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 나쓰메 소세키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 자유와 에고를 획득한 대가로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현대인의 '고독'에 대한 치열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 인간의 마음과 에고이즘을 가차없이
파헤치며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마지막 끈을 찾으
려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 독서 나침반Ⅰ - 개관
『마음(心)』은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가 쓴 일본 근대문학의 최대 정전
(正典)이다. 소세키는 도쿄제국(東京帝國)대를 졸업하고 국비 유학생으로 2년간 영국 유학을 떠난다. 유
럽권의 선진문명은 후진국 청년인 그에게 열등감과 고독감을 가져다 주었고 이러한 고뇌가 자기 본
위라는 문학사상을 형성하는 토대를 이룬다. 도쿄제국대 교수직을 버리고 전문 작가가 된 것이나, 일
본정부가 주는 박사학위를 거부했다는 나쓰메 신화는 그의 약력을 말할 때마다 따라다닌다. 게다가
그는 1970년대까지 맥을 이은 다이쇼 교양주의라는 지식인 문화의 산파역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외국 독자인 우리는 왜 그가 일본의 국민작가가 되었고 어떻게 이 작품이 그들의 정전이 되었는가 하
는 점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즉, 소세키의 신화화와 『마음』의 정전화가 일본의 근대화와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이 소설은 메이지 시대 말인 191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도쿄제국대 학생인 내가 서술하는 선생님과
나 , 양친과 나 , 그리고 나에게 보내는 선생님의 서간체 서술인 선생님과 유서의 상중하로 구성된
다. 재산가의 외아들로 태어난 선생님은 청년기에 부모를 잃고 숙부에게 유산마저 사기당하면서 인
간에 대한 불신감을 지니게 된다. 자신은 그런 무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던 선생님은 그러나 뜻밖에도
자신 속에 내재된 추악한 이기심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하숙집 아가씨에 대한 사랑 때문에 친구 K와
경쟁한 끝에 결국 K를 자살로 내몰고만 것이다. 그러한 선생님의 그늘을 접하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사상에 감화된 나는 선생님의 내면세계를 더 알고 싶어 하지만 선생님의 수수께끼와 같은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고백의 모티브로 이루어진 선생님과 유서에서 그 전모가 드러나는 서술 장치가 이 소설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데, 금전관계에 얽힌 인간 불신이 봉건적 가부장제를 해체하고 어떤 사유 체계를 부여
하는가, 질투와 이기심으로 점철된 연애가 초래한 죄의식이 과연 근대적 주체의 성립을 보증하는가
하는 점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한 천황제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가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것으
로 만들어 버린 것처럼 작가가 사모님에게 내면세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정전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발표 후 90여 년이 지나도록 일본 독자와 더불어 작가 평론가
연구자에게 지지를 받았기 때문인데, 이는 이 작품이 근대소설의 규범이 될 만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갈등구조를 표출하는 장치로서 삼각관계의 연애에 담긴 남성중심주의적 근대,
당시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제국대 출신끼리의 지적인 교류, 거기에 개입되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회복의 이야기가 일본의 근대상을 읽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한편
메이지 정신을 위해 순사(殉死) 한다는 선생님의 유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메이지 일왕의
죽음과 그에 따른 노기 대장이라는 군인의 순사를 기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메이지 시대의 윤리와
가치로 근대 일본을 규정하였다는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렵다. (글쓴이 - 신인섭 건국대 일어교육과 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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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독서 나침반 Ⅱ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현재 일본의 1,000엔짜리 지폐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의 얼굴이다. 소세키는 생전에는 물론이고 작고한 이후에도 오래도록 일본인에게 사랑받
아 왔는데, 근래인 2001년 조사에서도 그는 여전히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아사히 신문〉설
문조사)로 남아 있다. 이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문학적 출발점이 나쓰메
소세키였음을 고백하는 평론가나 문학 연구자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은 일본인에게 소세키의 존재가
어떠한 크기인지를 충분히 말해 주는 사항들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왕정으로 바뀌어 메이지 시대로 접어들기 바로 전 해
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작은 고을을 지배하는 영주의 가산 집안이라고 하는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셈이었지만, 소세키가 태어난 시기는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어쩔 수 없이 가운이 기울기 시작
하던 때이기도 했다. 아이가 다섯이나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 나이 마흔이 넘었을 때 태어난 그의 존
재는 처음부터 남부끄러운 아이였고, 잉여적인 존재였다. 소세키는 어머니의 젖이 부족했다는 이유
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의 집에 맡겨져 키워지는데, 가난한 고물상이었던 그 집에서는 소세
키를 작은 바구니에 넣어 가게 앞에 놓아두었고, 어느 날 밤에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누나가 그 광경
을 보고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해 집으로 데려오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잉여적 존재라는 자기 인식
과 차가운 밤거리에 뉘여져 있던 아이라는 막막한 생의 초반의 기억은, 이후 어두운 원초적 기억으로
서 소세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소세키는 만 세 살이 되기 전에 또다시 다른 집에 양자로 보내지게 되었고, 양부모의 싸움 소리로 매
일 밤 잠을 깨야 하는 환경에서 자라야 했으며, 그러한 어두운 환경에서 벗어나 다시 친부모에게로
돌아온 것은 아홉 살 때였다. 만년에 씌어진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에는 너는 어디에서 태어났
지? , 네 진짜 부모는 누구지? 하고 물으며 그들 자신을 손가락질해 보이기를 종용하는 양부모가 등
장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소세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 존재인가 하는 질
문을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던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경험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라는 원초
적 불안감으로 각인되었다. 말하자면 존재의 근원에서 유리된 감각이 생에 대한 소세키의 기본 인식
이었던 셈이다.
소세키는 도쿄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1900년, 즉 20세기가 시작되던 해에 일본 문부성의 국비 유학
생으로서 영국으로 건너가 2년 동안 머무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소세키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발견해 낼 목적으로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것은 자신의 젖줄인 한문학과 영문학
의 차이를 발견해 내려는 작업이기도 했다. 동시에 선진국 영국에서 느껴야 했던 동양의 후진국 청년
으로서의, 마치 늑대 무리 속에 섞인 털북숭이 개와도 같다고 하는 자기 인식에서 비롯된 열등감과
고독감, 그리고 고뇌 끝에 도달한 자기 본위의 사상은 이후 소세키의 작품과 저술의 기반을 이루게
된다.
귀국 후 소세키는 도쿄대학의 강단에 서면서 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처음 발표한 『나
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뜻밖에 호평을 얻어 소설가로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 강단에 선 지 4
년, 나이 41세 때 소세키는 〈아사히 신문〉의 의뢰에 응해 당시로서는 최고의 엘리트로서 존경받을
수 있었던 도쿄대학 교수라는 안정된 신분을 박차고 전업 작가가 되는 길을 택한다. 이후 그는 인간
의 불안, 공포, 허무감 등을 꿈의 형식에 의지해 그려 낸 『꿈 열흘 밤』, 지방에서 도쿄로 올라온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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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사랑과 실연을 그린 『산시로』,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를 되찾기 위해 가정과 사회의 배척을
각오하고 이른바 불륜을 선택하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인간을 억압하는 인위적인 의식 (=제도)과 자연
의 발로의 당위성을 묻는 『그 후』, 친구를 배반하고 부부가 되었지만 사회에서 버림받은 채 쓸쓸히
살아가야 하는 남녀의 미묘한 정신적 고뇌를 그린 『문』, 아내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음에 절
망하여 동생으로 하여금 아내의 정절을 시험하게 하는 광기의 지식인을 등장시킨 『가는 자』 등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확고한 지위를 굳히게 된다. 만년에는 부부라고 하는, 인간에게 근원적인 관계 형
태의 구조를 집요하게 추구한 『한눈팔기』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주었으나 마지막
작품 『명암』을 완성하지 못하고 50세를 일기로 소세키는 세상을 떠났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발표한 작품으로 소세키는 불후의 이름을 남기게 된 셈이었는데, 그
가 주로 추구한 주제는 인간의 에고이즘, 사랑과 고독을 둘러싼 관계의 문제, 욕구인 자연과 그 자연
을 제어하는 규율의 문제 등이었다. 그리고 소세키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그의
문제의식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가
운데에서도 『마음』은 소세키가 작가로서 그의 위치를 굳건하게 만드는 데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공
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은 소세키의 전 작품 중에서는 물론이고 일본 근대 문학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많
이 연구되고 일반인에게도 가장 많이 읽힌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20세기의
일본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동안 『마음』이 평가되어 온 것은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를 가로채도록 만든 인간의 에고이즘 문제를 파헤쳤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와
함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던 선생님이 메이지 천황이 사망했을 때 천황을 따라 할복자살한 노기 장
군에게서 자극을 받고 그러한 메이지 정신에 순사하겠다는 유서와 함께 자살했다는 사실도 많은 독
자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자신의 에고이즘- 비윤리적인 행동을 메이지 정신에 반하는 것으로 여기고 뒤늦게나마 죽음을 선택하
는 주인공의 행동은 윤리를 지향한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윤리를 추구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다는
점에서 분명 하나의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추구한 윤리의 실체는 과연 아름
답기만 한 것이었을까.
선생님의 말 가운데 인구에 회자되는 말로서 나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기보다 외
로운 현재의 나를 견뎌내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로 가득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
두 그 대가로서 이 고독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라는 말이 있다. 이 구절은 오랫동안 『마
음』을 논하는 이들이 메이지 정신을 거론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해 온 부분이기도 한데, 이 구절에
따르면 선생님은 현재의 고독은 자유와 자립과 나로 넘치는 현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된
다. 말하자면 선생님은 나를 추구하는 경향, 즉 에고의 주장을 현대의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셈인
데, 이러한 현대관이야말로 선생님으로 하여금 동 시대- 메이지 시대의 마지막 시기를 비판하고 자신
이 살아온 메이지 시대야말로 윤리라는 가치를 구현한 위대한 시대였음을 말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즉, 동시대에 대한 비판이 그렇지 않은 - 나로 넘치지 않는- 메이지 시대를 특별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고, 선생님은 바로 그 점을 온몸으로 말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메이지 정신은 이후 근대 일본을 지탱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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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친구 K는 정신적 정진을 지향하면서 연애 감정을 약한 남성의 것으로 생각하는데, 불행
히도 그러한 사고는 두 사람의 청년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신이 아닌 (연애) 감정에 관해 대화하는
일을 주저하도록 만들었다. 말하자면 K에게 고백하지 못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고 한다면 문제의
원인은 여성에 대한 담론을 정신의 추구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한 메이지 시대 남성 공동체의, 여성
을 배제한 정신 중심사고에 있었던 셈이다.
선생님이 왜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아니라 젊은 나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만 했는지도 여기
서 의문이 풀릴 것이다. 말하자면 선생님에게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은 정신을 이해할 수 있
는 남성이어야 했고 동시에 자신의 죽음을 구현하는 메이지 정신을 가슴속 깊이 내면화해 줄 차세
대여야 했던 것이다. 젊은 학생인 나는 어떤 정신을 갈망하고 있었고, 선생님에게 다가간 것도 그
정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친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에서 그는 아버지보다 선생님을 택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부모(개인 또는 그에 따르는 신체적/혈연적 관계성)보다 이념(천황을 정신적 아버지로
생각하는 관념적 관계성)을 우선하는 일본적 근대의 시작을 볼 수 있다.
선생님은 자신의 죽음을 계기로 당신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싹틀 수만 있다면 만족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란 다른 한 생명의 소멸- 죽음의 조건이기도 했는데, 나는 새로운 생
명의 조건이 죽음에 있다고 하는 모순을 모순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로 깊숙이 내면화하게 된다.
메이지 정신이란 그런 의미에서 이념- 국가(천황)에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정신이었다. 그것은
또한 나- 개인의 실존적 신체성보다도 공 (공공성)이라는 관념을 우선하는 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마음』에서 보여준 그러한 추구가 공의 정신으로 찬양되면서 오늘날 예컨대 새로운 교과서
를 만드는 모임의 논리마저 뒷받침하는 것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도덕』을 쓴 니시베 스스
무는 나의 (사적/개인적) 이기심을 버리고 자신들의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고, 만화가 고바야시는 『전쟁론』에서 현대를 나로 넘치는 시대라고 규정하면서 역시 공의 정신
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가 결국은, 민족주의가 희박해져 전쟁이 나더라도 도망가겠다는 젊은이가 많은 현
대 일본의 현실을 개탄하며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젊은이들을 만드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
을 직시한다면 이러한 논리의 위험성은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은 나의 신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을 이기주의라 말하며 그러한 사고를 질타하기 위해 그것을 서양문명의 개인주의의 소산이며 현대
의 나쁜 경향이라고 강조한다. 말하자면 복고적 국가/국수주의가 그러한 논리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타자의 죽음에 대한 자기 동일화 - 천황에 대한 노기 장군의 죽음- 은 현대 일본에서는 불가능해진
나를 버릴 만큼의 신뢰가 거기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만 그것을 메이지 정신이라고 이
름붙이는 일로써 『마음』은 메이지 정신을 가치화했다. 선생님이 아내를 혼자 놔두고 죽은 것은
순사라는 정신이 남성에게만 허용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런 의미에서 『마음』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치를 부정하기에는 『마음』은 아직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비록 여성
이 배제된 것이었지만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 있고 관계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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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있다. 그리고 비록 그 내용은 국가(천황)을 위한 죽음을 정당화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한 시대
의 정신에 대한 절실한 추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작품은 한 시대의 정신을 추구할 만한 상
황을 박탈당한 채 불행한 근대를 살아왔고 아직껏 그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우리에
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지향점을 당시의 일본상으로 속단하는 것도 옳지만은 않다. 예컨대 노기 장
군이 자살했을 때 당시의 신문은 국민적으로 애도할 것을 부추겼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비국민인
것처럼 지목받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애도하러 모였지만, 다른 한편에는 그의 죽음과 그 죽음의 애도
를 향한 비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마음』과 같은 소설이 노기 장군의 죽음을 애도
하지 않는 동 시대를 비난/비판하기 위해 씌어진 소설일 수 있는데도 결과적으로 순사에 대한 긍정적
사고가 중심적이었던 것처럼 당시를 규정하는 의미화 작용을 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음』
은 그렇게 시대를 나타내는 한편으로 은폐하기도 하는 문학의 정치성을 보여 주는 전형의 하나로서
근대 일본의 단순치 않은 양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소설일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박유하 세종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 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 19 16)
186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첫 작
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전업작가로 나서, 『광부』, 『꿈 열흘
밤』, 『산시로』(1908), 『가는 자』(1912), 『마음』(1914), 『노방초』(1915) 등의 작품을 썼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를 화자로 일본 근대의 미래를 회의적으로 그려낸 것이고, 『꿈 열흘 밤』
은 인간의 불안, 공포, 허무감 등을 꿈이라는 형식을 빌려, 의식만이 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에게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들여다보게 만든 작품이다.
소세키 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은 한때 부모로부터 버림 받았던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의 기억으로 인해, 관계에 대한 갈망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여기서 소세키는 인간의 마음 , 즉
에고이즘과 죄의식의 작용을 치밀하게 묘사하면서, 인간과 인간을 이어 주는 마지막 끈 역시 그런 마
음 속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소세키는, 이 불투명한
생의 모습을 밝히기 위한 많은 작품을 남겨 작고한지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인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다. 또한 21세기에도 보다 넓은 독자층을 획득하고 있는 일본이 자부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 차례
선생님과 나
양친과 나
선생님과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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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분을 언제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고만 쓰고 본명은 밝히
지 않겠다. 그건 세상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될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편이 나한테는 자
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의 기억을 되새길 때마다 금세 선생님 하고 부르고 싶어진다.
펜을 들어도 마찬가지 기분이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니셜 따위는 쓸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선생님을 알게 된 건 가마쿠라에서였다. 그때 나는 아직 혈기왕성한 학생이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해수욕을 하러 간 친구에게서 꼭 오라는 엽서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얼마간의 돈을 마련해서 가 보
기로 했다. 돈을 마련하는 데 2~3일 걸렸다. 그런데 내가 가마쿠라에 도착한 지 사흘도 안 지났을 때,
그 친구한테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전보가 왔다. 전보에는 어머니가 병환이라고 씌어 있었지만
친구는 믿지 않았다. 그는 이전부터 내키지 않는 결혼을 부모님에게 강요당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정
말로 어머니가 병환이시라면 그는 돌아가야 마땅했다. 그래서 결국 그는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모처
럼 갔는데도 혼자 남게 되었다.
강의가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마쿠라에 있건 돌아가건 상관이 없었
던 나는, 묵고 있던 숙소에 얼마 동안 머무르기로 했다. 숙소와 바다가 아주 가까웠기 때문에 해수욕
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매일 수영하러 바다로 나갔다. 어떤 때는 바다가 대중탕처럼 검은 머리
통들로 빼곡히 차 있을 적도 있었다. 그 속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도, 그런 광경 속에 파묻혀 백
사장 위에서 뒹굴고 있거나 무릎에 와 부딪히는 파도를 느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일은 유쾌한 일
이었다. 내가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바로 그 군중 속에서였다.
해변 간이 탈의실에서 선생님을 본 것은, 선생님이 막 옷을 벗고 바다로 들어가려 하던 때였다. 나는
그때 선생님과 반대로 젖은 몸을 바람에 말리면서 물에서 올라온 참이었다. 특별한 정황이 아니었더
라면 나는 끝까지 선생님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바닷가는 혼잡했고 그런 만큼 내 머릿속
또한 산만했는데도 선생님이 금방 내 눈에 띈 건, 선생님이 어떤 서양 사람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
다. 팬티 하나만 입고 태연하게 서 있는 그 서양 사람이 얼른 봐도 신기하게 비쳤다. 얼마 지나자 그
는 옆을 돌아보더니 몸을 앞으로 굽히고 있던 일본 사람에게 뭐라고 한두 마디 했다. 그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나는 순전히 호기심에서, 나란히 서서 물가로 내려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나간
다음에도 나는 그냥 아까 앉았던 접은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서 멍하니 선생님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래도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얼굴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 어디서 만난
사람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신경 쓸 일 없이 편안한 상태였다기보다는 심심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래서 다음날에
도, 선생님을 만났던 시간대를 겨냥해 일부러 휴게소까지 가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양 사람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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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고 선생님 혼자 밀짚모자를 쓰고 들어왔다. 선생님이 어제처럼 왁자지껄한 해수욕객 사이를 빠
져나가 혼자 헤엄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갑자기 선생님을 뒤따라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얕은 곳을
지나 꽤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는 선생님을 목표로 팔을 크게 저어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생님
은 어제와는 달리 호선 같은 것을 그으며 묘한 위치에서 해안 쪽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목적은 결국 달성되지 못했다.
나는 다음날도 같은 시각에 바다로 나가 선생님을 봤다. 그 다음날도 같은 일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을 걸 기회도 인사를 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다 선생님의 태도는 사
교적이 아니었다. 일정한 시각에 초연하게 들어와 또다시 초연하게 돌아갔다. 주위가 아무리 시끌벅적
해도,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선생님은 늘 혼자였다.
어느 날, 선생님이 언제나처럼 빨리 물에서 나와 항상 두는 장소에 벗어 놓은 유카타를 입으려 했을
때, 웬일인지 유카타에는 모래가 잔뜩 묻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모래를 털기 위해 뒤로 돌아서서 유
카타를 두 세 번 털다가 유카타 아래 놓여 있던 안경이 떨어졌다. 나는 얼른 의자 밑으로 머리와 손
을 들이밀어 안경을 주웠다. 선생님은 고맙다고 말하며 안경을 내 손에서 받아 들었다. 다음날 나는
선생님의 뒤를 따라 바다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선생님과 같은 방향으로 헤엄쳐 갔다. 주택가로 치
면 두 구간쯤 연안 쪽으로 나아가자 선생님은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넓고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사람이라곤, 이 근처에서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었다. 정말 기분 좋은데요. 하고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때 이후 나는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선생님의 숙소를
찾아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어딘가에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생각이 안 난다고 말했다. 아직 젊었던 나는 그때, 상대방도 나와 같은 느낌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속으로 선생님의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얼마
동안 침묵한 끝에 글쎄요. 전에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다른 사람 아닐까요? 하고 말했
기 때문에 나는 묘한 실망감을 느꼈다.
월말에 나는 도쿄로 돌아왔다. 선생님이 피서지를 떠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나는 선생님하고
헤어질 때, 앞으로 가끔 선생님 댁을 방문해도 괜찮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그냥 네, 오시
죠. 하고 말했을 따름이다. 그 당시 나는 선생님과 꽤 친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더 자상
한 말을 예상하며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기대를 충족해 주지 못한 그 대답은 내 자신감을 조금
손상시켰다.
나는 이런 일로 곧잘 실망감을 맛보았다. 선생님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전혀 모
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가벼운 실망감을 되풀이 맛보면서도, 그렇다고 선생님한테서 떠나갈 기분
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불안에 휩싸일 때마다 앞으로 더 나아가 보고 싶었다. 앞으로
더 나아가면 내가 예감하고 기대하는 무엇인가가 문득 눈앞에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리라고 생
각했다. 나는 젊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 대해 내 젊은 피가 이렇듯 순수하게 움직이리라고는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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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지 않았다. 나는 왜 선생님에 대해서만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선생님이 돌
아가시고 난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따금 보였던 무뚝뚝한 말이나 냉담해 보이는 동작은 나를 멀리하려고 하는 불
쾌감의 표현은 아니었던 것이다. 가슴 아프게도 선생님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자신
에겐 가까이할 만큼의 가치가 없으니 그러지 말라는 경고를 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타인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했기 때문에 타인의 애틋한 감정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개강 즈음하여 오가는 길에 학생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새 학년에 대한 희망과 긴장감을 느꼈던 것도
잠시, 강의가 시작된 지 한 달 가량 지나자 내 마음은 또다시 이완되기 시작했다. 나는 뭔가 불만스러
운 얼굴로 거리를 나다니기 시작했다. 뭔가를 갈구하는 사람처럼 내 방을 둘러보았다. 내 머릿속에는
또다시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또 만나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선생님 댁을 방문했을 때, 선생님은 외출중이셨다. 두 번째로 간 것은 그 다음 일요일이었다
고 기억된다. 맑게 갠 하늘이 몸 속에 깊숙이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화창한 날이었다. 그날도 선
생님은 안 계셨다. 가마쿠라에 있었을 때, 나는 선생님에게서 언제든 대개 집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외출을 싫어한다는 말도 들었다. 두 번 갔다가 두 번 다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 나는 그 말을 떠올리
고 괜히 마음 한구석에 불만스런 감정이 생겼다. 나는 현관에서 금방 물러서지 않았다. 이전에 명함을
받은 일을 기억하고 있던 하녀는 내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사모님
인 듯한 사람이 대신 나왔다.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사모님은 선생님이 간 곳을 정중하게 가르쳐 주었다. 선생님은 매달 그날이면 꽃을 갖고 조시가야 묘
지에 묻혀 있는 어느 고인을 찾아가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방금 나가셨는데, 10분이 채 안 된
것 같은데요. 하고 사모님은 안됐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번
화한 거리로 나서서 한 구간 정도 걸어갔을 때, 나도 산책 겸 조시가야에 가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도 발동했다. 그래서 곧바로 발길을 돌렸다.
묘지 근처에서 선생님을 발견하고 내가 큰 소리로 부르자 선생님은, 내 뒤를 쫓아온 겁니까? 왜
죠...? 라고 물었다. 선생님의 태도는 침착했다. 목소리는 오히려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딱히 지적할 수는 없지만 어떤 그늘이 깔려 있었다. 선생님은 내 아내가 누구 무덤에 갔다고 이름을
말했나요? 라고 물으셨다. 아니라는 나에게 선생님은 말했다, 그렇겠죠. 그건 말할 리가 없겠지요. 처
음 만난 학생한테.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니까. 선생님 댁 묘지냐는 내 물음에, 선생님은 친구의 무덤
이라고만 답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부터 선생님 댁을 가끔 방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처음 인사
했을 때나 가까워진 후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말이 없었다. 어떤 때는 너무나
말이 없어 쓸쓸할 정도였다. 나는 처음부터 선생님을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신비함을 간직한 사람으
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는 가만있을 수 없는 느낌이 마음 속 어딘가에
강하게 작용했다. 선생님에 대해 이런 느낌을 갖는 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쩌면 나 혼자뿐이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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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직감이 나한테만은 후에 사실로서 입증되었기 때문에, 내가 젊어서 그렇다
고 하건 어리석다고 놀리건 간에 그것을 예측했던 자신의 직감을 어쨌든 미덥고 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에 들어오
려 하는 사람을 팔을 벌려 안아 주지 못하는 사람 -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방금 말했듯이 선생님은 항상 조용했다. 그리고 침착했다. 하지만 가끔 묘한 그늘이 얼굴을 스칠 때가
있었다. 창문에 검은 새 그림자가 비치듯이, 비치는가 하면 금방 사라지기는 했지만. 내가 처음으로
그 그늘을 선생님의 미간에서 본 것은 조시가야 묘지에서 불쑥 선생님을 불렀을 때였다. 나는 그 예
사롭지 않은 순간에, 이제껏 경쾌하게 흐르던 심장의 피가 한순간 멎는 느낌이었다. 그 그림자를 다시
본 것은, 묘지에 성묘를 같이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했을 때였다. 선생님은 나는 학생에
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다른 사람과 함께 그곳에 성묘하러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 아내도
아직 데려간 적이 없습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을 탐색하려고 선생님 댁에 드나드는 것은 아니었다. 나
는 더 말하지 않고 지나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의 내 태도는 내 방식 중에서도 오히려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부분 중의 하나였다. 나는 바로 그 때문에 선생님과 인간애 넘치는 따뜻한 교제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 호기심이 선생님을 향해 조금이라도 탐색적으로 움직였다면 두 사람
사이를 이어 주는 호감의 끈은 그때 가차 없이 뚝 끊어져 버렸을 것이다.
나는 한 달에 두세 번씩 꼭 선생님 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내 발길이 점점 더 빈번하게 선생님 댁을
향하게 되었을 무렵의 어느 날, 선생님은 갑자기 나를 보고 물었다. 학생은 왜 그렇게 자주 나 같은
사람 집에 오는 거지요?
왜냐고 하시지만,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방해 되십니까?
방해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말 그대로, 선생님한테는 귀찮다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선생님의 교제 범위가 매우 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하고 선생님이
말했다. 그러니까 학생이 와 주는 걸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자주 오는 거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 이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선생님과의 문답은 내게는 도무지 요령부득이었지만,
나는 그때 더 추궁하지 않고 돌아왔다.
그리고 또 나흘도 되지 않아 다시 선생님을 방문했다. 선생님은 객실로 나오자마자 웃었다. 또 왔군
요.
네, 왔습니다. 하고 나도 웃었다. 다른 사람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다면 분명히 기분이 나빴을 것
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정반대였다.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웠다. 나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하고 선생님은 그날 밤 또다시 전에 한 말을 되풀이했다.
학생은 아마 나를 만나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 고독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나한테는 학생을 위해
그 고독을 근본적으로 제거해 줄 만큼의 힘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조금만 더 있으면 바깥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겁니다. 얼마 안 가서 우리 집으로는 발길이 향하지 않게 될 겁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며 쓸쓸히 웃었다. 다행히 선생님의 예언은 실행되지 않았다. 삶의 경험이 부족
했던 그 당시의 나는 이 예언에 내포되어 있는 명백한 뜻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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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는 여전히 선생님을 만나러 갔고, 어느 사이엔가 선생님 댁에서 식사를 하곤 하게 되었고, 사모님과
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도쿄제국대학 출신(당대 최고의 엘리트)이었던 선생님이 왜 직업을 갖지
않고 살아가실까 하는 궁금증이 가끔 생겼지만, 나는 탐색하지 않는 우정에 만족하고 있었다. 선생님
과 사모님의 결혼에 대한 여러 궁금증도 나의 추측에 머물 뿐이었는데, 선생님의 아름다운 연애의 뒤
안에는 무서운 비극이 존재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비극이 선생님한테 얼마만큼
잔인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상대방인 사모님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사모님은 지금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 선생님은 그 일을 사모님한테 감춘 채 돌아가셨다. 선생님은 사모님의 행복을 파괴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생명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그 비극에 대해 지금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 그 비극 때문에 탄생되었다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연애는 앞서 말한 그대로였다. 두 사람 다 나한테는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사모님은
진중함 때문에, 선생님은 또 그 이상의 깊은 이유 때문에. 다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일이 한 가지 있
다. 꽃이 필 무렵 선생님과 함께 공원을 걷던 때, 사랑스러운 연인을 보며 선생님이 사랑은 죄악입니
다. 당신은 그걸 알고 있습니까? 라고 말했던 일이 그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더 이상 사랑이라는 말
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믿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선생님은 날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얼마 안 가
서 후회할 테니까요. 그리고 속은 대가로 잔인하게 복수를 하게 되는 법이니까요. 전에 그 사람 앞에
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놓으라고 시키는 겁니다. 나는
미래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현재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겁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기보다 외로운 현재의 나를 견뎌 내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로 가득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두 그 대가로서 이 고독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나는 이런 각오를 하고
있는 선생님한테 건넬 수 있는 말을 알지 못했다.
겨울이 왔을 때, 나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어머니한테서 온 편지에는, 아버지의
병세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사모님께 귀향할 여비를 빌리면서, 사모님의 어머니가 우
리 아버지와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병환 중인 아버지와 장기를 두면서, 나는 속으로 선생님과 아버지를 비교해 보았다. 두 사람 다 세상
의 눈으로 보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남의 인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 사람 다 제로였다. 그러면서도 장기를 두고 싶어 하는 눈앞의 아버지는 단순한 오락 상대로
서도 나한테는 어딘지 부족했다. 오락을 위해서는 한번도 오간 적이 없는 선생님은 오락을 통한 교제
에서 맛볼 수 있는 친밀감 이상으로 어느새 내 머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머리라고 하면 너무 차
가운 느낌이 드니까, 나는 가슴이라고 고쳐 말하고 싶다. 살 속에 선생님의 힘이 스며들어와 있다거나
핏속에 선생님의 생명이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해도 그 당시의 나에게는 조금도 과장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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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시 도쿄로 돌아온 나는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 선생님과 사모님은 아버지 병에 대해 걱정하며 돌연
한 사망으로까지 이어지는 신장병의 위험성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인간
은 건강하든 아니든 간에 무력한 존재지요. 언제 무슨 일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까요. 곧잘 왜, 하룻
밤 새에 죽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자연스럽게.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죽는 사람도 있지 않습
니까, 부자연스러운 폭력으로, 이를테면 자살처럼.
평소에 검소한 복장을 하고 있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 수는 적었지만, 선생님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선생님의 생활은 사치스럽지는 않아도 옹색해 보이도록 절약하는 식의
여유 없는 생활은 아니었다. 나는 선생님이 어떻게 놀고 지낼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재산에
관해 물었더니, 이래봬도 원래는 부자였지요. 라는 말에 이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집에
재산이 있다면 지금부터 정리를 잘 해두어야 할 겁니다. 내가 나설 일은 아니지만, 아버님이 건강하실
때, 받을 건 분명히 받아놓도록 하는 게 어떻습니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재산
문제니까요.
선생님의 말이 평소의 선생님 치고는 너무나 현실적인 데 나는 조금 놀랐다. 친척들이 대부분 시골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히 나쁜 사람이랄 것도 없다는 나의 대답에, 시골 사람은 도회지 사람보다 오히
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지금, 친척 중에 이렇다 할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고 말했지요. 하지만 악인으로 정해진 인간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 겁니까? 그렇게 처음부터 악인
으로 정해진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습니다. 평소에는 모두 다 좋은 사람이지요. 적어도 모두 보
통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여차하면 갑자기 악인으로 바뀌니 무서운 일이지요. 그러니까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겁니다.
여차하면의 의미에 대해 더 듣고 싶어 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돈이
지요, 돈을 보면 어떤 성인군자라고 해도 금방 악인이 되는 법입니다. 당신한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
겠지만, 나는 안 그런 것 같아도 집착이 아주 강한 사람이니까요. 남한테서 받은 굴욕이나 손해는 10
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잊지 않으니까요. 나는 남한테 속았습니다. 그것도 피를 나눈 친척한테 속
았지요. 나는 결코 그 일을 잊지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 앞에서는 좋은 사람인 것 같았던 그들은 아버
지께서 돌아가시자마자 용서 못 할 파렴치한으로 돌변했습니다. 나는 그들한테서 받은 굴욕과 손해라
는 짐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지고 살아왔습니다. 아마도 죽기 직전까지 지고 살아가야 하겠지요. 나
는 죽을 때까지 그 일을 잊을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아직 복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생각하
면 나는 개인에 대한 복수 이상의 일을 현재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만 증오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대표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모두 증오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그걸로 충분하
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위로의 말조차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당신은 정말로 진지한 겁니까? 선생님은 다짐하듯 물었다. 나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남을 믿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은 당신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당신만은 의심하고 싶지
가 않습니다. 당신은 의심하기엔 너무 단순한 것 같아요.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까
사람을 믿어 보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되어 줄 겁
니까? 당신은 진짜로 진지한 겁니까?
만일 제 생명이 진지한 거라면 지금 제 이야기도 진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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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내 목소리는 떨렸다. 알았습니다. 이야기하지요. 내 과거를 남김없이 당신한테 얘기해 주지요. 그 대
신.... 아니, 그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내 과거는 당신한테 그렇게 유익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듣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으니까 그런 줄 아십시오. 적당한 시기
가 오지 않으면 이야기 할 수 없으니까요. 나는 하숙으로 돌아와서도 어떤 중압감을 느꼈다.
가까스로 졸업 논문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고, 졸업장을 받은 날, 나는 시골로 부모님을 뵈러 갔다. 건
강이 매우 안 좋아진 아버지는, 죽기 전에 나의 졸업을 볼 수 있으셨다며 기뻐하셨지만, 그것을 본 나
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는 점차로 기력이 쇠약해져 갔다. 귀향 전에 마지막으로 선생님 댁에
들렀을 때, 선생님은 여행을 가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선생님께 편지를 보냈지만, 답
장은 끝내 오지 않았다. 취업할 것을 강력히 종용하시는 부모님 뜻에 따라 나는 다시 선생님께 취직
을 부탁하는 편지를 썼다.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송구스럽게도 천자님 병도 아버지 병과 비슷한 거 같구나. 하지만 괜찮겠지. 보잘것없는 나
같은 사람도 아직 이렇게 살아 있을 정도니까.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닥칠 것
같은 위험한 사태를 예감하고 있는 듯했다. 어느 날 천황 폐하의 서거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아버지는
그 신문을 손에 들고 아아, 천자님도 드디어 가셨구나. 나도... 라고 탄식했다. 뒤이어 메이지 천황이
죽자 따라서 할복자살을 한 노기 장군 이야기도 아버지는 신문을 보고 그 사실을 알았다. 노기 장군
님께 죄송하구나. 정말이지 면목이 없어. 아니죠. 저도 곧 뒤를... 아버지는 가끔 헛소리를 하기까지
했다.
이 때 즈음하여, 돌연 선생님으로부터 전보가 왔다. 한 번 만나고 싶으니까 올 수 있겠느냐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의사가 급격히 나빠진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언제든 최악의 사태가 올 수 있다
고 이야기를 한 상황에서, 아버지를 내버려 두고 도쿄로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되도록 간략한
말로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해지고 있다는 것을 덧붙였지만, 그걸로도 석연치 않아 자세한 내용을 편
지로 써서 그날 중으로 부쳤다. 편지를 부친 후 이틀 만에 또 전보가 왔다. 그 전보에는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밖에 없었다. 내 편지가 도착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전보를 쳤다는 사실에 석연
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병은 마지막 일격을 기다리기 직전까지 갔다. 온 집안사람들이 매일 밤,
운명의 선고가 오늘 내릴지 내일 내릴지 생각하며 아버지 곁을 지킬 때 형이 복도를 따라 들어와서
등기 우편물 한 통을 말없이 나한테 건네주었다. 그 우편물을 받아 든 나는 금방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보통 편지에 비하면 훨씬 무게가 나가는 것이었다. 뒤를 보니 거기엔 선생님의 이름이 또박또
박 씌어 있었다.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나는 곧바로 봉을 뜯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것
을 우선 품 속에 집어넣었다. 그 날은 병자의 상태가 유난히 나쁜 것처럼 보였다. 내가 화장실에 가려
고 자리를 뜰 때조차, 형은 어딜 가냐? 아무래도 상태가 좀 이상하니까, 되도록 옆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하며 보초병 같은 말투로 강요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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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아버지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나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가서 봉투를 찢었다. 안에서 나온
것은 가로세로로 줄이 쳐진 칸 안에 단아하게 쓰인 원고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 많은 양의 종이와
잉크가 나한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하고 놀랐다. 나는 동시에 병실 일에 신경이 쓰였다. 내가 이
편지를 읽기 시작해서 끝내기 전에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형이나 어머니나 아니
면 큰아버지가 부를 것임에 틀림없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불안해하면서 첫 페이지를 읽었다.
당신이 내 과거에 대해 물었을 때 대답할 용기를 갖지 못했던 나는 지금 당신 앞에 그것을 명백하게
말할 자유를 얻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당신의 상경을 기다리고 있을 동안에 또 사
라져버릴, 외부를 향한 자유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하지 않으면
나의 과거를 당신에게 간접 경험으로서 가르쳐 줄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
그렇게 굳게 약속했던 말이 완전히 거짓말이 됩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으로 말해야 할 것을 펜으
로 말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였다. 나는 계속해서 다음을 읽으려 했다. 그때 병실 쪽에서 나를 부르는
형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또 놀라서 일어섰다. 나는 드디어 아버지한테 마지막 순간이 온
거라고 각오를 했다. 어느 새 의사가 도착했고, 되도록 병자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뜻에서 또 관장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편안해 보이는 상태가 되었다. 의사는 돌아가면서, 만약의 사태가 일어
나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고 특별히 말해 놓고 갔다.
나는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은 병실에서 빠져나와 다시 선생님의 편지를 읽으려 했다. 책
상 앞에 앉자마자 또 형이 커다란 목소리로 불러 댈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에 부르면 그것이 마지막
이라는 두려움이 내 손을 떨리게 만들었다. 나는 선생님의 편지를 무의미하게 넘겨보았다. 하지만 그
것을 읽을 여유는 없었다. 제일 마지막 페이지까지 순서대로 넘겨보고서 또다시 원래대로 접어 책상
위에 놓으려고 했다. 그때 문득 마지막에 가까운 한 글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이 편지가 당신의 손에 들어갈 때쯤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겠지요. 벌써 죽고 없겠지요. 나는
섬뜩했다. 지금까지 술렁이던 가슴이 단번에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나는 또 거꾸로 페이지를 넘겼다.
그 때 내가 알려고 한 것은 단 하나, 선생님의 안부였다. 나한테 필요한 지식을 쉽게 전해 주지 않는
긴 편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접었다.
나는 또다시 아버지 상태를 보러 병실 문 앞까지 갔다. 그리고 병실을 나와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거기서 시계를 보며 기차 시간표를 알아봤다. 나는 갑작스레 일어나서 허리띠를 고쳐 매고 옷소매 속
에 선생님의 편지를 넣었다. 그리고나서 뒷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정신없이 의사한테로 달
려갔다. 나는 아버지가 앞으로 2~3일 더 괜찮으실지 어떨지에 대해 확실한 것을 물어 보려고 했다. 주
사건 뭐건 써서 연명시켜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다. 공교롭게도 의사는 외출 중이었다. 나는 가만히 앉
아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마음이 안정되지도 않았다. 나는 곧 인력거를 잡
아타고 역까지 서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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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는 역의 벽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어머니와 형에게 편지를 썼다. 아주 간단한 편지였지만 아무 말
않고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그 편지를 급히 집에다 전해 달라고 인력거꾼에게 부탁했다. 그
리고 비장한 태세로 도쿄행 기차에 올라타고 말았다. 나는 굉음을 울리며 달리는 삼등 열차 안에서,
또다시 소매 속에서 선생님의 편지를 꺼내 그제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나갔다.
【 나는 이번 여름에 당신에게서 두세 번 편지를 받았습니다. 당신이 부탁한 취직은 별문제가 아닙니
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내 자신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이대로 사람들
틈에 남은 미라처럼 존재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그때 나는 아니면 하는 말을 마음속에서 되풀이
할 때마다 섬뜩했습니다. 뜀박질로 절벽 끝까지 달려가 갑자기 밑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를 내려다본
사람처럼.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펜을 들지 않던 나로서는 내 생각대로 써지지 않는
것이 상당히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당신에 대한 의무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는 쓰고
싶습니다. 의무와는 상관없이 나의 과거에 대해 쓰고 싶은 것입니다. 실제로 당신이라는 사람이 존재
하지 않았다면 내 과거는 끝끝내 나의 과거로서, 남한테 알려지는 일 없이 끝났겠지요. 나는 몇천만명
이나 되는 일본인 중에서 단 한 사람, 당신에게만 내 과거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당신은 진지하기
때문에, 당신은 진지하게 인생 자체에서 살아가는 교훈을 얻고 싶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나는 어두
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당신의 눈앞에 주저하지 않고 던져 보여주겠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둠을 잘 보고 그 중에서 당신한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얻어 주십시오.
내가 양친을 잃은 것은 아직 스무 살이 채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장티푸스라는 무서운 병으로 아
버지와 어머니가 연달아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두 사람이 없는 세상에 막막한 상태로 남겨지게 되었
습니다. 부모님은 돌아가시면서 작은 아버지에게 나를 부탁하셨습니다. 작은아버지는 모든 것을 도맡
아 처리해 주었고, 내 희망대로 도쿄로 갈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나는 작은아버지를 믿고 있
었을 뿐 아니라 늘 감사의 마음을 갖고 고마운 분으로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아버지의
딸인 사촌 여동생과 결혼을 강요하던 작은아버지의 뜻을 거절하자,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
다. 내 세계는 손바닥 뒤집듯이 변했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나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지금까지 작은아버지에게 맡겨 두었던 집안 재산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고, 대면을
회피하는 작은아버지가 사실은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마디
로 말하자면 작은아버지는 내 재산을 속였던 것입니다. 나는 분노했습니다. 망설였습니다. 소송을 하
게 되면 해결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재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재산 일부만 받은 채 고향을 영원히 떠나버렸습니다, 작은아버지 얼굴을 다
시는 보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그리고는 도쿄에 군인의 미망인과 그 딸이 살고 있는 하숙집에서 머물었습니다. 내 기분은 고향을 떠
날 때부터 이미 염세적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돈에 관해 인간을 의심했지만, 사랑에 관해서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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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직 인간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하숙집의 딸이 연주하는 서투른 음악조차 즐겁게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여자란 어차피 어리석은 것이다라고 이론적으로 생각하고 그 정도로
여자를 업신여겼던 나였지만, 아무리 해도 그 아가씨만은 업신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내 이론은 그녀
앞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녀에 대해 거의 신앙에 가까운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
었습니다. 내가 종교에만 쓰는 이 단어를 젊은 여자에게 쓰는 것을 보고 당신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신앙심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아주머니(그녀의 어머니)의 태도를 여러 가지로 종합해 보고 내가 이 집에서 충분히 신뢰받고 있
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나는 과감하게 아주머니에게 아가씨를 달라는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그때까지도 몇 번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저하다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또 한 사람의 남자가 끼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남자가 이 집의 한 사람
이 된 결과는 내 운명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만약 그 남자가 내 생활의 행로를 지나지 않았
다면 아마도 이런 긴 편지를 당신한테 써서 남길 필요도 없었겠지요. 나는 마물(魔物)이 지나는 앞에
서서 손을 써볼 수도 없이 그 순간의 그림자로 말미암아 일생이 어둠 속에 가라앉게 되었는데도 모르
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여기서 그 친구의 이름을 K라고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K는 나와 고향이 같은 어릴 때부터 친했
던 친구였습니다. 부모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이 원하던 공부를 하여 집안에서 경제적 도움이 모두 끊
긴 K가 곤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저는, K의 강한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그를 도울 방법을
고민했고, 같은 하숙에 살면서 그가 모르게 그를 돕자고 결론을 지었던 것입니다.
늘 무뚝뚝했던 K와 아가씨가 둘이 이야기하는 장면을 몇 번 목격하게 되면서, 나는 강렬한 질투에 사
로잡혔습니다. 하지만 K의 태도는 평상시와 전혀 다름이 없었고, 나는 나의 질투가 괜한 오해에서 비
롯된 것이기만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K는 급작스레 나에게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듣는 순간, 나는 한 발 늦었다는 느낌과 함께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
는 K에게 내가 이미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노라고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나의 사랑을
쟁취해야겠다는 일념에 불탔습니다.
나는 나에게도 마지막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마음속에서 들었습니다. 나는 K보다 먼저, 그것도
K가 모르는 사이에 일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각오했습니다. 나는 잠자코 기회를 노리다가, 병
을 앓는 척 하였습니다. 그래서 K가 학교에 간 사이, 나는 아주머니에게 그녀를 나에게 달라고 말했습
니다. 아주머니는 좋습니다. 드리지요. 라고 너무도 쉽게 대답했습니다. 이야기는 간단하고도 명료하
게 끝나 버렸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마 15분도 안 걸렸겠지요.
K에 대한 내 양심이 부활한 것은 내가 대문을 열고 현관에서 객실로 지나갈 때, 그러니까 언제나처럼
그의 방을 지나려고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처럼 책상을 향해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습니
다. 그는 언제나처럼 책에서 눈을 들어 나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이제 왔느냐고는 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병은 이제 괜찮냐, 병원에라도 갔었냐?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K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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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에 무릎을 꿇고 빌고 싶어졌습니다. 더구나 내가 받은 그때의 충동은 결코 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K와 내가 단 두 사람만이 벌판 한 가운데 서 있었더라면 나는 분명히 양심의 명령에 따라 그 자
리에서 그에게 사죄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쪽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 자연스러운 감정
은 금세 거기에 묶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영구히 부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K한테 어떤 변명도 정당한 것이 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비겁한 나는 결국 내 자신이 직접 설명하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나는 그 상태로 2~3일을 지냈습니다. 그 2~3일 동안 K에 대한 불안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5~6일이 지난 후, 아주머니는 갑자기 나한테 K한테 그
일을 말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자기
가 이야기 하니 묘한 얼굴을 하더라면서, 왜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나는 K가 그때
무슨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아주머니한테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특별히 무슨 말은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주머니의 말을 종합해보면 K는 이 최후의 타격을 놀라움 속에서도 침착하게 받아들인 모양이었습니
다. K는 아가씨와 나 사이에 맺어진 새로운 관계에 대해 처음에는 그렇습니까. 하는 한마디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학생도 기뻐해 주세요. 하고 말하자 그는 비로소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축하드립니다. 하고 말하고 나서 자리를 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차 마시는 방의
장지문을 열기 전에 또 아주머니를 돌아보며 결혼식은 언제인가요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나서
뭔가 선물을 하고 싶은데, 저는 돈이 없어 드릴 수가 없군요.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주머니 앞에
앉아 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막혀 오는 듯한 괴로움을 느꼈습니다.
K가 조금도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은 이틀이 지나면서, 나는 계략으로는 이겼지만 인간으로는
졌다. 하는 느낌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 쳤습니다. 그리고 K가 무척이나 경멸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
에 혼자 얼굴을 붉혔습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생각하다가 어쨌든 다음날 아
침까지 기다리자고 결심한 것은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에 K는 자살을 해버린 것입니
다.
그의 시체를 처음 발견하고 나는 덜덜 떨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나는 곧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편지에 눈이 갔습니다. 그것은 예상대로 내 앞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정신없이 봉을 뜯었습
니다. 하지만 안에는 내가 예상했던 말은 한 마디도 씌어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한테 얼마만큼 괴
로울 말이 그 안에 씌어 있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머니나 아가씨 눈에 띈다면 얼마
만큼이나 경멸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도 느꼈었습니다. 나는 잠깐 훑어보고 나서 우선 다행이라고 생
각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그리고 추상적이었습니다. 나는 의지가 박약해 앞날에 전망이 없으니까
자살한다는 말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한테 신세를 진 데 대한 감사의 말이 아주 간단
하게 그 다음에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보살펴 주는 김에 사후의 뒤처리도 부탁하겠다는 말도 있었습
니다. 필요한 사항은 모두 한마디씩 씌어 있는 가운데 아가씨의 이름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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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끝까지 읽고서 K가 일부러 회피한 거라는 것을 금세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더 가슴 아프게 느낀
것은 마지막에 남은 먹으로 쓴 것처럼 보이는, 더 빨리 죽었어야 했는데 왜 지금까지 살아 있었을까
하는 의미의 글귀였습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접어놓고 다시 봉투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나
는 일부러 그것을 사람들의 눈에 띄도록 원래대로 책상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뒤돌아보고선 장지
문에 튄 피를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K의 사후에 나는 몇 번이나 왜 자살한 것일까 하는 질문에 시달림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내 양심은
그때마다 따끔따끔 찔리듯 아팠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 속에서 빨리 네가 죽였다고 고백해 버리
라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내 대답은 누구한테나 똑같았습니다. 나는 다만 그가 내게 남긴 편지 내용
을 되풀이할 뿐, 다른 말을 한마디라도 덧붙이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사를 하고 두 달 정도 지난 후에 나는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고, 졸업하고 반년도 안 지났을 때, 나
는 아가씨 - 그러니까 지금의 내 아내- 와 결혼했습니다. 나도 아가씨도 행복해보였습니다. 하지만 내
행복에는 검은 그림자가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행복감이 최종적으로 나를 슬픈 운명으로
이끄는 도화선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가고 없는 친구에 대한 내 느낌은 언제까지고 지속되었습니다. 나는 아내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때,
갑자기 K에게 위협당합니다. 말하자면 아내가 중간에 서서 K와 나를 언제까지고 이어 놓고는 떼어 놓
지 않는 것입니다. 차라리 있는 그대로 아내한테 털어놓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죽은 친구에 대한 것과 똑같은 선량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참회의 말을 했다면 아내는
기뻐하면서 눈물로 내 죄를 용서해 주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나에게
이해타산이 있어서 그랬을 리는 없습니다. 나는 단지 아내의 기억에 어두운 한 점을 새겨 놓는 것이
가슴 아파 털어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방울의 잉크라 하더라도 그것을 가차 없이 순백의 깨끗한
영혼에 뿌리는 일은 나한테는 커다란 고통이었다고 이해해 주십시오.
나는 외로웠습니다. 모든 곳에서 외따로 떨어져 이 세상에 혼자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 적도
자주 있었습니다. 동시에 나는 K가 죽은 원인에 대해 몇 번이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결국 K가 나처럼
단 홀로 남겨져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해 돌연히 죽은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
율했습니다. 나도 K가 걸은 길을 K와 똑같이 걸어가고 있는 거라는 어떤 예감이 이따금 바람처럼 내
가슴을 스쳐 지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나는 이런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처음으
로 당신을 가마쿠라에서 만났을 때도, 당신과 함께 교외를 산책했을 때도, 내 기분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내 뒤쪽에는 언제나 검은 그림자가 따라다녔습니다. 나는 아내를 위해 생명을 질질 끌어
가며 세상을 걸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한창 더운 여름에 메이지 천황이 서거했습니다. 그 때 나는 메이지의 정신이 천황에서 시작되
어 천황에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강하게 메이지의 영향을 받은 우리가 그 뒤에 살아남
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내한테 그렇게 노
골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웃으며 상대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나한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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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순사라도 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놀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달 정도가 지났습니다. 장례식날 밤, 나는 언제나처럼 서재에 앉아 예포 소리를 들었
습니다. 나한테는 그 소리가 메이지 시대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알리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나
는 신문에서 노기 장군이 죽기 전에 써서 남기고 간 것을 읽었습니다. 세이난 전쟁 때 적에게 깃발을
빼앗긴 이후, 죄송한 마음 때문에 죽자죽자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하다 보니 오늘까지 살아왔다고 하
는 의미의 글귀를 봤을 때, 노기 장군이 그렇게 살아온 35년이 고통스러울지, 아니면 칼로 배를 찌른
한순간이 고통스러울지, 어느 쪽이 고통스러울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자살할 결심을 했습니다. 노기 장군이 죽은 이유가 나한테 잘 이해되지 않는 것
처럼 당신한테도 내가 자살하는 이유가 명확하게 납득이 안 될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시대의 흐름에서 오는 차이니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는 개인이 원래 갖고 태어난 성격의
차이라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나라고 하는 이 이상한 인간을
당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써 온 편지 속에서 내 자신을 남김없이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아무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이 편지가 당신의 손에 들어갈 때쯤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겠
지요. 이미 죽고 없겠지요. 나는 나의 과거를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다른 사람한테 참고로 제공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내만은 단 한 사람의 예외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나는 아내한테는 아무것도 알
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내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갖는 기억을 되도록 순백의 상태로 보존해 주고 싶
은 것이 내 유일한 희망이니까, 내가 죽은 다음에도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당신한테만 고백한 나
의 이 모든 비밀을 가슴 속에 간직해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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