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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리뷰,

(요약본)와일즈 이펙터

by Casey,Riley 2022.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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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WILDS(기획) 지음 / 와일드북
우리 주변에는 불우한 성장 과정이나 역경, 시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 마침내 성공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심각한 불황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언제나 위기와 기회가 공존했다. 그리고 위기 속
에서도 성공한 사람이 존재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35인의 인물들도 위기와 역경을 딛고 와일즈한
인생 드라마를 펼치며 자신의 분야에서 입지를 구축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경험이 독자들에게 깊
은 위로와 희망의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와일즈 이펙터
김명수, WILDS(기획) 지음
▣ 저자 WILDS (기획)
유광선(WILDS). 사람과 사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감사한 마음과 태도로 나눌 때 가능하다는 생각으
로 100, 100, 100 평생 학습을 통해 오늘도 정신적 자유와 물질적 자유를 발견해 나가고 있다. 저서로
는 《와일드 이펙트》, 《어떻게 행복한 성공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친구를 얻고 사람을 변화시
킬 수 있을까》, 《평생 명강사》,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 《거절당한 순간 영업은 시작된
다》, 《감사일기(The Gratitude Diary)》 등이 있다. 그 밖에 출판 프로듀싱한 책으로는 《사막에서 길
을 잃고 인생의 사막을 건너다》, 《평범한 직장인이 어떻게 1년 만에 2권의 책을 썼을까》, 《파산 직
전의 소상공인은 어떻게 월 매출 1억을 올릴 수 있었을까》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필자는 사람이 책이고 교과서라고 본다. 1년 365일 도서관에서 잠자는 책이 아니라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군중 속에서 우리와 함께 부대끼며 살아 숨 쉬는 사람책이 나는 좋다. 이 시대의 다양한 롤 모델
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인터뷰해서 세상에 소개하고 알리는 인물 전문 기자를 천직으로 택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필자가 인물 인터뷰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알려져서 더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들을 줄기차게 찾아내 인터뷰를 진행해 왔다. 필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사람책을 통해 지식을 뛰어넘는 지혜를 얻고 세상 사는 법을 배워 나간다. 종이책에도 양서가 있듯이
사람책에도 혼자 보기 아까운 ‘양서’가 있다. 그런 사람을 인터뷰하면 가슴이 뛴다. 20년 넘는 세월 동
안 국내외를 넘나들며 1,000명이 넘는 인물을 심층 인터뷰했다.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입지를 구축한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추리고 추려서 35명을 이번 책에 담았다.
물은 100도가 돼야 끓는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100도가 되어 물이 끓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못 참고 99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환경, 주변,
학력을 탓하지만 자기가 생각했던 한 가지 직업을 택하여 꾸준히 노력하면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한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당해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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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우리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19 세상을 살고 있다. 세계 경제는 무너졌고 2년째 심각
한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언제나 위기와 기회가 공존했다. 위
기 속에서도 성공한 사람이 있고 호기를 만나도 쓰러지는 사람이 존재했다. 위기를 뒤집으면 기회가
온다. 여기 등장한 인물들도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현실이 힘든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위로와 희망의
디딤돌이 되고,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차례
프롤로그
1장 Want: 간절히 원해야 한다
김홍빈 장애인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노도윤 지구 3바퀴 반을 돈 세계 여행 전문가의 끝없는 변신
문성열 새벽 2시 하루를 열고 매일 원서 1,000권 읽는 영어, 일어 전문가
박노진 11년 연속 자동차 판매왕 쉐보레 동서울대리점 대표의 끝없는 도전
박우용 세계에서 주먹이 가장 빠른 무술인
오준영 700만 곡 음원 보유한 싱어송 라이터 가수 청하연미디어 회장
조승환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 최강 맨발의 사나이(맨사)
2장 Imagine: 생생하게 상상하자
김순영 전국의 명품 소나무 화폭에 옮겨 심는 소나무화 명장 화가
김승도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초능력 인간 국학3법기수련세계총본부 총재
류동선 맞춤 정장 평생 외길 걸어온 양복 명인
어전귀 고층 자전거 세계 기네스 기록 보유자
이희성 실패한 권투 선수에서 컨디션 트레이너로 거듭나다
임춘열 ‘운전은 내 친구’ 취미와 적성을 천직으로 택한 여성 개인택시 기사
전태수 청와대 가족 구두 만든 수제화 명장 JS슈즈디자인연구소 대표
3장 Learn: 살아 있는 동안 배워야 한다
김봉중 시간 부자로 살아가는 시니어블로그 전도사 사단 법인 시니어블로거협회 회장
신용선 인생 2막에서 더 잘나가는 액티브 시니어 박사
신종훈 145개 자격증, 10개 학과 전공 평생 학습의 달인
유지선 공예 창업 교육 전문가
이영만 봉사, 연주, 작사, 노래하고 영화까지 찍은 낭만 치과 의사
이종관 지금도 계속 경신 중인 기록 분야 그랜드 마스터
4장 Declare: 명확한 목표를 세워 당당하게 선언하라
김용진 노벨상 100명 만들기 운동 벌이는 세계전뇌학습아카데미 회장
백낙영 ‘농약 대체’ 유황규산 ‘오복이’로 명품 인증받은 코시팜스 대표
서일정 ‘당신 멋져! 원더풀!’ 성공사관학교 총장
이연희 보이차(普洱茶) 박사 국내 1호 보이차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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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이윤숙 바른 자세와 바른 걸음 골반 파워 워킹 전도사
이장락 위기를 기회로 바꾼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 고려전기소방안전관리(주) 대표 이사
이창호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스피치 코칭의 절대 강자 스피치리더십연구소 대표
5장 Share: 사람과 사업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감사한 마음과 태도로 나누어야 한다
구재영 재능 기부 하면 떠오르는 ‘덕분에’ 원조 가수
김웅회 농촌 빈집 활용 전국 대상 받은 충북 증평 죽리마을 이장
연태극기 자나 깨나 태극기 사랑에 이름도 바꾼 연태극기
이선구 생명을 살리는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사장
유광선 와일드(WILD)라고 쓰고 성공이라고 읽는 한국평생교육원 대표
정진욱 30년째 올림픽 개최해 온 국제휴머니티총연맹 총재
조영관 길 없는 길 걷는 도전의 아이콘 사단 법인 도전한국인본부 상임 대표
황종문 국경 없는 국제자원봉사총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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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와일즈 이펙터
김명수, WILDS(기획) 지음
와일드북 / 2021년 11월 / 320쪽 / 22,000원
1장 Want: 간절히 원해야 한다
노도윤 _ 지구 3바퀴 반을 돈 세계 여행 전문가의 끝없는 변신
지구를 3바퀴 반 돈 여자, 지금까지 다녀온 나라가 150개국에 이른다. 세계 성문화 성교육 강사이자
세계 탐험 여행 전문가인 노도윤 씨는 이웃집 나들이처럼 세계 여행을 즐긴다. 초호화 유람선 크루즈
여행까지 섭렵한 그녀를 만나면 ‘글로벌 여행’ 상담에 성교육까지 받을 수 있다. 그 동안 세계 여행 경
비로 3억을 쏟아부었지만 그 덕분에 지금은 최고의 세계 여행 탐험가로 대접받으면서 세계 여행을 떠
날 때마다 모든 여행 경비를 협찬받고 두둑한 수입까지 올리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속속들
이 들여다본 노하우를 밑천으로 문화 전도사이자 세계 성문화 전문가로도 잘나가고 있다. 대한적십자
사 서울지사 홍보대사로도 활동하면서 레드크로스탑클라우드 고액 후원자 모임을 만들어 어렵고 소외
된 이웃들에게 봉사와 나눔 천사로 희망의 등불을 선사하고 있다.
전라북도 정읍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세계 일주
꿈을 가슴에 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사회 선생님께서 ‘너희들이 성인이 되는 시대에는 너희가 원하
면 세계 각국에 여행 갈 수 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 말을 귀담아듣고 그때부터 세계 일주
를 꿈꿨다. 그리고 대학 때부터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세 번씩이나 세계 일주를 다녀온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그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며 ‘더
이상의 미련도 욕심도 없을 만큼 깃털처럼 몸과 마음이 가볍고 자유롭다.’라고 털어놓는다. “어려서 가
슴에 품었던 세계 일주 꿈이 이루어졌죠. 그래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강의를 합니다. 특히 시골 오지
학생들한테 꿈을 키워 주기 위한 강의를 많이 합니다.”
그에게 여행은 평생 멈출 수 없는 꿈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갈수록 50대든 60대든 90대든 죽을 때
까지 꿈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한다. 크루즈 초호화 유람선도 타 보았다. 배낭여행으로 해
외 오지를 다니지만 때로는 돈이 들어가더라도 한 번뿐인 인생 자신만의 럭셔리한 여행을 해 보고 싶
어서다. 여행을 통해서 세상을 넓게 본 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조차 담아낼 수 있는
넓은 가슴과 깨달음도 함께 얻었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세계 각국을 다니다 보면 내가 어떤 일을 했
을 때 가장 가치 있고 즐거울 수 있는지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을 찾고 나만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기회
가 될 수 있다.
노도윤 세계 여행가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들,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는 나라들과 아프리카 오지 여행
은 꼭 가 보라고 권한다. 우리가 얼마나 풍요롭고 여유롭게 살고 있는지를 직접 경험을 통해서 느껴
보라는 의미에서다. “아이들한테 특히 시골 학교 청소년들에게 꿈과 비전 강의를 하면서 ‘나도 시골에
서 자라면서 지금과 같이 꿈을 이루었다.’라며, 꿈은 이루어진다는 글로벌 리더십 강의를 합니다.” 그
는 여행에서 보고 느끼는 유적과 유물도 좋지만 사람을 통해서 느끼는 감동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세
계 일주를 하면서 직접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얻는 게 좋아요.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참 대단한 나라구
나, 하는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느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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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노도윤 세계 여행가는 세계 성문화와 성교육 전문 강사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행을 취미로
삼아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다양한 성문화를 접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프로이트에 관심이 있어서
깊이 파고들다 보니까 성교육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 계기가 되었다.
그는 여성들에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 번쯤 여행을 떠나 보라고 권한다.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하느
라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은 내가 행복해야 가족들이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위해
서 나만의 여행을 떠나 보라고 조언한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입니다. 가기 전에 항상 그 지역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해요. 여행은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과정이 가장 즐겁습니다. 돌아와서는 그 즐거움으
로 더 의욕적인 일을 할 수 있고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면서 삶 자체가 너무 행복하고 즐거워요.”
“그동안 돈만 모이면 무조건 여행을 떠났어요. 7남매 중 막내다 보니까 엄마가 대 주고, 형제들도 모아
서 주고, 알바하다가 결국은 시간이 아까워서 알바 안 하고 여행을 떠났어요. 이제는 형제한테 빌린
돈은 다 갚았고 조카들 여행 간다면 여행 경비 제가 다 대 주죠.” 인생 참 멋있게 산다. 세계 여행을
가장 많이 다닌 여자, 바로 그녀 노도윤 씨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야생마처럼 살아왔어요. 자유로운
영혼으로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여한도 미련도 없이 살아왔어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세
상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더 통 크게 나누고 베풀며 살고 싶어요.”
노도윤 씨의 변신은 끝도 없다. 50년 넘게 사용해 온 이름 노미경도 2020년에 노도윤으로 개명했다.
코로나로 해외 여행길이 막히자 노도윤 씨는 다시 한번 통 큰 변신을 했다. 서울에서도 가장 비싼 금
싸라기 지역 강남대로에 국내 제1호 여행 카페 노 작가의 아지트를 오픈해서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
공포로 상권이 위축되어 잘나가던 사장들도 불황으로 비명을 지르고 폐업이 속출하는 현실에서 노도윤
씨는 보란 듯이 강남 노른자 땅에 3개 층 합계 100평(2층, 1층, 지하층) 규모의 대형 카페를 2020년
추석 명절에 오픈했으니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오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노도윤 씨의 역발상이
먹혀들었다. 오픈한 지 8개월이 지난 2021년 6월 현재까지 노 작가의 아지트는 손님들의 발길이 꾸준
하게 이어지고 있다. 노 작가의 아지트는 카페의 분위기부터 남다르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세계
각국의 기념품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문화 충전소 같은 느낌이 든다.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다양한 지식인들의 소통 공간과 복합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카페 주인장 세계 여행 작가 노도윤 씨의 말이다. 카페는 정치, 사상, 종교 이념을 초월해서 문화, 예
술, 철학, 삶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노도윤 세계 여행가가 중년들을 위한
여행 카페를 오픈한 이유다. 노도윤 작가가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하나둘씩 모아 둔 여행용품과 여행
기념품들을 카페에 전시했다. 각국의 특색이 담긴 진기한 모습의 기념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꼭 현지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코로나 여파로 당분간 해외여행은 힘들 듯해서 그동안 다녔던 여행
지 추억을 떠올리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그만의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여행에 대한 관심과 꿈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함께하고 싶습니다.”
노 작가의 아지트에서는 여행지에서처럼 그 누구든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 코로나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 힘들고, 외롭고, 무료하게 쓸쓸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 모두 환영한다. 노 작가의 아지트에
가면 세계 여행가가 타 주는 루와 아메리카노 커피, 와인을 마실 수 있다. 세계 150개국을 돌면서 보
고 들은 흥미진진한 해외 여행기와 지구촌의 글로벌 성문화 강의도 들을 수 있다. 브런치로 촐촐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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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를 채울 수도 있고, 이야기 주제가 있으면 이용할 수 있는 세미나, 강의장도 있다. 지하 1층에는 유명
소나무 화가의 그림을 상설 전시해서 누구라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방송인, 연예인, 기자, 유명 인사, 여행 마니아, 일반 시민 등 여행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다양하
다. 대부분 노도윤 씨가 그동안 쌓아 놓은 인맥들이다. 카페를 찾아온 손님이 다시 손님을 끌고 오는
부메랑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로 최악의 불황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노 작가의 아지트가 큰
어려움 없이 영업을 이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그 때문이다. 코로나가 잡히면 노도윤 씨는 다시
세계로 훨훨 날아다닐 것이다. 지구 세 바퀴 반을 돌고 네 번째 세계 일주 도전을 계속 이어 나갈 것
이다.

2장 Imagine: 생생하게 상상하자
임춘열 _ ‘운전은 내 친구’ 취미와 적성을 천직으로 택한 여성 개인택시 기사
언제 들어도 박력 있고 명랑한 목소리. 운전대를 잡아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엔도르핀이 솟는다는
1955년생 임춘열 여사는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취미가 운전이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해서
적성을 살려 택한 천직이다. 몸에 밴 서비스 정신으로 친절한 시민의 발이 되어 안전하게 손님을 모시
는 모범 기사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즐기고 직업으로 삼아
수입도 올리니 행복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제1지망으로 여러분은 무슨 직업을 선택하겠는
가? 십중팔구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멋있는 직업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세속의 잣대와는 전혀 다른
직업을 제1지망으로 골라잡을 수도 있다. 임춘열 씨도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임춘열 씨는 2003년 3월
부터 마을버스를 1년 2개월 동안 몰다가 2005년 7월 KD운송그룹에 입사하여 2006년 12월 19일부터
2016년 5월까지 버스 기사로 근무했다. 그리고 정년퇴직 후 2017년 1월부터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버스 운전이 적성에 딱 맞고 좋더라고요.” 2011년 4월에 여성 버스 기사 임춘열 씨를 인터뷰하면서
들은 첫 마디다.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살다가 KD운송그룹 경기고속 여성 기사 채용 광고를 보고 지원
하여 100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운전대를 잡았다. 버스를 몰아 보니 운전이 적성에 딱 맞는다면
서 환하게 웃던,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유니폼이 어울리는 여자’ 임춘열 씨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
하다. 임춘열씨는 2011년 서울 강변~덕소 구간을 운행하는 15번 버스를 몰았다. KD그룹 전체 버스
기사 8,000명 중에 여성 기사는 140명으로 2%가 채 안 됐다. 그중에 한 명이 임춘열 기사였다.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살다가 문뜩 내 나이(45)에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45세 때 ‘50이 되면 너(50)
를 취업해서 맞이하마.’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내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니까 바로 운
전이더라고요.” 그는 전업주부에서 버스 기사로 인생 유턴을 결심하고 2003년 1월 대형 1종 면허에
도전하여 한 번에 땄다. 버스 회사에 취직하여 60까지 일하고 정년퇴직하면 개인택시를 뽑아 70까지
일하겠다고 쉽게 생각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면허를 취득한 지 2개월 후인 2003년 3월부터 마을
버스를 14개월 몰다가 2005년 7월 KD운송그룹에 입사하여 2006년 12월 19일부터 버스를 운전했다.
겁 없이 버스 회사에 들어와 큰 차를 운전하면서 초반에는 실수가 많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 기사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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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그러나 대형 버스를 장시간 운전하면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 체력이 받쳐 주지 못하면 웬만한 남자도
오래 버티기 힘든 직업이다. “대형 버스 운전은 여자 직업은 아니라고 봐요. 집안일과 병행하려면 슈퍼
우먼이 돼야 하잖아요. 그런데 도전해 볼 만한 매력은 있지요.” 그녀가 생활 체육에 매달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때 배구부 주전 세터이자 주장을 맡기도 했다는 그녀는 배드민턴도 수준급이다.
지금도 체력은 국력이라는 신조로 쉬는 날에는 운동을 한다.
“저는 운전이 적성이 딱 맞아요. 원래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제 차를 타고 내리는 분들에게 제가 먼저
인사해요. 승객이 먼저 저에게 인사할 때도 있고요. 그럴 때 뿌듯하죠.” 친절하면 임춘열이다. 친절상
수상 단골로 2009년에는 한 해에 무려 4번이나 회사에서 주는 친절상을 탔다.
물론 그에게도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입사해서 1년이 다 돼 가던 날 교통사고를 냈다. 인사 사고로
징계 위원회까지 올라갔다. 입사 후 최대 위기였다. 그때를 교훈 삼아 안전 운행을 생명처럼 준수하고
있다. “기사로서 안전 운전과 친절은 기본이죠. 겉치레 친절은 안 통해요. 승객이 먼저 알아보거든요.
저한테는 큰 회사가 적성에 맞아요. 규정만 잘 지키면 되니까.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정년 후 개인
택시 뽑아서 70살까지 운전대를 잡을 계획입니다.” 2011년 기자와의 인터뷰 당시 임춘열 씨가 했던 말
이다.
임춘열 씨는 2017년 1월부터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
이 부나 변함없이 시민의 든든한 발이 되어 주고 있다. 전업주부로 있다가 50대에 버스 회사에 취직하
여 신나게 버스를 몰다가 정년퇴직한 이후에도 예나 지금이나 운전은 내 친구라고 말하며 시민의 발이
되어 주고 있다. 당당하고 자부심 넘치는 임춘열 택시 기사의 삶은 현역에서 물러나 인생 2막을 살아
가는 은퇴 세대들에게 많은 교훈과 메시지를 던져 준다.

3장 Learn: 살아 있는 동안 배워야 한다
신용선 _ 인생 2막에서 더 잘나가는 액티브 시니어 박사
1959년생 신용선 박사는 시니어가 되고부터 더 잘나가고 있다. 은퇴하고 뒷전으로 밀려날 나이에 현
역 시절 못지않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가치 있고 보람찬 인생 2막을 살고 싶어 하는 은퇴
세대들의 대표 ‘롤 모델’을 꼽으라면 단연 신용선 박사를 추천한다.
신용선 박사에게 2018년은 특별하고 의미 있는 반전의 해였다. 생애 첫 도전으로 60세에 책 두 권을
저술했다. 또한 경영 지도사로도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정부 지원 사업으로 실시하는 글로벌 강소기
업 선정과 스타 기업 육성 사업의 기업 선정 및 평가 위원으로 참여했다. 2019년에는 더욱 승승장구하
여 자신의 인생에서 ‘경영학 박사 취득’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그리고 모교인 강원대학교 대학
원 출강과 몽골대학원대학교 객원 교수직까지 맡게 되었다. 듬직한 체구와 특유의 친화력으로 그의 주
변에는 늘 사람들이 몰린다. 유창한 영어 실력에 더하여 글로벌 마인드로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인
맥을 구축해 오다 보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렇다고 신용선 박사가 걸어온 길이 탄탄대로 일색은 아니었다. 우선 그에게는 고등학교 입학만 하고
등록금을 되찾아 온 소년기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나오고 50이 넘어 서
울 집과 춘천을 오가며 대학원을 마쳤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샐러리맨으로 근무하다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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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회사를 차려 쓴맛, 단맛 두루두루 경험했다. 그가 크게 실패했다가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원동
력은 무엇일까. 환갑이 넘은 나이에 평생 못 해 본 대학 강단에 서고, 액티브 시니어로 잘나가는 그가
새로운 길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추진할 수 있었던 동력은 한마디로 ‘꿈’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
면서 단 한 번도 꿈을 포기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꿈은 구름 같은 허상의 꿈이 아니라 죽을 만큼 힘
들이고 노력하면 달성할 것이라는 꿈이었습니다. 한순간도 꿈이 없었다면 큰 역경들을 넘어서 여기까
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젊은 후배들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무서운 사람
은 ‘꿈을 가진 사람’이라고…….
신용선 박사는 같은 세대인 시니어들이 처한 현실을 산으로 비유했다. 시니어들은 3개의 산에서 내려
와야 한다. 나이(年齡)의 산, 지위(地位)의 산, 은퇴(隱退)의 산이다. 이 나이에 내가 어떻게? 얼마 전
회사 임원이었는데……. 은퇴하고 나니 할 게 없네……. 이 3개의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면 아주 불행
한 시니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 신입 사원 공채로 입사하여 임원까지 해 본 경험을 밑천
삼아 오랫동안 사업을 직접 하다가 60이 넘어 대학 강단에 서기까지 그가 흘린 땀과 노력을 생각하니
가슴이 찡하다.
“바쁘게 회사 경영을 하며 만학(50대 후반)으로 학업(석사 과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대학에서 강의해
야겠다는 목표는 없었습니다. 가능성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중년이 지나면서 삶의 목표로 정한 2가지
중 하나가 60세 전까지 학위 취득이었습니다. 목표를 실현하고자 노력해 오다 보니 어느 날 제가 대학
강단에 서 있더라고요.”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 보니 꿈이 현실이
되었다는 말이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로 들린다.
신용선 박사는 사업을 하면서 처절한 실패도 경험했다. 그는 가장 친밀감을 보였던 사람으로부터 면전
에서 배신을 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동업자로부터 크게 배신을 당한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한다. “지금도 사업 중에 만난 사람은 믿지 않으려는 의식이 뇌리에 새
겨져 있습니다. 아무튼 그 일을 모두 덮어 버리기 위해 나는 더 큰 꿈을 만들었고, 그 꿈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삶의 진로를 과감히 바꾸고 도전했습니다.”
신 박사는 과거로 돌아가 16세 때 기억을 회고했다. 당시 마을 어른들이 그의 고향 집 담벼락을 시멘
트로 바르고 시멘트가 굳기 전에 그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마음의 글을 벽면에 써 보라고 요청했다. 그
래서 나뭇가지를 꺾어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 不可輕)’이라고 마음을 다지는 글을 새겼다. 그 글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고향에 가면 늘 그 글을 대하고 젊은 날에 다졌던 초심으로 돌아간다. “저는 10대부
터 이 옛말을 늘 제 삶의 중심에 놓으려고 노력했어요. 한시도 그냥 헛되이 보내기를 싫어합니다. 그
래서인지 비생산적인 듯 보이는 화투, 바둑, 장기, 당구 같은 취미는 없고 전혀 할 줄도 모릅니다.” 이
미 시니어 세대에 접어들었지만 10대에 세웠던 이 옛말을 마음에 새기고 ‘한시도 낭비하지 않고 살아
야지.’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 강한 신념이 묻어 있다.
“지금은 경영 컨설팅 그리고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늘 사회와 민족을 위하여 일할
것이라는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기회가 올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는 한동안 체육 단체 관련 사
회 활동도 했다. 권투인들 사이에서 마당발로 통하고 사단 법인 한국권투위원회 상임 부회장과 경기도
아마추어 복싱연맹 회장까지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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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4장 Declare: 명확한 목표를 세워 당당하게 선언하라
이장락 _ 위기를 기회로 바꾼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 고려전기소방안전관리(주) 대표 이사
“안 되면 되게 하라!” IQ가 아니라 깨우침-도전-열정으로 회사를 창업하여 경쟁력 있는 전기 소방 안
전 관리 전문 기업인으로 우뚝 선 고려전기소방안전관리(주) 이장락 대표의 서릿발 같은 어록이다. 이
장락 대표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한글도 못 읽고 IQ 65에 말더듬이 꼴찌 학생이었다. 그러나 열정
하나로 인생을 뒤집어 3개 회사 CEO가 되었다. 신장 이식 2번에 심장 수술 그리고 소아마비와 언어
장애까지 온몸이 종합 병동이었던 최악의 콤플렉스를 성공 신화의 밑거름으로 삼아 인간 승리의 주인
공으로 변신했다. 현실은 나의 스승이요 고통은 창조이고 슬픔은 정화다. 패배는 깨우침이고 실패는
나의 발견이니 절대 긍정의 생각으로 승리할 때까지 도전하자.
이 대표를 보면 콤플렉스도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고려전기소방안전관리(주) 이장락 대표가 격변의 시
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자신
의 인생사를 진솔하게 고백한다. 다음은 그가 전하는 바를 요약 정리한 내용이다.
1. 가난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5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경북 영덕을 떠나 대구로 전학 온 후부터 자취하면서 구두닦이, 신문 배달, 프레스 공장 등에서 닥
치는 대로 일을 했고, 고등학교, 대학교는 야간 학과를 졸업했다. 고생과 경험은 영원한 활력소다.
2. 운이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2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온몸이 완전히 마비가 되었으나 이를 극복해
지금은 한쪽 어깨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말더듬이로 학창 시절 내내 고통의
연속이었다. 회사 생활에도 어려움이 많아 늘 열등감과 자괴감에 짓눌려 살며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언어 심리 책과 말더듬 교정 학원을 수없이 다녀 심리 컨트롤을 했다. 대학
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을 해 첫 월급을 받고 나니 회사 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학교에서는 열등생이
었지만 사회에서는 우등생이 되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마침내 대기만성형 기업인으로 거듭났다. 준
비하라, 기회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행운은 우리에게 찾아온다.
3. 배운 게 없다고, 공부를 못 한다고, 몸이 약하다고 탓하지 마라: 초등학교 5학년까지 한글을 깨우치
지 못해 힘들었다. 나는 IQ 검사는 절대 믿지 않는다. 성공은 IQ가 아니라 깨우침이고 도전이며 열정
이 좌우한다.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이는 경청 습관은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4. 현실이 막막하다고 포기라는 말을 함부로 꺼내지 마라: 나는 신혼 초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연탄
피우는 아파트로 들어가 살았다. 그리고 보증금으로 들어간 500만 원마저 1차 신장 이식 수술 비용으
로 들어갔다. 일부 남은 돈을 가지고 하남시 신장동으로 이사 와서 수술 후 누워 지내던 1년간 집사람
이 봉제 공장을 다니며 돈을 벌었다. 번 돈에서 월 50만 원 이상이 약값으로 들어가고 한 달을 10만
원으로 1년간 버텼다. 이때는 정말 희망이 없어 보였다. 절망과 인생 포기라는 마귀의 시험에 질 뻔했
다. 신장동에서 쫓겨나 신림동 지하실 연탄 피우는 단칸방에서 생활했다. 전세금이 턱없이 부족하였지
만, 회사에서 업무 능력을 눈여겨본 사장님이 흔쾌하게 융자해 준 덕분에 서울 생활을 시작할 수 있
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했다.
5. 병고로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죽겠다고 말하지 마라: 2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 소리 들으며 죽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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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비를 수없이 넘겼다. 1987년 1차 신장 이식(누님), 1998년 심장 동맥 모두 막혀 우회 수술, 2003년 2
차 신장 이식(친구)을 받았다. 면역력이 없어 감기만 걸려도 입원을 했다. 소변이 적게 나오거나 심장
에 이상한 느낌이 올 때마다 초긴장했다. 심장 수술 후 너무 고통스러워 밤새 종교 방송을 청취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 계기로 교회에 나가게 되어 지금은 장로교회 집사가 되었다.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고 모든 일에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다.
6. 일자리가 없다고, 해고되었다고 사회를 원망하지 마라: 1980년대 취업하려고 대구 3공단, 경상도
일대 회사 60여 곳에 이력서를 냈다. 나는 이력서를 낼 때 현장을 찾아가 책임자를 만나 나를 피력했
다. 그리고 마침내 취업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확고한 목표만 있으면 과감히 사표를 내고 도전하고
행동했다. 나는 꿈을 위해 기술을 배우려고 청춘을 불살랐다. 20대에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전기,
소방, 통신, 공조 냉동, 열관리 환경, 가스 위험물, 보일러, 기계 설비, 설계 등 자격증을 취득하고 경
험을 무기로 성공의 탑을 쌓아 올렸다. 취업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취업을 쉽게 하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다양한 실무 경험과 실력을 갖추어야만 회사도 세상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행동하라! 행동에는 말보다 훨씬 큰 힘이 있다.
7. 사업장, 전 재산을 잃었다고 죽겠다고 생각하지 마라: 1997년 IMF 때 부동산 투자를 했다가 전 재
산(마포 염리동 5층 건물, 신내동 주유소, 제주도 땅 등)을 다 날리고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고 그 스
트레스로 인해 심장 수술까지 받았다. 무지와 과욕은 저승의 지름길이다. 부동산에 재도전하려고 한양
대 대학원 경 공매 과정을 수료했다. 지금은 남에게 부동산 컨설팅을 해 줄 정도의 전문 실력을 갖췄
다. 실패와 경험은 자신감을 키워 주고 자신을 더욱 도전하게 만든다. 실패를 반면 교사로 삼아 현재
도 부동산 투자 개발을 하고 있다.
8. 운명을 바꿔 준 책 한 권과 다양한 경험들: 소년 시절, 가난과 문제아는 한때 나를 둘러싼 수식어들
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던 시절 더 이상 바닥을 칠 수 없는 막장까지 갔지만 생각을 뒤집고 처절하
게 인내하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으니 행운이 아닌가! 이는 과거에 습득한 세상살이 경험과 대응 전
략의 결과물이다. 혹독하게 견디는 사람에게만 행운이 찾아온다. 20세에 처음 읽기 시작한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책은 바로 40세 이전에 반드시 한 번은 ‘열공’을 해야 꿈을 이룰 수 있
다는 내용이었다. 행동만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 부모, 형제, 친척도 포기하던 때, 내 인생에 위기
감이 엄습한 스무 살 시절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두려움을 가로질러 행동으로 나
아간다면 우리는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

5장 Share: 사람과 사업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감사한 마음과 태도로 나누어야 한다
이선구 _ 생명을 살리는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사장
나눔 실천으로 대통령을 뽑으라면 생명을 살리는 (사)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 이사장 이선구 목사가 0순
위가 아닐까 싶다. 이선구 이사장은 서로 조금씩 나눔으로 배고픔과 고통 없이 모두가 행복하고 향기
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나눔 천사로 유명하다. 끼니를 굶는 어르신 등 전국
의 저소득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빨간 밥차를 몰고 다니며 따뜻한 식사 봉사를 10년 넘게 해 오고 있
다. 코로나 창궐로 지구촌 경제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도 빨간 밥차는 연중무휴 멈추지 않고 달려
왔다.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쌀 나눔과 빨간 밥차 무료 급식 사업은 이선구 목사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봉사 실천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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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코로나 여파로 빨간 밥차 돕기 자선 바자회를 열어도 운영 기금 마련이 쉽지 않지만 이선구 목사는 그
어떠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빨간 밥차를 멈출 생각이 없다. 나눔의 성(成)은 나눌수록 커지고 견고해
진다. 그러나 재물이나 권세는 모래성과 같아서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
이선구 목사는 2007년 1월 비영리 법인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를 설립하고 전국의 소외 계층에 먹거리
지원 사업을 해 오고 있다. 서울역 광장과 인천 주안역, 부평역을 비롯하여 400곳이 넘는 수도권 지역
에서 끼니를 굶는 이들에게 매주 1~2회 따뜻한 밥을 제공하는 무료 급식 차량 사랑의 빨간 밥차를 운
영하고 있으며 그 범위를 전국으로 계속 확대해 나가고 있다. 무료 급식 봉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도
1천여 명에 이를 정도로 호응도가 높다. 또한 ‘사랑의쌀나눔운동본부와 함께하는 사랑의 쌀 나눔 행사’
를 통해 모아지는 쌀은 장애 아동과 치매 노인들을 위한 미인가, 미자립 복지 시설 등에 제공된다. 모
델 하우스 개관, 결혼식 및 사무실 이전이나 개업식 등 행사에서 한순간 사용했다가 쓸모없이 버려지
는 축하 화환 대신 쌀로 받아 해당 지역의 중증 장애 아동, 독거노인 시설, 결식아동 등에 전달하여 더
불어 사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사랑의쌀나눔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선구 목사는 시간을 금쪽같이 소중하게 활용한다. 단 몇 분도 허투루 보내는 법이 없다. 그의 독서
습관을 보면 그가 얼마나 시간 활용을 잘하는지 알 수 있다. 이선구 목사는 1년에 2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독서왕이다. 자투리 시간과 속독을 통해 일주일에 4~5권의 책을 읽어 1년에 200권 이상을 소화
한다. 책상은 물론이고, 침대 머리맡에도, 화장실과 식탁 옆에도 항상 읽을 책을 준비해 놓는다. 아침
에 출근할 때, 버스, 지하철, 기차, 택시를 기다리거나 이동하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 차를 직접 운전
할 경우 신호등을 기다리는 시간도 독서가 가능하다.
이선구 목사의 삶도 질곡의 여정이었다. 한때는 뭇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빌딩 몇 채를 소유한 건
물주였다. 주말마다 골프를 치러 다니고 펑펑 쓰고 즐기며 살았다. 그러나 평생 떵떵거리며 살 것 같
던 부와 영광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 견디다 못해 자살 기도와 통제 불능의
자포자기 삶이 이어졌다.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 운명을 송두리째 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처참
한 생활을 견뎌야 했다. 삶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죽을힘을 다해 자신과의 치열한 사투를 하고 난
후였다. 결국 삶의 구원자는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회생한 삶은 화려한 빛으로 다시 세상을 안
겨 주었다.
그러나 인생에서 승리하였다는 자부심에 빠져있을 때 IMF와 연대 보증 채무로 인해 또다시 삶의 밑바
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쌓아 올린 부와 명성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다시금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가진 것 다 내어 주고 빈손으로 다시 자신과 마주 섰을 때 비로소 손에
움켜쥐고자 하는 것은 언제든 잃어버리고 만다는 교훈을 깨달았다. 어둠이 깊을수록 밝은 빛이 오듯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질곡의 삶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났다. 세속에서
얻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다 버리고 얻은 삶이었다. 그래서 쌓아도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城을 쌓아
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바로 나눔의 성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랗고 튼튼한 나눔의 성으로 제일 먼저 신장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는
(사)한국신장협회를 세웠다. 신장협회를 통해 하루하루 힘겹게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사람들을 살려
냈다.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시작되는 삶을 찾은 사람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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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을 보니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또 눈에 보였다. 사랑의 쌀 나눔 운
동은 그렇게 숙명처럼 다가왔다.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먹을거리를 서로 나눠먹던 우리의 옛 모습을
되찾자는 마음으로 사랑의 쌀 나눔 운동을 시작했다.
이는 개인 한 사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나눔 운동! 사랑이 메말라 인색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서로 먼저 손길을 내미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사랑의 쌀 나눔 운동을 하면서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았다. 개인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나눔의 향연! 많은 사람들이 바쁜 생업에 쫓기는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 기꺼이 ‘나눔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내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삶도 행복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행복을 어떻게 전할지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을 전하는 일은 아
주 간단하다. 빗장을 닫고 있던 사람들과의 소통이 행복을 전하는 지름길이다.
사람들이 사랑의 빨간 밥차와 사랑의 쌀 나눔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행복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가진 것을 쪼개고, 시간을 쪼개고, 가진 건강을 쪼개어 나누기 위해
온다. 그들은 결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행복을 나
누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먼저 아는 사람들이다.
“그 많던 부와 재물을 한순간에 잃은 것도 지나고 보니 지금의 내가 있게 한 비싼 수업료라고 생각합
니다.” 그는 오히려 지금이 홀가분하고 마음은 더 부자가 되었다며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
다. 이선구 목사는 세속의 물욕(物慾)과 탐욕(貪慾)을 버리고 아무리 나누고 퍼 줘도 영원히 줄어들지
않은 ‘나눔의 성(城)’을 쌓아 올리며 하루 24시간을 알곡처럼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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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즈 이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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