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볼레벤 지음 / 에코리브르
나무가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숲의 운명과 인류의 운명이 서로 밀
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나무와 인류의 이러한 관계는 기후 위기에 직면한
오늘날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책은 나무의 속성을 독자들이 숲을 거닐며 생각할 수 있는 기
회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나무가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을 어떻게 학습하고, 우리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관찰할 것인지를 알려 준다.
나무의 긴 숨결
페터 볼레벤 지음
▣ 저자 페터 볼레벤
1964년 본에서 태어나 로텐부르트암네카르의 산림경영전문대학에서 공부했다. 20년 넘게 라인란트팔츠
주 산림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기존의 산림 경영에 회의를 느껴, 안정된 공무원을 그만두고 휨멜 지
역의 산림 경영 전문가가 되었다. 2007년 첫 책 《보호자 없는 숲》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나무 수
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나무의 비밀스러운 삶》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슈피겔 베스트셀러에 오르
기도 했다. 그 밖에 《숲, 다시 보기를 권함》, 《자연 수업》, 《나무의 말이 들리나요?》,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 《숲 사용 설명서》 등을 펴냈다. 현재 아이펠에서 숲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원시림의 복
구, 자연 보호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활동하고 있다. 2019년 ‘바이에른 자연보호상’을 받았다. 2020
년 동명의 책을 영화로 제작한 〈나무의 비밀스러운 삶〉은 35만 명이 관람했다.
▣ Short Summary
숲의 운명과 인류의 운명은 서로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는 어쩌면 당신의
귀에 암울하고 무섭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큰 희망이 있다. 나무는 너무나 효율적으로 사
회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적어도 현재의 기후 변화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극복해 낼 수 있다. 이뿐만
이 아니다. 나무를 심는 것은 온실가스를 우리의 대기권에서 몰아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며, 어떠한 기술적인 조치보다도 훌륭하다. 게다가 나무는 해당 지역의 기온을 상당히 많이 떨
어뜨리고 심지어 비의 양도 눈에 띄게 늘어나게끔 해 준다. 물론 나무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우
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다. 나무 역시 너무 덥거나 너무 건조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우리와는 반대로 기온을 다시 내려가게 할 수 있다.
이 책과 함께 숲을 따라 걷는 여행을 하면서 나는 여러분에게, 나무가 학습하는 모습을 어떻게 관찰할
수 있는지 보여 주려고 한다. 또한 여름에 너도밤나무나 가문비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이 왜 문제가
되지 않는지, 그리고 전략을 잘못 선택한 나무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도 보여 주려고 한다.
이렇듯 나무가 지닌 비밀스러운 삶의 암호를 해독하려는 연구는 현재 상당한 수준에 와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박테리아나 균류 같은 미세 생물의 역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
지만 나무한테 이런 작은 미생물은 우리 인간의 장내 세균처럼 매우 중요하다. 결국 모든 나무가 그 자체
로 이미 하나의 생태계라는 것과 함께, 모든 나무는 셀 수 없이 많은 놀라운 생명체가 살고 있는 하나의
행성과 유사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숲은 공기의 흐름을 적절하게 만들어 내고, 이 공기의 흐름은
구름에 포함되어 있는 물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륙까지 끌고 가서 그곳에 비를 내리게 한다. 이런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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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긴 숨결
가 내리지 않는다면 이 지역은 그야말로 사막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따라서 나무는 인간이 전 세계 기후
에 불러온 변화로 인해 발생한 고통을 수동적으로 겪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나무는 자신의 환경을 적
극적으로 만들어 가며, 뭔가 통제 안 될 것 같은 위험이 생기면 이에 반응한다.
나무가 그와 같은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시간과
휴식이다. 숲에 개입하는 그 어떤 행위도 이 같은 생태계를 퇴보시키며, 나무 스스로 새로운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것을 방해한다. 수십 년 전부터 숲을 산책하다 보면 벌목으로 인해 황폐하게 드러난 모
습을 볼 수 있다. 이는 현대의 임업이 얼마나 숲을 해치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우리가 손을 대지 않고 내버려 두는 숲은 또다시 신속하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한
다. 인간은 절대 숲을 만들 수 없다. 잘해 봐야 대규모 농장이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숲이 다시 자신의 모습을 되찾도록 도울 수 있다. 어느 정도 겸허한 자세로, 숲에서 비켜
있음으로써 말이다. 그리고 자연엔 자생력이 있다는 낙관주의를 견지하면 미래에는 무엇보다 나무로
가득한 숲, 녹색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 차례
들어가는 말
1부 나무의 지혜
01 나무가 오류를 범하면 / 02 1000년 동안 배우기 / 03 지혜는 씨앗에 숨어 있지
04 겨울에 충분한 수분 빨아들이기 / 05 벌레를 막으려는 빨간색 잎 / 06 아침 형과 늦잠 형
07 냉난방 장치 숲 / 08 중국에 비가 오면 / 09 배려하기, 거리 두기
10 박테리아: 과소평가받는 능력자
2부 산림 경영의 무지
01 궁지에 몰린 상황 / 02 너도밤나무 숲에서의 학살 / 03 독일은 슈퍼 나무를 찾는 중
04 좋은 뜻에서 한다지만 좋을 때가 드물다 / 05 노루: 새로운 나무좀벌레?
06 기후 보호자로서 늑대 / 07 나무: 정말 완전히 생태학적인가 / 08 돈을 지불하시죠
09 화장실 휴지 논쟁 / 10 더 많은 돈, 더 줄어드는 숲 / 11 상아탑이 흔들린다
12 당신의 접시에는 무엇이 있나요
3부 미래의 숲
01 모든 나무가 소중하다 / 02 모두가 한배를 타야 하나 / 03 신선한 바람
04 숲은 돌아온다 / 05 무지와 숲에서 주의할 점에 관하여: 피레 이비슈의 후기
감사의 말 /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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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긴 숨결
나무의 긴 숨결
페터 볼레벤 지음
1부 나무의 지혜
지혜는 씨앗에 숨어 있지
숲에서 산림을 경영할 때는 너무나도 분주한 경우가 많다. 사람이 어떻게 산림에게 기후 변화와 열기
그리고 가뭄의 시기를 대비하라고 할 수 있을까? 나무는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유전적 적응력
을 고려하면 유감스럽게도 극단적으로 천천히 배운다. 유전자가 변화함으로써 특징이 바뀌는 돌연변이
는 다음 세대에 가서야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적인 숲에서 나무가 나이 들어 죽은 다음에야 비
로소 다음 세대가 탄생한다. 종류에 따라서 이 기간은 60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는 기후 변화의 시대에 느려도 너무 느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동물들-예를 들면 토끼-은 확실히 뛰어나다. 암컷 토끼는 새끼를 배고 있는 동안
또다시 새끼를 임신해 엄청나게 빨리 증식할 수 있다. 토끼는 1년에 서너 번 새끼를 낳음으로써 유전
적 편차와 적응에 잘 맞출 기회가 있다. 그러나 유전자 돌연변이는 목적에 맞게 진행되지도 않고, 그
래서 변화에 특별히 효율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으며, 한
다고 해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식물의 경우 하나의 과정에서 우연히 적응을 더 잘하는 나무가 나오려면 1,00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연을 차단하고 과정의 속도를 올리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 인간은 그렇게
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 돌연변이가 아니라 구두나 문서로 경험을 전달한다. 나무는 전통적 의미의
문자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나무는 후손을 위해 정보를 기록한다. 바로 자신들의 유전자에
말이다. 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 전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시기를 잠시 들여
다보자.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과학계에서 유전자 변화는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돌연변이를 통해 가
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이런 견해가 바뀌었다. 1944~1945
년 겨울, 많은 네덜란드인들이 독일의 억압으로 생필품이 부족해 굶주렸다. 추측하건대 임신한 여자들
은 이러한 경험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신진대사에 ‘영양 부족’이라고 프로그래밍해 전달했을 것
이다. 전쟁 이후 식량이 넘쳐났지만 어머니 배 속에서 전쟁을 겪었던 그룹은 훗날 건강상 심각한 문제
를 안게 되었다. 그들은 보통 네덜란드인에 비해 과체중인 경우가 많았고, 다른 현대병에 걸리는 경우
도 많았다.
우리의 외모와 기능을 결정하는 것은 유일하게 유전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신체의 개별 세포가
보여 준다. 이러한 세포에는 이미 완전한 인간에 대한 설계도가 촘촘하고도 왜곡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 같은 DNA는 2미터 길이로 뻗어 있고, 여기에 각각의 신체 부위에 부분적으로 필요한 많은 정보는
분자 차원에서 맞춰진다. 예를 들어 우리의 손에 있는 세포는 뇌에 있는 세포와 다른 형태다. 하지만
신체는 성장할 때나 부상을 치료할 때 어떻게 거기에 딱 맞는 세포 형태를 만들어 내도록 할 수 있을
까? 여기에서 후생유전학이 등장하는데, 후생유전학은 유전자 가운데 어떤 부분을 켜거나 끌지 결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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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긴 숨결
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우리의 DNA는 마치 한 권의 사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사전 안에는
우리의 신체 구조와 기능에 대한 전반적 지식이 저장되어 있다. 후생유전학적 과정은 지금 읽어야 할
페이지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책갈피와 같다. 유전자 코드에 들어 있다가 이 코드를 바꾸는 메틸 분
자의 도움을 받으면 책갈피를 끼워 놓을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유전자가 경험을 통해 영향을 받는
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네덜란드에서 겨울에 굶주렸던 사람들이 이를 입증해 주었다.
뮌헨 공과대학의 과학자들이 아주 오래된 포플러나무를 통해 보여 주었듯이 나무들 역시 경험을 계속
전달할 능력이 있다. 330년 넘게 오래된 나무는 가뭄이나 온도 같은 환경의 변화에 지속적으로 적응했
으며, 이는 나무의 유전자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오래된 포플러나무의 유전자가 변했다는
사실을 어디에서 알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서로 멀리 떨어진 가지에 달려 있는 잎을 조사해보면
된다. 가지는 매년 점점 길어지고, 이로써 나이를 더 먹는다. 가장 오래된 부분은 줄기 가까이에 있고,
가지는 줄기에서 밖으로 뻗어 나가며, 가장 어린잎은 나무 꼭대기에 있다. 포플러나무가 수백 년이 지
나는 동안 배우고 그들의 유전자도 후생유전학적으로 변한다면, 가장 두드러지게 변화한 것은 가지 끝
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
연구원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입증했다. 즉, 가지에 달린 잎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책갈피’와 연관 지어 볼 때 그만큼 서로 많은 차이가 났다. 연구 대상인 포플러나무에서 세대가 바뀌
며 나타난 돌연변이와 비교할 때, 변화는 많게는 1만 배까지 더 빨리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나무가 이렇게 수집한 새로운 것(또는 경험)을 바로 이어지는 자손한테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많은 세
대를 거치면서까지 전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나무는 해마다 늘어나기 때문에 매년 자손한테
새롭게 적응된 특징을 물려줄 수 있다.
큰 나무의 후손인 어린나무가 자기 어미로부터 배우는지 여부를 사람들은 어떻게 발견해 낼까? 숲과
눈(雪) 그리고 지형을 탐구하는 스위스 연구 기관 소속 연구원들은 이런 조사를 위해 2003년부터 숲속
여러 곳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을 선별해 물을 주었다. 이로써 나무들은 부족함 없이, 오히려 응석받이
로 자랄 가능성이 많았다. 10년이 지난 뒤 연구원들은 숲의 일부 구역에서 물을 대주는 일을 그만두었
다. 그런 다음 응석받이 소나무의 씨와 물이 부족해 건조한 환경에서 지내야 했던 소나무의 씨를 채집
해 비닐하우스에 뿌렸다. 그러자 항상 물을 주었던 어미 나무로부터 채취한 후손은 별도로 물을 공급
받지 않은 소나무의 어린 후손보다 건조한 상태를 훨씬 못 견뎠다. 이는 나무가 자신의 지식을 바로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최초의 증거였다.
비슷한 실험을 위해 거친 노르웨이 지방에서 자란 가문비나무를 멀리 떨어진 오스트리아에 옮겨 심었다.
나무는 성장하며 어린 후손을 생산해 냈다. 이 경우에도 나무의 학습 효과가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는 사
실이 드러났다. 이 가문비나무 묘목이 노르웨이에서 자라는 동료들처럼 서리에 견디는 능력을 보여 주었
던 것이다. 배움은 정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한다. 남쪽으로 많이 이동해 심은 노르웨이 가문비나무는 북쪽
보다 따뜻한 기후에 적응했다. 묘목은 어미 나무처럼 추위에 대한 내성이 더 이상 없었다.
확인되지 않은 의심이 하나 있는데, 오랫동안 살며 여러 세대로 이어지는 나무의 변화는 어쩌면 영원
히 지속될지 모른다는 게 그것이다. 나무의 어미는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배우기 때문에 이들의 싹은
최신 전략을 장착한다. 어린싹은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도 없고, 모든 실수를 직접 경험할 필요도 없다.
이는 바로 후생유전학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어미 나무의 나이가 많은 것은 결코 단점이 아
니며, 오히려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그만큼 더 현명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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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긴 숨결
어린 후손은 더욱더 적응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나무는 어미가 수백 년 동안 쌓은 경험으로부
터 이득을 얻는데, 여기서 다시 새끼를 잘 낳는 토끼에게로 시선을 돌려 보자. 토끼는 잘해야 10년을
살 수 있으며, 그만큼 후생유전학적 능력을 후손에게 적게 전달한다. 이 점에 있어 나무한테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나무가 살아가면서 배우는 것을 우리는 외부로 뻗어 있는 가지의 끝부분에서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다.
오래된 나무한테서 나온 가장 최근의 후손 안에는 지금까지 살면서 얻은 그 나무의 지식이 집약되어
있다. 이페나크의 참나무는 놀랍게도 1,000년이나 되었다. 로부르참나무(습기가 많았을 수 있다)를 페
트라에아참나무(건조했을 수 있다)로 변하게 만들었다는 걸 암시하는 놀라운 잎들의 변화를 상층에 있
는 나무 꼭대기의 가지들에서 다량으로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나무에서 가장 어린 부분이다. 이런
가지에서 자라난 열매가 비교적 오래된 가지에서 성장하는 열매에 비해 가뭄에 더 잘 적응하는 어린나
무를 만들어 낼지 여부를 밝혀낸다면 정말 흥분될 것 같다. 현재 진행되는 연구에 의하면 그럴 가능성
이 있는데, 그렇다면 나무는 지금까지 추측한 것보다 더 빨리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다. 적응 속도가 충분한지 아닌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환경 파괴를 지속함으로써 변
화를 가속화시키는 우리 말이다.
냉난방 장치 숲
나는 영화 <나무의 비밀스러운 삶>을 촬영하는 동안 나무와 기후 변화에 대한 주제와 관련해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촬영 팀과 나는 에베르스발데 단과 대학에 근무하는 피레 이비슈 교수를 하일
리겐할렌에서 만났다. 이곳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너도밤나무 숲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서 자라는
몇몇 너도밤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되었으며, 150년 전부터 그 어떤 나무도 베어 내지 않았다. 일
단 숲으로 들어가면 원시림 분위기가 에워싸는데, 쓰러진 거대한 나무는 균류가 풍기는 향긋한 냄새를
공기 중에 남기고, 셀 수 없이 많은 어린 활엽수는 희미한 빛을 받으며 아주 천천히 성장한다.
나를 비롯한 촬영 팀은 보호 구역을 돌아다니는 동안 곳곳에서 작은 기적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
었다. 가령 부러진 거대한 너도밤나무에서 가느다란 가지가 높이 뻗어 있었다. 4미터가량 되는 이 이쑤
시개 같은 가지에서 새롭게 보드라운 나무가 생겨났는데, 여기에 달려 있는 잎과 그 안에서 만들어진
당분을 통해 늙은 나무와 특히 오래된 뿌리가 생명을 유지했다.
그런가 하면 완전히 썩어 길쭉한 언덕처럼 보이는 나무줄기도 있었다. 몇 주 전부터 비가 오지 않아
경작지는 먼지가 풀풀 날릴 정도로 건조했으나 나무의 표면은 여전히 촉촉했다. 피레 이비슈는 나에게
나무를 만져 보라고 권했다. 나무는 마치 스펀지 같았다. 그런데 내가 손으로 누르자 부패한 나무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이처럼 오래된 소규모 너도밤나무 숲이 습기로 가득 차 있었는데, 지난겨울의 가뭄
을 고려하면 작은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호 구역 입구에서 전문가와 첫 대화를 나눌 때 피레 이비슈는 나무 식탁 위에 지도를 펼쳐 놓았다.
지도에는 베를린 성문 앞에 있는 다양한 지형이 표시되어 있었다. 일반 지형학 지도에서처럼 초원, 경
작지, 숲, 호수와 거주지가 각각 다양한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또 다른 지도에는 동일한 지형이 무지
개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피레 이비슈가 두 번째 지도는 온도를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색깔
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파란색부터 녹색ㆍ노란색ㆍ오렌지색 그리고 빨간색으로 구분했는데, 파란색에
서 빨간색 쪽으로 갈수록 온도가 높아지는 걸 표시한다고 했다. 이 지도는 지난 15년 동안 인공위성으
로 측정해 만든 것이다. 여름에 속하는 6~8월에 구름 없는 날에 측정해 총 470일간의 자료가 탄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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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긴 숨결
수 있었다.
항상 오후 12시에 하늘을 나는 스파이, 즉 인공위성이 베를린 상공에 있을 때 지표면의 온도를 측정했
다. 2017년에 이러한 측정을 끝마쳤는데, 더 높은 온도를 기록한 혹독한 여름이 닥치기 전이었다. 그
럼에도 측정 결과는 전율을 일으킨다. 온도를 기록한 지도를 보면, 더위는 기후 변화로 인해 유발되었
을 뿐 아니라 자연에 있는 숲의 파괴, 지형의 변화, 숲에 건설한 대규모 농장과 경작지 그리고 거주지
로 인해 대대적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도에 베를린은 심홍색으로 표시된 반면, 주변 호수들은 진한 파란색이었다. 15년 넘게 베를린의 여
름날 오후 온도는 약 섭씨 33도를 기록했는데, 어떤 지역의 물 표면은 섭씨 19도를 넘지 않았다. 여름
동안 주변에 있는 숲은 어땠는지가 훨씬 더 흥미로웠다. 색깔로 온도를 표시한 지도를 봤을 때 처음엔
호수와 숲이 잘 구분되지 않았다. 숲이 온도를 낮추어 준 것이다. 베를린 같은 도시와 오래된 숲의 온
도 차이는 약 섭씨 15도에 달했다. 또한 초원과 경작지가 있는 들판은 섭씨 10도까지 더 따뜻했고 아
울러 황량한 단종 재배 농지는 진정한 의미의 숲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농장의 온도는
오래된 활엽수 숲과 비교했을 때 많게는 섭씨 8도까지 높았다. 훼손되지 않은 숲이 기후를 서늘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숲은 우리로부터 상당한 존중을 받을 만하다.
환경 보호론자들은 열 감지 사진기를 통해 쾰른시의 사진을 찍었는데, 이 대도시는 우리의 숲 아카데
미가 있는 곳에서 차로 1시간 떨어져 있으며 라인강의 저지대에 위치한다. 푹푹 찌는 여름이면 건물과
아스팔트가 빨간색으로 빛난다. 반대로 공원에 있는 나무숲은 파란색을 띠고 마치 호수처럼 보인다.
이는 온도가 어떤 상태인지 보여 준다. 녹색의 초원에서 측정한 온도는 많게는 섭씨 20도까지 내려간
상태다. 이는 도시에 더 많은 나무가 필요하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 밖에 숲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선물
을 해 준다. 바로 대기 흐름을 통해 숲은 더 많은 비가 내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2부 산림 경영의 무지
너도밤나무 숲에서의 학살
2019년 9월 튀링거 숲에서 맞이한 어느 일요일, 계곡 쪽에서 폭발음 소리가 진동하더니 오래된 너도
밤나무들이 쿵 하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독일 연방군이 거대하고 오래된 나무 옆에 일정량의 폭약을
설치했고, 첫 번째 폭발에 너도밤나무 30그루와 가문비나무 두 그루가 쓰러졌다. 관청이 숲에서 일어
난 위기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언론에 광고하기 좋은 장면이었다. 물론 나무들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병들었다면, 누구도 그 곁에 다가가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나무에 폭약을 설치할 정도로 위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왜 그냥 강철 밧줄로 나무를 감아 안전한 거리에서 쓰러뜨린 다음 견인차로
옮기지 않았을까? 나는 폭발 모습을 동네방네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전국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병에 걸린 오래된 너도밤나무의 가지가 부러져 떨
어지거나 나무가 통째로 쓰러져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서둘러 벌목하고 있는 것이다. 폭약
이 동원되고 때로는 무시무시한 벌목 기계, ‘랍토르(raptor; ‘약탈 공룡’)’가 투입되기도 한다. 무게가 70
톤이나 나가는 이 기계에 달려 있는 크레인은 오래된 나무를 장난치듯 잘라 낸다. 랍토르는 하루 만에
많게는 병들고 늙은 너도밤나무를 80그루까지 베어 내 오래된 활엽수 숲을 해치운다.
하지만 나약해 보이는 모든 게 죽은 것은 아니다. 병든 너도밤나무는 그야말로 완쾌할 수도 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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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긴 숨결
무 꼭대기 부분이 완전히 죽었다 하더라도, 많은 나무는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 그걸 대체할 수 있는
수관을 만들곤 한다. 이렇게 해서 나무는 수백 년의 나이를 먹는다. 8월에 잎을 떨어뜨린 많은 나무도
이듬해 봄에 다시 정상적으로 잎을 돋아나게 할 수 있다. 나무는 이렇게 배운다. 이렇게 배우고 살아
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무들이 인간에게 끼칠 위험을 막는다는 미명 아래 제거되고 있는 게 안타
깝다. 나에게는 계속해서 나무를 베기 위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성급하게 벌목해서 숲을 죽게 만드는 또 다른 원인으로 감정적인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수십 년에 걸
쳐 세심하게 가꾼 대규모 숲이 갑자기 시름시름 앓으면서 죽어 간다면, 이는 산림 경영에 실패했다는
신호일 수밖에 없다. 숲에 엄청나게 많은 나무가 죽은 채로 서 있다면 산림 감독관은 질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죽어 가는 가문비나무와 소나무의 경우는 담당 관청과 산림학자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독일의 많은 도시에 침엽수를 심은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의 파괴 때문이었다. 독일은 재건을 위해 목
재 산업의 신속한 발전이 필요했다. 몇 년 전까지도 유명 인사들이 침엽수를 활엽수로 대체하는 대규
모 조치에 대해 경고했다. 예를 들어 헤르만 슈펠만 교수는 2015년, 최근에 심은 나무들 가운데 침엽
수가 극적으로 감소했다고 말하면서 침엽수를 목재로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슈펠만 교수
는 2020년까지 독일 농림부에서 숲 정책 관련 과학 자문단의 회장을 맡았다. 따라서 그가 하는 말은
숲의 미래를 만들어 갈 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죽어 가는 너도밤나무가 뒷받침해 준다. 이 멋진 활엽수가 극심
한 벌목으로 사라졌고 이와 함께 주변 나무들과의 연계 또한 사라지고 말아 살아남은 오래된 나무들도
중대한 생존 압박을 받게 되었다. 활엽수인 너도밤나무가 사라지자 숲은 빛이 잘 통과하게 되었고…
여름의 열기로 인해 숲의 상태가 형편없이 나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이 토종 나무를 포기해도 산
림 경영의 책임이 아닌 것이 되었다. 문제가 발생해도 담당자들은 당황하거나 고민할 필요 없다. 왜냐
하면 공식적으로 어떤 종의 나무가 살아남지 못하게 되면,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간단하게 숲 전체를 바꿔 버리기 때문이다. 이 말이 과장된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
실 이미 많은 숲이 이런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더 많은 돈, 더 줄어드는 숲
숲은 두 번째로 죽어 가고 있다. 첫 번째 죽음은 1980년대에 일어났다. 당시 산성비가 우리의 녹색 폐
를 위협하는 바람에 나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1983년 대학에서 산림 경영을 배우던 나는 졸업 전
이라 막 실습을 나간 참이었다. 그런데 산성비라는 암울한 현실을 접하자 내가 과연 이 직업에 종사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나무라곤 찾아볼 수 없이 회갈색을 띤 황량한 풍경을
다큐멘터리로 보여 주며, 2000년 무렵에는 유럽에서 드넓은 숲을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자 정치가들이 강력하게 반응했다. 예를 들어, 기술적인 장치를
통해 산업계가 방출하는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황 성분을 제거하거나 자동차에 배기가스 저감 장치를
장착하도록 이끌었다. 숲이 다시금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환경을
성공적으로 보호한 사례는 점차 잊혔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나무가 위험에
빠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기억해야만 한다.
두 번째 숲의 죽음은 2018년에 시작했다. 산불로 인해 수천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농장에 심은 가문
비나무를 잃어버렸고, 신속하게 숲의 죽음 2.0이 탄생했다. 20세기의 첫 번째 죽음과 달리 두 번째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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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긴 숨결
정은 너무나 빨리 진행되어 모두가 분명하게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숲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죽음에서 비슷한 점은 위협이 외부에서 닥쳤다는 것인데, 숲을 죽게 만든 원
인은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 환경의 변화로부터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확연한 차이점은 대농장의 피
해가 특별히 심각하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가문비나무와 소나무처럼 토종 나무가 아닌 것을 심은 농
장의 피해가 상당하다. 너도밤나무와 참나무는 벌목이 심한 숲에서나 가까스로 목격할 수 있었을 뿐
훼손되지 않은 거대한 보호 구역에 있는 활엽수는 저항력이 매우 탁월했다.
다양한 숲을 비교해 보면, 숲이 죽어 가는 좀 더 심오한 원인은 바로 관습적으로 산림을 경영함으로써
생태계가 약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게 드러난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숲이 죽어 가는 게 아니라 ‘오
로지’ 나무가 죽어 간다. 트로이엔브리첸에서 발생한 산불이 보여 주었듯 생태계는 아직도 그 자체로
잘 작동하고 있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모든 곳에서는 숲이 즉각 새로운 나무를 자라나게 함으로써
강력하게 잘 대응한다. 오로지 쨍쨍 비치는 햇빛에 노출되어 지면의 온도가 높아지는 곳에서만, 땅 위
로 차량들이 지나다녀 부식토가 전혀 없는 곳에서만 숲이 정말 죽어 가고 있다.
민둥산으로 이루어진 숲에 국가가 돈으로 축복을 내리더라도, 유감스럽지만 책임 있는 담당자의 행동
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자연은 제대로 된 숲을 다시 조성할 수 없고 산림 행정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때문에 거대한 민둥산을 고려할 때 재정적으로 강력한 지원을 하는 게 당연
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던져 보자. 병든 숲을 건강하고 저항력 있는 숲으로 되돌려
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독일 정부는 2020년 한 해에만 산림을 위해 5억 유로 이상을 지원했다. 그러나 목재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는 뜨거운 돌에 붓는 물 한 방울에 불과하며, 절대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과연 정말
그럴까? 지금 거액의 정부 지원금은 무엇보다 나무를 심는 데 쓰인다. 다시 말해, 새로운 농장을 조성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으로 전혀 이롭지 않으며, 반대로 지원금을 태워 버리는 행동이라
는 것을 우리는 트로이엔브리첸 숲의 화재에서 목격했다. 엄청난 금액의 정부 지원금이 자연과는 거리
가 먼 썩어 빠진 시스템을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시스템은 유연하지 않아서 병들어서
더 빨리 죽는 나무 경작지만 고집하고 새로운 숲도 저항력을 잃게 하고 만다.
내가 보기에 나무 심기 프로그램에는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산림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자
신들이 스스로 유발한 문제를 시각적으로 사라지게 할 목적으로 많은 비용을 들인다. 그리고 해결하지
못할 과제를 해결하려 시도한다. 전체 숲의 규모를 고려해 볼 때,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여기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산림과 연관된 모든 분야에서 저지른 실패의 규모를 공공연하게 기만하지 않고,
책임지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작품이 말라 죽어 가거나 곤충한테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
는 것을 과연 누군들 좋아하겠는가? 나는 1990년 당시 여러 차례 폭풍이 몰아쳐 수천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뿌리 뽑히고, 그리하여 수십 년 동안의 풍경이 바뀌자 일찌감치 퇴
직해 버린 산림 감독관 동료들을 알고 있다. 그때도 주로 침엽수 농장이 대부분 피해를 입었는데, 사
람들은 재빠르게 그것들을 치우고 나무를 다시 심었다.
사람은 자연을 고치고 수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행되고 있는 국가의 개입은
자연을 개선하고 수리하고자 하는 거대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런 시도의 배후에는 숲을 처음부터 다
시 새롭게 완벽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그래서 적합한 슈퍼 나무를 찾아 이것을 민둥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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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긴 숨결
심으려 한다. 말 그대로 그와 같은 불행을 처리하고 다시 숲을 탄생시켜 현안을 신속하게 해결한 것처
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독일의 이와 같은 산림 경영이 행하는 강력한 해결 방식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제재소는 죽은 가문비나무를 원하지 않는다. 죽은 가문비나무 몸통에는 순식간에 균류와 곤충이 퍼져
나가고, 이로 인해 변색과 함께 흉측한 구멍도 생겨난다. 누가 이런 목재로 만든 널빤지, 가구, 지붕의
마룻대를 구매하겠는가? 목재 제품의 가격이 신속하게 떨어지고 벌목과 가공 그리고 숲길에서 목재를
운반하는 비용이 상승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죽은 가문비나무 숲에 있었다면 그 몸통은 수많은 미생물의 터전이 될 것이다. 물을 저장하고 주변을
시원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면 부식토로 분해되어 수백 년 동안 땅에서 사는 생명
체를 풍부하게 해 줄 것이다. 이렇듯 숲에서 일어나는 생태학적 시각은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책임자
들에게 예나 지금이나 매우 낯선 게 분명하다. (소중한 유기 물질이라고 할 수도 있는) 훼손당한 나무
를 치우는 데 어떻게 정부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정부 보조금 가운데 대부분은 나무좀의 공격을 당한 나무를 벌목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 하지
만 숲을 새롭게 조성하는 목적으로 쓰여야 할 정부 보조금이 주먹구구식으로 사용처 증빙도 없이 지출
되고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산림 경영은 이처럼 생태를 위한답시고 겉치레만 할
뿐이다. 일부 사람들은 ‘지속 가능 보조금’이라 불리는 돈으로 파렴치하게 새 차를 구입하거나 집수리
를 하기도 했다. 나는 숲 소유주들을 지원하는 것을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우리는 농업에서 벌어
졌던 것과 동일한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제 보다 안정적인 생태계로 복귀해야 하고, 이를 위
해 일하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
3부 미래의 숲
숲은 돌아온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숲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만 한다면, 숲은 돌아온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의 리듬에 맞춰 재난은 항상 불어닥치고 그때마다 숲은 재생했다. 북아메리카 동부의 활엽수 숲은
오늘날까지 특별히 많은 피해를 입곤 하는데, 산맥들이 대체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탓이다.
그로 인해 남쪽에서 부는 따뜻한 공기와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섞이면 폭풍이 특히 격렬하게 몰아칠
수 있다. 그래서 너도밤나무, 참나무, 단풍나무로 이루어진 숲조차도 100년도 채 안 되어 다음 폭풍을
맞곤 한다. 반면 유럽은 전혀 다르다. 이곳의 활엽수는 500년 또는 그 이상의 수명을 원시림에서 누린
다. 드물게 큰 규모의 폭풍이 불어닥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런 과정을 그냥 내버려 두면,
숲 공동체는 재생한다.
나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의 관할 구역 근처에서 가문비나무 숲이 몰락하는 모습을 자주 관찰했다. 이
런 몰락은 산림 경영이 불러온 전반적인 딜레마를 보여 주며, 또한 새로운 기회를 보여 준다.
2018년 여름 나무좀벌레가 대농장 가장자리에 있는 한쪽 구석에서 맹렬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미 멀
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도 죽음과 맹렬하게 싸우느라 녹색에서 적갈색으로 변색해 가는 가문비나무 잎
이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완전히 죽은 나무는 그냥 서 있게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이성적인 방법이
다. 죽은 나무에는 나무좀벌레가 더 이상 공격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숲 소유주는 죽은 나무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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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긴 숨결
공간을 치우기 위해 벌목을 시켰다. 이듬해 겨울이 되어 중간 규모의 폭풍이 벌목한 필지에 불어닥쳤
다. 작은 숲 가장자리에 생겨난 공간은 폭풍이 공격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이로 인해 이미 폭풍과 싸
움을 치러 봤던 가장자리의 나무들도 견디지 못한다. 바람을 막아 주는 일종의 방파제가 사라진 상태
에서, 뒤에 선 채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가문비나무를 측면에서 받쳐 주는 지지대도 쓰러지고 만다.
그 결과 나무 수백 그루가 쓰러졌다. 숲 소유주는 쓰러진 나무를 제거해 땅을 정리했다. 그리고 이듬
해에 겨울 폭풍이 불어와 남아 있던 가문비나무 대부분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독일의 목재 시장은 붕괴했고, 많은 숲 소유주도 마찬가지였다. 나무좀벌레는 이어서 대
농장에서 살아남은 나무를 공격했고, 결국 숲은 완전히 민둥산이 되어 버렸다. 폭풍에 살아남은 것은
쓰러진 나무의 뿌리밖에 없었다. 이제야말로 생각을 전환해야 할 기회였다. 하지만 맙소사, 숲 소유주
는 또다시 가문비나무를 심었다. 이번에는 더글러스전나무와 함께. 어떻게 사람들이 그토록 무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2020년 초 산비탈에 일직선으로 늘어선 침엽수들이 위로 뻗어 올라갔고, 그 사이 활엽수와 많은 풀도
잎을 피웠다. 자연은 마치 수줍게 자신한테 집중함으로써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도움을 제공하는 것 같
았다. 사람들이 한 그루의 침엽수라도 더 얻기 위해 분투하든 상관없었다. 늦은 봄이 되자 사람들은 모
든 푸릇푸릇한 것들을 잘라 냄으로써 가문비나무 묘목을 무성하게 자라난 초목으로부터 해방시켰다. 하
지만 자연의 대답은 오래 기다리지 않아 나왔다. 맨 먼저 5월 중순에 내린 늦서리로 인해 많은 침엽수
의 새싹이 꽁꽁 얼어 버리고 말았다. 어린나무 옆에서 자라던 풀을 베어 내지 않았다면 이 풀들이 냉기
를 완화시켜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다음에 더욱 건조하고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이제 어린 묘목
에게는 그늘이 부족했다. 그래서 묘목 대부분이 식목한 지 1년 만에 모두 죽어 버렸다. 하지만 자연의
선물인 수천 그루의 포플러, 자작나무, 수양버들 그리고 너도밤나무는 그렇지 않았다.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뭔가 희망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자연에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
어 숲 소유주가 침엽수 목재 경영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다시 한번 침엽수만 심는다
하더라도, 자연은 항상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도움을 제공한다. 매년 새로운 활엽수의 싹이 트고, 기후
변화와 여름 가뭄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성장해서 자신들이야말로 비용도 들어가지 않고 훨씬 더 나
은 대안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나는 이런 민둥산을 지나갈 때면 매번 미소를 짓곤 한다.
적극적으로 산림 경영을 하지 않았다면 숲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의 침엽수림 지대 타이가나 아마존의 열대 우림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사실 적극적인 산림 경영은 이미 그 존립 근거를 상실해 버렸다. 기후 변화가 앞으로 우리에게 가져올
결과를 고려해 볼 때 우리는 더 많이 겸손해야 할 것 같다.
돌아온 숲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당신은 정원이나 시내에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꽃밭을 한번 살
펴보면, 거기에는 늘 묘목이 눈에 띌 것이다. 만일 당신이 정원을 가꾸지 않는다면, 10년 안에 꽃밭은
어린 숲으로 변할 것이다.
나는 숲 아카데미 행사를 하던 중 감탄해 마지않았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장소는 우리의 베르스
호펜에서 그릴 파티를 여는 오두막이었다. 주차장 옆에 테니스장이 있었는데, 아마도 사람들이 이용하
지 않았던 것 같다. 가뭄이 심했던 2018년, 2019년 그리고 2020년 아무도 테니스장을 관리하지 않자
작은 나무들이 이곳을 대담하게 이용했다. 작은 나무 수백 그루가 건조하고 압축이 잘 되어 딱딱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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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긴 숨결
래 바닥에 자리를 잡았고, 쨍쨍 내리쬐는 햇빛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지표면 아래로 내려 이곳에서 3년
동안 지속된 가뭄에도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숲이 저절로 회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테니스장의 용감한 어린나무들이 확실하게 대답을 해 준 것이다.
이처럼 어린나무는 소중한 장점을 보여 준다. 이들은 그 지역의 기후에 최적으로 적응하며, 폭넓은 유
전적 다양성을 보여 준다. 야생 나무는 항상 산림 산업이 원하는 대로 성장하지 않지만, 생존하는 데
있어서는 최상의 무기를 장착하고 있다. 따라서 야생 나무는 우리 인간에게도 더 나은 선택이다. 미래
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목재를 생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숲이 여전
히 존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대농장이 붕괴되었을 때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한때 녹색의 사막이었던 곳이 다시금 녹색의
야생으로 변한다. 바로 이곳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우선 가문비나무와 소
나무의 잎이 흘러내리고, 모든 게 갈색의 불모지로 변한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땅 전체가 풀, 잡초
그리고 수천 개의 작은 묘목으로 뒤덮인다. 이로부터 또 1년이 지나면 어린 활엽수들이 모든 다른 식
물보다 우뚝 솟아 돌출하고, 땅에 그림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5~10년 후에는 젊은 숲이 전체
면적을 뒤덮는다. 풀, 잡초, 덤불이 점차 사라진다. 이들에게는 숲이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자작나무
와 포플러나무 아래에서는 참나무, 너도밤나무 또는 단풍나무가 교묘하게 자라난다. 맨 먼저 도착한
나무의 종을 따라잡고 더 많이 성장해서 몇십 년 후에는 숲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과학자들은 최근 새로운 지질학상의 연대를 고안해 냈다. 바로 인간이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
켜 탄생한 지질 시대를 일컫는 인류세다. 우리는 인류세를 종식시켜야만 한다. 물론 인류가 퇴장해야
한다거나 우리의 문명을 바꿔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다시 자연이라는 순환 속에 들어가야 하
고,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생명체한테도 걱정 없이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한때 대부분의 대륙을 뒤덮었던 숲이 대대적으로 귀환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희망을 품
을 수 있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육류 소비를 줄임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나는 가까운
미래에 다음번 지질 연대가 등장하길 바란다. 바로 ‘나무의 시대’다.
이제 우리는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숲은 귀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너무나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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