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참된 자유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참된 자유를 억압하는 요인과 신장하는 요인을 5가지(자
유개념, 자유와 질서, 자유와 도덕, 자유와 법, 자유와 정치)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제시한 자유론의 자유주의가 이성의 힘을 강조하는 자연권사상, 개혁의 방향과 원칙이 없는 보수주의,
그리고 원시사회에 대한 동경에서 나온 공동체주의와 비교할 때 한국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 Short Summary
자유가 위기에 처해 있다. 역사 교과서에 명시된 ‘자유’를 없애버렸고, 헌법에서도 이 단어를 빼는 내
용의 개헌을 시도하기도 했다. 경제할 자유, 언론ㆍ표현의 자유도 제약하고 있다. 또 시민은 자유로이
주택을 구입하여 주거지를 바꿀 자유를 빼앗겼고, 기업인들은 쌓여가는 규제 때문에 기업가정신이 위
축되어 정치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신세가 되었다. 또 ‘코로나19’의 확산에 대한 시민의 공포심을 틈타
서. 영업ㆍ집회ㆍ신앙의 자유뿐만 아니라 이동의 자유 등 평범한 일상의 자유까지도 빼앗기고 있다.
참된 자유는 강제의 부재다. 강제할 자유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시민이 타인을 강제하지 않는 한
정부에도 시민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강제란 위협을 통해 타인을 나의 뜻에 예속시키는 행동이다. 자
신이 원하는 행동이 아니면 하청업자를 망하게 만들겠다는 원청회사의 위협은 강제다. 기업들의 가격
담합으로 인해 소비자가 담합에 의해 정한 값 외에는 다른 가격으로 상품을 구입할 수 없는 경우도 강
제에 해당한다. 이렇게 자유가 침해되면 경쟁의 자유를 확립하기가 어렵다.
한편 법에 대한 인식에 따라 자유를 신장할 수도 억압할 수도 있다. 법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명령
으로 이해하는 경우 이는 자유를 억압한다. 명령법을 가지고는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그래서 강
제를 막을 사적 영역을 확립할 수 없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 될 개인의 사적 영역을 확
립하는 것이 고전적 자유주의의 도덕적 원칙이며, 이것이 인격과 소유의 존중, 정직성, 진리, 인권, 법
앞의 평등 같은 정의의 규칙이다. 정의의 규칙을 법학적으로 해석한 것이 법의 지배(법치)다. 법치란
법이 법다우려면 정의의 규칙에 해당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정의의 규칙에 해당되는 법이 개인의
자유영역을 확립하고 그런 법을 집행하는 경우에만 행사되는 국가의 강제만이 정당한 강제다.
이 책은 참된 자유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참된 자유를 억압하는 요인과 신장하는 요인을 5가지(자
유개념, 자유와 질서, 자유와 도덕, 자유와 법, 자유와 정치)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제시한 자유론의 자유주의가 이성의 힘을 강조하는 자연권사상, 개혁의 방향과 원칙이 없는 보수주의,
그리고 원시사회에 대한 동경에서 나온 공동체주의와 비교할 때 한국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 차례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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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제1부 참된 자유를 찾아서
1 자유와 강제
2 다양한 자유론과의 대비
3 경제적 자유란 무엇인가
4 경제적 자유는 모든 자유의 보루
제2부 자유와 질서
5 자유와 자생적 질서
6 자생적 질서관의 선구자들
7 자생적 질서로서의 시장질서
제3부 자유와 도덕
8 자유의 도덕은 문화적 진화의 선물
9 사회주의의 도덕적 기원
10 사회생물학의 치명적 오류
제4부 자유와 법
11 자유를 지키는 법: 노모스
12 자유와 법치주의
13 법과 경제학의 만남
14 자유와 정의
15 분배정의의 치명적 문제
제5부 자유와 정치
16 자유와 민주주의
17 주권재민 사상의 치명적 오류
18 삼권분립은 실패했다
맺는말: 자유와 자유주의의 미래
참고문헌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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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민경국 지음
참된 자유를 찾아서
자유와 강제
자유의 가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으려면 올바른 자유 개념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인류의
문명과 번영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어야만 참된 자유다. 가난을 몰고 오는 자유는 쓸모없는 자유다.
인류를 원시사회로 이끌어가는 자유는 결코 참다운 자유가 될 수 없다. 대립과 갈등, 또는 분열과 미
움을 조장하는 자유 개념, 역사를 왜곡하고 파멸을 가져오는 자유 개념도 쓸모가 없다. 우선 참된 자
유 개념을 찾기 위한 첫걸음은 자유의 구분이다. 자유 개념이 제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것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자유의 소극적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 개념이다.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 소극적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계약의 신성함이다.
계약을 자유로이 체결한 사람은 계약조건이 까다롭다고 해도 자율적인 인간으로 인정받는다. 계약이란
자율적인 당사자의 선택의 결과다. 그래서 법은 노예계약을 제외하고는 모든 계약을 집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온정주의에서처럼 국가가 각 개인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라도 하는 것처
럼 간섭한다. 자유의 영역은 울타리를 통해, 다시 말하면 정의로운 행동규칙을 통해 설정된다. 주목할
것은 개인의 자유는 행동의 도덕적 품질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적극적 자유는 그렇지 않다. 자유를 개인에게,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행동의 품질을 따진다. ‘불합리한’ 욕구나 목적, 탐욕적 삶, 정념에 치우친 행동은 자유롭지 않다. 도박
이나 알코올 중독자는 부자유하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행하는 데 있다. 그런
일을 행하도록 지시하는 법은 인간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한다.
토머스 힐 그린은 적절한 자유는 시장에는 없다고 주장했다. 교환관계는 단순히 주관적 선택을 극대화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린의 그 같은 생각은 복지국가철학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복지를
증진하는 국가간섭은 자유를 증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시장을 반대하는 것은 불평등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가 상업적 본능에 의해 오염될수록 우리의 공적 본능이 억제된다는 까닭에서였다.
자유에 대한 그린의 분류를 유행시킨 인물이 러시아 태생의 영국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이었다. 벌린
은 적극적 자유에 연루된 위험성을 지적했다. 적극적 자유는 전체주의를 위한 수단인 데 반해 소극적
자유는 자유주의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는 시민에게 고도의 도덕성을 지닌 자아를 요
구한다. 개인의 높은 차원의 목표를 계급이나 민족 같은 집단의 목표와 동일시하면 그 길은 전체주의
다. 이와 같이 벌린은 20세기 전체주의의 원인을 적극적 자유에서 찾았다.
그렇다고 벌린이 시장을 옹호한 것은 아니다. 무제한의 경제적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동안에는 빈곤과
질병, 무지로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시장에서 약자 또는 가난한 자가 법적 권리를 향
유한다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도 했다. 어쩠든 벌린이 적극적 자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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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도 소극적 자유만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그 자체 목적으로 여겼
다. 한 사회를 유지하려면 하나의 가치만을 추구할 구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가치 다원주의자였으
나, 두 가지 자유가 갈등할 때, 갈등을 해결할 규칙이 없다는 점이 다원주의의 치명적 결함이다.
국가주의를 옹호한 토머스 홉스는 자유를 ‘외적 장애물이 없는 상태’라는 소극적 개념으로 사용했다.
그 장애물에는 물리적 성격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고 싶지만, 높은 장벽이나 건
너갈 수 없는 강이 가로막고 있다면, 강이나 장벽은 물리적인 장애다. 그런 것들 때문에 나는 자유롭
지 못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런 자유 개념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말하는 사회관계에 적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회과학의 핵심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소극적이면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기술하는 ‘강제(coercion)의 부재’가 다양한 자유 개념 가운데 가
장 적합하고 현실적인 자유 개념이라고 본다. 이 자유 개념이야말로 인류문명과 번영의 역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문명화된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도덕과 법의 원천도 그런 자유 개념이다.
자유는 강제의 부재: 참된 자유는 강제의 부재다. 강제할 자유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시민이 타인을
강제하지 않는 한 정부에도 시민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강제란 위협을 통해 타인을 나의 뜻에 예속시
키는 행동이다. 자신이 원하는 행동이 아니면 하청업자를 망하게 만들겠다는 원청회사의 위협은 강제
다. 기업들의 가격담합으로 인해 소비자가 담합에 의해 정한 값 외에는 다른 가격으로 상품을 구입할
수 없는 경우도 강제에 해당한다. 이렇게 자유가 침해되면 경쟁의 자유를 확립하기가 어렵다.
경제적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는 경제적 자유, 참정권을 의미하는 정치적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언론ㆍ사상ㆍ집회의 자유 같은
시민적 자유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적 자유는 개인의 자유와 근본적으로 상이한 자유 개념
을 전제로 한다. 언론ㆍ출판ㆍ학문ㆍ사상의 자유 등이 주로 엘리트의 자유인 데 비해, 경제적 자유는
보통 사람의 자유다. 그런데 좌파는 다른 자유에 비해 경제적 자유를 무시하거나 적어도 경시하는 경
향이 있다. 그런 경향의 원천은 마르크스 사상이다. 경제가 모든 사회구조를 만드는 기반이기 때문이
다. 특히 상부구조로서 사상과 제도, 도덕도 통제된다고 보았다. 경제적 자유와 ‘신자유주의’를 모든
사회악의 근원으로 보는 것은 경제결정론 때문이다. 사유재산은 자유의 원천이므로 마르크스가 자본주
의 혁명의 제1 순위를 사유재산 철폐로 본 것은 당연하다. 주목할 것은 경제적 자유를 무시하면, 정신
적ㆍ정치적 자유도 유린되어 결국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전체주의의 독재라는 점이다.
경제적 번영을 위한 경제적 자유: ‘경제적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해답의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
프레이저연구소 또는 헤리티지재단이 매년 발표하는『세계경제자유 보고서』다. 이에 따르면 경제적 자
유를 결정하는 범주는 다음과 같다. ‘① 정부의 지출 규모, ② 내국인 또는 외국자본의 투자에 대한 규
제, ③ 법률 구조와 소유권의 안정성, ④ 건전한 통화(인플레이션 수준), ⑤ 쿼터 및 관료의 수입 지연
같은 비관세장벽과 관세장벽, ⑥ 내국인 또는 외국 금융기관에 대한 금융 규제, ⑦ 노동시장 규제, ⑧
창업, 허가, 기업퇴출과 관련된 기업 규제, ⑨ 소득세와 법인세를 비롯한 기타 조세 부담’
이 보고서는 경제적 자유를 제약하는 원천을 국가에서 찾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 없이는 사회
발전을 생각하기 어렵지만, 국가가 그런 발전을 제약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국가
는 자유를 억압하는 강제와 항상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규제가 적을수록, 조세와 정부지출이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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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수록 시민은 자유롭다. 따라서 경제적 자유의 이상은 ‘큰 시장, 작은 정부’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가 많은 나라일수록 경제성장률도 높고, 고용도 증가
하고, 저소득층의 소득도 높았다. 그리고 부패도 적고, 교육수준도 높아지고, 주거환경도 깨끗해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아울러 보고서는 경제적 자유가 높을수록 소득양극화가 심화된다는 주장
도 입증할 수 없는 허구라는 것, 그리고 경제적 자유가 높을수록 경기변동의 폭도 적어진다는 것을 보
여주었다. 경제적 자유가 위기의 장본인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는 경제적 번영의 열쇠라는 것, 경제적 자유가 적을수록 성장의 침체, 실업 증가, 양극화,
빈곤의 증가 등 궁핍화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믿어도 좋다.
흥미로운 것은 경제적 자유가 가난한 사람도 중산층이나 부자가 될 다양한 기회를 최대로 마련해준다
는 사실이다. 개천에서 사는 가재, 붕어, 개구리도 용이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경제적 자유다.
경제적 자유는 모든 자유의 보루
경제적 자유가 흥해야 민주주의도 흥한다: 벤담을 비롯한 19세기 철학적 급진파는 시민적 자유와 정치
적 자유, 즉 민주주의와 대중선거가 모두에게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유럽의
경우를 보면 그 인과관계는 바뀌었다. 봉건시대의 폭정을 극복한 것은 경제적 자유였다. 봉건사회에서
사람들은 신분상으로 불평등했다. 이에 따라 경제활동도 불평등했다. 계급에 따라 적용하는 법도 달랐
다. 귀족은 약자에 대해 특권을 향유했다. 상인들은 이런 사회구조에서 적절히 행동할 수 없었다. 이런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극복한 것이 경제적 자유였다.
경제적 자유의 확립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 자생적으로 형성되어 보편화된 ‘상관습법’이다.
그리고 이런 법도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상인단체인 길드가 직접 집행했다. 이런 법 규칙들이 유럽 전
역으로 확산되었고, 오늘날 유럽이나 그 밖의 지역의 민법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우
리가 주목하는 것은 상관습법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다. 첫째로, 그것은 상인에게는 물
론 생산자들에게도 광범위하게 경제적 자유를 허용했다. 둘째로, 법 규칙이 특정 계층이나 지역 출신
을 우대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보편적이었다는 점이다.
경제적 자유의 등장과 함께 발전한 것이 중산층이었다. 경제적 번영으로 인해 교육받은 중산층이 두텁
게 형성되었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자유로운 기업가들, 자본가들, 심지어 노동자들도 재산가가 되었다.
그들이 두터운 중산계층을 형성했다. 그들은 과거에 대부분 봉건적 지배자의 가신이었거나 농노였던
사람들이다. 무산자들, 즉 봉건사회에서 차별받던 계층이었다. 그들은 과거의 정치질서에 도전하는 대
신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유럽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와 헌법적 보장을 요구했다. 민주
주의 시대, 열린 시장의 시대, 자본주의의 시대가 이렇게 해서 서구사회에 꽃을 피우게 되었다.
유럽사회의 간략한 역사적 개관을 살피면,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에 뒤이어, 그리
고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생겨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진화 과정은 비단 서구사회에서만 목
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양 사회에서도 목격된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비록 제한적이었지
만 경제적 자유가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다. 이런 번영에 뒤이어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가 확보되었다.
산업화에 뒤이어 민주화가 달성된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가 민주주의를 불렀다. 좌파가 그리워하던
민주정치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도 자유경제를 통한 경제발전 덕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과
정을 중국과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중국은 민주화, 즉 정치적 자유의 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될 잠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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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이 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와 번영에 뒤이어 나타날 정치적 자유로의 진화 과정이 정부의 강압에 의
해 봉쇄당하고 있다. 특히 국가 주석 시진핑은 중국에 사회주의적 독재체제를 세웠다. 그 체제는 세계
에서 가장 많은 자유를 향유하던 홍콩마저 독재체제의 희생물이 되게 했다. “사적 소유란 술보다 더 위
험하다”라는 엘리트주의적인 믿음이 지배하던 과거의 인도를 보라! 경제적 자유가 봉쇄된 채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가 시행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의 배제는 민주주의를 부패시켰고, 민주정치의 발
전도 정체시켰다. 아무튼 시장경제를 가진 민주주의만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경제적 자유의
융성은 정치적, 그리고 시민적 자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요컨대 경제적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경제적 자유를 침해
하는 성향이 있어서 오늘날에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통치자들이 경제적 자유는 물론이고 민주주의도
소멸시키고 있다. 이것이 21세기의 특징적인 정치적 현상이다. 그 이유는 경제적 자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과제는 그 같은 현상을 야기한 근본 원인과 치유방법을 찾아서 민주주의와 자
유사회를 회복하는 일이다.
자유와 질서
자유와 자생적 질서
‘질서(Order, Ordnung)’라는 개념은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다가 프랑스의 계몽
주의자들에 의해 뒤로 밀려난 이후 사회과학에서 점차 잊혀갔다. 그런데 이 개념을 다시 부활시켜 사
회철학의 핵심적 개념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한 인물이 발터오이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이다. ‘질
서’는 인간의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질서 없이는 인간 개개인이 살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질서 없
이는 사람들이 타인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분업적 상호관계를 가질 수 없
기 때문이다. 질서란 사람들이 생산적인 상호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서로의 행동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 적중 가능한 상황을 말한다. 흔히 이런 상황을 구조, 패턴, 체제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질서’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질서가 없으면 경제성장과 번영은 고사하고 가장 기본적인 욕구마저 충족될
수 없다. 법학은 물론 인류학에서도 질서의 존재를 중시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질서는 오늘날 생물학에서조차 강조되고 있다. 예컨대 진화적 인식론의 발전에 매우 크게 기여한 오스
트리아 출신 동물행동학자 리들은 질서라는 개념을 보편적 개념으로 간주하면서 질서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질서 개념을 포기할 수 있는 영역이란 존재할 수 없다. 질서 없는 세계란
상상할 수도 없고, 질서 없는 세계는 인식될 수도 없다. 질서 없는 세계는 의미도 없다. 만약 이 세상
에 질서가 없다면 이를 촉진시켜야 한다.” 그래서 경제학도 ‘질서’로 접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
유와 질서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질서의 원천과 질서의 성격을 규명하고, 어떠한 기능을 행사하
는가, 그리고 어떠한 조건하에서 질서가 형성되는가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소결 - 자유와 질서가 어울리는 자생적 질서: 흔히 자유를 위해서는 질서를 포기해야 하고, 질서를 위
해서는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야마구치 슈는『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독재
에 의한 질서’와 ‘자유가 있는 무질서’를 대비하면서 자유가 있으면 혼란이 야기되고 그래서 질서를 잡
기 위해서는 독재국가 또는 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유와 질서가 서로 갈등 관계에 있다
는 주장들은 설계주의적 합리주의의 후손들 속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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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우리가 질서를 조직으로 이해한다면, 홉스의 사상에서처럼 조직과 자유는 서로 양립되지 않는다. 조직
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중앙집권적 경제 질서처럼 구성원들은
집단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된다. 개인들이 조직목표와 양립하지 않는 목표를 추구할 경우, 그
들은 조직으로부터 추방되거나 배제된다. 조직구성원들이 설사 자율적인 행동반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
더라도 그것은 조직목표의 달성을 위한 것일 뿐 조직목표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자유와 질서는 어울릴 수 없다는 주장은 자생적 질서의 존재를 무시한 결과다.
그러나 질서를 시장사회처럼 자생적 사회질서로 이해하는 경우를 보자. 자유의 질서로서 자생적 사회
질서 하에서는 개인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지식을 투입할 수 있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관계가 없다.
중요한 것은 개인들이 자율성을 갖고, 스스로 목적을 정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각자 자신들이 습득
한 지식을 투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생적 사회질서가 자유의 질서인 이유다.
그런데 자유는 인간의 상호작용을 안내하는 어떤 행동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
다. 자유는 공동으로 지키는 행동 규칙과 결부되어 있다. 자생적 질서의 기초가 되는, 그리고 구성원들
이 공동으로 지키는 행동 규칙은 정부는 물론 그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 될 똑같은 행동반경을 설정하
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설정된 것이 보호 영역이다. 개인들은 그런 테두리 내에서 자유롭다. 자유
의 영역이므로 자유와 질서를 연결해주는 것이 보편적ㆍ추상적 행동 규칙이다. 보편적ㆍ추상적 행동
규칙을 매개로 하여 자유와 질서가 조화관계를 이루는 것이 바로 자생적 질서의 경제관계를 구현한 시
장경제다. 자생적 질서는 애덤 스미스 이전의 철학자들에 의해 이미 발견되었다.
자유와 도덕
사회주의의 도덕적 기원
개인의 자유, 일부일처제, 개인주의, 시장경제 등 확장된 질서의 도덕률은 생성과 확립 과정이 순탄한
것처럼 보이나, 자유와 경쟁을 싫어하거나 개인주의를 혐오하고, 책임정신과 사유재산의 소중함을 인
정하지 않는 등 다양한 반시장적 정신이 빈번히 등장하여 자유의 물결에 저항하거나 폭동을 일으킨 일
이 적지 않았다. 다른 한편 자신을 희생하여 집단에 헌신하는 이타심과 충성심, 그룹에 대한 애정, 나
눔의 도덕, 집단적 목표를 위한 인간 간의 결집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의 정치적 이상이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어갔다. 사회주의의 도덕과 반시장 정서의 뿌리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주의 또는
국가주의란 소규모 사회의 도덕을 오늘날과 같이 거대한 사회에 적용하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소결 -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보는 두 가지 눈: 19세기 중반 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체제로 등장하여
그 세력을 확장해온 사회주의의 뿌리는 석기시대 정신인데, 그 시대의 정신은 첫째로 얼굴을 마주하는
소규모 사회에 적응한 도덕관이다. 참여, 사랑, 연대감, 나눔, 공동책임, 경쟁 혐오, 외인 기피(유대감
도덕) 등은 당시 수렵ㆍ채집자들이 직면한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심리적 요소였다. 연대감ㆍ이타심의
도덕은 그룹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들은 낯선 사람들, 즉 이방인으로 여겼다. 그래
서 그런 도덕은 폐쇄적이다. 둘째로 석기시대 정신을 가지고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시장경제는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세상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상태다. 자본주의는 늑대가 양을 공
격하는 자유가 지배하는 사회이며, 영합게임이 지배하는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는 구조적 악(惡)을 내
포하고 있어 사회주의가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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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이런 비판의 근거는 석기시대에 유전적으로 습득한 본능의 눈으로 본 세상의 모습이다. 당시에는 유대
감과 형제애로 서로 도우면서 살았다. 뒤처지는 구성원들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고 온정적이었다. 사
적 소유의 개념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고, 구성원들은 모두 개인보다 조직을 중시하는 집단주의적 태도
를 갖고 있었다. 그런 본능의 눈으로 자본주의를 볼 때, 이는 모든 악이 구조화된 체제다. 반면, 이성
의 눈으로 보면 그런 체제를 극복하여 아기자기하고 친근한 소규모 사회의 젖과 꿀이 흐르는 원시사회
의 낭만적인 도덕적 가치를 구현하는 관리ㆍ분배 사회주의, 그리고 온정적ㆍ어버이 사회주의 등 사회
주의 유토피아를 설계할 수 있다고 자만한다.
관리ㆍ분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비효율적이고 양극화의 불의를 초래하는 체제여서 국가가 나서서
계획과 규제를 통해 효율과 분배평등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정주의(paternalism)는 스스로 건강
도 돌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을 대신해 국가가 강제로 건강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어버이주의
(parentalism)’는 사람들이 자유와 책임을 싫어해서 국가에 의존하려는 태도다. 마치 어린 자녀가 부모
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사회주의는 원시사회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이성의 힘으로 실현
하는 이념이다. 사회주의는 복고적이고 미래 전망적 이념이 될 수 없다.
자유와 법
자유와 법치주의
‘법의 지배’ 또는 ‘법치주의’만큼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여 그 진의가 상실된 채 정치적 가이드로 기능할
수 없는 개념이 되어버린 예도 드물다. 그 개념적 혼란이 정치를 오도하여 인류를 문명의 길로 안내한
자유를 파괴했다. 예를 들면 헌법재판소는 1991년 사립학교법 제55조 등에 관한 위헌심판에서 “법치
주의 아래에서는 국민의 기본권 제한은 반드시 법률에 의하여야 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법치주의를
‘법률에 의한 통치’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성낙인ㆍ이정훈 교수는 ‘헌법에 의한 지배’를 법치로 이해
하고 있다. 입법은 헌법에 따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임종훈 교수는 시민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법치주의의 실종’이라고 비판함으로써 시민의 준법을 법치주의로 이해하고 있다.
그 밖에도 법치를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주목할 것은 2가지다. 첫째로 법치는 사회주의 또
는 간섭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것과 뗄 수 없는 것이 자유주의다. 자유는 법치를 통해 실현된
다. 두 번째로 무엇이 법이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원칙이 법치다. 하이에크는 이렇게 말했다. “법치주
의는 법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원칙이며, 특수한 법들이 지녀야 하는 일반적 속성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법치 개념이 모든 통치행위에서 나타나는 단순한 적법성의 요구와 혼동되기 때문에 중
요한 것이다.” 그의 법치는 론 풀러의 ‘법의 내적 도덕성’과 같은 의미다. 이것은 ‘법이 법다우려면 갖
추어야 할 조건’, ‘법을 가능하게 하는 도덕성’, ‘법의 법다움이라는 의미의 적법성’을 뜻한다.
소결 - 자유와 법의 관계: 법과 자유의 관계에 관한 논쟁에서는 상이한 두 가지 정치철학이 존재한다.
그 하나가 바로 설계주의적 합리주의 정치철학이다. 이에 의하면 모든 법 규칙이나 그 밖의 행동 규칙
들은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종교적, 도덕적 그리고 전통적인 행동 규칙도 자유를 제한하
는 것으로 간주한다. 법(행동 규칙들)과 자유의 관계를 이같이 파악한다면, 시장경제 질서의 기초가 되
는 행동 규칙들, 특히 사법 질서는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시장경제 질서의 기본적인 가치는 자유
가 아닌 것으로 파악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장경제와 자유 사이에는 서로 갈등 관계가 존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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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으로 여길 것이다. 이와 같이 자유와 법의 관계를 갈등 관계로 파악하면, 자유의 완전한 실현은 사실
상 법을 완전히 폐지해야 가능할 것이고, 따라서 경제 시스템이 자유경제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법을
철폐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결과는 질서가 아니라 혼란이다.
법과 자유의 갈등 관계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공리주의는 편익 또는 효용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어느 한 법이 개인들 및 사회에 순효용을 가져다줄 경우에만 그 법은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
주한다. 법의 집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유의 손실이 그 법이 가져다주는 효용의 증가에 의해 상쇄될
경우에만 그 법은 정당성을 갖게 된다. 이때 효용은 사회정책적 또는 경제정책적인 목적들을 의미한다.
진화론적 합리주의 전통은 법이 자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본질적인 조건으로 간주한다.
자유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상태가 아니다. 보편적인 정의로운 행동 규칙들에 의해 국가는 물론, 타인
들 또는 그룹들로부터 침해할 수 없는 행동 영역, 보호된 영역이 설정되어 있는 경우 개개인들의 자유
로운 상태가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법과 자유는 양립한다. 법은 인간의 자유로운 질서다. 이때 법은
모든 형태의 법이 아니라, 일반적ㆍ추상적 행동 규칙, 즉 정의로운 행동 규칙의 성격을 가진 법이다.
이러한 성격의 법은 사법이다. 사법은 일반적인 정의로운 행동 규칙들, 자유를 보장하는 행동 규칙의
성격을 구현한 것들이다. 이런 성격의 법 규칙들은 어떤 정치적 목적에서도 벗어나 독립적인 성격이
있다. 그래서 시장경제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할 수 없다.
스코틀랜드의 도덕철학 전통에서 볼 때, 시장경제 질서는 법과 자유가 서로 조화 관계에 있는 질서다.
그러나 시장경제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작성된 법과 자유는 양립될 수 없다. 그런 법은 ‘처분
적 법’으로서 개인들의 행동을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 간주한다. 처분적 법은 특정의 정치적 목적
을 달성하도록 개개인들의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즉 적극적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법은 조직을 위
한 것이다. 자생적 질서를 조직으로 전환시키는 모든 법은 자유와 결코 양립될 수 없다.
자유와 정치
삼권분립은 실패했다
자유를 확립ㆍ유지하기 위한 정치제도가 삼권분립이다. 이 제도는 국가권력을 그 기능적 성격에 따라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삼분하고, 이들 권력을 각기 입법부, 행정부와 사법부에 부속시키는 원리
다. 이 원리는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유서 깊은 제도이며, 오늘날에도 그런 제도를 헌정론에
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본래 개인의 자유를 확립하여 이를 보장하기 위한 권력분립은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실패했다. 그것은 자유를 보장하기는커녕 간섭주의ㆍ사회주의로 이끌어가고 있다.
삼권분립에 고장이 난 것이다.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권력분립은 실패한 것이 틀림없다. 개인의 자유
를 확립ㆍ보장하기는 고사하고, 권력의 집중과 자유의 유린을 조장하는 데 기여하는 제도가 되었다.
왜 실패했는가! 이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개혁이 필요한가의 문제는 매우 흥미롭다.
삼권분립의 실패는 법치의 무력화 때문: 오늘날 입법부는 의회민주주의의 표상이다. 권력분립론이 생
겨난 초기에 입법부는 행정부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대의제 의회를 지칭했다. 그때 입법부가 만든
것은 조세 문제를 제외하고는 정의의 법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명령이었다. 이는 정부에 물적ㆍ인적
자원을 할당하는 일과 할당된 자원의 이용에 관한 지시와 감독으로 구성되었다. 행정부는 입법부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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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정을 이행하는 과제만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규칙의 집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입법부가 내린 명령
을 집행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행동 규칙으로서 법은 법원의 판결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 판결을 집행
하는 것은 행정부였다. 그렇게 하다가 입법부는 명실상부하게 입법 기능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
길을 암묵적으로 터놓은 것은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이었다. 그는 입법부의 기능은 정의로운 행동 규
칙의 성격을 지닌 법, 즉 보편적 법을 찾는 데 있다는 점을 권력분립에 포함하지 않았다. 국민의회와
귀족의회로 구분된 양원제의 도입은 암묵적으로 보편적 입법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교조적 민주
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동일한 의회가 2가지 상이한 성격의 과제를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민의
대표가 모든 개인과 국가기관들을 동등하게 구속하는 “정의로운 행동 규칙을 제정하는 일을 넘어서 정
부에 할당할 재정적ㆍ물적ㆍ인적 수단과 서비스 공급에 대한 결정까지” 장악하게 되었다.
18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입법부가 정한 법은 행정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법원으로 넘겨졌다.
그런 법은 행정부가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법으로서 정의의 법은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가 이행할
성격의 법이다. 개별 사건들에 대한 소송이 제기되었을 때 비로소 법정에서 정의로운 행동 규칙을 적
용하여 판결한다. 법원의 판결은 누가 집행하는가? 그 집행은 입법부로부터 인적ㆍ물적 자원을 지정받
은 행정부의 과제다. 그리고 그 과제의 집행을 통제할 과제는 입법부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의회가
법을 제정하는 권력을 획득하게 되면서 입법부는 명실상부하게 되었다. 입법부의 입법권은 정의로운
행동 규칙에 의해 강력하게 제한되었다. 입법권을 법치와 연결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입법부는 모든 사
적 인간과 정부를 동등하게 구속하는 정의로운 행동 규칙만을 제정할 수 있었다. 정부는 엄격하게 법
아래에 있었다. 권력분립이 법치와 분리할 수 없는 통일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법 아래에서의 정부와 입법에서 말하는 법 개념은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그런 변화를 초래한
요인은 두 가지다. 첫째로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국민주권 사상이 권력분립에 침투했는데, 이에 따르면
주권자로서 국민이 원하면, 그리고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과 의회의 다수가 정한 것이면 무엇이든 법
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확산되었다. 주권이란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력을 말한다. 따라서
국민이나 그 대표인 의회의 권력을 어떤 도덕적인 이유로 제한하는 것은 주권이라는 개념의 모순이다.
그런 이유로 권력분립과 한 덩어리였던 법치를 걷어차 버렸다. 이로써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유서 깊
은 제도는 내용을 전부 갉아 먹힌 빈껍데기가 되었다.
권력분립을 형해화한 두 번째 요인은 19세기 중반 제러미 벤담과 제임스 밀 등이 주도한 정치적인 지
적 운동인 철학적 급진파의 등장이었다. 급진파가 지향한 것은 행복원리에 따른 개혁이었다. 곡물법
폐지를 비롯해 보통ㆍ비밀선거의 도입을 주장했다. 제러미 벤담은 입법에 전권을 주어야 한다고 믿었
다. 그렇게 하는 것이 ‘최고헌정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구성원들의 이익과 안전을
더 잘 증진시켜준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입법에 대한 어떤 제한도 행복의 원칙과 모순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들면 무엇이든 법이 된다는 뜻에서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입법만능주의다. 그는
‘차티스트 운동’에 가담하여 선거법 개정을 통해 의회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입법을 제한하
는 법치를 제거함으로써 삼권분립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자유주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자유를 보호하는 권력분립의 개선방향: 삼권분립을 어떻게 개선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자유를 확립ㆍ보
존할 수 있는가? 그 개선책으로는 하이에크의 양원제가 매력적이다. 이는 법의 지배원칙에 합당한 법
만 제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입법의회와 공공재의 생산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부의회다. 이 양원을
비롯하여 행정부와 사법부를 구속하는 기본조항을 헌법에 도입할 것을 요구한다. 그 조항에 명문화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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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내용은 무엇이 법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는 자유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행동규칙을 의미하
는 법이다. 헌법의 기본조항 내용은 자생적 질서의 기초가 되는 법의 성격, 즉 법의 지배 원칙을 명문
화한 것이다. 이 기본조항은 흔히 말하는 기본권 조항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기본권은 ‘누구나 보편
적ㆍ추상적인 정의로운 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어떤 강제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내용이다. 이
런 기본권은 현대사회의 헌법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기본권 목록과 전적으로 다르다.
기본권 목록에는 양심의 자유, 출판의 자유, 통신비밀의 자유, 영업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다양한 자
유권을 기본권으로 열거하고 있다. 한편 흥미로운 것은 입법의회의 구성이다. 입법의회는 정당이나 이
익단체, 관료 또는 그 밖의 집단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정당, 이익단체,
행정관료 출신 또는 정부의회 출신은 입법의회 구성원이 될 수 없다. 구성원 자격의 나이와 구성원 선
출을 위한 투표권의 연령제한도 뒤따르는데, 이런 구성 문제는 여기에서 생략하기로 한다.
정부의회는 정부의 서비스 기능을 감시ㆍ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하이에크는 국가의 서비스 기능으로서
도로, 항만 같은 공공시설의 마련 및 관리, 생활능력이 없는 계층에 대한 최소한의 생활보장, 보통교육
을 위한 재정지원, 위생시설ㆍ공공시설에 대한 건강ㆍ안전관리 등과 관련된 공법 문제와 정부의 물적
ㆍ인적 자원의 이용을 통제하고, 정부의 서비스 기능을 위한 공법을 정하는 일을 맡겨야 한다고 말한
다. 이러한 의회의 이중구조는 몽테스키외의 혼합헌법과 비교할 때 연성혼합 헌법이다.
하이에크의 양원제에서 입법권은 오로지 상원으로서의 입법의회만이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몽테스키외
의 경우 국민의회나 귀족의회는 모두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 세법만 국민의회에 맡기고 귀족의회는 세
법에 대한 비토권만 가진다. 하이에크의 설명을 종합하면, 입법의회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원로원형태
로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일종의 ‘자연적 귀족’으로 구성되는 상원이라 볼 수 있다.
자연적 귀족이란 빌헬름 뢰프케가 말한 것처럼 어떤 지역사회나 연령층에는 각기 사람들로부터 믿음과
존경을 받는, 그래서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는 명사(名士) 그룹이 형성된다. 자생적으로 형성된 리더십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인물을 투표로 선출하여 입법의회의 구성원으로 만들자는 것이 하이에크의
의도였다. 그러나 반드시 양원제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기존 의회의 입법 기능을
정의로운 행동 규칙에 합당한 법을 찾아내는 데 국한하는 장치만 제도화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견해
가 있다. 그 장치가 하이에크처럼 헌법에 법다운 법의 조건을 명시하는 기본조항의 도입이다.
흥미로운 것은 제임스 뷰캐넌의 헌법사상이다. 필자는 1993년『헌법경제론』과 2018년『국가란 무엇
인가』에서 그의 사상을 상세히 다루었다. 뷰캐넌은 의회제도를 바꾸지 않고 헌법에 차별입법ㆍ정책에
대한 금지조항을, 다시 말하면 법과 정책의 보편성원칙(법치원칙)을 헌법에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
다. 그런 헌법체제에서는 차별정책 같은 정책을 추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뷰캐넌이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균형예산 원칙이다. 그는 이 원칙도 헌법에 도입할 것을 강력히 주
장한다. 이것은 정부의 적자와 이에 따른 정부부채의 증가를 제한하기 위한 재정헌법이다. 그런데 적
자예산을 제한 없이 허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주의에는 적자증가의 씨앗이 내장되어 있다.
정부의 부채가 재정건전성을 우려할 정도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적자 속에 민주주
의’라는 말은 정곡을 찌른다. 뷰캐넌이 굳이 재정준칙을 법 대신 헌법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유는 정부가 자신의 행동을 제한하는 규칙을 스스로 만들게 한다면, 정부 자신에게 유리한 준칙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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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과 적용 시기를 정하거나 설사 현행 재정준칙이 법제화되어 있다고 해도 필요하면 언제나 재정준칙을
정부에 유리하게 바꾸거나 제거해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이에크와 뷰캐넌이 의도하는 것은 법
의 정치화, 경제정책의 정치화를 막아내려는 데 있다. 그런 정치화는 이해관계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원칙의 정치를 위해 필요한 것이 원칙의 헌법 도입이다.
자유와 헌정주의: 하이에크나 뷰캐넌에게 중요한 것은 헌법이다. 헌법은 각종 법률과 규제 등과 같은
공식적 제도의 형성을 위한 집단적인 의사결정, 즉 정치 질서의 기초다. 헌법이 중요한 이유는 입법부
에 경제에 대한 계획과 규제를 위한 입법권력을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헌법 아래에서는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법률 생산이 빈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헌법은 자유와 번영을 위한 헌법이
라고 볼 수 없다. 국가헌법은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의 진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국가헌법이 잘
못되어 있으면, 정치질서도 왜곡되고 문화질서도 왜곡된다.
첫 단추를 잘못 잠그면 모든 단추 잠그기가 뒤틀리듯이, 국가헌법이 잘못되면 모두가 뒤틀린다. 한편
사람들은 정치실패나 민주주의실패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엄격히 말한다면 그 말은 옳지 않다.
그런 실패의 원인이 잘못된 헌법에 있다고 한다면 그런 실패는 ‘헌법실패(constitutional failure)’라고 말
하는 것이 옳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혁명이 아니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붕괴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
주주의가 스스로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민주적 의사결정을 제한하는 헌법의 부실에
기인한 것으로 봐야 한다. 삼권분립의 실패원인도 입법권을 제한하는 헌법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하이에크는 ‘무제한적 민주주의’, 뷰캐넌은 ‘헌법적 혼란’이라고 진단했다. 헌법에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헌법학자들은 헌정주의를 현행 헌법에 따라 법을 제정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헌정주의는 정부의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전통의 개념이다. 개인의 자유와 재산
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을 통해 정부행동을 효과적으로 제한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헌정주의다.
인간사회의 지속적인 번영은 자유를 지키는 헌법을 갖느냐에 좌우된다.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헌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도덕적인 사람들이어서 그것이 좋은 헌법일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좋
은 헌법이 있으므로 도덕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니까 헌정주의의 실현은 용이한 것도 아니지만 불가능한 영역도 아니다. 하이에크의 주장대로 한
사회가 무제한적 민주를 치유하기 위해 헌정주의를 도입하여 성공한다면, 다른 나라들이 모방할 것이
다. 그리고 그렇게 모방을 통해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이 국제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2000년대에
이미 스위스에서는 연방조세율의 상한선을, 독일에서는 예산적자 제한 규칙을 헌법에 도입했다. 헌법
을 통한 자유의 실현 이외에 다른 방도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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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교수의 자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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