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태주 지음 / 행성B
시인이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모든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움이 짙게 배어나는 문장들로 편곡
했다. 그리움에 얽힌 다양한 사연들, 그리고 출판업에 종사하는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 책에 모두 담겼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그리워하는 것이니, 그리움의 경전 같은 이 책을 펼쳐
들어 그리워함으로써 오늘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움의 문장들
림태주 지음
▣ 저자 림태주
문장수집가다. 아름다운 문장에 끌렸으나 언제부턴가 그리운 문장에 매료됐다. 사람 냄새가 나서였다.
그리움을 수집하러 바닷가 우체국에 가는 일이 잦다. 허탕 치는 날엔 직접 문장을 제작하기도 한다.
그리움의 연금술사가 되는 걸 일생의 각오로 삼고 있다. 생업은 책바치다. 남의 글을 고르고 가다듬어
책을 펴낸다. 밥을 벌기 위해 나무를 베는 참혹한 일에 종사한다. 저작권자의 원고지에서 쓸 만한 문
장을 발견할 땐 견딜 만한데 그러지 못할 땐 맑은 술잔처럼 외롭다. 밉지만 삶에서 도망친 적은 아직
없다. 한때 시를 사랑했다. 시가 되지 못한 문장들을 모아 《그토록 붉은 사랑》을 엮었다. 사람 사이의
감정에 작용하는 은유를 모아 《관계의 물리학》을 펴냈다. 이 책 《그리움의 문장들》은 그리움에 미
친 남자가 그리움이라는 종교를 세워 스스로 사제가 되고 교도가 되고 말씀이 된 이야기다. 자칫 빠져
서 물들면 고해성사로도 헤어나지 못할 수 있다. 지상에 낙원은 없다. 오직 그립고 그리워하는 존재가
있을 뿐.
▣ Short Summary
그리움은 마치 중력 같다. 사람이 이 땅에 온 순간부터 마주하게 되는 필연적인 일이라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도, 느끼고 싶지 않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없다. 그것을 두고 시인은 한술 더 떠 사람으로 산다
는 것은 그리움에 종사하다 그리움에서 퇴직하는 일이라고 한다. 사는 것은 곧 그리워하는 일이다. 시
인은 그리움 예찬자다. 그가 그리움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리움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오롯이 자신 소유의 감정인 까닭이다. 미화되고 편집된 과거를 그리워하는 ‘그리움 초보 단계’
를 지나면 나 자신을 그리워할 수 있는 ‘그리움의 고수’가 된다. 그리움이 나를 향하면 영혼을 맑게 하
고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설령 실체 없는 그리움이라 할지라도 결국 본인을 채우는 감정이
니 결코 손해는 아니다. 그것이 바로 시인이 그리움을 사랑하는 이유이며 그리움이 지닌 효용 가치이
다.
마음 한 구석에 그리움 한 줌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과거에 그리워하는 무
언가가 있다. 그 대상은 첫사랑이기도 하고, 지금은 소식이 닿지 않는 옛 친구이기도 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이기도 하다. 어떤 인연은 옷깃조차 스치지 않는 아주 짧은 것으로 그치고, 어떤 인연은 꽤 오
래 이어지며 살아가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책에는 그동안 시인이 살아가면서 맺은 크고 작은 인
연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리움이 적절히 버무려진 추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
시인 자신의 그리움이지만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내 마당 담
벼락을 따라 핀 풀꽃들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가로등이 켜진 밤길을 걷던 풋풋한 첫사
랑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
나 공감할 만한 아릿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 차례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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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1부 바닷가 우체국
바닷가 우체국에서 / 그리움에 대한 정의 / 나는 사랑한다, 그리운 것들을 / 그리움의 중력 / 그리울
사람 / 우연과 운명 / 고립된 편지 / 외로운 영혼의 사피엔스들 / 복사꽃이 흩날릴 때 / 당신이 나에게
온 이유 / 다 잘 있다 / 그리움의 힘 / 흔적에 대하여
2부 그리운 이름
꽃이 그리 쉬운가 /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 너무 뒤늦은 물음 / 여기다는 말에 대하여 / 생일 아침에
생각함 / 봄날의 물음 / 순수의 시대 / 신은 풀벌레의 몸에 깃들어 운다 / 시인에게 된장을 보내며 /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연원 / 미친 봄밤 1 / 미친 봄밤 2 / 그 많던 엄마의 말들은 어디 갔을까 / 그리
움의 모서리 / 국방부의 비밀 임무 / 사소해 보일지라도 / 그 사람이 보내온 엽서 /
3부 아픈 존재
기이한 이야기 / 일기장 검사 / 우리 동네 식료품 가게 할아버지 / 내 심장이 멈출 때까지 / 그리운 미
래 / 슬픔이 기쁨에게 / 배관공은 오지 않는다 / 본래의 나는 어디에 있나 _ 산방일기 1 / 꾸미지 않는
말 _ 산방일기 2 / 지혜로 먹으라 _ 산방일기 3 / 최소한의 삶 _ 산방일기 4 /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노을도 다르다 / 동사가 사라진 삶 / 시인의 탄생 / ‘나중에’란 없다 / 그립다고 말하고 싶어도
4부 외로운 일
가족의 정의 / 길을 묻는 아들에게 / 딸에게 주는 인생의 말들 / 선배에게 드리는 충고 / 사표를 쓰는
일의 외로움 / 너의 사명이 무엇이냐 / 갑과 을에 관한 정의 / 사랑하는 태주 씨 / 미치기 좋은 직업 /
생활인의 순수 / 꿈꾸기를 강요하는 사회 / 청탁의 기술 / 야매 작가의 글쓰기 조언 / 출판사에 처음
투고하는 분들을 위한 조언 / 내게 정중함을 요청하는 당신께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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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그리움의 문장들
림태주 지음
바닷가 우체국
그리움에 대한 정의
마음은 어디에 사는가를 두고 혼자 심각해졌다. 마음이 뇌에 사는지 심장에 사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
다. 어느 때는 한없이 뜨겁다가 어느 때는 무서울 만큼 냉정해지는 마음의 정체가 일평생 궁금했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마음도 외로워서 저물 무렵에는 심장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한다는 것으로.
마음이 세 든 집에 가보았다. 마음은 보이지 않고 그리움만 독거하고 있었다. 그리움이란 무엇일까 하
고 혼자 궁리해 보았다. 글과 그림과 그리움이 한 엄마에서 나온 자녀들이라고 들었다. 동사 ‘긁다’가
그들을 낳은 어미라고 했다. 나무껍질에든 동판에든 그 위에 긁어 새기는 것이 글과 그림이 되었고,
마음에 긁어 새기는 것은 그리움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이 아름답다고 여겨졌고, 쉽게 수긍되었
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은 없는 것들에 대한 열망과 사라져갈 것들에 대
한 연민이다.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그림으로 표출되고 시로 읊어진다.
그리움의 원천은 마음의 교환, 결핍의 틈새를 메울 사귐이다. 사귐도 ‘새기다’에서 왔다. 벽에 암각화
를 새기듯 자신의 존재를 상대의 심장에 돋을새김해 두는 게 사귐이다. 그러므로 사귄다는 것은 필시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마음과 잇닿아 있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의 공허와 상실의 운명으로부터
그리움은 서로의 부재를 견디는 방식이다. 견디는 동안 서로의 형상은 돌올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그
러므로 삶이라는 추상이 느낌으로 감각되는 생의 유효기간은, 무언가를 그리워하기 시작해서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게 된 동안까지이다. 곁에 있을 때는 가장 기쁜 기쁨으로 사랑하고, 곁에 없을 때는 심
장에 동판화를 새기듯 죽을 것처럼 그리워하면 될 일이다.
사람이 시를 쓰는 이유는 마음을 숨겨둘 언어가 그곳에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마음을 감춰둘 여백이 그곳에 많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굳이 그리움이라는 말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일평생 복무하는 일의 전부라서 그렇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움
에 종사하다 그리움에서 퇴직하는 일이다. 죽은 이들을 해부해 보면 마음자리가 늘 비어 있다. 그리움
세포가 마음을 가장 먼저 괴사시키고 온 장기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그 붉은 종양의 발원지
가 마음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해 본 사람들은 안다. 세포가 분열하듯이
그리워하면 그리워할수록 마음의 우주가 팽창한다.
나는 사랑한다, 그리운 것들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그리움을 수학했다. 누가 그곳에 우체국을 세웠는지 모른다. 내가 그 바다에
갔을 때부터 거기 있었다. 벽면 하나를 통유리 창으로 달아 바다를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바람이 물
어오는 먼바다의 문장을 수집하고, 수시로 희고 붉고 검게 변하는 구름의 기분을 지켜보며, 이따금 돌
고래 떼가 뿜어대는 무지개 분수를 감상하며 거기 서 있었다. 가을 끝자락부터 새봄이 시작되기 전까
지 나는 그해 겨울동안 그 바닷가에 살았다. 외로워서 편지를 썼고, 독백하다 지치면 시를 썼고, 분량
이 넘치면 우체국에 들어가 주소지 없는 그리움을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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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그리움은 공평하다. 누구나 그리움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다만, 쓰는 용도가 다르고 다루는 기술이 다
를 뿐이다. 방치해 두고 아예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고루하고 구시대적이고 촌스럽다고 숨기는
사람도 있다. 그리움을 적절하게 투자해 행복을 창출하는 데 쓰는 사람도 있고, 그리움을 과다하게 복
용해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리움 기술자로서 그리움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낸다.
가까이 하면 좀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하는 구석이 있다. 너무 멀리하면 수분이 부족한 피부처럼 영혼
을 푸석거리게 만든다. 지내기에 쾌적한 실내온도가 있듯이 그리움에게 단호하게 말해 둔다.
내가 부르기 전엔 달려 나오지 마라, 특히 손님이 왔을 때 흥분하거나 먼저 나대지 마라. 여기서 ‘손
님’이란 내가 무언가에 끌려 매혹된 감정, 혹은 찌르르 감정되는 첫 느낌, 호기심이 드는 첫인상처럼
심장의 전기반응을 일컫는 환유이다. 단속하지 않으면 그리움이 제멋대로 작동해 주인을 곤경에 빠트
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나는 사랑보다 그리움을 더 좋아한다. 이렇게 발설하면 따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면 그리운
거고, 그리워해야 사랑인 건데 어떻게 둘이 따로따로 분리될 수 있느냐고. 언뜻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전문가적 소견으로 보면 엄밀하게 그건 틀렸다. 사랑이 끝나고 나니 비로소 그리움이 밀려드는 경우도
있고, 서로 그리워하다가 막상 사랑하다 보니 그리움이 증발되고 없더라는 슬픈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그리움과 사랑은 한 몸이 아니라 이란성 쌍둥이 같은 것이다.
내가 사랑보다 그리움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사랑은 때로 못 견딜 만큼 괴롭지만 그리움은 보고
싶은 바다나 기다리는 첫눈이나 설레는 여행 같아서 참으면 참아진다. 또 참은 만큼 굉장한 기쁨이 있
다. 사랑은 배신하는 일이 있지만 그리움에게 배신당하는 사람은 없다. 사랑은 유지에 드는 체력도 시
간도 비용도 필요하지만 그리움은 그런 게 필요 없다. 무엇보다 사랑은 나 혼자만의 소유가 아니어서
권리 주장이 어렵지만 그리움은 온전히 단독 소유다. 저당 잡혀도 눈치 볼 이유가 없다.
사랑은 이타적일 때도 있지만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이다. 이 결핍, 이 욕망의 충족은 타자와의 호혜적
인 관계성에 의존한다. 즉, 인정욕구와 같아서 주체적으로 주관하고 해결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
래서 사랑은 사회적이다. 그리움은 어떤가. 지극히 개별적이고 사적 영역 안에 있다. 타인에 좌우되지
도 않는다. 내가 생산하고 내가 소비한다. 공급이 과다해 재고가 남아돌아도 상관없다. 제조일자는 있
으나 유효기간은 없다. 부패해서 누군가의 배를 앓게 하거나, 너무 높이 적재해 무너져도 타인이 다칠
일이 없다. 사랑은 육감만으로도 들키지만 그리움은 바코드를 찍고 신원조회를 해도 나오지 않는다.
국가가 내 마음을 압수수색해 디지털 포렌식하기 전에는 그 비밀한 내막이 드러나는 일도 없다. 사랑
에는 고난도의 기술과 매뉴얼이 필요하지만, 그리움은 특별한 학습이나 기술 없이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수분크림 같아서 잘 사용하면 촉촉하고 탱탱하게 마음의 텐션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그리움 애용자를 다수는 그리움을 과거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데 쓴다. 초보자들이 주로 그렇게 한다.
그 그리움은 내가 이미 늙어버렸다는 자조와 한탄의 증명이다. 그 그리움은 경험한 것들,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것들, 기억으로 편집된 것들에 붙들려 있다. 자전적인 서사에 머무는 그리움이 나는 몹시 안
타깝다. 진짜 선수들은 지금 당도한 것, 여기에 살고 있는 것, 무해하고 무용해 보이는 것들에게 향한
다. 그러다 경지에 오르면 그리움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 물길을 튼다. 너나 그것이나 무엇에게가 아
니라 나 자신을 그리워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자신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에 주입된 상태를 나르시시
즘, 혹은 자기애라고 한다. 나르시스의 몸에서는 피톤치드가 은은히 스며 나온다. 그리움은 편백나무
나 자작나무 숲 같은 영혼을 갖는다. 그리움을 볼 수는 없지만 냄새 맡을 수는 있다. 그리운 것들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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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두 냄새로 온다. 아기 냄새, 엄마 냄새, 겨울바람 냄새, 설탕 냄새, 생선 냄새, 고양이털 냄새, 자운영
꽃 냄새, 비 냄새, 유자 냄새, 재스민 냄새, 사람 냄새. 그렇게 그리운 것들은 실체적이고, 생생하고,
곁에 있다. 나는 그것들을 느끼고, 내 사랑은 모두 그리운 것들의 고유한 냄새로 온다.
우연과 운명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운명에 ‘그리운 운명’이라는 게 있다고 믿는다. 보충 설명을 하자
면, 누군가를 일평생 그리워하도록 프로그램된 운명이 분명 있을 거라는 의미다. 그 운명에 ‘우연’이라
는 뜻밖의 사건이 가세하면 한 편의 드라마가 된다. 그래서 많은 로맨스 장르의 영화는 운명이라는 원
고지에 우연이라는 펜으로 스토리를 써내려 간다. 지구에 사는 그 많은 그리움 중에 불멸의 전설로 남
은 그리움들은 대개 이 우연과 운명의 플롯에 기대고 있다.
사랑의 서사가 있다. 이 사랑은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가지 못한다. 오직 필름 속
에서만 생화처럼 피어 있다. 영화 속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현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닌데도 가능한 것처럼, 내게도 일어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조작술. 내가 주로 읽는 책들은 이런
영화적인 사랑이 얼마나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인 사유를 마비시키는지, 현실의 사랑을 얼마나 초라하
게 비관하게 만드는지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갈증처럼, 지상에 없으나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랑을 찾
게 된다. 그 위험한 낭만적 서사에 빠지면 우연의 연속이 빚어낸 운명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것이라
고 믿게 된다. 기어이 내게도 올 것이라고 믿게 된다. 인간이 그리움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업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낭만을 찍어낼 것이고 더욱 정교한 운명을 개조해 낼 것이
다.
운명을 예감하게 하는 말이 있다. A few years later. ‘그 후’나 ‘몇 년 후’ 같은 말들이 그렇다. 그 말들
은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끝나고 사족처럼 남은 여운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이제 이야기는 서
론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거대한 폭풍에 휘말리는 운명의 서사에 들어설 것이라는 강렬한 암시를 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이 아니라 ‘몇 년 후’에는 막연한 기대감과 슬며시 고조되는 흥분이 따라붙
게 된다. 마치 무료하고 덧없는 일상에 던져준 ‘주만지의 게임 상자’처럼.
크리스마스이브의 뉴욕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영화, <세렌디피티> 만큼 ‘A few years later’가 강렬한 운
명의 예감으로 다가오는 영화도 드물다. 운명 같은 것을 믿게 되면 제대로 살아가기가 힘들어지는 게
인생이라고 믿는 여자와 전혀 로맨틱하지도 고독하지도 않은 남자가 우연하게 만나는 전개. 삶의 우연
의 연속에 지나지 않지만, 때로 그 우연이 필연이 된다는 것. 낡은 문법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의 삶 속에 우리가 지나치고 있는 운명의 계시가 들어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우연한 마주침을 운명이라고 과장해서 말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그 운명을 시험해 보자고
한다. 5달러짜리 지폐에 남자의 전화번호를 적고, 『콜레라 시대의 사랑』 책의 앞면지에 여자는 자신
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둔다. 그것들이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서로에게 돌아간다
면 운명을 받아들이자는 기발한 확률적 시험. 영화는 사랑에 왜 운명을 받아들이자는 기발한 확률적
시험. 영화는 사랑에 왜 운명이 필요한지 입증해 보이기라도 하듯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처럼 숨
겨진 운명의 정체를 집요하게 추적해 간다.
몇 년 후, 그동안 삶은 ‘아슬아슬하게’ 평온했다. 스스로가 선택한 삶의 방식과 습관화된 체계로 아침
이면 일어나 일터로 나가 돈을 벌고, 퇴근해 잠들었다. 누군가 정해 준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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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신이 정하고 설계한 것이라 믿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선택 안에 있는 모든 행복과
불행이 자신의 의지와 계획으로 빚어진 것들이었다. 정말 그럴까? 런던의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곁
에 두고도, 단 한 번 스치듯 만났던 뉴욕의 남자를 그리워한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한 폴 뉴먼
의 영화, <폭력 탈옥> 포스터 앞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
게 된다. ‘그리운 운명’이 작동하자 여자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는 연인에게 여자
는 조금은 두렵고 아직은 덜 여문 확신으로 대답한다. “New York, Maybe!”
운명이란 ‘메이비’일지도 모른다. 확정된 무엇이 아니라 내가 원하므로, 그 흔들림이 좌초될까 봐 그것
을 운명이라는 강력한 힘으로 결박해 두고 싶은 마음. 내가 선택한 것을 완전하게 믿을 수 없는 불안
한 인간들의 몸부림 같은 것. 아마도, 운명이란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별
것 없는 관계도 운명이라고 믿으면, 아닐 때보다 훨씬 근사하고 튼튼하고 강렬하고 가치 있는 결합력
을 선물해 준다. 운명이 아니라 실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 믿음이 이 모든 것들을 연출하고 감독한다.
누구에게나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 있다. 누구에게나 세렌디피티 같은 뜻밖의 행운이 있
고, 누구에게도 같은 선물을 고르고 같이 카페모카를 떠먹는 필연의 순간이 있다. 다만 그 우연한 만
남을 운명으로 바꾸어내는 조나단과 사라가 있는가 하면, 그런 운명을 믿지도 열망하지도 않는 사람도
있을 뿐이다. 운명이라는 보스에게 나는 잘 보이고 싶다. 그리움의 행동대장이 열망이다. 나는 충성하
겠다. 그렇게 나는 ‘지금’ 안에 설레는 운명의 예감과 황홀한 ‘몇 년 후’의 서사를 채워 넣겠다. 진실로
나는 그리운 필연이 있다고 믿는, 그 믿음을 의심하지 않겠다. 열망하겠다.
그리움의 힘
그리움은 고독과 닮았다. 고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특히 나무를 좋아한다. 아마도 나무가 그리움이
나 고독이나 자존을 상징하는 사물로서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내가 아끼는 책
에도 나무와 고독이 나온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은 고독한 양치기가 죽
을 때까지 황무지에 도토리를 심어 거대한 참나무 숲을 이룩한 이야기다. 아주 짧은 이 단편소설이 수
많은 언어로 번역된 이유는 뭘까? 인간들은 모두 고독한 내면을 지니고 있고, 그 안에 자라나 그리움
들이 숲을 이루어 술렁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움은 누군가를 향하는 마음이고, 그 이타심은 고
결한 행동을 이끌어낸다. 책을 펼치면 맨 앞에 이렇게 나온다.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
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
오노 지음, 두레출판사
나는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 사람들은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에 그
리움이 꽉 차서 힘드니까 그걸 꺼내서 나무로 심어두고, 꽃씨를 뿌려두는 묘책을 생각해 내지 않았을
까. 그리움을 밖에다 심어두고 좀 헐렁하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살면 지내기가 한결 부드러울 테니까.
노을도 마찬가지다. 태양이 품고 있기 힘드니까 참다 참다 저녁 무렵이 되면 몸 밖으로 게워낸 각혈이
노을이다. 그리움 때문에 사람이든 탸앙이든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짓을 한다. 남 보기에는 그게 우아
하고 아름다운 일로 보이겠지만 실상 품고 사는 자들에게는 애타고 숨 막히고 견디기 힘든 고약한 중
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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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아픈 존재
동사가 사라진 삶
이반 일리치 읽기를 권한다. 그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사회 사상가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전통사
회가 침몰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한 비통한 애도사를 줄기차게 써왔다.『학교 없는 사회』,『성장을 멈
춰라』, 『병원이 병을 만든다』 등이 그가 남긴 저작들이다. 그는 이 저작들에게 학교, 교통, 위성도시,
대형병원, 매스미디어와 같은 대량생산 산업시스템이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능력을 어떻게 빼앗아갔는
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살 권리’를 주창한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에서는, 산업사회가 그토록 찬미하고 계몽했던 ‘해방된 인간’
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람의 일생은 세 곳에서 시작되고 마침표를 찍는다. 병원에서 태어나 학교에 수용되고 직장에 몸을
바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른다. 이 세 곳에는 고치고 가르치고 욕망을 부추기는 전문가
들이 있다. 이들은 생명을 연장해 주고, 돈 버는 기술을 습득시켜 주고, 나의 쓸모를 돈으로 환산해 준
다. 병원과 학교와 기업의 카르텔은 공고하다. 국가는 이 전문가 집단의 용도를 통합하고 경영해서 개
인의 일탈을 통제하고 자유를 제한하고 경제 성장의 도구로 사용한다. 우리가 기를 쓰고 직장에 다니
려고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기업조직이 제공하는 의료와 재교육, 여가 서비스
같은 각종 복지혜택을 제공받기 위해서이다. 국가는 시민들의 사회의존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제도
와 장치를 고안해 낸다. 체제 안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설계하
고 관리한다.
이반 일리치는 이것을 동사가 사라진 삶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배운다’는 동사는 ‘학점 취득’이라는 명
사가 대신하고, ‘재미있다’는 동사는 ‘PC게임’이나 ‘놀이공원 회원권’이라는 명사로 대체됐다. 스스로
배우고 즐거움을 체험하는 동사적 능력은 퇴화하고, 이미 만들어진 프레임과 시스템에 누가 더 빨리
세련되게 적응하는지 경쟁하는 삶. 스스로의 만족에 기반한 욕구를 만들어가는 능력은 좀체 발현되지
않는다. 그 능력을 발휘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가난하거나 아주 부자여야만 가능하다. 이 말은
내가 나의 쓸모를 되찾으려면 자발적 가난, 자발적 실업을 감행해야만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불운하게
도 산업조직 체계에 속해 있는 한 내가 나의 쓸모를 회복할 길은 없다.
사람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고유한 기술들, 채소를 기르거나 장작을 패거나 동물의 털가죽을 벗기는
일을 하지 않아도 사는 데 문제가 없다. 그 일들은 각기 분업화된 전문가들이 알아서 해 주기 때문이
다. 노동 능력이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의미하는 직업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까닭에 자율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실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었
다. 집에서 아이를 낳을 수도, 감기를 치료할 수도, 전기를 설치하고 수도를 고칠 수도 없게 되었다.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현대화된 가난’을 살게 되었다.
이반 일리치를 읽으면 섬찟하다. 멈출 줄 모르는 전 지구적 발달과 성장의 끝이 보인다. 스스로 제 무
덤을 파고 있는 산업 문명이 보인다. 빨리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가 끝없이 많아져서 이제는 다
같이 느리게 다닐 수밖에 없게 되었다. 최적화된 환경에서 우량한 품종으로 사육되는 가축들이 전염병
이 돌면 이겨내지 못하고 일시에 대량 살처분된다.
도시에 밀집해 모여 살게 되면서 인간도 가축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취약한 존재가 됐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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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병원에서도 통제할 수 없는 슈퍼박테리아가 생겨나고,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감염이 병원에서 일어난다.
자본으로 성장한 병원이 병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것, 양적 성장과 진보가 더 이상 인류의 삶을 보
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 임계점에 달한 진보가 자기기만에 불과하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오
만한 성장을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진보의 역설을 성찰했다. 농경문화의 죽음은 극적인 사회변화로 이어졌고, 이러한 격변
으로 현대는 과거와 영원히 결별하게 되었다. 이 결별은 인류가 수천 년간 생계를 해결하며 지속해온
문화적 진화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저마다의 고유성을 지닌 문화형식들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진화해
온 인류의 역사는 대량생산 시스템의 보편적인 요구에 따라 획일화되고 통제되었다. 인간 조건은 자발
성과 자립, 자급과 자족이라는 인류 본연의 가치를 상실해 버렸다.
우리의 노동은 신성한가. 성장 시스템에 옥죄이고 기만당하는 노동은 스스로의 진정한 쓸모와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가. 불편하고 불온하지만 우리는 너무 늦지 않게 이 무서운 ‘성장’이라는 괴물로부터 해
방돼야 한다. 자율적 공생, 창조적 실업의 관점에서 대안적 희망을 찾기 위해 문명과 맞서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비루해서 견딜 수 없는, 너무나 하찮은 존재로 타락해 버린 우리의 삶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은 모이를 먹지 않는다. 밥은 밥다워야 한다. 이반 일리치 읽기를 권한
다.
외로운 길
길을 묻는 아들에게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마라. 너만의 독특함을 가져라. 최고는 항상 남을 이기고 앞질러야만 얻을 수 있
는 비정한 전리품이지만, 독특함은 무리에 함께 섞여 온유함을 나누면서도 언제라도 너를 드러낼 수
있는 아름다운 힘이다.
단점을 보완하려고 애쓰지 마라. 그 시간에 너의 장점을 더 큰 강점으로 만들어라. 단점을 고쳐서 완
전무결해야 훌륭한 인격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이 원하는 삶을 사는
불행한 사람들이 범하는 오류다. 장점을 단련하고 숙련하는 일은 훌륭한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오롯이 너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한 방편이다.
누군가 너를 남자답다고 칭찬하거나 의리남이라고 치켜세우면 조금도 기뻐하지 마라. 너를 특정한 성
향으로 길들이거나 집단성으로 묶으려는 사람을 경계해라. 편을 갈라 구분하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
고, 자신의 취향과 기호를 강요하는 자를 멀리해라. 있는 그대로의 너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과 가까이해라.
네 여자 친구의 내면이 궁금하다면 그녀의 집을 찾아가라. 그녀의 습관과 일상이 집약된 곳이 그녀의
집이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과거와 미래가 궁금하다면 그녀의 부모를 만나라. 그들의 말과 행동이 곧
그녀가 가진 과거와 미래다. 혹 그녀가 부모의 가난과 직업을 부끄러워하거든, 고려해라. 나중에 네가
실패했을 때 너를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
사랑한다고 가볍게 말하지 마라. 사랑한다는 말로 사랑이 표현될 수 있다는 생각은 슬프다. 세상에는
너무도 사랑이 흔해서 진짜를 구분하기가 어렵다.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달콤한 동화에 속지 마라.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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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콜릿우유처럼 유효기간이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상상력이다. 인간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생성해 내는 에너지다. ‘사랑
의 상상’을 살아라.
공부하는 것을 즐겨라. 남의 것을 베끼고 배우는 데에만 연연하지 말고, 네가 너의 질문을 만들어 너
에게 묻고 너 스스로를 가르쳐라. 진정한 배움이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질문함으로써 가르치는 것이다.
학문과 이론의 틀에 갇히지 말고 자유롭고 전복적인 사유를 즐겨라. 삶이란 지체 높은 현학의 인용이
아니라 실제의 쓸모를 창의하는 것이다. 네가 너 자신의 원본이 되어라. 그것을 인생이라고 한다.
너를 유혹하는 것들이 도처에 있을 것이다. 화려하고 중독적인 것들이 너를 들뜨게 할 것이다. 이 싸
움의 승패는 네가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지 않고 직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판타지는 아름다워 보
이고 현실은 한없이 비루해 보일 것이다. 네가 주연배우로 무대에 서고 싶다면 어두운 무대 뒤에서 단
역처럼 차근차근 연습을 해야 한다. 인생에서 엘리베이터가 없다.
너는 재미있게 살려고 태어났다. 재미가 없으면 삶의 의미도 없다. 재미있는 일이 없다면 세상에 없어
서가 아니라 네가 찾아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악기도 배우고 야구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요리도 해
라. 그 모든 것에 재미가 숨어 있다. 찾아서 키우고 즐길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어른이 돼서 일밖에
모르면 그건 무능한 것이다.
딸에게 주는 인생의 말들
네가 사람에게 멋지다는 말을 듣고 살기를 바란다면 값비싼 장식품이나 성형술로 꾸미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무엇이 멋진지 유심히 살펴보아라. 그리고 진심을 다해 그 사람에게 말해 주어라. “당신은 웃는
모습이 참 멋지군요!”
때로 늦는 것이 빨리 해내는 것보다 낫다. 신중해서 나쁠 건 없다. 깊게 생각하다가 기회를 놓쳤다면
그것은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홈쇼핑 호스트처럼
말하는 사람을 조심해라. 너를 현혹해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너를 초조하게 만들고 기회를 감추
고 빼돌릴 것이다. 네가 언제라도 할 마음을 먹으면, 인생에는 기회라는 재고가 언제나 비축돼 있다.
그것만이 옳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마라. 상대방이 근거 있는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 그걸 포용할 수
있어야 네 주장도 존중받는다. 너는 네 입장에서 보는 것이고, 그는 그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그렇
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네가 틀렸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생
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 방법도 있겠군요! 그래야 어울려 살 수 있다.
단호하게 말해야 할 때가 있다. 네 남자친구가 너를 가볍게 여기고 존중하지 않을 때, 네 상사가 너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을 때, 너는 단호한 어조로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경고해야 한다. 그 경고
에도 그들이 주의하고 자신의 실수를 뉘우치지 않는다면 너는 그 친구나 직장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들을 다루는 법, 그들을 대하는 원칙은 단 하나다. 한 번 두 번 물러서고 참아내면 그들이 옳은 것이
된다. 잃을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즉시 말해야 한다. 너를 지켜내면 아무것도 잃지 않은 것이 된다.
무슨 일을 하건 살펴가며 천천히 해라. 하수는 빨리 가려고 하지만, 고수는 완급을 조절하며 간다. 빨
리 이룬 것들은 금방 없어지거나 쉽게 무너진다. 인류가 이룬 지금의 모든 것들은 반복적으로 더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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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진행된 오랜 시행착오의 결과물들이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발효되고 숙성된 것들은 썩지 않고 향기를
품는다. 성공도 관계도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은 편을 갈라 어느 한쪽에 선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가운데 사이에 서는 일은 거의 없다. 누
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면 더더욱 중간에 서지 않는다. 나는 강한 자들만이 경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
다. 어느 한쪽에 소속된다고 그 한쪽이 온전히 나의 힘이 되지는 않는다. 그건 그들의 힘일 뿐이다. 가
끔은 경계에 서라. 서로가 너를 원할 때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네가 정하면 된다.
학교와 회사는 너에게 ‘어떻게’ 잘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익히게 한다. 또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보
고 평가할 것이다. 네가 생각 없이 성실하게 살면 너는 곧 그 ‘어떻게’의 졸개가 되고 만다. 그 ‘어ㄸ■
게’ 속에 너의 인생은 생략돼 있다. 네가 아무리 능숙하게 ‘어떻게’에 통달한 사람이 되더라도 새로운
‘어떻게’가 네 자리를 뺏을 것이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살
아라. 그래야 스스로에게 버림받는 일이 없게 된다. 목적을 알아야 행위가 쓸모를 가지게 된다.
세상이 만들어둔 ‘성공’이라는 정의와 공식에 갇히지 마라. 성공이라는 표지판만 보고 내달리다 보면
낭떠러지를 만나도 멈출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성공이 아닌 ‘성장’에 인생의 목표를 둬라.
성공은 남이 정해둔 결승점이지만, 성장은 네가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성공은 성공을 위해 건강과 행
복을 저당 잡히지만, 성장은 항상 스스로를 아끼고 돌본다.
매사에 심각하게 굴지 마라. 네가 걱정하는 대부분의 심각한 일들은 실제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밥을 버는 일은 너를 자주 경직되게 할 것이고, 너에게 에티켓과 애티튜드를 들이대며 감정 연출과 진
지함을 요구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너는 이 말을 떠올려야 한다. 나는 어떤 경우에라도 ‘행복하게 살
기 위해서’ 이 행성에 왔다. 즐거움이 없다면 우리가 이 행성을 여행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 누구에게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 마라. 바쁜 건 무능할뿐더러 나쁜 것이다. 네가 바쁘게 살아서
얻은 수익으로 사들이는 것들은 결국 네가 바쁘게 사느라 잃어버리거나 해진 것들이다. 네 건강과 가
족과 친구와 인생. 정말로 소중한 것들은 전부 바쁘지 않은 세계에 속해 있다. 조금 덜 가지도록 애써
라. 그래야 너는 누구에게든 “좋아, 나는 너와 함께할 시간이 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이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다. 시간이 진심이다.
아이가 장난감을 멀리하는 순간부터 어린 시절과 작별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네가 장난감이 많
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머와 농담 같은 것, 풍부한 얘깃거리 같은 게 어른의 장난감이다. 어른
들은 나이가 들수록 험담은 늘고 장난감은 준다. 가벼운 장난과 부드러운 농담은 경직돼 가는 몸과 마
음을 유연하게 만든다. 썰렁해도 누군가는 웃어준다.
입은 무거우면 좋다. 네가 비밀로 간직하고 지켜줘야 할 말이라면 그 어떤 친구에게도 옮기지 마라.
‘너만 알고 있어!’라는 말은 말을 옮기는 친구도 다른 친구에게 항상 하는 말이라는 걸 명심해라. 단
한 사람이 어느 때는 세상 전체가 되기도 한다. 세상 전부를 잃고 싶지 않으면 아무리 작고 사소한 비
밀이라도 지켜야 한다. 입방정이 친구를 잃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힘들 때 앓는 소리를 한다. 죽고 싶다거나, 내 팔자 탓이라거나, 사람은 공경에 처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비로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난다. 잦은 한숨과 한탄과 푸념은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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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의 운명에 달라붙기도 한다. 그러므로 절망의 말들을 습관적으로 내뱉지 말아야 한다. 기억해 둬라. 삶
은 자신이 자주 쓰는 말버릇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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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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