대강 끝난 밤 열시경부터 기재창고에서 벌어졌다. 푸짐한 안주로 술이 한 순배 돌았을 때, 취침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통산 듣는 곡인데도 그 밤따라 유난히 감미롭고 애절하게 들렸다. 이중위에게만을 아닌 듯 다른 과원들도 잡담을 그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김일병 솜씹니다. 어떻습니까?”
  곡이 끝나자 강병장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대대에서 시켜도 안불더니, 웬일일까?”
  “아마 휴가 때문에 마음이 설레이는 모양이지요?”
  김일병은 내일이 휴가 출발이었다. 이 회식에도 그는 휴가준비를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다. 저녁때 이중위도 그가 싱글거리며 정비실에서 일계장 피복을 다려 들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자 과장님, 한잔 드시지요”
  잠시 멈칫했던 분위기를 되살리기나 하려는 듯이 강병장이 큰소리로 말하며 잔을 쳐들었다.
  “건배, 찢어진 영자의 팬티를 위하여”
  다른 부원들이 와 하면 술잔을 쳐들었고, 다시 흥겨운 회식이 계속됐다.
  “상병 "요오료오" 노래일발 송신”
  “군따이 와 요오료오다-군대는 요령이다-”라는 말을 자주해 “요오료오” 상병이라 불리는 무전병이었다.
  “송신-”
  과원들이 일제히 복창했다. 병과마다 노래를 시작할 때 쓰는 말이 다르다. 수송부는 “노래일발 시동”, 병기과는 “노래일발 장진”, 군수과는 “노래일발 기장” 등으로 뒤이어 노래가 흘러 나왔다.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만드는 아아가씨-”
  노래는 곧 합창이 되고 만다.
  “선임하사가 빠져서 안됐군.”
  선임하사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문중사님 곁에서 밤을 샐 모양이지요. 두 분은 하사관학교 동기니까요.”
  그날 따라 유난히 술을 많이 마시던 강병장이 약간 취한 소리로 말했다. 보통 회식에는 그는 자리 잡고 앉는 법이 드물었다. 술잔을 고르게 분배하고 주벽이 사나운 과원들을 억제하는 등 보이지 않는 통제를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그것이 그가 요청하는 회식을 이중위가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밤은 달랐다. 요량없이 퍼마신 과원들이 기재창고 벽?
  “과장님 딱 한잔만 더 하십시다.”
  과원들을 전부 내무반으로 돌려 보낸 이중위가 교환대로 가자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강병장이 말했다. 그는 어떻게 구했는지 두홉들이 PX용 맥주를 열 병정도 구해놓고 있었다.
  “강병장이 과할텐데...”
  “괜찮습니다. 이 강대욱이 취해 실수하는 것 보셨습니까?”
  “강병장, 오늘 이상해.”
  “이상할 것 없습니다. 과장님. 자, 앉으시죠.”
  강병장은 이상하게 풀린 웃음을 웃으며 이중위를 끌어 앉혔다.
  “건배를 합시다, 과장님. 빛나는 대한민국 육군장교를 위해.”
  통조림 깡통 가득 부은 맥주를 들어올리며 강병장은 또 허허거렸다. 몹시 공허한 웃음이었다.
  “정말 강병장 답지 않은 건배로군. 장교를 위해서라니...”
  “건배할 가치가 있으니까. 그리고 저는 비록 실패했지만, 아들을 낳으면 반드시 장교로 보낼 겁니다.”
  “강병장 육사를 중태했다는 건 사실이었군.”
  “정확히는 퇴교죠. 그래요. 저는 분명 거기 다닌 적이 있습니다. 가난한 지방 수재가 흔히 그러듯이....안부를 전하다던 하대위, 그 친구가 제 입교동깁니다.”
  “그런데 왜?”
  “쓸모없는 관념의 병이죠. 이학년때까지는 모범생도였는데, 삼학년 초에 그만-빗나가 버렸습니다. 갑자기 장교가 된다는 게 특히 남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게 두려워진 겁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껏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은 군인의 길 그 자체가 아니라 사이비의 것-예를 들면 화려한 제복이라든가 장군의 위용 같은 것이라는 걸 깨달은 겁니다. 걸레 같은 깨달음이었죠. 하여튼-그해
  “그랬었군. 그런데 갑자기?”
  “제 몸에 드럭드럭 밴 이놈의 사병근성이 싫기 때문입니다.”
  “사병근성?”
  “네, 무책임하고 피동적이고 잘 굴종하고 거기다가 뇌동하는 버릇, 감격한는 버릇, 그리고 정대하지 못하고 잔꾀에 밝은 것.”
  “예를 들면 심소위를 친 것 말인가?”
  “짐작하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사실 나는 그저께 밤에 이미 심소위라는 걸 알아 놓고 어제 저녁 숨어서 기다렸지요.”
  “통쾌했겠지.”
  “그런데 그게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젯밤은 통쾌한 기분으로 잤지요.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서부터 그 통쾌감은 점점 불쾌함으로 변해갔습니다. 내 행위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는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는 게 처량하고 서글펐죠. 나의 왜소함, 나의 천박스러움-이런 것들이 말입니다.”
  “미묘한 얘기로군.”
  “그래서 정대해지고 싶었습니다. 훈련에서 돌아오자 맨먼저 심소위가 누워 있는 의무대로 갔지요. 그리고 사실을 죄다 말했습니다. 참회나 사죄가 아니라 정대하기 위한 구실을 찾은 겁니다. 심소위가 계급 따위나 들먹이며 보복하려 들면 정말로 죽도록 패주고 영창이나 가려구요. 지적으로 세련된 건 아닐지 몰라도 그것만이 제가 정대해지는 방법이었으니까요.”
  “그래 어찌 됐나?”
  “두 번  비참해졌습니다. 그 어린것이-죄송합니다-제기랄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얘기를 다 듣고도 아무 말 없이 픽돌아 눕는게 아니겠어요? 돌아가라, 강병장. 본관은 네 말을 안 들은 걸로 하겠다. 어떻게 대한민국 장교가 사병에게 맞을 수 있겠나. 강병장은 군무를 충실히 했을 뿐이다,하는 겁니다.”
  “....”
  “풀썩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그놈의 사병근성이 나온 거죠. 그래서 한마디 덧붙였지요. 당신이 심소장이라면 그 소리가 썩 어울릴 거라고.”
  “그랬더니?”
  “제 비참만 더했습니다. 그는 경멸에 찬 눈으로 돌아보더니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니까 너는 더러운 잔꾀나 부리는 사병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안됐다...”
  그때였다. 교환대 문이 거칠게 열리며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만큼 취한 선임하사가 들어왔다. 어디서 굴렀는지 얼굴이 긁히고 군복 여기저기에 흙이 묻어 있었다.
  “임상사, 왜 늦었어요?”
  이중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쓸쓸해서-한잔 먹었임다, 과장님.”
  털썩 주저앉으며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무언가 물기가 서린 듯했다.
  “그래 문중사는 좀 어떻던가요?”
  “X할 놈 .... 뒈져 버렸어요.”
  “뭐요?”
  “내가 가니까 벌써 죽어 있더란 말이요. 어차피 죽어야 할 놈이긴 하지만....”
  “어차피 죽어야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요? 임상사.”
  “그새끼가 그년을 죽였던 거요.”
  “그년?”
  “거 왜 작전 첫날밤에 목졸려 죽은 늙은 갈보말이요.”
  “그건 어떻게 알았소?”
  “그 운전병 새끼가 깨어나 불었단 말요. 문중사 그새끼 아주 죽을 셈 잡고 그날 차도 지가 몬거요. 눈길을 시속 백킬로미터루다가...”
  “문중사가 왜 그랬대요?”
  “그 쌍년이 바로 그 전날 밤 꿈에 뵌 년이요. 그년이 하필이면 그런 데서 X를 팔고 있을 게 뭐람. 하기야 이제는 연놈 다 뒈졌으니 끝은 깨끗이 난 셈이지만...”
  얘기를 하는 임상사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중위도 강병장도 숙연히 침묵을 지켰다.
  “그새끼 운전병에게 고백한 살인 이유가 또 웃기지. 뭐 그년을 다시 대한 순간 자기는 그년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던가. 그래서 그년을 위해 가장 좋은 일을 해준다는 게 바로 그년을 목조른 것이라나요. 같잖은 새끼.”
  “...”
  “그래 놓고 이틀은 겨우 견뎠지만 결국은 제김에 간 거죠. 병참부에서 부식을 수령해 오다가 술을 처먹고 사병들에게 질질 짜며 죄다 불고, 그리고 그년을 찾아간다면서 차를 몰아 댄거요. 망할 새끼.”
  “...”
  “내 하사관 학교서 그 새끼 처음 만날 때부터 제 명에 못 죽을 놈이라는 걸 알아 봤다니까요. 암, 내 그 새끼 일이라면 워카 밑창부터 철모 꼭대기까지 다 알지 으흐흐흐...”
  임상사는 신음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딩굴었다. 이중위와 강병장은 그런 그를 어쩔 줄 몰라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교환기의 신호음이 그 방의 모든 것을 흐뜨려 놓았다. 신호를 받은 배상병이 놀란 소리로 이중위를 불렀다.
  “뭐야?”
  이중위가 불길한 예감으로 날카롭게 물었다.
  “김일병이-목을 맸습니다. 대공초소 부근이랍니다.”
  그제서야 이중위도 조금 전 과원들을 재우려고 내무반에 내려 갔을 때 김일병이 보이지 않았던 걸 상기했다. 이중위는 정신없이 대공초소로 달려갔다. 벌써 상황장교와 주번사관이 와 있었고 시체도 내려진 후였다. 김일병은 근처에 무성한 참나무 가지에 야전선으로 목을 맨 것이었다. 교범에 있는 결박법대로였다. 곧 놀란 대대장이 달려오고 의무관이 시체를 조사했다. 혀를 쑥 내민
  “이것들이 어찌 이리 턱없이 죽지...”
  대대장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걔들이 원래 그래요. 월남서도 보니까 베트콩 총맞아 죽는 놈 정말 몇 안되더군요. 그저 지가 슬슬 죽는 거지요. 계집 배때기 위에서 죽고, 술쳐먹다 죽고, 돈 벌려다 죽고, 적도 못보고 미쳐죽고, 아니면 고향생각으로 자살이나 하고...”
  언제 왔는지 군수과장이 무감동하게 말했다.
  “그게 바로 병사의 절망이지요...”
  망연한 기분으로 곁에 대대장이 있다는 것도 잊고 이중위가 불쑥 끼어들었다.

  - 작자부기 - 작품의 배경이 된 군대는 최소한 15년 전의 군대이다. 다소간 부정적인 묘사가 있더라도 이 글의 목적이 처음부터 고발이나 폭로에 있지 않았거니와 이제는 모든 것이 개선된 줄로 안다.
   롤랑의 노래

  누구든지 고향에 돌아갔을 때, 그걸 대하면 “아,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구나” 싶은 사물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이십리 밖에서도 보이는 고향의 가장 높은 봉우리일 수도 있고, 협곡의 거친 암벽 도는 동구밖 노송일 수도 있다. 그리워하던 이들의 무심한 얼굴, 지서 뒤 미류나무 위의 까치집이나 솔잎 때는 연기의 매캐한 내음일 수도.
  내게 귀향을 확인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고향 동구 조금 못 미친 산비탈의 조그만 바위였다. 국도가 오십 미터쯤 비켜 간 곳에 자리잡은 자반높이에 두평 남짓한 넓이를 가진 화강암으로 고향에서는 그것을 어림대라고 불렀다. 그 바위에 얽힌 오랜 전설 때문이었다.
  이조 가 그 건국 초기의 혼미에서 벗어났을 때쯤 어떤 현군이 당시만 해도 원시림과 다름없는 그곳에 어가를 멈추었다. 여조에 대한 절의로 은말 삼현의 예를 따라 은거해 버린 입향조의 후인 한 분을 모셔가기 위함이었다.
  이미 고려가 망한 지 백 년이 넘고, 이조의 박해에 대한 기억도 사라진 지 오래건만 그 조상은 어버이의 유명을 받들어 굳이 출사를 거부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조상을 찾아 숲속으로 들어간 사실을 한식경이나 기다리던 왕은 문득 한가지 방책을 생각하고 좌우를 시켜 시 한 수를 읊게 했다.

  이 아침 밝은 별을 사양하지 말라 -모사금조청"1"-
  풀뿌리 나무 포긴들 뉘 땅에 났으리 -채신"2"가토생-
  길 잃은 나그네 반기 맞음도 -환영미로객"3"-
  또한 성현의 행한 바가 아니더뇨 -무내성현행-
  주- "1"금조청-“이 조정의 후대로도 됨.” "2"채신-“은둔한 선비가 의지하는 나물과 장작.” "3"미로객-“올바른 정치의 길을 모르는 왕 자신도 됨.”
  여럿이서 복송하는 그 한 수의 오언절귀는 결국 숨어있던 조상을 어가 앞에 무릎 꿇게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불려나간 자리에서 그 조상은 또 한 번의 실수를 하고 말았다. 벼슬하기 싫다는 말을 관복을 입기 싫다는 말로 완곡히 표현한게 탈이었다. 왕은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분부를 내렸다.
  “그렇다면 관복을 입지 않고 등청해도 좋다. 경에게 이조판서를 내린다.”
  말머리가 잡힌 그 조상은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어가를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이것이 대체로, 자랑스럽게 내려오는 고향의 전설이었다.
  그러나 실록에 의하면 그 일은 왕과 직접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신과 우리들의 조상간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문중의 어른분네들은 그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고 열렬히 주장하시지만 어쨌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바로 그 바위 곁에서 은둔 백여년 만에 우리 일문과 이왕가의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후 그 바위는 일문의 성역으로 엄중하게 보호되었다. 출사하는 조상들은 그곳에서 새삼 충성을 다짐하고 떠났으며, 격심한 당쟁의 희생이 되어 억울한 사약을 받게 될 때도 그곳에서 불평 없이 죽어갔다. 상민들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었고, 어른분네들도 의관을 정제하고서야 그곳을 지났다. 하지만 내가 그곳에서 귀향을 확인하는 것은 반드시 그 낡은 전설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들의 어린날까지만 해도 생생하게 살아 있던 새로운 전설-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전설이다-통상으로는 “교리 어른 왜놈 잡을 때”로 불리우는 옛 이야기 때문이었다.

  ......오십 여년 전 국도가 처음으로 고향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였다. 그 계획선은 어림대를 지나고 있어 문제가 일어났다. 끊임없는 양왜의 침노로 이왕가는 몰락하고, 거센 변혁의 물결은 벌써 전 국토를 휩쓸고 있었지만 아직 한 고도처럼 남아 잇던 고향으로 보아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여러 차례 문회가 소집되고, 문중은 수백 년 성역을 지키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다. 일본인 지사에게 진정을 하고 한국인 군수를 구슬리기도 했다. 그러나 직선 도로를 주장하는 일본인 기사나 현장 감독의 고집은 끝내 꺾을 수 가 없었다. 남은 것은 폭력에 의지하는 길뿐이었지만 근왕창의를 부르짖던 팔도 의병이 겪은 참혹한 실패는 그때껏 문중의 기억 속에 아프게 살아 있었다.
  문중이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는 사이 발파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그리하여 이제 막 수백 년 성역이 폭음과 함께 날아가려고 할 때 홀연 일어서신 것이 교리 어른이었다.
  이미 고령으로 자리 보존을 하고 계시던 교리 어른-그는 아마도 이조의 마지막 교리였을 것이다-은 그때껏 해방 앓고 있는 문중의 모든 종들과 인근의 소작인을 무장시키고 막 어림대에 착암기를 들이대려는 현장으로 달려가셨다, 앞장서신 당신의 손에도 한 자루 환도가 번쩍이고 있었다. 당신의 12대조께서 인진창의때 하사받은 전가의 보도였다.
  결과는 간단했다. 명령일하에 오만한 일인 기사와 현장 감독, 그리고 발파 기술자는 교리 어른 앞에 무릎을 꿇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때 당신께서는 그 결의 한 그루 다북솔을 쳐넘기며 이렇게 호령하셨다.
  “누구든지 상의 옥보가 찍힌 이 땅을 범하는 자는 이리 될 줄 알아라.”
  그리고 그곳까지 닦아온 길을 전부 원래대로 만들게 하셨다. 제지가 불가능함을 느낀 주재소의 신고로 헌병수비대가 출동했을 때에도 당신의 당당한 기세는 변함이 없으셨다.
  “네가 너희 천황의 적자라면 나도 우리 왕토의 신민이다. 가서 목인에게 전하라. 남의 땅을 병탄했더라고 그 사직마저 욕되게 하는법은 아니라고.”
  그것이 급보를 받고 달려온 수비대장에게 당신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아마도 그때의 헌병대장은 무척 사려 깊은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는 분노하시는 교리 어른을 무마하려고 애쓰며 오히려 도로 기사에게 다시 생각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일개 소대의 정예한 수비대에게 기껏 도끼나 쇠스랑으로 무장한 백여명의 민병이 두려운 것은 결코 아니었으리라. 국도는 결국 어림대를 멀찌감치 돌아서 갔다...

  그런데 그 뒤 그 일을 전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대개 두 가지로 상반된 것이었다.
  그 하나는 그것을 교리 어른의 위험천만한 모험과 운좋은 승리로 보는 쪽이었다. 그들은 그때가 제등 총독의 문화정책 초기였다든가, 또는 그 헌병대장이 오랫동안 조선 근무를 한 사람이었다든가 하는 따위를 그 승리의 이유로 대곤 했다. 대개 분별있고 똑똑하다는 평을 받는 사람들이 곧잘 그런 의견을 내세웠는데, 듣는 사람 대부분은 그쪽을 지지했다.
  다른 하나는그 일을 곧이 곧대로 교리 어른의 화려한 승리로 보는 쪽이었다. 그때 헌병대장은 분명 교리 어른의 위엄에 질린 것이며, 만약 그가 대항했더라면 그와 그의 부하들은 어육이 났을 거란 얘기였다. 그러나 불행이도 그런 주장을 하는 쪽은 노망기 있는 집안 어른들네들이나 민촌의 무지렁뱅이 늙은이들뿐이었다.
  원래 나는 첫번째의 의견을 지지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사람은 살아갈수록 늙고 어리석어지는 것일까. 나도 차츰 두번째의 견해에 동조하게 되었다. 아니 그 이상 나중에는 나름대로의 새로운 해설을 붙이게끔 되었다.
  혹, 교리 어른은 우리들 옛 고향의 마지막 할아버지나 아니었을까. 오, 그 할아버지들. 우리들 옛 정신의 권화, 은성했던 시절의 흰 수염 드리운 수호부.
  춘삼월 꽃 그늘에서 통음에 젖으시고, 잎지는 정자에서 율 지으셨다. 유묵을 논하실 땐 인간에 계셨지만 노장을 설하실 땐 무위에 노니셨다.
  당신들의 성성한 백발은 우주에 대한 심원한 이해와 통찰을 감추고 있었으며, 골 깊은 주름과 형형한 눈빛에는 생에 대한 참다운 예지가 가득 고여 있었다.
  지켜야 할 것에 엄격하셨고, 노해야 할 곳에 거침이 없으셨다. 한번 노성을 발하시면 마른 하늘에서 벽력이 울렸으며 높지 않은 어깨에도 구름이 넘실거렸다.
  그런 당신들을 우리는 모두 존경하였고, 그 말씀에 순종했다. 아침에 일어나 절하며 뵙고, 거리에서 만나면 두손 모았다. 주무실 때 절하며 물러나고, 길은 멀리서부터 읍하며 비켜 섰다.
  그러나 이제 그런 당신들은 모두 사라지셨다.
  남은 이들-작은 이익으로 언성을 높이고, 소주에 코 끝이 빨개 장터거리를 비척거리거나, 어린 손주놈에 부대끼어 당신 앞에 맥을 놓고 앉은 이들은 결코 그 옛날의 당신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교리 어른께서 막아서신 것도, 이미 퇴색한 전설이 아니라 그 국도 위로 일인들이 싣고 올 색목문명이나 아니었을까. 우리들의 주거를 안락하게 하고 몸을 살찌우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행복과는 무관한 그 육질의 문명, 순결한 웅녀의 딸들을 능욕하고 선량한 환웅의 아들들을 그들의 총알받이로 내몬 그 약탈의 문명, 민족의 찬연한 역사를 아득한 무력함과 자기 비하속으로 밀어넣어 버린 그 오만한 문명-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우리의 옛 영광을 끝 모를 역사의 어둠 속으로 침돌시켜버린 그 욕스런 색목문명을...
  그리하여 내가 귀향을 확인하는 어림대도 그저 단순한 전설의 바위가 아니라, 침몰하는 우리들 옛 고향의 양수표나 아닐는지.











   폐원

  “많이 젖었지?”
  방문을 열자 희미한 호롱불 밑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수 높고 있던 그 애가 얼굴도 들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 나는 가볍게 머리를 쓸어 물기를 턴 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진흙이 엉겨붙은 우화가 높은 댓돌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오늘 밤쯤은 네가 올 줄 알았어. 오후 늦게 비가 쏟아지면서 부터.”
  그 애는 여전히 고개를 수그린 채 마치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침침한 불빛 아래서도 그 애의 바늘든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나는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저께 복순이 편에 네가 왔다는 걸 들었지. 부를 수도 없고..... 그런데 결국 너는 변하지 못했구나.”
  방 안이 그지없이 쓸쓺하다. 웃목에 잘 개어진 이불이 한 채,수예 견본인 듯한 책자가 댕그라니 놓인 앉은뱅이 책상, 맞은편벽에 들꽃 한 묶음,그리고 그냥 길러 뒤로 묶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그 애가 호롱불에 호젓이 비껴 앉은 모습은.
  “몹시 조용하군, 쓸쓸하고.... 그래 이렇게 큰 집을 교천 할머니와 둘이 지키나?”
  “행랑채에 을선네 식구하고, 복순이하고, 또 강아지 한 마리가 있지. 왜 뭐가 이상해? 현주 언니가 시집간 것까지는 너도 알고 있잖아?”
  “그러나 전과는 하두 엄청나게 달라져서.”
  “잠긴 사랑방? 그야 이젠 아무도 오지 않으니까. 그밖에 또 뭐야?”
  “모든 것이, 이를테면 너의 태도 같은 것도.”
  “그래....?”
  여전히 그 애는 건성으로 길게 대답하며 입으로 수 테의 실밥을 뜯었다.
  “너두 변하지 않았니? 그 전에 네가 언제 오늘처럼 조용히 내방에 들어온 적이 있어? 마치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우리 집에 오는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언제나 요란스런 행차였지.”
  “그렇군...하기야 모두 나이가 나이니까. 그런데 너는 앉으라는 소리도 없구나.”
  “별 우스운 소릴... 언제는 물어보고 앉았니?”
  수그린 얼굴로 그 애는 잠시 희미하게 웃는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 감치기를 서두르더니 수테와 색실을 책상 위에 얹고 오랫동안 쓰이지 않아 먼지 앉은 램프에 불을 붙였다.
방 안이 얼마간 밝아왔다. 그러자 그 애는 얼굴을 들어 찬찬히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그 애의 얼굴은 다소 늙고 원기가 없어 보였다.
  “생각보다 많이 변했구나. 이제 학교는 마쳤지?”
  “겨우 이 봄에 업했지.”
  “그동안 무얼 했기에?”
  “여러 가지를.술도 마시고 여자도 사랑하고- 그리고 군대도 다녀왔지.”
  “그래 공부는 무엇을 해?”
  “뭐 처음부터 결정된 대로지. 별 가능성 없는 작가 지망생이야.”
  “네 데뷔 소식은 들었어. 역시...그렇게 되고 말았구나. 작년인가 나는 네가 다시 고시준비에 열중한다고 들었는데.”
  “어쩔수 벗었어. 이제 와서 내 인생을 바꾼다는 건 무리지. 형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섭섭해 하실테지. 집안 어른분네들도. 그분들이 가진 문인의 이미지란 기껏 "폐허"지의 동인 정도니까.”
  “그것이었을 거야. 불쑥 고향에 돌아오고 싶었던 것은. 무언가 다시는 고향에 돌아올 수 없으리란 예감 같은 거- 이 나이로는 어울리지 않는 감상일까?”
  나를 쳐다보는 그 애의 얼굴에 일순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연민 같은 것이 서렸다. 바깥에는 다시 소낙비가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한 줄기 바랍이 빗발을 문살에 몰아붙여 그 처량한 음향은 이 음산한 고가의 정적을 더욱 묵중하게 만들었다.
  “피로하고, 추워 보이네. 술 아직도 많이 해?”
  애써 지은 듯한 미소로 그 애가 물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더욱. 그런데 너야 이젠 아니겠지.”
  “응,그때 너와 마신 게 마지막이었어.”
  그 애가 조용히 일어났다.
  “마침 농주 남은 게 좀 있어. 기다려 내가 가져올께.”
  “교천 할머니가 언짢아 하시지 않을까?”
  “어머닌 괜찮아. 전보다 늙으신 데다가 지난 몇 년 내가 근신한 덕택이야.”
  그 애는 밖으로 나갔다. 펄럭이는 그 애의 옷자락에서 옅으나, 그리워했던 작약 냄새가 났다.
  언제부터인가 이 집은 여원이라고 불리었다. 그 애의 아버지가 요절한 후에 남자라고는 하나 있던 오빠마져 의용군에 끌려가 버리자 집안에는 완전히 여자들만 남게 된 데다, 또 집도 궁원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컸다. 그 옛날 문중에서 가장 외롭고 빈한했던 그 애의 증조가 오직 근면과 절약만으로 만석 거부를 이룩한 후 세운 4백여 평 뜰의 팔십 간짜리 기둥집이었다.
  이 집의 주인들은 그 이름을 싫어하였다. 거기에는 무언가 가계의 단절을 앞둔 그네들의 남 모르는 슬픔과 한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 일문의 형제들은 짖궂음으로, 혹은 비밀을 주고받은 즐거움으로 그네들이 없는 곳에서는 언제나 그렇게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이 집은 우리 모두에게는 독특한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어렸을 적, 이 집은 우리들의 원인 모를 동경의 대상이었다.그리고 나이가 차 스스로 찾게 될 때는 그대로 사랑과 기쁨의 집이었으며, 다시 이제는 방문을 그친 성년으로 그 앞을 지날때면 그것은 영원한 향수와 추억의 집이었다.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장려와 우아가, 또 무슨 자욱한 안개처럼 서린 우수나 애상같은 것들과 함께 저항할 수 없는 견인력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이었다. 여름이면 홍란, 백작약이 만발한 앞뒤 화원과 부용이 떠 있는 연못, 지금 베어진 서실 앞의 아름드리 향나무며 그 앞 푸른 이끼 낀 바위 -그곳에 여름 저녁 그 애와 나는 가끔씩 걸터 앉았다- 같은 것들에 그러한 장려와 우아가 있었으며, 잠시만 침묵해도 이내 회복돼 버리는 무거운 정적과 그을음 낀 회벽, 그리고 기다림으로 이십 년래 한 번도 잠긴 적이 없는 대문 같은 것들에 그런 우수와 애상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혼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의 주인들, 그래서 우리가 여왕이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던 다섯 여인이었다. 우리 일문의 형제들이 충을 바꾸어 가며 그녀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여성적인 것 -특히 그 아름다움의 한 전형이었으며, 후일 그 최저의 한계로도 자신의 여자를 맞이할 수 없게 될 때 그녀들은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속에 살게 되는 것이었다.
  “문 좀 열어 줄래?”
  밖에서 그새 비에라도 젖은 듯한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 없이 문을 열자 몇 개의 물방울을 머리칼에 반짝이며 엄청나게 큰 주전자에 김치 접시만 달랑 얹힌 상을 든 그 애가 들어왔다.
  “갑작스러워서...술만이래두 되지?”
  그 애는 또 희미하게 웃었다.
  “나두 같이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 났어. 너와는 이게 정말 마지막일 것 같아서-잔은 어울리지 않게 고급이지?”
  조그만 종이 상자에서 두 개의 잘 닦여진 맥주잔을 꺼내면서 그 애가 말했다. 뻑뻑한 농주가 투명한 유리컵에 차는 동안 나는 돌연 그리움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야릇한 감상에 휩싸였다.
  “술이 모자랄 것 같은데.”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여전히 술욕심은 대단하네. 걱정말아요. 아직 반 독은 넘게 있고 양조장도 멀지는 않으니까. 자, 여기다 술이나 한잔 줘.”
  유난히 길고 흰 손가락에 감긴 유리잔이 다시 한번 나를 야릇한 아픔에 젖게 했다.
  “뭐야 이런...그러나 옛날 규칙은 잊지 마라. 비율은 이대 일, 취한 숙녀는 질색이다.”
  하지만 잔이 찬 후에도 나는 선뜻 잔을 들 수가 없었다. 무언가 꼭 있어야 할 절차가 빠진 것 같았다. 그 애도 자기 잔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들지.”
  이윽고 나는 힘을 모아 말했다.
  “건배다. 여원을 위해, 내 영원한 향수를 위해.”
  그것은 억지로 꾸민 쾌활이어서 스스로 듣기에도 내 목소리는 공허했다. 순간 꾸짖는 듯한 그 애의 눈길에 이어 작은 떨림이 부딪치는 잔을 통해 전해 왔다. 그 애는 소리없이 천천히 마셨다.그리고 잔을 내민 그 애의 두 눈에는 엷은 눈물이 괴어 있었다. 나는 황급히 두번째의 잔을 채우고 단숨에 마셨다.
  “처음부터 규칙 부활이구나.”
  힘들여 웃으려는 그 애의 얼굴에 반짝 엣 모습이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이 여원의 첫번째 여왕은 그 애 어머니 자신이었다. 지금은 노쇠와 질병으로 엣날의 모습을 찾을 길 없지만 전하기에 열 여섯의 나이로 처음 그녀가 이 집에 들어설 때는 정말 꽃다왔다고 한다. 아마도 이 집을 면면히 흐르는 아름다움의 근원은 바로 그런 그녀에게 있음에 틀림이 없다. 거기다가 그녀는 모든 동양적인 부덕과 교양을 지니고 왔다. 그녀의 언행은 당시 모든 문중새댁네의 모범이 되었으며, 그 음식 범절과 바느질 솜씨는 옛 고향을 통틀어 으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삼종조가 되는 그녀의 남편은 부조의 재산으로 소시적부터 주색에 깊숙이 빠져버린 사람이었다. 실로 그는 당대에 만석 거부를 가장 성공적으로 탕진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에게 술을 마시는 것과 기녀를 후리는 것 외에 남보다 뛰어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혼과 더불어 더 심해가 -나중에는 숫제 타향에 자리잡고 탕진만을 일삼았다.
  그에게 있어 아내란 일변 두렵고 일변 밉기까지 한, 그래서 그 이상스런 위축감이나 거북스러움은 그를 짜증나게 만들었고 그녀를 경원하고 기피하게 만들었으며, 이윽고는 혐오하게까지 했던 것이다. 그는 결혼 후의 생애 거의 전부를 타향에 나가 있으면서도 도합 여섯 번이나 그녀를 임신시켰는데 그것도 그런 심리의 한 변태 -그래도 나는 너의 남편이라는- 였을 것이다.
  그녀가 그런 남편을 미워했는지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미뤄 보아 그 어느편도 아니었으리라 짐작이 든다. 그녀에게는 자기만의 은밀한 세계가 있었으니 앞뒤 뜰을 메운 진기한 화초와 수석, 언제나 그녀 방에 단정히 비치된 문방사우 그리고 몰락해 버린 친정에서 옮겨온 고서더미 같은 것들이 바로 그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다가 주색에 아편까지 곁들여 결국 생명까지 탕진한 남편이 마흔도 못되는 나이로 요절하자, 그 세계는 그대로 이 여원의 전부가 되었다.
  그녀의 첫번째 여왕으로서의 군림은 그 후의 일이었다. 몇 년인가 꽃향기와 새소리 속에,당음과 문선의 곰팡이 냄새와 묵향속에 칩거하던 그녀는 시어머니마저 죽고, 그녀 자신이 이 여원의 어른이 되었을 때- 라야 겨우 서른 여섯살이었지만- 사랑방을 문중의 젊은이들에게 개방하였다. 이미 한세대 이상 지난 일이고, 젊었던 지난 날의 기사들도 이제는 거개가 중년의 막바지를 걷고 있지만, 그때의 여원은 아직도 그들 가슴 속에 아름답게 살아 있다.
  그들의 회상에 따르면 그때 그 사랑방을 꾸민 것은 옛 풍류와 멋의 잔영이었다. 그들은 처음 아무렇게나 모여 들었지만 곧 자정작용이 일어나 조야한 행실,천학,예와 기에 대한 몰이해- 이러한 것들은 저절로 그곳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문중에서 가장 고귀한 정신들만 남아 몰락해버린 왕조와 사라져간 우리들의 옛 영광을 읊조리거나 그들 본성과도 흡사한 화선지에 승화된 정념을 수놓았다. 지금도 이 집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수묵화 족자들이나 두툼한 조선식 기보 한 권, 그리고 수정추회라는 시문집은 그런 그들의 정신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것들이다.
  그러다가 삼년인가 만에 그 사랑방은 폐쇄되었다. 일제말의 징병을 피해 고향에 숨어 있던 문중의 한 동경 유학생이 갑작스레 남양으로 떠나버린 직후의 일이었다. 그 애네의 오래된 사진첩에 사각모자를 쓰고 망또를 늘어뜨린 채, 슬플 정도로 크고 선명한 눈을 하고 서 있는 그 절ㅂ은이는 자기의 절망적인 연정 -육촌 형수를 사랑하게 된 자의- 을 삼십년대 풍의 길고 현란한 편지 속에 남겨 놓고 학도병에 자원해 버렸던 것이다.
  원인을 모르는 문중의  경악 속에 그 젊은이가 떠나던 날 아침,그녀는 홀로 뒤뜰 숲속에 나가 사랑하던 십자매 한 쌍을 놓아주고 오래오래 그들이 사라져간 창공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날로 사랑방에는 자물쇠가 잠기고 오래잖아 이 집은 문중에서 가장 쓸쓸한 집이 되고 말았다.
  남양으로 떠난 그 젊은이는 결국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격침된 수송선과 운명을 함께 했다는 풍문도 있고, 달리는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고 토민 처녀와 결혼하여 그곳에 정주하였다는 말도 있었다.

  “묵도라도 하는 거야?”
  갑작스런 그 애의 물음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잔을 채워둔 그 애가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들어야지. 다시 건배다.”
  나는 서둘러 잔을 들었다.
  “이번에는 너를 낳아준 여인, 이여원의 첫번째 여왕을 위해서.”
  다시 항의가 담긴 듯한 그 애의 눈길이 나를 향하다가 문득 그애 특유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되어 건배를 받았다.
  “그래, 어머니를 위해서. 우리들 모든 미와 사랑의 여왕을 위해.”
  다시 문 밖에는 한줄기 장대비가 요란스레 파초잎을 때리고 지나갔다.

  그러나 이 집과 나의 숙명적인 연관이 시작된 것은 두번째 여왕 때부터였다. 지금은 평범한 개인병원의 원장 부인인 그 애의 맏언니는 내 어린 날의 기억을 되살려 볼 때 이 여원의 두번째 여왕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는 미인이었다. 그녀의 유난히 흰 살결과 섬세한 윤곽은 남도의 평야지방에서 난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었으며, 그윽한 눈과 이국적인 정취마저 풍기는 얼굴 전체의 짙은 음영은 북도의 산악지방에서 난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것이었다. 정신적으로는 그녀가 어머니에게서 이어받은 것은 겨우 예술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사랑의 천품 정도였다. 그러나 조심성 없는 웃음과 춤이라도 추듯 경쾌하고 우아한 몸가짐, 아이와 같은 천진, 그리고 남의 불행을 함께 울 수 있는 깊은 동정심 같은 천진, 그리고 남의 불행을 함께 울 수 있는 깊은 동정심 같은 그녀 특유의 장점은 그 어머니의 많은 다른 장점을 대신 할 만하였다. 그것들은 모두 그녀의 아버지가 지녔던 호탕성이 극도의 순화 끝에 그녀에게 전해진 것들임에 틀림없었다.
  따라서 그런 그녀는 그때껏 타성이라고는 엣 노비의 후손들이나 소작인들밖에 없는 고향 문중의 젊은이들에게서 일찍부터 사모의 대상이 됐다. 예를 들어 그녀가 D시에서 여고를 다닐 무렵의 토요일 같은 날은 누가 그녀의 집까지 짐을 날라주고 거기서 저녁을 먹게 되는가가, 당시 그 도시에 유학간 모든 문중 젊은이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운 좋게 선택된 젊은이는 그 무상의 영광에 어깨를 누르는 쌀자루의 무게나 야채잎이 비어져 나오는 반찬 보따리를 들 때는 젊은이다운 수치심마저 잊게 되는 것이었다. 또 방학이 되면 이집의 사랑방은 그 젊은이들로 떠들썩했다. 바깥 어른이 없어 놀기에 부담이 없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다수한 문중의 처녀들 사이에서도 별처럼 빛나는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여고를 졸업하고 돌아오자 그 사랑방은 정식으로 개방되고 그곳은 새로운 기사들로 가득찼다.
  노 여왕의 은회색 머리칼이 이상한 우수와 적막 속에 늘어가던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아온 봄이었다. 노여왕 자신도 그 봄을 기껍게 맞았으며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모두 지난 전란으로 잃어 버린 아들을 대하듯 했다.
  그때 그 사랑방을 지배한 것은 오십년대 말으 정열이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나는 자주 이 집 담 밖에서 낭자한 가락과 왁자한 웃음소리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애의 보다 구체적인 추억에 의하면 더 잦았던 것은 그들의 열띤 논쟁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통음에 젖고, 시와 음악을, 예술과 인생을 예길했던것이다. 그 모든 것들은 족외혼이라는 윤리의 철칙으로 왜곡된 그들의 본심 -그녀의 아름다움을 향한 열렬한 숭배와 사모의 한 변형이기도 했다.
  두번째 여왕의 사랑은 비록 내가 국민학교 하급반 때의 일이었지만 비교적 내 기억에 선명하다. 그 상대가 나의 큰형인데다 나는 그들의 어린 사자로서 후일 커다란 잿더미를 이루었던 그 많은 편지와 조그만 석고 마리아상을. 예쁘게 수놓은 손수건과 수정 목걸이를, 그리고 그들의 절망적인 사랑을 날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통속해져 버린 감상이지만, 당시는 천재적인 소질로 이찍부터 지방 문단의 인정을 받고 있던 큰형의 젊은 시인다운 정열이 이미 말한 대로 예술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사랑의 천품을 지닌 그녀의 영혼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그것은 결코 불륜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이었다. 그녀에게는 딴 이름이 있었지만 큰형은 그녀를 수운이라 불렀다. 나중에 글프게 끝나 버릴 사랑의 예감이 그로 하여금 그런 이름을 짓게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를 가로막고 있는 윤리의 언덕 위에 높게 떠 있는, 결코 잡을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흰구름- 그것이 그녀였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형이 군대에 있을 때 영영 떠나버렸다.
  “오빠, 오늘도 오빠의 운아는 죽었습니다. 남은 것은 끝내 죽일 수 없었던 천한 몸과 오빠와 동성동본인 현숙이 뿐입니다. 그러나 오빠, 운아는 죽었지만 아름다운 추억은 곱게 간직한 채 갔습니다. 오빠의 비탄에 작은 위로로 삼아주시길. 아아, 그러면 안녕,그렇게도 자주 불렀던 정다운 이름, 오빠 영원히 안녕.”
  이 짧은 편지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이웃의 군 출신의 젊은 의사에게 출가했다. 형의 오래된 일기장에 그렇게도 많은 만가를 남겨놓고, 아아, 그때 형은 차라리 그녀가 정말로 죽었기를 얼마나 간절히 그리고 열렬하게 바랐던가. 주정뱅이 기자로 전락한 오늘에까지도.
  이 여원의 봄도 떠나간 그녀와 함께 끝나고 말았다. 다시 몇 년 후에 세번째 여왕이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는 잠시 정적이 머물게 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두번째 여왕차례지? 그래 그녀의 슬픈 사랑을 위해.”
  새로운 잔을 쳐들면서 이번에는 그 애가 앞질러 말했다. 너도 알고 있었구나... 어느새 그 애의 두볼엔 엷은 홍조가 어리고 있었다.

  세번째 여왕이 돌아왔을 때, 그녀가 꾸민 사랑방의 분위기는 냉철한 이지 그것이었다. 자매들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을 한 그 장래의 여류 사가는 신병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서도 학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그녀의 무지에 대한 혐오는 유별났다. 문인적인 비약이나 논리의 불철저도 다같이 그녀가 혐오하는 바였다. 따라서 그런 그녀의 성격은 어딘지 모르게 쌀쌀하고 거만한 인상을 주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함께 처음 얼마간은 모든 사람의 경원을 샀다. 그러나 이윽고 거기에 합당한 기사들이 부족한 대로 그 사랑방을 메워갔다. 가정 환경으로, 또는 그녀와 비슷한 이유로 한두 학기 휴학을 한 문중의 대학생들이나 문과대학을 졸업하고도 적당한 직장을 얻지 못해 때를 기다리는 청년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과 밤 늦도록 토론하고, 비판하던 그녀는 이 년만에 신병이 회복되어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인가 후에 나는 그녀가 어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했던 세번째 여왕에 대해 그 사랑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가 그 무렵 나는 중학교를 다니기 위해 고향을 떠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작부터 내 사촌형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휴학을 한 그 이듬해 그가 별다른 이유 없이 휴학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것과, 그녀가 학교를 돌아갈 무렵해서 돌연 군에 입대해 버렸다는 애매한 이유 때문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것이 거의 확실한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 의심은 적중했다. 그 후 나는 언젠가 만취한 그가 이집 대문에서 기대서서 흔들거리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비록 어둠 속이었지만 그의 양볼에 번들거리며 흐르고 있는 것은 분명 소리없는 눈물이었다. 거기다가 그는 또 부축하는 나를 개의함이 없이 이렇게 중얼거렸던 것이다.
  “가엾은 것. 학문은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것을...가엾은 것.”
  나중에 알았지만 그 날은 또래들 중에서 가장 늦게까지 결혼 않고 남아 있던 그가 백모의 성화에 못 이겨 정혼한 날이었다.

  네번째 여왕이 여고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이 사랑방의 주인이 되었을 때 이 집은 잠시 나와의 인연에서 멀어졌다. 다수한 종잔과 형제 자매들 중에서 그녀 또래는 내 누이 하나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일찍 죽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녀와 그녀의 사랑방에 대해서는 먼 족인들에 의한 전문 뿐이었다.
  거기에 따르면, 이 여원의 네번째 여왕인 그 애의 세째 언니는 평범밖에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여자였다. 그녀는 평범한 용모와 정신으로 돌아와 평범한 기사들 사이에서 몇 년을 군림하다 역시 평범한 교사와 결혼하여 이 여원을 떠났다. 그리고 설령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할지라도 나는 알 길이 없다.

  어느새 상당히 취기가 올라 있었다.
  “벌써 술이 다 됐네. 좀더 가져와야겠어.”
  마지막 잔을 부으며 그 애가 말했다. 그 애가 다소 취한 걸음으로 다시 주전자를 채워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나는 남았던 잔을 채웠다. 그 애가 이내 잔을 비웠다.
  “이번에는 제 오대 여왕이지? 이 여원의 마지막 영광, 너 나의...”
  그때 갑자기 그 애의 흰 손이 내 입을 막아 말을 중단시켰다.
  “아직도 바보 같은 소리를 하려는 게지?”
  그 애의 쓸쓸한 웃음이 다시 한번 항의를 대신했다.

  내 손위의 형들이 보여준 그와 같은 실례는 어려서부터 나를 끊임없이 기대와 불안으로 설레이게 했다. 아마도 자신의 조숙 탓이었겠지만, 나는 이미 국민학교 시절부터 큰형과 그 애의 맏언니를 원인 모를, 그러나 깊은 흥미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막연한 대로 그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보다는 불행했던 종말에 대한 엉뚱한 불안이 처음 상당 기간 나를 사로잡아 그 애를 이유없이 경원하게 하였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그 애는 언제나 내 주위에 있었다.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다닐 때 그 애는 육년 줄곧 나와 한반이었으며, 어쩌다 내가 아동극의 주인공이라도 되면 그 애는 반드시 내 대역이 되어 내 동작을 헷갈리게 하고 대사를 잊어버리게 했다. 그 후 문중의 해체가 시작되어 그 반수 이상이 자녀의 교육이나 가계의 재건을 위해 타향에 나가 살게 되었을 때, 그래서 같은 또래의 무중 형제들이 한 자리에는 서넛조차 모이기 힘들게 되었을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내가 먼 도시로 공부하러 가도 오래잖아 나는 그곳에서 역시 교복을 입은 그 애를 만나게 되었고, 전혀 예고 없이 돌아와도 나는 다시 무심한 얼굴로 고향 언덕을 산책하는 그 애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운명은-한 재능있는 시인을 거리의 부랑자로 만들고 또한 날카로운 예지의 철학도를 무기력한 중등교사로 만들어 버린 그 운명은 내게서도 그 발단을 만들고 말았다. B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여름 토요일, 나는 어쩌다 막차를 타고 귀향하게 되었는데, 그 차가 고향을 이십 리 앞두고 고장이 남으로써 예상보다 일찍 내게 도달하고 만 것이다.
  도보에 익숙하거나 갈 길이 바쁜 사람들은 수리가 지연되자 하나씩 둘씩 내려서 걷기 시작하였지만, 무엇 때문인지 잔뜩 지쳐 있던 나는 그대로 차가  수리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애도 버스에 타고 있었다.....사뭇 모르고 있었지만 이윽고 텅 비게 된 버스 앞자리에 앉은 것은 분명 그 애였다. 여고생의 제복에 싸여 나만큼이나 지친 듯한 표정이었다.
  처음 그 애를 발견한 순간부터 내 가슴은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지금껏 그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짐작컨대 지는 햇살에 발갛게 물든 그 애의 얼굴이 너무도 아름다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때껏 내 기억에 남아 있던 그 애의 아름다움 -학예회 무대에서 하얀 의상을 입고 조그만 나비처럼 팔랑팔랑 춤을 추던 그 애의- 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아름다움이었다.
  마침내는 우리들도 차에서 내려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차장이 수리가 불가능함을 알리며 하차를 부탁한 데다 날은 점점 저물어 와 우리들도 다급해졌기 때문이었다. 남은 것은 어둡고 먼 시골길이었다. 도중에는 대낮에도 으시시할 정도로 참나무붙이가 무성한 언덕도 있었고, 흐린 날은 귀화가 번득이고 때로는 은은한 곡성까지도 들린다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서 평범한 얘기들을 그것도 띄엄띄엄 주고받던 우리들도 그런 곳을 지날 때는 어쩔 수 없이 손을 꼭 쥔 채 기대다시피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그런 곳을 지나던 그곳은 참으로 아름다운 여름밤이었다. 유난히도 별이 총총한 하늘 가운데로 은하수가 곱게 흐르고 또 도로 연변의 호롱불 깜박이는 마을들은 감미롭고 아늑한 정취 마저 자아냈다. 그리고 그런 주위의 아름다움은 우리들의 마음을 쉽게 공감으로 일치시켜,잡은 손도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대화도 순조롭게 풀려 나갔다.
  그렇게 걷다가 고향 마을이 십리쯤 남은 곳에 이르렀을 때부터 나는 갑작스런 조급과 혼란에 빠져들었다. 무엇인가 꼭 해야 할 말을 잊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얘, 나는 말이다. 너를 오래 전부터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그러나 약간은 조숙해도 나는 역시 열일곱 소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말은 내 생애에서 처음하는 말이며- 게다가 나는 고향의 풍토에, 그런 말을 그애에게 해서는 안된다는 완고한 그 율법에 익숙해 있었다. 곧 그래도 그걸 말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 욕망을 저지하려는 이성간에 맹렬한 난투가 삼중에서 벌어졌다. 그리하여 집에 이르는 그 나머지 길은 그런 내면의 갈등으로 취기와도 흡사한 기분에 젖어 나는 걸었다. 몇 번인가 혼신의 힘으로 더듬거려 그 애를 불러 놓고 다시 어색한 침묵에 빠져드는 것이 그때 내가 한 전부였다.
  이윽고 우리의 마을의 낯익은 불빛이 가깝게 다가왔다. 멀리서 귀밝은 동네 개가 우리를 향해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나는 앞뒤 없이 거의 난폭하게 그 애를 끌어안았다.
  “얘얘, 나는 말이다. 너를....너를....”
  그러나 끝내 그 말을 다 마치지는 못했다. 그 애는 어쩔 줄 몰라하며 그저 가늘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나는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달리듯 그 애에게서 도망쳤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 알아맞춰 볼까?”
  문득 그 애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어왔다. 나는 부끄러운 장난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당황하며 대답했다.
  “맞춰보렴.”
  “그 여름밤이지?”
  그런 그 애의 표정에는 적의 없는 조소와 동정이, 또 어떤 그리움 같은 것과 함께 미묘한 음영을 이루고 있었다.
  “정말 얼마나 놀랐던지...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내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너는 달아나고 없었지.”
  나도 겸연쩍게 웃었다.
  “그러나-”
  그 애는 이내 쓸쓸한 표정으로 잔을 들며 계속했다.
  “이제는 슬플 것도 괴로울 것도 없는 우리들의 그 마지막 밤을 위하여.”
  이번에는 내가 항의할 차례였다. 하지만 나는 잠자코 잔만을 비웠다. 돌연스런 취기가 그녀의 상기로 강렬하게 되살아나는 우리들에게 그 마지막 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아아, 그래도 아직은 두고 오래 사랑하고 싶은 이여......
  그 뒤 우리는 제가끔의 인생을 사느라고 오래도록 서로 만나지 못했다. 비록 그 여름밤의 일은 인상깊은 것이기는 하였지만, 또한 그만큼 즉흥적이고 돌발스러운 것이기도 하여서 우리에게서 지속적인 열정을 끌어내기에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때 고등학교 이학년이었던 나는 곧 치열한 입시준비에 들어갔고 뒤 이은 대학생활의 분망함 속에 몇 년간 거의 그 애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사년이 지나서야 그러니까 내 나이 스물 하나였을 적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때 나는 법대생이면서도 머리는 근거 없는 허무주의에 처박고 두 발은 탐미적 생활의 진창을 질퍽거리며 보낸 그 몇 년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왔던 것인데, 홀로 남은 노여왕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던 그 애는 이 여원에서 그야말로 “따분한 인생”을 실습하고 있었다. 사랑방은 전례대로 개방되어 있었지만 이미 기사다운 기사는 남아 있지 않았다. 문중의 해체와 산업사회의 발달은 쓸 만한 젊은이가 고향에서 빈둥대는 것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렇게 만난 우리들은 아무런 앞뒤 연관 없이 마치 오래 전에 묵계된 것을 실천이나 하듯, 이내 서로에게 열중해 버렸다.
  역설 같지만 나는 먼저 그 애의 무관심을 -내가 그렇게 사뭇 미쳐왔고 지금도 아직껏 헤어나지 못한 그 언어에 대한 무관심을- 기뻐했던 것 같다. 주저 없이 외설스러운 말을 할수 있고 잔 신경씀이 없이 술잔을 나눌 수 있는 그 애와의 분위기를 나는 좋아했고, 그래서 무엇이든 허심하게 대하고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그 애를 바라보면서 그때껏 내가 얼마나 벽덕 많고 비뚤어지고 신경질적인 도회의 숙녀들에게 학대받았는가를 알았다.
  둘이 있을 때면 함부로 불어대던 그 애의 휘파람 소리, 또 백치같은 그 애의 웃음소리를 나는 유쾌하게 들었으며, 그애의 얼굴을 일견 우울한 것으로 만드는 긴 코와 항힐만 신으면 나보다 더 커 버릴 키를 매일 놀려 대면서도 그 애와 나다니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아늑함과 포근함 -고향 뒷산같은 데서 그 애의 무릎을 베고 누워 떡갈잎 사이로 터진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비로소 나는 “아,고향에 돌아와서 쉬고 있구나”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 애는 -글쎄 내가 어떠하였는지 모르겠다. 그 무렵의 여원에서의 나로서 기억할 수 잇는 것은 내가 굉장히 요란스런 기사였을 것이란 점이다. 나는 실로 훌륭한 어릿광대였으며, 시인이었고, 술꾼이며, 철학자였고- 그리고 이 여원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었다.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아마도 그것은 노여왕의 은밀한 관찰로부터 그 애와 나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국은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잇었다. 그것은 먼저 내부로부터 온 것이었다. 우연히 두손을 마주잡거나, 돌연한 기쁨으로 무심중에 얼싸안고 뺨을 부빈 것만으로도 감격으로 몸을 떨던 나는 점차 스스럼없이 그 애 무릎을 베게 되었고, 저녁 으스름 속을 산책할 때는 그 애 허리에 팔을 감기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그 전의 기사들이 한결같이 퇴각해 버린 선에까지 이르러서도 나는 물러설 줄 몰랐다. 나는 불륜이래도 좋을 그애를 영육 공히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을, 그것도 맹렬하게 품기에 이르른 것이다. 금단 앞에서 더욱 치열해지는 인간의 기묘한 정념이었다. 물론 본능적인 죄의식이나 격심한 가책으로부터 오는 괴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도 불면의 한밤으로 그뿐, 이튿날 아침이면 벌써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무렵부터 파국의 조짐은 외부로부터도 나타났다. 나는 몇번인가 내 큰형으로부터 침중한 경고를 받았다.
  “그 집에는 무언가 우리를 미혹시키는 것이 있어. 특히 우리 집안의 섬세한 감정을 헝클고 턱없는 격정을 유발시키는 그 무엇이. 하지만 또한 기억해야 해. 그녀들에게는 우리가 도처히 흉내낼수 없는 어떤 냉철함과 꿋꿋함이 있다는 걸. 우리가 나머지 인생을 상처입고 피흘리는 동안에도 그녀들은 무엇하나 손상당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수 있는 -비정과도 흡사한 그 무엇이...”
  멈추어야 할 곳에서 멈출 줄 모르는 우리를 민망히 여기던 노여왕도 점차 질책의 눈으로 우리를 보게 되었고, 몇 안남은 문중도 조심스레 우리에 대한 의심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가 우리의 자제를 단념한 노여왕의 결단으로 파국은 끝내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그녀는 나의 출입을 정식으로 거절하는 한편 그 애의 맏언니를 적당한 구실로 불러들여 그 애의 감시역을 맡게 한 것이다.
  잠시 암담한 절망과 광적인 자포자기의 나날이 흘렀다. 그러나 이미 고삐 잃은 나의 격정은 일찍이 그 어떤 기사도 생각지 못한 대담한 계획을 꾸미게 하였다. 우리에게 부당한 압제를 가하고 있는 고향과 혈연으로부터 그 애와 함께 영원히 떠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 내 계획은 우리가 사전에 정해둔 은밀한 방법으로 그애에게 전해져 이내 동의로 돌아왔다. 이미 우리들의 사랑은 작은 불륜도 아니었다. 우리는 헤어져 슬퍼하며 사느니보다는 차라리 마주보고 우는 별이고 싶었다.
  그 밤 -이 우울한 밤의 바단인 그 밤도 비는 이 밤처럼 억수로 퍼부었다. 우리들 두 용감한 패덕자는 그러한 빗속을 뚫고 빠져나왔다. 그러나 미처 고향 동구도 벗어나기 전에 그 애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알지 못할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무서운 저주가 우리와 함께 출발하는 것 같애. 길고 검은 그림자를 한....어쩌면 죽음과도 흡사한 것이....”
  그리고 갑자기 그 애는 내게 매달렸다.
  “그래 우리는 어디로 간다는 거야?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나는 그런 그 애를 격려하듯이 껴안고 가만히 입맞추었다. 비에 젖은 차가운 입술이 자꾸만 가련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나에게도 우리를 기다리는 전혀 미지의 세계와 그러기에 힘들여 헤쳐나가야 할 앞날이 생생한 불가능으로 덮쳐왔다. 고향의 분노와 저주,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갈 추문 같은 것들이 몇 날이고 몇 밤이고의 내 장한 결심을 여지없이 흔들었다. 나는 잠시 망연히 서 있었다. 무너져가는 나를 지탱하기라도 하듯 그 애를 껴안은 채 그저 그 순간이 영원이기를 빌고 싶을 뿐이었다.
  잠시 후 그애가 돌연 비길 데 없이 명료한 동작으로 내 품을 벗어났다.
  “역시 이대로가 좋아. 아무래도 난 돌아가겠어. 괴롭지만 혼자 가 줘. 나는 네 슬픈 사랑의 연인으로... 그것으로 만족하겠어. 잘 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랑했던....”
  울먹이면서도 그 애는 결연히 돌아섰다. 그 결연함이 그대로 어떤 맹렬할 타격이 되어 내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나는 둔중한 고통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때 저쪽에서 그 애의 다급한 발소리에 이어 신음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언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끗희끗한 두 그림자가 합쳐지는 것이 뚜렷이 보였다.
  이어 불행한 자매의 숨죽인 오열이 그대로 내 심장을 찢어왔다.
  “왜 가지 않았니? 바보같이...나는 그저 작별하러 나왔을 뿐인데..”
  나는 달렸다. 이제야말로 그 애로부터, 운명의 오랜 저주로부터 영원히 도망할 때라고 느껴졌다. 그리고...그것이 그 애와의 마지막이었다. 아아, 이 몽롱한 취기만이 아니더라도 나는 좀더 아름답고 조리 있게, 또 더러는 애절한 목소리로 우리의 사랑을 추억할 수 잇을 것이언만. 그 후의 세월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고, 얼마나 많은 명정의 밤이 내 아침을 슬프게 하였던가도. 그리고 지금조차도 늦어 돌아가는 도회의 골목길이 얼마나 쓸쓸한가를.....

  그 애는 울고 있었다. 나도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서둘러 나머지 술을 비웠다. 그 애가 다시 빈 주전자를 들고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 애의 발걸음은 현저하게 불안정했지만 눈물자국은 말끔히 가셔 있었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격정에서 깨나기 위해 무턱대고 주는 술을 마셨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안정을 회복했을 때 몸은 가눌 수 없이 취해 있었다.
  “역시-- 그러나 잘된 일이었어.”
  나는 간신히 힘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비록 나는 이렇게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때 그 애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만해 둬, 운명이 제 갈길을 간건데 뭘.”
  그리고 상냥스레 나를 부축했다.
  “우울한 대로 아름다운 인생의 삽화였어. 이제 그만 돌아가봐. 너의 도시로. 그리고 고향이고, 이곳이고, 다시 오지 않는게 좋을 거야”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밖은 여전히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애의 손에 든 램프에 비친 여원은 온전한 정적 속에 그것 몇 배의 넓이로 확대돼 왔다. 이제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으리란 것이 새로운 숙명처럼 내 머리 속에 자리잡았다. 한달이 지나면 어느 낯선 그러나 선량하고 근면함에 틀림이 없는 농전 출신의 남자가 그 애의 남편으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주인을 위해 이 집을 관리해 나가리란 것도.
  대문께에서 나는 불현듯한 애정으로 여원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나 흔들리는 시야에는 만신창이 기사를 전송하는 마지막 여왕의 처연한 자태와 저 사라진 모든 것의 추억처럼 희미한 빛을 내며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램프만이 아련하게 클로즈업 되어 올 뿐이었다.





























   어둠의 그늘

  구속영장의 발부와 함께 경찰의 예우는 끝나고 말았다. 손목에 와닿는 수갑의 섬뜩한 감촉. 그때부터 나는 그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처리하는 잡범 중의 하나에 불과하였다.
  경찰 보호실에서 구치소로 넘겨지는 동안 나는 그야말로 참담한 심경이었다. 부근의 조용한 암자에서 얼마 안 남은 사시를 위해 마지막 “서브 노트”를 정리하고 있던 것이 바로 한달 전의 일이었다.
  검찰에서의 간단한 절차 후에 도착한 구치소에서 나는 또 한번 섬뜩한 기분을 맛보았다. 경멸과 냉소에 찬 반말로 서류를 꾸미는 교도관 앞에서 내가 몇 가지 소유물을 영치하는 사이에 어두운 감방 쪽에서 날카롭게 고막을 찔러오는 야유가 있었다.
  “멀쩡한 도둑놈이 또 하나 들어오는구나.”
  나는 움찔하며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둠에 익숙하지 않아 사물이 잘 분간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어둠 속에서 불쑥 유령처럼 창백한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야, 이 도둑놈아, 뭘 봐. 피를 싹 뽑아 놓을라!”
  아직 앳된 얼굴이었지만 표정은 정말로 괴기영화에서나 봄 직한 흡혈귀의 그것 같았다. 나는 그 엉뚱한 공포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내가 수감되기로 결정난 방은 그 창백한 얼굴이 떠올랐던 창살 쪽이 아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쪽은 이튿날이면 A교도소로 호송될 기결수들의 감방이었다. 이제 몇 달 또는 원한을 그들은 곧잘 그런 식의 독설로 죄없는 신참에게 풀고 가는 것이었다. 나는 미결 3호실이었다.
  “문지방 밟지 마라.”
  교도관에게 떼밀려 그 방에 들어서는 순간, 입구 근처의 어둠속에서 낮으나 힘실린 목소리가 다시 나를 움찔 놀라게 했다. 나는 펄쩍 뛰듯 문지방에 해당되는 부분을 타넘었다. 등 뒤로 목제문이 무겁게 닫히며 자물쇠 잠그는 소리가 비정하게 들려왔다.
  “이거 왜 이리 어릿거려? 빨리 제자리에 기어 들어가.”
  다시 누군가의 적의에 찬 목소리가 무턱대고 나를 앞으로 내몰았다. 미리 들은 것이 없더라도 내 자리는 금새 알아차릴 만했다. 스무 명 가까운 갖가지 연령층의 남자들이 네 벽에 줄줄이 붙어 있었는데, 유일하게 한 군데 비어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을 내 자리로 지목하고 찾아가던 나는 갑자기 고약한 냄새 때문에 숨을 멈추었다. 소위 “뼁끼”통이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분뇨통이 바로 그 자리 곁에 놓여 있었다.
  나는 40개의 눈초리를 따갑게 의식하며 그곳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막 주위를 둘러보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다짜고짜로 내 가슴팍을 걷어찼다.
  “건방진 새끼. 꿇어 앉아. 이 도둑놈아.”
  숨이 훅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분노보다는 처참한 기분에 눈시울이 화끈해 왔다.
  “형편없는 새끼로군. 교육부장, 이새끼 교육 똑똑히 시켜.”
  비로소 얼굴을 드어보니 삼십대의 험상궂은 사내가 내 곁에 있는 몸집이 자그만 청년에게 거칠게 지시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감방장님.”
  그 청년은 어쩔줄 몰라 하며 내게로 다가왔다. 자그마한 키에 왼눈에 백태가 끼인, 약간 희극적인 얼굴이었다.
  “어찌됐건...우리는 죄를 짓고 여길 왔으니까 꿇어 앉아.”
  두려움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다. 이어 그는 명색 교육이란 것을 시작했다. 이미 여러번 되풀이 한 때문인 듯 자못 익숙하고 정연했다.
  첫번째가 “3대 몰수”였다.
  “우선 안면몰수. 사회에서의 관계는 일체 이곳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저기 감방장님이 계시지만,감방장님 형님이라도 일단 이곳에 오면 최고 쫄다구(졸병)에 지나지 않아. 그 다음이 연령 몰수. 나이가 골백살이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어디까지나 한살박이 신참이다. 하루가 빨라도 고참은 하나님과 동기다. 끝으로 재산 몰수. 적어도 이 노고지리 통 안에서 네것 내것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인사 문제로 들어갔다. 어떤 곳이라도 신참에게는 신참의 예의가 있는 법, 이왕 들어온 이상 감방장 이하 여러 선배들에게 인사가 있어야지 않겠는가라는 거였다. 그는 한번도 직접으로 돈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나는 신통하게도 금새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오천 원권 한 장을 내놓았다.
  교육부장이란 청년은 쓰다달다 말도 없이 그 돈을 받아들고는 곧장 입구의 감방장 쪽으로 갔다.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감방장은 그 곁에 앉은 서른 안팎의 생김새가 희멀쑥한 사람과 무얼 의논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이내 감방장의 퉁명스런 목소리가 내쪽까지 들려왔다.
  “김형, 자꾸 배운 사람, 배운 사람 하는데 너무 그러지 마슈. 제깐놈이 배웠으면 다야? 원칙대로 해야지-”
  그러자 상대편은 또 무어라고 낮은 목소리로 그런 감방장을 설득하는 것 같았다. 내용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감방장도 할 수 없다는 듯 퉁명스레 내뱉았다.
  “가재는 게편이라더니, 쳇. 그럼 김형 좋을대로 해.”
  그러자 곧 김형이라고 불리운 사람의 나직나직한 목소리가 무얼 지시하는 것 같더니 교육부장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감찰부장님께 고맙다고 해. 네 신고는 병종이다.”
  병종신고라는 게 어떤 내용인지를 모르는 나로서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지막히 “땡떴군, 땡떴어”하는 것으로 보아 내게 유리한 결정이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병종신고라는 것은 내게 베풀어진 대단한 호의였다.제일 지독한 것은 갑종이었다. 관록을 내세우는 장군들“전과자들”이나 소위 “야꾸샤” 물을 먹었다는 친구들의 기를 죽이기 위한 그 신고는 차라리 신고라기 보다는 그대로 가혹한 집단 폭행이었다. 헌 이불이나 담요를 뒤집어 씌우고 사정없이 짓밟는 것인데 좁은 공간에서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보면 제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를 가져도 별 수 없었다.
  을종신고는 군대식으로 치면 기합으로 이어진 신고였다. 가장 보편적인 신고로 통상 한 시간쯤 걸리는데, 끝나면 대개 옷이 함빡 젖어 이마 어름이 까지기 마련이었다. 이마가 까지는 것은 원산폭격 자세로 마룻바닥을 몇 바퀴 돌기 때문이었다.
  내가 하게 된 병종신고는 노래로 이어진 가장 온건한 것이었다. 감방장이 돈을 내보내 신고잔치“라야 일인당 건빵 한 봉지에 사과 하나였지만”를 준비시키는 동안 나는 신고용의 노래 교육을 받았다. 첫곳은 “아리랑 신고”로 아리랑에 가사를 바꿔놓은 것이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신고로 들어간다. 니기미 XX랄 것 농사나 짓지, XX노고지리통엔 X빨라고 왔나...”
  이 중에서 “농사나 짓지” 대목은 내 죄명이 병역기피였으므로 “군대나 가지”로 바뀌었다. 강간범인 경우에는 “제꺼나 먹지” 폭행인 경우에는 “빽이나 치지”등이 된다. 
  두 번째 곡은 “빵가야 신고”라는 것으로 얼핏 보아서는 매우 희극적인 신고였다. 두 발을 옆으로 일직선이 되도록 벌리고 두 손으로 양쪽 귀를 잡은 채, 마룻바닥의 좁은 판자를 한 칸씩 밟고 지나며 빵까, 빵까야라는 후렴 속에다 집어넣는 우스꽝스런 가사를 불러대는 것이었다. 즉 열 개쯤 자기가 희망하는 직종을 늘어놓다가 그 끝에 자기의 죄명을 댔다. 절도범인 경우에는 “그래도 도둑놈이 제일 좋더라”하는 식으로. 나이어린 죄수들이 씩씩 웃으며 이 신고를 하는 걸 보면 재미있는 구석도 있지만 사십 넘은 중년 남자가 울상을 지은 채 마지못해 해나가는 걸 보면 그것은 그대로 비극이었다.
  그 다음 항상 빠지지 않는 중요한 곡은 “나까오리 세탁신고”라는 것이었다. 신고자의 연애경력을 음담패설로 바꾸어 노래하는 신고로 원래는 사실을 말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은 듣는 사람들의 강요에 의해 엄청나게 과장되기 일쑤였다.
  신고를 해나가는 동안 나는 쥐어짜다 둔 빨래처럼 후줄근한 기분이 되었다. 비록 육체적인 고통은 면했지만 순간순간 피어오르는 모멸감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데가 있었다. 나중에는 내게 그런 신고를 하게 만든 감찰부장이라는 사람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신고가 끝나고, 그 의식을 위해 특별히 들여온 건빵과 과일을 다 나누자 날이 저물어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첫번째 식사가 나왔다. 곱삶은 보리쌀에 소금에 절인 배추잎이 몇 개 얹힌 한심스런 것이었다. 그걸 보자 또한번 울컥 치미는 슬픔이 있었다. 나는 아예 숟갈도 들지 못하고 그릇을 밀어내고 말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 그걸 말없이 자기 앞으로 끌어갔다.
  밤이 되자 방안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낮동안 굳은 듯이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몸을 풀고 말문을 열었다. 한 구석에는 무슨 좋은 일이 있는 듯 킬킬대는 축들도 있었다. 나도 몸 두기가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나 교육부장이란 청년은 정말로 무슨 천직이기라도 하듯 그놈의 교육이란 걸 틈틈이 계속했다.
  “-6조지기-란 게 있지. 즉, 집구석은 팔아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형사는 패 조지고, 검사는 불러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
  “4통은 공기통, 뼁끼통, 식구통, 번개통...”
  그러나 이미 그런 그의 말은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입감후부터 나를 옥죄어 온 그들의 적의에 찬 관심이 점차 내게서 멀어져가고 있음을 느끼자마자 나는 어느새 나만의 음울한 상념에 젖어 들고 있었다.
  ...대학 친구인 형표가 내가 공부하고 있는 암자에 들른 것은 대략 한 달 전의 일이었다. 무엇엔가에 쫓기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정말로 나는 녀석이 그렇게 큰 사건에 연루돼 있는 줄은 몰랐다. 맡기고 간 독어판 “헤겔” 몇 권과 “크로프토킨”도 어딘가 불온한 냄새가 풍겼지만 나중에 알게 된 것처럼 그렇게 엄중한 금서로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탈이었다. 내게서 하룻밤을 잔 녀석이 황황히 떠나간 지 열흘도 안돼 나는 두 명의 사복형사에게 연행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임의 동행의 형식이었지만, 이내 그것은 긴급 구속으로 대치되고 나는 꽤 심한 신문을 받았다.
  경찰은 나를 형표 녀석의 동조자로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아무런 혐의를 잡지 못하자 이번에는 범인 은닉과 증거인멸 쪽으로 몰아갔다. 역시 이렇다할 근거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 무렵 이미 일년 가까이나 외부와 두절된 상태로 법공부에만 몰두해 왔었다.
  당황한 경찰이 마지막으로 찾아낸 것이 나의 병역기피였다.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나도 사시를 위해 기피 중이었다. 고시생은 기피를 눈감아 준다는 일반의 미신을 확인없이 믿어버린 탓이었다. 실제로 그런 관례는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합격되었을 때의 얘기였다. 또 일차시험 합격만으로 입영연기 를 하는 경우는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나는 그 마지막 카드에 걸려들어 주소지의 경찰서로 이관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형과 친족들이 여러 곳에 손을 써서 처음에는 일단 불구속으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며칠 전 갑작스런 기피자 단속 기간이 설정되면서 나에게도 끝내 구속영장이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원인모를 무력감과 절망에 빠져 암담한 앞날을 생각해 보았다. 만약 실형이라도 받게 된다면, 만약 신원조회에 전과기록이라도 나오게 된다면....문득 해맑은 약혼녀의 얼굴과 근심어린 어머님의 모습이 눈물겹게 떠올랐다. 낙담과 비난에 찬 큰형의 표정.
  거기다가 가장 나를 괴롭힌 것은 내가 겪게 될 앞날의 고초에는 아무런 대의가 없는 것이었다.
  마침내 취침시간이 되고, 채곡채곡 재듯 누운 피의자들의 발치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도 그런 내 음울한 상념은 끝이 없었다. 나는 나를 그 지경으로 밀어넣은 부주의와 경솔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공소시효 만료를 불과 두 달 앞두고 붙들리게 된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면서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새벽 한 시경이나 됐을까. 잠든 피의자들 가운데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멍청하게 앉아 있더니 이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는 아니야, 나는 죽이지 않았어-”
  거의 광란하는 표정으로 악을 쓰고 있는 것은 사십대 초반의 남자였다.
  “아무리 하면, 제 새끼를 무는 범이 어디 있어? 나는 정말로 몰랐어!”
  얕게 잠들었던 몇몇이 짜증스런 얼굴로 일어났다. 바로 곁에 누웠던 동년배의 피의자 하나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기주씨, 기주씨, 정신차리쇼.”
  그러나 기주씨라고 불리는 그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정말 아니야. 정말로 나는 그 애들을 죽이지 않았어...”
  그러자 언제부터 그쪽을 험하게 노려보고 있던 감방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동료들을 함부로 밟고 타넘으려 기주씨 쪽으로 오더니 낮에 내게 그랬듯 사정없이 가슴팍을 걷어찼다. 그리고 기주씨가 끄응 하며 쓰러지자 발뒤꿈치로 그의 등을 다시 찍었다.
  “정신차려, 이새끼야.”
  그 격심한 타격은 앞뒤없는 광란상태에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쓰러졌다 일어난 기주씨는 잠시 표정없는 얼굴로 멍하니 감방장을 올려보더니, 이윽고 정신이 돌아온 듯 갑자기 흑하며 엎드려 흐느끼기 시작했다.
  “옆사람도 생각해야지. 나이 대접을 받으려면 나이값을 해.”
  감방장이 찬 바람 도는 얼굴로 냉랭히 쏘아부쳤다. 잠시 후 기주씨의 흐느낌 소리가 잦아지자 이내 실내는 조용해졌다.선잠에서 깨어난 축들은 다시 투덜거리며 잠을 청했고,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왔던 당직 교도관도 별 간섭없이 돌아갔다. 여러 가지로 보아 처음 있는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기주씨란 사람이 몹시 흥미로왔으나, 그의 자리가 떨어져 있고 또 내 곁의 사람들은 곧 잠들어 버려 내막을 알아볼 길이 없었다.

  새벽녘에야 눈을 붙인 내가 다시 깨어난 것은 이튿날 아침 여섯 시였다. 벌써 구월로 접어들어 아직 새벽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감방마다 소란스럽게 수런거리고 있었다.
  침구를 정돈한 그들의 첫 일과는 단체 용변이었다. 비록 감방마다 변기통이 있었지만 대변은 관례로 그 시각 변소로 가서 보게 돼 있었다. 낮 시간에 변기통을 이용하는 것은 배탈을 만나든가 하는 예외적인 경우뿐이었다. 그러나 그 경우에는 하루종일 실내에 가득한 고약한 냄새 때문에 톡톡히 대가를 치르어야 했다. 심지어는 몰매를 맞는 경우까지 있었다. 따라서 배탈 같은 때에도 대부분은 교도관에게 사정해서 원칙으로 낮에는 금지된 화장실을 개인적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그밖에도 아침의 단체용변 시간은 모든 수인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 첫째는 무엇보다 잠시라도 감방을 벗어난다는 해방감이었다. 비록 감방장의인솔 아래 그것도 교도관들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속에, 불과 십 미터도 안되는 그 건물 끝의 화장실로 가는 것이었지만 그 신선한 해방감이 주는 기쁨은 정말로 각별난 데가 있었다.
  그 다음은 담배였다. 원래 재소중에는 흡연이 일체 금지돼 있지만 그때 그 구치소에서는 미결수에 한해 화장실에서만은 눈감아주었다.
  담배의 반입 루트는 대개 총감방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버스운전사 출신인 삼십대 중반의 건장한 체격이었는데 죄질이 경미해 감방 밖에서 교도관들의 보조수 노릇을 했다. 그의 담배는 턱없이 비싸 당시 고급에 속하던 신탄진은 한 개비가 꼭 한갑 값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값을 따지려고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 기막힌 맛에다가 실제로 한 개비면 열 사람은 넉넉히 피울 수 있었다. 대부분 영양실조와 비슷한 상태에서 그와 같은 시각의 빈 속에, 그것도 꼬박 24시간 만에 한모금씩 빨아들이고 나면 잠시나마그 어떤 독주를 마셨을 때보다 더 강렬한 명정 상태에 빠지는 것이었다.
  비록 그 엄청난 수익이 고스란히 혼자에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총감방장에게는 그 외에도 몇 가지 비슷한 음성적인 수입이 있었다. 거기다 복역도 반자유 상태여서, 그 전의 어떤 총감방장은 선고유예로 나가게 되자 실형을 받을 길은 없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밖에 경험 못한 일반인으로는 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그 단체용변이 주는 또하나의 정신적인 이익은 어떤 성취감이었다.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일을 무사히 마침으로써 생기는 그 느낌은 피의자들에게 그렇게 시작된 하루가 무엇이든 잘 돼나가리라는 이상한 확신까지 가지게 했다.
  그리하여 그 한차례의 중요한 행사가 끝나면 잠시 지리한 반성의 시간이었다. 단정하게 꿇어 앉아 여덟시에 아침밥이 들어올 때까지 자기가 저지른 죄를 뉘우치게 듸어 있었다. 간밤에 광란하던 기주씨가 검찰에서 받고 있는 끔찍한 협의를 내가 언뜻득게 된 것은 바로 그 반성의 시간이었다.
  김기주, 나이는 42세, 양복점 주인.
  그의 전반생은 거의 입지전에 가까운 것이었다. 집이 가난한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지금은 그가 주인이 되어 있는 그 양복점에 잔심부름꾼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성실하고 머리도 영리한 그는 곧 거기서 양복일을 배우기 시작해 나이 스물도 되기 전에 일류 양복공이 되었다. 그러나 여느 영복공들과는 달리 대도시로 진출해도 될 충분한 기술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그는 양복점에 남아 그걸 읍내에서 제일가는 양복점으로 키웠다. 늙은 주인이 그를 신뢰하고 사랑하게 된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그 양복점 주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위로 아들 둘을 차례로 잃어버리는 바람에 주인 내외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기주씨는 무슨 옛날 얘기에서처럼 그 딸과 결혼하고 양복점을 물려 받았다. 주인 딸은 여고까지 나왔는데도 긔의 성실한 인품과 준수한 용모에 반해 부모의 권유를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그 뒤 십년간 일견 행복한 부부로서 살았다. 양복점도 날로 번창하고 아이들도 삼남매나 낳았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의 기주씨를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만들고 있는 여자가 나타났다. 바닷가 낚시터에서 만난 과부로 기주씨는 곧 앞뒤없이 빠져들었다. 그는 곧 그녀와 딴살림을 차리고 본처에게는 이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처는 아이들 삼남매를 이유로 굳게 이혼을 거부했다.
  그 불행한 사건은 그 무렵에 일어났다. 바로 지난 팔월 어느 더운 오후 기주씨는 마침 방학 중인 삼남매를 데리고 바다낚시를 나갔다. 해수욕을 하고 있는 아이들 곁에서 그는 낚시를 던지고 있었는데 돌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느닷없는 삼각파도에 아이들이 한덩어리가 된 채 휩쓸리고 만 것이다.
  그 일을 알고 기주씨가 허겁지겁 아이들이 떠 있던 곳으로 헤엄쳐 갔을 때는 이미 빈 바다뿐이었다. 증인이라고는 단 한 사람 근처의 낚싯군이 있었는데 그도 모든 것을 다 보지는 못했다. 그가 본것은 겨우 빈 바다에서 허겁지겁 헤어나온 기주씨가 창백한 얼굴로 큰일났다며 뛰어가는 것뿐이었다.
  처음 그 일은 단순한 익사사고로 처리됐다. 그러나 의혹을 느낀 처족의 고발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기주씨는 곧 구속됐다. 그의 이중생활이 드러나고, 이혼을 요구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 날 가기 싫어하는 막내딸까지 억지로 데려간 것과, 기주씨가 택한 장소가 인적이 뜸한 바닷가였다는 것도 불리했다. 거기다가 기주씨가 문제의 여인에게 며칠간 참아달라고 말한 것이 그의 살인혐의를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껏 검찰이 가지고 있는 것은 상황 증거와 강요로 얻어낸 몇 개의 단편적인 자백뿐이었다. 그것이 기주씨를 관할인 지방법원 합의부로 송치하지 못하고 단독심인 지원구치소에 묶어 놓은 이유였다.
  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교육부장이란 그 청년이었는데, 우리가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도 기주씨는 내내 침울하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천정만 올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외양에는 어딘가 그가 받고 있는 끔찍한 혐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약함고 섬세함이 있었다.
  전날처럼 곱삶은 보리에 소금에 절인 야채잎이 얹힌 아침식사가 끝나자 다시 지리한 반성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면회가 시작될 때까지의 두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엄격한 통제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피의자들 나름대로 무료함을 때우고 있었다. 주로 둘씩 셋씩 가까이 앉은 사람들끼리의 잡담이었지만 개중에는 장기를 두는 패들도 있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지만 그들의 장기는 좀 특이했다. 장기판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마룻바닥에 쇠젓가락이나 유리조각 같은 것으로 새겨둔 것이었다. 말은 건빵봉지로 접은 것인데, 그 크기나 접는 방법에 따라 역할이 정해졌다. 즉 제법 손바닥 반만하게 접은 딱지 형태가 궁, 엄지손톱만하게 접은 것은 졸, 마름모꼴로 접은 것은 포, 장방형은 상 -대개 그런 식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헷갈리는 법이 없이 잘도 구별했다. 오락기구가 일체 금지된 상황에서 만들어진 고안과 단련 탓이리라.
  잡담을 하는 축은 대개 먹는 이야기와 여자이야기가 중심이었다. 그 중에서 감방장은 가장 신명나게 떠들고 있었다.
  “속살이 꼭 분결 같았지... 어찌나 부드럽고 연한지 만지면 그대로 손끝에 뚝둑 묻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어. 거기다가 한번 열이 올라 밑에서 설쳐대면 이건 그저 정신이 아뜩아뜩할판이지. 그렇지만 난들 곧 죽을 수 있어? 한번은 총검술 16개 동작을 신나게 몇 번하고 나니 그만 축 늘어져 버렸더군. 까무라쳐 버린 거야...”
  그러나 벌써 몇 번 되풀이한 것인 듯 듣도 있는 사람들은 이야기 하고 있는 그만큼 신명을 내고 있지 않았다. 거기다가 교육부장의 귀띔에 의하면 감방장은 바로 그 여자의 고발로 구속돼 혼인빙자 간음과 사기의 혐의를 받고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가까운 항구에서 머구리질을 했다는 그는 방금 말한 그 여자의 주막에 밥을 부치고 있었는데, 몸도 건드리고 돈푼이나 뜯어쓴 모양이었다.
  “서른 여덟이라지만 얼굴도 그만하면 어정쩡한 선창가 매미는 저리가야. 나도 명색은 총각인데 뭣때매 헌계집하고 살라했겠어? 그것도 자식새끼까지 하나 달고 있는 년을. 그런데 -그 썩어빠질 년이 왜 안오지? 말 한마디만 잘 해주면 지금 당장이라도 나갈 건데 말야...”
  그가 감방장이 되도록까지 재판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증인들외에도 당사자인 그녀가 두 번이나 출두지시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별이 셋(전과 3범)이라는 그의 경력이나 전형적인 범죄형으로 생긴 모습과 포악한 성격으로 미루어 봐 설령 그 여자가 온다고 해도 모든 것이 그의 말대로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들과 동료로 지내야 할 것이라면 그들의 인적사항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나는 사람 좋아뵈는 교육부장에게 하나씩 차례로 물어보았다.
  그 결과 기주씨, 감방장, 그리고 공무집행 방해로 들어온 교육부장과 나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의 인적사항은 이러했다.

  김광하 34세, 전력미상. 공무원에 대한 증회.
  엄종섭 25세, 예비군 훈련 기피.
  박덕룡 26세, 운전사. 업무상 과실 치사 협의.
  이병훈 30세, J신문 지국장. 기자사칭 공갈 혐의.
  김영국 23세, 김영호 21세, 형제, 어부, 폭력 혐의.
  박화영 43세, 농촌의 막일꾼. 절도 혐의. 절도 전과 2범.
  배창진 19세, 농부. 강간 치상혐의.
  박삼수 19세, 배창진과 동일.
  김상욱 51세, 어물중개상. 사기 혐의.
  이규택 42세, 상습 도박 혐의.
  강기삼 39세, 이규택과 동일.
  유상태 37세, 이규택과 동일.

  열시가 되자 기다리던 면회가 시작됐다. 마침 면회실이 복도 하나 건너 노천이어서 내가 있는 감방 창살에서 일부를 볼 수 있었다.
  내가 본 면회인들의 공통된 특징은 눈물과 허세였다. 눈물은 주로 여자들의 것으로 그녀들은 노소를 불문하고 한번쯤은 반드시 훌쩍거렸다. 한편 남자들은 한결같이 이 나라 사법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듯 거품을 뿜었다. 열한시쯤 면회를 온 어머님과 약혼녀는 약간의 시차로 둘 다 눈물을 보였고, 형님은 “검사가...”“검찰서기가...”어쩌고 하면서 내 조속한 석방을 장담하고 돌아갔다.
  “6조지기” 중 “형사는 패서 조진다”는 것을 경찰에서 이미 약간은 보고온 내가 그 두번째를 실감하게 된 것도 역시 면회실을 통해서였다. 정말로 “죄수는 먹어 조졌다.” 나를 비롯해서 삼분지일 가까운 사람들이 면회를 나가 배불리 먹고 돌아왔고, 면회인들이 감방 안에 넣어준 것도 일인당 건빵 한 봉에 빵과 떡도 대여섯 개 이상 돌아갔지만 점심 시간이 돼서 그 거친 관식을 남긴 것은 나와 기주씨 둘뿐이었다. 육체적인 활동이 거의 제한된 상태에서 그 엄청난 식욕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러면서도 그들의 화제는 거의가 먹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모든 욕망이 식욕으로만 쏠려 버린 것 같은 그들을 보며 나는 그저 아연할 뿐이었다.

  오후가 되어 면회인이 좀 뜸해지고 다시 지리한 반성시간이 되었을 때 김광하씨가 나를 불렀다. 처음부터 내게 까닭없이 호의를 보이던 감찰부장이란 사람이었다. 자리는 감방장 다음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감방 안의 정신적인 지배자인 것 같았다. 그의 말 한마디로 엄격하기 짝이 없는 감방 안의 자리 순서가 무시되고 그 곁에 내 자리가 만들어졌다.
  “말동무가 생겨서 반갑소. 이형에 대해 좀 들은 게 있지. 그래 하루 지내니 소감이 어떻소?”
  입감 후 처음 듣는 점잖은 말씨였다.
  나는 까닭없이 위축된 채 더듬거렸다.
  “뭐.....아직은.... 별로....”
  “그럴 거요. 더군다나 이형이 한달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하고 있던 공부를 생각하면.”
  그 말로 미뤄 보아 그는 나에 대해 꽤 상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표정에는 위로와 연민의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위축될 건 없어요. 이것도 결국은 사회의 일각이니까.”
  “....”
  “내 생각에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소. 하나는 죄인이고 하나는 죄수요. 합당한 우리말이 없어 내가 편의상 붙인 말인데-영어로 말하면 시너"SINNER"와 크리미널"CRIMINAL"쯤 될까. 어쨌든 죄인이란 그 행위를 들으면 누구든지 그를 비난할 그런 짓을 한 사람이고, 죄수는 언뜻 그 행위로서는 선악을 구분할 수 없지만 그걸 금지한 법규범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이오. 그렇지, 이형은 법공부를 했으니까 죄인을 자연범으로 죄수를 법정범으로 생각하면 대개 비슷하겠소.” 그런 곳에서 듣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였다. 나는 약간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그 죄수, 즉 법정범이오. 그들에 대해서 사회나 법은 비난할 수 있을지라도 개별적인 인간으로는 아무도 그를 비난할 수 없소. 거기다가 죄인이라고 모두가 그대로 비난할 수 있는 근거도 또한 없소. 모든 행위는 일견 범죄의 외형을 갖추었더라도 위법성이 없거나 책임이 면제될 여지를 갖추고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위법성조각 이나 책임조각이 얼마나 완벽하게 적용되느냐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별로 충분한 것 같지 않소. 따라서 여기 이십여 명의 사람들 중에서 진정한 의미의 죄인은 불과 몇몇일 거요. 오히려 부끄러워 해야 하는 쪽은 우리를 이곳에 이렇게 격리시키거나 처벌해야만이 자기들의 이익과 평안을 지킬 수 있는 저 바깥의 사람들이오....”
  좀 억지스런 데가 있는 논리였지만 독특하고 생생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그가 받고 있는 뇌물 공여의 혐의를 떠올리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를 추측해 보았다. 그러나 그는 내 그런 의문에는 상관 않고 얘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이해못할 것들은 이들 자신의 의식이오. 아마도 사람들은 이런 곳에 수용되기만 하면 갑작스런 도덕감의 확대를 경험 하는 것 같소. 예를 들어 예비군 훈련 기피 같은 법정범으로 붙들려 온 사람도 막판에는 이상하게 도덕적인 죄의식에 사로잡혀 나가는 것이오. 요컨대 죄수로 들어왔다가 죄인이 되어 나가는 셈이지.”
  “.....”
  “내가 이형에게 이 얘기를 하는 것은 행여 이형도 위축될까 해서요. 국가와 법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리고 또 어떤 결말이 당신을 기다리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당당하게 가지시오. 지난 다섯달 동안 사람들의 원인 모를 나약함과 비굴에 정말 신물이 났소.”
  그리고 그는 옷깃에서 납짝하게 눌린 담배 한 개비를 꺼내서, 우리들의 대화에는 끼고 싶지만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안달하고 있는 감방장에게 건냈다.
  “하형, 불 좀 불이슈.”
  그 말을 들은 감방장은 그제서야 자기가 참여하게 된 것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역시 옷깃에서 이상한 도구를 꺼냈다. 짤막한 칫솔자루에 라이터 돌을 박아 넣은 것과 조그만 유리조각이었다. 그 다음 그는 이불에서 빼낸 것 같은 콩알만한 솜뭉치를 부풀리더니 한쪽 끝에 침을 발라 벽에 고정시키고 그 아래에서 유리조각으로 칫솔자루에 박힌 라이터 돌을 긁어댔다. 얼마 안돼 솜뭉치에 발갛게 불이 일었다. 참으로 기묘한 라이터였다. 성냥을 소지하는 것이 금지된 감방 안에서 그 이상 간편한 채화방식도 없을 것 같았다. 라이터 돌은 부피가 작아 들여오기가 쉬운 까닭이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감방장은 연기 한가닥 뿜지 않고 서너 모금 빨더니 김광하씨에게 넘겼다. 김광하씨도 똑같은 방법으로 몇 모금 빨고는 내게 넘겼다. 나는 두어 시간 전 면회실에서 거푸 세대나 피우고 들어왔지만 담배맛은 역시 각별했다. 그런 나를 보며 김광하씨가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랜만에 부담없이 말할 상대를 만나다 보니 나만 떠들게 된 모양이오. 앞으로 좋은 얘기 자주 나눕시다. 오늘은 그만 자리로 돌아가시오. 여기 관례도 관례니까. 곧 이쪽에 자리를 마련해 보겠소. 금요일엔 공판이 있고, 어쨌든 몇몇은 여길 뜰 테니 말이요.”
  내가 냄새나는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못내 안됐다는 어조였다. 자리로 돌아온 후 또하나 감탄한 일은 내가 몇 모금 빨고 건넨 담배가 열여섯 번째인 내 앞자리까지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늦게 우리 감방에는 약간의 인원 변동이 있었다.
  시종 말 한마디 없이 우울하게 웅크리고 앉아 있던 김상욱이란 오십대의 어물 중개상이 선고유예로 보름만에 풀려나갔다. 단언 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감방 안의 단편적인 의견을 종합해 보면 그가 치른 보름의 옥고는 순전히 구속적부심사의 폐지에 따른 희생 같았다. 확실히 그는 어느 정도의 사술을 사용해 거액을 빌었고, 또 약속한 기일내에 갚지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변제능력과 의사가 있는 이상 형법의 사기죄에 문의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잘못된 경찰판단에 의해 한번 영장이 떨어지자 그를 기다리는 것은 복잡한 검찰신문 과정뿐이었다. 구속적부심의 폐지로 자신의 정당함을 객관적인 법원에 소망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가장의 구속에 놀란 그의 가족들은 닥치는 대로 재산을 팔아 민사상의 채권자에 불과한 피해자에게 황급히 변제를 했다. 그리고 검찰은 신문 과정에서 다소 미심쩍은 곳을 발견했지만 이미 피해자에게 변상까지 했다는 걸 알고는 미적지근하게 기소유예로 처리해 버렸다. 결국 그 영악한 채권자는 형사소송법의 허점과 채무자 가족의 무지를 이용해서 자기의 채권을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확보한 셈이었다.
  이 억울한 김상욱씨 대신 들어온 사람은 도벌 혐의를 받고 넘어온 권기진이란 농부였다. 낡고 때묻은 한복차림에 수염이 텁수룩한 중년인 그는 입감 순간부터 별스러운 데가 있었다.
  어딘가 굼뜨고 미련스러워 뵈는 그가 앉을 생각도 없이 감방 한가운데 엉거주춤 서 있는 걸 보고 감방장이 또 예의 그 발길질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별로 급소를 챈 것 같지 않았는데도 그는 커다란 비명과 함께 나뒹굴었다. 감방 안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성이 난 감방장은 그런 그의 옆구리며 등허리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엄살인 경우 대개 그 정도면 일어나 몸을 도사리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지를 힘없이 늘어뜨리며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었다.
  그제서야 주위의 사람들이 놀라 일어서고 김광하씨가 달려왔다. 감방장도 약간 당황한 듯 발길질을 멈추었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권기진씨는 그야말로 시골사람 행짜부리는 식으로 감방장에게 퍼댔다. 내가 언제 까무러쳤냐는 듯 거칠고 높은 목소리였다.
  “사람을 패도 정도가 있지. 그리 무작스럽게 패는 법이 어디있능교? 내가 죄지었으면 법에 죄졌제, 당신한테 죄졌능교? 응, 시상에 그따위 법이 어딨능교?” 하다가는 또 느닷없이 밖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간수님요, 간수님요, 여(여기) 사람 좀 살리주소. 가만 났뚜믄 사람하나 넉넉히 때려쥑이겠구마....”
  그리고는 다시 생각났다는 듯 맞은 데를 어루만지며 숨을 씩씩 거렸다. 다시 화가 나서 달려드는 감방장을 김광하씨가 말리고 있을때 교도관이 왔다. 그러나 교도관은 대수롭잖다는 투로 비죽이 감방 안을 들여다보며 건성으로 물었다.
  “뭣들 하는 거야?”
  감방장이 금새 아첨하는 얼굴로 굽실댔다.
  “교육 좀 합니다. 형님. 이 맨 촌놈이 어찌나 흉물스러운지...”
  그러자 다시 권이 게거품을 물었다.
  “뭐 교육이라꼬? 그라고 니는 애비한테도 놈자 쓰나? 간수님요. 내 갈빗대 뿌라졌구마 날 병원에 보내주소.”
  교도관이 약간 신경질적인 표정을 했다.
  “시끄러워, 별로 잘한 짓도 없으면서, 그리고 야, 감방장 너도 조심해. 한번만 더 시끄럽게 굴면 3호실은 단체기합이야.”
  그렇게 말하는 교도관의 나이는 불과 스물 대여섯이나 됐을까. 상대는 둘 다 최소한 그보다 십년은 위였는데도 서슴없이 반말이고 욕질이었다.
  어쨌든 감방 안의 소란은 곧 수습되었다. 그러나 권기진씨는 끝내 일어나지 않고 길게 누워 간간 생각난 듯 신음을 낼 뿐이었다. 감방장이 한번 더 권위를 내세우려고 그를 건드려 보았지만 결과는 전과 마찬가지였다. 교육도 신고도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남은 굴신을 못하겠는데 교육이 뭐꼬? 고마 절로"저리로" 가소.”
  교육부장이 그에게 다가가 어쩌고 저쩌고 수작을 붙이자 그가 퉁명스레 쏘아부친 말이었다. 결국 그는 발길로 몇 번 챈 것을 이용해 가장 괴롭다는 감방에서의 첫날을 편안히 누워서 보낼 수 있었다.
  이튿날 면회를 온 형은 상당히 기쁜 얼굴로 검사가 나와 대학 동문이라는 점을 알려 주었다.
  “어쨌든 선배님 한번 살려달라고 매달려라. 검찰서기는 마침 친구의 집안 형이어서 따로 선을 대어놨다. 잘하면 기소유예 같은 것으로 이번 주 안으로 나갈 수 있을 거다.”
  그러나 막상 내가 검찰조서를 받기 위해 불려가서 보니 상황은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검사는 얼굴도 대하지 못하고 사십대의 성깔 마른 서기에게 한 시간이 넘도록 시달려야 했다.
  “왜 기피했어?”
  “공부 좀 하다가...그만...”
  “공부? 흥, 무슨 공부를 그리 요란스리 했어?”
  그런 그에게는 형이 굳게 믿고 있는 호의는 털끝만큼도 찾아 볼수 없었다. 나는 갑자기 당황하고 위축돼 더듬거렸다.
  “고시를 ...사법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럼 누구보다 법을 더 잘 알고 있을 놈이 기피를 해?”
  “괜찮다는 말만 믿고...."법률의 착오"였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엉뚱한 법학 용어를 쓰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돌연 얼굴이 새빨개질 만큼 화를 냈다.
  “법률의 착오? 흥, 건방진 새끼. 너 법률의 착오가 뭔지 제대로 알고나 있어? 어디 한번 말해봐. 빨리.”
  더욱 당황하고 무안해서 나는 아는 대로 더듬거렸다. 조리있는 설명이 될 리가 없었다. 사뭇 험악한 얼굴로 듣고 있던 그가 싸늘한 조소와 함께 말했다.
  “정말 웃기고 있네. 그래 그게 네놈의 명백한 입영기피의 변명이 돼? 같잖은 새끼. 기껏 그 정도를 고시준비했다고 내밀어? 야, 임마 너 같은 놈이 고시가 된다면 대한민국에 검판사 아닌 놈 하나도 없겠다.”
  마치 입영기피보다 내가 고시준비를 한 것이 더 큰 죄라는 투였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성을 내는지 까닭도 모르면서 한시간에 가까운 야유와 모멸감을 감내해야 했다. 도중 몇 번이나 그의 차고 날카로운 낯짝에다 침을 뱉아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비굴한 계산이 간신히 그걸 억제해 주었다. 어쨌든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그쪽이고 따라서 만약 그가 적극적인 악의로 나를 해치려 든다면 어떤 불리를 입을는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나온 계산이었다.
  내가 참담하다 못해 거의 울고 싶은 기분으로 돌아가니 다시 감방 안에는 약간의 변동이 었었다. 폭력혐의로 들어온 김영국, 김영호 형제가 불기소로 풀려나가고 대신 사람을 친 트럭 운전사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김광하씨는 그 변동을 이용해 자기 곁에 내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가 내가 돌아가자 거기에 앉혔다. 그리고 검찰의 신문을 대해 물었다.
  나는 먼저 그 검찰서기가 그렇게도 성을 낸 이유를 물어보았다.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나와 똑같은실수를 했군...”
  김광하씨는 한동안 쿡쿡거리며 웃더니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십대 전후의 검찰서기나 법원서기 중에는 고시에 깊은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소. 서기보로 들어와 서기가 됐건 , 고시를 하다하다 안돼 서기로 들어왔건 적어도 열번 이상의 낙방 경력이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오. 그게 좋다는 걸 누구보다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위치에서 열렬히 구했으나 끝내 얻지 못한 자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겠소? 거기다가 오랜 세월 실무를 경험해 오는 동안 그들에게는 은연 중 자신의 법지식에 대한 비뚤어진 확신이 생기게 마련이오. 따라서 그들을 화나게 하는 데는 서투른 법지식을 둘러대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소. 이형이 바로 그걸 한 거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어느 정도 이해할 것 같았다.
  “이제 이쪽에는 더 이상 기대하지 마시오. 당신 형님더러 다른데나 제대로 힘써 보라고 하시오.”
  “그래도, 검사는...”
  “글쎄, 다 소용없어요. 검사란 시시한 기피자 하나 놓고 옴냐곰냐 따지고 있을 한가한 자리가 아니오. 물론 한번 대면은 하겠지. 그러나 그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있는 상태요.”
  그러더니 의기소침해진 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듯 화제를 바꾸었다.
  “오늘 김군 형제가 나갔어요. 이형은 그들의 죄명을 알고 있소?”
  “폭력이라고 들었읍니다만...”
  나는 여전 딴 생각에 잠긴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물어왔다.
  “그 이상 다른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소?”
  “별로.”
  “사물의 외관과 실질이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소. 더구나 거기에 인간의 작위가 개입되면 더욱.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곳은 이 사회의 어둠이요.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어둠은 또 하나의 그늘을 가지고 있소. 이형도 그 어둠의 그늘에 유의해야 할 거요. 거기서 어둠이 어둠일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을 수 있으니까.”
  “네.”
  “그들 형제의 죄명은 무력과 빈곤이었소.”
  “무력과 빈곤?”
  “사건의 진상을 얘기해 드리지. 그드른 평범한 어부였소. 사건이 나던 날도 그들은 연안에 쳐 둔 그물을 걷기 위해 배를 끌어내고 있었소. 그런데 갑자기 부두에 검은 승용차가 한 대 서더니 몇 사람이 내려 그 배를 전세 내자고 했소. 선유를 하기 위한 것인데 할 일이 바쁜 형제는 그걸 거절했소. 그러자 그쪽 사람들은 반 강압적으로 나오고 결국은 시비로 번졌소. 하지만 생각해 보쇼. 설령 우직하고 거친 그 형제가 시비를 먼저 걸었다한들 젊은 운전수를 포함한 그 다섯 명과 그들 형제의 격투양상이 어떠했겠는가를.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은 그들이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그곳 지서였소. 상대편은 대부분 나이 마흔이 넘고 지체있는 분들이어서 가볍게 혐의를 벗고 이미 떠난 후였소. 이주일 진단서까지 남겨놓고. 짐작컨대 난투 중에 긁히기라도 했던 모양이오. 그러나 만약 그 형제가 진단서를 끊을 정신과 여유가 있었다면 십주는 넘었을 거요. 처음 그들이 넘겨졌을 때는 거의 피투성이었으니까.”
  “......”
  “다행히 물은 제길을 찾았소. 그리고 그것이 법을 공부한 우리에겐 늦으나마 큰 위로요.”
  도대체 이 사내의 정체는 무었일까. 뒤이은 그의 얘기도 그의 법에 대한 깊숙한 통찰을 짐착케 하는 것이었다.
  “폭력의 엄단에도 문제가 많아요. 더구나 형법의 폭행죄를 사문화해 가면서 특별법으로 다루는 것은. 사회질서를 파괴하거나 대단한 피해가 잇는 것도 아닌 젊은이들의 단순한 사투에까지 법이 눈을 부라리고 달려들 필요는 없다고 봐요. 그것은 젊은이들의 정당한 감정 발산을 외곡시키고 필요 이상 법에 의지하다는 것은 간교해진다는 뜻도 되오. 새파난 놈들이 저희끼리 투닥거려놓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꼴이니, 옥도정기도 필요없을 만한 찰과상으로 한두주일의 진단서를 끊어주는 의사나, 또 그걸 근거로 중죄인 다루듯하는 재판하는 양반들이나 마찬가지로 한심스럽지....”
  그러다가 그는 문득 내 얼굴에 강하게 떠올라 있는 그에 관한 이문을 읽기라도 한 듯 서둘러 이야기를 맺었다.
  “그들 형제의 진상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만 얘기가 빗나갔소. 여기 이사람들도 반드시 그들이 외형적으로 받고 있는 혐의와 그 실제가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는 게 그만...”
  그리고 그는 깊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그 침묵이 어찌나 견고한지 나는 끝내 궁금한 그의 전력을 묻지 못하고 말았다.

  이튿날 금요일은 공판일이었다.
  내가 그것을 안 것은 그 새벽에 벌어진 “문지방 시비” 때문이었다.
  “야, 이 개새끼야, 문지방을 왜 밟어?”
  아직 잠이 덜 깬 채 변소행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철썩 따귀치는 소리와 함께 들린 그 고함에 퍼뜩 정신이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평소 온순하고 말수 적던 교육부장이란 청년이 새파랗게 날이 선 눈길로 기자 행세를 했다는, 신문 지국장의 희멀쑥한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새끼 누굴 징역 뱃띠미 -포식- 시킬려구 이래?”
  이어 감방장의 장기인 발길질.
  “정말 정신 나간 사람이구먼. 오늘이 무슨 날인데.”
  절도 혐의인 박화영씨가 투덜거리며 끼어들었다. 그 불행한 사이비 언론인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그 날벼락을 당하고만 있었다.
  “내가 미처 일러주지 않았군. 오늘은 공판일이오. 크게는 생명이 적게는 자유와 재산이 낮에 있을 공판의 결과에 달려 있기 때문에 오늘은 미신이 많아요. 첫째 문지방을 밟지 말 것. 둘째 머리를 굵지 말 것. 그리고-”
  의아롭게 그 소동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나직한 목소리로 설명하던 김광하씨가 갑자기 내 귓가에 입을 대고 소근거렸다.
  “원숭이란 말조차 입에 담지 말 것.”
  그리고 다시 목소리를 높여 계속했다.
  “공판에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꿈도 중요해요. 가장 길몽은 소꿈이요. 소는 조상이라고 해서 반드시 석방된다고 믿고 있소. 물고기 꿈은 무조건 나빠요. 보통 여기 들어오는 것을 -물에 빠진다-라고 표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소. 그밖에, 이유는 모르지만 해, 구름, 별 따위 하늘에 있는 것들의 꿈도 흉몽으로 치고 있소.”
  그제서야 나는 처음 수감되는 날을 제외하고는 관대하게 보아주는 문지방 밟는 것이 그렇게도 엄중하게 문책당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말이 문지방이지 실제로서 특별하게 표시나는 것도 아닌 것인데도.
  그러고 보니 그날 공판장에 나가기로 되어 있는 다섯 사람은 거의가 신경질적인 상태였다. 그들이 먹을 것을 남기는 것도 그날 아침에 처음 보았다. 그들 대문에 나머지 사람들마저 침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동안 형성된 어떤 동료 의식탓일까, 남은 사람들도 공판정에 나간 사람들 못지않게 초조하고 그 결과가 궁금하였다.
  아홉시경 공판장으로 나갔던 다섯 중 셋은 두어 시간 후에 돌아왔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단적인 표현이 감방장의 발길질이었다. 그는 감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멋진 돌려차기로 가짜 기자의 등허리를 찍었다.
  “개놈의 새끼. 너 때문에 또 연기야.”
  그 뒤를 박화영씨가 받았다.
  “사람이 저래 방정맞아 놓으니까, 저 멀쩡한 허우대에 좋은 학식을 가지고 이런 데서 끝장을 보지.”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 교육부장은 그저 노려보기만 했지만 그 역시도 자기으 재판이 연기된 것은 온전히 그 가짜 기자가 문지방을 밟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았다.
  한번 연기된다는 것은 적어도 이주일 이상 심리가 연기된다는 뜻이었다. 피의자들이 연기를 싫어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기간만큼 자기들의 불확실한 상태가 길어져 그것이 가져오는 불안과 초조를 더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선고 전의 구금 일수는 형집행 일수에 가산되지만 기결수로서의 하루와 미결수로서의 하루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거기다가 재산형이나 각종의 유예가 선고될 경우 그들이 미결감에서 고생한 것은 그대로 헛고생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무죄가 되는 경우에는 그 억울함이 훨씬 커졌다. 법이 정하고 있는 보상은 대부분의 경우 한심할 정도로 적은 액수였다.
  만약 그 이상을 받아내려면 국가를 상대로 하는 새로운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한번 불에 아이가 불을 무서워 하듯 한번 재판과장, 특히 형사재판의 경우를 겪은 사람이면 법원 근처에도 얼씬하기 싫은 것이 상례였다.
  피의자들로 보아서는 어쨌든 재판기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았다.
  나머지 둘은 나중에 선고를 받고 들어왔다. 어린아이를 치어 불구를 만든 버스 운전사는 징역 팔개월을, 술집주인의 이빨을 네 개나 못쓰게 만들어 논 시골 건달은 십개월을 각각 선고받았는데 자신들은 그 형량에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들도 어김없이 그 애매한 일간지 지국장에게 분풀이를 했다.
  “치워, 이 씨팔눔의 발모가지.”
  시골 건달은 자기 죄명에 어울리게 그의 다리를 걷어찼고,
  “기름밥 먹은 지 십년에 징역살기는 또 처음이네.”하며 사고 운전사는 거칠게 그를 흘겼다. 그런 분위기는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도 옮아갔다.
  “뭘봐, 눈깔을 확 뽑아 놓을라.”
  단기 일년 이상인 죄명 대문에 오후 늦게 A지방 합의부로 넘겨지게된 강간범 중 배창진이란 소년이 두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해가지고 그 운수 나쁜 동료의 두 눈을 겨루며 내뱉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당연한 이송까지도 그가 문지방을 밟은 탓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감방 안의 분위기에는 무심한 채 줄곧 그 두 명의 나이어린 강간범들을 연민에 찬 눈으로 보고 있던 김광하씨가 그들이 감방을 나서는 것을 모벼 문득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불행한 시대의 불행한 아이들이오......”
  그리고는 이어 그의 독특한 해설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영어 참고서 체제가 대부분 명사를 제일 앞에 내놓아서 영어 실력이 신통찮은 친구도 명사에만은 정통하듯 이형도 법을 공부한 이상 강간죄에 대해서는 정통할 거요, 형법각론을 사면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재미있게 보는 것이 이 부분이니까. 그런데 실제로는 참 문제가 많은 조항이요. 기수시기, 객체, 소송조건 같은 이론적인 것 외에도......”
  거기서 김광하씨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첫째로는 그 보호가치요, 저 애들이 덮친 것은 넘녀 혼성 캠핑텐트요. 당한 처녀들은 경찰서에 정확한 주소조차 대줄 수 없는 파트너들과 그전에 벌서 나흘이나 거기 묵었소. 그녀들은 이미 자기의 정조를 자기 스스로와 가정의 보호 밖으로 내동댕이친 지 사흘째란 말이오. 그런데도 그걸 법이 그렇게 엄중하게 보호해줄 필요가 있겠소? 민법에서 "손이 손을 지켜야 한다."는 법 격언이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음에 비해 형법에서는 거의 고려조차 않고 있다는 것은 잘 납들이 안되오.
  그 다음은 원인행위에 관한 것이오. 그 처녀들은 거기서 거의 해수욕복 차림으로 지냈고, 때로는 마을에까지도 그런 차림으로 나왔다는 거요. 그럼 일이 흔하지 않은 산골 마을에서는 충분히 성적 충동이나 범죄 심리를 유발시킬 만한 원인행위요. 위난을 스스로 초래한 자에 대해서는 정당 방위나 긴급 피난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녀들에게는 법이 왜 그렇게 더 동정적인지. 하다못해 민법의 과실상계 같은 규정이라도 준용돼야 했다고 생각되오.
  물론 지금 지적한 두 가지는 법관의 양형때에 충분히  고려되는 것으로 알고 있소. 하지만 나는 그것을 법관에만 맡기지 말고 어떤 객관적인 기준을 주자는 것이오.
  세째로는 그 죄에 대해 광범하게 퍼져 있는 일반의 미신이오. 예를 들면 뾰족한 돌자갈밭에서 덮치니까 여자가 아픔을 참다못해 "풀밭으로 가서 하자"고 했는데 나중에 그 말 때문에 무죄가 되었다던가, 최음제를 사용한 것은 강간이 아니라던가, 강간을 하고 난 후 돈을 두고 오면 괜찮다던가, 하는 따위 말이오.
  저 우직한 녀석들도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요. 낫과 도기로 남자들을 ㅁ좇아보내고 그들은 곧바로 자갈밭에서 그녀들을 덮쳤소. "아픈데 텐트 속으로 들어가서 하자"고 말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소. 그리고 정말 쓴웃음나는 일은 그런 그녀들의 말을 무죄의 증거로 주장하고 있는 점이오. 진의, 비진의 조차 구별 못하는 저들에게 형벌이 무얼 기대하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주관적인 것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동정을 금할 길이 없어요. 생각해 보쇼.
  하루종일 뙤약볕 아래서 비탈밭 개골짝 논을 헤매다가 저녁 나절 피로한 몸을 씻으러 강가에 나간 저 애들이  강물에 채워둔 맥주를 마시며 전축을 틀고 있는 그녀들을 보며 느낀것이 어찌 단순한 성적, 충동뿐이었겠소. 나는 그들이 낫과 도끼까지 들고 나선 것도 그들 본래의 흉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되오......”
  그러다가 갑자기 흥분한 것이 부끄러워진 듯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도사 앞에서 요령을 흔들었나? 마 그렇다는 얘기요.”
  그러나 그런 김광하의 독특한 해설은 사흘 후 김기주씨가 끝내 살인혐의로, 지방법원 합의부로 넘겨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어둠에도 또 하나의 그늘은 있소. 외견상으로 그의 혐의는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이고, 자칫 도덕적인 비난까지도 가능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반드시 그렇지 않소.
  우선 그의 아내- 그녀는 겉으로는 상당한 미인이고 교양도 있고, 더구나 김기주시에게는 전 재산인 양복점을 가져 왔소. 그러나 그녀는 과거가 있는 여자요. 그 조그만 읍이 떠들썩하도록 연애를 하고 낙태까지 한 경력이 있소, 그러다가 실연을 당하자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김기주씨와 결혼한 거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은연 중 무식하고 가난한 남편에게 환멸과 권태를 느끼게 됐을 거요.
  한편 김기주씨에겐 처음 그녀가 거의 황송했을 거요. 주인집 딸, 자기보다 많이 배우고, 자기 전 재산의 실질적인 주인인 여자... 그러나 차츰 세월이 지나자 그 황송함은 갑갑함으로 변했을 거요. 아이를 셋씩이나 낳고 십년이나 살을 맞대고 살아도 그들 부부 사이의 깊은 강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요.
  그것이 김기주씨가 낚싯대를 들고 집을 나서기 시작한 동기였을 거요.
  그의 새 여자는 그런 낚시터에서 만났소. 흔한 바닷가의 과부이고 인물도 못생기고, 학교 문전에도 못 가본 무식꾼이고, 또 김기주씨가 던져 주는 푼돈에 감지덕지할 만큼 가난한 여자였소. 언뜻 보면 그런 여자에 김기주씨가 그렇게 빠져든 것이 이해되지 않을 거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시오. 그 여자에게 갔을 대 김기주씨의 마음이 얼마나 편안하고 아늑했겠는가를. 무엇이든 자기보다 못한 여자를 보호하고 거느리는 기쁨.
  설령 그가 정말로 이혼하기 위해 세 아이를 물에 던져 넣었다하더라도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소. 이십년 간이나 선량한 시민이고 자애로운 가장이었던 중년 남자가 어느날 총을 들고 거리에 나가 열한 명이나 쏘아 죽이고 자살해 버렸다는 외신 보도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면......”

  일주일이 지나자 모든 것이 익숙해졌다. 내 앞일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었지만 주위를 냉철하게 관찰할 여유도 생기고 면회온 형님에게 읽던 책을 넣어 달라고 부탁할 정도까지 됐다.
  내가 그 두번째 주일에 얻은 정신적인 소득 중의 하나는 자유의 개념에 대한 “켈젠”파의 오류를 경험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자유를 “이념상으로는 국가적 강제질서가 인간의 전행태를 포착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데서 온 반사적 이익”일 뿐이라고 하는 그들의 학설은 형벌로서 자유형의 존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유를 그렇게 볼 경우 자유형은 그 반서적 이익을 없애는 것, 다시 말해서 국가적 강제 질서의 확대에 불과하고, 다라서 형벌로서의 의미를 사실하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적 강제 질서를 형벌로 파악한다면 모든 국가의 국민은 태어나는 것이 바로 형벌이 되고 만다. 그들 학파가 단 하루라도 실제적인 자유박탈을 경험해 보았다면 결코 자유를 반사적 이익이라고 보는 형식 논리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유는 분명 실제적 권리이며 그 박탈은 중요한 형벌이었다.
  감방 안의 “6조지기”중 “검사는 불러 조진다”는 항목을 실감한 것도 그 주일이었다. 나 같은 죄, 그러니까 범죄 내용이 뚜렷하고, 피의자의 부인이 전혀 없는데도 검찰은 두 번이나 더 나를 불렀다. 증언의 상위가 있거나 범죄 사실을 부인할 경우면 도대체 몇 번이나 불러가야 할 것인가. 확실히 “검사는 불러 조졌다.”
  그러나 검사를 직접 대한 것은 그 마지막의 한 번뿐이었다. 아직 젊은 사람이었는데 그 얼굴에는 어딘가 피로와 신경과민의 표정이 보였다.
  동문인 것이 확실하면 비록 과는 달라도 몇 해밖에 선배가 안될 것 같아 기대를 걸었으나 그는 끝내 거기에는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검찰 조서의 형식적인 확인 끝에 기껏 물은 것이 왜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두었는가라는 것이었다. 채 오분도 안되는 동안의 일이었다.
  실망에 찬 내가 감방 안으로 돌아가 그 얘길 했더니 김광하씨가 그것 보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학교를 중퇴한 사유를 물었는지 아시오?”
  “글쎄요. 그게 좀 석연찮군요.”
  “석연찮을 것도 없어요. 그는 아마도 이형이 다닌 학교에 조회를 지시했을 거요. 사적인 흥미나 호의로서가 아니라 혹 이형이 데모관계로 제적된 것이나 아니가 해서요. 이형이 이 체제에 협조적인가 아닌가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 말이요.”
  “그건 병역법과는무관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김광하씨가 피식 웃었다.
  “이형은 법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 가지 있겠지요. 형평이라던가, 정의, 공서양속......”
  “그러나 가장 크고 우선되는 목적은 그 법을 산출한 체제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이오. 나머지는 바로 그 대전제 아래서 부수적으로 추구될 따름이오.”
  그리고 여전히 납득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물론 이상적으로 법은 정치로부터 객관화되어야 할 것이지만, 아직 지상에서 그런 법이 시행된 적이 없소. 재판을 맡는 "정의의 여신"의 눈을 가린 것은 희랍인의 예지였을 뿐 땅 위의 법은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재판당할 자의 색깔부터 살폈소.”
  그의 말은 분명 독단과 편견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예리한 시선을 포함하고 있었다. 내 경험에는 참으로 새로운 인간형이었다.
  “맞아요. 얼마전 우리 신문의 논조가 좀 과격하다 싶더니, 놈 들은 별거 아닌 걸로 나를 옭아 넣었어요”
  언제부터인가 눈을 깜빡거리며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신문 지국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제법 지사적인 강재가 서린 목소리였다. 그러자 김광하씨가 싸늘한 눈초리로 그를 훑으며 쏘아부쳤다.
  “요새 신문도 논조라는 게 있던가? 그리고 중앙에서 논조가 좀 과격했다고 유가지 이백 부도 안되는 산촌 지국장을 옭아 넣는다는 말도 처음 듣겠네.”
  무안을 당한 사이비 언론인은 상기된 얼굴로 무어라고 항변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김광하씨는 그런 그를 한층 차가운 눈초리로 쏘아보더니 더 매섭게 몰아쳤다.
  “당신은 이곳에서 진심으로 반성해야 할 몇 사람 중의 하나야. 당신은 직접으로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내세우지만, 비위사실을 알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게 분명하다면 그 사람이 돌아가려는 당신에게 억지로 돈을 주었더라도 틀림없는 공갈죄야, 더구나 기자 자격까지 사창했잖아? 정말로 더 이상 잘못되기 전에 반성하고 삶의 방식을 바꿔봐.
  당신이 태산처럼 믿고 있는 그 언론이란 것, 허무맹랑한 거야. 스스로 제4부를 자처하고 특권을 행사하려 들지만 도대체 누구로부터 수권했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선거를 통해 나왔고 법간은 시험을 쳐서 자격을 얻었지만 언론은 뭐야? 자임에 불과하잖아? 그 힘은 오직 스스로 설정한 책임과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데서 나올 뿐이야. 그런데 당신은 그 역기능이라고 해도 좋은 언론의 특권에 기생해 살려고 하고 있어. 그런 태도는 아무리 뉘우쳐도 지나치지 않아...”
  끝내 그 지국장은 부끄러움인지 분노인지 모를 표정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세운 무릎 사이에 파묻고 말았다.

  그런데 내가 있던 감방에는 언제부터인가 김광하씨 못지않게 내 관심을 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수감 첫날 감방장과 소동을 부린 권기진씨였다.
  그는 그날 이후 줄곧 드러누워서 지냈다. 진단도 두 번이나 받고 X레이까지 찍었다. 그쯤 되자 감방장도 교도관도 그가 드러눕는 것을 묵인해 주었다. 그러나 거의 습관적으로 끙끙 신음소리를 내고는 있었지만 때로는 대낮에도 몇 시간씩 코를 골며 자는 것으로 보아 그의 상처가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그에게 묘한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언젠가 면회실에서 그를 만난 후부터였다. 그날 어머님께서 면회를 오셨기에 나는 일부러 쾌활하게 떠들고 있었는데 바로 옆자리에 권기진씨가 나와 있었다. 상대는 몹시 세련된 도회풍의 신사로 그들은 무언가 은밀한 내용을 주고 받는 듯 나직나직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언뜻 이런 소리가 들렸다.
  “지내기가 불편하시더라도 병보석은 생각하지 마십시요. 자칫 판결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어머님을 위로하려고 애쓰면서도 언뜻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과벌의 재판과 병보석 상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 것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공손하게 말하고 있는 상대는 너무나 안 어울릴 만큼 신사였는데도 권기진씨는 조금도 위축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감방 안으로 되돌아가자 권기진씨는 전과같이 순박하고 무지한 중년의 농부일 뿐이었다. 의사를 불러 달라거나 병감으로 옮겨달라고 조르지 않는 것이 달라졌을 뿐 신음도 누워지내는 것도 그대로였다.
  그밖에 또 이상한 점은 그를 면회오는 살마들이 한결같이 그의 겉모습과는 걸맞지 않았다. 부인만 해도 수수한 한복차림으로 찾아왔지만 어딘가 기품있는 안주인의 태도가 엿보였다. 그의 장남도 D시의 명문고에 다니고 있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언젠가 나는 그런 의심을 김광하씨에게 은근히 비쳐본 적이 있었다.
  “나는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고 저 사람은 내가 미결감에 있는 다섯달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이오. 어쩌면 나보다도 한 단수 위인 사람일지 모르겠소.”
  김광하씨 역시 이상한 점을 느껴 온 모양이었다. 그러난 그날 저녁 은근히 권기진씨를 떠보려던 그는 보기좋게 당하고 말았다. 조용히 다가가 무얼 물은 모양인데 권기진씨는 펄펄 뛰었다.
  “벨소릴 다 듣겠네. 없는 놈이 산전몇백 평 개간하다가 도리솔-다박솔- 몇 뿌리 더 캣다고 끌려왔는데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노? 몸 아픈데 귀찮구만 절로-저리로- 가소.”
  마침내 나 자신의 첫 공판일이 되었다.
  수감된 지 꼭 십구일 만이었다. 나는 원인모를 불안과 설레임으로 전날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웠다.
  우리 감방에서 그날 공판정에 나간 사람은 감방장과 김광하씨, 박화영씨, 권기진씨, 지국장과 나 이렇게 여섯 명이었다. 감방장과 김광하씨와 지국장은 심리의 계속이었고, 박화영씨는 선고 공판, 나와 권기진씨는 첫 심리공판이었다.
  아직 그럴 철은 아니건만 방청객이 반 이상 찼는데도 공판정은 으스스했다.
  공판정에 선 피의자는 다른 감방까지 합쳐 모두 열세 명이었다.
  김광하씨가 말한 “도덕감의 확대”를 내가 처음 실감한 것은 바로 그 공판정에서였다. 몇 번 마음을 다져 먹었는데도 목소리는 떨리고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개전의 정을 보며 작량감경의 덕을 보겠다든가 하는 따위 계산으로서가 아니라 마음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원인모를 죄의식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내 스스로 생각해도 내 꼴이 너무 처량해서 화가 날 정도였다.
  재판의 순서는 심리공판부터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증인이나 할 말이 없었으므로 그날 중에 구형이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판사는 채 몇 마디 묻지도 않은채 재학증명서 문제로 뜻밖에 이주일을 미루고 말았다. “6조지기”중 “판사는 미뤄 조진다”를 체험하게 된 셈이었다. 그날 공판정에서의 나머지 시간은 거의 다른 사람의 공판을 구경하면서 보냈다.
  먼저 인상적인 것은 권기진씨의 언행이었다. 그는 철저하게 무식한 농부로 일관했다. 과벌이라던가 전력같은 쉬운말도 못알아 들었고, 재산을 물었을 때는 겨우 오만 원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애절한 목소리로 빌기 시작했다.
  “재판장님요, 한번만 용서해 주소. 지가 무식해가지고 뭐가 죄가 되는지 모르고 한 짓임더. 밭뚜렁에 있는 나무 맺뿌리 파내는기 이렇코롬 큰 죄가 될 줄 참말로 몰랐임더...”
  정말로 눈물겨운 호소였다. 나중에 그가 “내만 쳐다보는 눈까리-눈알- 까만 기집 자슥...”할 때는 방청석뿐망 아니라 법관석에도 측은하게 여기는 빛이 역력했다.
  김광하씨 측의 증인은 좀 엉뚱한 느낌이 들었다. 평범한 시골농부 두 명뿐이었는데 그들은 뇌물 공여와는 별 관계 업는 김광하씨와의 어떤 거래를 성실하게 증언했다. 즉 그들 소유의 면식박을 포당 4백원으로 분명히 김광하씨에게 팔았다는  내용이었다. 판사는 몇 번이나 김광하씨가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지 않았는가를 물었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이 좋아서 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판사는 그들이 그렇게 쉽사리 정부 보조를 포기하고, 그 농촌 정책을 무시한 것을 나무란 후 증인신문을 끝냈다.
  충격적인 것은 감방장의 피해자인 문제의 여자였다. 나는 감방장의 농도 짙은 묘사 때문에 그 여자에 대한 몇 가지 상상을 가지고 있었다. 즉 얼굴은 수수한 대로 보통 이상 잘 생겼고, 피부는 희며, 육체는 풍만하리라는 것 등이었는데, 보니 전혀 딴판이었다.
  얼굴은 바닷바람 탓인 듯 새까맣게 그을은 데다, 벌써 한꺼풀주름이 덮여 서른 여덟은 커녕 마흔 여덟도 넘어 보였다. 값싼 나일론 스웨터와 다프타 몸빼에 싸인 몸도 앙상하게 시들어가는 노파의 그것이었다. 거기다 그녕의 진술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판사님, 판사님, 우짜튼지 저 더러븐 놈 얼벌에 처해 조소. 저놈이 바로 삼년 동안 내한테 붙어 몸 뺏고 돈 뺏아간 놈입니다. 찰거머리처럼 붙어 내 피를 빨아 묵은 놈이라예. 그리고 더 빨아묵을 기 없던지, 딸아-이- 중학교 입학금 들고 뛴 놈입니다. 우짜든지 놈을 다시는 햇빛 몬보도록 맹그러주소.
  자식들하고 먹고 살기 바쁜데도 당한 걸 생각하이 너무 분해주막도 닫고 쫓아왔임더...”
  판사의 질문이나 제지는 귓가에도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앞뒤없이 넋두리를 늘어놓던 그녀는 돌연 감방장한테로 휙 돌아서서 퍼부어됐다.
  “이 더러븐 놈아, 이웬수야. 뭐 총각? 고향가면 집도 땅도 있어 날 데리가 호강시켜 줄끼라꼬? 그래 참말로 니집 좋구나. 번듯하고 이리 넓구나. 오래오래 한번 살아 봐라아-”
  결국 그녀는 그 좋은 입심대로 다 말하지 못하고 정리에게 끌려나가고 말았다. 그녀가 떠드는 동안 그렇게도 기세좋던 감방장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초라하게 서 있었다.
  이병훈-지국장-은 공판정에서까지도 “언론에 몸담은 사람으로서...”“우리 J신문은...”하다가 끝내 판사의 호된 질책을 들었다.
  그 뒤 다시 몇 번의 희비극이 있은 후에 우리 다섯은 선고를 기다리는 박화영씨만 남겨 놓고 감방으로 돌아왔다.

  박화영씨는 끝내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거듭된 전과가 그에게 불리한 작용을 한 탓이었다. 자기의 공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없다는 듯한 태도로 덤덤히 앉아 있던 김광하씨는 기결감으로 더나는 박화영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아마 그는 이번 형기를 채우지 못할 거요.”
  “왜요?”
  “결핵중증이오.”
  문득 나는 박화영씨의 잦은 기침과 창백한 얼굴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자진하여 물어보았다.
  “그는 죄인입니까? 죄수입니까?”
  김광하씨는 낮으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둘중 어느 편도 아니요. 그는 무죄요.”
  “그럼 절도혐의는?”
  “물론 그는 남의 원통기 모터를 훔쳐 팔아 먹었소. 그러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반드시 범죄가 성립하는 건 아니쟎소?”
  “그럼 위법성이나 책임을 조각할 사유라도 있습니까?”
  “둘 다 있소.”
  “어떤 건데요?”
  “정당방위와 강요된 행위요.”
  “정당방위를 위한 절도? 처음 듣는데요. 강요된 절도는 몰라도.”
  “물론 이형이 읽은 책에는 전혀 그런 것이 나오지 않거나, 혹 그 비숙한 것이 취급됐더라도 인정하려 들지는 않을 거요. 그러나 우리들의 법의식이 발전하면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만 할 개념이오.”
  그 말을 듣자 물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소위 사회적 긴급피난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게 이제 겨우 법의식의 표면에 떠오르기 시작한 개념이지만 나는 그 이상 사회적 정당방위로까지 그걸 끌어올리고 싶소.
  박화영씨의 경우 그는 원래 평범한 농부였소. 병들기 전만 해도 그에게는 자기의 여섯 식구는 충분히 부양할 수 있는 토지와 재산이 있었소. 그런데 질병은 그의 노동력을 줄이고 토지와 재산을 축내갔소. 생계의 부족분을 그의 노동 임금으로 메워가야 할 처지가 되었지만 병든 그의 노동을 사람들은 아무도 사주지 않았지 그대로 두면 그의 여섯 식구는 고스란히 굶어 죽어야 할 처지에까지 이르렀소.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태에 떨어지게 된 데 대한 책임이오. 물론 질병을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보아 그의 절도를 긴급피난으로 파악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받드시 그렇지는 않소. 사회가 잘 조직되고 법이 적절하게 운용된다면 그의 불행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소. 그는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었소. 그들 식구의 열흘분 양식도 안되는 생보자 구호곡이나 형식적인 보거노의 알약 몇 개 이상으로. 따라서 그런 그를 보호하지 못한 것은 이 법과 제도의 “부당한 행위”였다고 볼 수도 있소. 즉 방화영씨의 절도는 정당바위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오.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그렇지만 절도 외에 다른 방법도.”
  “그는 노동력밖에 팔게 없는데 그걸 아무도 사주지 않았다고 말했잖소?”
  “침해의 현재성은?”
  “물론 그가 도둑질을 않는다고 오분 후나 십분 후에 당장 그와 전 가족이 굶어죽는 것은 아니었소. 그러나 이르든 늦든 그런 위험에 떨어질 개연성만 있다면 그것은 현재성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소.”
  “그래도 그건 너무 지나친 정당방위 개념의 확대가 아닙니까? 자칫 법질서 전반을 뿌리째 흔들리게 할 만큼 위험한.”
  “그럴수록 그런 확대가 필요 없는 사와와 제도가 이룩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딱이 정당방위를 인정할 수 없다하더라도 강요된 행위는 인정할 수 있을 거요. 박화영씨는 분명 "자기 또는 친족의 신세, 생명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절도롤 나아간 것이니까- 적어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거요.”
  그때 돌연 숨죽인 흐느낌과 신음소리가 우리들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소리나는 쪽을 보니 감방장이 새로 들어온 두 명의 경버을 한창 모질게 들볶는 중이었다. 방금 신음을 낸 것은 손가락 사이에 대젓가락을 가로 끼운 채 손등을 밟히고 있는 덩치 큰 청년이었다. 그 곁에는 또 한 사람의 순하게 생긴 청년이 똑같은 상태로 눈물만 철철 흘리고 있었다.
  “개새끼들. 술처먹고 술집 부술 때는 기분 좋았지? 이제 맛좀 봐라.”
  감방장은 표독스레 말하면서 두 사람의 손등 위에 한 발씩 올려놓고 서 있었다. 그는 마치 그 두 명의 경범이 자기집이라도 부순 듯 가혹하게 다루었다. 둘은 고통을 못이겨 큰 덩치를 꿈틀거리며 연방 신음을 토했다.
  “술은 얼마나 처먹었어?”
  “둘이서 한 되... 한 되 마셨임더.”
  “한 되 ? 탁주야, 쏘주야, 맥주야? 말을 확실히 해 이새끼들아.”
  그러면서 그는 따귀를 올려부쳤다.
  “쏘, 쏘줍니다.”
  “그래, 잘 처먹었다. 네놈의 새끼들 밖에서 멋대로 다니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이번에는 손등에서 내려서서 두 손을 잡고 쩔쩔매는 그들의 가슴팍을 차례로 걷어찼다. 그 흑심한 고통을 고스란히 참고 있는 그들의 큰 덩치가 왠지 바보스럽고 밉살맞을 정도였다.
  “하형 대강하쇼, 너무 심하잖소?”
  마침내 보다못한 김광하씨가 말렸다.
  감방장은 전과는 달리 김광하씨까지 잡아 먹을 듯한 얼굴로 노려보며 내뱉았다.
  “시끄러 이새꺄. 누굴 약올리는 거야? 너는 좋은 증인놈들 만나서 곧 나간다고 해벌쭉해 있지만, 난 이번에 가면 또 몇 바퀴돌 놈이란 말야. 구구로 입닥치고 앉아 있어.”
  “하형 , 정말 그렇게 나오기요?”
  “그래 이새끼야 일주일이나 늦은 놈을 봐줬더니 이게 아지 기어올라? 대가리를 바수어 놓을라.”
  그쯤 되자 김광하씨도 화가 난 모양이었다.
  “너 정말 그따위로 놀래?”
  “그래- 이새꺄.”
  갑자기 감방장이 경범 둘을 놓아두고 성난 표범처럼 가망화씨에게 덮쳤다. 그는 반 발광상태인 것 같았다. 김광하씨도 만만치는 않았다. 여러 사람이 팔걷고 나섰지만 결국 그들의 충돌은 교도관의 개입이 있고야 끝났다. 더구네 우리 감방은 그 날 단체기합을 받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못할 일은 나머지 피해자들의 동향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감방장보다는 김광하씨의 말을 무섭게 여겼지만 경법들에 관해서는 감방장과 견해를 같이 했다. 김광하씨와의 충돌 후에도 계속된 감방장의 경법들에 대한 고문에 가까운 폭행를 그들은 유쾌한 눈으로 보았고, 직접 간접으로 가담하기까지 했다. 한번은 참다 못한 덩치 큰 경법이 감방장에게 대항하려는 자세를 취하자 가차없는 밤모둠으로 그를 제지해 주기도 했다.
  경범은 길어야 이십구일이면 석방된다는 데 대한 어떤 부러움과 시기가 그들의 가학성향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동료의식으로 응결된 집단적인 가학성향이었다.
  따라서 그 두명의 불행한 경범은 비록 일주일의 구류를 살았지만 실제 그들이 받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기결감의 칠개월과 멎먹을 만했다. 대도시에서는 벌써부터 분리 수용되었다고 들었지만, 그리고 내가 있던 그 시골지원의 구치소도 지금이야 그럴리 없겠지만, 경범을 다른 잡범들과 함께 수용하는 일은 없어야한다는 게 그때의 내 느낌이었다.
  감방장은 날이 갈수록 포악해져 같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처음 경범들에게만 쏠렸던 그의 포악함이 점차 감방의 동료 전체를 향하게 된 일이었다. 그는 별것 아닌 일에도 입에 못담을 욕설과 고참 신참 가릴 거시 없이 후려패고 차기 시작했다. 예외가 있다면 김광하씨와 그 그늘에 있는 나 정도였을까. 그리고 노골적으로 돈을 우려내기 시작했다.
  원래 각 감방에는 감방장의 간수 아래 공도명의로 비축되는 돈이 있었다. 신참의 인사비와 면회 때마다 조금씩 거두는 면회비같은 것들도 모을 수만 있다면 상당한 금액이 될 만한 돈이었다. 그러나 워낙 쓰임새가 헤퍼 대체로 그리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그 지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기 비정기로 교도관에게 바치는 교제비였다. 그 교제비가 꼭 필요한 것은 턱없이 까다로운 감방 수칙 때문이었다. 원칙대로 하면 금주, 금연은 무론 피의자는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꿇어앉아 반성의 자세를 해야 하는데 그걸 그대로 지킨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 교제비는 바로 그런 수칙을 완화시켜 내가 지금껏 묘사한 바와 같이 느슨한 감방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다음은 엄청나게 비싼 담배값과 간식비, 간장값이었다. 대개 총감방장을 통해서 구입하게 되는 그 물품을 사야 정가의 두배, 담배의 경우는 열배가 넘었다. 감방에서 돈을 한단위 줄여서 부르는 습관은 아마도 그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감방은 비교적 “잘 돌아가는 편”이어서무리하게 짜낼 필요가 없는데도 감방장은 돈을 짜내기에 혈안이었다. 대개 그의 포악성이 발작하는 것은 그런 요구가 들어지지 않을 때였다.
  감방내의 피의자들 중에서 특히 안되게 된 것은 권기진씨였다. 지난번 공판 이후 감방장은 그때껏 보아넘기던 권기진을 그야말로 집요하게 몰아 부쳤다. 몇 차례 소동이 있었지만 원체 살기를 띠고 설쳐대는 감방장 때문에 결국 권기진씨는 손을 들고 말았다. 그는 기어이 일어나 앉게 되었고, 지금까지 면제돼 왔던 면회비도 꼬박꼬박 바치지 않을 수 없엇다. 그러나 감방장이 딴 곳을 보고 있을 때 그를 노려보는 권기진씨의 두 눈에 이는 흉흉한 불길로 보아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과연 내 짐작은 들어 맞았다. 경범자들이 형기만료로 나간 날 아침 배탈을 만난 감방장이 변소에 간 새 갑자기 권기진씨가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래, 이사람들아, 범 같은 장골이가 여나믄 명씩이나 돼가지고 노상 당하기만 할끼가.”
  모두들 약간 어리둥절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감방장 말이다. 그 사람 지금 우리한테 돈 우려내 겨울 살라칸단 말이다. 어차피 지는 넘어갈 낀게, 돈이사 필요하겠제. 글치만 우리는 뭣하는 짓고? X주고 뺨맞는다꼬, 왜 돈뺏기고 뚜드러 맞아야 하노?”
  그래도 아직 나머지 사람들은 머뭇머뭇했다.
  “보래이, 이 딱한 양반들아, 당신들이 그 모양인께 저 사람이 맘놓고 설치제? 속 좀 차려라이, 무서울 게 뭐 있노? 당신들만 가만 있으믄 내가 당해볼란다. 지발 그럼 가만히만 있어도고, 대분 패댕이를 처뿔란다.”
  그때였다. 그때껏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광하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권형 말이 옳을 것 같군. 그럼 다른 감방으로 보내도록 하지. 그러나 권형이 나설 필요는 없어요. 여기 서열도 서열이니까. 강기삼씨와 유상태씨가 좀 맡아주쇼.”
  그는 맞은편에 앉은 도박꾼들에게 말했다. 처음 떨떠름해 하던 그들도 김광하씨의 지시가 있자 별 이의없이 임무를 받아들였다.
  “그럼 나는 필요하믄 도우꾸마.”
  권기진씨는 약간 섭섭하다는 투로 말했다.
  “교도관님, 교도관님 잠깐 뵙겠습니다.”
  김광하씨가 생각난 듯 복도의 교도관을 불렀다. 그리고 귀찮다는 표정으로 다가온 교도관에게 무언가를 쥐어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거 얼마 안되지만 점심값이나 하시지요. 이 사람들 성의입니다.”
  교도관이 갑자기 풀린 표정으로 그런 김광하씨에게 물었다.
  “왜 무슨 일이 있나?”
  “잠시 후에 아시게 됩니다. 모르고 있다가 오셔서 자연스럽게 처리해 주십쇼.”
  “알았어, 조심들 해서 해.”
  교도관은 아마도 우리가 담배를 피우거나 하는 따위 작은 규칙위반을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안 모양이었다.
  그렇게 대략 채비가 끝났을 때 감방장이 태평스런 얼굴로 바지를 추스르며 들어왔다. 그런 그를 보고 김광하씨가 정색을 한 채 말했다.
  “하형 거기 좀 앉으쇼.”
  “무슨 일이야.”
  저번 공판 후부터 감방장은 김광하씨에게 거리낌없는 반말이었다.
  “우리 모두의 의견인데, 하형 감방 좀 옮겨 줘야겠소.”
  김광하씨의 말소리는 조용하면서도 또렷또렷했다. 감방장은 처음 전혀 못알아 들은 듯 멍청한 표정이다가 이윽고 그 듯을 알아차린 듯 벌떡 일어섰다.
  “이새끼가 돌았나? 도무지 무슨 개 같은 소리야?”
  그 순간 장기삼씨와 유상태씨가 뒤에서 감방장을 덮쳤다. 감방장의 필사적인 저항 때문에 세 사람은 한덩어리가 되어 감방 바닥을 뒹굴었다.
  “안되겠구만.”
  그걸 보고 권기진씨가 일어났다. 정말 예상 외의 일이었다. 권기진씨가 한번 손을 쓰자 금방 난장판은 정리되었다.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감방장은 두 팔이 비틀린 채 엉거주춤 김광하씨 앞에 주저앉는 꼴로 앉아 있었다. 그제서야 도박꾼이 다시 버둥질을 시작하려는 감방장의 두 다리를 하나씩 맡았다.
  “우선 우리 돈부터 찾아내야겠소. 물어봐야 대답할 리는 없고.”
  김광하씨는 그렇게 말하며 감방장의 주머니를 차근차근 뒤지기 시작했다. 온몸이 옴짝달싹 못하게 붙들린 감방장은 입만으로 악을 쓰기 시작했다.
  “이건 하극상이다 교도관님.”
  “우스운 하극상도 있구마는, 그래, 니가 언제 우리 상전이 됐노?”
  권기진씨가 이죽거렸다. 그 사이 김광하씨는 감방장의 상의 속주머니에서 문제의 돈을 찾아냈다. 귀한 오천원 짜리 고액권으로 바꾸어 둔 이만 몇천원이었다.
  “그건 내돈이다. 내돈이란 말이야.”
  다시 감방장이 악을 썼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그 말이 안 통할걸, 지난 석달 동안 누가 당신을 면회왔소? 그렇다고 하형이 만들었을리도 없고, 자, 이제 임자인 우리들이 찾아가오.”
  여전히 침착하게 말하면서 김광하씨는 그 돈에서 오천원권 한장을 빼내 감방장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이건 우리들의 정표요, 어차피 당신은 교도소에서 겨울을 나야할테니, 겨우살이에나 보태 쓰쇼.”
  그래도 감방장은 이미 기울어버린 대세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계속 고함을 치며 교도관을 불렀다. 아마도 지난 며 개월 그가 건네 준 교제비의 효과를 믿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달려온 교도관이 말을건 것은 김광하씨에게였다.
  감방안의 광경으로 일의 내막을 대강 짐작한 것 같았다.
  “왜 야단들이야?”
  “교도관님, 이 친구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감방을 좀 바꿔주십시오. 너무 행패가 심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의견입니다.”
  “왜, 무슨 짓을 했는데?”
  “사람을 때리고 돈을 뺏습니다.”
  “아주 나쁜 새끼로군. 이런 데 와서도 아직 정신을 못차려? 이리 나와.”
  결론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글렀다는 걸 느낀 감방장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애걸하기 시작했다. 먼저 교도관을 보고,
  “형님, 잘못됐습니다. 한번만 봐주십쇼. 앞으로는 정말 잘 해나가겠습니다. 형님한테 섭섭히 하지 않겠습니다...”
  하다가는 김광하씨를 보고,
  “김형, 너그럽게 봐주시오. 지난 정리를 봐서라도...”
  그러나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끝내 되돌릴 수 없는 상태라는 걸 깨닫자 다시 악을 쓰고 발버둥질을 시작했지만 그에게 돌아간 것은 교도관의 욕설과 따귀뿐이었다. 그는 5호 감방으로 옮겨갔다.
  감방, 특히 미결감에서 방을 옮긴다는 것은 군대의 전입 이상 서러운 일이었다. 대개의 경우 그는 그곳에서 신참으로 다시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든 소동이 가라앉자 후에 김광하씨는 무언가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수없이 내쫓기는 해도 안됐소. 나는 그도 알고 있어요. 비록 지금은 이곳의 몇 안되는 죄인 중의 하나지만 그도 한때는 조그만 포구의 순진한 머구리-잠수부- 청년이었소. 스물두 살 때 선창가의 술집 색시에 반해 값비싼 어구를 선주 몰래 들어낸 것이 오늘의 출발이오. 그때 선고받은 육개월의 징역형이 그인생을 바꾸어 놓고 말았소. 단기자유형의 희생이 된 것이오.
  형벌의 이론은 원시의 동해보복에서 오늘날의 교육형까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지만 현실은 언제나 이론을 따라 잡지 못하고 있소.
  더구나 우리의 경우 기껏 상담응보의 상태나 될까. 교도소는 인간 개조의 장이 아니라 보다 크고 무거운 범죄의 학습장일 뿐이오, 그도 거기서 학습한 대로 다시는 그 힘들고 수입적은 머구리배로는 돌아가지 않았소. 뭍을 떠돌며 폭력과 사기로 전과를 더해 갔을 뿐이오. 이제 다음번은 강도나 살인쯤 배워나오겠지...”

  그 사이 추석이 다가왔다. 그럭저럭 입감된 지 4주일로 접어든 어느날이었다. 타향에서 맞게 되는 여느 명절만 해도 쓸쓸한데, 그런 장소, 그런 상태에서 맞게 되는 추석이고 보니 그 감회는 더욱 쓰라린 데가 있었다.
  김광하씨와 나는 그날 어렵게 감방 안에서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곳에서는 술이 금지돼 있다는 것은 이미 말했지만, 전혀 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 때는 주로 면회를 이용했다. 면회객이 술병을 들여올 수는 없어도 드링크류는 허용돼 있었다. 따라서.드링크제의 내용물을 빼고 고량주나 보드카 같은 독주를 넣어오면 웬만한 사람도 얼큰할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단체로 그것도 감방 안에서 마시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비상한 수단이 필요했다. 우리가 그날 용케도 술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수감된 곳이 비교적 통제가 느슨한 지원구치소라는 것과, 또 추석이란 명절을 내세운 탓이었다. 적지않은 교제비가 당직 교도관들을 너그럽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었이다.
  시간은 밤으로 결정됐다. 낮동안은 예기치 않은 상부의 시찰이나 시덥잖은 봉사단체의 방문을 받게 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저물 때까지 주력한 것은 그밤의 술자리를 위한 안주 확보였다. 주로 면회객들이 가져온 것으로, 날이 날인만치 저녁 무렵엔 제법 통닭 두 마리와 돼지수육 , 쇠고기조림 따위가 배개뭉치만큼은 모였다.
  술이 운반돼 온 것은 저녁 식사가 끝나고 한시간쯤 지났을 때 였다. 우리 감방에 돌아온 것은 왜간장병 두 개였다. 관식의 반찬이 나빠 감방마다 왜간장을 공동으로 사먹는 것을 허락하는 관례를 이용한 것으로, 내용물은 간장과 색깔이 비슷한 콜라에 고량주를 탄 것이었다.
  담배의 확보도 충분했다. 이미 여러번 비친 얘기지만, 감방 안에서 담배보다 더 귀중한 것도 드물다. 아예 교도소로 넘어가면 모두들 체념하고 끊으려고 애쓰지만 미결수들의 경우에는 그런 노력이 별로 없다. 미결수들은 실형을 받게 될 것이 명백한 경우에도 일단은 자기가 석방될 것이란 전제 속에 대기하기 때문이었다.
  담배를 들여오는 방법은 보통 건빵봉지 속에 집어넣거나 큰 빵속 또는 사식 속에 비닐로 싸넣는 것인데 교도관들이 눈감아주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들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옷솔기나 혁대 밑 같은 것에 끼워 들어오는 방법인데 그것도 철저하게 단속하면 어렵다. 최후의 수단이 혀밑과 항문이다. 혀밑에 비닐에 싼 담배가루를 사탕처럼 감추면 담배 세 개비분은 들여올 수가 있고, 항문에는 한 갑까지 넣을 수 있다. 그러나 그속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아침에 총감방장을 통하면 좀 비싸게 먹혀 그렇지 해갈은 할 수가 었었고, 교도관들도 대체로 관대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은 특별히 신탄진을 두 갑이나 입수할 수 있었다. 기왕에 허락한 술자리니 하는 기분으로 당직 교도관이 선심을 쓴 덕분이었다.
  속이 부실한 탓인지 술은 쉽게 올랐다. 간장병 하나가 비었을 때쯤해서 감방은 온통 담배 연기와 왁자한 얘기소리로 가득 찼다. 입감 후 처음 보는 흥겨운 분위기였다. 여느때와 달리 복도 쪽이 시끌시끌한 것으로 보아 다른 감방에서도 몇 군데 술자리가 벌어진 것 같았다.
  김광하씨는 예상과는 달리 별로 술이 세지 못했다. 평소 침착하고 조용하던 그는 술이 몇 순배 돌지도 않아 얼굴이 붉어지고 억양이 높아졌다. 그리고 내가 묻기도 전에 그때껏 궁금히 여겨왔던 그 자신의 얘기를 끄집어냈다.
  “이형과 만난 첫날에 나는 이곳 사람들을 죄수와 죄인으로 구분한 적이 있소. 그 뒤 나는 여러 사람에 대해 그 구분을 적용했는데 듣고 있는 이형의 눈에 언제나 묻고 있었소, 그러면 너는? 하고. 이제 내 얘기를 해 드리리다.
  정확히 구분하면 나는 아마도 죄인에 속할 것이오. 나간 감방장이나 저 사이비 언론인이나 또는 권기진씨처럼. 하지만 검찰이나 법원이 지금 내게 마지막 혐의를 걸고 있는 뇌물공여는 절대로 아니오. 내가 범한 죄는 적어도 그들의 법으로는 처리할 수 없을거요.”
  “그럼 죄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는 않고. 법학은많은 천재를 삼킨 학문이오, 또 그들의 노력으로 상당히 정비되었지만, 불행히도 인간의 전형태를 포착할 수는 없어요. 그것은 법학 자신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주요한 도구인 우리들의 언어 탓이오. 아마 수많은 법학자들이 가장 고심하여 싸운 적은 언어의 불완정성이었을 거요. 나는 그들이 미처 못배운 언어와 형태 사이의 간극을 교묘하게 빠져나왔을 뿐이오.”
  “글쎄요... 죄라고 부를 만하면서도 그런 것이 아직도 남아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정말로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럼 법학을 공부한 이형으로서 내 죄를 판단해 보시오.
  작년에 정부는 퇴비증산책의 일환으로 면실박을 농가에 공급했소. 그걸 퇴비 사이에 뿌리면 썩는 것을 촉진할 뿐 아니라 양질의 퇴비가 된다는 거요. 가겨은 한 부대에 천원 정부보조 육십프로에 자부담 사십 프로였소.
  그런데 농가로 부면 그것은 귀찮기 짝이 없는 물건이오. 인분이나 몇 번 뒤집어 씌우면 될 퇴비를 헐어 켜마다 면실박을 뿌린다니 게 쉬운 일이겠소? 그래서 당국의 권유나 보조에 혹해 그걸 사들였던 농가들도 대부분 처치곤란이란 식으로 광 속이나 마루 밑에 처박아 두고만 있었소.
  나는 그 점을 착안하여 포당 백원에 그 면실박을 거두어 들었소. 농민들은 기꺼이 내놓았소. 귀찮은 것 처분하고 자기부담분을 되찾게 되니 거의 공돈 같은 기분이었을 거요. 그렇게 나는 한군의 면실박을 몽땅 거두어서 아직 그 보급이 되지 않은 이웃 군에 넘겼소. 업자로서 7백원에 납품한 거요. 우리나라의 행정은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특징이 있소. 멀지 않은 군에서 실패한 것을 그 군은 여전히 고집스레 시행하고 있더구먼. 그들은 다른 업자들보다 내 것이 사니까 기꺼이 사들였소.
  내가 단가를 7백원으로 내린 것은 부당이득의 올가미를 벗어나기 위해서였소.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의 마진폭은 흔한 것이니까.
  그 다음 농민들과의 계약은 비록 몇천 원 자리지만 법률상의 하자가 없도록 완벽한 서류로 작성했소. 그들의 지려천박을 이용했거나 사술을 썼다는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서였소.
  공무원들과의 접촉도 다방 이상을 피했소. 뇌물공여의 혐으리를 피하기 위해서였소. 나는 다만 단가를 싸게 함으로써 그들의 구매 동기를 유발했을 뿐이오. 그들이 그 차액을 착복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일로 나는 몇천만원 벌었소. 그런데 이제 이형은 어떤 법이 조항에 내 죄를 문의하겠소.”
  나는 한동안 내가 읽은 모든 법조항을 동원해 보았다. 그러나 분명 어떤 범법의 냄새가 나는데도, 기껏 내가 혐의를 걸 수 있는 것은 정부보조가 육십프로가 들어 있는 물건을 함부로 처분한 농민들쪽일 뿐이었다. 주먹구구식 영농정책과 농민들의 인식 부족을 교묘하게 이용한 폭리였다.
  “별로 뚜렷한 혐의가 떠오르진 않을 거요.
  그런데 이 일에서 어떤 냄새를 가장 먼저 맡은 것은 이 지방에 주재하는 신문기자 패거리였소. 그들은 내게 직접 간접으로 위협해 왔지만 나는 그들을 무시했소. 곧 경찰이 개입했소, 그리고 지금 이꼴이오, 하지만 적어도 지금 현재의 법으로는 나를 어찌하지는 못할 거요. 지금 그들이 애써 찾아낸 뇌물공여란 것도 사실 그 일과는 무관하게 군서기 하나와 점심 한끼 나눈 데 불과하오.”
  “그런데 왜 스스로는 “죄인”쪽으로 분류하십니까?”
  “죄는 분명 있소. 그것도 세 가지나. 첫째는 영농시책을 방해한 죄, 둘째는 농민에게 준 정부의 혜택을 가로챈 죄, 그리고 끝으로 공무원을 타락시킨 죄. 법의 불비가 내 경우를 구체적으로 포착할 수 없어 처벌하지 못할 뿐, 내가 침해한 그 세가지는 분명 보호되어야 할 법익임에 틀림없소.”
  그때 언제 왔는지 권기진씨가 불쑥 끼어들었다.
  “내사 보이-보니- 무죄다. 암만 생각해도 그건 죄가 아닌기라.”
  그러나 김광하씨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과 죄가 없다는 것은 달라요.”
  “글타카믄 죄 아잉기 어딨노? 사는기 모두 죄다.”
  그런 권기진씨의 말은 문득 첫날 김광하씨가 하던 말을 상기시켰다.
  “혹 죄의식의 확대가 아닐까요?”
  김광하씨는 그말을 듣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을 풀며 말했다.
  “걱정마쇼, 이형. 그렇다고 누구처럼 고개 푹 숙이고 쿨적거리지는 않을 테니까. 만약 이 일로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나는 끝까지 상소하겠소.”

  감방 안에 점차 술기운이 번져갔다. 아니 구치소 전체가 차차 무슨 축제일의 광장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짐작했던 대로 우리 감방뿐 아니라 다른 데서도 술자리를 벌였던 것이다. 오히려 우리 감방은 조용한 편이었다. 곁엣방에서는 욕설과 고함소리가 우리쪽에까지 넘어왔고, 다른 데서는 유행가를 합창하다가 교도관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판을 벌인지 채 두 시간도 못돼 그 흥겨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일이 벌어졌다. 진작부터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우리 방까지 요란스럽게 하던 옆방 “돌운짱”-골재 운반트럭 운전사-이 기어이 말썽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난폭 운전으로 악명을 날리다가 택시 한 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고 들어왔다는 모주꾼이었다.
  진작부터 “술,술”하며 외쳐대던 그 고함소리가 갑자기 뚝 그치면서 유리병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복도를 건너왔다. 뒤이어 놀란 외침과 교도관이 달려가는 다급한 구두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걷어부친 왼팔이 피투성이가 된 그 운전사가 끌려나왔다. 감방 안의 술을 혼자 다 마신 듯 정신없이 취한 얼굴이었는데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여전히 술을 찾고 있었다. 아마도 술을 조르다 안되자 자해를 한 모양이었다.
  당직 교도관들은 처음에는 달래려고 애썼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술만 찾았다.
  “좋아, 그럼 술을 주지.”
  마침내 성깔있는 김교도관이 그렇게 내뱉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책상 서럽을 열더니 무언가를 한줌 쥐고 나왔다. 미리 준비돼 있던 것 같은 곤소금이었다.
  갑자기 비명인지 고함인지 구별 못할 처절하고도 소름끼치는 소리가 구치소 안을 메웠다. 김교도관이 집어간 소금을 그 피흘리는 팔에 비벼버린 것이었다. 운전사 출신의 그 피의자는 그대로 팔을 싸쥐고 폭삭 주저앉더니 이내 시멘트 바닥을 뒹굴었다. 비명도 한 순간이었다.
  그는 곧 흐느낌과 같은 괴상한 신음과 함께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오줌이 흘러내렸다.
  “어때? 아직도 술생각이 나나?”
  김교도관이 무슨 악귀처럼 웃으며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격심한 고통으로 제정신이 아닌 그가 문득 눈길을 모았다. 핏빛 눈동자에 언뜻 형언할 수 없는 증오와 원한이 서렸다.
  “어쭈, 이게 째려?”
  김교도관이 다시 소금 한줌을 가지고 왔다.
  “한번 더 비벼줄까?”
  순간 뜻밖의 변화가 일어났다. 사지를 풀고 늘어져 있던 그 피의자가 펄쩍 뛰듯 일어나더니 부들부들 떨면서 뒤로 물러났다.
  “자, 잘못했습니다. 가, 간수님. 교도관님. 요, 용서해 주십시오.”
  그런 그의 눈길에는 이미 좀전의 원한과 증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혹독한 고통에 패배한 육체의 비굴뿐이었다. 그러자 김교도관은 다시 씩 웃었다.
  “그럼 그렇지, 이 약은 너 같은 놈을 위해 특별히 준비해둔 거야. 이제 정신차렸으면 절루 가서 진짜로 치료받고 잠이나 자.”
  그 피의자는 어린아이처럼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했다. 다른 교도관이 머큐롬으로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로 감아주자 주위를 흘금거리며 돌아가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흠씬 두들겨 맞아 겁먹은 개였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 한바탕 소동은 우리들의 술자리에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교도관들은 그들이 한번 보인 “뽄대”의 효과를 믿는 것 같았다. 사실 그 일이 있고부터 감방은 눈에띄게 조용해졌다.
  김광하씨는 몹시 취한 것 같았다. 바깥의 소동에는 별 관심없이 그는 언제부터인가 망연한 사념에 젖어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나는 불쑥 그에게 물었다.
  “왜 고시는 포기하셨읍니까?”
  그때껏 가장 궁금히 여기면서도 물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당당하고 자신에 찬 언행에도 불구하고 그에게근 어딘가 상처받고 잃어버린 자의 분위기가 풍겼다. 그 때문에 혹 그의 아픈 곳이라도 건드릴까봐 나는 그 질문을 미뤄왔었다. 그러나 내 판단에 의하면 그의 법지식  수준은 대단한 것이었다.
  독특하게 느껴지던 그의 견해도 대부분의 경우 내가 법학 서적에서 지엽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흘려 읽는 소수설이거나 전문지에 실린 최신 논문의 요지와 일치하는 것들이었다. 적어도 그가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왜 고시를 포기했느냐구?”
  돌연한 내 질문에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천정을 올려보았다. 그러나 이내 나를 보고 쓸쓸하게 웃었다.
  “이거 오늘 이형한테 단단히 껍질이 벗기는구먼, 사실 나도 왠지 그 얘길 하고 싶었소.”
  거기서 그는 또 잠시 말을 끊고 천정을 바라보았다.
  “시작은 "해뜨는 집"부터 되겠소. 왜 거 몇년 전에 유행하던 양곡 말이오. 그 가사 중에 "내 아버지는 도박사, 그리고 내 어머니는 재봉사"란 귀절이 있죠? 바로 나의 노래요.
  내 아버지는 도박사였소. 모든 혁명가는 도박사니까. 그는  어린 나와 어머니를 버리고 그 대단한 혁명을 위해 월북하였소. 해주대회 인민위원 명단엔 나올 만한 인물이었지.
  그 뒤 내 어머니는 재봉사가 됐소. 친정과 시집이 함께 결단나자 어린 나를 삯바느질로 키웠단 말이오 그런데도 나는 무럭무럭, 씩씩하게 자라 대학에 갈 나이가 됐소.
  나는 기세좋게 법대를 택했소. 고등학교 일반사회책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과, 내 아버지의 과오를 보상하겠다는 순진하고 장한 뜻 때문이었소. 대학에 가서도 4년 동안 나는 착실하게 공부했소.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어떤 체제인들 월북한 남로당 골수분자의 아들을 판사나 검사로 앉히는 모험을 하려 들겠소. 기껏해야 변호사겠지만 우리사회의 의식구조롤 보아 법관 경력이 전혀 없는 풋내기 변호사란 뻔하잖소?
  그래도 나는 고집스레 응시했소.  만약 합격되어도 임용시키지 않는다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작정이었지. 그러나 고시라는게 부질없는 고집으로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소?”
  그는 다시 한번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고는 담배꽁초에 불을 붙였다.
  “철이 들고 보니 모든 게 끝나 있었소. 젊음도, 언제까지 기다려 줄 것 같던 여자도. 나이는 어느새 서른을 훌쩍 넘어 생계를 의지할 직장도 쉽게 얻을 수 없었소.
  처음 나는 장사를 하거나 자그마한 사업이라도 벌여볼 작정이었소. 그러나 효율적으로 볼 때 내가 아는 법지식을 활용하는 편이 더 유리하다는 걸 깨닫게 됐소. 그게 시작이었소...”
  그 다음은 내가 묻지도 않은 전력이었다.
  “첫번째는 부동산에 손을 댔소. 돈이 있어 투기를 한 게 아니라 역시 법의 헛점을 찌른 거요.
  내 고향은 산악 지방이면서, 일찍부터 저쪽 사상에 물들어 유달리 월북자가 많소, 그런데 그 우러북자들은 사망신고가 되지 않아 그들의 토지나 임야는 전혀 등기이전이 되지 않아요. 나는 그들 중에서 연고자가 없거나 멀리 떠나버려 행방응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산만 고라 엉터리 매매증서를 작성햇소. 내가 산을 택한것은 그쪽이 이의를 제기할 이해 관계자가 적기 때문이오. 원체 산골 지방이라 아직 산을 중요한 재산으로 보질 않으니까.
  그 다음 나는 그 매매증서를 근거로 등기이전 소송을 냈소. 소위 재판 이전이란 거지, 기대한 대로 나는 궐석재판에 승소하고 상당한 필지의 산을 얻었소. 그중에는 어떤 국회의원의 목장 곁에 붙어서 지금 내가 운용하는 자금의 기초가 된 산도...”
  이제 그의 취기는 절정에 이른 것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떠들었다.
  “나가면 또 한 몫 볼 일을 봐두었지. 이번 면실박과 비슷한 것으로 석회비료와 규산질비료가 있소. 모두 장기적 안목으로 보아서는 토지의 산성화를 막고 지력을 증진시키는 좋은 것이지만 농민들의 외면을 당하고 있소. 일손이 많이 가면서도 작물에 직접효과가 없다는 약점과 당국의 게몽 부족으로 들판에서 무더기로 썩는 것도 있어요. 역시 정부보조는 육십 프로, 나가면 그걸 거두어 또 한번 장사를 할 작정이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감방 안은 이상한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었다. 애조띤 가락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슬픔으로 흥건히 젖게 하는 어떤 것이었다.
  취한 중에도 그걸 느낀 듯 돌연 김광하씨가 얘기를 중단했다. 그리고 보니 감방 안에서 그때까지 떠들고 있었던 것은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 나머지 모두의 시선을 한 곳에 집중돼 있었다.
  김광하씨와 내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니 달이었다. 어느새 중천으로 솟은 보름달이 창틀에 환하게 걸려 있었다. 방 안에 켜져 있는 희미한 백열등 때문에 그 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아, 얘기에 열중한 두 사람만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한번 그 달을 보게 되자 내개도 야릇한 감개가 밀려왔다. 원인모를 슬픔으로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러고 보니, 몇몇의 눈에는 정말로 눈물이 번쩍이고 있었다. 사십대의 노름꾼, 그는 도박에 미쳐 그동안 팽개쳐둔 처자라도 생각한 것일까. 가짜 기자, 그는 전날 면회왔던 다방 레지풍의, 그러나 아름답고 상냥해 뵈던 그 동거녀라도 떠올린 것일까?  그리고 생계 때문에 예비군 훈련 불참을 몇 번이고 거듭한 떠돌이 행상, 그는 그의 의지할 곳 없는 가족들을.
  나도 마음 속으로는 울었다. 너무도 어이없게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전락해버린 나를 위하여, 슬픔과 근심에 싸인 어머님을 위하여, 눈물을 감추려고 애쓰던 약혼녀를 위하여.

  인간이 적응하지 못하는 환경이 있을까. 인간이 감당해내지 못할 고통이 있을까.
  나머지 내 어둠 속의 날들은 공판일 같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별로 기억에 없다. 불과 한 달도 안되는 사이에 그돗의 생활은 그만큼 내게 자연스럽고 평범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엄청나게 제한된 자유도, 거친 음식도, 불편한 주거 환경도 그리고 무엇보다 격리의 고독과 순간순간의 사소한 불편 정도일 뿐 아무런 고통의 그림자를 동반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 그곳을 끔찍한 곳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순간순간의 사소한 불편들이 극단으로 과장되어 결합되기 때문일 뿐이었다.
  어떠한 고통도 그것을 당하고 있는 순간은 고통이 아니다. 고통은 언제나 그것이 지나간 후에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그렇다. 고통은 언제나 그것이 지나간 후에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그렇다. 고통은 맞지 않은 구두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일단 우리의 발이 들어가기만 하면 점차로 그 괴로움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 괴로우믈 다시 과장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은 언제나 이미 그것을 벗어던진 후의 일이다. 사람이란 거의 무한정하게 학대하고 찾취할 수 있는 존재라는 모든 독재자들의 확신을 그런 상태에 대한 고찰에서 얻어진 것이나 아닐는지.
  지금에 와서 생가해보면, 거의 이상한 만큼 나는 평범한 수인이었다. 아침 용변을 성공적으로 끝낸 것으로 유쾌해졌고, 면회갔다가 옷솔기에 감춰 들여온 담배 몇 개비로 행복해했다. 어쩌다 교도관들이 불러내서 내미는 막걸리 사발에 감격해으며, 감방장이 된 김광하씨 덕에 신참이 들어올 때밖에 쓰이지 않는 감찰부장의 명의를 얻게 된 것을 은근히 기뻐했다.
  낮동안의 길고 무료한 시간도 나는 그곳의 방식대로 힘들지 않게 때워갔다. 그 기묘한 장기에도 익숙하게 되었고, 음모나 머리칼로 조그만 공을 만드는 것도 재미나게 배웠다. 곁엣사람과 음담패설을 나누며 킬킬거리기도 하고 허풍섞인 무용담으로 동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장군-전과자-을 졸라 사마귀 같은 것이 세 개나 달린 그의 성기를 구경하며 하루 낮을 때운 적도 있다. 그 사마귀 같은 것은 성기의 껍질 속에 든 플라시틱 공이었다. 777 칫솔자류를 깎아 만든 것으로 장군이 지난번 복역 때 박아넣은 것이었다. 그날 나는 부추김에 신이 난 장군은 아무런 수술기구도 소독약품도 없는 교도소에서 어떻게 그것을 박아넣을 수 있는가, 또 그것이 여자의 성기 속에서 어떤 위력을 발하는가 따위를 남김없이 얘기해 주었다.
  내가 처음 들어간 날 김광하씨가 어떻게 나에 대해 그렇게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었던가를 깨달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외부와 격리된 사회에서는 새로 들어논 사람은 언제나 화제와 주목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에 관해서는 교도관을 통하면 적어도 조서에 적힌 사항은 알 수 있게 된다. 김광하씨가 내게 보인 특별한 호의는 그렇게 알게 된 내 경력에서 자기의 젊은 날에 대한 어떤 향수를 느꼈기 대문이었을 것이다. 나도 술김에 경찰을 두들기고 온 나어린 대학생을 각별히 돌보아준 적이 있다.
  그밖에 내 변화 중엔 좀 엉뚱한 것도 있다.
  장난기 섞인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어릿거리는 신참들에게는 제법 으름장도 놓게 되었고 때로 밉살맞은 경법들에게는 알밤도 먹였다.
  한번은 내가 처음 들어올 때처럼 말쑥한 피의자 하나가, 역시 나처럼 소지품을 영치하는 걸 보고 한마디 던졌다.
  “멀쩡한 도둑놈이 또 하나 들어오는구나.”
  녀석은 움찔하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익숙하지 않아 잘 안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켜 내 얼굴을 잘 볼 수 있는 채광창 쪽으로 고개를 디밀고 말해주었다.
  “야, 이 도둑놈아 뭘봐, 피를 싹 뽑아 놓을라.”
  이미 햇빛을 못본 지 한달에 가까왔고 머리칼도 함부로 자라있어서 어쩌면 흡혈귀처럼 보였을 것이다. 녀석은 완연히 겁먹은 얼굴로 눈길을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때로는 김광하씨처럼 나도 기묘한 논리에 빠져들곤 했다. 예를 들어, 창살 밖으로 자유롭게 나다니는 모든 인간들을 ㅂ라보면서 그들을 향해 나는 항상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 내가 여기서 당하는 이 고초를 보면 청년들은 성실하게 병역의무를 수행하고 당신들의 전선을 안전 할 것이다 이미 도둑인 내 동료가 있음으로써 당신들의 재산은 보호된다. 여기 강간한 동료가 와 잇음으로써 단신들의 딸과 아내는 능욕당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 폭력범이 있으므로 당신들은 부당하게 폭행당하지 않을 것이고, 여기 증뇌자가 있으므로 당신들의 공무원은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이곳에서 고통당하는 것은 순전히 당신들의 평안과 이익을 위해서이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감사하라...”
  지리하게 기다린 두번째 공판일이 왔다. 구속된 지 한달 만인 셈이었다.
  인간이란 예측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해 얼마나 나약하고 비논리적이 되는지 그날은 나도 새벽부터 그곳의 미신에 신경이 쓰여졌다. 다행히 김광하씨가 아예 처음부터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별다른 불길한 조짐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공판은 모두에게 대체로 순조로왔다.
  나는 몇 가지 심리가 있은 후에 징역 1년을 구형받았다. 공소장의 요지는 누구보다 법의 존엄성과 병역의무의 신성함을 잘 알수있는 처지에서 감히 기피로 나아갔기 때문에 동정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1년이라니 확정판결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1년이란 세월은 그만큼 그때의 내게길고 아득한 것으로 느껴졌다.
  김광하씨는 십개월을 구형받았다. 여러가지를 들먹였지만 결국문제가 된 것은 공무원에게 베푼 향응이었다. 본인은 그 일과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그 공무원의 업무 속에 그 일이 포함된 이상 그 주장을 채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향응의 내역이란 것이 겨우 오천원 상당의 주식이라는 데는 어딘가 억지스러워 뵈는 데가 있었다.
  오호실로 옮겨간 전 감방장은 3년을 구형받았다. 거의 그 법정에서 선고할 수 있는 최고형을 구형받은 셈이었다. 그밖에 가짜기자는 1년. 그는 구형이 떨어지는 순간 항고하겠다고 나서서 사람들을 웃겼다.
  그러나 그날 공판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권기진씨였다. 그의 옷차림은 그날따라 더욱 남루했고,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은 거의 애처로울 지경으로 초조했다. 영락없이 그런 곳에 처음 끌려와 얼이 빠져버린 순진하디 순진한 산골농부였다. 거기다가 또다시 반복한 그의 눈물겨운 애소는 어느 정도 그를 의심하고 있는 나까지도 동정이 갈만큼 절절했다.
  그는 어리석고 무지한 탓에 한 평의 땅이라도 더 만들려다 나랏법을 어기게 됐다는 것, 개간지 주위에 있는 소나무 몇 그루 잡목 몇 뿌리 더 캐낸 것이 이렇게 큰 죄가 될 줄 모랐다는 것, 한 번만 통촉해 주시면 일후 그 열배의 나무를 심어 지은 죄에 값하겠다는 것 등을 다시 늘어놓으면서, 정말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특히 그만을 기다리는 불쌍한 아내와 어린것들을 보아서도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며 흐느낄 때는 나까지도 눈시울이 화끈해졌다. 
  그래서인지 구형은 지극히 관대했다. 아무리 어린 소나무와 잡목이라지만 3백여 그루나 더 베어냈다는데도 겨우 징역 육개월이었다.
  구형이 끝난 후 국선 변호인의 일괄변론이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도 그 운용이 제대로 안되면 쓸모없다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적 과정이었다.
  오십대의 두터운 돋보기 안경을 낀 그 변호사는 열두 명의 변론을 한 장의 종이 위에 메모해 와서 한꺼번에 해치웠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권기진씨의 애소보다 더 나을 게 하나도 없는 내용이었다. 변호사로서의 고심이나 법률적인 접근은 흔적도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작량감경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나이가 많으니, 어린 사람은 어리니 봐달라는 것이었고, 좀 발전했다는 것이 가족, 생계를 이유로 관용을 비는 정도였는데 그 태도는 언제나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이...”“너그럽게 통촉하시옵소서”하는 식이었다.
  만약 우리나라의 각급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국선변호인의 변론이 모두 그러하다면, 그 제도는 그야말로 국고와 시간의 낭비에 불과한 것이라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구형을 받은 후 선고가 있을 때까지 느끼는 초조와 혼란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특별한 확신범이나 자포자기 상태가 아닌 경우면 그 기간은 대부분 과민상태에 빠진다.
  내 경우에도 많이 자제된 것이기는 했지만 그 상태는 별로 다를 바 없었다. 구형을 받은 후부터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마음 대로 되지 않았다. 거듭된 형님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ㄴ는 형님에게 감방에서 떠도는 말대로 -신원장-을 찾아보라도 졸랐다.
  신원장이란 사람은 그 지원 판사와 단짝으로 어울리던 그곳 산부인과 의사였는데, 종종 재판에도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결국 나는 형님에게 그를 찾아가서 뇌물을 쓰더라도 나늘 석방되게 해 달라고 조른 셈인데, 내가 그런 말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단 한사람 김광하씨만은 모든 것이 전과 다름없었다. 법정에서 돌아오자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마 추측대로라면 법원은 내게 육개월을 선고할 것이오, 그날이 법정구속 만기일인 동시에 형 만기일이 되도록 말이오, 성격이 애매한 사건으로 필요 이상 구속기간이 연장됐을 때 흔히 쓰는 수법이오. 그러면 나는 고도소로 호송되어서 머리를 깎고, 이튿날 새벽 그곳에서 출옥하게 되는 것이오.
  그런 경우 대부분 약간 억울해도 항소를 단념하고 말아요. 그러나 나는 달라. 나는 받드시 항소하겠소. 항소해서 안되면 상고도 하겠소.”
  그리고 오후에 도박꾼들이 각각 징역 육개월을 선고받고 돌아왔을 대도 비평을 잊지 않았다.
  “강물 이쪽 언덕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흉악한 범죄가 되고 저쪽 언덕에서는 영웅적인 행위가 된다-나는 도박죄의 재판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그런 기분이 드오. 똑같은 도박인데도 카지노에서 몇십 몇백만원이 오가는 것은 죄가 안되고, 품팔이꾼인 저들이 비오는 날만 골라 한 판돈 이삼만 원의 화투판은 죄가 된단 말이오. 거기다가 사회 상류층에서 공공연하게 하고 있는 마작이나 포커판도 보통은 이들 판돈의 두배는 넘소. 횟수도 이들보다는 잦아요. 그러나 석달에 걸쳐 열한번 한 저들은 상습도박이 되고 상류층인 그들에게 그저 오락일 뿐이오. 저들이 돌아올때까지 그 가족이 겪어야 할 굶주림과 추위를 생각하면 내가 법관이 되지 못한 게 다행으로 여겨지오.”
  선고를 기다리는 그 일주일 동안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을 만큼인상적인 것은 김기주씨의 후문이었다. 도박꾼들을 A교도소로 호송하고 돌아온 교도관에 의하면 그는 그곳 합의부에서 끝내 증거불충분으로 혐의를 벗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석방통고를 받고도 별반 기뻐하지 않던 그는 석방시간이 되자 갑자기 나가기를 거부하며 자기는 재판을 받아야 할 몸이라고 열렬히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굴 미쳐버린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김광하씨에게 물어 보았다.
  “김기주씨가 사실은 그 애들을 바다에 밀어넣은 게 아닐까요?”
  “아니, 절대로 그렇지는 않을 거요. 내가 듣고 겪은 그는 결코 그토록 잔인하고 행동적인 위인은 못됐소.”
  “그렇다면 왜 미쳐버렸을까요?”
  “내심의 소리-어쩌면 미필적 고의 같은 것 때문이었을 거요. 비록 행위하지는 않았으나 원하였다. 또는 위험을 에측하였으나 용인하였다 하는 데서 오는 어떤 가책...”
  그러나 그때부터 김광하씨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젖어들고 있었다.
  내  어둠의 날들 중에서 가장 길고 괴로왔던 일주일이 가고 마침내 선고가 내려졌다. 거의가 예상대로였다.
  나는 징역 팔개월에 집행유에 삼년을 선고받았고, 김광하씨는 자신의 말대로 징역 육개월을 선고받았다. 권기진씨는 징역 육개월에 선고유예로 가장 형량이 적었고 반대로 전 감방장은 이년육개월을 선고받아 그날의 최고형이 됐다. 역시 전과가 불리하게 작용한 것 같았다. 가짜 기자는 구형대로 일년이었다.
  선고가 떨어진 후 나는 처음 한동안 기쁨으로 정신이 없었다. 뒤에 달려 있는 집행유예 삼년이라는 꼬리가 앞으로 나를 어떻게 괴롭힐지, 그리고 뒤미처 있을 입대가 내 인생의 계획을 어떻게 바꿔놓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우선 석방된다는 것, 아, 이 울타리 밖으로 나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언제든 함께 있을 수 있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포근한 솜이불 속에 잠들고, 조용한 방에서 원하는 걸 읽을 수도 있고, -그리고 떳떳하게 성냥과 담배를 넣어다니다가 주이를 살피지 않고도 불을 붙이고 방해받지 않고 온 개비 담배를 다 태울 수 있고...술, 박카스 병에 든 독주를 마시고 면회실 세면대에 가서 얼굴을 찬물에 끼얹지 않아도 되고, 은단을 씹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마시고 고래고래 떠들다가 아무렇게나 쓰러져자도 되고...
  그런데 문득 그런 재 주위를 다시 동료들에게로 환기시킨 것은 권기진씨였다. 초라하고, 무지하게만 뵈던 그가 일단 선고가 내리자마다 돌연 이상한 위엄과 침착을 되찾은 것이었다. 정말 순간이다 싶을 만큼 선고장 낭독을 마친 판사를 바라보는 눈길부터 달라져 있었다. 이전의 관대한 처분을 애걸하는 눈물로 젖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뜻대로 이루었다는 회심의 빛이 엿보였다.
  그런 권기진씨의 돌연한 변화는 감방으로 돌아오자 더욱 완연하게 드러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깍듯이 교도관님, 교도관님, 하며 대하던 교도관들에게도 반말 지거리였고, 영치물 찾는 과정에서도 사소한 물건이 없어진 것도 까다롭게 따졌다.
  “영치물 보관이 이렇게 허술해서야...”하고 의젓하게 나무라가면서.
  남아 있는 동료들과의 작별인사도 위엄 있는 악수로 대신했다. 그리고 김광하씨에게 가서는 언제 가지고 있었던지 금박박힌 명함 한 장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항소하시오. 당신은 나보다 훨씬 당당한 사람이오. 그리고 나오거든 꼭 나를 한번 찾아주시오. 아마 우리는 서로 크게 도우며 살 수 있을 것 같소.”
  나는 얼떨떨했다. 도대체 그의 이런 급변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러나 또하나 놀라운 변화는 김광하씨였다. 그는 권기진씨가 내민 명함을 조용히 되돌려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명함은 내게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권기진씨. 나는 당신을 모르고, 도 알려고도 않겠읍니다. 그리고 항소는 이미 이틀 전에 포기했읍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포정은 이상하리만큼 담담했다. 일종의 무안을 당한 권기진씨는 잠시 복잡한 표정으로 김광하씨를 보다가 이내 태연한 동작으로 명함을 거두고는 말없이 나가버렸다.
  “왜 항소를 포기하셨읍니까?”
  나는 작별인사도 잊고 김광하씨에게 멍청하게 물었다.
  “내가 지금껏 해온 일을 기껏 나를 받아주지 않은 법에 대한 비열한 복수였소. 그러나 이미 저런 사람들이 해오고 있다면 나는 흥미가 없고. 나는 깨끗한 원한과 저런 사람들의 탐욕이 혼동되는 것은 진정 피하고 싶소.”
  그는 아마도 권기진씨의 정체를 속속들이 파악한 것 같았다.
  “그리고... 김기주씨의 일도 많은 시사하는 데가 있었소. 고통은 일차적으로 인간의 육체를 향하고 있지만 필경은 정신적인 것이오. 육체적인 형벌을 면하는 것이 정신적인 고통을 배가 시킬까 두렵소. 이미 말했듯이, 나는 유죄니까... 그럼 잘 가시오.”
  그리고 그는 멀리 창살 밖을 망연히 응시했다.
  내가 권기진씨의 참모습을 보게 된 것은 그날 저녁 때였다.
  출감 즉시 두부를 두 모나 먹고, 목욕과 이발을 한 후, 속옷까지 새것으로 갈아입은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형님과 어느 깨끗한 식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더운 김과 고기 굽는 연기로 자욱한 식당 안쪽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어 이영훈씨, 이리루 오쇼. 술 한잔 못하고 헤어지나 했더니 잘 만났소.”
  목소리는 귀에 익어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중년 남자였다. 잘재단된 감색 싱글이나 당시만 해도 아직 그 같은 소읍에는 유행 않던 세련미를 보이고 있었다. 사내는 쭈뼛쭈뼛하는 나를 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새 사람을 못 알아봇오? 한달이나 한 솥 밥을 먹고도-나, 권기진이요. 권기진.”
  그제서야 나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권기진씨였다. 기름때로 느럴ㅎ게 번질거리던 얼굴과 그걸 뒤덮고 있던 텁수룩한 수염, 때묻고 헤진 무명바지 저고리 같은 것들을 상상 속에서 다시 그에게 씌워 보고서야 나는 간신히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그곁에 앉은 그의 부인을 알아보았을 때의 놀라움도 그 못지않았다. 사십대의 여인에게 양장이 어울리는 경우가 드문데도, 그녀는 그쪽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우아한 도회지의 여인이었다.
  “이리 앉으시오.”
  그는 아직도 갈피를 못잡는 나를 억지로 빈 자리에 끌어 앉히며 형님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인사들 하시지, 이쪽은 나와 함께 고생한 이영훈씨, 이분은 그 형님되시고-”
  그는 가운데서 양편을 다 소개했다.
  “이쪽은 제 처와 항상 제게 법적인 조언을 주시는 박변호사님.”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술이 한순배 돈 후, 약간 취한 그가 변호사의 동의를 얻어 털어놓은 그간의 내막이었다.
  “나는 목재상이오, 주로 도회의 장의사를 상대로 하지. 근년 들어 관목이 무척 귀해졌소. 그런데도 떼돈을 번 녀석은 어찌 그리많은지, 녀석들은 한결같이 잇지 않은 통관목을 찾았소. 자연 수요가 달리니 값이 뛸 수 밖에. 그래서 관목을 찾아나선 내가 발견한 것이 문제의 개간지 부근에 있던 소나무였소. 국유림인데 오래된 묘 둘레에 관재로 쓸 수 있는 소나무가 백여 그루나 몰려 있었소. 물론 처음에야 어떻게 벌채 허가를 얻으려고 해보았지만. 잘 안되더군. 그래서 꾸민 것이 이번의 일이오. 아내와 나의 주민등록만 그곳으로 옮기고 개간허가를 얻어 무지렁뱅이 농보로 시작한 거요. 나머지는 이영훈씨가 본 그대로요. 다만 "모르고 메어낸 소나무 몇뿌리" 속에 관재 백여 그루가 포함돼 있다는 것 왜에는 제일 두려웠던 것은 현장 검증 때와 인근 주민들의 반응이었소. 그러나 주민들은 내가 정식 벌채 허가를 받은 걸로 알고 있고, 현장 검증 때는 ...”
  그때 그의 아내가 아무래도 불안한 듯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나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걱정말아. 일사부재리야. 내게 불이익한 판결의 변경은 금지돼 있어.”
  변호사란 친구도 그에게 동조하듯 몽롱한 눈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족 같지만 꼭하나 덧붙일 얘기가 있다. 감방 안에서 들은 “6조지기”중 다섯 가지는 이미 그동안에 확인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를 확인한 것은 내가 집에 돌아온 후의 일이었다.
  오랜만에 형제끼리 마주한 술상 앞에서 나는 형님에게 술 한잔을 부어 올리며 물었다.
  “형님 정말 애쓰셨읍니다. 경비도 상당히 났지요?”
  그러자 형님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야 뭐...조상들께 감사해라. 네몫으로 지워진 새들 논 두 마지기 날아갔다.”
  내가 “6조지기”중 마지막을 확인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집구석은 팔아 조졌다.”
   두 겹의 노래

  삶은 쓸쓸하다. 또는 쓸쓸하지 않다. 아니, 쓸쓸하지 못할 것도 없다. 잔디밭에는 소녀들이 비둘기가 되어 내려앉아 있고, 허공에 뿌리박은 나무들은 잔인한 겨울의 예감으로 불안하게 일렁이낟. 대지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녀들은 이제 잎새가 되어 공원의 돌담 너머로 흩어진다. 나무의 잔뿌리들이 늙은 탄금사의 수염인 양 나부끼며 추억 같은 먼지를 핏기없는 하늘에 뿌린다.
  “날씨가 차군.”
  수의를 걸친 젖은 석고상같이 벤치에 기대섰던 사내가 그 곁에 허상처럼 앉은 여인에게 축축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무 긴 사내의 오른편 다리는 세 번이나 접혀 벤치 모퉁이에 얹혀 있다. 사가아가는 뼈색깔의 피부에 코를 입술까지 드리운 여인은, 그러나 사내 쪽이 아니라 담 너머의 우중충한 건물을 향해 대답한다.
  “마음이 춥기 때문일 거예요.”
  “아니야.”
  사내는 여인의 메마른 목소리를 흩뜨려버리기나 하듯 단호하게 부인한다. 눈길은 어느새 여인이 보고 있는 건물에 가 있다.
  “저기를 봐. 눈이 오고 있잖아?”
  “하지만 그 꼭대기를 봐요, 햇빛이 눈부시지 않아요?”
  여인은 약간 호소하는 말투다. 그러나 사내는 오히려 그 당돌함에 흠칫하며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내 머리를 끄덕인다. 
  “그렇군. 햇빛을 받아 온통 금빛이군.”
  “네, 정말 눈이에요. 건물 밑둥은 이미 거멓게 젖어 오고 있군요.”
  사내가 선선히 말을 바꾸자 여인도 까닭없이 풀이 죽으며 이번에는 자기의 말을 뒤집는다. 하지만 금빛으로 번쩍인다 해서 차가움의 반대라고는 할 수 없지, 내일 다시 떠올라야 할 피로가 우연히 건물 꼭대기에 얼룩진 것뿐이야, 라고 말해 주고 싶던 사내는 거기서 문득 할 말을 잊는다. 
  그 사이 그들이 보고 있는 건물은 조용히 그날 몫을 가라앉힌다. 도회의 그쪽은 매일 한 잘씩 땅 속으로 꺼져든다. 들리기에 사람들이 그 밑에서 너무 많은 것을 파내 땅 위에다 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자리, 아득한 엣날에 석회의 강물이 흘러가고, 다시 그 위를 열길이나 되는 고사리가 무성하던 자리. 몇천년 전에는 늙은 소나무들이 비바람에 부대끼고, 승냥이며 고라니가 떼를 지어 노닐기도 했다. 그 어디엔가 백년 전에 지쳐 죽은 당나귀도 묻혀 있어, 만 년쯤 지나면 사람들은 그 뼈를 유리 그릇에 담아 늘어놓을 것이다. 
  “생각나세요?”
  문득 그리움을 충동질하는 눈길로 여인이 그렇게 물어 오지 않았더라면 사내는 자칫 그 당나귀 얘기를 꺼낼 뻔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아무도 남을 해치지 않는다. 사내도 시티미를 떼고 그녀의 물음에 대한 성의만 표시한다. 
  “무얼?”
  “그때 말이에요. 우리가 처음 만날 무렵.”
  “생각나지.”
  “벌써 삼 년이나 됐어요. 그날 집집마다 창틀에 활짝 핀 제라늄 분들을 내놓고 있었지요.”
  그렇게 말하는 여인은 이미 허상이 아니었다. 똬리 틀 듯 움츠러져 있던 목은 어느새 우아하게 길어지고 입술까지 흘러내렸던 코는 꼭 한 치 위로 올라붙는다. 바람만 불면 바스라져 날아가버릴 것 같던 머리칼에도 윤기가 비치고 삭아가는 뼈 같은 빛을 띠고 있던 뺨에는 제법 혈색까지 아른거린다. 그러나 사내에게는 그 같은 변화가 마음에 거슬린다. 
  “나는 집집마다 붉은 등을 내건 줄 알았는데. 아니면 지저분한 분홍 커튼 자락들이 창밖으로 휘날렸거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걸 상기시키려고나 하듯 사내의 말투는 느닷없이 심술궂어진다. 그래도 여인은 열기가 더해진 목소리로 잇는다. 
  “당신은 이 벤치에 앉아 계셨지요. 저는 말없이 빗긴 노을을 쳐다보고 있는 그 모습에서 상처받고 외로운 영혼을 느꼈어요.”
  “권태기에 접어든 중년 남자의 사치스르운 외로움에다 배은과 다를 바 없는 욕구불만에 지나지 않았을 거요.”
  “아니예요. 고귀하고 성실한 영혼이 아니면 풍길 수 없는 재스민 향과도 같은 상심과 외로움이었어요.”
  “그렇다면 비뚤어진 욕정의 냄새였을 테지. 그 무렵 내 속옷은 언제나 몽정으로 축축했었지.”
  “이런 오늘을 예감케 하는 것은 아무 데도 없었는데...”
  “어쩌면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예감조차 없었는지도 모르지.”
  그러다가 사내는 어느새 삭아가는 뼈 빛깔로 돌아간 여인의 얼굴에서 늘어가는 푸른 금을 보고 불현듯한 안스러움을 느낀다. 그 같은 대꾸는 쓸데없는 감정의 과장에 지나지 않음도. 그 바람에 사내는 앞엣말과의 연관을 거의 생각하지도 않고 성급하게 덧붙인다. 
  “하지만 당신으 ㄴ정말 아름다웠소. 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해 낼 수도 없었을 만큼. 그야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지.”
  “시들기 직전의 처연함이 종종 꽃의 아름다움으로 착각되기도하는 법이에요.”
  이번에는 여인의 앙갚음이 시작된다. 
  “그래도 재치있고 발랄했어.”
  “늦도록 독신으로 남겨진 여자의 허세였겠죠.”
  “아니, 당신의 지성과 심미안은 분명 남달리 반짝이는 데가 있었소.”
  “남자도 아니도 없이 삼십 년쯤 두리번거리다 보면 여자라도 이것저것 세상 일을 알게 되는 수도 있죠.”
  그래 놓고서야 여인의 목소리가 품고 있던 칼날은 무디어진다. 입가에까지 그물처럼 덮혀 있던 푸른 금들도 차츰 쓸쓸한 미소로 바뀐다. 그러나 사내는 이미 물에 젖은 석고상으로 돌아간 뒤였다 얘기하는 동안 무심코 쭉 펴는 바람에 오른편 다리는 반 넘게 땅 속에 파묻혀 있고, 수의 같은 외투 속의 허술한 입성들은 마침 불어온 한줄기 바람에 해져 너덜거린다. 관자놀이 어름에는 어느새 자주빛 버섯도 하나 돋아 있다. 그걸 본 여인이 갑자기 절반으로 줄어들며 말한다. 
  “죄송해요.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괜찮아, 나는 기분 상하지 않소.”
  “아, 이런 만남으로 이끌어 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러더니 여인은 문득 앞뒤 없는 비탄에 젖어들며 묻는다.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도대체 그때와 무엇이 달라졌어요?”
  “세월이 낭비되었소. 지나치게.”
  사내가 간신히 입술만 움직여 대답한다.
  “그걸 낭비로만 여겨야 해요? 의미로 채웠다고 보면 안되나요?”
  “공허한 의미야.”
  “원래가 공허한 삶이에요.”
  “그래도 우리에게 함부로 공허해질 권리는 없어.”
  그러자 여자는 한동안 말이 없다. 그 사이 하늘은 점점 검푸르게 내려앉고, 나지막한 공원의 담은 부패하는 시체 같은 고동색으로 누워 있다. 뜻밖의 새가 한 쌍 그 담을 뚫고 날아와 그들의 머리 위를 돌다 수직으로 솟아올라 검푸른 하늘을 찢고 사라진다. 무한 속으로. 
  “윤리가 무엇일까요?”
  새를 쫓는 사내의 몽롱한 눈길이 제자리를 돌아오기를 기다려 여인이 다시 한숨처럼 묻는다. 
  “우리가 도덕적이 된다는 건요?”
  “자유로워지는 것이지. 우리가 우리들 자신으로 충일되는 것이지.”
  사내가 턱없이 으시대며 답한다. 자신 있게, 그러나 곧 우울하게 정정한다. 
  “묶이는 것이지, 우리를 비워 남으로 채우는 것이지.”
  “자유로운 우리를 채우면 안되나요?”
  “그걸로는 우리의 관밖에 채우지 못해.”
  “그게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줘두요? 또는 낡고 억지스런 세게를 부수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두요?”
  “대단하다고 해도 관을 비어져 나와 무던을 꾸미는 정도겠지. 새로운 관을 땅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그러는 사내의 어깨 어름에서는 해져 너덜거리던 입성들이 바람도 없는데 조각조각 눈송이처럼 흘러내린다. 앙상한 빗장뼈가 드러나고, 아득한 옛날 여자에게 빼앗겨버렸다는 갈비뼈 자리에는 피멍 같은 그늘이 져 있다. 
  “우리를 비워 남으로 채우면 어떻게 되나요?”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요, 하는 조건문을 한숨으로 대신한 여인의 물음이다.
  “오래, 편안하게 살겠지.”
  “그뿐인가요?”
  “근엄하고 경건하게 늙을 수 있을 거야. 함부로 쓸쓸해 할 권리도 있고, 세상을 향해 큰 목소리로 떠들어도 참아 주겠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회색빛 이마에도 검푸른 금이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얽힌다. 이어 목소리는 여러 개의 동굴을 거쳐서 들려오는 상처받은 짐승의 신음인 양 낮고 처량해진다. 
  “하지만 또...지루하고 피곤할 거야. 삶은 삼십 초마다 한번씩 벗어서 팽개치고 싶은 짐짝같이 느껴지겠지.”
  사내는 진심으로 음울하다. 듣고 있는 여인은 당연하게 또는 느닷없이 절망적으로 슬퍼진다. 금새 부스러져 내릴 듯이 푸른 잔금으로 뒤덮인 코 아래는 검고 깊은 그늘이 패이고, 열린 창문처럼 헹한 안공 저쪽에는 구십억의 뇌세표가 슬픔으로 파들거리는 게 보인다.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나는 오른쪽 다리를 땅 속 깊이 눌러 박으며, 사내는 그런 여인에게서 눈길을 돌려 의미없이 사방으로 둘러본다. 조금 전의 바람에 묻어온 듯한 빨간 소년들이 한줌 짖궂은 눈길을 그들의 벤치에 뿌려놓고 어디론가 날려가고, 잎새처럼 가뭇없이 사라졌던 소녀들은 다시 하얀 비둘기가 되어 공원의 잔디밭에 내려앉는다. 여러 해 전에 죽은 이들의 뼈가 얼음공으로 작은 공터를 굴러다닌다. 
  사내의 눈길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여인의 몸에서 우러난 슬픔의 빛은 무슨 요염한 휘장처럼 그녀를 둘러싸고 있다. 그 엉뚱하게 선정적인 모습에 다황한 사내는 얼른 눈길을 맞은편 담벽으로 돌린다. 그런데 고동색으로 죽어 있던 담벽에서 갑자기 분홍빛 여인의 두 다리가 피어오른다. 이어 검붉고 거대한 숫말이 그 곁에서 힘차게 달려나오고, 오래잖아 서로 얽힌 둘은 페가 수스가 되어 천랑성을 향해 솟구친다. 그들을 축복하기라도 하듯 담벽 여기저기서 금빛 팬지꽃이 피어나 순식간에 우중충한 고동색을 묻어버린다. 
  보고 있는 사내의 아랫도리는 까닭 모르게 달아오른다. 백열된 귀두가 너덜거리는 바지 앞자락을 태우며 버어져 나온다. 상사목은 아직 시뻘겋게 달아있을 뿐이지만, 백열은 머지 않아 그 부근 전체에 번질 듯하다. 사내는 자신의 그 같은 변화가 느닷없는 탓인지, 무안함을 감추기나 하려는 듯 벤치에서 몸을 떼며 입을 년다. 한껏 심각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이미 칙칙한 고혹이 깃들어 있다. 
  “그래도 우리는 노예고 또 주인이지.”
  여인은 아직도 푸르스름한 슬픔의 안개에 싸여 있긴 하지만, 그 슬픔은 계산된 것인 듯하다. 마치 사내의 그 같은 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나, 그 선정적인 슬픔의 휘장을 헤치고 나온다. 
  “맞아요. 선택당하지만 선택할 수도 있어요.”
  “삶을 채우는 것도 축음을 꾸미는 것도 우리 스스로의 일이지.”
  “이 땅의 마지막 판관은 결국 우리 자신이죠.”
  그리고 여인은 몸을 일으킨다. 그녀를 일으킨 한 줄기 생긱는 금새 도발적인 섬광이 되어 비워버린 것 같던 두 눈을 채운다. 그제서야 사내는 그녀의 휘장이 하나의 그물이었을는지 모른다는 의심에 어렴풋이 젖어들지만, 별로 불쾌한 기색은 없다.
  “가요. 우선 이곳을 떠나요.”
  “하긴 그래. 우리가 너무 황량한 곳에 와 있군.”
  “변해서는 안돼요. 자유를 향해 가요.”
  “맞아. 자신의 선택을 책임질 용기만 잃지 않으면 돼.”
  “그게 끝내는 관을 채울 뿐일지라도 두렵지 않아요.”
  “관을 넘쳐 흘러 우리의 무덤을 온통 장미꽃으로 뒤덮을 수도 있을 거야.”
  “어쩌면 개선비로 남을 수도 있을 거예요. 자기가 친덫에 자신이 걸려 고통받는 이들에겐...”
  여인은 과장의 혐의를 받을 만큼 한층 고무적으로 속살거리며 앞장을 선다. 사내도 땅 속 갚이 박혀 잇던 다리를 서둘러 빼내며 흔연히 뒤를 따른다. 그 둘의 발 및에서 귀엽고 색정적인 사향노루 한 쌍이 불쑥 솟아올라 그들의 머리를 타넘고 갑자기 짙어진 부근의 관목 숲으로 사라진다. 
  사내와 여인은 쓸쓸한 초겨울의 공원을 말없이 빠져나온다. 출입구 난간에 걸려 있던 제복과 제모가 그들이 일으킨 바람에 공손하게 나부낀다. 거리는 텅 비어 있고, 시커멓게 골조만 남은 건물들 사이를 들쥐떼만 이리저리 물려다닌다. 무너져내리는 교회의 첨탑에 술취한 시인이 빨래처럼 나부기며 노래하고 있다. 아아, 신은 어디 가고 우리만 남아 눈물 짖고 있고 있나. 우리는 어디 가고 신만 남아 눈물 짓고 있나. 눈물은 어디 가고 우리만 남아 신을 짓고 있나...
  후미진 골목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사내는 잠시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이 되어 걸음을 멈춘다. 그러나 후줄근한 노을 속에 떠다니는 여자의 장미빛 젖가슴과 컴컴한 건물 그늘에서 두 눈만 번쩍이는 검은 숫소떼가 모하게 그를 충도하고, 사내는 가볍게 개뿔 같은 사유의 추격을 벗어난다. 
  “뭘 하시려는 거예요?”
  몇 발 옮기지 않아 다시 걸음을 멈추고 길가의 불타다 남은 가로수 그루터기에 수의 같은 외투를 거는 사내에게 여인이, 그러나 크게 이상하게 여기는 기색없이 묻는다. 사내는 대답 대신 쭈그리고 앉더니 매끈하게 거리를 덮고 있는 아스팔트를 손톱으로 후벼파기 시작한다. 
  잠깐 동안에 완강하던 아스팔트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사내는 오랜 상처에서 딱지를 떼내듯 찢어진 아스팔트 껍질들을 하나씩 벗겨나간다. 신기하게도 그 밑에서는 빠알간 흙이 돋아나는 새살처럼 드러난다. 
  “무얼 하시느냐니깐요?”
  여인이 가만히 다가와 사내 곁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으며 되풀이해 묻는다. 그러나 전혀 모르겠다는 뜻이 아닌 것은 그 사이 달라진 모습만으로도 알 만하다. 삭아가는 뼈빛이던 그녀의 뺨에는 수채의 실지렁이들처럼 가늘고 붉은 핏줄들이 아련히 일고 있다. 
  “당신과 성합을 나누었으면 해. 모든 걸 잊고, 질편하고 흥건하게.”
  사내는 여전히 쇠꼬챙이 같은 손톱으로 아스팔트를 후비며 능청스레 대답한다. 지극히 근엄한 얘기를 할 때처럼 제법 이맛살까지 찌푸리며. 여인은 그런 사내의 뻔뻔스러움을 정직한 화냥기로 받아들인다. 
  “좋은 생각이에요. 지금 같은 때에 우리가 할 알맞은 일이죠. 그런데, 여기서?”
  “그래, 여기서. 나는 지금 대지의 뼈를 모으고 있어. 그걸로 돌담을 둘러쌓을 작정이지. 원래 성합은 남들이 보는 곳에서 하지 않기로 되어 있거든.”
  “지붕은 어떡하실 거예요?”
  “그건 필요없어. 하늘 위에 있는 것은 신뿐이니까. 하지만 이제 그도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아까 누가 노래하지 않았어?”
  여인이 정말 그렇군요, 하는 듯 입을 다물자 사내도 말없이 흙만 후빈다. 공처럼 둥글고 여러 색깔을 한 자갈들이 흙 속에서 빠져나와 사내를 중심으로 가지런한 돌담을 이루기 시작한다. 개중에는 녹색의 원뿔도 있고, 감람색의 육모기둥과 석류알 빛을 띤 육십사면체도 섞여 있다. 
  그런데 잠자코 그것들로 엉성한 담을 쌓고 있던 사내가 무얼 보았는지 문득 두 눈을 번적이며 일손을 멈춘다. 도회 저편의 지평선 끝에 떠 있던 한 조각 쪽빛 바다에 눈을 팔고 있던 여인이 호기심에 차 사내의 손안을 살핀다. 부스러지기 시작하는 은빛의 돌조각이다. 
  “뭐예요?”
  “이게 여기 있었군. 오래 찾았었는데.”
  “뭐길래요?”
  “내 어깨뼈야. 수룡이 나를 삼틴 뒤 영영 찾지 못했지. 그게 여기에 묻혀 있었군.”
  “이제 그걸 찾아 무얼 하게요?”
  “내 관을 위해 필요하지. 이게 없으면 나중에 염하는 사람들이 찾을 거야. 그들은 애초부터 내게 어깨뼈 한 조각이 모자랐다는 걸 모르거든.”
  “그러고 보니 당신 발 아래 있는 그 푸른 돌, 어디서 많이 본 것이예요.”
  “흔해 빠진 쑥돌 조각이야.”
  “그렇찮아요. 어쩌면 제가 가지고 놀다 잃어버린 노리개일 거예요. 십만 년쯤 전에.” 
  “그게 사실이라도 원래 당신에게 속했던 건 아니지. 찾았다고 신통할 건 없어.”
  사내는 방금 주운 돌조각을 어깨살을 비집고 집어 넣으며 심드렁히 말한다. 
  “차라리 저쪽에 가 먼지나 씻지. 공원에서 흙먼지를 눈처럼 맞고 왔잖아?”
  “저건 납과 타르가 녹아 흐르는 더러운 수채예요.”
  여인은 사내가 자기의 말을 잘라먹은 것을 깜박 잊은 채, 그가 눈길로 가리킨 길가의 수로가 더러운 것에만 눈살을 찌푸린다. 사내는 다시 엉성한 담쌓기를 계속하면서 남의 일 말하듯 대꾸한다. 
  “어쨌든 먼지는 씻어질걸.”
  그 말에 아무런 뜻이 없다는 것은 움직임이 없는 사내의 입술보다도 이제는 거침없이 바지를 찢고 온몸을 드러낸 그의 한 발이나 되는 남근이 잘 말해 주고 있다. 그걸 본 탓인지, 여인도 정작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는 듯이 한 꺼풀 한 꺼풀씩 허물 같은 옷을 몸에서 떼어내기 시작한다. 
  여인이 옷을 다 벗었을 때쯤 사내의 돌담도 완성된다. 거멓게 그을은 골조만 남은 건물들이 끝없이 늘어선 포도 한 귀퉁이에 쌓은, 사방 한 길의 낮고 알락달락한 돌담은, 그러나 기괴하기보다는 아늑하고 선정적이다. 일을 마친 사내가 서둘러 옷을 빠져나가 이제는 알몸이 되어 누워 있는 여인을 덮고, 이내 그들의 거칠고 성급한 성합은 어우러진다. 
  이미 수백 수십만 년을 되풀이해 온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시작은 언제나 황홀한다. 누구든 떨어져 보고 싶은 저주의 불꽃, 또는 영원히 적셔지지 않을 목마름이다. 그 고통과도 흡사한 몸서리쳐지는 열락을 향해 둘의 괴롭고 긴 허망의 행진은 시작된다. 
  젖은 석고 같던 사내의 몸 여기저기서는 붉게 단 강철선 같은 힘줄들이 팽팽하게 솟아나 얽히고, 푸르게 금간 삭은 뼈의 빛깔이던 여인의 피부도 뜨겁게 살아나는 핏줄들로 분홍의 꽃잎처럼 피어오른다. 어둡게 내려앉은 하늘도 그들의 머리 위에만은 에머랄드의 천정을 드리워주고 있다. 부패와 미망, 한탄과 의혹 같은 우리 삶의 여러 어둠을 간신히 헤쳐나온 자주빛 구관조 한 마리가 돌담 위에서 운다. 포도를 굴러다니던 맘모스의 턱뼈를 쪼개고 새빨간 장미꽃 한 송이도 돋아난다. 
  “나는 이럴 때면 언제나 까마득히 잊고 있던 고향이 떠올라. 아주 오랜 옛 고향이...”
 사내가 애써 가쁜 숨을 죽이며 여인의 귀에 속삭인다. 여인이 감았던 눈을 뜨며 가만히, 그리고 열에 아홉은 건성으로 대꾸한다. 
  “어디게요?”
  그런 여인의 갈라진 젖무덤에는 붉고 탐욕스런 혀가 널름거리고, 청회색 젖 그늘에는 노란 채송화도 몇 송이 반짝인다. 
  “바다. 저 원처의 쪽빛을 지나면 검푸른 안식이 있고, 그걸 또 지나서 가면 어둠과 침묵에 이르지. 그 어둠과 침묵 속에서 한 생명의 예감으로 잠들어 있던 때를 기억할 것 같애. 그곳을 벗어나 이번에는 한 외로운 단세포로 부유하던 때도. 그 다음... 나는 산호 였고 바다백합이었고, 앵무조개여쏘, 삼엽충이었지. 때로는 몸 길이가 삼 미터나 되는 바다전갈이 되어 억센 집게발로 그것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먹기도 했어...”
  “너무 까마득하군요.”
  여자가 다시 성의없이 참견한다. 역시 가쁜 숨을 애써 누르며. 
  “그 다음도 기억하지. 나는 암모나이트였고, 어룡이었고, 장경룡이었고 - 그렇게 점차...그 쪽빛 원조에서 헤어나왔지.”
  “아직도 멀어요.”
  “또 기억해. 내가 꼬리를 달고 그 아늑한 고향을 떠나 거친 뭍으로 처음 오르던 때를. 내 몸의 따뜻함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도 어렵게 싸워 온 땅 위에서의 기나긴 세월을...” 
  사내의 눈은 정말로 그리움에 차 이제 막 작은 불꽃들이 지피기 시작하는 여인의 눈 속을 바라본다. 마치 거기서 잃어버린 원초의 고향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내려고나 하는 듯이. 그런 사내의 간절한 눈길은 찬물 속에 스며든 햇빛처럼 똑바로 여인의 심장에 이른다. 오래잖아 자신을 사를 격렬한 불꽃의 예감에 떨면서도 여인은 까닭 모를 뭉클함을 느끼며 사내의 향수에 동조하고 만다. 
  “저는 아무래도 밀림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향긋한 열매와 보드라운 새순, 그리고 거침없던 나날의 삶만이...그래요. 그러다가 갑자기 바람이 불고 황사가 날아들기 시작했어요. 밀림은 자꾸만 황폐해지고, 숲과 숲 사이가 가지로 이어진 안전한 우리의 길이 막혀버렸다는 뜻이죠. 그때부터 모든 길은 땅 위로만 나게 되고, 또한 길은 바로 우리에게 위험과 피로를 나타내는 말이 되고 만 거예요. 처음 안전한 나무에서 내려와 따에 발을 디뎠을 때는 얼마나 두렵던지...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고 빨리 달리지도 하늘을 날지도 못하는 우리들은 별수없이 무리의 힘에 의지해 새로운 숲 또는 새로운 나무로 옮아가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미 껍질까지 벗겨 먹은 숲과 나무를 떠나...아, 그때 당신도 있었던지...”
  “있었어. 처음 새 숲 또는 새 나무로 옮아갔을 때는 살아남은 기쁨만으로도 감격해 어쩔 줄 몰랐지. 그러나 오래잖아 옛날의 무성하던 그 밀림을 그리워하며 그쪽을 바라보고 울었지.”
  “하지만 그때에도 당신의 품에만 안겨 있으면 언제나 옛날의 밀림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내일이면 또 버리고 옮아가야 할 메마른 나뭇가지 위에서도 어김없이 그 풍성하던 열매와 새순을 보았지요...”
  “나도 보았어. 원초의 바다와 쪽빛과 그 아래 잠든 어둠을. 나는 단세포로 그곳을 부유하기도 하고, 한 생명의 예감으로 어둠과 침묵 속에 잠들기도 했지.”
  거기서 사내의 목소리는 완연히 헐떡임으로 변한다. 움직임도 점점 격렬해져 어깨 너머로 미친 바람이 일고, 백열은 어느새 가슴 어름까지 번져 있다. 그의 몸은 이미 얼마 전의 젖은 석고가 아니라 하나하나 살아서 숨쉬고 외치는 수많은 세포들의 뜨거운 집합이었다. 
  여인도 더는 가쁜 숨결을 감추려 들지 않는다. 신음과도 같은 헐떡임을 토해내는 그녀의 입 언저리에는 작고 현란한 무지개가 선다. 멀지 않아 그 무지개는 불꽃 같은 구름으로 피어오르리라. 흥건히 솟은 땀으로 분홍의 점액질같이 보이는 여인의 팔은 참나무 등걸에 박힌 겨우살이의 혁질 줄기처럼 사내의 희게 달아오른 등줄기를 파고들고, 거대한 두족류의 발 같은 두 다리는 보이지 않는 흡반으로 감긴 것은 무엇이든 껍질만 남겨 버리겠다는 듯 뜨거운 구리기둥 같은 사내의 아랫도리를 죄고 있다. 그들의 발치에서는 쉬고 있는 화산이 갑작스레 연기를 뿜으며 용암을 부글거린다. 
  “다시...보여. 원초의 쪽빛...아래 잠든 어둠. 나는-생명의 예감이야. 단세표야.”
  사내가 몽환에 젖어 다시 웅얼거리고 여인도 신음 같은 소리로 그 웅얼거림을 받는다. 
  “보여요, 나도. 그 무성하던 밀림...지금은 우기예요. 활엽수에 빗방울 듣는 소리가...요란하구요...”
  “떠올랐어...나는 삼엽충이야...산호야...해면이야.”
  “우리는...속이 빈...고목등결이에서...비를 피하고...있어요. 다, 당신의 품은...아, 따뜻...하군요.”
  “나는 장경룡이야. 돌고래야...다랑어야.”
  “저는...당신에게, 꼬, 꼬리를...들어준...원숭이...암컷이에요.”
  그런 둘의 신음은 점차 괴상한 울부짖음같이 변한다. 
  “나는 후회해. 후회해, 내가 뭍으로 기어나온 걸. 땅 위에서 살고 싶어한 걸.”
  “저도...슬퍼요. 우, 우리가...나무에서...내려오게 된 게.”
  “언제나 강한 적들에게 쫓겨야 하고.”
  “주림과...추위에...시달려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무리를 짓고.”
  “어리석은...규칙들을 만들고...”
  “불과 도구로 허세를 부리고.”
  “두 발로 서서...쓸데없는 생각에 잠겨들고...”
  “언어로 해로운 기억까지 저장하고...”
  “무, 문화란...허영에...젖어들고...”
  “스스로 만든 사슬에 묶여야 하고, 윤리와 도덕이란 이름으로 상처입고.”
  “사랑하면서도...헤어져야-하고...”
  “아, 그래, 빌어먹을. 언제나 도둑처럼 만나고, 간부로 붙고, 빌어먹을, 배우처럼 헤어지고.”
  한껏 높아졌던 그들의 울부짖음은 그쯤에서 잦아지고, 오래잖아 격렬하던 움직임도 멎는다. 둘은 한동안 태엽이 풀린 자동 인형처럼 스스로가 흘린 땀과 정액 속에 꼼짝 않고 잠겨 있다. 그들이 흘린 정액과 땀은 어느새 그 돌담 안을 넘쳐 검은 내를 이루며 포도 위에 흘러내린다. 빈 콜라 깡통이 떠내려가고, 시들은 꽃다발과 구겨진 연주회의 프로그램과 좀이 슨 책과 알이 깨진 안경과 씹은 껌이 싸인 은박지가 떠내려가고 - 그들의 욕정과 피로와 슬픔도 떠내려간다. 고양되었던 용기와 반역도. 
  “날이 저물었군요.”
  이윽고 몸을 일으킨 연인이 돌담 밖을 내다보며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연다. 발치의 화산에는 검은 연기만 솟고, 에머랄드의 하늘도 사라져버린 뒤다. 사내는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대답이 없다. 영인은 그런 사내를 버려 두고 돌담 곁의 수채로 간다. 여인이 정성들여 구석구석 엉겨붙은 사내의 땀과 정액을 씻어내는 동안 그녀를 덮고 있던 분홍의 열기는 피부밑으로 가는 핏줄이 되어 스며들고, 마침내는 가는 그 핏줄마저 흔적 없이 사라진다. 
  다시 돌담 안으로 돌아온 여인은 처음의 삭아가는 뼈 같은 살결과, 입술까지 흘러내린 코, 그리고 열린 들창처럼 공허한 눈을 가진 허상으로 돌아가 있다. 여인은 그 허상에다 얼마 전에 미련 없이 떼어 던졌던 허물들을 한 조각씩 주워 붙인 뒤 아직도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사내에게 메마른 목소리로 묻는다.
  “이대로 여기서 주무시고 오겠어요?”
  그제서야 사내는 멍한 눈길로 여인을 올려다본다. 여인이 그동안 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듯 사내는 그녀의 변모에 어리 둥절한 표정을 짖는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여인에게 묻는다. 
  “우리는 자유를 향해 떠나지 않았소?”
  “그래오. 그래서 여기 이렇게 와 있지 않아요?”
  여인은 조그마한 양보의 기색도 없이 되묻는다. 
  “아니, 하나의 결론으로 선택하지 않았는가 말이오? 관을 채우고 무덤을 치장하게 되더라도.”
  “그건 어리석은 선택이에요. 우리의 삶 전체를 위협당하면서까지 택해야 할 그런 대답한 관념은 없어요.”
  “.....”
  “당신에겐 지켜야 할 이름과 지위와 - 또 가정이 있어요. 저도 지켜야 할 삶이 따로 있구요. 결국 우리는 주인은 아니예요. 노예일 뿐이예요.”
  그러자 사내는 정말로 알 수 없다는 표정이 된다.
  “그 생각은 방금 한 거요? 아니면 공원에서부터요?”
  “그보다 훨씬 전 당신을 만나려고 집을 나서며부터예요.”
  “그럼 당신이 아까 말한 자유란 기껏 지난 삼 년의 연장만을 뜻했단 말이오?”
  “그건 아니예요.”
  여인의 부정은 단호하면서도 어딘가 미안해하는 듯한 구석이 있다. 얼굴에는 다시 푸른 금들이 덮이기 시작한다. 
  “이게 마지막 만남이죠. 나는 그걸 꾸며줄, 오래 기억할 만한 작별의 의식을 원했을 뿐이에요. 이제 우리 어디서 만나더라도 허심한 목례로 지나쳐 갈 용기를 가지세요.”
  사내는 여인의 그 같은 말이 뜻밖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게 대수로운 일은 아닌 듯 그 사이 젖은석고로 돌아간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는 증거가 있다면 기껏 몇 분간의 침묵 정도일까. 
  “알겠소. 그렇다면 나도 돌아가야지.”
  마침내 사내도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몸을 씻는 대신 비 맞은 짐승처럼 부르르 떨어 말라붙기 시작하는 정액과 분비물을 털어낸 뒤 빠져나왔던 옷 속으로 기어든다. 오래잖아 사내도 처음처럼 해진 옷을 걸친 젖은 석고상으로 돌아간다. 다시 늘어난 오른쪽 다리는 몇 번이나 접힌 채 바짓가랑이 속에 감추어지고, 속옷이 삭아 날려간 가슴께에는 앙상한 빗장뼈가 드러난다. 달라진 것은 다만 언제부터인가 머리칼로 덮인 부분이 투명해져 그 속에 축소된 책더미며, 명함, 잉크병, 고무도장 따위가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는 게 내배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라니 허전하군.”
  옷을 다 걸친 사내가 불타다 남은 가로수 그루터기에서 수의 같은 외투를 벗겨내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리고 새삼스런 애착으로 돌담에 의지해 굳어 있는 여인을 본다. 그 순간 금세라도 머리가 부스러져 흩어질 듯 깊이 잦게 패이는 이마의 푸른 금들이나, 머릿속 가득히 비치던 잡동사니 대신 여인의 밝게 핀 얼굴이 자리잡는 것으로 보아 그의 말이 단순한 의무감에서 나온 의례적인 것이나 이별의 상투어 같지만은 않다. 왼쪽 어깨 위에는 작고 쓸쓸한 회색 구름 한 덩이도 떠 있다. 
  “저두요. 지난 삼 년 그렇게도 자주 당신과 영원히 함께가 되는 꿈을 꾸곤 했었는데...”
  역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여인의 정수리 위에는 남청색의 물망초 한 송이가 돋아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둘은 곧 똑같은 두려움으로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한다. 사내가 먼저 자신의 터무니없는 감상을 철회하는 듯, 매말라진 목소리로 덧붙인다. 
  “더 이상 당신을 안을 수 없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 이제 다시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게 되리라는 예감 때문일 거야.”
  “마찬가지예요. 저도 당신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보다 제가 혼자 남게 되었다는 게 슬퍼요.”
  그러자 사내의 자세는 약간 느슨해진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당신은 좋은 여자였어.”
  “당신두요.”
  “성녀였고...요부였지.”
  “기사이고 치한이었지요.”
  “축복이고...저주이기도 했지.”
  “기쁨인 동시에 괴로움이었지요.”
  “도취이고 환멸이었지.”
  “모든 노래는 두 겹이지요.”
  여인은 그렇게 말을 맺고는 기대섰던 돌담에서 떨어져 남자에게로 다가간다. 
  “자, 이제 그만 나가요. 너무 늦었어요. 그 전에 마지막 입맞춤을 해주시지 않겠어요?”
  어느새 두 눈은 가동중인 컴퓨터인 신호용 램프처럼 파랑헥 깜박이고, 목소리는 무거움을 털어버린 채다. 사내가 조립한 로봇처럼 직각으로 움직이며 말없이 영인의 요구에 따른다. 젖은 석고의 고동색 입술과 삭아가는 뼈의 색깔의 입술이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잠깐 그곳에서 분홍으로 으스름한 불기둥이 일지만 사내의 어깨에 걸려 있던 작고 쓸쓸한 회색 구름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 떨어지는 사내의 입술은 왼쪽 모서리가 깨어져 나갔고, 여인의 입술은 남자의 고동색이 묻어나 지저분하다. 
  “안녕. 다시 한번, 우리 어디서 만나게 되더라도 허심한 목례로 지나쳐갈 용기를 가져요.”
  여인이 그 말을 도마뱀의 꼬리처럼 남기고 먼저 돌담을 빠져나간다. 이어 사내도 수의 같은 외투깃에 얼굴을 깊숙이 묻은 채 돌담을 나선다. 거리는 썩은 당나귀들과 밤이 불러낸 망령들로 붐비고 둘은 하나씩 그 물결 속으로 휩쓸려 사라진다.

  강주 김씨 알지공파의 십칠대 자손으로 경상북도 안동의 어떤 수몰지구에서 올라와 아슬아슬하게 서울시민이 된, 천구백육십이년 이월 십오일에 태어나 이제 스물 하나로 입대를 넉달 남기고 있으며, 학교는 고향 임천국민학교와 임천중학교를 거쳐 서울의 변두리 광문상고를 일 년 반 다닌 것이 마지막이고, 그동안 받은 상으로는 국민학교 때의 개근상 세 번과 우등상 한 번에 중학교 때 받은 개근상 한 번이 있는 반면, 벌은 통금위반으로 구류 한 번 산 일과 교통법규 위반으로 과료 오천 원을 문 것이 전부이며, 늑막염과 장티푸스를 한 번씩 앓은 적은 있지만 대체로 건강한 몸에 일 미터 칠십이 센티의 키와 육십팔 킬로그램의 몸무게를 가졌고, 흰 살결에 왼쪽 볼의 점 세 개가 제법 뚜렷한 눈 코와 어울려 또래의 처녀아이들에게 인물 가지고 서러움을 당하는 편은 아닌, 그래서 깔끔한 미용사 아가씨와 백화점의 계산대 아가씨를 각 한번씩 애인으로 사귀어 본 적이 잇고 지난 봄에는 어떤 골빈 여대생과도 연애가 되다 만 적도 있는, 고생한 데 비해 구김없는 성격에 심성도 대강은 고와 웃사람들에게는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동료들 사이에도 잘 지내는 편이며, 그러나 이따금씩은 자신의 처지나 고르지 못한 세상에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고 또 걸어오는 시비는 구태여 마다하지 않는, 비록 변두리의 별 세 개짜리 호텔이긴 하지만 월말이면 꼬박 꼬박 나오는 봉급에 손님들의 팀과 몸파는 아가씨들에게서 얻어 먹는 구전까지 합치면 한 달 수입 삼십만 원은 되는, 그 가운데 매달 이십만 원은 어김없이 집으로 가져가 이제는 막일도 어려워진 중늙은이가 된 아버지와 어떤 시장 모퉁이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어머니를 감격시키는, 강서호텔 육백 칠호실 벨보이 김시욱군은 천구백팔십이년 십일월 이십육일 오후 여섯 시 사십칠 분쯤 이렇게 말했다. 
  “잡것들. 대낮부터 요란스럽기는 지금이 어떤 때라고...”















   알 수 없는 일들

  나는 올 해로 스물 셋에 드는 변두리 기계공업사의 선반기사다. 그러나 이름만 거창했지 회사라는 게 기껏 시다-보조공- 포함 열 서넛의 종업원을 거느린 주물공장에 지나지 않고 보면 그 선반기사라고 해서 대단할 리가 없다. 터놓고 말해 나는 바로 그 주물공장에 한 대뿐인 낡은 일제 선반과 이봄 갓 중학교를 나온 녀석 하나를 시다로 거느린 한 숙련공일 뿐이다. 이길로 들어서서 쇳가루를 마시며 일한 게 십 년에 가깝고, 또 선반이라면 내몸만큼은 잘 알고 있지만, 어디든 따라다니는 중학교 중퇴의 학력이 내가 보다 큰 회사의 그럴 듯한 자리로 가는 걸 가로막은 탓이었다. 공고 공전 출신들도 대졸 사원들과의 차별대우에 한입 가득 불평을 물고 있는 그런 곳에 나 같은 것이 끼어든들 무슨 뾰족한 수가 나겠는가?
  말이 났으니 하는 얘기지만, 내가 만약 이 세상을 빌어먹을 놈의 세상이라고 욕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갈수록 심해지는 그놈의 학력주의 탓이다. 어떻게 된 셈인지 신문의 구인광고라고 생겨먹으면 우표 닥지 크기만 해도 대학교 졸업장 타령이요, 제법 손바닥만해지기만 하면 이건 어김없이 전학년 성적증명서까지 내놓으라는 식이다. 나야 쇠 깍는 기술 외에 이론적인 것까지 갖추지는 못했으니 어물어물 그런 풍조를 욕질이나 하고 넘어간다 하더라도, 홀로 열심히 읽어 이론까지 정연히 갖춘 별무학력의 동료들에게는 필시 치가 떨리는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허두부터 학력문제로 열 올리는 것은 단수히 나의 처우 때문만은 아니다. 실은 거기 기대서 앞으로 계속될 이 얘기의 제목을 변명하려는 것이 내 솔직한 의도다. 언젠가 나는 어떤 서점에 들렀다가 “그대 다시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으리”란 긴 제목의 소설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지은이가 북한에서 내려온 피난민인가보다 짐작햇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지은이의 고향은 엄연히 경북 어디여서 차표 한 장이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뒤에 나는 또 “뒹구는 돌과 안 뒹구는 돌은 어디서 만나는가”라는 제목의 시집을 보았고, 다시 “무엇이 우리를 더럽고 아니꼽게 하는가”라는 제목의 수필집도 보았다. 그리고 그런 책들이 대개는 제법 읽히는 것들이라는 얘기를 듣고 난 후부터 글의 제목은 될 수 있는 대로 길고 알쏭달쏭한 것이 요새 유행하는 것이라고 알게 되었지만 막상 내 글에 제목을 붙여 보려니 그리 쉽지 않았다. 중학교 중퇴 정도의 학력으로는 말을 매끄러우면서도 길게 푸는 방법이나 글을 짐짓 애매하게 만드는 재주를 익힐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먹물깨나 든 분들은 그 점을 감안하여 “알 수 없는 일들”이라는 이 글의 제목이 멋대가리 없고 무식해 뵈더라도 참아주기 바란다. 
  하지만 제목부터 고전하면서도 구태여 이 글을 쓰려는 데는 내게도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나는 바로 그 “알 수 없는 일들” 때문에 한 미결수가 되어 벌써 한 달째 철차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추행 미수인가 뭔가 하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혐의로.

  이 이야기는 앞뒤를 시시콜콜히 다 하자면 한없이 길지만, 편이상 내가 등산장비를 구입한 때부터 시작하는 편이 낫겠다. 작년 이맘때 꿈꾸던 선반을 혼자 도맡게 되고 월급도 십만 원을 훨씬 웃돌게 되면서부터 나는 그 여유로 가장 먼저 등산장비를 사들였다. 열 다섯의 나이로 중학교를 그만두고 도시로 뛰어나와 눈치와 구박 속에 주물공장에서 잔뼈가 굵어가는 동안 내가 제일 부러워했던 것들 중에 하나가 주말이면 등산복 차림으로 우리 공장 앞 시외버스 정류소에 줄지어 서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한달치 식량이라도 넉넉히 들어갈 것 같은 큼직한 배낭과 거기 얹힌 텐트 주머니, 원색 방수천으로 지은 멋진 등산복과 여러 가지 뱃지며 마스코트가 달린 등산모, 알록달록한 각반과 에베레스트 산이라도 오를 수 있을 듯 요란스런 등산화...그런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냥 황홀하였지만, 더욱 부럽던 것은 그렇게 주말의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는 그들의 여유였다. 근년까지도 일당 이삼천 원의 시다로 있던 나로서는 구태여 시골에서 남의 땅마지기나 붙여 어린 아우들을 기르는 부모를 핑계삼지 않더라도,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온날을 느긋이 즐길 처지가 못되었다. 쥐꼬리만한 일당이나마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불황탓에 일감이 떨어져 못 받게 되는 날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고향에서 함께 나왔지만 나보다 일찍 자리잡은 상철이와 영남이 녀석도 내게 무엇보다 먼저 등산장비부터 구입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상철이 녀석은 애초부터 자동차를 따라다니던니 그 전해 방위근무를 마치고부터는 독꼬다이 택시를 몰게 됐고, 영남이 녀석은 중국집을 돌던 끝에 오래 전부터 숙련된 이다바로 주방에 들어앉아 나보다 사정이 좋았다. 그런데 이녀석들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 달에 한번 꼴은 등산복 차림으로 날 찾아와 뻔히 안되는 줄 알면서도 함께 가자고 약을 올리거나, 아니면 돌아오는 기에 들러 잔업중인 사람을 끌어내 묻지도 않는 등산 얘기로 부아를 돋구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등산 포함 레저 열 일반에 대한 식자들의 의견을 주워모아 녀석들의 허영과 낭비를 나무랐지만 부러운 것은 역시 부러웠다. 
  등산장비는 막연히 생각했던 것처럼 비싼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달에 수당까지 합쳐도 십 오만 원이 채 안되는 내 월급으로 한꺼번에 사들이기에는 역시 무리여서 나는 몇 달에 걸친 구입계획을 짜야 했다. 첫달에는 배낭과 등산화, 다음달에는 버너와 등산복, 그 다음은 코펠과 모자, 또 그 다음은 텐트와 무엇-이런 식으로 사들이다 보니 이 봄이 되자 대략 장비일습이 그것도 보기 흉하지 않은 것으로 갖추어졌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등산이었다. 나는 상철이 영남이 녀석들과 죽이 맞아 여가만 나면 산을 기어올랐다. 아닌게 아니라 맛을 들이고 보니 등산이란 괜찮은 것이었다. 복작대는 차간에서 옆사람 눈충을 맞아가며 한짐씩 해 지고 비지땀을 흘릴 때는 헛고생 하는가도 싶었지만, 한번 산에만 오르면 거기에는 우리가 늘상 시달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었다. 
  “일단 올라만 가봐. 세상이 얼마나 좁고 인간들이 얼마나 적으며, 산다는 게 또한 얼마나 하찮은가를 가만히 있어도 알게 돼. 산은 말없는 가르침이지.”
  셋 중에서 비교적 책권이나 읽은 상철이 녀석이 언젠가 그렇게 떠벌였을 때 나는, 
  “야 이 멍청한 새끼야. 그런 걸 꼭 산꼭대기에 기어올라가서 두 눈깔로 내려다봐야만 아니?”
 하고 면박을 주었지만 확실히 산이 주는 감동과 의미는 상상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또 산은 한 달치 봉급을 몽땅 털어 산 셈이 된 등산장비를 비싸다고 생각들지 않게 만들기에 충분한 정신적 보상도 해주었다. 도시에서 출발할 때는 각자 다른 삶, 다른 지위, 다른 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비슷비슷한 차림으로 산 속에서 만나면 모든 사람들은 그대로 평들해졌다. 이를테면 그들과 비슷한 차림, 비슷한 장비로 산에 오른 우리들 어디서 실패의 예감이 강하게 풍기는 우리 삶의 흔적을 찾아낸단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서 가난한 선반공이나 스페어 운전사나 중국집 요리사의 냄새를 맡아낼 수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산만 낼려가면 바로 쳐다보기도 힘들 높으신 양반이나 학식많은 대학교 선생님들 또는 돈 많은 사장들일지라도 모르는 이들과 아무런 거리낌없이 어울리고 농지거리까지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쏠쏠한 재미는 거기서 만나게 되는 여자들이었다. 거리에 가능성 있게 마음 둘 수 있는 여자랬자 기껏 가까운 봉제공장의 여공들이나 운전사 식당에서 심부름하는 계집아이, 또는 옆 이발소의 면도사 아가씨 정도였고, 그나마도 쉽게 우리 손안에 들어오는 것은 돈주고 사는 거리의 여자들뿐이었다. 하지만 산에서는 달랐다. 이미 말한대로 산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 여자들에게도 적용되어 고관의 딸이건 재벌의 딸이건 여대생이건 직장여성이건 등산복 안에서는 구별이 안됐고 또 구별할 필요도 없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언행에 약간의 조심만 하면 거기서 만나는 여자들은 모두 유쾌한 하루의 동반자가 될 수 있었다. 거기다가 더욱 좋은 것은 여자 쪽에서도 자기들끼리만 패를 지어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개 그녀들은 복장만 구색을 갖춘채, 그중의 한둘이 김밥이나 콜라 따위가 든 신주머니 같은 작은 배낭을 메고 있기 마련인데, 성격상의 특징은 까다롭게 굴지 않고 인심이 후하다는 것이었다. 흔히 말들 하는 것처럼 산에 다녀 수양이 된 것인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남자에게 후하게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구할래야 변변한 파트너 하나 구해낼 재간이 없는 우리들로서는 참으로 편리한 존재였다. 
  “여기까지 와서 김밥이나 콜라 마시는 게 무슨 재미요? 일루와서 밥짓는 거나 좀 거들어주소. 요리실습도 할겸...”
  그런 팀을 만나면 말발 좋은 상철이 녀석이 그런 식으로 수작을 거는데 열에 여덟, 아홉은 응해 주었다. 그러면 그 나머지 오후는 그녀들과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은행원도 되고, 회사원도 되고, 팔자좋은 대학생도 되어 필시 우리보다는 나은 계층에 속할 것임에 분명한 그녀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애써 공상한 말을 찾아내야 하는 번거로움과 점잖게 행동해야 하는 거북스러움은 있지만 우리가 산을 내려가면 애내 겪어야 할 고단하고 서글픈 삶을 생각하면 실로 산의 축복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자칫 지루하게 될 이야기의 직접적인 발단은 바로 그와 같은 산행중의 하나에서부터였다. 

  하기야 그날은 처음부터 좀 별난 데가 있기는 했다. 마침 상철이 녀석은 사고를 쳐서 놀고 있었고, 영남이 녀석도 그 무렵은 중국집에서 나와 며칠 쉬던 때여서, 연휴인 나와 녀석들은 토요일 아침부터 이 도시 부근의 꽤 이름난 산으로 향했던 것인데 사실 우리 셋이 하는 야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밖에는 모든 게 전과 다를 바 없어서 그때 우리는 이미 첫날 오전에 세명의 아가씨들을 일행에 맞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눈에 뜨일 만큼 짙은 화장 외에는 대개 앞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아가씨들이었다. 내 파트너로 지정된 아기씨도 턱없는 짙은 화장 외에는 이렇다 할 것 없는 수수한 얼굴에 알맞게 활달한 우리 또래의 여자였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처럼 이렇게 내 삶을 휘저어 놓을 줄이야. 
  처음 그녀들은 무언가 살피는 기색이더니 점심을 나누고 오래잖아 떠날 채비들을 했다. 그런 그녀들을 주저앉혀 우리들과 유쾌한 술자리를 벌이게 한 것은 순전히 상철이 녀석의 넉살 덕분이었다. 그러나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술자리의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실직중이라는 것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평소의 주량답지 않게 일찍 돌아버린 상철이 녀석이 느닷없이 우리들의 산통을 깨고 나선 것이다. 아가씨들도 술을 제법하는 편이어서 권커니 잣커니 준배해간 네홉들이 소주를 두 병쯤 비웠을 무렵 녀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앞뒤 없이 소리쳤다. 
  “씨-팔. 야아, 되찮은 거짓말 모두 때려치우고 우리 화통하게 놀자.”
  그때까지 늘상 해오던 대로 상철이가 대학생 역할을, 내가 유수한 기업의 엔지니어 역할을, 그리고 영남이가 공부에 취미가 업어 아버지의 사업을 돕고 있는 청년실업가를 맡아 잘 돼가고 있었는데 상철이 녀석이 그렇게 나오니 영남이와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말려 볼 틈도 없이 녀석은 자기 정체를 스스로 밝혔다. 
  “나는 말이오, 독꼬다이-특공대- 택시운전사요, 씨팔 대구경주간은 사십 분이면 끝내준다 이거요. 팡팡 날지.”
  그리고는 그때껏 행여 불량하게 보일까봐 긴소매로 감추고 있던 팔뚝의 일심이란 문신이 드러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윗도리를 벗어제꼈다. 헌데 이 무슨 조화 속인가, 당연히 말리고 나설줄 알았던 영남이 녀석이 덩달아 일어서더니 밀가루반죽에서 우동가락 뽑아내는 시늉을 하며 떠벌였다. 
  “나는 중국집 이거요. 한 시간에 우동 곱배기 백 그릇은 뺄 자신이 있소. 마침 수틀려서 있던 집을 나와 놀고 있는데 어디 아는 중국집 있거든 일자리 하나 구해 주쇼.”
  그렇게 되고 보면 난들 별수 없었다. 
  “선반 알아요? 선반. 쇠 깎는 거 - 나는 그걸로 벌어먹는 사람이오. 집에서 기계 볼트나 낫트 잃어버리거든 우리 공장으로 찾아오쇼. 크기만 알면 금새 깎아 드리지.”
  한편으로는 우리말을 농담으로 받아주기를 기대하며 짐짓 과장스럽게 말했지만, 털어놓고 나니 이상하게 소기 후련했다. 
  “그쪽도 정직하게 자기소개 좀 해보쇼. 혹시라도 우리 같은 것들과 걸맞지 않거든 그대로 일어나도 좋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철이 녀석이 여자들을 다그치는 말이었다. 나는 정말로 여자들이 새침해서 가버릴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은근히 파트너를 마음에 들어하던 나는 가능하면 시내로 돌아가서도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일순 여자들은 미묘한 눈짓을 서로 주고받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실망하거나 성낸 기색은 없었다. 
  “사람 너무 급하게 몰아세우지 말아요. 내가 한꺼번에 소개할테니.”
  한참 후에 재미있다는 투의 얼굴로 일어나서 그렇게 말한 것은 뜻밖에도 내 파트너였다. 
  “저기 장양은 미용사, 컷트 솜씨 한번 일품이죠. 머리깎을 때 한번 부탁해 보세요. 그리고 그 옆 신양은 고려백화점 식품부에서 일해요. 나는-톡 까놓고 말하면 홀에 나갔는데 요즘 벌이가 시원찮아 놀구 있어요. 착실한 집 있으면 가정부로 몇년 있다가 맘잡고 시집이나 갈려고 하는데, 좋은 집 알면 소개해 주세요.”
  그리고는 무엇이 우스운지 친구들과 함께 깔깔 웃어댔다. 나는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으기 실망했다. 차라리 여공 쪽이 나을 것을, 하필이면 호스테스라니. 그러나 상철이 녀석은 그것보라는 듯 신이 나서 떠들었다. 
  “짐작은 했지. 잘 됐시다. 자, 그럼 피차에 별로 손해볼 일도 없으니 지금부터 화끈하게 놀아 봅시다. 약하고 없는 사람끼리 하루쯤 서로 위로하며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요.”
  듣기에 따라서는 불쾌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여자들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흔연히 그런 녀석의 말에 지지를 보냈다. 그렇게 되고 보니 그 자리가 신나지 않을래야 않을수 없었다. 우리들은 소주와 이상한 열에 들떠 그 긴 오후를 유행가 가락과 되다만 디스코로 보내었다. 여자들도 질세라 노래를 뽑고 몸을 흔들었는데, 그녀들의 춤과 노래는 아무래도 우리보다 윗길이었던 성싶다. 
  그러다가 제법 해가 뉘엿해지자 그녀들 중 하나가 하산을 제의했고, 다른 하나가 동조하고 나섰다. 내 파트너는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해 망설이는 눈치였는데 그때 다시 약간 술기운이 가신 듯한 상철이 녀석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구, 이 무정한 아가씨들 좀 보소. 술만 퍼먹이고 그냥 갈거요? 그러지 말고 속이나 좀 풉시다. 매운탕이나 얼큰하게 끊여 그쪽도 속 좀 풀고 가쇼.”
  그래도 둘은 여전히 돌아갈 것을 고집했지만 유독 내 파트너만 미진한 표정이었다. 그걸 놓칠 상철이 녀석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다시 한동안 녀석의 온갖 넉살이 다 동원된 후 한구석으로 몰려가 무언가를 속살거리던 그녀들은 못이긴 채 주저앉았다. 주로 내 파트너의 주장을 따른 것 같았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찌개감을 씻으면서 그녀들이 주고받던 말이다. 마늘과 풋고추를 전해 주려고 개울가로 가던 나는 별로 탐탁치 않은 듯한 둘의 무슨 항의 같은 말에 내 파트너가 달래듯 이렇게 대답하는 말을 들었다. 
  “안되면 특실 한번 맛보는 거야, 특식.”
  그때 나는 별 의심없이 그 특식이란 말을 매운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지금에 와서 보니 딴 뜻이 있지 않았는가 싶다.
  그럭저럭 매운탕이 끓고, 거기다 낮에 남은 찬밥 한술씩 말아서 걸신들린 것처럼 퍼먹은 우리들이 다시 남은 소주를 깔려고 할 때는 제법 골짜기가 으스름해져 있었다. 야영할 생각이 아니라면 마땅히 산을 내려가야 할 때였다. 
  “이젠 정말 내려가겠어요.”
  우리가 새로 술판을 벌이는 것을 아무래도 탐탁치 않다는 눈길로 보고 있던 장양이 다시 일어나며 나머지 둘을 재촉했다. 그때는 그 둘도 예외없이 몸을 일으켰다. 짙은 화장이며 야한 복장과 스스로 한 자기소개는 물론 우리와 함께 흐드러지게 놀며 오후를 보낸 그녀들이고 보면 약간은 예상 밖의 행동이었다. 무언가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는 기분이면서도 영남이와 나는 막연히 상철이 녀석의 얼굴만 살폈다. 그러자 녀석의 눈길이 문득 음훙해지더니 우리에게 찡긋 알 수 없는 눈짓을 하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서!”
  갑자기 험악해진 얼굴로 그녀들을 가로막고 선 상철이의 손에는 어느새 깨진 소주병이 쥐어져 있었다. 목소리까지도 전에 없는 포악스러운 것이었다. 
  “이것들 보자보자 하니까 싸가지가 너무 없어. 지금와서 내빼겠다는 건 무슨 수작이야? 쌍 갈보 같은 년들이... 누굴 놀리려구 들어? 끽소리 말고 앉아 있어. 괜히 반반한 쌍판에 기스가기 전에.”
  일순 장양과 신양의 얼굴에 가벼운 원망의 기색이 떠돌며 내 파트너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둘 다 별로 겁먹은 눈치는 아니었다. 산전수전을 겪어도 여러 번 겪은 여자들임에 틀림없었다. 겁을안먹기는 내 파트너 쪽도 마찬가지였다. 진작부터 엉치께에 두 손을 걸치고 상철이 녀석이 하는 양을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던 그녀는 녀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쏘아부쳤다. 상철이 못지않은 돌별이었다. 
  “개새끼, 그 입 한 번 드럽네. 그래 이새꺄, 우리가 가겠다는데 네가 뭐야? 부랄차고 나서 여자 다루는 법 그따위로밖에 못 배웠어? 내친 기에 밤까지 함께 왕창 놀아 줄려고 했더니 원 밸이 꼴려 못 보겠네.”
  그 서슬에 영남과 나는 물론 상철이 녀석도 잠시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막돼먹은 골목에서 창녀들과 시비를 해본 적도 있지만 우리가 그처럼 호된 꼴을 당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쭈, 어쭈, 이, 이게...”
  당하고 보니 화난다는 식으로 목청은 높았지만 상철이 녀석은 드러나게 더듬거리고 있었다. 
  “야 이새까, 똑바루 해. 한코 생각있으면 일이 되도록 꾸미란 말이야. 여왕처럼 떠받들어도 줄까말깐데 어디서 신라쩍 수작하고 있어?”
  그런데 어이없는 일은 그런 그녀의 호통에 신양과 장양이 킥킥 거리는 일이었다. 크게 겁먹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웬지 이거 잘못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상철이 녀석은 역시 우리들의 리더였다. 그대로 나가다간 다된 밥에 재뿌리겠다는 생각이 들였던지, 녀석은 다시 능글맞은 웃음과 넉살로 되돌아갔다. 
  “어이쿠, 여왕님 잘못 봤습니다. 앞으로는 정성껏 모시겠으니 오늘밥은 저희들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언뜻 들으면 꾸며낸 얘기 같지만 그게 바로 해결의 실마리였다. 그 뒤로도 약간의 우여곡절을 겪긴 했어도 어쨌든 그날밥 그 녀들은 우리들과 함께 밤을 보냈다. 판추우의 두 장으로 급히 만든 텐트까지 도합 세 개의 텐트에 낮에 정한 파트너끼리 들어가 잤는데 - 그밤의 나머지 상세한 얘기는 생략하겠다. 그런 얘기는 한때 모든 사람들에게 몹시 흥미로운 것이었으나 이제는 너무 흔해 빠져서 모두를 물려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욕을 얻어먹을 우려도 있으므로. 하지만 꼭 한 가지는 밝혀둬야겠다. 그것은 그 밥 그녀들이 우리에게 봉사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녀들에게 봉사한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그만큼 그녀들은 능숙하고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 정말로 알 수 없는 일들은 우리가 그 산행에서 돌아온 뒤부터 시작된다. 한밤을 그렇게 엉켜 보낸 그녀들과 우리는 이튿날 오전에 무슨 다정한 연인들처럼 헤어졌다. 주소를 나누고, 전화번호를 적고, 다시 만날 장소까지 굳게 약속한 후 이별의 키스까지 갖춘 그런 헤어짐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묘한 것은 그녀들을 보낸 직후에 우리 셋이 취한 행동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기 텐트 속에 들어가 잠에 곯아 떨어졌는데 - 다시 일어나 보니 벌써 해가 서편에 뉘엿거리고 있었다. 그걸로 보아 아직 하루가 절반 이상 남았는데도 우리가 그녀들을 잡지 않고 보낸 것은 질렸다기보다는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젊고 건강한 우리 셋, 그러나 충분한 시간도 돈도 없어 언제나 여자에게 굶주려 있다고 할 수도 있는 우리 셋을 그지경으로 만든 그녀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여자들이었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한동안 무슨 사나운 꿈처럼 연상되기도 했다. 이상하게 자극적인 몸부림과 흐느낌과 낄낄거림, 쌍스러운 욕설과 노골적인 요구에 쫓기며 나는 그밤을 거의 뜬눈으로 그녀의 몸 위에 헐떡여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 나이 스물 셋이면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고 또 나름대로는 여자를 안다고 생각해 온 나에게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털어놓은 것이지만, 그런 사정은 상철이나 영남이 녀석에게도 비슷했다. 그리하여 다시 만나자는 그녀들과의 약속은 한동안 우리 셋 모두에게 별로 탐탁찮은 짐이 되고 나가지 말자는 합의에까지 도달하였다. 상철이는 그녀들이 동침중에 상대편 남자의 혀나 성기를 물어뜯어 버린다는 변태들일거라고 했고, 영남이 녀석은 남자를 산 채로 말려 죽인다는 옛얘기 속의 색광일지도 모른다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추리까지 했다. 
  그러나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변덕일까, 열흘 후로 된 약속날짜가 가까워 오자 우리는 한결같이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약속날짜가 되어서는 무엇에 끌린 듯 함께 약속장소인 시내의 어떤 다방으로 몰려가고 말았다. 그녀들은 오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이상한 열에 들떠 아무런 뜻도 없는 얘기를 큰소리로 떠들어가며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렸지만 끝내 소용이 없었다. 그녀들이 적어준 전화번호도 한결같이 엉터리였다. 몇 번이나 번갈아 다이얼을 돌려 보아도 역 안내실이나 호텔의 프론트 한전, 전화고장 센터 따위만 나올 뿐이었다. 
  전화 확인이 있고서야 우리들은 비로소 속은 것을 알았고, 그러자 지난 열흘간의 구구한 억측과 의구들, 갖가지 정신적인 혼란이 어처구니없는 자기도취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겉으로는 모두 한 마디씩 쌍욕을 내뱉고 있었지만, 다방을 나서는 우리들의 기분은 분하기보다는 씁쓸했다. 특히 나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내 파트너의 전화번호가 시내에서 가장 큰 호텔의 프론트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이상하게도 참담한 실연을 당한 기분이었다. 나 역시 그녀에게 어지간히 질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녀에게는 한 마디로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매력이 있었다. 왠지 나는 그밤 처음으로 그녀에게 정신적인 동정을 바친 기분이 들었고, 한없이 분방했던 그녀의 몸짓도 어딘가 내가 몇 푼의 돈으로 안아보았던 거리의 여자들과는 달랐다. 이를케면 짙은 화장 같은 것도 그 냄새는 창녀들에게 공통된 싸구려 지분냄새가 아니라 어딘가 고급하고 그윽한 향기였다. 
  그런 내 느낌은 상철이와 영남이 녀석에게도 비슷했다. 그날 바람맞은 기분풀이를 위해 마주 않게 된 술자리에서 내가 그 얘기를 하자, 상철이 녀석 역시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이렇게 되고 보니 나도 생각나는데 - 확실히 년은 미용사 따위가 아니었어. 밑에서 설치는 것은 역전 똥치 이상이었지만 가끔씩 툭툭 튀어나오는 말이 이상했어. 소위 지식층의 말버릇이었지. 나는 그들의 말투를 주의하여 연구한 적이 있거든...에를들면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라든가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따위가 그것인데, 알고 보니 그게 영어번역 문체라더군. 그런데 년이 일부러 쌍스럽게 말하는 중에도 가끔씩 그런 구절이 툭툭 튀어나오는 걸 들었어. 내가 잘못 들었을까?”
  우리 셋 중 가장 유식한 상철이가 그렇게 말하자 좀 우둔한 영남이 녀석도 고개를 까웃거리며 자기 파트너에 대한 의심을 말했다. 
  “나도 년이 백화점 점원 따위는 아닌 것 같아. 적어도 가난뱅이는 아니란 말야. 년은 내게 몇 가지 중국요리 얘기를 했는데 그건 시내 웬만한 중국집에서는 만들지도 않는 최고급이었어. 예를 들면 제비집이라든가 곰발바닥, 상어지느러미 따위였는데 변두리 중국집만 돈 나도 먹어본 적이 없는 것들이야. 그런데 년은 맛까지 알고 있는 눈치였어. 돈많은 유부남을 홀려 바가지 씌웠다면 몰라도 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얘기야...”
  그러자 그녀들은 우리들의 상상력 속에서 서서히 격리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스스로의 격상도 되었다. 도시의 논다는 계집들에게 채인 건달이 되기보다는 선녀를 놓친 나무꾼 쪽이 훨씬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 때문이었다. 비록 하룻밤 개 같은 섹스의 선녀들이긴 하지만.
  그런데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지난달 초순, 그러니까 그 산행으로부터 꼭 두 달이 된 어느 날이었다. 비가 심하게 쏟아졌는데 그날 오후 늦게 나는 뜻밖에도 이미 단념하고 있던 내 선녀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공장에서 그리 멀지않은 깨끗한 여관에서 낸 전화로, 앞도 뒤도 없이 빨리 나오라는 재촉이었다. 오전에 대단찮은 일로 조립부 김씨와 한바탕 싸움을 하고 점심때 한 잔 걸친 화해술 탓인지 오후에 손가락 하나를 크게 다친 나는 그러잖아도 일찍 퇴근할까 하던 참이어서 한달음에 그녀에게 달려갈 수 있었다. 늦으면 이제는 영영 놓쳐버릴 것 같은 느낌에 기름때 절은 작업복을 그대로 걸친 채였다. 
  그녀는이미 구석진 방에서 속옷차림으로 이불에 기대 있었다. 나는 그동안의 경위와 그녀의 정체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차 있었으나, 그녀는 도무지 얘기할 틈을 주지 않았다. 말은 당장에 필요한 것이 아니면 모두 금지당하고, 나는 굴욕적일 만큼 충실하게 그녀의 욕망에 따랐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녀가 더욱 치열해졌다는 것과 기름때 묻은 내 힘찬 근육과 잘려진 손가락에 성의없이 감긴 때묻은 붕대 따위에 기이한 애정을 보여주었다는 것 정도였다. 
  “아무 말 말아. 나는 다시 만나고 싶거든 가만히 기다리기만해.”
  몇 번인가 폭풍이 가라앉은 틈을 타서 나는 궁금한 것들을 물어 보았지만 그녀는 정말로 내가 거역할 수 없는 무슨 여왕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밤 열한시쯤 되어 기진해 있는 나만 남겨두고 빗속의 도회로 사라져버렸다. 아침에 보니 모든 계산을 깨끗이 치러져 있었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만 놀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는 기회를 노려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훔쳐보는 데 성공했으며, 주소를 거의 완변하게 외어두었다. 다시는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내 결의의 공들인 결과였다. 

  다음은 바로 그 재앙과도 같이 끔찍한 날이었다. 비록 주소를 알고도 있었지만, 여관방을 나서면서 그녀가 다시 나를 찾기로 한 날이 기다림 속에 속절없이 지나가 버리고서야 나는 그녀를 찾아 나섰다. 
  한나절을 온전히 찾아 헤맨 끝에 나는 도심의 고급주택가에서 그녀의 주민등록증에 있는 주소를 찾아냈다. 언뜻 보기에도 백평이 넘는 정원과 흰 철대문을 가진 멋부려 지은 삼층건물이었다. 문패의 성이 그녀의 성과 같은 것이 언뜻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녀가 그 호화스러운 저택의 일원이라고 믿기워지지 않았다. 나는 우선 손쉬운 대로 그녀를 그집의 가정부쯤으로 가정했다. 그러나 동회와 복덕방에서 알아낸 결과로는 그녀가 그 집의 둘째딸, 그것도 시내의 명문대학 졸업반인 재원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나는 다시 그녀가 주운 주민등록증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다닌 게 아닌가 의심했다. 그것도 아니었다. 몇 시간이나 그 집 주위를 배회한 끝에 나는 내 눈으로 직접 그녀가 휜 철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화장기라고는 없는 맑은 얼굴과 점잖고 수수한 옷차림이며 손에 든 몇 권의 대학교재 때문에 자칫 못 알아볼 뻔하였지만 분명 그녀였다. 나는 야릇한 전율과 그녀를 감싸고 있는 어떤 건드릴 수 없는 위엄 때문에 숨어 있는 골목에서 그녀 앞에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그녀가 나를 못 보고 지나친 걸 다행으로 여기며 황급히 그곳을 벗어났다. 
  그 다음 일주일은 그때껏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혼란의 도가니였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감이 그녀와의 밤들을 무슨 끔직한 죄악처럼 느껴지게 하다가도, 다시금 그녀가 누리는 여러 가지 삶의 혜택이 나를 어두운 삶의 밑바닥에서 혜택받은 계층으로 끌어올려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나는 그 일로 여러 사람과 의논을 했다. 공장장 박씨, 주물부 최씨, 단골 밥집의 아주머니, 내 자취방 주인아저씨 등, 상철이와 영남이 녀석을 뺀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었다. 내가 녀석들을 굳이 뺀 것은 녀석들까지 끼어들어 법석을 떨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녀와의 관계를 입맞춤 정도로밖에 얘기하지 않앗는데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믿으려 들지 않았지만, 만약에 사실이 그러하다면 나는 대단한 행운의 끄나불을 잡은 것임에 틀림없다고 또한 한결같이 단언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의 단언 속에 차츰 내 혼란은 진정되어 갔다. 그녀를 원하는 것은 죄악도 불가능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그녀와의 예사 아닌 인연이야말로 남자의 일생에 세 번은 오게 마련이라는 그 “때” 중의 하나라고 믿게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그 근거없는 믿음 속에 나는 그것을 온전히 내것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짜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결국은 이렇게 끝장나고 말았지만, 그 무렵을 앞뒤 해서 내게 온갖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이웃집 양형에게는 아직도 감사하고 싶은 기분이다. 나보다도 한 살 위인 그는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었는데, 나의 처지에 처음부터 깊은 흥미와 동정을 보여주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나와 그녀 사이의 일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믿어 주었으며, 나와 그녀 사이의 일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믿어 주었으며, 나와 그녀 사이의 커다란 간격을 메우는 데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베풀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그 역시도 나의 무력함과 다름없다 보니, 자연 도움의 내용은 지식이나 교양 같은 쪽이 되었다. 가령 교양에서음악 같으면 그는 내게 이렇게 충고했다. 
  “시끄럽고, 빠르고, 요란스런 음악이 나오거든 점잖게 이맛살을 찌푸리시오. 부드럽고 지루한 음악이 나오거든 솔직하게 하품을 하시오. 앞에 것은 대개 -팝 뮤직- 이라고 하는데 지나치게 빠져들면 경박하게 보이고, 뒤에 것은 대개 클래식이라고 하는데 너무 감탄하면 오히려 천박하게 여겨지오.”
  뜻이 제대로 와 닿지 않아 결국은 외우다시피 했지만 문학에 대한 종언은 훨씬 길고 세밀했다. 
  “흥미는 있지만 다른 일에 바빠서 많이 읽지는 못했다고 말하시오. 어떤 부류의 인간들에겐 문학에 대해 무식하거나 무관심한 것 자체가 고급한 교양으로 여겨지는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기어이 얘기를 꺼내거든 외국문학에 대해서는 대개 음악과 같이 하시오. 즉, 아주 현대의 것이 것은 -팝뮤직- 대하듯, 그 밖의 것은 클래식 대하듯 하면 되어. 한국문학의 경우에는 - 무조건 나무라는 쪽이 실속 있고 힘도 덜 들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이든 규정짓고 단언하고 획일화시키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것도 부정적으로... 예를 들어, 일제 시대의 작가는 무조건 친일파로 몰아세우시오. 엄격히 말한다면 그 시대에 살았다는 것 자체가 친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 비난을 완전히 면할 사람은 극히 드물 거요. 해방부터 6.25 전후까지는 정상문학이라고 나무라고 그 다음 60년대 전후 - 는 실속없는 강개문학이라고 비웃으시오. 만약 예외를 들고 나오면 그건 문학도 아니라고 우기면 되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70년대 문학이 나오면 그건 시장문학이라고 잘라 말하시오. 물론 상업주의 문학이란 조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그 말 자체가 상업적으로 쓰인 데다가 또 너무 남발되어서 통속해졌소-.”
  대개 그런 식이었는데, 그는 그밖에도 미술, 스포츠, 연극, 영화는 물론 시사까지도 적절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신문은 문화면만 보고 TV는 명화극장만 본다고 하시오. 신문문화면도 그렇고 그렇고, TV는 명화극장이라는 것도 한물간 오락물 재탕에 지나지 않지만 요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정치,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약간 비장기 어린 침묵이 제격인데, 더욱 효과를 곁들이려면 가끔씩 나지막한 목소리로 -개새끼들.., 죽일놈들...- 하고 맞장구나 쳐주면 되오. 경제문제? 그건 달걀이라고 말하시오. 노른자는 언젠가 병아리가 되겠지만 그걸 위해서는 많은 흰자위가 소모될 것이라고. 그리고 설령 우리가 흰자위가 소모될 것이라고. 그리고 설령 우리가 흰자위에 속하는 처지일지라도 너무 성내지 말자고, 어쨌든 그 병아리가 우리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빈정거리면 되오.”
  물론 이 많은 어렵고 벅찬 얘기들을 한자리에 앉아서 들었다면 나는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형은 세심하게도 그것들을 일정 분량으로 나누어 주석까지 달아가며 들려주었으며, 어떤 부분은 반복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내가 반드시 읽어야 할 여섯 권의 책을 지정해 준 후 자신있게 덧붙였다. 
  “제대로만 기억하신다면 얼치기 여대생 하나쯤은 충분히 감타시킬 수 있을 거요.”
  나는 양형의 가르침에 충실하게 따랐다. 그리하여 대략 보름이 지났을 때 나는 그녀를 찾을 최소한의 준비를 갖추엇다. 지금까지 쑥스러워 숨겨왓지만 나는 철물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야간대학생으로 가장할 작정이었다. 경제적인 것은 당장에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신분만은 일단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그녀의 집 앞에 배회한 지 이틀만이었다. 얌전하게 눈을 내리갈고 단정한 걸음걸이로 외출에서 돌아오던 그녀는 처음 한동안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그동안의 저축을 몽땅 털어 마련한 새 양복과 넥타이 탓으로 여기며 지나치려는 그녀를 가로막았다. 
  “누구세요?”
  그렇게 묻는 그녀의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는 나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순진하게 놀라는 품도 지나날의 그녀와는 너무도 달랐다. 
  “나야, 모르겠어?”
  전에 하던 대로 그렇게 대답했던 나는 이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면서 더듬거렸다. 
  “저, 저..미스터 황입니다...저 비취산과 동산여관...”
  그녀는 여전히 알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당황한 가운데도 그녀의 눈길을, 언뜻 스쳐가는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애써 침착을 가장하고 있어도, 마음 속으로는 분명 무언가를 결심한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살피며 물었다. 
  “뵌 것도 같고 -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사과도 하고...찾으려고 무척 애썼습니다.”
  나는 여전히 까닭모르게 허둥대면서도 그녀가 틀림없다는 확신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 말을 듣는 그녀의 얼굴에 짧은 순간 곤혹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러나 이내 무언가를 체념한 표정이 되며 나직이 말했다. 
  “따라와. 여기선 곤란해.”
  그렇게 말한 그녀가 멀찌감치 앞장서서 나를 인도해 간 곳은 가까운 다방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웬일야?”
  “저는 당신과 진정으로 사귀기를 원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노력하여 그 부족함을 메꾸겠읍니다.”
  나는 그녀의 돌변에 다황하면서도 준비해간 대사는 잊지 않았다. 
  “산에서는 사실 거짓말이었습니다. 저는 분명 철물공장에서 선반일을 하고 있읍니다만 - 그건 어디까지나 아르바이트죠. 그걸로 벌어 야간대학에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뭘 공부하는데?”
  그런데 아마도 큰 실수는 그때 있었던 것 같다. 어리석게도 나는 양형에게서 들은 것을 잊지 않고 전하는 데에 급급해서 단 십분 동안에 보름이나 익힌 것을 죄다 쏟아놓았다. 그 바람에 군데 군데 빠지고 순서도 뒤죽박죽이 되어 결국 감탄하고 만족해 하는 것은 나 자신뿐이게 되어버렸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그녀는 이윽고 밑천이 거덜나 멋적게 앉아 있는 내게 뜻모를 미소와 함께 물었다. 
  “그뿐이야?”
  “원, 이정도로는 친구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학원에 나가는 이웃집 양형 말로는 요즘 대학생들도 대강 그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던데...”
  나는 그녀의 뜻모를 미소가 야릇하게 맘에 걸려 양형을 끌어들였던 것이네ㄷ 그것도 아마 잘못된 것 같았다. 그녀는 내 지식의 원천이 어디라는 걸 알았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거렸다. 그게 내 혼란을 가중시켰다. 나는 허둥대며 - 이번에는 각본에도 없는 수작을 앞뒤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녀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며 찬바람이 일었다. 그러다가 매서운 눈초리로 내 얘기를 중단시키고는 낮으면서도 매몰찬 목소리로 내뱉았다. 
  “이봐, 이봐, 꿈 깨. 깨란 말야 이 병신아. 그리고 내 충고하는데 다시는 내 곁에 얼씬도 말아. 아니면 크게 다쳐. 같잖은 게 꿈은 커가지고...”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이미... 이미 두 번이나...”
  나는 당황하다 못해 애원조가 되어 더욱 앞뒤없이 떠들었다. 결혼해 주십시오. 행복하게 해드리겠읍니다라고 한 것도 같고 아니면 죽어버리겠다는 엉뚱한 위협도 해본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몇 마디 더 계속하기도 전에 발딱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글쎄요, 전 아무래도 댁 가은 사람은 기억에 없는데요. 이만 실례하겠어요.”
  저만치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다 들릴 만큼 높고 또렷한 목소리였다. 그 바람에 다방 안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렸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아랑곳 않고 똑바로 카운터 쪽으로 가더니 셈을 치르면서 역시 다방 안에 다 들릴 만큼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 찻값은 저 사람에게 받으세요. 재수가 업으려니 웬 생판 낯선 사람이...”
  그리고는 정말로 희롱이라도 당한 여학생처럼 분한 눈길로 나를 쏘아본 후 입구 쪽으로 나가버렸다. 그녀의 그림자가 완전히 다방에서 사라진 후에야 내게는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사태가 느껴졌다. 그러나 허겁지겁 내 찻값을 치르고 간신히 그녀를 따라잡은 나는 비굴하게도 다시 한번 애원과 사정을 했다. 
  “제발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 전처럼이라도 지내주십시오.”
  그녀는 대답대신 주위를 힐끔 돌러보았다. 머지 않은 곳에 수퍼마켓이 하나 있고 그 앞에 몇 사람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그들을 경계하듯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마지막 경고를 보냈다. 
  “이봐, 빨리 꺼져. 소리쳐 사람을 부르기 전에.”
  “사람을 부르면 지난 일들을 모두 떠들어 버리겠소.”
  “소용없어. 네놈만 상해. 조용히 꺼지는 게 나아.”
  “뭐라구?”
  드디어 내게도 사태의 결말이 뚜렷해졌다. 그러나 이 알 수 없는 일련의 사태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아니라, 모든 게 글러버렸다는 절망과 분노로서였다. 
  “야, 이 쌍년아. 개같이 붙어 헐떡일 때는 언제고 지금와서 시치밀 떼는 거야? 정말 끝까지 이렇게 나올 거야?”
  나는 무의식 중에 상철이의 흉내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수퍼마켓의 늙수레한 주인과 젊은 손님이 하던 일을 멈추고 함께 돌아보았다. 그녀도 그걸 보았는지 짐짓 겁나면서도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앙칼지게 나왔다. 
  “이 양반이 정말 미쳤나? 나는 댁이 찾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나는 거의 절망적으로 외치며 그녀의 옷깃을 잡았다. 어떻게든 그녀를 끌고 가 벌거벗고 광란하는 꼴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람 살려요!”
  그녀는 찢어지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내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수퍼마켓 쪽을 향해 구원을 청하기를 잊지 않았다. 
  “아저씨, 아저씨, 저 알죠? 윗길 흰 철문집 둘째딸이에요. 빨리 경찰을 불러주세요. 이 사람이 날 끌고가 욕보일려고 해요.”
  그녀는 내 주먹에 입가를 맞아 피를 흘릴 때까지 계속했다. 그러자 젊은 녀석이 달려나와 내 앞길을 막고 주인영감은 전화통으로 달려갔다. 그 다음은 엉망이었다. 젊은 녀석이 지가 무슨 태권도 사범이라고 이단 앞차기로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지나가던 몇몇 친구가 합세하고, 다시 경찰이 달려오고 -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넙치가 되도록 맞은 후에 부근의 파출소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제서야 나는 일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걸 알아차리고 열심히 변명해 보았지만 이미 아무 소용 없엇다. 목격자들은 모두가 그녀 편이었고, 처음에는 약간의 의심을 가졌던 경찰은 그녀와 내 신분이 밝혀지자 그녀 편으로 돌았다. 그러다가 급히 연락을 받은 그녀의 아버지가 번쩍거리는 승용차를 타고 다녀간 후부터는 나를 어김없는 파렴치범으로 취급했다.
  “너 상습이지? 하지만 안됐다.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어. 너 저 아가씨가 누군지 알기나 해? 유명한 성창기업 둘째 따님이야. 이번 여름에는해외연수도 다녀왔고, 다음달에는 약혼자가 기다리는 미구긍로 유학가게 돼 있어. 그래도 너 같은 새끼와 동침한 적이 있다고 우길 거야?”
  조서를 받는 경찰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죽거리다가도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너 혹시 돈 놈이 아냐? 벌건 대낮에 그게 무슨 짓이야? 아니면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보았거나...”
  그리고 - 그 뒤부터는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그녀는 피해자였고 나는 가해자였다. 그녀는 경찰에서 한 시간도 안돼 아버지의 승용차에 실려 돌아갔고 나는 사흘만에 추행 미수인가 뭔가 하는 협의로 구치소에 넘겨졌다. 내게는 모든 게 혼란 투성이인 그 일련의 사건이 경찰에게는 왜 그리 명백한지 알 길이 없다. 
  나는 또 그녀와의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상철이와 영남이 녀석을 증인으로 내세웠는데 그 결과도 너무나 이상하다. 만약에 사실과 다를 경우 위증이나 명예훼손죄를 뒤집어쓸 염려가 있다손치더라도 녀석들이 어떻게 그녀를 모른다고 할 수 있는가? 아무리 화장과 옷차림이 달라지고, 어마어마한 집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도 하룻밤 하루낮을 함께 보낸 여자를 그렇게도 까마득히 몰라본단 말인가? 더구나 나를 면회외서는 얼굴조차 제대로 못들고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도...
  그녀들 쪽을 대신하여 검찰서기가 내게 한 제안도 이해할 수 없다. 그녀와의 지저분한 관계만 주장하지 않는다면 단순폭행으로 처리해 가벼운 벌금으로 끝내보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어떻게 그녀와 보낸 밤들을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알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면회온 양형은 뒤늦게야 내가 숨겼던 칙칙한 부분까지 다 듣고난 후에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교양과 세련된 향락에 식상한 지성이 야만의 쾌락을 구한 것일까?”
  그러나 내게는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고, 지금은 오히려나 자신조차도 그녀가 과연 나와 그럴 수 있었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가. 조사관이 이죽거리던 것처럼 정말로 내가 돌았거나 헛것을 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느덧 알 수 없는 일들로만 가득차 버린 것일까.















   그 세월은 가도

  "아범아, 꿈자리가 몹시 뒤숭숭하더라."
  농장으로 나가면서 잠시 병석을 들렀을 때 어머니는 불쑥 그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말이어서 새삼스럽기는 했지만 그 순간의 까닭모를 섬뜩함은 지난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기다가 어쩌면 어머니의 그 같은 말이 병세의 악화와 어떤 연관을 가졌을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문득 우울한 기분까지 들었다. 젊었을 때 진 어혈 탓일 거라는 자가진단 외에는 이렇다 할 병명도 모르는 채 어머니는 벌써 몇 달째 자리보전을 하고 있었다.
  "아랫니가 뭉청 빠지지를 않나, 안방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지를 않나......"
  변함없는 꿈 내용도, 역시 오랜만에 듣는 것이었지만 까닭모를 섬뜩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이에 관한 꿈을 가족들로 바꾸어 풀이했다. 윗니는 손윗어른, 아랫니는 손아랫사람,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들을 때마다 섬뜩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뒤의 뱀꿈이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뱀꿈을 어떤 종류의 특정한 재난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데, 지난날 그것은 신통하리만큼 잘 들어맞곤 했다. 한 가지 일에 강하게 집착하게 되면 그 방면의 육감만이 특별하게 발달하는 모양이었다.
  "걱정마세요, 어머님. 이젠 세월이 달라졌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요."
  그는 짐짓 과장된 목소리로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어머니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한곳에 너무 오래 살았다. 더구나 여긴 산골이나 다를게 없어......"
  그는 출근을 미루어가며 간신히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집을 나왔지만 아무래도 심상찮은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6·25란 밤하늘에서 어지럽게 교차되던 예광탄이었다. 다시 말해 겨우 네 살이었지만 그에게 남은 6·25의 유일한 기억이 그 날카롭고 불길한 꼬리를 가진 예광탄의 빛줄기였던 것이다.
  그해 여름의 어떤 밤이었다. 천지를 모르고 뛰어놀다가 곤한잠에 빠져 있던 그는 옷을 입히는 할머니의 거친 손길과 볶아치는 듯한 총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마다 빨갛고 파란 빛줄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총소리는 모래주머니로 담을 한 지서와 그 앞 전투경찰대가 참호를 파고 의지한 방죽 쪽에서 나는 것 같았다. 놀랍기보다 무슨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만난 기분으로 밤하늘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에게 할머니는 때아닌 겨울옷과 "보꼬보시"라고 불리우던 일본식 고깔을 뒤집어 씌우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아이고, 우짤꼬? 인자는 꼽다시 죽는갑다. 이놈들이 집에 불을 놓고 우릴 태와 쥑일 끼다......"
  그러더니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고깔까지 뒤집어써 후덥덥할뿐만 아니라 몸놀림까지 거북한 그의 손을 세차게 끌고 사립 쪽으로 달려나갔다. 
  "이눔아, 달아빼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천장만장 가뿌라."
  느닷없이 어린 그의 등짝을 후려치며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외치는 할머니의 고함이었다. 밤하늘에 정신이 팔려 있던 그는 그제서야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등짝에 와 닿는 아픔보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때 채독 같은 배를 앞세운 어머니가 허둥지둥 달려나와 그를 싸안고 엎으러지며 울먹였다. 
  "어머님, 안돼요.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요. 이 난리중에 어린게 가봐야 어딜 가겠어요? 차라리 함께 죽어요."
  "앙이다. 이거 놔라. 야라도 살려 씨를 보존해야 한다. 이 집에 들어와 내 대에 손을 끓어놓을 수는 없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모두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옥신각신하는 틈바구니에서 이제는 두려움보다는 정체 모를 슬픔에 젖어 더욱 목을 놓았다. 
  결국 그 한차례의 소동은 산봉우리에서 솟던 예광탄의 빛줄기가 하나씩 둘씩 줄어지고, 볶아치던 총소리도 어느 정도 잦아든 뒤에야 가라앉았다.
  "내앞 아즈메 진정하소. 아무 일도 아입니더. 야산대 아들이 까부는 기라요. 몇놈 안 되이 걱정마소."
  나중에 경찰서장까지 지낸 "순사아재"라고 불리던 친척이 어디선가 나타나 할머니를 달래는 말이었다.
  "안 속는다. 그렇게 맘 턱 놓도록 맹글어놓고 쥑일라꼬? 내 다안다. 인민군-괴뢰군-만 내려오면 우릴 한구딩에 묻고 너그들은 남으로 내뺄 요량이제? 나도 들은 귀가 있다. 그라이 보래, 야만이라도 보내다고. 우리집 씨나 전하게 해다고. 야 애비가 뺄갱이짓 했다꼬 큰집 손 끊어지는 꼴은 니도 보고 싶진 않을 끼다."
  "글쎄. 아즈메 내 말 믿으소. 그건 다 헛소문이라요. 혹 무신일이 있으까바 예비검속을 했을 뿐이제, 죄었는 가족들이사 뭣때매 쥑이겠능교?"
  "10.1폭동 때도 봤고, 5.10 선거 나불-무렵-에도 봤다. 너그도 눈에 핏기가 도이 아, 어른 안 가리더라. 뻔하다. 쫓기가면서 우리를 성하게 놔뚤 리 없다."
  그러나 순사아재는 끈질기게 할머니를 달랬다. 그 사이 예광탄이 모두 꺼지고 총소리도 멀어지자 할머니도 차츰 진정이 되었다.
  "할 수 없제. 잡힌 놈이 벨 수 있나? 야야, 고만 들어가자."
  마침내 할머니가 탄식처럼 내뱉는 말이었다. 그리고 흰자위민의 눈으로 순사아재와 어머니를 한바탕 흘기더니 미친 듯이 그를 끌어안았다.
  "아이구, 불쌍한 내새끼, 안 놀랬나? 글쎄, 글타. 같이 죽자. 이 난리통에 니가 가본들 어딜 가겠노? 지아도 내벨고 가는 판에 누가 니를 거다 주겠노?"
  할머니의 목소리는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어머니도 곁에서 가만히 흐느꼈다. 어린 그로서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역시 눈물 때문에 어두운 밤하늘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순사아재의 말은 맞았다. 이튿날 그는 조무래기 친구들과 함께 사람이라기보다는 무슨 짐승처럼 죽어 있는 두 구의 시체를 지서앞 마당에서 구경하였다. 뒷날 들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북에서 밀고 내려온는 패거리에 호응하기 위해 가까운 산에서 내려온 공비들이 남기고 같 시체였다. 작은 시골 지서만 생각하고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마침 밀려내려와 그곳에다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전투경찰대에게 거꾸로 낭패를 당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 일에서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은 이상한 기억의 고집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두 구의 시체가 훨씬 생생한 기억이 될 수도 있지만, 왠지 그에게 있어서의 6·25는 언제나 밤하늘에 어지럽게 솟아오르던 예광탄으로만 떠올랐다. 그것도 아무런 의미를 동반하지 못한, 몽롱한 유년의 기억으로서만.

  농장 관리사무실과 계사가 있는 언덕을 오르면서 그는 전에 없이 세밀하게 눈아래 펼쳐진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보니 제법 오랫동안 한곳에 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원 사업소를 좀 맡아주게. 생산관리가 엉망이야. 이럴바에야 농장이고 목장이고 다 집어치우라는 게 아버님의 말씀이야. 우유고 계란이고 야채고 중간상들로부터 납품을 받을때가 차라리 싸게 먹혔다는 계산이거든. 한 삼년만 맡아 자기일처럼 보살펴줘. 아무리 부자사이라 해도 이건 영 위신이 말이 아니야. 절대로 자네를 시골로 쫓는다는 생각은 말게. 가보면 알겠지만 생활은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걸세. 거기다가 자네 고향도 그 부근이지, 아마. 어쨌든-내 약속하지. 그곳 일만 제대로 되면 외국 지사나 한 일년 돌려 본사로 데려오겠네. 부장자리 하나쯤 마련해서 말이야."
  그것이 바로 본사의 과장이었던 그가 이 지방사업소로 내려오게 된 경위였다. 부탁한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자 가까운 친구로, 머지않아 아버지를 이어 회장이 될 강전무였다. 식품파트의 전무로 실무에 손을 대면서 원가절감을 위해 첫번째로 낸 안이 농장과 목장의 직영이었는데, 결과가 신통치 않자 친구인 그에게 맡긴 것이었다.
  강전무의 말대로 그곳의 생활은 별 불편은 없었다. 포장된 국도가 농장 발치를 지나고 있었고, 농어촌 전화사업의 혜택으로 갖가지 전기제품을 쓰는 데도 지장이 없었다. 구획정리가 잘된 논밭들, 주택개량으로 도회의 일부를 옮겨놓은 듯한 마을-아이들 교육문제가 있었지만, 그것도 터울이 길어 이제 국민학교 5학년인 큰놈만 처가에 맡겨두는 걸로 충분했다. 작은놈은 내년이나 돼야 취학연령에 이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언덕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사이에 그 마을이 그날 따라 새삼 깊은 산골로 느껴졌다. 늘상 보아오던 봉우리들은 문득 높게 치솟고, 가까운 계곡들도 검푸르고 깊어 보였다. 개울가에 줄지어 심어둔 사방용의 버드나무들도 무슨 음험한 원시림처럼 느껴졌으며, 군데군데 솟은 텔리비전 안테나도 그 옛날 설 무렵이면 농가에 세워지던 솟대 같았다. 자동차로 달리면 한 시간 안에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국도도-문득 먼 산마루에서 가는 실처럼 끊어진 듯 보이고, 따라서 그곳이 외부와는 일체 단절된 오지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곳이 너무 산골이라고 말한 것이 반드시 당신의 병심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르지, 그는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떠올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휴전이 된 이듬해에 끝내 그러던 외아들을 보지 못하신 채 돌아가셨다. 
  "내 죽거든 가슴을 한번 열어봐라. 시커멓게 내려앉았을끼다."
  할머니는 병석에서 가끔씩 외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표현하시곤 했다. 그리고 한과도 흡사한 그 그리움은 주검과 함께 땅 속으로 가져가셨지만, 그 못지않게 할머니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공포와 불안은 고스란히 며느리에게 남겨주고 가셨다. 바로 그 공비들의 습격이 있던 날 밤 거의 광적인 상태로 드러났던 공포와 불안이었다. 그날 밤은 맹목적인 모성애로 나를 잡아 두었으나 어쩌면 어머니 또한 처음부터 할머니와 똑같은 크기의 공포와 불안을 가슴 속에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어린 날은 그 공포와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택한 방법은 끊임없는 이사였는데, 심할 때는 일년에도 두세 번씩 이사를 다녔다. 그것도 대개는 동네에서 동네가 아니라 도회에서 도회에로의 이주였다.
  "뱀꿈을 꾸었다."
  삯바느질이나 부유한 친지들의 잡일로 늦게 잠자리에 든 어머니가 질린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아침이면 그게 바로 이사의 시작이었다. 이미 말한 대로, 한 가지 일에 깊이 집착하다 보면 거기에 대한 예감이 특히 발달하게 되는 것인지 어머니의 꿈은 신통하게도 들어맞아, 그들 일가는 그날 해를 넘기지 않고 어슷어슷한 인상을 가진 중년남자들의 방문을 받았다. 그 사람들은 대개 어머니를 상대로 이것저것 캐묻고 수첩 같은 데 무언가를 끄적이다 돌아가곤 했지만, 때로는 골목이나 학교 앞 같은 데서 불쑥 나타나 그에게 엉뚱한 것을 불어볼 때도 있었다.
  "너희 아버지 어디 계시니?"
  "너희 아버지 언제 오신다든?"
  "너희 아버지 언제 다녀가셨니?"
  그런 그 사람들의 질문은 어린 그에게는 언제나 느닷없고 까닭모를 공포였다. 아버지, 아버지, 그 생소하면서도 한서린 이름. 할머니가 애절하게 부르시다가 숨져 가신 이름, 깊은 밤 선잠에서 깨어나면서 어머니의 흐느낌과 함께 듣던 그 이름, 그러나 제대로 사물을 분간하면서부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빛바랜 사진을 가지고도 도무지 상상이 안 되던 그 이름에 대해 묻는 것이 왜 그렇게도 두렵고 싫었던 것일까. 거기다가 때로 그들이 으름장 비슷하게 그 이름의 행방을 추궁할 때면 숨이 막힐 듯한 공포까지 느꼈다. 국민학교 사학년 때인가의 어떤 작문시간에는,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싫은 것을 아버지와 형사라고 썼다가 그 학년 내내 담임선생의 의심쩍인 눈초리를 받은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이삿짐을 싸자. "
  그 사람들이 그렇게 다녀간 오후면 어머니는 암담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짐이랬자 버들고리짝 하나와 이불보통이, 그리고 부엌살림을 담은 사과궤짝 하나가 전부였는데, 대개 버들고리짝과 사과궤짝은 누나와 어머니가 하나씩 나누어 머리에 이었고, 이불보퉁이는 그가 메곤 했다. 나중에 그들 삼남매의 책보따리가 하나 더 늘었지만, 그때는 유복녀인 여동생이 자라 그 짐을 맡았다.
  그리하여 이사짐이 챙겨지면 날이 저물기 무섭게 출발하였다. 그들은 무슨 큰 불륜을 저질렀거나 끔찍한 죄인들처럼 살던 도시를 버리고 어둠 속에 멀고 낯선 도시로 떠났다. 어머니가 미리부터 보아둔 곳으로, 대개는 잘 사는 피붙이나 성공한 어버지의 친구가 사는 도시였다. 서울, 부산, 대구, 목포, 청주, 안동......그들이 그런 경위로 떠돈 도시는 열 손가락을 채우고도 남았다.
  덕분에 그는 도합 다섯번 국민학교를 옮겼지만 한번도 전학증을 가져가 본 적이 없었다. 이따금씩 여유있는 생활을 누린 때도 있었지만, 그들의 가구는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사과궤짝 수준을 넘지 않았으며, 나중에 한곳에 자리잡고 살게 된 후에도 책상이나 장롱 같은 가구는 그들이 가져서는 안되는 것으로 알았을 정도였다. 집에서 장이나 김장을 담그는 광경도 어린 그의 기억에는 거의 없다.

  농장에 나온 것이 좀 늦은 탓인지 관리인들과 용인들은 모두 일터로 나가고 늙은 박씨만 사무실에 남아 무언가를 찾고 있다가 들어서는 그를 맞았다.
  "소장님, 오늘은 늦네요. 집에 무신 일이라도 있읍니까?"
  "아, 뭐, 별일은 아닙니다. 모두들 일 나갔는가요?"
  "예, 오늘은 목초 빈다고 말캉 글고 갔임더. 내하고 김군만 계사 소독을 할라꼬 남았는데, 분무기가 고장이 나 새기있는강 찾고 있음더."
  "창고 윤씨에게 물어보지 그래요?"
  "윤선생도 초지에 갔임더. 메칠 전에 사무실에서 얼찐 본거 같은데......"
  "내가 창고에 넣어두게 했어요. 김군 시켜서 창고 열쇠나 받아오게 하시죠."
  그리고 그는 자기 자리에 털썩 앉아 담배를 빼물었다. 목초를 벤다면 그도 초지로 가보아야 할 것이지만 왠지 나른해지며 움직이기가 싫었다.
  잠시 후 김군을 초지로 보낸 박씨가 다시 쭈뼛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영감님은 6·25때 어디 계셨어요?"
  그가 갑작스레 묻자 빈 의자를 찾아 앉으려던 박씨가 멍청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엉뚱하다는 느낌은 묻고 있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내사 여기 본토백이 아입니꺼? 중년에 몇해 도회물 먹은 걸 빼놓고는 내처 여기 살았으니까는."
  "그럼 그때는 여기 살았겠군요?"
  "그라믄요. 지가 도시로 나간 거는 휴전된 뒤라요."
  "여긴 어땠어요?"
  "뭘 말입니꺼?"
  "사람 많이 죽었지요?"
  "말 마이소. 사변 전에도 지서가 두 번이나 불탔임더."
  이미 지나간 얘기니까, 하는 식으로 가볍게 말하고 있었지만 박씨의 표정에는 어딘가 정말로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데가 있었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많이 죽었나요?"
  "여러 질이라요. 이쪽 저쪽, 똑똑은 사람 어리숙한 사람 할 것 없이......"
  "민간인도?"
  "총알이 눈이 있는교?"
  "아니, 저는 양민을 말했어요. 교전 중이 아니라, 끝난후나 시작되기 전의......"
  "여기라꼬 머 크게 다르겠임꺼? 억울하게 죽은 사람 많지요."
  그러는 박씨의 얼굴이 드러나게 어두워졌다.
  "군경 가족들 말입니까?"
  "하필 군경가족뿐이겠임꺼? 조금만 우익했으믄 알라까지 산 채로 땅에 묻고 간 기라요."
  "얘기는 들었지만 믿을 수 없군요."
  "믿을 수 없다꼬? 실은 지도 그때 마누라캉 알라 하나를 생으로 잃었임더."
  거기서 박씨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그는 아차, 싶었으나 이미 내친 김이었다.
  "안됐습니다. 그때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일이라꼬요? 일이라면 젊은 혈기에 족청 좀 따라다닌 거밖에 없임더. 그런데 어느날 밤에 산빨갱이들이 내려와 죄없는 그것들을 찔러 쥑이고 간 기라요. 중년에 고향을 떠난 것도 그것들이 당최 눈에 걸려서."
  "이거 제가 잘못 이야기를 꺼낸 것 같습니다. 공연히 남의 아픈 데만 건드렸군요."
  "아프다고사 뭐......다 운수소관이지요."
  "그런데-부역자 가족들은 어땠읍니까?"
  "그쪽이라꼬 우찌 성했겠입니꺼? 말이사 바른 말이지만 지도 처음 기집자슥을 그 모양으로 잃고 나니 눈이 뒤지배지드만요."
  "그쪽도 여자와 아이들까지......?"
  "깨놓고 말하믄 그쪽도 안 당했다꼬는 못칼 낍니더."
  "아무리 빨갱이 가족이라고는 해도 법이 있는데?"
  "빨갱이 저들이 법따라 이쪽 사람들 쥑였읍니꺼? 시상 무신법에 인자 막 시집온 천치 같은 마누라와 백날도 안된 알라를 한창에 꿰놓으란 법이 있읍니꺼? 한 번 피맛을 봐 누깔이 뒤집히 믄 보이는 기 없는 기라요."
  "무서운 세상이었군요."
  "평생에 또 올까 겁나는 세상이라요."
  "설마 그런 일이야 있겠읍니까?"
  "아입니더. 장담 못합니더. 시방 보기에는 모두 양순해 보이지만, 난리가 나고 한번 눈들이 뒤집히 보이소. 법이 된 소용있는강."
  "그래도......"
  "아메 틀림없을 낍니더. 우야믄 더할지도 몰라요. 하기사 전맨치로 한 마실에서 서로 쥑이고 살리는 일은 없겠지만 남북끼리는 틀림없이 그때보다 더 심할 낍니더. 생각해 보이소. 요새 아들 빨갱이라카믄 이마에 뿔돋고 입에는 피를 철철 흐리는 괴물로 압니더. 절마들이라고 다를 리 있읍니꺼? 몇십년 동안 서로 미워할 것만 가르쳐 놨으니, 만약 일이 벌어지면 그때는 참말로 인정사정 안볼 낍니더."
  "그래도 양쪽 다 엄연히 법이 있는데......"
  "글쎄......도회지라믄 또 몰래도 산골테기에서야 그 법이 글케 큰 힘을 써낼라는강......그란데, 소장님, 갑자기 그 일은 와 그리 캐물어쌓십니꺼?"
  "아, 그저 좀......"
  그제서야 그는 약간 당황하여 얼버무리며 얘기를 끝맺었다. 따지고 보면, 박씨에게서 처음 듣는 말도 아니었고, 또 그가 물은것 역시 반드시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절을 직접 체험했음직한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한번쯤은 반드시 그때 일을 물어보는 것이, 어머니의 불길한 꿈과 마찬가지로 지난 십여년간 잠잠했던 그의 옛버릇 중의 하나였다.

  어린날의 그 유랑과도 같았던 삶의 방식을 어머니가 끝맺게 하는 데 결정적인 몫을 한 것은 교회와 5·16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교회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 중에는 새벽기도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싸늘한 체온 때문에 선잠에서 깨어나던 것이나 천막교회의 부흥회에서 철야기도를 하고 돌아온 어머니의 머리칼에 앉은 서리를 보며 느끼던 신기함 따위가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거의 고통에 가깝던 신앙강요가 그의 기억 도처에서 나타난다. 주일학교를 빼먹었다고 해서 종아리에 피가 맺히도록 맞은 일이며, 마태복은을 단 한 줄도 틀리지 않게 외기 위해 밤낮을 시다리며 보내야 했던 국민학교 상급반 시절의 어떤 여름방학, 크리스머스는 설이나 한가위보다 훨씬 중요한 그들의 명절이었고, 수난절의 두 주일은 할머니의 기일보다도 더 엄숙하게 보내야 하는 날들이었다. 나중에 그의 대학진학조차도 어머니는 신학대학을 강요했었다.
  어머니의 기독교에 대한 그 같은 몰입은 당시의 일반적인 의심-헌 옷가지나 밀가루 같은 구호품으로 대표되는 어떤 물질적인 보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철이 든 후의 추측이긴 하지만, 그때 어머니가 교회에서 구한 것은 언제나 그녀의 영혼을 물어뜯고 있는 그 공포와 불안으로부터의 둔피처였으며, 신앙은 바로 땅 위에서의 온전한 삶을 보장하는 일종의 생존 방식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광신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몇 년이 지나가고, 교회가 기억해주는 사람이 되면서부터 어머니는 차츰 자신과 그들 어린 삼남매의 생존에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어린 그에게는 결코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지 않게 느껴지던 고향도 차츰 그들 일가를 신산스런 삶에서 구해줄 희망의 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전에도 그들이 고향과 전혀 무관하게 지내온 것은 아니었다. 어떤 도시에서 기대한 만큼의 도움을 받지 못해 생활이 극도로 궁핍해졌을 때나, 그들 삼남매가 상급학교로 진학할 때가 되면 어머니는 몇날 몇밤이고의 긴 기도 끝에 한동안 집을 비우셨다. 그리고 얼마간 필요한 돈을 마련한 후 돌아왔는데, 그때 어머니의 표정에는 무슨 끔찍한 사지를 무사히 다녀왔다는듯한 안도가 서려 있었다. 역시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고향에 남겨 둔 땅을 팔아치우고 돌아오는 길어었다. 그것도 밤중에 몰래 고향에 숨어들어, 누가 그들의 땅을 부치고 있는가를 알아낸 후, 그 주인이 생빚을 지고서라도 사고 싶을 만큼의 헐값을 매겨 떠맡기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로 하여금 떳떳이 고향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게 한 것은 5·16후 집권달이 내건 선거공약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가 중학교 2학년 무렵의 어느날 무언가 교회일로 나갔던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그들 삼남매를 불러놓고 말했다. 부역자나 월북자 가족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지난일을 묻지 않겠다고 한 집권당의 선거공약을 누구에겐가 들었거나 신문에서 본 보양이었다.
  "이사짐을 싸자"고 말하던 때의 그 어둡고 착잡한 표정에 익숙해온 그들 삼남매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밝고 희망에 찬 어머니의 낯선 얼굴을 쳐다보았다.
  "집은 아직 그대로 있다. 마흔 칸이다. 단칸 셋방과는 비교도 안 된다. 땅도 위토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논만 스무 마지기는 될 거다."
  어머니는 주로 그보다 세 상 손위인 누나를 상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였지만 살림이 어려워 그 전해부터 집에서 놀고 있던 누나는 왠지 불만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왜 이제서야 돌아가요?"
  "이제는 돌아가도 괜찮으니까."
  "그전에는 누가 잡아먹었나요?"
  "몇번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만약 우리가 거기 머물러 있었으면 모두 벌써 죽었을 거다."
  "여기서도 땅이 무너졌거나 하늘이 꺼졌으면 모두 죽었을 거예요."
  "너는 자꾸 비뚤어지는 것 같구나. 네 학교는 그곳에 돌아가서 형편이 펴지는 대로 계속하면 된다."
  "다른 애들은 내년이 졸업이에요. 그만한 재산이 있었으면 왜 진작 돌아가지 않았어요?  도대체 작년과 지금이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어요?"
  "대통령께서 약속했다. 이제 우리는 어디 있어도 안심할 수 있다."
  "그 대단한 하느님은 어쩌고요? 하느님은 우리를 보호할 수 없나요?"
  "물론 하느님도 우리를 보호하시지. 그러나 정치는 정치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그래서 나는 가이사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싫어요. 늦었어요. 나는 어쨌든 여기 남아 내 힘으로 학교를 마칠 거예요. 더 이상 어머니를 따라다니다가는 나의 삶도 그 괴상하고 끝모를 공포에 희생되고 말 거예요. 또 이것저것 죄다 헐값으로 팔아먹고 껍질만 남은 그곳에 가본들 물긷고 나물하는 일밖에 더 나았겠어요?"
  누나는 정말로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 도시의 어떤 공장에 남아 야간학교라도 가겠다고 악착을 떨더니 끝내는 끝모를 도회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따금씩 그녀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는 친지들의 전언뿐 그 뒤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누나.
  하지만 그가 모든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년 뒤의 일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차츰 아버지의 일에 흥미를 가지게 된 그가 먼저 어머니에게 물은 것은 봉우리마다 예광탄이 솟아오르던 그 밤이었다.
  "네 아버지는 좌익이었다. 해방 전부터 관여하다가 나중에는 숫제 집을 나가서 그 일에 매달렸지. 그런데 6·25가 터졌어. 할머니와 나는 영문도 모르고 집에 있다가 다른 부역자나 좌익 가족들과 국민학교 창고에 갇히게 됐지. 들리는 풍문은 만약 저쪽 군대가 그곳까지 밀고 오면 우리는 모두 퇴각 전에 처형될라는 것이었어. 산사람들의 끔찍한 행패는 물론, 혼란기의 격앙된 감정이 저지르는 갖가지 불행한 사태를 수없이 보아온 터라 우리도 그 풍문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다행히도 해산을 오늘 내일 하는 만삭의 임부여서 우익 청년들의 감시 아래 집으로 돌려보내졌지. 네가 기억하고 있는 밤은 그 무렵의 어떤 밤일 거다."
  어머니는 기억을 더듬어 그렇게 말했다.
  "그 뒤는 어떻게 되셨어요?"
  "후퇴 직전에 밀려온 국군부대의 부대장 하나가 네 아버지와 고보 동창이었다. 그분은 우리 가족을 군용 트럭에 실어 후방 도회지의 경찰에 인계했지. 그게 그분이 자기를 상하지 않고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었어. 우리는 그곳 경찰서에서 정식의 취조와 재판을 거쳐 여섯달 만에 풀려나왔다. 그 여섯달도 아무것도 모르고 여맹 위원장이 된 할머니와 위원이었던 내 자신의 죄값이었지."
  "그때 창고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정말로 모두 죽었나요?"
  "우리가 도시를 떠돌면서 들은 후문은 그랬다. 그리고 그게 할머니나 내가 고향을 언제나 가기만 하면 죽는 땅으로 여기게 된 까닭이었지. 고향에 다시 드나들기 시작한 후에야 그게 UN군의 오폭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두려움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우리는 피맛을 보고 미쳐 날뛰는 저쪽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곳에서 너무 많이 보았던 거야. 저쪽 사람들이 그랬으니 이쪽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우리의 당연한 공포 아니겠니?"
  그것이 내 어린날을 줄곧 사로잡아 온 의문-도회와 도회로만 떠돈 남다른 생활방식에 대한-의 해명이었다. 누나는 그걸 어머니 자신의 정신적인 결함으로 여겨 반발하고 떠난 것이었다.

  사택에서 아내의 전화가 온 것은 초지를 둘러보고 돌아온 그가 양계장의 산란율을 건성으로 점검하고 있을 때였다.
  "여보, 경찰서에서 사람이 왔어요. 곧 그리로 갈 거예요."
  "경찰서에서? 왜?"
  대단한 일은 아닐 테지만 나쁠 때에 왔구나, 하는 기분으로 그가 되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단신 무슨 지피는 일 없으세요?"
  "없어."
  "몇 번이나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괜히 불안해요.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녜요?"
  "없대두. 걱정말아."
  "아시는 대로 전화주셔야 해요."
  "알았어."
  그러나 그의 가슴에도 까닭없이 서늘한 바람이 불어가는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경찰은 그로부터 오래잖아 왔다. 말쑥한 사복차림의 30대 형사였는데 어린날 언제나 그 사람이 그 사람같이 보이던 중년의 음침한 얼굴이 아니라는 데 우선 마음이 놓였다.
  "한영식씹니까?"
  "그렇습니다면......"
  "본서에서 왔습니다. 정보 2과 박인숩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신원조회 의뢰 같습니다. 여권신청 때 쓰이는 걸로 생각되는데......그런 일 없읍니까?"
  그제서야 그는 지피는 게 있었다. 며칠 전 본사 총무국에서 호적등본 두 통과 크고 작은 사진 여러 장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이유를 묻는 그에게 약간 친분이 있는 총무국 직원은 농담처럼 전화에 대고 말했다.
  "몇년 시골에서 썩었으니 외국물도 좀 먹으셔야지요. 강이사님 지십니다."
  아마도 강전무가 다시 이사가 되고 그를 본사로 불러들이기 전에 외국바람이나 좀 쐬게 하겠다던 약속을 지킬 모양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처럼 빨리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선생님께서 직접 하시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형사가 다시 물었다. 
  "네, 본사에서 그런 계획을 듣긴 했읍니다만......그런데 그 일만으로?"
  "실은 저번 연좌제 폐지 때도 선생님을 잠깐 뵈올 일이 있었습니다. 겸사겸사해서......"
  "알겠습니다. 제게 특별히 물어실 일은?"
  "아, 예. 대단치는 않지만 몇 가지."
  "무언데요?"
  "부친께서 살아계시다면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일흔 셋입니다. 어머님보다 네 살 위이셨다니까요."
  "그렇다면 살아계신다고 쳐도 크게 활동하실 수 있는 연세는 아니시군요?"
  "그런-셈이죠. 그건 왜......"
  그러나 형사는 새로운 물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광양식품 하원사업소장으로 되어 있는데 직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본사로 치면 부장서리쯤 됩니다."
  "큰 회사이니 봉급도 많으시겠군요?"
  "보너스를 나누어 본봉에 더하면 월 80만원 정도 됩니다."
  "재산정도를 물어봐도 좋겠습니까? 동산과 부동산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부동산으로서는 서울에 집이 한 채 있습니다. 5년 전에 이천만원 준 것이니 지금 한 오천 될까요? 고향에 과수원과 논밭이 약간 있읍니다만 합쳐도 서울의 집보다 못할 겁니다."
  "8천 정도로 잡아두겠습니다. 동산 저축 기타는?"
  "저축과 보험이 약간 있고 나머지는 끌고다니는 살림살이입니다. 3천은 넘겠죠."
  그는 약간 과장적인 기분으로 사실을 말했다. 경제적이란 일쑤 사상적인 건전성을 재는 척도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지 않으신 나이에 우리 같은 말단 공무원이 보기에는 대단하신 재산을 장만하셨군요."
  그렇게 말하는 형사의 표정에는 정말로 가벼운 선망의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나친 속단일는지는 모르지만, 그만하면 크게 의심할 바 없지 않겠느냐는 표정이 되어 몇 가지 더 건성으로 묻고는 곧 돌아갔다.
  "그냥 해보낼 수도 있지만 뵙고 싶기도 해서......행여 지난날의 연좌제가 아직 살아 있다고 오해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그건 이제 선생님께서 잊으셔도 좋은 악몽입니다."
  그런데도 처음 아내의 전화를 받았을 때 가슴 속을 불어가던 서늘한 바람은 그 형사가 공손한 인사와 함께 돌아간 뒤에도 종내 그칠 줄 몰랐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됨으로써 십여 년에 걸친 그들의 유랑은 끝났다. 해방 전까지도 천석꾼으로 불리던 그들의 살림은 부친의 소위 그 건국사업 때문에 태반이 날아가고 다시 농지 개혁과 내버리듯 헐값으로 팔아치운 어머니 때문에 그 나머지도 대부분은 남의 손에 넘어가버렸지만 그래도 고향에는 집과 상당한 논밭이 남아 있었다. 예전처럼 소작을 두거나 머슴을 부릴 처지는 못돼도 그럭저럭 양식 걱정은 않을 만한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어둡고 괴로왔던 지난 세월은 조금씩 잊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전쟁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일생을 아물 것 같지 않던 마음의 상처들도 차츰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어머니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기도하곤 했다. 
  "하느님 아버지, 시험을 끝내 주셔서 감사하나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 어둡고 괴로운 세월의 꼬리는 그가 어렵게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다시 숨겨져 있던 모습을 드러냈다. 형사 하나가 이번에는 그 자신을 목적으로 하숙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소재파악인가 뭔가를 위해 찾아왔노라는 극히 부드러운 형식의 방문이었지만 그가 받은 충격은 실로 컸다. 마치 완전히 깨어난 줄 알았던 악몽 속에 다시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악몽은 그 뒤 그가 주소를 옮길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됐다. 특히 그가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고학수단인 가정교사 자리에는 종종 치명적이 되었다. 언젠가 그는 찾아온 형사에게 항의했다.
  "그때 저는 겨우 네 살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일에 미쳐 집을 나간 것은 그 이태 전이라니까 결국 그와 나는 두 살 때 헤어진 셈입니다. 나는 그의 얼굴도 모르고, 그의 사상 따위와는 더구나 관련이 없단 말입니다. 그가 내게 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다만 몇 방울의 정액뿐이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할머니의 한과 어머니의 고통에 갈음하는 증오와 저주뿐입니다.
  거기다가 나는 또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한민국이 세운 국민학교에 입학했고, 그 뒤 올해로 꼭 오십년째 대한민국 정부의 국민형성교육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따위 아버지가 도대체 어쨌다는 겁니까? 왜 당신들은 스스로를, 당신들이 힘들여 고안하고 정성껏 베푼 십여 년의 국민형성교육을 의심하는 겁니까? 그게 몇 방울의 정액보다 무력하다는 것은 도무지 어디서 나온 결론입니까?"
  그때 담당형사는 겸연쩍게 얼버무렸다.
  "나보고 따져본들 별 수 있나? 어쨌든 자네는 요시찰인 명부에 들어 있고, 나는 상부의 지시에 따를 뿐이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당장 자네를 해꼬지하려고 이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이런 일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어. 때가 오면 다 없어질 테니......"
  그러나 그 "때"는 오지 않고 그들과의 악연은 계속됐다. 결국 그들이 찾아와서 하는 일이란 몇 마디 공식적인 질문과 소재파악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일쑤 돌이킬 수 없는 불리를 입히곤 했다. 우선 그가 많지 않은 나이에 여섯 번이나 직장을 옮기게 된 것은 대개 그들의 방문이 원인된 것이었다. 신원조회는 한때 웬만한 공무원 자리를 모두 가로막았고, 일체의 해외진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멋모르고 사관생도를 사랑하여 약혼까지 했던 여동생은 결혼 직전에 파혼당했고 자신의 전락을 집에 알리고 싶지 않았던 누나도 끝내는 어떤 항구도시의 허름한 술집 안주인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알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그가 처한 특별한 상황 때문에 유리했던 일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대학을 다닌 것은 요란하던 60년대 후반이었지만 그 흔한 데모대열에 한번 끼어보지 못한 것도 그 덕분이었으며, 사상이나 이념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와 불신 때문에 젊은 날에는 한번쯤 있음직한 한 그런 종류의 시비에 전혀 달려든 적이 없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군대에서는 신원조회 덕택에 위험한 철책선 근무도 면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그런 일이 다소 뜸해진 것은 그가 지금의 회사로 취직이 된 뒤부터였다. 자신의 처지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가 선수를 치고 나선 결과였다. 즉, 고등학교 동창인 강전무의 호의로 스카웃 형식의 입사가 결정되던 날 그는 먼저 그 무렵의 담당형사를 찾아갔다. 평소 그에게 비교적 호의를 보이던 좀 젊은 형사였다.
  "제가 매달 한번씩 찾아뵈올 테니 제발 이번 회사로는 찾아오시지 마십시오. 꼭 오실 일이 있으면 불러내 주시고 단순한 확인이면 전화로 대신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일생의 은헤로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그 형사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 뒤로는 정말로 회사로는 찾아오지 않았고 어쩌다 찾게 되엉도 구내다방 같은곳으로 불러내 친한 친구처럼 한동안 얘기를 나누다 돌아갈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가 계정으로 승진하고 집도 장만하여 비교적 유복한 소시민으로 자라갈 무렵 해서는, 그나마도 완화하여 서너달에 한번씩 안부 전화를 하는 것으로 확인을 대신했다. 작년 연좌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을 때도 가장 먼저 축하를 해 준 것은 이웃도시의 수사과장으로 와 있던 그의 장거리 전화였다.
  "정말 내가 가슴이 후련하오. 한형은 이 정부와 지도자를 언제나 감사와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오."
 
  최경감에게 전화나 한번 내볼까-그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최경감은 바로 그 이웃도시에 수사과장으로 와 있는 옛날의 담당형사였다. 조금 전에 다녀간 형사에게 또다른 목적이 있지나 않았는가 의심이 들기도 하였으나, 최경감에게 공연한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아 전화를 그만둔 것이었다. 그러나 그뒤로는 왠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그는 일도 없이 목장 부근을 서성거리다가 해질 무렵 하여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가 채 사무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수화기에서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당신 어딜 가셨더랬어요? 벌써 세번째 거는 전화예요."
  "무슨 일이오?"
  "급히 집으로 돌아오셔야겠어요. 어머님께서 쓰러지셨어요."
  "아니, 갑자기 왜?"
  "순희 그 철없는 것이 어머님께 경찰이 다녀갔다고 말했는가봐요. 갑자기 저희들에게 이사짐을 꾸리라고 성화를 하시며 당신도 자리를 걷고 일어나셔서 손수 옷가지를 꾸리시다가......"
  낮에 형사가 왔을 때 막연히, 나쁠 때에 왔구나, 싶던 것이 기어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놀라움과 근심보다는 까닭없이 암울해지는 기분으로 귀가를 서둘렀다. 집 부근에 이르니 여럿이 부르는 찬송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아내가 교회 사람들을 부른 모양이었다. 처녀 때도 독실한 신자였던 아내는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와 죽이 맞아 더욱 교회에 열성적이 되었다. 필시 의사보다는 목사에게 먼저 알린 것이리라-그 자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를 나가지 않아도 아내의 신앙이 해로울 건 없다 싶어 간섭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은근한 부아 같은 것이 치밀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의사는 벌써 다녀간 후였다. 주사를 두대나 놓고, 경과를 보자며 돌아갔다는 것인데, 어딘가 가망없다는 표정이었다고 아내가 문 밖에서 근심스레 전했다. 의료기구도 변변찮은 시골 공의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가까운 도시로 옮기는 것이 어떠냐는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머리맡을 둘러싼 교인들을 가만히 비집고 들어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저승점이 거뭇거뭇한 손은 마치 가랑잎처럼 얇고 온기가 없었다. 아침에 마지막으로 본 모습과의 대비가 아니더라도 급속한 병세의 악화는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어머님, 제가 왔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가만히 말했다. 방 가득한 찬송가 소리 사이에서도 용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듯 어머니가 번쩍 눈을 떴다. 몸마저 일으키고 싶은 모양이었으나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목소리만은 아픈 사람답지 않게 크고 뚜렷했다.
  "짐을 싸라. 날이 저물면 떠나야 한다."
  "어머님, 오늘 그 사람은 제 여권 때문에 왔어요. 저도 외국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는 간곡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들으려고도 않고 한층 높게 말했다. 
  "형사가 다녀갔다. 우리는 이제 그 사람들 손안에 들었다. 짐을 싸라. 빠져나가야 한다. 도시로 가자."
  "글쎄, 그 사람은 그런 형사가 아니란 말이예요. 연좌제는 벌써 작년에 폐지되었단 말입니다."
  그도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는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못믿는다. 이눔아, 내 말 들어라. 빨리 짐이나 싸라. 빨리."
  그런 어머니의 눈에는 어느새 광기와도 흡사한 빛이 뿜어나오고 있었다. 그사이 찬송가를 마친 목사가 그런 어머니를 보더니 교인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 모두 정집사님을 위해 기도드립시다."
  그리고 이어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하느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시고 세상 거친 풍파에서 구해주셨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가 이같이 모여 기도드리는 것은 당신의 귀한 딸이 지금 무거운 병에 신음하고 있음을 고하고자 함이옵ㄴ디ㅏ. 아버지시여 이딸을 긍휼히 여기시어 크신 사랑의 손으로 어루만져주소서. 당신의 권능이면 이 세상 어느 것인들 이루지 못할 바가 있겠나이까-"
  그때 어머니의 광기어린 목소리가 다시 끼어들었다. 
  "빨리 짐을 싸란 말이다. 여기서는 죽어. 죽고 말아."
  "-나자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문둥이를 어루만져 낫게 하신 바로 그 손으로 이 가엾은 딸의 병든 육신을 쓸어주시고......"
  "어쨌든 도시로 가야 한다. 자수를 해도 도회지에 가서 해야한다."
  "-구신들린 자를 낫게 하신 그 꾸짖음으로 이 가련한 딸을 침범하고 있는 모진 악귀를 내치소서. 딸은 지금 흉한 꿈과 헛된 두려움에 떨고 있나이다......"
  "거기는 법도 있고, 재판도 있다. 허투루 사람을 죽이지 않아."
  "-세상의 보잘것없는 권세가 아버지의 크나큰 권능 앞에 무엇이겠습니까? 아버님께서 허락하심이 아니면 누구도 풀잎 하나 다치지 못할 것인즉, 하물며 사랑하는 딸의 생명이겠읍니까?"
  "이놈아, 내 죽는 꼴을 볼 테냐? 기어이 여기서 뭉기작거리다가 식구대로 한구덩이에 묻힐 테냐?"
  가벼운 거품까지 품으며 그렇게 꾸짖는 어머니의 눈에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목사가 자신의 아들로 비치는 모양이었다. 평소에 그렇게도 떠받들던 목사였건만 허연 눈으로 흘기며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힘이 닿으면 움키기라도 할 듯 손마저 한번 가늘게 떨었다.
  "......아모쪼록 하루 속히 이 딸의 심신이 회복되어 당신의 종으로 다시 일할 수 있게 해주소서. 이 모든 것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목사는 마침내 맥없는 목소리로 기도를 마쳤다. 그런데 눈치없는 교인 중의 하나가 갑자기 열렬한 목소리로 찬송가를 선창하기 시작했다.
  그때 어머니의 고개가 번쩍 들리더니 노기에 찬 눈길로 그 교인을 흘겼다. 그바람에 찬송을 따라 부르려던 나머지 교인들이 멈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의 어색한 침묵을 이용하여 어머니가 그에게 이번에는 달래듯 말했다.
  "저것들 말 다 못 믿는다. 가자. 어쨌든 살려면 이곳을 떠나자."
  아마도 어머니는 그 교인도 다른 사람과 혼동한 것일 테지만, 그는 왠지 거기서 어머니의 처절한 진실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초점이 흐려진 표시가 별로 없는 어머니의 두 눈도 그런 그의 느낌을 뒷받침하는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내부에서는 이상한 감정의 비약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만약 어머니의 이 같은 태도가 임종을 예견한 데서 온 것이라면 나도 어머니를 정직하게 돌아가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금 어머님께 필요한 것은 기도나 찬송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만 돌아들 가주십시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냉담한 목소리로 목사와 교인들에게 요구했다. 아내가 항의 담긴 눈길로 그런 그를 바라보앗지만 그것도 냉담하게 묵살했다. 어머니가 당신들을 택한 것은 당신들이 강력한 아버지의 부정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당신들에게 의지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고 믿어온 아버지의 또다른 부정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했을 따름이었다. 삶에서 떠나려고 하는 이제 당신들 중의 하나이고자 하던 어머니의 모든 노력은 의미를 잃었다. 설령 그것이 일종의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누가 생존을 위한 그 처절한 진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당신들의 신조차도 어머니의 그런 진실을 용서하실 것이다.
  그 사이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그를 향해 간곡하게 되뇌이고 있었다.
  "아범아, 도회로 가자. 거기는 법도 있고 재판도 있다. 자기 죄 아닌 걸루 죽이지는 않아......"
  드디어 교인들도 어색한 표정으로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내가 한편으로는 무안하고 한편으로는 당혹스러운 듯한 얼굴로 그들을 말리려 드는 것을 다시 그의 냉담한 인사가 막았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는 아직도 방안에서 머뭇거리는 교인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방 한구석에 밀쳐져 있는 어머니의 옷가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평소 입지 않는 옷가지들까지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낮에 챙기다 쓰러졌다는 그 옷가지들임에 틀림없었다.
  널린 옷가지들을 대강 정리한 후 그는 장롱 위에 얹힌 낡은 버들고리짝을 내렸다. 살림이 나아진 뒤에도 어머니가 끝내 내버리기를 거부하던 고리짝이었다. 그는 그것을 열어 먼지를 턴 후 정리한 옷가지들을 차곡차곡 집어넣기 시작했다.
  교인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아내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는 보며 물었다.
  "당신, 무얼 하시는 거에요?"
  묵묵히 짐만 싸고 있는 그는 대신하여 어머니가 대답했다.
  "너도 빨리 짐을 싸라. 한시 바삐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짐을 싸요. 우리는 떠나야 해."
  그도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덩달아 아내에게 말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떠나기를 강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사로잡고 있는 공포와 불안은 당연히 물려 받아야 할 무슨 한처럼 그의 의식을 사로잡았다.
  "신은 카인을 용서하였지만 인간들은 카인을 용서하지 않았어. 마찬가지로-법과 제도가 어떤 불합리한 관례의 폐지를 선언했다고 해서 그 희생자들이 바로 오랜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그 이상 당신들의 성경이 말하는 그 카인의 표지가 우리에게도 필요해. 단순한 관용의 제스처로서가 아니라 또다시 우리에게 불리를 입히는 자는 그 일곱 배의 보복을 당하리라는 어떤 강력한 보장이 있어야 해."
  그런 그의 눈시울 속에서는 어린날의 여름밤을 어지럽게 교차하던 예광탄의 빛줄기들이 마치 처참했던 그 세월의 잔해처럼 수없이 부서져내리고 있었다.


































   금시조

  무엇인가 빠르고 강한 빛줄기 같은 것이 스쳐간 느낌에 고죽은 눈을 떴다. 얼마 전에 가까운 교회당의 새벽 종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어느새 아침이었다. 동쪽으로 난 장지 가득 햇살이 비쳐 드러난 문살이 그날따라 유난히 새카맸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려는데 그 작은 움직임이 방 안의 공기를 휘저은 탓일까, 엷은 묵향이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고매원인가, 아니, 용상봉무일 것이다. 연전에 몇 번 서실을 드나든 인연을 소중히 여겨 스스로 문외제자를 자처하는 박교수가 지난 봄 동남아를 들러 오는 길에 사왔다는 대만산의 먹이다. 그때도 이미 운필은커녕 자리보존을 하고 누웠을 때라 고죽은 왠지 그 선물이 고맙기보다는 서글펐었다. 그래서 고지식한 박교수가,
  "머리맡에 갈아두고 흠향이라도 하시라고......"
하며 속마음 그대로 털어놓는 것을, 예끼, 이사람, 내가 귀신인가, 흠향을 하게......하고 핀잔까지 주었지만, 실은 그대로 되고 말았다. 문안 오는 동호인들이나 문하생들을 핑계로, 육십 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지내온 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려고 매일 아침 머리맡에서 먹을 가는 추수의 갸륵한 마음씨에 못지않게 그묵향 또한 좋았던 것이다.
  묵향으로 보아 추수가 다녀간 것임에 틀림없었다. 조금 전에 그의 잠을 깨운 강한 빛줄기는 어쩌면 그 아이가 나가면서 연 장지문 사이로 새어든 햇살이었을 게다. 고죽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며시 몸을 일으켜 보았다. 마비되다시피한 반신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사람을 부를까 하다가 다시 마음을 돌리고 누웠다. 아침의 고요함과 평안과, 그리고 이제는 고통도 아무것도 아닌 쓸쓸함을 의례적인 문안과 군더더기 같은 보살핌으로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참으로-고죽은 천정의 합판무늬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이 한살이에서 나는 오늘과 같은 아침을 얼마나 자주 맞았던가. 아무도 없이, 그렇다, 아무도 없이......몽롱한 유년에도 그런 날들은 수없이 떠오른다. 다섯인가 여섯인가 되던 어느 아침에도 그는 장지문 가득한 햇살을 혼자 맞은 적이 있다. 밖에는 숨죽인 곡성이 은은하고-그러다가 흰 옷에 산발한 어머니가 그를 쓸어안고 혼절하듯 쓰러진 것은, 너무 오래 혼자 버려져 있다는 기분에 이제 한번 큰 소리로 울음이나 터뜨려볼까 하던 때였다. 또 있다. 그때는 제법 일여덟이 되었을 때인데 전날 어머님과 함께 잠이 들었던 그는 또 홀로 아침을 맞게 되었다. 역시 할머니가 와서 그를 쓸어안고 우시면서 이렇게 넋두리처럼 외인 것은 방 안의 고요가 갑자기 섬뜩해져 문을 열고 나서려던 참이었다.
  "아이고, 내새끼, 이 불쌍한 새끼를 어쩔고? 그 몹쓸년이, 탈상도 못 참아서......"
  그 뒤 숙부의 집으로 옮긴 후에도 대개가 홀로 깨는 아침이었다. 숙모는 언제나 병들어 다른 방에 누워 있었고, 숙부는 집보다 밖에서 더 많은 밤을 새웠다. 그런 숙부의 서책 냄새배인 방에 홀로 잠드는 그로서는 또한 아침마다 홀로 깨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이 유년으로 돌아가자 고죽은 어쩔 수 없이 지금과 같은 그의 삶 속으로 어린 그가 내던져진 첫날을 떠올렸다. 오십 년이 되는가, 아니면 육십 년? 어쨌든 열 살의 나이로 숙부의 손에 끌려 석담 선생의 고가를 찾던 날이었다.

  이상도 하지,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지난날의 어떤 순간의 뜻밖에도 뚜렷하고 생생하게 되살리게 되는 것 또한 늙음의 징표일까. 근년에 들수록 고죽은 그날의 석담 선생을 뚜렷하고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이제 갓 마흔에 접어들었건만 선생의 모습은 이미 그때 초로의 궁한 선비였다. 
  "어쩌겠나? 석담, 자네가 좀 맡아줘야겠네. 내가 이 땅에만 있어도 죽이든 밥이든 함께 끓여먹고 거두겠네만."
  숙부는 그렇게 말했다. 무슨 일인가로 쫓기고 있던 숙부는 기어이 국외로 망명할 결심을 굳힌 것이었다.
  "병든 아내를 맡기는 터에 이 아이까지 처가에 짐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네. 맡아주게. 가형의 한점 혈육일쎄."
  그러나 아무런 표정없이 듣고 있던 석담 선생은 대답 대신 물었다.
  "자네 상해, 상해하지만 실제로 거기 뭐가 있는지 아는가? 말이 임시정부라고는 해도 집세도 못내 쩔쩔매는 판에 하찮은 싸움질로 지고새고 한다더군. 거기다가 춘강 선생님께서 아직까지 거기 계신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여긴들 대단한 게 뭐 있겠나? 어찌됐건 맡아주겠는가, 못하겠는가?"
  그러자 석담 선생은 한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더니 가벼운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먹고 입히는 것이야-어떻게 해보겠네. 하지만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어찌 그뿐이겠는가......"
  "고마우이, 석담. 그것만이면 족하네. 가르치는 일은 근심 말게. 이놈의 세상이 어찌될지 모르니 가르친들 무얼 가르치겠나? 성명 삼자는 이미 깨우쳐 주었으니 일단은 그것으로 되었네."
  그렇게 말한 숙부는 그에게 돌아섰다.
  "너 이 어른께 인사올려라. 석담 선생이시다. 내가 다시 너를 찾으러 올 때까지 부모처럼 모셔야 한다."
  그러자 숙부는 끝내 다시 그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나중에 그러니까 그로부터 이십 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환국하는 임시정부의 일행 사이에 늙은 숙부가 끼어 있더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 무렵 무슨 일인가로 분주하던 그가 이듬해 상경했을때는 이미 찾을 길이 없었다.
  숙부와 동문이요, 오랜 지기였던 석담 선생은 퇴계의 학통을 이었다는 영남 명유의 후예였다. 웅혼한 필재와 유려한 문인화로 한말 3대가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스승 춘강이 일생을 흠모했다는 추사처럼 예술가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웠다.
  "너 글을 배웠느냐?"
  숙부가 떠나고 석담 선생이 그에게 처음으로 물은 말은 그러했다.
  "동몽선습을 떼었읍니다."
  "그렇다면 소학을 읽어라. 그걸 읽지 않으면 몸둘 바를 모르게 된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뒤 그는 몇 안되는 선생의 문학생들 사이에서 몇 년이고 거듭 소학을 읽었지만 선생은 끝내 못본 체했다. 그러다가 열셋 되던 해에 선생은 그를 난데없이 가까운 소학교로 데려갔다.
  "세월이 바뀌었다. 너는 아직 늦지 않았으니 신학문을 익히도록 해라."
  결국 그의 유일한 학력이 된 소학교였다. 나중의 일이야 어찌됐건, 그걸로 보아 선생에게는 처음부터 그를 문하로 거둘뜻은 없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돌아가신 스승을 떠올리게 되자 고죽의 눈길은 습관적으로 병실 모서리에 걸린 석담 선생의 진적에 머물렀다. 모든 것이 넉넉지 못한 때에 쓴 것에다 오랫동안 표구를 하지 않은 채 보관해온 터라, 종이는 바래고 낙관의 주사도 날아가 희미한 누론색을 띠고 있었지만 스승의 필력만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금시벽해 향상도하

  불행히도 석담 선생은 외아들을 호열자로 잃고 또 특별히 제자를 택해 의발을 전한 것도 아니어서, 임종 후로는 줄곧 석담의 고가를 지킨 고죽에게는 비교적 스승의 유품이 많았다. 그러나 장년을 분방히 떠다니는 동안 돌보지 않은데다 등란까지 겹쳐 남아 있는 진적은 몇 점 되지 않았다. 언젠가 고죽은 병석에서 이제 머지 않아 스승을 뵈올 터인즉 후인의 용렬함을 어떻게 변명하겠는가, 하며 탄식한 적이 있는데 그 속에는 자신의 그와 같은 소훌함에 대한 뉘우침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데 그 중요한 예외가 지금의 액자였다. 그가 일평생 싫어하면서도 두려워하고, 이르고자 하면서도 넘어서고자 했던 스승의 가르침이 거기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붓을 놀릴 수 없는 요즈음에 와서도 그 액자의 자획 사이에서 석담 선생의 준엄한 눈길을 느낄 정도였다.
  스물일곱 때의 일이었다. 조급한 성취감에 빠진 그는 스승에게 알리지도 않고 문하를 빠져나왔다. 좋게 말하면 자기확인을 위해서였고 나쁘게 말해서는 자기과시의 기회를 찾아서였다. 그리고 그 뒤 석 달간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성공적인 유력이었다. 적파의 백일장에서는 장원을 했고, 내령, 청하, 두산등 몇 군데 남아 있던 영남의 서당에서는 진객이 되었으며 더러는 산해진미에 묻혀 부호의 사랑에서 유숙하기도 했다. 석달 뒤에 그동안 글씨나 그림을 받아가고 가져온 종이와 붓값 대신 받은 곡식을 한짐 지어 돌아올 때만 해도 그의 호기는 만장이나 치솟았다. 그러나 석담 선생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걸 내려놓아라."
  문앞을 가로막은 석담 선생은 먼저 짐꾼에게 메고 온 것을 내려놓게 했다. 그리고 이어 그에게도 말하였다.
  "너도 필낭을 벗어 이 위에 얹어라."
  도무지 거역할 엄두가 나지 않는 음성이었다. 그는 영문도 모르고 필낭을 벗어 종이와 곡식꾸러미 위에 얹었다. 그러자 선생은 소매에서 그 무렵에는 당황으로 불리우던 성냥을 꺼내더니 거기에다 불을 붙였다.
  "선생님, 어쩔 작정이십니까?"
  그제서야 황급하게 묻는 그에게 석담 선생은 냉엄하게 대답했다.
  "네 숙부의 부탁도 있고 하니 한 식객으로는 내 집에 붙여두겠다. 그러나 그 선생님이란 말은 앞으로 결코 입에 담지 말아라. 아침에 붓을 쥐기 시작하여 저녁에 자기 솜씨를 자랑하는 그런 보잘것없는 환쟁이를 나는 제자로 기른 적이 없다."
  그 뒤 고죽은 노한 스승의 용서를 받는데 꼬박 이년이 걸렸다. 처음 문하의 끝자리를 얻을 때보다 훨씬 참기 어려운 혹독한 시련의 세월이었다. 그리고 지금 올려보고 있는 글귀는 바로 그 감격적인 사면을 받던 날 석담 선생이 손수 써서 내린 것이었다.
  글을 씀에, 그 기상은 금시조가 푸른 바다를 쪼개고 용을 잡아 올리듯 하고, 그 투철함은 향상이 바닥으로부터 냇물을 가르고 내를 건너듯 하라......
  그러고 보면 어렵고 어려웠던 입문의 과정도 고죽의 기억 속에는 일생을 가도 씻기지 않는 한과도 흡사한 빛 속에 싸여 있다.
  그 어떤 예간에서였는지 석담 선생은 처음 그는 숙부에게서 떠맡을 때부터 차가운 경계로 대했다. 명문이라고는 해도 대를 이은 유자의 집이라 본시 물려받은 살림도 많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 무렵은 그나마도 줄어 몇 안되는 문인들이 봄가을로 올리는 쌀섬에 의지해 살아가고는 있었지만, 어린 그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석담 선생의 심기를 건드릴 만큼 경제적인 부담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나중 그가 자라 거의 지탱할 수 없는 스승의 살림을 도맡아 살 때조차도 석담 선생의 그런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거기에는 무언가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남들이 한두 해면 읽고 지나갈 소학을 몇 년씩이나 거듭읽도록 버려둔 것하며, 열셋이나 된 그를 소학교 사학년에 집어넣어 굳이 자신의 학문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밀어낸 것도 석담 선생의 그런 태도와 연관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 못지않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석담 선생에 대한 그 자신의 감정이었다. 스승의 생전 내내, 그는 스승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사모와 그에 못지않은 격렬한 미움으로 뒤얽혀 보내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런 그의 감정 역시 어떤 필연적인 논리와는 멀었지만, 그것이 뚜렷이 자리잡기 시작한 시기만은 대강 짐작이 갔다. 열여섯에 소학교를 졸업하고 석담 선생의 집안에 남은 후부터 열여덟에 정식으로 입문할 때까지였다. 그동안 그는 학비를 도와주겠다는 당숙 한분의 호의도 거절하고, 또 나날이 달라지는 세상과 거기에 상응하는 신학문에 대한 동경도 외면한 채, 가망없는 석담 선생의 살림을 맡아 꾸려나갔다. 이미 문인들이 가져오는 쌀섬으로는 부족하게 된 양식은 소작 내준 몇뙈기 논밭을 스스로 부쳐 충당했고, 한짐의 땔감을 위해서는 이십리 삼십리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갸륵하게 여겼지만 실은 그때부터 그의 가슴에는 석담 선생을 향한 치열한 애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봄날 산허리를 스쳐가는 구름 그늘처럼, 또는 여름날 소나기가 씻어간 들판처럼, 가을계곡의 물처럼, 눈 그친 후에 트인 겨울하늘처럼 유유하고 신선하고 맑고, 고요하면서도 또한 권태롭고 쓸쓸하고 적막한 석담 선생의 삶은 그에게는 언제나 까닭 모를 동경인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었다. 선생이 알 듯 말 듯한 미소에 젖어 조는 듯 서안 앞에 앉아 있을 때,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은 이제는 다만 지난 영광의 노을로서만 파악되는 어떤 유연한 세계를 넘나들 때나 신기가 번득이는 눈길로 태풍처럼 대필을 휘몰아갈 때, 혹은 뒤꼍 한 그루의 해당화 그늘 아래서 탈속한 기품으로 난을 뜨고 거문고를 어룰 때는 그대로 경건한 삶의 한 사표로 보이다가도, 그 자신이 돌보아주지 않으면 반년도 안돼 굶어죽은 송장을 쳐야 할 것 같은 살림이나, 몇몇 늙은 이와 이제는 열손가락 안으로 줄어든 문인들을 빼면 일년 가야 찾아주는 이 없는 퇴락한 고가나, 고된 들일에서 돌아오는 그를 맞는 석담 선생의 무력한 눈길을 대할 때면 그것이야말로 반드시 벗어나야 할 무슨 저주로운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결국 고죽의 삶을 지배한 것은 사모와 동경 쪽이었다. 새로운 세계로의 강렬한 유혹을 억누르고 신학문을 포기했을 때 이미 예측됐던 것처럼 그는 어느새 자신도 모를 열정으로 석담 선생의 흉내내고 있었다. 문인들이 잊고 간 선생의 체본, 선생이 버린 서화의 파지나 동도들과 주고받다 흘린 문인화 같은 것들이 그의 주된 체본이었지만 때로는 대담하게 문갑에서 빼내기도 했다.
  처음 한동안 그가 썼던 지필은 후년에 이르러 회상할 때 조차도 가슴에 썰렁한 바람이 일게 하는 것들이었다. 작은 글씨는 스스로 만든 사판이나 분판에 선생의 문인들이 쓰다 버린 몽당붓을 주워서 익혔고 큰 글씨는 남의 상석에 개꼬리빗자루로 쓴 후 물로 씻어내리곤 했다. 그가 맨처음 자신의 붓과 종이를 가져본 것은 선생 몰래 붓방과 지물포에 갈비-솔잎- 한 짐씩을 해다준 후였다.
  석담 선생은 나중에 그걸 고죽의 아망이라고 나무랐다지만, 그렇게 어려운 수련을 하면서도 그가 끝내 석담 선생에게 스스로 입문을 요청하기는커녕 자신의 뜨거운 소망을 비치지조차 않은 것은 그 둘의 관계로 보아 잘 믿기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그의 예술적인 자존심, 어떤 종류의 위대한 영혼에게서 발견되는 본능적인 오만이나 아니었던지.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석담 선생 내외가 나란히 집을 비워 그 홀로 빈집을 지키게 된 그는 선생의 서실을 치우다가 문득 야릇한 충동을 느꼈다. 그때까지의 연마를 한눈으로 뚜렷이 보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마침 석담 선생이 간 곳은 백리길이 넘는 어떤 지방 유림의 시회여서 그날 안으로는 돌아올수 없었다.
  그는 곧 서탁을 펼치고 선생의 단계석 벼루에 먹을 갈기 시작했다. 선생의 법도에 따라 연질에 먹물 한 방울 튀기지 않고 묵지가 차자 선생이 필낭에 스습하고 남긴 붓과 귀한 화선지를 꺼냈다.
  먼저 그는 해서로 안체 쌍학명을 임사했다. 추사가 예천명을 정서를 익히는 데에 으뜸으로 치던 것처럼 석담 선생이 문인들에게 가장 힘써 익히기를 권하던 것인데, 종이와 붓이 익숙해짐과 동시에 체본과 흡사한 자획이 나왔다. 다음도 역시 안체 근례비 차츰 그는 고심참담하면서도 황홀한 경지로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그가 돌연한 호통소리에 정신을 차린 것은 그무렵 들어 익히기 시작한 난정서 첫머리를 막 끝낸 직후였다.
  "이놈,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놀란 눈을 들어보니 어느새 어둑해진 방 안에 석담 선생이 우뚝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통소리는 높았지만 얼굴에는 노기보다 까닭모를 수심과 체념이 서려 있었다. 그 곁에는 시, 서, 화, 위기, 점복, 의약등 일곱 가지에 두루 능하다 해서 칠능군자란 별호를 가진 운곡 최선생이 약간 괴기하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당황한 그는 방 안 가득 널려 있는 글씨들을 허겁지겁 주워 모았다. 예상과는 달리 석담 선생은 그런 그를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운곡이 나섰다.
  "글씨는 두고 가거라."
  허둥거리며 방 안을 치운 후에 자신의 쓴 글씨를 들고 문을 나서는 고죽에게 이르는 말이었다. 고죽은 거의 반사적으로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러나 야릇한 호기심과 흥분으로 이내 사랑채 부근으로 돌아와 방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사이 불이 밝혀진 방 안에서는 한동안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리더니 이윽고 운곡이 물었다.
  "그래 진실로 석담께서 가르치시지 않았단 말씀요?"
  "어깨너머 배웠다면 모르되 나는 결코 가르친 바 없소."
  석담 선생의 왠지 우울하고 가라앉은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실로 놀라운 일이오. 천품을 타고났소."
  "......"
  "왜 제자로 거두시지 않으셨소?"
  "비인부전-운곡께서는 왕우군의 말을 잊으셨소?"
  "그럼 저 아이에게 가르침을 전하지 못할 만큼 사람답지 못한데가 있단 말씀이오?"
  "첫째로 저 아이에게는 재기가 너무 승하오. 점획을 모르고도 결구가 되고, 열두 필법을 듣지 않고도 조정과 포백과 사전을 아오. 재기로 도근이 막힌 생래의 자장이오."
  "온후하신 석담답지 않으신 말씀이오. 석담께서 그 도근을 열어 주시면 될 것 아니겠소."
  "그게 쉽겠소? 게다가 저 아이에게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있을 리 없소. 그런데도 이 난은 제법 간드러진 풍류로 어우러지고 있소."
  "석담의 문하가 된 연후에도 문자향과 서권기에 빠질 리가 있겠소? 그만 거두시구려."
  "본시 내가 맡은 것은 저 아이의 의식뿐이었소. 나는 저 아이가 신학문이나 익혀 제 앞을 가리기를 바랐는데."
  "석담, 도대체 왜 그러시오? 인연이 없는 자도 배움을 구해 찾아들면 내쫓을 수 없는 법인데, 벌써 칠팔 년이나 한솥밥을 먹고 지낸 저 아이에게만 유독 냉정한 건 무슨 일이시오? 듣기에 저 아이는 벌써 몇 년째 석담의 어려운 살림을 도맡아 산다는데, 그 정성이 가긍하지도 않소?"
  거기서 문득 운곡의 목소리에 결기가 서렸다. 운곡도 석담 선생과 그 사이의 기묘한 관계를 들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너무 허물하지 마시오. 실은 나 자신도 왜 저 어린아이가 마음에 걸리는지 알 수 없소. 왠지 저 아이를 볼 때마다 이건 악연이다. 이런 기분뿐이요."
  석담 선생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석담, 정 거리끼신다면 사흘에 한번이라도 좋으니 저 아이를 내게 보내시오. 이미 저 아이는 이 기릉ㄹ 벗어나기는 틀린 것 같소."
  그러자 한동안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석담 선생의 낮으나 결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실 필요는 없소이다. 내가 길러보겠소."
  그때 석담 선생께서 악연이라 한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갑자기 그를 받아들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고죽이 석담 문하에 정식으로 이름을 얹은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엄숙한 입문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지게를 지고 대문을 나서는 고죽을 석담 선생이 불렀다.
  "이제부터는 들일을 나가지 말아라."
  마치 지나가면서 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리고 갑작스런 명에 어리둥절해 있는 고죽을 흘깃 건네보고는 약간 소리높여 재촉했다.
  "지게를 벗고 사랑에 들란 말이다."
  -그것이 그들 사제간의 숙명적인 입문의식이었다.

  갑자기 방문을 여는 소리에 아련한 과거를 헤매이던 고죽의 의식이 현실로 돌아왔다. 잘 모아지지 않는 시선으로 문께를 보니 매향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자 이상하게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눈앞이 밝아왔다. 얼마나 원망스러웠으면 이리로 찾아왔을꼬-고죽은 회한과도 흡사한 기분에 젖어 다가오는 매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버님, 일어나셨읍니까?"
  추수였다. 가만히 다가와 그의 안색을 살피는 그녀의 화장기 없는 얼굴에는 짙은 수심이 끼어 있었다. 그는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그런 기색을 알아차렸던지 추수가 가만히 거들어 등받이에 기대주었다. 몸을 일으키기가 어제보다 한결 불편해진 것이 그 자신에게도 저절로 느껴졌다.
  "과일즙이라도 좀 내올까요."
  추수가 다시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그런 그녀의 얼굴을 멀거니 살피다가 힘없고 갈라진 목소리로 불쑥 물었다.
  "네 어미를 기억하느냐?"
  그가 이렇게 묻자 추수가 놀란 듯한 눈길로 그를 올려보았다. 마지막으로 데리고 살던 할멈이 죽은 후 칠년이나 줄곧 그 곁에서 시중을 들어 왔지만 한 번도 듣지 못한 물음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실 그는 그보다 더 긴 세월을 매향의 이름조차 입에 담지 않았었다.
  "사진밖에는."
  그럴 테지, 불쌍한 것. 핏덩이 같은 것을 친정에 떼어 두고 다시 기방에 나간지 이태도 안돼 그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으니.
  "그런데 아버님, 그건 왜?"
  "나는 조금 전에 네 어미가 들어오는 줄로 알았다."
  "......"
  "원래가 늙어 죽을 상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서두를 필요도 없었는데."
  그가 그렇게 말하며 새삼 비감에 젖는 것을 보자 일순 묘하게 굳어졌던 추수의 얼굴이 원래대로 풀어졌다.
  "과일즙이라도 좀 내올까요?"
  이윽고 분위기를 바꾸려고나 하는 듯이 추수가 다시 물었다. 그도 얼른 매향의 생각을 떨치며 대답했다.
  "작설 달여둔 것이 있으면 그거나 한 모금 내오너라."
  그러자 추수는 잠깐 창을 열어 방 안 공기를 갈아넣은 후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 어떤 열정이 나를 그토록 세차게 휘몰았던 것일까-추수가 내온 식힌 작설을 마시면서 고죽은 처음 매향을 만나던 무렵을 회상했다. 서른다섯, 두번째로 석담 선생의 문하를 떠난 그는 그로부터 십년 가까운 세월을 이곳저곳 떠돌며 보내었다.
  이미 중일 전쟁이 가까운 때였지만, 아직도 유림이며 서원 같은 것이 한 실체로 명맥을 잇고 있었고, 사회며 백일장, 휘호회 같은 것들이 이따금씩 열리고 있을 때였다. 시, 서, 화에 두루 빼어났다 해서 삼절 선생이라고까지 불리던 석담의 전인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스승에게 꾸중을 들어가며 참가한 몇 번의 선전 입선 덕분인지 그의 여행은 억눌리고 찌든 시대에 비하면 비교적 호사스러웠다. 한달에 한 번 정도는 팔도 어디선가 그에게 상좌를 내어주는 모임이 있었고, 한 고을에 하나쯤은 서화 한 장에 한 날의 노자를 내줄 줄 아는 토호가 남아 있었다.
  고죽이 진주에 들르게 된 것도 그런 세월 중의 일이었다. 무슨 휘호회인가로 그곳에서 잔치와 같은 열흘을 보내고 붓을 닦으며 행낭을 꾸리려는데 난데없는 인력거 한채가 회장으로 쓰던 저택 앞에 머물러 그를 청했다. 전에도 없던 일은 아니었으나 재촉 속에 타고 나니 인려거는 당시 진주에서는 첫째가는 무슨 관으로 들어갔다. 두칸 장방에 상다리가 휘도록 요리상을 벌여 놓고 그를 기다리는 것은 뜻밖에도 대여섯의 일본 사람과 조선인 두었이었다. 서화를 아는 관공서의 장들과 개화된 지방유지들이었다.
  매향은 그 술자리에 불려나온 기생들 중의 하나였다. 한창 술 자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그 자리를 마련한 듯 보이는 동척의 조선인 간부가 기생들을 향해 빙글거리며 물었다.
  "누가 오늘 저녁에 이선생님을 모시겠느냐?"
  그러자 기생들 사이에서 간드러진 웃음이 한동안 일더니 그중의 하나가 쪼르르 다가와 그 앞에서 다홍치마를 걷었다. 드러난것은 화선지 같은 흰 비단 속치마였다. 스물두어 살이나 될까, 화려한 얼굴도 아니었고 요염한 교태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을 끄는 데가 있는 여자였다. 보아온 대로 필낭을 끄르면서도 그는 한꺼번에 치솟는 술기운을 느꼈다.
  "네 이름이 뭐냐?"
  "매향입니다."
  그녀는 전혀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듯 당돌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그였다.
  "그럼 매를 한 그루 쳐야겠구나."
  그는 애써 태연한 척 말했지만 붓 든 손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나중까지도 알 수 없던 것은 그가 친 매였다. 떠나온 스승에 대한 자괴감 때문인지 그녀의 속치마에 떠오른 것은 그 자신의 매가 아니라 석담 선생의 매였다. 등걸은 마르고 비틀이지고, 앙상한 가지에는 매화 두어 송이, 그것도 거의가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였다. 곁들인 글귀도 석담 선생의 것이었다.

  매일생한불매향
 
  얼핏 보아서는 매향의 이름에서 딴 것 같지만, 일생을 얼어 지내도 향기를 팔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일제말 권번기의 속치마에 어떻게 어울리겠는가. 그러나 지금까지도 남모르는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는 일은 정작 그 뒤에 있었다.
  "이 매가 어찌 이렇게 춥고 외롭습니까?"
  낙관이 끝나고 매향이 그렇게 물었을 때 그는 매향에게만 들릴만큼 낮고 침중하게 대답했다.
  "정사초의 난에 뿌리가 드러나지 않은 걸 보았느냐?"
  그리고 뒤이어 역시 궁금히 여기는 좌중에게는 정월의 매화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매향은 분명 알아들은 눈치였다. 정사초의 난초를, 망국의 한과 슬픔을 표현하는 그 드러난 뿌리를.
  그밤 매향은 스스럼없이 그에게 몸을 맡겼다.
  "이 추운 겨울밤에 제 속치마를 적시셨으니 오늘밤은 선생님께서 제 한몸을 거두어 주셔야겠읍니다."
  그뒤 그는 매향과 함께 넉 달을 보내었다. 언젠가 흥겨움에 취해 넘은 봄꽃 화려한 영마루의 기억처럼 이제는 다만 즐거움과 달콤함의 추상만이 남아 있는 세월이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그들의 날은 끝났다. 그가 망국의 한을 서화로 달래며 떠도는 선비가 아니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적장을 안고 강물로 뛰어드는 의기는 아니었다. 그가 자신도 모르는 열정에 휘몰려 떠도는 한낱 예인에 불과하다면, 그녀 또한 돌보아야 할 부모형제가 여덟이나 되는 가무기일 뿐이었다.
  둘은 처음부터 결정된 일을 실천하듯 미움도 원망도 없이 헤어졌다. 매향은 권번으로 돌아가고, 그는 그무렵 전주에서 열리게 된 동문의 전람회를 바라고 떠났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는 마지막 이별이었다.
  그런데 이듬해 가을에 그렇게 헤어진 매향이 자신의 씨로 지목되는 딸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때 마침 내석악의 산사 사이를 헤매고 있던 그는 별 생각없이 추수란 이름을 지어 보냈다. 슬프도록 맑은 가을 계곡의 물이 그 아이의 앞날에 대한 어떤 예감으로 그의 의식 깊이 와 닿은 것일까.
  그리고 다시 몇 년인가 후에 그는 매향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어떤 부호의 첩으로 들어앉은 그녀는 마나님의 등쌀에 견디다 못해 석 냥이나 되는 생아편을 물에 타 마시고 젊은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는 것이었다. 비정이라 해야 하지, 매향의 그 같은 불행한 죽음을 전해 들어도 그는 별다른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그녀의 몸을 빌어 태어난 자기의 딸이 있었다는 것과 그 아이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것도 얼핏 떠올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추수의 얼굴을 처음 대하게 된 것은 그가 살고 있는 도시의 여학교로 그녀가 전학을 하게 된 뒤의 일이었다. 불행하게 죽은 누이 덕분으로 그런대로 한살림 마련한 그녀의 외삼촌은 누이에 대한 감사를 하나뿐인 생질녀를 돌보는 일로 대신 한 탓에 그녀는 별로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었지만, 그는 가끔씩 딸을 만나러 그 여학교엘 들르곤 했다. 다가오는 노년과 더불어 새삼 그리워지는 혈육의 정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그들 부녀가 한집에 기거하게 된 것은 비교적 근년의 일이었다.
  이 도시에 서실을 열고 집칸을 마련하여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얻어 산 할멈이 죽자 다시 홀로가 된 그에게 월남전에서 남편을 잃고 역시 홀로가 된 추수가 찾아든 것이었다. 칠년 전의 일로, 그때 추수의 나이는 가엾게도 스물 여섯이었다.

  탕제 마시듯 미음 한공기를 마신 고죽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미음그릇을 들고 나가던 추수가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오늘도 나가시겠어요?"
  "나가야지."
  "어제도 허탕치시지 않았어요? 오늘은 김군만 보내 둘러보게 하시지요."
  "직접 나가봐야겠다."
  지난 여름에 퇴원한 이래 거의 넉달 동안 그는 하루도 걸르지 않고 도심의 화랑가를 돌았다. 자신의 작품이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거두어들이는 것이었는데, 처음 거두어들일 때만 해도 특별히 이렇다 할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츰 어떤 결론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것은 명확한 죽음의 예감과 결부된 것이었다. 담당의인 정박사는 담담하게 자신의 완쾌를 통고하였으나, 여러가지로 미루어 그의 퇴원은 일종의 최종적인 선고였다. 줄을 잇는 문병객도 그러했지만, 그림자처럼 붙어 시중하는 추수의 표정에도 어딘가 어두움이 깃들어 있었다. 제대로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의외도 정박사가 말한 안쾌와는 멀었다. 입원 당시와 같은 격렬한 통증은 없었지만, 그는 그의 세포가 발끝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파괴되어 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초헌은 아직 연락이 없느냐?"
  초헌은 추수가 김군이라고 부르는 제자의 아호였다. 그로부터 직접 호를 받은 마지막 제자로 몇 년째 그의 서실에 기식하고 있는 젊은이였다.
  "반시간쯤 있다가 들른다고 했어요. 하지만 오늘은 집에서."
  "아니, 나가봐야겠다. 채비를 해다오."
  그는 간곡히 말리는 추수를 약간 엄한 눈길로 건너본 후 천천히 방 안을 걸어보았다. 몇 발짝도 옮기기 전에 눈앞이 가물거리며 몸이 자꾸만 기울어졌다. 추수가 근심스런 눈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그가 다시 이부자리에 기대앉자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의 눈에 다시 돌아가신 스승의 휘호가 가득히 들어왔다.

  석담 선생의 말처럼 정말로 그들의 만남은 악연이었을까. 그가 문하에 든 후에도 그들 사제간의 묘한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석담 선생은 그가 중년에 들 때까지도 가슴 속에 원망으로 남아 있을 만큼 가르침에 인색했다. 해자부터 다시 시작할 때였다. 선생은 붓을 쥐기 전에 먼저 추사의 서결을 외우도록 했다.

  글씨가 법도로 삼아야 할 것은 텅 비게 하여 움직여 가게 하는 것이다. 마치 하늘과 같으니, 하늘은 남북극이 있어서 그것으로 굴대를 삼그 움직이지 않는 곳에 잡아매고, 그런 후에 그 하늘을 항상 움직이게 한다. 글씨가 법도로 삼는 것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이런 까닭으로 글씨는 붓에서 이루어지고, 붓은 손가락에서 움직여지며, 손가락은 손목에서 움직여지고, 손목은 팔뚝에서 움직여지며, 팔뚝은 어깨에서 움직여진다. 그리고 어깨니 팔뚝이니 팔목이니 하는 것은 모두 그 오른쪽 몸뚱어리라는 것에서 움직여진다.

  대개 그런 내용으로 시작되는 사백자 가까운 서결이었는데, 고죽은 그걸 한 자 빠뜨림 없이 외어야 했다. 그 다음에 내준 것이 이미 선생 몰래 써본 안진경의 법칙 한권이었다.
  "네가 이걸 백 번을 쓰면 본은 될 것이고, 천 번을 쓰면 잘 쓴다 소리를 들을 것이며, 만 번을 쓰면 명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가르침은 오직 그뿐이었다. 그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드러내놓고 연마할 수 있다는 것과 이틀에 한번씩 운곡 선생에게 들러 한학을 배우게 된 정도였을까. 그러다가 꼬박 삼년이 지난 후에 딱 한마디를 덧붙였다.
  "숨을 멈추어라."
  이미 삼천번을 쓴 연후에도 해자가 여전히 뜻대로 어울리지 않아 탄식할 때였다.
  사군자에 있어서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를테면 난을 칠 때에도 손수 임사한 석파난권 한 권을 내밀며 말했다.
  "선자리에서 성불 할 수 없고, 또 맨손으로는 용을 잡을수가 없다. 오직 많이 쳐본 연후에라야만 가능하다."
  그리고는 그뿐이었다. 가끔씩 어깨 너머로 그의 난을 구경하는 일이 있어도 입을 열어 자상하게 그 법을 일러주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그의 난이 거의 어우러져 갈 무렵에야 한마디 덧붙였다.
  "왼쪽부터 쳐라. 돌은 붓을 거슬러 써야지."
  또 석담 선생은 제자의 성취를 별로 기뻐하는 법이 없었다. 입문한 지 십년에 가까워지면서 그의 솜씨는 선생의 동도들에게까지 은근한 감탄으로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선생은 그런 말만 들으면 언제나 냉엄하게 잘라 말했다.
  "이제 겨우 흉내를 낼 수 있을 뿐이오."
  스물 일곱 적에 그가 선생의 집을 나서게 된 것도 아마는 그런 선생의 냉담함에 대한 반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의 칭송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그는 반드시 스승의 칭찬을 받고 싶었다. 그것이 그를 석담 선생 곁으로 되돌아오게 만들고, 다시 용서를 받을 때까지의 이년에 가까운 모멸과 수모를 참아내게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 이 년 동안 다시 옛날의 불목하니로 돌아가 농사를 돌보고 나뭇짐을 해나르는 그를 선생은 대면조차 꺼렸다. 한번은 견딜 수 없는 충동 때문에 선생 몰래 붓을 잡아본 적이 있었다. 은밀히 한 일이었지만, 그걸 알아차린 선생은 비정하리만치 매몰차게 말했다.
  "나가서 몸을 씻고 오너라. 네 몸의 먹냄새는 창부의 지분냄새보다 더 견딜 수 없구나."
  그뒤 다시 용서를 받고, 선생의 사랑방에서 지필을 만지는 것이 허락된 후에도 석담 선생의 태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나이를 먹고 글씨가 무르익어 갈수록 선생의 차가운 눈초리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불안까지 번쩍였다. 느긋해지는 것은 차라리 고죽 쪽이었다. 그런 스승의 냉담과 비정에 반평생 가까이 시달려오는 동안, 그는 단순히 그것에 둔감해지거나 익숙해지는 이상 스승이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는 것을 찾아내어 행함으로써 그로 인한 스승의 분노와 탄식을 즐기게까지 되었다. 몇번의 단체 전람회와 선전 참가 같은 것이 그 예였다.
  하지만 그들 불행한 사제간이 완연히 갈라서게 되는 날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다. 석담 선생이 불안해한 것, 그리고 그가 늘 스승을 경원하도록 만든 것이 세월과 더불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일치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예술관이라 할까, 서화에 대한 그들의 견해였따. 석담 선생의 글씨는 힘을 중시하고 기와 품을 숭상했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움을 중히 여기고 정과 의를 드러내고자 힘썼다. 그림에 있어서도 석담선생은 서화를 심화로 여겼고, 그는 물화, 즉 자신의  내심보다는 대상에 충실하려고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그들 사제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매죽 논쟁이었다.
  사군자 중에서 석담이 특히 득의해 하던 것은 대나무와 매화였다. 그런데 그 대나무와 매화가 한일합병을 경계로 이상한 변화를 일으켰다. 대원군도 신동의 그림으로 감탄했다는 석담의 대나무와 매화는 원래 잎과 꽃이 무성하고 힘차게 뻗은 것이었으나 그때부터 점차 시들고 메마르고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후년으로 갈수록 심해 노년의 것은 대 한줄기에 잎파리 세개, 매화 한등걸에 꽃 다섯 송이가 넘지 않았다. 고죽에게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대나무의 잎을 띠고 매화의 꽃을 훑어버리십니까?" 
  이제는 고죽도 장년이 되어 석담 선생이 전처럼 괴퍅을 부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 고죽이 그렇게 물었다.
  "망국의 대나무가 무슨 흥으로 그 잎이 무성하며, 부끄럽게 살아남은 유신의 붓에서 무슨 힘이 남아 매화를 피우겠느냐?"
  "정소남은 난의 노근을 드러내어 망송의 한을 그렸고, 조맹부는 훼절하여 원에 출사했지만, 정소남의 난초만 홀로 향기롭고 조맹부의 송설체가 비천사다는 말은 듣지 못했읍니다."
  "서화는 심화니라. 물을 빌어 내 마음을 그리는 것은 즉 반드시 물의 실상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글씨 쓰는 일이며 그림 그리는 일이 한낱 선비의 강개를 의탁하는 수단이라면, 그 얼마나 덧없는 일이겠습니까? 또 그렇다면 장부로 태어나 일평생 먹이나 갈고 화선지나 더럽히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모르긴 하되 나라가 그토록 소중한 것일진대는, 그 흥한 창의에라도 끼어들어 한 명의 적이라도 치고 죽는 것이 더욱 떳떳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만히 서실에 앉아 대나무잎이나 떼어내고 매화나 훑는 것은 나를 속이고 물을 속이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 물에 충실하기로는 거리에 나앉은 화공이 훨씬 앞선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이 서푼에 팔려 나중에는 땅바닥 뚫어진 것을 메우게 되는 것은 뜻이 얕고 천했기 때문이다. 너는 그림이며 글씨 그 자체에 어떤 귀함을 주려고 하지만, 만일 드높은 정신의 경지가 곁들여 있지 않으면 다만 검은 것은 먹이요, 흰 것은 종이일 뿐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예도 논쟁이 있다. 역시 고죽이 장년이 된 후에 있었던 것으로 시작은 고죽의 이러한 물음이었다.
  "선생님 서화는 예입니까, 법입니까, 도입니까?"
  "도다."
  "그럼 서예라든가 서법이란 말은 왜 있습니까?"
  "예는 도의 향이며, 법은 도의 옷이다. 도가 없으면 예도 법도 없다."
  "예가 지극하면 도에 이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는 도의 향이 아니라 도에 이르는 문이 아니겠습니까?"
  "장인들이 하는 소리다. 무엇이든 항상 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글씨며 그림을 배우는 일도 먼저 몸과 마음을 닦는 일이겠군요?"
  "그렇다. 그래서 왕우군은 비인부전이란 말을 했다. 너도 이제 그 뜻을 알겠느냐?"
  이미 육순에 접어들어 늙음의 기색이 완연한 석담 선생은 거기서 문득 밝은 얼굴이 되어 일생을 불안하게 여겨오던 제자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고죽은 끝내 그의 기대를 채워주지 않았다.
  "먼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면 이제 예닐곱살난 학동들에게 붓을 쥐어 자획을 그리게 하는 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만약 글씨에 도가 앞선다면 죽기 전에 붓을 잡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기예를 닦으면서 도가 아우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평생 예에 머물러 있으면 예능이 되고, 도로 한 발짝 나가게 되면 예술이 되고, 흔연히 합일되면 예도가 된다."
  "그것은 예가 먼저고 도가 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도를 앞세워 예기를 억압하는 것은 수레를 소 앞에다 묶는 격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석담 문하에 든 직후부터 반생에 이르는 고죽의 항변이기도 했다. 그에 대한 석담 선생의 반응도 날카로웠다. 그를 받아들일 때부터의 불안이 결국 적중하고 만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이놈, 네 부족한 서권기와 문자향을 애써 채우려 들지는 않고 도리어 요망스런 말로 얼버무리려 하느냐? 학문은 도에 이르는 길이다. 그런데 너는 경서에도 뜻이 없었고, 사장도 즐거워하지 않았다. 오직 붓끝과 손목만 연마하여 선인들의 오묘한 경지를 자못 여실하게 시늉하고 있으니 어찌 천예와 다름이 있겠는가? 그래 놓고도 이제 와서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앞사람의 드높은 정신의 경지를 평하려들다니, 뻔뻔스러운 놈."
  그러다가 급기야 그들 두 불행한 사제가 돌아서는 날이 왔다. 고죽이 서른 여섯 나던 해였다.
  그무렵 고죽은 여러면에서 몹시 지쳐 있었다. 다시 석담의 문하로 돌아간 그 팔 년 동안 그의 고련은 열성스럽다 못해 참담할 지경이었다. 하도 자리를 뜨지 않고 서화에 열중하는 바람에 여름이면 엉덩이께가 견디기 힘들 만큼 진물렀고, 겨울에는 관절이 굳어 일어나 상받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석담 선생의 말없는 꾸짖음을 외면한 채 서화가 관련이 없으면 어떤 것도 보지 않았고 어떤 말도 듣지 않았다. 이미 그전에 십 년 가까이 석담 문하에서 갈고 닦았지만, 후년에 이르기까지도 고죽은 그 팔 년을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부분으로 술회하곤 했다. 그전의 십 년이 오직 석담의 경지에 이르고자 노력한 십년이라면, 그 팔 년은 석담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팔 년이었다.
  그 사이 그의 기법은 난숙해졌고, 거기에 비례해서 그의 이름도 차츰 그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평자에 따라서 다르지만, 어떤 이는 지금도 재기와 영감이 번득이는 그 시절의 글씨와 그림을 일생의 성취 중에도 으뜸으로 치고 있다. 그러나 고죽은 불타버린 후의 적막과 공허라고 할까, 차츰 깊이 모를 허망감에 빠져들어갔다.
  그것은 대략 두 가지 방향에서 온 허망감이었다. 그 하나는 묵향과 종이먼지 속ㅇ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그의 청춘이었다. 그에게는 운곡의 중매로 맞아들인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문갑이나 서탁처럼 필요의 대상이었지 열정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의 젊음, 그의 소망, 그의 사랑, 그의 동경은 오직 쓰고 또 쓰는 일에 바쳐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젊음이 늦가을의 가지 끝에 하나 남은 잎새처럼 애처롭게 펄럭이는 순간도 모든 걸 바쳐 추구했던 것은 여전히 봉우리 너머의 무지개처럼 멀고 도달이 불확실했다.
  그 다음 그의 허망감에 자극한 것은 점차 한 서예가로 성장해가면서 부딪치게 된 객관적인 자기 승인의 문제였다. 열병과도 같은 몰입에서 서서히 깨어나면서부터 고죽은 스스로에게 자조적으로 묻곤 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해왔으며, 하고 있냐고, 그리고 스승과 다툴 때의 의미와는 다르게 되물었다. 장부로서 이땅에 태어나 한평생을 먹이나 갈고 붓이나 어루면서 보내도 괜찮은 것인가고, 어떤 이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해외로 떠나고, 혹은 싸우다가 죽거나 투옥되었으며, 어떤 이는 이재에 뜻을 두어 물산을 일으키고 헐벗은 이웃을 돌보았다. 어떤 이는 문화 사업을 통해 몽매한 동족을 일깨웠고, 어떤 이는 새로운 학문에 전념하여 지식으로 사회에 봉사하였다. 그런데도 자신의 반생은 어떠하였던가. 시선은 언제나 그 자신에게만 쏠려 있었고, 진지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지난날의 그 힘든 수련도 실은 쓸쓸한 삶에서의 도피거나 주관적인 몰입에 불과하였다. 자신만을 향해 있는 삶, 오오, 자신만을 향해 있는 삶.
  그런데 그 가을의 어느날이었다. 이미 가끔씩 노환으로 자리보전을 하던 석담 선생은 그날도 병석에서 일어나기 바쁘게 종이와 붓을 찾았다. 그것도 그 무렵에는 거의 쓰지 않던 대필과 전지였다. 벌써 몇 달째 종이와 붓을 가까이 않던 고죽은 그런 스승의 집착에 까닭모를 심화를 느끼며 먹을 갈기 바쁘게 스승 곁을 물러나고 말았다. 어딘가 모르게 스승의 과장된 집착에는 제자의 방황을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드는 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 뜰을 서성이는 사이에 그는 문득 늙은 스승의 하는 양이 궁굼해졌다. 
  방에 돌아오는 석담 선생은 붓을 연진에 기대놓고 눈을 감은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바닥에는 방금 쓰다가 그만둔 것인 듯 "만호제력" 넉 자 중에서 앞의 석 자만이 씌어져 있었다.
  “소재는 일흔여덟에 참깨 위에 "천하태평" 넉 자를 썼다고 한다. 나는 아직 일흔도 차지 않았는데 이 넉 자 "만호제력" 을 단숨에 쓸 힘도 남지 않았으니...”
  그렇게 탄식하는 석담 선생의 얼굴에는 자못 처연한 기색이 떠올랐다.그러나 고죽은 그 말을 듣자 억눌렸던 심화가 다시 솟아 올랐다. 스승의 그같은 표정은 그에게는 처연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만만함으로 비쳤다.
  “설령 이 글을 단숨에 쓰시고, 여기서 금시조가 솟아오르려 향상이 노닌들, 그게 선생님을 위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고죽은 자신도 모르게 심술궂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기진해 있던 석담 선생은 처음 그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 말의 참뜻을 알아들은 듯 매서운 눈길로 그를 노려보았다.
  “무슨 소리냐? 그와 같이 드높은 경지는 글씨를 쓰는 이면 누구든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이르러보고 싶은 경지다.”
  “거기에 이르러본들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고죽도 지지 않았다.
  “태산에 올라보지도 않고, 거기에 오르면 그보다 더 높은 산이 없을까를 근심하는구나. 그럼 너는 일찍이 그들이 성취한 드높은 경지로 후세에까지 큰 이름을 드리운 선인들이 모두 쓸모없는 일을 하였단 말이냐?”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 것입니다. 도대체 종이에 먹물을 적시는 일에 도가 있은들 무엇이며, 현모함이 있은들 그게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도로 이름하면 백성이나 도둑에게도 도가 있고, 뜻을 어렵게 꾸미면 장인이나 야공의 일에도 현모함이 있습니다. 천고에 드리우는 이름이 있다하나 이 나가 없는데 문자로 된 나의 껍데기가 낯모르는 후인들 사이를 떠돈들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서화가 남겨진다 하나 단단한 비석도 비바람에 깎이는데 하물며 종이와 먹이겠습니까? 거기다가 그것은 살아 그들의 몸을 편안하게 해 주지도 못했고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을 도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허망함과 쓰라림을 감추기 위해 이를 수도 없고 증명할 수도 없는 어떤 경지를 설정하여 자기를 위로하고 이웃과 뒷사람을 흘렸던 것입니다...”
  그때였다. 고죽은 불의의 통증으로 이마를 감싸안으며 엎드렸다. 노한 석담 선생이 앞에 놓인 벼루 뚜껑을 집어던진 것이다. 샘솟듯 솟는 피를 훔지고 있는 고죽의 귀에 늙은 스승의 광기어린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내 일찍이 네놈의 천골을 알아보았더니라. 가거라. 너는 진작부터 저자거리에 나 앉어야 할 놈이었다. 용케 천골을 숨기고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이제 나가면 글씨 한 자에 쌀됫박은 후히 받을 게다...”
  결국 그 자리가 그들의 마지막 자리였다. 그 길로 석담 선생의 집을 나선 고죽이 디시 돌아온 것은 이미 스승의 시신이 입관된 뒤였다.
  벌써 삼십여 년 전의 일이건만 고죽은 아직도 희미한 아픔을 느끼며 이제는 주름살이 덮여 흉터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 왼쪽 이마어름을 만져보았다. 그러나 그와 함께 떠오르는 스승의 얼굴은 미움도 두려움도 아닌, 그리움 그것이었다.

  “아버님, 김군이 왔습니다.”
  다시 추수의 목소리가 그를 끝모를 회상에서 깨나게 하였다. 이어 방문이 열리며 초헌의 둥굴넓적한 얼굴이 나타났다. 대할 때마다 만득자를 대하는 것과 같은 유별난 애정을 느끼게 하는 제자였다. 사람이 무던하다거나 이렇다할 요구 없이 일년 가까이나 그가 없는 서실을 꾸려가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글씨 때문이었다. 붓 쥐는 법도 익히기 전에 행서를 휘갈기고, 점획결구도 모르면서 초서며 전서까지 그려대는 요즈음 젊은이답지 않게 초헌은 스스로 정서로만 삼년을 채웠다. 또 서력 칠년이라고는 하지만 칠년을 하루같이 서실에만 붙어 산 그에게는 결코 짧은 것이 아닌데도  그 봄의 고죽 문하생 합동전에는 정서 두어 폭을 수줍게 내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글은 서투른 것 같으면서도 이상한 힘으로 충만돼 있어, 고죽에게는 남모를 감동을 주곤 했다. 젊었을 때는 그토록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윽하게 느껴지는 스승 석담의 서법을 연상케 하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나가 보시렵니까? 추수 누님 말을 들으니, 거동이 불편하신 것 같은데...”
  병석의 스승에게 아침문안도 잊은 채 초헌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더듬거렸다. 그의 내숭스러워 뵈기까지 하는 어눌도 젊었을 때의 고죽 같으면 분명 못 견뎌 했을 것이리라. 하지만 고죽은 개의치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니까 한 점이라도 더 거두어들여야지. 그래, 시립도서관에 있는 것은 기어이 내놓지 않겠다더냐?”
  “전임자에게서 인수인계받을 때 품목에 있던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매계의 횡액을 준다고 해도?”
  “누구의 것이라도 품목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게 관장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것들이로구나. 오늘은 내가 직접 만나봐야겠다.”
  “정말 나가시겠습니까?”
  “잔말 말고 가서 차나 불러오너라.”
  고죽이 다시 재촉하자 초헌은 묵묵히 나갔다. 궁금하다는 표정은 여전하였지만 스승이 왜 그렇게 집요하게 자신의 작품들을 거두어들이려 하는지는 그날도 역시 묻지 않았다.

  날씨는 화창했다. 젊은 제자의 부축을 받고 화방골목 입구에서 내린 고죽은 차례로 화방을 돌기 사작했다. 몇 달째 반복되고 있는 순례였다.
  “아이구, 고죽 선생님, 오늘 또 나오셨군요. 하지만 들어온 건 하나도 없습니다. 선생님의 건강이 나쁘시단 소문이 돌았는지 모두 붙들고 내놓질 않는 모양이예요.”
  고죽을 아는 화방주인들이 그런저런 인사로 반겨 맞았다. 계속 허탕이었다. 그러다가 다섯번째인가 여섯번째 화방에서 낯익은 글씨 한폭을 찾아냈다. 행서 족자였다. 낙관의 고죽에 고자가 옛고자가 아니라 외로울 고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두번째로 석담 문하를 떠나 떠돌 때의 글씨 같았다.
  “내 운곡 선생의 난초 한 폭을 줌세. 되겠는가?”
  그런 제안에 주인은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고죽의 낙관이 있기는 하나 일반으로 외로울 고를 쓴 것은 높게 쳐주지 않을 뿐아니라 들어온 것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의 소품이었다. 거기다가 운곡 선생의 난초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고죽과의 그런 물물교환에 손해가 없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동업자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이었다.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리지요.”
  마침내 주인은 생색쓰듯 말했다.
  “고맙네. 물건은 나중에 이 아이편에 보내주지.”
  “저희가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아니, 제가 찾아가 뵙죠. 저녁나절이면 되겠습니까?”
  “그러게”
  그러자 주인은 족자를 말아 포장할 채비를 했다.
  “쌀 필요없어. 그냥 주게.”
  고죽이 그런 주인을 말리며 앙상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족자를 받자 응접용의 소파에 가 앉으며 족자를 폈다.
  “잠깐 쉬었다 가지.”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고죽의 말이었다.
 
   옥로마래농무생
   은전염처담운기

  고죽이 펴든 족자에는 그런 댓귀가 씌어 있었다. 그무렵 한동안 취해 있던 황산곡체의 행서였는데, 술 한 잔 값으로나 써준 것인지 자획이 몹시 들떠 있었다. 그러자 다시 그 시절이 그리움도 아니고 회한도 아닌, 담담하여 오히려 묘한 빛깔로 떠올랐다.
  ...석담 선생의 문하를 떠나온 후 고죽은 스승이 자기를 내쳤다고 믿었다.함부로 서화를 흩뿌린 댓가로 술과 여자에 파묻혀 살면서도 자신은 비정한 스승에 대한 정당한 보복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차츰 거리의 갈채와 속인들이 던져주는 푼돈에 익숙해지면서, 그리하여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갖가지 쾌락에 탐익하게 되면서, 진실로 스승을 버리고 떠나온 것은 그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가끔은 지금 자기가 즐기고 있는 세상의 댓가가 반생의 추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더구나 지난날의 뼈를 깍는 듯한 수련을 보상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것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노자 또는 붓값의 명목으로 그가 받은 그림값은 비록 고상한 외형은 갖추고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기생에게 내리는 행하와 다를바 없으며, 그가 받은 떠들석한 칭송 또한 장바닥의 사당패에게 보내는 갈채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결국은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목말라진다는 바닷물 같은 것으로서, 스승의 문하를 떠날때의 공허감을 더욱 크게 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를 유탕이며 낭비와도 같은 그 세월에 그토록 잡아둔 것은 그런 깨달음과 공허함 사이의 묘한 악순환이었다. 저열한 쾌감이 그의 공허감을 자극하고, 다시 그 공허감은 새로운 쾌락을 요구했다.
  거기다가 그때까지 억눌리고 절제당해 왔던 그의 피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역시 그 무렵에 고향엘 들러 알게 된 것이지만 그의 부친은 천석 재산을 동서남북 유람과 주색잡기로 탕진하고 끝내는 건강까지 상해  서른 몇에 요절한 한량이었고, 그의 모친은 망부의 탈상을 기다리다 못해 이웃집 홀아비와 야반도주를 해버린 분방한 여자였다. 소년시절에는 엄격한 스승의 가르침과 그길밖에는 달리 구원이 없으리라는 절박감에, 그리고 청장년 시절에는 스스로 설정한 이상의 무게에 눌려 잠들어 있었지만, 한번 깨어난 그 피는 걷잡을 수 없게 그를 휘몰았던 것이다. 그는 미친듯이 떠돌고, 마시고, 사랑하였다.
  나중에 소위 대동아전쟁이 터지고, 일제의 가혹한 수탈이 시작되어 나라 전반이 더할 나위 없는 궁핍을 겪고 있을 때에도 그의 집요한 탐락은 멈출 줄 몰랐다. 아무리 모진 바람이 불어도 덕을 보는 사람이 있듯이 그 총중에도 번성하는 부류가 있어 전만은 못해도 최소한의 필요는 그에게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변절로 한몫 잡은 친일 인사들, 소위 그 문화적인 내지인들, 수는 극히 적었지만 전쟁경기로 재미를 보던 상인들...
  그러다가 고죽에게 한 계기가 왔다. 흘러흘러 총독부의 고등문관을 아들로 둔 허참봉이란 친일주의 식객으로 있을 때였다. 어느날 참봉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대로 서화를 알아 보는 눈이 있는 참봉영감은 가끔씩 원근의 묵객들을 불러 술잔이나 대접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잡곡밥이나 대두박도 없어 굶주리던 대동아전쟁 막바지이고 보면, 실은 술잔이나마 조촐하게 내오고 몇푼 노자라도 쥐어주는 것이 여간한 생색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친일주의라고는 해도 일찍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아들을 둔 덕에 일제의 남다른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뿐, 영감이 팔걷고 나서 일본 사람들을 맞아들인 것은 아니어서, 청이 들어오면 대부분의 묵객들은 기꺼이 필낭을 싸들고 왔다. 그런데 고죽이 머물고 있는 동안에 공교롭게도 운곡 선생이 찾아들었다. 고죽은 반가웠다. 그는 스승 석담 선생의 몇 안되는 지음의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고죽 자신도 육칠년 가까이나 그에게서 한학을 익힌 인연이 있었다. 결과야 어떠했건 결혼도 그의 중매에 의한 것이었고, 석담의 문화를 떠날 때 가장 고죽을 잘 이해한 것도 그였다. 그러나 고죽의 반가운 인사에 대한 운곡 선생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흥, 조상도 없고, 스승도 없고, 처자도 없는 천하의 고죽이 이 하잖은 늙은이는 어찌 알아보누?”
  한때 고죽이 객기로 썼던 삼무자란 호를 찬바람 도는 얼굴로 그렇게 빈정거린 운곡 선생은 허참봉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치고 선 채로 되돌아섰다.
  “석담이 죽을 때가 되긴 된 모양이로구나. 너 같은 것도 제자라고 돌아올 줄 믿고 있으니. 괘씸한 것.”
  그것이 대문간을 나서면서 운곡이 덧붙인 말이었다. 평소에 온후하고 원만한 인품을 지녔기에 운곡의 그러한 태도는 고죽에게 그야말로 절구공이로 정수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지 않아도 고죽은 이미 그런 떠돌이 생활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애초에 그를 사로잡았던 적막과 허망감은 감상적인 여정이나 속인들의 천박한 감탄 또는 얕은 심미안이 던져주는 몇푼의 돈으로 달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런 것들에 뒤따르는 값싼 사랑이나 도취로 호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가 나이도 어느새 마흔을 훌쩍 뛰어넘어, 지칠 줄 모르던 그의 피도 서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뒤에 있었던 오대산 여행은 꺼지기 전에 빛나는 불꽃과 같은 그의 마지막 열정에 충동된 것이었으리라. 운곡 선생에 이어 허참봉에게 작별을 고한 그는 그길로 오대산을 향했다. 그 어느산사에 주지로 있는 옛벗의 하나를 바라고 떠난 것이었으나, 이미 그때껏 해온 과객 생활의 연장은 아니었다. 막연히 생각해 오던 늙은 스승에게로의 회귀가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 되면서, 그에 앞서 일종의 자기 정화가 필요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무사히 그 산사에 이른 뒤 그는 거의 반 년에 가까은 기간을 선승처럼 지냈다. 그러나 십년에 걸쳐 더께앉은 세속의 먼지는 스승에 대한 오래된 분노와 더불어 쉽게 씻어지지 않았다. 새봄이 와도 석담의 문화로 돌아간다는 일이 좀체 흔연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오전에 산좌중을 도와 송기를 벗겨 내려온 그는 잠깐 법당 뒤 축대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 희미하게 바랜 벽화 하나가 우연히 들어왔다. 처음에는 십이지신상 중에 하나인가 하였으나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머리는 매와 비슷하고 몸은 사람을 닮았으며 날개는 금빛인 거대한 새였다.
  “저게 무슨 새요?”
  그는 마침 그곳에 나타난 주지에게 물었다. 주지는 흘깃 그림을 돌아보더니 대답했다.
  “가루라외다. 머리에는 여의주가 박혀 있고, 입으로 불을 내뿜으며 용을 잡아먹는다는 상상의 거조요. 수미산 사해에 사는데 불법수호팔부중의 다섯째로, 금시조 또는 묘시조라고 불리기도 하오.”
  그러자 문득 금시벽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석담 선생이 그의 글씨가 너무 재예로만 흐르는 것을 경계하여 써 준 글귀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때껏 그의 머리 속에 살아 있는 금시조는 추상적인 비유에 지나지 않았었다. 선생의 투박하고 거친 필체와 연관된 어떤 힘의 상징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퇴색한 그림을 대하는 순간 그 새는 상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깐이긴 하지만 그는 그 거대한 금시조가 금빛 날개를 퍼덕이며 구만리 창천을 선회하다가 세찬 기세로 심해를 가르고 한마리 용을 잡아올리는 광경을 본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제서야 그는 객관적인 승인이나 가치부여의 필요 없이, 자기의 글에서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그런 광경을 보면 그것으로 그의 삶은 충분히 성취된 것이라던 스승을 이해할 것 같았다...
  -이튿날 고죽은 행장을 꾸려 산을 내려왔다. 해방 전해의 일이었다.

  이미 스승은 돌아가신 후였다.-고죽은 후회와도 비슷한 심경으로 석담 선생의 문화로 돌아오던 날을 회상했다. 평생을 쓸쓸하던 문전은 문하와 동도들로 붐볐다. 그러나 누구도 고죽을 반가워하기는커녕 말을 거는 이도 없었다. 다만 운곡 선생만이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관상명정은 네가 써라. 석담의 유언이다. 진사니 뭐니 하는 관직은 쓰지 말고 다만 -석담김공급유지구-라고만 쓰면된다.”
  그러더니 이내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그 뜻을 알겠는가? 관상명정을 쓰라는 건 네 글을 지하로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석담은 그만큼 네 글을 사랑했단 말이다. 이 미련한 작자야....”
  석담과 고죽, 그들 사제간의 일생에 걸친 애증이 흔적없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고죽은 단 한번이라도 스승의 모습을 뵙고 싶었으나 이미 입관이 끝난 후여서 끝내 다시 뵈올 수는 없었다...

  “선생님, 이젠 가보시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족자를 펴들고 하염없는 생각에 잠긴 고죽에게 초헌이 조심스레 말했다.  고죽은 순간 회상에서 깨어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봐야지.”
  그러나 다시 네번째 화방을 나설 때였다. 갑자기 눈앞이 가물거리며 두 다리에 힘이 쑥 빠졌다.
  “선생님, 웬일이십니까?”
  초헌이 매달리듯 그의 팔에 의지해 축 늘어지는 고죽을 황급히 싸안으며 물었다.
  “괜찮다. 다른 곳엘 가보자.”
  고죽은 그렇게 말했으나 마음뿐이었다. 이상한 전류 같은 것이 등골을 찌르며 지나가더니 이마에 진땀이 스몄다. 그러다가 다섯번째 화방에 들러서는 정신조차 몽롱해졌다.
  “이제 그만 돌아보시지요. 가봐야 이제 선생님의 작품은 더 나올 게 없을 겝니다.”
  화방주인도 그렇게 권했다. 그러나 고죽은 쓰러지듯 응접소파에 앉으면서도 초헌에게 이르기를 잊지 않았다.
  “너라두 나머지를 돌아보아라. 만약 나온 게 있거든 이리로 연락해라.”
  초언은 그런 고죽의 안색을 한동안 살피다가 말없이 화방을 나갔다.
  “작품을 거두어 무엇에 쓰시렵니까?”
  한동안을 쉬자 안색이 돌아오고 숨결이 골아진 고죽에게 화방주인이 넌지시 물었다. 그것은 몇달 전부터 화방골목을 떠도는 의문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고죽은 그 누구에게도 내심을 말하지 않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다 쓸데가 있네.”
  “그럼 소문대로 고죽기념관을 만드실 작정이십니까?”
  기념관이라-고죽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속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쓸쓸함이 일었다. 내가 말한들 자네들이 이해해 주겠는가.
  “그것도 괜찮은 일이지.”
  고죽은 그렇게 말하고는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저거 진품인가?”
  분명 진품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가 가르킨 추사를 임모한 예서족자였다. 서법유장강만리 서예여독송일지- 원래 병풍의 한 폭이니 족자가 되어 떠돌 리 없었다.
  “운봉이란 젊은이가 임서한 것인데 제법 탈속한 격이 있어 받아두었습니다.”
  화방주인도 그렇게 대답하며 그 족자를 바라보았다.
  “그렇구만.”
  고죽은 희미한 옛사람의 자태를 떠올리듯 추사란 이름을 떠올리며 의미없는 눈길로 그 족자를 한동안 살폈다. 한때 그 얼마나 맹렬하게 자기를 사로잡았던 거인이었던가.
 
  석담 선생의 집으로 돌아온 고죽은 그뒤 거의 십년 가까이나 두문불출 스승의 고가를 지켰다. 한편으로는 외롭고 남은 사모와 늦게 들인 스승의 양자를 돌보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수업에 들어갔다. 이미 다 거쳐나온 것들로 여겨온 여러 서체를 다시 섭렵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모공정, 석고문으로부터 진, 한, 삼국, 서진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금석탁본들을 새로이 모으고, 종요, 위관, 왕희지 부자러부터 지영, 우세남에 이르는 남파와 삭정, 최열, 요원표 등으로부터 구양순, 저수량에 이르는 북파의 필첩을 처음부터 다시 살폈다. 고죽이 만년에 보인 서권기로 미루어 한동안의 학문적인 깊이도 한층 더해졌음에 틀림이 없다. 문밖에서는 해방과 동족 상잔의 전쟁이 휩쓸어 가고 있었으나 그 어떤 혼란도 고죽을 석담 선생의 고가에서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 서결을 통해서 석담 문하에 들어선 고죽이 추사와 새롭게 만나게 된 것도 그 기간 동안이었다. 그 거인은 처음 한동안 그가 힘들여 가고 있는 길 도처에서 불쑥불쓱 나타나 감탄을 자아내다가 이윽고는 온전히 그를 사로잡고 말았다. 일찍기 경험해보지 못한 일로, 그것은 특히 스승 석담에 대한 새삼스러운 이해와 사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생전에 스스로 밝힌 적은 없었지만 분명 스승은 추사의 학통을 잇고 있었다. 아마도 스승은 그 마지막 전인이었으리라. 그리고 스승이 가르침에 있어서 그토록 말을 아낀 것은 그와 같은 거인의 가르침에 더 보탤 것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추사도 고죽을 사로잡고 있지는 못했다. 스승 석담이 일찍이 그를 받아들인 것을 주저했으며, 생전 내내 경계하고 억눌렸던 고죽의 예인적인 기질이, 승화된 형태이긴 하지만 차츰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먼저 고죽이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추사의 예술관이었다. 예술은 예술로서만 파악되어야 한다고 보는 고죽의 입장에서 보면 추사의 예술관은 학문과 예술의 혼동으로만 보였다. 문자향이나 서권기는 미를 구현하는 보조 수단 또는 미의 한 갈래일 수는 있어도 그것이 바로 미의 본질적인 요소거나 그 바탕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추사에게 그토록 큰 성취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다만 그 개인의 천재에 힘입었을 뿐이었다. 거기다가 그의 서화론이 깔고 있는 청조의 고증학은 겨우 움트기 시작한 우리 것의 추구에 그대로 된서리가 되고 말았으며, 그만한 학문적인 뒷바침이 없는 뒷사람에 이르러서는 이땅의 서화가 내용 없는 중국의 아류로 전락돼 버리거 한 점도 고죽을 끝까지 사로잡을 수 없던 원인이었다. 결국 추사는 스승 석담처럼 찬탄하고 존경할 만한 거인이기는 하지만 예술에 있어서의 노선까지 따를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화방주인의 예상대로 초헌은 한시간쯤 뒤에 빈 손으로 돌아왔다. 나머지 여섯 곳을 다 돌았지만 밤 사이에 나온 고죽의 작품은 없었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고죽은 말리는 그를 억지로 앞세우고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책임자를 달래 그곳에 있는 권학문 한 폭을 되거둬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국 거기서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융통성없는 관장과 언성을 높이다가 혼절해 버린 것이었다.
  고죽이 눈을 뜬 것은 오후 늦게였다. 자기 방에 누워 있었는데 주위에는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고죽은 천천히 눈을 돌려 그들을 살펴보았다. 무표정한 초헌곁에 두 사람의 옛 제자가 앉아 있고 그 곁에 운 흔적이 있는 추수가 앉아 있다가 눈을 뜬 고죽에게 울먹이는 소리로 물었다.
  “아버님, 이제 정신이 드십니까?”
  고죽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이고 계속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추수 곁에 다시 낯익은 얼굴이 하나 있었다. 고죽에게는 첫번째 수호제자가 되는 난정이었다. 뻔뻔스러운 놈 그를 보는 고죽의 눈길이 험악해졌다. 난정은 고죽이 석담 선생의 고가에 칩거할 초기부터 나중에 서실을 연 직후까지 거의 십년 세월을 고죽에게서 배웠다. 나이 차가 불과 십여 년 밖에 안되고, 입문할 때 벌써 사십에 가까웠으며, 또 나름대로 어느 정도 글씨를 익힌 상태였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호까지 지어준 어엿한 제자였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갑자기 자기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난 제자가 서운했지만 기가 막힌 것은 그 뒤였다. 난정이 스스로를 석담 선생의 제자라고 내세우면서 고죽은 단지 사형으로 그와 함께 십여 년 서화를 연구했다고 떠벌이고 다닌다는 소문 때문이었다.고죽은 불 같이 노해 그의 서예원으로 달려갔다. 함부로 배분을 높인 제자를 꾸짖으러 간 것이었지만 결과는 난정을 여러 사람 앞에서 시인해준 꼴이 되고 말았다.
  “어이구, 형님 웬일이십니까?”
  수많은 문하생들 앞에서 그렇게 빙글거리며 시작한 그는 끝까지“아이구, 형님” 이요. “우리가 함께 수련할 때...”였다. 그리고는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을 욕한 고죽을 석담 선생이 살아 있을 때몇번 드나든 것을 앞세워 모욕죄로 법정에까지 불러들였다. 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
  “아버님, 이분께서 아버님의 대나무 두 폭을 가져오셨어요.”
  난정을 보는 눈이 험악해지는 것을 보고 추수가 황급히 설명했다.
  “선생님께서 거두어들인다시기에... 제가 가진 것을 전부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더듬거리는 난정에게도 옛날의 교활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벌써 육십에 가까운가- 못 보고 지난 십여 년 사이에 눈에 띄게 는 주름을 보며 고죽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나 가슴 속의 응어리는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알았네 가보게.”
  잠시후 간신히 끓는 속을 가라앉힌 고죽이 힘없이 말했다.
  “그럼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난정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어두운 얼굴로 방을 나갔다. 잠시 방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다시 추수가 그 침묵을 깨뜨렸다.
  “재식이 오빠에게서 전화가 있었어요.”
  “언제 온다더냐?”
  “밤에는 도착할 거예요. 윤식이에게도 연락할까요?”
  “그래라”
  고죽이 한숨처럼 나직이 대답했다. 재식이는 죽은 본처에게서 난 맏아들이었다. 원래 남매를 보았으나 6.25때 죽고 그만 남은 것이었다. 윤식이는 마지막으로 데리고 살던 할멈에게서 난 아들로 고죽에게는 막내인 셈이었다. 재식이는 벌써 마흔셋, 부산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고, 윤식이는 갓 스물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별로 자상한 아버지는 못되었지만, 통상으로 아들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어린 윤식이가 마음에 걸렸다. 겨우 열세살 때 어머니를 잃고 이복누이인 추수 손에 자라난 탓이리라. 그러나 그날만은 왠지 재식의 얼굴이 콧마루가 찡하도록 그립게 떠올랐다. 찌들어가는 중년남자로서가 아니라 거지와 다름없이 떠도는 걸 찾아왔을 때의 열여섯 소년인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몇십 년을 거의 잊고 지낸 본처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죽이 운곡 선생의 중매로 아내를 맞은 것은 스물두살 때의 일이었다. 운곡 선생의 먼 질녀뻘이 되는 경주 최문의 여자였다. 얼굴은 곱지도 밉지도 않았지만 마음씨는 무던해서 고죽의 기억에는 한번도 그녀가 악을 쓰며 대들던 모습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은 처음부터 그리 행복한 것은 못되었다. 고죽의 젊은 날을 철저하게 태워버린 서화에의 열정 때문이었다. 신혼의 몇몇 날을 제외하면 고죽은 거의 하루의 전부를 석담 선생의 집에서 보내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정신은 언제나 가사와는 먼곳에 쏠려 있었다. 생계를 꾸려가는 것은 언제나 그녀의 몫이었다. 수입이라고는 이따금씩 들어오는 붓값이나 석담 선생이 갈라 보내는 쌀말 정도여서 그녀가 삯바느질과 품앗이로 바쁘게 돌아도 항상 먹을 것 입을 것은 부족하였다.
  그래도 고죽이 석담 문하에 있을 때는 나았다. 정이야 있든 없든 한지붕 아래서 밤을 보냈고, 아이들도 남매나 낳았으며, 가끔씩은 가장으로서 할 일도 해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죽이 석담의 문하를 떠나면서부터 그나마도 끝나고 말았다. 온다간다 말도 없이 훌쩍 집을 나선 그는 그뒤 십 년 가까운 세월을 떠돌면서 처자를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아직 살아 있는지 이미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고죽에게 있어서 아내와 아이들은 거북살스러워도 참고 입어야 하는 옷 같은 존재였다. 하나의 구색, 또는 필요만큼의 의무였으며- 그것이 그토록 훌훌히 아내와 아이들을 떨치고 떠날 수 있었던 이유였고, 또한 한번 떠난 후에는 비정하리만치 깨끗하게 그들을 잊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실제로 아내는 몇 번인가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고죽을 찾아온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고죽은 뒷날 스스로도 잘 이해 안 될 만큼의 냉정함으로 그녀를 따돌리곤 했다. 어린 남매를 데리고 어렵게 살아가는 그녀에 대한 연민보다는 자기 삶의 진상을 보는 듯한 치욕과 까닭모를 분노 때문이었으리라. 단 한번 딸을 업고 그가 묵고 있는 여관을 찾아온 그녀에게 돈 칠원과 고무신 한 켤레를 사준 적이 있는데, 그것도 아내와 자식이었기 때문이기보다는 헐벗고 굶주린 자에 대한 보편적인 동정심에 가까웠다. 그때 아내의 등에 업힌 딸아이는 신열로 들떠 있었고, 먼지 앉은 아내의 맨발에 꿰어져 있던 고무신은 코가 찢어져 자꾸만 벗겨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나마도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결국 고죽이 집을 나선 지 오년 만에 어린 남매와 함께 친청으로 의지해갔다. 고죽이 매향과 살림을 차리던 그 해였다. 그리고 다시 이듬해는 친청 오라버니가 있는 대판으로 이주해 버린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듣기로는 그곳에서 오빠의 권유로 개가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데려가기로 하고 친청에 맡겨둔 남매를 끝내 데려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소문은 사실임에 틀림없었다. 고죽이 다시 재식 남매를 거두어들인 것은 오대산에서 내려와 석담 문하로 돌아온 몇해 후였는데, 그때 재식은 벌써 열여섯, 그 밑의 딸아이는 열한 살이었다.
  고죽은 그가 아내를 돌보지 않은 것에 한번도 미안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듯이 자기와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그녀를 결코 원망하지 않았다. 그것은 평생 동안 수없이 그를 스쳐간 모든 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매향처럼 살림을 차렸던 몇몇 기생들이나 노년을 함께 보낸 두 할멈은 물론 서화로 맺어졌던 여류들도 지속적인 열정으로 그를 사로잡지는 못했던 것이다. 상대편 여자들이 어떠했건 고죽의 그런 태도만으로 그의 삶은 쓸쓸하게끔 운명지워져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진정으로 열렬하게 사랑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일생을 골몰하여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사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초헌만 목상처럼 앉아 있는 병실을 힘없이 둘러본 고죽은 다시 짙은 비애와도 흡사한 회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물론 그것은 서화였다. 이미 보아온 것처럼 그에게는 애초부터 가족이나 생활의 개념이 없었다. 소유며 축적이란 말도 그에게는 익숙한 것이 아니었고, 권력욕이나 명예욕 같은 것에 몸달아본 적도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분방스럽고 다양해도 사실 그가 취해온 삶의 방식은 지극히 단순했다. 자기를 사로잡는 여러 개의 충동 중에서 가장 강한 것에 사회적인 통념이나 도덕적 비난에 구애됨이 없이 충실하는 것, 말하자면 그것이 그를 이해하는 실마리이기도 한 그의 행동양식이었다. 그런데 가장 세차면서도 일생을 되풀이된 충동이 바로 미적 충동이었고, 거기에 충실하는 것이 그의 서화였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었단 말인가. 고죽은 다시 자조적인 기분이 되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직도 그것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다는 것인가
  스승 석담과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죽의 전반생은 두 개의 상반된 예술관 사이에 끼어 피흘리며 괴로워한 세월이었다.
  동양에서의 미적 성취, 이른바 예술은 어떤 의미로 보면 통상 경향적이었다. 애초부터 통치수단의 일부로 출발한 그것은 그 뒤로도 끝내 정치권력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때로는 학문적인 성취나 종교적 각성에 의해서까지도 침해를 입었다. 충성이나 지조 따위가 가장 흔한 주제가 되고, 문자향이니 서권기니 하는 말과 마찬가지로 도골선풍이니 선미니 하는 말이 일쑤 그 높은 품격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물론 서양에 있어서도 근세까지는 사정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랜 기간 예술은 제왕이나 영주들의 궁성을 꾸미거나 권력이며 부에 기생하였고, 또는 신의 영광을 찬양하는데 바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그들의 예술은 주체성을 획득하고 팔방미인격인 동양의 예술과와는 다른 그 특유의 인간성을 승인받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술을 강력한 인접가치로부터 독립시키고, 예민한 감수성이나 풍부한 상상력 같은 이른바 예술적 재능도 하나의 가치로 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고죽이 태어날 때만 해도 시대는 아직 동양의 전통적인 예술관에 얽매어 있었다. 예인은 대부분 천민 계급에 속해 있었으며, 그들의 특질은 역마살이나 무슨 -기-로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예술의 정수는 여전히 학문적인 것에 있었고, 그 성취도 도나 선정에 비유고 있었다. 그리고 석담 선생은 아마도 끝까지 그런 견해에 충실했던 마지막 사람이었다.
  서구적인 견해로 보면 고죽은 타고난 예술가였다. 그러나 석담 선생의 눈에는 천박하고 잡상스런 예인 기질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고죽의 개성이 보다 약했거나 그가 태어난 시대가 조금만 일렀다면, 그들 사제간의 불화는 그토록 길고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죽은 자기의 예술이 그 본질과는 다른 어떤 것에 얽매이는 것을 못견뎌했고, 점차 시민사회로 이행해가는 시대도 그런 그의 편에 서 있었다. 정말로 그들 사제간을 위해 다행한 것은 스승의 깊은 학문에 대한 제자의 본능적인 외경 못지않게, 스승에게도 제자의 타고난 재능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어 늦게나마 화해가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석담 선생의 문하로 돌아왔다고 해서 고죽의 정신적인 방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시 십년간의 칩거를 통해 고죽은 스승의 전통적인 예술관과 화해를 시도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추사에의 앞뒤없는 몰입과 어쩔 수 없는 이탈이 바로 그 과정이었다.
  그 뒤 다시 이십년- 나름대로는 끊임없이 연마하고 모색해온 세월이었지만  과연 나는  구하던 것을 얻었던가. 그러다가 고죽은 혼절하듯 잠이 들었다.

  고죽이 이상한 수런거림에 다시 눈을 뜬 것은 이미 날이 저문 후였다.
  “곧 통증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거나 막아드리지요.”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며 이불을 젖혔다. 정박사였다. 이어 살갗을 뚫고드는 주사바늘의 느낌이 무슨 찬바람처럼 몸을 오싹하게 했다. 방안에 앉은 사람들의 수가 늘어 있었다. 고죽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버님, 절 알아보겠읍니까? 재식입니다.”
  주사바늘을 뽑기가 무섭게 언제 왔는지 아들 재식이 울먹이며 손을 잡았다. 열여섯에 거두어들인 후로도 언제나 차가운 눈빛으로 집안을 겉돌던 아이, 그 아이가 첫번째로 집을 나간 날이 새삼 섬짓하게 떠오른다. 제 이름이라도 쓰게 하려고 붓과 벼루를 사준 이튿날이었다. 망치로 부수었는지 밤톨만한 조각도 찾기 힘든 만큼 박살이 난 벼루와 부채살처럼 쪼개놓은 붓대. 그리고 한웅큼의 양모만 방 안에 흩어놓고 녀석은 사라지고 없었지. 그뒤 그가 군에 입대할 때까지 고죽은 속깨나 썩었었다. 낙관도 안 찍은 서화를 들고 나가기도 하고, 금고를 비틀어 안에 든 것을 몽땅 털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하고 돌아와서부터 기세가 좀 숙여지더니, 덤프트럭 한대 값을 얻어 나간 후로는 씻은 듯이 발길을 끊었다. 그가 다시 고죽을 보러오기 시작한 것은 마흔줄에 접어든 재작년부터였다.
  “윤식이도 왔어요.”
  추수가 흐느끼는 윤식의 손을 끌어 고죽이 남은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보기 흉할 정도로 부어 있었다. 각각 어미가 다른 불쌍한 것들, 몹쓸 아비였다. 이제 너희에게 남기는 약간의 재물이 아비의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메꾸어줄른지. 고죽은 이미 그들 삼남매를 위해 유산을 몫지어 놓았었다. 근교에 있는 과수원은 재식의 앞으로, 서실 건물은 윤식이 앞으로, 그리고 살고 있는 집은 추수에게, 그러고보니 나머지 동산으로 문화상이라도 하나 제정할까 하던 계획을 취소한 것이 새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무관하게 지내온 사회라는 것에 대해 삶의 막바지에 와서 그런 식으로 아첨하고 싶지는 않은 탓이었다.
  “이사람들, 진정하게. 사람을 이렇게 보내는 법이 아니야.”
  둘러앉은 사람들 중에서 어떤 여자 하나가 흐느끼는 삼남매를 말렸다. 그리고 그들을 대신하여 고죽의 두 손을 감싸쥐면서 가만히 물었다.
  “절 알아보시겠어요?”
  벌써 약효가 퍼지는지 고죽은 풀리는 시선을 간신히 모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옥교라는 여류서예가였다. 고죽의 첩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 정도로 한때 몰두했던 여자였는데, 지금은 근교에서 자신의 서실을 가지고 조용히 살고 있었다. 알지, 알고말고. 그러나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혼곤한 잠이 먼저 고죽을 사로잡았다.
  금시조가 날고 있었다. 수십리에 뻗치는 거대한 금빛 날개를 퍼득이며 푸른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개짓에는 마군을 쫓고 사악한 용을 움키려는 사나움과 세참의 기세가 없었다. 보다 밝고 아름다운 세계를 향한 화려한 비상의 자세일 뿐이였다. 무어라 이름할 수 없는 거룩함의 얼굴에서는  여의주가 찬연히 빛나고 있었고, 입에서는 화염과도 같은 붉은 꽃잎들이 뿜어져나와 아름다운 구름처럼 푸른 바다 위를 떠돌았다.그런데 그 거대한 등 위에 그가 있었다. 목깃 한가닥을 잡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매달려 있었다. 갑자기 금시조가 두둥실 솟아 오른다. 세찬 바람이 일며 그의 몸이 한곳으로  쏠려 깃털 한올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점점 송에서 힘이 빠진다. 아아.......깨고 보니 꿈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잔 모양으로, 마루의 괘종시계가 새벽 네시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통제의 기운이 걷힌 탓인지 형용할 수 없고 부위도 짐작이 안 가는 그야말로 음험한 동통이 온몸을 감돌고 있었지만, 정신만은 이상하게 맑았다.
  문병객은 대부분 돌아가고 없었다. 남은 것은 벽에 기대어 잠들고 있는 재식이 형제와 책궤에 엎드려 자고 있는 초헌뿐이었다. 고죽은 가만히 상체를 일으켜 보았다. 뜻밖에도 쉽게 일으켜 졌다. 허리의 동통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문득 자기가 할 일이 남았다는 것을 상기했다. 
  “상철아.”
  고죽은 조용한 목소리로 초헌의 이름을 불렀다. 미욱해 보이는 얼굴에 비해 잠귀는 밝은 듯 초헌은 몇번 부르지 않아 머리를 들었다.
  “서, 선생님, 무슨 일이십니까?”
  잠이 덜 깬 눈에도 상체를 벽에 기대고 있는 고죽이 이상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고죽은 손짓으로 그를 저지한 후 말했다.
  “벽장과 문갑에서 그간 거두어들인 서화를 꺼내라.”
  “네?”
  “모아놓은 내 글씨와 그림들을 꺼내놓으라 말이다.”
  그러자 초헌은 일어나서 시키는 대로 했다. 여기저기서 꺼내 놓고 보니 이백 점이 훨씬 넘었다. 액자는 모두 빼 없앴는데도 제법 방 한구석에 수북했다.
  “아버님, 뭘 하십니까?”
  그제서야 재식이와 윤식이도 깨어나 눈을 비비며 궁금한 듯 물었다. 고죽의 행동이 거의 아픈 사람 같지 않아서, 간밤에 정박사가 한 말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고죽은 대답 대신 초헌에게 물었다.
  “이 방의 불을 좀더 밝게 할 수 없겠느냐?”
  “스탠드가 어디 있는 것을 보았는데....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여간해서는 고죽이 하는 일을 캐묻지 않는 초헌이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에 스탠드 하나를 찾아왔다. 방 안이 갑절이나 밝아지자 고죽은 다시 초헌에게 명했다.    
  “지금부터 그걸 하나씩 내게 펴보이도록 해라.”
  초헌은 여전히 말없이 고죽이 시키는 대로 했다. 첫장은 고죽이 오십대에 쓴 것으로 우세남의 체를 받은 것이었다.
  “우백시의 글인데, 오절을 제대로 본받지 못했다. 왼쪽으로 미뤄 놓아라.”
  그 다음은 난초를 그린 족자였다.
  “이미 소남을 부인해 놓고 오히려 석파 -대원군- 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구나. 산란도 심란도 아니다. 왼쪽으로 미뤄놓아라.”
  고죽은 한폭한폭 자평을 해 나갔다. 오랜 원수의 작품을 대하듯 준엄하고 냉정한 평이었다. 글씨에 있어서는 법체를 본받은 경우에는 그 임모나 집자의 부실함을 지적하여, 그리고 자기류의 경우에는 그 교졸과 천격을 탓하면서 모두 왼편으로 제쳐놓았다. 그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옛법의 엄격함에다 자신의 냉정한 눈까지 곁들이니, 또한 오른편으로 넘어갈 게 없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그 작업은 아침해가 높이 솟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중에 정박사가 몇 번이고 감탄했던 것처럼 거의 초인적인 정신력이었다. 아침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고죽의 넓은 병실은 어느덧 발디딜 틈없이 빽빽해졌다. 그러나 엄숙한 기세에 눌려 누구도 그 과도한 기력의 소모를 말릴 엄두를 못냈다. 고죽도 초헌외에는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러다가 열 시가 넘어서야 분류가 끝났다. 결국 초헌의 오른쪽으로 넘어간 서화는 단 한 폭도 없었다.
  “더 없느냐?”
  마지막까지 간절한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의 작품을 검토하고 있던 고죽이 더 이상 제자의 무릎 앞에 놓인 서화가 없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이상하게 불안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초헌이 무감동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고죽의 얼굴에 일순 처량한 빛이 떠돌더니 그때까지 꼿꼿하던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지며 그의 몸이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무슨 끔찍한 일이라도 당한 줄 알고 몇 사람이 얕은 외마디소리와 함께 고죽 주위로 모였다. 그러나 고죽은 그 순간도 명료한 의식으로 내면의 자기에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결국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그걸 보고자 소망했지만, 어쩌면 그 소망은 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실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이 일을 미루어 온 것인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고죽이 그의 일생에 걸친 작품에서 단 한번이라도 보고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 새벽의 꿈에서와 같은 금시조였다. 원래 그 새가 스승 석담으로부터 날아올 때는 굳센 힘이나 투철한 기세 같은 동양적 이념미의 상징으로서였다. 그러나 고죽이, 끝내 추사에 의해 집성되고 그 학통을 이은 스승 석담에게서 마지막 불꾸ㅊ을 태운 동양의 전통적 서화론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그 새 또한 변용되었다. 고죽의 독자적인 미적 성취 또는 예술적 완성을 상징하는 관념의 새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미 생애 곳곳에서 행동적으로 표현되긴 하였지만, 특히 후인을 지도하면서 보낸 마지막 이십 년 동안에 뚜렷이 드러나게 된 고죽의 서화론은 대개 두 가지 점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그 하나는 전통적인 견해가 글씨로써 그림까지 파악한 데 비해 그는 그림으로써 글씨를 파악하려는 점이다. 만약 글씨를 쓴다는 것이 문자로 뜻을 전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면 서예란 일생을 바칠만한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붓으로도 몇 달이면 뜻을 전할 만큼은 되고, 더구나 연필이나 볼펜 같은 간단한 필기구가 나온 지금에는 단 며칠로도 충분하다. 그러므로 서예는 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에 있으며 글씨보다는 그림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특히 서예가 상형문자인 한문을 표현수단으로 사용하는 동양권에서만 발달하고 표음문자를 쓰는 서양에서는 발달하지 못한 것도 그 까닭이다. 그런데도 글씨로만 파악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림이었던 문인화까지도 문자의 해독을 입고 끝내 종속적인 가치에 머물러 있었다. 이것이 고죽의 주장이었다.
  그 다음 고죽의 서화론에서 특징적인 것은 물화나 심화의 구분이었다. 물화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거기다가 사람의 정의를 의탁하는 것이고, 심화란 사람의 정의를 드러내기 위해 사물을 빌어오되 그것을 정의에 맞추어 가감하고 변형시키는 것인데, 아마 서양화의 구상 비구상에 대응하는 것 같다. 고죽은 전통적인 서화론에서 그 두 가지가 묘하게 혼동되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 구분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서화가에 있어서 그 둘 관계는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선택적일 뿐이며, 문자향이니 서권기 같은 것은 심화에서의 한 요소이지 서화 일반의 본질적인 요소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고죽의 금시조는 그런 서화론의 바다에서 출발하여 미적 완성을 향해 솟아오르는 관념의 새였다. 죽음을 생각해야 할 나이에 이르면서부터 고죽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서원의 하나는 자기의 붓끝에서 날아가는 그 새를 보는 일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자신의 일생에 걸친 추구가 헛되지 않았으며 쓸쓸하고 괴로웠던 삶도 보상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그는 끝내 그 새를 보지 못했다. 그가 힘없이 자리로 무너져내린 것은 단순히 기력을 지나치게 소모한 탓만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이나 친지들은 고죽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는 채 오분도 되지 않아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처럼 상체를 일으키더니 뚜렷한 목소리로 초헌을 불렀다. 
  “이걸 싸서 밖으로 가지고 나가거라. 장독대 옆 화단이다.”
  “?...”
  좀체 스승의 말을 되묻지 않는 초헌도 그때만은 좀 이상한 모양이었다.
  “나는 저것들로 일평생 나를 속이고 세상 사람들을 속여왔다. 스스로 값진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당연한 듯 세상 사람들의 감탄과 존경을 받아들였다.”
  “무슨 말씀을...”
  “물론 그와 같은 삶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는 아니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들에서 솟아오르는 금시조를 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것으로 내 삶이 온전한 것으로 채워질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설령 내가 그 새를 보았다 한들 그러할 지는 의문이다.”
  “...”
  “자, 그럼 이제 시키는 대로 해라. 이것들을 남겨두면 뒷사람까지도 속이게 된다.”
  그러자 초헌은 말없이 서화꾸러미를 안고 문을 나섰다. 스승의 참뜻을 알아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더는 영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알 수 없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초헌을 말리려 나서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고죽을 감돌고 있는 이상한 위험과 기품에 압도된 탓이었다.
  “문을 닫지 마라.”
  초헌이 나가고 누군가 문을 닫으려 하자 고죽이 말렸다. 그리고 마당께로 걸어가고 있는 초헌을 향해 임종을 앞둔 병자답지 않게 높고 뚜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다. 모두 내려놓아라.”
  방 안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장독대 곁 화단이었다. 몇 포기 시들어가는 풀꽃 옆에 초헌이 서화 꾸러미를 내려놓자 고죽이 다시 소리 높여 명령했다.
  “불을 질러라.”
  그제서야 방 안이 술렁거렸다. 일부는 고죽을 달래고 일부는 달려와서 초헌을 붙들었다. 모두가 쓸데없는 소란이었다. 자기를 달래는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고죽이 돌연 벽력 같은 호통을 쳤다.
  “어서 불을 붙이지 못할까!”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초헌이었다. 그 역시 까닭 모르게 노한 얼굴이 되어 잠깐 고죽을 노려보더니, 말리려는 사람을 거칠게 제쳐버리고 불을 질렀다. 뒷 날 고죽을 사이비였다고까지 극언한 것으로 보아, 그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석담 선생적인 기질이 고죽의 그 철저한 자기부정 또는 지나친 자기비하에 반발한 것이리라. 마를대로 마른 종이와 헝겊인데다가 개중에는 기름가지 먹인 것도 있어 서화더미는 이내 맹력한 불꼿으로 타올랐다. 신음 같은 탄식과 숨죽인 흐느낌과 나지막한 비명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어떤 사람에게는 고죽 일생의 예술이 타고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처절한 진실이 타오르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고죽의 삶 자체가 타는 듯도 보였다. 드믈게는 불타는 서화더미가 그대로 그대로 그만한 고액권더미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반세기 가깝게 명성을 누려온 노대가, 두 대통령이 사람을 보내 그의 서화를 얻어가고, 국전심사위원도 한마디로 거부한 고죽의 진적들이 한꺼번에 타 없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고죽은 보았다. 그 불길 속에서 홀연히 솟아오르는 한마리의 거대한 금시조를, 찬란한 금빛 날개와 그 힘찬 비상을.

  - 고죽이 숨진 것은 그날 밤 8시경이었다. 향년 72세.
   충적세, 그 후


  나는 동굴 입구에서 아내로부터 오늘의 소도구들을 넘겨받는다. 날이 선 단도 한 자루, 오래 써서 윤기 나는 활과 독 발린 화살 12개, 그리고 구운 고기 몇 점과 익힌 낟알 한주먹, 그리하여 길게 자란 풀숲과 짙게 드리운 나뭇잎을 헤치며 건너 숲 사냥터로 나는 떠난다.
 꽤 늦은 아침이다. 모두들 벌써 사냥터로 떠났는지 간혹 보이는 것은 여인네들뿐이다. 노인과 아이들이 우리의 숲에서 사라져 간 지는 오래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아이들로 남아 있을 틈이 없고 노인들은 노인이 되기도 전에 죽어버린다. 그리고 그 때문에 깊어진 이 숲의 고요는 내 걸음을 재촉한다. 나는 동료들을 기다리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오솔길 맞은편에 불쑥 나타난 낯익은 사내가 있어 그런 내 불안을 얼마간 진정시킨다.
  “이제 출근하십니까?”
  약간 숙이는 대머리가 빛난다. 어깨에 걸친 그물, 이 사내는 사냥에 그물을 쓴다. 나도 전에 그물을 써보았지만 신통치 못했다. 그러나 이 사내는 재미를 보는 모양이다. 한 숲에 산다는 이유로 친절히 인사를 하지만 활을 멘 나를 보는 눈이 저토록 오만스럽지 아니하냐. 그 느긋한 목소리며 남아도는 기름기로 번질거리는 얼굴이며.
  “아, 네. 좀 늦었습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위축된다. 그러나 짐짓 딱딱한 목소리로 말끝을 사린다.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자를. 예컨대 자기의 솜씨에 만족해 하는 자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된다. 아니면 나는 이 자와 헤어질 때까지는 계속 지리하고 속상할 것이다. 모아둔 값진 모피가 몇 장이며, 소금에 절여 둔 고기가 얼마, 말린 낟알이 몇 독이라는 둥 그런 종류의 얘기가 끝이 없을 것이다.
  상대도 이런 내 기분을 알아차린 듯 이어 무엇인가를 떠벌리려던 입을 어색하게 다문다. 나는 더욱 완강하게 침묵한다. 친구 그대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 오솔길 끄트머리의 움집이나 들러서 하게, 남의 화살촉이나 갈고 가죽이나 무두질해 하루의 먹이를 얻는 그들에게나. 많건 적건 나는 스스로 내 몫을 마련하고 있어, 뭐 그대가 대단하게 쌓아 두었다는 것도 그리 부러운 건 아니라네.
  그러나 그는 결국 참지 못한다.
  “요즈음 경기가 어떻습니까?”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경기라고? 언제 우리 모두에게 공통하는 그런 공평한 바람이 분 적이 있던가. 결국 묻는 것은 신이나 자연의 부당한 편애를 받는 집단에 내가 속했는가의 여부겠지. 일 없다. 그러나 나는 짐짓 호기롭게 답한다. 마찬가지, 괜찮다고. 물론 그 여운은 대화를 끝내기 위한 단호한 것이다.
  마침내 그도 단념한다. 그리고 침묵 속에 숲을 빠져나온 우리는 그 어귀에 이르러 작별한다. 그와 나는 방향이 다르다. 그의 사냥터는 오른쪽으로 꺾어 가고, 나는 왼쪽으로 돌아 매우 소란한 사냥터 하나를 지나야 한다.
  말이 났으니 하는 얘기지만, 사람들이 교역장인가 뭔가로 부르는 그곳을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기묘한 사냥터다. 거기서는 매일처럼 사냥이 벌어지는데 그러나 밤만 지나면 또 어디선가 사냥감이 몰려들어 이튿날은 다시 새로운 사냥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곳에서 사냥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개 일정하다. 길을 잃을까봐 멀리는 못 가는 친구들 또는 겨우 무디고 짧은 창이나 조잡한 덫 외에 별다른 도구를 못 지닌 자들. 그러나 반들거리는 눈과 매끄러운 혀는 그들의 특징이다.
  그들의 사냥을 한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다. 통상으로 그들의 사냥은 단독이다. 거기다가 그곳의 사냥감들은 모두가 반복되는 사냥에 단련돼 있지만 잡히기는 잡힌다. 워낙 수가 많은데다가, 또 그곳의 사냥꾼들에게는 나름대로의 비법이 있다.
  그래서 자주 그 놀라운 수확은, 그들의 활기찬 함성과 땀밴 근육처럼 나를 경탄시킨다. 그 사냥터 곳곳에 쌓여 있는 베어진 들짐승들, 털이 뽑힌 말짐승들, 흩어진 깃털과 발라진 뼈들, 피와 피.... 그렇지만 아 아, 우리가 산다는 것은 얼마나 죄 많은 일인가. 설령 우리를 위해 익어가는 것이 한줌의 낟알일지라도 어찌 사라지는 생명의 고뇌가 없을 것인가.
  이미 내 사냥터에는 동료들이 모두 나와 있다. 벌써부터 사냥이 시작된 모양이다.
  “박계장, 늦었군. 빨리 판매부로 가 봐요. 바이어가 기다리는 모양이야.”
  징잡이가 사냥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수선을 떤다. 이 노회한 친구는 우리가 사냥할 때 높은 곳에서 사냥감의 방향이나 알리고 북이나 두들긴다. 그러나 창칼을 쓰며 땀흘리는 우리들보다 더 많은 고기를 배당받는다. 그 외에도 우리들의 복종까지. 나는 물론 그의 지시대로 서두른다. 하지만 도중에서 퉁퉁 부은 추장을 만난다. 그는 볼멘 소리를 한다.
  “부장이 출장중일 때는 자네라도 일찍 와야지. 하여튼 빨리 가봐. 큰 거야. 잘 해야 해.”
  그러고 보니 창잡이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며칠 전에 우리가 망가뜨린 창날이며 찢은 그물 따위를 보충하러 먼 숲으로 갔었다. 나는 문득 나 혼자서 떠맡아야 하는 큰 사냥을 불안해 하며 오늘따라 유난히 못미덥게 느껴지는 내 활과 화살을 점검한다. 그리고 조심스레 목표로 접근한다.
  지금까지 멀찍이서 기세를 올리며 사냥감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던 젊은 동료 하나가 그런 나를 맞아 안도한 듯 사냥감을 인계한다.
  “인사하시지요, 계장님. 이분은 대영건설 자재과장님이십니다.”
  과연 크다. 쓰러뜨리기만 하면 근래에 드문 수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상대의 몸은 질긴 가죽과 두터운 털로 덮여 있고 발톱과 이빨은 날카롭다. 나는 바짝 긴장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소한다. 이 거대한 맹수 자신은 지금까지 또 얼마나 많은 다른 사냥감을 덮쳤던 것일까. 어쩌면 아침만 해도 몇마리의 연약한 들짐승을 해치웠으리라. 그것이 애매한 적의를 일으키고 나는 침착하게 활줄에 화살을 먹인다.
  하나, 둘, 셋..... 화살은 더러 맞기도 하고 더러는 빗나간다. 위협적인 이빨을 드러내고 위맹한 앞발을 휘두르기도 하던 목표는 점차 패퇴와 고통의ㅣ 기색을 보인다. 그러나 열, 열 하나, 열 둘, 나의 화살은 끝난다. 거대한 상대에 비해 내 화살은 너무 가늘고, 그 독은 너무 약하다.
  나는 급격히 전의를 상실한다. 이제 남은 단도 한 자루가 무슨 힘이랴. 이때 전령이 추장의 호출을 알린다. 낭패하여 달려간 나에게 추장은 삼엄한 얼굴로 창 한 자루를 내민다. 창잡이가 늘 쓰던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다가 안되면 저쪽 선으로 응해 버려. 현품 납입 때 벗길 셈 잡고 말야. 그러나 뒷 입은 미리 막아놔야 해.”
  나는 용기백배하여 원위치로 돌아간다. 사냥감은 여전히 미련한 눈을 껌벅이며 오히려 나를 잡겠다는 투로 오만하게 대기하고 있다. 나는 다시 심신을 가다듬고 목표와 대치, 기회를 타 받아 온 창으로 그 가슴을 깊숙히 찌른다.
  그 보이지 않는 고뇌, 들리지 않는 비명, 가리워진 심장으로 피를 쏟으며 목표는 드디어 쓰러진다. 그러나 나는 때묻은 창을 뽑아 미동도 없을 때까지 몇 번이고 더 찌른다. 죽은 듯하던 맹수가 얼마나 자주 우리들의 경박한 동료를 해쳤는가. 우리들은 그걸 -클레임- 이라 부르는데, 지난번의 큰 사냥 때도 거기에 걸려 아까운 동료 하나가 희생되었다.  
  오후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몇 마리의 무리에서 떨어진 초식동물이 있었으나 점심 나절 창잡이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와 준 덕분에 나는 화살 몇 개를 날리는 것으로 족했다. 그리고 황혼 - 빨갛게 물드는 원시림은 깃을 찾는 야조의 울음과 소혈로 돌아가는 짐승들의 풀잎 헤치는 소리로 수런거리고, 우리들도 각자의 동굴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우리는 모두 하루의 몫을 배당받은 후, 분분한 인사와 함께 사냥터를 떠난다. 지금 우리의 동굴은 저녁연기로 매캐하고 돌솥에서는 고기와 낟알들이 익고 있을 것이리라. 아내들은 숲 어귀로 우리를 맞기 위해 고된 성년 연습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내 보내리라. 그러나 나는 내 동굴과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저 건너 다른 숲, 밤이 되어서 오히려 밝아 오는 어떤 숲으로 나는 가려는 것이다. 그곳에 촘촘히 들어선 저 -푸날루아- 의 동굴로.
  물론 우리는 벌써 오래 전에 -푸날루아- 의 시대를 지나왔다. 모든 여자는 모든 남자의 아내이고 모든 남자는 모든 여자의 남편이던 그 시대는 - 그러나 우리들의 향수다. 우리들의 아내가 어쩌다 그날을 기억하고 그날의 자유를 회복하려 들면 그렇게도 격노하고 가혹히 벌하지만, 지난날 겪었던 그 어떤 -거룩한 어머니- 의 시대보다도, 또한 그 어떤 -위대한 아버지- 의 시대보다도 열렬하게 우리는 그 시대를 동경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가려는 동굴에는 아직도 그 -푸날루아- 가 있다. 처음부터 거기 남아 있던 여인들과 일찌기 남의 아내가 되어 그들만의 동굴로 떠났으나, 끝내는 돌아오고 만 여인들이 거기서 영원한 남편 - 추상화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언제든 한토막의 고기만 지니면 당연히 그네들의 남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곳에 가는 것은 그런 -푸날루아-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곳에 상주하지 않는, 그래서 가끔씩만 그런 곳에 들러 가끔씩만 -푸날루아-가 되는 남의 아내를 나는 만나러 간다. 나만의 -푸날루아-를
  그녀와 나는 지난 여름 우연히 만났다. 이 숲이 자욱한 이슬비에 젖어 있던 그날, 나는 싫증나는 사랑과 싫증나는 번민으로 사냥터를 벗어나 빗속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말없이 나타난 그녀가 넓은 잎새로 나를 가리워 주었다. 그리고 그 특출날 것도 없는 인연은 오래잖아 우리를 야합의 형식으로 맺어 놓았다.
  그녀는 우리가 연합하여 죽음과 고독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우리가 손잡고 뛰어든 것은 욕정과 피로의 늪일 뿐이었다.  무성한 숲 그늘에서 혹은 어느 후미진 동굴을 빌어 우리가 그렇게도 격렬히 맺었던 성합은 언제나 쓸쓸함 속에 나뉘었고, 죽음조차 항시 가까이 있었다. 그렇지만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상 무엇이던가.
   하기야 우리의 오래인 습성은 때로 내가 남의 여자와 어울린다는 사실을 수치스런 것으로 상기시킨다. 그게 바로 도덕이라고 불리는 것일 테지만,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병들거나 늙어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거나 들판에 방치하는 것으로 정중히 매장해 주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만도 무려 백만 년이 넘는 세월이 소요됐다는 것을, 그 길에서 나는 나의 숲과 그녀의 남편에게까지도 떳떳하다.
  나는 그를 살해하고 그의 시체 옆에서 그녀를 접간한 것도 아니고 그가 없는 동굴에 침입하여 간사한 꾀로 그녀를 유혹한 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불문은 우리의 계율이었다. 그녀가 내 아내를 묻지 않은 것처럼 나는 한번도 그를 묻지 않았다. 요컨대 나는 그의 존재를 묵살함으로써 그에 대한 예의를 다해 온 것이다. 그녀가 항시 걸치고 다니는 착색된 멋진 모피나 목에 걸린 진귀한 조개껍질 따위가 끊임없이 그의 존재를 상기시킬 때조차도.
  나는 다만 사랑할 뿐이다. 내가 무슨 대단한 열병처럼 젊음을 앓고 다니던 시절에 어지럽게 만났던 그 어떤 여인보다 더 희고 부드러운 그 가슴을, 무두질과 낟알찧기에 거칠어진 아내의 그것보다 몇 배나 화사한 손을, 세월조차 비켜 간 것과 같은 순진한 영혼과 그 단순한 욕망을, 그리고- 오늘은 그런 우리들 약속의 날이다.
  아직 때가 일러 동굴 안은 어둡고 한산하다. 수액과 지방으로 분장을 마친 한 무리의-푸날루아-가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서는 나를 환성으로 맞는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그들의 환영을 거부하고 내가 자기들의 남편으로 오지 않았음을 직감한 그녀들도 미련없이 물러난다. 약속의 시간은 아직 멀었다. 그때 기다리는 나를 위해 돌탁자에 얹히는 술항아리. 나는 천천히 한 잔을 따른다.
  원래 이 액체는 전대의 어떤 동료가 썩어가는 보리를 아까와하다 만들게 된 것이리라. 그러나 절약을 위한 이 액체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되고 말았다. 나도 이제 이것을 위해 땀흘려 얻은 오늘의 몫을 기꺼이 바치리라. 오전의 공로로 특별히 배당된 허릿살 한 덩이까지도.
  왜냐하면 가끔식 그것은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저 영원한 고향을 보여주므로. 멀리 어느 하늘에선가 한번 헤어진 후 땅 위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었던 그 고귀한 사랑과 대면케 하므로.
  텅 빈 위는 탐욕을 부리고 거듭하는 잔의 취기는 미세한 혈관을 따라 내 몸을 돈다. 내 수많은 모공 하나하나에 무슨 작은 벌레처럼 스멀거리는 욕정. 오늘밤은 오직 취하고 사랑하리라.
  그런데 의외의 침입자가 나타난다. 어두운 구석에 먼저 와 있어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사내다.
  “혼자시군요. 합석해도 좋겠습니까?”
  별로 취한 것 같지도 않은데 입김에선 진한 술냄새가 풍긴다. 그 쏘는 듯한 냄새와 불길같이 번쩍이는 두 눈이 웬일인지 내게 황급한 거절로 표시하게 한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누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래서 곧 둘이 될 거란 말이지요? 그러나 마찬가집니다. 단자간에는 창이 없어요. 결국은 당신도 혼자뿐입니다.”
  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말은- 그러나 내게 곧 이 사내가 속한 집단을 추상케 한다.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그는 어렸을 적에 나와 같은 숲에서 자란 친구로 그때는 시원찮은 녀석이었다. 우리가 다가올 성년을 위해 열심히 활과 창을 익히고 있을 때, 녀석은 한갓진 곳에 처박혀 멍청한 공상에나 잠겨 있었다. 어쩌다 우리들끼리의 작은 사냥에 끼일 때가 있어도 기껏 녀석이 하는 일이란 애써 몰아논 산토끼에게 길이나 틔워주고 우리의 화살에 떨어진 비들기의 깃에 눈물이나 떨구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채 성년도 되기 전에 결국은 우리들도 떠나고 만 그 옛 숲에서 사라져 버렸다. 무지개인지 구름인지를 잡으러 떠났다는 것인데, 그 후 얼마간 우리에게 전해온 그의 소식은 다만 초라한 방랑자의 행색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제법 한몫 하는 사냥꾼이 되었을 때 풍문은 멀리 평원 지방으로 내려간 그가 어떤 주술사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과 그래서 어린날의 공상이나 다를 바 없는 멍청한 주문이나 외고 다닌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 뒤로도 몇 년인가 후에 나는 우연히 그를 만났다. 어느 평원 지방이었는데 그때 그곳의 농경민들을 위해 비를 빌어주고 있었다. 어느새 그도 제법 효험있는 주술사가 된 듯 사람들은 간절한 표정으로 그를 둘러싸고 있었고, 은은한 열광마저 일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 보이는 것도 분명 저 이름 있는 주술사의 두 눈에서 타오르는 그 형형한 빛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추억을 유쾌하게 한 것은 그 의식 후에 마주했던 몇 시간이었다. 비록 그는 대화의 태반을 천민들의 무분별한 갈채와 또 그만큼한 무관심에 대한 냉소로 채웠고, 그 나머지는 기껏 제례 후의 먼지 앉은 과일과 말라빠진 고기토막밖에 점지하지 못하는 자기의 신을 원망하는 것으로 메웠지만 즐겁지 아니한가. 잠시라도 우리가 보잘 것 없는 육신과 그에 부하된 모든 성가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숙명처럼 찾아야 하는 날래고 영악한 동물들과, 가시덤불이며 엉겅퀴로 뒤덮인 대지를 잊고 언어의 마술에 취한다는 것은.
  그리하여 그 기억은 이 사내의 돌연한 침입을 관용한다. 
  “재미있습니다. 선생의 표정은. 제가 마음에 들었다 안들었다 하시는군요.”
  그러는 사내의 눈길이 의외에도 취한 사람답지 않은 관찰의 눈길이다. 나는 이 사내가 내 마음을 환히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당황하며 주술사가 된 그 친구를 얘기한다. 당신도 그와 동류같다는 말까지.
  “하지만 아닙니다. 망상조차 해본 적이 없어요.”
  나는 그게 안된 일이라고, 당신 같은 사람이 그런 예사롭지 않은 생애를 고려해 보지조차 않은 것은 애석한 일이라고 원인모를 조급에 빠져 앞뒤없이 아첨한다. 그러나 무엇이 그를 성나게 했는지 그는 갑자기 거칠고 퉁명스러워진다.
  “겨우 이따위 이유로 나를 환영했다면 나는 가겠소. 흥, 보기는 멀쩡한 사람이 구역질나는 유아취미라 도대체 너절한 시 나부랭이가 나와 무슨 상관이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가버린다. 나는 무안하고 아연하다. 허나 이내 회복한다. 그의 팔은 그가, 내 팔은 내가 흔들 것이다. 나는 아름다운 내 -푸날루아-를 기다린다. 이제 그녀는 올 것이고 우리는 어딘가 은밀한 곳을 찾아 사랑할 것이다.
  초승달은 벌써 서편 숲 속으로 져버리고, 밤은 어둠과 함께 깊어간다. 그러나 내 -푸날루아-는 오지 않는다. 우리들은 초승달이 그 숲 전나무 가지에 걸릴때 이 동굴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무슨 일인가 나의 여인이여.
  동굴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하다. 성공한 사냥꾼들은 왁자하게 떠들며 술잔을 부딪고, 실패한 사냥꾼들은 한구석에 수런수런 우울한 술잔을 든다. 그러나 내 탁자의 빈 자리는 채워질 줄 모른다. 무슨 일인가 나의 -푸날루아-
  그런데 그가 돌아온다. 내가 두번째 헝아리에서 다시 몇 잔인가를 따르고 있을때 어느 구석엔가 박혀서 진탕 퍼마셨음에 분명한 그 사내가 이번에는 동의도 없이 내 맞은편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 알지 못할 득의에 차 내게 말을 걸어온다.
  “아마 그 사람은 오지 않을 모양이오. 자-잊고 나하고나 한잔 합시다. 실은 나도 일주일째 여기서 누굴 기다리고 있소. 오늘도 틀린 것 같지만...”
  나는 착찹한 심경이 되어 그를 방관한다. 정말 이상한 사내다. 그에 대한 내 감정은 불쾌와 환영, 위압감과 경멸이 정확히 균형을 이룬 묘한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그런 나를 개의치 않고 마치 하던 얘기를 계속하는 것처럼 물어온다.
  “그런데 당신은 내가 왜 하필이면 당신을 택해 이리로 왔는지 아시오?”
  나는 당연히 모른다. 주정뱅이의 행위 동기까지 단번에 간파할 능력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이름 없는 소집단의 궁수 노릇이나 할 거냐. 그러나 상대의 목소리는 은밀해질 뿐이다.
  “저기 저 사람들을 보시오. 무언가 좀 이상하지 않소? 이를테면 머리칼 같은 것-그게 몸통에 비해 너무 작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렇지만, 나는 동굴을 휘둘러보는 대신 그의 눈을 본다. 술은 두뇌와 더불어 이 사내의 눈마저 이상하게 만들지나 않았는지. 그런 내 눈길을 그는 오히려 공범자끼리의 은근한 말투로 받는다.
  “하지만 당신은 예외요-그리고 그것이 나를 이리로 부른 것이오.”
  나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다시 물어온다. 이상하게 진득진득 물어오는 목소리로.
  “당신은 공룡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있소?”
  물론 나는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선주민으로 이 땅에 번성하였지만, 자연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해 지속을 거부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멸망해 갔다는 것을.
  “틀렸소. 그들의 번성을 거부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소. 그들은 자신의 거대한 체구에 비해 너무도 작은 두뇌를 길렀기 때문이오. 하루 몇 톤씩이나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 것은 오로지 육신을 위한 것일 뿐이오. 그러나-그들이 영원히 멸망해 갔다는 것은 망상이오. 보시오. 그들은 저기 저렇게 부활하여 번성하고 있지 않소?”
  그리고는 거의 방자할 만큼 혐오에 찬 눈으로 동굴 안을 휘둘러 본다. 그것이 은은히 내 분노를 자극하고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서슴없이 그를 부인한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그러하다면 당신도 별수 없이 그들의 동류일 뿐이라고.
  “그것도 틀렸소. 공룡은 변해서 나방이가 되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나방이오. 나방이-그러나 잘못된 나방이오.”
  나는 다시 요령부득이다. 그러나 그가 반복하는 나방이란 말은 문득문득 우리들의 지난번 밀회와 내-푸날루아-를 연상시킨다. 그날 우리는 온 밤을 함께 보내었다. 나는 숫말이었고, 사자였고, 파도였고, 폭포였다. 그녀는 들개였고, 암표범이였고, 회오리였고, 늪이였다. 그리하여 날이 왠지 아직도 몽롱한 열정에 떠 있는 그녀가 한 마리 나비처럼 느껴졌었다.
  “십여 년 전의 일이오. 어떤 외국 작가의 글에서 나는 이런 걸 읽은 적이 있소.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과연 오랜 성서의 주장처럼 인간에게 최선의 것만을 허여했는지 의심스럽다고. 그리고 가장 바람직한 생의 형태로 나방이를 제시했소. 그것은 유충 시절에는 대개 추악한 모습으로 오직 먹고 싸고 하는 혐오할만한 작용에만 전념한다고 하오. 그러나 일단 나방이가 되면, 그래서 추악한 허물과 혐오스런 작용에서 해방되면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는 가장 우아한 모습으로 오직 사랑만 즐긴다는 것이오. 한 가난한 문과대학생이었던 탓이었겠지만-그때 나는 얼마나 열렬히 그에게 동의했던지 그런데 말이오, 오래잖아 나는 바로 그 나방이가 되었소. 내가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3년만이었을 거요. 요행히도 어느 신흥기업의 말단을 차지한 나는 열심히 공룡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이른바 그 행운이라는 게 찾아왔소. 세무감사가 시작되면 이중장부의 원장을 트럭에 싣고 경춘가도로 오르락내리락거리기도 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고대의 석등을 사장댁의 정원으로 옮겨심는 따위의 작업을 지휘하기도 하다가 무슨 통속극에서처럼 사장의 외딸과 결혼하게 된 것이오. 약간 바람기야 있지만 상당한 미인이고, 또 심심해서 불란서 유학이나 갈까 하던.
  그리고-그날로부터 나는 일약 전신 하였소. 생활한다는 것은 하등 부담이 되지 않고 오직 그녀와 사랑하고 즐기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오...”
  여기서 목마른 듯 잔을 비운 사내의 어투는 갑자기 자조적인 것으로 변해간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이 사내의 회로에 혼란된다.
  “물론 당신은 내 얘기를 주정뱅이의 망상이 꾸며낸 허구라고 단정할지 모르오. 그래, 당신도 행복해야 할 내가 왜 이런 불쾌한 모습으로 술에 젖어 있는가고 묻고 싶소? 당신도 나방이가 행복할 것이라 믿으시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젖기 쉬운 미신에 불과하오. 사람들은 육체적인 결핍에서만 벗어나면 곧 정신적이고 고귀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그럴만한 천품을 지니지 못했소. 먼저는 공룡으로 걸신들린 것처럼 먹고 마시다가 어느 정도 그 탐욕의 배가 차면 그 다음은 나방의 길을 걸을 뿐이오. 두 눈을 이성의 둔부와 하복부 언저리에만 집중시키고 집요하게 추구할 뿐이오. 그리고- 이미 그것은 쾌락도 행복도 아니오. 공복과는 달라서 욕정은 또 새로운 욕정을 부를 뿐, 결코 충족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오. 아마도 나방이의 생명이 그 긴 유충 시절에 비해 너무도 짧은 것은 바로 그런 절망과 피로 때문일 것이오. 인간도 마찬가지. 더구나 발정기가 아니라도 교접할 수 있는 엄청난 성욕을 가졌으면서도 엉뚱한 독점욕과 또 그것을 비호하는 여러 규범 아래 얽매인 인간에 이르면 그 절망과 피로는 더욱 가중되는 것이오...”
  아, 그 얘기, 그거라면 나도 알 듯하다. 나는 진작부터 몇몇 특별난 동료들에 관한 풍문을 들어왔다. 부의 편재 때문에 땀 흘려 사냥을 할 필요가 없어진 그들의 광태에 대해 그들은 주체할 수 없는 풍요와 여가 때문에 하루 세 접시의 뻐꾸기 혀를 게워내고 10명의 아름다운 여노예를 갈아댄다는 것이다. 그런데 글쎄, 그게 당신이 표현하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불행이던가. 하지만 사내의 어조는 급격히 엄숙으로 전환되어 내 언어의 개입을 차단한다.
  “물론 나와 같은 나방이는 아직 소수에 불과하오. 그러나 그 불행은 결코 예외적인 것은 아니오. 물질문명의 진보는 언젠가 우리 모두를 나방이로 만들고 말 것이오. 과학자들의 현란한 청사진이 실현되어 우리는 모두가 의식주를 위해 근심할 필요가 없어지는 날인데, 그러나 그 결과는 가공할 만한 것이오. 우리의 모든 것은 부패와 단명 속에 스러져가고 누군가가 이 다음에 이 땅을 차지할 생명들을 기록할 것이오. -이 어리석은 선주민들은 자신의 칼로 스스로를 상했다-라고...”
  사내의 얘기는 계속된다. 그는 가상하게도 우리 전체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부터 나 자신의 사념에 빠진다.
  사실 나는, 당신과 같은 동료들이 그리 대단하게 떠드는 우리의 문명이나 진보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당신들은 지나친 것을 걱정하지만 나는 오히려 부족한 것을 근심한다.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동료들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아직 덜 벗어진 털과 퇴화 못한 꼬리다. 내가 이 대지 위 곳곳에서 보는 것은 아직도 활동하는 화산이며, 미처 길을 잡지 못한 강들과 울창한 밀림이다.
  거기다가 또한 나는 믿고 있다. 종자의 수백 배를 거두는 낟알의 재배나 자기 식량의 수십 배를 생산할 수 있는 노동력의 확대가 즉 그로 인한 풍요와 여가가 우리들의 일부를 이상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본질적인 변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더군다나 사내가 가장 절망적인 단언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은밀하게 자라고 있고, 앞으로도 세상 곳곳에서 수없이 태어날 공룡의 새끼도 아니고 나방의 유충도 아닌 그 모든 인간의 가능성들을.
  그러나 사내의 열변은 도도하고 나는 무력하게 그런 그를 방관할 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이 시각이 내 -푸날루아-가 나오기를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늦었음을 상기한다. 나는 헛되이 돌아가야 할 것인가.갑갑한 나의 동굴과 그 단조로운 일상으로 식상해 버린 사랑과 그 번민으로.
  그때 낯익은 이 동굴의 -푸날루아- 하나가 내게 다가와 속삭인다. 
  “박선생님, 전화예요.”
  이 아무래도 이해 못할 통신 방법. 그러나 우리가 지난날 연기를 사용했듯 또는 비둘기를 썼듯 나는 감탄없이 이 방법을 쓴다. 지금 여기에 실려온 목소리는 그녀다. 기다리던 나의 -푸날루아-다.
  “많이 기다렸죠? 미안해요. 하지만 저 오늘은 그만 두겠어요. 왠지 뒤숭숭하고 마음 내키지 않아요. 이해해 주세요. 정말 미안해요.”
  이상하게도 차분한 목소리다. 통상으로 그녀의 목소리는 들뜬 감미로운 것이었다. 그 변화가 다소 불안하지만 나는 그녀의 통보를 거절한다. 우리는 오늘, 그것도 당장에 꼭 만나야 한다고. 그녀는 내 단호한 목소리에 망설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내 결정한 듯 승낙한다. 전의 들뜨고 감미로운 그 목소리로.
  “네, 알았어요, 알았어요. 곧 갈께요.” 이제 그녀는 어디선가 나를 향해 출발할 것이고 우리는 곧 만날 것이다.
  “아마도 얼마간은 내게 더 여유가 생길 모양이오. 그 전화는 늦는다는 거지요?”
  그를 떼내기 위해 고의로 얼마간을 지체하고 돌아온 나에게 그때껏 버티고 있던 사내가 태평스럽게 묻는다. 나는 갑자기 그것이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부인한다. 그녀는 이미 출발했노라고. 그러나 상대는 여전하다.
  “그래도 삼십 분은 걸릴 거요. 이 도시는 넓으니까.”
  사내는 느긋이 술잔까지 기울인다. 그 산악 같은 태연이 내게 원인모를 절망을 주고 비상수단을 쓰게 한다. 
  나는 직접으로 퇴거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날카롭게 묻는다. 당신은 나를 아시느냐고.
  나는 그와 생면부지임을 상기시킴으로써 그의 무례를 과장하고 그래서 무안해진 그를 스스로 물러가게 할 작정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철판 같은 둔감으로 버틴다.
  “물론이오, 친구. 당신은 충적세 후기를 사는 한 마리의 병든 원숭이오.”
  나는 어이가 없다. 그러나 터지려는 내 분노는 지그시 나를 내려보는 그의 이상하게 불타는 두 눈에 멈칫한다. 나는 쥐었던 주먹을 맥없이 펴서 애매한 술잔을 움킨다. 그러자 돌연 그의 두눈은 광채를 잃고 대신 형언할 수 없는 침울이 과음으로 창백해진 얼굴에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은 길고 헝클어진 머리칼과 더불어 희미한 알지 못할 연민을 일으킨다.
  “노하지 마시오. 그것이야말로 내가 당신에게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찬사요. 그 병든 원숭이는 지금 공룡과 나방과 이상적인 인간이 만드는 삼각형의 외심 부근에서 신음하고 있지만 어쩌면 회복될지도 모르고, 그래서 잃어버린 인간에로의 통로를 찾아낼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오. 그리고 하나만 더 이해해 주시오. 나는 결코 당신을 방해할 뜻은 없소. 무엇인가 때가 이르고 있다는 예감, 어쩌면 당신이 이 세상에 나와 대화를 나눈 마지막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같은 것이 나를 다변하게 하는 것뿐이오...”
  술 취한 사내의 엉뚱한 감상에 속아서는 안된다고 느끼면서도 알지 못할 내 연민은 깊어간다. 그리하여 그가 이야기를 중단하고 쓸쓸하게 술잔을 들 때에는 나도 망연히 잔을 들어 그의 잔에 부딪치고 만다. 내가 잔을 다 비우고 그를 바라보았을 때, 그의 두 눈에는 어느새 예의 그 이상한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아내의 첫번째 정부는 연극을 하는 자였소. 아내가 가장 천한 욕정으로 어울린 자인데 그것은 아마도 그자의 그럴듯한 용모보다는 예리한 혀가 가장 철저하게 나와 어린것을 살해했기 때문일 것이오.-”
  기억한다. 우리 숲속의 어떤 원숭이떼의 암컷은, 침입자들이 무리의 모든 수컷을 물어 죽인 후 어린것들까지 잔혹하게 살해하게 되면 갑자기 발정이 시작된다. 그리하여 수컷들과 어린것의 시체 옆에서 그 잔인한 학살자들과 혼음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여튼... 그 덕분에 내 응접실은 예술하는 천민들- 특히 허름한 문인 나부랭이로 득실거린 적이 있었소. 적어도 그들 중의 하나와 내 아내가 호텔 방에서 엉겨 있는 것을 내가 목도할 때까지는 말이오. 그런데 이상한 일이오. 그들 중 누구도 내 문턱을 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갑자기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소. 경멸해 마지않던 그것이...”
  나는 이 얘기가 지리할 것임을 짐작한다. 그러나 줄어들지 않는 연민 때문에 그를 중단시키지는 못한다.
  “그것은 병든 의사의 얘기였소. 당신도 어쩌면 그를 보았을 것이오. 완전한 건강을 누리기 위해 의사가 된 그 사람을 말이오. 그러나 막상 의사가 되었을 때 그가 자신에게서 발견한 것은 이전보다 더 많은 병들이었소. 처음 얼마 동안 그는 매일매일 새롭게 발견되는 수많은 병을 위해 그만큼의 처방전을 끊었소. 조제도 하였소. 하지만 그 어떤 시술도 투약도 끝내 자신에게 베풀 수는 없었소. 치료의 대상이 자기였기 때문이오. 한때는 다른 의사에게 맡기려고 했지만 그것도 실패였소. 그러기에는 그 자신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오...”
  여기서부터 나의 연민은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의 얘기는 점차 역겹고 지리해진다. 세상 어디에 그런 바보 같은 의사가 있을 것인가. 이거야말로 순전히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혐오를 감추지 못하고 그의 말머리를 자른다. 그런 공허한 얘기로 사람의 귀를 사로잡으려 했다면 그건 어리석었다고. 그는 의외로 담담하다.
  “마음애 들지 않는다면 짧게 하겠소. 결국 여러 해에 걸친 상심과 고통 끝에 그 의사는 극약을 먹고 자살하고 말았소. 그러나 당신들이 흔히 단정하는 것처럼 그것이 절망 때문이었던 것은 아니오. 그것이야말로 최후의 그리고 가장 완벽한 치료였던 것이오. 그래 죽음보다 더 완전한 건강이 어디 있겠소?”
  여기서 나는 혼란되고 만다. 갑자기 엄습하는 취기 때문이었을까. 그 병든 지식에 버럭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가 도로 당신 같은 자에게나 최선이 될 거라고. 하지만 엉뚱하게도 그런 내 폭언은 오히려 그를 기쁘게 한 듯하다. 섬뜩할 만큼 잔잔한 미소 사이로 그의 희고 가지런한 치아가 인상적이다.
  “결국 당신은 동의하였소. 이 적절한 순간에 고맙게도 당신에게 이해되다니 자, 보시오. 나는 이렇게 처방하였소.”
  그러는 그의 손에는 내가 본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날카로운 당단도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눈을 찌르는 듯한 그 차가운 빛 속에서 그제서야 나는 그가 누구인가를 확인한다. 그의 날카로운 당착도 공룡도 나방이도 그의 여러 자각증세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돌연 나는 공포보다는 조급으로 마비된다. 나는 이 사내를 붙들어야 한다고 막연히 느낀다. 무언가를 얘기해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몸과 혀는 함께 굳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 때가 온 모양이오. 일주일이나 기다린 것이 헛되지는 않았소. 나와 함께 치료해야 할 사람이 이제 온 거요. 자, 안녕히.”
  사내가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쫓았던 그 어떤 짐승보다 날래게 탁자를 돌아 입구 쪽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아, 거기에는 내-푸날루아-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조그만 거부나 회피의 기색도 없는 것이 안따깝다. 튀는 피, 피, 그리고 비명. 흐르는 피는 그녀가 걸친 흰 모피에 무슨 아름다운 무늬처럼 피어 오른다. 혼신의 힘으로 일어선 나는 이내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런 내 귓가에 들리는 것은 조용한 지성의 고뇌가 아니라 원시림의 치정에 들뜬 야수의 울부짖음이다.
  “내 아내요, 색정광인 내 아내요. 집을 나가, 일곱번째, 일곱번째 정부와 어울리고 있었소...”
  갑자기 동굴 안은 어둡고 적막해진다. 아득히 먼 곳에서 원시림을 스쳐가는 바람소리, 나는 알지 못할 잠 속에 떨어진다.
  꿈, 어지럽고 사나운 충적세의 꿈. 거기서는 공룡의 음울한 비명이 들리고 나방은 분분히 독가루를 뿌린다. 그리고 쓰러져 신음하는 원숭이떼.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내가 미소하며 잠들 수 있는 것은, 아이들- 그 모든 것들의 어지러운 윤무 가운데서도 꽃처럼 피어나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귀두산에는 낙타가 산다

  아시는 이는 아시겠지만, 귀두산은 서울 근교에 있으면서도 줄기차게 경기도로 남아 있다가 근년에야 특별시에 편입된 영광을 입은 산이다. 그 귀두산 자락에 눈이 쬐끄만 사내가 하나 살고 있었다. 눈만 쬐끄만할 뿐 아니라 체수도 쬐끄만하고 아랫도리에 달린 물건도 쬐끄만하고, 욕망도 꿈도 쬐끄만하고, 벌이도 누림도 쬐끄만해서 마침내는 그 삶까지도 쬐끄만해 보이는 사내였다.
  하기야 뭣이 좀 작고 뭣이 좀 작다고 해서 남의 꿈이며 삶 자체마저 쬐끄만하다고 말하는 데는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명색 고등교육 맛까지 본 터수에 꿈이란 게 겨우 십년을 넘게 다닌 어떤 허름한 회사의 계장자리 정도이고, 삶의 중요한 궤적이랬자 그 귀두산 기슭에 까치둥치같이 아슬아슬하게 엮은 같잖은 마이 홈과 버스로 두 시간이나 걸리는 도심의 빌딩숲에 간신히 끼어든 회사의 납작한 구식건물을 잇는 선이고 보면, 그 삶을 거창하게 말하는 게 오히려 어폐가 될 성싶다.
  그런데 며칠전 그 사내에게 그같은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날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발단은 창사 기념일인가 뭔가 하는 시덥잖은 사내 행사로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와 삼복더위로 달아오른 방안에서 숨을 학학거리는 그에게 아내가 대뜸 배를 타박하고 나선 일이었다. 어찌된 셈인지 그 무렵들어 올챙이처럼 방그랗게 불러오는 배였다.
  "아유, 답답해 못보겠네, 그 거미 같은 팔다리에 난데없이 웬 배는... 당신도 운동 좀 하세요, 운동."
  "운동?"
  그러잖아도 시원찮은 아랫도리가 여름들어 부쩍 맥을 추지 못하는 바람에 밤만 되면 아내의 눈치만 살피는 터였다. 그 판세에 나온 아내의 운동타령이라 왠지 심상찮게 들린 그가 벽에 기댔던 등을 떼며 그렇게 물었다.
  "네, 산에라도 좀 다녀오라구요."
  "산? 어디 귀두산 말이야?"
  "그래요, 빨랑 다녀와요."
  "지금?"
  한낮은 지났다 해도 아직 햇볕이 뜨거운 오후였다.
  "그럼 오밤중에 올라갈 거예요? 얼른 일어나요."
  그렇게 나오면 견딜 재간이 없었다. 까짓 등산 한두 번쯤으로 북채같이 벙글어오은 배가 바람빠진 공처럼 짜부라들 리도 없고, 무우시래기에 매달린 애무우처럼 골아든 하초가 철판 뚫을 일이 벌어지지도 않겠지만, 이왕 아내가 꺼낸 말이니 어쨌든 시도는 해봐야 될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남들은 도심에서 도시락 싸가지고 찾아든다는 귀두산을 지척에 두고도 몇 년이 되도록 그 꼭대기 한번 구경한 적이 없어 내심으로는 몇 번인가 별러오던 일이기도 했다.
  세시가 넘어 있었지만 장장하일 해는 아직 중천에 있었고 골목길은 화끈한 열기 속에 눅진하게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는 귀두산으로 오르는 큰길을 따라 쉬엄쉬엄 걷기 시작했다. 길 양편으로 마주 선 언덕에는 크고 작은 새 집들이 게껍질처럼 우툴두툴 솟아 있었다. 비록 형태는 작지만 서양풍의 아치와 원주, 반들거리는 인조 대리석을 입힌 발코니와, 수입잔디에 이런저런 관상수가 비좁게 이마를 맞댄 손바닥만한 정원이며, 턱없이 우람한 대문 따위가, 옹색하고 어울리지 않는대로 처음 내집을 가져보는 서민들의 어줍잖은 허영심을 보여주는 데는 충실하게 몫을 다하고 있는 그런 집들이었다.
  그는 오래잖아 귀두산 주봉 입새에 들어섰다. 귀두산 주봉, 다시 말해 좁은 뜻으로의 귀두산은 두 개의 험준한 능선과 그 사이를 흐르는 내암천 맑은 물로 원래는 제법 쳐주는 서울 근교의 명산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 도심에서 밀려난 말썽 대학교의 캠퍼스가 그 왼쪽능선 무릎께에 자리잡게 되면서 천지개벽을 만났다. 귀두산의 두 줄기 능선은 말썽 대학교를 경계로 그 허리가 잘리고, 이로부터 상사목이에 이르는 구릉과 계곡은 헐리고 메워졌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평지 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나 집들이 들어서 서울특별시의 일부로 편입돼버린 것이었다.
  따라서 귀두산은 두 다리를 잘리고 허리께까지 말썽 대학교의 캠퍼스에 침식당한 채, 개발이 불가능한 주봉만이 덩그렇게 남고 말았는데 그마저도 옛날의 시퍼렇던 서슬은 흔적도 없이, 근년에는 그저 가난한 시민들의 무료유원지나 아침저녁의 가벼운 등산 코스로 전락되어 있었다.
  멀리서는 그래도 퍼렇게 살아있는 듯 보이는 귀두산이라 한가닥 기대를 가지고 찾아든 그는 아직은 산다운 산으로 남아 있는 주봉 입새에 이르자 까닭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 높은 산중턱까지 따라오는 그 갑갑한 도회의 내음이 이제는 사라지겠거니 하는 데서 오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아직도 안도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을 그는 곧 깨달았다. 좀 과장하면 숲속에 사람이 들어찼다기보다는 사람 사이에 풀과 나무가 들어섰다고 할 만큼 모여든 사람들 때문이었다. 휴일도 아닌 여름 한낮이라는 걸 감안하면 도심의 어떤 공원도 결코 따를 수 없는 숫자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건강보호 및 장수만세협회 회원임에 분명한 사람들이었다. 대개가 60대를 넘긴 그들은 허름한 옷차림에 지팡이 하나가 전부인데 웬만한 체면이나 법규쯤은 그 고령의 무게로 깔아 뭉개면 되는 축들이었다. 따라서 좋게 보면 야수물을 퍼나르거나 산정을 오르내리며 백로처럼 모여 소일하는 조용한 그 산의 단골들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들의 많은 숫자와 그 못지않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반칙들로 인해 그 산의 자연경관을 가장 많이 훼손하는 주범들이기도 했다. 그들이 반칙에 관한 한 강경한 대처보다는 관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상식이며 미덕으로 여겨지는 탓이었다.
  그러나 맹렬하기로는 이들보다 훨씬 앞서는 이 협회의 회원들이 사오십대 갱년기의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시든 정력을 위해 뱀이고, 개구리이고, 지렁이고를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다가 그래도 부실한 하초를 위해 아침 저녁 산등성이로 기어오르거나 약수를 퍼마시는 축이었는데, 차차 산에 맛을 들여 나중에는 대낮까지 산에 늘어붙게 된 준 상주 인구였다.
  그밖에 있으나마나한 무슨 조합이나 단체의 친목회, 각종의 동류항으로 묶여진 계모임, 사세가 뻔한 직장의 단합대회며 이런저런 이름의 야유회도 그 산의 인파를 늘리는 중요한 원인인 것 같았다. 대개는 열두시도 되기 전에 취하기 마련인 그들은 가까운 공단이나 이른바 꼬방동네에서 모여든 가난한 연인들과 그렇고 그런 젊은 남녀며, 갈곳없는 인근주민들과 뒤섞여 그 산을 온통 끓는 죽솥같이 만들고 있었다.
  그 소란에 지레 주눅이 들어 한동안을 멍하니 걷던 그는 곧 땀 흘리고 기어오른 본전이나 뽑을까 하는 생각으로 약수터로 가 보았다. 거기도 만원이었다. 비닐통, 주전자, 플라스틱 물통따위 크고 작은 물그럿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그 임자들은 근처의 나무 그늘에 앉아 눈을 번득이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반칙을 감시하고 있었다. 한모금 마시고 가는 것쯤이야, 하는 기분으로 샘가에 다가가던 그는 플라스틱 국자에 손도 대보지 못한채, 그들의 성난 고함소리에 반나마 얼이 빠져 쫓겨나오고 말았다.
  그 산 역시 자신이 한번도 성공이라는 것을 맛보지 못한 저 아래의 거대한 도시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그만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들어 부쩍 압박감을 주는 아내가 있는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지 서른 아홉평에 건평 열 일곱평의 내집이라는 공간은 그에게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마음편한 곳이었다.
  그러나 집을 나설 때의 아내가 떠오르면서 그런 그의 마음은 이내 변했다. 저녁에 있을 아내의 엄한 추단을 면하기 위해서도 정상까지는 올라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물론 가장 욕심없고 서민적인 생각, 본전이라도 뽑아야겠다는 것도 그런 그의 결정에 한 몫을 했다.
  그렇게 심드렁한 산행이 되고 보니, 저절로 그의 주의는 흐트러지고 다시 산 자체보다는 구석구석 틀어박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그의 눈길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구석구석 남녀가 모여앉아 술잔을 따르거나 너울너울 춤을 추는 나이 지긋한 패들이었다. 아무래도 부부같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술따르는 여자들을 작부로 보기에는 너무 늙어 있었다. 결혼 이십년이 가깝도록 변변히 외박 한번 못해 본 그의 경험으로는 아리송하기만한 패거리들이었다.
  그러나 그늘그늘에서 술마시는 숫자로는 젊은이들도 결코 그런 패들에 지지 않았다. 그들은 깡술에 뒤틀리는 내장 탓인지 하얗게 질린 채 수없는 노래를 미친개처럼 짖어댔고, 너무 젊어서 괴롭다는 듯 하염없이 몸을 비틀고 있었다. 개중에는 산발에 알 카포넨가 뭔가 하는 도둑놈 두목이나 썼음직한 무지막지하게 큰 색안경을 낀 녀석들도 끼어 있었는데, 그들에게 문제는 제 불알 볼가지는 줄도 모르고 꽉 죄게 입은 청바지가 아니라, 으레껏 두엇은 풀어놓기 마련인 윗도리의 단추였다. 외국영화의 주인공처럼 텁수룩한 털로 선정적이거나 야성적으로 보이기는커녕 앙상한 가슴뼈와 꾀죄죄한 땟국물로 그들을 한층 초라하고 왜소하게 만들 뿐이었다.
  물론 가끔씩은 가난밖에 흠이 없는 젊은 연인들이 콜라병이나 놓고 다소곳이 마주앉아 그런대로 아담한 그림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가까운 공단에서 왔음에 분명한 한 쌍의 남녀가 서럽과 외로운 삶을 과장된 눈물과 한숨으로 주고받는 것도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광경에 미소할 틈도 없이, 한쪽에서는 패션 디자이너의 죄가 분명한 섹시한 바지의 아가씨가 개대가리 같은 작자의 손에 끌려 후미진 숲속으로 사라지는가 하면 다른쪽에서는 애인을 잘못 골라잡은 아가씨의 때늦은 비명에 정의의 기사 대신 바로 그 악당 같은 애인의 따귀가 대답하는 식의 꼴불견이 벌어지곤 했다.
  "빌어먹을, 맨 저따위만 모여갖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역정을 냈다가 이내 흠칫했다.
  서울이란 감당못할 거대하고 기괴한 도시의 일원이 된 뒤로는 직접 사람을 향해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격렬한 말을 자기가 내 뱉았다는 놀라움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누가 그 말을 알아듣고 시비를 걸어오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그 바람에 그는 걸음을 빨리해 그곳을 벗어났다.
  잔디 하나 없는 오솔길로 벗어나도 트인 하늘 때문에 소란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질 뿐, 마음에 안들기는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어디든 그늘만 있으면 그렇고 그런 작자들이 왁작대었고, 아래에 없던 군대식의 이동주보가 그들 사이를 속옷 속의 이처럼 스멀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동안 십리길은 좋게 걸은 터라 피곤도 하고 까닭없는 심화에 지치기도 한 그는 그 오솔길 가의 한군데 비어 있는 그늘을 보고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뜻같지 못했다. 그가 막 자리를 보아 앉으려는데 난데없이 한떼의 동파리가 윙 소리를 지르며 날아 올랐다. 이어 부는 한줄기 바람에 실려온 것은 어김없는 구린내였다. 애써 주위를 살필 것도 없이 바로 그가 앉으려는 풀숲에 아직 채 굳지도 않은 노리께한 배설물이 낼름 고개를 들고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옘병할 놈의......"
  이번에는 주위에 아무도 없어 그는 마음놓고 욕을 한 뒤 서너 발자국 떨어진 곳으로 옮겨 자릴 잡았다. 달리 비어 있는 그늘이 없어 그 그늘의 끝머리에 나앉은 것이지만,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 고약한 냄새는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는 차츰 화가 나기보다는 쓸쓸한 감회에 젖어들었다. 그 한무더기의 배설물이 넌지시 일깨워준 지난 삶의 자취 때문이었다.
  이십여 년 전 그가 있는 것 없는 것을 모두 팔아치위 이 도시로 처음 뛰어들 때만 해도 지금같은 그는 아니었다. 남들이 성공적이라고 말하는 여러 가지 삶의 형태에 나름의 야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성취를 위한 열정도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누군가가 먼저 자릴 잡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영악함이든, 동물적인 욕망의 힘이든, 배움이든 또는, 아직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변해버린 사회구조에 대한 재빠른 이해와 적응이든, 그로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방금의 그늘처럼 요행 비어 있는 자리가 있어 가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 똥무더기 같은 것이 있었다. 투자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이윤, 노동에 비해 턱없는 임금, 또는 노력에 비해 한심한 대우...... 그리하여 몇 번 남이 차지한 그늘에 들어가려다가 호된 맛을 본 그는 마침내 지금처럼 쥐꼬리만한 봉급과 한없이 느린 승진이라는 구린내를 참으며 아무도 다툴 사람이 없는 그늘에 주저앉아버린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는 자조하듯 중얼거리며, 결코 그 구린내와 똥파리의 사정권을 벗어나지 못했을 그 곁의 그늘을 훔쳐 보았다. 한떼의 듬직한 사내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잔과 담소를 즐기고 있는 곳이었다. 젊은 여자가 시중을 들고 있는데도 그들은 웃옷을 아예 벗어붙쳐버린 시원한 알몸 차림으로 방금 펄펄 끓고 있는 찌개를 훌훌 퍼마시며 "여쭈타"를 연발하고 있었다.
  "진작 한번 나올 걸 그랬지요?"
  그중에 비교적 젊어보이는 축이 무테안경을 쓴 듬직한 사내에게 감개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의 눈이 이다금씩 똥무더기 쪽으로 가는 것이나 여자가 먹는 것에 전혀 손을 대는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도 서너 발자욱 저쪽에 있는 똥무더기의 존재는 진작부터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문득 그들의 정서고갈증을 탓하기보다는 환경과 위생에 대한 그들의 관용 또는 둔감에 성원을 보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처럼 그늘 한쪽으로 비켜 앉는 대신 그들 같은 관용이나 둔감만 가졌더라도 자신의 삶은 좀 달라졌으리라는 가정 때문이었다. 허름한 회사라도 과장 부장 상무는 있었고, 사무실 중앙에 놓인 그들의 번듯한 자리와 한 구석배기에 놓인 그의 궁색한 자리가 다르듯, 그들과 그의 삶도 분명 조금은 달랐다. 그러나 귀두산은 그런 상념에조차도 그가 오래도록 빠져 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가 내려온 오솔길 쪽에서 갑자기 요란한 노래소리가 멱살을 잡아 태질을 치듯 그를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게 만들었다.
  "사아공의의 배앳노오래......"
  그게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합쳐진 소리라는 것에 까닭모를 공포를 느끼며 놀라 돌아보니, 도저히 휴대용이라고는 볼 수 없는 녹음기를 아코디온처럼 가슴에 비스듬히 걸친 키큰 사내가 대여섯 명의 동료를 이끌고 그가 앉아 있는 그늘로 돌진해오고 있었다. 퀭한 눈가며 양귀까지 찢어진 검붉고 두툼한 입술이 헤벌여진 것으로 보아 이미 흠씬 취한 것 같았다. 그를 뒤따르는 사내들도 취하기는 그와 비슷해 보였다.
  "와-앙"
  사내는 그늘에 들어서자마자 녹음기의 볼륨을 한껏 높이고는 곡마단의 어릿광대처럼 벙글거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동료들도 손발을 해적거리며 뒤따르듯 좁은 그늘을 한바퀴 돌더니 각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는 먼저 자리잡고 있는 자기를 아예 무시하는 그들의 뻔뻔함에 앙갚음이라도 하듯 말없이 똥무더기가 있는 풀숲만을 주시했다.
  "억, 이게 뭐야?"
  과연 그중의 하나가 똥무더기를 짚기라도 했는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이 보인 그들의 반응은 그에게는 전혀 뜻밖이었다.
  "왓하하하......왓하하하......"
  그들은 무엇이 우스운지 한바탕 호탕한 웃음부터 터뜨렸다. 똥을 짚은 사내도 그들과 함께 허허거리더니 굴러다니는 신문지 한 장을 집어 두손을 닦았다. 그리고 이왕 그일은 자기 몫이라는 듯 다시 어디서 비닐봉지 하나를 주워와 똥무더기 위에 덮은 뒤 두손으로 움켜쥐고는 부근의 사람이 없는 풀숲으로 던져버렸다.
  "어떤 놈이 되게 급했던 모양이군."
  그게 그 사내의 유일한 비난이었고, 나머지는 다시 무엇이 즐거운지 또 한바탕의 왁자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런 그들의 뜻 아니한 반응에, 무시당한 것에 대한 그이 불만은 어떤 섬뜩함으로 바뀌었다. 그가 언제나 맞부딪치기를 피해온 것은 바로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그 사이 그늘 아래서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분명 그 사내들과 일행이 아니 한 여자가 기어든 것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주부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사십 전후의 여자였다. 그러나 빈 자리에 서습없이 끼어든 그녀는 첫수작부터가 분명 여느 가정주부는 아니었다.
  "왓따, 남정네들끼리 무슨 재미여? 한잔 주셔."
  그리고 이미 한잔 된 사내 하나가 해롱거리며 소주잔을 내밀자 맞은편을 보고 부라보를 외치고는 단숨에 비워버렸다.
  "아이구, 그 아지메 술 한번 화통하게 마시누마."
  이어 다른 사내가 잔을 내밀어도 그녀는 조금도 경계하거나 사양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가 연신 부라보를 외치며 잔을 비워대자 사내들도 덩달아 벌컥벌컥 마셔대더니 이내 노래가 시작됐다. 노래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차례가 되기 무섭게 일어나 꽤 신곡인 유행가를 멋들어지게 한곡조 불러제꼈다.
  "우매, 잘하는 것."
  "앙 코오루..."
  박수가 쏟아지고, 다시 한동안 낭자한 가락이 주위를 흥건하게 적셨다. 그러다가 문득 여자의 목소리가 낮아지며, 좌중의 하나에게 무언가를 제안하는 것 같았다. 제안을 받은 사내는 취중이면서도 잠깐 생각을 가다듬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럴 거 없어. 합석해버려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이가?"
  그런 동료들의 충동과 함께 리더인 듯한 그 사내는 그녀의 제안을 조그만 단서와 함께 승낙했고, 그녀도 그 단서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선심 쓴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좋아, 우리도 기분잉께."
  그렇게 말한 그녀는 맞은편 숲 그늘을 향해 두어번 손뼉을 쳤다. 그러자 한떼의 부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루루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그녀와 다를 바 없는 사십 전후의 부인들로, 밋밋한 가슴과 군살이 디룩한 허리는 이미 지나간 한세월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숲 그늘에 가려 보지는 못했지만 벌써 오래 전부터 거기 진을 치고 있었던 모양으로 한결같이 얼굴에 붉으레 술기운이 오른 채였다.
  맨정신인 그의 눈에는 겨울 바닷가의 빛바랜 비치 파라솔이나 오뉴월의 세탁소에 걸려 있는 털외투처럼 보이는 여자들이었지만, 이미 한잔 흠씬 된 사내들에게는 그렇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 남녀들은 불문곡직하고 한덩어리가 되어 흔들고 비틀고 가성을 질러댔다. 불과 서너 발자욱도 안되는 그 그늘 끝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체하면서도ㅇ 이다금씩 자기들을 훔쳐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아연한 기분이 되어 그런 자리는 피해주어야 한다는 평소의 예의도 잊고 그들의 하는 양을 살펴보았다. 어느새 소주는 맥주로 바뀌고, 쥐포와 땅콩은 오징어와 통닭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동주부의 집요한 상혼과 염치없는 부인네들의 먹성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잘 봐주어야 같은 공사판에서 일하다가 쉬는날 하루잡아 기분풀이를 나온 막벌이꾼 십장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허술한 주머니로는 감당하기 힘든 지출이 강요될 게 뻔했다. 그러나 사내들은 이따금씩 근심스런 눈으로 턱없이 호화판이 된 술자리를 가늠하긴 해도, 오기 하나로 게거품을 품은 채 마시고 춤추고 떠들기를 계속했다. 곁에서 보고 있는 그에게는 사내들의 그같은 오기가 어리석기보다는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은근한 부러움이었던 그들의 막노동으로 벌어진 어깨도 차츰 갸냘프게 보였고, 그들이 내지르는 가성도 서글픈 비명처럼 들렸다. 그가 그닥 좋아하지도 않은 술을 대낮 산꼭대기에서 마시고 싶어진 것은 아마도 거기서 느낀 어떤 쓸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구경만 하지 말고 아저씨도 술 한잔 하세요."
  언제부터인가 술과 안주가 든 바구니를 끼고 주위를 서성거리던 한 여자가 그렇게 권해왔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샀다. 그런데 그것이 그를 지금껏 구경만 한 귀두산으로 직접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돈을 받은 그 여자는 술과 안주를 주는 대신 느닷없이 그이 팔을 끌었다.
  "아저씨. 이왕이면 좀 조용한 곳으로 가요. 제가 술을 따라드릴 테니."
  그제서야 그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세상살이에 찌든 평범한 40대 여자의 얼굴이었다. 거기다가 어쨌든 돈을 치른 술과 안주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 제안이 께름직한대로 그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앞서 가는 그녀를 뒤따랐다.
  그녀가 자리를 잡은 곳이 한적하기는 해도 여전히 사람들 사이라 그는 약간 마음을 놓았다. 그런 데서는 이상한 수작을 부칠래야 부칠 수도 없으리란 믿음 때문이었다. 술을 따르는 폼도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술을 달라는 법도, 자기가 찢고 있는 오징어 다리 하나 입에 넣는 법도 없었다. 오히려 소주 한 병에 오징어 한 마리 사준 것에 대한 봉사치고는 지나친 친절이었다. 그래도 처음 한동안은 이유없이 께름직해 그녀가 빨리 자리를 떠주기를 바랐지만 한두 잔 술이 들어가자 오히려 얘기를 걸기 시작한 것은 그쪽이었다. 조금전 그 그늘에서 본 부인네들의 정체가 못내 궁금해 그녀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그 여자들요? 그게 다 낙타부대예요."
  "낙타부대라니? 낙타부대가 뭡니까?"
  "아저씨두 참, 예비군도 안하셨어요? 거, 왜 그런 여자들 있잖아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죠. 따지고 보면 불쌍한 여자들이라구요."
  그 말을 듣고서야 그도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그렇다면 직업적인 창녀......"
  "에유,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어요. 술도 팔다가......"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낙타부대라고 부르죠?"
  "잘은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이 모포를 가지고 다녀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 손님이 없을 때는 창경원 낙타처럼 맥이 빠져 돌아 다녀서 그렇다는 말도 있어요."
  "거 희한하군."
  "희한할 것도 없어도. 처음에는 다 나같이 술병부대로 시작했지만, 워낙 장사가 안되는 데다 또 남자들 집적거리니까 한두 번 어울리다 저길로 들어선 거죠. 오히려 저렇게 보자기 하나만 들고 나서는 게 속편하다는 축도 있어요. 밑천들 것도 없고, 운이 좋으면 수입도 꽤 올릴 수 있대나봐요."
  "수입을 어떻게 올립니까?"
  그는 이미 대강 짐작이 가면서도 짐짓 물어보았다.
  "뭐, 술 많이 팔아주면 우리같은 술병부대에게서 팁 좀 받고, 보자기 펴면 손님들에게서 화대도 받고......"
  그러고 보면 조금전 그 막노동자 풍의 사내들을 애처럽게 만든 맥주와 통닭은 그녀들의 염치없는 먹성과는 무관한 셈이었다. 그게 다시 그의 여린 감상을 건드렸지만 그는 술기운을 빌어 묻기를 계속했다.
  "묘한 직업도 있군. 그 나이들이라면 명목상이라도 처녀는 있을 리 없고 대충 과부들이겠지요?"
  "네, 대개는 그렇죠. 그러나 개중에는 형편 딱한 유부녀도 있고, 어떤 때는 그냥 바람난 여자가 끼어들기도 해요. 요즈음은 불황이 심해 술집 접대부며 홀에 나가는 아가씨들까지 올라와 손님을 끌고 간대요."
  "몸파는 유부녀가 있다더니 정말인 모양이군."
  "말 마세요. 어떤 여자는 가정파탄이 일어 이혼당하는 수도 있어요."
  그러면서 말을 멈춘 여자는 무엇을 찾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마침 찾았다는 듯 한군데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길 보세요."
  그녀가 가리키는 것은 멀지 않은 계곡 쪽이었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여 그때껏 모르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세 사람의 부인네와 사십대 후반의 술취한 남자 하나가 벌써부터 떠들썩하게 싸우고 있었다. 애써 귀기우려 보니 그럭저럭 알아들을 만은 했다.
  "춰라. 이년아, 썩어빠진 구무 절리 춰라. 연탄까스보다 더 독한 내미 난다. 내가 언제 그거 팔아 밥묵고 살자캤나? 이 더러븐 호양년아."
  "까구 있네. 사내새끼 구실도 못하는 주제에 오기는 살아서. 내가 언제 그거 파는 거 봤어, 봤어?"
  "봤다. 이 니기미 떠그랄 년아. 그기 아이믄 내 손에 장을 찌지꾸마."
  "아이, 아저씨 정말 왜 이러셔. 돌이엄마가 김밥장수했지 언제 그걸 팔아요?"
  "김밥장사 좋아하네. 참말로 김밥장사했다카믄 김밥보따리 좀 보자."
  "다 팔고 여기 보자기만 남았잖아요? 밥도 못먹고 사는 판에 공연히 싸움질만 하면 뭘 해요? 참으세요. 돌이엄마는 절루 가구......"
  "맞아, 돌이아빠 참 멋쟁이신데 오늘 따라 웬일이실까? 다 이해하셔어."
  "자, 술이나 한잔 하세요. 어마나, 정말 자기 멋쟁이야."
  "촤라, 이년들, 똑같은 년들..."
  그가 거기쯤 들었을 때, 술을 따르던 여자가 한숨을 푹 내쉬며 하던 얘기를 이어갔다.
  "저기 왼쪽에 있는 여자가 돌이엄마예요. 얼굴도 반반하고 수완도 좋아 낙타부대에서도 스타라구요. 저 남자는 남편인데 알콜 중독자래요. 옛날 시골서는 알부자 소릴 들었는데 서울와서 다 털어먹고 홧김에 저리 됐다나요. 그러니 여자 혼자 어떻게 해요? 자식새끼라도 먹여살리자고 동네 가까운 여기 와서 김밥이며 과자 부스러기를 팔았죠. 그런데 남자들이 가만 둬요? 결국 저길로 들어서게 된 거죠."
  그러더니 지금까지의 동정어린 어조와는 판이하게, 경멸과 적의가 담긴 눈길로 남편 쪽을 노려보며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근데 글쎄 저 남자가 어떻게 알고 심심하면 찾아와서 저 지랄이래요. 다른 아줌마들이 보다 못해 술 받아줘가며 달래니까 재미를 내서 요새는 아주 매일이라니까요. 여자는 그저 사내복이 있어야지. 아유 남의 일이라도 열 올라. 아저씨 나도 술 한잔 주세요."
  "그럽시다."
  일이 그렇게 돌아가고 보니 술병은 금새 바닥이 났다. 그런데 그때를 전후해서 이 눈 쬐끄만 사내에게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까지 그의 감정이 전개된 과정으로 보아서는 마땅히 그 불행한 부부에 대한 연민이나 또는 거기서 유추된 삶의 신산스러움으로 비감에 젖어야 할 것인데도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대신 멀찌감치서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자신도 한번 그 귀두산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모험적인 충동이 불쑥 인 것이었다. 별로 술이 세지도 못한 주제에 깡술에 가까운 소주를 한병이나 마셔 알딸딸해진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너무도 큰 변화였다.
  "이봐, 아줌마. 이 산에는 그런 낙타부대원이 얼마나 되지?"
  "들쭉날쭉하니깐 알 순 없지만, 줄잡아 백 명은 될 거예요."
  "그런데 왜 내 눈에는 낙타부대 장병들이 하나도 띄이질 않소?"
  그러자 술을 따르던 여자도 드디어 그의 변화를 알아 차렸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지만, 일단 그런 그의 변화가 포착되자 그녀의 변화도 재빨랐다.
  "아유, 아저씨도 엉큼해, 그럼 내 하나 소개해 올릴까?"
  금세 콧소리 섞인 반말로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이미 조금 전의 고단한 행상 아줌마가 아니라 능수능란한 뚜쟁이의 그것이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술김에도 그녀의 그같은 돌변에 퍼득 정신이 든 그가 그렇게 얼버무리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생각 있으면 진작 말할 것이지...... 그럼 이거 좀 보고 있어요. 내 얼른 다녀올께."
  그의 뒤엣말은 완전히 무시한 채, 그녀는 그런 말을 남기고 가까운 풀숲으로 뛰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잠시 낭패를 당한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일시적인 충동에서 깨나기 무섭게 가늠해 본 호주머니도 이 엄청난 모험을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가 가진 돈이랬자 아내가 하루건너 한번쯤은 확인하는 비상금 만원과 산에서 음료나 마시라고 타온 천원이 전부이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도망쳐 버릴까... 그는 다급한 김에 언뜻 그런 생각까지 해보았지만, 이내 술로 마음을 다그치고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치 언제나 포기하고 도망치기만 해온 그의 지난 삶을 일시에 보상하는 방법이기라도 하듯, 낙타부대 장병은 오래지 않아 도착했다.
  "동생, 여기야, 이리와 앉아."
  그런 술병부대원의 손에 끌리듯 그 앞에 나타난 것은 아직 설거지 냄새도 가시지 않은 고만또래의 도리납작한 여자였다.
  "술자리도 끝났는데 뭘."
  그녀는 자리에 앉기 바쁘게 술병부터 살핀 뒤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양쪽 모두 번갈아보며,
  "언니, 여기 술 한병 더 주세요. 나도 한잔 해야지, 안 그래요? 손님." 해놓고는 이쪽저쪽 대답 기다릴 것도 없이 제손으로 술과 안주를 광주리에서 척척 집어냈다. 그녀가 터무니없이 많은 안주를 집어내는 바람에 그는 다시 한번 간이 철렁했지만, 이미 먹은 마음대로 쬐끄만 눈을 내려뜨고 못본 체했다.
  "손님부터 한잔 드셔이."
  이윽고 술병을 딴 그 여자가 노련한 솜씨로 술 한잔을 따라 권했다. 십 년 전에 만난 제 서방이라도 된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담담해지려고 애쓰며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두잔인가 비웠을 때, 철수준비를 마친 술병부대원이 은근한 콧소리로 끼어들었다.
  "자 이제, 이쪽 계산은 좀 해주시죠."
  "네, 그러죠."
  그는 선뜻 비상금 만원을 꺼내 술병부대원에게 내밀었다. 술값을 호되게 매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거기서 주머니가 거덜날 뻔했다.
  "재미 많이 보세요, 아저씨."
  챙길 것을 다 챙기자 술병부대원은 야릇한 미소와 함께 이미 해가 뉘엿한 산길로 내려가 버렸다. 주위의 소란도 한결 줄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까운 오솔길은 삼삼오오 패를 지어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로 잇다시피 했다.
  그의 쬐끄만 몸 한구석에 술로 더욱 쬐끄만해져 구겨져 앉아있던 이성이 이제는 그만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를 가냘프게 물어왔다. 그때 갑자기 낙타부대 장병이 술잔 든 그의 팔을 건드리며 코맹녕이 소리를 했다.
  "아저씨 싸게싸게 술잔 돌리셔."
  "음."
  그는 기계적으로 잔을 비웠다.
  "이건 기분 차여, 곱배기루다가..."
  "좋지."
  그렇게 두 잔을 더 걸치자 정말로 거나해졌다. 좀전에 들은 가냘픈 이성의 권유는 그새 모기소리보다도 더 가늘어졌고 아내의 추달이나 거지반 거덜난 주머니도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대신 그때부터 와이셔츠 단추구멍만한 그의 눈은 대담하게 낙타부대 장볍의 몸을 훑기 시작했다. 아무리 보아도 자기보다 한둘 위인 것 같은 나이였지만 육색은 그런대로 쓸 만해 보였다. 그게 다시 그를 좀더 대담하게 만들었고, 이어 그는 이력난 난봉쟁이 같은 품을 잡으며 그녀의 말투를 흉내내어 물었다.
  "색씨... 그런데 색씨는 몇 살이여?"
  "서른 살이여, 서른 살. 아직 고것은 잘 돌아강께 안심 팍 놓더라고잉."
  "좋아하네, 마흔을 넘어도 한참 넘었겠다."
  "얼레 이 아저씨 좀 봐아. 시방 나가 그렇게나 보여? 정말 사람 환장하겠네, 아이, 열올라. 이 아저씨를 그냥..."
  여자가 그렇게 말하더니 대뜸 그의 코를 힘껏 비틀어 버렸다.
  "아이쿠!"
  그 불의의 공격에 그는 한동안 코를 싸안고 낑낑거렸다. 눈물이 팍 쏟아지며, 술이 다 깨는 기분이었다.
  "나가 쪼께 고생을 하여서 그렇제, 실제 나이는 서른 둘이란 말이여."
  "아, 알았어, 알겠다니깐."
  "알았으면 이잔 받으셔. 그란디 이럴께 아니고 쩌긋 좀더 조용한 곳으로 옮겨어. 너무 붐벼도 곤란헹게."
  그리고는 다시 술 한 잔을 앵긴 뒤 핸드백을 찰칵 열더니 착착 접은 보자기 같은 것을 꺼냈다. 얇고 질긴 비닐로 만들어진, 보자기보다는 거의 모포만한 깔개였다. 몸뚱아리 외에 필요한 유일한 밑천이요, 낙타부대의 기본장비인 셈이었다.
  방금 호되게 코를 비틀리어 한바탕 눈물을 쏟은데다 그 야릇한 간이침대를 보자 그는 문득 술이 취해 깜박 잊었던 주머니 사정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그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금 불어간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상대로,
  "아이고, 써언하다. 요것이 우짠 사이다 바람이당가? 콩팥까지 다 써언하네."
  하며 수다를 떤 후, 아직도 맹하게 술잔을 들고 있는 그를 재촉했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저물면 워쩔려고 요로코롬 술만 퍼마신다냐?"
  "이봐 색씨, 팁이 얼마야?"
  "얼마라니? 벌써부터 고런 것 따지게 됐어? 기분 잡치게. 기분만 내키면 그냥 줘버릴 수도 있고오... 나 떫으면 백만금으로도 안되는 수가 있고오... 다아 그런 것 아니겠어?"
  그 말에 그는 약간 자신을 얻었지만 궁금한 일은 역시 궁금했다.
  "말을 하라구 말을. 나도 알아야 산대를 놀거 아냐?"
  "아유 이 아저씨, 증말 사람 김 팍 새게 망그네. 그래 만원이여, 만원. 됐어?"
  "뭐? 만원?"
  "요새 물가에 그만하면 싸지 뭘 그래? 아녀?"
  그렇다면 일은 이미 글러버린 셈이었다. 거기서 그는 일단 발랑 자빠져 보는 것으로 방책을 정했다.
  "만원 같은 소리하고 있네. 나 돈 없어."
  "그럼, 사람은 왜 불러?"
  "부른 게 아냐. 그 술병부대 아줌마가 멋대로 데려온 거지."
  "아이, 김새. 싫음 관 둬, 난 갈팅게."
  그녀가 그렇게 순순히 물러나려 하지 그는 이상하게도 문득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 내키면 그냥 줄 수도 있고오, 하던 그녀의 말도 들을 때와는 달리 희망적으로 귓가에 되살아났다. 거기다가 이런저런 일로 이따금씩 제동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이 정신을 일사불란하게 사로잡고 있는 것은 역시 양을 넘게 마신 깡술이란 사실 또한 그에게 갑작스러운 용기를 끌어낸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가만, 가만 있어봐."
  "이 아저씨가 누굴 약 올리나?"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의 얼굴에는 한눈에 드러날 만큼 반색이 떠올랐다.
  "돈이 모자라서......"
  "그래, 얼마 있어? 말해 봐. 화끈하게 말해 보라구. 나 그냥 싸게 주고 갈 테니까."
  "이거야, 꼭 이뿐이야. 그런데 저..."
  남은 천원짜리 한 장과 동전 몇 개를 꺼내들고, 기분으로 한번 어울려 보자는 수작을 붙여 보려던 그는 거기서 문득 입을 다물었다. 손에 쥔 돈과 자신을 번갈아 노려보는 그녀의 심상찮은 눈길 때문이었다. 그 정도에서 입을 다문 것은 그날의 일 가운데서 드물게 잘한 일의 하나였다.
  "뭐? 천원?"
  너무 기가 차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뒤 한동안 숨만 씨근거리던 그녀가 느닷없이 그의 부샅께를 무릎으로 냅다 차며 외쳤다.
  "집에 가서 용두질이나 쳐라. 이 쪽제비 같은 새끼야."
  "어이쿠우."
  그는 부샅께를 싸말아쥐고 앞으로 폭 고꾸라졌다. 그런 귓가에 그녀가 떠나며 하는 말이 꿈결같이 아련히 들려왔다.
  "이무기가 벌리고 자니 미꾸라지가 덮치더라고, 어디 순 같잖은 게......"
  그가 온몸을 짓누르는 그 묵중한 통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뒤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산꼭대기에는 이미 사람이 별로 없었다.
  "히히, 히히히......"
  그는 자신도 까닭을 모르는 채 한동안 마음껏 웃어 제꼈다. 지금껏 거기서 있었던 모든 일이 무슨 한바탕 어지러운 꿈처럼만 느껴졌다. 그러다가 그는 몸을 일으켜 인적이 드문 오솔길을 따라 휘적휘적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속이 뒤틀리고, 산이 기우뚱거리듯 몸이 이쪽저쪽으로 쏠리는 것으로 보아 부샅께에 가해진 그 격렬한 통증도 술기운을 죽이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도회가 시작되는 주봉 입새에 이른 것은 날이 거의 어두워진 뒤였다. 그러나 어둠과 함께 이내 잠들어 버릴 것으로 예상되던 귀두산은 밑으로 내려올수록 싱싱하게 살아 있었다.
  구석구석 가로등이 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날의 놀이가 미진한 행락객들이 모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었고, 그들 사이를 술병부대원들과 낙타부대 장병들이 마지막 고객을 끌기 위해 바쁘게 헤치고 다녔다. 그도 거기에 이르자 왠지 부쩍 취기가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에게 술병부대원 하나가 다가왔다.
  "쥐포 사세요, 아저씨. 구운 쥐포요."
  "안 사아."
  "암놈이라니까요?"
  "그래? 얼마야?"
  그는 남은 동전을 털어 산 쥐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집으로 내려가는 대신 이구석 저구석을 기웃거렸다. 이따금씩 그런 그에게 마크도 선명한 낙타부대 장병들이 보자기를 흔들며 웃어보였다.
  "보자기 안 사아?"
  "보자기 안 사아!"
  그는 한번 데인 것도 잊고, 그런 그녀들을 만날 때마다 알 것 다 안다는 투로 시시덕거렸다. 몇 군데 좌판 앞에 멈춰 술도 몇잔 더 걸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그의 청각을 자극하는 요란한 경음악소리에 끌려 가로등이 환한 공지로 가 보았다. 그 한끝 용케 살아 남은 소나무 가지에 한껏 볼륨을 높인 채 걸려 있는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전자 올겐 소리였다.
  공지 가운데서는 그 가락에 맞춰 십여 명의 술취한 사내들과 낙타부대 장병들이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는데, 스텝을 밟고 있다기보다는 마구다지로 얽혀 아이들의 고무줄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들도 두 가지 부류가 있었다. 하나는 아예 볏단 안아 날으듯 서로 감싸안고 굼실대는 축이었고, 하나는 마주 쳐다보며 겅둥겅둥 마당굿을 벌이는 축이었다. 둘 다 테레비 같은 데서 구경한 걸 실현해보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눈에는 어쩐지 겅둥겅둥 뛰는 쪽이 차라리 웃길로 보였다.
  "한번 추시겠어요?"
  그가 멍하니 그런 그들을 보고 있는데 약간 쉰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이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의 쬐그만 몸을 감싸안는 것은 유난히 키가 크고 몸집이 좋은 중년부인네였다. 그는 "어, 낙타......" 어쩌고 할 사이도 없이 그런 그녀의 힘에 밀리어 춤추는 사람들 가운데로 끌려들어갔다.
  그래도 처음 한동안 그는 어떻게든 그 여자의 품을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난데없는 연탄까스 냄새와 얼마전 산 위에서 자기의 부샅께를 무릎으로 내지르고 간 여자의 기억이 술로 느슨해진 그의 경계심을 다시 일깨운 탓이었다. 하지만 마음뿐이었다. 원래가 역부족인데다 술까지 한잔 깝북된 터라 집게처럼 그의 몸을 죄고 있는 완강한 그녀의 두 팔에서 벗어날 재간이 그에게는 없었다. 거기다가 빠져나오려고 버둥대다 맞닿게 된 그녀의 살결이 주는 묘한 자극도 차츰 그의 정신을 마비시켰다.
  그리하여 곡이 뽕짝으로 바뀌었을 무렵에는 자기쪽에서도 마주 그녀를 껴안은 채 곡도 없는 노래까지 흥얼거리게 되고 말았다.
  "낙타등에 꿈을 싣고 사막을......외로운 사나이가......"
  생각보다 목소리가 컸던지 곁에 사람이 못마땅한 눈으로 흘끔거렸다. 누군가 그 공지를 지나가며 한심하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맨 저따위만 모여가지고......"
  어디서 많이 들은 말이란 생각이 들었으나 바로 대엿시간 전 그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내뱉는 말이란 것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부터 여자가 아랫도리로 그의 부샅께를 실실 문질러대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그는 차츰 힘이 아래로 모이며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부샅께는 이미 바지가 터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러자 여인은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미묘한 웃음과 함께 손을 살그머니 밀착된 아랫도리 사이로 집어넣더니 다짜고짜로 성난 그놈의 대가리를 콱 움켜잡았다.
  "윽..."
  관능적인 율동과 아랫도리에 맞닿은 여인의 살결로 몽롱한 흥분에 젖어 있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비틀며 신음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몸을 빼내보려 했으나 처음 그 춤마당으로 끌려들어왔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 그녀는 아예 놓아주지 않을 생각으로 야멸차게 그놈의 멱살을 잡아쥔 것이어서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하기야 입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물어뜯거나 손가락으로 눈이라도 후빈다면 풀려날 길도 있겠지만 그런 잔인한 공격은 애초부터 그의 몫이 아니었다.
  "자, 나가요."
  그가 저항을 포기하자 그녀가 재빠르게 속삭이며 그를 춤마당에서 끌어냈다.
  "알았어, 아이구우."
  아차하는 순간에 다시 꼼짝없이 낙타부대의 포로가 되어버린 그는 설설 기듯이 끌려나갔다. 
  "이쪽으로 와요, 얼른."
  그녀는 남은 손으로 재빨리 허리에 두르고 있던 보자기를 풀어 자신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사람들의 관찰로부터 은폐시킨 뒤 그를 호젓한 계곡 쪽으로 끌고갔다. 그는 연신 애원의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면서도 조금이나마 고통을 줄일 양으로 그녀가 끄는 대로 움직였다.
  그녀가 그놈의 멱살을 놓아준 것은 춤마당에서 거의 백미터나 떨어진 계곡에서였다. 날은 이미 어두워 들리는 것은 솔잎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와 허공을 날고 있는 박쥐떼들의 날개소리뿐이었다.
  "헛일이야. 이젠 아파서도 못하겠어."
  그녀가 놓아준 뒤에도 한동안 부샅을 주무르고 있던 그는 이윽고 사정조로 말했다.
  "이거 왜 이래? 정말 이렇게 시시하게 나올 거야?"
  그녀가 술기운이 완연한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쭈그리고 앉은 그 앞에 하늘을 뒤로 하고 서 있는 그녀의 장대한 모습은 어둠속에서도 우뚝한 산악 같았다. 그는 정말로 덜컥 겁이 났다. 그녀가 그를 이곳까지 끌고온 것도 노동이라면 노동, 그 대가를 주지 못해 호젓한 그 계곡에서 그녀와 싸움이라도 붙는다면 그는 어김없이 죽고 살아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황급히 주머니를 털어 달랑 남은 천원짜리를 꺼내들고 사정했다.
  "돈도 없어. 이게 전부야, 봐주."
  "정말 놀기 싫어?"
  "그래, 말했잖아? 아프고, 돈도 없고...한번 봐줘."
  그러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나꿔채듯 그의 손에 든 천원짜리를 받아들더니 공지 쪽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는 일시 죽을 구덩이에서 되살아나기라도 한 듯한 안도를 느꼈다. 전처럼 대상도 이유도 모르는 웃음이지만 실컷 웃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나른하게 처져오는 몸을 계곡의 바위에 기댄 채, 무심코 이제 막 초승달이 돋아오르는 귀두산을 올려보는 순간 갑자기 그는 콧등이 시큰해졌다. 이어 원인도 모를 슬픔과 연민의 가슴을 흥건히 적시고, 마침내는 눈물도 뜨겁게 흘러내렸다.
  "그 산이 안고 있는 작은 세계, 그것이 상징하는 우리 살이의 어떤 일면, 또는 그 거울에 비치어 느닷없이 드러나버린 자신의 모습이 명정상태를 벗어날 때의 일없이 처량한 느낌과 함께 그같은 그의 정서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한동안을 기대었던 그는 공지의 소란이 어느 정도 잦아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눈이 쬐그만 사내는 꿈을 꾸었다. 귀두산에 가서 진짜 낙타를 만나는 꿈이었는데 이번에는 성이 바뀌어 그가 여자이고 낙타가 숫놈이었다. 군데군데 털이 빠지고 굶주려 보이긴 해도, 거대한 생식기를 세우고 끊임없이 그를 덮치려는 낙타들에게 밤새도록 쫓기던 그는, 새벽에야 깨어나 식은땀을 씻으며 중얼거렸다고 한다.
  "귀두산에는 낙타가 살고 있다."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 연설문

  길 위에 선 자의 고단함과 쓸쓸함
  이문열

  한국의 문학은 오랫동안 엄혹하기 그지없는 두 검열관에게 시달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 검열관은 그 시대 그 체제 그 권위의 옹호와 유지에 문학이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때로는 법률로 때로는 현실적인 불리로 두 눈을 부라렸습니다. 거기 비해 다른 한 검열관은 그들이 그리워하는 다음 시대를 앞당겨 실현하는 데 문학이 봉사해야 한다며 때로는 야유와 독설로 때로는 악의에 찬 묵살로 이 나라의 문학정신을 몰아대 왔습니다.
  가당찮게도 그들은 제법 선명히 구분되는 이름을 내걸고 여러차례 시끄러운 논쟁까지 벌였으나, 실은 목표하는 방향이 다를 뿐 비슷한 종류의 질나쁜 검열관이었으며 순정한 문학의 입장에서 보면 또한 양쪽 다 길을 잘못 든 속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시대, 어떤 체제를 지키는 일이든, 부수고 바꾸는 일이든 그런 일들에는 정치나 사회운동 쪽에 더 효과있고 능률적인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대의의 볼 만함으로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다고도 보지만 그 또한 반드시 미더운 기준은 못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대의라도 독선과 경직을 동반하게 되면 다음 시대에는 오히려 악으로 가능하게 됨을 우리는 종종 보아왔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대의의 볼 만함은 틀림없이 어느 한편에 있지만, 불행히도 그 대의는 일찍부터 독선과 경직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부조리한 이 시대를 개선하는 데 기여한 데 대한 실천만큼이나, 온전히 그들의 이념으로 지배되는 시대의 문학이 권위주의의 질곡에 빠지리란 어두운 예감을 우리에게 앞질러 갖게 한 그 독선과 경직도 지적되어야 할 것입니다.
  문단에 발들여놓은 지 오래되지 않은 대로 나는 그동안 유심히 그 두 검열관에 대응하는 우리 문학의 모습을 관찰해 왔습니다. 어떤 용감한 또는 경박한 정신들은 일찍부터 그 두 검열관의 검열기준을 터득해 그 어느 한편의 총아가 외었습니다. 어떤 현명한 또는 교활한 정신들은 문학이 가진 본질적인 공통분모에 의지해 이쪽 저쪽 모두에게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흘려보냈고, 어떤 자유로운 또는 비뚤어진 정신들은 초연함으로 양쪽 모두를 무시하는 측했습니다. 형태는 달라도 나름대로는 인간힘을 다한 대응하며, 그 과정에서 모두들 조금씩은 내상을 입었으리라 여겨집니다.
  현명하게도 또는 교활하게도 나는 처음 양쪽 모두를 향해 미소를 보내는 것으로 내 문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지지자가 아니면 곧 적이라는 식으로 양극화가 심하게 진행되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그게 성공하는 듯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곧 나는 양쪽 모두의 수상쩍어하는 눈빛에 시달리게 되었고 차츰 눈흘김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모든 걸 소비재화하는 이 시대의 경향은-특히 작가조차도 일회용의 소모품으로 단기간에 소모하고 또 새로운 상품을 발굴하는데 맛을 들인 이 시대의 문화형태는, 점차 그런 입장조차 지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점점 소설노동자로 전락해가는 스스로에 대한 내면적인 반발도 견디기 어려운 데가 있었습니다. 철저하지는 못했지만 84년 3월부터 87년 3월까지 작품발표를 중단했던 것도 실은 그런저런 내면의 혼란이 원인이었습니다.
  나는 그전 몇년 능력에 넘게 문학시장에 내다 판 불량상품의 하자를 보수하는 한편 한 작가로서의 새로운 길도 제법 진지하게 모색해 봤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이 봄 다시 중단편에 손을 대게 되었을 때 쓰라리게도 나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못한 스스로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이번 수상작품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그 한 예였습니다.
  지난 8월 미국에서 이번 수상 결정을 들었을 때 나는 처음 솔직히 부끄럽고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영악한 문학외적 계산이 곧 이 상을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이게 했고, 그런 내 기분은 수상소감에도 군데군데 내비치고 있습니다. 그 뒤 두어 달 나는 틈나는대로 이번 수상이 내 문학에 가지는 의미를 이다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전히 그쪽으로는 곤혹스럽고 거북한 수상이었지만, 근래에야 겨우 한 의미를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 상이 내가 이미 어디 도달했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주는 상이 아니라,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이루려고 노력하는데 대한 격려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무슨 강박관념처럼 짓눌려온 두 검열관의 문제 또한 어쩌면 그 격려에서 어떤 실마리가 잡힐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이번의 수상자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기를 빌며, 다시 한번 길 위에 선 자의 내 고단함과 쓸쓸함을 심사위원님 및 이 자리에 계신 선배·동도 여려분께 확인시켜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문열 연보

  1948년-서울 청운동에서 부 이원철 모 조남현의 3남 2녀 중 3남으로 출생
  1950년-경북 영양군 석보면으로 귀향
  1953년-안동으로 이사
  1955년-안동 중앙국민학교 입학
  1957년-서울로 이사, 서울 종암국민학교로 전학
  1959년-밀양으로 이사, 밀양국민학교로 전학
  1961년-밀양중학교 입학, 6개월 만에 중퇴
  1962년-경북 영양군 석보면으로 귀향
  1964년-안동고등학교 진학
  1965년-안동고등학교 중퇴, 부산으로 이사
  1968년-대입검정을 통해 서울사대 진학
  1969년-사대문학회 가입, 작가가 될 것을 결심
  1973년-결혼 및 군입대
  1977년-단편"나자레를 아십니까"로 -매일신문- 신춘문예 입선
  1978년-"매일신문"사 입사
  1979년-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 당선,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 수상, 소설집 "사람의 아들" 출간
  1980년-소설집 "그해 겨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출간
  1981년-"어둠의 그늘" 출간
  1982년-"금시조"로 -동인문학상- 수상
  1983년-"황제를 위하여"로 -대한민국 문학상- 수상
  1984년 "영웅시대" 출간
  1987년-"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제11회 -이상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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